大乘六情懺悔 원효(元曉) 지음 釋元曉撰
만일법계 의지하여 유행교화 행하려면 행주좌와 사위의에 흐트러짐 없을지니
모든부처 부사의덕 그마음에 깊이새겨 참모습을 생각하여 업장삭여 소멸하라
육도세계 가이없는 중생들을 널리위해 시방삼세 부처님께 목숨바쳐 귀의하니
다름없음 부처이나 하나또한 아니어서 하나가곧 전체이고 전체가곧 하나로다
머무는바 없으시나 아니머뭄 없으시고 하려는바 없으시나 아니함도 없으시네
하나하나 상호마다 하나하나 털구멍에 무변세계 두루하며 미래제가 다하도록
막힘걸림 모두없고 차별또한 있지않아 중생교화 끝이없고 쉬실날이 없으시네
어찌하여 그러한가 그이유가 무엇인가 이글읽는 참회행자 맘기울여 생각하라
시방세계 먼지이고 삼세간이 찰나여서 생사열반 둘이없고 다름또한 있지않아
대비반야 둘중에서 취사선택 아니되니 불공법을 얻으므로 상응하기 때문이라
지금이곳 연화장의 장엄세계 바다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연화대에 앉으시어
가없는빛 놓으시며 무량중생 불러모아 굴리는바 실로없는 대승법륜 굴리시니
보살대중 많은이들 허공중에 가득차고 받는바가 실로없는 대승법락 받으시네
허나지금 우리들은 모두함께 바로여기 한결같은 삼보님의 허물없는 곳에서도
보도듣도 못하나니 귀머거리 장님이라 부처성품 없음인가 어찌하여 이러한가
무명으로 뒤죽박죽 바깥경계 지어내고 나와내것 집착하여 갖가지업 지어내어
그스스로 덮고가려 보고듣지 못하나니 마치주린 아귀들이 물을불로 봄과같네
그러므로 불전에서 부끄러움 깊이내고 보리심을 발하여서 성심으로 참회하라
나와함께 모든중생 무시이래 지금까지 무명업주 술에취해 죄지음이 한량없네
오역죄와 십악중에 아니지은 죄없으니 제가짓고 짓게하며 남짓는것 좋아하여
이와같이 무거운죄 헤아릴수 없는것을 모든부처 모든성현 이미알고 계신바라
이미지은 죄에대해 부끄러움 깊이내고 아직아니 지은죄는 새로짓지 말지어다
그렇지만 이모든죄 실로있지 아니하고 여러인연 화합함을 업이라고 가칭하네
인연속에 업이없고 떠나서도 또한없고 안팎에도 없거니와 중간에도 있지않아
과거이미 없어졌고 미래아직 안생겼고 현재라는 이시간은 머무름이 전혀없네
그러기에 짓는바도 또한다시 그러하여 머무름이 없으므로 생겨남도 또한없네
먼저부터 있었다면 생김이란 옳지않고 먼저부터 없었다면 그무엇이 작용했나
본래부터 없었음과 지금이제 여기있음 그두뜻이 화합함을 생김이라 말한다면
본래없을 그때에는 지금있음 실로없고 지금있을 이경우엔 본래없음 없어야지
먼저나중 영향없고 있음없음 안모여서 두뜻모임 없는자리 생겨남이 있겠는가
모임의뜻 이미깨져 흩어짐도 못이루니 모임흩음 본디없고 있음없음 아니로다
없을때는 있음없네 그어떻게 없다하며 있을때는 없음없네 그누구로 있다하랴
먼저나중 있음없음 모두성립 아니되니 업의성품 본래부터 생김없음 알지로다
본래부터 생겨남이 성립할수 없을진대 그어디에 아니생김 성립할수 있겠는가
생겨남과 아니생김 함께성립 아니되면 성립할수 없다함도 성립할수 없는것을
업의성품 이러하듯 부처님도 그러하니 이는이미 경전에서 말씀하신 바와같네
이를테면 중생들이 여러가지 업지음에 선업악업 살펴보면 안팎모두 아니로세
이와같이 업의성품 있음없음 영향없듯 없던것이 나타남은 원인없인 안생기네
지은바가 없고보면 받음또한 없겠으나 시절인연 화합하여 과보얻음 그와같네
만일능히 수행자가 이와같은 실상들을 자주자주 생각하고 계속하여 참회하면
사중죄와 오역죄를 지을바탕 없어지니 땔감없는 태허공이 탈수없음 그와같네
게을러서 뉘우침도 부끄럼도 전혀없이 업의실상 올바르게 사유하지 못하는자
죄의성품 없거니와 끝내지옥 들어가니 꼭두각시 호랑이가 마술사를 삼킴같네
그러므로 시방법계 부처님들 면전에서 부끄러움 깊이내어 참회해야 할지니라
참회할땐 마음없이 억지로는 말것이니 바로응당 참회실상 사유해야 하느니라
참회할죄 그대상이 이미있지 아니한데 참회하는 행위자가 그어떻게 있을거며
참회자와 참회대상 모두성립 아니되니 어느곳에 참회법이 과연있다 할것인가
모든업장 이와같이 참회하고 난뒤에는 또한응당 육정세계 게으름을 참회하라
나와다못 모든중생 무시이래 예로부터 모든법이 본래부터 아니생김 몰랐었네
헛된생각 뒤집히어 나와내것 헤아려서 안으로는 육정세워 알음알이 일으키고
밖으로는 육진지어 실유라고 집착하니 그모두가 제마음의 지음임을 모르도다
환상이요 꿈이어서 무소유가 분명커늘 그런중에 제멋대로 남자여자 헤아리고
온갖번뇌 일으키어 제스스로 옭아매며 고해속에 길이빠져 나올생각 아니하네
선정에서 바라보면 이상스런 일이로다 이를테면 잠을잘때 잠이마음 덮어버려
물결따라 표류하는 자기몸을 바라보되 그게단지 꿈속마음 소작임을 모름같네
물에빠짐 알고나면 큰두려움 생기지만 아직깨지 않았을땐 다른꿈을 다시꾸되
자신에게 비친대상 꿈일따름 실아니라 마음본성 깨어있어 꿈속의꿈 인줄아네
물에비록 빠졌으나 두려운맘 아니내니 아직제몸 침상위에 누운줄을 모르도다
머리손발 내저으며 깨어나려 애를쓰나 깨고나서 꾼꿈들을 되돌이켜 생각하면
물과다못 떠돌던몸 모두가다 무소유라 본래부터 침상위에 누워있음 단지보리
긴꿈또한 그러하여 무명으로 덮힌마음 육도윤회 지어내고 팔고중에 떠다니니
안으로는 부처님의 부사의훈 말미암고 밖으로는 부처님의 대비원력 의지하여
믿음이해 가까워라 나와다못 중생들이 단지긴꿈 꾸는것을 실재라고 헤아리나
싫건좋건 육진이며 남자여자 두모습과 나와꿈도 모두함께 영영실재 아니니라
그무엇을 걱정하고 그무엇을 기뻐하며 그무엇에 탐을내고 그무엇에 성내리오
자주자주 사유하고 이와같이 꿈을보면 꿈과같은 저삼매를 점점닦아 얻으리라
이삼매로 말미암아 무생법인 증득하고 그리하여 긴꿈에서 완연하게 깨어나면
본래부터 윤회하여 흘러다님 영영없고 한마음이 일여침상 누워있음 알게되리
이와같이 여의면서 자주자주 사유하면 비록육진 얽혔으나 실로삼지 아니하고
온갖번뇌 부끄러워 게으르지 않을지니 이를일러 대승육정 참회라고 하느니라
[해설 및 원문] -------------------------
만약 법계에서 소요하려고 하는 자는 네 가지 위의(威儀)를 조금도 황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若依法界 始遊行者 於四威儀 無一唐遊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덕(德)을 생각하고, 항상 실상을 생각하며 업장(業障)을 녹여야 한다.
念諸佛不思議德 常思實相 朽銷業障
널리 육도(六道)의 가없는 중생을 위하여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께 귀명(歸命)해야 할 것이다.
普爲六道 無邊衆生 歸命十方 無量諸佛
모든 부처님은 서로 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다. 하나가 곧 모두이며 전체가 곧 하나이다.
諸佛不異 而亦非一 一卽一切 一切卽一
비록 머무른 바가 없으나 머루르지 않은 바도 없고 비록 하는 바도 없을지라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 것도 없으니, 낱낱 상호(相好)와 낱낱 모공(毛孔)이 끝없는 세계와 한없는 미래세에 두루하며, 구애됨도 없고 장애됨도 없으며, 아무런 차별도 없이 쉬지 않으신다.
雖無所住 而無不住 雖無所爲 而無不爲 一一相好 一一毛孔 遍無邊界 盡未來際 無障無礙 無有差別 敎化衆生 無有休息
왜냐하면 시방 삼세의 한 티끌과 한 생각과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며 차별됨도 없고, 대자대비의 반야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이 불공법(不共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所以者何 十方三世 一塵一念 生死涅槃 無二無別 大悲般若 不取不捨 以得不共法相應故
이제 이 연화장(蓮華藏) 세계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이 연화대에 앉아 끝없는 광명을 비치니 한없는 중생이 모여, 굴릴 것도 없는 대승의 수레를 굴리며, 보살대중들은 허공에 가득히 모여 받을 것도 없는 대승의 법락(法樂)을 받는다.
今於此處 蓮花藏界 盧舍那佛 坐蓮花臺 放無邊光 集無量衆生 轉無所轉 大乘法輪 菩薩大衆 遍滿虛空 受無所受 大乘法樂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들은 이 한결같은 실다운 삼보의 허물 없는 장소에 같이 있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여, 귀머거리 같고 장님 같으니, 불성(佛性)이 없는 것인가,
而今我等 同在於此 一實三寶 無過之處 不見不聞 如聾如盲 無有佛性
어째서 이와 같은가.
무명(無明)의 뒤바뀜으로 망녕되이 바깥 경계를 일으키고, <나>와 <나의 것>이라 집착하여 가지가지의 업을 지어 스스로 덮고 가리워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마치 아귀가 물을 불이라고 보는 것과도 같다.
何爲如是
無明顚倒 妄作外塵 執我我所 造種種業 自以覆弊 不得見聞
猶如餓鬼 臨河見火
그러므로 이제 부처님 앞에서 깊이 부끄러워 하며 보리심을 발하여 정성된 마음으로 참회하여야 한다.
故今佛前 深生慚愧 發菩提心 誠心懺悔
나와 모든 중생이 오랜 옛부터 무명에 취하여 지은 죄가 한이 없으니 오역(五逆)과 십악(十惡)도 짓지 않음이 없으며 스스로 지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도 짓도록 가르쳐 주었으며, 또 짓는 것을 보고 따라서 기뻐하였다.
이와 같이 죄가 가히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니 모든 부처님과 성현이 아시는 바이다.
이미 지은 죄는 깊이 참회하고 짓지 말 것이다.
我及衆生 無始以來 無明所醉 作罪無量 五逆十惡 無所不造 自作敎他 見作隨喜
如是衆罪 不可稱數 諸佛賢聖之所證知
已作之罪 深生慚愧 所未作者 更不敢作
이와 같은 모든 죄는 실지로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가지 인연이 화합하여 거짓 이름으로 업이라고 한다.
□此諸罪 實無所有 衆緣和合 假名爲業
연(緣)에는 업이 없고, 연을 여의면 또한 업은 없는 것이다.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면, 또한 중간도 있지 않다.
卽緣無業 離緣亦無
非內非外 不在中間
과거는 이미 없어졌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다.
그러므로 죄 지은 바가 머무름이 없고, 머무름이 없으므로 생함도 없다.
먼저 생하지 않았으니, 누가 생했다고 하는 것도 없다.
過去已滅 未來未生 現在無住
故所作以 其無住故亦無生
先有非生 先無誰生
만일 말하자면 본래 없다는 것과, 이제 있다고 함이 서로 더불어 이 두 가지 뜻이 화합하여 생한다고 하나 본래 없을 때는 이제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있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은 아니다.
앞과 뒤가 미치지 않으니 있고 없는 것이 합치지 않으며, 두 뜻이 합치하지 않으니 어느 곳에 생겨남[生]이 있겠는가.
若言本無 及與今有 二義和合 名爲生者 當本無時 卽無今有 當今有時 非有本無
先後不及 有無不合 二義無合 何處有生
합친다는 뜻이 이미 무너지니, 흩어짐도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합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니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合義旣壞 散亦不成
不合不散 非有非無
없는 때에도 있는 것이 없으니 무엇을 대하여 없다고 할 것이며, 있는 때에는 없는 것이 없으니 누구를 기다려 있다고 할 것인가.
無時無有 對何爲無 有時無無 待誰爲有
앞과 뒤, 있음과 없음, 이 모두가 성립되지 않으니, 마땅히 알라. 업의 성품은 본래 나는 것이 아니다.
先後有無 皆不得成 當知業性 本來無生
본래부터 남[生]이 있지 않으니, 마땅히 어느 곳에 나지 않음[無生]이 있겠는가.
남[生]과 나지 않음[無生]이 다같이 있지 않는 것이나 어찌할 수 없어서 말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중생이 모든 선악의 업(業)을 지었으나 안에는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다’은 것과 같이 업의 성품도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님이 또 그와 같다.
從本以來 不得有生 當於何處得有無生
有生無生 俱不可得 言不可得 亦不可得 業性如是諸佛亦爾
如經說言 譬如衆生 造作諸業 若善若惡 非內非外 如是業性 非有非無 亦復如是
본래 없다가 이제 있으니, 원인 없이 생긴 것도 아니며,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으나 때[時節]가 되면 과보(果報)를 받는다.
本無今有 非無因生 無作無受 時節和合 故得果報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능히 자주자주 이와 같은 실상(實相)을 생각하여 참회하면 네 가지 무거운 죄와 오역도 능히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허공이 불타지 않는 것과 같다.
行者若能 數數思惟 如是實相 而懺悔者 四重五逆 無所能爲
猶如虛空 不爲火燒
만약 게으르게 뉘우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능히 업의 실상을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비록 죄의 성품은 없다고 하지만 장차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마치 환으로 된 호랑이[幻虎]가 도리어 환술사[幻師]를 삼키는 것과 같다.
如其放逸 無慚無愧 不能思惟 業實相者 雖無罪性 將入泥梨
猶如幻虎 還呑幻師
이렇기 때문에 마땅히 시방의 부처님 앞에 깊이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참회할 것이며, 참회할 때에는 참회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마땅히 참회의 실상을 사유(思惟)하면 참회한 죄는 이미 없어질 것이다.
是故當於 十方佛前 深生慚愧 而作懺悔 作是悔時 莫以爲作 卽應思惟 懺悔實相 所悔之罪 旣無所有
어떻게 능히 참회함을 얻을 것인가.
능히 참회함[能懺]과 참회하는 바[所懺]를 둘 다 얻을 수 없을 것이다.
云何得有 能懺悔者
能悔所悔 皆不可得
마땅히 어느 곳에서 참회법을 얻을 것인가. 모든 업장에서 참회할 것이다.
當於何處 得有悔法 於諸業障 作是悔已
또 육정(六情)의 방일을 참회하고 나와 중생이 시작이 없는 옛부터 모든 법이 본래 남[生]이 없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망녕되이 뒤바뀌어 <나>와 <나의 것>이라고 계교하며, 안으로는 육정을 주장하여 알음알이[識]를 내고, 밖으로는 육진(六塵)을 지어 실유(實有)라고 집착하니, 이것이 모두 자기 마음이 지은 환(幻)과 같고 꿈과 같고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亦應懺悔 六情放逸 我及衆生 無始已來 不解諸法 本來無生 妄想顚倒 計我我所 內立六情 依而生識 外作六塵 執爲實有 不知皆是 自心所作 如幻如夢 永無所有
여기에서 남자나 여자나 구별하고 모든 번뇌를 일으켜 스스로 얽혀 길이 고해(苦海)에 빠져 헤어날 길을 구하지 않는다.
於中橫計男女等相 起諸煩惱 自以纏縛 長沒苦海 不求出要
고요히 생각해 보면 심히 괴상하구나.
마치 잠잘 때에 잠이 마음을 덮어 망녕되이 자기 몸이 큰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본다.
다만 이 꿈속의 마음이 짓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실지로 물에 빠진 줄 알고 큰 두려움을 내다가 아직 꿈은 깨지 않고 다시 다른 꿈을 꾸기를, 내가 물에 빠진 것은 꿈이요, 현실이 아니다라고 총명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꿈인 줄 알고 곧 물에 빠진 것은 꿈이요, 현실이 아니다라고 총명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꿈인 줄 알고 곧 물에 빠진 것에 대하여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몸이 침대 위에 누은 줄 알지 못하고 머리를 돌리며 손을 흔들어 잠을 깨려고 하다가 잠을 깬다.
그후 앞의 꿈을 추구하여 보면 물과 떠내려가는 몸이 다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본래대로 침대 위에 누웠음을 보게 되니 인생의 긴 꿈도 그와 같다.
靜慮之時 甚可怪哉
猶如眠時 睡蓋覆心 妄見己身 大水所漂
不知但是夢心所作 謂實流溺 生大怖懅 未覺之時 更作異夢 謂我所見 是夢非實 心性聰故 夢內之夢 卽於其溺 不生其懅
而未能知 身臥床上 動頭搖手 勤求永覺
永覺之時 追緣前夢 水與流身 皆無所有
唯見本來 靜臥於床 長夢亦爾 (懅=心부+13획원숭이거)
무명이 본래의 마음을 덮어 망녕되어 육도(六道)를 지어, 여덟 가지 고통의 바다에 돌아다니다가 안으로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힘을 원인하고, 밖으로는 모든 부처님의 대비원력(大悲願力)을 의지하여 믿음과 이해가 가까와질 것이다.
無明覆心 妄作六道 流轉八苦 內因諸佛 不思議熏 外依諸佛 大悲願力 彷彿信解
나와 중생이 오직 긴 꿈의 침대 위를 망녕되이 사실이라고 계교하여 육진(六塵) 경계와 남녀(男女) 이상(二相)에 거역하기도 하고 수순하기도 하니, 이것은 나의 꿈이지 사실은 아니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하고,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탐내고, 무엇을 성내리오.
我及衆生 唯寢長夢 妄計爲實 違順六塵 男女二相 並是我夢 永無實事
何所憂喜 何所貪瞋
자주자주 이와 같은 꿈이라고 하는 관(觀)을 생각하고 점점 여몽삼매(如夢三昧)를 닦으면, 이 삼매로 말미암아 무생인(無生忍)을 얻을 것이며 긴 꿈으로부터 활연히 깨어나 본래부터 유전(流轉)함이 없으며 다만 이 일심(一心)이 일여상(一如床)에 누웠음을 알 것이다.
數數思惟 如是夢觀 漸漸修得 如夢三昧 由此三昧 得無生忍 從於長夢 豁然而覺 卽知本來 永無流轉 但是一心 臥一如床
만약 능히 이와 같음을 여의고 자주자주 생각하라.
비록 육진을 반연함이 실다운 것이 아니니, 번뇌를 부끄러워 하고 스스로 게으르지 말아라.
若離能如是 數數思惟
雖緣六塵 不以爲實 煩惱羞愧 不能自逸
이것을 대승육정참회라고 이름한다.
是名大乘六情懺悔
序
예전에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고, 부
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불경
의 거룩한 글뿐이었다.그러나 오늘날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전해 가면서 외는 것
이 사대부의 글이요, 빌어지니는 것이 사대부의 시뿐이었다. 그것은 울긋불긋한
종이에 쓰고 고운 비단으로 꾸며서 아무리 많아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가장 큰
보배로 생각하니, 아! 예와 지금에 불법을 배우는 이들의 보배 삼는 것이 어찌 이
다지도 다른가?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옛 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로써 보배를 삼거니
와, 그러나 그 글이 오히려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 훗날의 도반
들이 가지를 헤쳐 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할까 염려하여, 글 가운데
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것 수백마디를 간추려서 한 장에 적나니, 가히 글은 간략
하나 뜻은 두루 깊다할 만하다. 만일 이 말씀으로써 스승을 삼아 갈고 닦아 묘한
이치를 얻으면 자자 구구에 석가 세존이 나타나실 것이니, 부디 힘쓸지어다. 그렇
더라도 글자를 여읜 한 글귀와 격 밖의 기묘한 보배를 쓰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거
니와, 또한 장차 특별한 기틀을 기다리고자 한다.
嘉靖 甲子(1564) 夏 虛堂 白華道人 序
1. 한 물건
여기에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 워 일찍이 나지
도 않았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2.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3. 불법의 방편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여러가지 근기가 있으니 여러가
지 방편을 쓰지 않을 수 없다.
4. 굳이 이름하건데
굳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니 부처니 중생이니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
어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법체가 그러하니 한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긋나게
된다
5. 삼처전심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三處傳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
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禪是佛心이고 교
는 부처님의 말씀敎是佛語이다.
6. 마음에서 얻으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 버리면 꽃을 듦에 미소로써 답한 것拈花微笑도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敎外別傳 선지가 될 것이다.
7. 한 마디 하노니
내가 한 마디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어 하는 일없이 망연히 앉아있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
8. 한마음법과 견성법
교문에는 오직 한마음 법一心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하는 법見性法만
을 전하였다.
9. 교와 선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는 먼저 여러 법을 가려 보이시고, 나중에 공空
한 이치를 말씀하셨지만, 조사들의 가르침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 드러났다.
10. 활과 활줄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나니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걸림 없는 법無碍之法이란 바로 일미一味 에 돌아감인데, 이 한 맛의 흔적마
저 떨어 버려야 비로소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에
잣나무 이니라庭前柏樹子話'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龍藏所未有底 고
한 것이다.
11. 먼저 참다운 가르침부터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치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自心之性相이고, 단박 깨치고 점차 닦는 두
가지 문頓悟漸修兩門이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런 연
후에 교의 뜻을 놓아 버리고放下敎義 오로지 그 마음이 두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
로써 참구한다면 반드시 얻은 바가 있으리니, 그것이야말로 몸을 뛰어나는 살길
이다.
12. 활구
대저 배우는 이들은 활구活句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13. 고양이 쥐 잡듯
무릇 공안을 참구 함에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짓되,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과 같이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하고,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이가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어 사무
칠 때가 있을 것이다.
14. 참선의 세 가지 요건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큰 신심大信根이고, 둘째
는 큰 분심大憤志이며, 셋째는 큰 의심大疑情이다.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
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15. 개에게 불성이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
까?狗子無佛性'라고 한 화두를 올 때도 들고 갈 때도 들고, 들어 올 때도 의심하
고 나갈 때도 의심하여,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생각할 길도 끊어져, 아무 재미도
맛도 없어지고, 마음꼬투리가 답답할 때, 그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
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이다.
16. 화두를 듦에 있어서의 병통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려고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라. 또
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지니,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서,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것이
다. 또 평소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보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
다니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무서워하고 갈팡 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識情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가라앉았다떴다 할뿐이다.
17. 조사관을 뚫어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이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걸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 째 들어갈 것이다.
18. 공부는 거문고 줄 고르듯
공부는 마치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느슨한 정도가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
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惺惺하고 역력歷歷하
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密密綿綿 해야 한다.
19.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 때 팔만 사
천의 마군이가 육근문六根門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생각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20. 마의 경계란?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陰魔요, 혹 일어나기도 하
고 일어나지도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煩惱魔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
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21. 타성일편打成一片
공부가 만약 때려 부수어 한 덩어리를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22. 대저 참선하는 이는
대저 참선하는 이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더러운 몸四大醜身이 순간순간 썩
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
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
는가?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서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 버리지
않았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 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
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나 일
삼고 있지 않는가? 화두가 어느 때이든지 또렷또렷 매하지 않았는가明明不昧?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
에도 한결같은가?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룰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
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
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내 몸을 이 생에 못 건지
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릴 것인가?'
23.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
만 아득하게 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른 자들이다.
24. 칠통을 깨뜨려야
만약 생사를 막아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
이다.
25. 눈 밝은 스승을 찾아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라도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알이 바른가를 점
검 해 보아야 決擇正眼 한다.
26. 다만 그대의 눈 바른 것만을 귀하게 여기네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只貴子眼正이
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不貴汝行履處,라고 하였다.
27. 굽히지도 높이지도 말라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
이지도 말아야 한다.
28. 먼저 마음을 깨달아야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만을 도와줄 뿐이다.
29. 다만 범부의 생각을 없애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을 없애는 것뿐이지, 달리 성인의 성인의 알음알
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30. 버리고 구함이 모두 더럽힘이다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삿된 것이다.
31. 번뇌를 끊어야 열반이다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大涅槃이다.
32. 한 생각도 생겨남이 없다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 보아, 한 생각이 인연 따라 일어나지만 실
상은 생겨남이 없음을 一念緣起無生믿어야 한다.
33. 일어나는 그 곳이 원래 비어 있다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등이 모두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일어나는 곳이 곧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으리요.
34. 환을 여의면 곧 깨달음이다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점점 닦아 갈 것도 없다.
35. 생사와 열반이 본래 없는 것
중생이 나는 것 없는 가운데서 망녕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은 마치 허공에
서 눈꽃이 기멸起滅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36. 다시 열반을 따로 얻은 바가 없다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을 들게 했다 할지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는 것
이다.
37. 버릇은 한번에 없어지지 않는다
이치를 단박에 깨칠 수 있으나,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 지 않는다.
38. 이것이 마도이다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
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물이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악마의 길
을 이룰 뿐이다.
39. 마음계율을 깨뜨리지 말라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
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 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40. 계를 지켜야
만약 계를 지킴이 없으면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 한다는데, 하물며 청정
한 지혜의 열매를 바랄 수 있겠는가?
41. 애욕을 끊어야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의 불꽃을 꺼 버려야 한다.
42. 걸림없는 지혜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다 선정禪定에서 나온다.
43. 선정에 들게 되면
마음이 정定에 들면 세간의 나고 꺼지는 모든 현상을 능히 알게 된다.
44.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어떤 경계를 당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않음不生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解脫이라 한다.
45. 본래 그대로 열반이다
도를 닦아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修道證滅도 또한 진리가 아니다. 심법이 본래 고요
한것心法本寂임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다常自寂滅相'라고 하신 것이다.
46. 보시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힘 닿는대로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가엾이 여기면
同體大悲 이것이 참 보시布施니라.
47. 성내지 말라
누가 와서 나를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 의 문이 열린다.
48. 인욕
만약 참는 일이 없다면 만가지 행실이 이루어지지 못하느니라.
49.마음을 지키는 일
본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다.
50. 진언을 외우는 것은
진언을 외우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 쉬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
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한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51. 예배
예배란 공경이요 조복받음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52. 염불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誦佛이요, 마음으로 하면 염불이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도움도 없다.
53. 경을 듣는 일
경을 들으면 귀를 거친 인연도 있게 되고, 따라 기뻐한 복도 있게된다. 물거품 같
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으나, 참다운 행은 헛되지 않는다.
54.간경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을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보았다 하더라
도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55. 입만 배우지 말라
배워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갓 말재주만 부려 서로 이기려고 한
다면 마치 측간에 단청하는 것과 같다.
56. 외전
세속을 떠난 이가 세속 글을 익히는 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아서 흙은 아
무 소용도 없는데 칼만 망가지게 된다.
57. 출가하는 뜻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편안함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 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 혜를 이으려
는 것이며, 삼계三界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58. 덧없는 불꽃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태운다無常之火가 燒諸世間'
하셨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방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 하셨으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 하셨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
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해야 한다.
59.명리를 버리라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요, 세상의 잇속을
따라 허덕이는 것은 업의 불에 섶을 더 보태는 것이다.
60. 명리승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초의草衣를 걸친 야인만도 못하다.
61. 가사입은 도둑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나의 옷을 빌려 입고, 부처를 팔아 온
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고 하셨다.
62. 한 덩이의 밥
아! 불자여. 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
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찌 소화해 낼 수 있단 말인가!
63. 시주받은 과보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 인 줄 아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주는 것을 함부로 받아먹은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또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이 무슨 심사인가? 도대체 눈앞의
쾌락의 바로 후생이 괴로움인 줄을 생각지 않는구나.
64. 차라리 쇳물을 마시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 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옷을 입지 말며, 차라리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고,
차라리 끊는 가마솥에 뛰어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집에 거처하지 말라' 한
것이다.
65. 시주를 받을 때 화살받듯 하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한 것이다. 두터운 대접과 달콤
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66. 칼 가는 숫돌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장 서방이 와서 갈고,
이서방이 와서 갈아가면 남의 칼은 잘 들겠지만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리어 남이 와서 돌에 칼을 갈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67. 가사 아래 사람의 몸을 잃음
그러므로 옛말에 또한 이르기를 '삼악도의 고통三途苦이 괴로움이 아니라, 가사를 입
었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진짜 괴로움이다'라고 하였다.
68. 더러운 가죽주머니
우습다, 이 몸이여.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또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가득 담기고,
피고름 덩어리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나거나 아까울 것이 없다. 더구나 백년을
잘 기른다 해도 숨 한 번에 은혜를 저버리고 마는 것이랴.
69. 참회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곧 부끄러워 할 줄 알면 대장부의 기
상이 있다 할 것이다.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
어질 것이다.
70. 하나의 바리때와 한 벌 옷
도인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검박하고 곧은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아 한 개의 표주
박과 한 벌의 누더기 옷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것이 없다.
71. 무심도인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두 가지를 다 잊는다면 이것이 바로 참다운 법이다.
72.보살과 마군
성문聲聞은 숲 속에 편히 앉아서도 마왕에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
와 마군이 보지 못한다.
73. 임종시에
누구든지 임종할 때에는 다만 오온五蘊이 다 빈 것이어서 네 가지 원소가 나라고 할
것이 없고四大無我,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眞心無相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
니다.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것이 아니
다. 지극 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이
단박 깨친다면 삼세 인과에 이끌리거나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곧 세상을
뛰어난 자유인이다. 만약 부처님을 만나더라도 따라 갈 마음이 없고, 지옥에 가더라
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다만 스스로 무심하게 되면 법계와 같이 될것이니 이
것이 바로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좋은 씨를 심고 임종 할 때에 좋은 열
매를 거둘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곳에 주의하여야 한다.
74. 마지막 순간에 분별을 두지 말라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생각이 끊어지지 않
게 되면 나귀나 말의 뱃속에 끌려들 거나 지옥의 끊는 가마 속에 처박히게 되며, 혹
은 개미나 모기같은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75. 학인의 병통
참선하는 사람이 본래 면목을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
게 뚫을 것인가. 때때로 어떤 이는 아주 끊어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
고, 아무 것도 기억이 없는 빈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일체 모두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나니, 이것은 컴컴하게 비기만 한 것이라 병든 바가 깊다. 지
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이런 병에 걸려 있다.
76. 종사의 병통
종사宗師도 또한 병病이 많다. 병病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
울이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고, 병病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횡설
수설되지 않은 말과 함부로 '할' 喝하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는다. 병病이 손발에 있
는 자는 나아 갔다 물러갔다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으며, 병病
이 마음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를 찾아내고 오묘한 것으로써 선禪을 삼는다. 사실
대로 말하면 어느 것이고 병病 아닌 것이 없다.
77. 장승의 노래
본분 종사本分宗師가 이 구句를 온전히 들어 보임은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붙는 화
로에 눈 떨어지듯 紅爐點雪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石火電光하여, 배우는 자가
참으로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하
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는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78. 마조의 일갈
대저 배우는 사람은 먼저 종파 宗途의 갈래부터 자세히 가리어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스님이 한 번 '할'하는데, 백장스님은 귀가 먹고, 황벽스님은 혀가 빠졌다. 이 한
'할' 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소식이며, 또한 달마대사의 처음 오신 면목
이다.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된 것이다.
79. 선종의 다섯 갈래
무릇 조사의 종파에 다섯갈래가 있다. 즉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曺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仰宗, 법안종法眼宗 등이다.
80. 임제종
임제종은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33대 되는 육조 혜능대사 六祖慧能大師의 밑에
서 곧게 전하여 내려가기를 남악회양南嶽懷讓, 마조도일馬祖道一,백장회해百丈懷海, 황
벽희운黃檗希運, 임제의현臨濟義玄, 흥화존장興化存奬, 남원도옹南院道○, 풍혈연소風
穴延沼,수산성념首山省念, 분양선소汾陽善昭, 자명초원慈明楚圓, 양기방회楊岐方會,백
운수단白雲守端,오조법연五祖法演,원오극근圓悟克勤,경산종고선사俓山宗○禪師등이다.
81. 조동종
조동종曺洞宗은 육조의 아래에서 곁 갈래의 청원행사靑原行思, 석두희천石頭希遷, 약산
유엄藥山惟儼, 운암당성雲巖曇晟, 동산양개洞山良价, 조산탐장曹山耽章, 운거도웅 雲居
道膺선사 등이다.
82. 운문종
운문종雲門宗은 마조馬祖의 곁갈래로 천황도오天皇道悟, 용담숭신龍潭崇信, 덕산선감
德山宣鑑, 설봉의존雪峰義存, 운문문언雲門文偃, 설두중현雪竇重顯, 천의의회天衣義懷
선사 등이다.
83. 위앙종
위앙종은 백장百丈의 곁 갈래로 위산영우○山靈祐, 앙산혜적仰山慧寂, 향엄지한香嚴
智閑, 남탑광용南塔光湧, 파초혜청芭蕉慧淸, 곽산경통○山景通, 무착문희無着文喜선
사 등이다.
84. 법안종
법안종法眼宗은 설봉雪峰의 곁갈래로 현사사비玄沙師備, 지장계침地藏桂琛, 법안문
익法眼文益, 천태덕소天台德韶, 영명연수永明延壽, 용제소수龍濟紹修, 남대수안南臺
守安 선사 등이다.
85. 임제종의 가풍
임제 가풍은 맨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부처도 조사도 죽이고, 예와 지금을 삼현삼
요三玄三要로써 판단하며, 용과 뱀을 주인과 손님의 위치로서 알아낸다. 금강이 보검
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갖은 위엄을 떨쳐 여우와 이리의 넋을 찢는다. 임제
의 종지 를 알겠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물결 인다.
86. 조동종의 가풍
조동 가풍은 방편으로 다섯 자리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들고
나쁜 소견이 자라는 빽빽한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길을 묘하게 맞추어서 천만
가지 모든 생각을 끊고 천착하여 가도다. 위음왕불威音王佛 나시기 전의 눈에 의젓
한 풍광이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풍경이다. 조동종을 알겠는가? 부처
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는 그대로, 바른 것, 치우친 것, 있다 없다 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威音王佛; 이 세계전에 맨 처음 부처가 되신 분이라 함
87. 운문종의 가풍
운문 가풍은 칼날 위에 길이 있고, 철벽에 문이 없다. 온 천하의 갈등을 흔들어 엎고
범부의 식견을 베어 버린다. 번개처럼 빠른 생각으로도 미칠 수 없는데,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발붙일 수 있으랴. 운문종을 알겠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
르고 잔 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한다.
88. 위앙종의 가풍
위앙 가풍은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
옆구리에 글자가 씌어있고, 머리 위에 뿔이 높이 솟았구나. 방안에서 사람들을 시
험하니 사자가 허리가 꺽인다. 네 가지 시비를 여의고, 백 가지 아닌 것도 모두 끊
어 버려 한 망치로 쳐 부수었네. 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아홉 구
비굽은 구슬을 꿰뚫었도다. 위앙종을 알겠는가? 부러진 비석은 옛 길에 비켜있
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잔다.
89. 법안종의 가풍
법안 가풍은 말 속에 메아리가 울려퍼지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 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풀무질 한다. 바람 부는 나뭇가지
와 달 비치는 물가에 실상을 드러내고 푸른 대와 누른 국화 묘한 법을 환히 드러낸
다. 법안종을 알겠는가? 바람은 구름을 몰아 산마루로 날리고, 밝은 달은 물과 함
께 다리지나 흘러오네.
90.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가 다 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에 사무쳐 들어가 도리를 철
저하게 증득하여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었다. 큰 기틀과 큰 작용이 자유자재하
여 어디나 전신으로 출몰하며 전신으로 짐을 져, 물러나 문수와 보현의 대인 경계를
지킨다 하더라도 실상대로 말한다면 이 두 분도 또한 도깨비가 됨을 면 치 못할 것이
다.
91. 부처와 조사보기를 원수같이 한다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마치 원수와 같이하여야 한다. 만약 부처에게 매달
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부처에게 얽매인 것이요, 만약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
는 것이 있다면 또한 조사에게 얽매이는 것이 된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다면 다
고통이 되므로 아무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92. 거룩한 빛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서문
是하면 그르친 것이요.
非해도 亦不中 인데 남의 糟糠을 번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나 一法도 버릴 것이 없는 면으로 보면 塵塵刹刹이 無非及일세 明明草草頭가 明明祖師意아닌가......
뜻이 얕고 短文인 사람에게 一日에 대중의 한 분이 부설거사 어록과 방거사어록을 변역 하여 달라는 청을 받고 마지못하여 바쁜 가운데 뜸뜸이 번역하여 방거사 어록 중에 中 .下권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上권만을 펴내게 됨을 凉知하시옵고 혹 잘못된 점이 있으면 明眼納子의 힐책을 감수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수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만분지일이라도 佛 恩에 보답이 될까 하나이다.
불기2529년 10월 勤日 序
거사의 이름은 蘊이요, 자는 道玄이니 襄陽사람으로서 아버지는 衡陽 에서 太守의 벼슬을 하였다. 잠시 성남에서 살 때 수행할 암자는 가택 서쪽에다 세우고 수년 뒤에 는 전 가족이 득도하니 지금의 悟空庵이 이것이요, 후에 암자의 아래 에 있는 옛 집을 희사하니 지금의 能仁寺가 이것이다. 唐나라 貞元年에 數萬마의 많은 보배를 배에 싣고 가서 洞庭湘右라는 江 中流에 모두 버렸다. 그로부터 삶은 오직 한 장의 나뭇잎 같은 생애였다. 거사에게는 처와 일남일녀가 있었는데 대나무 그릇을 만들어 시중에 팔아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나라 정원 년에는 선종과 율종이 크게 성하고 조사의 가르침이 서 로 융성하여 그 빛은 사방에 뻗쳤으며 생활 속에 다 들어가 있었다. 거사는 먼저 石頭 스님에게 參學하고 지난날의 경지를 몰록 밝게 하 고 馬組스님을 알현한 후에는 本 心에 계합하니 일마다 깊게 통하고 도 에 계합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妙德과 변재가 대단하고 문자의 眞詮마저 갖추어 합치하고 있었으며 그 후 각처를 찾아다니면서 지극한 이치를 겨루었다. 元和 초년에 그는 襄陽에 살면서 암굴에 보금자리를 정했다. 그때 태수인 于公적은 두루 살펴 민요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거사의 글을 읽고 더욱 흠모하는 생각이 더했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몸소 나아가 알현하고 보니 옛친우와 같았다. 그리하여 정분이 깊이 계합하고 또한 왕래가 끊어지지 않았다.
거사가 入滅하려 할 때 딸 靈照에게 말하기를
모든 것이 幻化며 無實이니 네가 하기에 따라 인연한 바이니
잠깐 나가서 해의 높이를 보고 한낮이 되거든 알려다오.
영조는 문밖에 나아가 급히 말하되
벌써 한낮인 데다 日蝕입니다.
잠깐 나와서 보십시오.
거사가
설마 그럴 리가
하고 말하니 영조가
그러합니다.
라고 말했다.
거사가 일어나 창가에 갔다.
그러자 영조가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던
자리에 올라가 가부좌하고 곧 열반에 들었다.
거사는 돌아서서 그것을 보자 웃으며
내 딸 녀석 빨리도 앞질러 가는 구나.
하고는 나무를 줒어서 다비를 하였다.
칠일이 지나서 우공이 문안을 왔다.
거사는 우공의 무릎에 손을 얹고 잠시 돌아보며 말하기를
다만 원컨대 있는 바 모두 공하니 삼가 없는 바 모두가 있다고 말라.
잘 계시오 세상살이는 다 메아리와 그림자 같은 것이니
하고 말을 마치자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몸은 단정히 앉아 思索한 것 같았다.
그러자 우공은 빨리 붙들려 했으나 이미 열반에 들었었다. 바람은 大澤에 거칠게 불어 대는데 하늘에 피리 소리는 고요히 들려 달은 희미하게 창가에 비치는데 얼굴의 화색은 변하지 않았다. 시체를 태워 강이나 호수에 버리라는 유언에 따라 陳儀事를 갖추어 如法이 茶毘에 붙이게 되었다.
한편 곧 使人을 보내어 처자에게 알리니 妻는 소식을 듣고 가로되
이 어리석은 딸과 無知한 늙은이가 알리지도 않고
가버렸으니 이 어찌 가히 참겠는가.
하고 아들에게 알리려 가니 화전을 일구고 있는 것을 보고 가로되
龐公과 더불어 靈照가 가 버렸다.
고 말하니 아들은 호미를 놓고
애 !
하고 조금 있다가 선 채로 열반에 드니 母 는 말하되
어리석은 아들아 어리석음이 어찌 이다지도 한결 같은고
하고 또한 화장하니 사람들은 모두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에 그 妻는 마을의 집집을 두루 돌면서 작별을 告하고 자취를 감추었으니 그로부터 어디로 갔는지 아는 자가 없었다.
巨士는 늘 말하되
아들이 있지만 결혼하지 않고 딸이 있어도 시집가지 않았으며
온 집안이 단란하여 無生話를 했다.
그 밖의 현묘한 말과 道를 읊은 詩頌이 세간에 전해져 있으나 자못 많이 흐트러져서 이번에 우선 듣고, 알고 있는 것만을 하나로 묶어 편집하여 길이 장래를 보아 후학에게 격려하는데 쓰여지고자 한 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居士는 유마의 後身이라 하니 아마 그대로 일 것이다.
無名子 序
巨士가 처음 石頭和尙을 參禮하고 묻되
萬法과 더불어 벗하지 않는 者는 누구입니까?
석두는 손으로 거사의 입을 막으니 거사는 활연히 깨달았다.
석두가 하루는 거사에게 묻되
그대는 老僧을 만나본 以來로 日用事가 어떠한고?
말하되
만약 누가 日用事를 묻는다면 바로
입을 열 곳이 없습니다.
석두가 말하되
그대가 그러함을 알았을진대 바야흐로 묻노라
하니 거사가 게송을 지어 바치기를
日用事는 고루 갖추었는데 朱니 紫니 어느 누가 이름을
붙었는고, 靑山에는 點埃가 끊어졌으니 물긷고 나무를
운반하는 것 이대로 입니다.
석두가
그렇다.
하고 말하되
그대는 緇로 할 것인가 素로 할 것인가?
하니 거사가 말하기를
원컨대 사모한 바로 쫓고 染하고 剃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居士는 그 후에 江南에서 馬祖를 참견하고 질문하기를
萬法과 더불어 벗하지 않는 者는 누구입니까?
마조가 云하되
네가 한입에 西江水를 다 마시면
곧 너에게 말해 주리라.
거사는 言下에 玄妙한 道理와 요긴한 이치를 몰록 깨닫고
이에 頌을 증정하니 心空及第句가 있었다.
이로부터 제방에서 가히 막을 자가 없었다.
거사가 하루는 마조에게 묻기를
물과 같이 힘줄과 뼈가 없으나 능히 만섬들이 배를
뜨게 하니 이 도리는 어떠합니까?
마조가 云하되
여기에는 물도 없고 또한 배도 없는데
무슨 힘줄과 뼈를 말하는고
하다.
居士가 藥山에게 이르자 藥山이 물어 가로되
一乘法中에 도리어 자箇事가 著得 하는가?
居士가 말하되
오늘 먹을 것을 구할 뿐 자箇事가 著得 인지 알지 않습니다.
藥山이 말하되
居士는 石頭를 보고 그렇게 얻었는가?
居士가 云하되
하나를 잡고 하나를 놓으면 이 좋은 손이 아닙니다.
藥山이 말하되
老僧은 住持라서 일이 많도다.
거사가 문득 珍重하니 藥山이 말하되
하나를 잡고 하나를 놓으면 老僧은 옳도다.
居士가 말하되
좋은 一乘問宗이 금일에 失却해 가는 구나.
藥山이 말하되
옳다 옳다.
하다.
居事가 禪院에 들어오자 高峰이 云하되
이 속인이 빈번히 선원에 들어와서 무엇을 찾는고?
居士가 이에 兩邊을 돌아보며 말하되
누가 이렇게 말하는고.
高峰이 문득 喝을 하니 거사가 말하되
여기 있구나.
高峰이 云하되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가.
거사가 말하되
뒤를 돌아 보라.
高峰이 머리를 돌려 말하되
봐라 봐라.
거사가 말하되
草賊은 大敗했다 草賊은 大敗했다.
高峰이 말이 없다.
하루는 高峰이 거사와 같이 걸어갈 적에 居士가 일보 앞에 나아가서 말하기를
나는 和尙보다 一步 능가했다.
하니 高峰이 말하되
앞서고 뒤서는 것이 없는데 老翁이 먼저 있기를 다투는 구나.
하다.
居士가 말하되
苦中苦도 이 一句에 미치지 못하리라.
하다.
高峰이 云하되
늙은이가 不甘을 두려워하는구나.
居士가 云하되
老翁이 만약 달게 여기지 아니하면 高峰은 무엇을 堪作하리요.
高峰이 云하되
만약 棒이 손에 있다면 쳐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하겠도다.
居士가 한 번 치면서 말하기를
多는 좋지 않을텐데
高峰이 비로소 棒을 잡으니 居士가 빼앗으며 云하되
도적이 금일에 한바탕 패했음이로다.
하니 高峰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졸렬한 것인가 公이 졸렬한 것인가.
居士는 손바닥을 치면서
비겼다 비겼다.
하다.
居士가 하루는 高峰에게 묻기를
여기에서 峯頂까지는 몇 리나 됩니까?
高峰이 云하되
어느 곳에 가 있는가.
居士가 云하되
가히 두렵고 험준해서 問著할 수 없도다.
高峰이 云하되
어느 정도인가.
거사가 말하되
1 2 3 이라
高峰이 云하되
4 5 6 이로다
거사가 말하되
어찌 7를 말하지 아니합니까.
高峰이 云하되
이에 7이라 하면 곧 8이라 할 터이니까.
거사가 말하기를
잘한다 잘한다.
高峰이 云하되
添取하기를 일임하노라.
거사가 이에 돌 하다.
居士가 云하되
당당히 말하지는 못하겠지요.
高峰이 云하되
이러할 때에 龐公의 주인翁을 나에게 돌려보내라.
居士가 云하되
그렇게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가.
高峰이 云하되
잘 꾸짖은 물음이로되 물음이 사람을 밝게 하지는 못하도다.
居士가 云하되
잘 왔다 잘 왔다.
하다.
丹霞和尙이 어느 날 거사를 방문코자 대문간에 이르자
靈照가나물 바구니를 잡고 있는 것을 보고 묻기를
거사가 집에 있는가
하니 영조가 바구니를 놓고 손을 맞잡고서 있거늘
단하는 또 묻기를
거사는 집에 있느냐 없느냐
하니 영조는 나물 바구니를 들고 문득 가버렸다.
돌아온 거사에게 있었던 사실을 말하니
거사가 이르기를
赤土에 牛 를 칠했구나
하였다.
단하가 딸아 들어와서 거사를 보니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도 또한 말하지도 않았었다.
단하가 이에 불자를 세워 일으키거늘 거사는 槌子를 세웠다.
단하가 말하기를
다만 이것뿐인가 또다른 것이 있는가
거사가 이에 단하를 보면서 말하기를
전과 같지 않구나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사람의 聲價를 떨어뜨리려 하지만 방해롭지 않다
하다.
거사가 운 하되
좀전에 너를 한 번 꺾어 보려고 한 것이다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이러한 즉 天然의 입은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데
거사가 말하되
너의 벙어리는 본분에 말미암음이지만 나까지도 벙어리가 되겠다
하니 단하가 문득 拂子를 던지고 가 버리니 거사가
然스님 然스님
하고 불러도 단하는 돌아보지 아니하니 거사가 운 하되
벙어리를 근심할 뿐만 아니라 다시 겸하여 귀머거리가 될까 걱정된다
하다.
단하는 어느 날 거사가 방문해서 말하기를
어제 날에 서로 보았음이 어찌 금일에도 같은가
거사가 말하기를
如法이 어제 일을 들어서 너로 하여금 宗眼을 밝히고자 함이라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다만 宗眼을 방옹이 著得할 수 있겠는가
거사가 운 하되
나는 너의 눈 속에 있는데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내눈은 좁은데 어느 곳을 향하여 늙은이가 안착하려는고
거사가 말하기를
이 눈이 좁은데 이 몸이 어찌 편안하리요
단하가 돌아보지 않자 거사가 말하기를
다시 한 번 一轉을 말하면 문득 이 말의 전부를 얻으리라
단하가 또한 대답을 하지 아니하거늘 거사가 운 하되
여기에 一句를 말할 사람이 없구나
하다.
하루는 거사가 단하를 향하여 앞에서 叉手하고 잠깐 섰다가 나가도
단하는 돌아보지 아니하자 거사는 다시 와서 단하 앞에 앉으니
단하가 도리어 거사를 향하여 앞에서 손을 맞잡고 잠깐 섰다가
문득 방장실로 들어가니
거사가 운 하되
너는 내가 나오면 들어가니 일을 살피지 못하겠도다
하니 단하가 운 하되
이 늙은이가 들락날락하니 마칠 기약이 있겠는가
거사가 운 하되
조그마한 자비심도 없구나
하니 단하가 운 하되
이 놈을 田地까지 인도하게 했는데
거사가 운 하되
무엇을 잡아 인도했는가
단하가 이에 거사의 모자를 잡아 일으켜 말하되
一箇老師僧과 같도다
거사가 도리어 모자를 단하 머리에 올려놓고 말하기를
한낱 속인과 같도다
거사가 이에 應 하는 소리를 세 번하니 단하가 운 하되
옛날 기질을 어찌 잊어 버렸으리요
거사가 彈指하기를 세 번하면서 운 하되
하늘도 움직이고 땅도 움직인다
하다. 어느 날 단하는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달아날 기세를 하거늘 거사가 운 하되
그것은 오히려 몸을 버릴 자세로 어찌 찡그리고 심음할 행세를 하는고
단하가 문득 앉자 거사가 이내 단하의 앞에서 주장자로써 七자를 그으니 단하는 面下에 一자를 썼다.
거사가 운 하되
七로 因하여 一을 보고 一을 봄으로써 七자를 잊음이라
하니 단하가 운 하되
이 속에 말을 붙이려고 하는가
거사는 이내 哭을 세 번하고 가 버렸다.
하루는 거사가 단하와 더불어 出行을 할 때 맑고 푸른 강물을 보고 거사는 물을 가르키면서 말하되
이러한 것은 빨리 판단해 내지 못할 것이다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너무 분명해서 판단해 내지 못한다
거사가 손으로 단하에게 물을 세 번 뿌리니 단하가 말하기를
이러지마 이러지마
하면서 도리어 거사에게 물을 뿌리니 거사가 말하기를
마땅히 이러할 때 어떻게 堪作할 것인가
단하가 말하기를
물건밖에는 없다
거사가 운하되
마땅한 사람이 적다 마땅한 사람이 적다
하니 단하가 대답이 없자 거사가 운 하되
누가 便宜에 떨어지지 않았는가
하다.
백령화상이 路上에서 거사와 상봉하고 물어 운하되
옛날에 거사가 南嶽에게서 得力句를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얘기했던 적이 있는가
거사가 운하되
말 한적이 있습니다
하니 백령이 운하되
어떤 사람에게 얘기했는가
거사가 자기를 가르키면서
방옹에게
하니 백령이 운하되
바로 이 妙德과 空生이라도 거사를 찬탄해 미치지 못하리라
거사가 도리어 묻되
스님의 得力句를 누가 알고 있습니까
하니 백령이 삿갓을 쓰고 가거늘 거사가 운하되
잘 가십시오
백령은 돌아보지 아니했다. 하루는 백령이 물어 말하되
말해도 말하지 않아도 함께 면치 못하니 너는 말하라
무엇을 면치 못하는고
거사가 눈을 껌벅하니 백령이 운하되
기특하다 다시 이보다 없으리라
거사가 운하되
스님이 사람을 잘못 인정합니다
하니 백령이 운하되
누가 이러 하지 않으며 누가 이러하지 않으리요
거사는 珍重히 나가 버렸다.
하루는 백령이 방장실에 앉아 있는데 거사가 들어오거늘 백령이 把住하며 말하기를
요즘사람도 말했고 옛사람도 말했는데 거사는 어떻게 말하겠는가
거사가 백령을 한 번 치니 백령이 운하되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거사가 운하되
말한즉 허물이 있도다
하니 백령이 운하되
도리어 내가 한 번 치리라
거사가 앞에 가까이 가서 운하되
시험삼아 한 번 쳐봐라
하니 백령이 珍重하다.
하루는 거사가 백령에게 물어 말하되
이러한 眼 目으로 사람의 비판을 면할 수 있겠는가
하니 백령이 운하되
어찌 免得할 수 있을고
거사가 운하되
뜻을 알았다
백령이 운하되
棒으로 無事人은 치지 않는다
거사가 몸을 돌려 말하되
쳐라 쳐라
하니 백령이 바야흐로 棒을 잡아 이르키자
거사가 把住하며 말하기를
나한테 모면해 보라
하니 백령이 말하지 않았다.
보제화상이 하루는 거사에게 물어 말하되
이 한낱 말로는 이제나 옛이나 唇舌을 피할 사람은 드무니 방옹은 피할 수 있겠는가
거사가 應諾하니 보제가 前의 말을 다시 하거늘
거사가 운 하되
어느 곳에서 去來하는가
하니 보제가 또 前話를 들어 말하니
거사가 운하되
어느 곳에서 去來하는가
보재가 운하되
다만 지금만 아니라 古人도 이러한 말이 있도다
거사는 춤을 추면서 나가거늘
보재가 운하되
이 미친놈 스스로의 허물을 누구에게 점검케 하는고
하다.
거사는 대동보제선사를 보고 손에 조리를 들어 보이면서 운하되
大同師! 大同師!
해도 보제가 대답하지 아니하니
거사가 운하되
石頭의 一宗은 스님의 처소에서 녹아 없어지는구나
하니
보제가 운하되
방옹이 들추지 않더라도 분명히 이와 같도다
하거늘 거사가 조리를 놓고 말하되
어찌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리요
보제가 운하되
비록 한푼의 가치도 없어서 다른 사람은 하품을 하고 또한 옳다 그르다 할지라도 나는 만족하게 여긴다
거사는 춤을 추면서 나가거늘 보제가 조리를 들고 운하되
거사!
하고 부르니, 거사가 머리를 돌이키거늘 보제가 춤을 추면서 나가니 거사가 손뼉을 치면서
歸去來! 歸去來!
하다.
하루는 보제가 거사를 보려가니
거사가 운하되
어머님 태중에 있을 때 一則語를 화상에게 말씀해 드리니 道理를 지어서 지키지 마시오
보제가 말하기를
오히려 삶이 隔했도다
거사가 운하되
스님을 향한 말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보제가 운하되
사람을 놀라게 하는 句를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리요
거사가 말하되
스님과 같은 見解는 가히 사람을 놀라게 할만합니다
보제가 운하되
道理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도리어 道理를 지음이로다
거사가 운하되
다만 一 生二生을 隔했음이 아니로다
보제가 운하되
밑바닥 僧을 점검하는데 一任하노라
거사가 손가락으로 세 번 퉁기다.
하루는 거사가 보제를 보려 가니 보제가 오는 것을 보고 문득 문을 닫으며 말하기를
아는 것이 많은 늙은이는 相見하지 않겠다
거사가 운하되
홀로 않아 말함은 누구에게 허물이 있는고
하니 보제가 이에 문을 여니 거사가 把住하며 말하기를
스님이 아는 것이 많은가 내가 아는 것이 많은가
보제가 운하되
아는 것이 많도다
하면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말아 드리는 것과 펴는 것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고
거사가 운하되
이 물음은 사람을 氣急殺하게 하도다
하니 보제가 말이 없거늘 거사가 운하되
巧를 희롱하다가 拙을 이루웠다
하다.
거사가 하루는 장자화상 처소에 이르자 마침내 上堂說法을 하고져 대중이 集定해 있었다.
거사는 문득 앞에 나아가 운하되
여러분 청하오니 스스로 점검함이 좋겠습니다
하여도 장자화상이 설법을 하자 거사는 도리어 禪狀 우측에 서니
그때 어떤 僧이 묻기를
노인이 주장한 바는 받지 않겠아오니 청컨대 스님이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장자가 운하되
방옹을 아느냐
하니 僧이
알지 못합니다
하거늘 거사가 문득 僧의 멱살을 움켜잡고
苦哉苦哉로다
하니 僧이 대답이 없자 거사는 밀어 버렸다.
장자가 조금 있다가 운하되
마침내 와서 僧에게 棒을 먹였는가
거사가 운하되
저이를 비로소 잘 대접했습니다
하니 장자가 운하되
거사는 다만 송곳 끝이 뽀족한것만 보았지 끌이 모나 있는 것을 보지 못했도다
하니
거사가 운하되
그러한 말은 나는 곧 알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이 들으면 좋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장자가 운하되
무엇이 좋지 않는고
거사가 운하되
화상을 다만 송곳 끝만 보고 끌 끝은 보지 못했습이로다
하다.
거사가 하루는 송산화상과 차를 마실 때거사가 차판을 들고 말하기를
사람사람마다 분수가 있는데 어째서 말하지 못하는가
하니 거사가 운하되
阿 兄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는가
하거늘 송산이 운하되
無言으로는 가히 다할 수 없기 때문일세
거사가
灼然灼然하다.
송산이 문득 차를 마시니 거사가 운하되
아형은 차를 마시면서 어째서 客에게 揖하지 않는가.
하니 송산이 운하되
누구에게?
거사가 운하되
龐翁에게!
하니 송산이 운하되
어찌 새삼 읍할 필요가 있을꼬하다
훗날 丹霞가 듣고 운하되
만약 松山의 眼目이 아니였다면 도리어 저 老漢이 한바탕 어지럽게 하였으리라.
하는 말을 거사가 듣고 사람을 보내어 단하에게 전하기를
어찌 차판을 들기 前事를 알지 못하는고 하다.
하루는 거사가 松山과 더불어 밭가는 소를 보고 거사가 소를 가르키며 운하되
저러할 때 편안하련만 有를 알지 못하도다.
하니 송산이 운하되
만약 방옹이 아니면 어찌 저를 알리요.
거사가 운하되
스님은 저것이 무엇이 있는 줄을 못하는 지 말해보시오.
하니 송산이 운하되
石 頭를 보지 못했으니 말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거사가 운하되
본 후에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니 송산이 손바닥을 세 번 치다.
하루는 거사가 송산을 방문할 때 송산이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말하되
手中에 무엇입니까
하니 송산이 운하되
老僧은 나이가 많아서 이것이 없으면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도다.
거사가 운하되
비록 그러하나 壯力이 아직 있습니다.
하거늘 송산이 문득 때리니 거사가 운하되
手中에 지팡이를 놓고 한 번 물어보시오.
하니 송산이 지팡이를 던져 버리니 거사가 운하되
이 늙은이가 前言과 後言이 부합되지 아니하도다.
하거늘 송산이 문득 喝 을 하니 거사가 운하되
蒼天中에 다시 원한의 苦가 있음이로다하다.
거사가 어느 날 송산과 같이 걸어 갈 때 僧侶가 野菜를 고르는 것을 보고 송산이 운하되
黃葉은 버리고 靑葉은 남겨두라
하시니 거사가 운하되
黃靑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또한 어떤 것인고
하니 송산이 운하되
좋은 말을 해보라.
거사가 운하되
서로 賓主가 되는 것은 크게 어렵도다.
하거늘 송산이 운하되
도리어 이 물음에 굳이 主宰를 지으려 하는가.
거사가 운하되
누군들 그렇지 아니하리요.
하니 송산이
그렇지 그렇지
거사가 운하되
黃靑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능한 가운데서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니 송산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잘 풀이해 준 말이로다.
거사가 大衆에게 가볍게 절을 하거늘 송산이 운하되
대중이 너의 落機處를 놓아줌이로다.
하다. 어느 날 송산이 거사와 함께 談話할 때 문득 책상 위에 尺을 잡아 일으키며 말하되
거사는 도리어 보입니까?
하니 거사가 말하되
보입니다.
하거늘 송산이 운하되
무엇이 보입니까?
거사가 운하되
송산이 보입니다.
하니 송산이 운하되
말에 집착하지 말지어다.
하거늘 거사가 운하되
어째서 말하지 않으리요.
하니 송산이 이에 尺을 던져버리니 거사가 운하되
머리는 있고 꼬리가 없으면 남의 미움을 삽니다.
하니 송산이 운하되
그렇지 않다. 翁은 금일에 아직 말하여 마치지 않했도다.
거사가 운하되
어느 곳에 미치지 못했습니까.
하니 송산이 운하되
머리는 있고 꼬리는 없는 곳에
거사가 운하되
强 中에 弱을 얻는 것은 곧 있거니와 弱中에 强을 얻는 것은 없습니다.
하니 송산이 거사를 잡으며 말하되
이 늙은이는 이 中에 나아가 말할 곳이 없도다.
大乘起信論(解釋)
온 十方의 最勝한 業으로 두루 아시며 色이 無碍自在하신 세상을 救濟하시는
大悲者와 저 佛身의 體와 相이신 法性眞如바다의 한량없는 功德藏과 如實히
修行하는 자에게 歸命하옵나니 衆生으로 하여금 疑惑과 邪執을 버리고 大乘의
바른 신심을 일으켜서 佛種子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자 합니다.
논에 이르기를 어떤 법이 능히 마하연의 信根을 일으킬새 그러므로 이 論을 說
함이니라.
설에 다섯가지로 구분하였으니 무엇인가.
첫째는 因緣分이요,둘째는 立義分이요,세째는 解釋分이요,네째는 修行信心分이요,
다섯째는 勸修利益分이다.
처음 因緣分을 설하리라.
묻되 무슨 因緣으로 이 론을 설하는고?
답하되 이 인연이 여덟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여덟가지라 하는고?
첫째는 因緣總相이니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의 고를 여의고 究竟樂을
얻게 하기 위함이지 世間의 名利와 恭敬을 구하는 것이 아닌 연고요.
둘째는 如來의 根本의 뜻을 解釋해서 모든 衆生으로 하여금 올바로 理解하여
誤謬가 없게 하고저 하기 위한 연고요.
세째는 善根이 成熟한 衆生으로 하여금 摩訶衍法응 堪任하여 믿음이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요.
네째는 善根이 微弱한 중생으로 하여금 信心을 修習하게 하기 위한 연고요.
다섯째는 方便을 보여서 나쁜 業障을 消滅하고 잘 그 마음을 보호해서 어리석고
驕慢함을 멀리 여의고 邪惡한 그물에서 벗어 나게 하기 위한 연고요.
여섯째는 止와 觀 닦는 법을 보여서 凡夫와 二乘(聲聞,緣覺)의 마음의 허물을
對治하기 위한연고요.
일곱째는 專念의 方便을 보이어 佛前에 태어나서 반드시 결정코 믿는 마음이
물러서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요.
여덟째는 이익을 보여서 수행하도록 권한연고이니 이러한 인연이 있을새
이런 까닭으로 이 논을 지었나니라.
묻되 修多羅의 가운데 이 법이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거듭 말하는고?
답하되 수다라의 가운데 비록 이 법이 있다 하더라도 衆生의 根行이 같지
아니 하며 받아 드려 이해 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니 이른바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적에는 중생들의 根機가 영리하고 법문을 설하는 부처님도
色心業이 殊勝하사 圓音으로 한번 연설함에 異類(一切衆生)가 다 같이 알아들
음일새 곧 論을 필요로 하지 않거니와 저 여래께서 涅槃에 드신 뒤에는
혹 어떤 衆生이 능히 自力으로 널리 듣고 아는 사람도 있으며,
혹 어떤 중생은 또한 自力으로서 적게 듣고 많이 아는 자가 있으며,
혹 어떤 衆生은 스스로 힘이 없어서 저 넓은 論을 因하여 아는 사람도 있으며,
스스로 중생이 다시 廣論의 글월이 많은 것을 번거롭게 여겨서 마음에 總持한
적은 글월이 많은 뜻을 攝取함을 즐겨해서 능히 아는 사람도 있나니라.
이와 같아서 이 론은 여래의 넓고 크고 깊은 법의 갓이 없는 뜻을 다
거두어 드리고저 함일새 응당 이 론을 설함이니라.
이미 因緣分을 說했으니 다음에는 立義分을 說하리라.
摩訶衍이란 것은 總說하면 두가지 種類가 있으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고?
첫째는 法이요,둘째는 義니라.
法이라 말한 것은 衆生의 마음을 이름이니 이 마음이 곧 一切 世間과 出世間의
法을 거두어 들였으니 이 마음을 의지해서 摩訶衍의 뜻을 나타내 보였나니 어찌
된 까닭인고? 이 마음의 眞如(離言)相(依言)이 곧 摩訶衍의 體를 보이는 까닭이
며,이 마음의 生滅因緣相이 능히 摩訶衍의 體,相,用을 보인 까닭이니라.
義라고 말하는 것은 곧 세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셋이라 하는고?
첫째는 體大니 이르되 一切法이 眞如平等하여 더하고 덜하지 않는 까닭이요,
둘째는 相大니 이르되 如來藏이 한량 없는 性功德을 具足한 까닭이요,
세째는 用大니 능히 一切世間과 出世間의 착한 因果를 生하는 까닭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본래 탄 바인 연고며,
一切 菩薩이 다 이법을 타고 如來地에 이른 연고니라.
이미 立義分을 설했으니 다음에는 解釋分을 설하리라.
解釋하는데 세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셋이라 하는고?
첫째는 正義를 나타내 보인 것이요,
둘째는 삿된 執着에 대하여 다스리는 것이요,
세째는 道에 發心趣向하는 相을 分別한 것이니라.
正義를 보인다는 것은 一心의 法을 依支하여 두가지 문이 있느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가?첫째는 心眞如門이요,둘째는 心生滅門이라.
이 두가지 문이 각각 一切의 법을 總攝하니 이 뜻이 어떠한고.
이 두문이 서로 여의지 않는 까닭이니라.
心眞如란 것은 곧 이 一法界 大總相法門體이니 이른바 心性이 生도 아니요,
滅도 아님이니라.一切의 모든 法이 오직 妄念을 依支하여 差別이 있으니
만약 心念(妄念)만 여의면 곧 一切境界의 相이 없으리라.이런 까닭으로
一切法이 本來부터 言說의 相을 여의었으며 名字의 相을 여의었으며 心緣의
相을 여의어서 畢竟에 平等하여 변하고 달라짐이 없으며 破壞할 수도
없는 것이니 오직 이 한 마음 인 까닭에 이름을 眞如라고 함이니라.
一切의 言說이 거짓 이름 뿐이요,실다움이 없는 것이니 다만妄念을
따랐을지언정 가히 얻을 수 없는 연고니라.
眞如라고 말하는 것도 또한 모양이 없는 것이니 이르되 言說의 窮極으로
말을 因하여 말을 보낸 것이어니와,이 眞如의 體는 가히 보낼 것이 없음이니
一切의 法이 다 참다운 까닭이며,또한 가히 세울 것도 없음이니 一切의 法이
다 한가지로 如如한 까닭이니라.마땅히 알라. 一切法은 가히 말할 수도 없고
가히 생각할 수도 없는 까닭에 그 이름을 眞如라고 함이니라.
묻되 만약 이와 같은 뜻일진대 모든 衆生들이 어떻게 隨順하여야 능히 얻어
들어 가릿닛고?
답하되 만약 一切의 法을 비록 말할지라도 능히 말함과(能說) 가히
말할(所說)것이 없으며 비록 생각할지라도 또한 능히 생각함과 가히
생각할것이 없는줄 알면 이것이 이름이 隨順이요 만약 생각을 여의면
이름이 얻어 들어감이 됨이니라.다시 眞如라는 것은 言說에 依支하여
分別한 것이 두가지 뜻이 있으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고?
첫째는 如實히 空한 것이니 능히 究境에 실다움을 나타내는 까닭이요,
둘째는 如實히 空하지 않은 것이니 自體에 샘이 없는 性功德을 具足한
까닭이니라.
말한바 空이란 것은 本來부터 一切의 染法이 相應하지 않는 까닭이니
이르되 일체의 差別相을 여의었으며 虛妄한 心念이 없는 까닭이니라.
마땅히 알라 眞如의 自性은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요,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며,모양이 있는 것이 아님도 아니요,모양이 없는 것이 아님도 아니며,
있고 없는 두가지 모양도 아니며,한 모양도 아니며,다른모양도 아니며,
한모양 아님도 아니며,다른 모양 아님도 아니며,하나이니 다름이니 하는
두가지의 모양도 아님이니라 내지 통털어서 말할진대 一切衆生들이
妄心이 있음으로써 생각 생각에 分別해서 다 서로 다 응하지 못함을
의지 했을새 이런 까닭으로 말하여 空이라고 했거니와
만약 妄心을 여의면 실로 空이라 할 것도 없는 까닭이니라.
말한바 不空이란 것은 이미 법체가 공하여 망령 됨이 없음을 나툰 연고로
곧 眞心이 恒常하여 변하지 아니해서 正法이 만족함일새 곧 이름이
不空이니라.또한 모양있음을 가히 취할 것이 없음이니 생각을 여읜 경계는
오직 증득한 이라야 서로 응하는 까닭이니라.
心生滅이란 것은 如來藏을 의지한 연고로 生滅心이 있으니 이른바 生도 아니
요,滅도 아닌 것이 生滅하는 것과 더불어 和合하여 하나도 아니요,
다르지도 아니함이니 이름하여 阿梨耶識이라 함이니라.
이 阿梨耶識이 두가지 뜻이 있어서 능히 一切法을 거두기도 하며
一切法을 내기도 하나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고?
첫째는 覺義요, 둘째는 不覺義니라. 말한바 覺義란 것은 마음 자체가 생각
을 여읜 것을 이름이니 생각을 여읜 相은 虛空界와 같아서 두루하지
않은 바가 없어서 法界가 한 모양이니라.곧 이것이 如來의 平等한
法身이니 이 法身을 依支해서 설하여 本覺이라 함이니라. 무슨 까닭인고?
本覺의 뜻이란 것은 始覺의 뜻에 대하여 말한 것이니,始覺이 곧 本覺과
같은 때문이니라.始覺의 뜻은 本覺을 의지하는 까닭에 不覺이 있고,
不覺을 의지하는 까닭에 始覺이 있다고 설함이니라.또 心源을 깨달은
연고로 이름이 究竟覺이요 心源을 깨닫지 못한 연고로 究竟覺이
아님이니라.이 뜻이 어떠한고? 저 凡夫들이 前念에 惡業을 일으킴을
깨달아 알아서 짐짓 능히 後念을 그쳐서 그로 하여금 일어나지 못하게
하나니 다시 覺이라 이름하나 곧 이것은 覺이 아닌 까닭이니라.
저 二乘의 觀智(事理를 觀하는 智慧)와 처음 뜻을 발한 菩薩들은 念의 異相을
깨달아 念에 異相이 없으니 序分別執着의 相을 버린 까닭에 이름을
相似覺이라 함이니라.
저 法身菩薩들은 心念에 住相을 깨달아 心念에 住相이 없으니 分別하는
序念相을 여읜 까닭에 이름을 隨分覺이라 함이니라. 저 菩薩이 十地에서
배움이 다하여 方便이 滿足하여 一念이 서로 응해서 깨달은 마음이 처음
일어남에 마음에 처음이라는 상이 없음이니 미세한 생각을 멀리 여읜 까닭에
心性을 얻어 보아 그 마음이 곧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을 이름을 究竟覺이라
함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修多羅에 설하사대 만약 어떤 衆生이 능히 無念을 관하는 자는
곧 佛智를 향함이 되는 연고라 하시니라.또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처음이란
모양을 가히 알 수 없거늘 처음의 모양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곧
無念을 말하는 것이니 이런 까닭으로 一切衆生을 覺이라 이름하지 못한다
하나니 본래부터 생각생각이 相續하여 일찌기 생각을 여의지 못한 까닭에
비롯없는 無明이라 말함이니라.만약 無念을 얻은 자는 곧 心相의 生,住,異,滅을
알 것이니 無念과 같은 까닭이니라.실로 始覺과 다름이 없으니 四相(生.住.
異.滅)이 함께 있어서 다 자립함이 없음이니 본래 平等하여 동일한 覺인
까닭이니라. 다시 本覺이 染을 따라 分別해서 두가지 相을 내니 저 本覺으로
더불어 서로 버리고 여의지 아니 하나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고?
一은 智淨相이요,이는 不思議한 業相이니라.智淨相이란 것은 이르되 法力의
熏習에 의하여 如實히 修行해서 方便이 滿足한 연고로 和合하는 識相을
破하고 相續하는 心相을 滅하여 法身의 智慧가 淳淨함을 나투는 까닭이니라.
이 뜻이 어떠한고? 一切心識의 相이 다 이 無明이니라.無明의 相은 覺性을 여
의지 아니 하여 가히 무너지지도 아니하며,가히 무너 뜨리지 못할 것도 아님이니
마치 大海의 물이 바람을 인하여 파도가 움직이어서 水相과 風相이 서로 버리고
여의지 아니하나 물은 움직이는 性이 아님이니, 만약 바람이 사라지면
움직이는 相은 곧 滅하나 젖는 성질은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은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중생들의 自性淸淨心이 無明風을 因하여 動하여 마음과 無明이 함께
형상이 없어서 서로 버리고 여의지 아니하나 마음은 動性이 아님이니
만약 無明이 滅하면 相續이 곧 滅할지언정 智性은 무너지지 않는 까닭이니라.
不思議業相이란 智淨相을 依支하여 능히 일체의 殊勝하고 玄妙한 境界를
짓나니 이른바 한량 없는 功德의 相이 항상 끊어짐이 없어서 중생의 根機를
따라서 자연히 서로 응하여 가지가지로 나타나서 이익을 얻게 하는 까닭이니라.
다시 覺의 體와 相은 네가지 큰 뜻이 있으니 虛空으로 더불어 같으며
마치 조촐한 거울과도 같나니라.어떠한 것이 넷인고?
첫째는 如實空鏡이니 一切心의 境界相을 멀리 여의어서 한 법도 가히
드러날 것이 없으니 覺照의 뜻이 아닌 까닭이니라.
둘째는 因熏習鏡이니 이르되 如實不空이니 一切世間의 境界가 다 그 가운데
나타나서 나오지도 아니하고, 들어가지도 아니하며,잃어 버리지도 아니하고,
무너지지도 아니하여 항상 한 마음에 머물러 있음이니 一切의 法이
곧 眞實한 性인 까닭이며 또 일체의 染法이 물 들이지 못할 바이니
智體가 움직이지 아니하여 無漏가 具足해서 衆生을 熏習하는 까닭이니라.
세째는 法出離鏡이니 이르되 不空法이 煩惱 와 智 를 벗어나서 和合의
相을 여의어서 순박하고 조촐하고 밝은 까닭이니라.
네째는 緣熏習鏡이니 이르되 法에 벗어남을 의지하는 까닭으로 衆生의
마음을 두루 비춰 하여금 善根을 닦아서 생각을 따라 나타내 보이게 하는
까닭이니라. 말한바 不覺義라는 것은 이르되 如實히 眞如法이 하나인 것
을 알지 못한 연고로 不覺의 마음이 일어나서 그 念(分別念)이 있으나
念이 自相이 없어서 本覺을 여의지 아니 하나니 마치 迷惑한 사람이
方位를 의지한 연고로 迷惑했으니 만약 方位를 여의면 곧 迷惑함이 없는 것과
같나니라.衆生도 또한 그러해서 覺을 의지한 연고로 미혹 했으니 만약 覺性을
여의면 곧 不覺이 없으리라.不覺의 妄想心이 있는 까닭으로 능히 名義만 알아서
眞覺이라 말하나니 만약 不覺의 마음만 여의면 곧 眞覺의 自相을 가히 說할
것이 없으리라.
다시 不覺을 依支한 연고로 세가지 상을 생하여 저 不覺으로 더불어 相應하여
여의지 않나니 어떠한 것이 셋인고?
첫째는 無明業相이니 不覺을 의지한 연고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설하여
이름을 業이라 함이니 覺 하면 곧 움직이지 아니하나 움직이면 곧 苦가 있으니
果가 因을 여의지 아니한 연고로니라.
둘째는 能見相이니 움직임을 依支한 연고로 능히 보나니 움직이지 아니하면
곧 봄이 없나니라.
세째는 境界相이니 能見을 의지하는 연고로 경계가 망녕되이 나타나나 見을
여의면 곧 境界가 없나니라. 境界緣이 있는 연고로 다시 여섯가지 相이 생함이
니 어떠한 것이 여섯인고?
첫째는 智相이니 境界를 의지해서 마음을 일으켜 사랑함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연고니라.
둘째는 相續相이니 智相을 의지하는 연고로 그 苦樂을 깨닫는 마음을 내어서
생각을 일으켜 서로 응하여 끊어지지 않는 연고니라.
세째는 執取相이니 相續을 의지하여 境界를 攀緣해 생각하여 苦樂에 머물러서
마음에 執着을 일으키는 연고니라.
네째는 計名字相이니 망녕된 執相을 의지해서 거짓된 假名言相을 分別하는
연고니라.
다섯째는 起業相이니 名字를 의지해서 이름을 따라 취착하여 가지가지 업을
짓는 연고니라.
여섯째는 業繫苦相이니 業을 의지하여 果報를 받아서 自在하지 못한 연고니라.
마땅히 알라 無明이 능히 一切의 染法을 생하나니 일체의 染法이 다 이 不覺의
相인 연고니라. 다시 覺과 不覺이 두가지의 相이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同相이요,둘째는 異相이라.同相이란 것은 비유하면 가지가지 질그릇이
다 한가지 가는 티끌의 性인 相과 같음이니 이와 같이 無漏와 無明의 가지 가지
業幻이 다 한가지 眞如의 性인 相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修多羅 가운데 이 뜻을
의지하여 說하시되 一切衆生이 본래 항상 머물러서 涅槃에 들어감과 菩提의
法이 가히 닦는 상이 아니며 가히 짓는 상도 아닌지라 畢竟에 얻을 것이 없다
하니라.또한 色相을 가히 볼 수 없으나 色相을 봄이 있는 것은 오직 이 染을
따르는 幻의 지은 바요,이 智色 不空의 性은 아님이니,智相은 가히 볼 수 없는
까닭이니라. 異相이란 것은 가지가지 질그릇이 각각 같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와같이 無漏와 無明이 隨染幻의 差別이며 性染幻의 差別인 연고니라.
다시 이 生滅因緣이란 것은 이른바 衆生이 마음을 의지하여 意와 意識이
전하는 연고니라.이 뜻이 어떠한고? 阿梨耶識을 의지하여 無明이 있음을
말했으니 不覺이 일어나서 능히 보고 능히 나투며 능히 境界를 취하여
생각을 일으켜 상속할새 그러므로 설하여 意라고 함이니라.이 뜻에 다시
다섯가지 이름이 있으니 어떠한 것이 다섯인고?
첫째는 이름을 業識이라 함이니,이르되 무명의 힘으로 不覺心이 움직이는
까닭이니라.
둘째는 이름을 轉識이라 함이니,움직이는 마음에 依支하여 能見의 相이 되는
까닭이니라.
세째는 이름을 現識이라 함이니 이른바 능히 一切의 境界를 드러내나니 마치
明鏡이 色像을 나투는 것과 같아서 現識도 또한 그러하여 그 五塵을 따라서
상대되는 것이 이르면 곧 드러내서 앞과 뒤가 없으니 一切의 때에 따라
마음대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는 까닭이니라.
네째는 이름을 智識이라 함이니 이르되 染淨의 法을 分別하는 까닭이니라.
다섯째는 이름을 相續識이라 함이니 생각이 서로 응하여 끊어지지 않는
까닭이며, 過去無量한 세상의 善과惡의 業을 住持하여 하여금 잃지 않는 까닭
이며, 다시 능히 現在와 未來의 苦樂等 果報를 成熟시켜서 서로 어기지 않게
하는 까닭이니 능히 現在와 이미 겪은 일로 하여금 忽然생각하게 하며
미래의 일을 不覺에 말령되이 생각하게 함이니라. 이런 연고로 삼계가
虛僞한지라 오직 마음의 지은 바이니 마음을 여의면 곧 六塵의 경계가 없으
리라.
이뜻이 어떠한고?
일체의 법이 다 마음을 쫓아 일어났으니 妄念이 생한지라
일체의 분별이 곧 自心을 分別함이니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하여 모양을
얻을 수 없으니 마땅히 알라 세간의 일체 境界가 다 衆生의 無明妄心을
依支하여 머물러 가짐을 얻나니라.
이런 까닭으로 일체의 법이 거울가운데
형상과 같아서 體를 가히 얻을 수 없으며,오직 마음이라 허망함이니 마음이
生하면 가지가지의 法이 生하고 마음이 滅하면 가지 가지의 法이 滅하는
연고니라.다시 의식이라 말함은 곧 이 相續識이니 모든 凡夫가 取着함이 더욱
깊음을 의지하여 我와 我所를 計較하여 六塵을 分別할새 이름을 意識이라
함이요. 또한 이름을 分別識이라 하며 또 다시 이름을 分別事識이라 설함이니
이 識은 見愛(見惑과 愛惑)의 煩惱를 의지하여 增長하는 뜻인 연고니라.
無明熏習을 의지하여 일어난바 식이라는 것은 凡夫의 능히 알바가 아니며
또한 二乘의 智慧로 깨달을 바가 아니니 이르되 菩薩을 의지할진대
처음에 바로 믿음을 쫓아서 發心하여 觀察해서 만약 法身을 證得했을지라도
少分만 얻어 알것이며 이에 보살의 究竟地에 이러르서도 능히 다 알지 못할
것이요 오직 부처님이라야 다 아나니라.
무슨 까닭인고? 이 마음이 본래부터
自性이 淸淨함이로대 無明이 있는지라 無明의 染한 바가 되어 그 물들어진
마음이 있으니 비록 물든 마음이 있으마(本覺의 마음)항상해서 變하지
아니함이니 이런 까닭으로 이 뜻은 오직 부처님이라야 능히 알 수 있나니라.
이른바 心性이 항상 無念인 연고로 이름을 不變이라 함이요 一法界를 통달
하지 못한 까닭으로 마음이 서로 응하지 못하여 홀연히 생각이 일어난 것을
이름을 무명이라 함이니라.
染心이란 것이 여섯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인고?
첫째는 執相應染이니 二乘의 解脫과 信相應地를 의지해서 멀리 여의는 연고요.
둘째는 不斷相應染이니 信相應地를 의지해서 方便을 修學하여 漸漸 능히
(相續識)버려서 淨心地를 얻어 究竟에 여의는 연고요.
셋째는 分別地相應染이니 具戒地를 의지하여 漸漸여의어서 이에 無相方便地에
이르러 구경에 여의는 연고요.
넷째는 現色不相應染이니 色自在地를 의지해서 능히 여의는 연고요.
다섯째는 能見心不相應染이니 心自在地를 의지해서 능히 여의는 연고요.
여섯째는 根本業不相應染이니 菩薩의 盡地를 의지해서 如來地에 들어 가서
능히 여의는 연고니라.
一法界를 了達하지 못한다는 뜻은 信相應地로 부터 觀察하여 배워 끊어며
淨心地에 들어가서 분을 따라 여의며 이에 如來地에 이르러 能히 究竟에
여의는 연고니라.
相應이라 말하는 뜻은 이르되 心과 念法이 다르니 染과 淨의 差別을 의지하여
知相과 緣相이 같은 연고며 不相應이란 듯은 이르되 마음 그대로 不覺이라
항상 별다름이 없어서 知相과 緣相이 같지 아니한 연고니라.
또 染心의 뜻이란 것은 이름을 煩惱라 함이니 능히 眞如의 根本智를 장애하는
연고니라.
無明의 뜻이란 것은 이름을 智라 함이니 능히 세간의 自然業智를 障碍하는 연
고니라.이 뜻이 어떠한고?染心을 依支하여 능히 보고 능히 나타나며 망녕되이
경계를 취하여 평등한 性을 어기는 까닭이며, 一切法이 항상 고요해서 일어난
상이 없으나 無明不覺이 망녕되이 법으로 더불어 어기는 연고로 능히 세간의
一切境界를 隨順해서 가지 가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다시 生滅의 相을 分別한다는 것은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序니 마음으로 더불어 相應하는 연고요,
둘째는 細니 마음으로 더불어 相應하지 않는 연고니라.
또 序의 가운데 序는 凡夫의 境界요,
序의 가운데 細와 細의 가운데 序는 菩薩의 境界요,
細의 가운데 細는 부처님의 경계니라.
이 두가지 生滅이 無明熏習을 의지하여 있으니 이른바 因을 의지하고
緣을 의지함이니라.
因을 의지한다는 것은 不覺의 듯인 연고요,
緣을 의지한다고 한다는 것은 망녕되이 境界를 짓는다는 뜻인 연고니라.
만약 因이 滅하면 緣도 滅하나니
因이 멸한 연고로 서로 응하지 않는 마음이 멸함이요,
緣이 멸하는 연고로 서로 응하는 마음이 멸함이니라.
묻되 만약 마음이 滅한다면 어떻게 相續하며
만약 相續한다면 어떻게 究竟滅을 말하리요?
답하되 말한바 滅이란 것은 오직 心相이 멸할지언정
心體가 멸하는 것은 아님이니
마치 바람이 물을 의지하여 움직이는 相이 있으니
만약 물이 멸할진대 風相이 끊어져 의지할 바가 없을 것이어니와
물이 멸하지 아니할새 風相이 상속하나니 오직 바람이 멸하는 연고로
움직이는 모양이 따라서 멸할지언정 이 물이 멸하는 것은 아님이니라.
無明도 또한 그러해서 心體를 依支하여 움직이나니
만약 心體가 멸할 진대 衆生이 斷絶해서 의지할바가 없을 것이어니와
체가 멸하지 아니 할새 마음이 상속함을 얻나니
오직 어리석은 것만 멸하는 연고로 심상이 따라서 滅할지언정
心智는 멸하지 아니함이니라.
다시 네가지의 法이 熏習하는 뜻이 있는 연고로
染法과 淨法이 일어나 끊어지지 않나니 어떻한 것이 넷인고?
첫째는 淨法이니 이름이 眞如요,
둘째는 一切染因이니 이름이 無明이요,
셋째는 妄心이니 이름이 業識이요,
넷째는 妄境界니 이른바 六塵이니라.
熏習한다는 뜻은 마치 世間의 衣服이 실은 香氣가 없으나
만약 사람이 香으로써 熏習한 연고로 곧 香氣가 있는 것과 같이
이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眞如의 淨法은 實로 물들임 없으나
다만 無明으로써 熏習하는 연고로 곧 染相이 있음이요,
無明의 染法은 실로 淨業이 없으나
다만 眞如로써 훈습하는 연고로
곧 淨의 作用이 있나니라.
어떻게 熏習하여 染法을 일으켜 끊어지지 않는고?
이른바 眞如의 法을 의지하는 연고로 無明이 있음이요,
無明染法의 因이 있는 연고로 곧 眞如를 熏習함이요,
熏習하는 연고로 곧 妄心이 있음이요
妄心이 있어서 곧 無明을 훈습하여 眞如의 法을 了達하지 못하는 연고로
不覺의 念이 일어나서 망녕된 경계를 나타냄이요,
망녕된 경계의 染法의 緣이 있는 연고로 곧 망녕된 마음을 熏習하여
그로 하여 금 念着하여 가지 가지의 業을 지어서
一切의 몸과 마음등 괴로움을 받게 하나니라.
이 망경계를 熏習하는 뜻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고?
첫째는 增長念熏習이요,둘째는 增長取熏習이니라.
妄心을 熏習한다는 뜻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것이 둘인고?
첫째는 業識根本熏習이니 능히 阿羅漢과 酸支弗과 一切菩薩로 생멸의 고를
받게 하는 연고요,
둘째는 增長分別事識熏習이니 능히 凡夫로 業에 얽메인 苦를 받게하는 연고니라.
무명을 熏習하는 뜻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고?
첫째는 根本熏習이니 능히 業識을 성취하는 뜻인 연고요,
둘째는 所起見愛熏習이니 능히 分別事識을 成就하는 뜻인 연고니라.
어떻게 熏習하여 淨法을 일으켜 끊어지지 않게 하는고?
이른바 진여의 법이 있는 연고로 능히 無明을 熏習함이요,
熏習한 因緣의 힘인 연고로 곧 妄心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를 싫어하고
즐거히 열반을 구하게 하나니 이 망령된 마음이 싫어하고
求하는 인연이 있는 연고로 곧 眞如를 熏習함이니라.
스스로 自己의 성품을 믿어서 마음이 망녕되이 動하는지라
앞의 경계가 없는 줄 알아서 멀리 여의는 법을 닦나니
여실히 앞의 境界가 없는 줄 아는 연고로
가지가지 방편으로 隨順行을 일으켜서
취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내지 久遠의 熏習力인 연고로 無明이 멸하며
무명이 滅하는 연고로 마음이 일어남이 없읍이요,
일어남이 없는 연고로 경계가 따라 멸함이요,
因緣이 함께 멸하는 연고로 心相이 다함일새
이름을 涅槃을 얻어 自然業을 이룸이라 함이니라.
妄心熏習의 뜻에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分別事識熏習이니 모든 凡夫와 二乘들이 生死의 苦를 싫어함을
의지하여 힘의 능한 바를 따라서 漸次로 無上道에 취향하는 연고요,
둘째는 意熏習이니 이르되 모든 보살이 發心勇猛하야 속히 열반에 나아가는
연고니라.
眞如熏習의 뜻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自體相熏習이요,
둘째는 用熏習이니
自體相熏習이란 것은 비롯함이 없는 세상으로부터 옴으로 無漏의 法을 갖추어
서 不思義業과 境界를 짓는 性을 갖추어 있나니 이 두가지 뜻이 항상 훈습함을
의지해서 힘이 있는 연고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를 싫어하고
즐거이 涅槃을 구하여 스스로 자기 몸에 진여의 법이 있는 줄 믿어서
發心하여 修行하게 함이니라.
묻되 만약 이와 같은 뜻일진대 일체중생이 다 眞如가 있어서 平等하게
다 熏習하거늘 어찌하여 信이 있고 信이 없으며,한량없이 前後에 差別하는고,
다 응당 일시에 스스로 진여의 법이 있음을 알아서 부지런히 方便을 닦아서
평등히 열반에 들게 하리요?
답하되 眞如는 본래 하나이나 無量無邊의 無明이 있어서 본래 부터
自性이 차별해서 厚薄이 같지 아니한 연고로 恒河沙等上에 지나는
煩惱가 무명을 의지하여 차별을 일으키며, 我見愛染의 번뇌가 무명을
의지하여 차별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일체의 煩惱가 無明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바라, 前後의 한량 없는 차별을 오직 如來만이 능히 아는 연고라.
또 모든 부처님의 법이 因이 있고 緣이 있으니 因緣이 구족하여야
이에 판단함을 얻나니 마치 나무 가운데 火性이 이 불의 正因이나
만약 사람이 알지 못하여 方便을 가자하지 아니하면 능히 스스로
나무를 불 사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나니 중생도 또한 그러해서
비록 正因熏習의 힘은 있어나 만약 모든 불보살과 善知識등을 만나서
이로써 반연하지 아니하면 능히 스스로 번뇌를 끊어서 열반에 들어간다는
것이 곧 옳은 곳이 없나니 만약 비록 外緣의 힘이 있으나 안으로
정법이 아직 熏習의 힘이 있지 아니한자면 또한 능히 究竟에 生死의 고를 싫어
하여 즐거이 열반을 구하지 못함이니라.
만약 인연이 具足한 者는 이른바 스스로 熏習의 힘이 있고
또 모든 佛菩薩들의 慈悲願護함이 되는 연고로 능히 고를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열반이 있는 것을 믿어서 善根을 修習함이니 善根을 닦아서 成熟한
연고로 곧 모든 佛菩薩의 교를 보여 利喜케 함을 만나서
이에 능히 進趣하여 涅槃의 도에 向하게 함이니라.
用熏習이란 것은 곧 이 衆生의 外緣의 힘이니 이와 같이 外緣이 限量없는
뜻이 있으나 간략히 두가지로 설하리라.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差別緣이요,둘째는 平等緣이니
差別緣이라고 하는 것은 이 사람이 모든 佛菩薩 등을 의지하여 처음에
뜻을 발하여 비로서 도를 구할 때로부터 이에 佛에 이르기까지 저 가운데
만약 보거나 생각하면 혹은 眷屬과 父母와 모든 親戚도 되며,
혹은 給使도 되며 혹은 知友도 되며, 혹은 寃家도 되며,혹은 四攝法을
일으켜서 이에 일체의 짓는 바 무량한 行緣에 이르기까지 大悲熏習의
힘을 일으켜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善根을 增長하여 저 보고 들음에
이익을 얻게 하는 연고니라.
이 緣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두가지 인고?
첫째는 近緣이니 속히 제도를 얻게하는 연고요.
둘째는 遠緣이니 久遠劫에 제도를 얻게 하는 연고니라.
이 近과 遠의 二緣을 분별하면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어더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增長行緣이요,
둘째는 受道緣이니라.
平等緣이란 것은 일체의 모든 佛菩薩이 다 일체의 중생을 도탈하기를 원
하사 自然 熏習하여 항상 버리지 아니 해서 同體의 智力을 쓰는 연고로
보고 들음을 따라 응해서 作業을 나타내나니 이른바 중생이 三昧를
의지하여야 이에 평등하게 모든 부처님을 親見함을 얻는 연고니라.
이 體用의 熏習을 분별하면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것이 둘인고?
첫째는 未相應이니 이르되 凡夫二乘과 처음 뜻을 발한 보살들이 意와
意識으로 熏習해서 信力을 의지한 연고로 능히 修行하나 분별이 없는
마음이 體로 더불어 서로 응함을 얻지 못한 연고며,自在業으로 수행하여
用으로 더불어 서로 응함을 얻지 못한 연고요,
둘째는 己相應이니 이르되 法身菩薩이 분별 없는 마음이 모든 부처님의
智用으로 더불어 서로 응함을 얻음이니 오직 法力을 의지하여 자연히 수행하여
眞如를 熏習해서 무명을 滅하는 연고니라.
다시 染法이 비롯함이 없음으로부터 옴으로 熏習하여 끊어지지 않다가
이에 부처를 얻은 뒤에야 곧 끊어짐이 있음이요,
淨法熏習은 끊어짐이 없어서 미래를 다함이니 이 뜻이 어떠한고?
眞如法이 항상 熏習하는 연고로 망녕된 마음은 곧 滅하고 法身이 나타나
用熏習을 일으킴일새 그러므로 끊어지짐이 없나니라.
다시 眞如自體相이란 것은 일체의 凡夫,聲聞,緣覺,菩薩 모든 부처님이 더하
고 덜함이 없어서 前際에 生한 것도 아니며 後際에 滅하는 것도 아님이니 畢竟
에 항상 해서 본래로부터 옴으로 自性에 일체의 功德이 滿足하니 이른바
自體에 大智慧光明의 듯이 있는 연고며,
法界에 두루 비추는 뜻인 연고며, 진실로 아는 뜻인 연고며,
自性淸淨心의 듯인 연고며, 常樂我正의 뜻인 연고며,
淸凉하고 不變하는 自在의 뜻인 연고니,
이와 같이 恒河沙에 지나는 여의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는
不思義佛法을 具足하여 이에 만족함에 이르러 조금도 모자라는 바의 뜻이 없는
연고로 이름을 如來藏이라 하며 또한 이름을 如來法身이라 함이니라.
묻되 위에서 설하되 眞如는 그 體가 평등하여 일체의 相을 여의었다고 하고
어찌하여 다시 體에 이와 같은 가지가지의 공덕이 있다고 설하는고?
답하되 비록 진실로 이 모든 공덕의 뜻이 있으나 差別의 상이 없어서
一味가 等同하여 오직 하나인 진여 뿐이니 이 뜻이 어떠 한고?
分別이 없으며 分別의 상을 여의었나니 이런 연고로 둘이 없나니라.
다시 무슨 뜻으로 차별을 설하는고?業識의 生滅相을 의지하여 보임이니라.
이것을 어떻게 보였는고? 일체의 법이 본래 오직 마음 뿐이라
실로 념이 없으나 망심이 있어서 불각의 념을 일으켜서 모든 境界를 봄일새
그러므로 설하여 무명이라 함이니 心性이 일어나지 아니 하면 곧 이것이
大智慧光明의 뜻인 연고니 만약 마음이 見을 일으키면 곧 不見의 相이
있거니와 心性이 見을 여의면 곧 이것이 법계를 두루 비추는 뜻인 연고니라.
만약 마음이 움직임이 있으면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며 自性이 없어
서 常도 아니요, 樂도 아니며, 我도 아니요, 淨도 아님이니 熱惱하고 衰變하면
곧 자재하지 못하며, 내지 恒河沙에 지나는 等 망념의 뜻을 갖추어 있으니
이 뜻을 對한 연고로 心性이 움직임이 없으면 곧 恒河沙에 지나는 등
모든 淨功德相의 뜻을 示現함이 있나니라.
만약 마음이 일어 남이 있어서 다시 前法을 가히 생각할 것을 보는 자는
곧 모자라는 바가 있거니와 이와 같이 淨法의 무량한 공덕이 곧 이 일심이라
다시 생각할 바가 없음일새 이런 연고로 만족함이니 이름을 法身如來의
장이라 함이니라. 다시 진여의 用이라는 것은 이른바 모든 부처님이 본래
因地에 있어서 큰 慈悲를 발하여 모든 波羅蜜을 닦아서 중생을 攝化하며,
큰 서원을 세워 다 평등히 중생계를 度脫코져 하며, 또한 劫數를 한정하지
아니해서 미래를 다하며, 일체중생을 취하지 아니함이니 이것이 무슨 뜻인고?
이르되 여실히 일체의 중생과 다만 自己의 몸이 如實平等하여 별 다름이
없는 줄아는 연고니라.이와 같은 큰 方便의 智慧가 있어 無明을 除滅하고
本法身을 보아서 自然히 不思議한 業의 가지 가지의 用이 있는지라 곧 진여로
더불어 평등해서 일체처에 두루하며,또한 用相을 가히 얻을 수 없음이니
무슨 까닭인고?
이르되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이 法身智相의 몸이라 第一義諦에는 世俗境界가
없어서 施作을 여의었건만 다만 중생의 보고 듣는 것을 따라 利益을 얻게
할새 그러므로 설하여 用이라고 함이니라.
이 用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고?
첫째는 分別事識을 의지한 凡夫와 二乘의 마음에 보는 바를 이름을 應身이라
함이니 轉識의 나타남인 줄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밖으로 쫑아 옴을 보아서
色의 分齊(즉 色相의 限界)를 취하나니 능히 다 알지 못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業識을 의지함이니 이르되 모든 보살이 처음 뜻을 발함으로 부터
이에 菩薩의 究竟地에 이르기 까지 마음에 보는 바를 이름을 報身이라
함이니라. 몸에 한량 없는 빛깔이 있으며 빛깔에 한량 없는 모양이 있으며
모양에 한량 없는 좋은 것이 있으니 머무르는 바의 依果(즉 依報器世界)에도
또한 한량 없는 가지 가지의 莊嚴이 있어서 곳을 따라 示現해서 곧 갓이 없으며,
가히 다할 수 없어서 分齊의 相을 여의었으며,그 應할 바를 따라서 항상
능히 머물러 가져서 헐지도 아니하고 잃지도 아니함이니 이와 같은
공덕이 다 모든 波羅蜜等 샘이 없는 行熏과 및 不思議한 熏習을 因하여
成就한바라 한량 없는 樂相이 具足할새 그러므로 설하여 報身이라 함이니라.
또 凡夫의 보는 바는 이것은 그 序色이니 六道衆生이 各各 보는 것이 같지
아니 하여 가지가지의 다른 무리가 樂相을 받지 못함을 따를새 설하여
應身이라 함이니라.
다시 처음에 뜻을 발한 보살들이 보는 바는 깊이 진여의 법을 믿는 연고로
少分을 보는지라 저 色相莊嚴等의 일이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어서
分齊를 여의었나니 오직 마음을 의지하여 나타나서 진여를 여의지 아니한
줄 아나니라.그러나 이 보살이 오히려 스스로 분별하는 것은 아직 法身의
位에 들지 못한 까닭이니 만약 淨心을 얻으면 보는 바가 微妙하여
그 用이 더욱 수승할 것이요.이에 菩薩地盡에 이르면 보는 것이 究竟일
것이며,만약 업식을 여의면 곧 보는 相이 없을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法身은
彼此의 색상으로 부터 서로 볼 수 없는 연고니라.
묻되 만약 모든 부처님의 法身이 色相을 여의었다면 어찌하여 능히 색상을
나투는고?
답하되 곧 이 법신이 이 色相의 體인 연고로 능히 色을 나타내나니 이른바
본래부터 옴으로 빛깔과 마음이 둘이 아닌 것이니 色性이 곧 智인 연고로
色의 體가 형상이 없으니 이름을 智身이라 설함이요,
智性이 곧 색인 연고로 이름을 法身이 一切處에 두루한 것이라 설함이니라.
나타난 바의 색이 分齊가 있지 아니한지라 마음을 따라서 능히 十方世界의
한량 없는 菩薩과 한량 없는 報身과 한량 없는 莊嚴을 示現하니 各各
差別해서 다 분제가 없으나 서로 妨害하지 않는지라 이것은 심식의 분별로
능히 알지 못할지니 진여의 자재한 用의 듯인 까닭이니라.
다시 生滅門으로 쫑아 곧 眞如門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 보인것이니 이른바
五陰을 미루어 구하면 色과 마음이며 六塵의 경계는 畢竟에 念이 없는 것이니
마음은 形相이 없는 지라 十方에 구할지라도 마침내 가히 얻을 수 없음이니
마치 사람이 迷한 고로 東을 일러 西라 하나 方位는 실로 轉하지 않는 것과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해서 無明의 迷인 연고로 마음을 일러 念이라 하나
마음은 實로 움직이지 않나니라.만약 능히 觀察해서 마음이 無念인줄 알면
곧 隨順하여 眞如門에 들어 감을 얻는 연고니라.邪執을 對治한다는 것은
일체의 邪執이 다 我見을 의지했으니 만약 我를 여의면 곧 邪執이 없어짐이니라.
이 我見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고?
첫째는 人我見이요,둘째는 法我見이니라.
人我見이라 함은 모든 凡夫를 의지해서 다섯가지가 있음을 설했으니
어떤 것이 다섯인고?
첫째는 修多羅에 설하사대 여래의 法身이 畢竟에 寂寞하여 마치 虛空과 같다고
함을 듣고 執着함을 破하기 위한 것인줄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곧 이르되
허공이 如來의 性이라 하나니라.어떻게 對治하는고? 허공의 상은 이것이
그 망녕된 법이라,體에는 실답지 못함이 없음을 밝혔으니 色을 對하는 고로
있는 지라 이것이 가히 볼 相이며 마음으로 하여금 生滅케 하나니 일체의
法이 본래 이 마음이라 실로 外色이 없음이니 만약 색이 없으면 곧 虛空의
相이 없나니라.이른바 일체의 경계가 오직 마음이 망녕되이 일어난 연고로
있음이니 만약 마음이 망녕되이 움직임을 여의면 곧 일체의 경계가 滅할
것이요.오직 하나인 眞心이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나니 이것은 니르되
如來의 넓고 큰 性智究竟의 뜻이라 허공의 相과는 같지 않는 연고니라.
둘째는 修多羅에 설하사대 세간의 모든 법이 필경에 체가 공하며 乃至 涅槃
眞如의 법이라도 도한 畢竟에 空하여 본래 스스로 공한지라 일체의 상을
여의었다 함을 듣고 執着함을 파하기 위한 것인 줄을 일지 못하는 연고로
곧 이르되 眞如涅槃의 性도 오직 이 공한 것이라 하나니 어떻게 對治할
것인고? 진여법신은 自體가 공하지 아니하여 한량 없는 性功德이 구족한 것을
밝힌 연고니라.
세째는 修多羅에 說하사대 여래의 藏이 增減이 없어서 체에
일체공덕의 법을 갖추었다는 말을 듣고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곧 이르되
여래의 藏이 色心法이 있엇서 自相이 차별한다 하나니 어떻게 對治할 것인고?
오직 眞如의 듯을 의지하여 설한 연공요, 生滅染의 듯을 인하여 示現으로
차별을 설한 연고니라.
넷째는 修多羅에 설하사대 일체세간의 生死染法이 다
如來藏을 의지하여 있는지라 , 일체의 모든 법이 진여를 여의지 아니 했다
함을 듣고 알지 못하는 연고로 이르되 如來藏의 자체에 一切世間의
生死等法이 갖추어 있다 하나니 어데게 對治할 것인고?
如來藏이 본래부터 오직 恒河沙에 지나는 等 모든 性功德이 있어 여의지도
아니하고 끊어지지도 아니 해서 眞如의 뜻과 다르지 아니한 연고니라.
恒河沙에 지나는 等 煩惱의 染法은 오직 이 망으로 있는 지라 성품이
스스로 본래 없어서 비롯 없는 세상으로부터 옴으로 일찍 如來藏으로 더불어
서로 응하지 못한 연고니 만약 如來藏이 體에 妄法이 있을 진대 하여금
證得理會함에 길이 망을 쉰다는 것이 옳은 곳이 없나니라.
다섯째는 修多羅에 설하사대 如來藏을 의지하는 연고로 생사가 있으며
如來藏을 의지하는 연고로 涅槃을 얻는다 함을 듣고 理解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이르되 중생이 비롯함이 있다 하며,비롯함을 보는 까닭으로 다시
이르되 여래의 얻은 바 열반도 그 終盡이 있어 도리어 중생을 짓는다
하나니 어떻게 대치할 것인고? 여래의 장이 前際가 없는 연고로 無明의
相도 또한 비롯함이 없으니 만약 三界밖에 다시 중생이 처음으로 일어
남이 있다고 말하면 곧 이것은 外道經의 설이니라.
또 如來藏이 後際가 없으니 모든 부처님의 얻은 바 涅槃도 이 로 더불어
서로 응해서 곧 後際가 없는 연고니라.法我見이라 함은 二乘의 鈍根을
의지하는 연고로 如來가 다만 爲하여 人無我만 설했으나 설한 것이
究竟이 아닌지라 五陰生滅의 법이 있는 것을 보아서 생사를 두려워 하고
망년되이 열반을 취하나니 어떻게 對治할 것인고?
五陰의 법은 자성이 생하지 아니하여 곧 滅함이 없으니 本來 涅槃인
까닭이니라.다시 究竟에 망녕된 집착을 여읜다는 것은 마땅히 알라
染法과 淨法이 다 相待하는지라,자체의 상을 가히 말할 수 없음이니
이런 까닭으로 일체의 법이 본래부터 色도 아니요,心도 아니며,智도 아니요,
識도 아니며,있는 것도 아니요,없는 것도 아닌지라,畢竟에 可히 相을
설할 수 없건만 言說이 있는 것은 마땅히 알라 如來가 善巧한 방편으로
언설을 假藉해서 중생을 引導하시니 그 旨趣는 다 念을 여의고 眞如에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니 일체의 法을 생각하면 마음으로 하여금 生滅케 해서
實智에 들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니라.
分別發趣道相이라 함은 이르되 일체 모든 부처님의 證得한바 道에 일체의
菩薩이 發心修行하여 趣向하는 듯인 연고니라.간략히 말하면 發心에
세가지가 있으니 어떤것이 셋인고?
첫째는 믿음을 성취한 發心이요,둘째는 알고 행하는 發心이요,셋째는 證得한
發心이니라. 信成就發心이라 함은 어떠한 사람을 의지하며 어떠한 행을
닦아야 信成就함을 얻어 감히 능히 발심할 것인고? 이른바 不定聚의 중생이
善根을 熏習한 힘이 있는 연고로 業果報를 믿어 능히 十善을 일으키며
생사의 고를 싫어하고 無上菩提를 구하고저 하여 모든 부처님을 만나서
親히 받들어 供養하고 信心을 닦아 행하되 一萬劫을 지나서 信心을 成就한는
연고로 모든 佛菩薩이 가르쳐서 하여금 發心케 하며 或은 大悲를 쓰는 연고로
능히 스스로 발심하며 혹은 正法이 멸하고자 함을 인해서 法을 保護하는
因緣을 쓰는 연고로 능히 스스로 發心하나니 이와 같이 信心을 成就하여
發心함을 얻는 자는 正定聚에 들어가서 필경에 물러가지 아니하나니
이름이 如來種 가운데에 머물러서 正因과 서로 應함이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善根이 微少하여 久遠以來에 煩惱가 深厚함으로 비록 부처님을 만나
또한 供養을 올리나 그러나 人天種子만을 일으키며 혹은 二乘의 種子만을
일으키나니 설사 大乘을 구하는 者가 있더라도 根機가 일정하지 아니한지라
혹은 前進하고 혹은 後退하며 혹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이 있으되
一萬劫을 지나지 아니해서 도중에 佛緣을 만나 또한 發心함이 있나니
이른바 부처님의 色相을 보고 그 마음을 發하며 혹은 여러 스님께 供養함을
因해서 그 마음을 發하며 혹은 二乘人의 가르침을 인하여 발심하며 혹은
다른 이에게 배워서 發心하나니 이와 같은 等의 發心은 다 一定하지 아니
해서 만약 惡因緣을 만나면 혹은 문득 물러가서 二乘의 자리에 떨어짐이니라.
다시 믿음을 성취하여 마음을 발한다는 것은 어떠한 마음을 發한다는 것인고?
간략히 세가지로 설함이니 어떤 것을 셋이라 하는고?
첫째는 곧은 마음이니 올바른 眞如의 法을 생각하는 연고요.
둘째는 깊은 마음이니 즐거이 일체의 모든 善行을 모우는 연고요.
셋째는 大悲心이니 一切衆生의 괴로움을 빼어 주고자 하는 연고니라.
묻되 위에서 설하기를 法界가 一相이요,佛體가 둘이 없다 하였거늘 무슨 까닭
으로 오직 眞如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모든 善行을 구하고 배움을
假藉하는고?
답하되 譬喩하면 큰 摩尼寶가 體性이 밝고 조촐하나 鑛穢의 때가 있으니
만약 사람이 비록 보배의 性을 생각하나 方便으로써 가지 가지로 갈고 다스리지
아니하면 마침내 淸淨함을 얻을 수 없는거와 같나니 이와 같이 중생의 진여의
법도 體性이 空淨하나 한량 없는 煩惱의 때에 물듦이 있으니 만약 사람이
비록 진여를 생각하나 方便으로써 가지 가지로 熏修하지 않으면 또한 청정함을
얻지 못하나니 때가 限量이 없어서 일체의 법에 두루한 까닭으로 일체의 善行을
닦아서 對治함이니 만약 사람이 일체의 선법을 닦아 行하면 自然히 진여의 법에
歸順하는 연고니라.간략히 말하면 方便에 네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넷이라 하는고?
첫째는 行根本方便이니 이르되 일체의 법이 自性이 無生인 것을 觀해서 妄見을
여의어 생사에 머물지 아니 하며,일체의 법이 因緣으로 화합하여 業果를
잃지 않음을 觀해서 대비를 일으켜서 모든 복덕을 닦아 중생을 攝化해서
涅槃에 머물지 아니함이니 法性의 머무럼이 없음을 隨順한는 까닭이니라.
둘째는 능히 그치는 방편이니 이르되 부끄럽게 여기고 허물을 뉘우쳐 능히
일체의 惡法을 그쳐서 하여금 더 자라지 않게 함이니 法性의 모든 허물 여읜
것을 隨順하는 까닭이니라.
셋째는 선근을 發起해서 增長한는 方便이니 이르되 부지런히 三寶에게 供養하고
禮拜하며,讚歎하고 따라 기뻐하며,모든 부처님께 勸請하나니 三寶를 愛敬하는
淳厚한 마음인 까닭으로 믿음이 增長하여 이에 능히 뜻으로 無上의 道를 구하며,
또 佛法僧의 힘에 慰護한 바를 因한 연고로 능히 業障을 消滅하여 善根을
退하지 아니함이니 法性의 痴障을 여읜 것을 隨順하는 까닭이니라.
넷째는 大願이 平等한 方便이니 이른바 願을 發하여 未來가 다하도록 一切衆生을
敎化濟度해서 하여금 남음이 없게 하며,다 하여금 남음이 없는 열반에 구경케
함이니 法性이 끊임 없음을 수순하는 까닭이요,法性이 광대하여 일체에 두루해
서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피차를 염하지 아니 해서 구경에 적멸한 까닭이니라.
보살이 이 마음을 발한 까닭으로 곧 少分으로 法身봄을 얻음이니 법신을 보는
연고로 그 願力을 따라서 능히 여덟가지를 나투어서 衆生을 利益케 하나니
이른바 兜率天으로부터 퇴하여 태에 들어가 胎에 머물다가 胎에서 나와 出家하여
도를 이루어서 法輪을 굴리시고 涅槃에 드신 것이시니라. 그러나 이 보살을 아직
법신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은 그 과거 무량한 세상으로부터 옴으로 有漏의 업을
능히 결단하지 못한지라 그 나는 바를 따라서 적은 괴로움으로 더불어 서로
응하나 또한 업에 얽메이는 것이 아님이니 큰 願力의 自在로운 힘이 있는 까닭
이니라. 저 修多羅 가운데 혹은 惡趣에 떨어짐이 있다고 설한 것은 그 실로 퇴함
이 아닌지라 다만 초학의 보살이 아직 正位에 들지 못하여 懈怠한 者를 위해서
두려웁게 하여 저로 하여금 勇猛케 하는 까닭이니라. 또 이 보살이 한번 발심한
뒤에는 怯弱을 멀리 여의어 필경에 二乘地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만약 無量無邊한 阿僧祗劫에 어려운 행을 부지런히 하여 이에 涅槃을 얻는다
함을 들을지라도 또한 怯弱치 않나니 일체의 법이 본래부터 옴으로 스스로
涅槃인 줄 믿어 아는 가닭이니라.
알고 행하는 發心이라 함은 마땅히 알라 轉勝이니 이 보살이 처음 正信으로부
터 오면서 第一阿僧祗劫이 장차 만족코져 하는 연고로 眞如의 法中에서 깊이
아는 것이 앞에 나타나 닦는 바가 相을 여읜 것이니 法性의 체에는 俟貪이
없음을 아는 연고로 隨順하여 檀波羅蜜을 수행하며,法性에는 물듦이 없어서
五欲의 허물 여읨을 아는 연고로 수순하여 尸波羅蜜을 수행하며,法性에는 괴로움
이 없어서 瞋惱여읨을 아는 연고로 수순하여 提波羅蜜을 수행하며,法性에는 몸과
마음의 相이 없어서 懈怠여읨을 아는 연고로 隨順하여 毘梨耶波羅蜜을 修行하며,
法性에는 恒常 定하여 體에 어지러움이 없음을 아는 연고로 수순하여 禪波羅蜜을
수행하며,법성에는 體가 밝아서 無明을 여읨을 아는 연고로 수순하여 般若波羅蜜
을 修行함이니라.
證發心이라 함은 淨心地로 쫑아 이에 보살의 구경지에 이르도록 무슨 경계를
증득함인고?이른바 진여인 것이니 轉識을 의지 해서 설하여 경계라고 했으나 이
를 증득한 이는 경계가 없음이요,오직 진여지 뿐이니 이름을 法身이라 함이니라.
이 菩薩이 一念頃에 능히 十方無餘세계에 이르러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法輪을 전하시기를 청하나니 오직 중생을 개도하여 이익케 하기 위함이언정
문자를 의지하지 아니 했으며,혹은 十地에 뛰어나 속히 正覺 이룸을 보인
것이니 怯弱한 중생을 위한 연고요.혹은 내가 무량한 阿僧祗劫에 마땅히
불도를 이루리라 설하여 懈慢한 중생을 위한 연고니라. 능히 이와 같이
무수한 방편을 보인 것이 가히 思量하고 論議할 수 없으나 실로 보살은 種性과
근이 같으며,發心이 같으며,증득한 바가 또한 같아서 초과하는 법이 없으니
일체보살이 다 三阿僧祗劫을 지나는 연고니라.다만 중생의 세계가 같지 아니함과
보는 바와 듣는 바의 根과 欲과 性이 다름을 따랐을새 그러므로 행한 바가 또한
差別이 있음을 보였나니라.
또 이보살의 발심한 상이 세가지 마음의 微細한 相이 있으니 어떠한 것을 셋이
라 하는고? 첫째는 眞心이니 분별이 없는 까닭이요.둘째는 方便心이니 自然히
두루 행하여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까닭이요.셋째는 業識心이니 미세하게 起滅
하는 까닭이니라.또 이 보살이 功德이 成滿하여 色究竟處에 일체세간의 가장
높고 큰 몸을 보이나니 이르되 한 생각이 응한 지혜로써 무명이 문득 다한 것이
이름이 一切種智이니 자연히 不思議한 업이 있어 능히 시방에 나타나서 중생을
이익하게 하나니라.묻되 허공이 갓이 없는 연고로 세계가 갓이 없음이요.세계가
갓이 없는 연고로 중생이 갓이 없음이요.중생이 갓이 없는 연고로 心行의 차별도
또한 다시 갓이 없으니 이와 같은 경계는 가히 分齊할 수 없는지라 알기가
어려우나 만약 무명을 끊으면 心想이 있을 수 없거니 어떻게 능히 알관대
이름을 일체의 種智라 하는고?
답하되 一切境界가 본래 한 마음인지라 想念을 여의었건마는 중생들이 망녕되이
경계를 보는 연고로 마음에 分齊가 있음이요 망녕되이 想念을 일으켜서 법성에
稱合하지 못하는 연고로 능히 알지 못하거니와 모든 부처님은 見相을 여의어서
두루하지 아니한 바가 없으시니 마음이 진실한 까닭이며,곧 이것이 모든 법의
自性이니라 自體가 일체의 妄法을 드러내 비추어 大智用이 있어서 무량한 방편
으로 모든 중생이 응하여 아는 바를 따라서 다 능히 가지 가지의 법의를 열어
보이나니 이런 연고로 이름을 一切種智라 함이니라.
또 묻되 만약 모든 부처님이 자연의 업이 있어서 능히 일체처에 나타나 중생을
이익케 할 진대 일체 중생이 혹 그 몸을 보거나 혹 神變을 보거나 혹 그 말씀을
들으면 利益을 얻지 못함이 없을 것이어는 어찌하여 세간에는 능히 보지 못함이
많은고?
답하되 모든 부처님은 법신이 평등하사 일체처에 두루하사대 뜻을 지음이 없는
연고로 자연이라 말하나 다만 중생의 마음을 의지하여 나타나나니 중생의 마음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거울에 만약 때가 있으면 色相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음
이니 이와 같아서 중생도 마음에 만약 때가 있으면 法身이 나타나지 않는 연고
니라.
이미 解釋分을 說하고 다음에 修行信心分을 說하리라,
이 가운데 正定聚에 들지 못한 衆生을 의지 하는 연고로 修行信心을 說함이니라.
어떤 것이 信心이며,어떤 것이 修行인고? 간략히 說하면 信心에 네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넷이라 하는고?첫째는 根本을 믿음이니 이른바 즐거이 眞如의
法을 생각하는 까닭이요,둘째는 부처님에게 無量한 功德이 있음을 믿음이니
항상 親近해서 供養하고 恭敬하기를 생각하며,善根을 일으켜서 一切智 求하기를
願하는 까닭이요,셋째는 法에 큰 利益이 있는 것을 믿음이니 항상 모든 波羅蜜
修行하기를 생각하는 까닭이요,넷째는 僧이 能히 올바로 修行하여 自利利他함을
믿음이니 항상 즐거이 모든 菩薩衆을 親近해서 如實한 行을배우기를 求하는
까닭이니라.修行에 다섯가지 門이 있어서 能히 이 信을 이룸이니 어떤 것이
다섯인고?첫째는 布施門이요,둘째는 持戒門이요,셋째는 忍辱門이요,넷째는 精進門
이요,다섯째는 止觀門이니라,어데게 布施門을 修行하는고?만약 一切衆生이 와서
求하여 찾는 者를 보면 所有한 財物을 힘을 따라서 베풀어 주어 자기의 俟貪을
버리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쁘게 하며,만약 厄難과 恐怖와 위험스러운 逼迫을
보면 자기의 堪任할바를 따라 無畏를 베풀어 주며,만약 어떤 중생이 와서
법을 구하면 자기의 능히 아는 바를 따라 방편으로 설하되 응당 名利와 恭敬을
탐구하지 아니하고,오직 자리와 이타만을 생각하여 菩提에 回向하는 연고니라.
어떻게 게문을 수행하는고?
이른바 살생도 아니하고, 도둑질도 아니하고, 음행도 아니하며,
양설도 아니하고, 나쁜말도 아니하고,거짓말도 아니하고,꾸미는 말도
아니하며,貪心,嫉妬,詐欺,阿諂,瞋喪,邪見을 멀리 여읨이니라 만약 出家한
자일진댄 번뇌를 折伏하기 위한 연고로 또한 응당 시끄러운 곳을 멀리 여의고
항상 고요한 데 머물러 慾心이 없고 만족할 줄 아는 頭陀等의 행을 修習하며,
내지 적은 허물이라도 마음에 두려움을 내어서 부끄러워 하여 뉘우쳐 고치고
如來께서 制定하신바 禁戒를 가벼히 여기지 아니하며,마땅히 譏弄과 嫌疑를
막아 두호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망녕되이 죄과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연고니라.
어떻게 인문을 修行하는고? 이른바 다른 사람이 괴롭게 함을 응당히 참아서 마
음에 보 갚음을 품지 아니하며, 또한 마땅히 이롭게 하거나 , 헤롭게 하거나,
훼방 하거나,기리거나,칭찬하거나,희롱하거나,괴롭게 하거나,즐겁게 하는등 법을
참는 연고니라.
어떻게 進門을 수행하는고?
이른바 모든 착한 일에 마음이
게으르지 아니해서 立志가 堅强하여 怯弱함을 멀리 여의며 마땅히 과거 久遠
으로 부터 이미 옴으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으로 큰 괴로움을 받아
이익이 없음을 생각할새 이런 연고로 응당히 모든 功德을 부지런히 닦아서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속히 여러가지 괴로움을 여읨이니라.
다시 어떤 사람이 비록 信心을 修行하나 先世로 부터 옴으로 허다한 무거운
罪惡과 業障이 있는 까닭으로 邪魔와 모든 鬼神의 惱亂한 바가 되며,
혹은 세간의 사무에 가지 가지로 얽매이게 되며,혹은 病苦에 시달리는 바가
되어 이와 같은 등 많은 障碍가 있을새 이런 까닭으로 응당히 勇猛精勤하되
밤낮으로 六時에 모든 부처님께 禮拜해서 誠心으로 懺悔하며,勸請하고 따라
기뻐해서 菩提에 回向하되 항상 쉬지 아니해서 모든 障碍를 면하여 善根이
增長함을 얻는 연고니라.
어떻게 止觀門을 修行하는고?
말한바 止라 것은 이르되 一切의 境界相을
그치는 것이니 奢摩他觀의 義를 隨順하는 연고요. 말한바 觀이라는 것은 이르되
因緣生滅相을 分別하는 것이니 毘鉢舍那觀의 의를 수순하는 연고니라.
어떻게 수순하는고?
이 두가지 뜻으로써 漸漸 수습하여 서로 버리지 아니 하면
止와 觀이 雙으로 앞에 나타나는 연고니라.
만약 止를 닦는 자일진대 고요한 곳에 머물러 端正히 앉아서 뜻을 바로 하고
氣息을 의지하지 아니하며,形色에 의지하지 아니 하며,空에도 의지하지 아니
하며,地,水,火,風에도 의지하지 아니 하며,내지 보고,듣고,깨닫고,아느 것에 의지
하지 아니해서 일체의 모든 생각을 念을 따라 다 除함이요,또한 除하였다는
생각까지도 보냄이니 일체의 법이 본래 생각이 없는지라 생각 생각이 생하지도
아니 하며 생각 생각이 滅하지도 않나니라.또한 마음이 밖으로 경계 생각함을
따른 뒤에 마음으로써 마음을 除한다고 말지니 마음이 만약 산란하거던 곧
마땅히 거두어 들여 바른 생각에 머물지니라.
이 바른 생각이란 것은 마땅히
알라 오직 마음 뿐이요.바깥 경계가 없음이니 곧 다시 이 마음이 또한 자체의
모양이 없어서 생각 생각에 가히 얻지 못할지니라. 만약 앉고 일어남을 쫑아
가고,오고,나아가고.그침과 시작하는 바가 있는 일체의 때에 항상 方便을
생각하여 수순하고 관찰해서 오래 익혀 순숙하면 그 마음이 머물음을 얻으리니
마음이 머물은 까닭으로 점점 맹리하여 수순하여 眞如三昧에 들어감을 얻어서
깊이 번뇌가 調伏되고 신심이 증장해서 속히 不退함을 이룸이니라.
오직 疑惑과 不信과 誹謗과 중죄업장과 我慢과 懈怠를 제함이니 이와 같은 등
사람은 능히 들어가지 못할 바니라.
다시 이 三昧를 의지하는 까닭으로 곧 法界가 一相인줄 앎이니 이르되 일체
모든 부처님의 法身이 중생의 몸으로 더불어 平等하여 둘이 없음이니 곧 이름이
一行三昧니라.
마땅히 알라 眞如는 이 三昧의 根本이니 만약 사람이 수행하면
점점 능히 무량한 三昧을 생하리니 혹 어떤 중생이 善根의 힘이 없으면 곧
모든 魔軍과 外道와 귀신의 惑亂하는 바가 되리니 혹 앉아 있는 가운데 形態를
나타내 두려웁게 하거나 혹은 端正한 남녀들의 모양을 나타내거던 마땅히 오직
마음인줄 念하면 경계가 곧 멸해서 마침내 괴롭히지 못하리라.
혹은 天像과 보살승을 나투며,도한 如來像을 지어 相好가 具足하며,혹은 다라니를
설하며,혹은 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를 설하며,혹은 평등하고 공해서 모양도
없고,願도 없고,怨도 없고,親함도 없고,因도 없고,果도 없어서 畢竟에 空寂한 것이
이것이 참다운 열반이라 설하며,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宿命過去의 일을 알게
하며,또한 미래의 일을 알게 해서 他心智를 얻어 辯才가 거리낌이 없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世間名利의 일을 貪着케 하며,또 사람으로 하여금 자주
성을 내고 자주 기뻐해서 性品이 항상 되고 準함이 없게 하며 혹은 慈愛가 많게
하며,졸음도 많고 疾病도 많아서 그 마음을 懈怠하게 하며,
혹은 마침내 정진할
생각을 일으켰다가 뒤에 문득 休廢하고 믿지 않는 마음을 내어서 疑心이 많고
생각이 많게하며,혹은 본래 수승한 행을 버리고 다시 잡된 업을 닦게하며,
혹은 世事에 집착해서 가지 가지로 얽메이게 하며,또한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삼매를 얻어 少分이라도 서로 비슷하게 하나니 다 이것은 외도의 얻은 바라
참다운 三昧가 아니니라.
혹은 다시 사람으로 하여금 혹 하루나 혹 이틀,혹 사흘로
이에 칠일에 이르고 定中에 머물러 자연히 향기롭고 아름답운 飮食을 얻어 먹고
몸과 마음이 快適하고 기뻐서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아서 사람으로하여금
愛着케 하며,
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음식에 分齊가 없어 졸지에 많이도 하고
적게도 하여 顔色이 달라지게 하나니 이 뜻을 쓰는 까닭으로 수행하는 자가
항상 응당 지혜로 관찰해서 이 마음으로 하여금 삿되 나그물에 떨어지게 하지
말고 마땅히 부지런히 생각을 바르게 하여 取하지 아니하고 착하지 아니하면
곧 능히 이 모든 업장을 멀리 여의게 되리라.
응당히 알라.외도의 있는바 三昧는 다 見愛와 我慢의 마음을 여의지 아니 했음
이니 세간의 명리와 공경을 貪着한 연고니라.
眞如三昧란 것은 見相에 머물지
아니하며,得相에 머물지 아니하며,내지 定에서 나옴에도 또한 懈弛하거나 태만
함이 없어서 있는바 번뇌가 점점 微薄해짐이니라.만약 모든 범부가 이 삼매의
법을 익히지 아니 하고 여래의 種性에 얻어 들어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나니라.
세간의 諸禪三昧를 닦으되 흔히 味着을 일으켜서 我見에 의지하여 三界에
繫屬되면 외도로 더불어 같음이니 만약 善知識의 두호하는 바를 여의면 곧 외도
의 소견을 일으키는 까닭이니라.
다시 精勤해서 專心으로 이 삼매를 修學하는
者는 현세에 마땅히 열가지 이익을 얻나니 어떠한 것이 열가지가 되는고?
첫째는 항상 十方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護念하는 바가 될것이요.
둘째는 모든 魔軍과 惡鬼에 능히 두려운 바가 되지 않을 것이요.
셋째는 九十五種의 外道와 鬼神의 惑亂하는 바가 되지 않을 것이요.
넷째는 심히 깊은 법을 誹謗함을 멀리 여의어서 重罪와 業障이 점점 微薄하여
지는 것이요.
다섯째는 일체의 疑惑과 모든 나븐 覺觀(즉 分別心)을 멸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모든 여래의 경계에 믿음이 增長함을 얻는 것이요.
일곱째는 근심 걱정을 멀리 여의어서 생사 가운데에서도 용맹스러워서 겁내지
않을 것이요.
여덟째는 그 마음이 柔和하여 驕慢함을 버려서 타인의 괴롭게 하는 바가 되지
않을 것이요.
아홉째는 비록 定力은 얻지 못하였으나 일체의 때와 일체경계의 곳에서 곧
능히 번뇌를 減損하여 世間事를 즐기지 않을 것이요.
열째는 만약 三昧를 얻으면 外緣의 일체음성에 놀라 움직이는 바가 되지 않으
리라.
다시 어떤 사람이 오직 止만 닦는 다면 마음이 가라앉게 될 것이며,혹 懈怠함을
일으켜 모든 善을 즐기지 아니 하고 大悲를 멀리 여의나니 이런 까닭으로 관을
닦음이니라.
觀을 修習하는 자는 마땅히 일체세간의 有爲法이 오래 머무는 것이 없어서
須臾에 變壞하며 일체의 心行이 생각 생각에 생멸하나니 이런 까닭으로
苦인줄 관함이니 응당히 과거에 생각한바 모든 법이 恍惚하여 꿈과 같은줄
觀하며,응당히 현재에 생각한바 모든 법이 마치 번갯불과 같은줄 관하며,응당히
미래의 생각하는바의 모든 법이 마치 구름과 같아서 홀연히 일어나는 줄 관하며,
응당히 세간의 일체 유신이 다 不淨하여 가지 가지로 더러운지라 하나도 가히
즐거움이 없는 줄 관함이니라.이와 같이 마땅히 생각하라.
일체의 중생이 비롯
함이 없는 때로부터 옴으로 다 無明의 熏習한 바를 因한 연고로 마음으로
하여금 생멸케 해서 이미 일체 身心에 큰 괴로움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곧 한량
없는 逼迫이 있으며,미래에 괴로운 바도 또한 分齊가 없어서 버리기도 어려웁고
여의기도 어려워서 깨달아 알지 못함이니 중생도 이와 같아서 심히 가히 불쌍함
이 됨이니라.
이렇게 생각을 지어서 곧 응당히 용맹하게 큰 誓願을 세우되 원컨대 내 마음이
하여금 分別을 여읜 연고로 十方에 두루해서 일체의 모든 善功德을 수행하여
미래가 다하도록 하며,한량없는 方便으로써 일체의 苦惱衆生을 求拔해서
하여금 涅槃第一義의 樂을 얻게 하리라.
이와 같은 원을 일으키는 연고로 일체 때와 일체 곳에 있는 바 衆善을 몸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따라서 修學함을 버리지 아니해서 마음에 게으름이 없나
니 오직 앉아 있을 때 止에 專念함은 除함이니라.
혹 나머지 일체에는 다 마땅히
할 것과 하지 못할 것을 觀察함이니라.혹 가거나,혹 머물거나,혹 눕거나,혹
일어남에 다 응당히 止와 觀을 함께 行함이니 이른바 비록 모든 法의 自性이
나는 것이 아닌줄 생각하나 다시 곧 因緣이 화합한 善惡의 업과 苦樂等 果報가
잃어지지도 아니하고,무너지지도 아니 하며,비록 因緣善惡의 業報를 생각하나
또한 곧 性을 가히 얻지 못함을 생각함이니 저 止를 닦는 자는 범부가 세간에
住着함을 對治하며,능히 二乘의 怯弱한 견해를 버림이요,저 관을 닦는 자는
이승의 大悲心을 일으키지 않고 좁고 비열한 마음의 허물을 대치함이요,범부의
善根 닦지 않는 것을 멀리 여읨이니라.
이 뜻을 쓰는 까닭으로 이 止와 觀의 門이
한가지로 서로 도와 이루어서 서로 버리고 여의지 아니 함이니 만약 止와 觀을
갖추지 못하면 곧 능히 보리의 도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다시 중생이 처음 이 법을 배워서 正信을 구하고저 하나 그 마음이 겁약한이는
이 娑婆世界에 머물러서 스스로 능히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서 親히 받들어
공양하지 못할까 두려워 하며,두려워하여 이르되 信心을 가히 성취하기 어렵다
해서 뜻으로 물러가고저 하는 자는 마땅히 알라 여래께서 수승한 방편을 두어서
신심을 攝護했음이니 이르되 뜻을 오로지 하여 부처님을 念하는 因緣으로
원을 따라 他方의 佛土에 태어나서 항상 부처님을 친견해서 길이 악도를 여의나
니 저 修多羅에 설하사대 만약 사람이 오로지 西方極樂世界의 阿彌陀佛을 생각
해서 닦은바 선근을 회향하여 저 세계에 나기를 구원하면 곧 왕생함을 얻는다
하시니라.
항상 부처님을 보는 까닭으로 마침내 물러남이 없으며,만약 저 부처님
의 진여법신을 관하여 항상 부지런히 수습하면 필경에 태어남을 얻어서 正定에
머무는 연고니라.
이미 修行信心分을 설했을새 다음은 勸修利益分을 설하리라.
이와 같이 摩訶衍인 모든 부처님의 秘藏을 내가 이미 다 설하였으니,만일 어떤
중생이 여래의 심히 깊은 경계에 바른 마음을 내서 誹謗을 멀리 여의고 大乘의
도에 들어가고자 할진댄 마땅히 이 論을 가져서 思量하고 修習하면 구경에 능히
無上의 道에 이르리라.
만약 사람이 이 법을 들어 마치고 怯弱을 내지 아니 하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결정코 佛種을 이어서 반드시 모든 부처님의 授記하는
바가 되리라.假使 어떤 사람이 능히 三千大千世界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해서
하여금 十善을 行하게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한 食頃이라도 바로 이 법을 생각
하는 것만 같지 못함이니 앞의 공덕보다 勝過해서 가히 比喩할 수 없나니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論을 受持해서 관찰하고 수행하되 만약 하루나 하룻밤을
하더라도 所有의 공덕이 無量無邊해서 가히 설하지 못할지니라.假令 十方의 일체
모든 부처님이 각각 無量無邊한 阿僧祗劫에 그 공덕을 讚歎하여도 또한 능히
다하지 못할지니 무슨 까닭인고?
이르되 法性의 공덕이 다함이 없는 연고로
이사람의 공덕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邊際가 없나니라.그 어떤 중생이 이
論 가운데에 毁謗하여 믿지 아니하면 얻는 바 죄의 果報는 무량한 劫을 지나도
록 큰 괴로움을 받으리니 이런 연고로 중생은 다만 응당히 우러러 믿을 지언정
응당히 毁謗하지 말지니라.自害가 깊음으로써 또한 他人을 害롭게 해서 一切三寶
의 種子를 끊음이니라.
일체여래가 다 이 법을 의지하사 열반을 얻은 연고며,
일체보살이 이것을 因하여 수행해서 佛智에 들어 가는 연고니라.미땅히 알라
과거의 보살이 이미 이 법을 의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이루었으며,현재의 보살
이 이제 이 法을 의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이루었으며,미래의 보살도 마땅히
이 법을 의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이룰 것이니 이런 연고로 중생이 응당 부지런
히 닦아 배울지니라.
모든 부처님의 심히 깊고 광대한 뜻을 내 이제 隨順하여 다 가져 설하였으니 이
功德이 法性과 같음을 回向해서널리 일체의 衆生界를 利롭게 하노라.
가섭 존자
법이라는 본래 법은, 법도 없고 법이 아닌 것이 없음이니, 어찌 한 법 가운데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으랴.
아난 존자
본래 있음의 법(有法)을 전했더니, 전한 뒤엔 없음의 법(無法)이라 하더라. 제각기 깨달았으니, 깨달은 뒤엔 없음의 법(無法)도 없더라.
상나화수 존자
법도 아니요,마음도 아니며, 마음도 없고 법도 없도다. 이 마음의 법을 말할 때에, 이 법은 마음의 법이 아니다.
우바국다 존자
마음은 본래부터 마음이니, 본래 마음에는 법이 없도다. 법도 있고 본래의 마음도 있으나, 마음도 아니요 본래의 법도 아니다.
제다가 존자
근본 법과 그 마음을 통달하면,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네. 깨달았다고 하면 깨닫지 않음과 같나니, 마음의 법도 본래 없기 때문이라네.
미차가 존자
마음은 실체가 없어 얻을 수 없나니, 얻을 수 있다면 참된 법이 아니라네, 마음이 마음 아닌줄 깨달아 알면, 마음과 마음의 법을 알 수 있으리.
바수밀 존자
마음은 허공 같아, 허공 같은 법을 보인다. 허공의 묘한 법을 알면, 옳고 그름도 법도 없다.
불타난제 존자
허공이 안팎이 없듯, 마음의 법도 그러하다. 허공의 이치를 밝게 깨달은 것, 그것을 참된 이치를 바로 안 것이라 한다.
복타밀타 존자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에 의해 모습을 드러 내나니, 진실된 이치를 깨달으면, 참도 거짓도 사라지고 없네.
협 존자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에 의해 모습을 나타내나니, 진실한 법을 알아 들으면, 참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다.
부나야사 존자
미혹과 깨달음은 숨음과 드러남, 밝음과 어둠이 서로 떠나지 않는다. 이제 숨음과 드러남의 법을 너에게 전하노니,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니라.
마명 존자
들어나고 숨음이 한 집안 소식이요, 밝고 어두움이 원래 둘이 아니로다. 이제 네게 깨달은 법을 주노니, 갇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
가비마라 존자
드러남도 숨음도 아닌법을 ,진실의 경지라고 한다. 숨고 드러남의 이치를 깨달으면, 지혜롭고 어리석음을 넘어서리.
용수 존자
숨고 드러나는 법을 밝히려고, 해탈의 이치를 말하네. 법에는 마음도 얻을 수 없나니, 성냄도 기쁨도 본래 없는 것이라네.
가나제바 존자
사람에게 법을 전하는 뜻은, 해탈의 이치를 설하기 위함일세, 법에는 진실로 얻을 것이 없나니,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네.
라후라다 존자
법에는 진실로 증득할 것이 없어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네, 법은 있고 없는 것이 아니니, 어찌 안 밖이 생기리.
승가난제 존자
마음의 법이 원래 나는 것 없으나, 인(因)의 땅에 연(緣)을 따라 일어난다네. 인연과 종자가 서로 방해하지 않듯, 꽂과 열매도 그러하네.
가야사다 존자
종자가 있고 마음땅(心地)이 있으니, 인연이 싹을 나게 하도다. 싹이 나건 안 나건,인연의 법칙은 걸림이 없도다.
구마라다 존자
성품에는 태어남이 없지만, 구하는 이를 위해 말하는 것이다. 법에는 이미 얻을 것이 없거늘, 어찌 결정하고 못함을 걱정하리요.
사야다 존자
말끝에 무생법(無生法)에 맞으면, 법계의 성품과 같아지리니, 이렇게 바로 알면, 사(事)와 이(理)를 통달하리라.
바수반두 존자
거품도 허깨비도 걸림이 없거늘, 어찌 알지 못하는가 법이 그 가운데 있는 줄 알면, 지금도 옛도 아니리라.
마노라 존자
마음이 만 경계를 따라 움직이니,움직이는 곳마다 모두 그윽하다. 흐름에 따라 본 성품 깨달으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으리라.
학륵나 존자
마음을 깨달을 때를, 부사의(不思議)하다 말 할 수 있나니, 분명하되 얻을 수 없고, 얻을 때는 안다고 할 수 없다.
사자 존자
깨달음을 말할때, 지(知)와 견(見)이 모두가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바로 지견이니, 지견은 언제나 지금 속에 있다.
바사사다 존자
성인이 지견을 말씀하시니, 경계를 만날 적마다 그 아닌 것 없도다. 내가 이제 참 성품을 깨달으니, 도도 없고 이치도 없도다.
불여밀다 존자
참성품이 心地에 숨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도다. 인연따라 중생을 교화하니,방편으로 지혜라 부른다.
반야다라 존자
마음 땅이 숱한 종자를 내네, 일이 일어나면 다시 이치도 생기네. 수행의 열매가 무르익어 깨달음이 원만해지니,꽂이 피듯 한 세계가 열리네.
보리달마 존자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제도하려는 것인데, 한송이의 꽃에 다섯 꽃잎이, 열매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혜가 존자
본래부터 마음 땅이 있었기에, 그 땅에 씨를 심어 꽃이 피지만, 종자도 있는 것이 아니며,꽃도 나는 것이 아니다.
승찬 존자
꽃은 땅을 의지해 심고, 땅에 심었던 꽃이 피지만, 씨를 뿌려주지 않는다면, 꽃도 땅도 나지 않는다.
도신 존자
꽃과 종자는 나는 성품이 있나니, 땅에 의하여 꽃은 나고 또 난다. 큰 인연과 믿음이 어울릴 때에 나지만, 이 남은 남이 없는 것이다.
홍인 존자
유정(有情)이 와서 씨를 뿌리니, 인연의 땅에 열매 절로 열리네. 무정(無情)은 이미 종자가 없으므로, 성품도 태어남도 없다.
혜능 존자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맑은 거울도 집이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찌 먼지를 일으키랴? 지각 있는 존재의 씨앗이 뿌려져, 밭마다 열매를 맺게 되리라.지각 없이는 씨앗이 자랄 수 없고, 성(性)없이는 생(生)도 없다.
돈오입도요문론 [頓悟入道要門論] - 머리말....
이 논을 지은이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스님의 제자인 대주 혜해(大株慧海)스님
입니다. 스님의 전기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다만 [조당집(祖堂集)]권14,[경
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등에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이를 종합해 보면 마
조스님을 6년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만이 스님의 생존 연대를 추정할수 있는 유일
한 단서 입니다.
혜해스님은 건주(福建省) 사람으로 성은 주[朱]씨이며 월주(浙江省)의 대운사 도지
(道智)스님에게 출가 득도 하였습니다. 그후 스님은 강서(江西)에 있는 마조스님을
찾아가 뵈오니, 마조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와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구
하려 하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떤 불법(佛法)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자 혜해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혜해 자신의 보배창고 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 너의 보배창고이다. 일체가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
이 없고 사용[使用]이 자제한데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이 말 끝에 혜해스님은 크게 깨쳐서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았는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뛸듯이 기뻐서 절을 올려 감사를 드리고 6년 동안 마조스님을 시봉하였습니
다. 그후 도지스님이 연로 하시므로 대운사로 다시 돌아와서 도지스님을 봉양하였
습니다. 그리고 자취와 활동을 감춘채 겉으로는 어리석게 살면서 [돈오입도요문론
(頓悟入道要門論)] 한 권을 저술 하였습니다. 이책을 조카 상좌인 현안(玄晏)스님
이 훔쳐서 마조스님에게 보이니 스님이 이것을 보시고 대중들에게
"월주(越州)에 큰 구슬이 있으니 둥글고 밝은 광명이 비추어 자유자재로와 걸림이
없구나"
하고 감탄하시었습니다. 대중가운데 혜해스님이 주씨임을 알고 있던 자가 있어서
큰 구슬(大珠)은 바로 혜해스님을 크게 칭찬하는 말임을 알아차리고,
"옛날 같이 살았을때는 그렇게 훌륭한 스님인줄 몰랐는데 이제보니 큰 도인임에 틀
림 없구나."
하고 다시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도반을 이루어 앞을 다투어 월주의 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공
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혜해스님을 대주(大珠)스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
다.
마조스님 문하에서 대주스님의 위치를 본다면 마조스님 비문에서나 [경덕전등록],
[조당집]에서나 모두 스님을 마조 스님 수제자(首第子)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덕전등록]에 1700여명의 큰 스님 법문이 실려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주 스님의
법문이 가장 많이 실려있고 제 28권에도 다시 스님의 긴 법어가 따로 실려 있습니
다.
마조스님의 정맥은 백장(百丈)스님에게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선가의 정설로 되
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백장(百丈)스님, 남전(南泉)스님, 법상(法常)스님들보다
대주스님이 더 유명하였으며 천하에 이름을 더 날렸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돈오입도요문론]은 당대에 명성을 떨친 대주 스님의
저술이고 또 선가의 대조사이신 마조스님이 극찬한 책이므로 선종(禪宗)의 정통사
상을 아는데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자료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육조단경(六祖壇經)] 이라든
가, [전심법요(傳心法要)]라든가, [백장광록(百丈廣錄)]이라든가 하는 선종의 어록
들이 많이 있지만 이러한 어록들은 당시 사람들이나 후세 사람들이 그 스님이 입적
하신뒤에 그 법문을 기록하거나 수집한 것이지 본인들이 직접 편찬한 것이 아닙니
다.
하지만 [돈오입도요문론]은 대주스님이 직접 저술하였으므로 거기에 가필이나 착오
가 없다고 보며 다른 어떠한 어록보다도 완전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
니다. 또 마조스님이 인가하신 논이니 만큼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정확하게 기술
한 것으로서, 선종 초기의 근본사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증도가(證道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오(頓悟)란 구경각(究竟覺)을 말합니다. 즉 제 8 아뢰야 근본 무명이 완전히 끊
어져서 중도(中道)를 정등각(正等覺)하여 진여본성(眞如本性)을 깨친 증오(證悟)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를 정등각한 구경각을 돈오라고 하는 만큼, 입도(入道)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성불과 같은 뜻으로서 증도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돈오입도요문론]은 영가스님의 [증도가]와 그 사상과 내용이 같다고 할수 있겠
습니다.
### 돈오입도요문론 차례. ###
1. 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2. 돈오(頓悟)
3. 선정(禪定) 4. 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5. 자성견(自性見)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7. 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8. 무소견(無所見)
9. 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11.삼학(三學)을 힘쓰다. 12.무생심(無生心)
13.상주(常住) 14.오종법신(五種法身)
15.등각(等覺)과 묘각(妙覺) 16.설법(說法)
17.금강경(金剛經)의 경전(輕賤) 18.여래(如來)의 오안(五眼)
19.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20.정혜(定慧)를 함께 씀
21.경상(鏡像)과 정혜(定慧) 22.언어도단심행처멸(言語道斷心行處滅)
23.여여(如如) 24.즉색즉공(卽色卽空)
25.진(盡)과 무진(無盡) 26.불생불멸(不生不滅)
27.불계(佛戒)는 청정심(淸淨心) 28.불(佛)과 법(法)의 선후(先後)
29.설통(說通)과 종통(宗通) 30.도(度)와 부도(不度)
31.부진유위(不盡有爲)며 부주무위(不住無爲) 32.지옥유무(地獄有無)
33.중생(衆生)과 불성(佛性) 34.삼신사지(三身四智)
35.불진신(佛眞身) 36.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
37.무위법(無爲法) 38.중도(中道)
39.오음(五陰) 40.이십오유(二十五有)
41.무념(無念)과 돈오(頓悟) 42.중생자도(衆生自度)
43.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 44.일체처(一切處)에 무심(無心)
45.필경정(畢竟淨) 46.필경증(畢竟證)
47.진해탈(眞解脫) 48.필경득(畢竟得)
49.필경공(畢竟空) 50.진여정(眞如定)
51.중도(中道)는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 52.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이 해탈-解脫
1.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 숙여 예배를 올립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이 논을 지었으나 부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을까 두려우
니 부디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만약 부처님의 이치를 알았거든 일체 유정의 중생
에게 모두 회향하여 내세(來世)에 다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다.
2.돈오(頓悟)
"어떤 법을 닦아야 곧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돈오의 한 문[一門]만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까?"
"돈(頓)이란 단박에 망념(妄念)을 없앰이요, 오(悟)란 얻은 바 없음[無所得]을 깨
치는 것이니라."
"무엇부터 닦아야 합니까?"
"근본(根本)부터 닦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하는것이 근본부터 닦는 것입니까?"
"마음이 근본이니라."
"마음이 근본임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능가경]에 이르기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고,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淨土)를 얻고저 하면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 불국토가 깨끗해진다' 하였
고, [유교경]에 이르기를 '마음을 한곳으로 통일하여 제어하면 성취하지 못하는 일
이 없다' 고 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성인은 마음을 구하나 부처를 구하지 아니하
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면서 마음을 구하지 아니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
음을 다스리나 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은 다스리나 마음을 다
스리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불명경]에 이르기를 '죄는 마음에서 났다가 다시 마
음을 좇아서 없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악과 일체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으
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알지니, 그런 까닭에 마음이 근본이니라. 만약 해탈을 구
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모름지기 근본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노력을 허비하여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옳지 않느니라. [선문
경]에 이르기를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비록 몇 겁을 지난다 해도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요, 안으로 마음을 관조하여 깨치면 한 생각 사이에 보리를 증득한다'고
하였느니라."
3.선정(禪定)
"근본을 닦으려면 무슨 법으로써 닦아야 합니까?"
"오직 좌선하여 선정을 하면 얻을 수 있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성
스러운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할진댄 곧 선정(禪定)이 요긴한 것이니, 만
약 선정이 없으면 망상이 시끄럽게 일어나서 그 선근(禪根)을 무너뜨린다' 고 하였
느니라."
"어떤 것을 선(禪)이라 하며 어떤 것을 정(定)이라 합니까?"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선(禪)이요, 앉아서 본성(本性)을 보는 것이 정
(定)이니라. 본성이란 너의 무생심(無生心)이요, 정이란 경계를 대(對)함에 무심하
여 팔풍(八風)에 움직이지 아니함이니라. 팔풍이란, 이로움과 손실(利.衰), 헐뜯음
과 높이 기림(毁.譽), 칭찬함과 비웃음(稱.譏),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을 말하느
니라. 만약 이와 같이 정(定)을 얻은 사람은 비록 범부(凡夫)라고 하더라도 부처님
지위(佛位)에 들어 가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계경(菩薩戒經)]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계(佛戒)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 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얻은 것을 '해탈' 이라고 하
며 또 '피안에 이르렀다'고 하느니라. 이는 육도(六度)를 뛰어넘고 삼계(三界)를
벗어난 대력보살(大力菩薩)이며 무량력존(無量力尊)이니 대장부(大丈夫)인 것이니
라."
4.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야 곧 머무는 것 입니까?
"머무는 곳이 없는데 머무는 것이 곧 머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머무는 곳이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함이 곧 머무는 곳 없는데 머무는 것 이니라."
"어떤 것이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선악(善惡).유무(有無).내외(內外).중간(中間)에
머물지 아니하며,공(空)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공(空)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禪定)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함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함이니, 다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곧 머무는 곳이니라. 이와 같이
얻은 것을 머물음이 없는 마음(無住心) 이라 하는 것이니 머물음이 없는 마음이란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그 마음은 어떤 물건과 같습니까?"
"그 마음은 푸르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으며, 붉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아
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담연(湛然)하고 항상 고요한 이것이 본
래 마음의 형상이며 또 본래 몸이니 본래의 몸이란 곧 부처님의 몸이니라."
5.자성견(自性見)
"몸과 마음은 무엇으로써 보는 것입니까, 눈으로 봅니까, 귀로 봅니까,
몸과 마음 등으로 봅니까?"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이미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을진댄 다시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성(自性)으로 보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담연히 비
고 고요하므로, 비고 고요한 본체(體) 가운데서 이 보는 것[見]이 능히 나느니라."
"다만 청정의 본체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이 보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
입니까?"
"비유하면 밝은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일체 모양을 볼수 있는 것과 같으
니, 왜냐하면 밝은 거울이 무심이기 때문이니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마음에 물든
바 없어 망심이 나지 아니하고 주관과 객관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자연히 청
정한 것이니, 청정한 까닭에 능히 이 보는 것이 생겨나느니라. [법구경]에 이르기
를 '필경의 공 가운데서 불꽃 일듯 건립함이 선지식이다' 고 하였느니라.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열반경] 금강신품(金剛身品)에 이르기를 '볼 수 없되 분명하고 밝게 볼 수 있어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하니 무슨 뜻 입니까?"
" '볼수 없다'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모양이 없어서 얻을 수 없는 까닭에 볼 수
없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얻을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공적하고
담연하여 가고 옴이 없으나 세간의 흐름을 여의지 않으니 세간의 흐름이 능히 흐르
지도 아니하여 탄연히 자재[自在]함이 곧 '분명하고 밝게 보는 것' 이니라.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자성의 모양이 없어서 본래 분별(分別)이 없음을 이름하
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알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사묘용을 갖추어서 능히
일체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알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반야(般若)의 게송]에 이르기를 '반야(般若)는 아는 것이 없으나 알지 못하는 것
이 없으며, 반야는 보지 못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고 하였느니라."
7.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경에서 이르기를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해탈이다'고 하
시니 어떤 것이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않는 것 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였을 때를 곧 '있음'이라 하고, 그 가운데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음이 곧 '있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얻고서,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
각을 짓지 않는 것이 곧 '없음'을 보지 못함이니, 그런 까닭에 `있음과 없음'을 보
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니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견(知見)에 앎(知)을 세우면 무명(無明)의 근본이 되고 지
견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반이며 또한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8.무소견(無所見)
"어떤 것이 보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만약 남자나 여자 및 일체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사랑함과 미워함[愛憎]을 일
으키지 아니하여 보지 못함과 더불어 같은 것이 곧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는 곧 본다고 하거니와 색상을 대하지 않을 때도 또한 본다고
할 수 있읍니까?"
"보느니라."
"물건을 대할 때는 설령 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
게 해서 보는 것이 있읍니까?"
"지금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대하거나 물건을 대하지 않거나를 논(論)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고 하는 그 성품은 영원한 까닭에 물건이 있을 때도 보고 물
건이 없을 때도 또한 보는 것 이니라. 그런 까닭에 물건에는 본래 스스로 가고 옴
(去來)이 있으나 본다는 성품에는 가고 옴이 없음을 알지니, 다른 모든 감각 기관
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바로 물건을 볼 때에 보는 가운데 물건이 있읍니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서지 못 하느니라."
"바로 물건이 없음을 볼 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없읍니까?"
"보는 가운데는 물건 없는 것도 서지 못하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는 곧 들을 수 있거니와 소리가 없을 때에도 들을 수 있읍니까?"
"역시 듣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엔 설령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소리가 없을 때는 어떻게 듣습니
까?"
"지금 '듣는다'고 하는 것은 소리가 있거나 없거나를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
는다'는 자성은 영원한 까닭에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소리가 없을 때도 또한 듣
느니라."
"이렇게 듣는 자는 누구 입니까?"
"이는 자기의 성품이 듣는 것이며 또한 아는 이가 듣는다고 하느니라."
9.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 종지와 체용
"이 돈오문은 무엇으로써 종취(宗趣)를 삼고 무엇으로써 참 뜻(旨)을 삼고 무엇으
로써 본체로 삼으며 무엇으로써 작용(用)으로 삼는 것 입니까?"
"무념을 종취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참 뜻으로 삼으며 청정을 본체로 삼
고 지혜로써 작용을 삼느니라."
"이미 무념으로 종취를 삼는다고 말씀할진댄 무념이란 어떤 생각이 없는 것 입니
까?"
"무념이란 삿된 생각이 없음이요 바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삿된 생각이며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있음(有)을 생각하고 없음(無)을 생각하는 것이 삿된 생각이요 있음과 없음을 생
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괴로움[苦]과 즐거움[樂], 나는 것[生]과 없어
짐[滅], 취함[取]과 버림[捨], 원망(怨)과 친함(親), 미워함(憎)과 사랑함(愛)을
생각하는 것이 모두 삿된 생각이요, 괴로움과 즐거움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바른 생각이란 오직 보리(菩提)만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보리는 얻을 수 있습니까?"
"보리는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얻을 수 없을진댄 어떻게 오직 보리만 생각 합니까?"
"보리는 다만 거짓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라 실지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과거에도
미래에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까닭에 곧 생각 있음이 없느니라.
오직 이 무념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 것이니 보리는 생각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니, 다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무념이란 모두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운 것
인지라 모두가 하나의 본체로서 같음이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는 것이니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함을 알면 곧 이것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 때에 자연해탈이니
라."
"어떻게 하여야 부처님의 행을 하는 것입니까?"
"일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 행동이라 하며 또 바른 행동이라 하며 또 성
스러운 행동이라 함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있음과 없음 미워함과 사랑함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대율]5권 보살품에서 이르기를 '일체 성인들은 중생의 행동을 행하지 않고 중생들
은 이와같은 성인의 행동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까?"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곧 바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이라 합니까?"
"일체 색을 볼 때에 물들거나 집착함을 일으키지 아니함이니,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한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므로 곧 보는 바 없음
을 본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약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얻었을 때 곧 부처님의 눈이라 하나니 다시 별다른
눈이란 없느니라.
만약 일체 색을 볼 때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보는 바가 있다
고 하는 것이니 보는 바가 있음이 곧 중생의 눈이니라. 다시 별다른 눈을 가지고
중생의 눈이라 할 것이 없으니, 내지 다른 오근(五根)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2. 이성공(二性空)
"이미 지혜로써 작용을 삼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空)한 줄 아는 것이 곧 해탈이며 두가지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 알면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며 또 삿됨과 바름을 요달하였다고
하며 또 본체와 작용을 안다고 하느니라.
두 가지 성품이 공했다고 하는 것은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사랑함과 미워함이
나지 아니한 것을 이름하여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고 하느니라."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蘿蜜)로 부터
"이 돈오의 문은 어디로부터 들어갑니까?"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행(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단바
라밀 하나만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구족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미혹한 사람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로 말미암아 나는 것인줄 알지 못한 것
이니 오직 단바라밀만을 수행하면 곧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 것이니라."
"어떤 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고 합니까?"
"단(檀)이란 보시(布施)를 말하느니라."
"어떤 물건을 보시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가지 성품입니까?"
"선과 악의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성품, 사랑함과 미워함의
성품,공과 공 아님의 성품,정과 정 아님의 성품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의 성
품을 보시해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해 버리면 두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
느니라.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을 때에 또한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하며 또 보시한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함이 곧 진실로 보시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고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
함은 곧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법의 성품이 공하다 함은 곧 일체처에 무
심함이니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는 한 모양(一相)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느니라.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다 함은 곧 실상이니 실상이란 여래의 묘한 색신의 모양이니
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를 말하며 능히 구족할 수 있
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라건대 하나가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는 까닭을 말씀해 주십
시요."
[사익경]에 이르기를 '망명존이 범천에게 말하되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리면 단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보시요,
모든 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지계요,
모든 법에 대하여 손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인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모양을 떠남이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정진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선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니니 곧 지혜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 법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다시 여섯가지 법에 이름을 붙이면 첫째는 버림과 둘째는 일어나지 아니함과
세째는 손상하지 않음과 네째는 모양을 떠남과 다섯째는 머물지 않음과 여섯째는
희론이 없음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여섯가지 법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
짓 이름을 세움이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다만 하나를 버릴줄 알면 일체를 버림이요, 하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일체가 일
어나지 않거늘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모두 말 하느니라. 어리
석은 사람은 여섯가지 법의 숫자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라.
너희들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나니, 다만 보시의 법만을 닦으면 만법이 두루
원만해지거늘 하물며 다섯가지 법이 어찌 구족하지 않겠는가."
11.삼학(三學)을 함께 쓰다.
"삼학을 함께 쓴다 하니 어떤 것이 삼학이며 어떤 것이 함께 쓰는 것입니까?"
"삼학이란 계.정.혜니라."
"어떤 것을 계.정.혜라 합니까?"
"청정하여 물들지 아니함이 계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아 경계를 대하여
고요함이 정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 때에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함을 알 때에 청정하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여 내지
선.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물들지 아니하여 자재를 얻음을 혜라고
하느니라. 만약 계.정.혜의 본체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 때에 곧 분별함이
없어서 곧 동일의 본체이니 이것이 삼학을 함께 쓴다고 하는 것이니라."
12.무생심(無生心)
"만약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 때에는 청정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까?"
"청정함에 머뭄을 얻었을 때에 청정함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청
정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마음이 공에 머물 때에는 공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공하다는 생각을 짓는다면 곧 공에 집착한 것이니라."
"만약 마음이 머뭄이 없는 곳에 머물 때에 머뭄이 없는 곳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
까?"
"다만 공한 생각을 지으면 곧 집착할 곳이 없으니 네가 만약 머물 바 없는 마음을
분명하고 밝게 알고저 할진댄 바로 좌선할 때에 다만 마음만 알고, 모든 사물을 생
각하여 헤아리지 말며 모든 선악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생각하여 헤아리지 아니하면 과거의 마음이 스
스로 끊어지니 곧 과거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미래의 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
니 원하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면 미래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미래
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라 일체의 일에 집착함이 없음을 알
뿐이니, 집착함이 없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집착함
이 없음인지라 현재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곧 현재의 일이 없다고 하느니라.
삼세를 거두어 모을 수 없음이 또한 삼세가 없다고 말하느니라.
마음이 만약 일어날 때에 따라가지 아니하면 가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 없어짐이
요, 만약 마음이 머물 때에 또한 머뭄에 따르지 아니하면 머무는 마음이 스스로 끊
어져서 머무는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이 머무는 곳 없는 곳에 머문다고 하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머뭄이 머뭄에 있을 때에는 다만 사물이 머물 뿐이요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면 머무는 곳 없음도 없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마음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면 곧 본래 마음[本心]
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성품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느니라.
만약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이란 곧 부처님 마음[佛心]이며, 또한 해탈심
이며, 또한 보리심이며, 또한 무생심이며, 또한 색의 성품이 공함이라 이름하나니,
경에 이르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했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너희들이 만약 이와 같이 아직 체득하지 못하였을 때는 노력하고 노력하여 부지런
히 공력을 더하여 공부를 성취하면 스스로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안다고 하는 것
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아는 것 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되어 참되지 않음이 없으니, 거짓됨이란 사랑하고 미
워하는 마음인 것이며 참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다만 사
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
이란 자연해탈이니라."
13.상주(常住)
"앉아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다닐 때도 또한 쓸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공(功)을 쓴다고 말함은 단지 앉아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거나 머
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짓는 바 움직이는 모든 때 가운데 항상 써서 사이가 끊
어짐이 없음이 항상 머문다고 하느니라."
14.오종법신(五種法身)
[방광경(方廣經)]에 이르기를 '다섯가지 법신은 첫째는 실상 법신이요, 둘째는 공
덕법신이요, 셋째는 법성법신이요, 네째는 응화법신이요, 다섯째는 허공법신이다'
고 하였는데, 자기의 몸에는 어떤 것이 이것입니까?
"마음이 무너지지 아니함을 아는 것이 실상 법신이며, 마음이 만상을 포함하는 것
을 아는 것이 공덕법신이며, 마음이 무심임을 아는 것이 법성법신이며, 근기따라
응하여 설법함이 응화법신이며, 마음이 형상이 없어 얻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 허
공법신이니, 만약 이 뜻을 확실히 아는 이는 곧 증득할 것이 없음을 아느니라.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음이 곧 불법법신을 증득한 것이요, 만약 증득함이 있고
얻음이 있음을 증득으로 삼는 이는 곧 삿된견해의 증상만인이며 외도라고 하느니
라. 왜 그러냐 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되 그대는 얻은 바
가 무엇이며 증한 바가 무엇이기에 말재주가 이와 같으냐' 하고 물으니, 천녀가 대
답하기를 '나는 얻음도 없고 증함도 없어서 이와 같음을 얻었오. 만약 얻음이 있고
증함이 있으면 불법 가운데에 증상만인이 되는 것이오' 라고 하였느니라.
15.등각(等覺)과 묘각(妙覺)
"경에 이르기를 '등각,묘각'이라하니, 무엇이 등각이며 무엇이 묘각입니까?
"색(色)에 즉하고 공(空)에 즉함이 등각이요, 두 가지 성품이 공한(二性空) 까닭에
묘각이라 하며,또한 깨달음이 없음과 깨달음이 없음도 없음을 일컬어 묘각이라 하
느니라."
"등각과 묘각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두 이름을 세운 것으로서, 본체는 하나요,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내지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니라."
16.설법(說法)
"[금강경]에 이르기를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다'하니 그 뜻이 무엇 입니
까?
"반야의 체는 필경 청정하여 한 물건도 얻을 수 없음이 설할 법이 없다고 함이요,
반야의 공적한 본체 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을 갖추어서 알지 못할 일이 없음이 법을
설한다고 함이니, 그러므로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라고 하느니라."
17.금강경의 경천(輕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경을 수지독송하여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전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의 경멸
과 천대를 받음으로 해서 전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여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 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선지식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오직 악업만 짓고 청정한
본래 마음이 삼독의 무명에 덮여서 능히 나타나지 못하므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
대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금세의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 것은, 곧 오
늘 발심하여 불도를 구함으로 무명이 다 없어지고 삼독이 나지를 아니해서 곧 본래
마음이 명랑하고 다시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며, 모든 악이 영원이 없어져 버리므로
써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무명이 모두 없어져서 어지러운
생각이 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한 것이므로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
니, 곧 발심한 때를 금세라 하는 것이요, 격생이 아니니라."
18. 여래(如來)의 오안(五眼)
"또 여래의 다섯가지 눈이란 어떤 것입니까?"
"색의 청정함을 보는 것이 육안이요, 색의 본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이 천안이요,
모든 색의 경계와 내지 선악에 대해서 모두 미세하게 분별하여 물듦이 없고 그 가
운데 자제함이 혜안이요, 보아도 보는 바가 없음이 법안이요, 보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음도 없는 것이 불안이라고 하느니라."
19. 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또 대승과 최상승의 뜻은 어떠합니까?"
"대승이란 보살승이요, 최상승이란 불승이니라."
"어떻게 닦아야 이 승을 얻습니까?"
"보살승을 닦음이 대승이니 보살승을 증득하여 다시 관(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닦을 곳이 없음에 이르러 담연히 항상 고요하여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이
최상승이니 곧 이것이 불승이니라."
20. 정혜(定慧)를 함께 씀
"[열반경]에 이르기를 '선정은 많고 지혜가 적으면 무명을 떠나지 못하며 선정은
적고 지혜가 많으면 삿된 견해를 증장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하는 까닭에 해탈이
다'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일체 선악에 대하여 모든 것을 분별함이 지혜요, 분별하는 곳에 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물드는 바에 따라가지 아니함이 선정이니,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21. 경상(鏡像)과 정혜(定慧)
"말이 없고 설함이 없음이 곧 선정이라 하니, 바로 말하고 설할 때도 선정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말함과 말하지 않음을 논하지 않고 항상 선정인 것이
니라. 왜냐하면 선정의 본성을 쓰기 때문에 말하거나 분별할 때에 곧 말하거나 분
별함도 선정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공(空)한 마음으로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을 볼
때도 또한 공이며, 만약 색을 보지 아니하고 말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을 때도 또한
공이며, 내지 보고 듣고 깨닫고 알 때에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곧 일체처에 있어서 모두 공한 것이니, 공이란 곧 집착이 없음이며
집착이 없음이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와 같이 공
그대로[等空]의 법을 써서 구경에 이르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가 함께 함을 곧 해탈
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다시 그대들을 위하여 비유로써 나타내 보여 그대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알아
서 의심을 끊게 하리라.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모습을 비출 때에 그 밝음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할 때도 또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밝은 거울의 작용에는 밝게 비친다는 정(情)이 없으므로 비출 때도 움직
이지 않고 비추지 아니할 때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분별
의 정(情)이 없는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것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없기 때문이
니라. 또,
'햇빛이 세상을 비출 때 그 빛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비추지 않을 때도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분별의 정(情)이 없기 때문이니 정이 없음으로써 빛이 비추므로 움
직이지 아니하며 비추지 않을 때도 또한 움직이지 아니 하느니라. 비춘다 함은 지
혜요, 움직이지 아니한다 함은 선정이니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한 법을 써서
삼먁삼보리를 얻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를 함께 씀이 곧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정(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범부의 정이 없음이요, 성인의 정이 없는 것이 아니
니라"
"어떤 것이 범부의 정이며 어떤 것이 성인의 정입니까?"
"만약 두 가지 성품을 일으키면 곧 범부의 정이요, 두가지 성품이 공(空)하기 때문
에 곧 성인의 정이니라."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 큰스님의 법어집
선과 현대문명
近代人間은 비판적이고 客觀妥當的인 것이 아니면 容認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禪이 객관타당적임을 밝혀서, 선이야말로 현대 또는 영원히 존재 가치가 있는 참다운 종교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근대적 인간은 인간의 이성을 자각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 이성적 입장은 반이성적인 것을 온전히 제거해서 이성적인 것만 있 게 하는 것은 이성의 構造上에 불가능한 것이다. 이성적인 것과 반이성적인 것과의 대립은 이성의 근본구조인 것이다. 이성과 반 이성이 대립해서 二律背反되는 것을 상대적 이율배반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성은 반이성을 항상 隨伴하여 반이성적인 것을 窮盡無餘하게 제거해 버린 순수한 이성은 없으므로 이성을 참으로 이성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와같이 상대적 이율배반을 더욱 근원적으로 비판하면 상대적 이율배반이 절대적으로 전체적 이율배반이 되고 만다. 이것을 절대이율배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절대이율배반은 관념적으로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절대이율배반이 자기화 되 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근대 이성적 입장에 있는 近世的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이 절대이율배반에 인간의 絶對否定의 근거가 있 는 것이다.
인생문제를 다룰 때에 인간의 생사문제를 중요시 해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生은 死를 분리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는 생을 분리해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수반의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생사적 생명은 生하여 死를 극 복해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는 할 수 있으나 사가 없는 순수한 생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根底에 생사라는 이율 배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생사의 상대적 이율배반을 근원적으로 비판하면 그 생이 사를 수반하는 생이므로 순수한 생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생사적 생명은 절대적으로 사의 생명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생명은 생사라는 절대이율배반을 근 저로 해서 성립한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 생사를 擴充하면 물질의 生滅과 통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존재·비존재에 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생사의 절대이율배반 때문에 인간은 고뇌하는 것이니 이것을 여의고 解脫하려고 하는 것은 거기에 이 성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인간에 있어서는 생사의 절대이율배반과 이성 · 반이성의 절대이율배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一體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성의 절대이율배반과 생사의 절대이율배반은 구체적으로는 일체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보통 인간의 본래적 참모습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객관적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 다.
보통의 인간은 의식이 現行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 주체적 절대이율배반이 되어 도달한 境地는 純粹意識(분별이 없는 의 식)이니 禪定進中 의 한 단계이다. 이 순수의식의 경지에서 주체적으로 절대이율배반이 되어 나아가면 무의식의 경지가 된다. 여 기에서 잠이 깨어 있을 때의 무의식과 無夢無想 한 熟眠時 의 무의식이 주체적으로 절대이율배반이 되어서 無餘 하게 包括的이고 전체적이고 근원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궁극적 근원적인 경지에 도달하면 宗門에서 말하는 寤寐一如가 되는 것이다. 이 궁극적 근원적인 주체적 절대이율배반이 해체되어 淸淨해서 一物도 없되 山은 산이요 물(水)는 물인 경지로 전환한다.
그러나 여기 坐在 하면 荊棘林을 透過한 것이 못 된다. 여기를 頓然透過하여야 見性하여 正眼宗師의 正法眼藏을 깨달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이 형극 림을 투과해서 견성한 것은 인간의 근원적 주체성이 되는 본래 면목이 자각한 것이다.
이 본래 면목이 자각한다고 하면 시간적으로 한정되는 것 같이 된다. 엄밀히 말하면 자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본래 면목 자 체가 엄연히 본래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 본래면목은 인간의 본래의 진실상이다. 이것은 장소에 불구하고 시간에 불구하고 어느 시간이나 어느 장소나 누구에게든지 타당하다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禪門에서는 이 본래 면목을 本分이라고 한다.
覺하는 機緣은 실로 여러 가지로 잡다해서 무한하다고 말하겠다. 그 무한한 기연은 결국은 절대이율배반에 불과한 것이다. 주 체적 절대이율배반까지 가서 그것을 透過하여 본래로 불생불멸하여 시간 공간을 초월하고 본래로 淸淨無染하여 자유자재하며 형 상이 없으면서 일체형상을 창조하는 진실한 자기로 돈연히 전환하므로 전체적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無明煩 惱가 一斷一切斷이 되는 것이고 一處透 一體處透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頓悟頓修는 이를 말하는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 방 법은 眼耳鼻舌身意의 六識과 七識도 아니며 무의식의 제팔아뢰야식도 아니고 종교적 信도 아니고 禪에서 말하는 覺인 것이다.
각한 진실한 자기는 각하기 이전의 보통의 자기의 근원이 되는 것이고, 각하기 이전의 자기 작용은 바로 각한 진실한 자기의 작용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한 자기의 현실에 궁극적으로 부활하는 데에 진정한 종교가 성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이성적 자기 가 주체적이였던 현실은 각한 자기를 주체로 하는 현실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각한 현실은 迷한 현실과 시간공간적으로 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공간의 근원에서 시간공간이 거기에서 성립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각한 자기, 즉 근 원적 주체는 이성과 감성의 근원이 되는 것이며, 이성과 감성은 각한 자기의 작용이 되는 것이다. 이 근원적 주체는 이성을 초월 해서 자유로 이성으로 살고 생사를 초월해서 자유로 생사하는 영원의 현실이다. 이것은 절대 긍정적으로 역사를 無碍自在하게 창 조하는 입장이다.
소위 천국이나 극락세계는 현실의 역사와는 전혀 개별의 세계이므로 결국 逃避厭世하는 것이 되어서 현실이 구 제된다고 할 수는 없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현대과학문명을 비판하고 이 과학문명과 禪과의 관계를 透察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을 다시 투찰하면 미래 세계역사를 어떻게 창조하여야 되겠는가 하는 의심이 쉽게 풀리게 마련이다.
선에서는 존재원리를 일체를 융합하는 普遍의 一과 多 혹은 特殊와가 不二一體라 하겠다.
그런데 과학문명은 多화 혹은 특수화가 그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과학문명은 「普遍」의 일을 상실하게 되어서 분열병 에 걸리고 있다.
「多」를 상실한 도그마적 신앙으로 된 「一」을 믿었던 중세기는 一多不二一體의 존재원리를 파괴하는 것이 되어서 몰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근대문명은 「一」을 상실한 「多」만으로 치닫고 있으니 이대로만 간다면 결국 분열병으로 멸망을 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공간을 초월한 無相永遠의 자기가 자각한 禪은 일다불이일체가 된다. 이 원리에서 과학문명을 다시 창조함으로써 세계역 사는 분열하지 않고 화합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그 주체적 문제를 證明하겠다. 현대의 기계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 생활은 편리하고 풍부해지는 반면에 사회생 활은 복잡해 지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집단과 집단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게가 복잡하게 되었다. 이 렇게 집단적 복잡화와 과학문명의 복잡화가 서로 엉켜서 우리 생활은 아주 복잡해 가고 있다.
이와같이 복잡해 갈수록 우리는 그 복잡한 데에 자기 자신이 끄달려서 자기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현대의 특징은 분열병 또는 노이로제, 심지어 정신병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현대의 큰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의 근원적 주체성 「본래면목」은 어떠한 복잡한 데에도 끄달리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 다.
인간은 근원적 주체성이 본래로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본래로 일체인 것이다. 자비가 이러한 근원적 주체성에 본래로 갖추어 져 있어서 상호대등한 관계에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근원적 주체성이 본래로 형상이 없이 자유자재한 만큼 그 자비행도 어디에 나 걸림이 없이 행하게 된는 것이다. 기독교에는 神만이 絶對愛를 인류에게 내린다고 한다. 인간은 이 절대애에 밑받침된 隣人愛 를 행할 뿐이며 인간은 절대애를 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인간이 본래로 佛이고 인간이 절대애를 對等格으로 서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람들은 역사는 대립에서 대립으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현재는 언제든지 대립상태에 있다는 것이 변증법적 사고방식이 다. 이 대립을 투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변증법적 역사관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는 결국 평화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 근원적 주체성에서 보면 모두 평등하고 일체가 됨으로 항상 자비행을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비화합의 현 재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역사는 자비화합의 바탕에서 대립을 해결해 나가게 된는 것이다. 이와같이 자비화합의 바 탕에서 대립을 해결해 나가는 역사라야 세계평화를 진정으로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근원적 주체성으로 보아서 어느 민족이든지 어느 인종이든지 절대평등하고 自然불이일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인류 차원에서 오늘의 세계 현상을 비판해 보기로 하겠다.
과학은 물질을 연구의 대상으로 한다. 자연과학은 일체의 존재하는 것을 물리적 現象르로 생각하므로 자연과학이 모든 과학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 또는 정신과학이 과학적으로 존재를 인정받을 때에는 그것은 물질에 관한 학문인 자연과학 물리 학을 그 모범으로 한다. 과학은 물질적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과학에는 생명관이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 니된다.
대자연을 지배하는 또는 생명관이 없는 이 과학문명은 지구상의 많은 생물을 죽이고 심지어 인명까지도 輕視하며 대자연을 파 괴 오염시켜서 그 공해로 생물은 살 수 없게 되고 그 자연 바탕위에서 살 수 있는 인간까지도 그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인 까닭이다. 그리고 인간이 욕망만으로 산다면 스스로 타락하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해쳐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 주체성의 입장에서는 모든 생물, 모든 대자연이 영원의 한 생명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원리에서 모 든 생물을 존중하고 대자연을 아끼는 지혜와 자비로 과학문명을 다시 창조함으로써 지구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청정불국토로 건설될 것이다.
과학문명이 우리 인류에게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또는 편리하게 생활하도록 공헌한 바가 막대하다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과학문명만으로는 도저히 행복하게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류가 파멸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 다고 해서 과학문명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의 진실한 인간상〔본래면목〕 이 과학문명을 밑받침해서 다시 역사를 창조할 때에 인류는 진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한 인간상 을 깨달아야 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모두가 실지로 깨달음을 기다려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의 진실 한 인간상이 이러한 것인 만큼 진실한 인간상에 순응해서 행동함으로써 진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 이다.
본래면목은 의식은 물론이요 무의식까지도 투과하고 거기에도 머무르지 않고 獨脫無依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문자언어로 횡설수설하고 체계논리를 繁論亂道하는 것은 본분과는 천리만리 어긋나 버린다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대종사 중에서 도 가장 대표적 대종사라고 할 수 있는 마조 대종사가 본분에서 提 直指한 법문을 들어서 불조의 落處를 밝혀 보겠다.
馬大師與百丈行次에 見野鴨子飛過하고 大師云, 是什魔오 丈이 云野鴨子니다. 大師云 什魔處去也오 丈云飛過去也니다. 大死遂 遂百丈鼻頭하니 丈이 作忍痛聲이어늘 大師云 何會飛去오.
마조 큰스님께서 백장스님과 함께 갈 때에 들오리가 날아 가는 것을 보고 마조 큰 스님이 말했다.
「저게 무엇인고?」백장스님이 말하되, 「들오리입니다.」마조 큰스님이 말하되, 「어디로 갔는고?」백장스님이 말하되,「날아 갔습니다.」마조 큰스님이 바로 백장스님의 코를 비틀므로 백장스님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니 마조 큰스님이 말하되,「어디 날 아갔느냐?」
마조 대종사는 백장스님을 깨우치기 위해서 바람 없는데 물결을 일으키고 고운 살결에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으로 백장스님에 게 법문하신 것이다. 깨달으면 世間事가 바로 本分事이고 깨치지 못하면 모두 세간사가 되어버려서 자유자재하지 못한 것이다. 마조 대종사가 백장스님의 코를 비틀지 아니 했으면 백장스님은 깨치지 못했을 것이다.
마조 큰스님과 백장스님이 서로 문답한 것이 昭昭靈靈한 見聞覺知 같지만 소소영영한데에 住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백장스 님이 깨달음에 머무른다면 廓撤大悟가 못 되는데 再參因緣에서 마조 큰스님이 喝한 데에서 백장스님은 확철대오한 것이다. 다음 에 그 재참 인연을 들어 보겠다.
百丈이 再參馬祖하니 祖竪佛子어늘 師云 卽此用가 離此用가 祖掛佛子於舊處어늘 師良久한대 祖云汝己後에 開兩片皮하여 將何 爲人고 師遂取佛子竪起한대 祖云 卽此用가 離此用가 師亦掛佛子於舊處어늘 祖便喝하니 師直得三日耳聲이라.
백장스님이 두 번째로 마조 큰스님께 뵈어 참하니 마조스님이 불자를 세우니까 백장스님이 말하되 이것에 즉하여 활용하는가?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는가?
마조 큰스님이 본자리에 불자를 걸거늘 백장스님이 잠깐 잠잠이 있으니 마조 큰스님이 말하되 그대는 이 후에 두 개 입술을 열어서 어떻게 사람을 위하겠는가? 백장스님이 불자를 갖다가 세우니 마조 큰 스님이 말하되 이것에 즉하여 활용하는가?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는가? 백장스님이 또 불자를 먼저 자리에 걸거늘 마조 큰스님은 바로 고함을 치니 백장스님은 삼일 동안 귀가 먹었 다.
마조 대종사의 일할(一喝)에 백장스님이 3일 동안 귀가 먹었다. 그래서 마조 대종사의 正眼을 백장스님이 전수하게 된 것이다 . 백장스님은 마조하의 3대 정안종사 중의 일인이 된 것이다 . 그러나 이 두 대종사는 彌天罪過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아래에 着語를 하겠으니 보기 바란다.
兩大和尙이 伊魔商量하니
失錢遭罪로다 何故如此오
眞金失色이오 瓦礫生光이로다.
金牛途炭하니 不見縱跡이로다.
針眼魚呑 大天世界하고
焦螟微筮은
吐妙高山이로다.
別別
一蓬蒿箭이 攪動億兵이로다.
喝一喝
두 큰 스님이
이렇게 법거량하시니
돈을 잃고 처벌당함이네
어찌하여 그러한가?
침금이 빛을 잃고
기와장 조각돌이 防光하는구나
금소가 鎔鑛爐에 녹으니
자취를 볼 수가 없네
아주 작은 물고기는
우주를 삼키고
지극히 작은 벌레는
수미산을 토해내누나
별별 ,
한 쑥대화살이 억병을 요동시키도다
할, 일할 하시다
달마 혈맥론
1. 마음 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
"삼계가 혼돈하여 일어났으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가나니 앞서 깨 달은 분과 그 후에 깨달은 분들이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사 문자에 의 존하지 않았느니라."
어떤이가 물었다.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슴니까 ?"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요,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 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니 끝없는 옛부터 온갖 동작을 하는 모든 시각 과 모든 장소가 그대의 근본 마음이며 모두가 그대의 근본 부처이다.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라 함은 바로 이와 같으니라.
이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찾을수 없나니 이 마음을 떠나서 불도와 열반을 구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자기 성품(自性)은 진실해서 인 (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며 법 그대로가 마음이니, 스스로 마음이 부처이며 자기의 마음이 곧 뚜렷이 밝고 고요히 비추는 열반이다. 만 일 말하기를 '마음 밖에 부처와 보리가 있어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옳지 못하다.
부처와 보리가 모두 어디에 있는가 ? 어떤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잡 을수 있겠는가 ? 허공이란 이름뿐이요, 형상도 부피도 없나니 잡을 수 도 버릴 수도 없느니라. 이렇게 허공을 잡을 수 없는 것 같이 이 마음 을 떠나 부처를 찾는 것도 역시 끝내 찾지 못하리라."
"깨달음은 자기 마음으로 해서 얻어지는 것이거늘 마음을 떠나서 부처 를 찾으리요 ? 먼저 깨달은 분과 후에 깨달은 분들이 다만 마음만 하 나만을 말씀하셨으니 마음이 곧 부처로 부처가 곧 마음이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가 어디에 있겠"는가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면 어찌 부처라는 생각을 일으키리요 ? 서로가 속여서 근본 마음 을 알지 못하고 무정물(無情物 : 불상)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도다.
만일 믿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이익이 없다. 부처는 허 물이 없으나 중생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깨닫 지도 알지도 못한다.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 처를 찾지말지어다. 부처가 부처를 제도 할수 없나니,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보지 못한다. 다만 밖의 부처일 뿐이니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부처를 지니고 부처에게 절하지 말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염 (念)하지 말라. 부처는 경을 읽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가지지도 않 으며, 부처는 계를 범하지도 않으며,부처는 지킴도 범함도 없으며, 선 과 악을 짓지도 않는다. 만일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품을 보 아야 곧 부처일 것이다. 성품을 보지 못한채 염불을 하거나 경을 읽거 나 재계(齋戒)를 지키거나 계를 지킨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다. 염불은 왕생의 인과를 얻고, 경을 읽으면 총명해지며,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 어나고 보시를 하면 복스런 과보를 받거니와 부처는 끝내 찾을 수 없 느니라.
"만일 자기를 밝게 알지 못하거든 반드시 선지식에게 찾아가 생사의 근본을 깨쳐야 한다. 만일 성품을 보지 못했다면 선지식이라 할 수 없 으니, 비록 12부경을 다 외운다 하여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삼계 에 윤회하면서 고통을 받아 벗어날 기회가 없으리라.
옛날에 선성(善性)이란 사람이 12부경을 다 외웠지만 여전히 윤회를 면치 못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성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선성도 그러하기를 요즘 사람들은 겨우 서너권의 경전을 외우고서 법을 깨달 았다 하나니 어리석은 사람이다. 만일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부 질 없는 문구나 외워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느니라.
부처를 찾으려 한다면 모름지기 성품을 보아야 하나니, 성품이 곧 부 처이다. 부처란 곧 자유로운 사람이며 일 없고 작동없는 사람이다. 만 일 성품을 보지 못한다면 종일토록 분주히 밖을 향해 구한다면 부처를 찾아도 얻지 못한다. 비록 한 물건도 얻을 것이 없다고는 하나 아직 알지 못한다면 반드시 선지식께 물어서 간절히 힘써 구하며 마음이 열 리게 할지어다."
"나고 죽음의 일이 크니 헛되이 보내지 말라. 스스로 속여서 이익이 없느니라.
진기한 보물이 산같이 쌓이고 권속이 항하의 모래같이 많더라도 눈을 뜰 때에는 보이거나 눈을 감은 뒤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위 의 법은 꿈이나 허깨비 같음을 알수 있다. 만일 서둘러서 스승을 찾지 않으면 헛되이 한 평생을 보내게 되리라. 그렇다면 불성을 본래 가지 고 있으나 스승으로 해서 배우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기 어려우니, 스승을 만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만일 자기 스스로 인연따라 깨달아서 성인의 뜻을 얻은 사람은 선지 식을 찾을 필요가 없으나, 이는 태어나면서 있는 수승한 학문이며, 만 일 아직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모름지기 선지식을 찾아서 참구해 배 워야 한다. 가르침에 의하여야만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만일 스스 로가 분명히 깨달았다면 배우지 않아도 되며,미혹한 사람과는 같지 않 거니와 검고 흰 것을 분별치 못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다고 망언 (妄言)을 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런 종류는 빗발같이 설법을 하어라도 모두가 악마의 소리요, 부처의 말씀 은 아니다.
이런 스승은 이미 악마의 왕이요, 제자는 악마의 백성이 되어서 미혹 한 사람들은 그의 지휘에 따라 모르는 사이에 생사의 바다에 헤맨다." "오직 성품을 보지 못한 사람이 망령되이 부처라 하나 이런 중생들은 큰 죄인이어서 많은 중생들을 속여서 악마의 경계에 들게 한다. 만일 성품을 보니 못하면 설사 12부경을 모두 연설하여도 모두가 악마의 말 이요, 악마의 권속일지언정 부처의 제자는 아니다. 이렇게 검고 흰것 을 가릴 줄 모르거늘 무엇에 의하여 생사를 면하리요 ? 만일 성품을 보면 부처요, 성품을 보니 못하면 중생이다. 중생의 성품을 떠나서 부 처의 성품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중생의 성품이 곧 부처의 성품이다. 성품 밖에 부처가 없는지라 부처 가 곧 성품이니, 이 성품을 떠나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깨달음 외에는 성품을 얻을 수 없느니라."
2.미혹한 만행은 윤회를 면치 못함.
어떤 이가 물었다.
"만일 견성(見性)은 못 했더라도 염불하고 경 읽고 계행을 지키고 보 시하고 정진해서 널리 복을 닦으면 부처를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
이렇게 답하였다.
"못하느니라."
어떤이가 물었다.
"어찌 못합니까 ?"
이렇게 답하였다.
" 조그만치라고 얻을 법이 있으면 이는 유위의 법이며,인과(因果)의 법이며, 과보를 받는 법이다. 윤회하는 법이라 생사를 면치 못하거늘 언제 부처를 이루리요 ? 부처를 이루려면 성품을 보아야 한다. 성품을 보지 못하면 인과 등의 말이 모두가 외도의 법이다. 만일 부처라면 외 도의 법을 익히지 않나니, 부처란 업(業)도 없는 사람이며, 인과도 없 는 지위이니 조금만큼의 법이라도 얻을 것이 있다면 모두가 부처를 비 방하는 짓으로 어떻게 부처를 이루리요.
조금의 마음,기능, 견해 소견에라도 집착해 있다면 부처는 모두가 허 용치 않는다. 부처는 지키고 범함이 없어 심성(心性)이 본래 공하고, 또 더렵거나 깨끗한 법도 아닌지라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으며 원 인도 결과도 없다. 부처는 계를 지지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범하지 도 않으며, 부처는 선을 닦지도 않으며, 부처는 악을 짖지도 않으며, 부처는 정진을 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게으르지도 않나니, 부처란 이 런 만듬이 없는 사람이므로 집작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부처는 이를 허락치 않느니라."
"부처라 하면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짓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근본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성품을 보지 못하면서 항상 지음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큰 죄인이며 어리석은 사람이다. 즉 무기공(無記空: 아무 분별 없은 공) 에 떨어져서 캄캄한 것이 마이 취한사람 같아서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하리라.
만일 지음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하거든 우선 성품을 본 뒤에 반연하는 생락을 쉴지니, 성품을 보지 못하고 불도를 이룬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어떤 사람이 인과를 무시하고 분주히 온갖 나쁜짓을 하면서 망령 되이 말하기를 '본래 공(空)해서 나쁜 짓을 하여도 허물이 없다'한다 면 이런 사람은 무간지옥. 흑암지옥에 빠져서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으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견해를 짓지는 않느니라."
어떤이가 물었다.
"만일 분별하고 운동하는 온갖 시간이 모두가 근본 마음인데 색신(色 身:몸)이 죽을 때엔 어찌하여 근본 마음니 보이지 않는 가요 ? 이렇게 답하였다.
"근본 마음이 항상 눈앞에 나타났으되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 할뿐이 다."
다시 묻기를
"마음이 이미 눈앞에 나타나 있다면 어찌하여 보지 못 합니까 ?"
도리어 묻기를
"그대 꿈을 꾼적이 있는가 ?"
답하기를
"꾸었습니다."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대의 근본 몸이었던가?"
"예 근본 몸이었습니다."
"그대가 말하고 분별하고 운동하던 것이 그대와 다른가 아니면 같은가 ?"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부하여 말 하기를
"이미 다르지 않다면 이 몸 그대로가 그대의 근본 법신이며, 이 근본 법신 그대로가 그대의 근본 마음이니라."
"이 마음이 끝없는 옛부터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전혀 나고 죽 은 적이 없는지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으 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옳고 그름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의 모습도 없으며,승려와 속인 늙은이와 젊음이의 모습도 없으며, 성인도 없고 범부도 없으며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증득 할것도 없고 딱 을 것도 없으며,인(因)도 없고 과(果)도 없으며,힘도 없고 모양도 없 는것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취할수도 없고 버릴수도 없다.
산이나 강이나 석벽이라도 장애하지 못하며, 들고 나고 가고 옴에 자 제하고도 신통하다. 오온(五蘊)의 산을 벗어나며 생사의 바다를 건너 서 온갖 업이 이 법신을 구속하지 못하느니라."
" 이 마음은 미묘하여 보기 어려운지라 이 마음은 물질의 모습과 같지 않으며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보고자 하나 이 광명 가운데서 손을 흔들고 발을 움 직이는 일이 강가의 모래알 같이 많되 물어보면 전혀 대답하지 못함이 마치 허수아비 같나니, 모두가 자기의 활동이거늘 어찌하여 알지 못하 는가 ?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갖 중생은 모두가 미혹한 사람이라 이로 인하여 업을 지음으로 생 사의 바다에 빠져서 나오려 하다가도 도리어 빠지나니 오직 성품을 알 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시니 중생이 미혹하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물으 면 한사람도 아는 이가 없는가 ? 자기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을 어찌 하여 알지 못하는가 ?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은 틀리지 않건만 스스로가 알지 못 할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이 마음은 밝히기 어려우나 부처님 한분이 능히 아시고 그밖의 인간.하늘등 의 무리는 아무도 밝히지 못하는 줄 알지 니라.
만일 지혜로써 이 마음을 분명히 알면 비로소 법성(法性)이라 부르며, 해탈이라고도 한다 생사에 걸리지 않으며 일체 법도 구속하지 못하므 로 대자재왕불(大自在王佛)이라 하며, 부사의(不思議)라고도 하며, 성 인의 본체라고도 하며, 장생불사라고도 하며, 큰 선인(大仙)이라고도 한다.
"성인들의 많은 분별이 모두가 자기의 마음을 여의지 않았나니 마음의 양이 광대하여 쓰는 데 따라 응해서 무궁하다. 눈에 응하여서는 빛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들으며, 코는 냄세를 맡으며, 혀는 맛을 알며, 더 나아사서는 온갖 활동이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며 언제든지 언어의 길 이 끊이고 마음으로 따질 속이 없어졌으니 이것이 자기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부처의 몸매가 다함이 없으며 지혜도 그러하다' 하니 몸매가 다함이 없은것이 곧 자기 마음이다. 마음이 능히 모든 것 을 분별하면 또한 온갖 분별과 운동이 모두가 지혜이니 마음이 형상이 없으므로 지혜도 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몸매가 다함이 없고 지혜도 그러하다.'하니 사대 (四大)로 된 몸은 번뇌의 몸인지라 생멸이 있으며 법신(法身)은 항상 머무르는되 머무는 바가 없어서 여래의 법신이 항상 변하지 않는다. 경에 말하기를
'중생이란 응당 불성이 본래 있는 몸임을 알아야 한다'하니 가섭은 다 만 본성을 깨달았을 뿐이요 딴일은 없다.
본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성품이니, 이는 부처님들의 마음이 라 앞서 깨달으신 부처와 후에 깨달으신 부처가 오직 마음을 전하였 을 뿐 이 마음 밖에서 따로 부처를 찾을 수 없느니라."
"뒤바뀐 중생이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밖을 향해 구하 되 하루종일 설치면서 부처를 염(念)하고 부처에게 절을 하나니 부처 가 어디메 있는가? 이러한 소견을 짓지 마라.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 면 마음 밖에 딴 부처가 없다.
경에 말하기를
'무릇 형상이 있는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또한 '경이 있는 곳마다 부 처가 있다.'하였으니,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지라 부처를 지니고 부 처에게 절하지 말라.
만일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홀연히 나타나거든 절대로 예경하지 말지 어다, 내 마음이 공적(空寂)하며 본래 이런 모습이 없으며 만일 형상 을 취하면 곧 마귀에 포섭되어서 모두가 삿된 도에 떨어진다. 만일 허 깨비가 마음에서 일어난 줄 알면 예경할 필요가 없나니, 절 하는 이는 알지 못하고, 아는 이는 절하지 않느니라. 예경하면 곧 마에 포섭되리 니 학인(學人)이 행여나 알지 못 할까 걱정되어 이렇게 풀이하노라.
"부처님들의 근본 성품 바탕 위에는 도무지 이런 모습이 없으니 꼭 명 심하라. 기이한 경계가 나타나거든 결단코 캐지도 말며 또한 겁내지도 말며 또한 의혹심도 내지말라. 내 마음이 본래 청정하거늘 어디에 이 러한 모습이 있으리요.?
나아가서는 하늘.용.야차.제석.범왕 등에게라도 공경할 생각을 내지 말며 두려워하지도 말라. 만일 부처라는 모습에 대하여 공경할 생각을 낸다면 스스로가 중생이 된다. 만일 바르게 알고자 한다면 온갖 형상 에 집착하지 않으면 되나니 다시 딴 말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 하기를 '무릇 형상이 있는것도 모두가 허망하다' 하시니, 도무지 일정 한 형상이 없으며, 환에 일정한 상이 없는지라. 이것이 무상한 법이 니, 다만 형상을 취하지 않으면 거룩한 뜻에 부합되리라. 그러므로 경 에 말하기를 '온갖 형상을 여의면 곧 부처라 한다' 하시니라."
3. 공경치 않는 바를 밝힘
어떤이가 물었다.
"어찌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절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요 ?"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늘의 마귀인 파순과 아수라 등이 신통을 나투어 모두가 부처와 부 살의 모습을 이루되 갖가지로 변화했기 때문이니, 그는 외도인지라 모 두가 부처가 아니다.
부처란 자기의 마음이니 부처에게 잘못 절하지 말라. 부처란 자기의 마음이니 근기에 응하고중생이 제접하며, 눈썹을 끄덕이거나 눈을 깜 박이며 손을 움직이고 바을 옮기는 것이 모두가 자기의 신령스러움 느 낌의 성품이다.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이며, 부처가 곧 도며,도가 곧 부처이니 부처라는 할 글자는 범부가 헤아릴 바가 아니 다.
또 말하기를 '근본 성품을 보는 것이 부처다.' 하니 근본 성품을 보 지 못 하면 부처가 아니다. 설사 많은 경전과 논소를 강설하더라도 성 품을 보지 못 하면 다만 범부일 뿐 부처의 법은 아니다.
지극한 도는 깊고도 멀어서 말로는 이해할 수 없나니, 경전으로 어찌 미칠 수 있으리요 ? 근본 성품을 보기만 하면 한 글자도 모를지라도 좋으니라. 성품을 보면 곧 부처이니, 성스러운 본체는 본래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다. 모든 말씀이 모두가 성인의 마음으로 부터 일어난 작 용이니, 작용의 바탕이 본래 공하여 명칭이나 말로도 미칠 수 없거늘 12부경이 어찌 미칠 수 있으리요?
도는 본래 뚜렷이 이루어졌나니, 닦고 증득함이 필요치 않으며, 도는 소리나 빛이 아니어서 미묘하여 보기도 어려우니 사람이 물을 마시면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가 아는 것과 같다. 또 남을 향해 말을 하지 말 라. 오직 여래만이 알 수 있고 그밖의 인간이나 하늘 등의 무리들은 도무지 깨닫지도 알지도 못한다.범부는 지혜가 미치지 못하므로 망령 되이 겉모양과 온갖 법에 집착하면 곧 외도의 무리에 떨어지지라."
"모든 법이 마음에서 생긴 것임을 알면 집착이 있을 수 없나니, 집착 하면 알지 못 한다. 만일 근본 성품을 보면 12부경이 모두가 부질없는 문자이다. 만일 근본 성품을 보면 12부경이 모두가 부질없는 문자이 다. 만은 경전과 논소가 오직 마음을 밝혔을 뿐이니, 말끝에 계합해 알면 교법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 지극한 진리는 말을 떠났고 교법 은 말씀일 뿐이니 진실로 도가 아니다. 도는 본래 말이 없으므로 말은 허망일 뿐이다.
꿈에 누각이나 궁전이나 상마(象馬)의 무리나 나무. 숲.못. 정자 등 의 모습을 보거든 잠깐만이라도 즐거이 집착할 생각을 내지 말며 모두 가 망념이 의탁해서 생기는 곳이니 부디 주의하라.
임종할 때에 전혀 형상을 취하지 않으면 곧 의혹을 떨어버리거니와 털끝만치의 망념이라도 일으키기만 하면 곧 마귀에 끄달린다. 법신은 본래 청정하여 느낌이 없건만 다만 미혹한 까닭에 알지도 깨닫지도 못 하나니 이 때문에 망령되이 업보를 받는 까닭에 즐기고 집착하여 자유 롭지 못하느니라."
"지금이라도 본래의 몸과 마음을 깨닫기만 하면 곧 습성에 물들지 않 으리라. 성인의 경지에서 범부의 경지에 들어가서 갖가지 잡된 모습으 로 나타나 보이는 것은 본래 중생을 위한 까닭이니, 성인은 역순(逆 順)에 자재하여 온갖 업이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성인의 지위를 이룬지 오래되어 큰 위덕이 있나니 온갖 종류가 성인의 지휘를 받아 움직이므로 천당과 지옥도 성인은 어찌하지는 못하리라. 범부는 어두워서 성인이 안팎이 밝은 것 같지 못하나니, 만일의심이 있거든 의심을 일으키지 말라. 일으키면 생사의 바다에 헤매여서 후회 하여도 구제할 길이 없다.
빈궁과 고통이 모두가 망상에서 생겼으니, 만일 마음을 알아서 서로 서로 경책해서 작용하는 티가 없이 작용하면 곧 부처의 지견(知見)에 들리라. 처음 발심한 사람은 정신이 전혀 안정되지 못하나니, 꿈 속에 자주 이상한 경계를 보더라도 선뜻 의심하지 말라. 모두가 자기의 마 음에서 일어났으며 밖에서 온 것이 아니다.
꿈에 광명 솟는 것이 햇빛보다 밝은 것을 보면 나머지 습기가 몽땅 다하고 법계의 성품이 나타나리라. 만일 이런 일이 있으면 부처를 이 루는 요인이 되리니, 이는 자기만이 알 뿐이요 남에게는 말할 수 없느 니라.
"혹 고요한 숲속에서 다니고.멈추고.앉고.늡다가 크고 작은 광명이 눈 에 뜨이어라도 남에게 말하지 말며, 또 집착하지 말라. 자기 성품의 광명이니라. 혹 어두운 밤에 다니고.멈추고.앉고.눕다가 낮 같은 광명 이 눈에 뜨이더라도 괴이하게 여기지 말지니,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 밝아지려는 징조이다. 혹 꿈에 별과 달이 분명하게 보이면 이것 또한 자기 마음의 모든 반연이 쉬려는 조짐이니 역시 남에게 말하지 말라. 꿈에 어두워서 밤중을 다니는 것 같음을 보면 또한 자기의 마음이 번 뇌 장벽이 무겁다는 조짐이니 스스로 알아야 한다.
만일 근본성품을 보았거든 경을 읽거나 염불을 할 필요가 없나니 많이 배우고 널리 아는 것이 별 이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정신이 어두워 지느니라. 교법을 만들어 놓은 뜻은 마음을 표방하기 위한 것인데 마 음을 알면 교법을 볼 필요가 없다.
범부로부터 성인의 경지에 들고자 한다면 업을 쉬고 정신을 길러서 분 수에 따라 세월을 보내라. 성냄과 기뻐함이 많으면 도와 더불어 어기 나니 스스로를 속일 뿐 이익이 없다.성인은 생사 가운데서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숨고 나타남이 일정치 않나니 모든 업이 그를 구애하지 못 하며 도리어 삿된 마구니들을 무찌른다.
중생들이 근본 성품을 보기만 하면 나머지 습기가 몽땅 다하고 정신이 어둡지 않다. 참으로 도를 알고자 한다면 어떤 법에도 집착하지 말고 업을 쉬어 정신을 길러라. 나머지 습기가 다하면 자연히 밝아져서 공 부를 할 필요가 없느니라."
"외도는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공력을 가장 많이 쓰나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거술리므로 종일토록 서둘러서 염불하고 경을 읽어도 정 신이 어두워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깨달은 이는 한가한 사람이라 어찌 구구(驅驅)할 필요가 있으며 명리 를 널리 구한들 후일 무엇에 쓰리요. 단 성품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 을 읽고 염불하며 오래도록 정진을 배우며하루 여섯차례 예불하며 오 래 앉아 눕디 않으며 널리 배워 많이 아는 것을불법으로 여기나니 이 런 중생은 모두가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이다.
전의 부처와나중의 부처가 오직 성품을 보라는 말씀만 하셨나니, 성 품을 보지 못하고 망령되이 말하기를 '내가 위 없는 도를 이루었노라' 한다면 이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이다.
십대제자 가운데서 아난이 많이 알고 널리 배워서 식견이 으뜸이었으 나 '성문과 외도들로 하여금 오직 무식케 한는 것이라'고 하시면 부처 님이 꾸짖으셨으니, 글자나 수효를 아는 것으로 딱아 증득한다면 인과 의 법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중생의 업보이어서 생사를 면치 못 하여 부처님의 뜻에 어기는 것이니 곧 부처를 비방하는 중생인지라 물 리쳐도 불리쳐도 허물이 없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천제는 믿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 물리쳐도 죄가 없 다'하셨다. 만일 진정한 믿음이 있거든 그는 부처 지위의 사람이다. 성품을 보지 못했거든 절대로 다른 어진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 스스 로 속에서 이로울 것이 없다. 선과 악이 뚜렷하고 인과가 분명한지라 천당과 지옥이 오직 눈앞에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믿지 않는 까닭에 흑암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나니, 오직 입장이 무거우므로 믿지 않는다. 마 치 소경이 햇빛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으니, 설사 그에게 말 해 주더라도 역시 믿지 않는 것 같으니라. 오직 눈이 없기 때문이니 어떻게 햇빛을 분별할 수 있으리요?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방금 축생 등 잡된 무리에 떨어졌거나 빈궁.한천한 무리에 태어나서 살려 해도 살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느니라. 비록 이런 고통을 받으나 직접 물어보면 도리어 대답하 기를 '나는 지금 쾌락한 것이 천당과 다르지 않다'고 하니,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태어난 곳으로써 쾌락을 삼아 깨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 한다.
이와 같은 악인은 업장이 두�Т지 때문이니, 만일 스스로의 마음이 부 처인 줄 안다면 머리와 수염을 깎는데 관계치 않으며 속인도 부처가 될 수 있다.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머리와 수염을 깎았더라도 역시 외도이다."
선림고경총서
11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설봉스님이 하루는 원숭이들을 보고 말하기를
"원숭이가 각각 한 개의 옛거울(古鏡)을 짊어지고 있구나!"
하니, 삼성스님이
"숱한 오랜 세월 동안 이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옛거울(古
鏡)이라고 합니까?"
하고 물어니, 설봉스님이
"흠이 생겼구나!"
하되, 삼성스님이 말하기를
"일천오백인을 거느리는 대선지식이 화두도 모르십니까?"
하니, 설봉스님이 말하였다.
"노승이 주지 하기가 번거로와서...."
알겠는가?
비가 연잎을 적시니
향기가 집에 떠돌고
바람이 갈대잎을 흔드니
눈은 배에 가득하네.
雪峰一日見미후내云, 者미수各各背一面古鏡.
三聖便問, 歷劫無名何以彰爲古鏡.
峰云, 瑕生也.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話頭也不識.
峰云, 老僧住持事煩.
會마
雨蒸荷葉香浮屋
風攪蘆花雪滿船
佛紀 2532年 端午節
伽倻山에서
退翁 性徹 씀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간행사
귀의 삼보(귀의삼보)하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져 겨레의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 나라의 동량을 배출하여 온 지도 천육백
여년이 지났읍니다.
그러나 세울이 오래 지나고 연륜이 멀어짐에 따라 부처님
의 마음을 전하는 선종의 정법은 감추어지고, 고불고조(古佛
古祖)들의 바른 뜻은 매몰되어 잘못된 주장만 드러나게 되었
읍니다.
성철 큰 스님께서는 이런 선문(禪門)의 병폐를 일찍부터 지
적하시고, 그 시정을 위해 몇 해 전에는 선문정로(禪門正路)
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하셨읍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참
선의 근본 종지인 돈오돈수(頓悟頓修)사상을 쉽게 터득케 하
고 선사들의 피나는 수행 과정을 기록으로나마 접함으로써
선종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케 하는 데에는 무엇이 가장 요
긴 할 일인가를 심려해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케 하는 데에는
무엇이 가장 요긴한 일인가를 심려해 오시던 차에, 우리들 주
변에 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선서(禪書)들이 너무
나 빈곤하다는 것을 통감하시게 되었읍니다. 이는 고불고조
들의 말씀이 한문(漢文)으로 되어 있어서 언어생활이 다른 요
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스
님께서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옛 조사 스님들의 말씀 가운
데 참선(參禪)을 위해 가장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삼십여 종의
저서들을 가려내어 번역토록 하시고, 그 전집(全集)의 이름을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라고 지어 주셨읍니다.
한문으로 된 말씀들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때로는 큰 스
님의 구술(口述)을 옮기고, 때로는 선(禪)의 이치를 여쭈면서
글 밝은 이들에게 번역을 부탁하였읍니다.
우리나라 선종사(禪宗史)에서 처음 시도하는 선서 번역 사
업인 데에다 큰스님께서 연로하시어 하나하나 감수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번역에 허물이 많으리라 싶습니다. 이 점을 널
리 이해하시고, 더러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독자들께서 다함
께 동참하시어 더 완벽한 글이 되도록 이끌어주신다면 더없
는 다행이겠읍니다.
저희로서는 선림고경총서의 간행 불사(佛事)가 겨레의 공동
의 문화 재산이 됨과 아울러 후손들에게 부처님의 크고 밝은
가르침을 전하는 이 시대의 훌륭한 유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선림고경총서의 원만한 간행이 조계(曹溪)의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어, 선림(禪林)에 백화(百花)가 난만하고
모든 이들은 자성을 깨쳐 성불(成佛)하길 발원합니다.
佛紀 2532 年 端午節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
백련선서간행회(白蓮禪書刊行會)
圓澤 和南
마조록 해제(馬祖錄 解題)
마조스님에 대한 기록은「조당집(祖堂集,952)」을 비롯하여
「종경록(宗鏡錄,960)」「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천
성광등록(天聖廣燈錄,1029)」「송고승전(宋高僧傳,988」,그리
고 「사가어록(四家語錄)」과「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1267」
등에 전하지만, 스님의 어록이 독립적으로 전하는 것은 「사
가어록」뿐이다.
현존하는 「사가어록」(6권)은 명말(明末)에 재편된 것인데,
그 첫째권은 마조스님의 어록이고, 나머지는 백장(百丈),황벽
(黃壁), 임제(臨濟)스님의 어록이다. 「사가어록」은 원래 송
(宋)나라 초기(1066년경) 황룡 혜남(黃龍慧南:1002-1069)스님
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한다.
마조록을 비롯한 송(宋)대 이후의 어록들은 경론을 자구해
석(字句解釋)하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선(禪)적인 안목으로
불법을 재해석한 선사들의 말씀을 정리한 것이다.
마조스님의 출생과 입적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들이 일치하
지 않는데, 연구에 의하면 탑명(塔銘)의 기록(706-786)이 가
장 믿을 만하다.
스님은 남악회양(南嶽懷讓:677-744)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냈는데, 법제자들은 139명, 혹은 84명
이라고도 한다.
마조록에는 「능가경(楞伽經)」「유마경(維摩經)」을 비롯
하여「금강경(金剛經)」「화엄경(華嚴經)」「불설법구경(佛說
法句經)」「42장경(四十二章經)」등의 경전이 광범위하게 인
용되고 있다. 또한 어록에 보이는 "즉심죽불(卽心卽佛)""평상
심이 도이다"하는 말씀이 마조스님 법문의 특색이라 하겠다.
백장록해제(百丈錄解題)
백장스님의 어록은 일찍부터 독립된 본이 있었다. 「조당집
(祖堂集)」에 의하면,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
려 있다"고 하였고. 또 "문도 신행(神行)과 범운(梵雲)이 법어
를 결집(結集)하여 어본(語本)을 편집하였는데, 오늘날 어본이
후학들에게 유행되고 있다"고 한 탑명(塔銘)의 내용에서 문도
들이 모은 어록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수 있다.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에는 어록(語錄)과 광록(廣錄)을
구분하여 싣고 있는데, 광록은 다른 어록과는 달리 긴 자설
(自說)의 법문형식으로서 교학적인 배경이 두텁다. 법문은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고, 그 중에서도 대
승입도돈오법은 스님의 대승법문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하겠
다.
스님의 제자로서 「전등록(傳燈錄)」에서 말하듯이 위산(위
山)과 황벽(黃檗) 두 스님이 중요하다. 위산스님은 그 제자인
앙산(仰山)스님과 함께 위앙종(위仰宗)의 종조가 되고, 황벽스
님은 임제(臨濟)스님을 배출하여 임제종의 원류가 된다. 즉 5
가 종파에서 최초의 두 파가 백장스님 아래에서 나온 것이다.
백장스님 이후, 선원(禪院)은 생활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율원(律院)등에 속해 있던 선원이 독립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상당(上堂)하여 공개적으로 설법하는
설법당(說法堂)이 마련 되었다. 또한 대중운력이나 10가지
소임 등 선원생활을 규율하는 청규(淸規)가 백장스님에서 부
터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엄격한 규율과
대중운력을 통한 경제적 자립은 폐불 속에서도 선문(禪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스님의 일상생활을 나타내는 한마디는 이러하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
食)."
조당집 해제(祖堂集 解題)
현존하는 선종사서(禪宗史書) 중 가장 오래 된 「조당집(祖
堂集」은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것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며, 아직까지는 어떤 섭본(섭本)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보복 종전(保福從展:867-928,云峯義存의 法을 이음)스님의
제자인 문등(文등)이 쓴 '조당집 서(序)'에 의하면, 천주(泉州)
초경사(招慶寺)에서 정(靜)과 균(筠) 두 스님에 의해 편집되었
고(952), 그 후 고려에서 개판(開版)할 때(고종 32년, 1245) 원
래 10권이던 것을 20권으로 만들면서 새로 목차를 만들어 넣
은 것을 알 수 있다. 목차 끝에 "해동(海東)에서「조당집」을
새로 간행함에 있어 그 사적이 드러난 253인을 모두 20권에
수록하였다" 한 기록이 그것이다.
「조당집」의 특징으로는 첫째, 그 서(序)에서 "고금 제방
의 법요(法要)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듯이 조사
들의 종지(宗旨)를 전하는 데에 힘ㅆ고, 표현은 구어적이며
간결하다.
둘째, 과거 7불(七佛)에서 시작하여 인도 28대 조사와 중국
6대 조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초조 마하가섭을 제1조, 아
난(阿難)을 제2조. 이하 28조 초조달마(初祖達摩), 제29조 혜
가(慧可).......제33조 혜능(慧能)으로 하고 있다.
셋째, 남종(南宗) 계통의 스님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
면서도 우두 법융(牛頭法融), 소위 북종(北宗)인 신수(神秀)·
보적(普寂) 등은 조과(鳥과)화상의 끝에 이름만 전하며, 또 우
두 법융에서도 다섯 스님은 이름만 열거하고 있다. 한편 남
종선의 5가종파 중에서도 임제(임제종),위산·앙산(위앙종),조
산·동산(조동종),운문(운문종)스님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법
안(법안종)스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넷째, 신라의 종사(宗師)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도의(道義)·혜철(惠哲)·홍척(洪陟)·현욱(玄昱)·범일(梵日)
·무염(無染)·도윤(道允)·순지(順之)스님 등 8명을 싣고 있
는데, 이들은 신라말 9산 선문의 개산조(開山祖,순지스님은
제외)들이며, 모두 서당(西堂)·장경(章敬)·앙산(仰山)등 마
조스님의 법을 이었다.
「조당집」은 마조·백장·위산·앙산·동산·조산스님등에
대한 내용과 4가어록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므로 여기에 함께
실었다.
「조당집」은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완역본이 있다. 또 대한
전통불교연구원에서 간행한「조당집 병 논집(祖堂集 병 論集)
」에서는 그간의 연구에 대한 눈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차 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退翁 性徹/2
선림고경총서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4
해제(解題)/6
마조록/四家語錄
1. 행록···················17
2. 시중···················23
3. 감변···················31
마조록/조당집
1. 행록···················53
2. 시중·감변················55
3. 천화···················71
백장록/四家語錄
□ 백장어록
1. 행록···················77
2. 상당···················83
3. 천화···················95
□ 백장광록················ 99
백장록/祖堂集
1. 행록···················161
2. 상단·감변··············· 163
(附錄)四家語錄/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
祖堂集/馬祖錄
四家語錄/洪州百丈山大智禪師語錄:百丈廣錄
祖堂集/百丈錄
마조록
(四家語錄)
일러두기
1. 본문의 편집체제는 사가어록 임제록을 기준으로 하여 행록.시중.
감변.천화 등으로 구분한다.
2. 사가어록과 조당집의 마조록은 그 구성과 내용상 서로간에 누락
된 부분과 상이한 점이 있어 함께 실었다.
3.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占, 19
79)과 「중국불학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方丹出版
社)을 참고 하였다.
4. 부록으로는 경안무자(慶安戊子) 화각본(化刻本)의 사가어록과 해
인사 소장본 「조당집(祖堂集)」에 있는 마조록을 실었다.
1. 행록
강서(江西) 도일(道一:709-788)스님은 한주(漢洲) 시방현(시方縣)사
람으로 성은 마(馬)씨이며 그 마을에 있는 나한사(羅漢寺)에 출가하
였다. 용모가 기이하여 소걸음으로 걸었고 호랑이 눈빛을 가졌다. 혀
를 빼물면 코끝을 지났고 발바닥에는 법륜 문신 두 개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자주(資州) 당화상(唐和尙)에게 머리를 깎았고 투주
(투州) 원률사(圓律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당(唐) 개원(開院:713-742) 연중에 (형嶽)의 전법원(戰法院)에서 선
정을 닦던 중 회양(懷讓:677-744)스님을 만났는데, 회양스님은 스님
의 근기를 알아보고는 물으셨다.
"스님은 좌선하여 무얼하려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회양스님은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다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벽들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
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소수레에 멍에를 채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옳겠는
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스님이 대꾸가 없자 회양스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는 앉아서 참선하는 것(坐禪)을 배우느냐, 앉은 부처를 배우
느냐. 좌선을 배운다고 하면 선(禪)은 앉거나 눕는 데 있는지 않으
며, 앉은 부처(坐佛)를 배운다고 하면 부처님은 어떤 모습도 아니다.
머뭄 없는 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
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가르침을 듣자,스님은 마치 제호(제호)를 마신 둣하여 절하며 물으
셨다.
다시 물으셨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만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昧)에 부합하겠습니
까?"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를 배움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요(法要)를 설함은 저 하늘이 비를 내려 적셔주는 것과도 같
다. 그대의 인연이 맞았기 때문에 마침 도를 보게 된 것이다."
다시 물으셨다.
"도가 모습(色相)이 아니라면 어떻게 볼수 있겠습니까?"
"심지법안(心地法眼)으로 도를 볼 수 있으니, 모습 없는 삼매도 그
러하다."
"거기에 생성과 파괴가 있습니까?"
"생성이나 파괴, 모임과 흩어짐으로 도를 보는 자는 도를 보는 것
이 아니다. 나의 게송을 듣거라."
심지(心地)는 모든 종자를 머금어
촉촉한 비를 만나면 어김없이 싹튼다
삼매의 꽃은 모습 없는데
무엇이 파괴되고 또 무엇이 이루어지랴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스님이 덕분에 깨우치게 되어 마음(心意)이 초연하였으며, 10년을
시봉하면서 그 경지가 날로 더하였다.
이에 앞서 육조(六祖:638-713)스님이 회양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인도 반야다라(般若多羅)가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 아래서 망아지
한 마리가 나와 세상사람을 밟아 버리리라'하셨다"했는데, 스님을 두
고 한 말씀이었을 것이다. 회양스님의 제자 여섯 사람중에서 스님만
이 심인(心印)을 비밀스러이 전수받았을 뿐이었다.
처음 건양(建陽)의 불적령(佛跡嶺)에서 임천(臨川)으로 옮겨갔고,
다음으로 남강(南康) 공공산(공公山)에 이르렀으며, 대력(大曆:766-7
79) 연중에 종릉(鍾陵:洪州에 있음)이 있는
개원사(開元寺)에 이름을 걸어두셨다. 그때 대장군(連師)노사공(路
嗣恭)이 가풍을 듣고 경모하여 종지(宗旨)를 직접 전수받았고, 이로
부터 사방 납자들이 운집하였다.
회양스님은 스님이 강서에서 교화를 널리 편다는 소문을 듣고 대
중에게 물으셨다.
"도일(道一)이 대중을 위해 설법을 하느냐?"
"이미 대중을 위해 설법합니다."
그러자 회양스님은 말씀하셨다.
"도대체 소식을 전해오는 사람이 없구나."
그리고는 스님 하나를 그곳으로 보내며" 그가 상당하였을 때'어떻
습니까?' 하고 묻고 무슨 말을 하거든 기억해 오너라"고 하셨다.
그 스님이 분부대로 가서 물어더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난리통 30년에 소금과 장은 줄여 본 적 없다."
그 스님이 돌아와 회양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회양스님은 "그렇
군"하셨다.
스님의 입실제자(入室弟子) 139명은 각자 한 곳의 선지식이 되어
더더욱 끝없는 교화를 폈다.
스님께서는 정원(貞元) 4년(788) 정월 중에 건창(建昌) 석문산(石
門山)에 올라 숲속을 거닐다가 평탄한 골짜기를 보더니 시자에게 말
씀하셨다.
"썩어질 내 몸이 다음달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리라."
말씀을 끝내고 돌아와 이윽고 병을 보이므로 원주(院主)가 문안을
드렸다.
"스님께선 요즈음 건강이 어떠하신지요."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2월1일, 목욕하고 가부좌한 채 입멸(入滅)하셨다. 원화(元和:806-82
0) 연중에 대적선사(大寂禪師)라 시호하고, 탑은 대장엄(大藏嚴)이라
하였다.
2. 시중
1.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示衆)하셨다.
"그대들 납자여, 각자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믿도록 하라. 이마음
이 바로 부처이다. 달마대사가 남천축국(南天竺國)에서 중국에 와
상승(上乘)인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였다. 그
리고는 「능伽經」을 인용하여 중생의 마음바탕을 확인(印)해 주셨
으니, 그대들이 완전히 잘못 알아 이 일심법이 각자에게 있음을 믿
지 않을까 염려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능가경」에서는 '부처님 말
씀은 마음(心)으로 종(宗)을 삼고, 방편 없음(無門)으로 방편(法門)을
삼는다. 그러므로 법을 구하는 자라면 응당 구하는 것이 없어야 하
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으며, 부처 밖에 따로 마음 없기 때문
이다'하셨다.
선이라 해서 취할 것도 없고 악이라 해서 버릴 것도 없으며,
깨끗함과 더러움 두쪽 다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죄의 본성이 공(空)
임을 통달하면 생각생각 어디에도 죄를 찾을 수 없으니 그 성품(自
性)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계가 오직 마음일 뿐(三界唯心)이며, 삼라만상이 한 법
에서 나온(印)것이이다. 형상(色)을 볼 때, 그것은 모두 마음을 보는
것인데, 마음은 그 자체가 마음이 아니라 형상을 의지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황따라 말하면 될 뿐, 현상이든(卽事)이치에든
(卽理) 아무 걸릴 것이 없다.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깨달음도 마찬
가지이다. 마음에서 나온(生) 것을 형상(色)이라 하는데, 색이 공함
을 알기 때문에 난 것은 동시에 난 것이 아니다.
이 뜻을 확실히 알아야 그때그때 옷 입고 밥 먹으면서 부처될 씨
앗(聖胎)을 길러내고 인연따라 시절을 보내게 되리니.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니
보리도 역시 그러할 뿐이라네
현상이나 이치에 모두 걸릴 것 없으니
나는 그 자리가 나지 않는 자리라네
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碍 當生卽不生
2.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를 닦는 것입니까?"
"도는 닦는 데 속하지 않는다. 닦아서 체득한다면 닦아서 이루었
으니 다시 부서져 성문(聲聞)과 같아질 것이며, 닦지 않는다 하면 그
냥 범부이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도를 깨칠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성(自性)은 본래 완전하니 선이다 악이다 하는 데 막히지 않기
만 하면 도 닦는 사람(修道人)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선은 취하고
악은 버리며 공(共)을 관찰하여 선정에 들어가면 바로 유위(有爲)에
떨어진다 하겠다. 게다가 밖으로 치달아 구하면 더더욱 멀어질 뿐이
니 3계의 심량(心量)을 다 없애도록만 하라. 한 생각 망념이 3계 생
사의 근본이니, 일념이 없기만 하면 즉시 생사의 근본이 없어지며
부처님(法王)의 위 없는 진귀한 보배를 얻게 될 것이다.
무량겁(無量劫) 이래로 범부는 망상심, 즉 거짓과 삿됨, 아만(我慢)
과 뽐냄이 합하여 한덩어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여러 법이 모여 이 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일어날 때는 법만 일어날
뿐이며, 면할 때도 법만 멸할 뿐이다'하였다. 그러므로 이 법이 일어
날때 내(我)가 일어난다 하지 않으며, 멸할 때도 내가 멸한다 하진
않는다.
전념(前念).후념(後念).중념(中念)이 생각생각 서로 의지하지 않아
서 생각생각 고요함(寂滅)을 해인삼매(海人三昧)라고 부르는데, 그것
은 일체법을 다 포섭한다. 마치 백천 갈래 물줄
기가 함께 큰 바다로 모여들면 모두 바닷물이라 이름하는 것과도 같
다. 한 맛(一味)에 여러 맛이 녹아 있고 큰 바다에 모든 물줄기가 섞
여드니, 마치 큰 바다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물을 다 쓰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성문은 깨달았다 미혹해지고 범부는 미혹에서 깨달는다.
성문은 성인의 마음에는 본래 수행지위.인과.계급 등 헤아리는 망상
이 없음을 모른다. 그리하여 인(因)을 닦아 과(果)를 얻고, 8만겁(八
萬劫).2만겁(二萬劫) 동안을 공정(公定)에 안주하니, 비록 깨닫긴 했
으나 깨닫고 나서는 다시 미혹한 것이다. 또한 모든 보살은 저 지옥
고통을 보면 공적함(空寂)에 빠져 불성을 보지 못한다. 상근기 중생
이라면 홀연히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 말끝에 깨닫고 다시는 계급
과 지위를 거치지 않고서 본성을 단박에 깨닫는다. 그러므로 경에서
'범부에게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마음이 있지만 성문에게는 그것이
없다'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미혹에 상대하여 깨달음을 설명하였지
만 본래 미혹이 없으므로 깨달음도 성립되지 않는다.
일체 중생들은 무량겁 이래로 법성삼매(法性三昧)를 벗어나지 않
고 영원히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옷 입고 밥 먹으며 말하고 대
꾸하는 6근(六根)의 작용과 모든 행위가 모조리 법성이다. 그러나
근원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서 명상(名相)을 좇으므로 미혹한 생각
(情)이 허망하게 일어나 갖가지 업(業)을 지으니, 가령 한 생각 돌이
켜본다면(返照) 그대로가 성인의 마음이다.
여러분은 각자 자기 마음을 깨치면 될 뿐 내 말을 기억하지
말라. 설사 항하사만큼 도리를 잘 설명한다 해도 그 마음은 늘지 않
으며, 설명하지 못한다 해도 그 마음은 줄지 않는다. 또한 설명을 해
도 그대들의 마음이며, 설명하지 못해도 그대들의 마음이다. 또 몸을
나누고 빛을 놓으며 18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낸다 해도 나에게 불꺼
진 재를 갖다 주느니만 못하다. 장마비가 지난 뒤 꺼진 재에 불기가
없는 것은 성문이 허망하게 인을 닦아 과를 얻음에 비유할 만하며,
장마비가 아직 지나지 않아 꺼진 재에 불기운이 있는 것은 보살의
도업(道業)이 순수하게 익어 모든 악에 물들지 않음을 비유할 만하
다.
만일 여래의 방편인 삼장(三長)의 가르침을 말하자면, 쇠사슬같이
끊김이 없어 항하사겁토록 설명해도 다하지 못하게지만,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는다면 아무 일도 없게 된다. 오랜동안 서 있었으니 이
만 몸 조심하라."
3.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도(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말라, 무엇을 물들음이라 하
는가. 생사심으로 작위와 지향이 있게 되면 모두가 물들음이다. 그
도를 당장 알려고 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다. 무엇이 평상심
이라고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取捨)가 없고, 단상
(斷想)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다.
경에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범부의 행동도 아니고 성현의 행동도 아닌 이것이 보살행이
다.'
지금 하는 일상생활과 인연따라 중생을 이끌어주는 이 모든 것이
도(道)이니, 도가 바로 법계(法界)이며 나아가서는 향하사만큼의 오
묘한 작용까지도 이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심지법문을 말하며, 무엇 때문에 다함 없는 법등(法燈)을 말
하였겠는가. 그르므로 일체법은 모두가 마음법이며, 일체의 명칭은
모두가 마음의 명칭이다. 만법은 모두가 마음에서 나왔으니 마음은
만법의 근본이다. 경에서도 '마음을 알아 본원(本源)이 통달하였으므
로 사문(沙文)이라한다'고 하였으니, 이 본원자리에서는 명칭도 평등
하고 의미도 평등하며 일체법이 다 평등하여 순수하여 잡스러움이
없다.
만일 교문(敎門)에서 시절따라 자유롭게 법계를 건립해 내면 모조
리 법계이고, 진여(眞如)를 세우면 모조리 진여이며,이치(理)를 세우
면 일체법이 이치이며, 현상(事)을 세우면 일체법이 현상이 된다. 하
나를 들면 모두 따라와 이사(理事)가 다름이 없이 그대로 오묘한 작
용이며, 더 이상 다른 이치가 없다. 이 모두가 마음의 움직임이다.
비유하면 달그림자에는 차이가 있으나 달 자체는 차이가 없고, 여러
갈래 물줄기는 차이가 있으나 그 물의 본성은 차이가 없는 것과 같
다. 또한 삼라만상은 차이가 있으나 허공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도
리를 설명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으나 걸림 없는 지혜는 차이가 없듯
이 갖가지로 세운 법이 모둔 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세워도 되고
싹 쓸어버러도 된다. 모조리 오묘한 작용이며 그대로가 자기이니. 진
(眞)을 떠나서 세울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운 그 자리
가 바로 진이며, 다 자기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
일체법이 불법이고 모든 법이 바로 해탈인데 해탈이 바로 진여이
나, 모든 법은 진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상 생활이 모
드 불가사의한 작용으로서 시절인연을 기다리지 않는다. 경에서도
'곳곳마다 부처님 계신 곳'이라 하였다.
부처님은 매우 자비로우며 지혜가 있어 선한 본성으로 일체 중생
의 얽힌 의심을 부수어 유무(有無)등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한다. 범
부다 성인이다 하는 망정이 다하고 인집.법집.(人.法)이 함께 공하여
비할 바 없는 법륜을 굴리고 모든 테두리(數量)를 벗어났다. 그리하
여 일마다 걸림이 없고, 현상.이치 양쪽 다 통하니 마치 하늘에 구름
이 일어났다가 어느덧 없어지듯 머문 자취를 남기지 않으며, 물에다
그림을 그리듯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대적멸(大寂滅)
이다.
번뇌 속에 있으면 "여래장(如來藏)'이라 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청
정법신(淸淨法身)'이라 이름한다. 법신은 무궁하여 그 자체는 늘고
줄음이 없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모나고 둥글기도 하면서 대상
에 따라 형체를 나타내니 물에 비친 달처럼 잔잔하게 흔들거리며 뿌
리를 내리지 않는다. 유위(有爲)를 다하지도 않고 무위(無爲)에 머물
지도 않으니 유위는 무위의 작용이며, 무위는 유위의 의지처이다. 의
지처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도 의지할 것 없는 허공과 같다
'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심생멸(心生滅)과 심진여(心眞如)라는 뜻에서 보자.
심진여(心眞如)라 하는 것은 밝은 거울이 물상을 비추는 것
과도 같은데, 거울은 마음에 비유되고 물상은 모든 법에 비유된다.
여기에서 마음으로 법을 취한다면 바깥 인연에 끄달리게 되니 그
것이 샘생멸의(心生滅義)가 된다.
성문은 소리를 들음으로써 불성을 보고 보살은 눈으로 불성을 보
니 그것이 둘 아님을 아는 것을 평등한 성품이라 한다. 이 성품은
차이가 없으나 작용은 같지 않아서 미혹에 있으면 식(識)이 되고, 깨
달음에 있으면 지(智)가 되며, 이치(理)를 따르면 깨달음이 되고, 현
상(事)을 따르면 미혹이 된다. 그러나 미혹해도 자기 본심에 미혹하
는 것이며 깨달아도 자기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한번 깨달으면 영
원히 깨달아 다시는 미혹되지 않으니, 마치 해가 뜸과 동시에 어둠
은 없어지듯 밝은 지혜가 나오면 어두운 번뇌는 공존할 수 없다.
마음(心)과 경계(境)를 깨달으면 망상이 발생하지 않으며, 망상이
나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무생법인은 본
래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어서 도를 닦고 좌선할 필요가 없으니 닦을
것도 없고 좌선할 것도 없는 이것이 바로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
다.
이제 이 이치를 알았으면 진정코 모든 업을 짓지 말고 본분따라
일생을 지내도록 하라. 가사 한 벌 누더기 한 벌로 앉으나 서나 끊
임없이 계행(戒行)을 더욱 훈습하고 정업(淀業)을 더욱 쌓도록 하라.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깨닫지 못할까 무얼근심하랴. 듣느라고 수고
하였다. 몸 조심하라."
3. 감변
1.
서당 지장(西堂智藏:735-814).백장 회해(百丈懷海:749-814).남전보
원(南전 普願: 748-834)스님이 마조스님을 모시고 달구경을 하던 차
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같은 땐 무얼 했으면 좋겠는가?"
서당스님은 "공양하기에 딱 좋군요"하였고, 백장스님은 "수행하기
에 좋겠습니다"하였다. 남전스님이 소매를 뿌리치면서 그냥 가 버리
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경(經)은 장(藏:서당)으로 들어가고, 선(禪)은 바다(海:백장)로 돌
아가는데, 보원(普願:남전)만이 사물 밖으로 벗어났구나."
2.
남진스님이 대중에게 죽을 돌리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통 속은 무엇이냐?"
"닥치거라. 이 늙은이야! 무슨 말이냐."
스님께서는 그만 두셨다.
3.
백장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바로 지금 그대가 선명을 놀리는 자리라네."
4.
대주 혜해(大珠慧海)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
셨다.
"어디서 오느냐?"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에서 옵니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불법을 구하려 합니다."
"자기의 보배창고(寶藏)는 살피지 않고서 집을 버리고 사방으로
치달려 무엇하려느냐. 여기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무슨 불법을
구하겠느냐?"
대주스님은 드디어 절하고 물었다.
"무엇이 저 혜해(慧海)의 보배창고입니까?"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보배창고이다. 그것은 일
체를 다 갖추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작용이 자유 자재하니
어찌 밖에서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대주스님은 말끝에 본래 마음은 깨달음(知覺)을 말미암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뛸듯이 기뻐하며 절을 하였다.
6년을 섬긴 뒤에 돌아가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門論)」1권을
지었는데, 스님께서 보더니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월주에 큰 구슬(大珠)이 있는데 뚜렷하고 밝은 광채가 자재하게
사무쳐 막히는 곳이 없다.
5.
늑담 법회(늑潭法會)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스님께서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이리 가까이 오게."
법회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자 한 대 후려치면서 말씀하셨다.
"셋이서는 함께 역모를 꾸미지 않는 법이라네, 내일 찾아오게."
법회스님은 다음날 다시 법당으로 들어가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은 돌아가고 내가 상당할 때를 기다렸다가 나오게. 그대에게
증명해 주겠네."
법회스님은 여기서 깨닫고 말하였다.
"대중의 증명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법당을 한 바퀴 돌더니 가버렸다.
6.
늑담 유건(늑潭維建)스님이 하루는 법당 뒤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
다. 스님이 보시고는 그의 귀에 입을 대고 두 차례 훅하고 불자 유
건스님은 선정에서 일어나 스님임을 알고는 다시 선정에 들었다.
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가 시자더러 차 한 그릇을 갖다주게 하였는
데, 유건스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큰 방으로 가버렸다.
7.
석공 혜장(石鞏慧藏)스님은 출가 전에 본래 사냥을 일삼았으며 사
문을 싫어하였다. 한번은 사슴떼를 ㅉ다가 마침 스님의 암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스님이 그를 맞이하자 그는 물었다.
"스님은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지요?"
"그대는 무얼하는 사람이냐?"
"사냥꾼입니다."
"활을 쏠 줄 아는가?"
"쏠 줄 압니다."
"화살 한 발로 몇 마리를 잡는냐?"
"한 발로 한 마리를 잡습니다."
"활을 쏠 줄 모르는구나."
"스님께선 활을 쏠 줄 아십니까?"
"쏠 줄 알지."
"스님께서는 화살 한 발로 몇 마리나 잡으십니까?"
"한 발로 한 떼를 다 잡는다네."
"저놈들도 생명입니다. 무엇 때문에 한 떼나 잡겠습니까?"
"그대가 그런 줄 안다면 왜 스스로를 쏘지 않느냐?"
"저더러 스스로 쏘라 하신다면 쏘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호통을 쳤다.
"이놈! 광겁(曠劫)의 무명번뇌(無名煩惱)를 오늘 단박 쉬도록 하
라."
그는 그 자리에서 활과 화살을 꺾어버리고 스스로 칼로 머리카락
을 자르더니 스님께 출가하였다.
하루는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얼 하느냐?"
"소를 칩니다."
"어떻게 치는데?"
"한 차례 풀밭으로 들어가면 바로 콧구멍을 꿰어 끌고옵니다."
"그야말로 소를 잘 먹이는구나."
8.
한 스님이 가르침을 청하였다.
"스님께선 4구백비(四句百非)를 쓰지 말고 저에게 조사가 서쪽에
서 오신 뜻을 곧장 지적해주십시오."
"오늘은 생각 없으니 그대는 지장(智藏)에게 가서 묻도록 하라."
그리하여 지장스님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스님께서 저더러 스님(上座)께 가서 물으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지장스님은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지더니 말하였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회해 사형에게 가서 묻도록 하라."
그리하여 다시 회해(懷海)스님에게 가서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
였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인데."
그 스님이 이리하여 스님(마조)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
셨다.
"지장의 머리는 하얗고 회해의 머리는 검구나."
9.
마곡 보철(麻谷寶徹)스님이 하루는 스님을 따라가면서 물었다.
"무엇이 대열반입니까?"
"급하다."
"무엇이 급하다는 말입니까?"
"저 물을 보아라."
10.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752-839)스님이 처음 참례하고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바로 마음이 부처다(卽心卽佛)."
법상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는 그때부터 대매산에 머물렸다.
스님은 법상스님이 산에 머문다는 소문을 듣고는 한 스님을 시켜
찾아가 묻게 하였다.
"스님께선 마조스님을 뵙고 무엇을 얻었기에 갑자기 이 산에 머무
십니까?"
"마조스님께서 나에게 '바로 마음이 부처다'하였다네. 그래서 여기
에 머문다네."
"마조스님 법문은 요즈음 또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요즈음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하십니
다."
"이 늙은이가 끝도 없이 사람을 혼돈시키는구나. 너는 네맘대로
비심비불(非心非佛)해라. 나는 오직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다."
그 스님이 돌아와 말씀드러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실(梅實)이 익었구나."
11.
분주 무업(汾州無業:780-821)스님이 스님을 참례하였다.
스님께서는 그의 훤출한 용모와 종소리같이 우렁찬 목소리를 보고
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높고 높은 법당(佛堂)이나 그 속에 부처가 없구나."
무업스님이 절하고 끓어앉아서 물었다.
"3승(三乘) 교학은 그 이론을 대략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선문
(禪門)에서는 항상 바로 마음이 부처라고 하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알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지, 그밖에 다른 것은 없다네."
무업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찾아와 가만히 전수하신 심인(心印)입니
까?"
"그대는 정말 소란을 피우는군. 우선 갔다가 뒤에 찾아오게."
무업스님이 나가는 차에 스님께서 불렀다.
"여보게!"
무업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게 무엇인가?"
무업스님이 딱 깨닫고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둔한 놈아! 절은 해서 무엇하느냐."
12.
등은봉(鄧隱峯)스님이 스님을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느냐?"
"석두(石頭)스님에게 가렵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네."
"장대나무를 짚고 가다가 장터를 만나면 한바탕 놀다 가겠습니
다."
바로 떠나 석두스님에게 도착하자마자 선상을 한 바퀴 돌더니 지
팡이로 한번 내려치고 물었다.
"무슨 소식인고."
그러자 석두스님은, "아이고, 아이고!" 하였다.
등은봉스님은 말이 막혔다. 돌아와서 말씀드렸더니 스님(마조)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다시 가서 그가 '아이고, 아이고' 하거든 '허.허(噓)'하고
두 번 소리를 내거라."
등은봉스님이 다시 가서 앞서 했던 그대로 물었더니 석두스님은
이에"허허"하고 두 번 소리를 내었다.
등은봉스님은 이번에는 말이 막혔다.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스님께
서 말하였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 하지 않았더냐."
13.
등은봉스님이 하루는 흙 나르는 수레를 미는데 스님은 다리를 쭉
펴고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스님, 다리 좀 오무리세요."
"이미 폈으니 오무릴 수 없네."
"이미 가고 있으니 물러나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수레바퀴를 굴리며 지나가다가 스님의 다리를 다치
게 했다. 스님께서는 법당으로 돌아와 도끼를 집어들고 말하였
다.
"조금전에 바퀴를 굴려 내 다리를 다치게 한 놈은 나오너라."
등은봉스님이 나와 스님 앞에 목을 쓱 빼자 스님은 도끼를 치웠
다.
14.
석구(石臼)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는가?"
"오구(烏臼)스님에게서 옵니다."
"오구는 요즈음 어떤 법문을 하던가?"
"여기서 몇 사람이나 아득해(茫然) 있습니까?"
"아득함은 우선 그만두고 간단한(초然) 한마디는 무엇이더냐?"
석구스님이 이에 세 걸음 앞으로 다가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오구를 일곱 대 때릴 일이 있는데 그대는 기꺼이 받겠는
가?"
"스님께서 먼저 맞으십시오. 그런 뒤에 기꺼이 오구스님에게 둘려
드리겠습니다.
15.
양좌주(亮座主)가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좌주는 경론(經論)을 훌륭히 강의해 낸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부끄럽습니다."
"무얼 가지고 강의하는가?"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마음(心)은 재주부라는 광대같고, 의식(意)은 광대놀이에 장단을
맞추는 자와 같다. 그것으로 어떻게 경을 알 수 있겠는가?"
양좌주는 언성을 높혔다.
"마음이 강의하지 못한다면 허공이 강의합니까?"
"오히려 허공이 강의할 수 있다."
양좌주는 수긍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계단을 내려가려하는데
스님께서 "좌주!"하고 불렀다.
양좌주는 머리를 돌리는 순간 활연대오하고 바로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얼 하느냐."
양좌주는 절로 되돌아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논간은 남이 따를 수 없다 하였더니, 오늘에야 마조대사에
게 한 번 질문을 받고서 평생했던 공부가 얼음 녹듯 하였다."
그리고는 서산(西山)으로 들어가 다시는 종적이 없었다.
16.
홍주 수노(洪州水老)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분명한 뜻입니까?"
"절 한번 하라"
수노스님이 절하자마자 스님게서 별안간 한 번 걷어찼다. 여기서
수노스님은 크게 깨닫고 일어나면서 손뼉을 치고"하하"웃으면 말하
였다.
"그것 참 신통하고나, 신통해. 백천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털끌 하나에서 그 근원을 알아버렸도다."
그리고는 절하고 물러났다.
그 뒤 대중에게 말하였다.
"마조스님에게 한 번 채인 뒤로 지금까지 웃음이 그치질 않는구
나."
17
방거사(龐居士)가 스님께 물었다.
"만법에게 짝이 되어주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시면 그때 가서 말해주
겠소."
다시 방거사가 물었다.
"본래인(本來人)을 어둡게 하지 말고 스님께서는 눈을 높이 뜨십
시오."
스님께서 눈을 아래로 홀깃 하자 거사가 말하였다.
"일등가는 줄 없는 거문고를 스님만이 오묘하게 뜯는군요."
스님께서 이번에는 위로 홀깃 보자 거사는 절을 하였다.
스님께서 방장실로 돌아가자 거사는 뒤따라 돌어가면서 말하
였다.
"조금전엔 잘난 체하다가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물을 근육은 뼈도 없으나 만 섬 실은 배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이치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는 물도 없고 배도 없는데 무슨 근육과 뼈를 말하는가."
1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는 말을 하십니
까?"
"어린 아이의 울음을 달래려고 그러네."
"울음을 그쳤을 땐 어떻게 하시렵니까?"
"비심비불(非心非佛)이지."
"이 둘 아닌 다른 사람이 찾아오면 어떻게 지도하시렵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 주겠다."
"그 가운데서 홀연히 누군가 찾아온다면 어찌하시렵니까?"
"무엇보다도 큰 도를 체득하게 해주겠다."
19.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바로 그대의 뜻은 어떤가?"
20.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도 도에 계합하겠습니까?"
"나는 아직 도에 계합하지 못하였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스님께서는 별안간 후려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를 후려치지 않는다면 제방에서 나를 비웃겠지."
21.
탐원산(耽源山)에 젊은 스님 하나가 있었는데 행각하고 돌아와 스
님 앞에서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그 위에다 절하고 서자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처가 되고 싶지 않은가?"
"저는 눈을 비빌 줄 모릅니다."
"내가 졌다."
"젊은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22.
한 스님이 스님 앞에다 하나는 길게, 셋은 짧게 네 획을 긋
* 눈을 누르고 멀쩡하게 보이던 것이 겹쳐 보이는데 본심에서 망상
일으키는 것을 비유한다.
고는 말하였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4구백비(四句百非)를
떠나 대답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께서는 땅에다 금 하나를 획 긋고는 말씀하였다.
"길다 짧다 말하진 못한다. 그대에게 단변을 끝냈다."
23.
스님께서 한 스님을 시켜 경산 법흠(徑山法欽:714-792)스님에게
글을 보냈는데 그 속에는 일원상(一圓相)이 그러져 있었다.
경산스님은 뜯자마자 붓을 찾아 가운데 한 점을 찍었다.
그 뒤 어떤 스님이 혜충국사(慧忠國師: ?-775)에게 이 상황을 말
씀드렸더니, 국사는 말하였다.
"법흠스님이 오히려 마조대사에게 속았구나."
24.
한 강사(講師)가 찾아와서 물었다.
"선조에서는 어떤 법을 전수합니까?"
스님게서 되물었다.
"강사는 어떤 법을 전해 주는가?"
"외람되게도 20여본(本)의 경론을 강의합니다."
"그렇다면 사자(獅子)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스님께서"어흠!"하고 소리를 내자 강사가 말하였다.
"이것이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있자 강사가 말하였다.
"이것도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 속에 있는 법입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앉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강사는 대꾸가 없었다. 드디어 하직을 하고 문을 나오는데 스님
께서 "좌주여!"하고 불렀다. 강사가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하
셨다.
"이게 무엇인가?"
강사가 역시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는 "이 둔한 중아!"하셨다.
25.
홍주(洪州) 염사(廉使)가 물었다.
"술과 고기를 먹어야 옳습니까, 먹지 않아야 옳습니까?"
"먹는 것은 그대의 국록(國祿)이며, 먹지 않는 것은 그대의 불복
(佛福)입니다."
26.
약산 유엄(藥山惟儼:745-828)스님이 처음 석두스님을 참례한 한
자리에서 물었다.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校)라면 제가 대략은 압니다. 남방에 서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 한다는 소문은 늘 들었
는데 정말 알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스님께선 자비로 가
르쳐 주십시오."
석두스님이 말하였다.
"이렇게 해도 안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안되며, 이렇게 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음 둘다 안된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약산스님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석두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은 여기에 있질 않으니 그만 마조스님의 처소로 가보
게."
약산스님이 명을 받들어 스님께 공손히 절을 하고는 앞에 물었던
것을 그대로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 때는 그에게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작이게 하며, 어
느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어ㄸ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 그대는 어떠한가?"
약산스님이 말끝에 깨치고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였다.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나에게 절을 하느냐?"
"제가 석두스님 처서에서는 무쇠소 등에 달라붙은 모기와도 같았
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되었다면 잘 간직하게."
그 뒤 3년 동안 시봉을 하였는데 하루는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요사이 견처(見處)가 어떠한가?"
"껍데기는 다 벗겨지고 알맹이 하나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대의 경지의 마음(心體)이 순조로와 사지(四肢)까지 편안하다
하겠다. 그렇게 되었을진대 어째서 세 가닥 대테(蔑)로 아랫배를 조
르고 아무데나 가서 주지살이를 하지 않는가?"
"제가 무어라고 감히 주지노릇한다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네. 항상 다니기만 하고 머물지 말라는 법은 없고, 항
상 다니가만 하고 다니지 말라는 법도 없다네. 이익되게 하고 싶어
도 이익될 것이 없고, 위하려 하나 위할 것도 없다네. 배(船)를 만들
어야지. 이 산에 오래 머물지 말게."
이리하여 약산스님은 스님을 하직하였다.
27.
단하 천연(丹霞天然:739-824)스님이 두번째 스님을 참례하러 왔을
때 였다. 아직 참례하기도 전에 바로 큰 방에 들어가 나한상의 목을
말타듯 타고 앉았다. 그러자 대중들이 경악하여 급히 스님께 아뢰었
다. 스님께서 몸소 큰 방으로 들어가 그를 살펴보더니 말씀하셨다.
"천진한(天然) 내 아들이로군."
단하 스님은 즉시 땅으로 내려와 절하며"대사께서 법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하였는데 이 인연으로 '천연(天然)'이라 이름하였다.
* 중국의 한 은사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뱃속이 터질까 걱정하
여 대나무테로 배를 싸고 다녔다. 여기서는 공부가 완숙된 경제를
말한다.
28.
담주 혜랑(潭州慧郞)스님이 처음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찾아와서 무엇을 구하느냐?"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구합니다."
"부처님에게는 지견이 없다. 지견은 마군일 뿐이다. 그대는 어디서
왔느냐?"
"남악(南嶽)에서 왔습니다."
"그대가 남악에서 오긴 했으나 아직 조계의 심요(心要)를 모르는
구나. 속히 그 곳으로 되돌아가야지. 다른 데로 가서는 안된다."
29.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호남에서 왔습니다."
"동정호(洞庭湖)에는 물이 가득찼더냐?"
"아닙니다."
"때맞은 비가 그렇게나 내렸는데도 아직 가득 차지 않았더냐..."
도오(道吾)스님은"가득찼다"하였고,운암(雲岩)스님은"담담하다"하
였으며,동산(洞山)은 "어느 겁(劫)엔들 모자란 적이 있었으랴"하였다.
마조록
(祖堂集)
1. 행 록
회양(懷讓)스님의 법을 이었고, 강서(江西)에서 살았다. 스님의 휘
는 도일(道一)이며, 한주(漢州) 시방현(十方懸) 사람으로 속성은 마
(馬)씨였다. 나한사(羅漢寺)에서 출가하여 회양 스님에 의해 마음의
눈을 뜬 뒤로는 남창(南昌)에서 교화를 펴셨다.
2. 시중.감변
1.
스님께서는 대중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대들은 지금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어야 한다. 이 마음
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卽心是佛). 그러므로 달마(達摩)대사께서 남
천축국(南天竺國)에서 오셔서 상승(上乘)인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셨다. 또 자주 「능가경」에 말씀하기를 '부처님
은 마음을 근본으로 하시고 아무 방편(門)도 쓰지 않은 방편을 펴셨
다'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 '법을 구하는 이는 아무 구할 것이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하셨다.
선(善)을 취하지도 말고 악(惡)을 버리지도 말아야 하며, 더럽거나
깨끗한 쪽에 모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죄의 성품이 공함을 통달
하면 생각생각 어디에도 죄를 찾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자기 성품
이 없기 때문이다. 3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며 삼라만산이 한 법에서
나온(印)것이다. 형상(色)을 볼 때, 그것은 모두가 마음을 보는 것인
데, 마음 스스로가 마음이라 하지 못하므로 현상을 의지해서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황따라 말하면 될 뿐, 현상(卽事)에
든 이치(卽理)에든 아무 걸릴 것이 없다.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깨
달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서 난 것은 형상(色)이라 하는데, 형상이
공함을 알기 때문에 난 것은 동시에 난 것이 아니다. 이 뜻을 체득
하면 그때그때 옷 입고 밥 먹으며 부처될 씨앗을 기르면서 그저 인
연따라 시절을 보내면 될 뿐이니,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니
보리도 역시 그러할 뿐이라네
현상에나 이치에나 모두 걸릴 것 없으니
나는 그 자리가 나지 않는 자리라네
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碍 當生卽不生
2.
홍주(洪州)태안사(太安寺)의 주지는 경과 논을 강론하는 강
사(座主)였는데 오직 스님(마조)을 비방하기만 하였다.
하룻밤은 삼경(三更)에 귀신사자(鬼使)가 와사 문을 두드리니, 주
지가 물었다.
"누구시오?"
"귀신세계의 사잔인데 주지를 데리러 왔다."
"내가 이제 예순 일곱인데 40년 동안 경론을 강하여 대중들에게
공부하게 하였느나 말다툼만 일삼고 수행은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
루 밤 하루 낮만 말미룰 주어 수행케 해주시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했다면 이제
사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한창 목마른데 우물을 파는
격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주지가 아까 말하기를, '경론 강하기만 탐하여 대중에게 공부하게
했다' 하는데 옳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경전에 분명히 말씀하시
기를, 스스로를 제도한 뒤에 남을 제도하고,스스로가 해탈한 뒤에 남
을 해탈케 하고, 스스로를 조복한 뒤에 남을 조복시키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한 뒤에 남을 고요하게 하고, 스스로가 편안한 뒤에 남을
편안케 하고, 스스로가 깨끗한 뒤에 남을 깨끗하게 하고, 스스로가
열반에 든 뒤에 남을 열반에 들게 하고, 스스로가 줄거운 뒤에 남을
즐겁게 하라'하셨는데 그대는 자신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지 못했
는데 어찌 남에게 도업(道業)을 이루게 할 수 있겠는가.
듣지 못했는가. 금강장(金剛藏)보살이 해탈월(解脫月)보살에게 말
하기를, '내가 바른 행을 닦은 뒤에야 남에게 바른 행을
닦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스스로가 바른 행을 닦
지 못하고서 남에게 수행케 함은 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하였다. 그
대는 더러운 생사심으로 입을 노리고 따지기만 하여 불교를 잘못 전
하여 어리석은 중생을 속였다. 저 세계의 왕이 화가 나서 그대를 잡
아다가 그 세계의 칼숲 지옥에 잡아 넣어 혀를 끊으라 했으니, 끝내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는가.
말로서 설한 법을
작은 지혜로 망녕되게 분별하니
그러므로 장애를 일으켜서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거니
어찌 바른 도를 알리요
저 뒤바뀐 지혜 때문에
온갖 죄악을 더한다.
言詞所說法 小智妄分別
是故生障碍 不了於自心
不能了自心 云何知正道
彼由顚倒慧 增長一切惡
그런데 그대는 40년 도안 구업(口業)을 지었으니, 지옥에 들지 않
으면 어찌겠는가.
또 옛부터 경전에 분명한 글이 있다. 즉 '말로써 모든 법을 말씀하
여도 실상(實相)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였는데 그대는 망상(妄想)으
로 입을 놀려 어지러이 말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받아야 하니, 다만 자신을 탓할지언정 남을 원망치는 말라. 지
금 어서 빨리 가자. 만일 늦으면 저 왕께서 나를 꾸짖을 것이다."
그러자 둘째 사자가 말했다.
"저 왕께서 벌써 이런 사실을 아실터이니, 이 사람에게 수행케 해
준들 무방하지 않겠는가?"
첫째 사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루쯤 수행하도록 놓아 주겠소. 우리들이 돌아가서 왕
에게 사뢰어 허락해 주시면 내일 다시 오겠고, 만일 허락치 않으시
면 잠시 뒤에 다시 오겠소."
사자들이 물러간 뒤에 주지가 이 일을 생각했다.
'귀신 사자는 허락했으나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하는
가.'
아무 대책도 없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겨를도 없이 개원사(開
元寺)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니, 문지기가 말했다.
"누구시오."
"태안사 주지인데 스님께 문안을 드리러 왔소."
문지지가 문을 열어주니, 주지는 곧 스님(마조)께로 가서 앞의 일
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온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한 뒤에 말했다.
"죽음이 닥쳐왔는데 어째해야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데 스님께서
저의 남은 목숨을 자비로써 구제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그를 곁에 서 있게 하였다. 날이 새자 귀신사자는 태
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차지 못했다.
이때, 스님과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용화(龍華)스님에게 물었다.
"주지는 그때 어디로 갔었기에 사자가 찾지 못했습니까?"
"우두(牛頭)스님이니라."
"그렇다면 국사(國師)께서는 당시 굉장했겠습니다."
"남전(南전)스님이니라."
3.
어느날 공양 끝에 한 스님이 와서 몸가짐을 가다듬고 법당으로 올
라와 스님께 인사를 하니, 스님께서 물었다.
"지난밤엔 어디에 있었는가?"
"산 밑에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는가?"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광에 가서 밥을 찾아 먹어라."
그 스님은 대답하고 광으로 갔다. 그때 백장(百丈)스님이 전좌(典
座) 소임을 맡았었는데 선뜻 자기 몫을 나누어 주어 공양케 하니,
그는 밥을 다 먹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백장스님이 법당으로 올라가니, 스님께서 물었다.
"아까 밥을 먹지 못한 스님이 있었는데 공양 좀 주었는가?"
"예, 벌써 공양을 마쳤습니다."
"그대는 뒷날 무량한 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스님께선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는 벽지불(벽支佛)의 지위에 이른 스님이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범인(凡人)으로서 어찌하여 벽지불의 절을 받으셨습
니까?"
"신통변화로는 그렇지만 불법 한마디 하는 데는 나만 못하다."
4.
스님께서 어느날, 선상(선상)에 올라 앉자마자 침을 뱉으니, 시자
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방금 침을 뱉으셨습니까?"
"노승이 여기에 앉으니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삼라만상(森羅萬象)
이 모두 여기에 있구나! 그게 싫어서 침을 뱉았다."
"종은 일인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그것을 싫어하십니까?"
"너라면 좋겠지만 나는 싫다."
"이는 누구의 경지입니까?"
"보살의 경지다."
나중에 고산(鼓山)스님이 이 인연을 들어 말했다.
"옛사람은 그러하지만 여러분들은 보살의 경지도 아직 얻지 못했
다."
또 말했다.
"옛사람들은 보살까지도 싫어했다. 비록 싫어했으나 보살의
지위를 면저 중득한 뒤에 싫어한 것이라야 싫어함이 된다. 노승은
보살의 지위를 알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그런 일을 싫어하랴."
5.
서천(西川)에 황삼랑(黃三郞)이라는 이가 있어, 두아들을 스님께
귀의케 하여 출가하도록 했다. 한 해가 남짓 지나서 다시 집으로 돌
아오니, 아버지가 두 스님을 보자마자 부처님과 똑같다는 생각을 내
어 절을 하면서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완성해 주는 이
는 벗이다'라고 했는데, 두 스님은 벗이 되어 이 늙은이를 완성시켜
주시오."
두 사미가 말했다.
"아버지께서 비록 나이가 많으시나 그러한 마음이 있으시다면 무
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노인은 몹시도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거사가 두 비구를 따라 스님(마조)께 갔다. 스님들이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하니 스님께서는 곧 법당으로 올라갔다. 황심랑
도 법당 앞으로 나아가니, 스님께서 소리쳤다.
"황삼랑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서천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대는 서천에 있는가, 홍주(洪州)에
있는가?"
"가정에는 두 가장이 업고, 나라에는 두 왕이 없습니다."
"그대는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여든 다섯입니다."
"비록 그렇게 계산하나 무슨 나이인가?"
"만일 스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 보낼 뻔 했습니다. 스
님을 뵌온 뒤에는 칼로 허공을 긋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어디를 가나 진실이리라."
6.
황삼랑이 어느날, 태안사에 가서 마루 앞에서 통곡을 하니, 양(亮)
좌주가 물었다.
"무슨 일로 통곡을 합니까?"
"죄주를 위해 웁니다."
"나를 위해 울다니, 무슨 뜻입니까?"
"제가 마조스님께 귀의하여 출가해서 가르침을 받자마자 깨달았다
는 말을 들으셨을 터인데 여러분 좌주들은 공연한 이야기나 지껄여
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좌주가 이 말에 발심하여 곧 개원사로 가니, 문지기가 스님께 아
뢰었다.
"태안사 양좌주가 와서 스님을 뵙고 불법을 묻고자 합니다."
이에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니, 좌주가 와서 뵈었다.
스님께서 좌주에게 물었다.
"좌주는 60권 화엄을 강의한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강의하는가?"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아직은 경론을 강한 줄 모른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마음(心)은 재주 부리는 광대 같고, 의식(意)은 광대놀이에 장단
맞추는 이 같다 했는데, 어찌 경론을 강의할 줄 알겠는가?"
"마음이 강의할 수 없다면 허공이 강의를 합니까?"
"오히려 허공이 강의할 수 있다."
좌주가 뜻에 맞지 않아, 당장 나가서 섬돌을 내려서려다가 크게
깨닫고 다시 돌아와 절을 하니, 스님께서 말했다.
"이 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엇하느냐."
양좌주가 일어나니, 등에 땀이 축축히 흘렀다. 밤낮으로 엿새동안
스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시다가 나중에 사뢰었다.
"이제 스님 곁을 떠나 스스로 수행할 길을 찾으려 하오니, 바라옵
건대 스님께서는 오래오래 세상에 계시어 많은 중생을 제도해 주십
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좌주가 본사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고했다.
"내 일생 동안의 공부를 앞지를 이가 아무도 없다고 여겼더니, 오
늘 마조스님 앞에서 꾸지람을 받고는 미혹한 생각(妄情)이 모두 사
라졌다."
그리고는 학인들을 모두 물리치고 홀로 서선으로 들어간 뒤에 아
무런 소식이 없었다.
양좌주가 이런 싯귀를 남겼다.
30년 동안 아귀노릇을 하다가
오늘에야 사람의 몸으로 회복했네
푸른산엔 본디 외로운 구름이 벗이었는데
동사가 다른 이를 따라 딴 사람을 섬겼네
三十年來作餓鬼 如今始得復人身
靑山自孤有雲伴 童子從他事別人
장남(장南)스님이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허공이 경을 강하면 어떤 사람들이 듣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아까부터 잠시 함께 기뻐했습니다."
"무슨 뜻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문득 도로 거두시라 했을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역시 불을 잡을 마음이 있도다."
7.
스님께서 상당하여 그저 잠자코 있으니, 백장스님이 면전에서 자
리를 걷어버렸다. 스님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8.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바로 그대가 몸과 목숨을 놓아버릴 곳이다."
"4구백배(四句百非)를 떠나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을 바로 보여 주
십시오. 번거로운 말씀은 필요없습니다."
"내가 오늘은 아무 생각도 없어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서당(西堂)에게 가서 묻거라."
그 스님이 서당스님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서당스님
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큰스님께 묻지 않았는가?"
"큰스님께서 저더러 스님께 물으라 하십니다."
이에 서당스님이 얼른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몹시도 머리가 아파서 말해 줄 수 없으니, 해(海:百丈)
사형께 가서 묻거라."
그 스님이 백장스님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물으
니, 백장스님이 말했다.
"나는 그 경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다시 와서 아뢰니, 마조스님께서 말했다.
"장(藏:서당)의 머리는 희고,해(海)의 머리는 검도다."
9.
스님께서 인편에 선경산(先徑山) 도흠(道欽)스님에게 글을 보냈는
데, 그 속에는 원상(圓相)만이 그려져 있었다. 경산스님이 이를 보자
마자 붓을 들어 원상 안에다 한 획을 보탰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혜충(慧忠)국사께 전하니, 국사께서 말했다.
"흠(欽)대사가 또 마(馬)대사에게 속아넘어갔구나."
10.
어떤 사람이 스님의 앞에다 하나는 길게, 셋은 짧게 네 획을 긋고
는 말하였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네 귀절을 떠나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스님께서 한 획을 그으면서 말했다.
"길다고도 말할 수 없고, 짧다고도 말할 수 ㅇ으니, 그대에게 대답
해 마쳤노라."
혜충국사께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르게 대답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았던가?"
11.
한 좌주가 스님께 물었다.
"선종에서는 어떤 법을 전수합니까?"
스님께서 되물었다.
"좌주는 어떤 법을 전해 주는가?"
"40권 경론을 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자(獅子)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스님께서 '어흠!'하고 소리를 지르니, 좌주가 말했다.
"이것이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있으니, 좌주가 또 말했다.
"이것도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 속에 있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따져 물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앉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좌주가 대답을 못하고 하직하고서 문을 나오는데 스님께서 불렀
다.
"좌주여!"
"예."
"이게 무엇인가?"
좌주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이 둔한 중아!"하셨다.
이에 대하여 뒤에 백장스님은 대신 말했다.
"보았는가?"
12.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화남(화南)에서 왔습니다."
"동호(東湖)에는 물이 가득찼던가?"
"아닙니다."
"때맞은 비가 그렇게나 내렸는데도 아직 가득차지 않았더냐?"
이에 도오(道吾)스님이 말했다.
"그득히 찼습니다."
운암(雲岩)스님이 말했다.
"잔잔하였습니다."
동산(洞山)스님이 말했다.
"어느 겁(劫)엔들 줄을 적이 있었습니까?"
13.
스님께서 다음날 입멸하시려는데 그날 저녁에 원주(院主)가 물었
다.
"스님께서는 4대가 평안치 못하셨는데 요즘은 어떠십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14.
분주(汾州)스님이 좌주로 있을 때 42권 경론을 강하고 스님께 와
서 물었다.
"3승 12분교는 제가 대략 그 뜻을 압니다만 선가(宗門)의 뜻은 무
엇인지요?"
스님께서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좌우에 사람이 많으니, 일단 가거라."
분주스님이 자리를 떠서 문을 나오는데 발이 문턱에 걸치자 마자
스님께서 "좌주야"하고 부르니, 분주스님이 돌아보면서 "예"하고 대
답했다.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분주스님은 당장에 깨닫고는 절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제가 42권 경론을 강하면서 아무도 나를 능가할 이가 없다고 여
겼었는데, 오늘 스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 보낼 뻔 하였
습니다."
15.
스님께서 백장(百丈)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법으로 사람을 지도하는가?"
백장스님이 불자를 세워 대답하니, 스님께서 다시 물었다.
"다만 그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있는가?"
백장스님이 주장자를 던졌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석문(石門)스님에게 물었다.
"한 마디 말로 마대사의 두 뜻을 점칠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십
시오."
석문이 불자를 둘어 일으키면서 말했다.
"평상시대로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3. 천 화
스님 밑에서 친히 법을 이어받은 제자 중에 88명이 세상에 알려졌
고, 숨어서 지낸 이는 구 수효를 알 수 없었다.
스님 성품은 인자하고 모습은 준수하였으며, 발바닥에는 두개의
고리 무뉘가 있고, 머리에는 가마가 셋이 있었다. 설법하며 세상에
머무르기 40여 년 동안에 도를 닦는 무리가 천 명이었다.
스님께서 정원(貞元) 4년, 무진(戊辰) 2월1일에 입적하니, 탑은 늑
담(늑潭)의 보봉산(寶峯山)에 있다. 칙명으로 대적선사 대장엄지탐
(大寂禪師大藏嚴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배상(裵相)이 액(額)을 썼고, 좌승상(左丞相) 호득흥(護得興)이 비
문을 지었다.
정수(淨修)선사가 송했다.
마조 도일(馬祖道一)선사는
돌처럼 쇠처럼 완전하게 수행하여
근본을 깨달아 초탈했으니
곁가지를 찾으면 헛수고만 할 뿐이다.
오래 정을 닦던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내던져버리고
남창(南昌)에서 크게 교화를 펴시니
싸늘한 소나무가 천척(千尺)이로다.
馬師道一 行全金石
悟本超然 尋枝勞役
久定身心 一時抛擲
大化南昌 寒松天尺
백장록
(四家語錄)
■ 일러두기
1. 백장어록 본문의 편집체지는 사가어록 임제어록을 기준으로 하여
행록·상당·감변·천화등으로 구분하였다.
2. 백장광록은 사가어록과 고존숙어록,속장경에 각각 체지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 책에서는 사가어록의 체제에 따라 일련번호를
달았다.
3. 사가어록과 조당집의 백장록은 그 구성과 내용상 서로간에 누락
된 부분과 상이한 점이 있어 함께 실었다.
4.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店,197
9)과 「중국불학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方便出版
社)를 참고 하였다.
5. 부록으로는 경안무자(慶安戊子)의 화각본(和刻本)의 사가어록과
해인사 소장본「조당집(祖堂集)」에 있는 백장록을 실었다.
백장어록
(百丈語錄]
1. 행록
1.
스님의 휘(諱)는 회해(懷海:749-814)이며, 복주(福州) 장락(長樂)사
람이다. 성은 왕씨(王氏)로 어린 나이네 세속을 떠나 삼학(三學)을
두루 닦았다. 그때 대적(大寂:709-788, 馬祖스님의 호)스님이 강서(江
西)에서 널리 교화를 펴고 있었으므로 찾아가 마음을 쏟아 의지하였
는데, 서당 지장(西堂智藏:735-814)·남전 보원(南전普願:748-834)스
님과 함께 나란히 깨친 분이라고 이름났었다. 그리하여 당시 세 분
의 대사가 우뚝 서게 된것이다.
스님이 마조(馬祖)스님을 모시고 가다가 날아가는 들오리떼를 보
았는데, 마조스님께서 물으셨다.
"저게 무엇인가?"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갈까?"
"날아갔습니다."
마조스님께서 갑자기 머리를 돌려 스님의 코를 한번 비틀자 아픔
을 참느라고 소리를 내질렀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날아갔다고 말해보라."
스님께서는 그 말끝에 느낀 바가 있었다.
시자들의 거처인 요사채로 돌아와 대성통곡을 하니 함께 일하는
시자 하나가 물었다.
"부모 생각 때문인가?"
"아니."
"누구에게 욕이라도 들었는가?"
"아니"
"그렇다면 왜 우는가?"
"마조스님께 코를 비틀렸으나 철저하게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이
다."
"무슨 이유로 깨닫지 못하였는가?"
"스님께 직접 물어보게."
그리하여 그 시자가 마조스님께 물었다.
"회해시자는 무슨 이유로 깨닫지 못했습니까? 요사채에서 통곡을
하면서 스님께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알테니 그에게 묻도록 하라."
그 시자가 요사채로 되돌아와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그대가 알 것이라 하시며, 나더러 그대에게 물으라
하셨네."
스님(백장)이 여기에서 깔깔 웃자, 그 시자가 말하였다.
"조금 전에 통곡하더니 무엇 때문에 금방 웃는가?"
"조금 전에 울었지만 지금은 웃네."
그 시자는 그저 멍할 뿐이었다.
2.
다음날, 마조스님께서 법당에 올라왔다. 대중이 모이자마자 스님께
서 나와서 법석(法席)을 말아버렸더니 마조스님은 바로 법좌에서 내
려왔다. 스님께서 방장실로 따라가자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말도 꺼내지 않았었는데 무엇 때문에 별안간 자
리를 말아버렸느냐?"
"어제 스님께 크를 비틀려 아파서였습니다."
"그대는 어제 어느 곳에 마음을 두었느냐?"
"코가 오늘은 더이상 아프질 않습니다."
"그대는 어제 일을 깊이 밝혔구나."
스님께서는 절하고 물러났다.
다른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어제는 우연히 외출하게 되어 미처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마조스님이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는 바로 나가 버렸다.
3.
스님께서 다시 참례하면서 모시고 서 있는 차에 마조스님은 법상
모서리의 불자(拂子)를 보고 있었으므로 스님께서 물었다.
"이 불자를 통해서(卽) 작용합니까, 아니면 이를 떠나(離) 작용합
니까?"
마조스님이 말씀하였다.
"그대가 뒷날 설법을 하게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대중을 위하겠느
냐?"
스님께서 불자를 잡아 세웠더니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통해서(卽) 작용하느냐, 이를 떠나서 작용하느냐?"
스님께서 불자를 제자리에 걸어 두자 마조스님께서는 기세 있게
악! 하고 고함을 쳤는데 스님께서는 곧장 사흘을 귀가 막었다.
이로부터 우뢰같은 명성이 진동하였다. 신도들이 청하여 홍주(洪
州)의 신오(新吳) 국경지대인 대웅산(大雄山)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거처하는 바위와 묏부리가 깎아지른 듯 높았기 때문에 스님을 백장
(百丈)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 머문 지 한 달이 뭇되어 현묘한 이치를 참구하는 남자들이
사방에서 찾아왔는데, 당시 위산 영우(위山靈우:771-853)스님과 황벽
희운(黃蘗希運)스님이 으뜸이었다.
4.
황벽스님이 스님의 처소에 와서 있다가 하루는 하직을 하면
서 말였다.
"마조스님을 친견하고 싶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어떤 법문을 남기셨는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리하여 마조스님께서 두번째 참례했을 때 불자를 세웠던 이야기
를 해주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법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때 내가 마조스님의 고함(喝)을 듣고
나서 그 뒤로 사흘을 귀가 먹었다."
황벽스님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내밀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네는 이제부터 마조스님의 법을 잇지 않으려는가?"
"아닙니다. 오늘 스님의 법문으로 마조스님의 큰 기틀(大機)에서
나온 작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마조스님을 모릅니다. 만
일 마조스님을 잇는다면 앞으로 나의 법손을 잃을것입니다."
"그래, 그렇지. 견처(見處)가 스승과 같으면 도는 반쯤밖에 안되고,
견처가 스승을 능가해야만 전수를 감당할 수 만하다. 그대는 스승을
훨씬 넘어설 만한 견처가 있군."
그 뒤에 위산스님이 앙산 혜적(仰山慧寂:803-887)스님에게 물었다.
"백장스님이 마조스님을 두번째 참례하고 불자를 세웠던 인연에서
두 분의 경지가 어떠하였겠는가?"
"큰 기틀(大機)의 작용을 환하게 나타낸 것입니다."
"마조스님은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는데, 몇 사람이 큰 기틀
(大機)을 얻고 몇 사람이 큰 작용(大用)을 얻었겠는가?"
"백장스님은 기틀을 얻었고, 황벽스님은 그 작용을 얻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가 말로 떠드는 무리(唱道師)일 뿐입니다."
"그래, 그렇지."
5.
마조스님이 하루는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산 뒤에서 옵니다."
"한 사람을 만났는가?"
"만나지 못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만나질 못했는가?"
"만났더라면 스님께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
스님께서"저의 잘못입니다"하자, 마조스님은 말씀하셨다.
"아니 내 잘못일세."
2. 상당
1.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신령한 광채 호젓이 밝아
육근·육잔을 아득히 벗어났고
영원한 진상 그대로 드러나
문자에 매이지 않도다
심성(心性)은 물듬이 없어
그 자체 본래 완전하나니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한다면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라네.
靈光獨耀 脫逈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2.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신통한 일입니까?"
"대웅산(大雄山)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는 그대로 후려쳤다.
3.
서당(西堂)스님이 스님께 물었다.
"스님은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법을 열어보이겠습니까?"
스님이 손을 두 번 오무렸다 펴자, 서당스님이 말하였다.
"다시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님은 손을 세 번 끄덕끄덕하였다.
4.
마조스님이 사람을 시켜 편지와 장(醬) 세 항아리를 보내왔다. 스
님께서는 법당 앞에 죽 놓으라 하고는 상당하더니 대중이 모이자마
자 주장자로 장항아리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말을 한다면 부수지 않겠지만 못하면 부수겠다."
아무리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깨버리고 방장실로
돌아갔다.
5.
어떤 스님이 통곡을 하며 법당으로 들어가자 스님께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부모를 함께 잃었습니다. 스님께서 날을 잡아 주십시오."
"내일 한꺼번에 묻어버리자."
6.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을 의지하여 의미를 이해하면 삼세 모든 부처님의 원수가 되
며, 경전을 떠난 한 글자는 마군의 말과 같다 하니 이럴땐 어찌합니
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동정(動靜)을 굳게 지키면 삼세 부처의 원수가 되며, 그렇다고 이
밖에서 따로 구하면 마군의 말이 된다."
7.
어느 땐가는 설법이 끝나 대중들이 법당에서 내려가는 차에 스님
께서 그들을 불렀다. 대중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 무엇인고!"
8.
스님께서 대중운력으로 밭을 개간하고 돌아오는 길에 희운 (希
運: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밭 개간이 쉽질 않지?"
"대중들이 다 일을 했습니다."
"도용(道用)만 번거롭게 하였군."
"어찌 감히 일을 그만두겠습니까?"
"얼마나 개간 하였는가?"
황벽스님이 밭을 매는 시늉을 하는데 스님께서 별안간 할(喝)하고
고함을 치자 황벽스님이 귀를 막고 나가버렸다.
9.
스님께서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 아래서 버섯을 따옵니다."
"산 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는데 너도 보앗느냐?"
황벽스님이 호랑이 소리를 내자 스님께서는 허리춤에서 도끼 를
집어들고 찍을 기세였다. 황벽스님은 스님을 잡아 세우면서 얼른 따
귀를 후리쳤다.
스님께서는 느즈막하게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중들아, 산 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있으니 그대들은 드나들면
서 잘 살펴다녀라. 노승도 오늘 아침 한 입 물렸다."
그 뒤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황벽스님의 호랑이 화두를 어떻게 보십니까?"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십ㄴ?"
"그때 백장스님이 도끼 한 방에 찍어 죽였어야 했는데 무엇 때문
에 이 지졍에 이르렀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는 그러면 어떻게 보는가?"
호랑이 머리에 탔을 뿐마 아니라 호랑이 꼬리도 붙들 줄 알앗습니
다."
"혜적(慧寂:앙산)아, 무슨 말을 그리 험하게 하는고."
10.
스님께서 상당할 때마다 늘 한 노인이 항상 법을 들고 대중과 함
께 흩어져 가다가 하루는 가지 않으므로 스님께서 물었다.
"서 있는 사람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노인은 말하였다.
"저는 과거 가섭불 (迦葉佛) 때 이 산에 살았습니다. 그때 한학인
이 묻기를,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인과에 덜어집니까' 하기에 '인과
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여 여우몸을 받았습니다. 지금 스님
께서 대신 이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를 해 주십시오."
"그럼 질문해 보게"
"많이 수행할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
노인은 말끝에 크게 깨닫고 스님께 하직을 고하면서 말하였다.
"제가 이제는 여우몸을 벗고 산 뒤에 있을 것입니다. 불법대로 화
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유나(維那)에게 종(白槌)을 쳐서 대중에게 점심뒤에
대중울력으로 죽은 스님을 장사지내겠다고 알리게 하였더
니, 대중들은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스님께서는 대중을 거느리고 산
뒤 바위 아래로 가서 죽은 여우 한 마리를 지팡이로 휘저어 꺼내더
니 법도대로 화장하였다.
만참(晩參)법문 때 스님께서 앞의 인연을 거론했더니, 황벽스님이
대뜸 물었다.
"옛사람은 깨닫게 해주는 한 마디 (一轉語)를 잘못 대꾸하였기 때
문에 여우몸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오늘 한 마디 한 마디 어긋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가까이 오게 . 그대에게 말해주겠네."
황벽스님이 앞으로 다가가 스님의 따귀를 한 대 치자 스님께서는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오랑캐의 수염이 붉다 하려 하였더니 여기도 붉은 수염 난 오랑캐
가 있었구나."
그때 위산스님은 회상에서 전좌 (典座:대중의 臥具나 음식 등 살
림을 맡음) 일을 보았는데 사마두타(司馬頭陀)가 여우 이야기(野狐
話頭)를 들어 질문하였다.
"전좌는 어떻게 하겠소?.
전좌가 손으로 문짝을 세 번 흔들자 사마가 말하였다.
"꽤나 엉성한 사람이군."
전좌가 말하였다.
"불법응 이런 도리가 아니라네."
그 뒤애 위산스님은 황벽스님이 물었던 여우 이야기를 들어 앙산
스님에게 물었더니,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황벽스님은 항상 이 솜씨(機)를 쓰십니다."
"말해보아라.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솜씨를 얻었는지, 스승에게서
배웠는지를."
"이는 스승에게서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 종지를 깨달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그렇지."
11.
황벽스님이 물었다.
"옛스님들은 어떤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까?"
스님께서 한참 말이 없자 황벽스님이 다시 물었다.
"뒷날 법손들은 무얼 가지고 법을 전해야 하겠습니까?"
스님께서는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여겼더니......."하시고는
방장실로 돌아갔다.
12.
스님께서 위산스님과 함께 일을 하다가 물었다.
"불이 있느냐?"
"있습니다?"
"어디 있느냐?"
위산스님이 땔감 한 토막을 가지고 입으로 훅 불어 스님께 건네주
었더니 받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별레먹은 나무 같구나."
13.
대중운력으로 김을 매는데 한 스님이 북소리를 듣더니 호미를 들
고 일어나면서 깔깔 웃고 돌아가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좋구나. 이것이 관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가신 방편이다."
뒤에 그 스님을 불러서 물었다.
"그대는 오늘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저는 이른 아침에 죽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북소리를 듣고
돌아가 밥을 먹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깔깔거리면서 크게 웃었다.
14.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누군가?"
"저 아무개입니다."
"그대는 나를 아는가?'
"분명히 압니다."
스님게서는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물었다.
"불자를 보느냐?"
"봅니다."
스님께서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15.
스님께서 한 스님더러 "장경(章敬)스님 처소로 가서 그가 상당 설
법하는 것을 보거든 너는 바로 좌구(坐具)를 펴고 절하라. 그리고 일
어나면서 한쪽 신을 벗어들고 그 위의 먼지를 소매로 털어 거꾸로
엎도록 하라" 하였다.
그 스님이 장결스님에게 가서 일러준대로 하였더니 장결스님은 말
하였다.
"저의 허물입니다."
16.
위산.오봉(五峯) . 운암 (雲巖)스님이 모시고 서 있는데 스님 (백
장)께서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서 속히 말해보라."
위산스님이 말했다.
"저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에게 말해주는 것은 사양치 않겠다만 뒷날 나의 법손을 잃을
까 염려스럽구나."
다시 오봉스님에게 물었더니, 오봉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도 닫으셔야만 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머리를 갈아 그대에게 보여 주겠다."
다시 운암스님에게 물었더니,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거론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얼른 말해보게."
운암스님이 "대사께서도 지금(목구멍과 입술) 있지 않습니까?" 하
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손을 잃었군."
17.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한 사람 가서 서당 (西堂)스님에게 말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누가 가겠느냐?"
오봉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려느냐?"
"서당스님을 뵙고 나서 곧 말하겠습니다."
"본 뒤에는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돌아와서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18.
한 스님이 서당스님에게 물었다.
"질문이 있으면 답변이 있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질문도 없고
답변도 없을 땐 어찌합니까?"
그러자 서당스님이 말하였다.
"썩을까 두려우냐?"
스님께서는 이 소문을 듣고 말씀하셨다.
"원래 이 사형을 의심했었지."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일합상(一合相)도 얻지 못한다."
1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한 사람은 오래도록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부르다 하지 않는
다."
대중은 대꾸가 없었다.
20.
운암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매일 구구하게 누구를 위하십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가 스스로 하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그에겐 자기 살림이 없다."
21.
스님께서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
더니 불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미께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부처님이시다"하자,어린이가 말하였다.
"모습은 사람과 닮아 차이가 없군요. 저도 이 다음에 이렇게 되도
록 하겠습니다. "
3. 천화
스님께서는 언제나 수고로운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대중들 보다
솔선하였다. 대중들이 모두가 민망하여 도구를 일찍 감추고 그만두
시라고 청하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게 덕이 없어서 그러니 다른 사람을 수고롭게 해서야 되겠느
냐."
스님께서는 이리저리 연장을 찾다가 찾질 못하면 밥을 굶으셨다.
이런 연유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 먹지말라"는 말씀이 세상
에 퍼지게 된 것이다.
스님께서 당나라 원화(元和) 9년 (814)정월 17일에 시적 (示寂)하
시니 춘추는 95세였다.
장경 (長慶) 원년(821)에 칙명으로 시호를 대지선서(大智禪師)라고
하엿으며, 탑은 대승보륜 (大勝寶輪)이라 이름하였다.
백장광록
(百丈廣錄)
백정광록 (百丈廣錄)
1.
말로는 불법과 세속을 가려야 하고, 총론과 각론을 나누어야 하며,
궁극적인 교설(了義敎語)인지 방편교설(不了義敎語)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궁극적인 교설로는 맑음을 논하고 방편교설로는 탁함을 논
하며,염법(染法) 쪽의 허물을 설명하여 범부를 가려내고, 정법(淨法)
쪽의 허물을 설명하여 서인을 가려내야하니, 이것은 9부교(九部敎:교
학의 총칭)에 입각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목전의 눈 먼 중생에게는 선지식의 지도를 받게 해 주어야 하며,
귀머거리 속인 앞에서 말할 경우에는 직접 그를 출가시켜 계율을 지
키고 선정을 닦으며 지혜를 배우게 해 주면 된다.
한편 테두리를 벗어난 범부에게는 그런 식으로 지도해 서는 안되
니 유마힐 (維摩詰)이나 부대사(傅大士) 같은 부류가 여기에 해당한
다.
백사갈마(白四갈磨)를 받은 사문 앞에서 말할 경우, 그들은 계·정·
혜(戒定慧)의 힘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으니, 다시 그런 식으로 설명
한다면 그것을 맞지 않는 말(非時語)이라 할 것이며, 맞지 않는 설명
이르모 꾸며서 하는 말(綺語)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문에게라면
청정한 법 쪽의 허물을 설명해야 한다. 즉 있다 없다(有無)하는 등의
법을 여의고, 닦고 중득하는(修證) 모두를 떠나며, 그것을 떠났다는
것조차 떠날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물든 습기(習氣)를 깎아 없
애려는 사문도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없애버리지 못했다면 역시 귀
머거리도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없애버리지 못했다면 역시 귀머거리
속인이라 할 것이니, 그에게도 선정을 닦을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한
다.
이승(二承)의 경우는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다 쉬어 버렸으나 탐
내는 마음이 없어진 경계에 눌러앉아 옳다고 여기나 이는 무색계(無
色界)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광명을 가리고 부처님 몸에 피
를 내는 것이므로 그에게도 선정을 닦고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하며,
깨끗하고 더러움을 구별해 주어야 한다. 더러운 법이란 탐욕·성냄.
·애착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우며, 깨끗한 법이란 보리·열반·해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운다·
여기에서 비추어 깨달으면(鑑覺) 깨끗하고 더러운 양쪽 갈래와 범
부다 성인이다 하는 법과 색·소리·냄새·맛·촉감·생각과 세간·
출세간법에·털끝만큼의 애착(愛取)도 전혀 없게 된다. 이미 애착하
지 않게 되고 나서는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아 옳다고 여기는데 그
것을 처음선(初善)이라 한다. 이것은 조복된 마음(調伏心)에 안주하
는 것이며 뗏목이 아까와 버리지
못하는 성문으로서 이승(二乘)의 도이며, 선나과(禪那果)이다.
애착하지도 않고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지도 않으면 이를 중간선
(中善)이라 한다. 이는 반자교(半子敎)로서 아직은 무색계(無色界)이
나 이승과 마군의 도에 떨어짐은 면하였으나, 선병(禪炳)과 보살의
속박이 있다.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 앉지도 않고 눌러앉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지막선(後善)이라 한다. 이는 마자교(滿字
敎)로서 무색계에 떨어짐을 면하고, 선울 닦는 병통에 떨어짐을 면
하며, 보살승에 떨어짐을 면하고, 마왕의 지위에 떨어짐을 면한다.
그러나 지혜(智)에 막히고 지위(地)에 막히고 행(行)에 막혀 자기 불
성(佛性)을 보는 데에는 마치 밤에 무엇인가를 보는 것과 같다.
불지(佛地)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二愚)을 끊는다 하는 경우는 첫
째 미세소지우(微細所知愚), 둘째 극미세소지우(極微細所知愚)이다.
그러므로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미진(微塵)을 타파하여 경전(經卷)
을 벗어났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가령 이 3구(三句:세가지 善)를 꿰뚫어 세 단계에 매이지 않는다
면 교학(敎家)에서는 그것을 세 번 뛰어 그물을 벗어난 사슴에 비유
하며 번뇌를 벗어난 부처라고 하는데 그를 구속할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연등불(然燈佛)의 뒷 부처님이 속하며, 최상승(最上乘), 상상
지(上上智)로서 불도 위에 선 것이다. 이 사람은 불성을 가졌으며 스
승(導師)으로서 막힘없는 바람과 막힘없는 지혜를 구사한다. 뒤에
가서는 인과와 복덕·지혜를 자재하게 굴
리니, 수레를 만들어 인과를 실어 다르며 삶에 처하여도 삶에 매이
지 않고 죽음에 처하여도 죽음에 매이지 않으며, 5음(五陰)에 처하여
도 문이 여닫히듯 5음에 매이지 않아, 가고 머뭄에 자유롭고 드나듬
에 어려움이 없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위와 우열을 논할 것이 없으며 개미 몸
을 받아서까지도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불가사의한 정토일 것
이다.
그렇다 해도 이는 속박을 풀어주는 말일 뿐이니 저들 스스로에게
부스럼이 없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부처다 보살이다 하는 것도 부스럼이니, 있다 없다는 식으로 법을
설명했다 하면 모조리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것이다. 일체법은 모두
유·무(有無)에 포함되는데, 10지보살(十地菩薩)은 탁류(濁流)가 되
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청류(淸流)가 된다. 맑은 모습은 곱게 설
명하지만 그것은 흐린 쪽의 허물만 말하는 것이 된다.
지난날 10대제자(十大弟子) 사리불(舍利弗)·부루나(富樓那)와 바
른 믿음을 가진 아난(阿難)·삿된 믿음을 가진 선성(善星) 등은 저
마다 본보기나 법칙이 있었는데, 모두들 부처님에게 설파당했던 것
이다. 그들은 팔만겁을 선정에 머무는 사선팔정(四禪八定)의 아라한
은 아니었으나 행할 바를 의지하고 집착하여 정법(淨法)이라는 술에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성문인(聲聞人)의 불법을 들으면 위 없는 도를 행할 마
음을 내지 못하고 그래서 선근(善根)을 끊은 불성 없는 사람이라 하
는 것이며, 경정(敎)에서는 이를"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는 두려워할 만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한 생각 마음이 물러나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쏜살같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물러난다고만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일방 적으로 물
러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문수.관음.세지 등이 수다원(須陀洹)
지위로 되돌아와 같은 부류가 되어 이끌어 주는 경우를 물러났다 할
수는 없으니, 그런 상황을 수다원이라 부를 뿐이다.
비추어 깨달아(鑑覺) 유.무 모든 법에 매이지 않고 3구(三句)와 맞
고 안맞는 모든 경계를 꿰뚫으면 백천만억의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
하였다는 소문을 듣는다 해도 듣지 못한 긋하고, 그 듣지 않는다는
것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 이런 사람을
두고 물러났다 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매어 둘 수 없는데 이를 "부처님은 늘 세간에 계시면서도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부처님이 법륜 (法輪)을 굴리느라
물러난다고 해도 불.법.승 (佛法僧)을 비방하는 것이며 ,부처님이 법
륜을 굴리지 않아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불.법.승을 비방하는
것이다.
조법사(肇法師)가 말씀하시기를 , "보리의 도는 재볼 수 없음이 위
없이 높고 끝없이 드넓으며 끝없이 깊숙하여 헤아릴 수 없다. 그러
나 말을 하면 살받이가 되어 화살을 부르는 꼴이다" 라고 하엿다.
비추어 깨닫는다(鑑覺) 할 때, 그것은 더러움에 대한 깨끗함을 말
하는 것은 아니니 비추어 깨닫는 것이 그런 것이라 인정 한다면 비
추어 깨닫는 것 바깥에 따로 무엇이 있어 모조리 마
군의 말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비추어 깨닫는다는 것을 붙들고 머
문다면 그것은 마군의 말과 같으며, 자연외도 (自然外道) 의 말이라
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추어 깨닫는다는 것이 자기 부처라
해도 그것은 짧은 말이며 헤아리는 말이니 여우 울음소리와도 같아
서 오히려 끈끈하게 달라붙는 집착 쪽에 속한다.
스스로 알고 절로 깨닫는 이것이 자기 부처인 줄 전혀 알지 못하
고, 밖으로 치달려 부처를 ㅊ는다. 선지식의 설법을 의지하여 스스
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 나오게 하는 약을 지어 밖으로 치달려
구하는 병을 치료한다. 이윽고 밖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게 되면
병이 나았으니 약은 버려야 한다.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데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선병(禪病)이
며, 영락없는 성문이다. 마치 물이 얼음이 되면 얼음 자체가 물이
긴 하나 목마름을 풀어주기 어려운 것과도 같으며, 또는 꼼짝없이
죽을 병이라 하기도 하니 세상 의원들도 속수무책일 뿐이어서 원래
이들은 부처가 아니다.
부처라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 부처란 중생 편에서 쓴 약이
니 병이 없으면 먹을 필요가 없다. 약과 병이 함께 없으지면 맑은
물과 같다. 부처란 감초를 넣은 물이나 꿀물과도 같아 매우 달콤한
것이나 맑은 물 쪽에서 보면 원래 없다거나 있다거나를 집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이 이치는 누구나 본래 가진 것이며, 모든 부처와
보살은 구슬(珠)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그것은 원래 어떤
물건이 아니므로 그것을 알 필요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으며, 그
것이 옳다 그르다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상대적인 개념 (兩頭可)을 끊기만 하면 된다. 있다느니 있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끊고, 없다느니 없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끊으
면 양쪽의 자취가 나타나지 않아 양쪽에서 그대를 잡아당겨도 끌리
지 않으며, 어떠한 테두리(量數)도 그대를 얽어 매지 못한다 . 그
리하여 부족하거나 완전하지도 않고 범부도 성인도 아니며 밝음도
어두움도 아니다. 앎이 있음도 앎이 없음도 아니고, 얽매임도 해탈
도 아니어서 어떠한 이름도 붙일 수 없다. 어째서 실다은 말이 아
닌가. 허공을 다듬어 불상을 만든다든가 허공을 청.황.적.백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법은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고 비유할 수도 없으므로, 법
신은 함이 없어 어떠한 테두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法身無爲不墮諸
數)"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의 몸은 이름이 없어 설명할 수 없
으며,실다운 이치인 공문(空門)에는 닿기 어렵다. 마치 어디든지 앉
을 수 있는 파리도 불꽃 위에는 앉지 못하듯 중생도 그러하여 어디
든 반연할 수 있으나 반야(般若)에는 반연하지 못한다.
선지식을 ㅊ아뵙고 하나 하나 알기를 (知解)구한다면 그것은 선지
식 마군이니, 말과 견해를 내기 때문이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내어 일체중생을 다 제도한 뒤에야 성불하겠다도 발원 하면 이는 보
살법지(法智)의 마군이니,서원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齋戒)
를 지키고 선(禪)을 닦으며 지혜(慧)를 배우는 것은 유루선근(有漏
善根)이다. 그들은 비록 도량에 앉아성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항
하사수 모래알만큼의 사람을 제도 한다 해도 모두 벽지불과(壁支佛
果)를 얻을 뿐이니, 이는 선근 (善根)의 마군으로서 탐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탐착하지 않고 물들지 않으며 신령한 이치만이
오롯이 남아 매우 깊은 (禪定)에 들어앉아 더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삼매(三昧)의 마군이니, 오래동안 맛에 빠져 있기 때
문이다.
나아가 열반에 올라 탐욕을 떠나 고요해지면 그것은 마군의 업
(業)이다. 지혜로 해탈하였다 해도 얼마간 마군의 그물을 벗어나지
않으면 비록 백권 위타경 (圍陀經)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모조리 지
옥의 찌꺼기로서 부처님과 같아지고자 하나 될 수 없는 일이다.
선.악과 유.무 등 보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공(空)에 떨어지는데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눈 줄을 모르므로 도
리어 공에 떨어지는 것이다. 부처와 보리 ,유,무 등의 모든 법을 구
하는 것은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는 것이다.
지금 거친 밥으로 생명을 잇고 헤진 옷을 기워 추위를 막으며 목마
르면 물을 마시는 일 외에는 모두 유.무 등의 법일 뿐이어서 털끝만
큼도 매인 생각이 없다면 이 사람은 점차 가볍고 밝아질 소지가 있
다.
선지식은 있음(有)에 집착하지 않고 없음(無)에도 집착하지 않아
서 십구(十句) 마군의 말을 벗어나 말을 꺼내도 사람을 얽어매지 않
는다. 설법을 해도 스승이라 자칭하지 않고 골짜기의 메아리같이
말이 천하에 가득 차 입으로 짓은 허물이 없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쏠린다.
만일 "나는 설법할 수 있다"라든가 "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이
다"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군의 말이다. 또 "눈빛이 부딪치는 곳에
도가 있다"라든가, "부처는 부처가 아니고, 보리.열반.해탈..." 하면
서 근거없는 말을 한다. 또한 하나하나 알음알이 (知解)를 근거없이
설명하며 한손을 들고 한 손가락을 세우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선
(禪)이고 도 (道)다"라고 한다.
이런 말은 사람을 얽어매는 것으로 그칠 기약이 없이 비구에게 결박
만 더해주는데, 말하지 않는다 해도 구업(口業)을 짓은 것이다. 그
러니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는 말아야 할 것
이다.
방편교설(不了義敎)에는 인간.천상의 스승이 있고, 부처님(導師)이
있으나 궁극적인 교설(了義敎)에서는 인간.천상에게 스승이 되지 않
으며 법을 스승삼지도 않는다. 마음(玄鑑)을 붙잡지 못했거든 우선
궁극적인 교설에 의지해야 할 것이니 조금은 가까운 데가 있기 때문
이다. 방편교설은 귀머거리 속인 앞에서나 설명하는 것이 합당할 뿐
이다.
한편 유·무 모든 법에 머물지 않고 머뭄 없는 데에도 머물지 않
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그를 큰 선지식 또
는 오직 한 분이신 부처님이라 한다. 이 큰 선지식에는 두 사람이
없으니 나머지는 모조리 외도이거나 마군의 말이다.
여기서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모든 유무 대경법(對境法)을 깰
뿐이다. 탐착하고 물들지 말것이며, 결박을 푸는 일을
하지 않기만 하면 되니, 사람을 가르치는 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
다. 사람을 가르칠 말이 따로 있고, 사람에게 줄 법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이를 외도나 마군의 말이라 한다.
궁극적인 교설인지 방편교설인지를 알아야 하며, 생사를 말하는
것인지 약병(藥病)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또한 반대로 비유
를 든 것인지(逆喩) 유사한 비유를 든 것인지(順喩)를 알아야 하며,
총론인지 각론이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닦아서 부처가 된다", "닦을 것도 있고 깨칠 것도 있다",
"마음이 곧 부처다","마음 그대로가 부처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
다."라고 한 것은 방편교설이고 부정논법이 아니며 총론이고 한 됫
박쯤 되는 말이다. 또한 염법(染法) 쪽만을 가려 하는 말이고 유사한
비유를 드는 말이며, 죽은 말이고 범부 앞에서 하는 말이다.
한편"닦아서 부처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다","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부처도 부처님 말씀이
다"라고 한 것은 궁극적인 교설이고 부정논법이며, 각론이고 백 섬
들이 말이다. 또한 3승교(三乘敎) 밖의 말이고 반대 비유를 드는 말
이며, 정법(淨法) 쪽에서 하는 말이다. 살아 있는 말이며 수행 지위
에 있는 사람 앞에서 하는 말이다.
수다원으로부터 공장 10지(十地)에 오르기까지 무슨 말이든 있기
만 하면 모조리 더러운 법진(法塵)에 속하고, 번뇌 쪽에 포함되며,
방편교설에 속한다. 궁극적인 교설에서는 지키라(持)하고, 방편교설
에서는 범하라(犯)하는데 부처님의 경지
에는 지키고 범할 것이 없어 궁극적인 교설과 방편교설을 다 인정하
지 않는다.
싹을 보고 토질을 알아내고 탁함으로 맑음을 분별하는데, 여기서
비추어 깨닫는 것을 맑은 쪽에서 헤아려 본다면 그 비추어 깨달음은
맑음이 아니고, 비추어 깨달음아니 해도 역시 맑음이 아니며, 맑지
않음도 아니며, 견해(見)도 아니다. 물이 더러우면 물이 더럽다고 말
하나 물이 맑으면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으니, 말을 하면 도리어
그 물을 더럽히는 것이다.
묻지 않는 물음도 있고 설명 없는 설명도 있다. 부처님 부처를 위
해 설법하지 않으니 평등한 진여법계(眞如法界)에는 부처가 없고, 중
생을 제도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부처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은 참다
운 복전(福田)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주관인지 객관인지 그 말을 가려내야 한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법에 탐착하고 물들어 그 경계에 혹하면 자기 마음이 머물지 않
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생각을 내지 않는다는 것
에도 머물지 않으면, 자기 마음이 부처이고 관조하는 작용은 보살에
속한다. 마음마음은 주인(主宰)이고 관조하는 작용은 바깥경계(客塵)
에 속하는데 파도로 물을 설명하듯 만상을 관조하고는 할 일이 없
다. 이렇게 고요함과 동시에 관조하면서도 현묘한 이치라고 자처하
지 않으면 자연히 고금을 관통할 수 있다. 그래서"신령함은 관조하
는 일(功)이 없
으나 지극한 효험(功)이 항상 있어서 어디서든 부천님(導師)이 될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중생의 분별하는 성품(性識)은 한번도 부처님의 단계를 밟은 적이
없기 때문에 끈끈하게 집착하는 성품으로 때때마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에 집착한다. 그들은 잠깐 묘한 이치를 맛보아도 약이 되지
못하며, 잠깐 틀을 벗어난 도리를 들어도 믿음이 가지 못한다. 그러
므로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서 49일을 말 없이 사유(思惟)하셨
다.
지혜가 깜깜하여 무어라 설명하기도 어렵고 비유할 수 도 없기 때
문에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해도 불·법·승을 바탕하는 것이
며,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고 말해도 불·법·승을 비방하는 것이다.
불성이 있다고 하면 집착한다는 비방을 듣고 불성이 없다고 하면 허
망하나는 비방을 들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불성이 있다 하
면 보태는 오류(增益謗)를 범하고,불성이 없다 하면 덜어내는 오류
(損減謗)를 범하며, 불성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하면 앞뒤가
안맞는 오려(相違謗)를 범하고, 불성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하면 희론의 오류(戱論謗)를 범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중생이 해탈할 기약이 없겠고, 처
음부터 말을 하면 중생이 또 말에 따라 이해를 하여 적은 데는 덧붙
이고 많은 것은 덜어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설법을 하
지 않고 빨리 열반에 들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그 뒤 과거 부처님
모두가 3승법(三乘法)을 말씀하셨음을 돌이켜 생각하고는 방편설로
거짓 이름을 세웠다. 본래 부처가
아닌데 그에게 부처라 하고, 본래 보리가 아닌데 보리·열반·해탈
등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백 섬을 지고는 일어나지 못함을 알
고 우선 한되·한홉을 지워주었으며. 궁극적인국 교설은 그가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방편교설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하여 선법(善
法)이 퍼져 악법(惡法)을 누르기도 하였으나 선과(善果)의 기한이 다
되면 악과(惡果)가 바로 도래하였다. 부처가 되면 중생도 나타나고,
열반에 들면 생사가 나타나며, 밝아지면 어둠이 오는 것이다. 그러
나 이것들은 엎치락 뒤치락하는 유루인과(有漏因果)로서 그것을 받
기를 생각하지 않을 자가 없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거든 상대적인 개념을 끊
기만 하면 되니, 어떠한 테두리도 그를 매어두지 못할 것이다. 그렇
게 되면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다. 높낮
이도 없고 평등도 없으며 가고 옴도 없다.
문자가 집착하지만 않으면 그대를 막는 양쪽 극단이 그대를 붙들
지 못하여 번갈아 나타나는 고락과 엇갈리는 명암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진실된 실제 이치가 진실이 아니기를 하며 허망도 허망이
아니기도 하니, 다듬을 수 없는 허공처럼 테두리를 갖는 물건이 아
니다. 마음에 조금이라도 알음알이를 낼틈을 준다면 테두리에 메이
게 된다. 또한 괘(卦)의 조짐이 금·목·수·화·토에 관할되듯 아
교풀이 다섯 군데를 함께 붙여 버리듯 마왕이 자유롭게 자기 집으로
붙잡아 갈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처음선·중간선·마지막선 세 구절로 연
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에게 좋은 마음을 내도록 하는
것이며, 중간엔 좋다는 마음마저 타파해야 하며 그런 뒤에야 비로소
마지막선이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살은 보살이 아니니, 그래서
보살이라 한다","법은 법이 아니며, 법 아님도 아니다"라 하니, 같은
말이다. 여기서 한 구절만을 설명하면 중생들은 지옥에 빠지며, 세
구절을 한꺼번에 설명하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니, 그것은 부
처님과는 상관없는 일이 된다.
지금의 '비추어 깨달음'이 자기 부처라는 것까지 설명하면 처음선
(初善)이며,지금은 '비추어 깨달음'에 붙들고 머물지 않는다면 중간선
(中善)이며, 불들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이는
마지막선(後善)이다. 이상과 같다면 연등부처의 뒷 부처에 속하니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부처는 법부도 아니고 성인
도 아니라고 잘못 말하지 말라.
이 땅의 초조(初組)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하는 것도 없고 성스러
움도 없어야 성스러운 부처님이다."하고 하셨다. 여기서 성스러운 부
처란 9품(九品)의 망상꾸러기(精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용·축생
등의 부류와 제석범천 이하 모든 것들은 다신통변화를 부릴 수 있
고, 상품(上品)의 정령도 백겁 고금의 일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찌
그들을 부처라 하겠는가. 저 아수라 왕은 수미산 두 개와 맞먹을 정
도로 몸이 매우 크다. 그러나 제석천과 싸울 때에야 힘이 그만 못하
다는 것을 알고 배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연뿌리 구멍으로 들어가 숨
는다. 그들의 신통변화와 변재가 적은 것은 아니나 부처님의 가르침
이라 할
수는 없으니 절차와 등급이 느슨하여 오르고 내림이 같지 않기 때문
이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때를 탐진(貪瞋)이라 하고, 깨닫고 나면 부처
님의 지혜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옛날과 사람이 달라진 것
이 아니라 옛날 하던 것(行履處)과 다를 뿐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2.
누군가가 물었다.
"초목을 베고 땅을 개간하면 죄보를 받습니까?"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가 있다고 단정하지도 못하고 죄가 없다고 단정하지도 못한다.
죄가 있고 없고는 사실 그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있다 없는 하는
모든 법에 탐착하고 물들어서 버리고 취하는 마음이 남아 3구(三句)
를 꿰뚫어 마음이 허공과 같지만 허공 같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단정한다."
다시 말씀하셨다.
"죄를 짓고 나서 죄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하면 말이 안되고,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안 될 말이다. 율
(律)에서 말하기를, '본래 미혹하여 살인을 하거나 나아가 서로 살인
을 한다 해도 살생죄라 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선종(禪宗)
문하에서이겠는가. 마음이 허공 같아서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며, 허
공 같다는 생각도 없는데 죄가 어디
에 자리하겠는가."
다시 말씀하셨다.
"선도(善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않으면 된다."
"안팎의 마음을 녹여 다하기만 하면 된다."
"경계를 관조하는 쪽으로 말하지만 지금 유·무 등 모든 법을 관
하는데 아무 탐욕과 집착이 없고 또한 집착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공부하면 될 것이다. 공부는 때묻은 옷을 빠는 것과도 같
은데 옷은 본래 있는 것이나 때는 밖에서 온 것이다. 유·무 등 모
든 소리와 색은 기름때와도 같은 것이니 아예 마음에 두지 말라. 보
리수 아래 32이상과 80종호는 색에 속하고, 12분교(十二分敎)는 소
리에 속한다. 그러니 이제 유·무와 모든 성색으로 흐르는 허물을
끊고 마음을 허공같게 해야 한다. 이렇게 공부하기를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해야 할 것이다.
죽는 마당에서는 옛날부터 익숙했던 길을 찾아간다 해도 오히려
끝까지 가지 못하는데, 그때 가서 새로 조복하여 공부한다면 기약이
없다. 죽는 순간에는 좋은 경계가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나는데 마음
으로 더 좋아하는 곳을 먼저 받게 된다. 지금 나쁜 일을 하지 않으
면 그때 가서도 나쁜 경계가 없고 설사 나쁜 경계가 있다 해도 좋은
경계로 변한다. 죽는 순간에는 두렵고 미친 마음으로 자유롭지 못하
다.
낱낱의 경계법에 아무런 애욕과 물들임이 없다 해도 그렇다는 생
각에 머물지 말아야 자유인다. 지금은 인(因)이고 죽음
은 과(果)인데 과업(果業)이 나타나면 어째서 두려워 하는가.
옛과 자금이 달라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에도 지
금이 있다면 지금에도 옛이 있을 것이며, 옛날에 부처가 있었다면
지금도 부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유를 얻는다면 미래
세상까지 자유로울 것이다.
한 생각 한 생각이 유·무 등 모든 법에 매이지 않는다면 예나 지
금이나 부처가 사람이고 사람이 부처일 뿐이다. 이것이 삼매정(三昧
定)이기도 하니, 정을 가지고 정에 들어갈 필요가 없고, 선(禪)을 가
지고 선을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을 필요
도 없다.
다음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법은 법을 구하지 않고 법은 법을 얻지 않으며, 법은 법을 행하
지 않고 법은 법을 보지 않아서 자연히 법을 얻는 것이지, 얻음으로
써 다시 얻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렇게 바르게 법을 사유
하여 독존해야 하며, 독존한다고 인식하는 법지(法智)도 없어야 한
다. 본성은 그대로가 여여(如如)하여 인(因)에 의해 자리가 매겨지
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체결(體結)또는 체집(體集)이라 이름하기를
한다. 지혜로 알 수도 없으며 식(識)으로 분별할 수도 없는 것으로
서 사량이 끊긴 곳이며 응적(凝寂)한 자체가 다하여 헤아림이 영원
히 없다. 마치 바다에서 큰 물결이 다하면 파랑이 다시는 생기지 않
는 것과도 같다."
또 말씀하셨다.
"큰 바닷물에 바람이 없다가 홀연히 소용돌이가 생기면 그
것이 생긴 줄을 안다하니, 이것은 미세한 가운데 거침(細中之추)이
다. 앎에서 앎이 없어져 여여(如如)함으로 돌아감은 미세한 가운데
미세함(細中之細)이니, 이것은 부처의 경계이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아는 것이니 이를 최고의 삼매(三昧之頂), 삼매왕(三昧王) 또는 이염
지(爾염智)라고도 한다. 이것이 모든 삼매를 내고 모든 법왕자(法王
子)를 관정(觀頂)하며·색·성·향·미·촉·법 모든 국토에서 등정
각(等正覺)을 이루고 안팎으로 통달하여 어디든 막힘이 없다.
일색(一色)이 일진(一塵)이고 일불(一佛)이 일색(一色)이며 일체불
이 일체색이고, 일체진이 일체불이다. 또한 모든색·성·향·미·촉
·법도 이처럼 낱낱이 모든 세계에 두루 가득하다.
이는 미세한 가운데 거친 것으로서 좋은 경계이니, 모든 상근기가
알고 느끼고 보고 듣는 것이며, 모든 상근기가 생사에 드나들면서
일체 유·무 들을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상근기가 설명하는
것이며, 상근기가 드는 열반이며, 더할 것 없는 도이며, 견줄 것 없
는 주문(呪)이다. 모든 말씀 가운데 으뜸가는 가정 심오한 말씀으로
다다를 사람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이 아껴주신다. 마치 맑은 파도가
맑고 흐리며 깊고 넓은 물의 모든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모
든 부처님이 아껴주는 것이다. 행주좌와에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당장 깨끗하고 밝은 몸을 나타낼 것이다.
또 말씀하셨다.
"그대들 스스로는 평등하고 말도 평등하듯 나도 그러하며 불
국토 하나 하나마다 소리·냄새·맛·촉감 등 모든 일이 다 마찬가
기다. 이로부터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오르기까지 가로 세로가
모두 이와 같다. 처음 안 것을 붙들고 깨달았다(解)고 한다면 그것은
'정결(頂結)'또는 '정결에 떨어졌다(墮頂結)'고 한다. 그것은 모든 번
뇌의 근본으로 스스로 지견(知見)을 내어 밧줄도 없이 자기를 결박
하기 때문이다. 알 대상에 일부러 얽매여 25유(二十五有)의 세간이
있게 되면, 다시 일체 번뇌문을 흩어 다른 사람을 결박한다. 여기서
처음 안다 한 이승의 견해를 '이염식(爾염識)'또는 '미세한 번뇌'라
한다. 바로 이것을 끊어없애고 나면 '정신을 돌려 공(空)의 소굴에
안주한다' 하며, '삼매의 술에 취한다'고 한다. 또한 '해탈 마군에게
결박되어 세계의 생성과 파괴가 좌우되는 정력(定力)이 다른 국토로
새어나가도 전혀 느끼거나 알지 못한다'하며, '두려워할 해탈의 깊은
구덩이'라 하여 보살은 모두가 이를 멀리 여윈다.
경전을 읽고 교학을 공부하며 말씀을 배우는 것은 필연코 자기에
게로 환원되어야 한다. 모든 말씀은, 지금의 비추어 깨닫는(鑑覺) 성
품이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경계에 휩쓸리지 않음을 밝혀주는 것이
다.
그대들 여러스님네가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경계에 붙들려 있음
을 반조해 본다면 그것은 금강의 지혜(金剛智)로써 자유롭게 홀로
설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줄 알지 못한다면 12부경을
다 외워낸다 해도 증상만(增上慢:깨치지 못하고서 깨쳤다고 착각하
는 자만심)을 이룰 뿐이어서 부처님을
기만하는 것이지 수행이랄 수 없다. 모든 색과 소리를 떠나고, 떠났
다는 그것에도 머물지 않으며, 안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수행이
랄 수 있다.
경전 읽고 교학을 공부하는 것은 세속의 입장에서라면 훌륭한 일
이겠지만 이치를 밝힌다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니, 10지 수행인
도 벗어나지 못하고서 생사 강물에 들게 되는 것이다. 3승교(三乘
敎)는 다만 탐내고 성내는 등의 병통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지 그
의미를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 이해가 탐욕이 되고 탐욕은 다시
병통이 되기 때문이다.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떠나고 떠났다는 그것에서도 떠나 3
구 바깥으로 철처히 벗어나면 저절로 부처와 다를 것이 없다. 자기
가 부처인데, 부처가 되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있
겠는가. 그저 부처 아닌 것이 근심일 뿐이다.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에 얽매이면 자유롭지 못하다. 이치를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복과
지혜부터 갖추면 복과 지혜에 실려다니는 것이 마치 천민이 높은 분
을 부리는 꼴이 되니, 우선 이치를 확실히 안 뒤에 복과 지혜를 갖
추는 것이 좋겠다. 복과 지혜를 갖추려 하는가. 그때그때마다 금을
흙으로 만들고 흙을 금으로 만들며, 바닷물을 소락(소酪)으로 변화시
키고 수미산을 쪼개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사해바닷물을 움켜
서 한 터럭에 넣으며, 하나의 의미에서 무량한 의미를 내고, 무량한
의미에서 하나의 의미를 내야 할 것이다."
또흔 이렇게도 말하였다.
"실각(失脚)해서 전륜왕(轉輪王)이 되면 4천하(四天下) 사람
들에게 하루에 10선(十善)을 행하게 하나 그 복과 지혜는 자기를 비
추어 깨닫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을 왕이 될 인연이라 하나.
유·무 모든 모든 법에 반연하고 집착함을 전륜왕이라 하는 것이다.
지금 가슴속으로 유·무등 모든 법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아서 4구
(四句) 밖으로 벗어남을 비었다(空)고 한다.
공(空)을 불사약(不死藥)이라고도 하는 것은 죽은 왕(前王)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불사약이라고는 하나 왕과
함께 복용하니 두 가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가지도 아니다. 그러
므로 하나다 둘이다 하는 생각을 내면 역시 전륜왕이라 할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복과 지혜와 네가지 물건(四事:의·식·주·약)으
로 4백만억 아승지세계의 6취4생(六趣四生)에게 공양하여 꼬박 80년
을 그들의 바램을 들어주고는 뒤에 생각하기를,'그러나 이 중생들은
모두가 노쇠하였으니 불법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수단원과(須陀洹果)
를 얻게 하고 아라한도(阿羅漢道)까지도 얻게 하리라'한다 하자. 중
생에게 즐겁게 하는 것만을 베푼다 해도 그 공덕이 한량이 없는데,
하물며 수다원과와 아라한도를 얻게 한 이 시주(施主)의 무량무변한
공덕에랴. 그러나 50번째 사람이 경전을 듣고 따라서 기뻐한(隨喜)
공덕만은 못한 것이다.
「보은경(報恩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마야부인은 5백의 태자를 낳아 그들 모두 벽지불과(벽支佛果)를
얻었는데 멸도(滅度)하고는 각각 탑을 세워 공양하고 낱낱에게 예배
하며 찬탄하였다. 그러나 위 없는 보리를 얻을 자
식 하나 낳아서 내 마음(心力)더느니만은 못하다."
지금 백천만 대중 가운데서 체득한 사람이 하나 있다면 그 가치는
삼천대천세계와 맞먹을 만하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이치를 깊이 깨
달으라고(玄解) 늘 대증에게 권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이치가 현묘
하여 복과 지혜를 부릴 수 있다면 마치 높은 사람이 천한 사람을 부
리는 것과도 같으며, 머물지 않는 수레와도 같다.
그런데 이것을 붙들고 깨달았다는 생각을 내면 '상투 속의 구술'이
라 하며, 또는 '값을 매길 수 있는 보배 구슬'이라 하며, 또는 '똥을
퍼 들여온다'고도 한다. 이것을 붙들고 깨달았다는 생각을 내지 않
으면 왕의 상투 속에 있는 밝은 구슬을 그에게 주는 것과도 같으니
'값을 매길 수 없는 큰 보배'라 하며, 또는 '똥을 퍼냈다'고도 한다.
부처님은 속박을 벗어난 사람인데도 도리어 얽매임 속으로와서 이
렇게 부처가 되셨다. 또한 생사 저쪽 사람이며, 현묘하게 끊긴 저쪽
사람인데도 이쪽 언덕으로 돌아와 이렇게 부처가 되셨다. 그러나
사람과 원숭이는 함께 가지 못하는 법이니, 여기서 사람은 10지(十
地)보살을 비유하고 원숭이는 범부를 비유한 것이다.
경전을 읽어 알고자(知解) 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3승교를 이해하여 영락의 장엄구를 훌륭히 얻고 32상의
굴택을 얻는 것으로 부처를 찾는다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경에서 말하기를, "소승의 3장학(三藏學)을 탐착하는 자와는
가까이 하지도 말라"하였는데, 하물며 스스로 그러는 경우야 어떠하
겠는가. 그는 파계한 비구이며 이름뿐인 아라한(名字羅漢)으로서, 「
열반경」에서는 16악율의(十六惡律義)에 넣고 있다. 그것은 물고기
를 사냥하며 이익을 위해 고의로 살생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다. 대
승방등(大乘方等)은 감로수 같기도 하고 독약 같기도 하니, 없애버릴
수 있다면 감로 같고, 없애버리지 못하면 독약과 같다.
경전을 읽으면서 저 생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그 의
미를 꿰뚫지 못할 것이니, 아예 읽지 않는 것이 휠씬 낫다. 한편으
로는 경전도 읽고 선지식도 참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안목
을 갖춰 그 생사라는 말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명백하게 분별해내
지 못한다면 결국 꿰ㄸ지 못할 것이어서 비구라는 속박만 가중될 뿐
이다.
그러므로 교학에서 현묘한 종지를 배운 사람은 문자를 읽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치 '자체(體)는 설명하여도 모습(相)은 설명하
지 않으며, 의미는 설명해도 문자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한것과도 같
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진실한 말'이라 하며, 문자를 설명하면서
모조리 비방이라 한다면 그것을 '삿된 말'이라 한다. 보살의 설명은
법다워야 하니, 그래야 '진실한 말'이라 할 것이다.
증생들에게 마음(心)은 지키게 하되 현상(事)에는 매달리지 않게
히야하며, 실천(行)은 하게 하되 이론(法)을 붙들지는 않게 해야 한
다. 사람은 설명해야지 문자를 설명해서는 안되며 의미를 설명해야
지 문자를 설명해서는 안된다.
'욕계에는 선(禪)이 없다'고 설명하는 것 역시 두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다. '욕계에는 선(禪)이 없다'고 말했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색계
(色界)에 이룰 수 있을까. 먼저 발심 수행의 단계[因地]에서 두 가지
정(定)을 익혀야 뒤에 초선(初禪)의 유상정(有想定)과 무상정(無想
定)에 이를 수 있다. 유상정은 색계사선(色界四禪) 등의 하늘에 태
어나고, 무상정은 무색계사공(無色界四禪) 등의 하늘에 태어난다. 그
러므로 욕계에는 선이 없음이 분명하며 선은 색계이다.
3.
어떤 이가 물었다.
"지금 이 국토엔 선이 있다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동하지도 않고 선에 들지도 않음이 여래선(如來禪)인데, 선이라
는 생각을 내는 것조차 떠났다."
4.
어떤 이가 물었다.
"'유정(有情)은 불성이 없고 무정(無情)은 불성이 있다' 한것은 무
슨 뜻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부터 부처에 이르는 것은 성인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며, 사람에서 지옥에 이르는 것은 범부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
이다. 범부와 성인 두 경계에 물들고 애착하는 마
음이 있으면 이를 '유정은 불성이 없다'라고 하며, 범부와 성인 두
경계와 유·무 모든 법에 갖고 버리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갖고 버
림이 없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면 '무정은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
다. 망정의 얽매임이 없기 때문에 무정(無情)이라 이름하는 것이지
목석이나 허공·노란 국화꽃·푸른 대나무 등 감정이 없는 것을 가
지고 불성이 있다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한
다면 그들 중에 수기를 받고 성불했다는 자를 경전에서 볼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인가? 지금 비추어 깨달음(鑑覺)은 유정의 변화를 받지
않는 점이 푸른 대나무와도 같으며, 모든 근기에 다 응하고 모든 상
황을 다 아는 것이 노란 국화꽃과도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단계를 밟아 보았다면 무정에 불성이 있다 하겠지만 부
처님의 단계를 밟아 보지 못했다면 유정에게 불성이 없다하겠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법화경 화성유품에 나오는 부처님)은 10겁
(十劫)을 도량에 앉아 있었는데도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지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겁(劫)이란 '막힘' 또는 '머뭄'이라고도 하니 하나의 착함에 머물
고 열 가지 착함에 막히는 것을 말한다. 인도에서는 부처
(佛)라 하고, 이 땅에서는 그것을 깨달음(覺)이라 하는데, 자기의 비
추어 깨달음(鑑覺)이 착함에 막히고 집착되므로 선근인(善根人)에게
서 불성이 없다. 그러므로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지 않아 불도를 이
루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악에 부딪치는대로 악에 머무는 것을 '중생의 깨달음'이라 하고,
선에 부딪치는대로 선에 머무는 것을 '성문의 깨달음'이라 하며, 선
·악 양쪽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음을 옮다고 여기는 자를 '이승
의 깨달음' 또는 '벽지불의 깨달음'이라 한다.
선·악 양쪽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않음을 보
살의 깨달음'이라 한다. 또한 머물지 않고 어디에도 머물것이 없다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만 비로서 '부처의 깨달음'이라 한니, 마치 '부처
가 부처에 머물지 않아야 진실한 복전(福田)이라 이름한다'고 한 것
과 같은 이야기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홀연히 이를 체득한 자
가 있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 하니, 어디서나 스승이 되어
부처가 없는 곳에서는 부처라하고, 법이 없는 곳에서는 법이라 하며,
스님 없는 곳에서는 스님이라 하며 '큰 법 바퀴를 굴린다'고 하는 것
이다.
6.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부터 조사들께서는 모두 비밀스러운 말씀으로 계속 전수 해왔
다 하니 무슨 의미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밀한 말은 없으며, 여래께서는 비밀스럽게 간직한 것이
없으시다. 비추어 깨닫는다 함은 말은 분명하나 형상을 찾아도 끝내
찾지 못하니 이것이 '비밀스러운 말'이다. 수단원(須陀洹)에서 10지
(十地)에 오르도록 무슨 말이든 있기만 하면 모조리 법의 티끌에 속
하고, 무슨 말이든 있기만 하면 번뇌라는 테두리에 들어가고 방편교
설에 속하니 말이 있었다는 하면 무엇이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긍극적인 교설마저도 부정하는데 다시 무슨 '비밀한 말'을 찾겠는
가."
7.
또 물었다.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어나듯 허공이 대각(大覺)에서 생겼다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은 물거품에, 바다는 자성(自性)에 비유된 것이다. 신령하게
깨닫는 자기 본성은 허공을 능가하므로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
어나듯 대각에서 허공이 나왔다'고 한 것이다."
8.
또 물었다.
"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 말라' 하였는데 무슨 말입니까?"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숲은 마음에 나무는 몸에 비유된 것인데, 숲으로 설명해야 두려
운 마음이 생기므로 '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 말라'고 한
것이다."
9.
또 물었다.
"'말을 하면 표적이 되어 화살을 부른다'하니, 말을 하여 표적이
되고 나면 근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심에 매인 점이 똑같다
면 무엇으로 승속을 구별하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화살을 쏘아 도중에 딱 부딪치듯 해야만 한다. 만일 어굿난다면
반드시 다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골짜기에서 메아리를 찾는다면
여러 겁 동안 찾아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메아리는 입가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잘 잘못은 찾아와서 묻는데에 있다. 귀결점을
묻는다면 도리어 화살을 맞을 것이니, 역시 '허깨비인 줄 알면 허깨
비가 아니다' 한 말씀과 같다.
삼조(三租)께서 말씀하시기를, 현묘한 종지를 모르고 망념을 가라
앉히느라 헛수고하는구나' 하셨다. 또 '보이는 것(物) 보는 것(見)이
라 오인한다면 마치 기와 부스러기를 가진 것과 같으니 무엇에 쓰겟
으며, 보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목석과 무엇이 다르랴'하고 하셨다.
그러므로 보는 것이다 아니다 하면 둘 다 잘못이니, 이 한가지 예
로 모든 것을 견주어 보라."
10.
또 물었다.
"번뇌와 32상이 본래 없다는데,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부처님 쪽의 일이다. 본래 번뇌가 있었다거나 지금 32상이
있다는 것은 범부의 생각일 뿐이다."
11.
또 물었다.
"끝없는 몸을 가진 보살(無邊身菩薩)이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
한다 하니 어째서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끝이 있다 없다는 견해를 냈기 때문에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
하였던 것이다. 이제 있다 없다 등의 모든 견해가 전혀 없고 그 견
해 없음마저도 없다면 이것을 '정수리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12.
또 물었다.
"지금 사문들은 다들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경·논·율·선(禪)과 지식(知解)을 낱낱이 배우므로 신도들에게 네
가지로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받을 만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조하는 작용(照用)으로 볼 때 소리·색·냄새·맛과유·무 모
든 법 등 낱낱의 경계에 티끌만큼의 집착이나 물들음도
없고, 집착하거나 물들지 않음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없다면 이런 사람은 매일 만 냥의 황금도 받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유·무 등 모든 법을 대할(照) 때 6근의 반연을 다 깎
아내 털끌만큼도 탐욕과 애착을 다스려 버리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시주에게 쌀 한톨 실낱 하나라도 구걸한다면 축생이 되어 무거운 짐
을 지고 끌려다니면서 하나하나 갚아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부처
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집착이 없는 사람이며 구함
이 없는 사람이며 의지함이 없는 사람이니, 지금 분주하게 부처가
되고자 탐착한다면 모두가 등지는 짓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랫동안 부처를 가까이 하면서도 불성을 모
른 채 세상을 구제하는 자를 구경할 뿐, 6취(六趣)에 윤회하면서 오
랫만에야 부처를 보는 자, 그를 두고 부처 만나기 어렵다 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문수는 7불의 스승이며 사바세계에서 으뜸가는 보살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부처를 보노라 나는 법을 듣노라 하는 근거없는
생각을 내어 부처님에게 위신력을 받고 두 철위산(鐵圍山)으로 내려
갔던 것이다. 알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만 모든 학인들에게 본
보기가 되어 주고, 후학들이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도록 하였던 것
이다. 그러므로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보배 여의주'라 하며, '보
배 꽃으로 발꿈치를 받쳐 든다'하는 것이다.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내는 것은 유·무 등으로 보는
것이니 이것을 두고 '눈병난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하며, '봄에 매임
(見纏)''봄에 덮임(見蓋)' 또는 봄의 재앙(見蘖)이라고도 한다.
이제 생각 생각 모든 견문각지(見聞覺知)와 모든 티끌 때를 다 없
앤다면 한 티끌 한 색이 온통 한 부처이며 한 생각 일으켰다 하면
그대로 한 부처인데, 3세5음(三世五陰)의 생각 생각이라면 그 숫자를
뉘라서 헤아리겠는가. 이것을 '허공을 가득 메운 부처'라 하며,'분신
불(分身佛)','보배탑'이라 하니, 그러므로 항상 찬탄하는 것이다.
지금 연명하는 것을 보면 쌀 한 톨과 한 포기 채소에 의지한다.
먹지 못하면 굶어 죽고, 물을 마시지 못하면 목말라 죽으며, 불을 쬐
지 못하면 추워서 죽는다. 하루라도 없으면 살지 못하고, 하루 쯤
없다 해도 죽지는 않으나 4대(四大)에 붙들려 여전하지 못하다.
도통한 옛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다. 불에 타고자 하면 탔고, 물에 빠지고자 하면 빠지지 않았
다. 살겠다면 살았고, 죽겠다면 죽었다. 이렇게 가고 머물음이 자유
로우니, 그에게는 자유로울 분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면 부처를 구하거나 보리·열반 구할 필요가
없다. 만일 부처를 집착하고 구한다면 탐심에 속하며, 탐심이 변하
여 병이 된다. 그러므로 '부처 병 고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것
이다. 불법을 헐뜰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여기서의 밥이란 신
령하게 알아보는 자기 본성으로서 번뇌 없는 밥(無漏飯)·해탈밥(解
脫飯)을 말한다. 이 말은 10지(十
地)보살을 치료하는 것으로서 초발심부터 십지에 이르기까지이다.
지금 조금이라도 구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모두다 '파계승','명자나
한(名字羅漢)' 또는 '여우'라 이름하는데, 그들은 분명히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다.
지금 메아리같이 고르게 소리를 듣고, 바람같이 평등하게 냄새를
맡으면서 일체 유·무등의 법을 떠나고, 떠났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
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으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떠한 허물
도 얽어매지 못한다.
위 없는 보리·열반을 구하기 때문에 '출가'라고 이름하나 그래도
그것은 삿된 발원이다. 하물며 '나는 할 수 있다''나는 안다'하면서
세간에서 승부를 다투며 논쟁하는 경우이겠는가.
한 문중을 탐하고 한 제자를 아끼며, 한 안주처에 연연해 하고 한
신도와 관계를 맺는다. 옷 한 벌, 밥 한 그릇, 명예 하나, 이익 하나
에 다시 '나는 그 모두에 걸림이 없다'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속일뿐
이다.
자기 5음(五陰)에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
게 몸 마디마디가 토막난다 해도 원망하거나 아깝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번뇌도 없다면, 나아가서는 자기 제자가 다른 사람에게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채찍을 맞고 이상과 같은 낱낱의 일을 당한다 해
도 한 생각도 너다 나다 하는 마음이 없다며, 그래도 한 생각도 없
다는 그것을 옳다고 여겨 거기에 머문다면 그것을 '법 티끌'이라 하
니, 10지(十地)에서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생사의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사람들에게 권하기를 '삼악도(三惡道)
를 두려워하듯 이 법
티끌을 두려워해야만 홀로 설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가령 열반을 능가하는 어떤 법이 있다 해도 조금도 값지다는 생각
을 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걸음마다 부처로서 연꽃을 밟을 것도
없이 백억의 몸을 나툰다 유·무 등 모든 법에 털끌만큼이라도 애욕
에 물든 마음이 있다면 연꽃을 밟고 다닌다 해도 마군의 짓과 똑같
은 것이다.
'본래 청정하다'거나 '본래 해탈하였다'는 데에 집착하여 이대로가
부처이며 선도(禪道)를 이해했다고 자처하는 자는 자연외도(自然外
道)에 속하며, 한편 인연에 집착하여 닦아 증득을 이루는 자는 인연
외도(因緣外道)에, 무(無)에 집착하면 단견되도(斷見外道)에,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亦有亦無)는 데 집착하면 변견외도(邊見外道) 또
는 우치외도(愚痴外道)에 속한다.
부처다 열반이다 하는 등의 견해를 내지 않기만 하면 된다. 유·
무 등 모든 견해가 전혀 없으며 견해가 없다는 것도 없음을 바르게
봄(正見)이라 한다. 또한 아무것도 들음이 없고, 들음이 없다는 것도
없음을 바르게 들음(正聞)이라 하며, 이것을 두고 외도를 꺾었다 하
는 것이다. 또한 범부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아주 신통한
주문(大神呪)이며, 보살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높은 주
문(無上呪)이며, 나아가 부
처라는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견줄 바 없는 주문(無等等呪)
이다. 중생 아수라를 변화시키고 2승 아수라를 변화시키며, 보살 아
수라를 변화시키니, 이렇게 하여 3변정토(三變淨土)가 되는 것이다.
유무(有無) 범성(凡聖) 등 모든 법은 광석에 비유되고, 자기의 여
여한 이치(如理)는 금(金)에 비유된다. 금과 광석이 분리되면 순금이
드러나니 홀연히 어떤 사람이 돈과 보배를 찾으면 금을 돈으로 만들
어 그에게 주는 것이다. 마치 국수 자체는 진정 모든 모래와 진펄
이 없어 어떤 사람이 시루떡을 구걸하면 국수를 시루떡으로 만들어
주는 것과도 같다. 또는 지혜로운 신하가 왕의 마음을 잘 알아서
왕이 행차할 때 선타파(先陀婆)*하고 부르면 즉시 말을 대령하고, 밥
먹을때 선타파 하고 부르면 즉시 소금을 바치는 것과도 같다. 이상
은 현묘한 종지를 공부하는 사람이 잘 통달하여 어김없이 기연에 응
함을 비유 한 것이며, 또는 육절사자(六絶獅子:6근·6진을 끊은 사
람)라고도 한다.
지공(誌公)스님이 말하기를, '사람에 따라 백 가지 변화를 지어낸다'
고 하였다.
10지(十地)보살은 주리지도 않고 배 부르지도 않으며, 물에 들어가
도 빠지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그러나 태우려 해도 태
울 수 없으니, 일정한 테두리(量數)에 의해 한계
*선타파: 원래는 소금, 그릇,물,말(馬)을 뜻하는 말, 왕의 마음을 잘
아는 총명한 신하가 제때제때 알아서 이것들을 바친데서 유래하여,
지혜로운 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지워진다. 부처님은 그렇지 않아서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지
만, 타려하면 타고 빠지려 하면 빠진다. 바람·물등 4대를 자유롭게
부리므로 모든 색이 부처님 색이며, 모든 소리가 부처님 소리다.
더러운 찌꺼기인 변하는 자기 마음이 다하여 3구(三句) 밖으로 뚫
고지나야 이 말을 할 수 있다. 청정한 보살 제자는 매우 밝아서 무
슨 말을 하든지 유무에 집착되지 않고 모든 작용(照用)에 있어서도
청탁에 구애되지 않는다.
병이 있는데도 약을 멱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며, 병이 없는데
약을 먹으면 성문(聲聞)이다. 한 가지 법을 단정적으로 집착하면 정
성성문(定性聲聞)이며, 그저 많이 듣기만 하면 증상만성문(增上慢聲
聞)이다. 또한 남을 알면 유학성문(有學聲聞)이며, 공정(空寂)에 빠지
고 자기를 알면 무학성문(無學聲聞)이다.
탐·진·치등은 독이며 12분교(十二分敎)는 약이니, 독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약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병 없이 약을 먹으면 약이 도
리어 병이 되어, 병이 없어져도 약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지
않고 소멸하지 않음은 무상(無常)의 의미이다.
「열반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 가지 약한 욕심이 있다. 첫째는 사부대중이 에워싸주었으면 하
는 욕심이고, 둘째는 모든 사람이 내 문도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욕
심이며, 셋째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성인이나 아라한임을 알아주었
으면 하는 욕심이다.
또한「가섭경(迦葉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는 미래의 부처님을 뵈었으면 하는 것이며, 둘째는 전륜왕(轉
輪王)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며, 셋째는 찰리(刹利)의 큰 성씨를 가
졌으면 하는 것이며, 넷째는 바라문의 큰 성씨를 가졌으면 하는 것
이며, 나아가서는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것이다.'
이상의 약한 욕심부터 먼저 끊어야 한다. 집착하고 물들어 요동
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그것을 '악한 욕심'이라 하는데, 모두가 6
욕천(六欲天)에 들어가 파순(波旬)에게 부림을 당할것이다."
13.
또 물었다.
"이십년 동안을 항상 '똥을 치우라'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지견을 쉬고 모든 탐욕을 쉬어 낱낱이 3구
(三句) 밖으로 뚫고 지나면 이를 '똥을 치웠다'고 한다. 부처와 보리
를 구하며,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구하면 그것은 똥을 퍼 들
여오는 것이지 또을 펴낸다고 하지는 않는다.
부처라는 견해를 지어내 볼 것이나 구할 것, 집착할 것이 있다 하
면 '희론의 똥'이라 하며, '거친 말', '죽은 말'이라 한다.
마치 '큰 바다는 죽은 시체를 잠재우지 않는다' 한 말과도 같다.
부질없이 지껄이는 말을 '희론'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말
하는 사람이 청·탁을 분별하면 그것을 '희론'이라 한다.
경전에서는 모두 스물 한 가지 공(空)으로 중생의 티끌 번뇌
를 닦아 없애준다고 한다. 또한 사문이 재계(齋戒)를 지키고,
인욕과 화합을 닦으며 자비희사(慈悲喜捨)하는 것은 일상적인
승가의 법도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완전히 부처
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이니 탐착으로 의지하는 것을 인정
할 수는 없다. 부처나 보리 등의 법을 얻고자 하는 자는 손을
불에 갖다 대는 것이다.
문수보살은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기만 하면 자
기를 다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은 부처님
앞에서 칼을 빼어들었고, 앙굴마라는 부처님에게 칼을 들이댔던 것
이다. 저 '보살은 5무간업(五無間業)을 지어도 무간 지옥에 들어가
지 않는다'고 한 말씀과도 같다. 그들 보살은 원통(圓通)으로 빈틈없
으니 5역죄(五逆罪)로 빈틈없는 중생의 그것과는 다르다.
파순으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진 기름때를 털끌만큼도
갖지 않는다 해도 그런 데에 의지하여 집착하면 '이승의도'라 한다.
하물며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이해한다 하며 논쟁과 승부 다투는
말을 하는 경우이겠는가. 이들은 논쟁승(論爭僧)이지 무위승(無爲僧)
은 아니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에 탐착하여 물들지 않으면 이를
남이 없음(無生)이라 하며, 바른 믿음(正信)이라고도 한다. 일체법
을 믿고 집착하면 '믿음을 갖추지 못했다'하며, '믿음이 완전하지 못
하다', '치우쳐서 고르게 믿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를 일천
제(一闡提:성불할
종자가 없는 중생)라고 이름한다.
이제 단박에 깨치려 하는가. 사람(人)과 법(法)을 동시에 딱 끊어
비우고(空), 3구(三句) 밖으로 꿰뚫어야 하니, 그것을 '온갖 테두리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이란 믿음이며, '법'이란 계율
·보시·지혜(聞慧)등이다. 보살은 차마 성불하지 않고 차마 중생이
되지도 않으며, 차마 계율을 지니지도 않고 차마 파계를 하지도 않
는다. 그러므로 '지키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던 것이다.
지(智)는 흐리고 관조(照)는 밝으며, 혜(慧)는 맑고, 식(識)은 탁하
다. 부처로 말하자면 관조하는 지혜(照慧)라고 하며, 보살이면 지
(智)하 하고, 이승과 중생 쪽으로 치면 식(識) 또는 번뇌라고 한다.
부처라는 결과 속에는 중생이라는 원인이 들어 있고 중생 원인 속
에도 부처라는 결과가 들어 있다. 부처에게 있어서는 법륜을 굴린
다(轉法輪)하고, 중생에게 있어서는 법륜이 구른다(法論轉)하고, 보
살에 있어서는 영락장엄구(纓珞莊嚴具)라 하고, 중생에게 있어서는
오음총림(五陰叢林)이라 한다.
부처에게 있어서는 본지무명(本地無明)이라 하는데, 이는 무명의
밝음(無明明)이다. 그러므로 '무명이 도의 바탕이 된다'하였으니, 어
둡게 가리운 중생의 무명과는 다르다. 저것(彼)은 객관이고 이것(此)
은 주관이며, 저것은 들리는 것(所聞)이고 이것은 듣는 것(能聞)이
다. 그것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不一不異), 아주 없어지지
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으며(不斷不常),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不來不去). 살아 있는 말(生語
句)이며, 틀을 벗어난 말 (出轍語句)로서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으
며,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다 이와 같다.
온다 간다, 단멸이다 영원하다, 부처다 중생이다 하는 것은 죽은
말이다. 두루하다 두루하지 않다, 같다 다르다, 단멸이다 항상하다
하는 등은 외도의 설이다. 반야바라밀은 자기 불성인데 마하연(摩詞
衍)이라고도 한다. 마하(摩詞)는 크다는 뜻이고, 연(衍)은 수레(乘)라
는 의미다. 그렇다고 자기의 지각(知覺)을 지켜 머물면 또한 자연외
도(自然外道)가 된다. 지금의 비추어 깨달음(鑑覺)은 지킬 필요가 없
으며, 따로 부처를 구할 것도 없다. 따로 구한다면 인연외도(因緣外
道)에 떨어진다.
이 땅의 초조(初祖)께서는 '마음에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으면 반
드시 그르다 할 것도 있게 된다'고 하셨다. 어떤 것을 귀중하게 여기
면 그것에 혹하게 되니, 믿으면 믿는데 혹하고 믿지 않으면 비방을
이룬다. 그러므로 귀하다 귀하지 않다 하지 말고, 믿는다 믿지 않는
다 하지도 말라.
부처님은 무위(無爲)도 아니다. 무위가 아니라 해서 허공과 같은
적막함도 아니다. 또한 부처님은 허공같이 큰 마음을 가진 중생(大
心衆生)으로서 비추어 깨달음이 많다. 비록 많다고는 하나 그 비추
어 깨달음은 청정하여 탐내고 성내는 귀신이 그를 붙들지 못한다.
부처님은 온갖 번뇌를 벗어난 분으로 털끌만큼의 애욕과 집착이
없으며, 애욕과 집착이 없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니, 이를 6도만행(六
度萬行)을 빠짐없이 갖추었다고 한다, 장엄구(莊嚴具)가 필요하다면
갖가지가 다 있으며, 필요치 않아서 사용하
지 않는다 해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인과와 복지(福智)를 자유롭게
부린다. 이는 수행이며 수고롭게 일을 하며 무거운 짐을 진 것은 아
니데, 이를 수행이라 부른다 해도 도리어 이같지 않다.
삼신이 한문(三身一體)이며, 한몸이 삼신(一體三身)이다.
첫째는 법신실상불(法身實相佛)로서 법신불은 밝지도 않고 어둡지
도 않으니 밝음과 어둠은 허깨비의 변화에 속하는 것이다. 실제의
모습(實相)은 헛것(虛)을 상대로 지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본래 이름이란 없는 것이다. '부처님 몸은 함이 없어(無爲)
어떻난 테두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한 것과도 같다.
성불하여 일신을 공양하는 등은 한 됫박 한 홉 들이쯤 되는 말이
다. 요컨대 탁함을 상대로 맑음을 가려내 붙인 이름이므로 '실상법신
불'이라 한 것이다. 또한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 이름하며, 허공법
신불, 대원경지(大圓鏡智:제 8식의 전변), 제8식(第八識),성종(性宗)*,
공종(空宗)*,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불국토, 굴 속에 있는 사자,
금강후득지(金剛後得智)*,무구단(無垢檀), 제일의공(弟一義空),현묘한
종지(玄旨)라 이
*성종(性宗):차별상(差別相)을 중심으로 일체법을 설하는 상종(相宗)
에 대해 평등하고 진실된 성품을 설하는 종지.
*공종(공종): 상(相)을 부정하여 일체법의 실상인 공(空)을 설하는
종지. 중국에서는 유종(有宗)과 공종(空宗),혹은 상종(相宗)과 성종
(性宗)으로 제교(諸敎)를 분류해 왔는데 유종,상종에는 소승과 유식,
공종, 성종에는 삼론종, 화엄종등이 있다.
*금강후득지(金剛後得智):금강정(金剛定)을 얻은 뒤 다시 차별지를
써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
름붙이기도 한다.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생각만 고요히 한다'고 하였다.
두번째 보신불(報身佛)로서 보리수 아래의 부처님이다. 또는 환화
불(幻化佛)이라고도 이름하며, 상호불(相好佛),응신불(應身佛),원만보
신노사나불, 평등성지(平等性智:제7식의 전변), 제7식(第七識), 안과
에 응하는 부처님(酬因答果佛)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52선나수(五十
二禪那數)와 같고, 아라한, 벽지불, 모든 보살과 같다. 또한 생멸 등
의 괴로움을 받는 것도 똑같지만 중생이 업에 매어 고통을 받는 것
과는 다르다.
세번째는 화신불(化身佛)로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에 아무런
집착과 물듬이 없으며, 물들음이 없다는 것마저 없다. 4구(四句)를
벗어나 훌륭한 말솜씨를 갖추셨으니 화신불이라 이름한다. 이 분이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며, 대신변(大神變)이며, 유희신통(遊戱神
通),묘관찰지(妙觀察智:제6식의 전변), 제6식(第六識)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공양하면 3업(三業)이 청정해져서 전(前際)에도 끊을 번뇌
가 없었고, 지금(中際)도 지킬 자성이 없으며, 뒤에(後際)에도 이룰
부처가 없다. 이렇게 3제(三際)가 끊겼고, 3업(三業)이 청정하며, 3
륜(三輪)이 공적하고, 3단(三檀)이 공(空)하다,
무엇을 '비구가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신다'하는가?
6근(六根)에 번뇌(漏) 없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장엄한다고도 하
는데, 모든 번뇌가 빈(空無)것을 수풀과 나무로 장엄했
다 하며, 모든 물듬이 빈 것을 꽃과 열매로 장엄했다 하는 것이다.
빈(空無) 불안(佛眼)으로 수행인을 파악하고 법안(法眼)으로 청탁
을 분별하면서 청착을 분별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그것을 눈 없
는 데(無眼)까지 도달했다면 한다. 「보적경(寶積經)」에서는 '법신
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것으로는 구하지 못한다'라고 하였
다.
색(色)이 없기 때문에 육안(肉眼)으로 볼 것이 아니며, 망정이 없
으므로 천안(天眼)으로 볼 것도 아니다. 모습을 떠났으므로 혜안(慧
眼)으로도 볼 수 없고, 모든 행(行)을 떠났으므로 법안(法眼)으로 볼
것도 아니며, 모든 식이 떠났으므로 불안(佛眼)으로 볼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을 부처의 생각(佛見)이라고 한다. 색
(色)은 색이나 형색(形色)이 아님을 진색(眞色)이라 하며, 공(空)은
공이나 창공(太虛)이 아님을 진공(眞空)이라 하나, 색과 공도 또한
약과 병이 서로를 다스린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법계관(法界觀)에서는 '색(色)에 즉하지 않았다느니 할
수 없으며, 공(空)에 즉했다느니 공에 즉하지 않았다는니 할 수도 없
다'라고 하였다.
눈·귀·코·혀·몸·의식에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제7
지(第七地)에 전변해 들어간다'고 한다. 7지(七地)보살은 칠지에서
물러나지 않고 위로 3지(三地)를 올라(向上)간다. 모든 보살의 심지
(心地)는 명백(明白)하여 쉽게 오염되어 불이라고 말만 해도 바로
탄다.
색계(色界)에서 올라겸 보시가 병이고 간탐(간貪)이 약이며, 색계
에서 내려가면 간탐이 병이고 보시가 약이 된다.
유작계(有作戒)란 세간법을 끊는 것이며, 다만 몸과 손으로 조작하
지 않아 허물이 없으면 이를 무작계(無作戒)라 하며, 또는 무표계(無
表界),무루계(無漏戒)라 하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을 움찔했다(擧心
動念)하면 모조리 파계(破戒)라 하는 것이다. 이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고 혹하지 않는 데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
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으면 그것을 '빠짐없이 배우고 부지런히 생각
(護念)하며 널리 유포한다'고 한다.
깨닫지 못했을 때를 어미(母)라 하고, 깨닫고 나서를 자식(子)이라
하는데, 깨달음이 없다는 생각도 없음을 어미 자식이 동시에 없어짐
이라 한다. 이렇게 선에도 매이지 않고 악에도 매이지 않으며, 부처
에 얽매이지도 않고 중생에게 매이지도 않는다. 테두리(量水)에도
마찬가지며, 나아가서는 아무런 테두리에도 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
러므로 '부처는 얽매임에서 벗어나 한량을 뛰어넘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앎(知解)이나 설명(義句)에 탐착하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여 소락(수酪)을 많이 먹이기만 할 뿐 소화가 되고 안되고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이 말은 10지(十地)에 비유된다. 즉 인간·천상에게 존대받는 번
뇌, 색계 무색계에 태어나 선정과 복락을 누리는 번뇌, 자유롭게 신
통으로 날며 숨고 난타나면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 정토(淨土)에 두
루다니며 법을 듣지 못하는 번뇌, 자비희사(慈
悲喜捨)와 인연(因緣)을 닦는 번뇌, 공(空)과 평등한 중도(中道)를 닦
는 번뇌, 3명(三明)·6통(六通)·4무애(四無碍)를 닦는 번뇌, 대승심
을 닦아 사홍서원을 발하는 번뇌, 초지,2지,3지,4지에서 분명히 이해
하는 번뇌, 5지,6지,7지에서의 모든 지견(知見)번뇌, 8지,9지,10지에서
이제(二諦)를 동시에 관조하는 번뇌와 나아가서는 불과(佛果)를 닦
는라 백만아승지겁 옹안 행하는 모든 번뇌까지 설명이나 앎을 탐할
뿐 도리어 얽어매는 번뇌임을 모른다. 그러므로 '강을 보아야만 향
상(香象)을 뛰울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14.
누군가 스님께 물었다.
"보십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본다."
다시 물었다.
"본 뒤에 어떻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보는 것이 둘이 아니다. 이제 보는 것이 둘이 아니라면 보는 것
으로 볼 것을 보지 않는다. 만일 보는 것을 다시 본다면 앞에 보는
것이 보는 것이냐, 뒤에 보는 것이 보는 것이겠냐. 마치'볼 것을 볼
때엔 보는 것이 아니며, 보는 것은 오히려 보는 것을 떠나 보는 것
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법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실행되지 않으
면 모든 부처님께서 빨리 기약을 주신다(授記)고 하였다."
그러자 이렇게 따져 물었다.
"보는 것이 이미 보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기약을 주신다는 말이
어떻게 기약을 주신다는 말이 되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종지(宗)부터 깨달은 사람은 빨아놓은 옷처럼 있다 없다 하
는 모든 법상(法相)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습 떠난 것을
'부처'라 하는 것이다. 허와 실을 둘 다 간직하지 않고 중도만이 오
롯하고 묘하다. 한 가닥 같은 이 길을 통달하여 후진들이 그 단계에
계합하므로 '기약을 준다'고 할 뿐이다.
무명(無明)은 아버지이고 탐애(貪愛)는 어머니이며, 자기는 병이고
다시 자기를 치료함은 약이다. 자기라는 칼로 다시 자기 무명과 탐
애라는 부모를 죽이므로 '부모를 살해한다'고 했던 것이다. 한 마디
말로 일체법을 견주어 타파하니, 때 아닌 때에 밥을 먹는 것도 마찬
가지더.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법은 때 아닌 밥이며, 나쁜 음식
이며 보배 그릇에 담긴 더러운 음식이다. 또한 파계이며, 망령된 말
이며, 잡스러운 음식이다.
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탐하
여 소유하거나 조작하면 모두가 위배되는 것으로 도리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탐하고 물들면 그것을 모조리 '수수(授手)'
라고 이름한다.
탐내거나 물들지 않고, 탐내거나 물들지 않음에도 머물지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조차도 없으면 반야화(般若火)라
한다. 이것은 손가락을 태우고 신명을 아끼지 않으며, 사지를 마디
마디 찢고, 세간을 벗어나며 저 세계에서 이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
다.
오장육부에 12분교와 유·무등 모든 법을 털끝만큼이라도 남겨두
었다면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고 얻을 것이
있어 마음을 내고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여우라고 한다. 이제 오장
육부에 아무 구할 것도 얻을 것도 없다면 대시주(大施主)이며 사자
후이다. 이 사람은 또한 얻을 것이 없는 거기에 머물지도 않고 머물
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니 육절사자(六絶獅子)라고 부른다.
너다 나다 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모든 악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이면서 일체 탐·진·팔풍(八風) 등을 일
으키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입 속에 큰 바위의 물을 머금으면서
일체 허망한 말은 귀에 받아들이지 않으며, 몸으로 남에게 전혀 나
쁜 짓을 하지 않아서 모든 불을 뱃속에 넣은 듯이 한다.
이렇게 낱낱의 경계에 혹하지 않고 성내지도 기뻐하지도 않으며
자기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깎아내고 정화하면 일 삼을 것 없는
사람(無事人)으로서 모든 알음알이(知解)를 극복하고 두타행(頭陀行)
정진한다 하겠다. 이를 천안(天眼), 또는 분명히 관조함으로써 눈을
삼는다(了照爲眼)고 한다. 또한 법계성(法界性)이라 하니, 수례를 만
들어 인과를 싣는 것이다.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면 앞 생각(前念)이 나지
않고 뒷 생각(後念)이 이어지지 않는다. 앞 생각의 활동
(業)이 없어지는 것을 중생을 제도했다고 한다. 앞 생각에 성을 내면
기쁜이라는 약으로 치료하니, 그것을 부처님이 계셔 중생을 제도한
다고 한다.
모든 말씀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니 병이 같지 않으므로 약도
다르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부처님이 있다 하고 어떤 때는 부처님
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실다운 말로 병을 다스려 차도가 있으면
낱낱이 실다운 말이지만 차도가 없으면 그 모두가 허망한 말이다.
그러나 실다운 말이 견해를 내면 망령된 말이되고, 망령된 말이 중
생의 전도를 끊으면 실다운 말이 되니 병 또한 허망하여 허망과 약
이 서로 다스리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신 9부교(九部敎)의 말씀
은 방편교설(不了義敎)이다.
성냄과 기쁨, 병과약이 그대로 자기라서 다시는 두 사람이 없는데,
어느 곳에 세간에 출현하는 부처가 있으며 어느 곳에 제도할 중생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경(經)에서도 '멸도(滅度)를 얻은 중생은 사실
없다'고 하였다. 또는 '부처와 보리를 좋아하지 않고 유·무 모든
법에 집착하고 물들지 않음을 남을 제도한다(度他)하고, 자기를 고집
하여 머물지 않음을 자기를 제도한다(自度)'고 하였다.
병이 같지 않기 때문에 약도 다르고 처방도 다르니 한 쪽으로만
고집해서는 안된다. 부처와 보리 등의 법에 의지하면 모조리 일정한
방향에 의지함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에 있어서는 한결같지
않다'고 하였던 것이다.
경전에서는 그것을 노란 잎사귀를 돈이라고 속이고 빈주먹
속에 있다고 속여 어린 아이를 달래는 비유를 들어하고 있다. 그러
나 사라음은 이 이치를 모르니 그것을 무명(無明)과 같다고 한다.
'반야를 행하는 보살은 내 말에 집착하거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는
다'하였다. 성내는 마음은 돌덩이 같고 애욕은 강물과 같다. 지금
성내는 마음과 애욕만 없다면 산하석벽을 꿰뚫고 당장 귀머거리 속
인병을 다스리며 다문변설(多聞辯說)로 눈병을 다스릴 것이다.
사람이 부처가 되면 얻었다(得)하고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지면 잃
었다(失)한다. 옳다(是)그르다(非)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비득실을 동시에 놓아 버리라'하
셨다.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법에 집착하여 머물지 않으면 그것을
유연(有緣)에 머물지 않는다 하고, 머물지 않는 거기에도 머물지 않
으면 그것을 공인(空忍:忍은 바른 앎, 지혜라는 뜻)에 머물지 않는다
고 한다. 자기 그대로가 부처이며 선도(禪道)를 깨달았다고 고집하
는 자를 내견(內見)이라 하며, 인연과 닦아 얻음을 통해 이룬다고 집
착하는 자를 외견(外見)이라 한다.
지공(誌公)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견과 외견 모두가 착각이다'라
고 하셨다.
눈·귀·코·혀가 각각 유·무 모든 법에 집착하여 물들지 않으면
이를 4구게(四句偈)를 수지(受持)한다고 하며, 사과(四果)라고도 한
다.
6입(六入)에 자취가 없는 것을 육신통(六通)이라 한다. 유·
무 모든법에 막히지 않고, 막히지 않음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면 이를 신통(神通)이라 한다. 나아가 이 신통
을 지키지 않으면 신통이 없다고 한다. '신통이 없는 보살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니, 가장 불가사의한 향상 부처님(佛向上
人)이시다. 또한 자기천(自己天)이며, 지혜로 관조함이다. 찬탄은 기
쁨이며 기쁨은 경계에 속한다. 이렇게 기뻐할 경계는 하늘이며 찬탄
하는 것은 사람이어서 사람과 하늘이 만나니 이것을 '청정한 지혜
(淨智)는 한늘, 바른 지혜(正智)는 사람'이라 하기도 한다.
본래 부처가 아닌데 부처라 하면 그것은 체결(體結)이며, 부처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는 것마저도
없으면 이를 매임을 없앴다(滅結), 또는 진여(眞如),체여(體如)라 한
다.
부처를 구하고 보리를 구하는 것을 현신의(現身意)라 하니, 조금이
라도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모조리 현신의라 한다. 그러므로 '보리를
구함이 훌륭한 구함이긴 하나 티끌(塵累)을 더할뿐이다'하였다. 부
처를 구하면 부처 대중이며, 유·무 등 모든 법을 구하면 중생 대중
인데 이제 비추어 깨달음으로 유·무등 모든 법에 머물지 않으면 대
중의 테두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소리·냄새·맛·촉감·법 등을 낱낱이 좋아하지 않고, 그 모든
경계를 탐착하지 않아서 십구(十句)의 탁한 마음이 없기만 하면 요
인성불(了因成佛)*이며, 글(文句)을 배워 깨닫고자
*이치를 바로 비추어 부처가 되는 것을 요인 성불이라 하는 것에 비
해 여러
하는 자는 인연성불(因緣成佛)이라 한다.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알면 부처님을 설명할 수 있지만 안다 본
다 하면 되려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부처가 알고 부처가 보고
부처가 설명한다 해야 맞을 것이다. 이것은 불(火)을 본다 하면 옳겠
지만 불이 본다 할 수는 없고, 칼로 물건을 벤다 하면 옳겠지만 물
건이 칼을 벤다 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부처를 안다는 사람, 부처
를 보았다는 사람, 부처를 설명하는 사람은 향하수 모래알 같으나,
부처의 앎, 부처의 봄, 부처의 들음, 부처의 말씀은 만에 하나도 없
다. 이들은 자신에게 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눈을
삼을 뿐이다. 경전에서는 이를 추론(比量智)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부처의 지해(知解)를 탐하는 것도 역시 비량지이다.
세간법으로 드는 비유를 유사비유(順喩)라 하는데 방편교설이 그
것이다. 궁극적인 교설(了義敎)은 반대비유(逆喩)인데 머리·눈·골
수·뇌를 버린다 한 것이 그것이다. 지금 부처·보리등의 법을 사랑
하지 않는다 함은 반대비유로서 버리기 어려움을 머리·눈·골수·
뇌에 비유하였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법을 관조함을 머리라
하고, 있다 없다 하는 경계법의 모양에 꺾이게 됨을 손이라 하며, 목
전에 경계를 전혀 관조하지 않을 때를 골수·뇌라 한다.
성지(聖地)에서 범인(凡因)을 익혀 부처님은 중생 속에 들어가 동
류로 이끌어 주시니, 그들 아귀와 함께 사지 마디마디를 불에 태우
며 반야바라밀을 설명하여 발심하게 한다. 만일 오로
가지 수행하는 연(緣)을 빌어 부처가 되는 것을 인연성불이라 한다.
지 성인의 경지에 있기만 한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그들에게 가서 말
해주겠는가.
부처님은 모든 부류에 들어가 중생들에게 배와 뗏목이 되어 주고
그들과 함께 무한한 수고로움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부처님은 괴로
운 곳에 들어가 중생과 함께 괴로움을 받지만, 가고 머뭄이 자유로
와 중생과 같지는 않다.
부처님은 헛되게 괴로움을 받지 않는데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
겠는가. 괴롭지 않다 한다면 이 말은 틀린 것이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 부처님은 신통이 자재하다느니 자재하지 못하다느니 하고 잘
못 만들 한다.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감히 부처님은 유위다 무위다하지
못하며, 감히 부처님은 자유롭다 자유롭지 않다 하지 못한다. 찬탄하
는 약방문(藥方文)을 제외하고는 추한 양 갈래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경에서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불보리를 한 쪽에 봉안하려 한다
면 그 사람은 큰 죄를 짓는 것이다'하였고, 또'부처님을 모르는 사람
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면 허물이 없다'라고도 하였다.
무루(無漏)우유가 유루(有漏)병을 치료하는 것과도 같으니 그 소
는 고원에 있지도 않고 하습지에 있지도 않아서 이 우유로 약을 만
들 만하다. 여기서 고원은 부처를 비유한 것이고 하습지는 중생을
비유한 것이다.
'여래실지법신(如來實智法身)에게는 이 병이 없다'한 것과도 같다.
막힘없는 말솜씨로 자유롭게 날면서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면 그
것을 쓰라린 생로병사의 아픔이라 한다. 이것이 버섯국을 가만히
마시고 설사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것이며, 가만히 밝은 자취를 숨긴
것이다.
밝음과 어둠을 모두 버리고, 갖느니 갖지 않느니 하지를 말라. 또
한 갖지 않다는 것마저 없애라. 그는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왕궁에서 태어나 야소다라를 받아들이고 여덟가지 모습으로 성도
하였다(八相成道)한 것은 성문외도가 망상으로 헤아린 것이니, '잡다
하게 먹는 몸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순타(純陀: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린 사람)가 말하기를,
'나는 여래께서 결코 받지 않고 먹지도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두 눈을 갖추고 양쪽 일을 관조해내야(照破)하며, 한
쪽 눈만 가지고 한 쪽으로만 가서는 안되니, 그러면 저쪽 어디에 가
게 될 것이다. 공덕천(功德天)과 흑암녀(黑暗女)는 늘 같이 다니는데
지혜있는 주인은 둘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을 허공같이 하고 배워야만 비로소 이룰 것이 있다.
인도의 첫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 '설산(雪山)은 큰 열반에 비유
된다'하셨고, 이 땅의 초조(初祖)께서는 '마음마다 목석같이 하라'하
셨다.
삼조(三祖)께서는 '분명하게 인연을 잊는다'하셨고, 조계(曹溪)스님
께서는 '선이고 악이고 전혀 생각하지 말라'하셨으며,
스승(先師:마조)께서는 '길 잃은 사람이 방향을 못가리는 것과도 같
다'하셨다.
또한 조공(肇公)은 '지혜와 총명을 막아 버리고 홀로 깨달아 그윽
하고 그윽한 자이라'하셨으며, 문수는 '마음은 허공 같아서 예배·공
경으로 볼 바가 아니며, 심오한 수다라(修多羅)는 듣지도 못하고 수
지(受持)하지는 못한다'하셨다.
이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을 전혀 보지도 듣지도 말고 육근(六
根)을 막아라.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경전을 지녀야 비로소 수행
할 자격이 있다 하겠다. 이 말은 귀에 거슬리고 입에 쓸 것이다. 이
가운데서 이처럼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생 다음 다음 생에 나서는 부
처없는 큰 도량에 앉아서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 이루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악을 선으로 바꾸고 선을 악으로 바꿔 악법으로 10지보살을 교화
하고 선법으로 지옥·아귀를 교화한다. 밝은 곳에서는 밝음의 결박
을 풀고 어두운 곳에서는 어두움의 결박을 풀 것이다. 황금을 흙으
로 만들고 흙을 황금으로 만들면서 모든 것으로 자유롭게 변화해 낼
수 있다.
항하사 세계 밖에서 구제해 주기를 바라는 자가 있으면 부처님께
서는 즉시 30상을 그 사람 앞에 나타내 그 사람의 언어로 설법해 주
신다. 근기 따라 교화하고 상대에 맞우처 다른 모습으로 무든 세계
에 변화해 나타난다.
이렇게 아(我)와 아소(我所)를 떠났다 해도 저쪽 일에 속하며, 작
은 작용이며, 불사를 짓는 법위에 포함된다. 크게 작용하는 자는 형
체없는 데에 그 큰 몸을 숨기고, 들릴락말락한
소리에 큰 음성을 숨긴다. 마치 나무 속의 불과 같고 종소리
북소리와도 같아 인연이 닿지 않았을 때는 그것이 있다 없다 할수
없는 것이다. 축생이 천상에 태어날 과보를 침 뱉듯 버린다. 보살은
육도만행을 닦으며 마치 죽은 시체를 타고 강둑으로 건너듯, 감옥에
갇혔다가 변소간 구멍으로 빠져나오듯 한다. 부처님이 30상을 나타
낸다 해도 그것을 '기름때 절은 옷'이 라고 한다. 또한 '부처님은 한
결같이 오음(五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틀린다'라고 말하
기도 한다.
부처님은 허공이 아닌데 어떻게 한결같이 받아들이지 않기만 하겠
는가. 가고 머뭄이 자유로와 중생과는 다르다. 한 천계(天界)에서
한 천계에 이르며, 한 불국토에서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변함없는 법이다.
또 말하기를, '3승교(三乘敎)에 의거한다면 그들의 신심어린 공양
을 받으면 그들은 지옥에 있으며, 보살은 자비를 행하여 동류가 되
어 교화 인도하며 은혜에 보답해야지, 항상 열반에만 있어선 안된다'
고 한다.
또 말하기를, '불이 불을 바라보둣이 만지지만 않으면 불이 사람을
태우지 못한다'라고 한다.
이제다만 10구(十句)가 없으면 된다. 탁한 마음·사랑하는 마음·
물든 마음·성내는 마음·고집하는 마음·머무는 마음·기대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가지려는 마음·그리워하는 마음은 하나에 가각 3
구(三句)가 있다 낱낱이 3구 밖으로 꿰ㄸ으면 일체 비추는 작용(照
用)을 자유로이 내 맡기며 말하고 입 다물고 울고 웃는 모든 행위가
부처님의 지혜일 것
이다. 오래 서 있었다. 편히 쉬어라."
15.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대승도에 들어가 활짝 깨치는 요법입니까(大乘入道頓悟
法)?"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보다도 그대는 모든 인연을 쉬고 만사를 그만두라. 선(善)·
불선(不善)·세간·출세간,일체 모든 법을 다 놓아 버리고 기억하거
나 생각하지 말라. 몸과 마음을 놓아 버려 완전히 자유로와야 한다.
마음을 목석같이 하여 입 놀릴 곳 없고 마음 갈 곳이 없어야 한다.
마음의 대지가 텅 비면 구름장이 열리고 해가 나오듯 지혜의 햇살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다만 모든 인연을 쉬어 탐애와 성냄과 집착, 더럽다거나 깨끗하다
는 망정이 다하면 5욕8풍(五欲八風)이 닥쳐도 꿈쩍하지 않는다. 견
문각지(見聞覺知)에 막히지 않고 모든 법에 혹하지 않으면 자연히
갖가지 공덕과 신통묘용(神通妙用)을 갖춘 해탈인이니, 모든 경계를
대할 때 마음에 다툼과 혼란이 없다. 거두지도 않고 흩지도 않은 채
성색을 꿰ㄸ어 아무 걸림이 없으니 이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하
는 것이다. 선악·시비 그 어느것도 쓰지 않으며, 한 법도 애착하지
않고, 한 법도 버리지 않으니 이를 대승인(大乘人)이라 한다.
모든 선악, 공유(空有), 더럽고 깨끗함, 유위와 무위, 세간과 출세
간, 그리고 복이니 지혜니 하는 것에 매이지 않는 것을
부처님의 지혜라 한다.
시비나 미추, 옳은 이치다 그른 이치다 하는 온갖 알음알이(知解)
와 망정이 다하면 얽어맬 수 없어서, 어딜 가나 자유로우니, 이를 초
발심보살이 그대로 부처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것이다."
16.
누군가 물었다.
"어떤 경계를 대할 때 어찌해야 마음이 목석 같을 수 있겠습니
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스스로 말하지 않으니, 공(空)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색(色)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시비와 염정도 사람을 얽어맬
마음이 없다. 단지 사람 스스로가 허망한 마을을 내어 얽매이고 집
착하여 몇가지로 이해와 지견을 지어내고 몇가지로 애욕과 두려움을
낼 뿐이다. 모든 법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자기 한 생각 망상이 전
도되어 모습을 가짐으로써 있게 되었음을 깨달아 마음과 경계가 본
래 서로 닿을 수 없음을 알면 그 자리 그대로가 해탈이고 낱낱이 모
든 법이 어디나 그대로 적멸 도량이다.
또 본래 성품은 무엇이라 이름붙일 수 없어서 본래 법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아니며, 공도 유도 선도 악도 아
니다. 단 이것이 모든 염법(染法)에 어울려주면 그것을 인간·천상
·이승(二乘)의 경계라 이름하는 것이다.
더럽거나 깨끗한 마음이 다하여 속박에도 머물지 않고 해탈에도
머물지 않으며, 유위 무위·속박 해탈등 모든 헤아림이 없어 생사를
일으켜도 그 마음이 자재하면 마침내 허망한 허깨비인 5온(蘊) 18계
(界) 등 티끌이나 나고 죽는 온갖 문(12人)과 합하지 않고 아득히
벗어나 기대지 않는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가고 머뭄에 걸림없
어 문 열리듯 생사에 왕래하게 되는 것이다.
도는 닦는 사람이라면 괴로움과 줄거음, 마음에 맞고 안맞는 갖가
지 일이 닥쳐오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명
이나 의식을 염두에 둔다거나 공덕과 이익을 탐내서는 안된다. 세간
어느 법에도 걸림 없으며 가까이 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고로움과 줄
거움을 똑같이 여기며, 거친 옷으로 추위를 막고 맛 없는 음식으로
연명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나 귀머거리·벙어리같이 되어
야 약간이라도 비슷해질 여지가 있을 것이다.
만일 마음 속으로 널리 지해(知解) 경계의 바람에 휘말려 생사 바
닷속으로 되돌아 갈것이다. 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이치는 구할 것 없는 이치이니 구하면 잃는다. 그
렇다고 구함 없는 데에 집착하면 다시 구하는 것과 같아지며, 무위
에 집착하면 다시 유위와 같아진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법에 집착하지 않고, 법 아니데 집
착하지도 않으며, 법 아님이 아닌 데도 집착하지 않는다'
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얻어신 이 법은 실재(實在)도 아니며
헛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일생동안 목석 같은 마음으로 5음 18계와 갖가지 처(人), 5욕 8풍
에 휘말리거나 빠져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생사의 인(因)이 끊긴다.
자유롭게 가고 머물며 모든 유위인과(有爲因果)나 유루(有漏)에 매
이지 않는다. 뒷날 다시 스스로 얽매이지 않는 이것으로 인(因)을
삼고 동사섭(同事攝)으로 이익케하며, 집착 없는 마음으로 모든 사물
을 대하며, 걸림 없는 지혜로 모든 속박을 풀어줄 것이니, 그것을
'병에 따라 약을 쓴다'라고 한다."
17.
누군가 물었다.
"이제 출가하여 계를 받고 몸과 입이 청정해져 이미 모든 법을 갖
추었다면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조금은 벗어났으나 아직 심해탈(心解脫)이나 일체처해탈(一切處
解脫)은 얻지 못했다.
18.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심해탈이며 일체처해탈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법·승(佛法僧)을 구하지 않고, 복과 지혜,지해(知解)도 구하
지 않으며,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망정이 다하고 구함없는 이것을
옳게 여겨 붙들지도 않으며, 다한 그곳에 머물지도 않으며, 천당을
좋아하고 지옥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서 속박과 해탈에 걸림 없으면
그것으로 몸과 마음, 그 어디에 대해서나 '해탈'했다 하는 것이다.
그대가 어느 정도 계율을 닦아 3업이 청정하다 하여 다 끝냈다 말
하지 말라. 항하사 만큼의 계·정·혜(戒定慧) 방편과 무루해탈(無漏
解脫)은 전혀 털끝 만큼도 맛보지 못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눈 귀가 어두어지고 백발에 주름살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
에 힘써 용맹정진하여 끝끝내 성취해야 한다. 늙음과 괴로움이 몸에
닥치면 슬픔과 애착에 얽매여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 속은 두려
워 어디도 의지할 곳이 없어 갈 곳을 모를 것이다. 이럴 때 가서는
손발을 정리할래야 할 수 없고 설사 복과지혜, 명리나 물질이 있다
해도 전혀 구제하지 못한다.
마음 지혜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경계를 반연할 뿐, 반조
할 줄은 몰라서 다시는 부처님의 도를 보지 못하고 일생 지었던 모
든 선악의 업연(業緣)이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난다.
종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6도(六道)의 5음(五陰)이 동시에 눈앞에
나탄난다. 찬란한 빛을 내며 장엄함 모습으로 펼쳐지는집, 선박, 수
레등은 모두 자기 마음에서 탐내고 좋아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다.
나쁜 경계는 모조리 좋아할 만한 경계로 변하는데, 거기서
더 좋아하고 탐낸 쪽을 따른다. 이렇게 업식(業識)에 끌려가서 붙는
데로 생(生)을 받게 되는데 자기 의지라고는 전혀 없이 용(龍), 축생,
양민,천민 등 정처없이 가게 된다."
19.
누군가 물었다
"어찌해야 자기 의지를 얻을 수 있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이라도 할려면 할 수 있다. 5욕8풍을 마주하더라도 갖거나
버릴 마음이 없고, 간탐·질투·탐애 등 아소(我所)의 마음이 다하고
더러움과 청정함을 함께 잊으면 해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듯 걸림
없이 비출 것이다.
마음마다 흙덩이나, 나무토막·돌같이 해야 하고 생각생각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해야 한다. 또한 큰 코끼리가 강물을 끊고 건너듯
의심과 착각을 없애야 하니, 이러한 사람은 천당 지옥 어디에도 끌
려들지 않을 것이다."
백장록
(祖堂集)
1. 행록
마조(馬祖)스님의 법을 이었고, 강서(江西)에서 살았다. 스님의 휘
는 회해(懷海)이며, 복주(福州) 장락현(長樂縣)사람으로 성은 황(黃)
씨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더니 불
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처님이시다."
"생김새가 사람 같아서 나와 다름이 없는데요! 뒷날 나도 부처가
되겠습니다."
그 뒤에 스님이 되고서는 최상승(最上乘)을 흠모하여 바로 대적
(大寂:마조스님의 호)스님 회상으로 가니, 대적스님이 보자마자 맞이
하여 입실(入室)케 하였다. 스님께서 깊은 관문을 깨달은 뒤에는 다
시는 딴 곳으로 가지 않았다.
스님께서 평생동안 고상하고 절도있게 수행한 일은 형용키 어렵거
니와 날마다 운력에는 반드시 남보다 먼저 나섰다. 일
맡은 이가 민망하게 여겨 몰래 연장을 숨기고 쉬기를 청하니, 스님
께서 말했다.
"내가 아무런 덕(德)도 없는데 어찌 남들만 수고롭게 하겠는가."
스님께서 두루 연장을 찾다가 찾지 못하면 공양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하는 말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2. 상당·감변
1.
어떤 스님이 울면서 법당으로 들어오니, 스님께서 물었다.
"어째서 그러느냐?"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스님께서 장사지낼 날을 잡아 주십
시오."
"우선 돌아갔다가 내일 오너라. 한꺼번에 묻어주겠다."
2.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한 사람을 서당(西堂)에게 보내 말을 전하려 하는데
누가 가겠는가?"
오봉(五峯)스님이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겠는가?"
"서당스님을 만나는대로 말하겠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
"돌아와서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3.
위산(위山)스님이 밤늦게 스님를 뵈러 왔는데 스님께서 그를 보자
마자 말했다.
"화로에 불을 좀 지펴다오."
"불씨가 없습니다."
"아까 불씨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리고 벌떡 일어나 화롯가로 가서 손수 재를 헤쳐 불씨 한덩이를
집어들고는 말했다.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위산스님은 당장에 깨달았다.
4.
스님께서 위산스님과 일을 하다가 물었다.
"불이 있는가?"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위산스님이 나무가지 하나를 들고 두어번 분 뒤에 스님께 바치니,
스님께서 말했다.
"벌레 먹은 나무 같구나."
5.
누군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아무아무라 합니다."
"그대는 나는 아는가?"
"분명합니다."
스님께서 불자(拂子)를 세워 들고 말했다.
"그대는 이 불자를 보는가?"
"봅니다."
스님께서 문들 말을 그쳤다.
6.
어느날, 운력을 하는데 어떤 스님이 갑자기 북소리를 듣자 소리
높여 웃으면서 절로 돌아오니, 스님께서 말했다.
"장하다. 이것이 관음이 진리에 드는 문(門)이로다."
그리고는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아까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렇게 크게 웃었는가?"
"제가 아까 북소리가 나는 것을 듣자 돌아와서 밥을 먹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크게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그만 두었다.
이에 장경(長慶)스님이 대신 말했다.
"역시 재(齋)로 인하여 경하하고 찬탄(慶讚)하는 것이로다."
7.
누군가 물었다.
"경에 의해서 뜻을 이해하면 3세 부처님이 원수이고, 경을 떠나서
는 한마디라도 마(魔)의 말과 같다 하는데 어찌합니까?"
"동작을 굳이 지키고 있으면 3세 부처님이 원수요, 이 밖에 따로
구하면 마의 동작과 같다."
8.
어떤 스님이 서당(西堂)스님에게 물었다.
"물음이 있고 대답이 있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묻지도 않고 대
답치도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썩을까 걱정해서 무엇하려는가?"
스님께서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 노장을 수상히 여겼다."
한 스님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하자 스님께서는 "일합상
(一合相)은 얻을 수 없다"하셨다.
9.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이렇게 시켰다.
"장경(章經)스님에게 가서 그가 설법하려고 상당하거든 절하고 일
어나니 그이 신발 한 짝을 들고 소매로 먼지를 턴 뒤에 머리에 거꾸
로 이고 나오라."
그가 가서 스님의 지시대로 낱낱이 시행하니, 장경스님이 말
했다.
"내가 잘못했다."
10.
스님께서 행각할 때 선권사(善權寺)에 가서 경을 보려 하니, 주지
가 허락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
"선승(禪僧)이 의복도 단정치 못하니 경을 더럽힐까 걱정이다."
스님께서 그래도 경 보기를 간절히 청하니. 마침내 허락하였다. 스
님께서 경을 다 본 뒤에 바로 대웅산(大雄山)에 가서 가르침을 폈다.
그 뒤, 공양주(供養主)를 하던 스님이 선권사로 와서 주지를 만나니,
주지가 물었다.
"어디서 떠났는가?"
"대웅산에서 왔습니다."
"누가 주지로 계시는가?"
"아마도 우리 스님께서는 행각하실 때, 이 절에서 경을 보신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해(海:백장)상좌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러자 주지가 합장을 하고 말했다.
"나는 참으로 범부로다. 그때는 그가 인천(人天)의 참 선지식임을
몰랐다!"
11.
또 물었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소(疏)를 지으려 합니다."
주지가 손수 소를 지어 온갖 일을 가르쳐 준 뒤에, 공양주를 데리
고 스님께 왔다.
스님께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얼른 산 밑으로 내려와서 그 들을
맞이해 와서 모든 인사를 마치고는 주지에게 선성(禪床)에 앉을 것
을 권하면서 말했다.
"내가 꼭 한 가지 주지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주지가 사양타 못해 자리에 오르니, 스님께서 물었다.
"주지께서는 강을 하실 어떻게 하시오?"
"마치 금쟁반에 구슬 굴리듯 합니다."
"금쟁반을 들어버리면 구슬은 어디에 있소?"
주지가 대답을 못했다.
12.
또 물었다.
"교(敎)에서 말하기를, '분명하게 불성(佛性)을 보면 문수(文殊) 보
살의 경지와 같다'하였는데 이미 분명하게 불성을 보았다면 의당 부
처님과 같아야지 어째서 겨우 문수와 같다 하겠소?"
주지가 또 대답치 못했다.
이 일로 납의(衲衣)를 입고 선(禪)을 배워 호를 열반(涅槃)
화상이라 했으니, 그가 곧 제2의 백장(百丈涅槃)이었다.
13.
스님께서 어느날 저녁 깊은 잠에서 깼는데 갑자기 더운물이 마시
고 싶었다. 그러나 시자도 깊은 잠에 빠져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조금 뒤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서 시자를 불렀
다.
"큰 스님께서 더운물을 찾으시오."
시자가 벌떡 일어나 물을 끓여 스님께 가지고 오니, 스님께서 놀
라 물었다.
"누가 이렇게 물을 끓여오라 하던가?"
시자가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하니, 스님께서 손가락을 퉁기면
서 탄식했다.
"나는 결국 수행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구나. 만일 수행할 줄아는
사람이라면 사람도 느끼지 못하고 귀신도 알지 못해야 하는데 오늘
나는 토지신에게 내 마음을 들켜 이렇게 되었다."
14.
스님께서 운암(雲岩)스님을 보자 다섯 손가락을 들어 세우면
서 말했다.
"어느 것이 그대인가?"
운암스님이 "아닙니다"하니 스님께서 "어찌 그렇겠는가?"
하셨다.
15.
어느날, 스님께서 4경(새벽1시에서 3시)이 되도록 법당에
앉아 있었다.
그때 시자이던 운암이 세 차례나 곁에 와서 모시고 서 있었
다. 세번째 와서 모시고 섰을 때는 스님께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서 침을 뱉으니 이에 시자가 물었다.
"스님, 지금 어째서 침을 뱉으셨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저는 시자입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못하시면 누구에게 하시겠습
니까?"
"물을 필요가 없다. 그대가 물을 일도 아니고 또 내가 말 할 일도
아니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라도 알고자 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
시오."
"사람을 몹시도 괴롭히는구나! 내가 사람이 못나 조금 전에 갑자
기 보리와 열반이 생각나길래 침을 뱉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보리와열반, 요의(了義)를 말씀
하셨습니까?"
"남에게 전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대가 물을 일이 아니며,
그대의 경계도 아니라 하지 않더냐."
16.
스님께서 법어를 내렸다.
"목구멍도 입술도 다물고서 속히 일러보라."
어떤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께서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기는 사양치 않겠으나 뒷날 내 자손들을 속일
것이다."
이 말씀에 운암스님이 대답했다.
"스님, 지금도(스님의 자손이)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소리쳤다.
"우리 자손들을 망쳤도다."
17.
스님께서 또 이렇게 법어를 내렸다.
"견(見)의 강물이 코끼리도 떠내려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보셨습니까?"
"보았다."
"보신 뒤엔 어떠셨습니까?"
"견(見)을 둘이 없는 것으로써 보았느니라."
"이미 말씀하시기를, '견을 둘이 없는 것으로써 보신다'하셨는데
견으로써 견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견을 다시 본다면 앞
의 것을 보십니까? 뒤의 것을 보십니까?"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견을 볼 때에 견은 견이 아니니라. 견은 견까지도 연윈 것 이어
서 견으로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18.
스님께서 또 이렇게 법어를 내렸다.
"옛사람이 한 손을 들거나 한 손가락을 세우고서도 그것을 선이다
도다 하였는데 이 말이 끝없이 무수한 사람을 속박하는 구나. 설사
아무말 않더라도 역시 입으로 짓는 허물이 있다.
부(부)상좌가 이 일을 들려주며 취암(翠岩)스님에게 물었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것이 입으로 짓는 허물이 됩니까?"
"그저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상좌가 이틀을 말없이 지냈는데 취암스님이 부상좌에게 물었다.
"엊그제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대 뜻에 맞지 않는 모양인데, 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자세히 말씀해 주시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것이 입으로 짓는 허물이 됩니까?"
부상좌가 손을 번쩍 드니, 취암스님이 다섯 활개를 땅에 던져 절
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였다.
19.
스님께서 어느날 시자더러 제1좌(座)에게 가서 이렇게 묻게하였
다.
"실제의 이치에는 한 티끌도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불사(佛事)를
하는 쪽에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한 말씀은 궁극적인 교설(요
義敎)에 속하는가. 방편교설(不了義)에 속하는가?"
제1좌가 대답했다.
"물론 궁극적인 교설(了義敎)에 속한다."
시자가 돌아와서 아뢰니, 스님께서 시자를 때려서 내쫓았다.
20.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이 도에 들어 활짝 깨닫는 대승법(大乘入道頓悟法)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우선 그대는 모든 반연을 쉬고 민사를 쉬어서 착한 일, 착하지
못한 일 등 세간의 온갖 것들을 모두 놓아버린 뒤에 기억하지도 말
고 생각하지도 말라. 몸과 마음을 놔버려 자유롭게 하면, 마음은 목
석(木石)간이 되고 입으로는 말할 것이 없고 마음으로는 분별할 길
이 없어진다. 마음은 허공 같아 지혜의 해가 저절로 나타나는데 마
치 구름이 흩어지면 해가 나둣 할 것이다. 온갖 반연인 탐욕·성냄
·애착 등을 모두 쉬어서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생각이 다하여 5욕
(五欲)과 8풍(八風)을 대하더라도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러한 속
박을 받지 않으며,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게 되면 자연히 신통과 묘
용(神通妙用)을 갖출 것이니 이는 해탈한 사람이다. 온갖 경계를 대
할 때 마음에 조용함도 어지러움도 없고 거둘 것도 흩어버릴 것도
없어서 온갖 빛과 소리를 만나더라도 걸림이 없으면 이런 이를 도인
(道人)이라 한다. 온갖 선악(善惡)과 더럽고 깨끗함, 유위
(有爲)세계의 복과 지혜에 얽매이지만 않으면 그것을 부처의
지혜라 한다. 시비나 미추, 옳은 이치나 그른 이치 등 모든 소견을
다 없애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어딜 가나 자유로우면 그
것을 처음 발심한 보살이 당장에 부처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모든 법은 스스로가 말하지 않아서, 공(空)도 스스로를 공이라 하
지 않고 색(色)도 스스로를 색이라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 더럽고
깨끗함도 사람을 속박할 생각이 없는데, 사람들 스스로 함부로 헤아
리고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고 갖가지 소견을 일으킨다. 그런데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마음이 다하여 얽매임에도 머무르지 않고 해
탈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온갖 유위 무위의 견해가 없이 평등한 마음
씨로 생사에 처한다면 그 마음은 자유로울 것이다. 마침내는 헛된
번뇌와 5온,18계, 생사와 모든 감관과 어우르지 않고 훤출히 뛰어나
의지한 곳이 없을 것이다.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아서 가고 옴에 자
유로우니, 생사의 길에 왕래하되 마치 문을 여닫는 듯할 것이다.
만일 갖가지 괴로움과 즐거움이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나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명예나 의식(衣食)등의 이
익을 생각지도 말고, 온갖 공덕이나 이익 등을 탐내지도 말며, 세상
법에 마음을 걸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친하고 좋아하며 괴롭
고 즐거운 것이라도 생각에 두지 말며, 거칠은 음식으로 목숨을 잇
고 옷을 입되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 우뚝하니 바봐 같고 귀머거리
같이 되어야 비로소 조그만치 가까와질 여지가 있다. 생사(生死)의
길에서는 알음알이를 널리 배우거나 복과 지혜를 구하여도 진리에는
이익이 없고, 도리어
알음알이의 경계가 일으키는 바람에 휘말려 생사바다로 돌아가
게 될 것이다.
부처는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진리는 구할 것이 없는 이치니 구하면 잃는다. 그렇다고 구함
이 없는 것에 집착하면 도리어 구하는 것과 같다.
이 법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으니, 만일 평생 동안 마음이
목석(木石)과 같아서 5음·18계·5욕·8풍에 흔들리지 않으면 생사
의 원인이 끊어져서 가고옴에 자유로와 모든 유위(有爲)의 인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뒷날엔 속박없는 몸으로 중생과 동
화되어 이익케 하고 속박없는 마음으로 모든 것에 응하며 속박없는
지혜로 모든 속박을 풀어서 병에 맞추어 약을 줄 것이다."
21.
어떤 이가 물었다.
"지금 계를 받아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온갖 착한 법을 다
갖추면 해탈을 얻겠습니까?"
"조금은 해탈을 할 수 있으나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면 온
갖 해탈을 얻지는 못한다."
"무엇이 마음의 해탈입니까?"
"부처도 구하지 않고, 알음알이도 구하지 않아서 더럽고 깨끗한
생각이 다한 뒤엔 이 구함없는 경지도 옳다고 고집하지 않아야 한
다. 다한 경지에도 머무르지 않고, 지옥의 속박도 두려워하지 않으
며, 천당의 즐거움도 좋아하지 않고, 일체법
구애되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하여 걸림이 없게 될 것이니 몸과
마음 등 모두를 해탈이라 하게 된다.
그대들은 조그만한 계행이나 선행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치
말라. 항하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무루(無漏)의 계·정·혜를 가졌
다 하더라도 전혀 쓸모가 없으니, 열심히 용맹정진하라.
귀 먹고 눈 어두운 늙음의 고통이 몸에 다가올 때까지를 기다리지
말라.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은 두려움에 떨면 갈곳이 없으
니 이 지경이 되면 손발을 쓰려 해도 소용이 없다.
설사 복과 지혜와 지식이 있다 하여도 전혀 구제할 수 없는데,
그것은 마음의 눈이 열리지 못하고 오직 모든 경계를 반연하여
돌이킬 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일생 동안의 악업(惡業)이 모두 앞
에 나타나서 반갑거나 두려운 6도와 5온이 앞에 나타나면 모두가 훌
륭한 집·배·수레로 보여서 찬란히 빛난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탐욕과 애착을 따랐기에 모두 좋은 경계로 보이는데, 보이는 데 따
라서 인연 많은 곳으로 태어나니 전혀 자유가 없어 용이 될지 축생
이 될지 양반이 될지 상놈이 될지 전혀 기약이 없다."
"어찌해야 자유로와집니까?"
"이제 5욕과 8풍을 대하여도 마음에 버리거나 선택함이 없고, 더
럽거나 깨끗함이 모두 없어져서 하늘의 해와 달이 아무것에도 걸리
지 않고 비추는 것같이 되어, 마음이 목석(木石)과 같고 강을 건너는
코끼리같이 전혀 의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22.
스님께서 또 말했다.
"경을 읽거나 서적과 어록을 보는 목적은 모두가 자기에게로 돌아
가야 된다. 온갖 교법은 오직 현재 감각하는 성품인 자기를 밝히는
것이라야 하는데, 유무(有無)의 모든 경계에 끄달리지 않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導師)께서도 온갖 유무의 경계를 꿰뚫어 무찌르
셨으니, 이것이 「금강경」에 있는 자유와 독립의 경지이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하면 설사 12부경을 다 외운다 하여도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을 이루게 될 것이며, 도리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어 수행도 아니고 경이나 어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만일 세상이 좋은 일뿐이라 하거나 밝은 사람 쪽으로만 향하다면
이는 옹색한 사람이다. 10지(地)에서도 세상의 흐름을 해탈치 못하
고 생사(生死)의 강으로 흘러들어가니, 지식으로 어구(語句)를 찾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된다. 지식은 탐욕에 속하고, 탐욕은 병을 이루
니, 지금이라도 유무(有無) 모든 법을 여의어 3구(三句) 밖으로 뛰어
나면 자연히 부처님과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이미 스스로가 부처
인데 어찌 부처가 말을 하지 못한다고 근심하랴. 오직 부처가 유무
등 모든 법에 얽매여 더욱더욱 부자유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해
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진리의 바탕 위에 서지 못한 채 복과 지혜가 있는
것은 마치 천한 이를 귀하다 하는 것 같으니, 진리의 바탕에 먼저
선 뒤에 복과 지혜가 있어서 때에 맞추어 행동하니
만 못하다. 그렇게 되면 흙을 가지고 금을 만들고 바닷물을 소酪(소
酪)으로 바꾸며, 수미산을 뭉개 먼지를 만들며, 한 이치를 무량한 이
치로 하고 무량한 이치를 한 이치로 하게 될 것이다."
그 밖의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려 있다. 조칙으로
시호를 대지(大智) 선사라 하고, 탑호(塔號)를 대보승(大寶勝)이라
하였다.
나옹록
보제존자어록 서 (普濟尊者語錄 序)
현릉 (玄陵:공민왕) 의 스승 보제존자는 서천 지공 (指空) 스님과 절강 (江) 서쪽의 평산
(平山) 스님에게서 법을 이어받아 종풍 (宗風) 을 크게 펼쳤다. 그러므로 스님의 한두 마디
말이나 짤막한 글귀라도 세상에서 소중히 여길 만하기에 어록을 펴내는 것이다.
스승의 도가 세상에 행해지느냐 행해지지 않느냐는 오로지 뒷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
런데 뒷사람들이 스승의 도를 알려면 그 분의 어록을 통하지 않고는 길이 없기 때문에, 자
연히 제자들로서는 어록 출판에 힘쓰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변변찮은 재주에 왕명을 받들어 명 (銘) 을 짓고 또 그 어록을 추천하게 되었으니, 이
것이 나의 행인가 불행인가는 뒷사람이나 알 것이다.
스님의 제자 각우 (覺) ·각연 (覺然) ·각변 (覺卞) 등이 옛 본을 교정하여 출판하려고 내
게 서문을 청하므로 여기에 간단히 쓰는 바이다.
창룡(蒼龍) 기미년(1379) 8월 16일에 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 씀.
서 (序)
행촌공 (杏村空:李 . 고려말의 문신, 문하시중) 이 나옹스님에 관한 기록을 내게 보이면서,
나옹스님은 연도 (燕都) 에 가서 유학하고 또 강남 (江南) 으로 들어가 지공 (指空) 스님과
평산 (平山) 스님을 찾아뵙고 공부하고는 법의 (法衣) 와 불자 (拂子) 를 받는 등, 오랫동안
불법에 힘써 왔다고 하였다.
원제 (元帝) 는 더욱 칭찬하고 격려하며 광제선사 (廣濟禪寺) 에 머물게 하고, 금란가사 (金
聆袈裟) 와 불자를 내려 그의 법을 크게 드날렸으며, 또 평소에도 스님의 게송을 사람들에
게 많이 보여 주었다고 한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산수 (山水) 속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왕이 스님의 이름을 듣고 사자
를 보내 와주십사 하여 만나보고는 공경하여 신광사 (神光寺) 에 머무시게 하였다. 나는 가
서 뵈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던 차에, 하루는 스님의 문도가 스님의 어록을 가지고
와서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그때 나는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는 법이오. 나는 유학 (儒學) 하는 사
람이라 불교를 모르는데 어찌 서문을 쓰겠소"라고 하였다. 그러나 옛날 증자고 (曾子固) 는
"글로써 불교를 도우면 반드시 비방이 따른다. 그러나 아는 사이에는 거절할 수가 없다" 하
였다.
지금 스님의 어록을 보니 거기에 `부처란 한 줄기 풀이니, 풀이 바로 장육신 (丈六身:佛身)
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면 부처님 은혜를 갚기에 족하다.
나도 스님에 대해 말한다.
나기 전의 면목을 이미 보았다면 한결같이 향상 (向上) 해 갈 것이지 무엇하러 오늘날 사람
들에게 글을 보이는가. 기어코 한 덩이 화기 (和氣) 를 얻고자 하는가. 그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도 이로써 은혜 갚았다고 생각하는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님은
지난날 지공스님과 평산스님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지공스님과 평산스님도 각각 글을 써서
법을 보였다.
소암 우공 (邵艤虞公) 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천지가 하나로 순수히 융합하니
한가한 몸이 온종일 한결같다
왔다갔다하다가 어디서 머물까
서른 여섯의 봄 궁전이다.
地天一醇融 閑身盡日同
往來何所缺 三十六春宮
대개 이치에는 상 (象) 이 있고 상에는 수 (數) 가 있는데, 36은 바로 천지의 수다. 천지가
합하고 만물이 자라는 것이 다 봄바람의 화기에 있듯이, 이른바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달라진다는 것도 다 이 마음이 움직일 수 있고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나옹스님의 한
마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부디 지공스님이나 평산스님의 전하지 않은 이치를
전해 받아 자기의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정 (至正) 23년 (1363) 가을 7월 어느날,
충겸찬화공신 중대광문하찬성사 진현관대제학 지춘추관사치사 직산담암 백문보 화보 (忠謙
贊化功臣重大翠門下贊成事進賢�v大提學知春秋�v事致仕稷山淡艤白文寶和父) 는 삼가 서한다.
탐명 (塔銘)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랑 중문충보절동덕 찬화공신 중 대광한산군 예문관대
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신이색 봉교찬 〔前朝列大夫征東行中書省左
右司中文*忠報節同德贊化空臣重*大匡韓山君藝文�v大提學知春秋�v事*成均大司成知
書事*臣李穡 奉敎撰〕
수충찬화공신 광정대부 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 상호군제점서운관사 신권중화 봉교서
병단전액 〔輸忠贊化空臣翠紛大夫政堂文學藝文�v大提學上護軍提點書雲觀事臣權仲和奉
敎書幷丹*額〕
현릉 (玄陵) 20년 (1370) 경술 9월 10일에 왕은 스님을 서울로 불러들이시고, 16일에는
스님이 머무시는 광명사 (廣明寺) 로 나아가셨다. 양종오교 (兩宗五敎) 의 제방 납자들을 많
이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고, 그것을 공부선 (功夫選) 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셨
다.
스님은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 〔臼〕 을 모두 부수고 범성 (凡聖) 의 자취를 다 쓸어버리며, 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의심을 떨어버린다. 잡았다 놨다 함이 손안에 있고 신통 변화는 작용
〔機〕 에 있으니, 3세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님네나 그 규범은 같도다. 이 법회에 있는 여러
스님네는 사실 그대로 대답하시오."
그리하여 차례로 들어와 대답하게 하였는데, 모두 몸을 구부리고 땀을 흘리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는 알았으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
며, 한마디 하고는 물러가기도 하였으므로 임금은 매우 불쾌한 빛을 보이는 것 같았다.
끝으로 환암 혼수 (幻庵混修) 스님이 오자 스님은 3구 (三句) 와 3관 (三關) 을 차례로 묻
고, 법회를 마치고는 회암사 (檜岩寺) 로 돌아가셨다.
신해년 (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 (工部尙書 張子溫) 을 보내 편지와 도
장과 법복과 바루를 내리시고는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 (封) 하시고, 동방 제일 도량인 송광사 (松廣寺) 에 계시라고 명하셨다.
임자년 (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하신 삼산양수 (三山兩水) 를 생각하
고 회암사로 옮기려 하였는데, 마침 임금의 부름을 받고 회암사 법회에 나아갔다가 임금께
청하여 거기 있게 되었다. 스님은 "돌아가신 스승 지공스님이 일찍이 이 절을 중수하셨는데,
전란에 탔으니 어찌 그 뜻을 이어받지 않으랴" 하고는 대중과 의논하여 전각과 집들을 더
넓혔다. 공사를 마치고 병진년 (1376) 4월에 낙성식을 크게 열었다.
대평 (臺評) 의 생각에 회암사는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므로 혹 생업에 폐가 될까 염려되어 왕래를 금하였다.
그리하여 영원사 (瑩源寺:경남 밀양에 있음) 로 옮기라는 임금의 명령이 있었고, 빨리 출발
하라는 재촉이 있었다. 스님은 마침 병중에 있었으므로 가마를 타고 절 입구의 남쪽에 있는
못가로 나갔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이 모두 의아하게 여겨 소
리내어 우니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 (瘻興)
에 가서 멈출 것이오."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 (¿) 에게 말씀하셨다.
"내 병이 심하오. 배를 빌려 타고 갑시다."
그리하여 물길을 따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렀다. 거기서 또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쉬었다가 병세가 좀 나아지면 가고 싶소."
탁첨은 기꺼이 그 말을 따라 신륵사 (神勒寺) 에 머물렀다. 5월 15일에 탁첨은 또 빨리 가자
고 독촉하였다.
스승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소. 나는 아주 갈 것이오."
그리고는 그날 진시 (辰時) 에 고요히 돌아가셨다.
그 고을 사람들은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화장하고 뼈를 씻을 때에는
구름도 없이 사방 수백 보에 비가 내렸다. 사리 150개가 나오니 거기에 기도하고 558개로
나누었다. 사부대중이 재 속에서 그것을 찾아 감추어 둔 것만도 부지기수였다. 신령한 광채
가 나다가 3일 만에야 그쳤다.
석달여 (繹達如) 는 꿈에 화장하는 자리 밑에 용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
과 같았다. 초상 배가 회암사로 돌아올 때에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이 넘쳐흘렀다. 사람
들은 그것이 여룡 (瘻龍) 의 도움이라 하였다.
8월 15일에 회암사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우고 정골사리 (頂骨舍利) 는 신륵사에 두었다. 화
장을 하고 석종 (石鍾) 으로 덮은 것은 감히 잘못되는 일이 있을까 하여 경계한 것이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선각 (禪覺) 이라 시호를 내리고, 신 색 (穡) 에게는
글을 지으라 명하고, 신 중화 (仲和) 에게는 단전액 (丹額) 을 쓰게 하였다.
신이 삼가 생각을 더듬어보니, 스님의 휘 (諱) 는 혜근 (惠勤) 이요, 호는 나옹 (懶翁) 이며,
본래 이름은 원혜 (元惠) 이다. 향년 (享年) 57세, 법랍 (法瀘) 은 38세이며, 영해부 (寧海
府) 사람으로 속성은 아 (牙) ) 씨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 (瑞具) 로서 선관령 (膳官令) 을
지냈고, 어머니 정 (鄭) 씨는 영산군 (靈山郡) 사람이다.
정씨는 꿈에 황금빛 새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으며 갑자기 오색빛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품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 (延祐) 경신년 (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스무 살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
느냐고 물었는데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 (功德山) 에 들어가 요
연 (了然) 스님께 귀의하여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은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출가했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것이 이렇게 왔으나 다만 수행하는 법을 모릅니다."
"나도 그대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지정 (至正) 갑신년 (1344) 에 회암사로 가서 밤낮으로 혼자 앉았다가 갑자기 깨치고는, 중
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으리라 결심하였다.
무자년 (1348) 3월에 연도 (燕都) 에 들어가 지공스님을 뵙고 문답하여 계합한 바 있었다.
10년 (1350) 경인 1월에 지공스님은 대중을 모으고 법어를 내렸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
는데, 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와 몇 마디하고 세 번 절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공스님은 서
천 (西天) 의 108대 조사다.
그 해 봄에 남쪽 강제 (江)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을 8월에는 평산 (平山) 스님을 찾아뵈
었다. 평산스님은 물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았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았는데, 그 분은 날마다 천검 (千劍) 을 썼습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 (一劍) 을 가져 오라."
스님은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밀쳤다. 평산스님은 선상에 쓰러지면서 "이 도둑놈이 나를 죽
인다!" 하고 크게 외쳤다.
스님은 "내 검 (劍) 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하고 붙들어 일으
켰다. 평산스님은 설암 (雪艤) 스님이 전한 급암 (及艤) 스님의 가사와 불자를 전해 신표를
삼았다.
신묘년 (1351) 봄에 보타락가산 (¿陀洛迦山) 으로 가서 관음보살께 예배하고 임진년
(1352) 에 복룡산 (伏龍山) 으로 가서 천암 (千巖) 스님을 뵈었다. 천암스님은 마침 스님네
들을 천여 명 모아놓고 입실 (入室) 할 사람을 뽑고 있었다. 천암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하자 천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그러자 천암스님은 입실을 허락하였다.
그 해에 북방으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오니 지공스님은 법의와 불자와 범서 (梵書)
를 주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연대 (燕代) 의 산천을 돌아다니는 말쑥하고 한가한 도인이 되
었다.
스님의 명성이 궁중에 들어가 을미년 (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대도 (大都) 의
광제사 (廣濟寺) 에 머물렀고, 병신년 (1356) 10월 15일에는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원
사 야선첩목아 (院使 也先帖木兒) 를 보내 금란가사와 비단을 내리시고, 황태자는 금란가사
와 상아불자 (象牙拂子) 를 가지고 참석하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 들고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천천히 말씀하셨다.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하고 나서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가로 잡
고 두어 마디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무술년 (1358) 봄에 지공스님에게 수기 (授記) 를 얻고 귀국해서는 다니거나 머무르거나
인연 따라 설법하다가, 경자년 (1360) 에는 오대산에 들어가 살으셨다.
신축년 (1361) 겨울에 임금님은 내첨사 방절 (內事 方節) 을 보내 서울에 맞아들여 마음의
요체에 대한 법문을 청하고 만수가사 (滿繡袈裟) 와 수정불자 (水精拂子) 를 내리셨다. 공주
(公主) 는 마노불자를 올리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베풀고 신광사 (神光寺) 에 계시기를 청
하였으나 사양하자 임금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겠다" 하시므로 부득이 부임하셨다.
11월에 홍건적 (紅巾己) 이 서울 근방 〔京幾〕 을 짓밟았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모두 남쪽
으로 옮겼다. 스님네들이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청하자 스님은, "명 (命) 이 있으
면 살겠거늘 도적인들 어찌하겠는가" 하셨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더욱 졸라대었다. 그날 밤
꿈에, 얼굴에 검은 글이 쓰여진 신인 (神人) 하나가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지
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이니, 스님은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였다. 이튿날 토지
신 (土地神) 을 모신 곳에 가서 그 용모를 보았더니 꿈에 본 그 얼굴이었다. 도적은 과연 오
지 않았다.
계묘년 (1363) 에 구월산 (九月山) 에 들어갔더니 임금은 내시 김중손 (金仲孫) 을 보내 돌
아오기를 청하였다.
을사년 (1365) 3월에 대궐에 들어가 물러가기를 청하여 비로소 숙원 (宿願) 을 이룬 뒤에
는, 용문 (龍門) ·원적 (元寂) 등 여러 산에서 노닐다가 병오년 (1366) 에는 금강산에 들
어갔고, 정미년 (1367) 가을에는 청평사 (淸平寺) 에 머물렀다.
그 해 겨울에는 예보암 (猊¿岩) 이 지공스님의 가사와 친필을 스님에게 주면서 치명 (治命:
죽을 무렵에 맑은 정신으로 하는 유언) 이라 하였다.
기유년 (1369) 에 다시 오대산에 들어갔다. 경술년 (1370) 봄에는 사도 달예 (司徒 達睿)
가 지공스님의 영골 (靈骨) 을 받들고 와서 회암사에 두니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였다. 그
리고 곧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광명사 (廣明寺) 에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에 회암사로
돌아왔으니, 그것은 9월에 공부선 (工夫選) 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강월헌 (江月軒) 이라 하였다. 평생에 세속의 문자를 익히지는 않았으
나, 제영 (題詠) 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붓을 들어 그 자리에서 써주었는데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이치가 심원하였다.
만년에는 장난삼아 산수화 그리기를 좋아하여 권도 (權道) 의 시달림을 받았으니, 아아, 도
를 통하면 으레 재능도 많아지는가 보다.
신 색 (穡) 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진실로 선을 깨친 〔禪覺〕 이시며
기린의 뿔이로다
임금의 스승이요
인천의 눈이로다
뭇 승려들 우러러보기를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신령한 새매 꿈이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용신 (龍神) 이 초상을 호위함하여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나니
강은 넓게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밟았도다
공 (空) 인가 색 (色) 인가
위아래가 훤히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깊이 멸하지 않으리라.
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萬衲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徹
哉高風終 終古不滅
7년 6월 어느 날 비를 세우다
비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회암사 (京畿道 楊州郡 檜泉面 檜岩里 檜岩寺) 에 있
다. 고려의 폐왕 (廢王) 인 우왕 (王) 정사년 (1377) 에 세우다. 비의 높이는 5척, 너비는 3
척 2촌, 글자의 지름은 7푼, 예서제액자 (隷書題額字) 의 지름은 3촌 3푼. 전서 (書) 로 음기
(陰記) 한 것이 닳아 없어져 읽을 수 없다.
행장 (行狀)
문인 각굉 (門人覺宏) 지음
스님의 휘는 혜근 (慧勤) 이요 호는 나옹 (懶翁) 이며, 본 이름은 원혜 (元慧) 이다. 거처하
는 방은 강월헌 (江月軒) 이라 하며, 속성은 아 (牙) 씨인데 영해부 (寧海府) 사람이다. 아
버지의 휘는 서구 (瑞具) 인데 선관서령 (膳官署令) 이란 벼슬을 지냈고, 어머니는 정 (鄭)
씨다.
정씨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 (延祐) 경신년 (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날 때부터 골
상이 보통 아이와 달랐고, 자라서는 근기가 매우 뛰어나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부모가 허
락하지 않았다.
20세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모
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 묘적암 (妙寂艤) 의 요연 (了然) 스님에게 가서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머리를 깎았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여기 왔을 뿐이거니와 볼 수 없는 몸을 보고 찾을 수 없는 물건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그리하여 스님은 요연스님을 하직하고 여러 절로 돌아다니다가 지정 (至正) 4년 (1344)
갑신년에 회암사로 가서 한 방에 고요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앉아 있었다.
그때 일본의 석옹 (石翁) 화상이 그 절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승당 (僧堂) 에 내려
와 선상 (禪滅) 을 치며 말하였다.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
대중은 말이 없었다. 스님은 게송을 지어 보였다.
선불장 (選佛場) 에 앉아서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
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
그 뒤 4년 동안을 부지런히 닦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깨친 뒤에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도를 구하려 하였다.
정해년 (1347) 11월에 북을 향해 떠나 무자년 (1348) 3월 13일에 대도 (大都) 법원사 (法
源寺) 에 이르러, 처음으로 서천의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려에서 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신통 (神通) 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신통을 나타내 보여라."
스님은 그 앞으로 가까이 가서 합장하고 섰다. 지공스님은 또 물었다.
"그대가 고려에서 왔다면 동해 저쪽을 다 보고 왔는가?"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왔겠습니까?"
"집 열 두 채를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 그대를 여기 오라 하던가?"
"제 스스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뒷사람들을 위해 왔습니다."
지공스님은 허락하고 대중과 함께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올렸다.
산과 물과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도다
자성 (自性) 이 원래 청정한 줄 비로소 알았나니
티끌마다 세계마다 다 법왕의 몸이라네.
山河大地眼前花 萬像森羅赤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서천의 20명과 동토의 72명은 다 같은 사람인데 지공은 그 가운데 없다. 앞에는 사람이 없
고 뒤에는 장군이 없다. 지공이 세상에 나왔는데 법왕이 또 어디 있는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법왕의 몸, 법왕의 몸이여
삼천 (三天) 의 주인이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
천검 (千劍) 을 뽑아들고 불조를 베는데
백양 (白陽) *이 모든 하늘을 두루 비춘다.
法王身法王身 三天爲主利群民
千劍單提斬佛祖 百陽普遍照諸天
나는 지금 이 소식을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집의 정력만 허비했네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부상 (扶桑) 의 해와 달이 서천 (西天) 을 비춘다.
吾今識得這消息 猶是幢家弄精魂
也大奇也大奇 扶桑日月照西天
지공스님이 응수했다.
"아버지도 개요 어머니도 개며 너도 바로 개다."
스님은 곧 절하고 물러갔다.
그 달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공스님은 그것을 보고 게송을 지었다.
잎은 푸르고 꽃은 피었네 한 나무에 한 송이
사방 팔방에 짝할 것 하나도 없네
앞일은 물을 것 없고 뒷일은 영원하리니
향기가 이르는 곳에 우리 임금 기뻐하네.
葉靑花發一樹一 十方八面無對一
前事不問後事長 香氣到地吾帝喜
스님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해마다 이 꽃나무가 눈 속에 필 때
벌 나비는 분주해도 새 봄인 줄 몰랐더니
오늘 아침에 꽃 한 송이 가지에 가득 피어
온 천지에 다 같은 봄이로다.
年年此樹雪裏開 蜂蝶忙忙不知新
今朝一箇花滿卿 普天普地一般春
하루는 지공스님이 법어를 내렸다.
선 (禪) 은 집 안이 없고 법은 밖이 없나니
뜰 앞의 잣나무를 아는 사람은 좋아한다
청량대 (淸凉臺) 위의 청량한 날에
동자가 세는 모래를 동자가 안다.
禪無堂內法無外 庭前栢樹認人肯
淸凉臺上淸凉日 童子數沙童子知
스님은 답하였다.
들어가도 집 안이 없고 나와도 밖이 없어
세계마다 티끌마다 선불장 (選佛場) 이네
뜰 앞의 잣나무가 새삼 분명하나니
오늘은 초여름 사월 초닷새라네.
入無堂內出無外 刹刹塵塵選佛場
庭前栢樹更分明 今日夏初四月五
하루는 지공스님이 스님을 불러 물었다.
"이 승당 안에 달마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저 밖에 있는 재당 (齋堂) 을 그대는 보는가?"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승당으로 돌아가버렸다.
지공스님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두루 찾아뵙고 마지막으로 미륵을 뵈었을 때, 미륵이 손가락을 한
번 퉁기매 문이 열리자 선재는 곧 들어갔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안팎이 없다 하는가?"
스님은 시자를 통해 대답하였다.
"그때 선재는 그 속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시자가 그대로 전하니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이 중은 고려의 노비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 (普慶寺) 를 보는가?"
"벌써부터 보았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있던가?"
"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런 말을 합디다.
"차를 마시고 가거라."
그 뒤 어느 날 스님은 게송을 지어 지공스님에게 올렸다.
미혹하면 산이나 강이 경계가 되고
깨치면 티끌마다 그대로가 온몸이네
미혹과 깨침을 모두 다 쳐부수었나니
닭은 아침마다 오경 (五更) 에 홰치네.
迷則山河爲所境 悟來塵塵是全身
迷悟兩頭俱打了 朝朝鷄向五更啼
지공스님은 대답하였다.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노라."
지공스님은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 10년 동안 판수 (板首) 로 있게 하였다.
경인년 (1350) 1월 1일, 지공스님은 황후가 내리신 붉은 가사를 입고 방장실 안에서 대중을
모으고 말하였다.
"분명하다 법왕이여, 높고 높아 이 나라를 복되게 한다. 하늘에는 해가 있고 밑에는 조사가
있으니 노소를 불문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다 마주해 보라."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대중 속에서 나아가 말하였다.
"분명하다는 것도 오히려 저쪽 일인데, 높고 높아 나라를 복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빈
소리다. 하늘의 해와 땅의 조사를 모두 다 쳐부수고 난 그 경계는 무엇인가."
지공스님은 옷자락을 들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안팎이 다 붉다."
스님은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해 3월에 대도를 떠나 통주 (通州) 에서 배를 타고, 4월 8일에 평강부 (平江府) 에 이르
러 휴휴암 (休休艤) 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7월 19일에 떠나려 할 때, 그 암자의 장로가
만류하자 스님은 그에게 게송을 지어 주었다.
쇠지팡이를 날려가며 휴휴암에 이르러
쉴 곳을 얻었거니 그대로 쉬어버렸네
이제 이 휴휴암을 버리고 떠나거니와
사해 (四海) 와 오호 (五湖) 에서 마음대로 놀리라.
鐵錫橫賑到休休 得休休處便休休
如今捨却休休去 四海五湖任意游
8월에 정자선사 (淨慈禪寺) 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몽당 (蒙堂) 노스님이 스님에게 물었
다.
"그대 나라에도 선법 (禪法) 이 있는가?"
스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상국 (扶桑國) 에 해가 오르매
강남의 바다와 산이 붉었다
같고 다름을 묻지 말지니
신령한 빛은 고금에 통하네.
日出扶桑國 江南海嶽紅
莫問同與別 靈光亘古通
그 노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곧 평산처림 (平山處林) 스님을 뵈러 갔다. 그때 평산스
님은 마침 승당에 있었다. 스님이 곧장 승당에 들어가 이리저리 걷고 있으니 평산스님이 물
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오?"
"대도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고 왔습니다."
"지공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던가?"
"지공스님은 날마다 천검 (千劍) 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 (一劍) 을 가져 오라."
스님이 대뜸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후려치니 평산스님은 선상에 거꾸러지면서 크게 외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
스님은 곧 붙들어 일으켜 주면서 말하였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합니다."
평산스님은 `하하' 크게 웃고는 곧 스님의 손을 잡고 방장실로 돌아가 차를 권했다. 그리하
여 몇 달을 묵게 되었다.
어느 날 평산스님이 손수 글을 적어 주었다.
"삼한 (三韓) 의 혜근 수좌가 이 노승을 찾아왔는데, 그가 하는 말이나 토하는 기운을 보면
불조 (佛祖) 와 걸맞다. 종안 (宗眼) 은 분명하고 견처 (見處) 는 아주 높으며 말 속에는 메
아리가 있고 글귀마다 칼날을 감추었다. 여기 설암스님이 전한 급암 스승님 〔先師〕 의 법
의 한 벌과 불자 하나를 주어 믿음을 표한다."
뒤이어서 게송을 지어 주었다.
법의와 불자를 지금 맡기노니
돌 가운데서 집어낸 티없는 옥일러라
계율의 근 (根) 이 깨끗해 보리 (菩提) 얻었고
선정과 지혜의 광명을 모두 갖추었네.
拂子法衣今付囑 石中取出無瑕玉
戒根永淨得菩提 禪定慧光皆具足
11년 (1351) 신묘 2월 2일, 평산스님을 하직할 때 평산스님은 다시 글을 적어 전송하였다.
"삼한의 혜근 수좌가 멀리 호상 (湖上) 에 와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가, 다시 두루 참학하려
고 용맹정진할 법어를 청한다. 토각장 (兎角杖) 을 들고 천암 (千巖) 의 대원경 (大圓鏡)
속에서 모든 조사의 방편을 한 번 치면, 분부할 것이 없는 곳에서 반드시 분부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게송을 지어 주었다.
회암 (檜岩) 의 판수 (板首) 가 운문 (雲門) 을 꾸짖고
백만의 인천 (人天) 을 한 입에 삼켰네
다시 밝은 스승을 찾아 참구한 뒤에
집에 돌아가 하는 설법은 성낸 우뢰가 달리듯 하리.
檜巖板首罵雲門 百萬人天一口呑
更向明師參透了 廻家說法怒雷奔
스님은 절하고 하직한 뒤에 명주 (明州) 의 보타락가산 (補陀洛迦山) 으로 가서 관음을 친
히 뵈옵고, 육왕사 (育王寺) 로 돌아와서는 석가상 (繹迦像) 에 예배하였다. 그 절의 장로
오광 (悟光)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스님을 칭찬하였다.
분명히 눈썹 사이에 칼을 들고
때를 따라 죽이고 살리고 모두 자유로워
마치 소양 (昭陽) 에서 신령스런 나무 보고
즐겨 큰 법을 상류 (常流) 에 붙이는 것 같구나.
當陽掛起眉間劍 殺活臨機總自由
恰昭昭陽見靈樹 肯將大法付常流
스님은 또 설창 (雪窓) 스님을 찾아보고 명주에 가서 무상 (無相) 스님을 찾아보았다.*
또 고목 영 (奇木榮) 스님을 찾아가서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았는데 고목스님이 물었다.
"수좌는 좌선할 때 어떻게 마음을 쓰는가?"
"쓸 마음이 없소."
"쓸 마음이 없다면 평소에 무엇이 그대를 데리고 왔다갔다하는가?"
스님이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니 고목스님이 말하였다.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그 눈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무엇으로 보는가?"
스님은 악! 하고 할 (喝) 을 한 번 하고는 "어떤 것을 낳아준 뒤다 낳아주기 전이다 하는
가?" 하니 고목스님은 곧 스님의 손을 잡고, "고려가 바다 건너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하였
다. 스님은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임진년 (1352) 4월 2일에 무주 (州) 복룡산 (伏龍山) 에 이르러 천암 원장 (千巖元長) 스
님을 찾았다. 마침 그 날은 천여 명의 스님네를 모아 입실할 사람을 시험해 뽑는 날이었다.
스님은 다음의 게송을 지어 올렸다.
울리고 울려 우뢰소리 떨치니
뭇 귀머거리 모두 귀가 열리네
어찌 영산 (靈山) 의 법회뿐이었겠는가
구담 (曇) 은 가지도 오지도 않네.
擊擊雷首振 群聾盡豁開
豈限靈山會 瞿曇無去來
그리고 절차에 따라 입실하였다.
천암스님은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는가?"
"정자선사에서 옵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천암스님은 "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구나" 하고 곧 입실을 허락하였다. 스님은 거기 머
물게 되어 여름을 지내고 안거가 끝나자 하직을 고했다. 천암스님은 손수 글을 적어 주며
전송하였다.
"석가 늙은이가 일대장교를 말했지만 그것은 모두 쓸데없는 말이다. 마지막에 가섭이 미소
했을 때 백만 인천이 모두 어쩔 줄을 몰랐고, 달마가 벽을 향해 앉았을 때 이조는 눈 속에
서 있었다. 육조는 방아를 찧었고, 남악 (南嶽) 은 기왓장을 갈았으며, 마조 (馬祖) 의 할
(喝) 한 번에 백장 (百丈) 은 귀가 먹었고, 그 말을 듣고 황벽 (黃岫) 은 혀를 내둘렀었다.
그러나 일찍이 장로 수좌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진실로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으로 그릴 수도 없으며, 칭찬할 수도 없고 비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저 허공처럼 텅 비어 부처나 조사도 볼 수 없고 범부나 성인도
볼 수 없으며, 남과 죽음도 볼 수 없고 너나 나도 볼 수 없다. 그 지경 〔¿際:테두리, 범위
〕 에 이르게 되어도 그 지경이라는 테두리도 없고, 또 허공의 모양도 없으며 갖가지 이름
도 없다. 그러므로 형상도 이름도 떠났기에 사람이 받을 수 없나니, 취모검 (吹毛劍) 을 다
썼으면 빨리 갈아두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취모검은 쓰고 싶으면 곧 쓸 수 있는데 다시 갈
아두어서 무엇하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있으면 노승의 목숨이 그대 손에 있을
것이요,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없으면 그대 목숨이 내 손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할을 한 번 하였다.
스님은 천암스님을 하직하고 떠나 송강 (松江) 에 이르러 요당 (了堂) 스님과 박암 (泊艤)
스님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은 감히 스님을 붙잡아 두지 못하였다.
그 해 5월에 대도 법원사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 드디어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었다.
백양 (百陽) 에서 차 마시고 정안 (正安) *에서 과자 먹으니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밝힌 법왕에게 천검 (千劍) 을 준다.
百陽喫茶正安果 年年不昧一通藥
東西看見南北然 明宗法王給千劍
스님은 답하였다.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절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奉喫師茶了 起來卽禮三
只這眞消息 從古至于今
그리고는 거기서 한 달을 머물다가 하직하고, 여러 해 동안 연대 (燕代) 의 산천을 두루 돌
아다녔다.
그 도행 (道行) 이 황제에게 들려, 을미년 (1355) 가을에 성지 (聖旨) 를 받고 대도의 광제
선사 (廣濟禪寺) 에 머물다가, 병신년 (1356) 10월 15일에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먼저
원사 야선첩목아 院使 也先帖木兒) 를 보내 금란가사와 폐백을 내리시고 황태자도 금란가사
와 상아불자를 내렸다. 이 날에는 많은 장상 (將相) 과 그들의 관리, 선비들, 여러 산의 장로
들과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들고 중사 (中使) *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 가사를 어디다 입혀야 하겠는가?"
중사는 모르겠다 하였다. 스님은 자기 왼쪽 어깨를 기리키며 "여기다 입혀야 하오" 하고는
다시 대중에 물었다.
"맑게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하고는 가사를 입고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다시 향을 사르고 말하였다.
"이 하나의 향은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과 평산화상에게 받들어 올려 법유 (法乳)
의 은혜를 갚습니다."
17년 (1357) 정유년에 광제사를 떠나 연계 (燕) 의 명산에 두루 다니다가 다시 법원사로
돌아와 지공스님에게 물었다.
"이제 제자는 어디로 가야 하리까?"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 `삼산양수 (三山兩水) ' 사이를 택해 살면 불법이 저절로 흥할 것
이다."
무술년 (1358) 3월 23일에 지공스님을 하직하고 요양 (遼陽) 으로 돌아와 평양과 동해 등
여러 곳에서 인연을 따라 설법하고, 경자년 (1360) 가을에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 (象頭
艤) 에 있었다. 그때 강남지방의 고담 (古潭) 스님이 용문산을 오가면서 서신을 통했는데,
스님은 게송으로 그에게 답하였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에
공중에서 고담 노인네가 불쑥 튀어나왔나니
삼척의 취모검을 높이 쳐들고
정령 (精靈) 들 모두 베어 자취 없앴네.
臨濟一宗當落地 空中突出古潭翁
把將三尺吹毛劍 斬盡精靈永沒
고담스님은 백지 한 장으로 답하였는데, 겉봉에는 `군자천리동풍 (君子千里同風) '이라고
여섯 자를 썼다. 스님은 받아 보고 웃으면서 던져버렸다. 시자가 주워 뜯어 보았더니 그것은
빈 종이었다. 스님은 붓과 먹 두 가지로 답하였다.
신축년 (1361) 겨울에 임금은 내첨사 방절 (方節) 을 보내 내승마 (內乘馬) 로 스님을 성안
으로 맞아들여, 10월 15일에 궁중으로 들어갔다. 예를 마치고 마음의 요체에 대해 법문을 청
하니, 스님은 두루 설법한 뒤에 게송 두 구를 지어 올렸다.* 임금은 감탄하면서, "이름을
듣는 것이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다" 하시고 만수가사와 수정불자를 내리셨다. 공주도 마노
불자를 보시하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내리셨다. 그리고 신광사 (神光寺) 에 머물기를 청하
니 스님은 "산승은 다만 산에 돌아가 온 마음으로 임금을 위해 축원하고자 하오니 성군의
자비를 바라나이다" 하면서 사양하였다.
임금은 "그렇다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리라" 하시고 곧 가까운 신하 김중원 (金仲元) 을
보내 가는 길을 돕게 하였다. 스님은 할 수 없어 그 달 20일에 신광사로 갔다.*
11월에 홍건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도성이 모두 피란하였으나, 오직 스님만은 제자들을 거느
리고 보통때와 같이 설법하고 있었다. 하루는 수십 기 (騎) 의 도적들이 절에 들어왔는데,
스님은 엄연히 그들을 상대하였다. 도적의 우두머리는 침향 (沈香) 한 조각을 올리고 물러
갔다. 그 뒤로도 대중은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말리면
서, "명 (命) 이 있으면 살 것인데 도적이 너희들 일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였다.
그 뒤에 어느 날 대중이 다시 피란을 청하였으므로 스님은 부득이 허락하고 그 이튿날로 기
약하였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신인 (神人) 이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
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입니다. 스님은 부디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고 곧
물러갔다. 그 이튿날 스님은 토지신을 모신 곳에 가서 그 모습을 보았더니 바로 꿈에 본 얼
굴이었다. 스님은 대중을 시켜 경을 읽어 제사하고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 도적은 여러 번
왔다갔으나 재물이나 양식, 또는 사람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다.
계묘년 (1363) 7월에 재삼 글을 올려 주지직을 사퇴하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스님은 스스로 빠져나와 구월산 (九月山) 금강암으로 갔다. 임금은 내시 김중손 (金仲孫)
을 보내 특별히 내향 (內香) 을 내리시고, 또 서해도 (西海道) 지휘사 박희 (朴6) , 안렴사
이보만 (按兼使 李¿萬) , 해주목사 김계생 (海州牧使 金繼生) 등에게 칙명을 내려 스님이
주지직에 돌아오기를 강요하였다. 스님은 부득이 10월에 신광사로 돌아와 2년 동안 머무시
다가, 을사년 (1365) 3월에 궁중에 들어가 글을 올려 물러났다. 그리고는 용문 (龍門) ·원
적 (圓寂) 등 여러 산에 노닐면서 인연을 따라 마음대로 즐겼다.
병오년 (1366) 3월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정양암 (正陽艤) 에 있었다. 정미년 (1367) 가을
에 임금님은 교주도 (交州道) 안렴사 정양생 (鄭良生) 에게 명하여 스님에게 청평사에 머
무시기를 청하였다.
그 해 겨울에 보암 (普艤) 장로가 지공스님이 맡기신 가사 한 벌과 편지 한 통을 받아 가지
고 절에 와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입고 향을 사른 뒤에 두루 설법하였다.*
기유년 (1369) 9월에 병으로 물러나 또 오대산에 들어가 영감암 (靈惑艤) 에 머물렀다.
홍무 (洪武) 경술년 (1370) 1월 1일 아침에 사도 달예 (司徒 達睿) 가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받들고 회암사에 왔다. 3월에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고 산을 나왔다. 임금은 가까
운 신하 김원부 (金元富) 를 보내 스님을 맞이하고 영골에 예배하였다. 스님은 성 안에 들어
가 광명사 (廣明寺) 에서 안거를 지냈다.
8월 3일에 내재 (內齋) 에 나아가 재를 마치고 두루 설법하였다.
17일에 임금은 가까운 신하 안익상 (安益祥) 을 보내 길을 도우라 하고 스님께 회암사에 머
물기를 청하였다. 9월에는 공부선 (工夫選) 을 마련하고 양종오교 (兩宗五敎) 의 제방 승려
를 크게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했는데, 그때 스님에게 주맹 (主盟) 이 되기를 청하였다.
16일에 선석 (選席) 을 열었다. 임금님은 여러 군 (君) 과 양부 (兩府) 의 문무백관을 거느
리고 친히 나와 보셨다. 그리고 선사 강사 등 여러 큰 스님네와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
다. 그때 설산국사 (雪山國師:화엄종의 종사인 千熙스님을 말함) 도 그 모임에 왔다. 스님은
국사와 인사하고 처음으로 방장실에 들어가 좌복을 들고 "화상!" 하였다. 국사가 무어라 하
려는데 스님은 좌복으로 그 까까머리를 때리고는 이내 나와버렸다.
사나당 (舍那堂) 안에 법좌를 만들고 향을 사른 뒤에, 스님은 법좌에 올라 질문을 내렸다.
법회에 있던 대중은 차례로 들어가 대답하였으나 모두 모른다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로는
통하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한 뒤 곧 물
러가기도 하였다. 임금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끝으로 환암 혼수 (幻庵混修) 스님이 오니 스
님은 3구 (三句) 와 3관 (三關) 을 차례로 물었다.
그보다 먼저 스님이 금경사 (金脛寺) 에 있었을 때 임금은 좌가대사 혜심 (左街大師 慧深)
을 시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법문으로 공부한 사람을 시험해 뽑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먼저 입문 (入門) 등 3구 (三句) 를 묻고, 다음에 공부10절 (工夫十節) 을 물으며, 나중에
3관 (三關) 을 물으면 공부가 깊은지 얕은지를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다 모
르기 때문에 10절과 3관은 묻지 않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임금이 천태종 (天台宗) 의 선사 (禪師) 인 신조 (神照) 를 시켜 공부10절을
물으시니 스님은 손수 써서 올렸다.*
18일에 임금은 지신사 염흥방 (知申使 廉興) 을 스님이 계시던 금경사로 보내셨고, 그 이튿
날 또 대언 김진 (代言 金鎭) 을 보내 스님을 내정 (內庭) 으로 맞아들여 위로하신 뒤 안장
채운 말 〔鞍馬〕 을 내리셨다. 그리고는 내시 안익상 (安益祥) 을 보내 회암사로 보내드리
니, 스님은 회암사에 도착하자 말을 돌려보내셨다.
신해년 (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 (工部商書 張子溫) 을 보내 편지와 도
장을 주시고, 또 금란가사와 안팎 법복과 바루를 내리신 뒤에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하시고, 태후도 금란가사를 올렸다. 그리하여 동
방의 제일 도량인 송광사에 있게 하셨는데, 내시 이사위 (李君渭) 를 보내 길을 돕게 하여
28일에 회암사를 출발하여 9월 27일에 송광사에 도착하였다.
임자년 (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한 `삼산양수'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기를 청하였다. 임금은 또 이사위를 보내어 회암사로 맞아 오셨다.
9월 26일에는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가져다 회암사의 북쪽 봉우리에 탑을 세웠다.
계축년 (1373) 정월에는 서운 (瑞雲) ·길상 (吉祥) 등 산에 노닐면서 여러 절을 다시 일
으키고, 8월에 송광사로 돌아왔다.
9월에 임금님은 또 이사위를 보내 회암사에서 소재법회 (消災法會) 를 주관하라 청하시고,
갑인년 (1374) 봄에 또 가까운 신하 윤동명 (尹東明) 을 보내 그 절에 계시기를 청하였다.
이에 스님은 "이 땅은 내가 처음으로 불도에 들어간 곳이요, 또 우리 스승 〔先師〕 의 영
골을 모신 땅이오. 더구나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내게 수기하셨으니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
가" 하고 곧 대중을 시켜 전각을 다시 세우기로 하였다.*
9월 23일에 임금이 돌아가셨다. 스님은 몸소 빈전 (殯殿) 에 나아가 영혼에게 소참법문*을
하시고 서식을 갖추어 왕사의 인 (印) 을 조정에 돌렸다.
지금 임금께서도 즉위하여 내신 주언방 (周彦) 을 보내 내향 (內香) 을 내리시고 아울러 인
보 (印¿) 를 보내시면서 왕사로 봉하였다.
병진년 (1376) 봄에 이르러 공사를 마치고 4월 15일에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임금은 구
관 유지린 (具官 柳之璘) 을 보내 행향사 (行香使) 로 삼았으며, 서울에서 지방에서 사부대
중이 구름과 바퀴살처럼 부지기수로 모여들었다.
마침 대평 (臺評) 은 생각하기를, `회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우므로 사부대중의 왕래가 밤
낮으로 끊이지 않으니 혹 생업에 폐해를 주지나 않을까'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의 명으로
스님을 영원사 (瑩源寺) 로 옮기라 하고 출발을 재촉하였다. 스님은 마침 병이 있어 가마를
타고 절 문을 나왔는데 남쪽에 있는 못가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다시 열반문
으로 나왔다. 대중은 모두 의심하여 목놓아 울부짖었다. 스승은 대중을 돌아보고, "부디 힘
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중단하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 (瘻興) 에서 그칠 것이오" 하였
다.
5월 2일에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 (卓詹) 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병이 너무 심해 배를 타고 가고 싶소."
곧 문도 10여 명과 함께 물을 거슬러올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러 다시 탁첨에게 말하
였다.
"내 병이 너무 위독해 이곳을 지날 수 없소. 이 사정을 나라에 알리시오."
탁첨이 달려가 나라에 알렸으므로 스님은 신륵사 (神勒寺) 에 머물게 되었다. 며칠을 머무셨
을 때, 여흥수 황희직 (瘻興守 黃希直) 과 도안감무 윤인수 (道安監務 尹仁守) 가 탁첨의 명
령을 받고 출발을 재촉했다. 시자가 이 사실을 알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이제 아주 가련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은 주먹을 세웠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4대 (四大) 가 각기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스님은 주먹을 맞대어 가슴에 대고 "오직 이 속에 있다" 하였다.
"그 속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느니라."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단할 것 없다는 그 도리입니까?"
스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뚫어지게 보면서, "내가 그대를 볼 때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는가"
하였다.
또 한 스님이 병들지 않는 자의 화두 〔不病者話〕 를 들어 거론하자, 스님은 꾸짖는 투로
"왜 그런 것을 묻는가" 하고는 이내 대중에게 말하였다.
"노승은 오늘 그대들을 위해 열반 불사를 지어 마치리라."
그리고는 진시 (辰時) 가 되어 고요히 돌아가시니 5월 15일이었다.
여흥과 도안의 두 관리가 모시고 앉아 인보 (印寶) 를 봉하였는데 스님의 안색은 보통때와
같았다. 여흥 군수가 안렴사 (按廉使) 에게 알리고 안렴사는 조정에 고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그 고을 사람들은 멀리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또
스님이 타시던 흰 말은 3일 전부터 풀을 먹지 않은 채 머리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 화장을
마쳤으나 머리뼈 다섯 조각과 이 40개는 모두 타지 않았으므로 향수로 씻었다. 이때에 그
지방에는 구름도 없이 비가 내렸다. 사리가 부지기수로 나왔고, 사부대중이 남은 재와 흙을
헤치고 얻은 것도 이루 셀 수 없었다. 그때 그 고을 사람들은 모두 산 위에서 환히 빛나는
신비한 광채를 보았고, 그 절의 스님 달여 (達如) 는 꿈에 신룡 (神龍) 이 다비하는 자리에
서려 있다가 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문도들이 영골사리를
모시고 배로 회암사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오래 가물어 물이 얕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
데 비는 오지 않고 갑자기 물이 불어 오랫동안 묶여 있던 배들이 한꺼번에 물을 따라 내려
갔으니, 신룡의 도움임을 알 수 있었다.
29일에 회암사에 도착하여 침당 (寢堂) 에 모셨다가 8월 15일에 그 절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웠는데, 가끔 신령스런 광명이 환히 비쳤다. 정골사리 한 조각을 옮겨 신륵사에 안치하고
석종 (石鍾) 으로 덮었다.
스님의 수 (困) 는 57세요 법랍은 37세였으며, 시호는 선각 (禪覺) 이라 하였다. 그 탑에는 "
□□스님은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산승은 문자를 모른다' 하였다. 그러나 그 가송 (歌頌)
과 법어 (法語) 는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모두 아주 묘하다"라고 씌어 있다.
이제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어 이 세상에 간행하게 되었으니, 스님의 덕행은 진실로 위대하
다. 실로 이 빈약한 말로 전부 다 칭송할 수 없지만, 간략하게나마 그 시말 (始末) 을 적어
영원히 전하려는 것이다. 삼가 기록한다.
어록
1. 상당법어
시자 각련 (覺璉) 이 짓고, 광통보제사 (廣通普濟寺) 에 주석하는 환암 (幻艤) 이 교
정하다.
1. 광제선사 (廣濟禪寺) 개당
스님께서는 강남에서의 행각을 마치고 대도 (大都) 에 돌아와 연대 (燕代) 의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셨다. 그 도행 (道行) 이 궁중에 들려 을미년 (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고
광제사 (廣濟寺) 주지가 되어 병신년 (1356) 10월 보름날에 개당법회를 열었는데, 황제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내리셨다.
이 날에 여러 산의 장로들과 강호의 납자들과 또 여러 문무관리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께서
는 가사를 받아 들고 황제의 사자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다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것을 어디다 입혀야 합니까?"
황제의 사자가 "모르겠습니다" 하니 스님께서는 자기 왼쪽 어깨를 가리키면서 "여기다 입혀
야 합니다" 하셨다.
또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 가사는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하셨다.
이에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가 주장자를 가로 잡고
말씀하셨다.
"날카로운 칼을 온통 들어 바른 명령을 행할 것이니, 어름어름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 칼날
에 맞설 이가 있는가, 있는가, 있는가. 돛대 하나에 바람을 타고 바다를 지나가노니, 여기서
는 배 탄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
다시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노화상들이 모두 산승의 이 불자 꼭대기에 앉
아 큰 광명을 놓으면서 다 같은 소리로 우리 황제를 봉축하는데, 대중은 보는가. 만일 보지
못한다 하면 눈은 있으나 장님과 같고, 본다 한다면 어떻게 보는가.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이
나 알고 모르는 것은 한 쪽에서만 하는 말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면서 "털이 많은 소는 불자를 모르는구나"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신광사 (神光寺) 주지가 되어
스님은 절 문에 도착하자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온 대지가 다 해탈문인데 대중은 일찍이 그 문에 들어갔는가. 만일 들어가지 못했거든 나
를 따라 앞으로 가자."
또 보광명전 (普光明殿) 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毘盧遮那 (毘盧遮那) 의 꼭대기를 밟는다 해도 그는 더러운 발을 가진 사람이다.
말해 보라. 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그리고는 손으로 불상을 가리키면서, "나 때문에 절을 받는 것이오" 하셨다. 다음에는 거실
(據室) 에 이르러, "이 방은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는 큰 화로다" 하시고 주장자를 들고는, "
이것은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날카로운 칼이다. 대중은 이 칼 밑에서 몸을 뒤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은 이리 나와도 좋다. 나와도 좋다" 하셨다.
이어서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는, "우리 집의 적자 (嫡子) 말고 누가 감히 이 속으로 가겠
는가" 하고는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다음에 또 법당에 올라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산승은 오대산 (五臺山) 을 떠나기 전에 이미 여러분을 위해 오늘의 일을 다 말하였다. 지
금 손과 주인이 서로 만나 앉고 섬이 엄연하니 이미 많은 일을 이루었는데, 다시 산승에게
모래 흙을 흩뿌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만리에 흰구름 격이다. 그러나 관법 (官法) 으로는 바
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사로이는 거마 (車馬) 도 통하는 것이니 아는 이가 있는가?"
문답을 마치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티끌 같은 세계에 털끝 하나 없고 날마다 당당하게 살림살이를 드러낸다. 볼라치면 볼 수
없어 캄캄하더니, 쓸 때는 무궁무진 분명하도다. 3세의 부처들도 그 바람 아래 섰고 역대의
조사들도 3천 리를 물러선다. 말해 보라. 이것이 무엇인데 그렇게도 대단한가. 확실히 알겠
는가. 확실히 알기만 한다면 어디로 가나 이름과 형상을 떠나 삿됨을 무찌르고 바름을 드러
낼 것이며, 가로 잡거나 거꾸로 쓰거나 죽이고 살림이 자재로울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
금신을 만들며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는 얼른 주장자를 들어 왼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이것이 한 줄기 풀이라면 어느
것이 장육금신인가?" 하시고 오른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장육금신이라면 어느 것이 한 줄기 풀인가? 만일 여기서 깨치면 임금의 은혜와 부
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거든 각기 승당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
펴보아라."
3. 결제 (結制) 에 상당하여
스님은 법좌 앞에 가서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 한 물건은 많은 사람이 오르지 못하였고 밟지 못하였다. 산승은 여기 와서 흐르는 물소
리를 무심히 밟고 나는 새의 자취를 자유로이 보아서 그려낸다."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요 (堯) 임금의 자비가 널리 퍼져 아주 밝은 일월과 같고, 탕 (湯) 임금의 덕은 더욱더욱
새로워 영원한 천지와 같다. 산승이 이것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다만 성상폐하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축수하는 것이다."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쇠뇌 〔弩〕의 고동 〔機:방아쇠〕 을 당기는 것은 눈으로 판단해야 하고 화살이 과녁을
맞히는 것은 손에 익어야 한다.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손에 익지 않아도 고동을 당기고 과
녁을 맞히는 것이 있는가? 꺼내 보아라."
한 스님이 나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다가 문턱 중간에
서서 물었다.
"스님은 법좌에 앉아 계시고 학인은 올라왔는데 이것은 어떤 경계입니까?"
"동쪽이든 서쪽이든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스님은 방장실에서 이 보좌 (寶座) 에 나오셨고 학인은 적묵당 (寂默堂) 에서 여기 왔습니
다. 저기에도 몸이 있습니까?"
"있다."
"털끝에 바다세계를 간직하고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
"종문 (宗門) 의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북숭봉 (北崇峰) 앞의 경계입니까?"
"산문은 여전히 남쪽으로 열려 있다."
"그 경계 속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다."
"사람이든 경계든 이미 스님께서 지적해 주신 향상 (向上) 의 한 길을 알았는데 그래도 무
슨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떻게 하면 향상의 한 길로서, `지극한 말과 묘한 이치는 어떤 종 (宗) 인가. 이 말을 천
리 밖으로 없애버려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종의 제일기 (第一機) 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그 제일의 (第一義) 입니까?"
"그대가 묻는 그것은 제이의 (第二義) 이다."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어서 여래가 간 길을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어찌
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오늘 여러 관리와 선비들이 특별히 상당법문을 청하니 스님께서는 여기 와서 설법하고 향
을 사뤄 축원한 뒤에 법상에 올라가 자유자재로 법을 쓰십니다. 이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무엇이 스님의 본분사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우셨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오랑캐 난리 30년에도 소금과 간장이 모자랐던 적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
"학인이 듣기로는 스님께서 평산 (平山) 스님을 친견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무엇이 천축산 (天竺山) 에서 친히 전한 한마디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셨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영남 (嶺南) 땅에 천고 (千古) 의 희소식이 있으니, 오늘 맑은 바람이 온 누리에 불어옵니
다. 이것은 그만두고 오늘 보좌에 높이 오른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니라 축성 (祝聖) 하는
일이니, 스님께서는 한마디 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만년의 성일 (聖日) 속에 복이 영원하니 문무의 사법 (四法) 이 태양을 따르도다
" 하시니 그 스님은 "온 누리에 퍼지는 임금의 덕화 속에 촌 늙은이가 태평을 축하하기 수
고롭지 않구나" 하고는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나와 물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옷 입고 밥 먹는 것이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다 분명한데, 무엇이 분명한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드시니 그 스님이 물었다.
"향상의 한 길은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는데, 무엇이 전하지 못한 그 일입니까?"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이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빛깔을 보고 마음을 밝히고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친다 하는데, 무엇이 밝힐 그 마음입니
까?"
스님께서 불자를 들어 세우시니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깨칠 그 도입니까?"
스님께서 대뜸 악! 하고 할을 하시자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이어서 스님께 말씀하셨다.
"본래 맺음이 없는데 무엇을 풀겠는가. 풂이 없이 때를 따라 도의 흐름을 보인다. 허공을 쳐
부수어 조각조각 내어도, 독한 막대기의 그 독은 거두기 어렵도다. 언젠가 어깨에 메고 산으
로 가서 그대로 천봉 만령 꼭대기에 들어가면 부처와 조사는 보고 두려워 달아나리니, 자유
로이 죽이고 살리기 실수가 없다.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물건이 아니며, 천지를 뒤흔드
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 소리를 꽉 밟고 있다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으로 돌아
온다."
주장자를 들고 "보는가!" 하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듣는가! 만일 분명히 보고 환히 들을 수만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
육범 (四聖六凡) , 유정무정 (有情無情) 이 모두 얼음녹듯 기왓장 부숴지듯 할 것이니, 그 경
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선 (禪) 인가 도 (道) 인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마음인가 성품인가,
현 (玄) 인가 묘 (妙) 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또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선이라고도 할 수 없고 도라고도 할 수 없으며, 범부라고도 할 수 없고 성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성품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현이라고도 할 수 없
고 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도 될 수 없으니 모두 아니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
가.
알겠는가. 안다면 부처님 은혜와 임금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가 있겠지만 혹 그렇지 못
하다면 한마디 더 하리라. 즉 참성품은 반연 (攀緣) 을 끊었고, 참봄 〔眞見〕 은 경계를 의
지하지 않으며, 참지혜는 본래 걸림이 없고, 참슬기는 본래 끝이 없어서 위로는 모든 부처의
근원에 합하고 밑으로는 중생들의 마음에 합한다. 그러므로 `곳곳이 진실하여 티끌마다 본
래의 사람이다. 실제로 말할 때는 소리에 나타나지 않고 정체는 당당하나 그 몸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중스님네들이여, 무엇이 그 당당한 정체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이것이 당당한 정체라면 어느 것이 주장자인가?" 하시고 다시 한
번 내리친 뒤 "이것이 주장자라면 어느 것이 당당한 정체인가?" 하시고는 드디어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말씀하셨다.
"쌀 한 톨을 탐내다가 반년 양식을 잃어버렸다. 대중들이여, 오래 서 있었으니, 몸조심들 하
여라."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4. 해제 (解制) 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4월 15일에 결제에 들어가 7월 15일이 되어서 해제를 하니 납자들은 모였다 흩어진다. 봄
은 가고 가을이 오니 새로움과 낡음이 변하는구나."
주장자를 쑥 뽑아들고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이것이 맺음인가 풂인가, 모임인가 흩어짐인가, 가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새것
인가 옛것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맺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풂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모임이라고도 할 수 없고 흩어짐이라
고도 할 수 없다.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새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옛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주장자를 던지고는, "눈을 치켜뜨고 자세히 보라. 이것은 진실로 분명한 주장자이니라. 몸조
심들 하거라" 하셨다.
5. 내원당에서 보설 〔入內普說〕
"부처의 참법신 〔眞法身〕 은 마치 허공과 같아, 물 속의 달처럼 물건에 따라 형상을 나
타낸다."
불자를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석가께서 여기 이 산승의 불자 꼭대기에 와서 묘한 색신 (色身) 을 나타내고 큰 지혜광명
을 놓으며 큰 해탈문을 여는 것은 오로지 우리 성상 폐하의 만만세를 위해서이니 백천의 법
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와 세간, 출세간의 모든 법이 다 이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보십
니까? 만일 환히 볼 수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 모든 유정무정들
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얼음처럼 녹고 기왓장처럼 부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선 (禪) 도 없고 도 (道) 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성품도 없으며, 현
(玄) 도 없고 묘 (妙) 도 없어서 적나라하고 적쇄쇄 (赤 ) 하여 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
러나 만일 그렇게 해 나간다면 다시 짚신을 사 신고 30년 동안을 행각하여도 납승의 기미는
꿈에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납승의 기미가 무엇이 대단한지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밤이 고요하매 두견새는 이 뜻을 알아, 그 한 소리가 취미 (翠微:산허리. 또는 먼 산에 엷
게 낀 푸른 빛깔의 기운) 속에 있구나."
6. 소참 (小參)
"한 걸음 나아가면 천지가 가라앉고 한 걸음 물러서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면 숨기운은 있으나 죽은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떻게도 할 수 없으며 결국
어찌해야 하는가. 말할 사람이 있는가. 있거든 나와 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어름어름하는 사이에 10만 8천리가 될 것이다" 하시고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7. 제야 (除夜) 에 소참하다
"텅 비고 밝은 것 〔虛明〕 이 활짝 드러나 상대도 끊고 반연도 끊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영산회상에서는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고, 소림 (少林) 에서는
밤중에 눈에 섰다가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니, 겁외 (劫外) 의 광명을 꺼내서 본래면목을 비
추어 보라."
불자를 세우고 "이것이 본래면목이라면 어느 것이 불자인가?" 하시고는 또 세우고 말씀하셨
다.
"이것이 불자라면 어느 것이 본래면목인가? 여러분은 아는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섣달 그믐날에 허둥거리지 않을 것이나, 만일 의심이 있으면 지금이 바로 그 섣달 그믐날이
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낙찰을 보는 것인가."
불자를 들고는, "한 가닥 끄나풀〔絡索〕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며 현재에
도 그렇다. 오늘밤은 묵은해는 가지 않았고 새해는 오지 않았으니, 바로 이런 때 말해 보라.
묵은것, 새것에 관계없는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 하시고, 불자를 던진 뒤에 말씀하셨다.
"묵은해는 오늘밤에 끝나고 새해는 내일 온다. 몸조심들 하시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8. 자자일 (自恣日) 에 조상서 (趙尙書) 가 보설을 청하다
"깨닫는 성품은 허공과 같거늘 지옥·천당이 어디서 생기며, 부처의 몸이 법계에 두루하거
늘 축생과 귀신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스님네든 속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여러분
이 나서 죽을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짓는 선·악을 다 법이라 합니다.
무엇을 마음이라 합니까. 마음은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것으로서, 자기라 부르기도 하고 주
인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언제나 그것에게 부려지고 어디서나 그것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
니다. 하늘을 이고 땅에 서는 것도 그것이요, 바다를 지고 산을 떠받치는 것도 그것이며, 그
대에게 입을 열고 혀를 놀리게 하는 것도 그것이요, 그대에게 발을 들고 걸음을 걷게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이 마음은 항상 눈앞에 있지만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마음을 먹고 찾되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입니다.
안자 (顔子) 의 말에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며, 바라볼 때는 앞에
있더니 어느 새 뒤에 있다' 한 것이 바로 그 도리인 것입니다.
한 생각도 생기기 전이나 한결같이 참되어 망념이 없을 때에는, 물들음 없는 옛거울의 빛처
럼 깨끗하고 움직임 없는 맑고 고요한 못처럼 밝아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한
인 (漢人) 이 오면 한인이 나타납니다. 하늘과 땅을 비추고 예와 지금을 비추되 털끝만큼도
숨김이 없고 털끝만큼도 걸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부처와 조사들의 경계며 또 여러분
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써도 써도 다하지 않는, 본래 가진 물건입니다.
오늘 명복을 비는 조씨의 영혼과 먼저 돌아가신 법계의 혼령들과 이 자리에 가득한 사부대
중은 무슨 의심이라도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다시 한 끝을 들어 보이겠습니다."
죽비를 들고, "이것을 보십니까" 하시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습니까? 보고 듣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
고 또 우리 부처님의 우란 (枳蘭) *의 힘을 입으면, 고통이 없어지고 즐거움을 받을 것입니
다. 그리하여 못되어도 천궁 (天宮) 에 나고 잘되면 불국 (佛國) 에 날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를 마련한 시주 조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갖가지 불사를 마련하
였습니다. 이런 공덕에 어떤 죄가 멸하지 않고 어떤 업이 사라지지 않으며, 어떤 복이 생기
지 않고 어떤 선 (善) 이 자라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결국은 불국에 왕생하고, 그 때문에
결국은 본래면목을 환히 볼 것입니다.
다시 게송 한 구절을 들으십시오.
얼음 전부가 물인즉 물이 얼음 되니
옛 거울은 갈지 않아도 원래부터 빛이 있었네
바람이 절로 불어 티끌이 절로 일지만
본래면목은 당당하게 드러나 있네.
全氷是水水成氷 古鏡不磨元有光
風自動兮塵自起 本來面目露堂堂
몸조심들 하십시오."
9. 보설 (普說)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일심으로 굳이 설법을 청하므로 산승이 이 자리에 올라왔
다. 대중은 잠자코 이 설법을 들으라. 이 눈앞에 분명하고 역력하여 설법을 듣는 자는 그 누
구며, 합장하고 묻는 이는 그 누구며, 머리 숙여 절하는 이는 그 누구인가. 여러분은 각자
점검해 보라.
여러분은 `설법을 듣고 아는 것은 바로 나 주인공이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나는 여
러분에게 묻겠다. 만일 그것이 주인공이라면 그것은 긴가 짧은가, 아니면 큰가 작은가. 그
면목은 어떠며 그 모양은 어떠며 그것은 어디서 안신입명 (安身立命) 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분명히 보며 분명히 말한다고 한다면,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다. 알아내고
보아내는 그 주인공이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조사님네도,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
니며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대들은 말해 보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라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산에서 1
만 2천 담무갈 (曇無竭:항상 般若波羅蜜多經을 설하였다는 보살) 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며,
어떻게 1만 2천 보살이 항상 말하는 반야를 들을 수 있겠는가. 다만 높이 솟은 기이한 바위
와 우거진 소나무·잣나무들만을 볼 것이니, 우리 임제 (臨濟) 의 정통종지와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그것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여러분은 부디 물러서지 말아라. 임제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섰으며, 여러분도 눈은 가
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여 털끝만큼도 다르다거니 같다거니 하는 모양을 찾을 수 없다. 이
미 우리 문중의 종자라면 같든지 다르든지 정법안장을 없애버리고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
어 일으키든지 누가 상관하겠는가.
그러면 임제의 정통종지를 어떻게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3현 (三玄) ·3요 (三要) 를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4료간 (四料揀) ·4빈주 (四賓主) ·4할 (四喝) 인가. 그런데 그 할은 죽 먹은
기운으로 하는 것이니, 누가 그것을 몰라 임제의 정통종지라 하겠는가. 비록 `한 번의 할에
빈주 (賓主) 를 나누고 조용 (照用) 을 한꺼번에 행한다. 그 속의 뜻을 알면 한낮에 삼경을
치리라'고 말했지만, 그 말로 여러분은 속일 수 있지만 이 산승은 속이지 못한다. 여러분,
자세히 점검해 보아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한 번 할 (喝) 한 뒤에 말씀하셨다.
"형상이 생기기 전에도 빈주와 조용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이 할이 사라진 뒤에도 조용과
빈주가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할을 하는 그 순간에는 빈주와 조용이 할 속에 있는가 할
밖에 있는가. 아니면 그 속에도 있지 않고 바깥에도 있지 않은가."
또 한 번 할하고 말씀하셨다.
"도리어 그 가운데의 뜻을 한꺼번에 말해버렸다. 산승의 이런 판결이 과연 임제의 정통종지
를 붙들어 일으켰는가.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조용과 4
료간·4빈주·4할·3현·3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무 데도 있지 않다면 도대체 그것
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오직 여러분 당사자 〔¿上〕 에게 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다는 그 하나 〔一着子〕 는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가득
하지마는, 3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
하니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닫는 길뿐이다.
그러므로 선배 큰 스님네들은 그대들이 그대로 당장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
게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그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
다 〔無〕 ' 하였으니, 그것은 벌써 있는 그대로 드러낸 〔和槃托出〕 것이다. 그대들이 깨
닫지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 죽은 말을 고치는 의사처럼 그대들에게 구구하게 무 (無) 라는
것을 가르치되, 먼저 4대·5온·6근·6진과 나아가서는 눈앞에 보이는 산하대지와 밝음과
어두움·색과 공·삼라만상과 유정무정 등 모두를 하나의 `무'자로 만들어 한결같이 그것을
들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니면서도 그것을 들고, 앉거나 눕거나 자거나 밥을 먹는 등 어
디서나 그것을 들되, 끊임없이 빈틈없이 한 덩이로 만들게 한 것이다. 바늘도 갈구리도 들어
가지 않고 은산철벽 (銀山鐵璧) 과 같아 모르는 결에 한 번 부딪쳐 자기에게 있는 그 하나
를 뚫으면, 깨닫기를 기다리지 않고 저절로 환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도 알게 되고 4대가 흩어져 어디로 가는지도 알게 된
다. 또한 이 산승이 여러분들을 속인 곳도 알게 되고, 지금까지 조사님네들이 천차만별로 틀
린 곳도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모두들 환히 아는 것이 바로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
으키는 경계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세상법과 불법에 조금도 틈이 없어 3현·3요·4료간·4빈주·4할과 4대·5온·
6근·6진·산하대지·삼라만상 등 모든 법이 다 임제의 정통종지임을 그대로 볼 것이다. 그
렇게 되면 어떤 법도 임제의 정통종지 아닌 것이 없어 붙들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것이
다. 그런 뒤에는 버려도 되고 세워도 되며 내가 법왕이 되어 모든 법에 자재할 것이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10. 욕불*상당 (浴佛上堂)
스님께서는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세존께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 한 손
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눈으로 사
방을 돌아보시면서,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높다' 하신 말씀을 거론하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은 아는가. 괴상한 것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으면 그 괴상함이 스스로 물러간다. 싣
달태자가 처음 태어난 이 날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풍파를 일으켰다. 여러가지 괴상한 일
을 만들어내 자손들의 눈 속에 모래를 끼얹으면서 해마다 오늘 8일에 이른다. 한 동이의 향
수로 그 흔적을 씻지만, 아무리 씻고 씻은들 그 티끌이 다할 수 있겠는가. 나귀해〔驢年:12
간지에도 없는 해) 가 될 때까지 씻고 또 씻어 보아라."
선상을 세 번 내리친 뒤에 잇달아 말하기를, "대중스님네여, 각기 위의를 갖추어 다 함께 부
처를 씻습시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또 향을 들고 말하였다.
"이 향은 오래 전에 얻은 것으로 이제껏 사른 일이 없었다. 이제 보암 (普庵) 장로를 통해
신표의 가사를 전해 왔으므로 향로에 사루어서 보지 못한 이에게 보게 하고 듣지 못한 이에
게 듣게 하여 삼가 서천 (西天) 의 108대 조사 지공 (指空) 대화상에게 법유 (法乳) 로 길러
주신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다."
그 향을 꽂고는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오늘은 천하 총림이 결제에 들어가는 날이오. 청평산 (淸平山) 비구 나옹은 이름도 없고
글자나 형상도 없으며, 미오 (迷悟) 도 없고 수증 (修證) 도 없으면서,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은 이 한 물건을 여러분의 면전에 흩어두리라. 북을 쳐서 운력이나 하거라. 여러분은 알겠
는가. 만일 알 수 없다면 다시 이 소식을 드러내겠다."
주장자를 들고 "보았는가" 하시고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들었는가. 보고 들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중이거나 속인이
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산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거나 계단을 거치지 않고 저쪽으로 지나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긴 기간 짧은 기간의 결제와 해제가 있겠는가.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석달 90일 안거하는 동안에 주장자 꼭대기를 꿰매고 포대 아가리를 묶고
는 세 서까래 〔三條椽〕 * 밑과 일곱 자 단 〔七尺單〕 * 앞에서 금강권 (金剛) *을 떨쳐
내고 율극봉 (栗棘蓬) *을 삼킨다면, 또 꿈속의 불사를 짓고 거울 속의 마군을 항복받아 3
업이 청정하고 6근이 깨끗하여 행주좌와 (行住坐臥) 에 아무 허물이 없으며, 조사의 자리를
이어받아 영원히 끊이지 않게 한다면 어찌 참으로 출가한 대장부가 아니겠는가.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늘 신 (申) 씨가 명복을 비는 신군평 (申君平) 과 여러 영혼들
은 이 공덕을 받을 것이니, 무슨 죄인들 면하지 못하고 무슨 고통인들 벗어나지 못하겠는가.
그리하여 시방 불국토에 마음대로 왕생하여 어디서나 즐거울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
가. 그렇긴 하지만……"
불자를 세우고는, "이 하나는 닦고 깨닫는 데 〔修證〕 에 들어가는가, 닦고 깨닫는 데 들어
가지 않는가?" 하시고 불자를 던지면서 "눈 있는 납승은 스스로 한 번 볼 일이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달마상에 점안하며 〔達磨開光祝筆〕
스님께서 붓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미 가섭으로부터 28대 조사들이 다 눈을 갖추어 6종 (六宗:육사외도) 을 항복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 달마에게 또다시 점안 (點眼) 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말할 사람이 있는가.
말할 수 있다면 달마를 위해 숨을 토할 뿐만 아니라, 온 법계의 중생들에게도 이익을 주어
야 할 것이다. 만일 말할 수 없다면 게송 한마디를 들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가리켜 성품을 밝게 보게 했나니
노호 (老胡:달마) 는 놓을 줄만 알았고 거둘 줄을 몰랐다
그로부터 눈병이 나서 헛꽃이 피어
헛꽃이 온 세계에 어지러이 떨어졌다
쉬지 않고 어지러이 떨어지는 헛꽃이여
아득하고 막막해라. 길은 멀고 멀구나.
眞指人心明見性 老胡知放不知收
從玆眼病空花發 界紛紛峠亂墜
峠亂墜兮自不休 杳杳冥冥路轉遙
붓으로 점을 찍고 말씀하셨다.
"오늘 그에게 옛 광명을 보태 주니 푸른 눈동자에 형형한 빛이 하늘에 사무친다."
13. 지공화상 생일에
스님께서 화상의 진영 앞에 나아가 말씀하셨다.
얼굴을 마주 대고 친히 뵈오니
험준한 그 기봉 (機鋒) 에 모골 (毛骨) 이 시리다
여러분, 서천 (西天) 의 면목을 알려 하거든
한 조각 향 연기 일어나는 곳을 보라.
驀而相逢親見徹 機鋒 峻骨毛寒
諸人欲識西天而 一片香烟起處看
향을 꽂고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말해 보시오. 서천의 면목과 동토의 면목이 같은가 다른가. 비록 흑백과 동서는 다르다 하
나, 뚜렷한 콧구멍은 매한가지니라."
14.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1.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왔어도 온 것이 없으니 밝은 달 그림자가 강물마다 나타난 것 같고, 갔어도 간 곳 없으니
맑은 허공의 형상이 모든 세계에 나누어진 것 같다. 말해 보라. 지공은 도대체 어디 있는
가."
향을 사른 뒤에 다시 말씀하셨다.
"한 조각 향 연기가 손을 따라 일어나니, 그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아는가."
2.
날 때는 한 가닥 맑은 바람이 일고
죽어가매 맑은 못에 달 그림자 잠겼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몸에 참마음 있다
참마음이 있으니 묻어버리지 말아라
이때를 놓쳐버리면 또 어디 가서 찾으리.
生時一陣淸風起 滅去席潭月影沈
生滅去來無 示衆生體有眞心
有眞心休埋沒 此時蹉過更何尋
3.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천검 (千劍) 을 모두 들고 언제나 활용하니
황제가 그를 꾸짖어 종 〔奴〕 을 만들었다
평소의 기운은 동쪽 노인을 누르더니
오늘은 무심코 한 기틀을 바꾸었다
바꾼 그 기틀은 어디 있는가.
千劍全提常活用 皇王罵動作奴之
平生氣壓東方老 今日等閑轉一機
轉一機何處在
향을 꽂고 말씀하셨다.
"지공이 간 곳을 알고 싶거든 부디 여기를 보고 다시는 의심치 말라."
4.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푸른 한 쌍 눈동자에 두 귀가 뚫렸고
수염은 모두 흰데 얼굴은 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
기괴한 모습이나 신통은 나타내지 않았다
혼자서 고향길 떠나겠다 미리 기약하고서
말을 전해 윤제궁 (輪帝宮) 을 알게 하였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碧雙瞳穿兩耳 須胡兮面皮黑
但恁�來恁�去 不露奇相及神通
預期獨往家鄕路 傳語令知輪帝宮
臨行垂示無人會 痛罵門徒不解宗
儼然遷化形如古 體溫和世不同
不孝子無餘物 獻茶一 香一片
그리고는 향을 꽃았다.
15. 시 중
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을 모아 각각에게 매일매일의 공부를 물은 뒤에 대중에게 말씀하셨
다.
"만일 그렇다면 반드시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기어코 하겠다는 뜻을 세워 평소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일체의 불법과 사륙체 (四六體) 의 문장과 언어삼매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던
지고 다시는 들먹이지 말아라. 그리하여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 번 앉으면
그대로 눌러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든가,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라든가, `어떤 것이 내 본
성인가?'라든가 하라.
혹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없
다〔無〕' 하였다. 그 스님이 `꼬물거리는 곤충까지도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
에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
이 중에서도 마지막 한 구절을 힘을 다해 들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들다 보면 공안이 앞에
나타나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데서나 들지 않아도 저
절로 들리는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의심을 일으키되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을 입거나 밥을 먹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보거나 어디서나 온몸을 하나의 의심덩이로
만들어야 한다. 계속 의심해 가고 계속 부딪쳐 들어가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그
것을 분명히 캐들어가되, 공안을 놓고 그것을 헤아리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모름지기 단박 탁 터뜨려야 비로소 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일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않아 담담하고 밋밋하여 아무 재미도 없거든, 낮은 소리로
연거푸 세 번 외워 보라.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것이니, 그런 경우에 이르거든
더욱 힘을 내어 놓치지 않도록 하라.
여러분이 각기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중에도 더욱 더
용맹정진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탁 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사람을 만나보아야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이고 30년이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부처의 씨앗 〔聖胎〕 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천룡 (天龍) 이 그를 밀어내 누구 앞에서나
용감하게 큰 입을 열어 큰 말을 할 수 있고 금강권을 마음대로 삼켰다 토했다 하며, 가시덤
불 속도 팔을 저으며 지나갈 것이며, 한 생각 사이에 시방세계를 삼키고 3세의 부처를 토해
낼 것이다.
그런 경지에 가야 비로소 그대들은 노사나불 (盧舍那佛) 의 갓을 머리 위에 쓸 수 있고, 보
신불·화신불의 머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거든 낮에 세 번, 밤에 세 번을
좌복에 우뚝이 앉아 절박하게 착안하여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참구하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6. 장상국 (張相國) 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변숭 (邊崇) 의 영혼이여, 밝고 신령한 그 한 점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어야 할 번뇌도 없고 구해야 할 보리도 없다. 가고 옴도 없고 진실도 거짓도 없으며 남도
죽음도 없다. 4대에 있을 때도 그러했고, 4대를 떠난 때도 그러하다.
지금 을묘년 12월 14일 밤에 천보산 (天寶山) 회암선사 (檜岩禪寺) 에서 분명히 내 말을
들으라. 말해 보라. 법을 듣는 그것은 번뇌에 속한 것인가, 보리에 속한 것인가, 옴에 속한
것인가 감에 속한 것인가, 진실에 속한 것인가, 허망에 속한 것인가, 남에 속한 것인가 죽음
에 속한 것인가. 앗 ( ) !.
전혀 어떻다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결국 어디서 안신입명 (安身立命) 하는가."
죽비로 향대 (香臺) 를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으면 마지막 한마디를 더 들어라. 영혼이 간 바로 그 곳을 알려 하는
가. 수레바퀴 같은 외로운 달이 중천에 떴구나."
다시 향대를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7. 나라에서 주관한 수륙재 (水陸齋) 에서 육도중생에게 설하다
스님께서 자리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승의공주 (承懿公主:공민왕비 노국대공주를 말함) 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여기
서 당장 빛을 돌이켜 한번 보시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을 막론하고 누가
본지풍광 (本地風光) 을 밟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잔소리를 한마디 하겠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승의공주여, 36년 전에도 이것은 난 적이 없었으나 과거의 선인 (善因) 으로 인간세계에 노
닐면서 만백성의 자모 (慈母) 가 되어 온갖 덕을 베풀다가, 조그만 묵은 빚으로 고요히 몸을
바꿨소. 그러나 36년 후에도 이것은 죽지 않았으니, 인연이 다해 세상을 떠나 생애 (生康)
를 따로 세웠소.
승의공주여, 4대가 생길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생기지 않았고, 4대가
무너질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무너지지 않소. 나고 죽음과 생기고 무
너짐은 허공과 같으니, 원수니 친한 이니 하는 묵은 업이 지금 어디 있겠소. 이제 이미 없어
졌으매 찾아도 자취가 없어 드디어 허공같이 걸림이 없소. 세계마다 티끌마다 묘한 본체요,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가 주인공 〔家公〕 이오. 소리와 빛깔이 있으면 분명히 나타나고, 빛
깔과 소리가 없으면 그윽이 통하오. 상황에 맞게 때에 맞게 당당히 나타나고, 예로부터 지금
까지 오묘하고 오묘하오. 자유로운 그 작용이 다른 물건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죽이고 살림
이 모두 그의 힘이오.
승의공주여,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으면 이 산승이 공주를 위해 확실히 알려 주겠소."
죽비로 탁자를 치면서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여기서 단박 밝게 깨쳐 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면, 3세 부처님네와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의 골수를 환히 보고, 3세 부처님네와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잡
고 함께 다닐 것이오."
또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많은 생의 부모와 여러 겁의 원수 친한 이를 제도하고, 이렇게 해서 세세생생
에 함부로 자식이 되어 어머니를 해치고 친한 이를 원망한 일을 제도하며, 이렇게 해서 예
로부터 지금까지 이승 저승의 모든 원수나 친한 이를 제도하시오. 이렇게 해서 갖가지 고통
을 받는 모든 지옥중생을 제도하고, 주리고 목마른 아귀중생을 제도하며, 축생계에서 고생하
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아수라계에서 성내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며, 인간세계에서 잘난
체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천상에서 쾌락에 빠져 있는 모든 하늘 무리를 제도하시오."
다시 죽비를 던지고 말씀하셨다.
"언덕에 올랐으면 배를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니, 무엇하러 사공에게 다시 길을 물으
랴."
회향 (廻向)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향을 사른 뒤에 죽비로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 선가 (仙駕) 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깨달
음을 등지고 번뇌와 어울려 여러 세계에 잘못 들었소. 그리하여 지옥·아귀·축생·아수
라·인간 혹은 천상에 있으면서 떴다 가라앉음이 일정치 않고 고락이 같지 않았으니, 그것
은 오직 그대들이 한량없는 겁을 지나면서 본래면목을 몰랐기 때문이오.
승의선가여, 원수나 친한 이를 면하고 생사를 면하여 고해를 건너려거든 빛을 돌이켜 비추
어 보아 주인공의 본래면목을 아는 것이 제일이오.
승의공주는 인간에 태어나되 왕궁에 태어나 30여 년을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한 나라의 공주
가 되어 만백성들을 이롭게 하였으니,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만,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은 어떤 것인가.
지금 4대는 흩어지고 신령하게 알아보는 그것 〔靈識〕 만이 홀로 드러나고 텅 비고 밝은
그것 〔虛明〕 만이 혼자 비치어 멀고 가까움에 관계가 없고,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하니
자, 어서 오시오. 지금 여기서 내 말을 분명히 듣는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확실히 보아
의심이 없으면, 시방 불국토 어딜 가나 자유자재할 것이오. 그렇지 못하다면 이 산승은 또
공주를 위해 수륙재 (水陸齋) 의 인연을 조금 말할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물과 땅의 어둡고 밝은 큰 도량에서 티끌 같은 세계를 다 드러내오. 3도 (三途) 에서는 법을
듣고 고통을 모두 떠나고, 6취 (六趣) 에서는 은혜를 입어 법체 (法體) 가 편안하오. 원한
있는 마음은 끊기 쉬우나, 끝이 없는 성품은 헤아리기 어렵소. 이 집에 가득한 형제들이여,
알겠는가. 청풍명월이 곳곳에서 반짝이니 이 법회에는 부처님네가 다 내려오셨고, 3현10성
(三賢十聖) 이 다 귀의하오. 마음을 편히하고 공양을 받아 기쁜 마음을 내고, 금강 (金剛)
의 묘각 (妙覺) 으로 점차 들어가시오. 중생들 이 항하수 모래만큼의 죄를 골고루 지으나,
한마디 〔一句〕 에 다 녹이고 한 기틀을 돌리시오. 이러한 공덕 한량 없거니, 승의 선가는
정토로 돌아가오. 말해 보시오. 승의 선가는 정토에 있는가, 예토에 있는가. 부처세계에 있는
가. 중생세계에 있는가. 이 세계에 있는가, 저 세계에 있는가."
또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정토라 할 수도 없고 예토라 할 수도 없으며, 부처세계라 할 수도 없고 중생세계라 할 수
도 없으며, 이 세계라 할 수도 없고 저 세계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어디라고도 할 수 없다
면 결국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죽비를 던지고 말씀하셨다.
"미세한 의혹을 모두 없애 한 물건도 없나니, 대원경지 속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빈당 (殯堂) 에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승의공주를 부른 뒤에 말씀하셨다.
"승의공주는 36년 동안 4대를 부지해 오다가 불과 바람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만 남아 있
소. 산승은 독손 〔毒手〕 으로 끝까지 헤쳐놓고 한바탕 소리칠 것이니, 마음대로 깨치고 마
음대로 쓰시오."
할을 한 번 하고 말씀하셨다.
"승의선가는 허공을 누비되 앞뒤가 없고, 한 티끌도 붙지 않아 당당히 드러났소. 몸을 뒤쳐
바로 위음왕 밖을 뚫어, 크나큰 참바람을 헛되이 간직하지 마시오."
주장자로 널을 세 번 내리친 뒤에 또 부르고는 "승의공주여, 맑은 못에 비친 가을달을 밟아
보시오. 온 천지에 얼음 얼고 서리치리니" 하고 할을 한 번 하셨다.
18. 정월 초하루 아침에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들이여, 그대들은 마음을 씻고 자세히 들으라. 지금 4대는 각기 떠나고 영식 (靈識) 만
이 홀로 드러났소. 비록 산하와 석벽에 막힌 것 같으나 이 영지 (靈知) 는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티끌 같은 시방세계에 노닌다. 그러면서도 그 자취가 끊어졌으므로 멀고 가까움에 관
계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청하면 곧 온다. 지옥에 있거나 혹은 아귀·축생·아수라·인간·
천상에 있거나 그들은 지금 계묘년 섣달 그믐날 다 여기 와서 분명히 내 말을 듣고 있다.
말해 보라. 지금 내 말을 듣는 그것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멸하는 것인가, 멸하지 않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가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앗 〔 〕 !.
산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죽은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멸하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오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가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있는 것
이라 할 수도 없고 없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무어라 할 수 없다는 그것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빨리 몸을 뒤쳐 겁 밖으로 뛰어넘으라. 그때부터는 확탕 (湯: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 도 시원해지리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불자들은 자세히 아는가. 여기서 만일 자세히 알면 지옥에 있거나 아귀·축생·아수라·인
간·천상에 있거나 관계없이 불조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산승이 그대들을
위해 잔소리를 좀 하리니 자세히 들으라.
그대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망령되게 4대를 제 몸이라 여기고 망상분별을 제 진
심으로 알아 하루 내내 일년 내내 몸과 입과 뜻으로 온갖 악업을 지어 왔다. 그리하여 그
정도가 같지 않으므로 지옥에 들기도 하고 아귀나 축생이나 아수라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인간이나 천상에 있기도 하는데, 지금 갑진년 섣달 그믐날 모두 여기 와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모두 인연을 버리고 온갖 일을 쉬고, 여러 생 동안 지은 중죄를 참회하여 없애고
자심3보 (自心三寶) 에 귀의하라. 불법승 3보는 그대들의 선지식이 되고 그대들의 큰 길잡이
가 될 것이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도 다 이것에 의하여 정
각 (正覺) 을 이루고는, 시방세계의 중생들을 널리 구제하여 다 성불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미래의 부처와 보살도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
일 일체종지 (一切種智: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 가 뚜렷이 밝고 10호 (十號) 가 두루
빛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심3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다.
귀의란 망 (妄) 을 버리고 진 (眞) 을 가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지금 분명히 깨닫는, 텅
비고 밝고 신령하고 묘한, 조작없이 그대로인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불보 (佛寶) 요, 탐애를
아주 떠나 잡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의 광명이 피어나 시방세계를 비추는 그것이 바로 그대
들의 법보 (法寶) 며,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한 생각도 생기지 않아 과거 미래가 끊어지고
홀로 드러나 당당한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승보 (僧寶) 인 것이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참귀의처이며, 이것을 일심3보 (一心三寶) 라 하는 것이다. 그
대들은 철저히 알았는가? 만일 철저히 알아낸다면 법법이 원만히 통하고 티끌티끌이 해탈하
여 다시는 3도와 6취에 윤회하지 않을 것이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옛 성인이 도에
들어간 인연을 예로 들어 그대들을 깨닫게 하겠다.
삼조 승찬 (三祖僧璨) 대사가 처음으로 이조 (二祖) 를 찾아뵙고, `저는 죄가 중합니다. 화상
께서 이 죄를 참회하게 해주십시오' 하니 이조는 `그 죄를 가져 오라. 그대에게 참회하게 하
리라' 하였다. 삼조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기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니 이조가 `그대의 죄를 다 참회해 주었으니, 불법승에 의지하여 살아가라' 하였다.
삼조가 다시 묻기를 `제가 보니 스님은 승보이지만 어떤 것이 부처와 법입니까?' 하니 `마
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니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요, 승보도 그러하다' 하였다. 삼조가 `오
늘에야 비로소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고, 마
음이 그런 것처럼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니 이조는 `그렇다' 하였다.
불자들이여,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다고 한다
면 결국 어디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일어난 곳을 찾아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의 본성이 공 (空)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의심
이 없는가. 여기에 대해 분명하여 의심이 없다면 바른 안목이 활짝 열렸다 하겠으나 혹 그
렇지 못하다면 또 한마디를 들어 그대들의 의심을 풀어 주겠다. 옛사람들의 말에 `물질을
보면 바로 마음을 본다. 그러나 중생들은 물질만 보고 마음은 보지 못한다' 하였다."
이어서 불자를 세우고는, "이것이 물질이라면 어느 것이 그대들의 마음인가?" 하시고, 또 세
우고는 "이것이 그대들의 마음이라면 어느 것이 물질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고는 말씀하셨다.
"물질이면서 마음인 것이 그 자리에 나타나는데, 요새 사람들은 형상을 버리고 빈 마음을
찾는다."
19. 최상서 (崔尙書) 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영혼을 부르며 말씀하셨다.
"나 (羅) 씨 영혼이여, 나씨 영혼이여, 아는가? 모른다면 그대의 의심을 풀어주겠다.
나씨 영혼이여, 63년 전에 4연 (四緣) 이 거짓으로 모인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남 〔生〕
이라 하였으나 나도 난 적이 없었다. 63년 뒤인 오늘에 이르러 4대가 흩어진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죽음이라 하나 죽어도 따라 죽지 않았다. 이렇게 따라 죽지도 않고 또 나지도 않
았다면, 나고 죽고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실체가
없다면 홀로 비추는 텅 비고 밝은 것 〔虛明〕 만이 영겁토록 존재하는 것이다.
나씨 영혼을 비롯한 여러 불자들이여,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3세 부처님네도 설명하
지 못하였고 역대 조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하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했다면
4생6도의 일체 중생들에게 각각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본래 갖추어져 있다면 무엇을
남이라 하고 무엇을 죽음이라 하며, 무엇을 옴이라 하고 무엇을 감이라 하며, 무엇을 괴로움
이라 하고 무엇을 즐거움이라 하며, 무엇을 옛날이라 하고 무엇을 지금이라 하는가.
삶과 죽음, 감과 옴, 괴로움과 즐거움, 옛과 지금이 없다고 한다면,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적나라하고 적쇄쇄하여 아무런 틀 〔 臼〕 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 시방세계는
안도 없고 바깥도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바로 깨끗하고 묘한 불토 (佛土) 요 더 없는 〔無
上〕 불토며, 견줄 데 없는 불토요 한량없는 불토며, 불가사의한 불토요 말할 수 없는 불토
인 것이다.
이런 불토가 있으므로 이 모임을 마련한 시주 최씨 등이 지금 산승을 청하여 이 일대사인연
을 밝히고, 망모 (亡母) 인 나씨 영가 (靈駕) 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말해 보라. 영가는 지
금 어느 국토 (國土) 에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티끌 하나에 불토 하나요, 잎새 하나에 석가 하나니라" 하고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0. 조상서 (趙尙書) 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죽비로 향탁 (香托) 을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채 (蔡) 씨 영가는 아는가. 이 자리에서 알았거든 바로 본지풍광 (本地風光) 을 밟을 것이
오, 만일 모르거든 이 말을 들으라.
50여 년 동안을 허깨비 바다 〔幻海〕 에 놀면서 온갖 허깨비 놀음을 하다가 오늘 아침 갑
자기 4대가 흩어져 각각 제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밝고 텅 빈 〔虛明〕 한 점만이 환
히 홀로 비추면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청하면 곧 오는데,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한다.
오직 이 광명은 시방세계의 허공을 채우고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찬란히 모든 사물에 항상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산하대지는 법왕의 몸을 완전히 드러내고, 초목총림은 모두 사자후를 짓는다. 한 곳에 몸을
나타내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나타나고, 한 곳에서 법을 설하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법
을 설한다. 한 몸이 여러 몸을 나타내고 여러 몸이 한 몸을 나타내며, 한 법이 모든 법이 되
고 모든 법이 한 법이 되는데, 마치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 받아들이고 크고 둥근 거울
〔大圓鏡〕 처럼 영상이 서로 섞인다. 그 가운데 일체 중생은 승속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혜있는 이나 지혜없는 이나, 유정이나 무정이나, 가는 이나 오는 이나, 죽은 이나 산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성불한다'라고.
채씨 영가여, 아는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 의심이 없으면 현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 3세의
부처님네와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다니면서 이승이나 저
승에서 마음대로 노닐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 구절을 들으라."
죽비로 향탁을 한 번 내리치고는 "한 소리에 단박 몸을 한 번 내던져 대원각 (大圓覺) 의
바다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1. 장흥사 (長興寺) 원당 (願堂) 주지의 청으로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공주 선가와 이씨 영가와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4성6범 (四聖六凡) 이 여기서 갈라지
고 4성6범이 여기서 합한다. 그대들은 아는가. 만일 모른다면 내가 한마디 하여 그대들을 집
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라.
승의 선가와 이씨 영혼이여, 만일 이 일대사인연으로 말하자면 지옥세계에 있는 자나 아
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세계에 있는 자를 가리지 않고 각기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
이다. 그리하여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다니고 서며 앉고 누우며 움직이는
동안 배고프고 춥기도 하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면서
어디서나 갖가지로 작용하는데, 다만 미혹과 깨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즐거움을 누리는 이도 있고 항상 지독한 고통을 받는 이도 있어 두 경지가 같지 않다.
불자들이여, 이 한 점 신령하고 밝은 것 〔靈明〕 은 성인에 있다 하여 늘지도 않고 범부에
있다 하여 줄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의지하는 곳이 없으며 활기가 넘쳐 막히는 일도 없다.
비록 형상도 없고 처소도 없으나 시방세계를 관통할 수 있고 모든 부처의 법계에 두루 들어
간다. 물물마다 환히 나타나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고 버리더라도 언제나 있다. 한량없이
광대한 겁으로부터 나도 따라 나지 않고 죽어도 따라 죽지 않으며, 저승과 이승으로 오가지
만 그 자취가 없다.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며, 6근에 두루두루 나타
나되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다.
불자들이여, 과연 의심이 없는가. 여기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으면, 바른 눈이 활짝 열려 불
조의 혜명 (慧命) 을 잇고 스승의 기용 (機用) 을 뛰어넘어 현묘한 도풍을 크게 떨칠 것이
다. 만일 그래도 의심이 있으면 또 한 가지를 들어 남은 의심을 없애 주리니 자세히 보아
라."
죽비를 들고 "이것을 보는가" 하고 한 번 내리치고는, "이 소리를 듣는가. 보고 듣는다면 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2. 신백대선사 (申白大禪師) 를 위해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모든 법은 인연을 따라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도로 멸한다. 63년 동안 허깨비 바다에서
놀다가, 인과를 모두 거두어 진 (眞) 으로 돌아갔나니, 근진 (根塵) 을 모두 벗고 남은 물건
이 없어 손을 놓고 겁 밖의 몸으로 갔구나."
그 혼을 부르면서 말씀하셨다.
"신백 존령 (尊靈) 은 과연 이러한가. 과연 그러하다면 생사에 들고 남에 큰 자재를 얻을 것
이다. 혹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마디를 들으라."
밤이 고요해 거듭 달을 빌리기 수고롭지 않나니
옥두꺼비 (玉蟾:달) 언제나 허공에 걸려 있네.
夜靜不勞重借月 玉蟾常掛大虛中
23. 해제에 상당하여
태후전 (太后殿) 에서 가사 한 벌을 보내오다
스님께서 법의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유령 (大庾嶺) 꼭대기에서 들어도 들어지지 않을 때에는 다투어도 모자라더니, 놓아버려
깨달았을 때에는 양보해도 남는구나."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하던 것을 어찌 한 사람이 친히 전하겠는가. 대중은 아는가. 접고
펴기는 비록 내게 있으나 거두고 놓기는 그대에게 있다."
가사를 입고 법좌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 자리는 많은 사람이 오르지도 못하였고 밟지도 못하였는데, 이 산승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 않은 채 올라갈테니 대중은 자세히 보라."
스님께서는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가사자락을 거두고 자리를 펴고 앉아 한참
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 (主句) 인가, 빈구 (賓句) 인가. 파주구 (把住句) *인가, 방행구 (放行句) *인가.
대중은 가려내겠는가. 가려낼 수 있겠거든 당장 흩어지고, 가려내지 못하겠든 내 말을 들으
라. 맨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 〔機〕 은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지금 대중의 면전에 들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빠진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
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부
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제해야 할 중생이 없는데, 무슨 장기 (長期) ·단기 (短期) 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양쪽을 끊었고 가운데에도 있지 않다. 빈 손에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탄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구나."
할을 한 번 하고는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4. 승하하신 대왕의 빈전 (殯殿) 에서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손 가는대로 향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 (覺穀仙駕:공민왕을
말함) 께서 천성 (千聖) 의 이목을 활짝 열고 자기의 신령한 근원을 증득하게 하려는 것입
니다."
그리고는 향을 꽂으셨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기대앉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왕은 아십니까. 45년 동안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삼한 (三韓) 의 주인이 되어 뭇 백성들을
이롭게 하다가, 이제 인연이 다해 바람과 불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대왕은 자세히 들으소서. 텅 비고 밝은 이 한 점은 흙이나 물에도 속하지 않고 불이나 바람
에도 속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속하지 않고 현재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가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오는 것에도 속하지 않으며, 나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죽는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장자를 들고는 "이것을 보십니까?" 하고 세 번 내리치고는 "이 소리를 들으십니까?" 하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허공을 쳐부수어 안팎이 없어 한 티끌도 묻지 않고 당당히 드러났다. 몸을 뒤쳐 위음왕불
(威音王佛) 뒤를 바로 뚫고 가시오. 둥근 달 차가운 빛이 법상 (法滅) 을 비춥니다."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5. 납월 8일 한 밤의 법문 〔晩參〕
스님께서 자리에 오르자 동당·서당의 스님들이 문안인사를 드렸다.
스님께서는 죽비를 들고 말씀하셨다.
"산승이 방장실에서 나와 이 자리에 오르자, 시자도 인사하고 수좌도 인사하고 유나 (維那)
도 인사하였다. 인사가 다 끝났는데 또 무슨 일이 있는가?"
한 스님이 나와 말하였다.
"오늘은 납월 (臘月) 8일입니다."
스님께서는 "대중 속에 들어가라" 하고 죽비를 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 보아도 머리가 없고 밑으로 보아도 꼬리가 없다.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으며 세계가 생기기 전이나 산하가 멸한 후에도 허공에 가득 차 있다. 3세
의 부처님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으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대들은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산산조각이 났도다. 안녕히 계시오
"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6. 경술 9월 16일 나라에서 시행한 공부선장 (工夫選場) 에서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가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을 깨부수고 범성의 자취를 모두 쓸어버리고 납승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알음알이를 없애버려라. 죽이고 살리는 변통이 모두 때에 맞게 하는 데 있고 호령과 저울대
가 모두 손아귀에 돌아간다. 3세의 부처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저 그럴 뿐이다. 산승도 다만 그런 법으로 우리 주상전하
께서 만세 만세 만만세토록 색신 (色信) 과 법신 (法身) 이 무궁하시고 수명과 혜명 (慧命)
이 끝이 없기를 봉축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여러분도 모두 진실로 답안을 쓰고 부디 함부로
소식을 통하지 말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행은 지극한데 말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행이 될 수 없고, 말은 지극한데 행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말도 지극하고 행도 지극하다 하더
라고 그것은 다 문 밖의 일이다.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는 무엇인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입문삼구 (入門三句)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 〔入門句〕 는 분명히 말했으나
문을 마주한 한마디 〔當門句〕 는 무엇이며
문 안의 한마디 〔門裏句〕 는 무엇인가.
入門句分明道
當門句作�生
門裏句作�生
삼전어 (三轉語)
산은 어찌하여 묏부리에서 그치고
물은 어찌하여 개울을 이루며
밥은 어찌하여 흰 쌀로 짓는가.
山何嶽邊止
水何到成渠
飯何白米造
17일에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의심덩이가 풀리는 곳에는 마침내 두 가지 풍광이 없고, 눈구멍이 열리는 때에는 한 항아
리의 봄빛이 따로 있으니 비로소 일월의 새로움을 믿겠고 바야흐로 천지의 대단함을 알 것
이다. 그런 뒤에 반드시 위쪽의 관문을 밟고 조사의 빗장을 쳐부수면 물물마다 자유로이 묘
한 이치를 얻고 마디마디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을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 (丈六金
身) 을 만들고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드니, 만드는 것도 내게 있고 쓸어버리는 것도
내게 있으며, 도리를 말하는 것도 내게 있고 도리를 말하지 않는 것도 내게 있다. 왜냐하면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런 납승이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한 걸음 나아가면 땅이 꺼지고 한 걸음 물러나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
나지도 않으면 숨만 붙은 죽은 사람이다. 어떻게 걸음을 내딛겠는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27. 공부십절목 (工夫十節目)
1.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
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2.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3.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4.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 〔鼻軫〕 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떤가.
5.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때에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6.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 (動靜) 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
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때에는 어떻게 해버려야 하겠는가.
7.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 (自性) 인가.
8.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이 맞게 쓰이는 것인가.
9.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 (眼光) 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10.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28. 왕사 (王師) 로 봉숭 (封崇) 되는 날 설법하다
신해년 8월 26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불자를 들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 산승의 깊고 깊은 뜻을 아는가. 그저 이대로 흩어져버린다 해도 그것은 많은
일을 만드는 것인데, 거기다가 이 산승이 입을 열어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기를 기다린다면
흰 구름이 만 리에 뻗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는 기연에 투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니,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뜻을 잃고 글귀
에 얽매이는 이는 어둡다. 또한 마음으로 헤아리면 곧 어긋나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나
며, 헤아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 물에 잠긴 돌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사 문하에서는 길에서 갑자기 만나면 그대들이 몸을 돌릴 곳이 없고 영
(令) 을 받들어 행하면 그대들이 입을 열 곳이 없으며, 한 걸음 떼려면 은산철벽 (銀山鐵璧)
이요, 눈으로 바라보면 전광석화 (電光石火) 인 것이다. 3세의 부처님도 나와서는 그저 벼랑
만 바라보고 물러섰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나왔다가는 그저 항복하고 몸을 감추었다.
만일 쇠로 된 사람이라면 무심코 몸을 날려 허공을 스쳐 바로 남산의 자라코 독사를 만나
고, 동해의 잉어와 섬주 (曳州) 의 무쇠소 〔鐵牛〕 *를 삼킬 것이며 가주 (圈州) 의 대상
(大像) *을 넘어뜨릴 것이니, 3계도 그를 얽맬 수 없고 천 분 성인도 그를 가두어둘 수 없
다. 지금까지의 천차만별이 당장 그대로 칠통팔달이 되어, 하나하나가 다 완전하고 낱낱이
다 밝고 묘해질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임금님의 은혜와 부처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
을 수 있을 것이다."
주장자를 들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 주장자 밑의 잔소리 〔註脚〕 를 들으라" 하고 내던지
셨다.
29. 갑인 납월 16일 경효대왕 (敬孝大王) 수륙법회에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를 들고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
하셨다.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는 아십니까. 모르겠으면 내 말을 들으십시오. 이 별 〔星兒〕 은
무량겁의 전부터 지금까지 밝고 신령하고 고요하고 맑으며, 분명하고 우뚝하며 넓고 빛나서
온갖 법문과 온갖 지혜와 온갖 방편과 온갖 훌륭함과 온갖 행원 (行願) 과 온갖 장엄이 다
이 한 점 (點) 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한 점은 6범에 있다 해서 줄지도 않고 4성에 있다 해서 늘지도 않으며, 4대가 이루어질
때에도 늘지 않고 4대가 무너질 때에도 줄지 않는 것으로서 지금 이 회암사에서 분명히 제
말을 듣고 있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법을 듣는 그것은 범부인가 성인인가, 미혹한 것인가 깨달은 것인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결국 어디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그 자리 〔當處〕 를 떠나지 않고 항상
맑고 고요하나 그대가 찾는다면 보지 못할 것이오" 하고 죽비를 내던지고는 자리에서 내려
오셨다.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자리를 펴고 앉아 죽비를 가로 잡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부처의 경계를 알려 하거든, 부디 마음 〔意〕 을 허공처럼 깨끗이 해야 한다.
망상과 모든 세계를 멀리 떠나고, 어디로 가나 그 마음 걸림이 없게 해야 한다. 승하하신 대
왕 각경선가를 비롯하여 6도에 있는 여러 불자들은 과연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하였는가.
그렇지 못하거든 다시 이 잔소리를 들으라.
이 정각 (正覺) 의 성품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로는 모든 부처에서 밑으로는 여섯 범부에
이르기까지 낱낱에 당당하고 낱낱에 완전하며, 티끌마다 통하고 물건마다 나타나 닦아 이룰
필요없이 똑똑하고 분명하다. 지옥에 있는 이나 아귀에 있는 이나 축생에 있는 이나 아수라
에 있는 이나 인간에 있는 이나, 천상에 있는 이나, 다 지금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모두 이
자리에 있다. 각경 선가와 여러 불자들이여!"
죽비를 들고는 "이것을 보는가" 하고는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는가. 분명히 보고 똑똑히 듣는다면 말해 보라.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부처님 얼굴은 보름달 같고, 해 천 개가 빛을 놓는 것 같다."
죽비로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30. 병진 4월 8일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집안의 이 물건은 신기할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으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되, 해같이
밝고 옻같이 검다. 항상 여러분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으나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
가 없는 것이다.
산승이 오늘 무심코 그것을 붙잡아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여러분은 이것을 아는가? 안
다 해도 둔근기인데 여기다 의심까지 한다면 나귀해 〔驢年〕 에 꿈에서나 볼 것이다. 그러
므로 선 (禪) 을 전하고 교 (敎) 를 전하는 것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요, 경론을 말해
주는 것도 눈 안에 금가루를 넣는 것이다.
산승은 오늘 말할 선도 없고 전할 교도 없소. 다만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도 전하지 못했으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뚫지 못한 것을 오늘 한꺼번에 집어 보이는 것
이다."
주장자를 가로잡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당장에 마음을 비울 뿐만 아니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던지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짧은 글
1. 승종선화 (勝宗禪和) 에게 주는 글
이 한 점 (點) 은 전연 자취 〔巴鼻〕 가 없어,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
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다면 어디에다 붓을 대고 어디에다 말을
붙이겠는가. 말하려 하나 말로는 할 수 없으니 숲 속에서 잘 생각하여라.
2. 일주수좌 (一珠首座) 에게 주는 글
이 큰 일을 기필코 해결하려거든 반드시 큰 신심을 내고 견고한 뜻을 세워, 지금까지 배워
서 안 불법에 대한 견해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버리고 다시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
고 8만 4천의 미세한 생각을 한 번 앉으면 그 자리에서 끊어버리고, 그저 하루종일 행주좌
와하는 중에 항상 화두를 들어야 한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
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 〔無〕 '고 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한마디 힘을 다해 들되, 언제나 들고 언제나 움켜잡으면, 움직이거나 고요한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자나깨나 늘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이
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저 때만 기다려라.
혹 들어도 냉담하고 전연 재미가 없어 부리를 꽂을 곳이 없고 힘을 붙일 데가 없으며, 알아
지는 점이 없고 어찌할 수가 없더라도 부디 물러서지 말라. 그때야말로 그 사람이 힘을 붙
일 곳이요 힘을 덜 곳이며, 힘을 얻을 곳이요 신명을 놓아버릴 곳이다.
3. 굉장주 (宏藏主) 에게 주는 글
이 더러운 가죽 포대 속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
며 언제나 사람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지만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가 없다. 이것
을 비로자나 법신의 주인이라 한다.
굉스님은 아는가. 안다 해도 몽둥이 30대를 맞을 것이며, 모른다 해도 30대를 맞을 것이니
결국 어찌하겠는가? 이 나옹도 30대를 맞아야 하겠다. 말해 보라. 허물이 어디 있는가? 빨리
말하라.
4. 각성선화 (覺成禪和) 에게 주는 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기어코 이루려 하거든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어,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중에 늘 참구하던 화두를 들어야 한다. 언제나 들고 늘 의심하면 어
느 새 화두가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는 경
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는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고 다시는 부질없고 쓸데없는 말을
말아야 한다.
혹 그렇게 되지 않아 어떤 때는 화두가 분명하고 어떤 때는 분명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나
타나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으며,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며, 어떤 때는 틈이 있고
어떤 때는 틈이 없거나 하면 그것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을
허송하면서 헛되이 남의 보시만 받으면 반드시 뒷날 염라대왕이 음식과 재물을 계산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부질없이 세상에 와서 한번 만났을 뿐이라 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쓸데없는
말을 하고 짧은 소리·긴소리하며, 이쪽을 가리키고 저쪽을 가리키겠는가.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5. 운선자 (雲禪子) 가 병이 있다 하기에 그에게 글을 주다
그대의 병이 중하다 들었는데 그것은 무슨 병인가? 몸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만일 몸의 병이라면 몸은 흙·물·불·바람의 네 가지 요소가 거짓으로 모여 된 것으로서,
그 4대는 각각 주관하는 바가 있는데, 어느 것이 그 병인가? 만일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허깨비 〔幻化〕 같은 것이어서 비록 거짓 이름은 있으나 그 바탕은 실로 공하다. 그렇다
면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만일 일어난 곳을 캐보아도 찾을 수 없다면 지금의 그 고통
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또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 살
펴보면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내 바람이다. 부디 부탁하고 부탁하노라.
6. 지득시자 (志得侍者) 에게 주는 글
그대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참구하려거든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가운데 `모두 타서
흩어졌는데 어느 것이 내 성품인가?'라는 화두를 들되, 언제나 들고 항상 의심하여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곳에서나 부디 틈이 있게 하지 말라. 자거나 깨거나 한결같아야 하고 어디
서나 언제나 분명하며, 기뻐하는 때나 성내는 때나 화두가 다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나
야 한다. 그런 경지에 실제로 이르면 의심덩이가 부서지고 바른 눈이 열릴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여 낮이나 밤이나 되는대로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 혼침과 산란이 섞이고 순
간순간에 어긋나 온갖 선악과 성색에 끄달릴 것이다. 그리하여 금년도 그렇게 보내고 내년
도 그렇게 갈 것이니, 만일 그렇다면 아무리 미륵이 하생하기를 기다려도 붙잡을 때가 없을
것이다.
7. 상국 목인길 (相國 睦仁吉) 에게 주는 글
이 일은 재가·출가에도 있지 않고 또 초참 (初參) ·후학 (後學) 에도 있지 않으며, 또 여
러 생의 훈습이나 수행에도 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깨치는 것은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분
명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자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 (善法) 을 자라게 한다.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
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한 것입니다.
부디 상공도 집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지휘할 때나 관에서 공사를 처리할 때나, 손님을 영접
하여 담소를 나누거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거나, 다니고 서고 앉고 눕거나 결국 `이것은 무
엇인가' 하십시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고 쉬지 않고 살피면 어느 새 크게 웃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그리하여 이 일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고행하고 계율을
지니는, 방석과 대의자 〔竹倚〕 에 있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8. 득통거사 (得通居士) 에게 주는 글
만일 그대가 이 일을 참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승속에도 있지 않고 남녀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또 여러 생의 훈습에도 있지 않는 것이오,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진실하고 결정적인 믿음에 있는 것이오. 그대가 이미 이렇게 믿었거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화두를 드시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없다' 하였다는, 이 마지막 한
마디를 힘을 다해 드시오. 언제나 끊이지 않고 들어 고요하거나 시끄러운 속에서도 공안이
앞에 나타나며, 자나깨나 그 화두가 분명하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면, 마치 물살 급한 여울의 달과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을 것이오. 진실로 그런 경지에 이르면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도 갑자
기 한 번 온몸에 땀이 흐르게 되리니, 그때는 잠자코 스스로 머리를 끄덕거릴 것이오. 간절
히 부탁하오, 부탁하오.
9. 상국 이제현 (相國 李齊賢) 에게 답함
주신 편지 받았습니다. 상국께서 떠나실 때 병에 대해 하신 말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산
승도 구업을 꺼려하지 않고 우리 집의 더러움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일은 승속에도 관계없고 노소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실하고 결정적인 신심에 있을 뿐입니다.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다 결정적
인 신심에 의해 도과 (道果) 를 성취하셨으므로,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 (正覺) 을 이룬다
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을 자라게 한다'
하시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상국께서는 젊어서 과거에 높이 올라 한 나라의 정승이 되고 또 제일가는 문장가로서 나라
의 큰 보배가 되셨는데, 또 우리 불법문중에 마음을 두시니, 고금의 현인들에 비해 백천만
배나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법에 마음을 두었더라도 금생에 깨치지 못하면, 아마 도력이 업력을 이기지 못해
죽고 나서는 가는 곳마다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철저히 깨치지 못했으면 꼭 하고야
말겠다는 큰 뜻을 일으켜 옷 입고 밥 먹고 담소하는 하루 스물 네 시간 어디서나 그 본래면
목을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의 말에, `금생에 이 세상에 나와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바로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마는, 어떤 것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 하였습
니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여,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
맛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는 데 이르러 가슴속이 갑갑하더라도 공 (空) 에 떨어질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상국께서 힘을 얻을 곳이요 힘을 더는 곳이며, 또 안신입명
(安身立命) 할 곳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다시 답함
전에 산매화를 보냈을 때 선물을 주시고 또 회답에 무자 (無字) 화두를 드신다 하니, 산승
은 상국께서 일찍부터 `무'자를 참구하였기 때문에 친히 소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으매 다시 묻는 말에 이렇게 공부하리라 하시니 도리어 근심스럽고 놀랍습니
다. 부디 마음을 그대로 두시기 바랍니다. 옛사람들은 한마디나 반마디를 내려 사람들로 하
여금 제자리를 잡고서 움직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비록 일상생활에 천차만별한 일이 있더라
도 뜻이 위에만 있어 다른 것을 따라 변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다른 화두를 참구할 것이 있
겠습니까?
하물며 다른 화두를 들 때에도 `무'자를 참구해 떠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무'자에 대해 조
금이라도 익숙해질 것입니다. 부디 다른 화두로 바꾸어 참구하지 말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늘 드십시오.
한 스님의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없다 〔無〕 ' 하였다
는데 `무'라고 한 마지막 한마디를 힘을 다해 들되, 부디 언제 깨치고 깨치지 못할까를 기다
리지 말고 재미가 있고 없음에 신경쓰지도 말며, 또 힘을 얻고 얻지 못함에도 관계치 마십
시오. `무'자 그것만을 오로지 들어 그대로 나아가면,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
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의식이 작용하지 않으며 하나도 재미가 없어 마치 모기가
무쇠소의 등에 올라간 것 같더라도 공 (空) 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기는 과거
의 여러 부처님과 조사님이 몸과 마음을 던져버린 곳이요, 또 상국께서 힘을 얻고 힘을 덜
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곳입니다. 거기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져버리면 비로소 도란, 첫째
는 짓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쉬지 않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한 주먹에 황학루 (黃鶴樓) 를 때려눕히고
한 발길로 앵무주 (鵡洲) 를 차서 뒤엎는다
의기 (意氣) 에 의기를 더 보태니
풍류스럽지 않은 곳도 풍류스럽구나.
一拳拳倒黃鶴樓 一 蒜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10. 지신사 염흥방 (知申事 廉興) 에게 주는 글
진정 이 큰 일을 참구하려면 승속과 남녀를 묻지 말고 상중하의 근기도 묻지 말며 또 초
참·후학을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직 당사자가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
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모든 선법
을 자라게 한다' 하셨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
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공 (公) 은 젊어서 높은 벼슬에 올랐고 임금님을 만나 사무가 매우 번거로운 때인데도 우리
불법에 대해 의심없는 확실한 믿음으로 마음 닦는 방법을 물으시니, 어찌 세간 출세간을 막
론하고 가장 역량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 닦는 법을 따로 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광명사 (廣明寺) 에 있을 때 공에게 말
씀드린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하루 스물 네 시간을 들되, 어디서나 언제나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끊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참구하여 조금도 틈을 주지 말고, 다닐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섰을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며, 앉았거나 누웠을 때
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옷 입고 밥 먹으며 대소변 보고 손님을 영접하며, 나
아가서는 공무를 처리할 때나 임금님 앞에서 나아가고 물러날 때나 붓을 들고 글을 쓸 때나
필경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그저 이렇게 끊임없이 들고 참구하다 보면 어느 새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어,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고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며, 또
이 허깨비몸이 인간에 있는 줄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같고 자나깨나 매
한가지인 곳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지십시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관직이나 속인의
모양을 바꾸지 않고 화택 (火宅) 을 떠나지 않고라도, 서천 (西天) 의 스물 여덟 분 조사와
동토 (東土) 의 여섯 조사와 천하의 선지식들이 전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본유 (本有) 의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11. 세상을 탄식함 〔歎世〕 · 4수
1.
어지러운 세상 일 언제나 끝이 날꼬
번뇌의 경계는 갈수록 많아지네
미혹의 바람은 땅을 긁어 산악을 흔드는데
업의 바다는 하늘 가득 물결을 일으킨다
죽은 뒤의 허망한 인연은 겹겹이 모이는데
눈앞의 광경은 가만히 사라진다
구구히 평생의 뜻을 다 부려 보았건만
가는 곳마다 여전히 어찌할 수 없구나.
世事紛紛何曰了 塵勞境界倍增多
迷風刮地搖山嶽 業海漫天起浪波
身後妄緣重結集 目前光景暗消磨
區區役盡平生圍 到地依先不輓何
2.
눈 깜박이는 사이에 세월은 날아가버리나니
젊은 시절은 백발이 되었구나
금을 쌓아두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 어찌 그리 미련한고
뼈를 깍으며 생 (生) 을 꾸려가는 것 진정 슬퍼라
흙을 떠다 산을 북돋움은 부질없이 분주떠는 일이요
표주박으로 바닷물 떠내는 것 진실로 그릇된 생각이다
고금에 그 많은 탐욕스런 사람들
지금에 와서 아무도 아는 사람 없구나.
乏眼光陰賑過去 白頭換却少年時
積金候死愚何甚 刻骨營生事可悲
捧土培山徒自迫 持楞酌海諒非思
古今多少貪 客 到此應無一點知
3.
얼마나 세상 티끌 속에서 빠져 지냈나
백가지 생각이 마음을 얽어 정말로 시끄러운데
5온 (五睛) 의 빽빽한 숲은 갈수록 우거지고
6근 (六根) 의 어두운 안개는 다투어 나부끼네
명리를 구함은 나비가 불에 들고
성색에 빠져 즐김은 게가 끓는 물에 떨어지네
쓸개가 부서지고 혼이 나가는 것 모두 돌아보지 않나니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를 위해 바빠하는가.
幾多汨沒紅塵裏 百計 心正擾攘
五睛稠林增霽鬱 六根冥務競飄
沽名苟利蛾投焰 嗜色 聲蟹落湯
膽碎魂亡渾不顧 細思端的爲誰忙
4.
죽고 나고 죽고 나며, 났다가 다시 죽나니
한결같이 미쳐 헤매며 쉰 적이 없었네
낚싯줄 밑에 맛난 미끼를 탐할 줄만 알거니
어찌 장대 끝에 굽은 낚시 있는 걸 알리
백년을 허비하면서 재주만 소중히 여기다가
오래고 먼 겁의 허물만 이뤄놓네
업의 불길이 언제나 타는 곳을 돌이켜 생각하나니
어찌 사람들을 가르쳐 특히 근심하지 않게 하랴.
死死生生生復死 狂迷一槪不曾休
只知線下貪香餌 那識竿頭有曲鈞
喪盡百年重伎倆 成久遠劫愆尤
蒜思業火長燃處 寧不敎人特地愁
12. 지공화상 (指空和尙) 기골 (起骨) *
"밝고 텅 빈 한 점은 아무 걸림이 없어, 한 번 뒤쳐 몸을 던지니 얼마나 자유롭소."
죽비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치며 할을 한 번 하고는 `일으켜라!' 하셨다.
입탑 (入塔)
스님께서 영골을 받들고 말씀하셨다.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은 3천 가지 몸가짐을 돌아보지 않았는데 8만 가지 미세한
행에 무슨 신경을 썼는가. 몸에는 언제나 순금을 입고* 입으로는 불조를 몹시 꾸짖었으니,
평소의 그 기운은 사방을 눌렀고 송골매 같은 눈은 가까이하기 어려웠다. 원나라에서 여러
해를 잠자코 앉아 인천 (人天) 의 공양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전
하매 천룡팔부가 돌아오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아침에 정성스레 탑을 세우고 삼한 (三韓) 땅에 모시어 항상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나 그 법신은 법계에 두루해 있다. 말해 보라. 과연 이 탑 안에 거두어 넣을 수
있겠는가. 만일 거두어 넣을 수 없으면 이 영골은 어디 가서 편안히 머물겠는가. 말할 수 있
는 이는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없다면 산승이 스스로 말하겠다."
할을 한 번 한 뒤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기는 오히려 쉽지만, 겨자씨를 수미산에 넣기는 매우 어렵다."
13. 각오선인 (覺悟禪人) 에게 주는 글
생각이 일고 생각이 멸하는 것을 생사라 하는데, 생사하는 그 순간순간에 부디 힘을 다해
화두를 들어라. 화두가 순일하면 일고 멸함이 곧 없어지는데 일고 멸함이 없어진 그 곳을
신령함 〔靈〕 이라 한다. 신령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그것을 무기 (無記) 라 하고, 신령
함 가운데 화두에 어둡지 않으면 그것을 신령함이라 한다. 즉 이 텅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
럽게 아는 것은 무너지지도 않고 잡된 것도 아니니, 이렇게 공부하면 멀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다.
14. 지여상좌 (智如上座) 를 위해 하화 (下火) *하다
세 가지 연 〔三緣〕 이 모여 잠깐 동안 몸 〔有〕 을 이루었다가 4대가 떠나 흩어지면 곧
공 (空) 으로 돌아간다. 37년을 허깨비 바다에서 놀다가 오늘 아침 껍질을 벗었으니 흉년에
쑥을 만난 듯 기쁠 것이다. 대중스님네여, 지여상좌는 어디로 갔는지 알겠는가. 목마를 세워
타고 한 번 뒤쳐 구르니, 크고 붉은 불꽃 속에서 찬 바람을 놓도다.
15. 두 스님을 위해 하화하다
"혜징 (慧澄) 수좌와 지인 (志因) 상좌여, 밝고 신령한 그 한 점은 날 때에도 분명하여
남을 따르지 않고, 죽을 때에도 당당하여 죽음을 따르지 않는다. 생사와 거래에 관계없이 그
자체는 당당히 눈앞에 있다."
횃불로 원상 (圓相) 을 그리면서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이 두 상좌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57년 동안 허깨비 세상에서 놀다가 오
늘 아침에 손을 떼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가운데 소식을 누가 아는가. 불빛에 함께 들어
가나 감출 곳이 없구나."
16. 신백대선사를 위해 뼈를 흩다
큰 들판에 재가 날으매 그 뼈마디는 어디 갔는가. 깜짝하는 한 소리에 비로소 뇌관 (牢關)
에 이르렀다. 앗! 한 점 신령스런 빛은 안팎이 없고, 오대산 하늘을 둘러싼 흰 구름은 한가
하다.
17. 지보상좌 (志普上座) 를 위해 하화하다
근본으로 돌아갈 때가 바로 지금이거니, 도중에 머물면서 의심하지 말아라. 별똥이 튀는 곳
에서 몸을 한 번 뒤쳐, 구품의 연화대로 자유로이 돌아가라.
18. 숙녕옹주 묘선 (淑寧翁主 妙善) 에게 드리는 글
이 한 가지 큰 일을 성취하려면 그것은 승속이나 남녀나 초기 (初機) ·후학 (後學) 에 있
지 않고, 오직 당사자의 마지막 진실한 한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제가 옹주를 보매 천성이
남과 다른 데가 있어, 본래부터 사심이나 의심이나 미혹한 마음이 없고, 오직 전심으로 더
없는 〔無上〕 보리를 구하려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어찌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선지
식을 가까이하여 반야의 바른 법을 훈습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사람의 말에, `장부
란 남자 여자의 형상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요, 네 가지 법 〔四法〕 을 갖추면 그를 장부
라 한다' 하였습니다. 네 가지 법이란 첫째는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이요, 둘째는 바른 법
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그 뜻을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그 말대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면 참으로 장부라 하고, 이 네 가지 법이 없으면 비록 남자의 몸이라 하
더라도 장부라 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옹주님도 이 말을 확실히 믿고 그저 날마다 스물 네 시간 행주좌와의 4위의 (四威
儀) 속에서 오직 본래 참구하던 화두만을 들되 끊이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의심하면 고요
하거나 시끄러운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의심하지 않아
도 저절로 의심되며, 자나깨나 화두가 앞에 나타나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고 일어나려 해
도 일어나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 모르는 사이에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
면, 거기는 여자의 몸을 바꾸어 남자가 되고 남자 몸을 바꾸어 부처를 이루는 곳이 될 것입
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19. 매씨 (妹氏) 에게 답함
나는 어려서 집을 나와 햇수도 달수도 기억하지 않고 친한 이도 먼 이도 생각하지 않으며,
오늘까지 도 (道) 만을 생각해 왔다. 인의 (仁義) 의 도에 있어서는 친하는 정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지마는, 우리 불도에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만 있어도 큰 잘못이다. 이런
뜻을 알아 부디 친히 만나겠다는 마음을 아주 끊어버려라.
그리하여 하루 스물 네 시간 옷 입고 밥 먹고 말하고 문답하는 등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
상 아미타불을 간절히 생각하여라. 끊이지 않고 생각하며 쉬지 않고 기억하여 생각하지 않
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경지에 이르면, 나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헛되이 6
도 (六道) 에서 헤매는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절히 부탁하여 게송으로 말하겠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에 붙여두고 부디 잊지 말아라
생각이 다하여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
여섯 문 〔六門〕 에서 언제나 자금광을 뿜으리.
阿邇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20. 대어 (對語)*
무제 (武帝) 가 달마에게 "내 앞에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달마가"모른다"
고 대답하니 무제가 말이 없었다. 이에 대해 보녕 (保寧) 스님은 대신해 혀를 내어보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천지가 하나로 통한다" 하셨다.
태종 (太宗) 이 한 스님에게 "어디서 오시오" 하고 묻자 그 스님이 "와운 (臥雲) 에서 옵니
다" 하니 왕은 "와운은 궁벽한 곳이라 천자에게 조회하지 않는데 무엇하러 왔는가" 하였다.
이에 대해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밝음을 만나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정치가 잘 되는데 누가 달아나겠는가" 하셨다.
적 (寂) 대사가 삼계도 (三界圖) 를 올렸을 때 임금이 묻기를, "나는 어느 세계에 있습니
까?" 하니 적대사는 대답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폐하께서야 어디로 가신
들 누가 존칭하지 않겠나이까"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합장하고 몸을 굽히는데 누가 우러러보지 않겠는가" 하셨
다.
고사인 (高舍人) 이 한 스님에게 "시방세계가 모두 부처라면 어느 것이 보신 (報身) 이며 어
느 것이 법신 (法身) 입니까?" 하고 물었다. 보녕스님이 그 스님을 대신해서 "사인님, 다시
누구냐고 물어 보십시오" 하였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는 "비구니 〔師姑〕 는 여자로 된 것이니라" 하셨다.
설봉 (雪峰) 스님이 덕산 (德山) 스님에게 "옛부터 내려오는 종승 (宗乘) 의 일에 저도 한
몫이 있습니까?" 하였다. 덕산스님이 때리면서, "무어라고 말하는가?" 하니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가슴을 치고 곧 나가라"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발을 밟고 나가라" 하셨다.
남전 (南泉) 스님이 양흠 (良欽) 에게 물었다.
"공겁 (空劫) 중에도 부처가 있는가?"
양흠이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그는 어떤 부처인가?"
"양흠입니다."
"어느 세계에 사는가?"
양흠이 말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선상 (禪滅) 을 한 바퀴 돌고 나가라"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어느 세계에 사는가?" 하셨다.
21. 감변 (勘辨)
스님께서 한 좌주 (座主) 에게 물었다.
"교가 (敎家) 에서는 일시불 (一時佛) 을 말하는데, 그 부처는 지금 어디 있는가?"
좌주가 어물거리자 스님께서 할을 한 번 하고 나가다가 다시 좌주를 불렀다. 좌주가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알았는가?" 하니 좌주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스님께서 "더 맞아야겠구나" 하니 좌주는 절을 하였다.
스님 셋이 와서 절하는 것을 보고 스님께서 물었다.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하나는 지혜가 있을 것이니, 지혜로 이르지 못하는 경계를 한
마디 해보아라."
그 스님이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는 말에 있지 않다. 둘째 스님은 어떤가?"
그 스님도 말이 없자 스님께서는 "셋째 칠통 (漆桶) 은 어떤가?" 하셨다.
그 스님도 역시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노승이 스님네에게 감파 (勘破) 당했소. 앉아서 차나 드시오."
스님께서 한 도사 (道士:老莊) 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호주 (毫州) 에서 옵니다."
"그대가 호주에서 온다면 노자 〔老君〕 를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 눈이 어떤가?"
도사가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자가 석가에게 절하는구나."
22. 착어 (着語)*
스님께서 "산 밑에 한 조각 쓸데없는 밭이다" 하신 옛 분의 말씀을 들려 주고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물건이 주인을 보고 눈을 번쩍 뜨고, 차수 (叉手) 하고 간절히 조옹 (祖翁) 에게 묻는구나."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기 집의 본래 계약서는 어디다 두고서 몇 번이나 팔았다가 도로 사는가."
또 말씀하시기를, "경쇠소리 끊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나니, 가여워라, 송죽 (松竹) 이
맑은 바람을 끌어오도다" 하고는 또 "이익은 군자 (君子) 를 움직인다" 하셨다.
23. 결제에 상당하여 설법하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자리를 걷어가지고 그냥 해산한다 해도 그것은 일 없는 데서 일을 만들고,
바람 없는 데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는 일정한 것이 없고 일에는 한결같음
이 없으니, 이 산승의 잔소리를 들으라.
담담하여 본래부터 변하는 일이 없고, 확 트여 스스로 신령히 통하며, 묘함을 다해 공 (功)
을 잊은 공 (空) 한 곳에서, 적조 (寂照) 의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 하나는 말 있기 전에 완
전히 드러나, 하늘과 땅을 덮고 소리와 빛깔을 덮고 있었다. 서천의 28조사도 여기서 활동을
잊어버렸고 중국의 여섯 조사도 여기서 말을 잃어버렸다. 몹시 어수선한 곳에서는 환히 밝
고, 환히 밝은 곳에서는 몹시 어수선하니 왕의 보검과 같고 또 취모검 (吹毛劍) 에 비길 만
하여 송장이 만 리에 질펀하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땅이 산을 만들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간
직했으나 옥의 티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큰 코끼리 〔香象〕 가 강
을 건널 때, 철저히 물결을 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3현·3요·4료
간·4빈주로서 완전히 죽이고 완전히 살리며, 완전히 밝게 하고 완전히 어둡게 하며, 한꺼번
에 놓고 한꺼번에 거두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서 하며, 진실이면서 거짓을 덮지
않고 굽으면서 곧음을 감추지 않소."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니 어디로 가나 티끌이 아니다."
주장자를 내던지고,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라 한다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하
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린 형세요, 산의 얼굴에 구름의 그림자로다. 방 (龐) 거사가 딸 영조
(靈照) 에게,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라 하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영조는 `이 늙은이가 머리는 희고 이는 누르면서 이따위 견해를 가졌구나'
하였다. 다시 거사가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니 영조는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
사의 뜻입니다' 하였다.
거사는 말은 지극하나 뜻이 지극하지 못하고, 영조는 뜻은 지극하나 말이 지극하지 못하였
다. 아무리 말과 뜻이 지극하더라도 나옹의 문하에서는 하나의 무덤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말해 보라. 그 허물은 어느 쪽에 있는가."
한참 있다가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오.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
려오셨다.
24. 해제에 상당하여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 (主句) 인가, 빈구 (賓句) 인가, 파주구 (把住句) 인가, 방행구 (放行句) 인가.
대중스님네는 가려낼 수 있겠는가. 가려낼 수 있으면 해산하고 가려낼 수 없으면 내 말을
들어라.
맨 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 〔機〕 은 3세의 부처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내가 지
금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없는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
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어떤 부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
제해야 할 어떤 중생도 없다. 그런데 무슨 장기·단기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
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두 쪽을 다 끊고 중간에도 있지 않네
빈 손으로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타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니
다리는 흐르는데 물은 흐르지 않네.
閒斷兩頭不居中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할을 한 번 한 뒤에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나옹화상 게송
시자 각뢰 (覺雷) 가 짓고 광통 보제사 (廣通 普濟寺) 에 주석하는 환암 (幻艤) 이 교
정하다.
1. 노래 〔歌〕 · 3수
1. 완주가 (翫珠歌)
신령한 이 구슬 지극히 영롱하여
그 자체는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 안팎이 비었는데
사람마다 푸대 속에 당당히 들어있어서
언제나 가지고 놀아도 끝이 없구나
마니구슬이라고도 하고 신령한 구슬이라고도 하니
이름과 모양은 아무리 많아도 자체는 다르지 않네
세계마다 티끌마다에 분명하여
밝은 달이 가을 강에 가득한 듯하여라
배고픔도 그것이요 목마름도 그것이니
목마름 알고 배고픔 아는 것 대단한 것 아니라
아침에는 죽먹고 재 (齋) 할 때는 밥먹으며
피곤하면 잠자기에 어긋남이 없어라
어긋남도 그것이요 바름도 그것이라
수고로이 입을 열어 미타염불 할 것 없네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집착하지 않으면
세간에 있어도 자유로우니 그가 바로 보살이라
이 마음구슬은 붙잡기 어려우니
분명하고 영롱하나 붙잡기 어려움이여
형상도 없으면서 형상을 나타내고
가고 옴에 자취 없어 헤아릴 수 없구나
쫓아가도 따르지 못하는데 갑자기 스스로 온다
잠시 서천에 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옴이여
놓아버리면 허공도 옷 안에 드는데
거둬들이면 작은 티끌보다 쪼개기 어렵다
헤아릴 수 없어라 견고한 그 몸이여
석가모니는 그것을 제 마음의 왕이라 불렀나니
그 작용이 무궁무진한데도
세상 사람들 망령되이 스스로 잊는구나
바른 법령 시행되니 누가 그 앞에 서랴
부처도 마구니도 모조리 베어 조금도 안 남기니
그로부터 온 세계에 다른 물건 없고
강에는 피만 가득하여 급히 흐른다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으나
보도 듣도 않음이 진짜 보고 들음이라
그 가운데 한 알의 밝은 구슬 있어서
토하거나 삼키거나 새롭고 새로워라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이라고도 하는데
마음이든 성품이든 원래 반연의 그림자라
만일 누구나 여기에 의심 없으면
신령스런 자기 광명 언제나 빛나리
도 (道) 라고도 하고 선 (禪) 이라고도 하나
선이나 도란 원래 억지로 한 말이거니
비구니도 여인으로 된 것임을 진실로 알면
걷는 수고 들이지 않고 저곳에 도착하리
부처도 없고 마구니도 없으니
마구니도 부처도 뿌리 없는 눈 〔眼〕 속의 헛꽃인 것을
언제나 날로 쓰면서 전혀 아무 일 없으나
신령한 구슬이라 하면 나무람을 받으리
죽음도 없고 남도 없이
항상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다니며
때에 맞게 거두거나 놔주니
자재하게 들고 씀에 골격이 맑아라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데
서거나 앉거나 분명하여 언제고 떠나지 않는구나
힘을 다해 쫓으나 그는 떠나지 않고
있는 곳을 찾아보아도 알 수가 없네
하하하 이 어떤 물건인가
1, 2, 3, 4, 5, 6, 7
세어 보고 다시 세어 보아도 그 끝이 없구나
마하반야바라밀!
2. 백납가 (百歌)
백번 기운 이 누더기 내게 가장 알맞으니
겨울이나 여름이나 만판 입어도 편안하구나
누덕누덕 꿰매어 천조각 만조각인데
겹겹이 기웠으매 앞도 뒤도 없어라
자리도 되고 옷도 됨이여
철따라 때따라 어김없이 쓰이며
이로부터 고상한 행에 만족할 줄 아나니
음광 (飮光) 이 끼친 자취 지금에 있구나
한 잔의 차 일곱 근 장삼이여
조주스님 재삼 들어보여 헛수고했나니
비록 천만 가지 현묘한 말씀 있다 한들
우리 집의 백납장삼만이야 하겠는가
이 누더기옷은 매우 편리하니
늘상 입고 오가며 무엇을 하든지 편리하구나
취한 눈으로 꽃보는 일 누가 구태여 하겠는가
도에 깊이 사는 이라야 스스로 지킨다
이 누더기 얻은 지가 얼마인가 아는가 몇 해나 추위를 막았던가
반쯤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쯤만 남았구나
서리치는 달밤, 띠풀암자의 초암에 홀로 앉았으니
안팎을 가릴 수 없이 모두가 깜깜 〔蒙頭〕 하다
이 몸은 가난하나 도는 끝 없어
천만 가지 묘한 작용 다함 없어라
누더기에 멍충이 같은 이 사람을 비웃지 말라
선지식 찾아 진실한 풍모를 이었으니
헤진 옷 한 벌에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천하를 횡행해도 안 통할 것 없었네
강호를 두루 다니며 무엇을 얻었던고
원래 배운 것이라곤 빈궁뿐이라
이익도 구하지 않고 이름도 구하지 않아
누더기 납승, 가슴이 비었거니 무슨 생각 있으랴
바루 하나의 생활은 어디 가나 족하니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
만족한 생활에 또 무엇을 구하랴
우습구나, 미련한 사람들 분수를 모르고 구하네
전생에 지은 복임을 알지 못하는 이는
하늘 땅을 원망하면서 부질없이 허덕인다
몇 달이 되었는지 몇 해나 되었는지
경전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니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오직 이 누더기 한 벌로 남은 생을 보내는구나
3. 고루가 (奇歌)
이 마른 해골이여 몇 천 생 (生) 이나
축생이나 인천 (人天) 으로 허덕였던가
지금은 진흙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으니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라
한량없는 겁토록 성왕 (性王) 에 어두어
6근 (六根) 은 이리저리 흩어져 치달리고
탐욕과 애욕만을 가까이할 줄 알았으니
어찌 머리 돌려 바른 광명 보호할꼬
이 마른 해골이여 매우 미련하고 깜깜하여
그 때문에 천만 가지 악을 지었네
하루 아침에 공하여 있지 않음을 확실히 본다면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늘히 몸을 벗으리
그때를 놓쳤으니 가장 좋은 시절이라
이리저리 허덕이며 바람 따라 나는구나
권하노니 그대는 지금 빨리 머리를 돌이키라
진공 (眞空) 을 굳게 밟고 바른 길에 돌아가라
모였다 흩어지고 오르고 빠짐이여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마음 편치 않구나
그러나 한 생각에 빛을 돌이킬 수 있다면
단박에 뼛속 깊이 생사를 벗어나리라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3도를 기어다니며 어찌 깨닫겠는가
갑자기 선각의 가르침 만나
여기서 비로소 잘못된 줄 분명히 알았나니
혹은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혹은 탐욕과 분노로
곳곳에서 혼미하여 허망한 티끌 뒤집어써서
머리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졌는데
어디서 참사람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나기 전에 잘못되었고 죽은 뒤에 잘못 되어
세세생생 거듭거듭 잘못되었으나
한 생각에 무생 (無生) 을 깨달아내면
잘못되고 잘못됨도 원래 잘못 아니리
거칠은 것에도 집착하고 미세한 데에도 집착하여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전연 깨닫지 못하다가
갑작스런 외마디소리에 후딱 몸을 뒤집으면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리라
혹은 그르다 하여 혹은 옳다 하여
시비의 구덩이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근심하다가
어느 새 몸이 죽어 백골무더기뿐이니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하지 못하네
이 마른 해골이 한번 깨치면
광겁의 무명도 당장 재가 되어서
그로부터는 항하사 불조의
백천삼매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부러워하지도 않는데 무슨 허물 있는가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되나니
쟁반에 구슬 굴리듯 운용할 수 있다면
겁석 (劫石) 도 그저 손가락 퉁길 사이에 지나가리
법도 없고 부처도 없고
마음도 없고 물질도 없네
여기에 이르러 분명한 이것은 무엇인가
추울 때는 불 앞에서 나무조각 태운다
나옹스님 게송 3수 뒤에 붙임
구슬은 방향을 따라 색을 내어 사람을 미혹하게 하지마는 그 청정함은 불성을 표한 것이
요, 마른 해골은 기운이 흩어지고 살이 없어져 사람들이 버리지마는 살아 있으면 불도를 행
할 것이다. 또한 기운 누더기는 비단을 물리치고 누더기를 꿰매어 살을 덮어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이나, 그것이 아니면 장엄과 격식으로 스님네들 편히 살게 하여 불도에 들어가 불성
을 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게송 세 수는 시작과 끝이 들어맞고 맥락이 서로 통하여 후인들에게 보여주는 바가 깊
고도 절실하다.
나옹스님의 문장은 손 가는 대로 맡겨 미리 초하는 일이 없다. 진실한 이치를 토해내고 찬
연히 써내며 운율이 빛나지만 세속의 문자를 그다지 깊이 알지 못하는 점도 볼 수 있다. 그
러나 게송 세 수에 있어서는 마치 두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으니, 반드시 애를 쓰고 깊
이 생각해 지은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영가 현각 (永圈玄覺) 스님의 문투를 본떴겠
는가. 뒷날 서역 (西域) 에 전해지면 반드시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스님의 제자 아무개 등이 내게 발문을 청하기에 나는 그 제목을 읽고 문체를 살펴 그 청에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오한 이치에 있어서는 고기 〔貌〕 가 아닌데 어찌 고기를 알겠는
가.*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 좌우사랑중 문충보절동덕찬화공신 중대광한산군 예문관대제
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이색 (前朝列大夫征東行中書省左右司中文忠保
節同德贊化功臣重大翠韓山君藝文�v大提學知春秋�v事成均大司成知書 事李穡)은 쓰다.
2. 송 (頌)
산거 (山居)
바루 하나, 물병 하나, 가느다란 주장자 하나
깊은 산에 홀로 숨어 마음대로 살아가네
광주리 들고 고사리 캐어 뿌리채로 삶나니
누더기로 머리 싸는 것 나는 아직 서툴다
내게는 진공 (眞空) 의 일없는 선정이 있어
바위 틈에서 돌에 기대어 잠만 자노라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느냐고 누군가 불쑥 묻는다면
헤진 옷 한 벌로 백년을 지낸다 하리라
한종일 소나무 창에는 세상 시끄러움 없고
돌 수곽에는 언제나 시냇물이 맑다
다리 부러진 솥 안에는 맛난 것 풍족하니
무엇하러 명리와 영화를 구하랴
흰 구름 쌓인 속에 세 칸 초막이 있어
앉고 눕고 거닐기에 스스로 한가하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이야기하는데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갑네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아 헛된 명예 끊었고
돌병풍을 의지하여 세상 인정 버렸다
꽃과 잎은 뜰에 가득한데 사람은 오지 않고
때때로 온갖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들리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오는 사람은 없고
혼자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었노라
석 자 되는 사립문을 반쯤 밀어 닫아두고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한가로이 지내노라
나는 산에 살고부터 산이 싫지 않나니
가시 사립과 띠풀 집이 세상살이와 다르다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추녀 끝에 떨치는데
시냇물은 가슴을 뚫고 서늘하게 담 (膽) 을 씻어내는구나
일없이 걸어나가 시냇가에 다다르면
차갑게 흐르는 물 선정을 연설하네
물건마다 인연마다 진체 (眞體) 를 나타내니
공겁 (空劫) 이 생기기 전의 일을 말해서 무엇하리
환암장로 (幻庵長老) 의 산거 (山居) 에 부침 ·4수
1.
온갖 경계 그윽하고 조도 (鳥道) 는 평탄하여
마음에 걸리는 일, 한 가지도 없네
이 몸 밖에 다른 물건은 없고
앞산 가득 구름이요 병에 가득 물이로다
2.
자취 숨기고 이름을 감춘 한 야인 (野人) 이거니
한가로이 되는대로 세상 번뇌 끊었다
아침에는 묽은 죽, 재할 때는 나물밥
좌선하고 거닐면서 천진 (天眞) 에 맡겨두네
3.
몇 조각 구름은 경상 (脛滅) 을 지나가고
한 줄기 샘물은 평상 머리에 떨어지는데
취한 눈으로 꽃을 보는 사람 수없이 많건만
누가 즐겨 여기 와서 반나절을 함께 쉬랴
4.
외로운 암자 바깥에는 우거진 숲 고요한데
백납 (百) 의 가슴 속에는 모든 생각 비었으니
마음 내키면 시냇물가에 나가 앉아
물결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구경하네
산에 놀다 〔遊山〕
가을 깊어 지팡이 짚고 산에 이르니
바위 곁의 단풍은 이미 가득 붉었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온 분명한 뜻을
일마다 물건마다 스스로 먼저 일러주네
달밤에 적선지 (積善池) 에 놀다
발길 닿는대로 한밤중에 여기 와서 노나니
이 가운데 참맛을 그 누가 알리
경계는 비고 마음은 고요하여 온몸이 산뜻한데
바람은 못에 가득 차고 달은 시내에 그득하다
양도암 (養道菴) 에서
지팡이로 구름을 뚫고 이 산에 올랐더니
그 가운데 암자 하나 가장 맑고 고요하다
암자의 사면에는 봉우리들이 빼어났고
소나무·잣나무 사이의 맑은 샘물은 뼛속까지 차구나
안심사 (安心寺) 에서
갑자기 안심사에 와서 이삼 일 동안
몸과 마음을 쉬고 양주 (襄州) 로 향하니
도인의 자취를 뉘라서 찾을 수 있으랴
동해의 바위 곁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늦가을에
한 줄기 가을바람 뜰안을 쓰는데
만 리에 구름 없어 푸른 하늘 드러났다
선뜻선뜻 상쾌한 기운에 사람들 기뻐하는데
눈빛이 차츰 맑아져 기러기 줄지어 날아간다
밝고 밝은 보배 달빛은 가늠하기 어렵고
역력한 보배 산들은 세어도 끝이 없다
모든 법은 본래부터 제자리에서 편안하나니
추녀 끝에 가득한 가을빛은 청홍 (靑紅) 이 반반이다
죽순 (竹 )
하늘 기운 뜨거운 한여름철에
처음 돋는 죽순은 본래 티끌을 떠났다
용의 허리가 갑옷을 벗어 감추기 끝났는데
봉의 부리는 털을 헤치고 제몸을 그대로 드러낸다
푸른 잎에 빗소리는 묘한 이치 말하고
파릇한 가지에 바람소리는 깊은 진리 연설한다
여기서 갑자기 영산 (靈山) 의 일을 기억하나니
잎새마다 풀잎마다 새롭고도 새로워라
새로 지은 누대 〔新臺〕
새로 지은 높은 누대, 그 한 몸은 우뚝하나
고요하고 잠잠하여 도에서 멀지 않다
멀리 바라보이는 뭇산들은 모두 이리로 향해 오는데
가까이 보면 많은 숲들은 가지 늘이고 돌아온다
독한 짐승들 바라보고 마음으로 항복하고
자주 오는 한가한 새들은 구태여 부를 것 없네
만물은 원래부터 이미 성숙했거니
어찌 그리 쉽사리 공부를 잃게 하랴
만 겹의 산 속은 고요하고 잠잠한데
오똑이 앉아 구름과 솔에 만사를 쉬었노라
납자들은 한가하면 여기 와서 구경하고
속인들은 길 없으면 여기 와서 노닌다
누대 앞뒤에는 시원한 바람 불고
산 북쪽과 남쪽에는 푸른 물이 흐른다
뼛속까지 맑고 시원해 선미 (禪味) 가 족하거니
한여름 떠나지 않고 어느 새 가을이네
단비 〔旱雨〕
가물 때 단비 만나면 누가 기쁘지 않으랴
천하의 창생 (蒼生) 들이 때와 티끌 씻는다
모든 풀은 눈썹 열고 빗방울에 춤추며
온갖 꽃은 입을 벌리고 구슬과 함께 새롭다
삿갓 쓴 농부들은 그 손길이 바쁘고
도롱이 입고 나물캐는 여인네는 몸놀림이 재빠르다
늘상 있는 이런 일들을 보노라면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 다 참되도다
진헐대 (眞歇臺)
진헐대 안의 경치가 어떠한가
온갖 봉우리들 모두 이리로 향해 오고
누대 앞뒤에는 맑은 바람 떨치는데
그늘이 엷거나 짙거나 하루종일 한가하네
스님네는 쌍쌍이 왔다 또 가고
새들은 짝을 지어 갔다 돌아오는데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았으면 걸림없이 트이나니
물색과 산빛은 서늘하게 담을 씻어내도다
한가한 때 감회를 읊다
40년 전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천태 (天台) 와 남악 (南嶽) 에 자취를 남겼거니
지금에 차갑게 앉아 생각해 보면
천하의 총림들이 두 눈에 텅 비었네
하안거 해제에
90일을 묶였던 발이 오늘 아침에 끝나니
3개월 동안의 안거 (安居) 는 찾아도 자취 없네
노주 (露柱)*와 등롱 (燈芼) *은 남북으로 떠났으나
석호 (石虎) 는 여전히 고봉 (高峰) 에서 싸우네
신설 (新雪) ·2수
1.
마른 나무에 꽃이 피는 겁 (劫) 밖의 봄인데
산과 강은 한 조각의 흰 눈덩이다
신광 (神光:이조 혜가) 이 오래 서서 마음을 편히 하였다지만
오늘 아침 뼈에 스미는 추위만하겠는가
2.
산과 강이 한 조각의 흰 눈덩이라
동서남북으로 조사 관문 꽉 막았네
어젯밤에 보현 (普賢) 보살이
흰 코끼리를 거꾸로 타고 아미산에 내려왔네
모기
제 힘이 원래 약한 줄을 모르고
피를 너무 많이 먹고 날지 못하네
부디 남의 소중한 물건을 탐하지 말라
뒷날에 반드시 돌려줄 때 있으리
모란
꽃중의 왕이 두세 떨기 다투어 피었는데
다른 꽃들 위에 뛰어나 완연히 다르다
그러나 어찌 저 남전 (南泉) 의 꿈에 보였던 것만이야 하랴*
눈을 뜨기 전에 붉은 빛이 뚫고 들어오네
작약
영롱한 그 자태에 어느 것을 견주리
붉고 흰 꽃빛이 창에 가득 비치었네
반쯤 피어 입을 열고 웃는 웃음은
온 하늘 온 땅에 짝할 것 없네
산차 〔山茶〕를 따며
차나무를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 없고
내려온 대중들 산차를 딴다
비록 터럭만한 풀도 움직이지 않으나
본체와 작용은 당당하여 어긋남 없구나*
반가운 비 〔喜雨〕
가물 때 내린 단비, 그 기쁨 말해 무엇하리
만물은 왕성하고 해는 풍년이라 하늘의 도가 존귀하다
신룡 (神龍) 의 얼마만한 힘이든지
결국에는 한 방울만 가지고도 온 천지를 적신다
환봉 (幻峯)
본바탕은 거북털 같아 찾아도 자취 없는데
우뚝 솟은 봉우리 몇 겹이던가
바라보면 있는 듯 분명히 나타나고
찾아보면 없어져 텅 비었네
설악 (雪嶽) 은 속은 비고 산세는 험준한데
부산 (浮山) 은 겉도 알차고 모양도 영롱하다
뿌리를 바로 꽂아 푸른 하늘에 서지 말라
뉘라서 그 꼭대기에 길을 낼 수 있으리
석실 (石室)
견고한 그 온몸을 누가 만들어내었던가
천지가 나뉘기 전에 이미 완연하였다
텅 빈 네 벽은 몇 천년을 지냈으며
분명한 세 서까래는 몇 만년을 지냈던가
어느 겁에도 우뚝하여 무너지는 일이 없고
어느 때도 크낙하여 부서지지 않는다
법계를 받아들여 얼마든지 너른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윽하고 그윽하다
환암 (幻菴)
몸은 허공꽃과 같아서 찾을 곳이 없는데
여섯 창에 바람과 달은 청허 (淸虛) 를 둘러싸고
없는 가운데 있는 듯하다가 다시 실체가 아니라
네 벽이 영롱하여 잠깐 빌어 산다네
곡천 (谷泉)
만 골짝 천 바위와 소나무 잣나무 사이에
신령한 근원은 깨끗하고 바탕은 편하고 한가하네
깊고 깊은 골 속에서 항상 흘러나오나니
마시는 이 온몸 뼛속까지 차가워라
소암 (笑菴)
오늘도 영산 (靈山) 의 일이 분명하나니
여섯 창을 활짝 여니 새벽바람 차가워라
빙그레 짓는 미소 누가 알아보겠는가
네 벽이 영롱하여 세상 밖에서 한가하다
현봉 (懸峰)
허공에 걸려 있어 마음대로 오가고
우뚝이 뚫고 나와 푸른 하늘에 꽂혀 있네
동서남북 아무 데도 의지할 것 없나니
뾰족한 것들 다 누르고 홀로 우뚝하여라
회암 (會菴)
갑자기 지음 (知踵) 을 만나 입을 열고 웃나니
지금부터 여섯 창에는 기쁨 항상 새로우리
이제는 남의 우러름을 바라지 않나니
네 벽의 맑은 바람은 세상 밖의 보배일세
죽림 (竹林)
만 이랑의 대나무가 난간 앞에 닿아 있어
사시사철 맑은 바람은 거문고 소리 보내주네
차군 (此君) *은 빽빽하되 하늘 뜻을 통하고
그림자가 뜰안을 쓸되 티끌은 그대로라네
인산 (仁山)
어떤 일이나 막힘 없으면 스스로 통하니
높은 묏부리는 뚫고 나와 뭇 봉우리 누른다
온갖 형상을 머금었으나 모든 모양 떠났거니
백억의 수미산인들 어찌 이만하리오
고주(孤舟)
온갖 일을 아주 끊고 나 홀로 나와
순풍에 돛을 달고 밝은 달에 돌아오네
갈대꽃 깊은 곳의 연기 속에 배를 대니
부처와 조사가 엄연하나 찾을 줄 모르리라
대원 (大圓)
허공을 꽉 싸안고 그림자와 형상을 끊었네
온갖 형상 머금었어도 자체는 항상 깨끗하다
눈앞의 진풍경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가을달이 밝구나
헐암 (歇菴)
모든 인연을 다 던져버리고 돌아왔나니
네 벽에는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오네
지금부터야 무엇하러 다시 집착할 것인가
비좁으나마 널따란 곳에 그저 앉아 있으리
추산 (秋山)
가을바람 한 줄기가 엷은 구름 쓸고 나면
온 땅의 봉우리들은 묘한 빛이 새롭구나
그로부터 달빛은 밝고 깨끗하리니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는 것 사랑한 것 아니다
순암 (順菴)
만상이 모두 한 생각에 돌아가 사라지니
여섯 창에는 밝은 달이 고요하고 쓸쓸해라
티끌티끌이 남의 집 물건이 아니니
조그만 암자에 온 법계가 다 들었네
절안 (絶岸)
눈길 다한 하늘 끝은 푸르다 가물가물한데
그 가운데 어찌 중간이 있겠는가
편편하여 끝없는 곳에서 몸을 뒤집으면
그 작용은 언제나 공겁 (空劫) 이전에 있으리
서운 (瑞雲)
한 줄기 상서로운 빛, 이것을 보는가
허공을 모두 싸고 뻗쳤다 걷혔다 하나니
여기서 몸을 뒤집어 몸소 그것을 밟으면
비바람을 몰고서 곧장 집에 돌아가리
보봉 (寶峰)
써도 다함이 없고 값도 물론 비싸니
층층으로 높이 솟아 푸른 하늘에 꽂혔다
구슬의 광채는 안팎으로 항상 나타나지만
마음먹고 찾아가면 길은 더욱 멀어라
영암 (映菴)
모양과 빛깔이 분명한 이것을 아는가
여섯 창 밝은 달이 산과 강을 비춘다
찬 빛을 모두 쓸고 몸을 뒤집으면
위음왕불 겁 밖의 집으로 뚫고 지나가리라
고원 (古源)
조짐과 자취가 나타나기 이전의 한 가닥 물줄기여
아주 맑고 담담해서 그 자체 편안하네
앞도 없고 뒤도 없고, 가〔邊〕도 겉도 없나니
그 복판 〔中〕 을 모르고 지낸 지 몇 해이런가
담적 (湛寂)
바닥까지 맑고 맑아 담 (膽) 을 뚫을 듯 차가운데
또렷하고 분명하여 자체 항상 편안하다
온갖 훌륭한 경계는 무심에서 나타나니
공부는 고요한 곳에서 보아야 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태양 (太陽)
허공을 모두 감싸 안팎이 없는데
금까마귀는 세계 어디에나 스스로 분명하다
온 하늘에서 단박 몸을 뒤집어버리면
한 길이 당당하여 겁 밖이 태평하다
현계 (玄溪)
묘한 이치와 진실을 말하는 것, 그 모두 허망한데
그 가운데 한 줄기가 난간 너머 잔잔하다
침침하고 고요한데 누가 볼 수 있는가
한 줄기 그 소리가 밝은 달에 실려오네
서암 (瑞巖)
흰 기운이 하늘을 찔러 허공을 차게 하는데
푸른 솔은 사방에 여기저기 꽂혀 있다
끄떡없이 다른 경계와 간격이 없지마는
꽃비는 여전히 망령되게 뿌린다
옥림 (玉林)
아주 깨끗해 티가 없는 신기한 보배는
뿌리와 싹이 사철따라 변하지 않네
집 안에 본래 있어 남에게서 얻는 것 아니거니
가지와 잎은 공겁 (空劫) 전에 무성하였다
영매 (嶺梅)
불쑥 솟아나 푸른 하늘에 꽂혔나니
얼음 같은 자태와 옥 같은 뼈는 공겁 전에 있었다
묏부리들이 험준한데 누가 갈 수 있는가
섣달의 봄바람은 세상을 벗어난 오묘함일세
징암 (澄菴)
성품 달이 맑고 뚜렷해 본래의 공 (空) 을 비추건만
사립문을 닫아 두어 사람들이 다니기 어렵구나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거니 누가 거기 가겠는가
이 작은 암자가 금년에는 바로 그 가난함일세
향암 (響菴)
맑은 메아리가 허공을 흔들고 시방에 떨치나니
여섯 창에 찬 달이 당당히 드러났네
삼라만상이 모두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니
띠풀 사립문도 다 광명을 놓네
무여 (無餘)
동서남북이 텅 비어 트였으니
시방세계가 또 어디 남았는가
허공이 손뼉치며 라라라 노래하매
돌계집이 소리에 맞춰 쉬지 않고 춤을 추네
고산 ( 山)
밝은 해가 허공에 올라 한 점의 흐림도 없어
우뚝한 묏부리들이 푸른 하늘에 꽂혔네
뜬구름이나 엷은 안개가 거기 갈 수 있겠는가
백억의 수미산들이 그 앞에 늘어섰네
본적 (本寂)
오랜 겁토록 밝고 밝아 다른 모양 없나니
맑고 고요한 한 맛이 가장 단연 (端然) 하여라
원래 티끌에 흔들리지 않고
바로 위음왕불의 공겁 전에 이르렀네
서운 (瑞雲)
갑자기 비상함을 얻어 참경계 나타나니
밝고 밝은 해와 달이 어둡고 깜깜하다
어찌 구태여 용화회 (龍華會:미륵의 회상) 를 기다리랴
한 줄기 상서로운 빛이 큰 허공을 메우네
오암 (晤菴)
밝고 밝은 빛이 대천세계 비추나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환하고 편안하다
모든 것에 늘고 줆이 없음을 환히 알았거니
네 벽의 맑은 바람은 겁 (劫) 밖에 오묘하다
무위 (無爲)
동서남북이 텅 비어 트였으니
하는 일이 모두 다 공 (空) 이로구나
아무 것도 없는 그 경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리
꼿꼿하고 드높게 고풍을 날린다
담연 (湛然)
바닥까지 맑고 맑아 한없이 차가워서
서쪽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움직이기 어렵더니
깊고 넓고 또 먼데 가을달을 머금으매
흙무더기와 진흙덩이도 모두 다 기뻐하네
환산 (幻山)
하늘 끝에 줄지어 있어도 바탕은 실로 비었나니
기묘한 묏부리들은 지극히 영롱하다
바라볼 때는 있는 듯하나 잡을 수가 없으니
그 꼭대기에는 원래 통하는 길이 없다
곡란 (谷蘭)
만 골짝 깊고 깊은 돌바위 틈에
향기로운 이상한 풀이 시냇가의 솔을 둘러쌌다
층층히 포개진 많은 봉우리 속에
갑자기 꽃을 피워 온 누리를 덮었네
신암 (信菴)
명백하고 의심없어 몸소 밟으니
여섯 창에 호젓한 달이 다시금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망령되이 이리저리 달리지 않으리
조그만 이 암자는 언제나 철저히 맑은 것을
찬암 (璨菴)
반짝이는 묘한 광채 누가 값을 정하리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은 때도 없이 비추도다
찬란한 광채는 언제나 깨끗하여 항하사 세계에 두루했나니
맑은 바람에 실려 창에 날아들어온다
묘봉 (妙峰)
바라볼수록 멀고 우러를수록 더욱 높구나
불쑥 솟아 우뚝이 푸른 하늘에 꽂혀 있다
28조사와 6조사님네도 알지 못하거니
누가 감히 그 가운데 마음대로 노닐랴
전암 (電菴)
천지를 진동하며 번쩍번쩍 빛나거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작용이 더 많으리
비바람에 실려다녀도 자취가 없으니
네 벽이 텅 빈 늙은 작가 (作家) 로다
장산 (藏山)
은은하고 침침하여 허공에 가득한데
험준한 묏부리들은 저 멀리 아득하다
그림자 〔形影〕 없는 데서 그림자를 알 수 있나니
오악 (五岳) 과 수미산이 그 발 밑에 서 있다
성암 (省菴)
갑자기 잘못됨을 알고 이제 문득 깨쳤나니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이 다시금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티끌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리라
네 벽이 영롱하여 안팎이 모두 맑다
곡계 (谷磎)
그윽하고 넓고 먼 그곳을 누가 일찍이 보았던가
냉랭한 한 줄기가 사시사철 차갑구나
만 골짝 가을 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은
언제나 흐르는 물 속에 떨어진다
본적 (本寂)
겁겁 (劫劫) 에 당당하여 바탕 자체가 공 (空) 하건만
가만히 사물에 응하면 그 자리에서 통하네
원래 한 점도 찾을 곳이 없건만
온 세계도 옛 주인을 감추기 어려워라
정암 (正庵)
흑백이 갈라지지 않았는데 어디 피차가 있으랴
여섯 창의 호젓한 달은 앞에 오지 않고
금까마귀 옥토끼도 찾을 곳이 없거니
신령한 빛 본래 고요함을 비로소 믿겠구나
벽산 (璧山)
옥 보배의 정해진 값을 그 누가 알리
묏부리들 빼어나 허공에 꽂혀 있다
찬란한 빛 예나 이제나 항상 빛나건만
그 꼭대기에는 원래 통하는 길이 없네
의주 (意珠)
물건에 응해 분명히 그 자리에 나타나니
세간의 보물이 어찌 이에 미치랴
가죽 주머니에 숨어 있으니 그 누가 알리
밤낮 맑은 빛은 영원히 차가워라
고경 (古鏡)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체가 본래 견고하고
찬 빛은 멀리 천지 이전을 비추네
길지도 짧지도 않고 또 앞뒤도 없는 것이
쳐부수고 돌아오매 오묘하고 오묘하다
식암 (息菴)
온갖 인연 다 쓸어버리고 자취도 안 남기매
한 방이 고요하여 다르고 같음을 뛰어났네
그리고부터는 모든 티끌 다 없어졌나니
여섯 창에 밝은 달은 맑은 바람과 어울리네
시암 (是菴)
본래 스스로 비고 밝아 한 점 티도 없나니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은 항하사 세계를 둘러쌌네
그 가운데 어찌 부질없는 길고 짧음 있으랴
법계를 모두 머금어 한 집을 만들었네
보산 (寶山)
주머니 속의 귀한 물건, 그 값이 한없는데
묏부리들은 사철 허공에 가득하고
밤을 빼앗는 찬 달빛은 멀고 가까움 없으나
그 꼭대기에는 원래 길을 내기 어렵다
무애 (無 )
똑똑하고 분명하며 텅 비고 트이어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고 한 점 티끌도 없다
비고 밝아 위음왕불 밖을 꿰뚫고 비추거니
돌벽이나 산천인들 어찌 그를 막으랴
일산 (一山)
삼라만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우뚝하고 험준하여 사시사철 차가운데
수미산과 큰 바다가 여기 돌아와 합했나니
층층의 뾰족함을 누르고 혼자 따로 관문이 되었네
옥전 (玉田)
아주 깨끗하고 티가 없는 세간 밖의 보물인데
신령한 싹은 나서 자라나 인연의 티끌을 끊었다
큰 총림 속에서는 일찍부터 비싼 값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어 묘한 씨를 심었다
곡월 (谷月)
만 골짝 깊고 그윽한 시냇물 속에
밤중의 은두꺼비가 스스로 뚜렷하다
덩굴풀 우거진 원숭이 우는 곳에
한 줄기 맑은 빛이 영원히 차구나
철문 (鐵門)
온몸이 다 강철인데 누가 움직일 수 있으리
양쪽 사립 모두 잠가 세상 풍속 아니더니
과연 저 새매눈 가진 억센 사람이
한 주먹으로 밀어제쳐 단박 길을 뚫었다
축운 (竺雲)
총령 (叢嶺) 서쪽 너머 이름난 땅에
한 조각 상서로운 연기가 허공을 메웠는데
그로부터 한없이 많은 보살들이
오색 광명 가운데서 옛 풍모를 얻었다
허암 (虛菴)
사방에 원래 한 물건도 없나니
어디다 문을 낼지 알지 못하네
이 가운데 조그만 암자 텅 비어 있어
밝은 달 맑은 바람이 흰 구름을 쓸도다
준산 (峻山)
기이한 바위가 높이 솟아 하늘을 긁는데
층층이 포개진 것, 공겁 전부터이다만
만 길되는 이 벼랑에 누가 발을 붙이리
수미산과 오악 (五岳) 도 겨루지 못한다
고산 ( 山)
금까마귀 날아올라 새벽 하늘 밝았나니
온 땅의 묏부리들 푸른 빛이 역력하다
번쩍이는 그 광명에 항하사 세계가 깨끗한데
전령 (嶺) 에서 우는 원숭이 소리는 무생 (無生) 을 연설한다
심곡 (深谷)
누가 아주 먼 저쪽까지 갈 수 있나
조각 구름 동문 (洞門) 앞에 길게 걸렸네
그 가운데 훌륭한 경계를 아는 사람은 없고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푸른 냇물을 희롱하네
역연 (歷然)
또렷하고 분명하여 감춰지지 않았나니
푸른 것은 푸르고 긴 것은 길다
확신하고 의심없이 한 번 몸을 뒤집으면
고개 끄덕이며 즐거이 고향에 돌아가리
중암 (中菴)
동서와 남북의 길이 서로 통했고
네 벽은 영롱하여 묘하기 끝이 없네
여덟 면이 원래 막히지 않았거니
여섯 창에 호젓한 달은 맑은 허공 비추네
성곡 (聖谷)
범부를 뛰어넘어 들어가는 그곳을 누가 따르리
시냇물은 잔잔히 골짝 속으로 흐른다
근진 (根塵) 을 단박 벗어나 한 번 몸을 뒤집으면
소나무 그늘 아래서 마음대로 노닐리라
무실 (無失)
형상을 떠난 그 자체, 원래 공 (空) 하여
부딪치는 사물마다 그 작용 끝이 없다
또렷하고 분명하나 자취 끊겼고
언제나 역력하여 절로 서로 통한다
포공 (包空)
자비구름이 널리 퍼져 삼천세계를 메웠는데
그 속은 비고 밝아 호젓하고 잠잠하다
순식간에 항하사 세계 밖까지 두루 흩어보지만
그 가운데 모양 없는 것 누가 전할 수 있으랴
형철 ( 徹)
당당하고 찬란하여 끝없이 비추니
영원히 간단없는 이것을 누가 전할 수 있으랴
밤을 빼앗는 찬 달빛에 무슨 안팎이 있으랴
밝고 밝아 공겁 (空劫) 을 비춘다
정암 (靜菴)
온갖 생각이 모두 한 생각에 돌아가 사라졌거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지극히 고요하여라
툇마루에 다다른 보배달은 언제나 고요하여
맑은 바람에 실려 네 벽에 나부낀다
극한 (極閑)
물도 다하고 산도 다한 곳, 어디로 향해 갈꼬
동서와 남북에 어디든 의심없네
그대를 따라 펴고 거둠에 걸림이 없고
첩첩 기이한 바위에도 의지함이 없노라
유곡 (遊谷)
한가히 오고 가매 더없이 한가한데
언제나 천 바위와 만 골짝 사이로 다니네
물구경 산구경도 오히려 부족하여
통문 (洞門) 깊은 곳에 겹관문을 만든다
설악 (雪嶽)
하룻밤에 옥가루 펄펄 내려
기이한 바위들은 뾰족한 흰 은덩이 되었네
매화나 밝은 달인들 어찌 여기 비하랴
층층이 포개져 차고 또 차다
자조 (自照)
바다 같은 삼천세계 본래 다른 것 아니라
탁 트이고 신령스레 통함에 어찌 차별 있으랴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으며 짝할 것조차 없어
밤을 빼앗는 찬 빛은 많던 적이 없었네
정암 (晶菴)
아침해가 동쪽 바닷문으로 나오려 하매
방 하나는 고요하여 다르고 같음이 끊겼네
산하대지가 역력한데
여섯 창 안팎에는 맑은 바람 스친다
묵운 (默雲)
침침하고 적적하여 다니는 자취 끊어졌는데
어찌 동서와 남북의 바람을 가리랴
저 집에 말할 만한 것 없다고 말하지 말라
때로는 저 큰 허공을 모두 휩싸들인다
형암 ( 菴)
동서에도 남북에도 한 점 티끌 없는데
사립문 반쯤 닫히고 찾아오는 사람 없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아무 까닭 없이
밤마다 창문을 뚫고 이 한 몸을 비추네
효당 (曉堂)
뭇별이 사라지는 곳에 앞길이 보이는데
한 방은 고요하고 안팎이 밝아진다
이로부터 어두운 구름은 모두 사라지리니
여섯 창에 바람과 달은 절로 맑고 새로우리
무일 (無一)
동서도 남북도 탁 트여 비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물건을 으뜸이라 부를 것인가
허공을 모두 빨아마시고 몸을 뒤집는 곳에는
온 하늘과 온 땅에 서리와 바람이 넉넉하리
요봉 (요峰)
동쪽 바다 문에서 해가 솟아나오자
한없고 맑은 바람이 묏부리를 모두 비춘다
산하대지가 분명하고 역력한데
수미산인들 어찌 여기에다 견주리
도봉 (堵峰)
밤을 빼앗는 달빛이 대천세계 비추나니
뭇산들은 여기 와서 추녀 끝에 늘어서네
세간의 어떤 보배를 여기에다 견주랴
수미산을 뚫고 나가 홀로 우뚝 솟았네
옥계 (玉磎)
티없는 바탕은 지극히 영롱한데
양쪽 언덕에는 맑은 바람 솔솔 불며 지나간다
한 자 구슬의 물결치는 광채를 누가 값을 정할 것인가
신령한 근원은 깊고 멀어 무궁함을 내놓네
영적 (永寂)
먼 과거로부터 돌아다니다 이 생까지 왔지만
고요한 그 바탕 〔正體〕 은 자유자재하였나니
티끌겁 모래겁이 다하면 무엇 따라 변할까
이승에나 저승에나 스스로 다닐 뿐
추풍 (秋風)
만 리 먼 하늘에 구름 모두 흩어지고
서쪽에서 오는 한 줄기 바람 가장 맑고 시원하다
그로부터 변방의 기러기는 하늘 끝에 비끼고
중양절 (重陽節:9월 9일) 흰 국화는 눈과 서리 원망하리
명통 (明通)
쓸 때는 모자람이 없으나 찾아보면 자취 없고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음에 응용이 무궁하다
사물마다에 분명하건만 누가 보아내는가
영원히 당당하여 옛 풍모를 펼치네
견실 (堅室)
활활 타는 겁화 (劫火) 에도 항상 스스로 편안하며
허공을 싸들여 그 안에 두었나니
티끌세계 모래세계가 끝나더라도 바꿀 수 없고
영원한 서리와 바람에 뼈가 시리다
무변 (無邊)
동서남북에 네 경계가 없거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어라
경계가 끊어진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천 물결 만 물결에 한 몸을 나타내리
유봉 (乳峯)
밝고 맑은 한 모양을 누가 알 것인가
우뚝 솟아 높직이 하늘에 꽂혀 있네
물과 달이 어울려 되었으며 모양 아닌 모양인데
그 견고함이야 어찌 쌓인 티끌 같으리
경암 ( 巖)
겁 (劫) 이전의 묘한 그 빛에 어떤 것을 견주리
우뚝 솟고 뾰족하여 하늘 복판에 꽂혀 있네
불조인들 어찌 비싼 그 값을 알건가
우뚝하고 뾰족하며 또한 영롱하구나
일암 (日菴)
동쪽 바다 문에서 해가 솟아오르니
조그만 암자의 높은 풍모를 뉘라서 따르랴
이로부터 티끌마다가 밝고 역력하리니
여섯 창의 기틀과 활용이 따로따로 트이리라
착산 (窄山)
바늘도 송곳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비좁아
우뚝 솟아 높직이 온갖 묏부리 누른다
어찌 미세한 티끌이 법계를 머금을 뿐이랴
수미산이 겨자 속에 들어가 한 덩이 되었네
고담 (古潭)
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몇 해나 지났던가
맑고 깊고 밑이 없어 공겁보다 먼저이다
매번 큰 물결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이와같이
맑고 고요하며 가득히 고여 그 자체 완전하네
형철 ( 徹)
아주 깨끗한 빛이 만상을 삼킨 가운데
천지가 하나로 합해져 서쪽도 동쪽도 없네
맑고 뛰어난 점 하나, 사람들의 헤아릴 바 아니나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음에 자재하게 통한다
한극 (閑極)
무심하고 자유로운데 누구와 함께하리
허공을 휩싸들여 그 작용 무궁하다
문득 따뜻한 바람을 만나 노닐다 흩어지나니
또 어떤 물건을 잡아 진종 (眞宗) 이라 정할꼬
횡곡 (橫谷)
봉우리 끝에 있다가 굴 속에 있기도 하여
돌아오는 새들도 여기 와서는 길을 분간하지 못한다
갑자기 두루미를 짝하여 바람 따라 날으나니
만 골짝 천 바위도 가까이에 있지 않네
월당 (月堂)
바다 문 동쪽에서 달이 날아오르니
고요한 방에 네 벽은 텅 비었네
뉘라서 빛과 그림자를 분명히 분간하랴
여섯 창이 전부 다 주인공이라네
무급 (無及)
차례를 싹 잊어 바탕이 그대로 드러났거니
무엇하러 수고로이 깨치는 곳을 두랴
안도 밖도 중간도 텅 비어 트였는데
백추 (白槌) 를 들고 불자 세우며 부질없이 법문하네
복우 (伏牛)
채찍으로 때려도 가지 않고 야단쳐도 가지 않나니
공겁 전에 배불리 먹고 이미 주림 잊었음이라
길에서 편히 잔 지 몇 해나 되었던가
한 빛깔 분명하여 온 세상에 드물어라
인암 (刃艤)
칼집에서 나온 취모검을 누가 감히 당하랴
이 집에서는 위험하여 간직하기 어려웠네
저 철 눈에 구리 눈동자를 가진 사람에게 맡기니
한 주먹에 열어제치매 눈과 서리 가득하네
계봉 (鷄峰) *
세 곳에서 헛되이 전한 옛 늙은이의 도풍이여
깊숙이 은거하는 맨 꼭대기는 네 겹으로 되어 있는데
음광 (飮光:가섭) 의 그 자취를 뉘라서 찾으리
꼭대기에는 서리가 깊어 길이 통하지 않네
수암 (秀巖)
공겁 전에 우뚝 서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여
송백이 오래 산들 어찌 저와 견주리
세계가 무너질 때에도 이것은 안 무너져
일찍이 설법 듣고 진공 (眞空) 을 깨쳤네
적당 (寂堂)
면밀한 공부를 이미 익혀 성취하고
문득 거기서 나와 뜰앞에 서 있네
안심 (安心) 은 언제나 나가정 (那伽定:부처님의 선정) 에 있어
이리저리 오가면서 화두는 절로 신령하다
익상 (益祥)
갑자기 비상 (非常) 함을 만나 기운이 서로 통하면
그로부터는 고향에서 언제나 편안하리
거듭거듭 상서로운 일이 겹쳐 일어날 때
평지에서 하늘 위의 하늘을 다니리라
연당 (演堂)
티끌마다 세계마다 묘한 소리 내나니
어느 쪽으로 문을 내랴
말 없는 곳을 말해 분명한 것을 알면
창 앞의 마른 나무에서 저무는 봄을 보리라
해운 (海雲)
바다는 넓어 끝이 없고
구름이 많으니 어디쯤인고
여기서 단박 분명한 것을 알면
앉거나 눕거나 거닐거나 고풍 (古風) 을 펼치리
무학 (無學)
역겁토록 분명하여 허공 같은데
무엇하러 만 리에 밝은 스승 찾는가
제 집의 보물도 찾기가 어려운데
골수를 얻어 가사를 전하는 것, 가지 위의 가지다
우매 (友梅)
같은 마음 묘한 뜻을 누가 기뻐하는가
눈 속의 맑은 향기, 방에 새어들어온다
난간 앞의 소나무와 대나무만이 유독히
그와 함께 찬 서리를 견딘다
서봉 (西峰)
동쪽에서 솟은 해는 어디로 가는가
남쪽 산이 아니면 북쪽 산이리
아무리 가보아도 다른 길이 없거니
금년에도 또 꼭대기의 광명을 보노라
현기 (玄機)
알면서 거두지 않는 것이 큰 흔적 되나니
마주치자 꺼내보이는 것이 돈오 (頓悟) 의 근기니라
어찌 강을 사이 두고 가로달리는 자같이
지금까지 자취를 길이 남겨 두는가
탄암 (坦菴)
티끌 같고 모래 같은 차별 인연 모두 없애버리니
여섯 창에 밝은 달이 항상 닿아 있다
그로부터 눈의 경계 〔眼界〕 에 조그만 가림도 없고
네 벽은 텅 비어 세상 밖에 오묘하다
경봉 (玉敬峰)
이처럼 값진 것이 이 사바세계에 또 있는가
모든 산 가운데서 영롱하게 불쑥 솟았네
바다 신 (神) 은 그 귀함을 알아 언제나 바라보는데
고금에 우뚝이 큰 허공에 꽂혀 있네
징원 (澄源)
빛나며 크고 넓어 그림자 형체를 끊었고
밑도 없이 아주 깊어 헤아리기 어려워라
어룡 (貌龍) 과 새우와 게의 자취 용납 않나니
만 길 되는 큰 파도, 물은 깊고 맑도다
무문 (無聞)
눈과 귀는 원래 자취 없는데
누가 그 가운데서 원통 (圓通) *을 깨칠 것인가
텅 비어 형상 없는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개 짓는 소리, 나귀 울음소리가 모두 도를 깨침이네
계월헌 (溪月軒)
버들 그림자와 솔 그늘은 물을 따라 흐르는데
두렷한 밝은 달은 따라가려 하지 않네
그윽하고 깊은 골짜기의 맑은 물결 속에서
맑은 바람에 실려 난간 머리에 있네
매월헌 (梅月軒)
섣달의 봄바람은 눈과 함께 돌아오는데
은두꺼비는 한밤중에 난간에 올라온다
얼음 같은 자태와 옥 같은 뼈가 빛과 한데 어울려
바닥에서 하늘까지 한결같은 찬 맛일세
스승을 뵈러 가는 환암장로 (幻艤長老) 를 보내면서
남은 의심 풀려고 스승 뵈오러 가나니
주장자 세워 들고 용같이 활발하네
철저히 파헤쳐 분명히 안 뒤에는
모래수만큼의 대천세계에 맑은 바람 일어나리
무학 (無學) 을 보내면서
주머니 속에 별천지 있음을 이미 믿었거니
어디로 가든지 마음대로 3현 (三玄) 을 쓰라
어떤 이나 그대에게 참방하는 뜻을 묻거든
콧배기를 때려부수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또 신광사 (神光寺) 에 머물면서
이별한 뒤에 따로 생각하는 점이 있었나니
누가 알리, 그 가운데 뜻이 더욱 오묘함을
여러 사람들일랑 그럴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공겁 (空劫) 이전을 뚫고 지났다 하노라
참방 (參方) 하러 떠나는 종선자 (宗禪者) 를 보내면서
주장자를 세워 들고 참방하러 떠나나니
천하의 총림에 자기 집을 지으리
값할 수 없는 보배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했나니
동서남북 어디든 인연 따라 가거라
주시자 (珠侍者) 를 보내면서
만 리를 참방하는 그 생각 끝없거니
부디 나라 밖에서 다른 종 (宗) 을 찾지 말라
주장자를 잡기 전에 종지 (宗旨) 를 드날리면
그곳도 허공이요 여기도 허공이리
참방하러 떠나는 곡천 (谷泉) 겸선사 (謙禪師) 를 보내면서
본래 원만히 이루어져 말에 있지 않나니
무엇하러 수고로이 입을 열고 그대 위해 말하리
주장자를 세워 들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달이 되고 구름이 되어 가고 또 돌아오리
남방으로 행각길 떠나는 연시자 (璉侍者) 를 보내면서
세 번 부르고 세 번 대답하면서 화살 끝을 맞대
천차만별한 것들을 모두 쓸어버렸나니
그런 깊은 기틀을 간직하고 노닐며 지나갈 때에
분명히 조사들과 맞부딪치리라
관시자 (寬侍者) 를 보내면서
몸을 따르는 누더기 한 벌로 겨울·여름 지내고
주장자 하나로 동서를 분별한다
그 가운데의 깊은 뜻을 누가 아는가
귀가 뚫린 오랑캐 중 (달마) 이 가만히 안다
산으로 돌아가는 명상인 (明上人) 을 보내면서
백번 기운 누더기로 머리 싸고 초암에 머무나니
허공과 온 땅덩이를 한몸에 머금었네
온몸 속속들이 남은 생각 없거니
어찌 다른 사람을 따라 두번째, 세번째에 떨어지리
강남으로 돌아가는 통선인 (通禪人) 을 보내면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도를 묻는 것, 딴 목적 아니요
다만 그 자신이 바로 집에 가기 위해서네
반걸음도 떼지 않고 몸소 그 땅 밟으면
어찌 수고로이 나라 밖에서 누라 (口婁 ) *를 부를 것인가
강남으로 가는 난선자 (蘭禪者) 를 보내면서
이곳도 허공이요 저곳도 허공이라
분명히 있는 듯하나 찾으면 자취 없네
단박 빈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죽은 뱀을 내놓고 산 용을 삼키리라
강남으로 가는 고산 ( 山) 승수좌 (昇首座) 를 보내면서
사구백비 (四句百非) 를 모두 다 설파한 뒤에
지팡이 끝으로 해를 치며 강남으로 가는구나
조주 (趙州) 는 나이 80에 다시 참선하였나니
남은 자취 분명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금강산으로 가는 대원 (大圓) 지수좌 (智首座) 를 보내면서
천산만산을 모두 다 지나면서
한가닥 주장자와 함께 한가하여라
단박에 금강산 꼭대기를 밟을 때에는
온몸 뼛속까지 눈 서리 차가우리
신광사의 판수 (板首) 가 감파하러 왔을 때
3현 (三玄) 3요 (三要) 를 다 쓰되 틀림이 없었고
장님과 귀머거리를 인도해 밝은 눈을 열어 주어
항하사 겁토록 끝내 의심 없게 하였네
금강산으로 돌아가는 무주 (無住) 행수좌 (行首座) 를 보내면서
차림새는 마치 사납게 나는 용과 같은데
주장자를 세워 들고 동쪽으로 향하나니
금강산 꼭대기를 다시 밟는 날에는
큰 소나무와 늙은 잣나무가 향기로운 바람을 떨치니
참방 떠나는 박선자 (珀禪者) 를 보내면서
평생의 시끄러운 세상 일을 다 쓸어버린 뒤에
주장자를 세워 들고 산하를 두루 돌아다니네
갑자기 물 속의 달을 한 번 밟을 때에는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에 돌아가리라
참방 떠나는 문선자 (文禪者) 를 보내면서
돌아가누나 돌아가누나
바랑은 안팎으로 여섯 구멍이 뚫려 있네
하루 아침에 고향 길을 밟게 되거든
주장자 걸어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
참방 떠나는 징선자 (澄禪者) 를 보내면서
어머니가 낳아준 참 면목을 찾기 위하여
주장자를 세워 들고 앞 길로 나아가네
단박에 진짜 사자를 후려치는 날에는
갑자기 몸을 뒤쳐 한 소리 터뜨리리
참방 떠나는 심선자 (心禪者) 를 보내면서
여러 곳에 나아가 도를 묻는 것, 다른 목적 아니요
다만 그 자신이 바로 집에 가기 위해서이네
허공을 쳐부수어 한 물건도 없으면
백천의 부처도 눈 속의 모래이리라
참방 떠나는 명산자 (明禪者) 를 보내면서
뜻을 내어 참방하는 것 다른 목적 아니요
공겁 (空劫) 이 생기기 이전을 밝히기 위해서네
주장자에 갑자기 두 눈이 열리면
눈에 보이고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이 다 격식 밖의 선 (禪) 이리
참방 떠나는 상선자 (湘禪者) 를 보내면서
채찍으로 치는 공부가 눈과 서리 같거니
부디 그 중간에서 헤아리려 하지 말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쳐 구르면
마른 나무에 꽃이 피어 겁 (劫) 밖에서 향기로우리니
다른 날에 와서 나와 만날 때에는
임제 (臨濟) 의 미친 바람이 한바탕 나타나리라
부모를 뵈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휴선자 (休禪者) 를 보내면서
붉은 살덩이는 어머니의 피에서 생겨났거니
그것은 오로지 부모의 힘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의 이름 없는 물건이 있어
음양 (陰陽) 에 속하지 않고 영원히 있다
부모를 뵈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사미 (璉沙邇) 를 보내면서
수십 여 주 (州) 의 길이 먼데
누런 잎 나부끼며 고향으로 보내 주네
당당히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 만나는 날에는
마음껏 기뻐하며 하하 크게 웃으라
참방 떠나는 초선자 (初禪者) 를 보내면서
남쪽에는 천태산 북쪽에는 오대산
아침에는 돌아오고 저녁에 떠나는 것 참으로 신기하다
언젠가 모르는 사이에 몸을 뒤집어버리면
위음왕불 겁 밖을 뚫고 지나오리라
경선자 (瓊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관문을 뚫고 나서면
산하와 대지가 거꾸로 달리나니
물 밑에서 불이 일어 허공을 사르고
초목과 총림들은 사자후를 하는구나
향선자 (向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신령스런 광명이 호젓이 빛나 근진 (根塵) 을 벗어났나니
앉거나 눕거나 또 거닐거나 묘진 (妙眞) 을 나타내네
단박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내디디면
온갖 사물이 그대로 법왕 (法王) 의 몸 드러내리
언선자 (彦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거든 부디 죽은 공 〔頑空〕 에 집착말라
죽은 공에 집착하면 도를 통하지 못하리라
어젯밤에 달이 동쪽 언덕에서 솟아나더니
날이 밝자 또 하나 붉은 해를 보는구나
수선자 (修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몸과 마음이 본래 빈 것임을 분명히 알면
어디서나 가풍을 펼치기에 무엇이 방해되리
비록 모든 사물에 분명히 나타났으나
다시 그 온 곳을 찾으면 자취가 없다
성선자 (成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묘한 도를 훌륭히 성취해도 별로 신기할 것 없고
다만 당사자 그 사람이 결정하는 때에 있다
허공을 쳐부수어 모두 가루 만들면
백천의 부처에 대해 결코 의심 없으리
연선자 (演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크게 의심 일으키되 부디 중단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모두 다 그 의심덩이 되게 하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겁 밖의 신령한 빛이 싸늘히 담 (膽) 을 비추리라
인선자 (仁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사물에 응할 때는 분명하나 보려 하면 공하고
티끌마다 세계마다에 그 작용 한이 없네
여기서 모르는 사이에 두 눈이 활짝 열리면
호랑이 굴이나 마구니 궁전에서도 살길이 트이리라
여선자 (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이 빛나는 마음 구슬을 보는가
여섯 창에 모두 나타나 조금도 차별 없다
나타나는 그곳에서 분명히 알면
산하대지가 다 같은 한 집이리라
엄선자 (儼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배우는 것 다른 길 없고
용맹스레 공부해야 비로소 성취하리
단박에 허공을 가루 만들면
돌사람의 뼛속에 땀이 흐르리
소선자 (紹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지금까지의 온갖 견해 모두 쓸어버리고
화두를 굳게 들어 빨리 힘 〔功〕 을 들여라
하루 아침에 어머니 뱃속에서 갓난 면목을 알아버리면
호랑이 굴이나 마구니 궁전에서도 바른 길이 뚫리리
해선자 (海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거든 그 근원을 알아내야 하나니
무 (無) 가운데서 묘한 도리를 구하지 말라
단박에 온몸을 던져버리면
공겁 이전 소식이 눈앞에 나타나리
현선자 (玄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에는 무엇보다도 신심이 으뜸이니
씩씩하게 공부하되 채찍을 더하라
어느 결에 의심덩이가 가루가 되면
진흙소가 겁초 (劫初) 의 밭을 갈리라
뇌선자 (雷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각 (覺) 의 성품에는 미혹도 없고 깨침도 없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활짝 열려 있나니
여기서 다시 묘한 도리를 구하려 하면
어느 겁에도 법의 천둥 떨치지 못하리라
의선자 (義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모름지기 장부의 용맹내기를 기약하고
공부에 달라붙어 힘써야 하리
하루 아침에 마음이 끊어지고 정 (情) 이 없어지면
무딘 쇠나 굳은 구리쇠도 눈이 활짝 열리리라
보선자 (寶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다급히 공부하여 일찌감치 의심을 결단하고
부질없는 일로 세월을 허송 말라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내 집 보배 얻으면
부처와 조사가 오더라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성선자 (惺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화두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되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의심덩이를 일으키라
의심덩이 깨어져서 허공이 뒤바뀌면
거꾸로 쓰거나 가로 들거나 한 끝을 나타내리
덕시자 (德侍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려거든 장부의 마음을 내야 하나니
바짝 다가붙고 항상 가지면 도가 절로 열리리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목숨이 다하면
한번 뒤엎고는 마음껏 웃고 돌아오리라
수선자 (修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하루 종일 항상 바짝 달라붙어
잡고 놓고 하면서 급한 채찍 더하라
생각 〔情〕 이 없어지면 모르는 사이에 공부가 되어
허공을 쳐부순 주먹 하나뿐이리라
고선자 (孤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진심 (眞心) 이 본래 호젓한 것임을 깨닫고 나면
거닐거나 앉거나 눕기가 많은 길이 아니다
그때 단박 물결 속에 달을 밟으면
비로소 한가로운 오호 (五湖) 에 가득하리
당 도원 (唐道元) 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은 다만 의심덩이를 일으키는 데 있나니
끊임없이 의심하여 불덩이처럼 되면
모르는 사이에 온몸을 모두 놓아버리고
항하수 모래 같은 대천세계가 한 터럭 끝만 하리라
철선자 (徹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모든 인연 다 놓아버리고 철저히 공 (空) 이 되면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그 모두 주인공이다
단박 산을 뒤엎고 물을 다 쏟아버리면
칼숲지옥 칼산지옥에서도 빠져나올 길 있으리
담선자 (曇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할 때는 부디 인정 (人情) 을 쓰지 말라
인정을 쓰면 도를 이루지 못하리라
한번에 그대로 추위가 뼈에 사무쳐야 하니
어찌 항아리 울림으로 종소리를 만들리
용선자 (瑢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산 같은 뜻을 세워 빨리 앞으로 나가고
부디 게으름으로 세월을 보내지 말라
단박에 허공의 뼈를 때려내면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격식 밖의 선이리
휴선자 (休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달라붙어 부디 쉬지 말지니
뒤치고 엎치면서 `이 무엇인가' 하라
위험과 죽음을 무릅써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절벽에서 손을 놓아야 바로 장부이니라
여러 선자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모든 인연 다 놓아버리면 마음이 비고
철저히 흩어버리면 그 효험을 보리라
몸을 따르는 주장자를 거듭 들고서
어디서나 사람을 만나거든 고풍 (古風) 을 드러내라
참선을 하면 부디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나니
그 관문 뚫지 못하거든 한가히 보내지 말라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모두 잃어버리고
하늘과 땅에 사무치도록 털과 뼈가 차가우리
산처럼 뜻을 세워 바짝 달라붙으면
그로부터 큰 도는 저절로 열리리라
몸을 뒤집어 위음왕불 밖으로 한 번 던지면
삼라만상이 모두 한바탕 웃으리라
도를 배우고 참선하려면 산처럼 뜻을 갖고
굳건히 뜻을 세워 끊임없이 공부하라
온 하늘에 목숨 걸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속속들이 맑고 맑음이 담 (膽) 까지 서늘케 하리라
도를 배우고 참선하는 데는 별뜻 없나니
마치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듯 하라
두 눈이 활짝 열려 같이 밝아지면
위음왕불 공겁 이전을 환히 비추리라
당 지전선자 (唐 智全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배움에는 신심이 뿌리 되나니
신심이 눈 푸른 오랑캐 중 (달마) 을 뛰어넘으면
마음대로 완전히 죽이고 살리리니
그로부터 악명이 강호 (江湖) 에 가득하리
영선자 (鈴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등골뼈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다급히 채찍질하여
공겁이 생기기 전의 일을 반드시 밝혀라
갑자기 한 번 부딪쳐 허공이 찢어지면
다리 없는 쇠소 〔鐵牛〕 가 대천세계를 달리리라
난선자 (蘭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용맹이 있어야 하나니
화두를 들되 혼침 (昏沈) 에 빠지지 말라
의심덩이를 쳐부수고 허공을 굴리면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고금을 녹이리라
명선자 (明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이사는 원래 팔인데
그 누가 의심 없는가
거기서 다시 현묘한 경계를 구하면
그대로 여섯 구덩이에 떨어지리
혜선자 (慧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애정을 끊고 부모를 하직하고 각별히 집을 나왔으니
공부에 달라붙어 바로 의심 없애라
목숨이 딱 끊겨 하늘이 무너지면
오뉴월 뜨거운 하늘에 흰 눈이 날리리라
왕선자 (旺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바짝 달라붙어 몸을 싹 잊어버리고
부디 저 빛깔이나 소리를 따르지 말라
다만 한 번 몸소 깨칠 때에는
시방의 어느 곳이나 두렷이 밝으리라
운선자 (雲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움은 마치 불덩이를 가지고 노는 것 같거니
끊임없이 가까이 지켜 사이를 두지 말라
단박에 부딪쳐 허공을 굴리면
만 리에 구름 없고 가을빛이 차가우리
연선자 (然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할 때는 언제나 용맹하여
세간의 잡된 생각은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단박 어머니 태에서 갓난 면목을 움켜잡으면
찬 빛이 허공을 녹이는 것 비로소 믿게 되리라
통선자 (通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산처럼 뜻을 세워 결정코 기약하고는
스승을 찾고 벗을 가려 항상 화두 지켜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철저히 온몸에 바른 눈 열리리라
지선자 (志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움에는 뜻을 쇠처럼 하고
공부할 때는 항상 달라붙어라
갑자기 한 소리 탁 터지면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리라
공선자 (空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바짝 달라붙어 틈이 없게 하고
마음씀을 등한히 하지 말라
맑은 못의 가을달을 번뜻 한 번 밟으면
항하수 모래 같은 대천세계에 바른 빛이 차가우리
준선자 (遵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조사가 전한 그 마음 알려 하거든
부디 차갑게 앉아 애써 생각에만 잠기지 말라
번뜻 찾을 것 없는 곳에 이르게 되면
도리어 신광 (神光:혜가) 이 눈 속에 서서 찾던 일을 웃어주리라
심선자 (心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는 일 별것 아니요
그 사람의 굳은 의지에 있다
모든 것 한꺼번에 놓아버리면
물음마다 지우 (知友) 이리라
담선자 (湛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믿고 믿고 또 믿어 의심 없으면
담담하고 비고 통해 성품이 저절로 열리리니
그로부터 세상의 시끄러움에 끄달리지 않아서
위음왕불 겁 밖에서 마음대로 오고가리라
진선자 (珍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문을 나서면 걸음걸음에 맑은 바람 넉넉한데
동서남북 어디고 아무 자취 없어라
주장자를 거꾸로 들고 두루 돌아다니지만
그것은 원래 한 터럭 속에 있는 것이네
고선자 (孤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지팡이에 해와 달을 메고서 산천으로 다니나니
당당한 그 의지가 저절로 굳세지고
갑자기 짚신의 날이 끊어지는 때
한번 밟은 참다운 경계 오묘하고 오묘하네
온선자 (溫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주장자를 비껴 들고 행각 길 떠나나니
그 기세는 전장에 나가는 장군과 같다
갑자기 사람을 만나 바른 법령 휘두를 때는
하늘 땅이 뒤집혀도 보통일일세
연선자 (演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납자의 가풍이란 별일 아니니
한 쌍의 짚신으로 강산을 누비다가
홀연히 오던 때의 길을 밟을 적에는
모골이 시리도록 맑고 맑으리
주선자 (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묘한 도가 분명한데 이것을 보는가
모든 것에 나타나나 대단한 것 아니다
그대 지금 확실한 이것을 알면
몇 걸음 옮기지 않고 단박 집에 돌아가리
질선자 (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온갖 인연 다 쓸어버리면 그 효험 〔功〕 을 보겠지만
그것마저 끊어지고 마음이 사라진 곳에
물물마다 옛 풍모 드러나리
요선인 (瑤禪人) 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성취하는 일 별로 대단할 것 없나니
그 사람이 용맹을 기약하는 데 달렸네
물도 다하고 산도 끝나는 곳에 그대로 이르면
바퀴 같은 마음달이 모든 빛을 무색케 하리
수선인 (修禪人) 이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가
반드시 마음자리를 밝히고 뜻이 완전히 뛰어나야 하네
하루 아침에 찬 못의 달을 밟아 부수면
맑고 한없는 바람이 푸른 하늘에 떨치리
지선자 (持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머뭇거리지 말지니
어금니를 꽉 다물고 화두에 달라붙어야 하리
갑자기 온몸에 땀이 쭉 빠지면
석녀 (石女) 의 눈이 분명히 활짝 열리리
요선자 (了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어디에서 나와서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하고
하루 종일 항상 의심을 일으켜라
갑자기 의심덩이가 부서져 가루되면
뜨거운 유월 하늘에 눈과 서리 날으리라
희선자 (希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조주 (趙州) 의 `무 (無) '자 화두 하나를 들되
쉴 새 없이 부딪쳐 들어가 끊이지 않게 하라
갑자기 온몸에서 땀을 한번 쭉 빼면
산하대지가 한 군데 들어오리
양선자 (良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그대로인 본 성품이 어디에 있는가
빈틈없이 빛을 돌이켜 부디 잊지 말지니
갑자기 온몸에서 땀을 한번 빼고 나면
티끌마다 세계마다 감출 것이 없으리라
신상인 (神上人) 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이란 원래 복잡한 것 아니요
다만 그 사람의 산 같은 의지에 달렸다
단박 한 소리에 몸소 그 땅 밟으면
온몸의 뼛속까지 눈과 서리 차가우리
보선자 (普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본래 그대로여서 지어진 것 아니거니
어찌 수고로이 밖에서 따로 이치 구할 것인가
다만 한 생각으로 마음에 아무 일 없으면
목마르면 차 달이고 피곤하면 잠을 자리
행선자 (行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본래 그대로인 묘한 도를 그대 아는가
딴 곳에서 찾으면 헛수고만 하리니
빛을 돌이켜 몸소 밟아보기만 하면
어디 가나 걸음마다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
원선자 (元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원래 묘한 도는 자체가 비었거니
무엇하러 허망하게 글을 써서 남에게 보일 것인가
한 생각에 몸 생기기 전의 일을 알아차리면
기막힌 말과 묘한 글귀가 모두 다 티끌되리
징선자 (澄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맑고 맑은 성품바다는 끝없이 넓어
어떤 부처도 감히 그 앞에 나아가지 못하나니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져 언제나 스스로 쓰고
물물마다 응해 나타나는 것 본래 천연한 그것이네
온선자 (溫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는데는 조사의 관문을 지나야 하나니
관문을 지나지 못했거든 부디 등한하지 말라
갑자기 빛을 돌이켜 몸소 알아차리면
온 하늘과 온 땅에 모골이 시리리
임선자 (霖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자기의 참마음은 일정한 곳 없거니
흰 종이에 묘한 말씀은 찾아 무얼하는가
한 구절에 종지 (宗旨) 를 밝혔다 해도
바른 눈이 열렸을 때 본원 (本源) 을 미혹하리
오선자 (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는 데는 하나가 가장 중요하나니
빨리 공부 더하여 앞으로 나아가라
단박에 이 생명을 모두 잃어버리면
당당히 조사선을 깨달으리라
명선자 (明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는 데는 별일이 없고
그 사람의 용맹스런 공부에 달렸다
단박에 제 생명 잊어버리면
모든 법마다 한 터럭에 통하리라
천선자 (泉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를 하여 끝까지 갔을 때는
묘하고 기막힌 말 모두 마땅치 않네
갑자기 한 소리에 몸소 그 땅 밟으면
하늘 땅을 뒤엎으며 온 기틀 〔機〕 을 굴리리라
지선자 (持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빨리 공부하라, 이르다 하면 늦으리니
하물며 저만치 오는 때를 기다리랴
권하노니 그대 빨리 몸을 뒤집어버리면
뼛속까지 온 하늘에 한 기틀 깨치리라
중선자 (仲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마음을 닦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
철벽 (鐵璧) 과 은산 (銀山) 도 열리리니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을
그로부터 직접 한번 보고 오리라
임금의 덕을 칭송하다
거룩한 덕 높고 높아 호젓하고 담담하니
맑고 맑은 사해바다에 상서로운 연기 이네
막야검 (劍) 휘두르는 곳에 천지가 고요하고
바른 법령 행해질 때 이치와 일이 완전하다
길에 가득한 노랫가락은 황제의 덕화를 드날리고
온 성안의 칭송은 왕업을 도와 후세에 전하도다
요 (堯) 임금 바람과 순 (舜) 임금 해가 언제나 펼쳐지리니
당당한 우리 임금님 만만세를 누리소서
임금의 복위 (復位) 를 칭송하다
비로불에 눌러앉아 법계에 임하니
그로부터 온 우주가 맑고 편안하리
티끌마다 세계마다 모두 순조롭나니
임금의 해는 언제나 밝아 사해바다가 고요하다
연말에 은혜에 보답하며
인왕 (人王) 이 존귀한가, 법왕 (法王) 이 존귀한가
인과 법을 아울러 행하면 그것이 가장 높네
우리 임금님은 방편 〔權〕 과 여실한 도 〔實〕 를 아울러 행하거니
단단하고 굳센 그 몸 〔正體〕 은 만년의 봄일레라
임금님 덕 높고 높아 사해바다가 다 맑고
산속까지 매우 고요해 편안함을 즐기나니
때때로 자리를 깔고 앉아 별다른 일이 없어
적적하고 긴긴 날에 태평성대 감사하네
왕태후 (王太后) 께 올림
거룩한 마야 (摩耶) 부인이 천궁에서 내려와
이 삼한 (三韓) 의 나라에 나타나셨네
또 이 탁한 세상에 성왕 (聖王) 을 낳으셔서
불법을 펴서 만년토록 전하게 하시다
묘정명심 (妙淨明心) *을 물으신 임금님께 답함
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 〔妙淨明心〕 이란 어떤 물건인가
부디 표현한 그 말에 집착하지 마시오
산과 물과 해와 달과 또 많은 별들과
모든 것에 녹아져서 그 자체 역력합니다
임금님이 다시 평산화상 (平山和尙) 찬탄하기를 청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가슴 속의 독한 기운
불조도 감히 그 앞에 나아가지 못하네
임제 (臨濟) 의 미친 바람이 바다 밖까지 불었나니
삼한 (三韓) 의 임금님 방에서 만년을 전해가리
영창대군 (永昌大君) 에게 주는 글
한 생각 잊을 때는 아주 분명해
아미타불은 딴 고장에 있지 않으리
온몸이 앉거나 눕거나 다 연꽃 나라요
곳곳이 그 모두가 극락당 (極樂堂) 이네
염시중 (廉侍中) 에게 주는 글
본래 완전히 이루어져 말에 있지 않거니
어찌 수고로이 입을 열어 그대 위해 말하랴
한 생각 일어나기 전에 화두를 들어
위음왕불을 번뜻 밟으면 벌써 저쪽이리라
시중 이암 (侍中 李) 에게 주는 글
항하사 세계를 두루 감싼 맑고 묘한 그 몸은
인연 따라 굽히기도 하고 펴기도 하네
얼굴 문으로 드나드나 자취가 없고
성인이고 범부고 그 주인 되네
시중 윤환 (侍中 尹桓) 에게 주는 글
텅 비고 밝은 한 조각 매우 오묘하거니
그 가운데 어찌 정 (正) 과 편 (偏) 이 있으랴*
위음왕불 겁 밖의 신령스런 지초 (芝草) 는
봄바람을 기다리지 않고도 빛깔이 저절로 선명하다
이상 황석기 (二相 黃石奇) 에게 주는 글
말이 있기 전이라 글귀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가
묘한 말도 원래는 눈 속의 티끌이네
비야리성 (毘耶離城) 유마 〔金粟〕 의 뜻*을 알고 싶은가
수고로이 입을 열지 않고 현인 (賢人) 을 대하였네
위복 상공 (威福 相公) 에게 주는 글
원래 텅 비어 한 물건도 없는데
사람들은 밖을 향해 부질없이 허덕이네
전해 받을 일정한 법 없거니
무엇하러 신광 (神光:혜가) 은 눈 속에 서서 구했던가
남창 전상공 (南窓 田相公) 에게 주는 글
한 손바닥 휘둘러 향상관 (向上關) 을 열어제치니
밑바닥까지 티끌을 벗고 기뻐하며
또 한번 몸을 던져 뒤집어버리면
온 땅과 온 하늘에 눈서리 차가우리
이상서 (李尙書) 에게 주는 글
사원을 중수하고 사방 손님 접대하니
남북의 납자들이 갔다 다시 돌아오네
이제 서방극락에 마음 두어 부지런히 염불하라
상품 (上品) 연화대가 저절로 열리리라
이소경 (李少卿) 에게 주는 글
헛이름을 잘못 듣고 멀리까지 왔거니
정성이 지극한 곳에 윤회를 면하리라
승속과 남녀를 막론하고
한번 몸을 던져 뒤집으면 바른 눈이 열리리라
상국 홍중원 (相國 洪仲元) 에게 주는 글
높은 몸을 굽히고 피곤함도 잊고 멀리 산에 올라
다시 깊은 암자를 지나서 도 닦는 이를 찾았나니
도를 향하는 정성이 간절하고 알뜰하면
반드시 조사의 관문을 뚫고 지나가리라
세상의 이익과 공명이 몇 해나 가겠는가
세어보면 다만 백년뿐인 것을
하루 아침에 진공 (眞空) 의 땅을 밟아버리면
성인도 범부도 뛰어넘어 겁 이전을 뚫고 가리라
신상국 (辛相國) 에게 주는 글 ·2수
1.
신광사 (神光寺) 에서 헤어진 뒤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여러 해 서로 생각하면서 마음 속에 두었더니
오늘 나침에 갑자기 만나 바라보고 웃을 때
깊은 그 뜻을 누가 알 수 있으리
2.
문 앞의 한 가닥 길이 장안 (長安) 으로 뚫렸는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돌아올 줄 모르는가
눈썹이 가로 찢어진 눈 위에 있음을 문득 깨달으면
힘들여 도 닦지 않고도 마음이 기뻐지리
각정거사 (覺玎居君) 에게 주는 글
겁 전에도 겁 뒤에도 그 하나는
미혹도 떠나고 깨침도 떠나 가리고 감춘 것 없어라
나는 지금 두 손으로 정성껏 건네주어
여러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하게 하리라
변선인 (卞禪人) 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끝내기를 기약하여
스승을 찾고 벗을 가려 맞부딪쳐 가야 한다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바닥에서 하늘까지 눈이 활짝 열리리
연선자 (演禪者) 에게 주는 글
당당한 묘도 (妙道) 는 어느 곳에 있는가
밖으로 애써 찾아다니지 말라
하루 아침에 두 눈이 제대로 활짝 열리면
물색이나 산빛이 바로 본래 마음이리라
심수좌 (心首座) 에게 주는 글
참마음은 본래부터 빈 것임을 깨달으면
어디로 오가든지 다니는 자취 없으리라
자취 없는 그 자리를 확실히 알면
하늘 땅을 뒤집어 바른 눈이 열리리라
각자선인 (覺自禪人) 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려거든 부디 강철 같은 뜻을 세우고
공부를 하려면 언제나 바짝 달라붙어야 하리
갑자기 탁 터지는 그 한 소리에
대지와 허공이 모두 찢어지리라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글 ·8수
1.
깊고 고요해 말이 없으매 뜻이 더욱 깊었나니
묘한 그 이치를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앉고 눕고 가고 옴에 다른 일 없고
마음 가운데 생각 지니는 것 가장 당당하여라
2.
자성 (自性) 인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언제나 생각생각 부디 잊지 말지니
갑자기 하루 아침에 생각조차 잊으면
물건마다 일마다 감출 것이 없어라
3.
아미타불 생각할 때 부디 사이 떼지 말고
하루 종일 언제나 자세히 보라
하루 아침에 갑자기 저절로 생각이 붙으면
동쪽 서쪽이 털끝만큼도 간격 없으리
4.
사람들 잘못 걸어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에
이 산승은 간절히 또 격려하나니
문득 생각의 실마리마저 뜨거운 곳에 두면
하늘 땅을 뒤엎고 꽃 향기 맡으리
5.
생각생각 잊지 말고 스스로 지녀 생각하되
부디 늙은 아미타불을 보려고 하지 말라
하루 아침에 문득 정 (情) 의 티끌 떨어지면
세워 쓰거나 가로 들거나 항상 떠나지 않으리라
6.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붙들어 두고 부디 잊지 말지니
생각이 다하여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
여섯 문에서는 언제나 자금광 (紫金光) 을 뿜으리라
7.
몇 겁이나 괴로이 6도 (六途) 를 돌았던가
금생에 인간으로 난 것 가장 희귀하여라
권하노니 그대들 어서 빨리 아미타불 생각하고
부디 한가히 놀면서 좋은 기회 놓치지 말라
8.
6도에 윤회하기 언제나 그칠 것인가
떨어질 곳 생각하면 실로 근심스러워라
오직 염불에 기대어 부지런히 정진하여
세상 번뇌 떨어버리고 그곳에 돌아가자
연상인 (衍上人) 에게 주는 글
참선은 제 마음을 참구해 갖는 것이니
부디 다른 물건따라 밖에서 찾지 말라
적적 (寂寂) 하면 다시는 사념 (邪念) 일지 않고
성성 () 한데 어떻게 화두가 어두우랴
등골뼈는 바로 한 가닥의 쇠이며
터럭은 만 냥 금을 녹여내니
60년을 그저 이렇게 나아갈 때는
총림을 압도하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게 되리
시중 행촌 이암 (侍中 杏村 李巖) 에게 주는 글
대지에 봄이 돌아와 세계마다 풀렸는데
살구꽃 마을 〔杏花村〕 속에 경치가 무궁하다
남쪽에서 온 제비의 지저귐은 한가한 방안에 드는데
북쪽으로 가는 기러기 소리는 고요한 하늘을 뚫는다
비는 빨간 복숭아꽃을 씻으면서 묘한 이치를 펴고
바람은 흰 배꽃에 불면서 그윽한 종지를 떨친다
티끌마다 서쪽에서 온 뜻을 한꺼번에 노래하거니
어디 가서 애써 조사 늙은이 찾으랴
안렴사 김정 (按廉使 金鼎) 에게 주는 글
당당한 보배그릇이 집 안에 있는데
사바세계의 값으로 자취를 나타냈네
세 뿔은 3계 밖에 높이 뛰어났고
한 몸은 하나의 진공 (眞空) 세계를 둘러쌌다
하늘에 통하는 큰 입에는 서리꽃이 희고
뱃속에 가득한 식은 재는 빨간 불꽃을 피운다
이것이 바로 견고하고 오묘한 자체이니
항하사 겁에 그 작용 무궁하리
판서 박성량 (判書 朴成亮) 에게 주는 글
화두의 마지막 한 구절을 들되
반복하고 반복하여 의심을 일으켜라
의심하고 의심하다 의심이 없는 곳에서
허공을 걷어 엎고 한 번 크게 웃으리라
전덕림 (全德林) 에게 주는 글
완전한 덕으로 숲을 이루어 네 경계를 이루었나니
당당한 자체와 작용이 가장 확연하구나
그로부터는 번뇌스러운 꿈을 다시는 꾸지 않아
날마다 항상 공겁 이전의 세계로 다닌다
일을 계기로 대중에게 설법함
부디 평생의 처음 뜻을 따르고
남이 좋다 싫다 하는 것에 끄달리지 말라
좁은 입을 열 때는 뜻을 얻어야 하고
깊숙한 방울 늘 닫아둠은 세속 일을 잊기 위해서이다
때때로 티끌 번뇌 없애고
생각생각 도력을 약하게 하지 말라
백년의 광음이 얼마나 된다고
부질없이 뜬 세상의 시비를 보는가
대중에게 설법함
산과 강 온갖 형상이 별처럼 흩어졌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별것 아니니
구부러진 나무와 서린 소나무는 모두 바로 자신이며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도 다 남은 아니다
푸른 봉우리는 모두 고승 (高僧) 의 방이 되고
흰 묏부리는 그저 묘성 (妙聖) 의 집이 되니
여기서 다시 참되고 확실한 것 따로 구하면
분명 괴로운 사바세계 벗어나지 못하리라
홍시중 (洪侍中) 에게 주는 글
황제의 덕화 널리 퍼져 묘하고 참됨을 나타내어
삼추 (三秋) 의 사법 (四法) 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나니
어찌 당장에 털끝만한 기틀인들 드러내려 하겠는가
얼음과 눈은 겹겹하여 한 점 티끌도 없네
염시중 (廉侍中) 에게 주는 글
지극히 존귀하고 높으신 분
숲속으로 가난한 이 도인을 찾아오셨네
오늘에 존귀한 몸 무엇하러 오셨던가
세세생생에 나와 함께 참됨 〔眞〕 을 닦기 위함이리라
하찰방 (河察訪) 에게 주는 글 ·2수
1.
맑은 풍채 늠름한 한 지방의 관리가
숲속의 도인을 찾아주었네
멀지않아 단박에 몸을 뒤집어 내던지면
구름에 오른 두루미인 듯 뼈와 털이 차가우리
2.
날마다 온갖 문서 책상에 가득한데
얼음이나 옥처럼 맑고 깨끗해 아무런 어려움 없네
그때그때마다 판단하는 일 누구 힘을 입었던가
권하노니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춰 보라
교주 (交州) 도안부 (道按部) 에게 주는 글
맑은 명성을 들은 지는 오래였는데
오늘 만나보매 과연 의심할 것 없구나
이 (理) 와 양 (量) * 두 쪽 다 투철하나니
지금부터 우리나라 저절로 편안하리
지수좌 (智首座) 에게 주는 글
절벽에서 한번 손을 놓아버리면
삼라만상에서 눈이 활짝 열리리
그로부터는 백천의 모든 불조들
그대와 함께 같은 눈으로 하하 웃으리
윤시중 (尹侍中) 의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준 글
지난날 좋은 인연 있어 여기 왔나니
온 집이 엄숙하고 고요해 마음이 편안하고
노니는 꽃동산은 인가에서 머나니
깊은 산, 산속의 산과 같네
안렴사 정량생 (按廉使 鄭良生) 에게 주는 글
정직하고 곧은 그 뜻 누가 알 것인가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잠깐도 어기지 않았네
부처를 섬기고 임금을 받드는 그 정성 지극하거니
진실로 세상에서 가장 드물다 하리
원주목사 김유화 (原州牧使 金有華) 에게 주는 글
책상에 가득한 온갖 문서 전연 돌아보지 않고
눈오는 날 가난한 이 사람을 찾아왔구나
숲속이라 선물할 물건 하나 없고
그저 맑은 이야기와 도를 믿는 정이 있을 뿐이네
비가 갠 뒤 안렴사에게 주는 글
비가 멎고 구름이 걷히니 날이 개어 좋은데
나라를 향한 충성에 도심 (道心) 도 가볍지 않네
흰 옥은 황가의 보배라 들었거니
오늘 빛나는 저 빛에 눈을 비추어 보라
옛사람의 목우송 (牧牛頌) 에 회답함
머리에 뿔 분명히 나타나기 전에는
흰 구름 깊이 잠긴 곳에서 한가히 졸았었네
원래 그는 꽃다운 봄풀을 먹지 않거니
무슨 일로 목동들은 채찍질하나
원정국사송 (圓定國師頌) 에 회답함
동해의 그윽한 바위 곁에
높고도 호젓한 봉우리
원통 (圓通) 하신 관자재보살님
자비 서원은 어떤 집에 임하셨나
소나무 바람은 티끌을 모두 쓸고
파도 소리 곳곳에서 만나니
보타산 위의 보살에게는
참된 얼굴 아닌 물건이 없네
고성 안상서 (高城 安尙書) 의 운 (韻) 에 회답함 ·2수
1.
천고의 높은 풍모 사람마다 있거니
어찌 오늘 새삼 보배롭다 하는가
온몸의 뼛속까지 다른 물건 없나니
이것은 원래부터 진망 (眞妄) 을 벗어났다
2.
중생과 부처 당당하여 본래 다르지 않지만
언제나 바깥 모양에 끄달려 서로 찾는다
물결마다 그림자마다 옳고 그름 없거니
부디 있다거나 없다거나로 구하지 말라
총석정운 (叢石亭韻) 에 회답함
모여선 구리쇠 간대에 돌기둥을 겸했나니
하늘이 낸 아름다운 경치에 누가 다시 보탤 것인가
사면을 돌아보면 범음 (梵踵) 이 진동하나니
바로 위가 도솔천 추녀인가 의심스럽다
이암거사 (伊巖居君) 의 운 (韻) 에 회답함
누가 부처님이 마가다국에서 났다 하는가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내면 천리나 어긋나리
산을 보나 물을 보나 의심 없는 곳에는
맑고 한없는 바람이 제 집에서 나온다
회양 이부사 (淮陽 李副使) 가 숲으로 찾아줌을 감사함
잠깐 금강산 꼭대기에 왔다가
청평산 (淸平山) 속에서 서로 만나다
신심은 쇠처럼 굳고
정성은 허공처럼 크네
과거부터 가까웠기에
금생에 와서 도를 같이하게 되다
권하노니 그대여 한 걸음 더 나아가
빨리 자기 종풍 (宗風) 을 깨치라
공도사 혜도 (空都寺 惠刀) 에게 감사함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리는 칼이
오직 그 사람의 한 손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에 와서 내게 은혜 베풀었나니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에 서릿바람이 난다
강남 (江南) 의 낙가굴 (洛伽窟) 에 예배하다
묘한 모양은 원래 모양 없는 것이요
소리를 관하매 〔觀踵〕 곳곳에 통한다
내 여기 와 석굴을 보니
도리어 하나의 굴롱 (窟芼) 이어라
보덕굴 (普德窟) 관음에 예배함
천암동 (千巖洞) 속에 홀로 높고 엄하여
밤을 빼앗는 광명에 해와 달이 어둡다
물을 건너고 구름을 뚫고 와서 예배하나니
과연 자비의 칼을 잡고 천지를 움직이시네
밖에서 찾는 세상 사람들을 경계함 ·2수
1.
집안의 여의 (如意) 보배를 믿을지니
세세생생에 그 작용 무궁하도다
비록 모든 물건에 분명히 나타나나
찾아보면 원래 그 자취 없다
2.
누구에게나 이 큰 신주 (神珠) 있어
서거나 앉거나 분명히 항상 스스로 따르네
믿지 않는 사람은 부디 자세히 보라
지금 이렇게 말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세상을 경계함 ·5수
1.
백년이래야 그저 잠깐 동안이거니
광음 (光陰) 을 등한히 생각하지 말라
힘써 수행하면 성불하기 쉽지만
지금에 잘못되면 헤어나기 어려우리
죽음이 갑자기 닥치면 누구를 시켜 대신하랴
빚이 있으면 원래 남의 부림 오느니라
염라 늙은이의 신문을 받지 않으려거든
모름지기 바로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리
해는 동쪽에서 오르고 달은 서쪽에 잠기는데
나고 죽는 인간의 일은 일정치 않네
입 속 세 치 혀의 기운을 토하다가
산꼭대기에 한 무더기의 흙을 보탤 뿐이네
티끌 인연이 시끄러운데 누가 먼저 깨달을까
업식 (業識) 이 아득하여 길은 더욱 어두워라
기어코 윤회를 벗으려면 다른 방법 없나니
조사님네들의 공안 (公案) 을 잘 참구하여라
2.
추위와 더위가 사람들을 재촉해 세월이 흐르나니
모두들 얼마나 기뻐하고 얼마나 근심하는가
마침내 흰 뼈다귀 되어 푸른 풀에 쌓이리니
황금으로도 젊음과는 바꾸기 어려워라
3.
죽은 뒤에 부질없이 천고의 한을 품으면서
살았을 때 한번 쉬기를 아무도 하려들지 않네
저 성현도 모두 범부가 그렇게 된 것이니
어찌 본받아 수행하지 않는가
4.
어제는 봄인가 했더니 오늘 벌써 가을이라
해마다 이 세월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네
이름을 탐하고 이익을 좋아해 허덕이는 사람들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한 채 부질없이 백발일세
5.
한종일 허덕이며 티끌 세속 달리면서
머리 희어지니 이 몸 늙어질 줄 어찌 알았던가
명리는 문에 가득 사나운 불길되어
고금에 몇 천 사람을 불살라버렸던가
강남 (江南) 의 구리송 (九里松) 에 제 (題) 함
10리는 연꽃이요 9리는 소나무인데
산에 있고 물에 있어 그것이 같지 않구나
그 중간의 바람과 달은 산도 물도 아니지만
땅을 비추고 하늘을 흔들면서 공겁까지 가도다
소요굴 (逍遙窟) 의 천연석 나한에 제 (題) 함
자유로이 소요 (逍遙) 하며 몇 겁을 지났던고
깊은 산 석굴에서 공 (空) 을 관하기 좋아한다
권하노니 그대는 빨리 머리 돌이켜
최상의 문중에서 단박 도를 깨쳐라
이엄존자 (利嚴尊者) 의 탑에 제 (題) 함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의심을 풀었나니
지금까지 당한 (唐漢) 에는 남은 자취 있다
내가 와서 탑에 예배함은 다른 뜻이 아니라
다만 이 삼한 (三韓) 에 조사의 도풍을 떨치기 위해서라네
동해 (東海) 의 국도 (國島) 에 제 (題) 함
원통 (圓通) 의 좋은 경치를 뉘라서 알겠는가
천만 사람 모여와 돌아갈 줄 모르네
나도 와서 관자재 (觀自在) 를 친히 참배하나니
천둥 같은 하늘 소리를 울려 온갖 근기 응해 주네
천 잎새 연꽃 대좌는 몇 천 년을 지났던가
높고 거룩한 천불 (千佛) 은 고금에 일반이다
나는 와서 말없는 설법을 친히 듣나니
그것은 위음왕불 나오기 전 소식이다
동해 (東海) 의 문수당 (文殊堂) 에 제 (題) 함
문수의 큰 지혜는 지혜로 알기 어렵나니
들어 보이는 모든 것 그대로 다 기틀이다
물은 초록이요 산은 푸른데 어디가 그곳인가
하늘이 돌고 땅이 굴러 그때를 같이하네
오대산 (五臺山) 중대 (中臺) 에 제 (題) 함
지팡이 짚고 한가히 노닐면서 묘봉 (妙峯) 에 오르나니
성현의 끼친 자취가 본래 공하지 않구나
신비한 천연의 경계가 막힘이 없어
만 골짝 솔바람이 날마나 지나가네
동해 (東海) 의 보타굴 (寶陀窟) 에 제 (題) 함
원통 (原通) 의 그 경계를 뉘라서 알건가
예나 이제나 처음부터 끊일 틈 없이
큰 바다의 조수가 뒤치며 밀려와 굴에 가득 차나니
범음 (梵踵) 은 현묘한 그 기틀을 열어 보이네
`소리는 소리 아니고 빛깔은 빛깔 아님 〔聲不是聲色不是色〕 '을 송 (頌) 함
소리와 빛깔이 원래 제자리에 머물거니
빛깔 〔色體〕 을 소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버드나무에 꾀꼬리 울고 꽃은 피어 웃을 때
신령한 광명이 곳곳에 밝음을 비로소 믿으리
환암 (幻庵) 이 오위주송 (五位註頌) *을 베껴가지고 와서 보라 하기에 그 앞에 제 (題) 함
조동 (曹洞) 의 종풍은 어떤 것인가
곤륜산 (崑崙山) 과 백로주 (白鷺洲) 가 둘이 함께 겹쳤네
군신 (君臣) 과 편정 (偏正) 이 서로 섞여 작용하나
저쪽에 앉지 않는 이것이 바로 작가 (作家) 이니라
`일체법을 분별*하되 분별상 (¿別想) 을 내지 말라' 하신 옛스님의 말씀에 제 (題) 함
위 없는 열반은 모든 것에 통하여
분별하는 이 세간을 떠나지 않았나니
분별하는 거기서 분별하는 생각 없으면
길고 짧고 푸르고 누름이 고풍을 드날리리
참선자 ( 禪者) 가 오위주송을 베껴썼기에 그 앞에 제 (題) 함
자상한 가풍을 뉘라서 알건가
편 (偏) 과 정 (正) 은 원래 자체가 각각 다르다
그 경계의 한가운데를 알고 싶은가
흑백이 분명하게 나뉘어지기 전이네
청평산 (淸平山) 에 머물면서
10여 년 동안 강호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가슴 속이 절로 활짝 열렸네
내가 성취한 일 묻는 이가 있으면
배고프면 밥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며 피곤하면 잔다 하리라
옮겨가면서 스님네 〔同袍〕 에게 붙임
봄이 오면 기러기는 북쪽 변방에 왔다가
가을이 오면 예와 같이 남으로 가네
도 닦는 이의 생활도 모두 그와 같거니
몸이 가고 몸이 오는 것 의심할 것 없네
광주목사 (廣州牧使) 에게 부침
모든 일은 그대에게 있거니 자세히 살펴보라
꿈속의 뜬 세상일 아무 이유 없느니라
백년 동안 시끄러운 부질없는 영욕도
우리 집에서는 한 순간이라
묘령 (妙靈) 비구니가 머리를 깎다
불조의 그윽한 문을 누가 감히 열건가
누구나 바라지마는 오지 못했었다
오늘 아침에 마지막 풀을 뿌리채 깎았나니
광겁 (曠劫) 의 무명이 당장에 재가 되리라
동생 묘연 비구니가 머리를 깎다
무명의 거치른 풀을 뿌리째 깎았나니
당당한 자성 (自性) 의 계율이 스스로 원만하리
지금부터는 어떤 그릇된 길도 밟지 말고
바위 위음왕불 겁 밖의 근원을 뚫으라
부처님오신날 〔佛誕日〕
일곱 걸음 걸은 것도 오히려 틀렸거늘
하늘 땅을 가리킨 것 그 더욱 잘못이네
그때 그런 허물 저지르지 않았던들
운문 (雲門) 의 아픈 방망이와 꾸짖음을 면했을 것을*
출산상 (出山像) 을 찬탄함
설산 (雪山) 에서 6년 동안 굶주림을 참다가
산을 달려나옴은 큰 일 하기 위해서였는데
도를 이루어 법륜을 굴린다고 부질없이 말했다가
그 말이 천하에 퍼져 입의 허물 이루었다
사람마다 코는 우뚝하고 두 눈은 가로 찢어졌는데
무슨 일로 주리고 떨려고 설산으로 갔던가
한 번 샛별 보고 도를 깨쳤다 말한 뒤로는
그때부터 그 자손들 깜깜하게 눈 멀었네
지공 (指空) 을 찬탄함
마가다국에서 반야경을 보다가
문득 세 곳에서 온몸을 단박 잊었다
그때 만일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었더라면
무엇하러 남천축으로 가서 보명 (普明:지공의 스승) 을 뵈었던가
아아
대원국 (大元國) 에서 잠자코 앉았으매 아는 사람 없었으나
천지를 진동시키는 소리 있었네
등산상 (登山像) 을 찬탄함
설산에 오르기 전에 두 눈이 파랬는데
무엇하러 차갑게 앉아 6년 고행했던가
주리고 떨며 머리털은 길고 몸은 바짝 여위었으나
바른 눈으로 볼 때에는 그저 쓸데없는 짓이네
달마 (達磨) 를 찬탄함
양왕 (梁王) 과 맞지 않아 부끄러이 떠났나니
소실봉 (小室峰) 앞에서 성이 나 말 않다가
신광 (神光) 에게 독한 화살 쏜 뒤에는
몽두 (蒙頭) 쓰고 합장하여 하늘에 알려준다
죽망달마 (竹網達磨) 를 찬탐함
향지국 (香至國:달마스님의 고국) 의 왕궁에 복없이 머무는데
서쪽 바람이 불어오매 동쪽으로 나왔나니
노호 (老胡:달마) 는 아무데도 편히 머물 곳이 없어
남의 집 대그물 속으로 달려들어갔구나
관음 (觀踵) 을 찬탄함
여여 (如如) 히 움쩍 않고 몇 봄과 가을인가
보름달 같은 인자한 얼굴 천하에 가득하다
이미 두렷이 통하고 자재하게 보거니
어찌 수고로이 머리 위에다 머리를 포개는가
자찬시제 (自讚詩題)
쯧쯧, 이 촌뜨기 중이여, 하나도 봐줄 만한 것 없나니
자세히 살펴보면 털끝만한 행 (行) 도 없다
얼굴은 자비스러운 듯하나 마음 속은 가장 독하여
부처와 법을 비방하니 그 허물 하늘에 찬다
너에게 보시하는 자 복밭이라 할 수 없고
너를 공양하는 사람 3악도에 떨어지리
가슴에 손을 대매 모양은 사람 같으나
뱃속에는 원래 조그만치 진실도 없네
부처와 스님을 비방하매 마음이 가장 독하거니
지금에는 온몸을 드러낼 수 없구나
아아, 이 널판자 짊어진 이〔擔板漢〕 *여
분노와 어리석음 버리지 못했으매
마음 〔心意心識〕 은 뒤바뀌었고
참선을 말하려 함부로 입을 열면
혀 끝이 잇따라 어수선하다
일찍 고요히 선정에 들지 못해
한종일 허덕이며 행랑으로 달리나니
남에게 코를 쥐여도 잘 웃으면서
남에게 입 열기를 용납하지 않으며
아무 때고 방망이를 함부로 쓰면서
옳거나 그르거나 척루 (脊) 를 물리친다
허공을 쳐부수어 뼈를 내고
번갯빛 속에 토굴 짓나니
내 집 가풍을 묻는 이 있으면
이 밖에 다른 물건 없다 하리라
지공 (指空) 을 찾아뵙고
내 종지 (宗旨) 잃었나니
쯧쯧 이 눈먼 사람
도로 대롱 속에 들어갔구나
발원 (發願)
원하노니 나는 세세생생에
언제나 반야에서 물러나지 않고서
저 본사 (本師) 처럼 용맹스런 의지와
저 비로자나처럼 큰 각과 (覺果) 와
저 문수처럼 큰 지혜와
저 보현처럼 광대한 행과
저 지장처럼 한없는 몸과
저 관음처럼 30응신 (應身) 으로
시방세계 어디에나 나타나
모든 중생들을 무위 (無爲) 에 들게 하며
내 이름 듣는 이는 3도 (三途) 를 면하고
내 얼굴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며
이렇게 항사겁 (恒沙劫) 을 교화하여
필경에는 부처도 중생도 없게 하여지이다
원컨대 모든 천룡 (天龍) 과 팔부신장 (八部神將) 님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 몸 떠나지 않아
어떤 어려움에서도 어려움 없게 하여
이 큰 발원을 성취하게 하여지이다
발원하고서 삼보에 귀명례 (歸命禮) 합니다
발 문
이상은 왕사 보제존자가 사방으로 돌아다닐 때 일상의 행동을 한마디, 한 구절 모두 그 시
자가 모아 `나옹화상 어록"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 제자 유곡 (幽谷) ·굉각 (宏覺) 등이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세상에 간행하려고 내게 그 서문을 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서문이란 유래를 쓰는 것인데, 그 유래를 모르고 서문을 쓰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난을 받
을 것이오. 장님이 길을 인도하거나 귀머거리가 곡조를 고른다면 그것이 될 일이겠는가. 나
는 그것이 안되는 일인 줄 알 뿐 아니라, 더구나 백담암 (白淡庵) 의 서문에서 남김없이 말
했는데 거기 덧붙일 것이 무엇 있는가."
그랬더니 그들은 "그렇다면 발문 (跋文) 을 써 주시오" 하면서 재삼 간청하므로 부득이 쓰
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넓은 그릇과 맑은 뜻을 엿볼 수 없거늘, 어떻게 그것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듣건대, 부처는 깨달음 〔覺〕 을 말하고 그 깨달음으로 중생을 깨우치며 자비로써
교화한다 하니, 그것은 우리 유교로 말하면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뒤에 깨달을 사람을 깨닫게
하고 인서 (仁恕) 로 교 (敎) 를 삼는 것이니, 그것이 같은가 다른가.
우리 군자 〔先儒〕 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방에 큰 성인이 있으니 천하를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
으며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는데, 탕탕하여 아무도 그것을 무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도는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유불 (儒佛) 이 서로 비방한다'고 한다.그러나 나는 서로 비방하는
것이 그름을 안다.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요,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 유
교를 비방하는 것이다. 다만 극치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이 서로 맞서 비방할 뿐이요, 중니
(仲尼) 와 모니 (牟尼) 는 오직 한 덩어리의 화기 (和氣) 인 것이다.
이제 이 어록을 보면 더욱 그러함을 믿을 수 있으니, 언제나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닦아 임
금을 축수하고 나라를 복되게 함으로써 규범을 삼는 것이다. 이미 우리 임금은 이 분을 존
경하여 스승으로 삼았으니 이 어록을 간행하여 세상을 깨우침이 마땅할 것이다.
정사년 (1377) 첫여름 하순 (下旬) 어느 날에 단성보리 익찬공신 중대광계림군 이
달충 (端誠輔理翊贊功臣重大翠鷄林呼李達衷) 은 머리를 조아려 두 번 절하고 삼가 쓴
다.
보제존자 삼종가
(普濟尊者 三種歌)
백납가 (百歌)
백번 기운 이 누더기
분소의 (糞掃衣) 여
온갖 헝겊 주워와 알맞게 기웠나니
베옷 입은 위의가 어디로 가나 족하건만
그 재미 아는 사람 옛날부터 드무네
내게 가장 알맞으니
어찌 헤아려 생각하랴
4은 (四恩) *이 가벼울수록 복은 더욱 떳떳하다
마음대로 이 물건을 가지고는 다른 일이 없나니
온갖 보배로 장엄하고 고향을 보호한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만판 입어도 편안하구나
그때그때 입어도 스스로 편리하네
헌 누더기 그 안에 특별한 일 무엇인가
배고프면 밥먹고 목마르면 차마시며 피곤하면 잠자네
누덕누덕 꿰매어 천조각 만조각인데
깁다가 못 기운 곳 녹다 남은 눈과 같네
사람들 모두 믿기 어렵고 가지기도 어렵건만
미더워라, 음광 (飮光:가섭존자) 은 사철로 가졌었네
겹겹이 기웠으매 앞도 뒤도 없어라
오래도록 지녀옴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음광 (飮光) 만이 그것을 깊이 믿었기에
누더기로 제일 먼저 조사의 등불 전하였네
자리도 되고
애정을 끊었거니
원래 석가의 자손이 어찌 영화를 구할건가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무심히 입었나니
늘상 입고 지내니 도가 바르다
옷도 됨이여
추위와 더위를 막으며
곱거나 밉거나 대중을 따르매 늘상 그러하여라
그렇게 선이나 악을 도무지 짓지 않거니
무엇하러 구태여 깨끗한 곳에 가려 하리
철따라 때따라 어김없이 쓰이며
다른 소중한 물건 보다 쓰기 쉬우니
때때로 마시는 죽은 소화되기 어려우나
헌 누더기는 해마다 꿰매 입기 편리하네
이로부터 고상한 행에 만족할 줄 아나니
가난한 가운데서 부하면 만족할 줄 알고
부한 가운데서 가난하면 만족하기 어렵지만
가난하거나 부하거나 만족할 줄 알리라
음광 (飮光) 이 끼친 자취 지금에 있구나
백 번 기운 누더기 남은 자취 총령 (¿嶺) 서쪽에 있고
동토 (東土) 에 전해와서는 납자 (子) 라 하니
음광의 끼친 자취 지금도 남아 있네
한 잔의 차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한 잔의 차가운 차를 다시 사람들에게 보일 때
아는 사람이야 오겠지만 만일 모르면
새롭게 새롭게 한없이 보여주리
일곱 근 장삼이여
가풍을 드날리니
집안의 세밀한 일들이 지극히 영롱하다
이런 재미를 그 누가 알는지 모르겠구나
서역에는 음광 (飮光) 이요 동토에는 조주 〔趙老〕 라네
조주스님 재삼 들어보여 헛수고했나니
음광 (飮光) 이 제일 먼저 일어나 장삼 입었고
조주 (趙州) 가 거듭 일어나 동토에 전했나니
천하총림이 모두 백 번 기운 누더기네
비록 천만 가지 현묘한 말씀 있다 한들
어찌하여 헌 누더기 해같이 밝은가
하늘을 비추고 땅을 비추며 공겁 (空劫) 이전부터
홀로 신령한 빛을 비추어 만물을 일으켰네
우리 집의 백납장삼만이야 하겠는가
비록 이 누더기가 다 헤졌다 해도
삼라만상이 한없이 말하나니
모든 법이 공 (空) 으로 돌아간다네, 백 번 기운 누더기여
이 누더기옷은
얼마든지 입어도 언제나 편리하다
이익을 구하고 명예를 구하여 누가 만족했던고
지극한 마음으로 도를 구하여 믿고 귀의하여라
매우 편리하니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사철로 편리하며
총림 어디로 가나 걸림이 없고
인연 따라 입음에 위의가 극진하네
늘상 입고 오가며 무엇을 하든지 편리하구나
미우나 고우나 대중을 따르매 그것으로 법다운 모습이니
비단옷을 입은 이 아무리 존귀한들
무심한 이 누더기만 하겠는가
취한 눈으로 꽃보는 일 누가 구태여 하겠는가
누더기의 맛은 원통 (圓通) 의 깨달음에 있고
꽃을 보는 취한 눈은 그 맛이 미혹에 있으나
누더기 입는 일을 누가 감히 하겠는가
도에 깊이 사는 이라야 스스로 지킨다
도 닦는 이의 깊숙한 거처를 아는가 모르는가
마음과 법을 다 잊었거니 어찌 둘이 있으랴
천 개의 등불은 어두운 방을 비추어 똑같이 만든다
이 누더기 얻은 지가 얼마인가 아는가
필시 지녀온 지 오랜 세월 지났으리
베 빛깔을 분간할 수 없이 기운 지 오랬거니
그 바탕 녹다 남은 눈 같고 안개 같구나
몇 해나 추위를 막았던가
이 누더기는 원래 한가하니
일없는 선정 가운데 무슨 일이 있는가
띠풀암자는 예와 같이 푸른 산을 마주했네
반쯤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쯤만 남았구나
앞은 날아가고 뒤에 남은 것 더덕더덕 걸려 있다
걸음걸음 비로자나의 정수리거니
걸음걸음 가면서 또 무엇을 구하랴
서리치는 달밤, 띠풀암자의 초암에 홀로 앉았으니
띠풀암자에 홀로 앉아 있기를 다시 구하랴
천만 가지 차별에서 내 고향 잃었거니
참도 〔眞道〕 는 서리치는 달밤에서 나온다네
안팎을 가릴 수 없이 모두가 깜깜 〔蒙頭〕 하다
이런 맛은 원래 세상에 없으니
세상에 어떤 사람이 이 맛 알건가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의 이 깜깜한 맛을
이 몸은 가난하나
한 물건도 전연 없는 가난한 도인이
값할 수 없는 보배구슬을 어떻게 쓰는가
그 스스로 만물을 내어놓는 봄이라네
도는 끝 없어
고요하고 쓸쓸한데 누가 그와 함께하랴
홀로 숲속에 앉아 모든 일 쉬었나니
세간의 어떤 물건이 확실한 진종 (眞宗) 인가
천만 가지 묘한 작용 다함 없어라
한가할 때나 시끄러울 때나 예의는 비단옷 같고
문 앞에서 손님 맞이할 때에도 평상시 같으며
불전에서 향불 사르고 예불하는 데도 통하네
누더기에 멍충이 같은 이 사람을 웃지 말라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며 또 끊어짐도 없어
소리를 뛰어넘고 빛깔도 뛰어넘어 스스로 한가하거니
세상에 만나는 사람들 비방이나 칭찬 없네
선지식 찾아 진실한 풍모를 이었으니
평산 (平山) 과 서천의 지공 (指空) 을 친히 뵈었네
원제 (元帝) 가 믿어 개당할 때에는 천하에 펼쳤고
우리나라에 돌아와서는 종풍을 떨치었네
헤진 옷 한 벌에
나물밥에 누더기로 의당 도를 향하여
홀로 앉았거나 홀로 다니거나 걸림 없었고
스스로 찾아 도를 물은 일 옛날부터 드물었네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주장자 거꾸로 잡고 두루 돌아다녔네
예나 지금이나 납자에게는 다른 일이 없나니
몸에는 헤진 옷이요 손으로는 용 (龍) 을 살리네
천하를 횡행해도 안 통할 것 없었네
원래 큰 도는 그 자체가 원만한 공 (空) 이며
시방의 모든 법계도 간격이 아니거니
납자의 돌아다님에 무엇이 안 통하랴
강호를 두루 다니며 무엇을 얻었던고
화엄경의 선재동자 선지식을 찾아서
법계를 쉬지 않고 두루 다녔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뜻은 알 수 없네
원래 배운 것이라곤 빈궁뿐이라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공 (空) 을 배워야 하네
진공 (眞空) 을 배워 얻으면 그것이 참도학 〔眞道學〕 이니
분명히 배운 후에는 공이면서 공 아니리
이익도 구하지 않고
자리 (自利) 는 원래 자리가 아니어서
남을 위해야만 자리가 자라나나니
남을 해치는 자리는 전연 이익이 없네
이름도 구하지 않아
이름을 구하면 반드시 높은 지위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고
지위가 높아지면 저절로 교만이 생기거니
무엇 때문에 남은 생에 이런 마음 가질 건가
누더기 납승, 가슴이 비었거니 무슨 생각 있으랴
생각도 마음도 없으매 성품에 생멸 없는데
이름이나 이익을 구하는 사람 어찌 이 맛을 알랴
이 맛의 영화는 세상 영화 아닌 것을
바루 하나의 생활은 어디 가나 족하니
바루 안의 나물밥으로 능히 만족 느끼며
선 (善) 도 닦으려 하지 않고 그저 무심뿐인데
무슨 일로 무간지옥에 떨어지리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
언제나 한결같아 물러나지 않으리라
오래 힘써 공을 이루면 마음 거울 밝아지리니
어찌 수고로이 다시 무생 (無生) 을 깨치려 하겠는가
만족한 생활에
부자가 되었거니
온 세계가 보물창고인들 무엇에 쓰랴
누더기 한 벌 헤진 때에 이미 만족할 줄 알아
내 집의 재보 (財¿) 를 간직해 왔네
또 무엇을 구하랴
내 집에 보배가 가득한데
친구 집에서 취해 누웠다 일어나선 고향을 떠났네
옷 속에 매어 둔 보배구슬을 모른 채 떠나
멀리 타향에 가서 오랜 세월 보냈네
우습구나, 미련한 사람들 분수를 모르고 구하네
전생에 심은 복이 전연 없는 것 같고
금생에도 박복하여 복을 짓기 어렵나니
그리하여 세세생생에 시름만 거듭되네
전생에 지은 복임을 알지 못하는 이는
악인 (惡因) 의 악함이여, 업이 그 악을 따르고
선인 (善因) 의 선함이여, 선이 따라와
선이거나 악이거나 그 인 (因) 은 어긋남이 없느니라
하늘 땅을 원망하면서 부질없이 허덕인다
그것은 하늘이나 땅이 닦아 이룬 것 아니라
제가 그렇게 닦아 제가 얻는 것이거니
내 복을 밖에서 찾아도 찾을 길 없느니라
몇 달이 되었는지
스스로 산에 살아
한 해가 다 가도록 산을 싫어하지 않나니
고사리 캐고 땔나무 주워 밥 먹으면서
한 평생 헤진 누더기를 싫어하지 않노라
몇 해나 되었는지
해마다 해를 보내는데
늙거나 젊거나 죽는 데는 먼저와 나중이 없다
이 몸 절로 늙어가는 것 생각하지 않으면서
누더기 속에서 해마다 해를 보내네
경전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니
애써 마음 쓰지 않으며 자연에 맡겨두네
헤진 누더기 속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아는가
참지혜가 끝이 없어 겁 밖에 현묘하네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원래부터 공도 (公道) 는 막힘이 없어
노인의 머리와 얼굴에 재와 티끌을 끼얹나니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오직 이 누더기 한 벌로 남은 생을 보내는구나
자연 그대로의 옷과 밥은 선정 (禪定) 이 제일이네
저절로 `나'가 없어 3독을 버린 뒤에야
무엇하러 승당에서 애써 좌선하랴
2. 고루가 (奇歌)
이 마른 해골이여
지금 이것이 마른 해골임을 모르면
어느 겁에도 삼계를 벗어나지 못하리
이 물건이 뜬 허공 같음을 알아야 하네
몇천 생 (生) 이나
생사에 윤회하면서 잠깐도 머물지 않고
사생육도 (四生六道) 쉼 없는 곳을
돌아왔다 다시 가면서 몇 번이나 몸을 받았나
축생이나 인천 (人天) 으로 허망하게 허덕였던가
먹이 구해 허덕이나 마음에 차지 않아
이기면 남을 해쳐 제 몸을 살찌우다가
엄연한 그 과보로 업을 따라 태어나네
지금은 진흙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으니
내 뼈는 어디에 흩어져 있는가
이 세계나 다른 세계에 남김이 없이
오며 가며 흩으면서 그치지 않았으리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라
권하노니 그대는 머리 돌려 빨리 행을 닦아라
전생의 과보가 무슨 장애되리오
원명 (圓明) 한 본 바탕 성품바다는 맑으니라
한량없는 겁토록
3아승지를 지나
처음도 끝도 없는 공겁으로부터
이 자체는 원래 모자람이 없었건만
가엾어라, 떠도는 사람들 스스로 미혹하구나
성왕 (性王) 에 어두워
취해서 깨지 못했으니
어리석음과 애증이 인정 (人情) 과 더불어 있었네
지금까지 함께 살던 것 다른 물건 아니건만
탐욕과 어리석음에 취한 듯 자기 영혼 몰랐었네
6근 (六根) 은 이러저리 흩어져 치달리고
검고 희며 누렇고 푸름이 저마다 도량이네
모든 것이 분수대로 제 자리에 편안하거니
어찌하여 제 심왕 (心王) 을 깨치지 못하는가
탐욕과 애욕만을 가까이할 줄 알았으니
먼 과거로부터 가까이해 온 것들을 떠나지 못해
어리석음과 애증이 공덕을 없애건만
지금도 또 그것들을 가까이하는 줄 모르네
어찌 머리 돌려 바른 광명 보호할꼬
머리 돌려 생각생각에 무상 (無常) 을 생각하라
머리 돌려 생각하고 생각하여 생각이 다하면
갑자기 터지는 한 소리에 제 성품이 꽃다우리
이 마른 해골이여
스스로 고향을 잊어버려
오랫동안 고향으로 가는 길이 거칠어 있네
만일 누구나 탐욕과 분노로 벗을 삼으면
그 때문에 수행하는 이들 제 고향을 잃으리라
매우 미련하고 깜깜하여
자비 없나니
가여워라, 떠돌이 아들은 스스로 길을 잃었네
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구업, 세 가지의 의업으로
끝없이 죄를 지어 다시 슬픔 더하네
그 때문에 천만 가지 악을 지었네
끝없이 지은 죄 태산같이 무거워
세상마다 만나는 사람들 모두 좋아하지 않나니
원래 그 과보는 무간지옥에 있네
하루 아침에 공하여 있지 않음을 확실히 본다면
황학루 (黃鶴樓) 를 지을 때 누가 기둥 세웠던가
황학이 한 번 떠나 다시는 오지 않고
지금은 온 세상이 텅 비어 있네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늘히 몸을 벗으리
이 뜻을 어찌하면 자세히 볼꼬
어떤 물건이나 인연을 만나도 별것 아니요
봄꽃이나 가을달이 똑같이 싸늘하리
그 때를 놓쳤으니
어느덧 머리에는 눈 서리 올랐는데
세상의 탐욕은 늙는 줄 모르지만
늙거나 젊거나 죽는 일은 먼저와 나중이 없네
가장 좋은 시절이라
평생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는 참으로 드물거니
종자 심고 도를 닦되 미진한 구석없게 하고
한가히 노닐면서 좋은 시절 잃지 말라
이리저리 허덕이며 바람 따라 나는구나
힘쓰고 애태우며 오욕에 미혹되네
빛깔과 소리를 탐해 벌이 술잔에 떨어지듯
몸과 목숨 잃는 것 부처님이 슬퍼하네
권하노니 그대는 지금 빨리 머리를 돌이키라
삼계는 편치 않거니 왜 그리 오래 머무는가
빨리 윤회의 화택 속에서 나와
열반의 참 즐거움에 언제까지나 살아라
진공 (眞空) 을 굳게 밟고 바른 길에 돌아가라
진공에 돌아가기는 진실로 어렵나니
고금의 납자들은 어떤 것을 의지했던가
지금부터는 조계 (曹溪) 의 한마디에 의지하여라
모였다 흩어지고
항상 모였다 흩어지는 뜬구름같이
감도 없고 옴도 없는 것에 서로 미혹되어
여기저기 모였다 다시 흩어진다
오르고 빠짐이여
둥우리에 올라 살고 구멍에 빠져도 살아
차별된 여러가지 중생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니
생사는 아득한데 업의 바다는 깊어라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마음 편치 않구나
아무데도 편치 않아 고해에 잠겼을 때
부처님은 세 수레*로 문 앞에 서서
화택에서 끌어내어 여여한 마음에 앉게 한다
그러나 한 생각에 빛을 돌이킬 수 있다면
마지막 의지처인 자기 부처 찾으리
허공 같은 그 자체에 부처가 있나니
자연 그대로인 부처를 어디 가서 찾는가
단박에 뼛속 깊이 생사를 벗어나리라
본래 얕은 것도 아니요 깊은 것도 아니라
서로 만났어도 분간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분간하기 어려움은 본래 깊기 때문이네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무거운 남의 물건 진 것은 없느니만 못하나니
괴롭고 쓰라린 인연을 어떻게 하면 깨달을까
머리에 뿔이 없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머리에 뿔이 있거나
있고 없는 머리의 뿔은 그 바탕이 같나니
갖가지의 형상은 마음이 지은 것이라
3도를 기어다니며 어찌 깨닫겠는가
세세생생에 자꾸 씨앗을 그르치면
처음도 끝도 없는 괴로운 곳에 나리리
3도의 괴로운 과보를 어떻게 떠나리
갑자기 선각의 가르침 만나
육조는 경전 읽는 소리 듣고 도를 깨쳤으니
3장 (三藏) 의 부처님 말씀 왜 뒤에 남았는가
중생들 인도할 때에 입이 먼저 열렸네
여기서 비로소 잘못된 줄 분명히 알았나니
축생이나 귀신의 세계도 마음이 지은 것이요
천당도 지옥도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
옛 성인들은 본래 마음을 크게 깨달은 사람이다
혹은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어리석은 마음을 익혀 삼독 (三毒) 이 일어났지만
삼독이 공 (空) 함을 익혀 안다면
보리의 제 성품은 저절로 삼매 (三昧) 이리
혹은 탐욕과 분노로
망령되이 허덕거려 번뇌가 새로운데
번뇌와 보리가 하나임을 알 때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공겁 (空劫) 의 몸이리라
곳곳에서 혼미하여 허망한 티끌 뒤집어써서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자기 몸 괴롭히는 줄 알지 못하네
사람마다 물욕으로 사랑과 미움 생기거니
무슨 일로 지금에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려 하는가
머리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졌는데
본래의 그 면목은 어디 있다 하겠는가
어찌하여 불조 (佛祖) 는 자취를 감췄는가
눈만 뜨면 모두가 본래 주인인 것을
어디서 참사람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청정 본연의 참 법신을 볼 수 있을까
모두 비어 한 물건도 없다고 말하지 말라
삼라만상이 다 본래 그 사람이네
나기 전에 잘못되었고
전생의 인 (因) 에서
엄연한 전생에 수행하지 않은 사람
잘못된 그 과보가 엄연히 이 생에 있나니
이 생에 닦지 않는 사람 후생에 괴로우리
죽은 뒤에 잘못 되어
금생에 지은 연 (緣) 에서
선업이나 악업의 인은 먼저와 나중이 없으니
부디 금생에 악업을 짓지 말라
금생에 지은 업으로 후생에 과보 받으리
세세생생 거듭거듭 잘못되었으나
생사에 윤회하는 것 그 악법 때문이니
생사에 윤회하면서 그 괴로움 계속되리
원하건대 머리 돌이켜 정각 (正覺) 으로 돌아가라
한 생각에 무생 (無生) 을 깨달아내면
마음도 법도 무생 (無生) 이라 본래 나지 않으니
본래 나지 않는 것 어디 있는가
봄이 오니 온 누리에 풀이 청정하구나
잘못되고 잘못됨도 원래 잘못 아니리
당당히 깨친 뒤에는 끝내 잘못이 없고
고금의 성현들은 찾아도 그 자취 없나니
이것이 이른바 진실한 깨달음이네
거칠은 것에도 집착하고
애정에 떨어져
눈으로는 빛깔 탐하고 귀로는 소리 찾네
괴로움인 줄 알지 못하고 쾌락에 얽매여
물욕에 끌려다니면서 한 평생을 보낸다
미세한 데에도 집착하여
구하는 마음 있어
세상의 이름과 이익에 무심하지 못하나니
금과 은과 옥과 비단에 번뇌를 내어
물욕으로 탐내면서 괴로움 더욱 깊어진다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전연 깨닫지 못하다가
집착함이 어째서 잘못인 줄 알지 못하나니
마치 경솔한 부나비가 불을 탐하고
꽃술 찾는 벌이 향기와 맛에 집착하는 것 같네
갑작스런 외마디소리에 후딱 몸을 뒤집으면
지금까지의 허깨비는 바로 빈 몸이었네
본래의 면목은 어디 있는가
물건마다 일마다 새롭고 또 새롭네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리라
여여해서 흔들리지 않는 무위 (無爲) 의 즐거움
마음이나 법도 본래 그와 같아서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는구나
혹은 그르다 하여
좋지 않은 마음이 생겨 눈썹을 찌푸리고
갑자기 나쁜 말로 그를 나무라노니
그런 사람은 원래 선 (善) 이 아주 적었으리
혹은 옳다 하여
애정과 탐욕을 자주 일으켰다가
이별하는 고통 속에 빠져 있나니
삼현십성도 구제하기 어렵네
시비의 구덩이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근심하다가
좋다 기뻐하고 싫다 근심하는 것이 어찌 다르랴
눈썹을 치켜뜨고 자세히 보라
셋도 아니요 하나도 아니며, 그렇다고 둘도 아니니라
어느 새 몸이 죽어 백골무더기뿐이니
마음도 비고 경계도 고요한데 이 무슨 무더기인고
세간의 어떤 물건이 죽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랴
불과 바람은 먼저 떠나고 백골무더기뿐이네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하지 못하네
온갖 것으로 장엄된 보배는 고향에 있었나니
중생들은 탐애 (貪肯) 로 허덕거리지마는
오직 부처님은 6화 (六和) *로 자재를 행하셨네
이 마른 해골이
이것을 어찌할까
한 무더기 마른 뼈를 어떻게 보호할까
전생에 수행하지 않았거늘 지금 누가 보호하랴
혹은 진흙 구덩이에 있고 혹은 모래밭에 있네
한번 깨치면
큰 문이 열리고
깨친 사람의 뼈는 여섯 신통 트인다
예전에는 비싼 값으로 그 뼈를 사서
높은 누대 (樓臺) 위에 부도를 세웠다
광겁의 무명도 당장 재가 되어서
원래 밝고 어두움과 번갯불 천둥은
큰 허공 속에서 숨었다 나타나지만
큰 법이야 원래 무슨 차별 있으랴
그로부터는 항하사 불조의
끝없는 지혜의 해가 허공에 가득 비치리니
삼라만상에 아무 의심 없어지고
큰 도는 여여하여 모자람이 없으리라
백천삼매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부러워하지도 않거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
부처와 중생이 다 같은 무리니
여러분은 여기서 조금도 의심 말라
부러워하지도 않는데
자세히 보아라
신령한 광명은 홀로 두루 비추어 빈틈없나니
본래의 참성품은 모든 반연 끊었고
참지혜는 끝없고도 무심하니라
무슨 허물 있는가
지극히 영롱하여
한 점의 티도 없이 모든 것에 통하나니
어리석은 사람들 앞에서는 경계가 되고
지혜로운 사람 곁에서는 모두 다 순종하네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 되나니
물건마다 일마다 그 자리이며
티끌마다 세계마다 내 고향이라
라라리리 한마디에 태평하네
쟁반에 구슬 굴리듯 운용할 수 있다면
생사는 끊임없이 업의 바다로 흐르는데
떠돌이 아들은 고향떠난 지 얼마나 되었던가
생각하는 업의 바다 아직도 흐르는구나
겁석 (劫石) 도 그저 손가락 퉁길 사이에 지나가리
돌아올 겁석도 그 수가 항하사 같거니
고향 떠난 떠돌이 아들 오래됨을 어떻게 알리
앞뒤가 아득하고 한참 아득하구나
법도 없고
무엇으로 통할까
고요하고 아득하여 무지 (無智) 에 싸여 있네
적멸 (寂滅) 한 성품 안에서는 어떤 맛도 보기 어렵지만
어려운 중에도 이치와 일 두 가지는 공 (空) 하기 어렵네
부처도 없고
무엇으로 음미 (吟味) 할까
본래부터 성인도 없고 또 범부도 없고
원래 큰 바탕에는 더하고 덜함 없어
부처와 중생이 모두 똑같네
마음도 없고 물질도 없네
경계도 비고 마음도 고요하면 본래 아무 것도 없나니
경계와 마음, 마음과 경계를 어떻게 말할까
마음과 경계, 경계와 마음, 마음도 경계도 없네
여기에 이르러 분명한 이것은 무엇인가
이렇지 않은 것은 이런 것 가운데 이렇지 않은 것이요
이런 것은 이렇지 않은 것 가운데 이런 것이다
이런 것 가운데 이렇지 않은 것은 그대로가 이치인 것이요
이렇지 않은 가운데 이런 것은 이치 그대로가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치 그대로가 일이요, 일 그대로가 이치라 하지마는
거기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나니
봄이 오면 여전히 온갖 꽃피고 오가는 새들은 갖가지로 지저귀며
풀이 푸른 언덕에는 소치는 아이 노래하네
추울 때는 불 앞에서 나무조각 태운다
더울 때는 그늘로 가 음지에서 쉰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대로가 진실이라
일마다 물건마다 부처의 참뼈이네
3. 영주가 (靈珠歌)
신령한 이 구슬
이 노래 부르나니
온갖 보배 장엄이 항하사 세계를 둘러싼다
원래 이 보배는 값할 수 없는 보배라
사바세계 값으로 매기면 더욱더욱 어긋나리
지극히 영롱하다
한 점 티가 없거니
본래 그대로 청정하여 한 점의 티도 없다
적멸 (寂滅) 하고 응연 (應然) 함을 누가 헤아릴까
티끌같이 한없는 세계에 그 자체는 헛꽃 〔空華〕 같네
그 자체는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 안팎이 비었는데
두렷이 밝고 고요히 비치어 일마다 통하고
밝고 분명하며 끊김이 없고
처음도 끝도 없이 겁 (劫) 밖에 통하네
사람마다 푸대 속에 당당히 들어있어서
큰 활동은 봄과 같아 모자람이 없나니
물건마다 일마다에 진실한 바탕 완전하고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 주인이 되네
언제나 가지고 놀아도 끝이 없구나
오면서 쓰고 가면서 쓰매 그 쓰임새 풍족하다
이제껏 이 보배는 다함이 없어
원래 허공에 가득하며 자체는 바람 같네
마니구슬이라고도 하고
물건으로 이름을 붙이나
자체는 허공과 같아 그림자도 형상도 없다
어떠한 물건도 일도 다른 데서 생긴 것 아니거니
반드시 만물이 있어 그 이름을 얻는다
신령한 구슬이라고도 하니
그 성품 신령하나니
실제로 업이 있어 생을 받고 실제로 업을 지어간다
전생에 후생의 인 (因) 을 짓고 그 인이 없어지지 않아
사생육도에 온갖 모습이 된다
이름과 모양은 아무리 많아도 자체는 다르지 않네
봄이 오기 전에 만물을 다 알 수 있는가
만물을 다 알려면 괜스레 수고로울 뿐
한 항아리의 봄으로 전체를 알아야 하리
세계마다 티끌마다에 분명하여
한 줄기 신령한 광명은 고금에 빛난다
티끌마다 세계마다 모두 다른 것 아니요
자기의 신령한 광명이 환한 그것이라네
밝은 달이 가을 강에 가득한 듯하여라
한 점 신령한 광명에 또 무엇이 있는가
다른 곳에서 그것을 찾으면 한갓 힘만 허비하리라
밝고 밝은 보배달이 가을 강에 가득하네
배고픔도 그것이요
배고프면 밥먹고 피곤하면 잠자기 조금도 어김없는데
어김없는 그것은 다른 데서 오는 것 아니라
인연 따라 작용하는 제 고향집이니라
목마름도 그것이니
조주 노스님 사람들에게 차 한 잔 대접했다
이 작용을 의심 않고 이 작용을 잘 알면
의심 않는 이 작용은 다른 것이 아니네
목마름 알고 배고픔 아는 것 대단한 것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 스스로 자기 집에 사는가
여여 (如如) 한 것만이 여여한 이것이라
여여하지 못하면 또 다시 어긋나리
아침에는 죽먹고 재 (齋) 할 때는 밥먹으며
목마르면 아이 불러 차 한 잔 마시노라
문 밖에 해는 지고 산은 고요하나니
앞창에 달은 밝고 흰 구름 흩어지네
피곤하면 잠자기에 어긋남이 없어라
천 가지 세상 일 모두 다 어긋나지 않네
목동은 해를 향해 봄풀 위에서 자는데
어부는 저물어 와서 모래 언덕에 배를 대네
어긋남도 그것이요
산은 산이라
조각조각 흰 구름은 앞산을 지나가네
솔솔 부는 맑은 바람은 소나무에 걸리고
재승 (齋僧) 은 연기 나는 절을 한가히 오고 가네
바름도 그것이라
물은 물이라
책상머리의 폭포는 잔잔히 떨어진다
문 밖에는 푸른 산, 반은 푸른 하늘인데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수고로이 입을 열어 미타염불 할 것 없네
한 걸음도 옮기지 않는 거기가 바로 네 집인데
무엇하러 사방을 향해 입을 열어 염불하랴
무심한 그 자리가 모두 어긋나지 않는데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집착하지 않으면
적멸 (寂滅) 한 성품 가운데서 무엇에 집착하랴
만물을 내는 봄도 그와 같아서
만물을 내면서도 집착하지 않거니
세간에 있어도 자유로우니 그가 바로 보살이라
소리 듣고 빛깔 보는 것 다른 물건 아니다
일마다 물건마다에 주인이라 이름하나니
물건마다 일마다가 곧 보살이니라
이 마음구슬은
분명하고 똑똑히 모든 물건에 따르지만
그 자체는 허공과 같아 안도 바깥도 아니어서
거짓으로 이 마음구슬이라 이름하였네
붙잡기 어려우니
영롱한 그 정체를 누가 붙잡을 수 있으리
멀고 먼 겁 동안을 홀로 높고 둥근데
범부도 성인도 아득하여 헤아리기 어려워라
분명하고 영롱하나 붙잡기 어려움이여
영롱한 그 정체를 누가 얻을 수 있으랴만
그 가운데서 깜깜한 공 〔頑空〕 에 집착 말라
버들은 푸르고 복숭아꽃은 붉은데 오얏꽃은 왜 흰가
형상도 없으면서 형상을 나타내고
경계와 마음이 둘이 아닌데 경계와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경계가 고요하고 마음이 비면
허깨비처럼 텅 빈 데서 묘함이 절로 밝네
가고 옴에 자취 없어 헤아릴 수 없구나
이리저리 자재함을 누가 알 수 있으리
아득한 겁 동안을 홀로 높고 허공처럼 평등하거니
이 도는 무심이라야 비로소 얻느니라
쫓아가도 따르지 못하는데
애써 찾지 말지니라
마음 두고 있는 이 그 누구인가
누가 가고 누가 찾기에 쫓아가도 따르지 못하는가
앞도 없고 뒤도 없어 더더욱 아득하네
갑자기 스스로 온다
무엇이 갔다 오는가
경전에는 '감도 없고 옮도 없다'하였거니
분명한 부처님 말씀을 헤아려 하지말라
가까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며 가고 오는 것도 아니네
잠시 서천에 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옴이여
발로는 갈 수 없으나 능히 돌아왔네
큰 법은 원래 얻을 수 없다지만
봄바람에 복숭아꽃 오얏꽃은 곳곳에 피어있네
놓아버리면 허공도 옷 안에 드는데
허공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네
비로자나의 한 몸을 어떻게 말할까
봄이 온들, 만물들 무슨 뜻이 있는가
거둬들이면 작은 티끌보다 쪼개기 어렵다
털끝만큼도 허락하지 않아 실로 쪼개기 어렵고
백천만의 입으로도 분명히 말하기 어렵거니
여기서 찾지 못하면 어디서 얻어오리
헤아릴 수 없어라
영롱한 그 성품이여
만법을 내는 그 바탕 뚜렷하고 텅 비었다
끝도 없고 처음도 없으며 늘고 주는 것도 없이
홀로 빛나는 신령한 광명은 고금을 통해 있네
견고한 그 몸이여
그 수명 어찌 헤아리리
여여해 움쩍 않으매 금강 (金剛) 이라 이름했네
분명하고 똑똑하며 늘거나 줄지도 않나니
꼬물거리는 중생까지도 그 본성 (本性) 의 왕이 되네
석가모니는 그것을 제 마음의 왕이라 불렀나니
부처와 중생들의 성품의 왕이 되네
그 성품의 지혜는 원만하고 밝아 걸림 없으매
봄처럼 음양을 고르게 내는구나
그 작용이 무궁무진한데도
가거나 오거나 작용하거니 그 작용 어찌 끝 있으리
봄이 오면 뭇나라가 한꺼번에 봄이 되어
온갖 생물들 다시 새로워져 봄이 끝이 없어라
세상 사람들 망령되이 스스로 잊는구나
허망하게 허덕일 때 고향 길이 거칠고
나고 죽음 아득하여 앞길 끊어졌나니
고금의 떠돌이 아들들 제 고향 잃었도다
바른 법령 시행되니
무심의 행이로다
만일 누구나 바로 말하고 바로 행하면
양 극단 〔二邊〕 이나 중도 (中道) 에서 어찌 길을 그르치리
그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행이니라
누가 그 앞에 서랴
어찌 그대 없는가
열반회상에서는 석가가 높았는데
용화세계 삼회 (三會) 에는 미륵이 주인되리니
세간이나 출세간의 주인에게는 존귀함 있네
부처도 마구니도 모조리 베어 조금도 안 남기니
이치로는 완전하나 일로는 빠뜨렸으니 일없이 놀지 말라
이치로는 완전하나 일로는 빠뜨렸으면 어떻게 바로잡을까
납자들은 그 가운데 머물지 말라
그로부터 온 세계에 다른 물건 없고
이치와 일이 완전한데 누가 고쳐 말할 건가
자기 스스로 절로 통했거니
버리지 않아도 저절로 다른 물건이 없네
강에는 피만 가득하여 급히 흐른다
있느니 없느니 다툼이 쉬지 못하니
윤회하는 생사가 언제나 다할 건가
생사는 끝없이 업의 바다로 흘러간다
눈으로 보지 않고
앞의 반연 끊어져
삼라만상이 눈앞에 가득한데
죽은 사람 아니라면 어찌 보지 못하는가
본래 면목은 스스로 원만하였거니
귀로 듣지 않으나
어찌 소리 없던가
향엄 (香嚴) 이 대나무 때릴 때* 어찌 소리 없던가
소리 들어 도를 깨치고 소리와 빛깔 벗어나면
옛날의 그 향엄이 바로 문 앞에 오리
보도 듣도 않음이 진짜 보고 들음이라
소리 듣고 빛깔 봄을 어떻게 말한 건가
다만 일에 있어서 일없음을 깨달으면
빛깔 보고 소리 들음이 진짜 보고 들음이리
그 가운데 한 알의 밝은 구슬 있어서
소리와 빛깔 속에서 제 자리에 편안한데
무슨 일로 요새 사람 밖을 향해 구하는가
마음이 곧 물건인 것, 그것이 귀하니라
토하거나 삼키거나 새롭고 새로워라
본래 거두고 놓는 것이 바로 제 참몸이니
당당한 그 정체는 늘거나 주는 법 없고
분명하고 똑똑하여 겁 밖에서 새로워라
마음이라고도 하고
본래 마음 없는데
경계가 있으면 마음도 따라 본심이 생겼다가
경계가 고요해지면 마음도 그에 따라 사라지나니
본래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경계도 아니다
성품이라고도 하는데
성품에는 생멸 없으니
본래 청정한 자체는 두렷하며 평등하다
성품은 허공과 같아 일정한 장소 없고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네
마음이든 성품이든 원래 반연의 그림자라
마음과 법은 본래 형체와 그림자 같아
한낮의 형체와 그림자는 걸음걸음 서로 따르나
앞 경계 없어지면 그림자도 따라서 사라진다
만일 누구나 여기에 의심 없으면
들고 오는 물건마다 모두 다 기틀이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오로지 묘한 바탕이거니
어찌 수고로이 밖을 향해 귀의하랴
신령스런 자기 광명 언제나 빛나리
한 줄기 찬 기운이 두렷한 거울 같아
삼라만상이 모두 그 앞에 나타나니
삼라만상은 진실로 거울의 그림자다
도 (道) 라고도 하고
도는 형상 없으며
큰 도는 원래 이름도 없다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끊어지는 것도 아니라
처음도 끝도 없어 겁 밖에 평등하다
선 (禪) 이라고도 하나
우는 아이 달래나니
동남에도 있지 않고 서쪽에도 있지 않은데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노란 잎사귀 붙들고서
불자들은 승당 앞에서 벽을 향해 앉았네
선이나 도란 원래 억지로 한 말이거니
원래부터 묘한 도는 본래 그러한 것을
본래 그러한 묘한 도를 뉘라서 만들어내리
영원히 홀로 높아 천지보다 먼저 있는데
비구니도 여인으로 된 것임을 진실로 알면
파랑 노랑 빨강 하양은 그 누가 만든 건가
봄이 오면 예와같이 복숭아꽃 절로 붉어
모든 것이 분명하거니 왜 깨치지 못하는가
걷는 수고 들이지 않고 저곳에 도착하리
너나 나나 이제껏 아직 그렇지 못한 것을
처음도 끝도 없고 멀거나 가까움도 없어
본래 그러한 묘한 도는 바탕이 비어 있네
부처도 없고
중생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지만
집어오는 모든 물건 다 기틀이라
본래의 그 면목은 원래부터 차별 없다
마구니도 없으니
부처와 중생과 마구니
산과 강, 모든 만물들
앓는 눈의 헛꽃 같구나
마구니도 부처도 뿌리 없는 눈 〔眼〕 속의 헛꽃인 것을
이 뜻을 알지 못하면 또 어찌할까
모든 것은 다 다른 물건 아니나
눈먼 사람이 집에 가는 길을 잃은 것 같네
언제나 날로 쓰면서 전혀 아무 일 없으나
자성 (自性) 이 인연 따라 일에 응한다
분명한 부처와 조사들 찾아도 알 수 없으나
봄이 오면 여전히 장미는 자주빛이다
신령한 구슬이라 하면 나무람을 받으리
참이름은 붙일 수 없고 자체는 허공꽃이니
아득한 겁 밖에서 늘지도 줄지도 않고
온갖 법을 능히 내거니 그 작용 어떠한가
죽음도 없고
누가 저 허공이 끝나거나 생기는 일 보는가
저 큰 허공은 끝나거나 생기는 것 아니거니
원래부터 그 바탕은 죽음이 없네
남도 없이
가여워라, 아득하고 끝없는 정 (情)
대지에 봄이 와 만물을 내지마는
한 항아리의 봄뜻은 본래 남이 아니다
항상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다니며
대지의 사람들 몸은 어디서 생겼는가
대지와 비로자나는 진실로 한몸이라
야인 (耶人) 은 대지를 떠나지 않고 다니네
때에 맞게 거두거나 놔주니
가을달 봄꽃이요 겨울에는 눈이 있다
여름의 뜨거운 볕은 누구 힘인가
바람이 오고 바람이 가면 그 철을 알 수 있네
자재하게 들고 씀에 골격이 맑아라
큰 바다의 맑은 물
온갖 배들 오가지만 맑은 것 같아
본래 청정하여 겁 밖에 평등하다
머리도 없고
자체가 두렷하나니
자체에 머리 없으면 뒤와 앞이 끊어지고
한 알의 두렷한 광명은 안팎이 없어
시방세계 어디고 모두 다 둘러쌌네
꼬리도 없는데
누가 고쳐 말할 건가
자성의 보배구슬은 꼬리도 머리도 없이
분명하고 똑똑하여 겁 밖에 평등하나니
만일 제 성품을 든다면 본래 이룬 부처이리
서거나 앉거나 분명하여 언제고 떠나지 않는구나
형체를 따르는 그림자 같아 언제나 함께하듯
법성 (法性) 은 원래부터 먼저와 나중 없어
형체와 그림자가 동시에 서로 따라다니듯 하네
힘을 다해 쫓으나 그는 떠나지 않고
마음 그대로가 물질이거니 무엇을 따로 들리
해마다 복숭아꽃과 살구꽃은 누구를 위해 붉은가
곳곳의 푸른 버드나무에는 말을 맬 만하거니
있는 곳을 찾아보아도 알 수가 없네
이 몸과 마음과 함께 있나니
나도 아니요 남도 아니라 잡기가 어렵지만
자기 스스로 찾아보면 본래 그 사람이리
하하하
우스워라
꽃을 들고 대중에 보인 것, 본래 그러하거니
음광 (飮光) 이 지은 미소가 무얼 그리 신기하리
부처의 뜻과 조사의 마음은 본연 (本然) 에 합한 것을
이 어떤 물건인가
만나거나 만나지 않거나
마음법은 원래 공하면서 공하지 않나니
물건마다 일마다 분명하고 똑똑하나
찾고 찾아보면 또 그 자취 없으리
1, 2, 3, 4, 5, 6, 7
오직 부처만이 깊고 깊은 그 뜻을 알리라
부처와 조사의 그윽한 문이 곳곳에 밝아
8월 단풍에 때는 가을이로다
세어 보고 다시 세어 보아도 그 끝이 없구나
세어 보고 또 세어 본들 그 수 어찌 다할 건가
항하의 모래수는 모두 셀 수도 있어도
세고 또 세 보아도 역시 끝이 없어라
마하반야바라밀!
날마다 밝고 밝은 부처해가 밝도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분명히 밝고
일마다 물건마다 바라밀이네
【주】
*비에는 `推'자로 되어 있다. 【원문 주】
*비에는 `三重'으로 되어 있다. 【원문 주】
*비에는 `領藝文春秋¿事'로 되어 있다. 【원문 주】
*비에는 이 네 자가 없다. 【원문 주】
*비에는 `丹幷'으로 되어 있다. 【원문 주】
*백양 (百陽) :지공스님의 방장실 【원문 주】
*이 두 곳에 있었던 이야기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원문 주】
*정안 (正安) :지공스님의 방장실 【원문 주】
*중사 (中使) :왕명을 전하는 내시.
*게송은 어록에 있다. 【원문 주】
*이것은 어록에 나온다. 【원문 주】
*이것은 어록에 나온다. 【원문 주】
*묻는 내용과 10절·3관은 모두 어록에 실려 있다. 【원문 주】
*이 절은 가까이는 삼각산 (三角山) 을 마주하였고, 남쪽에는 한강이 있으며 북쪽에는 장단
(長汞) 이 있으니 `삼산양수'라는 말을 환히 볼 수 있다. 【원문 주】
*이것은 어록에 나온다. 【원문 주】
*우란 (枳蘭) 은 인도말로 `거꾸로 매달림'이라는 뜻. 목련존자는 어머니가 지옥도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고는 안타까워 세존께 구원을 청했다. 세존은 하안거 마지막날 법회 (우란법회)
를 열어 지옥·아귀도의 중생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고 법을 설하였다.
*욕불 (浴佛) :초파일에 탄생불을 목욕시키는 의례.
*세 서까래 〔三條椽〕 :승당에서 앉는 자리는 한 사람마다 길이 6척, 너비 3척으로 지정되
어 있는데, 너비로 보면 머리 위 천정의 서까래 세 개의 넓이에 해당하므로, 한 사람의 자리
를 이렇게 말함.
*일곱 자 단 〔七尺單〕 :승당에서 한 사람의 앉는 자리를 말함. 한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
는 단 (單) 앞 길이 6척, 너비 3척인데, 그 6척에 단판 (單板) 의 길이 1척을 합하면 7척이
되므로 이렇게 말함.
*금강권 (金剛) :금강은 견고하다는 뜻. 권은 구역. 남이 엿볼 수 없는 곳.
*율극봉 (栗棘蓬) :가시 돋힌 밤송이. 삼킬 수도 없고 토할 수도 없는 학인의 `문제'를 비유
하는 말.
*개광 (開光) :개안 (開眼) 또는 점안 (點眼) 이라고도 한다. 새로 조각한 불상에 처음으로
공양하는 것.
*파주구 (把住句) :스승이 학인을 다루는 수단으로서, 꼭 쥐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방행구 (放行句) :파주구의 반대로서 구속하지 않고 자유에 맡기는 것.
*양반 (兩班) :반은 벌려 선다는 뜻. 즉 선원에서 대중의 일을 맡아보는 소임들.
*섬주의 무쇠소:중국 섬주 (지금의 하남성) 에 있는 상징물. 황하를 수호하는 신으로서 머리
는 하남에 있고 꼬리는 하북에 있다.
*가주의 대상:당나라 현종 때에 사문 해통 (海通) 이 가주의 큰 강가에 높이 360척의 미륵
불 석상을 만들었다.
*기골 (起骨) :사람이 죽어 화장한 뒤에 그 영골을 거두어 탑에 넣기 위해 보내는 일.
*하화 (下火) :하거 (下炬) . 화장할 때 불을 붙이는 일.
*대어 (代語) :①옛 공안을 들어보일 때 옛사람이 말 못한 곳을 대신해서 하는 말. ②스승과
제자가 문답하다가 제자가 답하지 못할 때 곁사람이나 스승이 대신하는 말.
*착어 (着語) :옛 글귀에 대해서 붙이는 짤막한 평.
*장자.
*노주 (露柱) :불당이나 법당 밖 정면의 좌우에 세우는 두 기둥.
*등롱 (燈芼) :법당 앞에 불을 켜기 위하여 쓰는 기구.
*남전의 꿈.
*위산·앙산.
*차군 (此君) :대나무의 별칭. 진 (晋) 의 왕휘지 (王徽之) 가 대나무를 차군 (此君) 이라고
일컬은 데에서 유래함.
*계봉 (鷄峰) :인도 마가다국에 있는 계족산 (鷄足山) . 가섭이 죽은 곳.
*6근 (六根) 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등 각각 자기 영역만을 반연하는데, 여기서 원통이
란 6근 호용 (互用) 을 의미한다.
*누라 () :산적이 그 부하를 부르는 소리.
*묘정명심 출처.
*5위.
*금속은 금속여래로서 유마거사의 전신을 말하며, 여기서는 유마가 침묵한 뜻을 의미함.
*두 가지 지혜. 이지 (理智) 는 깨닫는 지혜, 양지 (量智) 는 깨달음을 쓰는 지혜.
*원문 제목의 분명 (¿明) 은 분별 (¿別) 인 듯하다.
*○○쪽 각주 참조.
*○○쪽 각주 참조.
*원문에는 없으나 번역자가 보완해서 넣었음.
*운문록.
*널쪽을 짊어진 사람처럼 한 쪽만 보고 다른 한 쪽은 보지 못한다는 뜻.
*법화경 비유품에 말한 양 수레, 사슴 수레, 흰 소수레.
*보살이 계율·견해·행·인자한 마음·인자한 말·인자한 뜻으로 중생들과 화합하는 것.
*향엄스님.
*혼금 (渾金) 은 제련하지 않은 금으로, 원래 완전함을 뜻함.
*4은:부처, 국왕, 부모, 신도의 은혜.
*차잎을 따다가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말하였다."종일 차를 따는데, 그대의 소리만 들릴
뿐 모습은 보이지 않는구나!"앙산스님이 차나무를 흔들어 보이자 위산스님이 말하였다."그대
는 작용만 얻었을 뿐, 본체는 얻지 못했다.""그렇다면 스님께선 어찌하시겠습니까?"위산스님
이 한참을 묵묵히 있으니 앙산스님이 말했다."스님께선 본체만을 얻었을 뿐 작용은 얻질 못
하셨습니다.""네놈에게 몽둥이 30대를 때려야겠구나."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그대는 묘정명심 (妙淨明心) 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가?""산하대지와 일월성신입니다.""그대는 단지 사 (事) 만을 밝혔을 뿐이다.""스님께서는 방
금 무엇을 물으셨는데요?""묘정명심!""사 (事) 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그래, 그래."
*위앙록 (선림고경총서 권13) pp.53∼54 참조.
*조동록 (선림고경총서 권14) pp.82∼84와 임간록 下 (선림고경총서 권8) p.157 각주 참조.
*번역자가 보완해 넣었다. 【편집자 주】
*번역자가 보완해 넣었다. 【편집자 주】
*번역자가 보완해 넣었다. 【편집자 주】
*인사한 말은 적지 않는다. 【원문 주】
*인사한 말은 적지 않는다. 【원문 주】
*인사한 말은 적지 않는다. 【원문 주】
*문답한 것은 적지 않는다. 【원문 주】
*원제는 `고려국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 시선각
탑명 및 서 (高麗國王師大曹溪宗師禪敎都±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諡禪覺塔銘
幷序 ) '이다.
*원제는 `고려국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ㅈ존자 시선
각 나옹화상 행장 (高麗國王師大曹溪宗師禪敎都±攝勤修本智重興祖風福國祐世普濟尊者諡禪
覺懶翁和尙行狀) '이다.
*인사말은 적지 않는다. 【원문 주】
*장자 (壯子) 가 물 〔濠〕 가 다리 위에서 노닐다가 장자가 먼저 말했다."물고기 〔貌〕 가
저렇게도 자유롭게 나와 노닐으니, 이야말로 물고기의 기쁨이다.""자네가 물고기가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가 기쁜 줄을 아는가?""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기쁨을 모
른다는 것을 아는가?""내가 자네가 아니므로 사실 자네를 모른다. 그렇듯이 자네가 본디 물
고기가 아니므로 물고기의 기쁨을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다.""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자네
가 나더러 `어찌 고기의 기쁨을 아는가?'라고 했을 때 벌써 자네는 내가 고기의 기쁨을 안
다는 것을 알고서 물은거 아닌가. 나는 물 〔濠〕 가에 있음을 알 뿐이네."
나옹화상 승원가 (懶翁和尙僧元歌)
승원가 (僧元歌) *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세사탐착 그만하고 世事貪着其萬何古
참괴심을 이와다서 慙愧心乙而臥多西
한층염불 어떠하뇨 一層念佛何等何堯
어젯날 소년으로 昨日少年乙奴
금일백발 황공하다 今日白髮惶恐何多
아침나절 무병타가 朝績那殘無病陀可
저녁나절 못다가서 夕力羅未多去西
손발접고죽난인생 手足接古死難人生
목전애 파다하다 目前頗多何多
금일이사 무사한달 今日以士無事旱達
명조를 정할손가 明朝乙定爲孫可
고생고생이 주어모아 困困而拾我會我
몇백년 살라하고 幾百年生羅何古
재물 부족심은 財物不足心隱
천자라도 없잔나니 天子羅道無殘難而
탐욕심을 물리치고 貪欲心乙揮耳治古
정신을 떨쳐내여 精神乙振體出餘
기묘한 산수간애 奇妙旱山水間厓
물외인이 되려문다 物外人而道汝文多
사람되기 어렵거던 人道其難業去等
맹구우목 같다하니 盲龜遇木如陀何而
불보살 은덕으로 佛菩薩恩德以奴
이몸되야 나왔으니 此身道也出臥是以
이아니 다행하냐 伊安耳多幸何也
부처님 은덕으로 佛體主恩德乙奴
촌보도 잊지말고 寸步道忘之末古
아미타불 어서하야 阿邇陀佛於西何也
극락으로 돌아가자 極樂乙奴歸我可自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불쌍코 가련하다 殘傷古可憐何多
백년도 못다사는 百年刀牟多生隱
이한몸을 구지믿아 以一身乙具之未陀
무산재미 보라하고 無散慈味見羅何古
먹고남은 전답사기 飮古餘隱田沓四其
쓰고남은 재물로난 用古餘隱財物以難
시사로 경영하야 時土老脛營何也
무익한 탐심으로 無益旱貪心乙奴
정상애 보랴한다 頂上厓寶羅限多
깨치려는 주인공아 覺治餘隱主人公我
석숭이도 재물로 죽고 石崇耳刀財物奴死古
원단이도 구잔나니 苑丹耳刀君殘羅而
가난계 유여계와 艱難界有餘界臥
잘되기 못되기난 (自+乙)刀其未刀其難
전생애 지은대로 前生造隱大奴
이몸되야 나올적에 此身刀也出來除介
하늘이 정한대로 마련하 天定以奴馬鍊何也
재천명백 하얏거던 在天明白何也去等
초목끝애 이슬같은 草木末露如隱
위태한 이목숨을 危太旱以命壽乙
천년밖애 살라하고 千年外厓生羅何古
그대도록 빌더구나 其大道奴乞加其那
진심악생 얼굴우에 嗔心惡生顔太上禮
대면하기 애달도다 對面何其哀納通多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목전애 보는 것이 目前厓見銀去是
낱낱이 거울이요 枚枚治鏡于以堯
귀끝애 듣난 것이 耳末厓聞難去是
낱낱이 거울이니 枚枚治鏡于以耳
못듣난야 주인공아 未聞難也主人公我
못보난야 주인공아 未見難也主人公我
나의용심 모르거던 吾意用心毛練去等
남을 보고 깨칠아문 南乙見古覺治我文
진소진 한소광도 秦蘇晋漢小光道
재물로 깨치거는 財物奴覺治去隱
너는어찌 모로난다 汝隱何之毛奴難多
기별없는 모진병이 期別無隱惡眞病以
일조애 몸애들어 一朝厓身愛入於
삼백육신 골절마당 三百六身骨絶馬當
마디마디 고통할제 寸寸苦痛割除
팔진미 좋은음식 八珍味造隱飮食
좋다하고 먹어보라 好陀何古飮古寶羅
최친지친 모아들어 最親至親會我入於
지성으로 근하야도 至誠乙奴勤何也道
냉수밖에 못먹게다 冷水外其未食介多
아이고 주인공아 哀而古主人公我
전생애 원수로서 前生厓怨讐奴西
빚값애 든병이 債報厓入病耳
우황으로 어찌하며 牛黃乙奴何之何面
인삼으로 보기하야 人三乙奴保其何也
편작에 들이민들 鞭作如加依迷人達
천명을 어찌하리 天命乙何爲耳
천금을 허비하고 千金乙虛費何古
만재를 다들여도 萬財乙皆入於道
노이무공 뿐이로다 勞耳無功分而奴多
어와가소롭고 가소롭다 於臥可笑吾古可笑吾多
불법을 우스여겨 佛法乙于笑內幾
염불한번 아니하고 念佛一番不以何古
호활부려 다니다가 毫活呼如單耳多可
병중애 후회하야 病中厓後悔何也
기전나야 불공하며 其前那也佛供何面
관음보살 급히불러 觀踵菩薩急希呼
목말라 샘파기로 項乾羅井未破其老
본래없난 네정성을 本來無難汝情誠乙
임갈계사 아당하달 臨渴界四我當何達
어떤부처 응감하리 何隱佛體應惑何耳
염라대왕 부린차사 閻羅大王使忍差使
영악하고 험한사자 令惡何古險限使者
너문전애 당도하야 汝門前當到何也
인정없이 달라들어 人情無是達那入於
벽력같이 잡아내제 霹靂可治者所來除
갈때마다 사귄주인 去大馬多交主人
죽자사자 친한벗이 死自生自親限友至
네죄예 대신가리 汝罪禮代身去耳
생각건대 그누구이시며 生覺建大其誰在是面
사랑하고 귀한지를 肯仰何古貴限圍乙
몰래 생각하는 毛來而生覺何隱
처자권속 일가중애 妻子眷屬一家中
대신갈이 그누구인고 代身去而其誰有古
한평생 주야없이 限平生晝夜無而
추위더위 생각잖고 寒爲署爲生覺殘古
천심 만고하야 千深萬古何也
근심으로 장만하고 懃心以奴莊萬何古
욕심으로 일워나온 慾心以奴成奴生隱
옥지옥답 가장기물 玉地玉¿家莊器物
노비우마 천재만재 奴婢牛馬千財萬財
아무리 아까온달 我毛耳我可溫達
어디가 인정하며 何而去人情何面
지고가며 안고가랴 負古去面抱古去也
빈손으로 나았다가 空手以奴出我多可
빈손으로 들어가니 空手以奴入練去伊
백년탐물 일조진을 百年貪物一朝塵乙
친구없신 어둔길에 親古無信冥間路
할길없난 고혼이쇠 割吉無難孤魂以金
시왕전애 추열할제 十王殿推列割除
우두나찰 마두나찰 牛頭那刹馬頭那刹
좌우편애 열립하야 左右片列立何也
번개같은 눈을뜨고 番介如隱目乙浮古
벽력같은 모진소래 霹靂如隱惡眞聲
일시에 호통하며 一時禮呼痛何面
추상같안 창검으로 秋霜如歎創劍以奴
옆옆이 들서기매 腋腋被擧西其每
바로하라 호령할제 直奴何羅呼令割除
골절이 무너지고 骨節耳頹 於之古
만신이 피빛이라 萬身耳血色治羅
어느친구 훗날보리 何隱親古後發見耳
처자권속 일가마다 妻子眷屬一家馬當
나를죽었다고 슬피운달 我乙死多古哀被哭達
저런줄 어이알리 底彦拙練耳知耳
슬포고 서론지라 悲抱古庶論之羅
고성대성 통곡하고 高聲大聲痛哭何古
자손친척 남아닌달 子孫親戚他不以達
죽은부모 생각하야 死隱父母思覺何也
천도하자 의논하기 薦度何自議論何其
천만중에 몇낱이고 千萬中厓幾枚治古
울기난 그만하고 哭其難其萬何古
초상삼상 가는날애 初喪三喪去隱日愛
산명수 덜잡으면 生命壽除乙捉夫面
그대도록 설잖나니 其大道奴설殘難伊
내연고 의탁하고 我年故依托何古
남무눈을 위로하야 他無目乙慰老何也
마지마라 하거만은 摩之馬羅何去萬隱
죄은 너지은대로 罪隱汝造如道
벼락은 내당커던 霹惡隱我當去等
설상가상 무산일고 雪上加霜無散事古
생전부귀 많은자손을 生前富貴多子孫乙
사람마중 불바하달 人岩馬中不所何達
죽은후애 더옥설다 死隱後加玉雪多
평생애 지은죄를 平生造隱罪乙
역력히 상고하야 曆曆希相考何也
팔만사천 무변옥애 八萬四千無邊獄厓
중한죄로 마련하고 重恨罪奴磨鍊何古
그남은 적은죄로 其餘隱小隱罪奴
소되건이 말되건이 牛爲建耳馬爲建而
개짐생 뱀구렁되면 犬獸生蛇岩九令爲面
어떠한 좋은일로서 何等恨善事奴西
인도애 환생하리 人道厓還生何耳
생각건대 더옥설다 生覺建大加玉說多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맹세하고 염불하야 盟誓何古念佛何也
석가세존 권한염불 繹迦世尊勸恨念佛
십륙관경 이를말삼 十六觀經謂乙馬三
일몰관이 제일이라 日沒觀而第一羅
서산애 지는해를 西山知隱年乙
뜨는 눈 감는 눈 開目閉目厓
안전애 걸어두고 眼前厓掛於置古
아미타불 대성호를 阿邇陀佛大聖號乙
주야없이 외오다가 晝夜無是誦吾多可
정념이 도망하고 定念而道亡何古
잡념이 서돌거던 雜念而西道乙去等
부지런히 자책하야 勸勸何耳自何也
환생할가 근심하여 還尙活可懃心何以
세사같이 애착하야 世事可治肯着何也
일구월심 공부하리 日久月深工夫何耳
세사생각은 적어지고 世事念隱小去只古
염불이 주장되야 念佛而主丈道也
일심염불 어떠하뇨 一心念佛何等何堯
염불경 구경하고 念佛脛翫景何古
지성으로 염불하면 至誠矣奴念佛何面
염불인 성명자는 念佛人姓名字隱
염라대왕 명부안내 閻羅大王冥府案內
반다시 빼가고 必多是拔去古
극락세계 연화우에 極樂世界蓮花上禮
명백히 기록하고 明白希記錄何古
관음세지 대보살이 觀踵勢至大菩薩耳
중매되야 다니다가 中媒道也多而多可
이목숨 다할적에 以命壽盡割底計
무수한 대보살과 無數恨大菩薩果
수많은 성문연각 數多恨聲門緣覺
각각이 향화잡고 各各而香火執古
쌍쌍이 춤을추며 雙雙而舞乙秋面
백천풍류 울리시고 百千風流鳴理是古
경각간애 왕생하리 頃刻間厓往生何耳
극락세계 장엄보소 極樂世界莊嚴見小
황금이 땅이되고 黃金以地而爲古
칠보연못 넓은못이 七寶澤廣隱池是
처처애 생기시나 處處現氣是乃
가득이 되어있고 滿澤而馱臥有古
물아래 피연모래 水下伸如沙來
순색으로 황금이요 旬色疑奴黃金而堯
땅속애 연화꽃안 地中厓蓮花花讚
청련화 황련화와 靑蓮花黃蓮花臥
적련화 백련화와 赤蓮花白蓮花臥
수레바퀴 같은연화 車厓朴古可歎蓮花
사철없이 피여있고 四節無時伸如有古
칠보는 자자한대 七寶難自自恨大
청색이면 청광이요 靑色而面靑光以堯
황색이면 황광이요 黃色而面黃光以堯
청황적백 사색광명 靑黃赤白四色光明
서로서로 상잡하고 西奴西奴相雜何古
향취난 미묘한데 香臭難美妙恨大
그우애 누각집이 其上厓樓閣家耳
허공중애 생기시나 虛空中厓生其是乃
칠보로 장엄하니 七寶奴莊嚴何耳
황금 백은이요 黃金白銀耳堯
유리주와 마노주로 琉璃柱臥馬瑙柱奴
색색으로 바치시고 色色矣奴所治是古
칠층난간 지은우애 七疊軒間造隱上厓
칠보망을 둘러치고 七寶網乙揮如治古
칠보향수 보배목이 七寶香水寶拜木以
칠보로 둘녔어라 七寶奴揮如西羅
청학백학 앵무공작 靑鶴白鶴鸚鵡孔子
가응가곤 공명등이 可鷹可 功名等而
가지가지 새짐생이 可卿可卿鳥金生而
칠보연못 향나무새애 七寶池香樹間厓
이리날라 저리가고 一以飛那切以可古
저리날라 이리오니 切耳飛那一以來耳
가며오며 우는소래 去面來面鴨隱聲厓
소리마다 설법이요 聲以馬當說法以堯
청풍이 소소하며 淸風以蕭蕭何面
칠보행수 요동하고 七寶行樹撓動何古
은경당경 나는소래 彦脛當脛出隱聲厓
백천풍류 울리시고 白千風流泣而是古
들리는 소래마다 聞而隱聲哀麻當
염불설법 뿐이로다 念佛說法忿以奴多
그뿐인가 저극락은 其分仁加底極樂隱
농사를 아니하야도 農事乙不以何也道
의식을 생각하면 衣食乙生覺何面
의식이 자래하고 衣食而自來何古
잠잠하고 생각하소 默默何古生覺何小
젊을때에 못한염불 少年時未恨念佛
늙은후에 할길없다 老懃後厓割吉無多
무상살귀 인정없어 無常殺鬼人情無西
이십전 삼십전애 二十前三十前厓
한정없이 죽난인생 限定無是死難人生
여기저기 무수하니 如其底其無數何而
늙거던 염불하자 老去等隱念佛何自
칭탄말고 염불하소 稱歎末何念佛何小
평안할제 못한염불 平坐割除未恨念佛
병든후애 할길없다 病入後割吉無多
오늘내일 이날저날 今日明日此日這日
엄벙덤벙 디나다가 嚴犯加犯過內多可
뜻없이 죽어지면 意無是死去之面
한빙지옥 화탕지옥 寒氷地獄火湯地獄
동주지옥 철상지옥 銅柱地獄鐵牀地獄
가지가지 깊은지옥애 可枝可枝深隱地獄厓
찢어내며 베여오며 裂底出面斬也來面
지지거니 삶아거니 煮之去耳烹馬去耳
하룻밤 하룻낮애 壹夜壹晝厓
만번죽으며 만번사라나니 萬邊死其面萬邊脫羅來而
수많은이 되랴하고 誰多臨而道也何古
바쁜말 저른신탈 婆分說節隱伸脫
가지가지 칭탈로서 可枝可枝稱脫奴西
엄첩은 세엄사마 嚴處隱世嚴師馬
염불애 배도거던 念佛厓拜道去等
이세상애 살아있어 以世上生我有西
잘입고 잘먹어도 被古食去刀
한나잘 베고푸고 一那 腹古布古
한나잘 추운것도 一那 寒隱去刀
참기 어렵거든 忍其難吾去隱
하물며 백천만겁 況物面百千萬劫厓
간단없이 대고통을 間短無是大苦痛乙
그다지 업산너겨 其大之無散乃其
호활불여 행할소냐 毫活不如行割小也
가령인생 내인사를 可怜人生我人事乙
칭찬한달 무어하며 稱讚恨達無於何面
회방한달 시기하랴 悔謗恨達時氣何也
일컬어 고락을 稱耳苦樂乙
팔풍애 일위여도 八風厓一謂汝刀
바람같안 인간사를 風岩如坦人間事乙
알은체 바이말고 知建體婆而末古
여농 여맹하야 如聾如盲何也
주인공 주인공아 主人公主人公我
인사불성 부대되어 人事不成夫大道如
아미타불 어서하자 阿邇陀佛於西何自
우리부처 대성존이 于耳佛體大聖尊而
거짓말로 쇠기시랴 去之末奴欺其是也
비방심 먹지말고 誹謗心饋之末古
이만인생 되얏을제 耳萬人生道也悉除
극락국 연화대를 極樂國蓮花臺乙
손바닥에서 결단하자 自掌中厓決斷何自
나무아미타불 南無阿邇陀佛
이봐세상 호걸들 立我世上毫傑野羅
이고득락 하올법을 離苦得樂何吾乙法乙
사십구년 설법중애 四十九年說法中厓
가초가초 뵈였건만은 可抄可抄見餘建萬隱
오탁악세 말법중애 五濁惡世末法中厓
행득인신 되었으니 幸得人身道也産耳
죄상이 중한지라 罪上耳重恨之羅
육도만행 쓸데없어 六道萬行悉大業西
제법문을 맹기시니 諸法門乙孟器是耳
염불하야 극락감은 念佛何也極樂可文
말세라사 유익한줄 末世羅事有益恨珠乙
변지상애 관찰하리 邊地上厓觀察何耳
문수보현 대보살과 文殊普賢大菩薩果
삽삼조사 역대성현 揷三祖師歷代聖賢
차차로 봉지하사 次次奴奉持何事
지금까지 유통하니 至今可至流通何耳
우리같안 죄악범부 于耳可歎罪惡凡夫
염불말고 어찌알꼬 念佛末古何之謁古
도리천 제석님도 利天帝繹主道
천상인군 되었을제 天上人君道也悉除
칠보궁전 조흔집애 七寶宮殿好隱家厓
천상락을 수하다가 天上樂乙受何多可
천상복이 진해지면 天上福而盡內之面
생전죄로 떨어져서 生前罪奴落於底西
지옥도애 든다하니 地獄道厓入多恨耳
인간애 약간호걸 人間厓若干毫傑
하물며 믿을소냐 下物面美達孫也
염불은 염치없어 念佛隱廉恥業西
일생애 말잡고 소잡은 一生厓馬執古牛執隱
도수장이 지악인도 屠牛場耳至惡人道
임종애 염불하야 臨終厓念佛何也
지옥보를 소멸하고 地獄報乙消滅何古
극락으로 바로가리 極樂矣奴所奴去而
일념으로 염불을 一念無奴念佛乙
시방세계 항사불이 十方世界恒沙佛而
한가지로 찬탄하고 同可之奴讚歎何古
역대성현 봉지로다 歷代聖賢奉持奴多
아미타불 염불법은 阿邇陀佛念佛法隱
온갖일에 걸림없어 溫可事厓碍臨業西
승속남녀 물론하고 僧俗男女勿論何古
유식무식 귀천간애 有識無識貴賤間厓
소업을 폐치말고 所業乙購治末古
농부거던 농사하며 農夫去加農事何面
노난입애 아미타불 遊難口厓阿邇陀佛
직녀거던 길삼하며 織女去加績三何面
노난입애 아미타불 遊難口厓阿邇陀佛
금생애 이타하고 今生厓利他何古
행주좌와 이어하면 行住座臥耳於何面
후생극락 어려울까 後生極樂難乙可
많은즉 육자염불 多隱則六字念佛
적은즉 사자염불 小隱卽四子念佛
행주좌와 어묵간애 行住坐臥語默間厓
고성이나 은념이나 高聲以那隱念以那
대소간 육자사자 염불을 大小間六子四子念佛乙
근력대로 염불해도 懃力大奴念佛何刀
슬픈것은 아미타불 悲惑去隱阿邇陀佛
조흔이도 아미타불 好隱耳刀阿邇陀佛
노난입애 잡담말고 遊難口厓雜談末古
아미타불 말벗삼아 阿邇陀佛言友三我
염염애 아미타불 念念厓阿邇陀佛
시시애 아미타불 時時厓阿邇陀佛
처처애 아미타불 處處厓阿邇陀佛
사사애 아미타불 事事厓阿邇陀佛
일생애 이러하면 壹生厓壹練何面
극락가기 어려온가 極樂去其難奴溫可
하루살이 작은벌레 一日殺而小隱筮耳
천리말을 붙잡으면 千里馬乙挾者吾面
천리가기 어렵잖고 千里去其難吾殘古
금석이 중하야도 金石耳重何也道
광대선애 실어두면 廣大船厓載於斗面
만경창파 깊은물에 萬頃滄波深隱水厓
순신간에 건너가리 順息間厓濟乃去耳
우리같안 죄악인도 于以如歎罪惡人道
아미타불 염불덕애 阿邇陀佛念佛德厓
석가여래 대비선을 繹迦如來大悲船乙
배삯없이 얻어타고 船價無是得加乘古
염불삼매 법해수애 念佛三昧法海水厓
언저시 저어내여 言這是這於內女
방편돛대 높이달고 方便楫大高被達古
정진노를 가져잡고 精進勞乙具持執古
제대성현 인접길애 諸大聖賢引接路
아미타불 옥호광을 阿邇陀佛玉毫光乙
훤출이 비치시고 還出耳照治是古
사십팔원 대원풍을 四十八願大願風乙
태허공애 빗겨뵈니 太虛空厓非戒見耳
십만억 국토밖을 十萬億國土外乙
경각간애 왕생하리 頃刻間厓往生何而
이아니 염불선이 而安耳念佛船耳
만선중애 상선이라 萬船中厓上船耳羅
그아니 장할소냐 其安耳長割孫也
이보세상 어르신네 耳寶世上長老信來
우리도 이맘저맘 다버리 于耳道其心這心多婆而古
신심으로 염불하야 信心矣奴念佛何也
선망부모 천도하고 先亡父母薦道何古
일체중생 제도하야 一切衆生濟渡何也
세상사 다버리고 世上事多婆而古
연화선을 얻어타고 蓮花船乙得加乘古
극락으로 어서가자 極樂矣奴於書去自
극락세계 좋단말을 極樂世界好歎言乙
승속남녀 다알거늘 僧俗男女多知去乙
어서어서 저극락애 於西練西底極樂
속히속히 수이가자 速耳速耳受耳可自
나무아미 타불성불 南無阿邇陀佛成佛
발 문
이상은 왕사 보제존자가 사방으로 돌아다닐 때 일상의 행동을 한마디, 한 구절 모두 그 시
자가 모아 `나옹화상 어록"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 제자 유곡 (幽谷) ·굉각 (宏覺) 등이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세상에 간행하려고 내게 그 서문을 청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서문이란 유래를 쓰는 것인데, 그 유래를 모르고 서문을 쓰면 반드시 사람들의 비난을 받
을 것이오. 장님이 길을 인도하거나 귀머거리가 곡조를 고른다면 그것이 될 일이겠는가. 나
는 그것이 안되는 일인 줄 알 뿐 아니라, 더구나 백담암 (白淡庵) 의 서문에서 남김없이 말
했는데 거기 덧붙일 것이 무엇 있는가."
그랬더니 그들은 "그렇다면 발문 (跋文) 을 써 주시오" 하면서 재삼 간청하므로 부득이 쓰
는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넓은 그릇과 맑은 뜻을 엿볼 수 없거늘, 어떻게 그것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다만 내 듣건대, 부처는 깨달음 〔覺〕 을 말하고 그 깨달음으로 중생을 깨우치며 자비로써
교화한다 하니, 그것은 우리 유교로 말하면 먼저 깨달은 사람이 뒤에 깨달을 사람을 깨닫게
하고 인서 (仁恕) 로 교 (敎) 를 삼는 것이니, 그것이 같은가 다른가.
우리 군자 〔先儒〕 는 이렇게 말하였다.
"서방에 큰 성인이 있으니 천하를 다스리지 않아도 어지럽지 않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
으며 교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는데, 탕탕하여 아무도 그것을 무어라고 말할 수 없으니,
도는 하나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유불 (儒佛) 이 서로 비방한다'고 한다.그러나 나는 서로 비방하는
것이 그름을 안다. 유교를 비방하는 것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요,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 유
교를 비방하는 것이다. 다만 극치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이 서로 맞서 비방할 뿐이요, 중니
(仲尼) 와 모니 (牟尼) 는 오직 한 덩어리의 화기 (和氣) 인 것이다.
이제 이 어록을 보면 더욱 그러함을 믿을 수 있으니, 언제나 허망을 버리고 진실을 닦아 임
금을 축수하고 나라를 복되게 함으로써 규범을 삼는 것이다. 이미 우리 임금은 이 분을 존
경하여 스승으로 삼았으니 이 어록을 간행하여 세상을 깨우침이 마땅할 것이다.
해제 (解題)
나옹 혜근 (懶翁惠勤) 스님의 어록을 `나옹화상어록 (懶翁和尙語錄) "이라 한다. 이 어록에
실려 있는 스님의 행장과 탑명에 의하면, 스님은 영해부 (寧海府) 사람으로 속성은 아 (牙)
씨이고, 아버지는 선관령 (膳官令:궁중의 음식을 관리하는 직책) 을 지냈다.
스님의 나이 스무 살 때 (1340년) 친구의 죽음을 보고 생에 의문을 가져서 공덕산 (功德
山) 요연 (了然) 스님께 출가하였다. 이후 회암사 (檜巖寺) 로 가서 (1344년) 밤낮으로 수
도하던 중 크게 깨치고 1348년 중국으로 가서 대도 (大都) 법원사 (法源寺) 에서 지공화상
(指空和尙) 을 친견하고 한 해를 머물렀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스님은 8살 때, 당시 고려에
왔던 지공스님에게서 보살계를 받았으며, 그 보살계첩이 지금도 전한다) . 그 다음해에는 휴
휴암 (休休艤) 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그 후 평산 처림 (平山處林:임제종 양기파) 스님에게서 불법을 이어받고 강남 (江南) 등지
를 행각하였다. 다시 지공스님을 찾아뵙고서 그에게서 선지 (禪旨) 를 전해 받았다. 이때 법
의 (法衣) , 불자 (拂子) , 범어 (梵語) 로 쓴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이후 광제선사 (廣濟禪
寺) 에서 개당설법을 하였고 (1356년) , 다시 지공스님을 뵌 후 고려로 돌아왔다 (1358년) ,
10여 년만의 귀국이었다.
내원당에서 심요법문을 한 후 신광사 (神光寺) 에 주지로 있었다 (1361년) . 그 후 구월산
(九月山) 과 금강산 (金剛山) 에 계셨으며, 청평사에 계실 때 (1367년) 지공스님이 보낸 가
사와 편지를 받았고, 4년 후 회암사에서 지공스님의 사리를 친견했다.
1370년 스님이 51살 때 개경의 광명사 (廣明寺) 에서 공부선 (功夫選) 을 주관하였다. 여기
에서는 선과 교를 총망라하여 시험을 보았으나 오직 환암 혼수 (幻庵混修) 만이 스님의 인
정을 받았다. 이때 당시의 국사이며 화엄종의 대종사인 설산 (雪山:千熙) 스님을 방석으로
때린 사건이 이 어록에 실려 있다. 이듬해 8월 왕사 (王師) 로 봉숭되어 금란가사와 법복 및
바루를 하사받았다. 그 후 4년간은 병란에 불타버린 회암사 중창에 전력하였다.
그동안에 공민왕이 돌아가시고 우왕이 즉위하여 다시 왕사로 추대되었으나 회암사를 낙성한
직후에 중앙 대간 (臺¡) 들의 압력으로 밀양 영원사 (瑩源寺) 로 그 처소를 옮겨가던중 신
륵사 (神勒寺) 에서 입적하시니 (1376년 5월 15일) 세수는 57세이고 법랍은 38세이다.
스님은 자기의 죽음을 스스로 `열반불사 (¿槃佛事) '라고 하였는데, 스님의 열반 후 10여
년 이내에 신륵사 이외에도 금강산, 치악산, 소백산, 사불산, 용문산, 구룡산, 묘향산 등 7개
소에 이색 (李穡) 이 찬한 탑비가 세워졌고, 또 원주 영전사 (令傳寺) 에도 탑비가 세워졌
다.
스님의 어록은 `어록 (語錄) '과 `가송 (歌頌) '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시자 각련 (覺璉) 이
수집한 어록에는 상당법어 29칙, 짧은 글 25칙, 이색이 찬한 탑명과 문인 각굉 (覺宏) 이 쓴
행장이 실려 있다.
이 상당법문의 형식상 특색은 첫째 특별한 구분의 기준 없이 스님이 중국 광제선사에서 개
당한 때의 법문을 시작으로 하여 스님의 행장과 거의 비슷한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법문에 대해 시기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상당법문에는 공민왕과 그 왕비인 승의공주에 대한 수륙재 (水陸齋) 에서 행한 법문을
비롯하여 영가를 위한 법문이 특히 많다. 그리고 대어 (對語) 6칙, 감변 (勘辨) 3칙, 착어
(着語) 1칙은 무척 특색있는 법문이다.
법문의 내용은 주로 간절하게 화두를 참구할 것을 말하였다. 즉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는
먼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해야 하며, 하루 종일 화두를 들어서 마침내 저절로 의심이 일어나
는 경지에 이르게 되면 마치 물살 급한 여울의 달과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
도 없어지지 않는 지경이 되어 크게 깨침에 가까웠다고 한다. 특히 화두공부를 점검하는 10
가지를 모아서 `공부10절목 (工夫十節目) '이라 하였다. 또 법문을 하면서 주장자, 죽비, 불
자, 할 등을 사용하였고, 영가에 대한 법문에서는 주장자 대신에 죽비를 사용하였다.
시자 각뢰 (覺雷) 가 편집한 가송 (歌頌) 에는 완주가 (翫珠歌) 60구, 백납가 (百歌) 40구,
고루가 (奇歌) 52구의 노래 세 수 〔三種〕 를 비롯하여 게송, 찬 (讚) , 발원문, 405구의
장편 가사인 승원가 (僧元歌) 그리고 스님의 `노래 세 수'에 대해 이색이 쓴 후기가 함께
실려 있다.
게송은 단순히 풍경을 읊은 것을 비롯하여 계명 (戒銘:이름을 지어주면서 그 이름을 풀이하
여 지어주는 글) , 여러 선인 (禪人) 을 떠나보내며 당부하는 것, 게송을 청하기에 주는 것,
임금의 덕을 칭송한 것, 옛사람의 송 (頌) 에 답한 것, 세상을 경계한 것, 제 (題) 한 것 등
여러가지를 모은 것이다. 승원가에서는 아미타불을 염불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누이동생에
게 준 글 등에서도 아미타불을 염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법장 (法藏) 비구가 스님의 삼종게를 계승하여 보다 장편으로 발전시킨 백납가 200구,
고루가 144구, 영주가 300도 실려 있다.
이렇게 수집된 어록은 환암 혼수가 교정을 하고 문인인 각우 (覺, 또는 覺) , 각변 (覺卞) ,
각연 (覺然) , 유곡 (○○) , 굉각 (宏覺) 등이 힘을 모아 간행하였다.
그런데 이색의 서문에 의하면 "옛 본을 교정하여 출판하려고 내게 서문을 청한다"고 하였
고, 백문보 (白文¿) 의 서문은 지정 (至正) 23년 (1363) 에 씌어졌다. 이때는 스님께서 신
광사에 거주하던 시기이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볼 때 스님께서 신광사에 거주하던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서 스님의 어록
이 한 번 편집되었고, 이것이 나중에 이색에 의해 `옛 본'이라 한 것인 듯하다. 결국 스님의
어록은 두 번 편집된 것으로 그 처음은 중국에서 돌아온 얼마 후에 있었고, 다음은 열반하
신 후의 것으로 지금 전하는 것은 이것이다.
27. 휴휴암 (休休庵) 주인의 좌선문 (坐禪文) *
^휴휴암은 나옹화상이 강남 (江南) 에 가서 행각할 때 여름결제를 한 철 보낸 곳이다.
좌선하는 이는 지극한 선 (善) 에 도달하여 저절로 또렷또렷해야 한다. 생각들을 완전히 끊
어버리되 혼침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좌 (坐) 라 하며, 욕심 속에 있으나 욕심이 없고 세속
에 살면서도 세속을 떠난 것을 선 (禪) 이라 한다. 밖에서는 함부로 들어오지 않고 안에서
함부로 나가지 않는 것을 좌 (坐) 라 하고, 집착없이 항상한 빛이 나타나는 것을 선 (禪) 이
라 한다. 밖으로는 흔들려도 움직이지 않고 안으로는 고요하여 시끄럽지 않음을 좌 (坐) 라
하고 빛을 돌이켜 되비추고 법의 근원을 철저히 깨치는 것을 선 (禪) 이라 한다. 좋고 나쁜
경계에 뇌란하지 않고 빛과 소리에 끄달리지 않음을 좌 (坐) 라 하고, 일월보다 밝게 어둠을
밝히고 천지보다 큰 힘으로 중생을 교화함을 선 (禪) 이라 한다. 차별 있는 경계에서 차별
없는 정 (定) 에 드는 것을 좌 (坐) 라 하고, 차별 없는 법에서 차별지 (枕別智) 를 가짐을
선 (禪) 이라 한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불꽃같이 작용하나 본체는 여여하고 종횡으로 오묘하
나 일마다 거리낌 없음을 좌선 (坐禪) 이라 한다. 간략히는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상세히
말하자면 글로써는 다하지 못한다.
나가대정 (那伽大定:부처님의 선정) 은 동정 (動靜) 이 없고 진여의 묘한 바탕은 생멸이 없
어서, 바라보지만 볼 수 없고 귀기울이지만 들을 수 없으며 텅 비었지만 빈 것이 아니며 있
으면서도 있는 것이 아니다. 크기로는 바깥 없을 정도로 큰 것을 감싸고 작기로는 안이 없
을 정도로 작은 데에도 들어가며, 신통과 지혜는 그 광명이 무량하고 대기 (大機) 와 대용
(大用) 은 무궁무진하다. 뜻 있는 사람은 잘 참구하되 정신을 바짝차려 확철대오하겠다는 마
음으로 입문하여 와! 하는 한마디가 터진 뒤에는 수많은 신령함이 모두 본래 구족하리라.
이 어찌 마군이와 외도들이 스승 제자 되어 전수하는 것과 같겠으며, 유소득심으로 궁극의
경계를 삼는 것과 같겠느냐!
차례
선림고경 (禪林古鏡) 에 씀……退翁性徹 2
선림고경총서간행사 (禪林古鏡叢書刊行辭) 4
해제 (解題) 7
·보제존자어록 서· 李穡 15
·서· 白文¿ 17
·탑명· 李穡 21
·행장· 覺宏 31
1. 어 록· 覺璉
1. 상당법어…59
2. 짧은 글…127
2. 게 송· 覺雷
1. 노래 〔歌〕 ·3수…171
2. 송 (頌) …185
·발문· 李達衷 303
·보제존자 삼종가· 法藏 305
·나옹화상 승원가· 懶翁 345
〔附錄〕 懶翁集五臺山 月精寺藏版
^宗衆
休休庵主坐禪文朝鮮佛敎通史 下
禪林寶典
1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설봉스님이 하루는 원숭이들을 보고 말하기를
"원숭이가 각각 한 개의 옛거울[古鏡]을 짊어지고 있구나!"
하니 삼성스님이
"숱한 세월 동안 이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옛거울[古鏡]이라고 합
니까?"
하고 물었다. 설봉스님이
"흠이 생겼구나!"
하자 삼성스님이 말하기를
"천오백명을 거느리는 대선지식이 말귀도 못 알아들으십니까?"
하니 설봉스님이 말하였다.
"노승이 주지하기가 번거로와서..."
알겠는가.
비가 연잎을 적시니
향기가 집에 떠돌고
바람은 갈대잎을 흔드는데
눈은 배에 가득하네.
雪峰一日見 乃云, 者 各各背一面古鏡.
三聖便問, 歷劫無名何以彰爲古鏡.
峰云, 瑕生也.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話頭也不識.
峰云, 老僧住持事煩.
會�
雨蒸荷葉香浮屋
風攪蘆花雪滿船
佛紀 2532年 端午節
伽倻山에서
退翁 性徹 씀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 간행사
귀의삼보(歸依三寶)하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져 겨레의 문화창달에 이바
지하고 나라의 동량을 배출하여 온 지도 천육백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지나고 연륜이 멀어짐에 따라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선종의 정법은 감추어지고, 고불고조(古佛古祖)들의 바른 뜻은
매몰되어 잘못된 주장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이런 선문(禪門)의 병폐를 일찍부터 지적하시고,
그 시정을 위해 몇 해 전에는 「선문정로(禪門正路)」라는 저서를 출간
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禪)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무엇이 가장 요긴한 일인가를 심려해 오시던 차에, 우리들
주면에는 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필요한 선서(禪書)들이 너무나 빈곤
하다는 사실을 통감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는 고불고조들의 말씀이 한문
(漢文)으로 되어 있어서 언어생활이 다른 요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옛 조사
스님들의 말씀 가운데 참선(參禪)을 위해 가장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삼
십여 종의 저서들을 가려내어 번역토록 하시고, 그 전집(全集)의 이름을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한문으로 된 말씀들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때로는 큰스님의 구술(口述)을 옮기
고, 때로는 선(禪)의 이치를 여쭈면서 글 밝은 이들에게 번역을 부탁하
였습니다. 따라서 선림고경총서 간행불사(刊行佛事)가 겨레 공동의 문화
재산이 되고 후손들에게 부처님의 크고 밝은 가르침을 전하는 이 시대
의 훌륭한 유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종사에서 처음 시도하는 번역인만큼 큰스님께서 연로하시
어 일일이 감수하실 수 없어 번역에 허물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이 점
널리 이해하시고 잘못된 번역이 있으면 독자들께서 동참하시어 더 완벽
한 글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이러한 선림고경총서의 원만한 간행이 조계(曹溪)의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어, 선림(禪林)에 백화(百花)가 난만하고 모든 이들은 자성
을 깨쳐 성불(成佛)하길 발원합니다.
佛紀 2532年 端午節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
백련선서간행회(白蓮禪書刊行會)
圓澤 和南
차례
제1권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11
1 단경 지침(指針)……………………………………… 17
2 돈황본단경 편역(編譯)……………………………… 55
3 선교결(禪敎訣)……………………………………… 149
제2권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159
제3권 전심법요(傳心法要)………………………………… 227
1 전심법요(傳心法要)………………………………… 235
2 완릉록(宛陵錄)……………………………………… 279
제4권 신심명(信心銘)……………………………………… 347
제5권 증도가(證道歌)……………………………………… 359
제1권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
머리말
조계육조(曺溪六祖) 이후 선(禪)은 천하를 풍미(風靡)하여 당·송·원·명
시대에 불교가 꽃을 피우게 한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림에 따라 육조 본연의 종지가 많이 변하여 육조의 정통 사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대저 육조의 종지는 육조가 항상 주창한 "오직 돈법만을 전한다[唯傳頓
法]"고 하는 것으로서, 점문(漸門)은 일체 용납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중간
에 교가(敎家)의 점수사상(漸修思想)이 혼입되어 선문(禪門)이 교가화됨으로
써, 순수선(純粹禪)은 없는 실정이다.
「단경」은 육조의 법문을 전하는 유일한 자료이나, 그 유통 과정에서 첨
삭(添削)이 많아 학자들을 곤혹케 하였다. 다행히도 최고본(最古本)인 「돈황
본단경」은 천여 년 동안 석굴에 비장되어 뒷사람들의 첨삭을 면할 수 있었
으므로, 육조의 성의(聖意)를 잘 전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 가운데서
오락(誤落)된 부분은 각 유통본을 참조하여 엄정교정(嚴正校訂)하고 사의(私
意)는 개입시키지 않았으며, 토를 달고 번역을 하였다. 그리고 약해(略解)를
붙여 거룩한 뜻을 파악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생각하니, 권두(卷頭)의 지침
과 함께 읽기 바란다.
「선교결」은 서산(西山) 만년(晩年)의 명저(名著)로서 「단경」이해에 도
움이 되겠기에 더불어 실으니, 참학고류(參學高流)는 「단경」을 근본삼아
육조정법을 선양하기 바란다.
불기 이천오백삼십일년 가을
가야산 해인사 퇴설당에서
퇴옹 성철 씀
일러두기
*○는 제I편에서는 엮은이의 평석(評釋)을, 제II편과 제III편에서는 약해(略解)를 말
한다.
*제I편과 제II편에서, 보기를 들어 性(姓)은 원문의 姓자를 性자로 바로잡은 것이고,
[心]은 원문에는 心자가 빠진 것을 보충해 넣은 것이며, '頓漸'은 원문의 頓漸을
삭제해야 할 것으로 부호를 일치시켰다.
*제I편에서 원문 끝의 敦·大·興·德·宗은 각각 돈황본·대승사본·흥성사본·덕
이본·종보본을, 그리고 끝에 표시된 숫자는 「혜능연구(고마자와대학 선종사연
구회 1978년 간행)의 면(面) 수를 말한다.
*제II편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임의로 제목을 붙이고 단락을 나누었다.
돈황본단경 차례
머리말………………………………………………………………………………13
일러두기……………………………………………………………………………14
제1편 단경 지침(指針)…………………………………………………………17
서언(序言)…………………………………………………………………………19
1.식심견성(識心見性)……………………………………………………………21
2.내외명철(內外明徹)……………………………………………………………25
3.유전돈법(唯傳頓法)……………………………………………………………29
4.무념위종(無念爲宗)……………………………………………………………37
5.정혜체일(定慧體一)……………………………………………………………43
6.무생서방(無生西方)……………………………………………………………47
7.불오염수(不汚染修)……………………………………………………………50
8.불보리인(佛菩提因)……………………………………………………………51
제2편 돈황본단경 편역(編譯)…………………………………………………55
1.서언(序言)………………………………………………………………………57
2.심사(尋師)………………………………………………………………………57
3.명게(命偈)………………………………………………………………………60
4.신수(神秀)………………………………………………………………………61
5.정게(呈偈)………………………………………………………………………65
6.수법(受法)………………………………………………………………………68
7.정혜(定慧)………………………………………………………………………70
8.무념(無念)………………………………………………………………………74
9.좌선(坐禪)………………………………………………………………………77
10.삼신(三身)…………………………………………………………………… 79
11.사원(四願)…………………………………………………………………… 83
12.참회(懺悔)…………………………………………………………………… 85
13.삼귀(三歸)…………………………………………………………………… 86
14.성공(性空)…………………………………………………………………… 88
15.반야(般若)…………………………………………………………………… 90
16.근기(根機)…………………………………………………………………… 92
17.견성(見性)…………………………………………………………………… 95
18.돈오(頓悟)…………………………………………………………………… 96
19.멸죄(滅罪)…………………………………………………………………… 99
20.공덕(功德)……………………………………………………………………102
21.서방(西方)……………………………………………………………………104
22.수행(修行)……………………………………………………………………108
23.행화(行化)……………………………………………………………………113
24.돈수(頓修)……………………………………………………………………114
25.불행(佛行)……………………………………………………………………119
26.참청(參請)……………………………………………………………………123
27.대법(對法)……………………………………………………………………126
28.진가(眞假)……………………………………………………………………131
29.전게(傳偈)……………………………………………………………………134
30.전통(傳統)……………………………………………………………………138
31.진불(眞佛)……………………………………………………………………140
32.멸도(滅度)……………………………………………………………………144
33.후기(後記)……………………………………………………………………146
제3편 선교결(禪敎訣)……………………………………………………… 149
제1편 단경 지침(指針)
서언
「단경(壇經)」은 육조(六祖)의 법손인 동토(東土) 선종의 근본이
되는 성전(聖典)이다. 「단경」은 전래되는 과정에서 다른 본(本)이
많이 나와 학자들을 곤혹케 하였으나, 돈황고본(敦煌古本)이 발견되
어 천고의 의심이 해결되었다고들 말한다.
그리하여 근래 일본의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 선종사연구회(禪宗
史硏究會)에서는 그 중 기본이 되는 다섯 본을 서로 대조하여 「혜
능연구(慧能硏究)」라는 책을 발간함으로써 단경연구에 공헌하였다.
다섯 본은 돈황본(敦煌本), 대승사본(大乘寺本), 흥성사본(興聖寺
本), 덕이본(德異本), 종보본(宗寶本)이다. 또한 열두 종류의 다른판
(版)들을 영인 수록한 「육조단경제본집성(六祖壇經諸本集成)」도
좋은 자료이다. 이에 가장 오래된 돈황본을 중심으로 네 본을 서로
대조하고 다른 여러 본을 참고하여 「단경지침(壇經指針)」을 작성
하여 보았다.
돈황본을 베껴 쓸 때 부주의하여 글자를 잘못 쓰거나 빠뜨린 것
이 많으나, 다른 본들을 참조하면 성의(聖意)를 파악하는 데 별로 지
장이 없다. 각 본의 자구(字句) 차이는 대강의 뜻만 취하고 하나하나
지적하지 않았으니 양해하기 바란다.
「단경」의 근본 사상은 식심견성(識心見性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요, 식심견성은 법신불(法身佛)인 내외명철(內外明徹 안팎이 사
무쳐 밝음)이어서 견성(見性 성품을 봄)이 곧 성불(成佛 부처를 이
룸)이므로, 깨달은 뒤[悟後]에는 부처님 행을 수행한다[修行佛行]고
분명히 하였다. 뒷날 교가(敎家)의 점수사상(漸修思想)이 섞여 들어
와 오후점수론(悟後漸修論 깨친 뒤 점차로 닦는다는 이론)이 성행하
나, 이는 「단경」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니, 육조대사의 법손인 선가
(禪家)는 「단경」으로 되돌아와 육조대사 본연의 종풍을 떨치기 바
란다.
1. 식심견성(識心見性)
모든 법이 모두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거늘, 어찌 자기의 마음을
따라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서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으니, 식심견성
(識心見性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하면 스스로 부처님 도를 성취하
는 것이니 곧 활연히 깨쳐서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一切萬法이 盡在自身心中이어늘 何不從於自心하야 頓現眞如本性
(姓)고 菩薩戒經에 云我本源(願)自性이 淸淨이라하니 識心見性하면
自成佛道라 卽時豁然하야 還得本心이로다-敦 316
만법이 모두 자기의 마음 가운데 있거늘 어찌 자기의 마음 가운
데에서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서 말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으니,
식심견성하면 다 부처님 도를 성취하는 것이니 곧 활연히 깨쳐서 본
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萬法이 盡在自心이어늘 何不從自心中하야 頓見眞如本性고 菩薩戒
經에 云 我本源自性이 淸淨이라하니 識心見性하면 皆成佛道라 卽時
豁然하야 還得本心이로다-大.興.德.宗 316
○앞의 인용문은 돈황본이요, 뒤의 인용문은 대승사본·흥선사
본·덕이본·종보본이니,돈황본을 중심으로하여 네 본을 참조하
였다. 네 본이 더러 자구의 차이는 있으나 그 근본 뜻은 같다.
'자성청정(自性淸淨 자성이 맑고 깨끗함)'은 「보살계경」의
말씀이요. '식심견성'은 육조의 말씀이요, '즉시활연(卽時豁然 즉
시에 탁 트이어 깨침)'은 「유마경」의 말씀이다. 두 경의 글을
인용하여 육조 자신의 법문인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스스로
부처님 도를 성취한다[識心見性 自成佛道]' 함을 강조한 것이
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있
어서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고 말하니, 자기의 성품을 깨치지 못하
였다면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성품을 볼지니라.
三世諸佛과 十二部經이 云在人性中하야 本自具有어늘 不能自性悟
어든 須得善知識示導(道)하야 見性이니라 -敦 317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에
있어서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으므로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였다면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 바아흐로 성품을 볼지니라.
三世諸佛과 十二部經이 在人性中하야 本自具有ㅓ늘 不能自悟어든
求善知識示導하야 方見이니라 -大.興.德.宗 317
○스스로 오달(悟達 깨쳐 통달 함)하지 못하면 선지식의 지도자
가 필요하다.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깨닫
게 하되,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선지식
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성품을 볼지니라.
各自觀心하야 令自本性을 頓悟하되 若[不]能自悟者는 須覓大善知
識示導(道)하야 見性이니라 -敦 317
보리 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 스스로 가졌거늘 다만
마음이 미혹하므로 스스로 깨칠 수 없으니, 반드시 큰 선지식의 지
도를 받아 성품을 볼지니라.
菩提般若之智는 世人이 本自(白)有之어늘 卽緣心迷하야 不能自(白)
悟하니 須求大善知識示導(道)하야 見性이니라 -敦 292
보리 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 스스로 가졌거늘 다만
마음이 미혹하므로 스스로 깨칠 수 없으니, 반드시 큰 선지식의 지
도를 받아 성품을 볼지니라.
菩提般若之智는 世人이 本自有之어늘 只緣心迷하야 不能自悟하나니
須求大善知識示導하야 見性이니라 -大.興.德.宗 292
사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되 망념이 있어서 진여를 덮고 있으니
망념이 없어지면 본래의 성품이 깨끗하니라.
人性(姓)은 本淨이로되 爲妄念故로 盖覆眞如하니 離妄念하면 本性(姓)이
淨하니라 -敦 298
사람의 성품은 본래 청정하되 망념이 있어서 진여를 덮고 있으니,
다만 망념이 없으면 본래 성품은 스스로 청정하니라.
人性은 本淨이로되 由妄念故로 盖覆眞如하니 但無妄想하면 性自淸淨
이니라 -大.興.德.宗 298
○망상이 소멸하면 본래로 청정한 자성이 스스로 드러나니, 이
것이 식심(識心 마음을 앎)이며 견성이다.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니라.
識自(白)本[心]이 是見本性이니라 -敦 295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고 스스로 본래 성품을 보느니라.
自識本心하고 自見本性이니라 -大.興.德.宗 295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불법을 배워도 이로움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곧 큰 뜻을 깨치느니라.
不識本心하면 學法無益이니 識心見性(姓)하면 卽悟(吾)大意니라 -敦
284
○'큰 뜻[大意]'이란 돈황본 윗글에서 '큰 뜻을 알면 곧 의발을
부촉하리라[識大意하면 卽付衣鉢하리라]'고 한 그 '큰 뜻'이다.
앞 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이 깨치면 곧 부처니라.
前念이 迷卽凡이요 後念이 悟卽佛이니라 -敦312
앞 생각이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이 깨치면 곧 부처니라.
前念이 迷卽凡이요 後念이 悟卽佛이니라 -大.德.宗 313
○흥성사본에는 이 구절이 빠지고 없으나 상관은 없다. 이는 돈
오견성(頓悟見性 단박에 깨쳐서 성품을 봄)이 곧 성불임을 말한
것이다.
자성(자기의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성이 깨치
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自性을 迷하면 佛卽衆生이요 自性을 悟하면 衆生이 卽佛이니라 -敦 315
자성이 미혹하면 곧 중생이요, 미혹을 떠나면 곧 깨달음이니 깨달
으면 곧 부처니라.
自性을 迷하면 卽是衆生이요 離迷卽覺이니 覺卽是佛이니라 -大 315
자성이 미혹하면 곧 중생이요, 자성을 깨치면 곧 부처니라.
自性을 迷하면 卽是衆生이요 自性을 悟하면 卽是佛이니라 -大.德.宗 325
○불(佛)은 구경묘각(究竟妙覺)이며, 십지(十地)·등각(等覺)도
미혹중생이니, 정오정각(正悟正覺 바르게 깨치고 바르게 깨달
음)이 아니다. 식심견성은 정오정각을 말함이니, 그것은 구경묘
각이라야 한다.
2 . 내외명철(內外明徹)
무엇을 청정법신불이라 하는가? 세상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여 만법이 다 자기의 성품 가운데 있으니, 모든 법이 다 자기
의 성품에 있어서 자기의 성품은 항상 청정하니라.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여서 위는 밝고 아래는 어
두워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뚜렷하게 보지 못하다가, 문득 지혜의 바
람이 불어와서 구름과 안개를 말끔히 거두어 버리면 온갖 것이 일시
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청정함도 마치 깨끗한
하늘과 같으며 혜(惠)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아 지혜가 항상
밝거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서 자기의 성
품이 밝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참다운 법을 열어 주시는 선지식
을 만나 미망(迷妄)을 없애 버리면 내외 명철하여 자기의 성품 가운
데 만법이 다 나타나 일체법에 자재하나니, 청정법신이라고 이름하
느니라.
何名淸淨<法>身佛 世人 性本自淨 萬法 在自性(姓) 一切
法 盡在自性 自性 常淸淨 日月 常明(名) 只爲雲盖覆 上明
(名)下暗 不能了見日月星(西)辰 忽遇慧風 吹散 卷盡雲霧 萬
象森羅 一時皆現 世人性淨 猶如淸天 惠如日智如月 智惠常明
(名) 於外 着境(看敬) 妄念浮雲 盖覆 自性(姓) 不能明(名) 故
遇善知識 開眞法 吹却迷妄 內外明(名)徹 於自性(姓)中 萬法
皆現 一切法 自在性(姓) 名淸淨法身-敦 三百二(29)
무엇을 청정법신이라 하는가? 세상 사람의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모든 법이 모두 자기의 성품으로부터 나느니라. 모든 법이 자기의
성품 가운데 갖추어 있으니 하늘이 항상 맑음과 같으며, 해와 달이
항상 밝되 뜬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둡다가 문득 바람이
불어 모든 구름이 흩어지면 위 아래가 함께 밝아서 모든 모양이 다
나타나는 것과 같으니라. 세상 사람의 성품이 항상 떠돌아다님도 저
구름 낀 하늘 같아서 또한 그와같으니라. 지(智)는 해와 같고 혜(慧)
는 달과 같아 지혜(智慧)가 항상 밝거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
념의 뜬구름이 덮여서 자성이 밝고 맑지 못하다가, 만약 선지식을
만나 참된 법을 듣고 미망을 스스로 없앤다면 내외명철하여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모두 나타나나니, 성품을 본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므로 이를 청정법신불이라고 이름하느니라.
何名淸淨法身 世人 性本淸淨 萬法 皆從自性生 諸(30)法 在
自性中 如天常淸 如日月 常明 爲浮雲 盖覆 上明下暗 忽遇風
吹 衆雲 散盡 上下俱明 萬象 皆現 世人性 常浮遊 如彼雲天
亦復如是 智如日慧如月 智慧常明 於外 著境 被妄念浮雲 盖
覆 白性 不得明朗 若遇善知識 聞眞法 自除迷妄 內外明徹 於
自性中 萬法 皆現 見性之人 亦復如是 此名淸淨法身佛-大.興.
德.宗 三百二(31)
* 만법의 근원인 청정자성(淸淨自性)을 덮은 망념의 뜬구름을 다
흩어버리면 우주의 위 아래와 몸과 마음의 안팎이 확연명철(廓然明
徹 툭 트이어 사무쳐 밝음)하여, 깨끗한 유리병 속에 밝은 달을 담
은 것과 같다. 내외명철을 <영락경(瓔珞經)>, <능엄경(楞嚴經)>에서
는 구경묘각(究竟妙覺)이라고 하였으며, 육조는 법신불(法身佛)이라
고 하였다. <천태사교의 원교장(天台四敎儀圓敎章)>에서는 아래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였다.
"미세한 무명(無明)을 나아가 부수고 묘각의 지위에 들어가서 무
명의 부모를 영원히 이별하고 구경의 열반산정에 오르니 대열반이라
이름하는지라, 청정법신을 이루어 상적광토(常寂光土 언제나 고요한
광명 세계)에 사니, 곧 원교불상(圓敎佛相 원교의 부처님 모습)이니
라[進破微細無明하고 入妙覺位하야 永別無明父母하고 究竟登涅槃山
頂하니라 名大涅槃이라 成淸淨法身하야 居常寂光土하니 卽圓敎佛相
也니라]."
자재보살(自在菩薩)들이 오매일여(寤寐一如 자나깨나 한결 같음)
는 되어도 구경묘각을 실증(實證)하지 못하면 '내외명철'의 경지는
되지 못하니, 이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극심심처(極甚深處 지극히
깊은 곳)이다.
동황본에는 '견성한 사람도 또한 이와 같다[見性之人도赤復如是라]'
는 구절이 빠졌으나, 망념이 없어져 만법이 모두 나타난 청정법신불
이 곧 견성이므로 상관이 없다. 이로써 육조는 견성이 곧 성불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자기 성품의 심지(心地 마음자리)를 지혜로써 관조(觀照 비추어
봄)하여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만약 본래 마음
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이미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요, 반야
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이니라.
`自性心地 以智慧觀照 內外明(名)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是
解脫 旣得解脫 卽是般若三昧 悟般若三昧 卽是無念-敦 三一
八(34)
지혜로 관조하여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만약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
매며 무념이니라.
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大.興.德.宗 三一八
*앞 항(項)에서는 내외명철이 청정법신불이라 하였고, 이 항에서
는 내외명철이 곧 식심(識心 마음을 앎), 해탈, 반야삼매(般若三昧),
무념(無念 생각 없음)이라고 하였다. 식심은 곧 견성이므로, 견성은
법신불(法身佛)이며 반야삼매며 무념임을 말하여 주고 있다.
곧 견성을 하여서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卽得見性 入若三昧-敦 三一四(35)
*견성은 곧 반야삼매임을 말한다.
육진(六塵) 속에서 여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 감에 자
유로움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於六塵中 不離不染 來去自由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
行-敦 三一八
육진 속에서 물들지도 않고 섞이지도 않아서, 가고 옴에 자유로우
며 널리 사용하여도 걸림 없음이 곧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니, 무념
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於六塵中 無染無雜 來去自由 通用無滯 卽是般若三昧 自在解
脫 名無念行-大.德.興.宗 三一八(36)
*식심, 견성, 해탈, 무념, 반야삼매 등은 모두 법신불이며, 묘각인
내외명철임을 강조하여 말하였다. 이는 견성이 곧 성불이라고 말함
이니, <기신론(起信論)의 '구경각 즉 견성(究竟覺卽見性)'과 같은 말
이다. 육조는 '견성이 곧 성불'임을 이렇게 소상하고 정확하게 말씀
하였으므로, 견성하여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한 뒤에 성불한다는 것
은 육조의 정통 사상이 아니니, 이러한 주장은 육조의 정전(正傳)에
서 배제되어야 한다.
3. 유전돈법(唯傳頓法)
오조(五祖)가 <금강경>을 강설하심에 혜능이 한 번 듣고 말 끝에
문득 깨치니라. 그 밤에 법을 받으니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문득 돈
법(頓法)과 가사를 전하며 '너를 육대조(六代祖)로 삼는다'고 하였다.
五祖說金剛經 惠能 一聞 言下 便悟(伍) 其夜 受法 人盡不
知 便傳頓法 衣 汝爲六代(伐)祖-敦 二八五
*이는 오도전법(悟道傳法 도를 깨치고 법을 전함)을 대강 서술한
것으로 돈법은 돈오법(頓悟法)이라는 말이다.
말 끝에 모든 법이 자기의 성품을 떠나지 않음을 문득 깨닫고 내
가 말씀드렸다.
"어찌 자성이 본래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생멸 없
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움직임이 없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리오!"
오조스님은 내가 본래의 성품을 깨쳤음을 아시고 내게 말씀하셨
다.
"본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말
끝에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아 스스로 본래 성품을 보면 곧 '인천의
스승, 부처[人天師佛]'니라."
삼경(三更)에 법을 받으니, 사람들이 다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곧 심인(心印)의 돈법과 의발(衣鉢)을 전하고, '너를 육대조사로 삼는
다'고 하였느니라.
言下 便悟一切萬法 不離自性 某甲 啓言 何期自性 本自淸淨
何期自性 本不生滅 何期自性 本自具足 何期自性 無動無搖
能生萬法 五祖知悟本性 乃報某甲(38) 言 不識本心 學法無益
若言下 自識本心 自見本性 卽名人天師佛 三更 受法 人盡不
知 便傳心印頓法 及衣鉢 汝爲六代祖-大.興.德.宗 二八五(39)
*이는 돈황본보다 상세하다.
대승사본의 '모갑(某甲)'과 돈법(頓法)]을 다른 본에서는 각각 '혜
능(慧能)'과 '돈교(頓敎)'라고 하였다. 돈법은 돈오법문(頓悟法門)이요,
돈교는 돈오교시(頓悟敎示)이므로, 내용은 동일하다.
'하기(何期)'이하는 깨친 법[悟法]의 내용인데, 오조가 인가(印可)
하며 말씀하시기를 식심견성하면 곧 이름이 '인천의 스승, 부처'라고
단언하였다. 그리하여 식심견성하면 불지(佛地 부처님의 지위)임을
선언하였으며, 지위(地位)와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넘
어 여래지(여래의 지위)에 들어가는[一超直入如來地] 돈오법임을 분
명히 하였다. 이는 견성하면 내외 명철인 묘각불지(妙覺佛地)임을
말한 것이니, 불지가 아닌 삼현(三賢), 십성(十聖)은 모두 견성이 아
니라고 한 것이다.
오직 돈교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을 부수는도다.
唯傳頓敎法 出世破邪宗-敦 三二七
오직 견성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을 부수는도다.
唯傳見性法 出世破邪宗-大.興.德.宗 三二七(41)
*돈황본에는 돈교법(頓敎法)이라 하고 다른 본에는 견성법(見性
法)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교가(敎家)의 돈교가 아니요 선무느이 '견
성돈오교법'을 지칭하는 것이어서, 견성법이 곧 돈교이며 돈교법이
곧 견성법이다. <단경>에서 많이 언급한 돈교는 견성하는 돈오교시
(頓悟敎示)이다.
대사가 이 돈오교법을 전하니 배우는 사람들은 같은 한 몸이기를
바라노라.
大師令傳此頓敎 願學之人同一體-敦 三二十
우리 조사가 오직 이 돈법을 전하니 배우는 사람들이 같은 한 몸
이기를 바라노라.
吾祖唯傳此頓法 願學之人同一體-大.德.興.宗 三二十
*조조상전(祖祖相傳 조사와 조사가 서로 전함)은 견성하는 돈오교
법뿐이다.
이는 다만 돈교라, 또한 대승(大乘)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할 때는
수많은 세월을 지나지만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此但是頓敎 亦名爲大乘 迷來經累劫 悟卽刹那間-敦 三二九
(42)
이 게송은 돈오 법문이요 또한 큰 법의 배[大法船]이니, 미혹하여
들으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지만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此頌 是頓敎 亦名大法船 迷聞經累劫 悟則刹那間-興.德.宗 三
二九(43)
*여러 겁을 잘못 헤매다가도 찰나 사이에 오달하므로 '돈(頓)'이라
고 한다. 육조의 법문은 유돈무점(唯頓無漸 오직 '돈'만 있고 '점'은
없는 것)이어서 돈오하면 곧 바로 불지에 들어가[直入佛地] 지위, 점
차를 없애는 것이 <단경>의 근본 방침이니, 육조는 이를 '직료성불
(直了成佛 당장 성불해 마침)'이라고 표현하였다.
나는 오조인(五祖忍)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고 말 끝에 크게 깨
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다. 그러므로 이 돈법을 뒷날에
널리 퍼지게 하여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돈오케 하여 저
마다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의 본성을 단박에 깨치도록 하는
것이니라.
我於忍和尙處 一聞 言下 大悟(伍) 頓見眞如本性 是故 將此
(汝)頓法 流行後代 令(今)學道者 頓悟菩提 各自觀心 令自本
性 頓悟-敦 三一七
*돈견본성(頓見本性 본성을 단박에 봄)과 돈오보리(頓悟菩提 보리
를 단박에 깨달음)는 같은 뜻이니, 이것이 육조의 돈교법문이다.
내가 오조스님 밑에서 한 번 듣고 말 끝에 문득 깨쳐 진여의 본
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으니, 이러므로 이 교법이 널리 퍼져 도를 배
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돈오하여 저마다 스스로 마음을 살펴 자기
의 본래 성품을 보게 하느니라.
我於忍和尙處 一聞 言下 便悟 頓見眞如本性 是以 將此敎法
流行 令學道者 頓悟菩提 各自觀心 自見本性(44)-大.興.德.宗
三二七
*다섯 본이 표현에 있어 자구의 차이는 조금 있으나, 근본 뜻은
같으므로 상관이 없다.
법에는 '돈'과 '점'의 구별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
이 있으니, 미혹하면 차츰차츰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바로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니, 깨치
면 원래로 차별이 없느니라.
法無頓漸 人有利鈍 迷(明)漸契(勸) 悟人 頓修 識自(白)本
<心> 是見本性 頓卽元無差別-敦 二九五(45)
*'明'은 각 본에 '迷'로, '勸'은 '契'로, '本'은 '本心'으로 되어 있으므
로, 잘못되고 빠진 것이 분명하여 바로잡는다. 오인돈수(悟人頓修 깨
친 사람은 단박에 닦음)는 분명하게 있으므로 식심견성이 곧 돈수임
을 말한다. 그리고, 깨달은 뒤에는 영리함과 어리석음[利鈍]의 차별
도 있을 수 없다.
미혹한 사람은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으니, 스스로
본래 마음을 알고 스스로 본래 성품을 보면 곧 차별이 없느니라.
迷人 漸契 悟者 頓修 自識本心 自見本性 卽無差別-大.興.德
二九五(46)
*종보본에는 <미혹한 사람은 점차로 닦고 깨친 이는 단박에 계합
한다[迷人漸修悟人頓契]>로 되어 있으나, 근본 뜻은 앞의 항목과 같
다.
"청하오니 대사의 세우지 않는다[不立]하심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는 말씀하였다.
"자성은 잘못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어서 생각
생각이 반야 지혜로 관조하여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났으니 무엇을 가
히 세우리오. 자성은 단박에 닦는 것이니 세우면 점차가 있으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請大師 不立 如何 大師言 自性(姓) 無非無亂無痴 念念般若
觀照 常(當)離法相 有何可立 自性頓修 立有漸 此所(契)以不
立-敦 三三八(47)
"어떤 것이 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자성은 잘못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으며 어지러움도 없어서 생각
마다 지혜가 밝게 비춰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나서 자유자재하여 거침
이 없으니 무엇을 세운단 말인가? 자기의 성품을 스스로 깨쳐서 돈
오돈수(頓悟頓修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음)하여 점차가 없느니라."
如何是不立義 師曰自性 無非無痴無亂 念念般若觀照 常離法
相 自由自在 縱橫盡得 有何可立 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
次-大.興.德.宗 339
*식심, 견성, 대오(大悟), 돈오는 원해 묘각인 내외명철을 내용으
로 한다. 그리하여 삼현(三賢), 십성(十聖)을 뛰어넘었으므로 돈오돈
수라 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선(六祖禪)의 근본 사상이다. 그러므로
돈법, 돈교로써 일체의 점문(漸門)을 배제한 것이다.
마땅히 반야로 관조하면 찰나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져 이것이
곧 나의 진정한 선지식이라, 한 번 깨침에 곧 부처님을 아느니라. 자
기의 성품의 마음자리에 지혜로 관조하여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요 곧 해탈이니라. 이미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
매니,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무념이니라.
當起般若觀照 刹那間 妄念 俱滅 卽是自眞正善知識 一悟 卽
知佛也 自性心地 以智慧觀照 內外明(名)徹 識自本心 卽是解
脫 旣得解脫 卽是般若三昧 悟班若三昧 卽是無念-敦 三一八
(49)
반야지혜가 일어나 비추면 한 찰나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지나니,
만약 자기의 성품을 알면 한 번 깨침에 곧 부처님 지위에 이르느니
라. 지혜로 비춰서 내외명철하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나니, 본래
마음을 알면 곧 본래 해탈이요, 만약 해탈을 얻으면 곧 반야삼매니,
이것이 무념이니라.
起般若觀照 一刹那間 妄念 俱滅 若識自性 一悟 卽至佛地 智
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
是般若三昧 卽是無念-大.興.德.宗 三一八(50)
*돈황본에는 '한 번 깨침에 부처님을 안다[一悟知佛]'고 하였고,
각 본에서는 '한 번 깨침에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一悟佛地]'고 하여
표현이 서로 다른 것 같으나, 반야로 관조하여 망념이 다 없어지면
내외명철하여 불지[佛地 부처님의 지위]가 아닐 수 없으므로, '부처
님을 안다[知佛]'함은 곧 '부처님 지위[佛地]'인 것이다. 또한 네 본에
서 '만약 자기의 성품을 알면 곧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若識自性하면
卽至佛地]'고 한 것은 '식심견성'이 곧 부처님 지위임을 육조가 친히
말씀한 중요한 법문이니, 식심 견성하면 묘각(妙覺)인 내외명철임을
더욱 더 뚜렷이 하였다.
법달이 말 끝에 크게 깨치고 말하기를 "이후로 생각생각 부처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하니, 대사가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행이 곧
부처님이니라"하였다.
法達 言下 大悟 自言 已後 念念修行不行 大師言 卽佛行 是
佛-敦 三四五(51)
*대승사본에는 '부처님 행 닦기를 원한다[願修佛行]', 흥성사본에
는 '바야흐로 부처님 행을 닦는다[方修佛行]'고 하였으나 뜻은 같다.
덕이본과 종보본에는 이 구절이 빠졌으나, 다른 세 본에는 수록되어
있으므로 상관이 없다.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니 기억과 집착이 없는지라, 광망(�x
妄)을 일으키지 말라. 곧 스스로 진여의 성품이니라. 지혜로써 관조
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돈오견성(頓悟見性)하면 불지(佛地)이므로 오후점수(悟後漸修 깨
친 뒤에 점차로 닦음)는 필요없고 부처님 행을 수행하는 것이니, 이
는 교가의 점수사상으로 어지럽게 된 종문(宗門)에 일대 활로(活路)
가 되는 것이다.
자성이 삼신(三身 법신, 보신, 화신의 세 몸)을 갖추어 밝음을 빛
내어 사지(四智 부처가 갖추는 세 가지 지혜)를 이루나니, 보고 듣는
인연을 여의지 않고 초연히 부처님 지위에 오르느니라.
自性 具三身 發明成四智 不離見聞緣 超然登佛地-德.宗 三五
十(52)
*이 항(項)은 뒷 날 덧붙인 '참청기연편(參請機緣編)'에 들어 있는
것으로 돈황본에는 없으나 <전등록> 등에 육조의 법문으로서 많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육조의 법문임을 의심할 수 없는 유명한 구절이
다. 돈오견성하면 삼신, 사지를 이루어 초연히 부처님 지위에 오르니
[超然登佛地] 오인돈수, 유전돈법(唯傳頓法 오직 돈법만을 전함)을
항상 주장한 육조의 면목이 뚜렷하다.
4. 무념위종(無念爲宗)
나의 법문은 옛부터 모두 무념을 세워 종(宗)을 삼나니, 모양 없
음[無相]으로 몸[體]을 삼고 머뭄 없음[無住]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我自法門 從上已來 [頓漸] 皆立無念爲(無)宗 無相爲(無)體
無住[無]爲本-敦 二九五
*돈점(頓漸) 두 자는 군더더기임이 밝혀졌으며, 무념무종(無念無
宗), 무상무체(無相無體), 무주무위본(無住無爲本)은 무념위종(無念爲
宗), 무상위체(無相爲體), 무주위본(無住爲本)을 잘못 베낀 것이다.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먼저 무념을 세워 종을 삼고, 모양 없음으
로 몸을 삼고 머뭄 없음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我此法門 從上已來 先立無念爲宗 無相 爲體 無住 爲本-大.
興.德.宗 二九五(54)
*육조의 무념은 망상이 다 없어진 불지무념(佛地無念 부처님 지
위의 무념)이다.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是以 立無念爲宗-敦 二九六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所以 立無念爲宗-大.興.德.宗 二九六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此敎門 立無念爲宗-敦 二九七
이 법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此法門 立無念爲宗-大.興.德.宗 二九七(55)
*육조가 무념위종(無念爲宗 무념으로 종을 삼음)을 거듭 말씀하신
것은 육조의 근본 입장이 내외명철한 묘각무념(妙覺無念)에 있기 때
문이다.
세상 사람이 견해를 버리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 만약 유념(有念
생각 있음)이 없으면 무념도 또한 서지 못하느니라. 없다[無]함은 무
슨 일이 없다 함이며, 생각함이란 무슨 물건을 생각함인가? 없다 함
은 상대되는 두 모양의 모든 진로(塵勞 번뇌)를 버림이요, 진여는 생
각[念]의 몸[體]이며 생각은 진여의 씀[用]이니라. 자성이 생각을 일
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見聞覺知], 만 가지 경계에 물들지
아니 하고 항상 자재하나니, <유마경>에 이르기를 '밖으로 능히 모
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第一義]에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世人 離見 不起於念 若無有念 無念 亦不立 無者 無何事 念
者 念何物 無者 離二相諸塵勞 眞如 念之體 念是眞如之用 性
(姓)起念 雖卽見聞覺知(之) 不染萬境(鏡)而常自(白)在 維摩經
云 外能善分別諸相 內於第一義而不動-敦 二九七(56)
*무념은 유무(有無)나 선악(善惡)처럼 상대되는 두 모양의 진로를
영원히 여읜 진여정념(眞如正念)을 말한다.
없다 함은 상대되는 두 모양의 진로의 마음이 없음이요, 생각함이
라 함은 진여본성을 생각함이니, 진여는 생각의 몸이요 생각은 진여
의 씀이니라, (삭제 부분) 진여의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여섯 모양을
생각하여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만 가지 경계에 물들지 ㅇ아
참된 성품이 항상 자재하며 밖으로는 비록 모든 물질과 모양[色相]
을 분별하나 안으로는 첫째 뜻에서 움직이지 않느니라.
無者 無二相諸塵勞之心 念者 念眞如本性 眞如 卽是念之體
念 卽是眞如之用 (削除部分)眞如自性 起念 念六相 雖有見聞
覺知 不染萬境而眞性 常自在 外能分別諸色相 內於第一義而
不動-大.興.德.宗 二九七(57)
*이 항은 돈황본과 약간 표현이 다르기는 하나, 진로를 영원히 떠
난 진여정념(眞如正念)의 근본 사상은 같다. 중간에 보조(普照)가 발
문(跋文)에서 지적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는 부분(眞如自性起念 非眼
耳鼻舌能念 眞如有性 所以起念 眞如若無 眼耳色 聲當時卽壞-삭제부
분) 은 삭제하였는데, 돈황 고본에는 이 부분이 처음부터 없으므로
돈황본의 뛰어남을 알 수 있으며, 삭제 부분은 이 항의 본 뜻인 '진
여정념(眞如正念)'을 설명해 보이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니 기억과 집착이 없는지라, 광망(�x
妄)을 일으키지 말라. 곧 스스로 진여의 성품이니라. 지혜로써 관조
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悟此法者 卽是無念 無憶無着 莫起(去)�x妄 卽自是眞如性(姓)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是見性成佛道-敦 三一三
(59)
*법을 깨달으면 곧 무념이요,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
이다.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라, 기억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망념
도 없어서 광망(�x妄)을 일으키지 않고 자기의 진여의 성품을 써서
지혜로써 관조하여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
이 곧 성품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는 것이니라.
悟此法者 卽是無念 無憶無著無妄 莫起�x妄 用自眞如性 以智
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是見性成佛道-大.興.德.宗 三一
三
*이 항 또한 돈황본과 표현이 약간 다르기는 하나 큰 뜻은 같다.
법을 깨달으면[悟法] 무념이요 견성성불임을 말하여 준다.
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모든 법에 물들거나 매달리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하되 모든 곳에 끄달리지 않느니라.
無念法者 見一切法 不著一切法 遍一切處 不著一切處-敦 三
一八(60)
만약 모든 법을 보되 마음이 물들어 끄달리지 않으면 이것이 무
념이니라.
若見一切法 心不染着 是名無念-大.興.德.宗 三一八
모든 경계 위에서 물들지 않음을 무념이라 이름하느니라.
於一切境(鏡)上 不染 名爲無念-敦 二九六
모든 경계 위에서 일만 가지 경계를 만나서도 마음이 늘 고요하
여 생각 위에 모든 경계를 떠나고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나니,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於諸境上 心若能萬境 常寂 念上 常離諸境 不於境上 生心 所
以 立無念爲宗-大 二九六(61)
모든 경계 위에서 마음이 물들지 않음이 무념이라, 자기의 생각
위에 항상 모든 경계를 떠나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느니라.
於諸境上 心不染曰無念 於自念上 常離諸境 不於境上 生心-
興.德.宗 二九六
*모든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고 마음이 물들지 않음을 무념이
라고 하는 바, 식심견성한 불지무념이 아니면 될 수 없는 것이니, 불
오염(不汚染 물듦이 없음)은 곧 구경무념(究竟無念)을 말한다.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법에 두루 통달하며, 무념법을 깨친 이
는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보면, 무념법을 깨친 이는 부처님의 지위
에 이르느니라.
悟無念法者 萬法 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法者
至佛地位-敦.大.興.德.宗 三一八(62)
*이는 옛 조사들이 특히 많이 인용하는 구절로, 육조는 무념이 곧
만법진통(萬法盡通 만법이 다 통함), 제불경계(諸佛境界 모든 부처님
의 경계), 불지위(佛地位)이므로, 식심견성하면 내외명철, 불지무념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 법문은 언제나 한결같아 터럭만큼도 어김이 없
으니, 이 법을 잇는 법손들은 이 철칙(鐵則)을 저버려서는 안 되며,
만약 어긋난다면 육조의 법손이 아니다.
이로써 <단경>의 대강을 알았다. <단경>의 목표는 식심견성이며
식심견성은 묘각인 내외명철이므로, 이를 반야삼매, 해탈, 무념이라
고 한다.
이는 점차(漸次)를 밟아 닦아가지 아니하고 당장 성불해 마친다
[直了成佛]고 하는 돈수이므로, 육조는 늘 유전돈법을 고창(高唱)한
것이다. 돈법이므로 무념으로 종을 삼아서 모든 망념이 사라졌으니,
제불의 경계인 불지라고 단언하였다. 그리하여 견성이 곧 성불임을
청천백일과 같이 선설(宣設)하였으며, 깨달은 뒤에는 부처님 행을 수
행[修行佛行]하였으니, 이 법을 잇는 법손들은 육조의 성의(聖意)를
바르게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돈오견성하고 차제점수(次第漸修 차
례로 차츰차츰 닦음)하여 구경성불(究竟成佛)한다'는 하택(荷澤), 규
봉(圭峯)의 점수사상은 교가(敎家)의 전통이요 육조의 사상을 바로
전한 것이 아닌 지해(知解)라고 옛 조사들이 극력 배제한 것이니, 육
조의 후손인 우리는 <단경>을 숙독(熟讀)하고 실천하여 삿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힘써 노력하여야 한다.
5. 정혜체일(定慧滯一)
나의 이 법문은 정(定)과 혜(慧)로써 근본을 삼나니, 먼저 혜와 정
이 서로 다르다고 그릇 말하지 말라. 정과 혜가 한 몸이어서 둘이
아니니, 곧 정은 혜의 몸[體]이요 혜는 정의 작용[用]이니라. 곧 혜의
때에 정이 혜 속에 있고 정의 때에 혜가 정 속에 있나니, 이 뜻은
곧 정과 혜가 함께 함이니라.
我此法門 以定慧爲本 第一勿迷言定慧別 定慧體一不二 卽定
是慧體 卽惠是定用 卽惠之是 定在惠卽定之時 惠在定 此義
卽是<定>慧等-敦 二九三
나의 이 법문은 정, 혜로써 근본을 삼나니, 정, 혜가 서로 다르다
고 그릇 말하지 말라. 정과 혜가 한 몸이요 둘이 아니니, 정은 혜의
몸이요 혜는 정의 작용이니라. 곧 혜의 때에 정이 혜에 있고 정의
때에 혜가 정에 있나니, 만약 이 뜻을 알면 정과 혜가 함께 배움이
니라.
我此法門 以定慧爲本 勿迷言定慧別 定慧一切不二 定是慧體
慧是定用 卽慧之時 定在慧 卽定之是 慧在(65)定 若識此義
定慧等學-大.興.德.宗 二九三(99)
*함께 배운다[等學]함은 정혜등지(定慧等持 정과 혜를 함께 가짐)
곧 자성삼매(自性三昧)를 말함이요 수도방편(修道方便)이 아니니,
<열반경> 28에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정과 혜를 함께 하기 때문
에 부처의 성품을 밝게 본다[諸佛世尊은 定惠等故로 明見佛性이니라]'고
하였다.
이렇게 제불의 자성삼매인 정과 혜를 수행점차(修行漸次 수행해
가는 차례)의 방법으로 삼는 것은 큰 착각이며 육조가 말씀하신 정,
혜의 본 뜻이 아니다.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빛 같아서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느니라.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
은 등불의 작용이니 곧 두 몸이 있으나 두 갈래가 아니니, 이 정과
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定慧 猶如何等 如燈光 有燈卽有光 無燈卽無光 燈是光之(知)
體 光是燈之用 卽有二體 無兩般 此定慧 亦復如是-敦 二九五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빛 같아서 등불이 있으면 빛이
있으나 등불이 없으면 빛이 없나니,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
의 작용이라. 이름은 비록 둘이 있으나 몸은 본래 같은 하나이니, 이
정과 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定慧 猶如何等 猶如燈光 有燈卽光 無燈卽不光 燈是光之體
光是燈之用 名雖有二 體本同一 此定慧 亦復如是-大.興.德.宗
二九五(67)
*정, 혜를 등불과 빛에 비유한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대저 정, 혜
는 적조(寂照 고요함과 비침)를 말함이니, 일체 미망(迷妄)이 없어지
면 자연히 진여혜광(眞如慧光)이 드러나 적조가 쌍류(雙流)하여 정
혜등지가 되어 제불의 대적광삼매(大寂光三昧)에 들게 된다. 그러므
로 정혜등등(定慧等等 정과 혜가 함께 하고 함께 함)의 구경불지(究
竟佛智)가 아니면 정, 혜가 아니요 미망이다.
점문(漸門)에서 '정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以定治平亂
想] 혜로써 무기를 다스린다[以慧治平無記]'고 하여 이것을 '정혜쌍
수(定慧雙修 정, 혜를 쌍으로 닦음)'라고 하나, 이는 정혜등지인 육조
의 정, 혜는 아니다.
최상승법을 닦으면 경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물음도 없고 옴
도 없나니, 정, 혜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아니하므로 삼세제
불이 여기서 삼독(三毒)을 바꾸어 계정혜(戒定慧)로 삼느니라.
最上乘法 修行 定成佛 無去無住無來 是 定慧等 不染一切法
三世諸佛 從中 變三毒爲戒定慧-敦 三一三
*정혜등등하면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나니, 이는 삼세제불의 자성삼매(自性三昧)이다.
정, 혜가 서로 다르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은 법에 두 모양이 있느
니라.
定慧各別 作此見者 法有二相-敦 二九三(69)
*정혜각별(定慧各別 정과혜가 서로 다툼)하면 법에 두 가지 모양
을 둔 것으로서 정혜등등한 육조의 정혜는 아니니, 종문(宗門)에서
금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으로서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
린다[以定治平亂想]'하고, '혜로써 무기를 다스린다[以慧治平無記]'고
하여 정과 혜를 각각 따로 하여 점수(漸修)의 방편으로 삼으니, 이는
실로 육조의 사상을 거스른 것이다.
그러므로 교가(敎家)의 점수사상을 버리고, 오매일여가 되어도 언
구(言句)를 참구(參究)하는 바른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곧 대혜(大
慧)선사가 오매일여에 이르렀으나 원오( 悟)선사는 '언구를 의심치
않음이 큰 병이다[不疑言句是爲大病]'고 꾸짖으므로, 마침내 대혜선
사가 대오(大悟 크게 깨침)하여 양기정전(楊岐正傳)을 계승한 것이
다.
'오매일여한 때에 점점 이르렀어도 다만 화두하는 마음을 여의지
않음이 중요하다[漸到寤寐一如時에도 只要話頭心不離라]'고 한 태고(太
古)선사의 유훈(遺訓)과 같이, 극히 어려운 오매일여의 깊은 경계에
서도 화두를 힘써 참구해야 한다.
만약에 오매일여는 고사하고 몽중일여(夢中一如 꿈속에서 한결같
음), 동정일여(動靜一如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으나 한결같음)도 안
된 미망에서 화두를 버리고 정혜쌍수를 말한다면 참으로 한심스런
노릇이며 불조의 혜명(慧命)을 끊어 버리는 잘못된 법이니, 오직
<단경>을 스승으로 하여 가르침을 바로 계승하는 본분납승(本分衲
僧)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육조가 천명한 내외명철의 단경사상이다.
곧 마음을 혜라 하고 곧 부처가 이에 정이니, 정과 혜가 함께 하
여 마음 속이 청정하니라. 이 법문을 깨침은 너의 익힌 성품으로 말
미암은 것이니, 인(因)은 본래로 남[生]이 없음이라, 쌍수(雙修 쌍으
로 닦음)가 바르도다.
卽心名慧 卽佛乃定 定慧等等 意中 淸淨 悟此法門 由汝習性
因本無生 雙修是正-德.宗 三三七(72)
*이는 나중에 추가된 <참청기연편(參請機緣編)>에 들어있다. 이
쌍수를 점수문으로 오해하는 바 있으나, 이는 본 송(頌)과 같이 마음
속[意中]이 청정하여 정혜등등한 자성무생(自性無生 자성은 남이 없
음)에서 하는 말이다. 무생(無生 남이 없음)에서 쌍수(雙修 쌍으로
닦음)라 함은 적조쌍류(寂照雙流 고요함과 비침이 쌍으로 흐름)라
함과 같으니, 무생을 깨달아 마음 속이 청정하면 자연히 고요하면서
항상 비추고[寂而常照], 비추면서 항상 고요하여[照而常寂] 적조쌍류
라고 말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혜등등이며 등지(等持 함께 지님, 삼매)라고 하는
바, 정 가운데 혜가 있고 혜 가운데 정이 있어서 정, 혜가 쌍등(雙等
쌍으로 함께 함)하므로 쌍수라고도 한다.
6. 무생서방(無生西方)
우매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기에 가서 나려 하고 깨친 사람은 스
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서 불국토도 깨끗하다'하시니라.
迷人 念佛 往生彼 悟者 自淨其心 所以佛言 隨其心淨 則佛土
淨-敦.大.德.宗 三二三
마음에 다만 깨끗치 않음[不淨]이 없으면 서쪽 나라가 여기서 멀
지 않고, 마음에 깨끗치 못한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을 해도 왕생하
여 이르기 어렵느니라.
心但無不淨 西方 去此不遠 心起不淨之心 念佛 往生難到-敦
三二四(74)
마음 자리[心地]에 다만 착하지 않음[不善]이 없으면 서쪽 나라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만약 착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면 염불하여도 왕
생하여 이르기 어렵느니라.
心地 但無不善 西方 去此不遙 若懷不善之心 念佛 往生難到-
大.興.德.宗 三二四(75)
*정토가(淨土家)에서는 대업왕생(大業往生 업을 지닌 채로 극락
세계에 가서 남)을 주장하여 착하지 못한 사람도 미타(彌陀)의 원력
으로 극락에 가서 난다고 말하지만, 설혹 가서 난다 하여도 이는 자
기의 업력(業力)에 따르는 환주장엄(幻住莊嚴)이요, 모든 부처님의
실지정토(實地淨土)는 아니다.
내외명철하면 서쪽 나라와 다름 없나니, 이 법을 닦지 않고 어떻
게 서쪽 나라에 이르리오.
內外明徹 不異西方 不作此修 如何到彼-敦.大.興.德.宗 三二五
*내외명철은 묘각정토(妙覺淨土)니, 이것이 육조의 정토이다. 십지
(十地)와 등각(等覺)도 내외명철한 제불정토(諸佛淨土)와 법신불(法
身佛)인 아미타불은 보지 못한다.
만약 무생인 돈법(頓法)을 깨치면 서쪽 나라를 봄이 찰나 사이에
있느니라.
若悟無生頓法 見西方 只在刹那間-敦.大.興.德.宗 二九五(76)
*<단경>의 사상은 철두철미한 자성자오(自性自悟 자기의 성품을
스스로 깨침)에 있으므로, 그 이외의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한 생각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곳곳마다 연꽃 피나니, 한 꽃에
한 정토요 한 국토에 한 여래로다[一念心請淨하면處處에蓮花開니一華一
淨土요一土一如來라]'고 한 방거사(龐居士)의 송구(頌句)가 단경사상을
계승한 것이다.
설사 대업왕생을 한다 하여도 제불정토와 미타면목(彌陀面目)은
꿈에도 보지 못하나니, 자성자오하여 남이 없음[無生]을 단박에 깨달
아(頓證], 참으로 미망으로부터 해탈하여야 한다. 미타(彌陀)의 진면
목(眞面目)을 보지 못하는 왕생은 꿈 속의 꼭두각시 놀음[夢中幻戱]
이니, 선가(禪家)에서 선정겸수(禪淨兼修 선과 정토를 함께 닦음) 운
운하는 것은 본분납자(本分衲子)가 아니며 육조의 법손이 될 수 없
다.
7. 불오염수(不汚染修)
대사가 말씀하셨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오는고?"
"한 물건이라고 말씀드린다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그러면 닦아 증득[修證]하는가?"
"닦아 증득함은 없지 않으나 오염(汚染)될 수는 없습니다."
대사가 말씀하셨다.
"다만 이 오염되지 않음[不汚染]은 모든 부처님께선 호념(護念)하
시는 바라, 네가 벌써 이러하고 나 또한 이러하니라."
師曰 什�物 恁�來 曰說似一物 卽不中 師曰 還可修證否 曰
修證卽不無 汚染卽不得 師曰 只此不汚染 諸佛之所護念 汝旣
如是 吾亦如是-德.宗 三五 九(78)
*불오염(不汚染)을 육조는 무념이라고 하였으며, 무념은 내외명철
인 불지(佛地)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불지무념이 아니면 불오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오염은 제불의 호념하는 바이며,
너도 이러하고 나 또한 이러하도다>라고 한 것은 부처님행을 수행
[修行佛行]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면 수증(修證 닦아 증득함)이란 무슨 말인가?
옛 조사들은 이 불오염의 수증을 점차수증(漸次修證 점차로 닦아
증득함)이 아니요, 불지인 원증(圓證) 후의 원수(圓修)라고 하여, 착
의끽반(着衣喫飯 옷 입고 밥 먹음), 소지분향(掃地焚香 땅을 쓸고 향
을 사룸) 등을 지칭하는 바, <털끝만큼도 닦고 배우는 마음이 없고,
모양 없는 빛 속에서 항상 자재하다[不起纖毫修學心하고無相光中常自
在라]>고 한 것이다.
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이 수증을 점수사상에 배합하여 망상을
닦아 다스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이 불오염을 모르는 큰 잘못으
로서, 육조의 법문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점수문에서도 불오염을 주장하기는 하나, 점수문의 돈오는 '육진
의 번뇌가 전과 다름 없어서[客塵煩惱 如前無殊]' 무념이 아니므로
생각 생각 오염되어 불오염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념을 돈증
(頓證 단박에 깨침)하기 전의 수행은 모두 오염수(汚染修)인 것이다.
비록 망념이 본래 공(空)한 것은 안다 하여도, 망념이 계속 일어났다
없어졌다 하므로 경계를 따라 생각이 일어나[遇境生念] 전전(轉轉)히
오염되기 때문이다.
8. 불보리인(佛菩提因)
만약 수행하여 부처님을 찾는다고 할진댄 어느 곳에서 참됨[眞]을
찾으려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이 있으
면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因]이로다.
若欲修行云覓佛 不知何處欲求眞 若能身中 自有眞 有眞 卽是
成佛因-敦 三八六
*몸 가운데 진여(眞如)가 있는 줄 알면, 이것이 수도하여 성불할
수 있는 씨앗이 된다는 말이다.
만약 수행하여 부처가 되고자 할진댄 어느 곳에서 참됨을 찾으려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만약 마음 가운데 스스로 참됨을 보면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로다.
若欲修行覓作佛 不知何處擬求眞 若能心中 自見眞 有眞 卽是
成佛因-興.德.宗 三八六(81)
*돈황본에는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이 있다[身中自有眞]'고 되어
있고, 다른 각 본에는 '마음 가운데에서 스스로 참됨을 본다[心中에自
見眞]'고 하여 서로 차이가 있다.
'몸 가운데 참됨이 있음'은 몸 속에 진여가 있음이 되고, '마음 가
운데에서 스스로 참됨을 본다'함은 진여를 스스로 보는 것인지라 곧
견성이 된다. '몸 가운데 참됨이 있음[身中有眞]'은 성불하는 씨앗[成
佛因]이지만, '마음 가운에서 참됨을 봄[心中見眞]'은 견성인 불과(佛
果)로서 인지(因地)가 될 수 없으므로 <단경>의 '견성즉불(見性卽佛
견성이 곧 부처)'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
물론 다른 본들도 '참됨을 보는 것이 곧 성불하는 씨앗[見眞卽成
佛因]'이라고 하지 않고 돈황본처럼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
[有眞卽成佛因]'이라고 하였으므로 원칙상 모순은 없다. 그러나 '마음
가운데에서 참됨을 본다[心中見眞]'고 해 놓고 바로 뒤에 '참됨 있음
이 곧 성불하는 씨앗[有眞卽是成佛因]'이라고 하였으니, 돈황본이 아
닌 다른 본들은 자체의 모순을 면치 못하므로 앞뒤의 글이 맞지 않
는다.
화신 보신 및 정신이여! 세 몸이 원래 한 몸이니, 만약 몸 가운데
서 스스로 보는 걸 찾으면 부처님의 깨달음을 이루는 씨앗이로다.
化身報身及淨身 三身 元本是一身 若向身中 覓自見 卽是成佛
菩提因-敦 三八五(83)
*'멱자견(覓自見)'을 '찾아서 스스로 본다'고 하면 이는 견성한다는
말로서 성불하는 씨앗이 아니므로 '견성즉불'이라는 원칙에 어긋난
다. '스스로 보는 걸 찾는다'고 하면 '견성하는 길을 닦는다'는 말이
므로 성불하는 씨앗이라 하여도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화신 보신 및 정신이여! 세 몸이 원래 한 몸이라, 만약 자성 가운
데로 향하여 능히 스스로 보면 곧 성불하는 깨달음의 씨앗이로다.
法身報身及化身 三身 本來是一身 若向性中 能自見 卽是成佛
菩提因-興.德.宗 三八五(84)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성품 가운데서 스스로 본다[性中自見]'함
은 견성이 된다. 그런데 견성은 불과(佛果)요 인지(因地)가 아니니
'성품 가운데서 스스로 본다[性中自見]'고 하면서 '성불하는 씨앗[成
佛因]'이라 하면, <단경>의 '견성즉불'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
본디 각 본에서는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면 곧 부처라 한다[識心
見性 卽名爲佛]'고 하였고, 또 '만약 자성을 알면 곧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若識自性 卽至佛地]'고 하여 '견성즉불'을 더욱 강조하였으니,
이 대원칙(大原則)에 이긋나는 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뒷 사람들이 베껴 쓸 때 잘못하였거나 아니면 일부러 고쳐 바꾼 것
일 터이므로, 일본 조동종의 개조(開祖)인 도원(道元)의 필사본(筆寫
本)이라는 대승사본에는 논란이 된 앞의 두 구절이 들어 있는 '자성
진불송(自性眞佛頌)'을 모두 삭제해 버렸다.
모름지기 돈황본 및 다른 본에 일관된 근본 사상은 내외명철, 법
신불, 묘각견성(妙覺見性), 오인돈수, 자성돈수의 돈법돈교, 불지무념
을 전제로 한 무념위종, 식심견성, 오후수행불행(悟後修行佛行) 등이
니, 이에 어긋나는 사상은 모두 없애고, 오직 <단경>의 근본으로 돌
아와 육조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어야 한다. 특히 각본 가운데서 '마
음을 알아 성품을 보면 곧 부처라 한다[識心見性 卽名爲佛]', '만약
자성을 알면 곧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若識自性 卽至佛地]'와 같은
법문은 육조의 가르침을 바로 잇고 드날리는 데 한층 도움이 되는
것이다.
제2편 돈황본단경 편역(編譯)
1.서언(序言)
혜능대사가 대범사 강당의 높은 법좌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고 무상계를 주시니, 그때 법좌 아래에는 스님, 비구니, 도교인,
속인등, 일만여 명이 있었다.
소주 자사 위거와 여러 관료 삼십여 명과 유가의 선비 몇몇 사람
들이 대사에게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해주기를 함께 청하였고, 자사
는 이윽고 문인 법해로 하여금 모아서 기록하게 하였으며, 후대에
널리 행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이 종지를 이어받아서 서
로서로 전수케 한지라, 의지하여 믿는 바가 있어서 이에 받들어 이
어받게 하기 위하여 이 <단경>을 설하였다.
惠能大師 於大梵寺講堂中 昇高座 說摩訶般若波羅密法 授
(受)無相戒 其時座下 僧尼道俗 一萬餘人 韶州刺史韋 (등據)
及諸官僚(寮)三十餘人 儒士餘人 同請大師說摩訶般若波羅蜜
法 刺史遂令門人僧法海集記 流行後代(伐)與學道者 承此宗旨
遞相傳授 有所依(於)約 以爲 承 說此壇經
2. 심사(尋師)
혜능대사는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
!"
대사께서는 말씀하시지 않고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한
참 묵묵하신 다음 이윽고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조용히 들어라.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법양인데 좌
천되어 영남의 신주 백성으로 옮겨 살았고 혜능은 어려서 일찍 아버
지를 여의었다. 늙은 어머니와 외로운 아들은 남해로 옮겨와서 가는
에 시달리며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았더니라.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다. 혜능을 데리고 관숙사(官宿舍)
에 이르러 손님은 나무를 가져갔고, 혜능은 값을 받고저 문을 나서
려 하는데 문득 한 손님이 <금강경>을 읽는 것을 보았다.
혜능은 한번 들음에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묻기를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가지고 읽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주 황매현 동빙무산에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는데,
지금 그 곳에는 문인이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
사가 승려와 속인들에게 다만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루게 된다고 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
고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다.
能大師言 善知識 心 念摩訶般若波羅蜜法 大師不語 自 心
神 良久乃言 善知識 靜( )聽 惠能慈父 本官 范陽 左降遷流
(嶺)南新州百姓 惠能幼小 父小早亡 老母 孤遺 移來(南)海 艱
辛貧乏(之) 於市賣(90)(買)柴 忽有一客 買柴 遂領惠能 至於
官店 客將柴去 惠能 得錢 却向門前 忽見一客 讀金剛經 惠能
一聞 心明(名)便悟 乃問(聞)客曰 從何處來 指此經典 客 答曰
我於 州黃梅縣(懸)東憑茂(墓)山 禮拜五祖弘忍和尙 見今(令)
在彼 門人 有千餘衆 我於彼聽見大師勸道俗 但持(特)金剛經
一卷 卽得見性 直了成佛 惠能 聞說 宿業有緣 便卽辭親 往黃
梅憑茂(墓)山 禮拜五祖弘忍和尙(91)
홍인화상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
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부처되
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하였다.
오조대사께서는 혜능을 꾸짖으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거니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
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니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
니까?" 하였다.
오조스님은 함께 더 이야기하시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
러 서 있는 것을 보시고 다시 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혜능을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시니, 그 때 혜능은 한 행자가 이끄
는 대로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弘忍和尙 問惠能曰 汝 何方人 來此山 禮拜吾 汝今向吾邊 復
求何物 惠能 答曰 弟子 是嶺(領)南人 新州百姓 今故遠來 禮
拜和尙 不求餘物 唯求<作>佛法 [作] 大師遂責惠能曰 汝是
嶺(領)南人 又是 若爲堪作佛 惠能 答曰 人 卽有南北 佛
性(姓) 卽無南北 (93) 身 與和尙 不同 佛性(姓) 有何差別
大師欲更共議 見左右在傍邊 大師更不言 遂發遣惠能 令隨衆
作務 時有一行者 遂差惠能於 房 踏 八箇餘月(94)
*금강경(金剛經)... '이 한 권의 경이 중생의 자성 속에 본래 있
으니, 스스로 보지 못하는 이는 다만 문자만 독송할 것이요, 만
약 본래 마음을 깨치면 이 경이 문자 속에 있지 않음을 비로소
알비니라[此一卷經 衆生性中 本有 不自見者 但讀誦文字 若悟本
心 始知此經 不在文字 -金剛經序-六祖]'
*직료성불(直了成佛 곧바로 요달하여 부처를 이룸)... 지위와 점
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성불함이니 <영가증도가(永嘉證道
歌)>의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 번 뛰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와 같은 뜻이다.
3. 명게(命偈)
오조 ㅎ인대사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셨다. 문인들
이 다 모이자 말씀하혔다.
"내 저희들에게 말하나니, 세상 사람들의 나고 죽는 일이 크거늘
너희들 문인들은 종일토록 공양을 하며 다만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모두 자성이 미
혹하다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 한 수를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
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의 조사가 되게 하리니, 어
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五祖弘忍於一日 喚門人盡來 門人 集訖(記) 五祖曰 吾向汝
(與)說 世人 生死事大 汝等門人 終日供養 只求福田 不求出
離生死苦海 汝等自性(姓) 迷 福門 何可救汝 汝 且歸房自看
有智(知)惠者 自(白)取本性(姓)般若之知(知之) 各作一偈呈吾
吾看汝偈 若悟(吾)大意者 付汝衣法 爲六代 火急急(97)
문인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 서로 번갈아 말
하기를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써서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모
름지기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상좌는 우리의 교수사이므로 신수상
좌가 법을 얻은 후에는 저절로 의지하게 된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
가 없다."하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쉬고 다들 감히 게송을 바치지
않았다.
그때 화공 노진이 홍인대사의 방 앞에 있는 삼칸의 복도에 '능가
변상'과 오조 대사가 가사와 법을 전수하는 그림을 그려 공양하고,
후대에 전하여 기념하고 자 벽을 살펴보고서 다음날 착수하려고 하
였다.
門人 得處分 却來各至自房 遞相謂言 我等 不須呈心用意作偈
將呈和尙 神秀上座 是敎授師 秀上座得法後 自可依(於)止 請
不用作 諸人 息心 盡不敢呈偈 時大師堂前 有三間房廊 於此
廊下 供養 欲畵楞伽變 幷畵五祖大師 傳授衣法 流行後代 爲
記 畵人盧珍(玲)看壁了 明日 下手(98)
4. 신수(神秀)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스님께서 나
의 마음 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리오. 내가 마음의 게송
을 오조스님께 올려 뜻을 밝혀서 법을 구함은 옳거니와, 조사의 지
위를 넘봄은 옳지 않다.
도리어 범인의 마음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음과 같다. 그러나 만
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마침내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
참을 아무리 생각하여도 참으로 어렵고 어려우며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다. 밤이 삼경에 이르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마음의 게송을 지어서 써 놓고 법을 구해
야겠다. 만약 오조스님께서 게송을 보시고 이 게송이 당치 않다고
나를 찾으시면 나의 전생 업장이 두터워서 합당히 법을 얻지 못함이
니, 성인의 뜻은 알기 어려우므로 내 마음을 스스로 쉬리라.'
上座神秀思惟 諸人 不呈心偈 緣我爲敎授師 我若不呈心偈 五
祖如何得見我心中 見解深淺 我將心偈 上五(99)祖呈意 求法
卽善(卽善求法) 覓祖 不善 却同凡心 奪其聖位 若不呈心 終
(修)不得法 良久思惟 甚難甚難 甚難甚難 夜至三更 不令人見
遂向南廊下中間(問)壁上 題作呈心偈 欲求於法 若五祖見偈
言此偈語<不堪> 若訪覓我 我宿業障重 不合得法 聖意難則
我心自息(100)
신수상좌가 밤중에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
을 지어 써놓았으나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게송으로 말하
였다.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秀上座 三更 於南廊下中間壁上 秉燭題作偈 人盡不知(和) 偈
曰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101)
時時勸拂(佛)拭 莫使有塵埃
신수상좌가 이 게송을 다 써 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오조스님께서 아침에 노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을 그리게 하려 하시다가, 문득 이 게송을 보셨다. 다 읽
고 나서 공봉에게 말씀하셨다. "홍인이 공봉에게 돈 삼만냥을 주어
멀리서 온 것을 깊이 위로하니, 변상을 그리지 않으리라. <금강경>
에 말씀하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 하셨으니,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우게 하여, 이
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에 떨어지니 않게 하는것만 못할 것
이다. 법을 의지하여 행을 닦으면 사람들
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이윽고 홍인대사께서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 앞에 향을
사르게 하시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오조스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우라. 외우는 자는 바야흐로 자성을
볼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인들이 다들 외우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씀
하였다.
神秀上座題此偈畢 歸房臥 無人見 五祖平旦 遂喚(換)盧供
奉來 南廊下 畵楞伽變 五祖忽見此偈 讀訖(請記) 乃謂供奉曰
弘忍 與供奉錢三十千 深勞遠來(102) 不畵變相也 金剛經 云
凡所有相 皆是虛妄 不如留(流)此偈 令迷人誦 依此修行 不墮
三惡 依法修行 人有大利益 大師遂喚門人盡來 焚香偈前 人衆
入(人)見 皆生敬心 <五祖曰> 如等 盡誦此偈者 方得見性(姓)
依(於)此修行 卽不墮落 門人盡誦 皆生敬心 喚言善哉(103)
오조스님이 신수상좌를 거처로 불러서 물으시되,
"네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네가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 하셨다.
신수상좌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조사의 자리를 구함
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써 보아 주옵소서. 제자
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습니까?" 하였다.
오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이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
을 뿐 아직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
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 없
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 안으로 들
어와야만 자기의본성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자성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와 법을 너에게 부촉 하리라."하셨다.
신수상좌는 돌아가 며칠을 지냈으나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五祖(褐)遂喚秀上座於堂內 問(門)是汝作偈否 若是汝作 應得
我法 秀上座言 罪過 實是神秀作 不敢求祖 願和尙 慈悲 看
弟子有小智惠 識大意否 五祖(褐)曰 汝作此偈 見卽來到 只到
門前 尙未得入 凡夫依(於)此偈修行 卽不墮落 作此見解 若覓
無上菩提 卽未可得 須入得門 見自本性(姓) 汝且去 一兩日來
思惟 更作一偈 來呈吾 若入得門 見自本性(姓) 當付汝衣法
秀上座去 數日作不得(105)
*'이 게송을 외는 이는 바야흐로 자성을 본다.[誦此偈者 方
得見性]'고 함은 오조(오조)가 대중을 유인하기 위하여 방편
으로 하신 말씀이다.
5. 정게(呈偈)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면서 이 게송을 외고 있었다. 혜능은
한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
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우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
하여 말하였다.
"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저 한다 하시고, 문인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을 지어와서 보이라 하시고, 큰 뜻을 깨쳤으면 가사와 법을 전
하여 육대의 조사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無相偈) 한 수를 써 놓았더니, 오조
스님께서 모든 문인들로 하여금 다 외우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나
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有一童子 於 房邊過 唱誦此偈 惠能 一聞 知未見性(姓) 未
(卽)識大意 能 問童子 適來誦者 是何言偈 童子答能曰 不
知 大師言 生死事(是)大 欲傳衣(於)(107)法 令門人等 各作一
偈 來呈看 悟大意 卽付衣法 爲六代祖(褐) 有一上座名神秀
忽於南廊下 書無相偈一首 五祖(褐)令諸門人 盡誦 悟此偈者
卽見自性(姓) 依此修行 卽得出離(108)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찧기를 여덟 달 남짓 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
에 가 보질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
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 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워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
에 예배 하였고, 글자를 알자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 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을 배워
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
니라.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또 게송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절 안의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기
므로,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오조스님이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곧 큰뜻을 잘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하시어
대중에게 말씀하기를
"이도 또한 아니로다!"하셨느니라.
惠能 答曰 我此踏 八箇餘月 未至堂前 望上人 引惠能至南廊
下 見此偈禮拜 亦願誦取 結來生緣 願生佛地 童子引能至南廊
下 能 卽禮拜此偈 爲不識字 請一人讀 惠<能>聞(問)已 卽識
大意 惠能 亦作一偈 又請得一解書人 於西間壁上 題(提)著
呈自本心 不識本(109) 心 學法無益 識心見性(姓) 卽悟(吾)大
意 惠能偈 曰
菩提 本無樹 明鏡 亦無臺
佛性(姓) 常淸(靑)淨 何處有塵埃
又偈曰
心是菩提樹 身爲明鏡臺
明鏡本淸淨 何處染塵埃
院內徒(從)衆 見能作此偈 盡怪 惠能 却入 房 五祖(褐)忽見
惠能偈(但) 卽善[知]識大意 恐衆人知 五祖乃謂衆人曰 此亦
未得了(110)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佛性常淸淨 何處有塵埃]'... 각 유통 본에는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일어나리오[本來
無一物 何處惹塵埃]'로 되어 있다.
6. 수법(受法)
오조스님께서 밤중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
을 설해 주셨다. 혜능이 한번 듣고 말끝에 깨쳐서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내 오조스님은 단박 깨치는 법과 가사를 전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써 신표로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
로 깨치도록 하라."
오조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혜능아, 예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
기 속히 떠나라."
五祖夜至(知)三更 喚惠能堂內 說金剛經 惠能 一聞 言下 便
悟(伍) 其夜受法 人盡不知 便傳頓法及衣 汝爲六代祖 衣將爲
信 代代相傳 法以心傳心 當令自悟 五祖言 惠能 自古傳法
命(氣)如懸絲 若住此(113)間 有人害汝 汝卽須速去(114)
혜능이 가사와 법은 받고 밤중에 떠나려 하니 오조스님께서 몸소
구강역까지 혜능을 전송해 주시었으며, 떠날 때 문득 오조스님께서
처분을 내리시되,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
으리라." 하셨다.
이에 혜능은 오조스님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能 得衣法 三更 發去 五祖自送能於九江驛 登時 便五(悟)祖
處分 汝居努力 將法向南 三年 忽弘此法 難起(去) 在後弘化
善誘迷人 若得心開 汝悟 無別 辭違已了 便發向南(115)
두 달 가량 되어서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뒤에서 수백명의 사람들
이 쫓아 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하다가 반쯤 와
서 다들 돌아간 것을 몰랐었다. 오직 한 스님만이 돌아가지 않았는
데 성은 진이요 이름은 혜명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으로, 성품과 행동
이 거칠고 포악하여 바로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덮치려 하였
다. 혜능이 곧 가사를 돌려 주었으나 또한 받으려 하지 않고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그 가사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였
다.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
에 마음이 열리었으므로,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
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셨다.
兩月中間 至大庾(庚)嶺 不知向後 有數百人來 欲擬害(頭)惠能
奪衣(於)法 來至半路 盡 却廻 唯有一僧 姓陳 名惠明(順) 先
是三品將軍 性行 序惡 直至嶺上 來 犯著 惠能 卽還法衣 又
不肯取 我故遠來 求法 不要其衣 能 於嶺上 便傳法惠明(順)
惠明(順) 得聞 言下心聞開 能 使惠明(順) 卽却向北化人來
(116)
*박학다문한 대선배인 신수(神秀)를 물리치고 일자무식인 초동
목수(樵童牧竪)에게 대법을 전하였으니, 불법은 문자에 있지않
고 견성에 있는 것임을 알겠다.
*변전돈법(便傳頓法 곧 돈법을 전수함)... <단경>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돈법뿐이오 점법(漸法)은 없으니, 점수(漸修)를 말
함은 단경의 법이 아니다.
7. 정혜(定慧)
혜능이 이곳에 와서 머무른 것은 모든 관료, 도교인, 속인들과 더
불어 오랜 전생부터 많은 인연이 있어서이다. 가르침은 옛 성인이
전하신 바요 혜능 스스로 안 것이 아니니, 옛 성인의 가르침 듣기를
원하는 이는 각각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 하여, 듣고 나서 스스로
미혹함을 없애어 옛 사람들의 깨침과 같기를 바랄지니라.[아래로부
터는 법(法)이니라.]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보리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능히 스스로 깨
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지도를 구하여
자기의 성품을 보아라.
선지식들아, 깨치게 되면 곧 지혜를 이루느니라.
惠能 來依(衣)此地 與諸官僚(奪)道俗 亦有累劫之因 敎是先聖
(性)所傳 不是惠能自知 願聞先聖(性)敎者 各須淨心 聞了願自
除(餘)迷 如(於)先代悟 惠能大師喚言 善智識 菩提般若之智
(知) 世人 本自有之 卽緣心迷 不能自悟 須求大善知識 示導
(道) 見性 善知識 遇悟卽成智(118)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과 혜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
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이 혜의 몸이요 혜는 곧 정의 씀이니, 곧 혜가 작용할때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혜를 함께 함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
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에 두 모양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
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가지면 정,혜가 곧 함께 함이니라. 스스로 깨쳐 수행함은
입으로는 다투는 데 있지 않다. 만약 앞 뒤를 다투면 이는 곧 미혹
한 사람으로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함이니, 도리어 법의 아집
이 생겨 네 모양(四相)을 버리지 못함이니라.
善知識 我此法門 以定慧爲本 第一勿迷言惠定 別 定惠 體一
不二 卽定是惠體 卽惠是定用 卽惠之時 定在惠 卽定之時 惠
在定 善知識 此義 卽是<定>惠等 學道之人 作意 莫言先定發
惠 先惠發定 定惠各別 作此見者 法有二相 口說善 心不善 惠
定不等 心口俱善 內外一[衆]種 定惠卽等 自悟修行 不在口諍
若諍先後 卽是<迷>人 不斷勝負 却生法我 不離四相(120)
일행삼매란 일상시에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에 말씀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
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라고 하였느니라.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르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
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니라.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곧은 마
음이라고 하며, 망심을 제거하여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일행삼
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
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니라.
도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한다.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통하여 흐르는 것이요, 머물러 있으
면 곧 속박된 것이니라.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음이 옳다고 한다면 사리불이 숲속에 편
안히 앉아있는 것을 유마힐이 꾸짖었음이 합당하지 않느니라.
선지식들아, 또한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앉아서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보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
으로써 공부를 삼게하는 것을 본다.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됨이 곧 수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짐짓 알아야 한다.
一行三昧者 於一切時中 行住坐(座)臥 常行直(眞眞)心(121)
是 淨名經 云 直(眞)心 是道場 直(眞)心 是淨土 莫心行 曲
(典) 口說法直 口說一行三昧 不行直(眞)心 非佛弟子 但行直
(眞)心 於一切法 無[上]有執著 名一行三昧 迷人 著法相 執
一行三昧 直(眞)心 坐不動 除妄不起心 卽是一行三昧 若如是
此法 同無情(淸) 却是障道因緣 道須(順)通流 何以却滯 心
<不>住在 卽通流 住卽被(彼)縛 若坐不動 是 維摩詰 不合呵
舍利弗 宴坐(座)林中 善知識 又見有人 敎人坐(座) 看心看淨
不動不起 從此置功 迷人 不悟 便執成顚 卽有數百般(盤) 如
此敎道者 故知(之)大錯(122)
선지식들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으므로, 등불
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지만 몸은
둘이 아니다.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善知識 定惠 猶如何等 如燈光 有燈卽有光 無燈卽無光 燈是
光之(知)體 光是燈之用 <名>卽有二 體無兩(124)般 此定惠法
亦復如是(125)
*정혜위본(定慧爲本 정.혜를 근본으로 삼음)...'모든 부처님은 정.
혜가 함께 하므로 불성을 밝게 본다.[諸佛世尊은 定慧等故로 明
見佛性하니라-涅槃經二十八]'고 함과 같이 정혜등지(定慧等持)
가 된 부처라야 견성(見性)이므로 정혜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한
것이다.
*일행삼매(一行三昧)는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정.해가 등등(等
等)한 삼매이다.
8.무념(無念)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 없다. 그러나 사
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
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
품을 보는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느니라.
善知識 法無頓漸 人有利鈍 迷(明)卽漸契(勸) 悟人 頓修 識自
本<心> 是見本性 悟卽元無差別 不悟 卽長劫輪廻善知識 我
自法門 從上已來 [頓漸]皆立無念爲(無)宗(126)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예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
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를 삼고 머무름 없음
(無住)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새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
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과 지금의 생각과 다음의 생각이 생각생각
이어져 끊어짐이 없나나,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이 곧 육신
을 떠나느니라.
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나니, 만약 한생
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
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 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武相爲(無)體 無住[無]爲本 何名(明)無(爲)相 無相者 於相而
離相 無念者 於念而不念 無住者 爲人本性 念念不住 前念今
(念)念後念 念念相續(讀) 無有斷絶 若一念斷絶 法身 卽是離
色身 念念時中 於一切法上無住 一念若住 念念卽住 名繫縛
於一切法上 念念不住 卽無縛也 <是>以無住 爲本(127)
선지식들아, 밖으로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이
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 그
러므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느니라.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하나니, 자
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를 떠나고 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
이니라. 일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제거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남(生)을 받게 되느니라.
도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라. 자기의 잘
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는가. 미혹하여 스
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나니, 그러므로 생각 없
음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미혹한 사름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善知識 外離一切相 是無相 但能離相 性體淸淨 [是] 是以無
相爲體 於一切境(鏡)上 不染 名爲無念 於自念(128)上離境
(鏡) [不]不於法上念生 莫百物思 念盡除却 一念 斷 卽[無]
別處受生 學道者 用心 莫不息法意 自錯 尙可 更勸他人 迷不
自見 [迷] 又謗經法 是以立無念爲宗 卽緣迷(名)人 於境(鏡)
上 有念 念上 便起邪(去耶)見 一切塵勞妄念 從此而生(129)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無念)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
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느니라.
없다 함은 두 모양의 번뇌를 떠난 것이고, 생각함은 진여의 본성
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요 생각은 진여의 작용이
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
고 아나,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하였느니라.
然此敎門 立無念爲宗 世人 離見 不起於念 若無有念 無念 亦
不立 無者 無何事 念者 [念]何物 無者 離二相諸塵勞 [念者
念眞如本性] 眞如 是念之體 念(130)是眞如之用 [自]性(姓)起
念 雖卽見聞覺知(之) 不染萬境(鏡)而常自在 維摩經 云 外能
善分別諸法相 內於第一義而不動(131)
*오인돈수(悟人頓修 깨친 이는 단박에 닦음)... 육조는 불지(佛
地)만을 돈오견성(頓悟見性 단박에 깨쳐서 성품을 봄)으로 인정
하였으며, 불지에는 오후점수(悟後漸修 깨친 뒤 점차로 닦음)가
없으므로 오인돈수라고 한 것이다.
*무념위종(無念爲宗 생각 없음로 종을 삼음)... 등각(等覺) 이하
의 모든 중생은 모두 망념이 있으므로[金剛已還의 一切衆生은
皆是有念일새]중생이라 하고, 모든 부처는 다 무념을 얻었으므
로 부처라고 이름하느니라.
*십지(十地).등각(等覺)도 유념(有念 생각이 있음)이요 불지만이
무념(無念 생각이 없음)이니, 견성은 불지무념(佛地無念)이므로
무념위종이라고 한 것이다.
9.좌선(坐禪)
선지식들아, 이 법문 중의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
한 깨끗함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
나니, 만약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
망함이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느니라. 만약 깨끗함을 본
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
여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성품은 본래대로 일으켜
깨끗하느니라.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은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이 생기느니라.
망상은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허망된
것임을 알라. 깨끗함은 모양이 없거늘, 도리어 깨끗한 모양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고 말하면 이러한 소견을 내는 이는 자기의 본래 성품
을 가로막아 도리어 깨끗함에 묶이게 되니라.
만약 움직이지 않는 이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
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몸은 움직
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나니, 도와
는 어긋나 등지는 것이니라.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
은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니라.
善知(諸)識 此法門中 坐(座)禪 元不著心 亦不著淨 亦不言
[不]動 若言看心 心元是妄 妄如幻(幼)故 無所看也 若言看淨
人性(姓) 本淨 爲妄念故 蓋覆眞如 離妄念 本性(姓)淨 不見自
性(姓)本淨 心起看淨 却生淨妄 妄無處所 故知看者 [看] 却
是妄也 淨無形相 却立淨相 言是功夫 作此見者 障(章)自本性
(姓) 却被淨縛 若不動者 [不]見一切人過患 是 性不動 迷
(133)人 自身 不動 開口卽說人是非 與道違背 看心看淨 却是
障道因緣(134)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
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
지럽지 않는 것이 선(禪)이니라.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이다. 설
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이니라. 그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침
으로 말미암아 부딪쳐 곧 어지럽게 되나니, 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라. 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이요 안으
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 "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
(定)하므로 선정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즉시에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하였고, <보살계>에 말씀하시기를 '본래 근원인 자성이 깨끗
하다'고 하였느니라.
선지식들아, 자기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함을 보아라. 스스로 닦아
스스로 지음이 자기 성품인 법신이며, 스스로 행함이 부처님의 행위
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이니라.
今記汝 是此法門中 何名坐(座)禪 此法門中 一切無碍 外於一
切境界上 念不起(去)爲坐 [內]見本性(姓)不亂 爲禪 何名爲禪
定 外離(雜)相曰禪 內不亂曰定 外(135)若有相 內性(姓)不亂
本自淨自定 只緣境觸 觸卽亂 離相不亂 卽定 外離相 卽禪 內
[外]不亂 卽定 外禪內定 故名禪定 維摩經 云 卽時(是)豁然
還得本心 菩薩戒 云 本源(須)自性(姓) 淸淨 善知識 見自性
(姓)自淨 自修自作 自性(姓)法身 自行 佛行 自作自成 佛道
(136)
*정.혜를 함께 한 부처의 무념(無念)만이 선정이요 그밖의 것은
모두 번뇌.진로이다.
10.삼신(三身)
선지식들아,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모양 없는 계(無相戒)
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
의 삼신불을 보게 하리라.
"나의 색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화신
불에 귀의 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이
상 세번 부름]
색신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의 세 몸은 자기의
법성 속에 있고 세상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자기 색신 속의 세 성품의 부처
는 보지 못하느니라.
선지식들은 들으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
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성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하리
라.
善知識 須自體 以(與)受無相戒 一時 逐惠能口道 令善知識
見自三身佛 於自色身 歸依(衣)淸淨法身佛 於自色身 歸依(衣)
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 歸依(衣)當來圓滿報身佛 已上三唱
色身 是舍宅 不可言歸 向者三(138)身 在自法性 世人盡有 爲
迷(名)不見 外覓三[身]如來 不見自色身中三性佛 善知識 聽
與(汝)善知識說 令善知識 於(衣)自色身 見自法性 有三身(世)
佛(139)
이 세 몸의 부처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법신
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깨끗하여 만 가지
법이 자기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
을 행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문득 착한 행동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자성 속에 있어서 자성은 항상 깨끗함을 알
라.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
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지헤의 바람이 불어 구름
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성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의 자성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惠)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법문을 열어 주어 미망을 불어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사무쳐 밝아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나니, 모든 법에 자재한 성품
을 청정법신이라 이름하느니라.
스스로 돌아가 의지함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
것을 이름하여 돌아가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此三身佛 從性上生 何名淸淨[法]身佛 善知識 世人 性 本自
淨 萬法 在自性(姓) 思量一切[惡]事 卽行於(衣)惡 思量一切
善事 便修於善行 知如是一切法 盡在自性(姓) 自性(姓) 常淸
淨 日月常明(名) 只爲雲覆蓋 上明(名)下暗 不能了見日月星
(西)辰 忽遇慧(惠)風 吹散 卷盡雲霧 萬像森(參)羅 一時皆現
世人性淨 猶如淸天 惠如日 智如月 智惠常明(名) 於外著境(看
敬) 妄念浮雲 蓋覆 自性(姓) 不能明 故遇善知識 開(140)眞法
吹却迷(名)妄 內外明(名)徹 於自性(姓)中 萬法 皆見 一切法
自在性(姓) 名爲淸淨法身 自歸依(衣)者除不善行 是名歸依
(衣)(141)
어떤 것을 천백억화신불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곧 비어 고요하지만 생각하면 이는 곧
스스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
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변화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변화하여 윗세계
가 되고 우치함은 변화하여 아랫나라가 된다. 이같이 자성의 변화가
매우 많거늘, 미혹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생각이 착하면 지혜가 곧 생기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성의
화신이라하니라.
何名爲千百億化身佛 不思量 性卽空寂 思量 卽是自化 思量惡
法 化爲地獄 思量善法 化爲天堂 毒害(142)
化爲畜生 慈悲 化爲菩薩 智惠 化爲上界 愚癡 化爲下方 自性
(姓)變化甚多(名) 迷人 自不知見 一念善 知惠卽生 <此名自
性化身>(143)
어떤 것을 원만한 보신불이라고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
리석음을 없애나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미래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이리고 하는니라.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년의 착함을 물리쳐 그치게 하고 한 생
각의 착한 과보는 천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나니, 비롯함이 없는 때
로부터 미래의 생각이 착함을 보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법신을 좇아 생각함이 곧 화신이요, 순간순간의 생각마다 착한 것
이 곧 보신이요, 스스로 깨쳐 스스로 닦음이 곧 돌아가 의지하는 것
이다. 가죽과 살은 색신이며 집으로 귀의할 곳이 아니다. 다만 세 몸
을 깨치면 큰 뜻을 아느니라.
<何名圓滿報身佛> 一燈 能除千年闇 一智能滅萬年愚 莫思向
前 常思於後 常後念善 名爲報身 一念惡報 却千年善止(心)
一念善報 却千年惡滅 無始(常)已來 後念善 名爲報身 從法身
思量 卽是化身 念念善 卽是報身 自悟自修 卽名歸依(衣)也
皮肉 是色身 是舍宅 不在歸依(衣)也 但悟三身 卽識大意
(億)(144)
*내외명철(內外明徹 안팎이 사무쳐 밝음)은 묘각(妙覺)이니 불
교의 구경(究竟)이다. '시방세계 및 몸과 마음이 깨끗한 유리처
럼, 내외명철은 식음(識陰)이 다하였다고 이름하나니, 부처님의
묘장엄해에 들어가 보리를 원만케 하니라[十方世界와 及身心이
如吠瑠璃하야 內外明徹을 名識陰盡이니 入於如來妙莊嚴海하야
圓滿菩提니라 - 楞嚴經 十].'
'깨끗한 유리 속에 밝은 달을 담은 것 같으면 문득 지위를 초월
하여 괴해(果海)에 들어가 무소득에 돌아가나니, 바야흐로 구경
극칙이라고 이름하느니라[如淨瑠璃內含寶月하면 便超越地位하
야 入於果海하야 歸無所得이니 方名究竟極則이니라 - 山楞巖
通議 十]'
'만약에 식음이 다하면 바아흐로 지위를 넘어 얻는 바가 없이
구경을 원만성취하여 깨끗한 유리에 보배달을 담음과 같으니라
[若得識陰盡하면 方超地位하야 了無所得하야 究竟圓成하야 如
淨瑠璃內含寶月하니라 - 宗鏡錄 八十八].'
'수정영락은 안팎이 사무쳐 밝아서 묘각에 항상 머무나니, 일체
지혜의 지위라고 이름하느니라[水晶瓔珞은 內外明徹하야 妙覺
에 常住하니 名一切智地니라 - 瓔珞經 上].'
*육조스님은 내외명철을 청정법신이라고 하였다. 이는 불교의
구경인 원교불상(圓敎佛相 원교의 부처님 모습)이다.
"묘각의 지위에 들어가서 청정법신을 성취하니, 원교불상이니라
[入妙覺位하야 成淸淨法身하니 圓敎佛相也니라 - 天台四敎議
圓敎章 一].'
*조사스님의 말씀을 구차하게 교리에 배합할 필요가 없다고 생
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육조스님이 강조하신 내외명철은 불
교의 구경극칙인 원교묘각(圓敎妙覺)이다. 육조스님은 내외명철
이라야 식심견성(識心見性 마음을 알아 성품을 봄)이라고 하였
으니, 종문의 표방(標榜)인 견성(見性)은 불교의 구경묘각 즉 성
불(究竟妙覺卽成佛)임이 분명하다.
11.사원(四願)
이제 이미 스스로 삼신불에 귀의하여 마쳤으니, 선지식들과 더불
어 네 가지 넓고 큰 원을 발하리라. 선지식들아, 다 함께 혜능을 따
라 말하라.
무량한 중생 다 제도하기를 서원합니다.
무량한 번뇌 다 끊기를 서원합니다.
무량한 법문 다 배우기를 서원합니다.
위 없는 불도를 이루기를 서원합니다. [이상 세번 부름]
선지식들아,
무량한 중생을 맹세코 다 제도한다 함은 혜능이 전지식들을 제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중생을 각기 자기의 몸에 있는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자기의 성품으로 스
스로 제도한다고 하는가?
자기 육신 속의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과 미망에 본래의
깨달음의 성품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므로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이미 바른 생각인 반야의 지혜를 깨쳐서 어리석음과 미망을 없애
버리면 중생을 저마다 스스로 제도한 것이니라, 삿됨이 오면 바름으
로 제도하고 미혹함이 오면 깨침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
혜로 제도하고 악함이 오면 착함으로 제도하며 번뇌가 오면 보리로
제도하나니, 이렇게 제도함을 진실한 제도라고 하느니라.
무량한 번뇌를 맹세코 다 끊는다 함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허망
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량한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운다 함은 위 없
는 바른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위 없는 불도(佛道)를 맹세코 이룬다
함은 항상 마음을 낮추는 행동으로 일체를 공격하며 미혹한 집착을
멀리 여의고, 깨달아 반야가 생겨 미망함을 없애는 것이다. 곧 스스
로 깨쳐 불도를 이루어 맹세코 바라는 힘(誓願力)을 행하는 것이니
라.
今旣自歸依三身佛已 與善知識 發四弘大願 善知識 一時 逐惠
能道 衆生無邊誓願度 煩惱無邊誓願斷 法門無邊誓願學 無
上佛道誓願成 善知識 衆生無邊誓願道 不是惠能 度善知識 心
中衆生 各於自身 自性(姓)自度 何名自性(姓)自度 自色身中
邪見煩惱 愚癡迷(名)妄 自有本覺性 將正見度 旣悟正見 般若
之智 除却愚癡迷妄 衆生 各各自度 邪來(見) 正度 迷來 悟度
愚來智度 惡來善度 煩惱來菩提(薩)度 如是度者 是名眞度 煩
惱無邊誓願斷 自心 除虛妄 法門無邊誓願學 學無上正法 無上
佛道誓願成 常下心行 恭敬一切 遠離迷執 覺知生般若 除却迷
妄 卽自悟佛道成 行誓願(148)力
12. 참회(懺悔)
지금 이미 사홍서원 세우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에게 '무상참회
(無相懺悔:모양 없는 참회)'를 주어서 삼세의 조장을 없애게 하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
다 우치와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나쁜 행동을 일시에 영원
히 끊어서 자기의 성품에서 없애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니라.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없애도록 하라.
영원히 끊음을 이름하여 자성의 참회라고 한다. 과거의 생각, 미
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질투에 물들지 않아서 지난 날
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도록 하라. 자기의 성품에서 만약 없애버리
면 이것이 곧 참회이니라." [이상 세번 부름]
선지식들아, 무엇을 이름하여 참회라고 하는가?
참(懺)이라고 하는 것은 종신토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요, 회
(悔)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나쁜 죄업을 항상
마음에서 버리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 앞에서 입으로 말하여도 이익
이 없느니라. 나의 이 법문 가운데는 영원히 끊어서 짓지 않음을 이
름하여 참회라 하느니라.
今旣發四弘誓願訖 與善知識 無相懺悔 <滅>三世罪障 大師言
善知識 前念後念及今念 念<念>不被愚迷染 從前惡行 一時
<永斷> 自性(姓) 若除 卽是懺悔 前念後念今念 念念<不>被
愚癡染 除却從前矯�x心 永斷名爲自性懺 前念後念及<今念>
念念不被疸妬(疸疾)染(151)
除却從前疾妬(垢)心 自性 若除 卽是懺 已上三唱 善知識 何
名懺悔 <懺>者 終身不作 悔者 知於前非 惡業 恒不離心 諸
佛前 口說無益 我此法門中 永斷不作 名爲懺悔(152)
*견성을하여 업식종자(業識種子)가 전부 소멸하여야만 참다
운 참회이다.
13. 삼귀(三歸)
지금 이미 참회하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무상삼귀의계
(無相三歸依戒:무양이 없는 삼귀의계)'를 주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깨달음의 양족존께 귀의하오며, 바름의 이욕존께 귀
의하오며, 깨끗함의 중중존께 귀의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되고 미혹한 외
도에게 귀의하지 않겠사오니,바라건대 자성의 삼보께서는 자비로써
증명하소서'하라.
선지식들아, 혜능이 선지식들에게 권하여 자성의삽보에게 귀의하
게 하나니, 부처란 깨달음이요 법이란 바름이며 승이란 깨끗함이니
라."
今旣懺悔已 與善知識 授(受)無相三歸依戒 大師言 善知(智)識
歸依(衣)覺兩足尊 歸依(衣)正離欲<尊> 歸依(衣)淨衆中尊 從
今已後 稱佛爲師 更不歸依(衣)餘邪迷(名)外道 願自<性>三寶
慈悲證(燈)明(名) 善知識 惠能 勸[善]善知識 歸依(衣)<自
性>三寶 佛者 覺也 法者 正也 僧者 淨也(154)
자기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이 나지 않고 적은
욕심으로 넉넉한 줄을 알아, 재물을 떠나고 색을 떠나는 것을 양족
존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바름으로 돌아가 생각마다 삿되지 않으므로 곧 애
착이 없나니, 애착이 없는 것을 이욕존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돌아가 모든 번뇌와 망념이 비록 자성에 있어도 자성이
그것에 물들지 않는 것을 중중존이라고 하느니라. 범부는 이것을 알
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삼귀의계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에
게 귀의한다고 할진대는 부처가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부처를 보
지 못한다면 곧 귀의할 바가 없느니라. 이미 귀의할 바가 없으면 그
말이란 도리어 허망될 뿐이니라.
선지식들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의 말씀 가운데 '오직 스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하였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지 아
니하면 돌아갈 바가 없느니라.
自心 歸依覺 邪迷(名)不生 少欲知足 離財離色 名兩足尊 自
心 歸正 念念無邪故 卽無愛著 以無愛著 名離欲尊 自心 歸淨
一切塵勞妄念 雖在自性(姓) 自性(姓) 不染著 名衆中尊 凡夫
<不>解 從日至日 受(155)三歸依(衣)戒 若言歸佛 佛在何處
若不見佛 卽無所歸 旣無所歸 言却是妄 善知識 各自觀察 莫
錯用意 經中 只卽言自歸依佛 自性(姓) 不歸 無所歸處(156)
14. 성공(性空)
지금 이미 삼보에게 스스로 귀의하여 모두를 지극한 마음들일 것
이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리라.
선지식들아, 비록 마하반야바리밀법을 생각은 하나 알지 못하므로
혜능이 설명하여 주리니, 각각 잘 들으라.
마하반야바라밀이란 서쪽 나라의 범어이다. 당나라 말로는 '큰 지
혜로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니라. 이 법은 모름지기 실행할 것이
요 입으로 외우는데 있지 않다. 입으로 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
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으나, 닥고 행하는 이는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어떤 것을 마하라고 하는가?
마하란 큰 것이다. 마음의 한량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빈 마
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 곧 무기공에 떨어지느니라.
허공은 능히 일월성신과 대지산하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
한 사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함하고
있다. 세상 사람의 자성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今旣自歸依(衣)三寶 各各至心 與善知識 說摩訶般若波羅蜜
法 善知識 雖念 不解 惠能與說 各各聽(157) 摩訶般若波羅蜜
者 西國梵語 唐言 大智惠彼岸到 此法 須行 不在口<念> 口
念不行 如<幻>如化 修行者 法身 與佛 等也 何名摩訶 摩訶
者 是大 心量 廣大 猶如虛空 莫空(定)心坐(座) 卽落無記(旣)
空 <虛空> 能含日月星辰 大地山河(何) 一切草木 惡人善人
惡法善法 天堂地獄 盡在空中 世人性空 亦復如是(158)
자성이 만법을 포함하는 것이 곧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
인 것이다.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과 착함과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하나니, 이것이 곧 큰 실행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고 지혜 있는 이는 마음으로 행하느니
라. 또한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 생각하지 않은 것을 크다고 하
나, 이도 또한 옳지 않느니라.
마음의 한량이 넓고 크다고 하여도 행하지 않으면 곧 작은 것이
다. 입으로만 공연히 말하면서 이 행을 닦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性含萬法 是大 萬法 盡是自性(姓) 見一切人及非人 惡之(知)
與善 惡法善法 盡皆不捨 不可染著 猶(由)(159)如虛空 名之爲
大 此是摩訶行 迷人 口念 智者 心<行> 又有迷(名)人 空心
不思 名之爲大 此亦不是 心量 <廣>大 不行 是小(少) 莫口
空說 不修此行 非我弟子(160)
15. 반야(般若)
어떤 것을 반야라고 하는가.?
반야는 지혜이다. 모든 때에 있어서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곧 반야행이라고 하느니라.
한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기고 한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나거늘,
마음 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 '나는 닦는다'고 스스로 말하느니
라.
반야는 형상이 없나니, 지혜의 성품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바라밀이라고 하는가?
이는 서쪽 나라의 범음으로서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니라.
뜻을 알면 생멸을 떠난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물에
파랑이 있음과 같나니, 이는 곧 이 언덕이요, 경계를 떠나면 생멸이
없어서 물이 끊이지 않고 항상 흐름과 같나니, 곧 저 언덕에 이른다
고 이름하며, 그러므로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느니라.
何名般若 般若 是智惠 一<切>時中 念念不愚 常行智惠 卽名
般若行 一念愚 卽般若絶 一念智 卽般若生 心中常愚 <自言>
我修 般若 無形相 智惠性 卽是 何名波羅蜜 此是西國梵音 言
彼岸到 解義 離生滅 著境(竟) 生滅起(去) 如水有波浪 卽是於
此岸 離境 無生滅 如水承長流 故卽名到彼岸 故名波羅蜜
(161)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고 지혜로운 이는 마음으로 행한다.
생각할때 망상이 있으면 그 망상이 있는 것은 곧 진실로 있는 것
이 아니다.
생각 생각마다 행한다면 이것을 진실이 있다고 하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반야의 법을 깨친 것이며 반야의 행을 닦는
것이다.
닦지 않으면 곧 범부요 한생각 수행하면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들아, 번뇌가 곧 보리니,
앞생각을 붙잡아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
처니라.
선지식들아,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
라. 머무름도 없고 가고 옴도 없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 이 가
운데로부터 나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에 이르러 번뇌와 진로를 쳐부
수나니,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니라.
가장 으뜸임을 찬탕하여 최상승법을 수행하면 결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내왕 또한 없나니, 이는 정과 혜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않음이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삼독을 변하게 하여 계.정.혜로 삼느니라.
迷人 口念 智者 心行 當念時有妄 有妄 卽非眞有 念念若行
是名眞有 悟此法者 悟般若法 修般若行 不修卽凡 一念修行
法身 等佛 善知識 卽煩惱是菩提 捉前念 迷卽凡 後念 悟卽佛
善知識 摩訶般若波羅蜜 最尊最上第一 無住無去無來 三世諸
佛 從中出 將大智(知)惠)到彼岸 打破五陰煩惱塵勞 最尊最上
第一 讚最上 最上乘法 修行 定成佛 無去無住無來住 是 定惠
等 不染一切法 三世諸佛 從中變三毒 爲戒定惠(163)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팔만 사천의 지혜를 좇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세상에 팔만 사천의 질로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로가 없으면
반야가 항상 있어서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이니라.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
나니 이것이 곧 진여의 성품이다.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니도 않나니, 곧 자성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느니라.
善知識 我此法門 從八萬四千智惠 何以故 爲世有八萬四千塵
勞 若無塵勞 般若常在 不離自性(姓) 悟此法者 卽是無念 無
憶(億)無著 莫起(去)�x妄 卽自是眞如性(姓) 用智(知)惠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姓)成佛道(165)
*오즉불(悟卽佛 깨치면 곧 부처)... 육조는 불지(佛地) 이외는
깨달음[悟]으로 인정치 않는다.
*최상최존(最上最尊 가장 으뜸이고 가장 높음)... 육조가 설하신
법문의 전체를 두고 말함이다.
16. 근기(根機)
선지식들아, 만약 매우 깊은 법의 세계에 들고자 하고 반야삼매에
들고자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의 행을 닦을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반야삼
매에 들어가느니라.
이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경에서 분명히
찬탄하였으니, 능히 다 갖추어 설명하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최상승
법으로서 큰 지혜와 높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만약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마음에 믿음이 나지 않
나니, 무엇 때문인가?
비유하면 마치 큰 용이 큰 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염부제에 비가
내리면 풀잎이 떠다니듯 하고, 만약 큰비가 큰 바다에 내리면 불지
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대승의 사람은 <금강경> 설하
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치고 안다.
그러므로 본래 성품이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
로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서 문자를 빌리지 않음을 알라.
비유컨데, 그 빗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과 같다. 원래 용왕이
강과 바다 가운데서 이 물을 몸으로 이끌어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
과 모든 유정. 무정을 다 윤택하게 하고, 그 모든 물의 여러 흐름이
다시 큰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
쳐지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善知識 若欲入甚深法界 入般若三昧者 直修般若波羅蜜行 但
持金剛般若波羅蜜經一卷 卽得見性 入般若三昧 當知此人功德
無量 經中 分明(名)讚嘆 不能具說 此是最上乘法 爲大智上根
人說 小(少)根智人 若聞<此>法 心不生信 何以故 譬如大龍
若下大雨 雨於(衣)閻浮提 如漂草葉 若下大雨 雨於(放)大海
不增不減 若大乘者 聞說金剛經 心開悟解 故知本性 自有般若
之智 自用智(知)惠觀照 不假文字 譬如其雨水不從天(無)有 元
是龍王 於江海中 將身引此水 令一切衆生 一切草木 一切有情
無情 悉皆蒙(像)潤 諸水衆流 却入大海 海納衆水 合爲一體
衆生本性 般若之智 亦復(167)如是
근기가 작은 사람은 단박에 깨치는 이 가르침을 들으면, 마치 근
성이 작은 대지의 초목이 큰 비를 맞고 모두 다 저절로 거꾸러져서
자라지 못함과 같나니, 작은 근기의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가 있는 점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또한 차별이 없
거늘,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듣고도 곧 깨치지 못하는가?
삿된 소견의 장애가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능히 나타나지 못하
는 것과 같다.
반야의 지혜도 또한 크고 작음이 없으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미
혹한 마음이 있어서 밖으로 닦아 부처를 찾으므로 자기의 성품을 깨
닫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이같이 근기가 작은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깨치는 가르침
을 듣고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마음에서 자
기의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바른 견해를 일으키면 번뇌, 진로의 중
생이 모두 다 당장에 깨치느니라. 마치 큰 바다가 모든 물의 흐름을
받아들여서 작은 물과 큰 물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곧 자성을 보면 안팎에 머물지 아니하며 오고감에 자유로워 집착
하는 마음을 능히 없애어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나니, 마음으로 이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경>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小(少)根之人 聞說此頓敎 猶如大地草木根性自小(少)(169)者
若被大雨一沃 悉皆自倒(到) 不能增長 小(少)根之人 亦復如是
有般若之智 [之] 與大智之人 亦無差別 因何聞法卽不悟 緣邪
見障重 煩惱根深 猶如大雲 蓋覆於日 不得風吹 日無能現 般
若之智 亦無大小 爲一切衆生 自有迷心 外修覓佛 未(來)悟自
性 卽是小根人 聞其頓敎 不信外修 但於自心 令自本性 常起
正見 煩惱塵勞衆生 當時盡悟 猶如大海納於衆流 小水大水合
爲一體 卽是見性 內外不住 來去自由 能除執心 通達無碍 心
修此行 卽與般若波羅蜜經 本無差別(170)
*반야삼매(般若三昧)... 식심견성하면 반야삼매라고 육조는
말했다.
17. 견성(見性)
모든 경서 및 문자와 소승의 대승과 십이부의 경전이 다 사람으
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나니, 지혜의 성품에 연유한 까닭으로 능히
세운 것이니라. 만약 내가 없다면 지헤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
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일체 경서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
야 하느니라.
사람 가운데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기 때문에,
어리석으면 작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우면 큰 사람이 되느니라. 미혹
한 사람은 지혜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성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
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를 가진 사람
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그러므로 알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
음 가운데 있느니라. 그럼에도 어찌 자기의 마음을 좇아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이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 당장 활연히 깨쳐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一切經書及文字 小大二乘 十二部經 皆因<人>置 因智惠性故
故[然]能建立 我若無 智人 一切萬法 本無不(172)有 故知萬
法 本因(從)人興 一切經書因人說有 緣在人中有[有]愚有智
愚爲小(少)故 智爲大人 迷人問(問迷人)於智者 智人與愚人說
法 令使愚者 悟解心(深)開 迷人 若悟心開 與大智人無別 故
知不悟 卽[是]佛是衆生 一念若悟 卽衆生[不]是佛 故知一切
萬法 盡在自身心中 何不從於自心 頓現眞如本性(姓) 菩薩戒
經 云 我本源(願)自性(姓) 淸淨 識心見性 自成佛道 卽時豁然
還得本心(173)
*오즉시불(悟卽是佛 깨치면 곧 부처)... 거듭 말하건대, 육조
의 깨달음은 불지(佛地)뿐이요 십지.등각은 깨달은 경지가
아니다.
18. 돈오(頓悟)
선지식들아, 나는 오조 홍인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자 그 말끝
에 크게 깨쳐 진여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으니라.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단박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쳐게
하는 것이다.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지식들을 찾
아서 지도를 받아 자성을 받아 자성을 볼 것이니라.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최상법이 바른 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이 큰 선지식
이며 큰 인연이다. 이는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
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느니라,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
만약 자기의 마음의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
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
야의 관조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
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라, 한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善知識 我於忍和尙處 一聞 言下 大悟(伍) 頓見眞如本性 是
故將此(汝)敎法 流行後代 令(今)學道者 頓(175)悟(伍)菩提 各
自觀心 令自本性 頓悟 若<不>能自悟者 須覓大善知識示導
(亦道) 見性(姓) 何名大善知<識> 解最上乘法 直示正路 是大
善知識 是大因緣 所謂(爲)化導(道)令得見佛 一切善法 皆因大
善知識能發起 故三世諸佛 十二部經 云在人性中 本自具有 不
能自性(姓)悟 須得善知識示導(道) 見性 若自悟者 不假外善知
識 若取外求善知識 望得解脫(說) 無有是處 識自心內善知識
卽得解<脫> 若自心 邪迷 妄念顚倒 外善知識 卽有敎授 [汝
若]不得自悟 當起般若觀照 刹那間 妄念 俱滅 卽是自眞正善
知識 一悟卽知佛也(176)
자성의 마음자리가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자
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며,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
이 곧 무념이니라.
어떤 것을 무념이라고 하는가?
무념법이란 모든 법을 보되 그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면, 모든
곳에 두루하되 그 모든 곳에 집착치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
이 하여 여섯 도적들로 하여 오고감에 자유로운 것이다.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 이는 곧 법에 묶임이니 곧 변견이라고 하느니라.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다 통달하고, 무념법을 깨친 이는 이
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의 돈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
에 이르느니라.
自性心地 以智惠觀照 內外明(名)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是
解脫 旣得解脫 卽是般若三昧 悟般若三(178)昧卽是無念 何名
無念 無念法者 見一切法 不著一切法 遍一切處 不著一切處
常淨自性 使六賊 從六門走出 於六塵中 不離不染 來去自由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莫百物不思 常(當)令念絶
卽是法縛(傳) 卽名邊見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
諸佛境界 悟無念頓法者 至佛位地(179)
*돈견본성(頓見本性 본래 성품을 단박에 봄)... 내외명철하면
이것이 곧 식심(識心 마음을 앎).해탈.무념이고, 무념은 곧
불지라 하였다. 내외명철은 묘각이며, 식심은 견성(見性 성
품을 봄)이므로, 견성하면 묘각해탈이요 불지무념이다. 그러
므로 견성하면 곧 성불인 것이다.
'곧 불성을 보아서 아뇩다라삼보리를 얻느니라[卽見佛性하야
得阿 多羅三 三菩提니라 - 涅槃經 二]'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서 불성을 보느니라[必得
阿 多羅三 三菩提하야 得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二十]'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각 곧 성불이니, 위의 글들은
성불과 견성이 동일한 내용임을 말한다.
'지위가 십지인 보상이라 하여도 오히려 불성을 ㅂ게 보지
못하느니라[菩薩이 位階十地하여도 尙未明了知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八]'
'모든 부처님은 정.혜를 함께 함으로써 불성을 밝게 보느니
라[諸佛世尊은 定慧等故로 明見佛性이니라 - 涅槃經 二十
八].'
'보살의 지위가 다하여 미세한 망념을 멀리 떠남으로써 심
성을 보나니,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느니라[菩薩地盡하야 以遠
離微細念故로 得見心性이니 名究竟覺이니라 - 起信論].'
'십지의 성인들이 법문을 설하기를 구름 이는 듯하고 비오
듯 하여도, 견성은 비단으로 눈을 가리운 것과 같으니라[十
地聖人이 說法은 如雲如雨하야도 見性은 如隔羅穀이니라 -
雲門 傳燈錄 十九].'
'견성하면 곧 부처가 되느니라[見性하면 卽成如來니라 - 宗
鏡錄 四十四].]
*이상과 같이 부처님과 조사들이 한결같이 견성이 곧 성불
이라고 하였으니, 육조스님 말씀과 같다. 그리고 교가(敎家)
의 권위인 현수(賢首)도 그의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에
서 구경불지(究竟佛地)만이 견성이라고 하였으니, '견성이
곧 성불'임은 선(禪).교(敎)를 통한 근본 철칙이다.
19.멸죄(滅罪)
선지식들아, 뒷 세상에 나의 법을 얻는 이는 항상 법신이 너희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보리라.
선지식들아, 이 돈교의 법문을 가지고 같이 보고 같이 행하여 소
원을 세워받아 지니되 부처님 섬기듯이 함으로써, 종신토록 받아 지
녀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고자 하느니라.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는 모름지기 예부터 말없이 부촉하여 큰
서원을 세워서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한 것이
니라.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이 없다면 곳곳마다 망령되어
선전하여 저 앞사람을 손상케 하지 말라. 마침내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기면 백겁 만겁
천생토록 부처의 종자를 끊게 되리라.
善知識 後代 得吾(悟)法者 常見吾法身 不離汝左右 善知識
將此頓敎法門 同見同行 發願受持 如事(是)佛故 終身受持而
不退者 欲入聖位 然須傳(縛)受時 從上已來 然而付於法 發
大誓願 不退菩提 卽須分付 若不同見解 無有志願 在在處處
勿妄宣傳 損彼前人 究( )竟無益 若愚人不解 此法門 百
劫萬劫千生 斷佛種性(183)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나의 '모양 없는 게송'을 들어라. 너희 미혹한 사람
들의 죄를 없일 것이니 또한 '죄를 없애는 게송(滅罪頌)'이라고 하
느니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끈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 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오
만약 마음 속에서 죄의 반연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니라.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오조께서 이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전하심은
배우는 사람이 같은 한 몸 되기를 바라서이다.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 속에서 씻어 버려라.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대사께서 법을 설하여 마치시니, 위사군과 관료와 스님들과 도교
인과 속인들의 찬탄하는 말이 끊이지 않고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이
다'라고 하였다.
大師言 善知識 聽吾(悟)說無相頌(訟) 令汝迷(名)者罪滅 亦名
滅罪頌 頌曰
愚人修福不修道 謂言修福而是<道>.
布施供養福無邊 心中三業元來在.
若將修福欲滅罪 後世得福罪無造.
若解向心除罪緣 各自性(世)中眞懺悔(海).
若悟大乘眞懺悔(海) 除邪行正造無罪.
學道之人能自觀 卽與悟人同一例.
大師令傳此頓敎 願學之人同一體.
若欲當來覓本身 三毒惡緣心中洗.(185)
努力修道莫悠悠 忽然虛度一世休.
若遇大乘頓敎法 虔誠合掌志心求.
大師說法了 韋使君官僚僧衆道俗 讚言無盡 昔所未聞
(186)
*동견동행(同見同行 같이 보고 같이 행함)...같은 아래 글에서
'만약 견해가 같지 않으면[若不同見解]'이라고 함과 같이 '견
해가 같음'을 말한다.
*대승돈교(大乘頓敎)...삼승(三乘) 가운데의 대승이 아니요 최
상최존(最上崔尊)의 표현이며, 최상최존의 돈오교법(頓悟敎法)
을 말한 것이다.
19.공덕(功德)
위사군이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께서 법을 설하심은 실로 부사의합니다. 제자가 일찍이 조
그마한 의심이 있어서 큰스님께서 여쭙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큰스
님께서는 대자대비로 제자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의심이 있거든 물으라. 어찌 두 번 세 번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위사군이 물었다.
"대사께서 설하신 법은 서쪽 나라에서 오신 제일조 달마조사의
종지가 아닙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제자가 듣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묻기를, '짐이 한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
을 올렸는데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사자 달마대사께서 '전혀 공덕
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시니, 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를
나라 받으로 내보내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으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른 것이니라."
使君 禮拜 自言 和尙說法 實不思議 弟子嘗(當)有少疑 欲問
(聞)和尙 望[意]和尙 大慈大悲 爲弟子說 大師言 有疑(議)卽
問(聞) 何須再三 使君問(聞) 法 可不[不]是西國第一祖達磨祖
師宗旨 大師言是 弟子見說 達磨大師化(伐)梁武帝(諦) 問達磨
朕 一生已(未)來 造寺布施供養 有[有]功德否 達磨答言 無
功(189)德 武帝 遂遣達磨 出境 未審此言 請和尙說 六
祖言 實無功德 使君 [朕] 勿疑達磨大師言 武帝著邪道 不識
正法(190)
위사군이 물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육조도사께서 말씀하셨다.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라. 공덕은 법신에 있고 복밭에 있지 않
느니라. 자기의 법성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이 곧 공(功)이요, 평등하
고 곧음이 곧 덕(德)이니라.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
만약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
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곧 가볍지 않느니
라. 그러므로 항상 공격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이요, 스스
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
이다.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지 못
한 것이요, 달마대사께서 허물 있는 것이 아니니라."
使君 問 何以無功德 和尙 言 造寺布施供養 只是修福 不可將
福 以爲功德 <功德> 在法身 非在於福田 自法性 有功德
<見性 是功> 平直是德 <內見>佛性 外行恭敬 若輕一切人
吾(悟)我不斷 卽自無功德 自性虛妄 法身 無功德 念念德行
平等直(眞)心 德卽不輕 常行於敬 自修身 卽功 自修[身]心
卽德 功德 自心作 福與功德別 武帝不識正理 非祖大師有過
(192)
*견성시공(見性是空 견성이 공임)...참다운 공덕은 오직 견
성 뿐이다.
21.서방(西方)
위사군이 예배하고 또 물었다.
"제자가 보오니 스님과 도교인과 속인들이 항상 아미타불을 생각
하면서 서쪽 나라에 가서 자기를 바랍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
씀해 주십시오.저기에 날 수가 있습니까? 바라건대 의심을 풀어 주
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사군은 들으라. 혜능이 말하여 주리라. 세존께서 사위국에 계시
면서 서방정토에로 인도하여 교화해 말씀하셨느니라. 경에 분명히
말씀하기를 '여기서 멀지 않다'고 하였다. 다만 낮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멀다 하고,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다만 지혜가 높은 사람 때
문이다.
사람에는 자연히 두 가지가 있으나 법은 그렇지 않다. 미혹함과
깨달음이 달라서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을 뿐이다.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곳에 나려고 하지만 깨친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
이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부처의
땅도 깨끗하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사군아, 동쪽 사람일지라도 다만 마음이 깨끗하면 죄가 없고, 서
쪽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허물이 있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가서 나기를 원하나 동방과 서방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는 다
한 가지니라.
다만 마음에 깨끗치 않음이 없으면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마음에 깨끗치 아니한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하여 왕생하고자 하여도
이르기 어렵느니라. 십악(十惡)을 제거하면 곧 십만 리를 가고, 팔사
(八邪)가 없으면 곧 팔천 리를 지난 것이다. 다만 곧은 마음을 행하
면 도달하는 것은 손가락 퉁기는 것과 같느니라.
사군아, 다만 십선(十善)을 행하라. 어찌 새삼스럽게 왕생하기를
바랄 것인가. 십악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어느 부처가 와서 맞이하
겠는가.
만약 남(生)이 없는 돈법(頓法)을 깨치면 서방정토를 찰나에 볼
것이요, 만약 돈교의 가르침을 깨치지 못하면 염불을 하여도 왕생할
길이 멀거니, 어떻게 도달하겠는가?"
使君 禮拜 又問 弟子見僧道俗 常念阿彌陀(大)佛 願往生西方
請和尙 說 得(德)生彼否 望爲破疑 大師言 使君 聽 惠能 與
說 世尊 在舍衛國 說西方引化 經文 分明 去此不遠 只爲下根
說遠(近) 說近(遠) 只緣上智 人自兩(雨)種(重) 法無不<同>
迷(名)悟有殊 見有遲疾 迷人 念佛生彼 悟者 自淨其心(194)
所以佛言 隨其心淨 則佛土淨 使君 東方 但淨心 無罪 西方
心不淨 有愆 迷人 願生 東方西方(者) 所在處 皆一種 心但
無不淨 西方 去此不遠 心起不淨之心 念佛往生難到 除十惡
卽行十萬 無八邪 卽過八千 但行直(眞)心 到如彈(禪)指 使君
但行十善 何須更願往生 不斷十惡之心 何佛 卽來迎請 若悟無
生頓法 見西方 只在刹那 不悟]頓敎大乘 念佛 往生路遙 如何
得達(195)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혜능이 사군을 위하여 서쪽 나라를 찰나 사이에 옮겨 눈앞에 바
로 보게 하리니
보기를 바라는가?"
위사군이 예배하며 말하였다.
"만약 여기서 볼 수 있다면 하필 가서 나겠습니까. 원컨대 스님께
서 자비로써 서쪽 나라를 보여 주시면 매우 좋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문득 서쪽 나라를 보아 의심이 없을 터이니 당장 흩어져라."
대중들이 놀라 무슨 일인지 모르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대중은 정신 차리고 들으라. 세상 사람의 자기 색신은 성(城)이
요 눈.귀.코.혀.몸은 곧 성의 문이니 밖으로 다섯 문이 있고 안으로
뜻의 문이 있다. 마음은 곧 땅이요 성품은 곧 왕(王)이니 성품이 있
으면 왕이 잇고 성품이 가매 왕은 없느니라. 성품이 있으매 몸과 마
음이 있고 성품이 가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느니라.
부처는 자기의 성품이 지은 것이니,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 자기
의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기의 성품이 깨달으면 중
생이 곧 부처니라.
자비는 곧 관음이요 희사는 세지라고 부르며, 능희 깨끗함은 석가
요 평등하고 곧음은 미륵이니라. 인아상은 수미요 삿된 마음은 큰
바다이며 번뇌는 파랑이요 독한 마음은 악한 용이면 진로는 고기와
자라요 허망함은 곧 귀신이며 삼독은 곧 지옥이요 어리석음은 곧 짐
승이며 십선은 천당이니라.
인아상이 없으면 수미산이 저절로 거꾸러지고 삿된 마음을 없애
면 바닷물이 마르며 번뇌가 없으면 파랑이 없어지고 독해(毒害)를
제거하면 고기와 용이 없어지느니라."
六祖言 惠能 與使君 移西方刹那間(問) 目(日)前便見 使君 願
見否 使君 禮拜 若此得見 何]須往生 願和尙 慈悲 爲現西方
大善 大師言 唐見西方無疑 卽散 大衆 愕然 莫知何]事(是) 大
師曰 大衆 大衆 作意聽 世人 自色身 是城 眼耳鼻舌身 卽是
城門 外有五(六)門 內有意門 心卽是地 性卽是王 性在王在
性去王無 性在身心存 性去身<心>壞 佛是自性作 莫(198)向
身<外>求 自性 迷 佛卽衆生 自性 悟 衆生 卽是佛 慈悲 卽
是觀音 喜捨 名爲勢至 能淨 是釋迦 平直(眞) 是彌勒 人我
是須彌 邪心 是大海 煩惱 是波浪 毒心 是惡龍 塵勞 是魚鱉
虛妄 卽是神鬼 三毒 卽是地獄 愚癡 卽是畜生 十善 是天堂
無人我(我無人) 須彌自倒 除邪心 海水竭 煩惱無 波浪滅 毒
害除 魚龍絶(199)
자기 마음의 땅위에 깨달은 성품(覺性)의 부처가 큰 지혜를 놓아
서 그 광명이 비추어 여섯 문이 청정하게 되고 욕계의 모든 여섯 하
늘들을 비추어 부수고, 아래로 비추어 삼독을 제거하면 지옥이 일시
에 사라지고 안팎으로 사무쳐 밝으면 서쪽 나라와 다르지 않다. 그
러므로 이 수행을 닦지 아니하고 어찌 피안(彼岸)에 이르겠는가.
법문을 들은 법좌(法座) 아래서는 찬탄하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
으니, 응당 미혹한 사람도 문득 밝게 볼 수 있었다. 위사군이 예배하
며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널리 원하옵나니, 법계의 중생으로
이 법을 듣는 이는 모두 일시에 깨쳐지이다."
自心地上 覺性如來 放(施)大智慧 光明 照耀 六門(201) 淸淨
照破(波)六欲諸天 下照 三毒 若除 地獄 一時消滅 內外明徹
不異西方 不作此修 如何到彼 座下聞(問)說 讚聲 徹天 應是
迷人 了(人)然便見 使君 禮拜 讚言善哉善哉 普願法界衆生
聞者一時悟解(202)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서방정토와 다르지 않다[內外明徹不
異西方]...내외명철한 제불의 정토 이외에는 모두 꿈 속의
장엄인 것이다.
22.수행(修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람다면 세속에서도 가능한 것이
니, 절에 있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 있으면서 닦지 않으면 서
쪽 나라 사람의 마음이 악함과 같고, 세속에 있으면서 수행하면 동
쪽 나라 사람이 착함을 닦는 것과 같다. 오직 바라건대, 자기 스스로
깨끗함을 닦으라. 그러면 이것이 곧 서쪽 나라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화상(和尙)이시여,세속에 있으면서는 어떻게 닦습니까? 원하오니
가르쳐 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혜능이 도속(道俗)을 위하여 '모양없는 게송'을 지어
주리니 다들 외워 가지라.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항상 혜능과
더불어 한 곳에 있음과 다름이 없느니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설법도 통달하고 마음도 통달함이여!
해가 허공에 떠오름과 같나니
오직 돈교의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취를 부수는도다.
가르침에는 돈(頓)과 점(漸)이 없으나
미혹함과 깨침에 더디고 빠름이 있나니
만약 돈교의 법을 배우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하지 않느니라.
설명하자면 비록 일만 가지이나
그 낱낱을 합하면 다시 하늘로 돌아오나니
번뇌의 어두운 집속에서
항상 지혜의 해가 떠오르게 하라.
삿됨은 번뇌를 인연하여 오고
바름(正)이 오면 번뇌가 없어지나니
삿됨과 바름을 다 버리면
깨끗하여 남을 없음에 이르는도다.
보리는 본래 깨끗하나
마음 일으키는 것이 곧 망상이라
깨끗한 성품이 망념 가운데 있나니
오직 바르기만 하면 세 가지 장애를 없애는도다.
만약 세간에서 도를 닦을진대는
일체가 다 방해롭지 않나니
항상 허물을 드러내어 자기에게 있게 하라.
도와 더불어 서로 합하는도다.
형상이 있는 것에는 스스로 도가 있거늘
도를 떠나 따로 도를 찾는지라
도를 찾아도 도를 보지 못하나니
필경은 도리어 스스로 고뇌하는도다.
만약 애써 도를 찾고자 할진대는
행동의 바름이 곧 도이니
스스로에게 만약 바른 마음이 없으면
어둠 속을 감이라 도를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만약 세간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잘못이라 도리어 허물이로다.
남의 잘못은 나의 죄과요
나의 잘못은 스스로 죄 있음이니
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버리는도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을 교화하고자 할진대는
모름지기 방편이 있어야 하나니
저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하지 말라.
이는 곧 보리가 나타남이로다.
법은 원래 세간에 있어서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나나니
세간을 떠나지 말며
밖에서 출세간(出世間)의 법을 구하지 말라.
삿된 견해가 세간이요
바른 견해는 세간을 벗어남이니
삿됨과 바름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의 성품이 완연하리로다.
이는 다만 단박 깨치는 가르침이며
또한 대승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하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나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大師言 善知識 若欲修行 在家 亦得 不由在寺 在寺不修 如西
方心惡之人 在家若修行 如東方人修善 但願自家修淸淨 卽是
西(惡)方 使君 問 和(尙) 在(203)家如何修 願爲指授 大師言
善知識 惠能 與道俗作無相頌 盡誦取 依(衣)此修行 常與惠能
[說]一處無別 頌曰
說通及心通 如日至虛空.
惟傳頓敎法 出世破邪宗.
敎卽無頓漸 迷悟有遲疾.
若學頓敎法 愚人不可迷.
說卽雖(須)萬般 合離還歸一.
煩惱暗宅中 常須生慧(惠)日.
邪來因煩惱 正來煩惱除.
邪正俱(疾)不用 淸淨至無餘.(204)
菩提本淸淨 起心卽是妄.
淨性在(於)妄中 但正除三障.
世間若修道 一切盡不妨.
常現在己過 與道卽相當
色類自有道 離道別覓道.
覓道不見道 到頭還自懊.
若欲貪覓道 行正卽是道.
自若無正心 暗行不見道.
若眞修道人 不見世間愚.
若見世間非 自非却是左.
他非我有罪 我非自有罪.(205)
但自去非心 打破煩惱碎.
若欲化愚人 是須有方便.
勿令破彼疑 卽是菩提見.
法元在世間 於世出世間.
邪見是(出)世間 正見出世間.
邪正悉打却 <菩提性宛然>
此但是頓敎 亦名爲大乘.
迷來經累劫 悟則刹那間.(206)
*'오직 돈교의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취를 부
순다[唯傳頓敎法하야出世破邪宗이로다]'...육조스님은 <단경>
전체를 통하여 돈오돈수(頓悟頓修)하는 돈교법만을 설하였
으므로, 돈법(頓法)이외는 모두 사종(邪宗)이라고 배척하였
으니 이는 최사현정( 邪顯正)의 대자비인지라, 육조의 법
손(法孫)으로서 점수(漸修) 운운하는 것은 육고를 반역(反
逆)하는 것이다.
23.행화(行化)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너희들은 다들 이 게송을 외워 가지라. 이 게송을 의
지하여 수행을 하면 천리를 혜능과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혜능의 곁
에 있는 것이요,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얼굴을 마주하여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
이다. 각각 스스로 수행하면 법을 서로 지님이 아니겠느냐.
여러 사람들은 그만 흩어지거라. 혜능은 조계산으로 돌아가리라.
만약 대중 가운데 큰 의심이 있거든 저 산으로 오너라. 너희를 위하
여 의심을 부수어 같이 부처의 성품을 보게 하리라."
함께 앉아 있던 관료.스님.속인들이 육조대사께 예배하며 찬탄하
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들을 '훌륭하십니다. 크게 깨치심이여! 옛적
에는 미처 듣지 못한 말씀이로다. 영남에 복이 있어 산 부처가 여기
계심을 누가 능히 알았으리오' 한 다음 한꺼번에 다 흩어졌다.
大師言 善知(智)識 汝等 盡誦取此偈 依偈修行 去惠能千里
常在能邊 此不修 對面千里 各各自修 法(213)不相持 衆人 且
(旦)散 惠能 歸曹(漕)溪山 衆人(生) 若有大疑 來彼山間 爲汝
破疑 同見佛性(世) 合座官僚(奪)道俗 禮拜和尙 無不嗟嘆 善
哉 大悟 昔所未聞(問) 嶺南 有福 生佛在此 誰能得知(智) 一
時盡散(214)
대사께서 조계산으로 가시어 소주.광주 두 고을에서 교화하기를
사십여년이었다.
만약 문인을 말한다면 스님과 속인 삼오천(三五千)명이라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만약 종지를 말한다면 <단경>을 전수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믿음을 삼게 하셨다. 만약 <단경>을 얻지 못하면 곧 법을
이어받지 못한 것이다. 모름지기 간 곳과 년 월 일과 성명을 알아서
서로서로 부촉하되 <단경>을 이어 받지 못하였으면 남종(南宗)의
제자가 아니다. <단경>을 이어받지 못한 사람은 비록 돈교법을 말
하나 아직 근본을 알지 못함이라. 마침내 다툼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법을 얻은 사람에게만 [돈교법의] 수행함을 권하라.
다툼은 이기고 지는 마음이니 도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大師往曹溪山 韶廣二州 行化四十餘年 若論門人 僧之與俗 三
五千人 說不盡 若論宗旨(指) 傳授壇經 以此爲依(衣)約 若不
得壇經 卽無稟受 須知去(法)處年月日姓(性)名 遞(遍)相付囑
無壇經稟承 非南宗弟(定)子也 未得稟承者 雖說頓敎法 未知
根本 終(修)不免諍 但得法者 只勸修行 諍是勝負之心 與道違
背(215)
24.돈수(頓修)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라고 하
나, 아직 근본 사유를 모르는 말이다.
또 신수선사는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혜능
대사는 소주성 동쪽 삼십오 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법은 한
종(宗)이나 사람에게 남쪽과 북쪽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남쪽과 북
쪽이 서게 되었다.
어떤 것을 '점(漸)과 '돈(頓)'이라고 하는가?
법은 하가지로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기 때문이다. 견해가 더
딘즉 '점'이요 견해가 빠른즉 '돈'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닭으로 '점'과 '돈'이라고 이
름한 것이다.
일찍이 신수스님은 사람들이 혜능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리킨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신수스님은 드디어 문인 지성스님
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산으로 가라. 가
서 혜능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
왔다 하지 말라. 들은대로 그 뜻을 기억하여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
여라. 그래서 혜능스님의 견해와 나와,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보게
하여라. 너는 첫째로 빨리 오너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
기지 않도록 하라."
지성은 기쁘게 분부를 받들어 반달쯤 걸려서 조계산에 도달하였
다. 그는 혜능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
지 않았다.
지성은 법문을 듣고 그 말끝에 문득 깨달아 곧 본래의 마음에 계
합하였다.
그는 일어나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였으나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습
니다.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니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렸다!"
지성이 말하였다.
"말을 하기 이전에는 그렇습니다만, 말씀을 드렸으니 이미 아니옵
니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임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世人 盡傳 南[宗]能北(比)秀 未知根本事由 且秀禪師 於荊南
府當(南荊 堂)陽縣玉泉寺 住持(時)修行 惠能大師 於韶州城
東三十五里曹溪山 住 法卽一宗 人有南北(比) 因此便立南北
何名(以)漸頓 法卽一種 見有遲疾 見遲卽漸 見疾卽頓 法無漸
頓 人有利鈍故 名漸頓(217) 神秀師嘗(常)見人 說惠能法 疾直
指(旨)路 秀師遂喚(換)門人僧志誠曰 汝聰明多智 汝與吾至曹
溪山 到惠能所 禮拜但聽 莫言吾使汝來 所聽得(德)意旨 記取
(218) 却來與吾說 看惠能見解與吾誰疾遲 汝第一早來 勿令吾
怪 志誠 奉使歎喜 遂半月中間 卽至曹溪山 見惠能和尙(當)
禮拜卽聽 不言來處 志誠(城) 聞法 言下便悟 卽契本心 起立
卽]禮拜 自言 和尙 弟子從玉泉寺來 秀師處 不得(德)契悟 聞
和尙說 便契本心 和尙 慈悲 願當敎(散)示 惠能大師曰 汝從
彼(被)來 應是細作 志誠曰 未說時卽是 說[及]了不(卽)是 六
祖言 煩惱卽是菩提 亦復如是(219)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의 스님이 사라을 가르치기를 오직 계.정.혜를 전
한다고 하는데, 너의 스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계.정.혜는 어떤
것인가? 마땅히 나를 위해 말해 보라."
지성이 말하였다.
"신수스님은 계.정.혜를 말하기를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
고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고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
이 하는것을 정이라고 한다. 어것이 곧 계.정.혜이다'고 합니다.
신수스님의 말씀은 그렇거니와, 큰스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알지
못합니다."
혜능대사께서 대답하셨다.
"그 법문은 불가사의하나 혜능의 소견은 또 다르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지성이 계.정.혜에 대한 스님의 소견을 청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서 나의 소견을 보라. 마음의 땅에 그릇됨이
없는 것이 자성의 계요, 마음의 땅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요, 마음의 땅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자성의 혜이니라."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요,
나의 계.정.혜는 높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또한 계.정.혜도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지성은 단박 닦으라. 세우면 점차가 있으니 그러므로 세우지 않느
니라."
지성은 예배하고서 바로 조계산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문인이 되
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大師謂志誠曰 吾聞汝(與)禪師敎人 唯傳戒定慧 汝(與)(221)和
尙 敎人戒定慧 如何 當爲吾說 志誠(城)曰 秀和尙 言戒定慧
諸惡不作 名爲戒 諸善奉行 名爲惠 自淨其意 名爲定 此卽名
爲戒定惠 彼作如是說 不知和尙所見 如何 惠能和尙答曰 此說
不可思議 惠能所見 又別 志誠(城) 問 何以別 惠能答曰 見有
遲疾 志誠(城) 請和尙說所見戒定惠 大師言 [如]汝聽吾(悟)說
看吾(悟)所見處 心地無[疑]非自性(姓)戒 心地無亂 是自性
(姓)定 心地無癡 自性(姓)[是]惠 能大師言 汝戒定惠 勸小根
諸人 吾戒定惠 勸上[根]人 得悟(吾)自[性] 亦不立戒定惠 志
誠(城) 言 請大師說不立 如何 大師言 自性(姓) 無非無亂無癡
念念般若觀照 常(當)離法相 有(222)何可立 自性(姓)頓修 立
有漸 此所(契)以不立 志誠 禮拜 便不離曹溪山 卽爲門人 不
離大師左右(223)
*자성돈수(自性頓修 자성으로 단박 닦음)...육고는 <제 8무
념편>에서 '미혹한 사람은 점점 계합하고[迷人漸契] 깨친
사람은 단박에 닦는다[悟人頓修]'고 말함과 같이, 깨침[悟]
은 모두 돈수(頓修)임을 말하였다. 돈황본에서는 '자성으로
단박에 닦는다[自性頓修]'고 간명하게 말하였으나, 각 본
(本)에서는 '자성이 스스로 깨쳐서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아서 또한 점차도 없다[自性이 自悟하여赤無漸次라]'고 소상
히 말씀하심으로써, <단경>에는 돈오돈수(頓悟頓修)뿐이요
점수(漸修)는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25.불행(佛行)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법달이라 하였다. 항상 <법화경>을 외워
칠년이 되었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바른 법의 당처(堂處)를 알지 못
하더니 와서 물었다.
"경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큰스님의 지혜가 넓고 크시오니 의
심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은 제법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
나. 경 자체에는 의심이 없거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
네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바른 법을 구하는구나. 나의 마음 바른
정(定)이 곧 경전을 지니고 읽는 것이다.
나는 한평생 동안 문자를 모른다. 너는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나를 마주하여 한편(一遍)을 읽으라. 내가 들으면 곧 알 것이니라."
又有一僧 名法達 常誦法華經七年 心迷不知正法之處 <來問
曰>經上 有疑 大師 智慧廣大 願爲決(時)處 大師言 法達 法
卽甚達 <汝心不達> 經上無疑(癡) <汝時自疑> 汝心自邪(耶)
而求正法 吾心正定 卽是持經 吾一生已來 不識文字 汝將法華
經來 對吾讀一遍 吾聞(問)卽知(之)(227)
법달이 경을 가지고 와서 대사를 마주하여 한편을 읽었다. 육조스
님께서 듣고 곧 부처님의 뜻을 아셨고 이내 법달을 위하여 <법화
경>을 설명하시었다.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다. 일곱 권이 모두 비유와
인연이니라.
부처님께서 널리 삼승을 말씀하심은 다만 세상의 근기가 둔한 사
람을 위함이다.
경 가운데 분명히 '다른 승(乘)이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한불승
(佛乘) 뿐이라'고 하셨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너는 일불승을 듣고서 이불승을 구하여 너의 자성을 미
혹하게 하자 말라. 경 가운데서 어느 곳이 일불승인지를 너에게 말
하리라.
경에 말씀하기를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一大
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셨다.'고 하셨다. [이상의 열여섯 자는
바른 법이다.]
이 법을 어떻게 알며 이 법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너는 나의 말
을 들으라.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느면 본래의 근원이 비고 고요하여
삿된 견해를 떠난다. 밖으로 미혹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
하면 공(空)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을 떠나
는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깨달아 한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나타나
는 것이니라.
마음에 무엇을 여는가?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이니라. 네 문으로
나뉘나니, 깨달음의 지견을 여는 것과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것과
깨달음의 지견을 깨침과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열고
(開) 보이고(示) 깨닫고(悟) 들어감(入)은 한 곳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지견으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곧 세
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法達 取經到 對大師讀一遍 六祖聞(問)已 卽識佛意 便與(汝)
法達說法華經 六祖言法達 法華經 無多語(228) 七卷 盡是譬
喩因(內)緣 如來廣說三乘 只爲世人根鈍 經文(聞)分(公)明 無
有餘乘 唯一佛乘 大師<言> 法達 汝聽一佛乘 莫求二佛乘 迷
却汝性(聖) 經中 何處是一佛乘 與汝(汝與)說 經云 諸佛世尊
唯以(汝)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已上十六字(家)是正法)
<此>法 如何解 此法 如何修 汝聽吾說 人心 不思 本源 空寂
離却邪見 卽一大事(是)因緣 內外不迷 卽離兩邊 外迷著(看)相
內迷著空 於相離相 於空離空 卽是不[空]迷 悟(吾)此法 一念
心開 出現於世 心開何物 開佛知見 佛 猶如覺也 分爲四門 開
覺知見 示覺知見 悟覺知見 入覺知見 開示悟入 從(上)一處入
卽覺知見 見自本性 卽(229)得出世(230)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언제나 마음 자리로 부
처님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기를 항상 바라노라. 세
상사람의 마음이 삿되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악을 지어 스스로 중생
의 지견을 열나니,중생람의 마음이발라서 지혜를 일으켜 관조하면
스스로 부처님의 지견을 여나니, 중생의 지견을 열지 말고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이것이 [법화경의 일승법이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삼승을
나눈 것은 미혹한 사람을 위한 까닭이니, 너는 오직 일승불만을 의
지하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마음으로 행하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나니,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굴
리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을 굴리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힘써 법대로 수행하면 이것이 곧 경을 굴리는 것이니라."
법달은 한번 듣고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울
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실로 지금까지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였습니다.
칠 년을 <법화경>에 굴리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법화경>을 굴
려서 생각생각마다 부처님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 행이 곧 부처이니라."
그 때 듣는 사람으로서 깨치지 않은 이가 없었다.
大師言 法達 吾(悟)常願一切世人 心地 常自開佛知見 莫開衆
生知見 世人 心<邪> 愚迷造惡 自開衆生知見世人心正 起智
惠觀照 自開佛知(智)見 莫開衆生知(智)見 開佛知(智)見 卽出
世 大師言 法達 此是法華(232)(達)經一乘法 向下分三 爲迷
(名)人故 汝但依(於)一佛乘 大師言 法達 心行 轉法華 不行
法華轉 心正 轉法華 心邪(耶) 法華轉 開佛知(智)見 轉法華
開衆生知(智)見 被法華轉 大師言 努力依法修行 卽是轉經 法
達 一聞 言下大悟 涕淚悲泣 自言 和尙 實未曾(僧)轉法華 七
年 被法華轉 已後 轉法華 念念修行佛行 大師言 卽佛行 是佛
其時聽人(入) 無不悟者(233)
*수행불행(修行佛行 부처님 행을 수행한다)...깨친 뒤에는
부처님 행을 수행한다고 하였다. 돈오견성(頓悟見性)이 성
불이어서 <금강경 제 8분 육조해의(六祖解義)>에 '행동불행
천리불행(行同佛行踐履佛行)'이라고 하였고, 또한 <제12분>
에는 '상수불행(常修佛行)'이라고 말씀하셨다.
'수행불행'을 대승사본에는 '원수불행(願修佛行)', 흥성사
본에는 '방수불행(方修佛行)'이라 하였고, 유통본(流通本)
에는 모두 누락되었으나, 돈황, 대승, 흥성의 세 고본(古
本)에 실려 있으므로 상관이 없다.
26.참청(參請)
그 무렵 지상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스님께 예
배하고 사승법(四乘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을 말씀하시고 또 최상승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
자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마랍니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윈
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는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이니라. 승
(乘)은 행한다는 뜻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
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時有一僧名智常 來曹溪山 禮拜和尙 問(聞)四乘法義 智常 問
(聞)和尙曰 佛說三乘 又言最上乘 弟子不解 望爲敎(敬)示 惠
能大師曰 汝自身心見 莫著外法相 元無四乘法 人心自有(不
量)四等 法有四乘 見聞讀誦 是小乘 悟<法>解義是中乘 依
(衣)法修行 是大乘 萬法 盡通 萬行(幸)俱備 一切無離 但離法
相 作無所得(德) 是最上乘 乘是[最上]行義 不在口諍 汝須自
修 莫問吾(悟)也(237)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라고 하였으며 남양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
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
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
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인 나무와 둘과 같고, 아프다
하면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양변(兩
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
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
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
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
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
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절하고 바고 문인이 되어 조계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서 모시었다.
又有一僧名神會 南陽人也 至曹溪山 禮拜問言 和尙坐(座)禪
見 亦不見 大師起打神會三下 却問神會 吾打汝 痛 不痛 神會
答言 亦痛亦不痛 六祖言曰 吾亦見亦不見 神會又問 大師 何
以亦見亦不見 大師言 吾亦見
常見自過患 故云亦見 亦不見者 不見天地人過罪 所以亦見亦
不見(也) 汝 亦痛亦不痛 如何 神會答曰 若不痛 卽同無情木
石 若痛 卽同凡(夫) 卽起於恨 大師言 神會 向前 見不見 是
兩邊 痛<不痛> 是生滅 汝自性 且不見 敢來弄人 神會(禮拜)
禮拜 更不言 大師言 汝心迷不見 問善知識覓路 以心悟自見
依法修行(239)
汝自迷(名) 不見自心 却來問惠能見否 吾見(不)自知 代汝迷不
得 汝若自見 代得吾迷 何不自修 問吾見否 神會作禮 便爲門
人 不離曹溪山中 常在左右(240)
*최상승(最上乘)...삼승(三乘)을 초월한 최존최상제일(最
尊最上第一)의 선문(禪門)이다.
27. 대법(對法)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지성.법달.지상.지통.지철.지도.법진.법
여.신회 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너희들은 각각 한곳
의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법 설하는 것을 가
르쳐서 근본 종취를 잃지 않게 하리라.
삼과의 법문(三科法門)을 들고 동용삼십육대(動用三十六對)를 들
어서 나오고 들어감에 곧 양변을 여의도록 하여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
을 묻거든 말을 다 쌍(雙)으로 해서 모두 대법(對法)을 취하여라. 가
고 오는 것이 서로 인연하여 구경에는 두 가지 법을 다 없애고 다시
가는 곳마저 없게하라. 삼과법문이란 음(蔭).계(界).입(入)이다. 음은
오음(五蔭)이요 계는 십팔계(十八界)요 입은 십이입(十二入)이니라.
어떤 것을 오음이라고 하는가? 색음.수음.상음.행음.식음이니
라.
어떤 것을 십팔계라고 하는가? 육진(六塵).육문(六門).육식(六
識)이니라.
어떤 것을 십이입(十二入)이라고 하는가? 바깥의 육진과 안의
육문이니라.
어떤 것을 육진이라고 하는가? 색.성.향.미.촉.법이니라.
어떤 것을 육문이라고 하는가? 눈.귀.코.혀.몸.뜻이니라.
법의 성품이 육신인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육식과 육문
과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나니, 함장식(含藏識)이라
고 이름하느니라.
생각을 하면 곧 식(識)이 작용하여 육식이 생겨 육문으로 나와 육
진을 본다. 이것이 삼(三).육(六)은 십팔(十八)이니라.
자성이 삿되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
(正)을 포함하면 열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나느니라.
악의 작용을 지니면 곧 중생이요, 선이 작용하면 곧 부처이니라.
작용은 무엇들로 말미암는가? 자성의 대법으로 말미암느니라.
大師遂喚門人法海,志誠,法達,智常,志徹,志道,法珍,法如,神會 大
師言 汝等拾弟子 近前 汝等 不同餘人 吾滅度後 汝各爲一方
頭 吾敎汝說法 不失本宗 擧<三>科法門 動<用>三十六對 出
沒 卽離兩邊 說一切法 莫(243)離於性相 若有人 問法 出語盡
雙 皆取法對 來去相因 究( )竟 二法 盡除 更無去處 三科法
門者 蔭界入 蔭是五蔭 界<是>十八界 <入>是十二入 何名五
蔭 色蔭,受蔭,想(相)蔭,行蔭.識蔭 是 何名十八界 六塵,六門,六
識 何名十二入 外六塵 中六門 何名六塵 色聲香味觸(未獨)法
是 何名六門 眼耳鼻舌身意 是 法性 起六識 眼識耳識鼻識舌
識身識意識 六門六塵 自性 含萬法 名爲含藏識 思量卽轉識
生六識 出六門<見>六塵 是三六十八 由自性邪 起十八邪 含
自性<正起>十八正 含惡用卽衆生 善用卽佛 用由(油)何等 由
(油)自性對(244)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대법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
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
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논란하는 말(語)과 직언하는 말(言)의 대법과, 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두가지가 있다. 유위가 무위.유색과 무색이 상대이며, 유상과 무상
ㅇ이 상대이며, 유루와 무루가 상대이며, 현상(色)과 공이 상대이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이며, 맑음과 흐림이 상대이며, 범(凡)과 성
(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대이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이
며, 큼과 작용이 상대이며, 김(長)과 짧음(短)이 상대이며, 높음과 낮
음이 상대이니라.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아홉 가지가 있다. 삿됨과 바름
이 상대요, 어리석음과 지혜가 상대이며, 미련함과 슬기로움이 상대
요, 어지러움과 선정이 상대이며, 계율과 잘못됨이 상대이며, 곧음과
굽음이 상대이며,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험함과 평탄함이 상대
이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이며, 사랑과 해침이 상대이며, 기쁨과 성
냄이 상대이며, 버림과 아낌이 상대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이 상대이
며, 남(生)과 없어짐(滅)이 상대이며, 항상함과 엇없음이 상대이며,
법신과 색신이 상대이며, 화신과 보신이 상대이며, 본체와 작용이 상
대이며, 성품과 모양이 상대이니라.
유정.무정의 대법인 어(語).언(言)과 법(法).상(相)에 열두 가지 대
법이 있고, 바깥 경게인 무정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이 일
으켜 작용하는데 열아홉 가지의 대법이 있어서 모두 서른여섯 가지
대법을 이루니라.
이 삼십육 대법을 알아서 쓰면 일체의 경전에 통하고 출입에 곧
양변을 떠난다.
어떻게 자성이 기용(起用)하는가?
삼십육 대법이 사람의 언어와 더불어 함께 하나 밖으로 나와서는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空)에서 공얼 떠나나
니, 공에 집착하면 오직 무명만 기르고 모양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
만 기르느니라.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할진대는 사람이 말하지도
않아야만 옳을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대해서 공(空)을 말하나 바른 말로 말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하지 않으니
미혹하여 스스로 현혹됨은 말들이 삿된 까닭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다. 어둠
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으로써 변화하여 어둡고, 어둠으로
써 밝음이 나타나나니, 오고감이 서로 인연한 것이다. 삼십육 대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外境無情 對有五 天與地對 日與月對 暗與明對 陰與陽對 水
與火對 語與言對 法與相對 有十二對 有爲無爲有色無色對 有
相無相對 有漏無漏對 色與空對,動與靜(淨)對,淸與濯對,凡與
聖(性)對,僧與俗對,老與少對,大大與少少對,長與短對,高與下對
自性[居]起用對 有十九對 邪與正對,癡與惠對,愚與智對,亂與
定對,戒與非對,直與曲(典)對,實與虛對, 與平對,煩惱與菩提對,
慈與害(空)對,喜與嗔對,捨與�h對,進與退對,生與滅對,常與無常
對,法身與色身對,化身與報身對,體與用對,性與相<對> 有情
(淸)無情(248)(親)對 言語 與法相 有十二對 [內]外境有無
<情>五對 自性起有十九對(三身有三對) 都合成三十六對法也
此三十六對法 解用 通一切經 出入 卽離兩邊 如何自性起用
三十六對共人言語 出外 於<相>離相 入內 於空離空 著空卽
惟長無明(名) 著相惟<長>邪見 謗法 直言不用文字 旣云不用
文字 人不合言語 言語卽是文字 自性上說空 正語言 本性 不
空 迷自惑 語言邪(除)故 暗不自暗 以明(名)變暗 以暗不自暗
以暗現明 來去相因 三十六對 亦復如是(249)
대사께서 열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취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니라.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포하여 행하게 하라.
<단경>을 만나 얻은 이는 내가 친히 주는 것을 만남과 같으니
라."
열명의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아 마치고 <단경>을 베껴서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는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
大師言 十弟子 已後傳法 遞相敎授一卷壇經 不失本宗 不稟受
(授)壇經 非我宗旨 如今得了 遞代流行 得遇壇經者 如見吾親
授 拾僧 得敎授已 寫爲壇經 遞代流行 得者必當見性(253)
*열명의 제자들이란 당시에 가까이에서 육조스님을 모시고
있던 제자들을 말한다.
*즉리양변(卽離兩邊 양변을 떠남)...양변을 떠남은 중도(中
道)를 말한 것이니, 불교의 근본 원리이다. 석존은 초전법
륜(初轉法輪)에서 녹야원 다섯 비구들에게 '여래는 양변을
떠난 중도를 정등각(正等覺)하였다'고 유명한 '중도선언'을
하였다. 용수(龍樹)도 그의 <대지도론(大智度論)四十三>에
서 양변을 떠난 중도는 반야바라밀이라고 상세히 말하였으
니, 육조가 항상 고창(高唱)한 반야는 곧 중도를 말한다.
28. 진가(眞假)
대사께서는 선천 이년 팔월 삼일에 돌아가셨다. 칠월 팔일에 문인
들을 불러 고별하시고, 선천 원년에 신주 국은사에 탑을 만들고 선
천 이년 칠월에 이르러 작별을 고하셨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나는 팔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
고자 하니 너희들은 위하여 의심이 있거든 빨리 물어라.
너희들을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마땅히 미혹을 다 없애어 너희들
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는 너희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리라."
법해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으나,
오직 신회만이 꼼짝하지 아니하고 울지도 않으니 육조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어린 신회는 도리어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평등함을 얻어 헐뜯
고 칭찬함에 움직이지 않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그
렇다면 여러 해동안 산중에서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 지금 슬피
우는 것은 또 누구를 위함인가? 나의 가는 곳을 너희가 몰라서 근심
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는 곳을 모른들 마침내 너희에게 고별하지 않겠느
냐?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곧 나의 가는 곳을 몰라서이다. 만약 가
는 곳을 안다면 곧 슬피 울지 않으리라.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
니라.
너희들은 다 앉거라. 내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노니, '진가동정
게(眞假動靜偈)'이다. 너희들이 다 외워 이 게송의 뜻을 알면 너희는
나와 더불어 같을 것이다.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종지를 잃지 말라."
스님들이 예배하고 대사께 게송 남기시기를 청하고 공경하는 마
음으로 받아 가졌다. 게송에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만약 능히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
의 진실이다.
자기의 마음이 거짓을 여의지 않아 진실이 없거니, 어느 곳에 진
실이 있겠는가?
유정은 곧 움직일 줄을 알고 무정은 움직이지 않나니
만약 움직이지 않은 행을 닦는다면 무정의 움직이지 않음과 같다.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본다면
움직임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 있나니.
움직이지 않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면 뜻도 없고 부처의 씨앗도 없
도다.
능히 모양을 잘 분별하되 첫째 뜻은 움직잊 않는다.
만약 깨쳐서 이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의 씀이니라.
모든 도를 배우면 이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힘써 뜻을 써서
대승의 문에서 도리어 생사의 지혜에 집착하지 말라.
앞의 사람이 서로 응하면 곧 함께 부처님 말씀을 의논하려니와
만약 실제로 서로 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라.
이 가르침은 본래 다툼이 없음이라 다투지 않으면 도의 뜻을 잃
으리오,
미혹함에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들어가느니라.
大師先天二年八月三日 滅度 七月八日 喚門人告別 大師<先>
天元年 於新州國恩寺造塔 至先天二年七月告別 大師言 汝衆
近前 吾(五)至八月欲離世間 汝等 有疑早問 爲汝(外)破疑 當
令迷者盡 使汝(與)安樂 吾若去後 無人(入)敎汝(與) 法海等衆
僧 聞已 涕淚悲泣 唯有神會 不動亦不悲泣 六祖言 神會小僧
却得善<不善>等 毁譽不動 餘(除)者 不得 數年 山中 更修何
道 汝今悲泣 更有阿誰 憂吾不知去處在 若不知去處 終不別汝
汝等悲泣 卽不知吾<去>處 若知去(255)處
卽不悲泣 性體(聽) 無生無滅 無去無來 汝等 盡坐(座) 吾與汝
(如)一偈 眞假動靜(淨)偈 汝(與)等 盡誦取 見此偈意 汝<與>
吾同 依(於)此修行 不失宗旨 僧衆禮拜 請大師留偈 敬心受持
(特) 偈曰
一切無有眞 不以見於眞.
若見於(衣)眞者 是見盡非眞.
若能姿有眞 離假卽心眞.
自心不離假 無眞何處眞.
有情(性)卽解動 無情(性)卽不動.
若修不動行 同無情不動.
若見眞不動 動上有不動.(256)
不動是不動 無情無佛種(衆).
能善分別相 第一義不動.
若悟作此見 則是眞如用.
菩提學道者 努力須用意.
莫於大乘門 却執生死智.
前頭人相應 卽共論佛語.
若實不相應 合掌令歡喜(勸善).
此敎本無諍 無諍失道意.
執迷諍法門 自性入生死.(257)
29.전게(傳偈)
대중스님들은 다 듣고 대사의 뜻을 알았으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아니하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였다. [대중이] 일시에 예배하니, 곧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상좌인 법해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큰스님이시여, 큰스님께서 가신 뒤에 가사와 법을 마땅히 누구에
게 부촉 하시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전하여 마쳤으니 너희는 모름지기 묻지 말라. 내가 떠난 뒤
이십여년에 삿된 법이 요란하여 나의 종지를 혹란케 할 것이다. 그
러나 어떤 사람이 나와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교의 옳고 그
름을 결정하여 종지를 세우리니, 이것이 곧 나의 바른 법이다. 그러
므로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너희가 믿지 않을진대는 내가
선대의 다섯 분 조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신 게송들을 외
워 주리라.
만약 제일조 달마조사의 게송의 뜻에 의거하면 곧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외우리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제일조 달마화상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내 본시 당나라에 와서 부처님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노
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어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리로다.
제이조 혜가스님 게송에 말씀하셨다.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제삼조 승찬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가 비록 땅을 인연하여 땅 위에 씨앗 꽃을 피우나
꽃씨는 나는 성품이 없나니 땅에도 또한 남이 없도다.
제사조 도신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에 나는 성품있어 땅을 인연하여 씨앗 꽃이 피나
앞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자니 않는도다.
제오조 홍인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유정이 와서 씨 뿌리니 무정이 꽃을 피우고
정도 없고 씨앗도 없나니 마음 땅에 또한 남이 없도다.
제육조 혜능의 게송에 말한다.
제마음의 땅이 뜻의 씨앗을 머금으니 법의 비가 꽃을 피운다.
스스로 꽃 뜻의 씨앗을 깨달으니,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는
도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내가 지은 두 게송을 들어라. 달마스님의 게송의 뜻을
취하였으니 너희 미혹한 사람들은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그
러면 반드시 자성을 보리라.
첫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에 삿된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무명의 업을 지어 업의 바람에 나부낌을 보는도다.
둘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에 바른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반야의 지혜를 닦으니 장차 오실 부처님의 깨달음이로다.
육조스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여 마치시고 대중을 해산시켰다. 밖으
로 나온 문인들은 생각하였으니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으
실 것임을 알았다.
衆僧 旣聞 識大師意 更不敢諍 依法修行 一時禮拜 卽知(之)
大師不永住世 上座法海向前言 大師 大師去後 衣法 當付何人
大師言 法卽付了 汝不須問 吾滅後二十餘年 邪法 (遼)亂 惑
我宗旨 有人出來 不惜身命 定(第)佛敎是非 竪立宗旨 卽是吾
正法 衣不合傳(轉) 汝不信 吾與誦先代五祖傳衣付法頌(誦) 若
據第一祖達磨頌]意 卽不合傳衣 聽 吾(五)與汝誦(頌) 頌曰
第一祖達磨和尙 頌曰(262)
吾本(大)來唐國 傳敎救迷情(名淸).
一花開五葉 結果(菓)自然成.
第二祖惠可和尙 頌曰
本來緣有地 從地種花生.
當本元(願)無地 花從何處生.
第三祖僧璨和尙 頌曰
花種雖因地 地上種花(化)生.
花種無生性 於地亦無生.
第四祖道信和尙 頌曰
花種有生性 因地種花生.
先緣不和合 一切盡無生. (263)
第五祖弘忍和尙 頌曰
有情來下種 無情花卽生.
無情又無種 心地亦無生.
第六祖惠能和尙 頌曰
心地含情種 法雨卽花生.
自悟(吾)花情種 菩提果(菓)自成.
能大師言 汝等 聽吾作二頌 取達磨和尙頌曰 汝迷人 依此頌修
行 必當見性
第一頌曰
心地邪花放 五葉逐根隨.
共造無明業(葉) 見被業(葉)風吹.
第二頌曰
心地正花放 五葉逐根(恨)隨.
共修般若惠 當來佛菩提.
六祖說偈已了 放衆生散 門人 出外思惟 卽知大師 不久住世
(265)
*'내가 떠난 뒤 이십여 년[滅後二十餘年]'운운한 것은 신회
(神會)에서 해당된 것으로서, 이 말은 신회 계통에서 조작
한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다.
30.전통(傳統)
그 뒤, 육조스님께서는 팔월 초삼일에 이르러 공양 끝에 말씀하셨
다.
"너희들은 차례를 따라 앉아라. 내 이제 저희들과 작별하리라."
법해가 여쭈었다.
"이 돈교법의 전수는 예부터 지금까지 몇 대입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은 일곱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되었으니, 석가모니불은 그 일
곱째이시다.
대가섭은 제팔, 아난은 제구, 말전지는 제십, 상나화수는 제십일,
우바굽다는 제십이, 제다가는 제십삼, 불타난제는 제십사, 불타밀
다는 제십오,
협비구는 제십육, 부나사는 제십칠, 마명은 제십팔, 바라장자는 제
십구,
용수는 제이십, 가나제바는 제이십일, 라후라는 제이십이, 승가나
제는 제이십삼,
승가야사는 제이십사, 구마라타는 제이십오, 사야나는 제이십육,
바수반다는 제이십칠, 마나라는 제이십팔, 학륵나는 제이십구,
사자비구는 제삼십, 사나바사는 제삼십일, 우바굴은 제삼십이, 승
가라는 제삼십삼,
수바밀다는 제삼십이, 남천축국 왕자 셋째 아들 보리달마는 제삼
십오,
당나라 스님 혜가는 제삼십육, 승찬은 제삼십칠, 도신은 제삼십
팔, 홍인은 제삼십구, 나 혜능이 지금 법을 받은 것은 제사십대이니
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서로서로 전수하여 모름지기 의지하고 믿어서 종
지를 잃지말라."
六祖後至八月三日 食後 大師言 汝等著(善)位坐(座) 吾(五)今
共汝(與)等別 法海問(聞)言 此頓敎法傳授(受) 從上已來 至今
幾代 六祖言初傳授(受)七佛 釋迦牟尼佛 第七
大迦葉第八, 阿難第九,
末(未)田地第十, 商那和修第十一,
優婆�}多第十二, 提多迦第十三,
佛陀(抒)難提十四, 佛陀(抒)蜜多第十五,
脇比丘第十六, 富那奢第十七,
馬鳴第十八, 毗羅長者第十九,(270)
龍樹第二十, 迦那提婆第卄一,
羅 羅第卄二, 僧迦耶提第卄三,
僧迦耶(那)舍第卄四, 鳩摩羅 第卄五,
耶多第卄六, 婆修盤多第卄七,
摩拏羅第卄八, 鶴勒那第卄九,
師子比丘第 , 舍那婆斯第 一,
優婆堀第 二, 僧迦羅第三十三,
須婆蜜多第三十四,
南天竺(竹)國王子第三子菩提達磨第三十五,
唐國僧惠可第三十六, 僧璨第三十七,
道信第三十八, 弘忍第三十九,
惠能自身 當今受法第四十(十四) 大師言 今日已後 遞(271)相
傳授(受) 須有依約 莫失宗旨(272)
*옛 역사는 증빙의 불충분으로 고증(考證)이 어렵다. 종문
법통(宗門法統)에 대하여 이설(異說)이 있긴 하나, 가섭으
로부터 달마까지 이십팔대설(二十八代說)은 육조스님과 같
은 해에 입적한 영가의 <증도가>에서도 '이십팔대는 서천의
기록이로다[二十八代는西天記로다]'라고 하였다.
31. 진불(眞佛)
법해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이제 가시면 무슨 법을 부촉하여 남기시어, 뒷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부처님을 보게 하시렵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들으라. 뒷 세상의 미혹한 사람이 중생을 알면 곧 능히
부처를 볼 것이다. 만약 중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토록 부처를 찾아
도 보지 못하리라. 내가 지금 너희로 하여금 중생을 알아 부처를 보
게 하려고 다시 '참 부처를 보는 해탈의 노래(見眞佛解脫頌)'를 남
기리니, 미혹하면 부처를 보지 못하고 깨친 이는 곧 보느니라."
"법해는 듣기를 바라오며 대대로 유전하여 세세생생에 끊어지지
않게 하리이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들으라. 내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여 주리라. 만약 뒷 세
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할진대는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
라. 그러면 곧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 곧 중생이 있음을 인
연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의 마음이 없느니라.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중생이 부처이며
우치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니라.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
이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
만약 한생각 깨쳐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요."
法海又白 大師今去 留付何法 令(今)後代人 如何見佛 六祖言
汝聽 後代迷人 但識衆生 卽能見佛 若不識衆生 覓佛萬劫 不
得見也 吾(五)今敎汝 識衆生 見佛 更留見眞佛解脫頌 迷卽不
見佛 悟者卽見 法海願聞 代代流傳 世世不絶 六祖言 汝聽 吾
與汝(汝與)說 後代世人 若欲覓佛 但識自(佛)心衆生 卽能識佛
卽緣有衆<生> 離衆生無佛心
迷卽佛衆生 悟卽衆生佛
愚癡佛衆生 智慧衆生佛
心險(劒)佛衆生 平等衆生佛(275)
一生心若險(劒) 佛在衆生中
一念悟(吾)若平 卽衆生自佛
我心自有佛 自佛是眞佛
自若無佛心 向何處求佛(276)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문인들은 잘 있거라. 내가 게송 하나를 남기리니 '자성진불
해탈송' 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뒷 세상에 미혹한 사람이 이 게송의
뜻을 들여면 곧 자기의 마음, 자기 성품의 참 부처를 보리라. 저희에
게 이 게송을 주면서 내 너희와 작별하리라."
게송을 말씀하셨다.
진여의 깨끗한 성품이 참 부처요
삿된 견해의 삼독이 곧 참 마군(魔軍)이니라.
삿된 생각 가진 사람은 마군이 집에 있고,
바른 생각 가진 사람은 부처가 곧 찾아오는도다.
성품 가운데서 삿된 생각인 삼독이 나나니,
곧 마왕이 와서 집에 살고
바른 생각이 삼독의 마음을 스스로 없애면
마군이 변하여 부처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도다.
화신과 보신과 정신(靜身)이여,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니
만약 자신(自身)에게서 스스로 보는 것을 찾는다면
본래 화신으로부터 깨끗한 씨앗이니라.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속에 있고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 없도다.
음욕을 없애고는 깨끗한 성품의 몸이 없다.
다만 성품 가운데 있는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여의면
찰나에 성품을 보나니, 그것이 곧 참[眞]이로다.
만약 금생에 돈교의 법문을 깨치면
곧 눈앞에 세존을 보려니와
만약 수행하여 부처를 찾는다고 할진대는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도다.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다면
그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니라.
스스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가서 찾음이 모두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돈교의 법문을 이제 남겼나니
세상 사람을 구제하고 모름지기 스스로 닦으라.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에게 알리노니,
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부질없으리로다.
大師言 汝等門人 好住 吾留一頌 名自性眞佛解脫頌 後代迷
<人> 聞(門)此頌意 [意]卽見自心自性眞佛 與汝此頌 吾共汝
別 頌曰
眞如淨性是眞佛 邪見三獨是眞魔(摩)
邪見之人魔(摩)在舍 正見之(知)人佛則過(278)
性中(衆)邪見三獨生 卽是魔王來住舍
正見自除(忽則)三獨心(生) 魔(摩)變成佛眞無假.
化身報身及淨身 三身元本是一身
若向身衆覓自見 卽是<成>佛菩提因
本從化(花)身生淨性 淨性常在化(花)身中
性使化(花)身行正道 當來圓(員)滿眞無窮
狀性本身靑淨因 除狀卽無淨性身
性中但自離五(吾)欲 見性刹那卽是眞
今生若悟(吾)頓敎門 悟卽眼前見世(性)尊
若欲修行云覓佛 不知何處欲求眞
若能身中自有眞 有眞卽是成佛因(279)
自不求眞外覓佛 去覓 是大癡人
頓敎法門今已留(者是西流) 救(求)度世人須自修
今報(保)世間學道者 不依(於)此是大悠悠(280)
*게송 가운데서 '멱자견(覓自見)'을, '찾아서 스스로 본다'
고 하면 견성(見性)으로 해석될 염려가 있으므로 '스스로
보는 것을 찾는다'고 번역하였다. 유통본에는 '약향성중능
자견 즉시성불보리인(若向性中能自見 卽是成佛菩提因)'이라
고 하였는 바, '성중자견(性中自見)'은 견성이며 '견성이
곧 성불'임을 <단경>의 근본사상으로서 성불하는 씨앗[成佛
因]이 될 수 없으므로,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며 <지침(指
針)> 가운데서 이미 지적하였다.
32.멸도(滅度)
대사께서 게송을 말씀해 마치시고 드디어 문인들에게 알리셨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며, 상복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내가 살아 있던 날과 한가지로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어서 탄
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큰 도이니라,
내가 떠난 뒤에 오직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던 날과 한
가지일 것이나, 내가 만약 세상에 있더라도 너희가 가르치는 법을
어기면 내가 있은들 이익이 없느니라."
대사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밤 삼경에 이르러 문득 돌아가시니,
대사의 춘추는 일흔여섯이었다.
大師說偈已了 遂告門人曰 汝等 好住 今共汝別 吾去已後 莫
作世情悲泣 而受人弔問(門)錢帛 著孝衣 卽非聖法 非我弟子
如吾在日一種 一時端坐 但無動無靜(淨) 無生無滅 無去無來
無是無非 無主<無往> 坦(但)然寂靜(淨) 卽是大道 吾去已後
但依(衣)法修行(284) 共吾在日一種 吾若在世 汝違敎法 吾住
無益 大師云此語已 夜至三更 奄然遷化(花) 大師春秋七十有
六(285)
대사께서 돌아가신 날, 절 안은 기이한 향내가 가득하여 여러 날
이 지나도 흩어지지 않았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진동하여 숲의 나
무가 희게 변하고 해와 달은 광채가 없고 바람과 구름이 빛을 잃었
다.
팔월 삼일에 돌아가시고 동짓달에 이르러 큰스님의 영구를 모시
어 조계산에 장사지내니, 용감(龍감) 속에서 흰 빛이 나타나 곧장 하
늘 위로 솟구치다가 이틀 만에 비로소 흩어졌으며, 소주 자사 위거
는 비(碑)를 세우고지금까지 공양하니라.
大師滅度之(諸)日 寺內異香 經數日不散 山崩(朋)地動 林
木變白 日月無光 風雲失色 八月三日 滅度 至十一月 迎和尙
神座於曹溪山葬 在龍龕之內 白光 出現 直上衝天 二日始散
韶州刺使韋 (處)立碑 至供養(286)
33. 후기(後記)
이 <단경>은 상좌인 법해스님이 모은 것이다. 법해스님이 돌아가
니 같이 배운 도제스님에게 부촉하였고, 도제스님이 돌아가니 문인
오진스님에게 부촉하였는데, 오진스님은 영남 조계산 법흥사에서 지
금 이 법을 전수하니라.
此壇經 法海上座集 上座無常 付同學道 道 無常 付門人悟
眞 悟眞 在嶺南曹溪山法興寺 見今傳授(受)此法(287)
만약 이 법을 부촉할진대는 모름지기 상근기의 지혜라야 하며, 마
음으로 불법을 믿어 큰 자비를 세우고 이 경을 지니고 읽어 의지를
삼아 이어받아서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다.
如付此(山)法 須得(德)上根(恨)智(知) 心身佛法 立大悲持此經
以爲依(衣)承 於今不絶.
[법해]스님은 본래 소주 곡강현 사람이다. 여래께서 열반하시고
법의 가르침이 동쪽 땅으로 흘러서 머무름이 없음을 함께 전하니,
곧 나의 마음이 머무름이 없음이로다.
이 진정한 보살이 참된 종취를 설하고 진실한 비유를 행하여 오직
큰 지혜의 사람만을 가르치나니, 이것이 뜻의 의지하는 바이다.
무릇 제도하기를 서원하고, 수행하고 수행하되, 어려움을 만나서는
물러서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서도 능히 참아 복과 덕이 깊고 두터
워야만 바야흐로 이 법을 전할 것이다. 만약 근성이 감내하지 못하
고 재량이 좋지 못하면 모름지기 이 법을 구하더라도 법을 어긴 덕
없는 이에게는 망령되이 <단경>을 부촉하지 말 것이니, 도를 같이
하는 모든 이에게 알려 비밀한 뜻을 알게 하노라.
和尙 本是韶州曲江縣(懸)人也 如來入涅槃(盤) 法敎流東土 共
傳無住 卽我心無住 此眞菩薩 說眞宗(示)(288) 行實喩 唯敎大
智人 是旨依(衣) 凡度誓修修行行 遭難不退 遇苦能忍 福德深
厚 方授此法 如根性 不堪 材(林)量 不得 須求此法 違律(立)
不德者 不得妄付壇經 告諸同道者 令知密(諸蜜)意(289)
*도제(道 ), 오진(悟眞)...도제는 법해(法海)의 동학(同學)이
니 육조의 문인이요, 오진은 도제의 문인이니 육조의 손제자이
다. 이는 단경 전수의 계맥(系脈)이니, 돈황원본은 오진 이전
의 최고본(最古本)임이 분명하며, 일천여년간 돈황석굴(敦煌石
窟)에 비장(秘藏)되어 유통본처럼 뒷 사람들의 첨삭(添削)이
없으므로 육조의 성의(聖意)를 전한 진본(眞本)으로 평가된다.
제3편 선교결(禪敎訣)
유정대사에게 보임(示 惟政大師)
서산대사(西山大師)
요즈음 선(禪)을 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이것이 우리 스승의 법이
다'하고 교(敎)를 하는 사람도 '이것이 우리 스승의 법이다'라고 말하
면서 한 법을 가지고 서로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하여 손가락과 말로
서로 다투고 있으니[손가락과 말[指馬]... <장자>제물편에서 쓸데없
는 논쟁을 비유한 말] 슬프도다, 그 누가 능히 결단하겠는가!
그러나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교는 말
이 있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요, 선은 말 없는 곳
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다. 말 없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면 그것은 누구도 무엇이라고 이름할 수 없어 억지로 이름
하여 마음이라고 한다. 세상 사람은 그 까닭을 알지 못하고 배워서
알고 생각하여 얻는다고 하니, 이는 실로 가엾은 일이다.
교를 하는 사람으로서 '교 가운데도 또한 선이 있다'고 말하는 자
가 있으니 이는 성문승도 아니며 연각승도 아니고 보살승도 아니며
불승도 아니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선가(禪家) 입문
의 첫 구절이요 선의 뜻은 아니며, 세존께서 한평생 말슴하신 가르
침[敎]인 것이다. 비유컨대 세 종류의 자비의 그물을 가지고 과거,
현재, 미래의 나고 죽음의 바다에 펴서 작은 그물로는 새우와 조개
를 건지고[인천소승교와 같음] 중간 그물로는 방어와 송어를 건지고
[연각의 중승교와 같음], 큰 그물로는 고래와 큰 자라를 건져서[대승
원돈교와 같음] 함께 열반의 언덕에 두는 것과 같으니, 이는 가르침
의 순서이다. 그 가운데 한 물건이 있어서, 갈기는 시뻘건 불과 같고
발톱은 무쇠 창날과 같으며, 눈은 햇빛을 쏘고 입으로는 바람과 우
뢰를 내뿜는다. 몸을 뒤쳐 한 번 구르면 흰 물결이 하늘에 닿고 산
과 강이 진동하며, 해와 달이 어두워진다. 세 가지 그물을 뛰어넘어
바로 구름 위로 올라가서 감로수를 퍼부어 뭇 생명들에게 이로움을
주니[바로 조사문 중의 교외별전의 기틀임], 이는 선이 교와 다른 점
이다.
今禪者曰 此吾師之法也 今敎者曰 此吾師之法也 一法上 同於
同異於異 而指馬交諍 嗚呼 其孰能訣之 然 禪是佛心 敎是佛
語也 敎也者 自有言至於無言者也 禪也者 自無言至於無言者
也 自無言至於無言 則人莫得而名焉 强名曰心 世人 不知其由
謂學而知思而得 是可 愍也 敎者曰 敎中 亦有禪也云者 出於
非聲聞乘 非緣覺乘 非菩薩乘 亦非佛乘之語也 然 此 禪家入
門之初句 非禪旨也 世尊一代所說之敎也 譬如將三種慈悲之網
張三界生死之海 以小網 蝦 (如人天小乘敎) 以中網
(如緣覺中乘敎) 以大網 鯨鱉(如大乘圓頓敎) 俱置於涅槃
之岸焉 此敎之序也 其中 有一物 如朱火 瓜如鐵戟 眼射
(293)日光 口吐風雷者 蒜身一轉 白浪 滔天 山河震動 日月
晦瞑 超出乎三網之外 直上乎靑雲之端 注甘露而益群生焉(正
如祖門敎外別傳之機) 此 禪之別於敎者也(294)
*믿기 어려운 비유 같기는 하지만, 선의 뛰어남을 이 말로써 능히
짐작할 것이다. 이 비유는 서산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선, 교의 우열을 가리는 데 쓰인 말이다.
그리고 화엄사상에 철저한 보조(普照)도 '교외별전은 교승보다 한
층 더 뛰어나다[敎外別傳은 逈出敎乘이라一看話決疑論]'고 하였고 또한
'교외별전이란 교학자만이 믿기 어렵고 들어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
라, 선종에서도 근기가 낮은 이도 또 얕게 아는 이도 망연하여 알지
못한다[敎外別傳은 非但敎學者難信難入이요赤乃富宗下根淺識도茫然不知
矣니다一看話決疑論]'고 하였으며, 또한 서산은 그의 <선교석(禪敎
釋)>에서 말하기를 "화엄소[청량 지음]에 이르기를 '원돈 위에 따로
한 종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문을 일컫는 것이다(華嚴疏一淸凉
一에 云, 圓頓之上에別有一種이라하니此는禪門之謂也라]"고 하였다. 이로서
선과 교의 차이가 이같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로써 선과 교의 차
이가 이같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 선의 법은 우리 부처님 세존도 또한 진귀조사에게서 따로이
전해받은 것이며, 옛부처의 케케묵은 말이 아니다. 요즈음 선의 뜻을
그릇 이어받은 자는 더러는 돈, 점의 문으로써 정맥을 삼으며, 더러
는 원돈의 교로써 종승을 삼고, 더러는 외도의 글을 인용하여 비밀
한 뜻을 설하며, 더러는 업식을 희롱함으로써 본분을 삼고, 또 더러
는 그림자를 인정하여 자신으로 삼는다. 심지어는 눈멀고 귀먹은 방
할(棒喝)을 함부로 행하여 부끄러움도 없으니 이는 참으로 무슨 마
음들인가? 법을 비방하는 그 허물을 내가 어찌 감히 말하겠는가?
此禪之法 吾佛世尊 亦別傳乎眞歸祖師者也 非古佛之陳言也
今錯承禪旨者 或以頓漸之門 爲正脈 或以圓(297)頓之敎 作宗
乘 或引外道書 說密旨 或以弄業識 爲本分 或以認光影 爲自
己者 至於恣行盲聾棒喝 無 無愧者 是誠何心哉 其謗法之愆
余何敢言(298)
*돈오점수를 <수심결>에서 '돈, 점의 양문[頓漸兩門)', '돈, 점의
두 뜻[頓漸二義]'이라고 하였으니, 돈, 점의 문은 돈오점수를 말한 것
이다.
돈오점수는 하택(荷澤)과 규봉(圭峰)이 먼저 주장하고 보조가 힘
써 퍼뜨린 것으로서, 보조는 처음에는 돈오점수를 '달마의 법을 바로
이은 것[達磨正傳]'이라고 하다가 입적하기 한해 전의 겨울에 출판된
<절요(節要)>의 첫머리에서 '하택은 지해종사라, 조계의 적자가 아
니다[荷澤은是知解宗師니非曹溪嫡子라]'고 하여 종전의 주장과는 달리
돈오점수는 지해(知解)이며 조계의 정통이 아니요 교가의 행상[敎家
行相]이라고 하였다. 이는 사상의 큰 변환이며 진전(進展)이라고 볼
수 있다.
원교의 극치(圓敎極致]는 화엄연기(華嚴緣起)로서, <간화결의론>
에서 보조는 원돈신해(圓頓信解)인 여실언교(如實言敎)는 사구(死句)
라고 단정하고 무애연기(無碍緣起)를 불법 지해의 병[知解之病]이라
고 지적하여 평생 받들던 화엄사상을 원돈사구(圓頓死句)이며 지해
지병(知解之病)이라는 대담한 발언을 하였으니, 그의 사상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돈오점수와 원돈신해는 같은 내용이지
만 서산(西山)은, 선의 뜻을 잘못 알고 돈, 점의 문을 정맥으로 삼거
나 원돈의 교를 종승(宗乘)으로 삼는 것은 큰 법을 비방하는 것이라
고 확실히 말함으로써, 돈오점수와 원돈신해가 선의 정통이 아님을
잘 밝혀 주었다. 그러나 요즘의 선계(禪界)에는 아직도 돈오점수와
원돈신해를 선(禪)으로 오해하는 이가 많으니, 참으로 통탄하고도 남
을 일이다.
*교외별전은 팔만장경과는 달리 가섭, 아난으로 이심전심(以心傳
心)하여 내려온 것이니, 선의 특색이다. 진귀조사설(眞歸祖師設)은
한국에만 있는 전설로서, 서산이 이를 인용하였으나 <선교결>의 본
지(本旨)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교외별전이란 배워서 알며 생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마음 길이 다하여 끊긴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며, 스스로 알아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세존이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
시니 가섭이 얼굴 가득히 미소한 뒤로부터, 나아가서는 후세에 전한,
이른바 달마의 '툭 트이어 성(聖)이랄 것도 없다'한 것과 육조대사의
'선, 악을 생각하지 말라'한 것과, 회양의 '수레가 멈추니 소를 채찍
질한다'고 한 것과 행사의 '여능의 쌀값'과 마조의 '서쪽 강물을 다
마심'과 석두의 '불법을 모른다'함과 운문의 '호떡'과 조주의 '차 마
심'과 투자의 '기름 팜'과 현사의 '흰 종이'와 설봉의 '공굴림'과 화산
의 '북 두드림'과 신산의 '바라 두드림'과 도오의 '춤을 춤'에 이르기
까지, 이들은 모두 옛 부처와 옛 조사들이 같이 교외별전의 곡조를
노래한 것이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머뭇거릴 수 있겠는
가? 이는 모기가 무쇠 소를 물어뜯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이제 말세에 이르러 낮은 근기는 많으나 이들이 교외별전의 근기
가 아니므로 다만 원돈문의 이치의 길, 뜻의 길, 마음의 길, 말의 길
로써 보고 듣고 믿고 아는 것[見聞信解]을 귀하게 여길 뿐으로 이치
와 뜻과 마음과 말의 길이 끊어져 자미(滋味)가 없고 만지지 못하는
곳에서 칠통을 두드려 부수는 경절문(徑截門)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제 그대가 팔방의 납자 무리
들을 접대할 때 칼을 쓰되 긴밀히 하여(사량복탁으로) 억지로 이치
에 닿지 않는 말을 하지 말 것이요, 바로 본분인 경절문의 활구로써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쳐 스스로 얻게 하여야만 할 것이니 그것이
바야흐로 종사의 사람을 위하는 됨됨이니라.
만일에 배우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함을 보고 문득 뻘밭으로 이끌
어 교리를 말하면 사람의 눈을 멀게 함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만일에
종사가 이 법을 어기면, 비록 설법하매 하늘에서 꽃비가 어지러이
쏟아져 내릴지라도 이는 모두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내닫는 것이
될 뿐이다.
吾所謂敎外別傳者 非學而知思而得者也 須窮心路絶然後 始可
知也 須經自肯點頭然後 始可得也 始不聞乎 自釋尊 拈花示衆
迦葉 破顔微笑 乃至出於口而傳之於後一 達磨廓然無聖 六祖
善惡不思 讓師車滯鞭牛 思師廬陵米價 馬祖吸盡西江 石頭不
會佛法 至於雲門胡餠 趙州喫茶 投子沽油 玄沙白紙 雪峰 毬
禾山打鼓 神山敲羅 道吾作舞 斯等 皆先佛先祖 同唱敎會別傳
之曲也 思量得� 擬議得� 可謂蚊子之上鐵牛也 今當末世 多
(301)是劣機 非別傳之機也 故 只貴圓頓門 以理路義路 心路
語路 生見聞信解者也 不貴徑截門 沒理路沒義路 沒心路沒語
路 沒滋味無摸索底上 打破漆桶者也 然則如之何而可也 今師
對八方衲子之輩 下刃要緊 不得穿鑿 直以分分徑截門活句 敎
伊自吾自得 方是宗師 爲人體裁也 若見學人 不薦 便與拖泥說
敎 人眼不少 若宗師違此法 則雖說法 天花亂墜 總是癡狂外
邊走也(302)
*설교(說敎)의 교(敎)는 <선가귀감>에서 '교라 함은 돈오점수이다
[敎也者는頓悟漸修라]'고 한 그것이다. 근기가 낮다고 하여 사구(死句)
인 원돈신해, 돈오점수로써 사람을 가르치면 배우는 사람의 눈을 다
멀게 하며, 아무리 설법을 잘 하여도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내닫
는다[痴狂外邊走]'고 하였으니, 무서운 경책이다.
서산도 <선가귀감>을 지은 시절 -44세 때- 에는, 돈오점수의 교
의(敎義)를 먼저 배워 익힌 뒤에 교의 뜻을 놓아 버리고[放下敎義]
참선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묘향산 금선대(金仙臺)
시절에 이르러서는 공부가 익어가면서 사상도 바뀌어, 원돈, 점수는
사구이며 지해의 병[知解之病]이니 '사람의 눈을 멀게 함이 적지 않
다[ 人眼不少]'고 하여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고, 만일에 그를 따르
지 않으면 '어리석고 미쳐서 밖으로 내닫는다'고 심히 나무랬으며,
또 한편으로 그의 <선교석(禪敎釋)> 끝부분에서 '교를 중히 여기고
마음[선]을 가벼이 여기면 비록 많은 겁을 거쳐 닦더라도 모두 천마,
외도가 된다[重敎輕心[禪]하면雖歷多劫하여도盡作天魔外道라]'고까지 극단
적으로 말하였다.
보조는 서산과는 달리 원돈신해는 사구이며 불법 지해의 병이라
고 배척하여 놓고도, <간화결의론> 끝부분에서는 '증지가 현전(現
前)한 사람은 오늘날 보기도 드물고 듣기도 드물기 때문에, 다만 화
두참의문[사구]에 의지하여 바른 지견을 밝히는 것이 귀할 따름이다
[證智現前者는 今時에 罕見罕聞故로 今時에 但貴依話頭參意門[死句]하야
發明正知見耳라]'고 하였으니, 보조는 이만큼 선종의 안목에 혼란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무리 낮고 열등한 근기라 하여도 활구(活句)만으로 지도하여야
하거늘, 자기가 지적한 사구인 지해의 병을 거듭 권장하였으니, 결국
<간화결의론>도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다. 끝부분에서 '활구를 잘 참
구하라[參詳活句]'고 말하였지만 활구를 잘 참구하는 것이 그의 진의
일진대 '참의사구(參意死句)'를 어째서 거론했는지 모르겠다. 만일에
선종의 바른 법안을 가진 스승[正眼宗師]이라면 오직 활구로써 나아
갈 뿐 '참의사구'는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 다행히도 서산은 보조와
는 달리 경절활구(徑截活句)로써 일관하였으니 후세의 명훈(明訓)이
되었다.
만일에 배우는 사람이 이 법을 믿으면 비록 금생에 철저한 깨침
을 얻지 못하여도 목숨을 마칠 때에 악한 업에 끌리지 않고 바로 깨
달음의 바른 길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옛날 마조가 한 번 소리치자
백장이 귀먹었고 황벽이 혀를 내둘렀으니, 이는 임제종의 연원이다.
그대는 반드시 정맥을 가려서 종안이 분명할 것이므로 이렇게 누누
히 말하는 것이니, 뒷날 이 노승의 말을 저버리지 말라. 만일에 노승
의 말을 저버리면 반드시 부처님과 조사의 깊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
이 될 것이니, 자세히 살피고 자세히 살펴야 한다.
若學人信此法則 雖今生 未得鐵悟 臨命終時 不被惡(307)業所
牽 直入菩提正路也 昔馬祖一喝也 百丈 耳聾 黃檗 吐舌 此
臨濟宗之淵源也 師必擇正脈 宗眼分明故 如許縷縷 後日 莫辜
負老僧也 若辜負老僧 則必辜負佛祖深恩也 詳悉詳悉(308)
*이 <선교결>은 서산 만년의 명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위의 글
과 같이 선(禪), 교(敎)가 엄연히 구별되어 있으므로, 선교일치(禪敎
一致) 운운하면서 혼동하지 말 것이며, 말세의 낮은 근기라고 하여
원돈사구, 지해의 병으로 그릇 들어가게 하지 말고 오직 종문정전
(宗門正傳 선종의 법을 바로 전함)의 활구를 내세워야 한다.
선문의 가장 큰 병은 원돈지해에서 오는 점수사상이니, 오직 육조
의 '유전돈법(唯傳頓法 오직 돈법만을 전함)'의 유법(遺法)을 지켜서
참구하는 화두[所參話頭]에 마음과 힘을 다할 것이며, 공부하는 가운
데 나타나는 경계와 지해(知解)에 병들지 말고 오매일여(寤寐一如
자나 깨나 한결같음)와 내외명철(內外明徹 안팎이 사무쳐 밝음)을
참으로 깨달음으로서 불성을 밝게 보아 본분납승(本分衲僧)으로서
불조(佛祖 부처님과 조사)의 정법을 계승하기 바란다.
제2권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
머리말
이 논을 지은이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스님의 제자인 대주 혜해(大
株慧海)스님입니다.
스님의 전기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다만 [조당집(祖堂集)]권
14,[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등에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이를
종합해 보면 마조스님을 6년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만이 스님의 생존
연대를 추정할수 있는 유일한 단서 입니다.
혜해스님은 건주(福建省) 사람으로 성은 주[朱]씨이며 월주(浙江省)의
대운사 도지(道智)스님에게 출가 득도 하였습니다.
그후 스님은 강서(江西)에 있는 마조스님을 찾아가 뵈오니, 마조스님
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와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으로 돌아다니
면서 무엇을 구하려 하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떤 불법(佛
法)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자 혜해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혜해 자신의 보배창고 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 너의 보배창고이다. 일체가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사용[使用]이 자제한데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이 말 끝에 혜해스님은 크게 깨쳐서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았는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뛸듯이 기뻐서 절을 올려 감사를 드리고 6년 동안 마조스님을
시봉하였습니다.
그 후 도지스님이 연로 하시므로 대운사로 다시 돌아와서 도지스님을
봉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취와 활동을 감춘채 겉으로는 어리석게 살면
서 [돈오입도요문론 (頓悟入道要門論)] 한 권을 저술 하였습니다. 이책
을 조카 상좌인 현안(玄晏)스님이 훔쳐서 마조스님에게 보이니 스님이
이것을 보시고 대중들에게
"월주(越州)에 큰 구슬이 있으니 둥글고 밝은 광명이 비추어 자유자
재로와 걸림이 없구나"
하고 감탄하시었습니다. 대중가운데 혜해스님이 주씨임을 알고 있던
자가 있어서 큰 구슬(大珠)은 바로 혜해스님을 크게 칭찬하는 말임을 알
아차리고,
"옛날 같이 살았을때는 그렇게 훌륭한 스님인줄 몰랐는데 이제보니
큰 도인임에 틀림 없구나."
하고 다시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도반을 이루어 앞을 다투어 월주의 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공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혜해스님을 대주(大珠)스
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마조스님 문하에서 대주스님의 위치를 본다면 마조스님 비문에서나
[경덕전등록],[조당집]에서나 모두 스님을 마조 스님 수제자(首第子)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덕전등록]에 1700여명의 큰 스님 법문이 실려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주 스님의 법문이 가장 많이 실려있고 제 28권에
도 다시 스님의 긴 법어가 따로 실려 있습니다.
마조스님의 정맥은 백장(百丈)스님에게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선가
의 정설로 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백장(百丈)스님, 남전(南泉)스님, 법
상(法常)스님들보다 대주스님이 더 유명하였으며 천하에 이름을 더 날렸
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돈오입도요문론]은 당대에 명성을 떨친
대주 스님의 저술이고 또 선가의 대조사이신 마조스님이 극찬한 책이므
로 선종(禪宗)의 정통사상을 아는데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자료라
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육조단경(六祖壇
經)] 이라든가, [전심법요(傳心法要)]라든가, [백장광록(百丈廣錄)]이라
든가 하는 선종의 어록들이 많이 있지만 이러한 어록들은 당시 사람들
이나 후세 사람들이 그 스님이 입적 하신뒤에 그 법문을 기록하거나 수
집한 것이지 본인들이 직접 편찬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돈오입도요
문론]은 대주스님이 직접 저술하였으므로 거기에 가필이나 착오가 없다
고 보며 다른 어떠한 어록보다도 완전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마조스님이 인가하신 논이니 만큼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정확하게 기술한 것으로서, 선종 초기의 근본사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증도가(證道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오(頓悟)란 구경각(究竟覺)을 말합니다. 즉 제8 아뢰야 근본 무명이
완전히 끊어져서 중도(中道)를 정등각(正等覺)하여 진여본성(眞如本性)
을 깨친 증오(證悟)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를 정등각한 구경각을 돈오
라고 하는 만큼, 입도(入道)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성불과 같은 뜻으로
서 증도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돈오입도요문론]은 영가
스님의 [증도가]와 그 사상과 내용이 같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돈오입도요문론 차례
머리말 …………………………………………………………………………161
1. 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 167
2. 돈오(頓悟)………………………………………………………………… 167
3. 선정(禪定)………………………………………………………………… 169
4. 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 170
5. 자성견(自性見)…………………………………………………………… 171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 172
7. 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 173
8. 무소견(無所見) ………………………………………………………… 174
9. 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76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 180
11.삼학(三學)을 힘쓰다.…………………………………………………… 183
12.무생심(無生心) ………………………………………………………… 184
13.상주(常住)………………………………………………………………… 187
14.오종법신(五種法身)……………………………………………………… 187
15.등각(等覺)과 묘각(妙覺) ……………………………………………… 188
16.설법(說法)………………………………………………………………… 189
17.금강경(金剛經)의 경전(輕賤) ………………………………………… 190
18.여래(如來)의 오안(五眼) ……………………………………………… 191
19.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 191
20.정혜(定慧)를 함께 씀…………………………………………………… 192
21.경상(鏡像)과 정혜(定慧) ……………………………………………… 192
22.언어도단심행처멸(言語道斷心行處滅)………………………………… 194
23.여여(如如)………………………………………………………………… 195
24.즉색즉공(卽色卽空)……………………………………………………… 196
25.진(盡)과 무진(無盡)………………………………………………………196
26.불생불멸(不生不滅)……………………………………………………… 198
27.불계(佛戒)는 청정심(淸淨心) ………………………………………… 198
28.불(佛)과 법(法)의 선후(先後) ………………………………………… 199
29.설통(說通)과 종통(宗通) ……………………………………………… 200
30.도(度)와 부도(不度) …………………………………………………… 201
31.부진유위(不盡有爲)며 부주무위(不住無爲) ………………………… 201
32.지옥유무(地獄有無)……………………………………………………… 202
33.중생(衆生)과 불성(佛性) ……………………………………………… 203
34.삼신사지(三身四智)……………………………………………………… 204
35.불진신(佛眞身)…………………………………………………………… 206
36.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 207
37.무위법(無爲法)…………………………………………………………… 207
38.중도(中道)………………………………………………………………… 208
39.오음(五陰)………………………………………………………………… 209
40.이십오유(二十五有) …………………………………………………… 210
41.무념(無念)과 돈오(頓悟) ……………………………………………… 211
42.중생자도(衆生自度)……………………………………………………… 215
43.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 216
44.일체처(一切處)에 무심(無心) ………………………………………… 217
45.필경정(畢竟淨)…………………………………………………………… 219
46.필경증(畢竟證)…………………………………………………………… 220
47.진해탈(眞解脫)…………………………………………………………… 221
48.필경득(畢竟得)…………………………………………………………… 221
49.필경공(畢竟空)…………………………………………………………… 222
50.진여정(眞如定)…………………………………………………………… 222
51.중도(中道)는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 …………………………… 223
52.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이 해탈(解脫) ……………………………… 225
1.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 숙여 예배를 올
립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이 논을 지었으나 부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을까 두려우니 부디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만약
부처님의 이치를 알았거든 일체 유정의 중생에게 모두 회향
하여 내세(來世)에 다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다.
稽首和南十方諸佛 諸大菩薩衆 弟子今作此論 恐不會聖心 願
賜懺悔 若會聖理 盡將廻施一切有情 願於來世 盡得成佛
2.돈오(頓悟)
"어떤 법을 닦아야 곧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돈오의 한 문[一門]만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
라."
"어떤 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까?"
"돈(頓)이란 단박에 망념(妄念)을 없앰이요, 오(悟)란 얻은
바 없음[無所得]을 깨치는 것이니라."
"무엇부터 닦아야 합니까?"
"근본(根本)부터 닦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하는것이 근본부터 닦는 것입니까?"
"마음이 근본이니라."
"마음이 근본임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능가경]에 이르기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나고 마음
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고, [유마경]에 이
르기를 '정토(淨土)를 얻고저 하면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 불국토가 깨끗해진다'
하였고, [유교경]에 이르기를 '마음을 한곳으로 통일하여 제
어하면 성취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고 하였고, 어떤 경에서
는 '성인은 마음을 구하나 부처를 구하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면서 마음을 구하지 아니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을 다스리나 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은 다스리나 마음을 다스리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불명경]에 이르기를 '죄는 마음에서 났다가 다시 마음을 좇
아서 없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악과 일체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알지니, 그런 까닭에
마음이 근본이니라. 만약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모
름지기 근본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
고 쓸데없이 노력을 허비하여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옳지
않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비
록 몇 겁을 지난다 해도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요, 안으로
마음을 관조하여 깨치면 한 생각 사이에 보리를 증득한다'고
하였느니라."
問 欲修何法 卽得解脫
答 唯有頓悟一門 卽得解脫
云何爲頓悟
答 頓者 頓除妄念 悟者 悟無所得
問 從何而修
答 從根本修
云何從根本修
答 心爲根本
云何知心爲根本
答 楞伽經云 心生卽種種法生 心滅卽種種法滅 維摩經云 欲得
淨土 當淨其心 隨其心淨 卽佛土淨 遺敎經云 但制心一處 無
事不辨 經云 聖人 求心不求佛 愚人 求佛不求心 智人 調心不
調身 愚人 調身不調心 佛名經云 罪從心生 還從心滅 故知善
惡一切 皆由自心 所以 心爲根本也 若求解脫者 先須識根本
若不達此理 虛費功勞 於外相 求 無有是處 禪門經云 於外相
求 雖經劫數 終不能成 於內覺觀 如一念頃 卽證菩提
3.선정(禪定)
"근본을 닦으려면 무슨 법으로써 닦아야 합니까?"
"오직 좌선하여 선정을 하면 얻을 수 있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성스러운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할진댄 곧 선정(禪定)이 요긴한 것이니, 만약 선정이 없으
면 망상이 시끄럽게 일어나서 그 선근(禪根)을 무너뜨린다'
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을 선(禪)이라 하며 어떤 것을 정(定)이라 합니
까?"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선(禪)이요, 앉아서 본성
(本性)을 보는 것이 정(定)이니라. 본성이란 너의 무생심(無生
心)이요, 정이란 경계를 대(對)함에 무심하여 팔풍(八風)에 움
직이지 아니함이니라. 팔풍이란, 이로움과 손실(利.衰), 헐뜯음
과 높이 기림(毁.譽), 칭찬함과 비웃음(稱.譏), 괴로움과 즐거
움(苦.樂)을 말하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정(定)을 얻은 사람
은 비록 범부(凡夫)라고 하더라도 부처님 지위(佛位)에 들어
가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계경(菩薩戒經)]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
계(佛戒)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 고 하였
으니 이와 같이 얻은 것을 '해탈' 이라고 하며 또 '피안에 이
르렀다'고 하느니라. 이는 육도(六度)를 뛰어넘고 삼계(三界)
를 벗어난 대력보살(大力菩薩)이며 무량력존(無量力尊)이니
대장부(大丈夫)인 것이니라."
問 夫修根本 以何法修
答 惟坐禪禪定 卽得 禪門經云 求佛聖智 卽要禪定 若無禪定
念想 喧動 壞其善根
問 云何爲禪 云何爲定
答 妄念不生 爲禪 坐見本性 爲定 本性者 是汝無生心 定者
對境無心 八風不能動 八風者 利衰毁譽稱譏苦樂 是名八風 若
得如是定者 雖是凡夫 卽入佛位 何以故 菩薩戒經云 衆生 受
佛戒 卽入諸佛位 得如是者 卽名解脫 亦名達彼岸 超六度越三
界 大力菩薩 無量力尊 是大丈夫
4.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야 곧 머무는 것 입니까?
"머무는 곳이 없는데 머무는 것이 곧 머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머무는 곳이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함이 곧 머무는 곳 없는데
머무는 것 이니라."
"어떤 것이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선악(善惡).유무(有無).내
외(內外).중간(中間)에 머물지 아니하며,공(空)에도 머물지 아
니하며, 공(空)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禪定)에도 머
물지 아니하며, 선정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함이 일체처에 머
물지 아니함이니, 다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곧 머
무는 곳이니라. 이와 같이 얻은 것을 머물음이 없는 마음(無
住心) 이라 하는 것이니 머물음이 없는 마음이란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그 마음은 어떤 물건과 같습니까?"
"그 마음은 푸르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으며, 붉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
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담연(湛然)하고 항상 고요한 이것
이 본래 마음의 형상이며 또 본래 몸이니 본래의 몸이란 곧
부처님의 몸이니라."
問 心住何處卽住
答 住無住處卽住
問 云何是無住處
答 不住一切處 卽是住無住處
問 云何是不住一切處
答 不住一切處者 不住善惡有無內外中間 不住空 亦不住不空
不住定亦不住不定 卽是不住一切處 只箇不住一切處卽是住處
也 得如是者 卽名無住心也 無住心者 是佛心
問 其心似何物
答 其心 不靑不黃不赤不白 不長不短不法不來 非垢非淨 不生
不滅 湛然常寂 此是本心形相也 亦是本身 本身者 卽佛身也
5.자성견(自性見)
"몸과 마음은 무엇으로써 보는 것입니까, 눈으로 봅니까,
귀로 봅니까,
몸과 마음 등으로 봅니까?"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이미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을진댄 다시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성(自性)으로 보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담연히 비고 고요하므로, 비고 고요한 본체
(體) 가운데서 이 보는 것[見]이 능히 나느니라."
"다만 청정의 본체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이 보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 입니까?"
"비유하면 밝은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일체 모
양을 볼수 있는 것과 같으니, 왜냐하면 밝은 거울이 무심이기
때문이니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마음에 물든 바 없어 망심이
나지 아니하고 주관과 객관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자
연히 청정한 것이니, 청정한 까닭에 능히 이 보는 것이 생겨
나느니라. [법구경]에 이르기를 '필경의 공 가운데서 불꽃 일
듯 건립함이 선지식이다' 고 하였느니라.
問 身心 以何爲見 是眼見 耳見 鼻見 及 身心等見
答 見無如許種見
云 旣無如許種見 復何見
答 是自性見 何以故 爲自性 本來淸淨 湛然空寂 卽於空寂體
中 能生此見
問 只如淸淨體 尙不可得 此見 從何而有
答 喩如明鑑中 雖無像 能見一切像 何以故 爲明鑑無心故 學
人 若心無所染 妄心 不生 我所心 滅 自然淸淨 以淸淨故 能
生此見 法句經云 於 畢竟空中 熾然建立 是善知識也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열반경] 금강신품(金剛身品)에 이르기를 '볼 수 없되 분
명하고 밝게 볼 수 있어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하니 무슨 뜻 입니까?"
" '볼수 없다'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모양이 없어서 얻을
수 없는 까닭에 볼 수 없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얻을 수 없
는 것을 보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공적하고 담연하여 가고
옴이 없으나 세간의 흐름을 여의지 않으니 세간의 흐름이 능
히 흐르지도 아니하여 탄연히 자재[自在]함이 곧 '분명하고
밝게 보는 것' 이니라.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자성의 모양이 없어서 본래 분별
(分別)이 없음을 이름하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알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
사묘용을 갖추어서 능히 일체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알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반야(般若)의 게송]에 이르기를 '반야(般若)는 아는 것이
없으나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반야는 보지 못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고 하였느니라."
問 涅槃經 金剛身品 不可見 了了見 無有知者 無不知者 云何
答 不可見者 爲自性體 無形 不可得故 是名不可見也 然 見不
可得者 體寂湛然 無有去來 不離世流 世流不能流 坦然自在卽
是了了見也 無有知者 爲自性 無形 本無分別 是名無有知者
無不知者 於無分別體中 具有恒沙之用 能分別一切 卽無事不
知 是名無不知者 般若偈云 般若 無知 無事不知 般若 無見
無事不見
7.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경에서 이르기를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해탈이다'고 하시니 어떤 것이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않
는 것 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였을 때를 곧 '있음'이라 하고, 그 가
운데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음이 곧 '있
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얻고서, 나지도 않
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곧 '없음'을 보
지 못함이니, 그런 까닭에 `있음과 없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
는 것 이니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견(知見)에 앎(知)을 세우면 무명
(無明)의 근본이 되고 지견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
반이며 또한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問 經云 不見有無卽眞解脫 何者是不見有無
答 證得淨心時 卽名有 於中 不生得淨心想 卽名不見有也 得
想無生無住 不得作無生無住想 卽是不見無也 故 云不見有無
也 楞嚴經云 知見 立知 卽無明本 知見 無見 斯卽涅槃 亦名
解脫
8.무소견(無所見)
"어떤 것이 보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만약 남자나 여자 및 일체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사
랑함과 미워함[愛憎]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보지 못함과 더불
어 같은 것이 곧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는 곧 본다고 하거니와 색상을 대하
지 않을 때도 또한 본다고 할 수 있읍니까?"
"보느니라."
"물건을 대할 때는 설령 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
을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서 보는 것이 있읍니까?"
"지금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대하거나 물건을 대
하지 않거나를 논(論)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고 하는 그
성품은 영원한 까닭에 물건이 있을 때도 보고 물건이 없을
때도 또한 보는 것 이니라. 그런 까닭에 물건에는 본래 스스
로 가고 옴(去來)이 있으나 본다는 성품에는 가고 옴이 없음
을 알지니, 다른 모든 감각 기관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바로 물건을 볼 때에 보는 가운데 물건이 있읍니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서지 못 하느니라."
"바로 물건이 없음을 볼 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없읍니
까?"
"보는 가운데는 물건 없는 것도 서지 못하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는 곧 들을 수 있거니와 소리가 없을 때에
도 들을 수 있읍니까?"
"역시 듣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엔 설령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소리가 없
을 때는 어떻게 듣습니까?"
"지금 '듣는다'고 하는 것은 소리가 있거나 없거나를 논하
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는다'는 자성은 영원한 까닭에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소리가 없을 때도 또한 듣느니라."
"이렇게 듣는 자는 누구 입니까?"
"이는 자기의 성품이 듣는 것이며 또한 아는 이가 듣는다
고 하느니라."
問 云何是無所見
答 若見男子女人及一切色像 於中 不起愛憎 與不見 等 卽是
無所見也
問 對一切色像時 卽名爲見 不對色像時 亦名見否
答 見
問 對物時 從有見 不對物時 云何有見
答 今言見者 不論對物與不對物 何以故 爲見性 常故 有物之
時 卽見 無物之時 亦見也 故知物 自有去來 見性 無來去也
諸根 亦爾
問 正見物時 見中 有物否
答 見中 不立物
問 正見無物時 見中 有無物否
答 見中 不立無物
問 有聲時卽有聞 無聲時 還得聞否
答 亦聞
問 有聲時 從有聞 無聲時 云何得聞
答 今言聞者 不論有聲無聲 何以故 爲聞性 常故 有聲時卽聞
無聲時亦聞
問 如是聞者是誰
答 是自性聞 亦名知者聞
9.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 종지와 체용
"이 돈오문은 무엇으로써 종취(宗趣)를 삼고 무엇으로써 참
뜻(旨)을 삼고 무엇으로써 본체로 삼으며 무엇으로써 작용
(用)으로 삼는 것 입니까?"
"무념을 종취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참 뜻으로
삼으며 청정을 본체로 삼고 지혜로써 작용을 삼느니라."
"이미 무념으로 종취를 삼는다고 말씀할진댄 무념이란 어
떤 생각이 없는 것 입니까?"
"무념이란 삿된 생각이 없음이요 바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삿된 생각이며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있음(有)을 생각하고 없음(無)을 생각하는 것이 삿된 생각
이요 있음과 없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괴
로움[苦]과 즐거움[樂], 나는 것[生]과 없어짐[滅], 취함[取]과
버림[捨], 원망(怨)과 친함(親), 미워함(憎)과 사랑함(愛)을 생
각하는 것이 모두 삿된 생각이요, 괴로움과 즐거움등을 생각
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바른 생각이란 오직 보리(菩提)만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보리는 얻을 수 있습니까?"
"보리는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얻을 수 없을진댄 어떻게 오직 보리만 생각 합니
까?"
"보리는 다만 거짓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라 실지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과거에도 미래에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까닭에 곧 생각 있음이 없느니라.
오직 이 무념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 것이니 보리는 생각
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생각
하는 바가 없음이니, 다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무념이란
모두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운 것인지라 모두
가 하나의 본체로서 같음이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는 것이니
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함을 알면 곧 이것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 때에 자연해탈이니라."
"어떻게 하여야 부처님의 행을 하는 것입니까?"
"일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 행동이라 하며 또 바
른 행동이라 하며 또 성스러운 행동이라 함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있음과 없음 미워함과 사랑함등을 행하지 않는 것
이니라.
[대율]5권 보살품에서 이르기를 '일체 성인들은 중생의 행
동을 행하지 않고 중생들은 이와같은 성인의 행동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까?"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곧 바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
라."
"어떤 것이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이라 합니까?"
"일체 색을 볼 때에 물들거나 집착함을 일으키지 아니함이
니,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한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
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므로 곧 보는 바 없음을 본다고 하
는 것이니라.
만약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얻었을 때 곧 부처님의 눈
이라 하나니 다시 별다른 눈이란 없느니라.
만약 일체 색을 볼 때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
게 되면 보는 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니 보는 바가 있음이 곧
중생의 눈이니라. 다시 별다른 눈을 가지고 중생의 눈이라 할
것이 없으니, 내지 다른 오근(五根)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問 此頓悟門 以何爲宗 以何爲旨 以何爲體 以何爲用
答 無念 爲宗 妄心不起 爲旨 以淸淨爲體 以智爲用
問 旣言無念爲宗 未審 無念者 無何念
答 無念者 無邪念 非無正念
問 云何爲邪念 云何爲正念
答 念有念無 卽名邪念 不念有無 卽名正念 念善念惡 名爲
邪念 不念善惡 名爲正念 乃至苦樂生滅取捨怨親憎愛 竝名
邪念 不念苦樂等 卽名正念
問 云何是正念
答 正念者 唯念菩提
問 菩提 可得否
答 菩提 不可得
問 旣不可得 云何唯念菩提
答 只如菩提 假立名字 實不可得 亦無前後得者 爲不可得
故 卽無有念 只箇無念 是名眞念 菩提 無所念 無所念者
卽一切處無心 是無所念 只如上說 如許種無念者 皆是隨事
方便 假立名字 皆同一體 無二無別 但知一切處 無心 卽是
無念也 得無念時 自然解脫
問 云何行佛行
答 不行一切行 卽名佛行 亦名正行 亦名聖行 如前所說不
行有無憎愛等 是也 大律卷五 菩薩品云一切聖人 不行於衆
生行 衆生 不行如是聖行
問 云何是正見
答 見無所見 卽名正見
問 云何名見無所見
答 見一切色時 不起染著 不染著者 不起愛憎心 卽名見無
所見也 若得見無所見時 卽名佛眼 更無別眼 若見一切色時
起愛憎者 卽名有所見 有所見者 卽是衆生眼 更無別眼作衆
生眼 乃至 諸根 亦復如是
2. 이성공(二性空)
"이미 지혜로써 작용을 삼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空)한 줄 아는 것이 곧 해탈이며 두가
지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 알면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
을 지혜라 하며 또 삿됨과 바름을 요달하였다고 하며 또 본
체와 작용을 안다고 하느니라.
두 가지 성품이 공했다고 하는 것은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사랑함과 미워함이 나지 아니한 것을 이름하여 두 가지 성품
이 공하다고 하느니라."
問 旣言以智爲用者 云何爲智
答 知二性空 卽是解脫 知二性不空 不得解脫 是名爲智 亦
名了邪正 亦名識體用 二性空 卽是體 知二性空 卽是解脫
更不生疑 卽名爲用 言二性空者 不生有無 善惡愛憎 名二
性空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蘿蜜)로 부터
"이 돈오의 문은 어디로부터 들어갑니까?"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행(行)이라고 말씀하셨는
데 무슨 까닭으로 단바라밀 하나만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구
족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미혹한 사람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로 말미암아
나는 것인줄 알지 못한 것이니 오직 단바라밀만을 수행하면
곧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 것이니라."
"어떤 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고 합니까?"
"단(檀)이란 보시(布施)를 말하느니라."
"어떤 물건을 보시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가지 성품입니까?"
"선과 악의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성품, 사랑함과 미워함의 성품,공과 공 아님의 성품,정과 정
아님의 성품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의 성품을 보시해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해 버리면 두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느니라.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을 때에 또한 두 가지 성품
이 공하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하며 또 보시한다는 생각을 짓
지 아니함이 곧 진실로 보시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 가
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고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 함은 곧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법의 성품
이 공하다 함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니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는 한 모양(一相)도 얻
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느니라.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다 함은 곧 실상이니 실상이란 여래
의 묘한 색신의 모양이니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를
말하며 능히 구족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라건대 하나
가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는 까닭을 말씀해 주십시요."
[사익경]에 이르기를 '망명존이 범천에게 말하되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리면 단바라밀이라고 하나
니 곧 보시요,
모든 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지계요,
모든 법에 대하여 손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인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모양을 떠남이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정진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라 하나
니 곧 선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니니
곧 지혜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 법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다시 여섯가지 법에 이름을 붙이면 첫째는 버림과 둘
째는 일어나지 아니함과 세째는 손상하지 않음과 네째는 모
양을 떠남과 다섯째는 머물지 않음과 여섯째는 희론이 없음
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여섯가지 법은 일에 따라 방
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움이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다만 하나를 버릴줄 알면 일체를 버림이요, 하나가 일어나
지 않으면 곧 일체가 일어나지 않거늘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모두 말 하느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여
섯가지 법의 숫자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는 것
이니라.
너희들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나니, 다만 보시의 법
만을 닦으면 만법이 두루 원만해지거늘 하물며 다섯가지 법
이 어찌 구족하지 않겠는가."
問 此門 從何而入
答 從檀波羅密入
問 佛說六波羅密 是菩薩行 何故 獨說檀波羅密 云何具足
而得入也
答 迷人 不解五度皆因檀度生 但修檀度 卽六度悉皆具足
問 何因緣故 名爲檀度
答 檀者 名爲布施
問 布施何物
答 布施却二性
問 云何是二性
答 布施却善惡性 布施却有無性 愛憎性 空不空性 定不定
性 淨不淨性 一切 悉皆施却 卽得二性空 若得二性空時 亦
不得作二性空想 亦不得作念有施想 卽是眞行檀波羅密 名
萬緣 俱絶 萬緣 俱絶者 卽一切法性空 是也 法性空者 卽
一切處無心 是 若得一切處無心時 卽無有一相可得 何以故
爲自性 空故 無一相可得 無一相可得者 卽是實相 實相者
卽是如來妙色身相也 金剛經云 離一切諸相 則名諸佛
問 佛說六波羅密 今云何說一 卽能具足 願說一具六法之因
答 思益經 云 網明尊 謂梵天言 若菩薩 捨一切煩惱 名檀
波羅密 卽是布施 於諸法 無所起 名尸羅波羅密 卽是持戒
於諸法 無所傷 名□提波羅密 卽是忍辱 於諸法離相 名毘
離耶波羅密 卽是精進 於諸法無所住 名禪波羅密 卽是禪定
於諸法無戱論 名般若波羅密 卽是智慧 是名六法 今更名六
法 不異一捨 二無起 三無傷 四離相 五無住 六無戱論 如
是六法 隨事方便 假立名字 至於妙理 無二無別 但知一捨
卽一切捨 無起卽一切無起 迷途不契 悉謂有差 愚者 滯其
法數之中 卽長輪生死 告汝學人 但修檀之法 卽萬法 周圓
況於五法豈不具耶
11.삼학(三學)을 함께 쓰다.
"삼학을 함께 쓴다 하니 어떤 것이 삼학이며 어떤 것이 함
께 쓰는 것입니까?"
"삼학이란 계.정.혜니라."
"어떤 것을 계.정.혜라 합니까?"
"청정하여 물들지 아니함이 계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
을 알아 경계를 대하여 고요함이 정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
니함을 알 때에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함을 알 때에 청정하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여
내지 선.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물들지 아니하
여 자재를 얻음을 혜라고 하느니라. 만약 계.정.혜의 본체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 때에 곧 분별함이 없어서 곧
동일의 본체이니 이것이 삼학을 함께 쓴다고 하는 것이니라."
問 三學等用 何者是三學 云何是等用
答 三學者 戒定慧是也
問 云何是戒定慧
答 淸淨無染 是戒 知心不動 對境寂然 是定 知心不動時
不生不動想 知心淸淨時 不生淸淨想 乃至善惡 皆能分別
於中 無染 得自在者是名爲慧也 若知戒定慧體俱不可得時
卽無分別者 卽同一體 是名三學等用
12.무생심(無生心)
"만약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 때에는 청정함에 집착하는 것
이 아닙니까?"
"청정함에 머뭄을 얻었을 때에 청정함에 머물러 있다는 생
각을 짓지 않는 것이 청정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마음이 공에 머물 때에는 공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공하다는 생각을 짓는다면 곧 공에 집착한 것이니
라."
"만약 마음이 머뭄이 없는 곳에 머물 때에 머뭄이 없는 곳
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다만 공한 생각을 지으면 곧 집착할 곳이 없으니 네가 만
약 머물 바 없는 마음을 분명하고 밝게 알고저 할진댄 바로
좌선할 때에 다만 마음만 알고, 모든 사물을 생각하여 헤아리
지 말며 모든 선악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생각하여 헤아리지 아
니하면 과거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과거의 일이 없다
고 함이요, 미래의 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 원하지도 아
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면 미래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미래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라 일
체의 일에 집착함이 없음을 알뿐이니, 집착함이 없다 함은 사
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집착함이 없음
인지라 현재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곧 현재의 일이 없다
고 하느니라. 삼세를 거두어 모을 수 없음이 또한 삼세가 없
다고 말하느니라.
마음이 만약 일어날 때에 따라가지 아니하면 가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 없어짐이요, 만약 마음이 머물 때에 또한 머뭄
에 따르지 아니하면 머무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머무는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이 머무는 곳 없는 곳에 머문다고 하느
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머뭄이 머뭄에 있을 때에는
다만 사물이 머물 뿐이요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면 머무는
곳 없음도 없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마음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
하면 곧 본래 마음[本心]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성품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느니라.
만약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이란 곧 부처님 마음
[佛心]이며, 또한 해탈심이며, 또한 보리심이며, 또한 무생심
이며, 또한 색의 성품이 공함이라 이름하나니, 경에 이르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했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너희들이 만약 이와 같이 아직 체득하지 못하였을 때는 노
력하고 노력하여 부지런히 공력을 더하여 공부를 성취하면
스스로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안다고 하는 것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아는 것 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되어 참되지 않음이 없으니,
거짓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인 것이며 참됨이란 사랑
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다만 사랑하고 미워하
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
이 공함이란 자연해탈이니라."
問 若心住淨時 不是着淨否
答 得住淨時 不作住淨想 是不着淨
問 心住空時 不是着空否
答 若作空想 卽名着空
問 若心得住無住處時 不是着無住處否
答 但作空想 卽無有着處 汝若欲了了識無所住心時 正坐之
時 但知心 莫思量一切物 一切善惡 都莫思量 過去事 已過
去而莫思量 過去心 自絶 卽名無過去事 未來事未至 莫願
莫求 未來心 自絶 卽名無未來事 現在事 已現在 於一切事
但知無著 無著者 不起憎愛心 卽是無著 現在心 自絶 卽名
無現在事 三世不攝 亦名無三世也 心若起去時 卽莫隨去
去心 自絶 若住時 亦莫隨住 住心 自絶 卽無住心 卽是住
無住處也 若了了自知 住在住時 只物住 亦無住處 亦無無
住處也 若自了了知 心不住一切處 卽名了了見本心也 亦名
了了見性也 只箇不住一切處心者 卽是佛心 亦名解脫心 亦
名菩提心 亦名無生心 亦名色性空 經云證無生法忍是也 汝
若未得如是之時 努力努力 勤加用功 功成自會 所以會者
一切處無心 卽是會 言無心者 無假不眞也 假者 愛憎心 是
也 眞者 無愛憎心 是也 但無愛憎心 卽是二性空 二性空者
自然解脫也
13.상주(常住)
"앉아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다닐 때도 또한 쓸 수 있
는 것입니까?"
"지금 공(功)을 쓴다고 말함은 단지 앉아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짓는 바
움직이는 모든 때 가운데 항상 써서 사이가 끊어짐이 없음이
항상 머문다고 하느니라."
問 只坐爲用 行時 亦得爲用否
答 今言用功者 不獨言坐 乃至 行住坐臥所造運爲 一切時
中 常用無間 卽名常住也
14.오종법신(五種法身)
[방광경(方廣經)]에 이르기를 '다섯가지 법신은 첫째는 실
상 법신이요, 둘째는 공덕법신이요, 셋째는 법성법신이요, 네
째는 응화법신이요, 다섯째는 허공법신이다'고 하였는데, 자기
의 몸에는 어떤 것이 이것입니까?
"마음이 무너지지 아니함을 아는 것이 실상 법신이며, 마음
이 만상을 포함하는 것을 아는 것이 공덕법신이며, 마음이 무
심임을 아는 것이 법성법신이며, 근기따라 응하여 설법함이
응화법신이며, 마음이 형상이 없어 얻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
허공법신이니, 만약 이 뜻을 확실히 아는 이는 곧 증득할 것
이 없음을 아느니라.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음이 곧 불법법신을 증득한 것이
요, 만약 증득함이 있고 얻음이 있음을 증득으로 삼는 이는
곧 삿된견해의 증상만인이며 외도라고 하느니라. 왜 그러냐
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되 그대는
얻은 바가 무엇이며 증한 바가 무엇이기에 말재주가 이와 같
으냐' 하고 물으니, 천녀가 대답하기를 '나는 얻음도 없고 증
함도 없어서 이와 같음을 얻었오. 만약 얻음이 있고 증함이
있으면 불법 가운데에 증상만인이 되는 것이오' 라고 하였느
니라.
問 方廣經云 五種法身 一實相法身 二功德法身 三法性法
身 四應化法身 五虛空法身 於自己身 何者是
答 知心不壞 是實相法身 知心含萬像 是功德法身 知心無
心 是法性法身 隨根應說 是應化法身 知心無形 不可得 是
虛空法身 若了此義者 卽知無證也 無得無證者 卽是證佛法
法身 若有證有得 以爲證者 卽邪見增上慢人也 名爲外道
何以故 維摩經云 舍利佛 問天女曰 汝何所得 何所證 辯乃
得如是 天女答曰 我無得無證 乃得如是 若有得有證 卽於
佛法中 爲增上慢人也
15.등각(等覺)과 묘각(妙覺)
"경에 이르기를 '등각,묘각'이라하니, 무엇이 등각이며 무엇
이 묘각입니까?
"색(色)에 즉하고 공(空)에 즉함이 등각이요, 두 가지 성품
이 공한(二性空) 까닭에 묘각이라 하며,또한 깨달음이 없음과
깨달음이 없음도 없음을 일컬어 묘각이라 하느니라."
"등각과 묘각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두 이름을 세운 것으로서, 본체
는 하나요,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내지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니라."
問 經云 等覺妙覺 云何是等覺 云何是妙覺
答 卽色卽空 名爲等覺 二性空故 名爲妙覺 又云 無覺無無
覺 名爲妙覺
問 等覺與妙覺 爲別 爲不別
答 爲隨事方便 假立二名 本體是一 無二無別 乃至一切法
皆然也
16.설법(說法)
"[금강경]에 이르기를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다'하
니 그 뜻이 무엇 입니까?
"반야의 체는 필경 청정하여 한 물건도 얻을 수 없음이 설
할 법이 없다고 함이요, 반야의 공적한 본체 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을 갖추어서 알지 못할 일이 없음이 법을 설한다고 함이
니, 그러므로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라고 하느니라."
問 金剛云 無法可說 是名說法 其意云何
答 般若體畢竟淸淨 無有一物可得 是名無法可說 卽於般若
空寂體中 具恒沙之用 卽無事不知是名說法 故云無法可說
是名說法
17.금강경의 경천(輕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경을 수지독송하여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전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의 경멸과 천대를 받
음으로 해서 전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여 마침내 아뇩다라삼
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 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선지식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오직 악업만 짓고 청정한 본래 마음이 삼독의 무명에 덮여서
능히 나타나지 못하므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금세의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 것은,
곧 오늘 발심하여 불도를 구함으로 무명이 다 없어지고 삼독
이 나지를 아니해서 곧 본래 마음이 명랑하고 다시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며, 모든 악이 영원이 없어져 버리므로써 금세 사
람의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무명이 모두 없어져
서 어지러운 생각이 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한 것이므로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니, 곧 발심한 때를 금세라
하는 것이요, 격생이 아니니라."
問 若有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
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輕賤故 先世罪業 卽爲消滅 當
得何뇩多羅三 三菩提 其義云何
答 只如有人 未遇大善知識 唯造惡業 淸淨本心 被三毒無
明所覆 不能顯了故 云爲人輕賤也 以今世人輕賤者 卽是今
日 發心求佛道 爲無明 滅盡 三毒 不生 卽本心 明朗 更無
亂念 諸惡 永滅故 以今世人輕賤也 無明 滅盡 亂念 不生
自然解脫故 云當得菩提 卽發心時名爲今世 非隔生也
18. 여래(如來)의 오안(五眼)
"또 여래의 다섯가지 눈이란 어떤 것입니까?"
"색의 청정함을 보는 것이 육안이요, 색의 본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이 천안이요, 모든 색의 경계와 내지 선악에 대해서
모두 미세하게 분별하여 물듦이 없고 그 가운데 자제함이 혜
안이요, 보아도 보는 바가 없음이 법안이요, 보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음도 없는 것이 불안이라고 하느니라."
又云 如來五眼者 何
答 見色淸淨 名爲肉眼 見體淸淨 名爲天眼 於諸色境乃至
善惡 悉能微細分別 無所染著 於中 自在名爲慧眼 見無所
見 名爲法眼 無見無無見 名爲佛眼
19. 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또 대승과 최상승의 뜻은 어떠합니까?"
"대승이란 보살승이요, 최상승이란 불승이니라."
"어떻게 닦아야 이 승을 얻습니까?"
"보살승을 닦음이 대승이니 보살승을 증득하여 다시 관(觀)
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닦을 곳이 없음에 이르러 담연히 항상
고요하여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이 최상승이니 곧
이것이 불승이니라."
又云 大乘最上乘 其義云何
答 大乘者 是菩薩乘 最上乘者 是佛乘
又問 云何修而得此乘
答 修菩薩乘者 卽是大乘 證菩薩乘 更不起觀 至無修處 湛
然常寂 不增不減 名最上乘 卽是佛乘也
20. 정혜(定慧)를 함께 씀
"[열반경]에 이르기를 '선정은 많고 지혜가 적으면 무명을
떠나지 못하며 선정은 적고 지혜가 많으면 삿된 견해를 증장
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하는 까닭에 해탈이다'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일체 선악에 대하여 모든 것을 분별함이 지혜요, 분별하는
곳에 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물드는 바에 따라가지 아니
함이 선정이니,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問 涅槃經云 定多慧少 不離無明 定少慧多 增長邪見 定慧
等故 卽名解脫 其義云何
答 對一切善惡 悉能分別 是慧 於所分別之處 不起愛憎 不
隨所染 是定 卽是定慧等用也
21. 경상(鏡像)과 정혜(定慧)
"말이 없고 설함이 없음이 곧 선정이라 하니, 바로 말하고
설할 때도 선정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말함과 말하지 않음을 논하지
않고 항상 선정인 것이니라. 왜냐하면 선정의 본성을 쓰기 때
문에 말하거나 분별할 때에 곧 말하거나 분별함도 선정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공(空)한 마음으로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을
볼 때도 또한 공이며, 만약 색을 보지 아니하고 말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을 때도 또한 공이며, 내지 보고 듣고 깨닫고 알
때에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곧 일체처에 있어서 모두 공한 것이니, 공이란 곧 집착이 없
음이며 집착이 없음이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와 같이 공 그대로[等空]의 법을 써서 구경에
이르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가 함께 함을 곧 해탈이라고 하느
니라."
"지금 다시 그대들을 위하여 비유로써 나타내 보여 그대들
로 하여금 분명하게 알아서 의심을 끊게 하리라.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모습을 비출 때에 그 밝음이 움직이
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할 때도 또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밝은 거울의 작용에는 밝게 비친다는 정(情)이 없
으므로 비출 때도 움직이지 않고 비추지 아니할 때도 움직
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분별의 정(情)이 없
는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것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없기
때문이니라. 또,
'햇빛이 세상을 비출 때 그 빛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비추지 않을 때도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분별의 정(情)이 없기 때문이니 정이 없음으
로써 빛이 비추므로 움직이지 아니하며 비추지 않을 때도 또
한 움직이지 아니 하느니라. 비춘다 함은 지혜요, 움직이지
아니한다 함은 선정이니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한 법을
써서 삼먁삼보리를 얻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를 함께 씀이 곧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정(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범
부의 정이 없음이요, 성인의 정이 없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범부의 정이며 어떤 것이 성인의 정입니까?"
"만약 두 가지 성품을 일으키면 곧 범부의 정이요, 두가지
성품이 공(空)하기 때문에 곧 성인의 정이니라."
又問 無言無說 卽名爲定 正言說之時 得名定否
答 今言定者 不論說與不說常定 何以故 爲用定性 言說分
別時 卽言說分別 亦定 若以空心 觀色時 卽觀色時 亦空
若不觀色不說不分別時 亦空 乃至見聞覺知 亦復如時 何以
故 爲自性空 卽於一切處悉空 空卽無著 無著 卽是等用 爲
菩薩 常用如是等空之法 得至究竟故 云定慧等者 卽名解脫
也
今更爲汝譬喩顯示 令汝惺惺得解斷疑 譬如明鑑照像之時
其明 動否 否也 不照時 亦動否 不也 何以故 爲明鑑用 無
情明照 所以照時 不動 不照 亦不動 何以故 爲無情之中
無有動者 亦無不動者 又如日光 照世之時 其光 動否 不也
若不照時 動否 不也 何以故 爲光無情故 用無情光照 所以
不動 不照亦不動 照者 是慧 不動者 是定 菩薩 用是定慧
等法 得三菩提故 云定慧等用 卽是解脫也 今言無情者 無
凡情 非無聖情也
問 云何是凡情 云何是聖情
答 若起二性 卽是凡情 二性空故 卽是聖情
22. 언어도단심행처멸(言語道斷心行處滅)
"경에 이르기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
어진다'고 하니 그 뜻이 어떠합니까?"
"말로써 뜻을 나타냄에 뜻을 얻으면 말이 끊어지니 뜻이
곧 공함이요, 공함이 곧 도인지라, 도는 곧 말이 끊어진 까닭
에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고 하느니라.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중도실제의 뜻을 얻
어서 다시 관(觀)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말함이니, 관(觀)을 일
으키지 않으므로 곧 나는 것이 없음(無生)이니라. 나는 것이
없는 까닭에 곧 모든 색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색의 성품이
공한 까닭에 곧 만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짐이요, 만가지 인연
이 함께 끊어짐이 곧 마음가는 곳이 없어진 것이니라."
問 經云 言語道斷心行處滅 其義如何
答 以言顯義 得義言絶 義卽是空 空卽是道 道卽是絶言故
云言語道斷 心行處滅 謂得義實際更不起觀 不起觀故 卽是
無生 以無生故 卽一切色性空 色性空故 卽萬緣 俱絶 萬緣
具絶者 卽是心行處滅
23. 여여(如如)
"여여란 어떤 것입니까?"
"여여(如如)란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이니 마음이 진여인
까닭에 여여라고 하느니라. 과거 모든 부처님들도 이 여여행
을 행해서 성도하셧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시고 미래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또한 성도
하실 것이니, 삼세에 닦아 증한 바의 도가 다름이 없으므로
여여라 함을 알지니라.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들
도 또한 같으며 미륵에 이르러도 또한 같으며 내지 일체 중
생에 이르러도 모두 같다. 왜냐하면 불성이란 끊어지지 아니
하고 있는 성품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였느니라."
問 如如者 云何
答 如如 是不動義 心眞如故名如如也 是知過去諸佛 行此
行 亦得成道 現在佛 行此行 亦得成道 未來佛 行此行 亦
得成道 三世所修證道 無異故 名如如也 維摩經云 諸佛 亦
如也 至於彌勒 亦如也 乃至一切衆生 悉皆如也 何以故 爲
佛性 不斷有性故也
24. 즉색즉공(卽色卽空)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하며 범에 즉하고 성에 즉함이 돈오
입니까?"
"그러니라."
"어떤 것이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함이며 어떤 것이 범부에
즉하고 성인에 즉한 것입니까?"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색이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공이며,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범부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성인이니라. 또한 진공묘유이므로 곧 색이요, 색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곧 공이니, 지금 공이라고 말한 것은 이 색
의 성품이 스스로 공함이요 색이 없어져서 공한 것은 아니니
라. 지금 색이라고 하는 것은 이 공의 성품이 스스로 색이요,
색이 능히 색인 것은 아니니라."
問 卽色卽空 卽凡卽聖 是頓悟否
答 是
問 云何是卽色卽空 云何是卽凡卽聖
答 心有染 卽色 心無染 卽空 心有染 卽凡 心無染 卽聖
又云 眞空妙有故 卽色 色不可得故 卽空 今言空者 是色性
自空 非色滅空 今言色者 是空性自色 非色能色也
25. 진(盡)과 무진(無盡)
"경에 이르기를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이란 무슨 뜻입
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한 까닭에 보고 들음이 나지 않음이 다
함[盡]이니 다함이란 모든 망루(妄漏)가 다함이며, 다함이 없
음은 남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하사의 묘용을 갖추고 있어서
일을 따라 응하여 나타나서 모두 다 구족하여, 본체 가운데에
손감이 없음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인 것이니라."
"다함과 다함 없음이 하나입니까, 다릅니까?"
"본체는 하나이나 말하면 다름이 있느니라."
"본체가 이미 하나일진댄 어째서 다름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라 함은 말의 본체[體]요, 말함은 본체의 작용이니 일
을 따라서 응용하는 까닭에 본체는 같으나 말함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천상의 한 해[日] 아래 여러가지 그릇들을 놓아
두고 물을 채우면 하나하나의 그릇 가운데 모두 해가 있어서,
모든 그릇 가운데의 해가 다 원만하여 하늘 위의 해와 아무
런 차별이 없는 까닭에 본체는 같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릇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곧 차별이 있으므로 다른 것이니라. 그러
므로 본체는 같으나 말하면 곧 다름이 있다고 하느니라.
그릇에 나타난 모든 해가 모두 원만하여 하늘의 본래 해와
또한 손감이 없는 까닭으로 다함이 없다고 하느니라."
問 經云 盡無盡法門如何
答 爲二性空故 見聞無生 是盡 盡者 諸漏盡 無盡者 於無
生體中 具恒沙妙用 隨事應現 悉皆具足 於本體中 亦無損
滅 是名無盡 卽是盡無盡法門也
問 盡與無盡 爲一 爲別
答 體是一 說卽有別
問 體旣是一 云何說別
答 一者 是說之體 說是體之用 爲隨事應用故 云體同說別
喩如天上一日下 置種種盆器盛水 一一器中 皆有於日 諸器
中日 悉皆圓滿 與天上日 亦無差別故 云體同 爲隨器立名
卽有差別 所以有別 故云體同 說卽有別 所現諸日 悉皆圓
滿 於上本日 亦無損滅故 云無盡也
26. 불생불멸(不生不滅)
"경에 이르기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떤 법이 나지 아니하며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입
니까?"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요, 착한 법은 없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어떤 것이 착함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음입니까?"
"착하지 않음이란 염루심(染漏心)이요, 착한 법이란 염루심
이 없음이니 다만 염루가 없으면 곧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
음이며, 염루가 없음을 얻었을 때에 곧 청정하고 둥글고 밝아
담연히 항상 고요해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착한 법
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나지도 아니하
고 없어지지도 아니한 것이니라."
問 經云 不生不滅 何法不生 何法不滅
答 不善 不生 善法 不滅
問 何者善 何者不善
答 不善者 是染漏心 善法者 是無染漏心 但無染無漏 卽是
不善不生 得無染無漏時 卽淸淨圓明 湛然常寂 畢竟不遷
是名善法不滅也 此卽是不生不滅
27. 불계(佛戒)는 청정심(淸淨心)
"[보살계]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 계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지위에 들어가는지라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시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계란 청정한 마음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발심하
여 청정행을 수행하여 받는 바가 없는 마음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의 계를 받았다고 하느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 청정하여 받음이 없는 행을 닦아
서 불도를 이룬 것이니, 지금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받음이
없는 청정행을 닦는 사람은 곧 부처님과 더불어 공덕을 균등
하게 써서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
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부처님과 더
불어 깨달음이 같으므로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청정한 마음으로부터 지혜가
나는지라 지혜가 청정함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
고 하며 또한 이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問 菩薩戒云 衆生 受佛戒 卽入諸佛位 爲同大覺已 眞是諸
佛子 其義云何
答 佛戒者 淸淨心 是也 若有人 發心 修行淸淨行 得無所
受心者 名受佛戒也 過去諸佛 皆修淸淨無受行 得成佛道
今時 有人 發心修無受淸淨行者 卽與佛功德等用 無有異也
故云入諸佛位也 如是悟者 與佛悟同故 云位同大覺已 眞是
諸佛子 從淸淨心生智 智淸淨 名爲諸佛子 亦名此佛子
28. 불(佛)과 법(法)의 선후(先後)
"부처님과 법에 있어서 부처님이 앞입니까, 법이 앞입니까?
만약 법이 앞이라고 하면 법은 어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이며, 만약 부처님이 앞이라고 하면 어떤 가르침을 이어 받아
서 도를 이룬 것입니까?"
"부처님은 법보다 앞에 있기도 하고 법의 뒤에 있기도 하
느니라."
"어찌하여 부처와 법에 앞뒤가 있읍니까?"
"만약 적멸법에 의거하면 법이 앞이요 부처님이 뒤이며, 문
자법에 의거하면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이니라. 왜냐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두 적멸법에 의해서 성불을 했으므로
곧 법이 앞이요 부처님은 뒤이니,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부
처님의 스승됨은 이른바 법이다'고 하였느니라. 성도하고 나
서 비로소 십이부경을 널리 설하여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
시니 중생이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수행하여 성불하
므로 곧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인 것이니라."
問 只是佛之與法 爲是佛在先 爲是法在先 若法在先 法是
何佛所說 若佛在先 承何敎而成道
答 佛 亦在法先 亦在法後
問 因何佛法先後
答 若據寂滅法 是法先佛後 若據文字法 是佛先法後 何以
故 一切諸佛 皆因寂滅法而得成佛 卽是法先佛後 經云 諸
佛所師 所謂法也 得成道已 然始廣說十二部經 引化衆生
衆生 承佛法敎 修行得成佛 卽是佛先法後也
29. 설통(說通)과 종통(宗通)
"어떤 것이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서로 틀림이 곧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
지 못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차이가 없음이 곧 설법도 통하고 종취도 통
한 것이니라."
問 云何是說通宗不通
答 言行相違卽是說通宗不通
問 云何是宗通說亦通
答 言行無差 卽是說通宗亦通
30. 도(到)와 부도(不到)
"경에 이르기를 '이르되 이르지 아니하고 이르지 않되 이른
법'이란 무엇입니까?"
"말은 이르러도 행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렀으나 이르지 못
함이요,
행은 이르러도 말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지 않되 이르른
것이며,
행과 말이 함께 이르름이 이르고 이름이라 하느니라."
問 經云 到不到不到到之法云何
答 說到行不到 名爲到不到 行到說不到 名爲不到到 行說
俱到 名爲到到
31. 부진유위(不盡有爲)며 부주무위(不住無爲)
"불법은 유위(有爲)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하니 어떤 것이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한다 함은 처음 발심으로부터 드디
어 보리수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시고 마침내 쌍림에 이르
러 열반에 드실 때까지 그 가운데 일체법을 모두 다 버리지
않음이 곧 유위(有爲)에도 다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무위(無
爲)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비록 무념을 닦는다 할지라도
무념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보리.열반.무상.무작을 닦으나 무상.
무작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음이 곧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
는 것이니라."
問 佛法 不盡有爲 不住無爲 何者是不盡有爲 何者是不住
無爲
答 不盡有爲者 從初發心 至菩提樹下成等正覺 後至雙林入
般涅槃 於中 一切法 悉皆不捨卽是不盡有爲也 不住無爲者
雖修無念 不以無念 爲證 雖修空 不以空爲證 雖修菩提涅
槃無相無作 不以無相無作 爲證 卽是不住無爲也
32. 지옥유무(地獄有無)
"지옥이 있습니까, 지옥이 없습니까?"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하느니라."
"어째서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합니까?"
"마음을 따라 짓는 바 일체 악업이 곧 지옥이 있음이요,
만약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곧 지
옥이 없느니라."
問 爲有地獄 爲無地獄
答 亦有亦無
問 云何亦有亦無
答 爲隨心所造一切惡業 卽有地獄 若心無染 自性 空故 卽
無地獄
33. 중생(衆生)과 불성(佛性)
"죄를 지은 중생도 불성이 있읍니까?"
"또한 불성이 있느니라."
"이미 불성이 있을진댄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도
함께 들어갑니까?"
"함께 들어가지 않느니라."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은 다시 어느 곳에 있읍니
까?"
"또한 함께 들어가느니라."
"이미 함께 들어갈진댄 지옥에 들어갈 때 중생이 죄를 받
음에 불성도 또한 함께 죄를 받습니까?"
"불성이 비록 중생을 따라 함께 지옥에 들어가지만 중생이
스스로 죄의 고통을 받는 것이요 불성은 원래 고통을 받지
않느니라."
"이미 함께 지옥에 들어갔을진댄 무엇 때문에 지옥고를 받
지 아니합니까?"
"중생이란 모양[相]이 있음이니 모양이 있는 것은 이루어
지고 무너짐이 있음이요, 불성이란 모양이 없음이니 모양이
없는 것은 곧 공한 성품이니라. 그러므로 진공의 성품은 무너
짐이 없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에 땔 나무를
쌓으면 땔 나무는 스스로 무너지나 허공은 무너지지 않음과
같으니 허공은 불성에 비유하고 땔 나무는 중생에 비유한 것
이니, 그러므로 함께 들어가나 함께 받지 않는다고 하느니
라."
問 受罪衆生 有佛性否
答 亦有佛性
問 旣有佛性 正入地獄時 佛性 同入否
答 不同入
問 正入之時 佛性 復在何處
答 亦同入
問 旣同入 正入時衆生 受罪 佛性 亦同受罪否
答 佛性 雖隨中生同入 是衆生 自受罪苦 佛性 元來不受
問 旣同入 因何不受
答 衆生者 是有相 有相者 卽有成壞 佛性者 是無相 無相
者 卽是空性也 是故 眞空之性 無有壞者 喩如有人 於空
積薪 薪自受壞 空不受壞也 空喩佛性 薪喩衆生 故 云同入
而不同受也
34. 삼신사지(三身四智)
"팔식을 굴려서 네 가지 지혜를 이루며 네 가지 지혜를 묶
어서 삼신(三身)을 이룬다 하니,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함
께 이루며,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홀로 이루는 것입니까?"
"눈.귀.코.혀.몸의 이 다섯 식이 함께 성소작지를 이루고, 제
육식은 의식이니 홀로 묘관찰지를 이루고, 제칠심식은 홀로
평등성지를 이루며, 제팔함장식은 홀로 대원경지를 이루느니
라."
"이 네 가지 지혜는 각각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입니까?"
"본체는 같으나 이름이 다르니라."
"본체가 이미 같을진댄 어째서 이름이 다르며, 이미 일을
따라 이름을 세울진댄 바로 하나의 본체일 때 어떤 것이 대
원경지입니까?"
"담연히 공적하여 둥글고 밝아 움직이지 아니함이 곧 대원
경지요, 능히 모든 육진에 대하여 사랑함과 미움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
곧 평등성지요, 능히 모든 육근의 경계에 들어가 잘 분별하되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자재를 얻음이 곧 묘관
찰지요, 능히 모든 육근으로 하여금 일을 따라서 응용하여 모
두 정수(正受)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이 없음이 곧 성소작
지니라."
"네 가지 지혜[四智]를 묶어서 세 가지 몸[三身]을 이룬다
함은 몇 개의 지혜가 함께 한 몸을 이루며 몇 개의 지혜가
홀로 한 몸을 이룹니까?"
"대원경지는 홀로 법신을 이루고, 평등성지는 홀로 보신을
이루며 묘관찰지와 성소작지는 함께 화신을 이루니, 이 세 가
지 몸도 또한 거짓으로 이름을 세워 분별하여 다만 알지 못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한 것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확실
히 알면 또한 삼신의 응용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본체의 성품
은 모양이 없어서 머물음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서니 또한
머물음이 없는 근본도 없느니라."
問 轉八識成四智 束四智成三身 幾箇識 共成一智 幾箇識
獨成一智
答 眼耳鼻舌身 此五識 共成成所作智 第六 是意 獨成妙觀
察智 第七心識 獨成平等性智 第八含藏識 獨成大圓鏡智
問 此四智爲別 爲同
答 體同名別
問 體旣同 云何名別 旣隨事立名 正一體之時 何者是大圓
鏡智
答 湛然空寂 圓明不動 卽大圓鏡智 能對諸塵 不起愛憎 卽
是二性空 二性空 卽平等性智 能入諸根境界 善能分別 不
起亂想而得自在 卽是妙觀察智 能令諸根 隨事應用 悉入正
受 無二相者卽是成所作智
問 束四智成三身者 幾箇智共成一身 幾箇智獨成一身
答 大圓鏡智 獨成法身 平等成智 獨成報身 妙觀察智與成
所作智 共成化身 此三身 亦假立名字分別 只令未解者看
若了此理 亦無三身應用 何以故 爲體性 無相 從無住本而
立 亦無無住本
35. 불진신(佛眞身)
"어떤 것이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입니까?"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아니하는 것이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이니라."
"어째서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음이 부처님의 참
된 몸[眞身]을 보는 것입니까?"
"있음[有]은 없음[無]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느니라. 본래 있음을 세우지 아니하면 없음도
또한 존재하지 아니하니 이미 없음이 존재하지 않는데 있음
을 어디서 얻을 수 있으리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인해서 비
로소 있으니 이미 서로 인해서 있으니 모두가 생멸이니라. 다
만 이 두 견해를 떠나면 곧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이니
라."
"다만 있음[有]과 없음[無]도 오히려 서로 건립하지 못하
거늘 부처님의 진신[眞身]이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설 수 있읍
니까?"
"물음이 있기 때문이니, 만약 묻지 않을 때엔 진신의 이름
도 서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만약 물
건의 모양을 대할 때는 모양이 나타나나 만약 모양을 대하지
않을 때는 마침내 모양을 볼 수 없음과 같으니라."
問 云何是見佛眞身
答 不見有無卽是見佛眞身
問 云何不見有無卽是見佛眞身
答 有因無立 無因有顯 本不立有 無亦不存 旣不存無 有從
何得 有之與無 相因始有 旣相因而有 悉是生滅也 但離此
二見 卽是見佛眞身
問 只如有無 尙不可交建立 眞身 復從何而立
答 爲有問故 若無問時 眞身之名 亦不可立 何以故 譬如明
鏡 若對物像時 卽現像 若不對像時 終不見像
36.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常不離佛)
"어떤 것이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마음에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고 경계를 대하여는 고요하
여 어느 때나 필경 공적하면 이것이 곧 항상 부처님을 떠나
지 아니함이니라."
問 云何是常不離佛
答 心無起滅 對境寂然 一切時中 畢竟空寂 卽是常不離佛
37. 무위법(無爲法)
"어떤 것이 무위법(無爲法)입니까?"
"유위법(有爲法)이니라."
"지금 무위법을 물었거늘 어째서 유위라고 대답하십니까?"
"있음[有]은 없음[無]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느니라. 본래 있음을 세우지 아니하면 없음은
어디서 날 것인가? 만약 참된 무위(無爲)를 논할진댄 곧 유위
(有爲)도 취하지 아니하고 또한 무위도 취하지 아니함이 참된
무위법이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법의 모양을 취
하면 곧 아상과 인상에 집착하고 만약 법의 모양 아닌 것을
취하여도 곧 아상과 인상에 집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
히 법도 취하지 말고 법 아님도 취하지 말라'고 하시니 이것
이 곧 참된 법을 취함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밝게 알면 곧
참된 해탈이며 둘 아닌 법문을 아는 것이니라."
問 何者是無爲法
答 有爲是
問 今問無爲法 因何答有爲是
答 有因無立 無因有顯 本不立有 無從何生 若論眞無爲者
卽不取有爲 亦不取無爲 是眞無爲法也 何以故 經云 若取
法相 卽著我人 若取非法相 卽著我人 是故不應取法 不應
取非法 卽是取眞法也 若了此理 卽眞解脫 卽會不以法問
38. 중도(中道)
"어떤 것이 중도의 뜻입니까."
"가[邊]의 뜻이니라."
"지금 중도를 물었거늘 무엇 때문에 가[邊]의 뜻이라고 대
답하십니까?"
"가[邊]는 가운데[中]로 말미암아 서고 가운데[中]는 가
[邊]로 말미암아 나느니라. 만약 본래 가[邊]가 없으면 가운
데는 무엇을 따라 있으리오. 지금 가운데라고 하는 것은 가로
말미암아 비로소 있는 것이므로 가운데와 가가 서로 인하여
서 있어서 모두가 항상함이 없음[無常]을 알지니 색.수.상.행.
식도 이와 같으니라."
問 何者是中道義
答 邊義是
問 今問中道 因何答邊義是
答 邊因中立 中因邊生 本若無邊 中從何有 今言中者 因邊
始有故 知中之與邊 相因以立 悉是無相 色受想行識 亦復
如是
39. 오음(五陰)
"어떤 것을 오음(五陰)이라 합니까?"
"색을 대하여 색에 물들어 색을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색음(色陰)이라 하며, 팔풍(八風)을 받아들인 까닭으로 삿된
믿음을 즐겨 모아서 받아들임에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수
음(受陰)이라 하며, 미혹한 마음이 생각을 취하여 생각을 따
라 남[生]을 받는 것을 상음(相陰)이라 하며, 모든 행을 결집
하여 행을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행음(行陰)이라 하며, 평
등한 본체에 망령되이 분별을 일으키고 얽매어 붙어서 허망
한 의식이 남[生]을 받는 것을 식음(識陰)이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오음이라고 일컫느니라."
問 何名五陰等
答 對色染色 隨色受生 名爲色陰 爲領納八風 好集邪信 卽
隨領受中生 名爲受陰 迷心取相 隨想受生 名爲想陰 結集
諸行 隨行受生 名爲行陰 於平等體 妄起分別繫著 虛識受
生 名爲識陰 故云五陰
40. 이십오유(二十五有)
"경에 이르기를 '이십오유(二十五有)'라고 하니 어떤 것입니
까?"
"뒤의 몸을 받는 것이 이십오유이니, 뒤의 몸[後有身]이란
곧 육도에 생을 받는 것이니라. 중생이 현세에 마음이 미혹하
여 기꺼이 모든 업을 맺어 뒤에 업을 따라 생(生)을 받는 까
닭에 뒤가 있다[後有]고 하느니라. 세상에 만약 어떤 사람이
구경해탈을 닦을 뜻을 품고 무생법인을 증득한 사람은 곧 삼
계를 영원히 떠나서 후유(後有)를 받지 않나니,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 사람은 곧 법신(法身)을 증득함이요 법신이란 곧
불신(佛身)이니라."
"이십오유의 이름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본체는 하나이지만 씀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이십오유를
나타내기 때문이니, 이십오유는 십악과 십선과 오음이니라."
"어떤 것이 십악.십선입니까?"
"십악은 죽이는 것, 훔치는 것, 음행하는 것, 거짓말, 아첨
하는 말, 이간하는 말, 나쁜말 내지 탐냄, 성냄, 삿된 견해이
니 이것이 십악이요, 십선이란 다만 십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니라."
問 經云 二十五有 何者是
答 受後有身 是也 後有身者 卽六道受生也 爲衆生 現世心
迷 好結諸業 後卽隨業受生故 云後有也 世若有人 志修究
竟解脫 證無生法忍者 卽永離三界 不受後有 不受後有者
卽證法身 法身者 卽是佛身
問 二十五有名 云何分別
答 本體是一 爲隨用立名 顯二十五有 二十五有 十惡十善
五陰 是
問 云何是十惡十善
答 十惡 殺盜狀 妄言綺言兩舌惡口 乃至貪瞋邪見 此名十
惡 十善者 但不行十惡 卽是也
41. 무념(無念)과 돈오(頓悟)
1. 무념(無念)
"위에서 무념을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다 이해할 수 없읍니
다."
"무념이란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어서 나머
지 생각으로 구함이 없음이며, 모든 경계와 사물에 대하여 영
영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곧 무념이니라. 무념이란 참된
생각[眞念]을 이름함이니 만약 생각으로 생각을 삼는다면 곧
삿된 생각[邪念]이요 바른 생각[正念]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에게 육념(六念)을 가르치면 생각이
아님[非念]이다'고 하나니, 육념이 있으면 삿된 생각[邪念]이
요 육념이 없으면 곧 참된 생각[眞念]이라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우리가 무념법(無念法) 가운데 머
물러서 이와 같은 금색의 삼십이상을 얻어 큰 광명을 놓아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나니, 이 불가사의한 공덕은 부처님이
설명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머지 승(乘)들이
능히 알 수 있으리오' 하였느니라. 무념을 얻은 사람은 육근
(六根)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자연히 모든 부처님 지견
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법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 곳집이며
또 법의 곳집이라 하나니, 곧 능히 일체가 부처이며 일체가
법이니라. 왜냐하면 무념인 까닭이니, 경에 이르기를 '일체 모
든 부처님들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오신다'고 하였느니라."
"이미 무념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지견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세웁니까?"
"무념을 좇아서 세우니 무슨 까닭인가? 경에 이르기를 '머
뭄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일체법을 세운다'고 하였고 또 이르
기를 '비유컨대 밝은 거울과 같다'고 하였으니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남이니, 왜냐하
면 거울이 밝은 까닭에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나느니라.
배우는 사람의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에 망념이 나지
아니하고 아인심(我人心)이 없어져서 필경 청정하니 청정한
까닭으로 능히 한량없는 지견이 나느니라. 돈오란 금생을 떠
나지 않고 곧 해탈을 얻나니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비
유컨대 사자새끼가 처음 태어날 때도 사자인 것과 같으니 돈
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돈오를 닦을 때에 곧 부
처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대나무가 봄에 순이 나서 그
봄을 여의지 않고 곧 어미 대나무와 같게 되어 함께 다름이
없는 것과 같음이니, 왜냐하면 마음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問 上說無念 猶未盡決
答 無念者 一切處 無心 是 無一切境界 無餘思求是 對諸
境色 永無起動 是卽無念 無念者 是名眞念也 若以念爲念
者 卽是邪念 非爲正念 何以故 經云 若敎人六念 名爲非念
有六念 名爲邪念 無六念者 卽眞念 經云 善男子 我等 住
於無念法中 得如是金色三十二相 放大光明 照無餘世界 不
可思議功德 佛說之 猶不盡 何況餘乘能知也 得無念者 六
根 無染故 自然得入諸佛知見 得如是者 卽名佛藏 亦名法
藏 卽能一切佛 一切法 何以故 爲無念故 經云 一切諸佛等
皆從此經出
問 旣稱無念 入佛知見 復從何立
答 從無念立 何以故 經云 從無住本 立一切法 又云喩如明
鑑 鑑中 雖無像而能現萬像 何以故 爲鑑明故 能現萬像 學
人 爲心無染故 妄念 不生 我人心 滅 畢竟淸淨 以淸淨故
能生無量知見 頓悟者 不離此生 卽得解脫 何以知之 譬如
師子兒 初生之時 卽眞獅子 修頓悟者 亦復如是 卽修之時
卽入佛位 如竹春生筍 不離於春 卽與母齊 等無有異 何以
故 爲心空故
2. 돈오(頓悟)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순식간에 망념을
없애버리고 영원히 아인심(我人心)을 끊어서 필경 공적하여
곧 부처님과 같게 되어 다름이 없는 까닭에 범부가 성인이라
고 하느니라. 돈오를 닦는 사람은 이 몸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삼계를 뛰어나나니, 경에 이르기를 '세간을 무너뜨리지 아
니하고 세간을 뛰어나며 번뇌를 버리지 아니하고 열반에 들
어간다'고 하였느니라.
돈오를 닦지 않는 사람은 마치 여우가 사자를 따라 좇아
다녀서 백천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사자가 되지 못하는 것
과 같느니라."
修頓悟者 亦復如是 爲頓除妄念 永絶我人 畢竟空寂 卽與
佛齊 等無有異故 云卽凡卽聖也 修頓悟者 不離此身 卽超
三界 經云 不壞世間而超世間 不捨煩惱而入涅槃 不修頓悟
者 猶如野干 隨逐師子 經百千劫 終不得成師子
3. 진여(眞如)와 무심(無心)
"진여의 성품은 실로 공한 것입니까, 실로 공하지 않는 것
입니까? 만약 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곧 모양이 있는 것이요
만약 공하다고 말하면 곧 단멸이니, 일체 중생이 마땅히 무엇
을 의지해서 닦아야 해탈을 얻을 수 있읍니까?"
"진여의 성품은 공하면서 또한 공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진여의 묘한 본체는 형상이 없어서 얻을 수 없으므로 또한
공하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공하여 모양이 없는 본체 가운데
에 항사묘용이 구족하여 곧 사물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또한 공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하나를 알면
천가지가 따라오고 하나를 미혹하면 만가지를 미혹한다'하니,
만약 사람이 하나를 지키면 만가지 일을 마치는 것이니 이것
이 오도(悟道)의 묘함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삼라만상이 한
법의 도장 찍힌 바라' 하니 어떻게 해서 한 법 가운데에서 갖
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인가?
이러한 공업(功業)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니 만약
마음을 항복받지 아니하고 문자를 의지해서 증득하려 하면
옳지 못함이라.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여서 피차가 함께 떨어
질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자세히 살필지니라.
다만 일이 닥쳐옴에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일체처에 무심함
이니, 이렇게 얻은 사람은 곧 열반에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
하느니라. 이것을 불이법문이라 하며 또 다툼이 없다고 하며
일행삼매라고 하나니, 왜냐하면 필경 청정하여 아상과 인상이
없는 까닭이니라. 애증을 일으키지 않음이 두 가지 성품이 공
함이며 보는 바가 없음이니, 곧 이것이 진여의 얻음이 없는
변론이니라."
又問 眞如之性 爲實空 爲實不空 若言不空 卽是有相 若言
空者 卽是斷滅 一切衆生 當依何修而得解脫
答 眞如之性 亦空亦不空 何以故 眞如妙體 無形無相 不可
得也 是名亦空 然 於空無相體中 具足恒沙之用 卽無事不
應 是名亦不空 經云 解一卽千從 迷一卽萬惑 若人 守一
萬事畢 是悟道之妙也 經云 森羅及萬像 一法之所印 云何
一法中而生種種見 如此功業 由行爲本 若不降心 依文取證
無有是處 自�x�x他 彼此俱墜 努力努力 細細審之 只是事
來 不受 一切處 無心 得如是者 卽入涅槃 證無生法忍 亦
名不二法門 亦名無諍 亦名一行三昧 何以故 畢竟淸淨 無
我人故 不起愛憎 是二性空 是無所見 卽是眞如無得之辯
42. 중생자도(衆生自度)
"이 논은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전하지 말며 오직 견해가
같고 행함이 같은 이에게 전할 것이요, 마땅히 앞 사람이 참
으로 신심이 있어 감당하여 물러가지 않는 사람인가를 관찰
할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위해 설명하고 보이어서 깨닫도록
해야 하느니라. 내가 이 논을 지은 것은 인연 있는 사람을 위
함이요 명리를 구하고자 함이 아니니라. 다만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 천가지 경 만가지 논은 중생이 미혹하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이 한결같지 아니하여 삿됨을 따라 대응하여 설
명한 것이므로 곧 여러 차별이 있으나, 구경해탈의 이치를 논
하는 경우 일진댄 다만 일이 다가와도 받지 아니하고 일체처
에 무심하여 영영 고요함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필경에 청정
하여 자연해탈이니라. 너희들은 헛된 이름을 구하여 입으로는
진여를 말하되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는 안되느니라. 곧 말
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 스스로 속임이라 하나니, 마땅히 악
도에 떨어지느니라. 한 세상의 헛된 이름과 쾌락을 구하지 말
라. 모르는 사이에 억겁의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니 힘쓰고
힘쓸지니라.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
지 못하나니,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때엔 과거
모든 부처님이 티끌 수와 같아서 일체 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마쳤을 것이어늘,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까지 생사에 유
랑하며 성불하지 못하였는가?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
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함을 마땅히 알라. 노력하고 노력하
여 스스로 닦아서 다른 부처님의 힘을 의지하지 말지니, 경에
이르기를 '무릇 법을 구하는 자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
라'고 하였느니라."
此論 不傳無信 唯傳同見同行 當觀前人 有誠信心 堪任不
退者 如是之人 乃可爲說 示之令悟 吾作此論 爲有緣人 非
求名利 只如諸佛所說千經萬論 只爲衆生 迷故 心行不同
隨邪應說 卽有差別 如論究竟解脫理者 只是事來不受 一切
處無心 永寂如空 畢竟淸淨 自然解脫 汝莫求虛名 口說眞
如 心似猿 卽言行 相違 名爲自�x 當墜惡道 莫求一世虛
名快樂 不覺長劫受殃 努力努力 衆生 自度 佛不能度 若佛
能度衆生時 過去諸佛 如微塵數 一切衆生 總應度盡 何故
我等 至今流浪生死 不得成佛 當知衆生 自度 佛不能度 努
力努力自修 莫倚他佛力 經云 夫求法者 不著佛求
43. 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
"내세에 있어서는 잡된 배움의 무리가 많을 것인데 어떻게
함께 살겠읍니까?"
"다만 그 빛을 온화하게 할 뿐이요, 그 업은 같이하지 말지
니 장소는 같이하나 같이 살지는 아니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
를 '흐름을 따르나 성품은 항상하다'고 하였느니라.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일대사인연인 해탈의 일을 위할지니,
아울러 처음 배우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부처님 같이 공
경하고 배우며, 자기의 덕을 높이고 남의 능력을 질투하지 말
며, 자기의 행동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지 아니
하면, 일체처에 있어서 방해되고 장애됨이 전혀 없어 자연히
쾌락한 것이니라.
거듭 게송을 설하여 말하리라.
인욕이 첫째 가는 도라
먼저 아인심을 없앨지니
일이 옴에 받는 바 없으면
참다운 보리의 몸이니라.
問 於來世中 多有雜學之徒 云何共住
答 但和其光 不同其業 同處不同住 經云 隨流而性常也 只
如學道者 自爲大事因緣解脫之事 具勿輕末學 敬學如佛 不
高己德 不疾彼能 自察於行 不擧他過 於一切處 悉無妨
自然快樂也 重說偈云 忍辱 第一道 先須除我人 事來 無所
受 卽眞菩提身
44. 일체처(一切處)에 무심(無心)
"[금강경]에 이르기를 '보살이 아법(我法)이 없는 사람은
여래가 참다운 보살이라'고 말씀하시며, 또 '취하지도 아니하
고 버리지도 아니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어서 일체처에 무심
하면 곧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여래가 열반을 증득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었다'고
하였느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나는 지금 뜻이 매우 좋아서
남이 욕할 때도 괴로움이 없고
말없이 시비를 말하지 않나니
열반과 생사가 같은 길이로다.
내 집의 근본 종지를 사무쳐 알아
본래로 푸르고 검은 분별이 없나니
일체 망상의 분별은
세상 사람이 밝게 알지 못함임을 알지니라.
말세의 범부에게 이르노니
마음 가운데 우거진 풀을 없애 버려라.
내 지금 뜻이 크게 넓어서
말하지 않고 일 없어 마음이 편안하나니
종용하여 자재해탈이라
동서 어디를 가나 쉬워 어렵지 않도다.
종일토록 말 없이 적막하여
생각 생각에 이치를 향해 생각하노니
자연히 소요하여 도를 보아
생사와 결정코 상관치 않는도다.
내 지금 뜻이 몹시 기특하여
세상의 침해와 속임에 향하지 않음이라
영화는 모두 헛된 속임수이니
헤진 옷 거친 음식으로 굶주림을 채우는도다.
길에서 세상 사람을 만나 말하기를 게을리하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 하네.
겉으로는 질린 듯 암둔해 보이나
마음 가운데는 밝기가 유리같아서
라후라의 밀행에 묵묵히 계합하나니
너희 범부들이 알 바 아니로다.
내 너희들이 참 해탈의 이치를 알지 못할까 두려워서 거듭
너희들에게 말해 보이노라.
金剛經云 菩薩 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又云 不取卽
不捨 永斷於生死 一切處 無心 卽名諸佛子 涅槃經云 如來
證涅槃 永斷於生死 偈曰 我今意況大好 他人罵時無惱 無
言不說是非 涅槃生死同道 識達自家本宗 猶來無有靑 一
切妄想分別 將知世人不了 寄言凡夫末代 除却心中藁草 我
今意況大寬 不語無事心安 從容自在解脫 東西去易不難 終
日無言寂寞 念念向理思看 自然逍遙見道 生死定不相干 我
今意況大奇 不向世上侵欺 榮華總是虛�x 弊衣序食充飢 道
逢世人懶語 世人咸說我癡 外現 暗鈍 心中明若瑠璃 默
契羅 密行 非汝凡夫所知 吾恐汝等 不會了眞解脫理 再示
汝等
45. 필경정(畢竟淨)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를 얻고져 할진댄 마땅히 그 마
음을 깨끗이 하라'고 하시니 무엇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
니까?"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淨)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을 삼는 것입니까?"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음이 곧 필경 깨끗함이
니라."
"어떤 것이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
까?"
"일체처에 무심함이 깨끗함이니 깨끗함을 얻었을 때에 깨
끗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이며, 깨끗함
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깨끗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이니라."
問 維摩經云 欲得淨土 當淨其心 云何是淨心
答 以畢竟淨 爲淨
問 云何是畢竟淨 爲淨
答 無淨無無淨 卽是畢竟淨
問 云何是無淨無無淨
答 一切處無心 是淨 得淨之時 不得作淨想 卽名無淨也 得
無淨時 亦不得作無淨想 卽是無無淨也
46. 필경증(畢竟證)
"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으로 증함을 삼습니까?"
"필경 증함으로 증함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증함입니까?"
"증함이 없음과 증함이 없음도 없음이 필경 증함이라 하느
니라."
"어떤 것이 증함이 없음이며 어떤 것이 증함이 없음도 없
는 것입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 등에 물들지 아니하고 안으로 망념의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이렇게 얻은 것을 곧 증함이라고
함이니, 증함을 얻었을 때에 증득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증함이 없음이며 증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증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함이 곧 증함이 없음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問 修道者 以何爲證
答 畢竟證 爲證
問 云何是畢竟證
答 無證無無證 是名畢竟證
問 云何是無證 云何是無無證
答 於外 不染色聲等 於內 不起妄念心 得如是者 卽名爲證
得證之時 不得作證想 卽名無證也 得此無證之時 亦不得作
無證想 卽名無無證也
47. 진해탈(眞解脫)
"어떤 것이 해탈한 마음입니까?"
"해탈한 마음도 없고 또한 해탈한 마음이 없음도 없음이
곧 참 해탈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오히려 법도 마땅히 버려
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리오' 하였으니 법이란 있음
[有]이요 법 아님이란 없음[無]이니, 다만 있음과 없음[有無]
을 취하지 아니하면 곧 참 해탈이니라."
問 云何解脫心
答 無解脫心 亦無無解脫心 卽名眞解脫也 經云 法尙應捨
何況非法也 法者 是有 非法 是無也 但不取有無 卽眞解脫
48. 필경득(畢竟得)
"어떻게 도를 얻습니까?"
"필경에 얻음으로써 얻음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의 얻음입니까?"
"얻음도 없고 얻음이 없음도 없음을 필경의 얻음이라 하느
니라."
問 云何得道
答 以畢竟得 爲得
問 云何是畢竟得
答 無得無無得 是名畢竟得
49. 필경공(畢竟空)
"어떤 것이 필경의 공함입니까?"
"공함도 없고 공함이 없음도 없음을 곧 필경 공함이라고
하느니라."
問 云何是畢竟空
答 無空無無空 卽名畢竟空
50. 진여정(眞如定)
"어떤 것이 진여의 선정입니까?"
"선정도 없고 선정이 없음도 없음이 곧 진여의 선정이니,
경에 이르기를 '정한 법(定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
름할 것이 없으며 또한 여래가 설명할 정한 법이 없다.'고 하
였느니라. 또 경에 이르기를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
함을 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공한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며, 비록 선정을 닦으나 선정으로써 증함을 삼지 아니
하여 선정이라는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며, 비록 깨끗
함을 얻었으나 깨끗함으로써 증함을 삼지 아니하여 깨끗하다
는 생각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니라. 만약 선정을 얻고 깨
끗함을 얻어서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 이와 같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망상이니 곧 얽매이게 되어 해
탈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얻었을 때에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자재를 얻되 이것을 가져 증함을 삼지 않
으며 또한 이와 같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할 때에 해탈을 얻
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정진심을 일으키면 이는 망념으로서
정진이 아니니라. 만약 능히 마음이 망령되지 않으면 정진이
끝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問 云何是眞如定
答 無定無無定 卽名眞如定 經云 無有定法名阿뇩多羅三
三菩提 亦無定法如來可說 經云 雖修空 不以空爲證 不得
作空想 卽是也 雖修定 不以定爲證 不得作定想 卽是也 雖
得淨 不以淨爲證 不得作淨想 卽是也 若得定得淨 得一切
處無心之時 卽作得如是想者 皆是妄想 卽被繫縛 不名解脫
若得如是之時 了了自知 得自在 卽不得將此爲證 亦不得作
如是想時 得解脫 經云 若起精進心 是妄非精進也 若能心
不妄 精進無有涯
51. 중도(中道)는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
"어떤 것이 중도입니까?"
"중간도 없고 또한 이변(二邊)도 없음이 곧 중도니라."
"어떤 것이 이변입니까?"
"저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이 있음이 이변이니라."
"어떤 것을 저 마음, 이 마음이라고 합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에 얽매임을 저 마음이라 하며 안으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이 마음이라 하느니라. 만약 밖으로 색
에 물들지 아니하면 곧 저 마음이 없음이요, 안으로 망념이
나지 아니하면 곧 이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은 두변이 없는
것이니라. 마음이 이미 두변이 없으니 중간이 또한 어찌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음을 얻는 것을 곧 중도라 하는 것이니 참된
여래의 도이니라. 여래의 도란 곧 일체 깨친 사람의 해탈이
니, 경에 이르기를 '허공에 가운데와 가장자리가 없으니 모든
여래의 몸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하였느니라. 그리하여 일체
색이 공한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요 일체처에 무심함은
곧 일체색의 성품이 공함이니, 두가지 뜻이 다르지 아니하여
이것을 또한 색이 공함이라 하며 또 색이 법이 없음이라 하
느니라. 너희가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떠나서 보리.해탈과
열반.적멸과 선정.견성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느니라. 일체
처에 무심이란 곧 보리.해탈과 열반.정멸과 선정 내지 육바라
밀을 닦음이니 모두 성품을 보는 곳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금강경]에 이르기를 '조그마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을 아뇩다
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느니라."
問 云何是中道
答 無中間亦無二邊 卽中道也
問 云何是二邊
答 爲有彼心 有此心 卽是二邊
問 云何名彼心此心
答 外縛色聲 名爲彼心 內起妄念 名爲此心 若於外 不染色
卽名無彼心 內不生妄念 卽名無此心 此非二邊也 心旣無二
邊 中亦何有哉 得如是者 卽名中道 眞如來道 如來道者 卽
一切覺人解脫也 經云 虛空 無中邊 諸佛身亦然 然 一切色
空者 卽一切處無心也 一切處無心者 卽一切色性空 二義無
別 亦名色空 亦名色無法也 汝若離一切處無心 得菩提解脫
涅槃寂滅 禪定見性者 非也 一切處無心者 卽修菩提解脫涅
槃寂滅 禪定乃至六度皆見性處 何以故 金剛經云 無有少法
可得 是名阿뇩多羅三 三菩提也
52.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이 해탈(解脫)
"만약 일체 모든 행을 닦아서 구족하여 성취하면 수기를
얻을 수 있읍니까?"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일체의 법을 닦지 아니하고서 성취하면 수기를 얻을
수 있읍니까?"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이럴 때는 마땅히 무슨 법으로써 수기를 얻을 수 있
읍니까?"
"행 있음을 쓰지도 않고 행 없음도 쓰지 않으면 곧 수기를
얻느니라. 왜냐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행의 성품과
모양이 모두 다 무상하다'고 하였으며 [열반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가섭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행이 항상한지라 옳은
곳이 없다>'고 하셨느니라. 너희는 다만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모든 행이 없으며 또한 행이 없음도 없어서 곧 이것을 수
기라 하느니라. 이른바 일체처에 무심이란 증애심이 없음이니
증애라고 말함은, 좋은 일을 보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
지 아니함을 곧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이라 하고, 나쁜 일을
보고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사랑함이 없음이란 곧 물든 마음이 없음을
이름하나니 곧 색의 성품이 공함이요, 색의 성품이 공함이란
곧 만가지 인연이 다 끊어짐이요 만가지 인연이 다 끊어짐은
자연 해탈이니라. 너희들이 이것을 자세히 보아서 만약 뚜렷
이 밝게 알지 못할 때엔 모름지기 빨리 물을 것이요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너희들이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해 닦아서
해탈하지 못한다면 내가 곧 종신토록 너희들을 위해 대지옥
고를 받을 것이며, 내가 만약 너희들을 속인 사람이면 내가
마땅히 나는 곳마다 사자나 호랑이나 이리의 밥이 될 것이다.
너희가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부지런
히 닦지 아니하면 내 알 바 아니니라.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
면 만겁에 다시 돌이킬 수 없나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합당히
알아야 할지니라."
問 若有修一切諸行 具足成就 得受記否
答 不得
問 若以一切法無修 得成就 得受記否
答 不得
問 若恁�時 當以何法而得受記
答 不以有行 亦不以無行 卽得受記 何以故 維摩經云 諸行
性相 悉皆無常 涅槃經云 佛告迦葉 諸行 是常 無有是處
汝但一切處無心 卽無諸行 亦無無行 卽名受記 所言一切處
無心者 無憎愛心 是 言憎愛者 見好事 不起愛心 卽名無愛
心也 見惡事 亦不起憎心 卽名無憎心也 無愛者 卽名無染
心 卽是色性空也 色性空者 卽是萬緣俱絶 萬緣俱絶者 自
然解脫 汝細看之 若未惺惺了時 卽須早問 勿使空度 汝等
若依此敎修 不解脫者 吾卽終身爲汝受大地獄 吾若�x汝者
吾當所生處 爲師子虎狼所食 汝若不依敎 自不勤修 卽不知
也 一失人身 萬劫不復 努力努力 須合知爾
제3권 전심법요(傳心法要)
머리말
서천 28대로 계계상승(繼繼相承)한 법등(法燈)은 달마스님을 효시
(嚆矢)로하여 동토(東土)에서 그 빛을 밝히고, 장차 한 꼿이 다섯 잎
이 피어날[一花開五葉] 씨앗을 비로소 뿌리시니, 이것이 달마정전(達
磨正傳)의 원류(源流)입니다. 이 법은 6대로 면면히 전하여 6조 혜능
대사에 이르러 그 큰 꽃을 피우니, 아래로 남악(南嶽)스님과 청원(靑
原)스님의 양대맥을 이루고, 다시 오가칠종(五家七宗)이 벌어져서 천
하에 울창한 대선림(大禪林)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남악스님 아래
서 천하 사람을 답살(踏殺)한 한 망아지가 나왔으니 그 분이 마조
(馬祖)대사로서 백장(百丈)스님이 그 법을 잇고 다음으로 이 <전심
법요>의 설법자인 황벽(黃檗)선사가 나왔으며, 그 아래로는 조석(祖
席)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임제(臨濟)선사가 출현하여 임제종의 종조
(宗祖)가 된 것입니다.
달마선종(達磨禪宗)이라고 하면 한 마음의 법[一心法]을 말한 것
이니, 이른바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 밖에 따로이 전한 것[不立文字
敎外別傳]'이며,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
룬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는 것입니다.
<전심법요>는 그 내용에서 달마선종의 정통사상과 육조스님께서
말씀한 식심견성(識心見性)의 돈교법문(頓敎法門)을 가장 투철하고
명료하게 설파한, 종문(宗門)의 대표서라고 예로부터 일컬어온 어록
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심법요>라고 하면 <완릉록>을 포함하여 일컫는
데, 그 상부를 <황벽단제선사 전심법요> 하부를 <황벽단제선사 완
릉록>으로 나누어 부릅니다. 대사의 재속(在俗) 제자인 배휴(裴休
797-870)가 그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가 강서(江西)의 종릉(鍾
陵)에 관찰사로 재임할 때인 회창(會昌) 2년(842)에 용흥사(龍興寺)
에서 대사께 문법하던 것을 필록(筆錄)하여 두었다가, 대사께서 입적
하고 난 다음 그 대강을 대사의 문인들에게 보내어 청법(聽法) 당시
의 장노(長老)들과 대중의 증명을 얻어서 세상에 유포시킨 것입니
다. 배휴가 서문을 쓴 해가 대중(大中) 11년(857)이므로, 대사께서
입적한 지 2-3년 뒤로 추정됩니다.
<전심법요>는 배류 자신이 종릉과 완릉 두 곳에서 문법하던 것
을 직접 기술한 것이며, <완릉록>은 배류가 완릉의 개원사에서 문
법하던 기록을 기저(基底)로하여 뒤에 시자들 측에서 엮은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것은 <전심법요>에서는 배휴 자신의 이름으로 직접
쓰고 있으나, <완릉록>에서는 "배상공이 운운..." 하면서 시종일관
제3인칭으로 기술한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완릉록>
에서는 <전심법요>의 내용과 더러 중복된 부분이 있음을 보게 되는
데, 그 후반부 "대사는 본시 민현의 사람이다[師本是 中人]"로부터
는 옛 유통본에는 본래 없던 부분으로서 전반부보다 분량이 더 많으
며, 당 대중년간(848-859)에 또 다른 사람에 의하여 추가로 기술된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기에서는 대사의 출생 및 출가 인연에 관해서
짤막하게 언급하고 있으며, 대사께서 초기에 천태(天台)에서 노니시
던 일과 귀종(歸宗) 염관(鹽官) 남전(南泉) 등의 선사들을 찾아 제방
을 역방(歷訪)하면서 문답하고 거량(擧揚)하던 대사의 기봉(機鋒)과
기연(機緣)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배휴가 홍주 개원사에서
벽화를 보고 거량하다가 개오(開悟)한 사유를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
다.
이 후반부는 송나라 원풍(元 ) 8년(1085)에 편찬되었다가 명나라
만력(萬曆) 17년(1589)에 재편된 <사가어록(四家語錄)]에 실려 있는
것입니다. 여기 번역에 사용한 원본은 명본(明本) <4가어록> 가운데
제4권<황벽단제선사전심법요> 및 제5권<황벽단제선사완릉록>을 모
본으로 삼아 번역하였습니다. 원풍 8년판의 <4가어록>에는 <완릉
록>의 전반부밖에 실려있지 않았으나, 명나라 때 재편하면서 <천성
광등록(天聖廣燈錄)] 제8권에서 그 후반부를 옮겨 증보(增補)한 것으
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4가어록>은 일명 <마조4가록>이라고도 일컫는 바, 곧 마조, 백
장, 황벽, 임제 등 조계정전(曹溪正傳)의 4대(代) 조사 스님의 어록을
함께 엮은 어록으로서 임제종황룡파(黃龍派)에서 자가(自家)의 종
지종통(宗旨宗統)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편찬-유포시킨 것이며 종문
으 가장 핵심적인 어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서(光緖) 9년(1883) 감로사(甘露社)에서 <법해
보벌(法海寶筏)> 가운데 <전심법요>와 <완릉록>을 포함시켜 간행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 유통본은 융희(隆熙) 원년(1907) 운문
사(雲門寺)에서, 그리고 융희 2년(1908) 범어사(梵魚寺)에서 간행된
<선문촬요(禪門撮要)> 상권에 <전심법요>와 <완릉록>이 실려 있
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완릉록>의 후반부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황벽스님의 법문들은 <조당집(祖堂集)> 권16, <경덕전등록(景德
傳燈錄)> 권9, <송고승전(宋高僧傳)> 권20, <천성광등록(天聖廣燈
錄)> 권8,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 권2,3, <4가어록(四家語錄)>
권4,5, <오등회원(五燈會元)> 권4, <지월록(指月錄)> 권9 등에 단편
적이고 부분적이면서 내용이 서로 다르게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명나라 때 증보 재편된 <4가어록>은 <전심법요>와 <완릉록>의 교
재로서는 가장 완벽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심법요>의 유
통본은 지금까지 체제와 내용에서 크게 변질됨이 없이 유행되어 왔
으나, 다만 결미(結尾)의 "어떻게 하여야 계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
까?[如何得不落階級]" 이후의 한 단이 <4가어록>에서는 <완릉록>
의 결미로 옮겨 싣고 있는 점이 다릅니다.
다음으로 황벽스님과 배휴와의 관계 및 대중황제와의 인연에 대
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황벽스님 말년의 교화 시기는 당
무종의 회창법란(會昌法難)이 자행되던 때(842-845)로서, 당시 장안
과 낙양에는 각각 4개 사찰만을, 각 주에는 1주에 1개 사찰만을 남
기고 모조리 폐사시켰으므로 모든 승니들은 자연히 산곡에 은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이런 관계 때문에 사실상 대사의 말년
의 행리(行履)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배휴는 다시 지방장관으로 재직하다가 선종(대중황제)이 즉위하고
나서 조정의 상공(相公) 벼슬에 올라 중앙행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
다. 그는 <완릉록>에서 보인 바처럼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에서
벽화를 보고 황벽스님에게 거량하던 중, 황벽스님이 "배휴야!"하고
부르자 배휴가 "예!"하고 대답하니 대사가 "어느 곳에 있는고?" 하
는 말 끝에 깨치고 이 기연으로 대사의 재속제자(在俗弟子)가 된 것
입니다. 그는 대사뿐만 아니라 위산 영우( 山靈祐)선사에도 귀의
하였으며, 화림 선각(華林善覺)과도 교분이 있었고, 규봉 종밀(圭峰
宗密)과는 도연(道緣)이 깊었습니다. 배휴가 종릉, 완릉 두 곳에서
대사를 모시고 조석으로 문법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그 문답
내용을 필록하여 둔 것을 대사의 입멸 후 광당사(廣唐寺)의 옛 법중
(法衆)의 증명을 얻어 세상에 유포시킨 것이 <점심법요>인 것입니
다. 이처럼 배휴라는 훌륭한 필록자를 얻음으로서 황벽스님의 법문
이 세상에 크게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중황제는 본시 당 헌종(憲宗)의 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영특하였
는데, 열 세 살 때 형 목종(穆宗)의 용상에 올라가 장난삼아 좌하의
신하들을 읍(揖)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뒷 날 동생의
아들인 무종(武宗)으로부터 빈척( 斥)을 당하여 사지(死地)에서 구
출되어 입산하고, 향엄지한(香嚴智閑) 선사 밑에서 사미가 되었다가
나중에 염관 제안(鹽官齊安)선사 회하에서 서기(書記)를 보았습니다.
당시 황벽스님은 수좌(首座)로 있었는데, 하루는 불전(佛殿)에 예배
하는 대사께 대중사미가 뒤에서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
고..."하는 물음으로 거량하다가 대사로부터 뺨을 두 차례 얻어맞았
습니다. 뒷날 대중사미는 당나라 황제가 되었는데 그가 제 16대 선
종(宣宗)입니다. 선종은 앞날의 일을 생각하고 대사께 '추행사문(추
行沙門)'이란 호(號)를 내렸는데, 당시 상공으로 있던 배휴의 주청(奏
請)에 의하여 '단제선사(斷際禪師)'로 개호(改號)하였던 것입니다. 대
중황제는 전제(前帝)인 무종이 폐불(廢佛)을 한 탓으로 조정의 위신
이 실추된 것을 다시 일으키는 데 지력하였으며, 불교를 중흥시킨
공로가 컸습니다.
<점심법요>는 구사하고 있는 언어들이 간명하고도 평이하며 격
외언구(格外言句)의 고준(高峻)한 말들을 사용치 않으면서도 선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선(禪)의 개론서로서의 성
격뿐만 아니라 조계정전의 정통 선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긴요한
어록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계의 원류에 다다
르기 위해서는 이 <전심법요>를 통한 황벽스님의 문정(門庭)을 통
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전심법요 차례
머리말229
제1편 전심법요(傳心法要)235
서문(序文)………………………………………………………………… 236
1.한 마음 깨치면 부처……………………………………………………239
2.무심(無心)이 도(道)이다 ………………………………………………241
3.근원이 청정한 마음 ……………………………………………………244
4.일체를 여읠 줄 아는 사람이 곧 부처 ………………………………248
5.허공이 곧 법신 …………………………………………………………249
6.마음을 잊어버림…………………………………………………………253
7.법(法)은 무생(無生) ……………………………………………………255
8.도(道)를 닦는다는 것……………………………………………………261
9.말에 떨어지다……………………………………………………………263
10.사문이란 무심을 얻은 사람 …………………………………………263
11.마음이 곧 부처…………………………………………………………266
12.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以心傳心]………………………………269
13.마음과 경계 ……………………………………………………………270
14.구함이 없음 ……………………………………………………………271
15.머문 바 없이 마음이 나면 곧 부처님의 행 ………………………271
16.육조(六祖)는 어째서 조사가 되었는가?……………………………275
제2편 완릉록(宛陵錄) ……………………………………………………279
1.도는 마음 깨치는 데 있다 ……………………………………………280
2.자기의 마음을 알자 ……………………………………………………280
3.기틀을 쉬고 견해를 잊음………………………………………………281
4.마음과 성품이 다르지 않다……………………………………………282
5.모양이 있는 것은 허망하다……………………………………………283
6.한 마음의 법 ……………………………………………………………286
7.모든 견해를 여읨이 무변신보살………………………………………287
8.한 법도 얻을 수 없다 …………………………………………………290
9.한 물건도 없다[無一物]…………………………………………………291
10.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다…………………………………………291
11.보리의 마음 ……………………………………………………………295
12.수은의 비유 ……………………………………………………………296
13.무연자비…………………………………………………………………297
14.정진이란? ………………………………………………………………298
15.무심한 행 ………………………………………………………………298
16.삼계(三界)를 벗어남……………………………………………………299
17.마음이 부처 ……………………………………………………………300
18.유행(遊行) 및 기연(機緣) ……………………………………………306
19.술찌꺼기 먹는 놈………………………………………………………312
20.배휴의 헌시 ……………………………………………………………314
21.여래의 청정선 …………………………………………………………315
22.양의 뿔 …………………………………………………………………324
23.여래의 심부름꾼 ………………………………………………………326
24.무분별지는 얻을 수 없다 ……………………………………………326
25.견성이란? ………………………………………………………………328
26.한 생각 일지 않으면 곧 보리 ………………………………………331
27.둘 아닌 법문[不二法門]………………………………………………333
28.한 마음의 법 가운데서 방편으로 장엄하다 ………………………334
29.인욕선인…………………………………………………………………335
30.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이 곧 수기……………………………………337
31.법신은 얻을 수 없다 …………………………………………………338
32.물을 마셔보아야 물맛을 안다 ………………………………………338
33.참된 사리(舍利)는 볼 수 없다………………………………………339
34.일체처에 마음이 나지 않음 …………………………………………340
35.조계문하생(曹溪門下生) ………………………………………………341
36.계급에 떨어지지 않으려면……………………………………………344
서문(序文)
당나라 하동 배휴는 모으고 아울러 서문을 쓰노라.
대선사가 계셨으니 법휘는 희운이시다. 홍주 고안현 황벽산 축봉
아래 머무시니, 조계 육조의 적손이요 백장의 사법 제자이며 서당의
법질이다.
홀로 최상승의 패를 차고 문자의 인장을 여의셨으며 오로지 한
마음만을 전하고 다시 다른 법이 없으셨으니, 마음의 바탕이 또한
비었는지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고요하여 마치 큰 해바퀴가 허공
가운데 떠올라서 광명이 밝게 비추어 깨끗하기가 가느다란 먼지 하
나도 없느 것과 같으셨다.
이를 증득한 이는 새롭고 오램이 없고 얕고 깊음이 없으며, 이를
설하는 이는 뜻으로 앎을 세우지 않고 종주(宗主)를 내세우지 않으
며 문호를 열어젖히지 않은 채, 당장에 바로 이것이라 생각을 움직
이면 곧 어긋아는 것이다.
이러한 다음에라야 본래의 부처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그 말씀
이 간명하고 그 이치가 곧으시며 그 도는 준엄하고 그 행이 고곡하
시어, 사방의 학자들이 산을 바라보고 달려와 모이고 그 모습을 쳐
다보고 깨치니, 왕래하는 대중의 무리가 항상 일천명이 넘었다.
내가 회창 2년 종릉에 관찰사로재임하면서 산중으로부터 스님
을 고을로 모셔 용흥사에 계시도록 하고 아침 저녁으로 도를 물었으
며, 대중 2년 완릉에 관찰사로 재임할 때에 다시 가서 예로써 맞
이하여 관사에 모시고 개원사에 안거하도록하여 아침 저녁으로 법
을 받아 물러나와서 기록하였는데, 열 가운데 한둘밖에는 얻지 못
하엿다.
이를 마음의 인장[心印]으로 삼아 차고 다니면서 감히 드러내어
발표하지 못하다가, 이제 신령스런 경지에 드신 그 정묘한 뜻이 미
래에 전하여지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드디어 내오놓으니, 문하생인
태주.법건 스님들에게 주어서 옛산의 광당사로 돌아가 장로들과
청법 대중에게 지난 날 몸소 듣던 바와 같은지 다른지를 묻게 하였
다.
때는 당나라 대중 11년 시월 초여드렛날에 쓰노라.
唐河東裵休集幷序
有大禪師 法諱 希運 住洪州高安縣黃檗山鷲峰下 乃曹溪六祖
之嫡孫 百丈之子西堂之姪 獨佩最上乘離文字之印 唯傳一心
更無別法 心體亦空 萬緣 俱寂 如大日輪 昇虛空中 光明 照耀
淨無纖埃 證之者 無新舊無淺深 說之者 不立義解 不立宗主
不開戶유 直下便是 動念卽乖 然後 爲本佛故 其言 簡 其理直
其道峻 其行 孤 四方學徒 望山而趨 覩相而悟 住來海衆 常千
餘人 予會昌二年 廉于鍾陵 自山迎至州 게龍興寺 旦夕問道
大中二年 廉于宛陵 復去禮迎至所部 安居開元寺 旦夕受法 退
而紀之 十得一二 佩爲心印 不敢發揚 今恐入神精義 不聞於未
來 遂出之 授門下僧太舟法建 歸舊山之廣唐寺 問長老法衆 與
往日常所親聞 同異何如也
時唐大中十一年十月初八日序
1. 한마음 깨치면 부처
황벽(黃檗: ?-850) 스님이 배휴(裵休:797-870)에게 말씀하셨
다.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새은 한마음일 뿐 거기에 다른 어
떤 법도 없다. 이마음은 본래로부터 생기거나 없어진 적이 없
으며, 푸르거나 누렇지도 않다. 정해진 틀이나 모양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 속하지도 않고, 새롭거나 낡음을 따질 수도 없
다. 또한 길거나 짧지도 않고, 크거나 작자도 않다. 그것은 모
든 한계와 분량, 개념과 언어, 자취와 상대성을 뛰어 넘어 바
로 그몸 그대로 일 뿐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곧 어긋나 버린다. 이것은 마치 허공과 같아서 끝이 없으며
재어볼 수도 없다. 이 한마음 그대로가 부처일 뿐이니 부처와
중생이 새삼스레 다를 바가 없다. 중생은 다만 모양에 집착하
여 밖에서 구하므로, 구하면 구할수록 점점 더 잃는 것이다.
부처에게 부처를 찾게하고 마음으로 마음을 붙잡는다면, 겁
(劫)이 지나고 몸이 다하더라도 바라는 것은 얻을 수 없는 것
이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마음을 쉬고 생각을 잊어 버리면 부
처가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 마음
그대로가 부처이고, 부처가 곧 중생이다. 그러므로중생이라
해서 마음이 줄지 않고, 부처라 해서 더 늘지도 않는다. 또한
6도만행과 항하사 같은 공덕이 본래 그자체에 갖추어져 있어
서, 닦아서 보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연을 만나면 곧 베
풀고, 인연이 그치면 그대로 고요하나니, 만일 이것이 부처임
을 결정코 믿질 않고 겉모습에 집착하여 수행하려 하고, 그것
으로써 공부를 삼는다면 그 모두가 망상일 뿐 도와는 서로
어긋나게 된다.
이 마음이 곧 부처요 다시 다른 부처가 없으며, 또한 다른
어떤 마음도 없다. 이 마음은 허공같이 밝고 깨끗하여 어떤
모습도 하고 있지않다. 그러므로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움직
이면 법의 몸[法體]과 어긋나는 동시에 모양에 집착하게 된
다. 비롯없는 옛날로부터 모양에 집착한 부처란 없다. 또한
육도만행을 닦아서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곧 차제(次第)* 를
두는 것이니, 차제있는 부처란 본래로 없다.
한마음 깨치면 다시 더 작은 법도 얻을것이 없으니, 이것이
야말로 참된 부처이다. 부처와 중생은 한 마음으로 다름없음
이 허공과 같아서, 그것에는 잡됨도 무너짐도 없고, 온누리를
비추는 햇살과도 같다. 해가 떠올라 온 천하가 두루 밝아질
때라도 허공은 한번도 밝은 적이 없으며, 해가 져서 어둠이
온천하를 덮을지라도 허공은 어두웠던 적이없다. 이렇게 밝고
어두운 경계가 서로 번갈아 바뀐다 해도 허공의 성품은 툭
트이어 변하지 않는 것이니, 부처와 중생의 마음도 꼭 이와같
다. 만약 부처를 관(觀)하면서 깨끗하고 밝으며 속박을 벗어
났으리라는 생각을 떠올린다든가, 중생은 때묻고 어두우며 생
사의 고통이 있으리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한다고 해보자. 이
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수많은 세월이 지나더라도 깨닫지 못
할 것인데, 이는 모양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오직
이 한 마음일 뿐, 거기에 티끌만큼의 어떤 법도 있을 수 없으
니, 이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다. 그런데 지금 도를 배우는
이들은 이 마음 바탕을 깨닫지 모하고 문득 마음에서 마음을
내고 밖에서 부처를 구하면 모양에 집착하여 수행을 하고 있
으니, 모두가 악법이지 깨닫는 도가 아니다."
師謂休曰 諸佛與一切衆生 唯是一心 更無別法 此心 無始
已來 不曾生不曾滅 不靑不黃 無形無相 不屬有無 不計新
舊 非長非短 非大非小 超過一切限量名言 跡對待 當體便
是 動念卽乖 猶如虛空 無有邊際 不可測度 唯此一心 卽是
佛 佛與衆生 更無別異 但是衆生 着相外求 求之轉失
使佛覓佛 將心捉心 窮劫盡形 終不能得 不知息念忘慮 佛
自現前 此心 卽是佛 佛卽是衆生 爲衆生時 此心 不減 爲
諸佛時 此心 不添 乃至六度萬行 河沙功德 本自具足 不假
修添 遇緣卽施 緣息 卽寂 若不決定信此是佛 而欲着相修
行 以求功用 皆是妄想 與道相乖 此心 卽是佛 更無別佛
亦無別心 此心明淨 猶如虛空 無一點相貌 擧心動念 卽乖
法體 卽爲着相 無始已來 無着相佛 修六度萬行 欲求成佛
卽是次第 無始已來 無次第佛 但悟一心 更無少法可得 此
卽眞佛 佛與衆生 一心無異 猶如虛空 無雜無壞 如大日輪
照四天下 日昇之時 明 天下 虛空 不曾明 日沒之時 暗
天下 虛空 不曾暗 明暗之境 自相준奪 虛空之性 廓然不變
佛及衆生 心亦如此
若觀佛 作淸淨光明解脫之相 觀衆生 作垢濁暗昧生死之相
作此解者 歷河沙劫 終不得菩提 爲着相故 唯此一心 更無
微塵許法可得 卽心是佛 如今學道人 不悟此心體 便於心上
生心 向外求佛 着相修行 皆是惡法 非菩提道
2. 무심(無心)이 도(道)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 무심도인 한 살에
게 공양 올리 것만 못하다. 그것은 무심한 사람에게는 일체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진여 그대로인(如如) 몸이 안으로는
목석같아서 움직이거나 흔들리지 않으며, 밖으로는 허공 같아
서 어디에도 막히거나 걸리지 않으며, 주관 객관의 나뉨은 물
론 일정한 방위와 처소도 없다. 후학들이 감히 법에 들어오지
못하는 까닭은 공에 떨어져 닿아 쉴곳이 없을까 두려워해서
인데, 이런 태도는 막상 벼랑을 보고는 물러나서 거기다가 널
리 지견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견을 구하는 자는 쇠털
처럼 많아도 정작 도를 깨친 이는 뿔과 같이 드물 것이다.
문수보살은 이치(理)에, 보현보살은(行)에 해당한다. 이치란
진공(眞空)으로서 걸림없는 도리이고, 행실이란 형식을 벗어
난 끝없는 실천을 말한다.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세지보살은
지혜를 상징한다. 유마(유마)는 깨끗한 이름[정명]이란 뜻인
데, 깨꿋하다는 것은 성품을[성]을 두고하는 말이고, 이름은
모습의 측면에서 한 말이다.성품이 모양과 다르지 않으므로,
그를 정명거사(淨名居士)라 한것이다. 대 보살들로 상징된 위
의 곳들은 누구나가 가진 성품으로, 한마음을 여의지 않으니
깨치면 곧 그대로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도를 배우는 사람들
은 자기 마음에서 깨달으려 하지 않고 마음 밖의 경계인 모
양에 집착하여 오히려 도를 등지고 있다. 간지스강의 모래란
것을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 모래는 모든 불보살과 제
석, 범천 및 하늘 무리들이 자기를 밟고 지나간다 해도 기뻐
하지 않고, 소나 양.벌레.개미 등이 자기를 밟고 지난다 해도
성내지 않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간지스강의 모래는 보
배나 향기를 탐하지도 않으며, 똥.오줌 냄새나는 더러운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이 곧 무심한 마음으로서. 모든
모양을 떠난 것이다. 중생과 부처과 다를 것이 없으니, 이렇
게 무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그 당장 무심한 상태가 될 수 없다면, 그 사람
은 여러 겁 동안 수행해도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것은
성문.연각.보살의 단계적인 공부에 얽매여 해탈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마음을 증득하는 데는 더디고 빠른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법문을 듣는 즉시 한 생각에 무심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10신(十信).10주(十住).10행(十行).10회향(十
廻向)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무심을 얻기도 한다. 그러므로 더
디거나 빠르거나 무심을 얻으면 그만이지 거기에 더 닦고 증
득할 것이 없으며, 참으로 얻었다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진실
하여 허망하지 않는 것이니 당장 한 생각에 깨친 것과 10지
를 거쳐 깨친 것이 효용에 있어서는 꼭 마찬가지여서 다시
더 깊고 얕음의 차이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다만 긴 세월 동
안 헛되이 괴로움을 받을 뿐이다.
선악(善惡)을 짓는 것은 모두 모양에 집착하기 때문인데 모
양에 집착하여 선악을 짓게 되면. 허망하게 윤회의 수고로움
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그 무엇도 한마디 말에 본래의 법을
문득 스스로 깨닫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 법 그대로가 마음
이어서 마음 밖에는 아무 법도 없으며, 이 마음 그대로가 법
이어서 법 밖에는 어떠한 마음도 없다. 그런데 마음 그 자체
는 또한 마음이라 할 것도, 무심이라 할 것도 없다.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없앤다면 마음이 도리어 있게 된다. 다만 묵묵
히 계합(契合)할 따름이다. 모든 사유와 이론이 끊어졌으므로
말하기를 '언어의길이 끊기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졌다'고 하
였다. 이 마음이 본래 청정한 부처인데 사람마다 모두 그것을
지녔으며 꿈틀거리는 벌레까지도 불보살과 한 몸으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망상 분별 때문에 갖가지 업과를 지을 뿐이
다.
供養十方諸佛 不如供養一箇無心道人 何故 無心者 無一切
心也 如如之體 內如木石 不動不搖 外如虛空 不塞不碍 無
能所無方所 無相貌無得失 趨者 不敢入此法 恐落空無棲泊
處 故 望崖而退 例皆廣求知見 所以 求知見者 如毛 悟道
者 如角
文殊 當理 普賢 當行 理者 眞空無 之理 行者 離相無盡
之行 觀音 當大慈 勢至 當大智 維摩者 淨名也 淨者 性也
名者 相也 性相不異故 號淨名 諸大菩薩所表者 人皆有之
不離一心 悟之卽是 今學道人 不向自心中悟 乃於心外 着
相取境 皆與道 背 恒河沙者 佛說是沙 諸佛菩薩 釋梵諸天
步履而過 沙亦不喜 牛羊筮蟻 踐踏而行 沙亦不怒 珍寶馨
香 沙亦不貪 糞尿臭穢 沙亦不惡 此心 卽無心之心 離一切
相
衆生諸佛 更無差別 但能無心 便是究竟
學道人 若不直下無心 累劫修行 終不成道 被三乘功行拘繫
不得解脫 然 證此心 有遲疾 有聞法 一念 便得無心者 有
至十信十住十行十廻向 乃得無心者 有至十地 乃得無心者
長短得無心 乃住 更無可修可證 實無所得 眞實不虛 一念
而得 與十地而得者 功用恰齊 更無深淺 祈是歷劫 枉受辛
勤耳 造惡造善 皆是着相 着相造惡 枉受輪廻 着相造善 枉
受勞苦 摠不如言下 便自認取本法 此法 卽心 心外無法 此
心 卽法 法外無心 心自無心 亦無無心者 將心無心 心劫成
有 默契而已 絶諸思議故 曰 言語道斷 心行處滅 此心 是
本源淸淨佛 人皆有之 蠢動含靈 與諸佛菩薩 一體不異 祈
爲妄想分別 造種種業果
3. 근원이 청정한 마음
본래 부처 자리에는 실로 그 어떤 것도 없다. 툭 트이고 고
요하여 밝고 오묘하며 안락할 따름이다. 스스로 깊이 깨달으
면 당장 그 자리이므로 원만구족하여 다시 모자람이 없다. 설
사 3아승기겁을 정진 수행하여 모든 지위를 거치더라도 한
생각 증득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원래 자기 부처를 깨달을
뿐, 궁극의 경지에 있어서는 어떠한 것도 거기에 더 보탤 것
이 없다. 깨닫고 난 다음 지난 세월의 오랜 수행을 돌이켜 보
면 모두 꿈속의 허망한 짓일 뿐이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내
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 있어서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느
니라. 만약 얻은 바가 있었다면,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
기하시지 않았을 것이다'고 하셨다. 도 말씀하시기를, '이 법
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으니, 이것을 깨달음이라 한다'고
하셨다. 본래 청정한 이 마음은 중생의 세계와 부처님의 세
계, 산과 물, 모양있는 것과 없는 것 및 온 시방법계가 다 함
께 평등하여 너다 나다 하는 생각이 없다. 이 본래 근원이 청
정한 마음은 항상 두렷이 밝아 두루 비추고 있는데도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見
聞覺知]으로 마음을 삼고, 그것에 덮이어서 끝내는 정교하고
밝은 본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에라도 무심하기
만 하면, 본 마음자리가 스스로 나타나서 밝은 햇살이 공중에
떠오르듯 시방법계를 두루 비추어 장애가 없게 된다. 그러므
로 도를 배우는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일거일동을
마음이라고 오인하는 것이다. 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텅 비워 버리면 마음 길이 끊기어서 어느 곳에라도 들어갈
틈이 없느니라. 다만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곳에서 본래 마
음을 인식할지라도, 본래 마음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데에
도 속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떠나 있지도 않느니
라. 그러므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가운데 다만 견해를 일
으키거나 생각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며, 그렇다고 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떠나 마음이나 법을 찾아서도 안되며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버리고 법을 취해서도 안된다.
그리하면 즉(卽)하지도 않고 여의지도[離] 않으며, 머물지도
집착하지도 않으며, 종횡으로 자재하여 어느 곳이든지 도량
(道場)아님이 없다.
세상 사람들은 모든 부처님께서 마음 법을 전한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 밖에 따로 깨닫고 취할 만한 법이 있다고 여긴
다. 그리하여 마음을 가지고 법을 찾으면서, 마음이 곧 법이
고 법이 곧 마음인 줄 알지 못한다. 마음을 가지고 다시 마음
을 찾지 말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는 천만 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깨칠 날은 없을 것이다. 당장 무심함만 같지 못할 것
이니, 그 자리가 본래 법이다. 마치 힘센 장사가 자기 이마에
보배 구슬이 있는 줄을 모르고 밖으로 찾아 온 시방세계를
두루 다니며 찾아도 마침내 얻지 못하다가 지혜로운 이가 그
것을 가르쳐 주면 본래 구슬은 예와 다름이 없음을 보는 것
과 같은 일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도 자기 본심을 미혹하여
그것이 부처임을 알지 못하고 밖으로 찾아다니면서 의식적으
로 수행을 하며 차례를 밝아서 깨달으려고 하지만 억겁 동안
애써 구한다고 해도 영원히 도를 이루지 못할터인즉 당장 무
심함만 못하다.
일체의 법이 있다 할 것도 얻었다 할 것도 없고, 의지할 것
도 머무를 것도 없으며, 주관이니 객관이니 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망념을 일으키지 않는 그 자리
가 바로 깨치는 자리다. 그때 가서는 다만 본래 마음인 부처
를 깨달을 뿐 많은 세월을 거친 노력은 모두 헛된 수행이다.
마치 힘센 장사가 구슬을 얻은 것은 자기가 본래 갖고 있던
구슬을 얻은 것일 뿐, 밖으로 찾아다녔던 노력과는 상관이 없
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내가 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실제로는 얻었다 할 것이 없으나 사람들이 믿
지 않을까 염려스럽기 때문에 다섯 가지 눈[五眼]과 다섯 가
지 말[五語]로써 끌어다 보였노라. 이것은 진실되이 허망하지
않은 것이니, 이것이 맨 으뜸되는 뜻의 이치[弟一義諦]이니라'
고 하셨다.
本佛上 實無一物 虛通寂靜 明妙安樂而已 深自悟入 直下
便是 圓滿具足 更無所欠 縱使三祈精進修行 歷諸地位 及
一念證時 祈證元來自不 向上 更不添得一物 却觀歷劫功用
摠是夢中妄爲 故 如來云 <我於阿뇩菩提 實無所得 若有所
得 燃燈佛 卽不與我授記> 又云 <是法 平等 無有高下 是
名菩提> 卽此本願淸淨心 與衆生諸佛世界 山河有相無相
十方界 一切平等 無彼我相 此本願淸淨心 堂自圓明 照
世人 不悟 祈認見聞覺知爲心 爲見聞覺知所覆 所以不覩精
明本體 但直下無心 本體自現 如大日輪 昇於虛空 照十
方 更無障 故 學道人 唯認見聞覺知施爲動作 空却見聞
覺知 卽心路絶 無入處 但於見聞覺知處 認本心 然 本心
不屬見聞覺知 亦不離見聞覺知 但莫於見聞覺知上 起見解
亦莫於見聞覺知上 動念 亦莫離見聞覺知覓心 亦莫捨見聞
覺知取法 不卽不離 不住不着 縱橫自在 無非道場
世人 聞道諸佛 皆傳心法 將謂心上 別有一法可證可取 遂
將心覓法 不知心卽是法 法卽是心 不可將心更求於心 歷千
萬劫 終無得日 不如當下無心 便是本法 如力士 迷額內珠
向外求覓 周行十方 終不能得 智者指之 當時 自見本珠如
故 故 學道人 迷自本心 不認爲佛 遂向外求覓 起功用行
依次第證 歷劫勤求 永不成道 不如當下無心 決定知一切法
本無所有 亦無所得 無依無住 無能無所 不動妄念 便證菩
提 及證道時 祈證本心佛 歷劫功用 是虛修 如力士得珠
時 祈得本額珠 不關向外求覓之力故 佛言 <我於阿뇩菩提
實無所得 恐人不信故 引五眼所見 五語所言 眞實不虛 是
第一義諦>
4. 일체를 여윌 줄 아는 사람이 곧 부처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의심치 말아야 한다. 4대(四
大)로 몸을 삼으나, 4대에는 '나(我)'가 없고, 그 '나'에도 또
한 주재(主宰)가 없다. 그러므로 이 몸에는 '나'도 없고 '주재
'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오음(五陰)으로 마음을 삼지만,
이 5음 역시 '나'도 '주재'도 없다. 그러므로 마음 또한 '나'
도 '주재'도 없을을 알아야 한다. 6근.6진.6식이 화합하여 생
멸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18계(十八界)가 이미 공(空)하여
일체가 모두 공하고, 오직 본래의 마음이 있을 뿐, 맑아서 호
호탕탕 걸림이 없다. 분별의 양식[識食]과 지혜의 양식[智食]
이 있다. 즉 4대로 된 몸은 주림과 질병이 근심거리인데, 알
맞게 영양을 공급하여 탐착을 내지 않는 것이 '지혜의 양식'
이고, 제멋대로 허망한 분별심을 내어, 입에 맞는 것만 구하
면서 싫어하여 버릴 줄을 모르는 것을 '분별의 양식'이라 한
다.
성문(聲聞)이란 소리를 듣고 깨닫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다. 그들은 자기 마음 자리를 깨닫지 못하고 설법을 듣고 거
기에 알음알이를 일으킨다. 혹은 신통(神通)이나 상서로운 모
양.언어.동작. 등에 의지하여 보리.열반이 있다는 설법을 듣고
3아승기겁을 수행하여 불도를 이루려 한다. 이것은 모두 성문
의 도(道)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을 성문불(聲聞佛)이라 한다.
다만 당장에 자기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단박 깨달으면 될
뿐이다.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으며, 행도 닦을 것이 없으면,
이것이 가장 으뜸가는 도이며 참으로 여여한 부처이니라. 도
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 생기는 것만을 두려워하여곧 도와
는 멀어지는 것이니, 생각마다 모양이 없고 생각마다 하염 없
음이 곧 부처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부처가 되려고 한다
면, 불법을 모조리 배울 것이 아니라 오직 구함이 없고 집착
이 없음을 배워야 한다. 구함이 없음면 마음이 나지 않고, 집
착이 없으면 마음이 없어지지 않나니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
도 않는 것이 곧 부처이니라.
學道人 莫疑 四大 爲身 四大無我 我亦無主 故知此身 無
我亦無主 五陰 爲心 五陰 無我亦無主 故知此心 無我亦無
主 六根六塵六識 和合生滅 亦復如是 十八界旣空 一切皆
空 唯有本心 蕩然淸淨 有識食有智食 四大之身 飢瘡 爲患
隨順給養 不生貪着 謂之智食 恣情取味 妄生分別 唯求適
口 不生厭離 謂之識食 聲聞者 因聲得悟故 謂之聲聞 但不
了自心 於聲敎上 起解 或因神通 或因瑞相言語運動 聞有
菩提涅槃 三僧祈劫修成佛道 皆屬聲聞道 謂之聲聞佛 唯直
下 頓了自心 本來是佛 無一法可得 無一行可修 此是無上
道 此是眞如佛 學道人 祈 一念有 卽與道 隔矣 念念無相
念念無爲 卽是佛 學道人 若欲得成佛 一切佛法 摠不用學
唯學無求無着 無求 卽心不生 無着 卽心不滅 不生不滅 卽
是佛
5. 허공이 곧 법신
팔만 사천 법문은 팔만사천 번뇌를 치료하는 것으로서, 다
만 대중을 교화 인도하는 방편일 뿐 일체 법이란 본래 없다.
그러므로 여의는 것이 곧 법이요, 여의줄 아는 이가 곧 부처
이다. 일체 법을 여의기만 하면 얻을 만한 법이 없으니, 도를
배우는 사람이 깨닫는 비결을 터득하고자 한다면, 마음에 어
느 것이라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법신이 곧 허
공이며 허공이 곧 법신인데도 '법신이 허공계에 두루하고 있
다'고 하면, 사람들은허공 가운데에 법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법신 그대로가 허공이며 허공 그대로가 법신임을
모른다. 만약 결정코 허공이 있다고 한다면 법신은 허공이 아
니다. 그렇다고 결정코 법신이 있다고 한다면 법신이 허공이
아니다. 다만 허공의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허공이 곧 법신
이니라. 법신의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법신이 곧 허공이니라.
허공과 법신은 전혀 다른 모양이 없으며, 번뇌와 보리도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이니, 일체의 모양을 여윔이 곧 부처이니라.
범부는 경계를 취하고 도를 닦는 사람은 마음을 취하나니,
마음과 경계를 함께 잊어야만 참된 법이다. 경계를 잊기는 오
히려 쉬우나 마음을 잊기는 매우 어렵다. 사람들이 마음을 감
히 잊어버리지 못하는 까닭은 공(空)에 떨어져 부여 잡을 바
가 없을까 두려워해서인데, 이는 공이 본래 공이랄 것도 없
고, 오로지 한결 같은 참된 법계[一眞法界]임을 몰라서 그런
갈 견해이니, 밖으로 경계를 좇으면서 그것을 마음이라고 잘
못 알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것은 도둑을 제자식으로 잘
못 아는 격이다.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계.정.혜를 세워 말씀하
신 것인데, 애초부터 번뇌가 없다면 깨달음인들 어디 있겠느
냐?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일체법을
말씀하신 것은 일체의 마음을 없애기 위함이로다. 나에게 일
체의 마음이 없거니 일체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셨
다. 본래 근원이 청정한 부처에다가는 다시 어떤 것도 덧붙이
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마치 허공이 수많은 보배구슬로 장엄
할지라도 마침내 머무를 수 없는 것과 같다. 불성(佛性)도 허
공과 같아서 비록 무량한 공덕과 지혜로써 장엄한다 하더라
도 마침내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본래 성품이 미혹되
어 더더욱 보지 못할 뿐이다.
이른바 심지법문(心地法門)이란 만법이 이 마음을 의지하
여 건립되었으므로, 경계를 만나면 마음이 있고 경계가 없으
면 마음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깨끗한 성품 위에다가 경계에
대한 알음알이를 굳이 짓지 말라. 또 '정혜(定慧)의 비추는
작용이 역력히 밝고 고요하면서도 또렷하다[寂寂惺惺]'든가, '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見聞覺知]'는 것은 모든 경계 위에서
알음알이를 짓는 것이니, 이 말은 임시로 중하근기의 사람들
을 위하여 설법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몸소 깨닫고자 하는 사
람은 이와 같은 견해를 지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이것은 모두
경계의 법이므로 유견(有見)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일체
법에 대해서 있다거나 없다는 견해를 짓지만 않으면, 곧 법을
보는 것이다.
八萬四千法門 對八萬四千煩惱 祈是敎化接引門 本無一切
法 離卽是法 知離者是佛 但離一切煩惱 是無法可得 學道
人 若欲得知要訣 但莫於心上 着一物 言佛眞法身 猶若虛
空 此是喩 法身 卽虛空 虛空 卽法身 常人 謂法身 虛空
處 虛空中 含容法身 不知法身 卽虛空 虛空 卽法身也 若
定言有虛空 虛空 不是法身 若定言有法身 法身 不是虛空
但莫作虛空解 虛空 卽法身 莫作法身解 法身 卽虛空 虛空
與法身 無異相 佛與衆生 無異相 生死與涅槃 無異相 煩惱
與菩提 無異相 離一切相 卽是佛 凡夫 取境 道人 取心 心
境雙忘 乃是眞法 忘境 猶易 忘心 至難 人不敢忘心 恐落
空無撈摸處 不知空本無空 唯一眞法界耳
此靈覺性 無是已來 與虛空同壽 未曾生未曾滅 未曾有未曾
無 未曾穢未曾淨 未曾喧未曾寂 未曾少未曾老 無方所無內
外 無數量無形相 無色象無音聲 不可覓不可求 不可以智慧
識 不可以言語取 不可以境物會 不可以功用到 諸佛菩薩
與一切蠢動含靈 同此大涅槃性 性卽是心 心卽是佛 佛卽是
法 一念離眞 皆爲妄想 不可以心 更求於心 不可以佛 更求
於佛 不可以法 更求於法 故 學道人 直下無心 默契而已
擬心卽此 以心傳心 此爲正見 愼勿向外逐境 認境爲心 是
認賊爲子 爲有貪瞋癡 卽立戒定慧 本無煩惱 焉有菩提 故
祖師云 <佛說一切法 爲除一切心 我無一切心 何用一切
法> 本源淸淨佛上 更不着一物 譬如虛空 雖以無量珍寶莊
嚴 終不能住 佛性 同虛空 雖以無量功德智慧 莊嚴 終不能
住 但迷本性 轉不見耳 所謂心地法門 萬法 皆依此心建立
遇境卽有 無境卽無 不可於淨性上 轉作境解 所言定慧 鑑
用 歷歷 寂寂惺惺 見聞覺知 皆是境上作解 暫爲中下根人
說 卽得 若欲親證 皆不可作如此見解 盡是境法 有沒處 沒
於有地 但於一切法 不作有無見 卽見法也
6. 마음을 잊어버림
9월 1일 대사께서는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달마스님께서는 중국에 오신 이후로 오로지 한 마음만을
말씀하셨고 한 법만을 전하셨다. 도한 부처로써 부처에게 전
하실 뿐 다른 부처는 말씀하지 않으셨고, 법으로써 법을 전하
시고 다른 법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법이란 설명될 수 없는
법이며, 부처란 취할 수 없는 부처로서 본래 근원이 청정한
마음이다. 오직 이 일승(一乘)만이 사실이고, 나머지 이승(二
乘)은 참됨이 아니다.
반야는 지혜라는 뜻으로서, 모양이 없는 본래 마음이다. 범
부는 도(道)에 나아가지 않고 단지 육정(六情)만을 함부로 하
여 육도(六道)에 빠져 방황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
모든 견해를 일으키면 곧바로 외도에 떨어진다. 또한 남(生)
이 있음을 보고 없어짐으로 나아가면 성문도(聲聞道)에 떨어
지고, 남(生)이 있음을 보지 않고 오로지 없어짐만을 보면 연
각도(緣覺道)에 떨어진다. 법은 본시 남(生)이 없으므로 이제
또한 없어짐도 없으니, 이 두 견해를 일으키지 않아서 싫어
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며 일체의 모든 법이 오직 한 마음이
어야만 그런 다음에 불승(佛乘)이 된다. 범부는 모두가 경계
를 좇아 마음을 내서 좋고 싫음이 있다. 만일 경계가 없기를
바란다면 그 마음을 잊어야 하고, 마음을 잊으면 경계가 텅
비며, 경계가 공적하면 곧 마음이 없어지느리라. 만약 마음을
잊지 못하고 경계만을 없애려 한다면, 경계는 없어지지 않으
면서 오히려 분잡히 시끄러움만 더할 뿐이다. 그러므로 만법
은 오직 마음일 뿐이며, 그 마음 조차도 얻을 수 없는데 다시
무엇을 구하겠느냐? 반야를 배우는 사람이 얻을 만한 어떤
법도 없는 줄 알게 되면, 삼승(三乘)에는 뜻이 끊어져 오직
하나의 진실뿐이다. 증득하여 깨달았다고 할 것이 없는 자리
인데도 '나는 깨달았노라'고 한다면,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을
내는 사람이다. <법화경>회상에서 옷을 떨치고 나가버린 사
람들이 모두가 이러한 무리들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
내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있어서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
다'고 하셨으니, 그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다.
범부 중생들은 다만 죽는 순간에 오온(五蘊)이 모조리 비고
사대(四大)는 '나(我)'가 없음을 본다. 그러나 참된 마음은 모
양이 없어서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다. 태어 났다고 해서
성품이 오는 것이 아니고 죽었다고 해서 성품이 가는 것이
아니다. 담연히 둥글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한결같다. 이
렇게 될 수만 있다면 그 자리에서 단박 깨쳐 삼세에 얽매이
지 않는 것이니, 곧 세간을 뛰어넘은 사람이다. 털끝만큼이라
도 나아가는 향방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만일 모든 부처
님께서 맞이해 주시는 것 같은 가지가지 신기한 모습을 보게
될지라도 역시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다만 스스로 마
음을 잊고서 법계와 같아지면, 바로 자재(自在)를 얻은 것이
니, 이것이 곧 요긴한 대목이다."
九月一日 師謂休曰 「自達磨大師到中國 唯說一心 唯傳一
法 以佛傳佛 不說餘佛 以法傳法 不說餘法 法卽不可說之
法 佛卽不可取之佛 乃是本源淸淨心也 唯此一事實 餘二則
非眞 般若 爲慧 此慧 卽無相本心也 凡夫 不趣道 有恣六
情 乃行六道 學道人 一念計生死 卽落魔道 一念起諸見 卽
落外道 見有生趣其滅 卽落聲聞道 不見有生 唯見有滅 卽
落緣覺道 法本不生 今亦無滅 不起二見 不厭不 一切諸
法 唯是一心 然後 乃爲佛乘也 凡夫 皆逐境生心 心遂 厭
若欲無境 當忘其心 心忘 卽境空 境空 卽心滅 若不忘心而
但除境 境不可除 祈益紛擾 故 萬法 唯心 心亦不可得 復
何求哉 學般若人 不見有一法可得 絶意三乘 唯一眞實 不
可證得 謂我能證能得 皆增上慢人 法華會上 拂衣而去者
皆斯徒也 故 佛言 <我於菩提 實無所得> 默契而已 凡人
臨欲終時 但觀五蘊皆空 四大無我 眞心無相 不去不來 生
時 性亦不來 死時 性亦不去 湛然圓寂 心境一如 但能如是
直下頓了 不爲三世所拘繫 便是出世人也 切不得有分毫趣
向 若見善相 諸佛來迎 及種種現前 亦無心隨去 若見惡相
種種現前 亦無心怖畏 但自忘心 同於法界 便得自在 此卽
是要節也」
7. 법(法)은 무생(無生)
10월 8일 대사께서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화성(化城)이란 이승(二乘) 및 10지.등각.묘각을 말한 것이
다. 이것은 모든 중생을 이끌어 주기 위한 방편으로 세운 가
르침이므로, 글자 그대로 모두 변화하여 보인 성곽이다. 또한
보배가 있는 곳이란 다름 아닌 참된 마음으로서의 본래 부처
이며, 자기 성품의 보배를 말한다. 이 보배는 사량분별에 속
하지도 않으니,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세울 수 없다.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주관도 객관도 없는데 어는 곳에 성(城)
이 있겠느냐? 만약 '이곳을 이미 화성이라 한다면 어느 곳이
보배 잇는 곳인가?' 하고 묻는다면, 보배 있는 곳이란 가리킬
수 없는 것인데, 가리킨다면 곧 방위와 처소가 있게 되므로,
참으로 보배가 있는 곳이 될 수 없다. 그래서 경에서도 말씀
하시기를 '가까이 있다' 고만 했을 뿐이다. 그것을 얼마라고
한정 할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그 자체에 계합하여 알면 되
는 것이다.
천제(闡提)란 믿음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6도의
모든 중생들과 이승(二乘)들은 부처님의 과<佛果>가 있음을
믿지 않으니, 그들을 모두 선근(善根)이 끊긴 천제라 한다.보
살이란 불법이 있음을 굳게 믿고 대승.소승을 차별하지 않으
며, 부처와 중생을 같은 법성(法性)으로 본다. 이들을 가리켜
선근이 있는 천제라고 한다. 대개 부처님의 설법<聲敎>을 듣
고 깨닫는 사람을 성문(聲聞)이라 하고, 인연을 관찰하여 깨
닫는 사람을 연각(緣覺)이라 한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에서
깨닫지 못한다면, 비록 부처가 된다 하더라도 역시 성문불이
라 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교법(敎法)에 있어서는 깨닫
는 것이 많으나, 마음 법<心法>에 있어서는 깨닫지 못하는
데, 이렇게 하면 비록 겁을 지나도록 수행을한다 해도 마침내
본래의 부처는 아니다. 만약 마음에서 깨닫지 못하고서 교법
에서 깨닫는다면, 마음은 가벼이 여기고 가르침만 중히 여겨
흙덩이나 쫓는 개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본 마음을
잊었기 때문이다. 본래 마음에 계합하면 될 뿐, 법을 구할 필
요가 없으니, 마음이 곧 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계가 마음을 가로막고 현상<事>이
본체<理>를 흐리게 하여, 의례껏 경계로부터 도망쳐 마음을
편히 하려 하고, 현상을 물리쳐서 본체를 보존하려 한다. 그
러나 이들은 오히려 마음이 경계를 가로막고, 본체가 현상을
흐리게 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경
계는 저절로 비고, 본체를 고요하게만 하면 현상은 저절로 고
요해지므로 거꾸로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보통
마음을 비우려 들지 않는 까닭은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해
서인데, 자기 마음이 본래부터 비었음을 모르는 것이다. 어리
석은 사람의 경우는 경계는 없애려고 하면서 마음은 없애지
않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마음을 없애지 경계를 없애지
않고, 나아가 보살은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모든 것을 다 버
리고 자기가 지은 복덕마저도 탐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버
림에는 세 등급이 있다. 즉 안팎의 몸과 마음을 다 버림이 허
공과 같으며, 어디에고 집착하지 않은 다음에 곳에 따라 중생
에게 응하되, 제도하는 주체도 제도될 대상도 모두 잊는 것이
'크게 버림<大捨>'이다. 만약 한편으로 도를 행하고 덕을 펴
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을 이바지하여 놓아 버리고 바라는 마
음이 전혀 없으면 '중간의 버림<中捨>'이다. 또한 착한 일을
널리 행하면서도 바라는 바가 있다가 법을 듣고서 빈<空>
줄을 알고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은 '작은 버림<小捨>'이다.
큰 버림은 마치 촛불이 바로 정면에 있는 것과 같아서 더
미혹될 것도 깨달을 것도 없으며, 중간 버림은 촛불이 옆에
있는 것 같아서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며, 작은 버림은 마
치 촛불이 등 뒤에 있는 것 같아서 눈앞의 구덩이나 함정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보살의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일체를
다 버린다. 과거의 마음을 버릴 수 없음이 미래를 버린 것이
니, 이른바 3세를 함께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여래께서 가섭에게 법을 부촉하실 때로부터 마음으로써 마
음에 전하였으니, 마음과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 허공에다
도장을 찍으면 아무 문체가 찍히지 않고, 그렇다고 물건에다
가 도장을 찍으면 법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써
마음에 새기는 것이니,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다. 새김
<能>과 새겨짐<所>이 함께 계합하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어
서, 그것을 얻은 사람은 매우 적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없음
<無心>을 말하는 것이고, 얻음도 얻었다 할 것이 없는 것이
다.
부처님께서는 세 몸<三身>이 있는데, 법신은 자성의 허통
(虛通)한 법을, 보신(報身)은 일체 청정한 법을, 화신(化身)은
6도만행법을 말한다. 번신의 설법은 언어.형상.문자로써 구할
수 없으며, 설할 바도 없고 증득할 바도 없이 자성이 허통(虛
通) 할 뿐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한 법도 설할 만한
법이 없음을 설법이라 이름한다'고 하셨다. 보신이나 화신은
근기에 따라 감응하여 나타나고, 설하는 법 또한 현상에 따르
고 근기에 알맞게 섭수하여 교화하는 것이므로, 이 모두는 참
다운 법이 아니다. 그래서 '보신.화신은 참된 부처가 아니며,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다'고 하신 것이다.
이른바 밝고 정밀한 성품인 일정명(一精明)이 나뉘어 6화합
(六和合)이 된다고 하였다. 일정명이란 바로 한 마음<一心>
이요, 6화합이란 6근(根)이다. 이 6근은 각기 6진(塵)과 합하
는데, 눈은 색과, 귀는 소리와, 코는 냄새와, 혀는 맛과, 몸은
촉감과, 뜻은 법과 제각기 합한다. 그런 가운데 6식(識)을 내
어 18계(十八界)가 된다. 만약 이 18계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알면, 6화합이 하나로 묶이어 일정명이 된다. 일정명
이란 곧 마음이다. 그런데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것을 모두
알면서도, 일정명과 6화합에 대해 알음알이 만을 지어서 드디
어는 교설에 묶이어 본래 마음에 계합치 못한다. 여래께서는
세간에 나타나시어 일승(一乘)의 참된 법을 말씀하시려 하나,
중생들은 부처님을 믿지 않고 비방하여 고통의 바다에 빠지
게 될 것이며, 그렇다고 부처님께서 전혀 말씀하시지 않는다
면 설법에 인색한 간탐(간貪)에 떨어져 중생을 위하는 것이
못된다고 하시사, 현묘한 도를 널리 베푸시고 방편을 세워 삼
승(三乘)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대승과 소승의 방편이
생겼고, 깨달음에도 깊고 얕음의 차이가 있게 되었으나, 이것
은 모두 근본 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일
승의 도가 있을 뿐, 나머지 둘은 참된 것이 아니다'고 하셨
다. 그러나 마침내는 한 마음의 법<一心法>을 나타내시지 못
했기 때문에 가섭을 불러 법좌를 함께 하시사, 따로이 그 '한
마음'을 부촉하셨으니, 이는 언설을 떠난 법이다. 이 한 가닥
의 법령은 따로이 행해지는데, 만약 계합하여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즉시 부처님 지위에 이른다."
十月八日 師謂休曰 言化城者 二乘及十地等覺妙覺 皆是權
立接引之敎 爲化城 言寶所者 及眞心本佛 自性之寶 此
寶 不屬情量 不可建立 無佛無衆生 無能無所 何處有城 若
問此旣是化城 何處 爲寶所 寶所 不可指 指卽有方所 非眞
寶所也 故 云 <在近而已> 不可定量言之 但當體 會契之
卽是 言闡提者 信不具也 一切六道衆生 乃至二乘 不信有
佛果 皆謂之斷善根闡提 菩薩者 深信有佛法 不見有大乘小
乘 佛與衆生 同一法性 乃謂之善根闡提 大抵因聲敎而悟者
謂之聲聞 觀因緣而悟者 謂之緣覺 若不向自心中悟 雖至成
佛 亦謂之聲聞佛 學道人 多於敎法上 悟 不於心法上 悟
雖歷劫修行 終不是本佛 若不於心 悟 乃至於敎法上 悟 卽
輕心重敎 遂成逐塊 忘於本心故 但契本心 不用求法 心卽
法也 凡人 多爲境 心事 理 常欲逃境以安心 屛事以存理
不知乃是心 境理 事 但令心空 境自空 但令理寂 事自寂
勿到用心也 凡人 多不肯空心 恐落於空 不知自心本空 愚
人 除事不除心 智者 除心不除事 菩薩 心如虛空 一切俱捨
所作福德 皆不貪着 然 捨有三等 內外身心 一切俱捨 猶如
虛空 無所取着然後 隨方應物 能所皆忘 是爲大捨 若一切
行道布德 一邊旋捨 無希望心 是爲中捨 若廣修衆善 有所
希望 聞法知空 遂乃不着 是爲小捨 大捨 如火燭在前 更無
迷悟 中捨 如火燭在傍 或明或暗 小捨 如火燭在後 不見坑
穽 故 菩薩 心如虛空 一切俱捨 過去心不可得 是過去捨
現在心不可得 是現在捨 未來心不可得 是未來捨 所謂三世
俱捨 自如來付法迦葉已來 以心印心 心心不異 印着空 卽
印不成文 印着物 卽印不成法故 以心印心 心心不異 能印
所印 俱難契會故 得者少 然 心卽無心 得卽無得
佛有三身 法身 說自性虛通法 報身 說一切淸淨法 化身 說
六度萬行法 法身說法 不可以言語音聲 形相文字而求 無所
說無所證 自性虛通而已 故 曰 <無法可說 是名說法> 報
身化身 皆隨機感現 所說法 亦隨事應根 以爲攝化 皆非眞
法 故 曰 <報身 非眞佛 亦非說法者>
所言同是一精明 分爲六和合 一精明者 一心也 六和合者
六根也 此六根 各與塵合 眼與色合 耳與聲合 鼻與香合 舌
與味合 身與觸合 意與法合 中間 生六識 爲十八界 若了十
八界無所有 束六和合 爲一精明 一精明者 卽心也 學道人
皆知此 但不能免作一精明六和合解 遂被法 不契本心 如
來現世 欲說一乘眞法則衆生 不信興謗 沒於苦海 若都不說
則墮�h貪 不爲衆生 溥捨妙道 遂說方便 說有三乘 乘有大
小 得有淺深 皆非本法 故 云 <唯有一乘道 餘二則非眞>
然 終未能顯一心法故 召迦葉同法座 別付一心 離言說法
此一枝法 別行 若能契悟者 更至佛地矣
8. 도(道)를 닦는 다는 것
배휴가 물었다.
"도란 무엇이며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무슨 물건이길래 수행하려 하느냐?"
"그렇다면 제방의 종사가 서로 이어받아 참선하여 도를 배
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둔근기(鈍根機)를 이끌어 주는 말이니 의지할 것이 못되느
니라."
"그것이 둔근기를 위한 말이라고 하신다면, 상근기(上根機)
를 위해서는 무슨 법을 설하시는지요?"
"상근기라면 어디 남에게서 찾으려 하겠느냐? 저 자신마져
도 얻지 못하거늘, 더구나 따로 뜻에 합당한 법이 어디 있겠
느냐? '법이란 법이 모슨 모양이더냐?'고 한 경(經)의 말씀을
보지 못했느냐?"
"그렇다면 도무지 구하여 찾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
까?"
"그렇게만 된다면 마음의 힘이 덜리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온통 끊어져 버려서 '없다는 것'도 가당치 않겠
습니다."
"누가 그것을 없다 하였으며, 또 그것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너는 찾으려 하느냐?"
"스님께서는 이미 찾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서는, 어찌
하여 그것을 끊지도 말라 하십니까?"
"찾지 않으면 그 자리는 바로 '쉼'인데, 누가 너더러 끊으
라 하였느냐? 눈앞의 허공을보아라. 어떻게 저것을 끊겠느냐?
여기에 알음알이를 내는구나."
"사람들로 더불어 알음알이를 내지 않음이 마땅한 것입니
까?"
"내 너를 방해한 적은 한번도 없거니와, 요컨대 알음알이란
뜻[情]에 속한 것으로서 뜻이 생기면 지혜가 막히게 되느니
라."
"여기에 있어서 뜻을 내지 않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뜻을 내지 않는다면 누가 옳다고 말하겠느냐?"
問 如何是道 如何修行
師云 道是何物 汝欲修行
問 諸方宗師相承 參禪學道 如何
師云 引接鈍根人語 未可依憑
云 此皆是引接鈍根人語 未審 接上根人 復說何法
師云 若是上根人 何處 更就人覓 他自己 尙不可得 何 更
別有法當情 不見 敎中 云 <法法何狀>
云 若如此則 道不要求覓也
師云 若與�則省心力
云 如是則 渾成斷絶 不可是無也
師云 阿誰敎他無 他是阿誰 擬覓也
云 旣不許覓 何故 又言莫斷他
師云 若不覓 便休 卽誰敎 斷 見目前虛空 作�生斷他
云 此法 可得便同虛空否
師云 虛空 早晩 向 道有同有異 我暫如此說 便向者裸
生解
云 應是不與人生解耶
師云 我不曾障 要且解屬於情 情生則智隔
云 向者裸 莫生情 是否
師云 若不生情 阿誰道是
9. 말에 떨어지다
"스님께서는 제가 한 말씀이라도 드리기만 하면, 어찌해서
바로 말에 떨어진다[話墮]고 하십니까?"
"네 스스로 말을 알아듣지 못한 사람이거늘 무슨 잘못에
떨어짐이 있겠느냐?"
問 裳向和尙處發言 爲什�便道話墮
師云 汝自是不解語人 有什�墮負
10. 사문이란 무심을 얻은 사람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허다한 언설들이 모두 방편으로 대
꾸한 것들이어서, 사람들에게 가리켜 보이신 실다운 법이란
아주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실다운 법이란 전도됨이 없거늘, 네 지금 묻는 곳에서 스
스로 전도되고 있느니라. 그러면서 무슨 실다운 법을 찾는다
는 말이냐?"
"묻는 곳에서 이미 스스로 전도된 것이라면, 스님께서 대답
하신 곳은 어떠하십니까?"
"사물을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지언정 남의 일에는 상관할
것이 없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개와도 같아서 움직이는 물건을 보기만 하면 문
득 짖어대니,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과 눠 별다를 게 있겠느
냐."
이어서 말씀하셨다.
"우리의 이 선종은 위로부터 이제껏 이어 내려 오면서 알
음알이[知解]를 구하게 한 적이 없었다. 오로지 도를 닦으라
고만 했을 뿐인데, 사실 이것도 교화하는 방편설이니라. 그러
니 도 또한 배울 수없는 것으로서, 뜻을 두고 알음알이를 배
우게 되면 도에는 도리어 어둡게 된다. 도에는 일정한 방위와
처소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대승의 마음[大乘心]이라고 하느
니라. 이 마음은 안팍.중간 어디에도 있지 않으며, 실로 방위
와 처소가 없는 것이니, 첫째로 알음알이를 짓지 말아야 한
다. 지금까지 너에게 말한 것은 뜻으로 헤아림이 다해 버린
바로 그자리가 도라는 것을 말했을 뿐이다. 뜻으로 헤아림이
다하면 마음에는 방위도 처소도 없느니라.
이 도라는 것은 천진하여 본래 이름이 없다. 다만 사람들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뜻으로 헤아리는데 미혹되었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 나오시어 이 일을 자상히 말씀하신 것이니라. 그
러나 너희 모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할까 걱정하셔서 방편으
로 '도'라는 이름을 세우셨으니, 이름에 얽매여서 알음알이를
내서는 안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고기를 잡았으면 통
발을 잊으버려라!'고 하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자연히 도에
통하고 마음을 알아 본래의 근원에 통달한 이를 사문(沙門)이
라 부른다. 사문이라는 자리는 생각을 쉬어서 이루어 지는 것
이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도 너희들은 남의
집에 세살이 하듯,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구하면서 배워서 얻
으려하니, 될 까닭이 있겠느냐?
옛 사람들은 영민하여 한 말씀 들으면 당장에 배움을 끊었
다. 그래서 그들을 '배울 것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
이라고 했다. 반면 지금 사람들은 하많은 알음알이를 구하고,
널리 글의 뜻의 캐면서 그것을 수행이라고 하지만, 넓은 지식
과 견해 때문에 도리어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는 매 것이므로 각각 말씀이 다르다. 다만 요
달하여 알기만 하면 미혹되지 않느니라. 무엇보다도 주의할
것은 한 근기를 대상으로 말씀에 있어서 글자에 얽매여 알음
알이를 내지 말아야 한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실로 여래
께서 말씀하실 만한 정해진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선종
은 이런 일을 따지지 않는 것이니, 다만 마음을 그칠 줄 알면
곧 쉬는 것이요, 다시 앞뒤를 생각할 필요가 없느니라."
問 向來如許多言說 皆是抵敵語 都未曾有實法指示於人
師云 實法 無顚倒 汝今問處 自生顚倒 覓什�實法
云 旣是問處 自生顚倒 和尙答處如何
師云 且將物照面着 莫管他人
又云 祈如箇癡狗相似 見物動處 便吠 風吹草木 也不別
又云 我此禪宗 從上相承已來 不□敎人求知求解 只云學道
早是接引之詞 然 道亦不可學 情存學解 却成迷道 道無方
所 名大乘心 此心 不在內外中間 實無方所 第一不得作知
解 只是說汝 如今情量盡處爲道 情量 若盡 心無方所 此道
天眞 本無名字 只爲世人 不識 迷在情中 所以 諸佛 出來
說破此事 恐汝諸人不了 權立道名 不可守名而生解故 云
<得魚忘筌> 身心 自然達道 識心達本源故 號爲沙門 汝門
果者 息慮而成 不從學得 汝如今將心求心 傍他家舍 祈擬
學取 有甚�得時 古人 心利 裳聞一言 便乃絶學 所以 喚
作絶學無爲閑道人 今時人 只欲得多知多解 廣求文義 喚作
修行 不知多知多解 蒜成壅塞 唯知多與兒 乳喫 消與不消
都摠不知 三乘學道人 皆是此樣 盡名食不消者 所謂知解不
消 皆爲毒藥 盡向生滅中取 眞如之中 都無此事 故 云 <我
王庫內 無如是刀> 從前所有一切解處 盡須倂却令空 更無
分別 卽是空如來藏 如來藏者 更無纖塵可有 卽是破有法王
出現世間 亦云 <我於燃燈佛所 無少法可得> 此語 只爲空
情量 知解但鎖鎔 表裏情盡 都無依執 是無事人 三乘敎
網 祈是應機之藥 隨宜所說 臨時施設 各各不同 但能了知
卽不被惑 第一不得於一機一敎邊 守文作解 何以如此 實無
有定法如來可說 我此宗門 不論此事 但知息心卽休 更不用
思前慮後
11. 마음이 부처
배휴가 물었다.
"예로부터 마음이 부처라고들 하는데, 어느 마음이 부처인
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사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몇 개의 마음을 가졌느냐?"
"그렇다면 범부에 즉(卽)한 마음이 부처입니까, 아니면 성
인(聖人)에 즉(卽) 마음이 부처입니까?"
"어느 곳에 범.성의 마음이 있느냐?"
"지금 3승 가운데서 범.성을 말씀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
찌해서 그것이 없다고 하십니까?"
"3승을 말하는 가운데 분명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범.성
의 마음이 허망하다'고 하셨느니라. 그런데도 너희는 지금 알
지 못하고 아직 '있다'고 집착하여 공허한 것을 무언가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으니, 어찌 허망되지 않겠느냐? 허망하기 때
문에 마음이 미혹되는 것이니, 네 만약 범부의 뜻과 성인의
경계를 없애기만 한다면,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느니라.
달마스님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모든 사람이 다 부처임을 가
르쳐 주셨다. 그런데도 너희는 아직도 그것을 모르고 범.성을
집착하고 마음을 밖으로 내달리며 도리어 스스로 마음을 미
혹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라고 하였으니, 한 생각 뜻이 생기면 그 즉시 6도의
다른 곳에 떨어지게 된다. 비롯없는 옛날로부터 오늘날과 한
결같이 다르지 않아 어떠한 다른 법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그
것을 일컬어 정등각(正等覺)을 성취했다고 하느니라."
"스님께서 말씀하신 '곧 그대로<卽>'라 함은 무슨 도리입
니까?"
"너는 무슨 도리를 찾는 것이냐? 어떤 도리라도 있기만 하
면 바로 곧 본래의 마음과는 달라지느니라."
"앞서 말씀하신 '시작 없는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결같이 다르지않다'고 하신 이치는 무엇입니까?"
"찾기 때문에 네 스스로 그것과 달라지는 것이니라. 네 만
약 찾지 않는다면 어디에 다를 것이 있겠느냐?"
"이미 다르지 않다면, 굳이 '곧 그대로'라고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네 만약 범.성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누가 너에게 굳이 '곧
그대로'라는 말을 하겠느냐? '곧 그대로'가 '곧 그대로'가 아니
라면, 마음 또한 마음이 아닌 것이니, 이런 가운데 마음과 '곧
그대로'라는 것을 다 잊으면, 네가 더 이상 무엇을 찾겠느
냐?"
問 從上來 皆云 <卽心是佛> 未審 卽那箇心 是佛
師云 有幾箇心
云 爲復卽凡心 是佛 卽聖心 是佛
師云 何處 有凡聖心耶
云 卽今三乘中 說有凡聖 和尙 何得言無
師云 三乘中 分明向 道 <凡聖心 是妄> 今不解 返執
爲有 將空作實 豈不是妄 妄故 迷心 汝但除却凡情聖境 心
外 更無別佛 祖師西來 直指一切人全體是佛 汝今不識 執
凡執聖 向外馳騁 還自迷心 所以 向汝道 <卽心是佛> 一
念情生 卽墮異趣 無始已來 不異今日 無有異法 故 名成等
正覺
云 和尙所言卽者 是何道理
師云 覓什�道理 裳有道理 便卽心異
云 前言無始已來 不異今日 此理如何
師云 祈爲覓故 汝自異他 汝若不覓 何處有異
云 旣是不異 何更用說卽
師云 汝若不認凡聖 阿誰向汝道卽 卽若不卽 心亦不心 可
中 心卽 俱忘 阿 更擬向何處覓去
12.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다<以心傳心>
"망념이 자신의 마음을 가로막는다는데 무엇으로써 망념을
없애야 합니까?"
"망념을 일으키고 그것을 없애는 것 또한 망념이 되느니라.
망념은 본래 뿌리가 없지만, 다만 분별 때문에 생긴다. 네 다
만 범.성의 두곳에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다면, 자연 망념은
없어지는 것이니, 다시 그것을 어떻게 떨쳐버리겠느냐? 떨끝
만큼도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으면, 이른바 '내가 두 팔을 다
버렸으니 반드시 부처를 이루리라'고 한 것이 되느니라."
"이미 의지하여 집착함이 없다면 어떻게 역대 조사들께서
는 서로 이어 받았습니까?"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느니라."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면 어찌 마음 또한 없다고 하십
니까?"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을 마음에 전한다고 하는 것이니,
만약 이 마음을 깨친면 곧 마음도 없고 법도 없느니라."
"마음도 법도 없다면 어찌하여 전한다고 하십니까?"
"너는 마음에 전한다는 말을 듣고는 얻을 만한 무엇이 있
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조사께서는, '마음의 성품[心性]을
깨달았을 때에야 불가사의하리라. 요연히 사무쳐 얻을 바가
없나니, 얻었을 때라도 알았다 하지 못하노라'고 하셨느니라.
만약 이것을 너더러 알도록 한다 하여도 어떻게 감당하겠느
냐?"
問 妄能障自心 未審 而今 以何遺妄
師云 起妄遺妄 亦成妄 妄本無根 祈因分別而有 但於凡
聖兩處 情盡 自然無妄 更擬若爲遺他 都不得有纖毫依執
名爲我捨兩臂必當得佛
云 旣無依執 當何相承
師云 以心傳心
云 若心相傳 云何言心亦無
師云 不得一法 名爲傳心 若了此心 卽是無心無法
云 若無心無法 云何名傳
師云 汝聞道傳心 將謂有可得也 所以 祖師云 <認得心性時
可說不思議 了了無所得 得時 不說知> 此事 若敎汝會 何
堪也
13. 마음과 경계
"눈 앞의 허공을 경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경계
를 가리켜 마음을보는 것이 어찌 없다고 하겠습니까?"
"어떤 마음을 너더러 경계 위에서 보게 하느냐? 설혹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경계를 비추는 마음일 뿐이니라. 사람이 거
울로 얼굴을 비출 때처럼 눈썹과 눈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본래 그림자일 뿐 너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거울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볼 수 있겠습니까?"
"'의지함'에 빠진다면 항상 의지할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야 언제 깨달을 수 있겠느냐? 너는 '손을 털고
그대에게 내보일 아무 것도 없 구나. 수천 가지로 말한들 모
두 헛수고로다.'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느 냐?"
"마음을 분명히 알았다면 비출 만한 아무 것도 없는 것입
니까?"
"아무 것도 없다면 어찌 더 비출 필요가 있겠느냐? 눈을
뻔히 뜨고 잠꼬대 같은 말을 하지 말라."
問 祈如目前虛空 可不是境 豈無指境見心乎
師云 什�心 敎汝向境上見 設汝見得 只是箇照境底心 如
人 以鏡照面 縱然得見眉目分明 元來祈是影像 何關汝事
云 若不因照 何時得見
師云 若也涉因 常須假物 有什�了時 汝不見 他向汝道
<撒手似君無一物 徒勞 說數千般>
云 他若識了 照亦無物耶
師云 若是無物 更何用照 莫開眼 語去
14. 구함이 없음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백 가지로 많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음'만 훨
씬 못하니라. 도인이란 일 없는 사람이어서 실로 허다한 마음
도 없고 나아가 말할 만한 도리도 없다. 더이상 일이 없으니,
헤어져들 돌아가거라."
上堂云 百種多知 不如無求最第一也 道人 是無事人 實無
許多般心 亦無道理可說 無事散去
15. 머문 바 없이 마음이 나면 곧 부처님의 행
배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세간의 이치[世諦]입니까?"
"언어.문자에 얽매인 이치를 논하여 무엇하겠느냐? 본래 청
정한 것인데, 어찌 언설을 빌려서 문답을 하겠는가? 다만 일
체의 마음이 없기만 하면 번뇌없는 지혜[無漏智]라 부른다.
네가 모든 언행에 있어 하염없는 법[有爲法]에 집착하지만 않
는다면, 말하고 눈 깜짝이는 것 모두가 번뇌없는 지혜와 같으
니라. 지금 말법 시대에 접어들면서 참선의 도를 배우는 사람
들이 대부분 온갖 소리와 빛깔에 집착하고 있다. 이래서야 어
찌 자기 마음을 여의었다고 하겠느냐? 마음이 허공같고 마른
나무와 돌덩이처럼 되어 가며, 또한 타고 남은 재와 꺼진 불
처럼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바야흐로 도에 상응할 분(分)이
조금 있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한다면 뒷날 모두 염라
대왕에게서 엄한 문책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네가 다만 '있
다' '없다' 하는 모든 법을 여의기만 하면, 마음이 마치 허공
에 떠있는 햇살같아 태양이 비추지 않아도 자연히 두루 비추
는 것이니, 이 어찌 힘 덜리는 일[省力事]이 아니겠느냐?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쉬어 머물 바가 없어서, 모든 부처님이
행하시는 행을 하게 되고,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는
것이 되느니라. 이것이 바로 자신의 청정한 법신이며 무상정
등정각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많은 지식을 배워
얻고 부지런히 고행수도하며 풀옷을 입고 나무 먹이를 먹는
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마음을 모르는 것이니라. 이것을 모두
삿된 수행이라 하며, 정작 천마의 권속이 되는 것이니, 이런
식으로 수행을 한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
지공(誌公 : 418-514)이 말하기를 '부처란 본래 자기 마음
으로 짓는 것인데 어찌 문자로 인해 구해지겠는가? 설령 그
렇게 해서 삼현(三賢).사과(四果).십지만심(十地滿心)의 지위를
얻는다 해도, 그것은 역시 범부와 성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고 하였다. 너는 보지 못하였느냐? '모든 행위가
무상하나니, 이것이 나고 없어지는 법이니라'고 하였으며, 힘
이 다한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뜻대로 되지 않을 내생을
초래하리로다. 어찌 하염없는 실상의 문[無爲實相門]에 한번
뛰어넘어 여래의 지위에 바로 드는것만 같으리오' 라고 하였
느니라. 그러나 너는 이 정도의 근기가 아니므로 옛사람이 세
우신 방편문에서 알음알이를 널리 배워야 하느니라. 지공이
말하기를 '세간을 뛰어 넘은 명철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대승의 법약(法藥)을 잘못 먹는 것이다.'고 하였다. 네 지금
일거일동에 항상 무심(無心)을 닦아 오래오래 되면 반드시 얻
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역량이 부족하니 단박에
뛰어넘지는 못한다. 다만 3년이나 5년 혹 10년만 지나면 반드
시 들어갈 곳을 얻어 자연히 알게될 것이니라. 그러나 너는
이렇게 해내지 못하고, 굳이 마음을 가지고 선(禪)을 배우고
도를 배워야 하니, 그것이 불법과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경에서 이르시기를, '여래의 설법은 모두 사람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누런 나뭇잎을 돈이라하
여 어린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따
라서 법이란 결코 실다운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무
엇인가 얻을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우리 종문(宗門)
의 사람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너의 본분과는 아무런 상관
이 없느니라. 그래서 경에 말씀하시기를, '실로 얻을 만한 조
그마한 법도 없는 것을 무상정각이라 부른다' 고 하였다. 만
약 이 뜻을 알아낸다면, 부처님의 도와 마구니의 도가 모두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될 것이니라.
본래 깨끗하여 환히 밝아 모남도 둥 섕도 없고, 크고 작음
도 길고 짧은 모양도 없으며, 번뇌(漏)도 작위(作爲)도 없고
미혹됨도 깨달음도 없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요연히 사무쳐
보아 한 물건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 항하사
대천세계(大千世界)는 바다의 물거품이요, 모든 성현들은 스
치는 번개불 같도다 ' 한 것이다. 모든 것이 진실한 마음만
같질 못하니라. 법신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부처님.조사와 더
불어 마찬가지여서 어디 떨끝만큼이라도 모자람이 겠느냐. 이
런 내 말의 뜻을 알았들었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하니, 이 생
을 마칠 즈음에는 내쉬는 숨이 들이쉬는 숨을 보장치 못하느
니라."
問 如何是世諦
師云 說葛藤作什� 本來淸淨 何假言說問答 但無一切心
卽名無漏智 汝每日行住坐臥 一切言語 但莫着有爲法 出言
瞬目 盡同無漏 如今末法向去 多是學禪道者 皆着一切聲色
何不與我心 心同虛空去 如枯木石頭去 如寒灰死火去 方有
少分相應 若不如是 他日盡被閻老子拷 在 但離却有無
諸法 心如日輪 常在虛空 光明 自然不照而照 不是省力底
事 到此之時 無棲泊處 卽是行諸佛行 便是應無所住 而生
其心 此是 淸淨法身 名爲阿뇩菩提 若不會此意 縱 學得
多知 勤苦修行 草衣木食 不識自心 盡名邪行 定作天魔眷
屬 如此修行 當復何益 誌公 云 <佛 本是自心作 那得向文
字中求 饒 學得三賢四果 十地滿心 也祇是在凡聖內坐>
不見道 諸行無常 是生滅法 勢力盡箭環墜 招得來生不如意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爲 不是與�人 須要向
古人建化門 廣學知解 誌公 云 <不逢出世明師 枉服大乘法
藥> 如今一切時中行住坐臥 但學無心 久久 須實得 爲
力量小 不能頓超 但得三年 五年 或十年 須得箇入頭處 自
然會去 爲汝不能如是 須要將心學禪學道 佛法 有什�交涉
故 云 <如來所說 皆爲化人 如將黃葉爲金 止小兒啼> 決
定不實 若有實得 非我宗門下客 且與 本體 有甚交涉 故
經 云 <實無少法可得 名爲阿뇩菩提> 若也會得此意 方知
佛道魔道俱錯
本來淸淨 皎皎地 無方圓無大小 無長短等相 無漏無爲 無
迷無悟 了了見無一物 亦無人亦無佛 大千沙界海中 一切
聖賢 如電拂 一切不如心眞實 法身 從古至今 與佛祖一般
何處欠少一毫毛 旣會如是意 大須努力 盡今生去 出息 不
保入息
16. 육조(六祖)는 어째서 조사가 되었는가?
배휴가 물었다.
"혜능스님께서는 경전을 모르셨는데 어떻게 법의를 전수받
고 육조가 되셨으며, 반면 신수스님은 500대중의 수좌로서 교
수사(敎授師)의 임무를 받아 32본(本)의 경론을 강의 할 수
있었는데 왜 법의를 전수받지 못하였습니까?"
"신수스님에게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니, 이는 유위의 법
으로서 닦고 깨닫는 것을 옳다고 여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5조께서는 6조에게 부촉하셨느니라. 한편 6조는 당시에 다만
묵묵히 계합하여 여래께서 은밀히 주신 매우 깊은 뜻을얻으
셨으므로 그에게 법을 부촉하셨느니라. 너는 듣지 못했느냐?
'법이란 본래 법은 법이랄 것 없나니 법없는 법을 또한 법이
라 하느니라. 이제 법 없음을 부촉할 때에 법이다 법이다 하
는 것이 일찌기 무슨 법이었던고?' 라고 하셨다. 이 뜻을 알
면 바야흐로 출가자라고 부르게 되느니라. 만약 믿지 못하겠
다면, 어지하여 도명(道明)상조가 대유령 꼭대기까지 달려와
서 6조를 찾았겠느냐. 그때 6조스님이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옷을 구하는가, 아니면 법인가?' 하니, 도명상
좌가 '옷이 아니라 오로지 법을 위하여 왔습니다'고 하였다.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잠시 마음을 거두고 선도 악도 전
혀 생각하지 말라' 하시자 도명상좌가 말씀을 받드니, 6조께
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러할 때
부모가 낳기 이전 명상좌의 본래 면목을 나에게 가져와 보아
라' 하셨다. 도명상좌가 이 말을 듣고 곧바로 묵연히 계합하
고 문득 절하며 말하기를 '마치 물을 마셔 보고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사옵니다. 제가 5조 문하에서 30년 동안
잘못 공부하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지난날의 잘못을 깨달았습
니다'하자,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도다' 고 하셨다. 이제
조사가 서쪽에서 오시어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하심이 언설에 있지 않음을 바야흐로 알
것이로다. 어찌 듣지 못했느냐? 아난이 가섭에게 묻기를 '세
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하신 외에 따로 무슨 법을 전하셨습니
까?' 하니 가섭이 아난을 불렀다. 아난이 대답하자 가섭이 말
하기를 '문 앞의 깃대<刹竿>를 거꾸려뜨려 버려라' 하였으
니, 이것이 바로 조사의 표방이니라. 몹시 총명한 아난이 30
년도안 시자로 있으면서 많이 들어 얻은 지헤 때문에 부처님
으로부터, '천일 동안 닦은 너의 지혜는 하루 동안 도를 닦느
니만 못하다' 고 하는 꾸지람을 들었다. 만약 도를 배우지 않
는다면 물 한 방울도 소화시키기 어렵다 하리라."
問 六祖 不會經書 何得傳衣爲祖 秀上座 是五百人首座 爲
敎授師 講得三十二本經論 云何不傳衣
師云 爲他有心 是有爲法 所修所證 將爲是也 所以 五祖付
六祖 六祖 當時 祇是默契 得密授如來甚深意 所以 付法與
他 汝不見道 <法本法無法 無法法 亦法 今付無法時 法法
何曾法> 若會此意 方名出家兒 方好修行 若不信 云何明上
座 走來大庾嶺頭 尋六祖 六祖便問 <汝來求何事 爲求衣
爲求法> 明上座云 <不爲衣來 但爲法來> 六祖云 <汝且
暫時斂念 善惡 都莫思量> 明 乃 語 六祖云 <不思善不
思惡 正當與�時 還我明上座父母未生時面目來> 明 於言
下 忽然默契 便禮拜云 <如人飮水 冷暖 自知 某甲 在五祖
會中 枉用三十年功夫 今日 方省前非> 六祖云 <如是> 到
此之時 方知祖師西來 直指人心見性成佛 不在言說 豈不見
阿難 問迦葉云 <世尊 傳金 外 別傳何法> 迦葉 召阿難
阿難 應諾 迦葉 云 <倒却門前刹竿着> 此便是祖師之標榜
也 甚深阿難 三十年爲侍者 祇爲多聞智慧 被佛訶云 <汝千
日學慧 不如一日學道> 若不學道 滴水 難消
제2편 완릉록(宛陵錄)
1. 도는 마음 깨치는 데 있다.
배상공이 황벽스님께 여쭈었다.
"산중(山中)의 사오백명 대중 가운데서 몇 명이나 스님의 법을 얻
었습니까?"
대사가 말씀하셨다.
"법을 얻은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왜냐하면 도는 마음
을 깨치는 데 있는 것이지 어찌 언설에 있겠느냐? 언설이란 다만 어
린아이를 교화할 뿐이니라."
裵相公 問師曰 山中四五百人 幾人 得和尙法
師云 得者 莫測其數 何故 道在心悟 豈在言說 言說 祇是
化童蒙耳
2. 자기의 마음을 알자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요 무심(無心)이 도이니라. 다만 마음을 내어서
생각을 움직인다든지, 혹은 있고[有], 길고 짧음, 너와 나, 나아가 주
체니 객체니 하는 마음이 없기만 하면, 마음이 본래로 부처요 부처
가 본래 마음이니라. 마음은 허공과 같기 때문에 말씀하시기를 '부처
님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부처를 따로 구하
려 하지 말 것이니, 구함이 있으면 모두가 고통이니라. 설사 오랜 세
월 동안 6도[六度] 만행을 실천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더
라도 그것은 결코 완전한 구경(究竟)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
은 인연의 조작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연이 다하면 덧없음으로 돌아
가고 만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보신과 화신은 참된 부처가 아니요
또한 법을 설하는 자가 아니다.'고 하였다.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기
만 하면 나[我]라고 할 것도 없고 또한 남[人]도 없어서 본래 그대로
부처이니라."
問 如何是佛
師云 卽心是佛 無心是道 但無生心動念 有無長短 彼我能
所等心 心本是佛 佛本是心 心如虛空 所以云 佛眞法身 猶
若虛空 不用別求 有求皆苦 設使恒沙劫 行六度萬行 得佛
菩提 亦非究竟 何以故 爲屬因緣造作故 因緣 若盡 還歸無
常 所以 云 報化 非眞佛 亦非說法者 但識自心 無我無人
本來是佛
3. 기틀을 쉬고 견해를 잊음
"성인의 무심은 곧 부처의 경지이지만 범부의 무심은 공적한 상
태에 빠지는 것이 아닙니까?"
"법에는 범, 성의 구별이 없으며 또한 공적한 상태에 빠지는 것도
없다.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없다는 견해도 내지를 말라.
또한 법은 본래 없지 않으나, 있다는 견해도 내지 말라. 법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모두 뜻[情]으로 헤아리는 견해로서, 마치 허깨비
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보고 듣는 것은 마치 허
깨비같고, 사량하고 느끼는 것이 바로 중생이니라'고 하였다. 조사문
중에 있어서는 오로지 마음을 쉬고 알음알이를 잊는 것을 논할 뿐이
다. 그러므로 마음을 쉬어 버리면 부처님의 도가 융성해지고, 분별하
면 마구니의 장난이 치성해지느니라."
問 聖人無心 卽是佛 凡夫無心 莫沈空寂否
師云 法無凡聖 亦無沈寂 法本不有 莫作無見 法本不無 莫
作有見 有之與無 盡是情見 猶如幻峠 所以云 <見聞 如幻
峠 知覺 乃衆生> 祖宗門中 祇論息機忘見 所以 忘機則佛
道降 分別則魔軍熾
4. 마음과 성품이 다르지 않다
"마음이 본래로 부처인데 6도만행을 다시 닦아야 합니까?"
"깨달음은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 6도만행과는 상관이 없느니
라. 6도만행이란 그저 교화의 방편으로써 중생을 제도하는 쪽의 일
일뿐이다. 설사 보리, 진여와 실제의 해탈법신과 나아가 10지 4과 등
의 성인의 지위에 도달한다 할지라도 모두가 교화 제도하는 방편의
문일 뿐이어서, 부처님의 마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느니라. 마음이
곧 그대로 부처이니 교화 제도하는 모든 방편문 가운데서 부처님의
마음이 으뜸이니라. 다만 생사, 번뇌 따위의 마음만 없으면 보리 등
의 법을 쓸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모든 법은 나의 모든 마음을 제도하시기 위함이로다. 나에게
일체의 마음이 없거니, 어찌 일체법을 쓰리오'라고 하였다. 부처님으
로부터 역대 조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른 것은 말하지 않으셨고,
오직 한 마음만을 말했을 뿐이며, 또한 일불승(一佛乘)만을 말하셨을
뿐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시방을 두루 살펴보아도 다시 다른
승(乘)이 없나니, 지금 여기에 남아 있는 대중들은 곁가지와 잎은 없
고 오로지 모두 잘 익은 열매들뿐이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뜻은
쉽게 믿기가 어렵다. 달마스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양(梁), 위(魏) 두
나라에 머물렀는데, 오직 혜가(慧可 : 487-593)스님 한 분만이 자기
의 마음을 가만히 믿고 말 끝에 문득 마음이 곧 부처임을 알았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함께 없음을 이름하여 큰 도라고 하느니라. 큰 도
는 본래로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이 하나의 참 성품으로 같
다는 것을 깊이 믿어야 한다. 마음과 성품이 본래 다르지 않으므로
성품이 곧 마음이니라. 마음이 성품과 다르지 않은 사람을 일컬어
조사(祖師)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의 성품을 알았을 때
비로소 불가사의하다고 말할 수 있도다'고 하였다."
問 心旣本來是佛 還修六度萬行否
師云 悟在於心 非關六度萬行 六度萬行 盡是化門接物度生
邊事 設使菩提眞如 實際解脫法身 直至十地四果聖位 盡是
度門 非關佛心 心卽是佛 所以 一切諸度門中 佛心 第一
但無生死煩惱等心 卽不用菩提等法 所以道 佛說一切法 度
我一切心 我無一切心 何用一切法 從佛至祖 不論別事
唯論一心 亦云一乘 所以 十方諦求 更無餘乘 此衆 無枝葉
唯有諸貞實 所以 此意難信 達磨來此土 至梁魏二國 祇有
可大師一人 密信自心 言下 便會卽心是佛 身心俱無 是名
大道 大道 本來平等 所以 深信含生 同一眞性 心性不異
卽性 卽心 心不異性 名之爲祖 所以云 認得心性時 可說不
思議
5. 모양 있는 것은 허망하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십니까?"
"정말로 여래께서 제도할 중생은 없느니라. 나[我]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나 아님이야 어찌 얻을 수 있겠느냐! 부처와 중생을 모두
다 얻을 수 없느니라."
"현재 부처님의 32상(相)과 중생 제도가 분명히 있는데 스님께서
는 어찌 없다고 말슴하십니까?"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존재는 모두가 허망하
니, 만약 모든 모양을 보되 모양이 아닌 줄을 알면 곧 여래를 보게
되느니라'고 하셨다.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 것은 모두 네가 허망하게
지어낸 견해로서, 오로지 본래의 마음을 알지 못한 탓으로 그같은
잘못된 견해를 내게 된 것이니라. 부처의 견해를 내는 순간 바로 부
처에 끄달리고, 중생의 견해를 내는 순간 중생에 끄달린다.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견해를 내고, 더럽느니 깨끗하다느니 하는 견해를 내
는 등이 모두 그 장애를 받느니라. 그것들이 너의 마음을 가로 막기
때문에 결국 윤회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원숭이가 무언가를 들엇다
놨다 하느라고 쉴 때가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진정한 배움이란
모름지기 배울 것이 없어야 한다. 범부도 성인도 없고 깨끗함도 더
러움도 없으며, 큼도 없고 작음도 없으며 번뇌도 없고 인위적 작위
도 없다. 이와 같은 한 마음 가운데서 바야흐로 방편으로 부지런히
장엄하는 것이다. 설혹 네가 3승 12분의 가르침과 모든 이론들을 배
운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가진 것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오직 침상 하나만을 남겨 두고 병들어 누워 있
다'고 한 말은 바로 모든 견해를 일으키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한
법도 가히 얻을 것이 없어서 법의 장애를 받지 않고, 삼계의 범, 성
의 경계를 훌쩍 벗어나야만 비로소 세간을 벗어난 부처님이라고 하
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허공처럼 의지할 바 없음에 머리숙여,
외도의 굴레를 벗어나는도다'고 하였다.
마음이 이미 다르지 않기 때문에 법 또한 다르지 않으며, 마음이
하염 없으므로 법 또한 하염이 없다. 만법이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
아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비었기 때문에 모든 법이 공
하며, 천만 가지 중생들도 모두 다 같은 것이다. 온 시방의 허공계가
같은 한마음의 본체이니, 마음이란 본래 서로 다르지 않고 법 또한
다르지 않건만, 다만 너의 견해가 같질 않으므로 차별이 있게 되느
니라. 비유하면 모든 하늘사람들이 다 보배 그릇으로 음식을 받아
먹지만 각자의 복덕에 따라 밥의 빛깔이 다른 것과 같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실로 작은 법도 얻은 것이 없으니, 이
것을 이름하여 무상정각이라 한다. 오로지 한 마음일 뿐, 실로 다른
모양이 없으며, 또한 광채가 빼어날 것도 없고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에 부처라는 모양이 없고, 못할 것이 없기
때문에 중생이라는 모양이 없다."
"마음이야 모양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 부처님의 32상
(相) 80종호(種好)와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하는 일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32상은 모양에 속한 것이니, '무릇 모양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
다'라고 한 것이요, 80종호는 색깔에 속한 것이니, '만약 겉 모습으로
나를 보려 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여래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이다.
問 佛度衆生否
師云 實無衆生如來度者 我尙不可得 非我 何可得 佛與衆
生 皆不可得
云 現有三十二相及度衆生 何得言無
師云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佛與衆
生 盡是汝作妄見 只爲不識本心 作見解 裳作佛見 便被
佛障 作衆生見 被衆生障 作凡作聖 作淨作穢等見 盡成其
障 障汝心故 摠成輪轉 猶如 放一捉一 無有歇期 一等
是學 直須無學 無凡無聖 無淨無垢 無大無小 無漏無爲 如
是一心中 方便勤莊嚴 聽汝學得三乘十二分敎 一切見解 摠
須捨却 所以 除去所有 唯置一牀 寢疾而臥 祇是不起諸見
無一法可得 不被法障 透脫三界凡聖境域 始得名爲出世佛
所以云 <稽首如空無所依 出過外道> 心旣不異 法亦不異
心旣無爲 法亦無爲 萬法 盡由心變 所以 我心空故 諸法空
千品萬類 悉皆同 盡十方空界 同一心體 心本不異 法亦不
異 祇爲汝見解不同 所以差別 譬如諸天 共寶器食 隨其福
德 飯色 有異 十方諸佛 實無少法可得 名爲阿뇩菩提 祇是
一心 實無異相 亦無光彩 亦無勝負 無勝故 無佛相 無負故
無衆生相
云 心旣無相 豈得全無三十二相八十種好 化度衆生耶
師云 三十二相 屬相 凡所有相 皆是虛妄 八十種好 屬色
若以色見我 是人 行邪道 不能見如來
6. 한 마음의 법
"부처의 성품과 중생의 성품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성품 자체는 같고 다름이 없으나 만약 3승의 가르침에 의거해
말한다면 부처의 성품과 중생의 성품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3승의 인과가 있어서 같고 다름이 있느니라. 그러나 만약 불승(佛
乘)과 조사가 서로 전한 것에 의거해 보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
고 오로지 한마음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마음은 같지도 않고 다르
지도 않으며 원인도 아니고 결과도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오직 이 일승(一乘)의 도뿐이요, 2승도 없고 3승도 없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의 방편설만은 제외하노라'고 하셨다.
問 佛性與衆生性 爲同 爲別
師云 性無同異 若約三乘敎 卽說有佛性有衆生性 遂有三乘
因果 卽有同異 若約佛乘及祖師相傳 卽不說如是事 唯指一
心 非同非異 非因非果 所以云 <唯此一乘道 無二亦無三>
除佛方便說
7. 모든 견해를 여읨이 무변신보살
"무변신보살(無邊身菩薩)은 왜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합니
까?"
"실로 볼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무변신보살이란 곧 여래이기
때문에 응당 보지 못한다. 다만 너희에게 부처라는 견해를 짓지 않
아서 부처라는 변견(邊見)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며, 중생이라는 견해
를 짓지 않아서 중생이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있다[有]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있다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없다[無]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없다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범부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범부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나아가 성
인이라는 견해를 짓지 않아서 성인이라는 변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
는 것이다. 다만 모든 견해만 없으면 그대로가 곧 가이 없는 몸[無
邊身]이니라. 그러나 무엇인가 보는 곳이 있으면 곧 외도라고 부른
다. 외도란 모든 견해를 즐기고 보살은 모든 견해에 있어서도 흔들
리지 않으며, 여래란 곧 모든 법에 여여(如如)한 뜻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미륵도 또한 그러하고 모든 성현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였
다. 여여하기 때문에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볼 것도
들을 것도 없다. 여래의 정수리는 두렷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두렷
이 보는 것도 없으므로, 두렷하다는 변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
므로 부처님 몸은 하염 없으신 것이다. 숫자로써 헤아리는 범주에
속하지도 않지만, 다만 방편으로 허공에 비유할 뿐이니라. '원만하기
가 태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으며' 한가로이 일삼을
것이 없다. 다른 경계를 억지로 끌어들여 설명하려 하지 말 것이니,
설명하려 들면 벌써 식[識]이 이뤄지고 만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원
성실성(圓成實性)은 의식의 바다에 잠겨서 나부끼는 쑥대처럼 흘러
도네'라고 하였다. 그저 말하기를 '나는 알았으며 배워서 얻었으며,
깨달았으며, 해탈하였으며, 도의 이치를 얻었노라'고 한다. 그러나 자
기가 강한 곳에서는 뜻대로 되지만 약한 곳에서는 뜻대로 되질 않는
다면 이런 견해가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내 너에게 말하노니, 한가
하여 스스로 일 없도록 하여 쓸데없이 마음을 쓰지 말라. '참됨을 구
할 필요가 없나니, 오직 모든 견해를 쉴지니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
로 안으로 봄[內見]과 밖으로 봄[外見]이 모두 잘못이며 부처의 도와
마구니의 도가 모두 나쁜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문수보살이 잠깐
두 견해를 일으켰다가 그만 두 철위산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문수보살은 참된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방편적인 지혜의
상징이다. 방편과 참됨이 서로서로 작용을 하여 끝내는 방편과 참됨
그것마저도 사라지고 오로지 한 마음뿐인 것이다. 마음은 결코 부처
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서로 다른 견해가 있는 것이 아닌데, 부처
의 견해를 갖기만 하면 바로 중생의 견해를 내게 되느니라. 있다는
견해[有見], 없다는 견해[無見], 영원불변하다는 견해[常見], 단멸한다
는 견해[斷見]가 바로 두 철위산 지옥을 이룬다. 이처럼 견해와 장애
를 받기 때문에 역대의 조사들께서 일체 중생의 본래 몸과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로 가리키신 것이다. 이것은 닦아서 되는것도 아
니고 점차적인 단계를 밟아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밝음이나
어두움에 속하지도 않아서, 밝음이 아니기 때문에 밝음도 없으며 어
둠이 아니기 때문에 어두움도 없다. 그러므로 밝음 없음[無明]도 없
으며 또한 밝음 없음이 다함[無明盡]도 없다. 우리이 선가의 종문에
들어와서는 누구든지 뜻을 간절하게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이 볼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법이라 하고 법을 보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며,
부처와 법이 모두 함께 없는 것을 승(僧)이라 부르며, 하릴없는 중이
라 부르며, 또한 한몸의 삼보[一 三 ]라 하느니라. 대저 법을 구하
는 이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도
말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아서 마땅히 구하는 바가 없어야
하느니라.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부처랄 것도 없으며,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랄 것도 없으며, 대중에 집
착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에 승(僧)이랄 것도 없느니라."
問 無邊身菩薩 爲什�不見如來頂相
師云 實無可見 何以故 無邊身菩薩 便是如來 不應更見 祇
敎 不作佛見 不落佛邊 不作衆生見 不落衆生邊 不作有
見 不落有邊 不作無見 不落無邊 不作凡見 不落凡邊 不作
聖見 不落聖邊 但無諸見 卽是無邊身 若有見處 卽名外道
外道者 樂於諸見 菩薩 於諸見而不動 如來者 卽諸法如義
所以云 <彌勒 亦如也 衆聖賢 亦如也> 如卽無生 如卽無
滅 如卽無見 如卽無聞 如來頂 卽是圓見 亦無圓見故 不落
圓邊 所以 佛身 無爲 不墮諸數 權以虛空 爲喩 圓同太虛
無欠無餘 等閑無事 莫强辯他境 辯着 便成識 所以云 <圓
成沈識海 流轉若飄蓬> 祇道 <我知也 學得也 契悟也 解
脫也 有道理也> 强處 卽如意 弱處 卽不如意 似者箇見解
有什�用處 我向汝道 等閑無事 莫 用心 不用求眞 唯須
息見 所以 內見外見 俱錯 佛道魔道俱惡 所以 文殊 暫起
二見 貶向二鐵圍山 文殊 卽實智 普賢 卽權智 權實 相對
治 究竟 亦無權實 唯是一心 心且不佛不衆生 無有異見 裳
有佛見 便作衆生見 有見無見常見斷見 便成二鐵圍山 被見
障故 祖師 直指一切衆生 本心本體 本來是佛 不假修成 不
屬漸次 不是明暗 不是明故 無明 不是暗故 無暗 所以 無
無明 亦無無明盡 入我此宗門 切須在意 如此見得 名之爲
法 見法故 名之爲佛 佛法俱無 名之爲僧 喚作無爲僧 亦名
一體三寶 夫求法者 不着佛求 不着法求 不着衆求 應無所
求 不着佛求故 無佛 不着法求故 無法 不着衆求故 無僧
8. 한 법도 얻을 수 없다
"스님께서는 지금 법을 말씀하고 계시거늘 어찌하여 승(僧)이랄
것도 없고 법(法0이랄 것도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네 만약 가히 설명할 만한 법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음성으로서
부처님을 찾는 것'이 된다. 나[我]란 것이 있다고 견해를 내면 곧 처
소(處所)인 것이다. 법 또한 법이라 할 만한 것이 없으니 법이란 바
로 마음이니라.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이 마음의 법을 부촉할 때에
법이라 하는 법이 일찍이 무슨 법이던가.
법도 없고 본래 마음도 없으면
마음, 마음하는 법을 비로소 알리라.
실로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을 이름하여 도량에 앉음이라고 한
다. 도량이란 오직 일체의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법이 본래 공(空)한 줄을 깨닫는 것을 공여래장(空如來藏)이라 하
는데,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엔들 티끌과 먼지가 있겠느냐.
만약 이 소식을 안다면 유유자적하게 소요함인들 논할 바 있겠느냐.
問 和尙 見今說法 何得言無僧亦無法
師云 汝若見有法可說 卽是以吟聲求我 若見有我 卽是處所
法亦無法 法卽是心 所以 祖師云 <付此心法時 法法 何曾
法 無法無本心 始解心心法> 實無一法可得 名坐道場 道場
者 祇是不起諸見 悟法本空 喚作空如來藏 本來無一物 何
處 有塵埃 若得此中意 逍遙 何所論
9. 한 물건도 없음[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하신다면 한 물건도 없음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없다고 해도 맞지 않다. 깨달음이란 옳은 곳도 없으며 그렇다고
앎이 없는 것도 없다."
問 本來無一物 無物 便是否
師云 無亦不是 菩提 無是處 亦無無知解
10. 마음 밖에 다른 부처가 없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너의 마음이 부처이니라. 부처는 곧 마음이니, 마음과 부처가 서
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곧 부처'라고 하는 것이다. 마음을
떠나서는 따로 부처가 없느니라."
"만약 자신의 마음이 부처라 한다면,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시어
어떻게 그것을 전수하셨습니까?"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오셔서 전한 것은 오직 마음의 부처이니라.
즉 너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바로 가르쳐 주신 것이며, 마음과 마
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조사라 부르느니라. 만약 곧바로 이 뜻을
깨닫는다면, 곧 3승의 모든 지위를 단박에 뛰어넘어서 본래의 부처
인 것이니, 결코 점차로 닦음에 의지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니라."
"만약 그러다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무슨
법을 말씀하십니까?"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시사 오로지 한 마음의 법
만을 말씀하시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마하대가섭에게 그것을 은
밀히 부촉하셨느니라. 이 마음법[心法]의 본체는 허공계를 다하여 온
법계를 두루하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의 이치라고 부른다. 이러한 법
을 논하건대 너는 어찌 언어, 문자로써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또한
한 기틀, 한 경계 위에서 결코 심법([心法)을 볼 수 없는 것이니,
오로지 묵묵히 계합할 따름이니라. 이 하나의 문을 얻는 것을 이름
하여 하염없는 법의 문[無爲法門]이라 한다. 만약 깨쳐 알고자 한다
면 다만 무심을 알아야 한다. 홀연히 깨치면 곧 되는 것이요, 만약
마음을 써서 배워 깨달으려 하면 그럴수록 더욱더 멀어지느니라. 갈
라진 마음과 모든 취사(取捨)하는 마음이 없어서, 나무와 돌 같은 마
음이 되어야만 비로소 도를 배울 분(分)이 있느니라."
"지금 갖가지 망념이 있는데, 스님께서 어찌하여 없다고 하십니
까?"
"망념은 본시 본체가 없는 것인데, 너의 마음이 허망하게 일으킨
것이다. 만약 네가 마음이 부처임을 안다면, 마음은 본래 허망함이
없는 것이어늘, 어찌 마음을 일으켜 다시 망념을 알려 하느냐? 네
만약 마음을 내서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자연히 망념은 없을 것
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나고, 마음
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지금 바로 망념이 일어날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네 지금 망념이 일어난 것을 깨달았을 때에, 그 깨달음이 바로
부처님이다. 그런 가운데 망념이 없다면, 부처 또한 없느니라.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네가 마음을 일으켜 부처의 견해를 지어서 문득
이룰만한 부처가 있다고 하며, 중생의 견해를 지어서 제도할 중생이
있다고 하는데,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 모조리 너의
견해가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일체의 견해가 없다면 부
처는 어느 곳에 있겠느냐? 마치 문수가 부처라는 견해를 일으키자마
자 바로 두 철위산 지옥에 떨어진 경우와 같은 것이다."
"이제 바로 깨달았을 때 부처는 어느 곳에 있습니까?"
"물음은 어느 곳으로부터 왔으며, 깨달음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났
느냐? 일상의 어묵동정간에 모든 소리와 빛깔이 모두 불사(佛事) 아
님이 없거늘 어느 곳에서 부처를 찾겠느냐? 머리 위에 머리를 얹지
말며, 부리 위에 부리를 더하지 말라. 그저 다른 견해만 내지 않으면
산은 산, 물은 물, 승(僧)은 승, 속(俗)은 속일 뿐이니라.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너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삼천대천 세계가 모
두 너의 본래 면목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곳에 허다한 일들이 있겠
느냐?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눈 가득히 푸른 산이니라. 허공세계가
밝고 깨끗하여 한 터럭만큼도 너에게 견해를 짓게 하지 않는다. 그
러므로 모든 소리와 빛깔들이 그대로 부처님 지혜의 눈이니라.
법은 홀로 일어나지 않고 경계를 의지해야만 비로소 생긴 것이니,
경계 때문에 그 많은 지혜가 있는 것이다. 종일 말하나 일찍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종일 들으나 일찍이 무엇을 들었느냐? 그러므로 석
가세존께서 49년 설법하셨어도 일찍이 한 글자도 결코 말씀하시지
않은 것이니라."
問 何諸是佛
師云 汝心 是佛 佛卽是心 心佛不異故 云 <卽心卽佛> 若
離於心 別更無佛
云 若自心是佛 祖師西來 如何傳授
師云 祖師西來 唯傳心佛 直指汝等心 本來是佛 心心不異
故 名爲祖 若直下 見此意 卽頓超三乘一切諸位 本來是佛
不假修成
云 若如此 十方諸佛 出世 說於何法
師云 十方諸佛 出世 祇共說一心法 所以 佛 密付與摩詞大
迦葉 此一心法體 盡虛空 法界 名爲諸佛理 論這箇法 豈
是汝於言句上 解得他 亦不是於一機一境上見得他 此意 唯
是默契 得這一門 名爲無爲法門 若欲會得 但知無心 忽悟
卽得 若用心擬學取 卽轉遠去 若無岐路心 一切取捨心 心
如木石 始有學道分
云 如今 現有種種妄念 何以言無
師云 妄本無體 卽是汝心所起 汝若識心是佛 心本無妄 那
得起心 更認於妄 汝 若不生心動念 自然無妄 所以云 <心
生則種種法 生 心滅則種種法 滅>
云 今正妄念起時 佛在何處
師云 汝今覺妄起時 覺 正是佛 可中 若無妄念 佛亦無 何
故 如此 爲汝起心作佛見 便謂有佛可成 作衆生見 便謂有
衆生可度 起心動念 摠是汝見處 若無一切見 佛 有何處所
如文殊 裳起佛見 便貶向二鐵圍山
云 今正悟時 佛在何處
師云 問從何來 覺從何起 語默動靜一切聲色 盡是佛事 何
處覓佛 不可更頭上安頭 上加 但莫生異見 山是山水是
水 僧是僧俗是俗 山河大地日月星辰 摠不出汝心 三千世界
都來是箇汝自己 何處 有許多般 心外無法 滿目靑山 虛空
世界 地 無絲髮許 與汝 作見解 所以 一切聲色 是佛之
慧目 法不孤起 仗境方生 爲物之故 有其多智 終日說 何曾
說 終日聞 何曾聞 所以 釋迦四十九年說 未曾說着一字
11. 보리의 마음
"만약 그렇다면 어느 곳이 깨달음입니까?"
"깨달음은 일정한 처소가 없느니라. 부처라 해서 역시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며, 중생이라 해서 깨달음을 잃는 것도 아니다. 깨달
음은 몸으로 얻지 못하며, 마음으로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니, 일체중
생이 그대로 깨달음의 모양이니라."
"그러면 어떻게 보리심을 냅니까?"
"보리는 얻는 것이 아니다. 네 지금 얻음이 없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결정코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 그대로가 보리의 마음이니라.
보리는 머물 자리가 없기 때문에 얻을 그 무엇도 없다. 그러므로 말
씀하시기를 '내가 연등부처님의 처소에서 작은 법도 얻을 수 없었으
므로,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일체 중생
이 본래 보리이므로, 디시 보리를 얻으려 할 필요가 없음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네 이제 보리심을 낸다는 말을 듣고 한 마음을 가지고 배워서 부
처를 얻는다고 말하여, 오로지 부처가 되려고 한다면 네가 3대아승
기겁을 닦는다 해도 다만 보신, 화신의 부처만을 얻을 뿐, 너의 근본
연원인 참된 성품의 부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
로 말하기를 '밖으로 구하는 모양있는 부처는 그대와는 닮지 않았도
다'고 하였다."
云 若如此 何處是菩提
師云 菩提無是處 佛亦不得菩提 衆生 亦不失菩提 不可以
身得 不可以心求 一切衆生 卽菩提相
云 如何發菩提心
師云 菩提 無所得 今但發無所得心 決定不得一法 卽菩
提心 菩提 無住處 是故 無有得者 故 云 <我於燃燈佛所
無有少法可得 佛 卽與我授記> 明知一切衆生 本是菩提 不
應更得菩提 今聞發菩提心 謂將一箇心 學取佛去 唯擬作
佛 任 三祇劫修 亦祇得箇報化佛 與 本源眞性佛 有何交
涉 故 云 <外求有相佛 與汝不相似>
12. 수은의 비유
"본래로 이미 부처일진대 어찌하여 4생과 6도가 있어 갖가지로
형상과 모양이 같지 않습니까?"
"모든 부처님께서는 본체가 두렷하여 거기에 더 불어나고 줄어들
것이 없다. 또한 6도에 흘러들어도 곳곳마다 모두 원만하고, 여러 만
물이 모두 낱낱이 부처이니라. 이것은 마치 한 덩어리의 수은이 여
러 곳으로 나뉘어 흩어졌어도 방울방울이 모두 둥근 것과 같다. 나
뉘지 않았을 때에도 한 덩이였을 뿐이니, 이는 하나가 곧 일체요 일
체가 곧 하나이니라. 온갖 형상과 모습은 마치 집과 같다. 나귀의 집
을 버리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사람의 몸을 버리고 하
늘의 몸이 되기도 하며, 성문, 연각, 보살, 부처의 집은 모두 네 자신
이 취하고 버리는 곳이니라. 그래서 모든 구별이 있는 것이지만, 본
래 근원의 성품에는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
問 本旣是佛 那得更有四生六道 種種形貌不同
師云 諸佛 體圓 更無增減 流入六道 處處皆圓 萬類之中
箇箇是佛 譬如一團水銀 分散諸處 顆顆皆圓 若不分時 祇
是一塊 此一卽一切 一切卽一 種種形貌 喩如屋舍 捨驢屋
入人屋 捨人身至天身 乃至聲聞緣覺菩薩佛屋 皆是汝取捨
處 所以有別 本源之性 何得有別
13. 무연자비
"모든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위해 법을 설
하십니까?"
"부처님의 자비란 인연이 없기 때문에 큰 자비라고 한다. 사랑함
[慈]이란 이룰 만한 부처가 있다는 견해를 내지 않는 것이고, 슬퍼함
[悲]이란 제도할 중생이 있다는 견해를 내지 않는 것이다. 설하시는
법은 설함도 없고 보임도 없으며, 그 법을 듣는 자는 들음도 얻음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마술사가 마술로 만들어 놓은 인간을 위
하여 설법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법을 어떻게 '내가 선지식으로부터
말끝에서 알아차리고 이해하여 깨달았다'고 말하겠으며, 이러한 자비
를 어떻게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여 가지고 배워서 얻겠느냐?
스스로 본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면 마침내 아무런 이익도
없느니라."
問 諸佛 如何行大慈悲 爲衆生說法
師云 佛慈悲者 無緣故 名大慈悲 慈者 不見有佛可成 悲者
不見有衆生可度 其所說法 無說無示 其聽法者 無聞無得
譬如幻士爲幻人說法 者箇法 若爲道我從善知識言下領得
會也悟也 者箇慈悲 若爲汝起心動念 學得他 見解 不是自
悟本心 究竟無益
14. 정진이란?
"어떤 것이 정진(精進)입니까?"
"몸과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가장 굳건한 정진이니라. 마음
을 일으켜서 밖으로 구하기만 하면 '가리왕이 사냥놀이를 좋아함'
이라고 부른다. 마음이 밖으로 나다니지 않는 것이 곧 인욕선인이며,
몸과 마음이 함께 없음이 곧 부처님의 도이니라."
問 何者是精進
師云 身心不起 是名第一牢强精進 裳起心 向外求者 名爲
歌利王 愛遊獵去 心不外遊 卽是忍辱仙人 身心俱無 卽是
佛道
15. 무심한 행
"만약 마음이 없으면 이 도를 행하여 얻을 수 있습니까?"
"마음없음[無心]이 바로 도를 행함이거늘 거기에 다시 더 얻고 말
고 할 것이 있겠느냐? 만약 잠깐이라도 한 생각 일으키면 곧 경계이
고, 한 생각 없다 하여도 경계이니라. 망령된 마음이 스스로 없어지
면 더 이상 쫓아가 찾을 것이 없느니라."
問 若無心 行此道得否
師云 無心 便是行此道 更說什�得與不得 且如瞥起一念
便是境 若無一念 便是境 妄心 自滅 無復可追尋
16. 삼계(三界)를 벗어남
"어떤 것이 3계를 벗어나는 것입니까?"
"선과 악을 전혀 생각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곧 3계를 벗어나
느니라. 여래께서 세간에 출현하신 것은 3계를 부수기 위해서이다.
만약 모든 마음이 없다면 3계 또한 없느니라. 가령 작은 티끌 하나
를 100등분 부수어 그 중 99등분을 없애고 한 등분만 남았더라도,
대승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것이 못된다. 100등분이 모두 다
없어야만 대승에 있어서 비로소 잘 벗어났다고 하느니라."
問 如何是出三界
師云 善惡 都莫思量 當處便出三界 如來出世 爲破三有 若
無一切心 三界 亦非有 如一微塵 破爲百分 九十九分 是無
一分 是有 摩訶衍 不能勝出 百分 俱無 摩訶衍 始能勝出
17. 마음이 부처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꿈
틀거리는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두다 불성이 있어서, 동일한 마음의
본체를 지녔느니라. 그러므로 달마스님이 인도로부터 오셔서 오직
한마음의 법만을 전하셨으니,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곧 바르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깨달음이란 수행을 빌려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자기 마음을 알아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요,
결코 달리 구하지 말라.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아는 것인가?
지금 말하는 것이 바로 너의 마음이니라. 만약 말하지 않고 작용
도 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모양도 없고, 또한
방위와 처소도 없다. 그렇다고 그저 한결같이 없는 것만도 아니다.
있으면서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조사스님께서는 '참된 성품의 마음
자리[眞性心地藏]는 머리도 꼬리도 없는지라. 인연에 호응하여 중생
을 교화하나니, 방편으로 그것을 지혜라 부른다'고 하셨다. 만약 인
연에 호응하지 않을 때라도 있고 없음을 말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바로 호응할 때라도 또한 종적이 없느니라. 이미 이런 줄 알았을진
댄 '없음' 가운데 쉬어 깃든다면 곧 모든 부처님의 길을 가는 것이니
라.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머문 바가 없이 그 마음이 난다'고
하셨으니, 모든 중생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은 뜻으로 반연하고 분주
시 조작하는 마음이 6도에서 멈추지 못하여, 마침내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되느니라. 유마거사가 이르기를, '교화하기 힘든 사람은 원숭이
처럼 의심이 많기 때문에 여러 가지 법으로 제어한 다음에 비로소
조복시킨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느니라. 그러므로 일체 법이 마
음으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 천상, 지옥, 6도, 아수라가
모두 마음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당장이라
도 무심하기만 하면 모든 반연은 단박에 쉬게 되며 망상 분별을 내
지 않으면 남도 없고 나도 없으며, 욕심과 성냄도 없고, 밉고 고움도
없으며, 이김도 짐도 없느니라.
허다한 여러 가지 망상을 없애 버리기만 하면 자성(自性)은 본래
부터 청정한 것이니, 곧 깨달음의 법을 수행하여 부처님과 나란히
되는 것이니라. 만약 이 뜻을 알지 못한다면, 설사 널리 배우고 부지
런히 수행하며, 나무먹이를 먹고 풀옷을 입는 고행을 한다 하더라도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한 것이니라. 그것을 모두 삿된 수행이라고
하며 모두 다 천마(天魔), 외도, 물과 뭍의 여러 귀신 노름을 하는
것이니, 이같이 수행한들 무슨 이로움이 있느냐? 지공이 말하기를
'본래 몸은 자기의 마음이 짓는 것이어늘, 어찌 문자 속에서 구하리
오?' 하였다. 지금 자기 마음을 알아서 사량분별하는 망상을 쉬기만
하면 6진의 번뇌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오직 침상 하나만 두고 병들어 누워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니라. 지금 앓아 누워서 반연을 모두 쉬어 망상
이 그쳐 없어지면, 그것이 바로 보리이니라.
지금 만약 마음 속이 분분히 시끄러워 안정되지 않았다면, 너의
배움이 비록 3승, 4과, 10지의 모든 지위에 이르렀다 해도 아직 범,
성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함이 옳다. 모든 행위는 끝내 덧
없음으로 돌아간다. 모든 것은 힘이 다할 때가 있기 마련이니, 마치
화살을 공중에 쏘면 얼마 안 가 힘이 다해 땅에 도록 떨어지는 것처
럼, 생사의 윤회에 다시 돌아가고 만다. 이와 같은 수행은 부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요, 헛되이 쓰라린 고초를 받을 뿐이니, 어찌 크게
잘못됨이 아니겠느냐, 지공이 말하기를 '세간에 뛰어난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대승의 법약을 잘못 먹은 것이다'고 하였다. 단지 다
니고 머물고 앉아 눕는 모든 시간 가운데서 오로지 무심함을 배우기
만 하면, 분별도 없고 의지할 것도 없으며, 또한 머물러 집착할 바도
없다. 종일토록 둥둥 떠오르는 기운데로 내맡겨 둔 것이, 마치 바보
와도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너를 모른다 하여도, 일부러
알리거나 모르게 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마치 큰 바위덩이와 같아
서 도무지 갈라진 틈이 없고, 일체 법이 너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여 올연히 어디에도 잡착함이 없어야 한다. 이와 같아야만 비로
소 조금은 상응할 분(分)이 있다 하리라.
3계의 경계를 툭 뚫고 지나기만 하면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셨
다고 하는 것이며, 번뇌 없는 마음의 모습을 바로 샘이 없는 지혜
[無漏智]라고 부른다. 인간과 천상업을 짓지 않으며, 그렇다고 지옥
업을 짓지도 않으며, 나아가 일체의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모든 반
연이 전혀 생기지 않으면 곧 이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인 것이
다. 그렇게 되면 한결같이 나지 않음[不生]만은 아니어서, 뜻 따라
날[生] 따름이니라. 경에 이르시기를 '보살은 자기 뜻대로 나는 몸을
가졌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만약 마음이 없음을 모르고 모
양에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는 것은 모두 마구니의 업에 속하는
것이다. 나아가 정토의 수행[淨土佛事]을 한다 하더라도 모두 업을
짓는 것으로써, 이것을 부처의 장애[佛障]라고 하느니라. 그것이 그
대의 마음을 가로막기 때문에 인과에 얽매여, 가고 머무름에 조금도
자유로움이 없다. 왜냐하면 보리 등의 법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여래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사람을 교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마
치 누런 잎사귀를 돈이라하여 우는 어린아이의 울음을 억지로 그치
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로 법이 있지 않음을 무상정각이라
하나니, 지금 이미 이 뜻을 알았다면 어찌 구구한 설명이 더 필요하
겠느냐? 다만 인연따라 묵은 업을 녹일 뿐이요, 다시 새로운 재앙을
짓지 말라. 마음 속은 밝고 또 밝기 때문에 옛 시절의 견해를 모두
버려야 한다. 그래서 <유마경>에 이르기를 '가진 것을 없애 버린다'
고 하였으며, <법화경>에서는 '20년 동안 항상 똥을 치게 하셨다'고
하였느니라. 이것은 오로지 마음 속에 지은 바 견해를 없애게 하는
것이다. 또 말씀하시기를, '희론(戱論)의 똥을 쳐서 없앤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래장은 본래 스스로 공적(空寂)하여 결코 한 법에라도
멈춰 머무르지 않으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부처님의 나라도
또한 다 비었다'고 하셨느니라.
만약 부처님의 도를 닦아 배워서 얻는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견
해는 전혀 맞지가 않는 것이다. 혹은 한 기연이나 한 경계를 보이기
도 하며, 눈썹을 치켜뜨기도 하고 눈을 부라리기도 하여 어쩌다 서
로 통하기라도 하면 곧 말하기를, '계합하여 알았다'고 하며 혹은 '선
의 이치를 깨쳐서 증득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사람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도무지 아는 게 없
다가 그 사람을 대하여 무슨 도리라도 얻게 되면 마음 속이 문득 환
희하여 기뻐한다. 그러나 만약 상대에게 절복당하여 상대보다 못하
게 되면 속으로 섭한 생각을 품게 된다. 이처럼 마음과 뜻으로 배운
선(禪)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비록 그대가 자그마한 도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한낱
마음으로 헤아리는 법일 뿐이요, 우리 종문의 선도(禪道)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달마스님께서 면벽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로 하
여금 전혀 견처(見處)가 없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말하기를 '마음
의 작용을 잊는 것은 부처님의 도이나, 분별망상은 마구니의 경계이
다'고 하였다. 이 성품은 네가 미혹했을 때라도 결코 잃지 않으며,
그렇다고 깨쳤을 때에도 역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라. 천진스런 자
성은 본래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으며, 온 시방의 허공계가 바로
나의 한마음의 본체이니라. 그러니 네 아무리 몸부림친다 해도 어찌
허공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
허공이란 본래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라 할 것도 인위적
인 작위도 없으며,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다. 그래서 '요연히 사
무쳐 보아 한 물건도 없나니,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고 하였으
며, 털끝만큼이라도 사량분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니, 의지하여 기
댈 만한 것도 없으며, 달라붙을 것도 없다. 한 줄기 맑은 흐름이 자
성의 남이 없는 진리[無生法忍]이니, 어찌 머뭇거려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겠느냐! 참 부처는 입이 없기 때문에 설법할 줄 모르고, 진정
으로 들음은 귀가 없으니, 뉘라서 들을 수 있겠느냐! 수고하였다. 편
히들 하여라."
上堂云 卽心是佛 上至諸佛 下至蠢動含靈 皆有佛性 同一
心體 所以 達磨 從西天來 唯傳一心法 直指一切衆生 本來
是佛 不假修行 但如今 識取自心 見自本性 更莫別求 云何
識自心
卽如今言語者 正是汝心 若不言語 又不作用 心體如虛空相
似 無有相貌 亦無方所 亦不一向是無 有而不可見故 祖師
云 <眞性心地藏 無頭亦無尾 應緣而化物 方便呼爲智> 若
不應緣之時 不可言其有無 正應之時 亦無 跡 旣知如此
如今 但向無中 泊 卽是行諸佛路 經云 <應無所住 而生其
心> 一切衆生 輪廻生死者 意緣走作心 於六道 不停 致使
受種種苦 淨名 云 <難化之人 心如猿 故 以若干種法 制
禦其心然後 調伏> 所以 心生 種種法 生 心滅 種種法 滅
故知一切諸法 皆由心造 乃至人天地獄 六道 修羅 盡由心
造 如今 但學無心 頓息諸緣 莫生妄想分別 無人無我 無貪
瞋 無憎愛無勝負 但除却如許多種妄想 性自本來淸淨 卽是
修行菩提法 佛等 若不會此意 縱 廣學勤苦修行 木食草衣
不識自心 皆名邪行 盡作天魔 外道 水陸諸神 如此修行 當
復何益 誌公 云 <本體是自心作 那得文字中求> 如今 但
識自心 息却思惟妄想 塵勞自然不生 淨名 云 <唯置一牀
寢疾而臥> 心不起也 如今臥疾 攀緣 都息 妄想 歇滅 卽是
菩提 如今 若心裸紛紛不定 任 學到三乘四果十地諸位 合
殺祇向凡聖中坐 諸行 盡歸無常 勢力 皆有盡期 猶如箭射
於空 力盡還墜 却歸生死輪廻 如斯修行 不解佛意 虛受辛
苦 豈非大錯 誌公 云 <未逢出世明師 枉服大乘法藥> 如
今 但一切時中行住坐臥 但學無心 亦無分別 亦無依倚 亦
無住着 終日任運騰騰 如癡人相似 世人 盡不識 亦不
用敎人識不識 心如頑石頭 都無縫 一切法 透汝心不入
兀然無着 如此 始有少分相應 透得三界境過 名爲佛出世
不漏心相 名爲無漏智 不作人天業 不作地獄業 不起一切心
諸緣 盡不生 卽此身心 是自由人 不是一向不生 祇是隨意
而生 經 云 <菩薩 有意生身> 是也 忽若未會無心 着相而
作者 皆屬魔業 乃至作淨土佛事 皆成業 乃名佛障 障汝
心故 被因果管束 去住無自由分 所以 菩提等法 本不是有
如來所說 皆是化人 猶如黃葉 爲金 權止小兒啼故 實無有
法 名阿뇩菩提 如今 旣會此意 何用區區 但隨緣消舊業 更
莫造新殃 心裸明明 所以 舊時見解 摠須捨却 淨名 云 <除
去所有> 法華 云 <二十年中 常令除糞> 祇是除去心中作
見解處 又云 < 除戱論之糞> 所以 如來藏 本自空寂
不停留一法故 經云 <諸佛國土 亦復皆空> 若言佛道 是修
學而得 如此見解 全無交涉 或作一機一境 揚眉動目 祇對
相當 便道 <契會也> <得證悟禪理也> 忽逢一人 不解便
道 都無所知 對他若得道理 心中 便歡喜 若被他折伏 不如
他 便卽心懷 □ 如此心意學禪 有何交涉 任汝會得少許道
理 祇得箇心所法 禪道 摠沒交涉 所以 達磨面壁 者不令人
有見處 故 云 <忘機 是佛道 分別 是魔境> 此性 縱汝迷
時 亦不失 悟時 亦不得 天眞自性 本無迷悟 盡十方虛空界
元來是我一心體 縱汝動用造作 豈離虛空 虛空 本來無大無
小 無漏無爲 無迷無悟 了了見無一物 亦無人亦無佛 絶纖
毫的量 是無依倚 無粘綴 一道淸流 是自性無生法忍 何有
擬議 眞佛 無口 不解說法 眞聽 無耳 其誰聞乎 珍重
18. 유행(遊行) 및 기연(機緣)
대사는 본시 민현( 縣) 땅의 어른이시다. 어려서 본주(本州) 땅
황벽산으로 출가하셨다. 스님의 이마 사이에 솟아 오른 점은 구슬과
도 같았고, 음성과 말씨는 낭랑하고 부드러웠으며, 뜻을 깊고도 담박
하셨다. 뒷날 천태산(天台山)에 노니시다가 한 스님을 만났는데, 처
음인데도 오래 사귄 사람 같았다. 이윽고 함께 길을 가다가 개울물
이 갑자기 불어난 곳에 이르렀다. 그때 대사께서는 석장을 짚고 멈
추시니, 그 스님이 대사를 모시고 건너려고 하자, 대사께서 말씀하셨
다.
"형씨가 먼저 건너시오."
그러자 그 스님은 곧 삿갓을 물 위에 띄우고 곧장 건너가 버렷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 어쩌다 저 나한 좀놈하고 짝을 했을까? 한 몽둥이로 때려죽
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어떤 스님이 귀종(歸宗)을 하직하는데 귀종이 그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제방에 다섯 맛의 선[五味禪]을 배우러 갑니다."
"제방은 다섯 맛의 선이지만 나의 이곳은 오직 한 맛의 선이라
네."
"어떤 것이 한 맛의 선입니까?"
그러자 귀종이 문득 후려쳤다. 그 스님이 소리쳤다.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귀종이 다르쳤다.
"말해 봐라, 말해봐라."
그 스님이 입을 열려고 하자 귀종은 또 몽둥이를 내리쳤다. 그 스
님이 뒤에 대사의 회하에 이르자 대사께서 물었다.
"어느 곳에서 오는가?"
"귀종에서 옵니다."
"귀종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 스님이 앞날의 이야기를 그대로 말씀드리니, 대사께서는 곧 바
로 법좌에 올라가 그 인연을 들어서 말씀하셨다.
"마조스님께서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긴 했으나, 질문을 당하면
모두가 똥이나 뻘뻘 싸는 형편들인데, 그래도 귀종이 조금 나은 편
이다."
대사께서 염관(鹽官 ?-842)의 회하에 있을 때에 대중(大中) 황제
는 사미승으로 있었다. 대사께서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는데 그 사미
승이 말하였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으며, 대
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않는 것이어늘, 장로께서는 예배하시어 무엇
을 구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고 법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
며 대중에 집착하여 구하지 아니하면서, 늘 이같이 예배하느니라."
"예배는 해서 무얼 하시렵니까?"
그러자 대사께서 갑자기 사미승의 뺨을 올려치니 그 사미승은
"몹시 거친 사람이군"하고 대꾸했다. 그러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 무슨 도리가 있길래 네가 감히 거칠다느니 섬세하다느니 뇌
까리느냐!"하고 뒤따라 또 뺨을 붙이니, 사미는 도망가 버렸다.
대사께서 제방을 행각하실 적에 남전(南泉 734-843)에 이르렀다.
하루는 점심 공양을 할 때 발우를 들고 남전의 자리에 가서 앉으셨
다. 남전이 내려와 보고는 대사께 물었다.
"장로께서는 어느 시절에 도를 행하였오?"
"위음왕 부처님 이전부터입니다."
"그렇다면 내 손자뻘이 되는구먼."
그러자 대사는 곧바로 내려와 버렸다.
또 어느 날 대사께서 외출하려고 할 때에 남전이 말하였다.
"이만큼 커다란 몸집에 조금 큰 삿갓을 쓰셨군!"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남전의 대답이로다."
그러자 대사는 삿갓을 쓰고 곧 가버렸다.
또 하루는 대사가 차당(茶堂)에 앉아 있는데 남전이 내려와 물었
다.
"정과 혜를 함께 배워서 부처님의 성품을 밝게 본다 하는데, 이
뜻이 무엇이오?"
"하루 종일 한 물건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레 바로 장로 견해인가요?"
"부끄럽습니다."
"장물[奬水] 값은 그만두어도 짚신 값은 어디서 받으란 말이오?"
그러자 대사는 문득 쉬어 버렸다.
뒷날 위산(瀉山 771-853)이 이 대화를 가지고 앙산(仰山 803-887)
에게 물었다.
"황벽이 남전을 당해내지 못한 게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황벽에게는 범을 사로잡는 기틀이 있었음을 아
셔야 합니다."
"그대의 보는 바가 그만큼 장하구나!"
하루는 대중이 운력을 하는데 남전이 대사께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채소 다듬으러 갑니다."
"무엇으로 다듬는가?"
대사가 칼을 일으켜 세우자 남전이 말하였다.
"그저 손님 노릇만 할 줄 알지 주인 노릇은 할 줄 모르는군."
그러자 대사는 세 번을 내리 두드렸다.
하루는 새로 온 스님 다섯 명이 동시에 서로 보게 되었다. 그 중
에서 한 스님만은 예배를 올리지 않고 그저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
리면서 서 있었다. 이것을 본 대사가 그에게 말씀하셨다.
"한 마리의 훌륭한 사냥개라고 말하는 줄 아느냐?"
"영양(羚羊)의 기운을 찾아왔습니다."
"영양이란 기운이 없거늘 너는 어디서 찾겠느냐?"
"영양의 발자욱을 찾아 왔습니다."
"영양은 발자욱이 없거늘 너는 어디서 찾겠느냐?"
"그렇다면 그것은 죽은 영양입니다."
이 말을 듣자 대사는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튿날 법좌에
올라 설법을 끝내고 물러나면서 물었다.
"어제 영양을 찾던 스님은 앞으로 나오너라."
그 스님이 바로 나오자 대사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어제 너와 대화를 하다가 끝에 가서 미처 다하지 못한 말
이 있는데, 어떤가?"
그 스님이 말이 없자 대사께서 말을 이었다.
"본분 납승(本分衲僧)인가 했더니, 그저 뜻이나 따지는 사문이로
구나."
대사께서는 일찍이 대중을 흩으시고, 홍주(洪州) 당의 개원사(開
元寺)에 머물고 계셨다. 이 때에 상공 배휴거사가 어느 날 절로
들어오다가 벽화를 보고 그 절 주지스님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림입니까?"
"고승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고승들의 겉모습은 여기에 있지만, 고승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 절 주지스님이 아무런 대답을 못하자 배휴가 "이 곳에 선승은
없습니까?" 하고 물으니, "한 분이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상공은
마침내 대사를 청하여 뵙고, 전에 주지스님에게 물었던 일을 스님게
여쭈었다. 그러자 대사가 불렀다.
"배휴!"
"예!"
"어디에 있는고?"
상공은 이 말 끝에 깨치고 대사를 다시 청하여 개당설법을 하시
게 하였다.
師 本是 中人 幼於本州黃蘗山 出家 額間降起如珠 音辭
朗潤 志意沖澹 後遊天台 逢一僧如舊識 乃同行 屬□水暴
漲 師倚杖而止 其僧 率師同過 師云 請兄先過 其僧 卽浮
笠於水上便過 師云 我却共箇稍子作隊 悔不一棒打殺
有僧辭歸宗 宗云 往甚處去 云 諸方 學五味禪去 宗云 諸
方 有五味禪 我這裏 祇是一味禪 云 如何是一味禪 宗便打
僧云 會也會也 宗云 道道 僧 擬開口 宗又打 其僧 後到師
處 師問 甚�處來 云歸宗來 師云 歸宗 有何言句 僧遂거
前話 師乃上堂거此因緣云 馬大師 出八十四人善知識 問著
箇箇 地 祇有歸宗 較些子
師在鹽官會裏 大中帝爲沙彌 師於佛殿上禮佛 沙彌云 不著
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 長老禮拜 當何所求
師云 不著佛求 不著法求 不著衆求 常禮如是事 沙彌云 用
禮何爲 師便掌 沙彌云 太序生 師云 這裏是什�所在 說序
說細 隨後又掌 沙彌便走
師行脚時到南泉 一日齋時 捧鉢向南泉位上坐 南泉 下來見
便問 長老什�年中行道 師云 威音王巳前 南泉云 猶是王
老師孫在 師便下去
師一日出次 南泉 云 如許大身材 戴箇些子大笠 師云 三千
大千世界總在裏許 南泉云 王老師 師戴笠便行
師一日 在茶堂內坐 南泉 下來 定慧等學 明見佛性 此理如
何 師云 十二時中 不依倚一物 泉云 莫便是長老見處� 師
云 不敢 泉云 漿水錢 且置 草鞋錢 敎什�人還 師便休 後
山거此因緣 問仰山 莫是黃蘗 他南泉不得� 仰山云
不然 須知黃蘗 有陷虎之機 山云 子見處得與�長
一日 普請 泉問 什�處去 師云 擇菜去 泉云 將什�擇 師
揷起刀子 泉云 只解作賓 不解作主 師 三下
一日 五人新到 同時相看 一人 不禮拜 以手 一圓相而立
師云 還知道好隻獵犬� 云 尋羚羊氣來 師云 羚羊 無氣
汝向什�處尋 云 尋羚羊 來 師云 羚羊 無 汝向什�處
尋 云 尋羚羊跡來 師云 羚羊 無跡 汝向什�處尋 云 與�
則死羚羊也 師便休 來日陞座退 問 昨日尋羚羊僧出來 其
僧便出 師云 老僧 昨日 後頭未有語在 作�生 其僧無語
師云 將謂是本色衲僧 元來祇是義學沙門
師曾散衆在洪州開元寺 裴相公 一日入寺行次 見壁 乃問
寺主 這 是什� 寺主云 高僧 相公云 形影 在這裏 高
僧 在什�處 寺主無對 相公云 此間 莫有禪僧� 寺主云
有一人 相公遂請師相見 乃거前話問師 師召云 裴休 休應
諾 師云 在什�處 相公於言下有省 乃再請師開堂
19. 술찌꺼기 먹는 놈
대사는 이에 법상에 올라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조리 술찌꺼기나 먹는 놈들이다. 이처럼 행각을 한답
시고 남들의 비웃음이나 사면서 모두 이렇게 안이하게 세월을 보내
고 있구나! 세월이 한 번 가면 언제 오늘이 또 오겠느냐? 이 큰 당
나라 땅 안에 선사(禪師)가 없음을 너희는 아느냐?"
이 때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제방에서 지금 선사들이 세상에 나와 여러 대중들을 바로 이끌
어 지도하시거늘, 어찌하여 스님께서는 선사가 없다고 말씀하십니
까?"
"내 말은 선(禪)이 없다는 소리가 아니라, 선사(禪師)가 없다는 말
이니라."
뒷날 위산이 이 인연에 대해 앙산에게 물었다.
"그래 네 생각은 어떠냐?"
"거위왕이 젖을 고르는 솜씨는 본디 집오리 무리와는 다릅니
다."
그러자 위산이 말하기를, "이것은 참으로 가려내기 어렵느니라"고
했다.
上堂云 汝等諸人 盡是 酒糟漢 與�行脚 笑殺他人 總似
與�容易 何處更有今日 汝還知大唐國裏 無禪師� 時有僧
問 祇如 諸方 見今出世 匡徒領衆 爲什� 却道無禪師 師
云 不道無禪 祇道無師 後 山거此因緣問仰山 云 意作�
生 仰山云 鵝王擇乳 素非鴨類 山云 此實難辨
20. 배휴의 헌시
어느 날 배상공이 불상 한 구를 대사 앞에 내밀면서 호궤(胡 )합
장하며 말씀드렸다.
"청하옵건대 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배휴!"
"예!"
"내 너에게 이름을 다 지어 주었노라."
그러자 배상공은 곧 바로 절을 올렸다.
하루는 상공이 시(詩) 한 수를 대사께 지어올리자 대사께서 받으
시더니 그대로 깔고 앉아 버리면서 물었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몰라야만 조금은 낫다 하겠지만, 만약 종이와 먹으로써
형용하려 한다면 우리 선문(禪門)과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상공의 시가 이러하였다.
대사께서 심인을 전하신 이후로
이마에는 둥근 구슬 몸은 칠척 장신이로다.
석장을 걸어 두신 지 십년 촉나라 물가에서 쉬시고
부배(浮杯)에서 오늘날 장( )의 물가를 건너왔네.
일천 무리의 용상대덕들은 높은 걸음걸이 뒤따르고
만리에 뻗친 향그런 꽃은 수승한 인연을 맺었도다.
스승으로 섬겨 제자 되고저 하오니
장차 법을 누구에게 부촉하시렵니까?
대사께서 대답하여 읊으셨다.
마음은 큰 바다와 같아 가이 없고
입으론 붉은 연꽃을 토하여 병든 몸 기르네.
비록 한 쌍의 일 없는 손이 있으나
한가한 사람에게 일찍이 공경히 읍(揖)한 적이 없었노라.
裴相 一日 托一尊佛於師前胡 云 請師安名 師召云 裴休
休應諾 師云 與汝安名竟 相公便禮拜 相公 一日 上詩一章
師接得便坐却 乃問 會� 相公云 不會 師云 與�不會 猶
較些子 若形祇墨 何有吾宗 時曰 自從大士傳心印 額有圓
珠七尺身 掛錫十年棲蜀水 浮杯今日渡 濱 千徒龍象 隨高
步 萬里香花 結勝因 願欲事師爲弟子 不知將法付何人 師
答曰 心如大海無邊際 口吐紅蓮養病身 雖有一雙無事手 不
曾祇揖等閑人
21. 여래의 청정선
"도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잡된 학문과 모든 반연을 물리
쳐야 한다. 그리하여 결정코 구하지도 말고 집착하지도 않아서, 아주
깊고 깊은 법을 듣더라도 맑은 바람이 귓가에 잠깐 스쳐지나간 듯이
여기어, 그것을 쫓아가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여래선(如來禪)에
매우 깊숙히 들어가 참선을 한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 것이다.
위로부터 역대의 조사들께서 오로지 한마음[一心]만을 전하셨다. 결
코 두 법이 있을 수 없으니 마음이 그대로 부처임을 바르게 가르치
신 것이다. 등각이니 묘각이니 하는 지위와 차례를 단박에 뛰어 넘
어서 절대로 또 다른 생각으로 흘러들어가서는 안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 선종의 가문에 비슷하게나마 들어오는 것이다. 나희 경
망한[取次] 사람들이야 이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
로 말하기를 '마음으로 헤아릴 때에는 그 헤아리는 마음의 마구니에
묶여 버리고, 한편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을 때에는 또 헤아리지 않
는 마음의 마구니에 묶인다. 그렇다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않는 것도
아닐 때에는 또 역시 헤아리지 않는 것도 아닌 마음의 마구니에 묶
인다. 그러므로 마구니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 마음에서
저절로 나온다'고 한 것이니라. 이것은 오직 신통없는 보살은 그 발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니라.
만약 언제든지 마음에 항상하다는 견해[常見]가 있으면 그것이
바로 상견외도(常見外道)이며, 만약 일체의 법은 공(空)하다고 관
(觀)하고 모든 것이 공하다는 견해에 빠지면 그것이 바로 단견외도
(斷見外道)이다. 그러므로 '3계는 오직 마음이고 만법은 오직 식(識)
이다[三界唯心 萬法唯識]'고 하는 것은 외도와 삿된 견해를 가진 사
람들을 제도하기 위한 말일 뿐이다. 만약 최고의 법신자리에서 본다
면 그것은 3현(三賢), 10성(十聖)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말일 뿐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두 가지의 어리석음을 끊으셨
는데, 하나는 미세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며 또 하나는 극히 미세하게
아는 어리석음이다.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와 같으셨거늘, 다
시 무슨 등각이니 묘각이니 하는 차례를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밝음만을 추종하고 어둠을 싫어하며, 그저 깨우침만
을 얻으려 하고 번뇌와 무명은 받으려 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부
처님은 깨달은 분이고 중생들은 망념이 남아 있는 존재이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이렇게 생각하면 백천 겁이 지나도록 다만 6도에 계속
윤회하여 쉴 날이 없으리라.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의 본래 근원의
자성을 비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너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부처 또한 밝음도
아니요 중생 또한 어둠도 아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밝음도 어둠도
없기 때문이다. 부처라고 해서 또한 강하지도 않고 중생이라고 해서
약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법에는 강함도 약함도 없기 때문이다. 또
부처라고 해서 지혜로운 것도 아니고, 중생이라 해서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법에는 지혜로움도 어리석음도 없기 때문이다.' 너
희들이 나타나서는 모두들 선을 안다고 말들 하지만 입을 벌리기만
하면 그대로 병통이 생기고 만다. 그리하여 근본은 말하지 않고 지
말만을 말하며, 미혹함은 말하지 않고 그저 깨달음만 말하며, 본체는
말하지 않고 작용만을 말하는데 제대로 말한 것이라고는 도무지 없
다.
저 일체 법은 본래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금 또한 없는 것도
아니어서 반연이 생겼다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니며 반연이 사라졌다
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니다. 근본이라 할 만한 것이 있지 않으니, 근
본은 근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마음 또한 마음이 아니니, 마음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모양 또한 모양이 아니니, 모양은
모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법도 없고 본래 마음도
없어야만 비로소 마음이라 하는 마음법을 알게 된다'고 했다. 법은
곧 법이 아니요 법 아님이 곧 법이며, 법도 없고 법 아님도 없다. 그
러므로 이것이 바로 마음이라 하는 마음법이니라.
홀연히 한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허깨비인 줄 분명히 알면
곧 과거의 부처님에게로 흘러들어 간다. 과거의 부처님은 또한 있지
도 않고 미래의 부처님 또한 없지도 않다. 그렇다고 또한 미래의 부
처님이라고 부르지도 못한다. 반면에 현재의 생각 생각이 일정하게
머물지 않으니 현재의 부처님이라고도 부르지 못한다. 부처님이라는
생각이 만약 일어날 때에, 그것을 두고 깨달은 것이라거나 혹은 미
혹한 것이라든가, 또 이것은 좋은 것이거나 혹은 나쁜 것이라고 사
량분별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문득 그것에 집착하여 끊어 버리려 하
지도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약 한 생각 갑자기 일어나면 수천
겹으로 자물쇠를 채우더라도 가둘 수가 없고, 수만발의 오랏줄로도
그것을 묶어 두지 못한다. 이미 이와 같은데 어찌 그것을 없애려고
하고 그치게 하겠는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의 이 아지
랑이같은 의식이 어떻게 저 생각을 끊어 버려서, 아지랑이 같은 데
다 비유하겠느냐. 너희가 가깝다고 말하면 시방세계를 두루 찾아도
구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멀다고 말하면, 볼 때에 단지 눈 앞에 있어
서 쫓아가면 더더욱 멀리 가 버리며, 피하려 하면 또 쫓아와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알라. 모든 법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하여 그것을 근심하
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앞 생각이 범부이여, 뒷 생각이 성인이라
는 말처럼 손을 뒤집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3승교(三乘敎)의 종극
(終極)이다. 그러나 우리 선종의 가르침에 의거하면 앞 생각 또한 범
부가 아니고 뒷 생각 또한 성인이 아니며, 앞 생각이 부처가 아니고
뒷 생각이 중생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모든 빛깔이 부처님의 빛깔이
며 모든 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소리이다. 한 이치[理]를 들면 모든
이치가 다 그러하므로, 한 현상[事]을 보아 모든 현상을 보며, 한 마
음을 보아 모든 마음을 보며, 한 도를 보아 모든 도를 보아서 모든
것이 도 아님이 없다. 또 한 티끌을 보아 시방세계의 산하대지를 보
며, 한 방울의 물을 보아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성품의 물을 보며,
또한 일체의 법을 보아 일체의 마음을 본다. 모든 법이 본래 공(空)
해서 마음은 없지도 않다. 없지 않음이 바로 묘하게 있는 것[妙有]이
고, 있음[有] 또한 있는 것이 아니어서 있지 않음이 바로 있는 것이
니, 이것이 바로 참으로 공하면서 오묘하게 있음[眞空妙有]이니라.
그렇다면 시방세계가 나의 '한마음'을 벗어나지 않으며, 티끌처럼
많은 모든 국토들이 나의 '한생각'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안과 밖을 구별하여 말하겠는가? 마치 벌꿀의 성질이 달콤해서
모든 꿀은 다 그러하므로, 이 꿀은 달고 저 꿀은 쓰다고 말할 수 없
는 것과 같다. 이런 일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
를, '허공이 안팎이 없으니 법의 성품도 또한 그러하며, 허공이 중간
이 없으니 법의 성품도 그와 같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이
곧 부처요 부처가 그대로 중생이니라. 중생과 부처가 원래로 한 본
체이며, 생사열반과 유위(有爲), 무위(無爲)가 원래 동일한 본체이며,
세간, 출세간과 나아가 6도, 4생과 산하대지와 유정, 무정이 또한 같
은 한 본체이다. 이렇게 같다고 말하는 것은 이름과 모양이 역시 공
(空)하여 있음도 공하고 없음도 공하여, 간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
많은 온 세계가 원래 똑같이 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중생
을 제도할 부처가 어디 있으며, 부처의 제도를 받을 중생이 어디에
있겠느냐? 무엇 때문에 이러한가? 만법의 자성이 본래 그렇기 때문
이다. 그러나 만약 저절로 그렇다는 견해를 내면 곧 자연외도(自然
外道)에 떨어지고, 만약 나도 없고 나의 것[我所)도 없다는 견해를
내면 3현, 10성의 지위에 떨어진다. 너희들이 지금 어찌 한 자, 한
치를 가지고 끝없는 허공을 재려 하겠는가? 분명히 너희에게 말하기
를 '법과 법이 서로 다닫지 못하나니, 법은 스스로 공적함으로써 그
자리에 본래부터 머물러 있으며, 그 자리에서 스스로 참되다'고 하였
느니라.
몸이 공하므로 법이 공하다고 하며, 마음이 공하므로 성품이 공하
다고 하며, 몸과 마음이 모두 공하므로 법의 성품이 공하다고 하며,
나아가 천 갈래로 다른 갖가지의 말들이 모두 다 너희의 본래 마음
을 여의지 않은 것이다. 지금 보리와 열반, 진여와 불성, 이승과 보
살 등을 말하는 것은 모두 누런 나뭇잎을 가리켜 돈이라 하는 주먹
과 손바닥의 비유에 불과하다. 주먹을 펴면 천상세계와 인간세계의
모든 대중들이 모두 그 속에 아무 것도 없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이 있으리오'라고
하였다. 본래 한 물건도 없어서 3세(三世) 역시 있는 바 없다. 그러
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단도직입으로 이러한 뜻을 알아야만 된다.
그러므로 달마스님께서 인도로부터 이 땅에 오시어 여러 나라를 거
치셨지만, 오직 찾아 얻으신 것은 혜가스님 한 분뿐이었다. 혜가스님
에게 마음의 도장[心印]을 은밀히 전하였으니, 이는 너희의 본래 마
음에 새기신 것이다. 마음으로써 법에 새기며 법으로써 마음에 새겨
서, 마음이 이미 이 같으며 법 또한 이 같아서 진제(眞際)와 같고 법
의 성품과 평등하다. 법의 성품이 공한 가운데 누가 수기(授記)하는
사람이며, 누가 부처가 되는 사람이여, 누가 법을 얻는 사람이겠는
가?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보리란 몸으로 얻을 수 없으
니, 몸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또 마음으로도 얻을 수 없는데, 마
음은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그허다고 성품으로도 얻을 수 없으니,
성품은 곧 바로 근본원류의 자성이 청정한 부처[本源自性淸淨佛]이
기 때문이다'고 하셨다. 부처로써 다시 부처를 얻을 수 없으며, 모양
이 없는 것으로 다시 모양이 없는 것을 얻을 수 없다. 또한 공함으
로써 공함을 얻을 수 없고, 도로써 도를 얻을 수 없다. 본래 얻은 것
이 없어서 얻은 것이 없음도 얻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
기를 '얻을 만한 한 법도 없다'고 하신 것이다. 이는 다만 너희로 하
여금 본 마음을 분명히 찾게 하고자 한 것이다.
당장 요달했을 때라도 요달한 모양을 얻을 수 없어서, 요달함이
없는 모양도, 요달하지 않음이 없는 모양도 또한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은 법을 얻은 사람은 곧 얻으나, 얻은 사람이라도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얻지 못한 사람이라도 또한 스스로 깨달아 알지 못한
다. 이와 같이 법을 예로부터 몇 사람이나 알 수 있었겠느냐? 그러
므로 말하기를 '천하에 자기를 잊은 사람이 몇이더냐?'고 하였다. 지
금 한 기틀, 한 경계, 한 경전, 한 가르침, 한 세대, 한 시기, 한 이
름, 한 글자를 6근의 문 앞에서 알 수 있다면, 꼭두각시와 무엇이 다
르겠느냐. 한 이름, 한 모양 위에서 알음알이를 내지 않는 사람이 갑
자기 나타난다면 온 시방세계를 다 찾는다 해도 이런 사람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노라. 그와 버금갈 만한 사람이 둘
도 없으므로 조사의 자리를 이으며, 또한 부처님의 종자라고 일컫나
니, 순수하여 전혀 잡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왕이 부처를 이룰 때
에 왕자도 역시 따라서 출가한다'고 했는데, 이 뜻을 알기가 매우 어
렵느니라. 다만 너희에게 아무 것도 찾지 말도록 할 뿐이니, 찾으면
곧 잃어버린다.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산 위에서 한 번 소리를 질러
메아리가 울리면 곧장 산 아래로 달려 가지만 끝내는 아무 것도 찾
지 못하고, 거기서 또 한 번 소리를 지르자 산 위에서 메아리가 울
리며, 그는 다시 산 위로 달려 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천생만겁을
소리를 찾고 메아리를 좇는 사람일 뿐이어서 허망하게 생사에 유랑
하는 자이니라. 만약 소리가 없으면 메아리도 생기지 않는다. 열반이
란 들음도 앎도 없고 소리도 없어서 자취도 발자욱도 모두 끊긴 것
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겨우 조사의 방 근처에 인접한 것이라 하겠
다."
夫學道者 先須屛却雜學諸緣 決定不著 聞甚深法 恰似淸風
屆耳 瞥然而過 更不追尋 是爲甚深入如來禪 離生禪想 從
上祖師 唯傳一心 更無二法 指心是佛 頓超等妙二覺之表
決定不流至第二念 始似入我宗門 如斯之法 汝取次人 到這
裏 擬作魔生學 所以道 擬心時 被擬心魔縛 非擬心時 又被
非擬心魔縛 非非擬心時 又被非非擬心魔縛 魔非外來 出自
心 唯有無神通菩薩 足跡 不可尋 若以一切時中 心有常
見 卽是常見外道 若觀一切法空 作空見者 卽是斷見外道
所以 三界唯心 萬法唯識 此猶是對外道邪見人說 若說法身
以爲極果 此對三賢十聖人言 故 佛斷二愚 一者 微細所知
愚 二者 極微細所知愚 佛旣如是 更說什�等妙二覺來 所
以 一切人 但欲向明 不欲向闇 但欲求悟 不受煩惱無明 便
道 佛是覺 衆生是妄 若作如是見解 百劫千生 輪廻六道 更
無斷絶 何以故 爲謗諸佛本源自性故 他分明向 道 佛且不
明 衆生且不闇 法無明闇故 佛且不彊 衆生且不弱 法無彊
弱故 佛且不智 衆生且不愚 法無愚智故 是 出頭 總道解
禪 開著口 便病發 不說本 祇說末 不說迷 祇說悟 不說體
祇說用 總無 話論處 他一切法 且本不有 今亦不無 緣起
不有 緣滅不無 本亦不有 本非本故 心亦不心 心非心故 相
亦非相 相非相故 所以道無法無本心 始解心心法 法卽非法
非法卽法 無法無非法 故是心心法 忽然瞥起一念 了知如幻
如化 卽流入過去佛 過去佛 且不有 未來佛 且不無 又且不
喚作未來佛 現在念念不住 不喚作現在佛 佛若起時 卽不擬
他是覺是迷 是善是惡 輒不得執滯他斷絶他 如一念瞥起 千
重關鎖鎖不得 萬丈繩索索他不住 旣若如是 爭合便擬滅他
止他 分明向 道 爾焰識 作�生擬斷他 喩如陽焰 道
近 十方世界求不可得 始道遠 看時 祇在目前 擬 他 他
又轉遠去 始避他 他又來逐 取又不得 捨又不得 旣若
如此 故知一切法性 自爾 卽不用愁他慮他 如言前念是凡
後念是聖 如手蒜覆一般 此是三乘敎之極也 據我禪宗中 前
念且不是凡 後念且不是聖 前念不是佛 後念不是衆生 所以
一切色 是佛色 一切聲 是佛聲 거著一理 一切理皆然 見一
事 見一切事 見一心 見一切心 見一道 見一切道 一切處無
不是道 見一塵 十方世界山河大地皆然 見一適水 卽見十方
世界一切性水 又見一切法 卽見一切心 一切法本空 心卽不
無 不無卽妙有 有亦不有 不有卽有 卽眞空妙有 旣若如是
十方世界不出我之一心 一切微塵國土不出我之一念 若然
說什�內之與外 如蜜性첨 一切蜜皆然 不可道這箇蜜첨 餘
低苦也 何處有與�事 所以道허空 無內外 法性 自爾 虛空
無中間 法性 自爾 故衆生卽佛 佛卽衆生 衆生與佛 元同一
體 生死涅槃 有爲無爲 元同一體 世間出世間 乃至六道四
生 山河大地 有性無性 亦同一體 言同者 名相 亦空 有亦
空無亦空 盡恒沙世界 元是一空 旣若如此 何處有佛度衆生
何處有衆生受佛度 何故如此 萬法之性 自爾故 若作自然見
卽落自然外道 若作無我無我所見 墮在三賢十聖位中 如
今 云何將一尺一寸 便擬量度虛空 他分明向汝道 法法 不
相到 法自寂故 當處自住 當處自眞 以身空故 名法空 以心
空故 名性空 身心 總空故 名法性空 乃至千途異說 皆不離
之本心 如今 說菩提涅槃 眞如佛性 二乘菩薩者 皆指葉
爲黃金 拳掌之說 若也展手之時 一切大衆 若天若人 皆見
掌中 都無一物 所以道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本旣無
物 三際 本無所有 故學道人 單刀直入 須見這箇意 始得
故達摩大師從西天來至此土 經多少國土 祇覓得可大師一人
密傳心印 印 本心 以心印法 以法印心 心旣如此 法亦如
此 同眞際等法性 法性空中 誰是授記人 誰是成佛人 誰是
得法人 他分明向 道 菩提者 不可以身得 身無相故 不可
以心得 心無相故 不可以性得 性卽便是本源自性天眞佛故
不可以佛更得佛 不可以無相更得無相 不可以空更得空 不
可以道更得道 本無所得 無得亦不可得 所以道 無一法可得
祇敎 了取本心 當下了時 不得了相 無了無不了相 亦不可
得 如此之法 得者卽得 得者 不自覺知 不得者 亦不自覺知
如此之法 從上巳來 有幾人 得知 所以道 <天下 忘己者有
幾人> 如今 於一機一境 一經一敎 一世一時 一名一字 六
根門前 領得 與機關木人 何別 忽有一人出來 不於一名一
相上 作解者 我說此人 盡十方世界覓這箇人 不可得 以無
第二人故 繼於祖位 亦云釋種 無雜純一 故言 <王若成佛時
王子亦隨出家> 此意大難知 祇敎 莫覓 覓便失却 知癡人
山上叫一聲 響從谷出 便走下山 及尋覓不得 又叫一聲
出上響又應 亦走上山上 如是千生萬劫 祇是尋聲逐響人
虛生浪死漢 汝若無聲卽無響 涅槃者 無聞無知無聲 絶迹絶
踪 若得如是 稍與祖師隣房也
22. 양의 뿔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임금님의 창고 안에 이런 칼이 전혀 없다'고 하셨는데, 바라옵건
대 그 뜻을 가르쳐 주십시오."
"임금님의 창고란 바로 허공의 성품[虛空性]이니라. 그것은 시방의
허공세계를 받아들여 모두가 다 너의 마음을 벗어나지 않는다. 또
다른 말로는 임금님의 창고를 허공장보살이라고도 일컫는다. 네 만
약 그것에 대해 있고 없음과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음을 말한다면,
모두가 양의 뿔이 되느니라. 양의 뿔이란 바로 네가 구하여 찾는
것이니라."
배상공이 물었다.
"임금님의 창고 속에는 진짜 칼이 있습니까?"
"그것도 역시 양의 뿔이니라."
"임금님의 창고 속에 애초부터 진짜 칼이 없다면, 왕자가 그 창고
에서 진짜 칼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나간 것이어늘, 어찌하여 스님
께서는 그저 없다고만 말씀하십니까?"
"칼을 가지고 나갔다는 것은 여래의 심부름꾼에 비유한 것이다.
네 만약 임금님의 창고 속에서 왕자가 진짜 칼을 가지고 나갔다고
말한다면, 창고 안에 있는 허공도 함께 따라 갔을 것이니라. 그러나
본원의 허공성(虛空性)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인데, 그
것이 무슨 말이겠느냐? 설령 네가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양
의 뿔이니라."
問 如王庫藏內 都無如是刀 伏願誨示 師云 王庫藏者 卽虛
空性也 能攝十方虛空世界 皆總不出 心 亦謂之虛空藏菩
薩 若道是有是無 非有非無 總成羊角 羊角者 卽 求覓
者也
問 王庫藏中有眞刀否 師云 此亦是羊角 云 若王庫藏中 本
無眞刀 何故云王子持王庫中眞刀 出至異國 何獨言無 師云
持刀出者 此喩如來使者 若言王子持王庫中眞刀出去者
庫中應空去也 本源虛空性 不可被異人將去 是什�語 設
有者 皆名羊角
23. 여래의 심부름꾼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받았으니, 말을 전하는 사람
이 아닙니까?"
"그렇다."
"만약 말 전한 사람이라면 양의 뿔을 여의지 못한 사람이겠군요."
"가섭존자는 스스로 본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양의 뿔이 아
니니라. 만약 여래의 마음을 깨달으면 곧 여래의 뜻을 알게 되며, 여
래의 겉모습을 보는 사람은 곧 여래의 심부름꾼에 속하는 자로서 말
전하는 사람이 되느니라. 아난존자가 20여년 동안 부처님의 시자로
있었으면서도 다만 여래의 겉모양만 보았기 때문에 부처님으로부터
'세간을 구제하는 것을 보는 자는 양의 뿔을 벗어나지 못하니라'는
꾸지람을 들었다."
問 迦葉受佛心印 得爲傳語人否 師云 是 云 若是傳語人
應不離得羊角 師云 迦葉 自領得本心 所以不是羊角 若以
領得如來心 見如來意 見如來色相者 卽屬如來使 爲傳語人
所以阿難 爲侍者二十年 但見如來色相 所以被佛訶云 <唯
觀救世者 不能離得羊角>
24. 무분별지는 얻을 수 없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문수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칼을 든 것은 어찌 된 까닭입니까?"
"500명의 보살들이 전생을 아는 지혜를 얻어서 지난 과거 생의
업장을 볼 수 있었다. 500이란 너의 오음으로 된 몸이니라. 이 숙명
을 보는 장애 때문에 부처가 되기를 구하고 보살, 열반을 구하게 되
었느니라. 그러므로 문수보살이 지혜로써 헤아리는 칼을 가지고 부
처를 봄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베어 버렸다. 그래서 '아주 잘 베
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칼입니까?"
"헤아리는 마음이 칼이다."
"헤아리는 마음이 이미 칼이라고 한다면 부처를 봄이 있다고 생
각하는 마음을 베어 버린 것인데, 그렇다면 능히 베는 그 마음은 어
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너의 분별이 없는 지혜로써 보는 것이 있다고 분별하는 마음을
베느니라."
"부처를 봄이 있다느니 혹은 부처를 구함이 있다느니 하는 마음
을 내는 경우에는 분별이 없는 지혜의 칼로써 베는 것이지만, 그 지
혜의 칼이 있는 것은 어찌 해야 합니까?"
"분별 없는 지혜로써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를 베
어 버리면, 분별 없는 지혜도 또한 얻을 수 없느니라."
"지혜로써 지혜를 자르지 말며, 칼로써 칼을 자르지 마소서."
"칼이 스스로 칼을 베어서 칼과 칼이 서로 베어지면, 칼 또한 얻
을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혜가 스스로 지혜를 베어서, 지혜와
지혜가 서로 베어지면 지혜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어미와 자식
이 함께 죽는 것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問 文殊執劍於瞿曇前者 如何 師云 五百菩薩 得宿命智 見
過去生業障 五百者 卽 五陰身 是 以見此夙命障故 求佛
求菩薩涅槃 所以文殊將智解劍 害此有見佛心故 故言 善
害 云 何者是劍 師云 解心 是劍 云 解心旣是劍 斷此有見
佛心 祇如能斷見心 何能除得 師云 還將 無分別智 斷此
有見分別心 云 如作有見有求佛心 將無分別智劍斷 爭奈有
智劍在何 師云 若無分別智 害有見無見 無分別智 亦不可
得 云 不可以智更斷智 不可以劍更斷劍 師云 劍自害劍 劍
劍相害 卽劍亦不可得 智自害智 智智相害 卽智亦不可得
母子俱喪 亦復如是
25. 견성이란?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자성을 보는 것[見性]이란 무엇입니까?"
"성품이 곧 보는 것이요, 보는 것이 곧 성품이니, 성품으로써 다
시 성품을 보지 말라. 또 들음이 그대로 성품이니 성품으로서 다시
성품을 들으려 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성품이라는 견해
를 내며, 능히 성품을 듣고 능히 성품을 보아서 문득 같다거나 다르
다는 견해를 일으킨다. 저 경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볼 수 있는 바
는 다시 보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너는 어찌 머리 위에 다시 머리를
얹겠느냐? 경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마치 소반 위에 구슬을 흩어 놓
는 것과 같아서, 큰 구슬은 크게 둥글며, 작은 구슬은 작게 둥글어서
각각의 구슬끼리 알지 못하며, 각각 서로를 방해 하지 않아서, 일어
날 때에 <내가 일어난다> 말하지 않으며, 없어질 때에 <내가 없어
진다> 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4생과 6도가 이렇지 않은
경우가 없느니라.
또 중생이 부처를 보지 못하고 부처가 중생을 보지 못하며, 4과
(四果)가 4향(四向)을 보지 못하고 4향이 4과를 보지 못하며, 3현(三
賢), 10성(十聖)이 등각과 묘각을 보지 못하고 등각과 묘각이 3현,
10성을 보지 못하며, 나아가 물이 불을 보지 못하고 불이 물을 보지
못하며, 땅이 바람을 보지 못하고 바람이 땅을 보지 못하며, 중생이
법계에 들지 못하고 부처가 법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법의
성품은 가고 옴이 없으며 능히 보는 것도 보여지는 대상도 없다. 능
히 이와 같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본다느니 혹은 나는 듣
는다느니 말하겠느냐?
무엇보다도 선지식의 회하에서 깨닫도록 하여라. 선지식이 나에게
법을 설하시며,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나오셔서 중생들에게 법을
설해 주신다. 그러나 가전연은 다만 생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상
(實相)의 법을 전하였기 때문에 유마거사에게 꾸중을 들었느니라.
분명히 말하건대, 어떤 법이라도 본래로 속박하지 않는데 어찌 풀어
제칠 필요가 있겠으며, 또 본래 물들지도 않는데 굳이 맑게 할 필요
가 있겠느냐? 그러므로 말하기를, '모든 법의 참다운 모양이 이와 같
거늘 어찌 말로써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네가 지금 다만 시
비하는 마음, 염정(染淨)을 따지는 마음을 내고 하나하나마다 알음알
이를 배워 얻어서, 온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이 결정코
취하려고 하는 것을 곧 보게 되는데, 도대체 누가 마음의 눈을 갖추
었으며,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 말해 보아라. 만약 이렇게 한다면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현격하게 다른 것이니, 다시 무슨 견성(見性)
을 논하겠느냐?"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이미 성품이 그대로 보는 것이며 보는 것이 그대로 성품이라고
스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성품이 본래 장애가 없어야 하며
제한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하여 물건이 가로막히면 곧
보지 못하고, 또 허공이 가운데서 가까우면 보고 멀어지면 보지 못
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이것은 네가 망령되게 다르다는 견해를 낸 것이니라. 만약 물건
이 앞에 가로막히면 보지 못하고 그것이 없어지면 본다고 생각하여,
성품을 가로막는 장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잘못이니라. 성품
이란 보는 것도 보지 않는 것도 아니며, 법 또한 보는 것도 보지 않
는 것도 아니다. 만약 견성한 사람이라면 어느 곳인들 나의 본래 성
품이 아님이 있겠느냐? 그러므로 6도, 4생과 산하 대지가 모두 내
성품의 맑고 본체 그대로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물질[色]을 보
는 것이 곧 마음[心]을 보는 것이다.'고 하였으니, 물질과 마음이 다
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모양에 집착하여 보고 듣고 느끼고 알아
서 눈 앞의 물건을 없애고 나서야 비로소 보려고 하는 자들은 2승
(二乘)의 무리 가운데 떨어진, 의지하여 통하려는 견해이니라. 허공
가운데서 가까우면 보고 멀면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외도에
떨어지고 만다. 분명히 말하노니,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가깝
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것이니, 가까우면서도 볼 수 없는 것이 중생
들의 성품이니라. 가까이 있어도 오히려 그렇거늘, 멀어서 볼 수 없
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이겠느냐?"
問 如何是見性 師云 性卽是見 見卽是性 不可以性更見性
聞卽是性 不可以性更聞性 祇 作性見 能聞能見性 便有一
異法生 他分明道 所可見者 不可更見 云何頭上更著頭
他分明道 如盤中散珠 大者大圓 小者小圓 各各不相知 各
各不相 起時 不言我起 滅時 不言我滅 所以 四生六道
未有不如時 且衆生 不見佛 佛不見衆生 四果不見四向 四
向不見四果 三賢十聖 不見等妙二覺 等妙二覺 不見三賢十
聖 乃至水不見火 火不見水 地不見風 風不見地 衆生 不入
法界 佛不出法界 所以法性 無去來 無能所見 能如此 因什
� 道我見我聞 於善知識處 得契悟 善知識 與我說法 諸佛
出世 與衆生說法 迦 延 祇爲以生滅心 傳實相法 被淨名
呵責 分明道 一切法 本來無縛 何用解他 本來不染 何用淨
他 故云實相 如是 豈可說乎 汝今祇成是非心染淨心 學得
一知一解 天下行 見人便擬定當取 誰有心眼 誰彊誰弱
若也如此 天地懸殊 更說什�見性
問 旣言性卽見見卽性 祇如性自無障 無劑限 云何隔物卽
不見 又於虛空中 近卽見遠卽不見者 如何 師云 此是 妄
生異見 若言隔物不見 無物言見 便謂性有隔 者 全無交涉
性且非見非不見 法亦非見非不見 若見性人 何處不是我之
本性 所以 六道四生 山河大地 總是我之性淨明體 故云見
色便見心 色心 不異故 祇爲取相作見聞覺知 去却前物 始
擬得見者 卽墮二乘人中依通見解也 虛空中 近則見遠則不
見 此是外道中收 分明道非內亦非外 非近亦非遠 近而不可
見者 萬物之性也 近尙不可見 更道遠而不可見 有什�意旨
26. 한 생각 일지 않으면 곧 보리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소생(小生)이 알지 못하겠사오니, 큰스님께서는 가르쳐주십시오."
"내게는 한 물건도 없어서, 이제까지 남들에게 한 물건도 전혀 가
르켜 준 바가 없다. 너는 한량없는 세월 전부터 그저 남에게 가르침
을 받아서 이해하려고만 하니, 이야말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왕의
난[王難]에 빠지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는 다만 이 사실을 알아야 한
다. 한 생각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받음이 없는 몸이며, 한
생각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생각 없는 몸이니라. 절대로 인
위적인 조작에 휩쓸리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행함이 없는 몸이며,
요리조리 따지고 분별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식(識)이 없는 몸이
니라. 그러므로 네가 달리 한 생각 일으키기만 하면 그대로 12인연
에 빠져들어서, 무명이 행을 연하여 서로 인(因)이 되기도 하고 또
과(果)가 되기도 하며, 나아가서는 늙음과 죽음이 서로서로 인이 되
기도 하고 과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선재동자가 110곳에서 선지
식을 구했지만, 다만 12인연 속에서만 구하다가 최후에 미륵보살을
만났었다. 그러자 미륵보살이 문수보살을 찾아뵈라고 다시 가르켜
주었다. 문수보살이란 다름 아닌 바로 너의 근본 무명이니라.
만약 마음과 마음이 각기 달라서 그저 밖으로만 선지식을 구하는
자는, 한 생각이 갓 일어났다가는 꺼지고 꺼졌다가는 또 생긴다. 그
러므로 너희 비구들도 생, 노, 병, 사 하기도 하여 인과의 값을 치뤄
오면서 마침내는 다섯 갈래[五聚)의 생멸을 당한다. 다섯 갈래란 5음
(五陰)이니 한 생각 일어나지 않으면 곧 18계(界)가 공하여 이 몸
그대로가 보리의 꽃 열매이며, 또한 이 마음이 그대로 신령스런 지
혜이며 신령스런 보리좌이니라. 그러나 만약 집착하는 바가 있으면
이 몸은 곧 송장이 되고, 마음은 송장 지키는 귀신이 되고 만다."
問 學人 不會 和尙 如何指示 師云 我無一物 從來 不曾將
一物與人 無始已來 祇爲被人指示 覓契覓會 此可不是弟
子與師 俱陷王難 但知一念不受 卽是無受身 一念不想
卽是無想身 決定不遷流造作 卽是無行身 莫思量卜度分別
卽是無識身 如今 裳別起一念 卽入十二因緣 無明緣行
亦因亦果 乃至老死亦因亦果 故 善財童子一百一十處求善
知識 祇向十二因緣中求 最後 見彌勒 彌勒 却指見文殊 文
殊者 卽汝本地無明 若心心別異 向外求善知識者 一念裳生
卽滅 裳滅又生 所以 汝等比丘 亦生亦老 亦病亦死 酬因答
果已來 卽五聚之生滅 五聚者 五陰也 一念 不起 卽十八界
空 卽是便是菩提華果 卽心便是靈智 亦云靈臺 若有所住著
卽身爲死屍 亦云守死屍鬼
27. 둘 아닌 법문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유마거사가 잠자코 있으니 문수보살이 찬탄하기를 '이것이야말로
둘 아닌 법문[不二法門]에 드는 것이로다'했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
니까?"
"둘 아닌 법문이란 바로 너의 본 마음이니라. 그러니 법을 설했느
니 혹은 설하지 않았느니 하는 것은 기멸(起滅)이 있는 것이다. 말
없을 때에는 나타내 보인 것이 없으므로 문수보살이 찬탄한 것이니
라."
"유마거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소리가 단멸된 것이 아닙
니까?"
"말이 곧 침묵이고 침묵이 그대로 말이다. 말과 침묵이 둘이 아니
기 때문에 소리의 실제 성품도 역시 단멸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문수보살이 본래 들음[本聞]도 역시 단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일찌기 말하지 않은 때가 없다'고 하
신 것은 여래의 말씀이 곧 법이요 법이 곧 말씀이니, 법과 말씀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나아가 보신, 화신, 보살, 성문과 산하대지
와 물, 새, 수풀이 일시에 법을 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도 설법
이고 침묵도 설법이어서, 종일 설법하나 일찍이 설한 바가 없다. 이
미 이와 같다면 말없음으로서 근본을 삼느니라."
問 淨名 默然 文殊讚歎云是眞入不二法門 如何 師云 不二
法門 卽 本心也 說與不說 卽有起滅 無言說時 無所顯示
故 文殊讚歎 云 淨名 不說 聲有斷滅否 師云 語卽默默卽
語 語默不二故 云聲之實性 亦無斷滅 文殊本聞 亦無斷滅
所以如來常說 未曾有不說時 如來說卽是法 法卽是說 法說
不二故 乃至報化二身菩薩聲聞 山河大地 水鳥樹林 一時說
法 所以語亦說默亦說 終日說而未嘗說 旣若如是 但以默爲
本
28. 한 마음의 법 가운데서 방편으로 장엄하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성문이 3계에서는 모습을 감추지만, 보리에 있어 감추지 못하는
까닭은 어찌된 것입니까?"
"여기서 말한 모습이란 바탕이니라. 성문들이 다만 3계의 견도혹
(見道惑)과 수도혹(修道惑)을 끊을 수 있어 이미 번뇌를 여의긴 하
였으나, 보리에 있어서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 까닭이니라. 그래서 보
리 가운데서 마왕에게 붙들리어 숲 속에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보
리를 미세하게 본다는 마음을 내는 것이니라. 그런데 보살들은 3계
와 보리에 있어서 결정코 버리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느니라. 취하지
않으므로 7대(七大)가운데서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하고, 버리지않으므
로 외도, 마구니가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한다. 네 다만 한 법에라도
집착하려 하면 흔적[印子]이 벌써 생기게 된다. 있음[有]에다 도장을
찍으면 곧 6도, 4생의 무늬가 나오고, 공(空)에다 도장을 찍으면 곧
모양 없는 무늬가 나타나느니라. 만약 모든 사물에 도장을 찍지 않
으면, 이 도장은 허공과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어서, 공(空)이 본
래 공이 아니고 도장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닌 줄을 다만 알지니라.
시방 허공 세계의 모든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심은 번갯불을 보
는 것과 같으며, 꿈틀거리는 모든 벌레를 보는 것은 메아리와 마찬
가지이며, 시방의 셀 수 없는 많은 국토를 보는 것은 흡사 바다 가
운데 한 방울 물과 같은 것이다. 매우 기폭 깊은 법문을 듣더라도
허깨비와 같아서,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으며, 법과 법이 서로 다
르지 않고, 나아가 천만 가지의 경론(經論)이 오로지 너의 한 마음
때문이니라. 모든 모양을 결코 취하지 않으므로, 말하기를 '이와 같
은 한 마음 속에서 방편으로 부지런히 장엄한다'고 하였느니라."
問 聲聞人 藏形於三界 不能藏於菩提者 如何 師云 形者
質也 聲聞人 但能斷三界見修 已離煩惱 不能藏於菩提 故
還被�王於菩提中捉得 於林中宴坐 還成微細見菩提心也
菩薩人 已於三界菩提 決定不捨不取 不取故 七大中覓他不
得 不捨故 外魔亦覓他不得 汝但擬著一法 印子早成也 印
著有 卽六道四生文出 印著空 卽無相文現 如今 但知決定
不印一切物 此印 爲虛空不一不二 空本不空 印本不有 十
方허空世界諸佛出世 如見電光一般 觀一切蠢動含靈 如響
一般 見十方微塵國土 恰似海中一滴水相似 聞一切甚深法
如幻如化 心心不異 法法不異乃至千經萬論 祇爲 之一心
若能不取一切相故 言 <如是一心中 方便勤莊嚴>
29. 인욕선인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몸뚱이가 토막토막 잘리었다'는 경우는
어떤 것입니까?"
"선인(仙人)이란 곧 너의 마음이며, 가리왕이란 구하기를 좋아하
는 마음이니라. 그리고 왕위를 지키지 않는다고 함은 이로움을 탐하
는 마음이니라. 그런데 요사이 공부하는 이들이 덕과 공을 쌓지는
않고, 보는 것마다 배워서 알려고 하니 가리왕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물질을 볼 때는 선인의 눈을 멀게 하고, 소리를 들을 때는 선인의
귀를 먹게 한다. 나아가 무엇을 느껴 알 때에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마디마디 갈기갈기 찢겨진다고 한 것이니라."
"선인이 참을 때는 마디마디 갈기갈기 찢김이 없어서, 한 마음으
로 참았느니 혹은 참지 않앗느니 하는 말은 가당치 않겠습니다."
"네가 남이 없는 견해[無生見]을 내어서, 인욕을 닦는 견해거나 구
할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는 것은 모두 손상을 주는 것이니라."
"선인도 몸을 잘리울 때 아품을 느낍니까? 만약 이런 가운데 고
통을 받는 사람이 없다면 누가 고ㅌ을 받습니까?"
"네가 이미 고통받을 것이 없다면 나타나서 도대체 무엇을 찾는
것이냐?"
問 如我昔爲歌利王割截身體如何 師云 仙人者 卽是 心
歌利王 好求也 不守王位 謂之貪利 如今學人 不積功累德
見者便擬學 與歌利王何別 如見色時 壞却仙人眼 聞聲時
壞却仙人耳 乃至覺知時 亦復如是 喚作節節支解 云 祇如
仙人 忍時 不合更有節節支解 不可一心忍一心不忍也 師云
作無生見 忍辱解無求解 總是傷損 云 仙人 被割時 還知
痛否 又云此中無受者 是誰受痛 師云 旣不痛 出頭來 覓
箇甚�
30. 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이 곧 수기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연등부처님이 수기하신 때는 오백세(五百歲) 이내입니까, 오백세
밖입니까?"
"오백세 이내에 수기를 받을 수 없느니라. 이른바 수기라 하는것
은 너의 근본을 결정코 잊어 버리지 않아서, 하염있는 법도 잃지 않
고 보리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세간과 세간 아님을 모두 요달
했기 때문에 오백세 밖을 벗어나서 따로 수기를 얻을 수 없고, 또한
오백세 이내에도 수기를 얻지 못한다."
"세간 3제(三際)의 모양을 요달할 수 없습니까?"
"한 법도 얻을 수 없느니라."
"그런데 무엇 때문에 경(經)에서 오백세(五百歲)를 지난다고 자주
말씀하시어, 앞뒤로 시간을 길게 말씀하셨습니까?"
"오백세(五百歲)가 길로 멀어서 오히려 아직은 선인(仙人)임을 알
아야 한다. 그러므로 연등부처님께서 수기하실 때는 실로 얻었다할
작은 법도 없느니라."
問 然燈佛授記 爲在五百歲中 五百歲外 師云 五百歲中 不
得授記 所言授記者 本決定不忘 不失有爲 不取菩提 但
以了世非世 亦不出五百歲外別得授記 亦不於五百歲中得授
記 云 了世三際相 不可得已否 師云 無一法可得 云 何故
言頻經五百世 前後極時長 師云 五百世長遠 當知猶是仙人
故 然燈授記時 實無少法可得
31. 법신은 얻을 수 없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교(敎)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억겁 동안 전도된 생각을
녹이어서, 3대 아승기 겁을 거치지 않고 법신을 얻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만약 3대 아승기의 헤아릴 수 없는 겁을 통하여 수행을 함으로
서 증득한 바가 있는 자는, 간지스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겁이 지난
다 하더라도 깨닫지 못한다. 만약 한 찰나 사이에 법신을 획득하여
곧바로 분명하게 깨달아 성품을 보는 것은 오히려 3승교(三乘敎)의
극치를 이룬 말씀이다. 왜냐하면 가히 얻을 수 있는 법신을 보기 때
문에 모두가 불요의교(不了義敎)에 속하는 것이니라."
問 敎中 云鎖我億劫顚倒想 不歷僧祇獲法身者 如何
師云 若以三無數劫修行 有所證得者 盡恒沙劫不得 若於一
刹那中獲得法身 直了見性者 猶是三乘敎之極談也 何以故
以見法身可獲故 皆屬不了義敎中收
32. 마셔보아야 물맛을 안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법을 보고 단박에 깨달은 사람은 조사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조사의 뜻은 허공 밖을 벗어났느니라."
"그러면 한계가 있습니까?"
"한계가 없느니라. 이는 모두 일정한 숫자로 헤아리는 대대(對待)
하는 법이니라.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한량이 있지도 않고 한량이
없음도 아니며 한량이 있고 없음이 아님도 아니어서, 대대가 끊어졌
기 때문이다'하였다. 너희 요즘 배우는 사람들이 3승교 밖을 아직 벗
어나지 못했는데, 어찌 선사라 부를 수 있겠느냐? 너희에게 분명히
말하겠다. 으뜸으로 선을 수행하는 사람일진댄, 함부로 망령되이 다
른 견해를 내지 말라. 마치 어떤 사람이 물을 마셔보면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다. 움직이거나 머물러 있거나 한 찰나 사이에
생각생각이 달라지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다면 윤회를
면치 못하느니라."
問 見法頓了者 見祖師意否 師云 <祖師心出虛空外> 云
有限劑否 師云 有無限劑 此皆數量對待之法 祖師云 <且非
有限量 非無限量 非非有無限量 以絶待故> 如今學者 未
能出得三乘敎外 爭喚作禪師 分明向汝道 一等學禪 莫取次
妄生異見 如人飮水 冷煖 自知 一行一住 一刹那間 念念不
異 若不如是 不免輪回
33. 참된 사리(舍利)는 볼 수 없다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부처님의 몸은 하염이 없기 때문에 모든 숫자적인 개념으로 한
정할 수가 없거늘, 어찌하여 부처님 몸의 사리가 여덟섬 너말이 됩
니까?"
"네가 이런 견해를 낸다면, 그저 껍데기 사리만 볼 뿐 참된 사리
는 보질 못하느니라."
"사리가 본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노력하여 얻은 결과입니까?"
"본래 있는 것도 아니며 노력하여 수행의 결과로 얻으신 것도 아
니니라."
"그렇다면 어찌하여 부처님 사리는 그토록 잘 다듬어졌고 그토록
정교로와서, 금빛 사리가 항상 있는 것입니까?"
이에 대사께서 꾸짖어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견해를 가지고서 어찌 참선을 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느냐? 너는 허공에 사리가 있는 것을 일찍이 보았느냐? 모든
부처님의 마음은 큰 허공과 같은데 무슨 사리를 찾는 것이냐?"
"지금에도 분명히 눈으로 사리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도대체 무
슨 법입니까?"
"그것은 너의 망상심이 일어나서 사리라고 보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화상께서는 사리가 있습니까? 청컨대 내보여 주십시
오."
"참 사리는 보기 어렵느니라. 네가 다만 열 손가락으로 수미산의
높은 봉우리를 한꺼번에 움켜쥐어 그것을 부수어 가루로 만든다면
비로소 참 사리를 보게 되리라."
問 佛身無爲 不墮諸數 何故 佛身舍利八斛四斗 師云 作
如是見 祇見假舍利 不見眞舍利 云 舍利爲是本有 爲復功
勳 師云 非是本有 亦非功勳 云 若非本有 又非功勳 何故
如來舍利 唯鍊唯精 金骨 常存 師乃呵云 作如此見解 爭
喚作學禪人 見虛空曾有骨否 諸佛心同太虛 覓什�骨 云
如今見有舍利 此是何法 師云 此從 妄想心生 卽見舍利
云 和尙 還有舍利否 請將出來看 師云 眞舍利難見 但以
十指 撮盡妙高峯爲微塵 卽見眞舍利
34. 일체처에 마음이 나지 않음
"대저 참선해서 도를 닦는 이는 모름지기 어디에서나 마음을 내
지 않아야 한다. 다만 '마음의 작용을 잊으면 곧 부처님의 도가 융성
하고, 사량분별하면 곧 마구니의 도가 치성해진다'하는 것만은 논할
뿐이니, 끝내는 털끝만큼한 작은 법도 얻지 못하니라."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조사께서 어떤 사람에게 법을 전하여 부촉하셨습니까?"
"사람에게 줄 법이 없느니라."
"그렇다면 어찌하여 2조(二祖) 혜가스님이 달마스님께 마음을 편
안하게 해달라고 청했습니까?"
"네가 만약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2조께서는 분명히 마음을 찾아
서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찾으려 해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달마스
님께서, '너의 마음을 이미 편하게 해주었노라'고 하신 것이니라. 만
일 얻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모두 생멸법으로 돌아가고 만다."
夫參禪學道 須得一切處不生心 祇論忘機卽佛道륭 分別卽
魔軍盛 畢竟無毛頭許 少法可得
問 祖傳法付與何人 師云 無法與人 云 云何二祖請師安心
師云 若道有 二祖卽合覓得心 覓心不可得故 所以道與
安心竟 若有所得 全歸生滅
35. 조계문하생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구경에 무명을 얻으십니까?"
"무명이란 바로 모든 부처님들께서 도를 얻으신 자리이니라. 그러
므로 연기법이 바로 도량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한 티끌 한 빛깔
이 그대로가 가이 없는 진리의 성품이니라. 발을 들었다 놓는 것이
모두 도량을 여의지 않나니, 도량이란 얻은 바가 없는 것이니라. 내
너에게 말하노니, 다만 이 얻은 바 없는 자리를 도량에 앉아 있음이
라고 하느니라."
"무명이란 밝음입니까, 어두움입니까?"
"밝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두움도 아니다. 밝음과 어두움이란 서
로 바뀌어서 갈아드는 법이니라. 그렇다고 무명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이다. 밝지 않음이 곧 본래의 밝음이어서, 밝지도 않고 어둡
지도 않느니라. 이 한마디 말이 온천하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비록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사
리불과 같아서, 모두 함께 헤아려 사량할지라도 부처님의 지혜는 측
량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부처님의 걸림 없는 지혜를 허공을 벗어
나 너희들이 언어 문자로는 따져볼 수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량과 같은 삼천대천 세계에 갑자기 어떤 보살이 출현하여, 한 번
걸터앉으매 모든 삼천대천 세계를 걸터앉아버린다 해도, 보현보살의
한 털구멍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네가 지금 무슨 본래의 이치
를 가지고서 그것을 배우려고 하겠느냐?"
"말씀대로 배워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둘이 없
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가지만, 방편에는 여러 문들이 있다'고 말씀
하십니까?"
"둘이 없는 본원의 성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무명의 참 성
품이니, 이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의 성품이니라. 또 방편에 여러 문
이 있다는 뜻은, 성문들은 무명이 생겼다 없어진다고 보며, 연각들은
다만 무명이 없어지는 것만을 보고 무명이 생기는 것은 보지 못하여
생각마다 적멸을 증득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종
일 생겨나나 그 남이 없음을 보시고, 또 그것이 종일 없어지지만 그
없어짐이 없는 것임을 보아서,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음이 곧 대승
의 최고 과(果)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과(果)가 가득 차면 깨달
음이 원만하고, 꽃이 피면 세계가 일어나서, 한발짝 드니 그대로가
부처요, 한발짝 내리니 그대로가 중생이도다'고 하는 것이니라.
모든 부처님을 양족존(兩足尊)이라 부르는 것은 이(理)의 측면에
도 구족하시고, 사(事)의 측면에도 구족하시며, 나아가 중생에도 구
족하시고 나고 죽음에도 구족하시며, 모든 것에 다 구족하시니 구족
하시므로 구할 것이 없느니라. 그대들이 지금 생각생각에 부처는 배
우려 하면서 중생을 싫어하니, 만약 중생을 싫어하면 이것이야말로
저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어, 똥치는 그릇을 들고 희
론의 똥을 제거하신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다만 너희들에게
옛부터 알음알이로 배워서 알려는 마음과 도를 보려는 마음을 없애
려고 그러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마음들을 모두 없애 버리고 나
면 희론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며, 또한 똥을 내다버린다고 하느니라.
이는 다만 너희로 하여금 마음을 내지않게 하시는 것이다. 또 마음
이 일어나지 않으면 저절로 큰 지혜가 완성된다는 것은, 부처니 중
생이니 하는 분별을 결코 내지 않아서 일체를 모두 분별치 않아야만
비로소 우리 조계의 문하에 들어오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옛부터 성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을 조금은 행
하였다'고 하신 것이다. 때문에 행함 없음[無行]이 나의 법문(法門)이
니라. 오로지 한 마음의 문일 따름이니, 모든 사람이 이 문에 이르러
서는, 모두 감히 들어오지는 못하나 전혀 없었다고 말하지는 말라.
다만 얻은 사람이 적을 뿐이니, 얻은 자는 곧 부처이니라.
편히 하여라."
問 佛窮得無明否 師云 無明 卽是一切諸佛得道之處 所以
緣起是道場 所見一塵一色 便合無邊理性 擧足下足 不離道
場 道場者 無所得也 我向 道 祇無所得 名爲坐道場 云無
明者 爲明 爲暗 師云非明非暗 明暗是代謝之法 無明 且不
明 亦不暗 不明 祇是本明 不明不暗 祇這一句子 亂却天下
人眼 所以道 <假使滿世間 皆如舍利佛 盡思共度量 不能測
佛智> 其無 慧 出過虛空 無 語論處 釋迦量等三千大千
世界 忽有一菩薩出來一跨 跨却三千大千世界 不出普賢一
毛孔 如今 把什�本領擬學他 云 旣是學不得 爲什� 道
歸源性無二 方便有多門 如之何 師云 歸源性無二者 無明
實性 卽諸佛性 方便有多門者 聲聞人 見無明生見無明滅
緣覺人 但見無明滅 不見無明生 念念證寂滅 諸佛 見衆生
終日生而無生 終日滅而無滅 無生無滅 卽大乘果 所以道
<果滿菩提圓 華開世界起 擧足卽佛 下足卽衆生> 諸佛兩
足尊者 卽理足事足 衆生足生死足 一切等足 足故不求 是
如今 念念學佛 卽嫌著衆生 若嫌著衆生 卽是謗他十方諸
佛 所以佛出世來 執除糞器 除 論之糞 祇敎 除却從來
學心見心 除得盡 卽不隨 論 亦云搬糞出 祇敎 不生心
心若不生 自然成大智者 決定不分別佛與衆生 一切盡不分
別 始得入我曹溪門下 故自古先聖云 <少行我法門> 所以
無行爲我法門 祇是一心門 一切人到這裏 盡不敢入 不道全
無 祇是少人得 得者 卽是佛 珍重
36. 계급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배상공이 대사께 물었다.
"어떻게 해야 수행의 등급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종일토록 밥을 먹되 일찍이 한 톨의 쌀알도 씹은 바가 없으며,
종일토록 걸어다니지만 일찍이 한 조각의 땅도 밟은 바가 없다. 이
러할 때에 나와 남 등의 구별이 사라져, 종일토록 갖가지 일을 하면
서도 그 경계에 현혹되지 않아야만 비로소 자유자재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생각생각 모든 모양을 보지 않아서 앞뒤의 3제(三際)를 헤
아리지 말라. 과거는 감이 없으며 현재는 머무름이 없고 미래는 옴
이 없으니, 편안하고 단엄하게 앉아 움직이는 대로 내맡겨 얽매이지
않아야만 비로소 해탈했다고 할 수 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 이
문중의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서도 오로지 서너명만이 얻었을 뿐이
니라. 만약 도 닦기를 일삼지 않는다면 재앙을 받을 날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힘을 다하여 모름지기 금생에 도업을 마칠 것이
요, 뉘라서 누겁토록 나머지 재앙을 받겠는가?'라고 하였느니라."
스님께서는 당(唐) 대중(大中 ; 847-859)년간에 본주(本州) 황벽산
에서 세연을 마치셨다. 선종(宣宗) 황제가 단제선사(斷際禪師)라고
시호를 내리고 탑호는 광업(廣業)이라 하였다.
問 如何得不落階級 師云 終日喫飯 未曾咬著一粒米 終日
行 未曾踏著一片地 與�時 無人我等相 終日不離一切事
不被諸境惑 方名自在人 念念不見一切相 莫認前後三際 前
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安然端坐 任運不拘 方名解脫
努力努力 此門中 千人萬人 祇得三箇五箇 若不將爲事 受
殃有日在 故云 <著力今生須了却 誰能累劫受餘殃>
師於唐大中年中終於本山 宣宗 謚斷際禪師 塔曰廣業
제4권 신심명(信心銘)
머리말
<신심명(信心銘)>은 삼조(三祖) 승찬대사(僧璨大師)가 지은 글입
니다. 명(銘)이란 일반적으로 금석(金石), 그릇, 비석 따위에 자계(自
戒)의 뜻으로나, 남의 공적 또는 사물의 내력을 찬양하는 것을 내용
으로 하여 새긴 한문 글귀를 말하는데, 이 <신심명)>은 삼조(三祖)
스님께서 우리가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마지막 구역성불할 때까지
가져야 하는 신심에 대해서 남겨 놓으신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
(詩文)입니다.
이 <신심명>은 글 자체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심이란
도(道)의 본원(本源)이며 진여법계(眞如法界)에 사무쳐야 하는 것이
기 때문에, 이 글은 우리 수도인의 좌우명(左右銘)인 것입니다. 승찬
대사는 수(隋)나라의 양제(煬帝) 대업(大業) 2년 10월 5일(서기 606
년)에 입적하셨으며, 그의 세수는 알 수 없습니다. 승찬대사가 돌아
가신 지 150여 년 뒤 당(唐)나라 현종(玄宗) 황제가 감지선사(鑑智禪
師)라 시호(諡號)를 올리고 탑호(塔號)를 각적(覺寂)이라 하였으며
그 당시 유명한 재상인 방관(房琯)이 탑비문을 지었습니다.
승찬대사는 본래 대풍질(大風疾)이라는 큰 병에 걸려 있었는데 오
늘날의 문등병입니다. 스님은 문둥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다 이조
(二祖) 혜가 대사(慧可大師)를 찾아가 자기의 성명도 밝히지 않고
불쑥 물었습니다.
"제자는 문둥병을 앓고 있사옵니다. 화상께서는 저의 죄를 참회케
하여주십시오."
"그대는 죄를 가져 오노라.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에 의지하여 안주해라."
"지금 화상(和尙)을 뵈옵고 승보(僧寶)는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
보(佛寶), 법보(法寶)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며 마음이 법이니라.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요, 승보
도 또한 그러하니 그대는 알겠는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
지 않음을 알았으며 마음이 그러하듯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에 혜가대사께서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아시고 매우 기특하게
여겨 바로 머리를 깎아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의 보배이다. 구슬 찬(璨)자를 서서 승찬(僧璨)이라 하
라."
그해 3월 18일 복광사(福光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그로부
터 병이 차츰 나아져서 2년 동안 혜가스님을 시봉하였습니다.
승찬대사는 평생을 은거하여 지내다가 나중에 어린 나이의 도신
선사(道信禪師)를 만나 법을 깨우쳐 주고 뒤에 구족계를 받게 한 후
법을 전하면서
"나에게서 법을 받았다고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
고 당부 하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에는 법회하던 큰 나무 밑에서 합장한 채 서서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묘를 써서 스님을 모셨는데, 뒤에
이상(李常)이라는 사람이 신회선사(神會禪師)에게 물어서 산곡사(山
谷寺)에 승찬대사의 묘가 있음을 알고는 가서 화장하여 사리(舍利)
삼백 알을 얻었다고 합니다.
승찬스님은 본래 문둥병을 앓았기 때문에 문둥병이 나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스님을 적두찬(赤頭
璨)이란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이는 대머리의 붉은 살뿐이라는 뜻입
니다.
그 승찬대사가 남겨 놓은 저술이 바로 이 <신심명>입니다. 요즈
음 일본 학자들 가운데는 그 분이 숨어 다니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
의 행적에 모순된 점이 많다고 하여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ㄱ사적인 여러 가지 점들을 상고
해 보면 삼조 승찬스님이 실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고 나는 봅니다.
그런데 이 <신심명>에 있어서 그 신(信), 곧 믿음이 보통의 신
(信), 믿음이 아니라 신, 해, 오, 증(信解悟證) 전체를 통하는 신(信),
믿음입니다. 글 전체는 4언절구(四言絶句)로 해서 146구 584자로 되
어 있는 간단한 글이지만, 팔만대장경의 심오한 불법도리와 천칠백
공안의 격외도리(格外道理)전체가 이 글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모두
들 평(評)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의리적(義理的)으로 법문한 것 같
지만 간단한 이 글 전체 속에 격외도리가 다 갖추어져 있으며, 교리
의 현묘한 뜻도 빠짐없이 있습니다. 중국에 불법이 전해진 이후로
'문자로서는 최고의 문자'라고 학자들이 격찬할 뿐만 아니라 삼조 승
찬대사의 <신심명>같은 문자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고들 평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이 불교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
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사상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
지하고 있는 신심명의 근본 골자가 무엇인가 하면 글 전체가 모두
양별을 여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다는 것입니다. 글 전체를 자세
히 살펴보면 대대(對對)를 40대(四十對)로 갖추어 설명하고 있습니
다.
여기서 대대(對對)란 곧 미워함과 사랑함[憎愛]. 거슬림과 다름[逆
順], 옳고 그름[是非] 등등 일상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생의 상대
개념 즉 변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심명>은 간단한 법문이지만
대대(對對)를 떠난 중도법을 간명하게 보여준 드문 저술입니다. <신
심명>은 일관된 논리로서 선(禪)이나 교(敎)를 막론하고 불교 전체
를 통하여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가 불교의 근본 사상임을 표현한
총괄적인 중도총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심명信心銘
1 至道無難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唯嫌揀擇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2 但莫憎愛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洞然明白 통연히 명백하리라.
3 毫釐有差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天地懸隔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4 欲得現前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莫存順逆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5 違順相爭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是爲心病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6 不識玄旨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徒勞念靜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7 圓同太虛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無欠無餘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8 良由取捨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所以不如 그 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도다.
9 莫逐有緣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勿住空忍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10 一種平懷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泯然自盡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11 止動歸止 움직임을 그쳐 그침으로 돌아가면
止更彌動 그침이 다시 큰 움직임이 되나니
12 唯滯兩邊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니
寧知一種 어찌 한가지임을 알건가.
13 一種 不通 한 가지에 통하지 못하면
兩處失功 양쪽 다 공덕을 잃으리니
14 遺有沒有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從空背空 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15 多言多慮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轉不相應 더욱 더 상응치 못함이요
16 絶言絶慮 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無處不通 통하지 않는 곳 없느니라.
17 歸根得旨 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隨照失宗 비춤을 따르면 종취를 잃나니
18 須臾返照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보면
勝脚前空 앞의 공함보다 뛰어남이라
19 前空轉變 앞의 공함이 轉變함은
皆由妄見 모두 妄見 때문이니
20 不用求眞 참됨을 구하려 하지 말고
唯須息見 오직 망녕된 견해만 쉴지니라.
21 二見不住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愼莫追尋 삼가 쫓아가 찾지 말라.
22 裳有是非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紛然失心 어지로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
23 二由一有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一亦莫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
24 一心不生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萬法無咎 만 법이 허물 없느니라.
25 無咎無法 허물이 없으면 법이 없고
不生不心 나지 않으면 마음이랄 것도 없음이라
26 能隨境滅 주관은 객관을 따라 소멸하고
境逐能沈 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27 境由能境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能由境能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
28 欲知兩段 양단을 알고저 할진대
元是一空 원래 하나의 空이니라.
29 一空同兩 하나의 공은 양단과 같아서
齊含萬象 삼라만상을 함께 다 포함하여
30 不見精추 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寧有偏黨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31 大道體寬 대도는 본체가 넓어서
無易無難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
32 小見狐疑 좁은 견해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轉急轉遲 서둘수록 더디어지도다.
33 執之失度 집착하면 법도를 잃음이라
必入邪路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가고
34 放之自然 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로 되어
體無去住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도다.
35 任性合道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逍遙絶惱 소요하여 번뇌가 끊기고
36 繫念乖眞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昏沈不好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37 不好勞神 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何用疎親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건가.
38 欲趣一乘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勿惡六塵 육진을 미워하지 말라.
39 六塵不惡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還同正覺 도리어 정각(正覺)과 동일함이라.
40 智者無爲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愚人自縛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41 法無異法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妄自愛着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42 將心用心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豈非大錯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43 迷生寂亂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悟無好惡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44 一切二邊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良由斟酌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로다.
45 夢幻空華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何勞把捉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46 得失是非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一時放却 일시에 놓아 버려라.
47 眼若不睡 눈에 만약 졸음이 없으면
諸夢自除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48 心若不異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萬法一如 만법이 한결 같느니라.
49 一如體玄 한결 같음은 본체가 현묘하여
兀爾忘緣 올연히 인연을 잊어서
50 萬法齊觀 만법이 다 현전함에
歸復自然 돌아감이 자연스럽도다.
51 泯其所以 그 까닭을 없이하면
不可方比 견주어 비할 바가 없음이라
52 止動無動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動止無止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53 兩旣不成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一何有爾 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54 究竟窮極 구경하고 궁극하여
不存軌則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요
55 契心平等 마음에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所作俱息 짓고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56 狐疑淨盡 여우 같은 의심이 다하여 맑아지면
正信調直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며
57 一切不留 일체가 머물지 아니하여
無可記憶 기억할 아무것도 없도다.
58 虛明自照 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不勞心力 애써 마음 쓸 일 아니로다.
59 非思量處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識情難測 의식과 망정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60 眞如法界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無他無自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61 要急相應 재빨리 상응코저 하거든
唯言不二 둘 아님을 말할 뿐이로다.
62 不二皆同 둘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無不砲容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63 十方智者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皆入此宗 모두 이 종취로 들어옴이라.
64 宗非促廷 종취란 짧거나 긴 것이 아니니
一念萬年 한 생각이 만년이요
65 無在不在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十方目前 시방이 바로 눈 앞이로다.
66 極小同大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忘絶境界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67 極大同小 지극히 큰 것이 작은 것과 같아서
不見邊表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음이라.
68 有卽是無 있음이 곧 없음이요
無卽是有 없음이 곧 있음이니
69 若不如此 만약 이 같지 않다면
不心須守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70 一卽一切 하나가 곧 일체요
一切卽一 일체가 곧 하나이니
71 但能如是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何慮不畢 마치지 못할까 뭘 걱정하랴.
72 信心不二 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不二信心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73 言語道斷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非去來今 과거.미래.현재가 아니로다.
제5권 증도가(證道歌)
머리말
<증도가(證道歌)>는 영가(永嘉)스님이 지었습니다.
영가(永嘉)스님의 휘(諱)는 현각(玄覺)이요, 자(字)는 도명(道明)이
며, 성은 대(戴)씨이며, 절강성 온주부 영가현[浙江省溫州府永嘉縣]
사람입니다.
어릴 때 출가하여 안으로는 삼장(三臟)을 두루 섭렵하고 밖으로는
외전에도 널리 통달하였다고 합니다.
영가스님은 본래 천태종 계통으로 천태지관(天台止觀)을 많이 익
혀서 그 묘를 얻고 항상 선관(禪觀)으로 수행하였습니다. 천태종 팔
조(八祖)인 좌계 현랑(左溪玄朗) 법사와는 동문(同門)이며, 나중에
도를 성취하고 난 뒤에도 서로 서신 왕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일찍이 온주의 개원사(開元寺)에 있으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
내며 효순하기로 소문이 났으나, 누님까지 함께 지내니 두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하여 온 사중(寺中)과 동구(洞口)에서 비방을 하였습
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별세하여 상복을 입고서도 누님을 떠나 보
내지 못하니 사람들의 비방이 더욱 심했으나 영가스님은 전혀 그러
한 데 개으치 않았습니다.
영가스님이 천태종에 있으면서 선관을 닦고 선종과 비슷한 길을
밟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왜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개원사 복도로 현책(玄策)이라는 선사가 지나가고 있었는
데 나이는 60여세였습니다. 이때 그의 누님이 발 밖으로 그 노숙(老
宿)을 보고,
"저 노스님을 방으로 청해서 대접했으면 좋겠다."
고 하였습니다. 영가스님이 얼른 나가서 노스님을 청했더니, 노숙
은 들어오지 않으려 하다가 스님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방에 들어왔
습니다. 그 노숙과 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토론해 보니 자신의 견처
나 노스님의 견처가 같은 점도 많이 있고 독특한 점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책스님은 영가스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의 법사는 누구인가?"
"제가 <방등경론>을 배울 때는 각각 스승이 계셨으나, 뒤에 <유
마경>에서 불심종(佛心宗)을 깨치고는 아직 증명하실 분이 없습니
다."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노스님은 영가스님의 기상이 다
른 사람들과 다르고 또 그 누님에게도 협기(俠氣)가 있음을 느끼고
다음과 같이 권했습니다.
"부모와 형제에게 효순하는 일도 한 가지 길이지만, 당신은 불법
의 이치를 밝히기는 했으나 스승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 있소. 과거
의 부처님들도 성인과 성인이 서로 전하시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인
가하였습니다. 석가여래께서도 연등불의 수기를 받으셨소. 그렇게 하
지 않으면 천연외도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오. 남방에 큰 스승으로
혜능선사가 계십니다. 그곳으로 가서 발 아래 예배하고 스승으로 섬
기시오."
그러자, 영가스님이
"다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실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법이 수승하
신 듯 하니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저를 위해서 허
락해 주십시오." 하자, 현책스님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로서는 그대의 증명법사가 되기는 곤란하오. 지금 조계에는 육
조대사가 계셔서 사방에서 학자가 운집하여 법을 받는 터이니 만약
그대가 가겠다면 함께 가리다."
그러나 영가스님은 누님을 홀로 남겨두고 떠날 수가 없어 망설였
습니다. 그러자 누님이 하는 말이 "나는 다른 데 의지해서 지낼 수
있으니 나를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시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책스님과 함께 떠났는데, 그 때에 영가스님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그럭저럭 시흥현(始興縣) 조계산(曹溪山)에 이르니 때
마침 육조대사(六祖大師)께서 상당(上堂)하여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
다. 이에 영가스님은 절도 하지 않고 선상을 세 번 돌고 나서 육환
장을 짚고 앞에 우뚝 서있자니 육조대사께서 물으셨습니다.
"대저 사문(沙門)은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서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대덕(대덕)은 어디서 왔기
에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가?"
육조스님의 이러한 말씀은 건방기제 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선상
만 세 번 돌고 턱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그것은 아만심이 탱천하기
때문이 아니냐하는 힐난입니다. 그러나 육조스님이 영가스님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 번 슬쩍 법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스님께서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無常)은 빠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과는 뜻
이 다르므로 그 깊은 뜻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육조스님이 말씀하
셨습니다.
"어찌하여 남[生]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
달하지 못하는가"
이렇게 육조스님께서 반문하시니 이것은 '네가 지금 무상이 빠르
다고 하니 그 무상(無常)의 근본을 바로 체험하여 깨치고, 남이 없음
[無生]을 요달하면 빠르고 빠르지 않음이 떨어져 버린 구경을 성취
하게 되는데 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느냐'라는 말
씀입니다.
이에 영가스님이 답하였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하였습니다."
본체는 원래 남이 없으니 그걸 우리가 체득할 필요가 뭐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이대로가 남이 없고 그대로가 빠름이 없는데, 다시 남
이 없고 빠름이 없음을 요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영가스님이 반
박하자, 육조스님이
"네 말과 같다. 네 말과 같다."
고 인가하시니, 천여명의 대중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에야 이로소 영가스님은 다시 동랑(東廊)으로 가서 육환장을
걸어 놓고 위의를 갖추어 육조스님께 정중히 예배하였습니다. 위의
를 갖춘다는 것은 큰 가사를 입고 향을 피우고 스님에게 예배를 드
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가스님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로
하직 인사를 드리자 육조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리 빨리 돌아가려고 하느냐?"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니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
"누가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느냐?"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네가 참으로 남이 없는 도리를 알았구나!"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
이는 남이 없음에 뜻이 있다면 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
니다.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뜻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있는 그것부터가 분별하는 것이 아니냐
는 욱조스님의 질책입니다.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분별을 하여도 심(心), 의(意), 식(識)의 사량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대용의 나타남이라는 영가스님의 말씀입니다. 그러자 육
조스님께서 선상에서 내려오시더니 영가스님의 등을 어루먼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장하다 옳은 말이다. 손에 방패와 창을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그리하여 그 때 사람들이 영가스님이 조계산에서 하룻밤만 자고
갔다 하여 일숙각(一宿覺)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튿날 육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몸소 대중을 거느리시고 영가
스님을 전송하셨는데, 영가스님이 열 걸음쯤 걸어 가다가 석장을 세
번 내려치고 말했습니다.
"조계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
았노라!"
선사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소문은 먼저 퍼져서 모두들 그를
'부사의(不思議) 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가(歌), 항(行), 게(偈), 송(頌)은 모두가 그의 누나
가 수집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은 선천(先天) 2년(서기 713년) 10월 17일에 입적하시니
세수 39세였으며, 시호(諡號)는 무상대사(無相大師), 탑호(塔號)는 정
광(淨光)이라 하였습니다. 그해에 육조스님께서도 돌아가시니 세수
76세였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흔히 어떤 사람들은 이 법담(法談)을
평하기를,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나은 듯하고 육조스님이 말에
몰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가스님이 육조스님보다 수승한
사람이 아니냐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을
하면 영가스님을 잘못 본 사람입니다. 영가스님 자신이 <증도가(證
道歌)>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조계의 길을 깨친 뒤로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다."고 하여, 조계산에 있는 육조스님을 찾아와서 근본을 확철히
깨쳤다고 자기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古人)들은 영가스님이 깨친 대목을 두고 말하기를 앞의 법담
에서,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서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
하지 못하는가?"
하는 말 끝에서 깨쳤다고 봅니다.
영가스님이 자기 스스로 조계의 길을 확실히 깨치고 난 뒤에는
나고 죽음에 자재하다고 말씀하셨으며, 자기가 평생동안 연구했던
천태종을 버리고 육조스님의 조계 선종의 입장에서 법문하였고 저술
도 하였습니다. 그런 만큼 육조스님께 와서 깨친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은 영가스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이고 선종에서 깨친다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가스님의 행장(行
狀)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살펴보고 <증도가(證道歌)>에 대해서 조
금 이야기 하겠습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서 확철히 깨치고, 깨친 경지에 의
지해서 <증도가>를 지었는데, 천태종이나 다른 교가의 사상과는 많
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천태종에서는 교리적으로 볼 때 맞지 않는
것이 많이 있다 하여 이것이 일종의 미친 견해이지 바른 견해는 아
니라고까지 혹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종에서 볼 때는 <증도
가>가 선종사상을 대표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으므로, 그러헥 비난하
는 사람들은 선종을 모르는 데서 하는 말이지 바른 길을 아는 사람
이면 그런 말을 하리라고는 벌대로 생각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禪)과 교(敎)의 관계가 <증도가>에서 더욱 더 완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禪)에서는 '한 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一超直入
如來地]'고 많이 주장하는데 대해서, 교[敎]에서는 '점차고 닦아 성불
하는 것[漸修]'만을 근본으로 표방하므로 서로가 정반대의 입장에 서
게 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영가스님의 <증도가>에 대해서 천태종
에서 가장 많이 공격했지만, 그 공격도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았으
며, 영가스님의 <증도가>는 실제로 도 닦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만고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증도가(證道歌)>라 하였는데 '증(證)'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를 살펴 봅시다.
'증(證)'이란 구경(究竟)을 바로 체득함을 말합니다.
깨달음[悟]에도 증오(證悟)와 해오(解悟)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오(解悟)란 견해(見解), 지해(知解)를 말하는 것으로, 알ㄴ기는 분
명히 알지만 실제 마음으로 체득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
면 얼음이 본래 물인 줄은 알았지만 아직 녹지 않고 얼음 그대로 있
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얼음을 녹여 물로 쓰고 있지는 못하듯
이 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은 분명히 알았지만 번뇌망상이 아직 그대
로 남아 있어서 중생 그대로인 것, 그것을 해오(解悟)라고 말합니다.
'증오(證悟)'란 얼음을 완전히 녹여서 물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
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경계, 따라서 중생의 번뇌망상이 다 끊어
져서 제팔 아뢰야 근본무명까지 끊어진 구경각을 말하니 곧 실지로
성불한 것, 견성한 것을 증오(證悟)라 하고 간단히 줄여서 증(證)이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가(敎家)에서든지 선가(禪家)에서든지 증(證)이라 하면
근본적으로 체달한 구경각(究竟覺)을 말하는 것이지 그 중간에서 뭘
좀 아는 걸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통된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이 노래에 '증(證)'자를 붙였냐 하면, 선종에서 깨
쳤다고 하는 것은 언제든지 '증오(證悟)'를 근본적으로 삼앗지 '해오
(解悟)'로서는 근본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다
시 말하면 선가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는
것은 '증오(證悟)'이지 '해오(解悟)'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조(普照)스님도 처음에는 선가에서 전한 법을 '해오(解悟)'라고
잘못 보았다가 나중에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이라든가 <원돈성
불론(圓頓成佛論)>같은 데서는 선이란 '증오(證悟)'이지 '해오(解悟)'
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가에서의
근본 표본은 '해오(解悟)'가 아닌 구경각이며, 선가에서의 깨달음[悟]
이란 구경적으로 체달한 것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노래 이름부터도
'증(證)'이라 하였지 '해(解)'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언제든지 깨친 것을 '돈오(頓悟)'라 하는데,
"돈(頓)이란 망념을 순식간에 없애는 것이요 오(悟)란 얻는 바가 없
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대주(大珠)선사는 설파하고 있습니다.
근본 무명인 제팔 아뢰야는 무기무심(無記無心)의 마계(魔界)까지
완전히 벗어나서 대원경지(大圓鏡智)에 들어가 진여본성을 확철히
깨친 것이 곧 '증(證)'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가에서는 그 중간
적인 것을 '깨달음'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앞으로 설명하는 <증도가>를 이해할 수 있지 '증
오(證悟)'와 해오(解悟)'를 혼동해서는 영원히 <증도가>를 모르고 마
는 것입니다.
이 <증도가>는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해서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달마스님에서 육조스님까지, 그리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
으로 내려온 정안종사(正眼宗師)의 증오처(證悟處)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증(證)'이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도(道)라 하는가?
도(道)를 보리(菩提)라 각(覺)이라 하는데 <증(證)>을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이 도(道)라 하는 것은 증(證)한 도(道)를, 구경각을 성
취한 그 구경처(究竟處)를 말합니다. 즉 도(道)란 구경을 깨친 '증
(證)'한 도(道)이지 중각적인 도(道), 해(解)한 도(道)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그러면 구경각인 도란 무엇인가?
"무심이 도라고 일컬어 말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 두터운 관문이 막혀 있느니라.
[莫道無心云是道하라 無心猶隔一重關이니라]"
도는 무심과 통합니다. 우리가 실지로 공부해서 대무심지(大無心
地)에 들어가서 구경각을 바로 성취하면 그만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지 못하고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에 떨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
폐단을 막기 위해서 제팔 아뢰야의 무심 즉 멸진정(滅盡定)의 무심
은 도(道)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멸진정의 무심도 아주 벗어나서 제
팔 아뢰야의 근본 무명까지 끊어진곳에서 구경각을 성취하여 대원경
지가 현발한 이것이 도(道)인 것이며, 진연본성을 바로 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증(證)'이 곧 '도(道)'이며 '도(道)'가 곧 '증(證)'이
라 하는 것입니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도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外息諸緣하고 內心無喘
心如墻壁하사와 可以入道니라]"
그러면 마음이 담과 벽 같아야 한다고 하니 목석과 같고 장승과
같은 무심지에 들어가 버리면 그것이 도(道)냐 하면, 그것이 도가 아
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제팔 아뢰야 무기무심이
장애가 되어 근본적인 구경무심에는 아직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으로 구경의 대무심지에 들려면 멸진정의 가무심(假無心),
거기서 한 관문을 더 뚫어서 구경무심을 성취해야 바로 도(道)를 깨
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에서 인용한 달마스님의 말씀도 구경적인
도를 말씀함이지 중간적인 도가 아니며 증오(證悟)의 '도(道)'이지,
해오(解悟)의 '도(道)'는 아닙니다. 달마스님 이래로 선종에서 전해
내려온 것이 구경각을 '증(證)'이라 하고, '도(道)'라 하는 것도 '증
(證)'을 근본 내용으로 삼기 때문에 구경각이 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도는 달마스님이 말씀하신 무심을 한층 넘어간 도가
되어야지 그 중간적인 것은 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가(歌)'란 무엇인가?
영가스님 자신이 확철히 깨친 경계를 노래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이 육조스님을 찾아가 확철히 깨쳐 구경각을 성취하고 나서
그 경지를 시가(詩歌) 형식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증도가證道歌
1 君不見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2 絶學無爲閑道人 배움이 끊어진 하릴없는 한가한 도인
은
不除妄想不求眞 망상도 없애지 않고 참됨도 구히지 않
으니
3 無明實性 卽佛性 무명의 참 성품이 곧 불성이요
幻化空身 卽法身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이로다.
4 法身 覺了無一物 법신을 깨달음에 한 물건도 없으니
本源自性 天眞佛 근원의 자성이 천진불이라
5 五陰浮雲 空去來 오음의 뜬구름이 부질없이 가고 오며
三毒水泡虛出沒 삼독의 물거품은 헛되이 출몰하도다.
6 證實相無人法 실상을 증득하여 人. 法이 없으니
刹那 滅却阿鼻業 찰나에 아비지옥의 업을 없애버림이라
7 若將妄語�x衆生 거짓말로 중생을 속인다면
自招拔舌塵沙劫 진사겁토록 발설지옥 보를 스스로 부르
리로다.
8 頓覺了如來禪 여래선을 단박에 깨치니
六度萬行 體中圓 육도만행이 본체 속에 원만함이라
9 夢裏 明明有六趣 꿈속에선 밝고 밝게 육취가 있더니
覺後 空空無大千 깨친 후엔 비고 비어 대천 세계가 없
도다.
10 無罪福無損益 죄와 복이 없고 손해와 이익도 없나니
寂滅性中 莫問멱 적멸한 성품 가운데서 묻고 찾지 말
라.
11 比來 塵鏡 未曾磨 예전엔 때 낀 거울 미처 갈지 못했
더니
今日 分明須剖析 오늘에야 분명히 닦아 내었도다.
12 誰無念誰無生 누가 생각이 없으며 누가 남이 없는가.
若實無生無不生 진실로 남이 없으면 나지 않음도 없나
니
13 喚取機關木人問 기관목인을 불러 붙들고 물어 보라.
求佛施功早晩成 부처 구하고 공 베풂을 조만간 이루리
로다.
14 放四大莫把捉 사대를 놓아 버려 붙잡지 말고
寂滅性中 隨飮 적멸한 성품 따라 먹고 마실지어다.
15 諸行 無常一切空 모든 행이 무상하여 일체가 공하니
卽是如來大圓覺 이는 곧 여래의 대원각이로다.
16 決定說表眞乘 결정된 말씀과 참됨을 나타낸 법을
有人 不肯任情徵 어떤 사람은 긍정치 않고 정에 따라
헤아림이라
17 直截根源佛所印 근원을 바로 끊음은 부처님 인가하신
바요
摘葉尋枝 我不能 잎 따고 가지 찾음은 내 할 일 아니
로다.
18 摩尼珠 人不識 마니주를 사람들은 알지 못하니
如來藏裏 親收得 여래장 속에 몸소 거두어 들임이라
19 六般神用空不空 여섯 가지 신통묘용은 공하면서 공하
지 않음이요
一顆圓光色非色 한 덩이 두렷한 빛은 색이면서 색이
아니로다.
20 淨五眼得五力 오안을 깨끗이 하여 오력을 얻음은
唯證乃知難可測 증득해야만 알 뿐 헤아리긴 어렵도다.
21 鏡裏 看形見不難 거울속의 형상 보기는 어렵지 않으나
水中捉月爭拈得 물속의 달을 붙들려 하나 어떻게 잡을
수 있으랴.
22 常獨行常獨步 항상 홀로 다니고 항상 홀로 걷나니
達者同遊涅槃路 통달한 이 함께 열반의 길에 노닐도다.
23 調古神淸風自高 옛스러운 곡조 신기 맑으며 풍채 스스
로 드높음이여
貌悴骨剛人不顧 초췌한 모습 앙상한 뼈 사람들 돌아보
지 않는도다.
24 窮釋子口稱貧 궁색한 부처님 제자 입으로는 가난타 말
하나
實是身貧道不貧 실로 몸은 가난해도 도는 가난치 않음
이라.
25 貧則身常披縷褐 가난한 즉 몸에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道則心藏無價珍 도를 얻은 즉 마음에 무가보(無價寶)를
감추었도다.
26 無價珍用無盡 무가보는 써도 다함이 없나니
利物應時終不 중생 이익하며 때를 따라 끝내 아낌이
없음이라
27 三身四智 體中圓 삼신. 사지는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八解六通 心地印 팔해탈 육신통은 마음땅의 인(印)이로
다.
28 上士 一決一切了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깨치
고
中下 多聞多不信 중. 하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더욱 믿
지 않는도다.
29 但自懷中解垢衣 스스로 마음의 때 묻은 옷을 벗을 뿐
誰能向外誇精進 뉘라서 밖으로 정진을 사랑할건가.
30 從他謗任他非 남의 비방에 따르고 남의 비난에 맡겨두
라.
把火燒天徒自疲 불로 하늘을 태우려 하나 공연히 자신
만 피로하리로다.
31 我聞恰似飮甘露 내 듣기엔 마치 감로수를 마심과 같아
서
鎖融頓入不思議 녹아서 단박에 부사의 행탈경에 들어
가리로다.
32 觀惡言 是功德 나쁜 말을 관찰함이 바로 공덕이니
此則成吾善知識 이것이 나에게는 선지식이 됨이라
33 不因 謗起怨親 비방 따라 원망과 친한 마음 일지 않
으면
何表無生慈忍力 하필이면 남이 없는 자비인욕의 힘 나
타내 무엇할건가.
34 宗亦通說亦通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함이여
定慧圓明不滯空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공에 응체
하지 않는도다.
35 非但我今獨達了 나만 이제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河沙諸佛體皆同 수 많은 모든 부처님 본체는 모두 같
도다.
36 獅子吼無畏說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百獸聞之皆腦裂 뭇 짐승들 들으면 모두 뇌가 찢어짐
이라
37 香象 奔波失却威 향상은 분주하게 달아나 위엄을 잃
고
天龍 寂聽生欣悅 천룡은 조용히 듣고서 희열을 내는
도다
38 遊江海涉山川 강과 바다에 노닐고 산과 개울을 건너
서
尋師訪道爲參禪 스승 찾아 도를 물음은 참선 때문이
라
39 自從認得曹溪路 조계의 길을 인식하고 부터는
了知生死不相干 생사와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40 行亦禪坐亦禪 다녀도 참선이요 앉아도 참선이니
語默動靜體安然 語默動靜에 본체가 편안함이라
41 縱遇鋒刀常坦坦 창. 칼을 만나도 언제나 태연하고
假饒毒藥也閑閑 독약을 마셔도 한가롭고 한가롭도다.
42 我師得見燃燈佛 우리 스승 부처님께서 연등불을 뵈옵
고
多劫 曾爲忍辱僊 다겁토록 인욕선인이 되셨도다.
43 幾廻生幾廻死 몇번을 태어나고 몇 번인나 죽었던가.
生死悠悠無定止 생사가 아득하여 그침이 없었도다.
44 自從頓悟了無生 단박에 깨쳐 남이 없음을 요달하고부
터는
於諸榮辱何憂喜 모든 영욕에 어찌 근심하고 기뻐하랴.
45 入深山住蘭若 깊은 산에 들어가 고요한 곳에 머무니
岑 幽邃長松下 높은 산 그윽하여 낙락장송 아래로다.
46 優遊靜坐野僧家 한가히 노닐며 절 집에서 조용히 앉
았으니
격寂安居實蕭灑 고요한 안거 참으로 蕭灑하도다.
47 覺卽了不施功 깨친즉 그만이요 공 베풀지 않나니
一切有爲法不同 모든 유위법과 같지 않도다.
48 住相布施 生天福 모양과 머무는 보시는 하늘에 나는
복이나
猶如仰箭射虛空 마치 허공에 화살을 쏘는 것과 같도
다.
49 勢力盡箭還墜 세력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나니
招得來生不如意 내생에 뜻과 같지 않는 과보를 부르
리로다.
50 爭似無爲實相門 어찌 함이 없는 실상문에
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감과
같으리오.
51 但得本草愁末 근본만 얻을 뿐 끝은 근심치 말지니
如淨瑠璃含寶月 마치 깨끗한 유리가 보배달을 머금음
과 같도다.
52 旣能解此如意珠 이미 이 여의주를 알았으니
自利利他終不竭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다함이 없도
다.
53 江月照松風吹 강엔 달 비치고 소나무엔 바람 부니
永夜淸 何所爲 긴긴 밤 맑은 하늘 무슨 하릴 있을건
가.
54 佛性戒珠 心地印 불성계의 구슬은 마음의 印이요
霧露雲霞 體上衣 안개. 이슬. 구름. 노을은 몸 위의 옷
이로다.
55 降龍鉢解虎錫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범싸움 말린 석
장이여
兩 金環鳴歷歷 양쪽 쇠고리는 역력히 울리는도다.
56 不是標形虛事持 이는 모양을 내려 허투루 지님이 아
니요
如來寶杖 親 跡 부처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본받음
이로다.
57 不求眞不斷妄 참됨도 구하지 않고 망령됨도 끊지 않
나니
了知二法 空無相 두 법이 공하여 모양 없음을 분명히
알았도다.
58 無相無空無不空 모양도 없고 공도 없고 공 아님도 없
음이여
卽是如來眞實相 이것이 곧 여래의 진실한 모습이로다.
59 心鏡明鑑無碍 마음의 거울 밝아서 비침이 걸림 없으
니
廓然瑩徹周沙界 확연히 비치어 항사세계에 두루 사무
치도다.
60 萬象森羅影現中 만상삼라의 그림자 그 가운데 나타나
고
一顆圓明非內外 한 덩이 두렷이 밝음은 안과 밖이 아
니로다.
61 豁達空撥因果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를 없다하면
茫茫蕩蕩招殃禍 아득하고 끝없이 앙화를 부르리로다.
62 棄有著空病亦然 있음을 버리고 공에 집착하면 병이기
는 같으니
還如避溺而投火 마치 물을 피하다가 불에 뛰어드는
것과 같도다.
63 捨妄心取眞理 망심을 버리고 진리를 취함이여
取捨之心成巧僞 취사하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루
도다.
64 學人 不了用修行 배우는 사람이 잘 알지 못하고 수행
하나니
眞成認賊將爲子 참으로 도적을 아들로 삼는 짓이로다.
65 損法財滅功德 법의 재물을 덜고 공덕을 없앰은
莫不由斯心意識 心. 意. 識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음
이라
66 是以 禪門 了却心 그러므로 선문에선 마음을 물리치
고
頓入無生知見力 남이 없는 지견의 힘에 단박에 들어
가도다.
67 大丈夫秉慧劒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般若鋒兮金剛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로다.
68 非但能 外道心 외도의 마음만 꺾을 뿐 아니요
早曾落却天魔膽 일찍이 천마의 간담을 떨어뜨렸도다.
69 震法雷擊法고 법의 우레 진동하고 법고를 두드림이여
布慈雲兮灑甘露 자비의 구름을 펴고 감로수를 뿌리는
도다.
70 龍象 蹴踏潤無邊 용상이 차고 밟음에 윤택이 그지 없
으니
三乘五性 皆惺悟 三乘과 五性이 모두 깨치는도다.
71 雪山肥 更無雜 설산의 비니초는 다시 잡됨이 없어
純出醍 我常納 순수한 제호를 내니 나 항상 받는도
다.
72 一性 圓通一切性 한 성품이 두렷하게 모든 성품에 통
하고
一法 含一切法 한 법이 두루하여 모든 법을 포함하
나니
73 一月 普現一切水 한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고
一切水月 一月攝 모든 물의 달을 한 달이 포섭하도다.
74 諸佛法身 入我性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나의 성품에
들어오고
我性 還共如來合 나의 성품이 다시 함께 여래와 합치
하도다.
75 一地 具足一切地 한 지위에 모든 지위 구족하니
非色非心非行業 색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요 행업도
아니로다.
76 彈指圓成八萬門 손가락 퉁기는 사이에 팔만법문 원만
히 이루고
刹那 滅却三祇劫 찰나에 삼아승지겁을 없애버리는도
다.
77 一切數句非數句 일체의 수구와 수구 아님이여
與吾靈覺何交涉 나의 신령한 깨침과 무슨 상관 있을
건가.
78 不可毁不可찬 훼방도 할 수 없고 칭찬도 할 수 없음
이여
體若虛空勿涯岸 본체는 허공과 같아서 한계가 없도다.
79 不離當處常湛然 당처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하니
멱則知君不可見 찾은 즉 그대를 아나, 볼 수는 없도
다.
80 取不得捨不得 가질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나니
不可得中 只�得 얻을 수 없는 가운데 이렇게 얻을
뿐이로다.
81 默時說說時默 말 없을 때 말하고 말할 때 말 없음이
여
大施門開無壅塞 크게 베푸는 문을 여니 옹색함이 없
도다.
82 有人 問我解何宗 누가 나에게 무슨 종취를 아느냐고
물으면
報道摩訶般若力 마하반야의 힘이라고 대답해 주어라.
83 或是或非人不識 혹은 옳고 혹은 그릇됨을 사람이 알
지 못하고
逆行順行天莫測 역행. 순행은 하늘도 헤아리지 못하도
다.
84 吾早曾經多劫修 나는 일찍이 많은 劫 지나며 수행하
였으니
不是等閑相�x惑 부질없이 서로 속여 미혹케 함이 아
니로다.
85 建法幢立宗旨 법의 깃발을 세우고 종지를 일으킴이여
明明佛勅曹溪是 밝고 밝은 부처님 법 조계에서 이었
도다.
86 第一迦葉 首傳燈 첫번째로 가섭이 맨 먼저 등불을 전
하니
二十八代 西天記 이십팔대는 서천의 기록이로다.
87 法東流入此土 법이 동쪽으로 흘러 이 땅에 들어와서
는
菩提達磨爲初祖 보리달마가 첫 조사 되었도다.
88 六代傳衣 天下聞 六代로 옷 전한 일 천하에 소문났고
後人得道何窮數 뒷 사람이 도 얻음을 어찌 다 헤아리
랴.
89 眞不立妄本空 참됨도 서지 못하고 망도 본래 공함이
여
有無俱遣不空空 있음과 없음을 다 버리니 공하지 않
고 공하도다.
90 二十空門 元不著 二十空門에 원래 집착하지 않으니
一性如來體自同 한 성품 여래의 본체와 저절로 같도
다.
91 心是根法是塵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兩種 猶如鏡上痕 둘은 거울 위의 흔적과 같음이라.
92 痕垢盡除光始現 흔적인 때 다하면 빛이 비로소 나타
나고
心法雙亡性卽眞 마음과 법 둘 다 없어지면 성품이 곧
참되도다.
93 嗟末法惡時世 말법을 슬퍼하고 시세를 미워하노니
衆生 薄福難調制 중생의 복 얇아 조복받기 어렵도다.
94 去聖遠兮邪見深 성인 가신 지 오래고 사견이 깊어짐
이여
魔强法弱多怨害 마구니는 강하고 법은 약하여 怨害가
많도다.
95 聞說如來頓敎門 여래의 돈교문 설교를 듣고서는
恨不滅除令瓦碎 부숴 없애버리지 못함을 한탄하는도
다.
96 作在心殃在身 지음은 마음에 있으나 재앙은 몸으로
받나니
不須怨訴更尤人 모름지기 사람을 원망하고 허물치 말
지어다.
97 欲得不招無間業 무간지옥의 업보를 부르지 않으려거
든
莫謗如來正法輪 여래의 바른 법륜을 비방하지 말아라.
98 檀林無雜樹 전단향 나무 숲에는 잡나무가 없으니
울密深沈師子住 울창하고 깊숙하여 사자가 머무는도
다.
99 境靜林閒獨自遊 경계 고요하고 숲 한적하여 홀로 노
니니
走獸飛禽 皆遠去 길짐승과 나는 새가 모두 멀리 달아
나도다.
100 師子兒衆隨後 사자 새끼를 사자 무리가 뒤따름이여
三歲 卽能大哮吼 세 살에 곧 크게 소리치는도다.
101 若是野干 逐法王 여우가 법왕을 쫓으려 한다면
百年妖怪虛開口 백년 묵은 요괴가 헛되이 입만 엶이
로다.
102 圓頓敎勿人情 원돈교는 인정이 없나니
有疑不決直須爭 의심있어 결정치 못하거든 바로 다툴
지어다.
103 不是山僧 逞人我 산승이 인아상을 들어냄이 아니요
修行 恐落斷常坑 수행타가 斷. 常의 구덩이에 떨어질
까 염려함이로다.
104 非不非是不是 그름과 그르지 않음과 옳음과 옳지 않
음이여
差之毫釐失千里 털끝만큼 어긋나도 천리길로 잃으리
도다.
105 是卽龍女頓成佛 옳은 즉 용녀가 단박에 성불함이요
非卽善星 生陷墜 그른 즉 善星이 산 채로 지옥에 떨
어짐이로다.
106 吾早年來積學問 나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쌓아서
亦曾討疏尋經論 일찍 주소를 더듬고 경론을 살폈도다.
107 分別名相 不知休 이름과 모양 분별함을 쉴 줄 모르고
入海算沙徒自困 바다 속 모래 헤아리듯 헛되이 스스
로 피곤하였도다.
108 却被如來苦呵責 문득 여래의 호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數他珍寶有何益 남의 보배 세어서 무슨 이익 있을건
가.
109 從來 學虛行 예전엔 비칠거리며 헛된 꾸지람을
들었으니
多年 枉作風塵客 여러 해를 잘못 풍진객(風塵客) 노릇
하였도다.
110 種性邪錯知解 성품에 삿됨을 심고 알음알이 그릇됨이
여
不達如來圓頓制 여래의 圓頓制를 통달치 못함이로다.
111 二乘 精進勿道心 이승은 정진하나 도의 마음이 없고
外道 총明無智慧 외도는 총명해도 지혜가 없도다.
112 亦愚癡亦小駭 우치하고도 겁이 많으니
空拳指上 生實解 빈 주먹 손가락 위에 실다운 견해를
내는도다.
113 執指爲月枉施功 손가락을 달로 집착하여 잘못 공부하
니
根境塵中 虛날怪 육근. 육경. 육진 가운데서 헛되이
괴이한 짓 하는도다.
114 不見一法 卽如來 한 법도 볼 수 없음이 곧 여래니
方得名爲觀自在 바야흐로 이름하여 관자재라 하는도
다.
115 了卽業障 本來空 마치면 업장이 곧 공함이요
未了還須償宿債 마치지 못하면 도리어 묵은 빛 갚으
리로다.
116 飢逢王膳不能飡 굶다가 임금 수라 만나도 먹을 수 없
으니
病遇醫王爭得差 병들어 의왕 만난들 어찌 나을 수 있
으랴.
117 在欲行禪知見力 욕망 속에서 참선하는 지견의 힘이여
火中生蓮終不壞 불 속에서 연꽃 피니 끝내 시들지 않
는도다.
118 勇施犯重悟無生 용시비구는 중죄 짓고도 남이 없는
법을 깨달으니
早是成佛于今在 벌써 성불하여 지금에 있음이로다.
119 師子吼無畏說 사자후의 두려움 없는 설법이여
深嗟 頑皮� 어리석은 완피달을 몸시 슬퍼하는도
다.
120 只知犯重障菩提 중죄 범하면 보리를 막는 줄만 알 뿐
不見如來開秘訣 여래께서 비결 열어 두심은 보지 못
하도다.
121 有二比丘犯狀殺 어떤 두 비구 음행과 살생 저지르니
波離螢光 增罪結 우바리의 반딧불은 죄의 매듭 더하
였고
122 維摩大士頓除疑 유마대사 단박에 의심을 없애줌이여
還同赫日消霜雪 빛나는 해가 서리. 눈 녹임과 같도다.
123 不思議解脫力 不思議한 해탈의 힘이여
妙用恒沙也無極 묘한 작용 항하사같아 다함 없도다.
124 四事供養 敢辭勞 네 가지 공양을 감히 수고롭다 사
양하랴.
萬兩黃金 亦銷得 萬兩 황금이라도 녹일 수 있도다.
125 粉骨碎身未足酬 뼈가 가루되고 몸이 부숴져도 다 갚
을 수 없나니
一句了然超百億 한 마디에 요연히 백억 법문을 뛰어
넘도다.
126 法中王最高勝 법 가운데 왕 가장 높고 수승함이여
河沙如來同共證 강 모래같이 많은 여래가 함께 증득
하였도다.
127 我今解此如意珠 내 이제 이 여의주를 해설하오니
信受之者皆相應 믿고 받는 이 모두 상응하리도다.
128 了了見無一物 밝고 밝게 보면 한 물건도 없음이여
亦無人兮亦無佛 사람도 없고 부처도 없도다.
129 大千世界 海中 대천세계는 바다 가운데 거품이요
一切聖賢 如電拂 모든 성현은 번갯불 스쳐감과 같도
다.
130 假使鐵輪 頂上旋 무쇠바퀴를 머리 위에서 돌릴지라도
定慧圓明終不失 선정과 지혜가 두렷이 밝아 끝내 잃
지 않는도다.
131 日可冷月可熱 해는 차게 하고 달은 뜨겁게 할지언정
衆魔不能壞眞說 뭇 마구니가 참된 말씀 부술 수 없도
다.
132 象駕觴嶸漫進途 코끼리 수레 끌고 위풍당당히 길을
가거니
誰見螳螂 能拒轍 버마재비 수레길을 막는 걸 누가 보
겠는가.
133 大象 不遊於兎徑 큰 코끼리는 토끼 길에 노닐지 않고
大悟 不拘於小節 큰 깨달음은 작은 절개에 구애되지
않나니
134 莫將管見謗蒼蒼 대통같은 소견으로 창창히 비방하지
말라.
未了吾今爲君決 알지 못하기에 내 이제 그대 위해 결
단해 주는도다.
禪 林 寶 訓
선림고경총서 6권 도서출판 장경각 제공
해 제(解題)
『선림보훈(禪林寶訓)』은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스님들의 도와 덕에 대한 교훈을 모은
글이다. 이 책은 처음에는 송(宋)나라 때 임제종 양기파(楊岐派)의 묘희 종고(妙喜宗果:佛果
克勤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스님과 죽암 사규(竹庵君珪:佛眼淸遠스님의 법
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스님이 운거산(雲居山) 운문사(雲門寺)의 옛터에 토굴을 짓
고 20여년간을 살면서 송고(頌古) 100여편을 지었는데 이때에 모은 것이다. 이는 총림의 도
덕이 쇠퇴하여 감을 염려하여 옛스님들의 말씀이나 수행을 수립하여 납자들의 귀감이 되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출판 유포되지 못하고 순희(淳熙:1173∼1189) 연간에 동오(東吳)의 정선
(淨善)스님이 운거산에 갔다가 조암(祖庵:靑原惟信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4세 법손.
衡岳에 30년간 은거함)스님에게서 보훈(寶訓)을 얻었다. 그러나 벌레먹고 손실된 불완전한
상태여서 10여년간 다른 어록(語錄)들과 전기(傳記)를 참고하여 황룡 혜남(黃龍慧南:남악의
11세 법손)에서 불조 졸암(佛照拙庵:남악의 16세 법손) 및 간당 행기(簡堂行機:남악의 16세
법손)스님까지 50여편을 더 수집 보완하여 300여편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편집된 『선림보훈』은 그 뒤 명말(明末)에서 청대(淸代)에 걸쳐 몇가지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명말 숭정(崇楨) 8년(1635) 운서사의 대건(大建)스님이 지은 『선림보훈음의(禪
林寶訓踵義)』 1권이 처음 나왔고, 이를 토대로 명말 영력(永曆) 4년(1650) 장문가(張文圈)와
장문헌(張文憲)이 편찬한 『선림보훈합주(禪林寶訓合註)』 4권이 나왔다. 이어 영력(永曆) 8
년(1654) 앞의 합주(合註)에 서(序)를 썼던 행성(行盛)스님은 42분 스님의 깊은 뜻을 염송
(頌) 74수로써 나타내고, 『선림보훈염송(禪林寶訓頌)』 1권을 지었다. 그 후 청(淸) 강희(康
熙) 17년(1678) 덕옥(德玉)스님의 『선림보훈순주(禪林寶訓順)』 4권과 강희(康熙) 45년
(1706) 지선(智禪)스님의 『선림보훈필설(禪林寶訓筆說)』 3권이 있다. 이처럼 많은 주석서
가 나오게 된 것은 그들 서문에서 번번히 밝히고 있듯 총림이 쇠퇴함에 따라 총림의 귀감이
되는 것을 밝히고자 한 때문이다.
정선(淨善)스님이 중편(重編)한 명간(明刊)의 선림보훈집(禪林¿訓集) 4권본에 의하면 권1
에는 명교 설숭(明敎契崇)에서 진정 극문(眞淨克文)까지 77편, 권2에는 담당 문준(湛堂文準)
에서 절옹 여담(浙翁如)까지 72편, 권3에는 설당 도행(雪堂道行)에서 서현사 변공(棲賢寺 辯
公)까지 77편, 권4에는 불지 단유(佛智端裕)에서 뇌암 도추(懶庵道樞)까지 64편, 모두 290편
을 싣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일찍 『선림보훈』이 간행되었다. 현재 보물 제700호로 지정되어 있
는 『선림보훈』(上·下)는 그 간기(刊記)에 의하면, 고려 우왕(王) 4년(宣光 8년, 1378) 충
주의 선찰(禪刹)인 청룡선사(淸龍禪寺)에서 개판(開板)하였다.
양가(兩街) 요암행제공(了庵行齊公)이 『선림보훈』을 얻어보고는 처음 보는 것이라 감탄
하여서 그의 문인 상위선사(尙偉禪師)에게 판각하여 유포할 것을 부탁하니, 상위선사는 만회
(萬恢)스님과 함께 모연하고 고식기(高息機)와 최성록(崔星錄)이 모연을 도왔다. 그리고 환
암(幻庵)스님이 글〔題〕을 써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조선 중종(中宗) 20년(圈紛 4년, 1525) 순천 대광사(大光寺)에서도 상·하 두 권
으로 된 『선림보훈』2이 간행되었다.
선림보훈서(禪林寶訓序)
『선림보훈(禪林寶訓)』은 옛날 묘희 대혜(妙喜大慧:1088∼1163)스님과 죽암 사규(竹庵 君
珪:1082∼1146)스님이 강서(江西)땅 운문사(雲門寺)에서 토굴을 짓고 살 때 함께 편집한 것
이다.
나는 순희(淳熙:1173∼1189) 연간에 운거산(雲居山)에 노닐다가 이를 조암(祖庵) 노스님에
게서 얻었는데, 세월이 오래된 탓에 좀이 슬어 처음과 끝이 완전하지 못함을 애석해 하였다.
그 뒤 어록(語錄)이나 전기(傳記) 가운데 보이는 것을 10여 년간이나 모았더니 가까스로 50
여 편이 되었다. 그리하여 황룡 혜남(黃龍惠南:1002∼1069)스님에서 불조 졸암(佛照拙庵:112
1∼1203)·간당 행기(簡堂行機)스님에 이르기까지 모든 큰스님들이 남긴 어록을 가지고 절
요(節要)하고 수집하여 300편으로 분류하였다. 그런데 이는 얻어진 대로 순서를 정하였을
뿐, 시대순으로 편집하지는 않았다.
대체의 내용은 납자들로 하여금 권세와 이익을 구하거나 나와 남을 구별하는 마음〔人我
見〕을 깎아내고, 도덕과 인의〔仁義〕로 나아가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 문체는 여유롭고 평
이하여 궤변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투가 없어서 실로 입도(入道)를 돕는 원대한 법문이라 할
만하였다.
그러나 경판에 새겨 널리 퍼뜨리려면 반드시 한 번 보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도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비록 언덕이나 골짜기에서 늙어 죽는다 해도 뜻〔圍〕과 바
람〔願〕이 만족되리라.
동오(東吳)지방 사문(沙門) 정선(淨善)이 쓰다.
선림보훈
上
1
도보다 높고 덕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명교 계숭(明敎契嵩)스님 / 1007∼1072
1.
도보다 높고 덕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도덕이 간직되었다면 보통사람이라 해도 곤궁하
지 않으며, 도덕이 없다면 천하에 왕노릇을 한다 해도 되는 일이 없다. 백이(伯夷)와 숙제
(叔齊)는 옛날에 굶어 죽은 사람이지만 지금 사람들까지도 자기를 그에게 비교하여 주면 모
두가 기뻐한다. 한편 걸(桀)·주()·유(幽)·여()는 옛날의 임금이었으나 지금도 사람들은 자
기를 그에게 비교하면 모두가 화를 낸다. 그러므로 이 때문에 납자는 도덕이 자신에게 충만
하지 못한 것을 근심할지언정, 세력과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심진집(津
集)』
2.
부처되는 공부는 하루아침에 완전해지지 않는다. 낮으로 부족하면 밤까지 이어가며 오랜
세월이 지나야 자연스럽게 성취된다. 그 때문에 『주역(周易)』에서도, `배움으로써 뭇 이치
를 모으고 질문으로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공부에 있어서 질문과 변
론이 아니면 이치를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즈음의 납자들 중에는 어딜 가나 다른 사람에게 한 마디 질문이나 변론을 꺼내는 사람이
드물다. 이들은 무엇으로 성품자리를 도와 날로 새로와지는 공부를 하려는지를 모르겠다.
3.
태사공(太史公)은 『맹자(孟子)』를 읽다가, 양혜왕(梁惠王)이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
게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대목에 이르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책을 덮어버리고 길
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슬프다. 이익이란 실로 혼란의 시초이다. 때문에 공부자(軫夫子)께서도 이익에 대해서는
드물게 말씀하셨는데, 이는 항상 그 근원을 막고자 함이었다."
근원이란 시초이다. 귀천을 막론하고 이익을 좋아하는 폐단은 다를 수 없다. 공직자가 이익
을 챙기느라 공정하지 못하면 법이 문란해지고, 보통사람이 속임수로 이익을 취한다면 일이
혼란해진다. 일〔事〕이 혼란해지면 사람들이 다투어 화평하지 못하고, 법이 문란해지면 대
중이 원망하여 복종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서로가 뒤틀려 싸우며 죽음도 돌아보지 않는 것
이 이로부터 비롯하니, `이익은 실로 혼란의 시초이다'라고 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성현께서 이익을 버리고 인의(仁義)를 무엇보다도 존중해야 한다고 깊이 주의를 주
기까지 하셨는데도 후세에는 이익을 걸고 서로를 속이며 성현의 가르침을 상하게 했던 자들
이 있었으니, 이를 어떻게 막겠는가. 더구나 이익 취하는 방법을 공공연히 벌여놓고 자행하
면서 세상 풍속을 올바르게 하여 야박하지 않게 하려 하나, 될 법이나 하겠는가.
4.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에는 드러나는 것도 있고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다. 드러
나지 않는 악은 사람을 해치며, 드러난 악은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악은 작고, 사람
을 해치는 악은 크다. 그러므로 잔치하는 가운데도 독주〔毒〕가 있고 담소하는 중에도 창
〔戈〕이 숨겨져 있으며, 안방 구석에도 호랑이와 표범이 있고 길거리에는 첩자가 있다. 스
스로가 마음속에 악이 싹트기도 전에 끊어버리는 성현이 아닌 다음에야 예의와 법도로써 미
리 막아야 하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해로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5.
대각 회연(大覺懷璉:1008∼1090)스님께서 육왕산(育王山)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두 스님이
시주물 때문에 다툼이 그치지 않는데도 일을 주관하는 스님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스님이 불러서 오라 하고는 그들을 꾸짖었다.
"지난날 포공(包公)이 개봉(開封)지방의 판관(判官)으로 있을 때, 그 동네 어떤 사람이 와서
`백금(白金) 백 냥을 저에게 맡겨둔 사람이 있었는데 죽어버렸읍니다. 지금 그 집안에 되돌
려주었으나 그 아들이 받질 않으니, 공께서는 그 아들을 불러 되돌려주십시오' 하였다. 공은
기특하다고 칭찬하며 즉시 그의 아들을 불러 말하자, 그는 사양하며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는 백금을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집에 맡겨둔 일이 없읍니다'라고 말하였다. 두 사람이
굳이 사양하자, 공께서는 부득이 성내에 있는 사찰과 도관(道觀)에 부탁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어 천도하라 하였다. 나는 그 일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번뇌 속에 사는 속인도
재물을 멀리하고 의로움 사모하기를 그토록 하는데, 너희들은 부처님의 제자임에도 불구하
고 어찌 이다지도 염치를 모르는가."
하고는 드디어 총림의 법규에 따라 쫓아내버렸다. [서호광기(西湖廣記)]
2
명예를 피하여 절개를 지키다
원통 거눌(圓通居訥)스님 / 1009∼1071
1.
대각 회연스님이 과거 여산(山)에 갔을 때, 원통 거눌(圓通居訥:1009∼1071)스님이 한 번
보고 바로 대기(大器)라고 확신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줄을 아셨읍니까?"
하고 묻자, 거눌스님은 말하였다.
"이 사람은 마음이 정대(正大)하여 치우치지 않고 모든 행동이 고상합니다. 더우기 도학(道
學)을 이뤄 의로움을 실천하며, 말은 평이하나 이치를 극진히 하니, 일반적으로 타고난 품격
이 그러하고도 그릇을 이루지 않는 자는 드문 것입니다." 『구봉집(九峯集)』
2.
인조(仁祖) 황우(皇祐) 초년(皇祐 12年 즉 1049年)에 조정에서 환관을 파견, 비단에 조서를
적어서 거눌스님을 큰 절인 효자사(孝慈寺)에 머물도록 청하였다. 거눌스님은 병을 핑계로
일어나지 않고 소문(疏文)을 올려 대각스님을 추천하는 것으로 조정의 부름에 응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성스러운 천자께서 도덕을 높이 드러내시어, 그 은혜가 샘물이나 돌에게까지도 미쳤읍니
다. 스님은 무엇 때문에 사양하시는지요?"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외람되게도 승려의 무리에 끼어들긴 하였으나 보고 듣는 것이 총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요행히 숲속에 안주하여 거친 밥을 먹고 흐르는 물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비록 불
조(佛祖)의 경지라 해도 하지 않으신 일이 있는데 그러하지 못한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읍
니까? 선철(先哲)도 `큰 명예는 오래 간직하기 어렵다'고 하셨으니 나는 평생을 자족할 줄
아는 뜻을 실천할 뿐, 명성과 이익으로 자신을 얽어매지는 않겠읍니다. 마음이 넉넉하다면
언제인들 만족스럽지 않겠읍니까?"
그러므로 동파(東坡)도 언젠가 말하기를, "편안한 줄 알면 영화롭고, 만족한 줄 알면 부자
다"라고 하였다. 원통스님은 명예를 피하여 절개를 지키고, 훌륭하게 시작하여 훌륭하게 마
치는 일을 체득했다 하겠다. 『행실(行實)』
3.
절름발이의 생명은 지팡이에 있으니 지팡이를 잃으면 넘어지고, 물을 건너는 사람의 운명
은 배에 있으므로 배를 잃으면 익사한다. 보편적으로 스스로 도를 지키지 않고 외부의 세력
을 믿고 이를 대단하게 여기는 수행자는 하루아침에 그가 기대고 있던 배경을 잃으면 모두
가 넘어지고 빠져죽는 난리를 면치 못한다.[여산야록(廬山野錄)
4.
옛날 백장 대지(百丈大智:720∼814)스님께서는 총림(叢林)을 세우고 법도를 정하셨다. 이는
상법(像法)·말법(末法)시대의 바르지 못한 폐단을 고쳐보고자 했을 뿐, 상법·말법시대의
납자가 법도를 도적질하여 백장의 총림을 무너뜨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주 옛날에는 스님들이 둥우리나 바위굴에 살면서도 사람마다 스스로를 다스렸다. 그러다
가 대지스님 후로는 높고 널찍한 집에 살면서도 사람마다 스스로를 피폐시켰다. 그러므로 "
안위(安危)는 덕에 달렸으며, 흥망은 운수에 달렸다"라고 말한 것이다.
실로 받들어 행할 만한 덕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총림이 필요하겠으며, 기댈 만한 운수가
있다면 무엇 때문에 법도를 사용하겠는가? 『야록(野錄)』
5.
원통스님이 대각스님에게 말하였다.
"옛 성인은 싹트기 전에 마음을 다스렸고, 혼란해지기 전에 미혹한 마음〔情念〕을 막았으
니, 미리 대비하면 큰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중으로 문을 잠그고 목탁을 치면서 도둑에
대비하였는데, 이는 『주역(周易)』의 예괘(豫卦 )에서 원리를 취한 것이다.
일은 미리 하면 쉽고, 갑자기 하면 어렵다. 훌륭한 분〔賢哲〕들에게 평생의 근심은 있었을
지언정 하루아침의 근심이 없었던 이유가 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구봉집(九峯集)』
3
말세학인은 안위를 살펴야 한다
대각 회연(大覺懷璉)스님 / 1008∼1090
1.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듯,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현재로 옛날을
알 수 있으며 후세로 선대를 알 수 있듯, 착한 자를 보고는 본받을 만하고 악한 자를 보고
는 자기의 악을 조심할 만하다. 당세에 입신양명(立身揚名)했던 선배들을 차례로 관찰해 보
았더니, 배우지 않고 도를 완성했던 자가 드물었다.[구봉집(九峯集)]
2.
묘도(妙道)의 이치는 성인께서 일찌기 『주역(周易)』에 밝혀놓았다. 주(周)나라가 기울자
선왕(先王)의 도는 무너지고 예법은 없어졌다. 그런 뒤에 궤변과 술수가 더러 튀어나와 세상
을 혼란시키다가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으로 들어온 후 으뜸가는 진리〔第一義諦〕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자비를 베풀어 중생들을 교화시켰는데,
그것은 시대의 요청에 따랐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태어난 뒤로 순박함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는 삼황(三皇)의 가르침이 간단하면서
도 소박하였으니, 절기로 치자면 봄에 해당된다. 마음 구멍이 날로 뚫리자 오제(五帝)의 가
르침은 좀더 자세하게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는 여름에 해당한다. 시대와 세상이 달라
짐에 따라 마음도 날로 변해 가서 삼왕(三王)의 가르침이 조밀하고도 엄격해졌는데, 이는 가
을에 해당한다. 옛날 상(商)·주(周) 때 행해졌던 『서경(書脛)』의 일깨워주고〔誥〕 맹서
하는〔誓〕 글들을 이제 배우는 뒷사람들은 깨우치지 못하니, 듣기만 해도 어기지 않았던
당시 사람들에게 비교한다면 그때와 지금의 풍속 차이가 어떠하겠는가? 폐단으로 말하자면
진(秦)·한(漢) 시대에 와서는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천하에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의 일까지 있게 되었다. 이때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결같이 마음 도리를
추구하게 하셨으니 이는 겨울에 해당된다.
하늘에는 사철〔四時〕이 있어 순환하면서 만물을 낳고 성인께서는 가르침을 베풀어 그것
이 서로 부지(扶持)하면서 천하를 교화해 완성해 가니, 모두가 이런 이치에서다. 그러나 그
끝에 가서는 모두가 폐단이 없을 수 없었다. 폐단이 자취로 남게 됨에 따라 반드시 대대로
성현이 나와서 이를 구제해야 했다. 진·한 시대 이래로 천여 년 동안은 풍속이 점점 야박
해지면서 성인의 가르침이 여러 갈래로 정립(鼎立)하자, 서로가 헐뜯어서 대도(大道)는 쓸쓸
하게도 근원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실로 한탄스러운 일이다.[답시랑손화노서(答
侍郞孫華老書)
3.
한 곳의 주지로서 체득한 도를 실천하여 남을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우선 사욕을 극복하
고 상대에게 은혜를 베풀며, 모든 일에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뒤에 비단이나 금
등의 값진 물건을 썩은 흙처럼 보아버린다면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존경하며 귀의할 것이다.
[여구선허화상서(與九仙 和尙序)
4.
선배 중에 자질은 총명하였으나 안위(安危)를 염려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으니, 석문사(石
門寺) 온총(蘊聰:964∼1032)*스님이나 서현사(棲賢寺) 효순(曉舜)**스님 같은 태도는 경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나면서부터 정해진 업(業)은 실로 분명하게 알기는 어렵다 하겠으나, 그
근원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소홀하고 태만하여 사려깊지 않았던 데서 생긴 허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재앙은 깊은(隱微) 곳에 간직되어 있다가 사람이 소홀하게
하는 곳에서 튀어나온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더욱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구봉집(九峯集)]
*1 온총(蘊聰):양주(襄州) 곡은산(谷隱山) 석문사(石門寺)의 스님. 수산 성념(首山省念)스님
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南嶽)의 9세 법손이다. 법을 얻은 후 석문사에서 살았다. 하루는 양
주 태수가 개인적 감정으로 때리며 욕을 보였다. 되돌아오는 길에 여러 스님들이 길가에서
영접하였는데, 수좌가 급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태수가 무고하게 스님을 욕보이셨읍니다"
하고 말하자, 스님이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평지에 뼈무더기가 일어나리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손을 따라 한 뼈무더기가 솟아올랐다. 태수가 듣고 사람을 시켜 치우라 하였더니, 다
시 솟아나 처음과 같이 되면서 태수의 온 집안이 양주에서 죽었다.
*2 효순스님의 일은 바로 다음 글에 나오는 횡역에 걸리게 된 사건을 가리킨다.
4
늙고 가난할수록 뜻을 굳게 가져야 한다
효순 노부(曉舜老夫)스님 / 1009∼1090
1.
운거산(雲居山) 효순(曉舜)스님의 자(字)는 노부(老夫)이다. 여산(山) 서현사(棲賢寺)에 살
때, 군수(郡守) 괴도관(槐都官)에게 사사로운 노여움을 사 횡역(橫逆)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환속을 당하여 속인의 옷을 입고 서울로 가 대각(大覺)스님을 방문하려 하였는데, 산양(山
陽) 지방에 이르러 눈으로 길이 막히자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하루 저녁에는 어떤 길손
이 종 둘을 데리고 눈을 헤치며 왔는데, 노부(老夫)스님을 보더니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하
였다. 이윽고 옷을 갈아입고 앞에서 절을 하므로 노부스님이 누구냐고 묻자, 길손은 대답하
였다.
"옛날 동산(洞山)에 있을 때 스님을 따라 짐을 지고 한양(漢陽)에 갔을 때, 종을 지휘한 송
영(宋榮)입니다."
스님이 지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송영은 길게 탄식하였다. 첫 새벽에 밥을 준비하고
백금(白金) 다섯 냥(兩)을 주더니 이어서 종 하나를 불러놓고 말하였다.
"이 아이는 서울을 여러 차례 갔다왔으므로 험한 길을 자세하게 알고 있으니 스님께서는
가시는 길을 염려하실 것 없읍니다."
덕분에 스님은 서울에 갈 수가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그 두 사람은 평소에 간직한
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구봉집(九峯集)』
2.
효순 노부(曉舜老夫)스님은 천성이 대범하고 강직해서 저울질하여 재산 불리는 일 따위는
알지 못하였다. 매일 일정한 일과를 정해놓고 조금도 어김이 없었으며, 등불을 켜고 청소하
는 일까지도 모두 몸소하였다. 한번은 이렇게 탄식하였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옛사람의 훈계가 있으셨거늘 도대체 나는 어떤 사
람인가?"
늙어갈수록 그 뜻은 더욱 견고해지니,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왜 시자들을 시키지 않습니까?"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추운 날 더운 날에 그저 지내는 것도 편안치 않을테니, 그들을 수고롭게 하고 싶진 않다."
[탄연집(坦然集)]
3.
우리 불도를 전수하고 지키는 데는 진실한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긴다. 삿됨과 바름을 구별
하고 망정(妄情)을 제거하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요점이며, 인과(因果)를 식별하고 죄와
복을 밝히는 것이 꾸준히 도를 실천하는 요점이다. 또한 도덕을 넓히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
을 맞이하는 것이 주지(住持)의 요점이고, 재능을 헤아려 일을 맡기는 것은 사람을 쓰는 요
점이며, 말과 행동을 살펴 가부를 판정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구하는 요점이다.
알맹이는 간직하지 않은 채 헛된 명예만을 자랑한다면 진리에는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사
람이라면 지조와 실천에 있어서 반드시 성실해야 한다. 이를 굳게 지켜 변함이 없다면 평탄
과 험난을 하나로 여길 수 있다. 『탄연암집(坦然庵集)』
4.
효순 노부스님이 부산(浮山)의 법원 녹공(法遠錄公:991∼1067)스님에게 말하였다.
"위 없는 오묘한 도를 탐구하려면 곤궁할수록 뜻을 더욱 굳게 먹고 늙을수록 기상을 더욱
씩씩하게 가져야 한다. 세속을 따라 구차하게 명리(名利)를 훔치느라 지극한 덕을 스스로 잃
어서는 안된다. 옥의 귀한 특성은 깨끗한 빛깔에 있으므로 다른 색 때문에 자기 색을 잃지
않으며, 소나무는 엄동설한에도 변함이 없으므로 눈과 서리도 그 지조를 시들게 하지는 못
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절개와 의리가 천하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공정한 목표만을 받들 만하니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옛사람도 말하기를, `여
유로운 새는 홀로 훨훨 날아 외로운 바람을 탈 뿐 떼를 짓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지당한
말씀이라 하겠다." 『광록(廣錄)』
5
대중을 받드는 요점을 말하다
법원 녹공(法遠錄公)스님 / 1990∼1067
1.
옛사람은 스승을 가까이 모시고 벗을 골라 사귀며 밤낮으로 감히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부엌에서 밥 짓고 절구질하며 남 몰래 천한 일을 하는 고생까지도 꺼려하지 않았다. 나도
섭현(葉縣)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다 해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번이라도 이해관
계를 따지고 잘잘못을 비교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배반하느냐 의지하느냐에 있어서 구차한
태도로 편안함을 구하느라 못할 짓이 없었을 것이다. 우선 자기 처신이 바르지 않다면 어떻
게 도를 배울 수 있겠는가. 『악시자법어(岳侍者法語)』
2.
천지만물은 모두 쉽게 태어난다. 그러나 가령 하루를 따뜻하게 해주고 열흘을 차갑게 한다
면 살아날 수 있는 생물은 없을 것이다.
위 없는 오묘한 도는 밝고 밝아 아주 가까이에 있으므로 보기 어렵지 않다. 요컨대 뜻을
굳게 세우고 힘써 실천한다면 그 자리에서 완성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러나 혹 하루 믿다
가 열흘 의심하며, 아침에는 부지런을 떨다가 저녁에는 꺼려한다면 어찌 유독 목전의 것만
보기 어렵겠는가. 목숨이 끝날 때까지 도를 등질까 염려스럽다. 『운수좌서(雲首座書)』
3.
주지(住持)하는 요령에는 취사(取捨)를 살핌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해야 할 것인가 말아
야 할 것인가를 판단함은 마음 속에서 결정되고, 안위(安危)의 싹은 바깥 환경에서 판정된
다. 그러나 편안함이나 위태로움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점진적으로
쌓여서 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살펴야 한다.
도덕과 예의로 주지를 하면 도덕과 예의가 쌓이고, 각박함으로 주지를 하면 원한이 쌓이게
된다. 원한이 쌓이면 권속과 사부대중이 등지고 떠나며, 예의와 도덕이 쌓이면 안팎이 기뻐
하며 감복한다. 그러므로 도덕과 예의가 대중에게 두루 미치면 권속과 사부대중이 기뻐하고,
각박함과 원한이 극에 이르면 안팎이 슬퍼하니 슬픔과 기쁨에 따라 재앙과 복이 내려진다.
[여정인진화상서(與淨因臻和尙書)]
4.
주지하는 데는 세 가지 요령이 있으니, 어짐〔仁〕·총명함〔明〕·용기〔勇〕이다. 어진
자는 도덕을 행하여 교화를 일으키고 상하를 편안하게 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총명한 사람은 예의를 지키고 안위(安危)를 식별하며 훌륭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살피고 시
비를 분별한다. 용기있는 사람은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고, 한번 했으면 의심치 않으며,
간사하고 아첨하는 이를 반드시 제거한다.
어질기만 하고 총명하지 못하면 마치 밭이 있어도 갈지 않는 것과 같고, 총명하기만 하고
용기가 없으면 싹은 자랐으나 김을 매주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용기만 있고 어질지 못하
면 거둬들이는 것만 알 뿐 파종할 줄은 모르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추면 총림이
일어나고 하나가 모자라면 기울 것이며, 두 가지가 부족하면 위태롭고, 셋 중에 하나도 없으
면 주지의 도는 폐지될 것이다. 『여정인진화상서(與淨因臻和尙書)』
5.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훌륭함과 어질지 못함은 마치 물과 불이 한 그릇에 섞이지 못하며
추위와 더위가 동시일 수 없는 것과도 같으니, 이는 대체로 타고난 분수가 그러하기 때문이
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인재는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단정하고 도타와 도덕과 인의만을 생각한
다. 그리하여 모든 언행에 있어서 혹 대중의 뜻에 부합되지 못할까, 또는 사물의 이치를 깨
닫지 못할까를 염려할 뿐이다. 한편 어질지 못한 사람은 간사·음험·속임수·아첨으로 자
기를 뽐내고 능력을 과시하며, 오욕에 빠져 이익에 구차하면서 아무것도 되돌아볼 줄 모른
다.
그러므로 선림(禪林)에서 훌륭한 사람을 얻으면 도덕이 닦이고 기강이 확립되어 드디어는
법석(法席)을 이루지만, 그 사이에 하나라도 어질지 못한 자가 끼어들어 대중들을 교란시키
면 안팎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니, 큰 지혜와 예의법도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혜와 어리석음, 훌륭함과 어질지 못함의 우열이 이러하니 어떻게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
가. 『혜력방화상서(惠力芳和尙書)』
6.
웃사람인 주지는 겸손하게 아랫사람을 이끌어주며, 일 맡은 아랫사람은 마음을 다해 웃사
람을 받들어야 하리니, 위아래가 화목하면 주지의 도가 통한다. 웃사람이 교만하게 높은 체
하면 아랫사람은 태만하여 자연히 소원해지리니, 위아래가 마음이 통하지 못하면 주지의 도
는 막히게 된다.
고덕(古德)들은 주지하는 중에 한가하여 일이 없으면 납자들과 부드럽게 극진한 대화를 나
누었는데, 그때 하신 일언반구까지도 전기(傳記)에 실려 지금까지도 읽혀진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는 웃사람의 마음이 아랫사람에게 통하게 하고자 하여 도가 막힘
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납자들의 재능과 품성이 어떠한지를 미리 알아 모두 도리에
맞게 진퇴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하가 화목하고도 엄숙해져서 먼 곳
가까운 곳 모두가 존경하니 총림이 잘 되는 이유가 여기에 달렸을 뿐이다. 『여청화엄서(與
靑華嚴書)』
7.
법원스님이 도오사(道吾寺) 가진(可眞)스님에게 말하였다.
"배움이 아직 도에 이르지 못하였는데도 자기의 견문을 자랑하고 궁극의 도리를 깨달았노
라고 과장하면서 말재주를 가지고 잘났다고 떠드는 자는 마치 더러운 변소간에 단청을 바른
것처럼 악취만 더할 뿐이다." 『서호기문(西湖記聞)』
8.
법원스님이 수좌 오조 법연(五祖法演:?∼1104) 스님에게 말하였다.
"마음은 한 몸의 주인이며 만행의 근본이다. 마음을 오묘하게 깨닫지 못하면 허망한 생각
이 스스로 생기고, 허망한 생각이 스스로 생기고 나면 이치를 보아도 분명치 못하며, 이치를
보아도 분명치 못하면 시비가 요란하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자면 반드시 오묘한 깨달음
을 구해야 한다.
오묘하게 깨닫고 나면 정신은 여유롭고 혈기는 안정되며, 태도와 용모는 공경스러우면서도
씩씩하여 망상이 모두 녹아서 진심(眞心)이 된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스려가면 마음은 스
스로 영묘(靈妙)해진다. 그런 뒤에 상대방을 인도하고 미혹함을 지적한다면 누구라서 교화되
지 않겠는가." 『부산실록(浮山實錄)』
6
계행이 청정해야 명성을 얻는다
오조 법연(五祖法演)스님 / ?∼1104
1.
요즈음 총림에서 도를 배우는 인재들이 명성을 드날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믿
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행〔梵行〕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됨은 진실하고 바
르지 못하면서 구차하게도 명예·이익·음식을 구하려고 화려한 겉치레만 벌여놓다가 마침
내는 식자(識者)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므로 도를 덮어버린 상태에서는 부처님이나 조사
와 같은 도덕을 가졌다 해도 듣고 보는 사람들이 의심하며 믿어주질 않게 된다. 그대들이
뒷날 초암(草庵)을 짓고 살거든 이 점을 힘쓰도록 하라. 『여불감불과서(與佛鑑佛果書)』
2.
스승 방회(方會:996∼1049)스님께서 처음 양기산(楊岐山)에 머무실 때, 집이 낡아 서까래가
무너져 겨우 비바람을 가릴 정도였다. 그런데다가 마침 늦겨울이라 싸락눈이 침상에 가득하
여 편안히 거처하질 못하였다. 납자들이 정성껏 수리하겠다고 하였으나 스승께서는 물리치
며 말씀하셨다.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감겁(減劫:복과 수명이 줄어드는 시기)에는 높은 언덕 깊
은 골이 모두 뒤바뀌어 항상하지 않으리라'하셨으니, 어떻게 뜻대로 다 만족하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느라 손발이 편안치 못한 채 이미 사오십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쩌자고 공부는 등한히 하면서 집짓는 일에 더 신경을 쓰느냐." 하며 끝내 따
르지 않으시고, 다음날 법당에 올라 노래로 말씀하셨다.
내 잠시 머무는 집 담벽은 헐어
침상 가득 흩뿌려진 진주빛 눈발
움츠러든 목을 하고 가만히 탄식하노라
나무 밑에 살았던 옛사람을 되새기자고
楊岐乍住屋壁疎 滿牀盡撒雪珍珠
縮却項暗嗟 蒜憶古人樹下居 『광록(廣錄)』
3.
납자는 마음의 성(城)을 지키고 계율을 받들되 밤낮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어떠한
실천도 사려를 벗어나지 않고, 어떠한 사려도 실천을 넘어서는 안되니, 시작에서 끝맺음까지
를 농부의 밭두덕처럼 분명하게 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탄연집(坦然集)]
4.
이른바 총림이란 성인과 범부들이 도를 닦으며 인재를 길러내는 곳으로서 교화가 여기로부
터 나온다. 그러나 무리짓고 모여 산다 해도 통솔하여 다스리는 데에는 각각 자기 스승을
계승해 왔다. 그런데 요즈음 몇몇 총림에서는 옛성인의 법도를 지키는 데는 힘쓰지 않고, 좋
고 싫은 치우친 감정으로 대부분 주관적인 척도를 가지고 상대를 뜯어고치려 하니, 후배들
에게 무엇을 본받게 하려는가.[탄연집(坦然集)]
5.
중생을 이롭게 하고 도를 전수하는 데는 적임자를 얻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알
아보기란 성현도 어렵게 여겼던 일이다. 말만 듣고는 행실을 보증하지 못하며, 행동만 구한
다면 재능을 빠뜨릴까 염려스럽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사귀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 목표와
실천, 도량과 재능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도를 지켜 홀로 있을 땐 간직하고, 행
세할 땐 펴는 자인 줄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명예를 팔고 외모나 꾸미는 자도 그 거짓이 용
납되지 않게 되니, 비록 몰래 한다 해도 그 내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세히 살피고 주의깊게 듣는 일은 원래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남악 회
양(南嶽懷讓:754∼815)스님은 6조 대감(六祖大監)스님을 뵙고 나서도 15년이나 잡일을 했으
며, 마조(馬祖:709∼788)스님도 남악스님을 10여 년이나 모셨던 것이다. 옛 성인들이 도를
전수하고 받는 일은 실로 천박한 사람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로써 알 수
있다.
마치 이 그릇의 물을 저 그릇에 쏟아붓듯 해야 비로소 큰 법을 감당해서 계승할 수 있다.
이를 세속일로 치자면 가문을 감당할 만한 덕 있는 자손을 뽑아 조상의 유풍을 기리고, 농
가에서 파종할 때 땅의 상태를 살피는 격이다. 이것이 자세히 살피고 주의깊게 듣는 이치의
분명한 사례이다. 어떻게 교묘한 말과 좋은 얼굴빛, 편벽된 아첨으로써 선발되었겠는가. 『
원오서(圓悟書)』
6.
주지(住持)의 요점은 은혜와 덕 두 가지를 겸비하는 데 있으니, 이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안된다. 은혜롭기만 하고 덕이 없으면 대중이 공경하지 않고, 덕스럽기만 하고 은혜가 없으
면 대중이 그리워하질 않는다.
은혜로운 이를 대중이 생각해 준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덕을 보충한다면 베푸는 은혜가 상
하를 편안하게 하고 사방에서 오는 납자를 이끌어 줄 만하다. 덕 있는 이를 공경할 만하다
는 것을 알고 거기에 은혜를 보태면 지닌 덕이 선각(先覺)을 계승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지
도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훌륭한 주지는 덕을 기름으로써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베품으로써 덕을 지닌다.
덕스러우면서도 은혜를 기를 수 있으면 굴욕스럽지 않고, 은혜로우면서도 덕을 실천하면 은
택(恩澤)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덕과 은혜가 함께 쌓여가며 맞물려 시행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굳이 덕을 닦지 않아도 불조와 같은 공경을 받고, 은혜를 수고롭게 허비하지 않
아도 대중이 부모 그리워하듯 한다. 그러므로 도를 깨닫고자 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라서 이
런 사람에게 귀의하지 않겠는가? 도덕을 전수하고 교화를 일으키려는 주지라면 이러한 요점
에 밝지 못하고서는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여불안서(與佛眼書)』
7.
법연스님이 해회(海會)로부터 동산(東山)으로 옮겨가자, 태평 불감(太平佛鑑:1059∼1117)스
님과 용문 불안(龍門佛眼:1067∼1120) 스님이 산마루에 나아가 살피고 맞이하였다. 법연스님
은 나이가 지긋한 주사(主事)들을 모이라 하고 차와 과일을 준비하여 밤에 이야기를 나누었
다.
법연스님이 불감스님에게 물었다.
"서주(舒州)고을은 풍년이 들었느냐?"
"풍년입니다."
"태평주(太平州)도 풍년이냐?"
"그렇습니다."
"그밖의 다른 농지에서는 벼를 어느 정도 수확하였느냐?"
불감스님이 잠시 생각해 보고 대답하려고 머뭇거리자 법연스님은 정색을 하며 엄한 목소리
로 꾸짖었다.
"그대들은 외람되게도 한 절의 소임을 맡고 있다. 그러니 큰 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모두
마음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해마다 소용되는 상주물(常住物)을 계획함은 전 대중이 걸린 문
제인데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나머지 세세한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 산문에서 일
맡은 이라면 인과(因果) 알기를 우리 스승(양기스님)께서 자명(慈明:985∼1039) 노스님을 보
좌하셨듯 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상주물이 산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느냐?"
법연스님은 평소에 말과 행동이 엄격하고 날카로왔으므로 불감스님이 제자의 예(禮)를 깍
듯이 한다고 너그럽게 대하였는데도 이 정도였던 것이다. 옛사람도 `스승이 엄해야 배우는
도가 높아진다'라고 하였다. 동산 문하에 고매한 도와 인격을 지닌 법손들이 많았던 이유는
실로 근원이 깊어 지류도 길었기 때문이라 하겠다.[경룡학여고암서(耿龍學與高庵書)]
8.
법연스님은 제대로 해나갈 만큼 절개와 의리를 가진 납자에게는 방안에서도 엄하게 거절하
며 말과 얼굴빛을 보내지 않았다. 한편 편협하여 삿되게 아첨하고, 하는 짓이 외람되고 좀스
러워 가르치지 못할 자를 더욱 애지중지하였으니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 아,
스님의 처신에는 반드시 도가 있었으리라.
9.
옛사람은 자기 허물 지적받기를 좋아하고, 덕담을 들으면 기뻐했다. 또한 관대하게 포용하
기를 잘 했고, 남의 단점을 보아주는 데 너그러웠다. 겸손하게 친구와 사귀고 부지런히 대중
을 구제하며 이해관계로 변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 빛이 찬란하게 고금을 비추는 것
이다. 『답영원서(答靈源書)』
10.
법연스님이 불감스님에게 말하였다.
"주지의 요점은 대중에게는 넉넉하게 하고 자기 처신은 간소하게 하는 데 있다. 그 나머지
자잘한 일은 그리 신경쓸 것 없다.
매우 정성을 들여 사람을 채용하고, 정중한 쪽으로 말을 가려 쓰도록 주의해야 한다. 말이
정중하게 보이면 주지는 자연히 존대받고, 대중에게 정성을 쏟으면 대중이 저절로 감동한다.
주지가 존대받으면 근엄하지 않아도 대중이 복종하고, 대중이 감동하면 명령하지 않아도 일
이 저절로 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훌륭한 사람, 어리석은 자가 각각 속마음을 털어놓고
크고 작은 일에 모두가 자기 힘을 분발하게 된다. 그러니 세력을 가지고 협박과 공갈로 몰
아부쳐서 어쩔 수 없어 따르게 하는 것과 어찌 만배 차이뿐이겠는가." 『견섬시자일록(見蟾
侍者日錄)』
11.
법연스님이 정공 거사(淨空居君) 곽공보(郭功輔)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일정하게 지키지 않으면 외물에 따라 날로 변한다. 예로부터 불법이
융성하고 쇠퇴하는 데는 운수탓도 있긴 하나, 흥하고 쇠하는 이치는 다 교화에 달려 있다.
옛날 강서(江西) 남악(南嶽)의 모든 스님께서 중생을 이롭게 할 때, 맑은 도풍으로 일으키
고 청정으로 절제하였으며, 도덕을 베풀고 예의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납자로 하여금 보고
듣는 것을 가려 사벽(邪僻)을 막으며, 정욕〔嗜慾〕과 물욕〔利養〕을 다 끊게 하였다. 때문
에 날마다 선을 실천하고 허물을 멀리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덕이 완전해졌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은 옛사람보다 훨씬 못하다. 기어코 이 불도를 참구하고자 한다면 모름
지기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깨닫고야 말겠다는 뜻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그런 뒤에 재앙이
나 잘잘못은 하늘에 맡기고 구차하게 면하려 해서는 안된다. 안되리라고 미리 근심하여 해
보지도 않아서야 되겠는가. 털끝만큼이라도 주저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가슴 속에 싹텄다 하
면 금생에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천생만겁을 지낸다 할지라도 성취될 날이 없을 것이다."
『탄연암집(坦然庵集)』
7
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버린다
백운수단(白雲守端)스님 / 1024∼1072
1.
공보(功輔)가 태평주(太平州)의 요직을 맡고 강을 건너 해회(海會)에서 백운 수단(百雲守
端:1024∼1072)스님을 방문하였다. 스님이 공에게 "소가 순하던가?"하고 묻자, 공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스님이 호통을 치자 공은 팔짱을 낀 채 끄떡도 안했다. 스님은 찬탄하였다.
"순하고 순하군. 남전(南泉)과 위산(山) 큰스님도 꼭 이러하셨다네."
그리고는 이어 노래를 지어 불러주었다.
산속에서 소가 내려오니
물도 풀도 가득하네.
소가 산을 떠나니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노니네.
牛來山中 水足草足
牛出山去 東觸西觸
또 한 수 읊었다.
훌륭하신 공자(軫子)는
삼천 제자를 교화했으니
예의를 알았다 하리라.
上大人 化三千 可知禮也 『행장(行狀)』
2.
백운스님이 공보에게 말하였다.
"옛날 취암 가진(翠巖可眞:?∼1064)스님은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선관(禪觀)의 맛에 빠져들
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말재주로 여러 납자들을 꾸짖고 욕하며 자기 마음에 든다고 인정
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깨달음에 있어서는 확실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는 금란 선(金¡善) 시자(侍者)가 그를 보고 비웃으며 말하였다.
`사형(師兄)께서는 참선은 많이 했지만 오만하여 깨닫지는 못했으므로 어리석은 선(痴禪〕
을 한다고밖에 못하겠군요.'" 『백운야화(百雲夜話)』
3.
도가 융성하고 폐지되는 문제에 어찌 정해진 원칙이 있겠는가. 사람이 도를 넓히는 데 있
을 뿐이다. 그러므로 "잡으면 존재하고 놓아버리면 없어진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도가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버리는 것이다.
옛사람은 산림(山林)에 살거나 조정과 시장에 은둔하거나 명리에 끄달리지 않고 외물에 눈
멀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청아한 기풍은 그 시대에 진동하고 아름다운 명성은 만세에 드날
렸다. 그러나 어찌 옛날에만 그랬고 요즈음이라 해서 되지 않겠는가. 교화가 지극하지 못하
고 실천에 힘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옛사람은 순박했기 때문에 교화될 수 있었지만 요즈음 사람은 들뜨고 천박하
므로 교화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실로 사람들을 부채질하여 현혹시키는 말로써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 『답공보서(答功輔書)』
4.
백운스님이 무위 거사(無爲居君) 양걸(楊傑)에게 말하였다.
"말만 하고 실천에 옮길 수 없다면 아예 말하지 않느니만 못하며, 해놓고도 말하지 못할
것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말을 꺼내려면 반드시 그 결과를 생각해야 하고, 행동을 개
시하려면 반드시 폐단을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선철(先哲)께서는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
려 하셨다.
말을 꺼내는 이유는 되지도 않는 말로 진리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한 납자를
끌어주기 위함이며, 무엇인가를 시행함은 자기 하나만 착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못한 납자를 가르치려 함이었기에 언행에는 모두 법도가 있었다. 그리하여 말과 행동이 재
앙과 욕됨을 부르지 않고 떳떳한 법칙이 되었다. 그러므로 `언행(言行)은 군자의 핵심〔樞
機〕이며 몸을 닦는 큰 근본으로서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도 감동시킨다'라고 한 것이니, 조
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백운광록(百雲廣錄)』
5.
백운스님이 오조 법연(五祖法演)스님에게 말하였다.
참선하는 사람의 지혜로는 지난 자취를 보는 경우는 많아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한다. 지관정혜(缺觀定慧)로는 나타나기 전에 방비하며, 작지임멸(作止任滅)로는 지난
뒤에 깨닫는다. 그러므로 작지임멸은 보기 쉽지만 지관정혜는 어떻게 닦는지를 알기 어렵다.
옛사람은 깨달음에 뜻을 두고 싹이 트기 전에 사념을 끊어버렸다. 비록 지관정혜와 작지임
멸을 말했다 해도 모두가 본말관계(本末關係)를 논했을 뿐이다. 때문에 `털끝만큼이라도 본
말에다가 말을 붙이는 자는 모두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궁극
적인 경지를 봄으로써 자신을 속이지 않았던 옛사람의 태도이다." 『실록(實錄)』
6.
경전도 보지 않고 원대한 계획도 없는 납자를 종종 보게 되면, 나는 총림이 쇠퇴할까 염려
스럽다. 양기(楊岐)스님께서도 늘 걱정하시기를, "웃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자신만의 편안을
도모하는 것이 불교 문중의 가장 큰 근심거리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지난날 귀종사(歸宗寺)의 서당(書堂)에 은거하면서 경전과 역사를 열람할 때, 수백번
도 더 읽었으므로 책장이 떨어지고 매우 낡아버렸다. 그러나 책을 펼 때마다 반드시 새로운
의미를 터득해냈다. 여기에서 `학문이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
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백운광록(百雲廣錄)』
7.
백운스님이 과거 구강(九江)의 승천사(承天寺)에 살다가 다음으로는 원통사(圓通寺)로 옮겨
갔는데, 그때 나이가 매우 어렸다. 당시 회당 조심(晦堂祖心:1024∼1100)스님이 보봉사(¿峯
寺)에 머물고 있으면서 효월 공회(曉月公晦)스님에게 말하였다.
"새로 온 백운은 투철하게 근원을 보았으므로 양기(楊岐)스님의 가문을 욕되게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다. 너무 일찍 드러나 쓰였으니 총림의 복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공회스님이 곧 그 까닭을 묻자 회당스님은 대답하였다.
"명성과 재능은 하늘이 아끼는 것이므로 사람에게 둘 다 주지는 않는다. 사람이 굳이 욕심
내면 하늘이 반드시 빼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백운스님이 서주(舒州)의 해회사(海會寺)에서 56세로 돌아가시자 식자(識者)들은 회당스님
이 기미(機微)를 알았으니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고들 하였다. 『담당기문(湛堂記聞)』
8
활짝 트인 것이 도인의 마음씀슴이다
회당조심(晦堂祖心)스님 / 1024∼1100
1.
회당 조심(晦堂祖心)스님이 효월 공회(曉月公晦)스님을 보봉사(¿峯寺)에서 뵈었다. 공회스
님은『능엄경(嚴脛)』의 심오한 뜻을 환하게 알아 바닷가 지방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회
당스님은 그에게 한 구절 한 글자를 들을 때마다 마치 지극한 보배를 얻은 듯 기쁨을 가누
지 못하였다. 납자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이러쿵저러쿵하는 자가 있었는데, 회당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상대방의 장점을 본받아 나의 부족한 점을 메꾼다는데 나에게 무슨 거리낌이 있겠는가."
홍영 소무(洪英邵武 1012∼1070)스님은 말하였다.
"회당 스님의 도학은 참선하는 납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다. 그런데도 덕 있는 이를 높임으
로써 스스로 나아지려고 애썼고, 아직 견문이 넓지 못하다고 부끄럽게 여겼다. 그러니 자기
의 잘난 점을 가지고 남 못난 점을 멸시하는 총림의 납자들에게 본받게 한다면 어찌 도움이
적다 하겠는가." 『영원습유(靈源拾遺)』
2.
주지(住持)의 요점은 원대(遠大)한 것은 하고 사소한 것은 생략하는 데에 있다. 일이 어려
워 결단이 나지 않거든 덕도 있고 나이도 지긋한 분에게 자문해야 하고, 그래도 의심스러운
점에 대해서는 다시 잘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면 미진한 점이 있다 하여도 아주 잘못 되지는
않으리라.
혹시라도 책임을 맡은 사람이 사심(私心)을 내어 자기 멋대로 주고받다가 하루아침에 소인
의 꾀부림을 만나게 되면 죄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그러므로 "계획은 여럿이 세우되 결단은 나 혼자에게 있다"라고 말한다. `계획은 여럿이 세
운다' 라고 한 말은 손익의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는 뜻이고, `결단은 나 혼자에게 있다' 함
은 총림의 시비를 판가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초당서(與草堂書)』
3.
회당스님이 위산스님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연평(延平)의 진영중(陳瑩中)이 편지를 보내
간곡하게 말하였다.
"옛날 주지에게는 사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덕 있는 사람을 뽑아 그자리에 있게 하였으
니, 이 책임을 감당한 사람은 반드시 도〔宗法〕로써 납자를 깨우쳐 주려 하였지 결코 세력
이나 지위, 명성이나 이익 때문에 변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런데 요즈음 배우는 사람들은 대도(大道)는 아직 밝히지도 못하고서 각각 다른 학문을
좇아가 명상(名相)에 흘러들어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소리와 색에 움직여져서 훌륭한 사
람과 어질지 못한 사람이 잡다하게 뒤섞여 흑백을 가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읍니다. 덕 있
고 연로하신 분이라면 바로 이러한 때에 측은한 마음을 내어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니, 도
를 자기의 책임으로 여겨, 우(禹) 임금이 역류하는 모든 강물을 막고 물길을 돌려 틔웠듯이
순조롭게 제 갈길을 찾게 해주신다면 실로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물러나 고요함만
을 구하고 편안함을 힘쓴다면, 자기 한 몸만을 위하고자 하는 사람의 독선(獨善)일 뿐, 총림
이 큰스님에게 바라는 바는 아닙니다. 『출영원습유(出靈源拾遺)』
4.
회당스님이 하루는 황룡스님의 편치 않은 기색을 눈치채고 물으니 황룡스님이 말씀하였다.
"감수(監收) 일을 맡길 만한 적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당스님이 감부사(惑副寺)를 추천하자 황룡스님이 말씀하였다.
"감부사는 성미가 급하여 소인들의 꾀에 휘말릴까 염려스럽다."
회당스님이 "화시자(化侍者)가 청렴하고 근실한 편입니다"하고 추천하니 황룡스님이 그를
두고 말씀하였다.
"화시자가 비록 청렴하고 근실하기는 하나 도량도 있고 충직한 수장주(秀莊主)만은 못하
다."
영원(靈源:?∼1117)스님이 한번은 회당스님에게, "황룡스님은 한 사람의 감수(監收)를 채용
하는 데 왜 그렇게도 사려가 지나칠까요?"라고 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나라나 가문에서 책임을 맡은 자는 모두 다 적임자를 선발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
으니, 어찌 유독 황룡스님만 그러하겠는가. 옛 성인들도 이 일을 조심하셨다." 『통암벽기
(通庵璧記)』
5.
회당스님이 급사(給事) 주세영(朱世英)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입도(入道)하여서는 매우 쉽다고 스스로 믿었으나 돌아가신 황룡스님을 뵌 후
물러나서 나의 일상생활을 곰곰이 돌아보니 이치에 어긋난 점이 매우 많았다. 그리하여 심
한 추위와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확고한 뜻을 바꾸지 않고 3년을 힘써 수행하고서야 바야흐
로 일마다 이치에 맞게 되었으니, 지금은 기침하고 침뱉고 팔 흔드는 것까지도 `조사가 서
쪽에서 오신 뜻'이 되었다." 『장강집(章江集)』
6.
주세영(朱世英)이 회당스님에게 물었다.
"군자는 불행히도 조그마한 허물만 있으면 듣고 보는 사람들이 틈도 없이 손가락질하지만
소인은 종일토록 악을 자행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군자의 덕은 아름다운 옥과도 같아서 안에 흠집이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나타난다. 그러므
로 보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하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인은 날마다 하
는 짓이 다 허물과 악이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장강집(章江集)』
7.
성인의 도는 천지가 만물을 길러내는 것처럼 완전한 도를 갖추었다. 일반 사람의 도는 크
고 작은 강과 바다, 산천의 능선과 골짜기나 초목 곤충들이 저마다 타고난 도량을 다할 뿐
임과 같다. 그리하여 자기 밖에 모두를 다 갖추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한다.
도는 어째서 둘이 되었는가? 체득의 깊음과 얕음에 따라서 성취의 크고 작음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답장무진서(答張無盡書)』
8.
오래 폐지되었던 일은 신속하게 되살릴 수 없고, 누적된 폐단은 갑자기 제거하지 못하며,
여유롭게 노니는 것에 오래 마음을 두어서는 안된다. 또한 바라는 것을 다 채울 수는 없고,
재앙은 구차하게 면할 수 없다. 선지식이 되려는 자는 이 다섯 가지 일을 통달해야만 세상
살아가는 데에 번민이 없을 것이다. 『여상화상서(與祥和尙書)』
9.
스승(황룡스님)께서는 행동이 엄중하시었으므로 뵙는 사람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납
자들이 어떤 일을 핑계삼아 여가를 내어 주십사고 청하면 따끔하게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셨다. 단 부모와 노인을 살펴 모시겠노라는 말을 들을 경우만은 얼굴 색이 환해
지시며, 예의를 극진히 하여 청하는 이를 나룻터까지 바래다 주곤 하셨다. 사람을 사랑하고
공손하게 효도하심이 이러하셨다. 『여사경온서(與謝景溫書)』
10.
스승(황룡스님)께서 옛날 운봉 문열(雲峯文悅:998∼1062)스님과 형주 남쪽 봉림사(鳳林寺)
에서 하안거를 할 때 일이다. 운봉스님은 말하기를 좋아하여 하루는 납자와 시끄럽게 떠들
고 있었는데 황룡스님께서는 태연자약하게 경전을 보며 마치 못 본 체하였다. 그러자 운봉
스님이 황룡스님의 책상머리에 다가가서 눈을 부릅뜨고 "그대는 여기에서 선지식의 도량이
나 익히고 있는가?"라고 따졌으나 황룡스님께서는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고는 여전히 경전을
보았다.[영원습유(靈源拾遺)]
9
대중을 얻는 요점은 사람 마음을 살피는 데 있죠
/황룡혜남(黃龍慧南)스님 / 1002∼1069
1.
내가 옛날 문열(文悅)스님과 호남땅에 유람할 때, 대나무로 된 상자를 메고 가는 납자 하나
를 만나게 되었다. 문열스님이 보고는 놀란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꾸짖었다.
"자기 집 속의 물건도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서 게다가 남의 짐까지 걸머졌으니 너무 무겁
지 않느냐?" 『임간록(林間錄)』
2.
주지하는 요점은 대중을 얻는 데 있고, 대중을 얻는 요점은 사람 마음을 살피는 데 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도 "사람 마음이 세상의 복밭이 된다"고 하셨으니, 다스리는 도(道)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시운(時運)의 막힘과 트임 및 일의 손익이 반드시 사람 마음을 원인으로 하는 것
이다. 말하자면 사람 마음에는 통함과 막힘이 있으므로 시운에도 막힘과 트임이 생겨나고,
일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므로 손해와 이익을 보게 되는데, 오직 성인이라야 천하의 마음
을 다 아실 수 있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서도 다음과 같이 괘(卦)를 나누고 있다.
하늘이 아래, 땅이 위에 있는 형상을 태(泰 ; 편안함, 통함)괘라 하였고, 하늘이 위, 땅이 아
래에 있는 것을 비(否 ; 막힘)괘라 하였으며, 그 점괘의 상(象)을 보고 나서 위를 덜어내고
아래를 더해 주는 것을 익(益)괘라 하였고, 아래를 덜고 위를 더하는 것을 손(損)괘라 하였
다.
건(乾)은 하늘이고 곤(坤)은 땅이니,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는 것은 진실로 제자
리가 아니라고 하겠으나 반대로 이를 태괘(泰卦)라고 하는 이유는 위 아래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며, 주인은 위에 있고 손님은 아래에 자리하는 것이 이치로는 맞는 순서라 하겠으나
반대로 이를 비괘(否卦)라고 말하는 것은 위와 아래가 서로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문에 천지가 통하지 못하면 생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못하면 만사가
화목하지 못하다.
손괘(損卦)와 익괘(益卦)의 의미도 이와 같다.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이로서 자신에게는
간략하게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너그럽게 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기쁜 마음으로 웃사람을
받들 것이니, 어찌 이것을 익(益)이라 하지 않겠는가? 위에 있는 이로서 아랫사람을 능멸하
며 자기 욕심대로 한다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원망을 하며 웃사람을 배반하리니, 이를 어찌
손(損)이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위와 아래가 통하면 태평하고, 통하지 못하면 막힌다. 자신이 손해를 보면 남이
이익을 보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이는 남에게 손해를 끼치니,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어
찌 쉬운 일이겠는가? 옛 성인도 일찌기 "사람은 배와 같고,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다"라고
비유하였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한편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으니 물의 본성을 따
르면 배가 뜨지만 거슬리면 가라앉는다.
그러므로 주지가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흥하고 잃으면 쫓겨나니 대중의 마음을 완전히 얻
으면 온전히 흥하고 완전히 잃으면 아주 쫓겨난다. 때문에 착한 사람과 함께 하면 복이 많
고 악한 사람과 함께 하면 재앙이 심하다. 선·악이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꿰어진 염주와
같고 흥하고 쫓겨나게 되는 모양은 해를 보듯 분명하다. 이것이 역대의 원칙인 것이다. 『여
황벽승서(與黃擘勝書)』
3.
황룡스님이 형공(荊公:왕안석)에게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조심해야 될 일은 항상 면전의 길을 곧게 활짝 열어놓아 모든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대인(大人)의 마음 씀씀이이다. 만약 면전의 길을 험난하게 막
아 다니지 못하게 하면 다른 사람만 다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도 발 놓을 땅이 없으리
라." 『장강집(章江集)』
4.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여 일거일동에 있어서 위로는 하늘을 속이지 아니하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아니하며, 안으로는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고 여길 만하면 참으로 되었
다 하리라. 그러나 남이 알아차릴 수 없는 자기 마음 속 깊은 곳까지도 조심하고 삼가하여
과연 털끝만큼도 속임이 없을 때야말로 완전히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답형공서
(答荊公書)』
5.
장로(長老)의 직책이란 도덕을 담는 그릇이다. 옛 성인이 총림을 세워 기강을 마련하고 이
름과 자리를 정해 도덕있는 납자를 선택하여 그를 장로로 임명함은 도를 시행하고자 함이었
지 구차하게 이름을 훔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날 자명(慈明:987∼1040)스님도 말씀하시기를, "자기 혼자 도를 지키며 언덕이나 골짜
기에서 늙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도를 실천하며 총림에서 대중을 거느리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장로의 직분을 잘 지킨 자가 없었더라면 불조의 도와 덕이 어찌 남아 있겠는가.
『여취암진서(與翠巖眞書)』
6.
황룡스님이 은자(隱者) 반연지(潘延之)에게 말씀하였다.
"성현의 학문은 단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착실히 쌓아가는 틈에 이루어진
다. 착실히 쌓아가는 요점은 부지런히 전념하여 좋아하는 것을 끊고 실천에 게으르지 말아
야 한다. 그런 뒤에 그것을 넓혀서 충만하게 하면 천하의 묘함을 다할 수 있으리라." 『용산
광록(龍山廣錄)』
7.
반연지가 황룡스님의 법도가 엄밀하다는 말을 듣고 그 요점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버지가 엄격하면 자식이 공경하듯 오늘의 규훈(規訓)은 뒷날의 모범이 된다. 그것은 땅
을 고르는 것과도 같아서 높은 곳은 깍고 움푹 패인 곳은 채워야 한다. 그가 천길의 높은
산을 오르려 하거든 나도 그와 함께 해야 하고, 깊은 연못 밑바닥까지 가려 하거든 나도 함
께 해야 한다. 기량이 다하고 허망이 끝까지 가면 저들이 스스로 쉬게 된다."
또 말씀하였다.
"따뜻한 기운으로 봄 여름에 만물을 낳아 기르고, 서리와 눈으로 가을 겨울에 만물을 성숙
시킨다. 공자는 `나는 말하지 않고자 하노라'하였는데, 옳은 말이다." 『임간록(林間錄)』
8.
황룡스님 가풍에 삼관어(三關語)가 있었는데, 이 기연에 계합하는 납자가 적었다. 혹 대꾸
하는 이가 있어도 눈을 감고 꽃꽃이 앉아서 가타부타를 말하지 않았다. 반연지가 좀더 설명
해주기를 청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관문을 통과한 자는 팔을 흔들며 가버리면 그만이다. 관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는 자는 아직 관문을 지나가지 못한 자이기 때문이다." 『임간록(林間錄)』
9.
도(道)는 산처럼 오를수록 더욱 높고, 땅처럼 갈수록 더욱 멀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정도
가 낮아 힘을 다해도 중도에서 그칠 뿐이다. 오직 뜻을 도에 둔 사람만이 높고 먼 끝까지
갈 수 있다. 그 나머지는 누구라서 여기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기문(記聞)』
10.
천지일월은 예나 지금이나 같고, 만물의 성정(性情)도 예나 지금이나 같다. 천지일월도 원
래 바뀜이 없으며 만물의 성정도 본디 변화가 없는데 도(道)라고 무엇 때문에 유독 변할 것
인가?
슬프다, 아직 도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옛것은 싫어하고 새로운 것만 좋아하며, 이것을 버
리고 저것을 취한다. 이는 마치 월(越)나라를 가려는 사람이 남쪽으로 가지 아니하고 북쪽으
로 가는 것과도 같으니, 이것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부질없이 심신을 수고롭게 할
뿐이니 그 뜻이 굳어질수록 도에서는 더욱 멀어진다. 『순암벽기(遁庵璧記)』
11.
황룡스님이 홍영 소무(洪英邵武:1012∼1070)스님에게 말하였다.
"뜻을 하나로 돌아가게 하여 오래도록 물러나지 아니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묘한 도에 돌아
갈 바를 알게 될 것이다. 그가 혹시 마음에 좋고 싫음이 있어 감정이 삿되고 편벽함을 따른
다면 옛사람과 같은 뜻과 기상이 있다 해도 나는 그가 끝내 도를 보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벽기(璧記)』
10
공안을 설명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라
홍영소무(洪英邵武)스님 / 1012∼1070
1.
곳곳의 노숙(老宿)들이 선각(先覺)의 말씀을 비판하고 공안(公案)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한
줌의 흙으로 태산을 높이고 한 움큼의 물로 동해를 깊게 하려는 격이다. 저분들의 뜻이 어
찌 우리 불법을 더 높게 하거나 깊게 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보충설명으로 이해를 도우려는
그들의 뜻은 살 만하나, 그런 방법으로는 될 수 없는 문제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을 뿐이다.
『광록(廣錄)』
2.
홍영 소무스님은 배우는 납자들이 방자하게 멋대로 굴면서도 인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수고로운 삶은 마치 길손이 여인숙에 묵고 나룻터에 배가 쉬듯 잠깐이어서, 살아 있는 동
안 인연을 따르다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데에서 욕심으로 구하고 얻는 것이 얼
마나 되기에 너희들은 염치를 모르고 분수를 넘어 이토록 가르침을 더럽히는가?
대장부의 뜻이 조사의 도를 크게 넓히고 후학을 이끌어 줌에 있다면, 자기 욕심만 챙기느
라고 무엇이든 거리낌없이 마구 해서는 안된다. 일신상에 닥친 화를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도모한다면 결국 만겁 동안의 재앙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삼악도의 지옥에서 고
통받는 정도로는 아직 괴로움이라 할 수 없다. 한번 가사를 걸쳤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
이 진실로 고통이 되는 것이다." 『벽기(璧記)』
3.
홍영 소무스님이 회당스님에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선지식(善知識)이라 불리는 이는 불조(佛祖)의 교화를 도와 납자들에게는 도를
닦는 데에 마음을 쏟게 하고 민간에게는 풍속을 선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니, 본디 천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법시대의 비구들은 도덕을 닦지 않아 절개와 의리가 거의 없다. 번번이 뇌물을 싸들고
문전에 기대어 꼬리치고 구걸하여 권세있는 문하에서 명성과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다 하루
아침에 이생에서 받을 업과 복이 다하여 죽게 되는 날이면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하리니, 자
기에게 재앙이 될 뿐만 아니라 바른 가르침을 더럽히고 스승과 벗에게 허물을 끼치게 되니
크게 탄식할 일이 아닌가."
회당스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4.
홍영 소무스님이 반연지에게 말했다.
"옛날의 배우는 이는 마음을 다스렸고 요즘의 배우는 이는 모습을 다스리나 이 둘 사이는
천지차이라 하겠다."
5.
홍영 소무스님이 진정 극문(眞淨克文:1025∼1102)스님에게 말했다.
"무엇이든 갑자기 자라나는 것은 반드시 중도에서 꺾이며, 급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반드시
쉽게 허물어지니, 먼 앞날을 내다보지 않고 계획하여 갑자기 만들어 낸 일은 모두가 원대한
일의 밑천이 될 수 없다.
자연은 가장 신령스럽지만 그래도 3년마다 한 번씩은 윤달이 끼어야 조화신공(造化神功)을
완수할 수 있다. 하물며 무상대도(無上大道)의 오묘함을 어떻게 급히 서둘러 이룰 수 있겠는
가. 요컨대 공부를 축적하고 덕을 쌓아가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급하게 하려 하면
도달하지 못하고 꼼꼼하게 행하면 실수하지 않으니, 아름답고 묘하게 이룸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어 마침내 종신토록 도모함이 있게 된다'는 말이 있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도(道)에
대해서 믿음으로써 지키고 민첩하게 실천하며 진심으로 이루면, 아무리 큰일이라도 반드시
된다'라고 하셨다.
지난날 철시자(喆侍者)는 앉은 채로 밤을 새우면서 자지 않았다. 둥근 나무로 목침을 만들
어 괴고는 잠깐이라도 졸게 되면 목침이 굴러떨어져 깜짝 놀라게 함으로써 다시 일어나 전
처럼 자리를 펴고 앉곤 하였다. 늘 이렇게 해나가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마음씀이 너무 지
나치다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야(般若)와의 연분이 본래 엷어서, 만일 애써 뜻을 가다듬지 않는다면 허망한 습관
에 끄달릴까 염려스럽다. 더구나 꿈 같고 허깨비 같은 이 몸은 본래 진실이 아닌데, 어떻게
이것만을 믿고 장구한 계책을 삼겠는가.'
나는 그때 상강(湘江)의 서쪽에 있으면서 그 지조와 실천이 이러함을 직접 보았다. 그러므
로 총림에서는 그의 명성에 머리 숙이고 그의 덕에 경배하며 칭찬한다." 『영원습유(靈源拾
遺)』
11
도인이 가니 총림이 시들다
진정 극문(眞淨克文)스님 / 1025∼1102
1.
진정 극문(眞淨克文)스님은 가장 오랫동안 황룡(黃龍)스님을 모셨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사
람들 앞에 나서서 남의 스승이 되기를 사절하였다가 뒤에 동산(洞山)스님의 청을 받고 가는
길에 서산(西山)을 지나게 되어 향성 경순(香城景順)스님을 찾아뵈니 경순스님이 그를 놀리
며 시를 한 수 지어 주었다.
지난날 제갈량은 은자라 불리웠지만
유비의 삼고초려에 와룡을 내려왔네
송화가루가 봄기운에 만발하려면
그 뿌리 바위 깊이 묻혀야 하리
諸昔年稱隱者
芽廬堅請出山來
松華若也春力
根在深巖也著開粘 淑
그러자 진정스님은 고개 숙이고 물러났다. 『순어록(順語錄)』
2.
진정스님이 구봉 희광(九峯希廣)스님을 오봉사(五峯寺)의 주지로 천거하니, 대중은 그가 거
칠고 졸렬하여 세간을 감화시킬 만한 그릇이 못된다고들 하였다. 그러나 희광스님이 주지가
되어서는 자기를 다스리는 데에는 엄정하고 대중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니, 오래지 않아서 절
의 모든 폐단이 제대로 시정되었다. 납자들이 오가며 다투어 전하니 진정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그토록 쉽게 남을 비방하고 칭찬하는가. 내가 매번 보니, 총림에서
멋대로 논의하기를 어느 장로(長老)는 도를 실천하여 대중을 편안하게 한다 하고, 어느 장로
는 일용품을 사사로이 쓰지 않고 대중과 고락을 같이 한다고들 한다.
선지식이라 불리워 한 절의 주지가 되면 도를 실천하여 대중을 편안하게 하고 일용품을 사
사로이 쓰지 않고 대중과 고락을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다시 무슨 말할 거리가 되
겠는가. 그것은 사대부가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는, 나는 뇌물
을 받지 않았으며 백성을 어지럽히지 않았노라고 내세우는 것과 같다. 뇌물을 받지 않고 백
성을 어지럽히지 않음이 어찌 분수 밖의 일이겠는가." 『산당소참(山堂小參)』
3.
진정스님이 귀종사(歸宗寺)에 머물 때, 해마다 화주(化主)가 써서 바치는 조목에 베와 비단
이 구름같이 쌓여 있었는데, 스님은 이를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탄식하였다.
"이것은 모두 신심 있는 신도의 피와 땀이니 나에게 도덕이 없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무엇
으로 이것을 감당하겠는가." 『이상로일섭기(李商老日涉記)』
4.
말법시대에는 절개와 의리가 있는 비구가 드물다. 그들의 고상한 이야기나 폭넓고 트인 의
론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은 그들에게 미칠 수 없다는 생각이 내게도 든다. 그러나 밥 한
그릇의 이익을 놓고는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듯하다가 끝에 가서는 그것을 차지하며,
처음에는 헐뜯다가 뒤에는 칭찬한다. 그들이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을 살펴보니, 이욕(利欲)에
현혹되지 않고서 중정(中正)에 입각하여 사실을 숨기지 않는 자가 적었다. 『벽기(璧記)』
5.
비구의 법도는 물건을 수용(受用)함에 있어서 많고 넉넉히 해서는 안된다. 넉넉하고 많으면
넘쳐 흘러버린다. 마음에 맞는 일이라도 많이 계획해서는 안되니 많은 계획은 끝내 실패하
기 때문이다. 완성이 있으려면 반드시 파괴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황룡스님을 보니, 세상을 교화하는 40년 동안에 모든 일에서 한번도 안색이나 예의·
글재주 따위로 당시의 납자들을 억지로 얽어매지는 않았다. 확고한 견지(見地)를 가지고서
진실을 실천하는 자만이 평범한 도로써 제자들을 성취시킬 수 있다. 스님이 고인의 격식을
진실하게 체득한 점은 어디에도 비교할 만한 자가 드물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내가 대
중 앞에 서면 스님을 본받으라 가르친다. 『일섭기(日涉記)』
6.
진정스님이 건강(建康) 보령사(保寧寺)에 머물 때, 서왕(舒王)이 재(齋) 때에 흰 명주를 바
쳤다. 스님은 시자에게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비단입니다"하니, 스님이 다시 "어
디에 쓰려고 하느냐?"하자 "가사를 지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스님은 입고 있던 베가
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늘 이렇게 입어 왔지만 보는 사람이 천하다고 하지 않더라."
하고는, 즉시 그 비단을 창고로 보내어 그것을 팔아서 대중에게 공양하라 일렀다. 스님이 옷
따위에 신경쓰지 않음이 이러하였다. 『일섭기(日涉記)』
7.
진정스님이 서왕(舒王)에게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옳은 것은 힘써 실천하고, 잘못된 것은 기어코 그만두어야 한다. 또한 일의
쉽고 어려움 때문에 자기 뜻을 바꿔서도 안된다. 당장 어렵다 하여 고개를 저으며 내버려
둔다면 뒷날이 오늘보다 더 어렵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일섭기(日涉
記)』
8.
진정스님은 어느 지방에서 도 있는 인재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매우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 담당 문준(湛堂文準:1061∼1115)스님이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만물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 일단 몸을 갖게 되면 죽고 썩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당연
한 이치인데, 무엇 때문에 그토록 상심합니까?"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불교가 일어나는 것은 도 있는 사람 덕분인데 지금 모두 죽어가니, 총림의 쇠퇴를 이로써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섭기(日涉記)』
12
도덕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긴다
담당 문준(湛堂文準)스님 / 1061∼1115
1.
담당 문준(湛堂文準:1061∼1115)스님이 처음 진정스님을 참례하고 나서 항상 휘장 속에서
불을 켜 놓고 책을 읽자, 진정스님이 이렇게 꾸짖었다.
"배우는 목적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니, 많이 배웠다 해도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면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구나 저마다 다른 백가(百家)의 이론은 산처럼 바다처럼
방대한데 그것을 다 보려 하는가. 그대는 지금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고 있는데 이는 마
치 하인이 주인을 부리는 격이니 도업(道業)을 방해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모름지기 모든
바깥 인연을 다 끊고 오묘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니, 그렇게 해나가다가 뒷날 되돌아본다면
문을 밀어젖힐 때 지도리에 맞듯 순조로울 것이다."
담당스님은 그때부터 익히던 것을 버리고 선관(禪觀)에만 전일(專一)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납자가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를 읽는 소리를 듣고 활연히 깨달아 응
어리가 풀린 뒤, 말물이 틔어 대중 가운데 스님을 능가하는 자가 드물었다.
2.
도덕이 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기고, 도덕이 없는 사람은 혼자 즐기기를 좋아한다. 대
중과 즐기는 사람은 발전하지만 자기 몸만 즐기는 사람은 망한다. 요즈음 주지라 불리우는
자들은 자기의 좋고 싫은 감정으로 대중을 대하는 경우가 많아, 그 때문에 대중들이 그를
거스른다. 좋아하면서도 단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사람의 장점을 알아주는 사람은 찾아
보아도 드물다. 그러므로 근심과 즐거움을 대중과 함께 하고, 좋고 싫음을 같이하는 자를 의
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의(義)가 있는 곳이라면 천하 누군들 귀의하지 않겠는가.
『췌우집(贅集)』
3.
도라는 것은 고금의 바른 저울이다. 그런데 그것을 널리 펴는 문제는 변화에 통달하는 데
달려있다. 변화를 알지 못하는 자는 문자에 구애되고 가르침에 집착하여 모양과 감정에 막
히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방편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778∼898)스님에게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면〔萬法歸
一〕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一歸何處〕"라고 묻자, 조주스님은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 삼베로 옷을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옛사람이 권도
(權道)의 변화에 통달하지 못했더라면 이처럼 응수할 수 있었겠는가?
성인이 말씀하시길, "그윽한 골짜기는 사심이 없어 마침내 메아리를 이루고, 커다란 종은
종틀에 매여 있기 때문에 치는 대로 소리가 난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큰
방편에 막힘이 없는 상근기(上根氣) 인재가 상도(常道)로 되돌아가 합치하려면, 하나만 고집
하느라 변화에 응하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이상로서(與李商老書)』
4.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승이 될 만한 사람으로 벗을 삼아야 한다. 언제든지 깊이 존경
하는 마음을 품고 일마다 본받을 만하여 나에게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혹 지식이 나보
다 약간 나은 경우도 사귈 만하나, 부족한 점을 경책해야 하고 만일 나와 비슷한 경우라면
없느니만 못하다. 『보봉실록(¿峯實錄)』
5.
조정(祖庭)이 말운(末運)에 당하여, 시끄럽게 들뜨지 않는 정도의 수행자도 진실로 만나기
어렵다. 옛날에 진여(眞如:?∼1095)스님이 지해사(智海寺)에 머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강(湘江)의 서쪽 도오사(道吾寺)에 있을 때, 대중은 많지 않았으나 늙은 납자 몇 명이
이 도리를 참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위산(大山)으로부터 여기에 와서는 대중이 9백명을 밑
돌지 않았으나 대여섯 사람도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로써 사람을 얻는 것이 많은 숫자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안다. 『실록(實錄)』
6.
상대방의 실천에 관한 문제는 한 번 대답하고 따져 묻는 정도로는 다 알지 못한다. 입으로
는 날카롭게 변론하는 자라도 실제 일 처리는 미덥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으며, 말솜씨가
없는 자도 더러 이치에 밝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말로는 끝까지 했다 해도 그
이치를 다하지 못했을까 염려스러우며, 입은 굴복시켰다 해도 그 마음은 굴복시키지 못했을
까 염려스럽다.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운 문제는 성인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겼다.
요즘의 납자들은 저 잘난 줄만 알 뿐 대중의 마음을 아는 데는 힘쓰지 않고 보고 듣는다는
것이 그저 남의 허물과 틈이나 엿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대중의 바람을 저버리고 어기면
서 서로가 속임수를 더할 뿐이다. 그리하여 불조(佛祖)의 도들 더욱 얄팍하게 하여 거의 구
제할 도리가 없게 하였다. 『답노직서(答魯直書)』
7.
담당스님이 묘희(妙喜)스님에게 말하였다.
"상법(像法)·말법(末法)시대에는 밖으로 사물을 따라가 마음을 밝히지 못하는 비구가 많
다. 비록 큰일을 한다 해도 그것이 도에 관한 것은 아니니, 이는 비루하고 외람된 데 붙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서, 마치 소의 등에 붙어 있는 등에〔〕가 날다가 얼마 못 가는 꼴이다. 가
령 천리마의 꼬리에 붙는다면 문득 바람을 좇고 해를 따르는 능력을 가지게 되리니, 이는
몸을 맡긴 곳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는 반드시 처소를 가려 머물고, 큰 인재에게 가서 배워야 한다. 그래야
만 사벽(邪僻)을 끊고 중정(中正) 가까이서 바른 말을 들을 수 있다.
옛날 복엄 양아(福嚴良雅)스님은 진여 모철(眞如慕喆)스님이 내건 목표를 존중하여 매양
사랑하였으나, 그가 의지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몰랐었다. 하루는 그가 대영 도관(大寧道
寬)·장산 찬원(莊山贊元)·취암 가진(翠巖可眞)스님과 함께 가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기쁨
을 누르지 못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선문(禪門)의 용상(龍象)인 모든 큰스님들을 그대가 따르며 배우고 있으니, 뒷날 무너지는
우리 도(道)를 지탱해 주고 조사의 가르침을 드러내어 대중을 구제하는 일은 실로 내가 여
러 사람에게 이러니저러니할 일이 아니겠군." 『일섭기(日涉記)』
8.
담당스님이 묘희스님에게 말하였다.
참선은 깊은 사려와 뛰어난 투지를 요한다. 다른 사람에게 신의를 주기 위해서나 혹은 권
세와 이익을 따르느라 말과 행동을 구차하게 굽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도반에게
나쁜 본보기가 되지 않을 뿐더러 당시 사람들이 치켜올리거나 깎아내리지 못하게 된다.
『보봉기문(寶峯記聞)』
9.
나는 옛날 영원(靈源)스님과 함께 장강사(章江寺)에서 회당스님을 모시고 있었는데, 영원스
님이 하루는 두 스님과 함께 성(城)에 들어갔다가 늦게야 돌아왔다. 회당스님이 "오늘 어디
엘 갔었는고?" 하고 묻자 영원스님이 말하였다.
"마침 대영사(大寧寺)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그때 사심(死心:1044∼1115)스님이 곁에 있다가 엄하게 따졌다.
"참선하여 생사를 해탈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말을 성실히 해야 합니다. 청형(淸兄)께서
는 어떻게 거짓을 말할 수 있읍니까?"
영원스님은 얼굴을 붉히며 감히 대꾸를 못하였고 그 뒤부터는 성안에 들어가지도 않았으
며, 허망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나는 영원스님과 사심스님 모두가 훌륭한 그릇임을 이 사
건으로 알게 되었다. 『일섭기(日涉記)』
10.
영원스님은 경사(脛史) 읽기를 좋아하여 밥 먹고 쉬는 사이에도 잠시도 쉬지 않았으며, 책
을 외어야 읽기를 그만두었다. 회당스님이 그 일을 꾸짖자 영원스님이 말하였다.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은 거두는 공도 크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러므로 태사(太史) 황노
직(黃魯直)도 말하기를, `청형(淸兄)께서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주리고 목마를 때 마시고
먹을 것을 찾듯하고, 번거롭고 화려한 이양(利養)은 악취를 보듯 합니다'라고 하였읍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천성으로서 억지로 그렇게 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췌우집(贅
集)』
선림보훈
中
13
화복과 길흉은 한 울타리안에 있다
영원 유청(靈源惟淸)스님 / ?∼1117
1.
영원 유청(靈源惟淸:?∼1117)스님이 서주(舒州) 태평사(太平寺)에 머물 때, 불안(佛眼:1067∼
1120)스님이 대중을 대함에 늘 빈틈이 없어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 요점
을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차라리 여유있게 하느라고 범하는 실수는 있을지언정 다급한 데서
실수하면 안되며, 간략한 데서 실수할지언정 자세한 데서 실수해서는 안된다. 다급하면 고칠
수 없고, 자세하면 용납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중도(中道)를 지키면서 여유있게 상대하면
대중을 대하여 일을 주관하는 법도에 맞는다 하겠다." 『습유(拾遺)』
2.
영원스님이 장령 수탁(長靈守卓:1065∼1123)스님에게 말하였다.
"도가 펴지는 것도 원래 자연스러운 시기가 있는 법이다. 지난날 자명(慈明)스님이 형(
荊)·초(楚) 사이에서 마음을 놓아버리고 수치와 모욕을 참으며 지낼 때, 사람들은 스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스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어떤 이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
답하였다고 한다.
`죽 이어진 큰 성(城)과 기왓조각이 부딪치면 상대가 안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신정(神鼎:?∼901)스님을 뵙고 난 후, 명예가 총림에 퍼져 결국은 임제(臨濟:?∼867)스님의
도를 일으켰다."
아 - 아, 도와 시기를 구차하게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 『필첩(筆帖)』
3.
영원스님이 황태사(黃太史)에게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렇게 비유하였다.
`땔나무 더미 아래에다 불을 지피고 그 위에 누워 있으면서 아직 불붙지 않았다고 태평하
게 여긴다.'
이 말은 실로 안위의 기미와 생사의 이치를 비유한 것으로서, 밝게 뜬 해처럼 그 사이에는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평소 한가히 지낼 때는 생사문제를 염려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예측하지 못한 데서 일이 터져 나오면 아무리 발버둥쳐 구해
보려 하나 끝내 어찌할 수가 없다." 『필첩(筆帖)』
4.
영원스님이 불감(佛鑑)스님에게 말하였다.
"대체로 동산(東山) 사형의 편지를 받아 보면 한번도 세상 일〔世諦〕에 관해 말씀한 적은
없고, 정녕 몸을 잊고 도를 널리 펴 후학을 이끌어주는 일뿐이었다.
지난번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뭄으로 입은 농사 피해, 나는 그것을 하나도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선가(禪家)에 안목
(眼目) 없는 것이 걱정일 뿐이다. 올 여름 안거에 100여 명이 집안에서 개에게는 불성이 없
다〔狗子無佛性〕는 화두를 들고 있으나 한 사람도 알아낸 이가 없으니, 이것이 근심스러울
뿐이다.'
참으로 지극하신 말씀이다. 살림이 잘 다스려지지 않음을 근심하고, 관리에게 미움 사서 책
망 들을까를 두려워하며, 명성과 지위가 드날리지 않을까 염려하고 자기 권속이 적지나 않
을까 두려워하는 자와는 실로 천지차이라 하겠다. 매양 생각해 보아도 이치에 맞는 이런 말
을 어떻게 다시 들을 수 있겠는가. 우리 조카 그대가 법손〔嫡嗣〕이 되어 제 힘껏 가풍을
진작하려면 당연히 종도(宗徒)들의 여망에 부응해야 하리니, 이 점을 간절히 비는 바이다."
『섬시자일록(蟾侍者日錄)』
5.
맷돌을 돌리면 깎이는 것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느 땐가 다하고, 나무를 심고 기르면 자라
나는 것이 눈에 띄지는 않아도 어느 새 크게 자란다. 덕을 쌓고 거듭 실천하면 당장은 훌륭
한 점을 모르나 언젠가는 쓰이고, 의리를 버리면 그 악한 것을 당장은 모른다 해도 언젠가
는 망한다. 배우는 사람이 충분히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면 큰 그릇〔大器〕을 이루어 명예
로운 이름을 남길 것이다. 이것이 고금에 변치 않는 도이다.[필첩(筆帖)]
6.
영원스님이 혜고(惠古)스님에게 말하였다.
"화복은 서로 맞물려 있고 길흉도 같은 구역인데 사람 스스로가 이것을 부를 뿐이니, 어찌
깊이 생각치 않을소냐. 혹 기쁘거나 노한 자기 감정을 멋대로 부린다면 관대하던 포용력이
좁아지고, 사사로운 마음으로 사치하며 남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이는 모두 주지의 급무
가 아니며, 실로 방자함의 싹이자 재앙의 바탕이다." 『필첩(筆帖)』
7.
영원스님이 이천(伊川)선생에게 말하였다.
"재앙이 복을 일으킬 수도 있고 복이 재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재앙에서 복이 나온다 함
은, 재액이 생기려 할 때에 간절히 무사하기를 생각하고 깊이 이치를 구하면 드디어는 공경
하고 조심하게 되므로 재앙이 복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이다. 복에서 재앙이 생긴다 함
은 거처가 편안하고 느긋할 때는 원하는 대로 사치를 부리며 방종하여 교만과 게으름에 빠
지며, 경솔하고 업신여기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때문에 재앙이 생기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
이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어려움이 많으면 뜻을 이루고, 어려움이 없으면 몸을 잃는다'고 하
셨다. 얻는 것이 있으므로 잃게 되며, 잃기 때문에 또 얻게 된다. 이로써 복은 요행으로 구
하지 못하며, 복을 얻는 것도 그저 틈을 엿보기만 하여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복스럽게 살 때 재앙을 염려하면 그 복을 보전할 수 있고, 얻고 난 뒤에도 잃을까 염려하
면 얻을 것이 반드시 이르러 온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다스려졌을 때에도 혼란함을 잊지 않는다." 『필첩(筆帖)』
8.
영원스님이 이천선생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자기모습이 남는 것을 싫어하여 그림자가 질까 두려워하며 등지고 도망가려 한
다. 그러나 빨리 도망갈수록 자취는 더욱 많아지며, 그림자도 더욱 빨라진다. 도망가기를 그
치고 그늘에 들어가 그림자가 스스로 없어지고 자취도 자연스럽게 끊어지게 하느니만 못하
다. 일상생활에서 이점을 분명히 한다면 앉은 자리에서 이 도에 나아가리라." 『필첩(筆
帖)』
9.
주지가 되어서 그 지위가 하는 일보다 넘어서는 자는 대체로 끝까지 잘 마무리짓는 경우가
드물다. 그것은 아마도 복덕이 천박하고 도량이 좁으며 지식이 보잘것 없는 데다가 훌륭한
이를 따라 애써 바른 도리를 배움으로써 자기를 넓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리라.
『일록(日錄)』
10.
영원스님은 각범(覺範)스님이 좌천되어 영남지방의 바닷가로 귀양갔다는 소문을 듣고 탄식
하였다.
"한길에 심어진 난초는 한 철을 푸르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 사는 계수나무는 해를 넘기
지 못한다. 예나 지금이나 재주와 지혜가 있는 사람이 몸을 다치거나 비방으로 재앙에 걸리
는 자는 많고, 세상과 함께 떴다 가라앉았다 하며 몸을 보존한 자를 찾아보자면 소수에 불
과하다.
그러므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당세에 총명하고 사려깊은 자로서 거의 죽을 뻔한 사람은
남에 대해 이런저런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이며, 굉장한 말재주로 자기를 위태롭게 하는 자
는 남의 단점 들춰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셨는데 각범스님에게 이런 문제가 있었다
하겠다." 『장강집(章江集)』
11.
영원스님이 각범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남쪽 지방에 있을 당시 『능엄경(嚴脛)』을 공부하여 특별히 주석을 썼다 하던데,
이것은 모자란 나로서는 원치 않는 바이다. 문자공부로는 자기 성품의 근원을 밝힐 수 없을
뿐더러, 후학들이 부처님의 지혜만을 얻는데 장애만 줄 뿐이니, 그것은 남을 통해 이해함으
로써 스스로 깨치는 방편을 막아버리는 데 병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재주만 늘리
면 천박한 지식만 성해지고 알음알이를 틔워주면 끝내 묘한 깨달음을 극진히 하기는 어렵
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이해와 실천이 맞지 않고 늘 보고 듣는 것이 더욱 어두워지는 것이
다. 『장강집(章江集)』
12.
도를 닦는 사람은 일거일동과 모든 언행을 반드시 살피고 돌아보아야 한다. 말이 적다 해
서 반드시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며, 말 잘하는 자라 해서 꼭 지혜로운 것도 아니다. 또한 촌
스럽고 소박한 자라 해서 반드시 패륜아는 아니며 공순하다 해서 꼭 충성스러운 것도 아니
다. 그러므로 선지식은 말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않고 자기 생각만 가지고 납
자를 선별하지도 않는다.
강호(江湖)에 떠도는 납자라면 누군들 도를 구하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그 가운데서 분명하
게 깨닫고 이치를 본 자는 천백에 하나도 없다. 그 사이에서 자신을 닦는데 힘쓰고 이제껏
배운 것을 모아 덕을 갖추는 데에는 30년이 걸려야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도 일 하나 잘못
되어 총림이 그를 버린다면 종신토록 꼼짝 못하게 된다.
그러나 열두 대의 수레를 비출 수 있는 굉장한 구슬에게도 더 나은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죽 이어진 커다란 성곽과 바꿀 만한 구슬인들 어떻게 흠집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범
부 유정(有情)으로서 어찌 허물이 없을 수 있겠는가.
공부자(軫夫子)는 성인이셨으나 그래도 "나에게 몇 년의 시간이 주어져 『주역(周易)』을
배울 수 있다면 큰 허물은 없을텐데"라고 말씀하셨다.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사념이 일어날
까 두려워하지 말고 깨달음이 더디어질까를 염려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더구나 성현 이하
라면 누구인들 과실이 없겠는가. 선지식쯤 되어야 정도가 다른 모든 근기를 빠뜨리지 않고
남을 다 곡진하게 완성시켜 줄 수 있다.
"솜씨가 뛰어난 목수는 수레바퀴냐 서까래냐의 쓰임새를 따라 굽었거나 곧거나 못 쓰는 재
목이 없으며, 훌륭한 말몰이는 험하고 평이한 길에 적합하도록 고름으로써 노둔한 말이든
천리마든 본성을 잃음이 없게 한다"는 것도 이런 뜻에서 하는 말이다.
다른 것도 이와 같다면 사람도 마땅히 그러하리라. 가령 인재를 선택하는 일에 애증(肯憎)
의 감정을 따르고, 합심하느냐 갈라서느냐의 문제도 취향이 같으냐 다르냐에 매인다면 이는
자〔繩墨〕를 버리고 사각형과 원을 마름하며, 저울을 버리고 무게를 다는 것과 같다. 비록
꼼꼼하게 했다 해도 틀린 데가 나오기 마련이다.
13.
훌륭한 주지라면 대중의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삼아 마음을 사사롭게 하지 않으며, 대중의
이목(耳目)을 자기 이목으로 삼아 자기 이목을 개인적으로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중의 뜻을 훤히 알고 여러 사람의 심정을 극진히 할 수 있다.
대중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으면 좋고 싫은 감정을 바로 대중과 함께 하여 좋아해도
삿되지 않고 싫어해도 어긋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자기 속마음에 사사롭게 맡
겨 아첨을 달게 받아들이겠는가. 대중의 이목을 자기 이목으로 삼았다면 모든 사람의 밝은
귀와 눈이 다 내것이 된다. 그러므로 밝은 눈으로는 비춰보지 못할 것이 없고 밝은 귀로는
듣지 못할 것이 없으리니, 굳이 무엇 때문에 자기 이목만을 밀어 미혹에 가리움을 자초하겠
는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대중의 이목을 믿는 경우란 어질고 지혜로운 인재가 자기 허물 고치기
를 힘쓰고 대중의 바람에 부응할 때뿐이니, 여기에는 치우침이나 사사로움이 없어서 누구나
가 다 마음을 귀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과 인의가 멀리 퍼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애써 남의 허물이나 들춰내려 하고 대중이 하자는 대로 따
르지 않아서 자기 중심적인 태도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대중의 마음이 그에게서 다 떠난다.
그러므로 악한 명성과 거친 행동이 멀리 퍼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겠다.
이로써 알아야 할 것은 주지되는 사람이 대중의 바람에 부응하면 현철(賢哲)하다는 소리를
듣고, 대중의 바람을 저버리면 용렬한 무리라고 낙인 찍힌다는 것이다.
대체로 속마음을 털어놓느냐, 자기 이목에 맡기느냐가 다르기 때문에 선악과 성패가 이렇
게 상반되는 것이다. 이는 허물을 고쳐가는 사정이 다르고 사람을 쓰는 방법이 같지 않아서
그렇지 않겠는가.
14.
요즈음 큰스님이라 하는 이들 중에 두 가지 경계에 끄달려서 지식(智識)이 분명치 못하며,
두 가지 잘못된 풍조에 빠져 법다운 체모를 잃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첫째는 마음에 거
슬리는 경계를 마주하면 오그라드는 태도에 빠지는 경우이며, 둘째는 마음에 드는 경계를
받아들여 편리함만을 찾는 풍조에 빠지게 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두 가지 풍조에 빠지고 나면 마음 속에는 희노(喜怒)의 감정이 엇갈리고 우울하고
발끈하는 기색이 얼굴에 드러나니, 이는 불교 문중에 먹칠하고 지성인들의 비웃음과 꾸지람
을 사게 되는 소치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야만 훌륭하게 받아들여 교화하는 방편을 자유롭
게 쓰면서 후학을 잘 인도할 수 있다.
가령 낭야 광조(廣照)스님 같은 경우, 소주(蘇州)에 가서 범희문(范希文)과 만났을 때, 거기
에서 신도들이 바친 시주물과 돈 천여 꿰미를 받고는 가만히 사람을 보내 성에 있는 모든
사찰의 대중 숫자를 계산해 보고 모두에게 남 모르게 돈을 보냈다. 마침 그 날은 여러 사람
이 모일 단(檀)을 만들어 재(齋)를 베푸는 날이었는데, 이른 새벽에 희문에게 미리 인사하고
배로 떠나버렸다. 날이 밝아서야 대중들은 그가 이미 떠나버렸다는 것을 알았으며, 쫓아간
사람은 상주(常州)에 이르러서야 그를 뵙고 유익한 법문을 듣고 되돌아왔다 한다.
이 노덕(老德)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았더니 고소(姑蘇)의 승·속 모두에게 신심을 일으
키고 도의 종자를 더욱 깊게 심어 주었다. 스님은 사람을 받아들여 교화하는 방편을 자유롭
게 운용했다 할 만하니, 법의 지위를 훔쳐 재물에 구애받으며 자기 한 몸만을 도모하는 자
와는 천지차이라 하겠다. 『여덕화상서(與德和尙書)』
15.
문정공(文正公:희문)이 낭야스님에게 말하였다.
"작년에 여기에 와서 법담을 나눌 만한 스님을 찾았읍니다. 그리하여 한 관리에게 곳곳에
좋은 스님이 계시는가를 물어보았더니, 그는 북사(北寺)인 서광사(瑞光寺)에 계신 희(希)·
무(茂) 두 스님이 훌륭하다고 가르쳐 주었읍니다. 나는 이밖에 다른 선원과 율원에는 별다른
분이 없는지를 다시 물었더니, 관리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유가(儒家)에서는 선비다운 행을 존중하고, 불가(佛家)에서는 덕업(德業)을 논합니다. 그런
데 희(希)·무(茂) 두 스님은 30년 동안 문지방을 넘지 않고 옷은 흰 베옷만 걸치며 명성과
재물에는 결코 걸림이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지방 사람들이 그의 지조와 실천을 높이 사
서 스승으로 받듭니다. 법좌(法座)에 올라 설법을 하며 부처님을 대신해 교화를 드날리는 경
우에는 근기에 따라 자재하게 설하시니, 선지식이라 일컬어지는 스님들을 저같이 어두운 관
리가 알아볼 수 있겠읍니까.'
그리하여 한가한 날, 두 분 큰스님을 방문하여 평소의 행동을 살펴보았더니 관리의 말 그
대로였읍니다. 나는 물러나서 생각해 보았읍니다. 예로부터 소(蘇)·수(秀) 지방의 풍속이
좋다더니, 지금 늙은 관리를 살펴보건대 군자와 소인의 우열을 분간하고 있었읍니다. 더구나
식자(識者)이겠읍니까."
낭야스님은 말하였다.
"관리의 말과 같다면 실로 높이 평가할 만하니 이를 기록하여 아직 듣지 못한 사람을 깨우
치기 바라네." 『낭야별록(¿別錄)』
16.
종산 찬원(鐘山贊元)스님은 평소에 높은 벼슬아치와 사귀지 않아서 명예와 이익에 구애받
지 않았으며 겸양으로 자신을 기르고 도닦는 일로 낙을 삼았다. 사대부들이 그에게 세상사
에 응해줄 것을 처음 권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진실로 좋은 터전이 있다면 늦게 되는 것쯤이야 무얼 그리 근심하겠는가? 아뭏거나 가재
도구가 모자랄까 근심하는 정도면 그만이지."
형공(荊公)이 이를 듣고 말하였다.
"기미만 살피고도 재앙이 미칠 것 같으면 당장 달아난다 하더니 이 사람이야말로 이 도리
를 터득한 사람이라 하겠다." 『췌우집(贅集)』
17.
선철(先哲)이 말하기를,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깨닫기가 어렵고, 깨닫고 나서는 지키기가
어려우며, 지키고 나면 실천에 옮기는 일이 어렵다"라고 하였다. 지금 막상 실천하려고 보니
깨닫고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 이유는 깨닫고 지키는 일은 굳세고 열심히 정진하여
혼자서 힘쓰면 될 뿐이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반드시 평등한 마음으로 죽기를 맹세하고
자기를 덜어내어 남을 이익케 한다는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등하지 못하고 결심이 굳지 못할 경우, 자신을 덜어 남을 이익되게 하는 일이
뒤바뀌어 세속과 영합하고 스승께 아부나 하는 부류에 떨어지게 되니, 두려워해야 한다.
18.
동산(東山) 사형께서는 천성이 뛰어나 모든 일상이 법도에 맞았다. 평소에 하신 법문은 그
이치가 자연스럽고 훌륭하여 제방(諸方)에서 이를 본뜨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궤변이거나 속되지 않으면 과장되고 고루하여 끝내 스님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또한 옛날
사람들 중에서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분이었다.
그러나 사형께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잘난 점을 누그러뜨리고 중생 인도하기를 주리고
목마른 사람보다 더 간절히 중생을 이끌어주셨다.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법이 없는데 어떻게 제자(諸子)를 지도할 수 있겠는가. 참으로 불법 문중의 죄인이
다."
19.
영원스님은 도를 배우고 의리를 실천함에 있어서 순진하고 후덕하여 옛사람의 격조를 지녔
으며, 진중한 태도에 말수가 적어서 더욱 사대부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보통사람들이 소홀히 여기는 것을 성인들은 신중히 여기는 법이다. 더구나 총림의 주지가
되어서 부처님을 도와 교화를 펴려 한다면 깨달음과 행동〔解行〕이 부합하지 않고서야 되
겠는가. 중요한 점은 그때그때마다 단속하고 자책하여 명예나 물질을 구하는 마음이 속에서
싹트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혹 법령(法令)이 미덥지 못하여 납자들이 잘 따르지 않을 경우
가 있으면 물러나 생각해 보고 덕을 닦아 사방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대접해야 한다. 자신이
바른데도 총림이 다스려지지 않는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
이른바 덕 있는 이의 용모만 보아도 사람들의 물든 생각이 싹 없어진다고 하는 이야기이
니, 진실됨이 실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기문(記聞)』
20.
영원스님이 원오 극근(圓悟克勤:1062∼1135)스님에게 말하였다.
"납자에게 도를 볼 수 있는 자질이 있다 해도 깊이 새겨두고 더욱 발전시켜주지 않으면,
그 도를 운용하는 면에서 반드시 모가 나고 급하게 된다. 이는 불교 문중에 도움이 안될 뿐
아니라 재앙과 오욕을 부를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14
도는 믿음에 달려있고 믿음은 진실에 달려있다
원오 극근(圓悟克勤)스님 / 1062∼1135
1.
도를 배우는 일은 믿음에 달려 있고,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은 진실〔誠〕에 있다. 마음 속에
진실이 있어야 대중들이 의심하지 않으며, 자기에게 믿음이 있어야 솔찍하게 남을 가르칠
수 있으니, 생각컨대 믿음과 진실은 도움만 될 뿐 하나도 손해될 것은 없다. 그러므로 진실
이 한결같지 못하면 마음을 보존할 수 없고, 믿음이 전일하지 못하면 말을 실천할 수가 없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옛사람도 말하기를 "옷입고 밥먹는 일은 그만두더라도 믿음과 진
실을 잃어서는 안된다"라고 하셨다.
오직 선지식만이 믿음과 진실로 남을 가르칠 수 있으니,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고 일처리를
미덥지 못하게 한다면 선지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주역(周易)』에서도 "천하의 지성(至
誠)이라야 드디어는 자기 본성을 극진히 하고, 자기 본성을 극진히 한다면 다른 사람의 본
성도 극진히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자신도 극진히 하지 못하고서 다른 사람이 극진하기를 기대한다면 대중들은 반드시 속이고
따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앞에서 진실하지 못했으면서 뒷사람더러 진실하라고 말한
다면 대중들은 반드시 의심하고 믿지 않을 것이니, 이른바 "머리털을 깎다가 살까지 베이게
되고 손톱을 깎다가 손가락을 베이게 된다"라고 한 것이다.
실로 진실이 지극하지 않으면 상대가 감동하지 않고, 손해를 보지 않으면 이익도 오지 않
는다. 대체로 진실과 믿음에서는 잠시도 떠나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여우찰원
서(與虞察院書)』
2.
사람이라면 누구인들 허물이 없겠는가마는 허물을 고칠 수 있으면 이보다 더 큰 장점은 없
다. 예로부터 모두가 허물을 고쳐 나아지는 것을 칭찬하였지 허물이 아예 없는 것을 좋아하
지는 않았다.
사람이 일을 해나가는 데 허물과 착오가 생기는 것은 바보든 수재든 간에 모두 면하지 못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허물을 고쳐 착한 쪽으로 갈 수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대
부분 허물을 덮고 잘못을 꾸민다. 착한 쪽으로 옮겨가면 그의 덕은 날로 새로와지는데 이
를 군자(君子)라 부르며, 과오를 꾸미면 그 악은 더욱 드러나는데 이를 소인(小人)이라 한
다.
그러므로 의로움을 듣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일반 사람의 마음으로는 어렵게 여겨지지만
착한 것을 보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는 것은 어질고 덕스러운 이들이 높이 사는 일이다.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말 밖에서 서로를 잊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문주부(與文主簿)』
3.
스승님(오조 법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큰스님(長老〕중에는 도덕으로 사람을 감동시키
는 자도 있으며 세력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는 자도 있다. 마치 난새·봉새〔鸞鳳〕가 날면
모든 새들이 다 좋아하나, 호랑이가 지나가면 모든 짐승들이 두려워하는 것과도 같다. 이렇
게 겉으로 따르는 모습은 하나로 나타나지만, 사실상 품격은 천지차이로 갈라진다"라고 하
셨다. 『췌우집(贅集)』
4.
원오스님이 호구 소륭(虎丘紹隆:1076∼1136) 장주(藏主)에게 말하였다.
"총림을 다스리고 싶어는 하면서도 대중의 마음을 얻는 데 힘쓰지 않는다면 총림이 잘 다
스려지지 못한다. 또한 인심을 얻는 데만 힘쓰고 아랫사람 대접에 소홀하면 인심을 얻지 못
한다. 그렇다고 아랫사람 대접하는 데에만 급급해서 훌륭하고 못난 자를 분별하지 못하면
아랫사람을 제대로 대접할 수 없게 된다. 어질고 못난 사람을 분별하는 데 힘쓰면서, 자기
허물에 대해 언급하는 자는 미워하고 순종하는 자만을 좋아한다면 어질고 못난 자를 분별하
지 못한다. 어질고 지혜로운 인재라야 누가 자기 단점을 헐뜯든지 자기를 따르든지에 관계
없이 오직 도를 따를 뿐이다. 이 때문에 인심을 얻어 총림이 다스려지게 되는 것이다." 『광
록(廣錄)』
5.
주지는 대중의 지혜를 자기 지혜로 삼고 여러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그 실정을 다하지 못하였는가, 일 하나라도 이치에 맞지 않았을까를 항상 염
려하면서 부지런히 노덕(老德)을 방문하고 납자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오로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치에 타당한가만을 살피면 될 뿐, 어찌 일의 규모를 따지겠는가. 이치에 맞다면 소비가
많다 해도 결행해야 하니, 해서 무엇이 손상되겠는가. 또한 잘못된 일이라면 용도가 작다 해
도 물리쳐야 하니 그렇다 해서 무엇이 해롭겠는가.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이 되니 은미한 것은 현저한 것의 싹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은
시초부터 조심하고 성인은 조심하는 마음을 간직한다. 졸졸 흐르는 물을 막지 않으면 끝내
논밭이 바다로 변하고, 작은 불꽃을 끄지 않으면 마침내 큰 들판을 태워버린다. 물줄기와 큰
불이 커져 재앙이 되고 나면 어찌해보고 싶어도 실로 어쩔 수 없다.
옛사람도 "작은 일을 조심하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에 누를 끼친다"라고 하였는데 이런 뜻
으로 한 말씀이다. 『여불지서(與佛智書)』
6.
원오스님이 경원 포대(景元布袋)스님에게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장로라는 직책을 맡아 부처님의 교화를 돕고 선양하려는 자라면 항상 남을 이
롭게 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를 실천하면서도 뽐내는 마음이 없다면 미치는 범위가
넓고 구제되는 대상이 많아진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자기를 뽐내고 능력을 과시하려는 마음
이 있으면 요행을 바라는 생각과 어질지 못한 마음이 생겨난다." 『운문암집(雲門菴集)』
7.
원오스님이 묘희(妙喜:1088∼1163)스님에게 말하였다.
"모든 행동거지에 마무리와 시초를 조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시작에서 잘한 사람은 반드시
마무리도 훌륭하게 하니, 마무리 단계도 시작할 때처럼 조심하면 잘못되는 일이 없다.
옛사람은 `애석하다. 저고리를 만들다 말고 치마를 짓기 시작하니 백 리 길이 구십 리에서
반이 되어버렸구나'라고 하였는데, 이는 시작만 있고 마무리가 없음을 탄식한 말이다. 그러
므로 『시경(詩脛)』에서도 `어디에든 처음이야 다 있지만 마무리까지 잘 해내는 경우는 드
물구나〔靡不有初 鮮克有終〕' 하고 노래했던 것이다.
지난날 회당(晦堂)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황벽 유승(黃璧惟勝)스님도 대단한 납자였으나 단지 만년(晩年)에 잘못되었을 뿐이다. 그
처음만 본다면 훌륭했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문암집(雲門菴集)』
8.
원오스님이 불감 혜근(佛鑑慧懃:1059∼1117)스님에게 말하였다.
"백운 노스님께서는 모든 일에 반드시 옛 법도를 상고하셨는데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
다.
`옛 법도를 상고하지 않은 일을 법답지 못하다고 한다. 나는 옛 성인들의 언행을 많이 배
워 드디어는 그 분들의 뜻〔圍〕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옛것이라 해서 좋아한 것
만은 아니다. 지금 사람들에게서는 본받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스승(오조 법연스님)께서 매양 `노스님은 옛것만 고집할 뿐 시대의 변화를 모른다'고 말씀
하시자, 노스님은 말하였다.
`옛 도를 변질시켜 원칙을 뒤집는 것이 바로 요즈음 사람의 큰 병통이다. 나는 끝내 이런
짓은 안할 작정이다.'" 『섬화상일록(蟾和尙日錄)』
15
납자의 본연은 어디에도 끄달리지 않는 것이다
불감혜근(佛鑑慧懃)스님 / 1059∼1117
1.
불감 혜근스님이 태평사(太平寺)에서 지해사(智海寺)로 옮겨가게 되었다. 군수(郡守)인 증
원례(曾元禮)가 이 말을 듣고 주지 후임으로 누가 마땅할까를 묻자, 불감스님이 수좌 지병
(智昞)스님을 천거하였다. 증공(曾公)이 한 번 뵙고 싶어하자 불감스님이 말하였다.
"지병수좌는 강직한 성격이라 세속에는 생각이 멀어 아무것도 좋아하는 것이 없소. 간청해
도 들어주지 않을까 염려스러운데 스스로 오려 하겠는가?"
증공이 굳이 그를 맞이하려 하자 지병수좌는 "이야말로 자신을 드러내놓고 이름을 팔아 잘
난 체하는 장로라는 것이군" 하고는 끝내 사공산(司空山)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증공이 불감을 되돌아보며 "부모만큼 자식을 아는 사람이 없군요" 하고는 즉시 모든 산에
명령하여 굳이 청하자 마지못해서 명(命)에 응하였다. 『섬시자일록(蟾侍者日錄)』
2.
불감스님이 불등사(佛燈寺) 수순(守:1077∼1134)스님에게 말하였다.
"고상한 인재는 명예와 지위를 영화롭게 여기지 않으며, 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어떠한 곤
란에도 꺾이지 않는다. 한편 은혜를 받으면 자기의 힘을 다 바치고 이익을 보고 정성을 다
하는 것은 모두가 모자란 사람이나 하는 짓들이다." 『일록(日錄)』
3.
불감스님이 수좌 지병스님에게 말하였다.
"큰스님이라 불리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무엇 하나라도 좋아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하나
라도 좋아하는 것이 있게 되면 외물(外物)의 해침을 당한다.
정욕〔嗜欲〕을 좋아하면 탐애심이 생기고, 물욕을 밝히면 분주하게 치닫는 생각이 일어난
다. 또한 순종하기를 좋아하면 아부하며 소인에게 영합하고, 승부를 좋아하면 너다 나다 하
는 대립이 산처럼 높아지며, 각박하게 재물 모으기를 좋아하면 탄식과 원성이 일어난다.
정리해 본다면 모두 한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만법(萬法)이
스스로 끊어진다. 평생 얻은 것 중에 이보다 더 나을 게 없으니 그대는 힘써서 후학을 바로
잡아야 하리라." 『남화석각(南華石刻)』
4.
스승(오조 법연스님)께서는 근검 절약하여 발우(鉢盂)주머니와 신주머니 하나를 백번 천번
이나 꿰맸는데도 차마 버리지 못하셨다. 한번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두 물건이 같이 관문(關門)을 나온 지가 겨우 50여 년밖에 안되었다. 어떻게 도중에 버
리겠는가."
천남(泉南)에 오상좌(悟上座)라는 이가 갈포(褐布)로 만든 좋은 옷을 보내면서 "이것은 바
다 건너에서 나는 물건으로, 겨울에 입으면 따뜻하고 여름에 입으면 시원합니다"라고 말하
였다. 선사(先師)께서는 `내게는 추위에는 땔감과 종이 이불이 있고 무더위에는 솔바람이 있
다. 이를 쌓아두어 어디에 쓰겠는가' 하고는 끝내 물리치셨다. 『일록(日錄)』
5.
스승께서는 진정 극문(眞淨克文:1025∼1102)스님이 입적했다는 소문을 듣고 신위(神位)를
모시고 공양을 준비였다. 그리고는 예법에 지나칠 정도로 슬피 통곡하더니 이렇게 탄식하셨
다.
"참으로 드문 인재였다. 도의 뿌리만을 볼 뿐 지엽은 찾지 않았으니, 애석하다, 이런 사람
이 일찍 죽다니! 그의 도를 계승할 만한 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질 못했으니 강서(江西)의
총림이 이제부터 쓸쓸해지겠구나." 『일록(日錄)』
6.
스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백운(百雲) 노스님은 평소에 마음이 관대하여 막힘이 없었다. 어떤 일이 바른 이치에 합당
한지를 살펴보고 과연 할 만한 것이다 싶으면 뛸듯이 몸소 솔선하였다. 또한 인격과 재능
있는 사람 이끌어주기를 좋아하였으며, 이해타산으로 영합했다 갈라섰다 하는 구차한 짓은
좋아하지 않고, 그저 초연한 마음으로 종일토록 우뚝하게 걸상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언젠가는 응시자(凝侍者)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를 지키며 가난도 편안하게 여기는 것은 납자의 본분이니, 빈부 득실 때문에 지키던 것
에서 변심하는 자와는 도를 논할 수 없다." 『일록(日錄)』
7.
도를 생각치 않으면 마음가짐이 넓지 못하고, 항상 안일하게 처신하면 의지가 굳건하지 못
하다. 그렇기에 옛사람은 갖은 어려움과 험한 일을 격은 뒤에야 진정한 편안함을 누렸다. 이
는 대체로 일이 어려우면 의지가 굳건해지고 각고 끝에 사려가 깊어져, 전화위복하는 힘과
모든 외물의 유혹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납자들이 외물을 쫓느라 도를 망각하거나 깨달음을 등지고 미혹을 몸을 던지는 경우를 많
이 보게 된다. 이런 부류는 자기의 못난 점을 꾸미고 남들이 지혜롭게 여겨주기를 기대하면
서 다른 사람의 모자란 점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남을 업신여기며 잘난 체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다른 사람은 속여도 선지식을 속이지는 못한다는 사실은 모르며, 몇 사람 정도는 가릴
수 있어도 은폐하지 못할 공론(公論)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똑똑하
다 여기는 자는 남에게 어리석게 보이며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은 남이 그를 고상하게 여긴
다.
오직 현명한 자만이 이와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일은 한도 끝도 없지만 사
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 제한된 지혜로써 끝도 없는 일을 빈틈없이 해내자면 생
각은 치우치고 정신은 녹초가 되어 결국은 도 닦는 데 지장을 초래한다.
8.
불감스님이 용아 지재(龍牙智才:1067∼1138)스님에게 말하였다.
"전 사람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한다면 단박에 뜯어 고쳐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도록 사정에 맞게 개혁해야 원한 없기를 바랄 수 있다.
내가 언젠가도 주지하는 데에 세 가지 비결이 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 즉 일을 살피
고, 능력껏 실천하며, 과감하게 결단함이다. 이 세 가지 가운데서 하나만 빠뜨려도 일을 살
피는 것이 분명치 못하여 끝내는 사람들에게 변변치 않다는 평가를 받아 주지의 직책을 잘
해나가지 못하게 된다."
9.
절의 주지를 맡은 자는 청정한 지조와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깊은 믿음으로 사방에서
찾아오는 납자들을 맞이해야 한다. 털끝만큼이라도 비루하고 구차한 일을 자신에게서 떨쳐
버리지 못한다면 드디어는 보통사람들이 얕보게 된다. 그리하여 비록 옛사람과 같은 도덕이
있다 해도 배우는 사람들이 그를 믿지 못하게 된다. 『산당소참(山堂小參)』
10.
불안(佛眼)스님의 제자로서는 유일하게 고암(高菴)스님만이 지공무사(至公無私)하여 보통
수준을 넘어섰다. 사람됨이 무엇이든 제 입맛대로 좋아하는 것이 없고 무슨 일에도 파벌로
사람을 발탁하는 경우가 없었다. 맑고 근엄하며 공순하고 조심스러워 시종 명예와 절개로써
자신을 지켜 옛사람의 풍모가 있었으니, 요즈음에는 그와 비교할 만한 납자가 드물다. 『여
경룡학서(與耿龍學書)』
16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기에게 둔해짐을 경계하다
불안 청원(佛眼淸遠)스님 / 1067∼1120
1.
대중에 임하는 태도는 평상시에도 반드시 정숙해야 하며, 손님과 대화할 때는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 해도 엄숙해야 한다. 수행인이라면 말 한 마디, 모든 움직임에 앞서 충분한 사
려를 거친 뒤에 실천에 옮길 것이지 갑자기 서둘러서는 안된다.
혹 자신이 결단하지 못할 경우에는 나이 든 사람과 선지식을 찾아 자세히 자문을 구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지식을 넓혀 모자란 점을 보완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밝혀야 하니 부질없
이 허세를 부려서야 되겠는가. 오로지 잘난 체만 하면서 그 추한 모습을 드러내다가 만일
일 하나라도 남 앞에서 실수하는 날이면 이제껏 쌓았던 많은 공도 건지지 못하고서 가리워
져 버린다. 『여진목서(與眞牧書)』
2.
사람은 천지 사이에 태어나면서 음양(陰陽)의 기운을 받고 육신을 이룬다. 이러한 우리의
처지는 진실한 방편인 대승의 자비원력으로 세간에 응해 주느라고 출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
에 탐욕을 졸지에 제거하지 못할 듯하다.
생각컨대 성인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아셨으므로 먼저 도로써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아 준
뒤 인의예지(仁義禮智)로 교화하여 탐욕을 막아주셨다. 나아가 일취월장하여 탐욕이 인의예
지를 이기지 못하도록 하여 도덕을 완전하게 해주셨다. 『여경룡학서(與耿龍學書)』
3.
납자라면 언어문자에 막혀서는 안된다. 언어문자는 남을 의지해서 알음알이를 일으키는 것
일 뿐, 스스로 깨닫는 방편을 막아 언어·형상의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난날 달관 담영(達觀曇穎:989∼1060)스님이 처음 석문 온총(石門蘊聰)스님을 뵙고 방안에
서 말로 따지는 데에만 열중하자 온총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논리는 종이쪽 위에 놓여진 글일 뿐, 사실 마음 깨달은 정도로 치자면 아직 깊은
도리를 보진 못하였으니 반드시 오묘한 깨달음을 구해야 한다. 깨닫고 나면 우뚝하게 자립
하여 말〔言句〕에 의지할 것도 막힐 것도 없으니, 이는 마치 사자왕이 포효하면 모든 짐승
들이 놀라는 것과도 같다. 문자공부를 마음공부에 비할 때 열에 하나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용문기문(龍門記聞)』
4.
불안스님이 고암(高菴)스님에게 말하였다.
"백장(百丈)스님의 청규(淸規)는 바른 길을 내세워 삿됨을 단속하고 대중을 법도 있게 이끌
어 시대 상황에 맞게 후인의 마음〔情〕을 다스린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물과 같아 법도와 예의로 제방(堤防)을 삼아야 한다. 제방이 튼튼하지 않
으면 반드시 한꺼번에 터지게 되듯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제멋대로 날뛰게 된다. 그러므
로 망정(妄情)과 사악함을 제거하고 막는 데는 한시라도 법도가 없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예의법도가 어찌 망령된 마음을 방지하는 데에서만 그치겠는가. 입도(入道)를 돕
는 계단이기도 하다. 법도가 서면 해와 달처럼 밝아 이를 보는 사람이 어둡지 않고 큰 길처
럼 툭 트여 다니는 사람이 길을 잃지 않는다. 옛 성인께서 세우신 법도는 다르나 근원으로
돌아가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런데 요즘 총림에서는 힘써 법도에 지배를 받는 자도 있고, 죽자고 그것만을 붙들고 있
는 자도 있으며, 혹은 멸시하는 자도 있다. 이들은 모조리 도덕과 예의를 등지고 망령된 마
음과 악을 따르기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옛 성인께서 법도를 세우신 뜻이 말법시대의 폐단을 구제하고 망령된 마음과 기욕(嗜欲)의
단서를 막으며, 사벽(邪僻)한 길을 끊어버리겠다는 데에 있었으니, 어쩌자고 한번도 이점을
생각치 않는가." 『동호집(東湖集)』
5.
불안스님이 고암스님에게 말하였다.
"털끝까지 보아내는 자도 자기 눈썹은 보지 못하며, 천 근을 드는 자라도 제 몸은 들지 못
한다. 이는 마치 수행자가 다른 사람 책망하는 데는 밝으면서도 자기를 용서하는 잘못에는
어두운 것과 조금도 차이가 없다." 『진목집(眞牧集)』
17
늙고 병든 스님을 뒷바라지 하다
고암 선오(高庵善悟)스님 / 1074∼1132
1.
내가 과거 조산(祖山)에 노닐다가 불감스님이 소참(小參)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
었다.
"탐욕과 성내는 허물은 원수나 도적과도 같으니, 반드시 지혜로써 대적해야 한다. 지혜는
물과 같아서 쓰지 않으면 막히고, 막히면 흐르지 않으며, 흐르지 않으면 지혜가 쓰일 수 없
다. 이렇게 되고 나면 그 탐욕과 성냄을 어찌 하겠는가."
나는 그때 나이가 어렸으나 마음 속으로 그분이 선지식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드디어는
이를 염두에 두었다.
2.
납자가 마음가짐이 바르다면 백번 꺾인다 해도 호연(浩然)히 근심 없으리라. 그러나 방향이
치우치고 삿되어 조석으로 좀스럽게 이끗만을 헤아린다면 이런 사람은 천지 사이에 멀쩡한
몸을 둘 곳이 없을까 내 염려스럽다. 『진목집(眞牧集)』
3.
도덕과 인의는 유독 옛사람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요즈음에도 있다. 단 지식이 분명하
지 못하거나 학문이 넓지 못하며, 근기는 청정하지 못하고 의지는 좁고도 낮은 데다가 힘써
수행하지 않기 때문에 드디어는 성색(聲色)에 끌려가도록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대체로 망상(妄想)과 정념(情念)으로 익힌 것이 두텁게 쌓여 단번에 제거하지 못한
탓으로 옛사람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경룡학서(與耿龍學書)』
4.
고암스님은 법성 고목(法成奇木:1071∼1128)스님이 금산(金山)에 살면서 사치스럽게 낭비한
다는 소문을 듣고 길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불법에서는 청정과 근검을 귀하게 여기니 이래서야 되겠는가. 이제껏 살찐 말과 날아갈
듯한 옷에 익숙해 온 후학들에게 지칠줄 모르는 탐심만 더해줄 뿐이니, 옛분들께 부끄럽지
도 않는가."
5.
주지의 대체는 총림을 한 가문으로 생각하고 부서를 적절히 나누어 해낼 만한 적임자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다.
주지되는 이의 행동 하나에 안위(安危)의 이치가 달려 있고, 그의 잘잘못은 교화의 근원에
관계되니 남의 모범되기가 어찌 쉽겠는가. 주지가 해이하고 방종하면서도 납자를 복종시켰
다거나 법도가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총림의 무질서를 막았던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
옛날 육왕 개심(育王介:1080∼1148)스님이 수좌를 보내고 앙산 행위(仰山行偉:1018∼1080)
스님은 그를 시중하는 스님으로 깎아내린 일들이 전적에 실려 있어 훌륭한 모범이 되기에
충분하다.
요즈음에는 각각 사욕을 따르느라 백장스님의 법규를 크게 무너뜨려 일찍 일어기를 게을리
하고 예불과 법회를 빼먹는 경우가 많다. 혹은 멋대로 탐욕을 부리면서도 거리낌이 없고, 또
는 물욕 때문에 시끄럽게 싸우기도 하며 심지어는 편벽하고 추악한 일에 있어서도 못할 짓
이 없게 되었다.
아 - 아, 불교의 큰 가르침이 성대하게 일어나기를 바랄래야 바랄 수 있겠는가. 『용창집
(龍昌集)』
6.
고암스님이 운거사(雲居寺)에 머물면서 선방에서 깨달음의 계기를 만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는 납자를 볼 때마다 그들의 소매를 잡고 정색을 하며 꾸짖었다.
"부모는 그대의 몸을 길러주었고, 스승과 도반은 그대가 지향하는 목적을 이루어주었다. 배
고픔과 추위의 절박함도 없고 징병을 나가야 하는 수고도 없다. 이러고서도 확고하게 정진
하여 도업(道業)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뒷날 무슨 면목으로 부모와 스승, 도반을 보겠느냐."
납자 가운데서는 스님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으니, 호령이 이토록 엄격하였
다.
7.
고암스님이 운거사에 살 때, 납자가 병들어 연수당(延困堂)으로 옮겨졌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자기탓이라도 되는 듯 슬피 탄식하였다. 그리고는 조석으로 병문안을 하고 몸소 약을
달이기까지 하였으며, 자기가 먼저 맛을 보고 나서 음식을 건네주기까지 하였다.
혹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그들의 등을 두드리며 "옷은 홑겹이 아니냐" 하고, 무더위에는
그들의 안색을 살피며 "너무 덥지는 않느냐" 하고 위로하였다. 불행히도 천명이 다하여 어
쩌지 못할 경우, 그의 경제적 여건에 관계없이 상주물(常住物)을 내어서라도 극진한 예의로
보내주었다. 일을 맡은 사람이 혹 그것을 가지고 이러니 저러니 하면 스님은 이렇게 꾸짖었
다.
"옛날 백장스님은 늙고 병든 자를 위해서 상주물을 세우셨다. 그대는 병들지도 죽지도 않
을 수 있는가."
사방의 식자(識者)들은 스님의 사람됨을 고상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운거사에서 물러나 천
태산(天台山)을 지나는데 따르는 납자가 50여 명이나 되었고, 그 가운데 같이 가지 못하는
자는 울면서 이별하였다. 스님은 이토록 덕으로 대중을 감동시켰던 것이다. 『산당소참(山堂
小參)』
8.
고암스님이 운거산에서 물러나자 원오(圓悟)스님이 불인 요원(佛印了元:1032∼1098)스님이
살던 와룡암(臥龍菴)을 수리하여 편안히 쉴 처소로 만들려 하였다. 그러자 고암스님이 말하
였다.
"수행자가 도를 닦는 즐거움이 있다면 육신 따위는 도외시해도 된다. 내 나이 칠십이라 마
치 새벽별이나 그믐달과도 같으니,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초막이 있는 서산(西
山) 언덕은 숲과 샘물이 죽 이어져 있어 모두가 내가 편안히 늙은 곳이다. 무엇 때문에 기
어코 자기 소유로 하고 나서야 만족하겠는가."
오래지 않아 지팡이를 끌고 천태산을 방문하더니 그 뒤 화정봉(華頂峯)에서 입적하셨다.
『진목집(眞牧集)』
9.
납자에게는 잘나고 못나고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선지식이 자세하게 그의 인격을 존중
해 주고 두루 시험하여 도량과 재주를 발현시켜 주는 데 있다. 또한 드러내주고 권장하여
그의 말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사랑하여 그의 지조를 완전하게 해 주는 데 있을 뿐이니, 이
렇게 하여 세월이 오래 되면 명성과 실제가 함께 풍성해지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가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 부지런히 깨우쳐 이끌어주면 된다. 이는 마치 옥
돌을 그대로 두면 돌덩어리지만 잘 다듬으면 보배가 되며, 물의 근원〔發源〕을 막아버리면
웅덩이지만 틔워 흐르게 해주면 큰 시내가 되는 것과도 같다.
상법·말법시대에는 훌륭한 사람을 빠뜨리고 채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길러내고 권장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법시대에서는 어리석다고 버려질
재목이라 해도 총림이 한창 성할 때 가서는 지혜로와질 수 있다. 이런 뜻에서 "사람은 모두
가 마음을 지녔으므로 부지런히 깨우쳐 이끌어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납자의 재능은 시기와 함께 오르고 내린다는 점이다. 좋아해 주면
다가오고, 권장하면 높아지며, 억누르면 시들고, 배척하면 끊어진다. 이것이 납자의 도덕과
재능이 꺼졌다 불어났다 하는 연유이다. 『여이도운서(與李都運書)』
10.
교화를 크게 펴는 데는 도덕과 예의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다. 주지되는 사람이 도덕을 존
중하면 납자들이 높이 공경하고, 예의를 행하면 배우는 사람이 탐하고 경쟁하는 것을 수치
로 여긴다. 주지에게 체모를 잃을 만한 태만이 보이면 납자에게 능멸과 포학한 폐단이 생기
며, 주지에게 얼굴빛을 바꾸는 분쟁이 있으면 배우는 사람에겐 공격하며 투쟁하는 재앙이
있게 된다.
옛 성인께서는 미연에 아시고 드디어는 현명한 인재를 가려내어 총림을 주관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보며 깨우치지 않아도 교화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석두(石頭:700∼791)·마조(馬祖:709∼788)스님의 도풍이 성행할 때 영걸스러운 인재가 나왔
다. 그들의 태도는 부드럽고 아름다왔으며 온화하고도 자연스러워 모든 언행이 후세의 모범
이 될 만하였던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사심서(與死心書)』
11.
지난날 스승(불안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행각하러 관문을 나서서 갔던 작은 절들에서는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법안(法眼)스님이 지장암(地藏菴) 규침(珪)스
님을 참례하고, 명교(明敎)스님이 신정(神鼎)스님을 배알했던 일을 생각해 보았더니 번뇌가
사라지더라" 하셨다. 『기문(記聞)』
12.
고암스님은 마음과 행동이 단정하고 강직하며 기상과 도량이 늠름하여 한시라도 예법을 잃
지 않았다. 대중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여러번 침해를 받았으나 전혀 개의(介意)치 않고 종
신토록 간소하게 처신하였다. 대중방에서는 아무것이나 함부로 허락하지 않았으며, 조금이라
도 서로 맞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정색을 하고 곧은 말로 다스렸으므로 납자들이 모두
믿고 복종하였다.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도 닦는 일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다. 단 평소에 하는 일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을 뿐이다."
13.
고암스님이 운거사에 머물면서 어떤 납자가 감춰진 남의 잘못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부
드러운 말씨로 그를 깨우쳐 주었다.
"무슨 일이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수행인이라면 도를 닦는 것이 급선무이며 화합하는
것이 곧 자기를 닦는 일이다. 구차하게 애증의 감정을 멋대로 부려 다른 사람 행동거지나
헐뜯어서야 되겠는가."
스님의 자상함이 이 정도였다.
스님께서 과거에 운거사 주지를 맡아 달라는 명을 거절하자, 불안(佛眼)스님이 편지를 보내
이렇게 권하였다.
"운거사는 양자강 왼쪽 지방에서 으뜸입니다. 대중을 편안하게 하고 도를 실천할 만하므로
굳이 사양해선 안되리라 봅니다."
스님이 답하였다.
"총림이 생겨나고부터 이러한 명목(名目)에 가리워 절개와 의리를 무너뜨린 납자들이 적지
않았읍니다."
불감(佛鑑)이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고암의 처신은 납자들이 따라갈 수 없겠군." 『기문(記聞)』
14.
고암스님이 늙고 병든 스님을 위안하자고 권하는 글을 하나 지었다.
"변변찮은 내가 일찌기 대장경을 찾아보고 부처님의 의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비구가
가만히 앉아서 공밥을 받고 게으른 마음을 내며 `나는 존경받아 마땅한 비구입네' 하는 아
견(我見) 일으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새벽마다 부처님은 제자와 함께 발우를
지니고 걸식하셨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높다 낮다 하는 마음이 없어 신자들에게 모두 고르
게 복을 받게 하셨다.
그 뒤 마련된 상주물(常住物)이라는 것은 본래 늙고 병들어 걸식을 나가지 못하는 비구를
위해서 만든 것으로서 젊고 한창인 납자들은 먹을 수 없었다. 부처님이 입멸(入滅)하신 후
정법(正法)시대까지만 해도 그대로 실천되었으며, 상법(像法)·말법(末法)시대 뒤로 중국의
선림(禪林)에서도 걸식하는 제도를 폐지하지 않았다. 단 유능한 사람을 추천하여 걸식을 하
게 하였으며, 얻은 시주물은 상주물로 모아 두었다가 많은 대중들을 편안하게 하였고, 드디
어는 이것이 매일같이 걸식을 행하는 법규가 되었다.
요즈음 소문을 들으니 여러 사찰의 주지들이 인과(因果)를 무시하고 늙은 스님들을 편안하
게 모시지 않는다 하니, 이는 부처님의 본뜻을 어기고 불교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실로
절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그 스님들은 어디로 가야 하겠는가. 상주물이 본래 누구를 위하여
마련된 것인가를 돌이켜 생각치 않는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부처님 마음에 맞겠으며, 어떤
일을 추진해야 부처님의 행동에 맞겠는가?
옛날 부처님께서 생존해 계실 때, 혹 공양청(供養請)에 가시지 못하고 정사(精舍)에 머무실
경우, 승방(僧房)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늙고 병든 비구들을 보살피셨다. 낱낱이 위문하고 낱
낱이 준비물을 배치하였으며, 나아가 모든 비구들을 빠짐없이 공경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들이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도록 도와줄 것을 당부하셨으니 이것이 부처님〔調榮
師〕께서 대중들에게 보이신 솔선수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의 입과 몸을 위해 상주물을 멋대로 쓰고 권세 있고 귀한 사람과 결탁
하여 늙고 병든 자는 끊어버린다. 대중의 물건을 자기 소유로 덮어버리고, 부처님 마음과 부
처님 행동은 까맣게 하나도 없으니 슬프고 슬프다.
고덕(古德)은 `노스님은 산문의 표상〔標榜〕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요즈음 선림(禪林)에
백에 하나도 노스님이 안 계신 이유는 늙으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더욱 알
수 있는 것은 오래 사는 것이 이로울 게 없으며 도리어 일찍 죽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원컨대 우리 시대에서는 각각 부처님 말씀을 따르고 조사의 뜻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늙고 병든 스님은 편안하게 위로하며 상주물의 양에 따라 적절하게 공급하였으면
한다. 이리하여 우매한 사람이 권세를 멋대로 휘둘러 짧고 박복한 내세를 초래하지 않았으
면 한다. 간절히 더욱 살펴주기 바라노라."
15.
각범(覺範:1071∼1128)스님이 영원(靈源)스님의 문방(門榜)에 이런 글을 달았다.
영원스님은 애초에 세상에 나가는 것을 원치 않고 자신을 매우 꿋꿋이 지켰다. 장무진(張
無盡:1043∼1121)거사가 강서(江西)지방에 부임하여 여러번 스님을 불렀으나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자 돌연히 뜻을 바꿔 이렇게 말하였다.
"선림은 갈수록 시들어가는데 법을 널리 펴야 할 자들은 대부분 부처를 팔아 자신의 안일
만 추구하고 있으니, 급히 떠받쳐 주지 않는다면 당장 무너지고 말 것이다."
이리하여 회상(淮上)의 태평사(太平寺)에서 법을 열었다. 나는 그때 동쪽으로 가다가 스님
의 문하에 오르게 되었는데, 총림은 정돈되고 종풍(宗風)은 크게 떨쳐 백장(百丈)스님이 건
재할 때 못지 않을 정도였다.
그뒤 15년이 지나 이 방(榜)을 봉원(逢原)에서 보게 되었는데, 읽어내려 가면서 마치 그의
모습〔道骨〕을 보는 듯 오싹하였다.
이 글은 스님 황산곡(黃山谷)이 전서체(書體)로 일필휘지하였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격문(激文)이 있다.
"아 - 아, 천하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편다 하는 자들이 모두가 영원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주지를 한다면 조사의 도가 널리 펴지지 못할까 무얼 근심하겠는가. 『논어(論語)』에
서도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크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영원스님
이야말로 이렇게 한 분이다." 『석문집(石門集)』
18
사대부에 아첨하여 불도를 손상시킴을 경계하다
귀운여본(歸雲如本)스님
귀운 여본(歸雲如本)스님의 『변영편(辯 篇)』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나라 정국공(鄭國公) 부필(富弼)은 투자 수옹(投子修)스님에게 도를 물었는데, 그 때 오
갔던 편지와 게송은 14장이나 되었으며, 대(台)땅의 홍복사(鴻福寺) 두 회랑 벽 사이에 비를
세웠다. 이로써 선배들이 근엄하게 법을 주관했다는 것과 왕공귀인들이 독실하게 도를 믿었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국공이 사직(社稷)의 중신(重臣)으로서 만년에 방향을 제대로 찾았던 것은 투자 수옹스
님에게 반드시 남다른 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자신도 "투자 수옹스님에게서 자극받은
바가 있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사대부 가운데서 불교를 진실하게 믿는 이는 나이도 잊고 세도도 굽히면서 용맹정진하여
완전하게 반드시 깨닫기를 기약하고야 말았다. 시랑(侍郞) 양대년(楊大年)과 도위(都尉) 이
화문(李和文) 등이 광혜원 원연(廣慧院 元璉)·석문 온총(石門 蘊聰)과 자명(慈明) 등 모든
큰스님들을 뵈었을 때, 뜨겁게 오갔던 문답들이 여기저기 모든 선서(禪書)에 분명히 기록되
어 있다.
양무위(楊無爲)와 백운 수단(百雲守端)스님의 관계, 장무진(張無盡)과 도솔 종열(兜率從悅)
스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모두가 관문을 통과하고 정곡을 쳐서 철저하게 끝까지 깨달았는
데, 구차하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근세에 시랑(侍郞) 장무구(張無垢)와 참정(參政) 이한노(李漢老)·학사(學君) 여거인(呂居
仁)은 모두가 묘희(妙喜) 노장을 뵙고 점점 진보하여 결국 선의 심오한 경지를 체득했으니,
이들은 속세를 초탈한 도반이라 할 만하다. 그들은 좋고 싫은 감정과 맞고 거슬리는 경계를
번개처럼 뿌리치고 우뢰처럼 쓸어버려 세속의 구차함과 거리낌을 벗어버렸다. 그리하여 보
는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황송한 마음으로 길을 비켜서며 그 경지를 엿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군자(君君子)들은 한가하고 적막한 강가에서 서로를 구하고 선(禪)의 고요한 경지
에 마음을 깃들이고자 하면서 본심만을 캘 뿐이었다.
후세엔 선덕(先德)들의 법다운 모범은 보지 못하고, 오로지 아첨을 일삼으며 승진하여 이름
날릴 것만을 비뚤어지게 구하고 있다. 주지가 추천한 이름으로 장로가 된 자들은 더러는 명
함을 써서 모 문중의 승려 아무개라 자칭하며 웃사람들을 받듬으로써 배경을 삼고 대중의
상주물을 빼돌려 뇌물로 바치면서 아첨하기도 한다. 식견 있는 자들이 그것을 딱하게 여기
고 비웃는데도 수치를 모르고 그저 편안할 뿐이다.
아 - 아, 우리 불제자 사문들은 물병 하나, 발우 하나로 구름처럼 새처럼 떠돌아도 얼거나
굶주리는 절박한 상황은 없다. 그런데도 자녀와 옥백(玉帛)을 그리워하여 허리를 굽히고 빗
자루질을 한다. 웃사람에게 아첨하고자 설설 기며 몸도 제대로 못피니 욕됨과 천함을 자초
하는 상황이다.
은혜의 곳간〔恩府〕이라 칭하는 배경은, 자기 한 몸의 욕심에서 나왔으므로 기댈 곳이 못
된다. 터무니없고 째째한 사람 하나가 앞에서 부르짖으면 백이나 되는 똑같은 무리들이 그
뒤에서 화답하며 다투어 그를 받들려 하니, 실로 비루하고 좀스러울 뿐이다.
교풍(敎風)을 깎아내고 약화시키는 것으로는 아첨하는 사람보다 심한 것은 없다. 실로 간사
한 이가 교묘하게 살금살금 속여 들어가면 단정하고 올바른 사람이라 해도 몸은 불의에 빠
지고 마음은 구제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가게 되니 슬프지 않은가. 법을 파괴하는 비구는 마
구니의 기운이 모여 있으므로 미친 속임수를 쓰면서도 태연자약하다. 속임수로 선지식의 자
태를 나타내고 선림의 큰스님 이름을 대면서 그의 법을 이었다 하며 요직에 있는 귀인에게
아첨하여 그를 종속(宗屬)이라 한다.
바라지도 않는 공경을 바쳐가면서 불법을 무너뜨리는 단서를 터주고 속인을 법상에 오르게
하여 승려로서 그 아랫사람들에게 절을 하니, 성인의 법도를 왜곡시키고 종풍(宗風)을 매우
욕되게 하고 있다.
우리 불도가 쇠퇴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 - 아 슬프다. 하늘도 귀신도 모두 벌을
주리니, 만번 죽어도 속죄되지 않을 사람은 아첨하는 자가 아니겠는가.
명교 계숭(明敎契嵩)스님의 『원교론(原敎論)』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의 고승들은 천자를 배알해도 신하 노릇을 하지 않고 미리 조서(詔書)를 지어 공(公)
이니 사(師)니 하고 칭하였다.
제(齊)나라 종산(鍾山) 승원(僧遠:414∼484)스님은 고조(高祖)의 수레가 산문에 이르렀으나
법상에 앉은 채 맞이하지 않았으며, 호계(虎谿)의 혜원(惠遠:334∼416)스님은 천자가 심양(¡
湯)까지 당도하여 조서를 내렸으나 산문을 나가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당세에서는 그분의
사람됨을 대우하고 그분의 덕을 받들었다. 이 때문에 성인의 도가 진작되었던 것이다.
후세에 고승을 흠모하는 자들은 경대부(卿大夫)와 사귀면서도 낮은 사람만큼도 예의를 차
릴 줄 모르며, 자기 처신은 제멋대로인 용렬한 사람만도 못하다. 더구나 승원스님이 천자를
뵌 일이나 태연자약했던 혜원스님과 비교가 되겠는가. 그러면서도 우리 불도가 흥성하고 납
자들이 수행 잘하기를 바란들 될 수 있겠는가. 가르침은 보존하려 하면서 적임자를 구하지
않으면 가르침이 존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생각하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순희(淳熙) 정유(丁酉:1177)년에 크신 은혜를 하직하고 평전서산(平田西山)의 조그마한 마
을에 붙어 살게 되었는데, 매일 가까이서 보고 듣는 일이 대부분 교만과 속임수여서 옛날의
교풍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내 말이 먹혀들어갈 리도 없으므로 몇자 적어 그
런대로 자신을 경책할 뿐이다. 『총림성사(叢林盛事)』
19
『변영편』에 발문(跋文)을 붙이다
원극 언잠(圓極彦岺)스님
원극 언잠(圓極彦岺)스님의 발문(跋文)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부처님 가신 지가 멀고 바른 종지는 얇아져서 경박한 풍조가 팽배한 마당에, 선배들은 시
들어 가고 후학들은 지성이 없어 총림의 법도는 거의 전몰지경이 되었다. 비록 구제해 보겠
다고 나서는 자가 있다 해도 도리어 문중에서 덜 떨어진 놈이라는 소리나 들을 뿐이다.
지금 소산 여본(疏山如本)스님의 『변영편(辯¿篇)』을 관찰해 보았더니 말과 뜻이 폭 넓
고 매우 절실하고도 분명하여 그 병통을 완전히 바로잡을 만하였다. 다만 용렬하고 허망한
무리들은 어둡고 짧은 지식으로 삿된 세계에 마음이 빠져 있으니, 필연적으로 제호(醍¿)를
독약으로 여길 뿐이다."
20
상주물을 사사로이 씀을 경계하다
동산 혜공(東山慧空)스님 / 1096∼1158
동산 혜공(東山慧空:1096∼1158)스님이 여재무(余才茂)가 인부(짐꾼)를 빌어달라는 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장하였다.
"지난날 외람되게도 보살펴 주신 은혜를 받고 헤어진 뒤, 또 은혜로운 편지를 받드니 더욱
자신의 부끄러움을 느낄 뿐입니다. 저는 본래 바윗골 사이에 사는 사람이라 세상사에는 무
심합니다. 이는 재무(才茂)께서도 아시리라 여겨집니다. 지금은 장로가 되어 방장실(方丈室)
에 거처하기는 하나 여전히 `수좌 혜공'일 뿐입니다.
사중살림은 한결같이 소임자에게 맡겨버리고 수입·지출의 장부도 모두 눈에 스치지를 않
습니다. 의발(衣鉢)을 쌓아두지도 않고 상주물을 사용하지도 않으며, 외부의 초청에도 가지
않고 남의 도움을 청하지도 않습니다. 인연따라 안주할 뿐 애초에 다음날의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도 않습니다.
재무께서는 예로부터 도가 높다는 칭송을 받아왔읍니다. 그러므로 도에서 서로를 잊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편지에서는 인부 몇을 찾으시는데, 이 인부가 상주물에서 나오는지
이 혜공에게서 나오는지를 모르겠읍니다. 저에게서 나온다면 제게 무엇이 있겠으며 상주물
에서 나온다면 그것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됩니다. 일단 사사로운 데 빠지고 나면 도
적이 되고 마니 어떻게 선지식으로서 상주물을 도용할 수 있겠읍니까. 공께서는 관직에 몸
담으셨으니 좋은 일을 하셔야지 사중에서 이러한 일을 계획하시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또한 공께서는 민()지방 사람이라 아는 사람들도 모두 민지방의 장로들입니다. 한번 절에
욕심을 두게 되면 상주물을 다 훔쳐 자기가 차지하고 말 것입니다. 혹 그것으로 귀인과 우
호를 맺거나 속가에 공급하거나 아는 사람을 대접하고 모신다면 그것이 사중의 스님네들이
쓰는 공용물〔十方常住 招提僧物〕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처사입니다. 요즈음
뿔을 달고 털을 뒤집어 쓴 채, 전생의 빚을 갚는 축생들 중에 이런 사람의 경우가 많습니다.
이점을 옛날에 부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두려워하지 않아서야 되겠읍니까.
근래에 절집이 잔폐되고 승도가 쓸쓸한 것은 모두가 이런 탓입니다. 공께서는 우리를 이런
무리로 만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공이 결과적으로 신임을 받아 다른 사찰에서 허락 받았
던 것도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으신다면 공의 앞날은 헤아릴 수 없는 영광이 있을 것입니
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어떻게 여기실는지 모르겠군요. 차가운 계절인데 가는 길에 몸조심하
소서." 『어록(語錄)』
21
혜공스님의 답서를 평하다
절옹 여담(浙翁如)스님 / 1151∼1225
이 글은 실로 염라대왕 대궐 앞에서 사죄받을 수 있는 한 통의 비방이다. 그러나 요즈음
제방의 스님들이 모르는 것을 어찌하랴. 과연 이 글을 수긍하여 명심할 수 있다면 언젠가
크게 덕을 볼 날이 있으리라. 그래서 나는 늘 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곤 한다.
"찬은산(隱山=州 淨衆山 佛眞 了禪師)스님도 말하기를 "상주물인 돈과 곡식은 대중공양을
제외하고는 거의 쥐약과 같다" 하였다. 주지나 수입·지출을 맡은 자로서 일단 여기에 빠져
들었다 하면 온몸이 썩어 문드러지리니, 이는 율부(律部)에 자세히 실려 있다.
또한 옛 분〔오조스님〕은 돈을 가지고 창고에 가 생강을 사 가지고 돌아와서야 약을 달였
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지금 방장(方丈) 자리에 앉아 있는 자들은 대중의 발우에 담길 물
건을 깎아서 자기의 속을 멋대로 채울 뿐 아니라, 자기만을 떠받든다 해서 그것이 인심을
들뜨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긴다. 또 이보다 심한 경우는 값진 것을 팔아 널리 인심을 얻
고 큰 절로 승진하기를 바라기까지 하니 뒷날 추상같은 염라대왕이 계산해 줄 값이 두려울
뿐이다." 『염애온록(溫錄)』
22
출가한 뜻을 저버리지 않다
설당 도행(雪堂道行)스님 / 750∼852
1.
설당 도행(雪堂道行:750∼852)스님이 천복사(薦福寺)에 머물 때 하루는 잠시 들른 납자에
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복주(福州)에서 왔읍니다."
"오던 길에 훌륭한 큰스님을 뵈었는가?"
"요전에 신주(信州) 박산(博山)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곳에 오본(悟本)스님이란 분이 계셨읍
니다. 그분께는 아직 절을 올리지는 않았으나 훌륭하신 큰스님임을 알 수 있었읍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
"절로 들어가는 길이 확 트였고, 회랑은 정연하게 닦여 있었으며, 법당에 향과 등불이 끊어
지지 않았읍니다. 또한 아침저녁으로 종과 북소리가 분명하였으며, 두 때의 죽과 밥은 정결
하였고, 스님들이 가다가 사람을 보면 합장을 하였읍니다. 그래서 그분이 훌륭한 스님이라는
것을 알았읍니다."
설당스님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오본스님은 본래 훌륭하다. 그러나 그대도 안목을 갖추었다."
바로 이 사실을 군수 오부붕(吳傳朋)에게 전달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스님의 이야기가 범연령(范延齡)이 장희안(張希顔)을 추천한 일과 매우 비슷하고, 각하
의 훌륭함도 장충정공(張忠定公)보다 덜하지 않습니다. 노승은 너무 늙었으니 스님을 주지로
청한다면 문중의 영광이겠읍니다."
오공(吳公)은 매우 기뻐하였고, 오본스님은 그 날로 천복사로 옮겨왔다. 『동호집(東湖
集)』
2.
천리나 되는 튼튼한 둑도 개미떼에게 무너지고, 아름다운 흰구슬도 흠 때문에 쪼개진다. 하
물며 위 없는 오묘한 도를 둑이나 옥 따위에 비하며, 탐욕과 성내는 마음을 개미의 파괴나
옥의 흠집 정도에 비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뜻을 확고부동하게 세우고 정밀하게 닦아 나아가며 굳게 지켜 완벽하고 훌륭
하게 수행(修行)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자신을 이롭게 하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할 수 있다. 『여왕십붕서(與王十朋書)』
3.
내가 용문사(龍門寺)에 있을 때, 병철면(昺鐵面)스님은 태평사(太平寺)에 머물고 있었다. 어
떤 이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병철면스님이 고향을 떠나 행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부하던 어느 날 밤에 책을 불에
놓쳐 모조리 타버렸다. 그러자 책을 주웠다가 땅에다 내던지면서 `부질없이 사람의 마음만
어질럽힐 뿐이군!' 하였다." 『동호집(東湖集)』
4.
설당스님이 회암 혜광(晦庵惠光)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20살 쯤에 독거사(獨居君)를 뵙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에 줏대가 없으면 자립하지 못하고, 행동이 바르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한 이 말을 평생 실천한다면 성현의 일이 완성되리라."
나는 그 말씀을 간직한 채, 집에 있을 때는 자신을 닦고 출가해서는 도를 배워 드디어는
나 자신을 통솔하고 대중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저울이 무게를 달고 곱자와
콤파스가 원과 사각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아서 버리면 일마다 법칙을 잃게 된다. 『광록(廣
錄)』
5.
고암(高庵)스님이 대중에 임하면 반드시 "대중 가운데서 지견있는 사람을 꼭 알아야 한다"
라고 말하곤 하였다. 내가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말하였다.
" `행동거지는 뛰어난 무리들을 바라보아야지, 헛되이 용렬한 이들을 좇아가서는 안된다'고
하신 위산(山)스님의 말씀도 못들어 보았는가. 평소 대중과 섞여 살면서도 어리석은 무리에
떨어지지 않았던 자들은 모두 이 말을 했었다. 빽빽한 사람 중에 비루한 자는 많고 식견 있
는 자는 드문데, 전자에는 익숙해지기 쉽고 후자와는 친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결단코 누군가가 분발해 낼 수 있다면, 그 힘은 일당백(一當百)쯤 되어서 용렬한 습기가 다
하여 참으로 훤출하게 격식을 벗어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평생 그 말씀을 실천하고서야 비로소 출가했던 뜻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광
록(廣錄)』
6.
설당스님이 차암수인(且庵守仁 : ?∼1183))스님에게 말하였다.
"일을 맡으면 반드시 중요한 정도를 재보고, 말을 꺼내려면 우선 깊이 생각하여 중도(中道)
에 맞도록 힘써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가령 성급하게 일을 해나가면 완성하는 경우가 드물
며, 설사 해냈다 해도 끝내 만전을 기하지는 못한다. 나는 대중 가운데 살면서 이익과 병통
을 골고루 보아왔는데, 오직 덕이 있는 사람만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중을 감화시킬 수 있
었다. 그들은 항상 뜻과 재능이 있는 후배들이 살펴 실천하기를 서원하여 바야흐로 커다란
이익이 되어 주었다."
영원(靈源)스님도 일찌기 이렇게 말하였다.
"범인(凡人)은 평소에는 안으로 관조하여 깨우치는 경우는 많아도, 일에 부딪치면 바깥으로
마음이 치달려서 훌륭한 법체(法體)를 잃는다. 반드시 불조를 잇겠다는 책임을 생각하여 후
배를 인도하려 한다면 항상 자신부터 단속해야 한다." 『광록(廣錄)』
7.
응암 담화(應庵曇華:1103∼1163)스님이 명과사(明果寺)에 머물자 설당스님이 매일같이 그를
찾아가 만났다. 이 일을 가지고 더러 이렇쿵저렇쿵하는 자가 있자, 설당스님이 말하였다.
"조카 응암은 사람됨이 이익을 좋아하거나 명예를 가까이 하지 않고 먼저는 칭찬했다가 뒤
에 가서 비방하지도 않으며, 아부하는 모습으로 구차하게 영합하거나 교묘한 말을 할 줄도
모른다. 더우기 명백하게 도를 보아서 머물고 떠남에 자재하니, 납자들 가운데서도 만나보기
어려운 사람이므로 내가 굳이 그를 소중하게 여긴다." 『차암일사(且庵逸事)』
8.
배우는 사람의 혈기(血氣)가 심지(心圍)를 이기면 소인이 되고, 심지가 혈기를 이기면 단정
한 사람이 된다. 올바른 인재는 혈기와 심지가 가지런하여 도를 체득한 현성(賢聖)이 된다.
어떤 사람이 억세고 괴퍅하여 곧은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함은 혈기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며, 단정한 인재가 착하지 못한 일을 강요당했을 때 차라리 죽을지언정 마음을 바꾸지 않는
것은 심지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광록(廣錄)』
9.
고암스님이 운거사(雲居寺)에 머물 때 보운 자원(普雲自圓)스님이 수좌(首座)가 되었고, 재
목감이 될 만한 어떤 스님이 서기(書記), 백양 법순(白楊法順 : 1076∼1139)스님이 장주(藏
主), 법통 오두(法通烏頭)스님이 지객(知客), 정현 진목(正賢眞牧 : 1084∼1159)스님이 유
나(維那), 조카 담화(曇華)스님이 부사(副寺), 조카 덕용(德用)스님이 감사(監寺)로 있
었는데, 모두가 덕업이 있는 자들이었다.
조카 덕용스님은 평소에 청렴하고 검약하여 상주물(常住物)인 기름으로 불을 켜지 않자, 조
카 담화스님이 그것을 희롱하였다.
"훗날 큰스님이 되려면 모름지기 시초부터 대범해야 합니다. 이렇게 째째해 가지고서야 되
겠읍니까?"
이에 덕용스님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덕용스님은 자기 처신에는 검소하였으나, 다른 사람
에게는 매우 넉넉하게 베풀었으며, 사방에서 오는 사람을 대접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조금도 권태로운 기색이 없었다. 고암스님이 하루는 그를 보고 말하였다.
"그대의 마음씀은 실로 보기 드물다 하겠으나 그래도 상주물을 살피고 관리하여 소홀하게
낭비함이 없도록 하라."
덕용스님은 이렇게 대꾸하였다.
"제가 물건을 낭비하는 것쯤이야 작은 허물이 됩니다만, 스님께서 훌륭한 사람을 존대하고
인재를 대접하심에 있어서는 바다처럼 산처럼 받아들이셔야 하니, 자잘한 일은 묻지 않아야
실로 대덕이라 할 것입니다."
고암스님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총림에서는 `쓸만한 그릇'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일사(逸事)』
10.
어떻게 닦아 나아가야 할지를 모르는 납자는 스승과 도반을 찾아서 물어야 한다. 한편 선
지식은 도(道) 자체만으로는 교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납자를 통해서만이 도를 드러낼 수 있
다. 이 때문에 절을 주관하는 도덕 있는 스승이 법회를 열면 반드시 훌륭하고 지혜로운 납
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호랑이가 포효하면 차가운 바람이 따라 일어나고, 용이 날면
구름도 따라 일어난다"라고 한 것이다.
옛날 강서(江西) 마조(馬祖)스님은 백장(百丈)스님과 남전(南泉)스님을 통해 자신의 대기대
용(大機大用)을 드러냈고, 남악(南嶽)의 석두(石頭)스님은 약산(藥山 : 745∼828)스님과 천황
(天皇 : 748∼807)스님을 만남으로써 대지대능(大智大能)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천년에 한 번 만나기도 어려운 사이였으므로 서로 법담을 나누면서 의심이 없었으
니, 마치 고니가 바람에 나래를 싣고 훨훨 날듯, 큰 물고기가 바다에 나아간 듯 패연(沛然)
하여 모두가 자연스러운 형세였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총림에 공을 세우고 불조를 더욱 빛
나게 하였던 것이다.
스승(先師 : 불안스님)께서 용문사(龍門寺)에 머무실 때, 하룻밤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였
다.
"나에게 덕업이 없어 강호 납자들을 잘 보살펴주지 못하였으니 결국 동산(東山) 노덕에게
부끄럽게 되었구나" 하시고는 말씀을 마치더니 눈물을 뿌리셨다.
내 보기에 요즈음 남의 스승이 되었노라는 자는 옛사람과 비교할 때 만 분의 일도 안된다.
『여죽암서(與竹庵書)』
11.
내가 용문사에 있을 때 영원스님은 태평사에 머물고 있었다. 어떤 소임자가 못된 마음으로
소란을 피우자 영원스님은 자기 스승에게 편지로 이렇게 말하였다.
"곧은 마음으로 도를 행하려니 잘 되지 않고, 자신을 굽히고 주지를 하려니 실로 나의 뜻
이 아닙니다. 천암만학(千巖萬壑) 사이에 뜻을 놓아버리고 매일 풀열매로 배불리 밥 지어 먹
으며 여생을 내 뜻대로 보내느니만 못하겠읍니다. 다시 무엇을 그리워하겠읍니까."
그리고는 10여 일이 채 못되어 황룡(黃龍)스님의 허락이 떨어지자 신바람이 나서 강서(江
西)로 되돌아가 버렸다. 『총수좌기문(聰首座記聞)』
12.
영원스님은 납자의 일을 비유로 설명하기를 좋아하였는데,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옛사람도 말했듯이 이 일은 마치 흙인형〔土偶人〕과 나무인형〔木偶人〕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나무인형의 경우, 귀와 코는 일단 크게 해놓고 입과 눈은 우선 작게 만들어 놓고 보아
야 한다. 어떤 사람은 틀렸다 하겠지만 큰 귀와 코는 깎아서 작게 할 수 있고, 입과 눈은 작
아도 파내서 크게 할 수 있다. 흙인형을 만들 땐 귀와 코는 일단 작게 하고 입과 눈은 먼저
크게 만들고자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틀렸다 하겠지만 작은 귀와 코는 더 빚어 붙일 수
있고, 컸던 입과 눈은 좀 떼어낼 수도 있다."
이 말이 소소한 것 같아도 큰 일에 비유할 수가 있다. 납자가 일에 부딪쳐 택하고 버리고
할 때,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진지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문(記
聞)』
13.
만암(萬庵)스님이 고암스님을 전송하느라고 천태산을 지나갔다 되돌아와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덕 높은 관수좌(貫首座)라는 이가 있었는데 경성암(景星巖)에서 30년 동안 은거하면서 그
림자가 산문을 벗어나지 않았다. 용학경공(龍學耿公)이 군수가 되어 특별히 서암(瑞巖)에다
가 스님을 모시려 하자 게송을 지어 사양하였다.
삼십년 간 빗장을 채웠는데
임명장이 어떻게 청산에 이르렀나.
좀스러운 세간사로
임하(林下)의 한가한 일생 바꾸지 말라.
三十年來獨掩關 使符那得到靑山
休將¡末人間事 換我一生林下閑
사신의 명령이 거듭 이르렀으나 끝내 나아가질 않았다. 그러자 경공은 요즈음의 산중에 은
둔하는 진정한 도류(道流)라 경탄하였다.
만암스님은 "그곳에도 이 이야기를 기억할 노숙(老宿)이 있겠지"하더니 이어서 말하였다.
"도의 근본을 체득하지 못하여 생사에 빠지면 부딪치는 경계마다 마음이 일어나 감정을 따
라 사념이 요동한다. 그리하여 사나운 마음, 의심하는 마음 때문에 아첨으로 사람을 속이려
권세에 붙어 아부하고 명예를 찾아 이익에 구차해진다. 이렇게 진실을 어기고 거짓을 좇으
며 깨달음을 등지고 세속〔六塵〕에 합하는 일을 사문 납자라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다."
나도 한마디 하였다.
"관수좌도 스님네들 중에 희대의 기상이라 하겠군요." 『일사(逸事)』
14.
설당스님은 부귀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교만한 자태가 없었다. 몸소 절약·근검하여 평소
에 물질을 일삼지는 않았다.
오거산(烏巨山)에 머물 때 납자 하나가 쇠거울을 바치자 스님은 그에게 말하였다.
"시냇물이 맑아 터럭까지 비추어 볼 만하다. 이를 쌓아둔들 무엇하겠느냐."
그리고는 끝내 물리쳐 버렸다. 『행실(行實)』
15.
설당스님은 인자하고 진실〔忠恕〕하며 인격과 재능 있는 사람을 존경하였고, 우스개나 속
된 말은 입 밖에 꺼내질 않았으며, 기세를 부리지도 사납게 노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나가느
냐 들어앉느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극히 청렴하였는데,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옛사람은 도를 배워 외물에 대해서 담박하여 맛에 빠져 즐기는 일이 없었으며, 자기의 권
세나 지위를 잊을 뿐더러 바깥의 성색(聲色)을 버리는 데 이르러서는 마치 애쓰지 않고도
저절로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즈음 납자들은 기량을 다해도 끝내 어찌해보질 못하니 그
까닭이 무엇일까? 의지가 약하고 일에 집중하지 못하며 요긴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기 때문
이다." 『행실(行實)』
16.
황룡 사심(黃龍死心 : 1043∼1114)스님은 운암사(雲巖寺)에 살 때, 집안에서 성내고 꾸짖기
를 좋아하였으므로 납자들이 모두 멀리서 바라만 보고도 슬슬 피하는 사정이라 혜방 시자
(惠方侍者 : 1173∼1129)가 말하였다.
"불조의 도를 실천하며 인간·천상을 호령하려는 선지식이라면 갓난아기 보듯 납자들을 보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과 따뜻한 손길로 중화(中和)의 가르
침을 베풀지는 못할지언정 어찌하여 원수처럼 보았다 하면 꾸짖고 욕을 하시는지요. 이를
어찌 선지식의 마음씀이라 하겠읍니까."
사심스님은 주장자를 가져다 그를 쫓아내며 혼을 내주었다.
"너의 소견이 이 따위니 뒷날 권세 있고 돈 있는 사람에게 붙어 아첨하여 불법을 팔아먹고
세상을 속일 놈임이 분명하구나. 나는 차마 그렇게는 못했기 때문에 엄중한 말로 그들의 뜻
을 분발시켰을 뿐이지 어찌 다른 까닭이 있었겠느냐. 그들이 부끄러운 줄을 알고 허물을 고
쳐 잊지 않고 생각하여 훗날 좋은 사람이 되게 하려 했을 뿐이다." 『기문(記聞)』
23
이익을 구하는 자는 도를 얻지 못한다
황룡 사심(黃龍死心)스님 / 1043∼1114
1.
법수 원통(法秀圓通 : 1027∼1090)스님이 일찌기 말하기를 "자신은 바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바로잡으려는 자를 두고 `덕(德)이 없다'고 하고, 자신은 공순(恭順)하지 못하면서
남에게 공순함을 강요하는 자를 두고 `예(禮)를 모른다'고 한다"라고 하였다. 선지식으로서
덕을 잃고 예의에 어긋났다면 무엇으로 후학에게 모범을 보이겠는가. 『여영원서(餘靈源
書)』
2.
사심스님이 진영중(陳瑩中)에게 말하였다.
"대도(大道)를 구하고자 한다면 우선 마음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분해서
화를 낸다거나 좋아서 욕심을 낸다면 바르게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세상에 응해주
는 성현 정도가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희노애오(喜怒肯惡)가 없을 수 있겠읍니까? 다만 `이
런 일은 성인이나 하는 것'이라고 멀리 제껴두어서 정도(正道)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그런대
로 되었다 하겠읍니다." 『광록(廣錄)』
3.
단속〔節儉〕과 자재〔放下〕는 도에 들어가는 첩경이다. 마음으로 통달하려 하나 되지 못
하고, 마음은 깨우쳤다 하더라도 말이 제대로 트이지 못하는 납자를 많이 보게 된다. 누구라
서 옛사람을 계승하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단속과 자재를 놓고 보자면 만에 하나도 없다.
이를 세속에 비하자면 젊은이가 글은 읽으려 하지 않으면서 관리가 되고자 하는 것과도 같
으니, 결코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삼척동자라도 다 안다. 『광록(廣錄)』
4.
사심스님이 담당(湛堂)스님에게 말하였다.
"납자 중에서 재주와 식견〔才識〕에 충신절의(忠信節義)를 겸비한 자가 제일 가고, 재주는
높지 못해도 근실하고 도량이 있는 자는 그 다음쯤이다. 혹 삿된 마음으로 기웃거리다가 형
편따라 태도를 바꾸는 이가 있다면 진실로 소인이다. 이런 이를 대중 속에 방치해 둔다면
반드시 총림을 무너뜨리고 불법 문중을 모독할 것이다." 『실록(實錄)』
5.
사심스님이 초당(草堂)스님에게 말하였다.
"주지를 맡은 자는 언행의 요점이 진실과 미더움에 있다. 말이 진실하고 미더우면 반드시
깊게 받아들여질 것이며, 말이 성실하지 못하면 받는 느낌도 따라서 천박할 것이다. 진실하
지 못한 말과 미덥지 못한 일은 평소 일반 세속에서도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니, 마을 사람
들을 기만한다고 보일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림의 주지가 되어 불조를 잇고 교화
를 선양하면서 말과 행동에 진실과 믿음이 없다면 강호의 납자들 중에 누가 따르겠는가?"
『황룡실록(黃龍實錄)』
6.
이익을 구하는 자는 도와 함께 하지 못하고, 도를 구하는 자는 이익과 함께 하지 못한다.
옛사람은 둘 다 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럴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가령 이익
과 도가 함께 되어지는 것이라면 장사치·백정·여염집·행상꾼들도 모두가 도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옛사람들이 부귀와 공명을 버리고 심산유곡에 들어가 번뇌를 끊고서
시냇물을 마시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일생을 마쳤겠는가.
이익과 도는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고 기어코 말한다면, 물이 새는 호리병으로 뜨거운 가마
솥을 식히려는 것처럼 될 수 없는 일이다. 『여한자창서(與韓子蒼書)』
7.
스승 회당스님께서 지난날 동오(東吳)지방에 계실 때 보았던 이야기라 한다.
원조(圓照宗本 : 1006∼1087)스님께서 정자사(淨慈寺)에 주지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아 그
리로 가자, 소주(蘇州)와 항주(杭州)의 사부대중들은 끈질기게 싸웠다. 한쪽에서 "우리 스님
을 무슨 이유로 빼앗아가느냐?" 하면 한쪽에서는 "이제는 우리 스님인데 너희들이 무슨 관
계냐?" 하였다.
8.
사심스님이 취암사(翠巖寺)에 살 때, 각범(覺範)스님이 남해로 귀양가다가 남창(南昌)을 지
난다는 소문을 듣고 산중으로 일부러 맞이하여 여러 날을 대접하고 후한 예의로 전송하였
다. 이 일로 어떤 사람이 사심스님에게 희노의 감정이 일정치 않다고 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각범은 덕이 있는 납자이다. 지난날 그에게 모난 성미를 버리라고 간곡히 충고했으나 지
금 뜻밖의 일에 걸리고 말았다. 이렇게 된 것은 그의 타고난 분수이고, 나는 평소 총림의 도
의대로 처신하여 그를 대했을 뿐이니, 식견 있는 자라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사로운 마음
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서산기문(西山記聞)』
9.
사심스님이 초당 선청(草堂善淸 : 1057∼1142)스님에게 말하였다.
회당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의 마음이 관대하고 후한 것은 천성이니, 억지로 사납게 하면 반드시 오래가지 못하
고, 매섭게 하여 오래 가지 못하면 도리어 소인에게 업신여김을 당한다. 그러나 아주 삿되거
나 바른 경우와 극악·극선한 경우는 본래부터 그런 것이므로 모두가 변화되기 힘들다. 오
직 중간 정도의 성품은 올라가기도 쉽고 내려가기도 쉬우므로 따라서 교화할 만한 것이다."
『실록(實錄)』
24
사념이 일어나기 전에 다스려라
초당 선청(草堂善淸)스님 / 1057∼1142
1.
들판을 태우는 불도 반딧불만한 작은 불씨에서 발생하고, 산을 쓸어버리는 물도 졸졸 흐르
는 물에서부터 샌다. 물이 적을 때는 한 움큼의 흙으로도 막을 수 있지만 크게 불어나면 나
무와 돌을 쓸어내고 언덕을 덮어버리며, 불이 약할 땐 한 국자의 물로도 끌 수 있지만 활활
타오르게 되면 산과 마을까지 번지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저 물난리 같은 애욕이나 불길 같은 성냄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옛사람은
마음을 다스릴 때 감정과 사념이 일어나기 전에 막았다. 그러므로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두었다.
정념(情念)과 본성이 뒤섞여 애오(肯惡)의 감정이 서로 싸우는 데 이르면 자신의 삶을 망
치고, 남의 인격까지도 망쳐 위태한 지경이 되니 그때가서는 어쩌지 못한다.
2.
주지하는 데는 별다른 묘수가 없다. 요컨대 대중의 마음을 살피고 상하를 두루 아는 데 있
다. 인정(人情)을 살피면 안팎이 조화롭고 상하가 통하면 모든 일이 정리되니, 이것이 안정
되게 주지하는 방법이다. 한편 대중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여 아랫사람의 마음이 위로 통하
지 못하면 상하가 어긋나서 되는 일이 없으니 이것이 주지가 망하는 원인이다.
혹 주지가 총명한 자질은 지녔으되 편견을 고집하기 좋아하면 남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
하고서 모든 사람의 의견을 버리고 자기의 권세만 지중히 여겨 공론(公論)을 폐지하고 사사
로운 은혜를 베풀게 된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선(善)으로 나아가는 길을 점점 막히게 하고,
대중을 책임지는 도를 더욱 약하게 하며, 자기가 아직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은 헐뜯고, 익
숙하고 가리워진 데에 안주한다. 그러고서도 주지로서 크게 경영하고 멀리 전하려 한다면,
이는 뒷걸음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격으로 끝내 되지 못한다. 『여산당서(與山堂書)』
3.
납자라면 반드시 정당하게 처신하여 다른 사람들이 뒷공론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한번
구설수에 걸렸다 하면 죽을 때까지 뜻을 펴지 못한다.
옛날 시자(侍者) 태양 평(太陽平)스님은 도학으로는 총림에서 추대받고 존중되었으나 마음
가짐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식자들의 비난을 사, 드디어는 평생 곤란한 지경에 빠져 지내
다가 죽을때 가서도 의지할 곳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 납자에게 있어서일 뿐이랴. 어느 곳의 주지라면 더욱 행여하는 마음으로 조심
해야 한다. 『여일서기서(與一書記書)』
4.
초당스님이 여(如)스님에게 말하였다.
회당선사(先師)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많은 대중 가운데서는 훌륭한 사람이나 어질지 못한 사람이나 줄지어 와서 교화의 문이
넓어진다. 그 사이에는 친소(親疏)가 용납되지 않으니 적잖이 인재를 엄격히 가려내야 한다.
즉 재주와 덕이 인망(人望)에 부응하는 자라면 자기가 그에게 노(怒)할 일이 있다고 멀리해
서는 안되며, 또 식견(識見)이 용렬하여 대중들에게 미움을 받는 자라도 자기가 그를 사랑한
다고 친하게 해서도 안된다. 이렇게 하면 훌륭한 사람은 제대로 올라가고 못난 사람은 자연
히 물러나 총림이 편안해진다.
주지하는 자가 사심 드러내기를 좋아하여 희노의 감정을 멋대로 하면서 남을 승진시키고
물러나게 할 경우, 현자는 입을 다물고 못난 사람이 다투어 승진하므로 기강이 문란해져 총
림이 폐지된다.
이 두 가지야말로 주지의 대체(大體)이다. 실로 이를 살펴서 실천한다면 가까이 있는 사람
은 기뻐하고 먼 데까지도 퍼진다. 그렇게 되면 도가 시행되지 않고 납자들이 흠모하며 찾아
오지 않을까 무엇을 염려하겠는가." 『소산석각(疎山石刻)』
5.
초당스님이 수좌(首座) 공(空)스님에게 말하였다.
"총림이 생긴 이래로 석두(石頭)·마조(馬祖)·설봉(雪峯)·운문(雲門)스님만큼 제대로 사람
을 만난 경우는 없다. 근래에는 황룡(黃龍)·오조(五祖) 두 분 노덕만이 사방의 뛰어난 납자
를 받아들여, 그릇과 도량의 정도나 타고난 재능의 가부를 따라 발탁해서 채용했을 뿐이다.
이를 비유하면 경쾌한 수레에 준마를 채우고 여섯 가닥 고삐 잡고 힘차게 채찍질하며 당겼
다 놓았다 함이 눈짓하는 사이에 있는 것과도 같다. 이런 기세로라면 어딘들 못가겠는가."
『광록(廣錄)』
6.
주지하는 일은 별다른 것이 없다. 요는 편파적으로 듣고 자기 멋대로 하는 폐단을 조심하
는 데 있으니, 먼저 받아들인 말에 신경쓰지 않는다면 소인이 아첨하면서 영합하려는 참소
에 현혹되질 않을 것이다.
여러 사람의 감정은 한결같지 못하고 지공(至公)한 의론은 드물기 때문에 모름지기 이로움
과 병통을 보아서 가부를 살핀 뒤에 시행해야 하겠다. 『소산실록(疎山實錄)』
7.
초당스님이 산당스님에게 말하였다.
모든 일은 시비가 아직 밝혀지기 전에는 반드시 조심해야 하며, 시비가 밝혀지고 나면 이
치로 해결하되 도가 있는 경우라면 의심치 말고 결단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간교한 사람이
현혹하지 못하고 어거지 변론으로 결단을 바꾸지도 못한다. 『청천기문(淸泉記聞)』
25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도를 바탕삼다
산당 도진(山堂道震)스님 / 1079∼1162
1.
산당 도진(山堂道震) 스님이 처음 조산(曹山)에 주지하라는 명령을 물리치자 군수가 글을
보내 권하였다. 스님은 이렇게 사양하였다.
"고량진미의 음식을 먹고 명예나 탐하는 납자가 되려 한다면 초의(草衣)를 입고 먹지 않으
며 산에 은둔하는 야인(野人)이 되느니만 못합니다." 『청천재암주기문(淸泉才庵主記聞)』
2.
뱀과 호랑이는 올빼미와 소리개의 천적은 아니지만 올빼미와 소리개가 울부짖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뱀이나 호랑이에게 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소와 돼지는 까치가 타고 놀 것은
아닌데도 까치가 모여서 타고 노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딴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 조주(趙州)스님이 어떤 암자의 주지를 방문하였는데 생반(生飯:재나 공양 후 귀신이
나 짐승을 위해 조금씩 떼어낸 음식)을 내어왔다. 조주스님이 "까마귀는 사람만 보면 무엇
때문에 날아가버릴까?"하고 말하자, 주지는 망연하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드디어는 앞의 얘
기를 받아서 스님에게 묻자, 조주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에게 살생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을 의심하면 그 사람도 나를 의심하며, 외물(外物)을 잊어버리면 외물도 나를
잊게 된다. 옛사람이 독사나 호랑이와 짝을 하고 놀았던 것은 이 이치를 잘 통달했기 때문
이다.
방거사(居君:?∼808)가 말하기를, "무쇠소〔鐵牛〕가 사자의 포효를 두려워하지 않음이 흡
사 목인(木人)이 화조(花鳥)를 보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극진한 말씀이라 하겠다. 『여
주거사서(與周居君書)』
3.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방법은 은혜로우면서도 지나치게 베풀어서는 안되니 지나치면 교만해
지기 때문이며, 위엄스러우나 사나와서도 안되니 사나우면 원망을 듣게 되기 때문이다.
은혜를 베풀어도 교만해지지 않고 위엄스러워도 원망을 듣지 않게 하려면, 은혜는 반드시
공을 세운 사람에게 베풀고 아무에게나 함부로 주어져서는 안되며, 위엄은 반드시 죄 있는
사람에게 가해져야지 무고한 사람에게 엉뚱하게 미쳐서는 안된다. 이렇게 하면 은혜가 후하
다 해도 대중들에게는 교만함이 없고, 태도가 근엄해도 원망이 없다.
칭찬하기에 부족한 공로인데도 상이 너무 후하거나 따질 정도의 죄가 아닌데도 벌이 너무
무거울 경우, 보통사람이라면 교만과 원망을 내게 마련이다.
4.
불조의 도는 중도(中道)를 얻는 데 있을 뿐이니 중도를 지나치면 치우치고 삿되게 된다. 또
한 모든 일에 자기 의사를 끝까지 고집해서는 안되니 그렇게 하면 환란이 생긴다. 예나 지
금이나 절제하고 조심하지 않으면 거의 위태로와서 망하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누구라서 허물이 없겠는가마는 오직 어질고 지혜로운 인재만이 허물을 고치는 데
인색하지 않으니 그것을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이다.
5.
산당스님이 상서(尙書)인 한자창(韓子蒼)·만암 도안(萬庵道顔) 수좌·정현 진목(正賢眞牧)
스님과 함께 운문암(雲門庵)으로 피난을 하였다.
한공이 이런 차에 만암스님에게 물었다.
"근래에 들으니 이성(李成)의 군사에게 잡혔다더니〔南宋 高宗 紹興 원년(1131)에 있었던
난〕 무슨 수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요?"
그러자 만암스님이 대답하였다.
"포로가 되었을 때, 추위와 배고픔에 여러 날을 시달리다 결국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
데 우연히도 큰 눈이 내려 집을 덮어버리자 묶여 있던 벽이 까닭없이 무너지더군. 그날 밤
에 요행히 탈출한 사람이 백여 명이나 되지."
한공은 다시 물었다.
"꼼짝없이 붙잡혀 있었다면 어떻게 빠져나오려 하였읍니까?"
만암스님이 대꾸를 않자, 공은 거듭 따졌다. 스님은 "그걸 말해 뭘하겠나. 우리는 도를 배
워 바른 이치〔義〕로 바탕을 삼았으므로 죽으면 그만일 뿐 무엇을 두려워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공은 턱을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이로부터 선배들이 세속의 환란을 당해서 사생을 다툴 때 모두 처신과 결단이 있었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6.
산당스님이 백장(百丈)스님에게서 물러나 한자창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벼슬을 맡았던 자들은 덕도 있고 명(命)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간곡히 세 번씩
이나 청해야 나갔고, 일단 마음만 먹으면 물러나버렸다. 그런데 요즈음 벼슬하는 자들은 오
직 권세를 위할 뿐이다.
나가고 물러나는 처신을 알아서 바른 도를 잃지 않는 자라면 현명하고 지혜롭다 하겠다."
『기문(記聞)』
7.
산당스님이 야암(野庵)스님에게 말하였다.
"주지는 마음을 공정하게 가져야 한다.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자기에서 나와야
만 옳고 다른 사람은 잘못이라고 여기지만 않는다면, 사랑과 증오의 차별된 감정이 마음에
서 생기지 않고, 거칠고 오만하며 삿되고 치우친 기색은 들어갈 곳이 없다." 『환암집(幻庵
集)』
8.
이상로(李商老)는 이렇게 말하였다.
"묘희 종고(妙喜宗:1089∼1163)스님은 도량이 넓고 누구보다도 절의(節義)가 굳으며 배우기
를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부(老夫)스님과 함께 보봉(¿峯)스님을 겨우 사오 년 모
셨는데, 열흘만 보지 못해도 반드시 사람을 보내 문안을 드렸다. 우리집 식구가 온통 종기를
앓자 스님은 집을 찾아와 몸소 약을 달여주며 자식이 어버이를 섬기듯 예의를 다하였다.
되돌아왔을 때 수좌 도원(道元)스님이 그 일을 나무라자 그저 `예예'하면서 꾸지람을 달게
받아들였다. 식견 있는 자들은 여기서 스님이 큰그릇이라는 것을 알았다."
담당스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종고시자(宗侍者:묘희)는 전에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인데, 내 안타깝게도 알아보지 못하
였구나."
담당스님이 죽자, 묘희스님은 발에 못이 박히도록 천리길을 달려가 저궁(渚宮)의 무진거사
(無盡居君)를 방문하고 탑명(塔銘)을 부탁하였으니, 담당스님이 죽은 뒤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스님의 힘이라 하겠다. 『일섭기(日涉記)』
선림보훈
下
26
깨닫고 교화하는 일은 혼자서만으로는 될 수 없다
묘희 종고(妙喜宗)스님 / 1089∼1163
1.
담당스님은 옛 현인의 서첩(書帖)을 얻을 때마다 반드시 예불하고 열어보았으며, 더러는 "
앞 성인의 커다란 인격과 명성을 어떻게 차마 버려두겠는가"라고 하면서 돌에다 새기곤 하
였다.
스님은 이토록 고상했기 때문에 죽는 마당에 단돈 열 냥을 모아놓은 것이 없고 다만 당송
(唐宋) 모든 현인들의 저서 두 바구니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이에 납자들이 앞다투어 말을
전하여 돈 8만 냥을 모아 다비식을 도왔다. 『가암집(可庵集)』
2.
불성(佛性)스님이 대위산(大山)에 머물 때, 행자(行者)와 농부가 서로 치며 싸우는 것을 보
고 행자만을 나무라자 문조 초연(文祖超然)스님이 한마디 하였다.
"농부를 놓아두고 행자만 꾸짖고 욕을 보이려 한다면 위 아래의 명분을 잃을 뿐만 아니라,
소인이 그 틈을 타 업신여기고 태만하여 일이 진행되지 않을까 매우 염려됩니다."
그러나 불성스님은 들어주지 않았다. 오래지 않아 과연 소작인이 일 맡은 사람을 죽인 일
이 벌어지고 말았다. 『가암집(可庵集)』
3.
문조 초연스님이 앙산(仰山)에 머물 때, 지객(地客)이 절에서 일용할 곡식을 훔쳤다. 스님
은 평소 지객(地客)을 의심해 왔으므로 그를 내보내려는 뜻으로 창고 맡은 행자〔庫子行
者〕에게 그가 바쳤던 그 동안의 공납문서를 만들라고 하였다. 행자는 지객을 감싸주고자
스님의 의도를 살피고서 도리어 지객 소임에서 물러나는 문서를 만들라고 그에게 알려주고
는 되돌아와 울부짖게 하였다. 그리고는 곡식 관리에 대한 책임 추궁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스님은 행자가 권세를 멋대로 한다고 노하면서 두 사람 모두에게 죽비로 결단했을 뿐이다.
스님은 행자에게 은근히 속임수를 당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아 - 아, 소인의 교활함
이 이러하다.
4.
사랑하고 미워하는 차별된 감정은 인지상정(人之常情)으로 인격이 트이고 지혜가 밝은 사
람이라야 그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옛날 원오스님이 운거산에 머물 때, 고암스님은 동당(東堂)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원오스님
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암을 싫어하였고, 고암스님과 함께 하는 자는 원오스님을 괴이하게
여겼다. 이렇게 하여 총림이 어수선해져서 원오 무리·고암 무리가 나뉘게 되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두 스님을 관찰해 보았더니 변두리까지 큰 명성을 떨칠 정도로, 보통사람으로서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애석하다, 소인이 아첨하는 말을 경솔하게 믿고 총명한 이를 혼란시켜 드디어는 식견있는
자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도다. 이 때문에 양좌주(亮座主)*나 은산(隱山)* 같은 부류가 되
어야 고상한 인재라 할 수 있다.
* 마조스님에게서 깨친 후 산에 숨어 살며 도를 간직했던 분들.
5.
옛사람은 선(善)을 보면 실천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쳤다. 덕을 닦아 실천하고 죄 면하기를
생각하여 허물이 없도록 했다. 또한 자기의 단점을 모르는 것보다 심한 병통이 없으며, 자기
허물에 대해 충고 듣기를 좋아하는 것보다 훌륭한 장점이 없다고 여겼다.
그렇긴 하나 어찌 옛사람이 재주와 지혜가 부족하고 식견이 분명하질 못하여 그렇게 했겠
는가. 실로 자신의 잘난 점으로 남을 업신여기는 후학에게 경계를 주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광대한 총림과 세상의 많은 무리들을 혼자서 다 알 수는 없다. 반드시 좌우의 이목과 사려
를 의지해야만 극진한 이치를 깨닫고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다.
혹은 자기만 높은 체하면서 자잘한 일에 엄격하고 큰 일은 소홀히 하며, 훌륭한 사람인지
어질지 못한 자인지도 살피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릇된 일도 고칠 줄 모르고 옳은 일은 따
르지 않으며 미친 듯이 제 뜻대로만 하면서도 거리낌 없다면 이것이 실로 재앙의 기반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혹 좌우에 물어 볼 만한 사람이 없다 해도 옛 성인을 본받으면 될 것이니, 마치 튼튼한 성
벽, 날랜 군사로 지키는 것처럼 들어갈 틈이 없도록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한다면 이른바
모든 시냇물을 받아들여 바다를 이룬다고 하는 큰 도량이 못된다. 『여보화상서(與¿和尙
書)』
6.
곳곳에서 큰스님〔長老〕을 추천하려면 반드시 도를 지키며 담담하게 물러나 있는 자로 해
야 한다. 그런 사람을 추천하면 지조와 절개가 더욱 견고하여 가는 곳마다 절 물건을 축내
지 않고 총림의 일을 해내며, 또한 법을 주관하는 자로서 오늘의 폐단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런데 아첨하는 교활한 무리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높은 사람에게 가서 붙기도 하고 권
력 있는 집과 결탁하기도 하니, 하필 그런 사람을 추천하려 하는건지……
7.
묘희스님이 초연거사(超然居君)에게 말하였다.
"모든 일에 대중의 여론을 폐지해서는 안됩니다. 시행되지 못하도록 억누른다 할지라도 그
것이 여론일진대 어찌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총림에서 도 있는 인재를 하나 추천하면
보고 듣는 사람들이 반드시 기쁜 마음으로 칭찬하고, 혹 한번이라도 진실치 못하고 합당하
지 않은 자를 추천하면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근심스럽게 탄식을 하니, 이는 실로 다름이
아니라 공론(公論)이 시행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 - 아, 이로써 총림의 성쇠를 점칠 수 있겠다. 『가암집(可庵集)』
8.
단속〔節儉〕과 자재〔放下〕는 자기를 닦는 기반이며, 도에 들어가는 요체이다. 옛사람을
쭉 관찰해 보았더니 이러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그런데 요즈음 납자들은 형초(荊楚)에
유람하면서 갖가지 이불을 사들이고 절강(漸江) 가를 지나면서 비단을 구하니, 옛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9.
고덕(古德)들은 주지를 하면서 상주물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모두 일 맡은 자에게 일임했
다. 그런데 근래의 주지하는 자들은 재력을 믿고서 큰 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모조리 방장
(方丈)으로 되돌려 버린다. 그리하여 일을 맡은 사람은 부질없이 헛된 이름만 있을 뿐이다.
슬프다, 구차하게 제 한 몸 편하자고 굳이 온 절의 일을 쥐고 흔들면서, 소인에게 속지 않
고 기강의 문란없이 지당하고 공평한 의론에 맞기를 바라나, 어렵지 않겠는가.[여산당기(廬
山堂記)]
10.
양(陽)이 다 되면 음(陰)이 생기고 음이 끝간 데서 양이 생기니, 성쇠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 바로 천지 자연의 운행법칙이다. 형통하다는 뜻을 가진 풍괘〔豊亨:〕는 한낮〔日中〕
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해가 정오가 되면 기울고, 달도 가득 차면 이지러진다"라고 했던 것
이다. 이렇듯 천지의 가득 차고 이지러지는 것도 시절에 따라 꺼지고 불어나니, 더구나 사람
의 경우이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은 혈기가 한창일 때 세월이 쉽게 가버림을 염려하여 아침저녁으로 반성하
고 삼가하여 더욱 조심하였다. 그리하여 자기 감정과 욕구를 멋대로 하지 않고 도만을 구하
여 드디어는 명예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방일한 욕구에 떨어지고 방자한 감정으로 잘못되어 거의 구제가 불가능하게 된 경우,
그제서야 팔다리를 걷어붙이며 돌이키려 해도 이미 늦은 것이다. 기회란 만나기는 어려워도
놓치기는 쉽기 때문이다. 『임향서(林書)』
11.
옛사람은 우선 도 있는 이를 선택하고, 다음으로 재주와 학문 있는 이를 추천하여 필요한
시기에 등용하였다. 그런데 실로 쓸만한 그릇이 아닌데도 자기를 사람들 앞에 내세우는 자
에겐 주위 사람이 천박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납자들이 명예와 절개를 가다듬어
남 앞에 설 것을 생각하였던 것이다.
요즈음 총림이 시들고 상하는 이유를 살펴보았더니 납자들이 도덕은 돌아보지 않고 절개와
의리를 좀스럽게 여기며 염치를 무시하는 한편, 순수하고 소박한 사람을 촌스럽다 나무라고,
들떠서 떠들어대는 사람을 빼어나고 민첩하다고 부추기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후배들이 식견이 분명하질 못하여 대강 한 번 훑고 남의 이론 베낀 것을 말재주
나 채우는 밑천으로 삼는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하여 드디어는 얄팍한 풍조를 이루었다.
더구나 성인의 도에 대해 대화하는 데 있어서는 깜깜하기가 마치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
과도 같으니, 거의 구제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여한자창서(與韓子蒼書)』
12.
옛날 회당스님이 황룡스님의 『제명기(題名記)』를 지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들어 있
다.
"옛날 납자들은 바위굴에 거처하며 풀뿌리를 먹고 풀껍데기를 입고 살면서 명성과 이익에
마음이 얽매이지 않았으므로 관부(官府)에는 이름조차 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위(魏)·진
(晋)·제(齊)·양(梁)·수(隋)·당(唐) 이래로 비로소 절을 지어 사방의 납자를 모으고서 훌
륭한 사람을 선택하여 못난 이를 바로잡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어리석은 자를 이끌어주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손님과 주인이 있게 되었고, 상하의 질서가 나뉘게 되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한 절에 모여들었으니, 그 책임을 맡은 사람은 실로 잘 해내기가 어
려웠다. 그런데도 큰 문제는 잘 다루고 자잘한 것은 버리며, 급한 일부터 하고 덜 급한 일은
뒤로 돌려 사사로운 계책을 꾸미지 않고 오로지 대중을 이롭게 하는 데에 요점을 두었던 것
이니, 요즈음 허둥지둥 한 몸만을 도모하는 자와는 실로 천지차이였다.
지금 황룡스님께서 뒷날 보는 자들이 하나씩 지목해 가며 `어느 스님은 도덕이 있었고, 어
느 스님은 인의(仁義)가 있으며, 누구는 대중에게 공정하였고, 아무개는 자기만을 위하였더
라'할 수 있도록 역대 주지의 이름을 돌에다 새겨 놓았으니, 아 - 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석각(石刻)』
13.
시랑(侍郞)인 장자소(張子韶)가 묘희스님에게 말하였다.
"선림에서 수좌라는 직책은 훌륭한 사람을 선발하는 지위입니다. 그러나 지금 총림에서는
잘난 이, 못난 이 할 것 없이 으례 이것을 요행을 바라는 미끼로 여기는데, 이는 어떻게 보
면 주지의 잘못입니다.
그렇다면 상법·말법 시대엔 실로 그 적임자를 만나기 어렵다 하겠읍니다. 가령 그 행동이
보다 우수하고 인격과 재주가 더욱 갖추어져 염치(廉恥)와 절의(節義)를 아는 자를 그 자리
에 앉게 한다면 약간은 나아질 것입니다." 『가암집(可庵集)』
14.
묘희스님이 자소에게 말하였다.
"근대의 주지로는 진여 모철(眞如慕喆)스님만한 이가 없고, 총림을 보필하는 자로는 양기
(楊岐)스님만한 이가 없다. 또한 알 만한 사람들은 자명(慈明)스님의 진솔(眞率)함에 대해 `
하는 일은 소홀하였으나 전혀 꺼리고 숨기는 일은 없었다'고 평하였다.
양기스님은 자기 몸을 잊고 그를 섬기면서 빠진 일은 없을까, 혹은 완전하지 못할까 염려
하였다. 심한 추위나 더위에도 자기의 급한 일로 게으른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남원(南
源)에서 시작하여 흥화(興化)에서 마치기까지 근 30년 동안 자명스님의 세대가 다할 때까지
기강을 총괄하였다.
진여스님의 경우는 처음 보따리를 싸들고 행각하면서부터 세상에 나가 대중을 거느릴 때까
지 주리고 목마른 사람보다도 더 법을 위해 자신을 잊고 지냈다. 아무리 급한 경우라도 당
황하는 기색이 없었고, 말을 정신없이 하는 법이 없었다. 또한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않았
고, 겨울에도 불을 때지 않았다. 방에서 여유롭게 지내며 책상에는 먼지가 가득하였다. 한번
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납자가 안으로 고명한 지혜와 넓은 안목이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과 좋은 도반이 없다면
큰 인물 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당시에 상식을 넘어설 정도로 고집스럽기는 영부 철각(永孚鐵脚)스님과 같았고,
굽히지 않기로는 수원 통(秀圓通)스님과 같아 모든 사람들이 그의 풍모만 바라보아도 바람
에 풀이 눕듯 하였던 것이다.
아 - 아, 이 두 노스님은 천년에 한 번도 있기 어려운 납자의 귀감이라 하겠다." 『가암기
문(可庵記聞)』
15.
자소와 묘희·만암도안(萬菴道顔:1094∼1164) 세 스님이 함께 앞채 수좌 오본(悟本)스님에
게 문병을 갔다. 묘희스님이 "수행자라면 몸이 편안해야지 도를 배울 수 있다"라고 하자, 만
암스님은 곧바로 "그렇지 않다. 꼭 도를 배우려 한다면 몸 따위를 생각해서는 안된다"라고
반박하였다.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이런 꼭 막히고 틀어진 사람 보게나."
자소는 묘희스님의 말을 소중히 여기기는 했으나 끝내 만암스님의 말이 타당하다고 여겨
아끼게 되었다. 『기문(記聞)』
16.
자소가 묘희스님에게 물었다.
"지금 주지는 무엇을 우선해야 합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납자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재정문제를 잘 관리하면 될 뿐이다."
그때 만암스님이 좌중에 있으면서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상주물의 소득을 계산하여 불필요한 경비를 잘 조절하고 그것을 쓰는 데 도가 있으면 돈
과 곡식은 이루 세지도 못할 것이니 뭘 그다지 염려하겠는가? 그렇다면 현재 주지는 도를
간직한 납자를 얻는 것을 우선해야 할 뿐이다. 설사 주지가 지모(智謀)가 있어 10년 먹을 양
식을 비축할 수 있다 해도 이 자리에 도를 간직한 납자가 없다면 옛 성인이 말씀하신 `앉아
서 신도들의 시주만 소비하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다'라고 한 것이니, 주지에게 무슨 도움
이 되랴."
자소는 말하였다.
"수좌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묘희스님은 만암스님을 되돌아보며 말하였다.
"모두가 그럴 듯한 얘기로군."
그러자 만암스님이 그만두었다.
27
시초에서 조심하여 재앙에 대비하다
수좌 음(踵)스님
1.
만암 도안(萬庵道顔:1094∼1164)스님이 말하였다.
묘희스님이 지난날 경산(徑山)에 머물 때 야참(夜參)하는 차에 다른 몇 종풍(宗風)을 지지
하는 논조를 펴다가 조동 종지(曹洞宗旨)에 이르러서는 그칠 줄 몰랐다. 다음날 수좌 음(踵)
스님이 묘희스님에게 말하였다.
"세간을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원래 작은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종풍〔宗
風〕을 진작하려 한다면 시기를 따라 폐단을 바로 잡을지언정 당장 보아 통쾌하다 해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스님께서 지난날 납자시절이라 해도 허망하게 다른 종지(宗旨)를
논해서는 아니되거늘, 하물며 지금 보화왕좌(¿華王座)에 올라 선지식이라 일컬어지는 경우
에야 더욱 그러하지 않겠읍니까?"
스님은 "하루 저녁 그저 지나가는 말일 뿐이었네"하고 변명하였으나 수좌는 "성현의 학문
은 천성에 근본하였읍니다. 이렇게 경솔하게 해서야 되겠읍니까?" 하면서 따졌다.
스님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으나 수좌는 그래도 말을 그치지 않았다.
2.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묘희스님이 형양(衡陽)에 귀양가자 시자 현(賢)스님이 깎아내리는 말을 적어서 큰 방 앞에
걸어보이자 납자들은 부모를 잃은 듯 눈물을 흘리고 근심스럽게 탄식을 하면서 안절부절하
였다.
그러자 수좌 음(踵)스님이 대중방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인생의 화환(禍患)이란 구차하게 면하지 못한다. 가령 묘희스님이 평생을 아녀자처럼 아랫
자리에 매달려 있으면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오늘같은 날은 없었으리라. 더구나
옛 성인들에게 부응하는 길은 여기에 그치지 않으니 그대들은 무엇이 괴로와 슬퍼하는가?
옛날 자명(慈明)·낭야(¿)·곡천(谷泉)·대우(大愚)스님이 도반이 되어 분양선소(汾陽善
昭:947∼1024)스님을 참례하러 가는데, 마침 서북지방에서 전쟁을 하였으므로 드디어는 옷을
바꿔입고 대열에 끼어서 갔었다. 그런데 지금은 경산과 형양은 멀지 않고 길은 막힘이 없으
며 산천도 험하지 않다. 묘희스님을 뵙고자 한다면 다시 무엇이 어렵겠는가."
이 말로 온 대중이 잠잠하더니 다음날 줄지어 떠나버렸다. 『여산지림집(廬山智林集)』
3.
만암스님이 말하였다.
묘희스님이 매양현(梅陽縣)으로 오신 일을 가지고 더러 이런저런 말이 있자 수좌 음(踵)
스님이 한마디 하였다.
"대체로 사람을 평가하려면 허물있는 가운데서 장점을 찾아야 된다. 어찌 허물이 없는 데
서 단점만을 끄집어내려 하는가. 그의 마음은 살피지 않고 자취만 가지고 의심한다면 실로
무엇으로써 총림의 공론을 맞춰주겠는가.
더구나 묘희스님의 도덕과 재주는 천성에서 나왔으며 뜻을 세워 일을 주도함이 의로움을
따를 뿐이다. 스님의 도량은 누구보다도 뛰어난데, 지금 조물주가 억제하는 것은 반드시 이
유가 있어서일 것이니, 뒷날 스님이 불교 집안의 복이 될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듣고 나서는 사람들이 다시는 거론하지 않게 되었다.
4.
수좌 음(踵)스님이 만암스님에게 말하였다.
"선지식이라 불리우는 자는 마음을 씻어내야 하며, 지극한 공정(公正)으로 사방에서 오는
납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 중에 도덕과 인의를 지닌 자가 있으면 원수처럼 틈이 있다 해
도 반드시 써주어야 하며, 간사하고 음흉한 자라면 개인적으로 은혜가 있다 해도 반드시 멀
리해야 한다. 그리하여 찾아오는 사람들로 하여 각각 지켜야 할 바를 알아 일심동체가 되게
하면 총림은 안정되리라." 『여묘희집(與妙喜集)』
5.
또 이렇게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주지된 자라면 누구인들 법도와 질서가 반듯한 총림을 세우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총림을 진작시키는 자가 드문 이유는 도덕을 잊고 인의를 폐지하며, 법도를 버리고
개인의 감정에 맡겼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불교가 시들어가는 것을 진정 염려한다면 자기부터 바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겸손하고
훌륭한 사람을 선발하여 돕게 하며, 덕망있는 분을 권장하고 소인을 멀리해야 한다. 절약·
근검을 자신부터 실천하고 덕과 은혜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채용하
여 일 맡고 시중들고 하는 사람들이 덕있는 자를 모시고 아첨하는 자는 멀리할 줄을 알게
되며, 치졸한 비방과 편당(偏黨)하는 혼란이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마조(馬祖)·백장(百丈)스님과도 짝이 될 수 있고, 임제(臨濟)·덕산(德山)스
님의 경지에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지림집(智林集)』
6.
수좌 음(踵)스님이 말하였다.
"옛날 성인은 재앙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하늘은 어찌 이 못난 놈을 버리시는가' 하
고 탄식하였다. 범문자(范文子)는 말하기를 `성인만이 안팎에 환란이 없을 수 있으니, 스스
로가 성인이 아니고서야 바깥이 편안하면 반드시 마음이 근심스럽다' 하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어질고 총명한 이는 환란을 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시초부터
조심하여 스스로 방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약간의 근심과 수고로움이 있다
해도 반드시 진정한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재앙·근심·비방·모욕은 아마 요순(堯舜) 같은 성인이라 해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구나 그 나머지의 경우이겠는가." 『여묘희서(與妙喜書)』
28
적시에 폐단을 고쳐 종풍을 간직하다
만암 도안(萬庵道顔)스님 / 1094∼1164
1.
요즈음 총림을 살펴보았더니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 아예 없다. 몇 백 군데를 가보아도 아
무개가 주지가 되고 대중이 짝이 되어 법왕(法王)의 자리를 빌어 주장자와 불자(佛子)를 세
우고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있었다. 토론이 있긴 하나 경론을 섭렵하지 않았으므로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 없는 것이 마땅하다 하겠다.
세간을 벗어나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부처를 대신해 교화를 드날리려 하면서 마음을 밝히
고 근본을 깨달아 깨달음과 실천〔行解〕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내겠는가? 비유하
면 어떤 사람이 거짓으로 왕이라 자칭하다가 죽음을 스스로 초래하는 것과도 같다. 더구나
법왕을 어떻게 거짓으로 훔치려 하는가?
아 - 아, 부처님 가신 지가 더욱 멀어지자 `수료학(水 鶴)' 게송을 지어 부르며 사견을
내는 무리들이 자기 멋대로 하며 옛 성인의 가르침을 날로 침체시키니 내가 말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마침 일없이 지내다가 교풍(敎風)을 매우 해치는 한두 가지를 조목별로 진술해 보았다. 이
를 총림에 유포하여 후학으로 하여금 선배들이 살얼음판을 지나듯 칼날 위를 달리듯 조심스
럽게 큰 법 걸머지려는 마음을 지녀 명예·이익에 구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하였다.
나를 인정해 주는 자에게도, 나를 허물하는 자에게도 나는 변론하지 않으리라. 『지림집(智
林集)』
2.
옛사람은 상당(上堂)하여 우선 불법의 요점을 제시하고 대중에게 자세히 물으면 납자는 나
와서 더 설명해 주기를 청하였으니, 그리하여 문답형식의 법문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요
즈음 사람들은 운(韻)도 안맞는 4구게(四句)를 옛 법도를 무시한 채 멋대로 지어놓고는 그
것을 조화(釣話:법에 대한 의심을 던지는 말)라 부른다. 한 사람이 대중 앞에 불쑥 나서서
옛시 한 연구(聯句)를 큰 소리로 읊조리며 그것을 매진(罵陳:의심을 결단해 주는 진술)이라
부르고 있으니 치졸하고 속되어 비통해 할 만한 일이다.
선배들은 생사의 큰일을 염두에 두고 대중과 마주하여 의심을 결단하였으며, 이윽고 뜻을
밝히고 나서는 생멸하는 마음을 일으키진 않았다.
3.
명성 높은 존숙(尊宿)이 절에 오시면 주지는 자리에 올라 겸손하게 인사하고 높은 지위를
굽혀 낮은 데로 가야 한다. 더욱 정중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내려와 수좌대중(首座大衆)과 함
께 법좌(法座)에 오르시기를 청하고 법요(法要) 듣기를 바라야 한다.
요즈음은 서로를 부추기면서 옛사람의 공안(公案)을 들어다가 대중들에게 비판하게 하고는
그를 시험한다고들 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절대로 이런 마음을 싹트게 하지 말라. 옛 성
인께서는 법을 위하여 모든 생각을 떨치고 함께 교풍을 세워 서로가 주고받으며 법이 오랫
동안 머물게 하였다. 생멸하는 마음으로 이런 악한 생각 일으키는 것을 어찌 용납하려 했겠
는가. 예의 차리는 데에는 겸손하기부터 해야하니 깊이 생각해야 한다.
4.
요즈음 사대부·감사(監司)·군수(郡守)가 산에 들어와 처소를 잡으면 다음날 시자(侍者)를
시켜 큰스님에게 "오늘은 특별히 아무개 관리가 법회에 오르겠읍니다" 하고 아뢰게 하는 경
우를 보는데, 이 한 마디는 세 번쯤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예로부터 방책(方冊) 가운데 실린 이름이 모두가 선지식을 찾아온 사대부이긴 하나, 이때
주지는 그들이 참례하는 마당에 속인으로서 불법을 보호하는 방법만을 대략 거론하여 산문
(山門)의 본의를 빛나게 하였다. 이렇게 집안 사람이 집안 일 한두 마디를 담박(淡泊)하게
하여 상대방이 공경하는 마음을 내도록 하였던 것이다.
곽공보(郭公輔)와 양차공(楊次公)이 백운(百雲)스님을 방문하고, 소동파(蘇東坡)·황태사
(黃太史)가 불인(佛印)스님을 뵌 경우가 모두 이런 본보기이다. 어찌 유별나게 망령을 떨어
식견있는 자들에게 비웃음을 샀겠는가.
5.
옛사람은 납자들이 선방에 들어오면 먼저 패(牌)를 걸어놓고 각각 생사의 큰일을 위해 힘
차게 찾아와 결택(決擇)을 구하게 하였는데, 요즈음은 늙었거나 병들었거나를 묻지 않고 모
조리 와서 극진한 공경을 바치게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사향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향기가 나게 마련인데 하필 일률적으로 몰아붙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 결과적으로 예의를 따지는 절차 조목만 부질없이 생겨나 손님 쪽이나 주인 쪽이나
편치 않으니 주지라면 마땅히 생각해야 하리라.
6.
초조 달마(初祖達磨)스님께서는 의발(衣鉢)과 법을 둘 다 전하였는데, 6조 혜능스님에 이르
러서는 의발은 전하지 않고 깨달음과 수행방법이 이 도리에 맞는지만을 기준으로 하여 대대
로 가업(家業)을 삼았다. 이로부터 조사의 도는 더욱 빛나고 자손은 점점 번성하였다.
6조(六祖) 대감(大鑑:혜능)스님의 후예로는 석두(石頭)·마조(馬祖)스님이 다 적손(嫡孫)으
로서 반야다라(般若多羅)스님의 예언에 적중하였으니, "요컨대 아손(兒孫)의 다리를 빌어 걷
겠구나"라고 한 말씀이 바로 이 말이다.
두 스님의 현묘한 말이 천하에 퍼져 은밀한 깨달음에 가만히 부합한 자들은 더러더러 있게
되었다.
법을 이어받은 자가 많아지자 가문을 독차지하는 학풍이 없어졌다. 그리하여 조계(曹溪)의
원류가 다섯 파로 나뉘었으나, 마치 모나고 둥근 그릇에 물이 담길지라도 물 자체는 변함없
는 경우와 같아서 각각 아름다운 명성이 드날리며 자기의 책임을 힘써 실천하였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명령 하나가 온 납자들에게 미쳐 총림이 물끓듯 하였는데 이는 구차하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이로부터 서로가 주고받으면서 은미하고 그윽한 도를 드러내 밝히기도 하고, 혹은 부정하
고 혹은 긍정하면서 설법을 했는데, 그 말 자체는 아무 맛 없기가 마치 나무토막으로 끓인
국, 무쇠로 지은 밥과도 같았으므로 후배들이 이를 씹어보고 염고(古)라고 불렀다.
그러한 게송은 분양(汾陽)스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설두(雪)스님에 이르러서는 변론이 유창
하고 종지는 밝게 드러나 광대하기 그지 없었다. 그런데 후세에 게를 짓는 자들은 설두스님
을 부지런히 좇아가기는 하나 도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문체를 아름답게 하는 데만 힘을 쏟
아 후학들로 하여금 혼순(渾淳)하고 완전한 옛사람의 종지를 보지 못하게 하였다.
아 - 아, 나는 총림에 노닐면서 선배들을 보고 옛사람의 어록이 아니면 보질않고 백장(百
丈)의 호령이 아니면 행하질 않으니, 내 이런 태도가 어찌 복고적인 성향 때문만이겠는가.
요즈음 사람들에게서는 본받을 만한 점이 없기 때문이다.
원컨대 지혜로운 자라면 말 밖에서 내 뜻을 알아내야 하리라.
7.
요즈음 편견으로 집착하기 좋아하는 납자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들은 세상 물정 모르고
경솔하게 약속을 해대다가 수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에게 아첨하는 사람을 사랑하
면서 순종하면 좋다 하고 거역하면 멀리한다.
설사 반쯤, 아니 온전한 분별이 있는 자라 해도 이런 악습에 가리워지면 머리가 희끗한 노
인이 되도록 성취한 것 없는 수가 많다. 『지림집(智林集)』
8.
이르는 총림마다 삿된 말이 불길 같다. 즉 "계율을 지키거나 정혜(定慧)를 익힐 필요도 없
으며, 도덕을 닦고 탐욕을 버려 무엇하겠는가"라고들 말한다. 거기다가 『유마경(維摩脛)』
이나 『원각경(圓覺脛)』을 인용하여 증거를 대면서 탐진치 살도음망(貪痴殺盜淫妄)을 범
행(梵行)이라 찬탄하기도 한다.
아 - 아, 이 말이 어찌 오늘의 총림에만 해가 되겠는가. 참으로 불법 만세의 병통이다.
또 번뇌에 꽉 얽혀 있는 범부는 탐하고 성내는 애욕과 나다 너다〔人我〕하는 어리석음
〔無明〕이 생각 생각에 마주함이 마치 한 솥 끓는 물과도 같으니 무슨 수로 식히겠는가.
옛 성인께서는 필연적으로 이러한 문제가 있으리라는 것을 잘 내다보시고 드디어는 계(
戒)·정(定)·혜(慧) 3학(三學)을 마련하여 그런 짓을 그만두고 돌이키기를 바랐던 것이다.
지금의 후학들은 계율을 지키지도 정혜를 익히지도 않는다. 도는 닦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지식만 늘리고 억지 변론이나 하면서 세속으로 끌려들어가 잡아당겨도 되돌아올 줄 모른다.
이것이 내가 말한 `만세의 병통'이다.
바른 발심〔正因〕으로 수행하는 고상한 납자라면 생사를 한 번에 결판내야 하니, 성신(誠
信)을 간직하여 이 무리들에게 끌려가서는 안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이는 마치 극약을 먹고 싼 똥이나 독사가 마신 물과 같으니 보
거나 들어서도 안되는데 하물며 먹어서야 되겠는가. 그 물이 사람을 죽이리라는 것은 의심
할 여지가 없다. 식견이 있는 자라면 자연히 그것을 멀리 하리라." 『여초당서(與草堂書)』
9.
초당스님의 제자 중에 유일하게 산당(山堂)스님만이 옛사람의 풍모를 간직했을 뿐이다. 황
룡사에 살 때, 공적인 일을 맡아 주관하려면 반드시 용모를 가다듬고 방장실(方丈室)에 나아
가 분부를 받은 뒤에야 차 달이는 예의를 갖추었다. 이런 태도는 시종 변함이 없었다.
지은(智恩)이라는 상좌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면서 금(金) 두 닢을 내놓은 일이 있었다. 이
를 이틀이 지나도 찾지 못하였는데 시자 성승재(聖僧才)가 청소를 하다가 이를 주어 습유패
(拾遺牌)에 걸어놓자 온 대중이 이를 알게 되었다.
이는 법을 주관하는 주지가 청정하여 웃사람이 하는 것을 아랫사람이 본받았기 때문이다.
10.
만암스님은 근검·절약하여 소참(小參)에 보설(普說)하면서 공양하게 되었다. 납자들 사이
에 나름대로 이를 문제삼는 자가 있자 스님이 그 말을 듣고 말하였다.
"아침에 고량진미를 먹고도 저녁에는 거친 음식을 싫어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대들이
생사의 큰일을 생각하여 적막한 구석에서 살고자 하였다면 도업(道業)을 이루지 못할까만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성인과 멀어진 지가 아득한데 조석으로 탐하고 즐기는 것을 일삼아
서야 되겠느냐."
11.
만암스님은 천성이 어질고 후하며 자기 처신에는 청렴하였다.
평소에 법문을 하면 말은 간결하나 의미는 치밀하였으며, 널리 배우고 열심히 익혀 철저히
도리를 따져 나갔으며, 구차하게 중단하거나 허망하게 남의 논리를 따르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과 고금을 평론하면 마치 자신이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닌 듯하여 듣는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분명히 깨달았다. 어떤 납자가 스님을 두고 한 말이 있다.
"세월이 다하도록 참선하는 것이 하루 동안 스님의 말을 듣고 체득하는 것만 못하다."
『기문(記聞)』
12.
만암스님이 수좌 변(辯)스님에게 말하였다.
원오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즈음 참선하는 사람들은 절의(節義)를 대단찮게 여기고 염치를 차리지 않으므로 사대부
들이 업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대도 뒷날 이렇게 되는 것을 면치 못한다면 벌레와 한 가
지일 것이다. 항상 법도에 맞게 수행할지언정 권세나 이익을 좇느라 남의 안색이나 살펴 아
첨하지 말며, 생사·재앙은 일체 그대로 맡겨두어 버린다면 마구니 세계를 벗어나지 않은
채 그대로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리라."[법어(法語)]
29
도를 간직하고 뜻대로 살다
소각 대변(昭覺大辯)스님
1.
수좌 소각 대변스님이 세속을 떠나 여산(廬山) 서현사(棲賢寺)에 머물면서 항상 대나무 지
팡이 하나와 떨어진 짚신 한 켤레만을 지니고 다녔다. 이런 꼴로 구강(九江)을 지나자 동림
(東林)의 혼융(混融)스님이 보더니 이렇게 꾸짖었다.
"스님이란 사람들의 모범이다. 행동거지가 이 꼴이니 자신을 경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겠
는가. 예의 차리는 것이 엉망이구나."
수좌 변(辯)스님은 웃으며 대꾸하였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즐거움이니, 내게 무슨 허물이 있겠읍니까?"
그리고는 붓으로 게송을 써 놓고 가버렸는데, 그 게송은 이렇다.
날더러 형편없다 흉보지 말라.
형색이 초라하다고 도마저 궁하겠는가.
짚신은 호랑이 같이 사납고
지팡이는 용처럼 꿈틀거리네.
勿謂棲賢窮 身窮道不窮
草鞋獰似虎 杖活如龍
목마르면 조계수(曹溪水) 마시고
배고프면 율극봉(栗棘蓬) 먹는다네.
고지식한 돌대가리여
다들 아상에 빠져 있구나.
渴飮曹溪水 饑呑栗棘蓬
銅頭鐵額漢 盡在我山中
혼융스님은 이를 보고 부끄러워하였다. 『월굴집(月窟集)』
2.
수좌 변(辯)스님이 혼융스님에게 말하였다.
"조각된 용이 비를 뿌릴 수 없듯, 그림 속의 떡으로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듯, 납자들이 안
에 실다운 덕이 없으면서 밖으로 화려하고 교묘한 것만을 믿는다면, 마치 썩어서 물이 새는
배에다 화려하게 단청을 하고서 허수아비 사공으로 육지에 닿으려는 것과 같다. 이는 실로
구경거리야 되겠지만 물을 건너다 갑자기 풍파라도 만난다면 위태롭지 않겠는가." 『월굴집
(月窟集)』
3.
이른바 큰스님이라 하는 이는 부처님을 이어 교화를 드날리는 자이니, 요컨대 자기부터 깨
끗이 하여 대중에 임하고 일을 벌이면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해를 따져 마음을 이랬다 저
랬다 해서야 되겠는가.
내게 주어진 일을 당연히 이렇게 하면 될 뿐, 성취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는 옛 성인이라
도 꼭 기약하지는 못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구차한 말을 하겠는가.
4.
불지(佛智)스님이 서선(西禪)에 살 때였다.
다른 납자들은 제것을 챙기고 정돈하느라 정신없는데, 수암(水庵)스님만은 천성이 조용하고
따뜻하며 자기 몸 봉양하는 데는 지극히 박절하였지만 고고한 모습으로 대중 가운데 있으면
서는 한번도 구차하게 미련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불지스님은 그에게 꾸짖는 투로 말하였다.
"어쩌면 이렇게도 바보스러울까."
수암스님은 대꾸하였다.
"제가 물건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여 정돈할 만한 물건들이 없을 뿐입니다.
제게도 돈이 있다면 털옷 한두 벌 해 입고 도반들과 함께 어울리겠읍니다만 가난하여 도무
지 어찌해 보질 못하겠읍니다."
불지스님은 웃으면서 억지로는 안되겠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드디어는 그만두었다.
30
납자는 총림을 보호하고 총림은 도덕을 보호한다
불지 단유(佛智端裕)스님 / 1085∼1150
1.
힘차게 달리는 준마가 실족하지 않는 것은 재갈과 고삐 때문이며, 아무리 억지 센 소인이
라 할지라도 감히 제 뜻대로 다 못하는 것은 형벌이 막아주기 때문이듯, 치달리는 알음알이
〔意識〕가 감히 경계를 반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선정을 닦은〔覺照〕의 힘이다.
슬프다. 납자에게 선정을 닦은 힘이 없다면 준마에게 고삐가 없고 소인에게 형벌이 없는
것과 같으리니, 무엇으로 탐욕을 끊고 망상을 다스리겠는가. 『여정거사법어(與鄭居君法
語)』
2.
불지스님이 수암(水庵)스님에게 말하였다.
"주지의 기본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도덕·언행·인의·예법이다. 도덕·언행은 가르침의
근본이며, 인의·예법은 그 지말이다. 그러므로 근본이 없으면 우선 자립하지 못하고, 지말
이 없으면 완성되지 못한다.
옛 성인께서는 납자들이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보셨다. 그래서 총림을 세워 그들
을 안주시키고 주지를 뽑아 통괄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니 총림의 존귀가 주지를 위한 것
이 아니며, 앞서 말한 네 가지 아름다운 근본은 납자만을 위한 것도 아니라 모두 불조의 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훌륭한 주지는 무엇보다도 도덕을 존중하고 언행을 조심하는 한편, 납자된 이는
무엇보다도 인의를 간직하고 예법을 지켰다. 그러므로 주지는 납자가 아니면 존립할 근거가
없고, 납자는 주지가 아니면 덕을 완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몸과 팔, 머리와 발이
크기가 알맞아 거슬리지 않고 서로가 의지하며 가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납자는 총림을 보호하고 총림은 도덕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했던 것이니 주지
된 사람이 도덕이 없다면 총림은 폐지되고 말 것이다." 『실록(實錄)』
31
한끼 먹고 눕지 않으며 선정을 닦다
수암 단일(水庵端一)스님*/1107∼1176
1.
『주역(周易)』에 `군자는 환난을 생각해 미리 방지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생사의 큰 환난을 생각하여 도를 닦아 방지하고 드디어는 이 도를 크게 운용하고 널리 전하
였던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도를 구하는 일은 현 실정에서 멀다. 절실히 당면한 이익을 구하느니만
못하다'라고들 한다. 이리하여 들뜨고 화려한 것만 다투어 익히고 털끝만한 이끗도 비교하
고 헤아리면서 눈앞의 일만 하려하고 구차한 계교를 품는다. 때문에 한 해를 주선해 갈 계
획조차 세우지 않으니, 더구나 생사를 염려하겠는가.
그러므로 납자들은 날로 야비해지고 총림은 계속 피폐되며 기강이 실추되어, 드디어는 밋
밋하다가 거의 구제가 불가능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슬프다. 걱정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쌍림실록(雙林實錄)』
2.
옛날 운거산(雲居山)에 떠돌아다니다가 고암(高庵)스님이 저녁 소참(小參)에서 이렇게 말하
는 것을 들었다.
"지극한 도는 너무 곧아서〔徑挺:直指〕 상식을 벗어나 있으니, 모름지기 마음을 진실히 하
고 뜻을 바르게 하여 교만과 꾸밈·치우친 사견을 일삼지 말아야 한다. 교만과 꾸밈은 속임
수·아첨에 가깝고 삿됨과 치우침은 올바른 중도가 아니므로 지극한 도와는 모두가 일치하
지 못한다."
나는 나름대로 그 말씀이 이치에 가깝다 생각해서 각고의 의지로 실천해 가다가 불지선사
(佛智先師)를 뵙자마자 크게 깨닫고 평생 행각하는 목적을 저버리지 않게 되었다. 『여월당
서(與月堂書)』
3.
월당(月堂)스님은 주지하면서 가는 곳마다 도를 실천하는 것으로 자기의 임무를 삼았다. 화
주(化主)를 보내지도 않고, 누구를 찾아가 뵙는 것도 일삼지 않았다. 해마다 대중을 헤아려
소득을 따라 물자를 사용하였다. 납자들 가운데 화주하려는 마음을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들을 물리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부처님도 비구에게 발우를 지니고 신명을 도우라고 가르치셨는데, 스님께서는 왜 거절만
하고 용납하지 않으시는지요?"
월당스님은 대답하였다.
"우리 부처님께서 살아 계셨을 때에는 가능했으나 요즈음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이익을 좋아
하는 자가 있어서 자신을 파는 데까지 이를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월당스님의 이 말이 점점 불어나는 악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신 절실하고도 현
명하며 실제에 걸맞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요즈음의 세태를
보건대 어찌 자신을 파는 데 그칠 뿐이겠는가. 『법어(法語)』
4.
수암스님이 시랑(侍郞)인 우연지(尤延之)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대우(大愚)·자명(慈明)·곡천(谷泉)·낭야(¿)스님이 도반이 되어 분양스님을 참방
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하동 지방은 추위가 극심한지라 모두들 가려하지 않았으나 자명스
님만은 도에 뜻을 두어 아침저녁으로 게을리하지 않았읍니다. 밤에 좌선하다가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자신을 찌르며 이렇게 탄식하였읍니다.
"옛사람은 생사의 큰일을 위해서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던데,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토록
방종하여, 살아서는 시대에 도움이 못되고 죽어서도 후세에 남길 이름이 없으리니, 이는 자
신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고는 하루아침에 하직하고 되돌아 가 버렸다. 그러자 분양스님은
"초원(楚圓)이 지금 떠나버렸으니 나의 도가 동쪽으로 가겠구나" 하고 탄식하였읍니다."
『서호기문(西湖記聞)』
5.
옛날 덕 있는 주지는 솔선하여 도를 실천하였을 뿐, 구차하게 명리를 구하느라고 인의(仁
義)를 저버리는 방자한 일은 하지 않았다. 옛날 분양스님은 상법·말법 시대에 심성이 들떠
서 납자 교화하기 어려운 것을 매양 탄식하였다. 이에 자명스님은 말하기를, "이는 매우 쉬
운 일인데도 문제는 법을 주관하는 자들이 잘 인도하지 못하는 데 있읍니다"
하자, 분양스님이 말하였다.
"순수하고 성실한 옛사람도 2,30 년을 지내고서야 도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자 자명스님은 말하였다.
"이는 훌륭한 성인의 얘기가 아닙니다. 열심히 도에 매진하는 자라면 천일 공부면 됩니다."
사람들은 헛소리라 여겨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그리고 분양 지방은 매우 추웠으므로 여기
서 야참(夜參)을 마쳤다. 이역의 어떤 비구가 분양스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모임에는 보살(大君)이 여섯이나 있는데 왜 법을 설하지 않는지요?"
그러더니 천일이 못된 3년 안에 과연 여섯 사람이 도를 이루었다. 분양스님은 이 일로
게송을 지었다.
호승(胡僧) 지팡이의 광채
법을 청하러 분양에 이르렀네
여섯 사람 큰 그릇 이루니
법을 펴 드날리라 권하네
胡僧金錫光 請法到汾陽
六人成大器 勸請爲敷揚 『서호기문승(西湖記聞僧)』
6.
투자 의청(投子義淸)스님이 은사 수암스님의 초상화를 그려놓고 찬(贊)을 지었다.
나의 스승 수암스님
당당하기 당할 자 없네
하루 종일 한끼 공양에
자리에 눕는 일 없네
선정에 깊이 드시어
들고 나는 숨마저 잊으셨는지
嗣淸禪人 孤硬無敵
晨昏一齋 脇不至席
深入禪定 離出入息
명성이 대궐에 퍼져
선덕전에서 선을 논할 제
용안(龍顔)이 활짝 펴지사
비단을 내리시었네.
세번 굳이 사양하시니
천자 더욱 칭찬하셨네.
名達九重 談禪選德
龍顔大悅 賜以金帛
力辭者三 上乃圈歎
진실한 도인이시여
초목도 빛을 드날립니다.
못난 제게 법을 물려주시니
향 사루어 찬을 지어봅니다.
眞道人也 草木騰煥
傳予陋質 香請贊
이 찬(贊)으로 미루어 보건대 소위 청출어람(靑出練藍)이라 하겠다. 『견서상(見書像)』
7.
불지선사(佛智先師)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산 연조(東山演祖)께서는 경룡학(耿龍學)에게 `나에게 원오(圓悟)가 있는 것은 물고기에
게 물이 있고 새에게 날개가 있는 것과 같다' 하셨다. 그 때문에 승상인 자암거사(紫巖居君)
가 이렇게 찬탄하였다.
`스승과 제자〔師資〕가 서로를 인정하며 동시에 만나기를 희망하니, 그들의 한결같은 정
분을 누구라서 이간질하겠는가.'
자암거사는 말의 이치를 안다 할 만하다.
요즈음에 제방(諸方)의 큰스님들은 딴 마음을 품고 납자를 거느리며, 한편 납자들도 세력과
이익을 끼고 큰스님을 섬기는 경우를 보게 된다. 주인과 객이 서로 이익을 다투고 상하가
속이고 업신여기니 어떻게 불교가 일어나고 총림이 성대해지겠는가." 『여매산윤서(與梅山
潤書)』
8.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진실하고 간절해야 한다. 말이 진실·간절하지 못하면 받는 느
낌도 따라서 얕으리니 어떤 사람이 그런 말에 기꺼이 감동하겠는가. 옛날 백운(白雲)스님께
서 나의 스승(불지 단위스님)을 전송하실 때 사면(四面)에 머무시면서 간절하게 말하셨다.
"조사의 도가 해이해져서 쌓아올린 달걀마냥 위기에 처해 있으니, 함부로 방일하며 헛되게
세월만 보내고 지극한 덕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넓게 받아들이는 도량으로 세상을 이익케
하고 중생을 보존할지니, 이렇게 하여 불조의 은혜에 보답하거라."
당시 이 말을 들은 자들은 누구라서 감동하지 않았겠는가.
투자(投子), 그대는 지난날 부름을 받고 대궐로 들어가 천자를 대면하였으니 실로 불교 집
안의 다행이라 하겠다. 자기를 낮추고 도를 높혀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지 자
신을 뽐내고 자랑해서는 안된다.
예로부터 선철(先哲)들은 겸손과 공경으로 자기를 보존하고 덕을 완전히 하였으며, 세력과
지위를 영화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청아함은 한 시대를 진동하였고, 아름다
움은 만세토록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내 죽을 날이 멀지 않아 다시는 못볼까 염려
스러우니, 때문에 이를 간절히 부탁한다. 『견투자서(見投子書)』
9.
수암스님은 젊어서 기상이 훤출하였다. 큰 뜻〔圍〕이 있어 기개와 절도를 숭상하였으며,
들떠 쏠리는 일도 없고 자잘한 것까지 다 따지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용납하는 마음가짐으
로 도리에 맞게 행동하였으며, 재해가 목전에 닥쳐도 실색한 빛을 보이지 않았다. 여덟 절의
주지를 역임하고 4개 군(郡)을 두루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애써서 도를 실천하여 일으켜 세
우려 하였다.
순희(淳熙) 5년(1178)에 서호(西湖)의 정자원(淨慈院)으로 은퇴하였는데 이런 게송을 지었
다.
황도(皇都)의 큰 절에서 6년을 쓸고 닦았더니
기와 조각이 제석의 범천궁(梵天宮)이 되었네
오늘 집이 완성되자 갈 길 가시노니
지팡이의 팔면에서 청풍이 일어나네.
六年灑掃皇都寺
瓦礫凶成繹梵宮
今日宮成歸去也
杖頭八面起淸風
사람들이 길을 막고 더 머무시라 청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작은 배로 수수(秀水)의 천녕사
(天寧寺)에 가신 지 오래지 않아 병을 보이더니 대중과 이별하고 임종을 고하였다. 『행실
(行實)』
32
성급하게 제자 지도함을 경계하다
월당 도창(月堂道昌)스님 / 1089∼1171
1.
옛날 대지(大智)스님께서 말세의 비구들이 교만하고 게으를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법도를
지어 이를 예방하셨다. 그들의 그릇과 능력에 따라 각각 소임을 정하였는데, 주지는 방장실
에 대중은 큰 방에 거처하며, 예시한 10개 소임〔十局頭首〕의 엄숙하기는 관부(官府)와
도 같았다.
웃사람은 굵직한 일을 주관하였고 아랫사람은 세부조목을 정리하여, 상하가 몸이 팔을 부
리고 팔이 손가락을 움직이듯 서로 받들고 통솔하였다. 그러므로 앞사람들이 법도를 따라
계승하여 공경하고 떠받들며 조심스럽게 실천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옛 성인의 유풍(遺風)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총림이 쇠퇴하여 납자들이 재능에 능한 것만을 귀하게 여기고 절개 지키는 것을
천시한다. 들뜨고 화려한 것을 숭상하고 진실·소박을 가벼이 여기기를 날로 달로 더하여
점점 말세로 치닫는 것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일시적인 편안함만 훔치는 정도였다가 빠져
들어 익숙해진 지가 오래되면 으례 그런 것이려니 하고 비리(非理)로 여기지 않게 된다. 그
리하여 웃사람은 아랫사람을 두려워하며, 아랫사람은 웃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평소에는 달콤한 말로 굽신거리며 아첨하다가 틈이 생기면 사나운 마음과 속임수로 서로를
해친다. 여기에서 일을 이룬 사람은 훌륭하다 하고 패한 자는 어리석다 하며 존비(尊卑)의
질서나 시비(是非)의 이치를 다시는 묻지도 않는다. 일단 상대방에서 그렇게 하고 나면 이
쪽에서도 똑같이 본받으니, 아랫사람이 말하고 나면 웃사람이 그를 따르며 앞에서 행하고
나면 뒤에서 따라 익힌다.
아 - 아, 성인이신 우리 스승이 원력을 바탕으로 백년 공부를 쌓지 않으셨다면 이 고질화
된 폐단을 개혁할 수가 없으리라.
2.
월당스님이 정자원(淨慈院)에 머문 지가 매우 오래되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서는 도를
수행하신 지가 여러 해가 되었는데도 문하에는 제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지 못하였읍니다.
이는 묘담(妙湛)스님을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요?" 하고 말하자, 스님은 대꾸도 하지 않았
다. 뒤에 거듭 이를 따지자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런 소리를 듣지도 못하였는가. 옛날에 오이를 심어놓고 매우 아끼는 자가 있었
다네. 그런데 무더운 여름날 한낮에 물을 주자 오이는 발꿈치 돌리는 순간 시들어 버렸다네.
무엇 때문이었겠나? 신경쓰기를 게을리해서가 아니라 물을 제때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니,
시들게 하기에 딱 알맞은 짓이었다네.
제방의 노숙(老宿)들이 납자를 끌어줄 때, 그의 도업이 안으로 충실한지, 재능과 그릇은 크
고 위대한지를 관찰하지 않고 그저 성급하게 위하는 마음만 쓰려 할 뿐이지. 그리하여 납자
들의 도덕을 보면 더럽고 언행을 보아도 도리에 어긋나 있으며 공평정대함으로 말하자면 삿
되고 아첨스러우니, 아끼는 마음이 그의 분수에 지나쳐서가 아니겠는가?
이는 바로 한낮에 오이에 물을 주는 것과도 같다네. 나는 식견있는 사람들이 비웃을까 깊
이 염려스럽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네." 『북산기문(北山記聞)』
3.
황룡스님이 적취암(積翠庵)에 머무를 때 병으로 석달을 문 밖으로 나오질 못하였다. 그때
진정(眞淨)스님은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하다가 머리와 팔을 태우기까지 하면서 은밀한 가피
력을 빌었다. 황룡스님이 이 말을 듣자 꾸짖으며 말하였다.
"살고 죽는 것은 원래 내 분수이다. 그대는 참선을 했는데도 이토록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
였는가."
그러자 진정스님이 얼굴빛을 누그러뜨리고 대꾸하였다.
"총림에 저는 없어도 되지만 스님께서 없어서는 안됩니다."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진정스님이 스승을 존경하고 법을 소중히 하는 정성이 이 정도니 뒷날 반드시 큰 그릇을
이루리라." 『북산기문(北山記聞)』
4.
황태사 노직(黃太史魯直)이 일찌기 이렇게 말하였다.
"황룡 남(黃龍南)스님은 인격이 깊고 두터워 다른 것에 의해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았으며
평소에 교만이나 꾸밈이 없었다. 문하의 제자들도 종신토록 그가 희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며, 심부름하는 일꾼에게까지도 한결같이 정성으로 대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명성이나 기개에 흔들림 없이 자명스님의 도를 일으켰던 것이지 구차하게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일본견황룡석각(一本見黃龍石刻)』
5.
건염(建炎) 기유(¿酉:1129) 상사일(上巳日)에 종상(鍾相)이 풍양(陽)땅에서 반란을 일으켰
다.
문수 심도(文殊心導)스님께서는 난리에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었는데, 도적들의 세력이 성
대해지자 그의 제자들이 도망을 가버렸다. 그러자 스님은 "재앙을 피할 수 있겠느냐"고 하
며 의연한 모습으로 방장실에 계시다가 끝내는 도적들에게 해를 당하였다.
무구거사(無垢居君)는 그 법어를 발췌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오직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
이 본래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태어나도 삶에 집착하지 않으며, 한번도 멸한 적이
없다는 것을 통달하고 죽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화환(禍患)을 당해 죽을 찰나에
도 자기가 지키던 것을 바꾸지 않을 수 있다 하였는데, 스님이 바로 그런 사람일 것이다. 스
님의 도덕과 절의는 총림을 교화하고 모범을 후세까지 드리우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스님의 이름은 정도(正導)이며, 미주(眉州) 단릉(丹稜) 사람으로서 불감(佛鑑)스님의 법을
이었다. 『일본견여산병부혜태사기문(一本見廬山兵府惠太師記聞)』
33
교외별전을 해설하는 폐단을 경계하다
심문 운분(心聞雲賁)스님*
1.
납자들이 참선을 하다가 병통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병통이 귀와 눈에 있는 자들은 눈썹
을 솟구치고 눈을 노기등등하게 하며, 귀를 기울여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선(禪)으로 여긴
다. 병통이 입과 혀에 있는 자들은 전도된 말로 어지럽게 할(喝)! 할(喝)!하는 것을 선으로
여긴다. 병통이 손과 발에 있는 자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나며, 여기 저기 가리키는
것으로 선을 삼는다. 병통이 가슴 속에 있는 자들은 현묘함을 끝까지 궁구하고 알음알이를
벗어나는 것을 선으로 여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경우가 사실은 모두 병통이다. 진짜 선지식〔本色宗師〕이라야 깊숙한
기미에서 분명히 살펴낼 수 있으니, 보자마자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알아차리며, 입문했을
때 깨칠 수 있을는지 못할는지를 분별해 버린다. 그런 뒤에 한 방을 날려 끈질기게 이어지
던 그들의 미세한 번뇌까지 벗겨주며, 막힌 곳을 쳐서 진실과 거짓을 판정케 한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의 방편만을 고집하느라 변통(變通)에 어두운 일이 없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끝
내 안락하여 일 없는 경지를 밝히게 하고 그런 뒤에야 그만두는 것이다. 『어록(語錄)』
2.
옛사람이 말하기를 `천 사람 가운데서 빼어나면 영특〔英〕하다 하고, 만 사람 가운데서
빼어나면 걸출〔傑〕하다' 하였다. 납자로서 지혜와 수행이 총림에 소문난 자라면 어찌 영
걸(英傑)한 인재에 가깝다 하지 않으랴. 단지 부지런히 탐구하여 거짓을 버리고 진실을 지녀
누구나 제자리에 쓰일 수 있게 한다면 절의 규모나 대중의 수에 관계없이 모두가 그의 교화
를 따르리라.
옛날 백정의 풍혈(風穴)·우란의 약산(藥山)·대매의 상공(常公)·형초의 자명(慈明)스님,
이 스님이 모두 위와 같은 영걸이셨는데, 당시 그들과 어울리던 유유자적한 무리들이 이들
에게 지위나 외모를 구했더라면 보고서는 반드시 업신여겼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영광된 사석(師席) 법좌(法座)에 올라 모든 사람들이 에워싼 가운데 불조의 도
를 밝혀, 만세의 빛이 되었으니, 총림에서 누군들 그 풍모만 바라보고도 쏠리지 않았겠는가.
더구나 앞사람들은 아름다운 재질과 뛰어난 기상을 가지고도 시기를 만나지 못했을 즈음에
는 조심하면서도 수치와 더러움을 참고 세상에 뒤섞여 함께 어울리면서 이렇게 살아갔는데,
하물며 이보다 더 못한 자의 경우이겠는가.
아 - 아, 옛날도 지금과 같으니 그 사정은 마찬가지다. 기어코 약산·풍혈스님을 기다려
스승 삼으려 한다면 천년에 한번 만날 것이며, 꼭 대매·자명스님을 도반으로 의지하려 한
다면 백년에 한번쯤 나올 것이다.
모든 일은 은미한 곳으로부터 현저한 데에 이르며, 공은 작은 것이 쌓여 큰 것을 이루는
법이니, 배우지 않고도 성취하고 수행하기에 앞서 먼저 깨친 자를 보지 못하였다. 이 이치를
깨닫는다면 스승을 구하고 벗을 선택하며 도를 배우고 덕을 닦는 일이 가능하리라. 그렇게
되면 천하의 일 중에서 무엇을 시행한들 되지 않겠는가.
옛사람은 말하기를 `사람 알아보기가 참으로 어려우니 이 일은 성인도 부족하다 여기셨다'
하셨는데, 하물며 그 나머지이겠는가." 『여죽암서(與竹庵書)』
3.
교외별전(敎外別傳)의 도는 지극히 간요(簡要)하여 애초에 아무 말이 없었다. 앞사람들은
의심없이 실천하고 꾸준히 지켜나갔다.
그러다가 천희(天禧:1017∼1022) 연간에 설두(雪)스님이 박식과 말재주로 의미를 아름답게
한답시고 손을 대어 희롱을 하였으며, 참신하게 한답시고 교묘하게 다듬으며 분양(汾陽)스님
을 계승, 송고(頌古)를 짓고 당세의 납자를 농락하니 종풍(宗風)이 이로부터 한번 변하게 되
었다.
선정(宣政:1100∼1125) 연간에 이르러 원오(圓悟)스님이 여기에다 또 자기의 의견을 붙이고
이를 떼어내 『벽암집(碧巖集)』을 만들었다. 그때 옛날의 순수·완전한 경지에 매진하던 인
재로서 영도자(寧道者)*·사심(死心)·영원(靈源)·불감(佛鑑) 같은 모든 노숙들도 그의 학
설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새로 진출한 후학들이 그의 말을 보배처럼 귀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아침저녁으
로 외우고 익히면서 지극한 학문이라 말들 하며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자가 없
었다.
슬프다. 잘못되어 가는 납자들의 공부〔用心〕여.
소흥(紹興:1131∼1162) 초에 불일(佛日)*스님이 민() 지방에 들어갔다가 납자들을 끌어당
겨도 되돌아보질 않고 날로 달로 치달려 점점 폐단을 이루는 것을 보고는 즉시 그 경판(脛
板)을 부수고 그 학설을 물리쳐버렸다. 이로써 미혹을 제거하고 빠져든 이를 구원하였으며
번잡하고 심한 것을 척결하고 삿됨을 꺾어 바른 길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런 기세가 널리
확산되자 납자들이 이제껏 잘못되어 왔다는 것을 차츰 알고 다시는 흠모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불일스님이 멀리 내다보는 고명한 안목으로 자비원력을 힘입어 말법의 폐단을 구하
지 않았더라면 총림에는 두고두고 걱정거리가 남았으리라. 『여장자소서(與張子韶書)』
34
큰도는 어리석음도 지혜로움도 없다
졸암 덕광(拙庵德光)스님 / 1121∼1203
1.
졸암 불조 덕광(拙庵佛照德光)스님이 처음 천복사(薦福寺)에서 설당(雪堂)스님을 참례하였
을 때, 관상장이가 한번에 그를 인물로 알아보고는 설당스님에게 말하였다.
"대중 가운데 광상좌(光上座)는 두상〔頂骨〕이 반듯하고, 이마는 넓고 턱은 도타우며, 사
지와 양미간 이마 어느 한 군데 모난 곳이 없읍니다. 뒤에 반드시 왕의 스승이 될 것입니
다."
효종 황제가 순희(淳熙) 초(1174)에 그를 불러 대면하였는데 마음에 맞아 내관당(內觀堂)에
서 7일을 머물게 하고는 전례없던 특별대우를 하며 불조(佛照)라는 이름을 하사하니 소문이
천하에 퍼졌다. 『기문(記聞)』
2.
졸암스님이 승상(丞相) 우윤문(虞允文)에게 말하였다.
"대도는 훤출하여 본래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이 없읍니다. 예컨대 이윤〔伊尹:탕(湯)임금 때
의 훌륭한 재상〕과 여망〔呂望:주나라 무왕(武王)때의 어진 신하로 강태공이라 알려져 있
음〕이 농사짓고 물고기 잡는 데서 일어나 왕의 스승이 된 것과도 같으니, 어찌 지혜롭고
어리석은 정도를 가지고 헤아릴 수 있겠읍니까. 잡다하게 뒤섞여 있는 상태에서 대장부가
아니라면 누구라서 대도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겠읍니까." 『광록(廣錄)』
3.
선야 암(璇野庵)스님은 항상 황룡스님에 대해 말을 하였다.
황룡 남스님은 관후(寬厚)·충신(忠信)하고 공순·자애로왔으며 도량은 원대하고 박학하다
고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항상 운봉 열(雲峯悅)스님과 호상(湖湘)에서 노닐었는데, 한번은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운봉스님은 두 다리를 길게 뻗고 양 손을 무릎에 얹은 채
마주앉았으나 황룡스님은 홀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운봉스님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
며 이렇게 말하였다.
"불조의 오묘한 도는 두서너 집 모인 촌락이나 쓸쓸한 옛 사당 속에서 죽은 모습이나 짓고
있는 생명력 없는 것이 아니오."
그러나 황룡스님은 머리를 조아리고 사례할 뿐, 꼿꼿이 앉기를 더욱 고수하였다. 그러므로
황태사 노직(黃太史魯直)이 그를 칭찬하기를 "황룡 남스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공경을 잃
지 않았으니 참으로 총림의 기둥이다" 하였던 것이다. 『환암집(幻庵集)』
4.
자기와 대중을 통솔하는 데는 반드시 지혜가 필요하고, 그릇된 망정을 떨쳐버리는 데는 반
드시 깨달음이 필요하다. 깨달음을 등지고 6진(六塵)과 어울리면 마음이 가리워지고, 지혜와
어리석음을 분간 못하면 일이 문란해진다. 『서감사서(書監寺書)』
5.
불감(佛鑑)스님이 태평사(太平寺)에 머물면서 고암(高庵)스님에게 유나(維那)직을 맡겼다.
고암스님은 어린 나이에 기상이 호탕하여 제방(諸方)의 스님을 무시하며 마음속으로 인정하
는 자가 적었다.
하루는 점심공양시간을 알리는 건치〔:작은 종〕가 울리니, 행자가 다른 그릇에 음식을 담
아 불감스님 앞에 놓는 것을 보았다. 고암스님은 당(堂)에서 나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하였
다.
"오백이나 되는 큰스님들에게 다 이렇게 해드린다면 무엇으로써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이겠
는가?"
불감스님은 못들은 체하고 있다가 그가 당에서 내려오자 인사하고는 곧 물에다 점심 반찬
인 채소를 씻었다. 불감스님은 평소에 비장병(脾臟病)이 있어 기름진 음식을 먹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고암스님은 부끄러워하며 방장실에 나아가 유나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하자, 불감스
님이 말하였다.
"그대가 한 말은 매우 합당하다. 내 병 때문에 그러했을 뿐이다. 성인께서도 이렇게 말씀하
셨다. `이치로써 모든 장애를 뚫는다'라고. 먹는 것이 호화롭지 못하니 대중들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대는 뜻과 기상이 분명하고 원대하니 뒷날 종문의 기둥이 될 것이다. 이를 받아들
이는 데 어려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불감스님이 지해사(智海寺)로 옮겨가자 고암스님은 용문사(龍門寺)를 찾아갔는데 그 후 불
안(佛眼)스님의 법을 이었다.
6.
대체로 관원과 법담을 나누며 말을 주고받으려면 반드시 알음알이를 제거하여 상대방이 망
상의 소굴 속에 앉아 있게 하지 말고, 바로 향상일구〔向上一著子〕만을 밝히게 해야 한다.
묘희스님께서도 `사대부와 마주할 때, 그가 질문하면 대꾸하고 질문이 없으면 대답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람이라야 옳으리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시대에 도움이 되고 주지의 체통도
상하게 하지 않으니 간절히 생각해야 되리라. 『여흥화보암서(與興化普庵書)』
7.
땅이 기름지면 만물을 잘 기르고, 주인이 어질면 인재를 훌륭히 기른다. 그런데 요즈음 주
지라고 불리우는 자들은 대중은 아랑곳 않고 자기 욕심만 급하게 채운다. 착한 말 듣기를
싫어하고 악한 허물 가리기를 좋아한다. 방자하고 삿된 행동으로 한 때의 뜻은 쾌활하게 하
나, 반대로 소인들에게 허물 가리기 좋아하고 충고 듣기 싫어하여 자기가 했던 것들을 고스
란히 받게 되니 주지의 도가 어찌 위태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홍노서(與洪老書)』
8.
졸암스님이 야암(野庵)스님에게 말하였다.
"승상인 자암거사(紫巖居君)가 묘희스님을 이렇게 말하였다.
`묘희스님은 평소 도덕·절개·의리·용기를 우선하시니, 친할 수는 있어도 멀리하지는 못
하고 가까이는 해도 범접하지는 못하며 죽일 수는 있어도 욕되게 할 수는 없는 분이다. 거
처는 방탕하지 않고 음식도 멋대로 맛을 탐하지는 않으며 생사와 재앙에 임해서도 무심히
넘겼으니, 이 분이야말로 간장(干將)·막야()의 보검으로서 함께 칼끝을 다투기가 어려운 상
대라 하겠다. 다만 해를 입어 다치지나 않을까 미리 걱정스러울 뿐이다.'
뒤에 과연 자암거사의 말처럼 되었다." 『환암기문(幻庵記聞)』
9.
야암스님은 주지하면서 납자들의 사정을 잘 알아주고 총림의 일에 밝았다. 언젠가는 나에
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느 총림의 주지라면 반드시 목적과 실천이 뚜렷한 납자를 가려내어 도와주어야 한다.
그 일을 마치 머리에 빗이 있고 얼굴에 거울이 있듯 한다면 이익과 병통·좋고 나쁜 것이
숨겨지지 못하리라.
이는 자명(慈明)스님이 양기(楊岐)스님을 얻고 마조(馬祖)스님이 백장(百丈)스님을 만났던
경우처럼 물과 물이 서로 합하듯 거슬릴 수 없으리라." 『환암집(幻庵集)』
10.
껍데기만 받아들이는 말세 학인들은 남의 이론이나 들을 뿐, 자기 체험을 중시하지 않아서
결국 오묘한 도를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산은 높은 것을 싫어하지 않으므로 그 가운데는
무거운 바위가 있고 푸른 숲에 싸여 있으며, 바다는 깊은 것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안으
로는 사해의 큰 물과 깊은 소용돌이가 있다'는 말이 있게 된 것이다.
대도를 탐구하는 요점은 높고 깊은 것을 궁구하는 데 있다. 그런 뒤에야 그윽하고 은미한
곳까지 밝히고 현상의 변화에 무궁하게 응할 수 있다. 『여근노서(與覲老書)』
11.
졸암스님이 우시랑(尤侍郞)에게 말하였다.
"성현의 뜻이 그 속은 느슨한 듯하나 이치는 분명하고, 겉은 여유롭지만 일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일을 주관함에 있어서는 빨리 이루어짐을 바라지 않고 꾸준함을 인정하며,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대수로 여기지 않고 여유를 갖고서 살피는 태도를 높이 삽니다.
이로써 성인의 뜻을 펼쳐가기 때문에 만세에 뻗치도록 계속되며 과실이 없는 것입니다."
『환암집(幻庵集)』
12.
시랑 우공(尤公)은 말하였다.
"조사 이전에는 주지라는 직책이 없었으나 그 뒤 세상에 응하여 도를 실천하느라고 부득이
해서 주지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가난하여 비바람을 가릴 정도였으며 음
식은 거칠어 주린 배를 채웠을 뿐이었읍니다. 고생으로 초췌해진 모습은 근심스럽기 짝이
없을 정도였지만 왕공대인(王公大人)이 한번 만나 보고자 해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읍
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세운 총림은 돌무더기 내려앉듯한 거리낌 없는 기세여서 천지를 떠
들썩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후세엔 그렇지 못하여 높은 마루·넓은 집에서 아름다운 옷·풍성한 음식으로 턱짓만으로
도 자기의 뜻대로 되었읍니다.
이때 마군의 무리가 비로소 의기양양하게 그 마음을 요동하며 권세있는 문전에 기웃거리고
꼬리치며 불쌍하게 봐주기를 바랐읍니다. 심지어는 교묘하게 훔치고 폭력으로 빼앗기를 마
치 대낮에 남의 황금을 움켜잡듯〔正晝攫金〕하였읍니다. 그리고 다시는 세간에 인과법칙
이 있다는 사실 따위는 돌아보지도 않았읍니다.
묘희스님이 이를 쓴 것이 어찌 박산(博山)만을 위해서였읍니까? 곳곳에 팽배한 악습을 철
저히 들춰내 털끝만큼도 빠뜨리지 않았으니, 이는 마치 편작(扁)이 이슬에 약을 복용*하고
환자의 오장육부를 훤히 꿰뚫어보듯 하였읍니다. 이 말을 믿고 받들어 실천한다면 따로 불
법을 구하는 일이 무슨 필요가 있겠읍니까." 『견영은석각(見靈隱石刻)』
13.
시랑 우공이 졸암스님에게 말하였다.
"옛날에 묘희스님은 임제스님의 도가 스러져가는 마당에 일으켜 세워놓고도 성품이 겸허하
여 도를 보았노라고 떠들어대지 않으셨읍니다. 평소에 권세 있는 집에 달려가지 않았으며
이양(利養)에도 구차하지 않았는데, 언젠가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만사를 제뜻대로 쾌락만을 찾아서도 안되며, 사치스럽고 게으른 태도를 지녀서도 안된다.
만사 중에는 시대에 도움이 되고 대중을 편케 해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허물만 있을 뿐 효
과는 없는 일도 있게 마련인데, 사치와 방일을 멋대로 한다면 되는 일이 없으리라.'
어리석은 나는 이 말씀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드디어는 평생의 훈계로 삼았읍니다.
노스님께서 지난날 주상(主上:왕)으로부터 내관당(內觀堂)에 유숙하도록 예우를 받은 것은
실로 불법의 행운입니다. 자비 원력을 게을리하지 마시어 착한 데로 나아갈 길을 밝게 여시
고 대중을 책임진 도가 더욱 넓어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후배들이 이제껏 익힌 습관만을 도
모하지 않고 각각 원대한 계획을 품게 하소서. 그러면 어찌 총림을 이롭게 구제하는 길이
아니겠읍니까." 『연시자기문(然侍者記聞)』
35
티끌 세속에서 불사를 짓다
밀암 함걸(密庵咸傑)스님 / 1118∼1186
1.
총림이 흥하고 쇠하는 것은 예법에 달려 있고, 납자의 아름다움과 추악함은 관습〔俗習〕
에 달려 있다.
가령 옛사람들이 둥우리나 바위굴에 거처하면서 시냇물 마시고 나무열매 먹었던 생활을 이
시대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반대로 요즘 사람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과 맛있고
기름진 음식 먹는 것을 옛 시대로 되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무슨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익숙하고 익숙하지 못한 차이 때문일 뿐이다. 사람은 아침저녁으로 눈에 익은 것을
정상으로 여기며 반드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일은 이렇게 되어야 마땅하다'라고.
그러니 하루아침에 그들을 다 잡아서 저것은 버리고 여기로 나아가라 한다면 의심을 내어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따르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이로써 관찰해 본다면 사람 마음은 익숙한 것을 편안하게 여기고, 아직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는 깜짝 놀란다. 이는 인지상정인데 무얼 괴이하다 하겠는가. 『여시사간서(與施司¡
書)』
2.
밀암스님이 수좌 오(悟)스님에게 말하였다.
"총림 가운데서 유독 절강인(浙江人)은 경솔하고 나약하여 도를 이룬 자가 적은데, 그대만
은 재질이 크고 도량이 넓으며 지향하는 바가 바르고 확실하다. 더우기 안목마저 깊숙하니
그대의 앞날을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허명을 숨기고 바깥보다는 내실에 힘쓰며, 자취
를 감추고 자기의 잘난 빛을 누그러뜨려 세속과 동화하는 가운데 언행이 모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기와를 구울 때 원형의 판을 네모로 잘라 내 사각기와를 만들고 떼어낸 네
곳을 합쳐 다시 원형을 만들듯 다 용납하는 태도여야 한다.
중도를 지니고 세력과 이익엔 조금도 타협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구태여 티끌 같은 세상
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불사(佛事)를 지으리라." 『여소암서(與笑庵書)』
3.
스승 응암(應庵)께서는 일찌기 이렇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사람과 못된 이는 서로 반대되므로 가리지 않으면 안된다. 훌륭한 사람은 도덕과
인의를 지니고 몸을 지키며, 어질지 못한 사람은 오로지 세력·이익과 속임수·아첨을 의지
하여 일을 꾸민다.
훌륭한 사람이 목적을 이루면 반드시 그가 배웠던 것을 실천하지만, 어질지 못한 사람이
지위에 오르면 사심(私心)을 제멋대로 하며 덕있고 유능한 사람을 질투한다. 그리고는 욕심
을 즐기고 재물에 구차하여 못할 짓 없이 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총림이 일어나고, 어질지 못한 사람을 채용하면 피폐하게
된다. 한 가지라도 여기에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조용하지 못하리라." 『견악화상서(見岳和
尙書)』
4.
주지는 세 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일이 번거로와도 두려워 말고, 일이 없다 해
서 굳이 찾지도 말며, 시비분별을 말아야 한다.
주지하는 사람이 이 세 가지 일에 통달한다면 외물(外物)에 끄달리지 않으리라. 『혜시자기
문(慧侍者記聞)』
5.
납자의 행실이 삿되고 바르지 못하여 평소에 착하지 못한 자취가 드러난 자는 총림에서 다
알고 있으므로 근심할 것이 못된다. 반면, 대중들이 그를 훌륭하다 말하나 실제는 안으로 어
질지 못한 자가 진실로 걱정거리이다.
6.
밀암스님이 수암(水庵)스님에게 말하였다.
"나를 헐뜯고 욕하는 이가 있으면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 어찌 말만을 경솔하게 듣고 허
망하게 좁은 소견을 내어서야 되겠는가.
대체로 민첩하게 아첨하는 데는 종류가 있고 삿되고 교묘함은 방법이 있다. 음험함을 품고
속이는 말을 하는 자는 사심 드러내기를 좋아하고, 의심과 증오가 많은 자는 편파적으로 공
론을 폐지한다. 이런 무리들은 추구하는 바가 좁고 소견은 어두워 고질적으로 자신의 특이
함을 일반과 다르다 여기고, 공론을 막는 것을 뛰어나다고 여긴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이 끝내 옳고 훼방은 상대방에 있으니 세월이 가면 저절로 밝혀지리라
는 것을 알았으면 흑백을 구별하지 말라. 또한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다른 사람을 고
자질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수행자에 가깝다 하리라." 『여수암서(與水庵
書)』
36
근본을 체득하여 지말을 바르게 하다
자득 혜휘(自得慧輝)스님 / 1097∼1183
1.
일반적으로 납자가 진실하여 정도(正道)를 행한다면 어리석어도 받아들여야 하며, 아첨하면
서 삿된 마음을 품고 있으면 지혜로와도 끝내 해로움이 된다. 산중에서 수행하는 사람으로
서 마음가짐이 바르지 못하면 재능이 있다 해도 끝내 자기 뜻을 펼 수가 없으리라. 『견간
당기(見簡堂記)』
2.
대지(大智)스님께서는 특별히 `청규(淸規)'를 창안하여 말법 비구의 부정한 폐단을 고치셨
다. 이것을 앞사람들이 받들고 계승하며 조심스럽게 실천하여 교화에 조리와 본말이 있게
되었다.
소흥(紹興) 말년(1162)까지도 총림에는 노덕들이 계시어 법도를 지키며 잠시도 좌우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었으나 근년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그 근본 실마리를 잃고 기강(紀綱)이 기
강답질 못하니, 비록 기강은 있다 하나 어떻게 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벼리〔綱〕 하나만 들면 숱한 그물코〔目〕가 쫙 펴지듯 한 기미만 해이해도 만
사가 무너진다"고 했던 것이다.
위태롭도다. 기강은 진작되지 못하고 총림도 일어나지 못하는구나. 옛사람은 근본을 체득함
으로써 지말을 바르게 하였다. 그래서 법도가 근엄하지 못할까 염려하였을 뿐 납자가 자기
직분을 잃을까 염려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바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공정에 입각했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곳곳의 주지들은 개인적인 것을 공적인 것과 혼돈하고 지말로써 근
본을 바로 잡으려 한다. 웃사람이 이익에 구차하여 정도(正道)를 시행하지 않으므로, 아랫사
람도 이익을 훔치며 의(義)를 행하지 않아서 상하와 빈주(賓主)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으니
어떻게 납자가 정도로 향하고 총림이 잘 될 수 있겠는가. 『여우시랑서(與尤侍朗書)』
3.
훌륭한 옥도 광석째로 다듬지 않으면 기왓돌과 다름 없고, 훌륭한 말도 달려보지 않으면
둔한 말과 함께 섞여 있다. 광석은 쪼개서 윤을 내고 말은 달리게 해서 시험해 보아야만 옥
인지 돌인지, 명마인지 둔마인지가 분간된다.
납자로서 덕이 훌륭한데도 아직 발탁되지 않았을 때는 빽빽한 사람들 가운데 뒤섞여 있는
것이니 어떻게 구별해 내겠는가. 요컨대 고명한 인재가 공론으로 그를 추천하여 직책을 맡
겨 재능을 시험하고 임무의 완성을 따져보는 데 있다. 그렇다면 용렬한 무리들과는 아득히
다를 것이다. 『여혹암서(與或庵書)』
37
선지식의 요점은 사람을 알아보는 데 있다
혹암사체(或庵師體)스님/1108∼1179
1.
혹암사체(或庵師體)스님이 차암(此庵) 경원 포대(景元布袋:1092∼1146)스님을 천태산 호국
사(護國寺)에서 처음 참례하였다.
법당에 올라 방거사(龐居君)·마조(馬祖)스님의 선불장(選佛場;승관직 채용 과거시험)에 대
한 게송을 거론(擧論)하는 차에 `…여기가 바로 선불장일세'라는 구절에 이르자, 차암스님
이 대뜸 할(喝)을 하였다.
혹암스님은 여기서 크게 깨닫고 이 과거장 상황에 제격일 듯한 게송을 지었다.
헤아리길 다한 곳에 제목〔試題〕을 보고
길이 끝나는 데서 시험장에 들었네
붓끝을 들자마자 장황한 글 쏟아내니
이제부터 3등짜리 급제자〔探花郞〕는 되지 않으리
商量極處見題目 途路窮邊入試場
拈起毫端風雨快 遮回不作探花郞
이로부터 자취를 천태산에 숨기고 있었다. 승상 전공(錢公)은 그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천봉
사(天封寺)를 맡아 세간에 응해 주기를 권하였다. 혹암스님이 듣더니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짓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는 그날 밤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2.
건도(乾道) 초년(1165)에 할당(堂)스님이 국청사(國淸寺)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혹암스님이
관음상〔圓通像〕을 보면서 찬(贊)을 한 수 읊었다.
본분에서 나오사 중생을 깨우시나
우러러보면서도 소경같은 중생들
장안의 달빛은 고금에 여전한데
뉘라서 더듬더듬 소경행세 하겠는가
不依本分惱亂衆生
之仰之有眼如盲
長安風月貫今昔
那個男兒摸璧行
이 찬(贊)을 듣고, 할당스님이 깜짝 놀라며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차암(此庵)스님에게 이런 납자가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는 즉시 두루 찾다가 그를 강심(江心)에서 만나고는 굳이 많은 사람 가운데서 제
일 윗자리에 앉기를 청하였다. 『천태야록(天台野錄)』
3.
혹암스님이 건도(乾道) 초년에 호구산(虎丘山) 할당스님을 날듯이 방문하였다. 고소(姑蘇)
지방의 4부대중이 그의 고상한 풍모를 소문으로 듣고 즉시 군으로 나아가 추천하며 성 안의
각보사(覺報寺)에 머물게 해주도록 청하였다.
혹암스님은 이 소문을 듣더니 말하였다.
"스승 차암(此庵)께서 나에게 유언하시기를 뒷날 노수(老困)를 만나면 머물라 하셨는데 지
금은 마치 부절(符節)이 들어맞듯 하구나."
드디어 기쁜 마음으로 명에 응하였다. 이는 각보사의 옛 명칭이 노수암(老困庵)이었기 때문
이다. 『호구기문(虎丘記聞)』
4.
혹암스님이 각보사에 들어간 후 시주(施主)들이 법문을 청하자, 소참(小參)에서 이렇게 말
하였다.
"도는 항상(恒常)하여 나빠지지 않으나 세상일은 피폐함이 있으면 반드시 좋아질 때도 있
다.
옛날 강서(江西)·남악(南嶽) 등 모든 스님들은 옛 도를 상고하여 가르침을 삼았는데, 그
타당성 여부를 살핌에는 중도(中道)에 입각했으며 인심에 계합하는 일에는 깨달음으로 목표
를 삼았다. 때문에 평소의 가풍이 늠름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끊기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 문하를 거론해 본다면 말〔言〕끝에 알음알이를 내어 우리 종풍을 변질시키고,
글귀 아래서 분간하여 불조의 도를 매몰시키고 있다. 비록 이런 판국이긴 하나 물이 다한
곳까지 도달하면 앉아서 산 아래 구름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리라."
그리하여 승속이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법문을 기뻐하며, 시장가는 사람처럼 앞을 다투
어 귀의하였다. 『어록이차(語錄異此)』
5.
혹암스님이 주지를 맡고 나자 관리 계급들이 새떼처럼 쏠린다는 소문이 납자들에 의해 호
구산에 이르자, 할당스님이 말하였다.
"이 산간의 오랑캐 같으니, 법도를 따르지 않고 인정도 되돌아보지 않으면서 방종하게도
눈먼 선〔盲禪〕에 기대고 가는구나. 그들 여우 같은 정령(精靈) 무리를 내 혼내주어야겠
다."
혹암스님은 이 말을 듣더니 게송으로 답변하였다.
산간 오랑캐 멋대로 하는 짓 미워할 순 있어도
대중 거느리고 바로잡는 건 아직 없던 일인 듯하네
격식을 초월하여 빗자루 거꾸로 들고
눈먼 선에 의지하여 여우 같은 스님 치료하네
山蠻杜拗得能憎 領衆翠徒昭不曾
越格倒拈苕 柄 拍盲禪治野狐僧
할당스님은 보더니 웃을 뿐이었다. 『기문(記聞)』
6.
혹암스님이 시랑(侍郞) 증체(曾逮)에게 말하였다.
"도를 배우는 요점은 저울이 물건을 달듯 평형을 유지해야 하니 편중되어서는 안됩니다.
전후로 미루거나 가까이 하는 것도 치우치기에는 매한가지니 이를 알면 도를 배울 수 있읍
니다." 『견증공서(見曾公書)』
7.
도덕은 총림의 근본이며 납자는 도덕의 근본이니 주지가 납자를 싫어하며 버리는 것은 도
덕을 망각한 것이다. 도덕을 잊고 나면 무엇으로 교화를 닦아 총림을 정돈하고 후학을 끌어
주겠는가.
옛사람은 근본을 체득함으로써 지말을 바로잡았으니, 도덕이 실행되지 않는 것을 근심했을
지언정 총림에서 제 소임을 잃을까 걱정하진 않았다. 그러므로 "총림의 보존은 납자에게 있
고, 납자의 보존은 도덕에 달렸다"고 말했던 것이니 주지가 도덕이 없다면 총림이 폐지되리
라. 『견간당기(見簡堂記)』
8.
선지식의 요점은 훌륭한 사람을 알아보는 데 있으며 스스로가 잘났다고 여기는 데 있지 않
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을 해치는 자는 어리석고, 가리워 버리는 자는 어둡고, 질투하는
자는 자신의 견해가 짧아진다. 한 몸의 영화를 얻는 것이 한 세대의 명성을 얻느니만 못하
고, 한 세대의 명성을 얻는 것이 훌륭한 납자 하나를 얻어 후학에게 스승이 있고 총림에 주
인이 있게 하느니만 못하다. 『여원극서(與圓極書)』
9.
혹암스님이 초산(焦山)으로 옮긴 지 3년 되던 해, 그러니까 순희(淳熙) 6년(1179) 8월 4일
의 일이었다. 먼저 작은 병을 보이시더니 즉시 손수 쓴 편지와 벼루 한 개를 군수시랑(郡守
侍郞) 증공(曾公)에게 보내 이별을 하였다. 그리고는 한밤중에 천화(遷化)하자 증공은 게송
으로 그를 애도하였다.
짚신 한짝 매고 훨훨 서풍(西風)을 좇더니
혼연하여 일물(一物)도 포대 속에 없었네
벼루를 남겨 사용하라 하시나
내게는 허공같은 광명을 그려낼 글재주 없다네.
翩翩隻履逐西風 一物渾無布袋中
留下陶泓將底用 老夫無筆判虛空 『행장(行狀)』
38
안을 다스려 밖을 대하다
할당 혜원(轄堂慧院)스님/1103∼1176
1.
할당 혜원(堂慧遠)스님이 혹암스님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그릇은 원래부터 크고 작음이 있어 실로 교육으로만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포
대가 작으면 큰 것을 담지 못하고, 짧은 두레박 줄로는 깊은 우물을 긷지 못한다" 하였고, "
올빼미는 밤엔 이도 훔켜잡고 가을날 새털 끝도 살피지만, 낮에 나오면 눈을 부릅떠도 언덕
과 산도 보지 못한다"고 하였던 것이니, 이는 분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옛날 원정 남당(遠靜南堂)스님은 동산(東山)스님의 도를 전수하여 심오하게 깨달았다고 매
우 알려졌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주지하는 일에 있어서는 가는 곳마다 떨치지 못하였다.
스승 원오스님께서 촉(蜀) 지방으로 돌아가시면서 각범(覺範)스님과 함께 원정 남당스님을
대수(大隨)에서 방문하였는데, 그가 경솔하고 덜렁거려서 모든 일이 해이하여 폐지된 것을
보면서도 원오스님께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다.
되돌아오는 길에 각범(覺範)스님은 말하였다.
"원정스님과 스님께서는 함께 참구했던 도반이었는데도 한 마디도 깨우쳐 주지 않았던 것
은 무슨 까닭입니까?"
선사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상에 응하여 대중에 임하는 요점은 법령을 우선하는 데 있다. 법령이 행해지는 것은 그
의 지혜와 능력에 있고, 지능이 있고 없는 것은 그의 본래 분수인데 가르친다 해서 되겠는
가."
그러자 각범스님은 알았다는 듯이 턱을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호구기문(虎丘記聞)』
2.
도를 배우는 인재라면 요컨대 우선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런 뒤에 자기를 바르게 하
고 상대도 바로잡을 수 있다. 그 마음이 바르고 나면 만물이 안정되니 마음이 다스려졌는데
도 몸가짐이 흐트러졌다는 자는 이제껏 보지 못하였다.
불조의 가르침은 안으로부터 밖으로 미치며 가까운 곳에서 먼 데로 이른다.
성색(聲色)이 밖에서 현혹하면 사지가 병들고, 허망한 감정이 안에서 발동하면 마음 속에
병이 든다. 마음이 바른데도 사물을 다스리지 못하거나, 몸가짐이 올바른데도 다른 사람 교
화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는가.
이는 마음이 근본이 되고 만물이 지엽이기 때문이다. 뿌리가 튼튼하고 알차면 지엽이 풍성
하고, 뿌리가 메마르면 지엽도 말라 죽는다. 훌륭하게 도를 배우는 자라면 먼저 안을 다스려
바깥을 대적하고, 바깥을 탐하느라 안을 해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만물을 인도하는 요점은 마음을 청정히 하는 데 있으며, 남을 바로잡는 것은 원
래 자기부터 바로잡는 데 있다. 마음이 바로되어 자기가 바로 섰는데도 만물이 따라서 교화
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여안시랑서(與顔侍郞書)』
39
미물까지 덮는 자비를 베풀다
간당 행기(簡堂行機)스님
1.
간당 행기(簡堂行機)스님은 파양(陽)지방의 관산(管山)에 20년이나 머물면서 명아지국과 기
장밥을 먹으며 마치 세간의 영달엔 뜻을 끊은 듯하였다.
언젠가는 하산하다가 길가에서 슬피우는 소리를 들었다. 스님은 측은하게 여기며 그에게
다가가 연유를 물었더니, "온 집안이 학질병에 걸려 두 식구가 죽었으나 가난하여 시신을
거둘 도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스님은 특별히 시장에 나가 관을 대여받아 장례하였
는데, 이 소문을 듣고 고을 사람들이 감탄해 마지 않았다.
시랑 이춘년(李卵年)이 사대부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고을의 간당 행기노스님은 도 있는 납자이다. 더우기 자비로운 은혜가 사물에게까지
미쳤으니, 스님을 관산에서 쓸쓸하게 오래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
마침 추밀(樞密)인 왕명원(汪明遠)이 여러 관부를 순찰하다가 구강군수(九江郡守) 임숙달
(林叔達)에게 이르자, 그는 원통전에 법석을 마련하고 스님을 맞이하려하였다. 스님은 명을
듣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도가 시행되겠구나."
그리고는 즉시 기쁜 마음으로 주장자를 끌고 왔다. 법좌(法座)에 올라 설법하기를 "이 자리
는 사람 살리는 약을 파는 데가 아니라 죽은 고양이를 팔 뿐이니, 그런 줄도 모르고 생각
없이 먹었다간 온 몸에서 식은 땀을 뺄 것이다"하였다. 그러자 승속이 깜짝 놀랐으며 법석
이 이때부터 크게 떨치게 되었다. 『뇌암집(瀨庵集)』
2.
옛날엔 몸을 수행하고 마음을 다스리면 다른 사람과 그 도를 나누어 가졌고 사업을 일으키
면 다른 사람과 그 공로를 함께 하였으며, 도가 완성되고 공덕이 드러나면 남과 그 명예를
함께 하였다. 그리하여 도는 완전히 밝아지고 공업은 다 성취되었으며 명예는 영화로왔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렇질 않다. 자기의 방법만 고수하며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나을까 염려
할 뿐 아니라, 또 선(善)을 따라 의로움을 힘써 자신을 넓히지도 못한다. 또한 자기의 공로
를 독점하여 남이 그것을 차지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덕 있고 유능한 사람에게 맡김으
로써 자신을 크게 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도는 가리워지고 공로는 손상되며 명예는 욕스
러워지는 꼴을 면치 못한다.
이것이 옛날 납자와 요즘 납자의 큰 차이다.
3.
"도를 배우는 것은 마치 나무를 심는 일과도 같다. 잎이 무성해야 베어서 땔감에 공급하고
좀 자란 뒤에야 찍어서 서까래를 만들며, 더 자라면 베어서 기둥을 만들고 완전히 커져야
대들보가 되니, 이는 노력을 많이 들여야 그 쓸모도 커진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때문에 옛사람은 그 도가 견고하고 커서 좁지 않았고 지향하는 목적은 멀고 깊어서 지나치
게 세속적이지 않았으며, 말은 고상하여 천박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 때를 잘못 만나 추위
와 주림으로 언덕이나 골짜기에서 죽었다 해도, 그가 남긴 가풍과 공덕은 백 천년토록 뻗쳐
뒷사람들이 본받고 전하였던 것이다.
가령 지난날 짧은 도로 구차하게 용납되고 가까운 목적으로 영합되기를 구하며, 비루한 말
로 세력 있는 이를 섬겼더라면 그 이익은 자기만을 영화롭게 하는 데 그쳤을 뿐, 남은 은택
이 후세에 두루 미칠 수 있었겠는가." 『여이시랑이서(與李侍郞二書)』
4.
간당스님이 순희(淳熙) 5년(1178) 4월에 천태산 경성암(景星巖)에서 은정사(隱靜寺)로 다시
부임하게 되었다.
급사(給事)였던 오패(吳 )는 휴휴당(休休堂)에서 노년을 편안히 보내고 있었는데 도연
명(陶淵明)의 시에 13편을 화답하여 가는 길을 전송하였다.
(1)
숲 속으로 돌아온 뒤
나는 세상과 멀어졌네
선지식 한 분이 계셨으니
때로는 나의 움막 찾아오셔서
함께 법담을 나누며
불서 읽는 나를 사랑하셨네
이윽고 경성암 떠나시니
나도 떠날 준비해야 하겠네
문득 나도 발우를 펴고
스님 따라 소반을 공양하며
진속(塵俗)의 누를 벗어나
깊이 바위 속에 묻히고 싶네
이 바위 정말로 높아
산해도(山海圖)에서 우뚝 빼어났으나
스님의 고상함에 비한다면
도리어 그만 못하다 하리.
我自歸林下 已與世相疎
賴有善知識 時能過我廬
伴我說道話 肯我左佛書
旣爲巖上去 我赤爲膏車
便欲展我鉢 隨師同飯蔬
脫此塵俗累 長與巖石居
此巖固高矣 卓出山海圖
若比吾師高 此巖還不如
(2)
내가 사는 산굴 속
사면이 우뚝한 겹겹의 바위
경성암이라 불리는 바위 있어서
가보고자 한 지 몇년 되었나
지금에야 절묘함을 확인하고서
일견에 뭇 산이 작게 보였네
다시 스님이 주인 되었으니
산과 스님 모두 깊어 쉽사리 말 못하겠네
我生山窟裏 四面是顔
有巖號景星 欲到知幾年
今始信奇絶 一覽小衆山
更得師爲主 二妙未易言
(3)
호산 속에 있던 내집도
눈만 뜨면 숲과 언덕뿐이나
수려한 이곳에 비하면
비교 안될 언덕 정도니
구름 서린 산 천리에 뻗어 있고
샘물은 사철 흐르네
내 이제야 비로소 와보니
오호(五湖)에서의 노닐음을 능가하네
我家湖山上 觸目是林丘
若比玆山秀 培 固難 壽
雲山千里見 泉石四時流
我今裳一到 已勝五湖遊
(4)
내 나이 일흔 다섯
나무 끝에 비껴가는 석양빛 같아
몸은 아직 죽지 않았다 해도
어찌 오래 갈 수 있으랴
그래도 숲 속에 머무는 것은
스님과 말년을 빛나게 하렴이었네
외로운 구름 한 점 어느덧 흩어지니
멀리 또 가까이 청황빛이 선명하네
我年七十五 本末掛殘陽
縱使身未逝 赤能豈久長
尙冀林間住 與師共末光
孤雲俄暫出 遠近駭蒼黃
(5)
평소에 산을 사랑하였으나
세속에 얽매여 가련키도 하였어라
지난날 이 고을 맡았을 때엔
고요한 이 산을 알지 못하다가
스님 그리워 왔건만 또 떠나시니
부끄러워라. 내 다시 무얼 말하리
그래도 오래 머물지 마시고
돌아와 함께 여생 보내소서
肯山端有固 拘俗赤可憐
昨守當塗郡 不識隱靜山
羨師來又去 愧我復何言
尙期無久住 歸送我殘年
(6)
마음은 꺼진 재 같고
몸은 죽은 나무 같으시나
납자들의 큰 귀의처 되심이
빈 골짜기 메아리 답하듯 하네
저의 더러운 몸 보살피사
최상의 법(法)으로 씻어 주시고
다시 원하옵나니 부처님의 법등 널리 펼치사
저희를 위해 대대로 밝혀 주소서
師心如死灰 形赤如枯木
胡爲衲子歸 昭響答空谷
顧我塵垢身 正待醍 浴
更願張佛燈 爲我代明燭
(7)
무성한 바윗가 나무
여름 들어 모두 그늘 이루니
오랫동안 가시밭 땅이
하루아침에 총림이 되었네
내 납자와 함께
해조음(海潮踵) 들으렸더니
모였다간 흩어지는 인생
갑작스런 이별에 새삼 마음 놀라네
扶疎巖上樹 入夏總成陰
幾年荊棘地 一倦成叢林
我方與衲子 共聽海潮踵
人生多聚散 離別忽驚心
(8)
스님과 내왕한 세월
길지는 않지만
어느덧 친한 사이 되었고
풍류도 뛰어났어라
스님은 바위에 편히 앉으시고
나는 먹을 양식 모았네
행여 스님이 일찍 돌아오신다면
즐거운 마음 다함 없으리
我與師來往 歲月雖未長
相看成二老 風流赤異常
師宴坐巖上 我方爲聚糧
師能早歸 此樂猶未央
(9)
분분히 선(禪)을 배우는 자
경쟁하듯 분주하네
말만 꺼냈다 하면
어리석은 뜻 자부하나
도의 경지를 살펴보면
스님 같은 이 거의 없어라
상승법(上乘法) 전하는 사람이여
임제(臨濟)의 뒤를 영원히 빛내소서
紛紛學禪者 腰包競奔走
裳能說葛藤 癡意便自負
求其道德尊 如師蓋希有
願傳上乘人 永光臨濟後
(10)
우리 고을의 많은 스님네들
운해(雲海)처럼 드넓은데
대기(大機)는 오래 전에 없어졌으나
다행히 소기(小機)에 의지하니
일잠(一岺 : 원극 언잠스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완전하여 둘 다 모자람 없어라
당당한 두 노숙의 선(禪)이여
온 나라가 모두 기대합니다
吾邑多緇徒 浩浩若雲海
大機久已亡 賴有小機在
仍更與一岺 純全兩無悔
堂堂二老禪 海內共期待
(11)
옛날엔 주지하는 일 없었고
법지(法旨)만을 전했을 뿐이니
색공(色空)을 깨달으면
그대로 생사를 초월하였네
못난 중 본래면목에 어두우니
어찌 서쪽으로 돌아갈 길 알겠으리오
선상(禪滅)에 앉아 장사나 하니
불법은 이제 무엇을 의지하랴
古無住持事 但只傳法旨
有能悟色空 便可超生死
庸僧昧本來 豈識西歸履
買帖坐禪滅 佛去將何時
(12)
스님 중에 고승 있듯
선비도 고사(高君) 있다네
나는 고사 아니나
거친 마음으로나마 그칠〔止〕 줄 알았네
스님도 그러한 분이시라
그렇지 못할까 근심하였어라
나와 스님, 이웃집 사람임이
어찌 그리도 다행이온지
僧中有高僧 君赤有高君
我雖不爲高 心祖能知缺
師是個中人 特患不爲爾
何幸我與師 俱是隣家子
(13)
스님도 원래 가난한 화상이요
나도 궁색한 수재(秀才)라네
곤궁 참는 마음 이미 사무쳤으니
늙은이 어찌 되돌아오지 않겠나
지금 스님과 잠시 이별하나
천석(泉石)은 시기치 말라
인연 따라 나에게 되돌아온들
스님이야 어찌 마음이 있으랴
師本窮和尙 我赤窮秀才
忍窮俱已徹 老肯不歸來
今師雖暫別 泉石莫相猜
應緣聊復我 師豈有心哉 『경성석각(景星石刻)』
4.
급사(給事) 오공(吳公)이 간당스님에게 말하였다.
"옛사람은 천암만학(千巖萬壑) 사이에서 모든 사려분별을 끊고서 흐르는 시냇물을 마시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마치 부귀공명에는 뜻을 끊은 듯하였읍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주지를
맡으라는 명을 받게 되면 방아지기 등의 천한 일로 자기의 잘난 자취를 숨기고 살아갔으며
애초에 출세에는 마음이 없었으니, 그러므로 끝내는 불법을 이어가는 조사의 대열에 끼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무심(無心)에서 얻으면 그 도와 덕은 넓어지고, `구할 것이 있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헤아리면 그 명성과 목적은 비루해집니다.
스님께서는 도량이 원대하셔서 고인의 자취를 계승, 관산(管山)에서 11년이나 깃들 수 있었
읍니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총림의 훌륭한 그릇을 이루셨읍니다.
요즈음의 납자들은 안으로는 지키는 것이 없고 밖으로 분주하고 화려한 것을 좇아갑니다.
그리하여 긴 안목은 줄어들고 큰 뜻도 없어 불교를 부지하고 돕지를 못합니다. 때문에 스님
보다 한참이나 못한 것입니다." 『고시자기문(高侍者記聞)』
5.
사람의 마음〔常情〕은 미혹이 없는 경우가 드문데, 이는 맹신에 가리우고 의심에 막히며,
가볍다고 소홀히 하고 애착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치우치면 말만 듣고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드디어는 타당성을 잃는 말을 하게
된다. 의심이 심하면 사실이라 해도 그 말을 듣지 않고 드디어는 사실을 놓치고 듣는 경우
가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을 가볍게 보면 중요한 일까지 빠뜨리고, 그 일만 아끼다 보면 버려
야 할 사람을 놔두게 된다. 이는 모두가 자기 생각을 구차하게 멋대로 하고 도리에 맞는지
를 묻지 않았기에, 드디어는 불조의 도를 망각하고 총림의 인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사람이 경솔하게 여기는 것을 성현은 소중하게 여긴다. 옛 스님은 말하기를,
"원대하게 계획하는 자는 우선 가까운 데서 시험하고, 큰 것을 힘쓰는 자는 반드시 은미한
데서 조심한다" 하셨다. 그러므로 널리 듣고 채택하여 중도를 살펴 운용함이 중요할지언정
실로 실정에 맞지 않는 고상함만을 흠모하고 특이함을 좋아하는 데에 도가 있는 것은 아니
다. 『여오급사서(與吳給事書)
6.
간당스님은 성품이 말고 온화하여 자비로운 은혜가 남에게까지 미쳐갔으니, 혹 납자에게
약간의 잘못이 있다 해도 덮어주고 보호하여 그의 덕을 이루어 주었다.
언젠가는 이렇게도 말하였다.
"사람이라면 누군들 허물이 없겠는가. 허물을 고치는 데에 장점이 있는 것이다."
스님이 파양 지방 관산에 머물던 날, 마침 몹시 추운 겨울이라 눈이 연일 내려 죽 끼니도
제대로 잇지 못하였으나, 스님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런 노래를 지었다.
지로(地爐)에 불 없고 객승의 바랑 비었는데
세모(歲暮)에 버들꽃 같은 눈 내리네
누더기 덮었더니 고목 같은 몸 불붙듯 하여
고요하고 쓸쓸한 곳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네.
地爐無火客囊空 雪昭楊花落歲窮
衲被蒙頭燒 木出 不知身在寂寥中
스님은 평생 도에 자적하면서 영화나 명예를 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여산(廬山) 원통(圓通)
스님의 청을 받고 부임하던 날도 주장자와 짚신뿐이었으나 스님의 씩씩한 기색을 보는 자들
은 속으로 알아보았다.
구강군수(九江郡守) 임숙달(林叔達)은 스님을 가리켜 불법의 대들보이며 나루터라고 평하
였다.
그 일로 사방에 이름이 알려졌으나 벼슬에 나아가느냐 들어앉느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실로
옛 스님들의 체통과 품격을 체득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죽던 날엔 천한 심부름꾼까
지도 눈물을 흘렸다.
7.
시랑인 장효상(張孝祥)은 풍교(楓橋)*의 연장로(演長老)*에게 편지를 드려 말하였다.
"옛날의 모든 조사들은 주지 맡는 일이 없었읍니다. 문호를 개방하고 제자들을 받아들였던
것은 마지 못해서였읍니다. 그러다가 상법(像法)마저 쇠퇴한 시기에는 실제로 땅을 떼어 주
거나 관직 임명장으로 절을 매매한다는 말이 있을 지경에 이르렀읍니다. 지난날 풍교사(楓
橋寺)가 어지러웠던 경우도 모두가 이러한 물건들 때문이었읍니다.
스님의 관직에 대한 처신은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새끼와 어미가 안팎으로 동시에 쪼아대듯 원래 힘을 들이지 않고 인연이 있으면 머물고 인
연이 다하면 문득 떠나셨읍니다.
그런데 여래를 팔아먹는 무리들은 이 주지 자리에 앉으려고 지옥 갈 업을 짓고 있으니, 차
라리 누구라고 지적하여 맡기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한산사석각(寒山寺石刻)』
* 풍교:소주의 한산사(寒山寺)앞에 있음.
* 연장로(演長路):상주 화장(華藏)의 축암(逐庵) 종연(宗演)선사. 대혜선사에게 법을 얻었다.
남악의 제 16세 법손.
40
조계의 정통을 다시 일으켜 주기를 간청하다
자수 회심(慈受懷深)스님 / 1077∼1132
자수 회심(慈受懷深)스님이 경산 지눌(徑山智訥)스님에게 말하였다.
"2,30년래에 선문(禪門)이 쇠퇴해져서 거의 봐주지 못할 지경입니다. 남북을 나눠놓고 치닫
는 제방(諸方)의 장로는 그 숫자를 모를 정도이고, 눈에 가득한 것은 거처를 나누어 흩어진
대중들입니다.
이런 판국에서도 사형(師兄)께서만은 정신과 감정이 흔들리지 않고 앉아서 안정을 누리십
니다. 어떻게 좀스러운 소인들과 같은 수준으로 말할 수 있겠읍니까. 진정 흠모하는 마음일
뿐입니다. 이러한 인연은 도가 충만하고 덕이 알차서 깨달음과 실천〔行解〕이 서로 일치하
지 않는 자라면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겠읍니까.
다시 바라옵는 것은 후배들을 힘써 인도하여 조계(曹溪)의 바른 근원이 다시 크게 불어나
고, 시들은 깨달음의 나무에 다시 봄처럼 생기가 돌게 하소서. 이것이 구구하게 못난 저의
마음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필첩(筆帖)』
42
비방과 참소를 잘 분별해야 한다
영지 원조(靈芝元照)스님 / 1049∼1116
영지사(靈芝寺) 원조(元照)스님이 말하였다.
"참소〔:훌륭한 이를 해칠 목적으로 하는 절박한 말〕와 비방〔謗:단순히 남의 단점만을 들
춰내는 말〕과는 어떤 차이인가.
참()은 반드시 방(謗)을 의지하여 일어난다고 해야 하리라. 이는 비방에서 그치고 참소까지
는 가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참소하면서 비방을 곁들이지 않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깊숙
한 참소는 증오와 질투로 시작하였다가 신의를 가볍게 보는 결과를 낳는데, 그것은 아첨하
는 소인들이나 하는 짓이다.
옛날에도 충성을 다하여 임금을 보필하는 자, 효성을 다하여 어버이를 섬기는 자, 의로움을
안고 벗이 된 자들이 있어 군신이 서로 마음을 얻고 부자가 서로 사랑하며 벗들은 서로 친
하였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의 깊숙한 참소에 녹아나서 반목(反目)·빈축하며 사
이가 벌어져 서로 등지게 된다. 그리하여 서로를 원수처럼 보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옛 성현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분별하지 못했다가 오랜 후에 밝혀진 것도 있고,
살아서는 몰랐다가 죽은 후에 밝혀진 것도 있으며, 죽음에 이르도록 분별하지 못하고 영원
히 은폐된 경우도 있으니, 이런 것은 이루 다 셀 수조차도 없다.
자유(子游)는 이렇게 말했다.
"임금을 섬기면서 너무 꼿꼿하게 간언하면 자기에게 욕됨이 돌아오고, 친구간에 충고가 잦
으면 사이가 벌어진다."
이는 사람들에게 깊숙이 참소하는 말을 멀리하도록 주의를 시킨 것이다.
아 - 아, 참()과 방(謗)을 반드시 잘 살펴야 한다.
그런데 경사(脛史)에 이를 기록하여 다 밝혀놓았기 때문에 공부하는 이들이 보고 그 잘못
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나, 더러는 자신이 비방하는 입에 빠져들어 답답하게도 죽을 때까
지 스스로 밝히지 못한 자가 있었다. 이는 틀림없이 헐뜯는 말을 노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
며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헐뜯는 사람이 아첨한 것이리라. 또다른 소인들이 그의 앞에서 다
시 남을 헐뜯는 경우에 이르러서도, 들어주며 당연하게 여기니 이를 총명하다 할 수 있겠는
가.
기막히게 헐뜯는 사람은 교묘하고 민첩하게 싸우고 얽어매며 영합하고 뒤집어 씌우면서 멍
청한 이들을 마치 귀신에게 홀린 듯하게 한다. 그리하여 죽을 때까지도 살피지 못한 자가
있게 한다.
공자께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스며드는 헐뜯음과 피부가 저릴 만큼
애절한 하소연'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이는 점차적으로 스며와서 사람들이 미리 알아채지
못함을 경계한 것이다.
지극히 효성스러운 증자(曾子)의 경우에도 어머니는 그가 반드시 살인을 했으리라고 의심
하였으며,.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왕과 방공과의 대화에서도, 시장은 숲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거기에 호랑이가 있으리라고 꼭 의심할 것이라하였다.
더러는 이런 데에 넘어가지 않은 자도 있었으니, 바로 그런 이를 총명하고 원대한 군자라
말한다.
나는 어리석고 졸렬하며 엉성하고 게을러서 다른 사람에게 아부하고 부질없이 기쁘게 하지
는 않았다. 드디어는 이 때문에 사람들이 헐뜯고 비방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나는 이야기
를 듣고 스스로 자신을 반성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상대방의 말이 과연 옳은 것일까. 옳다면 나는 당연히 허물을 고치리라. 그렇게 되면 상대
방이 바로 나의 스승이다. 상대방의 말이 결과적으로 잘못일까. 그렇다면 상대방이 부질없을
뿐이다. 어떻게 나를 더럽힐 수 있겠는가.'
이런 판단이 선 후로는 귀로 듣고만 있었지 입으로는 따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살폈느냐
살피지 못했느냐 하는 것은 그들의 재능과 식견이 총명한가 총명하지 못한가에 있었을 뿐이
다. 내가 무엇 때문에 잘잘못을 따져가지고 다른 사람의 인심이나 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오
랜 후에 밝혀질는지, 뒷세대에 가서야 밝혀질는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는지는 모를 일이
다.
문중자(文中子:수나라 양제 때 사람, 王通)는 말하기를 "어떻게 비방을 그치게 할까. 이러니
저러니 따지지 말아야 하리라" 하였다. 나는 이 말씀을 명심하리라. 『지도집(芝圖集)』
42
선과 교에서 모두 무상(無上)의 도를 말하다
뇌암 도추(懶庵道樞)스님
1.
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깨닫기를 기약하고 진실한 선지식을 찾아 의심을 해결하여야 한
다. 털끝만큼이라도 알음알이〔情見〕가 다하지 못하면 바로 이것이 생사의 근본이다. 알음
알이가 다한 곳에서는 모름지기 그것이 다한 까닭을 참구해야 한다. 이는 마치 사람이 집안
에 있으면서 하나라도 미비한 일이 있는지를 근심하는 것과도 같다.
위산(山)스님은 말하였다.
"요즈음 사람들은 인연따라 일념(一念)에 돈오(頓悟)하는 본래 이치를 얻긴 했으나, 그래도
시작없이 흘러온 습기(習氣)는 한꺼번에 다 없애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납자들에게 현
전(現前)하는 업식(業識)을 말끔히 제거하게 하는 것이 수행이며, 따로 수행문이 있다 하여
그리로 나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위산스님은 고불(古佛)이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혹 그렇지 않았
더라면 죽는 마당에 손발을 허우적거리며 여전히 끓는 물에 떨어지는 새우같은 신세를 면치
못했으리라.
2.
율장(律藏)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승물(僧物)에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상주상주승물(常住常住僧物), 둘째는 시방상주승물(十方常住僧物), 세째는 현
전상주승물(現前常住僧物), 네째는 시방현전상주승물(十方現前常住僧物)이다."
상주승물은 털끝만큼이라도 범해서는 안된다. 그 죄가 가볍지가 않다고 예나 지금이나 성
인들이 그렇게 간절하게 말씀하셨는데도 듣는 사람들이 더러는 반드시 믿지도 않으며, 믿는
다 해도 꼭 실천하지는 않는다.
나는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할 때나 혹은 물러나 은둔할 때나 언제고 이 문제를 절실히 염
두에 두고 지냈다. 그러면서도 지극하지 못한 바가 있을까 두려워 게송을 지어 자신을 경책
하였다.
시방승물 산처럼 무거운데
만겁천생인들 어찌 쉽게 돌려주랴
모든 부처님 말씀 믿지 않으면
뒷날에 어떻게 지옥을 면하랴
사람몸 얻기 어려우니 잘 생각하라
축생이 되었을 땐 세월이 길리라
쌀 한 톨 탐하기를 우습게 알면
부질없이 반 년의 양식 잃으리라
十方僧物重如山
萬劫千生豈易還
金口共譚曾未信
他年爭免鐵城關
人身難得好思量
頭角生時歲月長
堪笑貪他一粒米
等閑失却半年糧
3.
『열반경(涅槃脛)』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어떤 사람이 대열반에 대한 설법을 듣고서 한 구절 한 글자마다 그대로 이것이다 저것이
다 하는 생각〔相〕을 내지 않고, 나는 설법을 듣노라 하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부처님은
이러이러 하시겠구나 하는 생각, 어떠어떠하게 설법하리라는 생각들을 모두 내지 않는다면
이러한 의미를 모양없는 모양〔無相相〕이라 한다."
달마대사가 바다를 건너와서 문자를 세우지 않았던 것은 앞서 말한 무상(無相)의 뜻을 밝
힌 것이지, 대사 자신이 새로운 뜻을 제시하여 따로 종지를 세운 것은 아니다.
요즈음 학자들은 이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선종(禪宗)은 별도의 종지이다"라고 말하며, 선을
으뜸으로 여기는 자는 교(敎)를 비난하고 교를 으뜸으로 여기는 자는 선을 틀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두 갈래로 종지가 갈라져 서로가 시끄럽게 헐뜯으며 그만두질 못한다.
아 - 아, 지식이 천박하고 고루하여 한결같이 이 지경이 되었다. 이는 어리석지 않으면 미
친 자이니, 매우 탄식할 만한 일이다. 『심지법문(心地法聞)』
저자일람
* 운봉 문열(雲峯文悅)스님. 대우 수지(大愚守芝)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1세손이다.
* 서주(瑞州) 청원사(淸源寺)의 혜홍 각범(慧洪覺範)스님. 진정 극문(眞淨克文)스님의 법을
이었고, 남악의 13세손이다.
* 서주(徐州) 낭야(낭야)의 광조 혜각(光照慧覺)스님. 남악의 10세손이다.
* 태주(台州) 호국사(護國寺) 차암(此庵)의 경원 포대(景元布袋)스님. 원오스님의 법을 이었
고, 남악의 15세손이다.
* 임안부(臨安府) 정자사(淨慈寺)의 수암 단일(水庵端一)스님. 불지 단유스님의 법을 이었
으며, 남악의 16세손이다.
* 서주(舒州) 투자산(投子山)의 의청(義淸)스님. 수암 단일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7
세손이다.
* 복주(福州) 설봉(雪峯)의 묘담 사혜(妙湛思慧)스님. 법운 선본(法雲善本)스님의 법을 이었
다.
* 성은 양씨(楊氏). 이름은 걸(傑), 자는 차공(次公), 호는 무위거사(無爲居君). 관직은 예부
(禮部)에 이르렀으며, 천의회(天衣懷)스님의 법을 이었다.
* 송(宋) 희영(熙寧) 연간에 낭야 각(낭야覺)스님으로부터 법을 얻음. 시와 글씨에 능했으
며, 홍주(洪州)의 보봉사(寶峯寺)에 머물면서 『능엄표지(嚴標指)』를 지었다.
* 태주(台州) 만년사(萬年寺)의 심문 운분(心聞雲)스님. 육왕 개심(育王介湛)스님의 법을 이
었으며, 남악의 16세손이다.
* 경원부(慶元府) 천동사(天童寺)의 밀암 함걸(密庵咸傑)스님. 응암 담화(應庵曇華)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7세손이다.
*진강부(鎭江府) 초산(焦山)의 혹암(或庵)스님. 경원(景元)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6
세손이다.
* 임안부(臨安府) 영은사(靈隱寺)의 할당 혜원(堂慧遠)스님.
벽암록 中
선림고경총서36
해제
선문에서는 옛 조사들이 남긴 언행 중에서 후세에 귀감이 될 만한 것
을 고칙(古則)이라 한다. 설두중현(雪竇重顯:980-1052)스님이 명주(明
州:지금의 浙江省 奉化縣)에 있는 설두산의 자성사(資聖寺)에 머물면서,
고칙을 100개로 정리하고 거기에 송을 붙인 것이「설두송고」이다. 이 송
고집은 당시 절강성을 중심으로 한 선과 문학의 조화를 잘 드러낸 작품
으로,「선림보훈」에 의하면 임제종 분양선소(汾陽善昭:947-1024)의 「분
양송고(汾陽頌古)」를 본따서 이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많은
승려들이 이런 송고류를 만들었는데, 이 풍조는「경덕전등록」의 편찬을
거슬러 올라가서「조당집」의 편찬 등에 의해 격발된 것으로 보인다.
사천성 출신인 설두스님은 설봉-운문-향림-지문-설두로 이어지는 운문
계의 선사이다. 그러나 여하경(呂夏卿)이 지은 탑명에 의하면 설두스님
은 마조의 9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특출한 선사는 모두 마조
의 법손이라고 믿는 당시의 사상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당시에는 이미 마조-백장-황벽-임제로 이어지는 임제종이 선풍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송대 임제종에 속하는 원오스님이 이 송고집을 거량하여
「벽암록」으로 후세에 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설두송고」를 대본으로 원오 극근(원悟克勤:1063-1135)스님이 당시
의 수행자들에게 제창한 것이 바로 이 「벽암록」이며, 이 책은 「벽암
집」「불과원오선사벽암록」등으로 불려왔고, '종문제일서(宗門第一書)'
라는 칭호와 함께 선서(禪書)의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설
두스님이 하신 [본칙]·[송]과 원오스님이 하신 [수시]·[평창]·[착어]
로 구성되어 있다. [수시]는 법문에 들어가기 전에 한 일종의 문제제기
이고, [평창]은 [본칙]과 [송]에 대한 설명이고, [착어]는 한두 마디로
상대를 격발시키는 간단한 평가이다.
그러나 원오스님의 제창은 단순한 글자 해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님 자신의 전인격이 투여되어 있다. 특히 말이나 문헌에 대한 집착을
끊어주기 위하여 당시의 구어와 속어를 종횡무진하게 사용하여 수행자들
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원오스님의 생생하고 발랄한 강의의 모습은
그의 훌륭한 기록자들에 의해 그 몸짓마저도 전해지고 있다. 설두스님이
표전(表전)의 논리로 본분의 소식을 알린 반면, 원오스님은 차전(遮전)
의 방식으로 일체의 사량분별을 뛰어넘어 자기의 본래면목을 단박에 깨
치도록 하였다. "「벽암록」을 읽으면 모든 알음알이가 딱 끊어진다"고
한 성철스님의 평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벽암록」은 문학적으로도 매우 밀도 있게 완성되어, 중당 이후
의 문단(文壇)의 중심적인 사조인 돈오무심(頓悟無心) 사상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더구나 송대의「창랑시화(滄浪詩話)」등의 시평어집에서
당대(唐代)에 유행하던 돈오돈수 사상을 근거로 당시(唐詩)를 평한 것을
상기할 때에「벽암록」이 갖는 불교문학사적 위치는 대단히 크다. 순간
적으로 포착된 느낌을 압축된 언어로 정착시켜야만 하는 시인의 긴장감
이 일체의 사량분별이나 점진적인 단계를 철저히 거부하는 선사의 삶과
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선 사상사로 보더라도 돈오견성을 부르짖는「육조단경」의 사상과, 철
저한 자기 주체성을 강조하는 선사들의 정신이「벽암록」에 집약되어 있
다. "기봉이 단계적인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면 독바다에 떨어진다"라든
가, "남으로부터 얻은 보물은 자기의 보물이 아니다"라는 옛 조사들의
말을 원오스님은 누누이 인용하고 있다.
원오스님은 팽주 숭녕(彭州崇寧:사천성 성도) 출신으로 자(字)는 무착
(無着)이고 극근은 스님의 휘(諱)이다. 생전에는 북송의 휘종 임금이 불
과(佛果)라는 법호를, 사후에는 남송의 고종 임금이 원오라는 법호를 내
렸다. 어려서 출가하여 뒷날 오조 법연(五祖法演:?-1104)스님의 법을 이
어 임제의 가풍을 날렸으나, 문하에는 항상 천여 명의 납자가 있었으며
그 중 대혜 종고(大慧宗 )와 호구 소륭(虎丘韶隆)스님이 유명하다. 당
시의 한림학사 곽지장(郭知章)과 재상 장상영(張商英)의 귀의를 받아 여
러 관사(官寺)에서 종풍을 선양하던 중 성도의 소각사(昭覺寺), 호남의
협산사(夾山寺)와 도림사(道林寺) 등지에서 「설두송고」를 제창하여 「
벽암록」으로 오늘에 전하고 있다. '벽암'은 협산(夾山) 영천원(靈泉院)
에 있는 한 건물의 편액에 있는 글자이다. 스님의 법어는 제자들에 의해
'어록'과 '심요'로 편집되어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벽암록」의 텍스트와 그 계통은 매우 복잡한데, 여기서는 이 책의 대
본이 된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이하 삼성본으로 약칭)을 중심으로 간단
히 설명하기로 한다. 선화(宣和) 7년(1125)에 쓴 무당(無黨)스님의 후서
에 의하면, 우너오스님이 성도에서「설두송고」를 제창했다고 한다. 그
후 협산·도림에서도 또다시 제창하였는데 그때마다 말씀은 조금씩 달랐
으나 그 뜻은 같았다고 한다. 그런데 건염(建炎) 2년(1128)에 쓰인 보조
스님의 서에 의하면 협산 영천원의 벽암에 주석하시던 중 제창하신 것으
로 되어 있으므로 모순이다. 아마도 성도 강의록과 협산 강의록이 필사
본의 형태로 둘 다 유행되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뒷날 여러 다른 종류
의 판본으로 정착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성본「벽암록」은 조선조 세조 11년(1465)에 제작한 을유자(乙酉字:
중간 크기의 동활자)로 찍은 책이다. 이 책은 ①보조의 서, ②만리방회의
서, ③삼교노인의 서, ④주치의 서의 순으로 서가 붙어 있다. 그리고 ①
무당의 후서, ②희릉의 후서, ③정일의 후서, ④풍자진의 후서, ⑤중간
원오선사벽암집소 순으로 후서가 붙어 있다. 이 후서 중 ② ③ ④에 모
두 장명원의 재판(再版)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성본은 장
명원본 계통을 저본으로하여 활자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가흥장
속장본과 건륭장경본의 권제10 뒤에,「북판(北版)」이 잘못된 부분을 지
적한 대목이 있는데,삼성본도「북판」이 오류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으
로 미루어, 장명원본 계통 중에서도「북판」과 같은 계통으로 생각된다.
한편, 이 삼성본은 각 칙의 내용을 표시하는 제목이 없고, 각 칙의 본
칙의 첫머리에 번호가 붙어 있고, 권제1 끝에 '협산무애선사항마표'가
없는 점 등이 중국의 명본(明本), 가흥장속장본, 건륭장본, 대청광서본
과는 다른 점이다. 이런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에 삼성본은 옛날의 원형
에 가까운 계통이라 할 수 있다.
삼성본은 1991년 9월 30일에 보물 제1093호로 지정된 책으로, 두 권씩
제본하여 5책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제1책은 27장, 제2책은 1장, 제3책
은 12장, 제4책은 3장이 각각 빠져 있고, 제5책은 온전하다. 그리고 뒷
사람들이 수리하는 과정에서 제1책·제4책·제5책의 일부의 순서가 뒤바
뀐 듯하다. 본 선림고경총서의 영인본에서는 다른 판본 등과 대조하여
삼성본으 순서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삼성본의 빠진 부분과 파손된 글자
는, 조선의 을유자로 인쇄된 일본의 대동급기념문고(大東急記念文庫) 소
장본을 이용하여 복원하였다. 이 일본 소장본은 일본인의 손에 이한 토
가 달려 있어, 독자들은 삼성본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원문의
오자(誤字)나 낙자(落字)는 일본 암파문고(巖派文庫)의「벽암록」을 참
고하기 바란다.
이 삼성본「벽암록」의 원형이 학계에 알려짐에 의해, 조선 초기「벽
암록」의 유통과 중국 선서를 수용하는 당시 우리나라 불교계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나아가 중국 선종의 여러 가풍 중에서 임제의 가풍을 선
택적으로 수용하는 우리나라 선종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귀중
한 문헌을 제공해준 삼성출판박물관의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백련선서간행회
일러두기
1. 이 책의 대본은 조선조 세조 11년(1465)에 제작한 을유자(을유자:중
간자)로 인쇄한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보물 제1093호)이다.
2. 원문에는 각 칙에 번호만 붙어 있고 칙명(則名)은 없으나 이 책에서
는 대동불교연구원본(大東佛敎硏究院本)을 해석하여 제목을 달았다.
3. 출판사 상·중·하권으로 나누고, 찾아보기 쉽도록 부록의 원본에도
각 칙마다 번호를 붙였다.
4. 원문의 '垂示云', '擧'는 각각 [수시]·[본칙]으로 표기했고, 이와
함께 [평창]·[송] 등의 표시를 사용하여 서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원오스님의 착어는 "-"로 표시하고 활자를 작게 했다.
5. 원문에서는 설두스님의 말은 한 자 내려서 원오스님의 말과 구별을
하였으나, 이 번역에서는 설두스님의 말인 [본칙]과 [송]은 활자를
크게 하고, 원오스님의 말인 [수시]와 [평창]은 글자를 작게하여 구
별하였다.
6. 원문의 교감은 의미의 소통에 지장이 있는 부분에만 한정했고, *표
를 사용하여 각주를 달았다.
7. 영인이 저본은 삼성출판박물관소장본과 동일한 판본인 일본의 대동
급기념문고(大東急記念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삼성출판박물관소장
본의 결락된 부분과 오손된 부분은 대동급기념문고 소장본을 이용하
여 복원하고, 영인하여 부록으로 실었다.
8. 편집의 체제상 문맥의 흐름에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 )안에 설명을 하였다.
차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退翁性撤/2
선림고경총서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圓澤/4
선림고경총서 완간(完刊)에 붙여……………………………退翁性撤/6
해제(解題)/7
벽암록 中
제31칙 마곡의 주장자를 떨치고[麻谷振錫]………………………… 19
제32칙 임제의 한 차례 때림[臨濟一掌] …………………………… 29
제33칙 자복의 일원상[資福圓相] …………………………………… 34
제34칙 앙산의 오로봉[仰山五峰] …………………………………… 40
제35칙 앞도 삼삼 뒤도 삼삼[前三三後三三] ……………………… 47
제36칙 장사의 봄기운[長沙春意] …………………………………… 54
제37칙 반산의 마음을 구함[盤山求心]……………………………… 60
제38칙 풍혈의 무쇠소[風穴鐵牛] …………………………………… 66
제39칙 운문의 황금털[雲門金毛] …………………………………… 81
제40칙 남전의 뜰에 핀 꽃[南泉庭花] ……………………………… 86
제41칙 조주이 크나큰 죽음[趙州大死]……………………………… 92
제42칙 노방의 잘 내리는 눈[老龐好雪] …………………………… 98
제43칙 동산의 더위와 추위[洞山寒署]………………………………104
제44칙 화산의 북을 치는 뜻[禾山打鼓] ……………………………111
제45칙 청주에서 지은 삼베적삼[靑州布衫]…………………………119
제46칙 경청의 미혹되지 않음[鏡淸不迷]……………………………125
제47칙 운문의 육대(六大)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雲門六不]……131
제48칙 태부의 옷소매를 떨치고[太傳拂袖]…………………………141
제49칙 삼성의 금빛 물고기[三聖金鱗]………………………………144
제50칙 운문의 진진삼매[雲門塵塵三昧] ……………………………149
제51칙 암두의 최후의 언구[巖頭末後句]……………………………153
제52칙 조주의 돌다리[趙州石橋] ……………………………………164
제53칙 마조의 들오리[馬祖野鴨] ……………………………………169
제54칙 운문의 손을 펴 보임[雲門展手] ……………………………175
제55칙 도오의 말할 수 없음[道吾不道] ……………………………179
제56칙 흠산의 화살 한 대[欽山一鏃]………………………………189
제57칙 조주의 분별하지 않음[趙州不揀]……………………………196
제58칙 조주의 함정[趙州 窟] ………………………………………200
제59칙 조주의 지극한 도[趙州至道]…………………………………204
제60칙 운문의 주장자[雲門 杖] ……………………………………209
제61칙 풍혈의 한 티끌[風穴一塵]……………………………………216
제62칙 운문의 보물 한 가지[雲門一寶] ……………………………221
제63칙 남전의 고양이를 벰[南泉斬猫]………………………………228
제64칙 조주 짚신을 머리에 얹고[趙州載鞋] ………………………232
제65칙 세존의 침묵[世尊良久] ………………………………………236
제66칙 암두의 할[巖頭作□] …………………………………………244
제67칙 경상(經床)을 두드린 부대사[傳大師揮案]…………………250
제68칙 혜적과 혜연[惠寂惠然] ………………………………………256
제69칙 남전의 일원상[南泉圓相] ……………………………………263
제70칙 위산의 목도 입도 막은 뒤[ 山倂却]………………………269
<부록> 碧巖錄(三省出版博物館 所藏本)
벽암록
中
원오(원悟)스님께서 풍주(풍州)의 협산(夾山)
영천선원(靈泉禪院)에 주석하시면서
설두 중현(雪竇重顯)스님의 송고(頌古)에 대하여
평창(評唱)한 말씀의 핵심
제 31 칙
마곡의 주장자를 떨치고[麻谷振錫]
[수시]
움직이면 그림자가 나타나고, 깨달으면(본래 맑은 물이지만)
얼음이 생겨난다.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않고 깨닫지도 않는다
면 여우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투철하게 사무치고, 꽉 믿어
서 실오라기 만한 가리움마저 없다면, 용이 물을 얻은 듯, 범
이 산을 의지한 듯하여, 놓아버려도 기와 부스러기에서 광명이
나오고, 잡아들여도 황금이 빛을 잃게 되어, 옛사람의 공안도
(직선 코스가 아닌) 빙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가 말해보아라. 거량해보련다.
[본칙]
마곡스님이 석장(錫杖)을 지니고 장경(章敬)스님에게 이르러,
선상(禪床) 주위를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조계의 모습을 쏙 빼닮았네. 끝내는 하늘도 놀라고 땅도 감동했다.
장경스님이 말하였다.
"옳지, 옳지!"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구나(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한 배 탄 사
람들을 모두 속였다. 이 무슨 말이냐? 사람을 잡아 매는 말뚝이다.
설두스님이 착어하였다.
"틀렸다."
-용서해줘서는 안 되지. 그래도 한 수 헤아렸군.
마곡스님이 또다시 남전스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여전히 진흙 속에서 흙덩이를 씻는다. 전에 했던 짓을 거듭 하는군. 새
우가 뛰어봐야 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아니다, 아니야."
-왜 인정하지 않는가?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구나. 이
무슨 이야기인가?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틀렸다!"
-용서해줘서는 안 되지.
당시 마곡스님이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다고 하는데, 스님은 무엇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하십니까?"
-주인공이 어디에 있느냐? 이놈이 원래 남의 말을 가로채는 녀석이었군.
들통났구나.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장경스님은 옳았지만 틀린 것은 바로 자네야!"
-사람을 죽이려면 반드시 피를 보아야만 하고, 사람을 위하려면 반드시
사무쳐야 한다. 많은 사람을 속였구나.
이는 바람의 힘[風力 : 번뇌]에서 굴러나온 바이니 결국 사
라지고 만다.
-과연 그의 올가미에 걸려들었군. 자기는 어덕하려구?
[평창]
옛사람은 행각을 할 적에 두루 총림을 편력하면서 '이 일'만
을 생각하고, 선상(禪床) 위에 앉아 있는 큰스님들의 안목이 있
는가 없는가를 판정하고자 했다. 옛사람들은 한마디에 서로 통
하면 머물렀지만 그렇지 못하면 곧 떠나버렸다.
마곡스님이 장경스님에게 이르러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
을 한 번 내려치고 우뚝 서 있자, 장경스님이 "옳지, 옳다"고
말한 것을 보아라. 사람을 죽이는 칼[殺人刀]과 살리는 칼[活人
劍]은 본분작가여야 쓸 수 있다. 설두스님이 "잘못했다"고 하
니, 이것은 양쪽을 말한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대가 양쪽으
로 이해한다면 설두스님의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우뚝 서 있었는데, 말해보라, 그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설두스님은 "틀렸다!"고 말하였는데 무엇이 옳다는 것일까? 설
두스님은 앉아서 판결문을 읽는 것과 같다.
마곡스님은 "옳다"는 이 한마디를 가지고 바로 남전스님을 찾
아가 여전히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석장을 한 번 내리치고 우뚝
서 있자, 남전스님은 "아니다, 아니야"라고 하였는데, 살인도와
활인검은 모름지기 본분종사여야 쓸 수 있다. 설두스님은 "틀렸
다!"고 하였으며, 장경스님은 "옳지, 옳지"라 하였고, 남전스님
은 "아니다, 아니야"라고 하였으니, 이는 똑같은 말일까 다른
말일까? 앞에서는 "옳다"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틀렸다!"고
말했으며, 뒤에서는 "아니다"라고 했는데, 무엇 때문에 "틀렸
다!"고 하였을까?
만일 장경스님의 말에서 이해하려 한다면 자신마저 구제하지
못하겠지만, 남전의 말에서 알아차린다면 불조와 함께 스승이
될 것이다. 비록 그러하기는 하나 납승이라면 모름지기 스스로
알아야 한다. 절대로 남의 말을 가지고서 분별해서는 안된다.
그가 물은 것은 매한가지였는데 왜 한 사람은 "옳다"하고, 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을까? 통달자재한 작가[通方作家]로서
완전한 해탈을 얻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또 다른 생애가 있겠지
만, 기틀[機]과 경계[境]를 잊지 못한다면 결코 양쪽에 막힐 것
이다.
그러므로 고금을 분명히 판별하고 천하인의 혀를 꼼짝 못하게
하려면 반드시 두 차례 "틀렸다"라고 한 말을 또렷이 알아야 한
다. 뒤에 설두의 송은 오직 이 두 차례의 "틀렸다!"는 말을 노
래 했을 뿐이다. 설두스님은 활발발(活 )하게 드러내고자 이
처럼 말했던 것이다. 만일 몸 속에 피가 있는 자라면 당연히 언
구에서 이해하지 않고, 속박하는 말뚝 위에서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사람은 "설두스님은 마곡을 대신하여 두 차
례 '틀렸다!'고 말하였다"고 하지만 이와는 무슨 상관이 있겠는
가. 옛사람의 착어는 중요한 관문을 꽉 막아버린다는 사실을 모
른 데서 나온 말이다. 여기도 저기도 모두 옳으나 결국은 두 쪽
모두 아니다.
경장주(慶藏主)는 "석장을 짚고 선상을 맴돌며, 옳으니 옳지
않느니 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고 하였는데, 실은 이것도 아
니다.
그대들은 듣지 못하였는가? 영가(永嘉)스님이 조계(曹溪)에
이르러 육조(六祖)스님을 친견할 적에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
장을 한 번 치면 우뚝 서 있었다. 그러자 육조는 "사문(沙門)이
란 3천 가지의 큰 위의[三千威儀]와 8만 가지의 구체적인 규율
[八萬細行]까지도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스님은 어디서 왔기에
그처럼 거만을 부리는가?"라고 하였다. 무슨 까닭에 육조는 그
에게 거만을 부린다고 말하였을까? 그때는 옳다고 말하지도 않
았고, 옳지 않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옳으니 옳지 않느니 하는
것은 모두 속박하는 말뚝이다. 오로지 설두스님만이 두 차례
"틀렸다!"고 하였으니,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마곡스님은 "장경스님은 옳다고 하였는데 스님은 왜 옳지 않
다고 하십니가?"라고 하였는데, 이 늙은이가 눈썹을 아끼지 않
고 (상대를 일깨워주느라) 적지않은 허물을 범하였다. 남전스님
이 말하기를 "장경스님은 옳지만 바로 너는 틀렸다"라고 하였으
니, 남전스님이야말로 토끼를 보고서 사냥하려고 놓아보냈다고
말할 만한다.
경장주가 말하였다. "남전스님이 너무도 매몰차지 못해 마지
못해, 다시 허물을 들추어 말하기를 '이는 바람의 힘[風力]에서
굴러나온 바이므로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원각경(圓覺經'에서는 "나의 이 몸은 사대(四大)로 화합된
것이니, 이른바 털, 손톱, 이빨, 가죽, 살, 힘줄, 뼈, 골수, 뇌
등 더러운 물질은 모두 땅으로 돌아가고, 침, 눈물, 고름, 피는
모두 물로 돌아가며, 따뜻한 기운은 불로 돌아가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으로 돌아가나니 사대(四大)가 각각 떠나면 오늘의 이
허망한 몸은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저 마곡스님이 석장을 지니고 선상을 돌았던 것은 이미 바람
힘[風力]에서 굴러나온 바이므로 결국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하였다. 말해보아라! 결국 마음의 종지[心宗]를 밝히는 일은 어
디에 있을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무쇠로 주조한 놈이
어야만이 할 수 있다.
왜! 듣지 못하였느냐? 장졸(張拙)이라는 한 진사(進士)가 서
당장(西堂藏)선사를 참방하여 물었다.
"산하대지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있습
니까, 없습니까?"
"있느니라."
"틀렸습니다."
"그대는 일찍이 누구를 참방하였소?"
"경산(徑山)스님을 참방하였습니다. 내가 묻기만 하면 경산스
님은 모두 '없다'고만 말하였습니다.
"그대는 권속이 몇이나 있소?"
"아내 한 사람과 두 자식이 있습니다."
"경산스님에겐 권속이 몇 명이 있었소?"
"경산스님은 옛 부처[古佛]이시다. 스님은 그를 비방하지 마
십시오."
"그대가 경산스님처럼 되거든 꼭 '없다'고 말하소."
그러자 장졸은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모름지기 작가종사라면 끈끈한 속박을 벗겨주며 (속박하는)
못과 쐐기를 뽑아주어야 한다. 한 곳만 국집하지 말고, 종횡무
진 자재(自在)하여야 한다.
앙산스님은 중읍(中邑)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사계(謝 : 계를
받고 은사께 드리는 의식)한 행동을 살펴보라.
중읍스님이 앙산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선상 위에서 손뼉을
치면서 "큰스님(和尙)!"하자, 양산스님은 곧 동편에 섰다가 서
쪽에 서고, 또다시 한복판에 섰다. 그런 뒤에 사계를 하고 곧
뒤로 물러서자 중읍스님이 말하였다.
"어디에서 이런 삼매를 얻었느냐?"
"조계(曺溪)의 도장[印章]을 고스란히 찍어왔지요."
"말해보라. 조계스님은 이 삼매로 어떤 사람을 제접하였느
냐?"
"일숙각(一宿覺)을 제접했습니다."
이어 앙산스님이 도리어 중읍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느 곳에서 이 삼매를 얻으셨습니까?"
"마조(馬祖)의 처소에서 이 삼매를 얻었노라."
이와 같은 대화를 한다면, 이는 하나만 들어도 셋을 밝히고
근본을 보고서 지말을 아는 놈이 아니겠는가!
용아(龍牙)스님은 대중법문에서 "참선하는 사람은 반드시 조
사와 부처를 뛰어넘어야 한다. 신풍(新豊) : 동산 양개, 용아스
님의 은사)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불조의 말씀과 가르침을 숙생(宿生)의 원수처럼 보아야 비로
소 참선할 자격이 있다. 만일 뛰어넘지 못한다면 불조에게 속임
을 당하게 된다'라고 했다."
그때 어느 스님이 (용아스님에계) 물었다.
"불조께서는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까?"
"그대는 말해보라. 강과 호수가 사람을 막아 세우려는 마음이
있겠느냐?" 또 용아스님은 말했다.
"강과 호수는 사람을 막아 세우려는 마음이야 없었지만 사람
스스로 지나가지 못하여, 강과 호수가 도리어 사람을 막는 격이
되었다. 그러니 강과 호수가 사람을 가로막는다고 말할 수 없
다. 조사와 부처가 사람을 속이려는 마음이야 없겠지만, 사람
스스로가 뛰어넘지 못하기에 부처와 조사는 사람을 속이는 격이
되었다. 그렇다고 부처와 조사가 사람을 속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불조의 가르침을 뛰어넘으면 이 사람은 곧 불
조를 뛰어넘은 것이다. 불조의 뜻을 체득해야지만 비로소 향상
(向上)의 옛사람과 같을 것이며, 뛰어넘지 못한다면 부처를 배
우고 조사를 배운다 해도 만겁(萬劫)토록 당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하여야 불조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깨쳐야 하느니라."
'이 자리'는 반드시 이래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지도하려면 철저해야 하고, 살인을 하려면 피를 봐야하
기 때문이다. 남전스님과 설두스님은 그러한 사람이었기에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이래도 '틀렸다', 저래도 '틀렸다'.
-눈썹을 아껴라. 법령에 따라서 시행하였구나. 천상 천하에 유아독존이로
다.
절대 말하지[拈] 말라.
-두 개의 구멍 없는 철추로다. 설령 천수대비(千手大悲) 관음이라 해도
거론하지 못하리라. 혹 말한다면 스님에게 삼십 방망이를 먹이리라.
사해(四海)에 물결이 잔잔하고
-천하의 사람들이 꼼짝하지 못한다. 동서남북이 모두 똑같은 가풍이로구
나. 요즈음엔 비가 많이 내리는군.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
-적나라하여 말끔하구나. 자신도 편안하고 바다와 강물까지도 평온하다.
고책(古策 : 지팡이)의 가풍이 열두 대문보다도 높은데
-어찌 이 같으랴. 주장자에는 눈이 없다. 절대로 주장자 위에 살림살이를
하지 말라.
문마다 (장안에 이르는) 길 있건만, 텅 비어 쓸쓸하네.
-한 물건도 없구나. 그대들의 평상심[平生]을 속였다. 곁눈질했다 하면
장님이 되리라.
쓸쓸하지 않음이여!
-그러면 그렇지! 몸을 돌릴 곳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벌써 장님이 되었
군. (원오스님은) 후려쳤다.
선지식은 병 없는 약을 잘 사용하느니라.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 하루종일 무엇 때문에 졸고 있는
가? 하늘을 휘젓고 땅을 더듬어 무엇 하려고?
[평창]
이 송은 덕산스님이 위산스님을 친견했을 때의 공안과 같다.
먼저 공안을 가지고 두 전어(轉語)에 착어하여 하나로 꿰어놓은
뒤에 송을 한 것이다. "이래도 '틀렸다', 저래도 '틀렸다', 절
대로 말하지[拈] 말라"고 하였는데, 설두스님이 말한 뜻은 이곳
에서도 한 번 틀렸고, 저곳에서도 한 번 틀렸으니 절대로 말하
지 말라는 것이다. 말하면 틀린다. 모름지기 이처럼 두 번의
'틀렸다'는 말을 착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해의 물결은 잔잔하며,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는 것
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경지라 하겠다. 그대가 만일 이 두 번
의 "틀렸다"라는 데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눈꼽만큼도 일삼을
것이 없을 것이다. 산은 산, 물은 물이며, 긴 것은 긴 대로, 짧
은 것은 짧은 대로이다. 닷새 만에 바람 한 번 불고 열흘 만에
비 한 번 내리는 태평성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해의 물결
이 잔잔하고 모든 강물에 썰물이 빠졌다"는 것이다.
뒤이어 마곡 스님이 석장을 지녔던 것을 노래하여 "고책의 가
풍이 열두 대문보다 높다"하였는데, 옛사람은 (말을 때리는) 채
찍을 책(策)이라 하지만 납승가에서는 주장자를 책(策)이라 한
다. (<祖庭事苑>에서는 古策을 錫杖이라 하였다). 서왕모(西王
母) 선녀의 요지(瑤池) 위에는 열두 개의 붉은 문이 있다고 한
다. 고책(古策)이란 곧 주장자인데, 주장자로 인해 일어난 맑은
바람이 열 두 대문보다도 높다는 것이다. 천자와 제석천왕(帝釋
天王)이 거처하는 곳에도 각각 열두 개의 붉은 대문이 있다고
한다. 두 번의 "틀렸다"는 말을 알 수 있다면 주장자의 끝에서
빛이 발생하여 고책 또한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옛사람(분양 선소스님)의 말에 "주장자를 알면 일생에 참구했
던 [參學事]를 끝마친다"하였고, 또 (영가스님은) "이는 모양을
내느라 괜히 갖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여래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본받음이다"고 하니, 이와 같은 유이다. 여기에 이르러서
는 일곱 번 자빠지고 여덟 번 넘어지더라도 언제나 완전한 자재
(自在)를 얻을 것이다.
"문마다 길 있건만, 텅 비어 쓸쓸하네"라고 한 것은, 길이 있
기는 하나 쓸쓸히 텅 비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설두스님이
여기에 이르러 스스로의 잘못을 알고, 다시 그대들에게 이를 다
파해주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쓸쓸하지만은 않은 곳이 있다. 만
일 작가 선지식이라면, 병이 없을 때 먼저 약을 써야 하는 법이
다.
제 32 칙
임제의 한차례 때림[臨濟一掌]
[수시]
시방(十方)을 딱 끊어버리고, 일천 개의 눈이 단박에 열리고,
단 한마디로 수많은 말을 꼼짝 못하게 하니, 일만 기틀이 싹 사
라진다. 생사를 함께 할 사람이 있느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공안을 처리하지 못하겠거든 옛사람들의 말을 거량해보라.
[본칙]
정상좌가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이르러 어리둥절해한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었
구나. 허허, 어설피 무슨 짓인가.
임제스님이 선상에서 내려와 멱살을 잡고서 한 차례 뺨따귀를
후려치고 대뜸 밀쳐버렸다.
-오늘 탈로났구나. 노파심이 간절하다. 천하의 납승들이 뛰어봤자 벗어
나지 못한다.
정상좌가 우두커니 서 있자,
-벌써 귀신굴 속에 빠져버렸다. 빗나갔다. 콧구멍을 잃었구나.
곁에 있던 스님이 말하였다.
"정상좌야, 왜 절을 올리지 않느냐?"
-잠자코 있던 제 3자가 보아버렸다. 완전히 그의 힘을 빌렸구나. 동쪽 사
람이 죽었는데 서쪽 사람이 슬퍼하는구나.
정상좌가 절을 하려다가
-부지런함으로 못난 것을 때우는구나.
홀연히 크게 깨쳤다.
-어두움 속에서 등불을 얻은 듯 가난한 사람이 보배를 얻은 듯하다. 잘못
에 속아서 잘못을 더해가는군. 말해보라, 정상좌는 무엇을 보았기에 갑
자기 절을 올렸는가?
[평창]
그가 이처럼 곧바로 출입하고 왕래한 것을 살펴보라. 임제의
정종(正宗)이었기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 이를 깨칠 수 있다면
하늘을 훌쩍 뒤집어 대지를 만들고 스스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
다. 정상좌는 이러한 사람이었다. 임제스님에게 한 차례 따귀를
얻어맞고 절을 하다가 대뜸 귀착점을 알았다. 그는 북방의 사람
으로 기질이 아주 순박하고 강직했다. 법을 얻은 이후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그후 임제스님의 대기(大機)를 활용하였
다. 그는 참으로 빼어난 인물이라 말할 것이다.
하루는 길에서 암두, 설봉, 흠산 세 스님은 만났는데, 암두스
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시오?"
정상좌는 말하였다.
"임제에서 옵니다."
"화상(임제스님)께서는 안녕하십니까?"
"이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 세 사람이 일부러 찾아가 뵈올려고 하였더니만 복이 없
어 이미 돌아가시고야 말았구려. 도대체 스님께서 살아 계실 때
무슨 말씀이 있었습니까? 상좌께서는 한두 칙(則)만 거량해 주
십시오."
정상좌는 마침내 다음과 같이 거량하였다.
임제스님이 하루는 대중 설법을 하셨다.
"여러분의 몸뚱이 속에 한 무위진인(無爲眞人)이 있다. 그는
항상 그대들의 얼굴을 통해 출입하고 있으니 아직 깨닫지 못한
자는 살펴보아라."
그때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무엇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스님이 대뜸 스님의 멱살을 잡고서
"말해보라, 말해봐."
하였는데 스님이 머뭇거리자, 밀어 제쳐버리고 말하기를
"무위진인이 이 무슨 마른 똥덩어리냐?"하고 곧 방장실로 되
돌아가 버렸다.
이에 암두스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쑥 배물었다.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왜 무위진인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정상좌는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서
"무위진인과 무위진인이 아닌 것은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 빨
리 말해라, 빨리!"라고 하니, 흠산스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하고 얼굴만 누르락푸르락 하였다.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은 가까
이 앞으로 다가서서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이 수계한 지 얼마 안 되는 중이 좋음과 나쁨을 모르고서 상
좌의 비위를 거슬렸으니 자비로써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노장만 아니었다면 오줌도 가릴 줄 모르는 이놈을 쳐죽여
버렸을 것이다."
또 한 번은 진주(鎭州)에 있을 때 재(齋)를 끝마치고 돌아오
는 길에 다리 위에서 쉬다가 좌주(座主 : 강사) 세사람을 만났
는데, 그중 한 사람이 물었다.
"선하(禪河)의 깊은 곳은 모름지기 밑바다까지 궁구해야만 한
다 하는데 무슨 뜻입니까?"
정상좌가 멱살을 잡고서 다리 아래로 던져버리려고 하자 두
좌주(座主)가 허둥지둥 하면서 말렸다.
"제발 그만두십시오. 이 사람이 상좌의 비위를 거슬렸으니,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두 좌주스님만 아니었다면 강바닥까지 처박아넣었을 것
을...."
그의 이러한 솜씨를 살펴보면 모두가 임제스님의 솜씨가 있었
다. 그럼 설두스님의 송을 살펴보자.
[송]
단제(斷際:황벽)스님이 사용했던 전기(全機)를 이어받았으니
-황하는 근원부터 혼탁하다. 아들이 아비의 일을 이어받았군.
받은 것이 어지 점잖을 리가 있을까?
-어느 곳에 있을까? 어찌 이런 사람이 있을라고. 솜씨없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거령신(巨靈神)의 쳐든 손 일격에
-되게 놀라게 하네. 뽐내지 마라. (원오스님은) 불자로 한 번 탁 치고서
는, 다시는 이러쿵저러쿵하지 않았다.
천만 겹의 화산(華山)이 부서졌다.
-건곤대지가 일시에 노출되었다. 떨어졌구나.
[평창]
설두스님은 "황벽스님의 전기(全機)를 이어받았으니 받은 것
이 어찌 점잖을 리가 있겠느냐"라고 송했다. 황벽(黃壁)스님의
대기대용(大機代用)을 임제스님만이 바르게 계승하여 이를 드러
냄에 조금치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혹 주저하면 바로 미혹에 떨
어진다.
<능엄경>에서는 "만일 내가 손가락을 튕기면 해인삼매(海印三
昧)의 광채가 나타나지만, 그대들이 잠깐이라도 마음을 쓰면 번
뇌가 먼저 일어난다"고 하였다.
"거령신이 쳐든 손 일격에 천만 겹의 화산이 부서졌다"는 것
은, 거령신에게는 크나큰 신통력(神通力)이 있어, 손으로 화산
(華山)을 부셔 황하(黃河)에 흘려 보낸다고 한다. 정상좌의 의
심덩이[疑情]가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임제스님에게 한 차례 따
귀를 얻어맞고 얼음 풀리듯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제 33 칙
자복의 일원산[資福圓相]
[수시]
동서를 분별하지 않고 남북을 구분하지 않아, 아침부터 저녁
나절까지 저녁부터 아침나절까지 무심하니, 이러면 그가 졸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어느 때는 눈빛이 유성(流星)처럼
빛나기도 하니, 이러면 그가 성성(惺惺)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때는 남쪽을 북쪽이라고 하기도 한다. 말해보라, 이는 마
음이 있는[有心] 것일까, 없는[無心] 것일까? 도인(道人)일까,
범인(凡人)일까? 여기에서 뒤어넘어야만 비로소 귀착점을 알아,
옛사람은 이러하기도 저러하기도 했음을 알 것이다. 말해보라,
이는 어떠한 상황인가? 본칙을 거량해보리라.
[본칙]
상서(尙書) 진조(陳操)가 자복(資福)스님을 떠보러 갔는데,
자복스님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일원상(一圓相)을 그렸다.
-정령(精靈)이 정령을 알고 도적이 도적을 안다. 만약 너그러움이 없었다
면 이놈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금강권(金剛圈)을 알아 차리겠느냐?
진조는 말하였다.
"제자가 이렇게 와서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일원상을 그리시
어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오늘 졸고 있는 놈을 만났다. 이 도적놈아,
자복스님이 곧 방장실의 문을 닫아버렸다.
-도적도 가난한 집은 털지 않는다. (자복스님은) 벌써 그의 함정에 빠져
버렸다.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진조는 거우 한쪽 눈만 갖추었다."
-설두스님은 정수리에 눈을 가지고 있다. 말해보라, 그의 의도는 어디에
있었는가? 일원상을 주었더라면 좋았을걸. (설두스님의 착어는) 명쾌하
군. 용두사미구나. 당시 한 차례 내질러 진조상서가 나아가려 해도 문이
없고 물러가려 해도 길이 없도록 했어야만 했다. 말해보라, 어떻게 내질
러야 할까?
[평창]
상서 진조는 배휴(裵休), 이고(李 )와 동시대의 사람이다.
그는 스님을 만나면 먼저 재(齋)를 청하여 삼백 냥을 보시한 후
반드시 그를 시험해보았다. 하루는 운문스님이 와서 만나자마자
물었다.
"유교의 서적[儒書]에 대해서는 묻지 않겠습니다. 3승 12분교
(三乘十二分敎)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좌주(座主 : 강사)가 있는
데, 선승들이 행각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상서께서는 지금까지 몇 사람에게 이 질문을 하였습니까?"
"바로 지금 처음으로 상좌에게 묻는 것이다."
"바로 지금은 그만두고 무엇이 교학의 뜻입니까?"
"누런 종이에다 붉은 축(軸)으로 이루어진 경전이 그것입니
다."
"이는 문자언어일 뿐이니 무엇이 교학에서 주장하는 뜻입니
까?"
"입으로 말하고자 해도 말이 사라지고 마음으로 좀 궁리하고
자 해도 생각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입으로 말하고자 해도 말을 잃어버린 것은 말이 있다고 전제
했기 때문이며, 마음으로 좀 궁리하고자 하여 생각이 사라져버
린 것은 망상을 전제로 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교학에서 말하
는 뜻입니까?"
진조가 대답하지 못하자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상서께서 <법화경>을 본다고 하던데 그렇습니까?"
"네."
"경(經)에 이르기를 '모든 일상생활에서 하는 일이 모두 실제
의 모습[實相]과 서로 위배(違背)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말
해보시오, 비비상천(非非想天)에 지금 몇 사람이나 자리에서 물
러났습니까?"
진조가 또다시 말하지 못하자 운문스님이 말하였다.
"상서께서는 가벼이 그러지 마시오. 스님들이 삼경오론(三經
五論)을 팽개치고 총림에 들어와 10년, 20년을 지내도 (깨치지
못하고) 어찌하지 못하는데 상서인들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진조는 절을 올리고 말하였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또 한 번은 여러 관리들과 함께 누각에서 여러 스님들이 오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한 관원이 말하였다.
"오는 사람들은 모두 참선하는 스님들인가 봅니다."
진조는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어떻게 아닌 줄을 아십니까?"
"가까이 다가오면 그대에게 판별해주겠다."
스님들이 누각 앞에 이르렀을 때 진조는 갑자기 "학인스님
들!"하고 불렀다. 스님들이 머리를 쳐들자 상서는 여러 관원들
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느냐?"
오로지 운문스님 한 명만은 진조상서가 감파하려 해도 못 했
으니, 목주(睦州)스님 밑에서 참선을 하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자복스님을 떠보러 가자 자복스님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대뜸 일원상을 그려 보였다. 자복스님은 위산스님, 앙산스
님 회하의 큰스님이다. 평소 상대가 사는 고장의 경치나 물건
[境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사람을 제접하기를 좋아
하였다. 진조를 보자마자 일원상을 그려보였지만 진조 또한 작
가였으니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그는 속지 않고 스스로 점검하
여 말하였다. "제자가 이렇게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일원상을
그리시어 어찌하자는 것입니까?" 이에 자복스님이 문을 닫아버
렸는데, 이러한 공안을 언어 가운데에서 표적을 분별하고 구절
속에서 기틀을 감춰두었다고 한다.
설두스님은 "진조는 한쪽 눈만을 갖추었을 뿐이다"라고 말하
였다. 설두스님이야말로 정수리[頂門]에 일척안을 갖춘 분이다.
말해보라, 이 뜻이 어디에 있는가? 이 일원상을 주었어야만 했
다. 모두 이와 같이 한다면 납승들이 어떻게 사람을 지도할까?
나는 그대들에게 묻노니, 다시에 그대가 진조였다면 무슨 말을
했어야 설두스님에게 "그대는 한쪽 눈밖에 갖추지 못했다"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때문에 설두스님은 이를 뒤집어 송
을 하였다.
[송]
둥그런 진주 구르고 옥구슬은 돌돌돌.
-석 자의 주장자로 황하를 휘젓는구나. 모름지기 푸른 눈을 가진 달마여
야 할 수 있다. 무쇠로 주조했군.
말에 싣고 나귀에 얹어 철선(鐵船)을 타고는
-이 많은 것을 무얼 하려고? 어찌 한량이 있으랴. 나 원오에게도 좀 보여
주지.
온 세상의 일없는 나그네에게 나누어주네.
-필요없다는 사람이 있다. 일없는 사람이라면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드
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큰 자라를 낚을 때에는 (낚시를 던지지 말고) 올가미를 던져라.
-왔다갔다 하니 어떻게 던질 수가 없네. 두꺼비가 걸려들면 어떻게 할까?
새우나 조개라면 어떻게 할까? 반드시 자라를 낚아야만 할 것이다.
설두스님은 다시 말하였다.
"천하의 납승이 벗어나지 못하리라."
-몸이 안에 들어 있다. 한 구덩이에 묻어버려라! (그런 말하는 설두)스님
은 빠져나올 수 있겠는가?
[평창]
설두스님은 "둥그런 진주 구르고 옥구슬은 돌돌돌. 말에 싣고
나귀에 얹어 철선을 타고는"이라고 첫머리에 곧바로 송을 하였
는데, 이는 일원상을 노래한 것일 뿐이다. 이를 이해할 수 있다
면 호랑이에게 뿔이 돋는 것과 같다. '이것'은 모름지기 통 밑
바닥이 빠지고, 기관(機關 : 덫과 관문)을 다하고,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버려야만 한다. 결코 (이러쿵저러쿵)
도리로 이해하지 않아야 하며, 현묘한 말을 늘어놓아서도 안 된
다.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 이는 말에 싣고 나
귀에 얹어 철선에 올라, 거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이를 나누어주어서는 안 되니, 모름지기 온 세상의 일없
는 나그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대들의 뱃 속에 조그마한
일삼음이라도 있다면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반드시 유사(有事), 무사(無事)와 위정(違情), 순경(順境)과,
부처와 조사마저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람이어야 이를 알 수
있다. 참구할 만한 선(禪)이 있다거나, 범부, 성인을 헤아리는
생각이 있으면 이를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다. 이를 이미 알았다
면, 그가 말한 "큰 자라를 낚을 때는 올가미를 던져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큰 자라를 낚는 데는 올가미가 있
어야 한다. 그러므로 풍혈(風穴)스님은,
맑은 바다에서 고래 낚는 데는 익숙하더니만
아차,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벌 속에 허우적거리는구나.
하였으며, 또다시 한 구절을 읊었다.
큰 자라여, 삼신산을 짊어지고 가지 마오.
내 봉래산 정상을 가려 하니......
설두스님은 다시 말하기를 "천하의 납승들이 벗어나지 못하리
라"고 하였다. 만일 큰 자라라면 납승의 견해를 짓지 않을 것이
며, 납승이라면 큰 자라의 견해는 짓지 않을 것이다.
제 34 칙
앙산의 오로봉[仰山五峰]
[본칙]
앙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천하 사람이 모두 (질문이) 똑같군. 그렇기는 하지만 물어봐야지. 바람
결을 따라서 불을 놓는다. 평상시대로 대답해야 한다.
"여산(廬山)에서 왔습니다."
-알찬 사람을 얻기 어렵군.
"오로봉(五老峰)을 가봤냐?"
-가느라고 어깨가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어찌 이런 잘못을 하는
가?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한 걸음 옮겼군. 얼굴을 붉히는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만 못하다. 앞으
로는 못 가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다.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했구나."
-일삼는 것이 몹시도 많은 놈이다. 눈썹을 아꼈으면 좋으련만...... 이
늙은이가 너무도 서두르는구나.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이 말씀은 모두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을 하
신 것이다."
-살인도 활인검이로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두세 명이다. 요컨대 산에
가는 길을 알려면 반드시 갔다와본 사람이어야 한다.
[평창]
사람을 시험하는 핵심이 되는 곳은 입만 열면 바로 알게 된
다. 고인(운문스님)은 "한량없이 도량이 큰 사람은 말의 이면에
서 알아차린다"고 하였다. 정수리에 안목을 갖췄다면 듣자마자
귀결점을 알 것이다. 그들의 일문일답을 살펴보면 분명하고 또
렷하다. 운문스님은 무엇 때문에 "이 말씀은 모두가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하였을까? 옛사
람은 여기에 이르러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리고 밝은 구슬이 손
아귀에 있는 듯하여,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비치고 한족이 오
면 한족이 나타나며, 파리 한 마리도 거울을 도망갈 수 없다고
하였다.
말해보라, 무엇이 자비로움 때문에 한 차원 내려서 말씀하신
것인가? 이는 험준하다 하겠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서는 모름
지기 이런 자라야만 비로소 말할 수 있다.
운문스님이 염(拈)하여 말했다.
"이 스님이 몸소 여산에서 왔는데, 무엇 때문에 '화상아! 아
직도 산놀이를 못 했구나'로 말했을까?"
하루는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여러 총림에서 어느 스님이 찾아온다면 무얼 가지고 시험하
려느냐?"
"제게 시험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대는 말해보아라."
"저는 평소 스님이 찾아오면 불자(拂子)를 들고서 그에게 '다
른 곳에도 이것이 있더냐?'라고 묻습니다. 그의 대답을 기다렸
다가 다시 '이것은 그만두고, 저것은 어떠냐?'고 말합니다."
"이는 향상인(向上人)의 수단이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마조스님이 백장스님에게 다음과 같이 물
은 것을.
"어디에서 오느냐?"
"산 아래에서 옵니다."
"오는 길에 '한 사람'을 만났느냐?"
"못 만났습니다."
"왜 못 만났느냐?"
"만났다면 스님께 바로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이런 소식을 얻었느냐?"
"제자 잘못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다."
앙산스님이 이 스님에게 물은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일찍이 오로봉에 가봤느냐?"고 말하였을 때 이 스님이 영리
한 스님이었다면 "큰일났습니다"라고 말했어야 할 것을, 도리어
"아직 가보지 않았다"고 하였다. 스님은 작가가 아니었는데, 앙
산스님은 무엇 때문에 법대로 시행하여 많은 언어 갈등을 없애
지 못하고, 도리어 "화상아! 아직도 산놀이를 못 했구나"라고
말하였을까? 그러므로 운문스님은 "이 말씀은 모두 자비로움 때
문에 한 단계 낮추어서 말씀을 하신 것이다"고 하였다. 만일 한
단계 낮추지 않고 말을 하였다면 이와 같이 하지는 않았을 것이
다.
[송]
한 단계 낮추었는지, 아닌지를
-머리 위에도 질펀하고 발 아래도 질펀하다. 반쯤은 낮추고 반쯤은 올렸
다. 그도 이와 같고 나도 이와 같다.
누가 식별할 줄 알랴.
-정수리에 진리를 아는 눈[一隻眼]을 갖추었구나. 스님은 식별할 줄 모르
는구나.
흰 구름은 겹겹이 쌓이고
-천겹 만겹이다. 머리 위에 머리를 얹은 격이다.
붉은 해는 높이 솟았다.
-부서졌다. (보았다가는) 눈이 먼다. 눈을 떴다 하면 잘못된다.
왼쪽으로 돌아볼 틈도 없고
-눈먼 놈아, 여전히 할 일이 없어야지. 그대는 허다한 재주를 부려 무엇
하려는가?
오른쪽으로 돌아보니 벌써 늙어버렸다.
-한 생각이 만년이로다. 지나갔다.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한산자(寒山子)를.
-문둥이가 짝을 끌고가는구나.
너무 일찍 길을 떠나
-빠르지 않다.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하다.
왔던 옛길마저 잊어버렸구나.
-너나 나나 자유를 얻었다. 한 수 용서해줬다. (원오스님은) 후려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는 안 되지.
[평창]
"한 단계 낮추었는지 아닌지는 누가 식별하랴"하였는데, 설두
스님은 도리어 그의 귀착점을 알았던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한
번은 추켜올렸다 한 번은 깎아 내렸다 한 것이다. "흰 구름 겹
겹이 쌓이고 붉은 해는 높이 솟았다"하였는데, 이는 "풀은 더
부룩하고 연기는 자욱하다"는 것과 몹시 흡사하다. 여기에 이르
러서는 실날만큼도 범부에 속하지 않고, 성인에게도 속하지 않
는다. 온 법계에도 감추지 못하고 모두를 덮으려 해도 덮을 수
없다. 이는 이른바 '무심(無心)의 경계'이다. 추워도 차가운 줄
모르고 더워도 뜨거운 줄 모른다. 모두가 하나의 큰 해탈문이어
서 왼쪽을 돌아볼 짬도 없고, 오른쪽을 쳐다보면 벌써 세월을
지나간다.
나찬(懶瓚)스님은 형산(衡山)의 석실(石室)에서 은거하였는
데, 당(當) 덕종(德宗)이 그의 명성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그를
맞이하려 하였다. 사신이 석실에 이르러 "천자의 조서가 내렸으
니, 스님은 일어나 성은에 감사하는 절을 올리시오"라는 명을
하였다. 나찬은 쇠똥불을 뒤척거리며 토란을 구어 먹고 추위에
떨며 콧물을 턱까지 흘리면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신은 웃으
면서,
"우선 스님께서는 콧물부터 닦으시지요."
라고 하자, 나찬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어찌 속인을 위해서 콧물을 닦는 짓을 하리요."
그는 끝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사신이 돌아와 이 사실을 아뢰
니, 덕종은 몹시 흠모하여 찬탄하였다. 그는 이처럼 맑고 고요
하면서도 밝고 또렷하여, 남의 휘둘림을 받지 않고, 확실히 잡
아들여 마치 무쇠로 주조한 자와 같았다.
선도(善道)스님 같은 이는 사태(沙汰)를 겪은 뒤에 다시는 승
려생활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를 석실행자(石室行者)라 하
였다. 그는 언제나 디딜방아를 밟으면서도 밟는 것마저 까마득
히 잊었었다. 어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석실행자는 밟는 것마저 잊고 있으니 그 뜻은 무엇입니까?"
"깊은 구덩이에 빠져 있느니라."
법안(法眼)스님은 원성실성송(圓成實性頌)에서 다읍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치가 다하고 알음알이 마저 잊는데
어찌 비유조차 있겠는가.
필경 서리 내리는 밤
달은 고스란히 앞 시내에 떨어지네.
과일이 익으니 원숭이 따라 살찌고
산이 깊으니 길이 아득하구나.
고개를 들어보니 낙조가 지는데
원래부터 서방에 살았었구나.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한산자를. 너무
나 일찍 길을 떠나 십 년이 되도록 돌아오질 못하고, 왔던 옛길
마저 잊어버렸구나"하였다. 한산자의 시에서는 이렇게 노래했
다.
몸 쉴 곳을 얻고자 하는가.
한산(寒山)을 길이 보존하오.
산들바람 그윽한 소나무를 스치니
가까이 들을수록 더욱 좋아라.
그 아래 초로(初老)의 늙은이가
술술 불경을 읽는다.
십 년이 되도록 돌아가질 못하여
왔던 옛길마저 잊었어라.
영가(永嘉)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이 모두 한낱 거울 위의 티끌이다.
티끌이 사라질 때 광명이 나타나듯
마음과 법을 모두 잊으면 본성 그대로가 참이네.
여기에 이르러서는 바보 같고 멍한 사람 같아야 이 공안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언어 속에 치달리리니,
언제 끝마칠 날이 있겠는가.
제 35 칙
앞도 삼삼 뒤도 삼삼[前三三後三三]
[수시]
용과 뱀을 구별하고 옥과 돌을 가리며, 흰 것과 검은 것을 구
별하고 의심을 결단하는 데에, 만일 이마 위에 일척안이 없거나
팔꿈치 아래 호신부(護身符)가 없으면 언제나 첫머리부터 빗나
가 버린다. 그저 지금 보고 듣는 것에 어둡지 않고, 성색(聲色)
에 순수하며 참다우니, 말해보라, 이는 검은 것인지 흰 것인지,
굽은 것인지 곧은 것인지를, 여기에 이르러서는 어떻게 결판을
내야 할까?
[본칙]
문수가 무착(無著)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묻지 않을 수 없구나. 이러한 소식도 있었구나.
"남방에서 왔습니다."
-번뇌의 굴 속에서 나왔구나. 하필이면 눈썹 위에서 짐을 올려놓느냐. 허
공은 원래 방위가 없는데 어떻게 남방이 있겠느냐.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수행하느냐?"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이런 말을 입에 담다니.....
"말법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조금 받드는 정도입니다."
-알찬 사람이란 얻기 어렵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가?"
-당시에 한 번 소리지르고 내질러 거꾸러뜨려야 했다.
"삼백 명 또는 오백 명 정도 입니다."
-모조리 여우의 정령들이로다. 과연 잘못을 저질렀군.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물었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수행하는지요?"
-내질렀다. 창끝을 돌려대는구나.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완전히 졌다. 정신없이 허우적거린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지요?"
-나에게 화두를 돌려다오. 그래도 용서해줄 수는 없지.
"앞도 삼삼[前三三], 뒤도 삼삼[後三三]이지."
-이랬다 저랬다 하는군. 말해보라, 얼마나 될까? (너무 많아) 천수대비
(千手大悲)로서도 셈할 수 없다.
[평창]
무착이 오대산을 유람하는 도중 황량하고 외딴 곳에 이르렀
다. 문수는 하나의 절을 화현(化現)시켜 그를 맞이하여 자고 가
도록 했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수행하더냐?"
"말법시대의 비구가 계율을 조금 받드는 정도입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가?"
"삼백 명 또는 오백 명 정도 입니다."
무착이 도리어 문수에게 물었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수행하는지요?"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
"대중이 얼마나 되는지요?"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지."
(그 뒤) 차를 마신 후 문수는 파리( 璃) 찻잔을 들고서 말하
였다.
"남방에도 이런 물건이 있느냐?"
"없습니다."
"평소 무엇으로 차를 마시느냐?"
무착이 아무 말도 못했다. 그리고는 하직하고 떠나려 했다.
문수는 균제동자(均提童子)에게 문 밖까지 전송해주도록 하였
다. 무착은 동자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라고 말하였는데, 얼마
나 되는가?"
"대덕이여."
무착이 대답을 하자, 동자는 말하였다.
"'이것'은 얼마나 됩니까?"
무착은 또 물었다.
"여기가 무슨 절인가?"
동자가 금강력사(金剛力士)의 뒤를 가리켰다. 무착이 머리를
돌리는 찰나에 동자와 화현으로 나타난 절까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텅 빈 산골짜기만 있을 뿐이었다. 그곳을 후세에 금강굴
(金剛窟)이라고 불렀다.
그후 어떤 스님이 풍혈(風穴)스님에게 물었다.
"누가 청량산(淸凉山 : 오대산의 別稱)의 진짜 주인입니까?"
"무착의 질문에 한마디도 대답 못하고, 지금껏 노숙(露宿)하
며 떠도는 스님이다."
투철히 참구하여 무심하게 실제의 경지를 밟고자 한다면 무착
의 언구(言句)에서 알아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확탕( 湯), 노
탄(爐炭)의 지옥에서도 뜨겁지 않고, 차가운 얼음 위에서도 추
위를 느끼지 않는다. 만일 투철히 참구해 홀로 높이 금강왕 보
검(金剛王寶劍)처럼 준엄하려면 문수의 말에서 알아야 한다. 그
러면 자연히 물로 떠내려 보내지도 못하고 바람으로 날려보내지
도 못한다.
듣지 못하였느냐? 장주( 州)의 지장(地藏)이 어떤 스님에게
물은 말을.
"요즈음 어디에 있다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그곳의 불법은 어떠한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에서 밭에 씨앗을 부리며 주먹밥을 먹는 것만 하겠
느냐?"
말해보라, 이는 문수가 대답했던 곳과 같을까, 다를까? 어떤
사람은 "무착의 대답은 옳지 않고, 문수의 대답에는 용도 있고
뱀도 있으며, 범부도 있고 성인도 있다"고 하나, 이와 무슨 관
계가 있겠는가? 또한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겠는가?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벼운 편인데, 뒤에 쏜 화살
은 깊숙이 박혔다.
말해보라, 얼마나 많은 것인가?
여기에서 깨칠 수 있다면 천 구절, 만 구절이 다만 한 구절일
뿐이다. 이 한 구절 속에서 끊어버리고 잡아둘 수 있다면, 잠깐
사이에 이러한 경계에 이를 것이다.
[송]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르른데
-문수를 보았느냐?
문수와 이야기하였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요.
-설령 보현보살이라도 보지 못한다. 빗나갔군.
우습구나, 청량산에는 대중이 얼마나 되느냐고?"
-말해보라, 무엇이 우스운가? 이미 말 이전에 있었는걸.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로다.
-모쪼록 발 아래를 살피도록 하라. 물렁물렁한 진흙 속에 가시가 있다.
떨어진 건 주발인데 접시가 조각조각 부서졌구나.
[평창]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르른데, 문수와 이야기하
였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요"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해 어
떤 사람은 "이는 설두스님이 거듭해서 염(拈)한 것일 뿐, 송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어떤 스님이 법안(法眼)스님
에게 물은 경우와 같다.
"무엇이 조계(曹溪) 근원의 한 방울 물입니까?"
"이것이 조계 근원의 한 방울 물이니라."
또 어떤 스님[子璿]이 낭야 각(瑯 覺]스님에게 물었다.
"본래가 깨끗하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깁니까?"
"본래가 깨끗하거늘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깁니까?"
이것들은 결코 그저 거듭해서 염(拈)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이다.
애꾸눈 명초 덕겸(明招德謙)스님도 그 뜻에 대해서 노래하였
는데, 하늘과 땅을 덮는 기봉이 있었다.
사바세계 두루두루 훌륭한 가람
어디를 보아도 문수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이네.
그 말에서 부처의 눈을 열 줄 모르고
돌아서서 그저 푸른 산 바위만 바라보네.
"사바셰게 두루두루 훌륭한 가람"이란 잡초더미를 절로 화현
시킨 것을 가리킨 것이다. 이는 이른바 권(權), 실(實)을 모두
행하는 기용(機用)이 있다 하겠다.
"어디를 보아도 문수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곳이네. 그 밑에
서 부처의 눈을 열 줄 모르고, 돌아서서 그저 푸른 산 바위만
바라보네"라고 하였는데, 바로 이럴 경우 문수, 보현, 관음의
경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결국 말로만 이러니 저러니
한 것은 아니다. 설두스님은 명초(明招)스님의 것을 고쳐 쓰되
면밀한 점이 있다.
"일천 봉우리 굽이굽이 쪽빛처럼 푸르른데"라고 하였는데, 결
코 칼 끝에 손을 다치지 않고, 구절 속에 방편과 실상이 함께
있으며, 이(理)와 사(事)가 있었다 하겠다.
"문수와 이야기하였다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요"라고 하였
는데, 하루 밤새껏 이야기하고서도 문수를 몰랐었다. 그후 무착
이 오대산에 전좌(典座)로 있었는데, 문수는 늘 죽 끓이는 솥
위에 나타났다가, 무착이 휘두르는 죽을 젓는 주걱에 항상 맞곤
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긴 꼴이다. 당
시 그가 "남방에서는 불법을 어떻게 수행하느냐"고 말했을 때
바로 등줄기를 한 방망이 갈겼어야 그래도 조금은 괜찮은 편이
었을텐데.
"우습구나, 청량산에는 대중이 얼마나 되느냐고?"했는데, 설
두스님의 비웃음 속에는 칼이 있다. 이 웃음을 안다면 그가 말
한 "앞도 삼삼, 뒤도 삼삼"이라는 뜻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제 36 칙
장사의 봄기운[長沙春意]
[본칙]
장사(長沙)스님이 하루는 산을 유람한 후 문 앞에 이르자,
-오늘 하루는 온종일 (무명의) 풀 속에 빠졌구나. 앞에서도 풀 속에, 뒤
에서도 풀 속에 떨어졌구나.
수좌(首座)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딜 다녀오십니까?"
-이 늙은이를 시험해봐야 한다. 화살은 저 멀리 신라로 날아갔다.
"산을 유람하고 오는 길이다."
-내질렀군. 다녀온 곳이 있으면 풀 속에 떨어진다. 서로가 불구덩이로 끌
고 가는구나.
"처음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그리고 나서는 지는 꽃을
따라서 돌아왔느니라."
-허물이 적지 않군. 원래 가시덤불 속에 앉아 있었지.
"아주 봄날 같군요."
-서로 잘도 주고받네. 잘못을 인해 더욱 잘못을 저지르는군. 사람을 추켜
올렸다 깎아내렸다 하네.
"아무렴, 가을날 이슬 망울이 연꽃에 맺힌 때보다야 낫지."
-흙 위에 진흙을 더하는구나. 앞에 쏜 화살은 오히려 가벼운 편인데 뒤의
화살이 깊게 박혔다. 언제 (생사의 윤회를) 끝마칠 기약이 있겠는가?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대답에 감사드립니다."
-떼거리 모두가 진흙덩이를 희롱하는 놈이다. 세 사람 모두 한 죄상으로
다스려라.
[평창]
장사(長沙) 땅의 녹원사(鹿苑寺) 초현(招賢)스님은 남전(南
泉)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조주(趙州), 자호(紫胡)스님 등과 동
시대의 인물이다. 기봉(機鋒)이 민첩하여 상대방이 교(敎)에 대
해 물으면 곧 교를 말해주고, 송(頌)을 요구하면 곧 송으로 대
답해주었다. 만일 작가로서 만나고자 하면 바로 작가로서 맞아
주었다.
앙산스님은 평소부터 기봉에 있어서는 제 일인자였다. 하루는
장사스님과 함께 달구경을 하다가 앙산스님이 달을 가르키며 말
하였다.
"사람마다 '이것'이 있지만 쓰지 못할 뿐이다."
"옳지! 그것 좀 빌려서 써 봤으면 좋겠다."
"그대가 사용해 보시오."
그러자 장사가 한 발에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앙산스님은 일
어나면서 말하였다.
"사숙(師叔)께서는 마치 호랑이[大蟲]와 같군요."
그 이후로 사람들은 장사를 잠대충(岑大蟲 : 높은 산의 호랑
이)이라 불렀다.
하루는 장사스님이 산을 유람하고 돌아오는데, 수좌도 그 회
하의 문도인터라 대뜸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딜 다녀오십니까?"
"산을 유람하고 오는 길이다."
"어디까지 다녀오셨습니까?"
"처음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그리고서는 지는 꽃을 따
라서 되돌아왔느니라."
이는 시방의 모든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옛사람들은 들고 남에 있어서, '이 일'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빈주(賓主)를 서로 교환하거나, 상대방의 문제
의 핵심[當機]을 대뜸 결판을 내려 용서해주지 않았다.
이미 산을 유람한 뒤인데 무엇 때문에 "어디를 다녀오셨습니
까?"고 물었을까? 만일 요즘 참선하는 사람들이었다면 "협산정
(夾山亭)까지 다녀온다"고 말했을 것이다.
옛사람을 살펴보면, 실오라기만큼도 이러쿵저러쿵 헤아림이
없고, 안주하여 집착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향기로운
꿀을 따라갔다가 그리고서는 지는 꽃을 따라서 돌아왔다"고 말
한 것이다. 수좌는 바로 그의 뜻에 맞추어, 그에게 "아주 봄날
같군요"라고 하자, 장사스님은 "아무렴 가을날 이슬 방울이 연
꽃에 맺힌 때보다야 낫지"하고 말하였다. 설두스님이 "대답에
감사드립니다"고 한 것은, 그를 대신하여 끝에 가서 한마디 한
것이다. 양쪽에 있지만 결국은 양쪽에 있지 않다.
예전에 장졸(張拙)이라는 진사(進士)가 <천불명경(千佛名經)>
을 보고서 장사스님에게 물었다.
"백, 천의 많은 부처님에 대해서 그 이름을 들어왔습니다만
은, 도대체 어느 국토에 거처하며, 또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지
요?"
"최호(崔顥)가 '황학루(黃鶴樓)'시를 써낸 이후로, 그대는 황
학루에 관한 시를 써본 적이 있었는가?"
"아직 쓰지 못했습니다."
"한가할 때 시 한편을 써보는 것이 좋겠다."
잠대충은 이처럼 일평생 사람을 지도함에 구슬이 구르는 듯,
그 자리에서 이해하도록 해주었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대지엔 티끌 한 점 없는데
-문을 활짝 열어놓고 대청에 서 있는 자는 누구인가? 누구도 '이것'을 없
앨 수 없지. 천하가 태평하다.
어느 사람인들 보려 하지 않으랴.
-이마에서 큰 광명이 쏟아져나와야 한다. 흙과 모래를 뿌려본들 무슨 소
용이 있으랴.
처음엔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다가,
-아주 잘못했네. 이는 한 번 풀 속에 떨어진 정도가 아니네. 다행히도 앞
에서 이미 말을 했기 망정이지.....
다시 지는 꽃을 따라서 돌아왔네.
-곳곳이 온통 참되도다. 아뿔사, 돌아왔구나. (발밑에) 진흙이 석 자나
되네.
파리한 학은 차가운 나무 위에서 발돋움하고
-이리저리 멋대로 한마디 보태는군. 더더욱 허다한 쓸데없는 일만 있네.
미친 원숭이는 옛 누대에서 휘파람을 분다.
-몸소 쓸데없이 힘을 들였기 때문이다. 한 구절을 더하려 해도 안 되고
한 구절을 줄이려 해도 안 된다.
장사(長沙)의 한없는 뜻이여!
-(원오스님은) 쳤다. 최후 한 구절에서 무엇을 말했을까? 한 구덩이에 묻
어버렸다. 귀신의 굴 속에 떨어졌구나.
쯧쯧!
-형편없는 놈!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겼다. 결코 용서해줘서는 안된
다.
[평창]
말해보라, 이 공안이 앙산스님이 (제 34칙의 본칙에서) 어느
스님과 주고 받았던 것과 같은가 다른가를.
"요즈음 어느 곳을 떠나왔느냐?"
"여산에서 왔습니다."
"오로봉에 가 보았는가?"
"아직 못 가 봤습니다."
"스님은 아직 산을 유람하지 못했군."
흑백을 분별해보아라. 이는 같은가 다른가? 여기에 이르러서
는 모름지기 알음알이[機關]를 다하고 의식(意識)을 망각하여,
산하대지와 풀과 지푸라기와 사람과 축생마저도 조금치도 흔들
림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옛사람이 말한 "아직도 승묘
경계(勝妙境界)에 있다"는 데 해당된다.
듣지 못하였느냐, 운문스님의 말을. "설령 산하대지에 실오라
기만큼의 잘못이 없다 해도, 오히려 대상에 얽매인 말이다. 모
든 색(色)을 보지 않는다 해도 겨우 반절쯤밖에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반드시 온전히 설명해내는 시절과 향상(向上) 관문이
있는 줄을 알아야만이 그때 비로소 편안히 앉을 수 있게 될 것
이다." 만약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대로 산은 산, 물은 물
이다. 각각 제자리에 안주하며, 각각 본체에 해당하여, (경계에
현혹되지 않는) 완전히 눈먼 장님과 같을 것이다.
조주스님이 말하였다.
첫 닭이 울면 축시(丑時)라.
근심스러이 돌아보노니, 그저 허물투성이.
저고리와 장삼(승려다운 몸가짐)은 하나도 없고
가사(袈裟)의 그림자만 조금 남아 있구나.
잠방이에 속곳이 없고, 바지는 발 넣을 곳 없으니
머리 위 흰머리는 너덧 말이라.
본디 수행할 때는 중생을 제도코자 하였는데
그 누가 알았으랴, 도리어 어리석은 놈이 될 줄을.
참으로 이러한 경계에 이르면 어느 사람인들 눈을 뜨지 않으
랴. 마음대로 엎어지고 나자빠지는 대로 두어도, 모든 곳이 다
'이 경계'이며, 다 '이 시절'이다. 시방세계에 창문[壁落]도 없
고 사방에도 문이 없다. 그러므로 "처음 향기로운 풀을 따라갔
다가, 다시 지는 꽃을 따라서 돌아왔다"고 말한 것이다. 설두스
님은 매우 솜씨가 좋아서 그 좌측에 한 구절을 붙이고 우측에도
한 구절을 붙여 마치 한 수의 시처럼 이루어놓은 것이다.
"파리한 학은 차가운 나무 위에서 발돋움하고, 미친 원숭이는
옛 누대에서 휘파람 분다." 설두스님은 이에 이르러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얼른 말하였다. "장사의 한없는 뜻이여, 쯧쯧!"
이는 마치 깊은 꿈을 꾸다가 깨어난 것과도 같다. 설두스님이
일할(一喝)을 했지만, 아직은 철저히 끊어버리지 못한 것이다.
만일 산승이었다면 이렇게 말하질 않고, "장사의 한없는 뜻이
여! 땅을 파 더욱 깊이 묻어버리리라"고 했을 것이다.
제 37 칙
반산의 마음을 구함[盤山求心]
[수시]
번개치는 듯한 기봉을 생각으로 헤아리려 한다면 헛수고이며,
허공에 내려치는 천둥소리는 귀를 막아도 되지 않는다. 머리 위
로는 (적진을 향한) 붉은 깃발을 펄럭이고 귓전 뒤로는 쌍검을
돌린다. 만일 눈빛이 예리치 못하고 손이 날쌔지 못하면 어떻게
이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오랜
동안 생각하며 의근(意根)으로 헤아리지만, 해골 앞에서 무수한
귀신을 본다는 것을 참으로 모른 것이다. 말해보라, 의근에 떨
어지지도 않으며 득실에 얽매이지 않고, 문득 이렇게 깨달은 사
람이 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반산스님이 말했다.
"삼계(三界)에 법이 없는데
-화살이 활시위를 떠났으니 되돌아올 수는 없다. 달이 밝아 통금 위반자
를 비추는구나. 맞혔다. 법을 아는 자만이 두려워할 줄 안다. 말하자마
자 때려야 한다.
어느 곳에서 마음을 구할까?"
-사람을 속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고롭게 다시 거량하지 말고 스스로
살펴보라. (원오스님은) 문득 치면서 "이 무엇인가?"라고 했다.
[평창]
북쪽 유주(幽州)의 반산 보적(盤産寶積)스님도 마조(馬祖)스
님 회하의 큰스님으로서, 뒤에 제자 보화(普化)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임종 때 대중에게 말하였다.
"나의 초상화를 그릴 사람이 있느냐?"
대중이 모두 초상화를 그려 바치자, 스님은 모조리 꾸짖었는
데, 보화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오더니 말하였다.
"제가 그릴 수 있습니다."
"왜 노승에게 바치지 않느냐?"
보화스님은 훌쩍 재주를 넘으며 나가버리니 스님이 말하였다.
"이놈이 이후로 미친 놈처럼 사람을 제접하리라."
하루는 대중 법문을 하였다.
"삼계(三界)에 법이 없는데 어디에서 마음을 찾겠는가? 사대
(四大)가 본디 빈[空] 것인데 부처는 무엇을 의지해 안주하였느
냐?" 선기옥형(璿機玉衡 : 천문관측기인데 여기서는 마음을 비
유)을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여 흔적이 없다. 곧바로 드러내줄
뿐 결코 그 밖의 일이 없다.
설두스님은 두 구절을 들어 노래하였는데, 이는 제련하지 않
은 금덩이 같고, 가공하지 않은 옥덩이처럼 질박하기만 하다.
듣지 못하였느냐? "병이 치료되면 많은 약들이 필요치 않다"
는 말을. 산승은 무엇 때문에 "말하자마자 쳐라"고 말하였을까?
이는 그가 형틀을 짊어진 채로 판결문을 건네주었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소리 밖의 구절을 들을지언정 의식 가운데
에서 구하지 말라"하였다.
말해보라, 그의 뜻이 무엇이었는가를. 이는 급류가 흐르는
듯, 칼을 휘두르는 듯, 번갯불이 치는 듯, 별이 나는 듯하다.
만일 머뭇거리며 생각하면 일천 부처님이 출세하여도 그것을 찾
지 못한다. 이처럼 심오한 경지에 깊숙이 들어가 뼛속까지 사무
치고 투철히 깨치면, 반산스님도 한바탕 실수를 한 것이다. 말
을 이용해서 종지를 알려고하여 좌우 종횡으로 사량분별한다면,
반산스님이 한 말이 결국 그대를 속박하는 말뚝이 될 뿐이다.
만일 언어문자나 소리나 모양으로 궁리를 했다가는 꿈속에서도
반산스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은사이신 오조(五祖)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쪽'으로 뚫
고 지나가야 자유로운 경지가 있다"하였다. 듣지 못하였느냐?
삼조(三祖)스님의 말씀에 "집착하면 법도를 잃게 되어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가며, 놓아버리면 자연스러워져서 본래 가고 머
뭄이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부처도 없고 법도 없다"고 말한
다면 또한 귀신의 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옛사람은 이를 "해
탈이라는 깊은 구덩이"라고 말했는데, 본디 이는 원인은 좋았는
데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반산스님은 "하염없고
할 일 없는 사람이여, 오히려 쇠고랑차는 변을 당한다"고 하였
다. 궁극적으로는 여기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말이 없는 곳에서
말할 수 있고 행할 수 없는 데에서 행할 수 있다면, 이를 몸을
돌리는 곳이라고 한다.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디에서 마음을 찾겠느냐?"고 하였는
데, 그대들이 알음알이로 이해한다면 그의 말 속에서 죽게 될
것이다. 설두스님의 견처(見處)는 종횡으로 뚫려 있기에 송을
하였다.
[송]
삼계에 법이 없는데
-아이고 귀 따가워! 또 그 소리냐.
어디에서 마음을 찾을까?
-애써 거듭거듭 들먹거리지 말라. 스스로 살펴보라.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이는 무엇이냐?
흰 구름은 일산이요,
-머리 위에 머리를 얹혔다. 천만 겹이로다.
흐르는 물소리 비파소리라.
-들었느냐? 서로 장단을 잘도 주고받네. 들을 때마다 애닯구나.
한두 곡조도 아는 이 없나니
-궁(宮), 상(商)의 소리도 아니고 각(角), 치(徵)의 소리도 아니다. 남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는군. 오음육률(五音六律)이 모두 분명하다. 스스
로 잘못을 인정하리라! 들었다가는 귀먹는다.
비 개인 밤 못엔 가을 물이 깊다.
-내리치는 우레는 귀막을 겨를이 없다. 말이 많네. 어디에 있느냐? (원오
스님은) 쳤다.
[평창]
"삼계에 법이 없는데 어디에서 마음을 찾겠느냐?"는 설두스님
의 노래는 마치 화엄(華嚴)의 경계와 같다. 어느 사람은 "설두
스님이 무(無) 속에서 노래를 하였다"하는데, 눈꺼풀 뜬 놈이라
면 이처럼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설두스님은 거기에 두 구절
을 더하여 "흰 구름은 일산이요, 흐르는 물소리는 비파여라"하
였다.
소내한(蘇內翰 : 소동파)이 조각(照覺)선사를 뵙고 송을 하였
다.
시냇물 소리 장광설(長廣舌)이요,
산색인들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랴.
밤 사이 팔만사천의 게송을
다른 날 어떻게 사람에게 일러줄까?
설두스님은 흐르는 물소리를 빌어 한바탕 설법을 했다. 그러
므로 "한두 곡조도 아는 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듣지 못하였
느냐? 구봉 도건(九奉道乾)스님의 말을. "목숨[命]을 아느냐?
흐르는 물은 목숨이요, 맑고 고요한 것은 몸이며, 일천 파도가
다투어 일어나는 것은 문수의 가풍이요, 하나같이 맑은 허공은
보현의 경계이다."
"흐르는 물소리 비파여라. 한두 곡조도 아는 이 없다"하였는
데, 이러한 곡조는 모름지기 지음(知音)이어야 알 수 있으며,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질없이 귀만 기울이고 있을 뿐이
다. 옛사람은 "귀머거리가 호가(胡家)라는 노래를 부르지만, 좋
고 나쁨과 높낮이를 전혀 듣지 못한다"고 하였으며, 운문스님은
"말해주어도 돌아보지 않으니 서로가 어긋났다. 이를 생각으로
헤아린다면 어느 세월에 깨닫겠는가?"라고 했다. 거량은 본체이
며, 돌아보는 것은 작용이니, 말하기 이전과 조짐이 나뉘기 전
에 볼 수 있다면 핵심이 되는 길목[要 ]마저도 꽉 막을 수 있
다. 만약 조짐이 나뉘자마자 이를 보면 조(照), 용(用)이 있는
것이며, 조짐이 나뉜 뒤에 본다면 사량분별[意根]에 떨어진다.
설두스님은 자비심이 대단하여 다시 그대들에게 "비 개인 밤
못엔 가을 물이 깊다"고 말해주었다. 이 송에 대해서 일찍이 어
느 사람은 "설두스님에게는 한림학사의 재예(才藝)가 있다"고
찬미하였다. "비 개인 밤 못엔 가을 물이 깊다"하니 여기에 착
안하여 살펴보도록 하라. 다시 머뭇거리거나 의심한다면 찾을
수 없으리라.
제 38 칙
풍혈의 무쇠소[風穴鐵牛]
[수시]
만일 점오(漸悟)를 논한다면 참된 이치에 등지고 세속의 도리
에 부합되어, 법석대는 저자에서도 횡설수설할 것이다. 돈오(頓
悟)를 논한다면 조짐과 자취를 남기지 않으므로 일천 성인도 찾
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돈, 점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어떠할까?
민첩한 사람은 말 한마디에 깨치고 날쌘 말은 한 채찍이면 된
다. 바로 이러한 시절에 어느 누가 작가일까? 거량해 보리라.
[본칙]
풍혈(896-973)스님이 영주( 州)의 관아(官衙)에서 법문을 하
였다.
-국가 기관의 공식적인 초청을 받아 선(禪)을 설하는군. 무슨 말을 할까?
"조사의 마음 도장[心印]은 무쇠소[鐵牛]의 기봉처럼 생겼는
데
-모든 사람이 흔들어도 꼼짝하지 않는다. 까다롭고 잘못된 곳이 어디에
있을까? 삼요인(三要印)을 열면서 칼 끝에 다치지 않는구나.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바른 법으로 행하여라. 잘못됐다.
찍으면 망가진다.
-제범하면 용서치 않는다. 법대로 행할 때를 보아라. 내질러라. (원오스
님은) 쳤다.
떼지도 못하고 찍지도 못하니,
-(도장을) 찍을래야 찍을 수 없는 곳을 보아라. 상당히 잘못되었다.
찍어야 옳을까 찍지 않아야 옳을까?"
-천하 사람에게는 모두 목을 내밀거나 움츠릴 자격이 있다. 모습이 이미
드러났다. 선상을 들어 뒤엎어버리고 대중을 흩어버려라.
때에 노파장로(盧陂長老)가 대중 속에서 나와 여쭈었다.
"저에게 무쇠소의 기봉이 있습니다.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놈을 한 명 낚았다. 참으로 기특하다.
스님께서는 인가하지 마십시오."
-좋은 이야기로다. 잘못됐는 걸 어찌하랴.
풍혈스님이 말했다.
"고래를 낚아 바다를 맑히는 데는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
로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짓이야 안 하지."
-매가 비둘기를 나꿔채듯 하였다. 보배 그물이 허공에 널려 있구나. 신구
(神駒 : 풍혈스님)가 천 리를 달린다.
노파장로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자
-아이고 가엾어라. 그래도 빠져나올 곳은 있었구나. 용서해준 것이 아깝
다.
풍혈스님이 소리지른 다음에 말하였다.
"장로는 왜 말을 계속하지 못하느냐?"
-깃발을 꺾고 북을 빼앗었다. 시끄러워지는구나.
여전히 노파장로가 머뭇거리니
-세 번이나 죽었군. 두 겹으로 된 공안이다.
풍혈스님은 불자로 한 번 치고
-잘 쳤다. 이 법령은 이러한 사람이어야만 시행할 수 있다.
말하였다.
"말할거리를 생각하느냐? 어서 말해보아라."
-굳이 그럴 것이 있을까? 설상가상이다.
노파장로가 말을 하려고 하자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살아나지 못한다. 이 어리석은 녀석이 남을 죽이려
고 하는군. 독한 상대를 만났다.
풍혈스님이 또다시 한차례 치니 목사(牧使)가 말하였다.
"불법과 왕법(王法)이 한가지군요"
-명확하구나. 곁사람이 엿보아버렸다.
"그대(목사)가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한 번 잘 내질렀다. 대뜸 창끝을 돌려대는구나.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난을 불러들이게 됩니
다."
-비슷하기는 해도 옳지는 않다. 곁에 있는 사람이 안목이 있다는 것을 알
아야 한다. 죽기는 동쪽 사람이 죽었는데, 서쪽 집안 사람이 조문을 하
는구나.
풍혈스님은 바로 법좌에서 내려와버렸다.
-잘못으로 인해 또 잘못을 저지르는군. 근기에 맞추어 적절하게 지도하는
군. 불사(佛事) 한 번 잘했군.
[평창]
풍혈스님은 임제스님 회하의 큰스님이시다. 임제스님이 처음
황벽스님 회하에 있으면서 소나무를 심는 즈음에 황벽스님이 말
하였다.
"깊은 산 속에 소나무는 심어서 무엇 하려고?"
"첫째는 산문의 경치를 이루고, 둘째는 후인을 위한 표식을
만들려고 합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곧 괭이로 땅바닥을 찍으니 황벽스님은 말하
였다.
"그렇긴 하지만 그대는 벌써 스무방망이를 맞았느니라."
임제스님이 다시 한 차례 찍으며 "휴-"하고 길게 탄식하자,
황벽스님은 말하였다.
"나의 종풍이 그대에게 이르러 세상에 크게 일어나니라."
위산 철(爲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임제스님이 이처럼 한 것은 괜히 한 대 쥐어박는 것과 꼭 닮
았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위태로운 일에 임하여 절개를 변치 않
아야 참으로 장부라 할 수 있다. 황벽스님은 "나의 종풍이 그대
에게 이르러 세상에서 크게 일어나리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제
새끼 귀여운 줄만 알고 잘못을 못 보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그후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황벽스님은 당시 임제스님 한 사람에게만 부촉하였는가, 아
니면 따로이 부촉한 사람이 있느냐?"
"있긴 합니다만 먼 훗날의 일이므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
다."
"그렇긴 하지만 나도 알고 싶으니 어서 말해보게나."
"한 사람이 있어 남쪽을 가리키며 오월(吳越) 땅에서 법을 행
하다가(남원스님을 지칭하는 듯), 큰 바람[大風]을 만나면 그
치리라." 이는 풍혈스님을 예언했던 것이다.
풍혈스님은 처음 5년 동안 설봉스님에게 참구하였는데, '임제
스님이 승당에 들어가자 양당(兩堂)의 수좌가 똑같이 소리를 질
러댔다. 어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빈(賓), 주(主)가 있습니
까?"라고 물으니, 임제스님은 "빈, 주가 분명하다"고 대답하였
던 것'을 가지고 설봉스님에 물었다.
"도대체 그 뜻은 무엇입니까?"
"내 지난날 암두, 흠산스님과 함께 임제스님을 친견하러 가는
도중에 스님이 이미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네(그래서 뵙질 못
했다). 그러나 그의 빈, 주에 대한 말을 알고 싶거든 그의 종지
를 참구한 존숙이어야 알 것이다."
풍혈스님은 그 뒤, 서암(瑞巖)스님이 항상 스스로 "주인공
아!"라고 부른 후 스스로 "네!"하고 대답하며, 또다시 "정신차
려라. 앞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지 말라"하는 것을
보고서 말하였다.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대답하는 것에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
냐?"
그 뒤에 양주(襄州)의 녹문(鹿門)에서 곽시자(廓侍者)와 함께
여름 안거를 지냈다. 곽시자가 남원(南院)스님을 참방하라고 가
르쳐주자, 풍혈스님이 찾아가 말하였다.
"입문(入門)하려면 반드시 주인을 알아야 한다. 단적으로 스
님의 사람됨을 말해주시오."
하루는 드디어 남원스님을 뵙고 앞서 설봉스님에게 물었던 바
를 설명드린 후 말을 하였다.
"제가 이 때문에 일부러 찾아뵈오러 온 것입니다."
"설봉스님은 고불(古佛)이로구나."
하루는 경청(鏡淸)스님을 뵙자, 경청스님이 말하였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가 왔는가?"
"동쪽에서 오는 길입니다."
"작은 강을 건너왔느냐?"
"큰 배는 허공을 건너가니 작은 강은 건널 수 없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경치와 그림 속의 산은 새들도 건너가지 못
하는 것이니, 그대는 남들이 남긴 말을 엿듣지 말라."
"큰 바다도 전함의 위세를 겁내며, 은하수를 나는 돛단배가
오호(五湖)를 건넙니다."
경청스님이 불자를 곧추세우며 말하였다.
"'이걸' 어찌하겠는가?"
"이제 뭔데요?"
"그럼 그렇지, 모르는군."
"출몰(出沒)과 권서(卷舒)를 스님과 함께 합니다."
"점치는 사람의 헛소리를 듣고 깊은 잠꼬대를 하는구나."
"늪은 넓어서 산을 숨길 만하고, 이리가 표범을 굴복시킵니
다."
"죄를 용서해줄 터이니 속히 나가도록 하라."
"나가면 잃을 것입니다."
곧 밖으로 나와 법당에 이르러 혼자서 중얼거렸다.
"대장부가 공안을 깨치지 못했는데 어찌 그만둘 수 있으랴."
이에 다시 방장실을 찾아가니 경청스님은 막 앉으려는 참이었
는데 대뜸 여쭈었다.
"제가 조금 전에 무지한 견해로 스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엎드
려 바라오니 스님께서는 자비로 용서해주소서."
"조금 전에 동쪽에서 왔다 했으니, 아마 취암(翠巖)에서 온
것이 아니냐?"
"설두스님은 보개(寶蓋)의 동편에 계십니다."
"잃어버린 양을 쫓고 미치광이 견해를 쉬지 않고, 여기에 와
서도 시편(詩篇)만 외우고 있구나."
"검객을 만나면 모름지기 칼을 드리고, 시인이 아니면 시를
바쳐서는 안 됩니다."
"시는 빨리 감춰두고 칼을 조금만 보여주게."
"목을 자른 증산(甑山) 땅 사람이 칼을 가지고 가버렸습니
다."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어리석음을 드러내
는구나."
"가르침에 따른다면 옛 부처의 마음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옛 부처의 마음이라고 하느냐?"
"거듭 용서해주십시오. 스님께서는 지금 무엇을 가지셨는지
요?"
"동쪽에서 온 납자가 콩과 보리도 분간치 못하는구나."
"아직 (생사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면서 해결했다고 하는 말
만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말 해결하고 해결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큰 물결은 천 길이나 용솟음쳐도 맑은 파도는 그래도 물이니
라."
경청스님이 다시 이어 말하였다.
"한 구절로 많은 생각을 끊어버리니 일만 기틀이 고요하다."
풍혈스님이 갑자기 절을 올리자 경청스님은 불자로 세 번 친
후 말하였다.
"훌륭하구나. 자, 앉아서 차나 마시도록 하라."
풍혈스님이 처음 남원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문에 들어서도 절
을 올리지 않자, 남원스님은 말하였다.
"남의 집에 가서는 주인을 알아야지."
"스님께서 단적으로 일러주십시오."
남원스님이 왼손으로 한 차례 무릎을 치자, 풍혈스님이 대뜸
일갈(一喝)을 하셨다.
남원스님이 오른 손으로 다시 무릎을 치자, 풍혈스님은 또다
시 일갈을 하였다. 이에 남원스님은 왼손을 들고서 "내가 이것
을 어떻게 하리라 생각하느냐?"하고 다시 오른손을 들고서 말하
였다.
"이것은 또....."
"눈이 멀었습니다."
이윽고 남원스님이 주장자를 집어들자 풍혈스님이 말하였다.
"무엇을 하시렵니까? 제가 주장자를 빼앗아 스님을 칠 것이
니, 말하지 않았다고 하시지는 마십시오."
남원스님은 바로 주장자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오늘 이 누렁이 절강(浙江)놈한테 한바탕 바보가 되었구나."
"스님께서는 바리때도 없으면서 배고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
는 것과 꼭 같군요."
"스님은 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었던가?"
"무슨 말씀입니까?"
"참 잘 물었네."
"그래도 그냥 용서해줘서는 안 되겠군요."
"자, 앉아서 차나 마시게."
그대들은 보아라. 준수한 사람은 스스로의 기봉이 높아 남원
스님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이튿날 남원스님이 평상시 그러듯이 물었다.
"올 여름 안거는 어느 곳에서 났는가?"
"녹문에서 곽시자와 함께 지냈습니다."
"참된 작가를 직접 만났군."
이어 또다시 말하였다.
"그가 그대에게 무어라 하던가?"
"시종 저더러 한결같이 주인이 되어라[作主] 하였습니다."
남원스님이 대뜸 몽둥이로 친 후 방장실 밖으로 밀쳐내면서
말하였다.
"이런 패배한 놈을 어디에 쓰겠는가."
풍혈스님은 이로부터 마음에 새기고 남원스님의 회하에서 원
두(園頭) 소임을 보았다. 하루는 남원스님이 밭에 와서 물었다.
"남방에서는 한 방망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기특하다고 생각합니다. 스님, 그러면 여기에서는 어떻게 생
각합니까?"
남원스님이 주장자를 일으켜 세우며 말하였다.
"방망이 아래 무생법인(無生法忍)은 문제의 핵심에 직면해서
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풍혈스님은 이에 완전히 깨쳤다.
이때는 오대(五代)의 난리를 겪는 시대였다. 영주( 州)의 목
사가 스님을 맞이하여 여름을 지내게 하였는데 이때 임제종만이
크게 성행하였다. 그의 문답과 수시(垂示)가 날카롭고 참신하
여, 마치 꽃이 한군데 모여 있고 비단이 촘촘한 것처럼 말마다
모두 다 귀착점이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목사가 스님에게 상당법문을 청하자 대중 설법을 하였
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무쇠소의 기봉처럼 생겼는데 도장을 떼
면 집착하는 것이고 누르면 망가져버린다. 떼지도 못하고, 누르
지도 못할 경우 도장을 찍어야 옳을까 찍지 않아야 옳을까?"
이는 돌 사람[石人]이나 나무 말[木馬]의 기봉과는 다르며,
마치 무쇠소의 기봉처럼 생겨서, 그대가 흔들거나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 그대가 도장을 떼었다 하면 도장이라는 집착이 남아
있고, 눌렀다 하면 망가져버리어 산산조각난다. 도장을 떼지도
않고 누르지도 못할 때 찍어야 옳을까, 말아야 옳을까? 이 말을
살펴보면 낚시 끝에 미끼가 있었다고 할 만하다.
그 때 법좌 아래에 노파(盧陂)장로가 있었는데, 그 또한 임제
스님 회하의 큰스님이었다. 감히 앞으로 나와 기봉을 겨루면서
대뜸 그에게 화두를 던져 질문을 했으니, 참으로 기특하다 하겠
다. "저에게 무쇠소의 기봉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인가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지만 풍혈스님 또한 작가인 것을 어찌하랴.
그러므로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대답하기를 "고래를 낚아 바다
를 맑게 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 속에서 허
우적거리는 짓이야 안 하지"라고 하였다.
이는 말 가운데 심금을 울리는 메아리가 담겨 있다. 운문스님
도 말하기를 "사해에 낚시를 드리움은 사나운 용을 낚으려 함이
요, 격식 밖의 현묘한 기봉은 지기(知己)를 찾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큰 바다에 열두 마리의 물소(비구)를 낚시 미끼로 삼았
으나 개구리 한 마리를 낚았을 뿐이다. 이 말은 현묘한 것도 없
고 이러쿵저러쿵 계교함도 없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사(事)의
측면을 살펴보는 것은 쉽겠지만 생각[意根]으로 헤아리면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노파장로가 한참 생각에 잠기자"라는 것은 그것을 보고서도
얻지 못하면 천 년이 되도록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 애석
하다. 그러므로 "일천 권의 경론을 강할 수 있어도, 한 구절의
기봉에 임해서는 입 벌리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실로 노파장로
는 좋은 말을 찾아 대답하기 위해 (말해보라는 풍혈스님의) 명
령을 따르지 않다가, 대뜸 깃발을 꺾고 북을 빼앗는 풍혈스님의
기봉에 당해버렸다. 완전히 핍박당해 어찌할 수 없게 돼버린 것
이다. 속담에 "전쟁에 지면 청소하는 종을 면치 못한다"고 하였
다. 애당초 반드시 창쓰는 법을 배워두었다가 그와 겨루었어야
하니, 그대에게 가르쳐주기를 기다렸다가는 머리는 벌써 땅위에
나뒹굴게 될 것이다.
목사 또한 오랜 동안 풍혈스님 밑에서 참구하였으므로 "불법
과 왕법이 한가지군요"라고 말할 줄 알았다.
풍혈스님은 말하였다.
"그대가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난을 초래하게 됩니
다."
풍혈스님은 완전히 정신이 한덩어리로 되어 있었다. 그는 마
치 물 위에 떠 있는 호로병과 같았다. 잡으려 하면 빠져나가고
누르면 움직여서, 근기에 맞추어 설법할 줄을 알았던 것이다.
근기에 맞추지 않았다면 도리어 허튼 말을 했을 것이다. 풍혈스
님이 대뜸 법좌에서 바로 내려와버렸다.
이는 임제스님 사빈주(四賓主)의 화두와도 같다. 참선하는 사
람이라면 이를 자세히 보아야 한다. 빈,주가 서로 만나면 서로
말을 주고 받는 것과 같다. 혹은 사물을 빌려서 형상을 보이기도
하며, 혹은 본체를 고스란히 활용하기도 하며, 혹은 방편을 써서
웃기도 하고 노하기도 하며, 혹은 몸을 절반만 나타내기도 하며,
사자를 타고 나타나기도 하며, 코끼리를 타고 나타나기도 한다.
만일 진정한 학인이 있어 그 학인이 큰 소리를 지르면, 먼저
집착의 단지를 드러내버리되, 선지식이 이 경계를 분별하지 못
하고 그 경계 위에서 모양을 지으면, 그 학인은 또다시 큰 소리
를 지른다. 그러나 선지식이 이를 기꺼이 놓아버리려 하지 않으
니, 그것이 바로 불치병으로서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손님이 주인을 봄[賓看主]'이라고 한다.
또 선지식이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그 학인이 질문하려 했던
것을 선수로 가로채버린다. 그러면 학인은 빼앗기고 말았는데
도, 필사적으로 놓으려 하질 않을 것이다. 이를 '주인이 손님을
봄[主看賓]'이라 한다.
또 학인이 하나의 청정한 경계로 선지식 앞에 나타나면, 선지
식은 이 경계를 분별하고 그를 잡아 구덩이 속으로 던져버린다.
그러면 학인은 "참으로 선지식이십니다"하고 말한다. 선지식이
바로 "쯧쯧,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놈"하고 말하면, 학인은 예
배한다. 이를 '주인이 주인을 봄[主看主]'이라고 한다.
또는 학인이 목에 칼을 쓰고 족쇄에 묶이어 선지식 앞에 나오
면, 선지식은 다시 그에게 한 꺼풀 더 결박을 지어준다. 이것은
학인이 기뻐하며 피차를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인데, 이를 '손님
이 손님을 봄[賓看賓]'이라 한다.
대덕(大德)이여, 산승(원오스님 자신)이 이상에서 거량한 것
은 모두가 마구니와 외도를 분별하여 삿된 도와 바른 도를 알게
하고저 함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어떤 스님이 자명(慈明)스님에게 물었던 것
을.
"일할(一喝)에서 손님과 주인을 분별하고 비춤[照]과 작용
[用]이 일시에 행할 때는 어떠합니까?"
자명스님은 바로 일할을 하였다.
또한 운거(雲居)의 홍각(弘覺)선사는 다음과 같이 대중법문을
하였다.
"비유하면 사자가 코끼리를 잡을 때도 모든 힘을 다하고, 토
끼를 잡을 때도 모든 힘을 다하는 것과 같다."
그때 어느 스님이 물었다.
"도대체 무슨 힘을 다해야 합니까?"
"속임이 없는 힘이니라."
설두스님의 송을 보도록 하라.
[송]
노파스님을 사로잡아 무쇠소에 앉혔으니
-천만 인이 모인 가운데에서 교묘한 재주를 보이려 하는군. 패배한 장수
는 거듭 목을 베지 않는 법이다.
삼현(三玄)의 창과 갑옷에 가벼이 덤비지 못하리라.
-(옆에 있는 이는 정신을 차렸는데) 당사자는 어리둥절하군. 재앙을 받는
것이 복받는 것과 같다. 항복하는 것이 대적하는 것과 같다.
초왕(楚王)의 성으로 모여든 물이여!
-모여든 물을 말해 무엇 하리요. 아득히 천지에 가득하다. 사해의 바다가
그대로 거꾸로 흘렀을 것이다.
'할'하는 소리에 거꾸로 흐르는구나.
-이 일할이 그대의 혀끝만을 끊은 것이 아니다. 쯧쯧! 협부(陜府)의 무쇠
소를 깜짝 놀라 달아나게 하고 가주(嘉州)의 큰 코끼리를 놀라게 하였다.
[평창]
설두스님은 풍혈스님에게 이러한 종풍이 있음을 알고 "노파스
님을 사로잡아 무쇠소에 앉혔으니, 삼현의 창과 갑옷에 가벼이
덤비지 못하리라"고 하였다. 임제스님의 문하에는 삼현 삼요(三
玄三要)가 있다. 이는 반드시 한 구절 가운데 삼현(三玄)이 갖
춰 있어야 하고, 일현(一玄) 가운데 꼭 삼요(三要)가 갖춰 있어
야 한다.
스님이 임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제일구(第一句)입니까?"
"삼요(三要)의 도장을 찍으니 빨갛게 찍혔다. 주, 빈을 나누
려고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무엇이 제이구(第二句)입니까?"
"능란한 변재로서 어찌 무착(無着)의 물음을 용납하겠는가마
는 방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끊는 기봉을 저버리지 않는다."
"무엇이 제삼구(第三句)입니까?"
"장대 끝에 나불대는 꼭두각시를 보라. 모두 뒤에 있는 사람
이 조종하는 것이니라."
풍혈스님의 한 구절 속에는 삼현(三玄)의 창과 갑옷으로 무장
하여, 칠사(七事 : 창, 방패, 활, 화살, 갑옷, 투구, 칼)가 몸
에 있으므로 가벼이 덤비지 못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파장로를
어떻게 당해낼 수 있었겠는가?
뒤이어 설두스님은 임제스님의 기봉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
를 노파(盧陂)라고 말하지 말라. 설령 초왕의 성 언덕에 큰 파
도가 아득하고 흰 물결이 하늘까지 닿아 많은 물이 모여 들어간
다해도, 일할에 거꾸로 흐른다.
제 39 칙
운문의 황금털[雲門金毛]
[수시]
깨달음의 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고, 세속적인 지식만을 유포하는 사람은 원숭이가 우리에 갇
힌 것과 같다. 불성의 의미를 알고저 한다면 마땅히 시절인연을
살펴보아야 하며, 백 번 달구어 순금으로 제련코저 한다면 모름
지기 작가의 풀무가 있어야 한다. 말해보라. 대용(大用)이 눈
앞에 나타나는 사람은 무엇을 가지고 시험해야 할까?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청정법신(淸淨法身)입니까?"
-거름더미 속에서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보았도다. 얼룩덜룩한 이것은 무
엇일까?
"꽃나무로 장엄한 울타리니라."
-물음 자체가 진실치 못하니 대답도 거칠군. 이리저리 희롱하는군. 굽은
데에는 곧은 것을 간직하지 못한다.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
-대추를 통째로 삼키고 우물거린다. 어리석게 굴어 무엇 할거냐?
"황금빛털 사자니라."
-칭찬하기도 하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한판의 승부에 각자가 모두 이겼
군. 한 번 잘못하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잘못을 하니 이 무슨 심보인고?
[평창]
여러분은 이 스님이 물은 뜻과 운문스님이 답한 뜻을 알겠는
가? 알 수 있다면 두 사람이 한 말은 모두 언어 이전의 표현이
되겠지만, 몰랐다면 어리석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떤 스님이 현사(玄沙)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청정법신입니까?"
"고름이 뚝뚝 떨어지느니라."
이는 금강의 눈[金剛眼]을 갖추어 판별해보도록 하라.
운문스님은 이 스님과는 같지 않았다. 어느 때는 (모든 방편
을) 거두어들여서 마치 만 길 벼랑에 홀로 서 있어 가까이 할
곳이 없고, 어느 때는 (방편으로) 한 가닥 길을 터놓고 생사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운문스님의 세 치 혀끝은 매우 빈틈이 없
다하겠다.
어떤 사람은 "이는 주사위의 숫자에 (모든 성패를) 맡기듯이,
무심하게 대답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운문스
님의 귀착점은 어디에 있는가를. 이는 자기 자신의 일이니 바깥
에서 헤아리지 말라.
그러므로 백장스님은 "삼라만상과 모든 언어를 자기에게 귀결
시켜, 수레바퀴처럼 매끄럽게 운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활발발
(活發發)한 곳에서 대뜸 이르기를, "만일 여기에서 머뭇거리며
생각한다면 바로 제이구(第二句)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영가
(永嘉)스님은 "법신을 깨달으니 한 물건도 없다. 본원(本源)의
자성(自性)이 본래의 부처이다"라고 말하였다.
운문스님은 이 스님을 시험하였으나, 스님 또한 그(운문스님)
집안 사람인 터라 원래 오래 참구했다. 집안 사정을 알고 있기
에 이어서 말하였다.
"그럴 때는 어떠합니까?"
"황금빛털 사자니라."
말해보라, 이는 그를 인정한 것일까,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칭찬한 것일까, 깎아내린 것일까?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전쟁으로 말한다면 어디에서라도 몸을 비킬 자리에 서 있어
야 한다."
또 말하였다.
"활구(活句)를 참구해야지. 사구(死句)를 참구해서는 안 된
다. 활구에서 알면 영겁토록 잊지 않겠지만 사구에서 알면 자신
마저 구제하지 못한다."
또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불법은 물 속에 어린 달 그림자와 같다 하는데, 그렇습니
까?"
"맑은 파도는 뚫을 길이 없느니라."
다가가서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다시 물어 뭘 하겠는가?"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
"겹겹이 쌓인 멀고먼 관산(關山) 길이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이 일은 언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전광석화와 같아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목숨을 잃게
된다. 설두스님은 바로 그런 경지에 있는 사람이기에 곧바로 송
을 하였다.
[송]
꽃울타리여!
-너무도 많이 들어 귀에 더덕지가 졌다.
어리석은 짓하지 말라.
-삼대 같고 좁쌀처럼 많다. (영리한 놈이) 조금은 있었구나. 냉큼 꺼져
라!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받침대에 있지 않다.
-말이 많네! 각각 스스로 자신에 돌이켜보라. 이러쿵저러쿵 말하였구나.
이러함이여!
-통째로 대추를 삼켰다.
전혀 잡다함이 없나니.
-냉큼 꺼져라! 분명하구나. 운문스님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
다.
황금털빛 사자를 그대들은 살펴보라.
-(그런 사람이) 한 명은커녕 반 명이나 될까? (사자는커녕) 개이다. 운문
스님 또한 보주(普州 : 도적 집단 거주지) 사람이 도적을 전송하는 격이
로다.
[평창]
설두스님은 적절하게 분위기를 보아가면서 음식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하듯이, 줄을 튕겼다 하면 별곡(別曲)을 연주하듯이, 한
구절 한 구절 분명하게 판결을 내린다. 이 송은 염고(拈古)의
격식과 다른 점이 없다.
"꽃울타리여!"하더니, 바로 "어리석은 짓하지 말라"고 하였
다. 사람들은 모두 "운문스님은 주사위의 어떤 숫자가 나오든
개의하지 않듯이, 무심하게 대답하였다"고들 한다. 모두가 그의
뜻을 망정으로 이해하였다. 이 때문에 설두스님은 본분소식으로
"어리석은 짓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운문스님의 뜻이 "꽃
울타리"에 있지 않았기에, "저울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받침대
에 있지 않다"고 한 것이다.
이 한 구절을 참으로 잘못 알고 있다. 물 속에는 원래 달이
없고 달은 하늘에 있듯이, 저울 눈금은 저울대에 있지 받침대에
있지 않다. 말해보라, 무엇이 저울대인가를. 이를 분별하여 밝
힐 수 있다면 설두스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옛사람(설두스님)은 여기에 이르러서 자비로써 분명히 그대에
게 말하기를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다"하였다. 말해보라,
저기는 어느 곳인가를. 이는 첫 구절에서 이미 노래하였으며,
뒤이어 그 스님이 "그럴 때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한 데 대
해서, "전혀 잡다함이 없다"고 노래하였다.
말해보라, 이는 밝은 것일까, 어두운 것일까? 알고서 이처럼
말했을까, 모르고서 말했을까? "황금빛털 사자를 그대들은 살펴
보라"하였는데, 황금빛털 사자를 보았느냐? 태양과 같아서 정면
으로 보았다가는 눈이 먼다.
제 40칙
남전의 뜰에 핀 꽃[南泉庭花]
[수시]
쉬고도 또 쉬어버리니 무쇠나무[鐵樹]에 꽃이 핀다. (그런 사
람이) 있느냐, 있느냐? 총명한 녀석이라도 벌써 손해를 본다.
설사 종횡무진 자재하여도 그는 콧구멍(급소)이 뚫릴 것이다.
말해보라, 까다로운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육긍대부(陸亘大夫)가 남전(南泉)스님과 대화를 하는 즈음,
육긍대부가 말하였다.
"조법사(肇法師)는 '천지는 나와 한 뿌리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하였는데, 매우 이해하기 어렵군요."
-귀신의 굴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군. 그림의 떡으로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한다. 이는 (번뇌의) 풀 속에서 헤아림이로다.
남전스님이 뜨락에 핀 꽃을 가리키며
-무슨 말을 하는가? 쯧쯧. 경전에는 경전의 스승이 있고, 논(論), 서(書)
에는 논을 잘하는 스승이 있으니, 산승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 쯧쯧! 대
장부가 대뜸 일전어(一轉語:상황을 뒤집어놓는 한마디)를 했더라면 남전스
님을 절단냈을 뿐 아니라, 천하의 납승들까지 기운이 빠졌을 것이다.
대부를 부르더니, "요즘 사람들은 이 한 포기의 꽃을 마치 꿈
결에 보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라고 했다.
-원안 자수는 보여주되, 금바늘은 사람에게 주지 말라. 잠꼬대 하지 말
라. 노란 꾀꼬리가 (꽃의 아름다움에 끌려) 버들가지에 내렸다.
[평창]
육긍대부는 남전스님을 오래 참례하였다. 평소 이치의 세계에
마음을 두고 깊이 <조론(肇論)>을 연구하였다. 하루는 앉아 있
다가 이 두 구절이 의심스러워 물은 것이다.
"조법사(肇法師)의 말에 '천지는 나와 한 뿌리며 만물은 나와
한 몸이라'고 하였는데 매우 이해하기 어렵군요."
조법사는 후진(後晋) 시대의 고승으로서 도생(道生), 도융(道
瀜), 도예(道叡)스님과 함께 구마라집(鳩摩羅什) 문하의 사철
(四哲)로 일컬어진다.
어린 시절엔 <장자>와 <노자>를 탐독하고 그 뒤 고본(古本)
<유마경(維摩經)>을 베껴쓰다가 깨친 바 있어 <장자>와 <노자>
에는 참된 진리가 없음을 알고, 여러 경전을 종합하여 네 편의
논문을 저술하였다.
<장자>, <노자>에서는 천지란 큰 형체를 갖고, 나의 형체도
또한 그와 같아, 모두 허무(虛無)의 한가운데서 태어났다고 한
다. <장자>의 대의는 만물이란 본질적으로 똑같다[齊物]는 것을
논했을 뿐이지만, 조공(肇公)의 대의는 만물의 자성이란 모두가
자기에게로 귀결된다는 점을 논하였다.
듣지 못하였느냐? <반야무명론>에서는 "지극한 사람[至人]은
텅텅 비어 형상이 없어서 만물이란 나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만물을 모두 모아 자기로 삼는 자가 어찌 성인뿐이
겠는가?"라고 하였다. 신(神), 사람, 현인, 성인이 각기 다르지
만 모두가 같은 성품과 같은 바탕을 지녔다.
옛사람(덕산 연밀스님)의 말에 "온 건곤의 대지가 나 하나에
갖추어져 있을 뿐이다. 추우면 온 천지가 모두 춥고, 무더우면
온 천지가 모두 무더우며, 있으면 온 천지에 널리 있고, 없으면
온 천지에 전혀 없으며, 옳으면 천지가 모두 옳고, 그릇되면 온
천지가 모두 그릇된다"고 하였으며, 법안(法眼)스님은 "그는 그
가 그이고, 나는 내가 나이다. 동서남북이 모두 옳다고 하건 옳
지 않다고 하건, 다만 나만이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할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
다. 석두(石頭)스님은 <조론>을 보다가 "만물을 모두 모아 자기
로 삼는다"는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치고 그 뒤 <참동계(參同
契)>를 저술하였는데, 이 또한 이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이같은 물음을 살펴보건대, 말해보라, 무슨 뿌리가 같으
며 어느 바탕과 같은가를, 이쯤 되면 기특하다고 할 만하다. 이
는 여느 사람들이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과 같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있었을까? 육긍대부의
이러한 물음은 매우 기특하기는 하지만 교학의 이치에서 벗어나
지 못하였다. 만일 교학의 이치를 지극한 법[極則]이라 한다면,
세존께서는 무엇 때문에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꽃을 들어 보
이셨으며, 또한 달마조사는 왜 서쪽에서 왔겠는가?
남전스님은 납승의 급소로 아픈 곳을 끄집어내어 그의 집착을
타파해주었다. 뜨락에 핀 꽃을 가리키며 대부를 부르면서, "요
즈음 사람들은 이 한 포기의 꽃을 마치 꿈결처럼 본다"고 하였
다. 이는 마치 만 길 벼랑 위에서 사람을 떨어뜨려 목숨을 잃어
버리게 하는 것과 같다. 그대들이 아무것도 아닌 데서 거꾸러진
다면 미륵 부처님이 하생(下生)한다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
이다. 이는 꿈 속에서 꿈을 깨려 해도 깨지 못하다가 곁의 사람
이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남전스님의 안목이 바르지 못했다면, 분명 그에게 휘말렸을
것이다. 남전스님의 이러한 말을 살펴보면 매우 이해하기 여렵
다. 만약 안목이 살아 움직이는 자가 듣는다면, 으뜸가는 제호
(醍 )의 맛과 같겠지만, 죽은 자가 듣는다면 도리어 독약이 될
것이다.
옛사람의 말에 "만일 사(事)의 측면에서 이해하면 상정(常情)
에 떨어지고, 생각[意根]으로 헤아린다면 끝내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 암두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향상인(向上人)의 살림살이이다. 눈 앞에 조금만 내보
였는데도 번갯불이 스치는 것과 같다."
남전스님의 본뜻 또한 이와 똑같다. 호랑이를 사로잡고 용과
뱀을 가려낼 줄 아는 솜씨가 있었다. 여기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 듣지 못하였느냐? 끝없이 초월하는 길
[向上一路]은 일천 성인이 전하지 못했는데, 배우는 이들이 애
쓰는 꼴은 마치 물 속에 어린 달그림자를 잡으려는 원숭이와 같
다는 말을.
설두스님의 송을 살펴보도록 하라.
[송]
듣고 보고 느끼고 아는 것이 따로따로가 아니고,
-삼라만상이란 한 법도 없다. 산산조각이 나버렸구나. 안, 이, 비, 설,
신, 의가 모두 구멍 없는 철추로다.
산과 물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다.
-나의 여기에 이러한 것은 없다. 긴 것은 긴 대로, 짧은 것은 짧은 대로,
푸른 것을 푸른 대로, 누런 것은 누런 대로..... 그대들은 어디에서 볼
것인가.
서리 내린 하늘에 달은 지고 밤은 깊은데
-그대들을 끌고서 (번뇌의) 풀 속으로 들어가버렸군. 온 세계에 감출 수
는 없다. 절대 귀신의 굴 속에 머무르려 하지 말라.
누구와 함께 하랴. 맑은 연못에 차갑게 비치는 그림자를.
-(그럴 사람이) 있느냐, 있느냐? 한 침상에서 잠자지 않았다면 이불 밑이
뚫렸음을 어떻게 알까? 근심에 젖은 사람은 근심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근심하는 사람에게 말하면 근심만 더하게 할 뿐이다.
[평창]
남전스님이 잠꼬대를 조금 했더니 설두스님은 큰 잠꼬대하네.
꿈을 꾸긴 했지만 좋은 꿈이었구나. 앞에서는 모두가 같다고 하
더니만 여기에서는 같지 않다고 말하네. "듣고 보고 느끼고 아
는 것이 따로따로가 아니며, 산과 물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 만일 거울 속에 있는 산하를 구경한 뒤에야
깨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거울이라는 것을 여의지 못한 것이
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을 거울로써 비춰보지 말라. 거울로써
비춰보면 바로 두 개가 되는 것이다. 오로지 산은 산, 물은 물
로서, 모든 법이 법의 제자리에 안주하고, 세간의 모습이 항상
그대로 있을 뿐이다.
"산하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다"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무엇으로 비춰봐야 할까? 알겠느냐? 이렇게 되자 "서리 내린 하
늘에 달은 지고 밤은 깊은 데"로 향하였다. 여기서는 그대와 함
께 하였지만, '저쪽'은 그대 스스로가 헤아려야 한다. 설두스님
이 본분의 일[本分事]로써 사람을 지도하였음을 알겠느냐?
"누구와 함께 하랴, 맑은 연못에 차갑게 비치는 그림자를"하
였는데 이는 스스로 비춰봄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비춰
봄인가? 모름지기 움직이는 마음[機心]과 알음알이[知解]를 끊
은 뒤에야 이러한 경계에 이를 수 있다. 이제는 맑은 연못도 필
요치 않으며, 서리 내린 하늘에 달이 지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
다. 지금은 어떤 경지일까?
불과원오선사벽암록 권제4
제 41칙
조주의 크나큰 죽음[趙州大死]
[수시]
시비가 서로 얽힌 곳은 성인도 알 수 없고, 역순(逆順)이 교
차할 때는 부처 또한 분별하지 못한다. 뛰어난 절세(絶世)의 인
물이어야만, 무리 가운데 빼어난 보살의 능력을 발현하여, 얼음
위에서 걷기도 하며 칼날 위를 달린다. 이는 마치 기린의 뿔과
같으며 불 속에 피어난 연꽃과 같다. 시방을 벗어났다는 것을
뚜렷이 봐야만 비로소 같은 길을 걷는 자임을 알 것이다. 누가
이처럼 솜씨 좋은 사람일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조주스님이 투자(投子)스님에게 물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는 어떠합니까?"
-이러한 일이 있었구나. 도적도 가난한 집은 털지 않는다. 타관살이에 익
숙해야만 길손을 가련히 여길 줄 안다.
투자스님은 말하였다.
"야간통행하지 말고 날이 밝으면 가거라."
-적의 망루(望樓)를 보고 망루를 공격한다. 도적이 도적을 아는군, 같은
침상에 눕지 않았다면 이불 밑이 뚫렸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평창]
조주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완전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는 어떠합니까?"
"야간통행하지 말고 날이 밝으면 가거라."
말해보라, 이는 어떠한 시절인가를. 구멍 없는 피리에서 나는
소리가 방음판에 부딪치는 것과 같다. 이는 '주인을 시험하는
물음[驗州間]'이라고도 하며, '수직을 거는 물음[心行問]'이라
고도 한다. 투자스님과 조주스님은 총림에서는 뛰어난 변재라고
찬미하였다. 두 노장들의 법사(法嗣)는 다르지만 그들의 기봉은
한가지였다.
하루는 투자스님이 조주스님을 위하여 찻자리를 마련하여 마
주하게 되었다. 손수 떡을 조주스님에게 건네주었으나 조주스님
은 조금도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투자스님이 행자를 시켜 조주
스님에게 떡을 주도록 하자, 조주스님은 행자를 향하여 세 차례
절을 하였다. 말해보라, 그 뜻이 무엇인가를, 그를 살펴보면 모
두가 근본 자리에서 본분의 일을 들어 사람을 지도한 것이다.
어떤 스님이 투자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도(道)입니까?"
"도이니라."
"무엇이 부처입니까?"
"부처니라."
"자물쇠가 열리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열려 있다."
"천지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金鷄未嗚時]는 어떠합니까?"
"그런 소리는 없다."
"천지가 생긴 뒤에는 어떠합니까?"
"저마다 시간을 알겠지."
투자스님의 평소의 문답이 다 이와 같았다.
조주스님이 "완전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고 묻자, "야간통행하지 말고 날이 밝거든 가거라"라고
대답했다. 이는 마치 전광석화와 같으니 향상인(向上人)이어야
이처럼 할 수 있다. 완전히 죽은 사람에게는 불법이라 할 것도,
현묘이니 아니니 할 것도, 시비, 장단도 전혀 없다. 여기에 이
르러서는 그저 쉴 뿐이다.
옛사람(운문스님)은 이를 "아무 것도 아닌 데서 죽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 가시덤불을 지날 수 있어야만이 좋은 솜씨이
다"라고 했다. 모름지기 '저곳'을 뚫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 그
렇지만 요즈음 사람은 이런 상태에 이르러서는 뚫고 가기 어렵
다. 만일 의지하거나 알음알이로 이해한다면 이와는 전혀 관계
가 없다. 이를 위산 철(爲山喆)스님은 "견해가 말쑥하지 못한
것"이라 하였고, 은사이신 오조(五祖)스님께서는 "명근(命根)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 모름지기 완전히 한 번 죽었다
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절중(浙中)의 영광(永光)스님은 말했다. "언어의 기봉이 조
금만 어긋나도 고향가는 길은 천리 만리 멀어진다. 모름지기 깎
아지른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만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다. 죽었
다가 다시 소생하는 도리 그대를 속일 수 없고, 뛰어난 종지 뉘
라서 숨길[瘦] 수 있겠는가?"
조주스님의 물음도 이와 같았으며, 투자스님은 작가로서 그의
물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는 정식(情識)과 자취를 끊어버린
것이니 참으로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그저 눈 앞에 조금만
내보인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은 "간절하게 얻으려 한다면 묻
지 말라. 물음은 답에 있고, 답은 물음에 있다"라고 했던 것이
다.
투자스님이 아니었다면 조주스님의 질문을 받고, 응수하기 매
우 난처했을 것이다. 그는 작가이기에 듣자마자 귀착점을 알았
던 것이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살아 있는 가운데 안목을 갖추었건만, 도리어 죽은 것과 같고
-둘이 서로 모른다. 엎치락뒤치락 하는구나. 만일 마음이 넓지 못한다면
어떻게 흰지 검은지를 분별하겠는가?
함께 먹어서는 안 될 약으로 어찌 작가를 감별(鑑別)하려 하
느냐?
-시험해 보지 않았다면 분명한 것을 어떻게 가려냈겠느냐? 시험삼아 감별
해 보는 것이 나쁠 게 있느냐. 반드시 물어봐야 한다.
옛 부처도 오히려 이르지 못했다고 하는데,
-다행히도 짝이 있었기 망정이지. 모든 성인도 전하지 못했고, 산승도 모
르는 일이다.
어느 누가 티끌 모래를 뿌리는가?
-지금도 적지 않다. 눈을 떠도 집착, 감아도 집착이다. 스님이 이처럼 거
량하였는데 귀착점이 어디에 있을까?
[평창]
"살아 있는 가운데 안목을 갖추었건만 죽은 것과 같다"고 하
였는데, 설두스님은 ('이것'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감
히 이처럼 노래했던 것이다. 옛사람(덕산 연밀스님)이 말하기를
"그는 활구(活句)를 참구했지.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않았다"
하였고, 설두스님은 "살아 있는 가운데 안목을 갖추었건만 도리
어 죽은 듯하다. 어찌 죽었겠는가? 죽은 가운데 안목을 갖춘 것
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과 같다"고 하였다. 옛사람(운문스님)은
"죽이려면 깡그리 사람을 죽여야 산 사람을 보게 되고, 살리려
면 사람을 깡그리 죽여야 죽은 사람을 본다"고 하였다.
조주스님은 살아 있는 사람이었기에, 죽은 물음으로 투자스님
을 시험했던 것이다. 약을 복용할 때에 함께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을 가지고, 고의로 시험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함께 먹어서는 안 되는 약으로 어찌 작가를 감별하려 하느냐?"
고 하였다. 이는 조주스님의 질문을 노래한 것이며, 뒤이어 "옛
부처도 오히려 이르지 못했다고 하는데"라는 것은 투자스님을
노래한 것이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지는 옛 부처도 일찍이 이
르지 못하였고, 천하의 큰스님들도 일찍이 이르지 못했다. 이는
비록 석가 노인이나 파란 눈 달마라도 거듭 참구해야 할 것이
다. 그러므로 "늙은 오랑캐가 알았다고 할 수는 있으나 깨쳤다
고는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은 "어느 누가 티끌 모래를 뿌리는가"라고 하였는데,
듣지 못하였느냐? 어떤 스님이 장경(長慶)스님에게 "무엇이 선
지식의 안목입니까?"라 하자, 장경스님은 "모래를 뿌리지 않았
으면 좋겠다"라고 했고, 보복(保福)스님은 "결코 뿌려서는 안되
느니라"고 하였다. 천하의 노스님들이 선상(禪床)에 앉아 방
(棒)과 할(喝)을 행하며 불자를 세우고 선상을 쳐서, 신통을 나
타내고 나름대로의 견해를 세우는 것은 모두가 모래를 뿌리는
일이다. 말해보라, 어떻게 해야 이를 면할 수 있는가를.
제 42칙
노방의 잘 내리는 눈[老龐好雪]
[수시]
혼자서 제창하고 홀로 희롱하여도 흙탕물을 끼얹는 것이요,
북치고 노래하기를 혼자서 모두 하더라도 은산철벽[銀山鐵壁)
이다. 이리저리 궁리했다가는 헤골 앞에서 귀신을 볼 것이며,
찾으며 생각하면 캄캄한 산 아래 떨어지리라. 밝고 빛나는 태
양은 하늘에 솟아 있고, 소슬한 맑은 바람은 온 누리에 가득
하다. 말해보라, 옛사람에게도 잘못된 곳이 있었는가를. 거량
해보자.
[본칙]
방거사(龐居士)가 약산(藥山)스님을 하직하자,
-이 늙은이가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약산의 열 명의 선객(禪客)에게 문 앞까지 전송하도록 하였
다.
-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 이것은 무슨 경계일까. 모름지기 근원
을 아는 납승이어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사는 허공에 날리는 눈[雪]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멋진 눈!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바람도 없는데 괜히 풍랑을 일으키는구나. 손가락 끝에 눈동자가 있
다. 이 늙은이 말 속에 공감할 만한 게 있구나.
이때에 선객 모두가 곁에 있다가 말하였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맞혔군. 말에 끌려오는구나. 그럼 그렇지. 낚시에 걸려들었군.
거사가 따귀를 한 차례 치자
-제대로 한 수 놨다. 그럼 그렇지, 도적이 집안을 망쳤군.
선객 모두가 말하였다.
"거사는 거칠게 굴지 마시오."
-널 속에서 눈알을 부릅뜨는군.
"그대가 그래 가지고서도 선객이라 한다면 염라대왕이 용서해
주지 않으리라."
-두번째 더러운 물을 끼얹어버렸다. 꼭 염라대왕뿐이겠는가? 산승이라도
여기에서는 용서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거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거친 마음을 고치지 않은 걸 보니 다시 몽둥이를 맞아야겠구나. 이 스님
이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채질 못하는군.
거사가 또다시 따귀를 친 후에 말하였다.
-과연 설상가상(雪上加霜)이로구나. 몸둥이를 맞았으니 실토를 하시지.
"눈은 떴어도 장님같으며 입을 벌려도 벙어리같다."
-다시 둘 사이를 화합시켜 주는 말이 있었구나. 그에게 판결문을 읽어주
는군.
설두스님은 다르게 논평하였다.
"처음 물었을 때 눈덩이를 뭉쳐서 바로 쳤어야지."
-옳기는 옳기만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겼구나. 적잖게 허물이 있구나.
그렇지만 화살 끝이 서로 맞부딪치는 것과 같은 기묘함을 살펴보아야 한
다. 귀신 굴 속에 떨어져버린 것을 어찌하랴.
[평창]
방거사는 마조스님과 석두스님의 두 처소를 참방한 후 송을
하였다.
처음 석두스님을 뵙고 대뜸 물었다.
"만법과 짝하지 않으니,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석두스님이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약간
깨친 바 있었다. 그래서 송을 지었다.
날마다 하는 일이 다른 것이 없어
나 스스로 마주칠 뿐이네.
사물마다 취하고 버림이 없고
곳곳마다 펴고 오무릴 것이 없나니.
붉은 빛 자주빛을 뉘라서 분별하리
청산에 한 점 티끌마저도 끊겼노라.
신통과 묘용이란
물 긷고 나무하는 것이구나.
그뒤에 마조스님을 참방하고 또 물었다.
"만법과 짝하지 않으니,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셨을 때 그대에게 말
해주겠네."
거사는 크게 깨치고 송을 하였다.
사방으로부터 함께 모여와서
모두 하염없는 법을 배운다.
여기가 바로 부처를 뽑는 시험장이니
마음을 비워야 급제하여 고향가리라.
그는 작가 선지식이었기에 많은 총림에서 서로 우러러 바라보
고, 이르는 곳마다 칭찬하였다.
약산에 이르러 머문 지 오래되어 마침내 약산스님을 하직하
니, 약산스님은 그를 존경하여 선객 열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전송하도록 하였다. 이때 마침 눈이 내리자 거사는 눈을 가리키
며 말하였다.
"멋진 눈! 송이송이 딴 곳으로 떨어지지 않는구나."
이어 선객들이 일제히 말하였다.
"어느 곳으로 떨어집니까?"
거사는 대뜸 그의 따귀를 후려쳤다. 이는 선객들이 이미 법령
을 시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사가 반쯤 시행한 것이다. 비록
지금 법령을 시행하긴 했지만 모든 선객이 이처럼 응수한 것은
(설두스님의) 의도를 몰라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기봉을 방거
사와 다르게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사의 경지에는 이
르지 못했기에 그의 기합소리에 얼어서 그의 보살핌[구]을 벗
어나기 어려웠던 것이다.
거사는 그의 따귀를 후려친 후 다시 말하였다.
"눈을 뜨더라도 장님처럼 하고 입을 벌리더라도 벙어리처럼
한다."
설두스님은 이 말에 대해 다른 측면에서 논평을 했다.
"처음 물었을 때 눈덩이를 뭉쳐 바로 후려쳤어야지."
설두스님이 이처럼 말한 것은 방거사가 한 질문의 핵심을 저
버리지 않고저 함이었으나, 기봉이 늦고 말았다. 경장주(慶藏
主)는 말하기를, "거사의 기봉은 번갯불 치듯 하는데 눈덩이를
뭉치려고 한다면 어느 시절에 되겠는가! 말하자마자 바로 조처
를 취해야 하고, 말하자마자 바로 쳐버렸어야 끊어버릴 수 있
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은 그가 때렸던 행위를 송하였다.
[송]
눈덩이로 쳐라, 눈덩이로 쳐라.
-제이의 기봉에 떨어진 것을 어쩌랴. 수고롭게 말할 것 없다. (번뇌의 풀
더미가) 머리위로 질펀하고 발 아래도 질펀하다.
방노인의 기관(機關)은 잡을 수 없어라.
-거의 사람들이 모른다. 그렇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천상, 인간도 전혀 모르나니,
-이 무슨 소식일까? 설두스님은 알까?
눈 속, 귓속까지 끊긴 듯 맑고 시원하여라.
-화살 끝이 서로 마주치는 듯 (절묘하다). 눈이 있으나 봉사 같고 입이
있으나 벙어리 같구나.
씻은 듯 끊김이여,
-무엇일까? 어디에서 늙은 방거사와 설두스님을 볼 수 있을까?
파란 눈 달마스님이라도 알아차리기 어려우리.
-달마스님이 나오면 뭐라고 말할까?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설두)
스님 무슨 말을 하십니까? 한 구덩이에 묻어버려라.
[평창]
"눈덩이로 쳐라, 눈덩이로 쳐라. 방노인의 기관은 잡을 수 없
다"하였는데, 설두스님은 거사의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하는 것이
다. 옛사람이 눈[雪]으로써 평등 무차별의 세계를 밝힌 것이다.
설두스님의 뜻은 "당시 눈을 뭉쳐 던졌더라면, 거사가 제 아무
리 수완[機關]이 있다 하더라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가 따귀를 친 것을 칭찬했지만 손해가 있
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천상, 인간도 전혀 모르나니, 눈 속, 귓속까지 끊긴 듯 맑고
시원하여라"하였는데, 눈[眼] 속에도 눈[雪], 귓속에도 눈[雪]
이라는 것이니, 이는 평등한 상태에 머문 것이다. 이를 '보현경
계(普賢境界)의 절대평등'이라 하기도 하고 또는 '한 덩어리가
됐다'라고도 한다.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곧바로 온 천하에 실오라기만큼의 허물이 없다 해도 오히려
외물에 휘둘리는 것이며, 한 경계도 보지 않았다 해도 겨우 반
쯤 제창한 것이다. 온전히 제창하려 한다면 반드시 끝없이 초월
하는 길[向上一路]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이르러선 눈 앞에 대용(大用)이 나타나 바늘로 찔러도
들어가지 않고 남의 명령에 놀아나지도 않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활구를 참구하지, 사구를 참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 구절의 깨달은 말일지라도 만겁토록 속
박하는 말뚝이로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라 했다.
설두스님이 이쯤에 노래를 마치고 다시 기틀을 돌려, "씻은
듯 끊김이여, 파란 눈 달마라도 알아차리기 어려우리"하였으니,
달마스님이라도 분별하기 어렵다는데 산승더러 무얼 말하라
고.....
제 43칙
동산의 더위와 추위[洞山寒署]
[수시]
하늘과 땅을 구별하는 듯한 말들은 만세토록 모두 받들겠지
만, 범과 외뿔소를 사로잡는 기틀은 많은 성인들도 알아차릴 수
없다. 당장에 실오라기만큼의 가리움이 없으며 완전한 기틀이
도처에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향상(向上)의 겸추(鉗鎚)를 밝히
고저 한다면 작가의 용광로이어야 한다. 말해보라, 예로부터 이
러한 가풍이 있었는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피하시렵니까?"
-(나 원오에게는) 그런 시절이 없다. 온통 다 그렇다. 어느 곳에 있을까?
"왜 추위도 더위도 없는 것으로 가지 않느냐?"
-천하인이 찾아도 찾지 못한다. 몸은 숨겼지만 그림자가 나타났다. 소하
(蕭何)라는 사람이 거짓으로 은성(銀城)을 팔아먹는 것과 같구나.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어디입니까?"
-한 배에 탄 모든 사람을 모조리 속이는군. 동산스님의 말에 놀아나는군.
낚시에 걸려들었구나.
"추울 때는 스님을 춥게 하고 더울 때는 스님을 덥게 한다."
-진실은 거짓을 가리지 못하고 굽은 것은 곧음을 감추지 못한다. 벼랑에
임하여 범과 외뿔소를 보았으니 괜히 한바탕 근심스럽겠다. 큰 바다를
뒤엎어버리고 수미산을 걷어차버렸다. 말해보아라, 동산스님이 어디에
있는가를.
[평창]
황룡 오신(黃龍悟新)스님이 이를 염(拈)하였다.
"동산스님은 소매 끝에 옷깃을 달고 겨드랑 아래 옷섶을 튼
(보통 옷을 입었지만) 이 스님이 이해하지 못한 데야 어찌하랴.
지금 어느 사람이 황룡스님에게 묻는다면, 말해보라, 그가 어떻
게 왔을까?"
한참 동안 말없이 있다가 말을 이었다.
"선(禪)을 함에는 굳이 산수(山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
음이 사라지면 불은 저절로 시원해진다."
여러분은 말해보라. 동산스님의 올가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동산스님의 오위(五位) 및 정(正),
편(偏)으로 번갈아가며 사람을 제접하는 것을 알게 되리라. 이
와 같은 향상의 경계에 이르러야만 요리조리 궁리하지 않고서도
자연히 잘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바름[正] 가운데 치우침[偏]이여!
삼경의 초저녁 밝은 달 앞에서
만나서도 알아보지 못한 것을 달리 생각마오.
남 몰래 지난 날의 유감을 품고 있네.
치우침 가운데 바름이여!
날이 밝자 노파는 옛 거울을 마주하여
자세히 얼굴보니 결코 참됨이 없네.
다시는 머리가 없다고 거울 속을 잘못 보지 마오.
바름[正] 가운데 옴[來]이여!
없음[無] 가운데 길이 있어 티끌먼지 벗어나니
오늘날 입 조심만 하면
전조(前朝)에 혀잘린 선비보다 훌륭하리라.
치우침[偏] 가운데 이르름[至]이여!
두 칼날이 서로 부딪쳐도 피할 필요가 없다.
좋은 솜씨란 불 속에 피어난 연꽃 같으니,
뚜렷이 충천하는 기개를 지니셨구려.
겸하는[兼] 가운데 다다름[到]이여!
유무에 떨어지질 않는데 누가 감히 조화하랴.
사람마다 보통사람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서로가 숯 속으로 들어가버리리라.
부산(浮山)의 원록공(遠錄公)은 이 공안으로 오위(五位)의 격
식을 삼았는데, 이 가운데에서 한 칙만 알아도 나머지는 저절로
쉽게 알 수 있다. 암두스님은 "이는 물 위에 떠 있는 호로병처
럼 자유자재하니 건드리기만 하면 그대로 움직이니 결코 털끝만
큼의 힘도 들지 않는다"하였다.
언젠가 어떤 스님이 동산스님에게 물었다.
"문수와 보현이 찾아올 때, 즉 이(理)와 사(事)가 동시에 나
타날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무소떼(수행승) 속으로 달려가겠다."
"스님께서는 쏜살처럼 지옥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모두 그 무소떼(수행승)의 덕분이지."
동산스님의 "무엇 때문에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
느냐?"는 것은 치우침 가운데 바름[偏中正]이며, 스님이 "어느
곳이 추위나 더위가 없는 곳이냐"고 묻자, "추울 때는 스님을
춥게 하고 더울 때는 스님을 덥게 한다"는 말은 바름 가운데 치
우침[正中偏]이다. 이는 정위(正位)이면서도 편위(偏位)이며,
편위이면서도 원위(圓位)이다. 이는 <조동록(曺洞錄)>에 자세히
실려 있다.
그러나 임제스님의 문하에서는 잡다한 것이 없다. 이런 공안
이란 대뜸 알아야 한다. "추위와 더위가 없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핵심에서 벗어난 말이다. 옛사람은 "칼날 위에
서 알아차리면 빠르지만 정식(情識)으로 헤아렸다가는 늦는다"
고 하였다.
듣지 못하였느냐? 어떤 스님이 취미(翠微)스님에게 묻는 말
을.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없거든 말해주리라."
취미스님은 말을 마치고 밭으로 들어가버렸는데 그 스님이 말
하였다.
"여기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말씀해주십시오."
취미스님은 대나무를 가리키면서
"이 대나무는 이처럼 크게 자랐고 저 대나무는 저처럼 작구
나"라는 말에 스님은 크게 깨쳤다.
또 한 번은 조산(曺山)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처럼 무더운 날씨에 어디에서 피서를 하려느냐?"
"확탄, 노탄 지옥에서 하겠습니다."
"확탄, 노탄 지옥에서는 어떻게 피서를 하겠느냐?"
"전혀 괴롭지 않습니다."
저 집안 사람들을 보아라. 자연히 저 집안 사람들의 말을 알
게 될 것이다. 설두스님은 저 집안의 일로써 송을 하였다.
[송]
(남을 지도하는) 손을 드리우면 그대로 만 길 벼랑과 같으니
-작가가 아니고서야 어찌 구별할 수 있겠으며 원융할 수가 있겠는가? 임
금의 명령이 발포되니 제후가 길을 피한다.
굳이 정위이니 편위이니를 따질 것이 있겠는가.
-만일 이러니저러니 따졌다가는 어떻게 (깨닫는) 오늘이 있을 수 있겠는
가? 어찌하여 양쪽을 다 관계하지 않는가? 바람이 부니 풀잎이 쓰러지
고, 물이 흘러오니 도랑이 이뤄진다.
옛 유리궁전에 비치는 밝은 달이여!
-동그랗구먼. 절대 그림자를 오인하지 말고, 머리 위에 있는 저것이 달이
라고 오인하지 말라.
우습구나, 영리한 사냥개[韓 ]가 괜스레 섬돌을 오른다.
-이번뿐만 아니다. 잘못 빗나가버렸군. 흙덩이를 좇아가 무엇하려고. (원
오스님은) 치면서 말했다. (설두스님) 그대도 그 객스님과 똑같이 잘못
했구먼.
[평창]
조동스님의 문하에서는 세간에 나왔느니, 나오지 않았느니 하
는 말[出世不出世]이 있으며, 방편으로 지도를 해준 것이느니
아니니 하는 말[垂手不垂手]이 있다. 세간에 나오지 않으면 하
늘을 우러르지만, 세간에 나오면 벌써 더러운 재묻고 흙묻는 꼴
이다. 하늘을 우러르는 것은 곧 만 길 봉우리에 서 있는 것이
며, 머리에 재가 묻고 얼굴에 흙이 묻는 것은 이러쿵저러쿵 지
도를 한 꼴이다. 어느 때는 머리에 재 묻고 얼굴에 흙묻은 채로
만 길 봉우리에 서기도 하고, 어느 때는 만 길 봉우리에 선 것
이 곧 머리에 재가 묻고 얼굴에 흙이 묻는 꼴이다. 그러나 실은
저자에 들어가 방편을 부린 것이나 높은 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본원으로 돌아가 성품을 깨친 것과 세간의
지혜[差別智]는 차이가 없으나, 이를 서로 다르다고 알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손을 드리우면 그대로 만 길 벼랑과 같다"고 하였
다. 이는 곧 발 붙일 곳이 없는 것이다. "굳이 정위이니 편위이
니 따질 것이 있겠는가"라 한 것은, 작용할 때 저절로 이와 같
이 되는 것이지 이리저리 따져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다. 이는 동산스님의 대답을 노래한 것이다.
뒤이어 말한 "옛 유리궁전에 비치는 밝은 달이여! 우습게도,
영리한 사냥개가 괜스레 섬돌을 오른다"는 것은, 바로 이 스님
이 말에 휘둘리는 것을 노래한 것이다.
조동종에서는 "애 못 낳는 여자[石女], 나무로 만든 말[木
馬], 밑빠진 바구니[無底籃], 야명주(夜明珠), 죽은 뱀[死蛇]
따위의 18가지의 얘기가 있다. 이는 대부분 정위(正位)를 밝힌
것이다. 옛 유리궁전에 비치는 달은 둥그런 그림자가 있는 듯하
다.
동산스님은 "왜 추위나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지 않느냐?"고
대답했는데, 이는 그 스님이 마치 사냥개가 흙덩이를 좇아가는
것처럼 연거푸 섬돌을 오르락거리며 달 그림자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또다시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은 어디냐?"고 묻자, "추울 때
는 스님을 춥게 하고 더울 때는 스님을 덥게 한다"고 말하였다.
이는 사냥개가 흙덩이를 좇아간 것처럼 섬돌 위로 달려가 보았
으나 달 그림자를 보지 못한 것과 같다.
사냥개[韓 ]는 <전국책(戰國策)>에서 나온 이야기로서 거기
에 이르기를 "한씨(韓氏)의 개는 날쌔고 중산(中山)의 토끼는
교활하다. 한씨의 개만이 그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은 이를 인용하여 그 스님을 비유한 것이다.
여러분은 동산스님이 사람을 제접한 속뜻을 아는가? (원오스
님은) 말없이 한참 동안 있다가 말하였다. "토끼를 찾아서 뭐하
려고?"
제 44칙
화산의 북을 치는 뜻[禾山打 ]
[본칙]
화산(禾山)스님이 법어를 하였다.
"익히고 배우는 것을 들음[聞]이라 하고, 더 배울 것이 없는
것을 (도에) 가까움[ ]이라 한다."
-천하의 납승들이 벗어나지 못한다. 구멍 없는 쇠망치로다. 무쇠말뚝이
군.
이 두 가지를 초월해야만이 참된 초월이라고 한다.
-정수리에 외알눈을 달고서 무엇 하려고?
스님이 다가와서 물었다.
"어떤 것이 참된 초월입니까?
-무슨 말을 하느냐? x표를 그어버렸다. 한 개의 무쇠말뚝이 있다.
"(나는) 북을 칠 줄 알지."
-쇠말뚝, 쇠가시다. 튼튼하구나.
"무엇이 참다운 이치[眞諦]입니까?"
-무슨 말을 하느냐? 두 겹으로 된 공안이다. 또 하나의 무쇠말뚝이 있다.
"북을 칠 줄 알지."
-쇠말뚝, 쇠가시다. 튼튼하다.
"마음이 바로 부처[卽心卽佛]라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마
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무슨 말을 하느냐? 구(垢). 급(扱), 퇴(堆)의 글자의 모양이 서로 다르
군. 또 하나의 무쇠말뚝이다.
"북을 칠 줄 알지."
-쇠말뚝, 쇠가시다. 튼튼하다.
"향상인(向上人)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무슨 말을 하느냐? 네 바가지씩이나 더러운 물을 뒤집어썼구나. 또 한
개의 무쇠 말뚝이 있다.
"북을 칠 줄 알지."
-쇠말뚝, 쇠가시다. 튼튼하다. 말해보라. 요지가 무어냐? 아침에 서천에
갔다가 저녁에 동토(東土)로 되돌아왔다.
[평창]
화산스님이 설법하여 말하기를 "배우고 익히는 것을 들음[聞]
이라 하고, 더 배울 것이 없는 것을 (도에) 가까움이라 한다.
이 두 가지를 초월해야만이 참된 초월이라 한다"하였다. 이 칙
(則)이 말은 <보장론(寶藏論)>에서 나왔다.
학문이 더 배울 것이 없는 데[無學]에 이른 것을 학문을 끊었
다[絶學]고 한다. 그러므로 "얕게 듣고서도 깊게 깨치는 것도,
깊게 듣고서도 깨치지 못하는 것도 '학문을 끊었다'고 한다"하
였다.
일숙각(一宿覺) 영가스님은 "나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쌓았으
며 또한 일찍이 주소(注疏)와 경론(經論)을 탐구하였다"고 하였
다. 익히고 배우는 것을 다하였을 때 그것을 일러 더 배울 것이
없는 하염없이 한가한 도인[無爲閑道人]이라 한다. 더 배울 것
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도에 가까워진다. 바로 이
두 배움과 배울 것이 없는 것을 초월하는 것을 참된 초월이라
한다.
그 스님도 꽤나 총명하다 하겠다. 스님이 이 말을 들어 화산
스님에게 묻자 화산스님은 "북을 두드릴 줄 알지"라고 하였다.
이는 이른바 '아무 맛도 없는 본바탕의 맛'을 말한 것이다. 공
안을 밝히려면 반드시 끝없이 초월해가는 사람[向上人]이어야,
이 말이 이치와도 관계없고 따져볼 수도 없는 것임을 비로소 알
게 된다. 마치 통 밑바닥이 빠져버린 것처럼 되리라. 바로 이
자리가 납승이 이르러야 할 곳이며,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에
계합하는 곳이다.
그러므로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의 공 굴림[ 毬]과 화산스님의 북 두드림[打 ]과
혜충국사의 수완(水碗)과 조주스님의 차 마심[喫茶]은 모두가
향상을 제창한 것이다."
또 "어떤 것이 참다운 이치[眞諦]입니까?"라고 묻자, 화산스
님은 "북을 두드릴 줄 알지"라고 하였다. 참다운 이치에서는 결
코 하나의 법도 세우지 않았지만, 세속의 이치[俗諦]에는 만물
이 모두 갖춰져 있다. 참다운 이치와 세속의 이치가 서로 다르
지 않음을 아는 것이 으뜸가는 뜻[聖諦第一義]이다. 또다시 "마
음이 곧 부처라 함은 묻지 않겠습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북을 두드릴 줄 알지"
하였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함은 알기 쉬워도 마음도 아니고 부
처도 아닌 경지에 이르기는 어렵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적다.
또다시 "향상인이 찾아왔을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라고 묻
자, "북을 칠 줄 알지"하였다. 향상인이란 곧 사무치게 초탈하
여 말끔한 사람이다. 이 네 구절의 말을 총림에서는 종지(宗旨)
로 여겼으니, 이를 화산스님의 네 차례 북 두드림[禾山四打 ]
이라고 한다.
어떤 스님이 경청(鏡淸)스님에게 물었다.
"새해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무엇이 새해의 불법입니까?"
"정월 초하룻날이 되니 만물이 모두 새로웁다."
"대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군."
이 대답은 마치 18종의 손해를 본 것과 같다.
또 어떤 스님이 정과(淨果)스님에게 물었다.
"높은 소나무에 학이 서 있을 때는 어떠합니까?"
"수치스런 곳에 발이 빠진 꼴이지."
"모든 산에 눈이 뒤덮였을 때는 어떠합니까?"
"해가 돋아 난 뒤에는 한바탕 수치니라."
"회창(會昌) 연간의 불법 사태를 격을 때 호법선신(護法善神)
은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삼문(三門) 밖 두 놈이 창피를 당했다."
이를 총림에서는 "세 번의 창피[三□□]"라고 말한다.
또 보복(保福)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 법당 안에는 어떤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가?"
"스님께서 집접 보십시오."
"석가부처님이구먼."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대가 나를 속인 것이다."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함택(咸澤)입니다."
"혹시 (그 연못이) 바싹 메말랐을 때는 어떠한가?"
"누가 마르게 합니까?"
"내가 말리지."
"스님은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대가 나를 속였다."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슨 업을 지었기에 그처럼 덩치가 큰가?"
"스님께서도 작지 않습니다."
보복스님이 몸을 웅크리는 시늉을 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대가 나를 속였다."
한 번은 (보복스님이) 목욕탕 소임을 보는 스님에게 물었다.
"목욕탕 가마솥 크기가 얼마나 되는가?"
"스님께서 직접 재보십시오."
보복스님이 재보는 시늉을 하자, 목욕탕 소임을 보는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사람을 속이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대가 나를 속였다."
총림에서는 이를 보복스님의 네 번 속임[四瞞人]이라 말한다.
이와 함께 설봉스님의 네 개 칠통[四漆桶]의 경우도 모두가
예로부터 큰스님이 각각 심오하고 오묘한 종지를 드러내어 수행
인들을 제접한 기연들이다.
설두스님은 뒤이어 이중의 하나를 인용하여, 운문스님의 설법
을 빌어서 이 공안을 송하였다.
[송]
한 사람은 연자방아를 끌고
-천하 제일인 천자의 칙명이다. 문둥이가 짝을 이끌고 간다. 향상인이란
이렇구나.
또 한 사람은 흙을 나른다.
-야전사령관의 명령이다. 두 죄인을 한꺼번에 처벌하라. 동병상련(同病相
憐)이구나.
대기(大機)를 드러내려면 천 균(鈞)짜리 활이어야만 한다.
-삼만 근이라 해도 뚫지 못하리라. 경솔하게 답변해서는 안 되지. 죽은
두꺼비가 돼서야 안 되지.
일찍이 상골산(象骨山) 노스님(설봉스님)이 공을 굴렸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사람도 있었구나. 구멍 없는 쇠망치이다. 누가 그걸
모르랴?
화산(禾山)스님이 북을 칠 줄 안다는 것만 같겠느냐.
-쇠말뚝이다. 반드시 이 늙은이어야 할 수 있다. 한 자식(설두스님)만이
몸소 (그 도리를) 얻었구나.
그대에게 알리노니,
-설두스님 또한 아직 꿈에도 보지 못했다. 설상가상이로구나. 그대는 아
는가?
제멋대로 해석하지 말라!
-이 한마디가 있구나. 그러나 미련하고 미련하군.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쓰다.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주각(注脚)을 잘못 달았군. 좋게 삼십 방망이는
주어야지. 방망이를 맞을 수 있느냐?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했다. 여전
히 캄캄하군.
[평창]
하루는 대중의 운력으로 연자방아를 돌릴 적에 귀종(歸宗)스
님이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는가?"
"연자방아를 끌려고 갑니다."
"연자방아야 네 마음대로 돌리겠지만 중심에 꽂혀 있는 나무
꼭지는 흔들리지 않도록 하게."
목평(木平)스님은 처음 찾아온 스님이 있으면 먼저 세 삼태기
의 흙을 운반하도록 하였는데. 목평이 송을 지어 대중 법문을
하였다.
동산의 길은 비좁고 서산은 낮으니
새로 온 사람은 세 삼태기의 흙 나르는 일을 사양하지 말라.
아- 그대들이 오랜 동안 길에 머물러
밝고 밝으나 깨닫지 못하여 도리어 미혹하였구나.
뒷날 어떤 스님이 물었다.
"세 삼태기 안의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세 삼태기 밖의 일
은 어떠합니까?"
"철륜천자(鐵輪天子)가 천하에 내린 칙명이니라."
스님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목평스님은 후려쳤다.
그리고서는 "한 사람은 연자방아를 끌고 또 한 사람은 흙을
운반한다"고 말했다.
"대기(大機)를 드러내려면 천 균(鈞)의 활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설두스님은 이 대화를 삼만 근 쇠뇌로 비유하여 그가 수
행인을 지도했던 것을 내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30근은 일 균
(一鈞)이니 천 균이란 삼만 근이다. 사나운 용과 호랑이와 맹수
에게나 이 큰 활을 쏠 수 있지, 뱁새처럼 자그만 짐승에게 가벼
이 쏘아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삼만 근 활로 생쥐를 쏠 수 없
는 것이다.
"상골산 노스님도 일찍이 공을 굴렸다"는 것은, 설봉스님이
하루는 현사(玄沙)스님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 세 개의 나무 공
을 일제히 굴렸었다. 현사스님이 공을 도끼로 찍는 시늉을 하
니, 설봉스님은 그를 매우 칭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비록 모
두가 전기대용(全機大用)이 있긴 하나 화산스님이 해타고(解打
)만은 못한 것이다. 이는 매우 간결하고도 핵심을 찌른 것[徑
截]이므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설두스님은 "화산스님이 북
칠 줄 안다는 것만 같겠느냐"고 한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말을 가지고 살림살이를 하며 그 유래를 모르
고 멋대로 해석할까 염려하셨기에 "그대에게 알리노니 제멋대로
해석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는 반드시 이러한 경지에 실제로
이르러야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제멋대로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으면 "단 것은 달고 쓴 것은 쓴 것"이다.
설두스님이 이처럼 문제제기[拈]를 했지만 결국 (화산스님의
올가미를) 뛰어넘지는 못하였다.
제 45칙
청주에서 지은 삼베적삼[靑州布衫]
[수시]
말하고자 하면 바로 말을 하나니 온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이
요, 행하려면 곧 행하나니 전기(全機)를 휘두름에 남에게 사양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전광석화와 같아 기염보다도 빠르고 바
람보다 빨라 세찬 물에서도 칼을 가로지른다. 향상의 겸추(鉗
鎚)를 들더라도 칼이 소용없고 혀가 묶이는 것을 면하지 못하겠
지만, 한 가닥 (방편의) 길을 놓아주어 거량해보리라.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일만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
니까?"
-이 늙은이를 내질러보았으나 산처럼 꼼짝도 않는구나. 절대로 귀신 굴
속에서 살림살이를 해서는 안 된다.
"재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 무명 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예상했던 대로 종횡무진하는구나. 하늘을 뒤덮는 그물을 쳤다. 조주스님
의 뜻을 보았느냐? 일찍이 납승의 급소를 움켜쥐었군. 조주스님의 귀착
점을 알았느냐? 이를 볼 수 있다면 천상천하에 나만이 홀로 존귀할 것이
다. 물이 흐르니 강이 만들어지고 바람이 부니 풀잎이 휩쓸린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노승(조주스님)이라도 그대의 발밑에 있으리라.
[평창]
만일 일격(一擊)에 대뜸 갈 곳을 알면 천하 큰스님들의 급소
를 일시에 뚫어버리더라도 그대를 어찌할 수 없으리라. 자연히
물이 흐르면 강을 이루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조주 노승이 발
밑에 있을 것이다.
불법의 핵심은 번잡스러운 언어 속에 있지 않다. 이는 마치
그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고 묻자, "내가 청주에 있으면서 무명
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하고 말한
것과 같다. 만일 어구(語句)에서 이를 분별한다면 저울 눈금을
잘못 읽은 것이며, 그렇지만 어구에서 분별하지 않았다면 어떻
게 이처럼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이 공안은 보기[見]는 어려워도 알기[會]는 쉬우며, 알기는
쉬워도 보기는 어렵다. 어렵기로는 은산철벽이요, 쉽기로는 곧
바로 뚜렷하여 계교한다거나 시비할 수가 없다. 이 말은 보화
(普化)스님의 "내일 대비원(大悲院)에서 재(齋)가 있다"라는 말
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설명하지 마십시오."
"노승은 경계를 가지고 설명한 적이 없다."
그가 이처럼 말한 것을 살펴보면, 궁극의 꼼짝할 수 없는 자
리에서 한 번 꿈쩍하여 자연스럽게 천지를 덮었다고 하겠다. 만
일 몸을 비끼지 못한다면 이르는 곳마다 막히게 될 것이다.
말해보라, 불법이 어떠니 저떠니 하는 헤아림이 조주스님에게
있었는가를. 만약 그가 불법을 헤아렸다 한다면 그는 무엇 때문
에 심성(心性)을 말하고 현묘(玄妙)를 말하였을까? 그가 만약
불법이니 종지니 하는 헤아림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결코 그대
의 물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이다.
듣지 못하였는가? 어떤 스님이 목평(木平)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겨울 오이가 이토록 크구나."
또 어떤 스님이 고덕(古德 : 歸宗)스님에게 물었다.
"깊은 산, 가파른 벼랑처럼 전혀 사람의 자취가 끊긴 곳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것이 깊은 산속에 있는 불법입니까?"
"돌멩이가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작지."
이러한 공안을 살펴보라. 어려운 점이 어느 곳에 있는가?
설두스님은 그(조주스님)의 의도를 알았었기에 의로(義路)를
열어 그대에게 송을 한 것이다.
[송]
치밀한 물음으로 오래된 저울[老古錐 : 조주스님]을 한 대 내
질렀지만
-하필이면 이 늙은이를 내질렀을까? 부딪치고 어느 곳으로 가는가?
일곱 근 장삼 무게 몇이나 알았을까?
-다시 해도 반푼 어치도 안 된다. 턱이 떨어져 말을 못 하는군. 또 그의
계책에 걸려들었다.
이제 서호(西湖)에 던져버렸으니
-설두스님의 솜씨여야 이렇게 할 수 있다. 산승도 (장삼이) 필요치 않다.
맑은 바람을 내려불어 누구에게 부촉할까?
-자고이래로 아직도 (맑은 바람이)있군. 말해보라. 설두스님이 그와 주고
받은 것일까? 아니면 그의 주각(注脚)을 달았을까? 한 자식(설두)이 몸
소 얻었군.
[평창]
18가지 물음[十八問] 가운데 이는 편벽된 물음[編酸問]이라
한다.
설두스님이 말한 "치밀한 물음으로 조주스님을 한 번 내질렀
지만"은 그 스님이 만법을 몰아붙여 일치(一致) 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 스님은 조주스님을 내지르려 하였으나 조주스님 또
한 작가이다. 몸 돌릴 수 없는 곳에서도 벗어날 길이 있어 큰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무명 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
가 일곱 근이더라."
설두스님이 말한 "일곱 근 장삼 무게를 몇이나 알까? 이제 서
쪽 호수에 던져버렸다"는 것은,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는 일
(一)자도 필요치 않으며, 일곱 근 무명 장삼 또한 필요치 않으
니 일시에 서호에 던져버린다는 것이다. 설두스님은 동정(洞庭)
의 취봉(翠峰)에 주석하였는데 그곳에 서호가 있다.
"맑은 바람을 내려불어 누구에게 부촉할까?"라는 것은 조주스
님이 대중 법문에서 말하기를, "그대가 북쪽으로 온다면 (바람
을) 치켜불게 해주고 남쪽으로 온다면 (바람을) 내려불어주겠지
만, 설봉(雪峰)이나 운거(雲居)에서 온다면 외곬수이다"라 했
다.
설두스님은 이리하여 맑은 바람을 누구에게 부촉할까라고 한
것이다. 치켜분다는 것은 그대에게 마음을 운운하고 성품을 운
운하며 현묘한 갖가지 방편을 운운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만
일 내려불면 결코 많은 의미와 현묘함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한 짐의 선(禪)을 짊어지고 조주스님 처소에 이
르렀으나, 한 수도 두어보지 못하게끔 하여 그것을 일시에 접어
치우도록 하여, 맑기가 그지없고 준절하게 하여 조그만치의 일
삼음도 없게 하였다. 이를 두고 "깨침이란 깨치지 못함과 같다"
고 말하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모두가 일 없는 것으로 알아버린
다.
어느 사람이 말하였다.
"혼미함도 없고 깨침도 없으니 결코 구할 필요가 없다. 부처
님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때와 달마스님이 이 땅에 오지 않
았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들 무엇 하
겠으며 조사 또한 서쪽에서 와서 무얼 하겠다는 것이냐?"
모두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옳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모름
지기 완전히 사무치고 완전히 깨달으면 여전히 산은 산 물은 물
이다. 일체의 만법이 모두 있는 그대로 드러나야 비로소 할 일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용아(龍牙)스님의 말을.
"도를 배우려면 무엇보다 깨달으려 해야 한다. 마치 용주(龍
舟)를 빼앗듯 해야 한다. 비록 옛 전각(殿閣) 같은 한가한 경지
에 올랐다 하더라도 꼭 이를 얻어야만 비로소 쉬게 된다"고 하
였다. 이는 마치 조주스님이 "무명 장삼 일곱 근"과 같다. 옛사
람의 이와 같은 말을 살펴보면 금옥처럼 귀중한 것이다. 산승이
이처럼 말하고, 여러분이 이처럼 듣는 것도 모두가 치켜부는 것
이다. 말해보라, 무엇이 내려부는 것인가를. 선상에 앉아 참구
해보라.
제 46칙
경청의 미혹되지 않음[鏡淸不迷]
[수시]
한 번의 망치질로 범부, 성인을 초월하고, 반 마디의 말로서
속박을 풀어버렸다. 얼음 위를 걷고 칼날 위를 달리듯 하며, 현
사의 세계[聲色] 속에서 현상에 따라 행한다. 종횡무진한 오묘
한 작용이란 그만두더라도 찰나에 대뜸 떠나버렸을 때는 어떠한
가? 거량해보리라.
[본칙]
경청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가 나느냐?"
-무심하게 낚시를 드리웠다. 귀머거리도 아니면서 무얼 하려고 묻는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참으로 진실하군. 좋은 소식이다.
"중생이 전도되어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구나."
-일삼는구나. 자기 편할 대로 하는 데는 익숙하군. 갈고리와 오랏줄이로
다. 그에게 본분의 솜씨를 돌려줘라!
"스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렵니까?"
-과연 지고 말았군, 창끝을 돌려 덤벼드는구나. 참으로 감당키 어렵다.
도리어 창을 잡고 거꾸로 사람을 찌르는구나.
"하마터면 자신을 미혹할 뻔했느니라[ 不迷己]."
-쯧쯧! 결국 밝히려 해도 하질 못하고 마는군.
"자신을 미혹할 뻔하시다니 무슨 뜻입니까?"
-이 늙은이를 내질렀군. 사람을 핍박하는구나.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
벼운 편인데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몸을 빠져 나오기는 그래도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하기란
어렵다."
-(빼어난) 자식을 기르게 된 인연이다. 그렇긴 하지만 덕산스님과 임제스
님은 어디로 갔느냐? 빗방울 소리가 아니라면 무슨 소리라고 하랴? 결국
밝히지 못하고 마는군.
[평창]
여기에서 또한 잘 알아야 한다. 옛사람이 말한 기틀[一機],
한 경계[一境]는 수행자를 지도하고저 함이었다.
하루는 경청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전도(顚倒)되어 자신을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구나."
다시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비둘기 울음 소리입니다."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업을 부르지 않으려거든 여래의 바른
법륜[正法輪]을 비방하지 말라."
다시 물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는 소리입니다."
"중생에게 고통이 있으리라고 짐작했더니 고통받는 중생이 참
으로 있었구나."
이 말은 앞의 공안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납승이 여기에
서 깨칠 수 있다면 현상의 세계 속에서도 자유롭겠지만 깨치지
못한다면 현상의 세계에 구애를 받을 것이다. 이러한 공안은 총
림에서 '단련어( 煉語)'라 한다. 만일 단련이라 한다면 마음의
분별을 이룰 뿐 옛사람들이 수행인을 지도한 참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를 현상의 세계에서 깨우치게 함[透聲色]이라
하기도 하는데, 첫째는 도안(道眼)을 밝힘이요, 둘째는 현상세
계를 밝힘이요, 셋째는 심종(心宗)을 밝힘이요, 넷째는 망정(忘
情)을 밝힘이요, 다섯째는 교화제도함[展演]을 밝힘이라고 한
다. 대단히 자세하기는 하지만, 집착함이 있는 걸 어찌하겠는
가.
경청스님이 "문 밖에 무슨 소리가 나는가?"하고 묻자, 스님은
"빗방울 소리입니다"라고 대답했고, 경청스님은 문득 "중생이
전도하여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다"고 말하였다. 사람들
은 모두 이를 잘못 알고 고의로 사람을 떠본 것이라고 말들 하
나 틀린 소리이다. 이는 경청스님에게 수행인을 지도하는 솜씨
가 있어, 대담하게 한 기틀, 한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각별히
눈썹[眉毛]을 아끼지 않고 말로 설명해주었다는 점을 모른 것이
다. 경청스님인들 빗방울 소리인 줄 몰라서 또다시 물었겠는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옛사람은 학인을 제접하는 수단으로써
이 스님을 시험하려고 했다는 것이며, 이 스님도 멋지게 받아서
대뜸 "스님께서는 뭐라고......"라고 했다는 것이다.
마침내는 경청스님이 방편을 써서 그에게 "자신을 미혹할 뻔
했네"라고 말하였다. 그 스님이 자기를 미혹하여 외물을 좇은
것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경청스님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미혹했
을까? 그를 시험하는 구절 속에 몸을 해탈하는 곳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 스님은 너무나 멍청하여 아예 말을 끊
어버리고자 다시 묻기를 "자기를 미혹할 뻔하시다니 무슨 뜻입
니까?"라고 하였다. 덕산스님과 임제스님의 문하였다면 방(棒),
할(喝)을 하였으련만 경청스님은 한 가닥 (방편의) 길을 터주어
그에게 설명을 하느라 다시 말하였다. "몸을 빠져 나오기는 그
래도 쉽지만 그것을 그대로 말하기란 어렵다."
그와 같기는 하지만 옛사람(동산스님)이 말하기를 "계속 이어
가기가 매우 어렵다"하였으니, 경청스님은 다만 한 구절로 이
스님에게 본분의 큰 일을 밝혀주었던 것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빈 집의 빗방울 소리여!
-예로부터 지금까지 끊어졌던 적이 없다. 모두가 이 속에 있느니라.
작가 선지식도 대답하기 어려워라.
-예상대로 모르는군. 산승은 원래 작가가 아니다. 방편도 있고 진실도 있
으며, 놓음도 거두어들임도 있으며, 죽이고 살리며, 사로잡고 놓아주기
를 마음대로 한다.
만일 성인의 무리 속에 들어갔다[入流]고 한다면
-머리를 (들러붙는) 아교통 속으로 처박는다. 빗방울 소리가 아니라면 무
슨 소리라 하겠는가?
여전히 모르리라.
-산승이 몇 번이나 물었던가? 이 먹통아! 구멍없는 쇠망치를 나에게 가져
와라.
알건 모르건
-두 쪽을 모두 꼼짝 못하게 한다. 둘로 나눌 수 없다. 양쪽 어디에도 해
당하지 않는다.
남산, 북산에 도리어 세찬 비가 쏟아진다.
-머리 위, 머리 아래가 온통 (비투성이다). 빗방울 소리라 한다면 장님이
며, 빗방울 소리라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리라 하겠는가? 여기에 이르러
서는 모름지기 참된 경지를 밟아야만 한다.
[평창]
"빈 집의 빗방울 소리여! 작가 선지식도 응수하기 어렵다"는
것은, 빗방울 소리라 한다면 이는 자기를 미혹하고 외물을 좇는
것이라는 것이다. 빗방울 소리가 아니라 한다면 또한 어떻게 외
물에 자재롭게 대처하겠는가? 이에 이르러서는 작가라 하더라도
응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마조스님)은 "스승과
같은 견해를 지니면 스승의 덕을 반감시키는 것이니 견처가 스
승을 뛰어넘어야 비로소 스승의 뒤를 전수 할 만하다"하였으며,
또한 남원(南院)스님은 말하였다. "방망이 아래 무생법인(無生
法忍)이여! 기연(機緣)에 임하여 스승에게도 양보하지않네."
"만일 (성인의) 무리 속에 들어갔다 한다면 여전히 모르리라"
고 하였는데, 교학[敎中 : 능엄경]에서는 말하기를 "처음 듣자
마자 성인의 무리로 들어가, 들어가는 자신도 들어간 곳도 고요
하면 움직임과 고요함의 두 모습이 절대로 나지 않는다"고 하였
다. 그러니 빗방울 소리라 해도 옳지 않고 빗방울 소리가 아니
라 해도 옳지 않다.
앞(제 11칙 송)에서 나온 "두 번 할하고 세 번 할함이여! 작
가이므로 인연에 딱 맞출 줄 알았다"는 송은 바로 이 송과 같다
하겠다. 이는 현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해도 옳지 않고 현
상의 세계라고 해도 여전히 그 뜻은 모를 것이다. 이를 비유하
자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 것이지 달이란 손가락이 아니라는
것과 같다.
"알건 모르건, 남산, 북산에 도리어 더욱 세찬 비가 쏟아진
다."
제 47칙
운문의 육대(六大)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
[雲門六不]
[수시]
하늘이 어찌 말을 하랴마는 사계절은 (절도있게) 운행하고,
땅이 어찌 말을 하랴마는 만물을 자라게 한다. 사계절이 운행하
는 곳에서 본체를 볼 수 있고 만물이 생장하는 곳에서 오묘한
용[妙用]을 볼 수 있다. 말해보라, 어느 곳에서 납승을 볼 수
있을까? 어언동용(語言動用) 내지는 행주좌와에 의존하지 말고,
말로도 설명하지 말고, 분별할 수 있겠느냐?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法身)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했었지. 일천 성인이라도 벗어나질 못한다. 허물
이 적지 않구나.
"여섯으로는 알 수 없다."
-못을 자르고 죄를 끊는다. 팔각형 맷돌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신령한 거
북이 꼬리를 끈다. (조짐이 보이지 않았을 때 알아도 벌써 제 2의 속제
이며, 조짐이 생긴 뒤에 알아차리면 또한 제 3의 자리에 떨어지며, 또한
언어로써 알려고 한다면 좋아하시네, 전혀 관계가 없다.)
[평창]
운문스님이 말하기를 "여섯으로는 거두지 못한다"하였는데,
이 말은 참으로 뭐라고 하기가 어렵다. 조짐이 나뉘어지지 않은
때에 뭐라고 할 수 있다 해도 벌써 제 2의 속제이며, 조짐이 생
긴 뒤에 알면 제 3의 자리에 떨어지며, 언구로 분별하고 밝히려
했다가는 끝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무엇을 법
신이라 할까? 작가라면 듣자마자 거량할 줄 알아서 바로 가버리
지만, 생각하거나 기연에 매였다가는 엎드려 처분을 듣고야 만
다.
태원(太原)의 부상좌(浮上座)는 본디 강사였는데 하루는 법좌
에 올라 강의를 하던 즈음에 법신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시간으로는 과거, 현재, 미래에 두루하고 공간으로는 시방
(十方)에 뻗쳤다"고 하자, 어떤 한 선객이 그곳에 있다가 피시
식 웃어버렸다. 부상좌는 법좌에서 내려와 말하였다.
"제자 조금 전에 무슨 잘못이 있었습니까? 선승은 말씀해보십
시오."
"좌주(座主)께서는 법신을 헤아리는 일만을 강의했을 뿐 법신
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잠시 강의를 그만두고 고요한 방에 앉아 참선을 해보시오.
반드시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부상좌는 그의 말을 따라서 하룻밤을 고요히 좌선하다가 오경
(五更)을 알리는 종소리에 문득 크게 깨쳤다. 마침내 선객이 머
무는 곳의 문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나는 알았습니다."
"어디 말해보시오."
"나는 오늘 이후론 다시는 부모가 낳아주신 이 몸을 가지고
재주를 뽐내지 않겠습니다."
또 교학[敎中 : 능엄경]에서는 말하기를,
"부처님의 참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아, 사물을 따라 형태를
나타내니 물 속에 어린 달과 같도다"라고 하였다.
또 어떤 스님은 협산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법신입니까?"
"법신은 모습이 없다."
"어떤 것이 법안입니까?"
"법안은 티가 없다."
운문스님이 말한 "여섯으로도 알 수 없다"는 공안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이는 6근, 6식, 6진이다. 이 여섯이 모두 법으로
부터 생겨나므로 6근으로는 법신을 알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망정으로 헤아린다면, 좋아하시네, 전혀 이와는 관계가 없으며
나아가 운문스님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다. 보려면 바로 보아라.
천착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듣지 못하였느냐, 교학(법화
경)의 말을. "이 법은 사량이나 분별로써 헤아릴 바 아니다."
그의 대답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음알이를 야기시켰다. 그러므
로 한 구절 속에는 반드시 삼구(三句)가 구비되어 반드시 그의
물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나아가 상황에 딱 들어맞아 한 말씀
한 구절과 한 점 한 획에서도 몸을 벗어나는 곳이 있었던 것이
다. 그러므로 "한 구절을 깨치면 천 구절 만 구절을 일시에 깨
친다"고 하였다. 말해보라. 이는 법신일까, 조사일까? 그대들에
게 삼십 방망이를 먹이리라.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또 세고 또 센다. 낙숫물 지는 족족 얼어붙는다. 궁리를 많이 하여 무엇
하려고?
푸른 눈 달마가 셈하여도 다하지 못하리.
-삼생육십겁(三生六十劫) 걸려도 다 셀 수 없다. 달마인들 꿈엔들 알았겠
는가? 스님은 무슨 까닭에 알면서도 일부러 범하였느냐?
소림(小林)에서 신광(神光)스님에게 부촉했다고 부질없는 말
들을 하더니만
-한 사람의 헛소문에 많은 사람이 진짜인 줄로 전한다. 애시당초부터 잘
못되었다.
옷을 걷어붙이고는 또다시 천축(天竺)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하
네.
-한 배를 탄 사람을 모두 속였다. 부끄러움이 적지 않군.
천축은 아득하여 찾을 곳이 없는데,
-어느 곳에 있을까? 비로소 태평하구나. 지금은 어느 곳에 있을까?
간밤에 유봉(乳峰)을 건너다보면서 잠을 잤네.
-네 눈을 멀게 하는군. 괜히 풍랑을 일으키는군. 말해보라. 이는 법신일
까, 불신일까? 그대에게 삼십 방망이를 먹이리라.
[평창]
설두스님은 꿰맨 흔적도 없는 것(여섯으로는 알 수 없다는
말)에 대해, 훌륭한 안목을 드러내어 송으로써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운문스님은 "여섯으로는 알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설
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이라 했
을까? 설사 달마스님이라 할지라도 세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달마스님이 알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깨쳤다고는 할 수 없다"
고 하였다. 이는 반드시 그 (운문스님)의 자손이어야만 알아차
릴 수 있을 것이다.
본칙의 [평창]에서 말한 "한 말씀 한 구절이 상황에 딱딱 들
어 맞는다"고 한 것을 철저히 깨치면 "언구에 있지 않다"는 말
을 알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알음알이로 이해하고 말 것이다.
오조(吳祖) 큰스님께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은 비천한 엉뚱한
짓하는 놈이며, '뜰 앞의 잣나무'는 하나, 둘, 셋, 넷, 다섯이
다"라고 하였다. 자세히 운문스님의 말을 잘 알아차리면 단박에
그러한 경계에 이를 것이다.
"소림에서 신광(神光)스님에게 부촉했다고 부질없는 말들을
한다"고 하였는데 이조(二祖)스님의 처음 이름이 신광이었다.
이어서 "천축으로 되돌아갔다"고 한 것은, 달마스님을 웅이산
(熊耳山) 아래에 장례를 치뤘는데,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사신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서령(西嶺 : 파미르 고원)에서 한쪽
신만을 들고 서천으로 되돌아가는 달마스님은 보았기 때문이다.
송운이 이를 황제에게 아뢰어 무덤을 파헤치니 한쪽 신만 남아
있었다.
설두스님은 "실로 '이 일'을 어떻게 전해줄 수 있으리요, 결
코 전해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옷을 걷어붙이고 천축
으로 되돌아갔다고 말들을 하는군"이라고 말하였다. 말해보라,
무엇 때문에 이 국토에 6대의 조사들이 계속 이어서 전해왔었는
가를. 이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모름지기 이를 알아야 비
로소 작가 선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축은 아득하여 찾을 곳 없는데, 간밤에 유봉을 건너다보면
서 잠을 잤다"고 하였다. 말해보라,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를.
(원오)스님은 한 차례 친 후 말하였다. 눈이 멀었구나!
제 48칙
태부의 옷소매를 떨치고[太傳拂袖]
[본칙]
왕태부가 초경사(招慶寺)에 들어가니, (스님들이) 차를 달이
고 있었다.
-작가들이 모였으니 기특한 일이 있겠지. 할 일 없이 등한한다. 모두가
진리를 보는 또 하나의 눈[一雙眼]을 갖추었다. 재앙을 불러일으키는구
나.
이때에 낭상좌(郎上座)가 명초(明招)와 함께 차 끓이는 냄비
를 붙잡고 있다가
-모두가 진흙덩이나 희롱하는 놈이로구나. 차 끓일 줄 모르면서 남에게까
지 누를 끼치는구나.
낭상좌가 차 냄비를 뒤집어버리자,
-일이 생겼구나. 과연 예상했던 대로구먼.
태부가 이를 보고서 상좌에게 물었다.
"차 끓이는 화로 밑에 무엇이 있소?"
-과연 재앙이 생겼군.
낭상좌는 말하였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지요."
-과연 그의 화살에 적중했구나. 참으로 기특하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왜 차 냄비를 엎어버렸오?"
-무슨 까닭에 그에게 본분납자를 기르는 먹이를 주지 않는가? 큰일 났군.
"오랜 동안의 벼슬살이 하루아침에 쫓겨났지요."
-잘못 지껄였다. 이 무슨 말인가? 엉터리 선객이 삼대 같고 좁쌀처럼 많
구나.
태부는 소매를 떨치고 나가버렸다.
-분명한 작가로다. 그도 하나의 눈[一雙眼]을 갖췄다고 하겠다.
명초가 말하였다.
"낭상좌는 초경사(招慶寺)의 밥을 얻어먹고 도리어 강 건너편
에서 떼지어 시끌벅쩍거리는군[打野매]."
-반드시 삼십 방망이를 때려라. 이 애꾸눈 용이 한쪽 눈밖에 없군. 그래
도 눈밝은 사람이 점검해야 할 것이다.
"스님께서는 어떠십니까?"
-내질렀군. 한 번 잘도 내질렀군. 결국 이처럼 어설픈 죽은 견해를 짓지
말라.
"귀신에게 당했군."
-과연 진리를 보는 눈[一雙眼]을 갖추었구나. 절반쯤 말했다. 한편으로는
치켜올리고, 한편으로는 깎아내리네.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명초가 그 말을 하자마자,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렸어야
지."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겨 무엇하랴. 이와 같다 해도 덕산(德山)스님
의 문하객으로는 걸맞지 않다. 날렵하군. 그 가운데서도 기특하다 하겠
다.
[평창]
불성의 의미를 알고저 한다면 마땅히 시절 인연을 살펴야 한
다.
왕태부는 천주(泉州)의 원님으로서 오랜 동안 초경사(招慶寺)
에서 참구하였다. 하루는 절로 들어가자 낭상좌가 차를 끓이다
말고 차 냄비를 엎어버렸다. 태부도 또한 작가인터라 차 냄비를
뒤엎어버리는 것을 보자마자 상좌에게 물었다.
"차 끓이는 화로 밑에 무엇이 있오."
"화로를 받드는 신이 있지요."
이는 말 속에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있긴 하나, 처음과 끝이 서
로 어긋나고 종지를 잃어버려 칼날에 손을 다친 꼴이니 이를 어
찌하랴. 자신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남까지도 틀리게 한다. '이
일'은 득도 실도 없으므로 만일 거량했다가는 여전히 친하고 성
김이 있고 검고 흰 것이 있을 것이다. 이 일을 의론한다면 말과
는 관계가 없지만, 또한 말 속에 생동력 있는 팔팔거림이 있다
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활구(活句)를 참구해야지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라"고 하였다. 낭상좌의 이와 같은 말
은 미친 개가 흙덩이를 좇아가는 꼴이다. 태부가 소매를 떨치고
떠나 버린 것은 그를 긍정하지 않은 것이다.
명초의 "낭상좌여, 초경사의 밥을 얻어먹고서 도리어 강 건너
편에서 떼지어 시끌벅쩍거리는군[打野매]"라는 말 가운데 '야매
(野매)'란 황야에 널려 있는 불타버린 나무토막이라는 뜻이다.
이는 명상좌가 올바른 곳으로 가지 않고 바깥으로 치달리는 것
을 밝혀준 것이다.
낭상좌는 이에 내질러서 물었다.
"스님은 어떡하시렵니까?"
"귀신에게 당했군."
명초에게는 분명히 몸을 벗어날 곳이 있으며 또한 그의 물음
을 저버리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영리한 개는 어금니도 드러내
지 않고 사람을 문다"고 한다.
위산 철( 山喆)스님은 "왕태부는 조나라의 인상여(藺相如)가
구슬을 되찾아올 때 수염이 충천했던 것과 매우 닮았다"고 하였
다. 이는 명초가 참으로 뛰어났기 때문에 그런 손해를 보지 않
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위산스님이 만일 낭상좌였다면 태부가 소매를 떨치고 떠나갈
때 차 냄비를 놓아버리고 껄껄거리며 큰 소리로 웃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보고서도 내 것으로 챙기지 못하면 천 년이 지나도록
다시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보수(寶壽)스님이 호정교(胡釘 )에게 물었
던 것을.
"오래전부터 호정교의 소문을 들었는데 혹 호정교가 아니십니
까?"
"그렇습니다."
"그래 허공에도 못을 박을 수 있습니까?"
"스님께서 (그 못을) 떼어보십시오."
보수스님이 후려쳤으나 호정교가 그를 수긍하지 않자 보수스
님은 말하였다.
"언젠가는 반드시 말많은 스님이 그대를 점검해줄 날이 있을
것이오."
호정교가 그후 조주스님을 친견하여 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
리자 조주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얻어맞았는가?"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붙일 수도 없는데 또다시 그에게 허공을 떼어보라고 하다
니."
호정교가 문득 그만둬버리자 조주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이 하나로 붙여놓은 것에 못을 박아보아라."
호정교는 이 말에 깨침을 얻었다.
서울의 미칠(米七)스님이 행각을 하고 돌아오자 어떤 노스님
이 물었다.
"달밤에 우물 속에 있는 새끼 토막을 사람들은 모두가 뱀이라
고 하는데, 미칠스님은 부처를 뭐하고 하겠습니까?"
"만일 (이러쿵저러쿵) 견해를 짓는다면 바로 중생과 같겠지
요."
"그렇지만 천 년 만에 싹이 돋는 복숭아씨 같아 생기가 없
군."
혜충국사(慧忠國師)가 자린공봉(紫璘供奉)에게 물었다.
"공봉은 <사익경(思益經)>의 주해를 냈다고 하는데 그러한
가?"
"그렇습니다."
"경전의 주해를 내려거든 반드시 부처님의 뜻을 알아야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감히 경전의 주해를 붙인
다 하겠습니까?"
마침내 시자에게 물 한 주발을 가져오게 한 후 쌀 일곱 톨,
젓가락 한 짝을 주발 위에 얹어 공봉에게 내보이며 물었다.
"이게 무언가"
"모르겠습니다."
"나의 뜻도 모르면서 무슨 부처의 뜻을 말하겠는가?"
왕태부와 낭상좌의 대화는 한결같지 못하다.
설두스님이 맨 끝에서 "그 당장에 차 달이는 화로를 밟아서
엎어버렸어야지"라고 말하였는데, 명초가 그처럼 하기는 했지만
결코 설두스님만은 못하였다.
설봉스님이 동산스님의 회하에 있으면서 밥짓는 일을 하였는
데 하루는 쌀을 씻고 있을 즈음에 동산스님이 물었다.
"무얼 하느냐?"
"쌀을 일고 있습니다."
"쌀을 일어 모래를 버리느냐. 모래를 일어 쌀을 버리느냐?"
"모래와 쌀을 일시에 모두 버립니다."
"대중들은 무얼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그러자마자 쌀 일던 단지를 쏟아버리자, 동산스님
은 말하였다.
"너의 인연을 이곳에 있지 않다."
그렇긴 하지만 설두스님이 말한 "그 당장에 차 달이는 화로를
엎어버렸어야 했다"는 말과 같을 수 있겠는가? 설봉스님과 설두
스님이 한 행위들은 모두 어떠한 시절 인연들일까? 그들의 용처
(用處)에 이르면 반드시 고금에 뛰어나 팔팔 살아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다그쳐 물어오는 것이 찬바람이 일 듯 하였지만
-헛 화살을 쏘지 않았다. 가끔씩은 모양새를 갖추지. 참으로 오묘하구나.
그 대처함은 훌륭한 솜씨가 못 되었다.
-진흙덩이 주무르는 놈들이 어찌 한둘이랴!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
는 것처럼 잘 맞지 않는군. 작가 선지식에게 제대로 채였구나.
가련하다. 애꾸눈 용(龍)이여!
-한쪽 눈만 있군. (그대를 잡아매는) 말뚝을 얻었을 뿐이다.
결코 어금니와 발톱을 드러내지 않으니,
-드러낼 만한 어금니와 발톱도 없는데 무슨 어금니와 발톱을 말하느냐?
그러나 그를 속이지 말라.
어금니와 발톱을 벌리면
-그대들은 보았느냐? 설두스님이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이러한 솜
씨가 있었더라면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려라.
구름과 우레가 생기나니
-온 대지 사람들이 일시에 몽둥이질 당했네. 천하의 납승들이 몸 붙일 곳
이 없군. 비도 안 오는 하늘에 뇌성벽력이다.
바다를 범람시키는 파도를 몇 번이나 겪었던가?
-곤장 72대의 죄가 도리어 150대의 죄가 되었구나.
[평창]
"다그쳐 물어오는 것이 찬바람이 일 듯 하였지만, 그 대처함
은 훌륭한 솜씨가 못 되었다"는 것은, 마치 왕태부가 물은 곳이
도끼를 휘둘러 찬바람을 일으키는 듯하였다는 것이다. 이 구절
은 <장자(莊子)>에서 나온 말이다. 영( ) 땅 사람이 벽에 진흙
을 바르다가 작은 틈이 하나 남아 있자 진흙을 둥실둥실 뭉쳐
그 구멍에 던져 메워버렸다. 그때 조그마한 진흙이 코 끝에 튀
겼는데 곁에 있던 목수가 말하였다.
"틈을 메우는 그대의 솜씨가 너무나 훌륭하다. 나는 도끼를
휘둘러 그대의 코 끝에 묻어 있는 진흙을 떼주겠다."
그의 코 끝에 묻어 잇는 진흙은 파리 똥만큼이나 적었으나 목
수에게 깎아보라고 하자 도끼를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면서 진흙
을 모조리 제거하되, 조금도 코를 다치지 않았으며, 영 땅 사람
또한 꼼짝 않고 서 있는 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한다.
이를 두고 이른바 "둘 다 정교하다"고 한다. 낭상좌가 응수하기
는 했으나 훌륭한 말은 못 되었기에 설두스님은 "다그쳐 물어오
는 것이 찬바람 일 듯 하였으나, 그 대처함은 휼륭한 솜씨가 못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가련하다, 애꾸눈 용(龍)이여, 결코 어금니와 발톱을 드러내
지 않더니"라고 명초가 한 말은 매우 기특하긴 하지만 아직은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피워내는 솜씨가 없는 데야 어찌 하겠
는가.
설두스님은 곁에서 이를 긍정하지 않고 참지 못하여 그를 대
신하여 말한 것이다. 설두스님은 은연중 그(태부)의 뜻에 맞추
어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렸어야지"라고 노래한 것이다.
"어금니와 발톱을 벌리면 구름과 우레가 생기나니, 바다를 범
람시키는 파도 몇 번이나 겪었던가?"라고 하였는데, 운문스님은
"그대들에게 바다를 범람시키는 파도가 있기를 바라지 않으나
물에 순응하는 뜻만 있어도 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활구에서
깨치면 영겁토록 잊지 않는다고 한다.
낭상좌와 명초의 어구는 죽은 것과 같다. 팔팔 살아 있는 곳
을 보려고 하느냐? 설두스님의 "차 달이는 화로를 뒤엎어버렸어
야지"라는 말을 살펴보라.
제49칙
삼성의 금빛 물고기[三聖金鱗]
[수시]
종횡으로 뚫고 다니며 적장의 북과 깃발을 빼앗으며, 백겹 천
겹 포위망도 앞뒤를 잘 살펴 적절하게 빠져나오며, 범의 머리에
걸터앉고 범의 꼬리를 잡는 솜씨가 있어도 아직 작가 선지식은
못 된다. 우두(牛頭)귀신이 사라지자 마두(馬頭)귀신이 다시 오
는 듯한 신출귀몰이라도 기특할 게 없다. 말해보라. 뛰어난 사
람[過量底人]이 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삼성(三聖)스님이 설봉(雪峰)스님에게 물었다.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미끼로 해서 잡을
까요?"
-종횡으로 자재하구나. 물음이 몹시 건방지군. 그대 스스로가 알아야지.
왜 이를 다시 묻는가?
"그대가 그물에서 빠져나오거든 말해주겠다."
-남의 위신을 되게 깎아내리는구나. 작가 종사는 천연스레 자재하다.
"1천5백 인이나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는구나."
-번개같이 빠르군. 뭇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멋대로 날뛰는군.
"노승은 주지의 일이 바쁘다."
-승부에 놀아나지 않는군. 한 수 봐줬다. 이 말이 가장 독살스럽다.
[평창]
설봉스님과 삼성스님이 이처럼 들락날락하며 한 번 내지르고
터지고 주고받았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말해보라. 이 두 분
의 큰스님은 어떤 안목을 갖추었는가를. 삼성스님은 임제스님의
가르침을 받고서 여러 총림을 두루 편력하였는데 어디에서나 그
를 큰스님으로 대접하였다. 그의 물음을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
들이 대답하려 했지만 찾지 못했다. 결코 이성(理性)이나 불법
(佛法)에도 관계하지 않는다. 대뜸 "그물을 뚫고 나온 물고기는
무엇을 먹느냐?"고 물었다. 그의 의도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말해보라.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평소에 향기로운
미끼를 먹지 않는다. 참 모를 일이다, 무엇으로 미끼를 해야 할
까? 설봉스님은 작가인터라 무심하게 열 푼 중에 한두 푼 정도
로 그에게 응수하였다.
"그대가 그물에서 빠져나오거든 말해주겠다."
분양(汾陽)스님은 이를 해답을 드러낸 물음[呈解間]이라 하였
고 조동종에서는 이를 현상을 빌린 물음[借事間]이라 하였다.
이는 뛰어난 사람이어야만 완전한 수용[大受用]을 얻고, 정수리
에 안목이 있어야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라고 할 것
이다. 그러나 설봉스님이 작가인데야 어찌하랴. 참으로 상대의
체통을 깎아내리는군. 그러므로 대뜸 "그대가 그물을 ㄷ고 나오
거든 말해주겠다"고 하였다.
이 두 사람을 살펴보면 각기 영역을 거머쥐고 만 길 벼랑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 만일 삼성스님이 아니었다면 이 한마디를
듣고서 아무 말도 더 이상 못했을 것이지만 삼성스님 또한 작가
인터라 그에게 "1천5백 인이나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
시네"라고 말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설봉스님 또한 곧바
로 "노승은 주지의 일로 바쁘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좀 거칠었
다 하겠다.
작가들이 서로 만나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고, 상대
가 강하면 약해지고 상대가 미천하면 스스로는 고귀하게 상대하
니, 그대들이 승부로 이를 이해한다면 꿈에도 설봉스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을 살펴보면 처음엔 고고하고 당당한 기상
을 지녔더니만 끝에 가서는 모두가 어물어물하였다. 말해보라.
그래도 얻고 잃음, 이기고 짐이 있는가를. 그들 작가가 주고 받
은 것은 결코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삼성스님은 임제스님에게 있을 때 원주(院主) 소임을 맡았는
데 임제스님이 입적하려는 즈음에 설법하였다.
"내가 떠난 뒤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잃지 말라."
삼성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어찌 감히 스님의 정법안장을 잃겠습니까?"
"이후에 어느 사람이 너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삼성스님이 대뜸 일갈(一喝)을 하자 임제스님은 말하였다.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비구대에서 사라지게 될 줄이야."
삼성스님이 곧 절을 올렸다. 그는 참다운 임제스님의 아들이
기에 감히 이처럼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설두스님이 맨 끝에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에 대
해서 송을 하여 작가가 서로 뜻이 맞았던 것을 나타내보였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그물을 뚫는 황금빛 물고기,
-일천 병사는 얻기 쉬우나 한 장수는 구하기 어렵다. 그런 물고기가 있는
가? 모든 성인이라도 어찌할 수 없다.
물 속에 있다고 말하지 말라.
-저 구름 밖에 있구나. (물고기가) 파다닥 파다닥. 바보짓을 하지 않았으
면 좋겠다.
하늘을 흔들고 땅을 휘저으며
-작가로군. 그것이 기특한 것은 아니다. 봐준들 또한 뭐 어떻겠는가?
지느러미를 떨치고 고리를 흔드네.
-어느 누가 감히 그 핵심을 알랴. 뽐내며 나오더니만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고래가 뿜어대는 거대한 파도는 천 길이나 날고
-저쪽을 돌아 지나가버렸다. 대단하구먼. 온 대지 사람들을 한 입에 모두
삼켜버렸다.
진동하는 우레 소리에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난다.
-눈과 귀가 있어도 귀먹은 듯 눈먹은 듯하다. 오싹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
는가?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남이여!
-어디냐? 쯧쯧!
천상과 인간에 아는 사람 몇일는지.
-설봉스님은 앞에 굳게 진을 치고 삼성스님은 뒤편에 굳게 진을 치고 있
으니, 공격해본들 무얼 하려고?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그대들은
어느 곳에 있느냐?
[평창]
"그물을 뚫는 황금빛 물고기, 물 속에 있다 말하지 말라"는데
대해, 오조스님께서는 "이 한 구절에서 송을 완전히 다 끝냈다"
고 하였다. 그물을 뚫는 황금빛 물고기라면 어떻게 물에 갇혀
살랴? 반드시 거대한 파도가 아득하고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
거리는 곳에 있을 것이다.
말해보라, 하루종일 무엇을 먹겠는가를.
여러분은 선상에 앉아 핵심을 거머쥐도록 하라.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이 일'을 상황에 적절하게 거량한 것
이다"하였다. 황금빛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떨치고 꼬리를 뒤흔
들 때 하늘과 땅이 흔들리며, 고래가 내뿜는 거대한 파도는 천
길이나 높이 난다. 이는 삼성스님이 했던 "1천5백 인이나 거느
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른다"는 말을 노래한 것인데 이는 고래
가 뿜어내는 거대한 파도의 기상과도 같다.
"진동하는 우레 소리에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난다"는 것은
설봉스님이 "노승은 주지의 일이 번거롭다네"라는 말을 노래한
것인데, 이 또한 우레가 진동하는 한 소리에 맑은 회오리 바람
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하겠다. 이는 그들 모두가 작가였다는
점을 노래한 것이다.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남이여! 천상과 인간에 몇 사람이나
알는지"라고 하였다. 말해보라, 이 한 구절의 귀착점은 어디에
있을까? 회오리 표(飇)자는 바람을 말한다. 맑은 회오리 바람
일어날 때는 천상과 인간에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제 50칙
운문의 진진삼매[雲門塵塵三昧]
[수시]
단계를 건너뛰고 방편을 초월하여 기틀마다 서로 호응하고 구
절마다 서로 투합된다 하더라도, 큰 해탈문에 들어가 큰 해탈의
작용을 얻지 못했다면 어떻게 불조를 저울질하고 종문의 귀감이
될 수 있겠는가? 말해보라, 문제의 핵심에 직면해서는 단도 직
입적이고, 역순(逆順)의 경계에 종횡하나, 그것을 초월하는 구
절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는지. 거량해보리라.
[본칙]
어떤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진진삼매(塵塵三昧)입니까?"
-천하의 납승 모두가 여기에서 소굴을 판다. 입안 가득히 서리를 머금어
딱 얼어붙었다. (흙을 던지고 모래를 던져) 공격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
는가?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이니라."
-포대 속에 송곳을 넣어두었구나. 황금과 모래가 뒤섞여 있다. 점점 잘못
되는군. 함원전(含元殿)에서 장안이 어디냐고 묻지 말라.
[평창]
이를 알 수 있느냐? 만약 알 수 있다면 운문스님의 급소를 여
러분이 거머쥘 수 있겠지만, 알 수 없다면, 여러분의 급소가 운
문스님의 손아귀에 있을 것이다.
운문스님에게는 못을 자르고 무쇠를 끊는 구절이 있으며 이
한 구절에는 삼구(三句)를 갖추고 있다. 어느 사람이든 묻기만
하면 바로 "바리때 속의 밥톨은 알알이 모두 둥글고 물통 속의
물은 방울방울 모두 축축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이해한다
면 결코 운문스님이 수행인을 지도하는 핵심을 보지 못할 것이
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
-들통났다. 덤벼든들 무엇하려고? 3년을 양치질해야 할 것이다.
말많은 스님이라도 주둥이를 떼기 어려우리라.
-혀끝을 움츠렸군. 법을 아는 사람이라야 두려운 줄 안다. 무엇 때문에
이처럼 거량했을까?
북두성, 남극성의 위치는 있을 자리에 있는데
-동쪽이니 서쪽이니 하여 무엇 하려고? 앉고 서는 것이 엄연하다. 키 큰
사람은 법신도 크고 작은 사람은 법신도 작지.
하늘까지 넘실거리는 흰 물결은 평지에서 일어난다.
-벌써 발이 깊이 빠졌구나. 손님과 주인이 서로 바뀌었다. 갑자기 그대의
머리 위에 있다면 그대는 어떻게 하려는가? (원오스님은) 쳤다.
헤아릴까, 말까?
-아이고, 아이고. 쯧쯧!
그만둘까, 할까?
-무슨 말을 하느냐? 다시 쓰라린 원한만 더하는군.
(가난해서) 속옷도 없는 장자(長者)의 아들이로다.
-참으로 야멸차지 못하군. 옆에서 제삼자가 피시식 웃는다.
[평창]
설두스님은 앞(제 11칙)에서 운문스님이 하신 '대일설(對一
說)'에 대해서 "상황에 딱 맞게 하신 말씀[對一說]이여, 너무나
고고[孤絶]하여 구멍 없는 철추로 거듭 쐐기를 박았다"하였고,
뒤이어 마조(馬祖)스님이 하신 "4구를 떠나고 100비를 끊는다
[離四句絶百非]"는 것에 대하여 "지장스님의 머리는 희고 회해
스님의 머리는 검구나. 눈 밝은 납승이 알려 해도 되지 않는다"
고 송하였는데, 이 공안에서 깨치면 이 송도 알게 될 것이다.
설두스님은 첫머리에서 "바리때 속의 밥, 물통 속의 물"이라
하니 말 속에 심금을 울리는 메아리가 있고 구절에 기틀이 나타
나 있다.
"말많은 스님이라도 주둥이를 떼기 어려우리라"고 하여, 이어
서 그대들에게 설명해준 것이다. 그대들이 여기에서 현묘한 도
리를 구하려고 헤아리면 더더욱 주둥이를 떼기가 어렵게 될 것
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여기에서 모두 해결됐다. 그러나 그는
자애로워서 이처럼 앞에서 먼저 방향을 설정해주고, 대중 가운
데 안목을 갖춘 이가 이를 엿볼까 염려하고, 이어서 한 수 봐주
어 초심자를 굽어살펴, "북두성은 변함없이 북쪽에 있고 남극성
은 변함없이 남쪽에 있다"는 송을 지어 사람에게 보여준 것이
다.
그러므로 "북두성, 남극성은 있을 자리에 있는데, 하늘까지
넘실대는 흰 물결은 평지에서 일어난다"고 하였다. 갑자기 평지
위에서 파란을 일으킨다면 어찌하겠는가? 이를 자기 본분사[事
上]에서 엿본다면 쉽겠지만 사량분별로 찾는다면 끝까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마치 무쇠말뚝과 같아 흔들어 뽑으려 해
도 뽑히지 않으며, 주둥이를 떼려 해도 안 되는 것이다. 그대들
이 여기에서 머뭇거리며 헤아린다면, 알려 해도 알지 못하며 그
치려 해도 그치지 못하고 어리석음만을 어지러이 들추어낼 것이
다. 바로 이것이 "(가난하여) 속옷도 없는 장자(長者)의 아들"
인 것이다.
한산시(寒山詩)는 다음과 같다.
세상에 나서는 갖가지 고생
그 속에서 괜히 이러쿵저러쿵.
재주가 있어도 초야에 버려지고
세도가 없으니 사립문도 잠궜어라.
해가 솟아도 바윗굴은 어둡고
연기가 사라져도 골짜기는 황혼이라.
그 가운데 장자의 아들
모두가 (가난하여) 속옷도 없구나.
불과원오선사벽암록 권제5
제 51칙
암두의 최후의 언구[巖頭末後句]
[수시]
시비가 생기자마자 혼란스러워 마음을 잃게 되고, 단계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또한 알 수 없다. 말해보라. (설명을) 늘어놓
아야 할까 아니면 그만두어야 할까? 여기에 이르러서 실오라기
만큼이라도 알음알이가 있어, 말에 막히고 기연이나 경계에 얽
매인다면, 모두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은[依草附木] 것처럼
허망한 짓이 될 뿐이다. 설령 완전히 벗어난 상태에 이르렀다
하여도 만 리나 떨어진 곳에서 고향을 바라보는 것과 같을 뿐이
다. 이를 알겠느냐? 아직 알지 못했다면 (설명이 붙여지지 않는
채로) 그대로 있는 공안을 깨치도록 하라! 거량해보리라.
[본칙]
설봉스님이 암자에 주석할 때에 두 스님이 찾아와 예배를 하자,
-무엇 하느냐? (두 놈의 죄를) 똑같은 죄목으로 판결하라.
설봉스님은 그들을 보고서 암자 문을 열고 몸을 내밀면서 말
하였다.
"뭐냐?"
-귀신같이 잘도 보는군. 구멍 없는 피리이다. 꽉 들이받았다.
객스님 또한 "뭐냐?"하고 말하자,
-진흙으로 만든 탄환이로군. 방음 장치가 된 판때기[氈拍板]이다. 화살과
칼날이 서로 버티고 있는 것처럼 절묘하군.
설봉스님은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되돌아가버렸다.
-물렁물렁한 진흙 속에도 가시가 있다. 마치 용에게 발이 없고 뱀에게 뿔
이 돋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는 어떻게 손을 대기 어렵네.
그 스님이 그 뒤 암두(巖頭)스님 처소에 이르자,
-(암두스님에게) 물어봐야만 되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어야 알 것이다.
암두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반드시 작가 선지식이라야만 대답할 것이다. 이놈이 번번이 실패한다.
(설봉스님과 함께) 동참한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이 객승을) 그냥 놓쳐
보낼 뻔했다.
"영남(嶺南) 지방에서 왔습니다."
-무슨 소식을 전하려고 왔느냐? 반드시 이 소식을 밝혀야 한다. 설봉스님
을 보았느냐?
"설봉스님한테는 갔다 왔느냐?"
-속셈을 감파해버린 지 오래이니 가보지 않았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
"갔다 왔습니다."
-진실한 사람 만나기 어렵다. 양쪽(설봉스님과 암두스님)에서 모두 헤어
나지 못했군.
"무슨 말을 하더냐?"
-결국은 이런 꼴이 되고 마는군.
스님이 지난날에 했던 대화를 말씀드리자,
-결국은 이런 꼴이 되고 마는군. 거듭거듭 잘못하는구나.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그가 무슨 말을 하더냐?"
-바로 때려쳤어야 옳지. 콧구멍(급소)을 잃어버렸다.
"설봉스님은 아무런 말씀 없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또 졌구나! 그대들은 말해보라, 설봉스님이 뭐라고 했는지를.
"아-아,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일러주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큰 파도는 아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그에게 일러주었더라면 천하 사람들이 설봉스님은 어찌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문둥이가 짝을 끌고 가는구나. 꼭 그렇지 않다. 수미산이라도 부서질 것
이다. 말해보라, 그의 올가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그 스님이 여름 안거[夏安居] 끝에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
시 들추어내어 법문을 청하였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도적이 가버린 지 한참되었다. 도적이 떠
난 뒤에 활을 당기는 격이군.
"왜 진작 묻지 않았느냐?"
-선상(禪床)을 들어 엎어버렸어야 옳았다. 벌써 지나가버렸다.
"감히 쉽게 여쭙지 못했습니다."
-이 방망이를 이 스님에게 먹였어야 한다. 콧수멍을 뚫어버렸다. (하안거
동안) 감옥 속에 틀어박혀 못된 지혜만 키웠구나. 두 번 거듭된 잘못이다.
"설봉스님이 나와 한 가지(덕산스님의 제자이므로)에서 나기
는 했으나, 나와 똑같지는 않다."
-하늘과 땅을 뒤덮었군.
"말후구를 알고저 하는가? 다만 이것뿐이다."
-같은 배 탄 사람들을 모두 속이는군. 나 원오는 믿지 않는다. 하마터면
구별하지 못할 뻔했다.
[평창]
종문의 가르침을 일으켜 세우려면, 반드시 당면한 문제의 핵
심을 분별하여 진퇴와 시비를 알아야 하며 죽이고 살리며 잡고
놓아줌을 밝혀야 한다. 만일 눈동자를 갖추지 못했으면서, 이러
쿵저러쿵 묻기도 하고 대답하기도 한다면, 목숨을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맡긴 거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결코 모른 것이다.
그런데 설봉스님과 암두스님은 모두 덕산(德山)스님 밑에서
동참수학했다. 그 객스님은 설봉스님을 참방하고서도 그 느낀
바가 그저 그랬고 암두를 뵙고서도 눈꼽만치도 깨치지 못하였
다. 부질없이 두 노스님을 번거롭게 하면서 묻고 답하고 사로잡
고 놓아주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천하인에게 까다롭고 배배 꼬이
게 하여 이를 밝히려 해도 밝힐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말해보라, 까다롭고 배배 꼬인 곳이 어디에 있는가를. 설봉스
님이 두루 총림을 편력하긴 했으나 나중에 오산(鰲山)의 주막에
서 암두스님의 한마디에 격발되어 의심 덩어리를 완전히 끊고
크게 사무칠 수 있었던 것이다.
암두스님은 그 뒤 사태(회창법란)를 만나 어느 강가[鄂渚湖]
에서 뱃사공이 되었는데 강의 양쪽 언덕에 각기 판자 하나를 걸
어 놓고 사람이 와서 판자를 두드리면, 암자스님은 "그대는 어
느 쪽으로 가려고 하느냐?"고 묻고 갈대 숲 사이에서 노를 흔들
면서 나왔었다.
설봉스님은 영남으로 돌아가 암자에 주석하게 되었는데, 객스
님도 오랫동안 참구했던 사람이었다. 설봉스님은 그가 오는 것
을 보고 암자 문을 열고 몸을 내밀면서 "뭐냐?" 말하였다. 요즈
음 사람에게 이렇게 물으면 대뜸 뭐라고 뭐라고 말했을텐데, 이
스님은 또한 괴짜였다. 도리어 그에게 "이 뭐냐?"라고 하자, 설
봉스님이 머리를 숙이고 암자로 되돌아가버렸다. 더러는 이를
"말없는 이해"라 하나, 이 스님이 어떻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
이었다.
어떤 사람은 "설봉스님이 이 스님에게 한 번 질문을 당하고
곧 아무런 말씀 없이 암자로 돌아가버렸다"고 말하지만, 설봉스
님에게 목숨을 노리는 날카로운 곳이 있었음을 참으로 모른 것
이다. 설봉스님이 비록 적절하기는 했다. 그러나 몸은 숨겼지만
그림자가 나타난 것을 어찌하랴.
이 스님이 그 뒤 설봉스님을 하직하고 이 공안에 대해서 암두
스님에게 물어보려고 그곳에 도착하자, 암두스님이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영남에서 왔습니다."
"설봉스님을 만나봤느냐?"
이 물음의 뜻을 알아차리려거든 단박에 착안해야만 한다. 스
님은 말하였다.
"만나보았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이 또한 괜히 해본 말이 아닌데 이 스님은 미처 깨닫지 못하
고, 그저 그의 말에 휘둘리고 말았다. 이에 암두스님이 말하였
다.
"그(설봉스님)가 무슨 말을 하더냐?"
"그는 머리를 숙인 채 아무런 말없이 암자로 돌아가버렸습니
다."
그 객스님은 암두스님이 짚신을 신고 자신의 마음 속을 몇 바
퀴나 돌았는지 전혀 알지못했던 것이다.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아-아, 처음 설봉스님을 만났을 때 그에게 뒷 부분의 한마디
를 일러주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럽다. 그에게 일러주었더라면
천하 사람들이 설봉스님을 어찌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암두스님도 강한 자(설봉스님)를 부추기고 약한 자(객스님)는
도와주지 않았다. 이 스님은 여전히 깜깜하여 흑, 백을 분별하
지 못한 채 마음 속 가득히 의심을 품고서 "설봉스님이 모르더
군요"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였다.
여름 안거 끝에 전에 말했던 대화를 말씀드리면서 암두스님에
게 다시 법문을 청하자,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왜 진작 묻지 않았더냐?"
암두스님에게 꾀가 생긴 것이다. 객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
다.
"감히 쉽사리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설봉스님이 나와 같은 가지에서 나오긴 했으나 나와 똑같지
는 않다. 말후구를 알고저 하느냐? 다만 이것이니라."
암두스님은 너무 눈썹[眉毛]를 아끼지 않고 자세하게 말해주
었다. 여러분은 결국 이를 어떻게 이해하려는가?
설봉스님이 덕산스님의 회상에 있으면서 밥짓는 일을 하였는
데 하루는 공양이 늦자 덕산스님이 바리때를 들고 법당으로 내
려오니 설봉스님이 말하였다.
"종도 울리지 않았고 북소리도 나지 않았는데 이 늙은이가 어
디로 바리때를 들고 가는가?"
덕산스님은 아무런 말없이 머리를 숙인 채 방장실로 돌아가버
렸다.
설봉스님이 이를 암두스님에게 말하자 암두스님은 말하였다.
"아이고 가엾게도 덕산스님이 뒷부분의 한마디를 몰랐구나."
덕산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시자에게 그를 방장실로 불러오게
한 후 물었다.
"네가 노승을 인정하지 않느냐?"
암두스님이 가만히 그 뜻을 아뢰자, 덕산스님이 다음날 상당
(上堂) 법문을 했는데 평소와 같지 않았다.
암두스님은 승당(僧堂) 앞에서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
였다.
"반갑구나! 말후구를 알았구나. 이제부터는 천하의 그 누구도
덕산스님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3년뿐이
다."
이 공안 가운데 설봉스님은 덕산스님이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서 아주 적절했다고 여겼겠지만 도둑을 붙잡았음을 몰랐던 것이
다. 그는 일찍이 도둑을 붙잡았기에 뒤에 와서 도적을 놓아줄
줄 안 것이다. 그러므로 옛사람[樂普山 元安스님]이 말하기를
"맨 마지막에서 한 한마디가 비로서 견고한 관문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암두스님이 설봉스님보다 훌륭하다"고 하
지만 이는 잘못 안 것이다.
암두스님은 항상 이 기틀을 사용하여 대중 법문을 하였다.
"눈 밝은 놈은 (집착의) 소굴에 빠지지 않아, 외물을 물리치는
것을 으뜸으로 삼고 외물을 좇는 것을 하급으로 삼는다." 이 말
후구는 설령 (달마) 조사를 친견하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덕
산스님이 공양이 늦어져 늙은이가 몸소 바리때를 들고 법당으로
가자, 암두스님은 "가엾게도 덕산스님이 아직 마지막 뒷부분의
한마디를 모르고 계시구나"라고 하였는데, 설두스님이 이를 염
(拈)하였다.
"일찍이 애꾸눈 용[獨眼龍 : 明招德謙스님]이 말하는 것을 들
었더니, 원래 외알눈[一雙眼]만 갖추었을 뿐이다. 이는 덕산스
님이 이빨 빠진 호랑이임을 참으로 모른 것이다. 만일 암두스님
이 이를 알고서 깨뜨려주지 않았더라면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
음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여러분은 말후구를 알고저 하는가? 늙
은 오랑캐 (달마스님)가 알았다고는 인정해도 깨쳤다고는 인정
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공안은 가시덤불처럼 천차만별이니, 그대
들이 이를 철저히 사무치게 터득한다면 천하 사람들이 당해낼
수 없으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곧 그대의 가르침을 받을 것이
다.
그대들이 아직 철저히 깨치지 못했으면, 암두스님이 말한 "설
봉스님이 나와 같은 가지에서 나오긴 했으나 나와는 다르다"는
말을 참구하라. 이 한 구절에 몸을 벗어날 곳이 있을 것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마지막 한마디를
-언어 이전의 소식인걸! 참되다고 말하려 했더니만 쯧쯧. 보려고 했다가
는 눈이 멀고 만다.
그대에게 말하노니
-혀가 땅에 떨어졌다. 말로 할 수 없다. 머리만 있고 꼬리가 없으며 꼬리
만 있고 머리가 없다.
밝음과 어둠이 쌍쌍으로 어울리는 시절이구나.
-말많은 노인이군. 소에 뿔이 없고 호랑이에 뿔이 돋는 것과 같다. 이것
도 쌍쌍, 저것도 쌍쌍.
같은 가지에서 나온 것은 모두 알지만
-이 무슨 종족일까? 피차가 서로 관계가 없군. 그대는 남쪽 소상(瀟湘)으
로, 나는 북쪽 진(秦)나라로 간다.
죽음을 달리한다는 것은 전혀 모르는군.
-주장자가 나의 손에 있는데 어찌하여 산승(원오스님 자신)을 괴이하게
여기는가? 그대들은 어찌하여 목숨을 남의 손에 쥐어주었는가?
까맣게 모르는군.
-한 방 얻어맞고 싶냐? 알 리가 없고말고.
석가와 달마도 잘 분별해보아야만 알 수 있네.
-온 대지 사람들이 칼을 잃고 혀가 끊어졌네. 나는 이렇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 늙은 오랑캐가 알았다고는 인정할 수 있어도 깨쳤다고는
인정치 않겠다.
남북동서로 돌아가련다.
-수습했다. 발 아래 오색 실을 두루고 있다(설두스님이 아직 자취를 못
버리네그려). 그대의 주장자를 빌려다오.
한밤중에 일천 바위를 뒤덮은 흰 눈을 함께 보노라.
-아직 반 정도뿐이다. 저 대지에 눈이 질펀하듯 많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
고 아는 사람이 없구나. 눈먼 놈들이다. 말후구를 알았느냐? (원오스님
은) 탁 쳤다.
[평창]
"말후구를 그대에게 말하노니"라고 하여 설두스님이 이 말후
구를 송(頌)해준 것은 그 수준을 아주 낮추어 상대를 위한 것이
었다. 이에 송을 지어 노래하기는 했으나 털끝만큼 조금 노래했
을 뿐이니, (말후구를) 투철히 사무치기에는 아직도 미흡하다.
다시 크게 입을 벌리어 말하기를 "밝음과 어둠이 쌍쌍으로 어
울리는 시절이구나"는 그대들에게 아주 가느다란 (방편의) 길을
터놓은 것이며, 그대들을 위하여 한 구절[一句]로 송하여 몽땅
끝내버린 것이다. 그리고 끝에서 다시 (흰 눈이 어떻다는 등)
주석을 붙였다. 이는 다음 경우와 같은 것이라 하겠다. 초경(招
慶)스님이 어느 날 나산(羅山)스님에게 물었다.
"암두스님이 이렇고 저렇다(같은 가지에세 태어나고......)고
하는데 이 무슨 뜻입니까?
나산스님이 "대사!"하고 불러서, "네!"하고 대답하니, 나산스
님은 말하였다.
"한편으론 밝기도 하고 한편으론 어두운 것이요."
그러자 초경스님이 감사의 절을 올리고 갔다가 사흘이 지난
뒤에 또다시 물었다.
"전일에 스님께서 베푸신 자비를 입긴 했으나 간파하지 못하
였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그대에게 일러주었다."
"스님께서는 분명하게 설명해주십시오."
"그렇다면 대사께서 의심하는 곳에서 물어보시오."
"한편으로 밝기고 하고, 한편으론 어둡기도 한 것이란 무엇입
니까?"
"같이 나기도 하고, 같이 죽기도 한 것입니다."
초경스님은 그 당시 감사의 절을 올리고 떠나갔다.
그 뒤 어떤 스님이 초경스님에게 물었다.
"같이 나기도 하고 같이 죽기도 할 때는 어떠합니까?"
"개 주둥이 닥쳐라."
"대사께서도 입 닥치고 공양이나 드시지요."
그 스님이 다시 나산스님에게 찾아와 물었다.
"같이 나서 같이 죽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뿔 없는 소와 같은 격이지."
"같이 나기도 하고, 같이 죽기도 할 때는 어떠합니까?"
"호랑이에게 뿔이 있는 것과 같다."
말후구란 바로 이러한 도리이다.
나산스님의 회하에서 어떤 스님이 이것을 다시 초경스님에게
묻자, 초경스님이 말하였다.
"너나 나나 모두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동승승주(東勝昇
洲)에서 한마디 하면 서구야니주(西瞿耶尼洲) 사람도 알고, 천
상에서 한마디를 말하면 인간에서도 알아, 마음과 마음끼리 서
로 알며, 마주 보고 서로 알기 때문이다."
"같은 가지에서 났다"는 것은 그래도 알기 쉽지만, "죽음은
달리한다"는 것은 전혀 알 수 없으니, 석가와 달마가 알려고 해
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남북동서로 돌아가련다"는 것은 그래도 조금 나은 경계가 있
다 하겠다.
"한밤중에 일천 바위를 뒤덮은 흰 눈을 함께 보노라"고 하였
는데, 말해보라, 이는 밝음인지 어둠인지, 같은 가지에서 나온
것인지, 같은 가지에서 죽은 것인지를.
안목을 지닌 납승이라면 이를 분별해보도록 하라.
제 52칙
조주의 돌다리[趙州石橋]
[본칙]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물었다.
"조주스님 돌다리의 소문을 들은 지가 오래인데 막상 와 보니
외나무다리[略 ]뿐이군요."
-그래도 호랑이 수염을 잡아당기는 사람이 있었군. 이 또한 납승
의 본분 일이다.
"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보았을 뿐, 돌다리는 보질 못했군."
-노련하게도 틈을 찌르네. 이 늙은이가 (지도해주느라고) 몸을 다 바쳐버
리는구나.
"어떤 것이 돌다리입니까?"
-낚시에 걸렸군. 과연 예상했던 대로군.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
-일망타진해버렸구나. 온 누리 사람들이 숨도 내쉬지 못하고 마는군. 한
번 죽으면 다시는 살지 못한다.
[평창]
조주(지금의 河北省) 땅에는 돌다리가 있었는데 이는 이응(李
膺)이 만든 것이라 하며 지금까지도 천하에 유명하다. 약작(略
)이란 외나무다리를 말한다.
이 스님은 조주스님의 체통을 깎아내리려는 의도에서 물었다.
"조주 땅의 돌다리의 소문을 들은 지가 오래인데, 막상 와 보
니 외나무다리뿐이군요."
"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보았을 뿐, 돌다리는 보질 못했군."
그 스님의 물음을 그저 평소에 하던 이야기였지만, 조주스님
이 이를 가지고 그를 낚자 스님은 과연 낚시에 걸려들었다. 그
의 질문에 이어서 대뜸 물었다.
"어떤 것이 돌다리 입니까?"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지."
참으로 말 가운데 몸을 벗어날 곳이 있다 하겠다. 조주스님이
몽둥이질을 하거나 덕산스님이 소리를 질렀던 것과는 달리 말로
써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였다. 이 공안을 잘 살펴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기봉(機鋒)을 겨루는 듯하다. 그렇지만 접근하기가 몹시
어렵다.
하루는 수좌와 함께 돌다리를 구경하다가 수좌에게 물었다.
"누가 만들었는가?"
"이응이 만들었습니다."
"만들 때 어디부터 손을 댔는가?"
수좌가 말이 없자 조주스님은 말하였다.
"평소에는 '돌다리 돌다리' 잘도 말하면서도 물으니 손을 댄
곳도 모르는구나."
또 하루는 조주스님이 땅을 쓸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선지식이신데 어떻게 해서 티끌이 있습니까?"
"바깥에서 온 것이다."
그러자 다시 물었다.
"청정한 가람에 어떻게 해서 티끌이 있습니까?"
"여기 티끌 한 점(질문하는 스님이) 또 있구려."
"어떤 것이 도(道)입니까?"
"저 담 너머에 있다."
"이런 길을 묻지 않고 대도(大道)를 물었습니다."
"큰 길은 장안(長安)으로 뚫려 있지."
조주스님은 이러한 기봉(상대를 일깨우는 말)만을 쓰는 경향
이 있다. 그는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
을 지도하되, 칼날을 상하거나 손을 다치지 않았다. 반드시 고
준(孤峻)하여 이상과 같이 기봉을 매우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
었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고고하게 위세를 부리지 않지만 도는 드높나니,
-모름지기 이런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될 것이다. 그 말씀 아직도 귓전
에 맴돈다. 본분납자를 지도하는 것일랑은 조주스님에게 맡겨라.
바다에 들어가면 반드시 큰 자라를 낚아야지.
-요새가 되는 나루터에 딱 버티고 있으니 범부도 성인도 왕래하지 못한
다. 새우나 소라는 물을 게 못 되지. 대장부는 (오직 조주 한 명일 뿐)
두서넛 있을 수 없지.
우습다, 같은 시대의 관계(灌溪 : ? ~ 895)스님이여!
-또 이런 사람이 있어 이처럼 찾아와, 이같은 기관을 사용하는 솜씨가 있
었구나.
쏜살 같은 급류라고 말할 줄은 알았지만 부질없는 헛수고였네.
-조주스님에 비하면 아직도 반 정도에 불과하다. 비슷하기는 해도 옳지는
않다.
[평창]
"고고하게 위세를 부리지 않지만 도는 드높다"는 것은 설두스
님이 평소에 사람을 지도할 때 현묘(玄妙)함과 고고함을 내세우
지 않았던 조주스님을 노래한 것이다. 이는 총림에서 흔히 말하
는 "허공을 타파하고 수미산을 쳐부수며, 바다 밑에 티끌이 일
고 수미산에 파도가 쳐야 조사의 도에 걸맞다"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설두스님은 "고고하게 위세를 부리지 않지만 도는 드높
다"고 말했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만 길 벼랑에 서서 불법의 기특한 영험을 나
타내는 것이 비록 고고하고 높다고 하겠지만, (조주스님은) 고
고함을 세우지 않아도 평상시 자연스럽게 또굴또굴 매끈하게 수
행자를 제접한다. 위세를 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위엄스레 되고
높이지 않아도 저절로 높아지며, 상대방과의 주고받는 말[機]
속에서 고고함이 우러나와 현묘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바다에 들어가면 큰 자라를 낚아야 한다"고 말하였
다. 안목을 갖춘 종사(조주스님)께서는 무심히 말을 한마디 하
거나 한 기틀을 써서, 새우나 소라는 낚지 않고 대뜸 큰 자라를
낚아올리니 참으로 작가답다. 이 한 구절로써 앞의 공안을 밝혀
준 것이다.
"우습다, 같은 시대의 관계스님이여!"라고 하였는데 듣지 못
하였는가? 어떤 스님이 관계스님에게 물었다.
"관계스님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막상 와 보니 삼[麻]이
나 축일 정도의 작은 웅덩이로군."
"그대는 삼 축일 정도의 작은 웅덩이만 보았지, 관계는 보질
못했네."
"어떤 것이 관계입니까?"
"쏜살 같은 급류이지."
또 어떤 스님이 황룡스님에게 물었다.
"황룡스님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막상 와 보니 능구렁이
[赤斑蛇]만 보이는군요."
"그대는 능구렁이만 보았지 황룡은 아직 보질 못했군."
"어떤 것이 황룡입니까?"
"굽이굽이 서려 있지."
"갑자기 금시조(金翅鳥 : 용을 잡아 먹는 새)를 만났을 때는
어떻습니까?"
"목숨을 보존하기 어렵겠지."
"그렇다면 그 금시조를 만나면 먹히겠군요."
"그대의 공양에 감사드리오."
이상의 얘기는 모두가 고고한 경지를 세운 것이니 옳기는 옳
다 하겠지만 너무나 힘(인위적 조작)을 쓴 것이므로 조주스님이
평상시 했던 것과는 같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쏜살같은 급류라 말할 줄은 알았지만 부질없는 헛수고였다"고
말한 것이다. 관계스님과 황룡스님과의 경우는 그만두고라도 조
주스님이 말한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넌다"는 것을 어떻게 이
해해야 할까? 가려보아라.
제 53칙
마조의 들오리[馬祖野鴨]
[수시]
온 세상 어디에도 감추지 못하고 완벽한 기봉을 드높이 드러
내며, 어디에도 막힘이 없어 한수 한수마다 몸을 벗어날 기틀이
있으며, 말마다 사심이 없어 사물마다에 살인의 뜻이 있다. 말해
보라, 옛사람이 필경에 어느 곳에서 쉬었는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마조(馬祖)스님이 백장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들오리가 날
아가는 모습을 보고
-시원찮은 두 놈들이 풀 속에서 헤매는군. 갑자기 돌아봐서 뭐하려는가?
스님이 "이게 뭐지?"라고 하니
-큰스님이라면 알아야 할텐데. 이 늙은이가 질문의 요지도 모르는군.
백장스님이 말하였다.
"들오리입니다."
-목숨이 이미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있구나. 오로지 죄상을 말했을 뿐
(판결은 아직 내리지 않았다). 두 번재 물음이 더 악랄하다.
"어디로 날아가느냐?"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벼운데 뒤에 쏜 화살이 깊이 박혔군. 두 번째
쪼아대니 마땅히 스스로가 알아야지.
"날아가버렸습니다."
-단지 그의 말만 쫓아다니다 보면 정통으로 빗나가버린다.
스님이 마침내 백장스님의 코끝을 비틀자,
-부모가 낳아준 이 목숨의 존망이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있다니.......
창끝을 되돌려 콧구멍을 찢어버리는구나.
백장스님이 고통을 참느라 신음하였다.
-이 아파하는 여기에 '그것'이 있군. 그래도 들오리라고 말하겠느냐? 참
으로 가려운 데를 알겠느냐!
스님은 말하였다.
"뭐 날아가버렸다고?"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 늙은이가 원래 귀신
굴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는군.
[평창]
바른 안목으로 살펴보면 백장스님은 정인(正因 : 佛性)을 갖
추었고 마조스님은 바람이 없는 데에서 풍랑을 일으켰다고 하겠
다. 여러분이 불조와 동등한 스승이 되고저 한다면 백장스님을
참구하여야 하고, 자신마저 구제하지 못하려거든 마조스님을 참
구하여야 한다. 옛사람들을 살펴보면 하루종일 '여기'에 마음을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백장스님은 어린 나이에 세속을 떠나 삼학(三學)을 두루 연마
하였는데 때마침 대적(大寂 : 마조스님의 시호)이 남창(南昌)
지방에서 교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마음을 다하여 그
에게 귀의하여 20년간 시자를 하였다. 그런 뒤에 다시 참방하였
을 때의 일할(一喝)에 처음으로 크게 깨쳤다. 요즈음 어떤 사람
은 "본디 깨달을 것이 없는데도 깨닫는 문을 괜히 만들어 이런
짓을 했다"고 말들 하나 이러한 견해는 마치 사자 몸에 있는 벌
레가 사자의 살을 갉아먹는 것과 같다. 듣지 못하였느냐, 옛사
람[管子]이 말하기를, "원천이 깊지 않으면 멀리까지 흐르지 못
하고 지혜가 크지 못한 자는 멀리 보지 못한다"고 한 것을. 만
일 깨침이 없는 데서 괜히 이런 일을 만든 것이라 한다면 어떻
게 오늘날까지 불법이 전해올 수 있었겠는가.......
살펴보면, 마조스님과 백장스님이 길을 가다가 날아가는 들오
리를 보았는데, 마조스님인들 들오리임을 왜 몰랐겠는가? 그렇
다면 무엇 때문에 그처럼 물었을까? 말해보라, 그의 의도가 어
디에 있었을까?
백장스님은 오로지 그의 뒤를 따라 걸었을 뿐이다. 마조스님
이 마침내 그의 콧구멍을 비틀자 백장스님이 고통을 참지 못하
고 신음하니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뭐 날아가버렸다고?"
이에 백장스님은 단박에 깨쳤다. 지금도 어떤 사람은 이를 잘
못 이해하고 이 이야기를 물어보면 '아야, 아야!'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좋아하시네. 뛰어넘질 못하는군.
종사께서 사람을 지도함에 모름지기 철저하게 가르친다. 그가
깨치지 못했음을 알고서는 칼날을 상하고 손을 다치면서도 그만
두질 않았다. 요는 백장스님이 '이 일'을 깨치도록 지도하는 데
있다. 깨치기만 한다면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대로 사용하겠지만
깨치지 못하면 세속 이치[世諦]에 말려들게 되는 것이다.
마조스님이 그 당시 코를 비틀지 않았더라면 세속 이치에 말
려들게 되었을 것이다. 모름지기 경계와 외연을 만나면 확 뒤집
어서 자기에게로 귀결시켜 온종일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도록 하
는 그것을 '성품의 자리[性地]가 명백하다'고 한다. 다만 풀에
의지하고 나무에 붙거나 (마치 종놈이) 나귀 앞에 섰다가 말 뒤
에 섰다가 하는 것 같은 (주체적이지 못한) 알음알이가 무슨 쓸
모가 있겠는가.
마조스님과 백장스님의 이와 같은 기용(機用)을 살펴보면 밝
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한[昭昭靈靈] 듯하나, 그렇다고 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한 곳에 안주하지는 않는다. 백장스님이
아픔을 참느라 신음소리를 냈다. 만일 이를 알아차리면 온 세상
어디에도 감추지 못하고 사물마다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
므로 "한 곳에 투철하면 천곳 만곳이 단박에 뚫린다"고 한다.
마조스님이 그 이튿날 상당 법문을 하였는데 대중들이 모이자
마자 백장스님이 나와서 방석을 말아버리니 마조스님은 곧 법좌
에서 내려와 방장실로 돌아가면서 백장스님에게 물었다.
"내가 아까 상당 설법도 하지 않았는데 너는 무엇 때문에 방
석을 말아 버렸느냐?"
"어제 스님에게 코끝을 비틀린 아픔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너는 어제 어느 곳에 마음을 두었느냐?"
"오늘은 코끝이 아프지 않습니다."
"너는 '오늘의 일'을 훤히 알았구나."
백장스님이 이에 절을 올리고 곧장 시자실로 돌아가 통곡을
하자, 함께 일하는 시자가 물었다.
"그대는 왜 통곡을 하느냐?"
"그대가 큰스님을 찾아가 물어보아라."
시자가 마조스님을 찾아가 묻자 마조스님은 말하였다.
"너는 백장에게 가서 물어보도록 하라."
시자가 다시 시자실로 돌아와 백장스님에게 물으니 백장스님
은 갑자기 껄껄대며 큰 소리로 웃었다. 이에 동료인 시자가 말
하였다.
"조금 전에는 통곡을 하더니만 지금은 무엇 때문에 웃는거
냐?"
"조금 전에는 통곡을 했지만 지금은 다시 웃는다."
이를 살펴보면 그는 깨친 뒤에는 자유자재하여 얽매임에서 벗
어나 자연히 영롱하게 빛났던 것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들오리여!
-무리를 이루고 떼거리를 지었군. 또 한 마리가 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군.
-무슨 수작이냐! 삼대 같고 좁쌀처럼 (자세하게 알려주네).
마조스님은 만나자 말을 걸었네.
-이러쿵저러쿵 말로 해서야 언제 끝마칠 기약이 있겠느냐? 말로 할 수 있
겠느냐! 오로지 마조스님만이 (백장스님이) 준수한 놈임을 알았다.
산, 구름, 바다, 달 등 온갖 것들에 대해 모두 말했으나
-동쪽 집(마조스님)의 국자 자루는 길고 서쪽 집(백장스님)의 국자 자루
는 짧다. 많이 말해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전히 모르고서 도리어 날아가려고 한다.
-할! 그가 말을 이해 못 했다고 말하지 말라. 어디로 날아갔는가?
날아가려 하는 순간
-목숨이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 있다. 이미 그에게 자세하게 일러주었다.
잡아들였네.
-노파심이 간절하군. 또다시 무엇을 말하느냐?
말해보라, 말해보라. (이 말은 설두스님의 착어임)
-무엇을 말하라고? 산승에게 말하라 해도 안 되며 들오리 울음소리를 내
서도 안 된다. 아이고, 아이고! 그 자리에서 삼십 방망이를 때렸어야 옳
다. 어느 곳으로 날아갔을까?
[평창]
설두스님의 첫머리에서 "들오리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
군"하고 노래하였는데, 말해보라. 몇 마리나 있었을까?
"마조스님은 만나자 말을 걸었네"라는 것은 마조스님이 백장
스님에게 "이게 뭐냐?"라고 묻자, 백장스님이 "들오리입니다"라
고 대답했던 것을 노래한 것이다.
"산, 구름, 바다, 달 등 온갖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
은, 백장스님에게 "어디로 갔느냐?"고 거듭 물어 그를 지도하고
자 하는 마조스님의 의지가 자연스럽게 고스란히 드러났는데도
백장스님이 여전히 모르고서 "날아가버렸다"고 말하여, 거듭 빗
나간 것을 노래한 것이다.
"날아가려 하는 순간, 잡아들였네"는 설두스님이 좌상에 의거
하여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다음에 "말해보라, 말해보라"라고
(설두스님이) 말했는데, 이는 설두스님이 몸을 한 번 피한 것이
다. 말해보라, 어떻게 말해야 할까를, 아픔을 참는 신음소리를
내도 잘못이며, 아픔을 참는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또한 어
떻게 해야 할까?
설두스님이 그처럼 매우 오묘하게 노래할 수는 있었지만 뛰어
넘지는 못했는데야 어찌하랴.
제 54칙
운문의 손을 펴보임[雲門展手]
[수시]
생사를 뚫고 나오며 기관(機關 : 조사들이 상대의 깨달음을
격발시켰던 사연)도 헤치고 나와 무심히 (우리를 속박하는) 무쇠
를 끊고 못을 자르며 어느 곳에서나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말해보라, 이는 어떠한 사람의 경지인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운문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요즈음 어디에 있다가 왔느냐?"
-서선사(西禪寺)라고 말해서는 안 되지. 상대를 유인하고 있네. 동서남북
어느 곳이라도 말해서도 안 된다.
"서선사(西禪寺)에서 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군. 너무 솔직히 말해버렸군. 당시에 본분종사를 기르는
솜씨를 보여주었어야 옳다.
"서선사에서 요즈음 무슨 얘기들을 하던가?"
-(내가 대신) 말해주고 싶어도 큰스님(설두스님)을 놀라게 할까 염려스럽
다. 찾아온 상대방을 잘 파악했군. 역시 큰스님처럼 매한가지로 잠꼬대
를 하는구나.
스님이 양 손을 벌리자,
-졌구나. 도적을 끌어들여 집안을 망쳤다. 참으로 사람을 어리둥절케 하
는구나.
운문스님이 한 차례 뺨을 후려치니
-법령대로 다스렸군. 잘 쳤다. 이처럼 통쾌한 일은 만나기 어렵지.
스님은 말하였다.
"제게도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
-그대는 진술을 번복하려고 하느냐? 대장의 깃발을 찢고 북을 빼앗는 솜
씨가 있는 듯하구나.
운문스님이 문득 두 손을 펴 보였다.
-위험하군. 청룡(靑龍)을 타고서도 몰 줄을 모르다니.......
스님이 말이 없자,
-애석하다.
운문스님이 대뜸 후려쳤다.
-그냥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 이 방망이는 운문스님이 먹여야 한다. 왜냐
하면 처벌해야 할 일을 처벌하지 않으면 도리어 환란을 부르기 때문이
다. 큰스님(설두스님)은 어느 정도 방망이를 먹어야 할까? 한 번 봐주겠
다. 용서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창]
운문스님이 이 스님에게 "요즈음 어디에서 왔느냐?"라고 묻
자, 스님은 "서선사(西禪寺)에서 왔다"고 말하였다. 이는 정면
으로 맞대놓고 하는 대화로서 번뜩이는 번갯불과도 같다. 운문
스님의 "요즈음 무슨 말들을 하느냐?"는 말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인데도 스님 또한 작가인터라 대뜸 거꾸로 운문스님을 시험하
느라 양 손을 벌리었다. 여느 사람이었다면 이 한 차례 시험을
당하여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랐겠지만 운문스님은 전광석화
와 같은 기봉이 있어 바로 한 차례 후려쳤던 것이다.
스님이 한 "때리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제게도 할 말이
남아 있습니다"라는 말은 이 스님이 상대의 공격을 한 번 피한
것이다. 그러므로 운문스님이 놓아주면서 양 손을 벌렸던 것인
데 스님이 말이 없자 운문스님은 후려쳤던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운문스님은 원래 작가였다. (이 스님이) 한 걸
음을 나아가면 그만큼 깨달아, 그 의도를 알았으며, 앞을 바라
볼 줄도 알고 뒤를 돌아볼 줄도 알고서 근원을 잃지 않았다. 그
러나, 이 스님은 앞을 바라볼 줄만 알았지 뒤를 돌아보지 못했
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일시에 호랑이 머리와 꼬리를 잡으니
-살인도(殺人刀), 활인검(活人劍)이다. 반드시 이 (운문)스님이어야만 이
렇게 할 수 있다. 일천 병사는 얻기 쉬워도 한 장수는 얻기 어렵다.
늠름한 위엄이 4백 고을[州]에 떨치네.
-천하 사람의 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네. 천지를 뒤덮는 기상이다.
묻노니 어쩌면 그처럼 준험한가!
-눈먼 놈이 남을 형틀에 채울 수 없고, 애꾸눈이 남을 두드릴 수는 없다.
설두스님은 원래 모르고 있었다. (설두)스님은 곧바로 착어를 했다.
설두스님은 "한 번 용서해주노라"고 했다.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또한 어찌할텐가? 천하 사람들이 일시에 손해를 보
았다. (원오스님은) 선상을 한 번 내려쳤다.
[평창]
설두스님의 이 송은 지극히 알기 쉽지만 큰 뜻은 운문스님의
기봉을 노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시에 호랑이의 머리와 꼬리
를 잡았다"고 말한 것이다.
옛사람(羅山道閑스님)의 말에 "호랑이 머리에 타고서 호랑이
꼬리를 잡아 첫마디에 대뜸 종지를 밝힌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은 자백에 따라서 죄를 판결하므로, 운문스님이 호랑
이 머리에 탈 줄도 알고 호랑이 꼬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을 좋
아했다. 스님이 양 손을 벌리자 운문스님이 대뜸 후려쳤던 것은
호랑이 머리에 탄 격이며, 운문스님이 양 손을 폈는데도 스님이
말이 없자 또다시 후려쳤던 것은 호랑이 꼬리를 잡은 격이다.
일시에 머리와 꼬리를 잡은 안목은 유성(流星)처럼 순식간에 해
치운다. 자연히 전광석화처럼 늠름한 위엄이 4백 고을에 떨쳤으
며 온 누리에 세찬 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묻노니 어쩌면 그처럼 준험한가"라는 말은 참으로 준험한 곳
이 있다 하겠다. 설두스님이 "한 번 용서해주노라"고 말하였는
데, 말해보라. 지금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까? 온 대지
모든 사람이 방망이를 맞아야 할 것이다.
요즈음의 선객들은 모두가 "그가 손을 벌릴 때 그에게 본분납
자를 기르는 솜씨를 보여주었어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이는 비
슷하기는 하나 옳지는 않다. 운문스님이 이처럼 그대들을 쉬도
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따로이 솜씨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제 55칙
도오의 말할 수 없음[道吾不道]
[수시]
은밀하고도 완전한 참인 이 소식을 대뜸 깨치고, 갖가지의 반
연 속에서도 그것을 (주체적으로) 다룰 수 있어 단박에 당처를
알아챈다. 전광석화 속에서도 잘못을 순간에 끊고, 호랑이 머리
를 타고 꼬리를 잡는 경지에 천 길 벼랑처럼 우뚝 서 있구나.
그러나 이런 경지는 그만두더라도 가느다란 (방편의) 길을 놓아
수행자를 지도하는 부분이 있느냐? 거량해보리라.
[본칙]
도오(道吾 : 769~835)스님이 (제자인) 점원(漸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 이르러 조문을 하게 되었는데 점원스님이 관을 두드
리며 말하였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무슨 말을 하느냐? 얼씨구, 정신을 차리지 못했군. 이놈이 (생사의) 양
쪽에 있구나.
도오스님이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
-용이 우니 안개가 피어나고 호랑이가 휘파람을 부니 바람이 이는구나.
모자를 사고 나서 머리 치수를 잰다. 노파심이 간절하구나.
"왜 말로 못합니까?"
-빗나가버렸다. 예상을 했지만, 잘못 알았군.
"말로는 안 되지! 말로는 안 되지!"
-더러운 물을 대뜸 끼얹는다.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가볍지만 뒤에 쏜
화살은 깊이 박혔다.
돌아오는 길에
-정신을 바짝 차려라.
점원스님이 말하였다.
"스님은 어서 말해보시오. 말하지 않는다면 치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귀뚫은 사람[穿耳客 : 달마스님]은 만나기
어렵고 뱃전에 칼 잃은 곳을 새긴 자[刻舟人]는 많구나. 이같이 어리석
은 놈은 쏜살처럼 지옥에 빠진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은 할 수 없다."
-두번 세 번이라도 일을 정중히 해야지. 쳐라! 이 늙은이가 온몸에 흙탕
물투성이가 되었군. 처음 먹은 마음을 고칠 수야 있나!
점원스님이 후려쳤다.
-잘 쳤다. 말해보라, 그를 쳐서 무엇 하려고 했는가를. 억울한 매는 원래
부터 맞을 놈이 따로 있었는데.......
그 뒤 도오스님이 돌아가시자 점원스님이 석상(石箱)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얘기를 말하니,
-다 알고서도 한 번 해본거지. 옳은지 그른지 모르겠으나 옳다면 매우 기
특한 일이다.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살아도 말로 못 하고 죽어도 말로는 못 한다."
-너무도 시원하군. 이 밥상을 받을 사람은 따로 있다.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합니까?"
-말은 마찬가지나 의도는 서로 다르다. 말해보라, 전일에 물었던 것과 같
은지, 다른지를.
"말할 수 없지, 말할 수 없고 말고."
-온 천하에 그득하네. 조계의 물결(두 스님의 말씀)이 서로 닮았다고 한
다면, 수없이 많은 멀쩡한 사람을 땅속에 파묻는 꼴이 되고 만다.
점원스님은 그 말에 깨우침이 있었다.
-눈먼 놈아! 산승(원오스님)을 속이지 말았어야 좋았을 걸.......
하루는 점원스님이 삽을 들고 법당 위에서 동쪽으로 서쪽으
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가자,
-그렇지만 죽음 속에서 살아났구나. 돌아가신 (도오)스님께 그것을 보여
드렸더라면 좋았을 걸. 그에게 묻지 말고 먼저 이놈이 당한 한바탕 수치
를 살펴보라.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무얼 하는가?"
-후수를 두지 말아라!
"선사(先師)의 영골(靈骨)을 찾고 있습니다."
-상여 뒤에 약봉지를 달았구나(차는 떠났다). 애당초에 조심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너는 무슨 말을 하느냐?
"거대한 파도는 까마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
거리는데 무슨 선사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이냐?"
-그래도 그에게 본분소식을 되돌려주었어야 했다. (잡놈들이) 무리를 이
루고 떼를 지을 정도로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두스님은 착어하였다.
"아이고, 아이고!"
-너무 늦었다.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긴 격이다. (세 명 모두) 한 구
덩이에 묻어버렸어야 옳다.
점원스님은 말하였다.
"쓸데없이 애를 쓰네."
-말해보라, 귀결점이 어느 곳에 있는가를. 돌아가신 스승께서 전에 그대
에게 뭐라고 말했던가. 이놈이 처음부터 끝까지 아직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하는군.
태원(太原)의 부상좌(孚上座)는 말하였다.
"선사(先師)의 영골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대중이여, 보았느냐? 번뜩이는 번갯불과 같다. 이 무슨 낡아빠진 짚신인
가? (태원은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평창]
도오스님이 점원스님과 함께 어느 집에 이르러 조문하였는데
점원은 널[棺]을 두드리면서 말하였다.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도오스님은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못하며, 죽었어도 말로 못한다."
이 말 속에서 알아차리고 그 의도를 알면 이는 바로 생사를
투철하게 벗어나는 관건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정
통으로 빗나가게 될 것이다.
잘 살펴보라. 옛사람들은 행주좌와 언제나 '이 일'만을 참으
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남의 집에 가 조문하면서도 점원스님이 널을 두드리면서 "살
았습니까? 죽었습니까?"하니, 도오스님은 조금도 그 물음의 핵
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에게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
어도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점원스님은 완전히 빗나가 그
가 한 말에 끄달려 다시 말하였다.
"무엇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다고 하십니까?"
"말로 할 수 없지, 말로 할 수 없다."
도오스님은 자비스러움이 굽이굽이 서려 있다. 그런데도 점원
스님은 잘못으로 인해 점점 더 잘못을 더해나갔다.
점원스님은 그때까지도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돌아오
는 길에 또다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빨리 말해주시오. 말하지 않으면 치겠습니다."
이놈에게 좋은지 나쁜지를 가릴 줄 아는 능력이 어찌 있었겠
는가? 이야말로 이른바 좋은 마음씨를 좋게 갚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도오스님은 변함없이 노파심이 간절하여 다시 말하였
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러나 말로는 할 수 없다."
그러자 점원스님은 후려쳤다. 비록 매를 맞기는 했지만, 그는
한 수 이긴 셈이다. 도오스님은 이처럼 (땀방울이 아닌) 핏방울
이 뚝뚝 떨어지도록 그를 지도했으니 점원스님은 깨닫지 못하였
다. 도오스님은 맞은 후에야 점원스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떠나도록 하라. 절에 있는 책임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대에게 화를 미칠까 염려스럽다."
이에 남모르게 점원스님을 빠져나가도록 하였다. 도오스님은
참으로 자비로웠던 것이다. 점원스님은 그 뒤 작은 절에 이르러
행자(行者)가 외우는 관음경(觀音經)의 "비구의 몸으로 제도를
받을 자에겐 비구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을 한다"는 구절을 듣고
문득 크게 깨친 후 말하엿다.
"내가 그 당시에 스승을 잘 모르고 나쁜 짓을 했구나. '이
일'이 언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몰랐구나!"
옛사람(운문스님)의 말에 "도량이 한없이 큰 대인조차도 말에
놀아나는 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이를 망정으로
이해하고서 "도오스님의 '말로는 할 수 없지, 말로는 할 수 없
네'라는 그것도 말해버린 것이다"고 하며, 이는 등을 돌려 사람
으로 하여금 찾지 못하도록 만드는 격이라고 한다. 이처럼 이해
한다면 어떻게 평온할 수 있겠는가. 실다운 경지를 밟았다면 실
오라기만큼의 간격도 없을 것이다.
듣지 못하였는가, 칠현녀(七賢女)가 시다림(屍陀林)에서 거닐
다가 시체를 가리키면서 물었던 이야기를.
"시체는 여기에 있는데 (본래의)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큰언니가 말하였다.
"뭐냐, 뭐냐?"
그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제히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
쳤다 한다.
말해보라, 깨친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를. 천 명 만 명 중에서
다만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점원스님은 그 뒤 석상스님에게 이르러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자, 석상스님은 앞과 같이 말하였다.
"살았어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에 말로 하실 수 없다 하십니까?"
"말로는 할 수 없지, 할 수 없고말고."
이 말에 그는 문득 깨치게 되었다. 어떤 날 가래를 가지고 법
당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갔다 한 것은 자
기의 견해를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예상대로 석상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무얼 하는가?"
"선사의 영골을 찾습니다."
석상스님은 바로 점원스님의 핵심을 쳐부수어 말하였다.
"나의 '이 자리'는 큰 파도가 까마득히 질펀하고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무슨 선사의 영골을 찾겠다는 것이냐?"
점원스님이 이미 선사의 영골을 찾았는데 석상스님은 무엇 때
문에 그처럼 말했을까? '이 자리'에 이르러서 "살아도 말로 할
수 없고, 죽었어도 말로 할 수 없다"는 뜻을 말 끝나자마자 알
아차릴 수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기틀을 몽땅 마음대로 활용
할 수 있겠지만 그대가 이러쿵저러쿵 헤아리며 찾고 생각한다면
알기 힘들 것이다.
점원스님이 "쓸데없이 애쓰네"라고 한 것은, 그가 깨친 뒤에
자연스럽게 기특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도오스님의 한 조
각 정수리 뼈[頂骨]가 황금처럼 빛났고, 두드리면 구리 소리처
럼 맑았음을 알 수 있다.
설두스님이 한 "아이고, 아이고!"라는 착어에서 의도했던 귀
결점은 양쪽에 있었다. 태원 부상좌가 "선사의 영골이 아직도
있다"고 한 것은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이 한 토막의 이야기들
은 단박에 한쪽을 드러냈다. 말해보라, 어떤 것이 요체를 깨닫
는 것이며, 어떤 것이 쓸데없이 애쓴 것인지를.
"한 곳을 뚫으면 천곳 만곳이 일시에 뚫린다"는 말을 듣지도
못하였는가?
"말로는 할 수 없지, 할 수 없고말고"라고 한 곳에서 그 의도
를 꿰뚫을 수 있다면 바로 천하 사람의 혀끝을 꼼짝 못 하게 꽉
틀어막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반드시 스스로 참구하여 스스로
가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헛되이 세월을 보내지 말고 시간을
아껴야 한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모든 것을 ) 싹 잘랐구나! 참으로 기특하구나.
소와 염소는 뿔이 없도다.
-(모든 것을) 싹 잘랐구나! 어떻게 생겼을까?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어
도 (나는 못 속여!)
가는 털도 끊겨서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하다. 그대는 어디를 더듬거리냐!
산과 같구나.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느냐? 공연히 파도를 일으켰다. 생명의 깊숙한 곳
을 아프게 찔렀구나.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어
-(주둥이질 못 하게) 혀끝을 잘라버리고 목구멍을 막아버려라. 한쪽을 잘
드러내었다. 사람들이 '저놈'을 모를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리는데 어디에서 찾으랴.
-한 번 용서해주었다. 자기 속에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나갔군.
눈과 귀 속 어디에도 없지.
찾을 곳이 없음이여!
-예상했던 대로지. 그래도 약간 나은 편이군. 과연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
렸다.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서천으로 돌아가다가 잃어버렸어라.
-조상이 변변치 못하여 자손에게까지 누를 끼쳤다. (원오스님은 탁자를)
치면서 말한다.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느냐?
[평창]
설두스님이 회통하여 설명을 잘하는 것으로 보아 운문스님의
자손답다. 일구 가운데 삼구(三句)의 겸추(鉗鎚)를 갖추고, 말
하기 어려운 곳을 말해주고 열리지 않는 곳을 열어주면서 핵심
을 송(頌)하였는데, 그는 곧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
는 뿔이 없다"하였다.
말해보라, 토끼와 말이 어떻게 뿔이 있으며 소와 염소가 어떻
게 해서 뿔이 없는가를. 앞의 말을 깨칠 수 있다면 설두스님이
사람을 지도하는 의도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사람은 이를 잘못 이해하고서 "말로는 할 수 없다는 그
것이 바로 말함이며, 문구로써는 나타낼 수 없다는 그것이 바로
구절 있는 것이기 때문에, 토끼와 말은 뿔이 없는데도 뿔이 있
다 말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있는데도 뿔이 없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다.
옛사람은, 온갖 변화로써 이와 같은 신통을 나타낸 것이 그대
들의 이와 같은 정령(精靈) 귀신 소굴을 타파해주기 위함인 줄
을 몰랐던 것이라 하겠다. 이를 깨칠 수 있다면 이 깨쳤다는 말
도 필요하지 않다. "토끼와 말은 뿔이 있고 소와 염소는 뿔이
없나니, 가는 털도 끊겨서 산과 같다"는 네 구절[四句]의 송은
마니보주(摩尼寶珠)와도 같은데, 설두스님은 이를 통째로 그대
앞에 토해내버린 것이다.
맨 끝에는 모두가 죄인의 자백서에 따라서 죄를 다스린 것이
다.
"황금빛 영골이 지금도 남아 있어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
리는데 어느 곳에서 찾으랴"라는 것은, 석상스님과 태원 부상좌
의 말을 노래한 것이다. 어째서 찾을 곳이 없을까?
"신발 한 짝을 가지고 서천으로 돌아가다가 잃어버렸다"는 것
은 신령한 거북이 자취를 남긴 것이니, 이는 설두스님이 몸을
뒤재켜 사람을 지도한 것이다.
옛사람은 "활구를 참구해야지 사구를 참구하지 말라"고 하였
다. 이미 잃어버렸느데 저들 모두는 무엇 때문에 서로가 다투는
것일까?
제56칙
흠산의 화살 한 대[欽山一鏃]
[수시]
모든 부처님은 일찍이 세상에 출현하였으되 사람에게 한 법도
전해준 적이 없으며, 조사도 일찍이 서쪽에서 오셨으되 마음을
전수해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밖으
로 치달리며, 자기 자신에게 있는 하나의 대사인연(大事因緣)도
일천 성인이 어찌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에, 그런데 지금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말하면서도 말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을 어디에
서 얻을 수 있을까? 만일 통달하지 못했다면 갈등(언어)의 소굴
속에서 알아차리도록 하라. 시험삼아 거량해보리라.
[본칙]
거양선객(巨良禪客)이 흠산(欽山)스님에게 물었다.
"한 화살촉[鏃]으로 세 관문을 격파했을 때는 어떠합니까?"
-준험하군. 기특하다. 참으로 용맹스런 장수로군.
"관문 속에 있는 주인공을 내놔보아라."
-정면으로 묻는군. 그대들은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뒷산은 높고 앞산은 낮다.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지요."
-상황을 보고 작전을 폈다. 벌써 두 번째에 떨어져버렸다.
"당장에 고쳐봐라!"
-사로잡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한다. 바람이 스치니 풀잎이 쓰러진다.
"화살은 잘 쏘셨는데 맞지는 않았습니다"하고 거양선객이 바
로 나가버리자,
-예상했던 대로군! 진술을 번복하려고 머뭇거리는가? 두 번째 방망이는
사람을 쳐도 아프지 않다.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잠깐, 스님!"
-부르기는 쉬워도 보내기는 쉽지 않을걸. 불러 세워놓고 무얼 하려고
거양선객이 머리를 돌리자,
-과연 붙잡아들이지 못하는군. 적중했다.
흠산스님이 멱살을 움켜쥐고 말하였다.
"한 화살로 세 관문을 격파하는 것은 그만두고 저 흠산에다
화살을 쏘아보아라."
-호랑이 아가리 속에 몸을 디밀었구나. 역공격을 당했군. 의로움을 보고
서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거양선객이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자,
-과연 찾지를 못했군. (원오스님이) 두드리면서 애석하다고 말하였다.
흠산스님이 일곱 방망이를 치면서 말하였다.
"이놈이 앞으로도 30년은 더 헤매야 정신을 차리겠군."
-법령을 제대로 집행하였군. 시작도 있고 끝도 있으며 처음도 바르고 끝
도 바르구나. 이 방망이는 마땅히 (그 선객이) 흠산스님에게 먹였어야
했는데.......
[평창]
거양선객은 또한 어엿한 장수였다. 흠산스님의 손아귀에서 요
리조리 움직이다 안장에서 떨어졌다가도 번개처럼 말에 솟구쳐
올라 싸우다가 뒤에 가서 안타깝게도 활은 부러지고 화살도 다
한 것이다. 그러나 장군 이광(李廣)은 아름다운 명성이 있으면
서도 제후에 봉해지지 않았으니, 이러기도 흔하지는 않다.
이 공안은 한 번 나오고 한 번 들어가며 한 번 사로잡고 한
번 놓아주면서, 상황에 직면해서는 정면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정면에서 보여주면서도 상황에 신속했으니, 이는 모두 유무 득
실에 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를 현묘한 기틀[玄機]이라고 말
한다. 조금이라도 역량이 부족하면 바로 엎어지고 거꾸러진다.
그러나 스님도 영특한 납자였다. 그의 물음은 사람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으며 흠산스님도 작가종사라 바로 그의 물음의 핵
심을 알아버린 것이다.
촉(鏃)이란 화살촉을 말한다. "한 화살촉으로 세 관문을 뚫을
때는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흠산스님은 알면서도 "그대가 쏘
아서 뚫을 수 있는 것은 그만두고 관문 속에 들어 있는 주인공
을 내놔보아라"고 하자, 거양선객은 "잘못이 있으면 반드시 고
치겠습니다"라고 말하니 기특하다 하겠다.
흠산스님은 "지금 당장 고쳐봐라!"고 하였다. 흠산스님이 이
렇게 그를 지도했던 것을 살펴보면, 흠산의 물음에는 조금도 빈
틈이나 부족한 곳이 없었다.
뒤이어 거양선객이 "화살은 잘 쏘셨지만 맞추지는 못했습니
다"하고 바로 소매를 떨치며 나가버리니, 흠산스님은 그처럼 말
하는 것을 보자마자 곧 그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스님!"
거양선객은 과연 그대로 가지 않고 머리를 돌렸다. 이에 흠산
스님은 멱살을 움켜쥐고서 "한 화살이 세 관문을 꿰뚫었다는 것
은 그만두고, 이 흠산에게 화살을 쏴보아라"고 하였다. 양선객
이 머뭇거리자, 흠산스님은 바로 일곱 방망이를 후려친 후 다시
뒤이어 한 편의 주문을 외웠다.
"이놈이 앞으로도 30년은 더 헤매야 정신을 차리겠군."
요즈음의 선객들은 "무엇 때문에 여덟 번 치지도 않고, 여섯
번 치지도 않고서 일곱 번만 쳤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이
흠산스님에게 화살을 쏴보아라'고 말할 때 바로 후려쳤어야지!"
라고 다들 말하는데 이는 비슷하기는 하지만 옳지는 않다.
이 공안은 가슴속에 조그만치도 이러니 저러니 하는 도리와
계교를 품지 않고 언어 밖으로 뛰어나야만, 일구로써 세 관문을
타파할 수 있으며 화살을 쏠 수 있다. 만일 옳으니 그르니 하는
마음이 있다면 끝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거양선객이 그
러한 사람이었다면 흠산스님 또한 매우 위험했을 것이다. 그가
이 법령을 시행하지 못하였기에 거꾸로 당했던 것이다.
말해보라, 관문 속의 주인공은 결국 어떠한 사람일까? 설두스
님의 송을 살펴보아라.
[송]
그대에게 관문 속의 주인공을 내보내노니
-적중했다. 정통으로 빗나갔다. 뒤로 물러서라, 뒤로 물러서.
활을 쏜 무리들은 거칠게 굴지 말라.
-한 번 죽더니 다시는 살아나질 못하는군. 완전히 잘못됐다. 이미 지나가
서 흔적도 없다.
눈을 보호하자니 반드시 귀먹을 것이오.
-좌측 눈의 무게는 반 근이지. 한 번 용서해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다.
귀를 버리자니 두 눈이 멀게 될 터이다.
-우측 눈의 무게는 여덟 냥이다. 하나밖에 얻을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
면 구덩이와 참호에 떨어질 것이오, 물러가면 사나운 호랑이가 다리를
물 것이다.
아아! 한 화살이 세 관문을 타파함이여!
-모든 기틀이 이처럼 (관문을 타파해) 올 때는 어찌하겠는가? 무슨 말을
하느냐? 산산조각났다.
화살이 지난 뒷길은 또렷또렷 분명하다.
-죽을 놈아! 쯧쯧!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한다. 보았느냐?
그대는 듣지 못하였느냐?
-문둥이가 짝을 끌고 간다. (옛사람의) 말을 들먹이네.
현사(玄沙)스님이 하신
-어느 것인들 현사(玄沙)스님이 아니랴!
"대장부란 천지가 개벽되기 이전에 이미 마음으로 조종을 삼
는다"라는 말을.
-한 구절[一句]로 많은 흐름[衆流]을 끊어버리니 만 가지 기틀이 깡그리
녹아 없어졌다. (대장부의) 본래면목이 나(원오스님)의 손안에 있다. 천
지 세계가 생기기 이전에 어느 곳에서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랴!
[평창]
이 송의 몇 구절은 귀종(歸宗)스님의 송 가운데에서 취한 것
이다. 귀종스님이 지난날 이 송을 지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귀종
(歸宗)"이라 법호를 삼았는데 종문(宗門)에서는 이를 "종지(宗
旨)가 담겨 있는 말"이라 한다. 그 뒤 동안(同安)스님이 소문을
듣고서, 양공(良公)은 훌륭하게 화살을 쏘았지만 결국 과녁을
적중시키진 못하였다"고 하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과녁을 적중시킬 수 있습니까?"
"관문 안의 주인공은 어떤 사람인가?"
그후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흠산스님에게 말하니 흠산스
님이 말하였다.
"양공(良公)이 만일 (동안스님이) 위와 같이 말했던 대로 이
해했다면 흠산스님의 (위와 같은) 질문을 결국은 면했을 것이
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동안스님 또한 좋다고는 할 수 없
다." 설두스님은 "그대에게 관문 속의 주인공을 내보내니"라고
송했는데, 이는 눈을 떠도 옳고 감아도 옳다. 유형, 무형을 모
조리 잘라 세 동강이[三段]로 만들었다.
"활을 쏜 무리들은 거칠게 굴지 말라"는 것은 훌륭하게 활을
쏠 수 있다면 거칠게 굴지 않겠지만 잘 쏘지 못한다면 거칠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눈을 보호하자니 반드시 귀가 먹을 것이요, 귀를 버리자니
두 눈이 소경이 될 터이다"라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눈을 보호
했는데 무엇 때문에 귀가 멀며, 귀를 버렸는데 무엇 때문에 두
눈이 소경이 되는 걸까? 이 말은 취하거나 버림이 없어야만이
꿰뚫을 수 있으니, 취하거나 버림이 있으면 이를 알아차리기 어
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아아, 한 화살이 세 관문을 타파함이여! 화살이 지난 뒷길이
또렷또렷 분명하다"는 것은 거양선객이 "한 화살촉으로 세 관문
을 타파했을 경우는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흠산스님이 "관문
속의 주인공을 내놔보아라"는 대답을 송한 것이다. 그리고 나중
의 동안(同安)스님의 공안까지도 모두가 화살이 지난 뒷길이다.
궁극적으로 어떻다는 것이냐?
"그대는 듣지 못하였느냐? 현사(玄沙)스님의 '대장부는 천지
가 개벽되기 이전에 벌써 마음으로 조종(祖宗)을 삼는다'라는
말을"이라고 하였는데, 늘 마음을 조종의 지극한 법[極則]으로
삼는데,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천지가 채 발생하기 이전에 도
리어 이 마음이 조종(祖宗)이 된다고 하였을까? 만약 이 시절
인연을 꿰뚫을 수 있으면 관문 속에 있는 주인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화살 지난 뒷길이 또렷또렷하다"는 것은, 과녁에 적중하고자
했으나, 화살이 날아간 뒤에 지나간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다. 말해보라, 무엇이 화살이 날아간 흔적인가를. 반드시 제 스
스로가 정신을 차려야만 알 수 있다.
"대장부는 천지가 개벽되기 전에 이미 마음을 조종으로 삼는
다"하였는데, 현사스님은 항상 이 말로써 대중 법문을 하였다.
이는 원래 귀종스님의 송이었는데 설두스님이 현사스님의 말이
라고 하며 잘못 인용한 것이다.
요즈음 참선하는 사람들이 만약 이 마음으로 조종(祖宗)을 삼
는다면 미륵 부처님이 하생(下生)하도록 참구하여도 모를 것이
다. 그러나 대장부란 마음을 으뜸으로 해도 벌써 두 번째에 떨
어진다. 말해보라, 그렇다면 어떤 것이 천지보다도 먼저인가를.
제 57칙
조주의 분별하지 않음[趙州不揀]
[수시]
깨닫기 이전에도 은산철벽(銀山鐵壁) 같지만 깨달은 뒤에도
본래의 자기는 그대로 원래 은산철벽이다.
어떤 사람이 '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에게 말하리라.
"바로 이런 상황에서, 한 기틀을 내보일 수 있고, 한 경계를
살필 줄 알며, 핵심되는 길목을 꽉 틀어막고 범부도 성인도 어
쩌지 못하는 경지라 하더라도, 특별날 것은 없다." 그렇지 못하
다면 옛사람의 행동을 보도록 하라.
[본칙]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여쭈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니 오직 간택을 그만두면 된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간택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 쇠가시는 많은 사람들이 삼키질 못한다. 반드시 의심하는 사람이 있
다. 입이 꽁꽁 얼어붙었다.
"천상천하에 나 홀로 존귀하니라."
-괜시리 해골 무더기를 일으켰다. 납승의 목숨을 일시에 뚫어버렸다. 금
강으로 주조한 무쇠문서[鐵拳]이다.
"이것도 오히려 간택입니다."
-예상했던 데로 그의 말에 놀아나고 마네. 이 늙은이를 한 대 내질러라.
"이 맹추[田 奴]야! 어느 곳이 간택이란 말이야?"
-산은 높고 돌은 험준하다.
스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너에게 곤장 삼십 대를 치리라. 곧바로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딱 벌어졌
다.
[평창]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여쭈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
다......"라는 구절은 삼조(三祖)스님의 <신심명(信心銘)> 첫
머리에 있는 두 구절인데,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극한 도란 본래 어려움이 없고 어렵지 않을 것도
없지만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다"라고 이해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만일 이렇게 이해한다면 1만 년이 지난다 해도
(그 의도를)꿈에도 보지 못할 것이다. 조주스님은 항상 이 말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스님이 이 말을 가지고 거
꾸로 그에게 물은 것이다.
이를 말에서 찾는다면 그 스님이 도리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흔들겠지만, 어구(語句) 위에 있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
까? 다시 30년 참구하도록 하라. 이 조그마한 문빗장을 뒤집어
볼 줄 알아야만이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호랑이 수염을
뽑으려면 반드시 본분의 수단이 있어야 한다. 이 스님도 위험과
죽음을 돌아보지 않고 감히 호랑이 수염을 뽑는 것과 마찬가지
로 "이것도 오히려 간택입니다"고 하자, 조주스님은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이 맹추야! 어느 곳이 간택이란 말이야?"
만일 이를 다른 사람에게 물었다면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
랐겠지만 이 늙은이 또한 작가 종사인데야 어찌하랴.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움직이며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상태에서 몸을 돌린
것이다.
그대가 이를 깨닫는다면 모든 악독한 언구와 천태만상의 세간
의 희론(戱論)들이 모두 도(道)일 것이다. 만일 분명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조주스님의 자비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전사노(田 奴)는 복당(福唐 : 복주) 지방의 사람을 욕하는
말로서 지혜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스님이 "이것도 오히려 간택이다"고 하자, 조주스님은 "이 맹
추야! 어느 곳이 간택이란 말이냐?"고 하였다.
종사의 안목이 반드시 이래야지만 바다를 뚫고 들어가 곧바로
용을 삼켜버리는 금시조(金翅鳥)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두
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바다처럼 깊고
-이는 누구의 도량(度量)인가?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 절반도 아직 헤
아리지 못했다.
산같이 견고하구나.
-어떤 사람이 이를 흔들 수 있을까? 그래도 (그의 덕에는) 반쯤뿐이 안 된다.
등에와 모기가 허공의 사나운 바람을 희롱하고
-이런 놈이 있었지. 과연 제 힘을 알지 못하였군. 자신을 헤아리지 못했다.
땅강아지와 개미가 무쇠기둥을 흔드네.
-한 구덩이에는 다른 흙이 없다(그놈이 그놈이다). 전혀 관계가 없다.
(설두)스님은 그 스님과 동참하고 있군.
간택함이여!
-강가에서 물장사를 하네. 무슨 말하느냐? 조주스님이 왔다.
난간에 매단 헝겊북이로다.
-벌써 말 이전에 있다. (설두스님과 조주스님을) 한 구덩이에 묻어버려
라.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다. (원오스님은) 치면서 말했다. 너의 목구
멍을 막아버렸다.
[평창]
설두스님은 두 구절(천상천하와 이 맹추)에 주석을 붙여서
"바다처럼 깊고 산같이 견고하다"라고 했다. 스님이 "이것도
오히려 간택입니다"라고 말하자, 설두스님은 그 스님을 평하기
를 "모기나 등에가 허공의 사나운 바람을 희롱하고, 땅강아지와
개미가 무쇠기둥을 흔드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이 스
님의 큰 담력을 칭찬한 것은 상근기의 작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스님이 감히 이처럼 말하자 조주스님도 그를 놓아주질 않
고 바로 "이 맹추야! 어느 곳이 간택이야?"고 하였으니, 이것이
사나운 바람과 무쇠기둥이 아니겠는가.
"간택이여! 난간에 매단 헝겊북이로다"라는 것은 설두스님이
맨 끝에 들춰내서 살아나게 한 것이다. 만일 이를 명백하게 안
다면 충분히 그 스님 스스로가 이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듣지 못하였느냐, '친히 간절하게 하고저 한다면 언
어문구를 가지고 묻지 말라'고 했던 말을. 그러므로 "난간에 매
단 헝겊북"이라 한 것이다.
제 58칙
조주의 함정[趙州 窟]
[본칙]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여쭈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
이라 하였는데 요즘 사람들은 이를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까?"
-두 겹의 공안이다. 오히려 네 말도 사람을 의심케 하는 것이다. 저울추
를 밟으니 무쇠처럼 견고하구나. 또한 이런 사람이 있기는 있었구나. 자
기의 집착으로 다른 사람을 욕되게 하지 말라.
"전에도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으나 5년이 지났건만 잘 모
르겠다."
-낯을 붉히는 것은 바른 말을 하는 것만 못하다. 원숭이가 모충(毛蟲)을
먹고 모기가 무쇠소를 무는구나.
[평창]
조주스님은 일평생 (덕산스님처럼) 몽둥이질을 하거나 (임제
스님처럼) 할(喝)을 하지 않았지만 (언구의) 활용은 몽둥이질이
나 할을 능가하였다. 스님의 질문이 매우 기특하다. 만일 조주
스님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답변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조주스님은 작가였다. 그에게 "전에도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물었
지만 5년이 지났거만 아직도 모르겠다"고 하였으니, 묻는 것도
천 길 벼랑에 서 있는 듯하고, 답변 또한 그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바로 맞겠지만, 이러쿵저러쿵 말로
써 계교해서는 안 된다.
듣지 못하였느냐? 투자 법종(投子法宗)스님이 설두스님의 회
하에서 서기(書記)로 있었는데, 설두스님이 그에게 "지극한 도
는 어려움이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라 한 말을
참구하여 깨닫게 한 것을. 하루는 설두스님이 그에게 묻기를,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
라한 뜻이 무엇이냐?"고 하자, 그 스님은 이렇게 대꾸했다. "이
짐승 같은 놈아! 이 짐승아!"
그 뒤 투자산(投子山 : 舒州에 소재함)에 은거하면서 주지 소
임을 보러갈 때는 으레 가사 속에 짚신과 경문을 지니고 다녔다.
"어떤 것이 법종스님의 가풍입니까?"
라고 묻는 스님이 있으면 법종은 말하였다.
"가사 속의 짚신짝이지."
"그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벌거벗은 다리 아래 동성(銅城 : 舒州의 安慶府의 마을 이
름)고을이 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불공을 올리는 것은 향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고 한
다. 이를 깨달을 수 있다면 붙잡거나 놓아주는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일문일답이 분명하게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조주스님은 "잘 모르겠다"고 하였을까?
"요즘 사람들은 이를 집착하고 있지 않습니까? 라는 것은 조
주스님이 소굴 속에 있으면서 답변한 것일까, (아니면)밖에
있으면서 답변한 것일까? 이는 반드시 언구 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혹 어느 사람이 골수에 사무치게 믿어 행한
다면 용이 물을 얻은 듯, 범이 산을 의지한 것과 같을 것이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코끼리[象王]가 기지개를 켜고
-부귀 중에 부귀이다. 그 누가 오싹하지 않으랴. 좋은 소식이다.
사자는 포효한다.
-작가 중에 작가이다. 모든 짐승의 머리가 쪼개진다. 그 길로 들어가야지.
맛을 헤아릴 수 없는 말씀이여!
-욕하려거든 해라. 주둥이가 모자라면 하나 더 달아줄께. (사람을 붙들어
매는 것이) 무쇠말뚝과 같다. 어찌 입을 들이댈 수 있을까? 밝히지 못한
지 5년이 지났다. 일엽편주(一葉片舟)에 당(唐)나라를 실었구나. 아득하
고 커다란 파랑이 일어나니 어느 누가 따로이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랴.
사람의 입을 꽉 막아버렸다.
-뱉으려거든 뱉어라. 침이 모자라면 물 떠다 줄까? 쯧쯧! 설두스님, 무슨
말씀하십니까?
동서남북에
-있느냐, 있느냐? 천상천하에 그득하다. 아이고, 아이고!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리노라.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지). 한꺼번에 산 채로 묻어버렸다.
[평창]
조주스님이 하신 "전에도 어느 사람이 나에게 물었는데 5년이
지났건만 아직 모르겠다"는 말은 "코끼리[象王]가 기지개를 켜
고 사자가 포효하는 것"과도 같다.
"맛을 헤아릴 수 없는 말씀이여! 사람의 입을 막아버렸다."
"동서남북에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린다"고 하였는데 설두
스님이 이 끝 구절을 말하지 못했더라면 어찌 설두스님의 명성
이 지금까지 있겠는가? 이미 까마귀는 날고 토끼는 달렸다. 말
해보라, 조주스님, 설두스님, 산승(원오스님 자신)의 의도가 결
국 어디에 있는가를.
제 59칙
조주의 지극한 도[趙州至道]
[수시]
하늘을 두루고 땅을 감싸며 성인을 뛰어넘고 범부를 뛰어넘으
니 백 가지 풀 끝에서 열반의 오묘한 마음을 보이고 창칼이 오
가는 와중에서 납승의 목숨을 탁 심사한다.
말해보라, 이는 어떤 사람의 은혜를 입었기에 이처럼 할 수
있었는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어느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여쭈었다.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그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
이라 하였는데
-앞의 것을 다시 가져왔구나. 무슨 말을 하느냐? 세 겹의 공안이다.
말을 하기만 하면 그것이 곧 간택인데
-입이 꽁꽁 얼어붙었네.
스님께서는 어떻게 사람을 지도하시겠습니까?"
-이 늙은이를 내질렀군. 크아!
"왜 이 말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
-도적질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소인의 짓이나, 지혜는 군자를 능가하는구
나. 대낮에 도적질하는군.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는구나.
"제가 여기밖에 못 외웁니다."
-둘 다 진흙덩이를 희롱하는 놈들이다. 도적을 만났군. 꼼짝않고 있으니
대적하기 어렵다.
"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오로지 간택을 그만두면 될
뿐이니라."
-그래도 (조주스님) 노장님이나 되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이 스님의
눈동자를 바꿔버렸다. 졌구나.
[평창]
조주스님은 "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그저 간택을 그
만두면 될뿐이니라"고 하였으니, 이는 전광화석와도 같아 사로
잡고 놓아주며 죽이고 살리기에 이처럼 자재로울 수 있었던 것
이다. 총림에서는 모두들 "조주스님은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말재주가 있었다"고 일컫는다. 조주스님은 평소 이 한 편을 가
지고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이 지극한 도는 어려울 게 없고 그저 간택을 그만두면 될뿐
이라 하였는데, 말을 하기만 하면 곧 그것이 간택이며 명백(明
白)이다. 노승이 명백 속에 있지 않은데 그대들은 도리어 이를
보호하거나 아끼겠느냐?"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명백 속에 있지 않다면 무엇을 보호하거나 아끼겠습니까?"
"나도 모른다."
"스님이 모르신다면 무엇 때문에 명백 속에 있지 않다고 말씀
하십니까?"
"질문 끝났거든 인사하고 물러가거라."
뒷날 이 스님은 조주스님의 논리의 틈새를 끄집어내어 조주스
님에게 물었다. 질문한 것은 참으로 기특하지만, 이는 마음의
사량분별로 그렇게 한 것이니 어찌하랴. 조주스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스님의 물음에 어찌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조주스
님은 작가였으니 어찌하겠는가.
"왜 이 말을 다 인용하지 않느냐?"고 하자 이 스님 또한 몸을
비키고 숨을 쉴 줄 알았기에 대뜸 "제가 여기밖에 못 외웁니다"
라고 했다. 이는 교묘하게 말을 꾸민 것이라 하겠다. 조주스님
은 그가 말했던 대로 그대로 말했지만 마음으로 사량분별하지는
않았다.
옛사람(동산스님)은 "끊임없이 이어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
하였다. 그는 용과 뱀을 분별하고 길흉을 구별하였으니 그 또한
본분의 작가이다.
조주스님은 이 스님의 눈동자를 바꿔버리면서도 칼 끝에 조금
도 흠을 내지 않았으며 사량분별을 하지도 않고 저절로 딱 들어
맞았던 것이다. 여러분은 말을 했다고 해도 안 되고 말을 안했
다고 해도 안 되며, 하지도 않았고 안 하지도 않았다고 해도 안
된다. 사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은 것이다. 무엇 때
문인가? '이 일'을 의논하려면 번뜩이는 전광석화처럼 단박에
착안해야만이 볼 수 있으며 머뭇거리거나 주저(躊躇)한다면 목
숨을 잃게 될 것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무슨 말을 하느냐? 몹시 심오하고 원대하다. 어찌 함께 말할 것이 있으랴.
바람으로 날려버릴 수도 없다.
-허공과도 같다. 당글당글 단단하다. 허공을 보고 하소연하는구나.
범이 걸어가고 용이 지나가니
-그(조주스님)는 자재를 얻었구나. 참으로 기특하다.
귀신이 (놀라서) 소리치고 혼령이 울부짖는다.
-대중들은 귀를 막아라! 바람이 스치니 풀이 쓰러진다. (설두)스님도 그
와 함께 동참하지 않았느냐?
머리가 세 척[三尺]인 줄 뉘 알리요?
-괴물이로군. 어디에서 온 성인인가? 보았느냐, 보았느냐?
마주하여 말없이 외발로 서 있네.
-쯧쯧! 머리를 움추려라. 한 번 용서해주노라. 산도깨비로다. 용서해줘서
는 안 되지. (원오스님은) 탁 때렸다.
[평창]
"물로 씻을 수도 없고, 바람으로 날려버릴 수도 없다." "범이
걸어가고 용이 지나가니 귀신이 (놀라서) 소리치고 혼령이 울부
짖는다"고 하니, 그대들이 입을 댈 곳이 없다.
이 네 구절의 게송은, 조주스님이 대답한 말이 용이 날고 범이
치달리는 것과 같아 스님은 한바탕 수치당한 것을 노래한 것이
다. 비단 이 스님뿐만 아니라 귀신도 (놀라서) 소리치고 혼령도
울부짖으니, 이는 마치 바람이 부니 풀이 쓰러지는 것과 같다.
끝의 두 구절은 한 자식(설두스님)만이 친히 알아차렸다고 말
할 만하다. "석 자 긴 머리는 누구일까? 마주하여 말없이 외발
로 서 있다"고 하였다. 듣지 못하였느냐? 스님이 옛 대덕스님
(동산스님)에게 묻는 말을.
"무엇이 부처입니까?"
"머리의 길이는 석 자요, 목의 길이는 두 치니라."
설두스님은 이를 인용하였는데 여러분은 이것을 알겠는가? 산
승도 모르겠다. 설두스님이 단박에 조주스님을 고스란히 그렸으
니, 그의 진면목이 여기에 있다. 여러분은 반드시 자세히 눈여
겨보아라.
제 60칙
운문의 주장자[雲門 杖]
[수시]
부처와 중생은 본디 차이가 없는데 산하와 자기가 어찌 차등
이 있겠는가? 그러나 무엇 때문에 이 두 가지가 뒤섞여 있는 것
일까?
만일 화두를 잘 다스리고 굴리며 요새가 되는 길목을 꽉 틀어
막는다면 조금도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실수하지 않는다
면 온 세상 어디에서라도 조금도 까딱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화두를 잘 다스리고 굴리는 것일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운문스님이 주장자를 가지고 대중에게 설하였다.
-때에 적절하게 교화하는군. 사람 죽이는 칼이기도 하고 사람 살리는 칼
이기도 하다. 그대의 눈동자를 바꾸어버렸다.
"주장자가 용으로 변하여
-뭣하러 번거롭게 그러냐! 변하여 무엇할까?
천지를 삼켜버렸으니
-천하의 납승들이 목숨을 보존치 못한다. 목구멍을 막았느냐? (운문)스님
은 어느 곳에서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하려는가?
산하대지는 어디에 있느냐?"
-시방에는 창도 없고 사면에도 문이 없다. 동서남북 사유(四維 : 사방)
상하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미친 소리다. 이를 어찌하랴?
[평창]
에, 그런데 운문스님이 말하기를 "주장자가 용으로 변하여 천
지를 삼켜버렸으니 산하대지는 어디에 있느냐?"고 하니, (산하
대지가) 있다고 하면 눈먼 봉사이며, 없다고 하면 죽은 놈이다.
운문스님이 사람을 지도했던 뜻을 알았느냐? 나에게 주장자를
돌려다오.
요즈음 사람들은 운문스님이 뚜렷하게 보여준 것을 모르고서,
"색계(色界)에 의지하여 마음을 밝히고 사물에 의지하여 이치를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저 석가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하심
에 잘못된 논의가 세상에서 일게 되리라는 것을 예측 못 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무엇 때문에 또다시 꽃을 들어 보이셨으며 가
섭은 미소를 지었을까? 부처님께서 설명을 붙여 말하기를 "나에
게 정법안장 열반묘심(正法眼藏涅槃妙心)이 있으니 이를 마하대
가섭에게 전하노라"라고 하셨는데, 왜 다시 굳이 심인(心印)만
을 전하였을까?
여러분이 이미 조사의 문하객이 되었는데 오로지 그것만을 전
한 마음을 밝힐 수 있느냐? 가슴속에 한 물건이라도 있으면 산
하대지가 들쑥날쑥 눈앞에 나타나겠지만, 가슴속에 한 물건도
없다면 밖으로 실오라기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치와 지혜가 그윽히 합하고, 경계와 회합한다고 말할 수 있겠
는가? 그 이유는 하나를 알면 일체를 알고, 하나를 밝히면 일체
가 밝혀지기 때문이다.
장사(長沙)스님은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눈앞의 식신(識神)에 의지해서 인식하기 때문
이다. 무량겁 동안 내려오는 생사의 근본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본래인(本來人)이라 한다"고 하였다. 홀연히 5음(五陰) 18계(十
八界)를 타파하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 몸밖에 남은 것이
없다 하여도 그것은 절반밖에 얻지 못한 것인데 어떻게 색계에
의지하여 마음을 밝히고 사물에 의지하여 이치를 밝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옛사람(제19칙 참조)이 말하기를 "한 티끌만 일어도 온 대지
가 모두 생긴다"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어느 것이 한 티끌인가
를. 이 한 티끌을 알 수 있다면 이 주장자를 알 것이요, 주장자
를 들 수만 있다면 종횡으로 자재하는 오묘한 작용을 알게 될
것이다. 이처럼 말하는 그것 자체가 벌써 언어문자의 갈등인데
하물며 또다시 용으로 변한다는 등의 말을 하겠는가? 그러므로
경장주(慶藏主)는 "일찍이 5천48권의 모든 불경 어디에 이런 말
이 있더냐?"고 말하였다. 운문스님은 주장자를 들어 모이는 곳
마다 전기대용(全機大用)으로 생동감 있게 사람을 지도했었다.
파초(芭蕉)스님은 대중에게 말하기를 "납승의 본분은 모두 이
주장자에 있다"하였고, 영가(永嘉)스님은 "이는 겉으로 괜히 관
직을 버리고[ ] 출가한 것이 아니다. 이는 여래의 보장(寶杖)
을 몸소 본받은 것이다"고 하였다.
석가여래께서 지난날, 연등(燃燈)부처님이 세상에서 머리를
풀어 진흙을 덮고서 연등부처님을 기다리자 연등부처님이 말씀
하셨다.
"이곳에 범찰(梵刹)을 세울지니라."
그때에 한 천자가 한 줄기 풀로 표시한 뒤에 말하였다.
"청정한 가람을 세웠습니다."
여러분은 말해보라, 이 무슨 소식인가를. 조사(설두스님)께서
는 말씀하시기를, "한 방 얻어맞고 깨침을 얻고 일할(一喝)에
알아차린다"고 하였으니, 말해보라, 무엇을 알아야 할까.
혹시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이 주장자야?"고 묻는다면, 이는
곤두박질치는 것이 아니겠으며, 한 차례 손뼉을 치는 것이 아니
겠는가! 이 모두가 망상분별이다. 아뿔사! 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주장자가 건곤을 삼키나니
-무슨 말을 하느냐? 개를 때리는 데나 쓰겠다.
복사꽃 지는 물결을 부질없이 말해 무엇하랴.
-향상의 한 구멍을 열어제치니 모든 성인이 일제히 아래에 서 있다. 구름
을 잡고 안개를 움켜쥐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천 번 만 번 말하는 것이
자기의 손발로 직접 한 번 잡는 것만 못하다.
꼬리를 태운 놈이라 해도 구름을 잡고 안개를 움켜쥐지는 못
하거늘
-좌지우지 하건만 노승은 보고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것도 하나의
마른 나무 조각일 뿐이다.
뱃 속의 부레를 말리는 놈[曝 : 용이 못 된 잉어]이 되었
다 해도 어찌 정신을 잃을쏘냐!
-사람마다 기상이 임금과 같은데 그대 스스로가 천 리 만 리 멀어질 뿐이
다. 오싹하게 두려운 걸 어찌하랴?
이로써 법문은 다했데.
-자비에 감사하노라. 노파심이 간절하다.
들었느냐, 못 들었느냐?
-어리석은 짓 했네. 들어봐야 무엇 하려구?
깨끗하여 말쑥해야 하니
-먹다 남은 국물이며 쉰 밥이다. 건곤 대지를 어느 곳에서 찾겠느냐?
다시는 어지럽게 하지 말라.
-법령을 내세운 자가 먼저 범한다. 순서가 되어 그대의 머리 위에 이르렀
다. (원오스님이) 치면서 말한다. 용서해줘서는 안된다.
일흔두 방망이도 또한 가벼운 용서이니
-산승은 일찍이 이 법령을 집행하지 않았다. 법령에 따라서 집행하는구
나. 산승을 만났기 망정이지.
1백50 방망이를 쳐도 그대를 용서해주기 어렵다.
-제대로 법령을 시행해야 하는데 어찌 이같이 끝내서야 되겠는가? 설령
아침에 3천 번을 치고 저녁에 8백 번을 때린다 해도 안 될 거 없다.
갑자기 (설두)스님이 주장자를 들고 법좌에서 내려오니, 대중
들이 모두 흩어졌다.
-설두스님은 용두사미였다. 무얼 하려는가?
[평창]
운문스님은 자세하게 사람을 지도하였고, 설두스님은 지름길
로 사람을 지도하였다. 그러므로 "용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팽
개쳐 그렇게 말하지 않고 다만 "주장자가 건곤을 삼켰다"고 말
하였다. 설두스님의 의도는 사람들이 망정으로 이해하는 것을
없애주는 데 있다.
다시 말하기를 "복사꽃 지는 물결을 부질없이 말해 무엇하랴"
하였으니, 이는 또다시 용으로 변화시킬 필요조차 없다는 것이
다. 저, 우문(禹門) 폭포에 세 단계의 폭포가 있는데, 3월이 되
면 복사꽃이 피고 봇물이 크게 불어난다. 이때 물을 거슬러 폭
포를 뛰어넘어가는 잉어는 용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설
두스님은 "설령 용이 되었다 해도 부질없는 말일 뿐"이라는 것
이다. "꼬리를 태운 놈이라도 구름을 잡고 안개를 움켜쥐지는
못하거늘"이라는 말은, 잉어가 우문 폭포를 뛰어넘으면 자연히
번개가 쳐서 꼬리를 태워주며, 구름을 잡고 안개를 움켜쥐고서
날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설두스님이 말한 의도는 "설령 용이
되어도 구름을 잡고 안개를 움켜쥐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뱃 속의 부레를 말리는 신세가 되었다 해도 어찌 정신을 잃
을소냐"고 하였는데, 청량(淸凉)의 <화엄소서(華嚴疏序)>에서는
"수행을 쌓은 보살이라도 용문에서 부레를 말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의 대의는 화엄의 경계란 작은 덕[小德], 작은 지
혜[小智]로서는 알 수 있는 경계가 아님을 밝힌 것이다. 이는
마치 잉어가 용문 폭포를 뚫고 지나가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
고 이마에 점이 찍힌 채 다시 돌아와서는 썩은 물 모래 더미 속
에서 괴로워하다가 뱃 속의 부레를 태워서 죽는 것과 같은 꼴이
다. 설두스님이 말한 의도는 "어차피 이마에 점이 찍혀 되돌아
왔으면 왔지 정신까지 잃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로써 법문은 다했네. 들었느냐, 못 들었느냐?"고하여 거듭
주석을 내리고 일시에 그대들을 위하여 말끔히 쓸어버렸다. 여
러분은 곧바로 깨끗하여 말쑥하게 할지언정 다시는 어지럽게 하
지 말라. 그대들이 또다시 어지럽게 한다면 주장자를 잃어버릴
것이다.
"일흔두 방망이 또한 가벼운 용서"라는 것은 설두스님이 그대
들을 위하여 무거운 벌을 그만두고 가벼운 벌을 준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일흔두 방망이을 두 배하며 1백50 방망이가
된다"고 하였는데, 요즈음 사람들이 이를 잘못 이해하고 숫자에
얽매여 계산하여, "일흔다섯 방망이어야 하는데 왜 일흔두 방망
이냐"고 한다. 이는 옛사람의 뜻이 말밖에 있음을 몰랐기 때문
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 일'은 언구(言句) 가운데 있지 않으
니 후인의 천착을 없애주고자 이를 말한 것이다.
설두스님은 이 때문에 이를 인용하여 "설령 참으로 깨끗하여
말쑥해졌을 때 그대에게 일흔두 방망이를 때려도 오히려 가벼이
용서한 것이며, 가령 그렇지 않고 1백50 방망이를 쳐도 그대를
용서해주기 어렵다"고 하여 일시에 송을 끝낸 것이다. 그러나
문득 다시 주장자를 들고서 거듭거듭 차츰차츰 지도를 했다. 그
러나 살 속에 피가 흐르는 놈이 하나도 없구나.
불과원오선사벽암록 권제6
제 61칙
풍혈(風穴)스님의 한 티끌을 세운다면
[수시]
법당(法幢)을 세우고 종지(宗旨)를 세우는 일은 본분종사에게
돌려야 할 터이지만, 용과 뱀을 판정하고 흑백을 분별함은 작가
선지식의 일이다.
칼날 위에서 살리고 죽이는 것을 논하고 몽둥이질할 때에 그
기연의 마땅함을 분별하는 경지는 그만두고, 홀로 법왕궁에 노
니는 일구(一句)는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를 말해보라. 거량해보
리라.
[본칙]
풍혈(風穴)스님은 법어를 했다.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렸다. 그렇지만 주인도 되고 손님도 되어야 한다.
"한 티끌을 세우면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자재롭다. 꽃도 수북, 비단도 수북하다.
나라가 흥성하고,
-저 집안(임제스님 문하)의 일은 아니다.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종적을 쓸어 없앤다. 눈동자를 잃어버렸는데 목숨까지도 잃었다.
나라가 멸망한다."
-모든 곳에 광명이 있다. 나라를 거들먹거려 무엇 하겠는가? 이는 참으로
그 집안의 일이다.
설두스님은 주장자를 들고서 말하였다.
-모름지기 천 길 벼랑이어야 한다. 달마스님이 왔구나.
"생사를 함께 할 납승이 있느냐?"
-나에게 화두를 돌려다오. 그러나 불평스러운 일을 공평하게 하려면 모름
지기 설두스님에게서 헤아려야 된다. 알았느냐? 알았다면 그대의 자유자
재함을 인정하겠지만, 몰랐다면 아침에 3천 방망이, 저녁에 8백 방망이
를 치겠다.
[평창]
에, 풍혈스님이 대중 설법을 하였다. "한 티끌을 세우면 나라
가 흥성하고,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하였는
데, 말해보라, 한 티끌을 세워야 옳은지, 세우지 않아야 옳은지
를. 여기에 이르러서는 대용(大用)이 눈앞에 나타나야 한다. 그
러므로 설령 언어 이전에 깨달아도 한 껍질 남아 있고 경계에
걸리며, 비록 말 떨어지자마자 통달한다 해도 경계에 부딪치고
미친 견해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임제스님 회하에 큰스님이므로 곧 본분의 솜씨를 부린
것이다. 한 티끌을 세워 나라가 흥성하여도 촌 늙은이는 이맛살
을 찡그린다. 그 뜻은 나라를 세우고 국가를 안녕하게 하는 데
에는 반드시 지모 있는 신하와 용맹한 장수의 힘을 빌려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런 뒤에야 기린이 나오고 봉황이 나오니 바로 태
평성대의 상서이다. 그러나 세 집밖에 안 되는 마을의 사람이
이러한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한 티끌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하여 찬바람만이 쓸쓸히 부는데 촌 늙은이가 무엇 때문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겠는가? 나라가 멸망해버렸기 때문이다.
동산스님 문하에서는 이를 "몸 피하는 곳[轉變處]"이라고 하
나, 부처도 중생도 없으며 옳고 그름도 없으며 좋고 나쁨도 없
으며 소리와 자취마저도 끊겼다.
그러므로 "황금가루가 아무리 귀하여도 눈에 들어가면 눈병을
일으킨다"고 하였으며, 또한 "금가루도 눈에 병이 되고 옷 속에
감춰놓은 구슬도 법엔 티끌이다. 자신의 신령함도 중히 여기지
않는데, 부처니 조사니 다 뭐하는 것인가!"라고 하였다. 종횡자
재하고 신통 묘용(神通妙用)이 있다 해도 기특할 게 없다. 여기
(나라가 망하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봉두남발한 채 만사를 다
쉬어야 한다. 이때는 산승도 전혀 아는 것이 없다. 만일 또다시
마음을 말하고 성품을 말하며 현미(玄微)함을 말하고 오묘함을
말하여도 모두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집안에 스스로 신선
의 경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전(南泉)스님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황매산(黃梅山) 7백 고승은 모두가 불법을 아는 사람들이었
기에 그[五祖]의 의발(衣鉢)을 얻지 못하였으나, 노행자(盧行
者)만은 불법을 알지 못하였기에 의발을 얻었다."
또 말하였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은 있음[有]을 알지 못하고 이리와 흰암
물소가 도리어 있음[有]를 안다."
촌 늙은이가 이맛살을 찡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노래를 하기
도 한다. 말해보라, 이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지. 그는 무슨
안목을 갖추었기에 이럴 수 있을까? 그러나 촌 늙은이의 문 앞
에는 따로이 조장(條章 : 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설두스님이 쌍으로 제시한 후 문득 주장자를 들고서 "함께 할
납승이 있느냐?"고 하였는데, 당시에 어떤 사람이 나와서 한마
디를 말해 상대를 해주었더라면 설두스님 이 늙은이가 뒤에 자
만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송]
촌 늙은이가 설령 구겨진 이맛살을 펴지 않는다 해도
-삼천 리 밖에 한 사람이 있다. 맛있는 음식도 배부른 자에게는 걸맞지
않다.
국가의 웅대한 터전을 세우고자 하는데,
-태평곡 한가락에 모두가 안다. 가고 싶으면 가고 머물고 싶으면 머문다.
온 건곤 대지가 해탈문인데 그대는 무엇을 다시 세우려고 하는가?
지모 있는 신하들과 용맹스런 장수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있느냐, 있느냐? 땅은 드넓고 사람이 없으니 참사람 만나기는 어렵지.
자만말라.
만 리에 맑은 바람부니 자연 알게 된다.
-곁에 사람이 없는 듯 방자하구나. 누구에게 땅을 쓸게 하랴? 운거 나한
(雲居羅漢)처럼 교만한 놈이로군.
[평창]
앞(본칙)에서는 쌍으로 제시하더니만 여기(송)에서는 한쪽은
제기하고 한쪽은 생략해버리니, 이는 긴 부분을 잘라서 짧은 곳
을 보완하고 무거운 것을 버리고 가벼운 쪽을 따른 것이다.
그러므로 "촌 늙은이가 설령 구겨진 이맛살을 펴지 않는다해
도, 나는 국가의 웅대한 터전을 세우고자 하는데, 지모 있는 신
하와 용맹스런 장수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하였다.
설두스님이 주장자를 들고서 "또한 생사를 함께 할 납승이 있
느냐?"고 한 것은 "지모 있는 신하와 용맹스런 장수가 있느냐?"
고 말한 것처럼 한 입으로 모든 사람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러
므로 중읍(中邑)스님은 "땅은 드넓고 사람은 적어 참사람 만나
기 힘들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의 의중을) 아는 사람이 있느냐? 그런 사람이 나온
다면 한 구덩이에 묻어버리겠다. "만 리에 맑은 바람 부니 자연
히 알게 된다"는 것은 설두스님 스스로가 자만하는 것이다.
제 62칙
운문의 보물 한가지[雲門一寶]
[수시]
스승에게 배우지 않고 얻은 지혜[無師智]로 작위(作爲)없는
묘용(妙用)을 발휘하며, 조건 없는 자비로써 청하지 않는 훌륭
한 벗이 되며, 한 구절에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한 기
연 속에 놓아주고 사로잡기도 한다.
[본칙]
운문스님이 대중 설법을 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
-땅은 넓고 사람은 드물다. 천지사방을 거두려 해도 안 된다.
우주의 사이에
-귀신 굴 속에서의 살림살이 따위는 그만두어라. 빗나가 버렸다.
그 가운데 하나의 보배가 있어
-어디에 있느냐? 광채가 나는구나. 절대 귀신의 굴 속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형산(形山)에 감춰져 있다.
-꽉 부딪쳐, 까발려라!
등롱(燈籠)을 들고 불전(佛典)으로 향하고,
-(그 정도야) 알음알이로도 알 수 있지.
삼문(三門)을 가지고 등롱 위로 왔노라."
-운문스님이 옳기는 하지만 잘못됐다. 아직 좀 모자란다. 자세히 점검해
본다면 썩은 냄새에 불과할 것이다.
[평창]
운문스님이 말하기를 "하늘과 땅 사이 우주의 사이에, 그 가
운데 하나의 보배가 있어 형산(形山)에 감춰져 있다"하였는데,
말해보라, 운문스님의 의도는 그 말에 있는 것일까, 등롱 위에
있는 것일까? 이는 승조법사(僧肇法師)의 <보장론(寶藏論)>에
있는 몇 구절인데, 운문스님이 이를 들어 설법한 것이다.
승조법사는 후진(後秦)시대에 소요원(逍遙園)에서 논(論)을
지었다. 그는 <유마경(維摩經)>을 베껴 쓰다가 장자와 노자가
오묘함을 다하지 못했음을 알고, 이에 구마라집(鳩摩羅什)에게
예배를 하고 스승으로 삼았다. 또한 와관사(瓦棺寺)에서 발타바
라(跋陀婆羅)법사를 참방하였는데, 그는 서천(西天) 27조(二十
七祖 : 般若多羅)에게 심인(心印)을 전수받은 스님이었다. 승조
법사는 27조스님의 깊은 경지에까지 이르렀는데 어느날 난을 만
나 사형을 당하게 되었을 때 7일간의 여가를 얻어 <보장론>을
지었다.
운문스님은 <보장론> 가운데에서 네 구절[四句]를 들어 그 대
의를 설법하기를 "무엇 때문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배[無價
之寶]가 음계(陰界) 속에 숨겨져 있느냐?"고 했다. <보장론>의
내용은 종문(宗門)의 말들과 일치되고 있다.
듣지 못하였느냐, 경청(鏡淸)스님이 조산(曺山)스님에게 들었
던 것을. 즉,
"맑고 비어[淸虛]있는 이치는 결국 몸이 없을 때는 어떻게 됩
니까?"
"이치[理]는 이와 같은데, 그럼 현상[事]는 어떠한가?"
"나 조산 한 사람이야 속일 수는 있겠지만 많은 성인의 눈은
어떻게 하려느냐?"
"많은 성인의 안목이 없었다면 그 사실을 화상께서는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공적으로는 바늘 하나 용납할 수 없지만 사적으로는 수레도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 사이 우주의 사이에, 그 가운데 하나의
보배가 있어 형산(形山)에 감춰져 있다"고 하니, <보장론>의 대
의는 사람마다 모두 갖추어져 있고 낱낱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
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운문스님이 이를 들어 시중(示衆)하였지만 온전히 그대로 드
러난 것이므로 좌주(座主 : 강사)들처럼 괜히 그대에게 주해를
달아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비로써 다시 그대들에게
주해를 붙여 말하기를 "등롱(燈籠)을 들고 불전으로 향하고 삼
문(三門)을 가지고 등롱 위로 왔노라"하였다. 말해보라, 운문스
님이 이처럼 말했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듣지 못하였느냐? 옛사람(영가스님)이 말하기를 "무명(無明)
의 참 성품이 바로 불성(佛性)이요, 환화(幻化)의 빈 몸[空身]
이 큰 법신[法身]이다"라고 하였고, 또한 (청량의 <화엄경대소>
의 서문에서는) "범부의 마음속에서 부처의 마음을 본다"고 하
였다.
형산(形山)이란 사대 오온(四大五蘊)을 말한다. 그 가운데 하
나의 보배가 있어 형산에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인
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이 마음에 있는데도 미혹한 사람은 바깥에서 구
하느라고, 자신에게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보배가 간직되어 있는
데도, 일생 쉴 줄을 모른다.
"불성은 당당하게 뚜렷이 나타나 있으나 모양[相]에 머무는
중생은 보기 어렵다. 중생 그 자체가 무아(無我)라는 사실을 깨
닫는다면 나의 얼굴이 어찌 부처의 얼굴과 다르리요!"
"마음은 본래의 마음이며, 얼굴은 어머니가 낳아주신 얼굴이
다. 겁석(劫石)은 옮길 수 있어도 그 가운데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어떤 사람은 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昭昭靈靈]한 것을 보
배로 여기면서도 그 묘용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 묘용을 체득
하지 못하므로 꼼짝달싹 하지 못하며 그 보물을 들추어내지 못
한다.
옛사람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말하였다.
등롱을 들고 불전으로 향하는 것은 일상의 알음알이로도 알
수 있으나, 삼문(三門)을 가지고 등롱 위에 온다는 것도 알 수
있겠느냐? 운문스님이 일시에 그대들의 정(情), 식(識), 의
(意), 상(想)과 득실 시비를 쳐부숴버렸다.
설두스님은 "나는 소양(韶陽 : 운문)스님의 참신한 공안을 좋
아한다. 일생 동안 사람들이 집착한 못을 빼고 쐐기를 뽑아주었
다"고 하였으며, 또한 "법상에 앉은 선지식들이 얼마인지를 아
는가? 날카로운 칼날로(얽매임을) 끊어주어 사람들의 사랑을 받
았다"고 말하였다.
운문스님은 "등롱을 들고 불전으로 향한다"라고 말함으로서
이 한 구절로 (모두를) 절단해버리고, 또다시 "삼문을 가지고
등롱 위로 왔노나"고 하니 이는 말하자면 전광석화와 같은 것이
다.
운문스님은 말하였다.
"그대가 이 경지와 같아지려거든 먼저 깨닫도록 하라. 티끌처
럼 많은 부처님이 그대의 발 아래 있으며, 삼장(三藏)의 말씀이
그대의 혀 끝에 있으니 이를 깨닫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스님이여, 망상을 부리지 말라. 하늘은 하늘, 땅은 땅, 산은
산, 물은 물, 스님은 스님, 속인은 속인이니라."
말없이 한참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의 앞에 앞산을 가져와보아라."
문득 어떤 스님이 나오더니 물었다.
"제가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어떻습니까?"
"삼문(三門)이 무엇 때문에 여기를 지나가느냐?"
그가 죽을까 염려스러워 손으로 한 획을 그린 후에 말하였다.
"이를 안다면 으뜸가는 제호(醍 )의 맛이겠지만, 알지 못한
다면 도리어 독약이니라."
그러므로 "요달(了達)하고 요달하고 또 요달하였을 때는 요달
할 것도 없고, 현묘하고 현묘하고 또 현묘한 것은 곧바로 껄껄
대고 웃어야 한다"고 하였다.
설두스님은 또다시 말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 우주의 사이에, 그 가운데 하나의 보배가
있는데, 벽 위에 걸려 있다. 9년 면벽을 한 달마의 정안(正眼)
으로도 이를 보지 못하였다. 오늘날의 납승들이 보려 한다면 등
줄기를 바로 후려치겠다."
살펴보건대, 본분종사들은 결코 실제의 법을 가지고 사람들을
얽어묶지는 않았었다. 현사(玄沙)스님은 말하기를 "잡아 가두어
도 머물지 않으며 불러도 되돌아보질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긴 하나 이도 신령한 거북이 꼬리를 끄는 것처럼 자취를
남기는 일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ㅅ펴보고 살펴보라.
-크게 눈여겨보라. 살펴서 무엇 하려고? 검은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구
나.
옛 언덕에 어느 사람이 낚싯대를 잡고 있는가?
-고고하고 몹시 고고하며 절벽처럼 험준하고 매우 험준하다. 도적이 떠난
뒤에 활을 당기는구나. 뒤통수에 뺨이 보이는 (괴상한) 놈과는 왕래를
하지 말라.
구름은 뭉게뭉게
-끊어버려야 한다. 백겹 천겹이로군. 기름 때 찌든 모자요, 노린내 나는
무명 적삼이다.
물은 넘실넘실
-갈팡질팡. 앞이 막히고 뒤도 막혔구나.
밝은 달 갈대꽃을 그대여 스스로 살펴보오.
-보았다 하면 눈이 먼다. 운문스님의 말을 알 수 있다면 설두스님의 마지
막 부분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평창]
운문스님의 말을 알 수 있다면 설두스님이 사람을 지도한 곳
을 바로 알 것이다. 그는 운문스님의 대중 설법 마지막 부분 두
구절(등롱 운운한 부분)에 주해를 붙여 말하기를 "살펴보고, 살
펴보라"고 하였는데, 그대가 눈썹을 치켜 세우고[ 眉]눈을 부
릅뜨라는 말로 이해한다면 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신령한 빛 홀로 비치어
아득히 근(根), 진(塵)을 벗어나다.
진상(眞常)이 통째로 드러나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심성(心性)은 물듦이 없어
본래 뚜렷하게 그대로이니
허망한 반연(攀緣) 여의기만 하면
바로 여여(如如)한 부처라네.
만일 눈썹을 치켜 세우고 눈을 부라리며 턱 버티고 있다면 어
떻게 육근(六根), 육진(六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설두스님은 말하였다.
"살펴보고, 살펴보라. 운문스님이 언덕에 낚싯대를 잡고 있는
것과 같다. 구름 또한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물도 넘실넘실한데
밝은 달은 하얀 갈대꽃에 비치고, 갈대꽃은 밝은 달에 비친다."
바로 이러한 때는, 말해보라, 어떤 경계일까? 곧 볼 수 있다
면 앞의 구(구름은 뭉게뭉게)와 뒤의 구(물은 넘실넘실)가 결국
을 같을 뿐이다.
제 63칙
남전의 고양이를 벰[南泉斬猫]
[수시]
생각[意路]으로도 이르지 못하니 반드시 끊임이 없어야 하고,
말이나 설명으로도 미치지 못하니 대뜸 깨쳐야 한다. 번개가 치
고 별똥이 튀는 듯하며, 폭포를 쏟아붓고 산악을 뒤집는 것 같
다. 대중 가운데 이를 아는 사람이 없느냐? 거량해보리라.
[본칙]
하루는 동서 양편 승당에서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자,
-이는 오늘에 시끄러운 일이 아니다(늘 그랬었다). 또 한바탕 잘못을 저
지르는구나.
남전스님이 이를 보고서 마침내 고양이를 잡으며 말하였다.
"말할 수 있다면 베지 않겠다."
-바른 법령을 시행하여 모든 사람들을 꼼짝 못 하게 하네. 이 늙은이가
용과 뱀을 구별해내는 솜씨가 있었구나.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아이고 아까워라, 기회를 놓치는구나. 한 무더기 먹통들을 어디에 쓰랴?
엉터리 선객들이 삼대처럼, 좁쌀처럼 수없이 많구나.
남전스님이 고양이를 두 동강으로 베어버렸다.
-통쾌하고 통쾌하다. 이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남전마저도) 모두 쓸데없
는 짓거리하는 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도적이 떠난 뒤 활을 당기는구
나. 벌써 한 단계 낮은 제이제로다. 거량하기에 앞서 쳤어야 했다.
[평창]
종사구나! 저 한 번은 움직이고 한 번은 쉬고, 한 번은 나아
가고 한 번은 들어갔다 한 것을 보아라. 그 대의가 무엇인지를
말해보라.
고양이를 베어버렸다는 이 화두를 천하 총림에서는 많이들 알
음알이로 헤아리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잡은 것에 대
의가 있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베어버린 것에 (대의가) 있
다"고 하나 모두가 전혀 관계가 없다.
그가 고양이를 들지 않았을 때에도 곳곳에서 이러쿵저러쿵 말
들 하겠느냐? 이는 옛사람(남전스님)에게 하늘과 땅을 구별하는
안목이 있었고, 하늘과 땅을 구별하는 칼이 있었음을 몰랐던 것
이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결국은 고양이를 누가 베어버렸을까? 남
전스님의 경우, 고양이를 들고서 "말할 수 있다면 베지 않겠다"
하였는데, 그 당시 혹 어떤 사람이 말을 했다면 남전스님이 베
었을까, 베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올바른 법령을 시행하여 모
든 사람들을 꼼짝 못 하게 하네"라 말했던 것이다.
하늘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살펴보라. 누가 그 경지에 있는
사람인가를, 실은 애초부터 원래 벨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 화두 또한 베느냐, 베지 않느냐에 있지 않다. 이 일을 확
연히 알아야 한다. 이처럼 분명하다. 생각의 티끌[精靈]이니 의
견(意見)으로써 찾을 수 없다. 만약 생각의 티끌이나 의견으로
찾는다면 남전스님을 저버릴 것이다.
창을 마주한 칼날 위에서 살펴보면, 있다 해도 옳고 없다 해
도 옳으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해도 옳을 것이다. 그러므
로 옛사람의 말에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고 하였다. 요
즈음 사람들은 변과 통은 모르고서 오로지 말만 가지고 따진다.
남전스님이 이처럼 들어보인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당장에 무
슨 대답을 하도록 하는 데 있지 않다. 오직 스스로가 깨닫고서
제각기 스스로 작용하고 스스로 알게 하려는 데 있다. 만일 이
처럼 이해하지 못한다면 끝내 (본뜻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설두스님은 대뜸 다음과 같이 송을 하였다.
[송]
양편 승당엔 모두가 엉터리 선객들.
-몸소 한말씀 하셨군. 한마디로 말을 다해 버렸군. 죄상에 의거하여 판결
했다.
자욱한 티끌만을 일으킬 뿐 어찌할 줄 모르는구나.
-그가 어떻게 종결짓는가를 살펴보라. 그대로 드러난 공안이다. 그래도
약간은 있었구나.
다행히도 남전스님이 법령을 거행하여
-(원오스님은) 불자(拂子)를 들고 말한다. 이것과 비슷하군. 남전스님은
아직 좀 모자란다. 좋은 금강왕보검을 진흙을 자르는 데 쓰고 있다.
단칼에 두 동강 내어 한 쪽[偏頗: 두동강 내는 쪽]을 택했네.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혹시 어떤 사람이 칼을 어루만지면 그가 어떻게
하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냥 용서해줘서는 안 된다. (원오스님은) 쳤다.
[평창]
"양편 승당엔 모두가 엉터리 선객들"이라는 것은, 설두스님은
이 언구에 떨어지지 않았고 하인이 나귀나 말의 앞뒤에 끌려다
니듯이 예속되지 않았기 때문에, 까드러내고 몸을 피하여 문득
"자욱한 티끌만 일으킬 뿐 어찌할 줄을 모른다"고 한 것이다.
설두스님은 남전스님과 함께 손을 잡고 가면서 한 구절로 송을
끝마쳤다.
양편 승당의 수좌들은 쉴 곳이 없어 가는 곳마다 오로지 자욱
한 망상의 티끌을 일으키면서도 어찌하지 못하였는데, 다행히도
남전스님이 그들에게 이 공안을 재판하여 준 덕분에 말끔히 다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가자니 마을도 없고
뒤로 가자니 주막도 없는 것처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데야 어찌하겠는가.
그러므로 "남전스님이 바른 법령을 거행한 덕분에, 단칼로 두
동강 내어 한 쪽을 택했네"라고 하였다. 서슴없이 단칼로 두동
강을 내어 어느 쪽으로 기울든 상관치 않았다는데, 말해보라,
남전스님이 어떠한 법령에 의거했는가를.
재 64칙
조주의 짚신을 머리에 얹고[趙州載鞋]
[본칙]
남전스님이 다시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 조주스님에게 묻
자,
-그렇지만 반드시 같은 마음, 같은 뜻이라야 이렇게 할 수 있다. 같은 길
을 가는 자만이 알 것이다.
조주스님은 문득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결국 진흙물을 뒤집어쓰는군.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네가 그때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
-쿵짝이 서로 맞는구나. 속뜻을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 자신의 잘못을 가
지고 남까지 잘못되게 하네.
[평창]
조주스님은 남전스님의 적자(嫡子 : 맏이)이다. 처음을 말
하면 끝을 알고 거량하자마자 의도를 알았던 것이다. 남전스님
이 저녁 때 다시 앞에 했던 이야기를 꺼내 조주스님에게 물었
다. 조주스님은 노련한 작가였기에 대뜸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
고 밖으로 나가 버리자,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네가 그때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었을텐데."
말해보라, 참으로 살릴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남전스님이 말한 "말할 수 있다면 고양이를 베지 않겠다"는
것은 번뜩이는 전광석화와 같은 것이다.
조주스님이 대뜸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가버린
것을 활구를 참구하고 사구를 참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날마
다 새롭고 시각마다 새로워, (이 자리는) 일천 성인이라도 한
실오라기만큼도 바꾸지 못한다. 모름지기 자기 자신 속에 (원래
부터 갖추어져) 있는 보배에서부터 우러나와야 조주스님의 온전
한 기틀과 큰 작용[全機大用]을 알 수 있다.
조주스님이 "나는 법왕이 되어 모든 법에 자재하다"라고 했는
데, 모두가 잘못 이해하고서 "조주스님은 방편으로 짚신을 가지
고 고양이을 대신했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그가 '말할 수 있
다면 고양이를 베지 않겠다'는 말을 할 때 대뜸 짚신을 이고 나
갔어야 했다. 이는 그(남전스님)가 고양이를 벤 것이지 나의 일
과는 상관이 없다"고 해석을 하나,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며 오
로지 망상분별을 한 것뿐이다. 이 어른들의 뜻이란 널리 하늘을
덮고 두루 땅을 떠받들어주는 것과 같음을 모른 것이라 하겠다.
이들의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의기투합하여, 기봉(機鋒)이 일치
되므로 저쪽에서 처음으로 거량하면 바로 끝을 알았는데, 요즈
음의 학자들은 옛사람의 몸을 비꼈던 곳[轉身處]을 모르고 부질
없이 생각의 길[意路]에서 헤아리고 있다.
이를 알고저 한다면 조주스님과 남전스님이 몸을 비꼈던 곳을
보아야 할 것이다. 송은 다음과 같다.
[송]
공안을 분명하게 하여 조주스님에게 물으니
-말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다시 벨 필요가 없다. 상여 뒤에 약봉
지를 매달았구나.
장안성 안에서 마음껏 한가로이 노니네.
-이처럼 쾌활하고 이처럼 자유로울 수 있어야지. 손에 잡히는 대로 풀을
꺾어 참으로 이렇게 지도를 하는구나.
짚신을 머리에 이었으나 아는 사람 없어
-한명은커녕 반 명도 없다. 따로이 한 가풍이로다. 밝은 것에도 어울리고
어둔 것에도 어울린다.
고향산천에만 갔다하면 모두가 쉬게 된다.
-그 자리에서 30방망이는 때렸어야 좋았을걸. 말해보라, 어느 곳에 허물
이 있었는가를. 바람이 없는 데에서 풍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두 스님
이 모두 놓아버렸다. 이렇게 하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 이렇게 한다면
몹시 기특하지.
[평창]
"공안을 분명하게 하여 조주스님에게 물었다"는 것은, 경장주
(慶藏主)가 말하기를 "이는 판결을 하는 것과 똑같다. 여덟 대
때려야 할 사람에게는 여덟 대를, 열세 대를 때려야 할 사람에
게는 열세 차례를 때려 결단을 내버렸다"고 하였다.
이 공안을 가지고 조주스님에게 물으니 조주스님은 그의 집안
사람이었으므로 남전스님의 뜻을 알았다. 그는 투철한 사람이었
기에 이리 치고 저리 치며[ 箸 著] 바로 몸을 뒤재켜 본분작
가의 안뇌(眼惱)를 갖추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자마
자 눈을 부릅뜨고 바로 떠나버린 것이다.
설두스님은 말하기를 "장안성 안에서 마음껏 한가로이 노니
네"라고 하였으니, 허물이 적지 않다. 옛사람의 말에 "장안이
좋기는 해도 오래 살 곳은 못 된다"하였고, 또한 "장안은 몹시
시끄럽지만 우리 동네는 편안하다"고 하였으니, 모름지기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인가를 알고 길흉을 분별하여야만 된다.
"짚신을 머리에 이었으나 아는 사람 없어"라는 것은 짚신을
이었던 것은 조금도 이러쿵저러쿵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
로 이는 자신만이 알 수 있고 자신만이 증득할 수 있는 것이라
고 한다. 이로써 남전스님, 조주스님, 설두스님이 똑같이 체득
하고 똑같이 활동했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말해보라, 지금
은 이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를.
"고향산천에만 갔다하면 바로 쉬게 된다"고 하였다. 고향산천
은 어디일까? 그(설두스님)가 알지 못했다면 결코 이처럼 말하
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벌써 알고 있었다. 말해보라, 고향산천
이 어디에 있는가를. (원오스님은) 쳤다.
제 65칙
세존의 침묵[世尊良久]
[수시]
모양[相]이 없으면서도 형상이 시방허공을 가득 메워 반듯하
고 넓으며[方廣], 무심(無心)하여 온 세계에 두루하면서도 방해
가 되지 않는다.
하나를 들면 나머지 셋을 밝히며, 눈대중으로 탁 보고 착 알
아차려 비 쏟아지듯 방망이를 때리고, 우레가 치듯 '할(喝)'을
한다해도 향상인(向上人)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말해보
라. 무엇이 향상인의 일인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그렇긴 해도(외도라 할지라도) 모두 이 집안 사람이므로 약간의 향기가
있구나. 쌍검이 허공에 난다. 묻지 않았기 망정이지.
세존께서 말없이 한참 계시니,
-세존을 비방하지 말라. 그 소리가 우레와 같다. 앉은 사람, 선 사람 모
두가 그를 움직일 수 없다.
외도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주시어 저
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시었습니다."
-영리한 놈이 한 번 튕겨주자 대뜸 알아차리는군. 소반 위에 구르는 밝은
구슬이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阿難)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외도는 무엇을 얻었기에 도에 들어갔다 말하였습니까?"
-참으로 사람을 의심케 하는구나. 그러나 모두가 알아야 한다. 용광로 속
에 쇳덩어리를 통째로 넣었구나.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아도 달리는 것과 같다."
-말해보라. 무엇을 채찍의 그림자라고 하였을까? (원오스님은) 불자(拂
子)를 한 번 내리쳤다. 방망이 끝에 눈이 있어 해처럼 밝구나. 진짜 금
을 식별하려면 불 속에 넣어보아야지. 입으로 밥을 먹을 기회가 왔군.
[평창]
'이일'이 언구에 있다면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敎)가 어찌 언
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어떤 이가 만약 "말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올 필요가 있단
말인가?
예로부터 허다한 공안은 결국 어떻게 해야 그 핵심을 알 수
있을까? 이 한 칙의 공안을 말하는 자는 드물지 않다. 어느 사
람은 "말없이 한참 있는 것"이라 하며, 어떤 이는 "기대어 앉는
것"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말없이 대답하지 않는 것"이
라고 말하기도 하나, 아뿔사! 이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어찌 이를 더듬어서 찾으려고 하는가? 이 일은 실로 언구 위에
도 있지 않지만 언구를 떠나지도 않는다. 조금이라도 의심하고
의논하려 한다면 천리 만리나 멀어질 것이다.
이를 살펴보면, 저 외도가 깨닫고 나서 보니, ('이것'은) 여
기에도 저기에도 있지 않았으며, 옳은 데도 옳지 않은 데도 있
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음을 알 수 있다. 말해보라, 이는 어떤
것인가를.
천의 의회(天衣義懷)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유마는 말없이 한참 동안 있지 않았으니
기대어 앉아 헤아리면 잘못이다.
취모검갑(吹毛劍匣) 속에 싸늘한 광채 차가우니
외도천마(外道天魔)가 모두 손을 못 대는군.
백장 도항(百丈道恒)스님이 법안(法眼)스님을 참방하자 법
안스님은 이 화두를 들게 하였는데, 하루는 묻기를 "너는 어떤
인연을 보았느냐?"고 하자, 백장 도항스님은 말하였다.
"외도가 부처님께 질문한 화두입니다."
"그대는 말해보아라."
도항스님이 머뭇머뭇 입을 열려고 하자, 법안스님은 말하였
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그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던 것
[良久處]를 알음알이로 헤아리려고 하느냐?"
도항스님은 그 말을 듣자마자 완전히 깨치고 그뒤에 대중 설
법을 하였다.
"백장스님에게는 세 비결이 있으니, '차나 마셔라', '잘들 가
시오', '쉬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러쿵저러쿵 따지거나 사량
(思量)한다면 그대들은 결코 투철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아야 한다."
취암산(翠巖山)에 살던 점흉(點胸)이란 별명이 있는 가진(可
眞)스님이 이를 들어 말하였다.
"천지사방과 9주(唐代에는 전국이 9州였음)에 청(靑 : 관리),
황(黃 : 도사), 적(赤 : 승려), 백(白 : 속인)이 모두 얽히고
설키어 살고 있구나!"
외도는 '네 베다[四維陀]'를 이해하고 스스로 말하기를, "나
는 일체의 지혜[一切智]를 얻은 사람이다"하며, 곳곳에서 사람
을 찾아 논의를 하였다. 그는 질문의 실마리를 일으켜 석가부처
님의 혀를 꼼짝 못 하게 하려고 하였다. 세존께서는 실낱만큼의
힘도 쓰지 않으셨는데도, 그는 문득 깨닫고 떠나면서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
어 주시고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말해
보라, 대자대비한 곳이 어디인가를. 세존의 이 한 눈은 삼세(三
世)를 관통하였고, 외도의 두 눈동자[雙眸]는 오천축국(五天竺
國)을 관통하였다.
위산 진여( 山眞如)스님이 이를 들어 말하였다.
"외도는 지극한 보배를 간직하였고 세존께서 그것을 몸소 끄
집어내시니 삼라가 밝게 나타나고 만상이 분명하였다."
결국 외도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이는 마치 개를 도망갈 곳이
없는 담장으로 몰아붙이는 것처럼,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이르러 도리어 대뜸 활발발한 것과 같다. 만일 계교와 시
비를 일시에 놓아버리고 망정이 다하고 견해가 없어지면 자연히
속속들이 분명하게 될 것이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
께 여쭈었다.
"외도는 무엇을 깨쳤기에 (도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
까?"
"훌륭한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서도 달려가는 것과 같
다."
뒷날 총림에서는 "또 바람에 나부껴 다른 곡조 속에 섞이고
말았다"고 하였으며, 또한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라고도 하였
다. 어느 곳이 세존의 채찍 그림자이며, 어느 곳이 채찍 그림자
를 본 곳일까?
설두스님은 "사정(邪正)을 분간하지 못한 허물은 채찍 그림자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진여(眞如)스님은 "아난이 황금 종을
거듭 치자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이 소리를 함께 듣는다"고 하
였다. 그러나 이것은 두 마리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것처럼 지
혜로운 사람의 위엄과 영악스러움을 키워준 것이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기틀의 바퀴를 굴리지 않았으나
-여기에 있다. 과연 한 실오라기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굴리면 반드시 양쪽으로 달리리라.
-있음[有]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없음[無]에 떨어지고 동쪽으로 가
지 않는다면 서쪽으로 간다. 왼쪽 눈은 반 근이고 오른쪽 눈은 여덟 냥
이다.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으니
-석가부처님을 보았느냐? 한 번 튕겨주니 대뜸 피하는군. 깨졌군, 깨졌
어. 탄로났군, 탄로났어.
당장에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하도다.
-온 대지가 해탈문이다. 족히 30방망이는 먹여야지. 석가부처님을 보았느
냐?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함이여! 미혹의 구름이 열리니
-(방편으로) 작은 길을 하나 터놓았군. 그대가 몸을 비낀 곳이 있는 것을
인정하겠지만 외도인 것을 어찌하랴.
자비의 문 어디엔들 티끌먼지가 일어나랴?
-온 세계 어디에도 결코 숨기지 못하지. 물러서라, 물러서라. 달마스님이
오신다.
생각해보니, 채찍 그림자를 엿보는 훌륭한 말은
-나에게 주장자가 있으니 그대가 나에게 주지 않아도 된다. 말해보라, 어
디가 채찍 그림자이며, 어디가 훌륭한 말[馬]인가?
천 리를 바람처럼 달리다가도 부르면 곧 되돌아온다.
-불전에 올라타고 절문 밖으로 나가는군. 몸을 비꼈다 해도 잘못이다. 용
서해줘서는 안 된다. (원오스님은) 쳤다.
아아! 돌아왔구나! (설두스님은) 손가락을 세 번 튕겼다.
-앞으로 가자니 마을도 없고 뒤로 돌아가자니 주막도 없다. 주장자를 꺾고
어느 곳으로 가느냐? 설두스님은 우레 소리만 컸지 빗방울은 전혀 없다.
[평창]
"기틀의 바퀴를 굴리진 않았지만, 굴리면 반드시 양쪽으로 달
린다." 기틀[機]이란 일천 성인의 신령한 기틀이며 바퀴[輪]란
본래부터 있는 여러분의 목숨이다. 듣지 못했느냐? 고인(설두스
님)의 말을.
일천 성인의 신령한 기틀 쉽게 친하지 못하나니
용이 용 새끼 낳는 것 그냥 따르지 말라.
조주스님은 몇 개의 성과 맞바꾸는 큰 구슬을 빼앗았으니
진왕(秦王)과 인상여(藺相如) 모두가 목숨을 잃는구나.
외도는 (자신의 본성을) 거머쥐고 주인 노릇을하여 꼼짝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어떻게 그런 줄 아는가 하면, 그가 말하기를
"말이 있는 것도 묻지 않고, 말이 없는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어찌 온전한 기봉이 있는 곳이 아니겠
는가?
세존께서는 풍향에 따라 돛을 걸고 병을 따라 약을 투여할 줄
아셨기에 한참 말없이 계시면서 온전한 기틀을 드러내셨다. 이
에 외도는 이를 모두 이해하고 기틀 바퀴[機輪]를 빙글빙글 돌
리면서 유(有)로 향하지도 않고, 무(無)로 향하지도 않았으며,
얻고 잃음에도 떨어지지 않았고, 범부와 성인의 경지에도 얽매
이지 않아, 양쪽을 일시에 꼼짝 못 하게 했던 것이다.
세존께선 한참 말없이[良久] 계시자마자 그는 바로 절을 올렸
다. 요즈음 사람들은 무(無)에 떨어지지 않으면 유(有)에 떨어
져 오로지 유(有), 무(無)에 머물고 만다.
설두스님의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려 있으니, 당장에 어여쁘
고 추함을 분간하도다"라는 말은 꼼짝하지 않고 한참 말없이 있
었을 뿐인데, 밝은 거울이 경대에 걸린 것처럼 삼라만상의 모습
이 이 거울을 피해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외도는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로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주시어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말해보
라, 외도는 무엇을 깨달았을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모두 스스로 참구하고 스스로 깨달
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디에서나 행주좌와에 높낮이를 묻
지 않아도 단박에 그대로 나타나 다시는 한 실오라기만큼도 벗
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계교를 부리며 한 터럭만큼이라도
이치로써 따지면 그 자리에서 사람을 얽매어 도에 들어갈 수 없
게 된다.
뒤이어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주
시고 저로 하여금 도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라는 데 대하여,
"당장에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하도다. 어여쁘고 추함을 분간함
이여, 미혹의 구름이 열리니, 자비의 문 어디엔들 티끌먼지가
일어나랴"하고 노래하였다. 온 대지가 세존의 대자대비하신 문
이다. 그대들이 이를 꿰뚫을 수 있다면 손 한 번 까딱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활짝 열어놓은 문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세존께서 스무하루 동안에 '이 일'을 사유
(思惟)하시고 "내 정녕 설법을 하지 않고 어서 열반에 들어야겠
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생각해보니, 채찍 그림자를 엿보는 훌륭한 말은 천 리를 바
람처럼 달리다가도 부르면 곧 되돌아온다"는 것은, 바람처럼 달
리는 말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아도 곧바로 천리를 달리지만 되
돌아 오라 하기만 하면 곧바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설두스님
은 그를 칭찬하여 "똑똑한 사람은 한 번 튕겨주면 대뜸 알아차
리고, 한 번 부르면 문득 되돌아온다. 만일 불러서 되돌아온다
면 손가락을 세 번 튕기리라"고 했다.
말해보라, 이는 (핵심을) 드러내 밝혀주신 것일까, 모래를 뿌
린 것일까?
제66칙
암두의 할[巖頭作□]
[수시]
기틀에 당하여서는 범을 빠뜨리는 덫을 당장에 놓고 도적을
사로잡는 작전을 이리저리 짠다. 밝음에도 합하고 어둠에도 합
하며, 한꺼번에 놓아주기도 하고 한꺼번에 잡아들이기도 한다.
죽은 뱀을 가지고 노는 것일랑 저들 작자 선지식에게 맡겨라.
[본칙]
암두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입을 열기 이전에 벌써 저버렸다. 해골을 뚫어버렸다. 온 곳을 알려 한
다면 어렵지 않지.
"서경(西京)에서 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좀도둑이었군.
"황소(黃巢)가 지난 뒤에 칼을 주었느냐?"
-평소에 좀도둑질은 하지 않았구나. 모가지 떨어질까 두려워하지도 않고
이처럼 물어대다니 담력이 퍽이나 크구나.
"주었습니다."
-졌구나. 몸을 피할 줄을 몰랐구나. 멍청한 놈들이 삼대 같고 좁쌀처럼
많다.
암두스님이 목을 그의 앞으로 쑤욱 빼면서 "얏!"하고 소리치
자,
-반드시 적절한 기연을 알아야 한다. 범을 잡는 덫이군. 이 무슨 수작인가?
스님은 말하였다.
"스님의 머리가 떨어져버렸습니다."
-송곳 끝이 날카로운 것만 알지, 끌의 끝이 네모난 줄은 모르는군. (네
주제에) 무슨 좋고 싫은 것을 따지는가! 한 수 두었다.
암두스님이 껄껄대고 크게 웃었다.
-온 천하의 납승이라도 (암두스님) 어찌할 수 없다. 천하 사람은 속일지
몰라도, 이 늙은이의 머리가 떨어진 곳은 못 찾는다.
스님이 그 뒤 설봉(雪峰)스님에게 이르자,
-여전히 어리석구나. 이 스님이 늘 완전히 지기만 하는구나.
설봉스님이 물었다.
"어느 곳에서 왔느냐?"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지. 시험해보아야 한다.
"암두에서 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지고 말았네.
"무슨 말씀을 하신던가?"
-이야기를 해도 방망이 맞는 것을 면치 못하리라.
스님이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
-곧바로 쫓아냈어야 했다.
설봉스님이 서른 방망이를 쳐서 쫓아내버렸다.
-비록 (속박하는) 못을 끊고 쇠를 자르기는 했으나 무엇 때문에 서른 방망
이만 쳤느냐? 주장자가 아직도 부러지지 않았다. 이는 아직 본분 소식이
아니다. 왜나하면 아침에 3천 방망이, 저녁에 8백 방망이를 쳐야 하기 때
문이다. 동기동창이 아니라면 어떻게 또렷한 뜻을 분별하랴. 이와같긴 하
지만 말해보라, 설봉스님과 암두스님의 귀결점은 어디에 있는가를.
[평창]
바랑을 걸머지고 풀을 헤치며 바람을 맞으면서 행각할 때는
반드시 안목을 갖춰야만 된다. 이 스님은 안목이 (민첩하기가)
유성과 같았으나 암두스님에게 시험을 당하여 한 꿰미에 뚫려버
렸다. 당시에 제대로 된 놈이었다면, 때로는 죽이기도 하고 때
로는 살리기도 하면서 (종사가) 말해주면 바로 작용했을 것이
다. 그러나 스님은 변변치 못하여 대뜸 "주었습니다"라고 말하
였다. 이처럼 행각을 한다면 염라대왕이 그대에게 행각중에 얻
어먹었던 밥값을 내라고 할 것이다.
그는 얼마나 많은 짚신을 떨어뜨리면서 설봉스님에게 이르렀
는가? 당시 조금이라도 안목이 있어 대뜸 일어나 갔었더라면 이
어찌 통쾌하지 않았겠느냐? 이런 인연(암두스님이 웃는 것)은
깐깐하여 어렵다. '이 일'은 득실이 없다고는 하나 실은 매우
큰 득실이 있으며, 간택이 필요 없기는 하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또한 안목을 갖춰 간택할 필요가 있다.
용아(龍牙)스님이 행각할 때 의심을 일으켜 덕산(德山)스님에
게 물었다.
"학인이 막야( ) 보검을 들고서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쑥 빼며 앞으로 다가서며 "얏!"하고 소리지
르자, 용아스님은 말하였다.
"스님의 머리는 떨어졌습니다."
덕산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용아스님이 그 뒤 이 일
을 동산(洞山)스님에게 얘기하자 동산스님은 말하였다.
"덕산이 당시에 무어라고 말하던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가 말이 없었던 것은 그만두고 떨어진 덕산스님의 머리를
나에게 가져와보게."
용아스님은 이 말에 완전히 깨닫고 마침내 향을 사르면서 멀
리 덕산스님을 바라보고 절을 올리며 참회하였다.
어느 스님이 덕산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이 일을 전하자 덕산
스님은 말하였다.
"동산 늙은이가 좋고 나쁜 것도 구별할 줄 모르는군. 이놈이
죽은 지 한참 지났는데 구해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이 공안을 살펴보면 용아스님의 경우와 매한가지이다. 덕산스
님이 방장실로 되돌아가버렸던 것은 곧 어둠 가운데서 가장 현
묘한 것이었다. 암두스님이 크게 웃었는데, 그의 웃음 속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누구나 이를 알 수 있다면 천하를 누빌 것
이다. 스님이 그 당시 알 수만 있었다면 천고 이후에도 계속되
는 꾸지람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암두스님의 문하에서 이미
한바탕 틀려버렸다.
이를 살펴보면 설봉스님은 암두스님과 동참(모두 덕산스님의
제자)이기에 곧 귀결점을 알고 있었으나 그에게 말해주지 않고
서른 방망이를 두들겨서 절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이는 전무후
무의 경지라 할 만하다. 이는 작가 납승의 면목을 나타내어 사
람을 지도하는 솜씨이다. 그에게 이렇게 해주지 않고서야 어떻
게 그 스스로가 깨닫겠는가? 본문종사는 사람을 지도하되, 어느
때는 꼼짝도 못 하게 가두어놓기도 하고 어느 때는 놓아주어 어
쩔 줄 모르게 만들어 깨닫도록 해주었다.
저토록 대단하신 암두, 설봉스님은 거꾸로 밥통 같은 선객에
게 감파를 당하였다. 암두스님이 "황소가 지난 뒤에 칼을 주었
느냐?"고 하였는데, 여러분은 말해보라, 여기에서 무슨 말을 해
야 그의 웃음을 면할 수 있으며, 또한 설봉스님의 방망이에 쫓
겨남을 면할 수 있을까? 이 깐깐한 화두를 몸소 깨닫지 못한다
면 설령 입으로 통쾌하고 날카롭게 말하여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른다 하여도 투철하게 생사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산승은 평소에 사람들에게 이 기관(機關)이 전변하는 곳을 살
펴보게 하였다. 만약 머뭇머뭇 헤아린다면 멀고도 먼 이야기이
다. 듣지 못하였느냐? 투자(投子)스님이 연평(延平)스님에게 물
었던 것을, 투자스님이 "황소가 지난 뒤에 칼을 주었느냐?"고
묻자, 스님이 손으로 땅을 가르켰다. 투자스님은 "30년 동안 마
부 노릇을 하였지만 오늘 도리어 나귀한테 들이받혔구나"라고
말했다.
살펴보면 이 스님은 참으로 작가였다. "주었다"고 말하지도
않고 "줍지 못했다"고도 말하지 않았으니, 서울[西京]의 스님네
와는 저 바다 건너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
진여(眞如)스님은 이를 염(拈)하여 말하였다.
"옛사람은 하나(투자스님)는 우두머리가 되고 하나(이 스님)
는 꼴찌가 되었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황소가 지난 뒤에 칼을 주었다는데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라고.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이는 다만 주석으로
만들어진 (물렁한) 칼 한 자루일 뿐이다.
크게 웃는 웃음은 작가이어야 알 수 있다.
-한 자식만이 몸소 얻었군. 과연 몇 사람이 있을는지? 그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자유를 얻을 수 있겠는가?
서른 방망이도 또한 가볍게 용서해줌이니
-같은 가지에서 나고 같은 가지에서 죽는다. 아침에 3천, 저녁엔 8백 방
망이다. 동쪽집 사람이 죽자 서쪽집 사람이 조문을 한다. 구제하여 살려
주었다.
이익을 본 것 같으나 결국 손해를 본 것이로다.
-죄상에 의거하여 판결하였다. 당초에 조심하지 않았던 게 후회스럽다.
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평창]
"황소가 지난 뒤에 칼을 주었다는데, 크게 웃는 웃음은 작가
이어야 알 수 있다"는 것은 설두스님은 그 스님과 암두스님이
큰소리로 웃었던 곳을 노래한 것이나, 이는 천하 사람이 더듬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말해보라, 그는 무엇 때문에 웃었는가를.
모름지기 이는 작가이어야 알 것이다. 이 웃음 속에는 권(權)과
실(實)이 있으며, 조(照)와 용(用)이 있고, 죽임[殺]과 살림
[活]이 있다.
"서른 방망이도 또한 가볍게 용서해줌이니"라는 것은, 스님이
그 뒤 설봉스님에게 이르러 여전히 거칠었으므로 설봉스님이 법
령에 따라 서른 방망이를 친 후 쫓아내버린 것을 노래한 것이
다. 말해보라, 무엇 때문에 이처럼 했는가를. 온갖 망정을 다하
여 이 말을 이해하려고 하느냐? 이익을 본 것 같으나 실은 손해
를 봄이로다.
제 67칙
경상(經床)을 두드린 부대사[傳大師揮案]
[본칙]
양무제(梁武帝)가 부대사를 초청하여 <금강경(金剛經)>을 강
의하게 하였다.
-달마 형제가 왔군. 어물전이나 술집에 관한 일이라면 몰라도 납승의 문하에
서는 안 된다. 이 늙은이(부대사)는 나이 먹고도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부대사가 법좌 위에서 경상을 한 번 후려치고 바로 자리에서
내려와버리자,
-불똥이 튀는구나. 비슷하긴 해도 옳지는 않다. 번거롭게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라.
무제는 깜짝 놀랐다.
-두번 세 번 사람에게 속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가 알아들을 수가 있나?
이에 지공(誌公)스님이 물었다.
"폐하께서는 이를 아시겠는지요?"
-이치에 따를 뿐 인정에 끄달리지는 않았다. 팔은 밖으로 굽지는 않는다.
역시 서른 방망이는 때려야 좋겠다.
"모르겠군요."
-아깝다.
"부대사는 <금강경> 강의를 마쳤습니다."
-이 또한 나라 밖으로 쫓아내야겠다. 당시에 지공스님까지 일시에 나라에
서 쫓아냈어야 작가였다. 두 놈 모두 한 구덩이에서 나왔으니 다를 리가
있겠는가.
[평창]
양(梁)나라의 고조(高祖)인 무제(武帝)는 소씨(蕭氏)이며, 이
름은 연(衍), 자(字)는 숙달(叔達)이다. 대업을 일으켜 제(齊)
나라를 뒤이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한 뒤에 따로이 오경(五經)
의 주(註)를 내어 강의하였고, 황로(黃老)의 도교(道敎)를 두터
이 신봉하였으며 타고난 성품은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하루는 출세간의 법을 얻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
다. 그리하여 도교를 버리고 부처님을 받들면서 누약법사(婁約
法師)에 귀의하여 보살계(菩薩戒)를 받았으며, 몸소 부처님의
가사(袈裟)를 입고 <방광반야경(放光般若經)>을 강의하며 부모
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당시 지공대사(志公大士)는 괴이한 신통력으로 대중을 현혹시
킨다하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지공스님은 자기의 분신을
나투어 성읍에 다니면서 교화하였다. 무제가 하루는 이를 알고
느낀 바 있어 지극히 그를 추앙하고 존중하였다. 악은 막고 선
은 보호하면서 은둔하고 나타나는 그의 행적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때에 무주( 州)에 어떤 대사(大士)가 운황산(雲黃山)에 거처
하면서 손수 두 그루의 나무를 심고 이를 쌍림(雙林)이라 이름
붙였고, 자칭 미래의 선혜대사(善慧大士)라 하였다. 그가 하루
는 글을 지어 제자에게 시켜서 무제에게 표(表)를 올려 황제께
여쭈었다. 때에 조정에서는 군신(君臣)의 예의가 없다하여 받아
들이지 않았다.
부대사는 금릉성(金陵城) 속에 들어가 물고기를 팔았는데 당
시 무제가 간혹 지공스님을 청하여 <금강경>을 강의하게 하자,
지공스님은 말하였다.
"빈도(貧道)는 강의를 하지 못합니다. 시중에 부대사라는 사
람이 있사온데 그가 이 경을 강의할 수 있습니다."
무제는 조서를 내려 그를 대궐로 불러들였다.
부대사는 입궐하여 법좌 위에서 경상을 한 번 후려치고 바로
내려와버렸다. 당시에 대뜸 떠밀쳐 넘어뜨려버렸더라면 한바탕
뒤죽박죽되는 꼴을 면하였을텐데, 도리어 지공스님이 "폐하께서
는 아셨는지요"하자, 무제가 "모르겠군요"라고 말하여, "부대사
는 <금강경> 강의를 마쳤습니다"라는 지경을 당하고야 말았다.
이는 한 사람은 우두머리가 되고 한 사람은 꼴찌가 된 것이라
하겠다.
지공스님이 이처럼 말하긴 했어도 꿈엔들 부대사를 보았겠는
가! 그네들 모두가 망상분별을 한 것이다. 부대사가 그중에서
가장 기특하다 하겠다. 죽은 뱀(경전)이긴 하나 잘 부리면 살아
난다.
어차피 경전 강의인데 무엇 때문에 내용을 크게 둘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의석(二儀釋)을 쓰지 않았을까? 평소 좌주는 한결같
이 말하기를 "금강의 바탕은 견고하여 어느 물건도 이를 부수지
못하며, 날카롭기 때문에 만물을 꺾을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
처럼 강의하여야만이 경전 강의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
는 그렇지만 여러분은 부대사가 오로지 향상의 핵심을 드러내고
칼날을 약간 노출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귀착점을 알게하여 곧바
로 깎아지른 만 길 벼랑에 우뚝 서도록 하였다는 사실을 모른
것이다.
지공스님이 좋고 나쁨도 분간하지 못하고 "부대사는 <금강경>
강의를 마쳤습니다"라는 말을 하였으니, 이는 (부대사의) 좋은
마음씨를 좋게 보답하지 못한 꼴이다. 이는 마치 한 잔의 맛좋
은 술에다 지공스님이 물을 쏟아붓는 격이며 한 솥의 국물에 지
공이 한 알의 쥐똥을 넣어 더럽힌 것과 같다 하겠다.
말해보라, 경전 강의가 아니라면 결국 무엇이라 해야 할까?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쌍림(雙林)에 이 몸을 의탁하지 않고
-그를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머니 속에 뾰족한 송곳을 넣었으니 어
찌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으리요?
양나라 땅에서 티끌 먼지 일으켰네.
-세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분명한 것을 나타내리요? 풍류가 없는
곳이 참 풍류로다.
당시에 지공 늙은이를 만나지 않았던들
-도적질하는 데는 밑천이 필요치 않다. 제짝을 끌고 가는군.
황급히 나라를 떠나는 사람이었으리요.
-(저놈들의 죄를) 한 건에 처벌하라. (원오스님은) 쳤다.
[평창]
"쌍림에 이 몸 의탁하지 않고 양나라 땅에서 티끌 먼지 일으
켰다"는 것은, 부대사가 앞니 빠진 달마스님과 똑같이 (양무제
를) 만났다는 것이다. 달마스님이 처음 금릉(金陵)에 도착하여
무제를 뵙자, 무제가 물었다.
"어떤 것이 성스런 이치[聖諦], 으뜸가는 뜻[第一義]입니
까?"
"텅텅 비어 성스런 이치[聖諦]라 할 것도 없습니다."
"나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무제가 이에 계합하지 못하자, 달마스님은 드디어 양자강을
건너 북위(北魏)에 이르렀다. 무제가 다시 이를 들어 지공스님
에게 물으니 지공스님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이 사람을 아시는지요?"
"모릅니다."
"이는 관음대사(觀音大士)로서 부처님의 심인(心印)을 전수하
는 사람입니다."
무제는 후회하고 마침내 사신을 보내어 모셔오도록 하였으나,
지공스님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사신을 보내어 모셔오라는 말씀을 마십시오. 온
나라 사람이 간다 해도 그는 되돌아오질 않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설두스님이 "당시에 지공 늙은이를 만나지 않았던
들 황급히 나라를 떠나는 사람이었으리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당시에 지공스님이 부대사를 위하여 (그의 존재를 임금에게) 말
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도 나라를 떠났을 것이다.
지공스님이 주둥이를 나불대어 무제가 그에게 한 번 되게 속
임을 당한 것이다. 설두스님의 생각은 "그가 양나라 땅에 찾아
와서 경전을 강의하며 경상을 후려칠 필요조차도 없었다"는 것
이다. 그러므로 "왜 쌍림에 몸을 의탁하여, 죽이나 밥이나 먹으
면서 분수 따라 시절을 보내질 않고 양나라 땅에 찾아와 이처럼
주석을 내어 한 번 경상을 후쳐치더니 바로 법좌에서 내려왔느
냐?"고 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티끌 먼지를 일으킨 것이다.
제대로 되려면 하늘을 바라보면서 위로는 부처가 있는 것도
보지 않고, 아래로는 중생이 있는 것도 보지 않았어야 했다. 그
러나 만일 세간을 벗어난 일을 의논한다면 머리에는 재 쓰고 얼
굴에는 흙 바르고, 무(無)를 가지고 유(有)라고 하며, 유를 가
지고 무라고 하며,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며, 거친 것을 곱다고
하는 꼴이다. 그러기보다는 차라리 어물전이나 술집을 이리저리
누비면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 일'을 밝히도록 했어야 했
다. 이처럼 놓아버리지 않는다면 설령 미륵 부처님이 하생(下
生)한다 하여도 한 사람은커녕 반 사람도 ('이것'을) 아는 이가
없을 것이다.
부대사는 흐리멍텅했지만 다행히 지기(知己)인 지공스님이 있
었다. 지공스님이 아니었다면 나라를 떠났을 것이다. 말해보라,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를.
제 68칙
혜적과 혜연[惠寂惠然]
[수시]
하늘로 통하는 관문을 뒤흔들고 지축(地軸)을 뒤엎으며, 범과
무소를 사로잡고 용과 뱀을 가려내는 팔팔한 놈이어야 구절마다
투합되고 기틀마다 상응할 수 있다. 예로부터 어떤 사람이 이렇
게 하였을까, 거량해보리라.
[본칙]
앙산(仰山)스님이 삼성(三聖)스님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명분과 실상을 모두 빼앗는다. 도적을 끌여들여 집안이 망하였구나.
"혜적(慧寂)입니다."
-혀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네. (적군의) 깃대도 빼앗고 북도 빼앗아 버렸다.
"혜적은 바로 나다."
-각자 자기의 영역을 지키는군.
"저의 이름은 혜연(慧然)입니다."
-시끄러운 저자 속에서 빼앗겼다. 피차가 각각 본분을 지켰다.
앙산스님은 껄껄대며 크게 웃었다.
-상황에 딱 들어맞는 기연이라 말할 만하군. 금상첨화이다. 천하 사람들
이 귀착점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국토는 넓고 사람은 적으며 서로 만
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암두스님의 웃음과 닮았지만 암두스님의 웃
음도 아니다. 똑같은 웃음인데 무엇 때문에 서로 다를까?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야 비로소 알아볼 수 있다.
[평창]
삼성(三聖)스님은 임제(臨濟)스님 문하의 큰스님이시다. 어려
서부터 많은 사람 가운데 뛰어난 지략이 있었으며 큰 기틀[大
機], 큰 작용[大用]이 있어, 대중 가운데 우뚝 솟아 짱짱했으며
사방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그 뒤 임제스님을 하직하고 회해(淮
海) 지방을 두루 행각하였는데, 이르는 총림마다 모두 큰스님으
로 그를 대접하였다. 그후 북쪽 지방을 떠나 남방에 이르러 맨
먼저 설봉(雪峰)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잉어는 무엇을 먹이로 해서 낚을까
요?"
"그대가 그물을 뚫고 나올 때 말해주겠다."
"1천 5백 명을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다니."
"노승은 주지 일이 바빠서......."
뒷날 설봉스님이 사찰의 장원(莊園)으로 가는 길에 원숭이를
만났다. 이에 삼성스님에게 말하였다.
"이 원숭이가 각기 하나의 옛 거울[古鏡]을 차고 있다네."
"오랜 세월을 지내오도록 이름조차도 붙일 수 없었거늘 어찌
옛 거울이라 하십니까?"
"(거울에) 흠집이 생겼구나."
"1천 5백 명을 거느리는 선지식이 화두도 모르는군."
"잘못했다. 노승은 주지 일이 바빠서......."
그 뒤 앙산스님에게 이르자 앙산스님은 준수하고 영리한 그를
몹시 사랑하여 밝은 창문 아래(수좌 소임)에 앉도록 하였다. 하
루는 어떤 관리가 찾아와 앙산스님을 참방하자, 앙산스님이 물
었다.
"무슨 관직에 계시오?"
"추관(推官 : 감찰관리)에 있습니다.
앙산스님이 불자를 곧추세우면서 말하였다.
"이것을 감찰할 수 있겠오?"
관리가 대답이 없자, 여러 대중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 앙
산스님의 뜻에 맞지 않았다. 때에 삼성스님은 몸이 불편하여 연
수당(延壽堂)에 머물러 있었다. 앙산스님이 시자(侍者)를 보내
어 이 말을 그에게 물어보도록 하였더니, 삼성스님은 말하였다.
"(본래 無事이거늘) 화상께서 일삼고 계시는군."
다시 시자를 보내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다시 묻자, "다
시 범하면 용서하지 않겠습니다"고 하였다.
당시 백장(百丈)스님은 선판(禪板)과 포단(蒲團)은 황벽(黃
蘗)스님에게, 주장자와 불자는 위산( 山)스님에게 부촉하였는
데, 그 뒤 위산스님은 앙산스님에게 이를 부촉하였다.
앙산스님이 이미 삼성스님을 크게 수긍하였는데, 하루는 삼성
스님이 하직하고 떠나려 하자, 앙산스님이 주장자와 불자를 전
해주니, 삼성스님은 말하였다.
"저에게 스승이 있습니다."
앙산스님이 그 이유를 물어보니, 곧 임제스님의 적자(嫡子)였
다.
앙산스님이 삼성스님에게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물었
는데, 그가 이름을 알았을텐데 무엇 때문에 다시 이처럼 물었을
까? 그러므로 작가가 사람을 시험하려면 자세히 그를 알아야한
다. 그러기에 무심하게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물어 완전히
계교상량을 없앴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삼성스님은 혜연이라 하지 않고 혜적이라
고 말했을까? 살펴보면, 안목을 갖춘 사람은 자연 (보통사람들
과) 같지 않다. 삼성스님이 이처럼 말한 것은 전도된 것이 아니
라 대뜸 적군의 깃발을 빼앗고 북을 빼앗은 것이다. 본뜻은 앙
산스님의 어구(語句)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상정(常情)에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놈의 솜씨가 있어야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러므로 "활
구를 참구해아지, 사구를 참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상정(常情)을 따른다면 사람을 쉬게 하려 해도 쉬질 못한다.
살펴보면 옛사람들은 이처럼 도를 생각하며 정신을 다한 후에
야 비로서 크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깨친 뒤 이를 활용할
때에도 결국은 깨닫기 이전의 시절과 흡사하여, 상황에 딱딱 들
어맞아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상정에 떨어지지 않았다.
삼성스님은 앙산스님의 귀착점을 알고서 대뜸 그에게 말하였
다. "나의 이름은 혜적입니다"라고. 앙산스님은 삼성스님을 (덫
을 놓아) 잡아들이려고 하였는데, 삼성스님이 거꾸로 앙산스님
을 잡아들인 것이다. 앙산스님은 완전히 당하여 벌거숭이가 되
어 말하기를 "혜적은 바로 나라네"하였다. 이는 (상대를) 놓아
준 것이며, 삼성스님이 "나의 이름은 혜연입니다"한 것 또한 놓
아준 것이다.
그러므로 설두스님은 뒤에 송에서 "잡아들이기도 하고 놓아주
기도 하니 무슨 종지인가?"라고 하였으니, 이 한 구절로 일시에
송을 끝마친 셈이다.
앙산스님은 껄껄거리며 크게 웃었는데, 이 또한 권(權), 실
(實)이 있고, 조(照), 용(用)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팔방이 영
롱하게 빛났기 때문에 활용함에 있어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
던 것이다. 이 웃음은 암두스님의 웃음과는 다르다. 암두스님의
웃음에는 독약이 있었으나, 이 웃음에는 천고만고의 맑은 바람
이 늠름하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잡아들이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니, 이 무슨 종지인가?
-몇 사람이나 그를 알까? 팔방이 영롱하다. 하마터면 이런 일이 있다고
여길 뻔했다.
호랑이를 타는 목적은 공(功 : 인위적인 조작)을 끊는 데 있다.
-정수리에 외알눈이 있고 팔꿈치 위에 호신부(護身莩)가 있지 않다면 어
떻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호랑이를 타는 것은 나쁘지 않으
나 내려오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이러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 일'을 밝힐 수 있겠는가.
실컷 웃어제치고 어디로 갔을까?
-9주 400군(九州四百軍 : 趙, 宋의 행정구역)을 다 뒤져도 이러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 말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천고만고에 맑은 바람이
다.
천 년이 지나도록 자비의 바람 진동하리.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쯧쯧! 벌써 큰 웃음을 웃었는데 무엇 때문에 자
비의 바람을 일으키랴! 대지가 캄캄하구나.
[평창]
"잡아들이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니, 이 무슨 종지인가?"라
는 것은, 잡아들이고 놓아주고 하여 서로서로가 빈(賓), 주(主)
가 된다는 것이다. 앙산스님이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고 하
자, 삼성스님이 "나의 이름은 혜적입니다"한 것은 놓아준 것이
며, 앙산스님이 "혜적은 바로 나다"고 하자, 삼성스님이 "저의
이름은 혜연입니다"한 것은 잡아들인 것이다. 실로 이는 서로서
로가 교환한 기봉이다. 잡아들이면 모두 잡아들이고 놓아주면
모두가 놓아주니, 이로써 설두의 송은 일시에 끝나버렸다. 그가
의도한 바는 "놓아주거나 잡아들이지 않아 서로가 교환하지 않
는다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
모두가 (혜적, 혜연이라는) 네 글자일 뿐인데 무엇 때문에 그
안에서 놔주었느니 잡아들였느니 하며, 또 쥐었느니 풀어헤쳤느
니 하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은 "그대가 서면 나는 앉고 그대가
앉으면 나는 서버린다. 함께 앉고 함께 서게 되면 둘 다 눈뜬
장님이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잡아들이기도 하고 놓아주기도
하니, 이 무슨 종지인가?"이다.
"호랑이를 타는 목적은 공(功 : 인위적인 조작)을 끊는 데 있
다"는 것은, 이처럼 고고한 풍채야말로 으뜸의 솜씨[機要]이므
로 타려거든 단박에 타고 내리고 싶으면 문득 내리면서 호랑이
머리에 올라타기도 하고 호랑이 꼬리를 잡기도 해야 한다는 것
이다. 삼성스님과 앙산스님 두 사람 모두 이러한 기풍이 있었
다.
"실컷 웃어제치고 어디로 갔을까?"라고 하였는데, 말해보라,
그가 웃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는 곧 맑은 바람 늠름
한 경지인데, 무엇 때문에 끝에서 갑자기 "천 년이 지나도록 자
비의 바람이 진동한다"고 말하였을까? 이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조문도 안 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일시에 주해를 붙여주어버
린 것이다. 천하 사람들이 한마디하려 해도 지껄이지 못하고 귀
결처를 모르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이 산승도 귀결처를 모르겠
는데 여러분은 아시겠는가?
제 69칙
남전의 일원상[南泉圓相]
[수시]
말 한마디도 붙일 수 없는 조사의 심인장(心印狀)은 무쇠소
[鐵牛]처럼 생긴 기봉이다. 가시덤불을 뚫고 나온 납승은 이글
거리는 화로 위에 한 점의 눈[雪]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평지에서 종횡으로 관통하는 것은 그만두고, 어떠한 수단이나
방편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면 어떠한가? 거량해보리라.
[본칙]
남전(南泉), 귀종(歸宗), 마곡(麻谷)스님이 함께 혜충국사(慧
忠國師)를 예방하러 가는 도중에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려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하였는데, 무슨
기특한 일이 있었는고? 그래도 분명하게 가려내야지.
남전스님이 땅에 일원상(一圓相)을 그려놓고 말하였다.
"말하면 가겠다."
-바람도 없는데 괜히 물결을 일으켰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알도록 해야
한다. 육지에 침물한 배를 건져내었군. 시험해보지 않으면 어떻게 분명
하게 가려낼 수 있으랴!
귀종스님이 일원상 가운데 앉자,
-한 사람이 (장단을 맞추어) 바라를 쳤다. 길 같은 길을 가는 사람만이
알 것이다.
마곡스님은 여인처럼 다소곳이 절하는 시늉을 하니,
-한 사람이 북을 치니 모두 세(남전, 귀종, 마곡) 스님이 됐다.
남전스님은 말하였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네."
-반쯤 길을 가다가 빠져나와야 제대로 된 사람이다. 한 마당 좋은 곡조로
다. 작가로군, 작가이다.
귀종스님은 말하였다.
"이 무슨 수작이냐!"
-다행히도 알았구나. 당시에 한 차례 따귀를 쳤어야 했다. 멍청한 놈이구
나.
[평창]
당시 마조(馬祖)스님은 강서(江西) 지방에서, 석두(石頭)스님
은 호상(湖湘)에서, 혜충국사(慧忠國師)는 장안(長安)에서 크게
가르침을 폈는데, 그들은 모두 육조(六祖)스님을 친견하였다.
그때 남방의 뛰어난 사람들은 모두가 입실(入室)을 원하였으며
그렇지 못하면 이를 수치로 여겼던 것이다. 이 세 노스님이 혜
충국사를 예방하러 가는 도중에 한바탕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
다. 남전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네."
이미 낱낱이 말해버렸는데 무엇 때문에 "떠나지 않겠다"고 말
하였을까? 말해보라, 옛사람의 뜻은 무엇이었는가를. 당시 "그
렇다면 떠나지 않겠다"라고 말했을 때 따귀를 후려쳐서 그가 무
슨 재주를 부리나를 살펴보았어야 했다. 만고에 떨치는 강종(綱
宗)은 불과 이 솜씨[機要]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명(慈明)스님
은 "잡아들이고자 하는가? 주변에 있으니 헤쳐보라"고 하였다.
이는 한 번 건드리면 딱 튕겨나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호로병
을 누르는 것처럼 자유자재하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긍정하는 말은 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일은 꼼짝달싹
못 하는 자리에 이르면 이러쿵저러쿵하지 말고 쐐기와 못을 뽑
아버리듯 해야 한다는 점을 모른 것이다. 그대들이 이를 분별의
마음으로 이해한다면 전혀 관계가 없다.
옛사람은 몸을 잘 비꼈기 때문에 여기에 이르러 정말 마지 못
해 이처럼 하였던 것이니, 모름지기 죽임[殺]도 있고 살림[活]
도 있는 것이다. 살펴보면 그들 한 사람은 원상(圓相) 속에 앉
아 있고, 한 사람은 여인처럼 절하는 시늉을 하였는데 매우 잘
한 일들이다.
남전스님이 "그렇다면 떠나지 않겠다"고 하자, 귀종스님은
"이 무슨 수작이냐"고 하였다. 이 멍청한 놈이 또 이처럼 하였
던 것이다.
그가 이처럼 말한 본래의 뜻은 남전스님을 시험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남전스님은 평소에 "이를 여여(如如)라고 부른다 하여
도 벌써 빗나가버렸다"고 말하였다.
남전, 귀종, 마곡스님은 한 집안 사람이다. 한 번 사로잡고
한 번 놓아주며[一擒一縱] 한 번 죽이고, 한 번 살리는[一殺一
活] 데 참으로 기특하였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유기(由基)가 화살로 원숭이를 쏘니
-눈앞에 있는 이 한 길에 직면하여 어느 누가 감히 앞으로 나아가랴. 곳
곳마다 오묘함을 얻었다. 화살을 쏘기 이전에 벌써 적중해버렸다.
나무를 끼고 도는 화살 왜 그리도 곧은지,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감히 이처럼 할 수 있으랴. 동서남북 온 천하가
한 가풍이로다. 이미 빙 돌아간 지 오래이다.
천사람 만사람 가운데
-삼대처럼, 좁쌀처럼 많다. 여우 같은 정령 떼거리이나 남전스님을 어찌
하겠는가?
어느 누가 일찍이 적중시켰을까?
-한 사람은커녕 반 사람도 없다. 이들(위의 세 명) 말고는 아무도 없다.
한 사람도 쓸 만한 놈이 없다.
서로를 부르며 말하였다. "돌아가련다, 돌아가련다."
-진흙덩이를 주무르는 놈들아! 되돌아오는 것만 못하리라. 아직 조금 멀
었다.
조계로(曺溪路)에는 안 가겠다."
-큰 고생하는구나. 아마 이는 조계의 문하객은 아니렷다. 낮은 곳이야 평
탄하게 할 여유가 있겠지만 높고 높은 곳은 쳐다볼 수도 없다.
설두스님은 다시 말한다.
"조계로는 평탄한데 무엇 때문에 안 가느냐?"
-남전스님만이 반쯤 길을 가다가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설두스님도 중간
에서 빠져나왔구나. 좋은 일도 아예 일삼음이 없는 것만은 못하다. 설두
스님도 이런 병통을 근심하였다.
[평창]
"유기(由基)가 화살로 원숭이를 쏘니, 나무를 끼고 도는 화살
왜 그리도 곧은지"라고 하였다. 유기는 초(楚)나라 때 사람이
다. 성은 양(養), 이름은 숙(叔), 자(字)는 유기(由基)이다. 마
침 장왕[楚莊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한 마리 흰 원숭이를 발견
하고 사람에게 쏘게 하였으나 원숭이가 날아가는 화살을 잡아
회롱하니, 여러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쏘게 하였으나 맞히는 사
람이 없었다. 마침내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활 잘 쏘는 사람
을) 묻자 많은 신하들이 "유기가 활을 잘 쏜다"고 아뢰어 드디
어 그에게 활을 쏘게 하였다. 유기가 활을 당기려 하자 원숭이
는 나무를 껴안고 슬피 울부짖었으며, 화살을 쏠 즈음에 이르자
나무를 끼고 돌면서 피하였으나, 화살도 나무를 끼고 돌면서 원
숭이를 적중시켰다. 이는 귀신 같은 활잡이[神 ]였다.
그런데 설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왜 그리도 곧은지"라고 말하
였을까? 완전히 곧았더라면 적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살은 빙
글빙들 나무를 끼고 돌았는데, 무엇 때문에 "왜 그리도 곧은지"
라고 말하였을까? 설두스님은 비유를 참으로 잘 하였다. 이 일
은 <춘추전(春秋傳)>에 나온다. 어느 사람은 "나무를 끼고 돈
것이 일원상(一圓相)이다"고 말하니, 참으로 이와 같다면 말의
종지를 알지 못하였고, 완전히 곧은 곳도 모른 것이다. 세 늙은
이는 길은 달랐으나 귀결점은 같았으며, 한 가지 법도로 일제히
크게 곧았었다.
그들이 갔던 곳을 알면 종횡무진하면서도 마음을 떠나지 않고
마치 모든 시냇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듯하리라. 그러므로 남전
스님이 "그렇다면 떠나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납승이 바른 눈[正眼]으로 엿본다면 이는 망상분별일 뿐이다.
따라서 만약 그것을 망상분별이라 말한다면 이야말로 망상분별
이 아니다. 나의 스승 오조(五祖)스님께서는 "그들 세 사람은
혜거삼매(慧炬三昧)였으며, 장엄왕삼매(莊嚴王三昧)였다"고 하
셨다.
그러나 여인처럼 절을 하는 시늉을 했으나, 끝내 여인의 절로
알지 않았으며, 원상을 그렸으나 원상으로 알지 않았다. 이미
이처럼 알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알아야 할까? 설두스님은 말하
기를 "천사람 만사람 가운데 어느 누가 일찍이 적중시켰을까"라
고 하였는데, 몇 사람이나 백발백중을 할 수 있었을까?
"서로를 부르며 '돌아가련다, 돌아가련다'"라고 한 것은 남전
스님이 말한 "그렇다면 떠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노래한 것이
다. 남전스님은 그리하여 떠나가지 않았으므로 "조계로에 가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가시덤불을 없애버린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만두지 못하고 다시 "조계로는 평탄한데 무엇
때문에 안 가느냐?"고 말하였다. 조계로 가는 길은 티끌과 자취
가 끊겨서 적나라하며 말끔하여, 평탄하고 유연한데 무엇 때문
에 오르는 것을 그만두었을까? 각자 스스로가 발밑을 보라.
제 70칙
위산의 목도 입도 막은 뒤[ 山倂却]
[수시]
사람을 통쾌하게 하는 한마디 말이요, 말[馬]을 날쌔게 달리
게 하는 하나의 채찍이며, 만 년이 한 생각[一念]이요 한 생각
이 만 년이다. 단박에 깨치는 길을 알려고 하는가? 말하기 이전
에 있다. 말해보라, 말하기 이전에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를.
거량해보리라.
[본칙]
위산( 山), 오봉(五奉), 운암(雲巖)스님이 함께 백장(百丈)
스님을 모시고 서 있자
-껄껄껄. 처음부터 끝까지 까다롭군. 그대는 서쪽 진나라로, 나는 동쪽
노나라로 (모두 자신의 길을) 간다.
백장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을 닫아버리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훌륭한 장수 하나를 구하기 어렵다.
"스님께서 말씀해보십시오."
-상대방이 할 말을 가로챘군.
"나는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
을 잃을까 염려스럽다."
-노파심이 간절하기도 하다. 낯가죽이 두껍기가 세 치나 되겠다. 이러쿵
저러쿵했구나. 다 털려서 벌거숭이가 됐다.
[평창]
위산, 오봉, 운암스님이 함께 백장스님을 모시고 서 있자, 백
장스님이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을 닫아버리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스님께서 말씀해보시지요."
"나는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만 훗날 나의 자손
을 잃을까 염려스럽다."
백장스님이 이처럼 말하기는 하였지만 (매일 사용하던) 밥그
릇을 남에게 빼앗겨버린 격이다.
백장스님이 다시 오봉스님에게 묻자, 오봉스님은 말하였다.
"화상께서도 (목구멍과 입을) 닫아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마에 손을 얹고 멀리 있는 그대를 바
라보겠노라."
또다시 운암스님에게 묻자, 운암스님은 말하였다.
"스님은 할 수 있는지요?"
"나의 자손을 잃었구나."
세 사람은 각기 일가(一家)를 이룬 자들이었다. 옛 어른(운문
스님)의 말에 "평지에 죽은 사람이 무수하다. 가시덤불을 지나
가는 자라야 좋은 솜씨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종사(宗師)
들은 가시덤불로 사람을 시험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상정(常
情)의 언구(言九)로써 사람을 시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납승이
라면 반드시 구절 속에 기연을 드러내고 말 가운데에서 핵심을
알아야 한다. 판때기를 짊어진 자[擔板漢 : 외통수]들은 흔히
언구 속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목구멍과 입을 벌리지 않으니
다시는 입을 뗄 곳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변통할 줄 아는 자
라면 역공격할 줄 아는 기상이 있다. 그러므로 물음 속에 한 가
닥 길이 있어서 칼끝도 상하지 않고 손도 다치지 않는다.
위산스님이 "스님께서 말씀해보시지요"라고 말하였는데, 말해
보라, 그의 뜻은 무엇인가를. 여기에 번뜩이는 전광석화처럼 그
(백장스님)를 내질렀다. 묻자마자 바로 답하여 빠져나갈 길이
있어, 한 오라기의 힘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활구를
참구하고 사구를 참구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백장스님은
문득 그를 그냥두지 않고 "사양치 않고 그대에게 말해주고 싶지
만 훗날 나의 자손을 잃을까 염려스럽다"고 말하였을 뿐이다.
대체로 종사가 사람을 지도하는 것은 못과 쐐기를 뽑아주는
것인데, 요즈음 사람들은 "이 답변은 그(위산스님)가 말뜻을 깨
닫지 못해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는
(백장스님의) 말 속에 하나의 쌩쌩한 기연이 있어 천 길 벼랑처
럼 우뚝하고, 빈(賓), 주(主)가 서로 교환하여 팔팔한 것을 전
혀 모른 것이다.
설두스님은 그의 말이 풍류도 있고 상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가 완연히 자재하며, 또한 (적이 지나는) 통로를 꽉 거머쥐
고 있음을 좋아한 까닭에 다음과 같이 송을 한 것이다.
[송]
스님이 말해보시오.
-하늘과 땅을 덮어버렸다. 벌써 칼끝을 상하고 손을 다쳤다.
뿔 돋힌 호랑이가 울창한 풀 속에서 나왔네.
-참으로 여러 사람 놀라게 하는구나. 대단히 기특하다.
십주(十洲)에 봄이 저무니 꽃잎이 시들한데
-곳곳마다 시원하다. 아무리 찬탄해도 다 찬탄할 수 없다.
산호 가지마다 햇살이 빛나는구나.
-(햇살이) 천겹 만겹이라.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을 어찌하랴.
대답이 하늘과 땅을 덮었구나.
[평창]
이 세 사람의 답변은 각각 다르지만 (위산스님은) 천 길 벼랑
에 서 있는 듯도 하였고, (오봉스님은) 조(照), 용(用)이 함께
하기도 하였으며, (운암스님은) 결국 자신마저도 구제하지 못하
였다.
"스님께서는 말씀해보시오"라고 하였는데, 설두스님은 이 한
구절 속에 기봉을 드러내어, 다시 그 가운데 사뿐사뿐 내지르면
서 사람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였다. "뿔 돋힌 호랑이가 울
창한 풀 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위산스님의 대답이 흡사 사나운
호랑이의 머리 위에 뿔이 돋힌 것과 같으니 어떻게 그 곁에 가
까이 갈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듣지 못하였느냐. 어떤 스님
이 나산(羅山)스님에게 물었던 것을.
"함께 살다가 함께 죽지 않을 때는 어떠합니까?"
"소에게 뿔이 없는 것과 같다."
"함께 살고 또한 함께 죽을 때는 어떠합니까?"
"호랑이가 뿔이 돋힌 격이다."
설두스님은 이 한 구절에서 송을 끝마친 것이다. 그러나 그에
겐 몸을 비낄 수 있는 재주가 아직 남아 있어, 다시 "십주에 봄
이 저무니 꽃잎이 시들한데"라고 하였다. 바다에는 삼신산(三神
山)과 십주(十洲)가 있는데, (이 세상의) 일백 년이 거기에서는
한 번의 봄에 해당된다고 한다. 설두스님의 말에는 풍류까지 있
고 완연히 드넓은 기상이 서려 있다. 봄이 다 갈 무렵 온갖 꽃
나무들은 일시에 시들지만, 산호나무 숲은 시들 줄 모르고서 태
양처럼 빛나고 그 빛이 서로 어려 있으니, 이러할 때야말로 참
으로 기특하다 하겠다.
설두스님은 이를 이용하여 "스님께서 말씀해보시오"라는 것을
밝혔다. 십주는 모두 바다 밖에 붙어 있는데, 첫째는 조주(祖
洲)이니 반혼향(返魂香)이 나오며, 둘째는 영주(瀛洲)이니 지초
(芝草)와 옥석(玉石)이 나고 샘물은 술맛과 같으며, 셋째는 현
주(玄洲)이니 선약(仙藥)이 나오는데 이를 먹으면 불로장생하
며, 넷째는 장주(長洲)이니 모과(木瓜)와 옥영(玉英)이 나오고,
다섯째는 염주(炎洲)이니 불에 넣어도 타지 않는 화완포(火浣
布)가 나오며, 여섯째는 원주(元洲)이니 꿀 맛 같은 영천(靈泉)
이 있으며, 일곱째는 생주(生洲)이니 산천에 추위와 더위가 없
으며, 여덟째는 봉린주(鳳麟洲)이니 봉의 부리와 기린의 뿔을
달여 만든 속현교(續弦膠)가 나오며, 아홉째는 취굴주(聚窟洲)
이니 청동 머리에 무쇠 이마를 지닌 사자가 나오며, 열째는 단
주(檀洲 또는 流洲)이니 곤오석(琨吾石)이 나오는데, 이를 칼로
만들면 옥돌이 진흙처럼 잘린다고 한다.
산호는 <외국잡전(外國雜傳)>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진(秦)나라 서남쪽 장해(漲海) 속으로, 700~800리쯤 가노라
면 산호주(珊瑚洲)가 있다. 산호주의 밑바닥은 반석으로 되어
있으며, 반석 위에서 산호가 돋아나는데 사람들이 이를 철망(鐵
網)으로 채취한다."
또한 <십주기(十洲記)>에는 "산호는 남쪽 바다 밑에서 나온
다. 나무의 높이는 2~3자이고, 가지는 있으나 껍질이 없고, 옥
처럼 생겼으며 빨갛고 윤기가 난다. 이는 달에 감응(感應)하여
나며, 모든 가지에는 모두 달무리가 망울져 있다"고 되어 있다.
이 제 70칙의 이야기는 권제8 처음의 첫째 공안(제71칙)과 함께
보라.
불과원오선사벽암록 권제7
조동록 해제(曹洞錄 解題)
조동록은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스님의 어록이다.
동산스님은 어려서 마을에 있는 절에 출가한 후 다시 오설산(五洩山)의 영
묵(靈默)스님에게로 갔다. 20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이후 남전(南泉)스님, 위
산( 山)스님들을 참례하고서 나중에 운암 담성(雲巖曇晟: 782∼841)스님의
법을 이었다. 이때 동산스님은 게송을 지었는데, 이것이 선문오도송(禪門悟道
頌)의 효시이다.
스님은 53세경인 대중(大中) 말년(846∼859)부터는 신풍산(神豊山)에서 후
학을 가르치다가 다시 예장(豫章) 고안현(高安縣)의 동산(洞山)보리원(普利
院)에서 널리 교화를 펼쳤다.
조산 본적스님(耽章스님이라고도 한다)은 어려서 유학을 공부하다가 19세
에 출가하여 25세에 구족계를 받았다. 당 함통(咸通: 860∼873)초에 비로소
동산스님을 뵙고서 스님의 깊은 법을 전수받았다. 나중에 육조(六祖)의 탑에
참례한 후 조산(曹山)과 하옥(荷玉)의 두 곳에서 법을 폈다.
훗날 이 두 분의 가르침을 이어서 조동종이 형성되었는데, 조동종(曹洞宗)
이라는 종명(宗名)은 동산 양개의 동(洞)과 조산 본적의 조(曹)를 각각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조동종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방편으로써 중요한 것은 5위군신(五位君臣),
보경삼매(寶鏡三昧), 3종강요(三種綱要), 3종병통(三種病痛), 3로(三路), 3종타
(三種墮) 등이 거론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신라말 이엄(利嚴: 870∼936)스
님이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의 문하에서 법(法)을 전해왔다.(911년)
조동종의 법계 중에서 동산록에 나오는 스님들을 중심으로 그 계보를 정
리하면 다음과 같다.
약산유엄-- 운암 담성--동산 양개--조산 본적-- 하옥 광혜
(藥山惟儼) (雲巖曇晟) (洞山良价) (曹山本寂) (荷玉匡惠)
도오 원지--신산 승밀 -----------녹문 처진
(道吾圓智) (神山僧密) -----------(鹿門處眞)
화정 덕성--행산 감홍-- 운거 도응-- 불일 화상
(華亭德誠) (杏山鑑洪) (雲居道膺) (佛日和尙)
비수 혜성 ----------- 소산 광인 후 소산
(裨樹惠省)----------- (疎山匡仁) (後疎山)
고 사미 ---------청림 사건
(高沙彌) ---------(靑林師虔)
백암 명철 ----------- 용아 거둔
(百巖明哲) ---------- (龍牙居遁)
화엄 휴정 (華嚴休靜)
흠산 문수(欽山文邃)
북원 통 (北院通)
중산 도전 (中山 道全)
태 수좌 (泰首座)
유 상좌 (幽上座)
랑 상좌 (郞上座)
조당집 해제(曹堂集 解題)
현존하는 선종사서(禪宗史書) 중 가장 오래된「조당집(曹堂集)」은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본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
며, 아직까지는 어떤 섭본(攝本)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보복 종전(保福從展: 867∼928, 雪峯義存의 法을 이음)스님의 제자인 문등
(文□)이 쓴 '조당집 서(序)'에 의하면 천주(泉州) 초경사(招慶寺)에서 정(靜)
과 균(筠) 두 스님에 의해 편집되었고(952), 그 후 고려에서 개판(開版)할 때
(고종 32년, 1245) 원래 10권이던 것을 20권으로 만들면서 새로 목차를 만들
어 넣은 것을 알 수 있다. 목차 끝에 "해동(海東)에서 「조당집」을 새로 간
행함에 있어 그 사적이 드러나 253인을 모두 20권에 수록하였다"한 기록이
그것이다.
「조당집」의 특징으로는 첫째, 그 서(序)에서 "고금 제방의 법요(法要)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듯이 조사들의 종지(宗旨)를 전하는 데에
힘썼고, 표현은 구어적이며 간결하다.
둘째, 과거 7불(七佛)에서 시작하여 인도 28대 조사와 중국 6대 조사를 따
로 구분하지 않고, 초조 마하가섭을 제1조, 아난(阿難)을 제2조, 이하 제28조
초조달마(初祖達摩), 제29조 혜가(慧可).....제33조 혜능(慧能)으로 하고 있다.
셋째, 남종(南宗) 계통의 스님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면서도 우두 법
융(牛頭法融), 소위 북종(北宗)인 신수(神秀).보적(普寂) 등은 조과(鳥 )화상
의 끝에 이름만 전하며, 또 우두 법융에서도 다섯 스님은 이름만 열거하고
있다. 한편 남종선의 5가종파 중에서도 임제(임제종), 위산.앙산(위앙종), 조
산.동산(조동종), 운문(운문종)스님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법안(법안종)스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넷째, 신라의 종사(宗師)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도의(道義).혜철
(慧哲). 홍척(洪陟).현욱(玄昱).범일(梵日).무염(無染).도윤(道允).순지(順之)스님
등 8명을 싣고 있는데, 이들은 신라말 9산선문의 개산조(開山祖, 순지스님은
제외)들이며, 마조스님의 법제자인 서당(西堂).장경(章敬).앙산(仰山)스님의 법
을 이었다.
「조당집」의 마조.백장.위산.앙산.동산.조산스님 등에 대한 내용과 5가어록
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므로 여기에 함께 실었다.
「조당집」은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완역본이 있다. 또 대한전통불교연구원
에서 간행한 「조당집 병 논집(祖堂集幷論集)」에서는 그간의 연구에 대한
논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차 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退翁 性徹/2
선림고경총서 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4
5가어록(五家語錄) 을 간행하며/6
조동록 해제(曹洞錄 解題)/8
조당집 해제(祖堂集 解題)/10
동산록/五家語錄
1. 행 록
2. 감변 . 시중
3. 부 촉
4. 천 화
동산록/祖堂集
1. 행 록
2. 대 기
3. 천 화
동산양개화상사친서
조산록/五家語錄
1. 행 록
2. 시 중
3. 천 화
조산록/祖堂集
1. 행 록
2. 상 당
3. 대 기
4. 천 화
[附錄] 洞山錄/五家語錄
/祖 堂 集
曹山錄/五家語錄
/祖 堂 集
일러두기
1. 조동록의 편집체제는 임제록을 기준으로 하여 행록, 상당, 감변, 천화 등으로 나누
었다.
2. 기연이나 법문을 기준으로 단락을 나누고 번호를 붙이되 동일인물이 반복될 경우
는 따로 번호를 두지 않았다.
3. 「동산록」「조산록」은 백련선서간행회에서 붙인 약명( 名)이며, 「조당집」속의
「동산록」「조산록」도 마찬가지이다.
4. 부록으로 첨부된 5가어록 판본은 명(명) 가흥대장경(嘉興大藏經) 5가어록 본이고,
「조당집」은 합천해인사본이다.
5.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店, 1979)과 「중국불학
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 方舟出版社)을 참고하였다.
동 산 록
(五家語錄)
1. 행 록
스님의 휘(諱)는 양개(良价)이며, 회계(會稽) 유씨(兪氏) 자손이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
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대목에서 홀연히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
다.
"저에게는 눈.귀.코.혀 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심경」에선 '없다'
고 하였습니까?"
그 스승은 깜짝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즉시 오설산(五洩山)으로 가서 묵선사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21세에 숭산(嵩山)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사방으로 유람하
면서 먼저 남전(南泉: 748∼834)스님을 배알하였다. 마침 마조(馬祖: 709∼
788)스님의 제삿날이어서 재(齋)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전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일 마조스님의 재를 지내는데 스님이 오실는지 모르겠구나."
대중이 모두 대꾸가 없자 스님이 나서서 대꾸하였다.
"도반을 기대하신다면 오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후배이긴 하지만 꽤 가르쳐 볼 만하군."
"스님께서는 양민을 짓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음으로는 위산( 山: 771∼853)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지난번 소문을 들으니 남양 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 ?∼775)께선 무정(無
情)도 설법을 한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저는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합니다."
"그럼 우선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게."
그리하여 스님은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라고
하였더니 국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는 무정(無情)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설법을 할 줄 안다는 말입니까?'
'활활 타는 불꽃처럼 쉴 틈없이 설법한다.'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듣지를 못합니까?'
'그대 스스로 듣지 못할 뿐이니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 방해되어
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듣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듣는다.'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나는 듣지 못하지.'
'스님께서도 듣질 못하였는데 어떻게 무정이 설법할 줄 안다고 하시는지
요.'
'내가 듣지 못해서이지. 내가 듣는다면 모든 성인과 같아져서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생에게는 들을 자격이 없겠군요.'
'나는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지 성인을 위해서 설법하진 않는다.'
'중생들이 들은 뒤엔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중생이 아니지.'
'무정이 설법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전에 근거하셨는지요?'
'분명하지.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말은 수행자가 논할 바가 아니다. 보지
도 못하였는가. 「화엄경」에서 <세계가 말을 하고 중생이 말을 하며 삼세
일체가 설법한다>고 했던 것을.'"
스님이 이야기를 끝내자 위산스님은 말하였다.
"여기 내게도 있긴 하네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뿐이다."
"저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위산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주신 이 입으로는 끝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지 못한다."
"스님과 함께 도를 흠모하던 분이 있습니까?"
"여기서 풍릉( 陵) 유현(攸縣)으로 가면 석실(石室)이 죽 이어져 있는데
운암도인(雲岩道人)이란 분이 있다. 풀섶을 헤치고 바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반드시 그대에게 소중한 분이 될걸세."
"어떤 분이신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가 한번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스님을 받들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하기에 이렇게 대꾸하였
네.
'당장에라도 번뇌(煩惱)를 끊기만 하면 되지.'
'그래도 스님의 종지에 어긋나지 않을는지요?'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말라.'"
스님은 드디어 위산스님을 하직하고 곧장 운암스님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
를 다 하고서 바로 물었다.
"무정(無情)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는지요?"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내가 듣는다면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저는 무엇 때문에 듣질 못합니까?"
운암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말하였다.
"듣느냐?"
"듣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설법도 듣질 못하는데 하물며 무정의 설법을 어찌 듣겠느냐."
"무정의 설법은 어느 경전의 가르침에 해당하는지요?"
"보지도 못하였는가.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물과 새와 나무숲이 모
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다'라고 했던 말을."
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정말 신통하구나 정말 신통해
무정의 설법은 불가사의하다네
귀로 들으면 끝내 알기 어렵고
눈으로 들어야만 알 수 있으니.
也大奇也大奇 無情說法不思議
若將耳聽終難會 眼處聞聲方得知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남은 습기(習氣)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이제껏 무얼 해왔는냐?"
"불법(聖諦)이라 해도 닦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쁨을 맛보았느냐?"
"기쁨이 없지는 않습니다.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한 알의 명주(明珠)를 얻
은 것 같습니다."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서로 보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도록 하게."
"보고 묻는 중입니다."
"그래, 그대에게 무어라고 하더냐."
운암스님이 짚신을 만드는데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서 말하였다.
"스님의 눈동자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주려느냐?"
"제게 없어서입니다."
"설사 있게 된다 해도 어디다 붙이겠느냐?"
스님이 말이 없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눈동자를 구걸하는 것이 눈이더냐?"
"눈은 아닙니다."
운암스님은 별안간 악(喝)! 하고는 나가버렸다.
스님이 운암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스님과 이별하긴 합니다만 갈 곳을 정하진 못했습니다."
"호남으로 가지 않느냐?"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조만간에 되돌아오게."
"스님이 안주처가 있게 되면 오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헤어지고 나면 만나기 어려울걸세."
"만나지 않기가 어려울 겁니다."
떠나는 차에 다시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
꾸할까요?"
운암스님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 이것뿐이라네."
스님이 잠자코 있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양개화상! 이 깨치는 일은 정말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을 하다가 그 뒤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고 앞
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할지니
자기와는 점점 더 아득해질 뿐이다.
내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 분을 뵈오리
그는 지금 바로 나이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여여(如如)에 계합하리라.
切忌從他覓 與我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會 方得契如如
뒷날 운암스님의 초상화에 공양 올리던 차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승께선 '이것뿐이다'라고 하셨다던데 바로 이것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무엇인지요?"
"당시엔 나도 스승의 의도를 잘못 알 뻔하였다."
"운암스님께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줄 알았겠으며, 알고 있었다면 어찌 이처럼
말하려 하였겠나."
장경 혜릉(長慶 慧稜: 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이미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말했으랴."
다시 말하였다.
"자식을 길러보아야만 부모 사랑을 알게 된다."
스님이 운암스님의 제삿날에 재(齋)를 올리는데 마침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운암스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는지요?"
"거기 있긴 했으나 가르침을 받진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하러 재를 올리십니까?"
"어떻게 감히 운암스님을 등지겠는가?"
"스님께선 처음에 남전스님을 뵈었는데 어째서 운암스님에게 재를 올려주
십니까?"
"나는 스님의 불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에게 법을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중히 여길 뿐이다."
"스님께서는 스승을 위해 재를 올릴 때, 스승을 긍정하십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으십니까?"
"완전히 긍정한다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스님은 당(唐) 대중(大中: 8468∼859) 말년부터 신풍산(新豊山)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그 뒤 예장(豫章) 고안(高安)의 동산(洞山)에서 성대히 교화를 폈
다. 방편으로 5위(五位)를 열어 3근(三根)을 훌륭하게 이끌었으며, 일음(一音)
을 크게 천양하여 만품(萬品)을 널리 교화하였다. 지혜보검을 쑥 뽑아 빽빽
한 견해 숲을 가지 쳤으며, 조화로운 음성을 널리 펴서 여러 갈래 천착을 끊
어주셨다.
다시 조산(曹山)스님을 만나 정확한 종지를 깊이 밝히고 훌륭한 법을 오묘
하게 폈으니, 도를 군신(君臣)의 비유로 회합하였고 편위(偏位)와 정위(正位)
를 아울러 쓰셨다.
이로부터 동산의 현묘한 가풍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으므로 제방의 종장(宗
匠)들이 모두 추존(推尊)하여 '조동종(曹洞宗)'이라 하였던 것이다.
2. 감변 . 시중
1.
운암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어떤 집 아이는 물었다 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스님이 나오더니 질문하였다.
"그의 집에는 상당한 경론들이 있겠군요."
"한 글자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 수 있습니까?"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는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면 도리어 말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원주(院主)가 석실(石室)*에 갔다오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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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石室) : 담주(潭州) 유현(攸縣)에는 석실(石室)이 있어 은자들이 살곤 하였
다.
1 "석실로 들어가더니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느냐?"
원주가 대꾸가 없자 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차지한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운암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다시 가서 무엇 하겠느냐?"
스님이 말하였다.
"인정을 끊어서는 안됩니다."
운암스님이 한 비구니에게 물었다.
"그대의 아버지는 살아계시는가?"
"계십니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가?"
"팔십입니다."
"그대에게는 나이 팔십이 아닌 아버지가 있는데 알겠느냐?"
"아마도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닐런지요."
"오히려 손자뻘이지."
스님(동산)이 말하였다.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니라 해도 손자뻘이지."
2.
스님이 제방을 돌아다니다가 노조(魯祖: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
례하였다. 절하고 일어나 곁에 섰다가 이내 나와서 다시 들어가자 노조스님
이 말하였다.
"이럴 뿐이며, 이럴 뿐이니, 그러므로 이러하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래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걸요."
"어떻게 해야만 그대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스님은 절하고 여러 달을 시봉(侍奉)하였다.
한 스님이 노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말 없는 말'입니까?"
"그대의 입은 어디 있느냐?"
"입이 없습니다."
"무얼 가지고 밥을 먹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그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무슨 밥을 먹겠습니까?"
3.
스님이 남원(南源: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고 법당에 올라갔
더니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전에 만났던 사람이군."
스님은 바로 내려가버렸다. 다음날 다시 올라가 물었다.
"어제 벌써 스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만 언제 저와 만났었는지를 모르겠
읍니다."
"마음 마음이 쉴 틈없이 성품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을 많이 배워 널리 이익되게 하라."
"불법을 많이 배우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짓는 것
입니까?"
"무엇 하나도 어기지 말라."
4.
스님이 서울에 도착하여 흥평(興平: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에게 절하
였더니 흥평스님이 말하였다.
"늙고 썩은 몸에 절하지 말라."
"저는 늙거나 썩지 않은 것에다 절하였습니다. "
"늙고 썩지 않은 자는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스님이 되물었다.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바로 그대 마음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목각인형에게나 물어보게."
"저에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모든 부처님의 입을 빌리지 않습니다."
"어디 말해보게."
"제가 아닙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흥평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흐름을 따라 정처없이 가렵니다."
"법신(法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보신(報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결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진 않습니다."
그러자 흥평스님은 손뼉을 쳤다.
보복 종전(保福從展: ?∼928)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달리 말하였다.
"몇 사람이나 찾을까."
5.
스님이 밀사백(密師伯: 神山僧密의 존칭)과 함께 백암(百巖)스님을 참례하
였더니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호남에서 옵니다."
"그곳 관찰사(觀察使)의 성은 무엇이던가?"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어라 하던가?"
"이름도 모릅니다."
"그래도 정사(正事)는 보던가?"
"그에게는 낭막(郎幕: 부하관료)이 있습니다.
"출입도 하던가?"
"출입은 하지 않습니다."
"왜 출입하질 않지?"
스님은 소매를 털고 바로 나와버렸다.
백암스님은 다음날 아침 큰방에 들어가 두 스님을 부르더니 말하였다.
"어제 그대들을 상대한 문답이 서로 계합하지 못하여 하룻밤 내내 불안했
다. 지금 그대들에게 다시 한 마디 청하네. 만일 내 뜻과 맞는다면 바로 죽
을 끓여 먹으며 도반이 되어 여름을 지내겠네."
"스님께서는 질문을 하십시오."
"왜 출입을 하지 않는가?"
"너무 귀한 분이기 때문이지요."
백암스님은 이에 죽을 끓여 먹으며 함께 여름 한철을 지냈다.
천동 함걸(天童咸傑: 1118∼1186)스님은 말하였다.
"명암이 투합하여 팔면이 영롱하여 그 자리를 범하지 않고 몸 돌릴 길 있으니
조동(曹洞) 문하에서는 구경거리가 되겠으나, 가령 임제스님의 아손이었더라면 방
망이가 부러진다 해도 놓아주지 않았으리라. 당시에 그가 '성을 모른다'고 했을
때 등허리에 한 방을 날려 여기에서 부딪쳐 몸을 바꿔 깨쳤더라면 죽을 끓여 맞
이했을 뿐 아니라 높은 스님을 모시는 밝을 창문 아래 모셨으리라. 알겠느냐, 알
겠어!"
"악! 漆桶(漆桶)아, 법당에 가서 참례하거라."
6.
스님이 밀사백과 함께 용산(龍山: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찾아가 문
안을 드렸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산에는 길이 없는데 그대들은 어디로 왔느냐?"
"길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스님께선 어디로부터 들어 오셨는지요?"
"나는 운수(雲水) 따라 오지 않았다."
"스님께서 이 산에 머무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세월은 신경쓰지 않는다."
"스님께서 먼저 계셨습니까, 이 산이 먼저 있었습니까?"
"모르겠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나는 인간. 천상으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스님께선 어떤 도리를 얻으셨기에 이 산에 안주하십니까?"
"나는 진흙소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껏
소식이 없다."
스님은 비로소 몸가짐을 가다듬고 절하였다.
7.
스님이 행각할 때 마침 한 관리가 말하였다.
"삼조(三祖:승찬)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제가 주석을 낼까 합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고 「신심명」
에서 말하였는데 어찌 주를 내려 하느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주를 내지 않겠습니다."
8.
스님이 과거에 행각할 때 길에서 물을 걸머진 한 노파를 만났었다. 스님이
마실 물을 찾았더니 그 노파가 말하였다.
"물을 마시는 것은 무방합니다만 제게 질문이 하나 있으니 먼저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물에 티끌이 얼마나 있습니까?"
"티끌이 없습니다."
노파는 말하였다.
"내가 걸머진 물을 더럽히지 말고 가십시오."
9.
스님이 늑담( 潭)에 있으면서 초수좌(初首座)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신통하다. 정말 신통해. 불가사의하도다. 부처님 세계여, 도의 시계
여!"
그러자 스님은 질문하였다.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는 묻지 않겠소.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말
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초수좌는 한참 말이 없더니 대꾸를 못하였다.
스님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빨리 말하지 않느냐?"
"언쟁해서는 안됩니다."
"하라는 말도 못하면서 무슨 언쟁은 안된다고 하는가."
초수좌가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하였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모두가 언어이니, 교(敎)를 인용해 보지 않겠는
가?"
"교에서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뜻(意)을 체득하고서는 말을 잊는다 하였네."
"그래도 교의(敎意)를 가지고 마음에서 병을 만들고 있군요."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설명하는 병은 어느 정도이더냐?"
초수좌는 또 대꾸가 없더니 다음날 혼연히 죽어버렸다. 그리하여 스님은
당시 '질문으로 수좌를 죽인 양개(良价)'라고 불리웠다.
10.
스님이 신산 밀사백(神山密師伯)과 물을 건너게 되었을 때 물었다.
"어떻게 물을 건너야겠습니까?"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야지."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대는 어떻게 건너려는가?"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지요."
다른 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면서 말하였다.
"발을 잘못 딛지 마십시오."
"잘못 디디면 건너지 못할걸세."
"잘못 디디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는 것이지."
스님이 하루는 신산스님과 함께 차밭에서 김을 매다가 괭이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저는 오늘 기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력이 없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기력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였군요."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가다가 홀연히 흰 토끼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
데, 신산스님이 말하였다.
"잘 생겼군."
"어떤데요?"
"서민이 재상에게 절이라도 하는 것 같군."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대대로 벼슬을 하다가 잠시 권세를 잃은 것 같습니다."
신산스님이 바늘을 들고 있는데 스님이 말하였다.
"무얼 하십니까?"
"바느질을 한다네."
"바느질하는 일은 어찌해야 합니까?"
"땀땀이 서로 같아야 하네."
"20년을 같이 다녔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어찌 이렇게 공부하십
니까?"
"그대라면 어찌 하겠는가?"
"땅에서 불이 일어나는 듯한 도리입니다."
신산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지식(知識)으로 알 수 있는 것치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네.
그러니 '곧장 끊는 경지(徑裁處)'에 대해서는 스님이 한 마디 해 주시게."
"사형께서는 어떻게 공부를 하려 하십니까?"
신산스님은 여기에서 단박 깨닫고 일상과는 다른 응대를 하였다.
그 뒤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스님이 먼저 건넌 뒤 외나무다리를 들
고서 말하였다.
"건너 오십시오."
신산스님이 "양개화상!" 하고 부르자 스님은 외나무다리를 놓아주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의 절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안에 심성(心性)을 설하는 자가 있답니다."
신산스님은 말하였다.
"누굴까?"
"사형께 질문 한 번 받고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마음을 설명하고 성품을 설하는 사람이라니 누구지?"
"죽음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11.
스님이 설봉 의존(雪峯義尊: 822∼908)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천태산(天台山)에서 옵니다."
"지자(智者)스님을 뵈었느냐?"
"제가 무쇠방망이 맞을 짓을 했습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문안을 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문 안에 들어오면 무슨 말이 있어야지. 들어왔다고만 해서야 되겠느냐?"
"저는 입이 없습니다."
"입 없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에게 눈을 돌려다오."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은 앞의 말에 달리 말하였다.
"입 생긴 뒤에 말씀드리겠으니 기다리십시오."
장경 혜룡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설봉스님이 땔감을 운반하던 차에 스님의 면전에 한 단을 던지자 스님이
말하였다.
"무게가 얼마나 되던가?"
"온누리 사람이 들어도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던졌는가?"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부채 위에 불(佛)자를 쓰자 운암스님이 보고 거기다 불(不)자를 썼
다. 스님이 다시 아닐 비(非)자를 붙였더니 설봉스님이 보고는 한꺼번에 지
워버렸다.
흥화 존장(興化存奬: 830∼88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내가 너만 못하다."
백양 순(白楊順)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동산스님이었다면 설봉스님에게 '너는 나의 권속이 아니다'라고 말했으
리라."
천발 원(天鉢元)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과 운안스님은 평지에다 공연히 무더기를 일으켰으며, 설봉스님은 이
일로 지혜가 자라났다."
설봉스님이 공양주(飯頭)가 되어 쌀을 이는데 스님이 물었다.
"모래를 일어 쌀을 걸러내느냐, 쌀을 일어 모래를 걸러내느냐?"
"모래와 쌀, 양쪽 다 걸러냅니다."
"대중은 무엇을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드디어 쌀 항아리를 엎어버리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을 보건대 덕산(德山)에 있어야만 하겠군."
낭야 혜각(낭야慧覺)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의 이런 행동은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던져버리고 산을 찾아 신 오얏
을 따는 격이다."
천동 정각(天童正覺: 1091∼1157)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은 걸음마다 높이 오를 줄만 알았고 짚신 뒤꿈치가 끊기는 줄은 몰랐
다. 만일 정(正)과 편(偏)이 제대로 구르고 박자와 곡조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면 자
연히 말과 기상이 서로 합하고 부자(父子)가 투합했으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이
설봉스님을 긍정하지 않은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만 리에 구름 없으나 하늘에 티끌 있고
푸른 연못 거울 같으나 달이 오기 어렵네."
설두 종(雪竇宗)스님은 말하였다.
"곧은 나무에 난봉(鸞鳳)이 깃들지 않는데
"금침(金針)은 이미 원앙을 수놓았네
만일 신풍(新豊)의 노인이 아니었다면
바로 빙소와해를 당했으리."
스님이 하루는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고 왔느냐?"
"물통(槽)을 찍어서 만들고 왔습니다."
"몇 개의 도끼로 찍어서 완성하였느냐?"
"하나로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이쪽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그대로 손 볼 곳이 없군요."
"그래도 이쪽의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설봉스님은 그만두었다.
분양 선소(汾陽善昭: 947∼1024)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저라면 벌써 궁색해졌을텐데요."
설봉스님이 하직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영중(嶺中)으로 돌아가렵니다."
"올 때는 어느 길로 왔었지?"
"비원령(飛猿嶺)을 따라 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길을 따라 되돌아가려는가?"
"비원령을 따라 가렵니다."
"비원령을 따라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도 아는가?"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모르는가?"
"그에게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대가 모른다면 어떻게 면목이 없는 줄 아는가?"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마음이 덩벙대는 자는 망한다."
12.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취미(翠微)스님에게서 옵니다."
"그는 어떤 법문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더냐?"
"취미스님이 나한(羅漢)에게 공양을 하기에 저는 물었습니다. '나한에게
공양을 하면 나한이 온답니까?' 하니, 스님은 '그대가 매일 먹는 것은 그럼
무었이더냐?'하였습니다.
스님은 말하였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더냐?"
"그렇습니다."
"대선지식을 헛되게 참례하지 않고 왔구나."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이냐?"
"도응입니다."
"향상(向上) 자리에서 다시 말해보라."
"향상에서 도응이라 이름하지 못합니다."
"내가 도오(道吾)스님께 대답했던 말과 똑같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화상아! 그대가 뒷날 띠풀집을 짓고 제자들을 맞이할 때 홀연히 누가 질
문하면 어떻게 대꾸하려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스님이 하루는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대화상(思大和尙)이 왜국(倭國)에 태어나 국왕이 되었다던
데 정말 그런가?"
"만일 사대(思大)스님이 맞다면, 부처라 해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은 그렇다고 긍정하였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그 산은 머물만 하더냐?"
"머물만 하질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도성 안이 모조리 그대에게 점령되겠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들어갈 길을 얻었군."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겠는가."
'길이 있다면 스님과 사이에 산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뒷날 천 사람 만 사람이 붙들어도 머물지 않으리라."
스님이 운거스님과 물을 건너던 차에 물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젖지 않을 정도입니다."
"덜렁대는 사람이군."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마르지 않을 정도라네."
오조 법연(五祖法演: ?∼1104)스님은 말하였다.
"두 사람의 이 대화에 우열이 있느냐? 산승은 오늘 팔을 휘젖고 가면서 여러
분을 위해 설파하겠다.
물을 건넘에 '젖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창고에 진주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격이며, 물을 건넘에 '마르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꽂을 송곳조차 없는데 무슨 가
난과 추위를 말하겠는가.*마른길, 젖은 길 양쪽 다 관계치 말고 그저 녹수청산(綠
水靑山)에 맡기게."
운거스님이 하루는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 지렁이를 잘라 죽였더니 스님이
"적( )!"하고 호통을 쳤다.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조(二祖)는 업주(業州)로 갔다는데 어떠냐?"
운거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대천제인(大闡提人: 부처될 종자가 없는 중생)은 5역죄(五逆罪)를 지었는
데 효도고 봉양이고가 어디 있겠느냐."
"비로소 효도하고 봉양하게 되었군요."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과거에 남전(南泉)스님이 「彌勒下生經(미륵하생경)」을 강의하는 스님에
게 묻기를, '미륵은 언제 하생(下生)합니까?'했더니, 그는 '현재 도솔천궁에
계시어 미래세에 하생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남전스님은 '천상
에도 미륵은 없고, 지하에도 미륵은 없다'라고 말하였다."
운거스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질문하였다.
"천상에도 미륵이 없고 지하에도 미륵이 없다니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이
---------------------
* 향엄 지한스님이 대나무에 기왓쪽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치고는 송(頌)을 지었
는데, 위산스님이 듣고 앙산스님에게 '향엄이 확철대오했구나'하셨다. 앙산스님
은 향엄스님의 경계를 확인코자 다른 게송을 지어보라고 하자 향엄스님이 다음
의 게송을 지었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금년의 가난은 송곳마저 없구
나.' 앙산스님은 '여래선은 사제가 알았다고 인정하겠네만 조사선은 꿈에서도 보
지 못하고 있군'하였다.
름을 지어 주었단 말입니까?"
스님이 질문을 받자 선상이 진동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말하였다.
"도옹화상! 내가 운암스님에게 있으면서 그분께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화
로가 진동하듯 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한 번 질문을 받으니 온몸에 땀이 흐
르는구나."
그 뒤에 운거스님이 삼봉(三峯)에 암자를 지었다. 열흘이 지나도 큰 방에
오지 않자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요즈음 어째서 공양(齊)에 오질 않는가?"
"매일같이 천신(天神)이 음식을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이런 견해를 짓고 있
다니 그대는 느지막하게 찾아오게."
운거스님이 느지막하게 찾아오자 스님이 불렀다.
"도응 암주(道膺庵主)!"
"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것이 무엇일까?"
운거스님이 암자로 되돌아가 고요하게 편안히 앉아 있었더니, 이로부터 천
신이 찾아도 끝내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사흘 지나고서야 끊겼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느냐?"
"장(醬)을 담금니다."
"소금은 얼마나 넣느냐?"
"저으면서 넣습니다."
"어떤 맛을 만들지?"
"딱 되었습니다."
13.
소산(疏山)스님이 찾아왔는데 마침 조참(早參) 때여서 나오더니 스님께 물
었다.
"언어 이전의 도리를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아무 것도 긍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응낙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력을 들여야 옳습니까?"
"그대는 지금 공력을 들이고 있는가?"
"공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요."
하루는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듯 해야만 그것에 계합하게
되리라."
소산스님이 물었다.
"무엇에도 어긋나지 않는 경지라면 어떻습니까?"
"화상! 이는 '공들여 닦는'쪽의 일이다. 다행히도 '공부 없는 공부'가 있
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묻질 않느냐?"
"공부 없는 공부라면 저쪽 사람 일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이런 질문을 비웃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렇다면 더 아득히 멀어지겠습니다."
"멀기도 하고( 然) 멀지 않기도 하며(非 然) 멀지 않음도 아니다(非不
然)."
"어떤 것이 먼 것입니까?"
"저쪽 사람을 멀다고 하면 안되지."
"어떤 것이 멀지 않은 것입니까?"
"끝날 곳이 없겠군."
스님께서 소산스님에게 물으셨다.
"공겁(空劫)엔 사람 사는 집이 없었다 하니 이는 어떤 사람이 안주하는
곳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생각(意志)이 있겠는가?"
"스님께서도 그들에게 물어보시죠."
"지금 묻고 있는 중이다."
"무슨 뜻입니까?"
스님은 대꾸하지 않으셨다.
14.
청림 사건(靑林師虔: ?∼904)스님이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이제 어디에서 떠나왔는가?"
"무릉(武陵)에서 옵니다."
"무릉의 법도는 여기와 무엇이 같은가?"
"오랑캐 땅에선 겨울에 죽순을 뽑습니다."
"다른 시루에 향기로운 밥을 지어 이 사람에게 공양하여라."
청림스님이 소매를 떨치며 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뒷날 온 세상 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다."
고산 영(鼓山永)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대꾸하다간 물 한 방울도 받기 어려운데 무엇 때문에 다른 시루
에 향기로운 밥을 지으라 하는가."
청림스님이 하루는 스님을 하직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는가?"
"금륜(金輪)은 표적을 숨기지 않고, 온 세계에 홍진(紅塵)이 끊겼습니다."
"잘 간직(保任)하게."
청림스님이 조심스럽게 나가는데 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떠나는 한 구절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걸음걸음 홍진을 밟으나 걸음걸음 몸 그림자가 없습니다."
"스님께선 무엇 때문에 속히 말하지 않습니까?"
"자네는 어찌 그리 성미가 급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절을 하고 떠났다.
15.
용아(龍牙: 835∼923)스님이 덕산(德山)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막야( )의 보검을 가지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땐 어찌하겠습
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빼고 다가가며 "와!" 하였더니, 용아스님이 "머리가 떨어
졌습니다." 하자, 덕산스님은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용아스님이 그 뒤에 스님에게 와서 앞의 이야기를 거론하자 스님은 말씀
하셨다.
"그래, 덕산은 뭐라고 하더냐?"
"스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고 하지 말고, 우선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노승에게 가져와
보아라."
용아스님은 그제야 깨닫고서 바로 참회하고 인사하였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덕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군. 이 몸이 죽은 지 오래인데 구제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보복 종전스님은 염( )하였다.
"용아스님은 전진할 줄만 알았을 뿐 발을 헛디딘 줄은 몰랐군."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그때 끊었어야 하는데 끊질 않았으니 이제 와서 어떻게 끊으랴."
동선 관(東禪觀)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검을 껴안아 몸을 다쳤으니 재앙과 허물을 자초했다 하겠다. 덕산스님은
머리 때문에 주인이 되어 다행히도 계산을 잘 하였으나 홀연히 동산스님에게 자취를 지
적당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꼬리를 들켰다."
용아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동구의 물이 역류하게 되면 그때 가서 그대에게 말해주마."
용아스님은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았다.
16.
화엄 휴정(華嚴休靜)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제게는 이치의 길(理路)이 없어 알음알이(情識)의 작동을 면치 못합니다."
"그대는 이치의 길을 보았느냐?"
"이치의 길이 없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알음알이는 어디서 생겼느냐?"
"사실 제가 묻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학인이 가는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리 가기만 하면 되네."
화엄스님이 땔감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붙들어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비좁은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땐 어떻겠는가?"
"엎치락뒤치락하겠지요."
"그대는 내 말을 기억하라. 남쪽에 머물면 천명이 되겠지만 북쪽에 머물면
300명에 그치리라."
17.
흠산(欽山)스님이 스님을 찾아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대자(大慈)스님에게서 옵니다."
"스님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색(色) 앞에서 보았느냐, 색 뒤에서 보았느냐?"
"앞뒤가 아닌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묵묵히 계시자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너무 일찍 스승을 떠나 스승의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흠산스님이 암두(巖頭).설봉(雪峯)스님과 앉았을 때 스님께서 차를 돌렸다.
흠산스님이 이때 눈을 감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왔느냐?"
"선정에 들었다 왔습니다."
"선정은 본래 문이 없는데 어디로 들어갔느냐?"
노숙(老宿)은 대신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해한 사람이 매우 많다."
설두 중현(雪頭重顯: 980∼1052)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당시에 다만 암두스님 설봉스님을 지적하면서 '이 졸기나 하는 놈들아, 차나 마
셔라'했어야 했다."
18.
북원 통(北院通)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주인공에 꽉 눌러앉으면 두번째 견해(第二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북원 통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오더니 말하였다.
"누군가는 그것과 짝하지 않는 자가 하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 역시 두번째 견해(第二見)인걸."
통스님이 별안간 선상을 번쩍 들어서 엎어벼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저의 혀가 썩어 문드러지면 그때 가서 스님께 말씀드리지요."
통스님이 그 뒤에 스님을 하직하고 영남(飛猿嶺)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스
님께서 말씀하셨다.
"잘해보게. 비원령(飛猿嶺)은 험준하니 잘 살펴 가게."
통스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통화상!"하고 불렀다.
"네."
"왜 영남으로 들어가질 않는가?"
통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영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19.
도전(道全: ?∼894)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벗어나는 요체입니까?"
"그대의 발 밑에서 연기가 나는구나."
도전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유람하지 않았다.
운거스님이 이어서 말하였다.
"끝내 '발 밑에서 연기가 난다'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감히 저버리지 않았
군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걸음마다 현묘한 자는 즉시 효과가 나는 법이지."
20.
스님께서 태수좌(泰首座)와 함께 동짓날 과자를 먹으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고 있다.
움직이고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다 거두질 못한다. 말해보라. 허물이 어느곳
에 있는지를."
"움직이며 작용하는 가운데 허물이 있습니다. "
동안 현(同安顯)스님이 달리 말씀하셨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시자를 불러 과자상을 물리라고 하셨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달리 수좌에게 말하였다.
"아침이 오거든 다시 초왕(楚王)에게 헌납해 보아라."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판별할 수 있었으랴. 그렇긴 하나
동산스님도 한 수 부족하다."
위산 철( 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여러분은 동산스님의 귀결처를 알았느냐? 몰랐다면 더러는 시비득실로 알고
있으리라. 내가 말하겠다. 이 과자는 태수좌만 먹지 못할 뿐만 아니 라, 온누리 사
람이 온다 해도 눈 바로 뜨고 엿보질 못하리라."
운개 본(雲蓋本)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에게 허공을 찢어버릴 쇠몽둥이가 있긴 했으나 깁고 꿰맬 바늘과 실은
없었다. 그가 '움직이며 작용하는데 허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수좌는 과
자를 먹어라'했어야 했다. 거기서 태수좌가 납승이었다면 먹고 나서 토해야 한다."
남당 정(南堂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장막 안에서 계획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판하는 솜씨였고,
태수좌는 온몸이 입이어서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위산 과( 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었고, 태수좌는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나는 길을 가다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치욕을 씻으려고 한다. 당시에
그런 질문을 들었더라면 '영산(靈山)의 수기(授記)가 이같은 데에 이르진 않았다'
하고, 대꾸하려는 순간 과자를 면전에 확 집어던졌으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숨통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후인들의 망상을 없애주었으리라."
정자 창(淨慈昌)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이렇게 과자상을 물리게는 했으나 요컨데 태수좌의 입은 막지 못했
다."
21.
스님께서 유상좌(幽上座)가 오는 것을 보시더니 급히 일어나서 선상을 보
며 뒤돌아서자 유상좌는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피하시는지요."
"그대가 나를 못 본 줄 알았네."
22.
벼를 보는데 낭상좌(郎上座)가 소를 끌고 지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소를 잘 보도록 하게. 남의 벼를 망칠라."
"좋은 소라면 남의 벼를 망가뜨리지 않을 겁니다."
23.
어떤 스님이 수유(茱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수행이라면 없지는 않지만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
다른 스님 하나가 스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가 그때 무엇 때문에 '무슨 수행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말씀을 옮기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부처의 행이지, 부처의 행."
그 스님이 돌아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유주(幽州)라면 그래도 괜찮을 듯한데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이다."
동선 제(東禪齊)스님은 염( )하였다.
"이 말에도 의심이나 잘못이 있느냐? 있다면 말해보라. 어느 곳이 잘못 되었는지
를. 없다면, 또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점검해 낼 수 있느
냐? 수유스님은 '행이라면 없질 않으나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하였고, 여기에
동산스님이 거듭 '이는 어떤 행인가'하고 되묻게하니 '부처의 행'이라 답하였다. 그
스님이 알고 물었는지, 모르고 물었는지를 판단해 보라."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머리는 석 자(三尺), 목은 세 치(三寸)라네."
스님은 시자더러 이 말을 가지고 삼성 혜연(三聖慧然)스님에게 묻도록 하
였다.
삼성스님은 시자의 손 위를 손톱으로 한 번 찔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
렸더니 스님은 그것을 인정하셨다.
24.
서울의 미화상(米和尙)이 어떤 스님을 시켜 앙산(仰山)스님에게 묻도록 하
였다.
"요즘에도 방편을 통한 깨달음(假悟)이 있습니까?"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깨달음이라면 없질 않지만 두번째 자리(第二頭)에 떨어져 있는데야 어찌
하랴."
다시 미화상은 그 스님더러 스님께 묻도록 하였다.
"저 완전한 깨달음(究竟)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도리어 그에게 물어야 하리라."
25.
진상서(陳尙書)가 물었다.
"52위 보살 가운데 무엇 때문에 묘각(妙覺)이 보이질 않습니까?"
"상서께서 묘각을 직접 보십시오."
26.
어떤 관리가 물었다.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가 남자가 되면 그때 가서 수행을 하지."
27.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였다.
"납자들이여, 늦여름 초가을에 이곳 저곳으로 갈 때 곧장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한참 잠자코 계시다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만리 밖엔 한 포기 풀도 없는데 어떻게 가랴."
그 뒤에 누군가 석상(石霜)스님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석상스님이 말하
였다.
"어째서 문만 나서면 바로 풀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스님께서 듣고는 말씀하셨다.
"이 나라에 이런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대양 경현(大陽警玄: 942∼1027)스님은 말하였다.
"지금 문을 나서지 않고도 풀이 가득하다고 말하리라. 말해보라. 어느 곳으로
가야겠는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깎아지른 바위 온갖 푸른 풀을 지키지 말라. 흰구름에 눌러앉으면 종지(宗)가
오묘하지 못하리."
백운 수단(白雲守端: 1025∼1072)스님은 말하였다.
"암주(菴主)를 볼 수 있다면 바로 동산스님을 볼 것이며, 동산 스님을 본다면
암주를 보리라. 동산스님을 보기는 쉬워도 암주를 보기는 어려운데, 그가 주지(住
持)에 ㅇ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지도 못했느냐, '구름은 고갯마루에 한가하여 사
무치질 않는데 흐르는 시냇물은 쉴새없이 바쁘다'고 했던 말을."
위산 과( 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못과 무쇠를 절단하여 향상(向上)의 현묘한 관문을 활짝 열고 진실된 말씀으로
바로 그 사람의 요로(要路)를 지적한다. 말해보라. 그대는 '문을 나서면 바로 풀이
다'고 한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석상스님은 그렇게 말했고 상봉(上封)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면 곤장 30대를 맞으리라."
경산 종고(徑山宗 : 1089∼1163)스님은 말하였다.
"사자의 젖 한 방울로 노새 젖 열 섬을 물리쳤다."
2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뵐 수 있겠습니까?"
"같은 연배이니 격의없이 만나면 된다."
그 스님이 이어서 말하려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자취를 밟지 말고 다른 질문 하나 해보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지 못합니다."
그 뒤에 교상좌(皎上座)가 이를 들어 장경(長慶)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연배가 다른 것입니까?"
장경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렇게 말했는데, 교화상! 다시 여기에서 무얼 찾는냐?"
29.
어떤 스님이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어떻게 피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것이지."
투자 동(投子同)스님은 말하였다.
"하마터면 그리로 갈 뻔했군."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큰
방으로 가라'고 했으리라.
운거 효순(雲居曉舜)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낭야스님은 이렇게 처신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
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삼동(三冬)엔 따뜻한 불을 쬐고 한더위(九夏)
엔 시원한 바람을 쏘이라'했으리라."
보봉 극문(寶峯克文: 1075∼1102)스님은 말하였다.
"대중아! 알았다면 신통희유하면서 어느 때라도 추위와 더위를 개의치 않아도 무
방하겠으나, 모른다면 추위와 더위 속에서 겨울과 여름을 보내도록 하라."
상봉 재(上封才)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의 한 구절은 주인과 손님이 교대로 참례하고 정.편(正.偏)이 섭렵해 들
어간다 할 만하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피하려느냐. 일 없이 산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노라. 여러분에게 묻노니, 알겠느냐."
늑담 문준( 潭文準: 1061∼1115)스님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을 위할 때라면 물이라 해도 따뜻하지만 남을 위하지 않을 땐 불이라
해도 차갑다."
30.
상당하여 "사은삼유(四恩三有)*를 받지 않을 자가 있느냐?"
하셨는데 대중이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이 뜻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끝없는 근심을 어떻게 벗어나겠느냐? 다만
마음마다 사물에 걸리지 않고 걸음마다 가는 곳 없어 항상 끊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상응하리라. 부질없이 날을 보내지 말고 노력하여라."
3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에 갔다 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었느냐?"
"갔었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더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에 도달하진 못했구나."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거기 머물지 않았느냐?"
---------------------
* 사은삼유(四恩三有) : 주변의 인연과 윤회의 삶.
"머무는 것은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서천(西天)에 긍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
습니다."
"내 원래 그대를 의심했었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물소 뿔(駭鷄□)같은 것이다."
33.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킬 때 구해주어야 옳겠습니까, 구해주지 않아야 옳겠습
니까?"
"구해준다면 두 눈이 멀어버릴 것이며, 구해주지 않으면 형체도 그림자도
안 보일 것이다."
34.
위독한 스님 하나가 스님을 뵈려 하기에 스님께서 그에게 갔다.
"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어떤 중생이더냐?"
"저는 대천제(大闡提)중생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가 말하였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땐 어찌합니까?"
"나는 일전에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갔다 돌아왔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다."
"저더러는 어느 곳으로 가라 하시렵니까?"
"좁쌀 삼태기 속으로 가라."
그 스님이 "허(噓)"하고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앉은
채로 입적(坐脫)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머리를 세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을 뿐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구나."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행각하는 납자라면 누구나 이 한 건의 일을 투철히 해결하려 해야 한다. 이 중
은 이미 대천제 중생으로서 사방에서 산이 밀어 닥칠 때서야 바쁘게 손발을 허둥
댔다. 동산스님이 큰 자비를 가지고 그에게 한 가닥 길을 평평하게 터주지 않았
더라면 어떻게 이처럼 갈 줄 알았으랴. 그러므로 옛 사람은 말하기를, '임종할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지 않는다면 노새
나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하였던 것이다."
동산스님이 말한, '나도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좁쌀 삼태기 안으로 가라'
했던 경우, 서로 맞서 사산(四山)을 막으면서 사산을 막지 않았다. 이쯤 되어서는
물통의 밑바닥이 쑥 빠져야 하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느냐?
금닭(金鷄)은 유리 껍질을 쪼아서 부수고, 옥토끼는 푸픈 바다문을 밀쳐 여는구
나."
35.
야참(夜參)에 등불을 켜지 않았는데 한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물러난 뒤
에 스님은 시자더러 등불을 켜라 하셨다. 그리고는 조금전에 말을 물었던 스
님을 불러 나오라 하였다. 그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나오자 스님은 말씀하셨
다.
"밀가루 석 냥(兩)을 이 상좌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은 소매를 털고 물러나더니 여기서 깨우친 바가 있었다. 드디어 의
복과 일용품을 다 희사하여 재를 배풀고 3년을 산 뒤에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가게."
그때에 설봉스님이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이 스님이 하직하고 떠나는데 언제 다시 올까요?"
"그는 한 번 떠날 줄만 알 뿐 다시 올 줄은 모른다네."
그 스님은 큰방으로 돌아가더니 의발(衣鉢) 아래 앉아서 죽었다. 설봉스님
이 올라가 아뢰었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긴 하나 나를 따라오려면 3생(三生)은 더 죽었다 깨나야 할 것이다."
3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삼조(三祖)스님의 탑(塔)에서 옵니다."
"이미 조사의 처소에서 왔는데 다시 나를 만나서 무엇 하겠느냐?"
"조사라면 다르겠습니다만 저와 스님은 다르지 않습니다."
"내 그대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은데 되겠느냐?"
"스님부터 스스로 나오셔야 될 것입니다."
"내 조금전에는 여기 있질 않았었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바로 모든 뜻을 알땐 어떻습니
까?"
스님은 이에 합장한 손을 이마까지 올렸다.
38.
스님께서 덕산스님의 시자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덕산에서 왔습니다."
"찾아와서 무얼 하려는가?"
"스님을 공손히 따르렵니다."
"세간에서는 무엇이 가장 공손히 따르는 것이냐?"
시자는 대꾸가 없었다.
3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고
그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이 사람이 어떤 면목을
갖추었는지를."
운거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저는 법당에 참례하러 갑니다."
40.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부처의 향상사(向上事)를 체득해야만 조금이라도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할 땐 그대가 듣질 못한다."
"스님께선 들으시는지요?"
"말하지 않을 때라면 듣는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바르게 질문하고 바르게 답변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스님께선 답변하시겠습니까?"
"물은 적도 없는데."
42.
한 스님이 물었다.
"방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보배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만두는 것이 좋겠네."
43.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시어 몇 사람이나 긍정하셨습니까?"
"긍정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44.
스님께서 「유마경(維摩經)」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으셨다.
'지혜(智)로도 알 수 없고 분별(識)로도 알 수 없다' 하였는데 이것이 무
슨 말인가?"
"법신을 찬탄하는 말입니다."
"법신이라 할때 그 말 자체가 벌써 찬탄한 것이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는다'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오조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받아야 마
땅합니까?"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기만 하면 의발을 전수받습니까?"
"그렇긴 하나 부득불 주지 않을 수는 없다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저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해도 의발을 전수받기에는 합당하질 못하
니 그대는 말해보라. 어떤 사람이 합당하겠는지를.
여기에서 딱 깨쳐줄 만한 한 마디(一轉語)를 던져보아라. 자, 어떤 말을 해
야겠는가."
그때 한 스님이 96마디를 하였으나 모두 계합하질 못하다가 마지막 한 마
디에 비로소 스님의 뜻에 적중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왜 진작 이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또 다른 스님 하나가 몰래 듣다가 마지막 한 마디만을 듣지 못하여 드디
어 그 스님에게 설명해주기를 청하였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
하여 3년을 ㅉ아다녔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병이
들어 말하였다.
"나는 3년이나 앞의 이야기를 설명해 달라고 청하였으나 자비를 받지 못
하였다. 선의로 하여 되지 않았으니 악의로 하겠다."
드디어는 칼을 가지고 협박하였다.
"나를 위하여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그대를 죽이겠다."
그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말하였다.
"우선 기다리게. 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겠네."
이리하여 말하였다.
"설사 가져온다 해도 둘 곳이 없다고 하였다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설두 중현스님은 말하였다.
"그가 이미 받지 않았다면 그를 안목있다 하겠으나 가져오면 반드시 눈 이
멀리라. 조사의 의발을 보았느냐? 여기에서 문에 들어가야 두 손에 그 것을 받을
수 있으니, 대유령(大庾嶺)에서 한 사람이 이끌어도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온 나라 사람이 찾아온다 해도 떠나갔을 것이다."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그의 의발을 얻는데 모두 합당하지 않아야 도리어 옛 부처와 동참하리 라.
말해보라. 동참할 자 누구인가.?
천동 정각스님은 말하였다.
"나 장노(長蘆)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곧장 가져와야지, 가져오지 않는다면
받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랴. 가져온다면 필시 안목이 있다 하겠으나, 받지
않는다면 참으로 눈이 멀었다 하리라. 알겠느냐.
관조(觀照)가 다하니 자체는 의지할 바 없어 온 몸이 대도에 합하네."
영은 악(靈恩嶽)스님이 취암의 말을 거량하고 나서 말하였다.
"양자강 도착하니 오(吳)나라 땅 다하고
언덕 넘어 월(越)나라는 산이 많구나."
46.
한 암주는 불안하여 스님네들만 보면 언제나,
"구해주게, 구해줘"라고 계속 말을 하였으나 알아듣지 못하였다. 스님께서
그리하여 그를 방문하였더니 암주는 역시 말하였다.
"구해주십시오."
"어떻게 구해주지?"
"약산(藥山)의 법손이 아니면 운암(雲巖)의 적자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암주는 합장하면서 "선지식이여! 안녕히 가십시오" 하더니 그냥 죽어버렸
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스님은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불이 탄 뒤 한 줄기 순나물이라네."
47.
스님께서 대중운력 시간에 요사채를 순찰하다가 한 스님이 대중운력에 가
지 않은 것을 보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가지 않았느냐?"
"몸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건강할 땐 왜 왔다갔다 하였느냐?"
48.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학인더러 조도(鳥道)로 다니라 하셨습니다. 어떤 길이
조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도 만나질 않는 길이라네."
"어떻게 가야 합니까?"
"곧장 그 자리에서 사심없이 가야만 하네."
"조도로 가기만 한다면 바로 본래면목 아닙니까?"
"그대는 무엇 때문에 전도(顚倒)되느냐?"
"어느 곳이 저의 전도된 곳입니까?"
"전도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종을 낭군으로 오인하느냐?"
"무엇이 본래면목입니까?"
"조도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 뒤에 협산 선회(夾山善會: 805∼881)스님이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동산에서 옵니다."
"동산스님은 어떤 법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더냐?"
"평소에 학인들더러 3로(三路)를 배우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3로라더냐?"
"현로(玄路).조도(鳥道).전수(展手)였습니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다더냐?"
"실제로 하셨습니다."
"천리(千里)길을 따라가면
임하(林下)의 도인이 슬퍼한다."
부산 법원(浮山法遠: 991∼1067)스님은 말하였다.
"지는 낙엽을 보지 않으면
어떻게 가을이 깊었음을 알랴."
4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향상인(向上人) 부처가 있음을 알아야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상인 부처입니까?"
"부처가 아니다(非佛)."
보복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부처라 해도 틀린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방편으로 부처라고 부른다."
5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신발을 만들고 옵니다."
"스스로 알았느냐, 남에게 배웠느냐?"
"남에게 배웠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더냐?"
"진실하기만 하면 어긋나지 않습니다."
51.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한 중에서도 가장 현묘함입니까?"
"죽은 사람의 혓바닥 같은 것이다."
-------------------
*동산은 3로(三路:鳥道.玄路.展手)라는 격식으로 납자들을 지도했다. 조도는 새가 공
중을 날 때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듯이 유무(有無).단상(斷常)등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경계, 현로는 유무.단상 등 상대를 떠난 묘한 경계, 전수는 손을 펴서 중생에
게 나아가는 경계를 뜻한다.
52.
스님께서 발우를 씻다가 까마귀 두 마리가 개구리를 놓고 다투는 것을 보
셨다. 한 스님이 문득 여쭈었다.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너 때문이지."
53.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부처입니까?"
"벼 줄기. 좁쌀 줄기이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3신(三身) 가운데 어느 부처님이 여러 테두리(數)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
그 스님이 그 뒤에 조산(曹山)스님에게 물었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길,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라고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조산스님은 말하였다.
"처음부터 없애버려야 한다."
다시 설봉스님에게 묻자 설봉스님은 주장자로 입을 후려치더니 말하였다.
"나도 동산에 갔다 왔다."
승천 종(承天宗)스님은 말하였다.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一轉語)여
바다는 잔잔하고 강물은 맑아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바람은 높고 달은 차가워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는구나
홀연히 납승이 나와서 전혀 아니라고 해도
그가 지혜 눈을 갖추었다 인정하여라."
묘희(妙喜)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어지러운 이야기로는 꿈에서도 3신(三身)을 보지 못하리라."
다시 말하였다.
"어째서 명치 끝에 침 한 방을 놓지 않느냐."
스님 회하의 한 노숙(老宿)이 운암스님에게 갔다가 돌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운암스님께 가서 무얼 하였습니까?"
"모르겠네."
대신 말씀하셨다.
"수북이 쌓였구나."
5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산과 백운의 아버지입니까?"
"빽빽히 우거지지 않은 자이다."
"무엇이 백운과 청산의 아이입니까?"
"동서를 분별하지 않는 자이다."
"백운이 종일 의지한다 함은 무엇입니까?"
"떠나지 못함이다."
"청산이 아무것도 모른다 함은 무엇입니까?"
"둘러보지 않는 것이다."
56.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 언덕엔 어떤 풀이 있습니까?"
"싹 트지 않는 풀이 있다."
57.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세상에서 어떤 중생이 가장 괴롭겠느냐?"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 가사 입고서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한 것을 가장 괴
롭다고 한다."
58.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이름이 무엇이냐?"
"아무개입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이냐?"
"뵙고 대꾸하는 중입니다."
"괴롭다, 괴로워. 요즘 사람들은 으례껏 모두 이러하니 나귀가 앞서고 말
이 뒤따라가는 줄도(通常事) 모른다 하겠다. '자기를 위하려다가 불법이 가
라앉는다' 하더니 바로 이런 것이구나. 객 가운데 주인(賓中主)도 알지 못하
는데 어떻게 주인 가운데 주인(主中主)을 알아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 스스로 말해보라."
"제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됩니다.
운거스님이 대신 말하기를, '내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아니라 하
겠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이처럼 말하기는 쉽다만 계속하기는 매우 어렵다"하시고는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아아, 요즈음 도를 배우는 부류들을 보면
누구나가 문 앞만을 알 뿐이니
서울에 들어가 성주(聖主)께 조회하려 하면서
동관(潼關)에 이르러 그만두는 것과도 같구나.
嗟見今時學道流 千千萬萬認門頭
恰似入京朝聖主 祇到潼關卽便休
5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도는 무심히 사람에 합하고 사람은 무심히 도에 합한다. 그 뜻을 알고 싶
으냐?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는다."
그 뒤에 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늙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부추켜 지탱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늙지 않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고목(枯木)이다."
그 스님이 다시 소요 충(逍遙忠)스님에게 말하였더니 충스님은 말하였
다.
"3종과 6의(三從六義)로다."
60.
오설(五洩)스님이 석두(石頭)스님 처소에 와서 말하였다.
"한 마디에 서로 계합한다면 머물고 계합하지 못하면 떠나겠습니다."
석두스님이 기대 앉자 오설스님은 그냥 떠났다. 석두스님은 바로 뒤따라가
서 불렀다.
"스님!"
오설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석두스님은 말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것일 뿐이다. 깨달아(回頭轉腦) 무엇 하겠
느냐."
오설스님은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꺾어버렸다.
스님께서 이 인연을 들어 말씀하셨다.
"당시에 오설선사(先師)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려웠으리라. 그렇긴 하나 아직은 가고 있는 도중이다."
61.
한 스님이 대자(大慈)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강서로 가렵니다."
"내 그대에게 한 가지 힘든 일을 시키려는데 괜찮겠느냐?"
"스님께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나를 데려갈 수 있겠느냐?"
"스님보다 더 나은 자가 있다 해도 데려가지 못합니다."
그러자 대자스님은 그만두었다.
뒤에 그 스님이 스님(동산)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느냐."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데려갈 수 있다고 하겠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스님께서 떠난다면 저는 삿갓을 들겠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대자스님께서는 특별히 무슨 법문을 하시더냐?"
"언젠가는 이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한 길(一丈)을 말로 하는 것이 한 치
(一寸)를 가져오느니만 못하다.' "
"나라면 그렇게 말하진 않겠다."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행(行)하지 못할 것을 말해내기도 하며, 말(說)하지 못할 것을 행해내기도
한다."
62.
약산스님이 운암스님과 함께 산을 유랑하는데 허리에 찬 장도에서 쨍그랑
쨍그랑하는 소리가 나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소리를 내지?"
약산스님은 칼을 뽑아 별안간 입을 찍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시중(示衆)하셨다.
"살펴보라. 저 약산스님이 몸을 던져 이 일 위했던 것을. 요즈음 세상 사람
들아. 향산의 일을 밝히고 싶다면 이 뜻을 체득해야만 하리라."
약산스님은 야참(夜參)에 등불을 켜지 않고 법어를 내리셨다.
"나에게 한 구절이 있는데 수소가 새끼를 낳으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다."
한 스님이 말하였다.
"수소가 새끼를 낳는다 해도 스님께서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산스님이, "시자야, 등불을 가져오너라" 하자 그 스님은 몸을 빼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스님께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중이 도리어 이해하였군. 다만 절을 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호남에서 옵니다."
"동정호의 물은 가득 찼더냐?"
"아직은요."
"그렇게 오랫동안 비가 내렸는데 어째서 아직 차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대꾸가 없었다.
도오(道吾)스님이 말하였다.
"가득 찼습니다."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담담(湛湛)하다."
스님은 이 문제를 두고 말씀하셨다.
"어느 세월엔들 늘고 불고 한 적이 있더냐."
약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점을 칠 줄 안다고 들었는데 그렇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 점 한번 쳐보아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스님께 물었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소?"
"스님 태어난 달(生月)이 언제지요?"
63.
스님은 5위군신송(五位君臣頌)을 지어서 말씀하셨다.
정중편이여
삼경초야 달은 한창 밝은데
서로 만나 알지 못함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그래도 암암리에 지난날의 미움을 품는구나.
正中偏
三更初夜月明前
莫怪相逢不相識
隱隱猶懷舊日嫌
편중정이여
눈 어둔 노파 고경을 마주하여
얼굴을 분명히 비춰보니 따로 진실 없도다
다시는 머리를 미혹하여 그림자로 오인하지 말라.
偏中正
失曉老婆逢古鏡
分明賣頁面別無眞
休更迷頭猶認影
정중래여
'무' 속에 티끌세상 벗어날 길이 있으니
지금 성주(聖主)의 휘(諱)를 저촉하지 않기만 하면야
그래도 전조에 혀 끊긴 사람보다는 낫겠지.*
正中來
無中有路隔塵埃
但能不觸當今諱
也勝前朝斷舌才
겸중지여
두 칼날이 부딪치면 피하지 말라
좋은 솜씨는 마치 불 속의 연꽃같아
완연히 스스로 하늘 찌르는 뜻 있구나.
兼中至
兩刀交鋒不須避
好手猶如火裏蓮
宛然自由沖天志
------------------------
* 「임간록」 下 pp.109∼110 참조.
겸중도여
유무에 떨어지지 않는데 뉘라서 감히 조화를 하랴
사람마다 보통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자재하게 되돌아가 재 속에 앉았네.
兼中到
不落有無誰敢和
人人盡欲出常流
折合還歸炭裏坐
64.
스님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향시(向時)는 어떠하며, 봉시(奉時)는 어떠하며, 공시(功時)는 어떠하며,
공공시(共功時)는 어떠하며, 공공시(功功時)는 어떠하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向)입니까?"
스님은 말씀하셨다.
"밥 먹을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봉(奉)입니까?"
"등질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功)입니까?"
"괭이를 놓아버릴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공(共功)입니까?"
"색(色)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공공(功功)입니까?"
"공(共)이 아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주(聖主)는 원래 요임금(帝堯)을 본받아
사람을 예의로써 다스리며 임금 허리를 굽히네
어느 땐 시끄러운 시장 앞을 지나며
곳곳 문물(文明)이 성스러운 조정을 축복하네.
聖主由來法帝堯 於人以禮曲龍腰
有時시時頭邊過 到虛文明賀聖朝
깨끗이 씻고 진하게 화장함은 누구를 위함일까
두견새 소리 속엔 사람더러 돌아가라 권하네
백화(百花)는 떨어졌으나 우는 소린 다함 없어
다시 어지러운 산봉우리 깊은 곳에서 우네
淨洗濃粧爲阿誰 子規聲裏勸人歸
百花落盡啼無盡 更向亂峯深處啼
고목(枯木)에 꽃이 피니 겁(劫) 밖의 봄이며
옥상(玉象)을 거꾸로 타고 기린을 쫓는다네
지금 천봉(千峯) 밖에 높이 은거하니
달 밝고 바람 맑아 좋은 날이라네.
枯木花開劫外春 倒騎玉象□麒隣
而今高隱千峯外 月皎風淸好日辰
중생과 부처가 서로 침해하지 않으니
산은 절로 높고 물은 절로 깊어라
천차만별한 현상은 분명한 일이니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새로워라.
衆生諸佛不相侵 山自高兮水自深
萬別千差明底事 啼處百花新
머리에 뿔이 갓 나면 이미 감당하지 못하며
헤아리는 마음으로 부처 구하니 부끄럽기도 하구려
아득한 공겁(空劫)에 아는 사람 없는데
남쪽으로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에게 물으려 하겠는가.
頭角裳生已不堪 擬心求佛好羞
沼沼空劫無人識 肯向南詢五十三
동 산 록
(五家語錄]
1. 행 록
스님의 휘(諱)는 양개(良价)이며, 회계(會稽) 유씨(兪氏) 자손이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
신의(無眼耳鼻舌身意)...'라는 대목에서 홀연히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
다.
"저에게는 눈.귀.코.혀 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심경」에선 '없다'
고 하였습니까?"
그 스승은 깜짝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즉시 오설산(五洩山)으로 가서 묵선사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21세에 숭산(嵩山)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사방으로 유람하
면서 먼저 남전(南泉: 748∼834)스님을 배알하였다. 마침 마조(馬祖: 709∼
788)스님의 제삿날이어서 재(齋)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전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일 마조스님의 재를 지내는데 스님이 오실는지 모르겠구나."
대중이 모두 대꾸가 없자 스님이 나서서 대꾸하였다.
"도반을 기대하신다면 오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후배이긴 하지만 꽤 가르쳐 볼 만하군."
"스님께서는 양민을 짓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음으로는 위산( 山: 771∼853)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지난번 소문을 들으니 남양 혜충국사(南陽慧忠國師: ?∼775)께선 무정(無
情)도 설법을 한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저는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합니다."
"그럼 우선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게."
그리하여 스님은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라고
하였더니 국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는 무정(無情)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설법을 할 줄 안다는 말입니까?'
'활활 타는 불꽃처럼 쉴 틈없이 설법한다.'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듣지를 못합니까?'
'그대 스스로 듣지 못할 뿐이니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 방해되어
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듣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듣는다.'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나는 듣지 못하지.'
'스님께서도 듣질 못하였는데 어떻게 무정이 설법할 줄 안다고 하시는지
요.'
'내가 듣지 못해서이지. 내가 듣는다면 모든 성인과 같아져서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생에게는 들을 자격이 없겠군요.'
'나는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지 성인을 위해서 설법하진 않는다.'
'중생들이 들은 뒤엔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중생이 아니지.'
'무정이 설법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전에 근거하셨는지요?'
'분명하지.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말은 수행자가 논할 바가 아니다. 보지
도 못하였는가. 「화엄경」에서 <세계가 말을 하고 중생이 말을 하며 삼세
일체가 설법한다>고 했던 것을.'"
스님이 이야기를 끝내자 위산스님은 말하였다.
"여기 내게도 있긴 하네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뿐이다."
"저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위산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주신 이 입으로는 끝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지 못한다."
"스님과 함께 도를 흠모하던 분이 있습니까?"
"여기서 풍릉( 陵) 유현(攸縣)으로 가면 석실(石室)이 죽 이어져 있는데
운암도인(雲岩道人)이란 분이 있다. 풀섶을 헤치고 바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반드시 그대에게 소중한 분이 될걸세."
"어떤 분이신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가 한번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스님을 받들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하기에 이렇게 대꾸하였
네.
'당장에라도 번뇌(煩惱)를 끊기만 하면 되지.'
'그래도 스님의 종지에 어긋나지 않을는지요?'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말라.'"
스님은 드디어 위산스님을 하직하고 곧장 운암스님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
를 다 하고서 바로 물었다.
"무정(無情)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는지요?"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내가 듣는다면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저는 무엇 때문에 듣질 못합니까?"
운암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말하였다.
"듣느냐?"
"듣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설법도 듣질 못하는데 하물며 무정의 설법을 어찌 듣겠느냐."
"무정의 설법은 어느 경전의 가르침에 해당하는지요?"
"보지도 못하였는가.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물과 새와 나무숲이 모
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다'라고 했던 말을."
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정말 신통하구나 정말 신통해
무정의 설법은 불가사의하다네
귀로 들으면 끝내 알기 어렵고
눈으로 들어야만 알 수 있으니.
也大奇也大奇 無情說法不思議
若將耳聽終難會 眼處聞聲方得知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남은 습기(習氣)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이제껏 무얼 해왔는냐?"
"불법(聖諦)이라 해도 닦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쁨을 맛보았느냐?"
"기쁨이 없지는 않습니다.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한 알의 명주(明珠)를 얻
은 것 같습니다."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서로 보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도록 하게."
"보고 묻는 중입니다."
"그래, 그대에게 무어라고 하더냐."
운암스님이 짚신을 만드는데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서 말하였다.
"스님의 눈동자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주려느냐?"
"제게 없어서입니다."
"설사 있게 된다 해도 어디다 붙이겠느냐?"
스님이 말이 없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눈동자를 구걸하는 것이 눈이더냐?"
"눈은 아닙니다."
운암스님은 별안간 악(喝)! 하고는 나가버렸다.
스님이 운암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스님과 이별하긴 합니다만 갈 곳을 정하진 못했습니다."
"호남으로 가지 않느냐?"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조만간에 되돌아오게."
"스님이 안주처가 있게 되면 오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헤어지고 나면 만나기 어려울걸세."
"만나지 않기가 어려울 겁니다."
떠나는 차에 다시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
꾸할까요?"
운암스님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 이것뿐이라네."
스님이 잠자코 있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양개화상! 이 깨치는 일은 정말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을 하다가 그 뒤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고 앞
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할지니
자기와는 점점 더 아득해질 뿐이다.
내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 분을 뵈오리
그는 지금 바로 나이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여여(如如)에 계합하리라.
切忌從他覓 與我□
我今獨自往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恁�會 方得契如如
뒷날 운암스님의 초상화에 공양 올리던 차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승께선 '이것뿐이다'라고 하셨다던데 바로 이것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무엇인지요?"
"당시엔 나도 스승의 의도를 잘못 알 뻔하였다."
"운암스님께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줄 알았겠으며, 알고 있었다면 어찌 이처럼
말하려 하였겠나."
장경 혜릉(長慶 慧稜: 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이미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말했으랴."
다시 말하였다.
"자식을 길러보아야만 부모 사랑을 알게 된다."
스님이 운암스님의 제삿날에 재(齋)를 올리는데 마침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운암스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는지요?"
"거기 있긴 했으나 가르침을 받진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하러 재를 올리십니까?"
"어떻게 감히 운암스님을 등지겠는가?"
"스님께선 처음에 남전스님을 뵈었는데 어째서 운암스님에게 재를 올려주
십니까?"
"나는 스님의 불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에게 법을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중히 여길 뿐이다."
"스님께서는 스승을 위해 재를 올릴 때, 스승을 긍정하십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으십니까?"
"완전히 긍정한다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스님은 당(唐) 대중(大中: 8468∼859) 말년부터 신풍산(新豊山)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그 뒤 예장(豫章) 고안(高安)의 동산(洞山)에서 성대히 교화를 폈
다. 방편으로 5위(五位)를 열어 3근(三根)을 훌륭하게 이끌었으며, 일음(一音)
을 크게 천양하여 만품(萬品)을 널리 교화하였다. 지혜보검을 쑥 뽑아 빽빽
한 견해 숲을 가지 쳤으며, 조화로운 음성을 널리 펴서 여러 갈래 천착을 끊
어주셨다.
다시 조산(曹山)스님을 만나 정확한 종지를 깊이 밝히고 훌륭한 법을 오묘
하게 폈으니, 도를 군신(君臣)의 비유로 회합하였고 편위(偏位)와 정위(正位)
를 아울러 쓰셨다.
이로부터 동산의 현묘한 가풍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으므로 제방의 종장(宗
匠)들이 모두 추존(推尊)하여 '조동종(曹洞宗)'이라 하였던 것이다.
2. 감변 . 시중
1.
운암스님이 시중(示衆)하였다.
"어떤 집 아이는 물었다 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스님이 나오더니 질문하였다.
"그의 집에는 상당한 경론들이 있겠군요."
"한 글자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 수 있습니까?"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는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면 도리어 말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원주(院主)가 석실(石室)*에 갔다오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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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石室) : 담주(潭州) 유현(攸縣)에는 석실(石室)이 있어 은자들이 살곤 하였
다.
"석실로 들어가더니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느냐?"
원주가 대꾸가 없자 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차지한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운암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다시 가서 무엇 하겠느냐?"
스님이 말하였다.
"인정을 끊어서는 안됩니다."
운암스님이 한 비구니에게 물었다.
"그대의 아버지는 살아계시는가?"
"계십니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가?"
"팔십입니다."
"그대에게는 나이 팔십이 아닌 아버지가 있는데 알겠느냐?"
"아마도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닐런지요."
"오히려 손자뻘이지."
스님(동산)이 말하였다.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니라 해도 손자뻘이지."
2.
스님이 제방을 돌아다니다가 노조(魯祖: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
례하였다. 절하고 일어나 곁에 섰다가 이내 나와서 다시 들어가자 노조스님
이 말하였다.
"이럴 뿐이며, 이럴 뿐이니, 그러므로 이러하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래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걸요."
"어떻게 해야만 그대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스님은 절하고 여러 달을 시봉(侍奉)하였다.
한 스님이 노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말 없는 말'입니까?"
"그대의 입은 어디 있느냐?"
"입이 없습니다."
"무얼 가지고 밥을 먹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그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무슨 밥을 먹겠습니까?"
3.
스님이 남원(南源: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고 법당에 올라갔
더니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전에 만났던 사람이군."
스님은 바로 내려가버렸다. 다음날 다시 올라가 물었다.
"어제 벌써 스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만 언제 저와 만났었는지를 모르겠
읍니다."
"마음 마음이 쉴 틈없이 성품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을 많이 배워 널리 이익되게 하라."
"불법을 많이 배우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짓는 것
입니까?"
"무엇 하나도 어기지 말라."
4.
스님이 서울에 도착하여 흥평(興平: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에게 절하
였더니 흥평스님이 말하였다.
"늙고 썩은 몸에 절하지 말라."
"저는 늙거나 썩지 않은 것에다 절하였습니다. "
"늙고 썩지 않은 자는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스님이 되물었다.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바로 그대 마음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목각인형에게나 물어보게."
"저에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모든 부처님의 입을 빌리지 않습니다."
"어디 말해보게."
"제가 아닙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흥평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흐름을 따라 정처없이 가렵니다."
"법신(法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보신(報身)이 흐름을 따르느냐?"
"결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진 않습니다."
그러자 흥평스님은 손뼉을 쳤다.
보복 종전(保福從展: ?∼928)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달리 말하였다.
"몇 사람이나 찾을까."
5.
스님이 밀사백(密師伯: 神山僧密의 존칭)과 함께 백암(百巖)스님을 참례하
였더니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호남에서 옵니다."
"그곳 관찰사(觀察使)의 성은 무엇이던가?"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어라 하던가?"
"이름도 모릅니다."
"그래도 정사(正事)는 보던가?"
"그에게는 낭막(郎幕: 부하관료)이 있습니다.
"출입도 하던가?"
"출입은 하지 않습니다."
"왜 출입하질 않지?"
스님은 소매를 털고 바로 나와버렸다.
백암스님은 다음날 아침 큰방에 들어가 두 스님을 부르더니 말하였다.
"어제 그대들을 상대한 문답이 서로 계합하지 못하여 하룻밤 내내 불안했
다. 지금 그대들에게 다시 한 마디 청하네. 만일 내 뜻과 맞는다면 바로 죽
을 끓여 먹으며 도반이 되어 여름을 지내겠네."
"스님께서는 질문을 하십시오."
"왜 출입을 하지 않는가?"
"너무 귀한 분이기 때문이지요."
백암스님은 이에 죽을 끓여 먹으며 함께 여름 한철을 지냈다.
천동 함걸(天童咸傑: 1118∼1186)스님은 말하였다.
"명암이 투합하여 팔면이 영롱하여 그 자리를 범하지 않고 몸 돌릴 길 있으니
조동(曹洞) 문하에서는 구경거리가 되겠으나, 가령 임제스님의 아손이었더라면 방
망이가 부러진다 해도 놓아주지 않았으리라. 당시에 그가 '성을 모른다'고 했을
때 등허리에 한 방을 날려 여기에서 부딪쳐 몸을 바꿔 깨쳤더라면 죽을 끓여 맞
이했을 뿐 아니라 높은 스님을 모시는 밝을 창문 아래 모셨으리라. 알겠느냐, 알
겠어!"
"악! 漆桶(漆桶)아, 법당에 가서 참례하거라."
6.
스님이 밀사백과 함께 용산(龍山: 馬祖道一의 法을 이음)스님을 찾아가 문
안을 드렸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산에는 길이 없는데 그대들은 어디로 왔느냐?"
"길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스님께선 어디로부터 들어 오셨는지요?"
"나는 운수(雲水) 따라 오지 않았다."
"스님께서 이 산에 머무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세월은 신경쓰지 않는다."
"스님께서 먼저 계셨습니까, 이 산이 먼저 있었습니까?"
"모르겠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나는 인간. 천상으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스님께선 어떤 도리를 얻으셨기에 이 산에 안주하십니까?"
"나는 진흙소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껏
소식이 없다."
스님은 비로소 몸가짐을 가다듬고 절하였다.
7.
스님이 행각할 때 마침 한 관리가 말하였다.
"삼조(三祖:승찬)스님의 「신심명(信心銘)」에 제가 주석을 낼까 합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고 「신심명」
에서 말하였는데 어찌 주를 내려 하느냐."
법안 문익(法眼文益: 885∼95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주를 내지 않겠습니다."
8.
스님이 과거에 행각할 때 길에서 물을 걸머진 한 노파를 만났었다. 스님이
마실 물을 찾았더니 그 노파가 말하였다.
"물을 마시는 것은 무방합니다만 제게 질문이 하나 있으니 먼저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물에 티끌이 얼마나 있습니까?"
"티끌이 없습니다."
노파는 말하였다.
"내가 걸머진 물을 더럽히지 말고 가십시오."
9.
스님이 늑담( 潭)에 있으면서 초수좌(初首座)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신통하다. 정말 신통해. 불가사의하도다. 부처님 세계여, 도의 시계
여!"
그러자 스님은 질문하였다.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는 묻지 않겠소.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말
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초수좌는 한참 말이 없더니 대꾸를 못하였다.
스님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빨리 말하지 않느냐?"
"언쟁해서는 안됩니다."
"하라는 말도 못하면서 무슨 언쟁은 안된다고 하는가."
초수좌가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하였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모두가 언어이니, 교(敎)를 인용해 보지 않겠는
가?"
"교에서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뜻(意)을 체득하고서는 말을 잊는다 하였네."
"그래도 교의(敎意)를 가지고 마음에서 병을 만들고 있군요."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설명하는 병은 어느 정도이더냐?"
초수좌는 또 대꾸가 없더니 다음날 혼연히 죽어버렸다. 그리하여 스님은
당시 '질문으로 수좌를 죽인 양개(良价)'라고 불리웠다.
10.
스님이 신산 밀사백(神山密師伯)과 물을 건너게 되었을 때 물었다.
"어떻게 물을 건너야겠습니까?"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야지."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대는 어떻게 건너려는가?"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지요."
다른 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면서 말하였다.
"발을 잘못 딛지 마십시오."
"잘못 디디면 건너지 못할걸세."
"잘못 디디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는 것이지."
스님이 하루는 신산스님과 함께 차밭에서 김을 매다가 괭이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저는 오늘 기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력이 없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기력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였군요."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가다가 홀연히 흰 토끼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
데, 신산스님이 말하였다.
"잘 생겼군."
"어떤데요?"
"서민이 재상에게 절이라도 하는 것 같군."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대대로 벼슬을 하다가 잠시 권세를 잃은 것 같습니다."
신산스님이 바늘을 들고 있는데 스님이 말하였다.
"무얼 하십니까?"
"바느질을 한다네."
"바느질하는 일은 어찌해야 합니까?"
"땀땀이 서로 같아야 하네."
"20년을 같이 다녔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어찌 이렇게 공부하십
니까?"
"그대라면 어찌 하겠는가?"
"땅에서 불이 일어나는 듯한 도리입니다."
신산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지식(知識)으로 알 수 있는 것치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네.
그러니 '곧장 끊는 경지(徑裁處)'에 대해서는 스님이 한 마디 해 주시게."
"사형께서는 어떻게 공부를 하려 하십니까?"
신산스님은 여기에서 단박 깨닫고 일상과는 다른 응대를 하였다.
그 뒤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스님이 먼저 건넌 뒤 외나무다리를 들
고서 말하였다.
"건너 오십시오."
신산스님이 "양개화상!" 하고 부르자 스님은 외나무다리를 놓아주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의 절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안에 심성(心性)을 설하는 자가 있답니다."
신산스님은 말하였다.
"누굴까?"
"사형께 질문 한 번 받고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마음을 설명하고 성품을 설하는 사람이라니 누구지?"
"죽음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11.
스님이 설봉 의존(雪峯義尊: 822∼908)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천태산(天台山)에서 옵니다."
"지자(智者)스님을 뵈었느냐?"
"제가 무쇠방망이 맞을 짓을 했습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문안을 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문 안에 들어오면 무슨 말이 있어야지. 들어왔다고만 해서야 되겠느냐?"
"저는 입이 없습니다."
"입 없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에게 눈을 돌려다오."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은 앞의 말에 달리 말하였다.
"입 생긴 뒤에 말씀드리겠으니 기다리십시오."
장경 혜룡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설봉스님이 땔감을 운반하던 차에 스님의 면전에 한 단을 던지자 스님이
말하였다.
"무게가 얼마나 되던가?"
"온누리 사람이 들어도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던졌는가?"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부채 위에 불(佛)자를 쓰자 운암스님이 보고 거기다 불(不)자를 썼
다. 스님이 다시 아닐 비(非)자를 붙였더니 설봉스님이 보고는 한꺼번에 지
워버렸다.
흥화 존장(興化存奬: 830∼88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내가 너만 못하다."
백양 순(白楊順)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동산스님이었다면 설봉스님에게 '너는 나의 권속이 아니다'라고 말했으
리라."
천발 원(天鉢元)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과 운안스님은 평지에다 공연히 무더기를 일으켰으며, 설봉스님은 이
일로 지혜가 자라났다."
설봉스님이 공양주(飯頭)가 되어 쌀을 이는데 스님이 물었다.
"모래를 일어 쌀을 걸러내느냐, 쌀을 일어 모래를 걸러내느냐?"
"모래와 쌀, 양쪽 다 걸러냅니다."
"대중은 무엇을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드디어 쌀 항아리를 엎어버리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을 보건대 덕산(德山)에 있어야만 하겠군."
낭야 혜각(낭야慧覺)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의 이런 행동은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던져버리고 산을 찾아 신 오얏
을 따는 격이다."
천동 정각(天童正覺: 1091∼1157)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은 걸음마다 높이 오를 줄만 알았고 짚신 뒤꿈치가 끊기는 줄은 몰랐
다. 만일 정(正)과 편(偏)이 제대로 구르고 박자와 곡조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면 자
연히 말과 기상이 서로 합하고 부자(父子)가 투합했으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이
설봉스님을 긍정하지 않은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만 리에 구름 없으나 하늘에 티끌 있고
푸른 연못 거울 같으나 달이 오기 어렵네."
설두 종(雪竇宗)스님은 말하였다.
"곧은 나무에 난봉(鸞鳳)이 깃들지 않는데
"금침(金針)은 이미 원앙을 수놓았네
만일 신풍(新豊)의 노인이 아니었다면
바로 빙소와해를 당했으리."
스님이 하루는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고 왔느냐?"
"물통(槽)을 찍어서 만들고 왔습니다."
"몇 개의 도끼로 찍어서 완성하였느냐?"
"하나로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이쪽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그대로 손 볼 곳이 없군요."
"그래도 이쪽의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설봉스님은 그만두었다.
분양 선소(汾陽善昭: 947∼1024)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저라면 벌써 궁색해졌을텐데요."
설봉스님이 하직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영중(嶺中)으로 돌아가렵니다."
"올 때는 어느 길로 왔었지?"
"비원령(飛猿嶺)을 따라 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길을 따라 되돌아가려는가?"
"비원령을 따라 가렵니다."
"비원령을 따라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도 아는가?"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모르는가?"
"그에게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대가 모른다면 어떻게 면목이 없는 줄 아는가?"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마음이 덩벙대는 자는 망한다."
12.
운거 도응(雲居道膺: ?∼902)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취미(翠微)스님에게서 옵니다."
"그는 어떤 법문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더냐?"
"취미스님이 나한(羅漢)에게 공양을 하기에 저는 물었습니다. '나한에게
공양을 하면 나한이 온답니까?' 하니, 스님은 '그대가 매일 먹는 것은 그럼
무었이더냐?'하였습니다.
스님은 말하였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더냐?"
"그렇습니다."
"대선지식을 헛되게 참례하지 않고 왔구나."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이냐?"
"도응입니다."
"향상(向上) 자리에서 다시 말해보라."
"향상에서 도응이라 이름하지 못합니다."
"내가 도오(道吾)스님께 대답했던 말과 똑같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화상아! 그대가 뒷날 띠풀집을 짓고 제자들을 맞이할 때 홀연히 누가 질
문하면 어떻게 대꾸하려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스님이 하루는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대화상(思大和尙)이 왜국(倭國)에 태어나 국왕이 되었다던
데 정말 그런가?"
"만일 사대(思大)스님이 맞다면, 부처라 해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은 그렇다고 긍정하였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그 산은 머물만 하더냐?"
"머물만 하질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도성 안이 모조리 그대에게 점령되겠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들어갈 길을 얻었군."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겠는가."
'길이 있다면 스님과 사이에 산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뒷날 천 사람 만 사람이 붙들어도 머물지 않으리라."
스님이 운거스님과 물을 건너던 차에 물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젖지 않을 정도입니다."
"덜렁대는 사람이군."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마르지 않을 정도라네."
오조 법연(五祖法演: ?∼1104)스님은 말하였다.
"두 사람의 이 대화에 우열이 있느냐? 산승은 오늘 팔을 휘젖고 가면서 여러
분을 위해 설파하겠다.
물을 건넘에 '젖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창고에 진주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격이며, 물을 건넘에 '마르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꽂을 송곳조차 없는데 무슨 가
난과 추위를 말하겠는가.*마른길, 젖은 길 양쪽 다 관계치 말고 그저 녹수청산(綠
水靑山)에 맡기게."
운거스님이 하루는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 지렁이를 잘라 죽였더니 스님이
"적( )!"하고 호통을 쳤다.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조(二祖)는 업주(業州)로 갔다는데 어떠냐?"
운거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대천제인(大闡提人: 부처될 종자가 없는 중생)은 5역죄(五逆罪)를 지었는
데 효도고 봉양이고가 어디 있겠느냐."
"비로소 효도하고 봉양하게 되었군요."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과거에 남전(南泉)스님이 「彌勒下生經(미륵하생경)」을 강의하는 스님에
게 묻기를, '미륵은 언제 하생(下生)합니까?'했더니, 그는 '현재 도솔천궁에
계시어 미래세에 하생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남전스님은 '천상
에도 미륵은 없고, 지하에도 미륵은 없다'라고 말하였다."
운거스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질문하였다.
"천상에도 미륵이 없고 지하에도 미륵이 없다니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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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엄 지한스님이 대나무에 기왓쪽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치고는 송(頌)을 지었
는데, 위산스님이 듣고 앙산스님에게 '향엄이 확철대오했구나'하셨다. 앙산스님
은 향엄스님의 경계를 확인코자 다른 게송을 지어보라고 하자 향엄스님이 다음
의 게송을 지었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금년의 가난은 송곳마저 없구
나.' 앙산스님은 '여래선은 사제가 알았다고 인정하겠네만 조사선은 꿈에서도 보
지 못하고 있군'하였다.
름을 지어 주었단 말입니까?"
스님이 질문을 받자 선상이 진동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말하였다.
"도옹화상! 내가 운암스님에게 있으면서 그분께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화
로가 진동하듯 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한 번 질문을 받으니 온몸에 땀이 흐
르는구나."
그 뒤에 운거스님이 삼봉(三峯)에 암자를 지었다. 열흘이 지나도 큰 방에
오지 않자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요즈음 어째서 공양(齊)에 오질 않는가?"
"매일같이 천신(天神)이 음식을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이런 견해를 짓고 있
다니 그대는 느지막하게 찾아오게."
운거스님이 느지막하게 찾아오자 스님이 불렀다.
"도응 암주(道膺庵主)!"
"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것이 무엇일까?"
운거스님이 암자로 되돌아가 고요하게 편안히 앉아 있었더니, 이로부터 천
신이 찾아도 끝내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사흘 지나고서야 끊겼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느냐?"
"장(醬)을 담금니다."
"소금은 얼마나 넣느냐?"
"저으면서 넣습니다."
"어떤 맛을 만들지?"
"딱 되었습니다."
13.
소산(疏山)스님이 찾아왔는데 마침 조참(早參) 때여서 나오더니 스님께 물
었다.
"언어 이전의 도리를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아무 것도 긍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응낙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력을 들여야 옳습니까?"
"그대는 지금 공력을 들이고 있는가?"
"공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요."
하루는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듯 해야만 그것에 계합하게
되리라."
소산스님이 물었다.
"무엇에도 어긋나지 않는 경지라면 어떻습니까?"
"화상! 이는 '공들여 닦는'쪽의 일이다. 다행히도 '공부 없는 공부'가 있
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묻질 않느냐?"
"공부 없는 공부라면 저쪽 사람 일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이런 질문을 비웃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렇다면 더 아득히 멀어지겠습니다."
"멀기도 하고( 然) 멀지 않기도 하며(非 然) 멀지 않음도 아니다(非不
然)."
"어떤 것이 먼 것입니까?"
"저쪽 사람을 멀다고 하면 안되지."
"어떤 것이 멀지 않은 것입니까?"
"끝날 곳이 없겠군."
스님께서 소산스님에게 물으셨다.
"공겁(空劫)엔 사람 사는 집이 없었다 하니 이는 어떤 사람이 안주하는
곳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생각(意志)이 있겠는가?"
"스님께서도 그들에게 물어보시죠."
"지금 묻고 있는 중이다."
"무슨 뜻입니까?"
스님은 대꾸하지 않으셨다.
14.
청림 사건(靑林師虔: ?∼904)스님이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이제 어디에서 떠나왔는가?"
"무릉(武陵)에서 옵니다."
"무릉의 법도는 여기와 무엇이 같은가?"
"오랑캐 땅에선 겨울에 죽순을 뽑습니다."
"다른 시루에 향기로운 밥을 지어 이 사람에게 공양하여라."
청림스님이 소매를 떨치며 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뒷날 온 세상 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다."
고산 영(鼓山永)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대꾸하다간 물 한 방울도 받기 어려운데 무엇 때문에 다른 시루
에 향기로운 밥을 지으라 하는가."
청림스님이 하루는 스님을 하직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는가?"
"금륜(金輪)은 표적을 숨기지 않고, 온 세계에 홍진(紅塵)이 끊겼습니다."
"잘 간직(保任)하게."
청림스님이 조심스럽게 나가는데 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떠나는 한 구절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걸음걸음 홍진을 밟으나 걸음걸음 몸 그림자가 없습니다."
"스님께선 무엇 때문에 속히 말하지 않습니까?"
"자네는 어찌 그리 성미가 급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절을 하고 떠났다.
15.
용아(龍牙: 835∼923)스님이 덕산(德山)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막야( )의 보검을 가지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땐 어찌하겠습
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빼고 다가가며 "와!" 하였더니, 용아스님이 "머리가 떨어
졌습니다." 하자, 덕산스님은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용아스님이 그 뒤에 스님에게 와서 앞의 이야기를 거론하자 스님은 말씀
하셨다.
"그래, 덕산은 뭐라고 하더냐?"
"스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고 하지 말고, 우선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노승에게 가져와
보아라."
용아스님은 그제야 깨닫고서 바로 참회하고 인사하였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덕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군. 이 몸이 죽은 지 오래인데 구제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보복 종전스님은 염( )하였다.
"용아스님은 전진할 줄만 알았을 뿐 발을 헛디딘 줄은 몰랐군."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그때 끊었어야 하는데 끊질 않았으니 이제 와서 어떻게 끊으랴."
동선 관(東禪觀)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검을 껴안아 몸을 다쳤으니 재앙과 허물을 자초했다 하겠다. 덕산스님은
머리 때문에 주인이 되어 다행히도 계산을 잘 하였으나 홀연히 동산스님에게 자취를 지
적당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꼬리를 들켰다."
용아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동구의 물이 역류하게 되면 그때 가서 그대에게 말해주마."
용아스님은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았다.
16.
화엄 휴정(華嚴休靜)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제게는 이치의 길(理路)이 없어 알음알이(情識)의 작동을 면치 못합니다."
"그대는 이치의 길을 보았느냐?"
"이치의 길이 없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알음알이는 어디서 생겼느냐?"
"사실 제가 묻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학인이 가는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리 가기만 하면 되네."
화엄스님이 땔감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붙들어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비좁은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땐 어떻겠는가?"
"엎치락뒤치락하겠지요."
"그대는 내 말을 기억하라. 남쪽에 머물면 천명이 되겠지만 북쪽에 머물면
300명에 그치리라."
17.
흠산(欽山)스님이 스님을 찾아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대자(大慈)스님에게서 옵니다."
"스님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색(色) 앞에서 보았느냐, 색 뒤에서 보았느냐?"
"앞뒤가 아닌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묵묵히 계시자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너무 일찍 스승을 떠나 스승의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흠산스님이 암두(巖頭).설봉(雪峯)스님과 앉았을 때 스님께서 차를 돌렸다.
흠산스님이 이때 눈을 감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왔느냐?"
"선정에 들었다 왔습니다."
"선정은 본래 문이 없는데 어디로 들어갔느냐?"
노숙(老宿)은 대신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해한 사람이 매우 많다."
설두 중현(雪頭重顯: 980∼1052)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당시에 다만 암두스님 설봉스님을 지적하면서 '이 졸기나 하는 놈들아, 차나 마
셔라'했어야 했다."
18.
북원 통(北院通)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주인공에 꽉 눌러앉으면 두번째 견해(第二見)에 떨어지지 않는다."
북원 통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오더니 말하였다.
"누군가는 그것과 짝하지 않는 자가 하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 역시 두번째 견해(第二見)인걸."
통스님이 별안간 선상을 번쩍 들어서 엎어벼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저의 혀가 썩어 문드러지면 그때 가서 스님께 말씀드리지요."
통스님이 그 뒤에 스님을 하직하고 영남(飛猿嶺)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스
님께서 말씀하셨다.
"잘해보게. 비원령(飛猿嶺)은 험준하니 잘 살펴 가게."
통스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통화상!"하고 불렀다.
"네."
"왜 영남으로 들어가질 않는가?"
통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영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19.
도전(道全: ?∼894)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벗어나는 요체입니까?"
"그대의 발 밑에서 연기가 나는구나."
도전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유람하지 않았다.
운거스님이 이어서 말하였다.
"끝내 '발 밑에서 연기가 난다'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감히 저버리지 않았
군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걸음마다 현묘한 자는 즉시 효과가 나는 법이지."
20.
스님께서 태수좌(泰首座)와 함께 동짓날 과자를 먹으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고 있다.
움직이고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다 거두질 못한다. 말해보라. 허물이 어느곳
에 있는지를."
"움직이며 작용하는 가운데 허물이 있습니다. "
동안 현(同安顯)스님이 달리 말씀하셨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시자를 불러 과자상을 물리라고 하셨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달리 수좌에게 말하였다.
"아침이 오거든 다시 초왕(楚王)에게 헌납해 보아라."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판별할 수 있었으랴. 그렇긴 하나
동산스님도 한 수 부족하다."
위산 철( 山喆)스님은 말하였다.
"여러분은 동산스님의 귀결처를 알았느냐? 몰랐다면 더러는 시비득실로 알고
있으리라. 내가 말하겠다. 이 과자는 태수좌만 먹지 못할 뿐만 아니 라, 온누리 사
람이 온다 해도 눈 바로 뜨고 엿보질 못하리라."
운개 본(雲蓋本)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에게 허공을 찢어버릴 쇠몽둥이가 있긴 했으나 깁고 꿰맬 바늘과 실은
없었다. 그가 '움직이며 작용하는데 허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수좌는 과
자를 먹어라'했어야 했다. 거기서 태수좌가 납승이었다면 먹고 나서 토해야 한다."
남당 정(南堂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장막 안에서 계획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판하는 솜씨였고,
태수좌는 온몸이 입이어서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위산 과( 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었고, 태수좌는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나는 길을 가다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치욕을 씻으려고 한다. 당시에
그런 질문을 들었더라면 '영산(靈山)의 수기(授記)가 이같은 데에 이르진 않았다'
하고, 대꾸하려는 순간 과자를 면전에 확 집어던졌으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숨통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후인들의 망상을 없애주었으리라."
정자 창(淨慈昌)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이렇게 과자상을 물리게는 했으나 요컨데 태수좌의 입은 막지 못했
다."
21.
스님께서 유상좌(幽上座)가 오는 것을 보시더니 급히 일어나서 선상을 보
며 뒤돌아서자 유상좌는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피하시는지요."
"그대가 나를 못 본 줄 알았네."
22.
벼를 보는데 낭상좌(郎上座)가 소를 끌고 지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소를 잘 보도록 하게. 남의 벼를 망칠라."
"좋은 소라면 남의 벼를 망가뜨리지 않을 겁니다."
23.
어떤 스님이 수유(茱萸)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수행이라면 없지는 않지만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
다른 스님 하나가 스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가 그때 무엇 때문에 '무슨 수행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말씀을 옮기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부처의 행이지, 부처의 행."
그 스님이 돌아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유주(幽州)라면 그래도 괜찮을 듯한데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이다."
동선 제(東禪齊)스님은 염( )하였다.
"이 말에도 의심이나 잘못이 있느냐? 있다면 말해보라. 어느 곳이 잘못 되었는지
를. 없다면, 또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점검해 낼 수 있느
냐? 수유스님은 '행이라면 없질 않으나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하였고, 여기에
동산스님이 거듭 '이는 어떤 행인가'하고 되묻게하니 '부처의 행'이라 답하였다. 그
스님이 알고 물었는지, 모르고 물었는지를 판단해 보라."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머리는 석 자(三尺), 목은 세 치(三寸)라네."
스님은 시자더러 이 말을 가지고 삼성 혜연(三聖慧然)스님에게 묻도록 하
였다.
삼성스님은 시자의 손 위를 손톱으로 한 번 찔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
렸더니 스님은 그것을 인정하셨다.
24.
서울의 미화상(米和尙)이 어떤 스님을 시켜 앙산(仰山)스님에게 묻도록 하
였다.
"요즘에도 방편을 통한 깨달음(假悟)이 있습니까?"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깨달음이라면 없질 않지만 두번째 자리(第二頭)에 떨어져 있는데야 어찌
하랴."
다시 미화상은 그 스님더러 스님께 묻도록 하였다.
"저 완전한 깨달음(究竟)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도리어 그에게 물어야 하리라."
25.
진상서(陳尙書)가 물었다.
"52위 보살 가운데 무엇 때문에 묘각(妙覺)이 보이질 않습니까?"
"상서께서 묘각을 직접 보십시오."
26.
어떤 관리가 물었다.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가 남자가 되면 그때 가서 수행을 하지."
27.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였다.
"납자들이여, 늦여름 초가을에 이곳 저곳으로 갈 때 곧장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한참 잠자코 계시다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만리 밖엔 한 포기 풀도 없는데 어떻게 가랴."
그 뒤에 누군가 석상(石霜)스님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석상스님이 말하
였다.
"어째서 문만 나서면 바로 풀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스님께서 듣고는 말씀하셨다.
"이 나라에 이런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대양 경현(大陽警玄: 942∼1027)스님은 말하였다.
"지금 문을 나서지 않고도 풀이 가득하다고 말하리라. 말해보라. 어느 곳으로
가야겠는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깎아지른 바위 온갖 푸른 풀을 지키지 말라. 흰구름에 눌러앉으면 종지(宗)가
오묘하지 못하리."
백운 수단(白雲守端: 1025∼1072)스님은 말하였다.
"암주(菴主)를 볼 수 있다면 바로 동산스님을 볼 것이며, 동산 스님을 본다면
암주를 보리라. 동산스님을 보기는 쉬워도 암주를 보기는 어려운데, 그가 주지(住
持)에 ㅇ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지도 못했느냐, '구름은 고갯마루에 한가하여 사
무치질 않는데 흐르는 시냇물은 쉴새없이 바쁘다'고 했던 말을."
위산 과( 山果)스님은 말하였다.
"못과 무쇠를 절단하여 향상(向上)의 현묘한 관문을 활짝 열고 진실된 말씀으로
바로 그 사람의 요로(要路)를 지적한다. 말해보라. 그대는 '문을 나서면 바로 풀이
다'고 한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석상스님은 그렇게 말했고 상봉(上封)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면 곤장 30대를 맞으리라."
경산 종고(徑山宗 : 1089∼1163)스님은 말하였다.
"사자의 젖 한 방울로 노새 젖 열 섬을 물리쳤다."
2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뵐 수 있겠습니까?"
"같은 연배이니 격의없이 만나면 된다."
그 스님이 이어서 말하려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자취를 밟지 말고 다른 질문 하나 해보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지 못합니다."
그 뒤에 교상좌(皎上座)가 이를 들어 장경(長慶)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연배가 다른 것입니까?"
장경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렇게 말했는데, 교화상! 다시 여기에서 무얼 찾는냐?"
29.
어떤 스님이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어떻게 피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것이지."
투자 동(投子同)스님은 말하였다.
"하마터면 그리로 갈 뻔했군."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큰
방으로 가라'고 했으리라.
운거 효순(雲居曉舜)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낭야스님은 이렇게 처신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
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삼동(三冬)엔 따뜻한 불을 쬐고 한더위(九夏)
엔 시원한 바람을 쏘이라'했으리라."
보봉 극문(寶峯克文: 1075∼1102)스님은 말하였다.
"대중아! 알았다면 신통희유하면서 어느 때라도 추위와 더위를 개의치 않아도 무
방하겠으나, 모른다면 추위와 더위 속에서 겨울과 여름을 보내도록 하라."
상봉 재(上封才)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의 한 구절은 주인과 손님이 교대로 참례하고 정.편(正.偏)이 섭렵해 들
어간다 할 만하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피하려느냐. 일 없이 산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노라. 여러분에게 묻노니, 알겠느냐."
늑담 문준( 潭文準: 1061∼1115)스님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을 위할 때라면 물이라 해도 따뜻하지만 남을 위하지 않을 땐 불이라
해도 차갑다."
30.
상당하여 "사은삼유(四恩三有)*를 받지 않을 자가 있느냐?"
하셨는데 대중이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이 뜻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끝없는 근심을 어떻게 벗어나겠느냐? 다만
마음마다 사물에 걸리지 않고 걸음마다 가는 곳 없어 항상 끊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상응하리라. 부질없이 날을 보내지 말고 노력하여라."
3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에 갔다 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었느냐?"
"갔었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더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에 도달하진 못했구나."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거기 머물지 않았느냐?"
---------------------
* 사은삼유(四恩三有) : 주변의 인연과 윤회의 삶.
"머무는 것은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서천(西天)에 긍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
습니다."
"내 원래 그대를 의심했었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물소 뿔(駭鷄□)같은 것이다."
33.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킬 때 구해주어야 옳겠습니까, 구해주지 않아야 옳겠습
니까?"
"구해준다면 두 눈이 멀어버릴 것이며, 구해주지 않으면 형체도 그림자도
안 보일 것이다."
34.
위독한 스님 하나가 스님을 뵈려 하기에 스님께서 그에게 갔다.
"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어떤 중생이더냐?"
"저는 대천제(大闡提)중생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가 말하였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땐 어찌합니까?"
"나는 일전에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갔다 돌아왔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다."
"저더러는 어느 곳으로 가라 하시렵니까?"
"좁쌀 삼태기 속으로 가라."
그 스님이 "허(噓)"하고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앉은
채로 입적(坐脫)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머리를 세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을 뿐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구나."
소각 근(昭覺勤)스님은 말하였다.
"행각하는 납자라면 누구나 이 한 건의 일을 투철히 해결하려 해야 한다. 이 중
은 이미 대천제 중생으로서 사방에서 산이 밀어 닥칠 때서야 바쁘게 손발을 허둥
댔다. 동산스님이 큰 자비를 가지고 그에게 한 가닥 길을 평평하게 터주지 않았
더라면 어떻게 이처럼 갈 줄 알았으랴. 그러므로 옛 사람은 말하기를, '임종할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지 않는다면 노새
나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하였던 것이다."
동산스님이 말한, '나도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좁쌀 삼태기 안으로 가라'
했던 경우, 서로 맞서 사산(四山)을 막으면서 사산을 막지 않았다. 이쯤 되어서는
물통의 밑바닥이 쑥 빠져야 하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느냐?
금닭(金鷄)은 유리 껍질을 쪼아서 부수고, 옥토끼는 푸픈 바다문을 밀쳐 여는구
나."
35.
야참(夜參)에 등불을 켜지 않았는데 한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물러난 뒤
에 스님은 시자더러 등불을 켜라 하셨다. 그리고는 조금전에 말을 물었던 스
님을 불러 나오라 하였다. 그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나오자 스님은 말씀하셨
다.
"밀가루 석 냥(兩)을 이 상좌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은 소매를 털고 물러나더니 여기서 깨우친 바가 있었다. 드디어 의
복과 일용품을 다 희사하여 재를 배풀고 3년을 산 뒤에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가게."
그때에 설봉스님이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이 스님이 하직하고 떠나는데 언제 다시 올까요?"
"그는 한 번 떠날 줄만 알 뿐 다시 올 줄은 모른다네."
그 스님은 큰방으로 돌아가더니 의발(衣鉢) 아래 앉아서 죽었다. 설봉스님
이 올라가 아뢰었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긴 하나 나를 따라오려면 3생(三生)은 더 죽었다 깨나야 할 것이다."
3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삼조(三祖)스님의 탑(塔)에서 옵니다."
"이미 조사의 처소에서 왔는데 다시 나를 만나서 무엇 하겠느냐?"
"조사라면 다르겠습니다만 저와 스님은 다르지 않습니다."
"내 그대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은데 되겠느냐?"
"스님부터 스스로 나오셔야 될 것입니다."
"내 조금전에는 여기 있질 않았었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바로 모든 뜻을 알땐 어떻습니
까?"
스님은 이에 합장한 손을 이마까지 올렸다.
38.
스님께서 덕산스님의 시자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덕산에서 왔습니다."
"찾아와서 무얼 하려는가?"
"스님을 공손히 따르렵니다."
"세간에서는 무엇이 가장 공손히 따르는 것이냐?"
시자는 대꾸가 없었다.
3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고
그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이 사람이 어떤 면목을
갖추었는지를."
운거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저는 법당에 참례하러 갑니다."
40.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부처의 향상사(向上事)를 체득해야만 조금이라도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할 땐 그대가 듣질 못한다."
"스님께선 들으시는지요?"
"말하지 않을 때라면 듣는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바르게 질문하고 바르게 답변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스님께선 답변하시겠습니까?"
"물은 적도 없는데."
42.
한 스님이 물었다.
"방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보배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만두는 것이 좋겠네."
43.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시어 몇 사람이나 긍정하셨습니까?"
"긍정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44.
스님께서 「유마경(維摩經)」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으셨다.
'지혜(智)로도 알 수 없고 분별(識)로도 알 수 없다' 하였는데 이것이 무
슨 말인가?"
"법신을 찬탄하는 말입니다."
"법신이라 할때 그 말 자체가 벌써 찬탄한 것이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는다'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오조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의발(衣鉢)을 전수받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받아야 마
땅합니까?"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기만 하면 의발을 전수받습니까?"
"그렇긴 하나 부득불 주지 않을 수는 없다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저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해도 의발을 전수받기에는 합당하질 못하
니 그대는 말해보라. 어떤 사람이 합당하겠는지를.
여기에서 딱 깨쳐줄 만한 한 마디(一轉語)를 던져보아라. 자, 어떤 말을 해
야겠는가."
그때 한 스님이 96마디를 하였으나 모두 계합하질 못하다가 마지막 한 마
디에 비로소 스님의 뜻에 적중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왜 진작 이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또 다른 스님 하나가 몰래 듣다가 마지막 한 마디만을 듣지 못하여 드디
어 그 스님에게 설명해주기를 청하였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
하여 3년을 ㅉ아다녔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병이
들어 말하였다.
"나는 3년이나 앞의 이야기를 설명해 달라고 청하였으나 자비를 받지 못
하였다. 선의로 하여 되지 않았으니 악의로 하겠다."
드디어는 칼을 가지고 협박하였다.
"나를 위하여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그대를 죽이겠다."
그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말하였다.
"우선 기다리게. 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겠네."
이리하여 말하였다.
"설사 가져온다 해도 둘 곳이 없다고 하였다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설두 중현스님은 말하였다.
"그가 이미 받지 않았다면 그를 안목있다 하겠으나 가져오면 반드시 눈 이
멀리라. 조사의 의발을 보았느냐? 여기에서 문에 들어가야 두 손에 그 것을 받을
수 있으니, 대유령(大庾嶺)에서 한 사람이 이끌어도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온 나라 사람이 찾아온다 해도 떠나갔을 것이다."
취암 지(翠巖芝)스님은 말하였다.
"그의 의발을 얻는데 모두 합당하지 않아야 도리어 옛 부처와 동참하리 라.
말해보라. 동참할 자 누구인가.?
천동 정각스님은 말하였다.
"나 장노(長蘆)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곧장 가져와야지, 가져오지 않는다면
받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랴. 가져온다면 필시 안목이 있다 하겠으나, 받지
않는다면 참으로 눈이 멀었다 하리라. 알겠느냐.
관조(觀照)가 다하니 자체는 의지할 바 없어 온 몸이 대도에 합하네."
영은 악(靈恩嶽)스님이 취암의 말을 거량하고 나서 말하였다.
"양자강 도착하니 오(吳)나라 땅 다하고
언덕 넘어 월(越)나라는 산이 많구나."
46.
한 암주는 불안하여 스님네들만 보면 언제나,
"구해주게, 구해줘"라고 계속 말을 하였으나 알아듣지 못하였다. 스님께서
그리하여 그를 방문하였더니 암주는 역시 말하였다.
"구해주십시오."
"어떻게 구해주지?"
"약산(藥山)의 법손이 아니면 운암(雲巖)의 적자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암주는 합장하면서 "선지식이여! 안녕히 가십시오" 하더니 그냥 죽어버렸
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스님은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불이 탄 뒤 한 줄기 순나물이라네."
47.
스님께서 대중운력 시간에 요사채를 순찰하다가 한 스님이 대중운력에 가
지 않은 것을 보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가지 않았느냐?"
"몸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건강할 땐 왜 왔다갔다 하였느냐?"
48.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학인더러 조도(鳥道)로 다니라 하셨습니다. 어떤 길이
조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도 만나질 않는 길이라네."
"어떻게 가야 합니까?"
"곧장 그 자리에서 사심없이 가야만 하네."
"조도로 가기만 한다면 바로 본래면목 아닙니까?"
"그대는 무엇 때문에 전도(顚倒)되느냐?"
"어느 곳이 저의 전도된 곳입니까?"
"전도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종을 낭군으로 오인하느냐?"
"무엇이 본래면목입니까?"
"조도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 뒤에 협산 선회(夾山善會: 805∼881)스님이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동산에서 옵니다."
"동산스님은 어떤 법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더냐?"
"평소에 학인들더러 3로(三路)를 배우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3로라더냐?"
"현로(玄路).조도(鳥道).전수(展手)였습니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다더냐?"
"실제로 하셨습니다."
"천리(千里)길을 따라가면
임하(林下)의 도인이 슬퍼한다."
부산 법원(浮山法遠: 991∼1067)스님은 말하였다.
"지는 낙엽을 보지 않으면
어떻게 가을이 깊었음을 알랴."
4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향상인(向上人) 부처가 있음을 알아야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상인 부처입니까?"
"부처가 아니다(非佛)."
보복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부처라 해도 틀린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방편으로 부처라고 부른다."
5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신발을 만들고 옵니다."
"스스로 알았느냐, 남에게 배웠느냐?"
"남에게 배웠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더냐?"
"진실하기만 하면 어긋나지 않습니다."
51.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한 중에서도 가장 현묘함입니까?"
"죽은 사람의 혓바닥 같은 것이다."
-------------------
*동산은 3로(三路:鳥道.玄路.展手)라는 격식으로 납자들을 지도했다. 조도는 새가 공
중을 날 때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듯이 유무(有無).단상(斷常)등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경계, 현로는 유무.단상 등 상대를 떠난 묘한 경계, 전수는 손을 펴서 중생에
게 나아가는 경계를 뜻한다.
52.
스님께서 발우를 씻다가 까마귀 두 마리가 개구리를 놓고 다투는 것을 보
셨다. 한 스님이 문득 여쭈었다.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너 때문이지."
53.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부처입니까?"
"벼 줄기. 좁쌀 줄기이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3신(三身) 가운데 어느 부처님이 여러 테두리(數)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
그 스님이 그 뒤에 조산(曹山)스님에게 물었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길,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라고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조산스님은 말하였다.
"처음부터 없애버려야 한다."
다시 설봉스님에게 묻자 설봉스님은 주장자로 입을 후려치더니 말하였다.
"나도 동산에 갔다 왔다."
승천 종(承天宗)스님은 말하였다.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一轉語)여
바다는 잔잔하고 강물은 맑아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바람은 높고 달은 차가워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는구나
홀연히 납승이 나와서 전혀 아니라고 해도
그가 지혜 눈을 갖추었다 인정하여라."
묘희(妙喜)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어지러운 이야기로는 꿈에서도 3신(三身)을 보지 못하리라."
다시 말하였다.
"어째서 명치 끝에 침 한 방을 놓지 않느냐."
스님 회하의 한 노숙(老宿)이 운암스님에게 갔다가 돌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운암스님께 가서 무얼 하였습니까?"
"모르겠네."
대신 말씀하셨다.
"수북이 쌓였구나."
5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산과 백운의 아버지입니까?"
"빽빽히 우거지지 않은 자이다."
"무엇이 백운과 청산의 아이입니까?"
"동서를 분별하지 않는 자이다."
"백운이 종일 의지한다 함은 무엇입니까?"
"떠나지 못함이다."
"청산이 아무것도 모른다 함은 무엇입니까?"
"둘러보지 않는 것이다."
56.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 언덕엔 어떤 풀이 있습니까?"
"싹 트지 않는 풀이 있다."
57.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세상에서 어떤 중생이 가장 괴롭겠느냐?"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 가사 입고서 대사(大事)를 밝히지 못한 것을 가장 괴
롭다고 한다."
58.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이름이 무엇이냐?"
"아무개입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이냐?"
"뵙고 대꾸하는 중입니다."
"괴롭다, 괴로워. 요즘 사람들은 으례껏 모두 이러하니 나귀가 앞서고 말
이 뒤따라가는 줄도(通常事) 모른다 하겠다. '자기를 위하려다가 불법이 가
라앉는다' 하더니 바로 이런 것이구나. 객 가운데 주인(賓中主)도 알지 못하
는데 어떻게 주인 가운데 주인(主中主)을 알아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 스스로 말해보라."
"제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됩니다.
운거스님이 대신 말하기를, '내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아니라 하
겠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이처럼 말하기는 쉽다만 계속하기는 매우 어렵다"하시고는 게송으로 말씀
하셨다.
아아, 요즈음 도를 배우는 부류들을 보면
누구나가 문 앞만을 알 뿐이니
서울에 들어가 성주(聖主)께 조회하려 하면서
동관(潼關)에 이르러 그만두는 것과도 같구나.
嗟見今時學道流 千千萬萬認門頭
恰似入京朝聖主 祇到潼關卽便休
5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도는 무심히 사람에 합하고 사람은 무심히 도에 합한다. 그 뜻을 알고 싶
으냐?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는다."
그 뒤에 어떤 스님이 조산(曹山)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늙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부추켜 지탱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늙지 않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고목(枯木)이다."
그 스님이 다시 소요 충(逍遙忠)스님에게 말하였더니 충스님은 말하였
다.
"3종과 6의(三從六義)로다."
60.
오설(五洩)스님이 석두(石頭)스님 처소에 와서 말하였다.
"한 마디에 서로 계합한다면 머물고 계합하지 못하면 떠나겠습니다."
석두스님이 기대 앉자 오설스님은 그냥 떠났다. 석두스님은 바로 뒤따라가
서 불렀다.
"스님!"
오설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석두스님은 말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것일 뿐이다. 깨달아(回頭轉腦) 무엇 하겠
느냐."
오설스님은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꺾어버렸다.
스님께서 이 인연을 들어 말씀하셨다.
"당시에 오설선사(先師)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려웠으리라. 그렇긴 하나 아직은 가고 있는 도중이다."
61.
한 스님이 대자(大慈)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강서로 가렵니다."
"내 그대에게 한 가지 힘든 일을 시키려는데 괜찮겠느냐?"
"스님께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나를 데려갈 수 있겠느냐?"
"스님보다 더 나은 자가 있다 해도 데려가지 못합니다."
그러자 대자스님은 그만두었다.
뒤에 그 스님이 스님(동산)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느냐."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데려갈 수 있다고 하겠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스님께서 떠난다면 저는 삿갓을 들겠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대자스님께서는 특별히 무슨 법문을 하시더냐?"
"언젠가는 이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한 길(一丈)을 말로 하는 것이 한 치
(一寸)를 가져오느니만 못하다.' "
"나라면 그렇게 말하진 않겠다."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행(行)하지 못할 것을 말해내기도 하며, 말(說)하지 못할 것을 행해내기도
한다."
62.
약산스님이 운암스님과 함께 산을 유랑하는데 허리에 찬 장도에서 쨍그랑
쨍그랑하는 소리가 나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소리를 내지?"
약산스님은 칼을 뽑아 별안간 입을 찍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시중(示衆)하셨다.
"살펴보라. 저 약산스님이 몸을 던져 이 일 위했던 것을. 요즈음 세상 사람
들아. 향산의 일을 밝히고 싶다면 이 뜻을 체득해야만 하리라."
약산스님은 야참(夜參)에 등불을 켜지 않고 법어를 내리셨다.
"나에게 한 구절이 있는데 수소가 새끼를 낳으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다."
한 스님이 말하였다.
"수소가 새끼를 낳는다 해도 스님께서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산스님이, "시자야, 등불을 가져오너라" 하자 그 스님은 몸을 빼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스님께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중이 도리어 이해하였군. 다만 절을 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호남에서 옵니다."
"동정호의 물은 가득 찼더냐?"
"아직은요."
"그렇게 오랫동안 비가 내렸는데 어째서 아직 차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대꾸가 없었다.
도오(道吾)스님이 말하였다.
"가득 찼습니다."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담담(湛湛)하다."
스님은 이 문제를 두고 말씀하셨다.
"어느 세월엔들 늘고 불고 한 적이 있더냐."
약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점을 칠 줄 안다고 들었는데 그렇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 점 한번 쳐보아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스님께 물었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소?"
"스님 태어난 달(生月)이 언제지요?"
63.
스님은 5위군신송(五位君臣頌)을 지어서 말씀하셨다.
정중편이여
삼경초야 달은 한창 밝은데
서로 만나 알지 못함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그래도 암암리에 지난날의 미움을 품는구나.
正中偏
三更初夜月明前
莫怪相逢不相識
隱隱猶懷舊日嫌
편중정이여
눈 어둔 노파 고경을 마주하여
얼굴을 분명히 비춰보니 따로 진실 없도다
다시는 머리를 미혹하여 그림자로 오인하지 말라.
偏中正
失曉老婆逢古鏡
分明□面別無眞
休更迷頭猶認影
정중래여
'무' 속에 티끌세상 벗어날 길이 있으니
지금 성주(聖主)의 휘(諱)를 저촉하지 않기만 하면야
그래도 전조에 혀 끊긴 사람보다는 낫겠지.*
正中來
無中有路隔塵埃
但能不觸當今諱
也勝前朝斷舌才
겸중지여
두 칼날이 부딪치면 피하지 말라
좋은 솜씨는 마치 불 속의 연꽃같아
완연히 스스로 하늘 찌르는 뜻 있구나.
兼中至
兩刀交鋒不須避
好手猶如火裏蓮
宛然自由沖天志
------------------------
* 「임간록」 下 pp.109∼110 참조.
겸중도여
유무에 떨어지지 않는데 뉘라서 감히 조화를 하랴
사람마다 보통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자재하게 되돌아가 재 속에 앉았네.
兼中到
不落有無誰敢和
人人盡欲出常流
折合還歸炭裏坐
64.
스님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향시(向時)는 어떠하며, 봉시(奉時)는 어떠하며, 공시(功時)는 어떠하며,
공공시(共功時)는 어떠하며, 공공시(功功時)는 어떠하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向)입니까?"
스님은 말씀하셨다.
"밥 먹을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봉(奉)입니까?"
"등질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功)입니까?"
"괭이를 놓아버릴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공(共功)입니까?"
"색(色)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공공(功功)입니까?"
"공(共)이 아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주(聖主)는 원래 요임금(帝堯)을 본받아
사람을 예의로써 다스리며 임금 허리를 굽히네
어느 땐 시끄러운 시장 앞을 지나며
곳곳 문물(文明)이 성스러운 조정을 축복하네.
聖主由來法帝堯 於人以禮曲龍腰
有時시時頭邊過 到虛文明賀聖朝
깨끗이 씻고 진하게 화장함은 누구를 위함일까
두견새 소리 속엔 사람더러 돌아가라 권하네
백화(百花)는 떨어졌으나 우는 소린 다함 없어
다시 어지러운 산봉우리 깊은 곳에서 우네
淨洗濃粧爲阿誰 子規聲裏勸人歸
百花落盡啼無盡 更向亂峯深處啼
고목(枯木)에 꽃이 피니 겁(劫) 밖의 봄이며
옥상(玉象)을 거꾸로 타고 기린을 쫓는다네
지금 천봉(千峯) 밖에 높이 은거하니
달 밝고 바람 맑아 좋은 날이라네.
枯木花開劫外春 倒騎玉象□麒隣
而今高隱千峯外 月皎風淸好日辰
중생과 부처가 서로 침해하지 않으니
산은 절로 높고 물은 절로 깊어라
천차만별한 현상은 분명한 일이니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새로워라.
衆生諸佛不相侵 山自高兮水自深
萬別千差明底事 啼處百花新
머리에 뿔이 갓 나면 이미 감당하지 못하며
헤아리는 마음으로 부처 구하니 부끄럽기도 하구려
아득한 공겁(空劫)에 아는 사람 없는데
남쪽으로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에게 물으려 하겠는가.
頭角裳生已不堪 擬心求佛好羞
沼沼空劫無人識 肯向南詢五十三
3. 부 촉
1.
조산(曹山)스님이 하직하니 이때 스님께서 드디어 부촉하셨다.
"내가 운암선사(先師)에게 있으면서 보경삼매(寶鏡三昧)에 도장찍듯 계합
하여 그 요체를 몸소 궁구하였는데,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그 말씀(詞)은 이러하다.
불조께서 가만히 부촉하신
이러한 법을
네 지금 얻었으니
잘 보호할지어다.
如是之法 佛祖密付
汝今得之 宣善保護
은주발에는 눈이 달렸고
밝은 달은 백로를 숨겼는데
종류는 같질 않으나
뒤섞이면 제자리를 안다.
銀 盛雪 明月藏鷺
類之弗齊 混則知處
뜻은 말에 있질 않으니
찾아오는 기연(機緣)에
걸핏하면 소굴을 이루어
빗나가게 떨어져 잘못이네.
意不在言 來機亦赴
動成 臼 差落顧佇
등지거나 맞닿음 양쪽 다 잘못이니
큰 불덩이 같아서
형색이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물듬(染汚)에 속한다.
背觸俱非 如大火聚
但形文彩 卽屬染汚
한밤중 그대로가 밝음이나
새벽이 드러나질 않았으니
중생을 위해 법칙을 짓고
이로써 모든 고통 뽑아주라.
夜半正明 天曉不露
爲物作則 用拔諸苦
비록 함(有爲)이 아니나
말이 없음도 아니니
보경(寶鏡)에 임한 듯
형체와 그림자 서로를 마주본다.
雖非有爲 不是無語
如臨寶鏡 形影相□
너는 그가 아니나
그는 바로 너이니
세상의 어린 아이처럼
다섯 상호 완연히 갖추었다.
汝不是渠 渠正是汝
如世孀兒 五相完具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안주하지도 않는다.
시끄럽게 글 읽는 소리
유구(有句)와 무구(無句)로
끝내 사물을 얻지 못함은
말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不去不來 不起不住
婆婆和和 有句無句
終不得物 語未正故
중리(重離□□) 6효(六爻)에
편(偏). 정(定)이 번갈아 드니
포개면 3이되고
변화가 다하면 5를 이루나
질초( 草)의 맛같고
금강저(金剛杵) 같기도 하다.
重離六爻 偏正回互
疊而爲三 變盡成五
如 草味 如金剛杵
정중(正中)에 오묘하게 끼어
북도 치고 노래도 부른다
산꼭대기 지나고 길바닥도 지나며
지방 따라 길 따라 가는데
어긋나면 길(吉)하여
범하거나 거스르지 못한다.
正中妙挾 鼓唱雙擧
通宗通塗 挾帶挾路
錯然則吉 不可犯
천진(天眞)스런 오묘함은
미오(迷悟)에 속하지 않는데
인연과 시절은
고요히 밝게 나타난다
미세하기는 틈 없는 데 들어가고
크기는 방향과 처소가 끊겼으니
털끝만큼의 차이에도
화음(律呂)에 맞지 않는다.
天眞而妙 不屬迷悟
因緣時節 寂然昭著
細入無間 大絶方所
毫忽之差 不應律呂
지금 돈점(頓漸)이 있어
이 때문에 종취(宗趣)를 세우니
종취가 나뉨이여
바로 법도(規지)가 되었도다
종취를 완전히 깨쳐
진상(眞常)이 끝없이 흐르니
밖은 고요하고 중심은 요동하여
망아지를 매어 쥐를 조복시킨다.
今有頓漸 緣立宗趣
宗趣分矣 卽是規 □
宗通趣極 眞常流注
外寂中搖 係駒伏鼠
선대의 성인은 이를 불쌍히 여겨
법을 위해 보시하고 제도하였다
중생의 전도됨에 맞추어
검은 것을 희게도 하였으며
전도된 생각이 없어지자
긍정하는 마음 스스로 허락하네.
先聖悲之 爲法檀度
隨其顚倒 以뇌爲素
顚倒想滅 肯心自許
옛 법도에 부합하려거든
옛것을 관찰하라
불도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10겁(十劫)동안 나무를 관(觀)하라.
要合古轍 請觀前古
佛道垂成 十劫觀樹
호랑이의 결함같고
말 다리의 흰 점과 같아서
하열함이 있기 때문에
보궤(寶 )가 보물이 되며
경이(驚異)함이 있기 때문에
이노( 奴)가 백고(白 )가 된다.
如虎之缺 如馬之
以有下劣 賓 珍御
以有驚異 奴白
예( )는 교묘한 힘으로써
백보 밖에서 활을 쏘아 적중했으나
화살 끝과 칼 끝이 서로 만나면
교묘한 힘인들 어찌 당하랴.
以巧力 射中百步
箭鋒相直 巧力何예
목인(木人)이 노래하니
석녀(石女)가 일어나 춤을 춘다
정식(情識)이 도달하지 않는데
어찌 사려를 용납하랴
신하는 임금을 받들고
자식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법이니
순종하지 않으면 효도가 아니며
받들지 않으면 보좌가 아니다.
木人方歌 石女起舞
非情識到 寧容思慮
臣奉於君 子順於父
不順非孝 不奉非輔
가만히 행동하고 은밀히 작용하여
어리석은 듯 노둔한 듯하라
그렇게 계속할 수만 있다면
주중주(主中主)라 이름하리라.
潛行密用 如愚若魯
但能相續 名主中主
2.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말법시대엔 사람에게 마른 지혜(乾慧)가 많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실
하게 알고자 한다면 세 가지 병통( 參漏)이 있다. 첫째는 사견(見 參漏)인데
중
생의 근기가 지위를 떠나지 않고 독바다에 떨어져 있음을 말한다. 두번째는
망정(情 參漏)인데 향하느냐 등지느냐에 막혀 있어 견처(見處)가 치우치고 메
마름을 말한다. 세번째는 망어(語 參漏)인데 오묘함을 참구하나 종지를 잃어
중생이 본말에 어두움을 말한다.
배우는 이가 탁한 지혜로 유전하여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나니 그
대는 이를 알아야만 한다."
3.
또 강요(綱要)가 되는 게송 셋을 말했다.
첫째, 북 치면서 노래하는(敲唱俱行)게송.
금침(金針)에 두 바늘귀 갖추고
좁은 길에서 은밀히 모두 다를 꾸렸네
보인(寶印)이 바람에 당하여 오묘하니
거듭거듭 비단 재봉선 열렸네.
金針雙銷備 挾路隱全該
寶印當風妙 中中錦縫開
두번째, 쇠로 현로를 막는(金銷玄路) 게송.
밝음 속에 어둠이 엇바뀌니
노력은 다했으나 더더욱 깨닫기 어려워라
힘이 다하여 진퇴를 잊으니
펼쳐진 그물을 쇠로 막는구나.
交互明中暗 功齊轉覺難
力窮忘進退 金銷網輓輓
세번째, 범성에 떨어지지 않는(不墜凡聖: 또는 理事不涉이라고도 한다) 게
송.
사(事)와 이(理)에 모두 끄달리지 않고
돌이켜 관조함에 그윽하고 은미함 끊겼네
바람을 등져 좋은솜씨 나쁜솜씨 없는 터에
번쩍하는 번갯불 ㅉ아가기 어려워라.
事理俱不涉 回照絶幽微
背風無巧拙 電火燦難追
4.
스님께서 몸이 편칠 못하여 사미(沙彌)더러 운거스님에게 말을 전하라 하
고는 부촉하였다.
"그가 혹 스님께선 편안하시더냐 하고 묻거든 운암의 길이 차례로 끊겼다
고만 말하라. 그대는 이 말을 하고서 멀리 서 있어야만 한다. 그가 그대를
후려칠까 두렵구나."
사미는 뜻(旨)을 알아차리고 가서 말을 전하였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
써 운거스님에게서 한 방을 맞았다. 그러나 사미는 대꾸가 없었다.
동안 현(同安顯)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운암스님의 한 가지가 떨어지진 않았다 하리라."
운거 석(雲居錫)스님은 말하였다.
"상좌야 말해보라. 운암스님의 길이 끊겼는지, 끊기지 않았는지를."
숭수 조(崇壽稠)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후려쳤던 이 한 방망이의 의도는 무엇이냐?"
5.
스님께서 열반(圓寂)하면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부질없는 이름이 세상에 남게 되었으니 누가 나를 위해서 없애주겠느
냐."
대중 모두 대꾸가 없었는데 그때 사미가 나와서 말하였다.
"스님의 법호를 가르쳐 주십시오."
"나의 부질없는 이름은 이미 없어졌도다."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그에게 인정받은 사람이 없군."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부질없는 이름이 남았다면 나의 스승이 아니다."
조산스님은 말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알아낸 사람이 없다."
"소산스님은 말하였다.
"용은 물을 빠져 나올 기틀이 있으나 알아본 사람이 없구나."
6.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몸이 편찮으신데 병들지 않는 자도 있습니까?"
"있지."
"병들지 않는 자도 스님을 볼까요?"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스님께선 어떻게 그를 보는지 가르쳐 주시렵니까?"
"내가 볼 때는 병이 보이질 않는다."
스님은 이어서 그에게 물으셨다.
"이 가죽 푸대를 떠나 어디서 나와 만나겠느냐?"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은 게송으로 법을 보이셨다.
학인은 항하사같이 많으나 하나도 깨달은 이 없으니
혀 끝에서 길을 찾는데 허물이 있다네
형체를 잊고 종적을 없애려느냐
노력하며 은근히 공(空) 속을 걸어라.
學者恒沙無一悟 過在尋他舌頭路
欲得忘形泯 蹟 努力段勤空裏步
4. 천 화
이윽고 머리 깎고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라 명하고는 종을 울려 대중과 하
직하더니, 엄연하게 앉아서 천화(遷化)하셨다. 그때 대중들이 울부짖고 통곡
하며 한참을 지나도 그치질 않자 스님은 홀연히 눈을 뜨고 대중에게 말씀하
셨다.
"출가인이라면 마음을 사물에 붙이지 않아야만 진실한 수행인이다. 삶을
수고롭게 하고 죽음을 애석히 여기며 슬퍼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다시 일을 주관하는 스님에게 우치재(愚痴齋)를 준비하라 하셨다. 대중들
이 그래도 연연해 하자 7일간을 연장하였다. 음식과 도구가 갖추어지자 스님
은 대중을 따르다가 재가 다하자 이윽고 말씀하셨다.
"절집이 무사하려면 대체로 떠날 때 시끄럽게 요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윽고 방장실로 돌아가 단정히 앉아서 영영 떠나시니 그날은 함통(咸通)
10년 3월이었다. 세수 63세. 법랍은 42세, 시호는 오본선사(悟本禪師), 탑은
혜각(慧覺)이라 이름하였다.
동 산 록
(祖堂集)
1. 행 록
운암(雲巖)스님의 법을 이었고, 홍주(洪州) 고안현(高安縣)에 살았다. 스님
의 휘는 양개(良价), 성은 유(兪)씨며 월주(越州) 저기현(諸 縣)사람이다. 처
음에 마을에 있는 절(院, 普利院)의 원주(院主)에게 출가하였는데, 원주는 스
님을 감당하지 못했으나 스님은 싫어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전혀 없이 2년을
지냈다. 원주는 스님의 공손함을 보고 「심경(心經)」을 외우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도 못가서 환히 외워버렸다. 원주는 그 다음 경을 외우라 하니, 스
님이 대답했다.
"이미 외운 심경의 뜻도 아직 모르는데 그 다음 경을 더 배울 필요가 없
습니다."
"이제껏 줄줄 외워놓고 어째서 모른다 하는가?"
"심경에서 꼭 한 구절을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구절이 어디인가?"
"눈.귀.코.혀.몸.생각이 모두 없다(無眼耳鼻舌身意)는 구절을 모르겠으니 스
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원주는 말이 막혔다. 이로부터 이 법공(法公)이 예삿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원주는 곧 스님을 데리고 오설 영묵(五洩 靈默: 747∼818)스님에게로
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말했다.
"이 법공은 나로선 지도하기 어려우니, 스님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오설스님이 허락하니, 스님은 그 아래서 허락을 받고 3년을 지도받고 계를
받았다. 그리고는 모든 법을 다 물은 뒤에 사뢰었다.
"저는 행각을 떠나고 싶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오설스님이 말씀하셨다.
"찾아가서 물으려거든 남전(南泉)스님에게 가서 물으라."
"한 번 떠나면 인연이 다한 것이니 외로운 학은 둥우리로 돌아오지 않습
니다."
그리고는 오설스님을 하직하고 남전스님에게로 갔다.
남전 보원(南泉普願: 748∼834)스님이 귀종(歸宗)스님의 재(齋)를 올리면서
법어(法語)를 내렸다.
"오늘 귀종스님을 위해 재를 지내는데 귀종스님이 오겠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자 스님이 나서서 절하고는 "스님, 다시 물어 주십시오"
하여 남전스님이 물으니, "길동무가 있기만 하면 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
다.
그러자 남전스님이 뛰어내려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다.
"비록 후생(後生)이지만 다듬어봄직하겠다."
이에 스님이 말씀하셨다.
"양민을 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이로부터 이름이 천하에 퍼져, 선지식(作家)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나중에 운암 담성(雲巖曇成: 782∼841)스님에게 가서 현묘한 뜻을 모두 알
고는 대중(大中: 847∼879)연간이 끝날 무렵에는 신풍산(新豊山)에 가서 선요
(禪要)를 크게 폈는데, 이때 한 스님이 와서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뵙고자 하는데 어찌해야겠습니까?"
"나이가 비슷하니 걸릴 것이 없다."
학인이 다시 의문나는 점을 물으니, 스님이 대답했다.
"앞의 발자취를 거듭 밟지 않겠으니, 다른 질문을 하나 하거라."
그러자 운거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저는 스님의 본래 스승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상좌(上座)를 시켜 장경(長慶)스님에게 가서 이 이야기를 들어 묻
기를, "어떤 것이 나이가 비슷한 것입니까?" 하라 했더니, 장경스님이 말씀하
셨다.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 그대에게 여기까지 와서 무엇인가를 묻게 하
였더란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남전스님을 뵈었으면서 어째서 운암스님의 제사를 지냅니까?"
"나는 운암스님의 도와 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
을 귀중히 여길 뿐이다."
"무엇이 비로자나불의 스승이며 법신(法身)의 주인입니까?"
"벼 줄기, 조(栗) 줄기다."
스님이 백안(百顔)스님에게 갔을 때 백안스님이 물었다.
"요즘 어디서 떠나왔는가?"
"호남(湖南)에서 떠났습니다."
"관찰사(觀察使)의 성이 무엇이던가?"
"그의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엇이던가?"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밖에 나온 적이 있는가?"
"나와 본 적이 없습니다."
"일을 마땅하게 처리하던가?"
"낭막(郎幕)이 따로 있습니다."
"비록 나오지는 않았으나 일은 바로 처리하는구나."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백안스님은 하룻밤이 지나서야 아직 선
당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물었다.
"어제 그 두스님(頭陀)은 어디로 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저올시다."
"지난밤, 스님을 상대했으나 밤새도록 불안하였으니 불법이 퍽 어려운 것
임을 알겠소. 두타가 여기서 여름을 지내면 나는 두 스님을 모시고 따라야
되겠소."
그리고 대신 대답하기를 청하니, 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너무 존귀하십니다."
운암스님이 원주가 석실(石室)로 떠나려는 길에 말씀하셨다.
"석실에 들어가거든 그대로 돌아와서는 안된다."
원주가 대답이 없으므로 스님이 말했다.
"거기엔 벌써 누군가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운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대가 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인정을 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흡사 물소(解鷄犀)같은 것이다."
2. 대 기
1.
한 스님이 동산(洞山)스님에게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닦으란 말씀이 퍽이나 좋은데 어째서 의발을 얻지 못했
습니까?"*
"설사 '본래 한 물건도 없다' 했더라도 의발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의발을 얻겠습니까?"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가 얻을 것이다."
"이 사람이 받겠습니까?"
"받지는 않으나 그에게 주지 않을 수는 없다."
-------------------
* 5조가 의발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신수(神秀)상좌는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
勤拂拭 莫使有塵埃'라는 게송을 지어 바쳤으나 법을 전수받지 못하고, 노행자가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하는 게송으로 6조가 되었다.
2.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데 구해줘야 합니까, 구해주지 말아야 합니까?"
"구해주자니 두 눈이 멀겠고, 구해주지 않자니 형상과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겠구나."
3.
운암(雲巖)스님의 재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스승(先師)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내가 비록 거기에 있었으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다."
"받은 것이 없다면 재는 차려서 무엇합니까?"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으나 스승을 저버릴 수는 없다."
4.
또 재를 차리는데 물었다.
"스님께서 스승의 재를 차리시니, 스승을 긍정하는 것입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치 않는다."
"어째서 전부를 긍정치 않으십니까?"
"만일 전부를 긍정하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안국사(安國師)에게 물었다.
"전부를 긍정하면 어째서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안국사가 대답했다.
"금 부스러기가 비록 귀중하나 '아들을 아버지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백련
(白蓮)스님이 말씀하셨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봉지(鳳池)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반만 긍정하는 것입니까?"
봉지스님이 말씀하셨다.
"오늘로부터 향해 들어가되 친히 뵙는 것은 우선 보류해 두게."
"무엇이 반은 긍정치 않는 것입니까?"
"행여 그대는 긍정하는 것이 아닌가?"
"전부를 긍정하는 것이 어째서 도리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합당한 것을 붙들고 있으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3신(三身)중에 어느 부처가 테두리(數)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하였다."
그 스님이 조산(曹山: 840∼901)스님에게 물었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했다'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조산스님이 대답했다.
"내 머리가 필요하거든 찍어 가거라."
그 스님이 설봉(雪峯: 822∼908)스님에게 가서 물으니, 설봉이 주장자로 입
을 쥐어박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도 동산(洞山)에 다녀온 적이 있다."
6.
어느날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있는데 한 스님이 나서서 설법을 청하거늘
스님이 시자에게 '등불을 켜라'하였다. 시자가 등불을 켜니 스님이 말씀하셨
다.
"아까 이야기를 청하던 스님은 나오라."
그 스님이 나서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밀가루 두서너 홉을 이 스님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는데 그후 이 일로 깨친 바 있어 의발을 받
고 한차례 공양을 차렸다. 삼사년을 지나 하직하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잘 가라, 잘 가라."
이때 설봉스님이 곁에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저 납자가 떠났는데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한 번 갈 줄만 알았지 다시 오는 것은 모른다."
그 스님이 큰방에 가서 의발을 자리에 풀어놓고, 천화(遷化)하였는데 설봉
스님이 보고서 알리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도 나보다는 3생쯤 뒤졌다 하리라."
이에 대해 다른 이야기가 있다. 두 스님이 길동무가 되었는데 한 사람이
병이 나서 열반당(涅槃堂: 절 안에 늙고 병든 사람을 돌보는 집)에서 쉬고
한 사람은 간호했다. 어느날 병난 스님이 길동무에게 말하였다.
"내가 떠나려는데 같이 갑시다."
그러자 간호하던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병도 없는데 어째서 같이 가겠소?."
"아직까지는 동행했다 할 수 없고, 이제부터 같이 가야 비로소 동행입니
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스님께 가서 하직을 고하고서 가겠소."
그리고는 스님께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고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그대가 할 일이니, 잘 다녀오라."
그 스님이 다시 열반당으로 가서 둘이 마주 앉아 온갖 일을 이야기하고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초연히 떠났다.
설봉스님이 이 법회(法席)에서 공양주(飯頭)를 맡고 있었는데, 그들이 차례
로 떠난 것을 보고 스님께 가서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까 와서 스님께 하직을 고하고 간 스님 둘이 열
반당에서 마주 앉아 죽었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두 사람은 그렇게 갈 줄만 알았고 전해 올 줄은 몰랐다.
내게 비한다면 3생이 뒤졌다 하리라."
7.
스님께서 어느 때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나에게 헛된 명성이 자자한데 누가 없애 주겠는가?"
어떤 사미가 나서서 말했다.
"스님께서 법호를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백퇴(白褪)를 치면서 말씀하셨다.
"이제 나의 헛된 명성은 사라졌다."
이에 석상 경제(石霜慶諸: 807∼888)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아무도 그를 긍정할 이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헛된 명성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장삼이사(長三二四)는 남의 일이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헛된 명성이 있으면 우리 스승이 아니지요."
조산(曹山)스님이 말씀하셨다.
"옛분터 오늘까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소산 광인( 山匡人: 唐末五代人, 曹洞宗)스님이 말씀하셨다.
"용은 물에서 나오는 기개가 있건만 사람에게는 알아내는 기능이 없습니
다.
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르게 묻고 바르게 대답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그런 이가 묻는다면 스님께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대가 묻는 것은 물음이 아니다."
9.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병(病)입니까?"
"깜빡 일어나는 것이 병이다."
"무엇이 약입니까?"
"계속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
10.
동산(洞山)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삼조의 탑전에서 옵니다."
"조사의 곁에서 왔다면서 나는 만나서 무엇하려는가?"
"조사는 학인과 다르지만 스님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의 본래 스승을 만나고 싶은데 되겠는가?"
"저의 스승이 나오셔야 합니다."
"조금 전에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었다."
11.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맹세코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고서 내가 성불하리
라'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마치 열 사람이 과거에 응시했는데 한 사람이 급제하지 못하면 아홉 사
람이 모두 급제치 못하거니와, 한 사람이 급제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하
는 것과 같다."
"스님께서는 급제를 하셨습니까?"
"나는 글을 읽지 않았다."
1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라 합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인가?"
"지금 스님 앞에서 응대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애닯어라! 요즘 학인들은 거의가 이렇구나! 그저 당나귀 앞이니 말 뒤니
하면서 자기의 안목을 삼고 있으니 이래서 불법이 침체되지 않을 수 없구나.
객 가운데 주인(客中主)을 가려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가 말해 보라."
"제가 말하면 객 가운데 주인(客中主)이 됩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쉬우나 계속하기는 퍽이나 어려울 것이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제가 만일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13.
스님께서 설봉(雪峯)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영(嶺)으로 들어가렵니다."
"그대는 비원령(飛猿嶺)을 지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올 때에는 어찌하겠는가?"
"역시 그리로 와야 됩니다."
"누군가 비원령을 거치지 않고 거기에 이르는 이가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사람은 가고 옴이 없습니다."
"그대는 그 사람을 아는가?"
"모릅니다."
"알지도 못한다면 어찌 가고 옴이 없는 줄을 아는가?"
설봉스님이 대답을 못하니 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저 모르기 때문에, 가고 옴이 없는 것입니다."
14.
스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일(向上事)을 체득해야 그래도 이야기를 나눌 자격
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말할 자격입니까?"
"이야기를 할 때엔 그대는 듣지 못한다."
"스님께서는 들으십니까?"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들을 것이다."
15.
스님께서 어느 때 말씀하셨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만리 밖에 가서 서야 한다."
한 스님이 이를 석상(石霜)스님에게 가서 말하니, 석상스님이 말했다.
"문 밖에 나서면 어디나 풀밭이다."
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씀하셨다.
"당(唐)나라 안에 그런 이가 몇이나 있을까?"
16.
염관(鹽官)스님 회상에 어떤 스님은 불법이 있는 줄은 알면서도 소임을 맡
아 일하느라 수행을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귀신 사자(鬼使)가 와서 잡아
가려 하니, 그가 말하되, "내가 소임을 보느라고 수행을 못했으니, 7일만 기
한을 주시오" 하였다. 사자가 대답하되 "내가 가서 염라대왕께 사뢰어 허락
하시면 7일 후에 다시 오고, 허락치 않으시면 곧 되돌아 올 것이다" 하였다.
7일 뒤에 사자가 다시 와서 찾으니 찾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 이 일을 이야기하시니 한 스님이 물었다.
"그가 왔을 때엔 어떻게 대꾸해야 됩니까?"
"벌써 그에게 들켰다."
17.
한 스님이 조계(曹溪)에서 왔는데 스님이 물었다.
"육조께서 황매산(黃梅山)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으셨다는데 사실이
던가?"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황매산에는 가지도 않았습
니다."
"가지도 않았다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불법은 어디서 생겼을까?"
"스님께서는 불법을 남에게 주십니까?"
"얻기는 얻었으나 매우 저돌(抵突)하는 사람이로군."
그리고는 대신 말했다.
"언제적인들 잃었던 적이 있던가?"
초경(招慶)스님이 대신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18.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백 가지 대답을 해도 한 물음도 없다'하였는데 그 뜻
이 무엇입니까?"
"맑은 하늘에 밝은 달이로다."
다시 물었다.
"지금은 '백 가지를 물어도 한 대답도 없다'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구나."
19.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이 산에 사십니까?"
"진흙소(泥牛)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직껏
소식이 없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백 천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닦을 것 없는 사문 한분에게 공양하
는 것이 낫다는데, 백 천 부처님께서는 어떤 허물이 있습니까?"
"허물은 없고, 그저 공덕을 쌓는 편에서 한 말이다."
"공덕을 쌓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보림(保任)이 있어야 옳은 줄을 모르는구나."
21.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새의 길(鳥道)*을 걸으라'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새의 길입니까?"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곳이다."
"어떤 것이 '걷는 것(行)입니까?"
"발 밑에 실오리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거꾸로 생각하느냐?"
"제가 언제 거꾸로 생각했습니까?"
"거꾸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하인을 상전으로 잘못 아느냐?"
"무엇이 본래 사람입니까?"
"새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다."
22.
한 스님이 물었다.
"6국(六國)이 편치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신하에게 공이 없다."
"신하에게 공이 있을 때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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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록」p.73각주 참조
"나라가 평안하다."
"평안해진 뒤엔 어떻습니까?"
"군신(君臣)의 도가 합한다."
"신하가 죽은 뒤엔 어찌 됩니까?"
"임금이 있는 줄 모른다."
23.
한 스님이 물었다.
"선지식이 세상에 나오시면 학인은 의지할 곳이 있겠지만 열반에 드신 뒤
엔 어찌해야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허공의 불꽃바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끝없이 망령되이 일어나는데야 어찌하겠습니까?"
"태워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24.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몇 사람에게나 스님의 불법을 인정받으셨습니
까?"
"한 사람도 인정해 주는 이가 없었다."
"어째서 인정해 주지 않습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25.
스님께서 운거(雲居)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형상(色)을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아직 말상대가 안되는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형상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한다."
"그렇게 형상을 볼 때에는 어떠십니까?"
"마치 한 덩어리 무쇠토막과 같다."
2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이에 스님이 자기 이름 양개(良价)를 부르니 그 스님은 대답을 못했다.
이에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면 저는 빠져나갈 길이 없겠습니다."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면 스님께 꽉 잡히고 맙니다."
27.
스님께서 태장로(太長老)에게 물었다.
"이런 것이 있다.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늘 움직이
면서 칠흙같이 검다.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허물은 움직이고 작용하는데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혀를 차며 내ㅉ았다.
이에 석문(石門)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찾을래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가 나서서 물었다.
"어째서 찾을 수 없습니까?"
"칠흙같이 검기 때문이다."
28.
설봉(雪峯)스님이 장작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물었다.
"무게가 얼마나 되는가?"
"온누리 사람이 다 덤벼도 들지 못합니다."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으랴?"
설봉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거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들어도 들리지 않는 줄을 알 것입니다."
소산( 山)스님이 대신 말했다.
"그저 거기에 도달할 뿐이지 어찌 든다고 들어질 것인가?"
29.
한 스님이 와서 뵈니, 스님께서 그의 특이함을 보시고 일어나 절을 받고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서천(西天)에서 왔습니다."
"언제 서천을 떠났는가?"
"공양(齊)하고 떠났습니다."
"너무 더디군."
"산과 물을 구경하느라 그랬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
"그가 앞으로 나서서 차수(叉手)하고 섰으니, 스님이 허리를 굽혀 인사( )
하고 말했다."
"차나 마시라."
3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산 구경을 하고 옵니다."
"산꼭대기까지 갔었던가?"
"갔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사람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산꼭대기엔 안 갔었구나."
"산꼭대기까지 가지 않았으면 어찌 아무도 없는 줄 알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어째서 거기에 살지 않았는가?"
"살기는 사양치 않으나 서천(西天)의 누군가가 긍정치 않을 것입니다."
31.
스님께서 운거(雲居)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다녀오는가?"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어느 산이 살 만하던가?"
"어느 산인들 살지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당(唐)나라 안의 모든 산을 몽땅 그대가 차지해야 되겠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들어갈 문턱을 얻었구나."
"길(路)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러 왔는가?"
"길이 있다면 간격이 생깁니다."
"이 사람은 뒷날 천 만 사람이 잡아도 머물지 않을 것이다."
32.
스님께서 늑담( 潭)에 갔더니 정상좌(政上座)가 대중에게 설법하기를, "그
것 참 신기하구나! 불가사의한 도의 세계(道界)여,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경계
(佛界)여!" 하였다. 그것을 보고 스님께서 불쑥 물었다.
"도계다 불계다 하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도계다 불계다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인가?" 이 한 마디만 하여라."
상좌가 잠자코 말이 없으니 스님이 재촉했다.
"왜 얼른 말하지 못하는가?"
"다투면 얻지 못합니다."
"하란 말도 못하고서 어째서 다투면 얻을 수 없다 하는가?"
상좌가 대답을 못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그저 이름뿐이다. 경전을 인용해서 대답해 보겠는
가?"
"경전에선 무어라 했습니까?"
"뜻을 얻고는 말은 잊으라 했다."
"아직도 경전의 뜻을 마음에다 두어 병을 만드시는군요."
"도계다 불계다 하는 자는 얼마나 병이 들었는가?"
상좌는 그 일로 목숨을 마쳤다.
33.
스님께서 설봉(雪峯)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흠대(槽)를 파고 옵니다."
"도끼를 몇 번 찍어서 만들었는가?"
"한 방에 다 해냈습니다."
"저쪽 일(那邊事)은 어찌 되었는가?"
"손을 쓸 곳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 이쪽 일(언 邊事)이다. 저쪽 일은 어찌되었는가?"
설봉스님이 대답이 없거늘 소산( 山)스님이 대신 말했다.
"낫과 도끼가 없는 경지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단칼에 들어가 스님의 머리를 끊으려 할 때엔 어찌합니까?"
"당당하여 표면도 끝도 없느니라."
"지금은 약하고 열세임을 어찌합니까?"
"사방 이웃에 어딘들 없으랴. 잠시 주막거리에 머물렀다 간들 괴이할 일이
있겠느냐?"
35.
스님께서 또 학인들에게 분부하셨다.
"천지 사이 우주 안에 보배 하나가 산덩이 속에 숨겨졌는데, 신통하게 사
물을 알아보나 안팎이 공적하여 어디에 있는지 찾기란 매우 어렵다. 깊고 깊
으니 다만 자기에게서 구할 일이지 남에게서 빌리지 말라. 빌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모두가 남의 마음이니, 제 성품만 못하다. 성품이 청정하면
이것이 법신이다.
초목에서 나왔도다.
견해가 이와 같다면 머무를 때엔 반드시 벗을 가려서 때때로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멀리 갈 때엔 반드시 좋은 벗에 의탁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밝
힐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고, 나를 완성해 주는 이는 벗이
라' 하였다. 선한 이를 가까이하면 마치 안개 속을 다니는 것 같아서 비록
옷이 젖지는 않으나 차츰차츰 눅눅해지고 쑥이 삼(麻)이나 대(竹)속에 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 흰 모래가 진흙과 함께 있으면 함께
검어지니, 하루 스승이 되면 종신토록 하늘 같이 존중하고, 하루 주인이 되
면 종신토록 아버지같이 존귀하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36.
스님께서 병든 스님을 문병하며 "힘들겠구려"하니, 병든 스님이 말하였다.
"생사의 일이 큽니다. 스님이시여."
"어찌 차조밭으로 가지 않는가?"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훌쩍 떠났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려도 오히려 나기 전과 같을 때가 어떠합니까?"
"누군가는 그대 손이 빈 줄을 알지 못할 것이다."
38.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다지만 여기 내게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한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지만 여
기 내게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하셨다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 이리 오너라. 그대 뼈도 깎아 주겠다."
"이쪽 저쪽 다 깎아 주십시오."
"깎지 않으리라."
"그 좋은 솜씨로 어째서 깎아 주지 않으십니까?"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세상의 명의(名醫)는 손을 쓰지 않는다 하였다."
운문(雲門)스님이 서봉(西峯)에 이르니, 서봉스님이 물었다.
"나는 동산스님이 뼈를 깎아 준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세히 알지 못하는
데 그대가 자세히 말해 주지 않겠는가?"
이에 운문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니, 서봉스님이 합장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구나."
운문스님이 다시 이 일을 서봉스님에게 물으니, 서봉스님이 대답했다.
"동산스님이 앞에서 했던 말을 해보아라. 너의 뼈를 깎아 주겠다. 나그네
제2기(賓家第二機)가 왔을 때엔 어째서 깎아 주지 않는다 하였겠느냐?"
서봉스님이 한참 읊조린 끝에 "상좌야!"하고 불러 상좌가 대답하니 "쓰레
기더미로구나!" 하셨다.
39.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손을 펴서도 배우고, 새의 길에서도 배우고, 현묘한 길에서도 배운다."
이에 보수(寶壽)스님이 수긍치 않고 법당 밖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저 노장은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는가?"
이에 운거스님이 스님께로 가서 말했다.
"스님의 그런 말씀을 어느 한 사람은 수긍치 않습니다."
"수긍하는 이를 위해서 말했지 수긍치 않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데 그 수긍치 않는 자를 나오라 하라. 내가 만나 보겠다."
운거스님이 말씀하셨다.
"수긍치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대는 금방 말하기를, '누군가 한 사람은 수긍치 않는다' 하더니, 어째서
다시 '수긍치 않음이 없다' 하는가? 어서 나서게 하라."
"나서면 수긍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수긍하는 것이 수긍치 않는 것이고, 나서는 것이 나서지 않는 것
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싱싱하게 푸른 대가 모두 진여요. 빽빽한 국화는 반야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두루하지 않은 빛이다."
"어째서 두루하지 않은 빛이라 하십니까?"
"진여도 아니고 반야도 없다."
"드러나기는 합니까?"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어째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습니까?"
"세상이 아니다."
"세상이 아니란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기에 모른다고 대답하는가?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해 주겠다."
"스님께선 어째서 그르쳐주지 않으십니까?"
"어찌 어찌 하다보니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어째서 알아들을 수 없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남의 말에 막히는가?"
"그렇다면 말이 없으리이다."
"말이 없지 않느니라."
"말이 없는데 어째서 아니라 하십니까?"
"말 없는 것이 아니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으나 마음을 움직였다하면 알아차
린다 하였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손을 머리까지 올려 합장하였다.
보자(報慈)스님이 이 일을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동산스님이 입 속으로는 그렇게 말해놓고, 그렇게 한 것이 합장정대인
가?"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맥(脈) 하나로 양쪽을 잡았다."
42.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에는 무슨 풀이 있습니까?"
"싹트지 않는 풀이다."
"강을 건너간 이는 어떻습니까?"
"온갖 것은 다한 것이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싹트지 않는 풀이 어째서 큰 코끼리(香象)를 갈무리하는가. 큰 코끼리라
함은 지금(今時)의 공부가 결과를 이루는 것이요, 풀이라 함은 본래 싹트지
않는 풀이요, 갈무리한다 함은 본래(本來) 행상(行相) 채워나가는 것을 인정
치 않으므로 갈무리한다고 한다."
43.
한 비구니가 큰방 앞에 와서 말했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몽땅 내 자식들이로다."
이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이야기했더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나도 그대에게서 태어났다."
44.
한 스님이 바리때를 들고 항상 가는 속인의 집에 갔더니, 속인이 물었다.
"스님은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무엇을 가리겠소."
속인이 풀을 가득 바리때에 채워 주면서 말했다.
"바로 이르면 공양하겠지만 이르지 못하면 그냥 가시오."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이야기하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것은 가리는 것이니, 안 가리는 것을 갖다 주시오."
4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마음과 법 둘다 잊어 성품이 참되면, 그것은 몇째 자리가 되는가?"
"두번째 자리입니다."
"어째서 그것을 첫번째 자리라 하지 않는가?"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법을 다 잊었을 때는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닌데 어째서 다시 그
렇게 말하는가?"
그리고는 대신 대답했다.
"참이 아니면 자리를 얻지 못한다."
46.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아비가 젊다는 것입니까?"
"그대는 나이가 몇이던가?"
"어떤 것이 자손이 늙었다는 것입니까?"
"내가 평소에 사람들에게 현묘한 이야기를 했었다."
47.
한 스님이 물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그저 신령스럽게 알아차려야지 일을 통해 찾을 수는
없다' 하였으니, 무슨 뜻입니까?"
"문으로 들어온 이는 귀한 사람이 아니다."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기에는 아무도 알아볼 이가 없다."
48.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과 법이 없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입으로만 이야기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입으로만 따지지 말고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그것은 부처님 일이다."
"무엇이 향상인(向上人) 부처인지 지적해 주십시오."
"부처가 아니다."
49.
한 스님이 물었다.
"4대(四大: 육신)가 화합하여 건강할 때 병들지 않는 이도 있겠습니까?"
"있다."
"병들지 않는 이가 스님을 보겠습니까?"
"나야 그를 볼 때엔 병들은 것은 보지 않는다."
50.
한 스님이 물었다.
"바로 이럴 때는 어떻습니까?"
"그대의 굴택이다."
"이렇지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지 않는 그것이 스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아닙니까?"
"신경쓰지 않거늘 소중히 여길 것이 무엇이겠는가."
"무엇이 스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까?"
"그대에게 주먹을 날리지는 않겠다."
"무엇이 제가 소중히 여길 점입니까?"
"내게 합장하지 말아라."
"그렇다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대를 알아주겠는가?"
"결국에는 어떻습니까?"
"누가 크다 하며 누가 작다 하려 하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51.
한 스님이 물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를 보기 전에 온갖 새가 꽃을 물고 와서 공
양했는데 그런 때는 어떻습니까?"
"구슬이 손바닥에 있는 것 같다."
"본 뒤엔 어째서 꽃을 물고 오지 않았습니까?"
"온 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52.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마음.뜻.의식이 없는 사람입니까?"
"마음.뜻.의식이 없지 않은 사람이다."
"만나 뵈올 수 있겠습니까?"
"남이 전하는 말을 듣은 적도 없고 남의 부탁을 받은 적도 없다."
'가까이 모실 수는 있겠습니까?"
"그대 한 사람뿐 아니라 나도 할 수 없다."
"스님께선 어째서 가까이 하시지 못합니까?"
'마음.뜻.의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합(大蛤) 속에 구슬이 있는 줄 대합은 압니까?"
"알면 잃는다."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앞의 말에 의지하지 말라."
53.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허공의 마음으로 허공의 이치에 합한다'했는데 무엇
이 허공의 이치입니까?"
'확 트여서 겉도 끝도 없다."
"무엇이 허공의 마음입니까?"
"사물에 걸리지 않는다."
"어찌해야 부합되겠습니까?"
"그대가 그렇게 말하면 부합되지 않는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병(佛病)을 가장 고치기 어렵다' 했는데, 부처가
병입니까, 부처에 병이 있습니까?"
"부처가 병이다."
"부처가 어떤 사람에게 병이 됩니까?"
"그에게 병이 된다."
"부처가 그를 알겠습니까?"
"그를 알지 못한다."
"그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에게 병이 됩니까?"
"듣지 못했는가? 남의 가풍(家風)에 누를 끼친다 했다."
55.
한 스님이 물었다.
"말 속에서 적중(的中)함을 얻을 때가 어떠합니까?"
"적중했는데 무엇을 또 취한다 하는가"
"그렇다면 적중한 것이 아니겠습니다."
"아닌 데서 적중이 있겠는가."
5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천 만의 사람 속에 있으면서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으니 그를 어떤 사람이라 하겠는가?"
"이 사람은 항상 눈앞에 있으면서 경계를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대의 이 말은 아비 쪽에서 하는 말인가, 자식 쪽에서 하는 말인가?"
"제 소견으로는 아비 쪽에서 한 말이라 여겨집니다."
스님께서 수긍치 않고 다시 전좌(典座)에게 물었다.
"이게 어떤 얼굴인가?"
"그는 얼굴도 등도 없는 사람입니다."
스님께서 수긍치 않으니, 또 다르게 대답했다.
"이 사람은 얼굴도 눈도 없습니다."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는 그것이 그대로 얼굴
없는 사람인데 하필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있겠느냐?"
이어 스님께서 대신 대답했다.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다."
5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나 어긋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이는 아직 닦는(功勳) 쪽의 일이다. 닦을 것 없는 닦음(無勳之功)이 있는
데 어째서 그것을 묻지 않는가?"
"닦을 것 없는 닦음은 저쪽 사람 일이 아니겠습니까?"
"뒷날 그대의 그런 말을 비웃을 안목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편하고 자연스럽다(調然)하겠습니다."
"조연하기도 하고, 조연치 않기도 하고, 조연치 않은 것도 아니다."
"무엇이 조연한 것입니까?"
"저쪽 사람이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이 정연치 않은 것입니까?"
"가릴 곳이 없느니라."
그리고는 갑자기 시자(侍者)를 불러 시자가 오니, 스님께서는 잠자코 있다
가 말씀하셨다.
"대중에게 일러라. 추운 자는 불을 쪼이고, 춥지 않은 자는 상당(上堂)하라
고."
58.
스님께서 언젠가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일은 반드시 구절구절이 끊이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장안(長安)으로
통하는 여러 길이 실오라기같이 가늘지만 끊이지 않는 것 같아야 한다. 만일
하나라도 통하지 않는 길이 있으면 그것은 군주(君主)를 받들지 않는 것이
니, 이 사람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것이다. 설사 훌륭하고 묘한 법을 배웠
다하여도 역시 군주를 받들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그밖의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세상의 사소한 명리 때문에 큰 일을 놓치지 말라. 이런저런
상(相)을 내서 한 조각의 옷과 밥을 얻는다 해도 모두가 종이 되어 반드시
갚게 되어 있다. 옛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종류마다 각각 분수(分齊)가
있다' 했으니,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옷과 밥에만 매이지 말고 인연에
맡겨 집착을 내지 말라. 나의 가풍은 이럴 뿐이다. 듣고 안듣고는 끝내 관계
치 않겠으니 이렇든 저렇든 그대들 마음대로 하라. 편히들 쉬어라(珍重)."
3. 천 화
스님께서 함통(咸通) 10년 기축(己丑: 869) 3월 1일에 머리깎고 가사를 입
으시고 종을 치게 하고는 엄숙하게 떠나시니, 대중이 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다시 깨어나 말씀하셨다.
"마음을 물건에 두지 않는 것이 출가자의 참 수행이다. 어찌 슬퍼하고 안
타까워할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원주를 불러 우치재(愚痴齋)를 차리라 하니, 원주가 슬피 울면서
재를 차려 7일을 끌었는데 스님께서도 조금씩 잡수시더니, 마지막 날에 말씀
하셨다.
"스님네들이 어찌 이다지 못났는가. 큰 길을 떠나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란
하고 슬퍼하는가."
여드레가 되는 날, 목욕물을 데우라 하여 목욕을 하시고 단정히 앉아서 떠
나시니, 나이는 62세, 승랍은 41세였다. 시호는 오본(悟本), 탑호는 혜각(慧
覺)이라 하였다. 제자들을 경책하는 게송들이 문도들 사이에 많이 퍼졌으나,
여기에는 수록치 않는다. 정수선사(靜修禪師)는 찬(讚)을 지었다.
스님께서 동산에 계시니
5백 대중이 모였네
눈으로 소리를 들으니
경계와 반연이 꿈과 같았다.
시냇가엔 곧은 대
하늘가엔 상서로운 봉황이라
세 부처에 속하지 않기에
나는 이를 애통한다.
師居洞山 聚五百衆
眼處聞聲 境緣若夢
磵泮貞筠 天邊瑞鳳
不墜三身 吾於此痛
동산양개화상사친서(洞山良价和尙辭親書)*
부모님을 하직하며
부처님도 세상에 나오실 때는 모두 부모님을 빌어 생명을 받았고, 만물이
생길 때도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는 덕분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
러므로 부모가 아니면 태어날 수 없고 천지가 아니면 자랄 수 없으니, 다 길
러주시는 은혜를 입고 덮어주고 실어주는 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러나 모든 중생과 갖가지 만상은 덧없는 것이어서 생멸을 벗어나
지 못합니다.
어려서 젖을 먹여주신 정이 두텁고 길러주신 은혜가 깊으니, 돈을 꾸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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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동산스님이 20세 전후에 쓴 것으로, 「5가어록 」에는 없으나 수행의 귀
감이 될 만하므로 여기 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에서 쓰는 현행본 「치문」
에 수록되어 있어 널리 알려진 글이나 원래 「치문경훈」에는 실려 있지 않다.
번역은 조선 숙종 21년(1695) 백암 성총(栢庵性總)스님이 중간(重刊)한 「치문집
주」의 원문을 저본으로 하였다.
채로 바친다 해도 그 은혜 다 갚기 어렵고, 고기를 봉양한다 해도 그것이 어
찌 오래오래 사시게 하는 길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효경(孝經)」에서는 "날
마다 3생(三牲: 소.염소.돼지로 만든 음식)으로 봉양해도 오히려 불효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영원한 윤회에 들도록 서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끝없는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출가하는 공덕이 최고입니다. 생사애
욕의 강물을 끊고 번뇌의 고통바다를 뛰어넘어 천생만겁 내려오던 자애로운
부모께 보답하고 3계의 네 가지 은혜(恩惠: 부처님.나라.부모.시주)를 다 갚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자식 하나가 출가하면 9족(九族)이 하늘
에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저 양개(良价)는 맹세코 이 생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집에 돌아가지 않
고, 영겁 티끌몸(根塵) 그대로 반야지혜를 활짝 깨치려 합니다. 바라옵건데,
부모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시어 속으로 자꾸만 생각지 마시고 거룩한
정반왕(淨飯王)과 마야(摩耶)부인을 본받으소서. 뒷날 부처님 회상에서 만나
기를 기약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우선 헤어지고자 합니다.
저 양개는 부모봉양 못했다는 5역죄를 꺼려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
을 기다려주지 않음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몸을 금생에서 구제하
지 않는다면 또 다시 몇생을 기다려 구제할 것인가"하고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데, 부모께서는 저를 잊어주소서. 노래로 말하렵니다.
마음 근원을 깨치지 못한 채 몇해 봄이 지나니
부평초 같은 세상 그럭저럭 보냄에 한숨만 쌓여갑니다.
많은 사람이 불법문중에서 도를 깨쳤습니다.
유독 저만이 세상 티끌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이제 짧은 글을 올려 권속의 사랑을 하직하고
큰 법을 깨쳐 자애로운 부모님께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눈물을 뿌리면서 자꾸만 애닯게 생각할 것 없이
애초부터 이 몸이 없었던 듯 생각하소서.
숲 속의 흰구름은 언제나 짝이 되어주고
문 앞의 푸른 봉우리는 이웃이 되어줄 것이니
세상의 물질과 명예를 벗어나고
인간의 애정을 영원히 떠나렵니다.
조사의 마음은 말끝에서 그대로 깨치게 하고
현묘한 이치는 글귀 속의 진실을 꿰뚫게 해주니
온집안 친척들이여, 만나보고자 한다면
다가올 정직한 인과(因果)를 기다리소서.
뒤에 보낸 편지
제가 부모님을 떠나 지팡이 짚고 남쪽으로 내려온 지 벌써 10년이 지나
어느덧 눈앞에는 만리나 되는 갈림길이 막혀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어머님께서는 마음을 거둬들여 도를 바라보고 생각을 다잡아
공(空)으로 돌리소서. 이별의 마음을 머물러 두지 마시고 문에 기대 기다리
지 마소서.
집안일이란 인연을 따르는 것이어서 갈수록 늘어나 나날이 번뇌만 더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님은 힘써 효도하여 얼음 속에서 고기를 얻어
낼 것이며, * 아우는 힘을 다해 모셔서 서리 속에서 죽순이 나오라고 울 것
입니다.*
보통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자기를 닦고 효도를 하여 본성(天性)에 합하고,
이 사문(沙門)은 불법문중(空門)에서 도를 바라보고 참선하여 어머님의 은혜
를 갚을 것입니다. 이제 천산만수(千山萬水)에 아득한 갈래길을 만났으니, 여
덟 줄 한 장에 아쉬운대로 마음을 적어봅니다. 노래로 말하렵니다.
명리를 구하지도 선비가 되고자 하지도 않고
불법이 좋아서 세속을 버렸으니
번뇌가 다할 때 근심의 불 꺼지고
은혜의 정 끊기는 곳에 애욕의 강물 마르리
6근이 공해진 지혜(六根空慧)가 향기로운 바람에 실려와
한 생각 생기려 하면 지혜의 힘이 잡아주네
어머님께 아뢰오니, 슬퍼하며 기다리지 마시고
죽은 자식이라 없던 자식이라 여겨주소서.
어머니의 답서
내 너와 전생에 인연이 있어 처음 모자로 맺어질 때, 애정을 쏟아부어 너
를 밴 뒤로 아들 낳게 해달라고 부처님과 신령님께 빌었느니라. 임신하고 달
이 차서는 실낱 같은 목숨이었으나 마침내 바람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너를
보배처럼 아꼈으니, 더러운 똥도 냄새난다 하지 않았으며 고생스럽게 젖먹일
때도 고생인 줄 몰랐느니라. 차츰 자라서 공부하러 보내놓고는 조금이라도
돌아올 때가 지나면 문에 기대 바라보곤 했었는데, 보내온 편지에 굳이 출가
(出家)하겠다 하는구나. 그러나 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 어미는 늙었으며,
네 형과 아우는 다들 살림이 가난하니, 내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자식은 어
미를 버릴 마음이 있으나, 어미는 자식을 버릴 뜻이 없느니라. 네가 일단 다
른 곳으로 떠난 뒤에는 밤낮으로 항상 슬픈 눈물을 흘리게 되었으니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구나. 그러나 이제 너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네 뜻대로 하기를 허락하노라.
나는 네가 얼음에 눕는 왕상(王祥)이나 나무를 새기는 정란(丁蘭)*이 되기
를 기대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네가 목련존자(目連尊者)처럼* 되어서 나를
구제하여 윤회에서 해탈케 하고 나아가 부처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만일 그
렇게 되지 못한다면 무거운 죄를 짓는 것이니, 깊이 새겨 듣도록 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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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란(丁蘭)은 어머니께 지극히 효도하다가 돌아가시자 나무로 어머니 모습을 만
들어 봉양했다.
* 목련존자는 천안통으로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생하심을 보고 간절한 기도로 구
제하였다.
조 산 록
(五家語錄)
1. 행 록
스님의 휘(諱)는 본적(本寂)이며, 천주(泉州) 포전(蒲田) 황씨(黃氏) 자손이
다. 어려서는 유학(儒學)을 공부하다가 19세에 복주(福州)의 영석산(靈石山)
에 가서 출가하였고, 25세에 구족계단(具足戒壇)에 올랐다. 그리고는 동산(洞
山)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동산스님께서 물었다.
"스님은 이름이 무엇인가?"
"본적(本寂)입니다."
"저런, 쯧쯧."
"본적(本寂)이라 이름붙일 수 없습니다."
동산스님은 스님을 깊이 그릇으로 여겼다.
「승보전(僧寶傳)」에는 스님의 이름을 탐장(耽章)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는 「전등록(傳燈錄)」에 실린 것을 그래로 따랐다.
이로부터 입실(入室)하여 여러 해를 지내다가 떠나겠다고 하직하자 동산스
님은 드디어 동산(洞山)의 종지를 가만히 전수하고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변하지 않는 곳에 어떻게 감(去)이 있으랴."
"간다 해도 변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조계(曹溪)로 가서 육조(六祖)의 탑에 절하고 길수(吉水)로 돌아
갔더니 대중들이 스님의 명성을 듣고 개법을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육조를
흠모하여 그 산을 조산(曹山)이라 이름하였다.
마침 난리를 만나 의황(宜黃)으로 갔더니 거사 왕약일(王若一)이 하왕관(何
王觀)을 희사하여 스님께 주지(住持)하시기를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하왕(何
王)을 하옥(荷玉)으로 고쳤는데, 이때부터 법석(法席)이 크게 일어나 학인들
이 구름처럼 모여드니, 동산의 종풍이 스님에 와서 널리 퍼졌다.
2. 시 중
1.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범부의 마음과 성인의 지견(凡情聖見)이 모두가 오묘한 금사슬 길이니,
그저 회호(回互)하면 될 뿐이다."
정명식(正命食)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세 가지 함정(三種墜)이 있다.
첫째는 축생이 되는 것이며(披毛載角), 둘째는 성색을 끊지 않음이며(不斷聲
色), 셋째는 음식을 받지 않음(不受食)이다."
그러자 그때 법회에서 성긴 베옷을 입은 선승이 물었다.
"축생이 된다 함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부류에 떨어짐(類墜)이다."
"음식을 받지 않음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존귀함에 떨어짐(尊貴墜)이다."
이어서 말씀하셨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본분의 일이다. 본분인 줄 알면서도 취하지 않으므로
이를 '존귀에 떨어짐(尊貴墜)'이라 한다. 만일 처음 마음(初心)에 집착하면 자
기와 성인의 지위가 따로 있는 줄 알기에 '부류에 떨어짐(類墜)'이라 한다.
처음 마음을 가질 때는 자기가 있다고 자각하다가도 회광반조(回光返照)할
때에는 소리.색.향기.맛.감촉.법을 물리치고 평안하고 조용한 것으로 공부를
이루어 더 이상은 6진(六塵)등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분적
으로 어두워져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여섯 외도(六師
外道)가 너의 스승이 된다' 하였으니 스승이 떨어지는 곳에 따라서 떨어지게
(隨墜)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어야 할 밥을 가려먹는 것이라야 정명식이다. 그것을 6근의 견
문각지(見門覺智)로도 말할 수 있다. 6근의 그것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는데도
'함정에 빠졌다' 한다면 이는 그것과 균등했던 전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본분
의 일도 취하지 않았는데 그 나머지 일이야 어떠하겠는가?
스님께서 말하는 '함정(墜)'이란 뒤섞어서도 안되고 부류를 같게 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이고, 또한 '처음 마음(初心)'이라 하는 것은 깨닫고 나서가 깨닫
기 전과 같다는 의미이다."
2.
한 스님이 5위군신(五位君臣)의 요지를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위(正位)는 공계(空界)로서 본래 아무것도 없는 자리이며, 편위(偏位)는
색계(色界)로서 만상으로 형태가 나타난 자리다.
정중편(正中偏)이란 이치를 등지고 현상을 향하는(背理就事)자리이며, 편중
정(偏中正)이란 현상을 버리고 이치로 들어가는(舍事入理)자리다.
겸대(兼帶)란 뭇 인연에 그윽히 감응하면서 모든 유(有)에 떨어지지 않는
자리다.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며, 정위도 아니고 편위도 아니므로
텅 빈 대도(大道)이며, 집착 없는 진종(眞宗)이라 하는 것이다. 옛 큰스님들
도 바로 이 자리를 쓰셨으니, 가장 현묘하므로 자세히 살펴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임금(君)은 정위(正位)이며, 신하(臣)는 편위(偏位)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향하는 것은 편중정(偏中正)이며, 임금이 신하를 살피는 것은 정중편(正中偏)
이다.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는 것은 겸대(兼帶)라고 한다."
그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임금입니까?"
"오묘한 덕은 세상에 드높고 밝아 허공에 환하다."
"무엇이 신하입니까?"
"신령한 기틀로 성인의 도를 널리 펴고, 진실한 지혜로 뭇 생령을 이롭게
한다."
"무엇이 신하가 임금에게 향하는 것입니까?"
"이류(異類) 중생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을 모아 성인의 모습을 바라본다."
"무엇이 임금이 신하를 살피는 것입니까?"
"오묘한 모습 움직이지 않으나 밝은 빛은 본래 빠짐없이 비춘다."
"무엇이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는 것입니까?"
"뒤섞여 안팎이 없고, 녹아져 상하가 공평하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임금과 신하, 편위와 정위로써 말한다면 중(中)을 범하려고 하질 않는다.
그러므로 신하는 임금을 지칭하는데 감히 배척해서 말하지 않는다 함이 이
것이다. 이것이 우리 법문의 요점이다."
그리고는 게송을 지었다.
학인은 무엇보다 자기 종지를 알아야 하니
진리(眞際)로 허공(頑空)을 뒤섞지 말아라
묘하고 밝은 바탕 다하면 상함을 알 것이니
힘써 인연을 만날 뿐 중도를 빌릴 것 없다네
말을 꺼냈다 하면 불타지 못하게 하며
가만히 행함은 옛사람과 같아야 하리
몸 없고 일 있음에 갈림길을 벗어나고
일 없고 몸 없으니 시종에 떨어진다네.
學者先須識自宗 莫將眞際雜頑空
妙明體盡知傷觸 力在逢緣不借中
出語直敎燒不著 潛行須與古人同
武身有事超岐路 無事無身落始終
다시 다섯 가지 모양을 만들고 게송을 붙였다.
서민을 재상에 임명하는 일
이 일은 이상할 것 없다네
대대로 내려온 벼슬아치들이여
숨 떨어질 때를 말하지 말라.
白衣須拜相 此事不爲奇
積代者□□ 休言落鼻時
자시(子時)가 정위(正位)에 해당하니
밝음과 올바름이 임금과 신하에 있어라
도솔세계를 떠나지 않았는데
검은 닭은 눈 위로 간다네.
子時當正位 明正在君臣
未離도率界 曹溪雪上行
불꽃 속에 찬 얼음 맺히고
버들꽃은 9월에 날리네
진흙소는 물 위에서 포효하고
목마는 바람따라 울부짖네.
裏寒永結 楊花九月飛
泥牛吼水面 木馬遂風嘶
황궁에 처음 강생(降生)하신 날
하늘 나라를 떠날 수 없었네
쓸 것(功)없는 종지를 얻지 못하니
인간. 천상은 어찌 그리 더딜가.
王宮初降日 玉兎不能難
未得無功旨 人天何太遲
이치와 현상을 섞어 갈무리하니
그 조짐 끝내 밝히기 어려워라
위음왕불(과거불)도 깨닫지 못했는데
미륵불(미래불)이 어찌 깨닫겠는가.
渾然藏理事 朕兆卒離明
威音王未曉 彌勒豈惺惺
3.
스님께서 행각할 때에 오석 관(烏石觀)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의 주인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따로 있는 것이 된다."
스님께서 동산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좋은 대화이긴 하다만 그대가 한 마디를 덜 했구나. '어째서 말씀해주지
않습니까' 하고 왜 묻질 않았더냐."
스님께서 다시 가서 앞 말에 이어 묻자 오석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를 벙어리로 만드는 셈이며, 말을 했다
고 한다면 나를 말더듬이로 만드는 것이다."
스님께서 돌아와 동산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깊이 수긍하셨다.
4.
운문(雲門)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동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절 밥 먹는 것이다."
"그렇게 해나가고 있을 땐 어떻습니까?"
"쌓아 모을(畜)수도 있느냐?"
"모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모으려느냐?"
"옷 입고 밥 먹는데 무슨 어려움 있겠습니까?"
"왜 털 쓰고 뿔 달린 축생이라고 말하지 않느냐?"
그러자 운문스님은 절하였다.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제방에서는 모두들 격식을 붙들고 있는데, 어째서 딱 깨치게 해 줄 한 마
디를 던져 그들의 의심을 없애주지 않느냐."
운문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오더니 물었다.
"아주 부사의한 곳에서는 어째서 있는 줄을 모릅니까?"
"바로 그 부사의함 때문에 있는 줄을 모른다."
설두스님은 달리 대답(別語)하였다.
"달마가 왔군."
운문스님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가까워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주 부사의한 곳에서는 가까이 하지 말게."
"매우 부사의한 곳에서가 아니라면 어떻습니까?"
"비로소 가까이 할 줄 안다 하겠네."
운문스님은 녜, 녜 하였다.
묘희(妙喜)스님은 말하였다.
"탁한 기름에 다시 검은 등심지를 붙이는군."
운문스님이 "뒤바뀌지 않는 사람이 찾아오면 스님께서는 맞이하시겠습니
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조산은 그런 쓸데없는 짓은 안한다."
5.
미화상(迷和尙)이 찾아와 만나보기도 전에 선상에 앉자 스님께서는 아예
나와보지도 않았고 미화상도 그냥 떠나버렸다. 그러자 일을 주관하는 스님이
물었다.
"스님, 선상에 어째서 다른 사람이 앉게 되었습니까?"
"떠난 뒤에 다시 돌아올걸세."
미화상은 과연 돌아와서 스님을 만났다.
6.
지거(智炬)스님이 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옛사람은 저쪽 사람을 이끌어주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체득해야 하겠습니
까?"
"뒤로 물러나 자기에게 나아가면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다."
지거스님은 말끝에 현묘한 이해(玄解)를 싹 잊었다.
7.
금봉 지(金峯志)스님이 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엇하러 왔느냐?"
"지붕을 덮으러 왔습니다."
"다 했느냐?"
"이쪽은 끝냈습니다."
"저쪽 일은 어찌 되었느냐?"
"공사 끝나는 날 스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래, 그렇지" 하셨다.
8.
청세(淸稅)라는 스님이 물었다.
"저는 외롭고 가난하오니 스님께서 구제해 주십시오."
"청세는 이리 가까이 오게나."
청세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청원(淸原) 백가(百家)의 석 잔 술을 마시고서 입술도 축이지 못했다 하
는구나."
현각(玄覺)스님은 말하였다.
"어느 곳에서 그에게 술을 마시라고 주었느나."
9.
경청(鏡淸)스님이 물었다.
"맑고 텅 빈 이치라서 아예 몸이 없을 땐 어떻습니까?"
"이치(理)로야 그렇다치고 사실(事)은 어떡하려고."
"이치로나 사실로나 여여합니다."
"나 한 사람 속이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치고 여러 성인의 눈을 어찌하겠
느냐?"
"여러 성인의 눈이 없다면 그렇지 않은 줄을 어찌 비춰보겠습니까?"
"법으로야 바늘만큼도 용납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레도 통할 수 있
는 법이지."
대위 철(大 喆)스님이 말하였다.
"조산이 비록 옥을 잘 다듬기는 하나 경청의 옥에는 본래 흠집이 없었
는데야 어찌하랴. 알고 싶으냐. 잽싼 솜씨를 빌리지 않으면 결국 못쓰는
그릇을 만든다."
10.
스님께서 덕상좌(德上座)에게 물었다.
"'보살이 선정에 들어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너는 소리를 듣는다'하였는데 무
슨 경에 나오는 말씀이냐?"
"「열반경」에 나옵니다."
"선정에 들기 전에 들었겠느냐, 선정에 든 뒤에 들었겠느냐?"
"스님, 흘러갑니다."
"말을 하려면 분명하게 해야 비로소 반쯤 했다 할 수 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울물 아래서 맞이해 오겠네."
11.
지의도자(紙衣道者)가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물었다.
"지의도인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무엇이 종이 옷(紙衣) 속의 일이더냐?"
"옷 하나 몸에 걸쳤다 하면 만법이 모두 다 여여합니다."
"무엇이 종이 옷 속의 작용이더냐?"
지의도인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끄덕끄덕하더니 선 채로 죽어(脫去)버렸
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렇게 떠날 줄만 알았지, 어째서 이렇게 올 줄을 모르느냐?"
그러자 지의도인이 홀연히 눈을 뜨더니 물었다.
"신령하고 진실한 성품 하나가 어미 뱃속을 빌리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오묘함은 아닐세."
"어찌해야 오묘함입니까?"
"빌리지 않는 빌림이라네."
지의도인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더니 그대로 천화해 버렸다.
스님께서는 게송을 지어 법문하셨다.
원명(圓明)한 각성(覺性)은 모습 없는 몸이니
지견으로 멀다 가깝다 망상떨지 말아라
한 생각 달라지면 현묘한 바탕에 어두어지며
마음이 어긋나면 도와 이웃하지 못하리
마음(情)이 만법에 흩어져 목전의 경계에 잠기고
의식(識)으로 여러 갈래 비추어 본래 진실 잃는구나
이상의 말 속에서 완전히 깨달으면
옛날 일 없던 그 사람이라네.
覺性圓明無相身 莫將知見妄疏親
念異偏於玄體昧 心差不與道爲隣
情分萬法沈前境 識鑑多端喪本眞
如是句中全曉會 了然無事昔時人
12.
스님께서 강상좌(强上座)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되, 물에 달이 비치듯 사물에 응하여 모
습을 드러낸다. 그 응해 주는 도리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나귀가 우물을 보는 격입니다."
"말을 하려면 확실히 해야 얼추 맞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13.
육긍대부(陸亘大夫)가 남전(南泉)스님에게 물었다.
"성이 무엇입니까?"
"왕씨(王氏)요."
"왕에게도 권속이 있습니까?"
"네 명의 신하가 어둡지 않습니다."
"왕은 어느 자리에 거처합니까?"
"옥전(玉殿)에 이끼가 끼었습니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擧揚)스님(조산)께 물었다.
"옥전에 이끼가 끼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정위(正位)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팔방에서 찾아와 조회할 땐 어떻습니까?"
"그는 절을 받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찾아와서 조회를 할까요?"
"어기면 목을 베기 때문이지."
"어기는 것은 신하의 일(分上)입니다만, 임금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
겠습니다."
"추밀원(樞密院: 왕명 출납기관)은 왕명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치를 빛낸 공로가 고스란히 재상에게 돌아가겠군요."
"너는 임금의 의도를 아느냐?"
"밖(外方)에 감히 어쩌고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네."
14.
한 스님이 말했다.
"저는 온몸이 병들었으니 스님께서 치료해 주십시오."
"치료해 주지 않겠네."
"어째서 치료해 주지 않으십니까?"
"그대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련다."
15.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나에게 큰 병이 있는데 세속에서 고칠 병이 아니다'하였는데 무
슨 병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술해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다."
"일체중생에게도 이 병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 있다."
"스님도 이 병이 있습니까?"
"병이 생겨나는 곳을 딱 집어내지 못한다."
"일체중생은 어째서 병들지 않습니까?"
"일체중생이 병들면 중생이 아니기 때문이지."
"모든 부처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있지."
"있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병들지 않습니까?"
"그는 깨어있기(惺惺) 때문이다."
16.
한 스님이 물었다.
"사문(沙門)이라면 큰 자비를 갖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여섯 도적이 찾아오면 어찌해야 합니까?"
"역시 큰 자비로 무장해야 한다."
"어떻게 큰 자비로 무장합니까?"
"단칼에 휘둘러 없애야지."
"없앤 뒤엔 어떻습니까?"
"비로소 그들과 동화될 수 있다."
17.
한 스님이 물었다.
"눈썹과 눈이 서로를 알까요?"
"모른다."
"어째서 모를까요?"
"한 곳에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나누질 못하겠군요."
"눈썹은 눈이 아니다."
"무엇이 눈입니까?"
"또록또록한 것이다."
"무엇이 눈썹입니까?"
"나도 의심한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의심하십니까?"
"의심하지 않으면 똑바로 가기 때문이지."
18.
한 스님이 물었다.
"5위(五位)가 손님을 맞이할 땐 어떻습니까?"
"그대는 지금 어느 지위를 묻고 있는가?"
"저는 편위에서 오겠으니 스님께서는 정위에서 맞이해 주십시오."
"맞이하지 않겠네."
"어째서 맞이하지 않으십니까?"
"편위 속에 떨어질까 두려워서지."
스님께서 되물었다.
"맞이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손님대접을 한 것인가, 안한 것인가?"
"벌써 손님대접을 마쳤습니다."
"그래, 그렇다."
19.
한 스님이 물었다.
"만법은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전도(顚倒)에서 나온다."
"전도하지 않을 땐 만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있지."
"어디 있습니까?"
"전도해서 어찌하겠나."
20.
한 스님이 물었다.
"싹 트지 않은 풀이 어떻게 큰 코끼리(香象: 마음자리)를 간직할 수 있습
니까?"
"그대는 다행히도 작가(作家: 선지식)로구나."
그리고는 다시 "나 조산은 어떤가?" 하고 물었다.
21.
한 스님이 물었다.
"3계(三界)는 시끄럽고 6취(六趣)는 어두운데 어떻게 색(色)을 분별해야 합
니까?"
"색을 분별할 수 없다."
"어째서 분별할 수 없습니까?"
"색을 분별했다 하면 어두워진다."
22.
스님께서 종소리를 듣고 야! 야! 하시니 한 스님이 "스님께선 무얼 하십니
까?" 하고 묻자 말씀하셨다.
"내 마음을 때리는구나."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남의 마음 훔치는 도적아."
23.
스님께서 유나(維那)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식초통을 끌고 왔습니다."
"험한 길을 가게라도 되면 또 어떻게 끌고 가겠느냐?"
유나는 대꾸가 없었다.
운거(雲居)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잘 해보겠습니다."
소산(疏山)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진정 놓아버려야 할 것입니다."
24.
스님께서 하루는 큰방에 들어가 불을 쬐는데 한 스님이 말했다.
"오늘은 매우 춥군요."
"춥지 않은 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누가 춥지 않은 자입니까?"
스님께서 젓가락으로 불을 집어 보이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겠군요."
스님께서 불을 던지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모르겠는걸요."
"해가 차가운 물을 비추니 더욱더 밝아지네."
25.
한 스님이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
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홍주성(洪州城)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를."
2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날 없는 칼입니까?"
"물에 담갔다 갈아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을 쓰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닥치는대로 죽이지."
"만나지 않은 자는 어찌됩니까?"
"역시 머리가 떨어지지."
"닥치는대로 죽인다는 것은 굳이 그렇다쳐도 만나지 않은 자는 무엇 때문
에 머리가 떨어집니까?"
"모두 다 없앨 수 있다고 하지 않더냐."
"다 없앤 뒤에는 어찌됩니까?"
"이 칼이 있는 줄을 비로소 알게 된다."
27.
한 스님이 물었다.
"모습에 있어서 무엇이 진실입니까?"
"모습 그대로가 진실이다."
"당장 어떻게 보여주시겠습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웠다.
28.
한 스님이 물었다.
"허깨비의 근본은 어떤 진실입니까?"
"허깨비의 근본이 원래 진실이다."
법안(法眼)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허깨비의 근본은 진실이 아니다."
"당장 허깨비를 가지고 어떻게 드러내 보이시겠습니까?"
"허깨비 그대로가 드러나고 있다."
법안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허깨비라면 아무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종 허깨비를 떠나는 적이 없겠군요."
"허깨비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29.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 한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것입니까?"
"토끼 뿔은 없다 할 필요가 없고, 소 뿔은 있다 할 필요가 없다."
30.
"어떤 사람이 항상 있는 사람입니까?"
"내가 잠시 나왔을 때 마침 만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항상 있지 않는 사람입니까?"
"만나기 어렵지."
31.
한 스님이 물었다.
"움찔했다 하면 부류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움찔하지 않아도 부류에 떨어진다."
"무엇이 다른 점입니까?"
"아픈지 가려운지를 알아야 하리라."
32.
한 스님이 물었다.
"사람마다 다 있다 하였는데, 티끌 속에 있는 저에게도 있습니까?"
스님께서는 "손을 내 보아라" 하시더니 점을 찍으면서 말씀하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꽉 찼구나."
33.
한 스님이 물었다.
"노조 보운(魯祖寶雲)*스님께서는 면벽해서 무엇을 보여주려 하셨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서 넘어지면 누구나 땅을 딛고 일어선다' 하니,
무엇이 넘어지는 것입니까?"
"하려 하면 넘어지지."
"무엇이 일어남입니까?"
"일어나게."
35.
한 스님이 물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돌아왔는데 어째서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까
요?"
"도리상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자식지간의 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비로소 부자간의 은혜가 이루어진다."
"어떤 것이 부자간의 은혜입니까?"
"칼과 도끼로 찍어도 쪼개지지 않는 것이지."
36.
"영의(靈衣: 죽어서 입는 옷)를 걸치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나 조산 효만(曹蒜孝滿)이지."
"조산 효만, 그 뒤엔 어떻습니까?"
"나는 전주(顚酒)를 좋아한다네."
37.
한 스님이 물었다.
"경에서 말하기를, '큰 바다는 죽은 시체를 머물러두지 않는다'하였는데, 어
떤 것이 큰 바다입니까?"
"만유(萬有)를 포함하는 것이다."
"만유를 포함한다면서 어째서 죽은 시체는 머물러두지 않습니까?"
"호흡이 끊긴 자는 붙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
"만유를 포함한다면 무엇 때문에 호흡이 끊긴 자는 붙어 있지 못합니까?"
---------------------
*. 「조동록」 p.202각주 참조.
"만유의 경우는 자기 힘이 아니기 때문이며, 호흡이 끊긴 자는 자기 성품
이 있어서이지."
"본래자리(向上)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있다느니 없다느니 해도 되겠지만 용왕이 칼을 어루만지는데야 어찌하겠
나."
3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지해(知解)를 갖추어야 대중이 묻고 따지는 것에 능란하게 대꾸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지 않는 구절(不呈句)이다."
"묻고 따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칼과 도끼로 찍어도 들어가지 않지."
"이렇게 묻고 따지는데도 긍정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있지."
"그게 누군데요?"
"나일세."
39.
한 스님이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비싼 물건입니까?"
"죽은 고양이가 가장 비싸다."
"어째서 죽은 고양이가 가장 비쌉니까?"
"아무도 값을 매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말 없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그렇게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어젯밤 선상에서 돈 서푼을 잃었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해뜨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나 조산도 그렇게 왔다."
"해가 뜬 뒤엔 어떻습니까?"
"나 조산보다야 반달만큼 낫지."
4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하느냐?"
"바닥 청소를 합니다."
"부처님 앞에서 청소하느냐, 부처님 뒤에서 청소하느냐?"
"앞뒤 한꺼번에 청소합니다."
"내게 신발을 갖다다오."
오조 사계(五祖師戒)스님은 그 스님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슨 마음을 그렇게 쓰십니까?"
43.
한 스님이 물었다.
"옥석(□玉)스님께 드리오니 잘 다듬으십시오."
"다듬지 않겠네."
"어째서 다듬지 않습니까?"
"훌륭한 내 솜씨를 알아야 하네."
44.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권속입니까?"
"백발이 줄을 이었고 정수리에는 한 떨기 꽃이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온 누리에 이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였는데, 어
떤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겹쳐보이는 달(第二月)이 있어선 안되지."
"무엇이 겹쳐보이는 달입니까?"
"그대가 대답할 일이오."
"무엇이 진짜 달(第一月)입니까?"
"험(險)!"
46.
한 스님이 물었다.
"일상생활 가운데서 제가 어떻게 간직해야(保任) 하겠습니까?"
"벌레와 독이 있는 고을을 지나듯 물 한 방울도 축여서는 안된다."
47.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신의 주인입니까?"
"이 나라엔 사람이 없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그것 아닐런지요."
"목을 베어버려라."
4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도반을 가까이 해야 몰랐던 것을 항상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이불을 덮어야 한다."
"이는 그래도 스님께 들을 수 있습니다만 어떤 것이 몰랐던 것을 항상 듣
는 것입니까?"
"목석(木石)과는 다른다."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입니까?"
"듣지도 못했는가. 몰랐던 것을 항상 듣는다 한 것을."
49.
한 스님이 물었다.
"성 안에서 칼을 어루만지는 자는 누구입니까?"
"나 조산이지."
법등(法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구를 죽이려 하십니까?"
"다 죽이겠다."
"홀연히 낳아주신 부모를 만나면 어떻하시렵니까?"
"무얼 가리겠나."
"자기자신이야 어쩌겠습니까?"
"누가 나에게야 어찌하겠느냐?"
"왜 스스로를 죽이지 않습니까?"
"손을 쓸 수가 없어서이다."
50.
한 스님이 물었다.
"가난한 집에서 도둑을 맞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다 바닥낼 수는 없다."
"어째서 바닥내지 못합니까?"
"도둑이 집안 식구이기 때문이지."
51.
한 스님이 물었다.
"한 마리 소는 물을 마시고 다섯 마리의 말이 울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나는 입 조심할 줄 알지."
52.
한 스님이 물었다.
"항상 생사 바다에 침몰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겹쳐보이는 달(第二月)이로구나."
"벗어나려합니까?"
"벗어나려 해도 길이 없을 뿐이다."
"벗어나면 어떤 사람이 그를 맞이합니까?"
"무쇠형틀을 걸머진 자가."
53.
한 스님이 물었다.
"눈이 모든 산을 덮었는데 무엇 때문에 한 봉우리는 하얗지 않습니까?"
"다름(異)속에 다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름 속의 다름입니까?"
"갖가지 산색(山色)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54.
약산(藥山)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가?"
"일흔 둘입니다."
"일흔 둘이라고?"
"그렇습니다."
약산스님은 그대로 후려쳤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묻기를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자, 스님
께서 말씀하셨다.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된 듯했는데 뒤에 쏜 화살은 사람을 깊이 맞첬
다."
"어찌해야 이 몽둥이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왕명이 시행되니 제후들이 길을 비킨다."
55.
한 스님이 향엄 지한(香嚴智閑: ?∼898)스님께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고목(古木)속에서 용이 우짖느니라."
"무엇이 도 가운데 사람입니까?"
"해골 속의 눈동자이지."
그 스님은 알아듣지 못하고서 석상(石霜)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고목 안에서 용이 우짖는 것입니까?"
"그래도 기뻐하는 빛을 띠고 있구나."
"어떤 것이 해골 속의 눈동자입니까?"
"그래도 식(識)을 띠고 있구나."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스님께 물었다.
"어떤 것이 고목 속에서 용이 우짖는 것입니까?"
"혈맥이 끊기지 않는다."
"어떤 것이 해골 속의 눈동자입니까?"
"다 마르지 않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들을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온 누리에 듣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잘 모르겠습니다. 고목 속의 울음이란 무슨 법문(章句)입니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듣는 자는 모두 죽는다."
그리고는 이어서 게송을 들려주셨다.
고목에 용이 우짖을 때 진실로 도를 보고
해골에 식이 없어야 눈이 비로소 밝아지리
기쁨과 식이 다할 때 소식도 다하는데
바로 그 사람, 어떻게 탁함 속의 맑음을 분별하랴.
枯木龍吟眞見道 壻�無識眼初明
喜識盡時消息盡 當人那辯촉中淸
5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도랑과 골짜기를 꽉 메웠다."
5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짐승이 사자입니까?"
"아무 짐승도 가까이 하지 못하지."
"어떤 짐승이 사자새끼입니까?"
"부모를 능히 삼킬 수 있는 자이다."
"이미 뭇 짐승이 가까이 하지 못한다 했는데 무엇 때문에 새끼한테 먹힐
까요?"
"새끼가 포효하면 할애비까지도 다 없어진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는가?"
"다한 뒤엔 어찌됩니까?"
"온몸이 아비에게 돌아가지."
"할애비가 없어졌는데 아비는 어디로 돌아가는지요?"
"돌아갈 곳도 없다."
"앞에서는 무엇 때문에 온몸이 아비에게 돌아간다 하셨습니까?"
"비유하면 왕자가 한 나라의 일을 해내는 것과 같다."
다시 말씀하셨다.
"여보게, 이 일은 한쪽에 막혀서는 안되니, 고목 위에서 다시 몇 송이 꽃을
따와야 하리라."
58.
한 스님이 물었다.
"시비가 일자마자 어지럽게 마음을 잃을 땐 어찌합니까?"
"베어버려라."
59.
스님께서 두순(杜順: 화엄종 초조)과 부대사(傳大士)가 지은 법신게(法身
偈)를 읽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다."
문도들이 다시 지어주십사 청하여 게송을 짓고 거기에 주석을 달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본래 나 아니며(내가 아니요)
나도 본래 그가 아니라오(그가 아니요)
그는 내가 없으면 죽고(너 때문에 살아가노라)
나는 그와 같으니, 부처이고(그래도 부처는 아니고)
내가 그와 같으니, 노새라네(둘 다 될 수 없도다)
공왕(空王: 佛)의 봉급을 먹지 않는데(임금의 밥을 받거든 그대로 토해낼 것이요)
어느 겨를에 기러기 서신 전하랴(소식이 통하지 않는구나)
나는 횡신창(橫身唱)을 부르리니(멋대로 불러봐라)
그대는 배상모(背上毛)를 추어라(너와는 같지 않다)
백설곡(白雪曲:고상한 노래)을 부르려나 했더니(백설곡이라 여겼더니)
파가(巴歌: 저속한 노래)가 될까 두렵구나.(이 구절에는 주를 붙일 수 없다)
60.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허공에 떴을 땐 어떻습니까?"
"그래도 섬돌 아래 있는 자이다."
"스님께서 섬돌 위로 맞이해 주십시오."
"달이 진 뒤에 보세."
「조주어록(趙州語錄)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도 그대로 실어
둔다.」
61.
스님께서 법어를 내리셨다.
"만 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겠느냐?"
대중이 대꾸가 없자 도연(道延)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없다는 것이 무엇인데?"
"이제는 후려쳐도 부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를 깊이 긍정하셨다.
62.
서원(西園)스님이 하루는 스스로 목욕물을 데우는데 한 스님이 물었다.
"왜 사미를 시키지 않습니까?"
서원스님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스님께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무리들은 손뼉을 치며 손바닥을 비볐는데 그 중 서원스님은 이상하
구나. 구지(俱脂)스님의 한 손가락 선(禪)*은 알아차릴 곳에서 살피지 못했다
하리라."
그 스님이 되물었다.
"서원스님이 손뼉을 쳤던 일은 종(奴)이나 하는 짓이 아닙니까?"
"그렇지."
"본래자리(向上)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본분사(向上事)입니까?"
스님께서는 "이 중놈아!" 하면서 꾸짖으셨다.
63.
남주(南州) 장수 남평종왕(南平鍾王)이 평소에 스님의 도를 전해 듣고 극
진한 예우로 모시려 하였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가지 않고 게송을 써서 심부
름꾼에게 부쳤을 뿐이었다.
-------------------
* 실제(實際)라는 비구니가 삿갓을 쓰고 구지(俱脂)스님을 찾아 세 번 돌고 난 뒤
에 말했다. "바로 말하면, 삿갓을 벗으리다." 이렇게 세 번 물었으나 모두 대답
치 않으니, 비구니가 그대로 떠나려 하자 스님이 말했다. "해가 이미 저물었으
니, 하룻밤 묵어가라." "바로 말하면 자고 가겠소." 대답이 없자 비구니가 떠나
니 이렇게 탄식하였다. "나는 비록 대장부의 형체를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
가 없다." 그리고는 암자를 버리고 제방으로 참선을 하러 떠나려 하니, 그날 밤
에 산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산을 떠나지 마시오. 오래지 않아 큰 보살이 와
서 스님께 설법을 해주실 것이오." 과연 천룡(天龍)스님이 암자에 오니 스님이
맞이하고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천룡스님이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이매
스님이 당장에 깨달았다. 이로부터 학인이 오면 스님은 손가락을 세웠다. 돌아
와서 말하니, 스님이 칼로 손가락을 끊었다. 펄펄 뛰면서 달아나는 것을 "동자
야!" 하고 부르니, 동자가 머리를 돌렸다 스님이 손가락을 세우니, 동자가 활연
히 깨달았다.
꺾여진 고목나무는 찬 숲을 의지하여
몇 차례 봄을 만났지만 그 마음 변치 않았네
나무꾼은 오히려 보고도 캐지 않는데
이름난 목수가 애써 무얼 찾는가.
殘枯木倚寒林 幾度逢春不變山
樵客見之猶不採 人何事苦수尋
64.
스님께서 네 가지 하지 말라는 게송(四禁偈)을 지으셨다.
마음의 길 가지 말고
본래의 옷 걸치지 말라
어찌 딱 이것만이랴
정녕 나지 않았을 때를 조심하라.
莫行心處路 不 本來衣
何須正恁� 切忌未生時
65.
학인에게 게송으로 법문하셨다.
인연 따라 알아차리면 빨리 상응할 것이나
자체에서 없애고 막으면 더디게 힘을 얻으리
자리자리 없는 곳에서 문득 일어나
우리 부처님, 불가사의 법문을 잠깐 들려주시네.
從緣薦得相應疾 就體消停得力遲
瞥起本來無處所 吾師暫說不思議
66.
스님께서 시중(示衆)하셨다.
"스님네들이여, 이렇게 법복을 입었으면 도리상 본분사(向上事)를 통달해
야 하니, 어정거려서는 안된다.
만일 분명히 깨쳤다 해도 저 모든 성인을 자기 등뒤로 던져 버려야(轉) 자
유로워질 것이다. 던져버리지 못한다면 설사 완전한 법(十成)을 배운다 해도
그들 등뒤에서 차수(叉手)해야 할 것이니, 무슨 큰 소리를 치겠느냐.
자기를 던져버릴 수만 있다면 온갖 잡된(녹重) 경계가 다가온다 해도 주인
공이 될 수 있다. 가령 진창에 처박힌다 해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스님이 약산(藥山)스님에게 묻기를, '삼승교(三乘敎)에도 조사의 뜻이
있습니까?' 하자, '있지'하였다. '이미 있다면 달마스님은 무엇하러 오셨습니
까?' 하자 약산스님은 '까닭이 있어서 왔지'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주인
공이 되고 나서 자기를 던져버리는 그곳으로 귀결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경전에서는 말씀하시기를,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은 십겁(十劫)을 도량에
앉아 있었으나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질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하
였는데, 여기서 겁(劫)이라는 말은 '막힌다'는 뜻이다. 생각컨데 '완전히 이루
다(十成)' 또는 '스미는 번뇌를 끊다' 하는 것은 온갖 길이 끊겼으나 부처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붙들고 앉아 탐착함을 <차례차례
깨달아 가면서 귀천을 분간하지 못함>이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 총림을 보건대, 항상 이렇게 저렇게 의론하기를 좋아한다. 그래가지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저 지난일(向去事)을 늘어놓는 것일 뿐이
다. 듣지도 못했는가. 남전(南泉: 748∼834)스님이 '설사 너희들이 완전히 이
루었다 해도 내 한 가닥 길에 비하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신 말씀을.
이쯤 되어서는 정말 치밀해야만 명백하고 자재하리라. 천당.지옥.아귀.축생
을 막론하고 어딜 가나 변함없으면 원래 옛사람이나 옛길을 가지 않을 것이
다. 여기서 기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막히고, 벗어난다면 꺼릴 것이 없다. 옛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윤회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하였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느냐.
요즈음 사람들은 청정한 경계를 말하며 지난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이것이
가장 난치병이다. 잡된 세속사는 오히려 가벼우나 청정함은 중병이니, 예컨
대 부처에 맛들리고 조사에 맛들리면 모두 막힘과 집착이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헤아리는 마음이 바로 파계이다' 하셨으니,
맛을 챙긴다면 재(齋)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맛이라고 하겠느냐.
부처 맛, 조사 맛을 말한다.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면 바로 파계이다. 여
기서 재를 파하고 계율을 파한다 함은 바로 지금 3갈마(三�i磨)의 경우에 벌
써 파괴해 버린 것이다.
거칠고 무거운 탐.진.치는 끊기 어렵다 해도 도리어 가벼우나, 함이 없고
할일 없는 청정한 이것이 바로 더할 나위 없는 중병인 것이다. 조사도 이것
때문에 세상에 나오셨으며 유독 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당장 부질없는 짓을 하지 말아라. 검둥이 종(曺)과 흰 암소가 수행하는 편
이 빠를 것이니, 그들은 선(禪)이다 도(道)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
희들은 부처니 조사니 나아가서는 보리열반까지 갖가지로 치달려 구한다. 그
러니 언제나 쉬고 결판을 보겠느냐. 그것은 모두 생멸하는 마음이라서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한 검둥이 종이나 흰 암소만도 못한 것이다. 그들은 부처도
모르고 조사도 모르며 보리열반과 선악인과까지도 모른다. 배고프면 풀 뜯어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실 뿐이다. 이럴 수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까 근심할 것
도 없다.
'헤아려서는 이루지 못한다' 했던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러므로 있는 줄
(有) 알아야만 축생도 끌어올 수 있다. 이 방편을 터득해야 좀 낫다 하겠다.
미륵보살과 아촉불과 모든 묘희세계(妙喜世界) 등을 보지 못했는가. 그들
향상인(向上人)을 부끄러움과 게으럼이 없는 보살이라 하나 그들 역시 또 변
역생사(變易生死)*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게으를까 두려운데 본
분사에 있어서 어찌해야 하겠느냐. 매우 치밀해야 할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
씩 앉을 자리가 있는데 부처가 세상에 나온다 해도 그것을 어찌하지는 못한
다. 이렇게 체득해서 닦아가야지 재빠른 이익을 ㅉ아서는 안된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당장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된다 해도 그저 이럴 뿐이
며, 삼악도(三惡塗)인 지옥과 육도(六道)에 떨어진다 해도 그저 이럴 뿐이다.
이렇게 아무 작용할 틈이 없으나 그렇다고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에게 주인공이 되어 주어야 하리라.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변
역생사를 하지 않으며, 주인공이 되어 주지 못하면 변역생사를 하게 된다.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리로다'* 하신 영가(永嘉)스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더냐.
'무엇이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는 것입니까?'
'모두 다이다'
'어떻게 해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있음을 알면 된다. 면하여 무얼 하겠느냐. 보리.열반.번뇌.무명 등도 전혀
벗어날 필요가 없으며 잡된 세간사도 있음을 알면 될 뿐, 벗어날 필요가 없
으니 벗어나면 변역생사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
며,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등의 재앙은 적은 것이 아니다. 어째서 그런가?
변역생사를 하기 때문이다. 변역생사를 하지 않으려거든 그저 부딪치는대로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
* 번역생사(變易生死):나고 죽으면서 몸을 바꾸는 범부의 분단생사(分段生死)에 상
대되는 개념으로서, 미세망상이 남아 있는 보살의 생사를 일컬음.
* 증도가에 나오는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를 없다 하면(豁達空撥因果)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리로다(茫茫蕩蕩招殃禍)"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3. 천 화
스님께서 천복(天復) 신유(辛酉)년 밤에 지사(知事)에게 물었다.
"오늘이 몇 월 몇 일이냐?"
"6월 15일입니다."
"나는 평생 행각해 왔는데, 가는 곳마다 90일로 한 철을 삼았을 뿐이다.
내일 진시(辰時)에 행각을 떠나련다."
그 시각이 되자 분향하고 편안히 앉아서 천화(遷化)하시니, 세수 62세, 법
랍은 37세였다. 전신(全身)을 서쪽 산비탈에 안장하고, 시호는 원증선사(圓證
禪師), 탑은 복원(福圓)이라 하였다.
조 산 록
(祖堂集)
1. 행 록
동산(洞山)스님의 법을 이었고, 항주(抗州)에 살았다. 법명(謂)은 본적(本
寂)이며, 천주(泉州) 포전현(蒲田縣) 사람으로 속성은 황씨다. 어릴 적부터 9
경(九經)을 익혀 출가하기를 간절히 바라더니, 1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
의 허락이 나서 복당현(福唐縣) 영석산(靈石山)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2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은사가 계 받을 것을 허락하였는데 거동과 몸가짐이 마치
오랫동안 익힌 것 같았다. 그 길로 행각을 나서서 처음으로 동산스님 법회를
찾으니, 동산이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아무개라고 대답하니, 동산스님이 다시 말했다.
"본분(向上)에서 다시 말해 보아라."
"말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말할 수 없는가?"
"아무개라고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자 동산스님이 근기를 깊이 인정하였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 몇해
만에 비밀한 방에서 종지를 이어받았다.
어느날 동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동산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함없는 곳으로 가렵니다."
"변함없는 곳이라면서 어떻게 감이 있겠는가?"
"가더라도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로부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게 노닐었는데 도반될 만한 사람
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깊이 숨어 자유로운 활동을 하지 않더니, 교화할 인
연이 이르자 처음에는 조산(曹山)에 살다가 나중에는 하옥(荷玉)으로 옮겼다.
종릉(鍾陵) 대왕이 스님의 높은 덕망을 흠모하여 두세 번 사신을 보내 청
했으나 스님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세번째 사신을 보낼 때, 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조산대사를 데리고 오지 못하면 나를 만날 필요도 없다."
사신이 왕명을 받들고 산에 와서 슬피 울며 말했다.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일체중생을 구제해 주옵소서. 스님께서 이번에도 왕
명에 따라 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잿가루가 됩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신께 후환이 없도록 보증하기 위해 가실 때 옛 어른의 게송 한 수를
전하리다."
그리고는 다음의 시를 보냈다.
꺾여진 고목나무 푸른 숲에 끼어 있어
몇 차례 봄을 만났건만 그 마음 안 변했네
나무꾼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이름난 목수가 무얼 애써 찾겠는가.
殘枯木倚靑林 幾度逢春不變心
蕉客見之猶不顧 人那更苦追尋
사신이 돌아와서 게송을 바치니, 왕이 보고 멀리 조산 마루를 향해 절을
하면서 말씀하셨다.
"제자는 금생에 영영 조산대사를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곳의 법석(法席)에서 20년 동안, 여름 겨울없이 대중이 항
상 천 2, 3백명이나 되었다.
2. 상 당
스님께서 항시 상당하면 대중에게 이렇게 법문하셨다.
"여러분은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제방에는 말로
선사된 이가 많아서 여러분의 귓속이 모두 가득할 것이다. 온갖 법을 의지하
지도 않고 접하지도 않고 다만 그렇게 체득하면, 그들의 차별된 알음알이가
그대들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아득한 천지에 온갖 일이 삼(麻)같이 갈대
(초)같이 가루(粉)같이 칡덩굴(葛)같이 많은데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며 조사께서 세상에 나오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니 오
직 끝까지 체험해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천만가지 경론으로 도를 이룬 이가 자유롭지 못하고 시종(始終)
을 초월치 못했음을 보았을텐데, 대체로 자기 일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일을 밝히면 저 모든 일을 굴려 그대 자신의 살림을 삼게 되겠지만 만
일 자기 일을 밝히지 못하면 그대들이 여러 성인에게 연(緣)이 되어주고, 여
러 성인이 그대에게 경계(境)가 되어 경계와 인연이 서로 어울려도 깨달을
기약이 없을 것이니 어찌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몸소 완전히 체득하지 못
하면 저 모든 일을 굴려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며, 만일 완전히 체득하여 묘
연히 얻으면 모든 일을 굴려 등 뒤로 던져 두고 하인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본체는 미묘한 곳에 있으니 쓸데
없는 짓 하지 말라' 하셨다. 이 경지에 이르면 귀천(貴賤)도 없고 친소(親疎)
도 없어 마치 큰 부잣집 금고지기(守錢奴)가 물건을 쓸 때 동과 서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다. 이 경지에 이르면 승속(僧俗)을 가리지 않는 것이며, 청탁
(淸濁)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이때, 만일 낮은 사람이 나서서 주인보다 더
좋게 옷을 입고 단장했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데야 어쩌랴. 내가 여러
분께 말해주겠다. 향해 가는 말(向去語: 向上語)은 맑고 깨끗하나 일 위의 말
(事上語: 向下語)은 맑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니, 무엇을 일 위의 말이라 하겠
는가? 여기서는 격식을 벗어난 큰 사람을 가려낼 수 없다."
3. 대 기
1.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스님 회상에 온 뒤로 지금까지, 몸 빼낼 길(出身處)을 찾을래야 찾
을 수 없으니, 스님께서는 몸 빼낼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어떤 길을 걸었던가?"
"여기서는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몸 빼낼 길을 찾지 못했구나!"
2.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싹을 보고서 땅을 가리고 말을 듣고서 사람을 안다'
했는데 지금 말하고 있으니 스님께서 가려 주십시오."
"가릴 수 없다."
"어째서 가리지 못하십니까?"
"내 솜씨가 좋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3.
한 스님이 물었다.
"노조(魯祖)스님이* 벽을 향해 앉았던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스님께서 손으로 귀를 막았다.
4.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이 없을 때엔 어떻게 나타납니까?"
"여기에는 나타날 수 없다."
"어디에서 나타나야 합니까?"
"어젯밤 삼경에 돈 세 닢을 잃었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나오기 전엔 어떻습니까?"
"지난날 나도 그랬다."
"나온 뒤엔 어떻습니까?"
"그래도 나에 비한다면 석달 쯤은 밥을 더 먹어야겠구나."
6.
"옛사람이 벽을 향해 앉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두 그루의 고운 계수나무가 시들어가는구나."
7.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 원각(圓覺)을 말하면
-----------------------
* 노조 보운(魯祖寶雲)스님은 학인이 와서 법을 물으면 언제나 벽을 보고 앉아서
아무 대꾸도 안하는 것으로 지도했다.
그 원각의 성품도 윤회와 같다'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원각을 말하는 것입니까?"
"마치 어떤 사람이 객지에서 집안 일을 이야기하는 격이다."
"어떤 것이 그 원각의 성품도 윤회와 같다는 것입니까?"
"분명히 도중(途中)에 있구나."
"길을 걷지 않고도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할 길이 있으면 원각이 아니다."
"그 말할 수 없는 자리도 유전(流轉)합니까?"
"역시 유전한다."
"어떻게 유전합니까?"
"또렷또렷하지 않아야 한다."
8.
한 스님이 물었다.
"눈썹과 눈이 서로를 알아봅니까?"
"알아보지 못한다."
"어째서 알아보지 못합니까?"
"같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누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눈썹이 눈은 아니다."
"무엇이 눈입니까?"
"뚜렷한 것이다."
"무엇이 눈썹입니까?"
"나도 그것을 의심한다."
"스님께선 어찌하여 의심하십니까?"
"내가 만일 의심치 않는다면 뚜렷한 것이기 때문이다."
9.
한 스님이 물었다.
"항상 생사 바다에 빠져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겹쳐보이는 달(第二月)이다."
"벗어나고자 합니까?"
"벗어나려 하나 길이 없을 뿐이다."
"벗어날 때엔 어떤 사람이 그를 맞이합니까?"
"무쇠칼(鐵가) 쓴 자가 맞이한다."
10.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중천에 떴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래도 섬돌 밑의 첨지이다."
"스님께서 섬돌 위로 끌어올려 주십시오."
"달 떨어진 뒤에 만나자."
11.
한 스님이 물었다.
"매우 희박할 땐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들릴락말락(希夷)하지 않느니라."
"무얼 하십니까?"
"재채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코를 흘려야겠습니다."
"재채기하지 않는데 무슨 코를 흘리겠느냐."
12.
한 스님이 물었다.
"소 한 마리가 물을 마시니 말 다섯 마리가 울지 못했는데 어떻습니까?"
"조산(曹山)에 효도가 가득하다."
13.
한 스님이 물었다.
"형상(相)에서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형상 그대로가 진실이다."
"무엇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 찾종지를 번쩍 들어올렸다.
14.
한 스님이 물었다.
"도성 안에서 칼(劍)을 휘두르는 이는 누구입니까?"
"나 조산이다."
"누구를 죽이려 하십니까?"
"닥치는대로 다 죽인다."
"갑자기 전생(本生)의 부모를 만나면 어찌하시렵니까?"
"무엇을 가리겠는가?"
"자기 자신이야 어쩌겠습니까?"
"누가 나를 어쩌겠는가?"
"어째서 죽이지 않습니까?"
"손을 쓸 수가 없어서이다."
15.
한 거사(俗士)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누구에게나 있다' 했는데 티끌세상에 사는 저에게도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손을 펴서 손가락을 꼽으면서 말했다.
"하나.둘.셋.넷.다섯 꽉 찼구나."
16.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 쓰러진 이가 땅을 딛지 않고 일어나는 법은 없
다' 하였는데 무엇이 땅입니까?"
"한 자(尺), 두 자."
"무엇이 쓰러지는 것입니까?"
"긍정하는 그것이다."
"무엇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일어났다."
1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지해(知解)를 갖추어야 대중의 물음에 잘 대답하겠습니까?"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말로써 표현하지 않는다면 묻기는 무엇을 묻겠습니까?"
"칼과 도끼로 쪼개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물음에 대답했을 때에도 긍정치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
"있다."
"어떤 사람입니까?"
"나 조산이다."
18.
한 스님이 물었다.
"환(幻)의 근본이 어찌 진실입니까?"
"환의 근본은 원래 진실이다."
"환인데 어떻게 나타납니까?"
"환 그대로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환을 떠나 있지 않았겠습니다."
"환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19.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도반을 가까이해야 듣지 못했던 것을 항상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이불을 덮는 자이다."
"그것은 스님께서나 들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항상 듣는 것입니까?"
"목석(木石)과 같을 수는 없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입니까?"
"듣지 못했는가? 듣지 못했던 것을 항상 듣는다 하였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들과 조사들은 알지 못하는데 삵과 암소는 알
고 있다' 하였는데 부처님들과 조사들은 어째서 알지 못합니까?"
"부처님들은 비슷하기 때문이며 조사들은 인가(印)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삵과 암소는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삵과 암소라는 사실이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어째서 비슷하거나 인가에 집착합니까?"
"사람들이 막힘이 없으면 이 가운데서 묘하게 알 것이다."
21.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천제(闡提: 성불할 가망이 없는 종자) 한 사람을
죽이면 한량없는 복을 받는다' 하였는데 무엇이 천제입니까?"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는 자이다."
"무엇이 죽이는 것입니까?"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다시 그에게 물으셨다.
"이것은 밝은 천제인가 어두운 천제인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흰 뱃속에 검은 웃옷을 입었다."
이렇게 말한 뜻은 소견을 일으킨 것은 밝음이므로 희다 하고 소견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어두움이므로 검다 하였다.
22.
스님께서 경전에 있는 일을 들어 대중에게 물었다.
"묻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설법하여 도 닦는 것을 칭찬한다는데 무엇이
묻는 이 없이 부처님 스스로 설하는 것이겠는가?"
누군가가 대답했다.
"온 누리 안에서 한 사람도 듣는 이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한 글자를 따내고 한 글자를 보탠들 불법이 크게 퍼지겠는
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온 누리에 한 사람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다."
23.
스님께서 법어를 내리셨다.
"이 자리는 높고 넓어서 나는 오를 수가 없으니, 무슨 자리라 불러야 되겠
는가?"
강(强)상좌가 대답했다.
"이 자리라고 불러도 벌써 더럽힌 것입니다."
"오를 이가 있기는 하겠는가?"
"있습니다."
"누구인가?"
"발을 떼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를 수 있는 이는 자리 위의 사람이 아니겠는가?"
"역시 왼쪽과 오른쪽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리 위의 사람인가?"
"이 자리에 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르지 않는다면 자리는 해서 무엇하겠는가?"
"없으면 오를 수 없습니다."
"그 자리는 따로 사람이 있는가, 자리 그대로를 최상의 몸으로 삼는가?"
"자리 그대로를 최상의 몸으로 삼습니다."
스님께서 칭찬했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다."
2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대광(大光)에서 옵니다.
"올 때에 광명이 나타나던가?"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항상 나타납니다."
"비추던가?"
"비추지는 않습니다."
"큰 광명(大光)은 어디에 있던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옥새(玉璽)로 여겼더니, 알고 보니 천남각(天南角)*이로구나!"
스님께서 다시 대신 말씀하셨다.
"비추지 않아야 비로소 큰 광명이 됩니다' 하라."
25.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자리를 차지하고 옷을 입는다' 했는데 무엇이 자리를
얻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이쪽 저쪽을 살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옷을 입는 것입니까?"
"벗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옷이기에 벗을 수가 없습니까?"
"사람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옷이 그것이다."
"이미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다면 입어서 무엇하겠습니까?"
--------------
* 들에 자생하는 흔한 풀. 무용지물을 비유함.
"일어서건 쓰러지건 항상 따라다니며 어디를 가나 살 길이 트인다' 한 말
을 듣지도 못했는가?"
"이 뒤에 저절로 보게 될 일은 무엇입니까?"
"옷 입었음을 인정히 않는 것이다."
스님께서 또 말했다.
"옷을 벗고 와서 나를 만나라."
26.
한 스님이 물었다.
"10년을 돌아가지 못해 오던 길을 잊었다 하니, 무슨 뜻입니까?"
"즐거움을 얻고는 근심을 잊어버린다."
"어떤 길을 잊었습니까?"
"열 곳(十處)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의 길도 잊습니까?"
"그것까지도 잊는다."
"어째서 9년이라 하지 않고, 꼭 10년이라 하였습니까?"
"만일 한 곳이라도 돌아가지 않는 곳이 있으면 나는 몸을 나타내지 않는
다."
27.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동자가 몸을 던지니, 야차(夜叉)가 게송 반마디를*
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동자가 몸을 던진 것입니까?"
------------------
* 부처님은 수행 과정에서 법을 얻기 위해 야차에게 몸을 던졌다.
"단정(端正)함을 잃은 것이다."
"어떤 것이 게송 반마디를 읊은 것입니까?"
"흰 구름이 가시덤불에 얽힌 것이다."
"어떤 것이 단정함을 잃는 것입니까?"
"소부(少父) 잃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8.
한 스님이 물었다.
"대궐(玉殿)에 이끼가 끼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제자리(正位)를 지키지 않는다."
"팔방에서 조공을 바쳐올 때엔 어찌합니까?"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하러 조공을 바치러 왔겠습니까?"
"어기는 건 잠시 어긴다 해도 순응하는 것이 신하의 분수이다."
"임금의 뜻이 무엇입니까?"
"추밀(樞密: 왕명을 출납하는 관직)도 그 속 마음을 모른다."
"그렇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공은 몽땅 대신들에게 돌아가겠습니다."
"임금의 성격을 알기나 하는가?"
"바깥 사람들은 감히 논할 것이 아닙니다."
29.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지륜(智輪)입니다."
"지륜과 법륜(法輪)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지륜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막공(邈公)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합니다."
소공(紹公)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털끝만치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강(强)상좌가 대신 말하였다.
"가까워지려면 가까워지고 멀어지려면 멀어집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가까워지려면 가까워지는 것인가?"
"같은 바퀴 자국(轍)에 실린 것입니다."
"무엇이 멀려면 먼 것인가?"
"여러 수레와 같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것이 먼저인가?"
"뭇 수레와 함께하지 않는 것이 먼저입니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다."
30.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신의 주인입니까?"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스승(先師)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가 깊지(玄) 않으면 속된 중으로 타락
하리라' 하셨다는데 무엇이 깊음입니까?"
"그대가 질문하기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대로가 깊음이 아니겠습니까?"
"깊다면 속된 중으로 타락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깊음입니까?"
"질문을 바꾸어라."
31.
한 스님이 물었다.
"3승 12분교에도 조사의 뜻이 있습니까?"
"있다."
"이미 조사의 뜻이 있었다면 다시 서쪽으로부터 와서 무엇하겠습니까?"
"그저 3승 12분교에 조사의 뜻이 있기 때문에 서쪽에서 왔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그렇게 술취한 놈에게 물어서 무엇하겠는가?"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그대가 묻지 않았더라면 나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33.
"어떤 것이 다른 종류(異類)입니까?"
스님께서 "다른 가운데서는 종류를 대답치 않는다" 하시고는 또 말씀하셨
다.
"내가 그대에게 말로 해준다면 나귀해(□年)엔들 다름을 알겠는가?"
또 말씀하셨다.
"나에겐 단지 한 쌍의 눈썹이 있을 뿐이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문수(文殊)는 어째서 부처님(瞿曇)에게 칼을 뽑았습니까?"
"그대의 오늘을 위해서이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잘 해친 이라 칭찬하셨습니까?"
"대비(大悲)로 뭇 중생을 가엾이 여겨 덮어 주었기 때문이다."
"다 죽인 뒤엔 어찌 됩니까?"
"죽지 않는 자임을 비로소 안다."
"그 죽지 않는 자는 부처님에게 어떤 권속입니까?"
"그대에게 이름을 지어주면 되겠으나 권속이 되지 않을까 걱정일 뿐이다."
"하루 동안 어떻게 시봉해야 됩니까?"
"그대는 반드시 잘 해치는 이가 될 것이다."
35.
한 스님이 물었다.
"「화엄경」에 말씀하시기를, '큰 바다는 시체를 간직하지 않는다' 하였는
데 어떤 것이 큰 바다입니까?"
"온갖 것(萬有)을 포용한다."
"무엇이 시체입니까?"
"숨이 끊어진 자이니 그들을 붙여두지 않는다."
"이미 만유를 포용한다면 어째서 숨이 끊어진 자를 붙여두지 않습니까?"
"큰 바다는 그러한 공덕이 없는데 숨이 끊어진 자는 그러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큰 바다에도 본분사(向上事)가 있습니까?"
"있다 해도 되고 없다 해도 되겠지만 용왕이 칼을 빼들고 있음이야 어찌
하겠는가?"
3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손에 든 것이 무엇인가?"
"부처님 머리 위의 보배 거울입니다."
"부처님 머리 위의 보배 거울이라면 어째서 그대 손에 들어 있는가?"
대답이 없으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부처님들도 역시 저희 후손들입니다' 하라."
37.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도 도를 알지 못하니, 내 스스로 수행을 해야
한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부처님이 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의 경계에는 안다 할 것이 없다."
석문(石門)스님이 말씀하셨다.
"더 알아서 무엇에 쓰겠는가?"
"어떤 것이 내 스스로 수행을 하는 것입니까?"
"위로 향하는 일에는 일이 없다."
"그것뿐입니까, 아니면 별다른 도리가 있습니까?"
"그것뿐이라 한들 누가 어찌하겠는가?"
38.
한 스님이 물었다.
"잘 간직(保任)하는 사람이 한 생각을 잃을 때는 어찌됩니까?"
"비로소 간직을 하게 된다."
"큰 마왕(魔王)이 되었을 때는 어찌합니까?"
"부처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지막 일(末後事)은 어떻습니까?"
"부처도 그 일을 하지 않는다."
39.
한 스님이 물었다.
"큰 이익을 짓는 사람도 비슷해질 수 있습니까?"
"비슷할 수 없다."
"어째서 비슷하지 못합니까?"
"듣지도 못했는가? 큰 이익을 짓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존귀한 분을 압니까?"
"존귀한 분을 모른다."
"어째서 존귀한 분을 모릅니까?"
"그가 나 조산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조산입니까?"
"큰 이익을 짓지 않는 자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감천(甘泉)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밭 가는 농부에게서 소를 빼앗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 했다는데, 무엇이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는
것입니까?"
"노지(路地)를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것입니까?"
"제호(醍 )를 물리치는 것이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얕으나 쓸 때엔 깊다' 하였다는데, 볼때에 얕고도 얕
다는 것은 그만 두고, 무엇이 깊은 것입니까?"
이에 스님께서는 차수(叉手)하고 눈을 감으셨다. 학인이 더 물으려는데 스
님께서 말씀하셨다.
"칼(劍)은 빠뜨린 지 오랜데 무엇하러 뱃전에다 표시를 하려는가?"
4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함(玄)입니까?"
"어째서 진작 묻지 않았는가?"
"무엇이 현묘함 가운데의 현묘함입니까?"
"원래 한 사람이 있느니라."
43.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신풍(新豊: 동산)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한 빛깔이 있는 곳에
나눌 수 있는 이치와 나눌 수 없는 이치가 있다'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나눌
수 있는 것입니까?"
"한 빛깔과는 같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今日)을 따르지는 말아야겠습니다."
-------------------
* 초(楚)나라에 어리석은 사람이 물에다 칼을 빠뜨리고는 그 자리에서 뱃전에다 표
시해 두었다. 그리고는 강가에 닿자마자 표시해 둔 물밑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
다.
"그렇다."
"어떤 것이 나눌 수 없는 이치입니까?"
"가릴 수가 없는 곳이다."
"가릴 수 없는 그 자리야말로 부자(父子)가 온통 한 몸이 되는 곳이 아니
겠습니까?"
"그렇다. 그런데 그대도 알고 있었던가?"
"바야흐로 한 빛이 될 때엔 깨달음(向上事)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깨달음엔 본래 한 빛이랄 것도 없다."
"그 한 빛이란 것도 종문(宗門)의 종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람에게 말해 줍니까?"
"종문에 알아들을 이가 없기 때문일 뿐이니, 그러기에 그런 사람을 위해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활짝 깨치는 이(頓)도 있고 근기가 낮은 이(弱)도 있겠습니다."
"내가 활짝 깨치는 이와 근기 낮은 이를 말했다면 삿됨에 빠지는 것이다."
"종문 안의 일을 어떻게 알아야 되겠습니까?"
"그 안의 사람이라야 한다."
"어떤 사람이 그 안의 사람입니까?"
"내가 이 산에 살기 시작한 이래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 사람 중에는 그런 이가 없다 해도 스님께서는 옛사람을 만나면 어
떻게 받으시겠습니까?"
"손을 펴지만 말라."
"그렇게 하면 스님께서 무엇인가를 주시겠습니까?"
"옛사람이 그대를 꾸짖는구나."
44.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칼날없는 칼입니까?"
"삶거나 단련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맞서 오는 자는 모두가 죽는다."
"맞서는 이가 없으면 어찌합니까?"
"역시 몰살을 당해야 한다."
"오지 않는 이가 어째서 모두 몰살되어야 합니까?"
"듣지 못했는가? 모두 다 해치운다는 말을."
"다한 뒤에는 어찌 됩니까?"
"이러한 칼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沙門)의 모습입니까?"
"눈을 까뒤집고 봐도 안보이는구나."
"그렇다면 가사는 입었습니까?"
"가사를 입었다면 사문의 모습이 아니지."
"그렇다면 무엇이 사문의 행(行李)입니까?"
"머리에는 뿔을 이고 몸에는 털을 썼다."
"이 사람은 누구의 힘을 빌어 이렇게 되었습니까?"
"종일 남의 힘을 얻어 쉬지 않고 다닌다."
"이 사람은 무엇을 귀하게 여깁니까?"
"머리에 뿔을 이지 않는 것과 몸에 털을 쓰지 않은 것이다."
4. 천 화
스님께서 천복(天復) 원년(元年) 신유(辛酉) 여름에 졸연히 한마디 하셨다.
"운암 노스님도 62세를 사셨고, 동산스님도 62세에 열반에 드셨다. 나 조산
도 올해 62세이니, 앞 사람의 뒤를 따라 하나의 관례를 이루는 것이 좋겠다."
윤(閏) 6월 15일, 밤이 되자 주사(主事)에게 물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윤 6월 15일입니다."
"조산은 한평생 행각을 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90일로 한 철을 삼았다."
그리하여, 이튿날 진시(辰時)가 되자 열반에 드시니, 춘추는 62세, 승랍은
37세이며, 시호를 원증(圓證)대사라 하였다.
선림고경총서 17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설봉스님이 하루는 원숭이를 보고 말하기를
"원숭이가 각각 한 개의 옛거울(古鏡)을 짊어지고 있구나!"
하니 삼성스님이
"숱한 세월동안 이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옛거울(古鏡)이라 합니
까?"
하고 물었다. 설봉스님이
"흠이 생겼구나!"
하자 삼성스님이 말하기를
"천오백명을 거느리는 대선지식이 말귀도 못 알아들으십니까?"
하니 설봉스님이 말하였다.
"노승이 주지하기가 번거로와서…"
알겠는가.
비가 연잎을 적시니
향기가 집에 떠돌고
바람은 갈대잎을 흔드는데
눈은 배에 가득하네.
雪峰一日見 乃云, 者 各各背一面古鏡
三聖便問, 歷劫無名何以彰爲古鏡
峰云, 瑕生也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話頭也不識
峰云,老僧住持事煩
會�
雨蒸荷葉香浮室
風攪盧花雪滿船
佛紀 2532年 端午節
伽倻山에서
退翁 性徹 씀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 간행사
귀의삼보(歸依三寶)하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져 겨레의 문화창달에 이바지
하고 나라의 동량을 배출하여 온 지도 천육백여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지나고 연륜이 멀어짐에 따라 부처님의 마음을 전
하는 선종의 정법은 감추어지고, 고불고조(古佛古祖)들의 바른 뜻은 매몰
되어 잘못된 주장만 들러나게 되었습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는 이런 선문(禪門)의 병폐를 일찍부터 지적하시고, 그
시정을 위해 몇 해 전에는 「선문정로(禪門正路)」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선(禪)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현대인들
에게 무엇이 가장 요긴한 일인가를 심려해 오시던 차에, 우리들 주변에는
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데 필요한 선서(禪書)들이 너무나 빈곤하다는 사
실을 통감 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는 고불고조들의 말씀이 한문(漢文)으로
되어 있어서 언어 생활이 다른 요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
니다. 그래서 큰스님께서는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옛 조사 스님들의 말
씀 가운데 참선(參禪)을 위해 가장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삼십여 종의 저
서들을 가려내어 번역토록 하시고, 그 전집(全集)의 이름을 「선림고경총
서(禪林古鏡叢書)」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한문으로 된 말씀들을 한글로 번역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많
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때로는 큰스님의 구술(口述)을 옮기고,
때로는 선(禪)의 이치를 여쭈면서 글 밝은 이들에게 번역을 부탁하였습니
다. 따라서 선림고경총서 간행불사(刊行佛事)가 겨레 공동의 문화 재산이
되고 후손들에게 부처님의 크고 밝은 가르침을 전하는 이 시대의 훌륭한
유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종사에서 처음 시도하는 번역인 만큼 큰 스님께서 연로하시
어 일일이 감수하실 수 없어 번역에 허물이 많으리라 믿습니다. 이 점 널
리 이해하시고 잘못된 번역이 있으면 독자들께서 동참하시어 더 완벽한
글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이러한 선림고경총서의 원만한 간행이 조계(曹溪)의 개울을 건너는 징
검다리가 되어, 선림(禪林)에 백화(百花)가 난만하고 모든 이들은 자성을
깨쳐 성불(成佛)하길 발원합니다.
佛紀 2532년年 端午節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
백련선서간행회(白蓮禪書刊行會)
員澤 和南
양기록 해제(楊岐錄 解題)
양기록 은 양기파의 개조인 양기방회(楊岐方會 : 993-1046)스님의 어
록이다.스님은 원주(袁州:江西省) 의춘현(宜春縣)에서 태어났으며,속성
은 냉씨(冷氏)이다. 스님은 어려서부터 매우 영민하였는데, 서주(瑞州
: 江西省) 구봉사(九峰寺)에 놀러갔다가 마침내 출가하여 담주(潭州)
유양(劉陽)의 도오산(道吾山)에서 삭발하였다.
제방(諸方)을 행각하다가 석상 초원(石霜楚圓)스님을 참례하고서는 오랫
동안 시봉하였고, 초원스님이 도오산, 석상산으로 옮김에 따라갔었다.
그러나 초원스님께 법을 물을 때면 "창고 일[庫司事]이 번거로우니 가보
라" 하거나 또는 "감사(監寺)는 나중에 자손이 천하에 퍼질 것인데 어찌
서두르는가" 할 뿐이였다.
하루는 초원스님이 산에 나갔다가 비를 맞은 것을 보고서 "이 늙은이
야, 오늘은 내게 꼭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때리겠다"고 하자 초원스님이
말했다. "감사도 이일을 알지. 그만두어라." 이 한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
에 크게 깨치고는 진흙길에 엎드려 절하였다.
그 후 초원스님이 담주(潭州:湖南省) 광화사(光化寺)로 옮김에 하직하
고서 구봉사로 돌아갔다. 그 후 승속의 청에 의해 원주 양기산 보통선원
(普通禪院)에 계시다가 경력6년(慶歷 6年:1046) 담주 운개산(雲蓋山) 해
회사(海會寺)로 옮겼다. 법석을 펴다가 얼마 후 입적하셨으니 세수 54세
이다.
스님의 어록으로는 「원주양기방회화상어록(袁州楊岐方會和尙語錄)」1권
동 「후록(後錄)」1권, 동「어요(語要)」1권이 남아 있다.
법제자로서는 백운 수단(白雲守端), 비부 손거사(比部孫居士), 보녕 인용
(保寧仁勇)스님 등 10여 명이 있으며, 운거산에 수탑(樹塔)이 있다.
「양기화상어록」은 일찍이 양기파의 네 스님〔慈明石霜楚圓, 楊岐方會,
白雲守端, 五祖法演〕의 어록을 모은「자명4가록(慈明四家錄)」에 수록되었
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것으로는 「고존숙어요(古尊宿語要)」3에 수록
된 것이 가장 오랜된 것이며, 여기에는 황우(皇祐) 2년(1050) 문정(文政)의
서(序)와 원우(元祐) 3년(1088) 양걸(楊傑)의 서가 붙어 있으며, 여기에 수
록된 법어는 다음과 같다.
원주양기산보통선원회화상어록(袁州楊岐山普通禪院會和尙語錄,保寧仁勇編)
후주담주운개산해회사어록 (後住潭州雲蓋山海會寺語錄, 白雲守端編)
감변(勘辯)
게송(偈頌)
명장본(明藏本)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19에는 이것이 그대로 수록되
었는데 무슨 까닭인지 문정과 양걸의 서가 권말, 즉 담주(潭州)「도오오진
선사오요(道吾悟眞禪師語要)」의 뒤에 붙어 있다.
「양기방회선사후록」은 그 편자(編者)를 알 수 없으며, 그 내용은「양기
록」에 수록되지 않은 상당·시중과 자찬(自讚)을 수록하였다. 그 외에도
「선학 대계(禪學大系)」에는 양기운개어록(楊岐雲蓋語錄)의 유보(遺補)로
서 선종정맥(禪宗正脈), 대광명장(大光明藏)에서의 발초어(拔抄語) 약간을
수록하고 있다.
황룡록 해제(黃龍錄 解題)
「황룡록(黃龍錄)」은 임제종(臨濟宗) 황룡파의 개조(開祖)인 황룡 혜남
(黃龍慧南 : 1002∼1069)스님의 어록이다.
스님은 신주(信州 : 江西省) 옥산(玉山) 출신으로, 속성은 장씨(章氏)이
다. 11세에 정수원(定水院)의 지란(智 )스님에게 출가하여 19세에 삭발하
고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여러 곳을 행각하였는데, 여산(廬山) 귀종사
(歸宗寺에서 자보(自寶)노스님을 참례하였고, 삼각산(三角山) 서현사(棲賢
寺)에서 회징(懷澄)스님을 참례하여 3년간 시봉하다가 회징스님이 늑담(
潭)으로 옮기자 따라갔다. 이때 법기(法器)를 인정받아 분좌설법(分坐說
法)을 하였다.
그 후 다시 행각하면서 운봉문열(雲峰文悅)스님의 권유로 석상 초원(石
霜楚圓:987∼1040)스님을 뵈러 가다가 형악(衡岳)의 복엄사(福嚴寺)에 머
물면서 서기(書記)를 맡고 있었는데, 석상스님이 복엄사의 주지로 왔다.
이에 입실(入室)하여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조주감파(趙州勘破)의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깨쳤다. 스님의 나이가 35세(宋 明道 2年:1033) 때
의 일이다.
다시 제방(諸方)을 행각하다가 홍주(洪州) 봉서사(鳳棲寺) 동안원(同安
院)에서 개당설법을 하였다. 이때 석상스님의 법을 이었음을 밝혔는데,
이것을 전해들은 회징스님은 교분을 끊었다.
귀종사에 돌아와 주지하던 중, 절에 불이 나서 그 죄로 투옥되었다가 2
개월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다시 황벽산(黃檗山)으로 옮겨서 깊은 산에 암
자를 엮고 적취암(積翠庵)이라 하였다. 많은 납자들이 모여들어 스님의 지
도를 받았는데, 스님의 지도방법 중 3관화(三關話)는 이때부터 널리 알려
졌다. 후에 융흥부(隆興府)의 황룡산(黃龍山)으로 옮겨 크게 종풍을 날리
니, 스님의 종풍은 호남(湖南), 호북(湖北), 강서(江西)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뒷날 이 일파를 황룡파라 불렀다.
희녕 2년(熙寧 2年 : 1069) 3월 17일 입적하니 세수 68세이다.
법제자가 83인이나 되어 마조(馬祖)스님만큼이나 많았다고 하며, 그 중
에서도 특히 황룡 사심(黃龍死心), 늑담 극문( 潭克文), 동림 상총(東林
常聰)스님 등이 뛰어났다. 후에 휘종(徽宗)은 대관 4년(大觀 4年 : 1110)
에 보각선사(普覺禪師)라고 시호하였다.
스님의 어록으로는 「황룡혜남선사 어록(黃龍慧南禪師語錄)」1권, 동
「어요(語要)」1권, 동 「서척집(書尺集)」1권이 있다.
「황룡혜남선사 어록」은 황룡스님의 4세 법손인 구정 혜천(九頂惠泉)스
님이 손으로 쓴 것이다. 혜천스님은 황용과 네 스님〔黃龍慧南, 晦堂祖心,
死心新悟, 超定慧方〕의 어록을 모아서 「황룡4가집(黃龍四家集)」을 편집
하였는데, 그 맨 앞에는 소흥 11년(紹興 11년:1141) 전밀(錢密)이 찬(撰)
한 황룡4가어록 서(序)를 붙였다.
황룡혜남선사의 어록에 수록된 것은 다음과 같다.
동안숭승선원 어요〔同安崇勝禪院語要〕11가지
귀종사로 옮겨 살면서 남긴 어록〔遷住歸宗語錄〕13가지
균주 황벽산에서 남긴 법어〔筠州黃蘗山法語〕15가지
황룡산에서 남긴 어록〔黃龍山語錄〕14가지
게송(偈頌)41수
그 후 경도(京都) 건인사(建仁寺) 양족원(兩足院)의 고봉 동준(高峰東晙
:1736∼1801)스님이 「황룡혜남선사어록 속보 (黃龍慧南禪寺語錄續補)」를
새로 편집하였다. 「속전등록(續傳燈錄)」「연등회요(聯燈會要)」「가태보
등록(嘉泰普燈錄)」「속고존숙어요(續古尊宿語要)」「선문염송집(禪門拈頌
集)」「영평광록(永平廣錄)」「무시개심선사어록(無示介諶禪師語錄)」 등
에서 50여항을 새로 수집하였고, 또 「오등회원」「임간록」「운와기담」
등에서 황룡3관과 그 밖의 게송 12수를 구하여 수록하였다.
5가 7종 (五家七宗)에 대하여
중국의 남종선(南宗禪)은 육조 혜능(六祖慧能)스님 이후 분파를 계속하여
5파를 이루었는데, 이것을 5가(五家)라 한다.
육조혜능 남악회양 황벽희운 -- 임제의현 ----임제종
(六祖慧能)(南嶽懷讓)(黃檗希運](臨濟義玄)
위산 영우-- 앙산 혜적 ------위앙종
(山靈祐) (仰山慧寂)
청원행사 천황도오 설봉의존 운문문언 ------운문종
(淸原行思 ) (天皇道悟) (雪峯義存) (雲文文偃)
현사 사비 법안 문익 --- 법안종
(玄師沙備) (法眼文益)
약산 유엄 -- 동산 양개 -- 조산본적 --------- 조동종
(藥山惟儼) (洞山良价) (曹山本寂)
5가 중 위앙종과 법안종은 일찍 쇠퇴하였고, 임제종만이 오랫동안 번성
하였다. 송(宋) 대에 들어서 임제종은 다시 양기파(楊岐派)와 황룡파(黃龍
派)로 나우어졌고, 양기파의 법손(法孫)이 가장 번성하였으며, 우리나라 현
재 조계종도 이 문하(門下) 이다.
세상에서는 5가에 다시 양기파와 황룡파의 두 종까지를 합쳐서 5가 7종이
라 한다.
차 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 退翁 性徹/ 2
선림고경총서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 4
양기록 해제(楊岐錄解題)/ 6
황룡록 해제(黃龍錄解題)/ 8
5가 7종(五家七宗)에 대하여/ 11
양기록
담주 운개산 회화상 어록 서 ………………………………………… 17
원주 양기산 보통선원 회화상 어록 / 仁勇 編 ………………… 19
그 뒤 담주 운개산 해회사에 머물면서 남긴 어록/ 守端 編 … 29
양기 방회스님 어록에 제(題)한다 ………………………………… 49
양기 방회화상 후록 ………………………………………………… 51
황룡록
· 황룡 사가어록 서 ……………………………………………… 79
·동안 숭숭선원에서 남긴 어록 ………………………………… 81
·귀종사로 옮겨 살면서 남긴 어록 …………………………… 93
·균주 황벽산에서 남긴 법어 …………………………………‥ 107
·황룡산에서 남긴 어록 ………………………………………… 117
·게송 ……………………………………………………………… 127
〔附錄〕 袁州楊岐山普通禪院會和尙語錄
後住潭州雲蓋山海會寺語錄
潭州雲蓋山會和尙語錄序
題楊岐會老禪師
楊岐和尙後錄
黃龍四家語錄序
黃龍慧南禪師語錄
일러두기
1. 양기록의 서문은,부록판본인 고존숙어록에서는 뒤에 실려있는 것을 편집상
맨앞으로 옮겨 실었다.
2. 황룡록의 서문은 원래 황룡스님 이하 그 법제자 4분의 어록을 모은 「황룡4
가어록」에 통합적으로 붙여진 것이나 황룡스님에 대한 서문이 따로 없으므
로 이에 대신하였다.
3. 황룡록에서 '동안 숭승선원에서 남긴 어록’이라는 제목은 원문에는 없으나
편집과정에서 붙였다.
4. 부록으로 실은 양기록의 한문 원문은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권제19)
과「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제47권)의 것을 실었다. 황룡록의
원문은「대정신수대장경」(제47권)의 것을 싣고, 황룡 4가어록 서는 「卍
속장경(卍續藏經)」을 이용하였다.
5.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店, 1979)과 「중
국불학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方舟出版社)을 참고하였다.
양기록
담주 운개산 회화상 어록 서
(潭州雲蓋山會和尙語錄序)
이씨(李氏)가 세운 당나라에 선(禪)으로 걸출한 자가 있으니 마
조(馬祖)대사가 강서(江西)땅 늑담사( 潭寺)에 살면서 문도 84명
을 배출해냈다. 그 가운데 두각을 나타낸 자로서는 오직 백장 회
해(白丈懷海)스님 한분이 대기(大機)를 얻고 회해스님이 배출한
황벽 희운(黃蘗希運)스님이 대용(大用)을 얻었을 뿐, 그 나머지는
남의 말이나 따라 읊어대는 사람들이었다.
희운스님이 남원 혜옹(南院慧 )스님을 배출하였고, 혜옹스님이
풍혈 연소(風穴延沼)스님을 배출하였으며, 연소스님이 수산 성념
(首山省念)스님을, 성념스님이 분양 선소(汾陽善昭)스님을, 선소
스님이 자명 초원(慈明楚圓)스님을, 초원스님이 양기 방회(楊岐方
會)스님을 배출하였다.
방회스님은 처음 원주(袁州) 땅 양기산(楊岐山)에 살다가 뒤에
장사(長沙) 땅 운개산(雲蓋山)에 머물렀는데, 당시에 말하기를
"회해스님은 대기를 얻었고 희운 스님은 대용을 얻었지만, 둘 다
얻은 자는 방회스님뿐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스님께서 12년 남짓 두 법석에 계시면서 강령을 제창하고 납자
들을 맞아 지도하는 동안 많은 말씀을 남기셨으나 기록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형양(衡陽)의 수단(守端)스님이 말없이
여러 편을 기억하여 한 축(軸)의 책을 엮어 내었다. 나는 오래 전
부터 은혜로운 스님의 명성을 우러러 오던 차에 이 일로 수단스님
에게 가서 그 책을 구하여 향을 사루고 펴서 읽었다.
위대하시다. 대사의 기변(機辯)이여. 마치 거령신(巨靈神)이 태
화산(太華山)과 수양산(首陽山)을 쪼개 황하의 물살을 급히 흘려
내너 일찍이 막힌 적이 없게 한 듯하니 상상(上上)의 대승근기(大
乘根器)가 아니라면 어찌 여기에 이를 수 있으랴.
수단 스님이 나에게 서문을 쓰라고 명하시니 스님의 도가 천하
에 널리 퍼짐을 귀하게 여겨서이다. 그러나 방회스님의 명성과 도
는 식자들 사이에 깊게 알려져 모두들 들었을 것이므로 수식은 그
만두고 유서만을 사실대로 적을 뿐이다.
스님은 원주(袁州) 의춘(宜春) 사람으로 성은 냉씨(冷氏)이며,
담주 유양(瀏陽)의 도오산(道吾山)에서 머리를 깎았다. 속세 나이
54세에 운개산에서 돌아가셨으며, 그곳에 탑이 있다.
황우 2년(皇祐 2 : 1050) 중춘(仲春) 16일에
상중(湘中) 비구 문정(文政)이 쓰다.
원주 양기산 보통선원 회화상 어록
(袁州楊岐山普通禪院會和尙語錄)
강녕부(江寧府) 보녕선원(保寧禪院)
법제자 인용(仁勇)이 편집함
1.
스님께서 균주(筠州) 구봉산(九峰山)에 계실 때, 소(疏)를 받고
나서 법의를 입고 대중에게 그것을 들어보이면서 말씀하셨다.
"알계느냐! 모르겠다면 오늘 괜히 물빛 암소떼 속으로 뛰어들
어간 셈이다. 알았느냐! 균양(筠陽)의 아홉 구비에 부평초[萍實]
인 양기(楊岐)이다."
그리고는 법좌에 올랐는데, 그때 한 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오
니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늙은 어부는 아직 낚시도 던지지 않았
는데 팔짝 뛰는 고기는 파도에 부딪치면서 오는구나" 하자 그 스
님은 대뜸 악! 하고 할을 하였다. 스님께서 "말을 하지 그러느
냐" 하자 그 스님은 손뼉을 치며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용왕의 굉장한 바람을 쓰는그나"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느 가문의 곡조를 부르며, 누구의 종풍을 이었습니까?"
"말이 있으면 말을 타고 말이 없으면 걸어가지요."
"젊은 스님인데도 기지와 계산이 훌륭하시군요."
"그대가 늙은 것을 생각해서 30대만 때리겠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다리가 셋 달린 나귀가 절룰절룩 가는구나."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호남의 장로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인(人)과 법(法) 양쪽을 다 버린다 해도 납승 최고의 경계는
아니며, 부처와 조사를 둘 다 잊는다 해도 학인에게는 의심이 가
는 곳입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께 학인을 지도하시는지 모르겠습니
다."
"그대는 새 장로를 간파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생나무를 땔감으로 찍어다가 잎이 달린 채로 태워야
하겠군요."
"칠구 육십삼이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더 질문할 사람이 있느냐? 대중 속에서 한번 나와 봐라. 오늘
내 목숨은 그대들 손아귀에 달렸으니 이리 끌던 저리 끌던 한번
마음대로 해보아라. 어째서 그렇겠느냐. 대장부라면 대중 앞에서
결택(決擇)해야지 등뒤에서 마치 물에서 호로병을 누르듯 해서는
안되며, 대중 앞에서 증거를 내놔야지 얼굴이 불거져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있느냐, 있어? 나와서 결택해 보아라. 없다면 나만 손
해를 보았다."
스님께서 법좌에서 내려오자마자 구봉 근(九峰勤)스님이 붙들어
세우고는 말하였다.
"오늘은 기쁘게도 동참(同參)을 만났소."
"동참하는 일이란 어떤 일입니까?"
"구봉은 쟁기를 끌고 양기는 고무래를 끄는 것이오."
"바로 그럴 때 양기가 앞에 있습니까, 구봉이 앞에 있습니까?"
구봉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이 밀어제치면서 말하였다.
"동참이라 하렸더니 그게 아니었군."
2.
스님께서 절에 처음 들어가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양기산의 경계입니까?"
"외로운 소나무는 바윗가에서 우뚝하고, 원숭이는 산을 내려가
면서 운다."
"무엇이 그 경계 속에 있는 사람입니까?"
"가난한 집 여자는 대바구니를 들고 가고, 목동은 피리를 불면
서 물을 향해 돌아간다."
스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안개는 긴 허공으로 사라지고 바람은 큰 들판에서 일어나니 온
갖 풀이며 나무가 큰 사자후를 내어서 마하대반야(摩訶大般若)를
연설하고 3세 모든 부처님이 그대들 발꿈치 아래서 큰 법륜을 굴
린다.
알아들었다면 공을 헛들이지 않았겠지만, 몰랐다면 양기산의 산
세가 험하다 말하지 말라. 앞에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하나 더 있
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백장(白丈)스님은 불을 들고 발을 갈면서 불법대의를 설하였다
는데, 이것이 무슨 말이겟느냐? 나도 이틀 동안 벼를 심었는데 역
시 대단한 법문이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달마대사는 앞 이빨이 없다"라고
하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 가지 요점[一要]은 모든 성인의 그것과 똑같이 오묘한
데, 이것을 대중에게 보시하리라."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과연 비춤[照]을 잃었군."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마디 말[一言]은 모나면 모난대로 둥글면 둥근대로 하
는 것이니 만일 조금이라도 헤아렸다가는 십만 팔천 리나 틀린 것
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 마디 말[一語]은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꾸짖는다. 눈
밝은 사람 앞에선 잘못 거론하지 말아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 구절[一句]은 재빨리 착안해서 엿보아야 한다. 길다란
선상 위에서 숟가락 들고 젓가락 드는구나."
그리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물살 급한 강물에 낚시를 드리워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큰 자
리를 낚아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저 허공 밖으로 손을 놔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
는구나."
"아는 일은 어떤 일입니까?"
"구름이 고갯마루에서 일어나는구나."
"솜씨좋은 선지식은 역시 자연스럽습니다."
"이 말이나 외우는 놈아!"
그리고는 스님께서 말을 이으셨다.
"한 법도 보지 않는 이것이 큰 병통이다."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석가노인의 콧구멍을 뚫어버렸다. 몸을 벗어날 한 구절을 어떻
게 말하겠느냐. 물로 물을 씻지 못하는 곳에서 한마디 해보아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으셨다.
"지난날 산 아랫길로 다니지 말라 하더니 과연 애간장을 끊는
원숭이 울음소리를 듣는구나."
9.
상당하여 선상을 손으로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마음마음일 뿐이니, 마음이 부처로서 시방세계에서 가장 신령
한 물건이다. 석가노인도 꿈을 설명하였고, 3세 모든 부처님도 꿈
을 설명하였으며, 천하의 노스님들도 꿈을 설명하였다. 여러분에
게 묻노니 꿈을 꾸어본 적이 있느냐. 꿈을 꾸어보았다면 한밤중에
한마디 해 보라."
한참 잠자코 있더니 말씀하셨다.
"인간에게 진짜 소식이 있다 해도 나에게 차례대로 꿈을 설명해
보아라. 참구하라."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하늘 땅에 눌러앉으니 천지가 암흑하며 하나[一着]를 놓아주니
비바람이 순조롭다. 그렇기는 하나 속된 기운이 아직 없어지지 않
았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속의 시끄러움을 벗어버리려면 응당 옛 가르침을 보아야
한다 하는데, 무엇이 옛 가르침입니까?"
"천지에는 달이 밝고 푸른 바다엔 파도가 맑구나."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발밑을 보아야 한다."
"홀연히 넘실대는 큰 파도를 만났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一着〕를 놓아주어 네거리에서 종횡무진할 때는 또 어떻
겠느냐?"
그 스님이 대뜸 악! 하고는 손뼉을 한번 치자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 역전의 장수를 보라"
"풀을 쳐서 뱀을 놀래켰군요."
"그래도 모두가 알아야 한다."
스님께서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하나가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이 하나이다[一卽一切 一切卽一]"하고는 한 획을 긋고 말씀하셨
다.
"산하대지와 천하의 노스님이 산산히 부서졌는데 무엇이 여러분
의 본래면목이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칼은 공평하지 못한 일 때문에 보배 칼집을 떠나고,약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황금 병에서 꺼내진다."
악!하고 할을 한번 하고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더니 "참구하
라!" 하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가을 비가 가을 숲을 씻으니 가을 숲이온통 비취빛이구나.
슬프다. 부대사(傅大士)여, 어느 곳에서 미륵을 찾느냐."
1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박복하게도 양기산에 머문 뒤 해마다 기력이 쇠약해 간다. 찬
바람에 낙엽은 시들한데 그래도 옛친구 돌아오니 기쁘구나. 랄랄
라.
불 꺼진 나무토막을 끄집어내서 연기 나지 않는 불에다 던진
다."
1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게는 정통 종지가 없고, 발을 갈아 다같이 밥을 먹을 뿐이
다. 꿈을 말한 석가노인은 어디서 그 종적을 찾을까."
악!하고 할을 한번 하고 선상을 한 번 치더니 "참구하라!" 하
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범부도 성인도 없는데 부처와 조사가 어찌 성립하랴. 대중들이
여, 맑고 평화로운 세계에서는 시장에서 멋대로 물건을 빼앗는 것
을 허락하지 않는다."
1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 잠시 머무는 집의 담벽은 헐어 침상 가득 진주빛 눈발 쌓이
니 목을 움츠리고 가만히 탄식해 본다."
그리고는 한참 잠자코 있다가 "나무 밑에 살았던 옛 어른을 돌
이켜 생각해 본다." 하셨다.
그 뒤 담주 운개산 해회사에 머물면서 남긴 어록
[後住潭州雲蓋山海會寺語錄]
서주(舒州) 백운봉(白雲峰)에서
법제자 수단(守端)이 편집함
1.
스님께서 흥화사(興化寺)에서 개당할 때 부주(府主) 용도(龍圖)
가 스님에게 소(疏)를 건네 주니 그것을 받아들고서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부주 용도와 여러 관료가 여러분에게 제일의(第
一義諦)를 모두 설명했다. 여러분은 알아들었느냐. 알았다면 집과
나라가 편안하여 한 집안일 같겠지만, 몰랐다면 승정(僧正)에게
수고를 끼치노니, 승정은 표백(表白:唱導)에게 주어서 세상사람
이 알게 크게 읽도록 하라."표백이 소를 선포하고 나서 말하기를
"오늘은 훌륭한 관원(官員)들이 안개처럼 에워싸고 바다같은
대중들이 법회에 임하였습니다. 높은 중에서도 가장 높은 법문
[最上上乘]을 스님께서 베풀어 주십시오" 라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최상상승이라면 모든 성인도 비켜서야 하고 불조도 자취를 숨
겨야 한다. 어째서 그렇겠느냐. 그대들 모두가 옛 부처와 같기 때
문이다. 믿을 수 있겠느냐. 믿을 수 있다면 모두 흩어지거라. 흩
어지지 않는다면 산승이 여러분을 속일 것이다."
그리고는 드디어 법좌에 오라 향을 집어들고 말씀하셨다.
"이 향[一瓣香]으로 우리 황제의 성수(聖壽)가 길이 무궁하기를
축원합니다."
또 향을 들어올리고 말씀하셨다.
"이 향은 지부(知府) 용도와 그 관속들에게 올리노니 업드려 원
하옵건대 항상 국록을 받는 자리에 계시옵소서."
다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귀결점을 알았느냐. 모른다면 설명해 주어서 석상
산(石霜山) 자명(慈明)선사께서 법유(法乳)를 먹여 길러주신 은혜
에 보답하고자 하나 이제 나는 천지에 불 놓은 것을 면치 못하게
되었구나."
그리고는 마치매 향을 사루셨다.
정행대사(淨行大師)가 백추(白槌)를 치면서 말하기를 "법회에
모인 용상 대중은, 제일의(第一義)를 관찰해야 한다"고 하자 스님
께서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이는 벌써 두번째 세번째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대장부의 기상을 자부하지 않느냐. 그렇지
않는 자는 의심이 있거든 질문하라."
그러자 한 스님이 물었다.
"옛날에 범왕(梵王)이 부처님께 법을 청하자 하늘에서 네 가지
꽃비가 내렸는데, 부주(府主)가 법회에 오셨으니 어떠한 상서가
있겠습니까?"
"조각구름은 산 앞에서 걷히고 소상강(瀟湘江)물결은 절로 잔잔
하구나."
"대중이 은혜를 입었으니 학인은 감사의 절을 올립니다."
"머리 끊긴 뱃사공이 양주(楊洲)로 내려가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군사를 매복하고 무기를 휘두르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만 오
늘 당장의 일을 어떻습니까?"
"내가 인간세계에 와서 이렇게 솜씨좋은 선지식은 처음 보았
다."
그 스님이 손으로 획을 한 번 긋자 스님께서 "몸을 양쪽에 나누
어 보라" 하셨다.
이어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질문 있는 자는 나오너라.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수
승하다.
조사의 종지에 의거하여 법령을 내린다면 조사와 부처도 종적
을 숨기고 천하가 깜깜할 것인데, 어찌 여러분이 여기 서 있을 여
지를 용납하며 하물며 산승이 입을 벌리기를 기다리랴.
그렇긴 하나 우선 두 번째 기틀[第二機]에서라면 약간의 언어문
자를 설하고 큰 작용을 번거롭게 일으켜 움직이는 족족 완전한 진
실이다. 이미 진실이라 이름하나 진실을 여의지 않고 성립하였으
므로 그 자리가 바로 진실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생겨나 그
자리에서 해탈함을 바로 여기서 알아야 하는데, 이를 '시끄러운
시장 속에서 찰간대에 오르니 사람들 모두가 그것을 본다'고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말해 보라. 금과 금을 바꾸지 않는 한마디를 무어라고
해야겠는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나와서 엎어지고 뛰어
보아라. 없다면 오늘은 내가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나는 영광스럽게도 지부용도통판(知府龍圖通判)
과 여러 관속들로부터 운개산 도량에 머물러 달라는 청을 받았다.
이는 모든 관료의 원(願)이 깊고 커서 나라에 충신이 되어 법의
깃발을 세워서 위로 황제의 복을 장엄했다 할 만하다.
그러므로 모든 관속들은 산같이 장수를 누리면서 훌륭한 임금
을 길이 보좌하여 팔다리같은 신하가 되고 부처님의 시주가 되어,
모든 절의 큰스님과 법회에 모인 신도들과 함께 세세생생에 큰 불
사 짓기를 기원한다. 오랫동안 서 있느라 수고하였다. 몸조심하여
라."
2.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봄비가 골고루 적셔 주는데 한 방울 한
방울이 딴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더니 주장자를 들어서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알았느냐. 9년을 부질없이 면벽하니 늙어감에 더욱 마음만 고
달프구나."
3.
설날 아침에 상당하시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묵은 해는 이미 섣달을 따라가버렸습니다. 오늘 새 봄의 일은
어떻습니까?"
"발우 속이 가득하구나."
"그렇다면 윤달은 3년에 한 번씩 오고 9월이면 중양절(重陽節)
이겠군요."
"들불이 타지 않아서 봄바람이 부니 다시 살아나는구나."
"제방(諸方)에 이 말씀을 꼭 전하겠습니다."
"이 운개의 말후구 한마디를 어떵게 말하려느냐?"
"칠구 육십삼입니다"
"말이나 외우는 놈아!"
이어서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봄바람은 칼같고 봄비는 기름[膏]과도 같아서 율령(律令)이 올
바로 시행되니 만물의 정이 움직인다. 그대들은 실제의 경지를 밟
는 한마디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나와서 동쪽에서 솟고 서쪽에
서 잠기는 자리에서 말해 보아라. 설사 말한다 해도 양산(梁山)의
노래이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른 아침 맑음은 예나 지금이나 모두들 보아 왔는데 다시 어
떻냐고 묻는다면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다."
5.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티끌 하나가 이니 온누리를 다 거둬들
인다"하더니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이제 일어나는구나" 하셨
다.선상을 한 번 치고 말씀하셨다.
"산하대지가 여러분의 눈동자를 막아버렸다. 남에게 속지 않을
사람이 있거든 나와서 말해 보아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옥피리를 비껴 부니 천지가 요동하는데 이제껏 알아줄 이[知
音]를 만나지 못했구나. 참구하라."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몸과 마음이 청정하면 모든 경계가 청정하고, 모든 경계가 청
정하면 몸과 마음이 청정하다. 이 늙은이의 귀결점을 알겠느냐?"
그리고는 말씀하시기를 "강뭉에다 돈을 빠뜨리고 물 속을 휘젖
는구나"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이 일은 밤송이나 부들[蒲]을 삼키듯 선(禪)을 설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여기서 알아낸다면 불법이 천지처럼 현격하게
다르리라."
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삼춘(三春)이 끝나려 하니 사해(四海)가 맑게 트이고, 바람이
잠잠해져 물결이 고요하구나. 이런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
보라. 긴 것을 가지고 짧은 것에 보태는 한마디를 무어라 하겠느
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검은 바람은 큰 바다를 몇 번이나 뒤집었는가. 이제껏 고깃배
기우뚱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네. 참구하라."
9.
상당하여 주장자를 잡고 한 번 내려치더니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달마에게 참다운 소식이 있다해도 그것은 여러분
을 두 번째 기틀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참구하라."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날이 잠깐 개이니 물물이 화창하게 퍼진다. 발걸음을 드니 천
신(千身)의 미륵이요, 움직이며 작용하니 곳곳마다 석가인데, 문
수와 보현이 다 여기에 있다. 대중 가운데 남에게 속지 않을 사람
이 있거든 말해 보아라. 나는 밀기울까지 국수로 판다. 그렇긴 하
나 포대 속에 송곳을 가득 담았구나."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말 있음과 말 없음은 등넝쿨이 나무를 의지함과 같으니 문수와
유마는 손을 놓고 되돌아 간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 해도 금길[金
路]에 땜질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여기에 한마디가 더 있으니
잘못 꺼내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하하하, 이것이 무엇이냐? 큰방 안에
서 차나 마시거라" 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상당하여 주장자를 던지고는 말씀하셨다.
"석가노인이 가부좌를 하고 내가 횡설수설하는 것을 몰래 비웃
는다. 그렇긴 하나 세상은 공평하여 부지런함을 가지고 못난 것을
보완한다. 참구하라."
14.
관료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절로 돌아와서 상당하여 말씀하셨
다.
"석가느인이 선봉이 되고 미륵보살이 뒤를 따른다. 대중 가운데
힘을 쓸 수 있는 자가 있느냐? 나와서 내게 그 힘을 보여다오.
없다면 내가 스스로 신통을 보이겠으니 사나흘 드나들면서 보아
라.
수좌와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 여기에도 막히고 걸릴 도리가
있는가? 그대들이 승당 안에서 발우를 펼 땐 그대들과 함께 펴
고, 졸 땐 그대들과 함께 졸며, 서 있을 땐 그대들과 함께 서 있
다. 키 큰 사람은 법신이 길고, 키 작은 사람은 법신이 짧다. 미
륵의 운용과 가고 옴이 어느 곳인들 간격이 있으랴. 그렇기는 하
나 말해 보라. 내가 뱃머리에 있느냐, 배 끝에 있느냐? 대중 가
운데 간파해낸 영리한 납승이 있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평지에서는 험하다고 하나 누각에 오르고서야 먼 산
이 푸름을 깨닫는다[人人盡道平地險 登樓方覺遠山靑]. 참구하라."
1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눈이 와서 그 어디나 눈이 부시게 깨끗한데 황하수는 꽁꽁 얼
어 실오라기만한 흐름도 끊겼다. 빛나는 햇빛 속에서 매서움[烈]
을 쏟아내야만 하니, 매서움을 쏟아냄이여. 나타(那陀 : 비사문
天)의 머리 위에서 가시덩쿨을 먹고 금강역사의 발 아래서 피를
흘려낸다. 참구하라."
1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저울추를 밟으니 무쇠처럼 딱딱한데 벙어리는 꿈을 꾼들 누구
에게 말하랴. 수미산 꼭대기에는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대고 큰 바
다 밑바닥에선 뜨거운 불을 만났다. 참구하라."
17.
상당하여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강호의 오뉴월 그리워하지 말고 낚싯줄 거두어 돌아가거라."
1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선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그저 먹고 자기를 조하할 뿐이
다. 진동하는 하늘의 우뢰를 쳐서 움직인다 해도 그것은 반푼어치
도 못된다."
19.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한마디에 몸을 바꿀만한 옛사람의 한
마디 공안을 들어 대중에게 보시하노라" 하더니,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입은 그저 밥 먹기 만을 좋아할 뿐이로구나" 하셨다.
20.
양기 전(楊岐詮) 노스님이 찾아오자 스님이 상당하여 말씀하셨
다.
"꽃을 들어 부촉하니 당사자[當人]를 굴복시켰고, 면벽 9년에
오랑캐가 중국말 하니 당사자들로서는 천지를 휘어잡았다. 말해
보라. 무엇이 천지를 휘어잡는 한마디인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면 내가 손해를 보았다."
21.
양전제형(楊 提刑)이 산 아래를 지나가자 스님께서 나아가 맞
이하였더니, 제형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누구의 법을 이었습니까?"
"자명(慈明)대사를 이었습니다."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분의 법을 이었습니까?"
"같은 발우에 밥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보지 못했군요."
스님이 무릎을 누르면서 말하였다.
"어느 점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양전제형이 크게 웃자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제형이라야 되겠
소" 하였다.
다시 "절에 들어가 향을 사루시지요" 하니 양전제형은 "기다려
주십시오. 돌아가겠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스님께서 차와 글을 드리니 양전제형이 말하였다.
"이런건 되려 필요치 않습니다. 무슨 무미건조한 선[乾 底
禪]이 있기에 약간만 보기도 힘드는지요?"
스님께서 차와 글을 가르키며 말씀하셨다.
"이것도 필요치 않다면서 더구나 무미건조한 선이겠습니까?"
양전제형이 머뭇거리자 스님께서 게송을 지으셨다.
왕신(王臣)으로 나타내보이니 불조가 어찌할 바를 모르네
미혹의 근원은 지적하려고 숱한 사람을 죽였다네.
示作王巨佛祖罔措 爲指迷源殺人無數
그러자 양전제형이 말하기를 "스님은 무엇 때문에 자신을 겁탈
하십니까?" 하니 스님께서 "원래 우리집 사람이었군" 하셨다. 양
전제형이 크게 웃자 스님께서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셨다.
22.
만수(萬壽)스님이 먼저 도착하고 이어서 편지가 이르자, 스님께
서 물었다.
"만수봉(萬壽峰) 앞의 사자후를 이 사람〔當人〕이 되받아치느
일은 어떠한가?"
"펄쩍 뛰어 33천에 오릅니다."
"그렇다면 내게 당장 들킬 것이다."
"좀도둑이 크게 패했습니다."
"두번 간파하지는 않을 터이니 앉아서 차나 마시게."
23.
용흥(龍興)의 자(孜) 노스님이 돌아가시자 한 스님이 편지를 가
지고 오니 스님께서 물었다.
"세존께서는 입멸하여 곽에 두 발을 보이셨는데, 스님께서는 돌
아가시면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냐?"
그 스님이 말이 없자 스님이 가슴을 치면서 "아이고! 아이
고!" 하였다.
24.
자명스님이 돌아가시자 한 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왔다. 스님께
서는 대중을 모으고 초상화를 걸어놓고 장례를 거행하려 하셨다.
스님께서 초상화 앞에 이르시더니 좌복을 들고서 "대중들이여, 알
겠는가?" 하시고는 이윽고 초상화를 가르키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지난날 핼각할 때 이 노스님께서 120근이나 되는 짐을 내
몸 위에 놓아 두셨는데 지금은 천하태평을 얻었다."
대중을 돌아보시면서 "알겠느냐" 하였는데 대중이 말이 없자 스
님께서는 가슴을 치면서 말씀하셨다.
"아아, 슬프다. 바라옵건대 맘껏 드시옵소서."
25.
자명스님의 제삿날에 재를 열어 대중이 모이자 스님께서는 초상
화 앞으로 나아가셨다. 두 손으로 주먹을 모아 머리 위에 얹고,
좌복으로 한 획을 긋더니 일원상(一圓相)을 그리셨다. 이어서 향
을 사루고는 세 걸음을 물러나 큰절을 하시니 수좌가 말하였다.
"괴이한 짓을 날조하지 마십시오."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스님께선 괴이한 짓을 날조하지 마십시오."
"토끼가 소젖을 먹는구나."
제2좌(第二座)가 앞으로 나가 일월상을 그리고 이어서 향을 사
루고는 역시 세 걸음을 물러나 큰절을 하자, 스님께서는 그 앞으
로 가서 듣는 시늉을 하셨다. 제 2좌가 무어라고 하려는데 스님께
서 뺨을 한 대 치고는 "이 칠통이 횡설수설하는구나" 하셨다.
26.
무천(武泉)의 상(常) 노스님을 전송하러 문을 나왔다가 물으셨
다.
"문을 나셨으니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겠는데, 집에 도착하는 한
마디를 무어라고 말하겠습니까?"
"스님께선 주지나 잘 하시오."
"이렇다면 몸이 쓸쓸한 그림자를 따라가며 발이 크니 짚신도 널
찍하겠군요."
"스님께서 밭이나 잘 갈아두시오."
"토끼가 언제 굴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까?"
27.
하루는 신참승 셋이 찾아왔는데 스님께서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반드시 지혜로운 이가 있다…하였는데" 하고는 좌복을 들고
말씀하셨다.
"참두(參頭 : 수좌)는 이것을 무어라고 부르겠느냐?"
"좌구(坐具)입니다."
"참말이겠지."
"그렇습니다."
"이것을 무어라고 부르겠느냐?"
그 스님이 "좌구입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좌우를 돌아보더니
"참두가 되려 안목을 갖추었구나" 하고는 다시 제2좌에게 물으셨
다.
"천리길을 가려면 한 걸음이 최초가 된다 하는데 무엇이 최초의
한 마디이더냐?"
스님께서 한 손으로 한 획을 긋자 그 스님은 "끝났습니다[了]"
하였다. 스님께서 두 손을 펴자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
께서 "끝났다" 하셨다.
다시 제3좌에게 물으셨다.
"요즈음 어디서 떠나 왔느냐?"
"남원(南源)에서 왔습니다."
"내가 오늘 그대에게 간파당했구나.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28.
하루는 신참승 일곱 명이 찾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진이 완벽하게 쳐졌는데 솜씨좋은 장수는 무엇 때문에 진을 나
와 겨뤄보지 않느냐."
한 스님이 좌구로 갑자기 후려치자 스님께서 "훌륭한 장수로군"
하셨다. 그 스님이 다시 후려쳤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좌
구, 두 좌구 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스님들이 무어라 말하려는데 스님께서 등을 돌리고 섰다. 그가
다시 후려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내 말이 어디에 귀결되는가."
그 스님이 얼굴을 가르키면서 "여기 있습니다"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30년 뒤에 눈 밝은 사람을 만나거든 잘못 들먹이지나 말아라.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거라."
29.
하루는 도오산의 공양주 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봄비가 잠시도 쉬지 않고 내리느데 물흐름〔波瀾〕을 거슬리지
말고 한번 말해 보아라."
"편지를 조금전에 이미 전해드렸습니다."
"이것은 도오 것이고, 저것은 화주(化主) 것이로구나."
공양주가 가르키면서 "봄비가 계속 옵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손
뼉을 치며 크게 웃더니 말씀하셨다.
"반푼어치도 안되는군."
공양주가 대뜸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눈먼 놈아, 조금전에 반푼어치도 안된다고 했는데 그렇게
악을 써서 무얼 하려느냐."
공양주가 손뼉을 한 번 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30.
하루는 석상산의 공양주 스님이 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정벌하러 가는 장수가 길을 빌려 지나가는구나. 방비가 이미
완벽한데 무엇 때문에 나와 한판 붙어보지 않느냐."
"지난날엔 도중에서 잘못 찾았더니 오늘은 노련한 선지식을 친
견하는군요."
"내 우선 조금만 싸움을 걸겠다."
공양주가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는 "그렇게 허
둥지둥해서 무얼 하려느냐" 하셨다.
공양주가 좌구를 가지고 한 획을 긋자 스님께서 "재가 끝나고
종을 치는구나" 하셨다.
공양주가 "허(噓)!" 하자, "이것일 뿐 다시 더 있겠느냐" 하셨
는데 공양주가 말이 없자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패전한 장수는 목을 베지 않는 법이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
셔라."
3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양기산에 오는 길은 험한데 어떻게 귀한 걸음을 하셨습니까?"
"스님께선 다행히도 대인이십니다."
"에, 에〔 〕."
"스님께선 다행이도 대인의 스승이십니다."
"나는 요즈음 귀가 먹었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셔라."
3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가을 빛이 완연한데 아침에 어디서 떠나 왔느냐?"
"지난 여름에는 상람사(上覽寺)에 있었습니다."
"앞길을 밟지 않는 한마디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두겹의 공안이군요."
"그대의 대답이 고맙네."
그 스님이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서 이런 헛것을 배웠느냐?"
"눈 밝은 큰 스님은 속이기 어렵군요."
"그렇다면 내가 그대를 따라가리라."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고향 사람인 것을 생각해서 30대만 때리겠다."
33.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구름은 깊고 길은 험한데 어떻게 귀한 걸음을 하셨습니까?"
"하늘은 사방에 벽이 없습니다."
" 짚신 꽤나 닳렸겠군."
그 스님이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 "한번,두번,
할을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하셨다. 그 스님이 "그대는 이 노승
을 보아라"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주장자도 없잖아!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3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ㅆ은 낙엽더미가 구름처럼 쌓였는데 아침에 어디서 떠나 왔느
냐?"
"관음사(觀音寺)에서 왔습니다."
"관음의 발밑을 한마디로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조금전에 이미 만나 보았습니다."
"만나 본 일은 어땠느냐?"
그 스님이 말이 없자 " 제2좌가 참두(參頭)수좌 대신 일러 보아
라" 하셨는데 또 대답이 없자 "피차 서로를 바보로 만드는구나"
하셨다.
35.
하루는 신참승 여덟 명이 찾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일자진(一字陣)이 완벽하게 쳐졌는데 솜씨가 좋은 장수는 무엇
때문에 진을 나와서 나와 겨뤄보지 않느냐?"
한 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말을 돌이켜 보십시오."
"나는 오늘 말[馬]을 껴안고 깃대를 끌겠다."
"새로 계를 받은 이가 후퇴를 알리는 북을 칩니다."
"말해 보아라"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다시 "말해 보아라" 하셨는데 그 스님이
손뼉을 한번 치자 "그대의 대답에 감사하네" 하셨다.
그 스님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장수가 용맹하지 못하면 화가 삼군(三軍)에 미친다. 우선 앉아
서 차나 마시게."
양기 방회스님 어록에 제(題)한다.
양기산 방회 노스님
세 다리 나귀를 타고
물빛 암소떼 속에 들어가
고삐잡고 소를 끌었네
밭에다 씨앗 뿌려
밥을 먹고
옥피리 비껴 불며
밤과 포〔栗浦〕를 배불리 먹으니
사십 년 이래로
총림에서 대단하게 여겼네
듣지도 못했는가
3세 모든 부처님이 꿈을 말하였고
제방의 큰 스님도 꿈을 말했다 한 것을
이는 양기스님이 당일 하신 말씀이나
스님 자신은 꿈을 꾼 뒤에
다시 깨었는지는 모르겠네
맑은 가풍을 다시 진작하고
옛 법령을 거듭 시행하려는가
눈 밝은 사람이라면
이 어록을 한번 볼 일이다.
원우 3년(元祐 3 :1088) 입춘(立春)일
무위자 양걸(無爲者楊傑)이 망해루(望海樓)에서 쓰다.
양기방회 화상 후록
(楊岐方會和尙後錄)
1.
스님께서 처음 절에 들어가 개당하실 때 소(疏)를 선포하고
나서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여러분이 해산해버린다 해도 벌써 두 번째 세
번째에 떨어질 것이며, 해산하지 않는다면 오늘 여러분에게 새
빨간 거짓말을 하리라.
의양(宜陽)에 물이 수려하니 부평초가 초강(楚江)에 가득하
다[宜陽秀水 萍實楚江]."
드디어 법좌에 올라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 향이 하나로 우리 황제 천년토록 성수(聖壽)를 누리시고
불일(佛日)이 영원히 창성하기를 받드옵니다. 다음 향 하나로는
주현의 관료와 신심있는 신도들을 위해 바칩니다.
이 향의 귀착점을 여러분은 아느냐? 귀착점을 안다면 더 이상
두입술을 벌릴 것이 없겠지만, 모른다면 먼저는 남원(南源)에 머
물렀고, 다음으로 석상(石霜)에 머물렀으며, 지금은 담주의 흥화
선사(興化禪寺)에 머무는 분을 위한 것이다.여러분은 흥화선사를
아느냐? 모른다면 윗 조사에게 느끼침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고는 가좌부를 하고 앉았다.
유나(維那)가 백추(白槌)를 친 후에 말씀하셨다.
"벌써 제2의(第二義)에 떨어졌구나. 대중들이여 그냥 해산
했다면 그래도 좋았으려만 이미 해산을 하지 않았으니 의심이
있거든 질문하라."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어느 집안의 곡조를 부르며 누구의 종풍을 이으셨
는지요."
"강 건너서 북을 치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흥화의 맏이며 임제의 자손이시군요."
"오늘은 재가 있으니 경찬(慶讚)을 베풀겠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다시 질문할 자가 있느냐?
그러므로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수승하다 하였다"
하시고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백천의 부처님들과 천하의 노스님들이 세간에 출현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을 곧장 지적하여 견성성불하게 하였다. 여기에서 알
아낸다면 백천의 모든 부처님과 자리를 함께 하려니와[同參]여기
에서 알아내지 못한다면 내가 구업 짓는 일을 면치 못하리라.
더두나 여러분은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의 부촉을 받은 사람이니
어찌 스스로 퇴굴하려 하는가. 그래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말
해 보라. 영산의 마지막 한마디〔末後一句〕를 무어라고 해야겠느
냐? 기억하지 못한다면 오늘은 낭패를 보았다.
나는 그저 '방회'로서 구름 깊은 곳에 못난 자신을 숨기고
대중을 따라 세월이나 보내고 싶었으나 군현의 관료들뿐만 아
니라 신도들도 모두 3보(三寶)를 숭상하여 부처님의 수명을 잇
고 법이 오래 머물도록 하기 위해 산승에게 이 절에 주지하게
하였으니 역시 작은 인연이 아니다. 터럭만큼의 착함을 다하여
위로는 황제의 만세를 축원하고 재상들의 천추를 빈다.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 오늘 일은 어떤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내년에 새 가지가 돋아나 쉴새없이 봄바람에 흔들리리니 기
다려 볼 일이다."
2.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머리는 이고 있으나 책은 짊어지지 않았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 하였다" 하고는 주장자
를 들어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대천세계에 산산이 부서졌다. 발우를 들고 향적세계(香積世
界)에서 밥을 먹어라."
3.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움직이지 않는 분[不動尊]입니까?"
"대중들이여, 일제히 힘쓰도록 하여라."
"그렇다면 향과 등불이 끊이지 않겠군요."
"다행이 관계가 없다."
스님께서 다시 말을 이으셨다.
"모든 법이 다 불법이어서 법당은 절문[三門]을 마주하고,
승당은 부엌을 마주하고 있다. 이것을 알았다면 주장자와 발우
를 걸머지고 천하를 마음대로 다녀도 되겠지만 모른다면 다시
면벽(面壁)을 하도록 하라."
4.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스님께서는 "도둑질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하고는 다시 말
씀하셨다.
"만법은 마음의 빛이며 모든 인연은 다만 본성의 밝음이라.
미혹한 이 깨달은 이가 본래 없음을 이 자리에서 알면 될 뿐이
니, 산하대지에 무슨 허물이 있으랴. 산하대지와 눈앞에 있는
법 모두가 여러분의 발꿈치 아래 있으나 스스로가 믿지 않을
뿐이니, 가히 옛날의 석가가 이전 사람이 아니며 지금의 미륵
이 뒷사람이 아니라 하겠다.
그러나 이런 나를 두고 모자를 사놓고 머리를 맞춰본다[買帽
相頭]하리라."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은 6근(六根)이며 법은 6진(六塵)이다. 이 두 가지는
마치 거울에 낀 때와 같아서 때가 다할 때 빛이 비로서 나타나
듯, 마음과 법을 둘 다 잊으니 성품 그대로가 진실이다."
그리고는 선상을 손으로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산하대지가 어디에 있느냐. 자, 남에게 속지 않을 한마디를
무어라고 하겠느냐? 말할 수 있다면 네거리에서 한마디 해 보
아라. 없다면 내가 오늘 손해를 보았다."
6.
상당하여 "힌 티끌 일기만 하면 온누리를 다 거둬들인다" 하
더니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수미산 위에서 말을 달리고 큰 바다 속에서 깡충 뛰나 시끄
러운 시장 가운데 홀연히 이것에 부딪치고서야 사람들은 그것
이 있음을 안다.
말해 보라. 깜깜한 속에서 바늘을 뚫는 한 구절을 무어라고
하겠는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평소에 입을 자주 열려 하지 않음은 온몸에 누더기를 입었
기 때문이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은 만가지 경계를 따라 바뀌는데, 바뀌는 그곳은 실로
오묘하고 흐름 따라 본성을 알아내니 기쁨도 근심도 없다."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천당 지옥이 그대들 머리를 덮었고, 석가노인이 그대들 발
꿈치 아래 있다.
밝음을 마주하고 어둠을 대하고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있는
줄 아니 시끄러운 시장 안에서 콧구멍을 붙들어 오너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 앞에 나와서 한번 기상을 뿜어 보라. 없다
면 내가 오늘 손해를 보았다."
8.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가 면벽했던 뜻이 무엇이니까?"
"인도 사람은 당나라 말을 모른다."
"어제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하늘이 개었구나 하는 정도는
사람들도 말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격식을 벗어난 한마디
를 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두 손으로 무릎을 누르며 앉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힘을 다해서 말했으나 반쯤 밖에 안되는군요."
"몸을 두 곳에 나누고 보라."
그 스님이 시자를 가르키면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신을 신지 않으셨습니까?"
스님께서 "이 칠통아!" 하자, 그 스님은 절을 하고 대중에
게로 돌아갔다. 이어서 스님께서 들려주셨다.
"외도가 부처님께 물었다. '말이 있음도 묻지 않고 말이 없
음도 묻지 않겠습니다' 하니 세존께서 한참 말없이 계시자 외
도가 찬탄하였다. '세존께서는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
름을 열어주셔서 저를 깨닫아 들게 하셨습니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세존께 묻기를 '외도는 무엇을 보았기
에 자기를 깨달아 들게 하였다고 하였습니까?' 하니 세존께서 말
씀하셨다. '세간에서 훌륭한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간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도오사형(道吾師兄)은 말하기를 '세존의 한 눈은 3세에 통
하고, 외도의 두 눈동자는 다섯 하늘을 뚫었다' 하였는데, 도
오사형이 훌륭하긴 훌륭하다만 어떻게 옛 사람과 함께 기상을
토해내겠는가.
나는 말하건대 금과 놋쇠를 가려내지 못하고, 옥인지 돌인지
를 분간하지 못했다고 하리라.
대중들이여, 알고자 하는가. 세존께서는 자기를 돌보지 아니
하고 남을 위했으며, 외도는 재를 차려놓은 김에 축사를 한마
디 하였다."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고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였다.
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묘하고 담담한 법문[總持]이신 부동존(不動尊), 세간에 희유하
신 수능엄왕(首楞嚴王)이시여. 억겹토록 쌍아온 저의 뒤바뀐 생각
을 녹이시어 아승지겁을 거치지 않고 법신를 얻게 하여지이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들고 말씀을 이으셨다.
"주장자가 어찌 법신이 아니랴. 그대들은 알겠는가. 내가 오늘
진창에서 자빠지고 구르고 하는 것은 그대들의 머리통을 밀가루
푸대 속에 처넣기 위해서이다. 30년 뒤에 눈 밝은 이 앞에서 이
이야기를 잘못 들먹이지 말아라."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고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였다.
10.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는 통하여
막힘이 없다" 하고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주장자가 여러분의 면전에서 굉장한 신통을 드러내는구나."
이어서 주장자를 던지면서 말씀하셨다.
"곧장 천지가 진동하며 찢어지고 대지가 여섯 번 요동하였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모든 것을 아는 지혜는 청정하다 함을."
다시 선상을 손으로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30년 뒤에 눈 밝은 사람 앞에서 내가 용두사미(龍頭蛇尾)였다
고 말하지 말라."
11.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비오고 천둥 칠 기세에 만물이 일어나
는구나"허더니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 이것이 무엇이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늙은 어부는 하루종일 부질없이 낚시 드
리웠다가 낚시줄을 거두어 되돌아가네" 하고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치고 "참구하라" 하셨다.
12.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보좌(寶座)에 오르시니 사부대중이 법회에 임하였습
니다. 서쪽에서 오신 뜻을 분명하고도 정확히 스님께서는 드러내
[擧唱] 주십시오."
"구름이 걷히니 산악이 수려하고 물이 흘러드니 사해가 드넓
다."
"이 한마디는 오늘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이제껏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습니다."
"발꿈치 아래의 한마디는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3배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스님의 기봉을 드러내겠
습니까?"
"다시 무슨 일이 있느냐?"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는 "이 스님의 말을 기억하라" 하
셨다.
또 물었다.
"옛 성인에게는 팔만사천의 법문(法門)이 있어 문마다 진리를
본다 하였는데, 학인은 무엇 때문에 부딪치는 곳마다 막힙니까?"
"왜 스스로 퇴굴하느냐."
"긴요한 점을 스님께서 드러내 주십시오."
"노주(露柱)가 깡충 뛰어 33천에 오른다."
"법당을 잡고 앞산으로 가버리면 발꿈치 아래서 서천까지는 거
리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는 그대의 질문에 나가떨어졌다."
"솜씨 좋다[無鼻孔 : 흔적을 남기지 않음] 하였더니…."
"30년 뒤에 스스로 얼굴이 붉어지리라."
스님께서 말을 이으셨다.
"'바람은 나뭇가지를 울리지 않고 비는 흙덩이를 때리지 않는구
나' 하였는데, 이는 속인의 경계[時節]이다. 어떤 것이 경계에 상
응하는 구절이냐?"
그리고는 선상을 한 번 내려치고는 "그저 미륵이 하생할때까지
기다려라" 하셨다.
13.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호부(虎符 : 구리로 호랑이 모습을 만든 거으로 군사를 징발하
는데 쓰는 도장)와 금인(金印 : 장군이 쓰는 금으로 만든 도장)을
스님께서 몸소 쥐셨으니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일은 어떠한지요?"
"장군이 명령을 거행하지 않는다."
"장막 안에서 계획을 세우는 일은 스님이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
까?"
"금주(金州)의 객(客)이 하지."
"다행히도 인간, 천상을 마주하였으니 굉장한 일을 구경하고 싶
습니다."
"내 콧구멍이 그대 손아귀에 있구나."
"제 목숨도 스님 손에 있습니다."
"너는 괜히 깡충거려 무엇 하려느냐?"
"언덕을 내려오면서 달리지 않으면 빠른 속도를 얻기 어렵습니
다."
그리고는 손뼉을 한 번 치고 절을 올리니 스님께서는 "이 한 사
람의 장근을 보아라" 하셨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람과 서리는 대지를 긁어대고 차가운 낙엽은 허공에 나부끼
는데 봄날 인연에 끄달리지 말고 본래면목을 가져 오너라."
그리고는 선상을 손으로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내년에 다시 새가지가 돋아나 봄바람에 쉴새없이 흔들리리니
기다려 볼 일이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게 비결이 하나 있어 범부와 성인의 길이 끊겼으니 유마거사
는 까닭없이 많은 말을 하였구나."
15.
상당하자 공양주 스님이 물었다.
"눈길이 아득한데 어떻게 인도해야 합니까?"
"안개가 수려한 천 산을 둘러쌌으니 구불구불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서 간다."
"홀연히 스님의 뜻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무어라고 말해 주어야
합니까?"
"큰 들판엔 봄빛이 분명하나 바위 앞은 꽁꽁 얼어 녹지 않았
다."
그 스님이 일월상을 긋고는 "홀열히 이런 사람을 만나면 또 어
떻게 하시렵니까?" 하니 스님께서 얼굴을 비틀었다.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께서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
고는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느냐?"
그 스님이 큰 절을 하자, 스님께서는 "돌아오면 너에게 30대를
때려야겠구나" 하셨다.
스님께서 계속하여 "내가 명령하는 것은 이미 말 이전에 있다.
어떤 것이 올바른 법령이더냐?" 하더니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
고는 바로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물수리[ ]를 떨어뜨리는 화살과 교룡을 베는 칼에 주전장수는
스스로 패하여 말을 껴안고 깃대를 끈다. 집안이 편안하고 나라가
선 곳에서 한마디 할 사람이 있느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태평은 본래 장군이 이룩하는 것이나 장
군에게는 태평성대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시고는 악! 하
고 할을 한 번 내질렀다.
17.
상당하자 세속의 선비가 물었다.
"사람의 왕과 법이 왕이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낚시배 위의 사씨네 셋째 아들[謝三郞]이다."
"이 일은 이제 스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만 운개 가풍의 일은
어떻습니까?"
"머리에 두른 삼베모자를 벗어 술 값을 치른다."
"홀연히 손님이 찾아오면 어떻게 대접해야 합니까?"
"두잔, 석잔, 한가한 일이니 취한 뒤에는 주인이 남을 웃길 것
이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법이 다 불법이다" 하고는
선상을 손으로 한 번 내려치며 말씀하셨다.
"하늘을 한 바퀴 도는 매[ ]는 무엇과 같이 생겼는가. 만리에
구름 한 점만이 떠 있구나."
18.
상당하여 손으로 선상을 치고는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낚시대가 다 쪼개져 대나무를 다시 재배하려는데
일하는 것을 계산하지 않아야 바로 쉴 수 있다."
1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가이없는 국토에 나와 남이 털끝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고, 십
세고금의 처음과 끝이 지금 당장의 생각을 여의지 않았다."
선상을 손으로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석가노인은 나이가 몇이나 되었는지 아느냐? 알았다면 인간천
상에 자유롭게 출입하겠지만, 모른다면 내가 말해 주겠다. 여래는
2천년."
2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하늘 땅 붙잡기를 몇 만번이었던가. 문수 보현이 어찌 볼 수
있으랴. 오늘은 그대들을 위해 거듭 설명해 주노니 남산에서는 자
라코 독사를 잘 살필 일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려쳤다.
21.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가 일체[一卽一切]요, 일체가 하나
[一切卽一]이다" 하고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산하대지를 삼켜버렸으니 과거 미래의 모든 부처님과 천하의
노스님이 모조리 이 주장자 끝에 있다."
주장자로 한 획을 긋고는 "할(喝) 한 번도 필요치 않다" 하셨
다.
2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화살을 전하여 명령을 내리니 석가노인이 선봉을 서고,
보리달마가 보리가 되어 진(陣)의 형세가 이미 완벽하니 천하가
태평하구나. 말해 보라. 걸음을 떼지 않는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
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한 가지 일을 겪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나지 않는다.
참구하라."
2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하늘은 하나[一]를 얻어 맑고, 땅은 하나를 얻어 편안하며, 군
왕은 하나를 얻어 천하를 다스린다. 납승은 하나를 얻어 무얼 하
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발우 입이 하늘을 향하였다.
2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마음이 만가지 경계를 따라 변하는데 변하는 곳은 실로 깊고
묘하다."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하였다.
"석가노인이 초명( 螟)벌레에게 잡혀 먹혔다. 기쁘다! 천하가
태평해졌구나."
그리고는 악!하고 할을 한 번 내질렀다.
2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때맞은 비가 주룩주룩 내려 농사꾼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물물
마다 찬란하니 금을 금과 바꿀 필요가 없다. 참구하라."
2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항상하다.석가노인
의 콧구멍은 하늘을 돌고, 누지여래(樓至如來)의 두 다리는 땅을
밟았다. 말해 보라. 이 두사람에게 허물이 있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개는 문득 짖고 소는 쟁기를 끈다. 납승이 그래가지고는 껍데
기도 못 더듬어 본 것이다."
27.
상당하여 대중을 돌아보며 악!하고 할을 하고는 주장자를 세워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맑고 평화로운 세계에서는시장에서 마음대로 빼앗는 것을 허락
하지 않는다."
2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석가노인이 처음 탄생했을 때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고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르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르켰다.
요즈음 납자들은 이것을 본떠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
니 나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러분을 위해 본보기를 지어주겠
다."
한참 잠자코 있더니 "양(陽)의 기운이 움틀 때는 굳은 땅이 없
다" 하셨다.
2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미륵, 참 미륵이여. 몸을 천백억으로 나누어서 당시 사람들에
게 때때로 보이나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구나."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던지고는 바로 방장실로 돌아가셨다.
30.
상당하여 "향상일로(向上一路)는 모든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신 반산(盤山)스님의 말씀을 들려주더니 "입에서 집착을 냈구
나" 하셨다.
또 "학인이 육신만 수고롭게 하는 것과 같구나" 하신 말씀에 대
해서는 "반산스님의 이러한 말씀도 자기 때문에 남을 방해한 것이
다" 하셨다.
3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미륵, 참 미륵이여. 천백억으로 몸을 나투어서 때때로 당시 사
람들에게 보여 주었으나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잡아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주장자가 어찌 미륵이 아니랴. 여러분은 보았느냐. 주장자가
눕는 것은 미륵이 빛을 놓아 대지가 진동함이며, 주장자가 서는
것은 미륵이 빛을 놓아 33천을 비춤이다. 주장자가 눕지도 서지도
않음은 미륵이 여러분의 발꿈치 아래서 여러분을 도와 반야를 설
명함이다. 알았다면 콧구멍을 잡고 발우 속에서 한마디 해 보아
라. 아는 이가 없다면 내가 손해를 보았다."
3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의 한마디 말에는 범부와 성인이 함께 들어 있다. 낚시를 파
하고 낚시줄을 거두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3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이 3월 2일이구나. 구담(瞿曇)이 깨어나지도 않고 꽃가지
를 들고 여러 이야기를 하니 가섭은 취(醉)한 채로 다시 끝말〔末
後語〕을 하였다. 이 이야기를 잘못 들먹여서는 안된다."
3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아침에는 개었다가 저녁에는 비가 오니 백성들이 임금의 다스
림을 기뻐한다. 구담노인은 아직 뒷말을 하지 않았으니 내가 오늘
대중을 위해 말해 주리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태평은 본래 장군이 이룩하는 것이나 장군에게는 태평을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감변(勘辯)
1.
하루는 연삼생(璉三生)이 찾아오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차가운 바람 매섭고 붉은 낙엽 허공에 나부끼는데 조실(祖室)
의 고상한 무리여, 아침에 어디를 떠나왔느냐?"
"공양을 하고서 남원(南源)을 떠나왔습니다."
"발 밑의 한마디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연삼생이 좌구를 한 번 집어던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뿐이냐, 다른 것이 더 있느냐?"
연삼생이 몸을 빼는 시늉을 하자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하
셨다.
2.
신참승 두 사람이 찾아오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봄비가 잠깐 그쳤으나 흙탕물은 마르질 않았다. 행각하는 고상
한 사람이여, 무슨 말을 하려느냐?"
한 스님이 말하였다.
"지난날 옛 사찰을 떠났다가 오늘에야 스님의 얼굴을 뵈옵니
다."
"어디서 이런 첫마디를 외워왔느냐?"
"스님께선 다행히도 대인이십니다."
"발 밑의 한마디를 무어라고 하겠느냐?"
그 스님이 좌구를 한 번 내려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내가 향을 사르며 공양해야겠구나."
"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군요."
스님께서 좌구를 들고 말씀하셨다.
"두번째 행각승이여, 이것을 무어라고 부르겠느냐?"
"총림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만나기 어렵지.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3.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낙엽은 바람에 떨어지는데 아침에 어디를 떠나 왔느냐?"
"공양을 하고 남원을 떠나 왔습니다."
"발 밑의 한마디를 무어라고 하겠느냐?"
"근심있는 사람은 근심있는 사람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르지 제방을 위해서 드러낼[擧楊]뿐이다."
"이 무슨 마음이십니까?"
"내 찬탄은 듣지 못한다."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4.
하루는 신참승 몇 사람이 찾아와 만난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이미 완벽하게 진을 쳐놓았는데 솜씨좋은 장수는 어째 나와서
나와 붙어보지 않느냐."
한 스님이 좌구 하나를 던지자 스님께서 "솜씨좋은 장수로구나"
하셨다.
그 스님이 다시 좌구 하나를 던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좌구, 두 좌구, 구래서 어쩌겠다는거냐?"
그 스님이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께서 등지고 돌아섰다. 그 스님
이 또 좌구 하나를 던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내 말이 어디에 있느냐?"
"여기에 있습니다."
"30년 뒤에 스스로 깨닫을 것이다. 나는 그대 손아귀에 있으니
우선 앉아서 차나 마시게."
스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여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신정(神鼎)에 있었습니다."
"그대가 신정에서 왔다는 것은 벌써 알고 있었네만 다시는 감히
묻지 않겠네."
스님께서 다음날 법을 묻는 자리[參]에서 말씀하셨다.
"어제는 신참 몇이서 찾아와 내게 좌구를 세 번이나 던졌는데
깨달은 곳은 있는 듯도 하였다."
그리고는 앞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낭패를 본 곳은 여러분이 다 알겠지만 신참이 이긴 곳을
여러분은 아느냐? 알았다면 나와서 내게 기상을 토해 볼 일이요,
모른다면 눈 밝은 사람 앞에서 잘못 들먹이지 말라."
5.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만법은 본래 한가하지만 사람 스스로가
시끄러울 뿐이다" 하고는 주장자를 세워 한 번 치더니 말씀하셨
다.
"대중들이여, 촛불을 잘 보아라. 눈 밝은 사람 앞에서 이 이야
기를 잘못 들먹이지 말아라."
6.
스님께서 손비부(孫比部)를 방문하였을 때, 그는 마침 공사(公
事)를 판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손비부가 말하였다.
"변변찮은 관리가 나라의 일에 끄달려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비부의 원력이 크고 깊어서 많은 중생을 이익으로 구제하
심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재상의 몸으로 응하여 나타나시니
자비와 원력 크고도 깊어라.
사람을 위해 거듭 지적한 곳
방망이 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應現宰官身 廣弘悲願深
爲人重指處 棒下血霖霖
비부는 게송을 듣고 느낀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작은 청사로
돌아가 앉아서 되물었다.
"변변찮은 관리는 매일 재계하고 채소만 먹습니다만 그렇게 하
면 성인들에게 부합합니까?"
스님께서는 게송을 지어 주었다.
손비부, 손비부여
술과 고기로 장과 밥통을 더럽히지 않았네
시중드는 종이며 처자를 모두 돌아보지 않으니
석가노인은 누가 만들었나
손비부, 손비부여
孫比部孫比部 不將酒肉汚腸
侍僕妻兒渾不顧 釋迦老子是蘭誰做
孫比部孫比部
초상화에 찬을 스스로 쓰다.[自術眞讚]
입은 빌어먹는 아이의 부대자루 같고
코는 채소밭의 똥바가지 같구나
그대의 귀신같은 필치를 수고롭게 하여 그려 놓았으니
세상 사람들이여, 멋대로 헤아리게나.
口似乞兒席袋 鼻似園頭屎杓
勞君神筆寫成 一任天下卜度
나귀와 흡사한데 나귀가 아니고
말과 비슷한데 말도 아니어라
쯧쯧, 양기여
쟁기끌고 고무래 끄는구나.
似驪非驪 似馬非馬
哉楊岐 牽犁?杷
나귀라 하려니 꼬리가 없고
소라 부르려니 뿔이 없구나
앞으로 나감에 걸음을 옮기지 않는데
뒤로 물러남엔들 어찌 다리를 거두랴.
指驪又無尾 喚牛又無角
進前不移步 退後豈收脚
말이 없으나 부처와 같진 않고
말이 있는들 뉘라서 짐작하랴
잘난 데 못난 데가 눈 앞에 항상 드러나니
그대를 수고롭게 하여 내 모습을 그려두었네.
無言不同佛 有語誰 酌
巧拙常現前 勞君安寫邈
황 룡 록
황룡 4가어록 서
(黃龍四家語錄序)
말로써 충분하다면 종일 말해서 도를 다 말하겠으나, 말로는 부
족하니 종일 말해도 사물을 다 말할 뿐이다. 그러므로 충분하다
부족하다 함은 둘 다 틀리는 것인데 세상사람이 어찌 그런 줄 알
겠는가.
황룡스님의 4세 법손인 혜천(惠泉)스님이 적취(積翠), 회당(晦
堂), 사심(死心), 초종(超宗)의 4가어록을 손수 써 놓고 내게 서
문을 쓰라 하였다.
저 네 분 대사(大士)는 강서(江西)에서 선종의 불꽃같은 분이니
혹은 마조(馬祖)스님의 후신이라 전하고 혹은 대위(大 )스님의
법석을 지켰다고 하며 혹은 번개에 천둥소리 따르듯 하고, 혹은 6
근이 훌륭하게 익어져[熱] 무너지지 않았다 하니 그 참되고 명예
로운 도풍을 천하 사람들이 우러러보았다. 기봉을 한번 건드리면
만 게송이 병에서 물쏟듯 하여 마치 커다란 빈 골짜기가 소리에
남김없이 반응하고 커다란 둥근 거울이 모습을 남김없이 비추는
것과 같다. 구슬꾸러미 돈꾸러미 같은 말씀을 인간세상에 뿌려놓
으니 달빛어린 창가, 구름 도는 집집마다 만 입으로 불러 외워 적
으면 적은대로 크면 큰대로 모두 얻는 바가 있었다.
말로 치자면 가히 사물을 극진히 설명했다고 할 수 있으나 요컨
대 사물도 극진히 하고 도(道)도 극진히 하는 것으로는 듣는 자
스스로가 알아차려야 할 일이다. 그 가운데 소위 '종일 말하나 말
한바가 없다' 함은 가죽을 벗겨내고 뼈를 부러뜨리는 것으로도 써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혜천스님이 문답을 편집한 일이 옳은가, 그른가? 옳다
고 한다면 대장경[毘盧藏]속의 방대한 경전에서도 본래 문자를 인
정하지 않았고, 그르다고 한다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용이 뇌성을
감추고 묵묵히 있다 해도 본래 그 소리의 위용은 없는 것이 아니
다. 그러므로 옳다 그르다 함이 반드시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
도리를 알기만 하면 말이 있건 없건 모두 진여이겠으나 이 도리를
알지 못하면 말이 있건 없건 모두 사견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혜
천스님의 마음이 바로 네 분 조사의 마음이며, 혜천스님의 견해가
바로 네 분 조사의 견해임을 알겠다.
(스님께서는) 그 내용의 우열을 가려 정도(正道)를 보임으로써
네 스님이 중생을 이롭게 하신 자비심을 널리 드러내고 음성의 세
계로 들어가 한 몸 아끼지 않음으로써 네 스님이 도를 실천하시던
은혜를 전하였으니 진실로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본 뜻이다. 이
도에 앉아서 수행하는 사람은 이 글로써 한번 평가해 보라.
소흥 11년(紹興 11年 : 1141) 3월 5일,
수인전밀(秀人錢密)이 서(序)를 쓴다.
동안 숭승선원에서 남긴 어록
[同安崇勝禪院語錄]
1.
스님께서 동안(同安)의 숭승선원(崇勝禪院)에 처음 머물면서 개
당(開堂)하던 날에 소(疏)를 크게 읽고 난 후 향을 잡고 말씀하셨
다.
"이 하나의 향으로 우리 황제의 수명이 무궁하시길 바라옵니
다."
다시 향을 잡고 말씀하셨다.
"이 하나의 향으로 지군낭중(知軍郎中) 문무 신하들의 복과 수
명이 늘어나기를 바라옵니다. 다음으로 나라가 안녕하고 법륜이
항상 굴려지기를 바라옵니다."
또 향을 잡고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말해 보라! 이 하나의 향은 누구를 위해 피워야
할는지. 많은 사람이 헤아려 보나 귀결점을 모르는구나. 오늘은
호남(湖南)의 자명선사(慈明禪師)를 위하여 하나를 태워서 그것이
널리 퍼져 천하의 총림과 모든 납승들에게 재앙이 되게 하리라."
유나(維那)가 백추(白槌)를 치면서 말하였다.
"이 법회에 모인 용상(龍象) 대중들이여! 첫째 가는 뜻[第一
義]을 관(觀)하도록 하라."
스님께서 한숨을 쉬면서 말씀하셨다.
"첫째 가는 좋은 뜻이 다행히도 저절로 완전하더니 이제 유나에
게 후려맞고 두 쪽이 났구나. 누가 붙여 줄 사람이 있느냐?"
그리고는 좌우로 대중을 돌아보더니 말씀하셨다.
"붙이지 못한다면 나는 오늘 머리를 꼬리로 만들고 꼬리를 머리
로 만들어버리겠다. 물을 말이 있는 자는 잘 살펴야[着眼] 하리
라."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이미 봉황고개에 올라 종풍을 널리 펴시니 누구의
법을 이으셨는지요?"
스님께서 일원상(一圓相)을 그리자 그 스님이 이어서 말하였다.
"석상스님의 한 맥이 흘러나와 강서로 들어갔군요."
"밝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 눈먼 사람은 땅을 더듬는구나."
"무엇이 동안(同安)의 경계입니까?"
"볼 수가 없다."
"그런 경계 가운데 있는 사람은 어떤 자입니까?"
"얼굴 없는 사람이다."
"솜씨좋은 선지식은 줄탁( 啄)*하는 것이 아니니, 줄탁하면 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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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탁( 啄) : 병아리가 부화될 때 새끼와 어미가 안팎으로 쪼아대는 것으로 여
기서는 스승과 제자간의 기연이 딱 맞음을 비유함.
씨좋은 선지식이 아닙니다. 대중이 법회에 모였으니 스님께서는
선지식을 만나 보십시오."
스님께서 한발 아래로 늘어뜨리셨다. 그 스님이 "불꽃 속에서
흩날리는 눈을 찾고, 물 속에서 불이 하늘을 태우는군요" 하자 스
님께서는 발을 거둬들이셨다.
그 스님이 다시 "대중은 참다운 선지식을 증명합니다" 하자 스
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틀렸고 그대도 틀렸다."
"그렇다면 아직은 두 집이 같이 쓰는 것입니다만, 북을 끌고 와
서 깃대를 빼앗으며 한판 붙어보는 일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는 불자(拂子)를 던져버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아무 일도 없더니 이 자리에 오르자
마자 많은 질문과 답변이 있게 되었다. 감히 묻노라. 대중들이
여! 한 번 묻고 한 번 답변함이 종승(宗乘)에 부합되느냐? 부합
된다고 한다면 일대장교(一大藏敎)에 어찌 문답이 없으며 또한 무
엇 때문에 '교(敎)밖에서 따로 펴서 상근(上根)의 무리에게 전한
다'고 하였겠느냐? 부합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조금 전에 했던 허
다한 문답은 무엇을 위함이었겠느냐? 행각하는 납자라면 스스로
눈을 떠서 후회없도록 하라.
이 일로 말하자면 신통(神通)이나 닦아 얻음[修證]으로 도달하
지 못하며 다문(多聞)과 지혜로 논할 바도 아니다. 3세 모든 부처
님도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만 했을 뿐, 일대장교로 설명하고 주석
을 내어도 미치질 못한다. 그러므로 영산회상 백천만 대중 가운데
서 유독 가섭만이 직접 들었다고 인정하였으며, 황매산(黃梅山) 7
백 고승 가운데서 의발(衣鉢)은 행자(行者 : 6조) 에게 부촉하였
던 것이다. 어찌 이것이 그대들의 탐심·음행·어리석은 집착·승
부심으로 되는 일이겠느냐?
출가한 사람이라면 대장부의 매서운 뜻을 품어 양쪽[兩頭]*을
끊고 집에 되돌아가 편안하게 앉아야 한다. 그런 뒤에 문을 크게
열고 자기 재산을 틀어 왕래하는 사람들을 접대하고 집 없고 외로
운 사람을 구제해야만 조금이라도 부처님의 깊은 은혜에 보답했다
하리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전혀 옳지 않다 하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와 인사하는 자리를 베푸셨
다.
2.
정월 초하룻날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모든 성인을 구하지도 않고 자기의 신령함을 소중히 여기지 않
는다 해도 이는 납승 본분의 일은 아닙니다. 무엇이 납승 본분의
일입니까?"
"30년 이래로 이런 질문은 드물게 만났다."
"그렇다면 모든 성인을 저버리겠군요."
"대꾸조차 제대로 못하는군. 무엇 때문에 저버린다 하느냐?"
그 스님이 손뼉을 한 번 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음( ), 놓아주어선 안되지."
그리고 말씀하셨다.
*양쪽[兩頭]:이쪽과 저쪽의 뜻으로 상대되는 두 개념. 생과 사, 단견과 상견 등.
"4상(四象 : 노소음양)이 밀고 옮기면서 끝났다간 다시 시작하
고 2의(二儀 : 음양)가 교대로 형통함이 진실로 이 때에 속한다.
세상의 이치[俗諦]는 여러 갈래여서 각자 왕래하는 법칙을 펴내지
만, 진여(眞如)의 경계는 낡고 새로움의 차별이 없다. 왜 그럴까.
이런 말을 듣지 못했느냐.
한 생각으로 한량없는 세월을 관찰해 보니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머뭄도 없다.
一念普觀無量劫 無去無來亦無住
이미 가고 옴이 끊겼으니 무슨 낡고 새로움이 있으며, 이미 낡
고 새로울 것이 없는데 또 무엇 때문에 신년하례를 하느라 특별히
왕래하겠느냐. 한 생각이 항상 고요할 수만 있다면 자연히 3제(三
際)를 아득히 잊는데, 어찌 가고 옴에 매이며 무슨 새롭고 낡음을
묻느냐. 그러므로 '이처럼 3세의 일을 철저히 알면 모든 방편을
초월하여 10력(十力 : 여래만이 가진 열 가지 지혜력)을 이룬다'
고 하였던 것이다."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으셨다.
"이처럼 거량(擧楊)하고 설법할 줄은 사람마다 다 알지만 둘을
부수어 셋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있겠느냐? 왜냐하면 세
상 사람들이 순풍에 돛을 올릴 줄만 알았지 역풍에 키를 붙들 줄
은 모르기 때문이다."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동지(冬至)에서 한식(寒食)까지 105일은 묻질 않겠다.모든 스
님들이여, 캄캄한 밤중에 바늘귀를 꿰는 한 소식을 어떻게 말하겠
느냐. 누가 말할 수 있다면 내가 최고의 값을 쳐주겠지만 못한다
면 피차가 손해를 보리라."
그리고는 곧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신은 모습이 없으나 사물에 따라서 형체를 나타내며,반야는
앎이 없으나 인연을 만나면 즉시 비춘다."
그리고는 불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씀하셨다.
"불자를 일으켜 세움을 법신이라 하니 어찌 이것이 '사물에 따
라서 형체를 나툼'이 아니랴. 불자를 눕히는 것은 반야라 하니 어
찌 이것이 '인연을 만나 즉시 비춤'이 아니랴. 그리고는 하하 하
고 크게 웃는데, 홀연히 어떤 사람이 나와서 나의 멱살을 잡고서
침 한 번 뱉고 한 대 후려치며 선상을 번쩍 들어 뒤엎어버리고는
나를 끌고 계단으로 내려간다 해도 그를 괴이하게 여기진 못하리
라. 지금은 이미 돼지를 물어뜯는 개와 같은 이런 솜씨가 없으니
내가 도리어 이 법령을 행하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물고기 깊은 곳에 있는데 그윽한 새는 오래도록 서
있구나."
그리고는 선상을 치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 사월 초파일은 우리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로서 나라 안
의 모든 절에는 부처님을 관욕(灌浴)시킨다.
기억해 보니 준포납(遵布衲)이 약산(藥山 : 745∼828)스님 회상
에 있으면서 전주(殿主 : 불전의 청소나 향 등을 관리하는 소임,
지전)를 맡고 있을 당시 부처님을 관욕시키는 차에 약산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이것>만 목욕시킬 뿐이구나. <저것>도 목욕시킬
수 있느냐?' 준포납이 '저것을 가져와 보십시오'라고 대꾸하자 약
산스님은 그만 두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때에 따라 말을 함에 일언반구도 교묘함이 없었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마음과 힘을 다 써서 계산한다 해도 끝내 그들의
경계에 도달하진 못한다. 대중 가운데서는 생각으로 따라서 이렇
게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라 함은 청동불상이며,<저것>이라 함은 법신이다. 불
상은 형제가 있어 씻을 수 있으나 법신은 형상이 없는데 어떻게
씻을 수 있으랴. 약산스님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도리어 준
스님에게 당하고 곧장 입이 납짝하게 되는 낭패를 면치 못하였
다.'
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옛날 성인이 질문했던 것은 납자를 시험하려 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그에게 저것을 물었는데 저것을 가져와 보라고 하면 그것
은 색과 소리에 끄달리는 것으로서 그의 말이나 씹으면서 그의 올
가미에 올라앉은 셈이다. 약산스님은 그가 이해하지 못했음을 아
셨기 때문에 그만둔 것이다.'
또 말할 것이다.
'약산스님이 그렇게 했던 것은 일없는 데서 일을 일으킨 것이니
긁어 부스럼을 만든 셈이다. 한편 준스님은 병통인 줄 모르고서
도리어 부스럼 위에다가 쑥불을 놓았다 하리라.'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옛사람은 완전히 깨쳐서 만나는 곳마다 놀고 가니 가타부타할
것도 없었고, 높다 낮다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너와 내가 있다
고 알게 되고부터 후인들은 억지로 분별을 내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런 식의 이해는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여 한 번 근원을 잃고
미혹하여 회복하질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실한 마음만 믿고 헤
아리고 비교함으로써 종승에 부딪쳐 보았으나 조작과 사유가 마음
이 있음을 따라 일어난 것임을 잘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사유
로써 부처님의 경계를 분별함은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
는 격이어서 미진겁을 지난다 해도 끝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
므로 행각하는 고상한 납자라면 스스로 간절히 살펴보아야만 한
다. 이제껏 이야기한 일을 어떻게 해야 하며, 필경 무엇을 가지고
저 생사를 대적할 것인가. 조금이라도 들뜨고 거친 알으말이[識
見]로 스스로 장애지음을 용납치 말라. 불법은 이러한 도리가 아
니다.
나는 오늘 구업(口業)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설파해 준
다. 위의 두 분 스님께서는 한 번 나오고 한 번 들어가면서 이기
고 짐을 보이질 않으셨다. 30년 뒤에 이 소식을 잘못 말하지 말
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성절(聖節)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은 황제께서 태어나신 날로서 온누리 모든 백성이 성수(聖
壽)가 연장되기를 축원하는 일은 빠뜨릴 수 없다만, 여러 납자들
이여! 왕자를 아느냐?
누가 알았다면 티끌같은 시방세계가 모두 그대의 것이어서 다
름이 아니고 열반성 안에 앉아 단정히 팔짱낀 채 함이 없이[無爲]
3계를 자기 집처럼 거느리고 4생(四生)의 부모가 되려니와, 알지
못했다면 법당 안에서 향을 사르고 3문(三門)앞에서 합장해야 하
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자 한 스님이 편지를 전해오니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擧].
행사(行思)스님이 석두(石頭)스님더러 편지를 가지고 달려가 남
악 회양(南嶽懷讓)스님에게 올리라 하고는, "즉시 돌아오면 그대
에게 무딘 도끼를 주어 산에 주지살이하게 하리라"라고 말하였다.
석두스님이 회양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편지를 전달하지도 않고 불
쑥 물었다.
"모든 성인도 구하지 않고 자기의 신령함도 대단히 여기지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그대의 질문은 지나치게 고상하다. 왜 향하(向下:俗諦를 써서
중생을 제접하는 쪽의 일)에서 묻질 않는가?"
"영겁토록 생사윤회를 받을지언정 모든 성인으로부터 해탈을 구
하진 않겠습니다."
회양스님은 대꾸하지 않았다. 석두스님이 곧 돌아오니 행사 스
님이 물었다.
"그대가 떠난 지 오래지 않은데 편지는 전달하였느냐?"
"말도 통하지 못했고 편지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행사스님이 이유를 묻자 석두스님은 앞서의 대화를 말씀드리고
다시 말하였다.
"지난날 스님께서 무딘 도끼를 줄테니 산에 주지하라 하신 허락
을 하셨으니 바로 지금 청하옵니다."
행사스님이 한 발을 늘어뜨리자 석두스님은 바로 절하고 남악으
로 들어가 산에 주지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석두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달려갔던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함께
들었으나 뒷 사람들은 그 근본 뜻[宗由]을 잘 알지 못하여 법을
편 사람이 드물었다. 그리하여 물과 우유를 분별하지 못하고 옥과
돌을 분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오늘 반으로 갈라
보여 대중들에게 보시하리라.
석두스님은 이처럼 잘 달려가 전달하여 종풍을 욕되게 하진 않
았으나 너무 허둥대다가 낭패보는 줄을 몰랐는데야 어찌하랴. 이
미 손해를 보았다면 돌아와서는 무엇 때문에 도리어 무딘 도끼를
얻어 산에 주지하겠느냐. 여기에서 깨칠 수 있다면 산에 주지할
뿐만 아니라 시방세계 티끌티끌마다 호랑이 굴이나 마군의 궁전까
지도 모두가 안주할 곳이다. 그러나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감히
장담하노니 여러분은 안심입명할 곳이 없으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운문(雲門)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평탄한 길에서 죽은 사람이 셀 수도 없으니 가시덤불로 가는
것이 상책이리라."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불자를 잡아 일으키더니 말씀
하셨다.
"대중아! 이를 불자라고 부른다면 바로 평지에서 죽은 사람이
며 불자라 부르지 않는다 해도 가시덤불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선상을 치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상당하여 악!하고 할(喝)을 한 번 하고는 말씀하셨다.
"온 누리가 내 할 한 번에 기왓장 깨지듯 얼음녹듯 하였다. 이
제 그대들은 어디서 옷 입고 밥을 먹겠느냐. 옷 입고 밥 먹을 곳
을 아직 찾지 못했거든 옷 입고 밥 먹을 곳을 찾아야만 하며, 옷
입고 밥 먹을 곳을 알았다면 본래면목[鼻孔]을 알아야 하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큰 파도는 아득히 출렁이고 흰 물결은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생사의 흐름을 끊고 저 언덕에 도달한 사람은 단연코 알음알이를
떨어버리겠지만 짧은 노의 외로운 뱃사람은 밀고 당기느라 상을
찌푸리며 애쓴다.
말해 보라. 바람 자고 물결 고유한 한마디를 어떻게 말하겠느
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면 내 그대들에게 보시하
리라."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어부는 어부대로 한가히 선창하고 나무꾼도 저 혼자서 소리 높
여 노래하네[漁人閑自唱 樵者獨高歌]."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귀종사로 옮겨 살면서 남긴 어록
〔遷住歸宗語錄〕
1.
스님께서 처음 절에 들어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귀종상사(歸宗上寺)는 큰 선강[禪河]이다. 이미 선강이라면 어
찌 낚시꾼이 없으랴. 누가 질문할 사람이 없느냐?"
한참 있어도 묻는 사람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뿔난 짐승 많아도 해태( :성품이 충직한 외뿔 달린 전설상
의 동물)는 없고, 털난 짐승 많다 해도 원앙은 적어라. 미묘하구
나, 큰 저 법신이여. 일부러 들어도 듣지 않고 보아도 보지 않도
다. 청정하도다. 배울수 없는 지혜여! 어찌 생각해서 얻으며 어
찌 배워서 되겠느냐.
그러나 설법이 없다면 누구라서 근본종지를 가려내며, 문답이
없다면 어떻게 삿됨과 올바름을 밝히랴.
지금 이 장로(長老)가 상당하여 법문으로 이끌어 주는데도 대중
가운데선 질문하는 사람이 없구나. 질문하는 사람이 없으니 답변
하는 사람도 없구나.
근본종지와 삿되고 바름을 밝히고 분별하려느냐. 삿됨과 바름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서 선상을 밀쳐 거꾸러뜨리고
소리를 쳐 대중을 해산한다 해도 그 납승에게 숨을 돌리게 해 주
겠지만, 분별해내지 못한다면 내년에 새 가지가 돋아나 쉴새없이
봄바람에 흔들리리니 기다려 볼 일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손바닥의 마니(摩尼)구슬은 갖가지 색깔 따라 빛이 나뉘고, 하
늘에 걸린 보배달은 천강에 달그림자를 드리운다.
여러 납자들이여! 한 번 묻고 한 번 답하며, 방망이 한 대,할
한번 하는 것이 다 빛 그림자[光影]이며, 밝고 어두우며 잡고 놓
아줌이 다 빛 그림자이며, 산하대지도 빛 그림자이며, 일월성신도
빛 그림자이며, 3세 모든 부처님과 일대장교 나아가서는 모든 큰
조사와 천하의 훌륭하신 화상과 문 두드리는 기왓쪽 따위 천차만
별까지도 모두 다 빛 그림자이다.
말해 보라. 무엇이 마니 구슬이며 무엇이 보배달인지를. 마니구
슬과 보배달을 모르고서 말[言句]을 기억하여 빛 그림자를 그것이
라고 잘못 안다면 마치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리고 벽돌을 갈
아 거울을 만들려는 격이니 그 수를 다 헤아리고 밝은 거울을 만
들려 하나 만부당한 일이다.
듣지도 못하였느냐? '문자의 의미를 널리 찾음은 거울 속의 물
건을 구하는 것과 같고, 그렇다고 생각[念]을 쉬고 공(空)을 관
(觀)함은 물 속의 달을 붙들려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라고 한 말
을.
납승이라면 이쯤에서 몸을 바꿀 만한 길 한 가닥[傳神一路]이
있어야만 한다. 몸을 바꿀 수만 있다면 벌여놓은 것과 모인 무더
기마다 다 대사(大事)가 나타난[現前] 것이라서 종횡으로 자유로
와 다시는 모자라거나 남는 법이 없으려니와, 몸을 바꾸지 못한다
면 푸대 속의 늙은 거위와 같아서 살아있다 해도 죽은 목숨과 같
으니라.
나는 산에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본래 식견이 없다. 그러나
어제는 이 군(郡)의 전승판관비서(殿承判官秘書)에게 특별히 초청
을 받았으니 명령을 받고서 감히 찾아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런데 문 앞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바로 귀종사(歸宗寺)를 맡아달라
는 명령이 있었다.
나아가고 물러남을 곰곰히 살펴보았더니 염치없음만 깊이 더하
였다. 이는 전승판관이 옛날에 부처님의 수기(受記)를 받들어 왕
의 신하로 모습을 보이심이다. 항상 정사를 베푸는 여가에 부처님
의 가르침을 공경스럽게 받들어 혜풍(慧風)과 요풍(堯風)을 아우
러 선양하려 하였으며 불일(佛日)과 순일(舜日)이 함께 밝기를 기
대했으니 진실로 중생에 뜻[意]을 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처럼
마음을 극진히 할 수 있었으랴.
이 날에 또 조정의 수레가 영광스럽게도 법회에 임하여 시종 성
쇠하던 중에 진실로 영광을 더하게 되었다. 옛날에 배상국(裵相
國)은 높은 벼슬 자리에 있었으나 황벽(黃檗)스님에게 인정을 받
았고, 한문공(漢文公)은 당세에 명성이 지중하였으니 태전(太賞)
스님을 모시었다. 지금의 이 일을 옛날에 비교한다면 무슨 차이가
있으랴. 할말은 많으나 보고 듣느라고 번거로울까 염려스럽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법령을 극진히 하여 기강을 잡음은 범부와 성인 양쪽에 다 통
하지는 않으며 그렇다고 한 가닥 길을 놓아주면 알음알이[商量]가
생긴다.
곧 이어 주장자를 잡아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주장자가 서니 시방세계가 일시에 서는구나."
그리고는 다시 주장자를 눕히더니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 주장자를 눕히니 시방세계가 일시에 눕는다. 어째서
인가? 듣지도 못했느냐. '가장 작은 것은 가장 큰 것과 같아서
경계를 끊어 잊었고, 가장 큰 것은 가장 작은 것과 같아서 테두리
를 보지 못한다'고 한 말씀을."
그리고는 주장자를 높이 세우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제형(提刑:지방에서 형벌이나 옥사의 일을 맡는 벼슬)이 산에
들어와 좌석에 오르자 한 스님이 청하였다.
"제형의 수레가 멀리서 법좌에 나오셨으니 스님께서는 깨달음의
종지[向上宗乘]를 한 번 결단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일자(一字) 모양 두건[ 頭]이며 챙이 뾰족한 모자로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비단, 제형만 이 훌륭함을 받들 뿐 아니라 저도 절하며 스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눈섭을 잡아 벗기고 그대의 콧구멍을 두드려서 떨어뜨
린다면 또 어떻하겠느냐?"
그 스님이 "허허(噓噓)"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국수를 만들려면 그 고을 밀가루로 빚어야 하고, 노래를 부르
려면 천자의 고향 사람이라야만 한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유정(有情)의 근본은 지혜 바다로 근본을 삼고, 함식(含識)의
부류는 모두 법신으로 자체를 삼는다. 다만 미혹한 생각[情]이 생
겨 지혜가 막혔기 때문에 매일 작용하면서도 모르며, 생각[想]이
바뀌는대로 몸이 달라지기 때문에 업연(業緣)을 쫓아가 되돌아올
수 없다. 아득한 예와 지금에 뉘라서 근본 원인을 확인히 아는가.
고단한 사랑과 증오는 망정의 근본으로서 허망한 것이다. 그러므
로 우선 석가모니 조어사(調御師)께서는 일찌감치 깨달음을 얻으
시고 우리가 수고로운 삶으로 생사유전을 자초함을 불쌍히 여기셨
다. 그런 뒤에 큰 지혜를 얻고 오묘한 모습으로 몸을 나투시어 49
년을 세상에 머무시면서 12분교(十二分敎)를 연설하셨다. 그리하
여 영리하고 둔한 근기에 맞추어 교화 방편을 세워 상·중·하의
근기가 각자 정도〔漸〕에 맞게 얻기를 바라셨다. 마치 큰 바다가
작은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서, 가령 모기·등애·아수라왕이 그
물을 마시는데 모두 배부르게 되는 것과도 같았다. 그 뒤 교화할
인연이 다하여 쌍림(雙林)에서 열반을 보이려 하면서 인간·천상
의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나에게 정법안장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는데 마하대가섭
(摩訶大迦葉)에게 부촉하여 교(敎)밖에 따로 펴서 상근기들에게
전하게 하노라.'
이 법은 조작이나 사유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신통이나
닦아서 깨달음[修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유심
(有心)으로써 알지도 못하며 무심(無心)으로써 체득하지도 못한
다. 이를 깨달으면 3계(三界)를 단박에 초월하려니와 이에 미혹되
면 만겁토록 생사에 빠진다.
오늘은 왕의 관리가 두루 모이고 승속이 자리에 함께 하여 앉고
섬이 염연하고 보고 들음이 어둡지 않으니 이는 미혹이겠느냐, 깨
달음이겠느냐? 여기에서 체득할 수 있다면 3아승지겁[三祗劫]을
다 채우거나 만행(萬行)의 공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일념
에 초월하여 다시는 전·후가 없으리라.
오늘은 우리 절에 영광스럽게도 이 지반의 제형도관(提刑都官)
과 제형사인(提刑舍人)이 직접 조정의 수레로 내려오셔서 보잘 것
없는 이 절을 빛내 주시려고 하룻밤이나 걸려 찾아왔으니 나날의
기거(起居)에 만복 있으소서. 더구나 존귀한 두 분 관리는 숙세에
덕의 근본을 심어 재관(宰官)의 몸으로 시현(示現)하여 자비와 은
혜로 백성들에게 임하셨음에랴. 지금 밤낮으로 급한 천자의 일을
대신하여 스님·속인·귀인·천인들이 모조리 복과 수명의 은혜를
하사받았으니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느냐.
이미 영광스럽게도 왕림해 주신 덕을 보았으니 우선 귀한 보살
핌을 여유있게 받으라. 그러므로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설법하는 사람은 설명함도 없고 보여줌도 없으며, 법을 듣는 사
람도 들음도 없고 얻음도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니(仲尼 : 孔子)가 온백설자(溫伯雪子)를 오랫동안 보고 싶어
하던 중, 하루는 수레를 타고 가다 길에서 만났는데 피차 말없이
각자 되돌아갔다.
그 뒤에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온백설자를 보
고 싶어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만나서는 한마디도 나누지 않으셨으
니 무슨 뜻인지요?' 하자 중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군자의 만남은 눈빛이 마주치는 데에 도가 있다.'
말해 보라. 옛사람의 만남이 눈빛 마주치는 데에 도가 있다 하
였는데 산승은 오늘 북을 울리고 법당에 올라 유난스레 말이 많았
으니 한바탕 손해를 보았노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호랑이 수염을 순조롭게 뽑으려거든 응당 자기부터 살펴야 하
며, 뱀꼬리를 거꾸로 잡으려거든 뱀이 하는대로 맡겨두어라. 오랑
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중국사람이 오면 중국사람이 나타나
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니 밝은 거울을 높은 경대에 걸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자소봉(紫 峰) 위의 검은 구름은 아련한데 파양호( 陽湖) 속
의 흰 파도는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한 기운〔一氣〕은 일어남 없
이 일어나고 만법은 그렇지 않으면서도 그러하구나. 여기서 따지
고 헤아리다면 10만 8천리 밖으로 멀어지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주장자를 잡더니 말씀하셨다.
"옆으로 잡고 거꾸로 휘둘러 미륵의 눈동자를 열어제치고, 밝음
이 가고 어둠이 오니 조사의 콧구멍을 두드려 떨어뜨린다. 바로
이런 때라면 목건련과 사리자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임제(臨濟)와
덕산(德山)은 하하 하고 크게 웃는다. 말해 보라. 무엇을 두고 웃
었는지를. 쯧쯧…"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목주(睦州)스님께서는 뛰어난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언젠가 만
났을 때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무엇을 아는가?"
"24가(二十四家)의 서법(書法)을 압니다."
목주스님은 주장자로 공중에다 점 하나를 찍더니 말하였다.
"알겠느냐?"
제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자 목주스님이 말하였다.
"24가의 서법을 안고서 다시 말해 보라. 영자8법(永字八法)도
모르고서는…"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목주스님의 한 점은 곧장 위음왕불(威音王佛) 이전에 있더니
영자8법으로 글씨를 논함에 이르러선 도리어 속인에게 간파당하였
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공자 문하의 제자는 아는 사람 없었는데 눈 푸른 달마는 웃으면
서 머리를 끄덕이는구나."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趙州)스님에게 말하였다.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을 경우라면 어떻습니까?"
"놓아버리게"
"이미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놓아버리라는 말씀
입니까?"
"그렇다면 걸머지게"
존자는 이 말끝에 깨달았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
다.
한 물건도 가져 온 것 없건만
어깨에 짐을 지고 일어나지 못했었네
말 끝에 홀연히 잘못임을 알아
마음 속은 무한히 기쁘고
나쁜 독을 마음에서 잊었으니
뱀과 호랑이도 친구라네
몇백 년 세월 흘렀건만
맑은 바람 그치질 않네
一物不將來 肩頭擔不起
言下忽知非 心中武限喜
毒惡旣忘懷 蛇處爲知己
光陰幾百年 淸風物未己
주장자를 선상에 세우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임제스님이 감원(監院:원주)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고을에서 쌀을 사옵니다."
임제스님은 주장자로 그 앞에서 한 획을 긋더니 말씀하셨다.
"이것도 살 수 있겠느냐?"
감원이 별안간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은 바로 후려쳤다.
전좌(典座:선방에서 좌구나 의복 생활용품을 담당하는 소임)가 찾
아오자 임제스님이 앞의 대화를 말하였더니 전좌가 말하였다.
"원주(院主)는 스님의 의도를 몰랐군요."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전좌가 절을 하자 임제스님은 역시 후려쳤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할을 해도 후려치고 절을 해도 후려쳤다. 여기에 가까이함과
멀리함이 있겠느냐? 가까이함과 멀리함이 없었다면 임제스님은 옳
지 않으니 맹목적으로 묶어놓고 방망이질을 한 것이다. 나라면 그
렇게 하지 않겠다. 원주가 할을 할 때 놓아주어선 안되며, 전좌가
절을 할 때 놓아주어서도 안된다."
다시 말씀하셨다.
"임제스님은 법령을 행하였고, 나는 놓아주었다. 30년 뒤에 설
명해 줄 사람이 있으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한 스님이 남원(南院)스님에게 물었다.
"해와 달은 번갈아 옮겨가고 추위와 더위는 차례차례 뒤바뀝니
다. 추위와 더위를 겪지 않는 수도 있습니까?"
"자줏빛 비단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속곳 허리에 수를 놓는다."
"가장 뛰어난 근기라면 여기서 이미 깨달았겠지만 중하(中下)의
부류는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잿더미 속에 몸을 숨겨라."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남원은 한 번에 상대를 이롭게 하였지만 병에 맞게 약을 쓴다
는 면에서 보면 잘못 되었다. 납승의 문하라면 천지처럼 현격하게
다르다. 말해 보라. 납승에겐 더 나은 점이 무엇이겠느냐?"
"쯧쯧" 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정이 다하면 진
상(眞常)이 그대로 드러나고, 허망한 인연을 여의기만 하면 그대
로가 여여(如如)한 부처이니라' 하였는데, 쯧쯧! 이 무슨 말인
가?"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스님을 뵙기 전에는 무엇 때문에
온갖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쳤습니까?"
"뽕나무 뿌리는 못[釘] 같으며 물소뿔은 넓다."
"뵌 뒤엔 무엇 때문에 꽃을 물어다가 바치지 않았을까요?"
"잠방이에는 배자( :덧조끼)가 없고 홑바지엔 바지 구멍이 없
다."
그 스님이 또다시 여쭈었다.
"뵙지 않았을 땐 어떻습니까?"
"나라가 맑으면 인재가 존경을 받고, 집이 넉넉하면 어린 아이
가 버릇없다."
"뵌 뒤엔 어떻습니까?"
"세상의 인정은 차고 따뜻함을 살피며, 사람의 얼굴은 높고 낮
음을 좇는다."
스님께서 계속하여 말씀하셨다.
"학륵나(鶴勒那) 존자는 저 공중(空中)에서 갖가지 모습을 나투
고 만나라(蔓拏羅) 존자는 땅을 가리키니 샘이 되었다. 덕산(德
山)의 회상은 전후가 끊어졌고[光前絶後]임제의 문전에선 한 쪽만
을 얻을 뿐이다."
한참 잠자코 있더니 "무엇이 그 한 쪽이겠느냐?" 하고는 법좌에
서 내려오셨다.
균주 황벽산에서 남긴 법어
[筠州黃檗山法語]
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해는 동쪽에서 떠오르고 달은 서쪽으로 진다. 하나가 뜨면 하
나가 짐을 예로부터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모두 알고 모두 보아왔
다.
비로자나부처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어 매일매일 천차만별로 인
연따라 자유로운데,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보지 못하느냐? 아마
도 마음에 헤아림이 남아 있고 견해가 인과에 머물러서 성인이라
는 생각을 넘고 모든 자취를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념연기(一念緣起)함이 남이 아님[無生]을 안다면 해와 달이
누리를 비추듯 하고 하늘과 땅이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주듯 하겠
지만 알지 못한다면 지옥귀신이 발칵 성을 내어 그대들의 머리를
일격에 부숴놓으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은 5월 1일, 중하(仲夏:음력5월)로 들어서는 아침이다.
여러 지사(知事:절의 관리를 맡은 여러 소임)와 수좌(首座)와 대
중은 도체(導體)가 안락하여 하루밤을 긴 선상 위에서 다리를 폈
다 오므렸다 하여 남을 개의치 않았다. 날이 밝아 일어나서는 호
떡과 대궁밥과 떡을 야금야금 씹으면서 배 부르면 쉰다.
바로 이런 때라면 옛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며 선도 생각하지 않
고 악도 생각하지 않으니 귀신도 그의 자취를 찾지 못하고 만법이
그의 짝이 되질 못하며 땅이 싣지 못하고 하늘도 덮지 못한다. 그
렇긴 하나 눈 속에는 눈동자가 있어야 하며, 살 속에는 피가 흘러
야 한다. 눈에 눈동자가 없다면 눈먼 사람과 무엇이 다르며, 살
속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랴. 30년 뒤
에 나를 괴이하게 여기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마자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고는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아무 일도 없는데 할은 해서 무엇하겠느냐?"
또 할을 한 번 하더니 말씀하셨다.
"한 번 할하고 두 번 할한 뒤엔 어떠하겠느냐?"
불자로 공중에 한 획을 긋더니 말씀하셨다.
"백장(百丈)스님이 '귀가 먹었던 일'은 그런대로 그렇다 하겠으
나 삼성(三聖)스님의 '눈먼 나귀'는 사람을 근심하게 하는구나."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화장세계(華藏世界)에 끝도 없이 계속 유람하고 다니다가 연등
불(然燈佛)의 처소에 이르러선 한 법도 없다. 그러므로 무(無) 속
에도 유(有)이며 덕산스님의 몽둥이는 별똥이 튀듯 하니 유 속의
무이다. 임제스님의 할은 우뢰가 진동하듯 하며 귀 먹은 듯 벙어
리인 듯 하다. 천지를 곽 채우고 아픔과 가려움을 아는 이 몇이나
있을까.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도는 닦음[修]을 빌리지 않으니 더럽히지만 않으면 될 뿐이며
선(禪)은 배움을 빌리지 않으니 마음 쉼[息心]을 중히 여긴다. 마
음이 쉬었기 때문에 마음마다 생각이 없고 닦지 않기 때문에 걸음
마다 도량이다. 생각이 없으면 벗어날 3계도 없고 닦지 않으면 구
해야 할 보리도 없다. 벗어날 것도 구할 것도 없다는 것은 오히려
교종[敎乘]에서 하는 말이니, 납승이라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머리 없는 보살은 부질없고 합장하고 다리 없는 금강역사는 아
무렇게나 주먹을 폈다 쥐는구나[菩薩無頭空合掌 金剛無脚 張拳]."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어떤 때는 큰 길로 가고 어떤 때에는 잡초 속으로 달린
다. 그대들 납자여! 날카로운 송곳 끝을 보지 말지니, 뚫어야할
귀퉁이를 잃어버린다. 듣지도 못했더냐. 옛날에 말하기를, '열어
놓고 막지를 못하면 도적을 불러다가 집을 파산 시키며, 끊어야
하는데 끊지 않으면 도리어 그 난리를 만난다'라고 했던 말을."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림은 부질없이 힘만 허비하는 일이
고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듦은 쓸데없는 헛공부이다. 보지도 못하
였느냐. 높고 높은 산 위의 구름은 스스로 걷히고 스스로 퍼지는
데 무슨 가깝고 멀고가 있으며, 깊고 깊은 산 골 물은 굽은 길 곧
은 길 만나는대로 흘러가면서 여기저기 가리지 않음을.
중생이 매일 작용함은 구름같고 물같으니 구름과 물도 그러한데
사람만 그렇지 않구나. 그러함을 체득했다면 3계 윤회가 어느 곳
에서 일어나겠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금란가사(金 袈裟)가 전해지고 나서도 아난은 오히려 의심을
품었고 찰간(刹竿)대를 거꾸러뜨리지 않아서 가섭이 수고를 면치
못하였다.
여러 스님들이여! 말해 보라. 어떤 찰간대를 거꾸러뜨렸는지
를. 초학자든 만학이든 모두 헤아리지 못함은 평소에 총림에 오랫
동안 있으면서 열이면 열, 모두가 흐리멍텅해서이니 성인의 시대
와 간격이 멀어 사람들에게 게으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고을에 가느라고 절에서 나갔다가 되돌아와서 상당하더니 말씀
하셨다.
"흐르는 물이 산에서 내려감은 그리움이 있어서가 아니며, 조각
구름이 동구로 되돌아오나 본래 무심하다. 대나뭇집·띳집은 누가
주인일까. 달 밝은 밤중에 늙은 원숭이가읊조리는구나."
선상을 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아난이 가섭에게 묻되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해주신 이외에 무슨 법을 전해주
셨습니까?" 하니 가섭이 아난을 불렀다. 아난이 대답하니 가섭이 "문밖에 서있는
깃대[刹竿]를 쓰러뜨리라" 하였다.
10.
설날 아침에 상당하자 한 스님이 여쭈었다.
"묵은 해는 이미 갔고 새해가 찾아왔습니다. 이 두 길을 지나지
않는 길을 스님께서는 지적해 보여 주십시오."
"동방(東方)은 갑을목(甲乙木)이다."
"인간과 천상이 귀를 쯩긋하고 오로지 흘러 통하는[流通]소리를
들을 뿐입니다."
"흘러 통하는 일은 어떠한데?"
"흐르는 물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찌 다른 산으로 지날 수 있겠
습니까?"
"30년 뒤에 잘 헤아려 보라."
그리고는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하셨다.
한 스님이 경청(鏡淸)스님에게 물었다.
"신년 벽두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것이 신년 벽두의 불법인지요?"
"초하룻날 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다."
"스님의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구나."
다시 그 스님이 명교(明敎)스님에게 물었다.
"신년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없다."
"해마다 좋은 해이고 나날이 좋은 날인데 무엇 때문에 없다 하
시는지요?"
"장공(張公)이 술을 마셨는데 이공(李公)이 술에 취한다."
"원, 무슨 말씀을, 용두사미로군요."
"노승이 오늘은 손해를 보았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경청스님이 손해본 것은 묻질 않겠다. 그대 납자들이여! 무엇
이 명교스님이 손해본 곳이더냐? 가려낼 사람이 있다면 문수의 머
리는 하얗고 보현의 머리는 까맣겠지만, 가려내지 못한다면 오늘
은 내가 손해를 보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늑담( 潭)스님이 편지를 보내오자 그 일로 상당하여 이런 말씀
을 하셨다.
"5조 사계(五祖思戒)스님이 지문(智門)스님이 편지를 가지고 덕
산(德山)스님에게 도착하였더니 원명(圓明)스님이 편지를 받고는
물었다.
'이것은 지문(智門)스님의 것이니 어느 것이 바로 심부름꾼의
것이냐?'
오조스님은 곧장 올라가 덕산스님을 보면서 말하였다.
'앞 사람을 보려 한다면 우선 심부름꾼을 관찰하십시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산 너머로 연기만 보아도 바로 불이라는 것을 알았다
는데 나는 그에 비해 얼마나 다행인가. 늑담스님께서 영광스런 편
지를 멀리 보내와 내 마음을 자상하게 위로해 주시니 실로 부끄러
운 마음으로 받는다. 더구나 스님께서는 바다같은 학문에 훤히 밝
고 고금에 박식하게 통달한 사람이 아닌가. 하늘의 일월을 높이
떠받들고 사람을 가르치는데 게으름이 없었다 할 만하다. 나는 또
무슨 지푸라기같은 사람이기에 이같은 은덕을 입는가."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12.
성절(聖節)에 상당하더니 말씀하셨다.
"오늘은 영광스럽게도 우리 황제가 탄생하신 날이니 온 누리가
모두 축하하고 온 나라에서 공경히 받듭니다. 요임금같은 천명(天
命)과 순임금같은 덕은 일월과 똑같이 밝고, 금과 옥같은 자손은
산같이 바다같이 영원히 견고하소서.
만국을 가엾게 여기는 은혜를 베푸시고 다른 나라까지도 은택을
내리소서. 감옥에는 오래 갇혀 있는 죄수가 없게 하고 전쟁하는
말은 소와 양과 함께 골짜기에 놀게 하소서. 문덕(文德)을 닦으시
고 무덕(武德)을 쉬어 전쟁을 그만두게 하시니 만민은 우물을 파
서 물 마시고 백성은 스스로 농사 지어 밥을 먹으며 집안과 나라
는 편안하고 제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없게 하소서."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눈이 내리자 상당하더니 말씀하셨다.
"눈은 송이송이 다르지 않고 어지럽게 흩날리며 시절에 응하는
구나. 알쏭달쏭한 선문답도 모르는데 말뚝을 지키며 토끼 기다리
는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주랴."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3현3요(三玄三要)와 5위군신(五位君臣)과 4종장봉(四種藏鋒)*
과 8방주옥(八方珠玉)을 30년 전에는 다투어 구하느라 저마다 날
카로운 기량[機鋒]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지금은 태평스러워져 소
박순수함으로 되돌아가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다.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른데 흰 구름 깊은 곳이로다. 3의(三儀)와
한 벌 누더기뿐, 만사에 생각 없는데 무얼 염려하랴."
선상을 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5.
영가대사(永嘉大師)는 말하였다.
"강과 바다에 다니고 산과 개울을 건너 스승을 찾고 도를 묻는
것으로 참선이라 하다가 조계의 길[曹溪路]을 알고부터는 생사가
나를 어찌하지 못함을 분명히 알았다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들이여! 어느 것이 돌아다닌 산천이며, 어느 것이
*4종장봉:경.율.론 3장에 잡장(雜藏)이나 주장(呪藏)을 더한 것.
찾아다닌 스승이며, 어느 것이 참구할 선이며, 어느 것이 물을 도
이더냐?
회남(淮南)과 양절(兩浙:절강을 중심으로 위 아래 고을)과 여산
과 남악에서 운문과 임제가 스승을 구하고 도를 물었고 동산(洞
山)과 법안(法眼)이 참선을 하였으니 이는 밖으로 치달려 구하는
것으로서 외도(外道)라 한다. 비로자나 자성으로서 바다를 삼고
반야 적멸의 지혜[智]로서 선을 삼는다면 안에서 구함[內求]이라
하겠지만, 밖에서 구한다면 그대를 ㅉ아낼 것이며, 5온(五蘊) 안
에 안주하여 구하면 그대를 속박하리라. 그러므로 선(禪)이란 안
도 아니며 밖도 아니며 있음도 아니며 없음도 아니며 실제도 아니
고 허망도 아니다. 듣지도 못했느냐? '안으로 보고 밖으로 봄이
모두 잘못이며 부처의 도와 마군의 도가 모두 악이다'라고 했던
말을.
별안간 이렇게 되어버림이여
달에 서산에 지는구나
자꾸만 소리와 모습[聲色]을 찾음이여
이름과 모습이 어디에 있는가.
瞥然與�去兮 月落西山
更尋聲色兮 何處名邈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황룡산에서 남긴 어록
[黃龍山語錄]
1.
절에 들어가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황룡산의 경계입니까?"
"어제서야 여기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아직 자세히 보질 못하였
다."
"어떤 것이 그 경계에 있는 사람입니까?"
"긴 것은 길고 짧은 것은 짧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도는 의심과 막힘이 없으며 법은 본래 인연을 따르니 일이 어
찌 억지로 되랴. 아마도 그렇지 않으면서 그러한 것이리라. 적취
암(積翠菴)에 있으면 적취암 사람이라 하고, 황룡산(黃龍山)에 들
어가면 바로 황룡장로(黃龍長老)라 한다. 조사의 심인(心印)을 어
떻게 알랴. 무쇠소를 만드는 틀과도 흡사하여 도장을 떼면 무늬
[印文]가 찍히고 도장을 누르고 있으면 무늬가 뭉개진다. 떼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을 경우엔 또 어떻게 도장을 찍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안개 낀 마을에 3월 비 내리는데 어떤 집 하나만은 색다른 봄
이로구나[煙村三月雨 別是一家春]."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방거사(龐居士)가 조리( 籬)를 팔러 다리로 내려오다가 땅바닥
에 입을 박고 엎어지자 딸인 영조(靈照)도 아버지 곁에 거꾸러지
니 거사가 말하였다.
"너는 무얼 하느냐?"
"아버지께서 땅에 거꾸러진 것을 보고 제가 부축해 드리는 겁니
다."
"다행히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 망정이구나."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가련한 사람은 비웃는 줄도 모르고 도리어 가다 말고 진흙탕에
서 뒹구는구나. 내가 당시에 보았더라면 이 원수를 한 방망이에
쳐죽였으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은 세상은 출현하여 방편으로 말씀[言詮]을 시설
하였으나 조사가 서쪽에서 찾아와서는 입도 뻥긋 않으셨다. 가령
허공에서 놓아버린다면 3천세계(三千世界) 모든 티끌의 낱낱 티끌
가운데 법계를 머금겠지만, 만일 걸음마다 높은 데 오르려 한다면
나귀의 안장은 너의 아버지 아래턱뼈가 아니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큰 도는 중간이 없으니 다시 무엇이 전후가 되며, 긴 허공은
자취가 끊겼는데 어찌 헤아림이 필요하랴. 허공이 이미 이와 같은
데 도를 어찌 말하랴. 상근기라면 설명[言詮]을 빌리지 않겠지만
중·하의 부류라면 또 어떻게 면하겠는가. 그러므로 한 스님이 운
문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운문의 한 곡조입니까?' 하자 '납월
25일이다'라고 했던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오늘이 바로 납월 25일이다. 그대들은 잘 알겠느냐? 잘 모르겠
다면 자세히 들으라. 내 여러분을 위해서 거듭 한 번 더 노래하리
라.
운문의 한 곡조는 스물 다섯이라
궁상각치우에 속하지 않았네
내 곡조의 유래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남산에 구름 일어나니 묵산에 비 내린다 하리.
雲門一曲二十五 不屬宮南角徵羽
若人問我曲因由 南山起雲北山非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승당앞에서 종을 치면 종이 울리고 법당 위에서 북을 치면 북
이 메아리쳐서 3세 모든 부처님이 북소리 속에서 큰 법륜을 굴린
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서 안심입명을 하려느냐? 억지로 부리는
어떤 납승이 있어 탁하고 청정함을 모른 채 문득 '동서남북과 사
유상하와 오늘은 7, 다음날은 8을 말하며 승당 안에서 밥을 먹고
요사채에서 불을 쪼이거나 혹은 면전에 한 획을 굿기도 한다. 이
렇게 했다간 4은(四恩)을 등지리니 그것은 그래도 괜찮다 하겠지
만 서쪽에서 오신 눈 푸른 달마를 저버리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황매산(黃梅山)에서 한밤중에 심게(心偈)를 전하고 소실암전
(少室巖前)에서 팔을 끊었으니 긁어 부스럼 만들면서 아픔을 모르
고 지금까지 시비거리를 만드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내려오셨다.
7.
월주(越州) 대주(大珠)스님이 지난날에 마조(馬祖)스님을 뵈었
을 때 마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얼 하러 왔느냐?"
"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집을 버리고 생업을 잃었느냐. 왜 머리를
돌이켜 자기 집의 보배창고를 알고 갖질 않느냐."
"무엇이 자기 집의 보배 창고입니까?"
"지금 묻고 있는 자가 그것이다. 그대가 머리를 돌이킨다면 일
체가 구족하여 누리고 씀[受用]이 끝도 없어서 다시는 조금도 부
족함이 없으리라."
대주스님은 여기에서 구하는 마음을 홀연히 쉬고 대도량에 앉았
다.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은 각자에게 자기의 보배창고가 있는데 무엇 때문에
사용하질 못하느냐. 머리를 돌이키지 않기 때문이다."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한 사람은 아침에는「화엄경」을 보고 저녁엔「반야경」을 보
면서 밤낮으로 정근하느라 잠시도 겨를이 없으며, 한 사람은 참선
도 하지 않고 논의도 하지 않은 채 헤진 방석을 붙들고 대낮에 졸
고 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를 찾아왔다. 한 사람은 함이 있고
한 사람은 함이 없다. 어떤 사람을 인정해야 옳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공덕천(功德天:毘沙門王의 왕비)과 흑암녀(黑暗女)를 지혜 있
는 주인은 둘 다 받질 않는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각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해서 깨달음을
잘 간직[保任]하나니 이 일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너희들은 이
삼매를 부지런히 정진해야 된다'고 하셨다."
스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정진이라면 없질 않다만 여러분은 무엇을 삼매라 하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가섭의 분소의(糞掃衣) 값은 백천만금이고, 전륜왕 상투 속의
보배는 반푼어치도 못된다."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제는 죽을 지나치게 늦게 먹더니 오늘은 또 죽을 너무 일찍
먹는구나. 이는 주지하는 사람의 위엄스러운 명령이 근엄하질 못
해서이냐, 아니면 일 보는 사람[執事人]의 몸과 마음이 게으르기
때문이냐? 대중들은 한번 판단해 보라. 법도가 혼란해지고 나면
모든 일이 들쑥날쑥하며 한 사람이 일을 실수 하면 여러 사람이
불안해진다. 절 내외의 1,2백 사람들은 곡좌(曲坐)가 이미 그 지
위에 있으니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낱낱이 가까이 목전에서부터
반조하고 되돌아보아야만 하며 일을 경솔히 하고 대중을 업신여겨
서는 안된다. 이처럼 할 수만 있다면 낱낱이 원각(圓覺)이며 걸음
마다 도량이다. 어찌 밖에서 천착하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랴."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달마는 서쪽에서 십만 리를 찾아와 소림에서 팔구년을 면벽했
는데 오직 신광(神光:이조 혜가)이 이 뜻을 알고 묵묵히 3배(三
拜)하여 헛되게 전하지 않았다. 후대의 아손은 정각(正覺)을 잃고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으며 삿된 말을 숭상하여 죽는 날에 이르
러선 빚진 원수같은 몸으로 황천에 들어가는구나."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상당하여 불자로 선상을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눈이 있으면 모두 보고 귀가 있으면 다 들었을 것이다. 이미
보고 들었으니 말해 보라. 무엇을 들었는지를. 만학이든 초학이든
분명하고 분명하게 설파해야만 한다. 우리 부처님께선 마갈타국에
서 이 법령을 직접 시행하였고, 28조사는 차례차례 전수하였다.
그 뒤 석두(石頭)와 마조(馬祖)스님에 이르러선 망아지 한 마리가
천하 사람들을 밟아 죽인 격이고, 임제와 덕산의 몽둥이와 할은
우뢰와 번개처럼 빨랐다. 뒤의 법손은 변변치 못하여 그 법령을
내세우긴 했으나 시행하진 못하고 화려한 언구만 드러냈을 뿐이
다.
내가 세간에 태어난 시대는 말세운에 해당하여 다 망가져가는
법고(法鼓)를 치고 떨어져 버린 현묘한 강령을 정돈하였다. 여러
분은 중간에 여러 해를 매어둔 채 보내지 말라. 4대해(四大海)의
물이 여러분의 머리 위에 있음을 알아야만 하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3.
한 스님이 건봉(乾峰)스님에게 물었다.
"시방 제불의 한 길 열반문이라 하였는데 그리로 가는 길목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건봉스님은 주장자로 가르키면서 말하였다.
"여기에 있다."
그 스님이 운문스님에게 자세한 설명을 청하였더니 운문스님은
부채를 잡아 일으키면서 말하였다.
"부채가 껑충 뛰어 33천에 올라 제석(帝釋)의 콧구멍에 부딪치
고 동해의 잉어가 한 방망이를 치니 비가 동이물을 붓듯 쏟아지는
구나. 알겠느냐, 알겠어?"
스님께서 상당하여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말씀하셨다.
"건봉스님이 한 번 지적한 일은 초학자[初機]를 위한 자상한 방
편이며 운문스님에 와서야 변화에 통하여 후인들이 게으르지 않게
끔 하였다. 여러분은 두 분 스님의 뜻을 깊이 캘지언정 두 분의
말씀을 좇진 말라. 뜻을 얻으면 바른 길로 되돌아와 집으로 돌아
가려니와, 말을 찾는다면 삿된 길로 미끄러져 더욱 멀어지리라."
불자로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범부니 성인이니 하는 망정(妄情)이 다하여 진상(眞常)이 그대
로 드러나고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하면 바로 여여한 부처라 하였
다.
이는 옛사람이 먹다 남긴 국이고 쉰 밥이긴 하나 상당한 사람
들이 먹질 못하고 있다. 내가 이 말을 들먹였으니 손해가 적지를
않구나. 점검해낼 사람이 있다면 바로 부처의 병과 조사의 병을
알리라. 만일 점검해내지 못한다면 섬부(陝府)의 무쇠소*가 천지
를 삼키리라."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섬부의 무쇠소(陝府鐵牛):섬부는 지금의 하남성(河南省)자리. 여기에는 철제로
만든 큰소가 있다는데 움직이지 않는 것의 상징으로 쓰임.
게송
조주감파*
趙州勘破
총림에서 걸출한 조주여
노파를 간파한 일, 이유가 있었구나
지금 세상이 거울처럼 맑으니
길 가는 사람은 길과 원수맺지 말지어다.
傑出叢林是趙州 老婆勘破有來由
而今四海淸如鏡 行人莫與路爲
*조주스님이 사는 오대산에 들어오는 길가에 노파가 있으면서 납자들이 오다가
"오대산은 어디로 갑니까?"하고 물으면 "곧장가시오"하여 그가 서너 걸음 내딛으
면 "멀쩡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군"하였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은 "내가 직접 간파해 보리라"하였다. 이튿날 가서 그렇게 물으니
노파는 여전히 그렇게 대답하는지라 스님은 돌아와서 대중에게 말하였다. "내 그
대들을 위해 그 노파를 간파했다."
한유시랑이 태전스님을 봄*
韓愈侍郞見大顚
일등가는 종사(宗師)가 가풍을 펴서
정성을 다한 법문으로 한공(韓公)을 위했으니
사자 굴 속에는 다른 짐승 없고
코끼리왕 가는 곳 여우 자취 끊겼네.
宗師一等展家風 盡情施設爲韓公
師子窟中無異獸 象王行處絶狐
보수스님이 개당을 하니 산성스님이 어떤 스님을 밀침*
寶壽開堂三聖推僧
보화왕좌(寶華王座)에 처음 오를 때
삼성이 한 스님을 밀쳐 대중의 의심 결단했네
방망이 끝엔 분명히 노소가 없는데
천하에 눈먼 사람들 몇이나 알랴.
寶華王座始登時 三聖推僧決衆疑
棒頭分明無老少 天下盲人幾箇知
*태전스님에게 한유가 물었다. "제자는 군주(軍主)에 일이 많으니 긴요한 말씀 한
마디를 일러주십시오."스님이 잠자코 있자 문공(한유)이 어리둥절하거늘 삼평(三
平)이 시자로 있다가 선상을 3번치니 스님이 "무슨뜻인고?"하자 삼평이 "먼저 선
정으로써 동(動)하고 나중에 지혜로써 뽑아 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문공이
삼평에게 절을하고 사례하면서 "화상의 가풍은 높고 거세어 제자는 시자에게서 들
어갈 자리를 얻었습니다"라고 하였다.
* 보수스님이 개당하는 날 삼성스님이 중 하나를 밀어냈다. 보수스님이 그를 때리
자 "그런 식으로 사람을 위해서야 그 중만 눈멀개 할 뿐 아니라 진주성 사람을 온
통 눈멀게 할 것이다" 하자 보수스님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비마암스님이 곽산스님이 찾아온 인연을 봄*
秘魔巖見�u山到因綠
사숙과 조카 서로 만나 둘 다 꺼릴 것 없거늘
마침내 등을 어루만져 바보짓을 하였네
머리를 돌이키니 사람들이 비웃을까 두려워
천리 밖에서 나를 속이러 왔다 하네.
叔姪相逢兩不猜 到頭撫背似癡
廻首恐人生怪笑 報云千里 余來
임제스님이 삼성스님에게 부탁함
臨濟屬三聖
열반[圓寂]으로 돌아가려 하며 이별의 마음 펼 때
정법안장을 잘 지니라 간곡히 당부하였네
할(喝) 소리에 진흙탕 길 열리지 않으니
* 오대산 비마암 스님은 항상 나무 집게[木枚] 하나를 들고 있다가 납자들이 와서
절을하면 목덜미를 집고 말하되 "어느 마군이가 너를 중을 만들었으며 어느 마군
이가 너를 행각하게 했는가? 대답을 하더라도 집어서 죽이고 못하더라도 집어서
죽이리라. 속히 말하라"하였다. 그때 곽산스님이 와서 품안으로 뛰어드니 비마암
스님은 등을 세 차례 문질렀다. 곽산스님이 튀어나가 손을 들고 말하기를 "삼천리
밖에서 나를 속였구나" 하였다.
* 임제스님이 세상을 뜰 때 삼성스님이 원주로 있었는데 임제스님이 상당하여 말
하기를 "어찌 감히 스님의 정법안장을 멸망케 하겠습니까?"하였다. 이제 임제스님
이 말하기를 "갑자기 누군가가 물으면 그대는 무었이라 대답하겠는가?" 하니, 삼
성스님이 말하기를 "갑자기 누군가가 물으면 그대는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하니,
삼성스님이 할을 하거늘 임제스님이 말하기를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당나귀에
게 멸망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하였다.
이로부터 눈먼 나귀 타는 사람 적었으라.
圓寂將歸 別時 法眼好任持
喝下不開泥水路 驢從此少印騎
영운스님이 복사꽃을 보고 도를 깨달음*(3수)
靈雲見桃花悟道
2월 3월엔 햇빛도 따사롭더니
여기저기 복사꽃 나무마다 붉었어라
종장(宗匠)은 깨달아도 철저하지 못하여
지금도 여전히 봄바람에 벙글거리네.
二月三月景和融 遠近桃花樹樹紅
宗匠悟來猶未徹 至今依舊笑春風
용과 코끼리[龍象] 서로 만남 세상에 드물어
한 번 오고 한 번 감에 친소가 나타나네
요즘 사람 그 속의 뜻 깨닫지 못하고
잎을 따고 가지 찾아 객진(客塵)을 키우네.
* 복주(福州) 영운 지근(靈雲志勤)스님이 위산에서 복숭아꽃을 보고 깨닫고는 시
를 한수 읊었다. 30년 동안 검(劍)을 찾던 나그네/몇 차례나 잎지고 가지 돋았는
가. 복사꽃을 한차례 본뒤로는/오늘까지 다시는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는 위산스
님에게 이야기하니 위산스님이 "인연따라 깨달으면 영원히 물러나지 않으리니 잘
간진하라" 했다. 어떤 스님이 현사스님에게 이야기하니 현사스님이 말하되 "당연
하고 당연한 일이나 노형께선 아직 철저히 깨닫지 못했다고 확신하노라"하였다.
대중이 이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므로 현사스님은 지장스님에게 묻되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니 지장스님은 "계침(桂琛)이 아니었다면
세상 사람들을 몹시 바쁘게 했을 것이니라" 하였다.
龍象相逢世不群 一來一去顯疏親
時人不悟其中旨 摘葉尋枝長客盡
한 번 복사꽃 보더니 다시는 의심치 않았는데
총림에선 깨닫지 못했다고 옳다 그르다 하네
마땅히 알아야 할지니 사심없는 한 기운이라야
마른 나무에서 다시 싹 트게 할 수 있음을.
一見桃花更不疑 叢林未徹是兼非
須知一氣無私力 能令枯木更抽枝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름*(2수)
國師三喚侍者
국사가 시자를 세 번 부르니
풀을 헤침은 뱀을 놀라게 하려 함 뿐이었네
뉘라서 알랴. 산골물 푸른 소나무 아래
천 년 묵은 복령(茯 : 버섯의 일종)이 있음을.
國師三喚侍者 打草祗要蛇驚
誰知澗底靑松下 有千年茯
국사는 말을 꺼냈다 하면 헛소리를 낸 적 없은나
시자를 세 번 불렀어도 소식이 없었구료
*남양 혜충국사가 시자를 불러 시자가 네!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세 번을 불러
세 번을 대답하니 국사가 말하기를 "내가 너를 저버린다 하렸더니 네가 나를 저버
리는구나" 하였다.
평생에 속마음을 남에게 기울였으나
알고 지냄이 모를만 못하였네.
國師有語不虛施 侍者三喚無消息
平生心膽向人傾 相識不如相識
조주스님의 '차나 마시게'*(2수)
趙州喫茶
조주가 사람 시험한 분명한 경계
무심코 입을 열어도 바로 속마음을 알았네
얼굴을 마주할 때 푸른 눈 없었더라면
종풍이 어찌 지금에 이루렀으랴.
趙州驗人端的處 等閑開口便知音
面若無靑白眼 宗風爭得到如今
서로 만나 묻고는 내력을 알아
친소를 가리지 않고 바로 차를 주었네
돌이켜 기억하니 바쁘게 왕래한 자들이여
바쁜 중에 뉘라서 항아리에 가득한 꽃향기를 알았으리.
相逢相問知來歷 不揀親疏便與茶
蒜 憧憧往來者 忙忙誰辨滿 花
* 조주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묻기를 "여기에 왔던적이 있던가?"하여 "그렇습니다"
하면 "차나마시게" 하였다. 또 다른 스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여 이번에는 "왔던
적이 없습니다"하면 이 때도 역시 "차나 마시게"하였다. 이에 원주가 뭍기를 "어
째서 왔던 이도 차를 마시게하고 온 적이 없는 이도 차를 마시게 합니까?" 하니
스님이 "원주야!" 하고 불러 원주가 대답하거늘 "차나 마시게" 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3수)
庭前伯
조주가 뜰 앞의 잣나무를 말하니
납지들이 고금에 서로 전하였네
잎을 따고 가지 찾아서 이해를 했다 해도
나무 한 그루로는 숲을 이루지 못함을 어찌 알랴.
趙州有語庭前柏 禪者相傳古復今
摘葉尋枝雖有解 那知獨樹不成林
짙푸른 뜰 앞의 잣나무 조사의 마음 보이니
조주의 이 말씀 총림에 퍼졌네
구비서린 뿌리는 절개지켜 기름진 땅에 섰으니
납자들이여, 틀 밖에서 찾는 일을 쉬게나.
庭柏蒼蒼示祖心 趙州此語播叢林
盤根抱節在金地 禪者休於格外尋
온갖 나무는 시절 따라 시들기도 하지만
조주의 잣나무는 영원히 무성하네
서리를 견뎌내고 절개를 지킬 뿐 아니라
맑은 바람 맞으며 밝은 달 마주함이 얼마이던고.
萬木隨時有凋變 趙州庭樹鎭長榮
不獨凌霜抱貞節 幾奏淸風對月明
*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묻기를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하자 "뜰 앞 잣나무니라" 하였다.
여릉의 쌀값*
廬陵米賈
여릉의 쌀값은 해마다 새로운데
길 가다가 듣는 헛된 말 다 진실은 아니라네
큰 뜻은 꼭 갈림길에서 물을 것 아니라
오르락내리락하며 본래의 행인을 보아야 하리.
廬陵米賈逐年新 道聽虛傳未必眞
大意不須岐路問 高低宜見本行人
수미산
須彌山
선지식은 자재로와 결코 헛되지 않아서
근기에 ㅁ추어 수미산을 뿜어냈다네
서로 쫓아가며 해마다 길에서 시달리네.
作者從橫終不虛 應機踊出須彌盧
人窮不到金剛際 相逐年年役路途
* 청원 행사 스님에게 한 스님이 불법의 요지를 물으니 "여릉(강서성 부근으로 쌀의
주산지)에는 쌀값이 얼마냐 하더냐?" 하셨다.
북두에 몸을 숨김*
北斗藏身
하늘에 있는 별 모두 북두로 향하고
땅 위의 물은 모두 다 동해로 빠진다
요즘 사람 몸을 숨길 곳 알려 한다면
키[ 箕]들고 딴 곳에서 방아 찧어야 하리.
天上有星皆拱北 人間無水不朝東
時人若識藏身病 拈取 箕別處春
위산스님의 물빛암소*(3수)
山水 牛
옛날 위산에 물빛암소 있더니
지금은 늙어 거친 언덕에 누웠네
겉모습은 엉성하여 힘은 없어도
물 먹이니 여전히 좋은 소라오
사방의 푸른 들에 마음대로 놓아주었다가
천봉(千峰)에 눈이 하얗거든 재빨리 거두네
시절에 ㅁ추어 들고 놓을 수 있다면
* 한 스님이 운문 스님께 묻기를 "무엇이 법신을 꿰뚫는 도리입니까? 하자 "북두
에 몸을 숨기느니라"하였다.
* 위산스님이 대중에게 말하였다. "내가 죽은 뒤엔 산 밑 마을에 가서 한 마리 물
빛 암소가 되어 왼쪽 겨드랑이 밑에 '위산의 중 아무게'라 쓰겠다. 그때 만일
위산이라 하면 암소를 어찌하여 암소라 하면 내 이름은 어찌하겠는가?" 그러자
앙산 스님이 나와 절을 하고 물러갔다.
사방 가득한 뽕밭인데 무슨 근심을 하랴.
昔日 山有水 而今老倒臥荒丘
形容貞立雖無力 灌啖依前是好牛
四野草靑隨處放 千峰雪白早須收
若能擡擧及時節 極目桑田何用憂
천군만대(千群萬隊)의 물빛암소도
위산의 한 마리에서 벗어나진 않네
무심히 몸에 지니면 항상 현전(現前) 하려니와
마음을 내서 찾는다면 찾지 못하리
크지도 작지도 않으나 근력은 있어
한 몸에 두 이름, 아는 사람 적어라
인연 따라 놓아주니 초목은 푸르고
늦은 석양에 거두니 천지가 어둡다네
끌고 놓아줌은 코 끝의 고삐여야만 하니
고삐 얻지 못하면 잡을 도리 없으리
고삐 없는 많은 세상 사람들
빤히 보면서도 이 도둑소를 놓쳐버렸네.
天群萬隊水 牛 不出 山這一隻
無心管帶常現前 作意追尋尋不得
不大不小有筋力 一身兩號少人識
隨綠放去草木靑 遇晩收來天地黑
收放須得鼻頭繩 若不得繩無準則
世間多少無繩人 對面走却這牛賊
위산의 물빛암소 뼈만 앙상하여
철 따라 털옷을 바꾸어 입는다
동자는 뿔에 받힐 줄 모르면서
덜렁대는 마음으로 별안간 허리에 타고서
홀연히 그림자를 가이없이 희롱하다가
모르는 곁에 몸 뒤집혀 구렁창에 빠져버렸네
곧장 일어났으나 소는 간데 없어지고
온몸은 진흙 속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네.
山水 骨羸錐 改變毛衣隊四時
童子未知攀角上 序心便要驀腰騎
忽然弄影無邊際 不覺蒜身墮
납자에게 주는 글
示禪者
남북을 분간 못하고
천지를 속이면서
현묘한 도리를 논함은
당나귀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南北不分 欺天罔地
說妙談玄 驢鳴狗吠
전대도에게 답함
和全大道
음광(飮光)존자는 한량 없는 세월을 좌선하였고
포대(布袋)화상은 일생동안 정신이 빠졌다
학질 걸린 개는 천상에 태어남을 원치 않고
도리어 구름 속의 백학(白鶴)을 비웃네.
飮光論劫坐禪 布袋終年落魄
疥狗不願生天 却笑雲中白鶴
남악의 높은 누각에서 납자에게 주는 글
南嶽高臺示禪者
풀을 헤치고 바람을 맞아 삿됨과 바름을 가려내려면
우선 눈[眼]속의 모래를 집어 내게나
머리를 들고 천황(天皇)스님의 떡을 맛보면
빈 마음으로 조주스님의 차 마시기는 어려우리
남전(南泉)스님은 말 없이 방장실로 돌아가고
영운(靈雲)스님은 복사꽃 보고 깨달아 오도송 읊었네
처음부터 나를 위해 고친 글[雌黃]을 꺼내어
총림의 올바른 선지식을 보려 해야 한다.
撥草占風辨正邪 先須拈却眼中沙
擧頭若味天皇 虛心難喫趙州茶
南泉無語歸方丈 靈雲有頌悟桃花
從頭爲我雌黃出 要見叢林正作家
남악에서 수납자를 전송함
南嶽送秀禪者
인공(人空)과 법공(法空)을 깨닫고
문득 나를 하직하고 수많은 봉우리를 떠나려 하는구려
아 - 아!그대의 지견(知見) 아직 통달치 못하였으니
인연 따라 시설해선 실로 통하기 어려워라
연못에 비친 달을 마음에 두어 붙들지 말고
절개를 지녀 눈 맞은 소나무를 속여야 하네
여기를 떠나 안온한 곳을 알려는가
천태(天台)와 안탕(上蕩)은 강동(江東)땅에 있다네.
悟得人空與法空 便擬辭予出亂峯
嗟汝見知猶未達 任錄施設信難通
在心勿守澄潭月 秉節須欺帶雪松
此去欲知安穩處 天台上蕩在江東
황벽산 초유나에 부침
寄黃檗初維那
방망이를 얻어맞고는 단제(황벽)스님을 붙들어 도와주었고
병을 걷어차고는 그 자리에서 위산 스님을 얻었다네
시비거리는 총림의 입을 식히지 않았는데
무슨 사건이 세간에 가득 퍼지나.
喫棒祗因扶斷祭 甁當下得 山
是非未寒叢林口 何事流傳滿世間
운전좌에게 주는 글
示雲典座
훌륭하신 우리 황제의 도 순박하여
순조로운 비와 바람 곳곳에 들리네
채소밭 푸른 채소에 벼는 벼대로 익으니
때맞은 변통은 모조리 그대 덕분이라네.
當今明聖道唯淳 塊雨條風處處聞
園裡菜靑禾又熟 時中通變盡由君
남악의 파초암 주인에게 부침
寄南嶽芭蕉庵主
영원(靈源)에서 헤어진 후 또 한번의 봄을 맞으니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나 만날 길 없음이 한스러워라
대사껜 파초를 심는 비결 있으니
다음 사람을 뽑아서 전수하는 일 삼가시오.
一別靈源又一春 欲期再會恨無因
吾師有種芭蕉訣 愼莫傳持取次人
절에서 물러나 여산을 이별함
退院別盧山
10년 여산 살던 중이
하루아침에 층층 바위를 나오네
옛 친구와 강가에서 이별하는데
와로운 배는 날아오르는 학을 실었네
물결은 강언덕을 따라 구비치고
돛은 바람 부는대로 휘어지니
가고 머뭄에 본래 집착이 없어
선가에선 사랑과 미움이 끊어졌다오.
十年廬嶽僧 一旦出巖層
舊友臨江別 孤舟帶鶴登
水流隨岸曲 帆勢任風騰
去住本無著 禪家絶愛憎
옥산으로 되돌아가는 사백을 전송함
送師伯歸玉山
오실 땐 가을바람 불더니
가실 땐 봄바람 이는군요
바람의 성품 본래 집착이 없듯
사백의 마음도 역시 그러합니다.
옛 절 되돌아가 옥산을 그리워하시니
아득히 천리길이군요
떠나보내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아득히 넘실대는 텅 빈 강물뿐이군요
來時秋風生 去時春風起
風性本無著 師心亦復爾
舊寺歸懷玉 千百里
送別何所談 浩渺空江水
앙산 원감원에게 베장삼으로 보답함
酬仰山圓監院布衫
먹물옷 난삼[ 衫]을 누가 알아보랴
소매 끝과 옷깃이 퍽이나 잘 어울리네
조주는 일찍이 일곱 근의 무게를 보였고
동산[洞上]에선 두팔기(竇八機)를 온전히 제창했다오
칠하지 않은 산색 물색은 눈에 넘치고
단엄한 몸은 지조를 기대할 만하구려
자재롭게 염부제를 붙어 살면서
도리어 요란한 서리바람 비웃는다오.
墨 衫誰辨別 袖頭打領頗相宜
趙州曾示七斤重 洞上全提竇八機
溢目不粧山水色 嚴身堪作歲寒期
綜橫著在閻浮世 蒜笑霜風遼亂吹
훈·안 두 납자를 전송함
送勛顔二禪者
선(禪) 밖엔 별다른 일 없어
봄기운 타고 수려한 물로 가는구나
나에게 반게(半偈)를 구하고
나아가서 고달픈 중생을 위로한다네
해가 나오니 안개 구름 흩어지고
바람이 훈훈하니 초목이 무성하다
거듭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랴
법마다 본래 원만히 이루어진 것을.
禪外無餘事 乘春秀水行
就予求半偈 前去慰勞生
日出雲霞散 風和草木榮
何須重話會 法法本圓成
부가 한두 번 나와서 문병한 데 대해 감사드림
謝富一二修造問病
어리석음을 따라 애욕이 있으니
곧 나의 병 생겼고
유마가 모범을 보이자
문수가 이윽고 떠났네
지·수(地·水)가 서로 어긋나
화·풍(火·風)이 서로 부딪쳐
각각 어울리는 곳 없는데
어찌 분별해 앎을 용납하랴
오가는 말은 다함 있어도 생각은 다함이 없어
달은 차가운 연못에 교교한데 가을 이슬은 방울방울 맺히네.
從癡有愛 則我病生
淨名垂節 文殊遂行
地水相違 火風相擊
名無所從 寧容辨識
分飛言盡意不盡 月皎寒潭秋露滴
착유나를 전송함
送著維那
청정한 원력의 마음을 버리지 않고
소매를 걷어부치고 다시 미혹한 뭇중생 교화하는구려
떠나보내며 오직 보름달에 부탁할 뿐이니
밤마다 같이 다니지만 다른 시내에 이르리다.
淸淨願力心未捨 卷衣又出化群迷
送行唯託金論月 夜夜相隨到別谿
스스로 초상화에 찬을 지음
自述眞讚
한 납자가 나의 초상화를 그려놓고는 나에게 찬문(讚文)을
청하였다. 아 - 아! 그리는 것도 잘못이거니와 찬을 지음
은 더더욱 잘못이로다. 고집스런 명령 바꾸지 않기에 이에
그 뜻에 따라준다.
한 폭의 하얀 명주에
울긋불긋 나를 닮게 그려놓고
나의 모습이라 말하나
그 도적이로다
나의 진면목은 모양 없으니
나의 모습 그려낼 수 없도다
꿈 속에 번개 같은 세월 쉰 한 살이고
고향은 옥산(玉山), 속성은 장(章)씨라오.
一幅素繒 丹靑模勤
謂吾之眞 乃吾之賊
吾眞匪狀 吾貌匪狀
夢電光陰五十一 桑梓玉山俗姓章
늑담의 월장로가 짚신을 보내주신 데 대해 보답함(2수)
酬 潭月長老惠草履
그때 서쪽 조사가 일찍이 남겨놓더니
오늘은 스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구려
짚신을 마주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나 누가 나를 알겠소
달 밝은 밤 신고서 묘고대(妙高臺)에 오릅니다.
當年西祖曾留下 今日蒙師特惠來
覩物思人孰知我 月明著上妙高臺
뼈 찾고 살 찾는 마음 죽지 않았는데
그 때에 한 번 신었는데 다시 무얼 부러워하랴
지금은 2백년 전의 일이 되어버렸으니
마음 알아주는 벗이 아니면 들고 오지 않으리.
尋骨尋皮心未灰 當年一著更何猜
而今二百年前事 不是知音不擧來
절땅으로 들어가는 영·통 두 납자를 홍주에서 전송함.
洪州送永統二禪人入浙
황벽은 마음 물었으나 마음 다하지 않고
홍도(洪都)에서 송별하니 이별이 가볍지 않아라
옛 산으로 돌아갈 날 의론할 겨를 없어
그대 위해 배회하며 가는 길 말한다네
숲 속의 흩날리는 낙엽은 옷에다 찬란함을 다투고
고향의 다듬이소리는 지팡이소리와 뒤섞이리
물물마다 내 집 물건이니
티글 생각[情塵]으로 일일이 밝음을 취하려 하지 말라.
黃檗問心心不盡 洪都送別別非輕
舊山未暇論歸日 爲爾徘徊說去程
林葉 紛衣鬪爛 鄕砧 亮錫交聲
頭頭總是吾家物 莫把情盡取次明
황룡으로 가는 이를 전송함
送人之黃龍
지난날 봉령(鳳嶺)에서 봉황의 털을 얽고
강서와 남악에서 유람을 쉬었다오
이제 황룡(黃龍)의 뿔을 잡으려는가
몸에다가 칠성도(七星刀)를 비껴차야 하리라.
鳳嶺昔曾綴鳳毛 江西南嶽罷遊
而今欲 黃龍角 橫身須佩七星刀
화납자를 전송함
送和禪者
비로자나의 성품은 청정하나
청정은 지킴을 필요치 않네
헤지고 때 묻은 옷 입고
세속에 들어가 간탐과 소유를 타파하라
5·6·7·8·9
남쪽을 향해 북두칠성을 보라
이 가운데 현묘함을 얻는다면
마음대로 포효하게 하리라.
毘盧性淸淨 淸淨不須守
宜著弊垢衣 人俗破�h有
五六七八九 面南看北斗
此中若得玄 縱橫任哮吼
주납자를 전송함
送周禪者
붙잡아 일으키면 쓰러지고
뒤집으면 엎어지는구나
세속[假]을 따르고 진제[眞]를 따르며
그것에게 값을 되돌려주라
사자는 기지개를 켜고
코끼리왕은 되돌아보며
붉게 타오르는 햇빛 속에
구름은 날고 안개는 일어난다
천차만별을 앉은 자리에서 끊고
가만히 요로(要路)를 여니
대장부라면 죽은 토끼는 잡지 말라.
扶起放� 蒜來覆去
隨假隨眞 還伊價數
師子嚬呻 象王廻顧
赤日光中 騰雲起霧
坐斷千差 密開要路
大丈夫漢 莫打死兎
수기(受記) --> 95쪽 15줄
총림성사 서[敍]
내가 총림에 몸을 담은 지 거의 30년 동안 당대의 큰스님들을 만나본 일이 많았으나 세상
을 떠나 단구산(丹丘山) 봉우리에 문을 닫고, 나날이 초목들과 함께 살면서 모든 것을 벗어
던져버렸다. 그러나 옛 버릇을 잊지 못하고 조는 틈에 손에 닿는대로 케케묵은 옛 상자 속
을 뒤지다가, 마침 강서(江西) 효영 중온(曉瑩仲溫)스님의 저서 `나호야록(羅湖野錄)" 한 질
을 찾았다. 첫머리를 펼치니 무착(無着)스님의 서가 있었다.
"옛 철인들이 도에 들어간 숱한 기연(機緣) 중에 선서에 기재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그
허물은 당시 뛰어난 스님들이 편집하면서 빼먹었기 때문이다. 이는, 종문(宗門)을 보호하고
불법을 넓히려 하는 마음이 없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급기야는 훌륭한 분들을 보고서 자기
도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공허한 탄식만을 더해 주었다."
이 말을 자세히 음미해 보니, 참으로 우리처럼 게으르고 오만스러운 자의 병폐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평소 대중으로 있을 때에 보고 들었거나, 선배 또는 근세 스
님들에게서 본받고 기록할 만한 말들을 더듬어 한 권의 책으로 엮게 되었다.
책이 완성되어 무봉( 峰:育王山)의 불조(佛照:德光禪師, 經21∼1203) 노스님에게 올렸더니,
이를 보시고 기뻐하시면서 시자 도권(道權)에게, 이는 참으로 우리 종문의 훌륭한 일[盛事]
이라면서 어찌 목판에 새겨 후세에 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셨다.
그래서 이 책을 "총림성사(叢林盛事)"라 이름하였다. 나를 알아주거나 나를 허물하는 것이
여기에 있으니 비웃지말기를 바란다.
정사(丁巳) 경원(慶元) 3년(經97) 8월 15일 도융(道融)서
총림성사 上
1. 황룡스님을 참방하다 정대경(程大卿)
정대경(程大卿)이 혜남(黃龍慧南:1001∼1069)선사를 찾아뵙자, 혜남스님은 그에게 `태어난
인연[生緣:黃龍三關 중 하나]' 화두를 참구하도록 하였는데, 법창(法昌倚遇:1005∼1081)스님
이 어느 날 혜남스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그 자리에서 번뇌망상을 떨쳐주지 않소?"
"언제 사족이라도 그렸단 말인가? 그 스스로가 단박에 깨닫지 못했을 뿐이오."
"스님은 그를 어떻게 가르치시렵니까?"
"생강을 깨물고 식초를 빨게 하겠소."
"속된 중이 또 저러는구나."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이 말에 법창스님이 불자(拂子)를 뽑아들고 황룡스님을 치자, 황룡스님이 "이 늙은이가 이처
럼 인정머리가 없을 수 있나!"라고 하니, 법창스님은 그만두었다.
2. 소동파의 옥대를 벗기다 불인 요원(佛印了元)선사
불인(佛印了元:1032∼1098)스님이 어느 날 방에 들어가려는데 생각찮게 소동파(蘇東坡:103
6∼經01)가 오자, 그에게 말하였다.
"이곳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거사를 모실 수 없습니다."
"잠시 스님의 육신[四大]을 자리로 빌어 앉아 봅시다."
"이 산승에게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거사께서 만일 대답을 하면 앉도록 하겠지만 대답을
못하신다면 옥대(玉帶)를 풀어 주시오."
이 말에 소동파가 선뜻 말씀해 보라 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거사는 조금 전에 이 산승의 육신을 빌어 앉겠다고 하셨는데, 이 산승의 육신은 본디 빈
[空] 것이며 오음(五陰:五蘊)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사는 어디에 앉겠소?"
이 말에 소동파는 생각해 보았지만 대답하지 못하고, 마침내 옥대를 풀어 놓고 껄껄대며 밖
으로 나가자 불인스님은 행각할 때 입던 누더기를 그에게 선물하였다. 이에 소동파는 세 수
의 게를 읊었다.
백천 개의 등불이 하나의 등불이라
항하의 모래알이 모두가 묘한 법왕이기에
나, 소동파는 감히 이를 아끼지 않고
그대 육신을 빌어서 자리 삼으려 하였다오.
百千燈作一燈光 盡是恒沙妙法王
是故東坡不敢惜 借君四大作禪牀
병든 몸에 옥대를 두르기란 벅찬 일이라
노둔한 근기가 그대의 활촉같은 기봉에 떨어졌노라
기생집 앞에서 걸식할 뻔하였는데
행각선승 옛 누더기와 바꾸었다네
病骨難堪玉帶圍 鈍根闖落箭鋒機
會當乞食歌姬院 換得雲山舊衣
이 옥대 숱한 사람 여관[旅閣]처럼 거쳐오다가
이 내 몸에 전해온 지도 아득하여라
비단 도포 위에 서로 어울리더니
거짓 미치광이 노스님에게 빌려 주노라.
此帶閱人如傳舍 流傳到此赤悠哉
錦袍錯落渾相稱 乞與佯狂老萬回
이에 대하여 불인스님은 게송 두 수를 지어 화답하였다.
석상(石霜:807∼888)스님, 배휴(裴休:796∼870)의 홀(笏)을 빼앗아
3백년간 많은 입에 그 소문 자자했지만
길이 밝은 달과 티없이 함께 할
소동파가 끌러 놓은 옥대만이야 하겠는가
石霜尊得裴休笏 三百年來衆口誇
長和明月共無瑕 爭似蘇公留玉帶
형산 땅 변씨[卞和]는 세 임금에게 옥을 바쳤고*
조나라 인상여는 온갖 죽음 무릅쓰고 되찾아왔네*
귀중한 보배란 오로지 천자만이 쓰는 것인데
어이하여 이 소봉래산(小蓬山:金山)에 있는 것일까
荊山卞氏三朝獻 趙國相如萬死回
至寶只應天子用 因何留在小蓬萊
3. 양차공과 한위공에게 답하다 부용 도해(芙蓉道楷)
제형(提刑) 양차공(楊傑)이 어느 날 부용 도해(芙蓉道楷:1043∼經18)선사를 찾아와 물었다.
"제가 스님과 헤어진 지 몇해입니까?"
"7년 되었소."
"이 7년 동안 참선을 하셨습니까, 아니면 도를 배우셨습니까?"
"북도 치지 않고 피리도 불지 않았소."
"그렇다면 괜히 산수에서 노닐었으니 아무것도 이룬 게 없겠군요?"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잘도 아는군!"
이 말에 양걸은 껄껄 웃었다.
한위국공(韓魏國公:韓琦)이 여름결제 때에 방문하자 도해스님은 산문 밖까지 나와 맞이하니,
그가 말하였다.
"결제 중에는 나오지 못하는데 무슨 까닭에 파계를 하셨소?"
"공적으로 말한다면 한 치의 바늘도 용납될 수 없지만, 사사로이는 수레도 통과합니다."
이 말에 한기는 크게 기뻐하였다.
4. 대우산에 살 때 진정 극문(眞淨克文)선사
진정(眞淨克文:1025∼經02)선사가 균주(筠州) 대우산(大愚山)에 있을 때였다. 태수(太守) 전
익(錢 )이 그곳을 찾아가 보고서 갑자기 선승이 많아진 것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사실은 대
중들이 스님의 도덕 때문에 모여든 것이었다. 그래서 전익은 방장실로 들어가 보았으나 남
다른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이튿날 대중공양[齋]을 열도록 명하여 스님이 앉으려는 찰
나에 병풍 뒤에서 갑자기 개 한 마리가 뛰어나오게 하자, 스님은 몸을 움찔하며 개를 피하
였다. 이에 전익이 비웃으며 말하였다.
"대선지식이란 본래 용도 항복시키고 호랑이도 굴복시킬 수 있다 하는데 어찌하여 개 한 마
리를 두려워합니까?"
그러자 스님이 맞받았다.
"바위 위에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는 굴복시키기 쉽지만, 집 지키는 용을 항복시키기는 어렵
소."
전익이 매우 기뻐하여 스님을 성수사(聖壽寺)로 모셔 와 도를 물었다.
5. 편지를 전하다 / 승천 전종(承天傳宗)
승천사(承天寺)의 전종(傳宗)스님이 행각할 때였다. 천주(泉州) 서은(棲隱)스님을 위하여 부
마(駙馬) 이도위(李遵勖 都尉:?∼1038)에게 편지를 전하고자 경사(京師)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가니, 그가 스님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서울까지 왔소?"
"절 일로 편지를 가져왔을 뿐이오."
"방금 내가 물은 것이 후회스럽소."
"도위께서는 항상 편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도위가 악! 하고 할을 한번 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면 용서할 수 없소."
"30년 후에 이를 거론할 사람이 꼭 있을 것이오."
이 말에 이도위는 큰소리로 웃었다.
6. 원두 소임을 맡아서 / 흥양 청부(興陽淸剖)선사
흥양 청부(興陽淸剖)선사가 처음 대양(大陽警玄:942∼1027)스님 회하에서 원두(園頭:채소밭
관리를 맡은 스님)가 되어 외씨를 심고 있는데 대양스님이 물었다.
"참외가 언제쯤 익을꼬?"
"지금 다 익었습니다."
"단 것을 골라 따오너라."
"따오면 누구와 드시겠습니까?"
"참외밭에 들어가지 않는 자와 먹겠다."
"참외밭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참외를 먹을 수 있습니까?"
"너도 그를 아느냐?"
"모르지만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양스님은 웃으면서 참외밭을 떠났다.
청부스님이 병으로 앓아 눕자 대양스님이 문병을 와서 말했다.
"이 몸이란 허깨비나 물거품 같은 것이지만 허깨비나 물거품 속에서 일을 마쳐야 한다. 만
일 허깨비나 물거품 같은 것 마저 없다면 생사대사를 끝낼 길이 없다. 만일 생사대사를 끝
내려고 하거든 이 허깨비나 물거품을 알아 차려야 한다.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도 아직은 이곳 일입니다."
"그렇다면 저곳은 어떠한가?"
"온 누리에 태양이 찬란하여도 바다 밑엔 꽃이 피지 않습니다."
대양스님이 웃으면서, 그에게 정신이 또렷또렷하냐고 물으니 청부스님은 할을 한번 하고 나
서 말하였다.
"내가 모든 것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청부스님은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대양스님은 마침내 그의 의발과 게송을 부산 법
원(浮山法遠:997∼1067)스님에게 전하였고, 부산 법원스님은 투자 의청(投子義靑:1032∼1082)
스님에게 전하여 조동종(曹洞宗) 일파를 일으켜 세웠다.
7. 운문의 정종을 잇다 / 원통 법수(圓通法秀)선사
법운사(法雲寺)의 원통법수(圓通法秀:1027∼1090)선사는 처음 `화엄경"을 공부하다가 하루
는 "내가 책을 보니 `선재동자는 처음 문수보살을 만나고서도 또다시 經0성(城)을 돌아다니
며 53인의 선지식을 찾아갔다' 하고, 또 `달마스님은 서쪽에서 오시고 육조 혜능스님은 남쪽
으로 떠나가서 교학 밖에 따로 무상심인(無上心印)을 전했다'고 하는데, 내 어찌 한 쪽 모퉁
이에 머물러 성상(性相:法性宗과 法相宗)의 종문(宗門)에 머물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하였
다. 이를 계기로 하던 공부를 모두 팽개치고 행장을 꾸려 남부지방을 돌아다니다가 무위산
(無爲山)에 이르러 의회(天衣義懷:992∼1064)스님을 찾아뵈니 스님이 물었다.
"좌주(座主:강사의 존칭)는 무슨 경을 공부하였나?"
" `화엄경"을 대강 공부했습니다."
"`화엄경"에서는 무엇을 종지로 삼는가?"
"법계(法界)를 종지로 삼습니다."
"법계는 무엇으로 종지를 삼는가?"
"마음입니다."
"마음은 무엇으로 종지를 삼는가?"
법수스님이 대답을 하지 못하자, 의회스님은 말하였다.
"터럭끝 만큼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벌어진다. 그대 스스로 이를 수긍하게 되면 깨닫는
바 있을 것이다."
그 후 17일이 지난 어느 날, 한 스님이 화두를 거량하였다. "백조(白兆圍圓)스님이 보자(報
慈慧朗)스님에게 `알음알이가 생기면 지혜가 막히고, 생각[想]이 변하면 본체[體]가 달라진다
고 하는데 알음알이가 생기지 않았을 때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으니 보자스님이 `막혔구나!'
하였다" 이 말을 듣고서 법수스님은 크게 깨치고 곧장 방장을 찾아가 깨친 바를 말하니, 의
회스님은 기뻐하며 말하였다.
"전후하여 수많은 좌주가 나를 찾아왔었지만 오직 그대만이 큰 법을 이어 받을 만하다. 앞
으로 우리 종문은 너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에 법수스님은 8년 동안 부지런히 섬기니, 의회스님의 추천으로 수좌가 되었고, 서주(舒
州) 사면산(四面山)의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갔다. 뒤에 동경(東京) 법운사(法雲寺)의 주지를
지냈으며, 운문(雲門)의 정통 종지가 이로부터 세상에 크게 펼쳐졌다.
8. 투자사의 전좌가 되다 / 부용 도해(芙蓉道楷)선사
부용 해(芙蓉道楷:1042∼經18)선사가 투자(投子義靑)스님 회하에 에 있을 무렵, 전좌(典座;
대중의 식사를 맡은 소임)가 되었는데 하루는 투자스님이 물었다.
"부엌살림 꾸리기가 쉽지 않지!"
"아닙니다."
"죽을 끓이느냐, 밥을 짓느냐?"
"인부들은 쌀을 씻고 불을 지피며, 행자들은 죽을 끓이고 밥을 짓습니다."
"너는 무엇을 하는고?"
"스님의 자비로 그들에게 맡겨두고 한가로이 지냅니다."
이 말에 투자스님은 깜짝 놀랐다.
9. 한 납자를 제접하다 / 정인사 고목 법성(枯木法成)선사
정인사(淨因寺)의 고목 법성(枯木法成:1072∼經28)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사람인가?"
"서천(西川)사람입니다."
"언제 고향을 떠나왔는가?"
"작년 2월입니다."
"고향 떠나기 전의 일을 한 마디로 할 수 있겠나?"
"온 몸이 입이라 해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직도 집을 떠나 일 자리가 없는 자의 말에 불과하다."
그 스님이 아무 말 못하자 법성스님은 불자로 한 차례 후려치면서 "부질없이 수많은 짚신짝
만 닳아 없앴구나!"라고 하였다.
10. 총림을 소란케 하다가 / 불심 본재(佛心本才)선사
고산사(鼓山寺) 불심 재(佛心本才)선사는 복주(福州) 민현( 縣) 사람이다. 처음에 사심(死
心悟新)스님을 찾아뵈니, 사심스님이 물었다.
"고향이 어딘고?"
"복주입니다."
"현사(玄沙師備)스님은 오령(五嶺)을 넘어가지 않았고, 보수(保壽)스님은 강을 건너지 않았다
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가?"
"걸어가면서 팔을 흔드는 것이야 어떻겠습니까?"
"왼팔을 흔들었느냐, 아니면 오른팔이냐?"
본재스님이 두 손을 길게 늘어뜨리고 흔들며 나오자 사심스님은 매우 기뻐하며 그를 받아들
여 머물도록 허락하였다. 얼마 후 시자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는데 시자가 사심스님에게 "본
재는 가는 곳마다 총림에서 물의를 일으켜 소란스럽게 만드니 스님께서는 그를 이곳에 머물
게 해서는 안됩니다."하여, 사심스님은 마침내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말하였다.
"듣자하니 너는 가는 곳마다 어느 총림에서든지 소란을 피운다 하니 우선 다른 곳으로 가보
아라."
본재스님은 "큰 선지식이 눈은 어디다 두었소!"하면서 소매를 떨치고 떠나 그 길로 소묵(昭
默)스님을 찾아뵈었다. 소묵스님은 그를 받아들였으며, 얼마되지 않아 마침내 황룡스님의 도
를 깨쳤고, 소묵스님은 그에게 큰 법을 맡겼다.
11. `능가경"을 보다 / 장안도(張安道)
낙전선생(樂全先生) 장안도(張安道)가 경력(慶曆:1041∼1048) 연간에 제주( 除州) 태수로 있
을 때였다. 한 절에 갔는데 불교서적이 책꽂이에 기지런히 꽂혀 있기에 이상히 여겨 뽑아
보니, `능가아발다라보경(楞伽阿跋多羅寶脛)"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어렴풋한 옛 물건
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필적을 자세히 살펴보니, 완전히 자기가 쓴 글씨였다. 이에
기쁨과 슬픔이 엇갈려 큰 한숨을 쉬고, 이로부터 깨침을 얻게 되었다.
일찍이 경(능가경)첫 머리 4수의 게로써 마음의 요체를 밝혔는데, 소동파가 남도(南都)를 지
나는 길에 친히 장안도의 책을 보고는 다시 30만 냥을 맡기면서, "이 책을 인쇄하여 강회
(江淮)지방에 반포하라"고 당부하였다. 소동파는 몸소 불인(佛印了元)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금산사(金山寺)에서 간행을 맡아 주도록 부탁하였다. 이 일로 소동파가 낙전에게 보낸 시구
(詩句)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낙전거사 하늘에 노닐어
유마거사 방장실이 쓸쓸하네.
樂全居士樂於天 維摩丈室空 然
12. 부모를 찾아뵙다 / 설당 도행(雪堂道行)선사
설당 행(雪堂道行:1089∼1151)스님은 괄창(括蒼)사람이다. 어린 나이로 진사시(進士試)에 급
제하였으나, 살생하는 것을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생겨 마침내 집을 나왔다. 사주(泗州)보조
왕사(普照王寺)에서 출가하여 탑청소를 맡아보다가, 삭발한 뒤에는 서주(舒州)용문사(龍門
寺)의 불안(佛眼淸遠)스님에게 귀의하여 시자가 되었다. 옷 한 벌로 여름과 겨울을 지내고
게다가 이( )를 죽이지 않으니, 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싫어하여 항상 불당의 구석에서 혼
자 좌선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현사(玄沙師備)스님의 `축착각지두(築著脚指頭)'*라는 화두
를 들다가 크게 깨친 바 있었다. 불안스님은 사천 땅 사람인데, 상당법문을 하려다가 마침
도행스님이 옆에 서있는 것을 보고 장난삼아 말하였다.
"사천성 중은 장난꾸러기 망나니이고 절강성 중은 말끔하다. 여러분들이 내 말을 믿지 못하
겠거든 나의 시자승을 보라."
이 말에 모든 대중이 껄껄대며 웃었다.
그 후 그의 아버지가 태상박사(大常博士)에서 삼구(三衢)태수로 나오게 되었을 때, 도행스님
은 어머니가 매우 늙었으므로 집을 찾아갔다. 문지기가 그의 남루한 옷차림을 보고 두번 세
번 들어가지 못하게 하므로 마침내 도행스님은 옷을 벗어 건네 주자 겨우 통과할 수 있었
다. 그의 모친은 소식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거꾸러지면서 "내 아들이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이냐!"하고 놀라며, 마침내 도행스님을 내실로 맞이하여 옷을 갈아 입히고 목욕을 하
도록 하였다. 스님이 목욕하는 사이에 옷을 모조리 새 옷으로 바꾸어 놓으니 도행스님이 울
면서 말하였다.
"내 몇해 동안을 그들과 한 식구로 지내왔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버릴 수 있겠습니
까?"
그 길로 곧장 길상사(吉祥寺)를 찾아가 잠을 잤다. 이튿날 부모 형제가 모두 찾아가서 만나
려고 하였으나 도행스님은 첫 새벽녘에 떠나서 만날 수 없었고, 벽 위에 시 한 수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내 마음 쇠붙이 같다고 미워하지 마오
내 자신도 아직껏 안타까워 하나니
문 앞에 내린 눈 모두 쓸고 나면
바야흐로 불꽃 속에 연꽃이 피겠지요
온갖 일 다시는 묻지 말고
다같이 인연을 잊어버립시다
이 일을 이루는 날에
금강의 씨앗이 나타나리다.
莫嫌心似鐵 自己尙爲
掃盡門前雪 方開火裡蓮
萬般休更問 一等是忘緣
箇事相應處 金剛種現前
그의 어머니는 스님을 잊지 못하여 눈이 멀었다. 다시 괄창 땅으로 돌아오니 그의 아버지
가 남명사(南明寺)의 주지를 맡도록 강요하였고, 구주(¡州)오거사(烏巨寺)로 옮기자 스님의
도는 크게 떨쳐졌으며, 요주(饒州)천복사(薦福寺)에서 열반하였다. 묘희(大慧宗 )스님이 도
행스님의 어록에 손수 쓴 서문이 세상에 널리 전해오고 있다.
13. 소치는 노래 / 전우(典牛)스님
전우(典牛)스님은 성도(成都)사람이며 성은 정씨(鄭氏), 이름은 천유(天游)이다. 본래 관리
의 집안으로 고을의 초시(初試)와 재주(梓州)의 복시(覆試)에 모두 급제하였으나 천유는 이
를 마다하고 이름을 숨기고서 관문 밖을 나갔다. 때마침 산곡도인(山谷道人)황정견(黃庭堅)
이 촉 땅에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비범한 기골과 뛰어난 논변을 보았다. 마침내
그와 함께 배를 타고 여산에 갔고, 그는 머리를 깎았지만 옛 이름은 바꾸지 않았다.
맨처음 사심(死心悟新)스님을 찾아뵈었으나 기연이 맞지 않자 늑담사( 潭寺)담당(湛堂文準)
스님에게 귀의하였다. 당시 묘희 스님은 시자였고, 천유스님은 서사(書司)를 맡고 있었기에
아침저녁으로 서로 함께 지냈다. 그후 고약산(古藥山)에 가서 생사대사를 밝히고 여산의 소
보봉사(小寶峰寺)의 주지를 지냈으며, 뒤에 운암산(雲岩山)에 주석하였다.
일찍이 충도자(忠道者)의 `목우송(牧牛頌)"에 화답시를 지었다.
두 뿔은 하늘로 향하고
네 발은 땅을 밟는데
코뚜레만 끌어당기면
소 칠 일이 어디 있겠나
兩角指天 四蹄踏地
斷鼻圈 牧甚屎
처음 장무진거사는 스님의 평범한 모습을 보고서 섬기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를 업신
여겨 "미친 놈 천유"라고 하였는데, 뒷날 묘희스님이 이 송(頌)을 바치자 그는 책상을 어루
만지며 칭찬해 마지않았다. 이에 묘희스님이 물었다.
"상공(相公)은 한 번 말해 보시오. 이 송은 누가 지었다고 생각됩니까?"
"미륵대사(彌勒大士)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소?"
"이 송은 바로 지난날 `미친 놈 천유'가 지은 글입니다."
"이상하고 이상한 일이다! 담당스님에게 이런 아이가 있었다는 말인가. 임제의 온 종문이 여
기에 있구나. 전당포에 잡히면 돈 100관은 빌려 쓸 수 있겠다. 이 장상영의 눈도 별 게 아니
였어. 자칫하면 이 사람에게 잘못을 범할 뻔했군."
마침내 그는 향을 사르고 운암산을 바라보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천유스님이 뒤에 운암사에서 물러나와 여산 서현사(棲賢寺)를 지나가는데, 그곳의 노스님들
은 스님에게서 고집과 사천 사람의 기질을 보고는 그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서 도
리어 이렇게 물었다.
"노스님께서 바로 전당포에 잡힌 천유스님이십니까?"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게를 짓고 떠났다.
전당포에서 소를 전당잡을 줄 알려는지?
물어줄 값이 너무 비싸 갚기가 어렵기 때문이지.
생각해 보니 그대에겐 근본 공부에 재주가 없는 듯하니
어떻게 이 소 한 마리를 받아들일 줄 아시겠소
質庫何曾解典牛 只緣償重實難酬
想君本領無多子 爭解能容者一頭
이를 계기로 무녕산(武寧山)에 암자를 짓고 40년 동안 주석하면서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
오지 않았는데, 도독(塗毒智策)스님이 그를 만났을 때는 이미 93세였다.
14. 하늘을 꾸짖는다[罵天]는 호를 가진 스님 / 불등 수순(佛燈守)선사
불등 순(佛燈守珣)스님의 호는 매천(罵天), 호주(湖州)안길(安吉)사람이다. 불감(佛鑑慧懃)스
님의 법제자로 화산사(禾山寺)의 주지를 지냈다.
어느 날 법상에 오르자 한 스님이 물었다.
"`빈중빈(賓中賓)'이란 무엇입니까?"
"나그네의 길은 하늘처럼 멀기만 한데,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바다처럼 깊구나."
"`빈중주(賓中主)'란 무엇입니까?"
"먼 길손 떠나보낼 때, 집 떠나던 생각이 나는구나."
"`주중빈(主中賓)'이란 무엇입니까?"
"서로 만나 말에서 내리지 않는 것은 제각기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
"`주중주(主中主)'란 무엇입니까?"
"하루아침에 조사의 명령을 시행하니 어느 누가 앞에 나설까?"
"`빈과 주[賓主]'에 향상사(向上事)가 있습니까?"
"향상사를 가지고 물어 보아라."
"향상사란 무엇입니까?"
"큰 바다가 만일 스스로 만족하면 모든 강물은 아마 거꾸로 흐르리라."
그 스님이 절하자 수순스님은 말하였다.
"이는 내(珣上座)가 30년 동안 공부해서 얻은 것이다."
15. 시기를 받다 / 개복사 영도자(寧道者)
개복사(開福寺)영도자(寧道者:?∼1113)는 흡주( 州)사람이며, 오조 법연(五祖法演)스님에게
공부하였다. 법연스님은 그의 고상한 뜻과 뛰어난 식견을 보고서 항상 대중 앞에서 그를 칭
찬하고는 그에게 당사(堂司)소임을 맡겼다. 그런데 도반들이 그를 시기하여 밤중에 산길로
끌고가서 이야기 끝에 때려서 얼굴에 상처를 입히니, 영도자는 대중법회에 나가지 못하였다.
법연은 이 소식을 듣고 몸소 찾아가 문병을 하고 물었다.
"듣자하니 그대가 한 떼거리 놈들에게 봉변을 당했다던데, 어찌하여 방장으로 찾아와 억울
함을 씻고 나에게 알려서 그놈들을 쫓아내지 않았느냐?"
그러나 영도자는 차마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말하였다.
"이는 제 스스로 다친 것이지, 다른 일에 관계된 것은 없습니다."
오조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나의 인욕이 그대만 못하다. 뒷날 어느 누가 그대를 어찌할 수 있겠느냐?"
뒤에 영도자는 개복사의 주지가 되어 회하에 500명의 대중을 수용하였다. 입적할 때에는 미
리 입적할 날을 정해 놓고서 가부좌한 채 열반하였으며, 월암 선과(月菴善果:1079∼1152)스
님에게 법을 전했다. 월암스님은 대중의 밑바닥에 묻혀 있었기에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였
지만, 원오(圓悟克勤)스님만은 그를 알고 있었기에 후일 그가 세상에 나가도록 도와주었고,
송을 지어 전송하였다.
흡산노인의 말후구를
명명백백 사절당(月菴이 주석한 곳)에 몸소 전하니
바른 법령 행하는데 그 기상 늠름하여
북두성에 쏘는 칼빛 하늘에 번뜩이네.
山老人末後句 的的親傳四絶堂
正令已行風凜凜 斗間劍氣燭天光
16. 원오스님에게 귀의하다 / 응암 담화(應菴曇華)선사
응암(應菴曇華:1103∼1163)스님은 처음 장산(蔣山)원오(圓悟)스님의 회중에 귀의하여 차암
경원(此菴景元:1094∼1146)스님과 도반이 되었다. 경원스님이 처주(處州)연운사(連雲寺)의 주
지로 있을 무렵, 담화스님이 호구 소륭(虎丘紹隆:1077∼1136)스님의 회중에 있다가 연운사를
찾아갔다. 처음 찾아왔는데도 경원스님은 그를 곧장 수좌를 시켰다가 얼마 뒤에 입승을 시
키고는 법상에 올라 설하였다.
"서하(西河)에 사자가 있다고 하더니만 이 연운사엔 호랑이(호구 소륭)새끼가 나타났다. 몸
소 사나운 호랑이 굴 속에 있다가 나오니, 털무늬가 또렷하고 발톱과 이빨이 모두 갖추어
있다. 아직은 많은 무리를 놀라게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소 잡아먹을 뜻이 있다. 그는 양기종
의 법령이 땅에 떨어져 자취가 없어질까 염려하여 무쇠 같은 등뼈를 한껏 곧추세우고 스승
과 함께 기염을 토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누군지 알겠느냐. 눈이 가락지같이 큰 사람, 바로
우리 앞에 서있는 이 사람이다."
스님은 뒷날 묘엄사(妙嚴寺)의 주지가 되었다. 호구(虎丘)스님을 위하여 향을 태우고 그 후
10년 동안 줄곧 그곳에 머물렀는데, 그의 도는 묘희스님과 견줄 만하였다. 시랑(侍郞)이호
(李浩)는 오랫동안 스님과 교류하였는데 일찍이 스님의 영정에 다음과 같은 찬을 썼다.
일생을 쉬지 않고 분주하더니
주지가 되자마자 문득 벗어버렸네
오늘날 또다시 영정 위에 나왔구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겠도다
平生波波 裳得箇院子住便打脫
而今又向幀子上出來 知他是死是活
17. 수견송(水 頌)목암 / 안영(木菴安永)선사
목암 영(木菴安永:?∼1173)선사는 복주(福州)장성자(章聖者)의 제자로, 유학을 버리고 불교
에 귀의한 사람이다. 그는 사제 안분(安分)스님과 도반이 되어 양서암(洋嶼庵)의 나암 정수
(懶菴鼎需:1092∼1153)스님을 찾아뵙고 모두가 크게 깨쳤으며, 이를 계기로 `수견송(水頌:`수
견'은 물을 끌어오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홈통)'을 지었다.
가파른 만길 벼랑길을 돌아들면서
물을 지고 달빛 받으며 몇번이나 쉬었던고
이 하나 홈통 속에 하늘로 통하는 구멍을 돌려놓으니
사람 스스로 편안하고 물 스스로 흐르는구나
路繞懸崖萬 頭 擔泉帶月幾時休
箇中撥轉通天竅 人自安閑水自流
묘희스님은 이 송을 보고서 "정수에게 이런 아들이 있었다니, 양기의 법도가 아직까지 쓸
쓸하지 않구나!"라고 감탄하였다.
뒤에 안영스님은 고산사(鼓山寺)의 주지를 지내니 강절(江浙)지방의 스님들이 모두 영(嶺)으
로 들어갔다. 송원(松源崇岳:1132∼1201), 무용(無用淨全 : 1127∼1207), 식암(息菴達觀:1138∼
1212)등 여러 큰스님이 모두 스님 회하에 있었으며 후일 천남사(泉南寺)에서 열반하였다.
18. 묘희스님에게 참구하다 / 직도자[一庵善直]
직도자(直道者)는 안주(安州)사람이다. 처음 회응봉(回應峰)아래 계신 묘희스님을 찾아뵙자
묘희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디 사람인가?"
"안주사람입니다."
"내가 듣자하니 너희 안주 사람들은 씨름을 잘한다는데 그게 사실이냐?"
이 말에 직도자가 곧바로 씨름할 자세를 취하자 묘희스님은 다시 말을 이었다.
"호남 사람이 물고기를 먹으면 호북 사람에겐 뼈다귀만 돌아간다 하더라."
직도자가 물구나무를 선 뒤 나가버리자 다시 말하였다.
"차갑게 식어버린 잿더미 속에 콩알 만한 불씨가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직도자가 마침내 묘희스님의 회하를 떠나 강절지방을 지나갈 때, 삼구(三衢)땅의 승(陞)·식
(式)이라는 두 사람과 동행한 적이 있었다.
후일 금릉 보령사(保寧寺)의 주지를 지냈고, 묘희스님의 법제자가 되어 불법을 크게 떨쳤다.
유수(留守)인 승상(丞相)진준경(陳悛卿)이 여러 절의 주지를 모아 다회(茶會)를 연 자리에서,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등나무가 나무에 얽힌 것 같다"라는 공안을 들어 여러 주지에게 이
를 비판하도록 하였다. 여러 주지들은 모두가 교묘한 말로 승상의 비위를 맞추려 하였지만
오직 스님만은 맨 끝에서 다음과 같이 송하였다.
장씨도 기름을 짜고
이씨도 기름을 짜지만
혼신의 힘을 쓰지 않고
위에만 토닥거리는구나.
張打油 李打油
不打渾身 只打頭
진준경은 매우 좋아하였으며, 얼마 되지 않아 직도자는 장산(蔣山)의 주지로 옮겨가게 되었
다.
19. `정신없이 바쁜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다 / 혹암 사체(或菴師體)선사
혹암 체(或菴師體:1108∼1179)스님은 태주(台州)황암(黃巖)사람이다. 타고난 성품이 거칠고
소탈하여 무슨 일이든지 닥치는대로 도맡아보니 위아래 도반들이 `체란요(體亂擾:정신없이
바쁜 사체)'라고 불렀다.
호국사(護國寺)에서 차암 경원(此菴景元)스님에게서 공부하였는데, 어느 날 나한전에서 수행
하다가 갑자기 창고 아래에서 얻어맞는 행자의 비명소리를 듣고 훤히 깨쳤다. 곧바로 경원
스님에게 달려가 말하니, 스님은 "이 막둥이가 앓다가 이제사 땀이 났구나!"라고 하였다. 얼
마 후 그에게 지객(知客)을 맡기고 그 후 도전(塗田)의 화주로 보내면서 송을 지어 전송하
였다.
어린아이 정수리에 세 개의 눈알을 달고서
팔꿈치에 험인(驗人)부적 열어젖히며
몽둥이로 죽이고 살리는 일 대단할 것 없으니
바다 건너 대장부가 되어 돌아와야 하느니라.
揷亞頂門三隻眼 放開 後驗人符
杖頭殺活無多子 截海須還大丈夫
그 후 할당( 堂慧遠:1103∼1176)스님에게 귀의하여 호구사(虎丘寺)의 수좌로 있다가 소주
(蘇州)각보사(覺報寺)의 주지로 나아가 차암(此菴景元)스님의 법을 이으니 그의 법이 크게
떨쳤다. 그 후 초산(焦山)으로 옮겼는데 군수 시랑(侍郞)증중궁(曾仲躬)이 항상 그에게 도를
물었으며, 스님이 입적했을 때 돌 벼루를 전해 주자 증시랑은 게를 지어 조문하였다.
외짝신으로 나는 듯 서풍을 따라가니
걸망 안에 아무것도 없네
벼루를 남겨두고 나더러 쓰라 하지만
늙은이 몸엔 허공을 가를 필력이 없구려.
翩翩隻履逐西風 一物渾無布袋中
留下陶泓將底用 老來無筆判虛空
스님의 열반 게송은 다음과 같다.
쇠나무에 꽃이 피니
수탉이 알을 낳네.
일흔 두 해 만에야
요람의 줄을 끊누나.
鐵樹開華 雄鷄生卵
七十二年 搖籃繩斷
스님은 참으로 임제종의 싹[種草]이라 할 만하다.
20. 원오스님의 늦제자가 되다 / 할당 혜원( 堂慧遠)선사
할당 원( 堂慧遠)선사가 처음 무주( 州)금린산(金鱗山)의 주지를 지내고, 후에 건상(建上)
선적사(禪寂寺)의 청으로 그 곳의 주지로 가는 도중에 삼구(三衢)를 지나가게 되었다. 당시
설당 도행(雪堂道行)스님이 오거사(烏巨寺)의 주지로 있었는데 혜원스님이 그를 찾아가 법
권(法眷:계보 권속)을 이야기하였다. 도행스님은 그와 이야기 한 후 기특하게 생각하여 열흘
간을 머물라 하고는 얼른 군(郡)으로 달려가 초연거사(超然居士)를 만나 말하였다.
"사백(師伯)원오(圓悟)스님이 늦게 둔 아들로서 사천 땅 출신 혜원이라는 스님이 있는데 어
제 나의 산사에 왔소. 머지않아 건상의 주지로 부임하려 하는데, 그곳 산이 깊고 외져서 안
타깝습니다. 거사께서 군수에게 말씀드려 이곳 어느 절에 그를 머물게 할 수 있겠습니까?"
초연거사는 "곧 군수에게 말하여 그를 자호산(子湖山)정업선사(定業禪寺)의 주지로 임명하였
다." 이에 할당스님은 군수의 초청을 수락하고 대중설법을 하였다.
분수에 달갑게 여기면서 금린산을 굳이 지켜왔는데
그들이 선적사로 나를 잘못 불러들였네
도중에서 다시 어진 군수의 영을 받아
정해진 업은 피하기 어려워 자호산에 머무노라.
甘分金鱗困守株 誤他禪寂遠招呼
中途再領賢候命 定業難逃住子湖
얼마 후 보은사(報恩寺)의 주지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당시 묘희스님은 형양(衡陽)에 주석
하면서 스님의 이름을 듣고 법의와 함께 게를 보내왔다.
사천 땅 버릇없는 망나니는
참도 없고 거짓도 없이
하얀 몽둥이 하나로
부처가 찾아온다 해도 후려칠 것이다
한 가지 장점이 더 있다면
바리때 속에서 말을 달릴 줄 아는 것이지.
這川 詳 無眞無假
一條白棒 佛來也打
更有一般長處 解向鉢盂裡走馬
혜원스님은 뒷날 여러 사원의 주지를 지내다가 황제의 칙명으로 영은사(靈隱寺)의 주지가
되었다.
21. 깨진 사기그릇 / 밀암 함걸(密菴咸傑)선사
밀암 걸(密菴咸傑:1118∼1186)선사는 민땅( :福建省)사람이다. 처음 영(嶺)을 나와 무주(
州)지자사(智者寺)에서 햇볕을 쪼이고 있었는데 한 노스님이 물었다.
"상좌는 이번 행각을 어디로 갈 예정이오?"
"사명산(四明山)육왕사(育王寺)를 찾아가 불지(佛智本才)스님을 뵙고자 합니다."
"말세가 되어 도가 없으니, 후배 선승들이 행각에 한결같이 귀만 달고 다니지 눈이 없단 말
이야!"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육왕사에는 천명의 대중이 찾아와 노스님은 매일 그들을 맞이하기에도 겨를이 없는데
너희들에게 착실하게 기연을 틔워줄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이 말에 밀암스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저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 길로 구주(衢州)명과사(明果寺)를 찾아가면 화편두(華扁頭:應菴曇華)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비록 후배지만 견식이 뛰어나니, 너는 그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
노스님의 말을 따라 밀암스님은 명과사 담화스님에게 귀의하였다. 담화스님의 가풍은 엄격
하여 들어가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함걸스님은 갖은 고초를 꺼리지 않았다. 하루는 담화스
님이 방장실에서 그에게 물었다.
"바른 법안이란 무엇인가?"
"깨진 사기 그릇이 무슨 값어치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허공이 다 녹아 없어졌을 때는 어떻게 되는가?"
"삐죽삐죽 주머니 속의 송곳자루가 불거져 나옵니다."
"같은 죄를 두 번 벌주지는 않는다."
담화스님은 즉시 법상에 올라 대중들에게 알렸다.
"크게 깨친 사람이 법당 앞에서 절벽이 무너지고 바위가 깨질 만한 말을 하였노라."
함걸스님은 담화스님을 의지하여 4년 동안에 많은 성인의 명맥(命脈)을 모조리 깨치고, 모친
이 연로하여 고향에 돌아가겠다 하니 담화스님은 게를 지어 전송하였다.
크게 깨쳐 기연에 맞는 말로
곧장 정수리가 확 트였고
사년을 함께 지내며
묻고 따져도 훤하여 흔적이 없네
아직은 의발을 전하지 않았지만
그 기상 우주를 삼키리라
바른 법안을
도리어 깨진 사기그릇이라 하였네
이 걸음 모친을 뵈러 가는 길이나
결코 눌러앉진 말아다오
나에게 말후구가 있으니
네가 돌아오거든 전하리라.
大徹投機句 當陽廓頂門
相從經四載 徵詰洞無痕
雖未付鉢袋 氣宇呑乾坤
却把正法眼 喚作破沙盆
此行將省覲 切忌便
吾有末後句 待歸要汝遵
뒷날 구주(衢州)오거사(烏巨寺)의 주지가 되어 학인들이 수없이 운집하자 상당법문을 하였
다.
"종전에는 거짓말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만 산에 불을 질러 밭사이의 골뱅이를 줍고, 하얀
해골 나무 위에 고기는 새끼를 낳고 세찬 여울 가에 새는 둥지를 튼다."
이 말은 모두 스님이 명과사에 있을 때, 깊은 밤에 나무꾼의 노래를 듣고서 무명[三漆桶] 을
타파한 화두이다. 스님의 비밀스런 기연은 헤아릴 수 없는 경지였다.
스님은 전후 일곱 차례나 큰 사찰의 주지를 지낸 후 태백산에서 열반하였다. 그러나 응암스
님의 도는 함걸스님의 힘으로 크게 행하여진 것이다.
참으로 행각하여 스승을 찾아가는 데에는 눈을 가지고 다녀야지 귀만 달고 다녀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한 울타리 밑에 있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겪어 봐야 하며, 절의 크고 작음이나
대중의 많고 적음을 따라 세월을 허송해서는 안된다. 이 일에 있어서 바른 목적을 갖고 있
지 않다면 아무리 석가모니 뱃속을 지나쳐 왔다 해도 똥막대기에 불과함을 알아야 하니 어
찌 이를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22. 천동사의 수좌 / 차암 수인(且菴守仁)선사
차암 수인(且菴守仁)선사는 월주(越州) 상우(上虞)사람이다. 어려서 천태교(天台敎)를 익히
다가 처음 괄창(括蒼)땅에서 설당(雪堂道行)스님을 따라 구주(衢州)오거사(烏巨寺)를 지나는
길에, 때마침 설당스님의 보설(普說)법회를 듣게 되었다.
"지금 그대들이 공부하는 일은 마치 활쏘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아서 먼저 발을 안정시켜
놓고 그 다음에 활쏘기를 배워야 한다. 뒤에는 비록 무심결에 쏘아도 오래 익혔기에 쏘는
족족 명중하게 된다."
그리고는 악!하고 할을 하면서 "지금 화살 날아간다!" 하니 수인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숙이며 화살 피하는 자세를 취하다가 밝게 깨쳤다.
여름안거가 끝나자, 모친이 연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인사를 드리니 설당스님이 게를
지어 전송하였다.
지난 날 유엄(惟儼)스님 `사상(事相)'을 모두 알고
신발 벗고 남쪽으로 큰스님 찾아갈 제
석두(石頭)로 가는 미끄러운 길 고생을 마다않고
몽둥이로 뒤통수 얻어맞으니 모든 게 마땅하구나
그대의 굳건한 뜻을 그 누구와 견주리오
괄창산 백련주(白練州)로 나를 찾아왔구나
거센 파도 소용돌이 치는 곳에
큰소리로 불러봐도 뒤돌아보지 않고
서산에 늙도록 함께 살자 하였더니
다시금 산넘어 고향길을 가겠다하네
돌아올 땐 아마 이 해도 저물겠지!
거기다가 조주에는 노두구(爐頭句)가 있으리라.
儼老昔年窮事相
脫履南游 宗匠
石頭路滑不辭勤
腦後一槌曾兩當
仁禪勁志許誰
訪我蒼山白練州
萬浪千波洶通處
果然呼喚不回頭
西山積老期同住
又設重尋越山路
歸時應是歲華深
趙州更有爐頭句
수인스님은 그후 매산(梅山)땅으로 돌아가 16년간 암자에서 살았다. 그 후 천동사(天童寺)
정각(宏智正覺:1091∼1157)스님이 대주(隊州)에서 상우(上虞)에 이르러 그의 암자에서 하룻
밤을 머물게 되었는데, 침상을 맞대고 함께 이야기해 보고는 그를 매우 기특하게 생각하였
다. 정각스님이 천동사로 돌아와 하안거가 끝나가도록 수좌(首座)를 맞이하지 않자 일 맡은
이들이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아뢰었다. 정각스님은 우리 수좌가 조만간 이곳으로 올 것이
라 하고 시자를 월주(越洲)로 보내 수인스님을 맞이하였다. 수인스님이 천동사에 도착하자마
자 수좌실로 초빙하니, 대중들은 이를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으나 얼마 후 수인스님에게 불자
를 잡고 패(牌)를 걸게 하니, 대중들은 그에게 굴복하였다.
그 후 2년만에 굉지스님이 입적하자 묘희스님이 장례를 주관하였는데 동서 반열(班列)의 모
든 승려가 포복(布服:승려의 喪服)을 입었으나 수인스님만은 이를 입지 않았다. 묘희스님이
이상하게 여겨 그 까닭을 묻자 수인스님은 은밀히 그 사유를 말하였다. 이에 묘희스님은 "
원래 이 사람은 설당 회하에서 온 사람이였군!"하였다.
그는 후일 장노사(長蘆寺)의 주지를 지냈으며 법석이 크게 융성하였다.
오대산 노파 화두에 대하여 지은 송이 있는데 학인들은 앞다투어 이를 읊었다.
등심초며 쥐엄나무 약초를 파는 점포를 열어 놓고
날마다 한 되 한 홉 사갈 사람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는데
끊임없이 장마는 계속되어
본전 · 이자 모두 날리고 수심에 젖어 문전에 기대섰다.
開箇燈心 角鋪 日求升合度朝昏
只因霖雨連綿久 本利一空愁倚門
현모(顯謨閣學士) 여정기(呂正己)가 일찍이 스님에게 도를 묻고 떠나면서 게를 써달라 하
니 스님은 붓을 쥐었다.
그대가 오늘 이렇게 장노사에 왔는데
나의 옷 털어봐도 아무런 물건없네
가다가 만난 사람이 내살림 어떻더냐고 묻거든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거칠더라고 전해주오.
士今親切到長蘆 衣衫一物無
此去逢人如借問 但言風急浪華序
23. 참부처는 어디에 / 백양법 순(白楊法順)선사
백양 법순(白楊法順)선사는 면주(綿州)사람이다. 여러 해 동안 불조(佛照德光)스님에게 귀
의하였는데, 보설법회(普說法會)때 부대사(傳大士:497∼569)`심왕명(心王銘)"의 "물 속의 소
금맛이나 색깔 속의 푸른 아교는 결단코 있는 것이지만 그 형체는 볼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밝게 깨친 바 있었다. 그 이튿날 입실하자 불조스님이 물었다.
"참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정해지지 않는 곳에 계십니다."
"이미 참 부처인데 어찌하여 정해진 곳이 없다는 말인가?"
"정해진 곳이 있다면 그것은 참 부처가 아닙니다."
이 말에 불조스님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뒷날 그는 임천(臨川)에서 지내며 도를 크게 떨
쳤는데 상당 설법을 하였다.
"개는 황혼녘의 달을 보고 짖고 한밤중 등불에 바람이 분다. 지붕에는 고양이가 쥐를 잡고
세상에선 도인이 승려를 싫어한다. 서천의 망나니는 사람 부르는 것이 이상하고 고고하다
보니 세상사람 모두가 미워하네. 진실한 곳 산 속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되는대로 지
내는 인생, 흰 눈썹이 뽀얗다. 개울가의 바윗돌, 물에 씻기고 옛 불당의 깃발에 바람이 부는
구나. 여기에 낙처(落處)를 안다면 반드시 영산에 있으리라."
24. 개복사 영도자를 뵙고 / 월암선과(月菴善果)스님
월암 선과(月菴善果)스님은 신주(信州)연산(鉛山)사람이다. 처음 영도자(寧道者)를 친견하자
영도자가 물었다.
"상좌의 고향은 어딘가?"
"신주입니다."
"공부는 어디서 했는가?"
"연산 칠보사(七寶寺)입니다."
"보물은 얻어 왔느냐?"
선과스님이 두손을 펴 보이자 영도자는 쩌렁쩌렁한 소리로 할을 한번 하고 법당을 내려왔
다.
뒷날 그는 사심 오신(死心悟新)스님을 찾아뵈니, 사심스님이 `운문화타(雲門話墮)'의 화두
를 들어 설법하는 말을 듣고 법의 근원을 깊이 깨우쳤다. 그러나 그는 개복사를 후일 방장
실에서 이 화두에 송을 붙여 학인들에게 설법하니, 총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였다.
만길 벼랑 용문산, 허공에 매달린 듯
깍아지른 절벽에서 손을 놓아 고기가 용이 되고
세상 사람 모두가 낚싯줄 끝만 보았지
흰갈대꽃이 붉은 여뀌꽃 과 마주한 것은 보지 못하네.
萬 龍門勢倚空 懸崖撒手辨魚龍
時人只看絲綸上 不見蘆華對蓼紅
25. 조주감파 화두에서 의심이 풀리다 / 곡산 단(谷山倦)스님
곡산 단(谷山倦)스님이 처음 불성 태(佛性法泰)스님을 찾아뵈었을 때였다. 어느 날 법태스
님이 법당에 올라 "내가 여러분을 위해 오대산 노파를 간파하였다." 조주스님의 화두를 설
하고, 그 뜻이 무엇이냐고 물은 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숲에 갈 때는 누른 잎새를 한줌 긁어오려 했는데
산에 들어가 보니 흰구름이 밀려 나오는구려.
就樹撮將黃葉去 入山推出白雲來
단스님은 이 말 끝에 의심이 풀렸다. 이튿날 방장실에 들어가자 법태스님이 물었다.
"백장산(百丈山)의 전주지(前山主:여우가 된 노승)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어
째서 여우 몸에 떨어졌으며, 백장스님이 인과에 어둡지 않다고 하자 어째서 여우몸을 벗어
날 수 있었는가?"
"한 구덩이에 묻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이에 법태스님은 계속 따져 물어 보았으나 대답이 모두 비범하여 얼마 후 그를 입승으로 세
우니 그의 명성은 당대에 진동하였다.
묘희스님이 유배되어 남녘으로 떠날 때 단스님이 송을 지어 바쳤다.
속인들 속에서 도를 행한다 세인들 시기마오
이 때문에 불일(佛日:묘희)이 흙비에 잠시 묻혀 있네
중생을 제도하는 자비원력 게으름 없어
바야흐로 남안 땅에 다시 나오셨구료.
異類中行世莫猜 故敎佛日暫雲
度生悲願還無倦 方作南安再出來
묘희스님은 보고서 매우 칭찬하였다.
26. 묘희스님에게 따끔한 지적을 받다 / 나암 정수(懶菴鼎需)선사
나암 수(懶菴鼎需)선사는 불심 본재(佛心本才)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본재스님이 대승사(大
乘寺)에 있을 때 그는 이미 수좌로 선방에 패를 걸고 학인들에게 `마음이 부처다'하는 화두
를 묻곤 하였다. 당시 묘희스님은 양서암(洋嶼庵)에 있었는데 정수스님의 도반 광장원(光狀
元:晦庵邇光, ?∼1155)스님이 편지를 보냈다.
"이곳 양서암 주지의 솜씨는 다른 총림과는 다르니 한 번 찾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 좋겠다."
그러나 정수스님은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이에 광장원은 꾀를 내어 함께 식사나 하
자고 그를 불렀다. 정수스님이 그곳을 찾아가 산문에 들어서니 때마침 묘희스님의 개실(開
室)법회가 열리려던 참이었다. 정수스님도 대중을 따라들어가니 묘희스님이 물었다.
"한 스님이 마조(馬祖道一)스님에게 무엇이 부처냐고 묻자, 마음이 부처라고 하였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수스님이 이에 대하여 말하자 묘희스님은 그를 꾸짖었다.
"그런 견해로 감히 함부로 남의 스승노릇을 하느냐?"
이에 북을 울려 대중을 모아놓고 그가 평소 얻은 바를 말하게 하여 잘못된 견해를 물리쳐주
자 정수스님은 두 뺨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어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혼자서 곰곰이 생각
해 보았다.
`내가 이제까지 깨달은 바는 이미 깨어졌지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전할 수 없는 종지는
어찌 여기에 그치겠느냐?' 그는 마음을 돌이켜 제자가 되었다.
어느 날 묘희스님이 물었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밖에서 들어올 수 없는, 바로 그때는 어떻게 하겠느냐?"
정수스님이 무어라고 대답하려는데 묘희스님이 죽비를 들고 등짝을 후려치는 바람에 크게
깨치고 말을 이었다.
"스님! 그만하십시오. 이미 많이 때렸습니다."
묘희스님이 또 한 차례 때리자 정수스님은 넙죽이 절을 올렸다. 묘희스님은 웃으면서 "오늘
에야 비로소 내 너를 속이지 않았음을 알겠지!"하면서 마침내 게를 지어 인가하였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니
몸 밖에 나머지 일이 없어라
아서라! 이 눈먼 당나귀가
정수에게 전해 주노라.
身心一如 身外無餘
這 驢 付與鼎需
이로부터 그의 이름은 총림에 진동하였고 세상에 나아가 천주(泉州)연복사(延福寺)의 주지
를 지내다가 서선사(西禪寺)로 옮겨왔다.
대중에게 법문을 하였다.
"허공에 칼을 걸어놓고 우리 종지를 밝히니 법좌에 앉은 선사의 위엄에 어찌 다가설 수 있
으랴. 그러나 하늘 땅을 뒤바꾸고 번갯불을 말아들이며 별똥을 튀는 수단이 있다 하여도 맞
수가 되지는 못하리라. 여기서 길흉을 가려낼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나와라. 만나보자꾸나.
조금치만 우물쭈물하다가는 한 방에 가루를 내버리겠다."
그리고는 할을 한번 하고 법좌에서 내려왔다.
또한 동짓날 대중법문을 하였다.
"25일 이전에는 많은 음(陰)이 엎드려 있어, 흙 속에 묻힌 용이 문을 닫고 있다가 25일 이후
에는 하나의 양(陽)이 회복되어 쇠나무에 꽃이 핀다. 막상 25일에는 세속의 술취한 자들이
나귀타고 말을 타고 마을과 거리에서 서로가 축하하지만, 세간을 초월하여 한가한 사람은
납의를 머리에 덮어쓰고 화로 곁에 둘러앉았다. 바람도 으스스 비도 으스스 을씨년스럽게
차가운데 그대가 장선생인지, 이도사인지, 되놈 달마인지 무슨 관계이겠는가."
또 한 번은 대중법문을 하였다.
"막야 명검 비껴놓고 어루만지며 하늘을 꿰뚫으려고 괜스레 호기를 부리다 부질없이 정신만
허비하였네. 설령 신비한 칼날을 움직이지 않고서 편히 앉아 태평시대를 이룬 성군 요순도
오히려 교화했다는 찌꺼기가 남아 있었지."
27. 초산 풍월정을 읊은 한 관리의 시를 평하다 / 월암 선과(月菴善果)스님
송(宋)소흥(紹興:1131∼1162)연간에 한 관리가 있었는데, 초산(焦山)에 갔을 때 풍월정(風月
亭)에 시를 붙였다.
소나무 끝에 부는 바람 너무 맑아 머물 수 없고
강물에 어린 달빛 담담히 잠기려 하다
솔바람 원래 물외(物外)의 것임을 알고서야
강 달이 내 마음과 같은 줄을 비로소 알았노라.
風來松頂淸難立 月到波心淡欲沈
會得松風元物外 始知江月似吾心
이 시를 보는 사람마다 감탄하고 칭찬해 마지 않았는데 월암 과(月菴善果)스님이 행각하던
중 이곳에 와서 이 시를 보고서, 시가 좋기는 좋지마는 안목이 없다고 하니 같이 앉았던 사
람 하나가
"어느 곳이 안목이 없소?"
"소승이 두 글자만 고치면 안목이 나타날 것이오."
"무슨 글자를 고쳐야 합니까?"
"어찌하여 이처럼 말하지 않았는지…"하며 두 글자를 고쳐 읊었다.
솔바람 물외의 것이 아님을 알고서야
강 달이 내 마음인 줄을 비로소 알았노라.
會得松風非物外 始知江月卽吾心
좌중이 크게 감복하였다. 참으로 공부를 할 때에 안목이 열린 자의 견해는 이처럼 다르다.
더구나 월암스님은 시를 익힌 일이 없는데도 이처럼 요지를 끄집어내니, 이야말로 한 방울
의 물만 얻어도 능히 구름을 일으키고 안개를 뿜어내는 용과 같은 인물이 아니겠는가? 우리
들이 행각하는 일은 내 자리에서 나의 본분사를 결판짓는 것이지 외학(外學)을 전공하는 데
있지 않다. 오랜 세월이 지나 안목이 열리면 자연히 모든 부처님의 눈동자를 가려낼 수 있
을 터인데, 하물며 세간의 문자 따위야 어떠하겠는가.
28. 꿈속에서 지은 시 한 수 / 굉지 정각(宏智正覺)선사
굉지 정각(宏智正覺)선사가 원통사의 주지로 있을 때 어느 날 꿈속에서 시 한 구절을 지었
다.
빽빽한 솔밭길 아름다운 문에
희미한 달 아래 황혼녘 되어 이르렀네.
松徑蕭森窈窕門 到時微月正黃昏
이로부터 몇 해 동안 그 시를 까마득히 잊은 채 지내왔는데 건염(建炎:1127∼1130)연간에
오랑캐를 피하여 삿갓 하나를 쓰고 절강(浙江)동쪽을 지나 천동사에 이르니, 때마침 천동사
는 주지가 물러난 뒤였다. 스님이 배에서 내려 첫 새벽을 뚫고 산에 들어가니, 마치 날이 밝
은 때처럼 빽빽한 솔밭길이 고요한데 가는 연기 아지랑이 속에 달빛은 싸여 있었다. 이에
갑자기 지난 꿈속의 시구(詩句)가 생각났다. 객사에 들어가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스님
들 가운데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 "장노사(長蘆寺)노스님 아니십니까. 어떻게 여기에
오셨습니까?"하고서, 주사(主事)에게 알리고, 주사는 그 고을 부사(府使)에게 알리니 부사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부사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천동사의 주인은 바로 습주(褶
州)의 고불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부사는 곧 첩지(帖紙:임명장)를 내려 관리를 객사
에 보내 천동사의 주지로 초빙하였지만 스님은 굳이 이를 거절하고 응하지 않았는데 객사의
스님들이 억지로 들쳐메고서 방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30년 동안 주지하여 이로부터 조동
의 종풍은 크게 떨쳤다.
참으로 사원의 주지가 되는 인연도 애초부터 정해진 것이기에 구차스럽게 구한다고 되는 일
이 아니다.
29. 개당할 때 스승의 은혜를 잊지 않다 / 원극 언잠(圓極彦岑)스님
원극 잠(圓極彦岑)스님은 태주(台州)선거(仙居)사람으로, 고고한 절조를 지녀 근세에는 그
를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운거 법여(雲居法如:1080∼1146)스님에게 오랫동안 귀의하여 17년
동안 서사(書司)를 맡아보았는데 법여스님이 입적하자 지팡이 하나 들고 절강 땅으로 돌아
와 도량사(道場寺)의 정당 명변(正堂明辨:1085∼1157)스님에게 귀의하였다. 얼마 후 명변스
님은 그를 수좌로 삼은 후 삽주( 州)변산사(卞山寺)의 주지로 나가도록 하였는데, 그곳은
석림(石林)선생이 역(易)을 강의하던 곳이기도 하다. 명변스님의 생각으로는 이번 개당(開
堂)에서 자기를 위하여 향을 올리리라 생각했었지만 언잠스님은 끝내 운거 법여스님의 법을
이으니, 총림에서는 그를 우러러보았다.
뒤에 스님은 여러 대찰(大刹)의 주지를 지냈지만 복받을 인연이 순탄하지 못하여 세상살이
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이를 개의하지 않고, 일생동안 시주로 들어오는 재물에 눈길
한번 둔 일이 없었다. 그 후 상주(常州)화장도량(華藏道場)에 은퇴하여 세상을 마쳤으며, 그
의 어록 20권이 세상에 전해오고 있고 시랑(侍)증중신(曾仲身)이 서문을 쓰기도 하였다.
언잠스님은 장노 차암(長蘆且菴)스님의 영정에 찬을 썼다.
깊은 밤중에 해를 밀어서 내놓고
날 밝으면 달을 붙잡아 둔다
수미산 사부주(四部州)를 뽑아들어
한 톨의 좁쌀 속에 집어 넣는다
줄없는 거문고를 켜지만 이상곡(履霜曲)이 아니며
오랑캐의 노래를 부르지만 백설곡(白雪曲)이 아니라
큰 대장장이는 끊어진 광맥의 금을 담금질하고
모진 방망이는 흠없는 구슬을 때려 부순다
동쪽 호수의 붉은 꼬리 잉어가
황금빛 무쇠 송아지를 낳는구나.
夜半推出日輪
天明把住桂
拈將四部洲
放在一粒栗
奏無絃而非履霜之樂
唱胡歌而非白雪之曲
大治 絶鑛之金
痛鎚碎無瑕之玉
東湖赤梢鯉魚
生出金毛鐵犢
30. 상당법문 / 혼원 담밀(混源曇密)스님
혼원 밀(混源曇密:1120∼1188)스님이 자택산(紫택山)의 주지로 있을 때 상당법문을 하였다.
"구름덮인 산은 아득하고 아름드리 나무는 울창한데, 옛 집은 가물가물하고 총림은 적막하
구나. 나 혼원이 여기에다 가시나무를 심고 찔레 덤풀을 깔아 바깥과 굳게 막아 놓았으니
어느 누가 감히 바른 안목을 훔쳐볼꼬? 갑자기 한 놈이 나타나 여기서 몸을 돌려 숨을 쉰다
면 진한 차 서너 잔을 대접하겠다. 그 뜻은 쟁기 끝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뾰족한 청산의
험한 길에서 푸른 하늘이나 볼 일이다. 공공연히 말해주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
봄 날씨 따뜻하고 꾀꼬리 지저귀는데 다시금 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노라. 봄 산
에 싸인 푸른 빛 속을 느릿느릿 걸어서 돌아올 땐 저 멀리 나는 새와 누가 함께 할꼬? 이렇
게 돌아오는 한마디를 무어라 부를까. 팔굽혀 베개삼고 누워 저녁 종소리를 듣노라."
31. 승려를 업신여기는 형조관리에게 따끔한 편지를 쓰다 / 부정공(富鄭公)
정국공(鄭國公)부필(富弼)은 투자 수옹(投子修)선사에게 공부하며 제자의 예를 다하였고,
인품이 신중하며 마치 처음 배우는 사람같았다. 뒷날 비부(比部:刑曹)의 우두머리 장은지(張
隱之)가 그의 세력을 빙자하여 승려들을 업신여기자 정국공은 마침내 그에게 편지를 보냈
다.
"선가(禪家)의 사람들은 보통, 첩경으로 하지 않고 번잡스럽게 설명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갈등(葛藤)'이라 하여 이를 천하다고 나무라기도 하며 마침내는 갈등가를 지어 문집에 게
재하기도 한다. 나 부필은 일찍이 그 까닭을 생각해 왔는데 오늘 그대와 함께 생각해 보려
하니, 어떻겠소?
세속의 선비와 승려들의 본성(本性)이나 식견이야 애당초엔 터럭끝만의 차이가 없겠지만 그
들의 사적(事蹟)은 매우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승려는 어릴 적에 출가하여 오랫동안 불경을
보면서,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부처에 관한 일들이다. 머리를 깎은 뒤에는 도반과 짝을 지어
행각하며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참선하고 도를 묻는 이외엔 대중생활을 한다. 견문이 해박하
고 핵심적인 데다가 한없이 귀와 눈으로 보고 듣는다. 이렇게 해서 도가 성숙되다가 어느
날 눈 밝은 스승의 지적을 받고 그자리에서 견처가 생기면 그 때는 자신이 이제껏 보고 들
은 바를 가지고 스스로 증거를 삼으니, 어찌 명백하고 통쾌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 세속의 선비들이란 어릴 때부터 세속 일에 젖어 살다가 커서는 아내를 두고 자
식을 기르며 생활을 꾀하고 벼슬길로 나아가기에 바쁘니, 경전 류는 일찍이 손에 잡아보지
도 않는다. 설령 한가한 시간에 경전을 읽고, 즐긴다 해도 이야기 밑천이나 삼기 위해서일
뿐이니, 어떻게 그 깊은 진리를 깨칠 수 있겠는가. 또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모든 이는 제
각기 그들의 일에 매여 있어 그들이 선림법석이 있는 줄을 알고서 설령 그곳을 찾아가 참구
하고 싶다한들 어떻게 갈 수 있으며, 어떻게 도반과 짝이 되어 산사를 행각하며 참선하고
도를 물을 수 있으며, 대중과 함께 해박한 견문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에 하나 눈
밝은 스님을 어느 계기로 만날 수 있다 하여도 아무런 공부가 없는 터에 얼마나 들을 수 있
으며 얼마나 얻을 수 있겠는가? 묻는 것도 없이 보고 들은 것으로 스스로 증거를 삼고, 더
이상 널리 묻거나 깊이 연구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겨우 한 두마디 듣고 그것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눈은 높아 은하수를 바라보고 콧대는 하늘 끝에 닿도록 거드름을 피운다. 제
스스로 `나는 부처와 조사를 뛰어넘었으며 수많은 성인이 모두 나의 발 아래 있노라'고 으
스대며 불경이나 선종의 서적은 한번도 보지 않은 채 그것만으로 갈등이라는 비난을 피하려
고들 한다. 그러나 이 부필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배우지 않으려면 그만이겠지만 만일 몸과 마음을 결택하기 위하여 배운다면 빈틈없이 치밀
하게 탐색해야 할 것이다. 철두철미하게 뼈속에 사무치도록 깨달아 모든 것이 그대로 완전
한 맑은 광명으로서 한 점 티끌도 가리우지 않도록 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는 그대에게 고개
를 숙이리라.
은지여! 이 일은 결코 하찮은 게 아니다. 당장에 무시이래로 있어 온 생사의 뿌리에서 벗어
나 생사를 관장하는 염라대왕과 맞서야지, 사람들의 쓸모없는 말을 듣고 참선을 배울 것이
라고 자신을 속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대에게 만복이 깃들기를 빌고 빌면서 부필은 비부(比部)집사(執事)에게 글을 띄우노라."
32. 어제는 숲 속의 나그네, 오늘은 법당의 주지 / 초당 선청(草堂善淸)선사
초당 청(草堂善淸)선사는 회당(晦堂祖心)스님을 친견하여 깨친 바 있었으며, 그 후 강제(江
制)지방을 두루 돌아다닌 후, 여산(廬山)늑담사로 진정(眞淨克文)스님을 찾아뵙자 스님이 그
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느냐?"
"하강(下江)에서 왔습니다."
"무엇을 가져왔느냐?"
"스님께선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모든 것이 다 필요하다."
그러자 선청스님이 좌구를 들어올리니 진정스님이 말하였다.
"쓸모없는 세간살이로군!"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닙니까?"
"한번 꺼내놔 보아라."
선청스님이 좌구를 내동댕이치고 나가버리자 진정스님은 크게 놀랐다.
뒷날 선청스님은 황룡사의 주지로 나아가 상당법문을 하였다.
"어제는 숲 속의 나그네더니 오늘 아침엔 법당 위의 주지로다. 버리고 취하는 게 모두 나에
게서 비롯되니 만상 가운데 홀로 나의 몸이 드러나네."
그 다음해에 주지에서 물러나 절 동편 모퉁이에 암자를 짓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지내다가
다시 주지가 되어 상당법문을 하였다.
"초당에서 6년 동안 숨 죽이고 살면서 마음 잊고 바깥 경계 고요하여 모든 인연 비웠노라.
정해진 업이란 어디에서 생겨나 예전처럼 나에게 조사의 종지를 잇게 하는지 알 수 없구
나."
그후 조산(曹山)과 소산(疏山)등의 주지를 지냈으나 대부분 늑담사에서 살았다. 그때의 나이
이미 83세였으나 여러 곳의 큰 선비와 뛰어난 도인이 모두 그에게 귀의하였다.
33. 나한상을 닮은 스님 / 자항 요박(慈航了朴)선사
자항 박(慈航了朴)선사는 민( )사람으로 훤출한 기골에 검은 얼굴로 마치 나한(羅漢)처럼
생겼다. 무시 개심(無示介諶)스님의 법을 이어, 처음엔 명주(明州)여산(廬山)의 주지로 있다
가 육왕사로 옮겼으며 얼마 후 세력있는 자의 주선으로 해하(海下)만수사(萬壽寺)로 옮겨왔
다.
응암(應菴曇華)스님이 천동사에서 입적하자 태수가 그의 소문을 듣고 그 자리를 잇도록 하
였는데, 그날 밤 태백산의 노스님들이 모두가 무쇠 나한[鐵羅漢]이 배에서 내려와 방장실로
들어가는 꿈을 꾸었으며, 또한 그와 같은 옷을 입은 자가 글을 지어 올렸다.
예전에 무봉(峰:育王寺)에 오를 때는
나뭇잎새처럼 몸이 가벼워
내 얼굴 부끄러웠는데
지금 장경산(長庚山:천동사가 있는 太白山)에 올라오니
그의 도가 삼산(三山)보다도 무거워
사람들의 얼굴에 기쁜 빛이 있구나
흔쾌히 불계산(佛 山)을 떠나
큰 파도를 건너
깊은 골짜기에서 큰 아름드리 나무로 옮겨가니
우리 불교 빛나도다
동산(東山)에 올라 노(魯)나라를 조그맣다 하니
그때는 정말로 그랬지만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昔去 峰而身輕一葉我無面見顔
今上長庚而道重三山人有喜色
快離佛
利涉鯨波
出幽谷而遷喬木
光乎此道
登東山而小魯邦
允也其時
自此以還未知
그 후 22년 동안 그곳에 주지를 하였는데 황제의 아들 위왕(魏王)을 비롯하여 사위공(史魏
公)이 모두 그의 도덕을 존중하였으며, 순희(淳熙:1174∼1189)초에는 효종(孝宗)이 태백명산
(太白名山)이라는 네 글자를 몸소 써서 하사하였다.
요박선사가 여산의 주지로 있을 때 상당법문을 하였다.
"덕산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몽둥이질을 하였고, 임제는 문에 들어서자마자 할을 하였다. 덕
산의 몽둥이에 귀가 먹고 임제의 할 소리에 눈이 멀었다. 그러나 한 번 누르고 한 번 쳐들
어 그런 가운데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구나."
그리고는 할을 한번 하고 주장자를 높이 들어 탁자를 내려친 뒤, "여러 사람에게 묻노니 이
것이 살리는 것이냐 죽이는 것이냐?"하였다.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군자가팔(君子可八)이로
다."하였다.
34. 운문의 도가 그에게서 끊기다 / 이암 심(已菴深)선사
이암 심(已菴深)선사는 영화(永和)사람이며, 치선 원묘(癡禪原妙)스님의 법제자이다.
한번은 치선스님이 송을 지어 그를 전송하였다.
그대 보내려니 회심(懷深:1077∼1132)사숙 그리워라
두 눈엔 예전처럼 두레박 소리 선하구나.
送君還憶深師叔 兩眼依前聽 ?
후일 그는 온주(溫州)보은사(報恩寺)의 주지를 지냈는데, 동짓날 소참 법문을 하였다.
1 2 3 4 5
5 4 3 2 1
찬 바람이 얼굴을 후려치는데
울타리에 바람소리 을씨년하구나.
一二三四五 五四三二一
寒風劈面來 籬頭吹 栗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내가 그 당시 객실에 있다가 그 법문을 듣고 그가 운문종(雲門宗)의 종지를 얻었음을 알았
는데 애석하게도 그를 이을 법제자가 없어 소양(韶陽:운문)의 도가 그에게서 끊어져버리고
말았다.
35. 너무 준엄하여 제자를 두지 못하다 / 월당 도창(月堂道昌)선사
월당 창(月堂道昌:1089∼1171)선사는 묘담(妙湛思慧:1071∼1145)스님의 법제자로 고고한 기
풍이 매우 준엄하여 스님을 찾는 학인이 드물었다. 도창스님은 여러 절 주지를 두루 역임하
다가 남산(南山) 정자사(淨慈寺)에서 입적하였다. 지문 광조(智門光祚)스님의 법의(法衣)가 7
대를 전해 내려오다가 도창스님이 열반한 후 아무도 그의 법통을 이을 만한 사람이 없어 고
이 법의를 접어 보관한 채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러므로 할당 혜원( 堂慧遠)스님이 세
운 부도에 이런 구절이 있다.
30년 동안 용을 잡고 봉을 잡으려고 헛고생만 하였으니
불조의 혜명이 발바닥에 바르는 기름처럼 되었고
운문의 정종이 버선줄기 터지듯 끊어졌구나.
三十載羅龍打鳳勞而無功
佛祖慧命如塗足油
雲門正宗如折襪線
아!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36. 선림의 장원감/ 귀산 미광(龜山邇光)선사
귀산사(龜山寺)의 미광(邇光)선사가 양서암 묘희 스님에게서 공부할 무렵, 반년이 지나도록
입을 열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하루는 입실하자 묘희스님이 물었다.
"죽을 먹고 바리때를 씻었거든 이것 저것 가릴 것 없이 한 마디 해 보아라."
미광스님이 "찢어버리겠다!"라고 소리치자, 묘희스님은 무서운 얼굴로 "또다시 여기와서 선
을 말할테냐?"라고 하였다. 미광스님은 그 말에 크게 깨치고 온몸에 땀을 흘리며 절을 올리
니 묘희스님은 게를 지어 인가하였다.
거북이 털을 뽑고 나서 하하하 웃는구나
일격에 만겹의 관문사슬을 열었도다
평생에 경사스러운 날 바로 오늘이로세
누가 말하랴, 나를 되팔아먹으려고 천리 길을 왔었다고.
龜毛拈得笑哈哈 一擊萬重關鎖開
慶快平生是今日 孰云千里 吾來
이에 대하여 미광스님은 `투기송(投機頌)"을 지어 올렸다.
기연만나 부딪치고 천둥소리 으르렁대니
놀라 일어난 법신 북두성에 몸 숨기네
드넓은 물결 위에 성난 파도는 하늘에 닿고
콧구멍을 뽑아내니 입을 잃었구나.
當機一 怒雷吼 驚起法身藏北斗
洪波浩渺浪滔天 拈得鼻軫失却口
묘희스님이 보고서, "이것이야말로 선림의 장원감이다" 하여 이를 계기로 미광스님은 `광장
원(光狀元)'이라 불리게 되었다.
37. 난리가 났는데도 / 자득 혜휘(自得慧暉)선사
자득 휘(自得慧暉:1097∼1182)스님이 장노 조조(長蘆祖照:1057∼1124)스님의 회하에 있을
무렵, 난리가 일어나 대중이 모두 흩어졌는데 스님과 종백두(宗白頭:1085∼1153)스님만이 꼼
짝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스님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참선이란 본래 생사와 대적하는 것이
니 어찌 이러한 난리로 도망할 수 있겠는가, 또한 나의 몸은 허약하니 피난을 간다 해도 도
중에 잡힐 것이 아닌가 하였다. 폭도가 쳐들어와 보니 대중들은 모두 떠나갔는데 오직 혜휘
스님만이 법당 안에 앉아 좌선을 하고 있기에, 다투어가며 화살로 쏘았으나 모두 맞지 않았
다. 혜휘스님은 고요히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화살 한 개가 스님의 소맷자락을
뚫고 궤짝에 맞았다. 이로부터 스님은 사지를 덜덜 떠는 병을 얻게 되었다. 종백두는 창고에
앉아 있었는데 도적이 그를 발견하고 결박지어 쏘아 죽이려 하자 한 직세승(直歲僧:회계를
맡아보는 스님)이 곁에 있다가 그들 앞으로 다가서며, 자기를 대신 죽여달라고 여러 차례
간청하니, 도적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저 사람과 어떤 관계냐?"
"이 스님은 참선을 해 마친 분이다. 뒤에 큰 선지식이 되어 세상에 나아가 중생을 제도하실
터이지만 나는 참선을 하지 못하였으니 죽는다 하여도 중요한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대신
하고자 한다."
도적들은 그의 말을 기특하게 생각하여 두 사람 모두 풀어 주었다.
후일 종백두가 명주(明州)취암사(翠巖寺)의 주지로 있을 때 그의 도가 크게 떨치게 되었다.
지난 날 목숨을 대신하겠다던 자도 그의 회하에 있었는데 종백두는 항상 그 사람이 자신을
다시 낳아 준 부모라고 하였다. 진실로 참선하는 이에게 바른 발심만 있다면 반야에 어찌
영험이 없겠는가.
*
38. 개선 도겸(開善道謙)선사의 전기
개선 겸(開善道謙)선사는 건령(建寧)사람이다. 처음 서울로 가서 원오 극근(圓悟克勤)스님
을 찾아뵈었으나 깨친 바 없었다. 그 후 묘희스님을 따라 천남산(泉南山)에 암자를 짓고 살
았는데 묘희스님이 경산(徑山)에 주지로 가자 도겸스님은 묘희스님을 모시고 그리로 갔다.
얼마 후 묘희스님이 그를 장사(長沙)에 보내 자암거사 장위국공(紫巖居士 張魏國公:張浚)에
게 편지를 전하도록 하자 도겸스님이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내, 20년 동안 참선을 했지만 아무 것도 깨친 바가 없는데 다시 이 길을 가게 된다면 결정
적으로 나의 공부가 황폐해질 것이다.' 내심 가지 않으려고 하였는데, 그의 도반 죽원암주
(竹原菴主)종원(宗元:1100∼1176)스님이 "길을 간다고 참선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그대
와 함께 가겠다."하며 꾸짖었다.
이에 도겸스님은 마지못해 길을 떠났는데 길가는 도중에 종원스님에게 울면서 하소연하였
다.
"내, 일생동안 참선을 했지만 하나도 얻은 바 없었는데 또다시 길 위를 분주하게 돌아다니
니, 어떻게 깨칠 수 있겠느냐?"
"그대는 어찌해서 여러 총림에서 참구했던 것과 깨친 것과 또한 원오 · 묘희 두 스님이 그
대에게 말씀해 주신 이치를 모두 이해하지 않으려고만 하는가. 가는 길에 그대를 대신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 모두 대신해 주겠다. 그러나 오직 다섯 가지 일만은 대신해 줄 수 없으니
네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 다섯 가지 일이란 무엇인가? 그 말을 듣고 싶다."
"옷입고 밥먹고 똥누고 오줌누고 이 시체를 끌고 길을 가는 일이오."
도겸스님이 이 말에 크게 깨치고 자신도 모르게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사형이 아니었다면
내 어떻게 이러한 경지를 얻었겠소"라고 하니, "그대가 이제야 비로소 자암거사에게 편지를
전할 수 있겠으니, 나는 돌아가겠다" 하고 종원스님은 곧바로 건상(建上)으로 돌아가고 도겸
스님은 그 길로 장사에 이르러 그곳에서 반년을 머물렀는데 진국부인(秦國夫人:장위국공의
어머니)도 스님으로 인하여 대사(大事)에 큰 마음을 일으켰다.
마침내 쌍경사(雙徑寺)로 돌아오자 묘희스님은 지팡이를 짚고 문에 기대 기다리고 있다가
도겸스님을 보자마자 말하였다.
"건주 아이야! 이번 길에 떠나갈 땐 이 노승을 원망만 했을 것이다마는 그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는 매일 더욱 깊은 경지를 쌓아 뒤에 현사산(玄沙山)의 주지로 나갔다.
한번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서축 땅 큰 신선의 마음은 동과 서가 은밀하게 맞는다고 하였는데 은밀히 맞는 마음이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하였다.
"8월 가을날 어디가 덥단 말인가?"
다시 말하였다.
"부처를 설하고 법을 설함은 소경과 귀머거리를 속이는 일이며, 성품을 논하고 마음을 논함
은 스스로 함정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몽둥이와 할은 세력을 힘입어 사람을 속이는 일이
며, 눈을 깜박거리고 눈썹을 치켜 올리는 것은 들여우가 사람을 홀리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아니라 해도 그것은 고함지르면서 산울림이 멈추기를 바라는 격이며, 별달리 대
단한 일이 있다 하여도 그것 또한 허공에 하소연하는 격이다. 그렇다면 결국 무엇인가? 흰
구름 다한 곳이 푸른 산인데, 저 길손, 또 다시 청산 밖에 있노라."
39. 달마스님 찬 / 정당 명판(正堂明辨)선사
정당 명판(正堂明辨:1085∼1157)스님은 불조(佛照)스님의 법을 이었다. 처음엔 그의 도가
떨치지 못했는데 그것은 초학들 중에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의 가풍이 매우 엄하였으므로 대중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피하였다. 제삿날에는 패(牌)만 한
차례 걸어놓고 마니, 주사(主事)가 이에 대하여 언급하자 명판스님이 말하였다.
"내 이미 패를 걸어놓았는데 무엇하러 또 사찰의 자산을 낭비하는가? 금강권(金剛圈)과 율
극봉(栗棘蓬:밤가시)을 삼켜버릴 줄 모르거든 평상시 공양처럼 해야 한다."
주사는 감히 다시는 말하지 못하였다.
그는 달마스님에 대해 찬(贊)을 썼다.
승원궁(양무제의 궁전)앞에서 부끄러워 말 못하다가
낙양봉(洛陽峯:소림사)아래에서 떠벌리도다
가죽과 골수 전하여 이야기거리가 되고
한쪽 신발을 묻을 곳이 없네
아! 보통 차가운 날씨가 아닌데
매화향기가 코끝에 스치는구나
昇元展前 ? 羅 洛陽峰畔乖張
皮髓傳成話 隻履無處埋藏
不是一番寒徹底 爭得梅華撲鼻香
설당(雪堂道行)스님이 이 찬을 보고 기특하게 여겨, "스승(先師)에게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다니, 이 찬(讚)만으로도 천하 사람의 혓바닥을 잘라 버릴 수 있겠다"라고 감탄하였다. 이
로 말미암아 납승들이 앞을 다투어 그의 회하로 달려갔으며 후일 삽주( 州)도량산(道場山)
에 있을 때는 대중이 500여 명에 이르렀다.
40. 죽원암주(竹原菴主)의 법문
죽원암주(竹原菴主:宗元)는 건령(建寧)사람이다. 출가하여 묘희스님을 찾아뵙고 종지를 깨
달은 뒤, 고향으로 돌아와 암자를 짓고 은거하였다. 여러 사찰에서 주지로 그를 초청하였으
나 가지 않았다.
일찍이 법어를 여러 차례 남겼다.
"여러 총림에서 학인들을 지도하는 방편은 그들의 마음에 박힌 못과 말뚝을 뽑아주고 달라
붙은 것과 속박을 풀어주는 데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한결같이 못과 말뚝을 더 깊게
박아주고 더욱 달라붙게 하고 속박하여 그들을 깊은 연못 속으로 들여보내 스스로가 알도록
한다."
"참선이란 반드시 이 하나[一着子]를 투철하게 뚫어야 한다. 큰 법을 깨쳐도 밝지 못한 자가
반드시 있다. 큰 법을 비록 밝혔다 하여도 자기 발 밑의 세속 인연을 끊어버리지 못한 자가
즐비한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여러 총림에서 이런 말을 듣고는 모두 이 노승에게 욕을 한
다. `이미 큰 법을 밝혔는데 또 무슨 발 밑의 세속 인연을 끊지 못하였냐'고 그들을 이상하
게 볼 수는 없지만 그들에겐 이 한 가지 깨달음이 부족하여 모든 게 의심이 되기 때문이
다."
"이 하나는 마치 살인자와 맞부딪치는 것과 같아서 그대들이 죽이지 못하면 그가 그대들을
죽일 것이다. 신통하구나. 대장부의 견해란 이런 것이다."
41. `한 번 찧은 쌀'이라는 별명이 붙은 스님 / 수암 사일(水菴師一)선사
수암 일(水菴師一:1107∼1176)선사는 무주(務州) 동양(東陽)사람이다.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
여 총림에서는 그를 `일조(一 :한 번 찧은 거친 쌀)'라 불렀다. 오랫동안 월암 선과(月菴善
果)스님에게 공부하였는데, 선과스님은 늘 `운문화타(雲門話墮)'의 화두를 가지고 물었다. 하
루는 그가 한마디를 던졌다.
"영산 회상의 수기는 모름지기 스님이라야 받겠습니다."
또한 일찍이 송을 지었다.
열여섯 곱디고운 아가씨 아름다운 몸매로
사뿐한 비단옷에 향기 휘날리며
꽃밭에 숨었다가 서서히 일어나니
노란 꾀꼬리 버들가지에 내려앉네.
二八佳人美態嬌 繡衣輕整暗香飄
偸身華圃徐徐立 引得黃鶯下柳條
월암스님이 큰 그릇으로 여겼는데 뒷날 도반들과의 불화로 그를 모함하는 사람이 있었다.
월암스님은 그들의 말을 믿고 사일스님을 내쫓으니 절을 떠나면서 게를 지어 월암스님을 풍
자하였다.
월암의 법장(法藏)부처님께 머리숙여
황금의 오묘한 모습 실로 볼만 하였는데
희멀건한 도깨비 일곱 여덟 놈이
이리저리 소반 위의 구슬처럼 구르는구나.
稽首月菴藏裏佛 黃金妙相實堪觀
白面夜叉七八箇 推轉如珠走玉盤
후일 태주 자운사(慈雲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아가 불지(佛智端裕:1085∼1150)스님의 법제
자가 되었는데, 이는 참정(參政)전단례(錢端禮)의 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전단례는 불지 스
님과는 속가의 친형제 사이다. 그러나 총림에서는 이를 스님의 단점으로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방장실에서 항상 "서천(西天)의 오랑캐는 어찌하여 수염이 없느냐?"는 화두로 학인들
을 시험하였다.
42. 분양스님의 십지동진(十智同眞)법문에서 깨치다 / 무명 법여(無明法如)선사
무명 여(無明法如)선사는 삼구(三衢)사람이며 운개 지(雲盖守智)스님의 법제자이다. 분양(汾
陽善昭)스님의 `십지동진(十智同眞)' 법문으로 도를 깨쳐 참선 이야기만 나오면 `십지동진'
을 설법하니, 총림에서는 그를 `여십지(如十智)'라 일컬었다. 뒤에 도량사(道場寺)의 주지를
지냈는데 수암(水菴)스님, 원극(圓極彦岑)스님 등이 모두 그에게 귀의하였다. 이런 인연으로
원극스님은 무명스님의 찬을 지었다.
생철로 된 얼굴 머물기 어려워
무심코 걸음을 옮겨도 천지가 들먹들먹
장난삼아 들어 말하는 `십지동진' 화두는
룡의 직계 손자임을 저버리지 않았도다.
生鐵面皮難溱泊 等閑擧步動乾坤
戱拈十智同眞話 不負黃龍嫡骨孫
후일 스님은 사계(思溪)원각사(圓覺寺)에서 입적하였으며 지금도 부도탑이 남아 있다.
43. 차암 수정(此菴守淨)선사의 대중법문
서선사(西禪寺)의 차암 정(此菴守淨)선사는 묘희스님 회하에서 공부하여 크게 깨친 이로
종안(宗眼)이 밝았는데 일찍이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싸움을 잘하는 자는 자신의 목을 아랑곳하지 않고, 전쟁을 잘하는 자는 반드시 공을 이룬
다. 공을 이루면 편히 앉아 태평을 이루고 태평을 이루면 베개를 높이 베고 아무런 근심이
없다. 석 자[尺]의 칼을 뽑아들지 않고 한 벌의 활을 어루만지지도 않고 말은 화산(華山)남
녘으로 돌려보내고 소는 도림(桃林)들녘에 방목하니, 때맞은 비바람에 어부는 노래하고 나무
꾼은 춤을 춘다. 그러나 이러한 태평시대에 요순 같은 성군도 오히려 교화의 찌꺼기 있어
천지를 수용할 수 없음을 어찌하랴! 요순이 이름을 모르고 온 나라가 흥망의 일을 관여치
않아도 구름과 함께 동정호를 차지할 줄 알았으니…."
또 이런 법문을 하였다. "입을 꼭 닫아도 때때로 말을 하며 혓바닥을 잘라버려도 쉴새없이
재잘댄다. 가장 절묘한 것은 눈 속의 티끌이니 이미 절묘하다 해 놓고 어찌하여 눈 속의 티
끌이라 하는가? 깨달았다, 깨달았다 할 때 그것을 깨달았다 할 수 없고, 현묘하다, 현묘하다
하는 곳도 역시 꾸짖어야 한다."
44. 만암 도안(卍菴道顔)선사의 대중법문
만암 안(卍菴道顔:1094∼1164)스님은 사천 사람으로, 오랫동안 원오 극근(圓悟克勤)스님에
게 공부하였다. 하루는 고금의 화두를 거론하는데 원오스님이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너는 참선을 하여도 바른 깨침을 구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정신없이 지껄여대는구
나."
도안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땀을 흘리고 그 길로 법당으로 돌아가 새벽까지 자지 않고 좌선
하다가 갑자기 크게 깨달았다. 원오스님에게 달려가 뵙고서 조금치도 막힘없는 논리를 휘두
르자 그제서야 원오스님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에 도안스님이 말하였다.
"어제도 그처럼 대답을 하였는데 스님께서 수긍하지 않으시더니, 오늘도 그처럼 말하였는데
어찌하여 머리를 끄덕이십니까?"
"이 바보야! 너는 어제 망상 속에 잡혀 있었다."
도안스님이 절을 올린 후 말하였다.
"원래 석가모니도 신통한 것은 없었군요!"
원오스님이 촉으로 돌아간 뒤에는 묘희스님에게 귀의하여 최상의 경지를 깨치고 경산사의
수좌가 되니, 그의 이름이 총림에 널리 퍼졌다. 그 후 변산사(卞山寺)의 주지로 나갔으며 그
다음엔 동림사(東林寺)의 주지를 지냈다. 일찍이 대중 법문을 하였다.
"조사들의 지침이나 성인들의 수단은 밭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고 배고픈 걸인의 밥을 낚아
채듯 호시탐탐하고 날쌨으니, 상앙(商:?∼BC338)의 형법이나 손무(孫武)의 명령처럼 법에 걸
리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오랫동안 모래밭에서 싸우고 칠사(七四)기연을 갖춰 형세를 바
라보고 결단을 내어, 진퇴존망을 아는 자만이 애오라지 한가닥 실마리가 트이리라. 만일 자
기 눈을 뜨지 못하고 두꺼비처럼 눈만 껌벅이는 자는, 무리에 끼어서 밥이나 먹지 자유자재
할 능력이 없다. 지금 여기에는 결단코 빼앗아 보겠다는 중이 없느냐? 이 산승의 목숨은 오
직 그대들의 손아귀에 있다.
또 이런 말을 하였다.
"법이란 일정한 형상이 없으므로 사물을 만나야 그 형태가 나타나며, 일이란 반드시 정해진
것이 없으니, 공이 이루어짐에는 주체가 없다. 때때로 바람이 높아 고요하고 텅 비어 가까이
도 멀리도 할 수 없고 때로는 자신이 물러나 남에게 굽히면 얕보거나 희롱하지 못하리라.
그렇게 하면 쉽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려우니, 세속법이나 불법이나 모두가 우스꽝스러운
희론이다. 그러므로 노승은 이곳에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어디에 있
는가를. 도롱이 걸쳐 입고 일천 봉우리 밖에 비스듬히 섰다가 물을 끌어대어 오로봉(五老峰)
앞 채소밭에 부으리라."
45. 모르는 공안이 없었어도 무암 법전(無菴法全)선사
무암 법전(無菴法全)스님은 고소(姑蘇)사람으로, 야보 천금강(冶父川金剛)스님의 제자이다.
오랫동안 육왕사(育王寺)불지(佛智端裕)스님에게 귀의하여 자각 진(慈覺眞)스님과 도반이 되
었다. 고금의 공안을 거론할 때는 모르는 것이 없었으나 방장실에서의 기연은 깨치지 못하
여 밤낮으로 슬피 울며 잠을 자지 않았으며, 사람들과 어울려 세속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
이 없었다. 이와 같이 몇 해를 지내던 어느 날, 불지스님이 방장실에서 그의 멱살을 붙잡고
말하였다.
"유구무구(有句無句)는 나무에 얽힌 등넝쿨과 같다 하는데 말해 보아라. 빨리!"
법전스님이 무어라고 입을 열려 하는 순간, 불지스님이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이에 밝게 깨치고 연거푸 큰소리로 윽! 윽! 하고 소리쳤다. 단유스님이 그제서야 멱살을 놓
아 주니, 송을 지어 올렸다.
북소리 피리소리 울리는데 한쪽 어깨 가사 벗고
용루에서 향기 뿜는 익주의 배
때로는 발을 담가 밝은 달을 희롱하고
5호의 물결 아래 하늘을 밟아 나가네.
鼓笛轟轟袒半肩 龍樓香噴益州船
有時著脚弄明月 蹈破五湖波底天
후일 그는 세상에 나아가 큰 사찰의 주지를 두루 지내다가 호구산(虎丘山)에서 입적하였다.
46. 태주 태수 우연지(尤延之)
시랑(侍郞) 우연지(尤延之)는 종문(宗門)에 마음을 크게 쏟은 사람이다. 처음 낭중(郞中)으
로 있다가 태주(台州)태수로 나갈 때 효종황제를 알현하자, 황제가 말하였다.
"경(卿)이 남태주(南台州)로 가는 길에는 어떤 명소가 있는가?"
"국청사(國淸寺)와 만년사(萬年寺)가 있습니다."
그러자 효종은 매우 기뻐하면서 다시 농담 삼아 말하였다.
"그 사찰에는 500나한이 모셔져 있으며 그들은 원래 힘이 세다고 하는데 그들이 갑자기 한
꺼번에 나타나면 경은 무슨 법으로 맞서겠는가?"
그러자 우연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곧추세우고 말하였다.
"신(臣)에겐 금강왕(金剛王)보검이 있습니다."
이에 효종은 기쁜 빛이 얼굴에 역력하였다. 우연지는 태주에 이르러 너그러움과 사랑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백성들도 그를 몹시 사랑하였으나 남태주는 가뭄과 홍수가 잦은 곳이기에
우연지는 이에 대해 시를 지었다.
하루 아침만 비가 와도 온통 질퍽거리고
겨우 사흘 비 내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가뭄 걱정
예로부터 하늘의 일이란 어렵다 말하지만
하늘이 태주에 대해선 너무나 어렵게 하는구나
來雨一朝成汗漫 裳晴三日人憂乾
向來盡道天難作 天到台州分外難
그러나 고을의 정사를 다스리고 남은 여가에는 많은 시간을 보은사(報恩寺)에서 보내며 불
조(佛照德光)스님과 도를 논하였다. 불조스님이 뒷날 냉천사(冷泉寺)에 청을 받고 부임하자
그를 이어 이암 유권(伊菴有權:?∼1180)스님을 초빙하여 주지로 삼았는데 대중이 항상 4,5백
명이나 되었다.
47. 묘희스님의 인가를 받다 무착 / 묘총(無著妙總)선사
무착도인(無著道人) 묘총(妙總)은 소태사(蘇太師)의 손녀로서 여러 큰스님을 두루 찾아뵈었
고, 뒤에 경산사 묘희스님을 찾았다. 어느 날 묘희스님은 법상에 올라 "이렇게 할 수도 없고
이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라는 석두(石頭希遷)스님의 화두
를 들어 설법하였다. 그때 시랑(侍郞) 풍제천(馮濟川)이 법회에 있다가 갑자기 느낀 바 있어
방장실로 달려가 아뢰었다.
"스님께서 거론하신 석두스님의 화두를 이 풍즙(馮楫:풍제천, ?∼1153)이 깨달았습니다."
"시랑은 어떻게 깨달았소?"
"이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은 소로사바하. 이렇게 하지 않을 수도 없다는 것은 시리사바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는 것은 소로시리사바하."
때마침 묘총이 밖에서 들어오자 묘희스님은 풍즙의 말을 그대로 전하니 묘총이 웃으며 말했
다.
"예전엔 곽상(郭象)이 `장자(莊子)"에 주석을 붙였다 하지만 유식한 자는 장자가 곽상의 글
에 주석을 붙였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묘희스님은 마음 속에 이 말을 새겨두었는데 그 이튿날 묘총이 방장실에 들어가자 묘희스님
이 물었다.
"옛 큰스님들은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는데도 어떻게 밭에서 인절미를 먹을 수 있었느냐?"
"스님께서 저의 허물을 눈감아 주신다면 곧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그대의 허물을 눈감아 줄 터이니 한 번 말해 보아라."
"이 묘총이 스님의 허물을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기름바른 인절미는 어떻게 하고?"
묘총이 할을 하고 밖으로 나가고 나서는 이어서 `투기송(投機頌)'을 지어 올렸다.
갑자기 진면목을 부딪치니
기량이 얼음 녹듯이 없어졌네
달마는 어찌하여 서쪽에서 왔는가
이조는 부질없이 세자리 헛 절을 올렸구나.
여기에 이럴까 저럴까 의문을 붙여
한무리 초적들이 대패하였지.
驀然撞着鼻頭 伎倆氷消瓦解
達磨何必西來 二祖枉費三拜
更問如何若何 一隊艸己大敗
이에 묘희스님은 북을 울려 그를 인가하고 게를 지어 주었다.
그대는 이미 조사의 뜻을 깨달아
단칼에 두 동강이를 내버렸구나
기연에 임하여 하나하나 천진스러우니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조금도 부족함 없기에
내, 이 게를 지어 증명하노라
사성 육범 모든 이가 놀라 자빠지리라
놀라 자빠질 것 없다
푸른 눈 오랑캐 중도 알지 못하니
汝旣悟得祖師意 一刀兩直下了
臨機一一任天眞 世出世間無欠少
我作此揭爲證明 四聖六凡盡驚撓
休驚撓 碧眼胡僧猶未曉
48. 40년 동안 산문을 나가지 않다 / 경수좌 瓊首座)
경(瓊)수좌는 사명(四明)사람이다. 여러 노스님을 두루 친견하고 설봉산(雪峰山)에서 40년
머무는 동안 산문 밖을 나오지 않았다. 오로지 선열요(禪悅寮)의 선판 자리를 차지하고 여름
이나 겨울이나 누더기 한벌로 지내니 아무도 그를 가까이하거나 멀리하지 못하였으며, 철암
(鐵菴)스님만을 모시고 있었다.
민현( 縣)태수 조여우(趙汝愚)가 그의 풍모를 우러러 여러 차례 큰 사찰의 주지자리를 마
련해 놓고 산에서 나오기를 청하였지만, 그는 굳이 산 속에 머물 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여우는 꼭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철암에게 부탁하여 계략을 꾸며 관아로 들어오게 하고는
크게 공양을 올렸다. 그리고는 그 앞에서 자기 청을 들어 달라고 부탁하였지만, 경수좌는 끝
까지 뜻을 바꾸지 않았다. 이에 조여우는 더욱 존경한 나머지 시를 지어 산으로 돌아가는
그를 전송하였다.
만길 높은 봉우리에 눈더미 쌓였는데
한 그루 차가운 나무 바윗가에 서 있노라
푸르고 푸른 절개는 사계절 변함없고
봄바람이야 불던말던 아랑곳하지 않네.
萬 峰頭雪作堆 一枝寒木倚巖常
靑靑不改四時操 任待春風吹不回
부판(府判)이하 관료가 모두 경하하였으니, 불법을 빛낸 그의 영광은 적지 않았다. 그는 소
개장을 써들고 다니면서 주지자리를 찾는 요즘 사람들과는 함께 논할 수 없다.
49. 여러 선지식을 천거하여 부처의 혜명을 잇다 / 이덕매(李德邁)
시랑(侍郞) 이덕매(李德邁)가 남태주(南台州)태수로 있을 때, 홍복사(鴻福寺)· 만년사(萬年
寺)·천선사(薦善寺)의 주지로 졸암(拙菴德光)·이암(伊菴有權)·철암(鐵菴祖證), 스님을 초
빙하여 세상에 나오게 하니 훌륭한 납자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그 후 국청사(國淸寺)의 주지
로 밀암(密菴咸傑)스님을 초청하니, 밀암스님은 당시에 구주(衢州) 오거사(烏巨寺)의 주지로
있었다. 이들은 오직 응암(應菴曇華:이덕매는 응암스님의 제자)스님의 법을 위해서 나왔으므
로 개당에 있어서는 모두 그럴만한 자질이 있었다. 참으로 이러한 일이란 각기 알맞은 사람
이 따로 있는 것이지, 인정으로 사대부의 환심을 산다하여 되는 일이 아니다.
뒷날 이덕매가 벼슬을 그만두고 번양(番陽)으로 돌아가 한가히 지낼 때 어느 사람에게 말하
였다.
"내(浩)가 비록 일생동안 벼슬하였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자급할 수 없었고, 재물이 없어 남
을 구제하지도 못했지만, 단구(丹丘:台州의 별칭)에 있을 때 세분의 선지식을 청하여 세상에
나오게 하고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게 하였으니, 그 공덕이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
이다."
50. 법을 잇길 바랬지만 / 불조 덕광(佛照德光)스님
불조 광(佛照德光)스님이 처음 앙산사(仰山寺)의 야암 조선(野菴祖璇)스님의 회중에 있다가
태주(台州) 홍복사(鴻福寺)의 주지로 부임하는 길에, 삼구(三衢)를 지나 오거사(烏巨寺)에 이
르자 밀암(密菴咸傑)스님이 게를 지어 그를 전송하였다. 이는 응암(應菴曇華)스님의 법을 이
었으면 하는 의도에서였다.
눈먼 당나귀가 눈먼 새끼 낳아
악착스러워 그의 이름 사방에 사무치는데
또다시 소림(달마)의 구멍없는 피리를 잡았으니
사람 만나면 아마 바람을 거꾸로 부르리라.
驢生得 驢兒 齷齪聲名徹四維
更把少林無孔笛 逢人應是逆風吹
그가 무주( 州)보림사(寶林寺)에 이르렀을 때는 당시 월암(月菴善果)스님의 제자 혜원(轄
堂慧遠)스님이 그곳의 주지로 있었는데 운문(雲門)스님의 "말에 떨어졌다(話墮)"는 화두를
들어 그에게 가려 보라 하니 이는 그가 월암스님의 법을 이었으면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
나 단구(홍복사)에 와서 개당함에 묘희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다. 총림에서는 모두 그가 묘희
스님의 문호가 높고 크기 때문에 그랬다고 비난했지만 그들은 애당초 원수에게는 상대가 있
고 빚에는 빚쟁이가 있음을 알지 못한 것이었다.
51. 정수리에 뼈가 솟다 / 지책 도독(智策塗毒)스님
도독 책(塗毒智策)스님이 상주(常州) 화장사(華藏寺)의 주지로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머리
가 쪼개질 듯이 아프며 사흘 동안 그치지 않자, 문도들은 아마 뇌에 종양이 생긴 것이라 생
각하였다. 그러나 통증이 멎자 마침내 정수리 뼈가 솟아올라 마치 다른 뼈를 꼽아 놓은 듯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열흘이 못되어 쌍경사(雙徑寺)의 주지로 임명하는 조서가 내려졌
다. 사람이 만년에 불과(佛果)를 이루게 되면 환골(換骨)의 징조가 있는 듯하다.
쌍경사로 가려는 차에 설림 자광(雪林慈光)이라는 스님을 만났다. 그는 오랫동안 불지(佛智
端裕)스님에게서 두 눈이 멀었기에 혜산사(慧山寺)에 머물고 있었는데, 게송 세 수를 지어
오봉(五峯)의 화장사로 보냈다.
도독스님 작은 번뇌 모두 다하자
전우(도독의 스승)생각 불조 생각 모두 사라지고
웃으며 조칙 받들어 남쪽으로 떠나니
천고의 총림에 반짝거리는 등불이로다.
塗毒離微及盡 典牛佛祖俱亡
笑捧天書南去 叢林千古耿光
천태산 산마루 깎아지르듯 우뚝 섰고
큰 호수에는 백설같은 파도 꽃이 휘날린다
묻노니 오호의 스님들이여
오늘에 어느 누가 있단 말인가
台嶺危峰壁立 大湖雪浪華飛
試問五湖禪納 如今天下有誰
늙고 병든 이 몸, 스님의 덕 입었고
부처님께서 나의 소리를 거두셨네
천리마 꼬리에 붙어가는 파리처럼 그를 따라 갈석암 구경하니
용을 올라 타고픈 생각이 부질없이 일어나네.
衰殘正賴餘潤 紫泥 我賞音
附驥觀光喝石 攀龍徒有此心
*
52. `총림변영편" [叢林辨 篇] / 귀운 여본(歸雲如本)스님
귀운 본(歸雲如本)스님은 남태주(南台州)사람이다. 할당 혜원(轄堂慧遠)스님의 법제자로 금
릉 장간사(長干寺)에서 소산(疎山)으로 옮겨갔으며 도가 높다고 명성이 자자하였다. 과거에
서 장원급제한 유요부(劉堯夫)는 일찍이 여본스님에게 도를 물어 의기가 투합하였다.
상당하여 법문하였다.
"뼈아픈 몽둥이 한 대 맞고 깨달으니 나무 위에선 쌍쌍의 물고기가 놀라 날뛰고, 한마디 말
끝에 자재하니 바위 위엔 죽순이 죽죽 뻗어오르다. 이에 쓸 것 없음을 써서 항상 끝없는 법
륜을 굴리고, 할 것 없음을 해서 수없는 몸을 두루 나타낸다. 옛 사람은 힘을 써 볼 수 없는
곳에서 깨닫고 그림자 하나를 그어놓았다. 그리고는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나타나고, 모든
강물의 달은 하나의 달 속에 있다고 말한다. 불법이 만일 이와 같다면 구름 나온 곳으로 돌
아가고자 한들 무슨 일을 하겠는가? 대중스님이 잠자코 있자 주장자로 탁상을 내려치고서,
"지금은 모두 분명히 앉아 있고 서 있는데, 일천 낚시꾼들이 낚시를 드리울 수 없는 곳, 그
자리에서 깨칠 수 있겠는가? 만일, 큰 바다가 만족할 줄 알면 모든 강물이 거꾸로 흐르게
될 것이다" 하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그는 `총림변영편(叢林辨 篇)"을 지었는데, 꼬리를 흔들면서 아첨하거나 환심을 사려는 당
시의 무리들을 풍자한 글로서, 문장과 의미가 뛰어나며 원극 언잠(圓極彦岑)스님이 발문을
썼다. 대중에 들어오는 후배라면 이를 몰라서는 안될 글로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조정의 정국공(鄭國公) 부필(富弼)은 투자 수옹(投子修 )스님에게 도를 물었는데, 서
간문이며 게송이 무릇 열네 두루마리가 되며, 태주 홍복사(鴻福寺)양 회랑벽의 사이에 새겨
놓았다. 이것으로써 선배들의 법을 주관함이 준엄하였고, 왕족 귀인들의 도를 믿음이 독실하
였음을 또렷이 볼 수 있다. 정국공은 사직의 중신(重臣)으로서 만년에 이르러 갈 곳을 앎이
이와 같았으며 수옹스님은 보통 스님보다 뛰어난 인물이었다. 정국공은 스스로 "수옹선사에
게 깨우침을 얻은 바 있다"고 말하였다.
사대부 가운데 참으로 불도를 믿고 능히 나이를 잊고 세도를 부리지 않고서, 맹렬하고 예리
하게 분발하여 반드시 깨우침 얻으리라고 기약한 사람으로는, 시랑(侍郞), 양대년(楊大年),
도위(都尉)이화문(李和文)등이 있는데, 광혜 원련(廣慧元璉)과 석문 온총(石門蘊聰)및 자명
(慈明:石霜楚圓)노스님들을 친견하여 격려받고 글을 주고받았던 사실이, 여러 선서(禪書)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으며, 양무위(楊無爲)는 백운 수단(白雲守端)스님에게, 장무진(張無盡)은
도솔 종열(兜率從悅)스님에게 사사하여 모두 관문의 요소를 두드려 철저히 근원을 파헤쳤는
데, 이는 구차스럽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시랑(侍郞) 장무구(張無垢), 참정(參政) 이한노(李漢老), 학사(學士)여거
인(呂居仁)등이 모두 묘희(妙喜)노스님을 친견하여 도의 경지에 올라 세속(方外)의 도우(道
友)라 일컫는다. 그들은 사랑과 미움 거슬림과 순탄함을 깡그리 휩쓸어버리고 세속의 구애
와 거리낌을 벗어났으니, 보는 사람은 옷깃을 여미고 그를 경외하여 그들 경지의 테두리를
엿볼 수 없다.
그러나 사대부 가운데에는 그저 한가하고 고요한 곳을 찾아 마음을 선적(禪寂)에 멈추고자
하는 자는 본래의 `유(有)'를 발휘해 낼 뿐이다. 후세에 이르러 예컨대 큰스님의 모범은 보
지 않고 오로지 아첨을 일삼아 아무쪼록 세상에 나아가기를 구하여, 무릇 주지로서 이름을
드날려 장로(長老)라 하는 자들이 이따금씩 명함에까지 어느 문파의 승려라고 기록하며 앞
사람들을 받들어 은부(恩府)라 하고서 사찰의 소유물을 꾸러미로 싸가지고 관가에 아첨하여
올리니, 식견이 있는 자들은 가엾은 마음으로 그를 비웃는 데에도 그들은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고 있다.
아! 우리 총림의 승려는 하나의 병, 하나의 발우만을 들고서 구름이 흘러가듯 새가 날듯 떠
도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추위와 굶주림의 절박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녀가 있어 구
슬이며 비단에 연연할 것이 없는 데에도, 허리를 굽혀 빗자루를 움켜쥐듯, 허리가 시큰하도
록 하니 스스로가 모욕되고 비천한 일을 이처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이 은부라 일컫는 것은, 개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 아무런 근거도 없는데, 부질없는 못
난 이가 앞에서 소리치면 백 사람의 못난 이들은 그 뒤를 따르며 `예, 예'하며 다투어 받들
듯하니 스스로 왜소해질 뿐이다. 이처럼 부처의 가르침을 깎아내리는 데에 있어서 아첨하는
사람보다도 더한 자는 없을 것이다. 아첨하는 데 잽싸게 잘한 자는 실제로 간사할 속임수의
조짐이다. 비록 단정한 군자일지라도 교묘히 그들의 함정에 들어가면 몸이 불의에 빠지게
되고 덕을 잃고 구제할 수 없게 되니,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법을 파괴하는 비구는 삿된 마귀의 기운들이 한 몸에 모여 미치광이처럼 거짓된 일을 태연
자약하게 하며 속임수로 선지식인 척 모습을 나타내어 선림의 큰스님들을 들먹거리면서 스
승이라 하고, 요로의 귀족에게 종문의 권속이라 아첨하며, 바라지도 않는 존경을 떠받치면서
불법을 파괴하는 실마리를 열어주고 나아가 백의서생(白衣書生)이 선상(禪滅)에 올라가도
그 아래에서 절을 하여 성인의 제도를 어기고 종풍을 크게 욕되게 한다. 우리 불도의 쇠퇴
함이 지극하여 여기에 이르렀도다. 아 슬픈 일이다. 이는, 하늘에서 그를 죽이고 귀신이 그
의 죄를 기록할 만한 큰 죄악이니, 만번 죽는다 한들 어떻게 그 아첨의 죄를 속죄할 수 있
겠는가?
설숭(明敎契嵩)스님의 `원교론(原敎論)"에 이런 말이 있다.
"옛 고승은 천자를 만나도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편지나 문서를 쓸 때 공(公)이니 사
(師)이니 라고 말한다. 종산 승원(鍾山僧遠)스님은 황제의 가마가 산문에 이르렀는데도 선상
에 앉은 채 산문 밖에서 맞이하지 않았으며 호계 혜원(虎溪慧遠)스님은 천자가 심양(尋陽)
까지 이르러 조칙을 내렸는데도 산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세상사람들은 그들의 인품을 가
상히 대하였고 그들의 덕을 존경하였으니 이 때문에 당시 성인의 도가 세상에 떨쳤다. 후세
에 이르러서는 고승을 추앙한다 하는 자들이 벼슬하는 자와의 사귀는 모습을 보면, 못난 선
비의 예우를 받는 데도 미치지 못하여 그들의 출신이나 처신은 "못난 선비들이 스스로 만족
하는 경지만도 못하다."하였으니 하물며 승원스님처럼 천자를 만날 수 있으며 또한 혜원스
님처럼 태연자약할 수 있겠는가? 이러고서도 우리 불도가 흥성하고 우리의 도가 닦여질 수
있겠는가? 가르침이 있더라도 뒤따르는 사람이 없다면, 가르침이 있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
겠는가? 이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귀운스님은 희령(熙寧)5년에 입적하였다. 이 책에서는 불법이 쇠퇴되어 이를 짊어질 사람이
없음을 몹시 걱정하여 자못 파순(波旬:慾界 六天의 마왕)을 대한 듯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법문에 들어와 아첨하여 자신의 생각이 이뤄졌다 생각하는 것은 마치 사자의
몸에 벌레가 일어 사자의 몸을 갉어먹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
가?
`수능엄경"에 의하면, "내가 입멸한 뒤 말법 속에는 이처럼 요사스러운 자가 많아 세간에 성
하여, 남 모르게 간악한 마음으로 속임수를 쓰면서 선지식이라 일컬을 것이다" 하였으며, 또
한 "어느 도적놈이 나의 옷을 빌어 입고 여래를 팔고 갖가지 악업을 짓는다"하였으니 모두
입으로는 불법을 말하지만, 이는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는 비구가 아니라 소승의 도를 행하
는 자들이다. 이로 말미암아 한 없는 중생에게 의심을 안겨주고 무간(無間)지옥으로 떨어지
게 한다.
순희(淳熙)정유(1077)에 내가 현은사(顯恩寺)의 주지를 그만두고 평전(平田) 서산(西山)이라
는 작은 산 언덕에 살면서 요사이에 보고 들은 일들이 거짓이 많고 옛 가풍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비록 나의 말이 이 세상에 무겁고 가벼운 것이 될 수는 없겠지만 다만 이 글을
적어 스스로를 경계하는 바이다.
귀운 여본(歸雲如本)씀.
원극 언잠스님의 발문은 다음과 같다.
부처님의 세상이 멀어짐에 따라 바른 법은 엷어지고 풍속과 행동이 잡되어 못하는 일이 없
게 되었다. 선배스님들은 돌아가시고 후세 사람 가운데는 뛰어난 이가 없어 총림의 규범이
거의 땅바닥에 떨어진 형편이다. 설령 이를 붙잡아 구하려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도리어
그를 오랑캐라 생각한다.
내가 소산(疎山)여본스님의 `변영(辨 )"이라는 글을 보니 문장이 심오하고 의미가 드넓어
간절하고 명백하니, 총림의 병폐에 대하여 지극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부질없고 못난 무리
들은 아는 게 없어 사악하고 아첨한 데에 마음이 취하여 있으니, 반드시 제호(醍 )를 독약
이라 여길 것이다.
순희 임인(1081)3월 5일
강좌(江左)오봉(五峯)에서 원극 언잠(圓極彦岑)쓰다.
53. 효종황제에게 종문사를 일깨우다 / 나암 도추(懶菴道樞)선사
나암 추(懶菴道樞)선사는 황룡 혜남스님 회하의 큰스님으로 도량사(道場寺)무전 거혜(無傳
居慧)스님의 법을 이었다. 처음 효종(孝宗)황제는 불교로 기울기는 하였지만 종문(宗門)에
특별한 일이 있는지는 몰랐었다. 그러나 후일 그것을 알게 된 것은 모두 이 노스님의 인도
에 의한 것이었다. 할당( 堂慧遠)·졸암(拙菴德光)스님이 뒷날 효종을 인가한 것도 그 유래
를 알고 보면 모두가 도추스님의 힘이었다. 도추스님은 영은사의 주지를 그만 두고 후일 명
교(明敎)스님의 영안난야(永安蘭若)로 물러나 유유자적하게 지냈는데, 벽 위에 써놓은 절구
(絶句)한 수가 남아 있다.
흰눈 속의 매화는 봄소식이며
연못 속에 잠긴 달색은 밤의 정기라
근래에 아름다운 흥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풍을 남에게 보이지 마오.
雪裏梅華春信息 池中月色夜精神
年來不是無嘉趣 莫把家風擧似人
이 시에서 스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54. `빈 골짜기'라는 호를 가진 가난한 스님 / 송 공곡( 空谷)스님
송 공곡(宛空谷)스님은 여항(餘杭)사람이며 상전 연(象田演)스님의 회하에서 유나(維那)일
을 맡아보았다. 그의 인품은 청백하고 고고하여 몹시 가난한 생활을 꾸리며 겨울이면 갈대
꽃으로 이불을 삼아 덮었으니 본색 납자가 아니라면 결코 이처럼 살지 못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상전 연 스님은 그의 법명 `공곡(空谷)'에 대하여 송하였다.
골짜기 비고 비어 골골마다 비고 비었구나
텅 빈 골짜기 온갖 만상 초월하니
흐르는 물 떨어지는 꽃잎마저 전혀 보이지 않는데
맑은 바람 밝은 달이 어우러졌구나.
谷空空谷谷空空 空谷全超萬象中
流水落華渾不見 淸風明月却相容
그는, 뒷날 천동사(天童寺)에 있었는데 개울가를 따라서 자그마한 집을 짓고 조고암(弔古
庵)이라 이름하였다. 많은 도반들은 그의 풍류놀이를 따라 즐겼는데, 나는 그 당시 옥궤암
(玉 菴)졸암 덕광(拙菴德光)노스님 회중에 있으면서 송을 지어 그에게 보냈다.
듣자하니 그대 산기슭에 집을 짓고
저 멀리 용추사 야거나한을 조문한다지
굳이 깊은 산골에 몸을 숨기지 말고
한번 발길을 돌려 맑은 물결로 나와 보게나
빈 골짜기 노래가 전해오나 사람 이르기 어렵고
문 닫으니 산 꽃같은 눈마저 휘날리지 않네
내, 가을바람이 골짜기를 말끔히 쓸어버릴 때
명아주 지팡이 짚고 산천경계를 즐겨보리라.
聞君縛屋傍山阿 遠弔龍湫諾 羅
未必將身潛碧 且圖 足向淸波
韻傳空谷人難到 門掩山華雪不過
我待秋風洗巖壑 杖藜相與傲烟蘿
송스님의 맑은 기상은 뼈 속까지 사무쳐 마침내 산안개 산노을을 즐기는 고질병이 되었고,
마침내 태백산에서 세상을 마쳤다.
55. 오대산 초의문수상(五臺艸衣文像)
오대산의 초의(艸衣)문수상은, 이 나라(宋)의 원풍(元豊:1078∼1085)연간 때부터 있었다.
태위(太尉) 여혜경(呂惠卿)이 변방의 장수로 있을 때 오대산을 찾아왔다가 처음 그 모습을
보았는데, 위엄어린 동자가 거무스름한 몸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부들풀잎으로 발에서 어깨
까지 휘감았으며 오른 어깨는 드러내놓은 채 손에는 불경을 들고 있었다. 여혜경은 그와 `
화엄경"의 대의를 논하였지만 그가 보살인 줄을 몰랐는데, "범인의 생각으로 성인의 뜻을
헤아리려고 하느냐?"는 꾸지람 소리에, 비로소 깨어나 절을 올리자 동자는 마침내 문수보살
의 모습으로 변하여 황금사자를 타고 보일락말락하며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여혜경은 그 후로 후회와 한탄으로 집에 돌아와서도 한달이 넘도록 침울해 하였다. 뒤에, 지
성껏 기도하면 보살의 모습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부인의 말을 듣고 여공은 그 말처럼
정성을 다하여 잘못을 뉘우치고 반드시 보살이 현신하기를 기구하는 마음을 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니, 향탁자 위에 보살이 나타나 여공을 꾸짖었다.
"어찌 이다지도 상(相)에 집착하느냐?"
"세상 사람들에게 보살님께서 보여주신 참모습을 보였으면 해서입니다."
그리고는 급히 화공(畵工)에게 명하여 그리도록 하였는데, 잠깐 사이에 그 모습은 보이지 않
았다. 이리하여 그려진 그 화상은 경락(京洛)지방에 전해졌는데 지금까지도 여러 곳에서 이
따금씩 찾아볼 수 있다. 나도 그 중 한 폭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는 오승(吳僧) 범륭(梵隆)스
님이 그린 것으로 이 몸이 다할 때까지 받들고자 한다. 일찍이 전우(典牛天遊)스님이 지은
찬을 기록해 두었는데 많은 찬 가운데 가장 훌륭한 글이라 할 수 있다.
딱한 남전(南泉)이 도리를 알지 못하고
하잘것 없는 문수사리라고 철위산 밑으로 쫓아내니
지금까지 머리도 빗지 않고 얼굴도 씻지 않은 채
온몸이 하나가 되어 풀 속에 앉았는데
멍청한 여공(呂公)이 그것도 반짝 깨닫지 못하고
황금사자를 가리키다가 그자리에서 자기를 잃고 나자빠졌구나
소로시리……
56. 수묵관세음보살상[水墨觀音]
수묵화 관세음보살상은 당(唐) 오도자(吳道子)와 이백시(李伯時)이후로는 오승(吳僧) 범륭
무종(梵隆茂宗)스님이 가장 뛰어난 솜씨를 지녔다. 그러므로 효종은 일찍이 그를 칭찬하였
다.
물결도 일지 않고 불꽃도 잠잠하니
범륭의 뛰어난 그림 덕명에게 내리노라.
水波不動 火光不興
梵隆妙絶 授之德明
그리고는 내시[中官] 황덕명(黃德明)에게 하사하였다.
범륭스님에게 지협(至犀)이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도 관음상을 잘 그렸으며, 근래에 들어서
는 민( )땅 덕원(德源)스님의 필치가 절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당시의 고관 사승
상(謝丞相), 태사(太師) 조언유(趙彦逾)등이 모두 그가 그린 관음상에 찬을 쓴 바 있는데 사
승상의 찬은 다음과 같다.
보고 들음을 모두 거두어 들이고
가부좌한 채 앉았으니
붓끝에서 그려져 나와
모양에서 `나'를 보느냐 하네
천백억 개의 몸이
가할 것도 불가할 것도 없으니
중언부언 게를 쓴다는 것은
엄연히 군말에 불과하리.
조태사의 찬은 다음과 같다.
생각을 뛰어넘어 관음상 그렸으니
붓끝에서 현묘함을 이루었네
진면목을 깨달으면
지혜의 빛이 온 누리에 두루 빛나리
만일 모습으로 도를 구하면
모습을 보고 선한 생각이 생겨나
생각 생각 모두 순수하고 온전하면
참모습은은 여기에서 나타나리다.
57. 백당 남아(柏堂南雅)선사의 대중법문
백당 아(柏堂南雅)선사는 민( )사람이며 나암 정수(懶菴鼎需)스님의 법제자이다. 처음 자
택사(紫택寺)의 주지로 있을 무렵 불조(佛照德光)스님이 냉천사(冷天寺)의 주지로 있었는데,
서로는 숙질(叔姪)사이였다. 이러한 인연으로 특별히 가서 덕광스님을 보좌하며 2년 동안 좌
원(座元)으로 힘쓰니, 많은 형제들이 그를 따랐으나 남아스님은 성품이 강직하여 덕광스님이
그를 꺼려하였다.
그 후 용상(龍翔) 영암사(靈巖寺)의 주지를 하는 동안 그의 도는 크게 떨쳤다.
스님은 대중에게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였다.
"서봉산(瑞峰山)산마루 서봉정(棲鳳停)곁에 한 그릇 묽은 죽으로 서로 의지하며 백군데 기운
누더기를 머리에 덮어쓴 채 앉아 있는데, 이조(二祖:慧可)는 삼배를 올리고 제자리에 서 있
으니, 이미 제자들이 빙 둘러 있구나. 비린내나는 달마 늙은이가 가죽과 뼈를 모두 나누어주
니,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나머지 무리들이야 말할 나위 있겠는가? 나의 이러한 이
야기로 여러 스님의 꾸지람을 피할 수 있을른지……. 그러나 안목을 갖춘 이는 가려낼 것이
니, 하마터면 죄인을 오랫동안 취조하지 않아서 꾀만 늘려줄 뻔했다."
또 이렇게 말하였다.
"자주빛 고사리는 여린 주먹 펴고 죽순은 가지가 돋히는데, 버들꽃 다한 뒤에 녹음 우거지
네. 분명한 달마의 한마디 말을 꾀꼬리는 나뭇가지에서, 제비는 둥지에서 재잘댄다. 여기에
투철히 보고 믿는 이가 있다면 그는 제방 어디를 가든지 분명 밝은 창 밑의 첫 자리를 마련
해 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용상(龍翔)의 문하에서는 일격에 쳐 죽일 것이다. 무슨 까닭인
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대체로 승려와 속인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
기 때문이다."
58. 근본이 단정하며 / 광교 회(廣敎會)스님
광교 회(廣敎會)스님은 사천 사람으로 석두 회(石頭自回)스님의 법제자이다. 처음 호국사
(護國寺)의 차암(此菴守淨)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한 행자가 철판같이 고집을 피우면서 떠
나가자 모두 송을 지어 그를 전송했다. 당시 회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괜스레 두 주먹 휘두르며 저처럼 떠나가니
한덩이를 만들어 가지고 속히 돌아오게나
삼봉 정상에 다시 걸망을 걸을 땐
어지러운 봄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오리.
空奮雙與?去 打成一片早回頭
歸來 在三峯頂 惱亂春風來未休
도반들이 모두 이 송을 애송하였다.
그는 후일 운거산(雲居山) 천복사(薦福寺)의 주지를 지냈는데 항상 2∼3백여 명의 대중이
살았다. 이는 그의 근본이 단정하여 지말까지도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59. 백장야호화두에 붙인 게송 / 삼봉 인(三峰印)선사
삼봉 인(三峰印)선사는 무주( 州)사람이며 깨달은 경지가 뛰어났다. 일찍이 `백장야호(百
丈野狐)'에 대하여 송하였다.
떨어지지 않는다느니 어둡지 않다느니 함은 사람을 속이는 죄
어둡지 않다느니 떨어지지 않는다느니 함은 오랏줄 없이 묶이는 꼴
가엾어라 버들강아지 봄바람 따라서
곳곳에서 이리저리 나부끼는구나.
不落不昧誣人之罪 不昧不落無繩自縛
可憐柳絮逐春風 到處自西還自東
총림에서 이것을 애송하는 이가 많았다. 순희(淳熙)초 내가 산음(山陰)능인사(能仁寺)에 있
을 무렵 서암사(瑞巖寺)의 위당 법윤(葦堂法潤)스님과 함께 그분이 설법한 곳을 찾아가 보
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분을 만나보지 못했다. 후일 그에 대한 도독(塗毒智策)노스님의 송을
살펴보니,
큰 횃불을 잡아들고
허공을 불사르니
달마도 그의 뜻을 알지 못하여
눈이 멀고 귀가 먹었도다.
秉大火炬 燒太虛空
遠磨不會 眼 耳聾
고 하였다. 이는 더욱이 인스님의 이마 위에서 곤두박질을 친 것이다.
60. 대나무를 노래함 / 자득 혜휘(自得慧暉)선사
자득 혜휘(自得慧暉:1097∼1182)선사가 장로사(長蘆寺)조조(祖照)스님의 회중에 있을 무렵,
대중 요사채에서 대나무를 가꾸다가 문득 송 한 수를 지었다.
그 높은 절개, 깊은 구름마저도 감추지 못해
그윽한 님, 작은 창가로 옮겨 심노라
신령한 뿌리 서기어린 입새 뭇사람 놀라게 하여
맑은 바람이 푸른 하늘에 돌게 하도다.
高絶深雲藏不得 幽人移向矮窓前
靈根瑞葉驚群目 將著淸風動碧天
이 송은 즉흥으로 우연히 지은 글이지만 사람들은 앞다투어 애송하였다. 만년에 유두사(乳
竇寺)에 있을 때 그의 나이 이미 80여 세 고령이었지만 뜻밖에 칙명을 받들어 정자사(淨慈
寺)의 주지가 되자 사람들은 모두가 그때 지은 `죽송(竹頌)'은 자신에 대한 예언이라 하였
다. 이에 대중과 작별하면서 상당법문을 하였다.
한결같이 산중에 머문 지 40년
늙으막에 날마다 한가한 생각 뿐이었는데
오늘 아침 뜻밖에 군왕의 부름을 받아
학인들을 작별하고 옛 관문을 떠나가네.
구름은 무심히 산마루를 나가고
날개짓에 지친 새는 옛 둥지로 돌아온다.
득의양양 돌아올 뒷날에
솔바위 속에서 손님이니 주인이니 모두 잊으리.
一住山中四十年 老來無日不思閑
今朝誤被君王詔 珍重禪流出故關
雲無心而出岫 鳥倦飛而知還
他年得意歸來也 賓主相忘松石間
남병산(南屛山)에 와서 조동종(曹洞宗)의 종풍을 크게 일으키고 후일 설두산 쌍탑암(雙塔
庵)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세상을 마칠 생각을 하였다. 과연 그가 떠나면서 한 말처럼 되었
으니 이를 두고 `마음에 두고 있으면 뜻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마음에 잊
지 않으면 그것이 곧 뜻이 된다'는 말이다.
61. 감 이암(鑑口夷菴)스님
감 이암(鑑口夷菴)스님은 현 재암(賢在菴)스님과 함께 심문 운분(心聞雲賁)스님의 법제자이
다.
감스님은 계빈국왕( 賓國王)미라굴(邇羅掘)이 사자존자(師子尊者)의 목을 베었다는 공안에
대하여 송하였다.
존자는 어찌하여 오온이 공함을 터득하여
계빈왕의 칼날에 봄바람 가르듯 목이 잘렸는고?
비온 뒤 복숭아꽃 이리저리 떨어져
흐르는 개울물을 온통 붉게 물들였네.
尊者何嘗 得蘊空 賓刃下斬春風
桃華雨後恣零落 染得一溪流水紅
총림에서는 앞다투어 이 송을 애송하였다.
현스님은 조주스님이 오대산 노파를 감파한 화두를 들어 송하였다.
빙설같이 아름다운 모습 이상도 하다
옥피리 옆에 들고 사람에게 불어대니
곡조엔 한없는 꽃 마음이 꿈적거려도
첫째 가지에 봄을 맞이하였네.
氷雪佳人貌最奇 常將玉笛向人吹
曲中無限華心動 獨許東君第一枝
묘희스님은 이 게송을 보고서 매우 칭찬하였다.
"운분노스님에게 이런 아들이 있었다니… 황룡스님의 법이 아직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구
나!"
선배들이 후진을 이끌어주는 일을 보건대, 공론(公論)으로 하였지 애초에 종파를 나누지는
않았다.
62. 불성법태(佛性法泰)스님의 념고(拈古)
불성 태(佛性法泰)스님은 용아(龍牙居遁:835∼923)스님이 취미(翠微無學)스님과 임제(臨濟義
玄)스님에게 물었던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공안을 들어 송하였다.
자경(子卿)이 선우(흉노의 우두머리)에게 허리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한나라의 절개를 지켰네
날씨가 추운 뒤에야 소나무의 절개를 알고
어려운 일을 겪어야 바야흐로 대장부를 알아볼 수 있는 법.
子卿不下單于拜 始末常遵漢帝儀
雪後始知松栢操 事難方見丈夫兒
그의 말은 간절하고도 분명하다 할 만하다. 내 지난날 옥궤산(玉山)에 있을 무렵 불조(佛
照)스님께서 이 송을 들어 말할 때에는 으레 두번 세번 칭찬하면서 "이것이야말로 고칙(古
則)을 송하는 격식이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다. 뒤에 그의 어록을 보니 `노파가 조주스님의
죽순을 훔치다'는 화두에 붙인 송도 있는데 이것을 좋아한다.
앵두가 갓 익을 무렵 울타리 곁에 죽순이 돋아나니
숲 속에서 두 도인 서로 만났네
웃음을 참느라고 바른 명으로 금하질 못하니
편의를 얻은 것이 곧 편의를 떨어뜨린 것.
櫻桃初熟筍穿籬 林下相逢老古錐
忍俊不禁行正令 得便宜是落便宜
63. 개선 도겸(開善道謙)선사의 `송고(頌古)'
개선사(開善寺)도겸(道謙)스님은 `마음은 부처가 아니며 지혜는 도가 아니다[心不是佛 智不
是道]'는 공안을 들어 송하였다.
태평시절 해마다 풍년이라
나그네 봇짐엔 양식 걱정 없고 집마다 문단속 않네
큰 길에 사람 없고 밤에는 달빛 없는데
노래하며 돌아오니 삼경이나 되었을까.
太平時節歲豊登 旅不齎粮戶不
官路無人夜無月 唱歌歸去恰三更
묘희스님이 이 송을 가장 좋아하였다. 금산사의 기도자(奇道者:道奇師)는 별봉 보인(別峰寶
印:1109∼1190)스님의 법제자인데 그 또한 이 공안을 들어 송을 지은 바 있다.
기나긴 봄볕에 강산경개 아름답고
훈훈한 바람결에 꽃과 풀이 향기롭다
진흙땅 풀리자 제비는 날고
모래 사장 따뜻하니 원앙새가 꾸벅꾸벅.
遲日江山麗 春風華艸香
泥融賑燕子 沙暖日坐鴛鴦
이 송 또한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그 당시에는 모두 스승의 경지를 뛰어넘은 작품
이라 하였다.
64. 한림학사 범치령과의 만남 / 원통 도민(圓通道旻)스님
원통사(圓通寺)의 도민(道旻:1047∼1114)스님은 흥화(興化)선유(仙遊)사람이며 늑담사(潭寺)
의 응건(應乾)스님을 친견하였다. 좌승상(左丞相) 범치령(范致靈)이 처음 한림학사[內翰]로
있다가 예장(豫章)태수로 나가는 길에 후계(侯溪)를 지나게 되어 스님을 만났다. 이야기를
하다가 범공이 탄식하며 "이 늙으막에 벼슬길에 있자 하니, 생사대사를 알기에는 점점 멀어
만 간다"라고 하자, 도민스님은 대뜸"내한(內翰)!"하고 불렀다. 범공이 "예" 하고 대답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멀어진 것도 아니군요."
"참 좋습니다. 더 가르쳐 주십시오."
"이곳에서 홍도(洪都)까지는 나흘 길입니다."
내한이 생각에 잠기자, 도민스님이 말하였다.
"보려거든 즉시 보아야지 생각하려 하면 어긋납니다."
내한은 몹시 기뻐하였고 이로부터 깨달아 들어가게 되었다.
65. 추밀원 정사 / 오거후(吳居厚)
추밀원(樞密院) 정사(政事) 오거후(吳居厚)는 왕명을 받들어 종릉(鍾陵)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민(道旻)스님을 만나 말하였다.
"내 지난 날 성시(省試)를 보러 원통사 조주관(趙州關)을 지나면서 전임 주지 거눌(居訥)스
님에게, `관문을 꿰뚫고 나가는 일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거눌스님은 `벼슬이나
하러 가라'고 하였는데, 벌써 나도 모르는 사이에 50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도민스님이 말하였다.
"관문을 꿰뚫고 나가는 일은 밝혔습니까?"
"여덟 차례나 그곳을 지나가면서 항상 마음에 두고는 있으나 아직까지 시원스레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도민스님이 오공에게 부채를 주면서 "부채나 부치시오"라고 하자, 오공이 부채를 부치니 도
민스님이 말하였다.
"시원하지 않은 곳이 어디에 있소?"
오공은 매우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말후구(末後句)를 가르쳐 주십시오."
도민스님이 두 차례 부채를 부쳤다.
"친절하십니다."
"길료새(桔료:앵무새)는 혓바닥이 삼천리지."
66. 관음경을 사경하다 진팽공 여림(陳彭空汝霖)
간의대부(諫議大夫) 팽공(彭公)진 여림(陳汝霖)이 손수 관음경을 베껴 써서 도민스님에게
올리자 도민스님은 책을 들고서 말하였다.
"이것은 관음경이니, 무엇이 간의대부입니까?"
"이것은 제가 직접 쓴 것입니다."
"쓴 것은 글자인데, 무엇이 경전입니까?"
팽공이 웃으면서 "정말 모르겠습니다"하자 도민스님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재상의 몸으로 나타나서 설법을 하십니다."
"사람마다 분수가 있습니다."
"경전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도민스님이 경전을 들어 보이자 팽공은 손뼉을 치면서 껄껄대며 하! 하고 감탄하였다.
도민스님이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겠나?"라고 하니, 팽공은 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67. 도민스님을 뵙다 / 안상국(安相國)
안상국(安相國)이 남부지방으로 좌천되어 지나는 길에 도민스님을 만나서 탄식하였다.
"일생동안 벼슬하다가 지금와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깨고 보니 이제까지의 일이
한바탕 꿈이었습니다."
"상국께서는 꿈을 깨셨습니까?"
"이것이 모두 본디 있는 것이나 다만 몰랐을 뿐입니다."
"상국!"
안상국이 고개를 들자 스님이 말하였다.
"알았습니까?"
"여러 가지 맡은 일은 어떻게……"
"서울에서 며칠 만에 이곳까지 오셨소?"
"42일입니다."
"어디에서 일을 얻어왔소?"
상국이 웃으며 말하였다.
"조금 알성 싶습니다."
"지금 당장 그대로 누리십시오."
"어떻게 누려야 합니까?"
"아침마다 똑같고 날마다 일반입니다."
안상국이 마침내 합장을 하자 도민스님이 말하였다.
"가진 것을 다 비우고 없는 것을 채우지 마시오. 대체로 이와 같이 하면 참으로 자유로울
것이오."
68. 드센 터를 누르고 살다 / 이령암주(二靈菴主)
이령암주(二靈菴主)는 소주(蘇州)사람이다. 처음 진정(眞淨克文)스님을 찾아뵙고 후일 늑담
응건( 潭應乾:1034∼1096)스님에게 공부하여 깨친 바 있었다. 동절(東)지방으로 돌아가 설
두산 중봉암(中峰庵)에 주석하였는데 그의 자리 아래에는 항상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처음 천동 보교(天童普交:1048∼1124)스님과 동행하면서 두 사람 다 결단코 세상에 나가지
않겠노라고 맹세하였는데 후일 보교가 맹세를 어기고 세상에 나가 태백산(太白山)의 주지를
하자, 지화(知和:이령암주)스님은 마침내 그와 절교하고 중봉에서 여러 해를 살았다. 그 산
은 몹시 드세어서 얼마 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는 말이 있었다. 이에 지화
스님은 호미로 산맥을 잘라버렸다. 그러나 대제(待制) 진공(陳空)이 시로 유인하여 이령암의
주지로 있게 하자 1∼2년이 못되어 많은 납자들이 몰려와 작은 절을 이루게 되었다. 그의
명성이 궁중에까지 알려져 여러 차례 천자의 조칙이 내렸으나 응하지 않았다.
지금도 유적이 남아 있으며 많은 게송과 법문이 세상에 알려져 있다. 이령암은 근강(勤江)월
파(月波)가운데에 있는데 순희(淳熙)연간(1174∼1189)에 별봉 보인(別峰寶印)스님이 유두사
(乳竇寺)에서 경산사로 부임하는 도중에 그곳을 지나면서 게를 지었다.
일만 이랑 너른 호수 잔잔한 물결 위에
이령산의 산빛이 겹겹이 푸르러라
돛단배 너울너울 하늘가를 향하노니
머리돌려 바라보나 지화스님 뵐 낯 없네.
萬頃湖光 艶中 二靈山色翠重重
片帆我欲天邊去 回首和公有 容
스님의 높은 도풍을 상상해 볼 수 있다.
69. 인종(仁宗)이 대각 회련(大覺懷蓮)선사를 뵙다
대각(大覺懷蓮:1009∼1090)스님이 궁중에 들어가 심법(心法)을 논하던 차에 인종황제(101
2∼1064)는 게를 지어 하사하였다.
초조(달마)께서 소림사에서 참선할 제
경전의 가르침 전하지 않고 심법만을 전하였네
후세 사람이 진여본성(眞如本性)깨달으니
비밀한 인장은 원래 묘한 도리 깊구나.
初祖安禪在少林 不傳經敎但傳心
後人若悟眞如性 密印由來妙理深
70. 효종(孝宗)이 경산 도잠(徑山道潛)스님에게 칙서를 내리다
효종황제는 경산(徑山道潛)스님을 궁으로 불러들이고 송을 지어 하사하였다.
나오는대로 설법하되
수백 마디 모두가 으뜸가는 종지라
스님이 절로 돌아가자 너무나 고요해
한 글자도 부칠 곳이 없구나.
信手拈來說 宗乘數百句
僧歸寺寂寥 一字無著處
국역 총림성사 상권 종(國譯 叢林盛事卷之上 終)
총림성사 下
1. 꿈 속에 본 시구절 보봉 경상(寶峰景祥)스님
보봉사(寶峰寺)경상 차수(景祥叉手:1062∼1132)스님이 동자였을 때, 두 노스님이 밤중에 이
야기를 하던 차에 옛날 큰스님의 송을 거론하는 것을 들었다.
수렛소리 덜그럭거리며 강남 땅 지나더니
잠시 유해를 늑담에 머물려 두네
진령(秦嶺)의 자욱한 모래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는데
달밝은 밤 괜스레 선승의 암자에 자물쇠를 채우네.
征輪軋軋過江南 暫把遺骸寄 潭
秦嶺烟沙猶未息 月明空鎖定僧菴
경상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느낀 바 있어 눈물이 맺혔다. 노스님이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대답하였다.
"제가 얼마 전 꿈 속에서 이 시구(詩句)를 보았는데, 아마 이는 저의 전신이 지은 것인 듯
싶습니다."
"그대는 뒷날 반드시 늑담사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 후 경상은 비구가 되어 몇 해 동안 대중 속에 있다가 과연 늑담사의 주지로 세상에 나갔
고 여러 차례 명산 대찰의 주지를 지냈다. 이어서 정강(紛康)의 난(금나라의 침공)으로 천태
산(天台山)에 피신하여 고암 선오(高菴善悟:1074∼1132)스님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연화봉에
서 입적하니 그곳은 천태 덕소(天台德韶)국사가 선정(禪定)에 들었던 곳으로 전후의 사실이
모두 지난날 게송에서 들은 바와 같았다.
교종(敎宗)에서는, 보토(報土:과보의 영역)는 모두 옛 원력이 나타난 것이어서 모두 정해진
몫이 있다고 하였다. 이 어찌 우연한 일이라 하겠는가. 그러나 세속의 못난 무리들 중에는
주지를 하고자 구차스럽게 명성과 이권에 영합하여 늙어 죽으면서도 제 분수를 모르는 경우
가 많다. 내가 지난날 태백산 밀암(密菴咸傑)스님의 회중에 있을 때, 한번은 꿈속에서 일련
(一聯)의 게를 지어 벽 위에 써 붙인 적이 있다.
난간에 눈 내리니 절 집은 초록빛 유리 아래 있고
구름이 하늘을 가로지르니 사람은 연꽃으로 돌아간다.
雪點欄干寺在翠瑠璃之下
雲橫 漢人歸紅 之中
이 글을 지은 지도 벌써 여러 해가 되었는데 아직껏 세파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나의 보토
(報土)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차! 꿈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닌데….
2. 살아서 복이 아무리 많았어도 / 보자 온문(普慈蘊聞)선사
보자 문(普慈蘊聞)선사는 예장(豫章)사람으로 용모가 남달랐다. 처음에는 삼구(三衢)오거사
(烏巨寺)의 설당 도행(雪堂道行)스님을 찾아 뵈었고, 그 다음엔 호상(湖相)지방으로 들어와
회안봉(回雁峰)아래에서 묘희스님을 뵙고 함께 갖은 어려움을 겪어냈다. 장원급제했던 왕성
석(汪聖錫)과도 두터운 교분이 있었는데, 왕씨는 상요(上饒)땅 사람이었으므로 문선사를 회
옥산(懷玉山)의 주지로 천거하니 그곳은 황룡 혜남스님이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왕성석이 뒷날 민주( 州)자사가 되자 곧 온문스님을 상골산(象骨山:雲峰寺)으로 초청하였으
며, 건도(乾道:1165∼1173)연간에는 칙명으로 쌍경사(雙徑寺)의 주지가 되어 천자의 부름으
로 여러 차례 궁궐에 들어가 설법하였다. 천자는 기뻐하여 특별히 혜일선사(慧日禪師)라는
법호를 하사하였으며, 만년엔 또다시 칙명으로 설봉산으로 돌아왔는데 고산사(鼓山寺)노스님
차산 승(次山昇)이 그에 대하여 소(疏)를 지었다.
선기(璇璣)가 움직이지 않고서도
잠깐 사이에 하늘의 바람과 구름을 돌리고
대용(大用)이 앞에 나타나
종횡무진, 일월을 걸어놓았도다
백년에나 한 번 있을 만남이 반가우니
천년에 다시 모여 이 복을 누리소서
덕이란 나날이 새로워지지만
사람이란 오로지 옛사람을 구하는 법
그대의 도는 남쪽 민지역(南 ) 이절(二浙)지방에 전해졌고
그대의 인연은 설교(雪嶠) 오봉(五峰)과 맞았으니
사형사제 전후하여 주지를 이어오며
각기 아름다운 명성을 얻어
예전에 떠나가고 이제 돌아옴에
모두가 천자의 칙명으로 불법을 일으키니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천지의 마음을 보았도다
그러나 홀로 성주의 지우(知偶)를 만나니
명공대작 모두가 스님을 우러르네
바야흐로 과녁 위를 나는 봉황을 따르다가
갑자기 놀라 합포에 구슬 안고 돌아옴이여
백마타고 오신 님을 보았으니
옷자락 땅에 끄는 아름다운 시녀가 필요하겠나
일천여명의 용상(龍象)스님이
우두커니 코끼리수레로 돌아오는 스님 바라보니
삼백년 조사의 도량에
또 한번 나무공을 굴려 불법 일으킴을 보리라
바라건대 밀인(密印)을 가지고
아랫사람의 염원에 부응케 하소서!
온문스님은 복이 많기로는 근세에 따라갈 사람이 없었으나, 그의 향상(向上)경지에 대해서
는 총림의 신임을 얻지 못하여 죽은 후엔 명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3. 세속과 어울리지 않는 성품 / 철암 일대(鐵菴一大)선사
철암 일(鐵菴一大)선사는 건창(建昌)사람이다. 불조 담(佛照少曇)도인과 동행하여 처음엔
월암 과(月菴善果)스님을, 후엔 응암 화(應菴曇華)스님을 찾아뵈었다. 담화스님이 귀종사(歸
宗寺)에 주지로 있을 때 철암스님이 시자로 지낸 적이 있었는데 담화스님은 그의 성품이 고
고하여 세속과 어울리지 않음을 좋아하였다. 그리고는 그의 모습에 대해 이런 글을 지어 주
었다.
불자(拂子)를 걸어두기도 하고 세워들기도 하니
완전한 기틀이 출몰하고
한마디 할(謁)에 귀머거리되어
사흘 동안 귀가 멍멍하더라니
말하라
그것은 마조의 귀가 멍멍한 것인가
아니면 백장의 귀가 멍멍한 것인가
종일시자는 이렇게만 말했다오.
건도(乾道:1165∼1173)연간에 태주(台州)경선사(慶善寺)의 주지로 나왔다가 다시 구주(衢州)
상부사(祥符寺)로 옮겨 마침내는 월암 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는데, 이는 그가 깨달음을 얻게
된 바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스님의 초상화에 찬을 썼다.
사대 오음을 뒤집어 걸어놓고
최고의 경지를 깨쳤도다
마음을 쏟아 사람들을 가르쳤지만
보이지 않게 도리어 비웃음 받았다네
눈동자 속의 사람이 쇠피리 불어대는구나
작은 바가지로 바닷물을 뜨자니 부질없이 심신만 고달프다
다리미 불에 차 끓이는 사람과는 찻잔을 함께 않네.
그 후 스님은 가화(嘉禾)절에 있다가 소산(疎山)과 앙산(仰山)으로 자리를 옮겼고, 두 차례
나 설봉산(雪峰山)의 주지를 지낸 후 입적하였다.
4. 행자에게 들려준 법어 / 설당도행(雪堂道行)선사
설당 행(雪堂道行)선사의 법어 가운데 원우(元友)행자에게 들려준 말이 있다.
"운거산(雲居山) 고암(高菴善悟)노스님이 용문산 불안(佛眼)스님 회하에 수좌로 있을 무렵
대중에게 으레 `모름지기 유식한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뒷날 내가 고암스님
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시봉할 때 그 뜻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
다. `많은 대중 가운데에는 못난 사람들이 항상 많고 식견이 있는 자는 항상 적다. 못난 이
들은 익숙해지기 쉽지만 식견이 있는 자와는 친하기 어렵다. 그러한 사이에서 스스로 크게
뜻을 세운다는 것은, 마치 한 사람이 만명을 대적하는 일과 같다. 용렬하고 천박한 버릇이
모두 없어졌을 때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뛰어난 인물이 될 것이다.' 나는 그 후로부터 오
늘날까지 그 말씀을 되새겨오고 있다.
기질이 의지를 이기면 소인이며, 의지가 기질을 이기면 똑바른 인물이랄 수 있지만, 의지와
기질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도를 얻은 성현이 된다. 어떤 사람이 남의 충고나 가르침을 받아
들이지 않고 사납고 괴팍한 성깔을 부리는 것은 그의 기질때문에 그처럼 된 것이다.
기파(耆婆:옛날 부처님 당시의 명의)가 죽으려 하자 모든 풀들이 울면서 `기파가 살아있을
때는 우리가 쓸모 있었지만 그가 죽은 후엔 우리를 알아볼 사람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라고
개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는데, 이는 바로 오늘날의 세간사를 비유한 것이다.
내가 출가하기 전, 20세가 못되어 독(獨)거사를 만났는데 그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속에 주인이 없으면 바르지 못하고, 밖에 주인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나는 이 말을 들은 뒤로 일생동안 이 말을 실천해 오고 있다. 세속에 있으면서 입신양명할
때나 출가하여 도를 배울 때나 나아가 만년에 대중을 다스릴 때까지 이 가르침을 따랐다.
마치 저울로 물건의 경중을 헤아리고 둥글고 굽은자[規矩]로 모나고 둥근 것을 만드는 것처
럼, 이를 버리면 모든 일에 기준을 잃게 된다. 원우(元友)여! 노력하여라."
5. 소자유(蘇子由)의 게송들
영빈선생(穎濱先生)소자유(蘇子由)는 한때 균양(筠陽)땅에 유배되어, 진정(眞淨克文)스님과
깊은 교류를 나누었다. 그는 일찍이 두 수의 송을 지어 향성사(香城寺) 순(上藍順)스님에게
올렸다.
끝없이 많은 일을 녹여
다해서 하나의 마음을 만들었으나
그 마음마저 두지 않고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르렀구나.
融却無窮事 都成一片心
此心仍不有 從古至如今
보일 듯 하다가 다시 없는 듯
몇 차례 서로 만나 웃음을 지었던고
여기엔 머리도 꼬리도 없으니
몇자 몇치를 헤아리지 마오
동파노인을 알고 싶거든
당당한 대장부임을 알아 두시오
근래에 와서 이 일을 알고서
전혀 글을 읽지 않았다오.
如見復如亡 相逢 幾場
此間無首尾 尺寸不須量
欲識東坡老 堂堂一丈夫
近來知此事 也不識文書
당시 소동파도 유배지에 있었다. 소자유가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져 그가 사는 곳을 `동헌
(東軒)'이라 이름 지었다는 말을 듣고 시를 지어서 놀려 주었는데, "동헌 장로를 수북이 담
아 왔다[盛取東軒長老來]"라는 구절이 있다. 소자유가 이에 대하여 답하였다.
 ̄"설령 수북이 담아 와도 아무 쓸모없고 설당(雪堂)엔 원래 노스님이 계시는 곳[縱使盛來
無用處 雪堂自有老師兄]"
또 한번은 도연명(陶淵明)시에 화운(和韻)하였다.
중원 땅에 불법이 전해지자
유학자들은 얘기하는 것마저 부끄러워하였지만
그 공덕 보이지 않는 가운데 펼쳐 있으니
어찌 그 당시를 잊으오리까
이곳은 더러운 풍습으로 뒤범벅되어
흐리멍텅 이름난 스님이 없어
살림살이나 도닥거리며 가산만 지키려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앉아서 의심하게 만드네
술 고기 나쁜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생사를 떠난다고
우리 민 땅엔 이런 풍조 만연하여
불사란 생각할 수조차 없네
영특한 아들 많이 낳아
부처님의 보응이 너를 속이지 않았다하나
때로 바른 법안을 지닌 스님이
한번 나오셔서 이를 밝혀 주리
누가 그 고을의 부호라고 말하는가
바라건대 나의 이 시를 읊조려보오.
佛法行中原 儒者 論玆
功施冥冥中 而何負當時
此方舊染雜 渾渾無名緇
治生守家室 坐使斯人疑
未知酒肉非 寧與生死辭
熾然吾 中 佛事不可思
生子多穎悟 得報不汝欺
時有正法眼 一出照曜之
誰謂邑中豪 請誦我此詩
6. 3교의 가르침 / 광록대부(光祿大夫) 조형(晁逈)
광록대부(光祿大夫) 조형(晁逈)은 불경과 그 밖의 서적들을 정밀하게 연구하여 만년에는 `
법장쇄금(法藏碎金)"을 저술하였으며, 유·불 양가에 널리 유행되었다. 그의 말은 교화에 큰
도움을 끼쳤는데 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유교에서는, 뜻있는 선비라면 학문이 없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불서에 서도 `
학문이 없는 자는 그 도리를 분별하지 못한다. 만일 그 말만을 이해하고 되는대로 자포자기
를 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유·불·도 3교의 서적을 대략 훑어보니,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뜻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유교의 `주역(周易)"에서는 `군자는 덕업을 닦는다[君子進德修業]'하였고 도교의
`노자(老子)"에서는 `으뜸 선비는 도를 깨치고 부지런히 이를 실행한다[上士聞道勤而行之]'
고 하였다. 또한 불교의 `보적경(寶積經)"에서는 `마치 큰 용이 할 일을 다 마치고 무거운
짐을 벗어 제 물을 얻은 것과 같다[猶如大龍 所作已辨 捨於重擔 殆得已利]' 고 하였다.
나는 이로 인하여 이 3교를 빠뜨림없이 참구해 보니, 비록 그 문구들이야 서로 다른 점이
없지 않지만 덕이 반드시 학문에서 나온다는 데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에 더하
여 7·80 노령에 이르도록 그 뜻이 심오하여 무궁히 이르게 될 것이다."
맨 마지막의 한마디는 만겁토록 바뀔 수 없는 말이라 하겠다.
7. 산 제사를 받고 입적하다 / 대원 지(大圓智)선사
대원 지(大圓智)스님은 사명(四明)땅 사람이며, 도림 요일(道林了一)스님의 법제자이다. 요
일스님은 우산 법거(祐山法거)스님을, 법거스님은 황룡 혜남스님을 친견하였으니 대원스님은
몸소 황룡파의 종지를 얻은 셈이다. `황룡삼관송(黃龍三關頌)"과 `염고(拈古)"를 지었는데 그
법어들은 총림에 성행하였다.
처음 묘희스님은 그의 성품이 털털하여 절 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를 썩 좋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염고"를 보고서 마침내 의자를 만지작거리면서 "참으로 황룡을 정통으
로 전한 것이다"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염고집" 뒤에 큰 글씨로 4구게송을 썼다.
칠불의 명맥과
모든 조사의 눈동자가
이 어록을 보기만 한다면
모두 앞에 나타나리.
七佛命脈 諸祖眼睛
但看此錄 一切現成
이를 계기로 학인들은 바야흐로 두 분 스님의 묘용처(妙用處)가 애당초 다르지 않음을 알
게 되었다. 그러나 지(智)스님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종고 묘희의 경지는 예전의 암두(巖頭全¡), 사심(死心悟新)스님에게 뒤지지 않으니, 백대의
스승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아직껏 이 노승과 그 일로는 맞딱뜨려보지 않았는데, 만일 이 노
승을 한 차례만 만난다면 앞 뒤가 끊기게 해주리라."
그러나 두 스님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지선스님은 석상산(石霜山)에서 세상을 마쳤는데 열
반하기 10일 전에 미리 제자들에게 살아서 제사를 받고 법좌에 단정히 앉아 입적하였다. 여
기에서 대혜 묘희스님이 사람을 가볍게 인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8. 묘도도인(妙道道人)의 법문
묘도도인(妙道道人)은 연평(延平) 황씨(黃氏)의 딸이다. 여러 큰스님을 두루 친견한 후 경
산(徑山)에서 묘희스님을 찾아뵈었다. 한번은 묘희스님이 방장실에서 어느 스님에게 묻기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자 그 스님은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마침 묘도도인이 문밖에서 이 말을 듣고 환하게 깨친 바 있어 묘희스님께 아
뢰자 "화살이 뽕나무에 꽂혔는데 닥나무에서 즙이 나왔군!"하며 깨친 바를 인가해 주었다.
후일 그는 홍복사(洪福寺)의 개당 법문에서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선이란 뜻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니, 뜻을 세우면 종지에 어긋난다. 도란 공훈과는 동떨어
지니, 공을 세우면 도의 분수를 잃게 된다. 소리 밖의 말을 생각 속에서 구하지 말고 조용
(照用)의 기틀을 지니고 불조의 감추(金甘鎚)를 쥐고서 부처가 있는 곳에선 서로 손님과 주인
되고 부처가 없는 곳에서는 바람이 냉랭하다. 마음이 편안하고 생각이 태연하면 메아리는
순조롭게 소리에 화답하니, 말해보라. 이와 같은 사람은 어느 곳에 있는가를……"
한참동안 말없이 있다가 송하였다.
도롱이 걸치고 천 봉우리 밖에 비껴 섰다가
오노봉 앞 채소밭에 물줄기 끌어주다.
披 側立千峰外引水 蔬五老前
또다시 설법하였다.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내렸다 하는 잘못은 눈뜨고 침상 위에다 오줌싸는 격이요, 현성 공안
을 함부로 쓰는 것은 꾀 많은 계집아이가 정조를 잃은 격이라, 도무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것이며, 신령한 거북이가 꼬리를 질질 끄는 일이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
건도 아니라' 함은 허공에 못질하는 것이요, 부서진 집을 떠난다 해도 오히려 썩은 물 속에
잠겨있는 용과 같은 꼴이다. 깊은 물을 쏟고 높은 산을 무너뜨리는 한마디를 어떻게 말할
까? 거령(巨靈:黃河의 水神)이 손을 올리는 것은 대단찮은 일이나 화산(華山)을 천겹만겹 산
산조각 내었노라."
후일, 수암(水菴師一)스님은 한 스님이 이 법문 거론하는 걸 보고서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먼
곳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 일은 남녀 등의 상(相)에 관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대장부들이 10년이고 5년이고 대중
가운데 살며 캐보아도 알지 못한 경지이다. 그는 비록 여인이지만 의젓이 대장부의 일을 해
내었으니, 수많은 엉터리 장로들보다도 훨씬 낫다."
9. 간당 행기(簡堂 行機)선사의 살림살이
간당 기(簡堂行機)선사는 처음 요주(饒州) 완산사(莞山寺)에 주지로 있었는데 17년 동안 화
전을 일구어 밭갈이를 하면서 갖은 고초를 맛보았다. 스님이 살던 곳은 사방이 자연 그대로
의 상태였으므로 적막함을 즐길 수 있었으며, 세상의 부귀영달에 마음 쓰지 않고 베옷과 나
물밥으로 변함없는 절개를 지켜 왔다. 이에 세상에서는 그를 `기도인'이라 불렀다. 뒤에 스
님은 구강(九江) 원통사(圓通寺)에 살며 차암(此菴景元:1094∼1146)스님의 도를 크게 폈다.
그의 대중법문은 다음과 같다.
"원통사엔 생약가게를 열지 않고 다만 죽은 고양이 머리를 판다. 그 값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먹기만 하면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지."
그곳에서 태평선원(太平禪院)의 은정암(隱靜庵)으로 옮겨갔는데 비록 대중은 많아도 부엌
· 창고 등은 쓸쓸하였으나 대중들은 아무도 이를 불평하지 않았다. 절의 소임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황룡 노스님의 법을 따라 새벽 죽공양이 끝나면 바리때를 걸어놓고 승당에서
시자에게 목탁을 치게 한 뒤 "누가 무슨 소임을 맡아주기를 바란다"고 하면, 어느 누구도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혹시라도 명을 어기는 자가 있으면 "여기 나의 회중에서 일을
맡지 않고 네가 어디 가서 일을 맡겠느냐?"라고 꾸짖었다.
아! 선배들은 그 도가 높아 사람 쓰는 것이 이처럼 쉬웠는데 어찌하여 오늘날엔 수없이 빌
고 절하여도 맡을 생각이 없고 오히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니, 괴롭습니다, 부처님이
여!
10. `납승 노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서림 조증(西林祖證)선사
서림사(西林寺) 조증(祖證)스님의 별명은 노납(老衲)이며 장사(長沙)사람으로 월암(月菴善
果)스님의 법제자이다. 월암스님이 도림사(道林寺)에 있을 때 조증스님은 책임자로서 몸소
형제 학인들을 위하여 명패를 걸고[掛牌] 입실하였다. 그는 지극정성으로 정중하게 학인을
지도하였는데, 비록 혼자 있을 때도 마치 큰 손님을 마주하듯 하였으며 형제들이 그를 보면
항상 정중한 모습이었다.
뒤에 스님은 서림사(西林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도를 폈는데 `운문화타(雲門話墮)' 공안에
대하여 송하였다.
부싯돌 번뜩이는 섬광 속에서 질문을 던지노니
투철히 깨닫지 못하면 얼마나 어려움이 많을지
만일 정수리에 금강눈을 갖추면
옆사람에게 낚싯대 잡히는 꼴을 당하리라.
石火光中立問端 不能透脫幾多難
頂門若具金剛眼 肯被傍人把釣竿
이러한 경지는 그가 친히 월암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또한 고정된 격식을 훌쩍 벗어났기 때
문에 얻어진 것이다.
처음 보안사(保安寺)가봉(可封)스님 또한 월암스님을 찾아뵈었는데 그는 견지(見地)가 더욱
뛰어났다. 그 또한 `운문화타' 공안에 대하여 송하였다.
세모에 거문고 안고서 어디로 가려 하오
낙양 땅 삼십육봉 서쪽으로…
일생동안 선생 얼굴 뵙지 못하여
한번도 `오야제'를 듣지 못했소.
歲暮抱琴何處去 洛陽三十六峰西
生平未識先生面 不得一聽烏夜啼
이는 참으로 유하혜(柳下惠)를 잘 본받고도 그의 발자취를 스승 삼지는 않았다고 할 만하
다. 정수리에 금강눈을 갖춘 이라면 분명히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11. 매천 순(罵天詢)스님과 불감(佛鑑)스님과의 문답
매천 순(罵天詢)스님은 견처가 분명한 분이었다. 일찍이 불감(佛鑑慧懃)스님 시봉을 들었는
데 불감스님은 수순스님의 얼굴이 검고 모습이 추하다고 하였으며, 관상가 또한 그에게 복
이 없다고 하였다. 어느 날 불감스님이 우연히 수순스님에게 말하였다.
"한 알의 보석을 너같은 거렁뱅이가 줍다니 아깝구나!"
"스님께서 단단히 거두어들이지요."
또 어느 날 그에게 말하였다.
"일체 중생이 언제 깨달은 적이 있었느냐?"
"일체 중생이 언제 미혹한 일이 있었습니까?"
그때 갑자기 한 행자승이 그들 앞을 지나가자 불감스님이 행자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에 불감스님이, 언제 깨달은 적이 있었느냐
고 다시 묻자 수순스님이 얼른 행자를 불러세우고서 말하였다.
"방참(放參)은 하였는가?"
"방참하였습니다."
"언제 미혹한 적이 있었는가?"
그러자, 불감스님은 버럭 성을 내며 행자에게 고함을 쳤다.
"이 축생[業種]아, 나가!"
이에 수순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소리를 좀 낮추십시오. 바깥 사람들이 우리 두 부자가 여기에서 깨쳤다느니 미
혹하다느니 다투는 소리를 들을까 두렵습니다."
불감스님은 크게 웃어댔다.
12. 미치광이 중 분암주(分菴主)의 하안거 결제법문
검문(劍門) 분 암주(菴主)는 민( )사람이다. 어린 나이부터 도에 대하여 스스로 깨친 바
있어 마침내 삭발하고 고향을 떠나버리자 당시 사람들은 그를 미친중이라 하였지만 분스님
은 개의치 않았다. 처음엔 나암 정수(懶菴鼎需)스님을, 그 후엔 쌍경사 묘희스님을 찾아갔었
는데 묘희스님은 그가 미쳤다는 말을 듣고, 끝내 참당(參堂)을 허락하지 않았다. 안분암주는
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와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다. 전당(錢塘)가에 이르러 배를 빌
려 절강정(浙江亭)가에 우두커니 서서 눈물을 흘리며, "내, 분주히 오령(五嶺)을 넘어 묘희스
님을 찾아갔었지만 대중 속에도 들어가지 못함은 전생에 반야인연이 없기 때문이다." 하고
있는데 뜻밖에,
"시랑(侍郞)행차요!"하는 수행원의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여기서 활짝 크게 깨치고 송을
지었다.
몇 해 동안 이 일이 가슴에 걸려
여러 총림 물어봐도 눈뜨지 못했더니
오늘에야 갑자기 창자가 터져
강가에 울려오는 시랑행차시오 하는 소리
幾年箇事 胸懷 問盡諸方眼不開
今日肝腸忽然破 一聲江上侍郞來
그 길로 양서암(洋嶼菴)으로 돌아가 나암(懶菴)스님에게 귀의하니, 나암스님은 그의 깨침을
인가하였다. 그 후 얼마 안되어 갑자기 그곳을 떠나가려 하자 나암스님이 게를 지어 전송하
였다.
강머리 세찬 바람 물결이 나부끼는데
남북의 많은 사람 만나도 반갑지 않더니만
오로지 안분선자 뛰어난 수단 지녀
힘들이지 않고 과거급제 하였네.
江頭風急浪華飛 南北相逢不展眉
獨有分禪英悛手 等閑尊得錦標歸
그 후 칠민(七 )땅에서 거짓으로 미친 사람 행세를 하며 때로는 술집에 들어가고 때로는
고기전에 들어가니, 아무도 몰랐으나 함께 참례하던 목암 영(木菴永)스님만은 만날 때마다
반드시 스승처럼 그를 섬겼다. 한번은 다음과 같은 대중법문을 하였다.
"이 한 돼기 밭을 너희들은 한번 말해 보아라. 천지가 나누어지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당장에 이를 깨치면 이 안분상좌를 꼼짝 못하게 하겠지만 만일 머뭇거리거나 헤아려본다면
천리만리 날아가는 흰구름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다."
갑자기 주장자를 뽑아들고 후려치면서 대중을 모두 쫓아버렸다.
또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15일 이전엔 하늘의 별들이 모두 북극성을 향하여 돌고 15일 이후엔 이 세상의 물이 모두
동쪽으로 흘러간다. 이전이니 이후이니 하는 것을 뽑아버리니, 가는 곳마다 지방의 말씨가
다르더구나."
이어 손가락을 꼽으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열
넷…"
하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 형제들이여, 말해 보라. 오늘이 몇 일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이 가게에서는 푼돈갖고 외상줄 수는 없지."
13. 이암 유권(伊菴有權)스님의 하안거 결제법문
이암 권(伊菴有權)스님은 임안(臨安) 창화현(昌化顯)사람이며 무암 법전(無菴法全)스님의
법제자이다. 만년사(萬年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아가 9년 동안 한 자리에 머무는 사이에 법
회가 크게 떨쳤다. 그러나 유권스님은 몸소 계율을 지키며 대중을 받들고 언행이 모두 법도
가 있었다. 대체적으로 불지 단유(佛智端裕), 수암 수(誰菴粹)스님의 법을 따랐으며 회하에
는 항상 500대중이 안주하였다.
스님은 진영에 스스로 찬을 썼다.
코는 메부리를 닮아
천리 밖의 사람과 마주하도다
만년사의 종지를 알고자 하는가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네
鼻如鷹 對面千里
要識萬年 只這便是
총림에서 모두 이 찬을 애송하였으며 그 후 스님은 상주(常州) 화장사(華藏寺)로 옮겨갔다.
여름결제 때 대중법문을 하였다.
"오늘 아침 포대의 주둥이를 꽁꽁 묶어 놓았으니, 눈 밝은 납승들은 이리저리 달아날 생각
을 말라. 마음 작용이 꺼진 곳에서 몸을 뒤집을 줄 알면, 재채기 소리도 사자후가 되리라.
전단림(총림)에서야 마음대로 하랴마는 눈썹을 치켜세우면 정수리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집안 망신만 들통나겠구나."
14. 고종·효종의 미륵찬[高宗孝宗贊邇勒]
고종(高宗)·효종(孝宗)황제는 모두 미륵대사(邇勒大士)의 찬을 썼는데 총림에서 도가 있다
하는 스님네들이 모두 이 찬에 대하여 회답을 하였으나 두 황제의 마음에 계합되는 글은 적
었다.
황제의 찬은 다음과 같다.
푸른 하늘 한조각 구름
구만리 장천에 외로운 달
세간의 바깥에서 머무시니
오묘하도다. 그윽한 생활이여!
저자에 잘도 숨어사니
기이하다, 영웅 호걸이여
따르노니 주장자와 포대 하나 뿐
굶주린 배 채우는 데야 술이든 날고기든 무엇이 나쁘랴
그만두어라,
옥전누각에 흰눈이 나린다.
碧落片雲 長天孤月
能樓物外 妙兮幽絶
慣隱市廛 奇哉英傑
隨行兮 惟有 杖布袋
充飢兮 何妨酒肉腥血
別別玉殿瓊 樓更加雪
포대 속에 천지를 담고
지팡이로 일월을 떠받치네
지독스런 장난꾸러기 성인 중에 으뜸이요
미련하고 바보같기는 스님 가운데 으뜸일세
명령 행하니 매맞는 곳마다 맷자국이 또렷하고
형틀에 묶어두니 뺨을 칠 때마다 손자국이 선명하구나
그만두어라
이글거리는 화로 위에 내리는 눈 한송이.
袋貯乾坤 杖挑日月
聖中絶
癡癡 僧中傑
令行兮一棒一條
逗機兮一 一掌血
別別恰似紅爐一點雪
건도(乾道:1165∼1173)연간에 직도인(直道者:庵善直禪師)이 보령사(報寧寺)의 주지로 일찍이
이 찬에 화답한 일이 있다.
도량(度量)은 허공을 감싸고
눈에는 일월이 달려있네
하늘나라 있으니 하늘에서 으뜸이요
인간세계 사니 사람 가운데 호걸이라
포대를 내려놓고 사대부주(四大部洲)에 눌러 앉아
주장자 뽑아드니
온누리를 피바다로 만들만 하네
그만두어라
분명한 이 도리를 알기 어려워라.
量包太虛 眼懸日月
往天宮兮 天中之絶
居人間兮 人中之傑
放下布袋兮 坐斷四大部洲
拈起柱杖兮 直得大地流血
別別明明有理難分雪
이범사(李范使)가 이 찬을 올리자 효종은 대단히 기뻐하고 돈 5백만 전과 쌀 백 석을 하사
하여 대중의 공양에 보태 쓰도록 하였다.
15. 보인 별봉(寶印別峰)스님의 게송들
별봉 인(別峰寶印)스님이 금산사(金山寺)에서 유봉사(乳峯寺)로 옮겨갈 때, 의사 육안(陸安)
이라는 사람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보인스님은 달관 담영(達觀曇潁)스님의 후신이라
고 일러주었다.
스님은 한가한 성품을 타고났으며 화장사(華藏寺) 안민(安民)스님의 법을 이었다. 촉(蜀)땅
에서 나와 쌍경사(雙徑寺)에 이르러 묘희(妙喜大慧)스님을 뵙자 묘희스님은 말하였다.
"어디에서 왔느냐?"
"서천(西川)에서 왔습니다."
"그대가 검관(劍關)을 나오기 전에 몽둥이 30대를 맞았어야 하는건데."
"스님께 폐를 끼쳐드리게 되었습니다."
묘희스님은 그에게 능가실(楞伽室)에 숙소를 정하도록 하고 매우 극진한 대접을 하였다. 뒤
에 큰 사찰의 주지를 두루 지냈으며, 만년에는 칙명으로 경산사(徑山寺)의 주지가 되어 줄곧
9년 동안 머물면서 항상 `화엄경"으로 불사를 하였다.
소흥 경진년(紹興:1160)에 창포전(菖蒲田)에서 입적하였는데, 경산사의 도독(塗毒智策)스님에
게 영결을 고하자 도독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언제 가시렵니까?"
"물이 이르면 시내를 이루는 법이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 입고서 단정히 앉아 열반하시니, 그해 12월 8일이다. 열반하려는 차에
문도가 게를 청하자 큰 글씨로 써주었다.
천마디 만마디 법문이
모두가 허튼소리
나에게 한마디 있으니
죽은 뒤에 들어보이리라
千偈萬偈 總是熱荒
我有一句 死後擧揚
도독스님이 급히 감(龕)을 받들고 경산사로 돌아와 법당의 정침(正寢)에 안치하고 7일 후
에 당대 장례 법식에 따라 다비하니, 당시 사람들이 이에 큰 감명을 받았다. 그 후 2년이 지
나 도독스님이 입적하자 사람들은 그의 덕에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보인스님은 산중생활의 회포에 대해 글을 지은 적이 있다.
한결같이 숲 사이에서 단잠을 실컷 자고
마음대로 기염 토하니 햇빛이 뜨겁구나
병 없는 사람은 스스로 병을 구하지 말라
그것은 속박을 벗어나려다 도리어 얽매이는 격
어설프게나마 나찬스님처럼 토란을 구워 먹고
향엄스님처럼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어라
베개머리 맡에 청산이 있으니
비갠 뒤에 뚝뚝 떨어지는 처마의 푸른 빗방울들.
一味林間飽黑甛 敎氣焰日炎炎
不將無病自求病 多是解粘添得粘
粗有芋 如懶瓚 更無錐卓昭香嚴
枕邊留得靑山在 雨後層層翠滴
또 한번은 `농부취타도(農夫醉打圖)'에 글을 썼다.
농부여, 어이하여 천지자연 저버리오
취한 뒤엔 으레껏 격양가를 부르도다
그 옛날 유방(劉邦)항우(項羽)의 흥문 밖 잔치에서
가슴 속에 제각기 창칼을 품은 것과는 다르구나.
農夫何事損天和 醉後依前擊攘歌
不似當年劉項飮 胸中各自有干戈
16. 도독스님 방옹(塗毒)스님을 애도하는 시와 영정찬 / 방옹(放翁)
도독(塗毒智策)노스님이 감호사(鑑湖寺)에 있을 때 방옹(放翁:陸遊)과 가장 교분이 두터웠
다. 소흥(紹興)임자년(1162)7월 27일에 도독스님이 입적하자 방옹이 조시(弔詩)를 짓고 통곡
하였다.
높고 높은 용문산, 만길이나 솟아 있고
사뿐사뿐 한쪽 신발 또 한번 서쪽으로 가네
흰 불자엔 먼지 앉고 선상은 싸늘한데
푸른 솔에 이슬지니 스님 부도 세워졌소
다시 오실 날 저 멀리 생각해 봐도 사대육신 아닐테니
서로 만날 수 있는건 삼생(三生)이겠소
나는 수행이 매우 부족하여
인간의 슬픈 이별 참기 어렵소.
??龍門萬衲傾 翩翩隻履又西行
塵侵白拂繩牀冷 露滴靑松卵塔成
遙想再來非四八 應當相見是三生
放翁大欠修行力 未免人間愴別情
또한 스님의 영정에 찬을 썼다.
골격이 빼어나고
정신 또한 맑아서
용모는 엄숙하면서도 온화하고
말은 많지 않으나 할말 다하네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쏘아오는 그의 영기(英氣)이지만
그릴 수 없는 것은
정수리 위의 한쪽 눈.
骨格王貴奇 精神瀟灑
貌肅而和 語盡而簡
畵得者英氣逼人
畵不得畵者頂門上一隻眼
17. 조동의 종지를 깨친 분 / 석창 법공(石窓法恭)선사
석창 공(石窓法恭:1102∼1181)선사는 총림을 두루 참방하고 오랫동안 황룡 법충(黃龍法
忠:1084∼1149)도인에게 의지하다가 뒷날 굉지(宏智正覺)스님에게 귀의하였다. 정강(紛
康:1126)에 호상(湖湘)에서 동월(東越)로 돌아갈 때 법충스님은 송을 지어 그를 전송하였다.
모래섬에 놀던 그 옛날 부질없이 회상하며
손꼽아 헤아려보니 어느덧 40년
그대 석창사에 가거든 조용히 묻게나
이 많은 풍월을 누구에게 주어야 할지를
閑思昔日戱沙洲 屈指于今四十秋
君到石窓閑借問 許多風月付誰收
법공스님은 월주(越州)보은사(報恩寺)의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갔다가 뒤에 서암사(瑞巖寺)
로 옮겨와서 스님의 도는 크게 펼쳐졌다. 스님은 괴로움을 이겨가며 학인을 가르쳤고 베옷
과 나물밥으로 추위와 더위를 견디면서 작고 큰 일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몸소 하여 총림의
질서를 갖추니, 납승들은 그의 덕망을 우러러 마음 깊이 굴복하였다. 한번은 불탄절에 이런
송을 지었다.
오천축국에서 쏜 한가닥의 쑥대 화살이
중국의 백만병사를 휘저어놓았네
운문의 바른 명령 행하지 못하면
자칫 저울눈금을 잘못보게 되리라
五天一隻蓬蒿箭 攪動支那百萬兵
不得雲門行正令 幾乎錯認定盤星
총림에서 이 송이 널리 애송되었다.
철백두(徹白頭:了堂思徹)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삼구(三衢)사람이며, 법공스님과 함께 굉지스
님 문하로서 절개있고 결백하여 세속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가 한번은 태백사(太白寺)를 찾
아갔는데 묘희스님은 그를 보고 매우 준수한 인물이라 하여 마음 속으로 기뻐한 나머지 꾀
를 써서 옥궤산(玉山)을 지나도록 유도하였지만 그는 소신을 바꾸지 않고 마침내 천동사(天
童寺)노스님에게 귀의하였다.
건도(乾道:1165∼1173)연간 초에 법공스님이 철백두스님을 자기의 제자로 생각하여 몸소 명
주(明州)보은사(報恩寺)의 주지에서 물러나면서 그에게 넘겨주었다. 주지된 지 2년만에 사방
의 훌륭한 스님들이 모두 귀의하였으나 그는 끝까지 굉지스님의 법통을 이었다. 이 때문에
법공스님은 그를 불쾌하게 생각하였지만 철백두스님 또한 이를 개의치 않았다.
그 후 무주( 州) 화장사(華藏寺)의 주지로 자리를 옮겨가게 되었으나 길을 떠나려는 즈음
에 입적하였다.
임종시 유게(遺偈)를 남겼는데 다음과 같다.
지금 이 한마디에는
다시는 회호(回互)가 없도다
달은 차가운 연못에 떨어지는데
저녁노을은 옛 나루터에 아득하여라.
當陽一句 更無回互
月落寒潭 烟迷古渡
참으로 동상(洞上:曹洞宗)의 종지를 깨친 스님이지만 안타깝게도 장수를 누리지 못하였다.
18. 효종과 불조(佛照德光)선사와의 만남
효종(孝宗)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27년 동안에 항시 여러 사찰의 노스님을 맞이하여 도를
논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유독 불조(佛照德光)스님만은 가장 큰 대우를 받아왔다. 순희(淳
熙:1174∼1189)초에 불조스님이 냉천사(冷泉寺)의 주지로 있을 때 그를 선덕전(選德殿)으로
불러들여 종문(宗門)의 일을 논하면서 닷새 동안이나 궁중에 머무르도록 했는데 이는 예전
에 없던 일이다. 이에 불조스님이 효종에게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오랫동안 여러 노스님을 불러 도를 논하였는데 어떻습니까?"
"장로 만큼 직절하고 민첩한 대답은 얻기 어려웠습니다."
"신(臣)은 산에서 태어나 자랐으므로 말씨가 거칠고 서투니 폐하께서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
십시오."
"괜찮소. 여기에선 잊고 도나 논합시다."
효종이 여러 스님에게 하사한 게송이 많지만 불조스님에게 내린 글 만큼 존경의 마음을 담
은 글은 일찍이 없었다. 효종의 글은 다음과 같다.
무더위에 쇠붙이도 돌도 녹아버리고
매서운 바람, 나는 구름도 얼어붙어라
매화 향기 저 멀리 퍼져가면
한가지 나무 위에 봄이 있는 걸.
大暑流金石 寒風結凍雲
梅華香度遠 自有一枝春
이 게에 대하여 불조스님은 화답한 적이 있다. 어느 날 효종은 불조스님에게 글로 전하여
물었는데, `세존께서 설산에서 6년간 수도를 하여 이룬 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은 분명하게
설명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하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불조스님은 어느 시주 집의 공양에
참석하였다가 갑자기 황제의 사신이 와서 곧 회답해 줄 것을 바라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폐하께서 잊었으리라 생각했는데…. 가히 스승이 없이 자연히 얻은 지혜[無師自然智]라 할
만합니다."
19. 바른 안목으로 종지를 밝게 깨치다 / 수암 연(誰菴演)스님
수암 요연(誰菴了演)스님은 민( )사람이다. 처음 회안봉(回上峰)아래에서 묘희스님을 찾아
뵙고 종지를 밝게 깨치니 묘희스님이 말하였다.
"이 원숭이가 뒷날 반드시 사람을 떠들썩하게 할 것이다."
그 후 묘희스님의 회하를 떠나가면서 게를 지었다.
철마를 거꾸로 타고 소상강을 건너갈 제
바위틈새 풀꽃들도 숨지 않는구나
높고 높은 회안봉 꼭대기를 몸소 올라보니
다시금 헤아릴 불법이 없구나.
倒騎鐵馬度瀟湘 磵草巖華不覆藏
回上峰高親到頂 更無佛法可商量
그는 뒷날 강상(江上) 용상사(龍翔寺)의 주지가 되었는데, 대중들이 많이 귀의하였다. 수암
(水菴師一)스님이 이에 대해 게를 지었다.
요즘 강상에 뛰어난 인물이 있어
학인을 가르침에 그대로 끊어버리는 기봉만을 쓴다네
江上如今得白眉 爲人偏用截流機
그러나 요연스님은 게송을 잘 지었고 안목 또한 발랐다. 스님이 신창(新昌) 석불(石佛)에
쓴 게송은 다음과 같다.
숱한 세월 우러러 본 석불상
오늘에사 다시 보니 모든 의심 사라졌네
모든 모습이 다만 이와 같으니
도리어 삼생을 뚫고 나왔나 생각했었지.
積念有年憺石佛 今朝一見絶疑猜
都盧面目只如此 却謂三生鑿出來
또한 용추(龍湫:폭포)에 쓴 게는 다음과 같다.
아라한 큰 용추에 눌러 앉았으니
그 기량 길 잘못 들 리는 없겠지만
오로지 높은 바위 위에 쏟아지는 폭포만을 보았으니
청산 밖에 맑은 경계 어찌 알았으랴.
羅坐斷大龍湫 伎倆却無錯路頭
只見高巖傾瀑布 那知碧 外淸幽
20. 선재동자를 노래함 / 별봉 운(別峰雲)스님
별봉 운(別峰雲)스님은 소계 수정(少溪守淨)스님의 법제자이다. 순희(淳熙:1174∼1189)연간
에 복주(福州) 지제사(支堤寺)의 주지가 되자 강제(江 )일대에서 도에 뜻을 둔 사람들이 모
두 귀의하였다. 선재동자가 남쪽에서 선지식을 찾아다닌 것을 송하였다.
쌍 상투도 또렷한 이 어린애가
뱃심 좋군! 네 아는 게 무엇이냐
53 선지식을 속여먹고
낭패본 걸 모두 그들에게 돌려주었네.
角分明者小兒 皮好待 聞知
他五十三知識 敗闕都盧納向伊
총림에서 이를 다투어 애송하였다.
뒷날 스님은 보양(蒲陽) 화엄사(華嚴寺)로 옮겨가, 그곳에서 세상을 마쳤다.
21. 조운사 우연지(尤延之)에게 주지자리를 내놓고 / 혜홍(慧洪)수좌
흥(慧洪)수좌는 임천(臨川)사람으로 불조(佛照德光)스님의 법을 이었다. 홍주(洪州)광효사
(光孝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갔는데 이는 조운사(漕運使) 우연지(尤延之)의 부름에 응한 것
이다. 그다음 우연지가 태수(太守)에 임명되었는데, 초하루와 보름의 공참(公參)때에 여러
스님을 관청으로 불러들여 큰 절을 한 후 물러가게 하였다. 혜홍스님은 이 말을 전해듣고
불쾌하여, 천하에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북을 울려 대중을 모아놓고 법상
에 올라가 주지직을 사임하고 떠나면서 송을 지었다.
조사의 살림살이 원래 큰 것이었는데
누가 감히 자질구레 허리 굽히랴
안녕하소서. 현명하신 예장태수님!
나는 죽장에 짚신 신고 마음껏 노닐려 하오.
祖翁活計元來大 誰敢區區 折腰
珍重豫章賢太守 芒鞋竹杖任逍遙
태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우 부끄럽게 여겨 사람을 보내 다시 청하였지만 혜홍스님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으며 강서 땅 모든 사찰이 그 후로부터 다시 힘을 얻게 되었다. 뒷날 스님은
길주(吉州) 상부사(祥符寺)의 주지를 지냈고 개복사(開福寺)로 자리를 옮긴 후 그곳에서 입
적하니, 시랑(侍郞)우연지는 몸소 스님의 전기를 썼다.
22. 자칭 `시골뜨기 중' / 설소 법일(雪巢法一)스님
설소 법일(雪敖法一:1084∼1158)스님은 스스로를 `시골뜨기 중(村僧)'이라 하였으며 초당
선청(草堂善淸)스님의 법제자이다. 오랫동안 평전사(平田寺)의 주지를 지냈고 뒤에 장노사
(長蘆寺)의 주지가 되어달라는 간곡한 부름이 있었으나 응하지 않다가 여회 교(如晦皎)스님
의 서신 한 장을 받고서야 부임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절은 결코 작은 절이 아니고 `시골뜨기 중' 또한 그저 그런 중이 아닙니다. 당우가 죽
이어져 있고 게다가 경치 좋고 우수한 인재가 있는 곳을 얻으려 하십니까? 생철면피(生鐵面
皮)라는 아무 스님은 명성이 하늘까지 뻗칩니다.
그는 온누리를 주물러 하나의 사원을 만든다 하여도 전부가 아니라 하고 항하수 모래로 납
승을 만들고도 할(喝)한번 하지 않습니다. 자, 광화(光火)보살의 얼굴을 보십시오. 또한 타거
나한( 距羅漢)을 후려쳐 보십시오.
이곳에 오시어 밑없는 배를 버티어 주시고 갈대꽃 숲(절이름 長蘆寺)에 길고 긴 물결을 일
으켜, 향상구(向上句)를 들고서 금지옥엽 귀하신 황제의 만수무강을 빌어줌이 좋을 것입니
다."
설소스님은 그곳에서 일년 동안 주지하다가 그 이듬해 다시 만년사로 돌아온 후 얼마되지
않아 관음원(觀音院)에서 입적하였는데 입적할 무렵 미리 널 속으로 들어가 자물쇠를 채우
면서 게를 읊었다.
올해 나이 일흔다섯
돌아와 암주가 되었으니
안녕하소서, 관세음보살!
진흙뱀이 돌범을 삼켰도다.
今年七十五 歸作菴中主
珍重觀世音 泥蛇呑石虎
스님이 평전(平田)땅에 있을 무렵 대중은 항상 5백명쯤 되었다. 그때 강서 늑담사에 한 화
주가 나타나 대적탑(大寂塔:마조스님의 탑)을 수리하자 대중들은 모두 송을 지어 이를 찬양
하였다. 그당시 한 좌주(座主)가 처음 선종으로 전향하여 대중으로 들어왔다가 이를 계기로
게송 한 수를 지었다.
강서 땅 늙은 스님에게 이르노니
그날부터 날씨가 무덥고 비바람이 불어오리라
자손들의 헤아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얼음 녹듯 기왓장 무너지듯 할 때를 보아야 하리
寄語江西老古錐 從他日炙與風吹
兒孫不是無料理 要見氷消瓦解時
또한 `동짓날에(冬日卽事)'라는 시를 읊었다.
모진 삭풍은 사람의 마음을 알기나 하는 듯
바위 앞 고목가지에 불어온다
깊은 밤 화로 가득히 불 주시니
도리어 내 마음 게을러집니다.
朔風也解知人意 吹落巖前古樹枝
惠我一爐深夜火 轉敎心性懶趨時
설소스님은 이 시를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
"납자들이 30년 동안 이곳 대중의 밥을 먹었지만 이런 시를 짓지 못했다. 뒤에 그는 반드시
큰 그릇이 될 것이다."
뒷날 과연 스님의 말대로 그 좌주(座主)는 동액사(東液寺)의 주지가 되어 남악 천태(天台)의
가르침을 크게 일으켜 세웠는데, 그가 신조(神照)스님이다.
23. 송원 숭악(松源崇岳)스님의 게송
송원 숭악(松源岳:1132∼1202)스님이 동호사(東湖寺)에 살 때, 다른 법당을 맡은 이가 송을
청하자 스님은 큰 글씨로 써 주었다.
황금 부처님 아래로 눈 내리감은 채
온갖 방법으로 편의를 찾네
이제 나의 몸 붙일 것 없어
도리어 자손에게 덮어달라 보채네.
黃面瞿曇眼目答目蚩 千方百計討便宜
于今無著渾身處 却要兒孫盖覆伊
한 관리에게 지어준 게송은 다음과 같다.
참선과 도와 문장까지 얘기하며
숲 아래에서 만나 웃은 지 그 몇 번이런가
우리집 빗장문을 밟고
평민이 재상을 뵈는 일 또한 예사 일.
說禪說道說文章 林下相逢笑幾場
踏著吾家關子 白衣拜相也尋常
세상사람들은 이 게송을 앞다투어 애송하였다.
24. 담광 남(曇廣南)스님의 `소금을 만들며'라는 게송
담광 남(曇廣南)스님은 오랫동안 밀암(密菴咸傑)스님에게 귀의하였다가 뒤에 불조(佛照德
光)스님의 회중에서 요원(寮元:大衆寮의 監事)을 맡아보았다. 그는 `소금을 만들며[化鹽頌]'
라는 게송을 지은 적이 있다.
물과 진흙 뒤섞어 한 곳에 끓이니
물과 진흙 사라진 곳 새하얀 소금꽃 피네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값 불러대나
공정한 값 분명하니 누가 감히 다투랴
合水和泥一處烹 水泥盡處雪華生
便能索起遼天價 公驗分明誰敢爭
불조스님은 이 송을 보고 기뻐하여, "이 광남(廣南)땅 오랑캐 역시 거칠구나!"라고 하였다.
후일 그는 삽주( 州) 도량사(道場寺)의 주지를 지내다가 그의 도가 떨칠 무렵 어느 세력자
에게 쫓겨났으며, 얼마 후 냉천사(冷泉寺)에서 입적하였다.
25. 책 만들며 암자에 살다 / 뇌암 정수(雷菴正受)수좌
뇌암 수(雷菴正受) 수좌(首座)는 평강(平江)사람이다. 용모가 훤출하였으며, 오랫동안 월당
(月堂道昌:1089∼1171)·요당(拗堂)스님 등 여러 큰스님들에게 귀의하였다. `보등록(普燈錄)"
30권을 편집하였고, `능가경(楞伽經)"에 주석을 붙이기도 하였다. 삽주( 州) 조씨암(曹氏菴)
에 주석하면서 서산거사(抒山居士) 유계고(劉季高)의 조카 유평(劉平)과 가장 가까이 지냈는
데, 경원(慶元:1195∼1200)연간 초에 다시 서호(西湖)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유공이 단구(丹
丘)에 부임하자 건자봉(巾子峰) 보은사(報恩寺)의 주지로 그를 부르니, 송을 지어 마다하였
다.
띠풀집 짓고서야 기뻐서 소나무에 기대니
베갯머리 맑은 바람에 단잠을 잔다.
참선이란 도리를 터득하는 것에도 무심함을 높이 사는데
어이하여 이내 몸을 시끌대는 절간에 넣으려 하오.
結 方喜倚長松 一枕淸風睡正濃
禪道尙無心理會 肯將身入鬧藍中
유공이 이 글을 보고 매우 기뻐하여 다시 사람을 보내 굳이 청하며 아울러 화답의 시를 보
냈다.
높고 깊으신 모습 우뚝한 소나무에 기대어
노년에 맑은 그늘 스스로 무르익네
홍진세계에 잠시 발 붙이시어
웃음지며 얘기한들 무엇이 나쁘겠소.
昻藏骨相倚喬松 晩歲淸陰只自濃
好向紅塵姑著脚 何妨都在 談中
그러나 스님은 끝까지 가지 않았고 당시 사람들은 그를 고상하다고 하였다. 주지가 되려고
꼬리를 흔들어대며 아첨을 하는 오늘날,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시 있을 수 있겠는가.
26. 행자 조경(祖慶)에게 써준 대혜스님의 게송
대혜 고(大慧宗 )스님이 쌍경사에 주석할 무렵, 1,700명의 훌륭한 스님들이 모여들었는데
그 가운데 조경(祖慶)이라는 행자가 있었다. 그가 모친의 제삿상을 차려놓고 대혜스님에게
송을 청하자 대혜스님은 그의 골상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서 송 한 수를 지어 주었다.
저 하나를 꿰뚫고 나면
부처님도 수용하기 어려우니
호랑이가 길에 앉아 있노라면
여우 토끼는 저절로 자취를 감추게 되지.
透過那一著 佛赤不能容
猛虎當路坐 狐兎自潛
조경은 20여 세의 어린나이로 남원사(南源寺)의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갔다가 도림사(道林
寺)로 옮겼다. 어느 날 저녁 보지(寶誌:418∼514)스님이 젓가락 20개를 주는 꿈을 꾸었는데
깨고 나서 그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이때 추밀참정(樞密參政) 유홍보(劉洪父)가 금릉 태수로
부임하여 조경을 종산사(鐘山寺)의 주지로 맞이하였다. 그 후 20년 동안 그곳에서 주지를 지
냈으며 중간에 화재를 당하여 새로 지었으니 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경원(慶元:1195∼
1200)연간 초에 불조(佛照德光)스님이 오봉산(五峰山:徑山)에서 육왕사(育王寺)로 옮겨가자
조경이 그 뒤를 이어 경산사의 주지를 하다가 2년 후에 입적하였다. 참으로 묘희스님의 말
은 틀림이 없었다.
27. 시자에게 남긴 임종게 / 회암 혜광(晦菴慧光)선사
회암 광(晦菴慧光)선사는 설당 도행(雪堂道行)스님의 법을 이었다. 귀봉사(龜峰寺)의 주지
를 하다가 천주 (泉州)법석사(法石寺)로 옮겨왔는데 이는 참정(參政) 주규(周葵)의 부름에
의한 것이다.
그는 임종 때 제자 원총(元聰)에게 송을 남겼다.
총림의 독종 원총시자야!
우리 종문을 일으키지 못하면 너에 가서 우리는 멸망하리
나는 편히 누워 아무런 근심 없으니
총아! 너는 수시로 도독고를 울려라.
叢林毒種元聰侍者 耐吾宗滅汝邊也
吾今高枕百無憂 聰汝時 塗毒鼓
원총은 그 후 오랫동안 밀암(密菴咸傑)스님에게 귀의하여 경산사의 수좌로 있다가 홍주(洪
州) 보은사(報恩寺)주지로 세상에 나왔으며, 뒤이어 운거산(雲居山), 은정사(隱靜寺), 설봉사
(雪峰寺)등으로 옮겨다니다가 만년에는 칙명으로 경산사의 주지가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회
암스님이 부질없이 그를 인가한 것이 아니라고들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자비를 실천하신 설
당스님께서 남긴 음덕이라 하겠다.
28. 강원에 있는 원오스님에게 처음 행각을 권하다 / 승상 범백재(范伯才)
원오(圓悟克勤)스님이 처음 성도(成都) 강원에 있을 때, 승상 범백재(范伯才)가 스님의 그
릇이 비범함을 보고서 장편의 글을 지어, 그에게 남방으로 행각의 길을 떠나도록 격려해 주
었는데 그 글은 다음과 같다.
물을 보려거든 더러운 연못물을 보지 말라
더러운 연못물에 사는 고기와 자라는 천하기도 하다
산을 오르려거든 낮은 산일랑 오르지 말라
낮은 산엔 초목마저 흔치 않다
물을 보려거든 곧장 넓은 바다를 보고
산을 오르려거든 곧바로 태산 정상에 올라가거라
얻은 바 적지 않으려니와 보는 바 드높으리
이처럼 힘을 다함이 헛 노력이 아니라
남방엔 다행히도 부처 뽑는 곳 있나니
그곳에서 오묘한 뜻을 깨침이 좋으리라
후일 큰그릇 되어 무너진 기강 바로 잡는다면
대장부 출가의 뜻 저버리지 않게 되리
대장부여! 머뭇거리지 말라
어이하여 헛된 이름을 위하여 몸을 망치려 드는가
즐겁게 떠들며 놀 때는 고생 많지 않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덧없는 세월 흘러간다
성도 땅이란 더구나 번화한 곳이니
이곳에 오래 머무는 건 계집과 술의 유혹 때문
우리 스님은 본디 티끌 세속 벗어난 인물이니
악착스런 소인배와 어울려 묻히려 하겠는가
우리 스님 다행히 높은 뜻이 있으니
결코 흙탕물에 헛딛지 않으리라
그대는 보지 못하였나
배를 삼키는 고기는 작은 여울에 몸을 숨기지 못하고
아름드리 나무가 어찌 벌거숭이 동산에 살 수 있겠나
붕조(鵬鳥)한번 나래치면 구만리 날아가는데
제비며 갈매기 따위와 함께 날으려 하는가
쏜살같은 천리마로
옛 가지 연연하는 뱁새를 본받지 마오
설령 그대가 수많은 경전을 논하여도
선종의 두번째 기틀[第二機]에 떨어지리라
흰 구름은 본디 높은 누대 그리워하여
아침 저녁 자욱하게 잠시도 흩어지지 않는 것은
온 백성 염원하는 비를 내려주기 위함일세
그때가 되면 한가히 산을 나오게나
그대 또한 보지 못하였나 형산의 아름다운 옥석은
뛰어난 옥공을 만나기 전엔 덤풀 속에 버려져 있었음을
그당시 초나라를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진나라의 열 다섯 성보다도 값이 높았겠는가.
29. 사대부들이 쓴 큰스님의 어록서문[士大夫序尊宿語]
이 나라의 사대부로서 당시 큰 스님들의 어록에 서를 쓴 분 중에 참신한 문장가로는 산곡
(山谷:黃庭堅)· 무위(無爲:楊次公)· 무진(無盡:張商英), 이 세 사람을 앞설 사람이 없다. 오
늘에 이르러선 촉 땅 풍당가(馮當可)가 종문에 깊은 조예가 있으며, 그가 지은 석두 자회(石
頭自回)스님 어록의 서문은 강호의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의 서문은 아래
와 같다.
5조(五祖:法演)스님은 만년에 남당(南堂元靜)스님을 만났다. 남당스님의 거칠고 사나운 성
미는 혜근(佛鑑慧懃)스님과 청원(佛眼淸遠)보다도 더 심하였고, 기세는 하늘에 닿고 땅마저
비좁았으며, 대수(大隋:사천성에 있음)땅에서 노년을 보냈다. 그의 제자 자회도인은 망치질
하고 돌 다듬던 솜씨로 그 높고 견고한 남당의 문을 쳐부수었다. 그가 쏟아낸 힘은 너무나
커서 단 한번의 망치로 곧장 뚫고 나간 후 조어산(釣魚山)으로 돌아와 좌정하니, 그의 가파
른 절벽은 스승보다도 열곱이나 험준하였으며, 비상같은 독은 입에 넣을 수 없었다.
그의 문도 언문(彦聞)이 다시 눈 깜박할 사이에 스승의 남은 독을 모두 거둬다가 여러 총림
에 뿌렸다. 나는 후세 사람들이 편치 못하고 스스로 나ㄷ굴어질까 두려웁다. 그러므로 그의
독약에 표지를 붙여, 뒷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바이다.
진운야노(縉雲野老)는 서를 쓰다.
30. 무구거사(無垢居士) 장구성(張九成)의 법문
무구거사(無垢居士)장구성(張九成)은 묘희스님에게 공부하여 큰 깨침을 얻었고 종지를 보
는 눈이 분명하였다. 일찍이 노대가(老大家)로서 큰소리를 쳤다.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敎)8만 4천여 권의 경전이라도 이 사람 면전에서는 제대로 침 한번
뱉지 못하고, 10신 10주와 10행 10회향과 등각 묘각이라도 이 사람 면전에서는 단 한 차례
도 앞에 내놓지 못한다. 다년간의 사냥한 과보로 다섯마리의 범을 키웠더니 그들이 사해를
누비면서 당(唐)나라에 일본에 또는 신라에다 똥 오줌을 뿌렸다. 그러자 천지가 칠흑처럼 어
둡고 해와 달이 분주하며 수미산이 겹겹이 솟아오르고 사해에 파도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
들은 부질없이 거문고 가락을 고르며 잠시 앉아 있으니 그들의 얼굴과 주둥이를 보면 영락
없이 무식한 촌놈인데도 그들의 기용(機用)은 모진 바람과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천둥번
개 번쩍이고 뇌성벽력 진동하는 가운데 피리불며 활활타는 불을 끌고 간다. 아차! 이게 무
슨 쓸데없는 짓이냐!
31. 장산 찬원(蔣山贊元)스님의 법제자들
장산 원(蔣山贊元:?∼1086)스님은 자명(慈明:石霜楚圓)스님의 법제자이다. 찬원스님은 후일
설두 법아(雪竇法雅)스님에게, 법아스님은 자각 선인(慈覺善印)스님에게 법을 전하였고, 혼융
연(混融然)스님은 실로 이 법통을 이었다. 그는 건도(乾道:1165∼1173)연간에 금릉 천희사(天
禧寺)의 주지로 있었다. 당시 치선 원묘(癡禪元妙)스님은 보령사(保寧寺)에, 대선 요명(大禪
了明)스님은 장산사(蔣山寺)절의 주지로 있었는데 요명스님은 연스님이 황룡(黃龍慧南)· 양
기(楊岐方會)스님의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그를 박대하였다.
한번은 공식석상에서 서로 언쟁을 하였다. 연스님은 논변이 민첩하였으므로 요명스님이 큰
곤경을 겪게 되었는데 치선스님의 도움으로 화해하였다. 연스님의 도량은 여느 사람보다도
뛰어났으나, 너무 일찍 세간에 나와 여러 총림의 문호를 두루 다니지 못하여 종안(宗眼)이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총림에서는 그를 박대하는 이가 많았다.
후일 그는 남화산(南華山)에 주지다가 오양산(五晳山)에서 입적하였다. 임종시 깨끗히 해탈
하였고 그 고을 사람들이 침향목(沈香木)을 쌓아 다비를 하였는데 적지않은 기적이 있었다.
연스님은 나와 같은 고향 사람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를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의 스승 자각(慈覺)스님을 위하여 지은 수준높은 제문이다.
건염 3년(1129),
내 갑자기 미친병으로
복두건 눌러 쓰고
허리띠 잡아 매고
깊은 밤 스승의 뜨락에서 도적질하다가
스승에게 붙잡혔지만
이미 아무 물건도 없어
공연히 3배만 올렸네
그 후로 물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분한 마음 적지 않구나
누군가 혹 스승을 욕하기를
`늙어 중얼거리지 못하고
전혀 깨친 바 없다'고 하면
나는 곧 머리 들고
하늘을 우러러 의심한다
누군가 스승을 칭찬하기를
`그의 도는 부처를 뛰어넘고
도량은 바다보다도 드넓다'고 하면
나는 곧 지팡이 쳐들고
그의 머리를 갈겨 부순다
이런가 저런가 하며
잘못 안 사람 많구나!
삼가 박주(薄酒)한잔을 올리오니
스님이여! 크게 한번 웃으소서.
스님의 제자 대기(大驥)스님은 순희(淳熙)연간에 구주(衢州) 영요사(靈曜寺)에 주지를 하였
다. 당시 조정에서는 마침 부역법(賦役法)을 시행하여 이절(二浙)과 강회(江淮)및 처주(處州)
지방에 모두 차출을 명하였는데 대기스님은 구주(衢州)·무주( 州)·처주(處州)세 고을의
비구 비구니와 도사(道士)를 모두 이끌고 조정에 찾아가 이를 면제받도록 하였다. 오늘날의
모든 승려와 도사들이 국가의 부역에 나가지 않고 평안을 얻게 된 것은 대기스님의 힘이었
다. 뒷날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은 중이라면 마땅히 그 연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대기스님은 후일 천태산 평전사(平田寺)의 주지를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32. 긍당 언충(肯堂彦充)선사의 문장
긍당 충(肯堂彦充)스님은 만암 도안(卍菴道顔)스님에게 공부하였다. 성품이 예리하고 견식
이 해박하였으며 고금의 일을 널리 통달하여 이런저런 많은 문장을 지었다. 그 가운데 전우
(典牛)스님 어록의 서문을 받고자 간초거사(簡初居士) 우시랑(尤延之)에게 한 스님을 보내면
서 지은 글(詞)이 있다.
민아산(珉峨山)아래 뿔 세 개 돋힌 호랑이가
남방에 뛰어드니 그 누가 업신여기랴
늑담사 문준노스님 눈에서 빛을 놓고
남몰래 손을 뒤로 돌려 삼만근짜리 활을 쏘니
한 방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그 후로 사람 깨물어도 이빨 보이지 않네
무령산(武寧山)에 40년을 살았으나
어찌 유독 강서의 길에만 눌러앉으랴
경산사 도독(塗毒)스님 한 차례 물려
여지껏 남은 이빨자국 설욕할 수 없네
제자를 비야성에 보내어
거사를 찾아 한마디 구하노니
거사가 칭찬을 해도 당장 벙어리될 것이오
거사가 욕을 해도 당장 눈이 멀 것이다
거사여! 칭찬도 욕도 미치지 않는 경지에서
그를 위하여 어록의 서문을 써주소서.
33. 꼿꼿한 성격 때문에 / 공안 조수(公安祖殊)선사
공안 수(公安祖殊)스님은 사천(四川)사람이며, 그 또한 만암 도안(卍菴道顔)스님의 법제자
이다. 그는 성격이 꼿꼿하여 아무도 그를 가까이할 수 없었다. 건도(乾道:1165∼1173)연간에
호상(湖湘)지방에서 도를 폈는데, 한번은 진영에 스스로 찬을 썼다.
달빛은 산골짜기를 비추고
개울 물소리는 절벽에 떨어진다
물빛 산빛깔 속에
나는 한덩이 썩은 나무토막
月色照山容 泉聲落斷崖
水光山色裡 一塊爛奇柴
늙은 학 메마른 연못에 들어와
날개를 잘 접을 줄 알고
하늘에 등이 닿도록 솟아오르니
선계(仙界)의 천지도 비좁기만 하구나.
老鶴入枯地 善解藏羽
點著背摩天 壺中天地窄
34. 서암 순(瑞巖順)선사의 상당법어
서암 순(瑞巖順)스님은 수암 일(水菴師一)스님의 법제자이며 법호는 위당(葦堂)이다.
처음 지주(池州) 매산사(梅山寺)에 있을 때 일찍이 상당법어를 한 적이 있다.
"오늘은 5월 15일, 하룻밤 장마비가 주룩주룩 내렸는데, 숲 속의 도인들은 서로 만나 무슨
얘기 주고받는지 알 수 없구나. 만일 들어 말하면 가슴팍을 쥐어박고 뺨따귀를 갈겨 주어야
지! 무엇 때문이냐고? 황금이 풀무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어떻게 선명한 빛이 날 수 있겠는
가. 열흘에 입실하고 오일만에 법당에 올라도 못난 이놈들을 묻어 둘 곳이 없구나, 아! 이놈
들은 끌어다가 끓는 가마솥에나 처넣자!"
뒷날 스님은 태주(台州) 서암사(瑞巖寺)에서 입적하였다.
35. 뒤를 이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 만수 요수(萬壽了修)선사
만수 요수(萬壽了修)스님은 민( )사람이다. 처음 응암(應菴曇華)스님에게 귀의하였다가 후
일 상주(常州) 무석사(無錫寺) 혹암(或菴師體:1108∼1179)스님을 찾아뵈었으며 삽주( 州) 상
방사(上方寺)의 주지로 나갔다가 쌍탑사(雙塔寺)로 옮겼다.
그 도가 미처 떨쳐지지 않았을 때, 도독(途毒智策)스님이 감상사(鑑上寺) 능인(能仁)선원에
서 바리때를 들고 오문(吳門)땅을 지나는데 많은 법우들이 소참법문을 청하자 요수스님은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며 말하였다.
"정법안장(正法眼藏)이 이 눈먼 노새에게서 사라졌으니 설령 온누리 사람이 잡아 일으켜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므로 조계산으로 가는 길이 가시덤불로 하늘까지 닿았으며 소실봉 앞
의 들녘에는 해골이 즐비하다. 편작(扁)이 아니고서는 뼈속까지 병든 환자를 일으켜 세울 수
없을 것이며, 손무(孫武)오기(吳起)가 아니고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온전할 수 없는데 도독
고(塗毒鼓)를 한 번 치니 그 소리를 들은 사람마다 목숨을 잃고 몸에 필요한 진액을 끊어버
리니, 참다운 풍모가 되살아난다. 이러한 큰스님이 있다면 불법이 무너질까 두려워할 게 없
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 말해 보라. 팔을 흔들며 걸어가면서도 뭇 중생을 두루 비춘다는
말씀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석 자(尺)되는 신령한 빛, 마갈타국에 명령을 행하니 온 성 안에 화기가 가득하여 봄날처럼
따뜻하다."
법좌에서 내려오자 도독스님은 그의 손을 잡으면서 말하였다.
"나는 혹암(或菴)이 죽은 후로 그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조카가 있
었구나!"
그 후로 요수스님의 도는 오(吳)땅에 널리 퍼졌다.
36. 대중공양으로 임무를 삼다 / 소암 요오( 菴了悟)스님
소암 오( 菴了悟)스님은 소주(蘇州) 상숙(常熟)사람이다.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처음 무
암 법전(無菴法全)스님을 찾아뵈었다가 뒤에 구주(衢州) 오거사(烏巨寺)의 밀암(密菴咸傑)스
님을 찾아뵈었다. 순희(淳熙:1174∼1189)연간에 냉천사(冷泉寺)에 수좌로 있었는데 오로지
대중 공양에 마음을 다하였다. 당시 큰 흉년이 들었는데 밀암스님이 탁발 행각을 간 후 돌
아오지 않자 소임자는 그가 돌아오면 공양하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요오스님은 산문에 앉아
기다리다가 모두 안으로 들어가 먼저 공양하도록 하였다. 밀암스님이 돌아오자 소임자가 이
일을 알리니 밀암스님은 요오스님을 보고서 불쾌한 빛을 보였다. 이를 계기로 그곳을 떠나
면서 말하였는데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게 손가락 만한 사원이 있다면
마음을 다하여 오호(五湖)의 스님들을 공양하리라.
但得院子如 大 盡情供養五湖僧
그 후 한 계절이 지나지 않아 구주(衢州) 상부사(祥符寺)의 주지가 되었고, 그 밖의 여러
곳의 주지를 지내면서 과연 대중공양으로 자기 임무를 삼았다.
37. 고목 조원(奇木祖元)선사의 대중법문
안산(上山)고목 원(奇木祖元)선사는 묘희스님의 법제자이다. 한번은 송으로 대중 법문을 하
였다.
안산 고목의 실다운 선(禪)은
예리하고 참신한 말주변에 있지 않네
뒷짐지고 갑자기 뽑아버리면
큰 고래 달을 삼켜 하늘에 파도가 닿는다.
上山奇木實頭上 不在尖新語句邊
背手驀然拈得著 長鯨呑月浪滔天
38. 위산 법보( 山法寶)선사의 게송
위산 법보( 山法寶)선사 또한 대혜(大慧)스님의 법제자로서, 총림에서 잔뼈가 굵었다. 만
년에 대위사(大 寺)에 머물면서 송을 남겼다.
팔십 노인 힘겹게 비단 공을 굴리는데
굴리고 또 굴리며 그칠 줄 몰랐네
이제는 천봉 꼭대기로 굴리며
위산의 수고우(水牛)를 타고 앉으리.
八十翁翁 繡毬 來 去不知休
如今 向千峰頂 坐看 山水 牛
39. 문장가 동산 혜공(東山慧空)스님
동산 혜공(東山慧空)스님은 복주(福州)사람이다. 처음에는 초당 선청(草堂善淸)스님을, 뒤에
는 묘희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묘희스님은 그의 용모와 기개가 뛰어남을 보고서 마음 속으로
붙잡아 두고자, 그의 초상화에 찬을 써 주었다.
혜공은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나는 혜공의 아픈 곳을 찔러주니
아픈 곳은 가려웁고 가려운 곳은 아프구나
수많은 성인과는 길을 같이 못한다 하나
어떻게 납승들과 함께 쓰리오
누가 아랴. 빗자루 대통 속에 전통(錢筒)이 없고
쑥대밭에 기둥감이 없음을
지금은 저마다 자기를 몰라
말주변 없고, 콧물 흘리는 추한 늙은이를 마음대로 그려서
벽 모퉁이 후미진 곳에 걸어둔 채
밤낮으로 도루파 · 필력가 · 침수교향을 사르며
칠대(七代)조사에게 공양을 올리네.
그러나 혜공스님은 뜻을 바꾸지 않고 끝내 초당스님의 법을 이으니, 총림에 뜻있는 사람들
은 모두 그를 우러러보았다.
혜공스님은 문장을 잘 지었으며, 그의 `동산외집(東山外集)"이 세상에 널리 유행되고 있다.
그 문집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내가 사람을 떠나 보낼 때엔
`잘가라'는 말 한마디 뿐
다소곳이 여러 소리 듣고자 하면
고함쳐서 아버린다
이제와선 또다시 글 써달라 청하니
병든 매에게 여우와 토끼를 잡으라는 격이지
스님네들이여, 스님네들이여, 아는가 모르는가?
단정히 앉아 자리나 지킨다면 끝날 날 없을 것이니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이나 주우러 가려므나
늑담과 백장이 강서 땅에 있다 하니
차산 도승(次山道昇)스님이 유암사(幽巖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혜공스님의 문집을 간행하
여 강절(江浙)지방에 유포하였다.
40. 암호(菴號)와 도호(道號)에 관하여
암호(菴號)·당호(堂號)·도호(道號)따위를 옛스님들은 으레 지어 가진 적 없고, 그들이 머
물던 곳이 그대로 불리웠으니, 이를테면 남악(南嶽)·청원(靑原)·백장(百丈)·황벽(黃檗)등
이 그런 예이다. 암호나 당호의 시호는 보각 조심(寶覺祖心)스님이 황룡사의 일을 그만두고
회당(晦堂)으로 물러나 주석하니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회당스님'이라 일컬은 데에서 비롯
되었다. 그 후 영원(靈源)·사심(死心)·초당(草堂)스님이 모두 회당스님 문하의 훌륭한 제
자로서 서로 법 받아 이어왔고, 진정(眞淨克文)스님은 회당스님과 함께 황룡 스님의 문하에
서 같이 배출되었기에 다같이 운암(雲菴)이라 하였으며, 각범(慧洪覺範)스님은 운암스님의
제자이기에 적음 감로멸(寂音甘露滅)이라 자칭하였다.
그리고 도호(道號)는 그의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또는 그의 고향으로 삼는 경우도
있고 또는 공부할 때 깨친 계기로 도호를 삼는 경우도 있고 또는 늘 하던 도행(道行)으로
알려지는 경우 등이 있다. 이 모두가 어떤 근거에 의해 호를 짓는 것이니 어찌 구차스럽게
스스로 지었겠는가.
그러나 지금의 형제들은 이제 겨우 대중으로 들어와 향상 일착자(向上一着子)는 꿈 속에서
도 보지 못하고서 저마다 도호 먼저 지어놓고 그 근원은 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할당 혜
원( 堂慧遠)스님이 결제를 시작하면서 소임자[知事]에게 물었다.
"올 여름엔 부채가 얼마나 마련됐느냐?"
"5백 자루입니다."
"또 암자 5백 채가 생기겠군!"
아마도 선승들이 부채를 얻자마자 암자 이름을 썼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
마다 모두 크게 웃었다.
나는 어머니의 꿈속에 한 범승(인도승)이 달을 이고와서 던져준 후에 태어났으므로 이로 계
기로 `고월(古月)'이라 스스로 호를 지었고 `안온면(安穩眠)'으로 불렸다. 이는 각범스님이 `
감로멸'이라 부른 것을 따른 것이다. 이 안온면과 감로멸은 `유마경"과 `보적경(寶積經)"에
근거한 말이다. 그러므로 귤주 소담(橘州少曇:1129∼1197)스님은 나를 위하여 `고월설(古月
說)'을 지어 주었다.
만고의 장천(長天)도 하루아침의 풍월(風月)이라
옛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이를 모방하여 써 본다.
도융(본서의 저자)스님이 태어나기 전날 밤
그의 어머니 꿈 속에 달 하나를 얻었으니
이것은 아들 낳을 상서였지
요즈음 사람들 모방을 버리지 못함은 부끄러운 일
도융스님은 모친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고
아울러 옛사람을 잊지 않고
`고월'이라 암자 이름을 지었으니
이는 욕된 일이 아니다.
나의 은사 도독(塗毒)스님께서도 네 구절의 게송을 지어 주셨다.
만고의 허공에 떠있는 저 달에
어찌 밝고 어둠이 있었을까
이 마음 원래 일체이기에
어느 곳에서나 신령스러이 빛나도다.
萬古長空月 何曾有晦明
此心元一體 隨處燭精靈
41. 욕심을 경계하는 글 / 안정군왕(安定郡王)
안정군왕(安定郡王:趙令衿)의 호는 초연(超然)거사이다. 잠깐 동경(東京)에 있을 무렵, 불교
[空宗]에 뜻을 두어 장령 수탁(長靈守卓)스님을 찾아뵙고 깨친 바 있었는데, 그 후 어느 사
건에 연루되어 강서 땅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북방 오랑캐의 침공으로 동경이 함락되자
종실의 여러 왕중에는 두 왕(휘종·흠종)을 따라 북쪽으로 끌려간 자가 많았지만 거사는 유
배로 인하여 이 화를 면하였다. 마침내 삼구(三衢)에 살면서 시랑 풍지도(馮至道)와 설당 도
행(雪堂道行)스님 등과 속세를 초월한 교류를 맺었다. 구주지방 사람들이 불교를 믿게 된 것
은 이를 계기로 비롯되었다.
그는 일찍이 남악(南嶽)법륜사(法輪寺) 성행당(省行堂)의 기문(記文)을 지은 바 있는데 이는
뛰어난 걸작이었으며, 또한 `욕심을 경계하는 글[戒欲文]'을 지은 적이 있는데 여기에 수록
한다.
"내가 생각해 보니 세상사람들이 태고 이후 크나큰 고뇌를 지니고서 몸과 마음을 어지럽히
면서도 여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크나큰 괴로움이란 곧 음욕(淫欲)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 음욕의 고뇌란 정신을 어둡게 하고 목숨을 해치며 덕성과 도덕을 잃게 하고 수
행을 방해한다.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자기 마음이 어느새 산란해지고 바르지 못한 견해가
일렁거리며, 환경과 인연의 유무에 관계없이 깨끗하고 더러운 곳도 가리지 않고 갑자기 전
도망상을 일으켜 더러운 짓을 마음대로 한다.
청정한 눈으로 본다면 거기에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망상의 티끌은 끝없이 구르
고 애욕의 불길은 타오르니, 예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노소 귀천을 막론하고 그와 같
은 해를 입지 않은 자는 일찍이 없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재물을 탐하고 벼슬을 쫓다가
뜻이 이루어진 다음엔 색욕에 탐닉하기 때문이다.
또한 승려든 속인이든 온갖 잡념이 찬 재처럼 사라져도, 오로지 이 한가지 일만은 흔히 마
장(魔障)에 걸리거나 번뇌를 갖게 되며, 심하면 요사스런 일과 도적질을 일삼기도 하고 나라
가 기울어지고 집안이 망하는 경우까지 있다. 혹 어떤 가족들은 화목하다가도 이 색욕으로
인하여 다투기도 하고, 백년해로를 맹세한 부부 사이에도 색욕으로 인하여 헤어지는 경우가
있다.
참으로 색욕이란 사람을 무너뜨리는 근본으로 사람에게 지대한 피해를 준다. 그 간교함, 투
기, 속임수, 현혹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모든 업장은 끊기 쉬
우나 이 괴로움은 없애기 어렵다. 참으로 색욕을 모두 없애면 도를 이루지 못할 게 없다'라
고 말씀하셨다. 남녀 이근(二根)은 애당초 분별이 없지만 간사한 생각이 일어나면 서로가 사
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것이 습관되어 이에 얽매임으로써 드디어 사모하고 그리워하여 꿈
속에서까지도 놀라는 괴로움, 재물을 낭비하고 가산을 탕진하는 괴로움, 남을 이간하고 원수
를 맺는 괴로움, 또는 형별을 받고 질병에 고생하는 괴로움을 당하여 마침내 요절하는 불행
에까지 이르는데도 끝까지 그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이 더럽고 청정한 인(因)이 아님을
명백히 알면서도 마치 불나비가 스스로 불속으로 뛰어들어 제 몸을 태우는 격이다.
여래께서는 분명히, `정욕을 끊지 못하고 성인의 도를 구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가
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애정이 재난의 실마리임을 알아야 한다. 여인의 교태와 아양은 사람
을 죽이는 도적이며 번뇌를 일으키는 원인이며 지옥에 들어가는 씨앗이다. 이는 사람을 그
르치고 덕을 손상시키고 목숨을 잃게 한다. 항상 모든 장소에서 남자니 여자니 하는 생각을
끊고 진실을 깨치면 누가 애욕에 얽히는 고통을 받겠는가
또한 우리의 육신이란 더럽고 추악한 것이라서 무너지고 나면 모두 백골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애욕의 경계에 더이상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꿈속에서도 두려워해야 할 일
이다. 신령한 식[靈識]이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널리 바라노니, 싫어서 버릴 생각을 내되 원
수를 생각하듯 멀리 떠나고 큰 불덩이를 대하듯 가까이해서는 안되며 화급히 피해야 한다.
마침내 참회하는 마음을 한번 내면 얽매인 사슬이 스스로 풀린다. 그리하여 더러움이 변하
여 법신(法身)을 얻고, 음욕의 불꽃은 흩어져 지혜가 되어 서로서로 교화하며 다함께 청정도
를 수행하여 안락행을 깨닫게 되어지이다."
42. 사감(思鑑)이 간행한 전등록
전(傳:孟子)에 의하면, "모두 `서경(書經)" 글을 믿는다면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이 두루 퍼진 것은 무슨 까닭일까? 유가(儒家)의 경전이나 사서(史書)는 으레
감본(監本)이 있어 의미를 고증해보고 나서 확정한다. 그러나 우리 불가의 대중이 무식한 자
는 항상 많고 유식한 자는 항상 적은 까닭에 흔히 억측과 편견으로 고쳐나간다. 따라서 마
침내는 옛 성인의 현묘한 뜻을 잃게 되니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소흥(紹興:1131∼1162)연간에 사명산(四明山)에서 `전등통요(傳燈統要)"의 재판을
찍었는데 이를 쌍계사(雙溪寺)의 못난 승려 사감(思鑑)이 주관하여 모연(募緣)한 것이다. 사
감은 원래 학식이 없어 잘못된 것이 매우 많았으니 이는 참으로 불법문중의 큰 죄인이다.
아! 이 책은 이 나라(宋代) 문공(文公) 양대년(楊大年)이 칙명으로 오승(吳僧) 도원(道原)을
위하여 교정한 책인데 하루아침에 망령되고 못난 이의 손에 의하여 내용이 바뀌어졌으니,
이를 두고 `수료학(水僚鶴: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자라는 비유)'이라 하는 것이다. 총림에서
뜻 있는 자라면 이 사실을 몰라서는 안된다. 마땅히 귤주(橘州) 호주(湖州)의 강원[學庠]에
있는 두 원본과 대조하여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43. 유게(遺偈)를 손수짓고 열반하다 . 치선 원묘(癡禪元妙)선사
치선 묘(癡禪元妙)선사는 무주(州)사람이다. 어려서 강원에 있을 무렵 이미 깨친 바 있어
곧 선종으로 돌아서 당대의 큰스님을 두루 찾아뵈었다. 오랫동안 석실 광(石室光)선사의 불
자회중(佛子會中)에 있다가 항주(杭州)영석사(靈石寺)주지로 세상에 나갔고, 중축(中竺)보령
사(保寧寺)로 옮겨 석실의 법을 이었으며, 석실스님의 영정에 찬을 썼다.
나는 그대의 선(禪)을 높여줄 수도 없고
나는 그대의 도를 높여줄 수도 없지만,
손 하나 눈 하나를 높여
따로이 우리 가문을 좋게 하리라.
我也不重 禪 我也不重 道
但重一雙手眼 別得 家恰好然
원묘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소탈하고 얽매임이 없었다. 상당법문이나 소참법문 때에는 반드
시 청원(靑原)스님 회하의 많은 스님들의 사적을 앞세워 말하였다. 융흥(隆興) 건도(乾
道:1165∼1173)연간에 그의 도가 널리 세상에 알려져 묘희스님과 우열을 다투었다.
그의 법을 이은 제자로는 무학 침(無學 )· 이암 심(已菴深)스님이 있는데 그 모두가 총림
에 뛰어난 인물들이며, 이 밖에도 가암 충(可菴衷)스님이 있는데 어린 나이로 경산사에 있으
면서 대혜스님이 입적하시자 장례를 주관하였다. 당시 묘희(妙喜)스님은 동당(東堂)에 있었
는데 갑자기 가사와 주장자를 그에게 주면서 말하였다.
석 자의 까만 주장자 여기에 있으니
여기에는 터럭만큼도 정식(情識)이 용납되지 않는다
부처님, 마귀, 범인, 성인을 모두 쳐버려야만이
비로소 금강의 눈동자가 나타나리라.
三尺烏藤本現成 箇中毫髮不容情
佛魔凡聖俱 追殺 方顯金剛正眼睛
원묘스님은 후일 가흥(圈興) 상부사(祥符寺)에서 입적하였는데 입적할 날짜를 미리 정해놓
고, 유게(遺偈)를 손수 지어 당시의 관리 · 승려 · 속인들과 작별하고 미련없이 열반하였
다. 게송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왕범지의 버선을 이미 벗었으니
옆으로 끌든지 거꾸로 끌든지 마음대로 하여라.
王梵志革蔑已脫
一任橫拖倒
스님은 참으로 대자유를 얻은 분이다.
44. 총림을 압도하는 기개 보안 / 가봉(保安可封)스님
보안 봉(保安可封:1133∼1189)스님은 칠민(七 ) 사람이며, 월암(月菴善果)스님의 법제자이
다. 어린 나이로 대중에 들어와 이름이 빛났으며, 자금산(紫金山)의 수좌로 있다가 양주(楊
州) 건륭사(建隆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온 뒤 상주(常州) 보안산(保安山)으로 옮겨왔는데 이
는 주대참(周大參)의 청에 의한 것이다. 가봉스님은 주대참과 인연이 있어 비록 당시에는 작
은 사찰이었지만 주인과 객이 서로가 잘 맞아서 줄곧 15년 이상 살았으며 제방의 큰 사찰에
서 여러 차례 초청하였으나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봉스님의 기개는 여러 총림을 압도하였
고, 입만 열면 통렬한 어조를 휘둘러 조금치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순희(淳熙) 말년에 앉
은 채 입적하였는데, 그의 열반송은 다음과 같다.
다행히도 쉰 일곱해 잘 지내오다가
까닭없이 파계하여 큰스님이 되었구나
이제는 땅을 파서 산 채로 묻어다오
이미 사람 앞에 말끔히 쓸었으니
五十七年幸自好 無端破戒作長老
如今掘地且活埋 旣向人前和亂掃
또한 우스갯소리로 글을 지어, 검소한 생활을 하지 않고 옷치장에만 힘쓰는 후생을 꾸짖은
글이 있는데 여기에 함께 싣는다.
물레 저어 뽑은 실로 장삼에 털덮게
곱게 차리고 나온 모습 정말 좋다만
막상 조사의 관문을 물을 양이면
영락없이 동촌의 주모 꼴이군, 하하하!
紡絲直 毛段 打扮出來眞箇好
驀然問著祖師關 却似東村王太嫂
呵呵
45. 건상(建上)사람 원통 영(圓通永)선사
원통 영(圓通永)선사는 건상(建上)사람이며 호는 백정(栢庭)이다. 오랫동안 밀암(密菴咸傑)
스님에게 귀의하여 일옹(一翁慶如)·송원(松源岳崇)스님 등과 함께 수행하였다. 후일 같은
고향의 한 노스님이 장산사(蔣山寺)의 주지가 되어 영선사를 그곳의 수좌로 머물게 한 후
장간산(長干山) 천희사(天禧寺)의 주지로 천거하여 세상에 나오게 하였다. 밀암스님과는 대
중승으로 있을 때 사이가 좋지 못하여 밀암은 그가 자기의 법을 잇지 못하도록 하였다. 마
침내 그는 삭발은사 회암 광(晦菴光)스님을 위하여 향을 올렸으며, 얼마 후 신계사(信溪寺)
로 옮겨와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스님은 평소에 시랑(侍郞) 무일거사(無一居士) 왕개(王慨)와 친분이 두터웠으며 서로 주고받
은 시구들이 간행되어 세상에 널리 유포되었다. 그러나 그는 법맥이 분명하지 않았고, 총림
의 형제 또한 그를 믿으려는 이가 적었다. 이는 허수룩한 몇 칸 절을 얻기 위하여 법맥을
따지지 않는 스님에게 깊은 교훈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송원스님은 일찍이 그에 대하여 송
을 지었다.
총림에 만난 지도 어느덧 몇 해
좋은 인연이 바로 나쁜 인연이라
영산의 수기를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콧구멍은 변함없이 그곳에 붙어 있겠구나.
林下相逢知幾年 好因緣是惡因緣
雖然不受靈山記 鼻孔依然著那邊
46. 상락화산주(常樂和山主)
상락화산주(常樂和山主)는 삼구(三衢)사람이며 오랫동안 밀암 스님에게 공부하였다. 스님의
견처(見處)는 확실 타당하여 송원(松源崇岳)·조원(曹源道生)스님 등에 견주어 뒤지지 않았
으며, 그의 `법화이십팔품송(法華28品頌)" 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스님이 청산사(靑山
寺)에 있을 때, 밀암스님은 게를 지어 그를 놀려준 적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차례의 기봉에 기량이 궁색하여
고개돌려 바라보는 고향 땅 난가봉
인간과 천상을 누가 안다 하더냐
만나보니 조계의 바른 법맥 통달했네
一 當氣伎倆窮 故鄕回首爛柯峰
人間天上誰知否 會見曹溪正脈通
그러나 스님은 일생동안 고생을 하면서도 복이 없음을 스스로 알고, 여러 고을에서 명산에
주지하라는 초청을 모두 응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거사 왕씨(汪氏)부자와 함께 귀봉(龜峰)의
남쪽에 암자를 짓고 산전(山田)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편안히 스스로를 즐기니 그 경계
는 방온거사와 단하(丹霞天然)스님에 견주어 손색이 없었다. 과연 일대의 대단한 일이다.
47. 황룡봉(黃龍峰) 4세조사(四世祖師)산당 도진(山堂道震)선사
산당 진(山堂道震)스님은 승주(昇州)사람이다. 처음 단하 자순(丹霞子淳:1064∼1117)스님을
찾아뵙고, 조동종의 종지를 밝혔는데, 다음과 같은 송을 남겼다.
흰 구름 깊은 골 차가운 옛 바위에
이름모를 풀꽃들을 오색빛 봉황이 바치고
한밤중에 날 밝아 중천에 해가 뜨니
소잔등에 올라타 신발신고 옷입네.
自雲深覆古寒巖 異艸靈華彩鳳銜
夜半天明日當午 騎牛背上著靴衫
또한 대위산(大 山)에 이르러 `삽추정송(揷金秋井頌)' 을 지었다.
모두들 위산의 부자 화목하다 말하더니
가래를 꽂아둔 채 각기 창칼 들고 있네
여지껏 작은 우물 거울처럼 빛났는데
바람없는 수면엔 때때로 작은 파도 여울진다.
盡道僞山父子和 揷金秋猶自帶干戈
至今一片明如鏡 時見無風 波
후일 스님은 소산(疎山)에서 초당(草堂善淸)스님을 찾아뵈었는데, 사제간에 도가 맞아 이를
계기로 초당의 법을 이었으며, 처음 백장산(百丈山)의 주지로 있다가 뒤에 황룡산으로 옮겨
가면서 도를 크게 떨쳤다. 그는 황룡봉(黃龍峯) 4세조사(四世祖師)이다.
48. 도(道)보다 시(詩)의 경지가 널리 알려지다 / 야당 보숭(野堂普崇)선사
야당 숭(野堂普)선사는 사명(四明)사람이다. 그는 오랫동안 천동사(天童寺) 굉지(宏智正覺)
스님에게 귀의하였으나 생사대사를 깨치지 못하고 마침내 강서로 가서 초당(草堂善淸)스님
을 찾아뵙고는 얼마 후 과연 깨친 바 있었다. 그 뒤 육왕사의 주지가 되자 향불을 사르고
초당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다. 설두 지(雪竇持)스님은 네 구절의 게를 지어 굉지 스님을 놀려
주었다.
종(宗:翠巖宗頭)하나 얻더니
숭(崇:野堂普崇)하나 잃었네
면전에선 합장하지만
등 뒤에선 가슴을 치네.
收得一宗 失却一崇
面前合掌 背後 追胸
이 게송을 전해 들은 이는 모두 크게 웃었다.
보숭스님은 어릴 때 시에 대하여 공부를 많이 하였는데 한번은 여산(廬山) 삼협교(三峽橋)
에 제(題)를 지어 붙였다.
쓸쓸한 자갈길 푸른 솔밭 둘러싸이고
산허리엔 홀연히 찬바람 몰아친다
추위 속에 앉았는데 저문 눈 내리려 하고
인적이 고요한데 산 숲엔 범종소리 울려온 듯
가파른 절벽 위엔 천고의 맑은 물이 쏟아지니
수백길 떨어지는 폭포 두 눈이 아찔하다
난간에 기대 지난 십년을 돌이켜보며
앉아서 오로봉 뒤덮는 흰구름을 바라본다.
蕭蕭石徑蟠蒼松 山腰忽斷來悲風
坐寒欲作暮天雪 人靜似發山林鐘
落崖千古流寒玉 眩眼百丈飛長虹
倚欄深省十年夢 坐看雲呑五老峰
후일 어사(榮史) 안국(安國)이 이 시를 보고 크게 칭찬하며 그곳에 걸려있던 많은 사람들
의 시를 모조리 뜯어버리고 이 한 편만을 남겨 두었다. 그 후 그 도는 사방에 알려지지 못
하였지만 시만은 세상에 널리 전해졌다. 후학들은 보승스님을 보고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제이(齊已)·관휴(貫休)는 그의 경지보다도 시의 명성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49. 꿈속에 지은 게송 / 용구 혜인(龍丘慧仁)법사
용구 혜인(龍丘慧仁)법사가 꿈속에 다음과 같은 게를 지었다.
잠방이는 벌써 떨어지고
바지도 다 떨어졌네.
얼음처럼 옥처럼 깨끗한데
지팡이 들어 금을 그어 놓으니
천지에 하나도 남은 게 없구나
그만두어라
호로박이며 경쇠를 칠 게 없구나.
棍旣破袴又送 多少氷淸玉潔
一條藜杖劃斷 天地更無殘闕
別別 不須擊胡蘆磬鐵
초연거사(超然居士)는 이 시를 보고 대단히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까치집에 비둘기가 사는구나,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이다."
이 말을 듣고 설당(雪堂道行)스님은 그에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 큰스님들도 교종에 있다가 깨친 사람이 많으니, 이를테면 백장(白丈
懷海)·대주(大珠慧悔)·동산(洞山良介)스님 등이 모두 그러한 분들입니다."
초연거사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거렸다.
50. 고소사(姑蘇寺)비구니 조근(祖懃)선사
고소사(姑蘇寺)에 조근(祖懃)비구니 한 분이 어린나이에 혹암(或菴師體)스님에게 귀의하여
생사대사를 깨치고자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정진한 지 오랜 뒤에야 깨달은 바 있었다. 하
루는 어느 관리가 종이를 펴놓고 게를 써달라 청하니 다음과 같은 게를 써 주었다.
진종일 관아를 다스려도 관아를 모르니
일생동안 아전에게 많이도 속는구나
아전을 꾸짖어 내쫓으니 관아 모습 스스로 드러나
북두를 흔들어 뒤집고 남쪽을 보노라.
終日爲官不識官 終年多被吏人瞞
喝散吏人官自顯 蒜北斗面南看
그는 많은 곳에서 주지로 초빙했지만 굳게 거절하고 나가지 않은 채, 풍교(楓橋) 이씨(李
氏)의 암자에서 세상을 마쳤다.
51. 제방의 주지를 경계하는 글[垂誠文]을 짓다 / 운거 서(雲居 舒)선사
운거 서(雲居舒)스님은 `수계문(垂誠文)"을 지어서 총림에 퍼뜨렸는데 제방의 주지를 경계
하는 내용이었다. 늙고 병든 이를 편안히 머물게 해야하며, 젊은 사람들만 골라서 머물게 하
는 일은 교화에 큰 손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사목(枯死木)과 노승은 산문의 한 경관
이라는 이야기다.
이 `수계문"과 관련지어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노승이 오문(吳門) 만수사(萬壽
寺)를 찾아갔는데 그 곳 주지가 머물 것을 허락하지 않고 노승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늙었는데 어찌하여 작은 절을 찾아가지 않소. 당신같은 사람은 나무나 한 그루 심
을 수 있을 것이오."
노승이 응수하였다.
"그대는 애당초 인연이 닿지 않아 주지가 되지 못했더라면 아마 도처에서 나무나 심고 있었
을 것이다."
주지가 부끄러워 대답하지 못하자 노승은 게를 써 놓고 떠나갔다고 한다.
강호에서 몇 차례나 소를 삼켰던 기백이던가
늙으니 비로소 모두가 근심이라는 것을 알았노라
권하노니 후생들이여 부지런히 노력하시오
보아라 나무 심을 날이 너희 앞에 있음을.
江湖幾度氣呑牛 年老方知總是愁
奉勸後生宜勉勵 看看種樹在前頭
당시 태수 왕좌(王佐)가 이 소식을 듣고 모든 사찰에 명을 내려 머물려는 승려를 가리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그것이 소위 불종자(佛種子)를 단절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52. 금사여울목의 관세음보살상[金沙灘頭菩薩像]
금사탄(金沙灘)의 관음보살상은 인도승이 주장자를 어깨에 멘 채 해골을 들고서 마씨(馬
氏)의 여인을 돌아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 그 동안 많은 찬이 써졌으나 그 중에 대동(大
同)이라 불리우던 사명 도전(四明道全)스님의 찬이 가장 뛰어난 걸작이었다. 그 내용은 다음
과 같다.
자비로써 평등히 중생을 보시고
욕망으로 낚고 끌어주심은
쐐기로 쐐기를 뽑고
독을 독으로 다스리는 일
설흔 두 가지 응신의
보문(普門)을 다 갖추었지만
오직 이 하나의 기틀에
천 성인의 눈을 빼앗았네
구름같고 안개같은 머리결에
날아갈 듯 얇은 갑사를
온누리에 가로 깔고
허공에 닿는구나
신령한 해골은 금으로된 사슬이요
찬 모래는 옥을 묻어둔 듯한데
놀란 기러기 하늘 높이 날고
이지러진 조각달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렸다.
等觀以慈 鉤牽以欲
以楔出楔 以毒攻毒
三十二應 普門具足
只此一機 奪千聖目
雲 霧 輕紗薄穀
大地橫陳 虛空摩觸
靈骨鎖金 寒沙埋玉
驚鴻 渺銀漢斜
缺月東西 疎木
나는 당시 단구(丹丘)에 있으면서, 이 글을 보고 다음과 같은 군더더기를 붙여 보았다.
먼저 욕망으로 낚아다가
뒤에 부처님 지혜 얻게 하니
이익이 있든 없든
원래 장삿속을 떠나지 않는구나
황금 영골 쇠사슬을 다시 들고왔을 때
한번 물어보자. 너 지금 어떤 얼굴 주둥이더냐?
아 하 하
라 라 리
세 가지 중 어느 것이 진짜냐?
눈썹 치켜뜨고 귀막고 보아라
원통(圓通)의 문호가 크게 열렸다
음 음
先以欲鉤牽 後令入佛智
有利與無利 元不離行市
黃金靈骨再挑來
試問汝今何面
阿呵呵
三箇之中箇是
剔起眉毛塞耳觀
圓通門戶堂堂啓
은산 찬(隱山璨)스님의 찬은 다음과 같다.
정숙하고 아리따운 모습에 머리결 날리며
뭇 사내를 속여서 법화경을 외우게 하였네
일단 해골을 메고 간 뒤로는
밝은 달 누구 집에 떨어졌는지 알 수 없어라.
姿窈窕 斜
盡郞君念法華
一把骨頭挑去後
不知明月落誰家
은산스님은 천주(泉州) 법석사(法石寺)의 주지를 지냈으며, 목암 영(木菴安永)스님의 법제
자이다.
53. 황룡파와 양기파
황룡(黃龍)·양기(楊岐)두 파는 모두 석상 자명(石霜慈明)스님의 회하에서 나왔다. 처음에
는 황룡스님의 도가 크게 떨쳐 자손이 대를 이어왔다. 그들은 모두 훌륭하여 옛날 마조(馬
祖道一)스님 문하의 수효에 뒤지지 않았으며, 진정(眞淨克文)스님 이후 4대를 거쳐 도독(塗
毒)스님에 이르렀다(眞淨克文∼湛堂文準∼典牛天遊∼塗毒智策). 한편 양기스님에게서는 2대
를 지나(楊岐方會∼白雲守端) 법연(五祖法演)노스님이 있었다. 법연스님은 해회사(海會寺)에
있으면서 남당(南堂元靜)스님과 삼불[三佛:불감(佛鑑慧懃)·불과(佛果克勤)· 불안(佛眼淸
遠)]스님을 얻어 그 문호를 크게 넓혔으므로 천하에는 오늘날까지 양기파가 많게 되었다.
소흥(紹興:1131∼1162)말에 도독 스님이 입적하자 쌍경사(雙徑寺)는 대(代)가 바뀌게 되었다.
육왕사(育王寺) 불조(佛照德光)스님은 절에 들어오자 맨 먼저 전 주지의 부도에 가서 제사
를 올렸는데 서기 의섬(書記義 )스님이 제문을 지었다. 대중들이 그 제문의 내용이 공정하
다 추대하기에, 여기에 기록하여 후세의 학인으로 하여금 조종(祖宗) 유파(流派)의 내력을
알리고자 하는 바이다.
"예전에 자명 노스님은 황룡스님과 양기스님, 두 제자를 두셨으니 마치 한 몸에 왼손 오른
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손들이 여러 유파로 나뉘어 가면서 각기 가문의 대를 이어갔는
데, 전우(典牛天遊)스님은 늑담( 潭:湛堂文準)스님을 등지지 않았으며, 묘희스님(양기파)을
스승처럼 존경하였습니다.
이 덕광은 실로 묘희스님의 법제자이옵고 암주(巖主:전주지)께서는 전우(典牛)스님의 뒤를
이었으니, 비록 출신이 다르다 하지만 다행히 오늘 이곳 주지로 교체받았습니다. 도의(道誼)
가 있는 곳엔 생사를 막론하고 잊을 수 없으며 또한 그 유래를 따져보면 모두 자명스님의
한 집안 사람입니다.
암주께서는 평소 도덕이 뛰어나고 논변이 훤출하여 학인을 지도함에 큰 수단이 있었다는 사
실은 이미 세상에 정평이 나 있는 터이니 여기에 군소리를 더하여 스님의 원식(圓識)을 더
럽히고 싶지 않습니다.
삼가 음식을 마련하여 대중을 거느리고서 스님의 부도 앞에 나아가 한 차례 제사를 올리오
니, 암주시여! 강림하소서."
54. 웃으며 이야기하다가 입적하다 / 귤주 소담(橘洲少曇)스님
귤주(橘洲) 소담(少曇)스님은 사천(四川)사람이며 별봉 보인(別峰寶印)스님의 사제이다. 학
문이 해박하여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며 이 나라의 승려로는 각범(慧洪覺範)스님 이후 오직
소담스님을 꼽고 있다. 촉(蜀)땅 무위산(無爲山)에 주지로 있다가 억울한 누명을 입어 강주
(江州)로 왔는데 승상 사위공(史魏公)이 그의 학문을 존경하여 명주(明州) 장석사(仗錫寺)의
주지로 추천하였다. 처음 그 절에 들어갈 때 사승상은 친히 전송까지 하였고, 그 후 승상은
다시 죽원사(竹院寺)를 지어 스님을 맞이하고 의심나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그에게 물어 보
았다. 그러므로 별봉 스님이 금산사에서 설두산으로 옮겨올 때 제방에서 하나의 소(疏)를 소
담스님이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설두산의 주지도 좋고 취봉산(翠峰山)의 주지도 좋으니, 노형은 마땅히 자신의 가슴 속에
물어보고 단정할 일이오. 불법을 위해 오는 것인가, 아니면 주지자리를 위해 오는가를.
이번 걸음은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일이겠으나 동산(東山) 직계 4대 법손으로 부끄러움이
없으니, 마치 서호(西湖)에 눈 개인 봉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소. 오직 마음이 같고 도가 같
고 출처가 같으면 그만이지 그곳이 불계(佛界)든 마계(魔界)든 중생계(衆生界)든 따지지 마
시오. 그렇게 되면 새로 부임한 유봉사(乳峰寺) 스님의 명성은 오·월(吳越) 땅에 전해질 것
이며, 도 값은 민·아(泯峨)산처럼 무거울 것이오.
해문국(海門國)에 머문 지 12년이 넘도록 파도가 일렁이듯한 법문으로 8만 4천 게송을 설하
니, 태산처럼 우뚝하고 군영처럼 당당하오. 푸른 파도를 타고 이무기를 놀려주기보다는 혜장
(蕙帳)에 의지하여 원숭이며 학을 벗삼는 게 좋으리니, 저 난초같은 우정을 생각하여 그곳에
한 떨기 우담바라를 피워주기 바라오. 그러나 사자(獅子)의 가문이 아니라 생각한다면 마땅
히 족속을 끌어 안아야 하겠지만, 빨리 돌아와 이곳 동문의 마음을 달래 주시오."
이 글은 강호에 널리 전해졌다.
그러나 소담스님은 타고난 성품이 평범하고 진솔하여 구애받는 일이 없었다. 죽원사에 있을
때, 하루는 또다시 태수 임시랑(林侍郞)의 술청을 받아 불려 갔다. 태수는 "술꾼 담스님, 경
계를 뛰어넘어 무위(無爲)에 안주하여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빈정거렸으니, 스님이 무위사
(無爲寺)에 머문 적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소담스님은 끝까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
았다. 다시 한낱 총림의 스님으로서 단구(丹丘)에서 2년간 지내다가 보규사(寶奎寺)로 돌아
왔다. 어느 날 그는 목욕을 한 후 옷을 갈아입고 사위공(史魏公)을 초청하여 평소 자신의 행
적 기록 등을 웃으며 이야기 하다가 입적하였다. 이에 성중의 사람들이 그의 장례를 치루었
으며 다비 후 무수한 사리를 얻었다.
55. 당(唐) 우세남(虞世男)의 통력(通曆)
당(唐)나라 우세남(虞世南:558∼638)의 `통력(通曆)"에 이런 글이 있다.
어느 사람이 물었다.
"양 무제(梁武帝)는 흉악한 무리를 평정하여 왕업을 이룩하고 50여년을 천하에 군림하였으
니, 아마 그는 문무(文武)의 도를 겸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불전(佛典)에 마음을 두어
승려들과 비슷하게 수행하였으니, 만승천자로서 한낱 필부의 선행까지 다한 사람인데도 그
가 닦고 익힌 도를 보전하지 못하고 위태로움과 멸망이 그의 생전에 닥쳤습니다. 이는 어찌
하여 그처럼 된 것이며 겸허한 이는 복 받는다 하는데 어찌하여 영검이 없습니까?"
선생이 답하였다.
"불교란 세속을 초월하는 나루터이자 교량이며, 번뇌를 끊는 궤도이자 발자취이다. 마음 속
을 운용하고 유무를 초탈하여 세속의 번뇌가 모두 없어지고 인연이 끊어진 다음에야 해탈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속세를 교화하는 법에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선정(禪
定)·지혜(智慧)가 있는데, 이것을 6바라밀(六婆羅蜜)이라 한다. 이는 유교의 인의예지신(仁
義禮智信)과 무엇이 다른가? 자신이 닦는 바는 `인(因)'이 되고 보답 받는 바는 `과(果)'가
되는데 사람이 이 6바라밀행을 닦지만 모두 온전하지 못한 자가 많으나 여기서 한가지라도
빠지면 과보도 따라서 없어진다. 그러므로 종명( 明)은 얼굴은 추악하였으나 마음은 지혜로
웠고 조일(趙一)은 재주는 높았지만 벼슬은 낮았으며 나포(羅褒)는 복은 있으나 의리는 없
었고 원헌(原憲:공자제자)은 가난했지만 도가 있었다. 각기 이렇게 엄청나게 다른 것이다.
사람의 흥망 득실이란 모두가 자신의 수행으로 말미암아 얻어진 것이다. 못난 선비와 용렬
한 사람들은 충직한 간언을 해서 살점을 도려내는 극형을 받았던 비간(比干:殷의 충신)을
보고서, 마음 속으로 `충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라고 여기며, 언왕
(偃王)의 망국고사를 들고서 그들은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기는 하나 본받을 바는 못된다'
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사람이라면 도척(盜 )처럼 동능(東陵)에서 베개를 높이 하고 장교
(莊 )처럼 서촉(西蜀)에 수레를 매달아 놓고서 안일한 일생을 마친다 한들, 이를 어떻게 잘
한 짓이라 하겠는가"
"주 무제(周武帝)는 불교와 도교를 파괴하였는데(會昌法難을 말함)이것은 옳은 일입니까? 아
니면 잘못된 일입니까?"
"잘못된 일이다."
"그에 대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석가의 법이란 공(空)과 유(有)에 막힘이 없고 인아(人我)를 모두 잊고 생사를 뛰어넘어 적
멸(寂滅)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우주 만상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이야기들이다.
노자의 뜻은 `곡신(谷神)은 죽지 않고 현빈(玄牝:현묘한 생명)은 길이 존재하여' 장생을 누
리면서 구름과 학을 타고 물외(物外)에 노니는 것이다. 이는 신선세계의 가르침이다. 악을
막고 어짐을 숭상하며 잔혹한 이와 살인자를 없애는 데에는 두 종교가 모두가 왕도정치에
유익한 것이며 세속의 법칙에 어긋남이 없다. 그런데 지금 용렬한 승려가 계율을 범했다고
해서, 또는 도사가 경전을 잊었다고 하여 그 가르침을 버리고 그 말씀은 없앤다 하면 이는
도올( )의 죄를 물어 요(堯)임금까지 폐위시키거나, 삼묘족(三苗族)을 원수로 여겨 우(禹)
임금까지 쫓아내거나, 또는 고자(瓠子)지방에 수해가 범람하였다 하여 항하수의 수원을 막아
버린다거나, 곤륜산 후미진 곳에 햇볕이 들지 않는다 하여 갑자기 불씨를 던지는 일들과 무
엇이 다르겠는가? 이는 일찍이 백성에게 혜택의 이로움이 깊은 줄을 모른 것이며, 세속의
풍속을 변화시킨 공용이 매우 넓다는 사실을 조금치도 모른 것이다. 이는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바다를 보고서 자기의 소견에 얽매여 긴긴 밤같은 미혹 속에 윤회하면서 깊이 빠
져들어가는 괴로움을 스스로에게 끼치는 격이다. 또한 후학에게 의혹을 주어 잘못 인도하게
되니,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다."
56. 운거 법여(雲居法如)스님의 상당법문
운거 여(雲居法如)스님의 법호는 운중(雲中)이다. 태주(台州) 호국사(護國寺)에서 경을 배웠
고 운거산(雲居山)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았다.
한번은 그가 상당법문을 하였다.
"산 아랜 불처럼 뜨거운데 산 속은 싸늘한 가을이구나. 이 산에 사는 사람은 몇 생(生)의 수
행을 쌓았을까?"
주장자를 내려친 후 말을 이었다.
"얼른 착안해 보아라."
57. 불인 요원(佛印了元)스님의 대중법문
불인(佛印了元)스님이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가사를 걸어놓고 한가로움 찾지 말라
칠조가사 속에 철위산이 있느니라
얼마나 많은 방종한 무리들이
순식간에 사람 몸을 잃었던가.
莫 袈裟便要閑 七條中有鐵圍山
幾多故逸縱橫者 失却人身瞬息間
58. 선배들의 찬에는 격식이 있었다
옛스님들은 불조의 영정에 찬을 하거나 또는 게송 구절, 그리고 자기 초상화에 찬을 쓸 때
는 각기 표준이 있었는데 이제 사람들은 으레 격식에도 맞지 않는 글을 쓰고 있다. 예를 들
면 자화상 찬도 불조의 찬처럼 쓰고 있으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 중에서 밀암
함걸(密菴咸傑)스님만은 글쓰는 법을 가장 잘 터득한 분이다. 그의 자찬(自讚)은 다음과 같
다.
집에 있을 때 책도 읽지 않았고
행각할 때 참선도 하지 않고서
무리따라 부질없이 법석만 떨었으니
땅을 파면서 하늘을 찾는 격
이젠 늙은 나이에
속절없이 후회하며
학인의 아픈 곳을 꼬집어
힘껏 채찍질 해 주네.
도독(塗毒)스님의 자찬은 다음과 같다.
눈 멀고 귀 항상 어두우니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재주마저 다했구나
산 속의 주인 찾아보려 해도
흰 구름만 겹겹이 가려있네
쯧쯧!
눈 있는 사람이라면 가려내야 하리라.
59. 불심 본재(佛心本才)스님의 대중법문
불심 재(佛心本才)스님이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맹상군(孟嘗君)은 3천명 검객 가운데 오직 장주(莊周)만을 인정하였고, 유방(劉邦)의 백만용
사 가운데 포점(鮑點)만이 자부심이 있었다. 양 끝을 그 자리에서 잘라버리고 가운데도 머물
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단지 희론일 뿐 향상(向上)의 한 구멍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물
결을 따라가고 진탕을 끌어안는다면 그것은 자기의 신령한 성품을 어길 뿐 정수리에 바른
안목은 갖추지 못한 것이다. 모두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사람을 놀래킬 파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마음에 맞는 고기를 만날 수 없지.
또한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였다.
"보검을 잃지 않았다면 빈 배에 칼 잃었던 자리를 새겨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에 나부산
(羅浮山)에 놀다가 저녁에 단특산(檀特山)으로 돌아가니, 만일 본래면목이 이와 같다고 생각
하면 이것은 우물 안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격이고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되질하는 꼴이다.
말을 해놓고서도 소리가 아니라 하고 색(色)앞에서 물건이 아니라 한다면 이는 종지를 모르
고 잃어버린 것이다. 종지를 확실히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앙금침을 몰래 가지고서 조용히 수 놓아라
다른 사람이사 금 바늘을 찾든 말든
60. 도첩을 거부하다 / 장노 조조(長蘆祖照)선사
장노 조조(長蘆祖照:1057∼1124)선사는 포양(陽)사람이다. 처음 책봇짐을 지고 서울에 이르
니, 어느 환관이 그의 비범한 모습을 보고서 도첩을 주었는데 도화스님은 받지 않고 도반에
게 말하였다. "나는 대장부이다. 어떻게 내시의 식객이 될 수 있겠는가? 한번 그의 은혜를
입게 되면 일생동안 그에게 제재를 받을 것이다. 우리 불문엔 다행히 광대한 법문이 있고
나라에도 입신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으니 내 스스로 노력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모진 마음으로 `법화경"을 암송하여 그 해 승과(僧科)에 급제하여 큰스님이 되
었으며 여러 곳을 두루 찾아다닌 후 장로산에 머무니 대중이 항상 천여 명에 이르렀다.
진헐 청료(眞歇淸了:1089∼1151)스님이 단하(丹霞子淳)스님의 회하에 있다가 그를 찾아왔는
데, 당시 나이는 어렸지만 도화스님은 그가 영리한 것을 보고 수좌에 앉혔다. 후일 사원을
물러날 때 주지자리를 물려주면서 자기의 법을 이어 주려니 생각했었는데, 청료스님은 가사
를 들면서 게를 하였다.
법은 단하스님 선실에서 얻었고
법의는 조조스님 문정에서 물려받았으니
은혜가 깊고 깊어 할 말 없지만
내 마음이사 변함없이 분명하다.
得法丹霞室 傳衣祖照庭
思深轉無語 懷抱自分明
도화스님은 불쾌하게 생각하여 청료스님이 법좌에서 내려오자 법의를 다시 빼앗았다. 청료
스님은 그 후로 죽는 날까지 법의를 걸치지 않았고 결국 단하 자순스님의 법을 이었다. 강
호의 식견있는 사람들은 그가 근본을 잊지 않은 일을 아름답게 생각하였다.
61. 혹암 사체(或菴師體)스님의 대중법문
혹암(或菴師體)스님이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소흥(紹興 1131∼1139)초에 총림에는 씩씩한 기운이 넘쳤었다. 어디를 가나 납자들이 무명
초를 헤치고 본지풍광을 바라보면서 선지식을 찾아 걸망과 바리때를 걸어놓고는 요점을 캐
고 관문을 두드리며 모두 침식을 잊은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였다. 그들은 입이 닳
도록 쉴새 없는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얻은 것이라고는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옛
날돈 하나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이 시대에 와서 보니 도처의 총림에서 선지식의 자리에
있는 스님들이란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상당을 하거나 입실을 하거나 오직 주지 자
리가 비어있지 않다는 말 뿐, 스승이 학인을 보거나 학인이 스승을 만나거나 전혀 옳고 그
름을 가리지 못하고 서로가 애매모호하다. 이쯤 되고 보니 한마디고 두마디고 어떤 말도 상
정(常情)을 초탈하여 의심이 없는, 큰 안락의 경지로 이끌어 줄 수 없고, 무거운 사슬을 끊
고 천하인의 본면목을 꿰뚫어 줄 수도 없다. 이제 대도(大道)는 머지않아 망할 것이다.
더러는 책 보따리며 우산을 등에 메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을을 찾아가는 이도 있다. 그러
나 대개는 배 부르고 따뜻한 곳만을 찾고 외전(外典)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이야깃거리나
삼으려 할 뿐, 종문의 대사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못한다. 이에 한술 더 떠서 하릴없이 큰
절 주지자리에 앉아 복연(福緣)이 있으면 윗사람에게 달려가 모시고, 귀인들과 결탁하여 이
를 외호(外護)로 삼아 일신을 편하게 할 계책을 삼는다. 마침내는 이러한 습관이 풍조가 되
어 서로 본따 하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아는 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중 가운데 진짜 납자다운 노스님이 비록 도를 깨쳤다 하더라도 그들은 은밀히 고풍(古風)
을 추앙하여 자취를 감추고 물러나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권세있는 귀인들과 가까이하지 않
으므로 폐단을 개혁할 힘이 없다. 그저 차가운 방에 외로이 앉아 소맷자락에 손을 넣은 채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념에 잠겨 그들의 얕은 기량에 분개하여 혀를 차며 개탄할 뿐이다.
바라건대 안목을 지니고 정인(正因)을 얻은 역량있는 스님이 나와 노력하고 반성하여 목전
의 작은 이익을 버리고 먼 미래를 도모하되, 자신부터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전할 수 없는
묘한 이치를 깨쳐야 한다. 그리고는 범성(凡聖)이 예측할 수 없는 기연을 마련하여, 후학들
의 모범이 되어, 머나먼 길에서 허위적거리며 한탄하는 괴로움을 없애 주었으면 한다. 눈밝
은 사람 앞에서 내 녹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진정 우리 조사의 도가 쇠퇴하는 것을 마음 아
프게 생각해서이다. 우주 밖으로 높이 뛰어올라 빼어난 납자를 얻어야 한다. 세상을 밝게 비
추고 천고 만고에 서릿발 같은 금강왕보검이 광채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62. 소동파가 경구(京口)에 와서 불인(佛印)스님을 만남
소동파(蘇東坡)가 경구(京口)에 왔을 때, 불인(佛印了元)스님이 강을 건너 그를 찾아가자
동파가 말하였다.
"조주(趙州從 )스님은 왕이 찾아와도 선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는데, 오늘날 금산사 스님은
무슨 까닭에 강을 건너 찾아왔소?"
이에 불인스님은 송을 지어 답하였다.
그 옛날 조주스님 겸손이 부족하여
선상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두 임금 맞았지만
대천사계 그대로가 선상인
금산의 무량한 모습만이야 하겠는가
趙州昔日欠謙光 不下禪牀接二王
爭似金山無量相 大千沙界是禪牀
63. 공주( 住)사람 증문청공(曾文淸公)
문청공(文淸公) 증기(曾畿)는 공주( 州)사람이며 보문각시랑(寶文閣侍郞) 증천유(曾天游)의
아우이다. 종문에 관하여 공부를 많이 하였으며 심문 운분(心聞雲賁)스님과 세속을 벗어난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세존의 `염화시중(拈花示衆)'에 대하여 송을 지었는데 강호에서 많이
음미한다. 송은 다음과 같다.
꽃가지 드는 모습 모두 다 보았지만
가섭존자 까닭없이 크게 웃었다
이로부터 봄빛이 모두 새어나가니
붉은 복사꽃 새하얀 배꽃이 인간 세계에 가득하여라.
華枝拈起大家看 迦葉無端却破顔
從此春光都漏泄 桃紅李白滿人間
또한 심문스님의 초상화에 쓴 찬은 다음과 같다.
이분이 심문노인인가 하니
고요히 말이 없고
심문노인이 아닌가 하니
그 모습 엄연하구나
보아하니 없는 것도 아니고
듣자하니 있는 것도 아닌데
이와 같이 보노라면
심문노인이 아니지
是心聞 寂然無聲
非心聞 儼然其形
視之非無 聽之非有
能如是觀 非心聞
64. 무주( 州) 영응사(靈應寺)의 강주
무주( 州) 영응사(靈應寺)강주 법정(法淨)스님은 후배에게 주지를 빼앗기고 섭승상(葉丞
相)에게 이 사실을 알려 구원을 청하였다. 그러자 섭승상이 다음과 같은 회신을 보내왔다.
"사람을 보내 편지를 주신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스님과 저는 지난 세상부터 인연이 있고
한 고향 사람임을 잘 알고 있으며 누가 물으면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나는
스님의 본분이 강백이며 영응사에 주지하는 40년 동안에 기왓더미만 쌓여있던 곳을 아름다
운 사원으로 가꾸었고 금어(金魚)와 북소리가 일년내내 그치지 않게 했으므로 사원의 공양
을 일으켰다고 자부할 수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 힘들여 짓는 보전(寶殿)이 준공되려는 즈음에 파계승 후학이 탐욕과 어리석은 마음
을 일으켜 교묘한 계략으로 스님의 자리를 빼앗았으려 한다하니, 스님으로 하여금 빛나는
그 일을 끝까지 원만히 이루게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일은 세간의 생각
으로 논한다면 까치집에 비둘기가 사는 격으로서,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일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본분으로 말한다면 나의 몸도 나의 것이 아니며 모든 법이 한낱 꿈이요 환상
이니, 영응사라 하여 어찌 오래도록 스님 혼자만의 생활터전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
문에 옛사람이 말하기를 `머물 땐 외로운 학이 소나무 꼭대기에 차가운 날개를 쉬고 있는
듯하고 떠날 땐 조각 구름이 잠깐 세상에 스쳐가듯 한다'고 하였으니, 떠남과 머뭄에 깨끗
이 처신한다면 무슨 매일 것이 있겠습니까.
머물려 해도 머물 것 없어야 바야흐로 떠나고 머물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물 한 모
금 쌀 한 톨도 모두 전부터 생에 정해진 인연이니, 떠나가고 멈추는 일 또한 어찌 사람의
일이라 하겠습니까. 굳이 같다 다르다를 고집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일 이처럼 경계를 명
백히 깨닫지 못한다면 맨 끝에 가서 진창에 빠지는 꼴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번에 떠나시거든 푸른 소나무 아래 밝은 창가에 편히 앉아 꼼짝하지 않고 자신의 생사대
사 인연을 깨닫는다면 정말로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만일 태수에게서 도움을 빌리려 한다
면, 그것은 겨드랑이에 태산을 끼고 바다를 뛰어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만법이
모두 공(空)임을 깨닫는다면 스님에게 있어선 범인이 성인으로 탈바꿈되는 전기가 될 것입
니다. 혹시라도 그렇지 않다면 허리춤을 싸 쥐고 어서 저 신부(新婦)나 맞으러 가십시오."
65. 혼원 담밀(混源曇密)스님의 게송
혼원 밀(混源曇密:1120∼1188)스님은 태주(台州) 사람으로 구산 미광(龜山彌光)스님의 법제
자이다. 속가에 있을 때 몹시 가난하였으나 분수를 지키며 떠벌이지 않았다. 그가 부산사(浮
山寺)에서 대사산(大舍山)으로 옮겨가는 길이 속가를 지나는 길이라 형제들과 서로 만나게
되었는데, 시종들에게 그의 생가에 가지 못하도록 주의시키고 한두 사람만을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자기 형을 보거든 절대로 인사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마을 사람들을 놀라
게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자기의 본분을 돌아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송
을 지었다.
자취를 숨기고 옛 집을 찾아드니
초가삼간엔 씨앗도 뿌리지 않았네
어떻게 이 미천한 기질로
진동하는 우레소리를 깨달았을까?
조를 심은 곳에 콩이야 나지 않겠지만
납을 들었는데 그것이 금이었구나
다만 한걸음 잘못 디을 뿐
끝내 신음 속에 떨어지지 않았네.
托迹來蓬屋 三椽種不深
如何微賤質 也解震雷音
種粟不生豆 拈鉛却是金
只因誤失脚 終不落沈吟
총림에서는 모두 그의 고매한 식견에 탄복하였으니 저 왕씨니 조씨니 이씨니 장씨니를 사
칭하는 무리들과 함께 말할 수 있겠는가.
66. 견용공(甄龍公)의 문장
고(故) 감부(監部) 견용문공(甄龍文公)이 용상소(龍翔疏)를 지어 담밀(曇密)스님을 청하였는
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3사람이 양서암(洋嶼菴) 대혜(大慧)스님의 관문을 뚫었을 때도 스님께서는 그 중에 으뜸
이셨고, 2천리의 황매산(黃梅山) 유배길에도 그 곁에 있었으니, 이를 정법(正法)으로 공선(公
選)에 뽑혔다 하겠습니다. 스님의 발꿈치는 높고 스님의 눈은 영롱하여 자택사(紫擇寺)에서
일어나 홍복사(鴻福寺)에서 선을 설하니 여러 총림에선 산처럼 우러러 보았습니다. 석교를
지나 칠민(七 ) 땅으로 바리때 들고갈 때는 일만 납승이 구름처럼 뒤따랐습니다. 지난 날
여섯 큰 스님이 중주(中州)에 계셨으므로 이제(二 ) 지방에 좋은 사찰 많으니 다음 번 임
명때는 스님을 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외로운 양서암에서 양봉(兩峰:紫擇·鴻福寺)의 주지
가 되니 화두는 어디에나 있고, 일구(一句)로 삼요(三要)를 함축하니 많은 눈들이 휘둥그래
집니다."
뒷날 담밀스님은 칙명을 받아 정자사(淨慈寺)의 주지가 되었다.
67. 상전 범경(象田梵卿)선사
소흥(紹興:1131∼1162)연간에 상전 범경(象田梵卿)선사는 수주(秀州)화정 전씨(華亭錢氏)가
문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원통 법수(圓通法秀)와 투자 의청(投子義靑:1032∼1082)스님을 찾아뵈었고, 뒤에 조
각 상총(照覺常總:1025∼1091)스님을 뵙고 깨쳤다.
상당하여 말하였다.
"봄은 저물어 꽃잎은 어지러히 붉은 비 되어 흩날리는데 남북으로 오가는 길손은 돌아갔느
냐? 깊은 숲사이 두견새 우는데 `내 집이 없으니 어디로 돌아가며 시방 불국토는 어이 서로
의지하는가? 이 늙은이에게 참 소식이 있노라. 어젯밤 삼경녘 달이 연못 속에 있더구나."
68. 백호광명에 싸여서 / 자은 법사(慈恩法師)
자은(慈恩)법사는 당(唐)나라 울지(尉遲)장군의 아들로, 열살의 어린나이에 `전책(戰策)"을
저술하니 그의 부친은 이를 장하게 여겼다. 현장(玄奬:602∼664)은 꾀를 써서 그를 출가시켜
교종을 크게 일으키려 하였다. 그리하여 그가 지은 `전책"을 훔쳐 내어 현장법사의 어린 행
자에게 외우도록 한 후 행자를 데리고 울지를 방문하자 그는 자기 아들이 글을 잘 짓는다고
극구 칭찬하였다. 이에 현장스님이 한번 보자 하여 읽어보고는 이런 글은 이 어린 행자도
외울 수 있는 글이라고 하였다. 울지는 깜짝 놀라 행자에게 외우도록 하니 과연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이에 울지는 버럭 성을 내며, 이놈의 자식이 옛 글을 가지고서 나를 놀렸다
면서 당장 죽이려 하자 현장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불법에 중생을 구제하는 법이 있습니다. 만일 이 아이를 구하지 못하면 나는 불제자가 아
닙니다. 이 아이를 출가시키면 어떻겠습니까?"
울지는 그의 말을 따라 아들을 출가시켰다. 현장스님은 그를 제자로 얻었는데 그는 곧 큰스
님이 되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자은스님이 천자와 마주앉아 논강할 때마다 천자는 그
에게 옥가락지를 하사하였으며, 천자를 뵐 때에도 예의를 갖추지 않았고 출입할 때는 경론
(經論)과 술과 안주, 그리고 여인을 실은 수레 3채를 뒤따르도록 하였다.
도선(南山道宣:596∼667)스님은 그를 존경하면서도 한편 그를 의심하였고, 자은법사도 도선
스님을 소승(小乘)이라고 얕보면서도 그에게 신선이 공양한다는 이야기를 의심해 왔다. 어느
날 도선스님을 방문하여 특별히 신선의 공양을 받아보자고 요구하였으나 진종일 이야기하여
도 신선의 공양은 보이지 않다가 법사가 돌아간 뒤에야 공양이 비로소 왔다. 도선스님이 "
어찌하여 때 맞추어 가져오지 않았는가?"라고 신선을 꾸짖자, 신선이 말하였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오늘 스님과 대승보살이 이야기할 때, 백호광명이 온누리에 가득하여
들어올 길이 없었습니다."
그 후로 도선스님은 마음을 다해 그를 존경하였다. 이로써 대승의 경지는 작은 근기를 지닌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69. 30년을 한곳에서 보내다 / 둔암 종연(遯菴宗演)선사
둔암 연(遯菴宗演)선사는 민( )사람으로 처음 고목 조원(枯木祖元)스님을 찾아뵌 후 경산
(徑山) 묘희스님에게서 공부하였다. 최암 도인(最菴道印)·동암 연(同菴璉)스님과 함께 `대혜
광록(大慧廣錄)" 30권을 편집하여, 세상에 널리 유포하였다. 대혜스님이 입적한 뒤 종연스님
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누더기 한 벌로 추위와 더위를 지내면서 30년 동안 한 곳
에서 보냈으며 여러 차례 판수(板首)를 맡아보기도 하였다. 민 땅의 태수 조여우(趙汝愚)가
그를 복주(福州) 수봉사(秀峰寺)의 주지로 청하였으나 굳이 거절하고 나가지 않자, 별봉 인
(別峰寶印)스님은 글을 지어 그에게 세상을 나갈 것을 권유하였는데, 그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윽한 숲 속 난초가
어찌 사람이 없다고 향기 나지 않을 것이며
지극한 보배 간직한 도는
안목을 갖춘 자만이 비로소 알 수 있으리.
당시 선림에서는 모두들 그의 지조를 높이 샀다. 그는 만년에 도독(塗毒智策)스님의 천거로
상주(常州) 화장사(華藏寺)로 나가게 되었다. 그곳에 좌정하기를 19년, 삼오(三吳)지방에 불
법이 크게 성행하니, 이것은 불법 인연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70. 사천 사람 최암 도인(最菴道印)선사
최암 인(最菴道印)선사는 사천 사람이다. 처음 적실(寂室慧光)스님에게 귀의하였다가 후일
대혜스님에게 공부하였다. 경구(京口) 학림사(鶴林寺)의 주지로 세상에 나갔으며, 자화상에
다음과 같은 찬을 썼다.
몸을 이기기엔 너무나 파리하고
행동은 엉망이었네
소맷자락에 손을 넣고 점잖은 척 있노라니
예의라도 아는 양 보이구나
잘나고 못나고는 원래 스스로의 재량이 아니니
여러 총림의 분부를 굽어보리라.
71.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하다 / 형양군왕(榮陽郡王)
형양(榮陽)의 군왕 조령금(趙令衿)이 처음 가화(嘉禾)에 살 때 벼슬에 오르기 전에는 집이
몹시 가난하였다. 당시 수암 청수(誰庵淸粹)스님은 보은사(報恩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그와
교류하며 의문나는 일을 물어오면 대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후 효종이 즉위하자 그는
여러 차례 대번(大藩)의 왕이 되었고, 큰 사찰에 청수스님을 주지로 명하는 일이 많았다. 만
년에는 하산사(何山寺)의 청으로 공덕사(功德寺)를 짓고 역시 청수스님에게 주지를 맡겼으
며, 특별히 자의(紫衣)와 원오선사(圓悟禪師)라는 법호까지 하사하였다. 그의 법제자 또한
대법(大法)의 금성탕지(金城湯池)가 되었으니, 이는 서로의 큰 원력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돈황본 육조단경
1. 序言 - 머리말
혜능(慧能)대사가 대범사(大梵寺) 강당의 높은 법좌(法座)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고 무상계(無相戒)를 주시니, 그 때 법좌 아래에는 스님·비구니·도교인(道敎人)·속인 등, 일 만여 명이 있었다.
소주(韶州) 자사 위거와 여러 관료 삼십여 명과 유가(儒家)의 선비 몇몇 사람들이 대사(大師)에게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해주기를 함께 청하였고, 자사는 이윽고 문인 법해(法海)로 하여금 설법 내용을 모아 기록하게 하였으며, 후대에 널리 행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이 종지(宗旨)를 이어받아서 서로서로 전수케 한지라, 의지하여 믿는 바가 있어서 이에 받들어 이어받게 하기 위하여 이 <단경(壇經)>을 설하였다.
2. 尋師 - 스승을 찾아감
혜능대사는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
대사께서는 말씀하시지 않고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한참 묵묵하신 다음 이윽고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조용히 들어라.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범양(范陽)인데 좌천되어 영남의 신주(嶺南新州) 백성으로 옮겨살았고 혜능은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늙은 어머니와 외로운 아들은 남해로 옮겨와서 가난에 시달리며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았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다. 혜능을 데리고 관숙사(官宿舍)에 이르러 손님은 나무를 가져갔고, 혜능은 값을 받고서 문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한 손님이 <금강경> 읽는 것을 보았다. 혜능은 한 번 들음에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묻기를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가지고 읽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주 황매현(黃梅縣) 동빙무산에서 오조(五祖) 홍인(弘忍)화상을 예배하였는데, 지금 그 곳에는 문인(門人)이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와 속인들에게 다만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自性)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루게 된다고 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業緣)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다.
홍인화상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하였다.
오조대사께서는 혜능을 꾸짖으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하셨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얼굴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하였다.
오조스님은 함께 더 이야기하시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서 있는 것을 보시고 다시 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혜능을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시니, 그 때 혜능은 한 행자가 이끄는 대로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3. 命偈 - 게송을 지으라 이르심
오조 홍인대사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셨다. 문인들이 다 모이자 말씀하셨다.
"내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세상 사람의 나고 죽는 일이 크거늘 너희들 문인들은 종일토록 공양을 하며 다만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들의 자성(自性)이 미혹하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아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 한 수를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六代)의 조사(祖師)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문인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서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써서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모름지기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神秀)상좌는 우리의 교수사(敎授師)이므로 신수상좌가 법을 얻은 후에는 저절로 의지하게 될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하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쉬고 다들 감히 게송을 바치지 않았다.
그 때 화공 노진이 홍인대사의 방 앞에 있는 삼칸의 복도에 <능가변상>과 오조대사가 가사와 법을 전수하는 그림을 그려 공양해서, 후대에 전하여 기념하고자 벽을 살펴본 뒤 다음날 착수하려고 하였다.
4. 神秀 - 신수스님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게송(心偈)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 스님께서 내 마음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겠는가. 내가 마음의 게송을 오조스님께 올려 뜻을 밝혀서 법을 구함은 옳지만, 조사(祖師)의 지위를 넘보는 것은 옳지 않다. 도리어 범인의 마음(凡心)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음과 같다. 그러나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마침내 법(法)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 참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어렵고 어려우며,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다. 밤이 삼경(三更)에 이르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마음의 게송을 지어서 써 놓고 법을 구해야겠다. 만약 오조스님께서 게송을 보시고 이 게송이 당치 않다고 나를 찾으시면 나의 전생 업장이 두꺼워서 합당이 법을 얻지 못함이니, 성인의 뜻은 알기 어려우므로 내 마음을 스스로 쉬리라."
신수상좌가 밤중에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지어 써 놓았으나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게송은 이르기를,
몸은 보리의 나무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心如明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時時勤拂拭)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莫使有塵埃)
신수상좌가 이 게송을 다 써 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오조스님께서 아침에 노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을 그리게 하려 하시다가, 문득 이 게송을 보셨다. 다 읽고 나서 공봉에게 말씀하셨다.
"홍인이 공봉에게 돈 삼만 냥을 주어 멀리서 온 것을 깊이 위로하니, 변상을 그리지 않으리라. <금강경>에 말씀하시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凡所有相 皆是虛妄) 하셨으니,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법을 의지하여 행을 닦으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이윽고 홍인대사께서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을 앞에 향을 사루게 하시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오조스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라. 외는 자는 바야흐로 자성을 볼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인들이 다들 외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하였다.
오조스님이 신수상좌를 거처로 불러서 물으시되,
"내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하셨다.
신수상좌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조사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써 보아주옵소서.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겠습니까?"하였다.
오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은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없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 본성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생각하여 다시 한 게송을 지어서 나에게 와 보여라. 만약 문안에 들어와서 자성(自性)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와 법을 너에게 부촉하리라"하셨다.
신수상좌는 돌아가 며칠을 지났으나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5. 呈偈 - 게송을 바침
한 동자가 방앗간 평을 지나면서 이 게송을 외고 있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見性)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자 한다 하시고, 문인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 지어 와서 보이라 하시고, 큰 뜻을 깨쳤으면 곧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無相偈) 한 수를 써 놓았더니, 오조스님께서 모든 문인들로 하여금 다 외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 찧기를 여덟 달 남짓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보질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어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 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 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하였고, 글자를 알지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 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또한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이었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니라.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菩提本無樹)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明鏡亦無臺)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佛性常淸淨)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요.(何處有塵埃)
또 게송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心是菩提樹)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身爲明鏡臺)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明鏡本淸淨)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何處染塵埃)
절 안의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기므로,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오조스님이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곧 큰 뜻을 잘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하시어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도 또한 아니로다!" 하셨느니라.
6. 受法 - 법을 받음
오조스님께서 밤중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시었다. 혜능이 한 번 듣고 말끝에 문득 깨쳐서(言下便悟)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내 오조스님은 단박 깨치는 법(頓法)과 가사를 전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써 신표로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오조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혜능아, 옛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 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떠나라."
혜능이 가사와 법을 받고 밤중에 떠나려 하니 오조스님께서 몸소 구강역까지 혜능을 전송해 주시며, 떠날 때 문득 오조께서 처분을 내리시되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하셨다.
이에 혜능은 오조스님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두 달 가량 되어서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는데, 뒤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쫓아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하다가 반쯤 와서 다들 돌아간 것을 몰랐었다. 오직 한 스님만이 돌아가지 않았는데 성은 진(陳)이요 이름은 혜명(惠明)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으로,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하여 바로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덮치려 하였다. 혜능이 곧 가사를 돌려주었으나 또한 받으려 하지 않고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그 가사는 필요치 않습니다"하였다.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혜명에게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이었으므로,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였다.
7. 定慧 - 정과 혜
"혜능이 이곳에 와서 머무른 것은 모든 관료·도교인·속인들과 더불어 오랜 전생부터 많은 인연이 있어서이다.
가르침은 옛 성인이 전하신 바요 혜능 스스로 안 것이 아니니, 옛 성인의 가르침 듣기를 원하는 이는 각각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淨心) 하여, 듣고 나서 스스로 미혹함을 없애서 옛 사람들의 깨침과 같기를 바랄지니라."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보리반야(菩提般若)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지도를 구하여 자기의 성품을 보아라.
선지식들아, 깨치게 되면 곧 지혜를 이루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定)과 혜(慧)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이 혜의 몸이요 혜는 곧 정의 씀이니(卽定是惠體 卽惠是定用), 곧 혜가 작용할 때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혜를 함께 함이니라(定惠等).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 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法)에 두 모양(相)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가지면 정·혜가 곧 함께 함이니라.
스스로 깨쳐 수행함은 입으로 다투는 데 있지 않다. 만약 앞뒤를 다투면 이는 곧 미혹한 사람으로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함이니, 도리어 법의 아집이 생겨 네 모양(四相)을 버리지 못함이니라.
일행삼매(一行三昧)란 일상시에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行住坐臥) 항상 곧은 마음(直心)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淨名經)-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直心是道場 直心是淨土)'라고 하였느니라.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으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가가 아니니라.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그러나 미혹한 사람은 법(法)의 모양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坐不動)이 곧은 마음이라고 하며, 망심(妄心)을 제거하여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행삼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無情)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니라.
도(道)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하는 것인데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통하여 흐르는 것이요, 머물러 있으면 곧 속박된 것이니라.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음이 옳다고 한다면 유마힐이 숲 속에 편안히 앉아 있는 사리불을 꾸짖었던 것은 합당하지 않으니라.
선지식들아, 또한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앉거나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보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으로써 공부를 삼게 하는 것을 본다.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됨이 곧 수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짐짓 알아야 한다."
"선지식들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體)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用)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지만 몸은 둘이 아니다.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8. 無念 - 생각이 없음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에 깨침(頓)과 점차로 깨침(漸)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見性)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옛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느니라.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前念)과 지금의 생각(今念)과 다음의 생각(後念)이 생각생각 서로 이어져 끊어짐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法身)이 곧 육신을 떠나느니라.
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선지식들아, 밖으로 모든 모양(相)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느니라.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無念)이라고 하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境界)를 떠나고 법(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라. 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제거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 남(生)을 받게 되느니라.
도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라.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귄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나니, 그르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無念爲宗).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느니라.
없다 함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고 생각함이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없다 함은 두 모양(二相)의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고, 생각함은 진여(眞如)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體)요 생각은 진여의 작용(用)이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自在)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第一義)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하였느니라."
9. 坐禪 - 좌선
"선지식들아, 이 법문 중의 좌선(坐禪)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깨끗함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나니, 만약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이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느니라. 만약 깨끗함(淨)을 본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여(眞如)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성품은 본래대로 깨끗하느니라.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은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이 생기느니라.
망상은 처소가 없다(忘無處所). 그러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허망된 것임을 알라. 깨끗함은 모양이 없거늘, 도리어 깨끗한 모양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고 말하면 이러한 소견을 내는 이는 자기의 본래 성품을 가로막아 도리어 깨끗함에 묶이게 되느니라.
만약 움직이지 않는 이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나니, 도(道)와는 어긋나 등지는 것이니라.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니라.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坐禪)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니라.
어떤 것을 선정(禪定)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定)이다. 설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이니라. 그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부딪쳐 곧 어지럽게 되나니, 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定)이니라. 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定)이니, 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定)하므로 선정(禪定)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즉시에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하였고, <보살계>에 말씀하기를 '본래 근원인 자성(自性)이 깨끗하다'고 하였느니라.
선지식들아, 자기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함을 보아라.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지음(自修自作)이 자기 성품인 법신(法身)이며, 스스로 행함(自行)이 부처님의 행위(佛行)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이니라(自作自成佛道)."
10. 三身 - 세 몸
"선지식들아,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모양 없는 계(無相戒)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삼신불(三身佛)을 보게 하리라.
'나의 색신(自色身)의 청정 법신불(法身佛)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 화신불(化身佛)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 보신불(報身佛)에 귀의합니다'하라.(이상을 세 번 한다)
색신(色身)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의 세 몸은 자기의 법성 속에 있고 세상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자기 색신 속의 세 성품의 부처는 보지 못하느니라.
선지식들은 들어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성(法性)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하리라.
이 세 몸의 부처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법신(法身)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깨끗하여 만 가지 법이 자기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을 행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문득 착한 행동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자성 속에 있어서 자성은 항상 깨끗함을 알라.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홀연히 지혜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상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의 자성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慧)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한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 법문을 열어 주어 미망을 불어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밝아 사무쳐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나니, 모든 법에 자재한 성품을 청정법신이라 이름하느니라.
스스로 돌아가 의지함(自歸依)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돌아가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천백억 화신불(化身佛)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곧 비어 고요(空寂)하지만 생각하면 이는 곧 스스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변화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변화하여 윗 세계가 되고 우치함은 변화하여 아랫 나라가 된다. 이같이 자성의 변화가 매우 많거늘, 미혹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생각이 착하면 지혜가 곧 생기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성(自性)의 화신(化身)이라 하니라.
어떤 것을 원만한 보신불(報身佛)이라고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나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미래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이라고 하느니라.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년의 착함을 물리쳐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착한 과보는 천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나니,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미래의 생각이 착함을 보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11. 四願 - 네 가지 원
"이제 이미 스스로 삼신불(三身佛)에 귀의하여 마쳤으니, 선지식들과 더불어 네 가지 넓고 큰 원을 발하리라(發四弘大願).
선지식들아, 다 함께 혜능을 따라 말하라.
무량한 중생 다 제도하기를 서원합니다(衆生無邊誓願度).
무량한 번뇌 다 끊기를 서원합니다(煩惱無邊誓願斷).
무량한 법문 다 배우기를 서원합니다(法門無邊誓願學).
위없는 불도 모두 이루기를 서원합니다(無上佛道誓願成).
선지식들아,
무량한 중생을 맹세코 다 제도한다 함은 혜능이 선지식들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중생을 각기 자기의 몸에 있는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한다고 하는가?
자기 육신 속의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과 미망에 본래의 깨달음의 성품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므로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이미 바른 생각인 반야의 지혜(般若智)를 깨쳐서 어리석음과 미망을 없애 버리면 중생들 저마다 스스로 제도한 것이니라. 삿됨(邪)이 오면 바름(正)으로 제도하고 미혹함(迷)이 오면 깨침(悟)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愚)이 오면 지혜(智)로 제도하고 악함(惡)이 오면 착함(善)으로 제도하며 번뇌(煩惱)가 오면 보리(菩提)로 제도하나니, 이렇게 제도함을 진실한 제도(眞度)라고 하느니라.
무량한 번뇌를 맹세코 다 끊는다 함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허망(虛妄)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량한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운다 함은 위없는 바른 법(無上正法)을 배우는 것이다.
위없는 불도를 맹세코 이룬다 함은 항상 마음을 낮추는 행동(下心行)으로 일체를 공경하며 미혹한 집착을 멀리 여의고, 깨달아 반야가 생겨 미망함을 없애는 것이다. 곧 스스로 깨쳐 불도를 이루어 맹세코 바라는 힘(誓願力)을 행하는 것이니라."
12. 懺悔 - 참회
"지금 이미 사홍서원 세우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에게 '무상참회(無相懺悔)'를 주어서 삼세(三世)의 죄장(罪障)을 없애게 하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우치와 미혹에 물들지 않고, 지난날의 나쁜 행동을 일시에 영원히 끊어서 자기의 성품에서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懺悔)니라. 과거의 생각과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어리석음에 물들지 않고 지난 날의 거짓과 속이는 마음을 없애도록 하라. 영원히 끊음을 이름하여 자성의 참회(自性懺)라고 한다. 과거의 생각, 미래의 생각과 현재의 생각이 생각마다 질투에 물들지 않아서 지난날의 질투하는 마음도 없애도록 하라. 자기의 성품에서 만약 없애 버리면 이것이 곧 참회이니라."
"선지식들아, 무엇을 이름하여 참회(懺悔)라고 하는가?
참(懺)이라고 하는 것은 종신토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요, 회(悔)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나쁜 죄업을 항상 마음에서 버리지 않으면 모든 부처님 앞에서 입으로 말하여도 이익이 없느니라. 나의 이 법문 가운데는 영원히 끊어서 짓지 않음을 이름하여 참회라 하느니라."
13. 三歸 - 세 가지 귀의
"지금 이미 참회하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무상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를 주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깨달음의 양족존(覺兩足尊)께 귀의하오며, 바름의 이욕존(正離欲尊)께 귀의하오며, 깨끗함의 중중존(淨衆中尊)께 귀의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되고 미혹한 외도에게 귀의하지 않겠사오니, 바라건대 자성(自性)의 삼보께서는 자비로써 증명하소서'하라.
선지식들아, 혜능이 선지식들에게 권하여 자성의 삼보에게 귀의하게 하나니, 부처란 깨달음(覺)이요 법이란 바름(正)이며 승이란 깨끗함(淨)이니라.
자기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이 나지 않고, 적은 욕심으로 넉넉한 줄을 알아(小欲知足) 재물(財)을 떠나고 색(色)을 떠나는 것을 양족존(兩足尊)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바름으로 돌아가 생각마다 삿되지 않으므로 곧 애착이 없나니, 애착이 없는 것을 이욕존(離欲尊)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돌아가 모든 번뇌와 망념이 비록 자성에 있어도 자성이 그것에 물들지 않는 것을 중중존(衆中尊)이라고 하느니라. 범부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삼귀의계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에게 귀의한다고 말한다면 부처가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부처를 보지 못한다면 곧 귀의할 바가 없느니라. 이미 귀의할 바가 없으면 그 말이란 도리어 허망될 뿐이니라.
선지식들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의 말씀 가운데 '오직 스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只卽言自歸依佛:화엄경 정행품)'하였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지 아니하면 돌아갈 바가 없느니라."
14. 性空 - 성품이 빔
"지금 이미 삼보에게 스스로 귀의하여 모두들 지극한 마음들일 것이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리라.
선지식들아, 비록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은 하나 알지 못하므로 혜능이 설명하여 주리니, 각각 잘 들어라.
마하반야바라밀이란 서쪽 나라의 범어이다. 당나라 말로는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른다(大智惠彼岸到)'는 뜻이니라. 이 법은 모름지기 실행할 것이요, 입으로 외는 데 있지 않다. 입으로 외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으나, 닦고 행하는 이는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어떤 것을 마하라고 하는가?
마하(摩訶)란 큰 것이다. 마음의 한량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 곧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느니라.
허공은 능히 일월성신(一月星辰)과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한 사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함하고 있다. 세상 사람의 자성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자성이 만법(萬法)을 포함하는 것이 곧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인 것이다.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과 착함과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하나니, 이것이 곧 큰 실행(摩訶行)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 있는 이는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또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 생각하지 않는 것을 크다고 하나, 이도 또한 옳지 않으니라.
마음의 한량이 넓고 크다고 하여도, 행하지 않으면 곧 작은 것이다. 입으로만 공연히 말하면서 이 행을 닦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15. 般若 - 반야
"어떤 것을 반야(般若)라고 하는가?
반야는 지혜이다. 모든 때에 있어서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곧 반야행(般若行)이라고 하느니라.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기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나거늘, 마음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 '나는 닦는다'고 스스로 말하느니라.
반야는 형상이 없나니, 지혜의 성품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바라밀(波羅密)이라고 하는가?
이는 서쪽 나라의 범음으로 '저 언덕에 이른다(彼岸到)'는 뜻이니라.
뜻을 알면 생멸을 떠난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물에 파랑이 있음과 같나니, 이는 곧 이 언덕(此岸)이요, 경계를 떠나면 생멸이 없어서 물이 끊이지 않고 항상 흐름과 같나니, 곧 저 억덕(彼岸)에 이른다고 이름하며, 그러므로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로운 이는 마음으로 행한다. 생각할 때 망상이 있으면 그 망상이 있는 것은 곧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 생각마다 행한다면 이것을 진실이 있다고 하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반야의 법을 깨친 것이며 반야의 행을 닦는 것이다. 닦지 않으면 곧 범부요 한 생각 수행하면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들아, 번뇌가 곧 보리니(卽煩惱是菩提), 앞생각을 붙잡아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처이니라.
선지식들아,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라, 머무름도 없고 가고 옴도 없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로부터 나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에 이르러 오음(五陰)의 번뇌와 진로(塵勞)를 쳐부수나니,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니라.
가장 으뜸임을 찬탄하여 최상승 법을 수행하면 결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내왕 또한 없나니, 이는 정(定)과 혜(慧)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않음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삼독을 변하게 하여 계·정·혜(戒定惠)로 삼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팔만 사천의 지혜를 좇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세상에 팔만 사천의 진로(塵勞)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로가 없으면 반야가 항상 있어서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無念)이니라.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곧 진여(眞如)의 성품이다.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자성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느니라."
16. 根機 - 근기
"선지식들아, 만약 매우 깊은 법의 세계(法界)에 들고자 하고 반야삼매(般若三昧)에 들고자 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의 행을 닦을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 한 권말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반야삼매에 들어가느니라.
이 사람의 공덕이 한량없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고 경에서 분명히 찬탄하였으니, 능히 다 갖추어 설명하지 못하느니라.
이것은 최상승법(最上乘法)으로서 큰 지혜와 높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만약 근기와 지혜가 작은 사람이 이 법을 들으면 마음에 믿음이 나지 않나니, 무엇 때문인가?
비유하면 마치 큰 용이 큰비를 내리는 것과 같다. 염부제(閻浮提)에 비가 내리면 풀잎이 떠다니듯 하고, 만약 큰비가 큰 바다에 내리면 불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대승의 사람은 <금강경> 설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깨치고 안다. 그러므로 본래 성품이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서 문자를 빌리지 않음을 알라.
비유컨대, 그 빗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과 같다. 원래 용왕이 강과 바다 가운데서 이 물을 몸으로 이끌어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과 모든 유정과 무정을 다 윤택하게 하고, 그 모든 물의 여러 흐름이 다시 큰 바다에 들어가고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근기가 작은 사람은 단박에 깨치는 이 가르침(頓敎)을 들으면 마치 근성이 작은 대지의 초목이 큰비를 맞고 모두 다 저절로 거꾸러져서 자라지 못함과 같나니, 작은 근기의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가 있는 점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또한 차별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법을 듣고도 곧 깨치지 못하는가?
삿된 소견(邪見)의 장애가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려, 바람이 불지 않으면 해가 능히 나타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반야의 지혜도 또한 크고 작음이 없으나 모든 중생이 스스로 미혹한 마음이 있어서 밖으로 닦아 부처를 찾으므로 자기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이같이 근기가 작은 사람일지라도 단박에 깨치는 가르침(頓敎)을 듣고 밖으로 닦는 것을 믿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마음에서 자기의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바른 견해(正見)를 일으키면 번뇌, 진로(塵勞)의 중생이 모두 다 당장에 깨치느니라. 마치 큰 바다가 모든 물의 흐름을 받아들여서 작은 물과 큰물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곧 자성을 보면 안팎에 머물지 아니하며 오고감에 자유로워 집착하는 마음을 능히 없애어 통달하여 거리낌이 없나니, 마음으로 이 행을 닦으면 곧 <반야바라밀>과 더불어 본래 차별이 없느니라."
17. 見性 - 견성
"모든 경서(經書) 및 문자와 소승(小乘)과 대승(大乘)과 십이부(十二部)의 경전이 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게 되었나니, 지혜의 성품에 연유한 까닭으로 능히 세운 것이니라. 만약 내가 없다면 지혜 있는 사람과 모든 만법이 본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요, 일체 경서가 사람으로 말미암아 '있음'을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사람가운데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기 때문에, 어리석으면 작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우면 큰 사람이 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지혜 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미혹한 사람은 지혜 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 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그러므로 알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느니라. 그럼에도 어찌 자기의 마음을 좇아서 진여(眞如)의 본성(本性)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말씀하기를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다.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 당장 활연히 깨쳐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18. 頓悟 - 단박에 깨침
"선지식들아, 나는 오조 홍인(弘忍)화상의 회하에서 한 번 듣자 말끝(言下)에 크게 깨쳐 진여(眞如)의 본래 성품을 단박에 보았느니라(頓見眞如本性). 이러므로 이 가르침의 법을 뒷세상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菩提)를 단박에 깨쳐서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단박 깨치게(頓悟) 하는 것이다.
만약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이는 모름지기 큰 선지식을 찾아서 지도를 받아 자성을 볼 것이니라.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고 하는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이 바른 길을 곧게 가리키는 것임을 아는 것이 큰 선지식이며 큰 인연(因緣)이다. 이는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어나느니라.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고 말할지라도, 능히 자성을 깨치지 못하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
만약 스스로 깨친 이라면 밖으로 선지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밖으로 선지식을 구하여 해탈 얻기를 바란다면 옳지 않다. 자기 마음속의 선지식을 알면 곧 해탈을 얻느니라.
만약 자기의 마음이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觀照)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다. 한 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자성의 마음자리가 지혜로써 관조하여 안팎이 사무쳐 밝으면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알고 만약 본래 마음을 알면 이것이 곧 해탈이며, 이미 해탈을 얻으면 이것이 곧 반야삼매(般若三昧)며, 반야삼매를 깨치면 이것이 곧 무념(無念)이니라.
어떤 것을 무념이라고 하는가?
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그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 하되 그 모든 곳에 집착치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이 하여 여섯 도적들(六賊)로 하여금 여섯 문으로 달려나가게 하나 육진(六塵) 속을 떠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감에 자유로운 것이다.
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自在解脫)인 무념행(無念行)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 이는 곧 법에 묶임이니 곧 변견(邊見)이라고 하느니라.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다 통달하고, 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 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의 돈법(頓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에 이르느니라.
19. 滅罪 - 죄를 없앰
"선지식들아, 뒷세상에 나의 법을 얻는 이는 항상 나의 법신이 너희의 좌우를 떠나지 않음을 보리라.
선지식들아, 이 돈교(頓敎)의 법문을 가지고 같이 보고 같이 행하여(同見同行) 소원을 세워 받아 지니되 부처님 섬기듯이 함으로써, 종신토록 받아 지녀 물러나지 않는 사람은 성인의 지위에 들어가고자 하느니라.
그러나 전하고 받을 때에는 모름지기 예로부터 말없이 법을 부촉하여 큰 서원을 세워서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곧 모름지기 분부(分付)한 것이니라.
만약 견해가 같지 않거나 뜻과 원이 없다면 곳곳마다 망령되이 선전하여 저 앞사람을 손상케 하지 말라. 마침내 이익이 없느니라.
만약 만나는 사람이 알지 못하여 이 법문을 업신여기면 백겁 만겁 천생토록 부처의 종자를 끊게 되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나의 '모양 없는 게송(無相頌)'을 들어라. 너희 미혹한 사람들의 죄를 없앨 것이니 또한 '죄를 없애는 게송(滅罪頌)'이라고 하느니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은 복은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닦음이 곧 도라고 말한다.
보시 공양하는 복이 끝이 없으나
마음 속 삼업(三業)은 원래대로 남아 있도다.
만약 복을 닦아 죄를 없애고자 하여도
뒷세상에 복은 얻으나 죄가 따르지 않으리요.
만약 마음속에서 죄의 반연 없앨 줄 안다면
저마다 자기 성품 속의 참된 참회(懺悔)니라.
만약 대승의 참된 참회를 깨치면
삿됨을 없애고 바름을 행하여 죄 없어지리.
도를 배우는 사람이 능히 스스로 보면
곧 깨친 사람과 더불어 같도다.
오조께서 이 단박 깨치는 가르침을 전하심은
배우는 사람이 같은 한 몸 되기를 바라서이다.
만약 장차 본래의 몸을 찾고자 한다면
삼독의 나쁜 인연을 마음속에서 씻어 버려라.
힘써 도를 닦아 유유히 지내지 말라.
어느덧 헛되이 지나 한세상 끝나리니
만약 대승의 단박 깨치는 법을 만났거든
정성들여 합장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구하라.
대사께서 법을 설하여 마치시니, 위사군(韋使君)과 관료와 스님들도 도교인과 속인들의 찬탄하는 말이 끊기지 않고 '예전에 듣지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20. 功德 - 공덕
위사군이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께서 법을 설하심은 실로 부사의 합니다. 제자가 일찍이 조금한 의심이 있어서 큰스님께 여쭙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큰스님께서는 대자대비로 제자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의심이 있거든 물으라. 어찌 두 번 세 번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위사군이 물었다.
"대사께서 설하신 법은 서쪽 나라에서 오신 제일조 달마조사의 종지(宗旨)가 아닙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제자가 들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묻기를,
'짐이 한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을 올렸는데 공덕(功德)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달마대사께서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라고 대답하시니. 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를 나라 밖으로 내보내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으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 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른 것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다.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라.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고 복밭(福田)에 있지 않으니라.
자기의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見性)이 곧 공(功)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德)이니라. 안으로 불성을 보고 밖으로 공경하라(內見佛性 外行恭敬). 만약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공덕이 곧 가볍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항상 공경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功)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德)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다.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요, 달마대사께 허물 있는 것이 아니니라."
21. 西方 - 서방극락
위사군이 예배하고 또 물었다.
"제자가 보오니 스님과 도교인과 속인들이 항상 아미타불을 생각하면서 서쪽 나라(西方)에 가서 나기를 바랍니다. 청컨대 큰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저기에 날 수가 있습니까? 바라건대 의심을 풀어 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사군은 들어라. 혜능이 말하여 주리라. 세존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서방정토에로 인도하여 교화해 말씀하셨느니라. 경에 분명히 말씀하기를 '여기서 멀지 않다(去此不遠)'고 하였다. 다만 낮은 근기의 사람을 위하여 멀다 하고,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다만 지혜가 높은 사람 때문이니라.
사람에는 자연히 두 가지가 있으나, 법은 그렇지 않다. 미혹함과 깨달음이 달라서 견해에 더디고 바름이 있을 뿐이다. 미혹한 사람은 염불하여 저속에 나려고 하지만 깨친 사람은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그 마음이 깨끗함을 따라서 부처의 땅도 깨끗하다(隨其心淨 則佛淨土)'고 말씀하셨느니라.
사군아, 동쪽 사람일지라도 다만 마음이 깨끗하면 죄가 없고, 서쪽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허물이 있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가서 나기를 원하나(願生) 동방과 서방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는 다 한가지니라.
다만 마음에 깨끗치 않음이 없으면 서방정토가 여기서 멀지 않고, 마음에 깨끗치 아니한 생각이 일어나면 염불하여 왕생하고자 하여도 이르기 어렵느니라. 십악(十惡)을 제거하면 곧 십만 리를 가고, 팔사(八邪)가 없으면 곧 팔천 리를 지난 것이다. 다만 곧은 마음을 행하면 도달하는 것은 손가락 퉁기는 것과 같으니라.
사군아, 다만 십선(十善)을 행하라. 어찌 새삼스럽게 왕생하기를 바랄 것인가. 십악(十惡)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어느 부처가 와서 맞이하겠는가.
만약 남이 없는 돈법(無生頓法)을 깨치면 서방정토를 찰나에 볼 것이요, 만약 돈교의 큰 가르침을 깨치지 못하면 염불을 하여도 왕생할 길이 멀거니, 어떻게 도달하겠는가."
육조께서 말씀하셨다.
"혜능이 사군을 위하여 서쪽 나라를 찰나 사이에 옮겨 눈앞에 바로 보게 하리니 사군은 보기를 바라는가?"
위사군이 예배하며 말하였다.
"만약 여기서 볼 수 있다면 하필 가서 나겠습니까. 원컨대 스님께서 자비로써 서쪽 나라를 보여 주시면 매우 좋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문득 서쪽 나라를 보아 의심이 없을 터이니 당장 흩어져라."
대중들이 놀라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자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대중은 정신 차리고 들어라. 세상 사람의 자기 색신(色身)은 성(城)이요 눈·귀·코·혀·몸(眼耳鼻舌身)은 곧 성의 문(門)이니 밖으로 다섯 문이 있고 안으로 뜻(意)의 문이 있다. 마음은 곧 땅이요 성품은 곧 왕이니 성품이 있으면 왕이 있고 성품이 가매 왕은 없느니라. 성품이 있으매 몸과 마음이 있고 성품이 가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느니라.
부처는 자기의 성품이 지은 것이니(佛是自性作), 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 자기의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기의 성품이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이니라.
자비(慈悲)는 곧 관음(觀音)이요 희사(喜捨)는 세지(勢至)라고 부르며, 능히 깨끗함은 석가요 평등하고 곧음은 미륵이니라. 인아상(人我相)은 수미요 삿된 마음은 큰 바다이며 번뇌는 파랑이요 독한 마음은 악한용이며 진로(塵勞)는 고기와 자라요 허망함은 곧 귀신이며 삼독(三毒)은 곧 지옥이요 어리석음은 곧 짐승이며 십선(十善)은 천당이니라.
인아상이 없으면 수미산이 저절로 거꾸러지고 삿된 마음을 없애면 바닷물이 마르며, 번뇌가 없으면 파랑이 없어지고 독해를 제거하면 고기와 용이 없어지느니라.
자기 마음의 땅 위에 깨달은 성품의 부처가 큰 지혜를 놓아서 그 광명이 비추어 여섯 문(眼耳鼻舌身意)이 청정하게 되고 욕계(欲界)의 모든 여섯 하늘들을 비추어 부수고, 아래로 비추어 삼독을 제거하면 지옥이 일시에 사라지라고 안팎으로 사무쳐 밝으면 서쪽 나라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이 수행을 닦지 아니하고 어찌 피안에 이르겠는가."
법문을 들은 법좌 아래서는 찬탄하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쳤으니, 응당 미혹한 사람도 문득 밝게 볼 수 있었다.
위사군이 예배하며 찬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널리 원하옵나니, 법계의 중생으로 이 법을 듣는 이는 모두 일시에 깨쳐지이다!"
22. 修行 - 수행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만약 수행하기를 바란다면 세속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절에 있다고만 되는 것이 아니다. 절에 있으면서 닦지 않으면 서쪽 나라 사람의 마음이 악함과 같고, 세속에 있으면서 수행하면 동쪽 나라 사람이 착함을 닦는 것과 같다. 오직 바라건대, 자기 스스로 깨끗함을 닦으라. 그러면 이것이 곧 서쪽 나라이니라."
위사군이 물었다.
"화상이시여, 세속에 있으면서 어떻게 닦습니까? 원하오니 가르쳐 주소서."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혜능이 도속(道俗)을 위하여 '모양 없는 게송(無相頌)'을 지어 주리니 다들 외어 가지라.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항상 혜능과 더불어 한 곳에 있음과 다름이 없느니라."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설법도 통달하고 마음도 통달함이여!
해가 허공에 떠오름과 같나니
오직 돈교(頓敎)의 법만을 전하여
세상에 나와 삿된 종취를 부수는구나.
가르침에는 돈과 점이 없으나
미혹함과 깨침에 더디고 빠름이 있나니
만약 돈교의 법을 배우면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미혹하지 않느니라.
설명하자면 비록 일만 가지이나
그 낱낱을 합하면 다시 하나로 돌아오나니
번뇌의 어두운 집 속에서
항상 지혜의 해가 떠오르게 하라.
삿됨은 번뇌를 인연하여 오고
바름이 오면 번뇌가 없어지나니
삿됨과 바름을 다 버리면
깨끗하여 남음 없음(無餘)에 이르는 도다.
보리(菩提)는 본래 깨끗하나
마음 일으키는 것이 곧 망상이라
깨끗한 성품이 망념 가운데 있나니
오직 바르기만 하면 세 가지 장애를 없애는 도다.
만약 세간에서 도를 닦더라도
일체가 다 방해되지 않나니
항상 허물을 드러내어 자기에게 있게 하라.
도와 더불어 서로 합하는 도다.
형상이 있는 것에는 스스로 도가 있거늘
도를 떠나 따로 도를 찾는지라
도를 찾아도 도를 보지 못하나니
필경은 도리어 스스로 고뇌하는 도다.
만약 애써 도를 찾고자 할진대는
행동의 바름(正行)이 곧 도이니
스스로에게 만약 바른 마음이 없으면
어둠 속을 감이라 도를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만약 세간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잘못이라 도리어 허물이로다.
남의 잘못은 나의 죄과요
나의 잘못은 스스로 죄 있음이니
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버리는 도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을 교화하고자 할진대는
모름지기 방편이 있어야 하나니
저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하지 말라.
이는 곧 보리가 나타남이로다.
법은 원래 세간에 있어서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나나니
세간을 떠나지 말며
밖에서 출세간의 법을 구하지 말라.
삿된 견해(邪見)가 세간이요
바른 견해(正見)는 세간을 벗어남(出世間)이니
삿됨과 바름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의 성품이 완연하리로다.
이는 다만 단박 깨치는 가르침이며
또한 대승(大乘)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하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나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23. 行化 - 교화를 행하심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너희들은 다들 이 게송을 외어 가지라.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천리를 혜능과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혜능의 곁에 있는 것이요,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얼굴을 마주하여도 천리를 떨어져 있는 것이다. 각각 스스로 수행하면 법을 서로 지님이 아니겠느냐.
여러 사람들은 그만 흩어지거라. 혜능은 조계산(曹溪山)으로 돌아가리라. 만약 대중 가운데 큰 의심이 있거든 저 산으로 오너라. 너희를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같이 부처의 성품을 보게 하리라(同見佛性)."
함께 앉아 있던 관료·스님·속인들이 육조대사께 예배하며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훌륭하십니다. 크게 깨치심이여! 옛적에는 미처 듣지 못한 말씀입니다. 영남에 복이 있어 산부처가 여기 계심을 누가 능히 알았으리오'한 다음 한꺼번에 다 흩어졌다.
대사께서 조계산으로 가시어 소주(韶州)·광주(廣州) 두 고을에서 교화하기를 사십여 년이었다.
만약 문인을 말한다면 스님과 속인이 삼오천 명이라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며, 만약 종지(宗旨)를 말한다면 <단경>을 전수하여 이로써 의지하여 믿음을 삼게 하였다. 만약 <단경>을 얻지 못하면 곧 법을 이어받지 못한 것이다. 모름지기 간 곳과 년 월 일과 성명을 알아서 서로 서로 부촉하되 <단경>을 이어받지 못하였으면 남종(南宗)의 제자가 아니다. <단경>을 이어받지 못한 사람은 비록 돈교법(頓敎法)을 말하나 아직 근본을 알지 못함이라, 마침내 다툼을 면치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법을 얻은 사람에게만 (돈교법의) 수행함을 권하라. 다툼은 이기고 지는 마음이니 도(道)와는 어긋나는 것이다.
24. 頓修 - 단박에 닦음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南能北秀)'라고 하나 아직 근본 사유를 모르는 말이다.
또 신수(神秀)선사는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玉泉寺)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혜능대사는 소주성 동쪽 삼십오 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법은 한 종(宗)이나 사람에게 남쪽과 북쪽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남쪽과 북쪽이 서게 되었다.
어떤 것을 '점(漸)'과 '돈(頓)'이라고 하는가?
법은 한가지로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기 때문이다. 견해가 더딘즉 '점(漸)'이요, 견해가 빠른즉 '돈(頓)'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닭으로 '점'과 '돈'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일찍이 신수스님은 사람들이 혜능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리킨다(疾直指路)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신수스님은 드디어 문인 지성(志誠)스님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산으로 가라. 가서 혜능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왔다 하지 말라. 들은대로 그 뜻을 기억하여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여라. 그래서 혜능스님과 나의 견해가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보게 하여라. 너는 첫째로 빨리 오너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라."
지성은 기쁘게 분부를 받들어 반달쯤 걸려서 조계산에 도달하였다. 그는 혜능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지성은 법문을 듣고 그 말끝에 문득 깨달아 곧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다(卽契本心). 그는 일어서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였으나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문득 본래의 마음에 결합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니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렷다!"
지성이 말하였다.
"말을 하기 이전에는 그렇습니다만, 말씀을 드렸으니 이미 아니옵니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임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의 스님이 사람을 가르치기를 오직 계·정·혜(戒定惠)를 전한다고 하는데, 너의 스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계·정·혜는 어떤 것인가? 마땅히 나를 위해 말해 보라."
지성이 말하였다.
"신수스님은 계·정·혜를 말하기를 '모든 악(惡)을 짓지 않는 것을 계(戒)라고 하고, 모든 선(善)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惠)라고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을 정(定)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계·정·혜이다'고 합니다. 신수스님의 말씀은 그렇거니와, 큰스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알지 못합니다.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그 법문은 불가사의하나 혜능의 소견은 또 다르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지성이 계·정·혜에 대한 스님의 소견을 청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서 나의 소견을 보라. 마음의 땅(心地)에 그릇됨이 없는 것(無非)이 자성의 계(戒)요, 마음의 땅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無亂)이 자성의 정(定)이요, 마음의 땅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無癡)이 자성의 혜(惠)이니라."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요, 나의 계·정·혜는 높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또한 계·정·혜도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성품은 그릇됨도 없고, 어지러움도 없으며, 어리석음도 없다. 생각 생각마다 지혜로 관조(觀照)하여 항상 법의 모양을 떠났는데, 무엇을 세우겠는가. 자기의 성품을 단박 닦으라(自性頓修). 세우면 점차가 있으니 그러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은 예배하고서 바로 조계산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문인이 되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25. 佛行 - 부처님의 행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법달(法達)이라 하였다. 항상 <법화경>을 외어 칠년이 되었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바른 법의 당처(正法之處)를 알지 못하더니, 와서 물었다.
"경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큰스님의 지혜가 넓고 크시오니 의심을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은 제법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 자체는 의심이 없거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 네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바른 법을 구하는구나.
나의 마음 바른 정(正定)이 곧 경전을 지니고 읽는 것이다. 나는 한평생 동안 문자를 모른다. 너는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나를 마주하여 한 편을 읽으라. 내가 들으면 곧 알 것이니라."
법달이 경을 가지고 와서 대사를 마주하여 한 편을 읽었다.
육조스님께서 듣고 곧 부처님의 뜻을 아셨고 이내 법달을 위하여 <법화경>을 설명하시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다. 일곱 권이 모두 비유와 인연이니라. 부처님께서 널리 삼승(三乘)을 말씀하심은 다만 세상의 근기가 둔한 사람을 위함이다. 경 가운데서 분명히 '다른 승이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한 불승(佛乘)뿐이라'고 하셨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너는 일불승(一佛乘)을 듣고서 이불승(二佛乘)을 구하여 너의 자성을 미혹하게 하지 말라. 경 가운데서 어느 곳이 일불승인지를 너에게 말하리라.
경에 말씀하기를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셨다'고 하셨다. 이 법을 어떻게 알며 이 법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너는 나의 말을 들어라.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본래의 근원이 비고 고요(空寂)하여 삿된 견해를 떠난다. 이것이 곧 일대사인연이리라. 안팎이 미혹하지 않으면 곧 양변(兩邊)을 떠난다. 밖으로 미혹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을 떠난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깨달아 한 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마음에 무엇을 여는가?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이니라. 네 문으로 나뉘나니, 깨달음의 지견을 여는 것(開)과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것(示)과 깨달음의 지견을 깨침(悟)과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入)이니라. 열고 보이고 깨닫고 들어감(開示悟入)은 한 곳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지견으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언제나 마음 자리로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기를 항상 바라노라. 세상 사람의 마음이 삿되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악을 지어 스스로 중생의 지견을 열고, 세상 사람의 마음이 발라서 지혜를 일으켜 관조하면 스스로 부처님 지견을 여나니, 중생의 지견을 열지 말고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이것이 <법화경>의 일승(一乘)법이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삼승(三乘)을 나눈 것은 미혹한 사람을 위한 까닭이니, 너는 오직 일불승만을 의지하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마음으로 행하면(心行) <법화경>을 굴리고(轉法華),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나니,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구리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을 굴리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힘써 법대로 수행하면 이것이 곧 경을 굴리는 것(轉經)이니라."
법달은 한 번 듣고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실로 지금까지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였습니다.
칠년을 <법화경>에 굴리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법화경>을 굴려서 생각 생각마다 부처님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 행이 곧 부처님이니라(卽佛行是佛)."
그 때 듣는 사람으로서 깨치지 않은 이가 없었다.
26. 參請 - 예배하고 법을 물음
그 무렵 지상(智常)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스님께 예배하고 사승법(四乘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三乘)을 말씀하시고 또 최상승(最上乘)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四乘)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小乘)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中乘)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大乘)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 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은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最上乘)이니라. 승(乘)은 행한다는 뜻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神會)라고 하였으며 남양 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가 대답했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無情)인 나무와 돌과 같고, 아프다 하면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앉는다고 한 것은 양변(兩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生滅)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依法修行).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절하고 바로 문인이 되어 조계 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 머물렀다.
27. 對法 - 상대되는 법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法海), 지성(志誠), 법달(法達), 지상(智常), 지통(志通), 지철(志徹), 지도(志道), 법진(法珍), 법여(法如), 신회(神會) 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 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너희들은 각각 한 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법 설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취를 잃지 않게 하리라.
삼과(三科)의 법문을 들고, 동용삼십육대(動用三十六對)를 들어서 나오고 들어감에 곧 양변을 여의도록 하여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性相)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말을 다 쌍으로 해서 모두 대법(對法)을 취하여라. 가고 오는 것이 서로 인연하여 구경에는 두 가지 법을 다 없애고 다시 가는 곳 마저 없게 하라.
삼과법문(三科法門)이란 음(蔭). 계(界). 입(入)이다. 음(蔭)은 오음(五陰)이요, 계(界)는 십팔계(十八界)요, 입(入)은 십이입(十二入)이니라.
어떤 것을 오음(五陰)이라고 하는가?
색음(色陰)·수음(受蔭)·상음(相蔭)·행음(行蔭)·식음(識蔭)이니라.
어떤 것을 십팔계(十八界)라고 하는가?
육진(六塵)·육문(六門)·육식(六識)이니라.
어떤 것을 십이입(十二入)이라고 하는가?
바깥의 육진(六塵)과 안의 육문(六門)이니라.
어떤 것을 육진(六塵)이라고 하는가?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이니라.
어떤 것을 육문(六門)이라고 하는가?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이니라.
법의 성품(法性)이 육식인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육식과 육문과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나니 함장식(含藏識)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생각을 하면 곧 식이 작용하여 육식이 생겨 육문으로 나와 육진을 본다. 이것이 삼육은 십팔이니라(3*6=18).
자성이 삿되기 때문에 열 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正)을 포함하면 열 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나느니라.
악의 작용을 지니면 곧 중생이요, 선이 작용하면 곧 부처이니라.
작용은 무엇들로 말미암는가?
자성의 대법으로 말미암느니라.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대법(對法)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相對)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논란하는 말과 직언 하는 말의 대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 두 가지가 있다. 유위(有爲)와 무위(無爲), 유색(有色)과 무색(無色)이 상대이며, 유상(有相)과 무상(無相)이 상대이며, 유루(有漏)와 무루(無漏)가 상대이며, 현상(色)과 공(空)이 상대이며, 움직임(動)과 고요함(靜)이 상대이며, 맑음(淸)과 흐림(濁)이 상대이며, 범(凡)과 성(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대이며, 늙음(老)과 젊음(少)이 상대이며, 큼(大)과 작음(少)이 상대이며, 김(長)과 짧음(短)이 상대이며, 높음(高)과 낮음(下)이 상대이니라.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 아홉 가지가 있다. 삿됨과(邪) 바름(正)이 상대요, 어리석음(癡)과 지혜(惠)가 상대이며, 미련함(愚)과 슬기로움(智)이 상대요, 어지러움(亂)과 선정(定)이 상대이며, 계(戒)와 잘못됨(非)이 상대이며, 곧음(直)과 굽음(曲)이 상대이며,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험함(險)과 평탄함(平)이 상대이며, 번뇌(煩惱)와 보리(菩提)가 상대이며, 사랑(慈)과 해침(害)이 상대이며, 기쁨(喜)과 성냄(嗔)이 상대이며, 버림(捨)과 아낌( )이 상대이며, 나아감(進)과 물러남(退)이 상대이며, 남(生)과 없어짐(滅)이 상대이며, 항상함(常)과 덧없음(無常)이 상대이며, 법신(法身)과 색신(色身)이 상대이며, 화신(化身)과 보신(報身)이 상대이며, 본체(體)와 작용(用)이 상대이며, 성품(性)과 모양(相)이 상대이니라.
유정·무정의 대법인 어(語)·언(言)과 법(法)·상(相)에 열 두 가지 대법이 있고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데 열 아홉 가지의 대법이 있어서 모두 서른 여섯 가지 대법을 이루니라. 이 삼십육 대법을 알아서 쓰면 일체의 경전에 통하고 출입에 곧 양변을 떠난다. 어떻게 자성이 기용하는가?
삼십육 대법이 사람의 언어와 더불어 함께 하나 밖으로 나와서는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相離相),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에서 공을 떠나나니(空離空) 공(空)에 집착하면 오직 무명만 기르고, 모양(相)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만 기르느니라.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할진대는 사람이 말하지도 않아야만 옳은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대해서 공을 말하나 바른 말로 말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하지 않으니 미혹하여 스스로 현혹됨은 말들이 삿된 까닭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다.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으로써 변화하여 어둡고, 어둠으로써 밝음이 나타나나니 오고 감이 서로 인연한 것이다. 삼십육 대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대사께서 열 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취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니라.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포하여 행하게 하라.
<단경>을 만나 얻은 이는 내가 친히 주는 것을 만남과 같으니라."
열 명의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아 마치고 <단경>을 베껴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는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
28. 眞假 - 참됨과 거짓
대사께서는 선천(先天) 이년 팔월 삼일에 돌아가셨다. 칠월 팔 일에 문인들을 불러 고별하시고, 선천 원년에 신주 국은사(國恩寺)에 탑을 만들고 선천 이년 칠월에 이르러 작별을 고하셨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나는 팔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은 의심을 부수어 마땅히 미혹을 다 없애어 너희들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는 너희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리라."
법해(法海)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으나, 오직 신회만이 꼼짝하지 아니하고 울지도 않으니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 신회는 도리어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평등함을 얻어 헐뜯고 칭찬함에 움직이지 않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그렇다면 여러 해 동안, 산중에서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지금 슬피 우는 것은 또 누구를 위함인가? 나의 가는 곳을 내가 모른다고 근심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는 곳을 모른들 마침내 너희에게 고별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곧 나의 가는 곳을 몰라서이다. 만약 가는 곳을 안다면 곧 슬피 울지 않으리라.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
너희들은 다 앉거라. 내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노니,
'진가동정게(眞假動靜偈)'이다. 너희들이 다 외어 이 게송의 뜻을 알면 너희는 나와 더불어 같을 것이다.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종지를 잃지 말라."
스님들이 예배하고 대사께 게송 남기시기를 청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 가졌다.
게송에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만약 능히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假)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의 진실이다.
자기의 마음이 거짓(假)을 여의지 않아 진실이 없거니, 어느 곳에 진실이 있겠는가?
유정(有情)은 곧 움직일 줄을 알고 무정(無情)은 움직이지 않나니
만약 움직이지 않는 행(不動行)을 닦는다면 무정의 움직이지 않음과 같다.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본다면
움직임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 있나니
움직이지 않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면 뜻도 없고 부처의 씨앗도 없도다.
능히 모양(相)을 잘 분별하되 첫째 뜻은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깨쳐서 이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眞如)의 씀(用)이니라.
모든 도를 배우는 이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힘써 뜻을 써서(用意)
대승(大乘)의 문에서 도리어 생사의 지혜에 집착하지 말라.
앞의 사람이 서로 응하면 곧 함께 부처님 말씀을 의존하려니와
만약 실제로 서로 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라.
이 가르침은 본래 다툼이 없음이라 다투지 않으면 도(道)의 뜻을 잃으리오.
미혹함에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들어가느니라.
29. 傳偈 - 게송을 전함
대중스님들은 다 듣고 대사의 뜻을 알았으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아니하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였다. 대중이 일시에 예배하니, 곧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상좌인 법해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큰스님이시여, 큰스님께서 가신 뒤에 가사와 법을 마땅히 누구에게 부촉하시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전하여 마쳤으니 너희는 모름지기 묻지 말라. 내가 떠난 뒤 이십여 년에 삿된 법이 요란하여 나의 종지(宗旨)를 혼란케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와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교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종지를 세우리니, 이것이 곧 나의 바른 법이다.
그러므로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너희가 믿지 않을진대는 내가 선대의 다섯 분 조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신 게송들을 외어 주리라.
만약 제일조 달마조사의 게송의 뜻에 의거하면 곧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외리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제일조 달마화상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내 본시 당나라에 와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노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어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제이조 혜가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제삼조 승찬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가 비록 땅을 인연하여
땅 위에 씨앗 꽃을 피우나
꽃씨는 나는 성품이 없나니
땅에도 또한 남이 없도다.
제사조 도신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에 나는 성품 있어
땅을 인연하여 씨앗 꽃이 피나
앞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나지 않는도다.
제오조 홍인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유정(有情)이 와서 씨 뿌리니
무정(無情)이 꽃을 피우고
정도 없고(無情) 씨앗도 없나니(無種)
마음 땅에 또한 남이 없도다.
제육조 혜능의 게송에 말한다.
마음의 땅이 뜻의 씨앗을 머금으니
법의 비가 꽃을 피운다.
스스로 꽃 뜻의 씨앗을 깨달으니,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는도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내가 지은 두 게송을 들어라. 달마스님의 게송의 뜻을 취하였으니 너희 미혹한 사람들은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자성을 보리라."
첫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心地)에 삿된 꽃이 피니
다섯 잎(五葉)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무명의 업을 지어
업의 바람에 나부낌을 보는도다.
둘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에 바른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반야의 지혜를 닦으니
장차 오실 부처님의 깨달음이로다.
육조스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여 마치시고 대중을 해산시켰다. 밖으로 나온 문인들은 생각하였으니,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다.
30. 傳統 - 법을 전한 계통
그 뒤, 육조스님께서는 팔월 초삼일에 이르러 공양 끝에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차례를 따라 앉아라. 내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법해가 여쭈었다.
"이 돈교법(頓敎法)의 전수는 옛부터 지금까지 몇 대입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은 일곱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되었으니, 석가모니불은 그 일곱째이시다.
대가섭은 제팔, 아난은 제구,
말전지는 제십, 상나화수는 제십일
우바국다는 제십이, 제다가는 제십삼,
불타난제는 제십사, 불타밀다는 제십오,
협비구는 제십육, 부나사는 제십칠,
마명은 제십팔, 비라장자는 제십구,
용수는 제이십, 가나제바는 제이십일,
라후라는 제이십이, 승가나제는 제이십삼,
승가야사는 제이십사, 구마라타는 제이십오,
사야타는 제이십육, 바수반다는 제이십칠,
마나라는 제이십팔, 학륵나는 제이십구,
사자비구는 제삼십, 사나바사는 제삼십일,
우바굴은 제삼십이, 승가라는 제삼십삼,
수바밀다는 제삼십사,
남천축국 왕자 셋째 아들 보리달마는 제삼십오,
당나라 스님 혜가는 제삼십육, 승찬은 제삼십칠,
도신은 제삼십팔, 홍인은 제삼십구,
나 혜능이 지금 법을 받은 것은 제 사십대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서로서로 전수하여 모름지기 의지하고 믿어서 종지를 잃지 말라."
31. 眞佛 - 참 부처님
법해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이제 가시면 무슨 법을 부촉하여 남기시어, 뒷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부처님을 보게 하시렵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들어라. 뒷세상의 미혹한 사람이 중생을 알면 곧 능히 부처를 볼 것이다. 만약 중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토록 부처를 찾아도 보지 못하리라. 내가 지금 너희로 하여금 중생을 알아 부처를 보게 하려고 다시 '참 부처를 보는 해탈의 노래'를 남기리니, 미혹하면 부처를 보지 못하고 깨친 이는 곧 보느니라."
"법해는 듣기를 바라오며 대대로 유전하여 세세생생에 끊어지지 않게 하리이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들어라. 내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여 주리라.
만약 뒷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할진대는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라. 그러면 곧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 곧 중생이 있음을 인연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의 마음이 없느니라(離衆生無佛心).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중생이 부처이며
우치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이니라.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
만약 한 생각 깨쳐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문인들은 잘 있거라. 내가 게송 하나를 남기리니 '자성진불해탈송(自性眞佛解脫頌)'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뒷세상에 미혹한 사람이 이 게송의 뜻을 들으면 곧 자기의 마음, 자기 성품의 참 부처를 보리라. 너희에게 이 게송을 주면서 내 너희와 작별하리라."
게송을 말씀하셨다.
진여(眞如)의 깨끗한 성품(淨性)이 참 부처(眞佛)요
삿된 견해의 삼독(三毒)이 곧 참 마군이니라.
삿된 생각 가진 사람은 마군이가 집에 있고,
바른 생각 가진 사람은 부처가 곧 찾아오는도다.
성품 가운데서 삿된 생각인 삼독이 나나니,
곧 마왕이 와서 집에 살고
바른 생각이 삼독의 마음을 스스로 없애면
마군이 변하여 부처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도다.
화신(化身)과 보신(報身)과 정신(淨身)이여,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니
만약 자신에게서 스스로 보는 것을 쁹는다면
곧 부처님의 깨달음을 성취한 씨앗이니라.
본래 화신으로부터 깨끗한 성품 나는지라.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속에 있고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 없도다.
음욕의 성품은 본래 몸의 깨끗한 씨앗이니,
음욕을 없애고는 깨끗한 성품의 몸이 없다.
다만 성품 가운데 있는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여의면
찰나에 성품을 보나니, 그것이 곧 참이로다.
만약 금생에 돈교(頓敎)의 법문을 깨치면
곧 눈앞에 세존을 보려니와
만약 수행하여 부처를 찾는다고 할진대는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도다.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다면
그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니라.
스스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가서 찾음이 모두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돈교의 법문을 이제 남겼나니
세상 사람을 구제하고 모름지기 스스로 닦으라.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에게 알리노니,
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부질없으리로다.
32. 滅道 - 멸도
대사께서 게송을 말씀해 마치시고 드디어 문인들에게 알리셨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며, 상복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며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내가 살아 있던 날과 한가지로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어서 탄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큰 도이니라.
내가 떠난 뒤에 오직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던 날과 한가지일 것이나, 내가 만약 세상에 있더라도 너희가 가르치는 법을 어기면 내가 있은들 이익이 없느니라."
대사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밤 삼경에 이르러 문득 돌아가시니,
대사의 춘추는 일흔 여섯이었다.
33. 後記 - 후기
이 <단경>은 상좌인 법해스님이 모은 것이다. 법해스님이 돌아가니 같이 배운 도제(道 )스님에게 부촉하였고, 도제스님이 돌아가니 문인 오진(悟眞) 스님에게 부촉하였는데, 오진스님은 영남 조계산 법흥사에서 지금 이 법을 전수하니라.
만약 이 법을 부촉할진대는 모름지기 상근기의 지혜라야 하며,
마음으로 불법을 믿어 큰 자비를 세우고 이 경을 지니고 읽어 의지를 삼아 이어받아서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다.
법해스님은 본래 소주 곡강현 사람이다. 여래께서 열반하시고 법의 가르침이 동쪽 땅으로 흘러서 머무름이 없음을 함께 전하니, 곧 나의 마음이 머무름이 없음이로다.
이 진정한 보살이 참된 종취를 설하고 진실한 비유를 행하여 오직 큰 지혜의 사람만을 가르치나니, 이것이 뜻의 의지하는 바이다.
무릇 제도하기를 서원하고 수행하고 수행하되, 어려움을 만나서는 물러서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서도 능히 참아 복과 덕이 깊고 두터워야만 바야흐로 이 법을 전할 것이다. 만약 근성이 감내하지 못하고 재량이 좋지 못하면 모름지기 이 법을 구하더라도 법을 어긴 덕 없는 이에게는 망령되이 <단경>을 부촉하지 말 것이니, 도를 같이 하는 모든 이에게 알려 비밀한 뜻을 알게 하노라.
선지식아, 보리반야(菩提般若)의 지혜는 세간 사람이 다 본래부 터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인데 다만 마음이 미혹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할 따름이니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가르침과 인도함을 빌어서 견성하여야 하느니라.
마땅히 알라. 어리석은 자와 지혜있는 사람이 불성에는 본래로 차별이 없는 것이요, 다만 미혹 함과 깨친 것이 다를 뿐이라. 이 까닭에 어리석음도 있고 슬기로움도 있는 것이니라. 내 이제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여 너희들로 하여금 각기 지혜 를 얻게 하리니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하여 설하리라.
선지식아, 세상 사람이 입으로는 종일 반야(般若)를 외우나 자성 반야를 알지 못하니 말로만 음식 이야기를 아무리 하여도 배부를 수 없는 것과 같아서 다만 입으로만 공을 말한다면 만겁을 지내더 라도 견성하지 못하리니 마침 내 아무 이익이 없느니라. 선지식아,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은 이것이 범어이니 여기 말로는 큰 지혜로 피안에 이르렀다는 말이니라. 이는 모름지기 마음에서 행하는 것이요 입으로 외우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니, 입으 로 외우더라도 마음에서 행하지 않는다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 와도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아서 실이 없으니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한다면 곧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할 것이니라. 본 성품 이것이 불(佛)이니 성품을 떠나서는 따로 부처가 없느니라.
다음에 어떤 것을 마하(摩訶)라고 하는가? <마하>는 크다는 말이니 심량 광대하여 마치 허공과도 같아서 가이 없으며, 또한 모나거나 둥글거나 크고 작은 것이 없으며, 청, 황, 적, 백 등 빛깔 도 없으며, 위 아래도 길고 짧음도 없으며, 성날것도 기쁠것도 옳은것도 그른것도 없으며, 착한 것도 악한것도 없으며, 머리도 꼬리도 없으니 제불의 국토도 또한 이와 같이 다 허공과 같으니라. 세 간 사람의 묘한 성품도 본래 공하여 가이 한 법도 얻을 수 없으니 자상이 참으로 공함이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아, 내가 지금 공(空)을 설하는 것을 듣고 공에 집착하지 않도록 하라. 만약 마음을 비워 고요히 앉는다면 곧 무기공(無記 空)에 떨어지리라. 선지식아, 세계 허공이 능히 만물과 색상을 갈 무리고 있어 일월성숙과 산하 대지와 샘이나, 물골이나 또한 개 울이나 초목 총림과 악인, 선인, 악법, 선법, 천당, 지옥이며, 일체 대해와 수미제산이 허공 가운데 있는 것과 같이 세인의 성품이 공한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선지식아, 자성이 능히 만법을 머금고 있는 것이 이것이 큰 것이 니, 만법이 모든 사람의 성품중에 있느니라. 만약 모든 사람이 하는 일에 선이나 악을 볼 때 모두를 취하지 않고 버리지도 않으며, 또한 물들거나 집착하지도 아니하며 마음이 마치 저 허공과 같은 것을 이름하여 크다하는 것이니, 이 까닭에 <마하>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만 말하고 지혜있는 사람은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또한 미혹한 사람이 있어 마음을 비우고 고요히 앉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스스로 큰것이라고 일 컫는다면 이러한 무리와는 더불어 말조차 하지 말라. 지견이 삿 되기 때문이니라.
선지식아, 심량이 광대하여 법계에 두루하니 작용을 하면 요요 분명하여 응용함에 곧 일체가 하나요, 하나가 곧 일체여서 거래에 자유로와 심체가 막힘이 없는 것이 이것이 반야이니라.
선지식아, 일체의 반야지는 모두가 자성에서 나는것이요,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니 그릇 생각하지 않는 것을 참성품을 스스로 쓴다 하는 것이니라. 하나가 참되매 일체가 참되느니라. 마음은 큰일을 헤아리나 작은 도행도 행하지 않으며, 입으로는 종일 공을 말하면서 마음에 이행을 닦지 않는 그런일을 하지 말지니 이는 흡사 범인이 국왕을 지칭하는 것과 같아서 아무 소용없나니 이런 자는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선지식아, 무엇을 <반야>라 할 것인가? 반야라함은 여기 말로 지혜니라. 일체처 일체시에 생각생각이 어리석지 아니하여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이 곧 반야행이니라.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어짐이요, 한 생각이 슬기로우면 곧 반야가 나는 것이니 라.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혹하여 반야는 보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반야를 말하며, 마음 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 말하기는 항상 내가 반야를 닦는다고 하며 생각생각마다 공을 말하니 진공(眞空) 은 알지 못하니라.
반야는 형상이 없는 것이라 지혜심이 바로 이것이니 만약 이와같 이 알면 곧 반야라 할 것이니라. <바라밀>이란 무엇일까? 이는 서쪽나라 말이니 여기 말로는 피안에 이르렀다는 말이라, 생멸을 여의었다는 뜻이니라. 경계를 집착하면 생멸이 이(生)나니 이는 물에 물결이 이는 것과 같아서 이것이 곧 언덕이요, 경계를 여의면 생멸이 없나니 이는 물이 항상 자유로이 통해 흐르는 것과 같아서 이것이 곧 피안이 됨이라. 그러므로 바라밀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아,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만 외우므로 외우고 있을 때는 망(妄)도있고 비(非)도 있지만 만약 생각생각마다 행하면 이것이 곧 진성이니라.
이법을 깨달으면 이것이 반야법이요, 이 행을 닦으면 이것이 반 야행이라. 닦지 않으면 즉 범부요, 일념으로 수행하면 자신이 불 (佛)과 같으니라.
선지식아, 범부가 곧 불이요, 번뇌가 곧 보리(菩提)니 전념(前念) 이 미혹하면 즉 범부요, 후념(後念)이 깨달으면 즉 불이라. 전념이 경계에 집착하면 번뇌가 되고, 후념이 경계를 여의면 즉시 보리니라.
선지식아, 마하반야바라밀이 가장 높고 가장 위이며 가장 으뜸이니, 현재도 없고 과거도 없으며, 또한 미래도 없으니 삼세제불이 이 가운데서 나오느니라. 마땅히 대지혜를 써서 오온 번뇌 망상을 타파하라. 이와 같이 수행하면 진정으로 불도를 이루리니, 삼독이 변하여 계, 정, 혜가 되느니라.
선지식아, 나의 이 법문은 한 반야로부터 8만4천의 지혜를 내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세간 사람이 8만4천의 번뇌가 있기 때문이니 만약 번뇌가 없으면 지혜가 항상 드러나 자성을 여의지 않느니 라.
이 법을 깨달은 자는 곧 생각도 없고 기억도 없고 집착도 없어서 거짓과 망령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스스로의 진여성(眞如性)을 써서 지혜로 일체 법을 관조하여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곧 견성이요 불도를 이룸이라. 선지식아, 만약에 깊은 법계와 반야 삼매에 들고자 하면 모름지기 반야행을 닦고 <금강반야경>을 지송하라. 곧 견성하리라. 마땅 히 알라. 이 공덕이 무량무변함을 경 가운데서 분명히 찬탄하셨으니 이를 다 말할 수 없느니라.
이 법문은 이것이 최상승이라, 큰 지혜있는 사람을 위하여 설한 것이며, 상근인을 위하여 설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지혜가 적고 근 기가 얕은 자는 이 법문을 들어도 마음에서 믿음이 나지 않느니라. 선지식아, 근기가 낮은 사람이 이 돈교법문(頓敎法門)을 들으면 마치 뿌리가 약한 초목이 큰 비를 맞으면 모두 다 쓰러져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근기가 낮은 사람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원래 반야지혜를 갖추고 있기는 큰 지혜있는 사람과 조금도 차별이 없느니, 어찌하여 법문을 듣고 스스로 개오 하지 못할까? 이는 사견과 중한 업장과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니, 마치 큰 구름이 해를 가리웠을 때 바람이 불지 않으면 햇빛이 드러나지 않는것과 같으니라.
반야의 지혜는 크고 작은 것이 없으니 일체중생의 마음 이 미(迷)와 오(悟)가 같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미혹하여 밖을 보고 수행하며 불을 찾으므로 자성은 보지 못하니 이것은 근기가 낮은 것이니라. 만약 돈교를 깨달아서 밖을 향하여 닦는 것을 고집하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 마음에서 정견을 일으켜서 항상 번뇌의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면 이것이 곧 견성이라.
선지식아, 안과 밖에 머물지 아니하고 가고 옴이 자유로와 능히 집착심을 버리면 일체에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리니 능히 이 행을 닦으면 <반야경>과 더불어 본래로 차별이 없으리라. 선지식아, 일체 수다라와 모든 문자인 대소이승(大小二乘) 의 12 부경이 사람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며, 지혜의 성품으로 말미암아 능히 건립된 것이니 만약 세간 사람이 없으면 일체 만법이 본래 사람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임을!
일체 경서도 사람을 위하여 설하게 되니 그 사람 가운데는 어리 석은 자도 있고 슬기로운 자도 있어서, 어리석은 자는 소인이라 하고 슬기로운 자는 대인이라 하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지혜있는 사람에게 묻고, 지혜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더불어 법을 설하므로 어리석은 사람이 홀연히 마음이 열려 깨치게 되면 곧 지혜있는 사람과 다를바가 없느니라.
선지식아, 깨닫지 못하면 불이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달을 때 중생이 곧 불이니라. 이 까닭에 알아라. 만법이 모두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자심 중에서 바로 진여본성을 보지 못하는가. <보살계경>에 이르기를 [나의 본원 자성이 본래 청정하니 만약 자심을 알면 견성이라. 모두가 불도를 이루리라]하였으며, 또 <정명경(淨名經)>에 이르기를 [즉시에 활연하면 또한 본심을 얻는 다.]하였느니라.
선지식아, 내가 인(忍)화상 회하에서 한 번 듣고 언하에 문득 깨달아 직하에 진여본성(眞如本性)을 보았으니 그러므로 이 교법을 널리 펴내려가 도를 배우는 자로 하여금 보리를 단번에 깨닫도록 하여 각기 스스로 마음을 보고 스스로 본성을 보게 하느니라. 만약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든 모름지기 최상승법을 아는 대선지식을 찾아서 바른 길의 가르침을 받아라. 이러한 선지식은 큰 인연이 있어서 이른바 중생을 교화하고 인도하여 견성토록 하나니 일체 선법은 모두 선지식으로 인하여 능히 일어나느니라.
삼세 제불의 12부경이 모든 사람의 성품 가운데에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으나 이를 능히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모름지기 선지식 의 가르침을 구하여야 바야흐로 보게 되려니와, 만약 스스로 깨친 자는 밖으로 구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만약 일향 모름지기 다른 선지식의 지시를 기다려 해탈을 바라볼 수 있다고 고집한다면 이도 또한 옳지 않으니 왜냐하면 자기 마음속에 선지식이 있어서 스스로 깨닫는 것인데 만약 삿되고 미혹한 마음을 일으켜 망념으로 전도하면 비록 밖으로 선지식의 가르침이 있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만약 바르고 참된 반야를 일으켜 관조한다면 찰나간에 망념이 모두 없어 지나니 만약 자성을 알아 한 번 깨달으면 단번에 불지에 이르리라.
선지식아, 지혜로 비추어보면 안과 밖이 사무쳐서 자기의 본심을 아느니라. 만약 본심을 알면 이것이 곧 본해탈이며, 해탈을 얻었으면 곧 그것이 반야삼매며 또한 이것이 무념이니라. 어찌하여 무념 이라 할까. 만약 일체법을 보더라도 마음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이 무념이라, 작용을 일으킨즉 일체처에 착하지 않으며, 다만 본심을 깨끗이 하여 육식(六識)으로 하여금 육문(六門)으로 나오더라도 육진중에 물들지 않고 섞이지도 아니하며 오고 감에 자유롭고 통용에 걸림이 없으니 이것이 즉시 반야삼매며 자재해탈이니 그 이름이 무념행이니라. 그러나 만약 아무 것도 생각지 아니하고 생각을 끊는다면 이것은 법박(法縛)이며 변견(邊見)이니라.
선지식아, 무념법을 깨달은 자는 만법에 걸림없이 통하며, 무념법을 깨달은 자는 제불 경계를 보며, 무념법을 깨달은 자는 불지위에 이르느니라. 선지식아, 뒷날 나의 법을 얻은 자가 이 돈교법문을 가지고 견해를 같이 하며, 행을 같이 하기로 원을 발하며, 받아 지니기를 부처님 섬기듯하며, 종신토록 물러서지 않는다면 결정코 성인 지위에 들리라. 그리고 나의 법을 얻은자는 모름지기 위로부터 내려오면서 말없이 분부하심을 모두 전수하여 정법을 숨김이 없이 하라. 그러나 만약 견해가 같지 않고 행이 같지 않아 다른 법에 있는 자이거든 법을 전하지 말라. 그의 앞 사람을 손해하고 마침내 아무런 이익이 없으리니 저 어리석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이 법문을 비방함으로써 백겁천생으로 부처 종자를 끊을까 두려우니라.
선지식아, 나에게 한 무상송이 있으니 모름지기 각기 외워지녀라. 재가인이든 출가인이든 다만 이에 의하여 닦아라. 만약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오직 내 말만 왼다면 또한 아무 이익이 없느니라. 나의 송(頌)을 들어라.
무애설법(無碍說法) 진여 마음 모두 통하니 태양이 허공에 있음과 같네
오직 견성하는 이 법 전하여 세간에 들어내어 사종(邪宗) 깸일세
법인즉 돈(頓)도 점(漸)도 없는 것인데 중생의 미오(迷悟)따라 늦고 빠르네.
성품보아 부처되는 이 수승한 문을 어리석은 무리들이 어찌 다 알까 ?
말로하면 만 가지로 벌어지지만 이치에 들어서면 모두가 하나
번뇌의 안개속 어두운 집안에 지혜의 밝은 태양 항상 빛나라.
사념(邪念)일 때 번뇌가 이는 것이며 정념이면 번뇌가 가시는지라.
사와정 모두 여의어 쓰이지 않을 때 생멸없는 청정지에 이르렀더라.
보리는 본래로 이 자성이니 마음을 일으킬 때 즉시 망(妄)이라.
정심(淨心)이란 망념 중에 있는 것이니 다만 정심(正心)이면 삼장(三障)이 없네.
세간 사람 만약에 수도 하는 데는 일체 세간사가 방해 안 되니
항상 스스로 제 허물 보면 도와 더불어 서로 맞으리.
일체중생 제각기 도가 있으니 서로서로 방해없고 괴로움 없으리.
만약에 도를 떠나 도를 찾으면 목숨은 다하여도 도는 못보리.
부질없이 바쁘게 일생 보내다 백발이 찾아드니 뉘우치누나.
만약에 참된 도를 보고자 하면 행이 바름이여 이것이 도니,
만약에 스스로 도심 없으면 어둠 속에 감이라 도는 못보리.
참되게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 사람 허물을 보지 않나니.
만약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면 도리어 제 허물이 저를 지내니
다른 사람 그르고 나는 옳다면 그르게 여김이 제 허물 되리.
다만 스스로 비심(悲心) 버리면 번뇌는 부서져 자취는 없고
밉고 곱고에 마음 안 두니 두 다리 쭉 펴고 편히 쉬도다.
만약에 다른 사람 교화하려면 모름지기 기틀 따라 방편을 써서
저들의 의심뭉치 버리게 하라. 즉시에 청정자성 드러나리라.
불법은 세간중에 있는 것이니 세간을 여의잖고 깨닫게 하라.
세간을 여의고서 보리 찾으면 흡사 토끼 뿔을 구함 같으니라.
정견은 세간에서 뛰쳐 남이요, 사견은 세간속에 파묻힘이라.
사와 정을 모두 다 쳐 물리치니 보리자성 완연히 드러나누나.
이 게송의 가르침이 바로 돈교며, 또한 이름하여 대법선(大法船)이니,
미(迷)하고 들으면 겁(劫)을 지내고 바로 들어 깨친 즉 찰나 사인고저.
달마어록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께서는 우리의 불성과 모든 덕성이 각성이란는 근원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명은 어떤 근원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수많은 집착과 정욕과 악을 지닌 무지한 마음, 즉 무명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의 세 가지 독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이 세 가지 독에 중독된 마음은 셀 수 없이 많은 악을 갖고 있는데, 마치 나무가 하나의 둥치에 수많은 잎과 가지를 갖고 있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세 가지 독은 수백만 개의 악을 만들어내어 나무의 예와 거의 같다.
세 가지 독은 우리의 여섯 가지 감각과 그 각각의 식에 물들어 있다. 그것들은 도 둑이라고 불리는데 감각의 문을 빠져나와 마구 다니면서 한없이 욕심은 내고 악에 탐 닉하고 위선의 가면까지 쓴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가 그것의 근원을 잘라 버린다면 그 강물은 곧 말라 버릴 것이 다. 만일 해탈을 추구하는 어떤 사람이 이 세 가지 독을 세 가지 진리로 바꾸고, 여 섯 도둑을 육바라밀로 바꾼다면, 그는 자신을 그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삼계와 존재계의 육도는 무한히 광대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마음을 지켜보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 끝없는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삼계의 업은 오직 마음에서 나온다. 만일 그대의 마음이 삼계 속에 있지 않다면 그 것은 삼계를 초월한 것이다.
"그러면 육도의 업은 어떻게 다릅니까"
참된 수행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먼 선행만 쌓는 사람은 삼계에 태어난다. 눈먼 사 람은 어리석게도 열 가지 선업을 쌓고도 행복을 추구하는 바람에 욕망의 세계에 신으 로 태어날 것이다. 오계를 지키고도 어리석게 애증에 몰두하는 눈면 사람은 분노의 세계에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눈이 멀어 현상의 세계에 집착하는 사람으은 거짓 된 가르침을 믿으며 축복받기를 원하는 바람에 미혹의 세계에 악마로 태어난다. 만일 그대가 자신의 마음을 주목해서 그것의 거짓과 악을 초월한다면 존재하는 데 서 오는 고통은 자유로워지면 그대는 진짜로 자유롭다.
"그러나 부처는 '삼 아승지겁 동안의 셀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그대는 깨 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께서는 어떤 연유로 단지 마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삼독심을 극복하고 해탈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의 말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 아승지겁은 바로 삼독심에 물든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범어로 아승지겁이란 말은 셀 수 없이 많다는 뜻이다. 이 삼독에 물든 마음 에서 셀 수 없는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모든 생각들은 영겁의 세월 동안 계속된다. 부처가 삼 아승지겁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무수히 많은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보살들은 삼학을 지키고 육바라밀을 행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었습니 다. 이제 당신께서는 제자들에게 단지 마음을 지켜보라고만 말씀하십니다. 수행의 법 칙을 따르지 않고서 누가 과연 깨달음에 이르겠습니까"
삼학은 삼독심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그대가 삼독을 극복했을 때 그대는 삼학의 한량없는 덕을 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선한 생각을 그대의 마 음을 통해서 일어나게 할 것이다. 육바라밀은 여섯 가지 감각을 청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바라밀이라고 부르는 것을 그대는 피안에 이르는 방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여섯 가지 감각에 낀 때를 벗겨 냄으로 해서 육바라밀은 그대를 번뇌의 강 을 건너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해 줄 것이다.
"경전에 따르면 삼학에 대해서 '나는 모든 덕을 행하겠다고 맹세한다. 나는 모든 악을 끝내겠다고 맹세한다. 나는 모든 중생을 해탈로 인도할 것을 맹세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께서는 삼학이 단지 삼독심을 잘 다스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경전의 뜻과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까"
부처의 경전은 진리이다. 그러나 오래 전 위대한 보살이 깨달음의 씨앗을 심고 그 것을 키울 때, 그가 세 가지 맹세를 한 것은 이 삼독심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모 든 덧을 행하겠다는 마말은 탐욕의 독을 없애기 위한 것이며, 모든 악행을 그치겠다 고 맹세한 것은 성냄의 독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모든 중생을 해탈로 인도ㅎ 것을 맹세한 것은 어리석음의 독을 다스리는 지혜를 닦기 위해서였다. 계, 정, 혜, 삼학을 지키는 것은 삼독심을 물리치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은 이 세 가지 독을 극복함으로써 그의 모든 죄업을 다 청산하고 악행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다. 그는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이로써 덕을 쌓는 것이다. 그리고 덕을 쌓음으 로써 악행을 끝내는 것은 곧 모든 수행을 완수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을 축복할 뿐 만 아니라 모든 중생을 구할 수 있다. 이리하여 그는 중생을 해탈시킨다.
그대가 닦는 수행이 그대의 마음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그대는 깨달아야 한다 만일 그대의 마음이 청정하다면 모든 불국토 또한 청정하다. 경에 이르기를 "그들의 마음이 불결하면 존재 역시 불결하다. 그들의 마음이 순수 하면 존재 역시 순수하다."라고 했다. 또 이르기를 "불국토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대 의 마음을 정화하라.그대의 마음이 정화됨에 따라서 불국토가 청정해진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삼독심을 이김으로써 계, 정, 혜 삼학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겅전에는 여섯 가지 바라밀이 보시,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께서는 감각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바라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리고 왜 그것들을 뗏목이라고 부릅니까" 바라밀을 닦고 여섯가지 감각을 순결하게 하는 것은 여섯 가지 도둑을 제압한다는 뜻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를 포기함으로써 시각의 도둑을 몰아내는 것이 곧 보시이다. 소리 에 귀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청각의 도둑을 막는 것이 지계이다. 모든 냄새에 중용을 취함으로써 후각의 도둑을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 인욕이다. 맛보고 칭찬하고 설명하 려근는 욕망을 정복함으로써 미각의 도둑을 평정하는 것이 정진이다. 감촉의 감각에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촉각의 도둑을 진압하는 것이 선정이다. 망상에 넘어가지 않고 깨어 있는 수행을 함으로써 마음의 도둑을 복종시키는 것이 지혜이다. 이 육바라밀은 운송수단이다. 나룻배나 뗏목처럼 그것들은 그대를 피안의 세계로 데려다 준다. 그래서 그것들 뗏목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석가모니께서는 보살이셨을 때, 그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 세 그릇의 우유 와 여섯 국자의 죽을 마셨습니다.만약 그가 불성의 열매를 맛볼 수 있기 전에 먼저 우유죽을 마셔야 했다면 어떻게 마음을 지켜보는 것으로만 해탈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말은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방법이다. 그는 부 처가 되기 전에 먼저 우유죽을 마셔야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우유죽이 있다. 석가모니가 마신 우유죽은 보통의 불결한 우유죽이 아니라 순수한 다르마의 우 유죽이다. 세 그릇이란 삼학을 말하는 것이며, 여섯 국자란 육바라밀을 뜻하는 것이 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가 불성의 열매를 맛본 것은 이 순수한 다르마 의 우유죽을 마셨기 때문이다. 여래께서 세속의 불결한 혼합물인, 썩은 냄새 나는 암소의 젖을 마셨다고 말하는 것은 그를 중상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더없이 진시 실하고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냉정한 다르마의 자아는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롭다. 그것의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불결한 우유죽을 마실 필요가 어 디 있겠는가
경에 일렀으되 "이 황소는 고원지대나 들판에 살지 않는다. 그것은 곡식이나 여물 을 먹지 않는다. 그것은 암소와 함께 풀을 뜯지도 않는다. 이 황소의 몸빛은 타오르 는 황금빛이다."라고 했다. 그 황소소는 비로자나불을 가리킨다. 모든 존재를 향한 그의 대자비심으로 인해서, 그는 해탈을 추구하는 모든 이에게 먹이기 위해 자신의 순결한 다르마의 몸속에서 삼학과 육바라밀의 숭고한 우유죽을 만들어 낸다. 진정으 로 순결한 그런 황소에게서 나온 순결한 우유죽이 여래로 하여금 불성을 성취하도록 만들었다. 그것을 마시는 자는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경전을 통들어서 부처는 중생들에게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좋은 일을 함으로써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좋은 일이란 절을 짓고, 불상을 조성하며, 햐을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며, 꺼지지 않는 등잔에 불을 밝히고, 하루에 여섯번씩 참선 을 하고, 탑을 돌며 단식을 하고, 예배를 드리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을 지켜보는 것 에 이 모든 수행이 다 들어 있다. 그때 이 모든 일들은 하나의 부수적인 일이 된다. 부처의 경전에는 셀 수 없는 비유들이 들어 있다. 그것은 중생이 마음의 표면만 곁 돌 뿐 깊숙한 것을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처는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서 그 오묘함을 나타내었다. 내면의 수행 대신 외부적인 일에만 집중하면서 축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그대들이 절이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는 상가라마, 즉 청정한 곳이라고 부른다. 그 러나 삼독심에 물들기를 거부하고 감각의 문을 청정하게 지키며 그의 몸과 마음을 고 요하게 가라앉히며 안과 밖으로 깨끗하게 하는 것이 절을 짓는 것이다. 불상을 조성하는 것 역시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모든 종류의 수행을 닦는 것에 해당된다.
그리고 향을 사르는 것은 물질적인 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다르마의 향이다. 무명과 악한 행위가 그 향내와 함께 멀리 사라질 것이다. 부처가 세상에 있을 때, 그는 제자들에게 그런 귀한 향에 깨어 있음의 불을 불이라 고 말했다. 그것은 십방의 모든 부처를 공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 늘날 여래의 진실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백단향이나 유향으로 만든 물질적 인 향에 불을 붙이고, 오지도 않을 미래의 축복을 빌고 있다. 미덕의 꽃을 뿌리는 것 역시 같은 진리를 지니고 있다. 그거은 다르마를 말하는 것 에 해당되며 다른 사람들의 축복을 빌어 주는 것이며 진아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다.
만약 그대가 여래는 자기를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꽃을 꺾어 식물에 해를 끼치도록 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여래의 가르침을 잘 지켜나가는 사람 은 천상과 이 ┯에서 어떤 생명의 모습도 해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실수로 어떤 생명을 해쳤다면 그대는 그 댓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계를 어기고 앞날의 복을 받기 위해서 생명을 해치는 자는 더욱 큰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어떻게 축복을 슬픔으로 바꾸려고 하는가 꺼지지 않는 등불을 완전한 깨어 있음을 나타낸다. 오래 전에 연등불이라고 하는 부처가 있었다. 그 이름의 뜻은 그의 양미간에 있는 한 터럭에서 나온 빛이 무수한 세계를 비출 수 있다고 하는 뜻이다. 그러니 기름 등 잔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루에 여섯 번 참선하는 것은 여섯 가지 감각을 다스리라는 뜻이다. 탑 주위를 도는 것은 곧 탑이 그대의 몸과 마음이다. 그대의 깨어 있음이 멈추지 않고 몸과 마음의 주위를 돌 때 그것을 곧 탑돌이라고 부른다. 단식을 하는 것도 같은 진리를 담고 있다. 단식을 하는 것은 그대의 몸과 마음이 흩어지거나 방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한번 그대가 미혹의 음식 먹기를 멈 춘 뒤에 그대가 그것을 다시 만진다면 그것은 단식을 깨뜨리는 것이다. 한번 그대가 그것을 깨뜨리고나면 그대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축복도 받지 못한다. 이 세상은 망상에 사로잡혀 이러한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다.그 들은 몸과 마음을 모든 형태의 악에 물들게 한다. 그들은 정욕에 마음껏 탐닉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든다. 그리고 그들이 일상의 음식 먹기를 그만두고는 그것을 단식이 라고 부른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방편을 이해하고 인연을 맞추어야 한다. 방편에는 행 동하는 것과 행동하지 않는 무위를 모두 갖추고 있다. 예배란 존경과 겸양을 의미한 다. 그것은 그대의 진아에 대해 존경하는 것이고 미혹됨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악한 욕망을 몰아내고 선한 생각에 머무르면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더라 도 그것은 바로 예배가 된다.
이 내적인 의미를 키우지 않고 대신에 외적인 표현에 몰두하는 사람은 자신을 쓸모 없이 소모시키면서도 무지와 증오와 악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그럴듯한 자세로 나남을 속이고 성현 앞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중생 앞에서 우쭐거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공덕도 쌓을 수 없을 뿐더러 결코 윤회의 바 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욕장경에는 '승려들을 목욕시키는 공덕은 무한한 축복을 받으리라.'고 나 와 있습니다. 이 말은 외부적인 덕행이 깨닫는 데 보탬이 된다는 예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마음을 지켜보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승려들의 목욕이란 말은 육체를 씻는다는 뜻이 아니다. 부처가 욕장경을 설법할 때 그는 제자들이 다르마를 갈고 닦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그래서 그는 매일 진리의 참뜻을 찾는 행위를 목욕에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 욕장이란 육채체를 말한다. 그대는 지혜의 불을 때고 올바른 견해의 물을 데워서 그대 속에 있는 참된 불성을 깨끗이 닦아라. 그리고 일곱 가지 수행들을 잘 지킴으로 해서 그대는 덕을 쌓을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의 승려들은 밝은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부처의 참뜻을 이해했다. 그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랐고 그들의 덕 을 완성했으며 불성의 열매를 맛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그 경지를 헤아리지 못한다.
우리의 참된 불성은 모양이 없다. 그리고 집착의 때에도 모양이 없다. 그러니 어떻 게 사람들은 평범한 물로 보이지 않는 몸을 씻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언제 그것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 몸을 씻기 위해서는 그대가 그것을 지켜보아야 한다 한번 욕망으로부터 더러움과 불결함이 일어나면 그것들이 그대의 안과 밖을 모두 덮 어버릴 때까지 계속 생겨난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이 몸을 깨끗이 씻고자 한다면 그 대의 육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문질러도 안된다. 그러니 그대는 욕장경에서 부처가 한 말이 어떤 외부적인 것을 닦음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경전에는 사람이 전심으로 부처를 부르면 그가 죽은 뒤에 서방정토에 태어날 것이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이 불성으로 들어가는 문일진대 왜 마음을 지텨봄으로써 해탈을 구하고자 합니까"
부처는 깨어 있음을 말했다. 몸과 마음이 깨어 있을 때 거기에서 어떤 악도 일어날 수가 없다. 부처를 부르는 것이란 그대의 마음을 부르며, 그 마음으로 하여금 수행의 법칙을 따르고 그것을 계속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
부처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는 그대는 다르마를 이해해야 한다. 그대의 마음이 따 르지 않는다면 그대의 입은 공허한 이름만 부르는 것이다. 그대가 아집과 삼독심으 로 고통을 받는 한 그대의 더럽혀진 마음은 그대로 하여금 부처를 볼 수 없게 할 것 이다. 만약 그대가 모양에 집착한다면 그 의미를 찾더라도 그대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과거의 성현들은 말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살피는 수행을 했다 이 마음은 모든 덕의 근원이다. 또한 이 마음은 모든 힘의 으뜸이다. 열반의 여웅 열반의 영원한 축복이 마음이 쉬는 데서 나온다. 삼계에 태어나는 윤회도 이 마음에 서 비롯되는 것이다. 마음은 모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또한 마음은 피안에 닿아 있는 여울이다.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는 그것에 어떻게 이를까를 걱정하지 않 는다. 여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자는 건너가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요사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매우 피상적이다. 그들은 공덕을 생각할 때 형태를 가진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재산을 함부로 탕진하며 수륙의 생물들을 살생한 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에 즉시 집착한다. 만일 그대가 모양 없음에 대해서 말 한다면 그들은 귀머거리가 되어 넋을 잃고 앉아 있다. 현세의 작은 행복을 탐하 느라 그들은 곧 커다란 고통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헛된 수행을 하고 있 다. 진리를 외면하고 거짓을 좋아한다. 그들은 미래의 축복만 이야기한다.
만약 그대가 마음속에 있는 내면의 빛에 그저 집중해서 그 빛을 지켜볼 수만 있다 면,그대는 세 가지 독과 여섯 도둑을 한번에 몰아낼 수 있다. 그러면 수고로움 없이 그대는 무수한 덕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진리에 이르는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세속적인 것을 통해서 숭고함을 지켜보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짧다 깨달음은 바로 지금 일어난다. 왜 백발을 격정하고 있는가 그러나 진리의 문은 감추 어져 있고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오직 마음을 지켜봄으로써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 이제 달마어록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매일 한편씩 올리려던 나름의 계획이 일상이라는 핑계속에 묻힘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뛰어 다니는 흉내를 낸것 같아 부끄럽기가 한량이 없습니다. 단지 글을 올리면서 제 자신 공부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 조그마한 위안이라도 얻 을까 합니다.
또다시 인연이 있어 같이 나누고 싶은 글을 만나면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요. 도촌리 산골에서
권정호 합장
1.緣起說法門
大師唐時 初從南海上至曹溪 韶州刺史韋 等 請於大梵寺講堂中 爲衆開緣 授無相戒 說摩訶般若婆羅
蜜法 大師是日說頓敎法 直了自性無 普告僧俗 令言下覺悟本心現成佛道 座下僧尼道俗一千餘人 刺
史官僚等 三十餘人 儒宗學士三十餘人 同請大師說是法門 刺史韋 令門人法海抄錄流行 傳示後代
若承此宗旨 學道者遞相敎授 有所依憑耳
2.悟法傳衣
爾時 大師 卽升座已 而示重言 善知識 總淨心 念摩訶般若婆羅密 大師良久不語 自淨其心 忽然告言
善知識 菩提自性 本來淸淨 但用此心 直了成佛 善知識 且聽惠能 行由 得法事意 能 嚴父 本貫 范陽
左降 流于嶺南 作新州百姓 此身 不幸 父又早亡 老母孤遺 後來南海 艱辛貧乏 於市 賣柴 時 有一客
買柴 使令送至官店 客 收去 惠能得錢 却出門外 見一客 讀金剛經 惠能 一聞 心便開悟 (云應無所住
而生其心 心卽開悟) 遂聞客言 從何所來 持此經典 客云 我從 州黃梅縣東 母山來 其山是第五祖弘
忍大師 在彼主化 門人 一千有餘 我到彼山中 禮拜 聽受此經 大師 常勸僧俗 但持金剛經 卽自見性
直了成佛 惠能 聞說 宿昔有緣 乃蒙一客 取銀十兩與惠能 令充老母衣糧 敎便往黃梅 禮拜五祖 惠能
安置母畢 卽便辭親 不經三十餘日 便至黃梅 禮拜五祖
[三]師問曰 汝何方人 來到此山禮拜 今向吾邊 欲求何物. 惠能對云弟子是嶺南新州百姓 遠來禮師 惟
求作佛 不求餘物 五祖言 汝是嶺南人 又是 若爲堪作佛 惠能言 人雖有南北 佛性本無南北.
身與和尙不同 佛性有何差別. 大師更欲共惠能久語 且見徒衆 總在身邊 乃令隨衆作務 惠能啓和尙言
弟子自心 常生智慧 不離自性 卽時福田 未審和尙敎作何務 五祖言 這 根性太利. 汝更勿言 且去
後院. 有一行者 差惠能 破柴踏 八個餘月 五祖一日 忽見惠能言 吾思汝之見可用 恐有惡人害汝 遂
不與汝言 知之否 惠能言 弟子亦知師意 不敢行至堂前 令人不覺.
[四] 五祖一日喚諸門人 總來吾向汝說 世人生死大事 汝等終日供養 只求福田 不求出離生死苦海 自
性若迷 福何可求 汝等各去 自看智慧取自本心般若之性 各作一偈 來呈吾看 若悟大意 付汝衣法 爲第
六代祖 火急速去 不得遲滯 思量卽不中用. 見性之人 言下須見 若汝此者 輪刀上陣 亦得見之 (古德
云 譬如輪刀上陣 不問如何若何 此唯得底人 見機而作不在言句也)
[五]衆得處分 來至後院 遞相謂曰 我等衆人不須澄心用意作偈 將呈和尙 有何所益 神秀上座現爲敎授
師 必是他得 我輩 作偈頌 枉用心力 諸人聞語 總皆息心. 咸言 我等以後 依止秀師 何煩作偈 神秀
思惟 諸人不呈偈者 爲我與他爲敎授師 我須作偈 將呈和尙. 若不呈偈 和尙如何知我心中 見解深淺
我呈偈意 求法卽善 覓祖卽惡 却同凡心 奪其聖位 無別 若不呈偈 終不得法 大難大難
五祖堂前 有步廊三間 擬請供奉盧珍 畵楞伽經變相 及五祖血脈圖 流傳供養 神秀 作偈成已 數度欲呈
行至堂前 心中恍惚 偏體汗流 擬呈不得 前後經四日 一十三度 呈偈不得 秀乃思惟 不如向廊下書着
從他和尙看見 忽若道好 卽出禮拜云 是秀作 若道不堪 枉向山中數年受人禮拜 更修何道 言訖 夜至三
更 不使人知 自執燈燭 於南廊壁間 書無相偈 呈心所見 神秀偈曰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慝塵埃
秀書偈了 便却歸房 人總不知 神秀思惟 五祖明日見偈歡喜 出見和尙 卽言秀作 若言不堪 自是我迷
宿業障重 不合得法 聖意難測 房中思想 坐臥不安 直至五更
五祖卽知 神秀入門未得 不見自性 喫粥了 便卽天明 五祖方便喚盧供奉來 擬向南廊畵 五代血脈供養
五祖忽見其偈 報言供奉 却不畵也 輒奉十千 勞供奉遠來 金剛經云 凡所有相 皆是虛妄 不如留此偈
令迷人誦 依此偈修 免墮三惡道 依此修行人 大有利益 五祖喚門人 燒香偈前 令凡人見生敬重心 汝等
盡須誦此 悟此偈者 卽得見性 依此修行 必不墮落 門人盡誦 皆歎善哉. 五祖三更 喚修入堂問 是汝作
此偈否 若是汝作 應得吾法 修言罪過 實是秀作 亦不求祖位 望和尙慈悲 看弟子心中有少智慧否 五祖
言 汝作此偈 未見本性 只到門上 未入門內. 凡愚依此修行 卽不墮落. 如此見解 覓無上菩提 卽不可
得 無上菩提 須得言下識自本心 見自本性不生不滅 於一切時中 念念自見 萬法無滯 一眞一切眞 萬境
自如 如如之心 卽是眞實 若如是見者 卽是無上菩提之自性也 五祖言 汝且去 一兩日思惟 更作一偈將
來 吾看汝偈 若入得門 見自本性 付汝衣法 吾不惜法 汝見自遲 神秀作禮便出 又經數日 作偈不成 心
中恍惚 神思不安 猶如夢中 行坐不樂
輒(첩)-문득, 번번이 suddenly
[七]
復經兩日 有一童子於 坊過 倡誦其偈 惠能一聞 便知此偈未見本性 惠能未蒙敎授 早識大意 遂問童
子言 誦者是何偈 童子言 爾這 不知 大師言 世人生死事大 欲得傳付法衣 令門人 作偈來看 若悟
大意 卽付衣法 爲第六祖 神秀上座 於南廊壁上 書無相偈 五祖令門人盡誦 此偈 若得悟者 卽見自性
成佛 依此修行 卽不墮落 惠能言 上人 我在此踏 八個餘月 未曾行到堂前 望上人 引至偈前禮拜 亦
要誦此結來生緣 同生佛地 童子便引惠能到南廊 禮拜偈頌 爲不識字 請一上人 爲讀 若得聞之 願生佛
會 時有江州別駕 姓張 名日用 便高聲讀 惠能一聞 卽識大意 因自言 亦有一偈 望別駕書于壁上 別駕
言 汝亦作偈 其事稀有 惠能啓別駕言 若學無上菩提 不得輕於初學 俗諺云 下下人有上上智 上
上人有沒意智 若輕人 卽有無量無邊罪 張日用言 汝但誦偈 吾爲汝書于壁上 汝若得法 先須度吾 勿忘
此言 惠能偈云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有塵埃
說此偈已 僧俗總驚 山中徒衆 無不嗟訝 各相謂言 奇哉 不得以貌取人 何得多時使他肉身菩薩 五祖見
衆人盡怪 恐人損他 向後無人傳法 遂便混破 向衆人言 此偈 亦未見性 云何讚歎 衆便息心 皆言未了
各自歸房 更不讚歎
這(저) 여기, 이, 맞이하다, 낱낱, 갓갓
[八]
五祖夜至三更 喚惠能於堂內 以袈裟遮圍 不令人見 爲惠能說金剛經 恰至應無所住而生其心 言下便悟
一切萬法不離自性 惠能啓言和尙 何期自性本自淸淨 何期自性本不生滅 何期自性本自具足 何期自性
本無動搖 能生萬法 五祖知悟本性 乃報惠能言 不識本心 學法無益 若言下識自本心 見自本性 卽名丈
夫天人師佛 三更受法 人盡不知 便傳頓敎及衣鉢云 汝爲第六代祖 善自護念 廣度迷人 衣爲信稟 代代
相承 法卽以心傳心 皆令慈烏自解 自古佛佛唯傳本體 師師默付本心 令汝自見自悟 五祖言 自古傳法
命似懸絲 若住此間 有人害汝 汝須速去 惠能言 本是南中人 久不知此山路 如何出得江口 五祖言 吾
自送汝
[九]
其時領得衣鉢 三更便發南歸 五祖相送 直至九江驛邊 有一隻船子 五祖令惠能上船 五祖把 自搖 惠
能言 請和尙坐 弟子合搖 五祖言 只合是吾度汝 不可汝却度吾 無有是處 惠能言 弟子迷時 和尙須
度 今吾悟矣 過江搖 五祖言 度名雖一 用處不同 惠能生在邊方 語又不正 蒙師敎旨付法 今已得悟
卽合自性自度 五祖言 如是如是 但依此見 已後佛法大行矣 汝去後一年 吾卽前逝 五祖言 汝今好去
努力向南 五年勿說 佛法難起 已後行化 善誘迷人 若得心開 與吾無別 辭違已了 便發向南
[一十]
兩月中間 至大庾嶺 不知逐後數百人來 欲奪衣取法 來至半路 盡總却廻 唯一僧 俗姓陳 命惠明 先
是四品將軍 性行序惡 直至大庾嶺頭 及惠能 便還衣鉢 又不肯取 言我欲求法 不要其衣 惠能卽於嶺
頭 便傳正法 惠明聞法 言下心開 (祖爲明曰 不思善 不思惡 正與?時 如何是上座本來面目 明大悟)
惠能却令向北接人
[十一]
惠能後至曹溪 又被惡人尋逐 乃於四會縣避難 庚午年 常在獵人中 雖在獵中 時與獵人說法 至高宗朝
到廣州法性寺 値印宗法師講涅槃經 時有風吹幡動 一僧云幡動 一僧云風動 惠能云 非 動風東 人心
自動 印宗聞之 然
[십이]
惠能東山得法 辛苦受盡 命似懸絲 今日大衆同會得聞 乃是過去千生 曾供養諸佛 方始得聞無上自性頓
敎 惠能與使君及官僚道俗有累劫之因 敎是先代聖傳 不是惠能自智 願聞先聖敎者 各令淨心 聞了各自
除疑如先代聖人無別 善知識 菩提般若之智 世人本自有之 只緣心迷 不能自悟 須求大善 知識示導見
性 善知識 愚人智人 佛性本無差別 只緣迷悟不同 所以有愚有智
3.爲時衆說定慧門
[십삼]
師言 善知識 我此法門 以定慧爲本 大衆勿迷言 定慧別 定慧一切不是二 定是慧體 慧是定用 卽慧之
時定在慧 卽定之時慧在定 若識此義 卽是定慧等學 諸學道人莫言 先定發慧 先慧發定各別 作此見者
法有二相 口說善語 心中不善 空有定慧 定慧不等 若心口俱善 內外一種 定慧卽等 自悟修行 不在於
諍 若諍先後 卽同迷人 不斷勝負 却增法我 不離四相
[십사] 善知識 一行三昧者 於一切處 行住坐臥 常行一直心 是也 如淨名經云 直心是道場 直心是淨
土 莫心是諂曲 口但說直 口說一行三昧 不行直心 但行直心 於一切法 勿有執着 迷人着法相 執一行
三昧 直言坐不同 妄不起心 卽是一行三昧 作此解者 卽同無情 却是障道因緣 善知識 道須通流 何以
却滯 心不住法 道卽流通 心若住法 名爲自縛 若言坐不同是 只如舍利弗宴坐林中 不合被維摩詰呵 善
知識 又見有人敎坐看心看淨 不同不起 從此置功 迷人不會 便執成顚 如此者衆矣 如是相敎 故知大錯
[십오] 善知識 定慧猶如何等 猶如燈光 有燈卽光 無燈不光 燈是光之體 光是燈之用 名雖有二 體本
同一 此定慧法 亦復如是
[십육] 善知識 本來正敎無有頓漸 人性自有利鈍 迷人漸契 悟人頓修 自識本心 自見本性 卽無差別
所以立頓漸之假名
[십칠] 善知識 我此法門 從上以來 先立無念爲宗 無相爲體 無相者 於相而離相 無念者 於念而不念
無住者 人之本性 於世間善惡好醜 乃至寃之與親 言語觸刺欺爭之時 幷將爲空 不思酬害 念念之中 不
思前境 若前念今念後念 念念相續不斷 名爲繫縛 於諸法上 念念不住 卽無縛也 此是以無住爲本 善知
識 外離一切相 名爲無相 能離於相 卽法體淸淨 此是以無相爲體 善知識 於諸境上 心不念曰無念 於
自念上 常離諸境 不於境上生心 若百物不思 念盡除却 一念絶卽死 別處受生 學道者思之 莫不識法意
自錯猶可 更勸他人 自迷不見 又謗佛經 所以立無念爲宗 善知識 云何立無念爲宗 只緣口說見性 迷人
於境上有念 念上便起邪見 一切塵勞妄想從此而生 自性本無一法可得 若有所得 妄說禍福 卽是塵勞邪
見 故此法門 立無念爲宗 善知識 無者無何事 念者念何物 無者無二相 無諸塵勞之心 念者念眞如本性
眞如卽是念之體 念卽是眞如之用眞如自性起念 非眼耳鼻舌能念 眞如有性 所以起念 眞如若無 眼耳色
聲 當時卽壞 善知識 眞如自性起念 六根雖有見聞覺知 不染萬境而眞性常自在 外能分別諸色相 內於
第一義而不動
[십팔]
善知識 此門坐禪 元不着心 亦不着淨 亦不是不同 若言着心 心元是妄 知心如幻 故無所着也 若言着
淨 人性本淨 由妄念故 蓋覆眞如 但元無想 性自淸淨 起心着淨 却生淨妄 妄無處所 着者是妄 淨無形
相 却立淨相 言是工夫 作此見者 障自本性 却被淨縛 善知識 若修不動者 但見一切人時 不見人之是
非 善惡過患 善知識 迷人身雖不同 開口便說他人是非 長短好惡 與道違背也 若着心着淨者 却障道
也.
4.敎授坐禪門
[十九]
師言 善知識 何名坐禪 此法門中 無障無 外於一切善惡境界 心念不起 名爲坐 內見自性不動 名爲
禪 善知識 何名禪定 外離相爲禪 內不亂爲定 外若着相 內心卽亂 外若離相 心卽不亂 本性自淨自定
只爲見境 思境卽亂 若見諸境 心不亂者 是眞定也 善知識 外離相卽禪 內不亂卽定 外禪內定 是爲禪
定 淨名經云 卽是豁然 還得本心 菩薩戒經云 我本元自性淸淨 善知識 於念念中 自見本性淸淨 自修
自行 自性佛道.
5.說傳香懺悔發願門
[이십]
師言 善知識 一會在此 皆共有緣 今各胡 傳自性五分法身香 一戒香 卽自心中 無非無惡 無嫉妬 無
貪瞋 無劫害 名戒香 二定香 卽覩諸善惡境相 卽心不亂 名定香 三慧香 自心無 常以智慧 觀照自
性 不造諸惡 雖修衆善 心不執着 畏上愛下 矜孤恤貧 名慧香 四解脫香 卽自心無所攀緣 不思善 不思
惡 自在無 名解脫香 五解脫知見香 自心卽無所攀緣善惡 不可沈空守寂 卽須廣學多聞 識自本心 達
諸佛理 言滿天下無口過 行滿天下無怨惡 和光接物 無我無人 直至菩提 眞成佛易 名解脫知見香
[이일]
善知識 此香各自內薰 莫於外覓 今與善知識 授無相懺悔 滅三世罪 令得三業淸淨 善知識 各隨語一時
道 弟子等 從前念今念後念 念念不被愚迷染 悉皆懺悔 願一時消滅 永不復起 弟子等 從前念今念及後
念 念念不被 ?染 從前所有惡業 ?等罪 悉皆懺悔 願一時消滅 永不復起 弟子等 從前念今念及後
念 念念不被嫉妬染 所有惡業嫉妬等罪 悉皆懺悔 願一時消滅 永不復起 善知識 已上是爲無相懺悔 云
何名懺 云何名悔 懺者 懺其前愆 從前所有惡業 愚迷 ?嫉妬等罪 悉皆盡懺 願不復起 是名爲懺 悔
者 悔其後過 從今已後 所有惡業 愚迷 ?嫉妬等罪 今已覺悟 悉皆永斷 不復更作 是名爲悔 古稱懺
悔 凡夫愚迷 只知懺其前愆 不知悔其後過 以不悔故 前愆不滅 後過又生 前愆卽不滅 後過復又生 何
名懺悔
愆(건)허물, 과실, 어그러지다, fault
[이이]
卽懺悔已 與善知識 發四弘誓願 各須用心正聽 自心邪迷無邊誓願度 自心煩惱無邊誓願斷 自性法門無
盡誓願學 自性無上佛道誓願成 師言 善知識 大家豈不道 衆生無邊誓願度 恁?道 不是惠能度善知識
心中衆生 所謂邪迷心 ?妄心 不善心 嫉妬心 惡毒心 如是等心 盡是衆生 各須自性自度 是名眞度 何
名自性自度 卽自心中邪見煩惱愚癡衆生 將正見道 卽有正見 使般若智打破愚癡迷妄衆生 各各自度 邪
來正度 迷來悟度 愚來智度 惡來善度 如是度者 名爲眞度 又煩惱無邊誓願斷 將自性般若智 除却虛妄
思想心 是也 又法門無盡誓願學 須自見性 常行正法 是名眞學 又無上佛道誓願成 卽常能下心 行於眞
正 離迷離覺 當生般若 除眞除妄 卽見佛性 卽言下佛道成 常念修行 是願力法
[이삼]
師言 善知識 今發四弘願了 更與善知識授無相三歸依戒 善知識 歸依覺二足尊 歸依正離欲尊 歸依淨
衆中尊 從今日去 稱覺爲師 更莫歸依邪魔外道 以自性三寶 常自證明 勸善知識 歸依自性三寶 佛者覺
也 法者正也 僧者淨也 自心歸依覺 邪迷不生 小欲知足 能離財色 名二足尊 自心歸依正 念念無邪見
以無邪見故 卽無人我貢高貪愛執着 名離欲尊 自心歸依淨 一切塵勞妄念雖在自性 皆不染着 名衆中尊
若修此行 是自歸依 凡夫不會 從日至日 受三歸依戒 若言歸依佛 佛在何處 若不見佛 憑何所歸 言却
成妄 善知識 各自觀察 莫錯用心 經文分明言自歸依佛 不言歸依他佛 自性佛歸 無所依處 今卽自悟
各須歸依自心三寶 內調心性 外敬他人 是自歸依也.
6.說一切三身佛相門
[이사]
師言 善知識 各各至心 惠能與說一切三身自性佛 令善知識見三身 了然自悟自性 總隨惠能道 於自色
身歸依淸淨法身佛 於自色身歸依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歸依圓滿報身佛 (已上三遍唱)
善知識 色身是舍宅 不可言歸向者 三身佛在自性中 世人總有 爲自心迷 不見內性 外覓三身如來 不見
自身中有三世佛 善知識 聽說 令善知識於自身中 見自性有三世佛 此三身佛 從自性生 不從外得 何名
淸淨法身 世人性本淸淨 萬法從自性生 思量一切惡事 卽生惡行 思量一切善事 卽生善行 如是諸法 在
自性中 如天常淸 日月常明 爲浮雲蓋覆 上明下暗 忽遇風吹雲散 上下俱明 萬象皆現 世人性常浮游
如彼天雲 善知識 智如日 慧如月 智慧常明 於外着境 被妄念浮雲蓋覆 自性不得明朗 若遇善知識 聞
眞正法 自除迷妄 內外明徹 於自性中 萬法皆現 見性之人 亦復如是 此名淸淨法身佛 善知識 自心歸
依自性 是歸依眞佛 自歸依者 除却自性中不善心 嫉妬心 驕慢心 吾我心 ?妄心 輕人心 慢他心 邪見
心 貢高心 及一切時中不善之行 常自見己過 不說他人好惡 是自歸依 常須下心 普行恭信 卽是見性通
達 更無滯碍 是自歸依 何名千百億化身 若不思萬法 性本如空 一念思量 名爲變化 思量惡事 化爲地
獄 思量善事 化爲天堂 毒害化爲龍蛇 慈悲化爲菩薩 智慧化爲上界 愚癡化爲下方 自性變化心多 迷人
不能省覺 念念起惡 常行惡道 廻一念善 智慧卽生 此名自性化身佛 何名圓滿報身 譬如一燈能除千年
闇 一智能滅萬年愚 莫思向前 已過不可得 常思於後 念念圓明 自見本性 善惡雖殊 本性無二 無二之
性 名爲實性 於實性中 不染善惡 此名圓滿報身佛 師又言 自性起一念惡 滅萬劫善因 自性起一念善
得恒沙惡盡 直至無常 念念自見 不失本念 名爲報身 善知識 從法身思量 卽是化身佛 念念自性自見
卽是報身佛 自悟自修自性功德 是眞歸依 皮肉是色身 色身是宅舍 不言歸依也 但悟自性三身 卽識自
性大意
육조단경권하
7. 說摩訶般若婆羅密門
[이오]
師言 善知識 卽識三身佛了 更爲說摩訶般若婆羅密法 各各至心諦聽 世人終日口念 不識自性 猶如誦
食不飽 口但說空 萬劫不得見性 終無有益 善知識 摩訶般若婆羅密是梵語 此言大智慧到彼岸 此須心
行 不在口念 口念心不行 如幻如化 如露如電 口念心行 卽心口相應 本性是佛 離性無別佛 何名摩訶
摩訶是大 心量廣大 猶如虛空 無有邊畔 亦無方圓大小 亦非靑黃赤白 亦無上下長短 亦無瞋無喜 無是
無非 無善無惡 無有頭尾 諸佛刹土 盡同虛空 世人妙性本空 無有一法可得 自性眞空 亦復如是 善知
識 今聞惠能說空 便卽着空 第一莫着空 若空心靜坐 卽落無記空 終不成佛法 善知識 世界虛空 能含
萬物色象 日月星宿 山河泉源溪澗 一切樹木 惡人善人 惡法善法 天堂地獄 一切大海 須彌諸山 總在
空中 世人性空 亦復如是 善知識 自性能含萬法是大 萬法在善知識性中 若見一切人惡之與善 盡皆不
取不捨 亦不染着 心如虛空 名爲爲大 故曰摩訶 善知識 迷人口說 智者心行 又有迷人 空心靜坐 百無
所思 自稱爲大 此一輩人 不可共說 爲邪見故 善知識 心量廣大 廓周法界 用卽了了分明 應用便知一
切 一切卽一 一卽一切 去來自由 心體無滯 此卽是 善知識 一切般若智 皆從自性而生 不從外入 莫錯
用意 名爲眞性自用 一眞一切眞 心量大事 不行小道 口莫終日說空 心中不修此行 恰似凡人自稱國王
終不可得 非吾弟子
[이육]
善知識 何名般若 般若是智慧也 一切處所 一切時中 念念不愚 常行智慧 卽是般若行 一念愚卽般若絶
一念智卽般若生 世人愚迷 不見般若 口說般若 心中常愚 自言我修般若 念念說空 不識眞空 般若無形
相 智慧心卽是 若作如是解 卽名般若智 何名婆羅密 此是西國語 此言到彼岸 解義離生滅 着境生滅起
如水有波浪 卽是於彼岸 離境無生滅 如水常通流 卽名爲彼岸 故 婆羅密 善知識 迷人口念 當念之時
有妄有罪 念念若行 是名眞性 悟此法者 是般若法 修此行者 是般若行 不修卽凡 一念修行 法身等佛
善知識 凡夫卽佛 煩惱卽菩提 前念迷卽凡夫 後念悟卽佛 前念着境卽煩惱 後念離境卽菩提 善知識 摩
訶般若婆羅密 最尊最上最第一 無住無往無來 三世諸佛皆從中出 當用大智慧 打破五蘊煩惱塵勞 若此
修行 定成佛道 變三毒爲戒定慧 善知識 我此法門 從一般若 生八萬四千智慧 何以故 爲世人有八萬四
千塵勞 若無塵勞 智慧常現 不離自性 悟此法者 卽是無念無憶無着 不起?妄 用自眞如性 以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是見性成佛道
[이칠]
善知識 若欲入甚深法界 及般若三昧者 須修般若行 持誦金剛般若經 卽得見性 當知此功德無量無邊
經中分明讚歎 不能具說 此法門是最上乘 爲大智人說 爲上根人說 小根小智人聞 心生不信 何以故 譬
如大龍下雨於閻浮提 城邑聚落 悉皆漂流 如漂棗葉 若雨大海 不增不滅 若大乘人 若最上乘人 聞說金
剛經 心開悟解 故知 本性自有般若之智 自用智慧 常觀照故 不假文字 譬如雨水 不從天有 元是龍能
興致 令一切衆生 一切草木 有情無情 悉皆蒙潤 諸水衆流 却入大海 合爲一切 衆生本性般若之智 亦
復如是 善知識 小根之人 聞此頓敎 猶如草木根性自小 若被大雨 悉皆自倒 不能增長 小根之人 亦復
如是 元有般若之智 如大智人更無差別 因何聞法 不自開悟 緣邪見障重 煩惱根深 猶如大雲覆蓋於日
不得風吹 日光不現 般若之智 亦無大小 爲一切衆生自心迷悟不同 迷心外見 修行覓佛 迷悟自性 卽是
小根 若開悟頓敎 不執外修 但於自心 常起正見 煩惱塵勞 常不能染 卽是見性 善知識 內外不住 去來
自由 能除執心 通達無碍 能修此行 如般若經 本無差別 善知識 一切經書 及諸文字 大小二乘 十二部
經 皆因人置 因智慧性 方能建立 若無世人 一切萬法 本自不有 故知萬法本因人興 一切經書 因人說
有 緣其人中有愚有智 愚爲小人 智爲大人 愚者問於智人 智者如愚人說法 令其悟解心開 愚人忽悟解
心開 卽與智人無別 善知識 不悟卽佛是衆生 一念悟時 衆生是佛 故知萬法盡在自心 何不從自心中 頓
見眞如本性 菩薩戒經云 我本元自性淸淨 若識自心見性 皆成佛道 淨名經云 卽是豁然 還得本心
[이팔]
善知識 我於忍和尙處 一聞言下便悟 頓見眞如本性 是以將此敎法流行 令學道者 頓悟菩提 各自觀心
自見本性 若自不悟 須覓大善知識解最上乘法者 直示正路 是善知識有大因緣 所謂化導 令得見性 一
切善法 因善知識 能發起故 三世諸佛 十二部經 在人性中 本自具有 不能自悟 須求善知識示導方見
若自悟者 不假外求 若須要善知識 望得解脫者 無有是處 何以故 自心內有知識自悟 若起邪迷 妄念顚
倒 外善知識雖有敎授 救不可得 若起正眞般若觀照 一刹那間 妄念俱滅 若識自性 一悟卽至佛地 善知
識 智慧觀照 內外明徹 識自本心 若識本心 卽本解脫 若得解脫 卽是般若三昧 卽是無念 何名無念 若
見一切法 心不染着 是爲無念 用卽遍一切處 亦不着一切處 但淨本心 使六識從六門走出 於六塵中 無
染無雜 來去自由 通同無滯 卽是般若三昧 自在解脫 名無念行 若百物不思 常令念絶 卽是法縛 卽名
邊見 善知識 悟無念法者 萬法盡通 悟無念法者 見諸佛境界 悟無念法者 至佛位地 善知識 後代得吾
法者 常見吾法身 不離汝左右 善知識 將此頓敎法門 於同見同行 發願受持 如事佛故 終身而不退者
欲入聖位 然須傳授 從上以來 默傳分付 不得匿其正法 若不同見同行 在別法中 不得傳付 損彼前人
究竟無益 恐愚人不解 謗此法門 百劫千生 斷佛種性
[이구]
善知識 吾有一無相頌 若能誦取 言下令汝迷罪消滅 頌曰,
迷人修福不修道 只言修福便是道
布施供養福無邊 心中三惡元來造
擬將修福欲滅罪 後世得福罪還在
但向心中諸罪緣 各自性中眞懺悔
忽悟大乘眞懺悔 除邪行正卽無罪
學道常於自性觀 卽與諸佛同一類
五祖惟傳此頓法 普願見性同一體
若欲當來覓法身 離諸法相心中洗
努力自見莫悠悠 後念忽絶一世休
若悟大乘得見性 虔恭合掌至心求
師言 今於大梵寺中 說此頓敎 普願法界衆生 於此言下見性成佛 師說法了 韋使君與官員道俗 一時作
禮 無不悟者 皆歎 善哉 何期嶺南有佛出世
8. 問答功德及西方相狀門
[삼영]
爾時韋使君 在肅容儀禮拜 問曰 弟子聞和尙說法 實不可思議 今有少疑 欲問和尙 願大慈悲特爲解說
師曰 有疑卽問 何須再三 韋公曰 和尙所說 可不是達磨大師宗旨乎 師曰 是 公曰 弟子聞 達磨初化梁
武帝 帝問云 朕一生造寺供僧布施設齊 有何功德 達磨言 實無功德 武帝 怏不稱本情 遂令達磨出境
弟子未達此理 願和尙爲說 達磨意旨如何 師曰 實無功德 勿疑先聖之言 武帝心邪 不知正法 造寺供養
布施設齋 名爲求福 不可將福便爲功德 功德在法身中 不在修福 師又曰 見性是功 平等是德 念念無滯
常見本性 眞實妙用 名爲功德 外行於禮是功 內心謙下是德 自性建立萬法是功 心體離念是德 不離自
性是功 應用無染是德 若覓功德法身 但依此作 是眞功德 若修功德之人 心卽不輕 常行普敬也 師曰
心常輕人 吾我不斷 卽自無功 自性虛妄不實 卽自無德 爲吾我自大 常輕一切故 善知識 念念無間是功
心行平直是德 自修身是功 自修性是德 善知識 功德須自性內見 不是布施供養之所求也 是以福德與功
德別 武帝不識眞理 非我祖師有過
[삼일]
又問 弟子常見 僧俗念阿彌陀佛 願生西方 請和尙說 得生彼否 願爲破疑 師言 使君善聽 惠能與說 世
尊在舍衛城中 說西方引化 經文分明 去此不遠 若論相說理 卽有十萬八千 若說身中 十惡八邪便是 說
遠爲其下根 說近爲其上智 人有兩種 法無兩般 迷悟有殊 見有遲疾 迷人念佛 求生於彼 悟人自淨其心
所以佛言 隨其心淨 卽佛土淨 使君 東方人但心淨卽無罪 雖西方人 心不淨亦有愆 東方人造罪 念佛求
生西方 西方人造罪 念佛求生何國 凡愚不了自性 不識身中淨土 願東願西 悟人在處一般 所以佛言 隨
所住處 常安常樂 使君 心地但無不善 西方去此不遙 若懷不善之心 念佛往生難到 今勸善知識 先除十
惡 卽行十萬 後除八邪 乃過八千 念念見性 常行平直 到如彈指 便覩彌陀 使君 但行十善 何須更願往
生 不斷十惡之心 何佛卽來迎請 若悟無生頓法 見西方只在刹那 不悟念佛求生 路遙如何得達 惠能如
諸人 移西方如刹那間 目前便見 各願見否 皆頂禮言 若此處見 何須更願往生 願和尙慈悲 便現西方
普願得見 師言 大衆 世人自色身是城 眼耳鼻舌是門 外有五門 內有意門 心是地 性是王 王居心地上
性在王在 性去王無 性在身心存 性居心身壞 佛向性中作 莫向身外求 自性迷卽是衆生 自性覺卽是佛
慈悲卽是觀音 喜捨名爲勢至 能淨卽釋迦 平直卽彌陀 人我卽須彌 邪心是海水 煩惱是波浪 毒害是毒
龍 虛妄是鬼神 塵勞是魚鼈 貪瞋是地獄 愚癡是畜生 善知識 常行十善 天堂便至 除人我 須彌倒 無邪
心 海水竭 煩惱無 波浪滅 毒害除 魚龍絶 自心地上覺性如來 放大光明 外照六門淸淨 能破六欲諸天
自性內照 三毒卽除 地獄等罪 一時消散 內外明徹 不異西方 不作此修 如何到彼 大衆聞說 俱歎善哉
但是迷人 了然見性 悉皆解脫 唯言 普願法界衆生 聞者一時悟解
[삼이]
師言 善知識 若欲修行 在家亦得 不由在寺 在家能行 如東方人心善 在寺不修 如西方人心惡 但心淸
淨 卽是自性西方 韋公又問 在家如何修行 願爲敎授 師言 吾與大衆作無相頌 但依此修 常與吾同處無
別 若不依此行 雖在吾邊 如隔千里 頌曰
說通及心通 如日處虛空
惟傳見性法 出世破邪宗
法卽無頓漸 迷悟有遲疾
只此見性門 愚人不可悉
說卽雖萬般 合理還歸一
煩惱暗宅中 常須生慧日
邪來煩惱至 正來煩惱除
邪正俱不用 淸淨至無餘
菩提本自性 起心卽是妄 淨心在妄中 但正無三障 世人若修道 一切盡不妨 常自見己過 與道卽相當 色
類自有道 各不相妨惱 離道別覓道 終身不見道 派派度一生 到頭還自懊 欲得見眞道 行正卽是道 自若
無道心 闇行不見道 若眞修道人 不見世間過 若見他人非 自非却是左 他非我不非 我非自有過 但自却
非心 打除煩惱破 憎愛不關心 長伸兩脚臥 欲擬化他人 自須有方便 勿令彼有疑 卽是自性現 佛法在世
間 不離世間覺 離世覓菩提 恰如求兎角 正見名出世 邪見是世間 邪正盡打却 菩提性宛然 此頌是頓敎
亦名大法船 迷聞經累劫 悟卽刹那間
師言 善知識 總須誦取 依偈修行 言下見性 雖去吾千里 如常在吾邊 於此言下不悟 卽對面千里 各各
自修 法不相待 衆人且散 吾歸曹溪 衆若有疑 却來相問 爲衆破疑 各見本心 時在會僧俗 豁然大悟 咸
讚善哉 俱明佛性
9 諸宗難問門
[삼삼]
大師出世 行化四十年 諸宗難問 僧俗若千餘人 皆起惡心難問 師言 一切盡除 無名可名 名於自性無二
之性 是名實性 於實性上 建立一切敎門 言下便須自見 諸人聞說 總皆頂禮 請事爲師 願爲弟子 如此
之徒 說不可盡 若論宗旨 傳授壇經者 卽有稟承所付 須知去處年月時代姓名 遞相付囑 若無壇經稟承
者 卽非南宗弟子 緣未得所稟 雖說頓法 未契本心 終不免諍 但得法者 只勸修行 諍是勝負之心 與道
相違矣
10.南北二宗見性門
[삼사]
世人盡言南能北秀 未知事由 且秀大師在荊南當陽縣 玉泉寺住 能大師在韶州城東四十里曹溪山住 法
本一種 人有南北 何名頓漸 法卽一種 見有遲疾 法無頓漸 人有利鈍 故名頓漸 秀聞能師說法 徑疾 直
指見性 遂命門人志誠曰 汝聰明多智 可與吾到曹溪山 禮拜但坐聽法 莫言吾使汝來 汝若聽得 盡心記
取 却來說吾 看彼所見 雖遲雖疾 火急早來 勿令吾怪 志誠禮拜便行 經五十餘日 至曹溪山 禮師坐聽
不言來處 志誠一聞 言下便悟 卽起禮拜 自言 和尙 弟子在玉泉寺秀和尙處 學道九年 不得契悟 今聞
和尙一說 忽然悟解 便契本心 和尙大慈 弟子生死事大 又恐輪廻 願當敎示 師曰 汝從玉泉寺來 應是
細作 對曰 不是 師曰 何得不是 對曰 未說卽是 說了不是 師曰 煩惱菩提 亦復如是 師問志誠曰 吾聞
汝禪師敎示學人 唯傳戒定慧 未審汝師說戒定慧 行相如何 與吾說看 志誠曰 秀和尙說 諸惡不作名爲
戒 諸善奉行名爲慧 自淨其意名爲定 此是戒定慧 彼說如此 未審和尙所見如何 願爲解說 師曰 秀和尙
所見 實不可思議 吾所見戒定慧又別 志誠啓和尙 戒定慧只合一種 如何更別 師曰 汝師戒定慧 接大乘
人 吾戒定慧 접最上乘人 悟解不同 見有遲疾 汝聽吾說 與彼同否 吾所說法 不離自性 離體說法 名爲
相說 自性常迷 須知一切萬法 皆從自性起用 是眞戒定慧等法 常見自性自心 卽是自性等佛 吾心地無
非自性戒 心地無癡自性慧 心地無亂自性定 汝師戒定慧 勸小根智人 吾戒定慧 勸大根智人 若悟自性
亦不立菩提涅槃 亦不立解脫知見 無一法可得 方能建立萬法 是眞見性 略解此意 亦名佛身 亦名菩提
涅槃 亦名解脫知見 亦名十方國土 亦名恒沙數 亦名三千大千 亦名大小藏十二部經 見性之人 立亦得
不立亦得 去來自由 無滯無碍 應用隨作 應語隨答 普見化身 不離自性 卽得自在神通 遊戱三昧之力
此名見性 志誠再啓和尙 如何是不立義 師曰 自性無非無癡無亂 念念般若觀照 常離法相 自由自在 縱
橫盡得 有何可立 自性自悟 頓悟頓修 亦無漸次 所以不立一切法 佛言寂滅 有何次第 志誠禮拜 便住
曹溪 願爲門人 不離左右
[삼오]
復有一僧 名曰法達 常誦法華經七年 心迷不悟正法 來禮曹溪 禮拜問曰 和尙 弟子誦法華經 心常有疑
又不知正法之處 和尙智慧廣大 願爲決疑 師曰 法達 法卽甚達 汝心不達 經本無疑 汝心自疑 汝心自
邪 而求正法 吾心本正 卽是持經 吾不識文字 汝取經來 誦之一遍 吾聞卽知 法達取經 便讀一遍 師知
佛意 乃與說經 師言 法達 經無多語 七卷盡是譬喩因緣 如來廣說三乘 只爲世人根鈍 經文分明 無有
餘乘 唯一佛乘 汝聽一佛僧 莫求二乘 迷却汝性 且經中何處是一佛僧 吾聞汝誦經云 諸佛世尊 唯以一
大事因緣故 出現於世 (正法有十六字) 此法如何解 如何修 汝用心聽 吾爲汝說 師言 法達 人心不思
本來寂靜 離却邪見 卽是大事因緣 內外不迷 卽離兩邊 外迷着相 內迷着空 於相離相 於空離空 卽是
內外不迷 若悟此法 一念心開 出現於世 心開何事 開佛知見 佛猶覺也 分爲四門 開覺知見 示覺知見
悟覺知見 入覺知見 此名開示悟入 從一切入 卽覺知見 見自本性 卽得出現 師言 吾勸一切人 於自心
地 常開佛知見 世人心邪 愚迷造罪 口善心惡 貪瞋嫉妬 讒 侵害 自開衆生知見 世人心正 常起智慧
觀照自心 止惡行善 自開佛知見 汝須念念開佛知見 莫開衆生知見 開佛知見 卽是出世 開衆生知見 卽
是世間 師又言 法達 此是法華經一乘之義 向下分之爲三乘者 蓋爲迷人 汝但依一佛僧修行 師又言 法
達 心行卽是汝轉法華經 不行卽是被法華經轉 心正轉法華 心邪法華轉 開佛知見 轉法華 努力依法修
行 卽是轉經 自心若不念念修行 卽常被經轉 法達一聞 言下大悟 涕淚悲泣 白大師言 實未曾轉法華
七年被法華轉 自分方修佛行 師言 行佛行是佛 時在會者 各得見性
[삼육]
復有僧 名曰智常 禮拜問四乘之義云 啓和尙 佛說上乘法 又言最上乘 弟子不解 願爲敎授 師曰 汝向
自心見 莫着外法相 無四乘法 人心自有四等 見聞轉讀是小乘 悟法解義是中乘 依法修行是大乘 萬法
盡通 萬行俱備 一切不念 離諸法相 一無所得 名最上乘 乘是行義 不在口爭 汝須自修 莫問吾也 一切
時中 自性自如 是四乘義
[삼칠]
又玉泉寺有一童子 年十三歲 當陽縣人 名曰神會 禮師三拜 問曰 和尙坐禪 還見不見 師以 杖打三
下 却問 吾打汝 痛不痛 對云 亦痛亦不痛 師曰 吾亦見亦不見 神會問 如何是亦見亦不見 師言 吾之
所見 常見自心過愆 不見他人是非好惡 是以亦見亦不見 汝言亦痛亦不痛 如何 汝若不痛 同其木石 若
痛卽同凡夫 卽起於恨 師曰 神會小兒 向前見不見是二邊 痛不痛屬生滅 汝自性且不見 敢來弄人 神會
禮拜悔謝 更不敢言 師又曰 汝若心迷不見 問善知識覓路 汝若心悟 卽自見性 依法修行 汝自迷不見自
心 却來問吾見與不見 吾見自知 豈代汝迷 汝若自見 亦不代吾迷 何不自知自見 乃問吾見與不見 神會
禮百餘拜 求謝愆過 請事爲師 不離左右
11.敎示十僧傳法門-滅度年月附
[삼팔]
爾時 師喚門人法海 志誠 法達 神會 智常 智通 志徹 志道 法珍 法如等言 汝等十人 向前汝等不同餘
人 吾滅度後 各爲一方師 吾今敎汝說法 不實本宗 先須擧三科法門 動用三十六對 出沒卽離兩邊 說一
切法 莫離自性 忽有人問汝法 出語盡 皆取對法 來去相因 究竟二法盡除 更無去處 三科法門者 陰
界入也 陰是五陰 色受想行識是也 入是十二入 外六塵色聲香味觸法 內六門眼耳鼻舌身意是也 界是十
八界 六塵六門六識是也 自性能含萬法 名含藏識 若起思量 卽是轉識 生六識 出六門 見六塵 三六一
十八 有自性起用 自性若邪 起十八邪 自性若正 起十八正 含惡用卽衆生用 善用卽佛用 用由何等 由
自性有 對法 外境無情五對 天與地對 日與月對 明與暗對 陰與陽對 水與火對 此是五對也 法相語言
十二對 語與法對 有與無對 有色與無色對 有相與無相對 有漏與無漏對 色與空對 動與靜對 淸與濁對
凡與聖對 僧與俗對 老與少對 大與小對 此是十二對也 自性起用十九對 長與短對 邪與正對 痴與慧對
愚與智對 亂與定對 慈與毒對 戒與非對 直與曲對 實與虛對 險與平對 煩惱與菩提對 常與無常對 悲
與害對 喜與瞋對 捨與?對 進與退對 生與滅對 法身與色身對 化身與報身對 此是十九對也.
師言 此是三十六對法 若解用 卽通貫一切經法 出入卽離兩邊 自性動用 共人言語 外於相離相 內於空
離空 若全着相 卽長邪見 若全執空 卽長無明 又却謗經 直言不用文字 卽云不用文字 人亦不合語言
只此語言 便是文字之相 又直道不立文字 卽此不立兩字 亦是文字 見人所說 便卽謗他言着文字 汝等
須知 自迷猶可 又謗佛經 不要謗經 罪障無數 着相於外 而作法求眞 或廣立道場 說有無之過患 如是
之人 累劫不可見性 不勸依法修行 但只聽說修行 又莫百物不思 而於道性窒碍 若聽說不修 令人反生
邪念 但依法修行 無住相法施 汝等若悟 依此說 依此用 依此行 依此作 卽不失本宗 若有人問汝義 問
有將無對 問無將有對 問凡以聖對 問聖以凡對 二法相因 生中道義 汝一問一對 餘問一依此作 卽不失
理也 說有人問 何名爲暗 答云 明是因 暗是緣 明沒卽暗 以明顯暗 以暗現明 來去相因 成中道義 餘
問悉皆如此 師敎十僧 於後傳法 以壇經迭相敎授 卽不失宗旨 汝今已得法了 遞代流行 後人得遇壇經
如親承吾敎 若看壇經 必當見性
[삼구]
大師以先天元年 於新州國恩寺造搭 至二年七月八日 喚門人告別 師言 汝等近前 吾至八月 欲辭世間
汝等有疑 早須相問 爲汝破疑 當令迷盡 使汝安樂 吾若去後 無人敎汝 法海等聞 悉皆涕泣 唯有神會
不動神情 亦無涕泣 師曰 神會小師 却得善不善等 毁譽不動 餘者不得 數年在山 修行何道 汝今悲泣
爲憂阿雖 若憂吾不知去處 吾自知去處 吾若不知去處 終不別汝 汝等悲泣 蓋爲不知吾去處 若知吾去
處 卽不合悲泣 法性本無生滅去來 汝等盡坐 吾與汝等一偈 名曰眞假動靜偈 汝等誦取此偈 與吾意同
依此修行 不失宗旨 衆僧作禮 請師說偈 偈曰
一切無有眞 不以見於眞 若見於眞者 是見盡非眞 若能自有眞 離假卽心眞 自心不離假 無眞何處眞 有
情卽解動 無情卽不動 若修不動行 同無情不動 若覓眞不動 動上有不動 不動是不動 無情無佛種 能善
分別相 第一義不動 但作如此見 卽是眞如用 報諸學道人 努力須用意 莫於大乘門 却執生死智 若言下
相應 卽共論佛義 若實不相應 合掌令歡喜 此宗本無諍 諍卽失道意 執迷諍法門 自性入生死
[사영]
時衆僧聞知大師意 更不敢諍 各自攝心 依法修行 一時禮拜 卽知大師不久住世 法海上座問曰 和尙去
後 衣法當付何人 師曰 吾於大梵寺說法 直至今日 抄錄流行 名法寶壇經記 汝等守護 度諸群生 但依
此說 是眞正法 師言 法海向前 吾滅度後 二十年間 邪法 亂 惑我正宗 有一人出來 不惜身命 定於佛
法 竪立宗旨 卽是吾法弘於河洛 此敎大行 若非此人 衣不合傳 汝多不信 吾與汝說先祖達磨大師傳衣
偈頌 據此偈頌之意 衣不合傳 偈曰
吾本來東土 說法救迷情
一花開五葉 結果自然成
師曰 吾有一偈 還用先聖大師偈意 偈曰
心地含種性 法雨卽花生 頓悟花情已 菩提果自成 師說偈已 令門人且散 衆相謂曰 大師多應不久住世
間
[사일]
師至先天二年八月三日 食後報言 汝等各着位坐 共汝相別 時法海問言 此法從上至今 傳受幾代 願和
尙說 師曰
初六佛 釋迦第七 迦葉 阿難 末田地 商那和修 優派麴多 提多迦 佛陀難提 佛陀蜜多 脇比丘 富那奢
馬鳴大師 毘羅尊者 龍樹大師 迦那提多 羅 羅多 僧伽那提 僧伽耶舍 鳩摩羅馱 奢夜多 婆修槃頭 摩
拏羅 鶴勒那 師子比丘 婆舍斯多 優波掘多 婆須蜜多 僧迦羅叉 後魏 菩提達磨 北齊惠可 隨朝僧璨
唐朝道信 弘忍 惠能
師曰 衆人今當受法 汝等於後遞相傳付 須有稟承 依約莫失宗旨
[사이]
法海白言 和尙 留何敎法 今後代迷人得見自性 師言 汝等聽之 後代迷人 若識衆生 卽見佛性 若不識
衆生 萬劫覓不難逢 吾今敎汝識自心衆生 見自心佛性 吾與汝說 後代之人 欲求見佛 但識衆生 只爲衆
生迷佛 非是佛迷衆生 自性若悟 衆生是佛 自性若迷 佛是衆生 自性平直 衆生是佛 自心邪險 佛是衆
生 汝等心若險曲 卽佛在衆生中 一念平直 卽是衆生成佛 我心自有佛 自若無佛心 何處求眞佛 汝等自
心是佛 更莫狐疑 外無一切物而能建立 皆是本心生萬種法 故經云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吾今
留一偈 與汝等別 名自性眞佛偈 後代迷人 識此偈意 自見本心 自成佛道 偈曰
眞如性淨是眞佛 邪見三毒是魔王 邪迷之時魔在舍 正見之時佛在當 性中邪見三毒生 卽是魔王來住舍
正見自除三毒心 魔變成佛眞無假 法身報身及化身 三身本來是一身 若向性中能自見 卽是成佛菩提因
本從化身生淨性 淨性常在化身中 性使化身行正道 當來圓滿眞無窮 淫性本是淨性因 除淫卽無淨性身
性中各自離五欲 見性刹那卽是眞 今生若悟頓法門 忽悟自性見世尊 汝若修行覓作佛 不知何處擬求眞
若能心中自見眞 有眞卽是成佛因 不見自性外覓佛 起心總是大痴人 頓敎法門今已留 救度世人修自修
報汝當來學道者 不作此見大唯唯
[四三]
師說偈了 報言 今共汝別 吾滅度後 莫作世情 悲泣雨漏 受人弔問 身着孝服 非吾弟子 亦非正法 但如
吾在日 一時盡坐 無動無靜 無生無滅 無去無來 無是無非 無住無往 無名無字 恐汝心迷不會吾意 吾
今再囑汝 令汝見性 吾滅度後 依此修行 如吾在日 汝等爲法 縱吾在世 終無有益 大師言訖 夜至三更
奄然遷化 大師春秋七十有六
[四四]
師遷化日 寺內異香 經于七日 感地動林變 白日無光 風雲失色 群鹿鳴叫 至夜不絶 先天二年八月
三日 夜三更時 於新州國恩寺圓寂 餘在功德塔記具述 (及具王維碑銘 至十一月 韶廣二州門人 迎師神
座 向曹溪山葬 忽於龕內白光出現 直上衝天 三日始散 韶州奏聞 奉勅立碑供養 至元和十一年 詔追諡
曰 大鑑禪師 事具劉禹錫碑
[四五]
呼法海上座無常 以此壇經付囑志道 志道付彼岸 彼岸付悟眞 悟眞付圓會 遞代相傳 付囑一切萬法
不離自性中現也
(윤택할 계, 미칠 기 rich)
선관책진 서 2
15.천목 고봉묘선사 시중
이 일은 오직 당인의 간절한 생각만이 요긴하니 잠시라도 간절만하면 곧
진의(眞疑)가 날 것이니 아침에서 밤까지 빈틈없이 지어 나가면 스스로 공
부가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흔들어도 동하지 아니하며 슛아도 또한
달아나지 아니하여 항상 소소령령(昭昭靈靈)하여 분명히 편전하게 되리니
이때가 공부에는 득력하는 시절이라. 이러한때에 정념을 확고히 잡고, 부
디 다른 생각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라. 그중에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
아도 앉아 있는 줄을 모르며 추운것도, 더운것도 배고픈 것도 목마른 것
도, 모두 알지 못하게 될것이니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이때가 곧 집에
돌아온 소식이니 이런 때에는 다만 때를 놓치지 아니 하도록 잘 지키며 공
부를 잊지아니 하도록 단단히 붙잡고 오직 시각을 기다릴 뿐이다.
이런 말을 듣고 도리어 한 생각이라도 정진심을 내어 구하는것이 있거나
마음에 깨치기를 기다리는 생각을 하거나 또는 되는대로 놓아 지내면 아니
되니 단지 스스로 굳게 정념을 지켜 필경 깨침으로 법칙을 삼어야 한다.
이 때를 당하면 8만4천 마군들이 너의 육근문(六根門) 앞에서 엿보다가
너의 생각을 따라 온갖 기이한 선악경계를 나툴 것이니, 네가 만약 터럭끝
만큼이라도 저 경계를 여겨 주거나(認正) 착심(著心)을 내면, 곧 저의 올
개미에 얽힘이 되어서, 저가 너의 주인이 되어 너는 저의 지휘를 받고 입
으로 마의 말을 하고 몸으로는 마사(魔事)를 행하여 반야의 정인(正因)은
이로조차 영원히 끊어져서 보리종자가 다시는 싹트지 못하게 된다.
이 경지에서 단지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저 수시귀(守屍鬼)와 같이하여
정념을 지켜오고 지켜가면 홀연 의단이 탁!터져, 결정코 천지가 경동함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옷을 갈아입고, 정자(淨慈)에 가서 3년을
한사코 선을 배웠었다. 처음 단교(斷橋) 화상에게 참예하니 "날때 어디서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참구하게 하시는데 생각이 두길로 갈려
도무지 순일하지를 못했다.
후에 설암화상을 뵈오니, "무"자를 참구하라 하시고 또한 이르시기를 "
사람이 길을 갈때 하루의 갈길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처럼 너 매일 올라와
한마디 일러라"하시더니, 그후 차서 있음을 보시고는 짓는 곳은 묻지 아니
하고 다만 문을 열고 들어갈때 마다 대뜸 "어느 물건이 이 송장을 끌고 왔
느냐?"하시고는 말씀도 채 마치지 않고 때려 슛아내셨다.
후에 경산으로 돌아와 지내는데 하루밤 꿈속에서 문득 전날 단교화상실
에서 보았던"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가는가?"가 생각나니
이로부터 의정이 돈발하여 동서로 남북으로 분별하지를 못하였다. 제6일
되던 날 대중을 따라 누각에 올라가 풍경(諷經)하다가 문득 머리를 들어
오조연(五祖演) 화상의 진찬(眞讚)을 보니, 끝 두귀에 이르기를 "백년이라
3만6천, 온갖 조화 부린것이, 원래가 단지 바로 이놈이니라."하였음을 보
고 홀연 일전의 "송장을 끌고 다니는 놈"을 타파하고, 즉시혼담이 날아가
버린뜻 기절 하였다가 다시 깨어나니 이 경지를 어찌 1백20근 짐을 벗어
버린 것에 비하랴! 그때는 정히 24세요 3년 한이 다 차던 해 였다.
그후 화상께서 물으시기를, "번잡하고 바쁠 때에 주재(主宰)가 되느냐?"
"됩니다." "꿈속에서 주재가 되느냐?" "네! 됩니다." 다시 물으시기를 "잠
이 깊이 들어 꿈도없고 생각도 없고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없을때 너의 주
인공이 어느 곳에 있느냐?"하시는데, 이에는 가이 대답할 말도 없고 내
어 보일 이치도 없었으니 이에 화상께서 부촉 하시기를 "너 이제 부터는
불도 법도 배울것 없으며 고금도 공부할 것 없으니 다만 배고프면 밥을 먹
고 곤하면 잠을 자되, 잠이 깨거던 정신을 가다듬고 "나의 이 일각(一覺)
주인공이 필경 어느 곳에 안심입명(安心立命)하는 것일까?"하라 하시었
다.
그때 내 스스로 맹세하기를 "내 차라리 평생을 버려 바보가 될지언정 맹
세코 이 도리를 명백히 하고야 말리라"하고 5년이 지났더니, 하루는 잠에
서 깨어 정히 이일을 의심하고 있는데 동숙하던 도우가 잠결에 목침을 밀
어 땅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홀연 저 의단을 타파하고 나니 마치 그물에 걸
렸다가 풀려 나온듯 하고 불조의 심난한 공안과 고금의 차별 인연에 밝지
않음이 없게되어 이로부터 나라가 평안하고 천하가 태평하여 한생각 함이
없이 시방을 좌단 하였느니라.
<평>> 앞에 보이신 공부를 지어가는 대문이 지극히 친절하고 요긴하니,
공부인은 마땅히 깊이 명심해 두라. 또 사의 경우를 말씀하신 "배고프면
먹고 곤하면 자라"함은 이것은 발명 이후의 일이니 그릇 알지 않도록 하라.
#용어정리
[1]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남악하 22세. 설암흠 선사의 법을
이었다.
속성은 서(徐)씨. 소주(蘇州) 오강현(吳江縣)에서 출생. 용공(用功)득법
경위는 본문에 상세 하거니와 그후(1279) 천목산(天目山) 서봉(西峯)에 들
어가서 저 유명한 사관(死關)을 짓고 들어 앉았다. 사는 이곳에서 16년 동
안을 문턱을 넘지않고 마침내 이곳에서 입적하였는데 그동안 학도를 가르
치기 빈날이 없었으며, 승속간에 계를 받은 사람이 기만명이 넘었다. 원나
라 원종(元宗) 원년, 대중에게 설법하고 그 자리에서 시적하였다. 향수 57
세. 지금 제방에서 성행하고 있는 선요(禪要)가 바로 사의 어록이다.
[2]선악경계: 공부중에 나타나는 온갖 선악경계가 공부인을 망치는 것을
흔히 본다. 이것을 경계하신 불조의 말씀은 실로 간곡하다. 본래 한 물
건 없는 이 가운데 무슨 경계나 형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사견 망각이다.
대개 경계가 벌어지는 것은 그 원인이 공부가 순수하지 못하고 또한 정밀
하지 못한데 있으니, 터럭끝 만큼이라도 밖으로 구하는 생각이 있거나(馳
求心) 의정이 불분명(혼침,산란,망념)하여서는 아니된다. 오직 화두만 간
절히 성성히 들면 있던 경계도 즉시 사라지는데 무슨 경계가 있을리 없다.
혹 생각이 바깥경계로 흩어지고 잡념이 있거든 곧 화두를 잡아 긴절(緊
切)히 들라. 이 화두는 불꽃과도 같아서 일체망념 경계나 혼침산란의 불나
비가 부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계가 벌어지거든 환관(幻
觀)으로 대치하고 그래도 경계가 멸하지 않거든 이것은 선근으로 인한 좋
은 경계이니 걱정하지 마라"하는것을 보나 공부인을 어떠한 경계이든-혼침,
산란등 일체병통과 선악경계중에 오직 화두로 당적함이 요긴하다. 공부를
하고저 하거든 반드시 경계를 대치할 방법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이 서 있
어야 한다.
[3]진찬(眞讚): 덕 있는 사람의 초상화에 지은 글인데, 여기 오조진찬
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상을 가져 상 취하니 모두가 환몽 되고
진을 가져 진 구하니 더욱 더 멀어지네
공안이 현전하니 무슨 일이 안될손가
백년이라 삼만육천 온갖 조화 부린것이
원래가 다못 바로 이놈 일러라"
(以相取相 都成幻夢 以眞求眞 轉見不親 見成公案 事無不辨 百年三萬六千
日 反履元來是這漢)
[4]주인공(主人公): 주인공이란 자신과 만유의 근원적 한물건을 의미하
는 것인데 교리적인 용어로 말하면 본질 이전의 진심(眞心)을 가리킨 말이
다. 종문에서는 이밖에 여러 가지 이름이 있으니 경우에 따라서 혹 자기
(自己), 무저발(無底鉢), 몰현금(沒絃琴), 이우(泥牛), 목마(木馬), 심인
(心印), 심월(心月), 심주(心珠)등 가지가지로 부르기도 한다. 종문에서는
필경 이 주인공을 바로 아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주인공 다운 지
혜와 덕성과 역량을 자재 구사하여 주인공의 국토다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
을 구경으로 삼는 것이다. 대주(臺州) 서암사언(瑞巖師彦) 스님은 단구(丹
丘)의 서암에 있을때 반석위에 나와서 종일토록 우두커니 앉아서 "주인공
!"하고 부르고는 "네!"하고 대답하고 "정신차려라. 너 뒤에 남에게 속지마
라!"하였다.
[5]이도리 한소식: 이말은 일착자(一著子)를 옮긴 말인데, 일착자는 바
둑 들때의 "한수"라는 뜻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보인다. 부산원(浮山遠)선사가 마침 문충공(文忠公)이 손과 바둑 두는 데
에 이르렀다. 사가 곁에 가니 공이 곧 바둑을 거두고 사에게 바둑을 인하
여 설법하여 줄것을 청하니 사 곧 북을 치게하고 법상에 올라 말씀 하시기
를 "만약 이 일을 논할진댄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과 상사 하라. 어찌
한 까닭이랴. 적수와 지음(知音)이 서로 기틀을 당하여 사양치 않으니...
中略...일러라 일러! 흑백(黑白)이 나뉘기 전에 한수는 어느 곳에 있는가!"
6無念正宗 7保任無心 8寤寐一如 9死中得活 10大圓鏡智
11內外明徹 12 常寂常照 13 解悟漸修 14分破分證 15多聞知解
退翁 性徹 著
緖言
靈鷲山頂에서 世尊이 拈花함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함이요,
少林岩窟에서 二祖가 三拜함은 모난 나무로 둥근 구멍을 막음이니,
古今 善知識들의 玄言妙句는 모두 눈속에 모래를 뿌림이다.
熱喝과 痛棒도 衲僧의 본분이 아니거늘 어찌 다시 눈 뜨고 꿈꾸
는 客談이 있으리오마는, 진흙과 물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性命을
不顧함은 古人의 落草慈悲이다.
正法相傳이 歲久年深하여 種種 異說이 橫行하여 祖庭을 황폐케
하므로 老拙이 감히 落草慈悲를 云謂할 수는없으나, 萬世正法을 위
하여 眉毛를 아끼지 않고 正眼祖師들의 垂示法門을 採集하여 禪門
의 正路를 指示코자 한다.
禪門은 見性이 근본이니 見性은 眞如自性을 徹見함이다. 自性은
그를 엄폐한 根本無明 즉 第八阿賴耶의 微細妄念이 永絶하지 않으
면 徹見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禪門正傳의 見性은 阿賴耶의 微細가
滅盡한 究竟妙覺 圓證佛果이며 無餘涅槃 大圓鏡智이다.
이 見性이 즉 頓悟이니, 寤寐一如·內外明徹·無心無念·常寂常
照를 내용으로 하여 十地等覺도 禪門의 見性과 頓悟가 아니다. 따
라서 悟後保任은 究竟佛果인 涅槃妙心을 護持하는 無碍自在의 不思
議 大解脫을 말한다.
見性 방법은 佛祖 公案을 參究함이 가장 첩경이다. 佛祖 公案은
極深難解하여 自在菩薩도 茫然不知하고 오직 大圓鏡智로써만 了知
하나니 公案을 明了하면 自性을 徹見한다. 그러므로 圓證佛果인 見
性을 할 때까지는 公案 參究에만 盡力하여야 하나니, 圓悟가 항상
公案을 參究하지 않음이 大病이라고 苛責함은 이를 말함이다.
公案을 타파하여 自性을 徹見하면 三身四智를 圓滿證得하고 全機
大用이 일시에 現前한다. 이것이 殺活自在하고 縱橫無盡한 正眼宗
師이니 正眼이 아니면 佛祖의 慧命을 계승하지 못한다. 馬祖 제자
八十名 中에 正眼은 數三人이라고 黃檗이 지적함과 같이 正眼은 極
難하다. 그러나 箇箇가 본래 毘盧頂上人이라 自輕自屈하지 않고 끝
까지 노력하면 正眼을 豁開하여 出格大丈夫가 되나니 참으로 妙法
中 妙法이다.
무릇 異說 中의 一例는 頓悟漸修이다. 禪門의 頓悟漸修 元祖는
荷澤이며 圭峯이 계승하고 普照가 力說한 바이다. 그러나 頓悟漸修
의 大宗인 普照도 頓悟漸修를 詳述한 그의 [節要]벽두에서 荷澤은
是知解宗師니 非曹溪嫡子라고 斷言하였다. 이는 普照의 독단이 아
니요 六祖가 授記하고 叢林이 공인한 바이다. 따라서 頓悟漸修思想
을 信奉하는 者는 전부 知解宗徒이다.
원래 知解는 正法을 장애하는 최대 禁忌이므로 禪門의 正眼祖師
들은 이를 통렬히 배척하였다. 그러므로 禪門에서 知解宗徒라 하면
이는 衲僧의 생명을 상실한 것이니 頓悟漸修 思想은 이렇게 可恐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렇듯 異說들의 피해가 막심하여 正法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나
니, 參禪高流는 이 책에 수록된 正傳의 法言을 指針 삼아 異說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勇猛精進 廓徹大悟하여 古佛도 未到하는 超
群正眼을 圓證하여 荷澤·圭峯과 같은 知解宗徒가 되지 말고 馬祖
·百丈과 같은 本分祖師가 되어, 曹溪嫡子로서 佛祖의 慧命을 계승
하여 永劫 不滅의 無上正法을 宣揚하기를 祈願하는 바이다.
허허, 구구한 잠꼬대가 어찌 이렇게 많은고!
억!
둥근 달 밝게 비친 맑은 물결에
뱃놀이 장단 맞춰 금잉어 춤을 춘다.
辛酉 仲秋佳節 伽倻山 白蓮庵에서
退翁 性徹 識
一. 見性卽佛
재得見性하면 當下에 無心하야 乃藥病이 俱消하고 敎觀을 咸息하느니라(宗鏡
錄 一 標宗章)
見性을 하면 卽時에 究竟無心境이 現前하여 약과 병이 전부 소멸되고 敎와
觀을 다 休息하느니라.
* 眞如慧日의 無限光明은 항상 法界를 照耀하고 있지마는, 三細六楸의 無明
暗雲이 掩蔽하여 衆生이 이를 보지 못한다. 雲消長空하면 靑天이 現露하여
白日을 보는 것과 같이, 三細의 極微妄念까지 滅盡無餘하면 廓徹大悟하여
眞如本性을 洞見한다. 이에 一切妄念이 斷無하므로 이를 無念 또는 無心이
라 부르나니, 이것이 無餘涅槃인 妙覺이다.
그러므로 起信論에서 見性은 遠離微細한 究竟覺이라 하였으며, 元曉 賢首
도 그들의 起信論疏에서 金剛已還의 一切衆生은 未離無明之念이라 하고 또
한 佛地는 無念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金剛 즉 等覺 以下의 一切衆生은 有
念有心이니 等覺도 佛陀의 聖敎와 法藥이 필요하며, 藥病이 俱消하고 敎觀
을 咸息한 無念無心은 無明이 永滅하여 自性을 徹見한 妙覺뿐이다.
古人이 말하기를 [佛說一切法은 爲度一切心이라 我無一切心커니 何須一切
法이리오]하였으니, 과연 그렇다. 諸佛의 一切法門은 群生의 衆病을 치유
하기 위한 處方施藥이다. 無病健康한 者에게는 起死回生하는 神方妙藥도 필
요없는 것과 같이, 凡夫心 外道心 賢聖心 菩薩心等 無量衆生의 本病인 一切
心念을 斷然 超脫한 究竟無心地의 大解脫人에게는 아무리 深玄奧妙한 佛祖
의 言敎와 觀行이라도 소용없다.
그리하여 法藥과 衆病이 俱消하고 聖敎와 妙觀을 咸息한 究竟無心地만이
見性이니, 이것이 無上大道를 徹證한 絶學無爲閑道人의 心境이다.
如楞伽經偈에 云하되 諸天及梵乘과 聲聞緣覺乘과 諸佛如來乘에 我說此諸乘은
乃至 有心轉이니 諸乘은 非究竟이라 若彼心滅盡하면 無乘及乘者하야 無有乘建
立이니라 我說爲一乘이나 引導衆生故로 分別說諸乘이니라(宗鏡錄 一 標宗章)
楞伽經 偈頌에 이렇게 말했다. 諸天 및 梵衆乘과 聲聞 緣覺과 諸佛如來乘
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諸乘들은 有心中의 轉變이므로 諸乘은 究竟無心이 아
니라고 말한다. 만약에 그 各種의 有心이 滅盡하면 諸乘과 그 乘을 依止할 乘
者도 없어 乘이라 하는 名稱조차 建立할 수 없는 大無心地이다. 이는 諸乘을
초월한 最上唯一乘이나 衆生을 引導하기 위하여 方便으로 分別하여 諸乘을 說
한다.
* 諸天梵衆과 聲聞緣覺의 諸乘은 말할 것도 없고 諸佛如來乘도 有心轉이어
서 究竟이 아니니, 諸佛如來乘까지 滅盡한 無餘涅槃인 究竟無心이 즉 見性
이다.
이것은 方便으로 一乘이라 呼稱하나 이 一乘은 三乘相對의 一乘이 아니요
諸佛如來乘까지 초월하여 無乘及乘者인 最上乘을 표현한 假名이니 이는 最
終究竟의 深深玄境인 大無心地를 말한 것이다.
故로 先德이 云하되 一예在眼하니 千華亂墜하고 一妄이 在心에 恒沙生滅이
라 예除華盡하고 妄滅證眞하니 病差藥除하고 氷融水在로다 神丹이 九轉하니
點鐵成金이요 至理一言은 轉凡成聖이라 狂心이 不歇타가 歇卽菩提요 鏡淨心明
하니 本來是佛이니라(宗鏡錄 一 標宗章)
그러므로 先德이 말했다. 一點障예가 眼膜을 덮으니 千種幻華가 擾亂하게 墜
落하고, 一陣妄念이 心中에 일어나니 恒河沙數의 生滅이 發動한다. 眼예를 除
去하니 幻華가 消盡하고, 妄念이 永滅하여 眞性을 證得하니 千病이 快差하여
萬藥을 除却하고, 妄念의 氷塊가 消融하여 眞性의 湛水가 流通한다. 神靈한
丹藥을 九番轉단하니 生鐵을 點下하여 眞金으로 變成하고, 至極한 妙理는 一
言片句로 凡夫를 轉換하여 聖者로 成就한다. 狂奔하는 妄心을 休歇치 못하다
가 休歇하니 즉 無上菩提요, 玄鏡이 淸淨하여 本心이 明徹하니 本來로 大覺世
尊이니라(以上 三段의 原文은 계속된 것임).
* 三細六楸의 一切妄念이 頓然 消滅되고 常住不變하는 眞如本性을 豁然證得
하니, 이것이 곧 妄滅證眞한 究竟無心인 見性이다. 病差藥除하여 無事無爲
한 大解脫人으로서 氷消水淨한 眞性의 大海에서 游泳自在하니, 天上人間에
獨尊無比한 大覺如來며 西天此土에 燈燈相續한 正眼宗師이다.
이로써 見性은 妄滅證眞하니 藥病이 俱消하고 敎觀을 咸息하여 諸佛如來
乘까지 滅盡한 無餘涅槃인 究竟大無心地임이 了然明白하다.
宗鏡錄의 著者 永明은 佛祖正傳인 大法眼의 三世嫡孫이다. 臨濟正脈인 中
峯이 [古今을 通한 天下의 師表는 永明을 두고 누구겠는가(古今天下之師는
捨永明하고 其誰歟아--中峯 山房夜話 上)]라고 讚歎하였다.
宗鏡錄 百卷은 宗門의 指針으로 龍樹 이래의 最大著述로서 讚仰된다. 晦
堂은 역시 臨濟正傳인 黃龍派의 開祖 南禪師의 上首弟子로서 佛祖의 正脈으
로 天下가 推仰한 바이다. 항상 宗鏡錄을 愛重하여, 寶覺(晦堂)禪師가 年臘
이 많으나 오히려 宗鏡錄을 手中에서 놓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이 冊을 늦
게 봄을 恨한다]라 하고 其中에 要處를 撮約하여 三卷을 만들어 冥樞會要라
고 이름하니 世上에서 盛히 流傳하다(寶覺禪師가 年臘이 雖高나 手不釋卷曰
吾恨見此書晩矣로다 其中에 因撮其要處하야 爲三卷하고 謂之冥樞會要라 하
니 世盛傳焉하니라--人天寶鑑 下).
이렇게 宗鏡錄中의 所論은 古今을 통하여 그 누구도 異議할 수 없는 宗門
의 定論으로 되어 있다.
如菩薩地盡하면 滿足方便하야 一念相應하야 覺心初起하야 念無初相이라 以遠
離微細 念故로 得見心性하야 心卽常住일새 名究竟覺이니라(起信論)
菩薩의 終點인 十地가 了盡하면 修道의 方便이 圓滿具足하여 無間道인 一念
에 相應한다. 妄心의 初起生相을 覺知하여 心地에 初相이 全無한지라 初起生
相의 極微細妄念을 遠離하므로 自心의 本性을 徹見하여 心性이 湛然常住할새
究竟覺이라 부른다.
* 等覺의 金剛喩定에서 根本無明인 極微細妄念을 斷盡하면 豁然大悟하여 眞
如本性을 洞見하나니 이것이 究竟覺인 成佛이다. 이는 大乘佛敎의 總論인
起信에서 見性 즉 究竟覺이며 成佛임을 明證한 것이다.
業相動念이 念中에 最細일새 名微細念이니라 此相이 都盡하야 永無所餘故로
言永離니 永離之時에 正在佛地니라 前來三位는 未至心源일새 生相이 未盡하야
心猶無常이라가 今至此位하야는 無明이 永盡하야 歸一心源하야 更無起動故로
言得見心性이니 心卽常住하야 更無所進일새 名究竟覺이니라(元曉 起信論疏)
無明業相이 動念하는 것이 妄念中에서 가장 微微하므로 微細妄念이라 呼稱
한다. 이 微細妄念이 전부 滅盡하여 영원히 그 餘跡이 없으므로 영원히 離脫
한다고 한다. 이 微細妄念을 永永 離脫한 때에는 正確히 佛地에 머물게 된다.
前來의 三位는 心源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生相이 滅盡하지 않아서 心中이
아직 生滅無常하다가, 此位에 이르러서는 永永 滅盡하여 一心의 本源에 歸還
하여 다시는 起滅動搖함이 全無하므로 見性이라 稱言한다. 見性을 하면 眞心
이 廓然常住하여 다시는 前進할 곳이 없으므로 최후인 究竟覺이라 呼名한다.
業識動念이 念中에 最細일새 名微細念이니 謂生相也라 此相이 都盡하야 永無
所餘故로 言遠離요 遠離虛相故로 眞性이 顯現하나니 故로 云 見心性也라 前三
位中에는 相不盡故로 不見性也라(賢首義記 卷中末)
業識이 動念하는 것이 가장 微細하므로 微細妄念이라 呼名하나니 生相을 말
함이다. 이 最初生相이 전부 滅盡하여 永永 그 殘餘가 없는 故로 遠離라 하
며, 虛妄幻相을 遠離한 故로 眞如自性이 곧 顯現하나니 故로 見性이라고 한
다. 前三位中에는 最初生相이 滅盡하지 않았으므로 見性이라 하지 않는다.
佛地는 無念이니라(元曉疏 賢首義記)
佛地는 微細念까지 永盡한 無念이다.
* 元曉와 賢首는 敎宗의 權威이다. 微細無明인 第八阿賴耶識이 滅盡하면 無
餘涅槃인 佛地 즉 究竟覺이어서 이것이 無念 즉 無心이며 見性임은 佛敎의
根本原理이므로, 元曉 賢首도 異議가 있을 수 없으며 宗鏡의 所論과 완전
一致함은 당연한 歸結이다.
그리고 前三位라 함은 不覺의 十信, 相似覺의 三賢, 隨分覺의 十地를 말
함이니, 三賢 十地가 전부 無明業識의 幻夢中에 있으므로 見性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따라서 起信論中의 證發心도 無分別智를 얻어서 眞如라고 假
名하나 業識心이 微細起滅하여 無明이 未盡하였으므로 見性이 아니다.
十地諸賢(聖人)이 說法은 如雲如雨하여도 見性은 如隔羅곡이니라(汾州--傳燈
錄二十八 雲門--傳燈錄十九)
十地의 諸賢(聖人)들이 說法하기는 如雲如雨하여도 見性은 羅곡을 障隔함과
같느니라.
* 汾州와 雲門은 三學에 該通한 絶世의 正眼이다.
汾州 雲門뿐 아니라 十地未見性은 宗門正傳의 通則이니 究竟覺 즉 如來地
만이 見性인 緣故이며, 宗門에서 말하는 十地는 權敎十地가 아니요 一乘十
地이다. 十地 以後에 賴耶의 微細를 永斷하여야 見性이라 하니 일반적으로
는 不可能한 것 같으나, 夢中一如가 되면 華嚴七地요 熟眠一如가 되면 賴耶
微細의 自在菩薩位이다. 禪門 正眼宗師 中에 熟眠一如位를 透過하지 않고
見性이라 呼稱한 者는 없다. 이는 究竟覺을 成就한 所以이니 寤寐一如編에
서 詳述한다.
如明眼人이 隔於輕곡하고 覩衆色像하야 究竟地菩薩도 於一切境에 亦爾하며 如
明眼人이 無所障隔하고 覩衆色像하야 如來도 於一切境에 亦爾니라 如明眼人이
於微闇中에 覩見衆色하야 究竟地菩薩도 亦爾하며 如明眼人이 離一切闇하고 覩
見衆色하야 如來도 亦爾니라(瑜伽論 五十)
明眼人이 輕곡을 障隔하고 모든 色像을 보는 것과 같아서 究竟地菩薩도 一
切境界에 이와 같으며 明眼人이 障隔이 없이 모든 色像을 보는 것과 같아서
如來도 一切境界에 이와 같느니라. 明眼人이 微闇中에서 衆色을 보는 것과 같
아서 究竟地菩薩도 이와 같으며 明眼人이 一切昏闇을 떠나서 衆色을 보는 것
과 같아서 如來도 이와 같느니라.
* 究竟地菩薩인 等覺은 阿賴耶의 微細妄念이 殘餘하여 이것이 自性을 障蔽
하여 一切境界에 了然明白하지 못하여 如隔輕곡하며 如闇中覩色이라 하였으
며, 따라서 佛性境界도 이와 같이 明了하지 못하므로 佛祖는 十地菩薩도 見
性은 如隔羅곡 如闇中見色이라고 呵責하였다. 이 微細妄念이 滅盡하여 心眼
이 洞開하면 輕곡과 微闇을 永離한 一乘佛果를 成就하여 一切境界에 了然明
白하므로 涅槃經에서 如來見性은 如晝見色이라고 하였다. 이는 菩薩地盡하
여 永離微細하면 得見心性이니 名究竟覺이라고한 起信所論과 同一內容이다.
如隔輕곡 如闇見色은 正見이 아니므로 佛祖正傳은 見性을 不許하였을 뿐 아니
라 第八魔界라 하여 極力排擊한 것이다. 이와 같이 究竟地菩薩도 見性이 아니
니 其餘는 擧論할 필요도 없으므로 佛敎 萬代의 標準인 起信과 瑜伽의 究竟地
菩薩未見性의 原則下에 一乘佛果 以外의 見性說은 斷然코 容認할 수 없다.
以不生煩惱故로 則見佛性이요 以見佛性故로 則得安住大涅槃이니 是名不生이니
라(大涅槃經 十八)
煩惱가 不生하는 故로 곧 佛性을 正見하며 佛性을 正見한 故로 大涅槃에 安
住하나니, 이를 不生이라 하느니라.
* 不生은 즉 無生이니 微細의 煩惱妄想까지 滅盡한 大無心地요, 大涅槃은
無心地인 無餘涅槃이니 즉 究竟覺이다. 그리하여 見性은 즉 無心이요 究竟
覺이며 大涅槃인 것이다.
第一義建立者는 謂無餘依涅槃界中이 是無心位니 何以故오 於此界中에 阿賴耶
識이 亦永滅故니라 所餘諸位는 轉識이 滅故로 名無心地나 阿賴耶識이 未滅盡
故로 於第一義에는 非無心地니라(瑜伽論 十三)
第一義에서 建立한 正義는 無餘依涅槃界中이 眞正한 無心位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이 境界中에는 阿賴耶識이 또한 영원히 消滅한 緣故이다. 이 無餘依涅槃
以外의 諸位는 轉識이 消滅한 故로 無心地라고 假名하나 阿賴耶識이 永滅치
못한 故로 第一義에서는 無心地가 아니다.
* 眞無心은 微細無明인 第八阿賴耶識이 永滅한 無餘涅槃 즉 佛地만이다.
六七轉識이 滅한 第八阿賴耶의 無記를 無心이라 假稱하는 수도 있으나, 第
八識의 無記에는 六七轉識의 楸中妄念은 止息되었으나 第八의 微細動念이
殘餘하여 있으므로 眞正한 無心이 아니다. 往往에 賴耶無記를 無心으로 錯
認하는 例가 있으나, 見性은 究竟覺 즉 佛地이므로 無餘涅槃의 眞如無心이
다.
唯無餘依涅槃界中에 諸心이 皆滅하니 名無心地요 餘位는 由無轉識故로 假名無
心이나 由第八識이 未滅盡故로 名有心地니라(瑜伽釋)
오직 無餘依涅槃界 中에서만 모든 妄心이 다 消滅하니 無心地라 부른다. 餘
他의 諸位는 모든 轉識이 斷無한 故로 無心이라 假名하나 第八阿賴耶識이 아
직 滅盡치 못하였으므로 有心地라고 이름한다.
* 六七轉識 즉 六楸가 永滅한 滅盡定도 無心이 아니요 有心이며 十地 等覺
도 有心이다. 得見性하면 當下에 無心이라고 한 無心은 諸佛如來乘도 滅
盡한 無餘涅槃의 佛地無心이니 究竟覺이 見性인 緣故이다.
이에 佛敎 萬世의 標準인 宗鏡 起信 涅槃 瑜伽等의 正論으로써, 見性은
妄滅證眞한 無心, 遠離微細한 究竟覺, 不生煩惱한 大涅槃이니 이로써 見性
이 如來地 즉 成佛임이 確然明白하다.
五祖謂六祖曰 若識自心하고 見自本性하면 卽名天人師佛이니라(壇經--中國版
日本版)
五祖가 六祖에게 말하였다. 만약 自心을 洞識하고 自性을 明見하면 곧 天人師
佛이라 이름하느니라.
* 이는 五祖가 六祖를 印可付法할 때의 말이니, 究竟佛果를 成就하지 않으
면 見性이 아님은 宗門의 鐵則이다.
見性하면 卽成如來니라(宗鏡錄 四十四)
見佛性故로 卽住大涅槃이니라(宗鏡錄 三十六)
若頓見佛性하면 一念에 成佛하느니라(宗鏡錄 十七)
見性하면 卽是에 如來가 되느니라.
佛性을 明見한 故로 卽刻에 大涅槃에 現住하느니라.
萬若에 佛性을 頓見하면 一念에 成佛하느니라.
* 見性이 卽是 如來며 大涅槃이며 成佛이니, 이는 見性이 佛敎의 最後極果
임을 證言한 것이다.
若能諦觀心性하면 卽是見佛性이며 住大涅槃이니 卽同如來니라(宗鏡錄 十一)
만약에 心性을 諦觀하면, 卽是 佛性을 徹見한 것이며 大涅槃에 現住한 것이
니 如來와 同一하니라.
* 心性을 諦觀함은 見性과 同一한 內容이다.
見佛性하야 住大涅槃하면 卽是住不思議解脫也니라(宗鏡錄 二十四)
佛性을 明見하여 大涅槃에 現住하면 卽是 不思議解脫에 常住하느니라.
* 見性을 하면 一切의 業結을 超脫하므로 不思議解脫이 아닐 수 없다.
但見法性하면 住大涅槃이니라(宗鏡錄 八十四)
於一切法에 見心自性하면 卽是如實究竟之覺이니 卽是頓成佛義니라(宗鏡錄 三
十六)
다만 法性을 明見하면 大涅槃에 住하느니라.
一切萬法에 眞心의 自性을 明見하면 卽時 如實한 究竟覺이며 卽是 頓然히
成佛함이니라.
*佛性은 萬法의 自性이므로 또한 法性이라 하나니 見法性은 즉 見佛性이다.
諸佛境界는 廣大無邊하야 非情識知요 唯見性하야사 能了니라(宗鏡錄 十八)
諸佛의 境界는 廣大無邊하여 三細六楸의 情識으로서는 不知하고, 오직 見性
하여야만 能히 了達하느니라.
* 廣大無邊한 諸佛의 境界는 十地 等覺도 茫然不知요 廓徹大悟하여 洞見本
性하여야 도달하나니 成佛은 오직 見性에만 있다.
親到諸法無疑之處는 悟心方知요 頓照萬境無相之門은 見性方了니 斯乃如來行處
요 大覺所知니라(宗鏡錄 九十六)
諸法에 疑惑이 없는 深玄處에 親히 到達함은 自心을 徹悟하여야 바야흐로
明知요, 萬境에 形相이 없는 絶妙門을 頓然 鑑照함은 本性을 洞見하여야 바야
흐로 了達하나니 이는 如來의 行處요 大覺의 所知니라.
* 悟心은 즉 見性이니 이는 大覺如來의 行履이며 證知이다.
上述한 宗鏡의 所論은 見性이 즉 究竟이니 즉 成佛이며 즉 大涅槃이며 不
思議解脫임을 加一層 立證하였다.
二十八祖內에는 無一祖도 不見性成祖니라(宗鏡錄 十九)
西天의 二十八代 祖師 中에는 一人도 見性하지 않고 祖師됨이 없느니라.
* 如來의 涅槃妙心과 正法眼藏을 傳持하여야 祖師라 하나니 어찌 見性을 하
지 않고 祖師가 되리오. 二十八祖뿐만 아니라 達磨直下의 正傳宗師들도 全
部 見性達道人이니, 見性하지 않으면 達磨正傳의 本分兒孫이 아니다.
得旨하면 卽入祖位라 誰論頓漸之門이며 見性하면 現證圓通이라 豈標前後之位
리오(宗鏡錄 一 標宗章)
究竟玄旨를 悟得하면 卽是에 祖師의 寶位에 登入하는지라 그 누가 頓과 漸의
路門을 論議하며, 眞如本性을 正見하면 現前에 大覺圓通을 徹證하는지라 어찌
前과 後의 地位를 標的하리오.
* 得旨는 見性과 同一內容이다.
現證圓通은 永明이 明言한 바 種種性相의 本義는 大覺에 있어서 圓通한다
(種種性相之義는 在大覺而圓通이라--宗鏡錄序)고 한 圓通이니 大覺世尊이
現證한 바이다.
見性하면 大覺圓通을 現證하여 藥病이 俱消하고 敎觀을 咸息하였으므로
頓漸等의 各門과 賢聖等의 位階는 全然 필요없다. 만약 修行에 位階와 頓漸
이 필요하다면 이는 有病要藥으로 妄滅證眞하여 病差藥除한 究竟無心이 아
니니 절대로 見性이라 할 수 없다.
若直下에 無心하면 量出虛空之外어니 又何用更歷階梯리오(宗鏡錄 二十三)
만약 直下에 無心하면 허공 밖에 超出하거니 또한 어찌 階梯를 修歷하리오.
* 見性하면 當下에 無心하므로 一切의 地位 漸次를 超脫한다.
諸聖은 分證이요 諸佛은 圓證이니라(宗鏡錄 一)
無明을 若除하면 一時에 頓證이니라(宗鏡錄 二十五)
祖佛은 圓證法界니라(宗鏡錄 七十八)
利根上智는 須圓證이니 十聖三賢을 一念起로다(圓悟錄 十)
諸聖은 分分證得이요 諸佛은 圓滿徹證이니라.
根本無明을 만약 斷除하면 一時에 頓證하느니라.
祖師와 佛陀는 眞如法界를 圓證하니라.
利根과 上智는 모름지기 圓證할지니, 十聖과 三賢을 一念에 超越하느니라.
* 見性은 無明이 永盡한 究竟佛地이므로 圓證이며 頓證이요 分證이 아니다.
그러므로 宗門의 證悟見性은 반드시 諸聖의 分證이 아닌 佛地의 圓證을 내
용으로 한다.
若明悟相하면 不出二種이니 一者는 解悟니 謂明了性相이요 二者는 證悟니 謂
心造玄極이니라 若言頓悟漸修하면 此約解悟니 謂豁了心性하고 後漸修學하야
令其契合이니라(行願淸凉疏 二辨修證淺深)
豁然了知하니 卽爲始悟요 修行契證이 目爲終入이니라(淸凉疏 二十)
悟有解悟證悟하니 謂初因解悟하야 依悟修行하야 行圓功滿하면 卽得證悟니라
(圭峯圓覺疏 三下)
만약에 悟相을 설명하면 二種을 不出한다. 一은 解悟니 性理와 法相을 明白
히 了知함이요 二는 證悟니 悟心深玄하여 窮極에 到達함을 말함이다. 만약 頓
悟漸修를 말하면 이는 解悟이니 心性을 豁然了知하고 後에 漸漸修學하여 契合
하게 함이다.
豁然히 性相을 了知하니 곧 解悟인 始悟가 되고, 修行하여서 玄極에 契合實
證함은 證悟인 終入이다.
悟門에 解悟와 證悟가 있다. 始初에 解悟를 얻어 그 解悟를 依持修行하여
修行이 圓成되고 功果가 滿了하면 卽時에 證悟를 얻는다.
* 徹見心性하여 當下에 無心하면 涅槃心과 如來心도 求覓할 수 없거니 어찌
解悟와 證悟를 論하리오마는, 衆生의 根性이 各異하여 往往히 邪路에 誤入
하여 認賊爲子하는 實例가 數多하므로 方便上 解悟와 證悟를 假借하여 悟證
의 深淺 邪正을 試論코자 한다.
大抵 解와 證은 相反된 立場에 있으니 解는 始初요 證은 終極이다. 思量
分別의 妄識中에서 性相을 明白히 了解하는 佛法知見을 解悟라 하고, 妄識
이 永滅하여 知見이 蕩盡되어 究竟의 玄極處에 도달함을 證悟라 한다. 이證
悟를 敎家에서는 各種으로 分類하나 禪門의 證悟는 圓證뿐이다.
敎家에서는 信·解·修·證의 原則下에 解悟에서 始發하여 三賢 十聖의
諸位를 經歷修行하여 終極인 證悟 즉 妙覺에 漸入한다. 그러나 禪門의 悟인
見性은 現證圓通한 究竟覺이므로, 分證과 解悟를 부정하고 三賢 十聖을 초
월하여 無餘涅槃의 無心地인 證悟에 直入함을 鐵則으로 하니 이것이 禪門에
서 高唱하는 一超直入如來地이다.
따라서 諸聖의 分證도 微細知解에 屬하여 見性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秋毫의 知解가 殘留하여도 證悟치 못하고 一切의 知見解會가 徹底 蕩盡되어
야 見性케 되므로 分證과 解悟를 修道上의 一大障碍 즉 解碍라 하여 절대
排除하는 바이다. 이것이 禪敎의 相反된 입장이며 禪門의 특징인 동시에 命
脈이니, 玉石을 혼동하여 後學을 疑惑케 하면 佛祖의 慧命을 斷絶하는 重大
過誤를 범하게 된다. 佛祖正傳의 見性은, 遠離微細하여 永斷無明한 眞如無
心 無餘涅槃과 究竟覺 如來地를 내용으로 하는 圓證頓證의 證悟임은 上述한
바와 같다. 그러므로 正傳의 大宗匠들은 妙覺後果인 圓證이 아니면 見性과
悟心을 허락하지 않고 分證과 解悟는 邪知惡解 妄識情見으로 極力痛斥하는
바이다. 그러나 禪門의 害毒이며 病弊인 分證과 解悟를 見性이라고 주장하
는 類屬이 往往히 있으니 如斯한 異說에 眩惑되지 말고 現證圓通하여 廓然
見性하여 究竟無心地에서 佛祖의 正傳을 闡揚하여 群迷를 開導하여야 할 것
이니 이것이 圓證見性의 正眼宗師이다.
서(2)
온 서중(無恕中)스님은 호구(虎丘)스님의 8대손으로서 큰 도량에 앉아 법을 설하고 중생을
제도하여, 승속 모두에게 귀의할 바를 제시해 주었다. 그의 "이회어(二會語)"는 무상거사 송
렴(無相居君 宋濂:明代 學者)이 서문을 쓴 바 있지만 "산암잡록(山艤雜錄)"에 대해서는 서문
이 없었는데 스님의 큰제자 쌍림사(雙林寺) 주지 현극 정(玄極頂)선사와 전 남명사 주지 운
중 선(萊中垣)스님이 함께 나를 찾아와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한두 차례 훑어본 후 현극스
님과 운중스님에게 말하였다.
"지난 날 "이회어(二會語)"를 읽어보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천갈래 강물이
한 근원에서 흐르듯 세찬 문장력을 구사했는지, 어쩌면 그렇게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번개처
럼 번뜩이는 필치를 휘둘렀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다듬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막힘없고 원
만하게 써내려갔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가지와 덩쿨을 잘라버려 쓸모없는 말이 없으면서도
구별[町 :밭두덕〕 을 초월하여 정식(情識)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았는지! 그것은 아마도 참
다운 불법에서 흘러나온 문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쪽 저쪽에서 주워 모아 문장을 구사
하는 자들과 비교해 보면 어찌 구만리 차이 뿐이겠는가. 그의 말을 통해 그의 깊이를 살펴
보면 그는 부처와 보살의 경지에 이른 분이시다. 그러나 후인을 격려하고자 간간이 제창하
신 법문은 불법의 요체를 밝히고 자신의 큰일을 끝마치는 것으로 목적을 삼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널리 미쳐줄 수 있는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 책을 살펴보니, 위로는
조정에서부터 마을과 시장거리 및 아래로는 산림속에 이르기까지 인물, 행적, 사실, 문장 등
을 선하다고 써야 할 곳과 그렇지 못한 곳, 옳다고 써야 할 곳과 그렇지 못한 곳, 마땅히 이
래야 할 곳과 그래서는 안될 곳, 우수하다고 써야 할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을 빠짐없이 써놓
고 있다. 이로써 선을 권장하기도 하고 악을 징계하기도 하니, 유학자·불교도·도교인·관
리·은거한 선비·늙은이·어린이·부귀한 자·비천한 자·상인·예술가·백정·농사꾼,
그리고 나아가서는 부녀자와 가마꾼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 되었다.
자비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 한 치의 땅도 덮어주지 않는 곳이 없고, 불법의 비가
줄기차게 내리면 한 포기 풀잎까지도 적셔주지 않는곳이 없고 해와 달이 동쪽에서 솟아 서
쪽으로 기울 때 어두운 거리를 비춰주지 않는 곳이 없으며, 위로는 하늘이 덮어주고 아래로
는 땅이 실어주어 모든 생명을 붙잡아 주지 않는 게 없다. 이 책을 지으신 마음도 이와 같
아서 대자대비로 일체중생을 가엾게 여기사 많은 방편으로 교묘히 인도하여 삿됨과 망녕됨
을 버리고 참다운 지혜에 어둡지 않도록 하니, 차이가 없는 평등이란 이런 것이다. 부처님
같은 스님의 자비가 여기에 있기에 참으로 부처와 보살의 지위에 이른 분이라 한 것이다.
이 책을 한 번 보고서 훌쩍 돈오(頓悟)한다면,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
하여 무엇이든 권하고 징계하는 데에 이르게 되고, 권하고 징계하지 않는 것이 없는 데에서
다시 권하니 징계하니할 것도 없어진다. 그리하여 바른 길로 말미암아 깨달음의 경지로 들
어감으로써 굳어진 습기(習氣)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업식(業識)에 매이지 않게 된다. 이렇
게 하는 것이 바로 스님께서 이 책을 편찬하신 깊은 마음을 체득하는 것이며, 현극스님과
운중스님이 이를 서둘러 간행하고 이를 유포하는 그 마음도 스님의 같은 마음이다.
아! 그저 보통 붓 나가는대로 기록하여 부질없이 견문만을 넓히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
여대는 따위의 책들과 이를 견주어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말로서 서문을 가름하는 바이다.
홍무(洪武) 25년(1392) 겨울 10월 24일 무문거사 미산(無聞居君 眉山)소백형(蘇伯衡)서
서(3)
도는 말을 통해 밝혀지고 말은 덕에 의해 전해진다. 그러므로 덕 있는 자의 말은 한 시대
사람에게만 믿음을 줄 뿐 아니라, 후세까지도 의심없이 전해진다.
서중(無 恕中:1309∼1386)스님은 서암사(瑞岩寺)의 일을 그만두고 태백산 암자에 한가히 머
물면서 스스로 도를 즐겼다. 쓸쓸한 방에는 물건들이 넉넉하지 못했는데도 도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신발이 매일 문 밖을 메웠다. 그들은 밀어내도 가지 않고, 어쩌다가 한 말씀 얻어
들으면 천금처럼 귀중히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감로수(甘露水)나 제호(醍 )를 마신
듯 마음과 눈이 한층 빛났다. 이는 스님께서 평소 여러 큰스님의 문하를 참방하여 보고 들
었던 아름다운 말과 선한 행실들을 마음 속 깊이 원만히 체득해서 말로 표현하였기에, 아름
답게 꾸미지 않아도 자연히 훌륭한 격식을 이룬 것이리라. 총림의 큰스님과 유학의 선각자,
그리고 아래로는 마을의 어린아이들까지 그들을 격려시킬 수 있는 선한 이야기와 그들을 경
계시킬 수 있는 악한 이야기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들려주어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이를
기록하여 "산암잡록(山艤雜錄)"이라는 책으로 만들어냈다.
취암사 주지로 있는 그의 제자 현극 정공(玄極頂公)이 이를 간행하면서 멀리 서울까지 찾아
와 특별히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나는 읽으면서 차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태평성대의 말이란 모두 바른 법을 따르므로 거친 말과 부드러운 말이 모두 진리다"
한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훌륭한 의원이 다루면 모든 초목이 약
이 되지만 모르는 자는 손에 약을 쥐고서도 병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하겠다. 세간
과 출세간의 모든 법이 불법 아닌 것이 없으므로 이치에 밝은 자가 이를 얻으면 모두가 세
상에 전해지는 가르침이 된다. 덕이 있으면 말을 남기게 된다함은 스님을 두고 이르는 말로
서 스님은 약과 병을 잘 아는 자이며, 불법을 잘 말하는 자이다.
나와 스님과는 한 문중이라는 우의가 있으므로 비록 한 차례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지
만 그의 명성과 행적은 몇년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으며 그가 대중을 감복시킬 만한 덕을
지녔고 세인을 가르칠 만한 말씀을 남겼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터이다. 그러므로 말하
지 않아도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을텐데 더구나 이 책의 내용은 모두가 있었던 사실이다.
사실을 통해 이치를 밝히고 가까운 일을 들어 먼 것을 가리키는 법이니, 이 책으로 당세를
유익하게 하고 끝없이 전해주어야 한다.
홍무(洪武) 기사년(1389) 여름 6월 승록사 좌선세(僧錄司左善世) 홍도(弘道)서
서(4)
나는 평소 병 많은 몸으로 노년에 일본의 주청(奏請)에 관한 일로 조정의 부름을 받아 서
울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에 혼자 생각해 보니 설령 일본을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살아 돌아올 수 있겠나 싶었다. 평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행
히도 성상폐하께서 나를 가엾게 여겨 특별히 일본의 주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궁궐에 머물게
하셨다. 그리고 나서도 온갖 병들이 끊임없이 나의 몸을 침범하여 세번이나 죽을 뻔 했지만
또한 천행으로 폐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천동사(天童寺) 옛절로 돌아가도록 명하시니,
친구들은 내가 마치 다시 세상에 태어나기라도 한 듯이 반겼다.
내 나이 칠십에 가까운데 만번 죽을 고비를 겪고 다시 한번 삶을 얻게 되었기에, 이제 문을
닫고 모든 인연을 끊은 채 여생을 마칠까 하였는데 법질(法姪) 장경중(莊敬中)이 자주 나의
암자에 찾아와 이렇게 청하였다.
"당·송 시대 큰스님들의 말씀과 저서는 끊이지 않고 간간이 세상에 나왔었는데 원나라부터
는 이러한 일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근래 큰스님들의 법문과, 총림의 귀감이 될 만
한 아름다운 말씀이나 행실들이 대부분 없어져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스님께서는 총
림의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많은 큰스님을 두루 참방하여 넓은 견문을 지니셨습니다. 제가
항상 노스님을 모시면서 들은 한두 가지 일만 해도 모두 이제껏 듣지 못했던 이야기로서 저
를 더욱 깊이 일깨워주었습니다. 바라옵건대 노스님께서는 그저 유희 삼아[遊戱三昧] 한 권
의 책을 만들어 위로는 옛 스님의 숨겨진 빛을 나타내시고 아래로는 후학들의 고질병을 벗
겨 주신다면 불법문중의 경사가 되리라 믿기에 감히 간청을 드리는 바입니다."
내가 말했다.
"그대의 마음이야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내 말은 문장이 될 수 없으니 말을 하되 문장으
로 잘 표현되지 못한다면 어떻게 먼 훗날까지 전해질 수 있겠는가? 이는 내가 감당할 수 있
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경중은 또다시 말하였다.
"이제 불법은 쇠하고 선배스님들도 거의 사라지셨습니다. 이런 때 노스님께서 먼곳에서 돌
아오실 줄은 실로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는데, 노스님께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절하
신다면 장차 누가 이 일을 맡겠습니까? 문장이 잘되고 못되고를 어찌 따지겠습니까? 사실
대로 기록하여 그 일을 밝힐 수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바라옵건대 굳이 사양하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나는 평소 스승과 도반이 강론했던 법어들과 강호에서 보고 들은 일 가운데 기연
(機緣)의 문답과 선악의 인과응보, 그리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낱낱의 처신 등을, 시대의
선후와 인물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후배들을 일깨울 수 있는 일이라면 생각나는대로 붓 가
는대로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하고 이를 "산암잡록(山艤雜錄)"이라 이름하였다.
지난 송대(宋代)에 큰스님이 편수한, 이른바 "나호야록(羅湖野錄)" "운와기담(雲臥紀談)" 등
에 기재된 바는 불법의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고무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내 젊은 시절
이러한 류에 대한 기억이 있었으나 이제는 십중팔구는 잊어버렸고, 노년에 바다 한쪽 끝에
살다보니 사람들에게 물어 많은 자료를 채집할 수도 없었다. 이에 따라 빠진 것이 많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바이다.
말을 하되 도로써 하는 것은 지극한 말로써 일찍이 말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밖의 것은
나의 분수에 벗어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총림에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의 붓을 잡는
자가 있다면 어쩜 이를 채택해 주지 않을까 한다.
홍무(洪武) 8년(1357) 12월 15일 천태산인(天台山人) 석 무온(繹無)서
1. 말후구(末後句)/ 보엽 묘원(寶葉妙源)스님
정수사(定水寺) 보엽(寶葉妙源)스님은 사명(四明) 사람이다. 경산사(徑山寺) 허당(虛堂智
愚:1185∼1269)스님에게 공부하였는데, 선문 화두에 깨치지 못한 바 있으면 반드시 공부 많
이 한 이에게 묻고, 깨닫기 전에 그만두는 일이 없었다.
어느날 허당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덕산(德山)스님의 말후구(末後句)를 만일 있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덕산스님께서 알지 못하
였으며, 만일 없다고 한다면 암두(岩頭)스님은 어찌하여 "덕산스님은 알지 못했다고 말하였
습니까?* 스님께서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모르니 그대는 운(雲)수좌를 찾아가 물어보도록 하라."
이에 스님은 운수좌에게 물어보러 갔는데, 마침 운수좌는 산에서 돌아와 발을 씻으려고 물
을 찾던 중이었다. 스님은 재빨리 물을 가져다 드리고는 몸을 굽히고 손을 내밀어 운수좌의
발을 씻겨주면서 고개를 들어 물었다.
"덕산스님의 말후구에 대하여 저는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좌께서 가르
쳐 주시기 바랍니다."
운수좌는 느닷없이 발 씻으려던 물을 양손으로 그에게 끼얹으며 말하였다.
"무슨 말후구가 있단 말이냐?"
스님이 그의 뜻을 알지 못하고 이튿날 허당스님을 찾아보니 허당스님이 물었다.
"내 그대에게 운수좌를 찾아가 말후구를 물어보라 하였는데 그가 무어라 말하던가?"
"화상의 말씀대로 물어 보았더니 그가 발 씻은 물을 나에게 끼얹었습니다."
"다른 말은 하지 않던가?"
"무슨 말후구가 있느냐고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내 너에게 말하여 주리라. 그는 깨달은 자라고."
스님은 이 말에 의심이 풀리게 되었다. 운수좌는 바로 한극(閑極)화상으로 허당스님의 수제
자이며 높은 수행을 닦아 호구사의 주지를 지내다가 돌아가셨다.
2. 죽을 날을 받아놓고/ 인 대방(因大方)스님
평강(平江) 정혜사(定慧寺)의 주지 인 대방(因大方)스님은 천태(天台) 사람으로 고림(古林淸
茂)스님의 법제자이다. 자질구레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활달자재하였으며 군수 주의경(周義
卿)과 친분이 있었다. 대방스님이 절 일을 그만두고 영암사(靈岩寺) 화(華)노스님 방에 머물
던 지정(至正) 무술년(1358) 9월 8일, 주의경이 공무가 있어 사찰을 찾아가 스님을 방문하자
대방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 달 14일에 이 산에서 죽을 것이니 그대는 나를 위하여 이 사실을 증명해 주오."
주 군수는 장난이겠거니 생각하고 그러하겠노라고 답한 후 떠나갔는데 13일이 되자 게송을
주군수에게 지어 보냈다.
어제는 바위 앞에 땔감 주워 모아놓고
오늘 아침 이 허깨비 몸 한 줌 티끌 되리라
어진 그대에게 정성껏 말하노니
하늘에 구름 걷히면 한조각 달만 남겠지.
昨日巖前拾得薪 今朝幻質化爲塵
殷勤寄語賢候道 碧落雲收月一痕
주의경은 이 게송을 받고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날 밤 화(華)스님에게, "마른나무를 쌓아놓
고 하나의 앉을자리 하나를 달라'고 청하자, 화스님은 "마른나무야 말씀대로 드리겠지만 좌
대는 없다'고 하였다.
대방스님이 화스님이 앉아 있는 나무의자를 가리키면서, "그것만으로도 또한 넉넉하다'고
하자 화스님은 그의 말에 따라 의자를 주었다. 14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법당 위로 올라가
대중스님과 영결을 고하고 또다시 게송을 읊었다.
나의 전신은 본디 석교의 승려라
이 때문에 인간에게 사랑과 미움을 나누었지
사랑과 미움이 다한 때 온전한 바탕 드러나
무쇠 뱀이 불 속에서 얼음덩이를 씹는구나.
前身本是石橋僧 故向人間供肯憎
憎肯盡時全體現 鐵蛇火裡嚼寒氷
드디어 마른 나뭇가지를 소매 속에 넣고 나무더미 위로 올라가 앉은 후 스스로 불을 지펴
빨간 불길이 치솟아 올랐으나 그 불길 속에서도 태연히 향을 사르며 축원하였다.
신령한 싹은 음양의 종자에 속하지 않으니
그 뿌리는 원래 겁 밖에서 왔다오
이를 그만두고 몸소 설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불 속에다 옮겨 심을 수 있겠는가.
靈苗不屬陰陽種 根本元從劫外來
不是休居親說破 如何移向火中栽
스님은 화스님에게 염주를 건네주면서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어 감사하다고 하였다. 이에
화염이 휩싸이는 곳마다 많은 사리가 나왔는데 주의경은 이 소식을 전해듣고 경탄해 마지않
아 그를 위해 영암사에 사리탑을 세우고 시를 지어 그를 애도하였다.
3. 원(元)의 침입에 맞서 송(宋)나라 사람의 절개를 지키다
/ 가공 설옥(珂公雪屋)스님
원나라 병사가 강남 땅을 침략했을 때 금산사 현묵암(賢默艤)스님은 백안(伯顔:元將)의 협
박으로 그의 막사에 머물게 되었으며 그를 따라 무림(武林)에 이르렀다. 당시 중축사(中竺
寺)의 가공 설옥(珂公雪屋:石田의 法嗣)스님은 송나라가 망하자 곧바로 사원의 직책을 그만
두었다. 묵암스님은 가공스님을 잘 아는 사이며 또한 그의 도행을 존경해온 터였다. 이 때문
에 백안에게 가공스님을 영은사의 주지로 승진시켜 주기를 청하고, 묵암스님 자신이 임명장
을 가지고 가공스님의 문을 두드리니 가공스님은 빗장을 뽑아 얼굴을 반쯤 내밀고 물었다.
"너는 누구냐?"
"스님의 옛친구 묵암이요."
이에 가공스님은 빗장을 걸면서,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였다. 가공스님은 비록 세속 밖에
살면서도 스스로 충절을 지켜 영은사 주지로 임명됨을 달갑게 여기지 아니하고 이처럼 단호
히 거절하였던 것이다. 당시 가공스님의 문하에 한 수좌가 있었는데 그의 나이 80여 세였다.
그는 "송나라에서 태어나 송나라에서 늙은 몸으로, 송나라에서 죽을 수 없게 되었구나!' 탄
식하고서 마침내 단식을 하여 죽었다.
4. 총림에 떠도는 헛소문
총림에 떠도는 소문은 모두 따질 만한 게 못된다. 후세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대혜(大慧)
스님이 불지(佛智)스님과 함께 원오( 悟)스님 문하에 있을 때 원오스님이 불지스님을 편애
하여 대혜스님은 항상 그 점을 불평하였다고 한다. 뒤에 불지스님이 육왕사(育王寺)에 주지
를 하다가 대혜스님이 그 자리를 이어 받았는데 물가에 있어서 좋지 않다는 핑계로 부도를
파헤쳐보니 그의 진신(眞身)이 그대로 있기에 큰 괭이로 그의 두개골을 쪼개 기름을 붓고
태웠다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참혹한 일로서, 보통 사람들도 차마 할 수 없
는 일이다. 대혜스님이 설마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내 일찍이 불지스님 부도탑의 비명
을 읽어보니 불지스님은 사리를 봉안하였을 뿐 부도 속에 전신을 매장한 사실이 없었다.
또한 소옹(笑翁)스님이 육왕사의 주지로 있을 때 황폐한 사찰을 중수하는 일로 겨를이 없었
는데, 때마침 천동사(天童寺) 주지자리가 비어서 도당성(都堂省)에서 황제의 뜻을 받들어 소
옹스님을 천동사로 옮겨 임명하려고 하였다. 스님은 육왕사의 토목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
다 하여 임명을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는 서신을 재상에게 올렸는데 그 서신 가운데, "천동
사가 곧 육왕사이며, 육왕사가 곧 천동사이다'하는 구절이 있었다.
소옹스님은 엄격하여 규율을 범하는 승려가 있으면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그를 피했
다. 그리고는 그가 천동사의 주지 임명을 사양하니 비방을 조장하여 결국은 "그가 십만 전
으로 천동사의 주지를 샀다'는 말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이
이야기를 전해 내려오면서 스님을 비난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
나는 지난날 원나라 중기 지원(重紀 至元:1335∼1340) 연간에 보복교사(普福敎寺)의 아 경문
(雅景文)스님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경문스님이 소옹스님이 재상에게 올린 진필 서찰을 내
보이기에 이를 보고서야 비로소 지난 날의 비방이 거짓임을 증빙할 수 있었다. 또한 "무문
문집(無文文集)" 에 실려 있는 소옹스님의 행장(行狀)과 삼탑사(三塔寺)의 탑명을 읽어보니,
스님께서 천동사의 주지를 사양하는 서신의 뜻과 일치됨을 알게 되었다. 두분 스님의 도는
마치 하늘의 일월과도 같아 모두를 다 비춰주므로, 비록 말할 나위조차 없는 거짓된 비방이
스님을 더럽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려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5. 자신의 안목을 잃고 후인을 그르치는 저술
/ 천뢰 선경(千瀨善慶)스님
영은사 천뢰(千瀨善慶)스님은 절우(浙, 右) 사람으로 우극(愚極智慧)스님의 법제자이다.
책 읽고 문장 쓰는 데 있어서 그 당시 인물중에 그의 눈에 차는 사람이 없었다. 일찍이 "부
종현정론(扶宗顯正論)"을 저술하여 사정(邪正)을 분석하고 시비를 바로잡으니, 매우 볼 만한
책이다. 그러나 그 내용 가운데 큰스님들이 백추를 들고 불자를 세운 일들을 단순한 이야기
거리로 취급하여 진(晋)대의 왕연(王衍)이 옥진미(玉塵尾) 불자를 잡고 자기 손의 색깔과 같
다고 말한 것을 예로 들어 이를 증명하려 하였다. 큰스님들이 백추를 들고 불자를 세움은
깨달음을 일깨우는 일이니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그런데도 천뢰화상은 이를 이야기거리로
취급하였으니 자신의 바른 안목을 잃었을 뿐 아니라 후인을 그르치고 의심을 낳았다 하겠
다.
6. 염라대왕 앞에서/ 연복사(演福寺)주지 택운몽(澤雲夢)
원나라가 송나라를 멸망시킨 후 양련 진가(楊璉眞加)를 강회(江淮) 지방의 석교도총통(繹敎
都總統)에 임명하고 그에게 월주(越州) 산음(山陰) 지방에 있는 남송시대의 왕릉들을 발굴하
도록 명하였다. 이때 연복사(演福寺) 주지로 있던 택운몽(澤雲夢)이 진가를 따라 송 이종(宋
理宗)황제의 시신에 가혹한 행위를 하였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지난날의 원한이 있었을 것이
다. 운몽은 고의적으로 진가에게 아첨하기 위해서 왼발로 이종의 시신 옆구리를 또 한차례
발길질하였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양주(楊州) 고을에 사는 어느 한 사람이 갑자기 죽어 염
라대왕 앞에 끌려 갔는데, 생각지도 않게 이승의 천자가 오신다는 기별이 왔다. 염라대왕이
명부전에서 내려와 천자를 맞이해 들였는데, 노란 수레덮개와 왼편에 깃털로 만든 일산이
즐비하고 수레며 말들이 꽉 메워 그 모습은 인간세상 황제의 의장과 다를 바 없었다. 자리
에 앉은 후 얼마 있으려니 졸개귀신이 한 승려를 결박한 채 명부전 앞으로 끌고 나왔는데,
천자가 그를 질책하였다.
"내 황제의 자리에 있은 4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별다른 잘못이
없었고 너희 불교에 대해서도 막은 일이 없으며 너와도 원수 진 일이 없었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진가에게 아부하고자 나에게 지나친 능욕을 가하는가?"
마침내 사나운 역사에게 명하여 쇠송곳으로 스님의 왼쪽 엄지발가락을 찔러 높이 꿰어 든
후 채찍을 치니, 그의 비명소리가 너무나 애처로워 코끝이 시큰하여 차마 들을 수 없었다.
잠깐 뒤 물러나왔으나 갑자기 죽은 사람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천자가 누구냐고 물으니
어느 사람이 송 이종(宋 理宗)황제라고 하였으며, 채찍을 맞은 승려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항
주 연복사 주지 택운몽이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자 연복사를 찾
아가 그 사실을 묻고 본것을 증험해 보았으니 즉 운몽스님은 왼쪽 엄지발가락에 부스럼이
생겨 고치지 못하고 이미 죽었다고 하였다.
7. 불법문중에 잘못되어가는 일을 바로잡다/ 봉산 의(鳳山儀)법사
근대 우리 선문에는 상황에 맞게 방편을 쓰되 옛사람의 묵은 발자취를 답습하지 않고 자신
의 기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불법을 구정(九鼎)*보다도 무겁게 하신 탁월한 분들이
많았었는데, 지금 그러한 스님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항주 하천축사(下天竺寺) 봉산 의(鳳山儀)법사는 원대(元代) 연우(延祐1314∼) 초에 "삼장
홍려경(三藏鴻 卿)'의 이라는 호를 하사받았으나 그 작록을 받아들이지 않고 불법문중에
조금치라도 어긋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바로 잡았다.
고려 부마(駙馬) 심왕(瀋王)이 황제의 칙명으로 보타관음(寶陀觀音)을 예배하러 가는 길에
항주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주머니 돈으로 명경사(明慶寺)를 찾아가 재를 올리고 많은 사
찰의 주지를 위해 공양하였다. 성관(省官) 이하 여러 관아의 관리들이 직접 그 일을 감독하
였으며, 서열을 정함에 있어서는 심왕을 강당의 중앙 법좌 위에 자리하고 모든 관리는 서열
에 따라 법좌 위에 줄지어 앉고 사찰의 주지들은 양쪽 옆으로 앉게 하였다. 자리를 모두 안
배한 후 법사는 맨 나중에 왔는데 오자마자 법좌 위로 달려가 왕에게 물었다.
"오늘의 재는 누구를 위한 재입니까?"
"많은 사찰의 주지를 공양하기 위함입니다."
"대왕께서 많은 사찰의 주지를 공양하기 위함이라 말하고서도, 이제 주인의 자리는 없고 왕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아 모든 주지들을 양 옆으로 줄지어 앉히고 심지어는 땅바닥에 자리
를 깔고 앉아 있는 자도 있으니, 이는 순라 도는 병졸들을 공양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
니까. 예법에는 이렇지 않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황공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사과하고 곧장 법좌에서 내려와 많은 사찰의
주지에게 예의를 표한 후 손님과 주인의 자리를 나누어 모든 관리들은 양 옆의 주지가 앉았
던 곳으로 물러나 앉았다. 공양이 끝난 후 왕은 법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법사가 아
니었더라면 예의를 차리지 못할 뻔하였습니다."
아! 이른바 상황에 맞게 방편을 써서 사람의 마음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란 봉산법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8. 혐의 받을 행동을 미리 막다/ 허곡(虛谷希陵)스님
허곡(虛谷希陵)스님이 앙산사에서 사직하고 경산사로 부임해 가는 도중에 원주(袁州)성에
이르니 사방에서 시주하는 신도들의 돈과 폐백 등이 수북히 쌓였다. 허곡화상은 서서히 이
를 거절하며 말하였다.
"내 똑똑하지는 못하나 나로 인하여 양절(兩浙 : 浙江의 옛명칭) 지방의 여러 사원에서 선문
의 종지를 알게 되었는데, 경산사 주지자리가 비어 나를 부르는 뜻은 나에게 개당설법(開堂
說法)을 하여 선문의 종지를 밝혀달라는 것이다. 내 어찌 가난 때문에 사람들에게 의혹을
사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이 보내주신 물건들은 도로 가져가시어 나에게 "신화엄
(新華嚴)'이라는 꾸지람을 듣지 않도록 해주기를 바라오."
시자승에게 꼭 필요한 행장만을 꾸려 그를 따르도록 명하였다.
9. 봉산 일원(鳳山一源)스님의 염고(拈古)
나는 천력(天曆:1329∼1330) 연간에 호주(湖州) 봉산사(鳳山寺)에서 일원 영(一源靈)스님을
찾아뵙고, 조주스님이 오대산 노파를 시험했다는 화두를 참구했으나 깨치지 못했다. 하루는
시봉하는 차에 이 화두를 들어 물으니, 스님께서 말하였다.
"내 젊은 날 태주(台州) 서암사(瑞岩寺) 방산(方山文¿)화상의 문하에 있을 때 유나(維那)를
맡아 보면서 나 역시 이 화두를 물었더니 방산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영유나(靈維那)야, 네
가 한마디 해 보아라.'하셨다. 나는 그 당시 입에서 나오는대로 "온누리 사람들이 노파를 어
찌할 수 없다'고 하였더니, 방산화상은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온누리 사람들이 조주스
님을 어찌할 수 없다고 하겠다' 하였다. 나는 그 당시 마치 굶주린 사람이 밥을 얻은 것마
냥, 병든 이가 땀을 흘린 것처럼 스스로 기쁨을 알았다."
이어서 말하였다.
"시자야! 너는 달리 한마디 해보아라."
나는 그 당시 인사하고 곧장 그곳을 떠나버렸다. 내 기억으로는 지난날 스님이 처음 이곳에
부임하여 상당법문을 할 때 "세존이 법좌에 오르시자 문수가 백추를 치고…'라는 공안*을
들어 설법한 후 염송하였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잘못 말씀하시고
문수도 이것을 잘못 전했으며
오늘 나도 이것을 잘못 거론했도다.
알겠는가.
한 글자를 세차례 베껴쓰면
오(烏)자와 언(焉)자는 마(馬)가 되느니라.
世尊以是錯說 文殊以是錯傳
新鳳山今日以是錯擧
會? 字脛三寫烏焉成馬
그 당시 은사 축원(竺元)스님은 육화탑(六和塔)에 은거하면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선정원(宣政院)*에서 수많은 노스님을 천거하였으나 봉산(일원)스님이 조금 나은 편'이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일원스님은 영해(寧海) 사람이며 경산사 운봉(雲峰)스님이 직접 머리 깎아 준 제자인데 주
지로 세상에 나와서는 방산스님의 법을 이었다. 인품이 자애롭고 참을성이 있어 남을 용납
하는 아량이 있었으며 제자들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므로 스님께서 입적하자 그
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 모두가 애도해 마지않았다.
10. 불경과 장자에 나오는 몸 큰 물고기
불경에 의하면, 바다 한가운데 산 만한 물고기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등 위에는 큰 나무가
솟아 있고 밤낮없이 업장의 바람에 뒤흔들려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하였고, 장자
(莊子)에도 북해에 곤(鯤)이라는 고기가 있는데 몇 천리가 되는지 크기를 알 수 없다고 하
였다. 지정(至正) 계묘년(1363)에 노아천(奴兒千)에서 왔다는 아무개의 말에 의하면, 얼마 전
그곳에 산 만한 고기 한 마리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 고기가 바다를 지날 때 물 위로 기나
긴 지느러미가 보이고 등과 꼬리를 흔들면서 북쪽에서 남쪽으로 유유히 헤엄쳐 갔는데 나흘
이 지나서야 그 물고기의 몸통이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몸 큰 중생의 옛날 업
장에 의한 감응'이라는 것이 이러하다. 그러나 아수라왕(阿修羅王)이 큰 바다 가운데 서 있
으면 키가 수미산 만하고 두 손으로 일월을 가지고 논다 하였으니, 그가 이 물고기를 보았
다면 한낱 작은 물고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간 사람들이란 자신의 이목으로 보고 듣
는 데에 막히므로 그의 이목이 미치지 못하는 그밖의 일은 모두 허황된 것이라 생각하니,
한심스러운 일이다.
11. "선문종요(禪門宗要)"의 저자에 관하여
"선문종요(禪門宗要)"는 설산 담(雪山曇)스님이 지은 책이다. 설산스님이 송 순우(宋淳
祐:1241∼1252) 연간에 태주(台州) 서암사(瑞岩寺)의 방산(方山)스님에게 귀의하여 완성한 책
이니 어찌 구차스럽게 이루어졌겠는가.
내 젊은 날 봉산사의 일원 영(一源靈)스님에게 공부할 때, 스님은 야참(夜參)법문에서 문득
이 "선문종요"에 대해 언급하며, "그 중에는 옛사람이 이르지 못한 경지를 들어 말한 곳이
있기는 하나 나머지는 옛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그 책을 내려 주면서 읽어보라고 하였다. 그후 40여 년이 지나 천의사(天衣寺) 청
업해(淸業海)라는 자가 자상하게도 이 책을 중간하면서 자기도 서문을 쓰고 용장준(用章悛)
에게도 서문을 써달라 하였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가, "설산스님이 남의 문집을 도용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간행했다'고 하면서 "은공단강(恩公斷江)' 한마디를 증거로 제시하였고,
게다가 이를 10권으로 분책하고 매 편마다 본문에서 한마디씩을 뽑아 제목을 붙였으니 인용
하여 본문의 취지를 잃은 곳이 매우 많다. 나는 뒷 사람들이 이 책의 유래를 자세히 알지
못하고서 도리어 업해스님의 말을 긍정하여 설산스님에게 누를 끼칠까 근심한 나머지 이를
기록하는 바이다.
12. 요즘 총림의 도반관계와 사자관계
호구사 동주(東州困永)스님과 영은사 독고 붕(獨孤淳朋)스님은 같은 고향에 동문수학한 사
이로서 우의가 매우 두터웠다. 동주스님이 호구사 주지로 있던 어느 날 때마침 성 안에 있
었는데 만수사(萬壽寺) 주지자리가 비었다고 제방의 주지가 독고스님을 그곳에 추천하자 하
였다. 당시 독고스님은 호주(湖州) 천령사(天寧寺)의 주지로 있었으므로(만수사의 주지가 되
는 일은) 단계를 밟아 승진하는 것이지 결코 단계를 뛰어넘는 일이 아닌데도 동주스님은 힘
을 다해 저지하였다. 그러나 독고스님은 이 말을 듣고서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해가 지나 동주스님은 화주(化主)할 일이 있어 호주에 갔다. 그는 이에 독고스님을 만나
보고 싶었지만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에 만나지 않았고, 또한 그가 자기를 헐뜯어 모연하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까 두려워하여 일부러 그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천령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독고스님은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속히 돌아와 예를 다하여 숙소와 음식을 제공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돈을 털어 모연을 돕고 그를 위하여 앞장서서 주선하며 조금도
전과 다를 바 없이 편히 대하면서 옛 우정을 나누었다. 동주스님이 호구사로 돌아온 후 깊
은 밤에 방장실 치상각(致爽閣)에서 서성대며 스스로를 돌이켜, "독고는 군자이고 수영(壽
永)은 소인'이라고 하였다.
내 요즘 총림에서 도반이라고 하는 자들을 살펴보니 말 한마디나 작은 잇끝으로 서로 다투
며 나아가서는 서로 헐뜯고 모함하여 상대방의 명줄을 끊어놓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
는 자들이 있다. 독고스님의 너그러운 우정과 동주스님의 반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
다.
제자가 스승의 잘못을 덮어주고 스승의 훌륭함을 드러내며 옳은 일을 따르고 잘못을 저버리
는 것을 효도라 하고, 스승의 선을 가리우고 잘못만을 들춰내며 옳은 일에 등을 돌리고 잘
못된 일은 따르는 것을 불효라 한다. 만일 스승에게 드러낼 만한 선이 없다면 말을 하지 않
는 것이 옳다. 억지로 선이 있는 것처럼 꾸며 다른 사람들이 쑥덕거리게 만들어 도리어 스
승의 불선을 들춰내게 한다거나, 순종할 수 없을 경우에는 스승에게 간언해야 옳은데도 어
거지로 옳은 일이라 여기고 순종하여 다른 사람들이 쑥덕거리게 만들어 도리어 스승의 비리
를 들춰내게 하는 일 또한 불효라 하겠다.
내가 요사이 여러 곳의 큰스님들이 열반하는 일을 살펴보니 그 제자들이 행장을 잘 갖추어
유명한 자에게 비명을 부탁하되, 거기에는 반드시 그가 태어날 때 부모의 남다른 현몽을 기
록한다거나 죽어서 화장하였을 때 치아와 염주 등이 부숴지지 않았고, 사리가 수없이 나왔
노라 기록하고, 이러한 몇 줄의 문장이 없으면 큰스님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변변치 못한 제자들이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거짓말을 꾸
며 자기 스승에게 욕을 끼치는 일이니 효도라 할 수 있겠는가? "전등록(傳燈錄)"에 실려 있
는 1,700명의 선지식 가운데 사리가 나왔던 분은 겨우 14명이었으며, 적음(寂音)존자가 저술
한 "승보전(僧寶傳)"에 실려 있는 81명의 선사 가운데 사리가 있었던 분은 몇 사람에 불과
하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선문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오로지 종지를 통달하고 설법을 잘하는 일
이다. 향상(向上)의 수단으로 사람들의 속박을 풀어 없애주는 일을,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
도한다고 한다. 나머지는 모두 지엽과 말단이다. 화장하여 간혹 육신 [諸根] 이 부서지지 않
고 구슬같은 사리가 나오는 것은 평소 그의 수행이 청정했다는 증험이니 이 어찌 쉬운 일이
겠는가? 그러나 내 두려워하는 것은 후세의 승려들이 서로서로 이러한 일을 모방하여 거짓
말을 조작하고 부질없이 자기 스승을 미화하느라 그 사실을 비석에 새겨, 다른 종교 사람들
이 읽어 보고 도리어 남다른 기적이 있는 스님들까지 거짓으로 의심하는 일이 생길까 하는
바로 그 점이다. 이러한 일들이 불문에 끼친 폐해는 참으로 적지 않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13. 용감히 물러선 두 스님/ 동양(東暘)스님과 초석(楚石)스님
동양(東)스님이 도량사(道場寺)의 주지로 있을 때 낭승(廊僧:사원 외무를 관리하는 승려)의
무고로 선정원(宣政院)에 소송이 제기되는 일이 있었다. 선정원에서는 이 사건을 본각사(本
覺寺) 주지 요암(了艤)스님에게 위임하여 그 고을 군수와 함께 그들의 잘잘못을 다스리도록
하자 요암스님은 말하기를,
"동양스님은 규율을 엄격히 지키고 대중을 엄숙히 다스리므로 그 아래에 있는 자들이 마음
대로 움직이지 못하자 함부로 소송을 일으켜 그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이들이 이
제 우리 무리 속에 뒤섞여 있고 관리는 한가롭게 관아 위에 앉아 동양스님을 취조하려드니,
이 일을 내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하고서 곧장 남당사(南堂寺)로 물러가 버렸다.
초석(楚石)스님이 가흥(嘉興) 천령사(天寧寺)에 주지로 있을 때였다. 마침 관리가 관청을 중
건하려는데 재목과 돌이 부족하여 스님들이 살지 않는 마을의 폐사(廢寺)를 헐어 필요한 물
자를 충당하고자 여러 사원의 주지들과 의논하였다. 당시 초석스님은 안된다고 힘껏 말렸으
나 관리가 받아들이지 않자 드디어 사퇴의 북을 두드리고 해염(海鹽) 천령사(天寧寺)로 돌
아와 버렸다.
두 노스님은 모두 과감히 의리를 행하고자 높은 주지의 지위를 마치 헌신짝 보다도 더 가볍
게 버렸다. 그러나 오늘날엔 자신이 화를 당하면서도 지위에 연연하여 차마 버리지를 못하
니 이를 어찌하랴.
14. 동상종(洞上宗)을 지키고 전하다/ 운외(雲外)스님
운외(雲外)스님은 창국(昌國) 사람이다. 몸은 왜소하게 태어났으나 정신만은 남달랐다. 설
법할 때는 정확한 비유와 방증을 들었고, 자신을 굽혀 배우려 하는 자들을 귀하게 여겨 자
상하게 성취시켜주었다. 그러면서도 맹렬히 달려나가 뒤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는
매의 눈초리와 용의 눈동자를 지닌 자라 하여도 그를 엿보지 못하였으며, 동상종(洞上宗)은
그의 힘으로 전해졌다.
노년에 천동사 주지가 되자 세상의 뛰어난 선객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스님은 거만하거나
재물을 탐하거나 혼자 먹지 않았고, 시주를 받으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후생들을 만나면
존중하고 그들이 선문을 짊어질 것을 기대하였으며, 하루 두끼 죽과 밥은 반드시 손수 발우
를 들고 큰방에 가서 하였다.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 남아 있는 재산이 없자 선객들이 각출
하여 스님을 영결하였다. 스님의 뒤를 이은 제자로는 빙 대방(聘大方), 여 독목( 獨木), 성
우암(省愚菴), 증 무인(證無印) 네 사람이다. 그들은 종문(宗門)을 크게 하기에 넉넉한 인물
이었지만 애석하게도 지위가 덕을 따라주지 못하여 그들의 법통을 전수할 자가 없었으며 무
인스님 문하에만 겨우 한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15. 알 수 없는 인물, 지귀자(知歸子) 온일 관(溫日觀)
온일 관(溫日觀)이라는 자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아호는 지귀자(知歸子)이며, 어려
서 서당에서 공부한 후 선림(禪林)에 들어왔다. 얽매임 없는 천성으로 도를 즐기며 작은 예
절에 구애받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정토에 매어두고 경황 중에라도 잠시를 잊어본 적이 없었
다.
그리고 왕희지 서첩의 임서(臨書)와 포도나무 그리기를 좋아하여 두 가지 모두 오묘한 경지
에 이르렀다. 가는 절마다 떠나올 때는 반드시 돈을 달라하여 주는대로 주막에 들러 혼자서
술을 마시고, 남은 돈은 길거리의 어린아이들에게 나눠주면서 이 아이들을 앞장 세워 "재상
오신다!"고 소리치도록 하였다. 이 때문에 아이들은 그를 보면 모여들어 열을 이루었다. 그
의 시와 게송은 이전의 것을 뛰어넘는 작품들이었으며, 후일 서호(西湖)의 교사(敎寺:天台
寺)에서 입적하였는데 일설에 의하면 백담연(白湛淵)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세간의 인연을 끝마치지 않고서 어떻게 이처럼 큰 일을 마칠 수 있었겠는가?
16. 천자의 생일에 돈에 매수당한 선객을 물리치다/ 죽장 암(竹莊岩)스님
죽장 암(竹莊岩)스님은 태주(台州) 도솔사(兜率寺)의 주지다. 태어나면서부터 큰 기개와 도
량이 있어 선배 스님들을 대수롭지 않게 보았으므로 그를 미워하는 자가 많았다. 전조(前朝)
에서는 천수절(天壽節:천자의 생신)에 반드시 각 고을마다 여러 사찰 주지 가운데 한 사람
을 뽑아 설법을 청하였다. 때마침 죽장스님이 그 일을 맡게 되자 그를 미워하던 자들이 많
은 선객을 돈으로 매수하고 화두를 물어 기봉(機鋒)을 꺾어놓으려고 하였다. 이 일을 주관하
는 자가 그 사실을 알고 모두 전해주었으나 죽장스님은, 집안 일은 맡은 자가 할 일이고 법
좌에 올라 설법하는 일은 주지의 임무이니, 그대는 허튼 말을 지껄이지 말라고 하였다.
그 이튿날 천령사(天寧寺)에 이르러 방장실의 객석에 좌정하여 여러 사찰의 주지들과 태연
스럽게 담소하다가 북소리가 울리자 가마를 타고 법당에 갔다. 많은 관리들과 공손히 합장
을 하고 법좌에 올라 축향(祝香)을 끝낸 뒤 옷깃을 여미고 자리에 앉으니, 화두를 묻는 선승
들이 끝이 없었으나 죽장스님은 물 흐르듯 막힘없이 답했을 뿐 아니라 그 말로 되물으니,
그들 스스로 물러나 패배를 자인하게 되었다. 이처럼 너덧 사람을 꺾는 동안 관리들은 오래
서 있는 데 싫증을 느낀 나머지 화두를 물으러 나오지 못하도록 중지시켰다. 드디어 스님은,
마치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우레가 진동하듯, 번갯불이 번쩍이고 별똥이 튀듯 종지와 화두
를 들어 설법하니 사람들은 모두 기가 질렸으나 그만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다. 설령 그를
미워하던 자에게 천만 개의 혓바닥이 있었다 하여도 스님을 찬양하는 사람을 이기지는 못했
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장수를 누리지 못했으니, 총림에 복되는 일이 아니다.
17. 축원(竺元)스님의 가르침을 받고/ 신 고범(新古帆)스님
황암(黃岩) 영석사(靈石寺)의 신 고범(新古帆)스님은 초년에 호구사의 동주(東州)스님을 찾
아뵈었는데 동주스님은 그에게 장경각 열쇠를 맡긴 적이 있었다. 그 다음 홍복사(鴻福寺)의
축원(竺元妙道)스님을 찾아뵙고, 어느 날 저녁 방장실에 올라가 자세한 가르침을 청하였다.
"저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狗子無佛性] 는 화두를 들고 있으나 들어갈 곳이 없으니, 스
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축원스님이 호된 목소리로 꾸짖었다.
"밤이 깊었으니 물러가거라."
고범스님은 방에 돌아와 욕을 지껄였다.
"나를 위해 말해주지 않으려거든 그만 둘 일이지 성깔을 부리기는……."
어느 사람이 이 이야기를 전하자 축원스님은, "언젠가 스스로 깨달을 때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고범스님은 이 말을 듣고 곧 바로 크게 깨쳤으며, 세간에 나오자 축원스님에게 맨
처음 향불을 올렸다.
18. 보운사 문종주(文宗周)의 임종
보운사(寶雲寺) 문종주(文宗周)라는 자는 상산(象山) 사람이다. 교·관(敎觀)을 널리 통달하
고 계율을 엄격히 지켜, 평소 사람들과 대화할 때에는 말을 못하는 사람처럼 더듬거렸으나
일단 법좌에 올라 강의를 할 때면 병에 든 물이 거꾸로 쏟아져 나오듯 누구도 막을 수 없었
다. 임종할 때, 법좌에 올라 "십육관경(十六觀經)"을 강론하고 나서 대중들과 영결을 고하려
하니 좌우의 승려들이 말씀을 올렸다.
"스님의 뒷일을 부촉하지 않고서 어찌 입적하시려 합니까?"
"납승이 떠나려면 속히 떠나야지, 무슨 뒷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제자들이 더욱 간청하자 법좌에서 내려와 방장실로 돌아온 후 낱낱이 조목별로 모두
써놓으시고 합장을 한 채 서방 사성존(四聖尊: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혜지보살, 대혜중보
살)의 불호(佛號)를 외우면서 회향발원(回向發願)을 끝마친 후 드디어 입적하였다. 다비를
하니 찬란한 사리가 나왔다.
19. 자상한 나의 스승, 축원 묘도(竺元妙道)스님
스승 축원(竺元)스님은 여 일암(如一菴)스님이 절서(浙西)에서 많은 책을 구입하여 태백사
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 요당(惟一了堂)에게 서신을 보냈다.
"듣자하니 일암스님이 많은 책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다른 일이 아니
라 그저 동자승 몇을 가르치려고 하는 일일텐데. 네가 그에게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
해주는 것이 좋겠다. 비유하자면 사냥개가 하루종일을 토끼를 쫓아다니다 보면 토끼 발자국
이야 잃지 않겠지만 쫓는 도중에 사슴을 만나 토끼를 버리고 사슴을 쫓아가면 두 마리 모두
잡지 못해 말짱 헛것이 되고 마는 격이다."
내 경산사의 몽당(蒙堂)에서 지낼 때 서신을 올려 스승의 안부를 물었더니 손수 답서를 보
내주셨다.
"그대가 몽당의 화롯불 맡에 앉아 부젓가락을 놀릴 때나 담소할 때, 국물을 먹고 찬물을 마
실 때, 이 모두가 그대 자신이지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단도직입적인 공부 [直截工夫]
란 결코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해 보니, 스승께서는 그 당시 아마도 나를 시원찮게 여겨 매서운 주먹질이나 발길질
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처럼 간곡히 가르쳐 주신 성싶다. 바로 이
것이 노란 나뭇잎새를 황금이라고 하여 어린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가르침인 셈이다. 그렇
지 않다면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흙탕물을 뒤집어 쓰셨겠는가.
아! 스님이 입적하신 지 이미 30여 년인데 이 가르침을 적으려니 스승의 얼굴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20. 성 도원(誠道元)스님의 「성학지요(性學指要)」
성 도원(誠道元)은 속세에 있을 때는 호석당(胡石塘) 선생에게 배웠으며, 출가하여서는 경
산사 허곡(虛谷)스님에게 귀의하였다. 그는 "성학지요(性學指要)" 10권을 저술하여 큰 도움
을 주었는데, 지정(至正) 병신년(1356)에 가화(嘉禾)의 고사명(高士明)이 이 책을 편집·정리
하여 간행한 일이 있다. 그 당시 장사성(張士誠)이 소주(蘇州)를 점거하고 제멋대로 왕을 자
칭하였는데 정명덕(鄭明德)·진경초(陳敬初)·예지진(倪之震) 등이 그를 보좌하고 있었다.
유학자들은 이 책에서 성품에 대한 회암(晦庵:朱子)의 의논은 본지를 잃은 것이라고 반박했
다는 사실을 장사성에게 말하니, 장사성이 그 본판을 없애도록 명하였다.
성품(性)이란 텅비고 고요하며 아무런 조짐도 없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선악으로 논할 수
있겠는가? 선악을 뒤섞어 세 가지 [三品:善, 非善非惡, 惡] 로 나누고 기질(氣質)과 함께 똑
같이 논하니, 도원(道元)의 논변이 참으로 옳은 것이다.
내 들어보니 우(禹:夏代의 왕)임금은 선한 말만 들어도 절을 올렸고, 안연(顔淵:공자제자)은
한 가지의 선을 얻어도 그것을 잃지 않고 가슴 속 깊이 새겼다고 한다. 오늘날 수많은 유학
자들이 모두가 우임금과 안연을 높히면서도 그들과 행이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21. 명망이 너무 높아도 문제/ 고림 청무(古林淸茂)
고림(古林淸茂:1262∼1329)스님이 보령사(保寧寺)에 주지로 있을 때 명망이 매우 높았다.
그래서 당시 큰스님이라는 자들이 그를 싫어하여 큰 절 주지자리가 비었어도 천거하려 들지
않았다. 천동사의 운와(雲臥)스님이 돌아가시자 원문청공(袁文淸公)이 당시 한림원(翰林院)
에 있으면서 특별히 명주(明州) 만수장(萬困莊)의 설애(雪崖)스님에게 서신을 보냈다.
"지난날 고림화상이 호구사에 있을 때 한차례 만나본 적이 있었는데 그는 기봉(機鋒)이 준
엄하고 논리가 명확하여 쇠퇴한 종풍을 일으켜 세울 만한 인물입니다. 지금 천동사에 주지
자리가 비었으니 설애스님께서 한번쯤 추천해주셨으면 합니다."
저속한 무리들이 팔뚝을 걷어부치고 크게 반발을 하였으나 이를 계기로 추천자의 한몫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선발되지 못했으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22. 설두사 상장주(常藏主)의 게송 4수
설두사(雪寺)의 상장주(常藏主)는 횡산(橫山)스님의 제자이다. 그의 모습은 몹시 초라하고
일자무식이었으나 오로지 선정(禪定)만을 닦았다. 그가 지은 게송은 현실과 이치에 다 맞고
음률이 막히지 않아 사람들을 크게 일깨우는 점이 있었다. 그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상달마(常達磨)'라고 일컬었다.
나는 소년시절에 경산사에서 그를 알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그가 지은 게송 4수를 기억하
고 있다. 즉 "철우송(鐵牛頌)"·"해문송(海門頌)"·"고순송(苦 頌)"·"식암송(息菴頌)"이다.
"철우송"은 다음과 같다.
백번 달군 화롯불 속 재빨리 뛰쳐나와
머리에 솟은 뿔 세속 티끌 멀리하고
때려도 가지 않고 당겨도 꼼짝 않으니
이번 회향에는 결코 포태 속에 들어가지 않으리.
百鍊爐中 出來 頭角觴嶸體絶埃
打又不行牽不動 這回端不入胞胎
"해문송"은 다음과 같다.
업풍이 불어 산처럼 파도치니
고기잡이 늙은이들 발 붙이기 어려워라
목숨과 몸 버리고 밀치고 들어가니
옥문에 자물쇠 없는 줄을 비로소 알았노라.
業風吹起浪如山 多少漁翁著脚難
命捨身埃得入 方知玉戶不曾關
"고순송"은 다음과 같다.
자줏빛 거죽 다 벗기니 은처럼 새하얀 줄기
펄펄 끓는 솥 속에 이리저리 뒤적인다
이처럼 괴로운 마음 사람들은 믿지 않고
무심히 깨물으며 진미라고 좋아하네.
紫衣脫盡白如銀 百沸鍋中轉得身
自是苦心人不信 等閒咬着味全珍
"식암송"은 다음과 같다.
백척간두에서 방법을 묻지 않고
높은 봉우리에서 한가로히 지내는 이 몸
부서진 집 엉성하여 비바람 못가리나
내 집 사정 남에게 말하기도 난처하네.
百尺竿頭罷問津 孤峰絶頂養閒身
雖然破屋無遮蓋 難把家私說向人
23. 절노비 때문에 입은 명예훼손
/ 천뢰(千瀨)스님과 형석(荊石)스님
주지된 사람은 누구나 엄하게 노비를 다스려야 하며 수시로 좋은 말로 그들을 가르쳐야만
이 자신에게 누를 끼치는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
천뢰(千瀨善慶)스님이 가흥(嘉興) 천령사(天寧寺)의 주지로 있을 때 그의 노비가 동네 거리
의 개 한 마리를 훔쳐 먹었는데 이 때문에 천뢰스님은 "개 삶아 먹은 스님[煮狗]" 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또한 형석(荊石)스님이 고소(姑蘇) 승천사(承天寺)의 주지로 있을 때
신도 집의 초청을 받고 배를 타고 가는 도중에 한 마을을 지나면서 그의 노비가 그 고을 사
람의 염소 한 마리를 훔쳐 먹었는데 이 때문에 형석스님은 "염소 삶아 먹은 스님 [煮晳]"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개를 훔치고 염소를 훔친 일들이 두 분 스님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마는 그 악명은 몸소 겪어야만 하였다. 이는 평소에 노비들을 엄격히 다스리지 못한 데에서
빚어진 일이라 하겠으니 뒷사람들은 이 두 스님의 전례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24. 속인과 어울려 술판을 벌이다가
주지(住持)란 모든 보살이 지혜로 머무는 경계에 머물러 [住]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륜을
잘 지키는[持] 자이니, 백장스님이 소위 불자주지(佛子住持)라고 이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요즘 들어 주지가 되어 명리를 쫓는 이들은 그들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지 모르는 자들이
다. 그런 중에는 간혹 속인들과 사귀며 먹고 마시는 일에 빠져 지내는 이도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태주(台州) 홍복사(洪福寺)의 심석산(琛石山)스님은 절 주변에 사는 속인 방공권(方公權)과
사귀면서 서로 술자리를 돌려가며 날마다 먹고 마시는 것만을 일삼았다. 그 절의 감사(監寺)
인 방(方)스님은 창고 일을 맡아 보기로 승낙을 받았었는데, 방공권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
를 모함하여 못하게 하였다. 이에 방감사는 앙심을 품고 방공권을 독살하려고 방장스님의
시봉에게 뇌물을 주어 그의 차 속에 독약을 넣었다. 그러나 공권이 석산스님을 존경하여 자
기 찻잔을 돌려 먼저 드리자 석산스님이 그 차를 마시고 독살되었다. 방감사는 석산스님을
독살시킨 일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어느 날 콩새 우는 소리를 들어보니 영락없이 "방감
이 날죽여[方監殺我]"하는 것이었다. 이에 근심과 두려움이 더욱 심해져 마침내 병이 되었고
햇볕 보기를 겁내다가 짚을 씹으면서 죽어 갔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석산스님은 자기 직분을 지키지 못하고 속인과 사귀며 그들의 말을 들
어준 데서 화근이 되어 마침내는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잃었으니 뒷사람들은 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콩새 [桑扈鳥]를 시골 사람들은 단마조(鍛磨鳥)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늦봄이 되어서야 운
다. 세속에서는 그 울음소리를 "장감단마(杖監鍛磨:짱 찌안 뚜완 뭐)'라 하는데 이 중은 "방
감살아(方監殺我:팡 찌안 싸 워)로 착각한 것이었다. 티후루 [提葫蘆]·쁘어삥찌아우 [婆餠
焦] ·워뿌쿠 [脫布袴] ·니훠훠 [泥滑滑] 따위의 새는 모두 그 울음소리를 따서 붙여진 이
름이다.
25. 목을 베자 하얀 우유빛 피가 흐르다/ 합존(合尊)대사
합존(合尊)대사는 송나라의 어린 임금 영국공(瀛國公)이다. 원(元) 살선(薩禪:世祖)황제에게
귀순하자 황제는 그에게 삭발을 하고 승려가 되도록 하였는데 국사가 그의 이마를 손수 쓰
다듬으며 비밀 계법을 전하였다. 그는 확고하게 정진 연마하여 이미 많은 증험이 있어왔는
데, 영종조(英宗朝:1321∼1323)에 이르러 대사는 때마침 흥에 겨워 시 한 수를 읊조렸다.
임화정에게 묻노니
매화는 몇 차례나 피어왔는지
황금누대 위의 길손이여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 몸.
寄語林和靖 梅開幾度華
黃金臺上客 無復得還家
첩자가 그 시의 의도는 강남 인심을 격동시키려는 데 있다고 참소하자 황제는 그를 목 베
어 죽였는데 스님의 목에서 우유빛 피가 흘러 넘쳤다. 황제는 그제서야 뉘우치고 내탕(內帑)
황금을 출연하여 소조상을 세우고 강남 지방의 글씨 잘 쓰는 승려와 선비를 연경(燕京)에
불러들여 대장경을 서사하여 그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그러나 황제는 초여름에 상도(上都)
로 가는 도중 더위를 피하다가 시해 당하여 새로 서사하는 대장경을 절반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26. 환생한 어린아이
지정(至正) 신축년(1361)에 섬서(陜西) 지방의 민가에 한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겨우 세 살
이었다. 어느 날 마을 거리에서 "현관(縣官) 행차에 길 비켜라' 하는 소리를 듣고서 앞길을
막아선 채 현관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의를 표하며 말하였다.
"서로 헤어진 지 오래인데 지금까지 별일 없었소?"
현관은 깜짝 놀라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이 어린아이가 어떻게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인가?"
이에 어린아이 앞으로 나아가 물어보자 어린아이는 전생(前生)의 성명을 말하고 이어서 예
전에 함께 주고 받으며 읊조렸던 시 몇 수를 열거하자 현관은 그때서야 옛 친구임을 믿게
되었다. 그는 다시 현관에게 말을 이었다.
"그대와 헤어진 뒤 이제 사람의 몸으로 환생하였으나 앞서 세 차례나 태어난 바 있다. 처음
죽어서는 개로 태어나 스스로 싫증을 느낀 나머지 일부러 주인집 아이를 물었는데 주인이
화가 나서 나를 죽였고, 다시 메추리로 환생하였으나 그것도 싫증이 나 강물에 빠져 죽었는
데 이제 사람으로 태어나 그대와 다시 만난 것이 참으로 다행이로다."
듣자하니, 이 아이는 전생에 주역의 이치를 즐겨보며 "태극이 움직이기 전 [太極未動]"의 경
지를 체험한 까닭에 삶과 죽음을 넘나들면서도 생사에 매이지 않았다고 한다. 마의(麻衣)스
님이 주역을 "심역(心易)"이라 하였고, 자호(慈湖)스님은 이를 "역(易)"이라 이름했는데, 거
기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27. 보(寶)상좌의 사리와 피고름/ 파암(破菴)스님
파암(破菴祖先)화상이 자복사에서 물러나 경산사 몽암(蒙菴)스님의 부름을 받고 그곳을 찾
아가니, 몽암스님은 그에게 입승수좌(立僧首座)의 직책을 맡겼다. 그곳의 보(寶)상좌는 큰
지견을 갖춘 인물이었으며 주지나 수좌가 부임하여 개당법문을 할 때면 으레 느닷없는 선기
문답으로 그들의 기봉(機鋒)을 꺾곤 하였다. 어느 날 파암스님이 법좌를 열었는데 보상좌가
왔다.
"천지의 안, 우주의 사이 그 중간에 있다."하면서 파암스님이 말씀하시자 보상좌가 무어라
말하려다가 파암스님에게 얻어 맞고 쫓겨나왔다. 당시 보상좌는 파암스님의 말이 끝난 다음
앞으로 나가 반박하려 했었는데 이미 "그 중간에 있다.'라는 부분에서 얻어 맞고 쫓겨나오
자 파암스님이 고의로 자신을 꺾으려 했다고 생각하고 자기자리로 돌아가 죽어버렸다. 화장
을 하고 나서 고향 사람들이 사리를 거두어 파암스님에게 드리자 파암스님은 그것을 들고
말하였다.
"보상좌야! 너에게 설령 여덟 섬 네 말의 사리가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을 한쪽 벽에 던져
놓겠으니 내 생전에 한마디 [一轉語] 를 돌려다오!"
그리고는 사리를 땅에 던지자 오직 보이는 건 피고름 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선배에게서 들
은 것이다.
28. 스스로 자초한 응보/ 장구육(張九六)과 방국진(方國珍)
원 지정(元 至正) 병신년(1356)에 장사성(張士誠)이 소주(蘇州)성을 공략했을 때 그의 아우
구육(九六)이라는 자가 맨 먼저 입성하여 살 집을 물색하다가 승천사(承天寺)가 그윽하면서
도 밝은 것을 보고서 내심 좋아하였다. 그곳을 궁실로 개조하고자 병사에게 법당의 불상을
부수도록 하였으나 병사들은 벌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그 누구도 감히 명을 따르지 않았다.
이에 구육이 화가 나서 불상의 얼굴에 활을 쏘아 맞힌 뒤 다 부숴버리고 장사성을 맞이하여
그곳에 살았다. 그 이듬해 정유년(1357)이 되자 명나라의 많은 병사가 여구(呂口)의 황태(黃
)를 공격하니 구육이 병사를 거느리고 출전하였으나 패배하여 포로가 된 후 오른팔을 잘
리고 죽었던 것이다.
무술년(1358) 방국진(方國珍)이 강절성(江浙省)의 분성참정(分省參政)이 되어 명주(明州)를
수비할 때였다. 그의 좌우사관(左右司官) 유인본(劉仁本)이 문학을 몹시 좋아하여 평소에 지
은 문장과 시를 편집·간행할 때 성 중에 있는 사찰의 장경을 가져다가 이를 풀칠하여 표지
를 만들고 경문을 지워 없앤 후 자기의 시와 문장을 베껴쓰니, 우리가 보기에도 뼈에 사무
치게 마음 아팠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 오(吳)의 원년(1359)에 군대가 명주를 점령하여 방국
진이 조정에 항복하자 유인본이 충성하지 않는 죄를 논하여 그의 등을 채찍질하니 등이 터
지고 창자가 드러난 채 결국 죽고 말았다.
구육은 하나의 용사에 지나지 않으므로 죄복(罪福)의 응보를 알지 못한 자이니 그래도 용서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인본은 공자의 학문을 배우고서 차마 이러한 일을 자행할 수 있었을
까? 공자의 말에 의하면, "신을 공경하되 신명이 앞에 있는 것처럼 하라"고 하였다. 더구나
우리 부처님은 삼계의 큰 성인이시다. 그런 까닭에 한 사람은 불상을 부수고 한 사람은 불
경을 파손하였는데 발걸음을 돌리기도 전에 극형의 응보를 받았다. 이는 받아야 할 것을 받
은 것으로서, 실제로 스스로가 자초한 응보이지 우리 성인이 보복한 것은 결코 아니다.
29. 쥐들의 보답
은성( 城)의 관강소(官講所)에 두 스님이 함께 살았는데, 그 중 한 스님이 쥐가 설치는 것
이 괴로워 크고 작은 두 개의 막대기를 가지고서 쥐덫을 마련하여 비치는 거울을 장치해 두
었다. 쥐가 이를 건드리다가 덫에 걸리자 그 스님이 급히 뛰어나가 물을 가져다가 쥐를 처
넣어 죽이려고 하였는데 같이 있던 스님이 차마 볼 수 없어 몰래 막대기를 들어 올려 쥐를
놓아 주었다. 이튿날 쥐덫을 놓았던 스님이 출타하여 함께 있던 스님 혼자서 잠을 자게 되
었는데 보통 때와는 달리 많은 쥐떼들이 법석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그 스님은 짜증을
내며 투덜거렸다.
"내가 어제 저녁에 너희를 놓아 주었는데 너희는 도리어 이처럼 시끄럽게 구느냐?"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그의 자리 앞에 파란 색 끈 하나가 놓여 있어 속으로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며칠 후 그 스님은 그 끈으로 허리를 묶고 나갔는데 옆방에 있는 스님이 그것
을 가리키며 "이것은 내 것이다. 침실에서 잃어버렸는데 어떻게 그대가 가지고 있는가?"라
고 물었다.
그 스님은 허리띠를 얻게 된 경위를 말해 주었으며 그때야 비로소 그날 저녁나절 쥐들이 떼
를 지어 옆방 스님의 끈을 훔쳐 보답하려고 시끄럽게 떠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30. 혜홍 각범(慧洪覺範)스님의 「승보전」
각범(慧洪覺範)스님의 "승보전(僧寶傳)"은 원래 "백선사전(百禪師傳)"이라 이름하였는데 대
혜(大慧)스님이 처음 이 책을 읽은 뒤 그 중에서 19명을 뽑아내 불태워버렸다. 그후 각범스
님은 황벽사의 지(知)스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종고(宗曠:大慧)스님이 '백선사전'을 훔쳐 본
후 그 중 19명의 전기를 불태워버렸는데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다."
각범스님은 당시 불쾌하게 생각하였지만 끝까지 19명을 '승보전'에 수록하지 못하였다. 사람
들은 이에 대해서 승보전에 81명만 수록된 것은 9×9의 수효에 준한 것이라고들 하나 이 말
또한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31. 공도사(恭都寺)의 정진과 게송
철경(鐵鏡至明)스님이 하산사(何山寺)에 살 때 그의 문하에 공도사(恭都寺)라는 사람이 있
었다. 그는 사명(四明) 사람으로 몸가짐이 청렴하고 불법 수행에 정진하며 날마다 법화경 한
권을 모두 외웠다.
임종 때 아무런 질병과 고통이 없이 옷을 갈아입고 가부좌 한 채 열반하였는데 화장을 해도
혓바닥이 불타지 않았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게송을 소리 높혀 읊조리며 추도하였고, 지금
까지도 그 게송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느날 밤 홀로 앉아 게송을 하였다.
온 산의 창아래 등잔불을 밝히니
화로에도 불이 없어 썰렁하구나
화두는 놔 두었다 그 이튿날 들자하고
도인은 종을 치러 또다시 누각으로 올라가네.
點盡山窓一盞油 地爐無火冷湫湫
話頭留向明朝擧 道者鼓鐘又上樓
철경화상은 법좌에 올라 특별히 이 게송을 칭찬하였다.
32. 휴거(休居)스님과 동주(東州)스님의 문체를 평하다
/ 남당(南堂)스님
내가 본각사(本覺寺) 남당(南堂)스님을 방문했던 날 밤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가운데, 시문
에는 섬세하고 통쾌한 차이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선휴거(先休居)의 송별 게송을 예로 들었
다.
누에고치가 집을 짓듯 스스로 얽어매어
백겹 천겹이 눈 앞에 놓여 있다가
이를 트고 나올 때에 온 몸이 나타나고
온 식구가 나루터 배 위로 오르게 되리.
如蠶作 自包纏 百 千重在面前
裂得破時全體現 軍家送上渡頭船
뒤이어 동주(東州)스님의 차운(次韻)을 읊었다.
언제 동정에 얽매인 적 있으며
하필 미생전의 소식을 깨달을 필요가 있는가
고향 천리 길 이제사 돌아가는데
뭍에는 길이 있고 물에는 배가 있다.
動靜何曾涉盖纏 何須更透未生前
故園千里今歸去 陸有征途水有船
남당스님은 다시 말했다.
"휴거스님의 문장은 섬세하여 표백한 비단결같이 보이지만 동주스님의 통쾌한 기상에는 미
치지 못한다."
33. 선불도(選佛圖)놀이를 하다가 꾸지람을 듣다
내 어린 시절 봉산사(鳳山寺) 택목료(擇木寮:선원의 요사)에 있었는데 공양 후 피곤함을 쫓
기 위해 친구들과 선불도(選佛圖)놀이를 하였다. 일원(一源)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 정두승
(淨頭僧:변소청소 소임)을 시켜 다음과 같은 게송을 보내왔다.
백천 제불과 그리고 중생을
한 장의 그림 속에서 비교하지 말고
마음 도장을 당장 가벼이 던져 버리면
당당하게 적광(寂光)의 도량에 높이 앉으리.
百千諸佛及衆生 休向圖中强較量
心印當陽輕擲出 堂堂高坐寂光場
이튿날 아침 문안을 올리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사람들은 손톱 자를 겨를도 없었다는데 너희 후생들은 차마 세월을 허송할 수 있는가?
더구나 선불도놀이에 있어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를 가지고 주사위 하나 던지고는 "나는
성불하였노라'고 좋아하니, 그대들은 언제 어디든지 성불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
르고 있는 것이다."
34. 천박한 소견으로 윗사람들의 어록을 펴내다
중모(仲謀)스님이 온주(溫州) 선암사(仙岩寺)에 주지할 무렵 천하는 바야흐로 태평하여 하
루도 빠짐없이 선승들이 찾아왔다. 나는 명 성원(明性元), 서 영중(瑞瑩中)스님과 함께 셋이
서 선암사에 갔었다. 성원과 영중은 시자로 있었고 나는 이미 장각(藏閣) 소임을 맡은 뒤였
다. 때마침 보름이 되어 스님께서 법상에 올라 설법하였다.
"한 번의 묵언으로 납승에게 대답하면 천둥이 우르렁대고 번갯불이 번쩍이고, 세 번 불러
그 뜻을 깨달으면 옥이 구르고 구슬이 돌며 칠팔십번 해주면 정신없이 떠받히고 부딪혀 사
람을 막히게 한다."
이어 주장자를 뽑아든 채 게송을 이었다.
어젯밤 서풍이 베갯머리에 불었을 때
끝없는 매미소리 나무숲이 시끄럽구나.
昨夜西風枕巖秋 無限蟬聲塞高樹
그 후 그의 어록을 편집하던 사람이 "애새쇄( 塞殺)' 세 글자를 "능유기(能有幾)'라고 바
꿔썼다. 이는 말로 표현하는 어려움을 모르고서 천박한 소견으로 선배들의 말을 쉽사리 고
쳐 써버린 것으로서, 수료학(水 鶴)으로 많은 부처님의 기어(機語)가 바뀐 일과 흡사하다
하겠다.*
35. 황암 호두(黃巖濠頭)의 행각
황암 호두(黃巖濠頭) 정안인(丁安人)의 휘(諱)는 각진(覺眞), 법호는 축심(竺心)이다. 처음
위우산(委羽山) 전절경(田絶耕)스님을 찾아뵙고 느낀 바 있어 가족을 버리고 토굴을 마련하
여 혼자서 살아 왔는데, 용천사(湧泉寺) 고우(古愚)스님을 만나자 고우스님이 그에게 말하였
다.
"양가집 여자가 이쪽저쪽으로 달아날 때는 어떻게 하려는가?"
"특별히 스님을 찾아 뵙겠습니다."
"나는 이곳에 그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에 정안인은 한 차례 손뼉을 치며 말하였다.
"30년 동안의 공부가 오늘 아침 무너졌다."
고우스님은 그만두었다.
이에 그곳을 떠나 안산(雁山) 춘우암(春雨菴)의 무제(無際)스님을 찾아가 문을 들어서며 말
을 내뱉었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니 행인들은 질퍽거리는 것을 싫어한다."
이에 무제스님이 "아니지, 아니지."라고 하자 다시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할(喝)을 듣고 쫓겨
나오고야 말았다. 만년에는 고을에 가서 명인사(明因寺) 앞에서 승려들을 맞이하기 시작했
다. 한 스님이 보따리를 들고서 곧바로 침실로 들어오자 그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하는 중이냐?"
"행각승입니다."
"네 발밑의 짚신짝이 떨어졌는데 어찌하여 그것도 모르느냐?"
그 스님이 대답하지 못하자 그의 보따리를 내동이치고는 쫓아냈다.
"이곳엔 네가 발붙일 곳이 없다."
또 한 스님이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달마대사가 오시는구나."
"나는 달마스님이 아닙니다."
"분명 달마스님인데 콧구멍만 다르다."
어느 날 명인사의 비구니 규장노(奎長老)를 만나 물었다.
"듣자하니, 노스님께서 간밤에 아이를 낳았다고 하던데 정말이오?"
"말해 보아라, 아이가 남자겠느냐 여자겠느냐?"
"닭은 등잔을 물은 채 달아나고 자라는 낚시대를 씹는구나."
36. 우연찮은 경우에 환희심을 맛보다/ 육왕사 면(勉)시자
육왕사의 면(勉)시자는 나의 친척 조카인데 어려서부터 참선에 뜻이 있었으나 불행하게도
요절하였다. 그는 천태산(天台山)과 안탕산(雁宕山)으로 떠나가는 한 시자에게 송별 게송을
지어 보냈다.
조과스님이 실오라기를 불어
시자는 깨치고 떠나갔네
그러나 말에 떨어지진 않았어도
이미 고정된 형식을 이루었네
천태산 마루턱의 저 구름과
안탕산 속의 나무 숲을
이번 떠나는 길에 잘 헤아려 보고
그 곳 주지의 이름일랑 함부로 건들지 말아라.
鳥 吹布毛 侍者便悟去
雖不涉言詮 早已成露布
天台嶺上雲 雁宕山中樹
此去好商量 莫觸當頭諱
임종할 때 다시 게송을 지었다.
남(生)도 본래 남이 아니오
죽음 또한 죽음이 아니로다
비마스님은 나무집게를 만들어 가르쳤고
구지화상은 손가락을 바로 세웠었지.
生本不生 死赤非死
秘魔擎叉 俱 堅指
내가 한번은 그에게 어떻게 해서 깨닫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지난날 옥궤사(玉 寺) 전단나무 숲 속의 경안(經案) 옆에 앉아 있다가 우연찮게 규
(珪)장주가 스님들과 함께 강론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 스님이 "향상사(向上事)가 무
엇이냐고 묻자, 규장주는 두 손으로 그의 주먹을 비틀어 머리 위에 얹어놓은 후 합장하고
"소로소로…' 하였습니다. 나는 이를 계기로 어떤 기쁨을 얻었고, 정신없이 몽당(蒙堂)으로
뛰어와 달(達)수좌에게 말하니 달수좌가 미소를 지으며 "너 왔느냐?'라고 하였는데, 그 뒤
가슴 속이 후련한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뒤에 규장주를 만나 그 이야기를 물어 보았더니 그는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질 뿐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다시 서서히 물어 보았더니, 그는 당시 그런 흉내를 낸 것은 그 스님을
놀려주려고 하였을 뿐, 사실 어떻게 해야했는지 몰랐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 일이 말에 있
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람이 불고 티끌이 일어나고 구름이 가고 새가 나는 것까지
모두가 사람을 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 뒤로 얼굴을 마주치면 그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지금보면 규장주는 그 스님을 놀려주려고 한 일이었지만 면시자는 여기에서 어떤 기쁨을 얻
었다. 생각컨대 이는 부처님 생존 시 어느 법회에서 어린 사미승이 가죽공을 가지고 장난삼
아 늙은 비구의 머리를 때려 사과(四果)를 깨치게 만들었던 고사와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37. 세 분 스님의 학인지도/ 동서 덕해(東嶼德海)스님
방산(方山文寶)스님이 정자사(淨慈寺)에 주지할 때 대중을 위하여 개당하고 물었다.
"남전(南泉)스님이 고양이를 죽인 일은 어떤가?"
이에 대해 여러 스님들이 말하였으나 모두가 맞지 않았는데 한 노비가 곁에 있다가 말하였
다.
"늙은 쥐가 왕초가 되겠군요."
이에 방산스님이 말하였다.
"좋은 말 [一轉語] 이기는 하나 너의 입에서 나온 것이 걸맞지 않다."
동서(東嶼德海)스님이 영은사 주지가 되어 개당 법문을 하였다.
"물고기는 물을 생명으로 삼는데 무슨 까닭에 물 속에서 죽는가?"
한 스님이 말하기를 "강물 속에서 잃은 돈을 강물 속에서 주웠노라."하니 스님은 그를 깊이
수긍하였다.
석실(石室)스님은 설두사에 주지할 때 개당 법문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말 꺼내는 것을 허
용하지 않았다. 세 분 큰스님께서 학인지도에 쓰신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심장과 간장을 해
부해서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바 없다. 후세에 이 글을 보는 자는 안목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이다.
38. 이발사 장씨와 바늘장이 정씨의 게송
이발사 장(張)씨는 이름이 덕(德)이며 은현 하수( 縣 下水) 사람이다. 대대로 사찰의 물자
를 공급하는 장사로서 참선하기를 좋아하고 항상 대중을 따라 법문을 들었으며 스스로는 깨
친 바가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었다. 어느 날 눈이 내려 어린아이들이
눈을 뭉쳐 불상 만드는 것을 보고서 선승들은 제각기 게송을 지었는데, 장씨도 뒤따라 한
수를 읊었다.
꽃 한 송이 여래 한 분 받들고 나왔는데
흰눈 꽃송이 둥글둥글 보조개에 미소짓네
해골이 원래 물이었음을 알았더라면
마야부인의 태속에 들어가지 않았을 걸.
一華擎出一如來 六出團團笑 開
識得觸?元是水 摩耶宮裡不投胎
바늘 만드는 정(丁)씨는 천태(天台) 사람으로 서암사 방산(方山)스님에게 공부하여 인가를
받았다. 그가 유리에 대하여 게송을 읊었다.
놔 버리든지
집어 들든지
한 점 신령한 빛
천지를 비추네.
放下放下 提起提起
一點靈光 照破天地
이 두 수의 게송은 사물을 빌어 이치를 밝힌 것으로서 모두 경지에 이른 글이다. 내가 이
를 함께 기록하는 까닭은 그들의 지위 때문에 말까지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39. 계적 원(啓迪元)스님의 출가와 저술
호성사(護聖寺)의 계적 원(啓迪元)스님은 임해(臨海) 사람이다. 서생(書生)으로 있을 때 마
을 보장사(寶藏寺)에 계시는 숙부 견(堅)스님을 찾아갔다가 우연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수
능엄경"을 보게 되었다. "산하 대지는 모두가 묘명(妙明)한 진심(眞心)에서 나타나는 것이라
는 구절에 이르러 책을 덮어 두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한참을 묵묵히 있은 후 스스로 긍정
되는 점이 있어 부모에게 아뢰고 출가를 허락받아 경산사 적조(寂照)스님에게 제자의 예를
드렸다. 스승을 위하여 두타행을 하였는데 갈수록 부지런히 닦았다.
세상에 나와 호성사의 주지가 되었으나 인연이 순탄하지 못하여 동당(東堂)에 은거하면서 7
년 동안 저서에 몰두하였다. "대보환해(大普幻海)", "법운통략(法運通略)", "췌담(贅談)", "우
설(廂說)", "유석정화(儒繹精華)", "대매산지(大梅山志)" 등 모두 몇 권을 남겼으며 "불조대통
부(佛祖大統賦)"를 짓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때문에 폐결핵으로 입적하니, 그의 나이 43세
였다.
40. 자기를 알아준 은혜에 보답하다/ 서암 요혜(西岩了惠)스님
천동사(天童寺) 서암(西岩了惠:1198∼1262)스님은 촉 땅 사람이다. 남쪽 여러 곳을 돌아다
니다가 경산사에 이르러 무준(無準)스님을 만났다. 거기서 서로 선기가 투합하여 무준스님은
입실을 허락하고 장주를 맡기려 하였으나 애써 막으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이튿날 고인이
된 눌(訥)시자의 기감(起龕:다비식 때 관을 다비장으로 옮겨가기 위해 일으키는 행사) 의식
이 있었는데 대중이 모두 겁을 먹고 말 한마디도 못하자. 무준스님은 유나(維那)를 시켜 혜
(惠)시자를 기감을 주관할 사람으로 맞이해 오도록 하였다. 이에 혜시자는 감(羌) 앞에 이르
러 연거푸 세 차례 "눌시자!"하고 불렀지만 이때도 사람들이 겁을 내자 그는 마침내 "세번
을 불러도 대답 없더니 과연 눌시자의 정수리에서 요천골(遼天 )이 나왔구나!"하였다. 무준
스님은 혜시자를 밀쳐내려는 자를 당장에 쫓아내고 혜시자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하도록 하
였는데 혜시자는 바로 서암스님이다.
스님은 이에 앞서 영은사의 묘봉(妙峰)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그 당시 영은사는 동서 양 행
랑 벽 위에 그려진, 선재동자가 오십삼 선지식에게 도를 묻는 벽화를 다시 단청하는 불사가
있었다. 선승들이 제각기 게송을 지어 축하했고 스님도 게송을 지었으나 그를 시기하는 자
가 두루마리에 써넣어 주지 않았는데, 묘봉스님이 두루마리를 펼쳐보다가 물었다.
"혜시자의 게송은 어찌하여 없는가?"
"있기는 하나 두루마리에 수록할 만한 글이 못됩니다."
"한번 일러 보아라."
게송을 본 후 묘봉스님은 그것을 첫머리에 써넣어 주었고 그 후로 명성이 자자해졌다. 뒷날
천동사의 주지가 되어서는 환지암(幻知菴)을 새로 지어 노년에 은거할 계책을 세웠고 사당
한 채를 따로 짓고 묘봉선사를 봉안하여 자기를 알아준 은덕에 보답하였다. 벽화를 찬양한
게송은 다음과 같다.
다행히도 사방에 막힌 벽이 없으나
누가 오색으로 허공에 단청할까
선재동자는 눈 속에 뿌연 눈병 생겨
한 꺼풀 도려내니 또 한 꺼풀 생겨나네.
幸是十方無壁落 誰將五彩繪虛空
善財眼裡生花峠 去却一重添一重
41. 고림(古林)스님 회하의 여름결제에서
호령강(浩靈江)은 고림(古林淸茂)스님의 제자이다. 고림스님이 요주(饒州) 영복사(永福寺)에
주지로 있을 때, 영강은 수좌승으로 여름 결제에서 불자를 잡았는데 한 납승이 나와서 물었
다.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면 어떻게 됩니까?"
"담장에 부딪친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어떻게 됩니까?"
"구덩이 속에 떨어진다."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 자리에 서서 죽을 놈이다."
어느 사람이 방장실을 찾아가 "수좌가 불자를 잡고 선객에게 답한 세 마디 [三轉語] 는 모
두 기연에 맞는 말이었습니다."하고 칭찬하자 고림스님이 말하였다.
"어느 곳이 좋단 말이냐? 듣지 못하였는가. 한마디 맞는 말이 만 겁에 노새 매는 말뚝이라
는 말을."
그러나 곧이 곧대로 알아들어서는 절대 안된다.
42. 쌍청의 종문을 드넓혔을걸 [能恢雙淸]
담 천연(湛天淵)은 천력 개원(天曆 改元:1328)에 봉산사 일원(一源)스님 회중의 윗자리 [前
版]에서 불자를 잡았으며 제창할 법문을 일원스님에게 미리 바쳤는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
이 있었다.
"상봉산 앞을 흰구름을 바라보며 걷노라니 구름은 걷히고 다시 퍼지며 우천정( 泉亭) 위
에 앉아 흐르는 물소리 앉아 듣노라니 때로는 시끄럽다가도 다시 잠잠하여라. 눈으로 보는
곳에서 귀로 듣는 불사를 하고 귀로 듣는 곳에서 눈으로 보는 불사를 해야 관세음보살 뿐만
아니라 나도 그 가운데서 깨침을 보리라 [便見…]
일원스님이 "볼 수 있으리 [便見] '라는 두 글자를 가리키면서 이 두자가 있으면 다른 사
람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 되니, 이 두 글자가 없어야 비로소 나의 말이 된다고 하자 천연스
님은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를 물러나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환단(還丹:신선의 신약) 한 톨이 무쇠를 황금으로 만든다는 옛 말은 우리 스님을 두고 한
것이다."
천연스님은 동서(東嶼)스님 문하에 뛰어난 제자로서 외모와 규범이 늠름하여 사람들의 존경
을 받았다. 세간에 나와 지당(芝塘) 명인사(明因寺)의 주지를 지내다가 입적하였으며 민중
겸(敏中謙)스님과 함께 명성을 드날렸다. 민중 겸스님은 도력이 높고 성품이 훌륭하여 사람
들에게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자였으며 동정 취봉사(翠峰寺)의 주지를 지내다가 입적하였다.
만일 조물주가 이 두 스님에게 장수를 누리게 했었더라면 마치 회당(晦堂)스님의 문하에 사
심(死心), 영원(靈源) 두 스님이 있었던 것처럼 분명히 쌍청(雙淸:靈源惟淸, 草堂善淸)의 종
문(宗門)이 넓어졌을 것이다.
43. 사치스럽고 포악한 주지/ 혁휴암(奕休艤)
혁휴암(奕休艤)은 양주(揚州) 사람이다. 젊은시절, 회전(淮甸), 연경, 오대산 등지를 돌아다
니다가 흉년을 만나 상선을 얻어 타고 명주(明州)에 왔다가 천동사의 객승이 되었다. 낡고
헤진 승복을 입고 하루 한 끼 먹으면서 밤을 새워 정진하니, 옛 스님의 의젓한 풍채가 있었
다.
봉화(奉化) 상설두사(上雪竇寺)에 주지자리가 비어 대중이 글을 올려 주지가 되어달라고 청
하니, 혁휴암은 흔쾌히 수락하고 삿갓 하나만을 들고 그곳으로 갔다. 그러나 방장실에 앉아
돈과 양곡을 관장한 지 일 년이 못되어 지난날 하던 것이 모두 바뀌었다. 허수룩하게 낡은
승복은 이제 가벼운 털옷으로 바뀌었고, 지난 날 하던 한 끼 공양은 이제 진수성찬으로 널
려졌다. 그리고 좌우 사람들이 자그마한 계율이라도 범하기만 하여도 성을 내며 스스로 일
어나 몽둥이로 때리고 그가 땅에 엎어지면 다시 직성이 풀릴 때까지 실컷 주먹질 발길질을
해댔다. 이윽고 사원의 진귀한 물건들을 모조리 긁어다가 은성( 城) 민가를 사들여 암자로
바꾸고 그곳에 살면서 날마다 재산 불리는 일만을 일삼았다. 그러다가 죽림사(竹林寺) 승려
들과 가옥관계로 관청에 소송이 제기되어 부정이 드러나게 되었고 결국 옥중에서 죽고 말았
다. 요즘 불문에서 선을 가장하여 명예를 바라며, 부처님의 가르침에 욕을 끼치는 자들이 어
찌 혁휴암 한 사람에 그치겠는가.
시전(詩傳)에 의하면, 처음엔 잘하지 않는 자가 없지만 끝마무리를 잘짓는 사람은 적다고 하
였으니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속담에 의하면, 사람에겐 닦아서 얻을 수 있는 복이 있고 연장하여 얻을 수 있는 수명이
있다고 한다. 인간의 일세(一世)만을 가지고 이 속담을 논한다면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삼세(三世)로 확실하게 논한다면 그 근원은 알 수 있겠지만 그 변화는 통달할 수 없다. 변화
란 일세가 삼세를 포괄할 수 있고, 삼세가 일세에 실현될 수도 있는 것으로서 삼세인과와
일세인과가 시간적으로 멀고 가까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일심에서 짓고 받는 것
이다.
무엇 때문인가? 세상 사람 가운데 선행을 하는 자가 도리어 미천하거나 요절하고, 악을 자
행하는 자가 도리어 복받고 장수를 누리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전생에 많은 선을
행한 자가 현세에 비록 악한 일을 하였다 해도 현세의 악이 전생의 선을 이기지 못한 까닭
에 복을 받고 오래 사는 것이며, 전생에 많은 악을 행한 자는 비록 현세에 선을 행하였다
하지만 현세의 선행이 전생의 악을 이기지 못한 까닭에 비천하고 요절하는 것이다. 그렇다
면 현세의 선악과 대한 과보 또한 내생(來生)에 있는 법이다. 혹시 전생의 선행이나 악행이
그리 무겁지 않아서 현세의 행위가 조금이라도 많다면 미천함과 요절은 복과 장수로 변하
고, 복과 장수는 미천함과 요절로 바뀌기도 한다. 그렇기에 사람은 변화에 통달하여 삼세인
과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고, 일심이 짓고 받는다는 이치에 어두워 현세의 수행을 게을리 해
서는 안된다.
44. 인과 변화의 이치, 수행과 기도의 영험/ 고정(古鼎)
경산사 고정(古鼎)스님은 태어날 때부터 난장이에 입술은 위로 뒤집혀 있어 이와 잇몸이 드
러나 보이고 목소리는 맑지 못하며 피부는 거치르고 메말랐었다. 어느 관상가가 그의 얼굴
을 보고 점치기를,
"네 가지 천한 모습이 난장이의 몸에 모여 있으니 이 사람 일생은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하
다."고 하였다. 스님은 이 말을 계기로 마음에 맹세한 후 관음대사(觀音大士)에게 기도를 드
렸는데 낮에는 관음보살의 이름을 헤아릴 수 없이 외우고 밤에는 보살 앞에 몇천 배를 올리
면서 20년 동안을 이렇게 수행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천한 모습이 복스러운 모습으로 바뀌
어, 입술은 펴지고 이는 보이지 않았으며 목소리는 부드럽고 피부는 윤택하게 되었다. 그후
지난 날의 관상가를 또다시 만났더니 축하하였다.
"스님의 이제 모습은 옛 모습이 아닙니다. 더구나 벼슬할 수 있는 주름살이 생겨났으니, 머
지않아 높은 자리에 올라 선풍을 크게 떨칠 것입니다."
그 해에 융교사(隆敎寺)의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갔으며 다시 융교사에서 보타사(寶陀寺)로
옮겨갔고 보타사에서 또다시 중축(中竺)경산사의 주지로 승진되어 5년이 채 안되는 사이에
세 차례나 자리를 옮겼고, 경산사에서 12년간 주석하다가 79세에 입적하였다. 스님의 수행과
기도의 효험은 복과 수명을 더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모습마저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마
치 남의 집 창고에 물건을 맡겨 두었다가 찾아오듯 쉽사리 이러한 일을 해내 우리처럼 게으
른 자를 격려했다고 할만 하다.
45. 자택사(紫택寺) 창고지기 방 벽에 써 붙인 글
혼원(混源)스님이 자택사(紫택寺)에 주지할 때였다. 고사(庫司:창고 관리업무)가 거처하는
방의 벽 위에 벽기(璧記)를 쓰고 다시 그 끝에 덧붙였다.
물 한 방울 쌀 한 톨도
대중에게 속하는 물건이니
사람마음 즐겁게 하도록 힘쓰라
없는 살림 지탱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털 쓰고 뿔 돋힌 짐승의 업보를 생각해 보라
오랜 세월이 흐르다보면
인과에 밝은 사람이 나와
다행히 이 이치를 알게 될 것이다.
滴水粒米 盡屬衆僧
務悅人情 理難支破
當思披毛戴角 歲月久長
明因果人 幸宜知悉
스님의 글씨는 오랜 세월에 퇴색되어 거의 마멸되었는데 뒤에 일산(一山)스님이 그 자리를
이어 벽을 다시 단장하고 직접 이 글을 써서 지금까지도 전해오고 있다. 오로지 잇끝만을
도모하는 자는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46. 문 닫고 사는 설법/ 노소(老素)수좌
노소(老素)수좌는 일생동안 문을 닫고 은거하였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원 천력(元 天曆:1329∼1330) 연간에 어느 한 선객이 노소수좌가 친필로 산에 은거하면서
나오는대로 회포를 적은 게송 세 수를 얻어 스승 귀원(歸源)스님에게 착어(着語)를 부탁하
자 귀원스님이 말하였다.
"총림에서는 그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지 않았던 점을 유감으로 여기지만 이제 이 세 수의
게송을 읽어보니 마치 큰 범종을 한번 치면 모든 소리들이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 그가 설법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게송이 오랜 세월이 지나다보면 세
상에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때문에 눈에 보이는대로 몇 수를 기록해 본다.
전등록 읽다 보니 구렛나루 먼저 희고
애써 공부 다워온 지 몇 낙차(洛叉:십만 년)인고 튀 튀
낮잠 자다 깨어보니 책상 위엔 먼지만이 가득한데
처마 끝에 반쯤 드는 한가한 햇살 아래 뜨락의 꽃이 지네.
傳燈讀罷 先華 功業猶爭幾洛叉
午睡起來塵滿案 半 閑日落庭華
뾰족한 지붕 낮게 고치지도 않고
위에는 긴 숲이 있고 아래엔 연못 있으니
깊은 밤 놀란 바람 노란 잎새 휘날려
오히려 쑥대밭에 내리는 비소리 같아라.
尖頭屋子不敎底 上有長林下有池
夜久驚 掠黃葉 却如蓬底雨來時
덧없는 세상, 세월 얼마 남지 않아
애오라지 시를 쓰며 또 세월을 달래본다
오늘 아침 솔나무 아래에서
서풍을 등에 맞고 가마귀 수를 헤아려 본다.
浮世光陰自不多 題詩聊復答年華
今朝我在長松下 背立西風數亂鴉
47. 청소하는 눈 먼 수좌/ 나한사(羅漢寺) 증(證)수좌
안산(雁山) 나한사(羅漢寺)의 증(證)수좌는 눈은 멀었지만 도안(道眼)은 명백하였다. 그는
아침마다 마당쓰는 것으로 불사를 삼았는데 한 스님이 물었다.
"이 한조각 땅뙈기를 말끔히 쓸었는가?"
증수좌가 빗자루를 세워 보였다. 또 다른 스님이 물었다.
"진짜 깨끗한 곳은 본디 한점 티끌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청소를 하는가?"
또다시 증수좌는 빗자루를 세워 보였다.
요청(樂淸) 지방에 구우산(九牛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증수좌는 이 산에 대하여 게송을 읊
었다.
너덧 봉우리 무리를 이룬 지 몇 해던고
봄 가을 겪어오며 바람과 아지랑이로 배불렸네
맑은 연못 물을 언제 한번 마셔볼까
푸른 들판 갈지 않은 채 긴 잠에 취해 있네
낱낱의 발꿈치를 모두 땅에 붙이고서
하나하나 콧구멍은 먼 하늘에 솟아있네
보통 천봉의 정상에 서 있으니
온누리 사람 온다한들 어떻게 끌고갈까.
四五成群知幾年 春來秋去飽風煙
淸池有水何曾飮 綠 不耕長自眠
個個脚 皆點地 頭頭鼻孔盡 天
尋常只在千峰頂 大地人來作?牽
48. 귀원(歸源)스님의 문하
귀원(歸源)스님이 천복사(薦福寺)의 주지로 있을 때, 어느 날 저녁 문하의 스님들과 차를
마시면서 소동파(蘇東坡)가 장산사(蔣山寺)의 불혜 천(佛惠泉)스님을 방문하였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천스님이 소동파에게 물었다.
"선비는 성씨가 무엇이요?"
"저울(秤)이요."
"무슨 저울?"
"천하 노스님의 혓바닥을 재는 저울이요."
이에 천스님께서 악!하고 할을 한 뒤,
"이 할은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말해보라"고 하니 동파가 말이 없었다.
귀원스님은 스님들에게 각기 소동파를 대신하여 한마디 해보라고 하였다. 당시엔 대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오로지 원(源)장주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촛불을 껐고 일(一)시자가
한 차례 기침소리를 내니 스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였다.
"원장주는 촛불을 끄고 일시자는 한 차례 기침소리를 냈겠다!"
이 말에 뒤이어 정(定)장주는 스님께서 한마디 해달라고 청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아마 네가 한다해도 이 범주를 넘지 못할 것이다."
원장주는 뒷날 온주(溫州) 수창사(壽昌寺)의 별원(別源)스님이었으며 일시자는 명주(明州)
천동사(天童寺)의 요당(了堂)스님으로서 두 사람 모두가 귀원스님의 법통을 이었으며 정장
주는 바로 대자사(大慈寺)의 천우(天宇)스님으로 축서(竺西)스님의 문하에 있었다.
원 지정(元 至正:1341∼1367) 연간에 강제(江:江省) 행성(行省)의 승상 달세철목이공(達世鐵
穆爾公)이 선정원(宣政院)일을 겸직하였는데 행성(行省)의 일을 발표하면서 스님에게 두번이
나 격문을 보내 천동사와 경산사의 주지로 삼으려 하였지만 스님은 모두 늙고 병들었다는
핑계로 사양하였다.
49. 수창사(壽昌寺) 별원 법원(別源法源)스님의 인품
온주(溫州) 수창사(壽昌寺)의 별원(別源法源)스님은 봉화 사람이다. 오랫동안 귀원(歸源)스
님에게 귀의하여 불법을 이으려는 일념으로 다른 길을 걷지 않았다. 무제 본(無際本)스님이
강심사(江心寺) 주지로 있을 무렵 노년에 그에게 주지 일을 분담하여 납자 지도하는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그가 백학사(白鶴寺)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가게 되자 무제스님은 후한 예
우로 법제자가 되어주기를 바랐지만 별원스님은 웃기만 할 뿐, 은혜에 보답하는 첫 향불을
귀원스님에게 올리니 총림에서는 그의 인품에 감복하였다. 스님은 주지 자리를 세 차례나
옮겼는데 사찰에 들어가면 먼저 객승채를 수선하고 필요한 모든 물건을 갖추어 놓아 그곳을
찾는 운수납자들은 마치 자기 방에 들어간 듯하였다. 67세에 가벼운 병환이 있었는데 제자
인 선암사(仙岩寺)의 호(晧)장로와 몇 마디 말을 나누다가 문득 돌아가셨다.
50. 선종사찰을 교종사찰로 바꾸려는 계획을 막다
/ 각암 몽진(覺菴夢眞)스님
고소산(姑蘇山) 승천사(承天寺)의 각암(覺菴夢眞)스님은 종지와 설법에 모두 통달하여 사람
들은 그를 "작은 대혜선사'라고 일컬었다.
원 지원(元 至元:1335∼1340) 연간에 화엄종의 강주(講主)모씨가 조정에 아뢰어 강남지방의
양절(兩浙)에 있는 유명한 사찰을 화엄종 사찰로 바꾸고 교종사찰의 서열을 선원보다 높은
위치에 올려 놓고자 조정의 윤허를 받들고 남방으로 내려오는 길에 승천사를 찾았다. 그 이
튿날 각암(覺菴)스님이 법당에 올라 그를 위하여 법문을 하였는데, 화엄경의 전체 종지를 광
범하게 인용하여 종횡무진으로 설법하면서 여러 스님들의 논의나 해석의 잘잘못을 마치 손
바닥보듯 명확하게 분석해내니 그 당시 화엄종의 강주는 여태껏 듣지 못했던 바를 듣고 큰
법익을 얻었다. 그리하여 "승천사처럼 작은 사찰의 장로마저도 이런데 더구나 항주 큰 사찰
의 종사(宗師)는 어떻겠나'하고는 되돌아갔다. 다시 상소를 올려 앞서 내린 어명을 중지케
하였는데 실로 각암스님의 힘이었다.
51. 전쟁 때 잃은 어머니를 찾아/ 승도(僧導)스님
승도(僧導)스님은 오흥(吳興) 사람이다. 원나라가 강남을 공격했을 때 부친을 여의고 모친
은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가자 도스님은 고아가 되어 백부가 길렀다. 그의 나이 14세가
되자 백부에게 "사람마다 부모가 있는데 나는 어찌하여 부모가 없느냐'고 묻자 백부가 그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는 어머니를 찾기로 결심하고 다시 물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너와 닮은 얼굴이다."
그는 마침내 거울 하나를 지니고 이발기술을 익혀 먹고 살 밑천을 삼으면서 10년 동안 찾아
헤매었지만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생각지 않게 하간부(河間府) 장원현(狀元縣)에 이르
러 말 키우는 늙은 군인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의 어머니를 사로잡아간 자였다. 그를
따라 그의 집에 돌아가서 미처 앉기도 전에 밖에서 들어오는 한 노파가 있었는데 남부지방
의 말씨가 섞여 있었다. 도스님은 거울을 꺼내 자기 얼굴을 비춰보니 그 노파와 비슷하였다.
얼른 큰 절을 올리면서, 어머니 하고 부르자 노파는 고향과 성명과 생년월일 등을 물어 보
았는데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이에 모자는 서로 부둥켜 안고 크게 울었으며 마을사람들이
모여 지켜보았다.
열흘쯤 머문 후 도스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돌아오려고 하였으나 그 집안의 늙고
어린 가족들이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몰래 도망하여, 양주
(楊州)에 이르러서 작은 가마를 구하여 그 속에 어머니를 앉히고 가마를 메고 갔는데, 열 걸
음 걸을 적마다 한 번씩 쉬면서 사방에 큰 절을 올리고 그 다음엔 어머니께 절하였다. 곧장
사명(四明)의 보타산(寶陀山)에 이르러 관음대사현상(觀音大士現相)에 기도드린 다음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윽고 도스님이 출가하려 하자 모친은 그를 허락하였는데 얼마 후 모친이 죽어 화장하자
잿속에서 작은 옥으로 만든 관음상 일구(一軀)가 나왔으며, 지금까지도 이를 의흥(宜興) 남
문 밖 정사(精舍)에 봉안하여 공양을 올리고 있다. 그 정사는 도스님이 지은 절이다.
52. 두 스승에게 천태와 선의 종지를 공부하다
/ 아암 무(我菴無)법사
상천축사(上天竺寺)의 아암 무(我菴無)법사는 황암(黃岩) 사람이다. 방산(方山)스님에게 귀
의하여 삭발하고 중축사(中竺寺) 적조(寂照)스님을 찾아뵙고 문서에 관한 일을 보면서 시봉
하였다. 그의 외숙은 태학(太學)의 원로 선비였는데 그를 잡아당겨 개종하도록 하니, 그는
연복사(演福寺)의 담당(湛堂)스님을 찾아뵙고 열심이 교학을 연구하였다. 적조스님은 그가
떠난 것을 애석히 여겨 게송을 보냈다.
교에서 선으로 들어오는 것은 예나제나 있는 일이지만
선에서 교로 들어가는 것은 고금에 없던 일
일심삼관(一心三觀)이 문이 다르다 하지만
천강에 물은 가득한데 달만이 외롭구나.
從敎入禪今古有 從禪入敎古今無
一心三觀門雖別 水滿千江月自孤
뒷날 세상에 나와 담당(湛堂)스님의 법제자가 되었으며 뒤이어 한묶음의 향을 올려 적조스
님에게 보답하였으니 발자취가 다르다 하여 두 마음을 가지지 않았음을 보여준 셈이다. 적
조스님이 입적할 무렵 스님은 사명 땅 연경사(延慶寺)의 주지로 있었는데, 적조스님은 그에
게 대소(大蘇:天台)와 소림(少林:선종) 이가(二家)의 종지를 넓히는 데 힘써 줄 것을 유서로
부탁했을 뿐 다른 말은 없었다. 스님은 또한 적조스님의 영전에 향을 사르며 말하였다.
묘희의 오대 후손 중 가장 빛나는 불꽃
적조스님은 이 시대 감로*문일세
슬쩍 부딪치기만 해도 간뇌(肝腦)가 터지고
차가운 얼음 위에 갑자기 따뜻한 봄볕
내 생각하니 콧구멍을 잃어버린 날에
무슨 숨이 지금껏 남아 있겠소
북풍이 불어 오는 날 이 해도 저무는데
번갯불이 친다한들 공중에 무슨 흔적을 찾아볼까.
妙喜五傳最光 寂照一代甘露門
等閑觸著肝腦裂 氷雪忽作陽春溫
我思打失鼻軫日 是何氣息今猶存
天風北來歲云暮 電討甚空中痕
그는 얼마 못살고 아무런 병 없이 백운당(白雲堂)에서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53. 능력과 상황에 맞게 소임을 안배하다/ 천동사(天童寺) 동암(東岩)스님
동암(東岩)스님은 강서(江西) 사람으로 81세에 사부대중의 추천으로 천동사(天童寺)의 주지
가 되었다. 그 당시 천동사는 몹시 퇴락해 있었는데 스님은 노년에 중임을 맡아 편안히 기
거할 겨를이 없었으므로 그의 문도 동(東)·원(圓)·경(慶) 세 사람을 불러 각자에게 일을
분담시켰다.
"동아! 나는 강서 사람들과 인연이 있으니 네가 그곳을 찾아가 나의 뜻을 대신 전하여 재화
(財貨)를 얻어 만수건원보각(萬壽乾元寶閣)을 세우고 구리로 여래불상 천 구와 아울러 공양
구를 주조토록 하라. 이 일은 네가 맡아 할 일이다. 원아! 너는 관리들의 일을 잘 알고 있으
니 관청 일을 네가 맡도록 하라. 경아! 너는 조심스러워서 위아래로 화목하니 병들고 수척
한 이를 살피는 일은 너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의각(衣閣:조사의 의발을 보관하는 곳)을
지키도록 하라."
그 후 5년이 채 안되어 건물이 준공되고 불상이 조성되었으며 나머지 재산을 가지고 상산
(象山) 지방의 바닷가에 뚝을 막아서 사찰의 식량으로 쓰게 하니, 관청도 무사하고 상하 간
이 화목하고 엄숙하였다.
비록 동·원·경 세 사람의 힘이라 하지만 스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쉽사리 이뤄
질 수 있었겠는가? 요즈음 스승들을 살펴보면 그의 무리를 살찌우는 데만 힘쓸 뿐, 절이 퇴
락해도 마치 길손이 길가의 버려진 헌집을 바라보듯 조금도 개의치 않으니 괴이한 일이라
하겠다.
54. 하안거 결제법문에서 소임맡은 제자들에게/ 단교(斷橋)스님
단교(斷橋)스님은 성격이 꼬장꼬장해서 납자들을 인정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가 국청사(國
淸寺)의 주지가 되던 날 영상담(泳象潭)을 수좌로, 구고전(垢古田)을 서기로 삼았다. 당시 장
주의 성명은 전해오지 않는다. 여름 결제 때 불자를 들고 법당에 올라 인사말을 한 다음 법
문을 하였다.
"수좌는 선배 스님들에 비해 칭찬할 만하지 못하고 서기가 하는 법문은 마치 인물을 그릴
때 모든 것을 다 그려놓고 눈동자를 찍지 않은 격이며 장주가 하는 법문은 무슨 말을 하는
지 알 수 없다. 이러고서도 뒷날 나는 노승의 법회에서 소임을 보다가 왔노라 하겠지!"
그는 불법 주관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여 조금이라도 불법을 손상한다거나 후학
을 오도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았는데, 비록 말로는 그들을 눌렀으나 실제로는 그들을 일으
켜주었다. 오늘날 불법을 주관하는 자들은 자신의 안목은 밝지 못하면서 사탕발림으로 사람
들의 관심을 사는 데 힘쓰고 그들이 감동하여 법제자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아! 만일
단교스님이 이런 속된 짓을 보았더라면 어찌 침을 뱉고 욕을 하는 데 그쳤겠는가.
55. 아들 둘 낳고 출가하여 도를 이루다/ 희길상(喜吉祥)
진강(鎭江) 보조사(普照寺)의 희길상(喜吉祥)은 산동 사람으로 피부가 새까맣고 깡말라 인
도 승려와 비슷하였다. 젊은 나이에 부모에게 출가하겠다고 말씀드리자 부모는 후손을 잇지
못하는 죄 크다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부인을 맞이하여 두 아들을 낳은 뒤에야
승려가 되어 유식업(唯識業)을 주로 익혔다. 지원(至元) 25년(1294)에 설선황제(薛禪皇帝:元
世祖)는 강회(江淮) 지방에 36군데에 어강소(榮講所)를 창건하였는데 보조사(普照寺)도 그
중의 하나였으며 그곳 주지로 스님을 명하였다. 스님은 강설하는 일 말고는 "화엄경" 10권
씩 읽는 일로 일과를 삼았다. 운남사(雲南寺)의 단 무념(端無念)스님과 교류하였는데 무념스
님은 유식종의 종장이었다. 두 사람이 불법을 자세히 논하다가 무념스님이 조금치라도 오류
를 범하면 법사는 바른 말로 고쳐주었으며 무념법사는 진심으로 굴복하였다.
열반 후 다비를 하니 많은 사리가 나왔는데 그의 문도가 유골과 사리를 거두어 검은 옷칠을
먹인 함 속에 20년 간 모셔오다가 비로소 단도(丹徒) 땅 우산사(雩山寺)에 부도탑을 세웠다.
그런데 부도탑에 사리를 넣으려던 날, 함을 열어보니 사리는 함 속의 보자기에 주렁주렁 매
달려 있었는데 마치 벌이 모여 있는 듯, 개미가 모여 있는 듯하였으며 만져보니 빛이 찬란
하였다. 진강(鎭江)지방 사람들은 그의 초상화를 그려 사당에 모신 사람이 많았으며 그를
"길상 부처님'이라고 하였다.
56. 생전에 불법을 닦으면/ 자안(子安)스님
명주(明州) 해회사(海會寺)의 승려 자안(子安)스님은 원 지정(元 至正) 계묘년(1363) 가을
보당(寶幢) 저자 위의 산을 사들여 암자를 지으려고 터를 닦다가 세 개의 옛 무덤 구덩이
[壙] 를 발견하고서도 흙으로 메운 후 암자를 지었는데 그 뒤에 병을 앓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에, "풍도(з都)에 들어가니 옛 의관을 갖춘 세 사람이 염라대왕 앞에 무릎을
꿇고 자안의 죄를 참소하였다.
"자안(子安)은 전생의 성이 조(趙)씨며 이름은 사굉(仕宏)인데 지난날 관리로 있으면서 사사
로운 감정으로 누명을 씌워 우리를 먼 곳으로 유배 보냈습니다. 그 당시 함께 굴욕을 당한
사람이 네 명이었으나 이미 사면을 받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생전에 불법을 닦은 인연
으로 죽자마자 제도되었으나 우리 세 사람은 죽은 후 모두 이곳에 안장되었는데 이제와서
또다시 우리들의 무덤까지 파헤치니 원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원래 우리는 힘을 합해 그를
죽이려고도 하였지만 그가 관리로 있을 때 80명의 승려에게 공양을 올렸기에 이 생에 그는
승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감히 그를 죽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염라대왕이 자안을 불러 앞으로 오도록 한 후 그들의 땅을 되돌려 주라는 꾸지람을 듣
다가 꿈속에서 깨어나니 어디선지 "진실한 말을 어기지 말라!"하는 소리가 세 차례나 들려
왔다. 이튿날 깨끗한 자리를 마련하고 영고목(榮枯木)스님을 명하여 계법(戒法)을 설하였는
데 그 뒤로 자안은 쾌유되었다. 자안은 마침내 암자를 헐고 다시 옛 무덤을 만들어 준 후
그곳을 떠났다.
57. 염불공덕을 체험하고 신심을 내다/ 사첨사(史僉事)
사첨사(史僉事)는 단성(鄲城) 사람이며, 이름은 전(銓), 자는 형보(衡甫), 아버지 헌부(憲夫)
는 남대장부(南臺丈夫)이다. 나는 지정(至正) 신축(1361)년 은성( 城)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
는 불가의 염불 공덕이 매우 크다고 극찬하였고 이어서 자기가 두번이나 직접 본 일이며 거
짓이 아니라고 하였다.
연경(燕京)에 한 선비가 있었는데 그는 지천주( 天呪)를 외웠다. 어느 날 저녁 눈썹이 긴
노인이 문을 두드리며 말하기를, "나는 사람이 아니고 용인데 비를 잘못 내린 죄로 상제께
서 꾸지람을 받았으니 한 번만 비호하여 주십시오." 하였다.
"내가 무슨 성인이라고 당신을 비호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대는 항상 지천주를 간
직하므로 공덕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하고는 말을 마치자 노인은 없어졌다. 며칠 후 우연히
왼쪽 엄지 손가락 손톱 밑이 따끔따끔 아프기에 살펴보았더니 가느다란 선이 있었는데 그
길이는 3·4푼(分) 정도였으며 색깔은 붉고 모양은 용과 같았다. 그 선비는 예전과 같이 주
문을 외웠는데 그날 밤 노인이 또다시 나타나 감사를 표하고, "비호해 주신 덕에 상제의 꾸
지람을 피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지금 창 밖으로 손을 뻗어 보라고 하였다. 그의 말대로 창
밖으로 손을 뻗자 순식간에 우레와 비가 쏟아지면서 용 한 마리가 하늘에 솟구쳐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제령(濟寧) 땅에 신도 한 사람이 있었는데 좌선을 좋아하여 20여 년을 하였다. 하루는 집사
람들에게 "나는 간다"하고서 앉은 채 죽었다. 가족들이 그의 몸을 밀쳐 베개 위에 누이자 "
이러지 말라, 이러지 말라,"하고서 벌떡 일어나 연못으로 뛰어들어가 죽었다. 그 후 친구가
연못에 찾아오면 그의 이름을 부르고 생시처럼 함께 이야기했으며 어떤 때는 술을 달라고
하기도 하였다. 연못에 술을 부어주면 곧 사례를 표하면서, 되었다고 하였다.
이렇게 반 년이 지난 어느 날 한 스님이 걸식차 그의 집에 왔다가 연못에 사람이 있다는 소
리를 듣고, "20년 동안 참선한 공부가 어디에 있느냐?"고 호통을 치니 이때부터 연못이 고
요해졌다고 한다.
사씨가 노년에 부지런히 참선과 염불을 한 것은, 이 두 가지 일로 해서 신심이 일어났기 때
문이다.
58. 남편과 맞지 않아 발심수행을 하다/ 유안인(兪安仁)
홍무(洪武) 5년(1372) 내가 상우(上虞)지방을 돌아다니다가 개호(蓋湖) 적경정사(積慶精舍)
에서 여름안거를 하였는데 어느 날 아침 백관시(百官市)에서 유안인(兪安仁)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서 하소연하였다.
"저는 남편과 맞지 않아 발심하여 정토 수행을 닦아온 지 7, 8년이 되었습니다. 근래 1,2년
사이에 마음을 맑게 하고서 고요히 앉아 있노라면 공중에서 가냘픈 음악소리와 황새 울음소
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기에 내 스스로는 훌륭한 경지가 나타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떤 사람
은 이것이 마의 경계[魔境]라 하니 스님께서 결정지어 주십시오."
내가 말하였다.
"이는 그대가 경에서 "백가지 보배의 가로수에 바람이 부니 그 소리는 마치 백천가지 음악
과 같고 많은 새소리가 일시에 일어나는 것 같다는 문장을 보고 그 말을 독실히 믿어 그 생
각이 팔식(八識)에 뿌리 깊이 내려 제거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고요한 선정 가운데에서 이
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만일 뒤에 이러한 경지를 보게 되면 그것이 훌륭한 경지라거나 마의
경계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당장 그 자리에서 끊어버리면 비로소 마음이 정토이며 본성이
미타로서 온통 그대로가 다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십만억 리 머나먼 국토 바깥에 있겠는
가"
이에 유안인은 자기의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젠 의심덩이가 풀렸습니다."
59. 추강 담(秋江湛)선사의 산 제사
태주(台州) 광효사(廣孝寺)의 추강 담(秋江湛)선사는 황암 단강(黃岩 斷江) 사람이다. 어려
서 고향 화성사(化城寺)에서 잡역을 하다가 삭발하였다. 절의 오른쪽에 송암(松岩)이라는 높
은 암벽이 있는데 그 꼭대기에 법륜사(法輪寺)터가 있었다. 이는 오대(五代)시대에 근(勤)스
님이 창건한 절인데 오랫동안 황폐하여 유적이 잡초 속에 파묻혀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은
그곳에 이르러 구경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처량한 감회에 젖어 마치 오랫동안 객지생활에
서 고향으로 돌아온 듯한 마음에 차마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에 그 곁에 있는 큰 바
위 아래에서 선정(禪定)을 하였는데 고을 사람들이 소식을 전해 듣고 서로 음식을 보내오고
재물을 내서 공사를 시작하여 사원을 일으키니 몇 해가 되지 않아 총림을 이루게 되었고,
또한 사원의 뒤 언덕에 부도를 세워 사후 일을 준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의 문도를 재촉하여 부도가 완성되었는지를 묻고 사람을 보내 그
절에 다니던 사람들을 두루 초빙하여, 약정한 날에 모두 산사에 와서 결별을 나누자고 하였
다. 약속한 날이 되어 승속이 모두 모여 들자, 스님은 법륜사 주지 신도원(信道原) 등에게
음식을 마련하여 살아 있는 사람의 제사를 지내도록 하니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노인
이 노망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스님은 더욱 재촉하였다. 하는 수 없이 조촐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리니 스님은 당상에 앉아 음식을 받고 나머지 음식은 신도와 대중들에게 골
고루 나누어 주었다. 신도원 스님등이 제문을 읽으면서 통곡을 하자 스님도 눈물을 흘리면
서 일어나 관 속으로 들어가 편안히 좌정하였다. 이때 시주 주형지(周衡之)가 관음상을 들고
와 찬(讚)을 써달라 청하고 대중들이 열반게를 청하니, 스님은 거침없는 필치로 써준 후 조
금 있다가 입적하였다. 이 날은 4월 23일이었다. 스님은 육신이 차갑게 식기 전에 흙을 얹으
라고 유언하였지만 대중은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 이튿날에야 관을 덮고 그 위에 부도를 세
웠다. 스님의 속성과 사법관계 주지살이 등은 모두 용장준(用章悛)스님이 쓴 그의 전기에 나
온다고 한다.
60. 무고를 당한 독실한 수행자/ 급암 종신(及菴宗信)선사
도량사(道場寺) 급암 신(及菴宗信)선사는 무주( 州) 사람이다. 앙산사(仰山寺) 설암(雪巖)
스님의 법제자이며 독실한 수행이 있었으므로 생사 도리를 규명하려는 천하의 선승들이 기
꺼이 그를 따랐다. 그 중에는 몇 명의 비구니가 있었는데 그들 또한 그 앞에 나아가 제자
명단에 끼어 대중을 따라 설법을 들었다.
그런데 무뢰한들이 스님에게 소임을 요구하였다가 거절당하자, 스님이 비구니를 가까이하여
사사로이 난행을 범하였다고 무고하였다. 스님은 항주로 추방되어 오백가(五家)에 구금되었
는데 어느 날 저녁 아무런 병도 없이 입적하였다. 이에 다비를 하니 정교하고 아름다운 사
리가 빛났으며, 무고한 자는 도리어 처벌을 받았다. 영은사(靈隱寺)의 평산(平山)스님은 그
의 법을 이었다.
61. 젊은 패기에 휘둘린 시자, 너그럽게 봐주지 않은 스승
/ 설암(雪巖)스님과 무준(無準)스님
앙산사 설암(雪巖)스님은 무주( 州) 사람이다. 마음가짐이 남달리 뛰어나 상대할 만한 사
람이 아니면 사귀지 않았다. 젊은 시절 경산사 무준(無準)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때마침 범종
을 주조하여 그에게 소(疏)를 청하자 스님은 게송을 지어주었다.
온 몸통이 오직 하나의 입인데
백번 달군 풀무 속에 물흐르듯 흘러나온다
범종소리 농울져 석양을 돌려보낸 뒤에
또다시 밝은 달을 누대 위로 오르라 재촉하네.
通身只是一張口 百煉鍊中袞出來
斷送夕陽歸去後 又催明月上樓臺
이에 무준스님은 그에게 시자의 소임을 맡겼다. 소임이 만기가 되자 무준스님은 그 직책을
대신할 사람을 청해 왔는데 설암스님은, 이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 스님은 무준스
님이 보낸 사람이 문으로 들어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창문에 엎드려 심한 구토 소리를 냈
다. 무준스님은 그의 마음을 알고 일부러 손가락질을 하면서,
"저 아이는 복이 없는 놈이다. 시자직을 그만두자 피 토하는 병까지 걸렸구나!"
하고 크게 성을 냈으나 설암스님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주지로 세상에 나왔을 때,
여러차례 법을 잇는 향불을 올렸지만 어느 분을 위한 것이라고는 밝히지 않고 이런 말을 했
다.
"낡은 좌복 위에서 땅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졌으니, 남에게서 얻은 것이 아니라…"
그리고는 다시 향을 품 속에 넣고 법좌에 앉았다. 그가 앙산사의 주지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무준스님을 위하여 향을 올렸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무준스님이 스승이니 아니니 하는
말이 있다. 나의 생각으로는 설암스님은 당시 젊은 나이에 패기에 휘둘린 것이며 무준스님
은 당대 큰스님으로서 너그럽게 참지 못하여 부자간의 정리가 이처럼 어긋나게 된 것이리라
여겨진다. 큰 사찰을 맡아 불자를 잡는 주지들은 이 일을 거울 삼아야 할 것이다.
62. 중봉(中峰)스님의 수행과 깨침
중봉(中峰)스님은 항주 사람이다. 스승에게 귀의하여 머리를 깎고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참구해서 고인이 이룩한 깊은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였다.
당시 고봉(高峰)화상이 앙산사 설암스님의 허가를 얻어 천목산(天目山) 사자암(師子岩)에 주
석하면서 사관(死關)을 세워 결코 선승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중봉스님을 한 차례
본 후 크게 기뻐하여 화두를 내려주었고 중봉스님도 힘써 정진하며 의문나는 점을 물었다.
"금강경"의 "여래의 무상정각을 짊어지고 [荷擔如來阿 多羅三 三菩提] "라는 구절에서 환
히 깨치고 이때부터 막힘없는 지혜변재를 지녀, 위로는 군왕·재상, 아래로는 삼교(三敎)의
준수한 인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성을 다해 도를 물었다. 그가 저술한 책과 어록 몇 권은
제자 칙천여(則天如)스님이 두루 수집하여 조정에 올려 대장경에 수록하였고 보응국사(普應
國師)라는 법호를 추증(追贈)받았다.
스님의 풍채는 거룩하였고 조금이라도 머리를 숙이면 호흡이 고르지 못하여 항상 바로 보고
편안히 앉아 있었다. 법어를 청하면 두 사람의 스님에게 종이를 마주들게 한 후 붓 가는대
로 글을 써주었다.
63. 포납(布衲)선사의 원숙한 문장력
포납(布衲)선사는 명주(明州) 정해(定海) 사람이며, 고봉스님의 법을 이었다. 일찍이 영명
(永明)스님의 "산거시(山居詩)"에 화운(和韻)을 하였는데 그 의미야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문장력은 원숙하여 때로는 원운(原韻)보다도 훌륭한 부분이 있었다. 임종 때 게송을 써놓고
중천축사(中天竺寺) 계자당(桂子堂)에서 가부좌한 채 서거하였는데 다비를 하자 많은 사리
가 나왔다.
64. 탁발승 성지암(誠止岩)스님
성지암(誠止岩)스님은 항주 호포사(虎 寺)의 주지이다. 처음엔 포납(布衲)스님을 모시다가
뒤이어 천지사(天池寺) 원옹 신(元翁信)스님을 찾아뵙고 깨우친 바 있어 그의 법통을 계승
하였다. 호포사는 원래부터 살림살이가 가난했는데도 수십 명의 승려가 살았으므로 스님은
매일 탁발을 하여 절 살림을 꾸리면서 혹한과 무더위 속에서도 전혀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
년에 병으로 가부좌한 채 열반하였다.
65. 청빈하게 살다 간 말세의 선지식/ 석옥 청공(石屋淸珙)스님
석옥 공(石屋珙)스님은 도량사(道場寺) 급암(及菴)스님을 친견하고 뒤에 오흥(吳興) 하포산
(霞浦山)에 은거하였는데 청빈한 생활로 시주를 바라지 않았으며 궁하면 밥을 먹지 않고 물
만 마셨다. 인품이 자애롭고 자상하여 중생을 아껴주었고 게송을 짓고 일깨워주는 말도 많
이 하였으니, 그는 참으로 말세의 선지식이었다.
66. 옛 터에 암자짓고 분수껏 살다/ 무견(無見)선사
무견(無見)선사는 선거 섭(仙居葉)씨의 아들로, 대대로 유학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준수한 재주를 지녀 천령사(天寧寺) 고전(古田)화상의 내기(內記)로 있다가 서암사(瑞岩寺)
방산(方山)스님 회하에서 참구하여 그의 법요를 모두 터득하고서는 마음을 바꿔 가(可)장주
를 데리고서 함께 송대 고암(高菴)스님이 주석했던 화정산(華頂山) 옛 터를 찾아 암자를 짓
고 살았다.
이 때부터 그의 법이 크게 퍼져 학인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승속이 모두 토지가 없으면
대중을 수용할 수가 없다고 여겨 간혹 토지문서를 시주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스님은
모두 물리치고 겨울과 여름을 날 승복 한 벌로 지냈다. 공양이라고는 오로지 허기진 배를
채우면 족하였으며 좋고 나쁜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입적 후 다비를 하자 갑자기 가슴에서
맑은 물이 솟아올라 마치 병 속의 물을 쏟아놓은 듯하였으며 콩알처럼 큰 사리가 눈부시게
나왔는데, 지금까지도 산중에 봉안하여 공양을 올린다고 한다.
67. 절벽에서 떨어져 정(定)에 들다/ 단애 요의(斷崖了義)수좌
단애 의(斷崖了義)수좌는 고봉(高峰)스님 회하에서 참구하였는데 법어를 깨닫지 못한다고
고봉스님이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떠밀어 버렸다. 그날 밤 많은 눈이 내렸으므로 대중들은
그가 이미 죽었으리라 여겼다. 이튿날 눈이 멈추어 도반들이 장작더미를 들고 그곳을 찾아
가 그의 주검을 화장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님은 고목 아래 반석 위에서 정좌를 하고 있
었다. 그를 흔드니 눈을 번쩍뜨고 사방을 돌아보며 자신이 절벽 아래 눈 속에 있었다는 사
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와 다시 고봉스님을 뵈니 고봉스님은 말없이 그를 기특하
게 생각하였다. 그후로 그의 명성은 나날이 떨쳐 승속이 모두 그에게 귀의하였다.
스님은 도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으레 주장자로 때릴 뿐, 말이나 얼굴색으로 나타내지 않았
고 그들 스스로 깨닫도록 하였다. 요즘의 큰스님들은 말로 가르치는 이가 많은데 스님만은
그렇게 하지 않으니 높이 살 만한 일이다.
68.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의 수행과 주지살이
경산사 본원(本源)스님은 법명이 선달(善達)이며, 선거 자씨(仙居 紫氏)자손이다. 젊은 시절
급암 신(及菴宗信)스님과 함께 행각하면서 소임을 맡지 않기로 다짐하였다. 강서지방에 머물
때 설암(雪巖)스님을 찾아뵙고 대중속에 섞여 그의 회하에 들어갔는데 어느 날 설암스님이
그의 출중한 인물과 법도 있는 행동을 보고서 그에게 당사(堂司)*라는 소임을 맡기려 하자
급암스님과 상의하니 급암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지난날 나와 맹세를 해놓고 이제 와서 어기려고 하는가?
스님은 결국 당사 소임을 사양하였다. 그후 고향인 선거(仙居)로 돌아가니 마을 사람들이 다
복사(多福寺)의 주지로 맞이하였으나 그곳을 버리고 호남지방을 돌아다니다가 복엄사(福嚴
寺)의 주지가 되었다. 복엄사는 당나라 때 도관(道觀)이었던 것을 사대(思大)스님에 와서 선
원으로 개조한 것이다. 그 당시 불평하는 도사들이 많자 사대스님은 그들의 후세를 모두 주
지로 삼겠노라는 서약을 하였는데, 그 가운데 성은 목(木), 이름은 달선(達善)이라는 자가 있
었다. 스님의 이름과 글자만 바뀌어 있을 뿐, 똑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님을 목도사(木道
士)의 재생(再生)이라고 믿었다. 그후 절서(浙西)지방으로 돌아와 경산사 운봉(雲峰)스님을
뵙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깨침을 얻었다. 때마침 혜운사(慧雲寺) 주지자리가 비자 스님이 그
곳 주지로 전보되어 처음 올리는 향불을 운봉스님에게 바쳤다.
그 후 보령사(保寧寺)·정자사(淨慈寺)·경산사의 주지를 지내면서 가는 곳마다 모두 기록
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스님은 주지하는 곳마다 침상을 마련하지 않고 밤마다 촛불을 밝히
고 향을 사르며 정좌하였다가 아침이 되면 대중 처소로 나가는 것으로 일상을 삼았다. 또한
타고난 체질이 보통사람과는 달라 몹시 추운 날씨에도 성긴 갈포 옷을 입고 무더운 여름에
도 두터운 솜옷을 입었으며, 사원에 남은 재산으로 경산 동쪽 산기슭에 대원원(大圓院)을 지
어 행각승들을 맞이하였다. 어느날 스스로 때가 온 줄을 알고 대중을 모은 후 평생 행각하
던 이야기를 끝마치고 곧 입적하였다.
총림에서는 승직을 지내지 않았다 하여 그를 낮추어 보는 자가 있지만, 지난날 백장(百丈)스
님께서 사원의 소임 체제를 세우기 전엔 사람들이 오로지 도에만 힘썼다. 그리하여 마음을
깨쳐 불법을 짊어지게 되면 마치 하늘에 뜬 태양처럼, 온 누리를 흔드는 우레처럼 식(識)을
가진 모든 중생이 그의 빛과 일깨워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 무슨 소임이 있
었길래 그를 낮추어 볼 수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69. 역(易)수좌의 선정
역(易)수좌는 자가 무상(無象)이며 송 장군(宋 將軍)의 집안, 하씨(夏氏)의 아들이다. 팔힘
이 남보다 뛰어나고 무술에 정통하여 일찍이 부친의 벼슬을 이어 받았다. 그러나 달갑게 생
각하지 않다가 관직을 버리고 출가하여 상우(上虞) 봉국사(奉國寺)에서 잡일을 하다가 출가
삭발하였다. 그의 스승이 그에게 "심경(心經)"을 외우도록 하였는데 사흘이 지나도록 한 글
자도 기억하지 못하자 그를 몹시 미워하였다. 어느 날 선 묘봉(之善妙峰)스님이 그 절을 지
나는 길에 그의 스승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글자를 모르고 오로지 꼿꼿하게 앉아 있는 것만 좋아하니 아마 선정(禪定)을 닦
던 사람이 다시 태어난 성 싶다. 이 사람을 나에게 줄 수 없겠는가?"
스승은 그를 따라 가도록 흔쾌히 허락하였다.
처음 설두사(雪竇寺)에 이르러 방부를 들이고 부지런히 참구하며 누워 자는 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른나무처럼 꼿꼿하게 선정에 들어 있었다. 그의 옆에 정(正)수좌가 계속해
서 그의 동정을 살폈는데 7일이 지나서야 서서히 선정에서 풀려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양
깊은 밤에 회랑(回廊) 처마밑을 천천히 오가는 것이었다. 이에 정수좌가 "큰 일을 마쳤으니
기쁘겠소!" 하였으나 역수좌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에 보이는 종루를 가리키며 입에 나오는
대로 게송을 읊었다.
또다시 정수좌의 말에 따라 첫 새벽에 지팡이를 흔들면서 길을 재촉하여 이틀 후에 화정산
(華頂山)에 닿았는데, 계서(溪西)화상을 뵈려 하였으나 날이 저물어 벌써 산문이 닫힌 뒤였
다. 산문 밖에서 잠을 자고 이른 새벽 산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 계서화상을 뵈었는데 서로
문답하며 시험하는 동안 종지를 깨치고 향로대를 걷어차고는 곧장 그곳을 떠났다. 계서화상
이 불렀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마침내 산을 내려오고야 말았다. 이윽고 항주 천목사
(天目寺) 고봉(高峰)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두 사람의 말이 딱딱 들어맞자 고봉스님은 그를
수좌로 삼았다.
지정(至正) 원년(1341) 명주(明州) 해회사(海會寺)에 와서 한 방에서 단정히 기거하며 모든
인연을 끊은 채 그림자가 문 밖을 나가지 않았으며 그의 곁에 도구(道具)가 떠나지 않으니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였다.
지정(至正) 갑오년(1354) 정월 느닷없이 시자승에게 다음 달 24일에 강동지방에 잠시 놀다
오겠다고 하였는데, 그 날이 되자 목욕 하고 옷을 갈아입고 행전을 찾아 발에 묶고 시자승
의 부축을 받으며 부처님 앞에 가서 삼배를 올린 후 물러나와 가부좌를 하고서 대중스님들
에게 결별을 고하였다.
"지난번에 내가 너희들에게 오늘 길을 떠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말을 마치고 잠자듯 고이 열반하시니, 향년 99세이다. 7일 동안 관 속에 모셔 두었으나 얼굴
빛이 선명하고 수족이 부드럽고 따뜻하여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다비를 하자 불길이
높이 솟구쳐 흩어지는 모습이 마치 수많은 기왓장이 하늘로 튀어오르는 것같았고 연기를 찾
아볼 수 없었으며 다비가 끝난 후 사리가 많이 나왔다.
國譯 産菴雜錄 下卷
1. 능엄경 "관음원통품"을 읽고 깨쳐/ 묘각사 정(淨)스님
호주(湖州) 묘각사(妙覺寺) 기당(期堂:明堂)의 정(淨)스님은 오강(吳江) 지방의 농부 아들이
다. 어려서 학문할 기회를 잃고 도첩을 받은 후 묘봉 현(妙峰玄) 스님을 찾아갔다. 현스님은
중봉(中峰)스님의 법제자이다.
"부모가 낳기 이전엔 어느 것이 나의 본래 모습인가'를 참구하도록 하였는데 정스님은 이를
30년 동안 계속하였으나 깨달은 바 없었다. 그 후 명주 화엄사의 스님 조공(照公)이 호주에
와서 그와 함께 거처하게 되었는데 조스님이 그에게 능엄경의 "관음원통(觀音圓通)" 한 품
을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생멸(生滅)이 사라짐에 적멸(寂滅)이 실현 [現前]
되도다"라는 구절에서 활짝 깨친 바 있어 온몸에 기쁨이 넘쳐 말을 할 수 없고 그저 춤을
췄던 것이다. 이에 누군가가 중풍이 들었느냐고 하자 그는 "적멸(寂滅)이 실현되었다"고 대
꾸하였다.
홍무(洪武) 원년(1368) 10월 25일 조스님에게 "11월 1일이 내 생일인데 그날 이 세상을 떠나
겠다"고 하였다.
그날이 되자 목욕을 한 후 옷을 갈아입고 향 세 개를 올렸는데 하나는 석가모니불에게, 또
하나는 무량수보살에게, 마지막 하나는 산주(山主) 요공(了公)을 위한 것으로 요공은 스님의
은사스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하였다.
"내가 죽은 뒤 3일 만에 다비를 하고, 7일 뒤에 뼈를 부수어라. 뼈가 부셔지지 않을지도 모
르겠구나."
사람들은 모두 그 말을 이상하다 여겼는데 막상 뼈를 부수려고 하자 뼈가 녹아 물같이 되면
서 더운 기운이 없어지고 한 송이 영지(靈芝)가 되어 오색찬란한 광채가 영롱하였으며, 두들
겨보니 소리가 울렸는데 조각을 한다거나 그림으로 그린다해도 그처럼 만들지는 못할 것이
다. 영지는 지금까지도 묘각사의 기당(期堂)에 봉안되어 있다.
2. 해운 인간(海雲印簡) 대사(大士)의 행장
연경 경수사(慶壽寺) 해운대사(海雲大士)는 법명이 인간(印簡), 산서(山西) 땅 사람이며 성
은 송(宋)씨다. 7세에 그의 아버지가 "효경(孝經)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을 가르치자 스님이
물었다.
"연다[開] 하는데 무슨 종(宗)을 연다는 것이며, 밝힌다[明]는데 무슨 의(義)를 밝힌다는 것
입니까?"
그의 아버지가 남달리 생각하여 그를 데리고 전계사(傳戒寺) 안(顔)스님을 찾아뵈니 안스님
은 그의 근기(根器)를 살피고자 석두(石頭)화상의 "초암가(草菴歌)"를 읽어보도록 하였다. 그
가 초암가를 읽다가 "허물어지거나 허물어지지 않거나 주인은 원래대로 존재한다."
라는 구절에서 안스님에게 물었다.
"주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무슨 주인 말이냐?"
"허물어지거나 허물어지지 않음을 떠난 것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객이지 주인이 아니다."
"주인." 하다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안스님은 차가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길로 중관
사(中觀寺)의 소(沼)스님을 찾아가 그를 삭발은사로 삼고 구족계를 받았다. 그후 어느 날 저
녁, 허공에서 스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印簡)아! 대사를 이루거든 이곳에서 지체 말고 떠나거라."
그리하여 지팡이를 끼고 연경으로 가는 도중에 송포(松鋪)를 지나다가 비를 만나 바위 밑에
서 묵게 되었다. 동행하던 사람이 부싯돌을 치자 불똥이 튀는 모습을 보고서 크게 깨치고
얼굴을 문지르며 말하였다.
"오늘에야 비로소 눈썹은 가로 붙어 있고 코는 세워 있음을 알았노라."
이에 경수사(慶壽寺)의 중화 장(中和璋)스님을 찾아갔다. 그가 이르기 전날 밤에, 장스님은
한 승려가 지팡이를 짚고 곧장 방장실로 달려와 사자좌(獅子座)에 걸터앉는 꿈을 꾸고서 이
튿날 그 이야기를 좌우 사람에게 들려주면서 말하였다.
"오늘 조금만 기다리면 그 사람이 도착할 터이니, 곧장 나에게 인도하도록 하라"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스님이 도착하자 장스님은 웃으면서 이 스님이 바로 어젯밤 꿈에 본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서로 문답하며 여러 가지로 시험해 보았으나 스님의 기어(機語)가 민첩하고 막힘없이 투철
하자 장스님은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서기실(書記室)의 일을 맡아보도록 명하였다. 그의 지
혜와 깨달음은 더욱 깊어졌으며 마침내 장스님은 그에게 법의와 게송을 내려주었다. 게송은
이러하다.
천지는 같은 뿌리로 다름이 없는데
어느 집 어느 산에선들 그를 만나지 못하리오
내 이제 부처님의 도장을 그대에게 전하노니
만법의 빛은 모두 하나이어라.
天地同根無異殊 家山何處不逢渠
吾今付與空王印 萬法光輝總一如
주지가 되어 세상에 나와 장스님의 법제자가 되었으며 여러 유명한 절에 주지를 지내면서
두 차례나 경수사(慶壽寺)의 주지가 되었다. 태조에서 세조까지(1300년 말∼1400년 초) 여러
황제의 국사로 추앙되어 지위가 승통(僧統)에 이르렀으며 황제의 예우 또한 극진하였다. 나
이 56세에 생각지 않게 풍증에 걸렸는데 하루는 게송으로 대중을 결별하고 시자승을 돌아보
며 말하였다.
"너희들은 시끄럽게 떠들지들 마라! 내 편히 누워 쉬리라."
시자승이 주사(主事)에게 이 소식을 급히 전하고 그곳에 도착하니 스님은 이미 오른쪽으로
누워서 열반한 뒤였다. 다비를 하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리가 나왔으며 칙명으로 경수사
곁에 스님을 안장하고 그 위에 부도를 세웠으며 불일원명대사(佛日圓明大師)라는 시호를 받
았다.
3. 궁궐에 나아가 불법을 논하다/ 경산사 묘고(妙高)스님
지원(至元) 25(1288)년 봄, 승통(僧統) 양련 진가(楊輦眞迦)는 황제의 칙명으로 강남지방 교
종과 선종의 여러 스님을 인솔하여 궁궐에 나아가 불법을 논하였다. 황제가 선종에서는 무
엇을 종지로 삼느냐고 묻자, 경산사 주지 묘고(妙高)스님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하였다.
"선이란 청정하고 지혜롭고 오묘하고 원만하여 그 바탕이 본래 공적(空寂)하니 견문각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량과 분별(分別)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황제가 다시 물었다.
"선종의 조종(祖宗)과 후예를 모두 말하여 줄 수 있겠습니까?"
"선종의 조종과 후예는 석가세존께서 영산회상에서 황금빛 나는 한 송이 바라화(波羅花)를
들어 두루 대중에게 보이시자 그 당시 가섭존자만이 미소지으시니 세존께서 "나에게 정법안
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이 있는데 이를 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셨습니다. 그후
대대로 전해 내려오면서 보리달마에 이르렀는데 달마존자께서는 동쪽나라 이 중국에 대승의
근기가 있음을 바라보시고 바다를 건너오셨습니다. 그리하여 문자를 세우지 않고, 곧장 사람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는 길을 열어주셨으니 이것이 선종입니다."
황제가 이를 가상히 여기자 묘고스님은 다시 자연스럽게 말하였다.
"선과 교는 본래 하나였습니다. 비유하자면 수백 수천의 다른 강줄기가 모두 바다로 돌아가
한맛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폐하께서 온누리를 다스려 천하가 통일되니 사방 오랑캐가
온갖 조공을 바치고자 여러 갈래의 길을 따라 찾아오지만 반드시 순성문(順成門)을 통과하
여 황금 대궐에 이르러 몸소 용안을 본 후에야 집안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습
니다. 만일 교학가들이 언어문자에 집착하여 현묘한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이들은 아직도
순성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며, 선종에서도 예닐 곱 개의 좌복이 낡아 떨어지도록 참선을 했
다해도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이들 또한 순성문 밖에 있는 사람들이니, 모두 다 일을 마쳤
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곧 교학을 익히는 자는 반드시 현묘한 이치를 통달해야 하고, 참선하는 자 또한 반드
시 스스로의 마음을 깨달아야 함을 말한 것입니다. 마치 우리 신하들이 오늘에야 몸소 황금
대궐 위에 올라와 한차례 용안을 보고서야 비로소 집안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황제는 기뻐하며 음식을 하사한 후 물러나도록 하였다.
4. 고승전을 편집하는 태도/ 몽당 담악(夢堂曇 )스님
몽당 담악(夢堂曇 )스님이 진(晋)·당(唐)·송(宋) 삼대의 "고승전"을 다시 편수하면서 종
전의 십과(十科)를 육학(六學)으로 바꾸었다. 그 중 "선학(禪學)"의 이조 혜가조사(二祖 慧可
祖師)가 팔을 끊고 법을 구했다는 고사가 기재되어 있는 선종의 서적은 한둘이 아니다. 그
러나 유독 도선(道宣)율사만은 이렇게 말했다.
"혜가스님이 도적을 만나 팔을 잘린 것인데 함께 살았던 임(琳)법사마저도 오히려 그 사실
을 모르고 있었다. 임법사 또한 도적에게 팔을 잘리자 혜가대사는 그를 감싸안고 치료했는
데 그의 몸 움직임이 불편한 것을 보고서 임법사가 이상하게 여기자 이 일로 혜가조사는
"네가 어떻게 나에게도 팔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느냐'고 하였다."
몽당스님이 이 말을 "고승전"에 인용하려고 하자, 그 당시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혜가대사는 불법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깊은 눈 속에서 시체처럼 꼿꼿이 서 있었다. 그
는 목숨도 아끼지 않았는데 더구나 한 쪽 팔이겠는가? 참으로 팔을 자르는 일이란 사람으로
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요즘 세상에서도 거친 성깔을 지닌 졸장부들도 이따금씩 자기의 팔을
자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사께서는 법을 위하여 일신을 잊고 마음가짐이 간절했는데
이것쯤이야 하지 못할 턱이 있었겠는가. 설령 모든 사실이 율사의 말대로라고 한다면 어떻
게 도적이 사람을 살상하는데 팔뚝 하나만을 자르는 데 그쳤겠는가? 그리고 이미 팔이 잘렸
다면 함께 사는 사람마저 이 사실을 모를 턱이 있었겠으며, 또한 어떻게 잘린 팔을 가지고
서 다른 사람을 감싸주고 치료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도선율사는 살아 있는 보살이랄 수 있는데 그가 어찌 거짓말을 했겠는가?"
"도선율사가 전하는 "인물전"이란 도선율사 자신이 낱낱이 그들의 행적을 목격한 것이 아니
라 필시 다른 사람이 채록한 사적에 근거한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남이 채록하는 과정
에서 와전될 수 있다는 것이지 도선율사가 선종과 율종이 다르다 하여 거짓을 조작한 것은
아니다. 내 말이 틀림없을 것이다. 또한 확신할 수 있는 일은 확신있게 전하고 의심스러운
일은 의심스러운대로 전하자는 뜻도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후세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이 함부로 뜯어 고치고서 율사의 말을 빌어 세인의 믿음을 얻으려고 들 것이다."
몽당스님은 이 말을 수긍하고 이 이야기를 "전등록"에 근거하여 "고승전"에 수록하였다.
5. 불광 도오(佛光道悟)선사의 행장
불광 도오(佛光道悟)선사는 협우(陜右) 난주(蘭州) 사람이며 성은 구씨(寇氏)로 태어나면서
부터 이빨이 나있었다. 16세에 삭발한 뒤 2년 동안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임조(臨兆)에서 돌
아오는 길에 만자점(彎子店)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었는데, 인도 승려가 부르는 소리에 꿈을
깼으며 때마침 말 울음소리를 듣고 환하게 깨친 후 스스로 노래를 읊조렸다.
좋구나 좋아
허공에 가득한데
다만 하나 뿐일세.
好也羅 好也羅
遍虛空 只一
그리고는 그의 어머니에게 "나는 간밤에 물건 하나를 주웠다'고 하니 어머니가 "무슨 물건
을 주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시작도 없는 때부터 잃어버렸던 물건'이라고 대답하였
다.
하루는 선지식을 찾아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이 게송을 청하자 지어 주었는데, 그 중에는
"물은 흘러흘러 바다에 이르고 학은 흰구름 위로 솟아 날도다 [水流須到海 鶴出白雲頭] '라
는 구절이 있다.
웅이산(態耳山)에 이르러 백운 해(白雲海)스님을 찾아보니 서로 뜻이 맞았다. 이에 앞서 어
느 사람이 해스님에게 어찌하여 법제자를 두지않느냐고 묻자, 해스님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
가 천천히 "빼어나게 피는 난초는 서진 땅에서만 나온다'고 대답하였다.
스님이 그곳에 도착할 무렵 해스님은 공중에서 울리는 사람소리를 들었는데 "내일 곽상공
(郭相公)을 맞이하라!"는 것이었다. 해스님이 살던 절은 곽자의(郭子儀)가 세운 것인데 불광
스님은 곽자의의 후신이었다. 해스님이 입적하자 불광스님은 세상에 나와 정주 보조사(普照
寺)의 주지가 되어 해스님의 법을 이었다. 그후 죽각암(竹閣菴)에 은거하면서 낙천(洛川)지
방에 보이다 안보이다 하니 사람들은 그의 행적을 헤아릴 수 없었다. 스님은 사람들에게 이
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를 범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성인의 자리로 갈 것이며, 나를 성인이라고 한다면 나는 범
인의 자리로 가리라. 나를 성인도 범인도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너희들의 눈동자와 콧구멍
속으로 수없이 거꾸러지며 들어 가리라."
태화(泰和) 5년 5월 13일 아무 병 없이 서거하였는데 그가 살던 집 위에 오색 구름이 일산
처럼 뒤덮힌 가운데에 해같이 둥글고 붉은 빛이 세 개나 나타났었다. 당시 스님의 나이 55
세였다.
6. 돼지 잡아 손님 대접하다가/ 하산사(何山寺) 노승
오흥(吳興) 하산사(何山寺)의 노승 모(某)스님은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며 대중을 업신여
기고 평소 행실이 바르지 못한데다가 더욱이 살생을 좋아하였다. 어느 날 손님을 대접하려
고 돼지를 잡아 머리를 먼저 솥에 넣고 삶으면서 고기가 익었는가를 직접 가서 살펴보는데
언뜻 사람 머리 하나가 보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며 펄펄 끓는 가마솥 속에 머리카
락이 뒤엉켜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노승은 그 모습을 보고서 겁에 질려 부들
부들 떨며 몸둘 바를 몰랐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가서 보자하니 그것은 돼지머리였다. 노
승은 그 일을 계기로 잘못을 뉘우치고 선행을 닦게 되었다.
7. 청정(淸淨)에 걸린 장애를 깨고/ 조문민(趙文敏)
조문민공(趙文敏公)이 항주의 관아에서 적조(寂照)스님을 방문하여 차를 마신 후 근래에
자신이 지은 시를 거론하였는데 그 가운데 "이 청정의 업장을 깨닫고 나니 [了此淸淨障] "
라는 구가 있었다. 스님은 그에게 물었다.
"청정함에 어찌 업장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때묻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여 청정을 좋아하는 그것이 업장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대를 한림원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었는데 이제보니 의관을 갖춘 스님이었구려."
"어머니께서 나를 낳으시던 날 밤, 스님 한 분이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셨다고 하는데, 나
는 평소 선종의 향상기연(向上機緣)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경전의 가르침에 관한 것
은 읽기만 하면 대의를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8. 세력을 업고 비행을 일삼다가/ 휘동명(輝東溟)
휘동명(輝東溟)은 황암(黃岩) 사람이며 우승상 의방(義方)의 부인이 그의 어머니다. 이 때
문에 세력을 빙자하여 선배를 멸시하였다. 영석사(靈石寺) 연 일주(蓮一舟)스님은 용상사(龍
翔寺) 소은(笑隱)스님에게서 법을 얻고 선정원(宣政院)의 명을 받아 그 절 주지로 있었는데
동명은 그를 밀쳐내고 주지로 앉았으며, 또한 홍복사(鴻福寺), 안국사(安國寺) 두 사찰을 돈
으로 사서 한 몸에 세 곳의 주지를 겸하면서 마음대로 비행을 일삼았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잠자다가 깨어보니, 영석사의 가람신이 나타나 도깨비를 시켜 그의 목을 누르고 무릎
으로 허리춤을 짓이기고 꿇어앉힌 후 사정없이 곤장을 치고 이어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종휘(宗輝)는 이제부터 감히 절 재산을 훔치지 않을 것이오니, 신이여! 저를 용서해 주십시
오. 신이여!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애걸하는 것을 보았다. 그 후 3년 만에 그는 죽고 말았다.
9. 말세의 신심/ 주(周)씨 노파와 전자중(田子中)
은현( 縣) 보당시(寶幢市)의 주씨(周氏) 노파는 일생동안 정토수행을 닦았다. 매년 정초가
되면 묵언을 하며 정월이 다 가도록 꼬박 눕지 않았고 5월이 되면 사람이 모여드는 정자에
나가 차를 끓여주면서 한여름을 보냈다. 그의 나이 70여 세가 되던 어느 날 저녁, 큰 연꽃잎
이 보당마을 전체를 덮고 그녀가 손에 염주를 들고 연잎 위를 걸어가는 꿈을 꾸었다. 그 후
가벼운 병이 들었는데 이웃사람들이 그날 밤 많은 깃발과 큰 가마가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
는 것을 보았다. 새벽녘이 되어 노파를 살펴보니 그녀는 합장 염불하는 모습으로 간 뒤였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말법에는 빗발처럼 많은 남염부제국(南閻浮提國) 여인들이 정토
에 왕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주씨 노파를 보니 참으로 거짓이 아니
다.
홍무(洪武) 병술년(1370) 겨울 봉화(奉化)에 사는 전자중(田子中)이 태백사(太白寺)에 나를
찾아 와서 오랫동안 함께 기거하였다. 내가 우연한 기회에, "금강반야경은 염라대왕의 명부
전에서는 공덕경이라 일컫기에 세간 사람들은 죽은 이를 천도하는데 금강경을 많이 읽는다'
고 하였더니, 전자중은 죽을 때까지 이 경을 수지하겠다고 맹세하였다. 어느 날 그의 모친
기일(忌日)에 신심을 내어 금강경을 백 번 넘게 외워 천도한 뒤 새벽에 일어나 소나무 의자
위에 앉아 아홉번째 읽어가는 중이었다. 그때 도깨비들이 형틀에 묶인 한 노파를 끌고와 그
의 의자 앞에 꿇어 앉혔는데 헝크러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고 있었다. 이에 자세히 보니
그 노파는 바로 돌아가신 어머니였다. 전자중이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잠깐 후
다시 끌고 가는데 마치 형틀을 벗겨내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에 전자중이 큰 소리로 울면
서 어머니가 끌려왔을 때 금강경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위로하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였
다. 나의 생각으로는 금강경의 공덕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으리만큼 큰 것이다. 전자중이
신심을 내어 금강경을 외우던 일은 보이지 않는 사이에 저승의 명부(冥府)를 감동시켜 모자
간에 서로 만나볼 수 있도록 한 것이며, 그 고통을 풀어줄 것이다. 아! 이는 위대한 일이다.
10. 네 스님의 게송
육왕사(育王寺)의 허암 실(虛菴實)수좌가 와운(臥雲)암주에게 보낸 게송은 다음과 같다.
황제의 정원에 말을 달리니
한 치의 거리에서 칼을 어루만지지 않나 의심을 하네
매화나무에 달빛이 쏟아지고 숲 위에 눈이 나리면
와운암 베갯머리엔 단꿈이 맴돈다.
黃金園裡馬交馳 徑寸多成按劍疑
月 梅花千樹雪 臥雲一枕夢回時
천동사(天童寺) 환암 주(幻菴住)수좌는 응암(應菴)스님의 부도를 참배한 후 게송을 지었다.
드르렁거리며 잠자는 호랑이 그 가죽 엿보니
중봉을 끌어다가 기대는 산을 만들었구려
깨어진 사발 하나 얻지 못하고
자손 살길 빌어봐도 어려울 걸세.
耽耽睡虎管窺班 便把中峰作 山
不得破沙盆一 子孫乞活也應難
묵중사(默中寺)의 유서당(唯西堂)스님이 누에고치에 대하여 읊은 게송은 다음과 같다.
밭 뽕 산 뽕 모두 다 없어지자 그때야 쉬는 마음
면밀한 공부 이 고치에 들었네
화롯불 끓는 솥에 던져 넣고
학인 위해 한 가닥만 남겨두었네
桑空 盡始心休 綿密工夫一 收
爐炭 湯 得入 爲人只在一絲頭
불농사(佛寺) 의 행가(宜行可)스님이 빗소리를 들으면서 지은 게송은 다음과 같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뚜렷한 빗방울
자신을 모르는 중생들 아우성소리
나 또한 요사이 물욕을 따르는 일 많아
봄날의 베개 위에 단꿈 꾸기 어려워라.
前滴滴甚分明 迷己衆生喚作聲
我赤年來多逐物 春宵一枕夢難成
아! 네 분의 게송은 잘 되었는데도 당대에 알려지지 못했기에 내 이를 기록하여 후학에게
보인다.
11. 게송 짓는 일/ 축원 묘도(竺元妙道)
스승 축원(竺元妙道)스님은 노년에 천태(天台) 자택산(紫택山)에 한가히 살면서 후학을 가
르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한번은 이런 말을 하였다.
"송을 지을 때는 반드시 사실 [事] 과 이치 [理] 가 동시에 갖추어져야 한다. 비유하자면 두
다리가 똑같지 않으면 걸어갈 수 없는 것과 같다. 대천(大川)화상의 "거미에 대한 송 [蜘蛛
頌] "은 잘 지었기는 하나, 그 가운데 세 글자는 이치를 표현한 데에는 손색 없지만 사물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의 송은 이렇다.
한가닥 줄을 허공에 걸어놓고 머물 때
백억 가닥 엉킨 줄마다 살기가 번뜩이네
상하 사방으로 그물을 얽어놓고
빠져 나갈 수 없을 때 바야흐로 화두가 된다.
一絲掛得虛空住 百億絲頭殺氣生
上下四圍羅織了 待無庄網話方行
마지막 구절의 세 글자 "화방행(話方行)'은 거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다.
그는 또한 석가출산상에 송을 썼다.
빼어난 자품으로 왕궁을 나오셨다가
까칠한 얼굴로 설봉을 내려오면서
온갖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노라 맹세하니
언제나 다 할려는지 알 수 없구려.
龍姿鳳質出王宮 垢面灰頭下雪峰
誓願欲窮諸有海 不知諸有幾時窮
여기서 설산(雪山)을 설봉(雪峰)이라 바꿔 쓴 것은 운(韻)자에 구애된 것이지만, 이곳(중국)
에 설봉이라는 이름이 이미 알려진 이상, 설산을 설봉으로 쓴 것은 잘못된 성싶다. 이렇게
해서 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어 또다시 이어 말하였다.
"허주(虛舟普度)스님이 금산사 주지로 있을 때 눈이 내리자 상당 법문에서 송을 하였다.
하룻밤 사이 강바람 불어 옥가루 휘날리니
고봉은 희지 않아 정신을 흔드네
공중에서 내려왔다가 공중따라 올라가니
뼈속에 사무치는 추위 몇이나 겪을고.
一夜江風攪玉塵 孤峰不白轉精神
從空放下從空看 徹骨寒來有幾人
학인들이 앞다투어 이 송을 암송하고 있으나 허주스님은 옛사람이 말한 참뜻을 몰랐으며
학인들도 으레껏 잘못 이해해 오고 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스님께서는
"옛 사람의 송에, "눈이 천 산에 덮혔는데 어째서 고봉은 하얗지 않나 [雪覆千山 因甚孤峯不
白] '한 말은 한마디 전어(轉語)였는데 허주스님이 고봉은 실제로 하얗지 않다고 한 것은 잘
못이다."고 하였으며, 다시 말씀하셨다.
"대체로 입원불사(入院佛事:주지에 임명되어 하는 첫 법문)에서 정밀하고 오묘하게 법문하기
어려운 것은 송을 지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동서(東嶼)스님이 정자사(淨慈寺) 주지가 되
어 산문(山門)에서 한 법문은 다음과 같다.
청정한 자비의 문
호수의 가을 물이
들어오든 말든
범은 대충(大蟲:범)을 물고
구렁이는 별비사(鱉鼻蛇)를 삼키도다
이 문을 딴 곳으로 옮겨놓아도 쓸모가 없다.
淸淨慈門 一湖秋水
入得入不得 虎咬大蟲
蛇呑鱉鼻 且移他處用不得
죽천(竹泉)스님이 중축사(中竺寺) 불전(佛殿) 불사를 할 때 지은 송은 다음과 같다.
먼지를 털어내고 부처님을 보지만
부처 또한 먼지임을 그 누가 알랴
귀 뚫린 선객 만나기 힘들고
흔히 만나는 건 각주구검하는 어리석은 자.
撥塵見佛 誰知佛赤是塵
罕逢穿耳客 多遇刻舟人
이는 체제가 잘 된 송으로서 학인들이 본받을 만하다."
12. 원암 회(元菴會) 장주의 게송
원암 회(元菴會)장주(藏主)는 임안(臨安)사람으로 오랫동안 정자사의 몽당(蒙堂)에 살았으
며 조문민공(趙文敏公)과는 각별한 사이였다. 문민공은 일찍이 원암스님의 시를 옮겨써서 커
다란 시집[詩軸] 을 만들고 그 끝에 제(題)를 썼는데, 사람들이 모두 이를 자랑으로 여겼으
나 원암스님만은 담담하였다. 그 절의 택장산(澤藏山)이라는 스님이 낸 돈으로 열반당의 침
선판(針線板), 세면실, 화장실 등을 수리하자 선승들은 게를 지어 두루마리를 만들어 감사의
뜻을 표했는데 원암스님은 그것을 보고서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이에 대중들이 게를 지
어달라 부탁하자 마침내 게를 지었다.
한가닥 열반길 전부 뒤집혀
부딪히는 곳마다 공부하기 어렵지 않네
얼굴을 씻다가 문득 코가 만져지니
바늘 귀 속에 잘도 산을 감추겠네.
涅槃一路盡 飜 觸處工夫見不難
洗面천然摸着鼻 繡針眼裡好藏山
당시 회기(晦機)스님이 주지로 있었는데 법상에 올라 설법할 때 특별히 이 게송을 칭찬하
였다. 이 게송으로 나머지 그의 시를 미뤄보면 그의 시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알 만하다.
13. 일계 자여(一溪自如)스님의 행장
중천축사 일계(一溪)스님의 법명은 자여(自如)이며 복건 사람이다. 원나라 병사가 강남을
침략했을 때 스님은 어린나이로 사로잡혔으나 임안(臨安)에 이르러 병사들이 스님을 내버리
고 떠나가니, 임안의 부호 호씨(胡氏)가 스님을 거두어 길렀다. 그의 자제들과 함께 서당에
서 독서하도록 하였는데, 스님은 서당의 모퉁이에 서서 정신을 집중하고 조용히 귀기울여
말없이 이해하고 하나도 잊지 않으니 호씨가 매우 좋아하였다. 자제가 장성하자 호씨는 그
를 마을 무상사(無相寺)에 보내 승려가 되도록 주선하였다.
그후 경산사의 설봉(雪峰)스님을 찾아뵙고 종지를 깨쳤으며 계행이 엄정하였고 법복과 발우
가 몸에서 떠나지 않았으며, 능엄경, 법화경, 유마경, 원각경 등을 암송하였다.
맨처음 절강(浙江) 만수사(萬壽寺)에 주지가 되었을 때 절 뒤편에 대부호 황씨(黃氏)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스님의 계행을 존경하여 항상 나물밥을 공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집
으로 스님을 초청하여 정성껏 공양을 올리고는 그의 금고를 열어 소장하고 있는 금옥 보화
를 내보이며 스님의 마음을 동요시키려 하였다. 스님은 절로 돌아와 좌우의 스님들에게 말
하였다.
"저 황씨가 금고 속의 보물을 내보인 것은 나의 마음을 현혹하여 죽은 후 그의 아들이 되도
록 하려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금옥 보화를 돌멩이처럼 보는 나의 마음을 조금도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전철을 밟은 옛사람들이 매우 많은데 그 가운데는 그의 아들이 되었을 뿐
만 아니라 그의 소나 말이 된 자까지도 있다. 나는 이제부터 황씨를 멀리할 것이다."
천력(天曆) 원년(1329) 중천축사의 주지 소은(笑隱)스님이 관아에 글을 올려 칙명으로 대 용
상사(龍翔寺)를 창건하였다. 그 일로 그를 대신할 중천축사의 주지 세 사람을 천거했는데 황
제는 어필을 들어 스님을 인준하자 선정원(宣政院)에서 임명장을 가지고 예의를 갖추어 스
님을 초청하였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입적하였는데 신통한 일이 많았다고 한다.
14. 지식에 막혀 깨닫지 못하다가/ 각 종성(覺宗聖)스님
전당(錢塘) 광화사(廣化寺)의 주지 각 종성(覺宗聖)스님은 경산사 본원(本源)스님께서 손수
도첩을 내려주신 제자이다. 여러 제자 가운데 가장 어린 까닭에 항상 다른 제자들로부터 업
신여김을 받았으므로 더욱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며, 마침내 사명사(四明寺) 몽
당(夢堂)스님에게 배웠다. 당시 괴석(怪石)스님은 대자사(大慈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굳이
그를 자기 시자로 불러들였다. 얼마 후 다시 석실(石室)스님에게 시를 배웠는데 시의 경지가
나날이 심오해져 조자앙(趙子昻), 우백생(虞伯生), 장중거(張仲擧)와 같은 이도 모두 그의 시
를 칭찬하였다. 더욱이 청렴하고 신의가 두터워 한 끼라도 남에게 얻어 먹는 일이 없었으며
사람과 약속을 하면 아무리 비바람이 부는 날에도 어기지 않았다.
중년이 되어 배움이 끊긴 종지를 탐구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중모(仲謀)스님을 찾아갔으나
깨닫지 못하고 마침내 본각사(本覺寺) 남당(南堂)스님을 찾아가 법을 물으니 남당스님이 말
하였다.
"너는 원래 대사(大事)를 깨친 사람이지만 듣고 본 것이 너무 많아 가슴이 막혀 본지풍광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새벽에는 죽 먹고 점심 때는 밥 먹는다."
"스님께서는 큰 풀무를 열어 놓으시고 성인이나 범인이나 모두 녹여 단련하십니다. 저같은
사람이야 쓸모없는 한덩이 구리나 무쇠 같다지만 이 속에 들어왔으니 단련하여 아름다운 그
릇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랍니다. 만일 할 수 없다면 이는 스님 풀무에 열기가 부족하기 때
문일 것입니다."
남당스님은 그의 정성스럽고 간곡한 마음에 감동되어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나의 이 법문(法門)은 그대로 깨닫는 것을 귀중히 여기지 세속적인 지혜와 총명에 있는 것
이 아니다. 매서운 의지를 내서 일도양단한다면 무슨 구리를 단련하고 무슨 그릇을 만들고
할 것이 있겠는가? 이 두 가지 길을 버리고 "부모가 낳아주기 전 [父母未生以前] '의 소식
에 대하여 한마디 해보아라!"
이에 종성스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후 옛사람을 본받아 미륵불상을 머리에 이고 아침
저녁으로 도를 행하며 불호(佛號)를 외우고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하게 하여 달라 기원하고
시를 지어 그의 뜻을 피력하였다. 62세에 병이 들자 주변에 명하여 평소 지은 시와 문장을
가져오라 하여 모두 불태워 버린 후 열반하였다.
스님은 황암(黃岩) 사람인데 속성은 채씨(蔡氏)이며 괴석스님의 법을 이었다고 한다.
15. 강심사(江心寺) 동당(東堂)의 고승들
무언(無言)스님이 강심사(江心寺) 동당(東堂)요사에 머물 때 문에다가 방(榜)을 써붙였다.
"재를 하기 전까지는 경을 읽고 좌선을 하며 재를 마친 뒤에는 손님을 접대하고 일을 한
다."
그러나 절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으며, 어쩌다가 스님과 마주하여 당
대의 주지를 칭찬하거나 훼담하는 자가 있으면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총림의 전고(典
故)와 선문의 강요(綱要)에 대해서는 하루종일 이야기하여도 피곤해 할 줄을 몰랐다. 그는
근대에 동당(東堂)으로서의 체모를 갖춘 분이었다.
어느 날 목욕을 마치고 대나무 평상에 누워 웃으시면서 혼자말로 "늙는다는 건 좋은 게 아
니로군."하였는데 흔들어보니 이미 입적한 뒤였다.
그 당시 무제(無際)스님도 동당(東堂)에 있었으며 석실 암(石室岩)스님이 주지를 맡아보고
있었다. 암스님은 학문이야 부족하였지만 매우 진솔한 인물이었다. 절의 노승들은 모두가 스
님(무제)의 제자였기에 스님은 주지에게 경솔히 대할까 염려하였다. 그래서 으레 초하루와
보름에 설법을 마친 후 모두들 스님의 처소에 와서 절을 올릴 때마다 반드시 그들에게 주지
의 상당법문이 어떻더냐고 말하도록 한 후 정담어린 말씨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오늘 장로의 상당법문은 좋은 말씀이다. 그의 법문은 주지직을 맡아보는 데 규모가 있고
문도를 거느림에 법도가 있는 말씀이다."
기(岐)상좌는 명암 희(明巖熙)스님이 손수 도첩을 내려준 제자이다. 어느 날 욱(郁)산주의
과려도(跨瘻圖:당나귀 타고 가는 모습을 그린 그림)를 들고 무제스님을 찾아와 제(題)를 청
하자 스님은 서슴없이 붓을 잡고 게를 지었다.
절름발이 당나귀 시내 다리 지나다가 발을 헛디였을 때
완두콩을 진주로 잘못 알았지 덧 덧 덧
아이들은 집안 추태 감출 줄 몰라서
도리어 양기노스님을 웃겨버렸네
策蹇溪橋蹉脚時 誤將筮宛豆作眞珠
兒曹不解藏家鬼 笑倒楊岐老古錐
이어 기상좌에게 물었다.
"말해보아라. 당시 양기스님의 한바탕 웃음이 어느 곳에 떨어졌는가를?"
기상좌가 말하였다.
바람도 없는데 연꽃 잎새 흔들거림은
필시 물고기의 움직임 때문.
無風荷葉動 必定有魚行
무제스님은 손바닥을 탁 치며,
"돌아가거든 너의 스승에게 이 말을 분명하게 전하라."
고 하였다. 학인을 가르치는 스님의 방편은 과연 이와 같았다. 기상좌는 바로 대매사(大梅
寺)의 중빈(仲 )스님이다.
16. 허곡(虛谷)스님의 인연과 수행
허곡(虛谷)스님은 무주( 州) 사람이다. 정자사 석림(石林)스님 회하에 있으면서 내기(內記)
소임을 맡아보다가 기실(記室)로 승진되었는데 가난한 가운데서도 어렵게 공부하며 춥거나
덥거나 한결 같았다. 지난날 태백사(太白寺)에서 여름 안거를 하면서 동정료(東淨寮)의 수건
을 훔쳐 속옷을 만들어 입은 적이 있었는데, 후일 세상에 나와 앙산사에 30년, 경산사에 6년
동안 주지를 지내면서도 동정료의 수건에 관하여 일체 시제(詩題)로 쓰지 않았으니 뜻은 그
때의 가난한 생활을 되새기기 위함이었다.
젊은 시절 꿈을 꾸었는데 정자사 나한당(羅漢堂)에 들어가 동남쪽 모퉁이에 이르니 갑자기
존자 한 분이 나타나 대들보 사이의 시를 가리키면서 스님에게 보여주었다.
한 방은 고요한데 절정이 열리어
여러 봉우리는 그려놓은 듯 이끼보다도 푸르러라
한가히 패다엽경 펼쳐본 후에
백군데 기운 가사장삼 마음대로 재단하네.
一室寥寥絶頂開 數峰如畵碧練苔
等閒凶罷貝多葉 百衲袈娑自剪裁
처음에는 그 시에 담겨있는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으나 앙산·경산 두 사찰의 주지가 된 후
에야 알 수 있었다. 앙산사에는 패다엽경이 보존되어 있고 경산사에는 양기스님의 법의가
보존되어 있었다.
아! 스님의 출처는 나한존자가 그의 전생에 이미 정해놓은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처럼 될 수 있었겠는가?
17. 관음기도로 얻은 기쁨/ 절조 휘(絶照輝)스님
온주(溫州) 수창사(壽昌寺)의 절조 휘(絶照輝)스님이 정자사의 동정료(東淨寮)에서 여름 안
거를 할 때 신벽(蜃璧)에 관음상 수묵화가 있었다. 스님은 밤마다 절을 올리고 간절히 기도
하였는데 갑자기 정병의 물이 벽 틈에서 솟아나오는 것을 보고 온몸에 기쁨이 가득하였다.
그 후론 경지가 더욱 깊어지고 지혜 [智鑑] 가 밝아졌다. 한번은 게송을 지었다.
공부해도 방원(方圓)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
홀로 난간에 기대 몇번이나 시름하였던가
오늘이 사흘이면 내일은 나흘
머리 위엔 눈서리 쉽사리도 얹혀지네.
工夫未到方圓地 幾度憑 獨自愁
今日是三明日四 雪霜容易上人頭
공부에 뜻을 둔 자가 이 게송을 들으면 모두 분발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정성으로
사람을 감동시켰으니, 비유하자면 비상이란 그 자체가 독이여서 먹는 사람은 다 죽는 것과
같다.
18. 주지로 정해지는 인연
송 도종(宋 度宗:1265∼1274)은 몽고군의 공격이 치열하자 도사에게 명하여 큰 제사를 마
련하고 하늘에 글을 올려 국가 중대사를 물었다. 그 당시 고(高)도사가 하늘에 상소를 올렸
지만 오랫동안 대답을 듣지 못하였다. 제사를 끝마친 후 그 까닭을 묻자 고도사는, 하늘 문
이 열리지 않은 것은 경산사의 48대 주지를 정하는 일로 하늘의 대답이 늦어졌기 때문이라
는 것이었다.
호암(虎岩)스님이 경산사 주지로 있을 무렵 적조(寂照)스님은 수좌로 있었는데 호암스님은
항상 법좌에서 이 일을 들추어 대중에게 자랑하였다.
"주지라는 이 자리가 어찌 우연으로 48대까지 이르겠는가. 그것은 당연히 하늘에서 이미 정
해놓은 것이다."
적조스님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속으로 아니라고 생각하였는데 막상 자신이 경산사의 주지가
되고보니 그 예정된 48대에 해당하였다.
지난 날 운거사(雲居寺)의 즉암(卽菴)스님은 토지신이 현몽하여, "다만 죽 한 끼의 인연'이
라고 하였는데 결국 현몽대로였다.
여러 곳의 주지란 그 과보가 추호의 오차도 없는데 부질없이 남의 자리를 밀쳐내고 빼앗으
려다가 갇히는 몸이 된 자 없지 않다. 하늘에서 미리 정해놓은 이름과 토지신의 현몽이라는
이 두 가지 일을 듣는다면 날카로운 기세는 조금이나마 거두어 들이게 될 것이다.
19. 천목사 괴일산(魁一山)의 후신
천목사(天目寺)에 사는 괴일산(魁一山)은 소주(蘇州) 사람으로 박학다재하며 천동사(天童
寺)의 평석(平石) 노스님과 절친한 사이였다. 총림의 전성시대를 맞아 모두들 세상에 나아갔
지만 괴일산은 깊은 산골짜기에 홀로 살며 속인과 사귀지 않으니 대매사(大梅寺) 나찬(懶
瓚)스님의 옛 풍모를 지녔다. 그러나 아랫마을 시주 홍씨 집안의 자제만은 왕래를 허락하였
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홍씨는 괴일산이 작은 가마를 타고 그의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
고 그 이튿날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응괴(應魁), 자를 사원(士元)이라 하였다. 어려서 공
부를 시작할 때부터 부인을 맞아 아이를 기를 때까지는 전생의 기미가 전혀 엿보이지 않다
가 30세가 되자 갑자기 반성하여 평소에 하던 일을 모두 바꾸었으며, 승려 명유나(明維那)와
함께 동천목산(東天目山) 꼭대기에 암자를 짓고 선정(禪定)을 익히며 화전을 일구고 걸식을
하는 일까지 모두 몸소 하였다. 고행으로 늙은 스님일지라도 그처럼 독실할 수는 없었을 것
이다.
지정(至正) 정유년(1357) 북쪽 오랑캐에게 경산사가 소각당했을 때 나는 그의 처소를 찾아
갔는데, 그의 용모는 숙연하고 예의가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하였다. 나는 까닭을 물어본
후에야 그가 괴일산의 후신임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전신은 천동사의 평석(平石) 노스님과 둘도 없는 사이였다. 노스님의 나이 아흔이지
만 아직도 이목이 밝으니 그대가 게를 지어 보낸다면, 한 꿈에 두 번 깨어났지만 꿈과 깸이
한결같음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에 사원(士元)이 게를 지었다.
천동사의 노스님 평석(平石)에게 전하노니
한생각은 이제도 옛날도 아니로다
단풍나무 다리 위에 깊은 밤 종소리를 듣자니
오강은 예전처럼 하늘에 잇닿아 푸르구려.
寄語天童老平石 一念非今亦非昔
欲聽楓橋半夜鍾 吳江依舊連天碧
그러나 이 게송이 전해지기도 전에 노스님은 입적하였다.
20. 인과를 경시한 업보/ 경산사 혜주(惠洲)스님
경산사의 제점(提點)을 맡은 혜주(惠洲)스님은 호암(虎岩)스님의 문도로서 매우 총명하여
일처리를 잘하는 재간을 지녔다. 그는 절 일을 맡아본 30여 년 동안 금전과 양곡을 멋대로
썼다. 누군가 인과응보로 충고하면 그는 "가득히 실려오는 뿔달린 축생 가운데 나는 뿔 한
쌍만 달면 되지!"라고 빈정거렸다.
지정(至正:1341∼1367) 초에 고납린(高納麟)이 선정원(宣政院)의 사무를 맡게 되자 그의 아
랫사람인 정가(淨珂)스님은 그의 비행을 낱낱이 기록하여 고발하였다. 이에 그의 죄상이 드
러나자 곤장을 쳐서 환속시켰다. 그후 화성원(化城院)에 숨어 살다가 풍증을 앓아 주먹은 마
치 고슴도치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오므라들고, 두 손을 꼭 쥔 채 양 볼을 감싸안고 두 다리
는 엉덩이 뒤에 바싹 붙였다. 그의 병을 간호하는 자가 펼치려 하면 아픔을 참지 못하였으
며 밤낮으로 신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이처럼 3년을 지내다가 드디어 죽었던 것이다.
혜주는 평소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를 처리하고 인과를 경시하여 결국 "수많이 실려오는 뿔
달린 축생 가운데 나는 뿔 한 쌍만 달면 되지."하던 말같이 되었다.
내 생각으로는 삼도(三途)의 업보 가운데 오랜 세월이 흐르다보면 한 마리 짐승으로 태어나
짐승으로 가는 동안 무량겁에 이르도록 줄곧 뿔을 달고 태어날 것이다. 어찌 한 생에 그치
겠는가. 모든 사찰의 재물을 관리하는 자들은 혜주의 전례를 거울 삼아야 할 것이다.
21. 청렴하고 유능한 제점승/ 지문사 이 정당(醮正堂)
홍무(洪武) 8년(1375) 가을 나는 도반 보복 원(報復元)스님을 찾아 상산(象山) 지문사(智門
寺)를 갔는데 그곳에 이 정당( 正堂)이라는 제점(提點) 승려가 있었다. 그는 40여 년 동안
절 재물의 출납을 맡아보았는데 청렴하고 유능하여 계획과 결단에 규모가 있었으며 대중을
잘 무마하여 여섯명의 주지를 겪으면서도 시종여일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그해 7월 24일 밤
꿈에, 두 동자가 책상 앞에 나란히 서 있기에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느냐고 묻자 동자는 제점
에게 금전출납부를 계산해 보려고 왔다는 것이다. 이에 나에게는 계산할 수 있는 장부가 없
다고 말하다가 깨었는데 다시 잠이 들어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그 이튿날 방장실을 찾아
가 어젯밤 꿈이야기를 한 후 방장스님에게 말씀올렸다.
"간밤에 이와 같은 꿈을 꾼 것은 올해 고사(庫司)를 맡아보는 자가 게을러서 상주재산의 장
부를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니, 스님께서는 그를 독촉하심이 좋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태도를 보니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빛이 없었다.
얼마 후 들어보니 이 정당이 그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끄러져 술 취한 사람처럼 혼수상
태에 빠졌다가 밤중이 되어서야 다시 깨어나 황급하게 뒷일을 정리한 후 눈을 감았다고 한
다. 이 정당은 지문사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라 하겠으니, 임종 때까지도 자기 일에 충실하
였다. 그러나 요즈음 절 일을 맡아보는 많은 사람들은 상주물을 보면 마치 소리개가 먹이
낚아채듯, 제비가 벌레 잡아먹듯 하며 인과의 죄보를 개의치 않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반
드시 행동을 고칠 것이다.
22. 중년에야 뉘우쳐 계행을 닦다/ 청차 일계(淸 一溪)스님
경산사(徑山寺) 한 노스님의 법명은 청차(淸 )이며, 법호는 일계(一溪)이다. 젊은 시절에
계율을 지키지 않고 음식을 가리지 않다가 중년이 되어서야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어느 날 아침 덧없는 저승사자가 밀
어닥치면 어떻게 쫓아버릴 수 있겠는가?"
마침내 모아두었던 의복과 재물을 모두 거두어 보경사(普慶寺) 동편에 관음당(觀音堂)을 짓
고 청정한 계행을 닦으면서 정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였다. 그뒤 몇년이 지나 손수 금강반
야경을 쓰다가 "3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라는 구절에서 붓을 쥔 채로 반듯이 앉아 입적
하였다.
지정(至正) 정유(1357)에 북쪽 오랑캐가 보경사와 부근의 민가를 불태웠으나 관음당만은 그
대로 있었다. 부처님 말씀에, 선악의 응보는 마치 그림자나 산울림 같다고 하셨는데 어찌 믿
지 않을 수 있겠는가.
23. 다른 말씀 없으시고/ 백운사(白雲寺) 도(度)스님
처주(處州) 여수현(麗水縣) 백운산(白雲山) 백운사(白雲寺) 도(度)스님은 화정사(華頂寺) 무
견(無見)스님의 문하에서 오랫동안 공부하였으며 일평생 굳건히 정진하여 언제 어디서나 뛰
어났다. 그는 말 일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구차스럽게 법어를 청하는 학인이 있으면 그
저 몸소 대사(大事)에 진력하라는 한마디 뿐 다른 말이 없었다.
근래 절에서 주지하는 이들은 옛사람의 말을 긁어 모아 자기 말인 양 떠들어대며 후학의 정
신을 뽑아놓는다. 그러다가 눈 밝은 사람이 따지고 들면 흡사 도적놈이 주인집 물건을 훔쳐
다시 주인집에 팔려다가 훔친 물건이라는 증거가 분명해져 다시는 변명하지 못하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몸둘 바를 모르는 꼴과 같다. 이런 류의 사람과 도스님의 기용(機用)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다. 내 듣기로 그의 선실로 들어간 사람은 매우
많다고 하는데 그의 종지를 깨달은 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24. 일생동안 참선하여/ 해회사 옹(翁)스님
해회사(海會寺) 옹(翁)스님은 임해(臨海) 사람으로 30세에 집을 버리고 불도에 들어와 경산
사 호암(虎岩)스님 문하에서 삭발하고 승복을 입었다. 처음 전단나무 숲에 갔다가 법당으로
돌아오면서 순찰하는데 누군가 그의 행동이 촌스러운 것을 보고서 뒷전에서 수군대자 스님
은 분발하여 그 이튿날 바로 천목사(天目寺) 중봉(中峰)스님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다.
침식을 잃고 힘을 다해 참구하였으며 밤이 이슥하여 잠이 몰려와 물리치기 어려우면 어두운
바닥에 염주를 뿌려놓고 몇번이고 발로 더듬어 찾아내곤 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정진하였
지만 깨친 바 없었다. 당시 동주(東州)스님은 호구사(虎丘寺)에, 고림(古林)스님은 개선사(開
先寺)에, 동서(東嶼)스님은 풍교사(楓橋寺)에 주지로 계셨는데 스님은 소주(蘇州)를 찾아가
세 노스님의 문하를 두루 출입하여 점차 깨달음의 경지에 다가갔다. 그후 용화사(龍華寺)의
주지가 되어 고림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93세에 육왕사(育王寺)에 가서 횡천(橫川)스님의 부
도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평지에서 넘어져 왼쪽 발목을 삐어 걷지 못하게 되자 항상 평
상에 앉아 달밝은 밤이면 낭랑히 옛분들의 게송을 읊었는데 제자 환(渙)스님이 물었다.
"일생 동안 참선하다가 이제 와서는 그것을 쓰지 못하고 도리어 게송을 읊어 마음을 달래십
니까?"
"듣지도 못하였느냐? 대혜(大慧)스님이 병환으로 신음할 때 곁에 있던 사람들이 "일생 동안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더니만 이제 이처럼 되었습니다' 하자 스님께서는 "어리석은 자
의 신음은 이렇지 않더냐?' 하신 말씀을."
환스님은 절을 올렸다. 스님이 입적하여 다비를 하자 남다른 향취가 사람의 코를 찔렀다.
25. 사재를 용납치 않은 주지/ 동산사 노산(魯山)스님
동로산(東魯山)은 사명(四明)의 사람으로 인품이 강직하고 탐욕스럽지 않아 사람들은 그를
남달리 공경하였다.
세간에 나와 동산사(東山寺)의 주지가 되자 공부할 때 모아둔 자기 재물을 모조리 쓸어다가
동산사 토목공사에 써서 얼마 후 집들이 새로와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등창이 생겼다. 곁에
있던 승려들이 훌륭한 의원을 불러들여 치료하자고 권하였지만 말을 듣지 않고 오직 편안히
앉아 절의 많은 일들을 처리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이 죽으면 장례에 필요한 옷과 물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절 재산에 넣으라고 하니 그 절 승려들은, 스님께서 새로 받아들인 제자가
십여 명이나 되는데 만에 하나라도 스님께서 돌아가신다면 상복 하나 마련할 길이 없다고
하였으나 스님은 듣지 않았다. 또다시 간청하자 그제서야 한 사람마다 곡식 한 섬을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스님이 열반하자 대중들은 슬픈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다.
곰곰히 살펴보니, 요즘 스승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대개가 새로 주지를 맡게 되면 소작인
을 모두 모아놓고 소작문서를 뒤바꾸면서 돈을 받아 절 비용에 충당하고 또한 날짜를 정해
놓고 이자를 거둬들이며 죽을때 가서는 온갖 물건을 자기 측근에게 나누어 주므로 장례를
치른 후엔 으레껏 절 재산에 손해를 끼친다. 아! 노산스님과는 큰 차이가 있다.
26. 죽는 날까지 능엄경을 읽다/ 여 일암(如一菴)스님
여 일암(如一菴)스님은 영가(永嘉) 사람이며 속성은 원씨(袁氏)다. 그가 태어나기 5일 전
그의 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한 스님이 불경을 가지고 왔기에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오
운산(五雲山)에서 왔다 하며, 성이 무엇이냐고 묻자 은씨(殷氏)라 하였다. 이름은 무엇이냐
고 묻자 또다시 성이 은씨라고 대답한 후 5일 후에 반드시 다시 오겠다 약속하고 경전을 그
의 집에 놓아두고서 신표를 삼았다. 약속한 그날이 되자 과연 스님이 태어났는데 머리가 우
뚝 솟고 눈빛은 사람을 쏘았다. 15세에 방산(方山)스님에게서 공부하여 종지를 얻었으며 보
복사(保福寺)의 주지로 있다가 서간암(西澗菴)에서 10년 은둔하니 명망이 날로 높아만 갔다.
스님은 어린 나이에 마음을 내어 수능엄경을 암송하다가 제 5권까지 읽고는 피를 토하는 병
으로 더할 수 없었다. 그후 쾌차되던 어느 날 밤 꿈에 읽지 못한 나머지 부분의 경을 보았
는데 모두가 금자 [金字] 로 씌어 공중에 펼쳐 있기에 목청을 돋구어 경문을 읽어가다가 잠
을 깨었는데 남아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이 때문에 스님은 다시 능엄경을 암송
했으며 이 경하나만으로도 넉넉하다고 하여 죽는 날까지 그치지 않고 매일 한 차례씩 외웠
다.
27. 단강 각은(斷江覺恩)스님의 행장
단강(斷江)스님은 법명이 각은(覺恩)이며 속성은 자계 고씨(慈溪顧氏)다. 스님은 후리후리
한 키에 청정하고 준엄하게 살았다. 어린 시절 운문산 광효사(廣孝寺)에서 삭발하고 뒷날 명
주 연경사(延慶寺) 문법사(聞法師)에게 사교의(四敎儀)를 배웠는데 겨우 7일 만에 통달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그 당시 횡천(橫川)스님이 육왕사의 주지로 있으면서 선종을 중흥시키
자 학인들이 모여들었다. 스님도 그곳을 찾아가 향을 사른 후 입실하여 기어(機語)가 맞자
횡천스님은 내기(內記) 소임을 맡도록 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의 공부가 나날이 드러나 원
근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스님이 지은 게송은 우아하고 고풍스러웠는데 제형 모헌지(提刑 牟龜之)는 책머리에 서문을
썼으며 당시 사대부 조문 민공(趙文敏公)·등강 장공(鄧康莊公)·원문 청공(袁文淸公) 등과
모두 절친한 사이였다. 소주(蘇州) 천평사(天平寺) 주지가 되어 횡천(橫川)스님의 법을 이었
으며 뒤에 개원사(開元寺)와 명주 보복사(保福寺)의 주지로 옮겨 갔다가 월주(越州) 천의사
(天衣寺)에서 입적하였다.
어느 날 방장실에 앉아 있다가 주장자를 붙잡고 "빈 골짜기에 지팡이를 의지한 노승은 분명
한 폭의 수보리(須菩提) 그림이렷다!" 하였다. 그리고는 시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주장자를 내던지고 깔개에 기댄 채 열반하였다.
28. 양황참범(梁皇懺法)의 효험
지정(至正) 경자(1360)년에 정해(定海)의 뱃사공 하태삼(夏太三)이 양곡을 싣고서 연(燕:北
海)으로 가는 길에 바다에 빠져 죽었다. 그후 16년이 지난 홍무(洪武) 을묘(1375)년에 그의
아내 진씨(陳氏)와 아들 선(善)이 지난 날 하태삼을 생각해 보니, 그는 성품이 포악하여 아
랫사람을 거느리는 데 인정이 없었으므로 비명에 죽은 외로운 넋이 바다에 잠겨 있을 것이
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도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 나머지, 재물을 모아 은주( 州)
십자항암(十字港菴)에 엄숙하게 도량을 차리고 갖가지로 훌륭하게 장엄하였다. 청정한 스님
열 분을 모시고는 협만종(犀萬宗)스님에게 그 일을 주관해 주십사 청하고 "양황참법(梁皇懺
法)"을 닦았다.
진씨는 지극정성이었으므로 그가 처음 도량에 들어와 사연을 전했을 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
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날 "예참"의 제 2권을 마치고 밤이 깊어 선잠을 부치게 되었는데
의변(宜便)이라는 승려가 느닷없이 놀라 신음하면서 잠꼬대를 하였다.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
고 오직 겁에 질린 모습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만종 등 여러 스님은 그가 깨어나지 못할
까 두려워하여 모두 일어나 한참 동안이나 주문을 외웠으며 다급하게 부르자 겨우 소생하였
다. 그에게 까닭을 묻자 울기만 하다가, 다시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위태천(韋 天)처럼 생긴 한 신인(神人)이 위엄스런 의관을 갖추고 일산과 화려한 수레, 그
리고 창칼로 매우 삼엄하게 호위하며 나를 강제로 동행시켜 하태삼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천도를 받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해포(蟹浦)를 지나가자 신인의 위엄이 늠름
하여 행인들은 멀리 피했으며 험한 곳을 두루 지나 큰 바닷가에 이르니, 귀신떼들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어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신인은 나에게 바다 속으로 들어가 하태삼의 손을
잡고 데리고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하태삼은 원나라 모자를 쓰고 세찬 파도 속에서 떴다 가
라앉았다 하였으므로 도저히 그의 손을 붙잡을 수 없었으며, 게다가 다른 귀신이 나에게 돈
을 요구하였습니다. 마침 수중에 돈이 있어 그들에게 주고 힘을 다해 하태삼을 붙잡아 언덕
으로 올라서려는 찰나에 그대들이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울었는데 그것은 너무나 고생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 죄를 없애고 죽은 이를 천도하는 데에는 이 참법보다 더 좋은 공덕이 없을 것이기에 나
는 짐짓 이를 기록하여 세인에게 권하는 바이다.
29. 지극한 신심을 가진 일가/ 황암 진군장(黃岩 陳君璋)
황암 진군장(黃岩 陳君璋)은 인품이 단정하고 신중하며 말씨가 적었다. 그는 조심스레 사람
을 사귀어 신의(信義)가 한 고을을 감복시켰다. 그의 나이 마흔에 가까워지자 부인 섭씨(葉
氏)와 함께 틈만 있으면 경건히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그 고을에 "양황참문" 책이 없어서 군
장은 손수 베껴 썼는데 그러다 보니 문 앞의 산다화(山茶花)가 가을을 맞이하여 활짝 핀 줄
도 몰랐다.
홍무(洪武) 경술(1370)년에 군장의 나이 60세였는데 병세가 위독하였다. 그의 아들 경성(景
星)과 며느리 왕씨(王氏)는 타고난 효성으로 약과 음식을 몸소 보살피고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낮에는 환자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왕씨는 자기 넙적다리 살을 도려내어 죽을 끓여 바
치기까지 하였다. 그 해 12월 11일 서산에 해질 무렵 군장은 그의 몸을 부축해서 앉히게 한
후 경성에게 유언을 하였다.
"나는 돌아가련다."
"어디로 돌아가시렵니까?"
"해 지는 곳으로 떠나가리라."
또 이어서 부탁하였다.
"내가 죽으면 불가의 법에 따라 화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집안사람들에게 함께 아미타불을 부르라 하고는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군장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는 바로 경성이고 둘째는 나에게 출가한 거정(居頂)이다.
30. 걸식으로 어머니를 봉양하다/ 공 행이(恭行已)스님
공 행이(恭行已)스님은 상우(上虞)의 사람이다. 일생 동안 어렵게 공부하여 내전(內典:불경)
과 외전(外典)을 모두 탐구하였으며 특히 시를 잘했다.
어머니가 연로하여 의탁할 곳이 없자 걸식으로 봉양하였는데 어머니를 업고 전당(錢塘) 호
수를 건너면서 읊은 시 한 수가 있다.
어머니는 가마 위에 계시고 아들은 길을 걷는데
가마에 오르지 않고 걸을 때면 어머니가 먼저 아들을 부른다
끊어진 다리 밑에 흐르는 저 물길 따라 석양이 지는데
차가운 숲에 어미새에게 먹이를 물려주는 까마귀 보기가 민망스럽다.
母在籃輿子在途 子行不母先呼
斷橋流水斜陽外 羞見寒林返哺烏
이 시를 음미해 보면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1. 불상 조각가 광보살(光菩薩)의 일생
광(光)보살은 은현( 縣) 사람으로 장(張)씨의 아들이다. 그의 집안은 선대로부터 조소(彫
塑)를 가업으로 해왔는데 광(光)보살 대에 와서는 더욱 정교한 솜씨를 갖게 되었다. 그는 장
년의 나이에 식구에게 얽매여 사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해회사(海會寺) 수 매봉(壽梅峰)스
님에게 귀의, 삭발하고 승려가 되려고 하였지만 그의 아내가 자식을 데리고 관가를 찾아 호
소하는 바람에 수스님이 그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광보살은 만호(萬戶) 완도(完都)와 절친한 사이였는데 광보살에게 도망할 것을 권유하자 광
보살은 마침내 자취를 감추고 칼을 뽑아 자기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었다. 그 후 절강을 건
너 패구(貝區)를 지나 광부(匡阜) 땅에 오르는 동안 큰스님을 두루 참방하고, 1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수스님을 찾아뵈려고 하였으나 그는 벌써 입적한 뒤였다. 화정사(華頂寺) 무견(無
見)화상의 도행이 높다는 말을 듣고 가슴 속에 품어온 의심들을 말하자 무견스님은 그에게
"개에게 불성이 없다 [狗子無佛性] '는 화두를 참구하도록 하였는데 마침내 깨친 바 있어
무견화상에게 절을 올리고 그를 은사로 삼았다.
광보살은 일생 동안 절강 양편, 여러 사찰의 불상과 보살상을 매우 많이 조성하였지만 일을
끝마치면 짐을 꾸려 곧장 떠나갔으며 보수는 조금도 받지 않았다. 노년에 화정사에 돌아와
은거하면서 석교암(石橋菴)의 오백나한상을 빚었는데 그 정교함은 극치를 다하였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하던 새벽녘에 자욱한 안개 속에서 북소리·종소리·범패소리가 가득히 울려왔으
며, 끝마친 후에는 채소밭에 먹을 것이 없었다. 광보살은 사람을 보내 시주를 하려 하였는
데, 생각지도 않게 영해(寧海) 다보사(多寶寺)의 원(圓)강주가 채소를 보내왔다. 광보살은 기
뻐하며 그 까닭을 물으니, 얼마 전 진보살이 부처님의 명을 받고 그의 절을 찾아와 채소를
시주하라고 말해주길래 보내왔다는 것이었다. 당시 석교암에 진(眞)이라는 승려가 있었지만
그는 병으로 몸져 누워 오랫동안 문밖 출입을 못하던 자였다. 이 사실로 본다면 다보사를
찾아간 사람은 신인(神人)의 응화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일은 광보살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
다.
그는 73세에 아무런 병이 없이 화정(華頂)에서 앉은 채 입적하였으며 화장을 한 후 산중에
부도를 세웠다.
32. 사 성암(思省菴)스님의 법문과 게송
사 성암(思省菴)스님은 태주(台州) 영해(寧海) 사람이며 속성은 알 수 없다. 형제 네 명 가
운데 성암스님이 맏이였는데 모두 일시에 신심을 내어 출가하였다. 종친들에게 조상의 유산
을 다 나누어 주고 살던 집 한 채 만을 남겨두었는데 친척들이 그것마저 서로 차지하려고
계속 다투자 사스님은 형제들과 함께 집을 불태운 후 그곳을 떠나버렸다. 사스님은 그후 여
러 곳을 참방하여 향상의 지견을 갖췄으며 온주(溫州) 영운사(靈雲寺)의 주지를 하다가 영
암사(靈岩寺)로 옮겼고 마지막에는 영운사의 앞 초막에 은거하였다.
지정(至正) 갑신(1344)년, 내가 달차원(達此原)·명성원(明性元) 등과 함께 스님을 찾아가니,
당시 스님은 90이 넘어 긴 눈썹과 호호백발이 무척이나 맑아 보였다. 스님은 신발을 끌고
나와 서서히 걸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강심사(江心寺)에서 왔습니다."
"강물의 깊이가 몇백 발이나 되는가??"
"노스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이에 성암스님은 합장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앉으시오. 차 한잔 합시다."
성암스님은 성품이 반듯하고 고결하여 시를 지으면 한산자(寒山子)와 유사한 기품이 있었다.
그가 "어느 승려를 욕하며'라는 시를 벽에 써놓았다.
오온(五蘊)*을 버리지 못한 채 머리만 깎고
누런 베옷 두르니 이것이 중이라네
불법도 세속법도 전혀 모르고
잘하는 것이라곤 돼지고기 개고기 잘 먹는 일.
五蘊不打頭自 黃布圍身便是僧
佛法世法都不會 猪 狗十分能
책상 위에 그의 어록 한 권이 놓여 있기에 손가는대로 펼쳐보니, 여름 결제 때 한 상당법
문이었다.
대원각은
소바리 말바리에 실어오고
우리 가람을 위해서는
외바구니 나물바구니를.
以大圓覺 牛角馬角
爲我伽藍 瓜籃菜籃
또한 상당법문에서 조주스님의 "개에겐 불성이 없다 [狗子無佛性] '는 화두를 들어 송을
하였다.
개에게 불성이 없다
개에게 불성이 있다
원숭이는 인색하고 교활한 장사치 때문에 시름하고
개는 청정하고 도통한 중의 입을 보고 달아나네.
狗子佛性無 狗子佛性有
愁 頭 狗走 口
나는 달차원등과 그곳을 떠나왔으며, 다시는 감히 그의 기봉(機峰)을 범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우리는 영운사에 묵으면서 노스님에게 사 성암스님의 몇 가지 언행에 대하여 들었는데
모두 전할 만한 것들이었다.
33. 오로지 하는 일은 도적질
복건(福建)에 한 관리의 아들이 있었는데 오로지 하는 일이 도적질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심하게 꾸짖었으나 고치지 못하여 그 이유를 조용히 물어보니, "어찌 도적질을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다만 밤마다 한 남자가 찾아와 끌고 가기에 마지 못하여 그를 따라 도적질을
합니다"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만일 오늘밤에 또다시 찾아오거든 알려달라고 당
부한 후 활과 화살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이윽고 밤이 이슥하자 과연 문밖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아들이 그를 가리키며 알리자 그의 아버지도 과연 그 사람을 보고서 활을 당겨
쏘았는데, 도리어 아들의 가슴에 꽂혀 즉사하였다.
34. 썩지 않은 시체
지순(至順) 경오(1330)년, 절서(浙西) 지방에 매년 흉년이 들어서 항주 고을에 굶어 죽은
자의 시체더미가 서로 뒤엉키자, 관리들은 마을의 우두머리에게 인부를 부려 육화탑(六和塔)
뒷산에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매장하도록 하였다. 그 속에 한 노파의 시신이 있었는데
십여일이 지났는데도 썩지 않고 매일 여러 시신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
각한 나머지 그의 몸을 뒤져보니 품 속의 작은 주머니 속에 염주와 세 폭의 아미타불도가
들어 있었다. 이 일을 관리에게 알리고 널을 구입하여 시신을 안치하고 화장을 하자, 연기와
불꽃 속에 불보살의 모습이 찬란하게 현신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신심을 내어 염불하는 사
람들이 매우 많았다.
35. 전생 일을 깡그리 잊어버리다/ 말산(末山)스님과 서응(瑞應)스님
건령부(建寧府)에 한 승려가 있었는데 그의 법명은 말산(末山)이다. 후일 그의 일생을 점친
한 행의 시를 살펴보니 "한 그루의 나무를 잿마루 위에 옮겨심는다. [一木移來嶺上安]"는 구
절이 있었는데 이는 조물주가 그의 이름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일목(一木)'이란 끝 말(末:一+木)자를 의미하며 "영상(嶺上)'이란 산(山)을 말하는 것
이므로 이를 합하여 "말산(末山)'이라는 이름으로 본 것이다.
그는 좋은 인연 만들기를 즐겨하여 길을 닦고 교량을 놓아주는 등 수없이 많은 선행을 하
였는데 그가 죽은 후 그 고을 추씨(鄒氏)의 꿈에 현몽하였고 태어날 때도 그의 친구가 같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자라나면서 그는 전신이 승려였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승려들과 사귀기
를 싫어하고 목석처럼 어리석고 멍청했다.
한편 항주 천목산(天目山)의 의 단애(義斷崖)스님은 고봉(高峰)스님을 뵙고 깨달아 그에게
귀의한 자가 매우 많았다. 그가 죽어서는 오흥(吳興)의 가난한 집안에 현몽하여 다시 태어났
으며 후일 승려가 되었는데 그의 법명은 서응(瑞應), 자는 보담(寶曇)이었다. 그는 어려서부
터 장성할 때까지 사람들의 예배와 공양을 받아보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내가 천계사(天界寺)에 있을 무렵 보담스님도 그곳에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그가 하는 일을 살펴보니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변변찮았고 때론 자신의 내력을
묻는 이가 있으면 오직 부끄러워하였다.
이 두 사람의 전신은 모두가 비범한 자들이었는데 어찌하여 전생에 익혔던 바를 이토록 깡
그리 잊어버릴 수 있을까? 옛사람의 말에 의하면, 성문도 오히려 모태에서 나올 때 깜깜해
지고 보살도 생을 바꾸면서 혼미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행인이 어찌 삼가하지 않
을 수 있으랴!
36. 8식 가운데 남아있는 무명의 뿌리
강서의 절학 성(絶學誠)스님은 산사에 살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 회하의 일곱 제자
는 참선을 함께 하기로 맹세를 하였다. 그 중에 가장 어리면서도 경지가 탁월한 사람이 있
었다. 성스님이 그를 시험해 보기위하여 삼관(三關)화두를 들어보이자 그는 마치 북을 치면
소리 울리듯 명확하고 신속하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절하여 산사의 아래 민가
에서 다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에게 모두 현몽을 했었다. 5세가 되어 글을 읽어보라 하니,
낭랑하게 소리내서 읽으며 스승을 번거롭게 하는 일이 없었고 글의 뜻도 잘 분석하였다. 그
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산사를 찾아 성스님을 친견하자 성스님은 그 아
이에게 물었다.
"너는 전생에 나에게 답한 세 마디를 기억할 수 있느냐?"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성스님이 그 말을 꺼내자 머리를 끄덕이며 자기가 한 말이라고 수긍하였다. 성스님은 그의
부친에게 이 아이를 잘 보살펴 기르도록 부탁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사찰의 승려가
그의 집에 많은 재물을 주고 그를 제자로 삼아 어산범패(貌山梵唄)를 가르쳤다. 그 뒤로 시
주 집의 청을 받고 범패를 하며 많은 보시를 얻게되자 교만하고 사치하는 마음이 동하여 세
속의 비행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성스님은 이 일로 세 가지 대원(大願)을 세워놓고 학인을 채찍질하였다. 대체로 참선하는 사
람들이 고요한 정(定) 가운데 어떤 환희를 얻게되면 잡된 시달림이 잠시 사라지고 밝은 지
혜가 조금 나타나게 되지만 그것만으로 다 됐다고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일까? 팔식(八識)
가운데 아직도 무명(無明)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바위 밑에 깔린 풀과 같
으니, 바위를 들춰내면 깔렸던 풀이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후세 학인
들은 이 점을 미리 경계해야 한다.
37. 불법에 조예 깊은 사대부/ 왕문헌공(王文獻公)
전조(前朝:元) 천력(天曆) 원년(1328) 천하에서 글씨 잘 쓰는 승려와 유생을 불러들여 항주
정자사(淨慈寺)에 모두 모아놓고 금가루로 대장경을 쓰게 하였는데 왕문헌공(王文龜公)도
부름을 받고 참여하였다. 그는 반드시 대중 승려와 함께 식사를 하였으며 만일 따로 음식을
차려주면 불쾌히 여겼고, 더 나아가서는 팔꿈치를 끌고 욕해도 먹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나
는 지금도 그가 어느 스님을 위하여 절벽 위의 난초를 그린 그림에 쓴 시가 생각난다.
간지러운 봄바람 어디엔들 불지 않으랴만
가파른 절벽 위에 몸을 맡김은 무엇을 위함이뇨
그를 따라 스스로 전도망상 피웠으니
절벽에서 손 놓을 때를 보아야 하리.
春風一樣吹 託身高處擬何爲
從渠自作顚倒想 要見懸崖撒手時
소동파의 영정에 쓴 글(題)은 다음과 같다.
오조스님은 세속 바깥의 사람이라
사바인연 끊은 지 이미 오래 전인데
텅 빈 솜씨로 그 아득한 모습 그려낼 자 누구기에
후세에 몸 밖의 몸을 찾으려 하오.
五祖禪師世外人 娑婆久矣斷生因
誰將描邈虛空手 去覓他年身外身
황산곡(黃山谷)의 영정에 쓴 글은 다음과 같다.
그 당시 회당 노스님 비웃더니
만나자마자 계수나무 꽃향기를 이야기했네
그림을 펼쳐보니 옛모습 그대론데
어찌 일찍이 콧구멍이 크고 작고 하였으리오.
笑殺當年老晦堂 相逢剛道桂花香
披圖面目渾依舊 鼻孔何曾有短長
그는 한 시대의 큰 유학자였지만 불법에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마음
먹지 않아도 저절로 옛스님들이 제창한 법어와 일치된 것이니 우러러볼 만한 인물이다.
38. 대원경으로 서로를 비춰보다/ 고정 조명(古鼎祖銘)스님과 구양규재(歐陽唯齋)
고정(古鼎祖銘)스님이 항주 중축사(中竺寺)의 주지로 있을 때였다. 구양규재(歐陽唯齋)는
복건성 안렴사(按廉使)로서 임기가 만료되어 서울로 가는 길에 항주에 들러 고정스님을 찾
아왔다. 정분어린 법담을 주고 받으며 열흘이 넘도록 머물다가 떠날 때 고정스님은 서호(西
湖)까지 나가 송별하니 규재가 말하였다.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기약이 없겠습니다."
"대원경(大圓鏡) 가운데서는 그대와 한 번도 이별한 일이 없습니다."
이 말에 규재는 기뻐하였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고정스님이 경산사로 자리를 옮기자 규재
가 게를 지어 보냈다.
스님만이 용무늬 솥을 들어 올리고
하늘의 제일 관문에 눌러 앉으셨으니
서호에서 헤어질 때 들려주던 대원경으로
희끗한 나의 모습을 비춰보고 계시리라.
上人方擧龍文鼎 坐斷凌 第一關
湖上別來圓鏡語 想應照 我毛班
39. 죽천(竹泉)스님의 대보름 상당법문
영은사의 죽천(竹泉)스님은 인품이 꾸밈새가 없고 깨침이 온당했으며 법어가 정밀하였다.
정월 대보름에 상당법문을 하였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
눈발이 멈추면 맑은 봄을 보리로다
얼마나 많은 절에서 천 등에 불이 켜지나
하늘에는 둥실한 대보름달
고요한 밤 깨는 범종소리
마을에서 법석이는 풍류소리
이 모두가 원통의 경지인데
굳이 따로 나루터를 물을 건가.
今朝上元節 雪 見晴春
幾刹燈千點 長空月一輪
鼓鐘喧靜夜 歌管鬧比隣
總是圓通境 何須別問津
입적한 삼감사(森監寺)스님의 다비를 하며 말하였다.
"삼라만상이란 한 법에서 찍혀나온 것이다. 이제 너에게 금강권과 율극봉을 들어 보여 주리
니, 무엇을 한 법이라 하는가? 하나는 둘로 말미암아 있는 것인데 하나, 그것마저 지킬 수
없구나. 불꽃 속에 새까만 거북이가 사자후를 하도다."
그의 어록 가운데 이 두 단락이 빠졌기에 기록하는 바이다.
40. 흩어져 가는 선방 요사채 분위기
태정(泰定:1324∼1327) 초에 선정원에서 가흥(嘉興) 본각사(本覺寺)의 영석 지(靈石芝)스님
을 기용하여 정자사(淨慈寺)의 주지로 임명하였는데 스님은 당시 84세였으며 모든 이에게
고불(古佛)과 같은 추앙을 받았다.
나는 경산사에서 정자사까지 모셔다드리고 전례에 따라 그곳에 방부들일 수 있었다. 당시
그곳엔 500명에 가까운 대중이 있었으며 태온(台溫)의 향장(鄕長) 충경초(忠景初)라는 자가
본산(경산사)의 수좌로 있었는데 나이와 덕망이 높아 많은 사람이 귀의하였다. 나는 당시 학
인의 신분으로 있는 터라 우연히 행랑에서 책장수를 만나 "장자(莊子)" 한 권을 샀다. 장주
(藏主)의 요사채로 돌아와 위로실(圍爐室:응접실)에 들어가 장자를 읽으면서 참선공부에 지
장이 될까 걱정하던 참이었다. 마침 충수좌가 외출했다가 돌아와 매우 불쾌한 뜻을 표하며
정좌한 후 나를 그의 앞에 세워놓고 꾸짖었다.
"그대는 처음 대중 속에 들어와 참선은 하지 않고 도리어 잡학(雜學)에 힘쓰는가. 게다가 또
한 선원의 위로실이란 손님을 맞이하고 불법을 논하는 곳인데 이곳에서 외서(外書)를 읽어
서야 되겠느냐."
20여 년이 지난 뒤 다시 정자사를 찾아가 보니 요사채 위로실에 나이 어린 승려와 노승이
뒤섞여 거문고를 켜거나 바둑을 두거나 아니면 먹물을 핥으며 산수화를 그릴 뿐, 외서조차
뒤적거리며 읽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하물며 참선공부를 하는 자를 찾아볼 수 있겠는가.
아! 충수좌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 날 묘희(妙喜)스님께서 양서암(洋嶼庵)의 대
중방에 걸어놓았던 방문(榜文)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뒤에 충수좌는 무주(州) 화장사(華藏
寺)의 주지가 되었다.
41. 나호야록에 실린 염송에 붙이는 소견
"나호야록(羅湖野錄)"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오거사(烏巨寺)의 설당(雪堂)스님이 정(淨)스님에게 서신을 보냈다.
"요사이 "선인전(禪人傳)"을 살펴보니 그대의 염송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 중에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무엇이 불전 안의 일입니까?'라고 물은 것에 대하여 그대는 이렇게 염송하였
다.
하나의 해골 속에
하늘땅을 떠받쳐 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須知一 ?裡
而有 天地人
그런데, 나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이는 잘못된 기록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
양기(楊岐)의 자손들은 결코 어떤 인지 [鑑覺] 도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만일 인지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음계(陰界)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데 어떻게 선문의 특별한 일이 있을 수 있겠는
가? 그래서 나도 게송을 하나 지어 부질없이 그대의 귀를 더럽힐까 한다.
홀로 위태로운 경지에 서지 않고서는 기연이 높지 못한 법
조주 노스님은 흠집없는 하나의 옥
당두노인 불전 속의 일을 곧바로 가리키시니
어른거리는 눈 속에 헛꽃을 모두 없애 주었도다.
不立孤危機未峻 趙州老子玉無瑕
當頭指出殿裡底 盡茫茫眼裡花
내 생각으로는 정공이 "인지'를 인정한 것에 대한 오거스님의 비판을, 나호스님이 긍정적
으로 평가한 것까지는 잘한 일이다. 그러나 그(나호)가 오거화상의 이 송이 선문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데 대하여서는 반드시 잘한 일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또한 "조주노자옥무하
(趙州老子玉無¿)'와 "잔진망망안리화(盡茫茫眼花)'라는 구절도 인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
가? 나는 이를 애써 참지 못하고 오거화상의 송에서 네 글자를 바꾸어 송을 하는 바이니 이
것도 후학의 비판을 기다린다.
홀로 위태로운 경지에 서지 않아야 비로소 기연이 높아지는 법
조주 노스님은 옥에 흠집이 생겼네
당두노인 불전 속의 일을 곧바로 가리키시니
어른거리는 눈 속에 헛꽃이 덧붙는구나."
不立孤危機始峻 趙州老子玉生瑕
當頭指出殿裡底 添得得茫茫眼花
42. 대혜스님의 후예로 지조를 지키다/ 서소담(瑞少曇)스님
서소담(瑞少曇)은 민현( 縣)의 사람이다. 강직과 절개로 자신을 지키며 명리를 하찮게 여
겨 절의 살림을 모두 집사에게 맡겼다. 그가 거처하는 방은 언제나 조용했으며 혼자서 선송
(禪誦)을 즐겼는데 그의 문에 오르는 사람은 모두 노련한 선승들이었다.
지순(至順:1331∼1332) 연간에 의연히 절을 떠나 금릉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용상사(龍翔寺)
의 소(訴)스님을 방문하자 소스님은 그를 수좌로 맞이하였다. 때마침 이충사(移忠寺)에 주지
자리가 비어 소스님이 적극 추천하였으나 스님은 굳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스님께선 생각지 못하시는군요. 그곳은 송나라의 간신 진회(秦檜)*의 제사가 맡겨진 절입니
다. 진회는 개인 감정때문에 권력을 빙자하여 대혜(大慧)스님을 매양(梅陽)과 형양(衡陽)으
로 귀양 보냈던 자입니다. 내 비록 변변치 않으나 대혜스님의 후예로서 어떻게 차마 진회의
제사를 이어 받들 수 있겠소? 스님께선 참으로 생각지 못하십니다."
당시 큰 선비나 덕망높은 선승들은 이 말을 전해듣고 극찬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후일 그
는 귀종사(歸宗寺)의 주지로 갔다가 세상을 마쳤다.
43. 생사는 무상한 것
형경남(亨景南)이라는 자는 남창(南昌) 만씨(萬氏)집안 자손으로, 어려서 내복산(來福山) 단
(端)스님에게 귀의하여 백장사(百丈寺) 여암 우(如菴愚)스님과 용상사(龍翔寺) 소(訴)스님의
회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선정원의 추천으로 향성사(香城寺)에서 개법(開法)하였다. 그 사찰은
오랫동안 폐사로 묵어오다가 일신되었으며, 스님은 그후 상람사(上藍寺)로 옮겨갔는데 도풍
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78세가 되던 어느 날 곁에 있는 승려에게 명하여 물을 끓여
목욕한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편히 앉아 게를 쓰고는 주장자에 기대 입적하였다. 다비를
하니 단단한 사리가 매우 많이 나왔는데, 그의 법손 제성(濟盛)이라는 스님이 주장자와 승복
과 사리를 거둬 내복산에 부도탑을 세워 갈무리하였다.
상법시대 이후 행각승들이 어느 곳에 가서 자리를 잡으려할 때는 반드시, 생사의 일이란 몹
시 무상하고 신속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구도 정신이 간절한 듯하지만 승적(僧籍)을 얻은 후엔 지난날 스스로
노력하겠다던 말을 실천하지 않고 명리만을 분주히 좇을 뿐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
다. 오늘날 경남스님은 임종 때에도 이와 같았으니 평소의 수행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44. 적조(寂照)스님의 문장
스승 적조(寂照)스님은 젊었을 때 허곡(虛谷)스님과 함께 소주(蘇州) 승천사(承天寺)의 각
암 진(覺菴眞)스님에게서 공부하였다. 그런데 그곳을 떠나온 후에야 깨침을 얻게 되어 동정
호(洞庭湖)를 생각하면서 부(賦) 한 수를 지어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었다. 그 시는 실제로는
향상사(向上事)를 드러낸 것으로서 특별히 남다른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맑은 연기 푸르고
파도는 망망한데
동정호는 아득하여 하늘과 하나되었네
위로는 일흔두 송이 푸른 연꽃 피어 있고
아래엔 삼만육천이랑 은빛 물결
그 가운데에 한 사람
원앙새 수놓인 황금옷 입고
천리마 수레에다 명월주 귀걸이라
그대로 우주 조화와 함께 날으노라
옛일을 생각하니, 하늘바람 나를 실어 그 집 위에 올려놓고
황금줄기에 내린 8월의 맑은 이슬 나에게 마시게 하고
곤륜산의 영롱한 오색 구슬 나에게 요기하라네
내 골수 바뀌어지고
내 간장도 말끔히 씻기워
깨끗한 마음자리 항시 청량쿠나
사방 팔방 이 우주가 적기도 하려니와
만고세월 3광(三光:日月星辰)도 시들시들 늙는구나
오랫동안 볼 수 없으니 속절없이 슬픈 이 내 마음
오랫동안 볼 수 없으니 속절없이 슬픈 이 내 마음
烟蒼蒼 濤茫茫
洞庭遙遙天一
上有七十二朶之靑芙蓉
下有三萬六千頃之白銀漿
中有人兮 體服金鴛鴦
游龍車 明月
直與造化參 翔
憶昔天風吹我登其堂
飮我以金莖八月之瀣沆
食我以崑丘五色之琳琅
換爾精髓
滌爾肝腸
灑然心地常淸凉
非獨可以 四極輕八荒
抑且可以老萬古 三光
久不見兮空慨慷
久不見兮空慨慷
또한 유학자를 위해 "십현영매시도(十賢詠梅詩圖)"에 붙인 글 [題] 은 다음과 같다.
시경의 소남편, 서경의 열명편을
옛날 공자께서 정리하셨을 때는
모두가 열매만을 말하였을 뿐
꽃은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양나라 하손에서
당송의 십군자까지는
소남을 읽고 열명편을 외우고
공자의 학문을 익혔는데도
그들의 시가며 문장에 표현된 바는
모두가 꽃만 이야기하였을 뿐
열매는 말하지 않았다.
아!
세상의 도가 옛날 같지 않고
인심이 더욱 야박하고 거짓된 것은
근본을 두텁게 하지 않는 까닭으로
모든 게 으레 이와 같으니,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감회에 젖어든다.
詩之召南 書之說命
孔子昔所刪定也
皆言其實 而不及其花
由梁何遜 至唐宋十君子者
讀召南 誦說命 習孔子之業者也
形之詠歌述諸章句
皆言其花 而不及其實
噫 世道不古 人心益薄且僞
其不敦本也 例皆如是
余觀是圖 竊有惑焉
조송설(趙松雪), 우소암(虞菴) 등도 이 글을 보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원수(元 :적조스님)스님은 식견과 경지가 매우 높아서 붓가는 대로 말을 내뱉아도 자연히
고금에 뛰어난 문장이 되니, 우리가 애를 써 말해 보아도 스님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다."
적조스님은 임제의 정통 종지를 전해받은 분이다. 그가 장난삼아 문장을 가지고 놀며 선문
의 뜻을 엮어내는 일은 그저 심심풀이일 뿐이었는데도 큰 선비들이 그를 이처럼 존경하였
다. 무문찬(無文粲)스님은 "요즘 총림에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자들이 궁할 때는 선승의
면모를 잃지 않다가 사정이 피고 나면 "진짜 선지식'이 되버린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통절
한 이야기다.
45. 희 태고(熙太古)스님의 학인지도
천태산 명암사(明岩寺)의 희 태고(熙太古)스님은 정자사의 동서(東嶼)스님에게 오랫동안 귀
의하여 그의 법을 이었다. 지정(至正) 병술(1346)년 정월 13일 나는 자택사(紫택寺)에서 명
성원(明性元)·서 영중(瑞瑩中) 두 스님과 함께 한암사(寒岩寺)의 향축담(香竺曇)스님을 방
문하고 그 이튿날 태고스님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두 스님이 행각에 지친 나머지 찾
아뵙지 못하였는데 때마침 태고스님이 축담스님을 찾아왔기에 우리 세 사람은 객석에서 향
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자 태고스님은 느닷없이 우리에게 물었다.
"장주(藏主)는 오랫동안 축원(竺源)스님을 시봉하였으니, 세존께서 처음 하계에 내려오실 때
수많은 귀신을 만들어 냈다는데 그 말이 어디에 떨어지는지를 아는가?"
나는 이렇게 답하였다.
"맛있는 음식은 배부른 사람이 먹기에는 걸맞지 않습니다."
태고스님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으로 위 아래를 가리키고 큰 걸음으로 사방을 돌아
보면서 소리를 질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로다."
아! 오늘날 큰스님들은 후학을 지도할 때, 보기 쉬운 것은 감추어두고 어려운 것만을 보여
후인을 농락하는 자가 많다. 그러나 태고스님의 그대로 보여주는 법문 [直閒擧話] 은 걸인의
방석 밑에서 천금 되는 구슬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 하겠다.
46. 고난을 구해주시는 아미타부처님
원 지정(至正) 15년(1355) 겨울, 장사성(張君誠)이 호주(湖州) 강절(江) 지방을 침공하자 승
상이 경산사의 말사 화성사(化城寺) 승려 혜공(慧恭)에게 그 고을 백성을 집결시켜 경계의
산마루를 방어하라고 명하였다. 어느 날 적병이 경계를 침범하자 혜공스님은 향병(鄕兵)을
거느리고 격전을 치르어 적병은 패해서 도망가고 40여 명의 포로를 잡아 관가로 송치하는
도중 서호(西湖)의 조과사(鳥 寺)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동이 텄을 때 마침 조과사의 전 주
지였던 요주(饒州) 천령사(天寧寺) 모대유(謀大猷)스님이 느린 걸음으로 행랑간을 산책하자
포로들은 스님의 우아한 모습과 쉬지 않고 염불하는 소리를 듣고서 마침내 모두가 "노스님!
우리를 구해주십시오."라고 소리쳤다. 스님께서는, "나는 너희들을 구해줄 수 없지만 너희들
이 지극정성으로 "나무구고구난 아미타불(南無救苦救難 阿邇陀佛)'을 하면 아미타불이 너희
를 구해줄 것이다."라고 하니, 포로 가운데 세 사람은 스님의 말을 믿고서 쉬지 않고 큰소리
로 염불을 하였다. 이윽고 관리가 포로를 데리고 출발하려고 모두 형틀의 쇠고랑을 바꾸어
묶었는데 우연히 이 세 사람은 형틀이 없어 새끼줄로만 묶어놓았다. 관가에 도착하여 죄수
를 심사할 때도 관리가 유별나게 이 세 사람만을 국문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보리밭을 다
듬다가 적병에게 붙잡혀 왔다고 진술하였고 나머지 두 사람은 원래 명주(明州) 봉화현(奉化
縣)의 톱(鋸)장이였는데 이곳에 고용되어 일하다가 사로잡혔다고 하여 이 세 사람은 풀려나
게 되었다. 그들은 조과사를 찾아 대유스님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 후 떠나갔다.
내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아미타불은 서원(誓願)이 깊으셔서 염불하는 자는 임종 때 영험
을 얻을 뿐 아니라 현세에서 처형되려는 죄수까지도 그의 가호로 풀려나게 하신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47. 머리를 깎다가 사리를 얻다/ 서천축 판적달(板的達)스님
서천축국(西天竺國)의 큰스님 판적달(板的達)은 선정(禪定)을 굳게 닦으시고 아울러 계율까
지 잘 지켰다. 세 벌 옷과 바리때 하나만을 몸에 지닐 뿐이었고, 시주를 얻으면 가난한 사람
에게 나누어 주고 세상살이에는 그저 담담하였다. 홍무(洪武) 7년(1374) 남경(南京)에 도착
할 즈음, 황제는 관리에게 명하여 천계사(天界寺), 장산사(山寺)의 주지와 함께 남경 여러 사
찰의 승려를 인솔하여 교외에 나아가 맞이하고 깃발과 향과 꽃으로 그를 인도하여 대궐로
모셔오도록 하였다. 황제를 알현하자 황제는 기뻐하시고 깊은 총애와 후한 하사품을 전하였
으며 장산사에 유숙하게 하고 사신을 보내 자주 문안을 드렸다. 그해 겨울 황제는 친히 고
명(誥命)을 지어 도장을 새겨주고 그에게 선세선사(善世禪師)라는 법호를 내렸다.
당시 나는 천계사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금단(金壇)의 이발사 장생(蔣生)이 스님의 머리를
깎아 머리털을 쟁반에다 받아 놓았다. 처음 머리를 깎아 쟁반에 놓자 낭랑한 소리가 울리니
시자승이 재빠르게 덥쳐갔다. 다음번에 깎은 머리털은 장생 스스로 가져갔는데 그 속에 둥
글고 깨끗한, 콩알 만한 사리 한 알이 있었다. 나머지 머리카락은 구경하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모두 가져갔는데 사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당시 모두 세 알의 사리가 나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장생이 얻은 사리만을 보았으며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선세스님
의 시자승이 나에게 말하기를,
이런 일은 우리 스승에게 항상 있는 일이지만 세상에 자랑거리가 될까 두려워 머리를 잘 깎
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홍무(洪武) 9년(1376) 가을, 선세스님은 황제의 명으로 절강좌성(浙江左省)으로 내려와 육왕
사의 사리탑과 보타관세음(寶陀觀世音)의 시현(示現)을 위해 예배하였다. 두 곳에서 매우 특
이한 상서로운 빛과 모습이 나타났으며, 스님은 두 곳에서 모두 게송을 읊었는데 다 범자
(梵字)로 씌어있다 한다.
48. 쇠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맹세
원대(元代)에 복건 도운사(都運司) 모(某)씨의 생일날, 서리(胥吏)인 주청(周淸)이 생일잔치
를 마련했는데 상 위에 쇠고기가 있었다. 이에 도운사는 급히 쇠고기를 치우게 한 후 여러
손님에게 천천히 설명하였다.
"내 젊은 시절 외가의 아우 아무개와 함께 한 백정집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막 자리에 앉
으려는 찰나에 그 백정은 왼손에는 칼을 들고 오른손에는 송아지가 있는 암소 한 마리를 끌
고와 처마 기둥에 묶고서 그 앞에 칼을 놓고 떠나가자 송아지가 갑자기 칼을 입에 물고 채
소밭으로 달려가 발로 땅을 파헤치고 칼을 묻어버렸습니다. 백정이 돌아와 칼이 보이지 않
자 화를 내기에 그 까닭을 말해 주었더니, 그는 칼을 찾은 후 문턱에 걸터앉아 한참 동안
탄식을 하다가 그 칼로 자기의 머리를 깎고 처자를 버린 채 출가하여 불법을 배웠는데, 지
금 그가 어디에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후 외가 동생이 벼슬차 강서지방으로 부임하는 길에 배를 타고 황하를 지나다가 날이 저
물어 황량한 강기슭에서 쉬게 되었는데 건너편에 어슴프레하게 큰 집이 한채 보였습니다.
그 저택은 높고 넓었으며 엄숙하고 반듯하게 정돈되어 마치 제왕의 거실 같았습니다. 이에
강기슭을 올라가 저택으로 다가가 문지기에게 이곳이 뭐하는 곳이냐고 공손히 묻자, 이곳은
관청인데 구경하고 싶다면 들어와도 막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문안으로 들어가 보니, 큰
의관에 긴 허리띠로 단장한 사람이 정청(正廳)에 반듯이 앉아 있기에 그 앞으로 나아가 무
릎을 꿇고 절을 올렸습니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기에 서울에서 왔다 하고, 이곳이 무슨 관
아냐고 물으니 이곳은 천하태을뢰산(天下太乙牢山)으로 여기에서는 소 백정만 전문적으로
다스리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웃집에 살던 백정 황씨네 넷째아들이 죽은 지 열흘
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곳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있다 하기에 그를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청
하였습니다.
그러나 황씨네 넷째는 목칼을 덮어 쓰고 쇠고랑에 묶인 채 끌려오다가 우리 외동생을 보자
깜짝 놀라서, 그대가 어찌하여 이곳까지 왔냐고 묻기에 임지로 부임하던 중 우연찮게 이곳
에 들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그대의 죄를 벗겨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
신은 죄가 너무 무거워 벗어날 길이 없지만 관리께서 부임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권
하여 120마리의 소를 죽이지 않으면 죄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이 끝나자 고개를 돌려보니 그 저택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외가동생은 이때부
터 사람들에게 소를 잡지 말도록 권했는데 그가 말한 수효를 모두 채우던 날 밤 황씨네 넷
째가 외가동생을 찾아와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저는 관리께서 소를 죽이지 말도록 권한 은
덕으로 이미 죄값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만일 집에 전하실 서신이 있으시
면 제가 가져다 드리겠으나 다만 문 안에 던져줄 수 있을 뿐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외동
생은 그가 집으로 가는 길에 우리집을 들러 내 옷을 빨리 보내라고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였
는데 두 달이 지나자 과연 임지에 옷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많은 손님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쇠고기를 먹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다.
49. 정토종의 말폐, 백련칠불교(白蓮七佛敎)
정토교(淨土敎)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은 많은 경전에 자세히 실려 있다. 그러나 정토교가
중국에 유행한 것은 동림 혜원(東林慧遠:晋代)법사부터 비롯된 것이다. 법사는 유·뢰(劉雷)
등 제현을 모아 연루(蓮漏:물시계) 위에 이름을 새기고 하루 여섯 때 예불을 올리며 서방정
토에 왕생하기를 기원하였는데, 정성이 간절하여 임종 때 각각 그들의 소원을 이루게 되었
다.
그러나 전조(원대)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의 근기가 얕고 거짓 마음이 나날이 돋아 "백련사'
라는 이름을 빌어 밥과 옷을 구하는 자가 종종 있었다. 연우(延祐:1314∼1320) 연간에 우담
도(優曇度)법사가 대궐에 나아가 상소를 올려 그 폐단을 바로잡았다. 그리고 물러나와서는
"여산보감(廬山寶鑑)" 몇 권을 저술하여 정교(正敎)를 밝히고 이단을 배척하여 동림사(東林
寺)의 옛 일을 일신하였다. 그러나 우담법사가 입적한 지 백 년이 채 못되어 용렬한 자들이
그의 이름을 도용하여 이른바 백련칠불교(白蓮七佛敎)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그 폐단은 극심
하였다. 어떤 이는 자칭 도사(導師)니, 사장(師長)이니 하면서 방등무애(方等無 )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여 신도를 규합하여 정법을 훼손하고 마군이 일을 널리 행하며, 보이지 않는 곳
에서 교를 전파하고 온갖 광채를 나타냈다. 귀중한 음식을 불전에 올리지도 않고 내놓거나
시식(施食)까지 모두 끊고서 스스로 부처라 하며 또한 삼보(三寶)란 불(佛)·법(法)·사(師)
라 하여 함부로 도사(導師)를 삼보 속에 넣고 승려는 아니라 하였다. 우매한 속인을 선동하
고 그것을 풍속화하여 막을 수 없는 세태에 이르니 결국 조정에서는 백련칠불교를 엄단하는
조처를 내렸다. 그러므로 선비들이 동림사의 수행을 더럽게 여기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 어떻게 하면 우담법사와 같은 분이 다시 세상에 태어나 폐단을 바로잡아 줄 수 있을까.
50. 공평무사한 마음으로 시주들을 대하다/ 서설 애(瑞雪崖)스님
서설 애(瑞雪崖)스님은 황암(黃岩)의 사람이다. 어릴 때 추강 담(秋江湛)스님에게 출가하여
신성산(新城山) 유경원(留慶院)에 살았다.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고 금강반야경을 일과로 삼
았으며 더욱이 유가법사(瑜伽法事)에 능하였다. 승속의 청을 받으면 가서 지성껏 불사를 했
을 뿐 시주가 많고 적음은 헤아리지 않았으며, 더러는 한푼을 받지 못하여도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다시 부르면 가서 처음이나 다름없이 해주었다.
홍무(洪武) 신해(1371)년 5월 가벼운 병을 앓자 더운물을 찾아 목욕한 후 옷을 갈아입고 게
를 써놓고 가부좌한 채 열반하였다. 다비할 때 큰 별이 백호광에 섞이듯 빛이 흩어졌는데
연기와 불꽃은 전혀 없었으며 단단한 사리가 많이 나왔다. 세수 83세였다.
51. 말년을 불법 참구로 보내다/ 송무일(宋無逸)
송무일(宋無逸)은 여요(餘姚) 사람이며 별호는 용암(庸菴)이다. 천성이 인자하고 너그러우
며 용모가 단정하고 의연하였다. 어려서 양렴부(楊廉夫)·진중중(陳衆仲) 두 선생에게 배워
경서에 밝고 학문을 통달하였으며 문장에도 엄격한 법도가 있었다. 노년에 이르러선 선학
(禪學)을 몹시 좋아하였는데 명조(明朝) 창건 초기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 이르러 원
사(元史) 편수에 참여하였으나 이를 사양하고 돌아왔다.
나는 문도 거정(居頂)에게 자계(慈溪) 용산사(龍山寺)에 머물면서 수시로 무일을 찾아 문장
짓는 법을 배우도록 했다. 그 일로 무일이 나의 문도를 통하여 나에게 입도(入道)의 요지를
묻는 서신을 전해 오면 나는 답서에 무어라 적어보내기도 하였고, 계환(戒環)스님의 능엄경
주석과 대혜(大慧)스님의 서간집(書間集)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그후로 무일은 항상 눈을 감
고 꼿꼿이 앉아 반복하여 두 책의 이치를 탐구하여 깨달은 바 있었다.
홍무 9년(1376) 6월, 병으로 눕자 그의 문인 왕지(王至) 등에게 명하여 아들에게 주는 시 한
수를 받아 적게 한 후 태연히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부채를 흔들면서 가족들을 만류하며 말
하였다.
"나는 조용히 있을 것이니 너희들은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말을 마친 후 눈을 감고 부채로 얼굴을 가린 채 세상을 마쳤다. 그 당시 날씨가 몹시 더웠
는데도 시신을 염하려고 보니 얼굴엔 미소를 머금고 더욱 깨끗하고 윤기가 있었다.
"용암유고(庸菴遺藁)" 몇 권이 세상에 전해오고 있다.
52. 세상에 나오는 엉터리 어록들
요즘 세상에는 머리 깎은 외도가 한 무리 있는데, 그들은 불조께서 남긴 말씀을 모아 실속
없는 책으로 만들고는 이를 "어록(語錄)"이라 하여 신도들의 시주로 간행하고 있다. 그들은
원래 깨달은 바도 없는데다 불조 화두의 근본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현학적인
말로 어리석은 자신의 해석을 잘못 붙이니 아는 사람이 보면 두려운 마음에 흐르는 땀을 금
할 길 없을 것이다.
소천강(炤千江)은 사명(四明) 사람이며 원직지(圓直指)는 천태 사람이며 혁휴암(━休菴)은
양주의 사람인데 세 사람 모두 온갖 번뇌에 얽힌 범부에 불과하며 정견(正見)이라고는 하나
도 없는데도 마음대로 "어록"을 발간하였다. 휘(暉)장주는 은현( 縣)의 사람으로 조천강에
게 귀의하여 금강경을 조목마다 분석하고 제멋대로 송을 붙여 간행 배포하였다.
내가 동곡사(桐谷寺)에 있을 무렵 휘장주가 찾아왔기에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 경에다 제목을 붙였으며 무엇으로 종지를 삼았느냐?"
그러나 그는 전혀 아는 바 없었다. 하물며 그가 미혹한 중생을 위하여 무상정변지각(無上正
遍知覺)을 표출해 낼려고 하겠는가. 이들은 모두 정인(正因)에 근본하지 않고 삿된 도에 힘
써 세상에 재난을 주면서 자신의 명성만을 좋아하여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고 유혹하니 참으
로 한심스럽고 슬픈 일이다. 오늘날 큰 법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마땅히 이들을 추방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데도 오히려 그들을 따라 칭찬하고, 어떤 이는 서문과 발문까지 써주고 있
으니 그들이 불문에 끼친 죄는 매우 큰 것이다.
53. 자암(者菴)스님의 "총림공론(叢林公論)"을 논하다
나는 자암(者菴)이 지은 "총림공론(叢林公論)"을 읽어보고 그가 식견이 고매한데다가 연구
가 정밀하여 다른 사람으로서는 쉽사리 따라갈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는 논리가 지나친 부분도 있고 논해서는 안될 것을 논한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적음지증전(寂踵智證傳:洪覺範)을 논하면서 그 몇 군데 지적을 했는데, 벼포
기 속에서 모벌레가 생겨나지만 벼를 해치는 것은 모벌레라고 한 말은 매우 타당하다. 그러
나 승보전(僧¿傳)에 대하여, 전기에는 과장된 말이 많고 찬(贊)에는 억설이 많다고 하니, 분
명 그렇다면 승보전에 실린 81명의 스님들에겐 모두 명성에 맞는 실제의 덕이 없다는 말인
가? 참으로 이는 적음스님이 거짓 문장으로 꾸몄다고 몰아부치는 것이니, 이러한 점은 그의
논설에 있어서 지나친 부분이다.
또한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대하여는, 한담(閑談)이 넉넉하고 문장의 격
이 높으나 소우(消憂:거문고와 책을 즐기며 시름을 없애리라 [樂琴書而消憂] ) 두 자가 좋지
못하다고 하였고, 한퇴지(韓退之)의 "송이원귀반곡서(送李鎭歸盤谷序)"에 대하여는, "슬픔과
비난이 많고 그릇된 일을 치장했다'고 하였다.
왕원지(王元之)의 "소죽루기(小竹樓記)"에서, "공청에서 물러나 한가할 때면 학창의(鶴衣)를
입고 화양건(華陽巾)을 쓰고 손에 주역 한 권을 들고 향을 사르면서 말없이 앉는다."는 구절
에 대해 왕원지가 자신의 가련한 삶을 다행으로 여긴 것이라 하고 이어서 "세속의 생각을
떨쳐버린다"는 구절이 옥의 티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옛 유학자의 문장이 잘되고 못되고야 우리 불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임에도 이를 "총림공론"에 넣은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이것이 내가 말한, 논해서
는 안될 것을 논했다는 부분이다. 옛사람의 말에, 한 자도 짧을 수 있고 한 치도 길 때가 있
다고 하니 정말 그렇지 않겠는가?
54. 통쾌한 납자가 없는 이 세상/ 육왕사 설창(雪窓)스님
육왕사 설창(雪窓)스님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머물기를 청하자 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천태산에서 왔습니다."
"발우는 가지고 왔느냐?"
"가지고 왔습니다."
"내게 좀 보여주지 않겠느냐?"
"객사에 있습니다."
"나는 그 발우를 물은 게 아니다. 내가 묻는 것은 밑없는 발우이다."
그 스님이 몸둘 바를 모르자 스님은 한탄하였다.
"통쾌한 납승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가거라!"
55. "선림보훈(禪林寶訓)"에 기재된 임시변통의 문제에 대하여
"선림보훈(禪林寶訓)"에는 담당 준(湛堂準)스님이 이상로(李商老)에게 보낸 서신이 실려 있
다.
요컨대 법을 잘 전하는 것은 변통에 달려 있습니다. 변통을 모르고서 교학과 문자에 얽매
이고 모습과 망정에 집착하는 것은 모두가 임시변통을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
로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만법은 하나로 돌아간다 하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고 물으니 조주스님께서,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무렵 베 적삼 한 벌을 해 입었는데 무게
가 일곱 근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옛사람이 임시변통에 통달하지 못하고서야 이
처럼 대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나의 생각으로는 그 스님이 던진 물음도 대단하긴 대단했는데 어째서 조주스님이 네가 머
물 곳 [ 奏泊處] 은 없다고 하였을까? 그러나 그에게 답한 한마디를 임시변통에 통달한 것으
로 여김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임시변통이라는 것은 상황을 보아 알맞게 처신하는 일
로서 심의식(心意識)을 쓰는 것이다. 게다가 그 스님의 그와 같은 물음과 조주스님의 그와
같은 대답은, 두 개의 거울이 서로 비치는 것이며 빛과 그림자가 둘 다 없는 경지인데 어찌
임시변통이 있다 하겠는가? 담당스님의 이와 같은 말 속에는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는
지…
56. 경전과 어록에 보이는 염화시중의 이야기
한명선(韓明善)선생이 육방옹(陸放翁)이 지은 "보등록(普燈錄)" 서문의 초본 말미에 덧붙여
썼다.
"방옹선생이 손수 저술한 "보등록" 서문의 초본은 보은사 정(淨)스님이 소장하고 있다. 나
도 지난날 선생의 유문(遺文) 두 질을 갖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잘못된 곳들은 선생이 손수
다 지워버렸다. "전등록"에 의하면, 세존이 꽃을 들어보이자 가섭존자만이 미소를 지었다고
하는데, 이제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경전에 없다 하여 거짓말이라고 비난
한다. 어느 사람의 말에 의하면, 금릉의 왕승상 [王安石] 이 비서성에 있을 때 "범왕결의경
(梵王決疑經)"을 발견하여 그 책을 펼쳐보니 "염화시중(拈花示衆)'이라는 말이 있었으나 숨
겨야 할 사정이 있어 이를 장경 속에 넣지 않았다는데 이제 선생(육방옹)이 이를 패다라엽
(貝多羅葉)의 옆줄에 기록하였다고 한다. 왕안석이 보았다는 책이 정말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 데에는 반드시 고증이 있었을 것이기에 아울러 끝에 기록하는 바
이다."
두 선생은 박식하고 이론에 밝으니 어찌 거짓말을 하겠는가?
얼마 전에 송한림(宋翰林:宋景廉)이 나를 위하여 "응수록(應酬錄)" 의 서문을 썼는데, 거기에
그가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실려 있는 "염화시중'의 이야기를 읽어보
니" 운운하는 부분이 있다. 송한림이 몸소 보았다면 그것은 반드시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경전인데도 어느 사람은 이를 거짓이라고 비난하니, 앞서 말했듯이 "숨겨야 할 사정이 있어
이를 장경에 넣지 않았다"는 말이 이 모두를 말해주고 있다.
57. 상투화 되는 조사(弔辭)
옛사람들이 죽은 승려를 위해 불사(佛事)를 하는 것은 그의 견도(見道)가 밝지 못하여 죽
는 순간에 막히거나 집착할까봐 두려워 실로 이를 일깨워주고자 몇자 썼을 뿐, 그가 생시에
지냈던 벼슬과 기연에 관한 이야기들을 구구히 쓰지는 않았다.
무준(無準)스님이 경산사 주지로 있을 때 관(觀)상좌의 다비식에서 불을 붙이면서 말하였다.
"큰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물 이야기 하기가 어려운 법이니 물결이 다하면 물거품도 없어진
다. 이제는 바다도 사라지고 물거품도 없어졌으니 머리를 돌려 자기 집에 안주하였다." 운운
하였는데 당시 그곳에 있던 큰스님들이 뒤따라 조사(弔辭)를 써서 조사는 그때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제 총림에서는 조사 쓰는 것이 상투화되어 아무 의미없는 어거지 문장을 엮어내
니 이른 바 죽은 승려를 일깨워주려던 원뜻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58. 관세음보살의 현신/ 조료 원(照寮元)스님
천동사 조료 원(照寮元)스님은 원래 병이 많던 사람이다. 홍무(洪武) 병진(1376)년 날로 병
이 악화되자 면(勉)장주는 그에게 관세음보살 명호를 하라고 권하였다. 조료원은 그의 말을
따라 하루에도 몇만 번씩 염불하다가 다음 해 10월 17일 오시(午時)에 이젠 죽음이 멀지 않
으니 아미타불로 바꾸어 염불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갑자기 아름다운 부인
한 분이 몸에는 육수의(六銖衣)를 걸치고 손에는 맑은 물병을 들고 문 밖에서 들어와 그의
앞에 섰다. 그는 깜짝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것은 바로 관세음보살의 현신이었다. 조료 원은 눈물을 흘리며 자기 죄를 고백하
고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였는데 보살은 잠깐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그 일이 있은 지 5일이 지나 병이 다 나았고 지금은 50여세가 되었다.
59. 무정불성(無情佛性)에 관하여 논하다/ 경산 여암(如菴)장주
경산 여암(如菴)장주는 태주(台州) 위우현(委羽縣) 사람으로, 교학을 하다가 선공부로 들어
왔다. 침착하여 서둘지 않았으며, 내전(內典:불경)과 외전(外典)에 널리 통달하고 자기 생사
문제는 더욱 치밀하고 철저하게 파고들었다.
노년에는 천동산 왼편 산기슭에 은거하였는데, 나는 지정(至正) 갑신(1344)년에 그의 은거처
를 찾아갔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무정물에 불성(佛性)이 있는지 유정물에 불성이 있는지에
언급하게 되자 이리저리 따지고 묻고 하다가 여암스님이 갑자기 말하였다.
"내 기억으로는 교학하는 큰스님 한분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무정 속에 본래 불성
이 있는가, 아니면 불성이 어디에나 있어서 무정에도 막히지 않기 때문에 무정 속에 불성이
있다는 것인가"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급히 막으면서 말했다. 불성은 텅 비어 말
과 명칭을 벗어나 있으니 있다 할 수도 없고 없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자 여암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60. 금동석가상과 관음보살상의 영검
은성( 城) 복취암(福聚菴)의 비구 보월(普月)스님이 받들고 있던 청동으로 만든 석가상은
오래되고 정교한 불상인데 애당초 번양(番 陽)에 있던 것이라고 할 뿐, 처음 조성된 유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바 없다. 송(宋) 휘종(徽宗) 정화(政和1111∼1117) 연간에 전감(錢監:
쇠돈 만드는 곳의 우두머리)이 그 불상을 가져다가 풀무에 넣어 무려 3일 동안이나 녹였지
만 형태와 색상이 더욱 선명하였으므로 모두들 놀라서 그 불상을 요주(饒州)의 광효사(光孝
寺)에 봉안하고 "벽화금동석가보상(酸火金銅繹迦寶像)'이라 이름하였다. 광종(光宗) 소흥(紹
興1190∼1194:원문의 "소흥'은 잘못으로 생각됨)에 광효사의 주지 보걸(普傑)스님이 화공에
게 명하여 그 불상을 그리고 또 돌에다 새겼다. 회계(會稽)의 중교(仲皎)스님이 찬(讚)을 썼
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부처님께서 부처 삶는 놈을 만났네
불꽃 속에 넣어서 녹이려 했지만
삼일 동안 들판에 불똥이 튕길 뿐
큰 용광로 속에서 끄떡도 안했다네.
作家會遇殺佛手 置之列焰令銷鎔
火星 野亘三日 巍巍不動洪爐中
그후 사씨(史氏)가 정권을 잡자 그 불상을 사씨에게 바쳐 결국 절좌(浙左) 지방까지 내려
오게 된 것이며, 금조(今朝:明) 홍무(洪武) 임술년(1382) 보월스님이 사씨에게 돈을 주고 산
것이다.
또한 해회사(海會寺)에 지난 날 안휘(顔輝)가 손수 그린 관음성상이 한 폭 있었는데 필력이
정묘하고 채색이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워 세상에 보기 드문 것이었다. 원 지정(元 至正:134
1∼1367) 연간에 성 안에 사는 고씨(高氏)가 양황참법(梁皇懺法)의 예를 거행하면서 삼일 동
안 그 그림을 모셔다가 불단을 마련하였다. 공양을 끝마치고 모든 사람들이 흩어진 저녁 2
경(二更) 무렵 그 그림에서 큰 빛이 쏟아져 집 밖으로 뚫고 나갔다. 저자 사람들은 불이 난
줄 알고 불을 끄려고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그것은 그림에서 쏟아져 내린 빛이었다. 그후 저
씨(氏)와 장씨(張氏)가 불사를 거행한 후 공양에 청하니 처음처럼 상서로운 빛이 났었다.
청정법신은 일체 만물을 포섭한다. 경에 이르기를, 삼천대천세계에 겨자씨 만한 곳이라도 보
살의 신명(身命)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하였다. 중생에 응하여 모습을 나투시고 인연
따라 감응하니 어느 곳이라도 부처님이 계시는 곳 아닌 데가 없다. 이를 비유하자면 태양이
하늘에 떠서 강물 속에 그림자 비치면 보는 사람마다 각기 하나의 태양이 그 사람을 따라
다니는 것과도 같다. 불보살의 신비한 조화를 비교해 보면 어찌 그 차이가 만배에 그치겠는
가?
이제 청동으로 만든 석가상과 관음의 그림을 보면 그 영검이 이와 같으니 불상과 진신을 두
가지로 생각하여 깊은 공경심을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61. 혼례식날 도망가서 출가하다/ 영 고목(榮奇木)
영 고목(榮奇木)스님은 은성( 城)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채식을 하고 법화경을 계속 읽어
오다가 출가를 청하니 부모가 허락하지 않고 어거지로 결혼을 시키려 하였다. 혼례를 치루
던 저녁, 스님은 도망가서 차가운 눈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거의 죽게 되었는데 그의 외
가 형 육씨(陸氏)가 옷을 벗어 입혀준 후 부축하고 돌아와 더운 물로 몸을 녹이고서야 소생
하였다.
맨처음 해회사(海會寺) 매봉 수(梅峰壽)스님을 모시다가 다음에 정자사(淨慈寺)의 동서 해
(東嶼海)스님을 찾아뵙고 삭발하였다. 구족계를 받은 후엔 맑은 정신으로 참선을 하며 끊임
없이 분발하여 중봉 단애(中峯斷崖)·포납 대량(布衲大梁)·무방 고림(無方古林) 등 여러 큰
스님을 두루 찾아뵙고 예를 다해 법을 물어 그들의 가르침을 크게 받았다. 설창(雪窓)스님이
육왕사의 주지로 있을 무렵 스님의 계행이 엄숙하고 안목이 진실함을 존중하여 특별히 제2
수좌로 초청하였다.
지정(至正) 정유(1357)년, 대중의 여망을 따라 해회사(海會寺)에서 개법하니 승속이 모두 그
를 믿고 추앙하였고, 이에 힘입어 사찰이 흥성하게 되었다.
금조(今朝) 홍무 4년(1371)에는 서울 [京師] 에 가서 종산법회(鍾山法會)에 참여하였고 다음
해에 동쪽 지방으로 돌아왔다. 또 그 다음해에 은성의 거교암(車橋菴)에서 입적하였는데 널
에 넣은 지 7일이 지나도록 얼굴빛이 변하지 않았다. 향년 73세이다.
62. 계율을 경시하는 말세의 풍조를 개탄하다
명주(明州) 오대산(五臺山)의 계단(戒壇)은 영지(靈芝)율사가 중창한 것이다. 축조를 마치고
법을 강론하는데 한 노인이 나타났다. 신비한 기가 뛰어나고 눈썹과 수염이 하얀 그가 앞으
로 나와 말하였다.
"저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세 알의 구슬을 바쳐 오늘의 계단 조성을 축하합니다."
말이 끝나자 그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계단 중심에 세 알 구슬을 안치하였는데
여러 차례 빛이 나왔다.
황조(皇朝:明) 홍무 11년(1378) 4월 17일, 단주(壇主) 덕옹(德 )이 열 명의 율사를 모시고
계법회(戒法會)를 크게 열었는데 그후 이틀이 지난 밤에 자계사(慈溪寺)의 스님 자무(子懋)
가 단에 오르려는 찰나에 갑자기 구슬에서 광채가 밖으로 뻗어나오는 것이 보이고 그 속에
서 선재동자가 나타났다. 자무는 깜짝 놀라 소리쳤고 온 대중이 돌아가면서 예배하였다. 슬
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그후로 밤마다 대중들은 더욱 경건하고 간절히 기도하니,
황금부처로 나타나기도 하고 팔이 여섯 달린 관음상, 또는 붉은 대 푸른 버들 위에 빈가새
[頻伽鳥]가 좌우로 춤을 추며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는 월개(月蓋)를 쓰거나 손에 화로를 든
부처로 나타나기도 하고, 용신이 구슬을 바치는 등 신기한 변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일들이었다.
아! 내 들어보니 세존께서 계단의 축조를 마치시자 범천왕(梵天王)이 귀한 구슬을 올렸고
제석천왕도 여의주로 비를 내려 세존을 도왔다고 한 세존께서 돌아가실 때 비구들에게 "계
율로 스승을 삼으라'고 부촉하셨고, 또한 "만일 나의 법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계율에서 비
롯된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불교와 계율의 관계는 실로 크다. 오대산의 계단에 구슬
을 올린 사실은 본디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법시대(말세)에 계법을 거행하자 신비한 감
응이 이처럼 빛날 줄을 생각이나 했었겠는가! 천룡(天龍)이 계법을 보호하는 마음을 또렷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스님들이 계율을 쓸모없는 형식이라 생각하고 조금치도 마음에 두지 않
음을 어찌하랴. 가슴아픈 일이다.
발문 1
天禧住山 守仁
"산암록"은 산암(山菴)스님이 보고 들은 일을 기록한 것이다. 기록 중에는 좋은 일 좋지 못
한 일들을 숨김없이 그대로 썼으니 불교문중의 좋은 역사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법에
관계가 있는 일이라면 모두 쓰지 않을 수 없되 그것이 천하의 공론과 일치한다면 더욱 훌륭
한 일이다. 이 책이 세상에 퍼지면 "임간록(林間錄)" "초암록(草菴錄)" 등 여러 저술과 함께
끝없이 전해질 것이다.
홍무 경오년(1390) 봄 2월 16일에 천희산주(天禧山主) 수인(守仁)은 쓰다
발문 2
내 젊은 시절 스승 묘명(妙明)스님을 시봉하면서 경산사에 머물 무렵 항상 몽양실(夢養室)
에 계시던 공실(空至) 노스님을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들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노스님께서
는 선배 큰스님을 두루 참방하여 바른 지견을 갖추셨고 해박한 학문으로 묘한 법문을 하셨
다. 또한 피로한 줄 모르고 부지런히 학인을 가르쳤으며 향상(向上)의 수단을 쓰는 일에 대
해서도 그의 곁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그후에 두 차례나 절동(東) 지방 명찰의 주지를 지
낸 뒤 한가히 태백산에 은거하셨다. 나는 그 당시 계속 사명(四明)에 있었기에 명절이 되면
반드시 스님을 찾아가 문안을 드릴 수 있었으나, 종산(鐘山)으로 온 지 3년 만에 스님의 상
좌 취산사(翠山寺) 전 주지 현극정(玄極頂)스님이 사명에서 나를 찾아와 노스님이 입적하신
지 4년이 지났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어느 날 나에게 "산암잡록" 한 편을 꺼내 보여주었는
데, 읽어보니 모두가 지난 날 노스님께서 내게 일러주셨던 이야기들이었다.
아! 노스님을 다시 찾아뵈려고 하여도 다시 만날 수 없는데 노스님께서 평소 쓰신 논저를
읽어보니 감개가 무량할 뿐이다. 노스님이 설법하신 어록은 따로 세상에 전해오고 있다. 어
떤 이들은, 어록에는 향상 법문 [向上菩提]이 많고 이 책은 고인의 옛 말씀과 지난 행적을
들어 학인의 견문을 넓혀주려는 글이니 난해한 어록에 비하면 이 책이 쉽다고 한다. 그러나
애당초 다른 이치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본디 세존께서도 근기를 보고 맞게 가르친다고 하
셨다. 그러므로 역대 조사의 종문에서 백추를 들고 불자를 세운다든가, 눈썹을 날리고 눈을
깜빡인다든가 하는 일들은 하나하나 학인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도 이 책을
학인을 위한 향상의 방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학인들은 반드시 안목을 갖추어야
하리라.
홍무(洪武) 경오년(1390)에 영곡주산(靈谷住山) 청예(淸穢)는 절하고 쓰다.
 ̄*덕산스님이 어느날 공양이 늦어지자 손수 바리때를 들고 법당으로 갔다. 공양주이던 설
봉스님이 이것을 보고 "이 노장이 종도 치지 않고 북도 울리지 않았는데 바리때를 들고 어
디로 가는가?"하니 덕산스님은 머리를 푹 숙이고 곧장 방장실로 돌아갔다. 암두스님이 이
말을 듣고 "보잘것 없는 덕산이 말후구(末後句)를 몰랐다"하였다. 덕산스님이 암두스님을 불
러 "네가 나를 긍정치 않느냐?"하니 암두스님은 은밀히 자기생각을 말했다. 그 다음날 덕산
스님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는데 그 전과 달랐다. 암두스님이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
기쁘다. 늙은이가 말후구를 아는구나. 앞으로 천하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3년 뿐이로다."하였다. 과연 3년 후 돌아가셨다.
*구정(九鼎):하(夏)나라 우(禹)임금이 주조했다는 큰 솥.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보배.
*선정원:원(元)나라 때 불교의 승속과 티벳, 트루판을 관리하던 관청.
*여기의 철우, 해문, 고순, 식암은 스님들의 이름이다.
*원문의 "雲'은 "露'의 오기인 듯하다.
*원문의 "淸'은 "睛'인 듯하다.
*진회(秦檜):남송 고종 때의 재상으로 충신 악비(岳賑)를 무고로 죽이고 주전파(主戰派)를
탄압하여 금(金)나라와 굴욕적인 화친을 맺었다. 당시 대혜스님 등의 승려들은 주전파의 입
장을 동조하여 귀양보내졌다.
*당사(堂司):절의 당우를 관리하는 소임.
*"일목(一木)'이란 끝 말(末:一十木)자를 의미하며 "영상(嶺上)'이란 산(山)을 말하는 것이므
로 이를 합하면 "말산(末山)'이 된다.
*세존께서 어느 날 자리에 오르시자 대중이 모였다. 문수가 백추(白槌)를 치고 말하되 "법왕
의 법을 자세히 살펴보니 법왕의 법이 이러하나이다"하니 세존께서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수료학:비나야잡사(毘那耶雜事)에 나오는 고사. 아난이 비구들과 죽림원에 갔을 때 수료학
(水寮鶴)이라는 비구가 게송을 읊고 있었다. "백세를 누리면서 수료학을 보지 못하는 것이
하루를 살더라도 수료학을 보는 것만 못하리"라고. 아난은 그것을 듣고 비구들에게 전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백세를 누리면서 생멸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하루를 살면서 생멸
을 밝히는 것만 못하리' 하셨느니라."
아난이 잘못 기억했다가 정법을 그르쳤다는 뜻으로 쓰임.
*제점(提點):상주물 관리소임.
인천보감 (人天寶鑑) 은 세상사람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일들을 모은 것으로서, 주로 승려들
의 이야기이며 유교와 도교에 관계되는 옛사람들의 이야기도 수집하여 편집한 책이다.
편집자인 담수 (曇秀) 스님은 서문에서 이 책을 편집한 의도를 두 가지로 말하고 있다. 그
하나는 옛 사람들의 훌륭한 일을 널리 세상에 알리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비석이나 어록, 짧
은 기록, 또는 직접 들은 이야기들을 시대의 앞뒤없이 보이는대로 기록하였으며, 이것은 대
혜스님의 정법안장 (正法眼藏) 을 본따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
둘째는 선 (禪) 을 닦는 이들이 오로지 선만을 주장하는 폐단을 경계하고 옛 사람들은 선과
율 (律) , 그리고 유교와 도교까지도 널리 터득하였음을 말하고자 함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담수스님이 사명 (四明) 절강성 (江省) 에 주석하던 소정 (紹定) 3년 (1230) 에
스스로 서 (序) 를 쓰고, 난정 유비 (蘭庭劉 ) 의 서 (序) 와 고잠 사찬 (古柝師贊) 의 발
(拔) , 그리고 영은사 묘감 (妙堪) 의 착어 (着語) 를 붙여서 2권으로 간행하였다.
옛부터 중국 총림에서는 이 책을 선림 7부서 (禪林七部書) 중의 하나로 높이 평가하고 있
다.
인천보감의 내용상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수록되어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이 불교의 스
님들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천태종 스님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맨 처음에 소개되는 담광법사 (曇光法師) 에서부터 열번째인 사명지례 (四明知禮) 에 이르
기까지 모두 천태종과 관련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122단락 중에서 천태종에
관계되는 것이 약 40개이니 거의 13이나 되는 셈이다.
여기 수록된 천태종 스님들의 법계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도표>
이 법계도를 통해서 보면 이들은 모두 이른바 산거파 (山居派) 인 사명지례의 법손이며, 그
중에서도 선종과의 접근을 강조한 남병 (南屛) 의 후손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어떤 스님
들은 법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법계도에 들어가지 못한 분들도 있지만 이 법계도에서 볼 때
맨 마지막에 있는 북봉인 (北峯印:1148∼1213) 은 인천보감이 편집되기 불과 17년 전에 입
적하였다. 그러나 선종의 스님으로서 담수 (曇水) 스님에게서 가장 가까운 시기의 스님은 불
조 덕광 (:1121∼1203) 인데 약 50여 년 이전의 일이다.
둘째는 스님들이 속해 있는 종파에 따라 호칭에 차이가 있다. 즉 선종에 속한 스님은 선사
(禪師) , 율종계통은 율사 (律師) , 그리고 천태종 계통은 법사 (法師) 라 하여 종파가 분명
히 구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태종 초기의 스님인 남악 (南嶽) 의 경우에는
「남악선사'라고 한 경우도 있다.
셋째는 선종과 천태종 스님들과의 교류를 비롯하여 다른 종파간의 교류에 대한 언급이 많
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종경록 (宗鏡錄) 에 대한 이야기로서 끝맺는데, 종경록은 선과 교,
천태, 유식, 화엄 등을 하나의 근원인 일심 (一心) 으로 귀결시키고 있는 책이다.
인천보감을 편집한 담수 (曇秀) 스님에 대해 살펴보면 그는 임제종 대혜파인 소옹 묘담
(:1177∼1248) 의 법을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인천보감에는 천태종 산
거파의 스님들이 거의 모두 수록되어 있고, 또 북봉인스님까지 수록된 점으로 보아 담수스
님은 이들과 관계가 깊은 분으로 추측된다.
더구나 사찬 (師贊) 의 발문에서 보면 "사명 땅 선객 담수공은……인천 (人天) 의 안목을 열
어주었기에 보감 (寶鑑) 이라 이름짓고 원각사 (圓覺寺) 로 달려가 간행하고자 하였다"고 적
고 있는데, 본문 속에 소개된 원각사 (No.93) 는 천태종에 속한 절이다.
담수스님이 인천보감을 간행하기 위해 찾아간 원각사와 본문 중의 원각사와의 관계, 나아가
담수스님과 천태종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 더 연구해 봐야 할 것이다.
인천보감 (人天寶鑑) 서 (序)
옛분들에게 있었던 훌륭한 일들이 세상에 밝혀지지 못하는 것은 후학의 잘못이라고 들었
다. 3교 (三敎) 의 훌륭한 분들 중, 불교에서는 한마디 말씀 한 가지 행이 모두 비석이나 어
록, 단편 등에 실려 있으나 사방에 흩어져 있어 빠짐없이 볼 수가 없다. 그리하여 덕스러운
이가 묻혀서 혹은 들어보지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항상 총림에 드나들면서 더러는
큰스님들의 법문 중에서 듣기도 하고 혹은 찾아다니면서 구하기도 했는데, 모두가 의지를
북돋아주고 후세의 거울이 될 만한 것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때그때 기록해 둔 것이 총 수백
토막이 되었는데, 그것을 「인천보감 (人天寶鑑)」이라고 이름붙였다. 여기서 인물에 등급을
매기거나 선후를 나누지 않았으니 대혜 (大慧) 스님의 ‘정법안장 (正法眼藏) '을 본땄다.
옛날에는 선을 닦는 자들도 누구나 경학과 율법을 공부하였고 경율을 하는 자들도 모두 힘
써 선을 닦았으며, 나아가 유가나 노자의 도에서도 터득하여 철저히 깨달았다. 지금처럼 한
가지 방법만 오로지 하고 한 가지 맛에만 빠져 마치 어울릴 수 없는 물과 불처럼 서로를 헐
뜯지는 않았다. 아! 옛분들의 행이 어려운 것이 아닌데, 사람들 스스로가 자기를 비하해서
옛분들을 쫓아갈 수 없다고들 하니, 그들은 옛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같은 사람인 줄을 너
무도 모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스스로 분발하는 이가 있다면 옛분들과 무엇이 다르랴.
이제 이 책을 간행하여 이 내용을 널리 펴는 것은 후학에게 보여서 그들이 선배들의 모범을
알아 모두 도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니, 고명한 분들은 나무라지 마소서.
소정 (紹定) 3년 (1230) 결제일에,
사명 (四明) 사문 담수 (曇秀) 는 서문을 쓴다.
서 문 (2)
이 책의 내용은 모두 불가(佛家) 의 묘약이며 세상을 구제하는 것으로, 병자에게 먹이면 곧
병이 낫게 되고 심지어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절름발이까지도 낫게 할 수 있다.
사명도인(四明道人) 담수(曇秀:송대 임제종) 스님이 오랫동안 강 건너, 바다 건너 다니면서
이 약을 골고루 맛보았는데 번번이 효험을 보았다.
때문에 마땅히 간행하여 길이 후손에게 복을 내려주려 하는 것이니,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서문을 쓴다.
소정(紹定) 경인년(1230) 6월 보름
난정 유비(蘭庭劉斐) 는 쓴다.
발 문 ⑴
옛 사람은 마음 닦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음 닦는 바른 행은 생각과 말에서 벗어나
지 않는다. 그래서 도를 세상에 알려 후생에게 모범이 되려 하는데, 여기에 어찌 선종 율장
교학, 유학 불교 도교의 차이가 있겠는가. 지극히 공정하면 천하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다.
사명 (四明) 땅 선객 담수공 (曇秀公) 은 여기에 두터운 뜻을 두고서 총림을 두루 다니며
현묘한 기연을 빠짐없이 봐오면서 가는 곳마다 보고 들은 바를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이 인천 (人天) 의 안목을 열어주었기에 「보감 (寶鑑)」이라 이름짓고 원각사 (圓覺寺)
로 달려가 간행하고자 하였다.
이는 선배들의 감추어진 덕과 숨겨진 빛을 밝혔을 뿐 아니라 장차 동지와 더불어 힘써 이
길을 따르고자 함이다.
나는 그의 말을 가상히 여겨 마침내 책 말미에 발문을 쓰는 바이다.
때는 소정 (紹定) 경인 (1230) 7월 14일, 고잠비구 사찬(古柝比丘 師贊) 은 만수사 (萬困寺)
귀운당 (歸雲堂) 에서 쓰노라.
발 문 ⑵
담수 (曇秀) 서기가 옛 일을 모아 책으로 엮어서 이를 「인천보감」이라 하고 나에게 평
〔着語〕 을 청하기에 한마디 써 주었다.
옛 스님의 사정을 알고 나니 부끄럽기만 한데
우물 속에 빠진 몸이 어찌 난간에 기어 오를 수 있으랴
본래 한 점의 마음은, 태양처럼 밝은데
변방사람인지 본토사람인지를 비춰 본 적 있으랴.
先德情知巳厚顔 那堪落井更攀欄
本來一點明如日 胡漢何曾自照看
소정 (紹定) 경인 (1230) 8월,
영은사 (靈隱寺) 주지 묘감 (妙堪) 이 쓰다.
1. 승보 /담광(曇光) 법사
당나라 덕종(德宗:779∼805) 이 담광(曇光) 법사에게 물었다.
“스님네들을 어째서 보배라 합니까?"
담광법사가 대답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스님네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그 모두를 보배라 합니다.
첫째는 스스로의 마음을 단박에 깨쳐서〔頓悟〕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의 대열에 들어간 분
을 선승(禪僧) 이라 합니다. 둘째는 이해〔解悟〕 와 실천〔修行〕 을 동시에 행하여 세간
흐름에 들어가지 않은 분을 고승(高僧) 이라 합니다. 셋째는 계(戒) ·정(定) ·혜(慧) 를 고
루 갖추어 설법솜씨가 뛰어난 분을 강승(講僧) 이라 합니다. 넷째는 견문이 깊고 알차서 옛
일로 지금일을 검토하는 분을 문장승(文章僧) 이라 합니다. 다섯째는 인과(因果) 를 알고 자
비와 위엄을 함께 쓰시는 분을 주사승(主事僧) 이라 합니다. 여섯째는 열심히 공부에 정진하
여 부처종자를 기르는 분을 상승(常僧) 이라 합니다."
임금은 크게 기뻐하고 마침내 천하에 조서를 내려 승려되는 것을 허락했다
「당승전 (唐僧傳)」
2. 법화선문 /대선(大善) 선사
대선(大善) 선사는 남악(南嶽) 선사의 상수제자로서 법화선(法華禪門) 을 닦아 자비삼매
(慈悲三昧) 를 얻었다. 당시 형양내사(衡陽內史) 정승고(鄭僧曠) 는 현령 진정업(陳正業) 에
게서 스님의 덕을 칭찬하는 말을 늘 듣기는 했었지만 믿음을 낼 생각은 없었다. 하루는 진
정업과 함께 사냥을 나가서 사슴 한 떼를 포위하게 되었다. 정승고가 진정업에게 물었다.
“그대가 늘 대선스님은 자비삼매력이 있다고 하였는데, 오늘 저 사슴들은 어떻게 할 것인
가?"
진정업이 좌우 몇 사람을 거느리고 함께 소리 높이 “나무대선선사"를 염하니 즉시 뭇사슴
들이 하늘로 치솟아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러자 정내사는 부끄러워하며 굴복하였다.
「국청석각 (國淸石刻)」
3. 두타행 /좌계 현랑 (左溪玄朗)
좌계존자 (左溪尊者) 의 법명은 현랑 (玄朗:673∼754, 천태종 제5조) 이며 조상 (鳥傷) 사
람이다. 천궁사 (天宮寺) 혜위 (慧威) 법사에게 불법을 배워 종지를 얻고 바위산 골짜기에
숨어 살았는데, 원숭이가 열매를 따가지고 와서 발우에 바치기도 하고 날아가던 새가 와서
법문을 듣기도 하였다.
비구에게 필요한 열 여덟 가지 물건만을 가지고 12두타 (十二頭陀) 를 행하면서 30년을 이
렇게 살았으며, 세세한 수행과 몸가짐까지도 모두 계율을 따랐다. 이화 (李華:당나라 문인)
는 스님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누구에게 선법을 전해 준 적도 없고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으며, 계율을 청정히 지
켜 흠이 없었고 외모에 신경쓰지 않았다. 경을 강의해도 대중이 많기를 기대하지 않았으며,
고단한 줄 모르고 학인을 지도했다. 구석진 집에 살면서 두 가지 반찬있는 밥을 먹지 않았
다. 경전을 공부할 때 말고는 밤에 등불을 켜지 않았고, 낮에도 부처님 상호를 우러러 예불
할 때 말고는 한 발짝도 쓸데없이 걷지 않았다. 가사 한 벌로 40년을 지냈고 깔방석 한 장
을 죽을 때까지 갈지 않았다. 이익 때문에는 한마디도 법문한 적이 없고, 터럭만큼도 불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재물을 받은 일이 없는 분이다." 「본전 (本傳)」
4. 자기 부처 /무상 (無相) 선사
오대산 무상 (無相:684∼162) 선사가 예불하고 대중에게 법문하였다.
“그대들은 진흙부처를 보았다 하면 절구에 쌀을 찧듯 절만 하고 아무 생각도 해보지 않으
니, 자기 몸에 부처님이 한 분씩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 허공을 타고온 많은 석가와
관음이 밤낮으로 그대들의 육근에서 빛을 내뿜고 땅을 흔든다. 거닐고 서고 앉고 눕고 하는
사이에 언제나 함께 드나들면서 실오라기만큼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 어째서 이 부처님
에게 예불드리고 배우지 않고 도리어 흙덩이한테 가서 살길을 찾고 있느냐. 그대들이 이 부
처님에게 예불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자기 마음에 예불드리는 것이다. 그대들 마음이 비록
뒤바뀐 헛된 마음이라 해도 그것은 본디부터 지금까지 넓고 깨끗하다. 그러므로 미혹하다
하나 한번도 미혹한 일이 없었고, 깨달았다 하나 한번도 깨달은 일이 없어 부처님보다 조금
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다만 바깥경계에 탐착하여 생멸과 미오 (迷悟) 가 있게 되었으니,
만일 한 생각에 회광반조할 수 있다면 모든 부처님과 같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옛스님은 말
하였다.
부처가 자기 마음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밖에서 찾고 있네. 값을 칠 수 없는 보배를 속에 지
니고도 일생을 쉴 줄 모르네.'
또 화엄수 (華嚴遂) 법사의 말씀을 듣지 못했는가.
내가 마음이 본래 성품임을 깨닫고 나니 지금의 모든 수행과 동정 (動靜) 이 본래 성품과
부합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렇게 수행 〔道〕 과 이치 〔理〕 가 부합하는 까닭에 종일토
록 예불해도 예불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종일토록 염불해도 염불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다.'
자, 말해 보아라. 화엄스님은 어떻게 이것을 알아냈겠는가? 마치 선재동자 (善財童子) 가 비
로자나 누각에 들어가 불가사의하고 자재한 경계를 깨친 것과 같다. 선재동자는 마지막 경
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110성 (城) 을 돌아다니며 53선지식을 찾아뵈었다. 그러면서 갖가지 경계를 보고 온
갖 법문을 들어보았으나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 온갖 일을 보지만 꿈을
깨고 나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과 같다.'
도력 높은 선사들과 선재동자는 비록 꿈속에서는 소소영영함을 얻었지만 여전히 오음 (五
陰) 경계에 떨어져 있다. 만일 정수리에 눈이 있고 팔꿈치에 부적이 있다면 석가와 미륵도
마른 똥막대이고 문수 보현도 땅에 가득 찬 범부일 뿐이다. 또한 진여와 열반도 나귀 매는
말뚝이고 일대장경도 고름 닦는 종이니, 무슨 들어갈 누각이 있고 깨칠 경계가 있겠는가. 혹
이렇게 못한다면 남의 꿈 속에서 한번이고 두번이고 절해야 할 것이다."
「통행록 (通行錄)」
5. 조계 근원 /덕소 (德韶) 국사
천태산 (天台山) 덕소 (德韶:891∼972, 법안종) 국사는 처주 (處州) 용천 (龍泉) 사람이
다. 구족계를 받고 나서 매서운 의지로 선지식을 찾아 도를 물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조산 (曹山) 에 와서는 대중에 묻혀 살았는데, 한번은 한 스님이 법안 (法眼) 스님께 묻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어떻게 하면 단박에 온갖 인연을 쉴 수 있겠습니까?"
법안스님이 말씀하셨다.
“공 (空) 이 그대에게 인연을 맺더냐, 색 (色) 이 그대에게 인연을 맺더냐? 공이 인연을 맺
는다고 한다면 공이란 본래 인연이 없는 것이다. 색이 인연을 맺는다고 한다면 색과 마음은
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일상생활에 어떤 물건이 그대에게 인연을 맺는다는 말이냐?"
덕소스님은 그 말을 듣고 머리끝이 쭈해지며 느낀 바가 있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또다
시 어떤 선객이 물었다.
“무엇이 조계 (曹溪) 근원의 물 한 방울입니까?"
법안스님이 말씀하셨다.
“이것이 조계 근원의 물 한 방울이로구나."
덕소스님은 듣고서 확실히 깨쳤다. 법안스님께서 “그대는 앞으로 우리 종지를 널리 펼 사
람이니 이곳에 지체하지 말라" 하시므로 마침내 천태산을 돌아다니시다가 그곳이 좋아 그곳
에서 생애를 마칠 생각을 가졌다.
당시 오월 (吳越) 의 충의왕 (忠懿王) 이 왕자의 신분으로 태주 자사 (台州史) 로 있었다.
그는 스님의 높은 명성을 듣고 한번은 사람을 보내 스님을 맞이하여 제자의 예를 올렸다.
왕은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에게 목이 잘리는 꿈을 꾸었는데 놀람과 의심이 풀리지 않아 마
침내 스님께 해몽을 부탁하였다. 스님은 비상한 꿈이라면서, 주 (主) 자에서 점 하나를 없앴
으니 곧 왕이 될 것이라고 하자, 왕은 과연 말씀같이 된다면 부처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하였다. 건우 원년 (乾祐元年:948) , 충의왕은 임금자리를 물려받고 스님을 높이 받들어 국
사로 모셨다.
당시 회창 (會昌) 의 법난 (845) 때문에 천태 지자 (天台智者) 대사의 교법이, 큰스님들은
빛을 감추고 저술들도 대부분 해동 (海東:고려) 으로 흘러갔었다. 나계 의적 (螺溪義寂:919∼
987, 천태종 중흥조) 법사가 앞으로 불법을 들을 수 없게 됨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힘써
모아 보았으나 우선 금화사 (金華寺) 장경각에서 「유마경의소 (維摩脛義疏)」 한 질을 찾
았을 뿐이었다. 그 뒤 충의왕이 불경을 읽다가 내용 〔敎相〕 에 막혀 스님께 법문을 청하
였다. 스님께서는 의적을 천태종의 종지에 훤히 통한 사람이라 칭찬하니 왕이 마침내 의적
스님을 불러 강원을 세웠다. 왕이 기뻐하여 특별히 열 사람의 사신을 바다 건너 파견하여
경전을 베껴 돌아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불법이 다시 일어나 지금까지 땅에 떨어지지 않으
니, 그것은 덕소스님과 의적스님의 덕택이라 하겠다.
개보 (開寶) 4년 (972) 6월 28일 천태산 (天台山) 화정봉 (華頂峯) 에서 입적하셨는데, 이
날 밤 별이 땅에 떨어지고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렸다. 스님께서 열반하실 때 보인 신비한 징
조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으며, 법등 (法燈:?∼974) 선사의 「행업 (行業)」 등 글에 자세
하게 실려 있다.
6. 소금 한 줌 /지자 지의 (智者智 )
지자 지의 (智者智 :538∼579, 천태종의 개조)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나와 같이 공부하던 조 (照) 선사는 남악 (南嶽) 선사 회중에서 고행과 선정이 가장 뛰어
난 사람이었다. 그가 한번은 대중의 소금 한 줌을 공양 때 마실 물에 쓰고는 줄어든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개의치 않았다. 그 뒤 방등참법 (方等懺法) 을 닦는데 홀연히 어떤 모습이
생겨나는 것을 보았다. 그 한 줌 소금이 3년 동안 몇 십 섬으로 불어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황급히 시자들을 시켜 자기 옷과 살림살이를 팔아 소금을 사서 대중에게 빚을 갚았다.
이 일은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고 전해들은 바도 아니니 이것을 거울삼아 후회 없도록 해야
한다. 나는 비록 덕행이 적은 사람이지만 멀리서 가까이서 자못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중간에 염령 (嶺) 이 가로막혀 걸어오기가 어렵다. 그래서 늙고 병든 사람들이 드나들 경우
에는 대부분 대중의 노새로 맞이하고 보내며, 내게 오는 손님은 개인적으로 수고비를 지불
하여 피차 허물이 없게 하였다.
나는 대중의 주지이고 노새도 내것이었으나 이미 대중에게 희사한 이상 이제는 내것이 아니
다. 내 맘대로 쓸 수는 없다 해도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말을 하겠는가. 이것은 하나의 예를
든 것에 불과하나 다른 일도 모두 마찬가지다." 「국청백록 (國淸百錄)」
7. 무작계 (無作戒) / 택오 (擇梧) 율사
도솔사 (兜率寺) 택오 (擇梧) 율사는 보령 (普寧) 율사에게 공부하였는데, 몸 단속이 엄
격하였으며 하루 한 끼 공양에 예불 독송을 끊임없이 하였다.
한번은 경산 (徑山) 유림 (維琳) 선사에게 도를 물었다. 유림선사는 택오율사가 계율에만
마음을 두어 도를 통하지 못함을 보고는, 계율에 몸이 묶여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지 않느냐
고 놀렸다. 택오율사가 “저는 마음 〔根識〕 이 어둡고 둔해서 매이지 않을 수 없으니, 스
님께서 가엾게 생각하여 가르쳐 주십시오" 하였다. 유림선사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바수반두 (婆修盤頭) 존자는 하루 한 끼 공양에 눕지도 않고 지내며 하루 여섯 차례씩 예
불하였다. 이렇게 청정무구하여 대중들에게 귀의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20조 (祖) 사야다
(儷夜多) 존자가 그를 제도하고자 하여 바수반두의 문도들에게 물었다.
“이 두타승이 청정행을 열심히 닦아 부처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렇게 열심히 정진하는데 어째서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대들의 스승은 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정진해 가지고는 티끌 겁이 지나도 모두 허
망의 근본이 될 뿐이다."
바수반두의 문도는 분한 마음을 내지 않고 사야다에게 물었다.
“존자께서는 어떤 덕행을 쌓았기에 우리 스승을 비난하십니까?"
“나는 도를 깨치려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잘못 〔顚倒〕 되지도 않는다. 나는 예불하지
도 않지만 그렇다고 부처님께 오만하거나 가볍게 굴지도 않는다. 장좌불와 (長坐不臥) 하지
않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지도 않는다. 하루 한끼만 먹는 고행을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
무거나 식탐을 내지도 않는다. 나는 만족도 탐욕도 없다. 이렇게 마음 둘 곳 없음을 도라고
한다."
바수반두는 이 말씀을 듣고 무루지 (無庄智) 를 얻었다.
유림선사는 큰 소리로 할을 한 번 하고서 말하였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둔한 놈이다."
택오율사는 이 말끝에 마음이 활짝 트여 껑충껑충 뛰면서 절하고 말하였다.
“스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했으면 어찌 잘못을 알았겠습니까. 지금부터는 지키면서도 지키
지 않는, 지킨다는 생각이 없는 계율 〔無作戒〕 을 지키겠으며, 더이상 애써 마음을 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작별하고 떠났다. 방장실로 돌아와서 익혀 왔던 수행을 다 버리고 그저 선상 (禪
床) 만을 지키며 법문하는 일 말고는 묵묵히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갑자기 하루 저녁은 명
정 (明靜) 법사를 불러서 말하였다.
“경산스님께서 내게 망정과 집착을 타파해 주신 뒤 지금껏 가슴 속에 아무 일도 없다. 오
늘밤에는 무성삼매 (無聲三昧) 에 들어가겠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가 없더니 마침내 영영 누우셨다. 「통행록 (通行錄)」
8. 불법을 위해 죽는다면 / 진종 (眞宗) 황제
송나라 진종 (眞宗:996∼1022) 황제가 한번은 태평흥국사 (太平興國寺) 를 없애 창고를 만
들려고 하였다. 조서가 내리던 날, 한 스님이 절을 없애서는 안된다고 꼿꼿하게 말하였다.
황제는 중사 (中使) 를 보내면서 “절을 없애라는 명령을 듣지 않으면 목을 베어라" 하고는
칼을 뽑아들어 보이며 말하였다.
“그 중이 칼을 보고 겁이 나서 떨거든 목을 베고, 그렇지 않거든 용서해 주어라."
중사가 명령대로 하였더니 그 스님은 웃으면서 목을 쓱 내밀며 말했다.
“불법을 위해 죽는다면 실로 달갑게 칼을 핥겠다."
황제가 기뻐하여 폐사를 면했다.
한자창 (韓子蒼) 이 말했다.
“지금 세상에도 이와 같은 스님이 있다니 참으로 납자라고 할 만하다."
「석문집 (石門集)」 "
9. 대중은 없어도/ 법창 의우 (法昌倚遇)
법창선원 (法昌禪院) 의 의우 (倚遇:1005∼1081, 운문종) 선사는 임장 (臨 ) 고정 (高亭)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큰 뜻을 품고 사방을 돌아다녀 총림에 이름을 날렸다. 부산 법원
(浮山法遠) 선사는 스님을 두고 행각하는 후학들의 본보기라고 하였다.
만년에는 분령 (分寧) 북쪽 천산만학 가운데 담이 무너진 옛 집에 은거했다. 간혹 납자들이
찾아와서는 모두 고된 일을 힘들어 했는데도 스님은 한 마디도 자상하게 문도들에게 가르쳐
준 일이 없었는데, 학인들은 스님의 의도를 알지 못했다. 그 담담하고도 힘겨운 생활을 견딜
수 없어 모두 그곳에서 떠나버렸다. 결국 혼자 산에 머물게 되었는데, 새벽에 향 피우고 저
녁에 등불 밝히며 법당에 올라 설법하는 일을 늙을 때까지 그만두지 않았고, 총림에서 하는
법도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용도각 학사 (龍圖閣 學士) 서희는, 대중이 없어도 대중이 있을 때처럼 처신하니 진짜 산사
람이라면서 감탄하였다. 돌아가실 즈음에 하루 앞서 게송을 남겼다.
금년 내 나이 일흔 일곱
길 떠날 날을 받아야겠기에
어젯밤 거북점을 쳐보니
내일 아침이 좋다고 하더라.
今年七十七 出行須擇日
昨夜報龜哥 報道明朝吉
서희가 이 게송을 보고 깜짝 놀라서 영원 유청 (靈源惟淸) 스님과 함께 찾아갔더니 이미
입적하셨다.「정강집(汀江集)」
10. 나태함을 일깨운 입적 / 법지 지례 (法智知禮)존자
법지존자 (法智尊者:960∼1028) 의 법명은 지례 (知禮) 이다. 나이 40이 되면서부터 눕지
않고 늘 앉았으며 문밖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법을 물으러 다니는 일도 모두 그만두었다. 하
루는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반 줄의 게송을 보고도 자기 몸을 잊고, 한마디 법문을 듣고도 불 속에 몸을 던진다 하였
다. 성인들은 법을 위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썼는데, 내가 신명을 던져 나태한 이들을 일깨우
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도반 열 사람과 3년 결제로 법화삼매 (法華三昧) 를 닦고 3년 기한이 되면 함께
몸을 태우자고 하였다.
이때 한림학사 (翰林學君) 양억 (陽億:大年) 이 편지를 보내 세상에 머물러 주기를 간곡히
청하면서, 정토를 좋아하고 속세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기도 하였다.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종일토록 모든 상 (相) 을 깨트려도 모든 법 (法) 은 이루어지고, 종일토록 법을 세워도
티끌까지도 다 없어집니다."
그러자 양억이 다시 물었다.
“보배나무에는 바람이 읊조리고 금빛 도랑에는 파도가 인다고 하니, 이것은 어떤 사람의
경계입니까?"
“보고 듣고 하는 경계일 뿐 도리는 없습니다."
“법화경과 범망경은 모두 마왕의 설법입니다."
“부처와 마왕과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양공은 교리를 가지고도 스님을 굴복시킬 수 없고 말로서도 만류할 수 없음을 알았다. 마침
내 자운 (慈雲) 법사에게 편지를 내어 항주 (杭州) 에서 명주 (明州) 로 오게 하여, 법사가
직접 그들의 결의를 막아 줄 것을 부탁하는 한편 고을의 장수에게는 그들을 보호하여 분신
할 틈을 주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이 해에 양공은 스님에게 법호를 내려 줄 것을 조정에 청하였다. 진종 (眞宗) 황제가 양공을
불러 까닭을 물으시니, 공은 이 기회에 스님께서 몸을 버리려 한다는 일을 아뢰었다. 황제가
기뻐 찬탄하면서 양공에게 “세상에 머물러 주십사는 내 마음을 꼭 전하라"고 거듭 말하며,
법지 (法智) 라는 법호를 내리셨다. 이 일로 원행 (願行) 이 실현되지 않자, 스님은 도반들
과 다시 광명참법 (光明懺法) 을 닦아 자연스럽게 입적하자고 약속하였다. 닫새째 되던 날,
가부좌한 채 대중을 불러놓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났다가 죽는 것은 당연한 분수다. 그대들은 쉴 새없이 부지런히 도를 닦고, 내가
살아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말이 끝나자 스님은 염불을 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교행록등 (敎行錄等) 」
11. 소동파의 신규각 비문 / 대각 회연 (大覺 懷璉) 선사
원통사 (圓通寺) 의 거눌 (居訥:1010∼1071, 운문종) 선사는 신주 ( 州) 사람이다. 성품이
단정하여 자기를 다스리는 데에 엄격하고 대중에게는 법도있게 대하였다. 밤이면 반드시 선
정에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차수하다가 한밤중이 되면서 차츰차츰 손이 가슴에
까지 올라와 있었다. 시자는 늘 이것을 보고 날 새는 시간을 짐작하곤 하였다.
송나라 인종 (仁宗) 이 그의 명성을 듣고 조서를 내려 정인사 (淨因寺) 에 주지하도록 하였
으나 병을 핑계로 사양하고 대신 회연 (懷璉:1009∼1090, 운문종) 선사를 추천하였다. 인종
이 회연스님을 보고 대단히 기뻐하여 대각선사 (大覺禪師) 라는 법호를 내리셨다. 영종 (英
宗) 은 손수 조서를 내려 천하 어느 절이든 마음내키는 대로 주지하라 하였으나 회연스님이
입밖에 내지 않아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소동파 (蘇東坡) 가 신규각 (宸奎閣) 의 비문
을 짓게 되어 회연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를 알아 보았다.
"신규각 비문을 외람되게도 지었으나 늙고 공부를 그만둔 사람의 글이라 돌에 새길 만한 것
인지 모르겠습니다. 참요 (參寥:?∼1106, 운문종) 스님의 말을 들으니 스님께서 서울을 떠나
실 때 왕 〔英宗〕 께서 전국 어느 절이든 마음에 드는 곳에 주지하라는 내용의 조서를 직
접 내리셨는데, 과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있다면 전문 (全文) 을 써 보내주십시오. 비문
에 이 한 구절을 넣을까 합니다."
회연스님은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회답하였다. 그러나 스님께서 입적하자 편지함 속에서 그
조서가 나왔다. 소동파가 이 소식을 듣고는, 도를 얻은 사람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덕을 간
직할 수 있느냐고 하였다. 소동파의 신규각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 나와 사람들을 제도했으나 매우 엄격하게 계율을 지켰다. 황제가 용뇌
목 (龍腦木) 으로 만든 발우를 하사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사자 앞에서 태워버리고 말하였다.
“우리 불법에는 먹물옷 입고 질그릇 발우로 밥을 먹게 되어 있으니, 이 발우는 법답지 않
습니다."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니 황제가 오랫동안 찬탄하였다. 스님께서는 집과 옷과 그 밖
의 물건들로 보물방을 차릴 수도 있을 정도였지만 그런 일은 하지 않고 성 밖 서쪽에 백 명
쯤 살 수 있는 작은 절을 짓고 살았을 뿐이다.
12. 공덕(功德) / 보지 (寶誌) 선사
양 무제 (武帝) 가 보지 (寶誌) 선사에게 물었다.
“짐이 정사를 돌보는 여가에 여러 가지 착한 일을 했는데, 공덕이 되겠습니까?"
“공덕은 공덕이나 진정한 공덕은 아닙니다."
“"무엇이 진정한 공덕입니까?"
“성품이 깨끗하여 마음이 밝으면 바탕이 저절로 비고 고요해지니 이것이 진정한 공덕입니
다."
무제는 이 말끝에 느낀 바가 있었다. 그러므로 옛 성인께서 말씀하셨다.
한순간 고요히 앉아 있으면
항하사만큼의 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
보배탑은 결국 먼지로 돌아가지만
한순간 깨끗한 마음은 깨달음을 이룬다. 「통행록 (通行錄)」
13. 화엄경을 칭송함 / 손사막 (孫思邈)
도사 손사맥 (孫思邈) 은 경조 〔京兆〕 사람인데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워 하루에
만 글자를 외웠다. 노장 (老莊) 을 잘하고 불전에 더욱 뜻을 두었다. 50세가 되자 종남산
(終南山) 에 숨어서 음식을 먹지 않고 연홍 (鉛汞:송화 가루나 약초 등으로 만들어 신선도를
닦는 사람들이 먹은 음식) 만을 먹고 살았다. 도선율사 (道宣律師:596∼667, 智首율사의 법
을 이음. 남산 율종의 개조) 와 사이가 좋아서 하루종일 법담을 나누었으며, 「화엄경"을 베
껴 쓰기도 하였다.
그때 당 (唐) 태종 (太宗:627∼649) 이 불경을 읽고자 하여 손사맥에게 물었다.
“어느 경이 가장 크고 높은 경입니까?"
“화엄경은 부처님도 높이시던 경입니다."
“요즈음 현장삼장 (玄台三藏) 이 대반야경 600권을 번역하였는데 (660년) , 그것을 큰 경이
라 하지 않고 오히려 80권 화엄경을 크다 합니까?"
“화엄법계에는 모든 법문이 다 갖추어져 있고 한 법문이 대천세계만큼의 경전을 설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반야경은 화엄의 한 부분 〔法門〕 이 되는 것입니다."
왕이 알아듣고 그때부터 「화엄경」을 늘 독송 〔受持〕 하였다. 「석씨유설 (繹氏類說) 」
14. 참학 (參學) 하는 일/ 시랑 양억 (楊億)
시랑 (侍郞) 양억 (楊億:974∼1020) 은 한림학사 (翰林學君) 이유 (李維) 에게 편지
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잠깐 남창 (南昌) 태수로 와서 마침 광혜 상총 (廣慧常總:1025∼1091, 임제종 황룡파) 스
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공양을 될 수 있는대로 간소하게 하여 밥상을 물리고 여가가
많았으므로 더러는 직접 오시기도 하고 더러는 수레로 모셔오기도 하여 이것저것 터놓고 물
었더니 어둡고 막혀 있던 것이 싹 풀렸습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뒤에는 마치 잊었던 일
이 갑자기 생각난 듯, 자다 깨어난 듯 마음이 탁 트여 의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소 가슴에 막혀 있던 것이 저절로 탁 떨어져 내려가서 몇 겁을 두고 밝히지 못했던 일이
환하게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는 정말로 스님께서 의심을 환희 결택 (決擇) 해 주시고, 막힘
없이 지도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옛분들이 큰스님을 찾아뵙던 일들을 거듭 생각해 봅니다. 설봉 의존 (雪峰義存) 스님
은 동산 양개 (洞山良介) 스님을 찾아뵙고 투자 의청 (投子義靑) 스님을 세 번 뵈었으나 마
침내는 덕산 선감 (德山宣鑑) 스님의 법제자가 되었으며, 임제 의현 (臨濟義玄) 스님은 대우
수지 (大愚守芝) 스님의 뒤를 이었으며, 운암 담성 (雲巖曇晟) 스님은 도오 원지 (道吾圓智)
스님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으나 마침내 약산 유엄 (藥山惟儼) 스님의 제자가 되었으며, 단
하 자순 (丹霞自淳) 스님은 마조 도일 (馬祖道一) 스님에게 인가를 받았으나 석두 희천 (石
頭希遷) 스님의 후예가 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많았으므로 이상하게 여길 일이 아
닙니다. 병든 이 몸이 지금 법을 이어받은 인연은 사실 광혜 (廣慧) 스님에게 있으나 처음
일깨워 지도해 주신 분은 바로 별봉 (鼈峰:임제종 대혜파, 無際了派의 제자) 스님이셨습니
다. 안녕히 계십시오.
시랑이 한 스님과 법담을 나누다가 말하였다.
“참학 (參學)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루종일 언제나 자기를 살펴보아야 〔照顧〕 합니
다. 듣지 못했습니까? 선 〔禪道〕 을 말하자면 늘 살피고 다녀야 할 도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일상생활에서 무슨 일을 하거나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알을 품고 있는 닭이
알을 두고 일어나버리면 기운이 이어질 수가 없어서 마침내 병아리가 부화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만가지 경계는 빽빽하고 6근은 요동하는데 조금만 살펴보는 일 〔照顧〕 을 놓치면 그
대로 신명을 잃게 되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 태어날 인연을 받아 생사에
매여 있는 이유가 수많은 겁토록 생멸심을 쫓아 그것에 끄달려다니다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
입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한번이라도 살펴봄을 잃은 적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겠습니까? 큰 길의 흰 소 〔露地白牛:본디는 법화경에서 一乘을 비유한 말로서, 선문
에서는 청정무구한 본심을 말한다〕 를 알고자 합니까? 콧구멍 〔鼻孔:본래면목〕 을 잡고
한번 끌어당겨 보십시오."
또 말하였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눈으로 가섭존자를 돌아보시며 대중에게 말씀하시기
를, ‘나에게 정법안장 (正法眼藏) 이 있으니 이를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셨고, 또 말
씀하시기를, ‘나는 49년 동안 한마디도 설법한 일이 없다' 하셨는데, 이것이 무슨 도리이겠
습니까?
누구나 저마다 한 글자 각주도 붙일 수 없게 되면 누구에게나 굉장한 일이 벌어진 셈이나
그것을 ‘굉장하다'고 해버리면 벌써 틀립니다. 그렇다면 석가는 패전한 군대의 장수이고,
가섭은 신명을 잃은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생사 열반이 모두
다 꿈속의 일이고, 부처와 중생도 모두 군더더기 말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곧바로 이렇게 알
아버려야지 밖으로 치달려 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밝히지 못했다면 그대는 한참 잘못
되었다고 말하겠습니다."
시랑은 임종 하루 전에 게송 한 수를 직접 써서 집사람들에게 주며 다음날 이부마 (李駙馬:
李遵 ?∼1038) 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꺼졌다 일어나는 거품이여
두 법은 본래 같은 것
참된 귀결처를 알려 한다면
조주 동원의 서쪽이니라.
生與 滅 二法本來齊
欲識眞歸處 趙州東院西
이부마는 받아보고서 말하였다.
“태산 (泰山) 의 사당 〔廟〕 속에서 지전 (紙錢:죽은사람의 노자돈으로 쓰는 가짜 종이
돈) 을 팔도다." 「대성광등 (大聖廣燈)」
15. 전생에 쓴 능가경 / 장문정공 (張文定公)
장문정공 (張文定公:張齊賢, 宋 太宗·眞宗代의 총신) 은 전생에 낭야사 (琅耶寺) 의 지장
(知藏:장경각에서 경전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소임) 이었는데, 「능가경 (磅伽脛)」을 베끼
다가 다 쓰지 못하고 죽게 되자 내생에 꼭 다시 쓰겠다고 발원하였다.
뒤에 제주 ( 州) 에서 지사 (知事) 가 되어 낭야산에 왔다가 도량을 두루 걸어다녔는데, 어
쩐지 차마 떠날 수가 없었다. 이윽고 장경각에 이르자 퍼뜩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리하여
대들보 사이의 경 (脛) 상자를 가리키며 "저것은 내 전생의 일이다!" 하고는, 가져오게 하
여 들여다보니 과연 「능가경」이었으며 글씨체가 금생과 똑같았다. 한번은 그 경을 읽다가
“세간이 생멸을 떠난 것이 헛꽃 같은 일이며, 지혜는 유무가 있을 수 없어도 자비심을 일
으킨다"고 한 대목까지 읽고는 마침내 자기 지견이 밝아져 게송을 지었다.
한 생각이라도 생멸이 있으면
천 가지 일이 유무에 묶이는데
신검의 칼끝을 가볍게 드는 곳에
쟁반 위의 구슬이 튀어나오네.
一念存生滅 千機縛有無
神鋒輕擧處 遂出走盤珠
만년에 이 경 (脛) 을 꺼내 소동파 (蘇東坡) 거사에게 보여 주면서 그 내력을 이야기하였
더니, 소동파가 경 끝에 제 (題) 를 달고 그것을 비문에 새겼다.
16. 몹쓸 병으로 죄값을 치르다/ 기 ( ) 선사
기 ( ) 선사는 진주 (秦州) 용성 (龍城) 사람이다. 처음 천성사 (天聖寺) 호태 (晧泰)
선사에게서 법을 얻고 만년에 황룡 혜남 (黃龍慧南) 선사에게 귀의하였는데, 혜남선사는 스
님이 바르고 투철하게 깨달았음을 보고 몹시 후대하여 전주 (全州) 흥국사 (興國寺) 에 주
지하게 하였다. 스님은 이곳에서 개당하여 마침내 혜남스님의 법을 이었는데, 어느 날 밤 꿈
에 산신이 나타나 말하였다.
“스님이 몹쓸 병을 만나면 이곳 인연은 다하는 것입니다."
말이 끝나자 산신은 숨어버렸다. 30년이 지난 뒤에 과연 문둥병이 걸려서 일을 그만두고 용
성의 서쪽에 돌아와 작은 암자를 짓고 거기서 요양하였다.
스님에게 극자 (克慈) 라는 한 제자가 있었다. 오랫동안 양기 방회 (楊岐方會) 스님에게 귀
의하였고, 선림에서 뛰어난 사람이었다. 돌아와 정성으로 간호하였는데, 비바람과 추위, 더위
에도 불구하고 스님께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마을에서 걸식을 해와 봉양하였다. 하루는 스
님이 극자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천성사 호태스님에게 도를 얻었는데 만년에 황룡스님을 뵙고는 도 (道) 와 행 (行)
이 겸비함을 마음 속으로 존경하여 법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반평생 이런 몹쓸 병에 걸릴
줄이야 어떻게 알았겠나. 그러나 지금은 다행히 그 죄값을 다 갚았다. 옛날 신선들은 흔히
몹쓸 병으로 신선도를 얻었으니, 그것은 아마도 티끌세상의 얽매임을 잘라버리고 허유 (許
由) 와 소부 (敖父)*의 풍모를 마음에 품었기에 전화위복이 된 것이 아니겠느냐. 나도 이
몹쓸 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어찌 오늘이 있겠느냐. 이제는 머뭄도 떠남도 내게 달려 있어
머물고 떠남에 모두 자유롭게 되었다."
마침내 큰 기침을 한번 하고 묵묵히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화장을 하니 신비한 향기가 들
판에 가득하고 사리가 수없이 나왔다. 「주봉록 (舟峯錄)」
17. 석란문 (繹亂文) / 희안수좌 (希顔首坐)
희안 (希顔) 수좌는 자 (字) 가 성도 (聖徒) 이며 강직하고 과감한 성격이었다. 불법은 물
론 다른 학문까지도 통달하였으며 품격과 절도로 스스로를 지켰다. 행각을 마치고 옛 초막
에 돌아와 숨어 살면서 세속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항상 문 닫고 좌선만 하니, 수행이
고결한 사람이 아니면 스님과 벗할 수 없었다. 명공귀인들이 여러 차례 몇몇 절에 주지로
모시려 했으나 굳이 거절하였다.
당시 참이 (參已) 라는 행자가 있었는데, 승려가 되고자 하여 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다. 그러
나 스님은 그가 승려 될 그릇이 못됨을 알고‘석란문 (繹難文)’ 이라는 글을 지어 물리쳤
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들을 아는 데는 아비만한 사람이 없고, 아비를 아는 데는 아들만한 사람이 없다. 내가 보
건대 참이 (參已) 는 승려 될 그릇이 아니다. 출가해서 승려가 된다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
겠는가. 편안함과 배부르고 따뜻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달팽이 뿔* 같은 하잘것없는 명리
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생사를 해결하는 길이고 중생을 위하는 길이며, 번뇌를 끊고 3계 바
다를 벗어나 부처님의 혜명 (慧命) 을 잇기 위한 것이다. 성인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불법
이 크게 허물어졌는데, 네가 감히 함부로 이런 일을 하겠다는 것이냐?
「보량경 (寶梁脛)」에 말하기를 “비구가 비구법을 닦지 않으면 대천세계에 침 뱉을 곳이
없다" 하였고, 「통혜록 (通慧錄)」에도 “승려가 되어 10과 (十科)* 에 들지 못하면 부처
님을 섬겨도 백년 헛수고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그래서 어렵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나도 외람되게 승려의 대열에 끼어 불도에 누를 끼치고 있는데 하물며 네가 하겠다는 것
이냐?
출가해서 승려가 되어 3승 12분교와 주공 공자 (周公軫子) 의 도를 모른다면, 그는 인과에도
어두울 뿐더러 자기 성품도 알지 못한 사람이다. 농사 짓는 수고도 모르고, 신도들의 시주를
받기 어려운 줄을 생각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함부로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재계 (齋戒)
를 파하고 범하여 장사를 차리고 앉아 부처를 팔아먹는다. 도둑질, 간음, 노름으로 절집을
떠들썩하게 하고 큰수레를 타고 드나들면서 자기 한 몸만을 아낄 뿐이니, 슬픈 일이다. 여섯
자 몸뚱아리는 있어도 지혜가 없는 이를 부처님께서는 바보중이라 하셨다. 세치 혀는 있어
도 설법하지 못하는 사람을 부처님께서는 벙어리 염소중이라 하셨다. 또한 승려 같으나 승
려도 아니고 속인 같으면서 속인도 아닌 사람을 박쥐중, 또는 민머리 거사라고 하셨다. 그러
므로 「능엄경 (磅嚴脛) 」에 이르시기를 “어찌하여 도적이 내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마
구 팔아 온갖 죄업을 짓는가" 하였으니, 이런 이들은 세상을 제도하는 나룻배가 아니라 지
옥의 씨앗으로서 설사 미륵이 하생할 때가 되어 머리를 내밀고 나올 수 있다 해도 몸은 이
미 쇠우리 안에 빠져 온갖 형벌의 아픔이 하루아침 하룻저녁이 아닐 것이다" 하였다. 지금
이런 자들이 백천, 혹은 만이나 되는데, 겉으로 승려의 옷만 걸쳤을 뿐, 그 속을 까놓고 말
해보면 승려라 할 수 없다. 그것이 소위 솔개의 날개를 달고 봉 울음을 운다 하는 것이다.
이들은 길에 굴러다니는 돌이지 옥 (玉) 은 아니며, 풀 무더기 속에 우거진 쑥대지 설산 (雪
山) 의 인초 (忍草) 는 아니다.
나라에서 승려에게 도첩 (度牒) 을 주는 것은 본래 복을 빌게 하기 위해서였는데, 지금은 도
리어 부역 면제 받는 것을 따지면서 승려에게 평민이 되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 승려
들에게 심한 푸대접을 하고 있다.
오직 지난날 육왕 회련 (育王懷璉) ,* 영안 설숭 (永安契嵩) ,* 용정 원정 (龍井元淨) , 영
지 원조 (靈芝元照) * 같은 분은 한 마리 여우털처럼 빛나는 보배라 할 수 있겠지만, 나머
지 양가죽 같은 보잘것없는 자들이야 말할 가치가 있겠는가. 아! 불법의 바다가 오늘날처럼
더럽혀진 적은 없었다. 이런 말도 지혜로운 이와 할 수 있을 뿐, 속인들과는 하기 어려운 일
이다.
18. 공양할 때든, 목욕할 때든 /범 (梵) 법주
범 (淨梵) 법주 (法主) 는 가화 (嘉禾) 사람으로, 출가하여 신오 처겸 (神悟處謙:천태종)
스님을 찾아 뵈었다. 정법스님은 깨달음 〔解〕 과 실천 〔行〕 을 겸비하였으며 불법을 위
해 보시로 중생을 제도하였다. 만년에 북선사 (北禪寺) 에 살 때는 늘 시장거리에서 걸식을
하였는데, 어떤 사람이 말리자 그는, 부처님께서 남기신 규율을 말세 사람으로서 마땅히 실
천하는 것이지 남에게 과시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스님은 몸가짐이나 대중을 거느리는 모든 일에 법도가 있었다. 그런 까닭에 스님의 법석은
절강성 (江省) 서쪽에서 가장 모범적이었다. 스님은 문도들에게 늘 이렇게 말하였다.
“하루 스물 네 시간 행주좌와 (行住坐臥) 하는 4위의 가운데에서 지켜야 할 법문이 있으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마음을 참구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든지 모조리 마업 (魔業) 이
되어버린다. 우선 발우를 펼 때만 해도, 광야의 귀신들이 항상 주림을 느끼다가 스님네들이
부딪치는 발우소리를 헛듣고 주림과 불길이 더해져서 고통이 배가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고요히 하고 난 다음에 밥을 받고 나누어 먹어라'고 이
르셨다. 그러므로 백장스님의 청규 (淸規) 에도 발우 씻은 물을 버리면서 하는 축원이 있으
니 ‘옴 마휴라 사바하'가 그것이다. 백장선사는 오직 마음 〔心印〕 만을 전하는 분인데도
오히려 세세한 행을 지켰는데, 하물며 계율의 가르침까지 겸수하신 우리 스님이야 더 말할
것이 있으랴.
나아가 목욕을 할 때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옛날 한 비구가 목욕을 하면서 장난치고
웃고 하다가 바른 생각 〔正念〕 을 잃어 뒷날 끓는 물이 튀어오르는 업보를 받은 일이 있
다. 그러므로 옛 성인들께서는 마음을 잡아매어 관찰하게 하고 늘 다음과 같은 발원문을 하
게 하였다. ‘내 이제 육신을 씻으며 발원합니다. 중생들의 심신에 때가 없어져 안팎으로 빛
나고 깨끗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우선은 이 두 가지 예만 들었지만 다른 일도 다 이와 같다. 그러니 일상생활에 조심조심 노
력하며 물러서서 돌이켜 보고 마음을 잘 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 「통행록 (通行錄)」
19. 사명 법지스님을 추억하며 / 자운 준식 (慈雲悛式)법사
자운 준식 (慈雲遵式:964∼1032, 천태종) 법사가 말하였다.
“나는 사명 법지 (四明法智:960∼1028) 스님과 40년 동안이나 도반으로 지내왔는데, 막상
죽을 때에는 그의 방 앞에서 곡 한번 하지 못했다. 그래서 탄식하다가 못내 이런 노래를 지
어 불렀다.
하늘에는 두 달이 없고
인간에는 스님 하나 뿐
天上無雙月 人間有一僧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내가 아는 사람에게는 후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박하다고 생각
하지 말아라. 다만 그의 깨달음과 수행이 남다르게 뛰어남을 보고 극단적인 말로써 내 감회
를 펴 본 것이다. 남다르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비릉 (비陵:천태종 5조, 荊溪湛然) 법사도
기억하지 못한 일대장교를 다 외웠고, 남들은 수행하기 어려운 네 가지 삼매 〔四三昧〕*
를 모두 수행하였다. 번갈아 찾아오는 추위와 더위에도 불구하고 옆구리를 자리에 붙인 일
없이 69세에 세상을 마쳤으며, 병이 갑자기 심해졌는데도 쉬지 않고 도를 닦으며 후학을 가
르쳤다. 문도들이 편안히 쉬라고 청해도 듣지 않았는데, 죽고 나니 사리가 부지기수로 나왔
다. 아! 알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20. 왕자로 태어나서 사문이 되다 / 용호 문 (龍湖聞) 선사
용호사 (龍湖寺) 문선사 (聞禪師) 는 당나라 희종 (僖宗:872∼887) 황제의 태자였다. 얼굴
과 풍채가 그려 놓은 듯 맑고 반듯하여 희종이 몹시 사랑하였으나 그는 세상을 다스릴 마음
이 없었다. 왕은 백방으로 손 써서 회유하였으나 끝내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그는 오직 상
화산 (霜華山:石霜禪師) 의 도풍을 흠모하여 꿈 속에서 보곤 하였다.
중화 (中和) 원년 (881)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드디어 머리를 깎고 마음 내키는대로 돌아
다녔으나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석상 경저 (石霜慶諸:807∼888) 선사를 찾아
가니 선사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이렇게 감탄하였다.
“그대는 원력 덕에 왕가에 태어났으나 이제 그 몸을 벗고 나를 따르려하니 참으로 불속의
부용꽃이로다."
밤이 되자 문선사는 방장실에 들어가 간청하였다.
“조사께서 따로 전하신 일을 가르쳐 주시렵니까?"
“조사를 비방하지 마라."
“천하에 이 종지가 널리 퍼졌는데 그것이 빈 말이었겠습니까?"
“안산 (按山) 이 고개를 끄덕이면 그때 가서 그대에게 말해주겠다."
문선사는 그날로 작별하고 떠났다. 소무성 (邵武城) 바깥에 이르러 그곳 산이 깊고 울창한
것을 보고는 풀을 헤치고 들어갔는데, 거기서 은거하는 고행승을 만났다. 그는 흔쾌히 자기
토굴을 내어주면서 “스님께서 이곳을 일으킬 것입니다" 하고는 깊숙히 고개 숙여 인사하고
떠났는데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문선사는 그곳에서 십여 년을 머물게 되었는데, 하루는 한 노인이 찾아와서 말하
였다.
“나는 사람이 아니고 용입니다. 비를 내리는 일을 잘못하여 하늘의 벌을 받았는데 도력을
빌어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더니 작은 뱀으로 둔갑하여 소매 속으로 기어들어가 버렸다. 밤이 되자 바람과 천둥이
선상을 뒤흔들며 산악이 진동하였으나 문선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꼿꼿이 앉아 있었다.
날이 새고 하늘이 개니 뱀은 땅에 내려와 어디론가 가버리고, 얼마 있으니 노인이 나타나서
사례하였다.
“대사의 힘이 아니었으면 피비린내로 이 산을 더럽힐 뻔 하였습니다. 무엇으로 보답할 길
이 없으니 바위 밑에 구멍을 파서 샘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뒷날 대중이 모이면 물이 많
이 모자라게 될 것이니 그래서 스님을 이곳으로 모셨습니다."
그 샘은 지금 호수가 되었고 이 인연으로 용호사 (龍湖寺) 라 이름하였다.
「사기비 (寺記碑)」
21. 방장실을 짓지 않고 대중과 함께하다 / 수기 (修己) 선사
장석사 (仗錫寺) 수기 (修己) 선사는 부산 법원 (浮山法遠) 선사와 함께 행각하였고, 여산
(盧山) 불수암 (佛手巖) 에 암자를 짓고 살기도 하였다. 뒷날에는 사명산 (四明山) 깊숙히
들어가 십여 년을 홀로 살았는데, 범과 표범이 나타나도 삼매를 닦은 힘 때문에 한번도 두
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불구불 험한 산길에 찾아오는 사람 없고
적막한 구름 속에 한 사람 뿐이어라.
晳腸鳥道無人到 寂寞雲中一箇人
뒤에 승속이 모두 그의 도풍을 듣고 흠모하게 되었는데, 산에 산 지 40여 년 되도록 집안
에 쌓아둔 물건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누더기 한 벌로 지내며 오직
절 일으킬 것만을 생각하여, 여러 해에 걸쳐 힘쓴 끝에 선림을 이루게 되었다. 대중들에게
필요한 물건은 많이 갖추어 놓았으나 방장실만은 짓지 않고 대중과 함께 거처하였으니, 이
는 아마도 수기선사가 방을 따로 쓰면서 편안하게 지내는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지사 (知事) 온궁 (睛躬) 이라는 사람이 선사가 먼 곳에 출타한 틈을 타서 방장실
을 지어놓았다. 당시 달관 담영 (達觀曇潁:989∼1060, 임제종) 선사가 설두산 (雪山) 에서 법
을 펴고 있었는데 이 소식을 듣고 이렇게 감탄하였다.
“본색종장이 아니면 좋은 보필이 있을 수 없고 좋은 보필자가 아니라면 도인의 덕을 높일
수가 없다." 「장석달관비 (仗錫達觀碑)」
22. 전생의 원 (願) 을 이어 / 변재 원정 (辯才元淨) 법사
변재 원정 (辯才元淨) 법사는 항주 (杭州) 어잠 (練潛) 사람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왼쪽
어깨살이 가사의 매듭같이 솟아올라 있었다가 81일 만에 없어지니 그의 아버지가 감탄하여
말했다.
“이 아이는 전생에 사문이었으니 그 원 (願) 을 빼앗지 말고 자라면 부처님을 모시게 하겠
다."
법사가 세상을 떠난 그 해가 실로 81세였으니 아마도 이는 숙명인 것 같다. 출가한 후에는
법좌를 볼 때마다 감탄하며, 저기에 올라 설법을 해서 사람들을 제도하는 것이 자신의 원이
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자운 (慈雲遵式) 스님을 찾아가서 밤낮으로 열심히 정진하였다. 배움과 실천이 함
께 향상하여 몇해 안 가서 자운스님의 상좌들과 나란히 앉게 되었는데, 자운스님이 죽고 난
뒤에는 다시 사명산 (四明山) 의 조소 (祖韶) 스님을 모셨다. 조소스님이 천태지관 (天台缺
觀) 을 가르치다가 “한끼의 밥으로 일체에게 보시하며 모든 불보살에게 공양한 다음에야
먹을 수 있다" 하신 방편오연 (方便五緣) 에 나오는 유마거사의 말씀까지를 이야기하니, 원
정스님은 그 말 끝에 깨닫고는 “오늘에야 색, 소리, 냄새, 맛이 본래 제일의제 (第一義諦)
를 갖추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사물을 대할 때 마음 속에 의심이 없을 것입
니다" 하였다.
당시 심숙재 (沈叔才) 가 항주 (杭州) 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그는 관음도량 (觀踵道場) 은
경 공부와 참회로 불사를 하는 곳이니 선수행자들이 살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마침내 스
님에게 교학하던 곳을 선도량으로 바꾸라고 명하였다. 스님이 그곳에 도착하자 오월 (吳越)
사람들은 마치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시기라도 한 것처럼 귀의하고 부모를 공양하듯 스님을
모셨다. 돈, 베, 비단 등의 보시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어왔다. 그러다가 천축사 (天竺
寺) 에 머문 지 14년 되던 해, 그 절의 부 (富) 를 탐내는 사람이 스님을 협박하여 쫓아내
니, 스님은 기꺼이 떠나면서 그것을 마음에 품지 않았다. 이 일로 천축사 대중들이 사방으로
흩어지자 사건이 조정에 알려져 다음 해에 스님이 다시 옛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스님은
마지 못해 돌아오는 듯하였고, 대중들은 다시 크게 모였다. 스님과 세속을 벗어난 도반이었
던 조청헌 (趙淸龜) 은 이 일을 보고 찬 (讚) 하였다.
스님께서 천축사를 떠나니 산은 비고 귀신이 울었는데
천축사에 스님께서 돌아오니 도량에는 빛이 찬란하도다.
師去天竺山空鬼哭 天竺師歸道場光輝
스님은 그곳에 다시 2년을 머물다가 하루는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성인이었던 우리 조사 지자 (智者) 대사도 중생교화를 더 급하게 여겨 자기 수행에는 해
가 되었기에 수행위로는 철륜왕 (鐵輪王) *이 되어야 하는데도 오품위 (五品位) *까지밖
에 증득하지 못하셨는데, 하물며 범부야…" 하고는 그곳을 떠나서 종남산 (終南山) 용정
(龍井) 에서 노년을 보냈다. 갈대와 대나무로 지붕을 덮고, 문 닫고 좌선하여 종일 아무소리
가 없었다. 이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뿌리가 자라는 겨울의 마른 나무와 같은 경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가라앉은 옛우물과도 같은 경지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스님을 「눌 (訥:말더
듬이) '이라고 불렀다.
스님은 계율을 엄격히 지켰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설법을 하였는데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
다.
“귀신의 힘으로는 두렵게 할 수 없다. 낮에는 말을 해도 여기까지 오지 않는 수가 있고 밤
에 사람들이 조용해야 들릴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손가락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을 했다. 그래서 오른손가락 2개와 왼손가락 3개로 겨
우겨우 물건을 잡았는데 그 문도들 중에 따라하려는 자가 있으면 번번히 못하게 하면서, 동
파 (蘇東坡) 라야 나처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루는 누군가가 와서 북산 (北山) 에 스님과 같은 방법으로 수행하는 사람이 몇 있다고 하
니 스님은 밀행 (密行) 하는 승려들의 경계는 내가 추측할 수 없다고 하였다.
「용정잡비 (龍井雜碑)」
23. 대중공사를 통해 살림의 법도를 정하다 / 부용 도해 (芙蓉道楷) 선사
부용 도해 (芙蓉道楷:1042∼1118, 조동종 投子義淸의 법을 이음)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
다.
“내 이렇다 하게 수행한 바가 없는데 과분하게도 산문을 주관하게 되었으니, 이제 옛분들
이 주지하시던 법도를 비슷하게나마 본받아 보답하고자 한다. 우선 다음의 일을 여러분과
의논해서 결정하고자 한다.
이제부터는 산을 내려가지 않고, 신도들이 베푸는 공양에 가지 않을 것으며, 화주 (化主) 를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오직 절에서 1년 동안 수확하여 거둔 것을 360등분하여 하루에 하루
분만을 사용할 것이며, 사람 수에 따라 늘이거나 줄여서는 안 된다. 밥을 먹을 만하면 밥을
짓고, 밥을 짓기에 부족하면 죽을 쑤고, 죽을 쑤기도 부족하면 마음을 끓일 것이다. 새로 오
는 사람과 상견례를 할 때에도 차 끓이는 것으로 족하다. 다른 일은 애써 줄이고 오직 도를
결판하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일 일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일은 여러분 중에 나이 많은
이를 존중해서 다시 의논하도록 할 것이며, 이것 역시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들이여,
옛사람의 게송을 들어보았는가."
거친 산전 (山田) 의 좁쌀밥과
채소 시래기 반찬을
먹겠다면 나도 따라 먹겠으나
안 먹겠다면 마음대로 하여라.
山田脫粟飯 野菜淡黃
喫則從君喫 不喫任東西 「어록(語錄)」
24. 부뚜막 앞에서 선정에 들다 / 지자 의 (知者 ) 선사
지자 의 (知者 )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예전에 큰스님 한 분이 주지살이를 하면서 공양주에게 늘 죽을 쑤게 하였다. 하루는 그
공양주가 생각생각에 다 타들어 가는 장작불을 보면서 덧없이 흘러가는 세상이 이보다 더
빠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부뚜막 앞에서 고요히 선정 (禪定) 에 들었다. 며칠 만에 일어나
그 절 상좌에게 가서 깨친 경계를 자세히 이야기하였는데, 법을 말하는 것이 자못 깊었다.
그러자 상좌는
‘그대가 이제까지 말한 것은 나도 아는 경계지만 지금 말한 것은 내 모르니 더는 말하지
말라'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숙명통 (宿命通) 을 얻었는가?'
‘조금은 압니다.'
‘무슨 죄로 천한 몸을 받고 무슨 복으로 깨달음을 이루었는가?'
‘저는 전생에 이 산의 주지였는데, 손님이 오는 바람에 모자라는 대중의 나물 반찬을 축낸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견책을 당해 지금 대중의 부림을 받게 되었으나 전생에 닦던 바
를 잊지 않았기에 쉽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국청백록 (國淸百錄)」
25. 비구라는 말의 뜻/ 대지 (大智) 율사
대지 (大智) 율사가 지은 「비구정명 (比丘正名) "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범어로는 필추 (ц:比丘) 며 중국어로는 걸사 (乞君) 니 안으로는 법을 빌어 성품을 돕고
밖으로는 밥을 빌어 몸을 돕는다. 부모는 사람 중에 가장 가까이 할 사람이나 가장 먼저 그
인연을 끊고, 수염과 머리카락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지만 모조리 깎아 없앤다. 칠
보가 창고에 넘치는 부도 초개같이 버리고 일품 (一品) 벼슬에 달하는 명예도 구름이나 연
기만도 못하게 보면서 무상 (無常) 함에 진저리를 내어 모든 현상 〔有〕 의 근본을 깊이
캔다.
뜻을 높이고자 하면 반드시 몸을 낮추어야 하니 잡고 있는 주장자는 마른 찔레나무요 들고
있는 발우는 깨진 그릇과 다를 바 없다. 어깨에 걸친 회색 옷은 다 떨어진 누더기며 팔꿈치
에 둘러 멘 걸망은 영락없는 푸대자루다. 청정한 생활은 이미 팔정도 (八正道) 에 맞고 검약
한 처신은 사의행 (四依行) 에 맞으니 구주사해 (九州四海) 가 모두 내가 가는 길이며, 나무
밑 무덤 사이 모두 내가 쉬는 곳이다.
삼승 (三乘) 의 좋은 수레를 타고 부처님이 남기신 자취를 밟으며 거룩한 가르침을 어김없
이 받아 가지니 진정한 불제자다. 세상 인연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으니 실로 대장부다. 마군
과 싸워 이기고 번뇌 그물을 열어 제쳐 만금의 훌륭한 공양도 받을 만하며 사생 (四生) 의
복밭이 되는 것도 헛된 것이 아니니 걸사라는 뜻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지원집 (芝園集)」
26. 주지살이 / 영원 유청 (靈源惟淸) 스님
영원 유청 (靈源惟淸:?∼1117, 임제종 황룡파) 선사는 문에다 방 ( ) 을 써 붙였다.
나 유청은 이름만 주지일 뿐 실로 길손과도 같다. 단지 대중을 통솔하고 불법을 널리 펴서
우러러 교풍을 돕는 것을 내 직분으로 삼을 뿐이다.
절에서 관리하는 상주물 (常住物) 은 내 것이 아니므로 이치로 보아서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소임자에게 모두 위임하고 분야를 나누어 일을 맡아 보게 하되, 공과
사를 분명히 하여 합당한 것은 하고 쓸모없는 것은 버려야 한다. 나는 그저 대중과 함께 밥
먹고 옷 입고 할 뿐이며 몸에 지닌 물병과 발우만으로 인연 따라 가고 머물 뿐이다.
생각컨대 사방 납자들은 목적이 있어서 여기 왔을 것인데 침식까지는 정성껏 살펴주겠지만
나머지는 따로 공양하기 어렵다. 그 물건들은 세속법으로는 공공물이고 불법으로는 대중의
재산이니 이것을 훔쳐 남의 마음을 사고 자기 것으로 가로채는 일은 실로 본래 세웠던 뜻에
서 보면 감히 하지 못할 일이다. 일찌감치 글로 써서 알리는 바이니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석각재천동 (石刻在天童)」
27. 좋은 인연들 / 시랑 장구성 (張九成)
시랑 (侍郞) 장구성 (張九成:子韶) 거사는 젊어서 진사 공부를 하는 여가에 틈틈이 불경
공부에도 매우 마음을 쏟았다. 영은사 (靈隱寺) 의 오명 (悟明) 선사를 뵙고 종지를 물어보
니 오명선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한창 열심히 공부해서 이름을 날려야 할 때인데 어찌 생사 문제를 참구할 수 있겠는
가?"
공이 말하였다.
“옛어른 〔先儒〕 이 말씀하시기를, 아침에 도 (道) 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하였
습니다. 그러나 세간과 출세간의 법이 처음부터 다른 것이 아니어서, 옛날 훌륭한 신하 중에
도 선문 (禪門) 으로 도를 얻은 사람이 부지기수이니 유교와 불교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불교의 우두머리이신 스님께서 어찌 말로 저를 막으려 하십니까?"
오명선사는 그 정성이 갸륵해서 그를 받아주며 말하였다.
“이 일은 생각생각에 놓아서는 안되니, 오래오래 인연이 무르익어 때가 되면 저절로 깨치
게 된다."
그리고는 화두를 주면서 말하였다. “조주 (趙州)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묻기를, 「조사가 서
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하자, 조주스님은 ‘뜰앞의 잣나무니라' 하였다. 이 화두를
들어 보아라" 하였다.
그러나 공은 오래도록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호문정공 (胡文定公:胡安國) 을 뵙고 마음
쓰는 법에 대해 자세히 물으니 호안국은, 논어 맹자에서 인의 (仁義) 에 대해 말한 부분과
한곳으로 유추해 보면 그 속에 요점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공은 그 말을 간직하여 잠시도 잊지 않았다. 하루 저녁은 변소에 가서 ‘측은히 여기는 마
음은 인 (仁) 이 비롯되는 곳이다 〔惻隱之心仁之端〕’라는 구절을 깊이 생각하였다. 묵묵
히 생각에 잠겼는데, 그때 홀연히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뜰 앞 잣나무 화
두가 들리며 〔擧〕 갑자기 느낀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봄 하늘 달밤에 한마디 개구리 소리가
허공을 때려 깨서 한 집을 만들도다
바로 이런 때를 뉘라서 알겠는가
산꼭대기 곤한 다리에 현묘한 도리 있도다.*
春天夜月一聲蛙 撞破虛空共一家
正恁?時誰會得 嶺頭脚痛有玄妙
공은 우연히 묘희 (妙喜大慧:1089∼1163) 스님이 불상에 붙인 다음과 같은 글을 보게 되었
다.
까맣게 옻칠한 커다란 죽비 (竹 ) 에
부처가 온다면 한 방 치리라.
이 게송을 보고 나서 묘희스님을 만나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다 조정으로 돌아와 예부
시랑 (禮部侍郞) 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묘희스님이 서울로 들어온다는 말을
듣고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더니, 스님이 만나겠다고 알려와 마침내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날씨에 관한 이야기말고는 별다른 말이 없었는데 스님은 돌아와 문도들에게 말하였
다.
“장시랑은 깨달은 바가 있더라."
“서로 만나 선 (禪) 의 선 자도 뻥긋하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아십니까?"
“내 눈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이냐?"
공이 조상의 사당에 제사를 받들기 위해 휴가를 청해 경산 (徑山) 을 지나던 길에 스님을
뵙고, 「대학 (大學)」에 나오는 격물의 뜻 〔格物致知〕 을 물었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공은 격물 (格物) 만 알았지 물격 (物格) 은 모르는군요."
공은 망연히 있다가 한참 뒤에 말하기를,
“거기에도 어떤 방편이 있겠지요"라고 하였다. 스님이 다시 이야기 말하였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당나라 사람이 안록산 (安祿山) 과 짜고 반란을 일으켰는
데, 그 사람은 난 (亂) 에 앞서 낭주 (州) 태수였던 이라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당 현종
(玄宗) 이 촉 땅에 행차했을 때 그 그림을 보고 노하여 신하에게 그의 목을 칼로 치라 하였
다, 그 사람은 그때 섬서성 (曳西城) 에 있었는데 갑자기 목이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 말입
니다."
공이 이 말을 듣자 홀연히 꿈에서 깨어난 듯하여 벽에 글을 지어 붙였다.
자소 (子韶)는 격물 (格物)이요
묘희 (妙喜)는 물격 (物格)이니
한 관 (貫) 이 얼마나 되는고
오백돈이 둘이로구나.
子韶格物 妙喜物格
欲識一貫 兩箇五百
공은 이로부터 도를 참구하여 법을 깨달아 자유로왔고, 마음이 텅 비고 의혹이 없어졌다.
언젠가는 이렇게 감탄하였다.
“경산 노스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사방팔방으로 활짝 트여서 마치 천문만호를 한번 밟아
보지 않고도 활짝 열어제치는 듯하다. 어떤 때는 가마를 나란히 타고 높은 산에 올라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깊은 연못가를 천천히 걷기도 하는데,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으나 아무
도 우리 두 사람의 경계 〔落處〕 를 알지 못한다.
이 장구성이 생사 문제 〔末後大事〕 를 깨닫게 된 것은 실로 경산스님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니, 이 한 줌의 향 (香) 은 스님을 감히 등질 수 없기 때문에 피우는 것이다."
공이 남안 (南安) 에서 유배생활을 보낸 14년 동안, 불교 경전과 유가 서적들을 공부하면서
지나가는 납자 (納子) 가 있으면 반드시 경계를 확인해 보고 선열 (禪悅) 의 즐거움을 맛보
았으나, 한번도 득실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는 사람은 모두 그의 도풍과 현달함
을 높이 평가하고 마음 깊이 존경하였다.
공은 언젠가 중승 (中丞) 하백수 (何伯困) 에게 다음과 같은 답서를 보낸 적이 있다.
내가 경산스님과 절친하게 왕래하는 것은 다 유래가 있는 일입니다.
옛일들을 살펴보니, 배휴 (裴休) 도 황벽 (黃岫希運)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고 한퇴지 (韓退
之) 도 태전 (太)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습지 (李習之:) 는 약산 (藥山惟儼)
스님께, 백낙천 (白樂天) 은 조과 (鳥果道林) 스님께, 양대년 (楊大年:億) 은 광혜 (廣慧常總)
스님께, 이화문 (李和文) 은 조자 (照慈;睛聰) 스님께, 소동파 (蘇東坡) 는 조각 (照覺:東林常
總) 스님께, 황산곡 (黃山谷:庭堅) 은 회당 (晦堂祖心) 스님께, 장무진 (張無盡:商英) 은 도솔
(兜率從悅) 스님께 가르침을 받았으니, 이 분들을 어찌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서 변소 청소
나 하는 노파들과 같다 하겠습니까.
경산스님은 그 마음 바탕 〔心地〕 이 생과 사를 하나로 보고 사물의 이치를 지극히 궁구하
였습니다. 나아가 도를 논하기를 좋아했는데, 선비들도 당하지 못할 적이 있었습니다. 하늘
에서 해가 내려다보고 있는데, 내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름난 명사와 사귀기를 좋
아하고 그 사람들과의 친분으로 세상에서 행세하려 드는 것은 도둑들이나 하는 짓인데, 어
찌 이 분들이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지난번 사형께서 나를 일깨워주신 편지를 받고 마음 속에 깊이 받아들였습니다. 평소 문하
에서 같이 수학하지 않았더라면, 마음을 쏟아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알렸겠습니까. 덕 높으
신 사형께서는 살펴주소서.
공이 유배에서 풀려나 북쪽으로 돌아올 때 장주 (♠州) 에 도착하니 묘희스님도 매양 (梅
陽:묘희스님이 유배갔던 곳) 에서 그곳으로 와 있었다. 나란히 배를 타고 동쪽으로 내려오면
서 스님은 날마다 종지 〔宗要〕 를 말해 주었다. 공이 물러나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오늘 이 장구성이 아니었던들 어떻게 노스님께서 선 (禪) 의 강물을 기울여 여러분들께
법을 들려 주셨겠는가?"
공이 영가현 (永圈縣) 을 다스릴 때 광효사 (光孝寺) 의 주지 자리가 비어 있으므로 복당
(福唐) 서선사 (西禪寺) 의 수정 (守淨) 선사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불법이 떠난 지 오래되어 경산 노스님께서 영외 (嶺外:梅陽) 로 가신 뒤에 학인들은 의지
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조정은 맑고 경산스님도 돌아오셨으니 불법이 다시 일어나
려는가 봅니다.
저는 사실 이 도에 일찍부터 부딪쳐 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명공대가 (名公大家) 한두 분을
찾아 그 분들의 제창으로 미혹한 이들을 깨우쳐 주고자 하니 스님께서 제발 저의 청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혹 서선사는 넉넉한 곳이고 광효사는 박한 곳이라서 수정스
님은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런 말은 속인의 소견으로 다른 사람을 맞추려
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으로 불법의 흥망을 점쳐 보려 하니, 스님께서 불법을 일으켜
보겠다는 마음을 내고 여러분들이 반 팔의 힘만 내주신다면 지극히 다행이겠습니다.
불법을 지키려는 공의 정성이 이 편지에 여실히 드러나 있다. 「문도전(聞道傳)」
28. 도반될 자격 / 지화 (知和) 암주
지화 암주 (知和庵主) 는 고소 (姑蘇) 사람인데 성품이 고결하여 세상에 물들지 않았다. 한
번은 호상 (湖湘) 지방을 행각하다가 밤이 되어 객실에서 자게 되었는데 보교 (普交:1048∼
1124) 스님도 그 자리에 같이 있었다. 지화스님은 보교스님이 침착하고 온후한 데다가 말없
이 밤새도록 꼿꼿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기특하게 여겨서 물었다.
“스님은 만리 낯선 길을 혼자 다니시오?"
“예전에는 도반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절교했습니다."
“어째서 절교했소?"
"“ 사람은 길에서 주운 돈을 대중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돈을 똥이나 흙처럼 보아야 하는데 그대가 비록 주워서 다른 사람에게 주었
다 하더라도 이는 아직 이익을 떨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는 헤어졌습니다. 두번째 도반은
가난하고 병든 어머니를 버리고 도를 닦는다기에 내가 말했습니다. ‘도를 닦아 비록 불조
의 경계를 넘어선다 하더라도 불효하는 이를 어디에 쓰겠는가.' 불효하거나 이익을 따지는
이들은 모두 내 도반은 아닙니다."
지화스님은 그의 현명함을 존경하여 드디어 같이 행각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옛날
은산 (隱山) 화상을 본받아 우뚝한 산꼭대기에 띠풀 암자를 짓고 구름과 하늘을 내려다보면
서 세상 바깥 사람이 될 것이며, 세속에 떨어지지 말자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보교스
님은 맹세를 어기고 천동사 (天童寺) 의 주지가 되었다. 보교스님이 지화스님을 찾아갔으나
돌아보지도 않았다. 정언 (正言) 진숙이 (陳叔異) 가 그의 서실을 암자로 만들어 주어 그곳
에서 이십 년을 혼자 살았는데, 너절한 물건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호랑이 두 마리만이 시
봉할 뿐이었다. 스님께서 한번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나무 홈통에는 두서너 되의 찬물이 흐르고
창문 틈새로는 몇 조각 구름이 한가롭다
도인의 살림살이 이만하면 될 뿐인 걸
인간에 머물러 보고 듣고 할 것인가.
竹 二三升野水 間七五片閑雲
道人活計只如此 留與人間作見聞 「설창기 (雪 記)」
29. 조산 (曹山) 의 가풍 /조산 탐장 (曹山眈章) 선사
조산 탐장 (曹山耽章:840∼901) 선사는 천주 (泉州) 사람인데, 동산 양개 (洞山良介) 선사에
게서 비밀스런 종지를 받았다. 청을 받고 무주 (撫州) 조산 (曹山) 에 처음 머물게 되었는
데, 도가 널리 퍼져 납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이 나라에서 칼 만지는 이가 누구입니까?"
“나 조산이다."
“누구를 죽이시렵니까?"
“닥치는 대로 다 죽인다."
“홀연히 낳아주신 부모를 만나면 어찌하시렵니까?"
“무엇을 가리겠는가?"
“자기 자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누가 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어째서 죽이지 않습니까?"
“손 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 지의 도자 (紙衣道者) 라는 사람이 동산 (洞山) 에서 찾아왔는데 스님이 물었다.
“지의 (紙衣) 안에 있는 일은 어떤 것인가?"
“한 조각 가죽을 겨우 몸에 걸쳤으나 만사가 다 그럴 뿐이요."
“그 지의 속에서는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가?"
지의 도자는 가까이 다가서더니 옷을 벗어 던지고 차수 (叉手) 한 채 떠났다. 그러자 스님은
웃으면서 “그대는 이렇게 갈 줄만 알았지 이렇게 올 줄은 모르는구나" 하였다. 그러자 그
가 갑자기 눈을 뜨고 말하였다.
“신령스러운 진성 (眞性) 이 여자의 뱃속을 빌리지 않고 태어난다면 어떻소?"
“아직 묘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것이 묘한 것이요?"
“빌리지 않으면서 빌리는 것이요 〔不借借."*
그러자 그는 법당에 내려와 죽었다.
당시 홍주 (洪州) 의 종씨 (鍾氏) 가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가지 않고 단지 대매 법상 (大梅
法常) 선사의 산거시 (山居詩) 한 수로 답을 보냈다.
천복 신유 (天復辛酉:901) 년 6월 여름밤에 소임자에게 오늘이 몇일이냐고 물어 그가 유월
보름이라고 대답하자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평생 행각에서 반드시 90일로 한 철을 났으니 내일 진시 (辰時) 에 행각길에 나서련다."
그러고는 때가 되자 향을 사르고 입적하였다. 「승보전 (僧寶傳) 」
30. 독설로 불사를 짓다 / 법운 법수 (法秀) 선사
법운사 (法雲寺) 법수 (法秀:1027∼1090) 선사는 진주 (秦州) 사람인데 전생에 노화상 (魯
和尙) 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하루는 노화상에게, 자신이 죽거든 대밭 언덕 아랫집으로
찾아오라고 하였다. 그 집에 아기가 태어나자 노화상이 찾아가서 보았더니 아이가 한번 웃
음을 지어 보였으며, 세살 때 노화상을 따라가겠다고 하여 출가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인물
이 남달랐고 온 대중 가운데 있으면 그려놓은 듯 우뚝하고 훤칠하였다.
스님은 늘 독설 〔怒罵〕 로 불사를 지었다. 당시 사마온공 (司馬溫公:光) 이 등용되었는데,
불법이 너무 성하다 하여 이를 억제하려 하자 스님이 이렇게 말하였다.
“상공 (相公) 은 총명하여 사람 중에 영걸이오. 불법 인연으로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까지 왔겠소.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부처님의 부촉을 저버린단 말이오?"
그러자 공은 마음을 돌렸다.
또 이백시 (李伯時) 는 말 그림으로 잘 그려 한간 (韓幹:당 현종 때의 화가) 에 뒤지지 않게
그림값을 받았는데 스님은 그를 꾸짖었다.
“그대는 사대부로서 그림으로 이름이 났는데, 하물며 말 그림을 그린단 말인가? 사람들에
게 묘를 얻었다고 자랑하며 봐 주기를 기대하겠지만, 묘하게도 그대는 말 뱃속에 들어갈 것
이다."
이백시는 이에 다시는 붓을 들지 않았다.
또 황정견 (黃庭堅:노직) 은 저속한 시를 즐겨 짓고 사람들은 다투어 그것을 전하니, 스님이
이렇게 말하였다.
“묘한 문장을 내게도 좀 끌러 놓으시죠."
그러자 황노직이 웃으며 말하기를, “나도 말 뱃속으로 집어넣을 참입니까?" 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저속한 말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음난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어찌 말 뱃속에 그
치랴.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31.자기 제문을 짓다 고산 지원 (孤山智圓) 법사
고산 지원 (孤山智圓:976∼1022) 법사는 뛰어난 재주와 깊은 학문으로 경론에 대하여 수많
은 저술을 남겼다. 서호 (西湖) 가에 높이 누웠으니, 권세로도 부귀로도 스님을 꺾을 수 없
었으므로 속된 무리들은 스님과 벗할 수 없었다.
이때 문목왕공 (文穆王公) 이 전당 (錢塘) 에 오게 되었는데, 군 (郡) 의 스님네들이 모두
관문까지 마중을 나가자고 하자, 스님은 몸이 아프다면서 가지 않고는 심부름꾼을 보고 웃
으며 말하였다.
“자운법사 (慈雲法師) 에게 내 말을 전하시오. 전당 땅에 중이 하나 있다고."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훌륭한 일이라고 찬탄하였다.
스님은 늘 비장 (脾臟) 에 병이 있어 눕기도 하고 앉기도 하는 가운데서도 침상에 붓과 벼
루를 깔아놓고 저술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루는 대중에게 고하였다.
“내 나이 마흔아홉인데 이미 오래 못 살 것을 안다. 내가 죽거든 땅을 골라 후하게 장례치
르노라 내 허물을 더 불리지 말고 너희들이 항아리를 합쳐서 장사 지내다오."
죽음에 임박해서 스스로 제문 (祭文) 을 지어 부탁하였다.
삼가 강산과 달과 구름을 차려놓고 중용자 (中庸子:지원법사의 호) 의 영을 제사 지내노라.
그대는 본래 법계의 원상 (元常) 이며 보배롭고 완전한 묘성 (妙性) 으로서, 아직까지 동정
의 조짐이 없었으니 어찌 오고 감에 자취가 있겠는가. 이제 일곱 구멍 (七穴:사람 얼굴에 나
있는 구멍) 을 뚫으니 혼돈 (混沌) 이 죽고 6근이 나뉘어 정명 (精明:一心) 이 흩어지게 되
었도다. 그리하여 그대 스스로의 마음을 보건대 바깥 경계와 다른 바가 있도다. 생존과 사멸
두쪽을 집착해서 항상 흔들려 쉴 날이 없으며 깜깜하여 비출 줄을 모르는구나.
내 혼돈 (混沌) 을 회복하여 정명 (精明) 으로 돌아가려 하노라. 그리하여 허깨비 아닌 〔非
幻〕 법에서 허깨비 언설을 지어내는 것이니, 허깨비 아님도 없거늘 어찌 허깨비라는 법이
있으랴. 그대 중용자도 묘하게 이 뜻을 알아들을지어다. 그대가 이미 허깨비 생을 받았으니
허깨비 죽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허깨비 몸이 있어서 허깨비 병이
있게 되었고, 입으로는 허깨비 말을 빌어 허깨비 제자에게 허깨비 붓을 잡아 허깨비 글을
쓰게 하노라. 그리하여 미리 그대 허깨비 중용자를 제사 지내고 끝없는 뒷사람들에게 모든
법이 허깨비 같음을 알게 하고자 하노라.
이렇게 하면 허깨비삼매 (如幻三味) 가 여기 있다 하리라. 아! 삼매,그것도 허깨비로다. 잘
받아 먹으라.
그리고는 가부좌한 채 열반에 드셨다. 「한거편 (閑居編)」
32. 소동파의 옥대 / 요원 (了元) 스님
소동파 (蘇東坡:1036∼1101) 가 말하였다.
“어머니께서 나를 가졌을 때 꿈에 비쩍 마른 애꾸스님 한 분이 문 앞에 오셨다는데, 열살
남짓 되어서는 내 꿈에 자주 보였다. 그러니 나는 전생에 스님이었던가 보다. 또 내 아우 자
유 (子由) 가 진정 극문 (眞淨克文) , 수성 상총 (困聖常總) 스님과 함께 고안 (高安) 에 있
을 때 그들이 사계 (師戒) 스님 만난 꿈 이야기를 똑같이 했으니 아우가 사계스님의 후신
(後身) 임에 틀림없다."
소동파는 진정스님에게 편지를 보내, “전생에 이미 법을 만난 듯하니 바라옵건대 더욱 채
찍질하여 자신의 옛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였다.
그가 금산사 (金山寺) 에 갔을 때 마침 방에 들어가는 불인 (佛印了元:1032∼1098) 스님과
마주쳤는데 불인스님이 말하였다.
“여기에는 단명전학사 (端明殿學君:소동파의 직명) 께서 앉을 자리가 없소."
“스님 몸 〔四大〕 을 빌려서 선상 (禪滅) 을 만들지요."
"내가 한마디 물을테니 대답을 하면 내 몸을 선상으로 쓰되, 대답을 못하면 옥대 (玉帶) 를
끌러놓고 가시오."
소동파가 옥대를 책상에 풀어놓으면서 물어보라 하니 스님께서 물었다.
“내 몸 〔四大〕 은 본시 공 (空) 하고 5음 (五陰) 도 있는 것이 아닌데 그대는 어디에 앉
겠다는 것이오?"
소동파가 대답을 못하자 스님은 시자를 불러 옥대를 산문의 가보로 길이 간직하게 하고 대
신 중 바지 하나를 내 주었다. 이에 소동파는 절구 (絶句) 두 수를 읊었다.
병든 몸은 허리의 옥대를 감당키 어려웠고
둔한 근기는 날랜 기봉에 나가 떨어졌다네
마침 가비원 (歌婢院) 에 걸식할 판에*
구름 덮인 산에서 승복과 바꿔 입었네.
病骨難堪玉帶圍 鈍根闖落箭鋒機
會當乞食歌婢院 換得雲山舊納衣
객사에 사람 들르듯 많은 사람 거쳐온 이 옥대가
흘러 흘러 나까지 온 지도
벌써 오랜 세월이로다
비단 도포를 잘못 떨어뜨려
딴 것과 혼동하여
거짓 미치광이 만회 (萬回) 에게 빌어다 주었네.*
此帶閱人如傳舍 流傳到我赤悠哉
錦袍錯落渾相稱 乞與 狂老萬回 「주파시 (注坡詩) 」
33. 원력의 영험 / 현장 (玄藏) 법사
삼장법사 현장 (玄藏:622∼684) 스님은 27세에 서역으로 법을 구하러 갔다. 진주 (秦州)
난주 (蘭州) 양주 (?州) 를 거쳐 과주 (瓜州) 에 이르러 옥문관 (玉門關) 을 나서니 관문
밖에는 정탐꾼들이 살고 있었다. 점점 가다가 사막에 이르니 악귀와 온갖 짐승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을 염하였으나 그때까지는 멀리 달아나지 않다가 반야
심경을 외우자 그 소리에 모두 사라졌다.
갠지즈 강가에 왔을 때 도적떼를 만났는데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문은 단정하고 아름답게 생겼으니 신에게 제사 지내면 길하지 않겠느냐."
그러고는 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휘두르려는데 스님이 말하였다.
“내 이미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임을 안다. 마음을 편안히 하고 죽음을 맞도록 조금만 기다
려다오."
마침내 미륵보살을 염하였다.
“원컨대 그 곳에 나서 묘한 법문을 듣고 신통 지혜를 성취하여 이 땅에 도로 하생하여 먼
저 이 도적들부터 제도하고 그들에게 훌륭한 수행을 닦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는데, 그
발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천둥 번개가 치고 회오리바람에 나무가 부러지니 도적들이 깜짝
놀라 사죄하고 흩어졌다. 「본전 (本傳) 」
34. 고승의 진영 / 상국 배휴 (相國裴休)
상국 (相國) 배휴 (裴休) 는 하동 (河東) 사람인데, 신안 (新安) 태수 (太守) 로 있을 때
희운 (黃岫希運) 스님을 만났다. 희운스님은 처음에 황벽산에서 대중을 버리고 대안정사 (大
安精舍) 로 들어가 노역하는 무리들과 섞여 숨어 살았다.
공이 절에 도착하여 벽화를 보다가 소임자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그림입니까?"
“고승의 진영 (眞影) 입니다."
“진영은 볼 만한데 고승은 어디 있습니까?"
소임자가 대답을 못하자 다시 물었다.
“이곳에 선 (禪) 닦는 사람은 없습니까?"
“요즘에 한 스님이 절에 들어와 막일을 하고 있는데 자못 선승같은 데가 있습니다."
공이 모셔오라 하여 스님이 이르자 보고는 매우 기뻐하며 말하였다.
“내게 마침 한 가지 물을 말이 있는데 스님네들이 말씀을 아끼시니, 대신 한말씀 해주십시
오."
스님이 물으십시오 하니, 공은 앞에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하였다. 스님이 “배휴!" 하고 낭랑
한 소리로 부르자 공이 “예!" 하는데 “어디 있느냐?" 하였다. 공이 당장에 그 뜻을 깨닫고
마치 상투 속 구슬을 찾은듯 기뻐하며 말하였다.
“스님께선 진짜 선지식이십니다. 이렇게도 분명하게 법을 보여주시면서 어째서 이런 데 숨
어 계십니까?"
이때부터 제자의 예를 올리고 다시 황벽산에 머무시기를 청하였다.
공은 조사의 심법을 훤히 깨치고 교학까지도 두루 꿰었으니, 제방 선사들은 모두 배상국은
황벽스님 문하에서 헛 나온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전등 (傳燈)」
35. 백련결사에서 공부한 거사 / 유정지 (劉程之)
진 (秦) 나라 유민 (遺民) 인 유씨 (劉氏) 는 이름이 정지 (程之) 이며 팽성 (彭城) 사람이
다. 한 (漢) 나라 초원왕 (楚元王) 의 후손으로 그의 조부는 진나라에서 높은 벼슬을 지냈
다. 지극한 효성으로 어머니를 모신다는 소문이 퍼지자 승상 환현 (桓玄) 과 태위 사안 (謝
安) 이 조정에 천거하려 하였으나 그는 사양하고 여산 (廬山) 의 혜원 (慧遠) 스님을 찾아뵈
었다. 그 후 뇌차종 (雷次宗) 과 주속지 (周續之) 가 함께 와서 혜원스님과 살게 되었다.
혜원스님은 “여러분 모두는 아마도 정토에 노닐기 위해 여기에 왔을 것이다" 하고는 마침
내 그에게 결사문을 짓도록 명하여 이 일을 알리도록 하였다. 이 결사 〔白蓮社〕 의 인원
은 백여 명이나 되었고 그 중에 훌륭한 사람이 18명이었는데,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
난 인물이었다.
그가 염불을 할 때면 언제나 자주색 금빛 몸을 한 아미타불이 그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부끄럽고 행복하여 슬피 울면서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저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시고 저에게 옷을 덮어주십시오."
그러자 갑자기 부처님께서 나타나 이마를 어루만져주고 가사를 끌어다 그의 몸을 덮어주었
다.
뒷날 그는 또 꿈에 자기 몸이 칠보로 된 큰 못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못에는 백련
화 청련화가 어우러져 피어 있었으며 물은 맑고 맑아서 끝간 데가 보이지 않았다. 못 가운
데 한 사람이 있어서 못물을 가리키며, 8공덕수 (八功德水) 이니 마셔보라하기에 물을 마셔
보니 맛이 감미로왔다. 이윽고 꿈을 깨고 나서도 털구멍에서 신비한 향기가 나는 듯하였다.
그는 말했다. “이는 나에게 정토의 인연이 다가온 것이다. 누가 육화중 (六和衆:스님들을
가리킴) 을 위해 나를 증명해줄 수 있겠는가?" 조금 있으니 대중들이 모두 모여 들었다. 그
는 불상 앞에서 향을 사루고 재배한 뒤 축원하였다.
“제가 석가모니불께서 남기신 가르침으로 아미타불이 계심을 알게 되었으니 이 향은 마땅
히 먼저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하고 다음에 아미타불께 공양하고 아울러 시방의 불보살님들
께 공양하옵니다. 모든 중생들이 다 함께 정토에 가서 나게 하여 주십시오."
축원을 마치고 이 부딪치는 소리를 세번 내더니 장궤 합장한 채 죽었다. 「여산집(廬山集)」
36. 정토수행을 한 거사 / 왕일휴 (王日休)
왕일휴 (王日休) 거사는 용서 (龍舒) 사람인데 품행이 단정하여 젊어서 국학 (國學) 에 임
명되었다. 그러나 문득 “서방정토에 귀의함이 최고의 일이로다" 하고 탄식하였다. 이때부터
베옷에 채소밥을 먹으며 매일 천배 (千拜) 하는 것을 일과로 삼아 정토에 날 과업을 장엄하
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는 이미 마음이 순일한데 더 고행을 할 것까지야 없지
않습니까?" 하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경에 말하기를 적은 복덕을 닦은 인연으로는 정토에 왕생할 수 없다 하였으니 한 마음으
로 고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왕생한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거사는 집에 있을 때에도 매우 엄격하게 계율을 지켰으며 앉아서는 반드시 좌선을 하고 누
울 때는 의관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얼굴과 눈에서는 빛이 났으므로 보는 사람들은 그를
도인이라고 믿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두루 친지들과 작별하면서 정토수행을 힘써
닦으라고 부탁하였다. 밤이 되자 소리를 가다듬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다가, “부처님께서
나를 맞으러 오신다!"고 외치며 우뚝 선 채로 세상을 떠났다.
「이운병섭윤적기 (怡雲幷 允迪記)」
37. 좌선의 요법 / 정상좌 (靜上坐)
정상좌 (靜上坐:國淸師靜) 는 처음에 현사 (玄沙師備:825∼905) 스님을 뵙고 오묘한 종지를
얻은 뒤 천태산에 살았다. 30년 동안 한번도 산을 내려오지 않고 3학을 폭넓게 공부하여 깨
끗한 수행으로 고고하게 살았다. 한번은 선을 닦는 이가 물었다.
“좌선할 때면 생각 〔心念〕 이 갈래갈래 흩어집니다. 스님께서 지도 좀 해주십시오."
정상좌가 대답하였다.
“그대는 생각이 흩어지는 그 때, 흩어져 달아나는 바로 그 생각으로 흩어져 가는 곳을 찾
아 보아라. 찾아 보아도 가는 곳이 없다면 흩어지는 생각이 어디 있겠느냐? 찾는 그 마음을
돌이켜 찾는다면 찾는 그 마음은 또 어떻게 있겠느냐?
또한 비추는 지혜 〔能照之智〕 도 본래 공 (空) 하며 연 (緣) 이 되는 대상 〔所綠之境〕
도 고요한 것이다. 따라서 고요하면서도 고요하지 않음은 고요한 주체가 없기 때문이며, 생
각하면서도 생각하지 않음은 비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주관과 대상이 다 고요하면 마음
이 편안해지니 이것이 마음 근원으로 돌아가는 긴요한 방편이다."
38. 노자의 도를 닦다가 불법을 만나다 / 오설초 (吳契初)
도사 (道君) 오설초 (吳契初) 는 주 (州) 주양 (朱陽) 사람이다. 하청 (河淸) 군수로 있
다가 중앙관서에서 보낸 사자의 탄핵을 받고 숭산 (嵩山) 에 숨었는데 거기서 석태 (石泰)
선생을 만났다. 오설초가 묻기를 “노자의 가르침 〔虛無之道〕 을 들려주시겠습니까?" 하
니 석태선생이 말하였다.
“선각 (先覺) 의 말씀에 의하면 다섯 가지 무루법 〔五無庄法〕 이 있다. 첫째 눈으로 보지
않으면 혼 (魂) 이 간장에 있게 되고, 둘째 귀로 듣지 않으면 정기 (精氣) 가 신장에 있게
되며, 셋째 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정신 (精神) 이 심장에 있게 되고, 넷째 코로 냄새를 맡
지 않으면 넋 〔魄〕 이 폐에 있게 되며, 다섯째, 사지를 움직이지 않으면 의지 〔意〕 가
비장에 있게 된다. 이 다섯 가지가 서로 융합하여 하나의 기 (氣) 가 되어 3관 (三關, 人體
의 3대 요소) 에 모이면 이것을 연홍 (鉛汞)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연홍은 몸안에서 구해
지는 것이어서 다른 데서 구할 필요가 없다."
오설초는 이 비결을 전해받고 나서 오랜 노력 끝에 공부가 성취되었다. 한번은 우연히 서악
(西岳) 에 갔다가 자양진인 (紫陽眞人) 을 만났다. 자양진인이 말하기를, “그대가 얻은 바
가 훌륭하기는 하나 만일 성품도리를 밝히지 못하면 헛수고일 뿐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하니, 오설초가 말하였다. “나는 2기 (二氣:음양) 를 황도 (黃道:태양이나 인체음양의 운행
법칙) 에서 추적할 수 있고 3성 (三性, 心中의 三精) 을 원궁 (元宮, 단전) 에 모을 수 있어
서 어떤 경계를 대하여도 여여하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데 더 이상 무슨 성품도리를 운운
하는가." 그러자 자양진인이 원각경 (圓覺脛) 을 보여 주면서 “이것이 불교의 심종 (心宗)
인데 깊이 음미해 본다면 뒷날 나아갈 길을 알게 될 것이고 내 말이 빈 말이 아님을 믿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설초는 마침내 그 말을 믿고 받았는데, 하루는 “적정 (寂靜) 하기 때문에 시방 여래의 마
음이 거울 속에 상이 비치듯이 그 가운데 뚜렷이 드러난다" 한 대목을 읽다가 문득 감탄하
면서 “이제까지는 내가 문을 닫고 살아 왔는데 오늘에사 팔을 휘저으며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때부터 선 법회를 두루 돌아다니며 의심을 묻고 결택하곤 하였는데 나중에 동선 법종 (東
禪法) 선사를 뵙고 물었다.
“불성이 엄연히 드러나 있건만 상 (相) 에 집착하여 미혹한 생각 〔情〕 을 내기 때문에
보기 어려우니 만약 본래 ‘나'가 없음을 깨달으면 내 얼굴은 부처님의 얼굴과 어찌됩니까?
학인들이 깨달았다고 하면 깨달은 것이겠지만 어찌해서 부처님 얼굴을 보지 못합니까?"
그 말을 듣자 동선선사는 주장자를 뽑아들고 오설초를 두들겨 내쫓아 버렸다. 오설초가 막
문을 열고 나서는데 활짝 깨닫고는 송 (頌) 을 지었다.
조사의 기봉을 단번에 간파하니
눈을 뜨고 감음이 한결같도다
이로부터 성인이고 범인이고 다 없어져
대천세계는 원래 털끝 만한 거리도 없다.
驀然 破祖師機 開眼還同合眼時
從此聖凡俱喪盡 大千元不隔毫魄 「선원유사 (仙遺遺事)」
39. 목선암 (木禪艤) / 대수 법진 (大隋法眞) 선사
대수사 (大隋寺) 법진 (法眞 834∼919) 선사는 신주 (梓州) 사람이며 염정왕씨 (亭王氏)
자손으로 원래 벼슬이 높은 집안이었다. 젊어서 숙세 인연을 깨닫고 뜻을 세워 스승을 찾아
나섰다. 남쪽으로 내려와서 약산 도오 (藥山道吾) 선사를 뵌 뒤, 대위산 (大山) 영우 (靈祐)
선사를 찾아 뵙고 대중 속에 끼어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배불리 먹지 않고 따뜻한 곳에 잠
자지 않으면서 맑은 고행과 철저한 수행으로 실천과 지조가 남달랐으므로, 영우선사가 늘
그의 근기를 인정하였다. 하루는 대위선사가 물었다.
“자네는 이곳에 와서 왜 한 마디 법도 묻지 않는가?"
“무엇에다 입을 열어야 하는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무엇이 부처냐고 묻지 그러느냐?"
진 (眞) 선사가 손으로 대위선사의 입을 가리는 시늉을 하자 대위선사는 “그대는 참으로
도의 진수 (眞髓) 를 얻었구나"하고 감탄하였다.
그후 서촉 (西蜀) 으로 돌아가 도수 ( 水) 가에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그들
모두에게 차를 끓여주곤 하면서 3년을 지냈다. 그러다가 우연히 뒷산에 올라가 옛절 하나를
발견했는데 이름이 대수사 (大隋寺) 였다. 그 산에는 둘레가 네 길 〔丈〕 되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남쪽으로 문이 하나 나 있어 도끼나 칼을 빌리지 않고도 그대로가 암자였다.
선사가 마침내 이곳에 살게 되니 세상 사람들은 그 곳을 글자 그대로 ‘목선암 (木禪庵) '
이라고 불렀다.
혼자 그곳에 살기 십여 년에 명성이 멀리까지 퍼져서 촉왕 (蜀王) 이 세번이나 불렀으나 들
어주지 않으니, 왕은 선사의 고고한 도풍을 우러러볼 뿐 한번 만나볼 길이 없었다. 내시를
보내 스님에게 호와 사액 (寺額) 을 하사하였지만 받지 않았고 무려 세번을 보냈으나 확고
부동하게 거절하였다. 촉왕은 다시 사람을 보내면서 칙명을 내려 이번에도 전처럼 받지 않
는다면 그대를 죽이겠다고 하였다. 그가 다시 찾아가 간절히 절하면서 “스님께서 받지 않
으시면 제가 죽습니다"라고 하니 선사는 그제서야 받았다.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나는 명리를 위해서 여기 온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을 얻고자 할 뿐이다. 백운청산 속에
서 시비를 쫓지 말지니 업보로 받은 이 몸을 벗어버리면 풀 한 포기도 먹지 못할 것이다.
선승들이여, 내가 행각할 때에 여러 총림에 가 보면 많게는 천명, 적어도 2백명의 대중이 있
었다. 그곳에서 동안거, 하안거를 보냈으나 깨닫지 못하고 공연히 시간만 보내다가, 위산스
님 회중에 가서 7년 동안 밥을 짓고 동산 (洞山) 스님 회중에서 3년 나무를 했다. 그 중에서
나를 중하게 대하는 곳이 있으면 얼른 떠나 버렸으니, 그 때는 오직 나 자신이 깨달을 생각
뿐 남의 일은 상관하지 않았다.
불보살 같은 분들도 모두 오랜 세월을 각고해서야 비로소 성취하였는데, 오늘날의 여러분들
은 얼마만큼 각고했길래 ‘나는 출세간법을 깨달았노라'고 하는가. 세간법도 아직 깨닫지
못한 처지에 조그마한 경계라도 경험하면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부릅뜨며 어쩔 줄을 모르
니, 무슨 해탈법을 설하겠는가? 길다란 선상에 앉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신도들의
시주물을 받으면서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내가 수행한 영험이 이와 같다' 하니, 이는 자
기를 속일 뿐 아니라 모든 부처님까지도 속이는 것이다.
이미 가사 〔三衣〕 를 입었으니 선지식을 가까이 해서 생사대사를 해결해야지, 또 다시 6
도윤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자재한 경지를 얻은 사람이라면 무슨 화탕지옥, 노탕지옥에
들어가느니 혹은 말 뱃속, 당나귀 뱃속에 들어가느니를 논할 것이 있겠느냐. 이런 경지에는
맛난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맛이 있겠지만 아직 이러한 경지를 얻지 못했다면 정말로 이런
과보를 받는다. 한번 사람 몸을 잃어버리면 다시 오늘같이 인간에 태어나고자 해도 만에 하
나도 어려운 일이다. 듣지 못했는가? 옛 스님이 어느 스님에게 묻기를, ‘무슨 일이 가장 괴
로운 일이냐?"라고 하니 「지옥업보를 받는 일이 가장 고통스런 일입니다' 하였다. 그 스님
은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아직 고통이라 할 수 없다. 출가하여 도를 밝히지 못하는 것이
가장 고통스런 일이다'라고 하셨다. 옛 스님의 이런 말씀은 참으로 간절한 말씀이니 명심하
고 때때로 경책해서 후회없도록 해야 한다." 「어록 (語錄)」
40. 수도자는 가난해야 한다 / 광혜 원련 (廣慧元璉) 선사
광혜 원련 (廣慧元璉:951∼1036,, 임제종, 수산성념의 법사) 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할 때면
늘 사람들에게 재물과 이익을 멀리하고 먹고 입는 것을 간소하게 하라고 하였다. 또 언젠가
는 “만약 도를 배우려거든 먼저 가난과 고생 속에서 힘써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
고는 도를 이루려고 하여도 이룰 수가 없다"고 하였다.
원련선사는 입적할 때 대중을 불러놓고 말하였다.
“내가 평소 너희에게 재물과 이익을 멀리하고 먹고 입는 것을 소박하게 하면 반드시 도업
(道業) 을 이룰 것이라고 가르쳤는데, 무슨 까닭인가? 모든 죄업은 재물 때문에 생겨나고 모
든 더러움은 입과 몸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일생 동안 재물을 모으지 않았고 대중들
과 따로 밥을 먹지 않았으니, 그것이 내 분수 밖의 일이어서가 아니라 부처님께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어버이를 작별하고 출가하여 마음을 알고 근원을 통달해서 무위법 (無爲法) 을 깨닫고자 하
면 세간의 재물을 버리고 걸식으로 만족하며 하루 한끼 먹고 나무 밑에서 하루 밤을 자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밝으신 가르침인데, 어찌 그것을 어길 수 있겠느냐. 내가 만약 잘 먹
고 잘 입는 것으로 자재해지려 했다면, 어째서 세속에 살면서 어딜 가나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무얼 하려고 하필 부처님의 형상과 옷을 빌어 불법문중을 파괴하랴. 이미 불자가 되었
으면 불자다운 행동을 해야 하며, 나는 복이 있고 인연이 있으니 마음놓고 업을 지어도 된
다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부모와 스승에까지 누를 끼쳐 함께 지옥에 들어가는 일이다.
요즘 세상에 선지식이라 하는 어떤 이들은 자기 안목이 바르지 못해서 입만 열었다 하면 사
람의 목숨을 끊으려 하고 부딪치기만 하면 독사같은 마음을 품는다. 이익이나 명예를 보면
피를 본 파리처럼 결코 포기할 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또 나는 선을 알고 도를 깨쳤다고
하며 봉 (棒) 도 하고 할 (喝) 도 하니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대들은 행각할 때에 반드시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말을 마치고는 입적하였다. 「주봉록 (舟峯錄)」
41. 화엄경을 읽다가 / 광효 지안 (光孝圍安) 선사의 행적
광효사 (光孝寺) 지안 (圍安) *선사는 영가 (永圈) 사람으로 성은 옹씨 (翁氏) 였다. 어
려서부터 성격이 진중하여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그의 아버지가 보통사람과 다르
다 하여 출가시켰다. 천태산 운봉 (雲峰) 에 초막을 짓고 살았는데 장좌불와 (長坐不臥) 하
고 하루 한끼 먹으며 좋은 옷을 입지 않고 누더기 하나로 여름과 겨울을 났다. 한번은 천태
덕소 (天台德韶) 국사를 찾아가니 국사가 물었다.
“3계에는 아무 법도 없는데 어디서 마음을 찾을 것이며, 4대 (四大) 는 본래 공한데 부처는
무엇에 의지해 머물겠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어디에서 나를 보는가?"
선사가 대답하기를, “오늘은 스님께 걷어 채였습니다" 하였다. 국사가 다시 “이게 무엇이
냐?" 하자 선사가 향대 (香臺) 를 걷어차 넘어뜨리고 나가버리니 국사가 쓸만한 그릇이라고
생각하였다.
선사가 하루는 「화엄경」을 읽다가 “몸도 몸이라할 것이 없고 수행도 수행이라 할 것이
없으며 법도 법이라 할 것이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
는 공적 (空寂) 할 뿐이다"라는 대목에 이르러 활짝 깨쳤다. 선정에 들어 십여일이 지난 뒤
비로소 정에서 깨어나니 심신이 상쾌하면서 문득 현묘하고 비밀스런 것이 생겨났다. 선사는
이통현 (李通玄) 이 화엄경에 대해 해석한 논 (論) 이 규모가 넓고 뜻이 깊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합쳐 120권으로 만들었는데 〔華嚴脛合論〕 , 그것이 세상에 널리 퍼졌다.
충의왕 (忠懿王:吳越王) 이 선사의 도풍을 흠모하여 월주 (越州) 청태사 (淸泰寺) 에 주지
케 하였는데 선사는 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오직 방장실에 앉아 깊은 선정에 든듯 하
였다. 하루는 선정에 들어 두 스님이 법당 난간에 기대 서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데 천신 (天神) 이 둘러싸고 이야기를 경청하다가 조금 뒤에 갑자기 악귀가 나타나 침뱉고
욕을 하며 천신의 자취를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난간에 기대섰던 스님들에게 까닭을
물어보니 처음에는 불법을 이야기하다가 뒤에는 세간 이야기를 했다고 하였다. 이에 선사는
말하기를 “한가한 이야기도 이러한데 하물며 불법을 주관하는 사람이 북을 울리고 법당에
올라가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랴" 하고는 이때부터 종신토록 한번도 세상 일을 말한 적이
없었다.
선사가 죽어서 화장을 했는데 혀는 타지 않고 붉은 연꽃 잎같이 부드러웠다.
「전등통행 (傳燈通行)」
42. 정종기 (正宗記) / 명교 설숭 (明敎契嵩) 선사
명교 설숭 (明敎契嵩:1007∼1072, 운문종) 선사는 등주 (藤州) 사람이다. 출가한 뒤 늘 관음
상 (觀踵像) 을 머리에 이고 하루에 십만번씩 명호를 불렀는데 그러는 동안 세간의 경서는
배우지 않고도 능통하게 되었다. 동산 효총 (洞山曉聰) 선사에게서 법을 얻고 경력 (慶
曆:1041∼1048) 년간에 전당 (錢塘) 요호산 (樂湖山) 에 가서 머물렀다. 거쳐하는 한칸 방은
이렇다할 물건 하나 없이 깔끔하였고 종일토록 맑게 좌선하였으므로 청정하고 바르게 수행
하지 않는 사람은 오지 못하였다. 스님의 도는 매우 깊어서 근기 낮은 학인들은 그 경계를
알 수 없었고, 한편 선사도 그들의 근기에 맞춰주느라 자기의 도풍을 낮추는 일은 조금도
없었는데, 한번은 이렇게 탄식하였다.
“어떻게 둥근 정에 모난 자루를 맞출 수 있겠는가. 성현의 행을 듣건대, 뜻을 세웠으면 그
도를 실천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말하는 것으로 그쳤다. 말과 행동이 이로 말미암
아 만세의 본보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천하의 학인들이 법도를 알고 밝은 도를 닦아
서 삿된 것을 멀리하고 정도 (正道) 에 노닐게 하셨으니 굳이 눈앞에서 법을 전수해주고 내
게서 나왔노라고 할 것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문을 닫고 책을 썼다. 책 〔전법정조 (傳法正宗) 〕 이 다 되자 서울로 가지고 가
서 한림학사 (翰林學君) 왕소 (王固) 를 통해 인종 (仁宗) 황제에게 올리고, 편지를 써서
먼저 바쳤더니 황제가 편지를 읽다가 “신 (臣) 은 도를 위해서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닙니
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선사의 지극한 마음에 탄복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명교대
사 (明敎大師) 라는 호를 내려 표창하고 그 책을 대장경에 넣게 하였다. 책이 중서성 (中書
省) 에 보내지자 당시 위국공 (魏國公) 한기 (韓琦) 가 보고 이를 문충공 (文忠公) 구양수
에게 보여주었다.
구양수는 당시 한창 문장가로 자처하고 천하의 사표로 추앙받고 있었으며 또한 종묘를 수호
한다 하여 불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글을 보고 위국공에게 말하기를 “스님네들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뜻밖이다. 날이 밝으면 한번 만나보자" 하였다. 위국공이
구양수와 함께 선사를 찾아가 만났는데 구양수는 선사와 종일토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
고는 마침내 매우 기뻐하니 한승상 (韓丞相) 이하 모든 고관들이 선사를 초대하여 만나보
고는 존경하여 이로부터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드디어 배를 사서 동쪽으로 내려
가니 대각 회연 (大覺懷璉) 선사가 ‘백운부 (白雲賦) '라는 시를 지어 가는 길에 주었다.
흰구름 인간세상에 내려와도
떠다니는 티끌색에 물들지 않고
태양은 아득히 불타고 있는데
만가지 자태는 기막힌 정취로다
아아, 살찌고 경망스런 사람들아
하늘에 드리운 날개를 보았는가
남으로 가려함에 기회를 만나야 하니
한번 날면 여섯달이 되어야 쉬리라
천지에 아롱지는 기운을 어찌 알리요
무심히 내 가고픈 곳으로 가리라
하늘은 어찌 한결같이 고요할까
말았다 폈다 함에 흔적이 없네.
白雲人間來 不染飛賑色
遙侏太陽輝 萬態情可極
嗟嗟輕肥子 見擬垂天翼
圖南誠有機 去當六月息
寧知絪縕采 無心任吾適
天宇一何寥 舒卷非留跡
선사는 노년을 영안정사 (永安精舍) 에서 보내다가 입적하였다. 다비를 하니 6근 (六根)
중에 타지 않은 것이 셋이나 되었고 정골 (頂骨) 에서는 콩같이 생긴 맑고 투명한 혹백색
사리가 나왔다.
아아, 선사를 보고 주고 뺏는데 공평하지 못하고 말씀이 도에 부합되지 않았다고 하면 어떻
게 이와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겠는가. 「석문행업 (石門行業)」
43. 감통전기 (惑通傳記) / 도선 (道宣) 율사
종남산 (終南山) 도선 (道宣:596∼667) 율사는 처음 제 (齊) 나라에 태어나 승호 (僧護)
라 하였으며 월주 (越州) 염현 (顯) 에서 미륵불상을 조각하며 살았다. 두번째는 양 (梁)
나라에 태어나 승우 (僧祐) 라 하였고 뒤에는 수 (隨) 나라에 태어나 도선 (道宣) 이라 하였
다. 율사의 할아버지는 호주 (湖州) 사람이며 아버지는 진 (陳) 나라 이부상서 (吏部尙書)
였는데 임금을 따라 장안으로 갔다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달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는데 인도승이 나타나 “당신이 잉태한 아기는 양나라 승우율사이니 출
가시켜서 불교를 널리 펴도록 하시오" 하였다.
율사는 머리깎고 나서는 고행을 참고 마음을 다져 먹으며 전념으로 불법만을 구했다. 한번
은 보물함을 머리에 이고 탑을 돌면서 도를 닦았는데, 함 속에 사리가 내리게 해달라고 발
원했더니 7일만에 과연 감응을 얻었다. 이때부터 더욱 뜻을 고르게 하여 하루 한끼 먹고 곧
게 앉아 잠자지 않고 선정에 드는 것을 즐겼다.
정관 4 (貞觀 4:630) 년 청궁사 (淸宮寺) 에서 반주삼매 (般舟三昧) 를 닦는데 천룡이 내려
와 시봉하는 감응을 얻었고 물이 모자란다 하여 흰 샘이 솟기도 하였다. 안거일에 성심으로
발원기도 하기를 “만일 하안거에 좌선한 공덕이 있다면 상서로운 징조를 내리소서" 하였더
니 뒷뜰에 과연 지초 (芝草) 가 났다. 율사가 과로로 병이 나자 천왕이 보심약 (補心藥) 을
내려주면서 말하였다.
“지금은 상법 (像法) 시대 말이라 나쁜 비구들이 절만 거창하게 짓고 선의 지혜는 닦지 않
으며 경전도 독송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천에 하나 둘 뿐입니
다."
그 후 서명사 (西明寺) 에 있을 때 깊은 밤에 도를 닦다가 법당 앞 계단을 헛디는데 어떤
성인이 발을 부축하였다. 누구냐고 물으니 북천왕의 아들인데 칙명을 받고 모시게 되었다고
하니 율사가 말하였다.
“저의 수행에 태자를 번거롭게 할 것 없습니다. 태자는 위력이 자재하시니 천축국에 지을
만한 불사가 있거든 그것이나 힘써 주시오."
“제게 길이 세치, 넓이 한치되는 부처님의 치아가 있는데 오랫동안 보물로 간직해왔습니다
이제 이것을 스님께 은밀히 드릴 터이니 잘 간직하소서."
율사는 받아서 낮에는 땅굴 속에 두었다가 밤에는 받들고 도를 닦았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
이 없었다. 다만 제자 강율사 (綱律師) 가 가만히 율사의 뒤를 따랐다가 보고는 세상에 알리
려 하자 율사가 말하기를 “신근이 천박한 이는 나를 요망하다 할 것이니 너와 나 단둘이만
알도록 하자" 하였다.
율사는 천신과 자주 왕래하였는데 신령스런 자취나 성스러운 일에 대해 듣기를 즐겼다. 그
리고 묻고 답하는대로 기록하여 그것으로 「감통전기 (惑通傳記)」 라는 책을 만들었다.
건봉 2년 (乾封:667) 봄 2월에 천신이 나타나 율사의 이제 과보가 다하려 하니 아마 미륵
궁에 날 것이라고 알렸다. 그리고는 향 한봉지를 남겨두면서, 제석천왕이 사루는 천상극림향
(天上棘林香) 이라고 하였다. 그해 시월 초사흘, 하늘에서 하늘 음악이 울리며 꽃과 향기가
가득히 내려와 율사를 청해 맞이하니 서거하셨다. 「별전등기 (別傳等記)」
44. 지자 지의선사의 행적
지자 지의 (智者智 ) 선사는 성이 진씨 (陳氏) 며, 영천 (潁川) 사람으로 날 때부터 겹눈
동자 (귀인의 상) 였다. 열다섯살에 장사 (長沙) 땅 부처님에게 가서 출가하겠다고 서원하
였는데 염불하는 중 꿈꾸듯 황홀한 가운데서 바다에 맞닿은 산이 보였다. 산꼭대기에서 스
님 한 분이 손짓하며 부르기를,“너는 여기 살게 될 것이며 여기서 생을 마치게 될 것이다"
하였는데 깨고 나서 더욱 지극 정성을 드렸다. 열여덟살에 상주 (湘州) 과원사 (果願寺)
법서 (法緖) 스님에게 귀의하여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게 되었을 때는 이미 율장에 정통하
였을 뿐만 아니라 선정도 아울러 닦았다.
당시 무진 (武津) 사람인 혜사 (慧思) 선사는 명성이 높고 수행이 깊었는데, 그의 도풍을 멀
리 전해듣고는 기갈든 사람보다 더 간절하게 만나보고 싶어 하였다. 혜사스님이 살던 곳은
당시 진 (陳) 나라와 제 (齊) 나라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법을 중히 여기고 목숨을
가벼히 여겨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가니 혜사스님은, 옛날 영산회상에서 함께 법화경을 들었
는데 그 인연으로 지금 다시 온 것이라고 하며 보현도량 (普賢道場) 을 보여주고 4안락행
(四安樂行) 을 설하였다.
선사는 밤낮으로 고행하면서 가르침대로 마음을 갈고 닦았다. 이 때 법을 구하는 마음은 불
탔으나 살림살이는 가난하여 잣나무를 끊어 향을 대신하고 주렴을 걷어올려 달빛을 받았다.
달이 지면 소나무 잣나무에 불을 붙여 밝혔으며 그것도 떨어지면 밤나무로 이어갔다.
그렇게 열나흘이 지나 법화경을 외우다가 약왕품 (藥王品) 에서 “모든 부처가 함께 칭찬하
되 이야말로 참된 정진이요. 이야말로 참된 법이니 이것을 여래께 공양드리는 길이라 한다"
한 구절에서 심신이 툭 트였다. 계속 정에 들어 고요한 가운데 관조해 보니 마치 높이 뜬
해가 깊숙한 골짜기를 비추듯 법화를 깨닫고 맑은 바람이 허공에 노닐듯 모든 법상 (法相)
을 통달했다. 그리하여 체험한 것을 혜사선사께 아뢰니 혜사선사는 다시 자기가 깨달은 바
와 스승에게서 받은 것을 말해주고 나흘밤을 정진케 하였는데, 그때 정진한 공은 백년 정진
한 것보다 나았다. 혜사선사는 이렇게 감탄하였다.
“그대가 아니면 증득할 수 없고 내가 아니면 알아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대가 들었던
정 (定) 은 법화삼매 (法華三昧) 전에 나타나는 방편이며, 나타나 지속된 것은 법화의 선다
라니 (旋陀羅尼:假有를 돌려 空으로 들어가는 대지혜로서 法華 六卽位 중 제5위) 이다. 설령
문자법사 천만 명이 그대의 논변을 따르려 해도 안될 것이니 설법하는 사람 중에 그대가 제
일이다."
그 후 의동대장군 (儀同大將軍) 인 심군리 (沈君理) 의 청으로 와관사 (瓦官寺) 에 주지하였
는데 얼마 안되어 사임하며 문도를 심군리에게 보내 말하였다.
“제가 예전 남악선사 회상에 있다가 처음 강동 (江東) 으로 건너왔을 때 법의 거울은 더욱
맑았고 마음 거문고는 자주 울렸습니다. 제가 처음 와관사에 왔을 때 40명이 함께 좌선하여
20명이 법을 얻었고, 다음 해에는 백여 명이 좌선하여 20명이 법을 얻었으며, 그 다음 해는
2백명이 좌선하여 10명이 법을 얻었습니다. 그 후 대중은 점점 많아졌으나 법을 얻는 사람
은 점점 적어졌고 도리어 제 수행에 방해만 되니 제 수행력을 알만 합니다. 천태산에 관한
기록에 보면 선궁 (仙宮) 이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그 산에서 인연을 쉬며 봉우리
를 쪼아먹고 개울물을 마시면서 평생의 원을 펼쳐볼까 합니다."
진 (陳) 나라 태건 (太建) 7년 (575) 가을, 천태산에 들어가니 노승 한 분이 길을 인도하
며 말하였다.
“스님께서 절을 지으려 하신다면 산밑에 터가 있으니 그것을 기꺼이 스님께 드리겠습니
다."
“지금 같은 시절에는 초막도 꾸미기 어려운데 하물며 절을 짓겠는가?"
“지금은 때가 아니나 삼국이 통일되면 세력있는 사람이 여기에 절을 세울 것입니다. 절이
다 지어지면 나라도 맑아질 것이니 절 이름을 국청사 (國淸寺) 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그때 천태산에는 정광 (定光) 선사란 분이 있었는데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산에 산 지 30여
년에 자신을 감추고 도를 밝혀, 그와 어울리기는 쉬웠으나 그를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러
나 그가 예언한 일은 대부분 들어맞았다. 지자선사는 그날 저녁 정광선사의 초막에서 묵게
되었는데 정광선사가 말하기를, “예전에 손짓하며 부르던 일이 기억나느냐?" 하기에 그가
사는 곳을 보니 영락없이 전에 꿈에서 본 산과 같았다.
수양제 (帝) 가 사람을 보내 스님을 석성 (石城) 으로 오게 하였으나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내 명이 여기에 있는 줄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것도 없이 도끼를 주
워들고 오늘 인연줄을 끊어버리겠다."
그리고는 무량수 염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하였다.
“정토를 장엄하는 아미타불의 48원과 꽃 연못 보배나무에 머물기는 쉬우나 사람이 없다.
지옥의 불덩이 수레를 눈앞에 보고 참회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래도 극락에 가서 날 수 있
는데 하물며 계율과 지혜를 닦은 사람이겠는가. 그들은 늘 도를 닦아온 수행력이 있으므로
결실이 헛되지 않으며 부처님의 음성과 모습은 진실로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이때 지랑 (智朗) 스님이 청하였다.
“선사께서는 어느 지위에 이르셨으며, 이렇게 세상을 떠나시면 어디에 가서 나십니까? 또
저희들은 누구를 종사로 삼아야 합니까?"
“내가 대중을 거느리지 않았다면 반드시 6근청정위 (六根淸淨位:원교 六卽의 계위 중 相昭
卽位에 해당하며, 눈·코·귀 등의 6근이 청정함을 얻는 지위) 를 얻었을 것이나 남을 위하
느니라 내가 손해를 보아 5품위 (五品位) 에 머물렀다. 그대가 어느 곳에 나느냐고 물었는데
나의 모든 스승과 도반들이 관음보살을 시종하고 있으니 그들이 와서 나를 맞아갈 것이다.
누구를 종사로 삼아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듣지 못했는가? ‘계율 〔波羅提木叉〕 이 그대
의 스승이며 4종삼매 (四種三昧) 가 그대들의 밝은 길잡이니 그대들의 무거운 짐을 버리게
하고 3독 (三毒) 을 없애줄 것이다. 또한 4대를 다스리고 업의 결박을 풀어주며 마군을 부수
고 선미 (禪味) 를 맛보게 하며 아만의 깃발을 꺾고 삿된 길을 멀리하게 할 것이다. 또한 그
대들을 무위의 구렁텅이 〔無爲〕 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며 비탄의 장애 〔大悲難〕 에서
떠나게 할 것이다' 하였으니, 오직 이 큰 스승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나와 그대들은 법으로
만나 법으로 친해졌고 불법의 등불을 전하고 익혔으니 그렇게 해서 권속이 되었다. 그렇지
않은 자가 있다면 그는 우리 문도가 아니다."
말을 마치자 선정에 든 듯하였다. 「별전 (別傳)」
45. 30년을 절 안에서 살다 / 여산 혜원 (慮山慧遠) 법사
여산 혜원 (慮山慧遠) 법사는 안문 (垠門) 가시 (賈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도안
(道安) 법사에게 법을 배우다가 「반야경」 강설하는 것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법사는 대윤 (大尹) 인 장비 (張秘) 와 친한 사이였는데 하루는 그에게 말하였다.
“역경계는 깨기 쉬워도 순경계는 깨기 어렵다. 내 마음에 거슬리는 일은 오직 ‘참을 인자
(忍) ' 한 자면 잠시도 안되어 지나가지만 만약 내 마음에 맞는 일을 만나면 마치 자석이
쇠를 만난 듯 부지불식간에 하나로 합쳐진다. 무정물도 그러한데 하물며 온몸이 티끌경계에
빠져 있는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후 여산을 돌아다니다가 그곳 산수가 아름다워 마침내 그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자사 (刺
史) 환이 (桓伊) 가 동림사 (東林寺) 를 지어 그곳에 살게 하였다. 이로부터 거의 30년간
그림자가 산 밖을 나가지 않고 오직 정토를 생각하여 부지런히 염불만 하였다. 처음 십여년
동안은 마음을 맑혀 집중해서 관 (觀) 을 닦아 아미타불 성상 (聖像) 을 세번이나 보았으나
법사는 무거운 성격이라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후 20년 만에 반야대 (般若臺) 에서 선정이
에들었는데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찬 것을 보았고, 또 아미타불이 일러주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내가 본원력 (本願力) 으로 여기에 와서 그대를 편안케 하노니 그대는 7일 뒤에
나의 나라에 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법사는 비로소 문도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곳에 살면서부터 다행히 세번이나 성상을 보았는데 지금 또다시 나타나셨으니 나
는 반드시 왕생할 것이다. 그대들도 각자가 노력해야 한다." 「탑명 (塔銘)」
46. 위산의 주인 / 위산 영우 (山靈祐) 선사
위산 영우 (山靈祐:771∼853) 선사는 복주 (福州) 사람으로 머리를 깎고 천태산 국청사에
가서 구족계를 받으려 하였다. 그때 한산 (寒山) 과 습득 (拾得) 두 스님은 미리 길을 닦아
놓고, 오래지 않아 생불 〔肉身大君〕 이 여기 와서 구족계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두 사
람이 길옆의 깊숙한 풀숲에 숨어 있다가 선사가 그 앞을 지나가자 별안간 호랑이 시늉을 하
고 포효하며 뛰어나왔다. 선사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니 한산이 말하기를, “영산회상에서 헤
어진 뒤 다섯 생에 인간의 주인이 되어 오니 지금은 옛 일을 다 잊었구나"라고 하였다.
그후 백장 (百丈) 선사를 찾아갔다. 하루는 모시고 있던 차에 백장선사가 화로 속에 불이 있
는지 뒤적여 보라고 하자 화로 속을 뒤적여 보고는 불이 없다고 하였다. 백장선사가 몸소
일어나 깊숙히 뒤적여 조그마한 불덩어리를 꺼내 보이니 선사는 여기서 깨달았다. 절을 하
고 깨달은 바를 말씀드리니 백장선사가 말하였다.
“그것은 잠시 나타나는 단계일 뿐이다. 경에 말하지 않았던가. 불성을 보고자 한다면 시절
인연을 살펴야 한다고. 시절이 이르면 마치 미망에서 홀연히 깨어난 듯하고 잊었던 것을 문
득 기억해 내는 것과 같아서 비로소 자기 물건일 줄을 깨달아 다른 데서 찾지 않는다." 그
리고는 선사에게 전좌 (冶座) 소임을 맡겼다.
그때 사마두타 (司馬頭陀) 가 호남 (湖南) 에서 찾아와 백장선사에게 말하였다.
“장사 (長沙) 서북쪽에 있는 산꼭대기는 터가 좋아서 천명 대중은 살 만합니다."
“내가 그곳에 가면 어떻겠소?"
“스님은 골인 (骨人) 인데 그곳은 육산 (肉山) 이니 알맞은 곳이 아닙니다."
“제일좌 (第一座) 가 가면 되겠는가?"
“아닙니다."
“전좌는 어떻소?"
“그 사람이야말로 위산 (山) 의 주인입니다. 그곳에 가서 10년만 있으면 대중이 모여들 것
입니다."
이리하여 선사는 위산으로 가서 암자를 짓고 살게 되었다. 도토리와 밤으로 식량을 삼고 새
와 원숭이와 벗이 되어 그림자가 산밖을 나가지 않고 하루종일 조용히 좌선하였다. 그렇게
9년이 지났는데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산지도 오래 되었건만 결국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구나. 본시 내 뜻은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혼자 살아서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그리하여 암자를 버리고 떠나려고 골짜기 입구에 다다르니 호랑이, 표범, 뱀, 구렁이들이 길
을 가로막았다. 이에 선사가 말하기를, “내가 만약 이곳에 인연이 있다면 너희들은 각각 흩
어질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나를 마음대로 잡아먹어라" 하니 말이 끝나자 다들 흩어졌다.
이에 다시 암자로 돌아왔는데 천신이 나타나서 말하였다.
“이 산은 옛날 가섭불 때에도 도량이었는데 이제 그것을 다시 짓게 될 것입니다. 이 산을
항시 수호하신다면 반드시 부처님의 수기를 받게 될 것입니다."
다음 해에 대안 (大安) 선사가 대중을 거느리고 와서 선사를 도와 총림을 일으켰다.
「사비 (寺碑) 」
47. 진영 찬 (讚) / 정인사 도진 (道) 선사
정인사 (淨因寺) 도진 (道:1014∼1093) 선사는 복주 (福州) 고전 (古田) 에서 태어났다.
부산 법원 (浮山法遠:991∼1067) 선사에게서 종지를 얻고 뒤에 정인사 회련 (懷璉) 선사를
찾아가니 회련선사가 수좌로 삼았다가 오 (吳) 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선사에게 법석을 잇
게 하였다.
신종 (神宗) 황제가 한번은 경수궁 (慶困宮) 에 초청하여 높은 법좌를 마련하고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문답하게 하였는데 좌우상하 모두가 이제껏 듣지 못했던 법문을 들었다.
도진선사는 사람됨이 순박하고 도타우며 마음이 깊은데다 겸손하여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
람 같았지만 일단 논변을 했다 하면 종횡무진으로 막히는 곳이 없었다. 또한 몸가짐이 매우
검소해서 바지 한 벌을 12년이나 입었다. 태사 (太史) 황정견 (黃庭堅) 은 선사의 진영 (眞
影) 에 제 (題) 를 붙였다.
늙은 호랑이는 이빨이 없고 잠든 용은 울부짖지 않으니
수풀에 달빛 어둡고 천지에 구름 음산하도다
먼 산으로 눈썹 그리니 살구꽃 같은 뺨이여
봄바람에 실려 시집갈 때에 중매장이 필요 없었네
늙은 할머니 그 옛날 열다섯 젊은 시절에
이쪽은 칠하고 저쪽은 지우고 화장할 줄 알고 왔다오.
老虎無齒 臥龍不吟
千林月黑 六合雲陰
遠山作眉紅杏
嫁與春風不用媒
老婆三五少年日
也解東塗西抹來 「은산집 (隱山集)」
48. 법화경을 외우다가 깨침 / 증오 지 (證悟智) 법사
증오 지 (證悟智) 법사는 태주임씨 (台州林氏) 자손이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책을 읽으
면 한눈에 외웠으며 의술이나 점복에 관한 책까지도 모두 통달하였다. 하루는 경을 강설하
는 곳에 갔다가 「관무량수경」 설법을 듣게 되었다. 귀를 기울여 한참을 잠자코 듣고 있더
니 감탄하기를 “해 떨어지는 곳이 나의 고향이다. 지금 이 경을 듣고 있으니 마치 집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은 듯하구나" 하고는 머리를 깎고 불조의 가르침을 부지런히 따르겠다고
서원하였다.
백련사 (百蓮寺) 선 (瀛) 법사에게 귀의하여 ‘완전한 도리와 변하는 도리 〔具變之道〕 '
에 대해 물으니 선법사가 등롱 (燈芼) 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성품을 여의고 아님도 끊어
져 〔離性絶非〕 본래 그 자체는 비고 고요하니 이것이 ‘완전한 아치'요, 4성 6범이 보는
경계가 다르니 여기에 ‘변하는 도리'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지법사는 깨닫지 못했다.
그 후에 땅을 쓸면서 「법화경」을 외우다가 “법은 항상하여 성품이 없으니 부처종자가 이
로부터 일어남을 알지니라 〔知法常無性佛種從綠起〕 " 한 구절에서 깨달아 마음이 활짝 트
였다. 선법사가 보고는 “기쁘다! 큰 일을 마쳤구나. 법화지관 (法華缺觀) 은 이것이 핵심인
데 그대가 이것을 깨달아냈으니 깊고도 묘한 경계에 들어갔다"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마음
이 훤히 트이고 자유로와서 사람들에게 자주 이 법문을 하였다.
법사는 닷새마다 한번씩 잠을 잘 뿐 나머지는 요체에 푹 젖어 지내면서 오직 공부가 잘 되
지 않을까만을 걱정하였다. 한번 동산 (東山) 에 자리잡고는 24년 동안 그곳에 있었는데 동
산, 서산 두 산의 학인들이 와서 논변해보았으나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다.
법사는 늘 후학들이 명상 (名相) 의 굴레 속에 갇히고 책 속에 달라붙어 심지어는 한 종파
의 경전만을 받아들여 문자학을 일삼으면서 다른 종파는 업신여겨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음
을 근심하였다. 그리하여 문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면서 격려하였다. “우리 부처님께서 이
것이야말로 ‘참다운 정진이다' 하신 말씀을 어째서 생각지 않느냐. 이 한 구절에 깨달음의
기연이 있는데 어째서 직접 맞닥뜨려보지 않느냐?"
그 후 왕명으로 상축사 (上竺寺) 에 주지하게 되었는데 당시 재상이었던 진공 (秦公) 이 묻
기를 “지 (缺) 와 관 (觀) 은 같은 법입니까, 다른 법입니까?" 하니 법사가 대답하였다.
"같은 법입니다. 이것을 물에 비유하면 조용하고 맑은 것은 지 (缺) 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비춰볼 수 있는 것은 관 (觀) 인데 물은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또한 군대와 같아서 부득이
할 때만 쓰는 것이니 어둡고 산란한 중생들의 중병을‘지관'이란 약으로 그 심성을 고쳐내
서 온전한 바탕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법계에는 고요함 〔寂然〕 을 지 (缺) 라 하
고, 고요하면서 항상 비춤 〔照〕 을 관 (觀) 이라 합니다. 그러니 오로지 지 (缺) 할 바를
고집한다면 어디서 관 (觀) 할 바를 찾겠습니까? 마치 공께서 허리띠를 드리우고 홀을 단정
히 들고서 묘당에 앉아 있을 때, 군대를 움직이지 않아도 천하를 흥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
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자 공은 “법사가 아니었던들 어떻게 불법의 묘한 도리를 알 수 있었겠습니까?" 하며
기뻐하였다. 「탑명 (塔銘)」
49. 교·관을 닦음 / 동산 능행인 (能行人)
동산 (東山) 의 능행인 (能行人) 은 교 (敎) 와 관 (觀) 에 밝은 분이었다. 굳은 의지로 정
진하여 한번 참실 (懺室:참회법을 행하는 집) 에 들어가서는 추우나 더우나 변치않고 40년
을 계속하니 절강 (浙江) 땅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자신은 한번도 스스로를 수행
인이라고 한 일이 없었고 그에 대해 말하기를 “지자대사는 하루 여섯 차례 예불하고 네 차
례 좌선하는 것으로 수행의 일과를 삼았는데 하물며 나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하였
다.
초암 (草艤因) 법사가 한번은 함께 수행을 하였는데 가까이 앉아서 보니, 언제까지고 흐트러
지거나 기대지 않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혹 병이 나도 며칠동안 밥을 먹지 않으면서도 참
선은 그만두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병은 저절로 낫곤 하였다.
능행인은 성격이 강직하고 결백하여 명리를 싫어하였다. 그래서 시주물이 들어오면 언제나
대중들에게 나눠주고 털끝만치도 남겨두지 않았으며 가진 것이라고는 다 떨어진 누더기 뿐
이었다. 여름이 되면 대나무 껍질을 엮어서 대들보 위에 묶어두었다가 겨울이 되면 그것을
내려서 추위를 막았다. 늘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길렀으나 호랑이가 해칠 마음을 먹지 않
았고, 혹 비바람치는 캄캄한 밤에 언덕 위 무덤에서 좌선하는데도 심신이 편안하여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절에는 산신이 있어서 영험으로 그 지방을 교화하였는데 능행인은 항상 그 산신과 친하게
지냈다. 어쩌다 향이 다 떨어지면 원주가 그때마다 능행인에게 알렸다. 능행인이 곧 기도를
드리면 이튿날 시주하는 사람들이 문이 메워지게 찾아오곤 하였다. 스님네들이 그 까닭을
물어보면 그들은 어젯밤에 누군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절에 상주물이 다 떨어졌다고 알
려주는 사람이 있기에 공양을 올리러 왔다고 하였다. 「행장 (行狀) 」
50. 작은 지조, 큰 불법 / 분양 선소 (汾陽善昭) 선사
분양 선소 (汾陽善昭:947∼1024) 선사는 태원 (太原) 사람이다. 도량과 식견이 넓고 깊어
겉치레가 없고 큰 뜻을 품어 무슨 글이든 스승에게 배우지 않고도 저절로 통달하였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세상이 싫어져 출가하였는데 명망높은 선지식 70여 분을 찾아뵙고 그들
가풍의 묘한 종지를 모두 터득하였다. 또한 가는 곳마다 오래 머물지 않고 산수구경을 즐기
지 않으니 어떤 사람들은 그런 선사를 운치없는 사람이라고 비웃었다. 그러자 선사는 이렇
게 탄식하였다.
“옛분들은 행각할 때 성인의 마음과 통하지 못했다는 그것 하나로 말을 달려 스승을 찾아
가 결단을 보았을 뿐, 어찌 산수를 구경하는 일로 절을 찾아갔겠는가!"
그 후 수산 성념 (首山省念) 선사를 찾아뵙고 물었다.
“백장스님이 자리를 말아올린 뜻**이 무엇입니까?"
“곤룡포 소맷자락을 떨쳐 여니 온 몸이 드러난다."
“스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코끼리 가는 곳에 여우 자취 끊겼다."
선사는 마침내 크게 깨닫고 “만고에 푸른 못과 빈 하늘에 뜬 달은 두번 세번 애써 걸러내
서야 알 수 있다" 하고는 절을 올리고 대중에게 돌아갔다. 당시 섭현 귀성 (葉縣歸省) 선사
가 그곳에 수좌로 있었는데 선사에게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갑자기 그렇게 자신만만하냐고
물으니 “이곳이 바로 내가 신명을 놓을 곳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장사 태수 (長沙太守) 장공 (張公) 이 네 곳의 큰절 중에 어느 곳이나 마음대로 택
해서 주지를 해달라고 청했으나 선사는 “나는 오래도록 죽이나 먹고 밥이나 먹는 중일 뿐
인데, 부처님의 마음 종지를 전하는 일은 작은 일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모두 여
덟 차례를 청했으나 고집스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에 태자원 (太子院) 으로 맞이하려 하니 선사는 산문을 굳게 닫고 높이 누워버렸다. 석
문 온총 (石門聰) 선사가 문을 밀어제치고 들어가서는 비난하기를 “불법은 큰 일이고 조용
히 물러나 있는 일은 작은 지조인데 그대는 불법을 짊어질 만한 힘이 있거늘 지금이 어느
때라고 편안하게 잠만 자려 하시오!" 하니 선사는 벌떡 일어나면서 “그대가 아니면 이 말
을 듣지 못했을 것이오. 빨리 가서 여법하게 준비해 두시오. 내 곧 가리다"라고 하였다. 그
곳에 도착하고 나서는 한번 선상에 앉아 30년 동안 그림자가 산 밖을 나가지 않았다.
용덕부윤 (龍德府尹) 이공 (李公) 이 승천사 (承天寺) 로 모시려 하여 사자가 세번이나 되
돌아와서 청했으나 가지 않았다. 사자가 벌을 받을 참이라 다시 찾아와, 반드시 선사와 함께
가지 않으면 벌을 받게 되니 생각해 달라고 하였다. 선사는 굳이 같이 갈 것이야 있겠냐면
서 그대 먼저 가면 나는 나중에 가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식사를 마련하라 하고 행장을
챙기라 하면서 “나는 간다!" 하고는 젓가락을 멈추고 입적하였다. 「승보전 (僧寶傳) 」
51. 불로관 (不老觀) / 도사 장평숙 (張平淑)
도사 장평숙 (張平淑) 은 노장의 도 〔淸虛〕 를 매우 좋아하였다. 신선도를 닦는 곳에서
정여빈자 (頂汝貧子) 를 만났는데 그가 하도락서 (河圖洛書:易書) 를 지고 있는 용마도를 꺼
내 보이니 마침내 그 뜻을 알았다. 오랜 노력 끝에 공부를 성취하고서 말하기를, “내 몸은
비록 단단해졌으나 본각 (本覺) 의 성품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드디
어는 불경을 탐구하였는데 「능엄경 (磅嚴脛) 」을 읽다가 느낀 바 있어서 「오진편 (悟眞
編) 」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선종가송 (禪宗歌頌) 」을 지었다.
그 서문에서는 「능엄경」에 나오는 10가지 신선을 인용하면서 “비록 그들이 천만년을 산
다해도 정각 (正覺) 을 닦지 않으면 선선의 과보가 다해 다시 태어날 때 6도 속에 흩어져
들어간다"고 하였다. 또 말하기를 “안팎이 하나여야 하니, 만약 거기서 티끌 하나라도 세우
면 그대로 번뇌가 된다. 이는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묘한 도리로서 「금강경」과 「원각경」,
이 두 경을 통달하면 금단 (金丹:신선이 되는 비법) 의 뜻이 저절로 밝아진다. 그런데 하필
도교와 불교를 분별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장평숙이 생사를 벗어나는 법을 구하려면 반드시 불교에 귀의해야 목적을 이
룰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군선주옥 (群仙珠玉)」
52. 8만겁을 산다해도 / 도사 여동빈 (呂洞賓)
도사 여동빈 (呂洞賓) 은 하양 (河陽) 만고 (滿故) 사람으로 당나라 천보 (天寶:742∼755)
년간에 태어났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인데 여러번 진사 (進君) 시험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하자 화산 (華山) 에 놀러 갔다가 종리권 (鍾離權) 을 만났다. 종리권은 진대
(晋代) 에 낭장 (將) 을 지내다가 난리를 피해 양명법 (養命法:건강장수하는 비결) 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는 여동빈을 시험해 보려고 먼저 재물을 주어보기로 하였다. 하루는 여동빈이 종리권을
모시고 길을 가는데, 종리권이 돌 한덩어리를 주워 약을 바르니 금새 황금덩이가 되었다. 그
것을 여동빈에게 주면서 앞으로 길을 가다가 팔으라고 하니, 여동빈이 "이것도 부서지는 것
이냐고 물었다. 종리권이 5백년은 되어야 부서진다고 하자,“뒷날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하
면서 던져버렸다. 종리권이 다시 여색으로 시험하려고 여동빈에게 산에 들어가 약을 캐오라
하고 조그만 초막을 꾸며 놓았다. 그 안에 아름다운 부인이 있다가 여동빈을 맞으면서 “지
아비가 죽은지 오래 되었는데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는 손
을 잡으며 가까이 오려 하였다. 여동빈은 여자를 밀어 제치면서 “가죽푸대로 나를 더럽히
지 말라"고 하였는데, 말이 끝나자 여자는 보이지 않고 종리권이 그곳에 있었다.
이에 종리권이 금단술 (金丹術) 과 천선검법 (天仙劍法) 을 전수하니 드디어 아무 걸림없이
다니는 경계를 얻고 시를 지었다.
아침에는 남월 (南越) 땅에 갔다가
저녁에는 창오 (蒼梧) 들녘에 노니네
소매 속의 푸른 뱀
날아오르는 기운이 으스스한데
사흘동안 악양루에 있어도
알아보는 이 없어서
소리높이 읊조리며
동정호를 날아 지나갔도다.
朝遊南越暮蒼梧 袖裏靑蛇膽氣序
三日岳陽人不識 朗吟賑過洞庭湖
한번은 용아 (龍牙 居遁:835∼923) 스님을 찾아뵙고 불법의 큰 뜻을 물었는데 용아스님이
게송을 지어 주었다.
어찌하여 아침시름이 저녁시름에 이어지는가
젊어서 공부 안하면 늙어서 부끄러우리
이룡 (瘻龍) 은 명주 (明珠) 를 아끼지 않는데도
지금 사람들 그것을 구할 줄 모른다네
何事朝愁與暮愁 少年不學老還羞
明珠不是瘻龍惜 自是時人不解求
한번은 악주 ( 州) 황룡산 (黃龍山) 을 지나가다가 자주빛 기운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도인이 살지나 않을까 하여 산에 들어가보니, 마침 기 (機) 선사가 상당법문을 하고 있는 중
이었다.
기선사는 이상한 사람이 자리에 몰래 들어온 것을 알고는 큰소리로 꾸짖었다.
“대중 속에 법을 훔치려는 자가 있구나!"
그러자 여동빈이 썩 나서서 물었다.
“좁쌀 한알 속에 세계를 갈무리하고, 반되짜리 솥 안에 산천을 삶으니, 이 무슨 도리인지
한번 말해보시오." 선사가 “시체나 지키는 귀신이로구나" 하니, 여동빈은 “주머니 속에 장
생불사하는 약이 있다면 어쩌겠소?" 하였다. 선사가 “설령 8만겁을 산다 해도 결국에는 허
무 속에 떨어질 것이다" 하니 여동빈은 분한 기색도 없이 떠났는데, 밤이 되자 칼을 날려
선사를 위협하였다. 선사는 미리 알고 법의로 머리를 감싸고 방장실에 앉아 있었다. 칼이 들
어와 몇바퀴 돌다가 선사가 손으로 가리키자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여동빈이 사죄
하자 선사가 꼬투리를 잡아 따져 물었다.
“반되짜리 솥 안은 묻지 않겠지만, 어떤 것이 좁쌀 한알에 세계를 갈무리 하는 일인가?"
여동빈은 이 말끝에 느낀 바가 있어 게송을 지었다.
노래하는 아이*를 잡아당겨
거문고를 부숴버리니
지금은 물 속의 금 (金) 을
그리워 하지 않네
황룡스님 (機선사) 을 보고나서야
이제껏 마음 잘못썼음을 알게 되었네.
拗却瓢兒碎却琴 如今不戀水中金
自從一見黃龍後 始覺從前錯用心 「선원유사 (仙遺遺事)」
53. 봉급을 털어 불경을 사다 / 급사 풍즙 (馮楫) 거사
급사 (給事) 풍즙 (馮楫) 거사는 젊어서 상상 (上庠:태학, 성균관) 에서 공부하였다. 하루
는 과거에서 ‘생이란 덕이 수레바퀴처럼 비치는 것이다 〔生者德之光輪〕 '라는 글로 장원
급제하였는데 그 글은 「『원각경 (圓覺脛」)의 이치로 밝힌 것이었다.
그는 비록 벼슬길에 있으면서도 불법을 잊지 않고 이름난 스님들을 두루 찾아뵙고 법을 물
었는데, 한번은 용문산 (龍門山) 에 있을 때였다. 불안 (佛眼淸遠:1067∼1120) 스님을 따라
거닐다가 우연히 동자가 마당에 달려오면서 “만상 가운데 홀로 몸을 드러냈구나!"라고 읊
조리는 소리에 불안스님이 공의 등을 두드리면서 “좋다!" 하였는데 거사는 여기서 깨달음
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뒤 노남 (南) 의 태수 (太守) 가 되었을 때, 한번은 좌선을 하다가 글을 지었는데 거기에
“공무를 보는 여가에 즐겨 좌선을 하며 옆구리를 침상에 대고 자는 일이 적었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리고는 청정한 공부에 더욱 뜻을 두어 가는 곳마다 수준 높은 참선회를 만들어
승속을 일깨웠다. 또한 전란이 일어나 경전이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자,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받는 봉급을 오로지 경을 사는 데 보시하였다. 그때 그가 지은 게송이 있다.
나는 별난 성미 타고나서
재물은 있는대로 허공에 저축하네
자손을 위한 계책은 세우지 않고
수레나 말을 타고 거드름피우지 않으며
놀이개를 사는 데 충당하지도 않고
성색을 즐기는 일에 쓰지도 않는다
송곳 꽂을 땅도 없고
한조각 기왓장 올릴 집도 없으며
달마다 받는 봉급은
오직 경전 사는데 보시하노니
경을 펼쳐 보는 이는
하나도 남김없이 깨달아 들기 바라네
옛날 부처님은 게송 반마디를 듣기 위해
야차 (夜叉) 에게까지도 온 몸을 버렸으니
그러므로 나도 재물을 아끼지 않고
미혹한 이들에게 열어 보인다
묻노니, 재물 아끼는 사람들아
하루종일 이리저리 저울질하다가
홀연히 죽는 날이 닥쳐오면
생사를 면할 수 있겠는가.
我賦耽癖癖 有財貯空虛
不作子孫計 不爲車馬逋
不充玩好用 不買聲色娛
置錐無南畝 片瓦無屋盧
所得月俸給 唯將贖梵書
庶使披閱者 咸得入無餘
古佛爲半尙 尙乃捨全軀
是以不惜財 開示諸迷徒
借問惜財人 終日較 銖
無常忽到地 寧免生死無
소흥 23 (紹興:1153) 년 거사는 장사 (長沙) 태수로 있었는데 갑자기 친지들에게 7월 23일
을 기해서 세상을 마치겠다고 알렸다. 그날이 되자 뒷마루에 높이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였
다. 그리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손님을 맞이하다가 계단을 내려가 대궐을 바라보고 절을 하
였다. 그런 다음 조운사 (漕運使) 를 오라하여 군 (郡) 의 사무를 대신 맡아보게 하고, 승복
을 입고 스님네들이 신는 신발을 신고 높은 자리에 걸터 앉아, 모든 관리와 승속에게 각기
도에 정진하여 불법을 지켜달라고 부탁하였다. 마침내 주장자를 뽑아 들고 무릎을 어루만지
며 돌아가셨다. 「만대빙지 (滿大聘誌)」
54. 벼락소리에 깨치다 / 조변 (趙 )
청헌공 (淸龜公) 조변 (趙 ) 은 나이 40여세에 성색을 멀리하고 조사의 도에 마음을 두
었는데, 마침 불혜법천 (佛慧法泉:운문종, 雲居曉舜의 법제자) 선사가 구주 (衢州) 남선사
(南禪寺) 에 와서 살고 있었다. 공은 날마다 스님을 찾아 뵈었는데 스님은 허튼말이라고는
한마디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후 공이 청주 (靑州) 를 다스릴 때 일을 보는 여가에는 좌선에 힘쓸 때가 많았다. 하루는
갑자기 벼락소리에 몹시 놀라면서 활연히 깨닫고 게송을 지었다.
묵묵히 공청에 앉아 괜스레 책상에 기대니
마음근원은 깊은 물같이 움직임 없었네
벼락치는 소리에 정문 (頂門) 이 열리니
본디 내 밑천을 불러일으켰구나
默坐公堂虛隱 心源不動湛如水
一聲霹靂頂門開 喚起從前自家底
법천스님이 듣고 말하기를, “조열도 (趙悅道:청헌공의 字) 는 황홀경을 두드렸구나!"라고
하였다. 「매계집 (梅溪集)」
55. 작은 석가 / 앙산 혜적 (仰山慧寂) 선사
앙산 혜적 (仰山慧寂:802∼887) 선사는 소주 섭씨 (韶州葉氏) 자손이다. 삭발한 뒤 큰 구
슬 하나를 얻는 꿈을 꾸었는데 그 빛이 사람을 쏘는 듯하였다. 꿈을 깨고나서 말하기를,
“이는 더할 수 없는 마음 보배인데 내가 얻었으니, 이것으로 내 마음 자리를 밝혀야겠다"
하고는 제방을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탐원 (耽源) 선사를 찾아뵙고 묘한 이치를 깨닫고 나서
뒤에 위산 영우 (山靈祐) 선사를 찾아 뵙고 마침내 깊은 종지를 얻었다.
혜적선사가 위산선사께 물었다.
“어디가 참 부처가 머무는 곳입니까?"
“생각없는 생각 〔思無思〕 의 묘한 법으로 불꽃같은 신령의 무궁함을 돌이켜 생각하라.
그 생각이 다하여 근원으로 돌아오면 성품과 모습이 항상하고 현상과 이치가 둘이 아니어서
참 부처가 여여 (如如) 할 것이다."
혜적선사는 이 말끝에 활짝 깨쳐 비밀스런 인가를 받았다. 대중을 거느리고 왕분산 (王山)
에 자리를 잡았으나 교화할 인연이 맞지않아 원주 (袁州) 에 이르러 앙산 (仰山) 을 찾아갔
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두 산신이 맞이하면서 물었다.
“깊고 험한 이 산에 어찌 오셨습니까?"
“암자 터를 하나 보러 왔소."
“저희들은 복이 있어 스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이 산을 시주하여 스님께 드리겠으니
여기 머물러 사십시오."
“그대들이 이미 나에게 시주했으니 필시 넓은 마음을 가졌겠구나. 다른 스님이 없다면 내
가 그대들의 시주를 받겠다."
산신이 좋다하고 집운봉 (集雲峰) 아래를 가리키며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하였다. 선
사는 마침내 그곳에 초암을 짓고 살면서 나무열매를 따먹고 개울물을 마시며 종일 꼿꼿하게
앉아 좌선하였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산신이 나타나 말하였다.
“앞으로 대중이 많아지면 이 제자는 살 곳이 불편할 것이니 거처를 옮겨야 하겠습니다."
밤이 되자 바람과 우뢰가 크게 일더니 산신당이 30리 바깥 도전 (堵田) 으로 옮겨가고 옛
산신상과 큰 소나무들도 모두 그곳으로 옮겨 갔다. 무창 (武昌) 3년 여름 4월의 일이었다.
한번은 외국 승려〔異域僧〕 가 하늘을 날아 오는 감응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기를,“특별히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동쪽나라에 왔다가 오늘 뜻밖에도 작은 석가 〔小繹迦〕 를 만났다"라
고 하였고, 이로부터 위산스님과 앙산스님의 종풍이 크게 세상에 떨쳤다.
선사가 입적하려 할 때 산신이 찾아와 남길 말씀이 있느냐고 물으니 선사가 말하였다.
“내 몸은 허깨비나 물거품 같아서 인연따라 일어났다 사라질 뿐이다. 올 때도 아무 것도
없었는데 갈 때인들 더 무엇을 구하겠는가?"
“모든 부처님이 입멸하실 때 천룡 (天龍) 이 나타나 남기실 말씀을 청했습니다. 저도 이를
어기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선사는 법통을 얻은 스승 위산 영우 (山靈祐) 선사의 기일 (忌日) 이 정월 8일이니 재를 지
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감히 그 날을 어기지 못하고 있다.
「사기 (寺記) 」
56. 승려의 자리를 지킴 / 도법사 (道法師)
도법사 (道法師) 는 서경 (西京) 순창 (順昌) 사람이다. 선화 (宣和:1119∼1125) 연간에
조서를 내려 승려의 법명을 도교식으로 바꾸게 한 일이 있었다. 법사는 임영소 (林靈固:道
士) 와 옳고 그름을 항변하고 조정에 상소하였는데, 황제의 뜻을 거슬려 도주 (道州) 로 유
배를 가게 되었다. 그때 호송하는 관졸 〔監防〕 이 유배지는 여기서 만리 길이나 되니 마
늘 등 냄새나는 음식이나 술 등으로 몸에 힘을 돋구어야 한다고 하니 법사는, 죽는 것은 천
명인데 불법에 금한 일을 범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자 관졸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복종
하였다.
법사가 유배지에 도착하기 하루 전날, 군수가 밤에 불상이 형틀을 지고 성에 들어 오는 꿈
을 꾸었고, 군의 관리들도 같은 꿈을 꾼 사람이 있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법사가 도착하
니 태수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죄를 짓고 오는 사람은 반드시 남다른 인물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곳에 유배된 지 한달이 안되었는데 그 군 사람의 반 이상이 병에 걸렸다. 법사가
못을 파서 물에 축원을 드리니 그 물을 마신 사람은 병이 나았다. 그리하여 그 지방 사람들
모두가 어버이나 스승 이상으로 법사를 공경하고 섬겼다. 이에 그곳에서 추방당하여 그 길
로 떠나 장사 (長沙) 땅을 지나다가 적음존자 (寂踵尊者, 慧洪覺範:1171∼1128) 를 만났는
데 그가 시를 남겨 주었다.
도법사의 간담은 몸집보다 더 커서
감히 황제의 뜻을 거슬리고 간언을 올렸도다
어깨에는 가사를 걸치고 등에는 불법을 지고자 했기에
때문에 달갑게 목을 내밀어 형틀을 받았네
3년 유배에도 마음에 부끄러움 없었고
만리 길 돌아와도 모습 여위지 않았도다
훗날 불교문중에 벼리 〔綱紀〕 가 될 분인데
요즘 듣자니 벼슬아치들 조정으로 달려간다 하네.
道公膽大過身軀 敢逆龍鱗上諫言
只欲袒肩擔佛事 故甘引頸受誅鋤
三年竄逐心無愧 萬里歸來貌不奇
他日敎門綱紀者 近聞靴笏.喙朝趨
당시 공경대부들은 법사에게 문무 (文武) 의 재략 (才略) 이 있으니 조정에 청하여 벼슬을
주어 관직에 충당하고, 군사 통솔권을 나누어 주어 옛 강토를 되찾게 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법사가 극구 사양하자 조정의 명신들이 법사의 지조를 뺏을 수 없음을 알고 황제께 아뢰어
「보각원통법제대사 (寶寶覺圓通法濟大師) '라는 호를 하사하도록 하였다.
소흥 (紹興:송 고종 즉위년, 1131) 으로 연호가 바뀌자 황제의 명으로 궁에 들어 가니 황제
가 말하였다.
“선황제 (先皇帝:徽宗) 께서 요망한 술수에 속아 그대의 얼굴과 법복을 망가뜨렸으니 짐이
그대 얼굴의 먹자욱을 없애주어도 되겠소?"
그러자 법사가 대답하였다.
“신이 비록 성은에 감복하오나 선황제께서 내리신 보배 먹자욱을 지워 없앨 수는 없습니
다."
황제는 “이 스님이 늙어서까지 꼬장꼬장하구나!" 하면서 편할대로 하라고 허락하였다.
소흥 3년 (紹興:1133) 에 법사는 도사 (道君) 유약겸 (劉若謙) 과 함께 조정에 들어가 기도
도량의 서열을 정비하였는데 그때 올린 상소는 대략 다음과 같다.
“숭녕 (崇寧:1102∼1106) 연간에 임영소 (林靈固) 등이 높은 벼슬을 멋대로 차지하여 조
정의 기강을 문란케 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도교가 불교의 서열을 누르게 되었습니다. 그
러나 건염 (建炎:1127∼1130) 연간 후로 도사들의 모든 재산은 다시 몰수되고 관의 비호도
없어졌으니 마땅히 조종의 옛 제도를 따라야 할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조정에서 현명한 지
휘를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개정령을 내려 천하에 반포하고 시행케 하여 풍속을 바로
잡아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국정에 일이 많아 이 주장은 유보되었으나 소흥 13년 (1143) 에 와서 다시 정돈하는
모임을 열어 승려들은 왼쪽에, 도사들은 오른쪽에 자리할 것을 영원한 규정으로 삼았다.
그후 가뭄 귀신으로 백성들이 시달리자 황제의 명을 받아 궁으로 들어가 기도를 드리게 되
었다. 법사는 자리에 올라가자 금으로 된 물병 네 개를 빌려서 병마다 산 붕어를 넣고 물을
뿜어주며 가만히 축원하였다. 그리고는 곧 발빠른 사람 넷을 시켜 물고기를 강과 소 (沼) 에
놓아주게 하였는데, 그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비가 쫙 퍼부으니 황제의 얼굴이 매우 기쁜 기
색이었다. 「탑명 (塔銘)」
57. 가장 모진 병 / 회암 미광 (晦庵邇光) 선사
회암 미광 (晦庵邇光:?∼1155) 선사는 민현 (縣) 장락 (長樂) 사람이다. 영남으로 나와서
원오 극근 (圓悟克勤:1063∼1135, 임제종 양기파) , 불심 본재 (佛心本才:임제종 황룡파) 등
큰스님들을 찾아뵙다가 마침 대혜 종고 (大慧宗曠:1089∼1163, 임제종 양기파) 선사가 광인
사 (廣因寺) 에 살고 있다 하여 찾아가 그 밑에서 공부하였다.
미광선사가 하루는 대혜선사를 모시고 가다가 물었다.
“저는 이곳에 와서도 철저하게 깨닫지 못했으니 그 병통이 어디에 있습니까?"
대혜스님이 대답하였다.
“그대의 병은 가장 모진 병이다. 세상에서 이름난 의원도 속수무책이니 그 이유가 무엇인
지 아는가? 다른 사람은 죽어서 살아나지 못하는데, 그대는 살아있을 줄만 알지 아직 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크나큰 안락의 땅에 도달하려면 한번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미광선사가 더욱 의심이 생겨 방장실에 들어가니 대혜선사가 물었다.
“죽은 먹었는가? 발우는 씻었는가? 약을 먹느라 가리는 음식 〔藥忌〕 일랑 집어 치우고
한마디 던져 보아라."
미광선사가 “찢어버렸습니다" 하자, 대혜선사가 엄한 기세로 악! 하고 할(喝)을 하고는
“그대는 또 와서 선을 이야기할 참이냐!" 하니, 미광선사는 여기서 크게 깨달았다.
대혜선사는 북을 쳐서 대중을 모아놓고 알렸다.
토끼털을 뽑았다고 해해거리다가
일격에 만겹 관문의 쇠사슬이 열렸도다
평생에 통쾌한 경사는 오늘같은 날인데
누가 말하나 천리 밖에서 나를 속여 먹었다고.
兎毛拈得笑哈哈 一擊萬重關巍開
慶快平生在今日 孰云千里 吾來
그러자 미광선사는 송을 지어 바쳤다.
한번 부딪쳐 기연을 만나니 성난 우뢰같은데
놀라 일어나 수미산을 북두성에 감추었구나
넘실대는 큰 파도는 하늘에 닿는데
콧구멍 〔鼻孔:본래면목〕 을 뽑아드니 입 (언어문자) 을 잃어버렸네.
一 當機怒雷吼 驚起須邇藏北斗
洪波浩颯浪滔天 拈得鼻軫失却口 「어록등 (語錄等)」
58. 지자대사의 두타행을 잇다 / 고구려 바야 (波若) 사문
바야 (波若) 스님은 고려 (高麗:고구려) 사람이다. 개황 (開皇:581∼601) 연간에 불롱사
(佛 寺) 를 찾아와 지자 (智者) 선사에 선법을 구하였는데, 얼마 안되서 깨달은 바가 있자
지자선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이곳에 인연이 있다. 그러니 꼭 조용한 곳에 한거해서 오묘한 행을 성취해야 한다.
천태산 (天台山) 의 화정봉 (華頂峯) 은 지금 이 절에서 6,7리 떨어져 있는데, 그곳은 지난날
내가 고행 〔頭陀行〕 을 하던 곳이다. 그대가 그곳으로 가서 도를 닦아 수행이 진보되면
반드시 깊은 이익이 있을 것이다.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은 하지 말아라!"
바야스님은 가르침을 따라 그곳으로 가서 새벽에서 밤까지 수행하였다. 한번도 누워서 자는
일이 없었고 그림자가 산을 나오지 않은지 16년이나 되었는데, 하루는 홀연히 산을 내려와
서 여러 도반에게 알렸다.
“나 바야는 명이 다한 것을 알고 있기에 다만 산을 나와 대중들과 이별할 뿐이다."
그리고는 곧 화정봉으로 돌아가서 죽었다. 「천태석각 (天台石刻)」
59. 연경정토원기 (延慶淨土院記) / 정언 진료옹 (陳了翁)
정언 (正言) 진료옹 (陳了翁:陳瓘) 은 남검주 (南劍州) 사람으로 젊은 나이에 급제하였다.
성품이 조용하고 단아하여 세상사람들과 다투는 일이 없었으며, 남의 단점을 보면 한번도
면전에서 꺾어버리지 않고 약간의 뜻만 보여서 일깨워주었다.
공은 처음에는 잡화엄 (雜華嚴:화엄경의 다른 명칭) 을 받들어 자못 조예가 있었다. 그러다
가 명지 (明智) 법사를 만나 천태종 (天台宗) 의 종지를 물으니, 명지법사는 지관 (缺觀) 법
문 중에서 상근기가 닦는 부사의경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은 청정한 본성에서 보자면 원
래 닦을 것이 없기 때문에 작위 없는 행을 이룬다는 내용이었다. 공은 여기서 홀연히 깨달
았다. 만년에는 유배당하여 섬에 살았는데 그때도 전혀 불만이 없었고 오직 서방정토에 돌
아가기를 염하였다. 공은 또 「연경정토원기 (延慶淨土院記) 」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여래께서 9품을 설하셨을 때에도 지성으로 하는 자를 상상품으로 삼으셨고, 지자 (智者)
대사가 「10론 (十論) 」을 지을 때도 빈틈없이 얽힌 의심을 깨부수라 하셨다. 얽힌 것이 풀
리면 정식 (情識) 이 흩어져 지 (智) 가 나타난다. 그렇게 되면 미타정토의 경계를 다른 데
서 구할 것이 없으니 마치 맑은 거울을 보면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이렇게도 말하였다.
“마치 맑고 깨끗한 둥근 달이 그림자를 모든 물 속에 드리우되 그 바탕은 둘이 아니고, 물
결대로 흩어지는 것을 거두어 한곳으로 돌아오게 하듯 시방세계를 한곳으로 모은다. 또한
거울 열 개를 빙둘러 쳐놓고 가운데 등불 하나를 켜둔 것과 같아서 등불의 모습이 거울 속
에서 교차되어 동서를 가릴 수가 없으나 반드시 제자리는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쪽은 원래
서쪽이 아니고 각각 비춰지는 영상에 따라 자리가 뒤섞이니 보이는 경계를 뉘라서 집착할
수 있겠는가. 번뇌 속에 살며 한쪽 방향에만 집착하는 견해로 어찌 여래의 걸림없는 경계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혜인 (慧因) 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옹 (了翁) 의 정토에 관한 말이 불조의 오묘한
종지를 깊히 씹어 본 말이라고 할 만하다.”
60. 훌륭한 스승과 훌륭한 제자 / 행소 (行紹) 대사 행정 (行靖) 법사
석벽사 (石璧寺) 는 항주 (杭州) 월주 (越州) 에서 20리 거리에 있다. 용산 (龍山) 을 따라
서쪽으로 달려가 그윽한 골짜기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계곡과 바위가 펼쳐진다. 비록 그곳은
기상이 맑은 곳이나 처음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가 행소 (行紹) 대사와 행정 (行靖)
법사가 그곳에 살면서부터 비로소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으니, 역시 땅은 사람 때문에 유명
해지는 것이다.
행정법사와 행소대사는 모두 전당 (錢塘) 사람이며, 함께 영명 연수 (永明延困) 선사에게
귀의해서 출가하여 율부 (律部) 를 공부하여 통달하였다. 당시 천태 덕소 (天台德韶) 국사의
도가 크게 떨칠 때라 행정스님과 행소스님은 그곳을 찾아가 배우게 되었다. 덕소국사가 보
고는 그릇이 되겠다고 하여 나계 의적 (螺溪義寂) 법사를 찾아가 3관법 (三觀法) 을 배우게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이 함께 찾아가 의적법사를 모시고 3관의 대의 (大義) 를 익혔는데 얼
마 안되어 공부가 성취되었다. 행정스님과 행소스님은 다시 석벽사 (石璧寺) 로 돌아와 대중
을 모아 강론하며 지냈다. 전후로 모두 50년을 산림의 지조를 지켜 한번도 고향집이나 마을
에 다녀본 적이 없고, 처신을 깨끗히 하여 오 (吳) 땅의 학승이나 큰스님들이 모두 그들을
고결한 분이라 추대하였다.
명교 설숭 (明敎契嵩) 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연수 (延困) 선사에게 출가하고 의적 (義寂) 법사에게 법을 배웠으며 덕소 (德韶) 국사가
알아주었다. 위 세 분은 모두 절개와 수행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여 세상에서 흔
히 만나볼 수 있는 분들이 아닌데 두 분 법사는 이 분들을 모두 만나 직접 가르침을 받았
다. 가령 한 번 만나보기만 해도 매우 좋은 일인데, 하물며 이 분들에게 법을 얻기까지 했으
니 두 법사는 복이 많다 하겠다." 「탑표 (塔表)」
61. 승직을 버리고 은거하다 / 해월 변 (海月 辯) 선사
해월 변 (海月慧辯) 도사 (都事:도사는 都僧正을 말함) 는 운간 (雲間) 사람이다. 태어나
면서 남다른 바가 있어 그의 부모가 보조사 (普照寺) 에 들여보내 출가시켰다. 명지 (明智祖
韶) 법사에게 법을 얻었는데 명지법사가 늙자 명을 받고 8년간 대신 강의를 하다가 마침내
절 일을 맡게 되었다.
한림학사 심시경 (沈時卿) 이 항주 (杭州) 의 승려들을 사납게 대하므로 그를 만나는 사람
마다 겁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유독 법사만은 평소와 다름없이 여유로웠으므로 공
이 남다르다고 하여 승직에 앉게 하였고, 그후 도승정 (都僧正) 으로 옮겨 앉게 되었다.
당시 소동파가 항주태수로 있었는데 그의 도행이 높고 말씨가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한번은
이런 글을 지었다.
“승려가 많은 것으로는 아마도 전당 (錢塘) 이 으뜸가는데 그중에는 도력과 덕성, 재주와
지혜가 있는 분과 망령되고 옹졸하며, 잔꾀나 부리고 거짓되게 사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어
서 그들을 일률적으로 부르기가 어렵다. 그래서 승직에 승정 (僧正) 과 부승정 (副僧正) 을
두고, 그 밖에 별도로 도승정 (都僧正) 한사람을 보충하였다. 그리하여 장부나 문서관리, 또
는 쫓아다니며 손님을 맞이하는 수고는 전적으로 부승정 이하에게 맡기고 도사는 중요한 일
만을 맡게하였으니 실로 수행과 깨달음이 대중의 표상이 되기 때문이다."
법사는 용모와 행동이 단정하고 조용하였으며 쓸데없는 물건을 쌓아두지 않았다. 밤에 도
둑이 그의 방에 들었는데 입었던 옷을 벗어주고 샛길로 도망치게 하였다. 그 자리에 있은
지 얼마 안되어 사람 만나는 일이 귀찮아서 초당에 돌아가 은거하였는데 여섯가지 필수품
〔六事:3의와 발우, 방석, 물병〕 만이 몸에 딸려왔을 뿐이었다.
입적하면서 소동파가 도착하거든 관뚜껑을 닫으라고 미리 유언을 남겼다. 소동파가 나흘만
에야 산에 도착하여 스님이 산사람처럼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마는 그때까지도
따뜻하였다. 마침내 절구 (絶句) 3수를 지어 그를 조곡 (弔哭) 하였다.
그대가 남긴 자취를 찾고저
굳이 옷을 적시며 찾아왔네
본래 그대로가 태어남이 없는데
없어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늘밤 그대 강당에 떠오른 달은
옛날처럼 뜰에 가득하건만 서리같이 차구나.
欲尋遺跡强沾裳 本自無生可得亡
今夜生公講堂月 滿庭依舊冷如霜
나고 죽음은 팔이 굽혔다 펴지는 것 같은데
망정 모여 생긴 우리들 한결같이 쓴고생이라
백낙천 (白樂天) 은 봉래섬의 손님이 아니었고
서방정토에 기대어 그곳 주인 되었다네.
生死猶如譬屈伸 情鍾我輩一酸辛
樂天不是蓬萊客 憑仗西方作主人
뜬구름 일어났다 꺼지는 인연을 찾고저 하나
인연은 없고 도리어 꿈 속의 몸만을 보네
마음을 편히하여 잘 머문 사람은 왕문도 (王文度) 이니
이 도리를 남에게 물어볼 것 있겠는가.
欲訪浮雲起滅因 無緣却見夢中身
安心好住王文度 此理何須更問人 「탑명 (塔銘)」
62. 출가자는 모두 석 (繹) 씨다 / 불인요원 (佛印了元) 선사
고려의 승통 (僧統) 인 의천 (義天:1055∼1101) 은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중국에 불법을
물으러 왔다. 처음 사명군 (四明郡) 에 도착하자 연경사 (延慶寺) 의 명지 (明智) 법사와 삼
학사 (三學寺) 의 법인 (法隣) 법사 두 사람을 수행원 〔館伴〕 으로 임명하였다. 항주 (杭
州) 에 이르러 혜조 (慧照) 율사를 찾아가 율학을 배우고자 하니 혜조율사가 그를 위해 계
율법문을 설하고 의례와 법도를 익히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3의와 발우, 석장을 전수하고 이
어 게송을 지어 주었다.
그대를 위해 법의를 만들어주고
다시 발우와 석장으로 위용을 도우니
그대 일숙각의 노랫말을 들어보라
이는 모양을 내려고 허트로 지니게 함이 아니라 했네.*
爲汝裁成應法衣 更將枳錫助威儀
君看宿覺歌中道 不是標形虛事持
조정에서는 다시 양차공 (楊次公) 에게 명하여 수행케 하였는데 지나는 절마다 왕에게 하
는 예로 맞이하고 전송하였다. 그러나 금산사 (金山寺) 에 이르니 불인요원 (佛印了元:103
2∼1098, 운문종) 스님만은 유독 선상에 앉아 큰절을 받았다. 양차공이 놀라서 그 까닭을 물
어보니 불인스님이 말하였다.
“의천 역시 다른 나라의 승려일 뿐이다. 갖가지 성씨가 출가하면 누구나 석씨의 아들로 이
름하는 법이니 어떻게 귀족을 따지겠는가. 만일 불도를 굽혀 속법을 따른다면 무엇보다도
지혜의 눈을 잃어버리는 일이니 무엇으로 중국의 모범을 보여주겠는가"
이 일로 조정에서는 요원스님을 일의 대체 (大體) 를 아는 사람이라 하였다.
「승전등 (僧傳等)」
63. 다라니를 외면 사리가 나오다 / 천축사 오법사 (悟法師)
천축사 (天竺寺) 의 오 (思悟) 법사는 전당 (錢塘) 사람인데 다라니를 외울 때마다 사리가
나왔으며 그가 공양올리는 불상에서도 꼭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천성 3 (天聖:1028) 년에 자운 (慈雲) 법사가 지자대사의 교관 (敎觀) 을 대장경 안에 넣자
고 청하였다. 문목공 (文穆公) 왕종 (王 ) 이 이를 황제께 아뢰려하자 오법사는 “이는 보
통 일이 아니니 소승이 돕고저 합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천수관음을 그려놓고 대비주를
외우면서 “일이 과연 이루어지면 이 몸을 불사르겠나이다" 하고 서원하였다. 얼마 되지 않
아서 왕종이 죽자 오법사는 밤낮으로 쉬지않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다.
그해가 지나 마침내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자 오법사는 드디어 전날의 서원했던대로 몸을 불
살랐다. 장작불이 다 꺼져도 시신은 그대로 있었고 가사로 몸을 두른채 마치 산사람처럼 엄
연하였으므로 대중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이에 자운법사가 다시 향나무를 쌓아 불을 지
르니 마침내 몸이 부서지고 무수한 사리가 나왔으며 3년 뒤까지도 신도들이 사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자운법사는 이에 찬을 써서 돌에 새겼다.
오법사는 나의 문도라 불법 짊어지고 몸을 버리니
불꽃이 타오를수록 그 즐거움도 끝이 없었네
불이 다 꺼지려 하는데 엄연하게 가부좌하고
뒤에 뼈를 부수니 찬란한 사리 둥근 구슬 같았네
아주 옛날에는 있었겠지만 지금 세상엔 없는 일이니
꽃다운 나이 서른에 참으로 대장부였네.
悟也吾徒 荷法捐軀
其 赫赫 其樂愉愉
逮火將滅 儼如跏趺
逮骨後碎 璨若圓珠
信古應有 今也則無
芳年三十 眞哉丈夫 「금원 (金園)」
64. 선을 닦는 학인에게 고함 / 회당 조심 (晦堂 祖心) 선사
“ 회당 조심 (晦堂祖心:1025∼1100, 임제종 황룡파) 선사는 처음에 혜남선사가 돌아가시면
서 하신 부탁을 받아 주지할 인연을 맡았다. 그후 13년이 지나 법석이 한창 융성할 때에 의
연히 주지 일을 그만두고 서원 (西園) 에서 기거하였다. 그리고는 그 방을 회당 (晦堂) 이라
이름짓고 말하기를“ 내가 그만둔 것은 세상일일 뿐이니 지금부터는 오로지 불법수행에 전
념하고자 한다"는 그 방문에 방을 써붙였다.
“선을 닦는 모든 학인에게 고하노라. 도를 철저히 캐려면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살펴보아
야 하니 남이 대신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중에 혹시 인연을 보아내어 스스로에게 기
뻐하며 들어갈 곳이 생겼거든 얼른 방장실에 들어와서 털어놓고 옳은지 그른지, 얕은지 깊
은지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 아직 밝혀내지 못했거든 무엇보다도 우선 쉬어버려라. 그러면
도는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고생고생 달려가며 구하면 도리어 미혹과 번민만 더하게 된다.
이것은 말을 떠난 도리이니 요는 스스로가 긍정하는 데 있는 것이지 남에게 의지해서 깨닫
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밝혀내는 것을 무량겁으로부터 내려오는 생사의 근본을 확실히 통
달했다고 말한다.
만약 말 떠난 도리를 볼 수 있다면 성색과 언어, 시비 등 모두가 전혀 다른 법이 아님을 보
게 된다. 그러나 말 떠난 도리를 보지 못하면 눈 앞의 차별된 인연을 비슷하게 이해한 것으
로 도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오직 눈 앞에 전개되는 헛그림자를 오인하여 자기
도 모르게 쓸데없는 법을 만들어 놓고 머리끝까지 자만에 차서 심력을 헛되이 써버릴까 걱
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밤낮으로 자신을 이기고 행주좌와에 정성껏 관찰하여 미세한 곳까지
자세히 살피면 별로 마음을 쓰지 않아도 자연히 도에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이것은 하루
아침 하루 저녁에 배워서 이루어지는 공부가 아니다. 만일 이와같이 치밀하게 참구하지 못
한다면 경읽고 절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니, 그것이 마구 불법을 비방하는 것보
다는 나은 일이다. 이렇게 늙은 시절을 보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무 일 없는 사람이 되
어 아무런 매임이 없으리라고 내가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이밖에 입실하는 일은 지금부터
초하루와 보름 이틀만 와주기를 바란다."「정강(汀江)」
65. 3교 성인의 가르침 / 효종 (孝宗) 황제
효종 (孝宗:1163∼1189재위) 황제가 경산 (徑山) 의 주지 보인 (別峰寶印:1109∼1190) 선사
를 선덕전 (選德殿) 에 초청하여 말하였다.
“3교 (三敎:佛儒仙) 성인들의 도리는 본래 같은 것입니까?"
보인선사가 아뢰었다.
“그것은 허공에 동서남북이 애초에 따로 있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성인들이 세우신 방편은 각기 다른점이 있으니, 예컨대 공자는 중용 (中庸) 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중용의 가르침이 아니면 어떻게 세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화엄경」에서
는, ‘세간의 모습을 허물지 않고 세간 벗어나는 법을 이룬다 하였고, 「법화경」에서는, 세
간을 다스리는 말과 삶을 지탱해 주는 생업들이 모두 실상 (實相) 과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사대부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이 많은데 오직 문자만 파고들 뿐 공자의
도는 보지 못하고, 더욱이 공자의 마음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직 석가부처님은 문자로
사람을 가르치는 방법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마음의 근원을 그대로 지적하여 중생에게
열어 보이시어 저마다 깨달아 들어가게 하니 이 점이 훌륭한 일입니다."
“비단 요즘의 공부하는 사람들만 공자의 도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열 분 제
자 가운데 안자 (顔子) 같은 분은 바탕을 갖추었다고 일컬어지는 사람인데 자기 평생의 역
량을 다하고서도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습니다.‘우러러보니 앞에 있는 듯하다가는 홀연
히 뒤에 있으시다.' 이렇듯 그의 입신이 탁월하긴 했으나 결국은 공자의 그림자도 잡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분명하게 털어놓고 여러 제자에게 말씀하기를 ‘제자들아, 너희들
은 내가 무엇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아무 것도 감춘 것이 없느니라. 나는 모든
행동에서 너희들과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으니, 제자들이여 이것이 나 공구 (孔丘) 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공자는 한번도 제자들을 피한 적이 없는데도 제자들 스스로 잘못
된 것이었습니다. 지난날 장상영 (張商英) 승상도 정작 불교를 배우고 나서야 유교를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황제가 자신의 생각도 그렇다고 하면서, 장자와 노자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스님이 말
하였다.
“이 사람들은 불법에서는 소승인 성문 (聲聞) 일 뿐입니다. 소승은 몸을 감옥이나 형틀같이
생각하여 싫어하고 지혜를 잡독으로 여겨 멀리합니다. 그리하여 불 속에 몸을 태워 무위
(無爲) 의 경지에 들어가니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한 ‘몸은 본래 고목같이 만들 수 있고
마음은 본래 꺼진 재처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황제는 마음에 꼭 맞는 말이라 하였다. 「주대록 (奏對錄)」
66. 파초와 대나무를 벗삼아 / 가구 (可久) 스님
고승 가구 (可久) 는 전당 (錢塘) 사람이다. 강원을 두루 다녀 천태의 종지를 깊이 터득하
고, 그 뒤 상부사 (祥符寺) 에 살았다. 스님은 옛 음률로 시 짓기를 좋아하여 담담하면서도
맑은 경지에 이르렀는데 소동파 (蘇東坡) 는 스님을 ‘시로 (詩老) '라고 불렀다. 소동파가
정월 대보름에 관료들과 함께 관등놀이를 갔다. 그는 혼자 스님을 찾아뵈었는데 스님이 조
용히 앉아 좌선을 하고 계시는 것을 보고는 절구 (絶句) 한 수를 지었다.
문 앞엔 노래소리 북소리 왁자지껄한데
말쑥한 방 하나, 얼음같이 차구나
부질없이 유리로 사물을 비쳐보지 않고서야
무진한 그것이 본래 등이 아님을 비로소 알았네.
門前歌鼓뇨紛崩 一室蕭然冷欲氷
不把琉璃閑照物 始知無盡本非燈
스님은 매우 엄격하게 몸을 다스려 눕지 않고 지내며 하루 한끼 먹고 행주좌와 어느때고
법복을 벗은 일이 없었다. 스스로 근검절약하여 평생 누더기 한 벌을 바꾸지 않았으며, 혹
양식이 떨어지면 벽곡 (獗穀:곡물을 먹지 않고 솔잎이나 야채를 먹음) 을 하며 좌선할 뿐이
었다.
만년에는 서호 (西湖) 가에 살았는데 말끔한 선상 (禪滅) 하나 뿐 쓸데없는 물건은 남겨
두지 않았다. 창밖에는 오직 붉은 파초 몇대공과 푸른 대나무 몇백줄기 뿐이었는데 그곳을
스스로 ‘소소당 (蕭蕭堂) '이라 이름 짓고 살았다. 임종하면서 사람들에게 “내가 죽고나면
파초와 대나무도 죽을 것이다"라고 하더니 뒤에 그 말대로 되었다. 「이운집 (怡雲集)」
67. 정토에 오고감 / 양차공 (楊次公)
양차공 (楊次公:楊傑) 이 말하였다.
“원력 크신 아미타불은 정토에서 오지만 와도 실제 오는 것이 아니며, 신심 깊은 범부는
정토로 가지만 가도 실제 가는 것이 아니다. 저쪽에서 이곳으로 오지 않고 이쪽에서 저곳으
로 가지도 않으나 그들 성인과 범부는 만나서 양쪽이 교제할 수 있다.
아미타불의 밝은 빛은 크고 둥근 달과 같아서 법계를 두루 비춘다. 염불하는 중생이 이를
간직해서 버리지 않으면 모든 부처의 마음 속에 있는 중생은 티끌같이 무수한 극락을 얻게
되고 중생의 마음 속에 있는 정토는 생각생각 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만약 발심하여 저 명
호를 염 (念) 할 수 있으면 그대로 왕생하여 강가의 모래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이 입을 모
아 칭찬하고 시방의 보살들이 함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무슨 말을 믿을 것이며 정토가 가서 날만한 곳이 아니라면 어느 땅이
가서 날만한 곳인가. 스스로 자기의 신령함을 버린다면 그것은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공은 임종 때 금으로 된 자리 〔臺〕 가 공중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게송을 짓고 돌아
가셨다.
삶이라해서 연연할 것도 아니고
죽음이라해서 버릴 것도 아니니
크나큰 허공 속에
오고 가는 것일 뿐인데
잘못에 잘못을 더하여
서방극락이 되었구나.
生赤無可戀 死赤無可捨
太虛空中 之乎者也
將錯就錯 西方極樂 「보도집 등 (輔道集等)」
68. 동정 (動靜) 법문 / 현사 사비 (玄沙師備) 선사
현사 사비 (玄沙師備:835∼908) 선사는 복주 (福州) 사람이며 성은 사씨 (謝氏) 다. 젊어서
남대강 (南臺江) 에서 고기잡이를 하다가 홀연히 배를 버리고 불문에 들어왔다. 스님은 짚신
과 베옷에, 겨우 기운을 이어줄 정도로만 먹고 하루종일 좌선을 하니 설봉 의존 (雪峰義存)
선사가 불러 말씀하셨다.
“스님은 두타행 (頭陀行:고행) 을 하던 이가 다시 이 세상에 온 사람인데 어찌 제방에 두
루 다니며 법을 묻고 참구하지 않는가?"
“달마는 동쪽에 오지 않았고, 2조는 서천에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자 설봉스님은 그를
인정하였다.
스님이 현사사 (玄沙寺) 에 움막을 엮었는데 대중이 서로 물어물어 찾아와 마침내 총림을
이루었다. 스님은 경에 부합되는 말씀으로 법을 설하니 요점을 분명히 알지 못한 자들이 제
방에서 찾아와 모두 해결을 보았다.
대중에게 말하였다.
“불도는 드넓어서 정해진 길이 없고 3세에 있는 것도 아니니 어찌 떴다 가라앉음이 있겠느
냐. 세워지고 무너지고 하는 것은 조작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움직이면 〔動〕 번뇌
경계에 빠지고 고요하면 〔靜〕 어둡고 몽롱한 곳에 가라앉는다. 또한 움직임과 고요함을
다 없애면 아무 것도 없는 데 떨어지고 움직임과 고요함을 다 받아들이면 불성을 더럽히게
된다. 그러니 경계를 마주할 때 굳이 마른나무나 꺼진 재처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마치 거
울에 물건을 비춰도 거울 빛이 어지러워지지 않듯, 새가 공중을 날되 하늘 색을 더럽히지
않듯, 그저 상황에 임해서 타당함을 잃지 않고 응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
시방에 그림자가 없고 3계에 발자취가 끊겼으며 가고 오는 테두리에 떨어지지 않고 중간에
있다는 생각에 머물지도 않는다. 이는 마치 힘센 장사가 팔꿈치를 펼 때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자가 거닐 때 짝을 짓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하늘을 가리운 것이 없는데 무슨 뚫고 통과할 것이 있는가. 한줄기 빛은 이제껏 어두운 적
이 없었으니 여기에 이르러서는 그 바탕 〔體〕 은 적적하되 항상 밝게 빛나며 활활 타오르
는 불꽃같이 가이 없다. 원각 (圓覺) 의 빛 속에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하늘 땅을 삼키고 불
살라서 다시 비춘다." 「전등 (傳燈)」
69. 불상이 허물어져도 / 문로공 (文潞公)
문로공 (文潞公) 이 낙양 (洛陽) 에 있을 때 한 번은 재를 올리러 용안사 (龍安寺) 에 가서
불상을 우러러 보고 예불을 드렸다. 하루는 홀연히 불상이 허물어져 땅에 떨어지니 공이 그
것을 보고 조금도 공경하는 기색없이 오직 뚫어지게 바라만 보다가 나가버렸다. 옆에 있던
스님이 왜 예불을 안하느냐고 물으니 불상이 허물어졌는데 내가 어디다 예불을 하겠느냐고
하였다. 그러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옛 성인은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이가 개인적으로 관리들이 다니는
길에서 흙을 파다가 불상을 만드니, 지혜로운 사람은 길가의 흙인줄 알지만 어리석은 범부
는 불상이 생겼다고 한다. 뒷날 관리가 지나가려고 도로 불상으로 길을 메우니 불상은 본래
생겼다 없어진 것이 아니고 길 역시 새 길 옛 길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은 이 말을 듣고 느낀 바 있어 이로부터 도를 흠모하는 데 매우 힘써 아흔이 넘도록 아침
에 향사르고 저녁에 좌선하는 일을 한 번도 빠뜨린 일이 없었다. 공은 매일 다음과 같이 발
원하였다.
“저는 항상 정진하여 모든 선업을 부지런히 닦고 싶습니다. 저는 심종 (心宗) 을 깨달아 모
든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싶습니다."
70. 스스로 강에 장사지내다 / 묘보 (妙普) 수좌
묘보 (妙普:1071∼1142) 수좌는 스스로를 ‘성공 (性空)'이라 이름하였다. 사심 (死心悟
新:1043∼1114, 임제종 황룡파) 선사에게서 종지를 얻고 오랫동안 화정 (華亭) 에 살았으며
쇠피리를 즐겨 불면서 자재하게 스스로 즐기니 아무도 그 경지를 헤아려볼 수 없었다. 또한
시를 지어 세상 사람들을 일깨우기를 즐겼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도를 배움은 궁성을 지키는 일과 꼭 같아서
낮에는 6적 (六賊) 을 막고 밤에도 초롱초롱 해야 하니
장군과 주장이 호령을 행사하면
창과 방패 움직이지 않고도 태평을 이루네.
學道尤如守禁城 晝防六賊夜醒醒
將軍主將能行令 不動干戈致太平
또 이런 게송을 지었다.
밭갈지 않고 밥먹고
누에치지 않고도 옷입으며
세상 밖에서 맑고 한가롭게 지내니
성군의 시절보다 더 편하네
허나 조사의 관문 빗장을
뚫지 못했거든
모름지기 뜻을 두어
마땅한 곳에 마음을 붙여야 하리.
不耕而食不蠶衣 物外淸閑過聖時
未透祖師關戾子 也須存意着便宜
하루는 대중들에게 알렸다.
“앉아서 죽고 선채로 죽고 하는 일도 수장 (水葬) 하는 것만은 못하다. 첫째는 땔감을 절약
하고 둘째는 뫼구덩이 파는 일을 안해도 되기 때문이니, 손 놓고 그냥 떠나도 아무런 거리
낌이 없다. 누가 내마음 알아줄까. 선자 (船子) 화상*이로다. 그 높은 풍모 천백년 이어지기
어려워 어부가 한 곡조를 부르는 이 없구나."
그리고는 마침내 청룡강 (靑龍江) 으로 가서 나무판을 타고 베돗대를 친 다음 먼곳으로 떠
나가 죽었다. 「보등 (普燈)」
71. 정토를 눈앞에 보다 / 우법사 (愚法師)
우법사 (法鑑恭愚法師) 는 가화 (圈禾) 사람으로 유학 (儒學) 을 버리고 불법에 귀의하였
다. 각고의 노력으로 정진하기 30년에 더욱더 수행에 힘써 하루도 그만둔 적이 없었다. 일찍
이 도잠 (道潛) , 칙장 (則章) 두 스님과 도반이 되었는데 도잠스님은 시를 잘해서 명예를
가까이 했으나 칙장스님과 법사는 빛을 감추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으며 오직 자
기 일에만 힘썼다. 그런던 중에 칙장스님이 먼저 죽고 우법사도 입적할 때가 되자 대중에게
말하였다.
“내 꿈에 신선이 나타나 알려주기를 「그대 도반인 칙장스님은 보현보살의 원행삼매 (願行
三昧) 를 얻어 이미 정토에 가서 났다. 그곳에서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되는데 어찌 머뭇거
리는가'라고 하였다. 이어서 정토의 거룩한 모습과 여러 가지 꽃이며 음악이 모조리 눈앞에
나타나더라."
그리고는 게송을 지어놓고 돌아가셨다.
허공 속에 온갖 꽃이 그물처럼 피었고
꿈 속에 칠보연못이 보이네
서방정토 돌아가는 길 편안히 밟으니
다시는 한 점의 의심도 없구나.
空裏千花羅網 夢中七寶蓮池
踏得西歸路穩 更無一點狐疑 「행업기 (行業記)」
72. 수식관 (數息觀) / 소동파 (蘇東坡)
소동파 (蘇東坡) 가 말하였다.
“배가 고프거든 비로소 밥을 먹되 배부르기 전에 그만 먹어야 한다. 산보하고 거닐며 배를
꺼트려 배가 비게되면 조용한 방에 들어가 단정히 앉아 생각을 고요히 하고 내쉬고 들이쉬
는 숨을 센다. 하나에서 열까지 열에서 백까지 세어 수백에 이르게 되면 이 몸은 우뚝해지
고 이 마음은 고요해져 허공과 같아지니, 번거롭게 금기하고 다스릴 일이 없어진다. 이렇게
오래 하다 보면 한 숨이 스스로 머물러 들어가지고 나가지도 않을 때가 있다. 이 때 이 숨
이 8만4천의 털구멍을 통해서 구름이 뭉치듯, 안개가 일듯하는 것을 깨달아 무시 이래의 모
든 병이 저절로 없어지고 모든 업장이 소멸된다. 마치 눈먼 사람이 홀연히 눈을 뜨듯 저절
로 밝게 깨달아, 이 때가 되면 남에게 길을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전 (大全)」
73. 대지율사 (大智律師) 의 행적
영지사 (靈芝寺) 원조 (元照:1048∼1116) 율사는 전당 (錢塘)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숙세의
인연이 익어져 나이 열여덟에 경에 통달하여 출가하였으며, 사미로 있을 때 이미 대중을 위
해 경을 강의하였다. 계율을 배우면서는 배울만한 스승이 없다고 늘 탄식하였다. 당시 신오
처겸 (神悟處謙) 법사는 천태의 도를 깊이 터득하고 있었다. 율사가 찾아 뵙고는 v참으로
나의 스승이시다" 하고 청을 해서 문하에 있게 되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춥거나
덥거나 날마다 몇 리 길을 걸어와 배웠다. 처겸법사는 강론을 할 때마다 반드시 율사가 도
착하기를 기다렸다. 어쩌다 조금 늦어져 대중들이 시간이 지났다고 강론을 청하면 언제나
“강을 들을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했으니 그는 이토록 율사를 사랑하였다.
율사가 익혀왔던 것을 버리고 법사를 따르려 하니 법사가 말하였다.
“요즘 들어서 율의 가르침이 점점 약해지는데 그대는 뒷날 반드시 종장이 될 것이니 꼭 법
화 (法華) 를 밝히고 사분율 (四寶律) 을 널리 펴도록 하여라. 나의 도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율사는 마침내 많은 종파를 널리 연구하고 그 중에 율을 근본 삼았는데 단지 말로만 하지
않고 실천에 옮겼다.
일찍이 남산 도선 (南山道宣) 율사에게 귀의하여 하루 여섯 차례씩 예배를 드리고 밤낮으로
도를 닦았다. 발우를 들고 걸식을 다녔는데 옷이라고는 큰 베옷 하나만 걸쳤을 뿐이었고, 정
오가 지나서는 밥을 먹지 않았다. 발우 하나와 옷 세벌 뿐 바랑 속에 쓸데없는 물건은 없었
다.
기도를 하면 언제나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 메뚜기를 없애달라고 빌면 메뚜기가 경계 밖으
로 떠나고, 비가 오게 해달라고 빌면 장마비가 내렸다. 술고방공 (術古龐公) 이 율사에게 비
를 빌도록 명하였는데, 축원 〔懺〕 이 입에서 끝나기도 전에 천둥이 치며 소나기가 쏟아지
니 공이 말하였다.
“우리집안은 대대로 불법을 섬기지 않았는데 지금 율사를 만나고 보니 귀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태사 (太師) 사월왕 (史越王) 이 율사의 비 뒷면에 이렇게 썼다.
“유학을 하는 사람은 유학으로 자기를 묶고, 계율을 하는 사람은 계율로 자기를 묶는 것이
공부하는 이들의 큰 병통이다. 그런데 유독 율사만은 3천 가지 몸가짐과 8만 가지 세세한
행을 갖추어 흠잡을 데 없는데도 늘 정혜 (定慧) 의 테두리를 껍질벗듯 초탈하였으니 율장
중에 진짜 법왕의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수백년 뒤까지도 사람들을 분발케 하니, 그를 남산
율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평가하나 그 공은 배가 된다고 하겠다.
만일 지난날 율사에게 하여금 승복을 입게 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유교의 우두머리로서 특
출난 조예를 가진 사람이 되었을 터인데, 아까운 일이다."
율사가 돌아가신 지 26년이 되도록 그 남긴 향기가 없어지지 않자 조정에서는 「대지율사
(大智律師) '라는 호를 내리고 탑을 ‘계광 (戒光) '이라 이름지어 시호를 하사하는 은혜를
주었다. 이 일은 유공 (劉公) 의 글에 언급되지 않았기에 비의 뒷면에 써둔다."
「탑명 (塔銘)」
74. 대혜 종고선사의 행적
대혜 종고 (大慧宗曠:1088∼1163) 선사가 담당 준 (湛堂文準:1061∼1115) 스님을 찾아가니
준스님은 도에 들어가는 지름길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선사가 제멋대로 생각하며 물러섬
이 없자 준스님은 “그대가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알음알이로 이해하려는 데 병통이 있기 때
문인데 이것이 바로 소지장 (所知障) 이라는 것이다"라고 꾸짖었다.
당시 뛰어난 선비였던 이상노 (李商老) 가 준스님을 찾아뵙고 도를 묻고 있었는데 마침 선
사가 이런 말을 하였다.
“도는 신령하게 깨달아야 하며 그 묘는 마음을 비우는 데 있다. 이를 체험하는 데에는 총
명함이 필요치 않고 이를 얻는 데는 보고 들음을 훌쩍 뛰어넘어야 한다."
그러자 이상노가 무릎을 치고 감탄하며 “어찌 사고 (四庫) 의 책을 다 읽고 나서야 학문을
했다고 하겠는가"라고 하였으며, 이 일로 두 사람은 도반이 되었다.
준스님이 입적하자 선사는 승상 무진거사 (無盡居君, 張商英:1043∼1121) 를 찾아가 준스님
의 탑명 (塔銘) 을 부탁하였다. 공은 평소 선공부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어서 대단한 지견을
갖춘 사람이 아니고는 감히 그의 문턱을 오르지도 못했다. 선사는 그를 만나 대화하는데 탁
월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공이 이를 보고는 “자네의 선은 격식을 넘어섰네"라고 칭찬을
하니, 선사가 “그래도 스스로는 긍정하지 못하겠는 데야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자, 공이
“그대는 천근 (川勤:원오극근) 스님을 만나보면 될 것 같소"라고 하였다.
이에 선사는 서울 천녕사 (天寧寺) 로 원오 극근 (圓悟克勤:1063∼1135) 스님을 찾아갔는데
원오스님은 마침 법좌에 올라 거량법문을 하고 있었다.
“한 스님이 운문 (雲門文偃) 스님께 묻기를 ‘무엇이 모든 부처님들의 몸이 나오신 곳입니
까?'라고 하니 운문스님께서 ‘동산 (東山) 이 물 위로 간다'라고 하셨는데 만약 누군가 내
게 묻는다면 나는 그에게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전각에 서늘한 기운이 돈다'라고 대
답하겠다."
선사는 여기서 홀연히 앞뒤가 다 끊겼다. 그리하여 움직임 〔動相〕 은 생겨나지 않았으나
도리어 깨끗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경계 (淨處) 에 빠지게 되었다. 선사가 방장실에 들어갈 때
마다 원오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이런 경계에 도달한 것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아깝구나! 죽기만 했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니. 화두 (語句) 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로다. 듣지 못했는가. 깍
아지른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고 스스로 긍정해야 맨 끝에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이렇게 되
면 그대를 속일 수 없으니 이런 도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한번은 방장실 〔東山五祖法演의 처소〕 에서 원오스님이 묻기를 “있다는 말 〔有句〕 과
없다는 말 〔無句〕 이 등넝쿨이 나무에 기대 있는 것과 같으니 입을 열고 말을 했다 하면
틀립니다"라고 한 일이 있었다.*
선사가 하루는 손님과 함께 저녁밥을 먹는데 젓가락을 손에 잡고도 먹는 것을 잊고 있으니
원오스님이 웃으며 손님에게 말하였다.
“저놈은 회양목선 (黃楊木禪:꼭 막혀 융통성 없이 선공부 하는 것을 잘 자라나지 않고 딱
딱한 회양목에 비유한 말) 을 참구해 터득했다오."
대혜선사가 분개하며 물었다.
“스님께서는 지난 번 오조스님께 ‘등넝쿨이 나무에 기대 있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는데
오조스님께서는 무어라 대답하셨습니까?"
“‘묘사하려 해도 묘사할 수 없고 그림으로 그리려 해도 그릴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또 묻기를, ‘나무도 자빠지고 넝쿨도 말라버리면 있다 없다 하는 그 말은 어디로 돌아갑니
까?'라고 하니 오조스님은 ‘서로 따라오느니라' 하셨다."
선사는 여기서 “나는 알았다!"라고 외쳤다. 이때부터 마음이 확 트여 응어리지고 막히는 곳
이 없었다. 그후 얼마 안되어 길을 떠나 강서지방을 가다가 대제 (待制) 한자창 (韓子蒼)
을 만나 유학과 불학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는데, 한자창이 깊이 탄복하여 선사는 그의 서
재에 반년을 묵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서로 인사하는 외에 때가 아니면 강론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길을 가는 데 선후를 사양하는 일이 없고 앉을 때에도 주인자리 손님자리를 따지
지 않았다. 너와 나를 서로 잊고 마음 속에 있는 것까지 다 쏟아 놓으며 하루도 법락을 맛
보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후 승상 장위공 (張魏公:張商英) 의 청으로 경산 (徑山) 에 주지하니 천하의 납자들이 모
여들어 따르는 대중이 2천 명이나 되었다. 선사는 청규 (淸規) 로 대중들을 묶지 않는 것은
아니나 자율에 맡기기도 하였다. 납자들이 불법의 요의를 서로 따지다가 혹 기분이나 이론
이 맞지 않아 선사 앞에서 다투는 일이 있으면 그때마다 선사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결
정을 지어주지 않고 으레 담당자를 보내서 쫓아내버렸다. 당시 유나 (維那) 로 있던 소진
(紹眞) 스님은 촉 (蜀) 땅의 선비였는데 선사가 명을 내리면 잠만 자면서 그대로 시행하지
않고 심지어는 그들에게 산 유람을 하도록 하였다. 이 일이 나중에 선사에게 알려지니 선사
는 “이 묘희 (妙喜:대혜의 호) 의 용상굴 (龍象屈) 이 아니면 어떻게 이러한 열중 (悅衆:대
중을 통솔하는 직무) 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칭찬하였다.
형중온 (曉瑩仲靜:임제종 대혜파) 이 말하였다.
“선사는 뜻이 크고 의리를 좋아하였으며 취향과 식견이 고명하였다. 성격은 비록 급했으나
도량은 실로 너그러워 성이나서 꾸짖는 가운데도 사실은 자비로움이 있었다. 대중 가운데
계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명령대로 거행케 하지만 한번도 사람을 다치게 하
거나 물건을 상하게 할 마음은 없었으니 선사가 소진유나를 칭찬한 이유에는 깊은 뜻이 있
는 것이다. 뒷사람들이 거울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속전 (正續傳)」
75. 금강경 송 (頌) / 야보천 (冶父川) 선사
야보산 (冶父山) 도천 (道川) 선사는 소주 (蘇州) 출신으로 활 쏘는 사람이었다. 숙세에
심어진 인연으로 선법 듣기를 좋아해서 늘 경덕사 (景德寺) 겸 (謙) 선사를 찾아뵙고 법을
물었는데, 겸선사는 조주선사가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 하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새벽부
터 밤까지 참구만 하면서 이 때부터 직무도 수행하지 않으니 위관 (尉官) 이 화가 나서 곤
장을 쳤는데, 그는 곤장을 맞는 순간 홀연히 깨쳤다. 이에 겸선사가 그의 이름을 고쳐주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까지 적삼 (狄三) '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도천 (道川) '이라고 이름지어 주
겠다. 지금부터 등뼈를 곧추세워 더욱 더 정진한다면 그 도가 시냇물처럼 불어날 것이나, 조
금이라도 방심하면 말할 가치도 없게 될 것이다."
도천선사는 그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뜻과 서원을 바꾸지 않았다.
한번은 금강경 (金剛脛) 에 송 (頌) 을 달았는데 지금도 세상에 유행되고 있다. 야보산에서
법을 열어 동짓날 대중법문을 하였다.
“모든 음 (陰) 이 꺼지니 하나의 양 (陽) 이 생겨나 초목과 수풀에 모두 새싹이 움트는데,
오직 납승의 밑없는 발우에는 여전히 밥도 담고 국도 담는다." 「주봉집 (舟峰集)」
76.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들다가 / 덕산 연밀 (德山緣密) 선사
덕산 연밀 (德山緣密:운문종) 선사의 회하에 한 선승이 있었는데, 공부가 매우 예리하였다.
그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들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깨달은 바가 없었다. 하루
는 홀연히 해 만큼이나 커다란 개머리가 입을 벌리고 자기를 잡아먹겠다고 덤벼드는 것을
보고는 겁이 나서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옆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자세히 이야기해 주고
는 마침내 덕산선사에게 아뢰니 덕산선사가 말하였다.
“두려워할 것 없다. 단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렸다가 개가 입을 벌리거든 그때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거라. 그러면 없어질 것이다."
그는 가르쳐준대로 앉아 있었다. 밤중이 되어 개가 다시 나타나자 머리로 힘껏 한번 부딪쳤
다. 그랬더니 그것은 궤짝 속이었다. 이에 확연히 깨닫고 뒷날 문수사 (文殊寺) 에 나아가
불도를 크게 떨쳤는데, 이분이 바로 응진 (應眞) 선사다.
77. 곳곳마다 고향 신조 / 본여 (神照本如) 법사
신조 본여 (神照本如:982∼1051) 법사가 법지 (法智:四明知禮를 말함) 존자에게 물었다.
“무엇이 경 (脛) 중에서 왕입니까?"
“그대가 나를 위해 3년동안 창고소임 〔庫事〕 을 맡아 보면 그대에게 말해주겠다."
본여법사는 공경히 그 명을 받들다가 3년이 지나자 이제는 말씀해 주십사 하고 다시 청하였
다. 법지존자가 큰소리로 “본여야!" 하고 부르자 그 한소리에 홀연히 깨닫고는 송을 지었
다.
곳곳에서 돌아갈 길 만나고
곳곳마다 그곳이 고향일세
본래 다 완성되어 드러나는 것을
하필 사량을 기다리랴.
處處逢歸路 頭頭是故鄕
本來成見事 何必待思量 「교행록 (敎行錄)」
78. 돌배나무 무위 (無爲) 를 본받다 / 사암 엄 ( 庵嚴) 법사
사암 엄 ( 庵嚴:1020∼1101) 법사는 경시 (脛試) 를 거쳐서 출가하여 동산 신조 (東山神
照)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신조선사는 큰그릇이라고 여겨 “우리 종문에 사람을 얻었으니
앞으로 종문이 실추되지 않겠구나" 하면서 그를 윗자리에 앉혔다.
법사는 단지 경을 강하는 것만을 제일로 치지 않고, 말을 하거나 묵묵히 있거나, 모든 처신
을 반드시 법도에 맞게 하였다. 당시 법진 (法眞:법진 처함) 스님이 지관 (缺觀) 의 부사의
경 (不思議境) 을 물으니 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법은 오직 한 마음일 뿐이어서 마음 밖에 별다른 법이 없는데 이 마음법 〔心法〕 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을 묘삼천 (妙三千) 이라 합니다."
얼마 있다가 법진스님이 동액 (東:궁궐 안에 있는 절) 으로 거처를 옮기며 주지를 사임하게
되자, 법사에게 명하여 뒤를 잇게 하니 법사가 말하였다.
“옛날 지자 (智者) 대사는 나이 50이 되기 전에 문도대중을 흩어버렸고, 사명 (四明) 대사
는 40이 되자 장좌불와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늙어서 한가하게
주지를 맡겠습니까."
그리하여 끝내 받지 않고 영취산 동쪽 봉우리에 은거하였는데, 그곳에 아기위나무가 한그루
있어 그 옆에 암자를 짓고 「사암 ( 庵) '이라 이름하였다. 암자의 기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내 나이 60에 산에 돌아와 암자터를 잡았다. 암자가 다 되어 그 속에서 요양이나 하고
지내면서, 그렇다고 세상살이를 지나치게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다. 암자 서쪽에 아가위나
무 한그루가 있어 그 이름을 따서 암자 이름을 지었는데, 아가위란 맛이 좋다고 이름난 과
실도 아니고 배나 밤에 비하면 부끄럽게 생겼다. 그러나 배는 그 시원한 맛 때문에 칼에 베
어지고 밤은 그 단맛 때문에 입에 씹히게 되니, 설혹 배와 밤에게 식성 (識性) 을 부여해서
그들 스스로 쓸모없는 곳에 있게 해달라고 해도 그것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저 아가위는 돌배의 종류에 속하는 것이어서 비록 향기는 있어도 맛이 떫다. 억지로
씹으려해도 향기로는 배를 채울 수 없고 떫은 맛은 입을 상쾌하게 할 수 없으니, 삼척동자
라도 이것을 찾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주렁주렁 가지에 매달려 스스로 만족하는 그 모습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 사람은 지혜 때문에 자기 뼈를 고단하게 하고 아가위는 떫은 맛 때문에 그몸이 편안하
니, 지혜와 떫은 맛 중에 어느것이 참된가? 나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아가위와 이웃이 되었
다."
법사는 몸에 필요한 물건이라고는 오직 작은 발우 하나 뿐이었고, 아침 점심의 밥은 오직
세가지 흰것 〔三白:밥과 무우와 소금〕 뿐이었다. 이렇게 혼자 살기를 20년, 문을 닫고 좌
선하니 세상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었다. 계율의 조목들은 경중을 막론하고 똑같이 지켰으
며, 생활용구는 문빗장 같은 자질구레한 것에 이르기까지 깨끗하게 하였다. 그리고 적막함에
자족하며 오로지 정토에 왕생할 것을 기약하였다.
하루 저녁은 꿈에 못에서 큰 연꽃이 피어나고 하늘 음악이 사방에서 줄지어 들려왔다. 법사
는 “이것이 내가 왕생할 정토의 모습이다" 하였는데, 그후 7일만에 과연 돌아가셨다.
「행업기 (行業記)」
79. 세속의 명리를 좇다가 덕을 잃다 / 무명씨 (無名氏)
예전에 고승 한 분이 있었는데 도와 학문이 높아 불교집안의 존경을 받았다. 만년에 황제
의 명을 받고 주지가 되어 황제에게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런데 그가 임종할 때 황제가 몹
시 슬퍼하며 조서를 내려 장례를 치르도록 하니, 신하가 그 스님은 옷과 발우가 너무 많아
서 관청에 소송당했다고 말하였다. 황제는 불쾌하게 생각하였고 돌보아주려던 장례도 마침
내 그만두었다.
이에 소운 (少雲) 이 말하였다.
“아깝구나! 세상 명리가 그의 이름을 덮어버리고 덕을 잃게 하였다. 지금 많은 재물을 쌓
아두고 또 긁어모으는 사람들이여, 어찌 삼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운잡편 (雲雜編)」
80. 목욕탕에서 한 법문 / 무명씨 (無名氏)
옛분이 목욕실에서 게송으로 법문을 하였다.
“본래부터 비린내, 누린내 나는 것이 임시 모여서 이루어진 몸이라. 가죽과 털, 진액과 기
름기가 끊임없이 생겨나니 설사 바다를 기울여 아침내내 씻더라도 나귀해 〔瘻年:간지에도
없는 해〕 가 될 때까지 깨끗해질 줄 모르리. 몸에서 일어나는 때는 그래도 잘 씻겨 나가지
만 마음은 욕심경계를 따라가 더더욱 물이 든다. 불쌍하구나, 근원을 잊은 세상사람들이여,
한갓 피부만 씻을 뿐 마음은 씻지 않는구나. 물통 가득 넘치는 더운 물, 큰 국자로 씻는데도
시주들은 이익이 늘 것만을 바란다. 뒷 생에 자기가 온 곳을 모른다면 복이 수미산 같아도
선 자리에서 녹아짐을 보리라." 「호심석각 (湖心石刻)」
81. 먹고 쉴틈도 없이 화두를 들다 / 분암주 (寶庵主)
분암주 (寶庵主) 는 어찌나 열심히 도를 닦았던지 밥먹고 쉬고 할 틈도 없었다.
하루는 돌난간에 기대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들고 있었는데,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서 한참 후에 옷이 젖자 비가 온 줄을 알았다.
그후 강가를 걸어 가다가 “시랑 (侍郞) 행차시오!" 하는 계사 (階司) *의 고함 소리를 듣
고서 홀연히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몇해나 그 일이 가슴에 걸렸던가
사방에 다 물어도 눈을 못떴네
이때 간이고 담이고 다 찢어지는데
강가에서 시랑 행차시오 하는 한마디를 들었네.
幾年箇事 ♠懷 問盡諸方眼不開
肝膽此時俱裂破 一聲江上侍郞來
이때부터 처소에 매이지 않고, 검문산 (劍門山) 에 암자를 짓고 살았는데, 그 교화가 영
(嶺) 밖에까지 미쳤다. 게송을 지을 때는 붓이 달리듯 하였는데, 자신의 초상화에 스스로
글 (題) 을 달았다.
모습은 비구지만 말씨는 고약해
어리석고 취한 듯 하나 성격만은 호탕하다
바람 불 때도 욕하고 비가 올 때도 욕하지만
자비로 치면 성인인지 범부인지 더듬기 어렵도다
매일 다리 〔橋〕 가엔 똑같은 사람인데
세상에 왕랑, 백락* 같은 사람 없어서
일생을 헛 보내고 말았구나.
面目兜搜 語言薄惡
癡癡 磊磊落落
罵風罵雨當慈悲
是聖是凡難摸索
每日橋頭橋尾等箇人
世無王良伯樂 一生空過却 「은산 (隱山)」
82. 밤낮으로 참구하다 / 영원 유청 (靈源惟淸) 선사
영원유청 (靈源惟淸:?∼1115, 임제종 황룡파) 선사는 남주 (南州) 무녕 (武寧) 사람으로
맑은 용모를 가진 분이었다. 학문을 좋아하여 지칠줄을 모르니, 태사 (太史) 황정견 (黃庭
堅) 은 “유청스님이 학문을 좋아함은 마치 기갈든 사람이 음식을 찾듯 한다"라고 하였다.
선사는 회당 (晦堂祖心) 선사에게 귀의하여 밤낮으로 참구하느라 자고 먹는 것도 잊을 지경
이었다. 한번은 회당스님이 손님과 이야기하는 차에 모시고 서 있었다. 손님 간 지가 한참
되었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으니 회당선사가 “유청스님은 죽었는가?"라고 하자 이
에 느낀 바가 있었다.
유청선사가 불감혜근 (佛鑑慧懃:1059∼1117) 선사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두 군데 주지로 있으면서 늘상 동산 (東山, 五祖法演) 사형의 편지를 받았는데 이
제껏 세속 일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그저 간절히 부탁하는 일은 자기 몸을
잊고 우리 불도를 널리 펴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제가 황룡산 (黃龍山) 에 도착했을 때 받은 편지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금년에는
날이 가물어 제방 농장에서 손해를 입었지만 나는 이 일을 조금도 근심하지 않는다. 오직
근심스러운 것은 선가에 안목있는 이가 없는 일이다. 이번 하안거에 백여명이 선방에 들어
와 조주스님의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는 화두를 들고 있는데, 한 사람도 깨친 자가 없으니
이것이야 말로 걱정거리다.'
이것은 참으로 지극한 말씀입니다. 절 살림살이가 갖춰지지 않은 것을 근심하고 관리들에게
밉보여 추궁당할까봐 겁을 내며, 명성이 올라가지 않을까, 문도대중이 많지 않을까를 걱정하
는 사람들과는 실로 거리가 먼 분입니다." 「정강필어 등 (汀江筆語等) 」
83. 49일 동안 서서 공부하다 / 불등 수순 (佛燈守珣) 선사
불등 수순 (佛燈守珣) 선사는 삽천 (川) 사람인데 오랫동안 불감 혜근 (佛鑑慧懃) 선사에게
귀의해서 공부하였다. 대중에 섞여 살며 법을 묻곤 하였는데, 까마득하여 아무것도 깨달은
바가 없자 갑자기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이 생에서 철저하게 깨닫지 못한다면 맹세코
이불을 펴지 않겠다." 이에 49일 동안을 노주 (露柱) 에 기댄 채 맨땅 위에 서 있었는데, 마
치 부모 상을 당한 사람 같았다.
한 번은 불감선사가 상당하여 “삼라만상이 모두 한 법에서 도장 찍히듯 나온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순선사는 그 말 끝에 단박 깨달았다. 그리하여 불감선사를 찾아가 만나니 불감선
사가 말하기를 “아깝다! 한 알의 밝은 구슬을 이 지랄병 든 놈이 주웠구나"라고 하였다.
원오 극근 (圓悟克勤) 선사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그가 아직 그런 경지를 얻지는 못했을 것
이라고 의심하였다. 그리하여 “내가 꼭 시험해 봐야겠다" 하고는 사람을 시켜 그를 불렀다.
한번은 같이 산에 갔다가 깊은 못에까지 오게 되었는데 원오선사가 순선사를 물 속에 떠밀
어넣고는 대뜸 물었다.
“우두 (牛頭法融) 스님이 4조 (四祖道信) 를 만나지 않았을 때는 어땠는가?"
순선사가 허우적대면서 말하였다.
“못이 깊으니 고기가 모입니다."
“만난 뒤에는 어땠는가?"
“나무가 높으니 바람을 부릅니다."
“만나지 않았을 때와 만난 뒤에는 어떤가?"
“다리를 뻗는 것은 다리를 오므리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에 원오선사가 매우 칭찬하였다. 「주봉어록 등 (舟峰語錄等)」
84. 선원없던 곳에 선원을 세우다 선섬 / (善穢) 선사
수주 (秀州) 선섬 (開善善穢) 선사는 다섯 살에 벌써 빼어난 기질을 보였다. 그리하여 그
의 어머니가 특별하다고 여겨 자성사 (資聖寺) 로 보내 출가케 하니, 선사는 여러 곳의 선원
을 두루 둘러보고 돌아왔다. 그런데 수주 (秀州) 에는 그때까지 선원이 없었고, 주지로 올
사람을 기다리자니 그때까지 자리가 빌 형편이었다. 선사는 머물던 절을 선원으로 고치고
제방 선림의 청규를 그대로 시행하며 절 살림을 주관하였다.
당시 오중 (吳中) 의 승려들은 자리에 질서를 잃어 세력의 고하로 자리를 정하고 계율이나
덕행은 조금도 따지지 않았다. 선사는 이를 개탄하고 글을 올려 관가에서 다스려 줄 것을
구하여 그 일을 바로잡은 적이 있다. 선사가 명교 숭 (明敎契) 선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도를 가지고 그다지 세상 사람들을 지혜롭게 하지도 못했고 덕행 또한 보잘 것 없으
니 윗 성인들께 부끄럽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법을 어지럽히는 것을 구차하게 참고 보고만
있으니 이것이 더욱 부끄러운 일입니다."
설숭선사가 말하였다.
“그렇게 겸손해 할 것 없다. 종문의 묘한 도에는 다다른 사람이 드물고, 출세간 수행의 극
치인 12두타 (十二頭陀) 는 우리 스님네들도 하기 어려운 수행이다. 법을 위해 분연히 몸을
돌아보지 않는 일도 역시 사람으로서 하기 어려운 일인데, 선사는 이 모든 것을 체득해서
행하니 무엇이 부끄럽단 말인가?" 「영당기 (影堂記)」
85. 선문 (禪門) 에서 정토수행도 아울러 하다 / 원조 종본 (圓照宗本) 선사
원조 종본 (圓照宗本:1022∼1099) 선사는 상주 (常州) 사람인데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여 겉
치레를 일삼지 않았다. 천의 회 (天衣義懷:936∼1064, 운문종) 선사에게 귀의하여 헤진 옷에
때 묻은 얼굴을 하고, 물긷고 방아찧고 밥짓는 일을 맡아보았다. 낮에는 스님네들의 뒷바라
지에 쫓아다니고 밤이면 새벽까지 좌선하며 고생을 무릎쓰고 정진하였는데 조금도 흐트러짐
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행하면서 대중의 일도 맡고 있으니 정말 수고가 많습
니다"하니 선사는 한 법이라도 버리면 원만한 공부라 할 수 없다. 결단코 이 생에서 이 몸
으로 깨치려는데 감히 고단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서광사 (瑞光寺) 에 주지 자리가 비어서 선사에게 주지하도록 명하였다. 그곳에 이르러 북을
치니 대중이 모였는데 갑자기 북이 땅에 떨어져 떼굴떼굴 구르면서 크게 울렸다. 한 스님이
선사의 이름을 부르면서 “이것은 화상의 우뢰 같은 법음이 땅을 진동할 상서로운 징조입니
다"라고 하였는데 어느덧 그는 온데간데가 없었다. 이때부터 선사의 법석은 큰 성황을 이루
었다. 그 후에 여러 절에서 다투어 선사를 맞이해 갔고 만년에는 정자사 (淨慈寺) 에 주지하
였다. 영지사 (靈芝寺) 의 조 (元照) 율사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데, 조율사가 법의를 주었
더니 선사는 종신토록 법좌에 오를 때면 언제나 그 법의를 입었다.
동도사 (東都寺) 의 희법사 (6法師) 가 정 (定) 에 들었을 때 정토를 본 일이 있었다. 그곳
연꽃에 금으로 된 글자로 ‘항주 영명사 비구 종본의 자리'라고 크게 씌어 있었다. 희법사
가 그 일을 이상하게 여겨 각별히 찾아가 예를 올리고 물었다.
“선사께서는 교외별전의 종 (宗) 인데 어찌하여 정토에 자리가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내가 비록 선문 (禪門) 에 있지만 늘 정토수행도 아울러 했기 때문이다."
「업등기 (業等記)」
86. 행주좌와에 생사를 살펴라 / 앙산 원 (仰山圓) 선사
앙산원 (仰山圓) 선사는 우강 (旴江) 사람이다. 구족계를 받고 나서 도를 배우기로 용단을
내렸는데, 묘희 (妙喜) 선사가 매양 (梅陽) 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찾아가 귀의하였
다. 거기서 열심히 밥짓고 부엌일을 하며 각고의 정진을 하였다. 묘희선사는 그의 예리하고
빈틈없는 식견을 보고 남다르다고 여겼다. 한번은 소참 (小參) 때 묘희선사가, ‘범부의 법
을 가졌으면서도 범부를 모르고 성인의 법을 가졌으면서도 성인을 모르니, 성인을 알면 그
가 바로 범부요 범부를 알면 그가 바로 성인이다' 하신 수산주 (修山主) 의 말씀을 들려주
었는데, 앙산선사는 이 말을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에 구주 (衢州) 상부사 (祥符寺) 에 주지하다가 원주 (袁州) 의 앙산 (仰山) 으로 옮
겼다. 거기서 일을 맡아본 지 7일 만에 선문 (禪門) 의 고향례 (告香禮:스승에게 향을 사르
며 설법을 청하는 예) 를 하게 되어 수좌가 대중을 이끌고 일제히 절을 올린 다음 법을 청
하였다.
“생사란 큰 일이고 죽음은 신속히 찾아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자비로서 인연을 열어 보
여 주십시오."
원선사는 천천히 말하였다.
“생사대사를 밝히고자 한다면 바로 행주좌와하는 가운데서 「생은 어디서 왔으며 사는 어
디로 가는가. 결국 생사란 어떻게 생겼는가'를 살펴보아야 하느니라."
그리고는 한참을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더니 이윽고 그대로 몸을 벗었다.
「행장 (行狀) 」
87. 진여철 (眞如喆) 선사와 양기 회 (楊岐會) 선사에 대한 평 / 대혜 (大慧) 선사
대혜 (大慧) 선사가 말하였다.
“근대에 주지살이 잘한 사람으로는 진여 철 (眞如慕喆) 선사 만한 분이 없고, 총림을 잘 보
필한 사람으로는 양기 회 (楊岐方會) 선사 만한 분이 없다. 자명 (慈明:양기선사의 스승) 선
사는 성품이 진솔하기는 하였으나 일처리를 대강하는 경우가 있었고, 꺼리고 피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양기선사는 자기 몸을 잊고 스승을 모셨는데, 어디 빈틈이라도 있을까가 오
로지 걱정거리였다. 심한 추위와 더위가 닥쳐와도 한 번도 자기 일을 급하게 여긴다거나 얼
굴에 태만한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남원사 (南源寺) 에서 흥화사 (興化寺) 까지 30년을
자명선사의 대 (代) 가 다 끝나도록 30년을 이렇게 총림의 기강과 계율을 다잡았다.
진여선사란 분은 행장을 챙겨 행각할 때부터 세상에 나가 문도를 거느릴 때까지, 법을 위해
서라면 자기 몸을 잊기를 기갈 든 사람보다 더하게 했다. 경황 중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
고 정신없이 말하는 일이 없었으며 온 방안을 말끔히 하고 고요함을 즐겼다. 선사가 한번은
이렇게 말하였다. 「납자로서 안으로 고명하고 원대한 식견이 없고 밖으로 엄한 스승과 좋
은 도반이 없다면, 그런 중에 그릇이 될 사람은 거의 없다.'
아! 두 분 스승이야말로 천년토록 후배들의 아름다운 모범이 될 것이다."
「여서선서 (與西善書)」
88. 어머니의 충고 / 석총 법공 (石 法恭) 선사
석총 법공 (石 法恭:1102∼1181, 조동종) 선사는 도행이 뛰어나고 재주와 역량이 대단했
다. 오랫동안 천동사 (天童寺) 의 굉지 (宏智正覺) 선사에게 귀의하여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맡아보며 지냈다.
하루는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께 인사드렸는데 어머니가 말하였다.
“네가 행각하는 것은 본래 생사를 해결해서 부모를 제도하기 위함이었는데,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맡아보고 있구나. 어쨌든 인과를 밝히지 못한다면 그 화가 지하에 있
는 나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법공선사가 말하였다.
“저는 절 재산에 대해서는 털끝만큼도 속임이 없습니다. 등불 하나까지도 피차의 용도를
분명히 하고 있으니 염려마십시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물 건너가는 데 발이 젖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였다.
「이운록 (怡雲錄)」
89. 불교의 효 (孝)
태산(泰山) 과 화산(華山) 도 편편하게 할 수 있고 음식은 안 먹을 수도 있지만 효도는 잊
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큰 효도는 천지 일월과 같아서 운행을 쉬지 않는다.
대계 (大戒) 에 “부모와 스승 〔師僧〕 께 효순하라" 하여 효를 승려의 계율로 이름지웠으
니, 효를 잊어버릴 수가 있겠는가. 머리깎고 삼보 속에 속한 우리들은 빈부귀천을 물을 것
없이 반드시 도를 숭상하고 효를 숭상해야 한다. 물어보아서 부모를 봉양할 친속이 없으면
부처님은 의발의 한 부분을 덜어 봉양하도록 허락해 주셨다. 그러니 몸소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자는 우리 불교 집안 사람이 아니다. 「총림공론 (叢林公論)」
90. 유교의 장부, 불교의 장부 / 목암 유붕 (牧庵有朋) 법사
목암 유붕 (牧庵有朋) 법사는 무주( 州) 금화(金華) 사람이다. 거계 경 (車溪擇卿:?∼1108)
법사를 찾아 뵙고 생사대사를 밝힌 뒤, 여러번 큰 절의 주지가 되니 학인들이 뒤질세라 모
여들었다. 법사는 강론할 때마다 미리 주석서를 읽어보는 일이 없었고, 시자에게 주제를 뽑
으라 하여 선 자리에서 술술술 막힘없이 설명하였다.
한번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문도들을 지도한 이래 마하지관 (摩缺觀) 을 일곱번 논강하였는데, 정작 정수 (正修)
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입을 열어 한 일이 없다."
또 말하였다.
”나는 대부(大部)의 경론 가운데서 조그만한 문제를 내려할 때도 종이쪽지 만한 정도의 글
도 만들 수 없다. 이것을 일러‘문자의 성품을 여읜 그것이 바로 해탈이다'라고 하는 것이
다."
만년에는 명주 (明州) 연경사 (延慶寺) 에 주지하였다. 하루는 법좌에 올라 ‘조어장부 (調
榮丈夫) '에 대해 강을 하는데 홀연히 몇 사람의 사대부가 찾아와 법사의 법문을 들었다. 법
사가 말하였다.
“유교 (儒敎) 의 장부를 논할 것 같으면 충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사는 삶을 돌아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에 큰 일을 이루고 희대의 명성을 얻게 되며 마침내는 명리와
성색에 빠지지 않으니, 이런 사람을 장부라 한다. 그러나 우리 불교 (佛敎) 에 있어서는 일
심3관 (一心三觀:천태지관의 관법, 空觀 假觀 中觀) 으로 나룻배를 삼고 5회 (五悔:예불, 참
회, 권청, 수희, 회향을 하는 행법) 로 노를 삼아 모든 마군을 항복시키고 외도를 누르는 자
를 장부라 이름한다."
사대부들은 이 말을 듣고 감탄하며 떠났다. 「임분론 (林寶論)」
91. 천태의도가 사명 (四明) 존자 때문에 망할 것이다 /무외 구 (無畏久) 법사
무외 구 (無畏法久:?∼1163) 법사는 여조 (餘) 사람이다. 혜각 옥 (慧覺玉) 스님에게 귀의하
여 종지를 얻고 훗날 두루 선법회를 찾아다니며 공부하였다. 언젠가는 경산 (徑山) 불일
(佛日;大慧) 선사의 방장실에 간 적이 있었다. 불일선사는 밤에 앉을 때면 반드시 법사를 불
러 천태 (天台) 의 이론과 능엄경 (磅嚴脛) 의 요지를 설하라고 명하고는 깊이 대우를 하였
다.
세상에 나가 청수사 (淸修寺) 에 주지하니 학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법사는 후생들이
독방을 쓰면서 멋대로 할까봐 근심하여 방을 헐어 대중방을 만들었다. 또한 깨끗한 책상과
밝은 창문·이불·선판 (禪板) 등이 물을 뿌린 듯 깨끗하여 옛 총림의 풍모가 있었다. 법사
는 강론하던 차에 학인이 글귀에 집착하여 틀린 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는 탄식하며 말하였
다.
“천태의 도는 사명 (四明知禮:960∼1028) 존자에 의해서 흥했으나 또한 사명존자 때문에
망할 것이다. 성인이 다시 나오지 않고는 누가 이것을 지켜줄 수 있단 말인가!"
이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법사가 진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법사는 타고난 성품이 지혜롭고 예리하였으며 물 흐르듯한 논변과 위엄있는 행동으로 사람
들과 거슬리는 일이 없었다. 평생을 사귀어 온 사람도 법사에게서 기쁜 얼굴이나 노여워하
는 얼굴을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법사는 낮에는 7경 (七脛) 을 공부하고 밤이면 좌선하는
것을 일상으로 삼았으며, 무외암 (無畏庵) 을 짓고 노년을 거기서 보냈다. 「탑명 (塔銘)」
92. 대혜 (大慧) 선사와 굉지 (宏智) 선사
소흥 계해 (紹興癸亥:1143) 년 겨울에 대혜 (大慧宗 :1091∼1157, 조동종) 선사가 왕은 (王
恩) 을 입어 북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衡陽에서 유배생활을 했었다) . 마침 육왕사 (育王
寺) 에 주지자리가 비어 있어서 굉지 (宏智正覺) 선사가 그곳 주지로 천거하였다. 굉지선사
는 대혜선사가 오게 되면 대중이 많아져 반드시 식량이 바닥날 것을 미리 알고 소임자에게
이렇게 일렀다.
“그대는 나를 위해 한해 예산을 서둘러 준비하고 향적 (香積:창고) 의 일용품은 모두 두
배를 비축해 두도록 하라."
소임자는 분부대로 하였다. 이듬해 과연 대혜선사가 오니 대중이 천 명을 넘어 얼마 안되서
창고가 바닥이 났다. 그리하여 대중은 갈팡질팡하고 대혜선사도 어쩔줄 몰라 했다. 이에 굉
지선사가 쌓아 두었던 물건을 모조리 꺼내서 도와주니 모든 대중이 구제를 받았다. 대혜선
사는 굉지선사를 찾아가 “고불 (古佛) 이 아니면 어떻게 이와 같은 역량이 있겠습니까?"
하며 감사하였다.
하루는 대혜선사가 굉지선사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우리 두 사람 다 늙었소. 그대가 부르면 내가 대답하고 내가 부르면 그대가 대답하다가
하루아침 먼저 갑자기 죽는 사람이 있게 되면 남아 있는 사람이 장례를 치뤄 주도록 합시
다."
그 이듬해 굉지선사가 입적하니 대혜선사가 마침내 상을 주관하여 그 약속을 어기지 않았
다. 「설총잡기 (雪 雜記)」
93. 조그만치의 게으름도 용납않다 / 원각사 자 (慈) 법사
원각사 (圓覺寺) 의 자 (慈:원각 온다) 법사는 이론과 수행을 겸비한 사람으로 학인들의 존
경을 받았다. 동액사 (東寺) 에 주지자리가 비어 있어 능 (能) 법사와 문 (文) 법사 두 사람
이 주지로 천거하여 자법사가 그곳으로 가자 법석이 크게 성하였다. 몹시 더운 여름에 강론
을 마치고 방장으로 돌아와 누워서 쉬고 있는데 마침 문법사가 찾아와 말하였다.
“동액사 도량은 대대로 도가 높은 사람이 주지해 왔소. 강을 마치고 나서는 참실 (懺室) 에
있지 않으면 선당 (禪堂) 에 있었지 누워서 멋대로 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소."
자법사가 듣고는 “어찌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고 그 뒤로는 아주 추운 겨울이
나 아주 더운 여름이나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는 일이 없었다. 「초암록 (草庵錄)」
94. 관음보살의 응화 / 마조 (馬祖) 선사
남악 양 (南嶽懷讓) 스님이 육조를 찾아뵈었을 때 육조가 반야다라 (般若多羅:?∼457 중인
도 스님) 의 예언을 소개하면, 그대 (회양) 의 한 가닥 불법이 그대 곁에서 떠나면 이 다음
에 망아지 한 마리가 나와서 천하 사람들을 밟아버릴 것이라고 하였다. 마조 (馬祖道一) 선
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마조선사가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으므로 세상사람들이 그를 관
음보살의 응화라고 하였으며 그가 주지하는 절은 모두 왕이나 대신들이 바친 것이었다.
그곳에 20년 동안 원주를 맡아 오던 사람이 있었는데 절 살림을 관리하면서 문서를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관리가 조사를 하는 통에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우리
스님은 범부인지 성인인지 모르겠다. 20년을 그를 도왔는데 오늘날 이렇게 고통스러운 과보
를 받게 되다니…"라고 생각하였다. 마조선사는 절 안에서 그 일을 알고 시자에게 향을 사
르게 한 다음 단정히 정 (定) 에 들었다. 그러자 원주는 옥중에서 홀연히 마음이 열려 20년
동안 써온 돈과 물건을 한꺼번에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서기에게 명하여 입으로
말하는 것을 받아 적게 하니 계산이 틀림없었다. 「통명집 (通明集)」
95. 말세의 본보기가 될 만한 자비 / 고암 (高庵) 선사
설당 행 (雪堂道行:1089∼1151, 임제종 양기파) 스님이 말하였다.
“고암 (高庵善悟:1074∼1132) 스님은 사람됨이 단정하고 곧으며 매사에 법도가 있었다. 자
기에게는 검소하였지만 남에게는 넉넉하여 누가 병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기 때문에
그런 것처럼 여겼다. 심지어 종이나 마부에 이르기까지 몸소 찾아가 문병하고 그들이 필요
하다고 하는 것을 들어주었다. 그들이 죽게 되면 돈이 있건 없건 예를 다해 장사를 지내주
었으니 그 깊은 자비와 사랑은 참으로 말세의 좋은 본보기다." 「이운록 (怡雲錄)」
96. 참선의 기쁨 황태사 (黃太史)
황태사 (黃太史:庭堅) 가 호소급 (胡少汲:胡直) 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하였다.
“공 (公) 은 제법 공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을 고치는 처방으로는 참선의 기쁨 〔禪
悅〕 을 깊이 맛보아 생사의 뿌리를 밝혀내야 합니다. 그러고나면 기쁨·성냄·근심 같은
것은 발 붙일 곳이 없게 됩니다. 병의 뿌리가 없어지면 가지나 잎새로는 사람을 해칠 수가
없습니다. 투자 총 (投子普聰) 과 해회 연 (海會宗演) 스님도 모두 도행이 높고 깊어 옛 사
람과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은 분들입니다. 만일 그대가 문장 잘하는 선비들과 다니며 헛된
말이나 꾸밈말을 배운다면 그저 지견 (知見) 만 늘릴 뿐, 자기 일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
까." 「매계집 (梅溪集)」
97. 죽은 고양이를 팔다 / 간당기 (機) 선사
간당 기 (簡堂行機) 선사는 태주 (台州) 선거현 (仙居縣) 사람으로 양씨 (楊氏) 집안의
자손이다. 풍채가 남달랐으며 재주는 유림 (儒林) 을 압도하였다. 스물다섯에 처자를 버리고
출세간법을 배웠는데, 늦게 차암 원 (此庵景元) 선사를 만나 남모르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세상에 나와 완산사 (莞山寺) 에 주지하였는데 산전을 갈아 화전을 일구면서 17년을 혼자
살았다. 그때 게송을 하나 지었다.
질화로에는 불티 하나 없고
객승의 바랑은 텅 비었는데
저무는 해에 눈은 버들꽃처럼 내리는구나
동강난 삼오라기를 주워 누더기를 꿰매면서도
내 몸이 쓸쓸한 데 있는지를 모르겠구나.
地爐無火客♠空 雪昭楊花落歲窮
拾得斷麻穿壞衲 不知身在寂廖中
선사는 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아직도 모자라는 점이 있는데 어떻게 주지하는 일
로 내 본분을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도에 대한 마음이 대중 속에 있을 때 보다
조금도 덜함이 없었으며 조금도 그만두는 일이 없이 밤낮으로 참구하였다.
하루는 우연히 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나무가 땅에 자빠지는 것을 보고 홀연히 크게 깨쳐 평
소 가슴에 막혀 있던 것이 어름 녹듯 녹아 없어졌다.
얼마 있다가 강주 (江州) 원통사 (圓通寺) 에 주지를 맡으라는 명이 있자 선사는 자신의
도가 이제 세상에 펼쳐지려 한다며 즐거이 주장자를 끌고 떠나가서 법좌에 올라가 설법하였
다.
“나는 여기서 약방을 연 것이 아니라 오직 죽은 고양이를 팔 뿐이다. 몇 사람이나 사량분
별하지 않는 사람이 나와 이 독약을 먹고 온몸에 식은땀을 흘릴지 모르겠다."
「대동십유 (大同拾遺)」
98. 본분사와 주지살이 / 은산 (隱山) 선사
은산 (隱山) 선사가 영공 (靈空) 선사에게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사문이 고상한 것은 부처님의 큰 자비 덕분인데 후세에 와서 시끄러워진 것은 스스로가
비천하게 굴기 때문이다. 둘씩 셋씩 짝을 지어 산속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데 그 모양이
마치 천태산 바위동굴과 다를 바가 없고, 빈번히 왕공재상들 앞에 가서 꼽추처럼 등을 구부
리고 아첨을 하니 뜻있는 사람이라면 말문이 막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년에 와서는 똥불에 산감자를 구워 먹고 살면서 사신이 와도 일어나 인사하지 않았던 옛
분의 풍모는 아예 볼 수 없거니와 황소를 타고 다닌 유정 (惟政) 스님이나 지암주 (圍庵主)
같은 사람 한분을 찾기가 마치 땅을 파면서 하늘을 찾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되고 있
다."
99. 밤마다 관 (棺) 에 들어갔다가 / 오자재 (吳子才)
소흥 13 (紹興:1143) 년 좌수직랑 (左修職郞) 인 첨숙의 (詹叔義) 가 재부 (財賦:세금 등 국
고수입) 에 의견서를 올려 주지가 되려는 이에게 도첩을 팔자고 하였다. 조정에서는 소흥
32년까지 이 의견대로 도첩을 팔아 왔는데, 시랑 (侍郞) 오자재 (吳子才) 가 진정서를 올려
도첩을 나누어 팔도록 허가받자 그것은 부처를 팔아 복을 받으려는 짓이라는 비난을 받았
다. 오자재는 관직을 그만두고 바위산으로 돌아가 선상에 앉아 경과 선을 음미하며 자족하
였고 구름과 물을 감상하며 스스로 즐거워하였다.
그리고는 관을 하나 만들어서 밤이면 그 속에 누워 자다가 날이 밝으려 하면 두어명의 동자
를 시켜 관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오자재는 돌아가라! 삼계는 어디고 불안하여
살 만한 곳이 없으나 서방정토에는 연화대가 있다." 오자재는 듣자마자 일어나 참선과 독송
을 하였다. 이렇게 몇 년을 계속 정진하였다. 임종 때 집안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들었느냐?" 하니 집안사람들은 아무것도 못들었다고 하였다. 오자재가 “너희들은 생각을
거두고 들어보라" 하니 이때 모든 사람들은 공중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하늘음악을 들었
다. 이에 오자재가 말하였다. “나는 청정세계에 살다가 생각 〔念〕 을 잃어버려서 이곳에
왔었는데 금으로 된 좌대가 도착했으니 이제 가겠다."
그리고는 말이 끝나자 임종하였다. 「설총기 (雪記)」
100. 형 (兄) 에게 음식값을 받다 / 적실 광 (寂室 光) 선사
적실 광 (寂室慧光:운문종) 선사가 영은사 (靈隱寺) 주지로 있을 때였다. 그의 형이 찾아
갔는데 차만 끓여주고는 물러가 버리니 형이 내심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소임맡은 이가 창
고방으로 맞아들여 음식을 잘 대접하였는데, 혜광선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음식을 대접받
으면 뒷날 나에게 누가 되는 일이 있다"하고는 형에게 대접받은 만큼 채워놓고 떠나게 하였
다. 「정강필어 (汀江筆語)」
101. 참선과 법문으로 밥을 삼다 / 장령 탁 (長靈 卓) 선사
장령탁 (長靈守卓:1065∼1123, 임제종 황룡파) 선사는 무시 (無示介:1080∼1148) 선사를 입
승 (立僧:선원생활의 책임자) 으로 임명하여 법석을 엄숙하게 하였다. 부엌일에는 신경을 쓰
지 않았고 오직 참선으로 공양을 대신하고 야참법문으로 저녁공양을 대신하게 하니 납자들
중에는 이런 생활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무시선사가 수탁선사에게 아뢰었다.
“사람이란 먹는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데 이렇게 해서야 대중이 편안하겠습니까?"
수탁선사가 노여워하며 말하였다.
“당돌하고도 경솔하구나!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그러자 무시선사는 “먹는 일에 관해서라면 제가 아니면 누가 따지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자항소참 (慈航小參)」
102. 불조선사에게 보낸 글 / 효종(孝宗) 황제
효종 (孝宗) 이 불조 (佛照德光:1121∼1203) 선사에게 손수 써 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사께서 말씀하신 보살10지 (菩薩十地) 란 수행해나가는 단계를 말하는 것이니, 범부에
서 성인의 경지에 들어감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실다운 경지를 몸소 밟아 하루 스물네시간 한번도 끊어지는 적 없이 완전하게 익어진 경지
에 이르면 더러움과 깨끗함이 모두 장애가 되고, 작지임멸 (作缺任滅)*이 다 병통 〔禪病〕
이 되는 줄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선사께서 말씀하신대로 항상 마음의 칼을 휘둘러 등뼈를
곧추세우고 발심정진을 해도 오히려 물러날까 걱정스럽습니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면 늘
조심스러워 한번도 감히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속인들은 선을 허공에 뜬 것
이라 생각하고 교학을 희론으로 생각하니 그들은 이토록 도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 지극히
큰 일을 어찌 붓으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그저 내 생각을 적어볼 뿐입니다."
103. 제자들에게 내린 훈시 / 자항 박 (慈航 朴) 선사
자항박 (慈航了朴:임제종 황룡파) 선사는 복주 (福州) 사람이다. 명문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홀연히 허깨비같은 뜬 세상이 싫어 몸을 빼내 출가하였다. 선사가 계를 받을 때 몸과 마음
이 공중에 뜬 것처럼 가볍고 편안해지니 계를 내리는 스님이‘그대는 참으로 가장 높은 묘
계 〔上品妙戒〕 를 얻었다’고 하였다. 이때부터 종신토록 매우 엄하게 계를 지켰다.
20년 동안 천동사 (天童寺) 에 주지하면서 하루도 대중과 따로 공양을 한 일이 없고 병에
걸렸을 때도 이 규칙을 어기지 않았다. 스스로는 몹시 검소하게 지냈으나 대중들에게는 지
극히 넉넉하게 대했다. 선사에게 제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창고 소임 〔知庫〕 을 맡아보다
가 일을 끝내고 돌아와 선사에게 절하고 말하였다.
“제가 힘을 다해 경영해서 돈을 굴려 배나 이득을 보았는데 감히 제 것으로 하지 않고 절
재산으로 넣으려 합니다."
그러자 선사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네가 벌어들인 것은 의롭지 못한 수단으로 얻은 것이며, 절 재산은 깨끗한 재산이다. 어찌
의롭지 못한 너의 물건을 받아들이겠느냐."
그리하여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그 스님을 쫓아내버렸다.
선사는 동자승이 머리를 깎고 먹물옷을 입으면 그들을 모두 사미들의 거처 〔沙邇寮〕 에
보내 계단 (戒檀) 에 올라가 계를 받는 의식절차부터 익히게 하고 유교경 (遺敎脛) 을 외우
게 하고 나서야 구족계를 주었다. 구속계를 받으면 모두 새로 계받은 이들의 거처 (新戒寮)
에 들여 보내 승복 세벌과 발우 하나를 받아 지니도록 하고, 밤이면 좌구를 펴고 오조가사
를 덮고 자게 하였다. 그리고는 계경 (戒脛) 잘 외우는 스님 하나를 청해 그들에게 계경을
가르치도록 하여 통달하여 외울 때가 되면 비로소 선방에서 참구하는 것을 허락하고 이삼년
하안거를 지내고 나야 비로소 절 일을 맡아보도록 하였다. 제방에 행각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선사는 언제나 미간에 기쁜 기색을 보이며 기꺼워 하였다. 그리고는 필요한 물건들
을 챙겨서 길을 독촉해 보냈다.
한번은 그의 문도들에게 이렇게 훈계하였다.
“예전에는 스님이 되려하면 조정에서 시험을 치루어 도첩을 얻게 하였다. 그래서 발심해서
승려가 된 사람들이 모두 영특하고 수행이 높았으며 부처가 되겠다고 서원을 세운 사람들이
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법이 엷어져서 이름만 있지 알맹이는 없어졌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
람이면 승복을 입고 돈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은 부처를 팔아 이득을 본다. 탐욕스런 위선자
들이 많이 나와 못하는 일 없이 나쁜 짓을 하다가 하루 아침에 승려의 무리에 끼어들게 되
었다. 그들은 스스로 평생 쓸 만큼이 다 마련되었다고 생각하여 다시는 사욕을 극복하는 수
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인과를 무시해버리고 세월을 허송하며 신도들의 시주만 부질없
이 없앤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출가의 본뜻 〔正因〕 을 잊고 불법의 인과를 모르며, 3승
12분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체법이 모두 공한 이치를 통달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하고 깨치지 못한 것을 깨쳤다하여 귀족이나 권세가에게 아
첨하면서 세상일에만 신경쓴다. 법을 위하는 마음이나 몸가짐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로지 탐
욕과 성내는 마음으로 허물만 짓는다. 이러한 무리들이 우리 법에 들어와 불법을 무너뜨리
니 매우 해로운 일이다. 부처님 말씀에, 사자의 몸 속에 있는 벌레가 사자의 살을 파먹는 것
과 같아서 외도나 천마가 불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너희들은 이미 바른 생각
으로 출가하였고 바른 생각으로 승려가 되었으니 반드시 마도를 멀리 떠나 불도의 계를 지
키고 따라야 한다. 만일 도를 통한 사람이라면 도무지 그런 데다 마음을 쓰지는 않을 것이
다.
그대들은 오랜 겁부터 지금까지 심식 (心識) 이 어둡고 전도되었으니 어찌하랴. 처음 승려가
되었을 때부터 세벌 법복과 발우 하나와 갖가지 계율로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으
니 어찌 도에 들어갈 수가 있겠느냐. 마치 성질이 거친 코끼리나 말은 길을 들일 수 없다가
갖가지 모진 고통을 주면 비로소 길이 들어 엎드리는 것과 같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
면 뒷날 3악도의 고통이 겹칠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무시 (無示介:1080∼1148) 선사의 회중에 있을 때 새벽이면 언제나 선사에게 법을 물
었다. 선사가 스님네들에게 훈계하면 나도 꼭 가서 들었는데, 입이 쓰도록 대중을 위하는 말
씀을 듣자면 나도 모르게 눈물 콧물이 흘렀다. 무시선사의 문하에 들어와 그가 해주는 법문
을 듣고 그가 하는 일을 보면 절집에서 늙은 사람이라도 누구나 진땀이 나며 기가 죽는다.
그것은 아마도 이 노스님이 평생을 진실하게 지내온 데다가 수행과 설법이 모두 높은 경지
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선사는 40여 년을 때가 아니면 밥을 먹지 않았고 옷과 발우를
쌓아두지 않았으며 몸을 지키는 세세한 행동까지도 모두 계율을 따랐다. 그랬기 때문에 선
사가 가서 주지하는 곳은 소리를 지르거나 얼굴빛을 움직이지 않고도 자연히 법석이 조용하
고 엄숙하여 제방에서는 그를 「철면 (鐵面) '이라고 불렀다. 너희들은 불제자가 되었으니
분발심을 내서 옛분을 흠모하고, 그분들의 말씀대로 수행을 세워 비열하고 저속한 곳에 떨
어지지 말아야 한다.
무시선사가 언제나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불법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방편으로 그
대들을 가르쳐 마음을 다스려 도를 닦게 하지 못하고 뒷날 그대들이 무지로 해서 죄를 짓게
되면 이 노승도 그대들과 함께 고통받는 일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그대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니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은 나의 허물이 아니다. 듣지 못했느냐?
양 (良) 선사란 사람은 정주 (紛州) 사람으로 양기 (楊岐方會) 선사의 회하에 있었던 큰스
님이다. 이 분에게 제자가 하나 있었는데 계율을 범해서 죽을 무렵에 악도에 떨어지게 되었
다. 그의 어머니가 꿈을 꾸었는데 아들이 스승에게 한을 품고 하는 말이 모든 것이 스승께
서 나에게 선행을 하도록 이끌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었다. 그의 어머니가 꿈꾼 이야기를 양선사에게 알렸으나 그는 믿지 않았다.
당시 용도각 (龍圖閣) 의 덕점 (德占) 서희 (徐禧) 가 평민으로 있을 때였는데 양선사를 찾
아가 법을 묻곤 하였다. 그가 잠깐 꿈을 꾸니 어느 관청에 들어갔는데 무기를 든 병졸들이
양쪽에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뜰 아래 양선사가 앉아 있고 졸개귀신들이 방아
공이로 그의 등을 때리는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온통 진동하였다. 다시보니 그의 제자가
결박을 당하고 목칼을 쓴 채 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덕점이 문지기에게 스님이 무
슨 죄를 지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늙은 사람은 젊은 사람의 스승인데 스승이 평소에 제자를 잘못 가르쳐서 마음대로 파계하
도록 내버려 두었으므로 스승의 죄가 특히 무거운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살아서 받는 과보
이지만 7일 뒤에 제자와 함께 무간지옥에 떨어지면 그땐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다.'
서희가 꿈에서 깨어나 양선사에게 까닭을 물어 보았더니 양선사는, 이 며칠 동안 등허리가
마치 무엇으로 두드려 맞는 것처럼 아픈데 약을 써도 낫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과연
7일 만에 죽었다. 이에 서희는 주먹만한 큰 글씨로 분녕 (寶寧) 지방 모든 절 벽에다가 이
사실을 써 붙였다." 「소희간광효초선사방우천동행당벽 (紹熙間光孝超禪師榜于天童行堂璧)」
104. 선종과 교종의 화합 / 초암록 (草庵錄)
법지존자 (法智尊者:960∼1028) 는 학식과 수행이 뛰어난 분이었다. 그가 지은 모든 저술은
종지를 세우고 삿된 이론을 물리쳤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어 진실한 경지에 이
르도록 하였다. 존자가 한번은 핵심되는 법문을 뽑아서 책을 만들었는데, 완성되자 설두현
(雪竇重顯:980∼1052) 선사가 그것을 가지고 산을 나와서 재를 올려 축하하였다. 이어서 다
회 (茶會) 를 열고 방을 써붙여 그 일을 찬미하였다. 이렇게 예전에는 선과 교가 하나가 되
어 서로 그 분위기나 취향을 존중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선과 교가 서
로를 헐뜯고 매몰시키려는 지금과는 함께 논할 바가 아니다. 「초암록 (草庵錄)」
105. 황룡 심 (心) 선사의 행적
황룡 심 (黃龍祖心: 晦堂祖心, 1025∼1100) 선사는 남웅 (南雄) 사람이다. 유생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열아홉살에 눈이 멀어 부모가 출가를 허락하자 홀연히 다시 보게 되었다. 행각하
면서 남 (黃龍慧南) 선사를 찾아뵈었는데 비록 이 일을 깊이 믿기는 하였으나 깨닫지는 못
했다. 그리하여 하직을 하고 운봉 (雲峯文悅) 선사의 회하에 갔는데 운봉선사가 세상을 떠나
자 석상 (石霜楚圓) 선사에게 가서 머물렀다. 거기서 전등록 (傳燈錄) 을 보다가 한 스님이
다복 (多福) 선사에게 묻는 것을 읽었다.
“무엇이 다복의 한 줄기 대 (竹) 입니까?"
“한두 줄기는 비스듬하다."
“잘 모르겠습니다."
“서너 줄기는 굽었다."
선사는 이 대목에서 문득 두 분 선사의 면목을 보게 되었다.
그 길로 혜남선사에게 돌아와 제자의 예를 올리고는 좌구를 펴고 앉자 혜남선사가 “그대는
내 방에 들어왔다"라고 하였다. 선사도 역시 뛸 듯이 기뻐하면서 응수하였다. “큰 일이란
본래 이런 것인데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 화두를 들게 하십니까?"
“만일 네가 깊이 참구해서 마음 쓸 곳 없는 경지까지 가게 하고, 거기서 스스로 보고 스스
로 긍정하도록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너를 매몰시키는 것이다."
마침 혜남선사가 입적하자 스님들과 신도들이 선사에게 그 뒤를 이어달라고 청하였고, 사방
에서 귀의하여 혜남선사가 있을 때 못지 않았다. 그러나 선사는 진솔함을 숭상해서 일하는
것을 즐기지 않았으므로 다섯 번이나 그만두겠다고 해서 마침내 주지를 그만두게 되었다.
얼마 안돼서 사사직 (謝師直) 이 담주 (潭州) 태수가 되어 대위산 (大山) 에 주지자리가 비
었다고 선사를 초청하였다. 선사가 세 번이나 사양하자 또 강서 (江西) 의 전운사 (轉運使)
인 팽기자 (彭器資) 에게 부탁해서 장사사 (長沙寺) 를 마다하는 이유를 알려달라고 청하니
선사가 말하였다.
“마조나 백장스님 전에는 주지란 것이 없었고, 도인들은 서로 고요하고 한가한 곳을 찾아
다녔을 뿐이다. 그 후에도 비록 주지란 제도가 있었으나 왕처럼 존경을 받아 인간과 하늘의
스승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이름을 관가에 걸어 놓고 바로 심부름꾼을 보
내 오라가라 하니 이 어찌 다시 할 짓이겠는가."
팽기자가 그대로 전하자 사사직은 다시 편지를 보내 “한번 만나보고자 할 뿐 감히 주지 일
로 서로를 궁색하게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선사는 사방의 공경대부와 사귀는 데 있어서 뜻이 맞으면 천 리라도 가지만 뜻이 맞지 않으
면 수십 리밖에 안되는 곳도 가지 않았다. 선사는 불전 (佛冶) 뿐 아니라 다른 책들을 가지
고도 자세히 따져가면서 법문하여, 저마다 공부해 온 것을 바탕으로 욕심을 극복하고 스스
로 보게 하였다. 그리하여 깨닫게 되면 같은 길로 돌아오게 하고, 돌아오면 가르칠 것이 없
었다. 이 일로 제방에서는 다른 책과 불전을 뒤섞어서는 안된다고 비난하니 선사가 말하였
다.
“견성을 못하면 불조의 비밀한 말씀도 모조리 바깥 책이 되고, 견성을 하면 마구니 설이나
여우 선 〔狐禪〕 도 불조의 비밀한 말씀이 된다."
이런 까닭에 40년 동안 그의 도풍을 듣고 깨달은 사대부가 많다. 황정견 (黃庭堅:1045∼
1105) 은 오래 전부터 수기를 받은 일로 큰 법을 맡아볼 만한 사람이었으나 안목이 아직 완
전하지 않았다. 그는 선사의 탑을 찾아와 보고서는 크게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깊은 탄식을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단단한 옥돌에 글을 새겨 선사가 남기신 아름다운 자취를 공경히
송하였다. 「탑명 (塔銘)」
106. 살터를 꿈속에서 미리보다 / 천동 각 (天童 覺) 선사
굉지 각 (宏智正覺:1091∼1157) 선사는 습주 (鈒州) 사람이다. 행각을 나서기 전에 미리 천
동사 (天童寺) 의 경관을 꿈꾸고는 그것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우거진 솔밭 길, 깊숙한 문에 갔을 때는 희미한 달, 바야흐로 황혼이었네."
건염 (建炎:1127∼1130) 연간에 장노사 (長蘆寺) 주지를 그만두고 보타암 (寶陀巖) 의 진
헐 (眞歇淸了) 선사를 찾아가는 길에 천동사에 도착해 보니 그 경관이 꿈에서 본 것과 똑같
았다. 그리하여 관청에서 천동사 주지를 맡아 달라고 간곡히 청했으나 굳게 거절하였는데,
뒤에 납자들이 어깨를 비빌 정도로 법좌를 찾아오자 힘써 받아들였다. 30년을 주지하면서
불법을 전하는 일 밖에도 살림살이를 새로 잘 갖추어 항상 천여 명의 대중이 살았다. 공양
거리와 필수품이 넉넉하여 가장 부자 절이 되니 납자들은 편안하게 도에만 힘쓸 수 있었다.
선사가 한번은 대중을 위해 걸식을 나갔다. 오월 (吳越) 지방 사람들은 그의 교화를 독실히
믿고 있었기 때문에 돈과 베 등의 시주가 구하지 않아도 모여드니 선사가 여러 시주에게 말
하였다.
“내가 시주를 받는 것은 그대들의 인색한 마음을 깨주려 함이니 나에게만 시주할 것이 아
니라 뒷날 작은 절에서 스님이 찾아오면 거기에 시주하기 바란다. 혹은 궁핍한 절을 보거나
노약자 등 딱한 백성을 보거든 옷과 돈을 시주하여 그들을 기쁘게 해 주어라." 선사는 물건
을 쌓아두는 일이 없었고 쓰다가 떨어지면 그대로 지냈다.
철괴 (哲魁) 라는 습주 (鈒州) 스님이 있었는데 꼿꼿한 사람이었다. 고향이 어디라고 말하지
않고 선사의 회하에 묻혀 지냈는데, 10여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가 굉지선사의 고향사람
이라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굉지선사는 기쁘게 찾아가서, 고향사람인데 너무 인정을 끊고
지내는 것이 아니냐며 그를 방장실로 불러들이려 하였다. 그러자 철괴스님은 사양하며 “내
일도 아직 가리지 못했는데 어찌 고향 예법을 논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하고는 주장자를
끌고 떠나버리니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그는 그길로 예전에 진헐스님이 살던 보타암을 찾
아가 좌선을 하며 지냈다. 한달 남짓 지나 임종하게 되자 대중을 불러 설법을 하고는 세상
을 떠났는데, 다비를 하니 사리가 무수히 나왔다. 「설총지기사 (雪 誌其事)」
107. 구양수가 만난 노승
구양문충공 (歐陽文忠公:修) 이 숭산 (山) 에 갔을 때였다. 마음 닿는대로 가다가 어느 옛
절에 이르니 경치가 쓸쓸한데 한 노승이 태연히 경을 읽고 있었다. 공이 말을 걸어도 별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공이 물었다.
“옛 고승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대개가 담소하면서 입적하셨는데 무슨 도리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스님이 대답하였다.
“정혜 (定慧) 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째서 지금은 그런 인물이 없습니까?"
“옛 사람은 생각 생각이 정 (定) 에 있었으니 임종이라해서 흩어 〔散〕 질 리가 있었겠습
니까. 지금 사람은 생각 생각이 산람함 〔散〕 에 있으니 임종에 어떻게 정 (定) 을 얻을 리
가 있겠습니까"
문충공은 이 말을 듣고 탄복하였다. 「임간록 (林間錄)」
108. 장경보시 발원문 / 풍제천 (馮濟川) 거사
풍제천 (馮濟川:∼1153) 거사가 장경 (藏脛) 보시를 하면서 발원문을 지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제가 장경을 시주한 것은 한 가지로 두 가지 시주를 한 것입니다.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장경에다가 돈을 낸 것은 재물보시가 되고, 그 경으로 법을 전하는 것은 법보시가 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살펴보건대, 재물보시로는 다음 생에 하늘이나 인간세상에 태어날 복된 과
보를 받고, 법보시로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말솜씨가 좋은 사람이 되는 과보를 받게 된
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과보가 모두 윤회의 씨앗이며 괴로운 과보의 근본이라
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제 발원하오니, 이 두 가지 과보를 회향하여 임종할 때 극락에 왕생하여 그곳을 장
엄하게 하여지이다. 연꽃 태 (胎) 에서 나와 부처님을 뵙고 그 법문을 들어 무생법인 (無生
法忍) 을 깨닫고 물러남이 없는 자리에 올라 보살지위에 들어가게 하여지이다. 그리하여 시
방세계의 5탁악세에 다시 돌아와 어디든 내 몸을 나타내 불사를 하게 하여지이다. 오늘 재
물과 법, 이 두 가지를 보시한 인연으로 관세음보살같이 대자비를 갖추고서 5도 (五道:지
옥·아귀·축생·사람·하늘) 에 노닐되, 그 중생의 모습대로 몸을 바꾸어 갖가지 묘한 법
문 설하게 하여지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고통의 길을 멀리 여의고 지혜를 얻게 하며, 모든
중생과 더불어 성불하게 되어지이다. 이것이 제가 장경불사를 하면서 발원하는 것입니다."
「사경비 (舍脛碑)」
109. 경계하는 글 / 북봉 인 (印) 선사
북봉 인 (北峯宗印:1148∼1213) 법사는 잠자는 것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다.
“불법은 멸해가는데 허깨비 같은 몸뚱이를 기르는구나. 그러나 이 냄새나는 몸은 끝내 재
가 되고 흙이 되니, 조금이라도 불법을 세우려다가 죽는다면 정말로 대장부가 아니겠는가."
또 말하였다.
“다른 사람보다 말을 잘한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니 행동이 다른 사람보다 나아
야 한다. 만일 자기 자신에게 한 점 쓸모도 없다면 비록 천만 가지 경론을 외운다 해도 마
치 아난존자와 같을 것이니 무엇이 귀하겠는가."
또 말하였다.
“한번은 식견있는 사람과 불교집안을 일으키고 빛나게 하려면 주지가 어찌해야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부지런히 예불 올리고 재물을 결백하게 쓰
며 대중을 위해 일하면 그 뿐입니다.' 나는 이 말이 극진한 도리라고 생각하며 매우 기뻐한
다. 만약 식견없는 사람과 이야기 했다면 땀을 흘리며 세상을 쫓아가야 한다고 했을 것이니
그것은 납승 본분의 체통을 잃는 일이다." 「자행록 (自行錄)」
110. 묘총(妙總) 비구니의 행적
자수사 (資困寺) 묘총 (妙總:임제종 대혜파) 선사는 소씨 (蘇氏) 며 원우 (元祐:1086∼
1093) 년간에 승상을 지낸 분의 손녀다. 열다섯살 때 선 (禪) 이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몰랐으
나,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생은 어디서 오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유독 의심을 냈
다. 그 생각만 하다가 홀연히 느낀 바 있었으나 스스로 별것 아니라 여기고, 사람이면 다 그
런 줄 알고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부모의 명을 순종하여 서서 (西徐) 의 허수원 (許
困源) 에게 시집갔는데 얼마 안돼서 세상살이가 매우 싫어졌다. 재계하고 몸가짐을 깨끗이
함으로써 자족했으며, 나아가 세속 바깥에 높이 노닐고자 하였다. 뜻을 세워 옛사람을 흠모
하고 마침내 천엄사 (薦嚴寺) 의 원 (圓) 선사를 찾아뵈니 원선사가 물었다.
“규중의 숙녀가 어떻게 대장부의 일에 끼겠는가?"
“불법에서 남녀 등의 모습을 나눕니까?"
원선사가 따져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하니 마음이 부처라고 하였는데,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오래 전부터 스님의 이름을 들어왔는데 겨우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덕산스님의 문하에 들어간다면 몽둥이를 맞겠구나."
“스님께서 만일 그러한 법령을 시행한다면 인천의 공양을 헛받는 것은 아니겠습니다."
“아직 멀었다."
이에 묘총이 손으로 향로 탁자를 한번 때리니 원선사가“향로 탁자가 있으니 마음대로 치라
만, 없었으면 어찌하였겠나?" 하고 물었다.
묘총이 밖으로 나가버리자 원선사가 부르면서 말하였다.
“그대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이러는가?"
“밝고 밝게 보니 한 물건도 없다."
“그 말은 영가 (永圈玄覺) 스님의 말이다."
“남의 말을 빌어서 내 기분을 나타낸들 무엇이 안될 것이 있습니까?"
“진짜 사자새끼로구나."
당시 진헐 (眞歇淸了) 선사가 의흥 (宜興) 에 암자를 짓고 살고 있었는데 묘총선사가 그곳
을 찾아갔다. 진헐선사는 선상에 단정히 앉아 있다가 묘총이 문으로 들어서자 물었다.
“범부인가, 성인인가?"
“이마에 눈은 무엇 때문에 달려 있소?"
“직접 대면해서 자기 경계를 드러내 보이면 어떻겠는가?"
묘총이 좌구를 집어들자 진헐선사가 말하였다.
“이건 묻지 말라."
“틀렸다."
진헐선사가 대뜸 악! 하고 할 (喝) 을 하자 묘총도 할을 하였다.
묘총은 강절 (江浙) 지방의 큰스님들을 거의 다 찾아뵙고 법을 묻다가 허수원 (許困源) 이
가화 (嘉禾) 태수로 발령이 나서 따라 가게 되었는데, 오직 묘희 (妙喜) 선사를 만나뵙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마침 묘희선사가 풍제천 (馮濟川) 과 함께 배를 몰고 가화성
에 도착하니 묘총이 소식을 듣고 찾아가 절하고 존경을 표하였다. 인사만 했을 뿐인데 묘희
선사는 빙제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온 도인은 천신도 보고 귀신도 보고 온 사람인데 단지 대장간의 풀무로 담금질을 받
지 못했을 뿐이다. 마치 만 섬을 실은 배가 물을 건널 때 아직 움직이지 않았을 뿐인 것과
같다."
풍제천이 껄껄 웃으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쉽게 하십니까?" 하자 대혜스님이 말하였다.
“그 사람이 고개를 돌리기만 한다면 분명 다른 점이 있을 것이다."
이튿날 허수원이 묘희선사에게 설법을 명하니 묘희선사가 대중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지금 이 가운데는 어떤 경계를 본 사람이 있다. 이 산승은 사람을 간파할 때 마치 관문을
맡아보는 관리와 같아서 누가 오는 것을 보자마자 세금을 가져왔는지 안가져왔는지 알아차
린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자 묘총이 마침내 법호를 지어달라고 하여 묘희선사는 ‘무착 (無
著)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다음 해에 경산 (徑山:大慧) 의 법석이 성하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하안거를 보냈는데 하루저녁은 좌선을 하다가 홀연히 깨닫고 송을 지었다.
갑자기 본래면목에 부딪히니
온갖 재주가 얼음녹듯, 기와장 무너지듯 했네
달마는 하필 서쪽에서 와가지고
2조의 헛된 삼배를 받았는가
여기에 이걸까 저걸까 물어본다면
좀도둑 한떼거리가 대패했다 하리라.
驀然撞著鼻頭 伎倆氷消瓦解
達磨何必西來 二祖枉施三拜
更問如何若何 一隊草己大敗
묘희선사가 그 송을 다시 읊어보고서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산 조사의 뜻을 깨달았으니
단칼에 두쪽내듯 당장에 알아버렸다
기연에 임해서는 하나하나 천진 (天眞) 에 맡겨라
세간 출세간에 남고 모자람 없도다
내가 이 게를 지어 증명하니
사성육범이 모두 놀라는구나
놀랄 것 없다
파란눈 오랑캐는 아직 깨닫지 못했느니라.
汝旣悟活祖師意 一刀兩斷直下了
臨機一一任天眞 世出世間無剩少
我作此偈爲證明 四聖六凡盡驚擾
休驚擾 碧眼胡兒猶未曉
“그리하여 묘총은 입실 (入室) 하게 되었는데 대혜선사가 물었다.
지금 온 이 스님은 오직 그대만을 상대하는데 한번 말해 보아라. 노승이 무엇 때문에 그를
인정하지 않았겠느냐?"
“어찌 저를 의심하십니까?"
대혜선사가 죽비를 들고 말하였다.
“그대는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겠느냐?"
“아이고! 아이고!"
대혜선사가 갑자기 때리자 묘총이 말하였다.
“스님은 뒷날 사람을 잘못 때렸다 할 때가 있을 겁니다."
“때렸으면 그만이지 잘못이고 아니고가 무슨 상관인가?"
“이 법을 펴는 데 전념하겠습니다."
하루는 묘총이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묘희선사가 물었다.
“그대가 산을 내려가다가 누가 이곳의 법도를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경산에 아직 가보지 않았다면 의심해도 괜찮다고 하겠습니다."
“경산에 와 본 다음에는 어떤가?"
“이른 봄은 아직도 춥더라고 말하지요."
“그렇게 대답한다면 나를 얕보는 것이 아닌가?"
묘총은 귀를 막고 떠나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대중이 그를 칭찬하여 세상에 무착이란
이름이 유명해졌다. 그는 오랜동안 숨어 살다가 마침내 승복을 입었다. 묘총선사는 나이와
덕망이 높았으나 몹시 엄하게 계율을 지켰고 고행과 절도로 스스로를 격려하여 옛 고승의
면모가 있었다. 태수 장안국 (張安國) 이 선사의 도와 덕망을 높이 사서 자수사 (資壽寺)
주지를 맡아 세상에 나가도록 명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주지를 그만두고 노년을 집에 돌아
가서 보냈다. 「투기전 (投機傳)」
111. 자인삼매 (慈忍三昧) 를 얻고 / 도담 (道曇) 법사
도담 (道曇) 법사는 상주 (常州) 사람으로 선정을 닦던 중 자인삼매 (慈忍三昧) 를 얻었다.
늘 원숭이와 새들이 꽃과 과일을 공양하니 그들을 위해 계를 주고 설법을 해서 보냈다. 밤
이 되어 귀신에게 밥을 줄 때면“내 밥을 먹고 내 법을 받아 내 도반이 되어라" 하며 축원
하였다. 90여 세가 되어서도 사방에서 와서 스승으로 모셨는데, 법을 받은 사람은 모두 신참
소년이었다.
법사는 경을 읽을 때면 언제나 향을 사르고 아홉 번 절한 다음, 가부좌한 채 한참을 묵묵히
있은 뒤에야 책을 열였다. 항상 문도들에게 이렇게 훈계하였다.
“성인의 가르침을 엿보는 목적은 종지를 밝히기 위해서이니, 만일 자기를 단정히 해서 마
음을 비우지 않으면 어떻게 여래의 경계에 갈 수 있겠는가. 참으로 작은 인연이 아니니 쉽
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손중익비 (孫仲益碑)」
112. 철공장이 출신 곽도인 (郭道人)
곽도인 (郭道人) 의 집안은 대대로 철공 일을 해왔다. 그는 늘 경덕사 (景德寺) 충 (忠)
선사를 찾아뵙곤 하였는데 한번은 충선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버리고, 스스로에게 묻고 참구하기만 한다면 해내지 못
할 것이 없을 것이다."
하루는 충선사가 상당하여 법문하였다.
“선악은 뜬구름 같아서 정처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과 같다."
곽도인은 이 말 끝에 홀연히 마음이 열리면서 이때부터 하는 말이 보통사람과 달랐다.
죽을 때 가서는 친척 친구들과 작별하고 결가부좌를 한 채 게를 짓고 떠났다.
육십삼년을 쇠를 두들겨
밤낮으로 풀무가 쉴새 없었네
오늘 아침 쇠망치를 버리고 나니
붉은 화로가 흰눈이 되었구나.
六十三年打鐵 日夜扇澎不歇
今朝放下鐵鎚 紅爐變成白雪 「유설 (類說)」
113. 이암 권 (伊庵 權) 선사의 행적
이암 권 (伊庵有權:?∼1180, 임제종 양기파) 선사는 임안부 (臨安府:江省) 창화현 (昌化縣)
사람으로 기씨 (祁氏) 자손이다. 어려서부터 몸가짐이 무게가 있고 의젓하여 어른 같더니,
14세에 출가하여 불교뿐 아니라 다른 학문에도 통달하고, 무암 전 (無庵法全) 선사에게 귀의
하였다. 거기서 매우 열심히 공부했는데 하루 해가 저물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오늘도
이렇게 시간만 보냈고 내일 공부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구나!" 하였다.
선사가 대중 속에 있을 때, 사람들과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꼿꼿하게 처신하니 아무도 가
까이 하거나 멀리 할 수 없었다. 한번은 밤부터 새벽까지 계속 좌선하는데 죽을 돌리는 사
람이 와도 발우 펴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이 손으로 건드리자 깨달아
게를 지었다.
칠흑 같은 곤륜이 낚싯대 잡고
낡은 돗대 높이 올리고 쏜살같이 여울 내려가
갈대꽃 그림자 속에서 달구경하다가
눈 먼 거북 당겨올려 배 위에 실었노라.
黑添崑崙把釣竿 古帆高掛下驚汞
蘆花影裏弄明月 引得盲龜上釣船
무암선사는 기뻐하며 자기와 비슷한 경지라고 하였다.
건도 (乾道:1163∼1173) 년간에 세상에 나와 만년사 (萬年寺) 의 주지로 갔다. 그곳에서 공
부 많이 한 노스님들도 그의 몸가짐을 보고 그의 법어를 듣고는 모두 팔장을 끼고 심취하였
고, 천명안팎의 대중은 질서정연하게 마치 관청에 들어가듯 하였다. 선사가 가는 곳마다 대
중과 함께 고생하며 수행하니 상서 (尙書) 우포 (尤褒) 가 말하였다.
“주지는 편안히 앉아서 법을 설하면 되는데 어째서 몸소 고행까지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법의 비구들은 증상만 (增上慢) 이 있어서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
면서 제멋대로 합니다. 내가 몸소 실천해도 오히려 따라오지 않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감히
스스로 편하려 들 수 있겠습니까?"
근세에 선림의 모범을 말할 때는 반드시 선사를 첫째로 꼽는다. 「행장 (行狀)」
114. 부젓가락 하나라도 절 물건은 / 동산 연 (東山淵) 선사
동산 연 (東山淵) 선사는 하는 일이나 행동이 단정하고 결백하기로 총림에 알려졌다. 선사
가 동산사에서 오봉사 (五峰寺) 로 옮겨왔을 때였다. 부젓가락을 보니 동산사에서 쓰던 것과
다르지 않아 마침내 종 〔奴〕 에게 따져 물었다.
“이것은 동산사 방장실의 물건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여기나 저기나 절집에서 쓰는 물건이라 이해를 따지지 않고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연선사가 타일렀다.
“무지한 너희들이 인과법에 ‘섞어쓰는 죄 〔互用罪〕 '가 있는 줄을 어찌 알겠느냐?"
그리고는 급히 돌려보냈다. 「이운록 (怡雲錄)」
115. 남의 허물을 일러바친 제자를 내쫓다 / 별봉 인 (別峯印) 선사
별봉 인 (別峯寶印:1109∼1190, 임제종) 선사가 설두산 (雪寶山) 에 주지할 때였다. 제자 하
나가 수좌의 허물을 일러바치자 성을 내면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너는 나의 제자로 아래·윗사람들을 감싸줘야 할 처지에 도리어 남의 허물을 이야기 하느
냐? 곁에 두었다간 반드시 내 일을 망치겠다."
그리고는 주장자로 때려서 내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명석하냐고
감탄하였다. 「소운잡기 (少雲雜記)」
116. 잠시라도 정신이 딴 데 가면 / 단하 순 (丹霞 淳) 선사
단하순 (丹霞子淳:1064∼1117, 조동종) 선사는 검주 (劍州) 사람이다. 단하산 (丹霞山) 에
주지할 때 굉지 (宏智正覺) 선사가 시자로 있으면서 요사채에서 한 스님과 공안을 따져보다
가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었다. 그때 마침 단하선사가 그 방문 앞을 지나갔는데, 밤이
되어 굉지선사가 참문 (參問) 할 때 단하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아까 어째서 크게 웃었는가?"
“한 스님과 화두를 따져보다가 그의 대답이 너무 서툴러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대의 웃음소리 하나에 많은 좋은 일을 잃게 되었다. 옛 말을 듣지
못했느냐? 잠시라도 정신이 구도에 있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같다 하였다."
굉지선사는 공경히 절하고 승복하였으며 그 후에는 어두운 방 속에 있을 때라도 감히 한번
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설총기 (雪 記)」
117. 죽는 순간에도 정신차리고 / 소각 조 (昭覺 祖) 수좌
성도 (成都) 소각사 (昭覺寺) 의 조수좌 (祖首座) 는 오랜동안 원오 (圓悟) 선사에게 공부
하였다. 방장실에 들어가 ‘마음이 부처다'한 말을 묻고, 여기서 깨달은 바 있어 원오스님이
분좌 (分座) 하도록 명하였다.
하루는 대중을 위해 대중방에 들어가 한 스님에게 물었다.
“생사가 닥쳐오면 어떻게 피하겠느냐?"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불자를 집어던지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대중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다가 급히 원오선사에게 알리니 원오선사가 와서 “조수좌!" 하고 불렀다. 조수좌가
다시 눈을 뜨자 원오스님이 “정신차리고 관문을 뚫어라" 하니 다시 머리를 끄덕끄덕 하고
는 드디어 영원히 잠들었다. 「동림안둔암기기사 (東林顔屯庵記其事)」
118. 불교백척의 결과
한퇴지가 그 자신이 불교를 돕지 않고 배척한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였고, 그것이
구양수 (歐陽修) 에 와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불법이 우리 중국의 근심거리가 된 지 천여 년이 되었다. 그동안 불교에 현혹되지 않고
세상에서 우뚝하게 힘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불교를 없애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없어졌다
싶으면 또 모여들고 치면 잠시 깨졌다가 더욱 굳어지고 때리면 없어지기도 전에 더욱 치열
해져서 마침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그들의 유도 (儒道) 를 키우기 위해 불교를 배척하고 파괴했으나 사실상
우리 불도를 드날려 준 셈이니 무슨 해가 되었겠는가. 「공론 (公論)」
119. 서왕 (舒王) 의 해박한 불교지식
서왕 (舒王) 이 불혜법천 (佛慧法泉:운문종, 운거효순의 법제자) 선사에게 물었다.
“선가에서 말하는 세존의 염화시중은 어느 경에 나오는 말씀입니까?"
“대장경에는 실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였다.
“내가 얼마 전 한림원 (翰林院) 에 있을 때 우연히 「대범왕문불결의경 (大梵王問佛決疑
脛)」 3권을 발견하여 읽어 보니, 그 경에 매우 상세하게 이 말이 실려 있었습니다. 범왕이
영산회상에 이르러 부처님께 금색 연꽃을 바치고 몸을 던저 좌석을 만들고는 중생을 위해
설법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자리에 오르사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니 인간
천상의 백만 중생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
서 ‘나에게 정법안장 (正法眼藏) 과 열반묘심 (寶槃妙心) 이 있는데 이것을 마하가섭에게
나누어 맡기도다' 하셨습니다."
법천스님은 그의 해박한 연구에 탄복하였다. 「매계집 (梅溪集)」
120. 유위법만 닦다가 화두선을 하다 / 진국 (秦國) 부인 법진 (法眞) 비구니
진국부인 (秦國夫人) 계씨 (計氏) 는 법명이 법진 (法眞) 이다. 과부가 되고부터는 화장도
안하고 채식을 하고 헌 옷을 입고 지냈으나 유위법 (有爲法) 만 익혔지 선 (禪) 에는 아무
런 관심이 없었다.
경산 대혜선사가 겸 (謙) 선사를 보내 안부를 물었는데, 그의 아들 위공 (魏公) 과 준공 (浚
公) 이 겸선사를 머물게 하고 조사의 도로 그의 어머니를 이끌어주게 하였다. 법진이 하루
는 겸선사에게 물었다.
“경산사 대혜스님은 평소에 어떻게 사람들을 가르치십니까?"
“스님께서는 오직 사람들에게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화두만을 들게 하십니다. 여기에는
말을 붙여도 안되고 이리저리 헤아려도 안됩니다. 오직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한데
대하여 조주스님이 ‘없다'라고 한 말씀만을 들라 하십니다. 오직 이렇게 학인을 가르칠 뿐
입니다."
법진은 마침내 크게 믿음이 가서 개 화두 〔狗字〕 를 밤낮으로 참구하였다. 한번은 밤중까
지 앉아 있다가 갑자기 깨달은 바 있어 당장에 게송 몇 수를 지어 대혜스님에게 보냈는데,
그 맨 마지막 송은 다음과 같다.
종일토록 경문을 읽으니
예전에 알던 사람 만난 듯하네
자주 막히는 곳 있다고 말하지 마라
한 번 볼 때마다 한 번씩 새로워진다.
終日看脛文 如逢舊識人
莫言頻有 一擧一回新 「어록 (語錄)」
121. 몸을 잊고 구도하다 / 신광 (神光) 스님
신광 (神光) 은 자주 (磁州) 사람으로 마음이 넓고 뜻이 높은 사람이었다. 유학 (儒學) 을
하면서 많은 책을 널리 읽었고 현묘한 도리를 잘 논하였는데 한번은 이렇게 탄식하였다.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은 법도와 규범에 관한 것이며 불교의 경론도 묘한 도리를 다하지는
못했다. 요즘 듣자니 달마 (達磨) 대사가 소림사 (少林寺) 에 머물고 있다고 하는데, 도인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거기 가서 현묘한 경계에 도달해야 되겠다."
마침내 그곳으로 가서 새벽에서 밤까지 찾아뵈었으나 대사는 단정히 앉아서 벽만 마주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이라고는 한마디도 듣지 못하자 신광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
였다.
“옛사람은 도를 구하기 위해 뼈를 두들겨 골수를 냈고 몸을 내던져 게송을 들었다 하니 옛
사람도 이렇게까지 했는데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해 12월 9일 밤에는 큰 눈이 내렸다. 신광은 뜰 가운데 서 있었는데, 새벽이 되자 눈이 무
릎까지 쌓이니 달마대사가 가엾게 생각하여 물었다.
“그대는 눈 속에 서서 무슨 일을 구하느냐?"
신광은 슬픈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오직 자비로 감로문을 열어 널리 중생을 제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묘한 도는 오랜 겁을 부지런히 구해야 한다. 하기 어려운 것을 해
내야 하고 참기 어려운 것을 참아내야 하는데 그대는 어찌 작은 덕과 작은 지혜, 경망스런
마음과 오만한 마음으로 부처님의 진실된 가르침을 엿보려 하느냐?"
이에 신광은 가만히 날카로운 칼을 꺼내서 스스로 자기 왼팔을 잘라 스승 앞에 갖다 놓으니
달마는 그의 근기를 알아보고 마침내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도 처음 도를 구할 때는 법을 위해 자기 몸을 잊어버렸다. 너도 지금 내 앞에
서 팔을 잘랐으니 그 구도심은 옳구나 〔可〕 ."
그리하여 이름을 ‘혜가 (慧可) '라고 바꾸게 하였다.
신광이 물었다.
“모든 부처님의 법인 (法印) 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모든 부처님의 법인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아니다."
“저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스님께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마음을 가져 오너라. 그러면 너에게 편안케 해주마."
“마음을 찾아보아도 아무곳에도 없습니다."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신광은 여기서 깨달았다. 「전등 (傳燈)」
122. 종경록 (宗鏡錄) / 영명연수 (永明延困) 선사
영명연수 (永明延困:904∼976, 법안종) 선사의 조상은 단양 (丹陽)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가
전란에 휘말려서 오월 (吳越) 에 귀순하여 선봉이 되었다가 마침내 전당 (錢塘) 에 살게 되
었다. 선사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돌이 되었을 때 부모가 말다툼을 하여
사람들이 말려도 듣지 않자, 선사가 높은 책상에서 바닥으로 몸을 던지니 양친이 놀라서 안
고 울며 말다툼을 그만두었다.
커서는 유생이 되었는데 34세에 용책사 (龍冊寺) 로 가서 출가하고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고행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하루 한 끼 먹으면서 아침에는 대중들에게 공양하고 저녁
이면 선을 익혔다. 이어 태주 (台州) 천주봉 (天柱峯) 에 가서 90일 동안 선정을 익혔는데
종달새가 옷에다가 둥지를 쳤다.
천태 덕소 (天台德韶) 국사를 뵈오니, 국사는 한번에 그가 큰 그릇임을 알았다. 그리하여 가
만히 깊은 종지를 전해주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원 (元) 선사와 인연이 있으니 뒷날 불사를 크게 일으킬 것이다."
처음에는 명주 (明州) 자성사 (資聖寺) 에 주지하다가 건륭 (建隆) 원년 (960) 에 오월 (吳
越) 충의왕 (忠懿王) 의 청으로 영은 (靈隱) 의 새로 지은 절에 머무니 그 절의 첫번째 주
지가 되었다. 다음해에 청을 받아 영명사 (永明寺) 도량을 주지하니 대중이 2천명이나 되었
다. 그들은 모두 두타행을 잘 닦아 승려가 되려는 사람들이었는데 선사는 왕에게 아뢰어 도
첩을 받게 하고 삭발하고 먹물옷을 입혀 주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영명의 종지입니까?"
“영명의 종지를 알고 싶은가. 서호 (西湖) 의 물이니, 해가 뜨면 빛이 나고 바람이 불면 물
결이 인다."
또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오랫동안 영명도량에 있었으나 어찌하여 영명의 가풍을 알지 못합니까?"
“알지 못하는 곳을 알아라."
“알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소의 뱃속에서 코끼리 새끼가 태어나고 푸른 바다에 티끌 먼지가 일어난다."
개보 (開寶) 7년 (974) 에 주지를 그만두고 화정봉 (華頂峯) 으로 돌아가면서 송을 지었다.
목마르면 물 반국자 떠 마시고
배고프면 솔잎 한 입 따 먹으며
가슴속에는 한가지 일도 없어
높이 백운봉에 누웠노라.
渴飮半?水 飢 一口松
胸中無一事 高詛白雲峯
우연히 「화엄경」을 읽다가 “만일 보살이 큰 원력을 내지 않으면 그것은 보살의 마장
〔魔事〕 이다" 한 대목에서 마침내 「대승비지원문 (大乘悲智願文)」 을 지어 미혹한 뭇중
생들을 대신해서 날마다 한 번씩 발원하였다. 국청사 (國淸寺) 에서 참회법을 닦고 있을 때,
밤중에 절을 돌아보다가 보현보살상 앞에 공양한 연꽃이 홀연히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보고
이때부터 일생동안 꽃을 뿌리는 공양을 하였다. 또 관음보살이 감로수를 입에 부어주는 감
응을 받고 설법하는 재주 〔大辯才〕 를 얻게 되어「종경록 (宗鏡錄)」 100권을 저술하였다.
적음 (寂踵:慧洪覺範) 이 이에 대해 말하였다.
“내가 이 책을 깊이 읽어보니 방등부 계통의 경전을 누비며 넘나든 것이 60종이었으며, 중
국과 외국 성현의 말씀을 관통해서 논한 것이 3백가 (家) 였다. 천태종 (天台宗) 과 화엄종
(華嚴宗) 의 핵심을 알았고 유식 (唯識) 을 깊이있게 논하였으며, 세 종파의 다른 이치를 대
략 분석하여 하나의 근원으로 귀결시키려 하였다. 그러므로 의문이 마구 생기면 깊은 뜻을
낚고 먼 뜻을 길렀으며, 어두운 점을 쪼개고 파헤칠 때는 치우치고 삿된 견해를 쓸어버렸다.
그의 문장은 아름답고 자유분방하다. 그러므로 이 글은 자기 마음을 활짝 깨우쳐 성불하는
으뜸이며 달마가 서쪽에서 온, 전할 수 없는 바로 그 뜻을 분명히 알려준다."
선사가 입적하고 나서도 총림에서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는데 희령 (7寧:1068∼1077)
연간에 원조 (圓照) 선사가 비로소 이 책을 들고 나와 널리 대중에게 알렸다.
“예전에 이 보살께서는 스승없이 터득하는 지혜 〔無師智〕 와 저절로 터득하는 지혜 〔自
然智〕 를 숨기고 오로지 보통지혜만을 써서 모든 종파의 강사들에게 서로 질문공세를 펴도
록 명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심종 (心宗) 의 저울대를 가지고 그들의 이치를 고르게 달았으
니 그 정묘한 극치는 가히 마음의 거울로 삼을 만하다."
이로부터 납자들이 다투어 그 책을 전하고 읽게 되었다.
원우 (元祐:1086∼1093) 연간에 보각조심 (寶覺祖心) 선사는 그때 이미 나이가 많았으나 손
에서 이 책을 놓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 책을 늦게야 보게 된 것이 한스럽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글과 노력으로는 미칠
수 없는 이치가 그 속에 다 모여 있다."
그리고는 그 요점만을 골라서 세 권의 책으로 만들어 「명추회요 (冥樞會要)」라고 이름지
으니 세상에 널리 퍼졌다. 후세에 이 두 분 노스님이 없었다면 총림은 숭상할 바가 없었을
것이다. 오래된 학인은 날로 속스럽고 게을러져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을 것이며 늦게 온
사람은 날로 숨이 막혀 공연히 근거없는 말만 할 뿐일 것이니 무엇으로 이 책을 알 것이며
그 뜻을 논하고 음미할 수 있겠는가. 설사 아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크게 마음에 두지 않
고 그저 조사의 교외별전이거니 불립문자거니라고만 생각할 것이니 어찌 문자의 속까지를
찌를 수 있겠는가. 그런 이들은 달마 이전 마명 (馬鳴) 과 용수 (龍樹) 도 역시 조사였으나
논을 쓸 때는 백가지 경의 이치를 아울렀고, 광범위하게 보려 할 때는 용궁의 책까지도 빌
려다 보았으며 달마 이후에 관음대적 (觀踵大寂:馬祖道一) ·백장회해 (百丈懷海) ·황벽 희
운 (黃岫希運) 같은 분도 역시 조사였지만 모두 3장 (三藏) 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모든 종
파들 널리 공부하였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그 분들의 어록이 모두
남아있어 가져다 볼 수 있는데 어찌하여 달마만을 이야기하는가.
성인의 세상이 멀어질수록 중생의 근기가 낮아져 뜻과 생각이 치우치고 짧다. 도를 배우는
일이 간단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앉아서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농부
가 밭갈고 김매는 일은 게을리하면서 침을 흘리며 밥먹는 것만 쳐다보는 것과 같으니 웃을
일이다.
영명선사는 늘 이렇게 발원하였다.
“널리 발원하옵니다. 시방 모든 학인과 뒤에 오는 현인들이 도는 부자가 되고 몸은 가난하
며, 정 (情) 은 성글고 지혜는 빈틈없게 되어지이다. 그리하여 불조의 마음 종지를 펼치고
인간·천상의 안목을 활짝 열게하여 지이다" 「보록등 (寶錄等)」
【주】
*허유와 소부:요 (堯) 임금이 허유에게 왕의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하니, 허유는 더럽다 하
여 거절하고 영수 (潁水) 의 양지쪽에 있는 소부를 찾아가 그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자 소부
는 귀가 더럽혀졌다 하여 물가에 가서 귀를 씻었다.
*달팽이 뿔:장자 (莊子) 에 나오는 우화. 달팽이 뿔 위에서 씨국 (氏國) 이 다투어 수만의
희생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로서, 보잘 것 없는 명리나 소유욕을 두고 다툼을 비유한 말이다.
*십과:번역 (贊譯) ·해의 (解義) ·명률 (明律) ·감통 (惑通) ·유신 (遺身) ·독송 (左誦)
·호법 (護法) ·흥복 (興福) ·잡과 (雜科) .
*육왕 회련 (1009∼1090) :운문종 늑담스님의 법제자. 인종 (仁宗) 황제의 존경을 받아 왕에
게 불법을 설하고 대각 (大覺) 이라는 호를 받았다.
*영안 설숭 (1007∼1072) :운문종 효총스님의 법제자. 「보교편 (輔敎編)」을 저술하여 선문
(禪門) 의 계통을 밝혔고, 「원교론 (原敎論)」을 지어 유불일치 (儒佛一致) 를 주장하면서
한퇴지의 배불론을 반박하였다.
*영지 원조 (?∼116) :율 (律) 과 천태교관을 배워 강론하면서 여러 종파의 학문을 두루 닦
았다.
*사삼매 (四三昧) :네 가지 삼매로, 상좌삼매 (常坐三昧) , 상행삼매 (常行三昧) , 반좌반행삼
매 (半坐半行三昧) , 비행비좌삼매 (非行非坐三昧) 를 이른다.
*철륜왕 (鐵輪王) :전륜성왕의 4위계인 금륜왕 (金輪王) , 은륜왕 (銀輪王) , 동륜왕 (銅輪王)
, 철륜왕 (鐵輪王) 중의 마지막.
*오품위 (五品位) :천태종에게 원교 (圓敎) 의 수행 계위중 십신 (十信) 이 전단계. 오품 제
자위 (五品弟子位) 라고도 한다.
*원문의 사 (沙) 는 묘 (妙) 인 듯하다.
*부차차 (不借借) :굉지정각 (宏智正) 覺이 동산 (洞山) 오위설 (五位說) 을 설명하기 위해
만든 사차차 (四借借) 중 세번째, 네번째 「차 (借) '는 공 (功:修, 事) 과 위 (位:證, 理) 를
빌어 법상 (法相) 을 설명한다는 뜻.1.차공명위 (借功明位) 2.차위명공 (借位明功) 3.차차부
차차 (借借不借借) 4.전초부차차 (¡超不借借) .부차차 (不借借) 는 양쪽을 모두 잊은 제일
의제 (第一義諦) 를 뜻하며 동산오위 (洞山五位) 중 「겸지 (兼至) ' 「겸도 (兼到) '에 해
당한다.
*당나라 상국 배휴 (輩休) 가 중 바지를 입고 아가씨 방을 찾아가 걸식한 일이 있다. 【원
문주】
*당의 측천무후 (則天武后) 가 비단도포와 옥대를 만회 (萬回) 스님에게 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원문주】
*만자 (卍字) 속장경에는 지영 (圍寧) 으로 되어 있다.
*5품위 또는 5품제자위 (五品弟子位) 라고 하여 천태종에서 원교 (圓敎) 8위 (八位) 중의
제1위 (第一位) 를 말함.
*마조스님이 상당하였을 때 백장스님이 앞으로 나가 자리를 말아서 거두자 마조스님은 곧
법좌에서 내려왔다.
*瓢兒:길에서 음악을 켜고 표규 (瓢叫:법패의 일종) 를 부르며 구걸하는 아이.
*일숙각 영가스님의 증도가에 나오는 구절 ‘용을 항복받은 발우와 범 싸움 말린 석장이여,
양쪽의 쇠고리는 짤랑짤랑 울리는도다.이는 모양을 내려 허트로 지님이 아니요,부처님 보배
지팡이를 몸소 받음이로다."
*선자덕성 (船子德誠) :당나라 약산 유엄스님의 제자. 화정에 배를 띄우고 오가는 사람을 건
네 주다가 협산 선회스님에게 법을 전하고 배를 뒤집어 물 속에 자취를 감췄다.
*대혜어록에는 이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매일 방장실에 들어가 ‘있다는 말과
없다는 말이 등넝쿨이 나무에 기대 있는 것과 같다' 함을 거량하고서, 내가 (대혜) 대답하
려고 입만 열면 원오스님은 틀렸다고 하셨다."
*계사 (階司) :고관들의 행차에 길을 인도하는 하급관리.
*왕량 (王良) 백락 (伯樂) :옛날에 명마를 잘 알아보던 사람.
*원각경 보안보살장에서 설명하는 네 가지 병통. 작 (作) 은 어떤 목적을 위해 꾸준히 작용
하는 것, 지 (缺) 는 그 작용을 그치는 것, 임 (任) 은 되는대로 놔두는 것, 멸 (滅) 은 적멸
을 추구하는 것.
삼조 승찬대사의 신심명강설
신심명 강설(信心銘講說)
三祖 僧璨大師
1.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지도무난 유혐간택
지극한 도(道)란 곧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말합니다. 이 무상
대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오직 간택(揀擇)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양변(兩邊), 즉 변견(邊見)에 떨어져
마침내 중도의 바른 견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간법(世間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니며, 마구니(魔軍)를
버리고 불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닙니다. 무었이든지 취하거나
버릴 것 같으면 실제로 무상대도에 계합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참으로 불법을 바로 알고, 무상대도를
바로 깨치려면 간택하는 마음부터 먼저 버리라 한 것입니다.
2.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
단막증애 통연명백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 두 가지 마음만 없으면 무상대도는
툭트여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는 좋아하고 마구니는 미워하며, 불법을 좋아하고 세간법은
미워하는 증애심(憎愛心)만 버리면 지극한 도는 분명하고 또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간택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즉 증애심입니다. 이 증애심만 완전히 버린다면 무상대도를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읍니다.
이상의 네 귀절이 바로 [信心銘]의 근본 골자입니다.
이제 정맥으로서 낭야 각(瑯揶覺)선사라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에게 어느 재상이 편지로 "신심명은 불교의 근본 골자로서
지극한 보배입니다. 이 글에 대하여 자세한 주해(註解)를 내려주십시요"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낭야 각선사가 답하기를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하는 첫 귀절만 큼지막하게
쓰고, 그 나머지 뒷 귀절들은 모두 조그맣게 써서 주해로 붙여버렸습니
다. 그렇게 한 뜻이 무엇일까요? [신심명]의 근본 골수는 크게 쓴 귀절
속에 다 있으므로 이 귀절의 뜻만 바로 알면 나머지 귀절들은 모두 이
귀절의 주해일뿐, 같은 뜻만 바로 알면 나머지 귀절들은 모두 이 귀절의
주해일뿐, 같은 뜻이라는 말입니다. 낭 야각선사가 앞 네 귀절만 크게
쓰고 뒤절은 주해로 써서 답장한 이것은 [신심명]에 대한 천고의
명 주해로서, 참으로 걸작이라는 평을 듣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신심명]을 바로 알려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증애심만 떠나면 중도정각
(中道正覺)입니다. 대주스님은 [돈오입도요문(頓悟入道要門)]에서
'증애심이 없으면 두 성품이 공하여 자연히 해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첫 네 귀절이 [신심명]의 핵심이고 뒷 귀절들은
주해의 뜻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3.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하나니
호리유차 천지 현격
"지극한 도는 어렵지않다. 취하고 버리는 마음과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버리라"고 하니, "아 그렇구나, 천하에 쉽구나!"
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이뜻을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하늘과 땅 사이처럼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쉽다는 것은 간택심 증애심만 버린다면 중도를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성불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으며,
무상대도를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지만, "이 간택심을 버린다,
증애심을 버린다"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뜻을 털끝만큼이라고 어긋나게 되면 하늘과 땅 사이 만큼이나
벌어진다고 하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4.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欲得現前이어든 莫存順逆하라
욕득현전 막존순역
"무상대도를 깨우치려면 따름(順)과 거슬림(逆)을 버리라"한
것입니다. '따름'과 '거슬림'은 상대법으로서, 따른다 함은
좋아한다는 것이고, 거슬린다 함은 싫어한다는 것이니, 이는
표현은 다르나 '싫어하고 좋아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데, 지극한 도를 얻으려면
따름과 거슬림의 마음을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5. 어긋남과 다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違順相爭이 是爲心病이니
위순상쟁 시위심병
어긋난다, 맞는다 하며 서로 싸운다면, 이것이 갈등이 되고
모순이 되어 마음의 병이 된다는 말입니다.
6.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不識玄旨하고 徒勞念靜이로다
불식현지 도로염정
"참으로 양변을 여읜 중도의 지극한 도를 모르고 애써 마음만
고요히 하고자 할뿐이라"는 것입니다. '대도를 성취하려면
누구든지 가만히 앉아서 고요히 생각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읍니다. 이 대도(大道)
라는 것은 간택심(揀擇心) 증애심(憎愛心) 순역심(順逆心)을
버리면 상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므로, 마음을 억지로
고요하게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분주하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면 안된다고 하니 그러면 분주하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혹 생각할는지 모르지만,움직임과 고요함
이 두 가지가 다 병으로서 움직임이 병이라면 고요함도 병이고
어긋남이 병이라면 맞음도 병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두가
상대적인 변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대를 버려야 대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7.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圓同太虛하야 無欠無餘어늘
원동태허 무흠무여
"지극한 도는 참으로 원융하고 장애가 없어서,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다"고 하였읍니다. 즉 융통자재하여 아무런 걸림이
없음을 큰 허공에 비유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조금도 모자라거나
남음도 없읍니다. 지극한 도란 누가 조금이라도 더 보탤 수 없고
덜어낼 수도 없어 모두가 원만히 갖추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바로 깨칠 뿐 증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지극한
도가 눈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8.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도다.
良由取捨하야 所以不如라
양유취사 소이불여
"지극한 도는 취하려 하고, 변견은 버리려하는 마음이
큰 병이라"는 것입니다. 대중들이 변견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나도 할수 없어서 중도를 많이 얘기하지만, 그 말을
듣고 중도를 취하려 하고 변견을 버리려 하면 이것이 큰 병이라는
뜻입니다. 혹 변견은 취하고 중도를 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병은 마찬가지로서 무엇이든지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큰 병입니다. 대도에는 모든
것이 원만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라고 남는 것이없지만, 우리가
근본 진리를 깨치지못한 것은 취하고 버리는 마음, 즉 취사심
(取捨心)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생을 버리고 부처가
되려는 것도 취사심이며, 불법을 버리고 세숙법을 취하는 것도
취사심으로서 모든 취하고 버리는 것은 다 병입니다. 때문에
"취사심으로 말미암아 여여한 자성을 깨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여여한 자성'이란 무상대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취사심을 버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9. 세간의 인연도 따라가지 말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말라.
莫逐有緣하고 勿住空忍하라
막축유연 물주공인
'있음의 인연(有緣)'이란 세간법과 같은 말로서 인연으로
이루어진 세상 일이라는 뜻입니다. 공의 지혜(空忍)란
곧 출세간법 이라는 뜻입니다. 인연이 있는 세상 일도
좇아가지 말고 출세간 법에도 머물지 말라는 것이니 두 가지가
다 병이기 때문입니다. 있음(有)에 머물면 이것도 병이고, 반대로
공함에 머물면 이거도 역시 병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있음을
버리고 공함을 취하거나, 공함을 버리고 있음을 취한다면 이것이
취사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때문에 우리가 무상대도를 성취
하려면 세간의 인연도 버리고 출세간법도 버리고, 있음과 없음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10. 한 가지를 바로 지니면
사라져 저절로 다하리라.
一種平懷하면 泯然自塵이라
일종평회 민연자진
'일종(一種)'이란 중도를 억지로 가리킨 말입니다. 있음과
없음을 다 버리고 양변을 떠나면 바로 중도(中道)가 아니냐
하는 말입니다. 일종이란 중도를 가리키므로 일체 만법이
여기에서 다해 버렸으며,동시에 일체 만법이 원만구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절로 다한다'고 했다 해서, 무엇이
영영 없어 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기서 '다한다'는 것은
일체 변견이,일체 허망(妄)이 다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 항하사(恒河沙) 같은 진여묘용이 현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세상 인연을 좇지도 않고 출세간의 법에도
머물지 않으면 중도가 현전하여 일체 변견이 다하고 항사묘용
(恒沙妙用)이 원만구족하게 됩니다.
11. 움직임을 그쳐 그침에 돌아가면
그침이 다시 큰 옴직임이 되나니
止動歸止하면 止更彌動하나니
지동귀지 지갱미동
"움직임을 그쳐서 그침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바로 고요함(靜)
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마음을 누르고
고요한 데로 둘아가려 하면, 고요하려는 마음이 점점 더 크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화두를 열심히 참구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망상이
일어 난다고 이 망상을 누르려고 하면 할수록 망상이 자꾸 일어
나는 것과도 같으니, 이는 망상에 망상을 보태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예를 들면 참선을 하는 데 있어서 '화두만 참구하고
일어나는 망상을 덜려고도 하지 말고 피하려고도 하지 말며,
오직 화두만 부지런히 참구하라'고 내가 누누이 일러주었는데도,
어떤 납자는 "자꾸만 일어나는 망상을 덜려고 하는 이것이 참선
공부에서 가장 힘들다"고 더러 나에게 말합니다. 이는 망상을
덜려고 망상을 일으킨 것으로서 망상에 망상 하나를 더 보텐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망상을 덜려는 생각도 덜려는 생각도
덜지 않으려는 생각도 버리도 화두만 참구하라'고 납자들에게
더러 일러줍니다만, 그것이 쉽게 안되는 모양입니다.
이것이 그침(止), 곧 고요함을 좋아하여 움직임(動)을 버리고
고요함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점점 더 크게 움직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12. 오직 양변에 머물러 있거니
어찌 한 가지임을 알 건가.
唯滯兩邊이라 寧知一種가
유체양변 영지일종
"양변에 머물러 있으니, 어떻게 중도를 알겠는가"하였습니다.
'그침(止), 곧 고요함은 버리고 움직이는(動) 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하겠지만 이것도 양변이라는 것입니다.움직임도
고요함도 버리고 자성을 바로 볼 뿐, 양변에 머물러 있으면
일종(一種)인 중도의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육조스님께서도
유언에서 '언제든지 양변을 버리고 중도에 입각해서 법을 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13. 한 가지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 다 공덕을 잃으리니
一種不通하면 兩處失功이니
일종불통 양처실공
'일종(一種)', 즉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진여자성(眞如自性)에
통하지 못하면 양쪽의 공덕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될까요?
14. 있음을 버리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면 공함을 등지느니라.
遣有沒有요 從空背空이라
견유몰유 종공배공
이 구절은 참으로 깊은 말씀입니다.
현상(有)이 싫다고 해서 현상을 버리려고 하면 버리려 하는
생각이 하나 더 붙어서 더욱 현상에 빠지고, 본체(空)가 좋다하여
공을 좇아가면 본체를 더욱 등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공이란 본래
좇아가거나 좇아가지 않음이 없는 것인데, 공을 따라갈 생각이 있
으면 공과는 더욱 등지게 된다고 하였읍니다. 현상을 버리고서
공을 따르려고도 하지 말며, 반대로 본체를 버리고서 현상을 따라
가려고도 말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양변이며 취사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취사심을 버려야만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15. 말아 많고 생각이 많으면
더욱 더 상응치 못함이요
多言多慮하면 轉不相應이요
다언다려 전불상응
이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설명하고
거듭 설명을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본래 대도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진 것(言語道斷 心行處滅
)'입니다. 이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대도(大道)가 이와 같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려 하다가는 대도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16.말이 끊어지고 생각이 끊어지면
통하지 않는 곳 없느니라.
絶言絶慮하면 無處不通이라
절언절려 무처불통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진'곳에서는 자연히
대도를 모를래야 모를 수 없읍니다. 그렇다고 '말과 생각이
끈어진' 여기에 집착하면, '통하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통하지 않아 아주 모르게 됩니다. 이 '말과 생각이
끊긴것'은 그 자취마저 없는 데서 하는 말임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경지에서는 사통팔달(四通八達)하여 통하지 않는 곳이 없읍니다
그러나 '말과 생각이 끊어진 곳'에 집착하면 전체가 막히고
맙니다. 여기서도 근본은 취사심을 버려야 대도를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17.근본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고
비춤을 따르면 종취를 잃나니
歸根得旨요 隨照失宗이니
귀근득지 수조실종
자기의 근본 자성으로 돌아가면 뜻을 얻어 무상대도를 성취하고,
'비춤을 따른다(隨照)'는 것은 자기 생각나는 대로 번뇌망상
업식망정을 자꾸 따라가면 근본 대도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18.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보면
앞의 공함보다 뛰어남이라
須臾返照하면 勝却前空이라
수유반조 승각전공
잠깐 동안에 돌이켜 비춰보고 자성을 바로 깨치면 '공했느니
공하지 않느니'한 것이 다 소용없는 꿈같은 소리라는 뜻입니다.
19.앞의 공함이 전변함은
모두 망견 때문이니
前空이 轉變은 皆由妄見이니
전공 전변 개유망견
앞에서의 공함이 이렇게도 변하고 저렇게도 변하는 것은 모두
망령된 견해(妄見)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18공(十八
空) 20공(二十空) 등 여러가지를 말씀하셨지만, 그것은 중생이
못 알아듣기 때문에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 실제로 뜻이
그곳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허공이 어떻게 옮겨 변할 수 있겠습니
까? 공함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말하게 된 것은 중생의 망견(妄見)
때문이며 진공(眞空)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20. 참됨을 구하려 하지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쉴지니라.
不用求眞이요 唯須息見이라.
불용구진 유수식견
누구든지 깨치려면 진여본성을 깨치려 하지말고 망령된 견해만
쉬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빛나듯 태양을
따로 찾으려 하지 말고 망상의 구름만 걷어 버리면 된다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은 부처님과 같은 자성청정한 진여본성을 다 갖추고
있어서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여자성을 보지 못하는 까닭도 망견이 앞을
가려서 보지 못하는 것이니, 망견만 쉬어버리면 진여자성을
달리 구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망견이란
무엇일까?
21. 두 견해에 머물지 말고
삼가 좇아가 찾지 말라.
二見에 不住하야 愼莫追尋하라
이견 부주 심막추심
두 가지 견해는 즉 양변의 변견을 말합니다. 이 변견만 버리면
모든 견해도 따라서 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변에 머물러 선악
시비 증애 등 무엇이든지 변견을 따르면 진여자성은 영원히
모르게 됩니다
22.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
재有是非하면 紛然失心이니라
재유시비 분연실심
갓 시비가 생기면 자기 자성을 근본적으로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앞에서는 자기의 진여자성을 구하려고 하지 말고
망령된 견해만 쉬면 된다고 했는데, 그 망령된 견해란 곧
양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그 양변을 대표하는 시비심
(是非心), 즉 옳다 그르다 하는 마음을 들어 망견이라는
뜻을 보이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불법(佛法)이 옳고 세법(世法)이 그르다든지, 반대로
세법이 옳고 불법이 그르다든지 하는 시비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것이 큰 병입니다. 우리가 실제의 진여자성을
바로 깨쳐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이 시비심부터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망견을 쉬고 양변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비심은 두 가지 견해를 대표하는 예로 들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상대법(相對法)의 전체가 다 여기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23.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
二由一有니 一亦莫守하라
아유일유 일역막수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하나마저도 버려버리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양변을 떠나서 중도를 알았다 해도 중도가 따로 하나로
하나 때문에 둘이 있으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고 버려라,
곧 중도마저도 버리라 하였습니다. 중도는 무슨 물건이 따로
존재하듯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변을 떠나서 융통자재한 경지를
억지로 표현해서 하는 말입니다.
24. 한 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 법이 허물 없느니라.
一心不生하면 萬法無咎니라
일심불생 만법무구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만법이 원융무애하여, 아무 허물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허물이 없다'는 것은 융통자재를 말한 것으로서
사사무애(事事無碍) 이사무애(理事無碍)의 무장애법계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는 어디서 성립되느냐 하면 바로 양변을
여읜 중도에서 성립됩니다. 즉 시비심의 두 견해를 버리고, 하나마
저도 버림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한생각도 나지
않고 일체 만법에 통달무애한 무장애법계가 벌어져 일체에
원융자재하게 됩니다. 이것을 이른바 '허물이 없다'고 합니다.
25. 허물이 없으면 법도 없고
나지 않으며 마음이랄 것도 없음이라
無咎無法이요 不生不心이라
무구무법 불생불심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허물도 없고 법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있어서 원융무애한 줄 알면 큰 잘못입니다.
이 경지는 허물도 법도 없으며, 나지도 않고 마음이랄 것도
없습니다. 허물도 변(邊)이며, 법도 변이고, 나는것도 변이며,
마음이라 해도 변입니다. 이 모두가 없으면 중도가 안될래야
안될 수 없습니다.
26. 주관은 객간을 따라 소멸하고
객관은 주관을 따라 잠겨서
能隋境滅하고 境逐能沈하야
능수경멸 경축능침
능(能)은 주관을, 경(境)은 객관을 말합니다. 주관은 객관을
따라 없어져 버리고 객관은 주관을 좇아 흔적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니,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것이 남아 있으면 모두가
병통이라는 말입니다.
27. 객관은 주관으로 말미암아 객관이요
주관은 객관으로 말미암아 주관이니
境由能境이요 能由境能이니
경유능경 능유경능
객관은 주관 때문에, 주관은 객관 때문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관이 없으면 개관이 성립하지 못하고 객관이 없으면 주관이
성립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 모두가 병이므로 주관 객관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28. 양단을 알고지 할진댄
원래 하나의 공이니라.
欲知兩段인댄 元是一空이라
욕지양단 원시일공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두가지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원래
전체가 한 가지로 공(空)하였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관도 객관도 찾아불 수 없는 것이 근본 대도인데. 주관 객관을
따라간다면 모두가 생멸법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두를 버려야만 대도에 들어어게 되는데, 양단(兩段)이
모두 병이고 허물이므로 이것을 바로 알면 ㅈ체가 다 공했더라는
것입니다.
'공했다'는 것은 양변을 여읜 동시에 진여가 현전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공했다고 한 그 하나의 공은 말똑처럼 서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떻게 된 것일까요?
28. 양단을 알고지 할진댄
원래 하나의 공이니라.
欲知兩段인댄 元是一空이라
욕지양단 원시일공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두가지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원래
전체가 한 가지로 공(空)하였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주관도 객관도 찾아불 수 없는 것이 근본 대도인데. 주관 객관을
따라간다면 모두가 생멸법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두를 버려야만 대도에 들어어게 되는데, 양단(兩段)이
모두 병이고 허물이므로 이것을 바로 알면 ㅈ체가 다 공했더라는
것입니다.
'공했다'는 것은 양변을 여읜 동시에 진여가 현전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공했다고 한 그 하나의 공은 말똑처럼 서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어떻게 된 것일까요?
30. 세밀하고 거칠음을 보지 못하거니
어찌 치우침이 있겠는가.
不見精추어니 寧有偏黨가
불견정추 영유편당
앞 구절에서 '하나의 공'이란 공공적적(空空寂寂)하여, 일체의
명상(名相)이 떨어져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공이 양단과 같으므로 일체 삼라만상 그대로가
중도 아님이 하나도 없읍니다. 돌 하나 풀 한 포기까지도 중도
아님이 없으므로, 사사무애(事事無碍)한 법계연기(法界緣起)의
차별이 벌어지게 되어서 삼라만상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차멸이 벌어진다고 하니 어떤 실제의 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삼라만상의 모든 차별이 벌어져 드러났다
하여도 거기에 세밀함과 거칠음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이 곧 공이 아니며 공 아님이 곧 공이므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
지만, 여전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산이라느니 물이라는 생각과, 산은 높고 물은 푸르다는 등 이러한
견해가 있으면, '한 가지 공이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다
포함한다'는 뜻을 확실히 알지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쌍차쌍조
(雙遮雙照)하여 차조동시(遮照同時)한 무장애법계에 있어서는
세밀함과 거칠음을 불 수 없읍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쪽으로
치우치고 편벽된 것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모든 상이 다 떨어져 원융무애하고 대자재한
것을 말한 것이지, 세밀함과 거칠음이나 편당(偏黨)을 가지고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누구든지 세밀함과 거칠음에 기우는
편당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하나의 공이 양단과 같아서
삼라만상을 다 포함한다'는 도리는 절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31. 대도는 본체가 넓어서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거늘
大道體寬하야 無易無難이어늘
대조체관 무이무난
무상대도는 그 본바탕이 넓기로는 진시방무진허공(盡十方無盡虛空)
을 여러 억천만개를 합쳐 놓아도 그 속을 다 채우지 못합니다.
이같은 무변허공(無邊虛空)이라 해도 실제로는 이 자성에다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대도의 본체는 바탕이 넓다'고
한 것으로서 무궁무진하고 무한무변한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대도의 본체는 넓어서 어려움도 없고 쉬움도 없다'한 것은 본래
스스로 원만히 구족되어 있으므로 조금도 어렵다거나 쉽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래 스스로 원만히 구족되어 있기 때문에
대법이든 무엇이든지간에 우리가 공부해서 성춰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대도를
성취하려면 참으로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므로 쉬운 것도 역시 아니
라는 알입니다. 곧 쉽다, 어렵다 하는 것은 모두 중생이 변견으로
하는 말일 뿐입니다. 이는 본래 스스로 원만히 갖추어져 있는 대도
를 모르고 하는 말이므로 이러한 쓸데없는 지견(知見)은 모두 버려
라 하는 것입니다.
32. 좁은 견해로 여우같은 의심을 내어
서둘수록 더욱 더디어지도다.
小見이 狐疑하야 轉急轉遲로다
소견 호의 전급전지
조그만한 견해로 여우처럼 자꾸 의심하면 급하게 서둘면 반대로
더욱 더디어진다고 하였읍니다. 대도는 본래 스스로 원만히 갖추어
져 있는데, 이를 자꾸 가깝게 하려 하면 더욱 멀어지는 것이 사실이
므로, 누구든지 대도를 성취하려면 쉽다는 생각도 내지 말고 어렵다
는 생각도 내지 말며, 급한 생각도 더디다는 생각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쉽다 어렵다 급하다 더디다 하는 등이 모두가 변
견으로서 취사심(取捨心)이기 때문입니다. 어러한 취사심을 버려야
만 대도를 성취한다는 의미입니다.
33.집착하면 법도를 잃음이라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가고
집지면 실도라 필입사로요
執之 失度 必入邪路
대도나 중도나 또는 다른 뭐라고 하든지, 이를 집착하면 병이
됩니다. 누구든지 중도를 성취하고 부처를 이루려면 집착하는
병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집착이 없는 사람은 대도를 성취한
사람이면, 집착이 있는 사람은 대도를 성취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병이 있느면 법도를 잃고
근본 대도와는 어긋나서 반드시 삿된 길, 즉 변견에 떨어지게
됩니다.
34. 놓아 버리면 자연히 본래로 되어
본체는 가거나 머무름이 없도다.
放之면 自然이니 體無去住라
흘연히 집착을 놓아 버리면 모두가 자연히 현전하며, 본체는
본래 가는 것도 머무는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머무름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가는 것이 있으면 머무는 것이 있읍니다.
그러나 대도는 본래 원만구족하여 머무름과 가는 것이 떨어졌기
때문에 집착하는 생각만 완전히 놓아버리면 자연히 대도를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변견인 취사심을
버려야만 대도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35. 자성에 맡기면 도에 합하여
소요하여 번뇌가 끊기고
任性合道하야 逍遙絶惱하고
임성합도 소요절뇌
모든 집착심을 놓아 버리면 자기의 자성을 따라서 그대로 도에
합합니다. 이는 마치 구슬이 쟁반에서 구르듯이 힘 안들이고
마음대로 활동하여 아무런 장애도 없읍니다. 소요(逍遙)란
한가롭고 자재한 기상을 말하는데, 일체 번뇌망상이 다 떨어
졌다는 뜻입니다.
36. 생각에 얽매이면 참됨에 어긋나서
혼침함이 좋지 않느니라.
繫念하면 乖眞하야 昏沈이 不好니라
계념 괴진 혼침 불호
우리가 모든 집착심을 놓아 버리면 대도가 현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러나 일반적으인 번뇌망상은 그만두고,
대도 중도 부처라는 등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생각이 얽매이면
바로 진리와는 어긋나므로, 중도도 깨져 버리고 부처도 죽어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부처라는 생각과 중도라는
생각, 참되다는 생각 등 어떤 생각이든지 이런 생각이 추호라도
마음에 남는다면 근본은 모두 깨지고 맙니다.
이처럼 생각에 얽매이지 말라 했다 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멍텅구리처럼 앉아만 있으면 되는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생각에 얽매여도 병이고, 혼침해도 병이므로, 이 모두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37.좋지 않으면 신기를 괴롭히거늘
어찌 성기고 친함을 쓸 건가.
不好勞神커든 何用疎親가
불호노신 하용소친
쓸데없이 정신을 쓰지 말아라, 정신을 쓰면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어찌 성김과 친함을 쓸까보냐'하는 것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성김이란 멀리한다는 뜻이니 세간법과 악을 버림이고,
친함이란 가까이한다는 뜻으로서 세간법과 악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취하려 하지도 말며, 세간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하려고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리하여
양변 변견을 버리지도 취하지도 않을 때, 우리가 무상대도를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38. 일승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을 마워하지 말라.
欲趣一乘이어든 勿惡六塵하라
욕취일승 물오육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일승(一乘)이란 무상대도를 말합니다.
무상대도를 성취하려거든 객관의 대상인 육진을 버리지 말며
미워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진을 이대로가 전체로
진여대용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육진이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육진이 아니라 진여대용(眞如大用)의 육용(六用)
이라는 것입니다. 중생이 집착심을 가지면 육진이 되고 눈 밝은
사람이 바로 쓰면 육용(六用)으로서 진여의 대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진을 버리고서 어찌 무상대도를 구할 수
있겠느냐고 하는 말입니다.
39.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도리어 정각과 동일함이라
六塵을 不惡하면 還同正覺이라
육진 불오 환동정각
진여대용인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바로 정각(正覺)이라는
말입니다. 육진을 버리고 정각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마치 동쪽
으로 가려고 하면서 서쪽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육진을 바로 보라는 것입니다.
40. 지혜로운 이는 함이 없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얽매이도다.
智者는 無爲어늘 愚人은 自縛이로다
지자 무위 우인 자박
지혜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읍니다. 왜냐하면 대도가
현전하여 버릴래야 버릴 것이 없고 취할래야 취할 것이 없는데,
무슨 할 일이 있겠읍니까? 잘 모르는 사람은 공연히 취하려고
애쓰며 버리려고 고생을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근본 대법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취사심에 묶여서 엎어지고 자빠지며
지옥으로 갔다 극락으로 갔다 하며 온갖 전도(顚倒)를 거듭합니다.
그러면 '본래 스스로 함이 없다(本自無爲)'고 하여 손도 꼼짝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이것도
무위법에 떨어진 것이 됩니다. '함이 없다(無爲)'고 했지만
실제는 함이 없는 것을 찾아 볼수도 없고 중도를 깨쳐도 중도도
찾아볼 수 없는 구경에서 하는 말이지, '함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41. 법은 다른 법이 없거늘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하여
法無異法이어늘 妄自愛着하야
법무이법 망자애착
법은 다른 법이 없어서 중생이 생각하고 집착할 특별한 법이
없는데, 공연히 스스로 애착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세법을
버리고 불교를 해야겠다, 교학을 버리고 참선을 해야겠다,
반대로 참선하면 무슨 소용있나, 교(敎)나하지 하는 것 등이
모두 애착입니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선이니, 교니, 중생이니,
부처니, 마구니니 하는 분별들은 모두 망견인 변견으로서
애착심입니다, 그러니 그 모두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42.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니
어찌 크게 그릇됨이 아니랴.
將心用心하니 豈非大錯가
장심용심 기비대착
'쓸데없이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쓰고 있으니 어찌 크게 잘못됨이
아니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알고 보면 우리가 성불하려고
애를 쓰고, 참선하려고 애를 쓰고, 경을 배우려고 애를 쓰는 것
전부가 마치 머리위레 머리 하나를 더 얹으려는 것과 같읍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대도는 본래 스스로 원만히 갖추어져서 그
진여광명이 일체에 현성(現成)해 있으므로,우리가 피할래야 피할
수 없고 숨을래야 숨을 수도 없읍니다. 그런데 자꾸 마음으로
잡으려 하고 성취하려고 하면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잘못된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든 바로 깨치면 그만입니다만, 그러나 깨쳤다는
생각도 병입니다. 더구나 깨치지 않았다면 참으로 집착심을
떠날 수 없는 것이므로, 깨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뜨지 않고서는 광명을 불 수 없듯이 깨치지 못하면 밤낮으로
현저한 이 진여광명을 절대로 볼 수 없읍니다.
43.미흑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생기고
깨치면 좋음과 미움이 없거니
迷生寂亂이요 悟無好惡어니
미생적란 오무호오
미혹할 때는 고요함과 혼란함이 생기나 깨치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 하는 감정은 취사심이므로
미혹할 때는 집착심이 있지만 깨치면 취사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44. 모든 상대적인 두 견해는
자못 짐작하기 때문이로다.
一切二邊은 良由斟酌이로다
일체이변 양유짐작
모든 치우친 두 가지 견해, 즉 양변을 다 버려야만 무상대도인
일승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우리가 쓸데없는 생각과 계교심을
일으켜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진다는 것입니다. 본래 법에는 양변이
있는 것이 아닌데도 마음으로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분별을 내는 것을 짐작(斟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짐작인
취사심만 버리면 전체가 현전하여 대도(大道) 아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45. 꿈 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는가.
夢幻空華를 何勞把捉가
몽환공화 하로파착
'꿈 속의 허깨비와 헛꽃'은 일체의 변견을 말합니다. 성불하려는
것도 꿈 속의 불사(佛事)이니, 성불한다는 것도 중생 제도한다든지
하는 것도 모두 꿈이며 헛꽃이라는 것입니다. 중생이니 부처니
하는 생각과 불법이니 세법이니 하는 것도 다 놓아 버려야 하는데,
왜 이를 잡으려고 애를 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46.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려라.
得失是非를 一時放却하라
득실시비 일시방각
잘잘못과 옳고 그름 모두가 변견이니, 이러한 양변을 완전히
버리면 중도가 현전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47. 눈에 만약 졸음이 없으면
모든 꿈 저절러 없어지고
眼若不睡면 諸夢自除요
안약불수 제몽자제
누구든지 잠을 자지 아니하면 꿈은 없는 것입니다.
꿈은 누구든지 잠을 자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48. 마음이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한결같느니라.
心若不異면 萬法一如니라
심약불이 만법일여
마음에 다른 생각인 차별심 분별심을 내지 않으면 만법이 여여
(如如)한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만법이 본래 여여한데 우리가 여여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은
바로 마음에 분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법이 본래
여여한 것을 우리가 억지로 여여치 않게 할수도 없는 것이면,
여여치 않은 것을 여여하게 할수도 없읍니다. 만법이 본래 한결
같아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한데도 그것을 보지 못함은 중생의
마음 속에 분별심이 있기 때문이므로, 마음 가운데서 분별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전혀 분별심이 없으면 '만법이
한결같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49. 한결같음은 본체가 현모하여
올연히 인연을 잊어서
一如體玄하야 兀爾忘緣하야
일여체현 올이망연
'일체 만법이 여여한다'는 것은 그 본체가 현묘하기 때문입니다.
현모한 본체는 석가가 아무리 알았다 해도 실제로 알 수는
없으며, 달마가 전했다 해도 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석가도 알지 못하거니 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을건가(釋迦猶未會어니 迦葉豈能傳가)'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정말 알 수도 없고 전할 수도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그럼 석가가 깨치고 가섭에게 전했다고 하는 것도 거지말인가?
그러나 참으로 알 수 없는 가운데서 분명히 알고, 전할 수 없는
가운데서 분명히 전하는 것이 불교의 묘법이니, 이것이 참으로
현묘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올연히 일체 인연을 다 잊었다'고 하는 그인연이란 생멸인연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서 생멸인연이든 불생멸인연이든, 세간법이든
출세간법이든 모든 인연을 다 잊어 버렸다는 뜻입니다.
50. 만법이 다 현전함에
돌아감이 자연스럽도다.
萬法이 齊觀에 歸復自然이니라
만법 제관 귀복자연
'만법제관(萬法齊觀)'이란 일체만법을 환히 다 본다는 뜻으로
흔히 해석하지만, 일체만법이 모두 다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돌아감이 자연스럽다'고 해서 그냥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아니니, 그렇게 되면 천연외도(天然外道)가 되고 맙니다.
귀복(歸復)이란 반본환원(返本還源)의 뜻으로서 자성청정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제 분별심만
다 버린다면 이 자성청정심에 돌아가는데, 그 돌아감이 아무런
조작이 없으며 힘들지 아니하여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51. 그 까닭을 없이 하여
견주어 비할 바가 없음이라
泯其所以하야 不可方比라
민가소이 불가방비
그러면 그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나 그 이유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부사의해탈경계(不思議
解脫境界)이기 때문에 말로써도 표현할 수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비교해서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52.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止動無動이요 動止無止니
지동무동 동지무지
움직임과 그침은 상대법으로서 여기서는 먼저 이 두 상대법을
서로 긍정한 다음에 두 법을 부정하였읍니다(照而遮). 그치면서
움직인다(止而動) 함은 그침과 움직임이 서로 긍정하면서 두
법이 융통자재하게 살아나는 동시에 움직임이 없음(無動)을
말하였고, 움직이면서 그친다(動而止) 함은 움직임과 그침이 서로
긍정하면서 두 법이 상통(相通)하는 동시에 그침이 없음(無止)
을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움직임과 그침의 양변을 완전히
부정하면서 다시 두 법을 긍정하여 서로 융통자재하게 쓸 수
있는 중도정의(中道正義)를 여기서도 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치면서 움직임(止動)과 움직이면서 그침(動止)은 두 법이 서로
비춰서(雙照) 살아남(常照)을 말하고, 움직임이 없고(無動)
그침이 없다(無止)함은 두 법을 함께 막아(雙照) 없애 버림으로써
(常寂) 비치면서 항상 고요하고(照而常寂) 고요하면 항상 비치는
(寂而常照) 중도 법계의 이치를 그대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먼저 비춰서 막고(照而遮) 뒤에 막아서 비춘다
(遮而照)는 순서만 달리하였을 뿐, 막음과 비춤을 함께 한
(遮照同時) 중도 정의는 다름이 없읍니다.
결국 움직임은 그침에 즉(卽)한 움직임이므로 움직임이 없는
것이며, 그침은 움직임에 즉(卽)한 그침이므로 그침이 없어서,
움직임과 그침이 함께 융토자재하면서 동시에 두 상대법이
없어짐을 말하고 있읍니다. 또한 움직임은 그침 가운데 움직임이며
(靜中動), 그침은 움직임 가운데 그침이어서(動中靜) 움직임과
그침의 두 상대법이 함께 없어지면서 함께 서로 통하고 있읍니다.
53.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거니
하나인들 어찌 있을건가.
兩旣不成이라 一何有爾아
양기불성 일하유이
움직임과 그침이 상대법이기 때문에 움직임과 그침을 모두
버리면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않는데, 하나가 어찌 있을 수
있겠읍니까? 하나까지도 없어져야 둘이 없어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둘이 성립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나인들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54. 구경하고 궁극하여서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요.
究竟窮極하야 不存軌則이요
구경궁극 부존궤칙
양변을 완전히 떠나서 중도를 성취하면 거기서는 중도라
할것도 찾아불 수 없읍니다. 이것이 구경하고 궁극한
법으로서 어떠한 정해진 법칙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칙이 없다 해서 단멸(斷滅)에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으며, 모날 수도 있고 둥굴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전한 진여대용이 자유자재하고
호호탕탕하여 법을 마음대로 쓰는 입장에서 하는 말입니다.
55. 마음에 계합하여 평등케 되어
짓고 짓는 바가 함께 쉬도다.
契心平等하야 昭作이 俱息이로다
계심평등 소작 구식
내 마음이 일체에 평등하면 조금도 차별 망견을 찾아불 수 없고
여여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산이 물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물이 산 위로 솟아 올라도는 것이 아니라, 산은 산 그대로
높고 물은 물 그대로 깊은데, 그 가운데 일체가 평등하고
여여부동함을 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짓고 짓는 바가 함께 쉰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바로
일체 변견을 다 쉬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56. 여우 같은 의심이 다하여 맑아지면
바른 믿음이 고루 발라지면
狐疑가 淨盡하면 正信이 調直이라
호의 정진 정신 조직
자기의 일체 변견과 망견을 다 버리면 의심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믿음이 화살같이 곧게 서 버렸다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正信)이란 신(信) 해(解) 오(悟) 증(證)의
전체를 통한 데서 나오는 믿음이며, 처음 발심하는 신심(信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경을 성취하면 바른 믿음이라 하든
정각(正覺)이라 하든 여기서는 뭐라 해도 상관 없으니, 이것이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은 수행의 지위가
낮고 정각은 수행의 지위가 높은 것으로 생각할는지 모르겠으나,
근본을 바로 성취한 사람을 믿음이라, 각(覺)이라,부처라,
중생이라, 조사라, 무어라 해고 상관 없읍니다. 실제에 있어서는
변견을 여의고 중도를 바로 성취했느냐 못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지, 이름은 무엇이라 해도 괜찮은 것입니다.
57. 일체가 머물지 아니하여
기억할 아무 것도 없도다.
一切不留하야 無可記檍이로다
일체물류 무가기억
객관적으로 일체가 머물지 못한다거나 주관적으로 일체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떤 머물 것이 있고 머물지 못할
것이 있는 것처럼 됩니다. 때문에 여기에는 능(能) 소(所)가
붙으므로 바른 해석이 되질 않습니다.
여기서는 바른 믿음이 곧고 발라서 진여자성이 현전해 있기
때문에 일체가 머물지 못하고 또한 일체를 머물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었을 기억할래야 할 것이 없읍니다.
거기에는 부처도 조사도 찾아 볼 수 없는데 무슨 기억을 할 수
있겠냐는 뜻입니다.
58.허허로이 밝아 스스로 비추나니
애써 마음 쓸 일 아니로다.
虛明自照하야 不勞心力이라
허명자조 불로심력
허(虛)란 일체가 끊어진 쌍차(雙遮)를 의미하고, 명(明)이란
일체를 비추어 다 살아나는 것으로서, 즉 쌍조(雙照)를 말합니다.
허(虛)가 명(明)을 비추고 명(明)이 허(虛)를 비춰서 부정과
긍정이 동시(遮照同時)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본래 갖추어진 자성의 묘한 작용이므로 마음의 힘으로써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59.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의식과 망정으론 측량키 어렵도다.
非思量處라 識情으론 難測이로다
비사량처 식정 난측
대도는 사량(思量)으로는 알 수 없고 깨쳐야만 안다는 것입니다.
보통 중생의 사량은 거친 사량(추思量)이라 하고, 성인의 사량은
제팔 아뢰야식의 미세사량(微細思量)이라 하는데 거친 사량은
그만 두고, 미세사량으로도 대도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십지(十地) 등각(等覺)의 성인도 허허로이 밝게 스스로 비추는
무상대도는 알 수 없고, 구경각을 성취한 묘각(妙覺)만이 그러한
무상대도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하는냐 하면 바로 진여법계라 한다는 것입니다.
60.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眞如法界엔 無他無自라
진여법계 무타무자
여기서부터는 [신심명(信心銘)]의 총결산입니다.
모든 병폐를 털어버리면 진여법계가 현전한다는 것입니다.
진여법계란 일심법계(一心法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그 진여법계의 내용은 남도 없고 나도
없어서 모든 상대, 곧 일체를 초월하여 양변을 완전히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현실이란 상대로 되어 있는데,
그 현상계를 해탈하여 진여법계 일심법계인 자성을 보게 되면,
남도 없고 나도 없는 절대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상대법이 끊어진 쌍차(雙遮)의 경계이며 진여법계
일심법계인 것입니다.
61. 재빨리 상응코저 하거든
둘 아님을 말할 뿐이로다.
要急相應하면 唯言不二로다
요급상응 유언불이
앞에서 '진여법계는 남도 없고 나도 없다'고 하니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그런 세계라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진여법계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 대자유의 세계입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3차원의
차별세계를 완전히 초월하면 차별이 다한 4차원의 부사의경계
(不思議境界)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여법계이며
'둘 아님을 말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둘 아니란 말은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있음(有)과 없음(無)이 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립되어 서로 통하지 못하는 상대세계를 초월하고 절대세계에
들어가면 모든 상대를 극복하여 융합해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나와 남이 없다 하니 아무 것도 없이 텅텅 빈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나와 남이 없을 뿐입니다. 따라서 남이 곧 나이고 내가
바로 남으로서, 나와 남이 하나로 통하는 절대법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62. 둘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不二가 皆同하야 無不包容하니
불이 개동 무불포용
서로 상극되는 물과 불을 예로 들어 봅시다. 물과 불이 상대적으로
있을 때는 서로 통하지 않지만, 참으로 쌍차(雙遮)하여 물과 불을
초월하면 물이 곧 불이고 불이 바로 물이 되어 버립니다.
보통의 논리로는 전혀 말이 안되는 듯도 하지만, 여기에 와서는
물과 불이 둘 아닌 가운데 물 속에서 불을 보고 불 속에서
물을 퍼내게 되니, 이러한 세계가 참으로 진여법계라는 의미입니다.
둘이 아닌 세계, 즉 물도 불도 아닌 세계는 물 속에 불이 있고
불 속에 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체 만물이 원용무애하고
탕탕자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용하지 않음이 없다'한 것이니
쌍조(雙照)입니다. 즉 그 세계에서는 일체 만물의 대립은 다
없어지고 거기에 포섭되지 않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이
둘이 아닌 진여법계를 깨치지 못하면 서로서로 대립이 되어
포섭이 되지 않고 싸움만 하게 됩니다. 쌍차(雙遮)란 모든 것을
버리는 세계면, 쌍조(雙照)란 모든 것을 용합하는 세계입니다.
63.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 이 종취로 들어 옴이라
十方智者가 皆入此宗이라
시방지자 개입차종
시방세계의 모든 지혜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 종취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모든 있음과 없음의 차별세계를 떠나면 절대세계인
둘 아닌 세계(不二世界)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종취에 들어 간다'한 것은 바로 '둘 아닌 세계'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대립을 버리면 모든 것이 융합한 세계에 들어가는데
그곳이 곧 둘 아닌 세계, 진여의 세계, 쌍조의 세계인 것입니다.
64. 종취란 짧거나 긴 것이 아니니
한 생각이 만년이요
宗非促延이니 一念萬年이요
종비촉연 일념만년
이러한 종취는 짧거나 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촉(促)이란
짧은 것, 연(延)이란 긴 것입니다. 이 진여법계의 종취는 시간적
으로 짧거나 길지도 않다는 것으로서 한 생각 이대로가 만년이며
만년 이대로가 한 생각입니다. 즉 무량원겁(無量遠劫)이 한 생각
이며 한 생각이 무량원겁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짧은 것도
없고 긴 것도 없다 하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긴 것이
짧은 것이고 짧은 것이 긴 것이라는 뜻으로서, 한 생각이 만년이며
만년이 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짧고 긴 것이 아니라'함은 쌍차(雙遮)이며, '한 생각이 만년
이라는 것은 쌍조(雙照)를 말합니다. 우리가 진여자성을 깨쳐서
대도를 성취하면 시간의 길고 짧음이 다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만년'이라고 해서 한 생각과 만년이 따로 있는 줄
알면 큰 잘못입니다. 그것은 시간 공간이 끊어진데서 하는 말이
므로 '한 생각'도 찾아불 수 없고 '만년'도 찾아불 수 없읍니다.
65.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이 바로 눈 앞이로다.
無在不在하야 十方目前이로다
무재부재 시방목정
시방(十方)은 먼 곳을 말하고 목전(目前)은 가까운 곳을 말합니다.
공간적으로 멀고 가까움이 서로 융합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탈하여 둘 아닌 진여세계로 들어가면 시간적으로 길고
짧음이, 공간적으로 멀고 가까움이 없어서 한 생각이 만년이고
만년이 한 생각이며,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어서 시방이
목전이고 목전이 시방입니다. 여기서는 멀고 가까움이 통하여
원융무애한 둘 아닌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다'는 것은 쌍차를 말하며, '시방이 눈 앞이라'함은
쌍조를 말합니다.
66.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極小同大하야 忘絶境界하고
극소동대 망절경계
어떻게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을수 있는가? 이는 조그마한
좁쌀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간다는 의미인데, 시방세계 속에
좁쌀이 들어간다는 말은 알기 쉽지만, 좁쌀 속에 속에 시방세계가
들어간다 하면 상식적으로 우스운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원융무애하여 상대가 끊어진 세계는 조그마한 좁쌀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상대적인 경계가 끊어져 한계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계가
있으면 작은 좁쌀에도 한계가 있고 시방세계도 한계가 있으니
작은 좁쌀속에 어떻게 큰 시방세계가 들어갈수 있겠읍니까?
그러나 여기는 한계가 없으므로 조그마한 좁쌀 속에 큰 시방세계가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좁쌀이 큰 시방세계로서,
온 시방세계가 좁쌀 속에 모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크고
작은 한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경계가 있다면 좁쌀 속에
어찌 시방세계가 들어갈 수 있겠읍니까?
67.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음이라
極大同小하야 不見邊表라
극대동소 불겨변표
지극히 커도 작은 것과 동일하여, 가도 없고 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이 큰 것과 같다'함과
'지극히 큰 것이 작은 것과 같다'함은 쌍조(雙照)를 말한 것이며,
'경계가 끊어졌다'함과 '끝과 겉을 볼 수 없다'함은 쌍차를 말한
것으로 모두 양변을 여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쌍차쌍조(雙遮雙照)가 되면 둘 아닌 세계(不二世界)에 들어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읍니다.
67.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有卽是無요 無卽是有니
유즉시무 무즉시유
있음과 없음이 각각 별개의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 없는
것이며 없는 것이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있음과 없음이
가장 통하기 어려우나 진여법계에서는 모든 것이 원융하여
무애자재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69. 만약 이 같지 않다면
반드시 지켜서는 안되느니라
若不如此인댄 不必須守니라
약불여차 불필수수
았음과 없음이 둘이 아닌 진여법계를 우리가 실제로 바로
깨치면,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인 둘 아닌
세계로 바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하기 전에는 불법(佛法)이라
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70.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一卽一切요 一切卽一이니
일즉일체 일체즉일
하나는 작은 하나이며 일체는 커다란 전체입니다. 진여법계에서는
하나가 곧 많음이고 많음이 바로 하나로서 하나와 많음이 서로서로
통하여,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정체가 바로 하나라는 것입니다.
71. 다만 능히 이렇게만 된다면
마치지 못할까 뭘 걱정하랴.
但能如是하면 何慮不畢가
단능여시 하려불필
일체 진리를 깨치고 나면 일체 원리를 모두 성취하여 버렸다는
말이니, 결국 이것은 우리의 자성자리, 곧 법계실상(法界實相)을
얘기한 것입니다.
72.믿는 마음은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信心不二요 不二信心이니
신심불이 불이신심
그러면 이 진여법계를 무엇으로 깨치느냐 하면 바로 신심(信心)
이라는 것입니다. 이 신심(信心)은 범부에서부터 부처가 될
때까지 모두가 신심(信心)뿐인 것이니, 이는 신(信) 해(解)
오(悟) 증(證)을 함께 겸한 신심(信心)입니다. 그러므로 신심은
불법진여의 근본으로서 그것은 둘이 아니며, 모든 것이 원융하여
쌍조가 되어서 '둘 아님이 신심(信心)'이라 하였읍니다.
'둘 아님이 신심(信心)'이니 거기서는 아무 상대도 없고
무애자재만 남게 됩니다.
73.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 미래 현재가 아니로다.
言語道斷하야 非去來今이로다
언어도단 비거래금
그 깊고 오묘한 도리는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말이나 문자로써
설명할 수 없고, 과거 미래 현재의 삼세(三世)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어의 길이 끊겼다'하니 벙어리의 세계냐고
할지 모르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인 언어의 길은 끊겼지만
원융무애한 진여법계에서는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고 해도 한마디
한마디가 무한한 진리로서 모든 것이 다 표현되어 있읍니다.
또 '삼세가 없다'하지만 삼세가 끊어진 곳에 삼세가 분명하여
과거 속에 미래가 있고 미래속에 과거가 있으며. 현재 속에
과거가 있고 현재 속에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동시에 과거 속에 미래가 미래 속에 현재가
원융하여 무애자재한 진여법계가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60. 바로 깨친 진여의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眞如法界엔 無他無自라
진여법계 무타무자
여기서부터는 [신심명(信心銘)]의 총결산입니다.
모든 병폐를 털어버리면 진여법계가 현전한다는 것입니다.
진여법계란 일심법계(一心法界)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그 진여법계의 내용은 남도 없고 나도
없어서 모든 상대, 곧 일체를 초월하여 양변을 완전히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현실이란 상대로 되어 있는데,
그 현상계를 해탈하여 진여법계 일심법계인 자성을 보게 되면,
남도 없고 나도 없는 절대 경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상대법이 끊어진 쌍차(雙遮)의 경계이며 진여법계
일심법계인 것입니다.
52.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나니
止動無動이요 動止無止니
지동무동 동지무지
움직임과 그침은 상대법으로서 여기서는 먼저 이 두 상대법을
서로 긍정한 다음에 두 법을 부정하였읍니다(照而遮). 그치면서
움직인다(止而動) 함은 그침과 움직임이 서로 긍정하면서 두
법이 융통자재하게 살아나는 동시에 움직임이 없음(無動)을
말하였고, 움직이면서 그친다(動而止) 함은 움직임과 그침이 서로
긍정하면서 두 법이 상통(相通)하는 동시에 그침이 없음(無止)
을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움직임과 그침의 양변을 완전히
부정하면서 다시 두 법을 긍정하여 서로 융통자재하게 쓸 수
있는 중도정의(中道正義)를 여기서도 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치면서 움직임(止動)과 움직이면서 그침(動止)은 두 법이 서로
비춰서(雙照) 살아남(常照)을 말하고, 움직임이 없고(無動)
그침이 없다(無止)함은 두 법을 함께 막아(雙照) 없애 버림으로써
(常寂) 비치면서 항상 고요하고(照而常寂) 고요하면 항상 비치는
(寂而常照) 중도 법계의 이치를 그대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먼저 비춰서 막고(照而遮) 뒤에 막아서 비춘다
(遮而照)는 순서만 달리하였을 뿐, 막음과 비춤을 함께 한
(遮照同時) 중도 정의는 다름이 없읍니다.
결국 움직임은 그침에 즉(卽)한 움직임이므로 움직임이 없는
것이며, 그침은 움직임에 즉(卽)한 그침이므로 그침이 없어서,
움직임과 그침이 함께 융토자재하면서 동시에 두 상대법이
없어짐을 말하고 있읍니다. 또한 움직임은 그침 가운데 움직임이며
(靜中動), 그침은 움직임 가운데 그침이어서(動中靜) 움직임과
그침의 두 상대법이 함께 없어지면서 함께 서로 통하고 있읍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 수심결 修心訣
1. 밖에서 찾지 말라
삼계(三界)의 뜨거운 번뇌가 마치 불타는 집과 같은데, 어찌하여 그대로 머물러 긴 고통을 달게 받을 것인가. 윤회를 벗어나려면 부처를 찾는 것 보다 더한 것이 없다. 부처란 곧 이 마음인데 마음을 어찌 먼데서 찾으려고 하는가. 마음은 이 몸을 떠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육신은 헛것이어서 생이 있고 멸이 있지만, 참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끊어지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몸은 무너지고 흩어져 불로 돌아가고 바람으로 사라지지만, 마음은 항상 신령스러워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고 한 것이다. 애닯다, 요즘 사람들은 어리석어 자기 마음이 참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자기 성품이 참 법인 줄 모르고 있다. 법을 구하고자 하면서도 멀리 성인들에게 미루고, 부처를 찾고자 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살피지 않는다. 만약 마음밖에 부처가 있고 성품밖에 법이 있다고 굳게 고집하여 불도를 구한다면, 이와 같은 사람은 티끌처럼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몸을 사르고 팔을 태우며, 뼈를 부수어 골수를 내고 피를 내어 경전을 쓰며, 항상 앉아 눕지 않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대장경을 줄줄 외고 온갖 고행을 닦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치 모래로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아서 아무 보람도 없이 수고롭기만 할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바르게 알면 수많은 법문과 한량없는 진리를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을 두루 살펴보니 여래의 지혜의 덕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하시고 '중생들의 갖가지 허망한 변화가 다 여래의 밝은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하셨으니, 이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 마음을 밝힌 분들이며, 현재의 모든 성현들도 이 마음을 닦은 분들이며 미래에 배울 사람들도 또한 이 법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결코 밖에서 찾지 말라. 마음의 바탕은 물들지 않아 본래부터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니, 그릇된 인연만 떠나면 곧 당당한 부처다.
2. 불성은 어디에
[질문] 만약 불성(佛性)이 지금 이 몸에 있다고 한다면, 이미 몸 안에 있으면서도 범부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니, 어째서 나는 지금 불성을 보지 못합니까? 다시 해설하여 깨닫게 하소서.
[대답] 그대의 몸 안에 있는데도 그대 자신이 보지 못할 뿐이다. 그대가 배고프고 목마른 줄 알며, 춥고 더운 줄 알며, 성내고 기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또 이 육신은 지(地)·수(水)·화(火)·풍(風)의 네 가지 인연이 모여 된 것이므로 그 바탕이 둔해서 감정이 없는데, 어떻게 보고 듣고 깨닫고 알겠는가.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불성이다.
그러므로 임제(臨濟)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수·화·풍 사대(四大)는 법을 설할 줄도 들을 줄도 모르고 허공도 또한 그런데, 다만 그대 눈앞에 뚜렷이 홀로 밝으면서 형용할 수 없는 그것만이 비로소 법을 설하고 들을 줄을 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형용할 수 없는 것'이란 모든 부처님의 법인(法印)이며, 그대 본래의 마음이다. 불성이 지금 그대의 몸에 있는데 어찌 그것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하는가. 그대가 믿지 못하겠다면 옛 성인들이 도에 들어간 두어 가지를 들어 의심을 풀어 줄 테니 잘 듣고 믿어라.
옛날에 이견왕(異見王)이 바라제존자께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존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견성(見性)한 이가 부처입니다."
"스님께서는 견성을 했습니까?"
"나는 견성을 했습니다."
"그 성품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품은 작용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 무슨 작용이기에 나는 지금 보지 못합니까?"
"지금 버젓이 작용하고 있는데도 왕 스스로가 보지 못할 뿐입니다."
"내게 있단 말입니까?"
"왕이 작용한다면 그것 아닌 것이 없지만,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체(體)도 보기 어려울 뿐입니다."
"그럼 작용할 때는 몇 군데로 나타납니까?"
"그것은 여덟 군데로 나타납니다."
왕이 그 여덟 군데를 말해 달라고 하자 존자는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었다.
"태 안에 있으면 몸이고, 세상에 나오면 사람이며, 눈에 있으면 보고, 귀에 있으면 듣고, 코에 있으면 냄새를 맡으며, 혀에 있으면 말하고, 손에 있으면 쥐고, 발에 있으면 걸어다닙니다. 두루 나타나면 온 누리를 다 싸고, 거두어들이면 한 티끌에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이것이 불성인 줄 알고, 모르는 사람은 정혼(精魂)이라 부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곧 마음이 열리었다.
또 어떤 스님이 귀종화상(歸宗和尙)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화상은 말했다.
"내가 이제 그대에게 일러주고 싶지만 그대는 믿지 않을 것이다."
"큰스님의 지극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그대가 바로 부처이니라."
"어떻게 닦아가야(保林) 합니까?"
"한 티끌이 눈에 가려 있으면 허공의 꽃(空華)이 어지러이 떨어진다."
그 스님은 이 말을 듣고 단박 깨달았다.
옛 성인의 도에 들어간 인연은 이와 같이 명백하고 간단하다. 수고를 덜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법문으로 말미암아 알아차린 바가 있다면, 그는 옛 성인과 손을 마주 잡고 함께 갈 것이다.
3. 신통변화
[질문] 앞에서 말씀하신 견성이 진정한 견성이라면 그는 바로 성인입니다. 그는 마땅히 신통 변화를 나타내어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수도인들은 어째서 한 사람도 신통변화를 부리지 못합니까?
[대답] 그대는 함부로 미친 소리를 하지 말라. 삿되고 바른 것을 가릴 줄 모르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곧잘 진리를 말하면서 마음은 게을러 빠져 도리어 분수 밖의 잘못을 범하고 있으니, 다 그대가 의심하는 데에 떨어진 것이다. 도를 배우면서 앞뒤를 알지 못하고, 진리를 말하면서 근본과 지말을 가리지 못하면, 그것은 삿된 소견이지 진실한 공부라고 할 수 없다. 자기 자신만 그르칠 뿐만 아니라 남까지 그르치게 하는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것인가.
대체로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으니 요약하면 돈오(頓悟)와 점수(漸修)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頓修)가 가장 으뜸가는 근기의 길이라 하지만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을 두고 깨달음에 의지해 닦아 차츰 익혀 왔으므로, 금생에 이르러 일시에 단박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도 이것도 먼저 깨닫고 나서 닦는 근기이다. 그러므로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든 성인이 의지할 길이다.
예전부터 모든 성인들은 먼저 깨달은 뒤에 닦았으며, 이 닦음에 의해 증득했다. 그러니 이른바 신통 변화는 깨달음에 의해 닦아서 차츰 익혀야 나타나는 것이지, 깨달을 때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에 말씀하기를 '이치는 단박 깨닫는 것이므로 깨달음을 따라 번뇌를 녹일 수 있지만, 현상은 단번에 제거될 수 없으므로 차례를 따라 없애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규봉(圭峰)스님도 먼저 깨닫고 나서 닦는 뜻을 상세히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얼어붙은 못이 모두 물인 줄은 알지만 햇빛을 받아야 녹고, 범부가 곧 부처인 줄을 깨달았지만 법력으로써 익히고 닦아야 한다. 얼음이 녹아서 물이 흘러야 대고 씻을 수 있고, 망상이 다해야만 마음이 신령하게 통하여 신통 광명의 작용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신통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점 익혀감으로써 나타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통이란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는 오히려 요망하고 괴이한 짓이며, 성인에게 있어서도 하찮은 일이다.
혹시 나타낼지라도 요긴하게 쓸 것이 못되는데, 요즘 어리석은 무리들은 망령되이 말하기를 '한 생각 깨달을 때 한량없는 묘용(妙用)과 신통변화를 나타낸다'고 하니, 이와 같은 생각은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고 근본과 지말을 알지 못한 탓이다. 앞과 뒤, 근본과 지말을 모르고 불도를 구한다면, 모가 난 나무를 가지고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것과 같으니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일찍이 방편을 모르기 때문에 절벽을 대하 듯 미리 겁을 먹고 스스로 물러나 부처의 씨앗을 말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이 밝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깨달음도 믿지 않으며 신통이 없는 이를 보고 업신여긴다. 이는 성현을 속이는 것이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4. 돈오점수(頓悟漸修)
[질문]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이 모든 성인이 의지할 길이라고 말씀하였는데, 깨달음이 단박 깨달음(頓悟)라면 왜 차츰 닦을(漸修) 필요가 있으며, 닦음이 차츰 닦는 것이라면 어째서 닥박 깨달음이라 합니까? 돈오와 점수 두 가지 뜻을 거듭 말씁하여 의심을 풀어주소서.
[대답] 범부가 어리석어 사대(四大)를 몸이라 하고 망상을 마음이라 하여, 자성(自性)이 참 법신(法身)인 줄 모르고 자기의 영지(靈知)가 참 부처인 줄 모른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가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고 바른 길에 들어 한 생각에 문득 마음의 빛을 돌이켜 자기 본성을 본다. 이 성품의 바탕에는 본래부터 번뇌 없는 지혜가 저절로 갖추어져 있어 모든 부처님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것을 돈오라 한다. 본성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기는 했지만, 끝없이 익혀온 버릇(濕氣)은 갑자기 없애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의지해 닦고 차츰 익혀서 공이 이루어지고 성인의 모태(母胎)기르기를 오래하면 성(聖)을 이루게 되니, 이를 점수라 한다. 마치 어린애가 갓 태어났을 때 모든 감관이 갖추어 있음은 어른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그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얼마 동안의 세월을 지낸 뒤에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 것과 같다.
[질문] 그러면 무슨 방편을 써야 한 생각에 문득 자성을 깨닫겠습니까?
[대답] 다만 그대 자신의 마음이다. 이 밖에 무슨 방편이 따로 있겠는가. 만약 방편을 써서 다시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해 눈이 없다고 하면서 다시 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미 자기 눈인데 다시 볼 필요가 무엇인가. 없어지지 않은 줄 알면 그것이 곧 눈을 보는 것이다. 다시 또 보려는 마음이 없는데 어떻게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겠는가. 자신의 영지(靈知)도 이와 같아서 이미 자신의 마음인데 어찌 다시 알려고 하는가. 만약 애써 알려고 하면 곧 알 수 없으니 다만 아는 대상이 아닌 줄 알면 곧 성품을 보는 것이다. 자기의 영지(靈知)도 이와 같아서 이미 자기 마음인데 무엇하러 또 알려고 하는가. 만약 알려고 한다면 얻을 수 없음을 알 것이니, 알지 못한 줄 알면 이것이 곧 견성(見成)이다.
5. 공적영지(空寂靈知)
[질문] 상상(上上)의 뛰어난 사람은 들으면 쉽게 알지만 중하(中下)의 사람은 의혹이 없지 않을 것이니, 다시 방편을 말씀하여 이들도 알아듣게 해 주소서.
[대답] 도는 알고 모르는데 있지 않다. 그대가 어리석어 깨닫기를 기다리니 그 마음을 버리고 내 말을 들어라.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므로 번뇌 망상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 세상은 본래 공한 것이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신령스러운 앎(靈知)이 어둡지 않다. 그러므로 공적(空寂)하고 영지한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 면목(本來面目)이며, 또한 삼세의 부처님과 역대 조사아 천하의 선지식이 은밀히 서로 전한 법인(法印)이다. 이 마음만 깨달으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를 올라 걸음마다 삼계를 뛰어넘고 집에 돌아가 단박 의심을 끊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고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자리(自利) 이타(利他)를 갖추고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 그대가 이와 같다면 진짜 대장부이니 평생에 할 일을 마친 것이다.
[질문] 제 분수에 따르면 어떤 것이 공적 영지의 마음입니까? [대답] 그대가 지금 내게 묻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공적 영지의 마음인데, 어째서 돌이켜보지 않고 밖으로만 찾는가. 내 이제 그대에 분수에 따라 본심을 가리켜 깨닫게 할테니 그대는 마음을 비우고 잘 들어라.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도록 보고 듣고 웃고 말하고 성내고 기뻐하고, 옳고 그른 온갖 행위를 무엇이 그렇게 하는지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만약 이 육신이 그렇게 한다면, 사람이 일단 죽게 되면 몸은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았는데 어째서 귀는 들을 수 없고, 코는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 혀는 말하지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며, 손은 잡지 못하고, 발은 걷지를 못하는가. 그러므로 보고 듣고 움직이는 것은 그대의 본심이지 육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육신을 이루고 있는 사대(四大)는 그 성질이 공하여 마치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고 물에 비친 달과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분명히 알며 어둡지 않고 한량없는 묘용(妙用)을 느끼는 대로 통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신통과 묘용이여, 물을 긷고 나무를 나름이로다'라고 한 것이다. 또 이치에 들어가는 데는 길이 많으나 그대에게 한 문을 가리켜 근원에 들어가게 하리라.
"그대는 지금 까마귀 울고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어 보라.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는지.
"이 속에 이르러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기특하다! 이것이 관음보살께서 진리에 드신 문이다.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가 말하기를 이 속에 이르러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얻을 수 없다면 그 때는 허공이 아니겠는가?"
"본래 공하지 않으므로 환히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실체인가?"
"모양이 없으므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의 생명이니 다시 의심하지 말라."
이미 모양이 없는데 어디에 크고 작음이 있겠으며, 크고 작음이 없는데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안팎이 없고, 안팎이 없으므로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멀고 가까움이 없으므로 피차(彼此)가 없다. 피차가 없으므로 가고 옴이 없으며, 가고 옴이 없으므로 생사가 없고. 생사가 없으므로 옛날과 지금이 없으며, 옛날과 지금이 없으므로 어리석음과 깨달음도 없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없으므로 범부와 성인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없으므로 더럽고 깨끗함도 없으며, 더럽고 깨끗함이 없으므로 옳고 그름도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모든 이름과 말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다 없어지니 모든 감관과 대상과 망념, 나아가서는 갖가지 모양 과 온갖 이름과 말이 다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본래부터 공적하고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영지(靈知)가 어둡지 않아 무정(無情)한 것과 같지 않고 성품이 스스로 신기롭게 안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공적 영지하는 청정한 마음의 실체이다. 이 청정하고 공적한 마음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며, 또한 중생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이다. 이 것을 깨달아 지키는 이는 한결 같은(一如)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해탈할 것이며, 이것을 모르고 등지는 자는 육도(六道)에 나아가 한량없이 헤맬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한 마음이 어리석어 육도로 나아가는 자는 가는 사람이고 움직이는 사람이며, 법계(法界)를 깨달아 한 마음으로 돌아오는 이는 오는 사람이고 고요한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은 다르지만 그 근원은 하나다. 그래서 법이란 중생의 마음이라고 한 것이다. 이 공적한 마음은 성인이라고 해서 더하지도 않고 범부라고 해서 덜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성인의 지혜에 있어서도 빛나지 않고 범부의 마음에 숨어있어도 어둡지 않다'라고 한 것이다. 성인이라 해서 더하지도 않고 범부라 해서 덜하지도 않는다면, 부처님과 조사가 보통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보통사람과 다른 점은 스스로 그 마음을 살피는데 있다. 그대가 이 말을 믿고 의문이 단박 풀리며 대장부의 뜻을 내어 진정한 견해를 일으켜서 몸소 그 맛을 보고 스스로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마음 닦는 사람의 알아 깨닫는 곳이고, 따로 계급과 차례가 없기 때문에 돈(頓)이라고 한다. 이것은 '믿음의 인(因) 중에서 부처의 과덕(果德)에 계합하여 털끝만치도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믿음을 이룬다'고 한 말과 같다.
6. 소먹이는 행
[질문] 이 이치를 깨달으면 다시 계급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깨달은 뒤에 다시 닦으면서 차츰 익히고 차츰 이룰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답] 깨달은 뒤에 차츰 닦는 이유는 앞에서 이미 누누이 설명하였는데 아직도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으니 거듭 설명하겠다. 그대는 마음을 비우고 자세히 들어라. 범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도를 유전하면서 나고 죽음에 '나'라는 관념에 굳게 집착하여 망상과 뒤바뀜과 무명의 종자와 익힌 버릇이 오랫동안 한데 어울려 그 성품을 이루었다. 금생에 이르러 자성이 본래 공적하여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문득 깨닫더라도, 그 오랜 버릇을 갑자기 끊어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역경과 순경을 당하면 성내고 기뻐하며, 옳고 그르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고, 바깥 대상에 대한 번뇌가 이전과 다름이 없다. 만약 지혜로써 공부를 더하고 힘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무명을 다스려 크게 쉬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박 깨치면 부처와 같으나 여러 생에 익힌 버릇이 깊어서, 바람은 멎었지만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드러났지만 망상이 그대로 침노한다'고 한 말과 같다.
또 종고선사도 말씀하기를 '가끔 영리한 무리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을 깨치고는 아주 쉽다는 생각을 내어 더 닦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헤매면서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어찌 한번 깨쳤다 하여 뒤에 닦는 일을 버려 두어서야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깨친 뒤에도 늘 비추고 살피어 망상이 문득 일어날지라도 아예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 무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구경(究竟)이 된다. 천하 선지식이 깨친 뒤에 소 먹이는 행(牧牛行)을 닦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뒤에 닦는다고 하지만 망령된 생각은 본래 공하고 심성은 본래 깨끗한 것임을 이미 깨달았으므로, 악을 끊으려 해도 끊을 것이 없고 선을 닦으려 해도 닦을 것이 없으니, 이것이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온갖 행(萬行)을 두루 닦더라도 오로지 무념(無念)으로 근본을 삼으라' 하였고 규봉(圭峰) 스님께서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이치를 통틀어 이렇게 결론지었다. '
이 성품에는 원래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는 지혜가 본래 갖추어져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고 여기에 의지해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勝禪)이라 하고, 또 여래의 청정한 선이라 한다. 만약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 저절로 차츰 백천삼매(百千三昧) 를 얻을 것이니, 달마 문하에서 전해 오는 것이 바로 이 선이다.' 그러므로 돈오와 점수의 이치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 하나만 없어도 안 된다. 어떤 사람은 선악의 성품이 공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꼿꼿이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억제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는 것으로서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미혹(迷惑)이다. 그러기에 말하기를 '성문(聲聞)들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둑이다'라고 하였다. 다만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등이 성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피면 일어나도 일어남이 없어서 그 자리가 곧 고요함(寂)이니 어찌 다시 끊을 일이 있겠는가.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깨달음이 더딜까를 두려워하라'고 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생각이 일어나거든 곧 깨달으라. 깨달으면 곧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는 외부의 번뇌가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제호(醍 -우유를 정제하여 만든 음식. 불성에 비유한 말)가 될 것이다. 미혹이란 그 근본이 없음을 살피면 허공의 꽃인 삼계(三界)는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허깨비인 육진(六塵)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서 살피고 돌아보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면, 사랑과 미움이 저절로 사라지고 자비와 지혜가 밝아질 것이다. 죄업은 자연히 소멸되고 공덕이 늘어나 번뇌가 다할 때 생사도 곧 끊어질 것이다. 미세한 번뇌의 흐름조차 아주 끊어지고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뚜렷이 홀로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해 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달이 허공에 떠오르면 그 그림자가 물 위에 두루 비치는 것과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 있는 중생을 건지면서 근심없이 즐거울 것이다. 이를 가리켜 크게 깨달은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7.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으라
[질문] 깨달은 뒤에 닦는 법문 가운데 선정(定)과 지혜(慧)를 고루 가진다는 이치를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시 자세히 설명하여 의혹을 풀고 해탈의 문으로 들어가도록 이끌어 주소서.
[대답] 법과 이치를 말한다면, 이치에 들어가는 천 가지 문이 선정과 지혜 아님이 없다. 그 요점을 들면 자성의 본체와 작용 두 가지 뜻인데, 앞에서 말한 공적 영지가 바로 그것이다. 선정은 본체고 지혜는 작용이다. 본체의 작용이기 때문에 지혜는 선정을 떠나지 않고, 작용의 본체이기 때문에 선정은 지혜를 떠나지 않는다. 선정이 곧 지혜이므로 고요하면서 항상 알고, 지혜가 곧 선정이므로 알면서 항상 고요하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이 어지럽지 않음이 자성(自性)의 선정이고, 마음이 어리석지 않음이 자성의 지혜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런 도리를 깨달아 고요함(寂)과 앎(知)에 자재하여 선정과 지혜가 둘이 아니게 되면, 돈문(頓門)에 들어간 이의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것이 된다.
그러나 먼저 적적(寂寂)으로써 흩어지려는 생각을 다스리고 그 다음 성성으로써 흐리멍텅함을 다스린다 하여, 앞과 뒤에 대치하여 혼침(昏)과 산란(亂)을 고루 다스려 고요함에 들어가는 이는 점문(漸門)에 속하는 낮은 근기의 소행이다. 그는 성성과 적적을 고루 가진다고 하지만, 적적만을 취한 수행이 될 뿐이다. 어찌 할일을 마친 사람의 본래 고요함(本寂)과 본래 앎(本知)을 떠나지 않고 자유자재로 겸해 닦는 것이 되겠는가. 그래서 육조스님께서는 '스스로 깨달아 수행하는 것은 따지는 데 있지 않다. 앞 뒤를 따진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통달한 사람의 경지에서는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진다는 뜻은, 힘씀과 작용(功用)에 떨어지지 않고 원래 저절로 무위(無爲)여서 따로 특별한 때가 없는 것이다. 빛을 보고 소리를 들을 때도 그러하고, 옷 입고 밥 먹을 때도 그러하며, 대소변을 볼 때도 그러하고, 남과 만나 이야기할 때도 그러하다. 다니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잠잠하거나 기뻐하거나 성내거나 항상 그러하여, 마치 빈배가 물결을 타고 높았다 낮았다 하고, 흐르는 물이 산기슭을 돌 때 굽었다 곧았다 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마다 분별이 없다. 오늘도 유유자적(悠悠自適) 내일도 유유자적하면서, 온갖 인연을 따라도 아무 장애가 없고 악을 끊거나 선을 닦지도 않으며, 순진하고 거짓이 없어 보고 들음이 예사로워 한 티끌도 맞서는 것이 없다. 번뇌를 떨어버리려는 노력도 필요 없고, 한 생각도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얽힌 인연을 잊으려는 힘을 빌릴 것도 없다. 그러나 업장은 두텁고 익힌 버릇은 무거우며, 관행(觀行)은 약하고 마음은 들뜨며, 무명의 힘은 세고 지혜의 힘은 약해서, 선악의 경계에서 마음이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담담하지 못한 이는 얽힌 인연을 잊고 번뇌를 떨어버리는 공부가 있어야 한다.
옛 사람은 이와 같이 말씀하였다.
'여섯 감관(六根)이 대상을 거두어 마음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선정(定)이라 하고, 마음과 대상이 함께 공함을 비추어보아 미혹이 없는 것을 지혜(慧)라 한다.'
이것이 상(相)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행할 바이지만 대치하는 문에서는 어쩔 수 없다. 만약 들뜸이 심하면 먼저 선정의 문으로써 산란을 거두어 마음이 인연을 따르지 않고 본래의 고요함에 계합하도록 하며, 혼침(昏沈)이 많으면 지혜의 문으로써 공(空)을 관하여 비추어보아 미혹을 없애고 본래의 앎에 계합하도록 한다. 선정으로써 어지러운 생각을 다스리고 지혜로써 무기(無記, 선도 악도 아닌 것)를 다스려, 움직이고 고요한 자취가 없어지고 대치하는 공부를 마치면, 어떤 대상을 대하더라도 생각마다 근본으로 돌아간다. 인연을 만나도 마음마다 도에 계합하여 걸림 없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비로소 일없는 사람(無事人)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하면 참으로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져 불성을 분명하게 본 이라 할 것이다.
8. 깨치기 전은 참 수행이 아니다.
[질문] 스님의 판단에 따르면, 깨달은 뒤 닦는 문 가운데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는 뜻에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성(自性)의 선정과 지혜이고, 둘째는 상(相)을 따르는 선정과 지혜입니다. 자성의 문에서는 '걸림 없는 고요와 앎이 원래 무위(無爲)여서 한 티끌도 상대될 것이 없으므로 번뇌를 떨어버리려는 수고가 없고, 한 생각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얽힌 인연을 잊으려는 노력도 할 필요가 없다'하고 판단하기를 '그것은 돈문(頓門)에 들어간 이가 자성을 떠나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을 따른 문에서는 '이치에 맞추어 산란을 거두고 법을 선택하고 공을 관하여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려 무위에 들어간다'하고 판단하기를 '이것은 점문(漸門)의 낮은 근기가 행할 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문의 선정과 지혜에 대하여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수행할 경우, 먼저 자성의 문에 의해 선정과 지혜를 겸수한 후에 다시 상을 따르는 문의 다스리는 공부를 하는지, 아니면 먼저 상을 따르는 문에 의해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린 다음에 자성의 문에 들어가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자성의 선정과 지혜에 의지한다면, 걸림 없이 고요하고 알기 때문에 다시 더 다스릴 공부가 없는데 무엇 하러 또 상을 따르는 선정과 지혜를 필요로 하겠습니까. 이것은 마치 흰 옥에 문채를 새겨 덕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먼저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로 다스리는 공부를 이룬 다음에 자성의 문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분명히 점문의 낮은 근기가 깨치기 전에 점차로 익히는 것이니, 어찌 돈문자가 먼저 깨치고 나서 닦는 데에 노력이 없는 노력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동시여서 전후가 없다면 두 문의 선정과 지혜가 돈. 점이 다른데 어떻게 한꺼번에 같이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돈문자는 자성의 문에 의지해 걸림 없이 더 공부할 필요도 없고, 점문의 낮은 근기는 상을 따르는 문으로 나아가 다스리는 공부에 힘쓸 것입니다. 두 문의 근기가 돈점이 다르고 우열이 분명한데, 먼저 깨치고 나서 닦는 문 가운데서 어떻게 두 가지를 함께 해석할 수 있습니까. 다시 말씀하여 의문을 풀어 주소서.
[대답] 내 해석은 분명한데 그대가 스스로 의문을 갖는구나. 말을 따라 알려고 하면 의혹이 더욱 생기고, 뜻을 얻어 말을 잊으면 따질 필요가 없다. 그 두 문에 대해 각기 수행할 것을 판단한다면, 자성의 선정과 지혜를 닦는 이는 돈문에서 노력함이 없는 노력으로 두 가지 고요함을 함께 활용하고 자성을 스스로 닦아 스스로 불도를 이루는 사람이다.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를 닦는 이는 깨치기 전 점문의 낮은 근기가 다스리는 공부이고, 마음마다 의혹을 끊고 고요함을 취하는 수행자이다. 이 두 문의 수행은 돈과 점이 각기 다르므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깨친 다음에 닦는 문에서 겸하여 상을 따르는 문의 대치를 말한 것은, 전혀 점문의 근기가 행할 바를 취한 것이 아니라 그 방편을 취하여 길을 빌리고 숙박을 의탁할 뿐이다. 왜냐하면 이 돈문에도 근기가 뛰어난 이가 있고 낮은 이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예로써 그 가는 길을 똑같이 판단할 수는 없다. 번뇌가 사라지고 심신이 홀가분해서, 선에서도 선을 떠나고 악에서도 악을 떠나 여덟 가지 바람(八風)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 가지 느낌(三受, 괴로움.즐거움.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자성의 선정과 지혜에 의해 걸림 없이 겸해 닦으며 천진하여 조작이 없다.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항상 선(禪)이므로 자연의 이치를 성취할 것이니, 어찌 상을 따르는 문의 방법을 빌리겠는가. 병이 없으면 약을 구할 필요도 없다.
먼저 단박 깨쳤다 할지라도 번뇌가 심히 진하고 익힌 버릇이 굳고 무거워 대상과 마주칠 때마다 생각 생각 감정을 일으키고, 인연을 만나면 마음마다 대상을 만든다. 혼침과 산란에 부추김을 당해 고요함과 앎이 한결같지 않은 어두운 이는,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를 빌어 대치하기를 잊지 않고, 혼침과 산란을 고루 다스려 무위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비록 대치하는 공부에 의해 잠시 익힌 버릇을 억제하더라도 심성이 본래 청정하고 번뇌가 본래 공한 것임을 먼저 깨달았으므로, 점문의 낮은 근기의 오염된 수행에 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깨치기 전의 수행은 비록 공부를 잊지 않아 생각 생각 익히고 닦더라도 곳곳에 의문을 일으켜 거리끼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 속에 걸린 것 같아서 불안한 자취가 항상 앞에 나타난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대치하는 공부가 성숙하게 되면 심신이 홀가분해질 것이다.
그러나 홀가분해질지라도 의혹의 뿌리를 끊지 못한 것이 돌로 풀을 누른 것 같아서 생사의 경계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닫기 전의 수행은 진정한 수행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깨친 사람의 경지로는 비록 대치하는 방편이 있더라도 생각마다 의혹이 없어 더럽히거나 물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오랜 세월을 지내면 저절로 천진한 묘성(妙性)에 계합하여 걸림 없이 고요하고 분명해서, 생각마다 온갖 대상에 관계하면서도 마음마다 모든 번뇌를 아주 끊되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져 위없는 보리를 성취하고, 앞에서 이야기한 근기가 뛰어난 사람과 아무런 차별도 없다.
상을 따르는 문의 선정과 지혜가 비록 점기(漸機)의 행할 바이지만,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 본다면 쇠로써 금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도리를 안다면 어찌 두 문의 선정과 지혜에 앞뒤의 순서가 있다고 두 가지로 보는 의문이 있겠는가. 바라건대 수도인은 이 일을 잘 되새겨 다시는 더 의혹을 일으켜 스스로 물러서지 않도록 하라. 대장부의 뜻을 갖추어 위없는 보리를 구하고자 한다면, 이것을 버리고 다시 또 어떻게 하겠는가. 부디 문자에 집착하지 말고 바로 참뜻을 알아 낱낱이 자신에게 돌리어 근본에 계합하면, 스승 없는 지혜가 저절로 드러나고 천진한 이치가 어둡지 않고 분명해서, 지혜의 몸을 성취하되 다른 것에 의해 깨친 것이 아닐 것이다.
이 오묘한 뜻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기는 하지만, 일찍이 지혜의 씨를 뿌린 대승 근기가 아니면 한 생각에 바른 믿음을 내기가 어려울 것이다.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비방하면서 무간지옥의 업을 짓는 이가 많다. 그러나 믿고 받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한번 귀를 스쳐 잠시 인연을 맺어 놓으면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다. 『유심결(唯心訣)』에 이르기를 '듣기만 하고 믿지 않더라도 부처될 종자의 인연을 맺고, 배워서 이루지 못하더라도 인간과 천상의 복보다 뛰어나다'라고 했다. 그렇게 해도 성불할 바른 인연을 잃지 않는데 하물며 들어서 믿고 배우며 이루어서 지키고 잊어버리지 않는 이의 공덕이야 어찌 능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9. 이 몸 이 때 못 건지면 지난 세월 윤회의 업을 돌이켜보면 몇천 겁을 두고 흑암지옥에 떨어지고 무간지옥에 들어가 갖가지 고통을 받았을 것인가.
불도를 구하고자 하여도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고 오랜 겁을 생사에 빠져 깨닫지 못한 채 갖은 악업을 지은 것이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때때로 생각하면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데, 어찌 방종하여 그전 같은 재앙을 다시 받겠는가. 그리고 누가 나에게 지금의 인생을 만나 만물의 영장이 되어 도 닦는 길을 잃지 않게 하였는고. 실로 눈먼 거북이 나무를 만남이고, 겨자씨가 바늘 끝에 꽂힌 격이다. 그 다행함을 어찌 말로써 다할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스스로 물러설 마음을 내거나 게으름을 부려 항상 뒤로 미루다가 잠깐 사이에 목숨을 잃고 지옥에라도 떨어져 갖은 고통을 받을 때, 한마디 불법을 들어 믿고 받들어 괴로움을 벗고자 한들 어찌 될수 있겠는가. 막상 위태로운 데에 이르러서는 뉘우쳐도 소용이 없다.
바라건대 수도인들은 게으르지 말고 탐욕과 음욕에 집착하지 말며, 머리에 불을 끄듯 하여 돌이켜 살필 줄을 알아야 한다. 무상(無常)은 신속해서 몸은 아침 이슬과 같고 목숨은 저녁 노을과 같다. 오늘은 살아 있을지라도 내일은 기약하기 어려우니 간절히 마음에 새겨 둘 일이다. 세상의 유위(有爲)의 선을 가지고도 삼악도의 괴로운 윤회를 면하고 천상과 인간에서 뛰어난 과보를 얻어 여러가지 즐거움을 누리는데, 하물며 이 최상승(最上勝)의 심오한 법문이겠는가. 잠시 믿기만 해도 그 공덕은 어떤 비유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전에 말씀하기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사는 중생들에게 칠보로 공양하여 모두 만족하게 하고, 또 그 세계의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사과(四果, 성자의 네 가지 지위)를 얻게 하면 그 공덕은 한량없고 끝이 없다. 그러나 잠깐동안 이 법을 바르게 생각하여 얻는 공덕보다는 못하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법문은 가장 존귀하여 어떤 공덕으로도 견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경전에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이 바로 도량(道場)이니, 간지스강의 모래처럼 많은 칠보탑을 세우는 것보다 뛰어나다. 보배로 된 탑은 언젠가 무너져 티끌이 되겠지만,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마침내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고 하였다.
원컨대 수도인은 이 말을 깊이 음미하여 간절히 마음에 새겨 두라. 이 몸을 금생에 건지지 않으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건질 것인가. 지금 닦지 않으면 만겁(萬劫)에 어긋날 것이고, 힘써 닦으면 어려운 수행도 점점 어렵지 않게 되어 공부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애닯다. 요즘 사람들은 배가 고파 음식을 대하고도 먹을 줄 모르고, 병들어 의사를 만나고서도 약을 먹을 줄 모르니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인가. 따르지 않는 사람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구나. 또 세상 일은 그 모양도 볼 수 있고 그 공도 징험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한 가지 일만 얻더라도 희귀하다고 찬탄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 마음 법문은 그 모양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마(天魔)와 외도(外道)가 비방할래야 문이 없고, 제석·범천 등 모든 천신이 칭찬할래야 미칠 수 없다. 그런데 하물며 식견이 옅은 범부들이야 어찌 흉내인들 낼 수 있겠는가. 우물 안 개구리가 어떻게 바다의 넓음을 알며, 여우가 어떻게 사자처럼 소리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법 세상에서 이 법문을 듣고 희유하다는 생각을 내어 믿고 받아 가지는 사람은 이미 한량없는 세월에 모든 성인을 섬기어 온갖 선근(善根)을 심었고, 지혜의 바른 인연을 깊게 맺은 최상의 근기임을 알 수 있다.
『금강경』에 말씀하기를 '이 글귀에 신심을 내는 이는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데서 온갖 선근을 심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대승의 마음을 낸 이를 위해 말한다'고도 하였다. 바라건대 도를 구하는 사람은 미리 겁을 먹지 말고 용맹심을 내야 할 것이니, 지난 세월에 얼마나 착한 인연을 쌓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뛰어난 이 법문을 믿지 않고 열등을 자처하여 어렵다는 생각으로 지금 닦지 않는다면 비록 지난 세상의 선근이 있다 할지라도 이제 그것을 끊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대로 점점 멀어질 것이다. 이미 보배가 쌓인 곳에 왔으니 빈손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에 돌이키기 어려우니 바라건대 마땅히 삼가하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보배가 있는 곳을 알면서도 구하지 않다가 어찌 오래도록 외롭고 가난함을 원망할 것인가. 보배를 얻고자 한다면 그 가죽 주머니를 놓아 버려라.
보조스님의 진심직설(眞心直說) - 龍城스님 역
머리말(自序)
[질문] 조사들의 오묘한 도를 알 수 있습니까?
[대답] 옛 사람이 이르지 않았던가. 도는 알고 모르는데 있지 않다고. 안다고 하는 것은 망상이고 모르는 것은 무기(無記)다. 참으로 의심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탁 트인 허공과 같은데 어찌 굳이 옳다(是) 그르다(非)하는 생각을 하겠는가.
[질문] 그렇다면 조사들이 세상에 출현하는 것은 중생들에게 아무 이익도 없단 말입니까?
[대답] 부처님이나 조사들이 세상에 출현하여 사람들에게 다로 법을 준 일은 없고 중생들에게 스스로 자기 번성을 보게 했을 뿐이다. 『화엄경』에 말하였다. 모든 법이 곧 마음의 자성(自性)임을 알면 지혜의 몸(慧身)을 성취한다. 결코 타인에 의해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나 조사들은 사람들에게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푹 쉬어 자기 본심을 보게 하였다. 그래서 덕산(德山) 스님은 입문(入門)하는 이에게 방망이로 대했고, 임제(臨濟) 스님은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 밖에 무슨 말이 더 필요했겠는가.
[질문] 예전에 마명(馬鳴) 보살은 『기신론(起信論)』을 짓고, 육조(六祖) 스님은 『단경(壇經)』을 설하고 오조(五祖) 황매(黃梅) 스님은 『반야경(般若經)』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다 점차로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어찌 법에 방편이 없겠습니까?
[대답] 가장 높은 묘고봉(妙高峰) 위에서는 원래 헤아림을 허락하지 않지만, 둘째 봉우리에서는 조사들이 간략하게 말로 아는 것을 용납하였다.
[질문] 감히 비노니, 둘째 봉우리에서 대강 방편을 베풀어주십시오?
[대답] 그 말이 옳다. 큰 도는 아득하고 비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참 마음(眞心)은 그윽하고 오묘해서 생갓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므로 그 문을 알고 들어가지 못하면, 설사 5천부의 대장경을 살펴볼지라도 많은 것이 아니고, 진심을 크게 깨달으면 단 한마디의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벌써 군더더기이다. 이제 눈썹을 아끼지 않고 삼가 몇 장(章)의 글로써 진심을 밝혀 도에 들어가는 기초와 절차를 삼고자 한다. 이에 서문을 쓴다.
1.참마음과 바른 믿음
『화엄경』에 말하기를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 모든 선근(善根)을 자라게 한다'하였다. 유식(唯識)에 말하기를 '믿음은 물을 맑히는 구슬과 같나니 흐린 물을 맑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이것으로써 온갖 선(善)이 발생하는 데에는 믿음이 그 길잡이가 된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불경의 첫머리에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고 쓴 것도 믿음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질문] 조사문(祖師門 = 禪門)의 믿음과 교문(敎門)의 믿음이 어떻게 다릅니까?
[대답] 그것은 여러 가지로 동일하지 않다. 교문에서는 사람과 하늘들로 하여금 인과(因果)의 법을 믿게 한다. 즉 복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십선(十善)이 묘한 인연이 되고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즐거운 결과가 된다고 하며, 비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생멸의 인연이 바른 인(因)이 되고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성인의 결과라 믿게 하며, 불과(佛果)를 즐기는 사람에게는 삼겁(三劫)과 육도(六度)가 큰 인(因)이 되고 보리와 열반이 바른 결과가 됨을 말한다. 그러나 조사문의 바른 믿음은 앞의 것과 다르다 모든 유위(有爲)의 인과를 믿지 않고 오직 자기가 본래 부처라는 것만을 믿게 하니, 천진한 자기 성품이 사람마다 갖추어져 있고 열반의 묘한 본체가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졌으므로 다른데 구하려 하지 않고 원래 저절로 갖추었음을 믿는 것이다.
승찬대사가 말하기를 '원만하기는 허공과 같아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지마는 다만 취하고 버리는 생각 때문에 그렇지 못하다'고 하였다 또 지공(誌公)스님께서 말하기를 '형상 있는 몸 속에 성품이 곧 부처님 몸이요, 무명의 길 위에 생멸 없는 길이다. 또 영가스님은 무명의 실다운 성품이 곧 부처님 몸이요, 허깨비 같은 빈 몸이 곧 법신(法身)이다'고 하였다. 이것으로써 중생이 본래 부처인줄을 알 것이다. 이미 바른 믿음을 내었더라도 반드시 잘 알아야 한다. 영명스님은 '믿기만 하고 알지 못 하면 무명이 더욱 자라고, 알기만 하고 믿지 않으면 삿된 견해가 더욱 자란다'고 하였다. 이것으로써 믿음과 견해가 겸비하여야 도에 들어감이 빠른 줄 알 수 있다.
[질문] 처음으로 발심해서 아직 도에 들어가지 못했더라도 이익이 있습니까?
[대답] 기신론에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듣고 겁내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이 사람은 결정코 부처 종자를 이어받아 반드시 모든 부처의 수기(授記)를 받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 세계 안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하여 십선(十善)을 행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잠깐이나마 이 법을 바로 생각하면 이 공덕은 앞의 공덕보다 많이 비교 할 수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또 반야경에서는 '한 생각 동안만이라도 깨끗한 믿음을 내면 부처는 그를 다 알고 본다. 그러므로 그 중생은 그런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천리를 가려면 첫걸음이 빨라야 하나니 첫 걸음이 어긋나면 천리가 다 어긋남을 알아야 한다. 무위(無爲)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첫 믿음이 바라야 한다. 첫 믿음을 잃으면 모든 선(善)이 다 무너진다. 그러므로 조사께서는 말하기를 '털끝만치의 차이만 있어도 하늘과 땅처럼 멀어진다'고 한 것이 바로 이 이치이다.
2, 참마음의 다른이름
[질문] 이미 바른 믿음이 내었거니와 무엇을 참마음이라 합니까 ?
[대답]허망하지 않으므로 참(眞)이라 하고, 신령하게 밝은 것이며 마음이니 <능엄경>에서 이 마음을 밝혔다.
[질문] 다만 진심이라고만 합니까? 아니면 따로 다른 이름이 있습니까?
[대답] 부처의 가르침과 조사의 가르침에서 지은 이름이 같지 않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살계에서는 마음바탕(心地)이라 하였으니 온갖 선을 내기 때문이요, <반야경>에서는 '보리'라 하였으니 부처님의 본체가 되기 때문이며, <화엄경>에서는 법계(法界)라 하였으니 서로 사무치고 융통하여 포함하기 때문이요, <금강경>에서는 '여래(如來)'라 하였으니 온 곳이 없기 때문이며, 또 <반야경>에서 '열반'이라 하였으니 모든 성인들이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이요,<금강명경>에서는 '여여(如如)'라 하였으니 진실하고 항상되어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정광명>에서는 '법신(法身)'이라 하였으니 보신(報身)과 화신(化身)이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기신론>에서는 진여(眞如)라 하였으니 생명이 없기 때문이며,<열반경>에서는 '불성(佛性)'이라 하였으니 삼신(三身)의 본체이기 때문이요,<원각경>에서는 '총지(摠持)'라 하였으니 공덕을 흘려내기 때문이다. <승마경>에서는 '여래장'이라 하였으니 숨겨 덮고 포용하였기 때문이요, <요의경>에서는 '원각(圓覺)'이라 하였으니 어두움을 부수고 홀로 비추기 때문이다. 그로므로 수(壽)선사의 유심결(唯心訣)에' 하나의 법이 천가지 이름을 가진 것은 인연을 따라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고 한 것이며, 여러 경에 두루 있으므로 다 인용 할 수 없다.
[질문] 불교의 가르침으로는 알았거니와 조사의 가르침에서는 어떤 것입니까?
[대답] 조사의 문에는 이름과 말이 끊어져서 하나의 이름도 짓지 않거늘 무슨 많은 이름이 있겠는가? 그러나 근기에 따라 그 이름도 또한 많다. 어떤 때엔 '자기'라 하였으니 중생의 근본 성품이기 때문이요, 어떤 땐 '정안(正眼:바른 안목)'이라 하니 유위(有威)의 모습을 비추어 밝히기 때문이요, 어떤 때엔 '묘심(妙心)'이라 하니, 비고 신령스럽고 고요히 비추기 때문이요, 어떤 땐 '주인옹(主人翁)'이라 하니 원래부터 짐을 졌기 때문이다. 어떤 때엔 무저발(無底鉢)'이라 하니 간 곳마다 생활이 풍족하기 때문이요, 어떤 때엔 '줄 없는 거문고(沒絃琴)'라 하니 오늘의 경지를 연주해 내기 때문이요, 어떤 때에는 무진등(無盡燈)'이라 하니 미혹한 유정을 비추어 깨뜨리기 때문이요, 어떤 때엔 무근수(無根樹)'라 하니 뿌리와 꼭지가 견고하기 때문이요, 어떤 때엔 '취모검*吹毛劒)'이라 하니 번뇌의 뿌리를 끊어버리기 때문이요, 어떤 때엔 무위국(無爲國)'이라 하니 바다같이 평온하고 강같이 맑기 때문이요, 어떤 때엔 '모니주(牟尼珠)'라 하니 가난함을 구제하기 때문이요, 어떤 때엔 열쇠 없는 자물쇠라 하니 여섯 가지 감정을 막아버리기 때문이요, 나아가서는 진흙소(泥牛), 나무말(木馬), 마음의 근원(心源), 마음도장(心印), 마음의 거울(心鏡), 마음의 달(心月), 마음의 구슬(心珠)이라 하여 갖가지 딴이름이 잇지만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만일 참마음을 깨달으면 모든 이름을 다 알 수 있고, 이 참마음에 어두우면 모든 이름에 다 장애가 된다. 그러므로 참마음에 대하여 반드시 자세히 알아야 하느니라."
3. 참마음의 본체
[질문] 참마음의 이름들은 알았거니와 그 본체는 어떠합니까?
[대답] 『방광반야경』에 말하기를 '반야는 아무현상이 없으므로 생멸하는 모양이 없다.'고 하였으며, 또『기신론』에서는 '진여 자체는 모든 범부, 성문, 연각, 보살, 부처에 있어서 차별이 없으므로 과거에 난 것도 아니고 미래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항상 있어 본래부터 성품 스스로가 모든 공덕을 갖추었다'하였다. 이상의 경론에 의하면 참마음의 본체는 인과를 뛰어넘었으며 고금에 통하였으며 범부와 성현을 구별하지 않고 아무 상대할 것이 없다. 마치 허공이 어디나 두루한 것처럼, 그 묘한 본체는 고요하여 모든 실없는 말들이 끊어져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움직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아 고요히 항상 머무른다. 그러므로 옛날의 주인옹이라 부르며, 위음나반인(威音那畔人)이라고 부르며, 또 공겁(空劫:천지창조이전)이전의 자기라고도 부른다. 한결같이 마음이 공평하고 비어서 털끝만큼의 티의 가리움도 없어, 모든 산과 강, 땅덩어리와 초목의 우거진 숲과 온갖 물건이나 모든 현상과 깨끗하고 더러운 모든 법이 다 여기서 나온다. 그러므로 『원각경』에 '선남자여, 위없는 법왕(法王)에게 큰 다라니 문이 있으니 그것을 원각(圓覺)이라 이름한다. 그것은 일체의 청정한 진여와 보리와 열반과 바라밀을 흘려내어 보살들을 가르친다.'하였다.
또 규봉스님은 말하기를 '마음이란 텅비어 순수하며 빛나고, 신령스럽게 밝아 가고 옴이 없는지라 가만히 과거· 현재· 미래에 통하고, 가운데도 아니요 밖도 아니면서 시방에 두루 사무친다. 없어지지도 않고 나지도 않는데 어떻게 4산(生.老,病.死)이 해칠 수 있으며, 성품도 형상도 멸했거니 어찌 5색이 눈멀게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영명(永明)스님의 유심결에 이르기를 '대저 이 마음은 묘함과 신령함이 모두 모였는지라. 만겁의 왕이 되고, 삼승(三乘)과 5성(性)이 가만히 의지하는지라. 모든 성현의 어머니가 된다. 혼자 놓고 홀로 귀하여 견줄 데가 없으니, 실로 큰 도의 근원이며 참 법의 골수다.'고 하였다. 믿으면 삼세의 보살이 다같이 공부한 것이 대개 이 마음을 배운 것이요, 삼세의 부처가 같이 증득한 것이 이 마음을 증득한 것이요, 대장경이 설명한 것이 이 마음을 설명한 것이요, 모든 중생의 미혹함이 이 마음을 미혹 것이요, 모든 수행인의 깨달음이 이 마음을 깨달은 것이요, 모든 조사들의 서로 전함이 이 마음을 전한 것이요, 천하의 납자들이 참문하는 것이 이 마음을 참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밝게 알면 일마다 다 이것이요, 물건마다 다 온전히 드러날 것이요, 이 마음을 미혹하면 가는 곳마다 뒤바뀌고 생각마다 어리석은 것이다. 이 본체는 모든 중생이 본래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이며, 모든 세계가 생겨난 근본이다. 세존께서는 영취산에 침묵하시고, 선현존자는 바위 밑에서 말을 잊었으며, 달마대사는 소림사에서 벽을 향해 앉았었고, 유마거사는 비야리성에서 입을 다물었던 것이니, 그것은 다 이 마음의 묘한 본체를 밝힌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본체를 알아야 할것이다.
4. 참마음의 묘한 작용
[질문] 묘한 본체는 이미 알았거니와 묘한 작용이란 것은 어떤 것입니까?
[대답] 옛사람이 말하기를 '바람이 움직이매 마음이 나무를 흔들고, 구름이 생기며 성품이 티끌을 일으킨다. 만일 오늘의 일을 밝히려 하매 본래의 사람을 모르고 만다'고 하니, 이것이 묘한 본체가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진심의 묘한 본체는 원래 움직이지 않아 편안하고 고요하며 진실하고 항상한데, 진실하고 항상한 본체에서 묘한 작용이 나타나서 흐름을 따라 묘함을 얻는 데에는 거리끼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의 게송에도 이렇게 송(頌)하였다.
마음이 온갖 경계를 따라 구르니
구르는 곳마다 진실로 신비롭다.
흐름을 따라 성품을 바로 알면
기쁨도 근심도 모두 없으리.
그러므로 일상생활의 행동하고 베푸는 것이나, 동쪽과 서쪽으로 다니는 것이나, 밥을 먹고 옷을 입는 것이나, 숟가락을 들고 젓가락을 놀리는 것이나,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엿보는 것등이 다 진심의 묘한 작용의 나타남이다. 그런데 범부들은 미혹하여 옷을 입을 때에는 다만 옷을 입는다고만 알고, 밥들 먹을 때에는 다만 밥을 먹는다고만 알아, 모든 일에 있어 형상만을 따라 구른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속에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눈앞에 있건만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성품을 아는 사람이라면 움직이고 분별할 때에 전혀 어둡지 않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하기를 '태 안에 있어서는 선(禪)이라 하고 세상에 있어서는 사람이라고 하며, 눈에 있어서는 빛깔을 보고 귀에 있어서는 소리를 들으며, 코에 있어서는 냄새를 맡고 입에 있어서는 말하며, 손에 있어서는 물건을 잡고 발에 있어서는 걸어다니며, 두루 나타나서는 법계를 두루 싸고 거두어 들어서는 한 티끌 속에 있다. 그것을 아는 이는 그것을 부처의 성품이라하고 모르는 이는 영혼이라 한다'고 하셨다. 도오(道悟)스님이 홀(笏)을 들고 춤을 춘 것이나. 석공(石鞏)스님이 활을 당김이나, 비마(秘魔)스님이 작대기를 휘두르거나, 구지(俱脂)스님이 손가락으르 세운 것이나, 흔주(炘州)스님이 땅을 두드린 것이나, 운암(雲岩)스님이 사자를 놀리는 등 이 모두가 다 하나의 큰 작용을 밝힌 것으로서, 일상생활에서 미혹하지 않았으므로 자연히 자유자재하여 걸림이 없었던 것이다."
5.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은 같은가 다른가.
[질문]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은 하나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대답] 형상으로 보면 하나가 아니요, 성품으로 보면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 본체와 작용과는 하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다. 어떻게 그럴 줄을 아는가? 시험해 설명하리라. 묘한 본체는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서 모든 상대를 뛰어넘어 모든 형상을 떠났으므로, 성품을 밝게 알아 증득한 이가 아니면 그 이치를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또 묘한 작용은 인연을 따르는 것으로서, 온갖 사물에 응하여 허망하게 형상을 세워 형상이 있는듯하므로 형상이 있기도 하고(用) 없기도 한(體)면으로 볼 때는 하나가 아니다. 또 작용은 본체로부터 일어났는지라 작용이 본체를 여의지 않았고 본체가 능히 작용을 일으키는지라 본체가 작용을 떠나지 않는다. 이 서로 떠나지 않는 이치의 면으로 볼 때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마치 물은 젖음으로 본체를 삼으니 본체(젖음)에는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요, 파도는 움직임으로써 형상을 삼나니 바람으로 인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의 성품과 파도의 성품은 하나는 움직이고 하나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물결밖에 물이 없고 물 밖에 물결이 없어 그 젖는 성품은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이상으로 생각해보면 본체와 작용이 하나인지 다른지를 가히 알 수 있다.
6. 참마음이 미혹 속에 있음
[질문]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사람마다 다 갖추어져 있는데 왜 성인과 범부가 같지 않습니까?
[대답] 참마음은 범부와 성인이 같건만 범부는 망령된 마음으로 물건을 참이라고 잘못 인정함으로써 깨끗한 성품을 잃어버린다. 이것이 장애가 되기 때문에 참마음이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어두움 속의 나무그림자와 같고, 땅속의 샘줄기 같아서 있으되 알지 못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경에 말하기를 '선남자여, 비유하건데 깨끗한 마니구슬에 다섯가지 빛깔이 비치어 방향마다 제각기 다르게 나타나거늘 어리석은 무리는 그 마니구슬에 실제로 그러한 빛깔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처럼, 선남자여 원각의 깨끗한 성품이 몸과 마음에 나타나 사물을 따라 각각 응해 주면 저 우매한 사람은 깨끗한 원각에 진실로 그런 몸과 마음의 자기 성품이 있다고 말한 것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하였다. 조론(肇論)에 말하기를 '하늘과 땅 사이와 우주 안에 한 보배가 몸뚱이의 산 속에 감춰져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곧 참마음이 얽매임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또 자은(慈恩)스님은 말하기를 '법신이 본래부터 있어서 모든 부처가 공통으로 가졌는데 범부는 망념에 덮이어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번뇌에 싸여 있기 때문에 여래장(如來藏)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였다. 또 배공(裵公)은 말하기를 '종일토록 원각(圓覺)하면서 원각하지 못하는 자는 범부다'하였다. 그러므로 진심은 비록 번뇌 속에 있으나 그 번뇌에 물들지 않는 것은, 마치 백옥이 진흙 속에 던져져 있어도 그 빛이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줄을 알것이다.
7. 참마음을 가리는 망연을 쉼
[질문] 참마음이 미망 속에 있는 것이 범부일진데, 어찌하면 미망에서 나와 성인을 이룰 수 있겠는가?
[대답] 옛사람이 말하기를 '허망한 마음이 없어지는 그곳이 보리요, 생사와 열반이 본래 평등하다'하였다. 또 경에 이르기를 '중생들의 허깨비의 몸이 사라지는 까닭에 허깨비의 마음도 사라지고, 허깨비의 마음이 사라지는 까닭에 허깨비의 대상도 사라지며 허깨비의 대상이 사라지는 까닭에 허깨비의 사라짐까지도 사라지고, 허깨비의 사라짐이 사라지는 까닭에 허깨비가 아닌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거울을 갈 때에 때가 없어지면 밝은 빛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영가스님도 말하기를 '마음은 뿌리요 법은 티끌이니 두 가지는 마치 거울 위의 먼지 같다. 먼지와 때가 다할 때에 광명은 비로소 나타나고 마음과 법을 모두 잊을 때에 성품은 곧 참되어진다.'하였으니 이것이 곧 허망에서 벗어나서 참을 이루는 모습이다.
[질문] 장자가 말하기를 '마음이란 뜨겁기는 타는 불이요 차갑기는 언 얼음이며, 빠르기는 내려보고 올려보는 사이에 사해(四海) 밖을 두 번 어루만진다. 가만히 있을 때는 깊고 고요하며 움직일 때는 하늘까지 멀리 가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뿐이로다'하였습니다. 이것은 장자가 범부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음을 이와 같다고 이미 설파한 것이거늘 선문(禪門)에서는 어떤 법으로 허망한 마음을 다스립니까?
[대답] 무심(無心)의 법으로 망심(妄心)을 다스린다.
[질문]사람이 무심이 되면 초목과 같게 될 것이니, 무심이란 말씀에 대하여 방편을 베풀어 주십시오.
[대답] 무심이라 한 것은 마음의 본체가 없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무심이라 할뿐이다. 마치 빈 병을 말할 때 병속에 물건이 없는 것을 빈 병이라 하고, 병 자체가 없는 것을 빈 병이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하기를 '그대가 다만 마음에 일이 없고, 일에 마음이 없으면 자연히 텅 비어 신령스럽고 고요하여 묘하리라' 하니, 이것이 마음을 말 한 참뜻이다. 이에 의하건대 허망한 마음이 없을지언정 참마음의 묘한 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옛부터 여러 스님네가 무심의 공부를 한 것이 여러 가지가 각각 다르니, 지금 그 대의를 한데 뭉쳐 대략 열 가지로 밝히리라.
첫째는 깨달아 살핌이니 공부를 할 때에는 항상 잡념을 끊어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즉 한 생각이 겨우 일어나거든 곧 그것을 깨달아 부수는 것이니 망념이 깨달음에 부서지면 다음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므로 깨달은 지혜마저도 버려야 한다. 망념과 깨달음을 함께 잊어버리면 그것을 무심이라 한다. 그래서 조사께서는 '망념이 일어남을 두려워하지 말며 오직 깨달음이 더딤을 두려워하라'고 하였다. 또 게송으로 말하기를 '진심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다만 소견을 쉬도록 하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깨달아 살피어 망념을 쉬는 공부다.
둘째는 쉬고 쉬는 것이니, 이른바 공부할 때에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으며 마음이 일어나거든 곧 쉬고, 인연을 만나거든 곧 쉰다는 것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한가닥 흰 비단인 듯, 싸늘하여 가을비 내리듯, 옛날 사당 안의 향로 같이 하라'하였다. 즉 망상을 끊고 분별을 떠나 바다와 같고 말뚝과 같게 되어야 비로소 참마음과 합친다 하였으니, 이것이 망심을 쉬는 공부다.
셋째는 마음을 없애고 경계를 남기는 공부니, 공부할 때에 모든 망념을 다 쉬어 바깥 경계로 돌아보지 않고 다만 스스로 마음을 쉬는 것이니, 망심만 쉬면 경계가 있다고 무엇이 방해가 되리요? 즉 옛사람의 말에 '사람만 빼앗고 경계는 빼앗지 않는다'는 법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말하기를 '다만 스스로 만물에 무심하면 만물이 항상 나를 둘러싸고 있다 하더라도 무엇이 방해가 되리요'하였으니 이것이 곧 마음을 없애고 대상을 두어 망심을 쉬는 공부다.
넷째는 경계를 없애고 마음을 두는 것이다. 공부할 때에 안팍의 모든 대상을 다 비워 고요하다고 관찰하고 오직 한 마음만을 남겨서 외로이 우뚝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법과 짝하지 않고 모든 대상과 상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만일 그 마음이 대상에 집착하면 그것이 곧 망심이라. 지금에 이미 대상이 없어졌는데 무슨 망심이 있겠는가 ? 즉 참마음이 홀로 비추어 도에 걸리지 않는 것이니. 옛사람의 이른바 '경계를 빼앗고 사람을 빼앗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는 '동산에 꽃은 이미 다 떨어졌는데 수레와 말은 아직도 붐빈다'하였고 또 '삼천명의 검객은 지금 어디에 있는고? 홀로 장주(蔣周)가 태평이 이룩했네'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대상을 없애고 마음을 남기는 마음 쉬는 공부이다.
다섯째는 마음과 대상을 모두 잊는 공부다. 공부할 때에 먼저 바깥 대상을 비우고 다음에 안으로 마음을 멸하는 것이다. 이미 안팎으로 마음과 경계가 모두 고요해졌는데 망심이 무엇을 좇아 일어나겠는가? 관계(灌溪)스님이 말하기를 '방에 벽이 없고 사방에 문도 없어 발가벗은 듯 맑디맑다' 하였으니 이는, 조사들이 말한 사람과 대상을 함께 빼앗는 법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말하기를 '구름이 흩어지고 물이 흘러가니 고요하여 천지가 이었다.'하고, 또 말하기를 '사람과 소를 모두 볼 수 없으니 바야흐로 달이 밝은 때라'하니, 이는 마음도 없애고 대상도 없애 망심을 쉬는 공부다.
여섯째는 마음과 대상을 모두 남기는 공부이니, 공부할 때에 마음이 마음의 지위에 머무르고 대상이 대상의 자리에 머물러서, 때로는 마음과 대상이 마주쳐도 마음이 경계를 취하지 않으며, 경계가 마음을 따르지 않아 제각기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자연히 망념이 생기지 않고 도에 걸림이 없으리라. 경에 말하기를 '이 법이 법의 자리에 머물러 세간의 모습이 항상 머문다'하시니 이는 곧 조사께서 말한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다'한 법문이다.그러므로 어떤 이가 말하기를 '한 조각의 달이 바다 위에 떠오르니 몇 사람이나 누대 위로 오르는고?'하였으며, 또 어떤 이는 '산의 꽃 천만송이에 노는 사람 돌아갈 줄 모른다.'하니, 이것이 마음과 대상을 모두 남기고 망심을 없애는 공부다.
일곱째는 안팎이 모두 본체인 공부다. 즉 공부는 할 때에 산, 강, 땅, 해, 달, 별, 몸, 세계등 모든 법이 다같이 참마음의 본체가 되는 것이므로 고요히 비고 밝아 털끝만큼도 다름이 없어 대천세계의 모래처럼 수많은 세계를 한덩이로 두드려 만드는 것이니. 또 어디서 망심이 오겠는가? 그러므로 승조(僧肇)법사도 '천지가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다'하였으니, 이것이 안팎이 완전히 본체가 되어 망심을 멸하는 공부이다.
여덟째는 안팎이 모두 작용(用)인 공부이니, 공부할 때에 일체 안팎의 몸과 마음과 세계의 모든 법과, 또 일체의 행동과 베품을 모든 진실의 묘한 작용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온갖 생각이 겨우 일어나자 곧 묘한 작용이 앞에 나타나니 모두가 그 묘한 작용인데, 망심이 어느곳에 발 붙이겠는가? 영가스님이 말하기를'무명의 진실한 성품이 곧 부처성품이요, 허깨비같이 빈 몸이 곧 법신이다'하시며, 지공(誌公)의 12시가(十二時歌)에 말하기를 '첫새벽 인시(寅時)여, 미친 탈춤 속에 도인의 몸이 숨었도다. 앉고 누움이 원래 도인줄 모르고 공연히 바쁘게 고통만 부르도다'하시니, 이것이 안팎이 완전히 작용하여 망을 쉬는 공부이다.
아홉째는 본체가 그대로가 작용인 공부이니, 즉 공부할 때에 비록 본체에 가만히 합하여 한결같이 비어 공적하나, 그 가운데에 안으로 신령한 밝음이 숨어있으니 그것의 본체가 곧 작용이다. 그러므로 영가스님은 말하기를 '또렷또렷(惺惺)하고 고요함(寂寂)은 옳고, 고요하고 무기(無記: 감각이 없음)인 것은 그르다.'하였으니, 고요함 가운데에 무기를 용납치 않고 또렷또렷한 가운데 망상을 용납치 않으면 온갖 망상이 어찌 생길 수 있는가? 이것이 본체 그대로가 작용이어서 망심을 없애는 공부이다.
열번째는 본체와 작용을 뛰어넘는 공부니, 즉 공부할 때에 안팎을 나누지 않으며 동서남북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사방과 팔면을 몽땅 하나의 큰 해탈문으로 삼아 원만한 자리에서 본체와 작용을 나누지 않는다. 그리하여 털끝만큼도 빈틈이 없이 온몸을 한덩이로 두드려 만드는데 그 망심이 더이서 일어나겠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온몸에 꿰맨 자리가 없어 위아래가 온통 둥글다'고 하였으니,이것이 곧 본체와 작용을 뛰어넘어 망심을 멸하는 공부이 다.
이상의 열 가지 공부하는 방법을 다 쓸 필요는 없으니, 다만 한 부분만을 찾아서 공부가 익어지면 망심은 저절로 사라지고 참마음이 곧 나타날 것이다. 그 근기와 전생 습성에 따르되 어느 법에 인연이 맞는지를 살펴서 닦아 익혀라. 그러면 이 공부는 공부가 없는 공부이므로 애를 쓰는 공력이 아니다. 이 망심이 쉬는 법문이 가장 긴요하므로 가장 말이 많아진 것이니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8. 참마음을 닦는 네 가지 위의
[질문] 앞에서 망심 쉬는 법을 말씀하셨는데. 다만 앉아서만 익힙니까? 아니면 다니거나 섰거나 할 때도 통하는 것입니까?
[대답] 여러 경과 논에서 앉아서 익히는 법을 많이 말씀하셨으니 그것을 이루기 쉽기 때문이며, 다니거나 섰을 때에도 통한다 하였으니 오래오래 익혀야 차츰 익혀지지 때문이다. <기신론>에 말하기를 '만일 선정(止)을 닦는 사람이 고요한 곳에서 단정히 앉아 뜻을 바로 할 때에는 호흡에도 의지하지 않고 몸에도 의지하지 않고 공(空)에도 의지하지 않고 땅, 물, 불, 바람에도 의지하지 않으며, 나아가서는 보고 듣고 깨닫는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망심이 일어나면 일어나자 곧 버리며, 버린다는 생각까지 버려야 한다. 그것은 모든 법은 본래 생각이 없어 생각 생각에 나지도 않고 생각 생각에 사라지지도 않는 것이기 대문이다. 또 마음을 따라 밖으로 대상을 생각한 뒤에 마음으로 마음을 버리지 못 할 것이요, 만일 마음이 흩어지거든 곧 거두어 들여 바른 생각에 머무르게 할 것이니, 그, 바른 생각이란 오직 마음뿐으로서 바깥대상이 없으며, 또 그 마음도 자기모양이 없어 생각 생각에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가고 오고 나아가고 물러가며, 온갖 분별동작을 하더라도 언제나 항상 방편을 생각해서 분수에 따라 관찰해서 오래 익히어 순일하게 익어지면 그 마음이 머믈게 될 것이다.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차츰 용맹해져서, 그것을 따라 진여삼매(眞如三昧)에 들어가서 번뇌를 깊이 굴복시키며 신심이 늘어나서 물러나지 않는 지위를 빨리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의혹하고 믿지 않으며, 비방하고 죄가 중하고, 업장이 두텁고 교만하여 게으른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한다'하였느니 여기에 의하면 네 가지 자세를 통하는 것이다.
<원각경>에 말하기를 '다니는 것도 선정이요, 앉아 있는 것도 선정이며,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움직이고 고요할 때에도 본체는 언제나 태연하다'하니 이 말에 의하여도 역시 네 가지 자세에 통하는 것이다. 총괄해서 그 공부를 말한다면 앉아서도 마음을 쉬기 어렵거늘 하물며 다니고 멈추는 등에서 어찌 능히 도에 들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공부의 작용이 완전히 익숙한 사람이라면 천성인이 나타나더라고 꼼짝도 하지 않고, 만 가지 요망한 마귀가 있더라도 돌아보지도 않거늘 어찌 다니고 멈추고 앉는 가운데서 공부하지 못하겠는가 ?
마치 어떤 사람이 원수를 갚으려 하여도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눕거나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항상 잊지 못하며, 또 누구를 사랑하는 데도 그와 같다. 그런데 더구나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일은 유심(有心)의 일로서 그 유심의 가운데서도 오히려 이룰 수 있거늘 지금 이 공부는 무심의 일이니, 어찌 사의(四儀) 가운데서 항상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의심하겠는가 ? 다만 믿지 않고 행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요, 만일 행하고 믿으면 네 가지 위의 가운데서 도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9. 참마음이 있는곳
[질문] 망심을 쉬면 참마음이 나타난다 하니, 그러면 그 참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대답] 참마음의 묘한 본체는 온갖 곳에 두루하였다. 영가스님이 말하기를 '제자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담연(湛然)하지만, 찾으면 그대는 보지 못할 것이다.'하였다. 또 경에 말씀하기를 '허공의 성품이기 때문이며, 언제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며, 여래장 안에서 일거나 사라짐이 없기 때문이다'하였다. 또 대법안(大法眼)스님은 말씀하기를 '곳곳마다 보리의 길이요 일마다 공덕의 숲이라'하시니, 이것이 곧 마음이 있는 곳이다. 참마음의 묘한 작용은 느낌에 따라 나타남이 마치 빈 골짜기에 메아리와 같다. 법등(法燈)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예나 지금이나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분명히 눈앞에 있다. 조각구름은 서녘 골짜기에서 생기고 외로운 학은 먼 하늘에서 내린다'하였다. 그러므로 위부(魏府)의 노화엄(老華嚴)이 말하기를 '불법은 일상생활 가운데 있다. 걸어다니고 서며 앉고 누우며, 차를 마시고 밥을 먹으며 말로 서로 묻는 데와 모든 일하는 곳에 있지만, 마음을 일으키거나 생각을 움직이면 또 그렇지 않다' 하였다. 본체는 모든 곳에 두루하여 모든 작용을 일으키지만 다만 인연의 있고 없음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묘한 작용이 일정하지 않을 뿐이요,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마음을 닦는 사람으로 무위의 바다에 들어가 생사를 건너려 하거든, 진심의 본체와 묘한 작용이 있는 곳을 몰라서는 안될 것이다.
10. 참마음은 생사를 벗어남
[질문] 견성(見性)을 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이지만 모두가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은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 합니까?
[대답] 생사가 본래 없는 것인데 망령되어 있다고 헤아린다. 마치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에 어른거리는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에 꽃이 없다 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도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원래 없는 빈 것이건마는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 생사가 없는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 하여도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는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마는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 말하기를 '선남자여, 일체중생이 끝없는 옛부터 갖가지 뒤바뀜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바꾸어 선 것 같이 망령되이 사대(四大)를 허망하게 오인해서 자기의 몸이라 여기고 육진(六塵)의 그림자로 자기의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건대 병들은 눈이 허공 속의 꽃을 보는 것과 같으며, 나아가서는 뭇 허공 꽃이 허공에서 멸할 때에도, 결코 사라진 곳에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생기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이 생김이 없는 가운데서 허망하게 생멸을 보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고하였다.
이 경문에 의하면 원각(圓覺)의 참마음을 통달하여 깨달으면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수 있다. 이제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투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에 암바(庵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묻기를 '생사가 바로 생사가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사온데 무엇 때문에 생사가 흘러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사가 곧 생사가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데 생사가 흘러 다닙니까?" 수산주는 '죽순이 필경에는 대가 되겠지마는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면 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즉 생사의 없음을 아는 것이 생사 없음을 체득하는 것만 못하고, 생사 없음을 체득하는 것이 생사 없음에 계합하는 것만 못하고, 생사 없음에 계합함이 생사 없음을 활용하는 것만 못 한 줄을 알수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생사 없음조차 모르거늘 하물며 생사 없음을 체득하거나 계합하거나 활용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오인하는 이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11. 참마음을 드러내는 수행
[질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망심을 쉬면 참마음이 나타나건만 망심을 쉬기 전에는 다만 망심만을 쉬어서 무심(無心)의 공부를 닦아야 합니까? 아니면 따로 망심을 다스릴 다른 법이 있습니까?
[대답] 바른 행[正]과 도움의 행[助]이 다르다. 무심으로 망심을 쉬는 것으로써 바른 행을 삼고, 온갖 선을 행함으로써 도움의 행을 삼는다. 비유하면 거울이 티끌에 덮었을 때에 손으로 닦아야 하겠지마는 다시 묘한 약으로 문질러야 비로소 광명이 나타나는 것과 같다. 티끌은 번뇌요 손은 무심의 공부며, 문지르는 약은 온갖 선행이요 거울의 광명은 진심이다. <기신론>에 이르기를 '다시 믿음을 성취한 발심이란 것은 어떤 마음을 발하는 것인가.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곧은 마음이니 진여의 법을 바로 생각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깊은 마음이니 일체의 선행을 모으기 때문이며, 셋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니 모든 중생을 고뇌에서 구제하려 하기 때문이다'하였다.
[질문] 위에서 법계는 한 모양이므로 부처의 체(體)는 둘이 없다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진여만 생각하지 않고 다시 온갖 선행을 구해 배워야 한다 합니까?
[대답] 마치 큰 마니보주가 그 본체의 성품이 밝고 맑으나 광물찌꺼기의 티가 있나니, 어떤 사람이 비록 보배의 성품을 잘 알았으나 방편을 써서 갖가지 방법으로 갈고 닦지 않으면 끝내 맑아질 수 없는 것 같다. 중생들의 진여의 법도 그 본체와 성품이 비고 맑으나 한량없는 번뇌의 때가 있으니, 비록 진여를 생각하나 방편 없어서 온갖 법에 두루 덮었기 때문에 모든 선법을 수행하면 저절로 진여의 법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신론>론에 의하면 '망심을 쉬는 것으로 바른 행[正]을 삼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으로 도움의 행[助]을 삼는다. 그러므로 선행을 닦을 때엔 무심과 서로 맞아 인과에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인과에 집착하면 범부들의 인간과 천상의 과보에 떨어져 진여를 증득하기 어려우므로 생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만일 무심과 서로 맞으면 그것은 진여를 증득 하는 방편이요, 생사를 벗어나는 중요한 방법이라, 광대한 복덕을 아울러 얻을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금강반야경>에 '수보리여, 보살이 상에 집착하지 않는 보시를 하면 그 복덕은 한량이 없을 것이다'하였다 그러나 요즘 세상 사람들의 공부하는 것을 보면, 겨우 한낱 본래의 불성을 알고는 곧 스스로의 천진(天眞)을 믿고 많은 선행을 닦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진심에 통달하지 못 할 뿐 아니라 도리어 게을러져 악도에 떨어짐을 면하지 못 하거늘 어찌 생사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런 소견을 아주 그릇된 것이다.
12. 참 마음의 공덕
[질문] 마음이 있으므로 인(因)행을 닦으면 공덕됨을 의심치 않겠지만, 무심으로 인행을 닦으면 공덕이 어디서 오는가?
[대답] 마음이 있으므로 인행을 닦음은 유위의 과보를 얻고 무심으로 인행을 닦으면 성품의 공덕을 나타낸다. 그 온갖 공덕은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었으나 망심에 덮여 나타나지 못하였다가 이제 이미 망심이 없어졌으므로 그 공덕이 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가스님은 말하기를 '삼신(三身:法身.報身.應身)과 네 지혜(四智:大圓鏡智.平等性智.妙觀祭智.成所作智)는 몸 가운데 원만하고, 여덟가지 해탈과 여섯가지 신통이 마음바탕에 새겼다'하시니 이것은 본체 가운데 갖추어진 본성의 공덕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만일 누구나 잠깐 동안이나마 조용히 앉으면 항하의 모래수같은 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훌륭하다. 보탑은 필경에 티끌이 되겠지마는 한 생각의 깨끗한 마음은 부처를 이룬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무심의 공덕이 유심(有心)의 공덕보다 큰 줄 알 것이다. 홍주(洪州)의 수료스님은 마조스님에게 나아가 절하고 묻기를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온 분명한 뜻입니까' 하다가 마조스님에게 발길로 차여 거꾸러져지고는 갑자기 깨치고 일어나 손뻑을 치면서 크게 웃고 '매우 기이하고 매우 기이하여라. 백천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이치의 근원을 다만 한 털끝에서 단박 근원을 알아내었다.'하고 예배하고 물러갔다. 이로써 보면, 공덕이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요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것이다. 사조(四組)스님이 나융선사에게 '대개 백천의 법문도 모두 마음으로 돌아가고 항하의 모래수 같은 공덕도 다 마음의 근원에 있으므로, 일체의 계율, 선정, 지혜, 신통, 변화가 모두 본래 구족해서 그대의 마음을 여의지 않았다.'하였다 조사의 말에 의하면 무심의 공덕이 한없이 많건만는 다만 겉모양의 공덕에만 집착하는 이는 무심공덕에 대하여 자연히 믿음을 내지 못한다."
13. 참마음 공부의 시험
[질문] 참마음이 앞에 나타날 때 어떻게 그 참마음이 성숙하여 걸림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까?
[대답] 도를 배우는 사람이 참마음이 앞에 나타남을 보았을 때 아직 습기를 버리지 못 하고 전에 익히던 망(妄)의 경지를 만나면 때로는 생각을 잃는 수가 있다. 마치 소를 먹이는 사람이 비록 잘 다루어 끌면 순응하는 경지까지 길들였더라도, 채찍과 고삐를 놓지 않고 마음을 부드럽게 걸음이 평온하여 곡식밭에 몰고 들어가더라도, 곡식을 해치지 않게 되기를 기다려야 비로서 손을 놓는 것과 같다. 그런 경지에 이르러서는 목동의 채찍과 고삐를 쓰지 않더라도, 자연히 곡식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와 같이 도인이 참마음을 얻은 뒤에는 먼저 공을 들여 보호하고 지켜, 큰 힘의 작용이 있어야 비로소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참마음을 시험하려면 먼저 평상시 미워했거나 사랑했던 대상을 가져다 때때로 면전에 있다고 생각해 보아 만일 여전히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도의 마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요, 만일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나지 않으면 그것은 도의 마음이 성숙한 것이다. 비록 이런 경지에 이르렀더라도 아직은 미움과 사랑이 자연히 일어나지 않는 경지는 아니다. 또 다시 마음을 시험하되,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대상을 취하게 하여도 그래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마음은 걸림이 없어 마치 한데 놓아 둔 흰소가 곡식을 해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 부처를 꾸짖고 조사들이 꾸짖는 사람들은 이 마음과 상응(相應)하였는데, 요즘은 겨우 종문(宗門)에 들어와서 도의 멀고 가까움도 알지 못하고 곧 부처를 꾸짖고 조사들을 꾸짖기만을 배우는 것은 너무 이른 것이다.
14. 참 마음은 아는 바 없이 안다.
[질문] 참마음과 허망한 마음이 대상을 대할 때에 어떻게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대답] 허망한 마음으로 경계를 대하는 것은 앎이 있으므로써 아는지라 거슬리고 순하는 경계에 탐욕.성냄.어리석음등의 마음을 일으키나니 이미 경계에 대하여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 삼독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망상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조사는 말씀하시기를 '거슬림과 순경이 서로 다투는 것은 마음의 병 때문이다'하였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을 대립시키는 것은 바로 망상임을 알 것이다. 또 만일 그것이 참 마음이라면 앎이 없이 알아서 공평하고 원만히 비추므로 초목과 다르고,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망심과 다르다. 대상을 대하여도 마음이 비고 밝아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앎이 없이 아는 것이 참마음이다.
그러므로 <조론(肇論)>에 '대개 성스로운 마음은 미묘하여 현상이 없으므로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쓸수록 더욱 부지런하므로 없다고도 할 수 없으며, 나아가서는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아도 앎이 없고,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앎이 없이 안다'하였다. 그러므로 앎이 없이 아는 것은 성인의 마음과 다르다고 말 할 수 없다. 또 허망한 마음은 있음[有]에 있어서는 있음에 집착하고 무(無)에 있어서는 무에 집착하여 항상 양쪽에 치우치므로 중도(中道)를 알지 못한다. 그러기에 영가스님은 '허망한 마음을 버리고 참마음을 취하면.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룬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수행할 줄 알지 못하여 도적을 자식으로 아는 것이 된다.'하였다. 만일 그것이 진심이라면 유무(有無)에 있으면서 유무에 떨어지지 않고 항상 중도에 있다.
그러므로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있음의 반연을 쫓지도 말고 공(空)이라는 생각도 머무르지 않아 한결같이 생각을 공평히 하면 모두가 저절로 없어진다.'하였다 또 <조론>에 '그러므로 성인이 있음에 처하되 유(有)에 집착하지 않고 무(無)에 있어도 무에 집착하지 않는다. 비록 유무를 취하지 않으나 또 유무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번뇌에 빛을 혼동하여 다섯세계[五趣]에 두루 돌아다니되 고요히 갔다가 갑자기 와서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다.'하였다. 이것이 성인이 사람을 위해 손을 내밀어 다섯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중생을 교화할 때에 비록 갔다 왔다 하더라도 갔다 왔다하는 상(相)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허망한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진심과 망심은 다른 것이다. 또 진심은 평상(平常)의 마음이요 망심은 평상의 마음이 아니다.
[질문] 평상의 마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답] 사람은 누구나 한 점의 신령한 밝음을 갖추고 있다. 그것은 맑고 고요하기 허공과 같아 어디나 두루 있다. 세속 일에 대해서는 방편으로 이성(理性)이라 이름하고, 행식(行識)에 대해서는 방편으로 진심이라 부른다. 털끝만큼의 분별이 없지마는 인연을 만나서는 어둡지 않고, 한 생각의 취하고 버림이 없지마는 만나는 물건마다 부딪히면 모두 포섭하여 모든 대상을 따라서 옮기지 않으며, 비록 흐름을 따라 묘한 작용을 얻더라도 제자리를 떠나지 않고 항상 고요하다. 그러므로 '찾으려면 그대는 보지 못한다'하는 것이 곧 참마음이다.
[질문] 평상이 아닌 마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답] 경계에는 성인과 범부가 있고 경계에는 더러움과 깨끗함이 있으며, 경계에는 단(斷)과 상(常)이 있고 경계에는 이론과 현실이 있으며, 태어남과 사라짐, 움직임과 고요함, 감과 옴, 예쁨과 미움, 선과 악, 원인과 결과 등이 있나니 자세히 논한다면 천만가지 차별이 있거니와 모두가 평상치 못한 경계이다. 마음은 이 평상이 아닌 경계를 따라 생기고 또 그것을 따라 사라진다. 평상이 아닌 경계의 마음이란 앞의 평상의 참마음에 대립시키기 때문에 평상이 아닌 망심이라 하고, 진심은 본래 갖추어져 평상이 아닌 경계를 따라 갖가지 차별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평상의 진심이라 하는 것이다.
[질문] 진심은 평상하여 모든 인과가 없거늘 어찌하여 부처님은 인과와 선악의 응보를 말했습니까?
[대답] 허망한 마음이 갖가지 경계를 좇으면서 그 경계들을 알지 못하고 갖가지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갖가지 인과의 법을 설명하여 그 갖가지 망심을 다스리려 하였기 때문에 인과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진심이라면 온갖 경계를 따르지 않으므로 온갖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부처님도 갖가지 법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니, 거기에 무슨 인과가 있겠는가?
[질문] 진심은 평상하여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까?
[대답] 참마음은 작용할 때가 있지마는 경계를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요, 다만 묘한 작용으로 유희하여 인과에 어둡지 않을 뿐이다.
15. 참 마음이 가는 곳
[질문] 참 마음을 통달치 못한 사람은 참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선악을 짓습니다. 선의 인을 짓기 때문에 좋은 세계에 나고 악의 인을 짓기 때문에 나쁜 세계에 들어가는데, 업에 따라 상을 받는 것은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심을 아는 사람은 망상이 모두 없어지고 진심에 계합하여 선악의 인이 없을 것이니, 그렇다면 죽은 뒤에 그 영은 어느 곳에 의탁합니까?
[대답] 의탁할 곳이 있는 것이 의탁할 곳이 없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여기지도 말고, 또 의탁할 곳이 없다는 말로써 인간이 갈 곳 없는 방랑자와 같다고 여기지도 말고, 귀신 무리에서 의지할 데 없는 무주고혼 같이도 여기지 말라. 특별히 이렇게 물어서 의탁할 곳이 있기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성품을 통달하면 그렇지 않나니, 일체중생들은 깨닫는 성품을 모르기 때문에 허망한 정과 사랑하는 생각으로 업을 짓고 인을 삼아 여섯갈래[六趣]에 태어나서 선과 악의 과보를 받는다. 가령 천상의 업을 지어서는 천상의 과보를 받아도 제가 마땅히 날 곳을 제하고는 수용하지 못한다. 다른 세계도 그와 같아서 그 업을 따르기 때문에 자기가 난 곳을 즐겁다 하고 나지 않은 곳을 즐겁지 않다 하며, 제가 난 곳을 자기가 의탁할 곳이라 하고 남이 난 곳을 남이 의탁할 곳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허망한 정이 있으면 허망한 인이 있고, 허망한 인이 있으면 허망한 과가 있으며, 허망한 과가 있으면 허멍한 의탁할 곳이 있고, 허망한 의탁할 곳이 있으면 피차가 갈라지며, 피차가 갈라지면 옳고 옳지 못함이 있다.
지금 진심을 알아서 생멸이 없는 깨닫는 성(性)에 계합하여 생멸이 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킨다. 묘한 본체는 진실하고 항상하여 본래 생멸이 없다. 묘한 작용은 인연을 따르므로 생멸이 있는 듯 하지만 본체에서 생긴 작용이라 작용이 곧 본체인데 거기서 무슨 생멸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달인(達人)은 본체를 증득 하였는데 생멸이 무슨 상관인가. 그것은 물과 같다. 즉 물은 젖는 성이 그 본체요 물결이 그 작용이니, 원래 생멸이 없는데 물결 속의 젖는 성품에 무슨 생멸이 있겠는가. 그러나 물결이 젖는 성품을 떠나서는 따로 없기 때문에 물결에도 생멸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사람이 말하기를 '온 대지가 승려의 한짝 바른 눈이면 온 대지기 하나의 절이라. 이것이 이치를 깨친 사람의 안신입명 할 곳이다'하였다. 이미 참 마음을 알았으므로 사생과 육도가 모두 사라지고, 산하대지가 모두 참 마음이라, 이 참 마음을 떠나 따로 의탁할 곳이 없다. 이미 삼계의 허망한 인이 없어졌으므로 반드시 육도의 허망한 과보도 없을 것이니, 허망한 과보가 없어졌는데 무슨 의탁할 곳을 말하겠는가. 또 따로 피차가 없으니 피차가 없다면 무슨 옳고 옳지않음이 있겠는가.
즉 시방세계는 오직 하나의 참마음이라 온몸으로 수용하므로 따로 의탁할 곳이 없고, 또 시현문(示現門-방편으로 나타내 보임) 가운데서 마음대로 가서 태어나더라도 아무 장애가 없다. 그러므로 전등록에서 온조상서가 규봉스님에게 묻기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수명이 다하면 어디에 의탁하는가?' 하니 규봉은 '일체중생이 모두 신령스러운 밝은 깨달음의 성을 갖추어 부처와 다름이 없으므로 만 일 그 성이 곧 법신임을 깨치면 본래 태어남이 없거늘 무슨 의탁할 곳이 있겠는가. 신령스러이 밝아 어둡지 않고 항상 분명히 알며 어디서 온 곳도 없고 어디로 갈 곳도 없다. 다만 비고 고요함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삼고 허망한 생각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말아라. 허망한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저절로 그 없이 얽매지 못할 것이요, 혹 중음이 있더라도 향하는 곳마다 자유로와서 하늘과 인간에 마음대로 의탁할 것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곧 죽은 뒤에 참 마음이 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