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도에게 보내는 공개서한(1)(2)

덕산 원두스님 2008.07.10
불교도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제1신)

불교도 여러분! 최근 전개되고 있는 촛불시국과 불교도의 동참을 지켜보며 90년대 불교계의 불행한 사태가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나라의 장래와 함께 불교계가 지극히 염려스럽습니다. 천주교 사제단과 일부 기독교계에 이어 승려와 불교신자들이 길거리 촛불행사에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계의 촛불시위 동참은 불교계의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3개의 종교단체 가운데 상대적으로 많은 성직자(승려)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촛불시위가 국가사회에 미칠 영향력을 감안할 때 불교도의 촛불시국 동참에 대한 불교계의 범종단적인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계 내외의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닥쳐 올 촛불시국과 같은 대림과 갈등에 불제자답게 의연히 대처한다는 보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에 본인이 외람되게 촛불시국과 불교도의 동참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불교도에 있어서 쟁사(諍事) 해결에 임하는 기본자세입니다. 오늘의 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각자의 견해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촛불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일부 국민과 정부간, 국민과 국민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정치 문제화 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불교도의 입장에서 촛불시국과 같은 대립과 갈등을 어떻게 보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 입니다. 불교도가 분쟁 내지 쟁사에 임할 때 취해야 할 기본자세는 멸쟁법(滅諍法, adhikaraṇasamathā dhammā)의 “멸쟁”이라는 용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멸쟁의 원어인 아디까라나 사마타(adhikaraṇasamathā)는 일의 진정(鎭靜)이나 진중(鎭重) 등의 의미를 지닙니다. 즉, 승가에서 발생한 쟁사를 하루라도 빨리 진정시키기 위한 방법이 멸쟁법인데, 이 법에 따르면, 어떤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임석한 가운데 근대의 재판과 같은 해결의 절차를 밟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자 개개인들이 먼저 스스로 진정하고 일을 진정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도라면 먼저 이와 같은 불교관에 입각하여, 당사자인 국가와 대책회의 간에 해결의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조언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점에서 불교도가 종교편향 등을 이유로 국기를 흔드는 분규와 대립의 와중에 뛰어 든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정교분리 원칙과 종교의 자유보장의 한계입니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촛불집회는 여러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출발에서부터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했습니다. 사제단이 촛불미사에 나서자 승려들이 이를 뒤따랐습니다. 출가 승려가 수지하는 계율 제정의 이유와 계목 제정의 배경 및 그 운용 절차 등을 통해 볼 때, 출가 승려의 정치적인 문제에 개입이나 참여하는 것은 극도로 제한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헌법에 정교분리 원칙이 명시되어 있고, 종교의 자유는 국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에서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불교 법률과 국가 법률의 질서를 준수해야 할 출가 승려들이 정치 문제화하고 폭력 사태를 유발하고 있는 거리의 촛불시위에 나선 것은 내세운 명분과 관계없이 화합(samagga=共和)과 평화(santi=寂靜)를 특질로 하는 승가의 출가인 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종교 전쟁과 종교 재판의 역사를 갖고 있는 기독교계 일각의 촛불정치는 이해가 가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불교도가 촛불정치와 분열된 국론의 한 쪽을 따라 나선 것은 우선 정교분리 원칙과 불교의 화합 정신에도 위배됩니다. 나아가 불교도가 촛불시위가 폭력을 유발하는 등 국법질서에 반하는 행사로 변질하고 있는 시점에 촛불시위에 동참하고 나선 것은 종교 자유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생각입니다.

셋째, 불교도에게 있어 법과 정의의 문제입니다. 특히 정의구현 사제단의 촛불미사로 점화된 종교계의 촛불시위를 고려할 때, 불교 자체의 정의관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법은 언제나 정의와 함께 언급되지만, 양자 간에는 논란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법은 역사성을 지닌 정의의 유일한 표현 형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승려에게는 지켜야 할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있고, 출세간법인 담마(dhamma)의 경우, 그 의미 가운데 하나인 덕(德)이 곧 정의(正義)와 선(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불교도가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는 먼저 석존의 법(dhamma)과 계율(śīla, vinaya), 즉 불타의 가르침에 의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교 내지 불교교단의 성쇠와 관련한 지난 불교사의 교훈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불교도가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8, 90년대 한국의 민주화 정국과 불교종단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살펴보는 것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8, 90년대 한국 민주화의 정국과 90년대 종단사태의 주역들이 조계종과 한국 불교계에 미친 악영향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는 불교도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실 줄 압니다. 특히 어느 외국의 스님은 불교가 망해가는 모습을 보려면 한국 승려들의 투쟁을 보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외국의 한 유명 방송사 앵커(BBC)는 뉴스 시간에 조계종 승려들의 쟁사를 전하며 “그들은 불교교리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고 돈 때문에 싸우고 있습니다.”라고 해설하더라는 것입니다.

넷째,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가 투쟁과 전술의 도구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83년 9월 비상종단 출현의 배경이 된 전국청년불교도연합대회(83. 7. 17)는 ‘인지도자인지기(因地倒者 因地起=땅으로 인해 넘어진 자는 땅을 짚고 일어나라)’를 기치로 내걸었습니다. 8, 90년대 민주화 세대는 민주, 민족, 자주, 민중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불교적 개념의 정의가 없었기에 퍽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4일 불교도 촛불시위는 ‘국민의 뜻이 부처의 뜻입니다’란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거리 행진을 하였습니다. 또 다른 플래카드에는 한발 더 나아가 “국민이 부처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다른 종교인들은 불교도들의 성직자(비구, 비구니) 동원능력은 물론이거니와, 이 구호와 발상을 더 부러워했을지 모릅니다.『화엄경』에 설시된 “심불급중생 삼무차별”(心佛及衆生 三無差別)’이 말하듯, 불교는 마음(의식)에 따라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된다는 점에서 마음 그 자체는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아, 이 셋이 차별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생이 그대로 부처이고, 중생의 뜻이 그대로 부처님의 뜻이라고는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국민과 부처가 같고, 그 뜻이 다르지 않을 것 같으면 불교와 불교신앙은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고 맙니다. 불교도의 촛불행사를 주도한 승려 여러분! 여러분은 이날 촛불행사에 불법승 삼보를 총 동원했습니다. 불법승 삼보는 불교도의 입신(入信) 최초의 요건이자, 공양․경배․존숭의 대상이며 귀의처(歸依處)이지 결코 투쟁과 전술의 도구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도 촛불시위를 주도한 승려 여러분! 여러분들은 불교적 가치와 질서를 지키려는 열의와 의무감보다는 참여와 투쟁을 위한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다섯째, 촛불시위에 동참한 어린 승려들이 ‘촛불시국의 자초지종’을 알고 참석했느냐는 것입니다. 불교도의 촛불시위를 주도한 승려 여러분! 지난 7월 5일 촛불행사 때 신부, 정치인 등과 함께 느긋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며, 본인은 지난 7월 4일 가사와 장삼을 수한 어린 사미․사미니들이 동원돼서 길거리에서 절하는 모습이 떠올라 참으로 착잡한 심경이었습니다. 이미 정치 문제화한 촛불집회(시국법회)에 참석한 어린 사미․사미니들과 비구니 스님들이 “일의 근본”을 알고 자발적으로 참석했을까요. 만일 그 승려들이 일의 근본을 모르고 여러분의 구호와 조직적인 동원에 의해 일지반해(一知半解)로 참석했다면, 여러분은 분명 대중 집회에 관한 율장의 승가법을 크게 위배한 것입니다. 출가인의 대중 집회와 의사 결정에 관한 율장의 승가법 가운데는 다멱비니(多覓毘尼) 즉, 승가 다수결법이 있습니다. 승가 다수결법에는 ‘여법화합(如法和合)’을 비롯해 10원칙이 있고, 이 10원칙 가운데 하나가 참석 대중이 ‘일의 근본’을 알고 의사를 결정해야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지난날 승려대회 등 많은 불교도들의 대중 집회는 정서와 시체 말로 떼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급속히 민주화되면서 모든 결정이 다수와 큰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어 왔습니다. 이는 법치를 수반하지 않은 한국 민주화의 커다란 병폐이자 나라와 민족의 장래와 직결된 중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혼란기 일수록 우리 불교도는 불교적 가치와 질서를 굳건히 지켜야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입니다.

여섯째, 칠불쇠퇴법(七不衰退法=治國의 七原則)의 내용을 차제에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것을 제안합니다. 이는 석존께서 왕사성 영축산에 계실 때 부족국가인 밧지족이 실천하고 있던 일곱 가지 법을 칭찬하시며, 승가 역시 이 법들을 실천함으로써 영원히 번영할 것이라 가르치신 것입니다. 즉, 승가가 종종 회의를 열고, 회의에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한, 화합해서 모이고, 화합해서 행동하며, 화합해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한,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을 마음대로 정하지 않고 이미 제정된 구법(舊法, 출가인의 계율)을 지키고 있는 한, 경험이 풍부하고 법랍이 높은 장로들이나 승가를 이끌어가는 자를 공경하고 대접하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출가 승려들이 미망(迷妄)의 생존을 일으키는 갈애(渴愛, taṇhā)가 일어나도 이에 지배되지 않는 한, 출가 승려들이 아란야(araņya, 寂靜處)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한, 출가 승려들이 각자 “아직 오지 않은 선한 도반들이 오기를, 또 이미 온 선한 도반들을 쾌적하게 보내기를”이라고 마음을 집중하는 한 승가는 영원히 번영할 것이며 결코 쇠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칠불쇠퇴법에 근거하여, 오늘의 촛불시국에서 우리 불교도는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먼저 불교도라면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불교계의 일은 물론 국사에 관해서도 화합해서 모이고, 화합해서 행동하며, 화합해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화합이야말로 불교도에게 있어 최상의 가치규범이자 질서규범입니다. 불교의 화합의 정의와 그 기본 원리를 중시했다면, 촛불시국은 물론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은 어느 정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미 제정된 국법과 종헌 상에 명시된 종단의 근본규범(계율)을 지키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국보법의 폐지를 위해 108배를 하는 그들이고 보면 어떤 명분으로든 국법질서를 뛰어넘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불교도에게는 지켜야 할 계율이 있고, 어떤 민주제도보다도 선진화한 불교법률의 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만일 불교도의 촛불시위를 주도한 승려들이 불제자이자 한국 국민이라는 자각이 있었다면, 폭력을 유발하는 거리시위에 불교도들을 동참시키는 일은 많은 고뇌와 함께 주저케 했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국가와 종단의 고로(古老=元老)를 존숭하며, 특히 승려들의 경우 미망(迷妄)의 생존(生存)을 일으키는 갈애(渴愛)가 일어나더라도 이에 지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촛불시위를 주도한 청화(조계종 교육원장) ․ 법안(승가회 : 대표) 등 그 자신들은 물론 그들이 출범시킨 현 종단은 그 반대쪽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승려들이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르기를 바라며, 침착함을 유지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승려들이 적정처(寂靜處)에서 정진하기를 좋아하고, 각자 자각(自覺)해서 다른 선한 도반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안정된 마음으로 머무르고자 싸띠(sati, 念)를 학립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승려들은 물론이거니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대부분의 승려들은 아마도 그 반대쪽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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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와 정치권에 보내는 공개서한 (제2신)

-국가와 불교의 장래를 위하여-
덕산 원두 (불교교단사 연구소) nabucomaster(a)gmail.com등록 2008.10.18

<불교도 촛불시위 및 汎불교도대회와 관련>

이 글은 대불총 부산 지회 결성을 기념해 ‘한국불교와 나라의 장래’란 대주제로 개최된 학술세미나의 제3 주제 ‘7․4 불교도 시국법회를 주도한 승려들의 성향과 한국불교의 내일’이란 주제의 맺음말을 본론에 따라 수정 보완하여 제구성한 것이다. 지난 번「불교도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제1신)은 불교도 촛불시위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석존께서 불교와 국가의 장래를 위해 설시하신 칠불쇠퇴법(七不衰退法)을 소개했었다. 이번 제2신은 불교도 촛불시위를 계기로 문민정부 이래 정치권력과 불교계 상호 간에 미친 악영향을 중심으로 정부와 불교종단 간에 새로운 관계 설정이 요구된다는 생각에서 몇 마디 하니 관련자들의 반론과 많은 지적이 있기 바란다.

1. 지도자가 부재한 불교계의 현실과 한국불교의 내일

지도자도 없는 불교계의 현실을 비롯해 본인이 그간 지켜 본 불교계와 문민정부이래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정부의 불교계에 관한 문제처리와 관련해 본인 의 관견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현재 한국 불교계는 존경 받는 지도자도 찾기 어렵고, 불교도가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학승도 없다. 여기에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타락과 궤도이탈 그리고 원로 중진 승려들까지 90년대 조계종 사태/불법파괴에 동참한 결과일 것이다. 지난번 불교닷컴에 소개된 시사저널의 여론조사 통계를 보니 현재 불교계에 영향력이 있는 인사가 없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90년대 불교법률과 종단법질서의 파괴를 주도하거나 동참 내지 동조한 자들이란 점에서 그 영향력도 미약하고, 신뢰와 도덕성을 잃은 지가 이미 오래이다. 94년 조계종사태(이하 종단사태) 때, 종단사태를 주도하는 측에 동조하는 글을 쓰고, 얼마 후 절필을 선언한 박 모 스님은 물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우파 보수 측과 충돌한 동국대 한상범 교수 등은 얼마동안 침묵할지도 모른다. 동국학원 재단은 신정아와 변양균 사건 등 비리에 연루되고, 학교 측은 로스쿨도 배정 받지 못한 상황에 누가 무슨 말을 감히 할 수 있겠는가.
그런가하면 불교학계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들은 음양으로 강정구와 송두율 편에 있었다. 필자가 평화를 주제로 하는 어느 학술행사에 참석했다가 동국대 불자 교수를 대표하는 교수 한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6.25를 ‘통일내전’이라고 주장하는 강정구 교수에 대해 물었더니 ‘훌륭한 학자’라고 말해 본인이 재차 불교에서 ‘전쟁’을 정당화할 근거가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 교수가 곧 자리를 옮겨버려 본인 자신이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한 불교학계의 어느 원로 교수에게 강정구 교수 사건을 물었더니 간단히 동국대가 유명해진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동국대학교와 불교학계의 현실이다. 불자교수와 불교학자라면 적어도 불교관에 입각해 우리 사회의 좌우 갈등과 함께 남북문제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불교계가 이럴진대 이명박 정부인들 불교계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 줄 수 있겠는가. 최근 불교계와 이명박 정부와의 갈등을 보고 있노라면 나라의 장래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둘째,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7․4 불교도의 촛불시위를 전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94년 종단사태 때 문민정부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었다. 94년 종단사태 당시 문민정부는 치안질서를 유지하는 한편 형법을 발동해 상무대 비리의혹 등 사태의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죄상의 경중에 따라 처벌을 했어야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문민정부와 정치권은 불법시위 대중으로 하여금 조계종을 점령케 하고, 종국에 IMF로 국가마저 위기에 처하게 했다. 지난번 쇠고기 파동 때 반정부 세력의 ‘이명박 태통령 OUT’에 대한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대처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런 때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불길하기만 했다.
본인은 50년대 출가 한 이래 수행기간과 10여년 외국 생활을 제외하고는 제도권에있으면서 국가와 조계종과의 관계를 지켜 보와 왔다. 특히‣1992년 대선 때 민자당(한나라당 전신)의 불교회관 건립과 사찰 경내지 토지 면세 등 불교계 대선공약, ‣1997년 대선 때 한나라당과 이회창 대선 후보의 불교계에 대한 대비와 승가회(효림, 법안, 일문)의 파계승탈 문제 제기, ‣2002년 대선 때 승가회 인사가 동행한 김대업 사건의 대응 등을 보며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계에 대한 동향은 물론 승려들의 정서와 성향에 대한 이해가 전무해 보였기 때문이다. 정치 등 세간사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출세간의 세계를 알 리가 없지만 대비만은 했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선과 총선 때만 되면 조계사 법당 법요식에 후보들과 당대표들이 줄줄이 서서 합장한 모습이 일간지에 보도되곤 한다. 다른 종교계 행사에서 불교계 행사 때와 같은 대선 후보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왜 불교계 행사에만 그 같은 모습을 보일까. 불교계는 물론 종교가 다른 정치인들도 한번쯤 양심에 물어보아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지난 대선 때 불교뉴라이트의 출범과 쇠고기 파동 때 일부 회원들의 탈퇴사태는 불교계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도 재단법인 대각회 총본산 대각사와 대각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결성을 주도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각사는 3․1 독립운동에 불교계를 대표하고 출가승단인 조계종을 재건케 한 백용성 노사의 근본도량이다. 그리고 백용성 노사의 대각사상을 선양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 재단법인 대각회가 아닌가. 94년 조계종이 불법 승려대회에 의해 전복되고 제도개혁을 통해 출가승단인 조계종이 재가승단(대처승단)보다도 타락한 종단으로 전락할 때, 대각회를 대표하는 인사들은 동참하거나 관망했지 않는가. 다시 말해 불교와 종단의 근본규범이 파괴되고 조계종의 정통성과 정체성에 반하는 제도개혁이 단행되어도 말이 없던 그들이 무엇을 위해 지난 대선에서 불교뉴라이트를 결성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때 왜 탈퇴사태가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사상과 신념이 없는 불교단체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아닌가 한다.

셋째, 얼마 전 청와대 사회수석 밑에 동국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조계종에 근무한 적이 있는 인사를 채용했다고 한다. 조계종을 위시한 불교계의 제반 문제는 한 두 사람의 채용으로 해결될 일들이 아니다. 근․현대 한국불교교단의 역사와 불교법률에 대해 올바른 식견을 가진 자, 불교계의 생리와 승려들의 성향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나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불자이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와 종교간, 또는 종교와 종교 간의 문제해결을 위해 한시적으로나마 별도의 자문기구나 위원회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나아가 종교관련 자문기구나 위원회의 구성은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한 종교 학자와 종교교단문제연구기관의 전문가 그리고 관계부처의 전문인을 포함한 책임자로 구성하되, 사안 따라 대립자 측을 대표하는 자를 포함시켜야한다. 또한 문제해결의 원칙이 분명해야한다. 가령 불교종단의 문제라면 어디까지나 국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에서 불교종단의 근본이념과 기본원리에 따라 재단해야한다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다음에 언급하지만 특히 문민정부 이래 불교계 사태에 대한 행정부의 결정과 재판부의 판단이 불교와 국가사회를 위한 국가기관의 재단이었는가를 의심케 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94년 종단사태에 대한 문민정부와 사법부의 판단이 그렇다. 승가회 등 친북좌경세력에 의해 주도된 94년 종단사태에 대한 행정부와 사법부의 그릇된 판단이 오늘날과 같은 정부와 불교계의 충돌을 자초한 것이다. 따라서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에도 종교계의 분쟁해결을 위한 전담 재판부를 별도로 설치해야 할 줄 안다. 그래야 94년 종단사태의 분기점인 4월 10일 승려대회를 부처님 재세시부터 전래 해오는 승단 고유의 의견 수렴 절차라는 판단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오판은 차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제도권의 불교가 길을 잃고 승려들의 타락이 극에 달해가도 재가불자 이외에 승려들 가운데 누구하나 지적하는 이가 없다. 작금의 형식적인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2. 제도권의 불교계와 이명박 정부 및 정치권을 위한 고언

조계종을 비롯한 제도권의 불교와 민주당을 비롯한 소위 민주화 세력을 위해 몇 마디 해두고자 한다. 첫째, 불교도 촛불집회와 汎불교도대회를 통해 드러난 제도권의 불교계 현실이다. 불교도 촛불집회에 이어 개최된 범불교도대회 때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3개 종단, 조계종․태고종․천태종의 총무원장이 참석하였다. 조계종이야 94년 종단사태/폐불사태(廢佛事態) 이래 당시 주역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불교의 정통종단임을 주장하는 태고종과 신흥교세를 인정받는 천태종까지 불교법률을 파괴하고, 국법질서에 도전하는 승려들과 언론에 놀아나서야 되겠는가. 3개 종단의 대표가 기우뚱 거리며 길거리를 걷는 모습은 물론 그들의 시선은 집중되지 않고 곁눈질을 하거나 두리번거리고 있었으며, 머리 위에는 밀집 번거지가 덮여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불제자의 율의(품위)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지난날에는 원로와 학승이 무어라고 하면 일단 멈추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승단의 전통이자 절집 풍토였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불교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는 90년대 3차례 조계종의 불법파괴(94, 98, 99년 조계종사태)를 바로 보지 못하고 음양으로 동참하거나 묵인한 결과일 것이다.
현재 제도권의 불교는 지도자들이 구족해야할 덕목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완전히 망각한 것 같다. 본인은 제1신「불교도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석존께서 설시한 불교승단과 국가민족의 흥망성쇠에 관한 칠불쇠퇴법(七不衰退法)을 소개했다. 제도권의 불교계 지도자들은 율장에서 남의 잘못(죄상)을 물을 자격을 ① 때를 바로 알아 때 아닌 적에 하지 않으며, ② 진실로 하고 진실치 않음으로써 하지 않으며, ③ 이익이 되게 하고 손감(損減)으로써 하지 않으며, ④ 부드러움으로 하고 거칠고 사나움으로 하지 않으며, ⑤ 인자한 마음으로 하여 진심(嗔心)으로 하지 않는 등 덕목을 가춘 자여야 한다는 율장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또한 경전은 진실하고 헛되지 않으며 이익이 되더라도 ‘때’에 이르렀는지 여부를 잘 판단하도록 거듭 강조하고 있다. 자신들의 MBC PD 등 일부 언론과 진보연대 등에 놀아난 촛불시위에 동참한 잘못은 돌아보지 않고, ‘헌법파괴’ 운운하며 시위하고, 나라의 살림이 몹시 어렵고 국정이 어지러울 때, 국법을 위반한 수배자의 신분을 옹호하며 불교도 촛불집회와 그 연장선상에서 개최되는 행사를 통해 불교계가 무엇을 얻어 내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둘째, 제1 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다. 민주당은 94년 종단사태 야기와 조계종단의 전복이 자신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따라서 불교법률과 국법질서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촛불시위와 범불교도대회와 같은 불교도답지 않은 승려들의 집회에 관심을 접기 바란다. 나아가 94년 종단사태 주역들의 출가승단인 조계종의 정체성 훼손과 궐석심판으로 원로 중진 승려들을 숙청한 사실을 바로 잡는 일에 나서야할 줄 안다. 현재 불교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가장 반불교적 비승가적인 방법으로 조계종을 장악한 승려들의 비민주적 반인권적 만행을 바로 보기 바란다. 그들은 송서암 종정(94년)과 윤월하 종정(98년)께서 율장의 승가법과 조계종의 종헌․종법에 입각해 발표한 교시를 거역했는가하면 종헌 규정에 반해 궐석심판으로 원로 중진 승려들을 치탈(멸빈)하여 종단에서 영구 추방한 자들이다. 오늘날은 반인륜적인 범죄도 궐석으로 재판하지 않는 문명의 세기가 아닌가. 이들이 민주당을 비롯한 소위 민주화 세력들과 권력자의 독단과 만용에 의해 불법(不法)으로 조계종을 장악한 승려들이라는 것을 일러둔다. 그들이 내세운 ‘국민주권 수호와 권력의 참회’, ‘헌법파괴․종교차별’은 한낱 투쟁을 위한 구호와 일종의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94년 국법질서와 종단법질서를 파괴해가며 조계종을 장악한 그들이 갑자기 종교편향을 구실로 불교종단의 옹호자이자, ‘국민주권’과 ‘헌법파괴’를 운운하는 국민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로 둔갑한 것에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또한 94년 종단전복을 주도한 승가회와 선우도량의 핵심멤버들의 지역 연고와 민주당의 지역기반이 같은 호남이라는 점이다. 민주당은 지역기반과 성향이 같은 승려들과 함께 출가승단인 조계종을 재가승단(대처승단)보다 타락한 종단으로 전락케 하고, 종국에 한반도에서 올바른 불교를 말살케 한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기를 바란다. 특히 이번 ‣미국산 쇠고기 파동 때, 민주당이 막대한 손실(3조 7000억원 상당)을 초래한 촛불시위에 동참했는가하면 국정조사에서 왜곡보도로 국민을 선동한 MBC PD 수첩 증인채택을 반대, ‣조계사에서 농성중인 지명 수배자 방문과 국회등원의 양해를 구하는 모습, ‣汎불교도대회 지지 표명 등을 보며, ‣94년 상무대 비리의혹을 폭로하여 조계종을 전복케 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민주당이 동 사건의 국정조사에 소극적이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한 마디로 진실의 규명보다는 무책임한 선동정치를 일삼는 정당이자, ‘도로 민주당’이 말해주듯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정치세력이란 생각이 든다. 지난 정권까지 10년 여당이었고, 현재 제1 야당인 민주당이 일부 언론과 재야단체의 광우병 선동에 놀아난 종교인의 촛불집회를 따라 나서서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불교승단 자체의 기본질서도 모르는 승려사회가 사고를 내주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자기의 길을 잃은 자의 뒤를 따르는 것은 방황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셋째, 여당인 한나라당과 청와대이다. 이명박 정부와 불교계와의 충돌은 예견된 일이었고 금후도 다르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앞서 언급했지만 94년 종단사태 때, 문민정부와 민자당과 같이 대처하고 처리하면 한국에서 올바른 불교를 멸망케 하고, 종국에 나라까지 망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몇 마디 한다. 먼저 대운하 사업 추진과 관련해 태동하던 불교계의 여러 정황이다. 즉, 월주․수경과 같은 승려를 필두로 환경단체를 포함한 인사들의 대운하 반대 도보 순례에서 분명히 드러났었다. 그들은 대운하와 같은 국토개발에 동의하기 어려운 불교계의 입장과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배경으로 자신을 갖고 출발했다. 본인이 대불총 부산지회 결성기념 학술 세미나의 제3 주제 <7․4 불교도 시국법회를 주도한 승려들의 성향과 한국불교의 내일>에서 소상히 밝혔다. 그들은 94년 조계종 전복사태를 주도하였으며, 10년 좌파권권 탄생에 크게 기여하고, 또 행세를 해 온 자들이다. 뿐만 아니라 원로회의에서 종정 불신임이 없었는데도 원로회의 결의라며 승려대중을 기만해가며 종정을 불신임하여 퇴임케 하고, 불변의 종헌규정을 위반해가며 궐석심판으로 원로 중진승려들을 치탈(멸빈)하여 종단에서 영구 추방했다. 불제자이자 조계종의 승려로서 석존의 법․율과 조계종의 종헌에 반한 종단전복과 승권박탈을 자행하고도 아무런 가책이 없는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대통령 OUT 아니라 무슨 짓인들 못 하겠는가.
베이찡 올림픽 때 이 대통령의 태극기 거꾸로 든 사건과 청와대에서 흘러나오는 불교계 인사들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진이 너무 안이하고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본인이 보건데 향후 대한민국은 종교 간의 갈등이 국가 차원의 큰 재앙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대처, 단순히 불교계의 원성, 불교차별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재차 강조하거니와 성급히 불교계와 협상을 한다든가 관련법의 제정을 서두르지 말고, 국가적 차원에서 신중히 검토한 연후에 대안이 제시되어야 할 줄 안다.
끝으로 고려 말 국운의 쇠퇴와 불교계의 타락을 바로 잡아 보고자 진력했던 태고 보우국사께서 “나라가 다스려 질 때는 진승(眞僧)이 뜻을 펴지만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사승(邪僧)이 때를 만난다.”고 한 지적이 상기되는 불교계의 현실이다. 또한 한국에서 중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에 94년 종단사태를 비롯해 70년대와 80년대 종단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히 이지관 총무원장의 이차돈 순교와 위법망구(爲法忘軀) 언급 그리고 8월 4일 개최된 범불교도비상대책회의에서 7․4 불교도 촛불집회의 집행위원장이던 박광서 교수가 월남을 패망케 한 원인 가운데 하나인 월남 틱 쾅둑 스님의 고딘 디 엠 정부에 항거한 분신 (焚身)/소신공양(燒身供養)을 ‘사회참여적인 불교’라고 강조하고, 대회가 계속되어야한다고 한 주장을 간과해서는 안 될 줄 안다. 앞으로 불교도의 대정부 관련 집회와 정부의 대응이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에 따라 국가적 대재앙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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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원장 후보 원행 스님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조계종 총무원장 후보 원행 스님 문중 비판 28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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