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中阿含經) 1~10권

중아함경(中阿含經) 제1권

이 『중아함경』은 동진(東晋) 효무제(孝武帝)와 안제(安帝) 시대인 융안(隆安) 9년 11월부터 2년 6개월에 걸쳐 동정사(東亭寺)에서 완료한 것이다. 계빈(罽賓) 삼장 구담(瞿曇) 승가제바(僧伽提婆)가 번역하고 도조(道祖)가 필수(筆受)하였다.

1. 칠법품(七法品) 제1①
열 개의 소경이 들어 있다. 초1일송(初一日誦)은 5품 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64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선법경(善法經)ㆍ주도수경(晝度樹經)과
성유경(城喩經)ㆍ수유경(水喩經)ㆍ목적유경(木積喩經)과
선인왕경(善人往經)ㆍ세간복경(世間福經)
칠일경(七日經)ㆍ칠거경(七車經)ㆍ누진경(漏盡經)이다.

1) 선법경(善法經)1) 제1초1일송(日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일곱 가지 법(法)을 성취한다면, 곧 현성(賢聖)의 도(道)에 환희를 얻어서 바로 누진(漏盡)의 경지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비구가 법을 알고[知法] 뜻을 알며[知義] 때를 알고[知時] 절제할 줄 알며[知節] 자기를 알고[知己] 무리를 알며[知衆]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知人勝]이다.

어떤 것을 비구가 법을 안다고 하는가? 정경(正經)ㆍ가영(歌詠)ㆍ기설(記說)ㆍ게타(偈咃)ㆍ인연(因緣)ㆍ찬록(撰錄)ㆍ본기(本起)ㆍ차설(此說)ㆍ생처(生處)ㆍ광해(廣解)ㆍ미증유법(未曾有法) 및 설의(說義)를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법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법을 모른다면 그는 정경ㆍ가영ㆍ기설ㆍ게타ㆍ인연ㆍ찬록ㆍ본기ㆍ차설ㆍ생처ㆍ광해ㆍ미증유법 및 설의를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법을 잘 안다면, 그는 정경ㆍ가영ㆍ기설ㆍ게타ㆍ인연ㆍ찬록ㆍ본기ㆍ차설ㆍ생처ㆍ광해ㆍ미증유법 및 설의를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법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뜻을 아는 것이라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이러이러한 말의 뜻에 대하여, 이것은 저런 뜻이고 이것은 이런 뜻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뜻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뜻을 모른다면, 그는 이러이러한 말의 뜻에 대하여, 이것은 저런 뜻이고 이것은 이런 뜻임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뜻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뜻을 잘 안다면 이른바 그는 이러이러한 말의 뜻에 대하여 이것은 저런 뜻이고 이것은 이런 뜻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뜻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때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지금은 하상(下相)을 닦아야 할 때이고 지금은 고상(高相)을 닦아야 할 때이며 지금은 사상(捨相)을 닦아야 할 때임을 아는 것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때를 알지 못한다면 그는 지금은 하상을 닦아야 하고 지금은 고상을 닦아야 하며 지금은 사상을 닦아야 할 때임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때를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때를 잘 안다면 그는 지금은 하상을 닦아야 하고 지금은 고상을 닦아야 하며 지금은 사상을 닦아야 할 때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때를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절제할 줄 알아 마시거나 먹거나 떠나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수행하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절제할 줄 모른다면 그는 마시거나 먹거나 떠나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수행할 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절제할 줄 안다면 이른바 그는 마시거나 먹거나 떠나거나 머물며 혹은 앉거나 눕거나 말하거나 침묵하며 혹은 대소변을 보며 잠을 덜 자고 바른 지혜를 닦을 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절제할 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자기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스스로 나에게는 저러한 믿음ㆍ계율ㆍ지식과ㆍ보시ㆍ지혜ㆍ변재(辯才)ㆍ아함(阿含), 그리고 소득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자기를 모른다면 이른바 그는 스스로 나에게는 저러한 믿음ㆍ계율ㆍ지식ㆍ보시ㆍ지혜ㆍ변재ㆍ아함, 그리고 소득이 있음을 모르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자기를 잘 안다면, 이른바 그는 스스로 나에게는 저러한 믿음ㆍ계율ㆍ지식ㆍ보시ㆍ지혜ㆍ변재ㆍ아함, 그리고 소득이 있음을 아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자기를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무리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이것은 찰리(刹利)의 무리이고 이것은 범지(梵志)의 무리이며, 이것은 거사(居士)의 무리이고 이것은 사문(沙門)의 무리이다. 나는 저 무리들이 이와 같이 다니고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앉고 이와 같이 말하며 이와 같이 침묵하는지를 안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무리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리들을 모른다면, 이른바 그는 ‘이것은 찰리의 무리이고 이것은 범지의 무리이며 이것은 거사의 무리이고 이것은 사문의 무리이다. 나는 저 무리들이 이와 같이 다니고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앉고 이와 같이 말하며 이와 같이 침묵하는지를 모른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을 비구가 무리를 모르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리들을 잘 안다면 ‘이것은 찰리의 무리이고 이것은 범지의 무리이며, 이것은 거사의 무리이고 이것은 사문의 무리이다. 나는 저 무리들이 이와 같이 다니고 이와 같이 머무르며 이와 같이 앉고 이와 같이 말하며 이와 같이 침묵하는지를 안다’고 할 것이다. 이것을 비구가 대중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가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임을 아는 것이다. 만일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이 있고 자주 가서 비구를 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자주 가서 비구를 보지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자주 가서 비구를 보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다. 비구에게 예경(禮敬)하는 사람이 있고 비구에게 예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만일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비구에게 예경하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비구에게 예경하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경(經)을 묻는 사람이 있고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경을 묻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경을 묻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경을 묻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이 있고 일심으로 경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일심으로 경을 듣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일심으로 경을 듣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이 있고 듣고도 법을 지니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듣고도 법을 지니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듣고서 법을 지니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법을 듣고서 뜻을 관하는 사람이 있고 법을 듣고도 뜻을 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법을 듣고서 뜻을 관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법을 듣고도 뜻을 관하지 않는 사람이면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법을 듣고 뜻을 관하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고, 법도 모르고 뜻도 모르며 법에 향하지도 않고 법에 머물지도 않으며 법을 따르지도 않고 법대로 실천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 만일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면 훌륭하다 하고, 법도 모르고 뜻도 모르며 법에 향하지도 않고 법에 머물지도 않으며 법을 따르지도 않고 법대로 실천하지도 않는 사람은 그보다 못하다고 한다.

이른바 법을 알고 뜻을 알며 법에 향하고 법에 머물며 법을 따르고 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자기 자신을 요익(饒益)하게 하고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고,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지 않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지 않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도 않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지도 않으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만일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고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히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고 큰 사람이 되며 위[上]가 되고 최고가 되며 훌륭한 사람이 되고 존경받는 이가 되며 미묘한 사람이 된다.

비유하면 소[牛]로 인해 젖[乳]이 있고 젖으로 인해 낙(酪)이 있으며 낙으로 인해 생소(生酥)가 있고 생소로 인해 숙소(熟酥)가 있으며 숙소로 인해 소정(酥精)이 있게 되는데, 소정은 그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 되며 큰 것이 되고 위가 되며 최고가 되고 훌륭한 것이 되며 높은 것이 되고 뛰어난 것이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사람이 자기 자신도 요익하게 하고 또 남도 요익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세간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가엾게 여기며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를 구하거나 요익하게 되기를 바라며 안온하고 쾌락해지기를 바란다면,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고 위에서 분별한 것과 같으며 위에서 시설(施設)한 바와 같다. 이것이 곧 첫째가 되며 큰 것이 되고 위가 되며 최고가 되고 훌륭한 것이 되며 존경 받는 사람이 되고 뛰어난 것이 된다. 이것을 비구가 사람의 잘나고 못남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선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423자이다.

2) 주도수경(晝度樹經)2) 제2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삼십삼천(三十三天)에 있는 주도수(晝度樹)3) 잎이 시들어 노래지면, 삼십삼천 대중들은 머지않아 그 나뭇잎은 반드시 떨어지리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다시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뭇잎은 머지않아 반드시 다시 피어날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또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피어나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머지않아 반드시 잎이 피어 그물처럼 덮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잎이 피어 그물처럼 덮으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머지않아 새부리 같은 꽃봉오리를 틔울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다시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새부리 같은 꽃봉오리를 틔우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머지않아 반드시 발우처럼 생긴 꽃을 피울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또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이미 발우처럼 꽃을 피우면, 이때에도 삼십삼천 대중들은 그 나무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꽃이 활짝 필 것이라고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만일 주도수의 꽃이 활짝 피면 100유연(由延:由旬) 안에 그 광명을 비추고 그 빛깔이 비치며 그 향기가 두루 풍긴다. 이때에 삼십삼천 대중들은 여름 넉 달 동안 하늘의 5욕(欲)의 공덕(功德)을 구족하였으므로 스스로 즐기고 기뻐한다. 이것을 삼십삼천 대중들이 주도수 밑에 모여 즐기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이치와 같이 성인[聖]의 제자들에게 있어서도 그러하여 그들이 출가하기를 생각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황(葉黃)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시들어 누렇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捨舍] 집 없이 도를 배우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락(葉落)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이 탐욕을 끊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엽환생(葉還生)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 나뭇잎이 다시 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이 각과 관이 이미 그쳐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망(生網)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에 잎이 그물처럼 덮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기쁨의 탐욕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저 성인이 말한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을 갖추어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여조훼(生如鳥喙)라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새부리 같은 꽃봉오리를 내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도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근본은 이미 다 멸한 상태이다. 그리하여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 [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생여발(生如鉢)이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발우와 같은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시 거룩한 제자들은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이루어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며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게 되면 이때 거룩한 제자들을 진부개(盡敷開)라고 부르는데, 마치 삼십삼천에 있는 주도수가 꽃을 활짝 피운 것과 같은 경우이다.
그가 번뇌가 다한 아라하비구(阿羅訶比丘)가 되면 삼십삼천 대중들은 선법정전(善法正殿)에 모여 칭송하고 찬탄한다.
‘저 아무개 높은 제자는 아무개 마을에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게 되었다.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심해탈과 혜해탈을 성취하여 현재 세계에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해 노닌다.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았다.’
이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阿羅訶)의 모임이라고 하니, 마치 삼십삼천 대중들이 주도수 밑에 함께 모인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주도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752자이다.

3) 성유경(城喩經)4) 제3 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왕의 변성(邊城)이 일곱 가지 일[七事]을 구족하면 네 가지 식량[四食]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게 된다. 그런 까닭에 왕성(王城)은 오직 안에서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외적 때문에 부서지지는 않는다.

왕성이 일곱 가지 일을 갖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왕의 변성에 망보는 다락을 만들어 세우고 땅을 굳게 다져 무너지지 않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바깥의 원적(怨敵)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첫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성 밖으로 매우 깊고 넓은 못을 둘러 파고 잘 보수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두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성 주위로 평평하고 넓은 길을 내어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세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네 종류의 군사의 힘, 곧 상군(象軍)ㆍ마군(馬軍)ㆍ차군(車軍)ㆍ보군(步軍)을 모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네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병기, 곧 활과 창을 미리 갖추어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왕성이 다섯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밝은 계략과 지혜와 변재(辯才)가 있고 굳세고 용맹스러우며 기특한 꾀가 있는 대장을 세워 문을 지키게 해서, 착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막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여섯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또 왕의 변성에 높은 담을 아주 튼튼하게 쌓고,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발라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면 이것을 왕성이 일곱 번째 일을 구족한 것이라고 한다.

왕성에서는 네 가지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왕의 변성에서는 물과 풀과 섶나무와 자재를 미리 준비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한다. 이것이 왕성에서는 첫 번째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왕의 변성에서는 많은 벼를 거두고 또 보리를 저축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한다. 이것이 왕성에서는 두 번째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왕의 변성에서는 점두(秥豆)와 콩과 팥을 저축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한다. 이것이 왕성에서는 세 번째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왕의 변성에서는 소유(酥油)ㆍ꿀ㆍ사탕수수ㆍ엿ㆍ생선ㆍ소금ㆍ말린 고기ㆍ육고기를 구족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한다. 이것이 왕성에서는 네 번째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왕성이 일곱 가지 일을 구족하여 네 가지 식량의 풍요로움을 얻기 어렵지 않게 된다면, 다만 안으로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외적 때문에 부서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7선법(善法)을 얻는다면 4증상심(增上心)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 때문에 거룩한 제자들은 마왕이 틈을 노릴 대상이 되지 않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에 물들지도 않고,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게 된다.

거룩한 제자들이 7선법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은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깊이 의지하며, 믿음의 뿌리가 이미 확립되어 끝내 다른 사문(沙門) 범지(梵志) 혹은 천(天)이나 마군[魔]이나 범(梵)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첫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한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이므로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 안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두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한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만드는 것이므로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 안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세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정진(精進)을 실천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고 모든 선법(善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專一)하고 견고하게 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해서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네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널리 배우고 많이 들은 것을 받아 지녀 잊지 않으며 쌓고 모으며 널리 듣는다. 이른바 법이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이치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여 범행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까지 이르고, 마음이 생각하고 관(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친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다섯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항상 기억[念]을 행하되 바른 생각[正念]을 성취하고, 오래 전부터 익혀온 바와 오래 전부터 들은 바를 항상 기억[憶]하여 잊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여섯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지혜를 닦고 행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지혜로 밝게 통달하여 분별하고 밝게 깨달아 그로써 진정 괴로움을 없앤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들이 일곱 번째 선법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거룩한 제자들이 4증상심(增上心)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은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첫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각과 관이 이미 그쳐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一心]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두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기쁨의 탐욕[貪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을 갖추어 제3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세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또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거룩한 제자들은 네 번째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들이 일곱 가지 선법을 얻으면 네 가지 증상심을 체득하기가 어렵지 않다. 따라서 마왕이 틈을 엿보지 못하고 또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따르지 않으며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
왕의 변성에 망보는 다락집을 세우고 땅을 견고하게 쌓아 무너지지 않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깊이 의지하고 믿음의 뿌리가 이미 세워져서 끝내 다른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마군ㆍ범(梵)이나 다른 세간을 따르지 않나니,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믿음이라는 망보는 다락집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 밖에 아주 깊고 넓은 못을 파고 잘 보수해서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막아내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인 줄을 아는데,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아는 해자[池塹]를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착한 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 두루 길을 내되 트이고 편편하고 넓게 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더러운 번뇌로서 그것은 모든 악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 것이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것임을 안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남에게 부끄러워함이란 편편한 길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 네 가지 군사의 힘, 곧 상군ㆍ마군ㆍ차군ㆍ보군을 모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정진하여 악과 불선을 끊고 모든 선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의욕을 내어 전일하고 견고히 하여 모든 선을 위해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정진이라는 군사의 힘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 고 한다.

왕의 변성에 병기, 곧 활ㆍ화살ㆍ창 따위를 미리 갖추어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잘 지닌 채 잊지 않고 지식을 쌓아 모은다. 법이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여 범행을 실현한다. 이와 같은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익히기를 천 번에 이르고 마음이 생각하고 관하는 바대로 밝게 보고 깊게 사무친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로서 많은 지식이라는 군기(軍器)를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 밝은 책략과 지혜로운 변재가 있고 용맹스럽고 굳세며 기특한 꾀가 있는 대장을 세워 문을 지키게 하여 착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허락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막아서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항상 생각을 거듭하여 바른 생각을 성취하고 오래 전부터 익힌 바와 오래 전부터 들은 바를 항상 기억해 잊지 않는다.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기억[念]이라는 문 지키는 대장을 얻어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 높은 담을 아주 견고하게 쌓고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발라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지혜를 닦고 행하여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하고 이와 같은 지혜를 얻어서 거룩한 지혜로 밝게 통달하여 분별하고 분명하게 깨달아 그로써 진정 괴로움을 없애는데, 이것을 거룩한 제자가 지혜라는 담을 쌓아 악과 불선을 없애고 모든 선법을 닦는 것이라고 한다.

왕의 변성에서 물과 풀과 섶나무 같은 재료를 미리 준비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서 많은 벼를 거두고 또 보리를 저축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각과 관이 이미 그치고 안이 고요해지고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서 많은 점두와 콩과 팥을 쌓아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기쁨의 욕망[喜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을 갖추어 제3선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왕의 변성에서 소유와 꿀과 사탕수수와 엿을 저축하고 생선ㆍ소금ㆍ고기 말린 것ㆍ육고기 따위가 다 충족하여 안을 안온하게 하고 밖의 원적을 제어하는 것처럼, 거룩한 제자도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禪)을 체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하여 즐거움에 머물되 다함이 없으며 안온하고 쾌락하여 스스로 열반을 이룬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성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902자이다.

4) 수유경(水喩經)5) 제4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 물과 관련된 사람[水人]에 대해 말할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그때 여러 비구들은 그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사람은 항상 물속에 누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러 있고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또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며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물에서 나와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고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라야 저쪽 언덕에 이르는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를 언덕에 머무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나는 마땅히 다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 물에 비유한 사람에 대해 말할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여러 비구들은 그 분부대로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어떤 사람은 항상 누워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나왔다가는 다시 빠지며,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고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또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다가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또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는데 저쪽 언덕에 이른 뒤라야 그를 언덕에 머무는 범지(梵志)라고 한다. 이 일곱 가지 물에 비유한 사람에 대해 내가 간략히 말한 것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고 위에서 시설한 것과 같다. 너희들은 어떤 뜻을 알았고 어떻게 분별하였으며 어떤 인연이 있는가?”

그때 여러 비구들이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 되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 되시며 법은 세존으로 말미암아 나옵니다. 원컨대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듣고 나면 자세히 그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해 주리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이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항상 누워 있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혹 어떤 사람은 착하지 않은 법에 덮이고 더러움에 물들게 되어 나쁜 법의 과보를 받고 생사의 근본을 짓는데, 이것을 어떤 사람은 항상 누워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진 채 물 속에 누워 있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그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왔다고 말한 것은 믿음의 선법(善法)을 얻고 지계(持戒)ㆍ보시(布施)ㆍ다문(多聞)ㆍ지혜(智慧)의 선법을 닦아 익힌 것이다. 그러나 그가 뒷날에 믿음을 잃고 견고하지 못하며,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까지도 잃고 견고하지 못하게 된 것을 사람이 물에서 나왔다가 다시 빠졌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왔으나 다시 빠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와 같다. 이것이 두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이미 나와 머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나왔다는 것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 것이며,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 것을 어떤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와 머문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이미 나와 머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이와 같다. 이것이 세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본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힌 것으로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 가운데 머물면서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苦習]ㆍ괴로움의 소멸[苦滅]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3결(結)이 곧 모두 끊어진다. 신견결(身見結)ㆍ계취결(戒取結)ㆍ의결(疑結)의 3결이 이미 다하면 수다원(須陁洹)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국 정각(正覺)에 나아가 마지막에는 7유(有)를 받는데,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오가기를 마치면 곧 괴로움의 끝[苦際]을 얻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 살펴본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와 같다. 이것을 네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그러하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넌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이미 물에서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고 뒷날에도 믿음이 견고해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으며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3결이 곧 다 끊어진다. 신견결ㆍ계취결ㆍ의결의 3결이 이미 다 끊어져 없어지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지고 천상과 인간 세계를 한 번 오가게 된다. 한 번 오간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간다고 하는 것인데, 마치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다. 이것을 다섯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그러하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물에서 이미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며,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5하분결(下分結)6)이 다 끊어진다. 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신견(身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의(疑)의 5하분결이 이미 다하면 그는 천상에 나서 곧 반열반(般涅槃)에 들어 물러나지 않는 법[不退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른다고 하는데, 마치 어떤 사람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는 것처럼 내가 저 사람에 대해 말한 것도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이 여섯 번째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그러하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범지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미 물속에서 나와 믿음의 선법을 얻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의 선법을 닦아 익히며, 뒷날에 가서도 믿음이 견고하여 그것을 잃지 않고, 지계ㆍ보시ㆍ다문ㆍ지혜까지도 견고하여 잃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법에 머물면서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으므로 욕루(欲漏)에서 심해탈(心解脫)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심해탈하며, 이렇게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안다. 그리하여 생명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성립되었으며, 해야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고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범지라고 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속에 빠졌다가 나온 뒤에는 머물고 머문 뒤에는 살펴보며, 살펴본 뒤에는 건너가고 건너간 뒤에는 저쪽 언덕에 이르며 저쪽 언덕에 이른 뒤에는 그 언덕에 머무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처럼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도 그와 같다. 이것을 일곱 번째 물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비유로서 세상 이치도 그러하다. 내가 지난번에 말한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가지의 물과 관련된 사람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한 것은 곧 이러한 것들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수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88자이다.

5) 목적유경(木積喩經)7) 제5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살라국(拘薩羅國)을 유행(遊行)하실 때에 인간세계의 큰 비구 대중을 양쪽에 거느리고 걸어가셨다. 그때 세존께서 길을 가시던 중에 갑자기 한곳에 쌓아 둔 큰 나무더미에 불이 붙어 맹렬히 타오르는 것을 보셨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보신 후, 곧 길 옆으로 내려가 다른 나무로 가셔서 니사단(尼師檀)8)을 깔고 가부를 맺고 앉으셨다.

세존께서 앉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저기에 있는 큰 나무더미에 불이 붙어 맹렬히 타오르는 것을 보았는가?”
모든 비구들이 대답했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또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저 큰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그 위에 앉거나 혹은 거기에 눕는 것과, 한창 젊은 나이의 찰리(刹利)족 여자나 범지(梵志)ㆍ거사(居士)ㆍ공사(工師:공인의 우두머리)의 여자로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화만(華鬘)과 영락(瓔珞)으로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그런 여인을 끌어안거나 그들과 같이 앉거나 그들과 같이 눕는 것을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즐거우리라고 생각되느냐?”

“세존이시여, 큰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혹은 거기에 앉고 거기에 눕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한창 젊은 나이의 찰리족 여자나, 범지ㆍ거사ㆍ공사의 여자들이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만과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여 예쁘게 꾸민 그런 여인을 끌어안거나 그들과 같이 앉거나 같이 눕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한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梵行)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나무더미에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을 끌어안거나 혹은 거기에 앉고 거기에 누워야 할 것이다. 저들이 비록 이로 인해 괴로움을 받거나 혹 죽는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극히 나쁜 세계나 지옥에 가서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를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며, 또는 한창 젊은 나이의 찰리족 여자나 범지ㆍ거사ㆍ공사의 여자로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며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만과 영락으로 그 몸을 장엄하게 꾸민 그런 여인을 끌어안거나 같이 앉고 혹은 같이 눕는다면,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불선(不善)과 불의(不義)로써 악법의 과보를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게 되거나 지옥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제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뜻을 다 관찰하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라.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며,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태어나 장수(長壽)하게 될 것이다. 남에게서 의복ㆍ음식ㆍ평상ㆍ요[褥]ㆍ탕약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며 큰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力士)가 단단한 새끼와 털 노끈으로 장딴지를 잔뜩 졸라매어 가죽을 끊고 살가죽을 끊은 뒤에는 살을 끊고 살을 끊은 뒤에는 힘줄을 끊고 힘줄을 끊은 뒤에는 뼈를 끊고 뼈를 끊은 뒤에는 골수에까지 이르러 그치는 것과 혹은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로부터 보시를 받고, 신체와 팔다리의 뼈마디와 수족에 이르기까지 안마를 받는 것을 비교할 때 어느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역사가 단단한 새끼와 털 노끈으로 그 장딴지를 잔뜩 졸라매어 살가죽을 끊고 살가죽을 끊은 뒤에는 살을 끊고 살을 끊은 뒤에는 힘줄을 끊고 힘줄을 끊은 뒤에는 뼈를 끊고 뼈를 끊은 뒤에는 골수에까지 이르러 그친다면, 그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만일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로부터 보시를 받고 또 신체와 팔다리의 뼈마디와 수족에 이르기까지 안마를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한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단단한 새끼와 털 노끈으로써 그 장딴지를 잔뜩 졸라매어, 가죽을 끊고 가죽을 끊은 뒤에는 살을 끊고 살을 끊은 뒤에는 힘줄을 끊고 힘줄을 끊은 뒤에는 뼈를 끊고 뼈를 끊은 뒤에는 골수에까지 이르러 그치게 하라. 저들이 비록 이로 인해 괴로움을 받거나 혹은 죽는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저들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율을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면서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로부터 보시를 받거나 또는 신체와 팔다리의 뼈마디와 수족에 이르기까지 안마를 받는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하여 오랜 세월 동안 불선과 불의로써 악법의 과보를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게 되거나 지옥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뜻을 관찰하고 나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며,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태어나 장수하게 될 것이다. 남에게서 의복ㆍ음식ㆍ평상ㆍ요ㆍ탕약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며 큰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세존께서 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力士)가 잘 드는 예리한 칼로 넓적다리를 끊는 것과 혹은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로부터 보시ㆍ예배ㆍ공경ㆍ영접을 받는 것이 어느 것이 더 즐겁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역사가 잘 드는 예리한 칼로 넓적다리를 끊는다면 그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만일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로부터 보시ㆍ예배ㆍ공경ㆍ영접을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잘 드는 예리한 칼로 넓적다리를 끊게 하라. 비록 그로 인하여 고통을 받거나 혹 죽는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더라도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율을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악하고 불선한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면서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로부터 보시ㆍ예배ㆍ공경ㆍ영접을 받는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불선과 불의로써 악법의 과보를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게 되거나 지옥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제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뜻을 관찰한 다음에는 이렇게 생각하라.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며,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태어나서 장수하게 될 것이다. 남들에게서 의복ㆍ음식ㆍ평상ㆍ요ㆍ탕약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며 큰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달군 구리쇠판으로 그 몸을 두루 감는 것과 또는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이 보시하는 의복을 받는 것이 어느 것이 더 즐겁겠는가?”

“세존이시여,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달군 구리쇠판으로 그 몸을 두루 감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만일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이 보시하는 의복을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梵行)9)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시뻘겋게 달군 구리쇠판으로써 그 몸을 두루 감게 하라. 비록 이로 인해 고통을 받거나 혹은 죽는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율을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면서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로부터 보시하는 의복을 받으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불선(不善)과 불의(不義)를 행한 까닭에 악법의 과보를 받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제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뜻을 다 관찰하고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며,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나서 장수하게 될 것이다. 남에게서 의복ㆍ음식ㆍ평상ㆍ요ㆍ탕약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며 큰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가 뜨거운 쇠집게로 입을 벌리고 시뻘겋게 달군 철환(鐵丸)을 그 입에 넣으면 그 시뻘겋게 달군 쇳덩이가 입술을 태우고 입술을 태운 뒤에는 혀를 태우고 혀를 태운 다음에는 잇몸을 태우고 잇몸을 태운 다음에는 목구멍을 태우고 목구멍을 태운 다음에는 심장을 태우고 심장을 태운 다음에는 창자와 위를 태우고 창자와 위를 태운 뒤에 밑으로 내려가는 것과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이 보시하는 그지없이 맛있는 온갖 요리를 받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겁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역사가 뜨거운 쇠집게로 입을 벌리고 시뻘겋게 달군 철환을 그 입에 넣으면, 그 시뻘겋게 달군 철환이 입술을 태우고 입술을 태운 뒤에는 혀를 태우고 혀를 태운 뒤에는 잇몸을 태우고 잇몸을 태운 뒤에는 목구멍을 태우고 목구멍을 태운 뒤에는 심장을 태우고 심장을 태운 뒤에는 창자와 위를 태우고 창자와 위를 태운 뒤에 밑으로 내려가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만일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로부터 보시하는 그지없이 맛있는 온갖 요리를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뜨거운 쇠집게로 입을 벌리고 곧 시뻘겋게 달군 철환을 그 입에 넣게 하라. 그러면 그 뜨거운 철환은 입술을 태우고 입술을 태운 뒤에는 혀를 태우고 혀를 태운 뒤에는 잇몸을 태우고 잇몸을 태운 뒤에는 목구멍을 태우고 목구멍을 태운 뒤에는 심장을 태우고 심장을 태운 뒤에는 창자와 위를 태우고 창자와 위를 태운 뒤에는 밑으로 내려갈 것이니, 저들이 비록 이로 인하여 고통을 받거나 혹은 죽는다고 하더라도 이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율을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면서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로부터 보시하는 그지없이 맛있는 온갖 요리를 받는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불선과 불의를 행한 까닭에 악법의 과보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제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뜻을 다 관찰한 다음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며,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태어나 장수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의복ㆍ음식ㆍ평상ㆍ요ㆍ탕약을 시주받는 것은 모든 시주들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며 큰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달군 구리쇠 평상에 사람을 핍박하여 강제로 앉히거나 눕히는 것과 혹은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로부터 평상ㆍ요ㆍ와구(臥具)를 보시 받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겁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역사가 시뻘겋게 달군 구리쇠 평상에 사람을 핍박하여 강제로 사람을 앉히거나 눕힌다면 그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에게서 평상ㆍ요ㆍ와구의 보시를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는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시뻘겋게 달군 구리쇠 평상에 사람을 핍박하여 강제로 앉히거나 눕히게 하라. 비록 그로 인하여 고통을 받거나 혹 죽는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율을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악하고 불선한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면서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이 보시하는 평상ㆍ요ㆍ와구를 받는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하여 오랜 세월 동안 불선과 불의를 행한 까닭에 악법의 과보를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제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이치를 관찰한 다음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며,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태어나 장수하게 될 것이다. 남에게서 의복ㆍ음식ㆍ평상ㆍ요ㆍ탕약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며 큰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달군 큰 구리쇠로 만든 가마에 사람을 붙잡아다가 그 속에 거꾸로 넣는 것과 혹은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이 보시한 방사(房舍)에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바르며, 창문을 단단하게 밀봉하고 화롯불의 따뜻함을 받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즐겁겠는가?”

“세존이시여, 어떤 역사가 시뻘겋게 달군 큰 구리쇠로 만든 가마에 사람을 붙잡아다가 그 속에 거꾸로 넣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이 보시한 방사에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바르며 창문을 단단하게 밀봉하고 화롯불의 따뜻함을 받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너희들을 위해 말하는 것은 너희 배우는 사문들로 하여금 사문의 도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너희들이 위없는 범행을 성취하고자 하는 자라면 차라리 역사로 하여금 시뻘겋게 달군 큰 구리쇠로 만든 가마에 사람을 붙잡아다가 거꾸로 넣게 하라. 비록 이로 인하여 고통을 받거나 혹 죽는다 하더라도 이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계율을 범하고 정진하지 않으며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내어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면서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들이 보시한 방사에 진흙을 바르고 흰 흙을 바르며 창문을 단단하게 밀봉하고 화롯불의 따뜻함을 받는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불선과 불의를 행한 까닭에 악법의 과보를 받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지극히 나쁜 세계로 나아가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제 자신의 뜻도 관찰하고 상대방의 뜻도 관찰하되 두 뜻을 다 관찰한 다음에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배우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며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결과가 있고 과보가 있으며 지극한 안락이 있고 온갖 좋은 곳에 태어나 장수하게 하는 것이다. 남에게서 의복ㆍ음식ㆍ평상ㆍ요ㆍ탕약을 보시 받는 것은 모든 시주로 하여금 큰 복을 얻게 하고 큰 과보를 얻게 하며 큰 광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하시자 그때 그곳에 있던 60명의 비구들은 번뇌[漏]가 다하고 의심[結]이 풀렸지만 다른 60명의 비구는 계율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가르치시고 경계하심이 매우 깊고 어려웠으며 도를 배우는 일도 매우 깊고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은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等法品)」의 첫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2 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의 네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3 파리질다(波利質多, pārijāta)나무라고도 하며 향변수(香遍樹)라고 번역한다. 콩과에 소속된 식물로서 인도 히말라야 산 아래 스리랑카ㆍ버마ㆍ말레이시아ㆍ자바 등지에 서식한다. 나무의 줄기는 높고, 껍질은 엷은 회색이며, 작은 가시가 많다. 잎은 우상엽(羽狀葉)이고 꽃은 주머니 모양으로 크고 붉으며 매우 아름답다. 이 나무는 도리천(忉利天) 제석궁(帝釋宮)인 선견성 동북쪽에 있다고 한다.
4 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의 세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5 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의 세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6 하분(下分)이란 욕계(欲界)를 일컫는 말이고, 결(結)이란 번뇌를 말한다. 3계 가운데 가장 밑에 위치한 욕계에서 중생을 얽어매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 즉 탐욕ㆍ진에ㆍ신견ㆍ계금취견ㆍ의결을 말하는데, 이 다섯 가지가 있는 한 그 중생은 욕계를 벗어날 수가 없고 이것을 끊어 없애면 불환과(不還果)를 증득한다고 한다.
7 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25권 제33품인 「오왕품(五王品)」의 열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8 범어 nisīdana의 음역. 좌구(坐具)ㆍ수좌의(隨坐衣)로 한역된다. 부처님께서 수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하신 제도에 따라 만든 비구(比丘)의 여섯 가지 물건 중 하나로서, 비구가 앉거나 누울 때에 땅에 펴서 몸을 보호하며, 또 와구(臥具) 위에 펴서 와구를 보호하는 사각형의 깔개이다.
9 청정한 행위를 말하며, 정행(淨行)으로 한역하기도 함. 범천은 음욕을 여의었으므로 음욕을 여읜 것을 범행이라고 한다.

중아함경 제2권

1. 칠법품(七法品) 제1②
6) 선인왕경(善人往經) 제6초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일곱 선인(善人)이 가서 이르는 곳과 무여열반(無餘涅槃)1)에 대해 설명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위에서 말한 일곱 가지인가? 비구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我]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내 것[我所]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존재에 대한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無上息迹)2)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불붙은 밀 껍질이 조금 타다가 곧 꺼지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 조그마한 만(慢)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下分結)3)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中般涅槃)4)을 얻는다. 이것을 첫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善人所往至處]이라고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다.

또 비구는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공중으로 튀어 날아오르다가 곧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하니,조그마한 만(慢)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두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고 하는데, 세간의 진리 또한 그러하다.

또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고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행이 이와 같이 되면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공중으로 튀어 날아오르다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慢)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중반열반을 얻는다. 이것을 세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고 하는데, 세간의 진리 또한 그러하다.

또 비구는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튀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땅에 떨어져 꺼져버리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慢)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생반열반(生般涅槃)5)을 얻는다. 이것을 네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고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또한 그러하다.

또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튀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조그마한 풀숲 위에 떨어져, 연기를 내거나 혹은 조금 타다가 소멸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행반열반(行般涅槃)6)을 얻는다. 이것을 다섯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고 하는데, 세간의 진리 또한 그러하다.

또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튀어 공중으로 오르다가 많이 쌓인 땔감 위에 떨어져, 혹은 연기를 내거나 혹은 타다가 다 탄 뒤에는 소멸하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은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7)을 얻는다. 이것을 여섯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고 하는데, 세간의 진리 또한 그러하다.

또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곧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서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물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증득한 것은 아니다. 비구의 수행이 이와 같이 되면 어느 곳으로 가서 이르는가? 비유하면 시뻘겋게 달군 쇠를 쇠망치로 치면 불똥이 튀어 공중으로 날아오르다가 많이 쌓인 땔감 위에 떨어져, 혹은 연기를 내거나 혹은 타거나, 탄 뒤에는 마을ㆍ성곽ㆍ산림(山林)ㆍ광야를 불사르고, 마을ㆍ성곽ㆍ산림ㆍ광야를 불사른 뒤에는 혹은 길이나 물이나 평지에 이르게 되어 소멸되는 것과 같다. 비구도 이와 같음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조그마한 만(慢)이 아직 남아 있지만 5하분결은 이미 끊어져 상류(上流)ㆍ아가니타(阿迦膩吒:色究竟天)의 반열반8)을 얻는다. 이것을 일곱 번째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이라고 하는데, 세간의 진리도 그러하다.

어떤 것이 무여열반(無餘涅槃)인가?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나라는 것에는 나라는 것도 없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다. 미래에도 나라는 것은 없을 것이고 또한 내 것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니, 이미 받은 몸도 끊어 버리자. 이미 끊어져 버릴 수 있다면 생존의 즐거움에도 빠져들지 않고 만남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행이 이와 같은 자는 지혜로써 무상식적의 경지를 관찰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증득한 것이다. 내가 말하는 그 비구는 동방(東方)으로도 가지 않고, 서방ㆍ남방ㆍ북방과 4유(維)ㆍ상ㆍ하에도 가지 않으며, 곧 현재 세상에서 식적멸도(息迹滅度)할 것이다. 내가 앞에서 말한 일곱 선인이 가서 이르는 곳과 무여열반은 이 때문에 일부러 말해준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선인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103자이다.

7) 세간복경(世間福經)9) 제7초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사미국(拘舍彌國)10)을 유행하실 때에 구사라(瞿沙羅)11) 동산에 계셨다.

그때 존자 마하주나(摩訶周那)는 해질 무렵[晡時:3시~5시]에 연좌(宴坐:坐禪)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일을 하면 세간(世間)의 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얻을 수 있다. 주나여, 일곱 가지 세간의 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을 것이고 큰 과보를 얻을 것이며, 큰 명예를 얻을 것이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주나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族姓)의 남자나 여자가 비구들에게 방사(房舍)와 당각(堂閣)을 보시하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첫 번째 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한다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주나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방사 안에서 사용하는 평상과 여러 가지 털로 된 자리와 또 침구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두 번째 세간의 복이라고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주나여, 신심이 있는 큰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방사 안에서 사용되는 모든 새롭고 깨끗하고 묘한 의복을 베풀어 주는 것이다. 이것을 세 번째 세간의 복이라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을 것이고 큰 과보를 얻을 것이며 큰 명예를 얻을 것이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방사 안에서 항상 비구들에게 아침에는 죽을 베풀어 주고 점심에는 밥을 베풀어 주며, 또 동산지기도 공급해 주어 부리게 하며, 혹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추울 때나 눈이 올 때에는 몸소 동산으로 나아가 보시를 더해 공양하며, 모든 비구들이 공양을 마친 뒤에는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춥거나 눈이 와도 의복이 젖을까 걱정하지 않게 하고, 밤낮으로 편안히 선정에 들어 사유하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것을 일곱 번째 세간의 복이라고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을 것이고 큰 과보를 얻을 것이며 큰 명예를 얻을 것이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와 여자가 이미 이 일곱 가지 세간의 복을 얻은 자는 가거나 오거나 서거나 앉거나, 혹은 자거나 깨어 있거나, 낮이나 밤이나 복이 항상 생길 것이며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넓어질 것이다. 비유하면, 항가(恒伽:갠지스강)의 물이 처음에 샘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큰 바다로 들어갈 때 그 중간에 가면 갈수록 깊어지고 가면 갈수록 넓어지는 것과 같다. 주나여, 이와 같이 큰 족성의 남자와 여자로서 이미 이 일곱 가지 세간의 복을 얻은 자는 가거나 오거나,서거나 앉거나, 혹은 자거나 깨거나, 낮이나 밤이나 그 복이 항상 생겨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넓어진다.”

존자 마하주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출세간(出世間)의 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할 수 있다. 주나여, 또한 일곱 가지 출세간의 복이 있으니 그대로만 한다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어느 곳에서 유행하신다는 말을 들으면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첫 번째 출세간의 복이라고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수 있다.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아무 곳에서 이리로 오시려고 한다는 말을 들으면, 못내 뛸 듯이 기뻐하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두 번째 출세간의 복이라고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을 수 있다.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저쪽에서 이리로 왔다는 말을 듣고 못내 뛸 듯이 기뻐하면서, 청정한 마음으로 몸소 가서 뵙고 예경하고 공양하되 공양을 마치고는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서 세 가지 스스로 귀의하는[自歸] 법을 받고 금계(禁戒)를 받는 것이다. 주나여, 이것을 일곱 번째 출세간의 복이라고 하는데, 그렇게만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얻으며 큰 명예를 얻고 큰 공덕을 얻는다.

주나여,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만일 이 일곱 가지 세간복을 얻고 다시 이 일곱 가지 출세간의 복을 얻으면 그 복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복과 그러한 복의 과(果)와 그러한 복의 갚음[報]이 있어 그 큰 복의 수는 한정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다. 주나여, 비유하면 염부주(閻浮洲)로부터 흘러나오는 다섯 개의 강이 있으니, 첫 번째를 항가(恒伽)라 하고, 두 번째를 요우나(搖尤那)라고 하며, 세 번째를 사로부(舍勞浮)라 하고, 네 번째를 아이라파제(阿夷羅婆提)라고 하며, 다섯 번째를 마기(摩企)라고 한다. 그 강들이 넓은 바다로 흘러 들어갈 때 그 중간의 작은 냇물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는데, 그것을 되[升]나 섬[斛]으로 재려 해도 저 큰물의 수는 한정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는 것과 같다. 주나여, 이와 같이 신심이 있는 족성의 남자나 여자가 만일 이 일곱 가지 세간의 복을 얻고, 다시 이 일곱 가지 출세간의 복이 있으면 그 복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 복과 그 복의 과(果)와 그 복의 갚음[報]이 있어, 그 복의 수는 지을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알 수도 없는 것이다.”

그때 세존께서 게송을 읊으셨다.

항가(恒伽)의 강물은
청정하고 건너기 쉽다.
바다는 진귀한 보배가 많으며
또한 모든 물의 왕이라네.

마치 저 강물과 같이
세상 사람이 공경하여 받들고
모든 시냇물이 흘러 들어가듯
다 인도하여 큰 바다로 들게 하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의복과 음식과
상탑(床榻)과 요와
온갖 좌구(坐具)를 보시하면

무량한 복을 지은 까닭에
장차 묘한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니
마치 저 강물이 흘러흘러
큰 바다로 들어가는 것 같다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마하주나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세간복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993자이다.

8) 칠일경(七日經)12) 제8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鞞舍離)13)를 유행하실 때에 내씨(㮈氏:菴婆波利)동산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을 즐겨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하고, 마땅히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비가 오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니, 비가 오지 않는 그 때에는 모든 나무와 온갖 곡식과 약나무들은 모두 말라서 꺾어지고 부서져 다 사라져서 항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함이 없어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마땅히 탐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어느 때인가는 두 개의 해[日]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을 것이니, 두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모든 개울과 시냇물은 다 말라 없어져 항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마땅히 탐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것은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 어느 때인가는 세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을 것이니, 세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모든 큰 강물은 다 말라 없어져 항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 어느 때인가는 네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을 것이니, 네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모든 큰 샘의 근원인 염부주(閻浮洲)에서 흘러나오는 다섯 개의 강, 곧 첫째 항가(恒伽), 둘째 요우나(搖尤那), 셋째 사뢰부(舍牢浮), 넷째 아이라파제(阿夷羅婆提), 다섯째 마기(摩企)강의 근원이 되는 큰 샘이 모두 말라 다해 항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고,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조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 어느 때인가는 다섯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을 것이니,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큰 바닷물은 100유연(由延:由旬)씩 감소되어 차츰 줄어 700유연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또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700유연쯤 줄었다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에는 100유연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큰 바닷물은 1다라(多羅)나무 높이만큼씩 감소되어 점점 줄어 7다라나무 높이에 이를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7다라나무 높이만큼 남았다가 차츰 줄어 1다라 나무 높이만큼 될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한 사람의 키만큼 감소하는데 점점 줄어 일곱 사람의 키를 합한 만큼의 높이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일곱 사람의 키를 합해놓은 만큼 남았다가 차츰 줄어 한 사람의 키 정도에 이를 것이다. 다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바닷물은 줄어 목에 이르고 어깨에 이르고 허리에 이르고 허벅지에 이르고 무릎에 이르고 복사뼈에 이르고, 때로는 바닷물은 다 말라 발가락마저 빠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좋아해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 어느 때인가는 여섯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을 것이니, 여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須彌山王)이 다 연기[烟]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합해 하나의 연기가 된다. 비유하면 도자기 굽는 기술자가 처음 가마솥에 불을 땔 때 모든 가마에서 연기가 일어나다가 그것이 합해 하나의 연기가 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여섯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도 일체 대지와 수미산왕이 연기를 일으키는데 그것이 합해 하나의 연기가 된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좋아해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근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 어느 때인가는 일곱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가 있을 것이니,일곱 개의 해가 세상에 출현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이 시뻘겋게 불이 붙어 한꺼번에 다 타서 그것이 합해서 하나의 불꽃이 된다. 이와 같이 일곱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일체의 대지와 수미산왕은 시뻘겋게 불이 붙어 한꺼번에 다 타서 그것이 합해 하나의 불꽃이 되고 불꽃에 바람이 불어 범천(梵天)에까지 이른다. 이때 황욱천(晃昱天:光音天)의 모든 하늘로서 처음 이 하늘에 난 자는, 세간의 성패(成敗)를 듣지 못했고 세간의 성패를 보지 못했으며 세간의 성패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 큰 불을 보고는 모두 두려워하여 털이 곤두선다. 그래서 불이 여기까지 미치지나 않을까, 불이 여기까지 미치지나 않을까 하면서 두려워한다. 그 전부터 태어난 모든 하늘은 세간의 성패를 들었고 세간의 성패를 보았으며 세간의 성패를 알았기 때문에, 이 큰 불을 보고는 모든 하늘들을 위로하면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 불의 법[火法]은 그와 같은 것으로서 결국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일곱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수미산왕(須彌山王)은 100유연이나 무너져 흩어지고 모두 없어진다. 그렇게 200유연, 300유연, 나아가 700유연이나 무너져 흩어지고 모두 없어진다. 일곱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는 수미산왕과 이 대지는 불에 타고 무너져 소멸되어 그 재조차도 남는 것이 없다. 마치 소유(酥油)를 태우면 지글지글 끓어 다 녹아 연기나 불꽃조차 남기지 않는 것처럼, 이와 같이 일곱 개의 해가 출현할 때에도 수미산왕과 이 대지는 타고 남은 재조차도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체의 행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오래 머무르지 않는 법이며 빨리 변해 바뀌는 법이며 의지할 수 없는 법이다. 이와 같은 모든 행은 좋아해 탐착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마땅히 조심하고 싫어해야 할 것이며, 버려 여의기를 구해야 할 것이며, 해탈하기를 구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수미산왕은 반드시 무너져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누가 능히 그것을 믿겠는가? 오직 4제(諦)를 본 자만이 믿을 뿐이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큰 바닷물은 반드시 다 말라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누가 능히 그것을 믿겠는가? 오직 4제를 본 자만이 믿을 뿐이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일체의 대지는 반드시 다 타서 없어질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누가 능히 그것을 믿겠는가? 오직 4제를 본 자만이 믿을 뿐이다.
왜냐하면 비구들아, 옛날에 선안(善眼)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사가 있었는데 그는 외도 선인(外道仙人)들의 종사(宗師)로서 욕애(欲愛)를 버려 여의고 여의족(如意足)을 얻었다. 선안 대사에게는 한량없이 많은[限量百千] 제자들이 있었다. 선안 대사는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梵世法)14)을 설명했다. 선안 대사가 범세법을 설명해 주었을 때 제자들 중에 그 법을 구족하게 받들어 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는 혹 사왕천(四王天)에 태어나기도 하고 삼십삼천(三十三天)에 태어나기도 하며, 혹은 험마천(㷿摩天:夜摩天)에 태어나기도 하고 도솔타천(兜率哆天)에 태어나기도 하며, 화락천(化樂天)에 태어나기도 하고 타화락천(他化樂天)에 태어나기도 하였다.

만일 선안 대사가 범세법을 설명해 주었을 때 모든 제자들이 그 법을 구족하게 받들어 행하는 자가 있으면, 그는 4범실(梵室)15)을 닦아 탐욕을 버려 여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때 선안 대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나는 마땅히 제자들과 함께 뒷세상에서는 같은 곳에 태어나지 않아야겠다. 그러려면 나는 이제 다시 증상자(增上慈)를 닦아야겠다. 증상자를 닦으면 목숨을 마치고 나서 황욱천(晃昱天)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선안 대사는 곧 뒷날에 다시 증상자를 닦았고, 증상자를 닦고 나서 목숨을 마친 뒤에 황욱천에 태어날 수 있었으니, 선안 대사와 모든 제자들은 도를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증득한 것이다.

여러 비구들아, 어떻게 생각하는가? 옛날에 선안 대사는 외도 선인의 종사(宗師)로서 욕애를 버려 여의고 여의족(如意足)을 얻었다. 너희들은 그를 다른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그가 바로 나라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때 선안 대사라 이름했고, 외도 선인의 종사로서 욕애을 버려 여의고 여의족을 얻었다.
나는 그때 수많은 제자를 두었고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을 설했는데, 내가 범세법을 설해 주었을 때 모든 제자들 중에서 그 법을 구족하게 받들어 행하지 못한 자가 있으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혹 4왕천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삼십삼천에 태어나기도 하였으며, 혹은 험마천(㷿摩天)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도솔타천에 태어나기도 하였으며, 혹은 화락천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은 타화락천(他化樂天)에 태어나기도 했다. 내가 범세법을 설해 주었을 때 여러 제자들 중에 만일 법을 구족하게 받들어 행한 자는 4범실(梵室)을 닦고 욕애를 버려 여의어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태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마땅히 제자들과 함께 뒷세상에서는 같은 곳에 태어나지 않으리라. 그러려면 이제 다시 증상자(增上慈)를 닦아야겠다. 증상자를 닦고 나서 목숨을 마치면 황욱천에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뒤에 다시 증상자를 닦았고 증상자를 닦고 나서 목숨을 마친 뒤에 황욱천에 태어날 수 있었다. 그때 나와 모든 제자들은 도를 배운 것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얻었다.
나는 그때 몸소 이 도를 수행하여 스스로를 요익하게 하였고, 또한 남을 요익하게 했으며,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였다. 세상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겨, 하늘을 위하고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했다. 그러나 그때의 설법은 최후의 경지[究竟]에 이르지 못했고, 최후의 백정(白淨)에 이르지 못했으며, 최후의 범행에 이르지 못했고, 최후의 범행(梵行)을 마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ㆍ울음ㆍ걱정을 여의지 못했고, 또한 일체의 괴로움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비구들아, 나는 이제 세상에 나와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는 호칭을 얻었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요익하게 하였고 또 남까지도 요익하게 하였으며,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였고 세간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고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또 안온과 쾌락을 구한다. 나는 이제 설법하여 최후의 경지에 이르렀고 최후의 백정에 이르렀으며, 최후의 범행에 이르렀고 최후의 범행을 마치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미 남ㆍ늙음ㆍ병듦ㆍ죽음ㆍ울음ㆍ걱정을 다 여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일체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칠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701자이다.

9) 칠거경(七車經)16) 제9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큰 비구 대중과 함께 여름 안거[夏坐]를 지내셨다. 존자 만자자(滿慈子)17)도 자신의 고향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이때 고향 마을의 모든 비구들도 여름 안거 석 달을 마친 다음 옷을 기워 수선하는 일을 마치고 발우를 가지고 고향 마을을 떠나 왕사성(王舍城)으로 향했다. 자꾸 앞으로 나아가 왕사성에 이르러 그곳에 있던 죽림정사에 머물렀다.

이때 시골의 여러 비구들은 세존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비구들아, 어디서 왔으며 어디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가?”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고향 마을에서 왔으며 고향 마을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습니다.”

“그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 중에서 누가 많은 비구들의 칭찬을 받는가? 즉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며[少欲知足] 남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칭송해 말하고, 제 자신이 한가롭게 머물고 또 남이 한가롭게 머무는 것을 칭송하여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精進)하고 남이 정진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직접 바른 생각을 하고 남이 바른 생각을 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一心)을 지키고 남이 일심 지키는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남이 지혜로운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어 없애고 남이 번뇌가 다한 것을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남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것을 칭찬해 말하는 비구가 누구인가?”

그 고향 마을의 비구들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만자자는 저 고향 마을에서 모든 비구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한가롭게 있고 한가롭게 있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하고 정진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생각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을 지키고 일심을 지키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지혜로운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고 번뇌가 다 끊어진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이를 칭찬해 말합니다.”

이때 존자 사리자(舍梨子)는 대중 가운데 앉아 있었는데 이와 같이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위에서와 같이 저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고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은 아주 대단하게 현자 만자자(滿慈子)를 칭찬하였다. 곧 그는 제 자신이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아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한가롭게 있고 한가롭게 있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정진하고 정진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생각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일심을 지키고 일심 지키는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지혜롭고 지혜로운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번뇌를 다 끊어 없애고 번뇌를 다 끊어 없앤 이를 칭찬해 말하며, 제 자신이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고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하는 이를 칭찬해 말하는구나.’

존자 사리자는 다시 이와 같이 생각했다.
‘나는 언제 저 현자 만자자와 한자리에 앉아 그 이치를 조금이라도 물어볼 수 있을까? 그는 혹 나의 질문을 들어주기나 할까?’

그때 세존께서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에 들어 계시다가 석 달을 지낸 뒤 옷을 기워 수선하고 발우를 들고 그곳을 떠나 사위국으로 향하셨다. 차츰차츰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러 곧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기수급고독원)에 머무셨다. 존자 사리자는 고향 마을의 여러 비구들과 같이 왕사성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옷을 단속하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으로 향하였다. 그리하여 점점 앞으로 나아가 사위국에 이르러 승림급고독원에 함께 머물렀다. 이때 존자 만자자도 고향 마을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석 달을 지낸 뒤 옷을 기워 단속하고 발우를 들고 고향 마을을 떠나 사위국으로 향했다. 그리하여 점점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러 그 또한 승림급고독원에 머물렀다. 존자 만자자는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여래 앞에서 니사단(尼師檀)을 깔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때 존자 사리자가 다른 비구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어느 분이 현자 만자자입니까?”
비구들이 존자 사리자에게 말하였다.
“예, 그 존자는 여래(如來)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얼굴은 하얗고 콧대가 앵무새 부리처럼 높은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만자자의 얼굴을 알아보고 곧 기억했다.

존자 만자자는 그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옷과 발우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尼師檀)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안다숲[安陀林]의 경행(經行)하는 장소로 갔다. 존자 사리자도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에 들어가 걸식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돌아와 옷과 발우를 거두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 위에 걸치고 안다숲의 경행하는 장소로 갔다.

그때 존자 만자자는 안다숲에 이르러 한 나무 밑에 니사단을 깔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존자 사리자도 안다숲에 이르러 만자자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나무 밑에 니사단을 깔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존자 사리자는 해질 무렵[晡時]에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만자자에게 나아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으로 물러 앉아 곧 존자 만자자에게 물었다.
“현자여, 그대는 사문 구담(瞿曇)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그대는 계행(戒行)을 깨끗하게 하려고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과 번뇌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道)이다 도가 아니다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가야 할 길을 잘 아는 지견(知見)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道跡)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아까 그대에게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하고 물었을 때에 그대는 곧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대에게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대는 곧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다 도가 아니다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그대는 곧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무슨 마음으로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닦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현자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증득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리자가 또 다시 물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께서는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는 것입니까?”

그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고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께서는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리자가 또 다시 물었다.
“내가 아까 그대에게 ‘현자여,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시는 것입니까?’하고 묻자, 현자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는 것입니까?’하고 물었을 때, 현자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현자의 대답에 무슨 뜻이 담겨져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알 수 있겠습니까?”

그는 대답했다.
“현자여, 만일 계행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존이신 사문 구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그것은 곧 유여(有餘)를 무여(無餘)라고 일컫는 것이며,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견해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의심을 없애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지견을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를 깨끗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세존이신 사문 구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그것은 유여를 무여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현자여, 만일 이 법을 떠나 세존께서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다면 곧 범부도 마땅히 반열반(般涅槃)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범부 이 법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다만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의 깨끗함을 얻고 마음이 깨끗함으로써 견해의 깨끗함을 얻으며, 견해가 깨끗함으로써 의심과 번뇌가 깨끗해짐을 얻고 의심과 번뇌가 깨끗함으로써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이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고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으로써 세존이신 사문 구담은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시는 것입니다.

현자여, 다시 들으십시오. 옛날 구살라왕(拘薩羅王) 바사닉(波斯匿)이 사위국에 있었는데, 바계제(婆鷄帝)18)에 볼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슨 방법을 써야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하루에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나는 이제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늘어놓아 두리라’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그는 곧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수레를 늘어놓아 두었습니다. 그는 일곱 수레를 벌여 둔 뒤에 사위국에서 나와 첫 번째 수레에 이르렀습니다. 첫 번째 수레를 타고 두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 번째 수레는 버렸습니다.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 수레는 버리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네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세 번째 수레는 버렸으며, 네 번째 수레를 타고 다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네 번째 수레는 버리고, 다섯 번째 수레를 타고 여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다섯 번째 수레는 버렸습니다. 또 여섯 번째 수레를 타고 일곱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 번째 수레는 버리고,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는 하루 걸음으로 바계제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바계제에서 볼 일을 다 마치고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왕의 정전(正殿)에 앉았습니다. 뭇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천왕(天王)께선 하루 동안에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왕이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다.’
‘어떻습니까? 첫 번째 수레를 타고 하루 동안에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아니다.’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나아가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오셨습니까?’
‘아니다.’
‘어떻습니까? 현자여, 구살라왕 바사닉은 뭇 신하들이 다시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왕이 뭇 신하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사위국왕이지만 바계제에 볼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무슨 방법을 써야 사위국에서 바계제까지 하루 사이에 갈 수 있을까?〉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제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그 중간에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사위국에서 바계제에 이르는 길 중간에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았다. 일곱 대의 수레를 늘어놓은 다음에 사위국에서 길을 떠나 첫 번째 수레에 이르렀다. 첫 번째 수레를 타고 두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첫 번째 수레는 버리고, 두 번째 수레를 타고 세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두 번째 수레는 버리고, 세 번째 수레를 타고 네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세 번째 수레는 버렸다. 네 번째 수레를 타고 다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네 번째 수레는 버리고, 다섯 번째 수레를 타고 여섯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다섯 번째 수레는 버렸다. 여섯 번째 수레를 타고 일곱 번째 수레에 이르러서는 여섯 번째 수레는 버리고, 일곱 번째 수레를 타고는 하루 동안에 바계제까지 왔다.’

현자여, 구살라왕 바사닉이 뭇 신하들의 물음에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그와 같이 현자여, 계행이 깨끗함으로써 마음이 깨끗해짐을 얻고 마음이 깨끗해짐으로써 견해의 깨끗해짐을 얻으며, 견해가 깨끗해짐으로써 의심의 번뇌를 없애 깨끗해짐을 얻고 의심의 번뇌를 없애 깨끗해짐으로써 도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니 도가 아니니 하며 분별하는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道跡)의 지견이 깨끗해짐을 얻고 도적의 지견이 깨끗해짐으로써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을 얻으며, 도적의 번뇌를 끊는 지혜가 깨끗해짐으로써 세존께서는 무여열반을 베풀어 설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존자 사리자가 존자 만자자에게 물었다.
“현자여, 현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모든 범행인은 무엇이라고 현자를 일컫습니까?”

존자 만자자가 대답했다.
“현자여, 내 아버지19)의 호는 만(滿)이고 내 어머니의 이름은 자(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인들은 나를 일컬어 만자자(滿慈子:만자의 아들)라고 부릅니다.”

존자 사리자가 찬탄하며 말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현자 만자자는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作]과 지변(智辯)과 총명(聰明)이 결정되었고,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조어(調御)를 성취하였습니다. 큰 변재(辯才)를 성취하였고 감로(甘露)의 깃대를 얻었으며 감로의 세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니십니다. 현자에게 물으면 그 매우 깊은 뜻을 다 대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현자 만자자는 모든 범행인들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합니다. 그들은 현자 만자자를 만났으므로 수시로 가서 보고 수시로 예배합니다. 나도 이제 또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모든 범행인은 마땅히 옷을 정수리에 동여매고 현자 만자자를 머리 위에 이고 다니듯 공경하여 모심으로써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존자 만자자가 존자 사리자에게 물었다.
“현자의 이름은 무엇이며, 모든 범행인들은 현자를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현자여, 나의 이름[字]은 우바제사(優波鞮舍)이고 내 어머니의 이름은 사리(舍梨)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인들은 나를 일컬어 사리자(舍梨子:사리의 아들)라고 부릅니다.”

존자 만자자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나는 지금 세존의 제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습니다. 두 번째의 높은 이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고 법의 장수[法將:사리자를 찬탄해 부른 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으며 법바퀴를 다시 굴리는 제자와 함께 논의하면서도 몰랐습니다. 내가 만일 존자 사리자를 알았다면 한 마디도 대답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다시 당신의 심도 있는 논리에 대해서이겠습니까?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당신은 여래의 제자가 되어 행동과 지변과 총명은 결정되었고, 안온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조어를 성취하였고 큰 변재(辯才)를 얻었으며, 감로의 깃대를 얻었고 감로의 세계에 있으면서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니시는 분입니다. 존자께서는 매우 깊고 깊은 질문을 하셨기 때문에 사리자여, 모든 범행인들에게 큰 이익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존자 사리자를 만났으므로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이제 나도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모든 범행인들은 마땅히 옷을 정수리에 감고 존자를 머리 위에 이고 다니듯 공경을 다해 모심으로 말미암아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이제 나도 큰 이익을 얻었으니 수시로 와서 뵙고 수시로 예배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두 현인은 서로 칭찬해 말하고 다시 서로의 훌륭함을 칭찬해 마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이 칠거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508자이다.

10) 누진경(漏盡經)20) 제10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劒磨瑟曇)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거나 봄으로써 모든 번뇌[漏]가 다하게 되니, 알지 못해서도 안 되고 보지 못해서도 안 된다. 어떤 것을 알거나 봄으로써 모든 번뇌를 다하게 할 수 있다고 하는가? 바른 생각[正思惟]과 바르지 않은 생각[不正思惟]이 있다. 만일 바르지 않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欲漏)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有漏:生存에 집착하는 번뇌)와 무명루(無明漏:無智의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만일 바르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긴 것이라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그런데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른 법을 듣지 못하고 참지식[眞知識:善知識]을 만나지 못하여,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길들여지지[調御]도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도 못한다.
바르지 않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바르게 생각하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고 생각해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가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른 법을 얻어 듣고 참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길들여지고 참다운 법을 알게 된다.
바르지 않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고 이미 생긴 것은 더욱 자라나게 된다. 바르게 생각하는 자는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도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참다운 법을 이미 알아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마땅히 생각해야 할 법만 곧 생각한다. 생각하지 않아야 할 법은 생각하지 않고 생각해야 할 법만 생각하기 때문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욕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아직 생겨나지 않은 유루와 무명루는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겼다 하더라도 곧 없어진다.

누(漏)와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끊는 일곱 가지 법이 있으니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유루(有漏)는 견해[見]를 좇아 끊고 유루는 보호[護]를 좇아 끊으며 유루는 떠남[離]을 좇아 끊고 유루는 수용[用]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참음[忍]을 좇아 끊고 유루는 없앰[除]을 좇아 끊으며 유루는 생각[思惟]을 좇아 끊는다.

유루는 견해를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바른 법을 듣지 못하고 참지식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지 못하며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고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곧 이러한 생각을 낸다.
‘나에게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과거의 세상이 없었는가? 나에게 무슨 원인으로 인해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어떠한 과거의 세상이 있었는가? 나에게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나에게 미래의 세상이 없을 것인가? 나에게 무슨 원인으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나에게 어떠한 미래의 세상이 있을 것인가?’
또 스스로 의심한다.
‘내 몸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것은 무엇인가? 이제 이 중생들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장차는 어디로 갈 것인가? 본래 무슨 인연으로 존재하게 되었으며 장차는 무슨 인연으로 존재하게 될 것인가?’

그는 이와 같이 바르지 않게 생각하여 여섯 가지 견해[見]가 생겨나는데, 이 견해가 생김에 따라 나에 대하여 나[神]라는 것이 있다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나에 대하여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견해를 내며, 이 견해가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라고 인식하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나로 말미암아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는 견해를 내며, 이 견해가 생겨 나가 아닌 것을 나라고 인식하는 견해를 내고 이 견해가 생겨 이것은 바로 나라고 하는 견해를 낸다. 이 나라는 것은 능히 말하고 능히 알고 능히 행동하며 능히 행동하게 하고 능히 일어나게 하며 가서 태어나는 곳마다 선악의 과보를 받는다. 그것은 반드시 어디로부터 온 곳도 없고 꼭 있는 것도 아니며 꼭 있어야 할 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것을 견해의 폐단이라고 하는데, 이런 견해에 흔들리고 이런 견해의 번뇌[見結]에 결박을 당한다.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은 이 때문에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을 받는다.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른 법을 듣고 참지식을 만나며 거룩한 법에 인도되어 가르침을 받음으로써 참다운 법을 알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사실 그대로 알아 마치면 3결(結)이 모두 끊어지는데, 신견결(身見結)과 계취결(戒取結)과 의결(疑結)이 다 끊어진다. 이 3결이 이미 다 끊어져서 사라지면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정각(正覺)에 나아가 마지막에는 7유(有)21)를 받고 천상과 인간에 일곱 번 오가기를 마치면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만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이는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만일 알거나 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존재에 집착하는 번뇌는 견해[見]를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보호[護]를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눈으로 물질을 보고 안근(眼根)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관찰하기 때문이다. 안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며 법을 알아 의근(意根)을 보호하는 자는 바른 생각으로써 깨끗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며 의근을 보호하지 않는 자는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써 깨끗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만일 보호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보호하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보호를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떠남[離]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사나운 코끼리를 보면 곧 마땅히 멀리 떠나가야 하며, 사나운 말ㆍ사나운 소ㆍ사나운 개ㆍ독사ㆍ험한 길ㆍ개천ㆍ구덩이ㆍ은밀한 곳ㆍ강ㆍ깊은 샘ㆍ산ㆍ바위ㆍ나쁜 스승ㆍ나쁜 벗ㆍ나쁜 이도(異道)ㆍ나쁜 마을ㆍ나쁜 처소를 보아도 꼭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범행을 닦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을 의심을 일으키게 하거든, 비구는 마땅히 나쁜 스승ㆍ나쁜 벗ㆍ나쁜 이도ㆍ나쁜 마을ㆍ나쁜 처소를 떠나야 한다. 만일 범행을 닦는 모든 이가 그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의심이 없는 사람에게 의심을 일으키게 하거든, 마땅히 다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여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며, 여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유루는 떠남을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씀[用]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비구가 의복을 입는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모기ㆍ등에ㆍ바람ㆍ비ㆍ추위ㆍ더움 때문이며, 부끄러움 때문이다. 만일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살찌기를 바라거나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몸을 오랫동안 보전하여 번뇌와 걱정과 슬픔을 없애기 위해서이며, 범행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며, 묵은 병을 고치고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며, 오래 살고 안온하고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거처할 곳ㆍ방사(房舍)ㆍ평상ㆍ요ㆍ침구를 쓴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를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피로할 때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며,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기 위해서이다. 만일 약을 쓴다면 그것은 이양을 위해서도 아니며,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살찌고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다만 병들고 괴로운 것을 없애기 위해서이며,목숨을 거두어 잡기 위해서이며, 안온하고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일 그것들을 쓰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그것을 쓰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씀을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참음[忍]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는 정진하여 악하고 불선함을 끊고 선한 법을 닦기 때문에 항상 생각을 일으킴이 있고, 마음을 통일하여 정근하며, 몸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피ㆍ골수가 다 마르도록 정진을 버리지 않고 구하던 바를 다 얻고서야 정진을 버린다. 비구는 또 마땅히 굶주림ㆍ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벼룩ㆍ이 따위를 견디고 참아내야 하고, 바람이나 햇볕의 핍박을 받고 욕설과 매질을 당해도 능히 그것을 참으며, 몸이 온갖 병에 걸려 몹시 고통스럽거나 목숨이 끊어질 듯한 온갖 불쾌한 것들도 다 능히 견디고 참아내야 한다. 만일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참아내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루는 참음을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없앰[除]을 좇아 끊는다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에게 탐욕의 마음이 생겼을 때 그것을 끊어 없애거나 버려 여의지 못하거나, 성냄의 마음과 해치려는 마음이 생겼을 때 끊어 없애거나 버려 여의지 못할 경우, 만일 그것을 없애지 않으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없애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유루는 없앰을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유루는 생각을 좇아 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비구가 첫 번째 염각지(念覺支)22)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면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법[出要法]으로 나아간다. 택법각지(擇法覺支)ㆍ정진각지(精進覺支)ㆍ희각지(喜覺支)ㆍ식각지(息覺支)ㆍ정각지(定覺支)도 마찬가지이며, 또 일곱째 사각지(舍覺支)를 생각하여, 떠남을 의지하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며 멸해 다함을 의지하면, 곧 나고 죽음을 벗어나는 경지로 나아간다. 만일 생각하지 않으면 곧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고, 생각하면 번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을 유루는 사유를 좇아 끊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로 하여금 유루에 대하여 견해를 좇아 끊을 것은 곧 견해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보호를 좇아 끊을 것은 곧 보호로써 끊게 하며,유루에 대하여 떠남을 좇아 끊을 것은 곧 떠남으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씀을 좇아 끊을 것은 씀으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참음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참음으로써 끊게 하고 유루에 대하여 없앰을 좇아 끊을 것은 곧 없앰으로써 끊게 하며 유루에 대하여 사유를 좇아 끊을 것은 곧 사유로써 끊게 한다면, 이것을 비구가 모든 누(漏)가 다 끊어지고 모든 맺힘[結]이 이미 풀려 능히 바른 지혜로써 괴로움의 끝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육체 등 생존의 제약에서 완전히 해탈한 상태를 말한다. 완전한 절대무(絶對無)의 경지로서 고뇌 없이 영원한 즐거움만 있는 열반.
2 최상의 경지인 적정삼매(寂靜三昧)를 일컫는 말로서 열반(涅槃)을 의미한다. 일본 국역일체경에서는 무상(無上)ㆍ식(息)ㆍ적(迹) 세 가지가 모두 열반의 의미가 된다고 주석에서 밝히고 있다.
3 하분(下分)은 욕계(欲界)이며 결(結)은 번뇌이다. 삼계 중 가장 밑에 있는 욕계에서 중생들을 얽어매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 즉 욕탐(欲貪)ㆍ진에(瞋恚)ㆍ유신견(有身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의결(疑結)을 말한다.
4 불환과(不還果)의 성자가 욕계(欲界)에서 색계(色界)로 태어나는 중유신(中有身)으로서 나한과(羅漢果)를 증득함으로써 반열반(般涅槃)하는 것을 말한다.
5 성문 4과(果) 중 제3의 불환과(不還果)를 5종 열반으로 나눈 가운데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색계(色界)에 태어나 얼마 안 되어 반열반하는 것을 말한다.
6 성문 4과 중 제3의 불환과를 5종 열반으로 나눈 가운데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색계에 태어나 거기에서 오랫동안 수행을 쌓고 반열반하는 것을 말한다.
7 성문 4과 중 제3의 불환과를 5종 열반으로 나눈 가운데 네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색계에 태어나 거기에서 수행하지 않아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반열반하는 것을 말한다.
8 성문 4과 중 제3의 불환과를 5종 열반으로 나눈 가운데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색계에 태어나 다시 차례로 위 하늘에 올라가서 마침내 색계의 가장 위에 있는 하늘인 색구경천(色究竟天) 또는 무색계의 최고 높은 하늘인 유정천(有頂天)에 태어나 거기에서 반열반하는 것을 말한다.
9 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5권 제40품인 「칠일품(七日品)」의 일곱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10 또는 교상미(憍賞彌)ㆍ구섬미(拘睒彌)로 쓰기도 한다. 중인도(中印度) 옛 왕국의 이름이다.
11 또는 구사라(瞿師羅)ㆍ구사라(瞿史羅)로 쓰기도 하며, 구사라 장자가 세존께 보시한 동산의 이름이다.
12 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3권 제40품인 「칠일품(七日品)」의 첫 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며, 이역경(異譯經)으로는 송(宋)나라 법현(法賢)이 한역한 『살발다소리유날야경(薩鉢多酥哩踰捺野經)』이 있다.
13 비야리(毘耶離)ㆍ폐사리(吠舍離)ㆍ유야리(維耶離)라고 쓰기도 하며, 광엄성(廣嚴城)으로 의역한다. 중인도에 있던 나라로서 항하강을 사이에 두고 남방의 마갈타국과 대치하였다.
14 함께 범천계(梵天界)에 머물러 수행하는 법.
15 4범주(梵住)로 쓰기도 하며,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네 가지 관법을 닦아 범천에 태어나는 수행법.
16 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3권 제39품인 「등법품(等法品)」의 열 번째 소경의 내용과 동일하다.
17 만원자(滿願子) 또는 만축자(滿祝子)라고도 하는데 부루나존자(富樓那尊者)를 번역하여 부른 말이다.
18 또는 사계제(娑鷄帝)ㆍ파기다(婆祇多)라고 부르기도 하며 북구살라국의 도성 이름이다.
19 고려대장경 원본에는 부(父)자가 없고 송본(宋本)에만 부(父)자가 있다. 여기 의미로 보아 부(父)자가 들어가는 것이 의미에 맞아서 송본을 따라 번역하였다.
20 이 경은 『증일아함경』 제34권 제40품인 「칠일품」의 여섯 번째 소경과 내용이 동일하며, 이역경으로는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불설일체유섭수인경(佛說一切流攝守因經)』이 있다.
21 여기에서 유(有)란 생사의 과보를 말한다. 또는 과보를 받을 원인[因]을 말하기도 하는데, 지옥유(地獄有)ㆍ방생유(旁生有)ㆍ아귀유(餓鬼有)ㆍ천유(天有)ㆍ인유(人有)ㆍ업유(業有)ㆍ중유(中有)를 말한다.
22 불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늘 잘 생각하여 정(定)ㆍ혜(慧)가 고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23 원문에서 밝히고 있는 글자 수의 합과 실제 소경의 글자 수를 합한 것과는 서로 차이가 많다. 2권의 총 글자 수는 소경들을 합한 결과 7,926자인데 여기에서는 7,934자라고 하였고,「칠법품」인 『중아함경』 제1권과 제2권을 합하면 실제는 16,035자인데 여기에서는 16,043자라고 하였다.

중아함경 제3권

2. 업상응품(業相應品) 제2①
이 업상응품에는 모두 열 개의 소경이 들어 있다.

염유경(鹽喩經)ㆍ화파경(惒破經)ㆍ도경(度經)과
나운경(羅云經)ㆍ사경(思經)ㆍ가람경(伽藍經)과
가미니경(伽彌尼經)ㆍ사자경(師子經)과
니건경(尼乾經)ㆍ파라뢰경(波羅牢經)이 들어 있다.

11) 염유경(鹽喩經) 제1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그 지은 바 업(業)에 따라 그 과보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범행(梵行)을 수행하지 않으면 괴로움을 다 없앨 수가 없다. 비록 사람은 그 지은 바 업에 따라 곧 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 이러하다. 범행을 닦으면 곧 괴로움을 다 없앨 수 있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착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착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몸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아서 그 수명이 아주 짧아진다. 이것이 사람이 착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소금 한 냥을 적은 물에 집어넣어 그 물을 짜게 만들어 사람들이 마실 수 없게 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 소금 한 냥으로 적은 물을 짜게 만들어 사람들이 마실 수 없도록 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소금은 많고 물은 적으므로 짜서 마실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착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 사람이 착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몸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아서 그 수명이 매우 짧아진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現法]에서 과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착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몸을 닦고 계율을 지키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서 수명이 매우 길어지기도 하는데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소금 한 냥을 항하강에 던져 그 강물을 짜게 만들어 사람들이 마시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 소금 한 냥으로 항하강 물을 짜게 만들어 사람들이 마시지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항하강의 물은 매우 많고 소금 한 냥은 아주 적은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능히 짜게 하여 마시지 못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고 계를 잘 지키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서 수명이 아주 길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아서 수명이 매우 짧아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양을 빼앗아 취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남의 양을 빼앗아 취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남의 양을 빼앗는 자는 왕이나 왕의 신하로서 대단한 위엄과 세력이 있고 저 양의 주인은 가난하고 천하여 힘이 없다. 그는 힘이 없기 때문에 굽실대며 합장하고 공경을 다해 구하고 찾으면서 ‘존자는 그 양을 돌려주시든지 그 값을 치러 주십시오’라고 말한다. 이것이 어떤 사람이 남의 양을 빼앗아간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아서 수명이 매우 짧아지면 이것을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고 계율을 지키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서 수명이 매우 길어지면, 이것을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비록 남의 양을 훔쳤더라도 주인이 도로 빼앗아 간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비록 남의 양을 훔쳤더라도 주인이 도로 빼앗아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양을 훔친 자는 가난하고 천하여 세력이 없고, 저 양의 주인은 혹 왕이나 왕의 신하로서 대단한 위엄과 힘을 지니고 있다. 그는 힘이 있기 때문에 훔친 자를 결박하고 양을 도로 빼앗아 갈 수 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비록 남의 양을 훔쳤더라도 주인이 도로 빼앗아 간다고 하는 것이다.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고 계율을 지키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서 수명이 매우 길어지면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아서 수명이 매우 짧아지면,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남에게 5전의 빚을 져 주인에게 결박당하고 나아가 1전의 빚을 지고 또 주인에게 결박당하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남에게 5전의 빚을 지고 주인에게 결박당하고 나아가 1전의 빚을 지고 또 주인에게 결박당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빚을 진 사람은 가난하고 힘이 없다. 그는 가난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 5전의 빚을 지고 주인에게 결박당하고 나아가 1전의 빚을 지고 또한 주인에게 결박당하기에 이른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남에게 5전의 빚을 지고 주인에게 결박당하고 나아가 1전의 빚을 지고 또한 주인에게 결박당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지 않고 계율을 지키지 않으며,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아서 수명이 매우 짧아지면,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닦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지옥의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고 계율을 지키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서 수명이 매우 길어진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비록 100전의 빚을 지고서도 주인에게 결박당하지 않고 나아가 천만 전의 빚을 지고서도 주인에게 결박당하지 않은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비록 100전의 빚을 지고서도 주인에게 결박당하지 않고 나아가 천만 전의 빚을 지고서도 주인에게 결박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빚을 진 사람은 생산되는 산업(産業)이 한량없이 많고 대단한 세력이 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비록 100전의 빚을 지고서도 주인에게 결박당하지 않고 나아가 천만 전의 빚을 지고서도 주인에게 결박당하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사람이 비록 100전의 빚을 지고서도 주인에게 결박당하지 않고 나아가 천만 전의 빚을 지고서도 주인에게 결박당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이 몸을 닦고 계율을 지키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아서 수명이 매우 길어지면, 이것을 어떤 사람이 선하지 않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괴로움의 결과를 받되 현재 세계에서 그 과보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세계에서는 비록 선하고 악한 업의 과보를 받긴 하지만 그것은 경미하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염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51자이다.

12) 화파경(惒破經) 제2 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기수(釋羇瘦)의 가유라위(迦維羅衛)1)에 머무실 때 니구류(尼拘類) 동산에 계셨다.

그때 존자 대목건련(大目乾連)이 비구들과 함께 점심을 마친 뒤, 할 일이 있어서 강당에 모여 앉아 있었다. 이때 니건(尼乾)2)의 제자인 화파(惒破)라고 하는 석종(釋種)이 있었다. 그는 오후가 되자 천천히 거닐어 존자 대목건련의 처소에 이르러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은 뒤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이 이와 같은 일을 물었다.
“화파의 생각은 어떠한가? 만일 몸과 입과 뜻을 잘 보호하는 어떤 비구가 있을 때, 그대는 그런 일을 보고 이 좋지 못한 번뇌[不善漏]를 냄으로 인하여 뒷세상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화파가 대답하였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몸과 입과 뜻을 잘 보호하는 어떤 비구가 있을 때, 나는 그런 일을 보고 이 좋지 못한 번뇌를 냄으로 인하여 뒷세상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이전 세상에 선하지 않은 행위를 한 적이 있으면 이것으로 인해 선하지 않은 번뇌를 내어 뒷세상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훗날 어느 때 세존께서는 고요한 곳에서 앉아 계시면서 사람들보다 특출한 천이통[淨天耳]으로써 존자 대목건련이 니건의 제자 화파와 함께 이와 같이 논란하는 것을 들으셨다. 세존께서 그러한 논란을 들으신 뒤, 저녁 때[晡時]가 되어 자리[宴坐]에서 일어나 강당으로 가셔서 비구 대중 앞에 자리를 깔고 앉으셨다. 세존께서 앉으시고 나서 물으셨다.
“목건련이여, 아까 니건의 제자인 석종 화파와 함께 무슨 일로 논란을 벌였으며, 또 무슨 일로 강당에 모여 있는가?”

존자 대목건련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비구들과 함께 점심을 마친 뒤에 할 일이 있어 강당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건의 제자 석종 화파가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제가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그래서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눈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습니다. 저는 ‘화파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몸과 입과 뜻을 잘 보호하는 어떤 비구가 있다고 할 때, 그대는 그런 사람을 보고 그들이 좋지 못한 번뇌를 냄으로 인하여 뒷세상에까지 이르게 되리라고 생각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니건의 제자 석종 화파는 곧 제 물음에 대하여 ‘만일 몸과 입과 뜻을 잘 보호하는 어떤 비구가 있다면 나는 그런 사람을 볼 때 그들이 이 좋지 못한 번뇌를 냄으로 인하여 뒷세상에까지 이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전생에 선하지 않은 행을 행하였다면 이것으로 인해 선하지 않은 번뇌를 내어 뒷세상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아까 니건의 제자 석종 화파와 함께 이야기한 내용이 이와 같습니다. 이 일로써 강당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니건의 제자인 석종 화파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말하는 것이 옳거든 너는 마땅히 옳다고 하고, 옳지 않거든 너는 마땅히 옳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너에게 의문 나는 것이 있거든 곧 ‘사문 구담(瞿曇)이시여, 여기에 무슨 일이 있으며, 여기에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고 내게 물어라. 그리하여 내가 말하는 바를 네가 수용할 수 있다면 나는 너와 함께 이 일을 논하겠다.”

화파가 대답하였다.
“사문 구담이시여, 만일 말씀하시는 바가 옳으면 저는 마땅히 옳다고 할 것이며, 만일 옳지 않으면 옳지 않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의문 나는 것이 있으면 마땅히 ‘구담이시여, 여기에는 무슨 일이 있으며 여기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고 구담께 여쭙겠습니다. 사문 구담께서 말씀하신 바를 저는 곧 받아 지니겠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마땅히 저와 함께 이 일을 의논 해 주십시오.”

세존께서 물으셨다.
“화파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비구가 선하지 않은 몸의 행과 번뇌[漏]ㆍ번열(煩熱)ㆍ걱정ㆍ슬픔을 내었더라도 그는 뒷날에 선하지 않은 몸의 행이 소멸되어 다시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고 묵은 업을 버리며 곧 현재 세계에서 문득 최후의 경지[究竟]를 얻어 번열이 없고 항상 머무르며 변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거룩한 지혜로써 보는 바[所見]이며 거룩한 지혜로써 아는 바[所知]이다. 몸으로 불선(不善)을 행하고 입으로 불선을 행하며 뜻으로 불선을 행하여 무명(無明)의 행과 번뇌ㆍ번열ㆍ걱정ㆍ슬픔이 있더라도 그는 뒷날에 불선한 무명의 행이 소멸되어 다시는 새로운 업을 짓지 않는다. 그리고 묵은 업을 버리며 곧 현재 세계에서 문득 최후의 경지를 얻어 번열이 없고 항상 머무르며 변하지 않는다. 이것은 거룩한 지혜로써 보는 바이며 거룩한 지혜로써 아는 바이다. 화파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와 같이 비구가 몸과 입과 뜻을 잘 보호한다면 너는 곧 이것을 보고 이 좋지 못한 번뇌를 냄으로 인하여 뒷세상에까지 이르게 되겠는가?”

“구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와 같이 몸과 입과 뜻을 잘 보호한다면 제가 이것을 보지 않을 경우 이 좋지 못한 번뇌를 냄으로 인하여 뒷세상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화파여, 화파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비구가 무명이 이미 다하고 명(明)이 이미 생겨났으면 그는 무명이 이미 다하고 명이 이미 생겨난 다음에 뒷세상의 몸[後身]에 대하여 감각을 내면 곧 뒷세상의 몸에 대하여 감각을 낸 줄을 알며, 뒷세상의 수명에 대하여 감각을 내면 곧 뒷세상의 수명에 대하여 감각을 낸 줄을 안다. 그리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命]이 끝나고 수(壽)가 다해 미치면 곧 현재 세계에서 일체의 감각이 다 그쳐 쉬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싸늘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는 사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화파여, 비유하면 마치 나무로 인해 그림자가 생기는 것과 같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리한 도끼를 가지고 와서 그 나무뿌리를 끊되, 조각조각 베고 끊어 열 조각으로 쪼개 나누거나 혹은 백 조각으로 나누어 불에 태워 재로 만들거나 혹은 큰 바람에 날리거나 물속에 넣는다면, 화파야, 네 생각엔 어떠하냐? 그림자는 나무로 인해 있는 것인데, 저 그림자는 이렇게 함으로 인하여 이미 그 근원이 끊어져 없어졌으니 다시는 생기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화파여, 비구도 이와 같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무명이 이미 다하고 명(明)이 생겨나면 그는 무명이 이미 다하고 명이 생긴 줄을 알며, 뒷세상의 몸에 대한 감각을 내면 문득 뒷세상의 몸에 대해 감각을 낸 줄을 알며, 뒷세상의 수명에 대하여 감각을 내면 문득 뒷세상의 수명에 대하여 감각을 낸 줄을 알게 된다.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고 수(壽)가 다해 마치면 곧 현재 세계에서 일체의 감각이 모두 그쳐 쉬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싸늘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화파여, 비구는 이와 같이 바르게 심해탈(心解脫)3)하여 문득 6선주처(善住處)4)를 얻는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화파여, 비구는 눈으로 빛깔[色]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구함을 버리고 아무런 작위가 없으면[無爲], 바른 생각[正念]과 바른 지혜[正智]가 된다. 화파여, 비구는 이와 같이 바르게 심해탈 한다. 이것을 첫 번째 선주처(善住處)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도 마찬가지이며, 뜻도 대상경계인 법(法)을 대하여 알고도 기뻐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구함을 버리고 아무런 작위가 없으면[無爲]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된다. 화파여, 비구는 이와 같이 바르게 심해탈 하며 이것을 여섯 번째 선주처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화파여, 비구는 이와 같이 바르게 심해탈하여 이 여섯 선주처를 얻는다.”

화파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多聞聖弟子]은 이와 같이 바르게 심해탈하여 여섯 선주처(善住處)를 얻습니다. 무엇을 여섯 가지라고 하는가? 구담이시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눈으로 빛깔[色]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구함을 버리고 아무런 작위가 없으면[無爲],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됩니다. 구담이시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이와 같이 바르게 심해탈 하며, 이것을 첫 번째 선주처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도 마찬가지이며, 뜻이 대상경계인 법(法)에 대하여 기뻐하지도 않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구함을 버리고 아무런 작위가 없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이와 같이 바르게 심해탈하며, 이것을 여섯 번째 선주처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들은 바르게 심해탈하여 이 여섯 가지 선주처를 얻습니다.”

화파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구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마치 눈 밝은 사람이 엎어진 것을 뒤집어 놓으며 덮여 있는 것을 드러내며 헤매는 자에게는 길을 가르쳐 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은 곧 빛깔[色]을 볼 수 있듯이 사문 구담도 이와 같습니다. 저를 위하여 무량한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시고 뜻을 나타내셔서 그 길을 따라가게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스스로 부처님ㆍ법ㆍ비구 대중에게 귀의합니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優婆塞)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을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좋지 못한 말을 기르면서 이익을 바라지만 부질없이 제 몸만 고달프고 이익은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았습니다. 저 어리석은 니건(尼乾)은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고 능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좋은 밭[良田]5)을 알지 못하고 또 스스로 살피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랫동안 그를 받들어 공경을 다하여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면서 이익 얻기를 바랐으나 한갓 괴로움만 당하고 아무런 이익이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시 스스로 부처님ㆍ법ㆍ비구 대중에게 귀의합니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優婆塞)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을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원래 무지하여 저 어리석은 니건을 믿고 공경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그만두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세 번째로 부처님ㆍ법ㆍ비구 대중에게 귀의합니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화파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화파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02자이다.

13) 도경(度經) 제3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3도처(度處)가 있으니, 성(姓)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며, 종지[宗]도 다르고 교설[說]도 다르다. 이른바 지혜 있는 자가 잘 받아 꼭 지니고 남을 위해서 설법하지만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宿命]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尊祐:造物主)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는 견해를 내어 이와 같이 말한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宿命]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다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전생에 지은 것을 원인으로 한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 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잊고 바른 지혜도 없을 것이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와 같이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尊祐:조물주)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하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존우의 지음을 원인으로 한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잊고, 바른 지혜도 없을 것이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와 같이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곧 그에게 가서 ‘여러분, 진실로 사람이 하는 일은 일체가 다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다고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모두 살생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아서 여러분은 다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일 일체는 다 인도 없고 연도 없다고 진정 그렇게 본다면 내인(內因) 안에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 전혀 욕망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일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해서 진실하게 알지 못하면 곧 바른 생각을 잊고 바른 지혜도 없을 것이니, 그러면 가르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사문의 법대로 그렇게 말한다면 곧 이치로써 그 사문 범지들을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沙門) 범지(梵志)나 혹은 하늘[天]ㆍ악마[魔]ㆍ범(梵), 그리고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항복받지 못하고, 아무도 더럽히지 못하며, 아무도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 그리고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능히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른바 6처법(處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것으로서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과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또 6계법(界法)이 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것으로서 너를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과 그 밖의 세간은 아무도 능히 항복받거나 능히 더럽히거나 능히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것이 6처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인가? 이른바 안처(眼處)ㆍ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가 그것이다. 이것을 6처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6계법(界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인가? 이른바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가 그것이다. 이것을 6계법으로서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아 너를 위해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다.

6계(界)가 합함으로써 곧 어머니의 태에 나고, 6계로 인하여 곧 6처(處)가 있으며, 6처로 인하여 곧 갱락(更樂:觸)이 있고, 갱락으로 인하여 문득 감각[覺]이 있다. 비구들아, 만일 감각이 있으면 문득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習]을 알며, 괴로움의 소멸[滅]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어떤 것이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태어남의 괴로움ㆍ늙음의 괴로움ㆍ병듦의 괴로움ㆍ죽음의 괴로움ㆍ원수를 만나는 괴로움ㆍ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괴로움ㆍ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이며, 생략하여 5음(陰)이 왕성해서 생기는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이 애(愛)의 감수작용과 미래 세계의 존재에 대한 낙욕(樂欲)이 함께 어우러져 여기저기에 태어나기를 구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이 애(愛)의 감수작용과 미래 세계의 존재에 대한 낙욕이 함께 어우러져 여기저기에 태어나기를 구하는 것을 남김없이 끊어 버리고 토하여 다하고 욕심이 없으며 멸하여 그치고 다 없어지기를 구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8정도[支聖道]로서, 바른 견해[正見]에서부터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를 말하는 것이니, 이것이 여덟 가지이다. 이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한다.

비구는 마땅히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아야 하고, 마땅히 괴로움의 발생을 끊어야 하며,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여야 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아야 한다. 만일 비구가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을 끊으며, 괴로움의 소멸을 증득하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닦으면, 이것이 비구가 일체의 번뇌[漏]가 다하고 모든 결(結:번뇌의 일종)이 이미 풀려, 능히 바른 지혜로써 괴로움의 끝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184자이다.

14) 라운경(羅云經) 제4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園)에 계셨다.

그때 존자 라운(羅云)도 왕사성 온천림(溫泉林)에서 노닐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 들어가 걸식하시고, 걸식을 마치신 다음 라운이 머물고 있는 온천림으로 가셨다. 존자 라운은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마중나가 부처님의 옷과 발우를 받고 방석을 깔고 물을 길어다 발을 씻어드렸다. 부처님께서 발을 씻은 뒤 라운의 자리에 앉으셨다.

세존께서는 곧 물그릇을 잡아 물을 조금 쏟고 나서 물으셨다.
“라운아, 너는 지금 내가 이 물그릇을 잡아 물을 조금 남기고 쏟는 것을 보았느냐?”

라운이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저들의 도가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른바 저들은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운아, 저들은 또한 악이라고는 짓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세존께서 다시 조금 남은 물그릇을 잡아 모두 쏟아 버린 뒤에 물으셨다.
“라운아, 너는 또 내가 조금 남은 물마저 모두 쏟아 버리는 것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저들의 도가 다 버려졌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른바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운아, 저들은 또한 악이라고는 짓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다시 그 빈 물그릇을 잡아 땅에 엎어 놓은 뒤에 물으셨다.
“라운아, 너는 또 내가 빈 물그릇을 땅에 엎어 놓는 것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저들의 도가 엎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른바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운아, 저들은 또한 악이라고는 짓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세존께서는 다시 그 엎어진 물그릇을 잡아 위로 향하게 해 놓은 뒤에 물으셨다.
“라운아, 너는 다시 내가 엎어진 물그릇을 잡아 위로 향하게 한 것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내가 저들의 도가 위로 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이른바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기 때문이다. 라운아, 저들은 또한 악을 짓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라운아, 마치 왕이 가진 큰 코끼리가 싸움터에 들어갈 때에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 등 일체를 다 사용하면서도 오직 코만은 보호하는 것과 같다. 코끼리 조련사[象師]는 그것을 보고 곧 ‘이 왕의 큰 코끼리는 아직도 일부러 목숨을 아끼고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왕의 큰 코끼리는 싸움터에 들어갈 때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 등 일체를 다 사용하면서도 오직 코만은 보호하기 때문이다. 라운아, 만일 왕의 큰 코끼리가 싸움터에 들어갈 때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ㆍ코 등 일체를 다 사용하면, 코끼리 조련사는 그것을 본 뒤에 곧 ‘이 왕의 큰 코끼리는 더 이상 목숨을 아끼지 않는구나’라고 이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왕의 큰 코끼리는 싸움터에 들어갈 때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ㆍ코 등 일체를 다 사용하기 때문이다.

라운아, 만일 왕의 큰 코끼리가 싸움터에 들어갈 때 앞다리ㆍ뒷다리ㆍ꼬리ㆍ허리뼈ㆍ등뼈ㆍ옆구리ㆍ목ㆍ이마ㆍ귀ㆍ어금니ㆍ코 등 일체를 다 사용하면 라운아, 나는 이 왕의 큰 코끼리가 싸움터에 들어갈 때에 악을 짓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아서 라운아, 이른바 이미 알고 나서도 거짓말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뉘우치지도 않으며, 안으로나 겉으로 부끄러워함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라운아, 나는 저들이 또한 악을 짓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라운아, 마땅히 이것을 배워 실없이 웃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 세존께서는 곧 게송을 설하셨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것을 바로 법 하나를 범한다고 한다.
뒷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아
악이라고는 짓지 않는 것이 없네.

차라리 불같이 뜨거운
쇠구슬을 삼킬지언정
계율을 범하면서
세상의 신심 있는 보시 받지 않으리.

만일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애념(愛念)하지 않으려면
은밀한 곳에서든 드러난 곳에서든
나쁜 업 짓지 말아야 하네.

만일 선(善)하지 않은 업(業)을
과거에 지었거나 현재에 지었다면
끝내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며
또한 피할 곳도 없으리.

부처님께서 게송을 마치시고, 다시 라운에게 물으셨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사람이 무엇 때문에 거울을 쓰는가?”

존자 라운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얼굴이 깨끗한지 깨끗하지 않은지를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 라운아, 만일 네가 장차 신업(身業)을 짓고자 하거든 곧 그 몸으로 지은 업을 관찰해 보되,‘내가 장차 몸으로 업을 짓는다면 이 몸으로 짓는 업이 깨끗한가, 깨끗하지 않은가?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한 일인가?’ 하고 살펴보도록 하라.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내가 장차 몸으로 업을 짓는다면 저 몸으로 지은 업은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혹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 일이 선(善)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장차 지으려고 하는 몸의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내가 장차 몸으로 업을 짓는다면 저 몸으로 짓는 업은 깨끗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혹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 일이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생각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장차 지으려고 하는 몸의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네가 만일 현재의 몸으로 업을 지으려거든 곧 이 몸으로 짓는 업을 관찰해 보되,‘만일 내가 현재에 몸으로 업을 지으면, 이 몸으로 짓는 업이 깨끗한 것인가, 깨끗하지 않은 것인가?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하는 일인가?’ 하고 살펴보도록 하라.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내가 현재 이 몸으로 업을 지으면 이 몸으로 짓는 그 업이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혹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 일이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느껴지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이 현재의 몸으로 짓는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내가 현재의 몸으로 업을 지으면 이 몸으로 짓는 업은 깨끗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혹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그것이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이 현재의 몸으로 짓는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네가 만일 이미 몸으로 짓는 업을 지었다면 곧 그 몸으로 지은 업을 관찰해 보되,‘나는 내가 이미 몸으로 업을 지었는데 그 몸으로 지은 업은 이미 과거에 다 멸해졌고 변하여 바뀌었다. 그것이 깨끗한 것이었는가, 깨끗하지 않은 것이었는가? 혹은 자기를 위하고 남을 위함이 되었는가?’라고 살펴보아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나는 이미 몸으로 업을 지었다. 그 몸으로 지은 업은 이미 과거에 다 멸했고 변해 바뀌었으나, 그 몸으로 지은 업은 깨끗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였다’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범행을 닦는 훌륭한 스승[善知識]에게 나아가, 이미 그가 몸으로 지었던 업을 지극한 마음으로 털어놓고 마땅히 그 잘못을 뉘우쳐 말하라. 삼가 덮어두지 말고 다시 잘 바로잡고 단속하라.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나는 이미 몸으로 업을 지었다. 그 몸으로 지은 업은 이미 과거에 다 멸하였고 변해 바뀌었다. 그 몸으로 지었던 업은 깨끗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한 것이었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밤낮으로 기뻐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입으로 짓는 업[口業]에 대한 것도 이와 같다.

라운아, 과거의 행으로 인하여 뜻으로 짓는 업[意業]을 지었거든 곧 그 뜻으로 지은 업에 대하여 관찰해 보되,‘나는 과거의 행으로 인하여 이미 뜻으로 업을 지었는데 그 뜻으로 지은 업은 깨끗한 것인가.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하는 일이었는가?’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과거의 행으로 인하여 이미 뜻으로 업을 지었다. 그 뜻으로 지은 업은 이미 과거에 다 멸하였고 변해 바뀌었으나, 그 뜻으로 지은 업은 깨끗했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지 않아서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였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과거에 뜻으로 지은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과거의 행으로 인하여 이미 뜻으로 업을 지었다. 그것은 이미 과거에 다 멸하였고 변해 바뀌었으나, 그 뜻으로 지은 업은 깨끗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하였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과거에 뜻으로 지은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미래의 행으로 인하여 마땅히 뜻으로 업을 지으려고 하거든 곧 그 뜻으로 지은 업에 대하여 관찰해 보되 ‘미래의 행으로 인하여 뜻으로 업을 지으려거든 그 뜻으로 지을 업은 깨끗한 것인가,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함이 되겠는가?’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미래의 행으로 인하여 장차 뜻으로 업을 짓는다면 그 뜻으로 지을 업은 깨끗한 것이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미래에 뜻으로 지을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미래의 행으로 인하여 장차 뜻으로 업을 짓는다면 그 뜻으로 지을 업은 깨끗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할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그 미래에 뜻으로 짓고자 하는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현재의 행으로 인하여 뜻으로 업을 짓거든 곧 이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해 보되,‘현재의 행으로 현재에 뜻으로 업을 지으면 이 뜻으로 짓는 업은 깨끗한가, 깨끗하지 못한가? 자기를 위하고 남도 위함이 되는가?’ 하고 살펴보아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현재의 행으로 인하여 현재에 뜻으로 업을 지으면 이 뜻으로 짓는 업은 깨끗할 것이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이 현재에 뜻으로 짓는 업을 버려야 한다.
라운아, 만일 그것을 관찰해 보았을 때 곧 ‘현재의 행으로 인하여 현재에 뜻으로 업을 지으면, 뜻으로 지은 업은 깨끗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혹은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선하여 즐거움의 결과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라고 깨달았거든 라운아, 너는 마땅히 현재에 뜻으로 짓는 업을 수용해야 한다.

라운아, 과거에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한 사문 범지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없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하였다. 라운아, 미래에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할 사문 범지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해야 할 것이다.
라운아, 현재에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하는 사문 범지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한다.
라운아, 너는 마땅히 이러한 것을 배워야 하며 나도 곧 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을 현재에 관찰하고 또 관찰하여 깨끗이 하고 또 깨끗이 한다.”

그때 세존께서 다시 게송을 설하셨다.

신업(身業)ㆍ구업(口業)ㆍ의업(意業)에 대해
라운(羅云)아, 너는
선한가, 선하지 않는가를
항상 꼭 관찰하여라.

이미 알면서도 하는 거짓말
라운아, 그런 말 하지 말라.
원래6) 남을 좇아 살거니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으리.

사문의 법을 뒤엎고
허황되어 진실이 없는 것
이른바 거짓을 말해
그 입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짓말하지 않는 것은
바르게 깨친 이의 아들이며
이것은 사문의 법이라
라운아, 마땅히 배워야 한다.

가는 곳마다 풍성하고 즐겁고
편하고 조용하여 두려움 없네.
라운아, 저런 경지에 이르려거든
남을 해치는 일 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라운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라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832자이다.

15) 사경(思經) 제5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일부러 짓는 업이 있으면, 나는 반드시 그가 과보를 받을 텐데 현재 세계에서 받거나 후세에서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일부러 지은 업이 아니면, 나는 그가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몸으로 고의로 짓는 세 가지 업(業)이 있으니,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한다. 입으로 짓는 업이 네 가지가 있고, 뜻으로 짓는 업이 세 가지가 있다. 그것들은 다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한다.

어떤 것이 몸으로 일부러 짓는 세 가지 업으로서,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산목숨을 죽이는 것[殺生]이니, 지극히 악해 피를 마시고 그것을 해치고자 하며, 중생에서부터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자애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남이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不與取]이니, 남의 재물에 집착하여 도둑질할 마음으로 그것을 취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삿된 음행[邪淫]이니, 저 아버지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고, 혹은 어머니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으며, 혹은 부모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다. 혹은 자매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고, 혹은 형제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으며, 혹은 아내의 부모가 보호하는 대상이 있고, 혹은 친족이 보호하는 대상이 있으며, 혹은 같은 성[同姓]이 보호하는 대상이 있고, 혹은 남의 아내라서 채찍의 벌을 받을까 두려워함이 있으며, 또 남의 정혼녀가 있으니, 직접 이러한 여자를 범하는 것이다. 이것을 몸이 고의로 짓는 세 가지 업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입이 고의로 짓는 네 가지 업으로서,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거짓말[妄言]을 하는 것이다. 그가 대중 가운데 있거나 권속들 가운데 있거나 혹은 왕가(王家)에 있을 때, 만일 그를 불러 ‘네가 아는 것을 정직하게 말하라’고 하면, 그는 모르면서 안다 하고 알면서 모른다 하며, 보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하고 본 것을 보지 않았다 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혹은 재물을 위해서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간질하는 말[兩舌]이니, 남을 갈라서게 하려고 하여 여기서 들은 말을 저기에 가서 말하여 이쪽을 부수고자 하고, 저기에서 들은 말을 여기에 와서 말해 저쪽을 부수고자 한다. 단합되어 있는 것을 이간시키고 이간된 사이를 더욱더 이간질하여 파당을 만들고 파당을 즐기며 파당을 찬양해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추한 말[麤言]이니, 그가 만일 말을 하면, 말씨가 거칠고 사나우며, 나쁜 소리는 귀에 거슬려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는 말만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말만 하여 남을 괴롭게 하고, 안정을 얻지 못하게 하는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꾸며대는 말[綺語]이니, 그는 시기에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법이 아닌 것을 말하며, 그쳐 쉬지 못하게 하는 말만 한다. 또 그쳐 쉬지 않는 것을 찬양하고, 때를 어기고 잘 가르치지 않으며, 또한 좋게 꾸짖지도 않는다. 이것을 일러 입이 고의로 짓는 네 가지 업이라고 하는데,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뜻[意]이 고의로 짓는 세 가지 업으로서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인가? 첫 번째는 탐욕[貪伺]이니, 남의 재물이나 모든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엿보고 항상 살피면서 구하고 희망하여 나의 소득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워하고 성내는 것[嫉恚]이니, 마음속에 미움을 품어 생각하기를 ‘저 중생은 꼭 죽여야 하고 꼭 속박해야 하며, 꼭 재물을 거두어야 하고 반드시 파면시켜야 하며, 꼭 배척해 쫓아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삿된 견해[邪見]이니 소견(所見)이 거꾸로 되어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즉 ‘보시도 없고 재(齋)도 없으며, 주설(呪說)도 없고 선업도 악업도 없으며, 선업과 악업의 갚음도 없고, 이 세상[此世]도 저 세상[彼世]도 없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 세상에서는 진인(眞人)이 사는 좋은 곳에 가거나, 이 세상과 저 세상에 잘 가고 잘 향하거나,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거나,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자재하게 노니는 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뜻이 고의로 짓는 세 가지 업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선하지 않아 괴로움의 결과를 주고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多聞聖弟子]가 몸으로 짓는 선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몸으로 짓는 선한 업을 닦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선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입과 뜻으로 짓는 선한 업을 닦는다.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정진(精進)의 계덕(戒德)을 갖추어 몸이 짓는 깨끗한 업을 성취하고, 입과 뜻이 짓는 깨끗한 업을 성취하여 성냄을 여의고 다툼을 여의며 잠을 없앤다. 교만한 마음도 없애고 의심을 끊으며, 거만함을 버리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어리석음도 없앤다. 저들의 마음은 자애로움을 구족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維)ㆍ상ㆍ하 어느 곳이나 모두 두루하게 된다. 그 마음은 자애로움[慈]7)을 구족하여 맺힘[結]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다.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저들은 ‘나는 본래 마음이 좁고 잘 닦지도 못했으나, 지금 나의 이 마음은 한량없고 잘 닦는다’고 생각한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마음으로 이처럼 한량없이 잘 닦는다. 만일 본래부터 악한 스승으로 인하여 방일한 행동을 하고 선하지 않은 업을 지었으면, 그는 능히 함께 갈 수가 없고 능히 더러움을 씻을 수가 없으며, 또 서로 따를 수도 없다. 만일 어린 동남(童男)ㆍ동녀(童女)가 세상에 나자마자 능히 자심해탈(慈心解脫)을 행한다면, 그래도 그가 뒷날 그 몸과 입과 뜻으로 다시 선하지 않은 업을 짓겠느냐?”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스스로 악한 업을 짓지 않았는데 악한 업이 무엇을 말미암아 생기겠습니까?”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는 속가에 있거나 집을 떠나거나, 항상 자심해탈(慈心解脫)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만일 저 남자나 여자가 속가에 있거나 집을 떠났거나 간에, 자심해탈(慈心解脫)을 닦는 자가 있으면, 그는 이 몸을 가지고 저 세상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을 따라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비구는 마땅히 ‘나는 본래 방일하여 선하지 않은 업을 지었다. 이 일체는 금생[今]에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며, 죽은 뒤 다음 세상에서는 받지 않으리라’ 하고 생각하라. 만일 이와 같이 자심해탈을 수행하여 한량없이 잘 닦는 자가 있으면, 그는 반드시 아나함(阿那含)을 증득하거나, 혹은 다시 그 이상의 경지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슬픈 마음[悲心]과 기쁜 마음[喜心]과 평정한 마음[捨心]을 함께 갖추면,맺힘[結]도 없고 원한[怨]도 없으며, 성냄[恚]도 없고 다툼[諍]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상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나는 본래 마음이 좁고 잘 닦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 마음을 한량없이 잘 닦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그 마음을 이와 같이 한량없이 잘 닦는다.
만일 본래부터 악한 스승으로 인하여 방일한 행동을 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지었다면, 그는 함께 갈 수도 없고 더러움을 씻을 수도 없으며, 다시 서로 따를 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어린 동남과 동녀가 세상에 나자마자 능히 사심해탈(捨心解脫)을 수행한다면, 그래도 그가 뒷날 그 몸과 입과 뜻으로 다시 선하지 않은 업을 짓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스스로 악한 업을 짓지 않았는데, 악한 업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겠습니까?”

“그러므로 남자나 여자는 집에 있거나 집을 떠났거나 간에 항상 사심해탈을 부지런히 닦아야 한다. 만일 저 남자나 여자가 속가에 있거나 집을 떠났거나 간에 사심해탈을 닦는 자가 있으면, 그는 이 몸을 가지고 저 세상에 가는 것이 아니고, 다만 마음만 따라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비구는 마땅히 ‘나는 원래 방일하여 선하지 않은 업을 지었다. 이 일체는 금생에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며, 이 몸이 죽은 뒤 다음 세상에서는 과보를 받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라. 만일 이와 같이 사심해탈을 수행하여 한량없이 잘 닦는 자가 있으면, 그는 반드시 아나함을 증득하거나 혹은 다시 그 이상의 경지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174자이다.

16) 가람경(伽藍經) 제6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람원(伽藍園)을 유행하실 때에 큰 비구 대중과 함께 기사자(羇舍子)에 이르러 그 마을의 북쪽에 있는 시섭화림(尸攝★林)에 계셨다.

그때 기사자 가람에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사문 구담(瞿曇)은 석가 종족의 아들로서 석가 종족을 버리고 출가하여 학도(學道)가 되어 가람원에서 큰 비구 대중들과 함께 이 기사자에 와서 이 마을 북쪽에 있는 시섭화림에 계신다. 그 사문 구담에게는 큰 명칭이 있어 그 명칭이 시방(十方)에 널리 퍼졌다. 사문 구담은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세상의 하늘[天]ㆍ악마[魔]ㆍ범(梵)ㆍ사문(沙門) 범지(梵志) 등 인간에서 천상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알고[自知] 스스로 깨닫고[自覺] 스스로 증득[自作證]하여 성취하신 자유자재하신 분이시다. 그가 만일 설법하면 그것은 처음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며 마지막도 또한 훌륭하신 데다 이치마저 분명하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을 구족하고 범행을 나타내신다. 만일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뵙고 그를 존경하고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긴다면 좋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도 마땅히 다 같이 가서 사문 구담을 뵙고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자.”

기사자의 가람에 있던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각각 그 무리들과 권속들을 데리고 기사자에서 나가 북쪽으로 가서 시섭화림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존을 뵙고 예로써 섬기고 공양하고자 하여 부처님을 찾아갔다. 그 가람 사람들은 어떤 이들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뒤에 한쪽에 물러가 앉고, 어떤 이들은 부처님의 안부를 물은 뒤에 한쪽에 물러가 앉으며, 어떤 이들은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한 뒤에 한쪽에 물러가 앉고, 혹은 멀리서 부처님을 바라본 뒤에 아무 말 없이 앉기도 하였다. 그렇게 가람 사람들이 저마다 앉고 나서 조용해지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셨다.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그들을 위해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그때 가람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시자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의 옷을 벗어 메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떤 사문 범지는 가람에 와서 다만 스스로 자기가 아는 것과 본 것만을 자랑하고 남이 아는 것과 본 것에 대해서는 헐뜯었습니다. 구담이시여, 또 어떤 사문 범지는 가람에 와서 또한 제 자신이 아는 것과 본 것만을 자랑하고 남이 아는 것과 본 것에 대해서는 헐뜯었습니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은 그 말을 듣고 문득 ‘이 사문 범지는 어떤 것을 진실이라 하고, 어떤 것을 거짓이라고 하는가?’ 하는 의혹이 생겼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람 사람들아, 너희들은 의혹을 내지 말라. 왜냐하면 의혹이 생김으로 말미암아 곧 우물쭈물 망설임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람 사람들아, 너희들은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없으면서 후세(後世)가 있다고도 하고 후세가 없다고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너희들은 또한 깨끗한 지혜가 없으면서 한 일이 죄가 된다고도 하고 한 일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업(業)은 본래부터 있었던 세 가지 인습(因習)이란 것이 있다. 어떤 것을 세 가지라고 하는가? 가람 사람들아, 이른바 탐욕이 곧 모든 업의 본래부터 있었던 인습이다. 가람 사람들아, 성냄[恚]과 어리석음[癡]도 곧 모든 업의 본래부터 있었던 인습이다. 가람 사람들아, 탐하는 사람은 탐욕에 덮이게 되어 마음으로 싫어하거나 만족할 줄 모른다. 그래서 생물을 죽이거나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혹은 삿된 음행[邪淫]을 행하거나 제 자신이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혹은 술을 마시기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성내는 사람은 성냄에 덮이게 되어 마음으로 싫어하거나 만족할 줄 모른다. 그래서 생물을 죽이거나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혹은 삿된 음행을 행하거나 제 자신은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혹은 술을 마시기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에 덮이게 되어 마음으로 싫어하거나 만족할 줄 모른다. 그래서 생물을 죽이거나 주지 않는 것을 취하기도 하며, 혹은 삿된 음행을 행하거나 제 자신은 알고 있으면서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혹은 술을 마시기도 한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어 칼과 몽둥이를 버리고,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고 남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으며, 또한 자비스런 마음이 있어 일체 중생은 물론 나아가 곤충까지도 이익되게 한다. 이와 같이 그는 살생에 대해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여의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끊어, 주는 것만 곧 취하고 주는 것만 즐겨 취한다.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기뻐하여 아낌이 없으며 그러면서도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는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범행이 아닌 것을 여의고, 범행이 아닌 것을 끊어 범행(梵行)을 부지런히 닦고 묘행(妙行)에 열심히 힘쓰며,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음욕을 여의고 음행을 끊는다. 이와 같이 그는 범행이 아닌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어 진실하게 말하고 진실한 말을 즐기며 진실한 말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아 일체 중생들에게 믿음을 주고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간하는 말[兩舌]을 여의고 이간하는 말을 끊어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아 남의 화합을 깨뜨리지 않는다. 이쪽에서 들은 것을 저쪽에 말해 이쪽을 파괴하려 하지 않으며, 저쪽에서 들은 것을 이쪽에 말해 저쪽을 파괴하려 하지 않는다. 갈라진 사람들을 화합시키고 화합하면 기뻐하며, 당파를 만들지 않고 당파를 즐기지 않으며 당파를 찬양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그는 이간하는 말을 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추한 말을 여의고 추한 말을 끊는다. 만일 어떤 이의 말에 대하여 그 말씨가 추악하여 그 말소리가 귀에 거슬리면, 대중들은 기뻐하지 않고 대중들은 좋아하지 않아 남으로 하여금 괴롭게 하여 안정을 얻지 못하게 하므로 기어이 이러한 말을 끊어 버린다. 만일 어떤 이의 말이 맑고 온화하고 부드럽고 윤택하여 듣기에 좋고 마음에 들면, 기뻐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며 남으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며, 말씨와 말소리가 고르고 분명하여 남으로 하여금 두렵게 하지 않고 남으로 하여금 안정을 얻게 한다. 이와 같이 그는 추한 말을 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꾸미는 말을 여의고 꾸미는 말을 끊어 시기에 맞는 적절한 말[時說]만 하고, 진실한 말[眞說]만 하며, 법에 합당한 말[法說]을 하고, 이치에 맞는 말[義說]을 하며, 고통이 사라지는[止息] 말을 하고, 고통이 사라지게 하는 말을 즐거워하며, 하는 일이 때를 거스르지 않아 적절함을 얻게 하고 잘 가르치고 잘 꾸짖는다. 이와 같이 그는 꾸미는 말을 하는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탐욕[貪伺]을 여의고 탐욕을 끊어 마음에 다툼을 품지 않아 남의 재물과 모든 생활 도구를 보고도 탐욕을 일으켜 나의 소득이 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같이 그는 탐욕에 대한 그런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성냄을 여의고 성냄을 끊어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고 남에 대한 부끄러움도 있으며, 또한 자비스러운 마음이 있어 일체 중생은 물론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이익되게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미워하고 성냄에 대하여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삿된 견해를 여의고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만 행함으로써 뒤바뀌지 않아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한다.
‘보시가 있고 재(齋)가 있으며, 주문[呪說]도 있고 선악의 업에 대한 과보도 있으며, 이 세상[此世]과 저 세상[彼世]이 있고, 아비가 있고 어미가 있으며, 세상에는 참된 사람[眞人]이 있어 좋은 곳에 이르고, 이 세상에서 잘 떠나 저 세상으로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같이 그는 삿된 견해에 대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낸다.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처럼 몸이 짓는 깨끗한 업을 성취하고, 입과 뜻이 짓는 깨끗한 업을 성취한다. 성냄을 여의고 다툼을 여의며, 잠[睡眠]을 없애고 명성에 대한 욕심이나 뽐냄이 없으며, 의심을 끊고 교만을 버리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어리석음이 없다. 그의 마음은 자애로움[慈]을 구족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維)와 상하 어느 곳이나 모두 두루하게 된다. 그 마음은 자애로움을 구족하여 맺힘[結]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슬픈 마음과 기쁜 마음도 그러하며, 또 그 마음은 평정한 마음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문득 네 가지 편안하게 머물 곳[四安隱住處]을 얻는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고,선악의 업보(業報)가 있다. 나는 이 바른 견해와 서로 호응하는 업을 받아 지니고 구족함을 얻었으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좋은 곳에 가게 될 것이고 나아가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첫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다시 가람 사람들아,‘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으며, 선악의 업보도 없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이 나는 현재 세계에서 이것 때문에 남의 비방을 받지 않는다. 다만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은 칭찬할 것이고, 정진하는 사람과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그게 사실이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아서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두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다시 가람 사람들아,‘만일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악한 것은 짓지 않아야 할 것이니 나는 악을 짓는 일은 생각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스스로 악을 짓지 않았는데 무엇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겠는가?’라고 말한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세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다시 가람 사람들아,‘만일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악한 것은 짓지 않아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두려워하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을 다 범하지 않는다. 항상 모든 세상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혼탁해지지[濁] 않아 기쁘고 즐겁다’고 말한다. 가람 사람들아, 이와 같이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네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람 사람들아,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다.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이다.”

가람 사람들이 세존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네 가지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겠습니다. 네 가지란 무엇이겠습니까?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고, 선악의 업보가 있다. 나는 이 바른 견해와 서로 호응하는 업을 받아 지니고 구족함을 얻었으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좋은 곳에 가게 될 것이고, 나아가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첫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구담이시여,‘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으며, 선악의 업보도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현재 세상에서 이것 때문에 남의 비방을 받지 않는다. 다만 바른 지혜를 가진 사람은 칭찬할 것이고, 정진하는 사람과 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그게 사실이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두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구담이시여,‘만일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악한 일은 짓지 않아야 하니, 나는 악을 짓는 일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스스로 악한 일을 짓지 않았는데 무엇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세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구담이시여,‘만일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반드시 악한 일은 짓지 않아야 한다. 나는 세상에서 두려워하는 것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다 범하지 않는다. 항상 모든 세상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혼탁해지지 않아 기쁘고 즐겁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네 번째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에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네 가지 편안하게 머물 곳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은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저희들은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다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스님께 귀의합니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優婆塞)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가람 사람들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가람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987자이다.

17) 가미니경(伽彌尼經)가(伽)의 음은 거(巨)와 라(羅)의 반절임 제7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난타원(那難陁園)을 유행하실 때에 장촌나림(牆村㮈林)에 계셨다.

그때 아사라천(阿私羅天)의 아들이 있었는데, 가미니(伽彌尼)라고 이름하였다. 얼굴 모양이 준수하였고 안색은 밝고 빛났다. 그는 먼동이 틀 무렵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예배한 다음 물러나 한쪽에 있었다.

아사라천의 아들인 가미니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범지(梵志)는 스스로 잘난 체하면서 약간의 하늘을 섬겼습니다. 그러면서 만일 어떤 중생이 목숨을 마치면 그는 능히 자재하게 좋은 곳으로 오가면서 천상에 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니,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중생으로 하여금 목숨을 마치거든 좋은 곳에 이르게 하거나 천상에 나게 해 주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미니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묻겠으니 아는 대로 대답하라.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마을에 살고 있는 어떤 남녀가 게을러서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不善業道]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성취했다고 하자. 그들이 목숨을 마칠 때 만일 여러 사람이 와서 저마다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하면서 ‘너희들 남녀는 게을러서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다 성취했으니, 너희들은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틀림없이 좋은 곳에 가게 되거나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취했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를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그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좋은 곳에 가게 되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겠느냐?”

가미니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가미니여, 왜냐하면 저 남녀들은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여,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취했는데도, 만일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를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여 축원했다고 해서 그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좋은 곳에 이르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가미니여, 그것은 마치 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깊은 못이 있는데 거기에 어떤 사람이 아주 무거운 돌을 그 물 속에 던져 넣었다고 하자. 만일 여러 사람이 와서 저마다 합장하고 그것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하면서 ‘제발 돌아[石], 물 위로 떠올라다오’라고 이와 같이 말하면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저 아주 무거운 돌이 어찌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합장하고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이것을 인연하여 물 위로 떠오를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게을러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악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인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취했는데도 만일 여러 사람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를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좋은 곳에 가게 되거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른바 이 열 가지 착하지 못한 업도는 악한 업[黑]을 지으면 악한 과보가 있어 저절로 밑으로 내려가 반드시 악한 곳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마을에 살고 있는 어떤 남녀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사음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끊어버려서 바른 견해를 얻었다고 하자. 그들이 목숨을 마칠 때 만일 여러 사람이 와서 저마다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고 축원하면서 ‘너희 남녀들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두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너희들은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틀림없이 나쁜 곳으로 가거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저 남녀들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고, 주지 않는 것은 취하지 않으며,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그런데 어찌 여러 사람이 각각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나쁜 곳으로 가거나 지옥에 태어날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다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그런데 만일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 합장하고 그들을 향해 칭찬하고 찬탄하며 축원했다고 해서, 그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나쁜 곳으로 가거나 지옥에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가미니여, 이른바 이 열 가지 착한 업도는 착한 업[白]을 지으면 착한 과보가 있어 저절로 위로 올라가 반드시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그것은 마치 이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깊은 못이 있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이 소유(酥油)병을 물에 던져 부수면 부서진 병 조각은 밑으로 가라앉고 소유는 위로 떠오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가미니여, 저 남녀들은 정진하여 부지런히 닦고 그러면서 묘한 법을 행하며, 열 가지 착한 업도를 성취하여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모두 여의고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다 끊어 바른 견해를 얻었다. 그들이 목숨을 마칠 때에는 이른바 몸의 추한 빛깔과 4대(大)는 부모에게서 생겼고, 옷과 밥으로 자라났으며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굳세게 견뎌낸 것은 다 부서지는 법이다. 이것은 없어져 다하는 법이며, 떠나고 흩어지는 법이다. 저 목숨이 끝난 뒤에는 혹은 까마귀와 새가 쪼아 먹기도 하고 혹은 호랑이와 승냥이가 먹어 치우기도 하며, 혹은 태우거나 묻혀 모두 티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의 심(心)ㆍ의(意)ㆍ식(識)은 항상 믿음에 훈습되고, 정진과 지식[多聞]과 보시와 지혜에 훈습되었으므로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저절로 위로 올라가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된다.

가미니여, 저 생물을 죽인 사람은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 데 있어서, 동산으로 가는 길[園觀之道]과 위로 오르는 길[昇進之道]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善處之道]이 있다. 가미니여,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견해에 이르기까지를 죄다 여의고 바른 견해를 얻는 데 있어서도 동산으로 가는 길과 위로 오르는 길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이 있다. 가미니여, 다시 동산으로 가는 길과 위로 오르는 길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이 있다. 가미니여, 어떤 것이 또한 동산으로 가는 길과 위로 오르는 길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인가? 이른바 8정도[支聖道]이다. 바른 견해에서부터 나아가 바른 선정[定]에 이르기까지의 이것을 여덟 가지라고 한다. 가미니여, 이것을 또한 동산으로 가는 길과 위로 오르는 길과 좋은 곳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가미니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가비라위(迦毘羅衛)ㆍ가비라바소도(迦毘羅婆簫都)라고도 쓴다. 석가모니께서 탄생하신 곳으로 지금 네팔의 타라이 지방이다. 가비라 선인(仙人)이 있었다 하여 이같이 이름하였다.
2 인도에 있었던 외도(外道)의 일파이며 륵사바(勒沙婆)를 개조(開祖)로 하고 고행(苦行)으로써 열반에 드는 것을 제일 조건으로 한다. 그리하여 항상 몸의 털을 뽑고, 의복을 입지 않으며, 나체(裸體)로 걸식하면서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기에 고행외도(苦行外道)ㆍ나형외도(裸形外道)ㆍ노형외도(露形外道)라고도 한다.
3 해탈이란 마음이 여러 가지 속박에서 풀려남을 말하는데 원시적인 의미에서는 해탈하는 것이 마음이므로 심해탈(心解脫)이라고 한다.
4 6근(根)이 6진(塵)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고 정념(正念)ㆍ정지(正智)에 안주(安住)하는 생활 상태로서 6상주(常住)라고도 한다.
5 좋은 업[善業]을 심어 가꾸는 복전(福田)을 뜻하는데, 여기에서는 3보(寶)를 가리킨다.
6 고려대장경 원문에는 독(禿)자로 되어 있는데, 송(宋)본ㆍ원(元)본ㆍ명(明)본에는 모두 본(本)자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역자도 본(本)자로 번역하였다.
7 팔리어 원래의 뜻은 우정(friendship)이다.
8 3권의 경문 글자 수가 10,247자라고 했는데 여기 기록된 7개 소경의 글자 수를 합해 보면 모두 10,243자로서 여기 기록보다 4자가 부족하다.

중아함경 제4권

18) 사자경(師子經)1) 제8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鞞舍離)2)를 유행하실 때에 미후못[獼猴水] 가에 있는 높은 누각[樓臺]에 계셨다.

그때 비사리에 살고 있는 수많은 려체(麗掣)3) 종족들이 청당(廳堂)에 모여 몇 번이고 부처님을 칭찬하고 찬탄하였으며, 법과 비구 대중들을 칭찬하고 찬탄하였다.

그때 니건(尼乾)의 제자인 사자(師子) 대신도 그 대중들 가운데 있었는데, 대신은 부처님을 가서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려고 하였다. 사자 대신은 즉시 먼저 모든 니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니건에게 말했다.
“여러 어른들이여, 저는 사문 구담을 찾아가 뵙고자 합니다.”

그러자 니건이 사자를 꾸짖어 말했다.
“너는 사문 구담을 보려고 하지 말라. 왜냐하면 사문 구담은 해서는 안 될 일[不可作]4)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의 법[不可作法]을 연설하기 때문이다. 사자야, 만일 해서는 안 될 일을 근본으로 삼는 사람을 보면 그것은 곧 좋지 못하고 이롭지 못하니,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는 것도 좋지 못하고 이롭지 못하다.”

저 비사리에 살고 있는 많은 려체 사람들은 두 번ㆍ세 번 청당에 모여 자주 부처님을 칭찬하고 찬탄하고 법과 비구 대중들을 칭찬하고 찬탄했다. 그때 니건의 제자인 사자 대신도 두 번ㆍ세 번 그 대중들 속에 있었다. 그는 그 때마다 부처님을 가서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고 싶어 했다.

그는 아예 니건에게 하직인사도 하지 않고 바로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렇게 여쭈었다.
“저는 사문 구담께서는 해서는 안 될 일[不可作]을 근본[宗本]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서는 안 될 법을 연설한다고 들었습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그와 같이 해서는 안 될 일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서는 안 될 법을 연설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사문 구담을 비방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그들이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까? 저들이 옳은 법을 말한 것입니까, 법다운 법을 말한 것입니까? 혹은 법다운 법에 대해서 허물이 없으며 따져서 힐난할 것이 없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사자여, 만일 그와 같이 사문 구담은 해서는 안 될 일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서는 안 될 법을 연설한다고 말한다면, 저들은 사문 구담을 비방한 것이 아니다. 저들은 진실을 말한 것이고, 옳은 법을 말한 것이며, 법다운 법을 말했고, 법다운 법에 대해서 허물이 없으며 따져서 힐난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사자여,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하여 사문 구담이 해서는 안 될 일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서는 안 될 법을 연설한다고 비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자여, 다시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서 사문 구담이 해야 할 일[可作]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야 할 법을 연설한다고 비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자여, 다시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기 때문에 실다운 법에 대해서 사문 구담이 단멸(斷滅)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단멸의 법을 연설한다고 비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자여, 다시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서 사문 구담이 미워해야 할 일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미워해야 할 법을 연설한다고 비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자여, 다시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하여 사문 구담이 법률(法律)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법률에 관한 법을 설명한다고 비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자여, 다시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하여 사문 구담이 고행(苦行)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고행의 법을 연설한다고 비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자여, 다시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하여 사문 구담이 태 안에 들지 않는 것[不入於胎]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태 안에 들지 않는 법을 연설한다고 비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자여, 또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하여 사문 구담이 안은(安隱)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안은의 법을 연설한다고 비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자여, 다시 어떤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하여 사문 구담이 해서는 안 될 일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서는 안 될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가 없는가? 사자여, 나는 몸으로 짓는 악한 행을 해서는 안 되고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렇게 한량없이 선하지 않은 더러운 법은 미래 생명의 근본이 되고 번열(煩熱)과 괴로움의 과보가 되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因]이 된다. 사자여, 나는 이 법은 다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어떤 일이 있을 때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하여 사문 구담이 해서는 안 될 일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서는 안 될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사자여, 또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하여 사문 구담이 해야 할 일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야 할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가 없는가? 사자여, 나는 몸의 묘행(妙行)은 지어야 하고, 입과 뜻의 묘행도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렇게 한량없이 선한 법은 즐거움의 결과[果]를 주고 즐거움의 과보[報]를 받게 하며, 좋은 곳에 나게 하고 그리고 긴 수명을 얻게 한다. 사자여, 나는 이 법은 모두 마땅히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을 때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해야 할 일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해야 할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사자여, 또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단멸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단멸의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나는 몸이 짓는 악한 행은 마땅히 단멸해야 하고, 입과 뜻이 짓는 악한 행도 마땅히 단멸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렇게 한량없이 선하지 않은 더러운 법은 미래 생명의 근본이 되고 번열과 괴로움의 과보가 되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된다. 사자여, 나는 이 법은 다 마땅히 단멸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말미암기 때문에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단멸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단멸의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사자여, 또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자.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미워해야 할 일[可惡]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미워해야 할[可憎惡]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나는 몸으로 짓는 악한 행은 미워해야 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도 미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렇게 한량없이 선하지 않은 더러운 법은 미래 생명의 근본이 되고 번열과 괴로움의 과보가 되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因]이 된다. 사자여, 나는 이런 법들은 마땅히 다 미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이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미워해야 할 것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미워해야 할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법률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법률의 법을 연설한다고 여실한 법에 대해서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나는 탐욕과 음욕을 끊기 위하여 법률을 말하고,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기 위하여 법률을 말한다. 사자여, 이렇게 한량없이 선하지 않은 더러운 법은 미래 생명의 근본이 되고 번열과 괴로움의 과보가 되며,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된다. 사자여, 나는 그것을 끊기 위하여 법률을 설한다. 사자여,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을 때 이 일을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법률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법률의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고행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고행의 법을 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어떤 사문(沙門) 범지(梵志)는 옷을 입지 않고 몸을 드러내며, 혹은 손으로 옷을 삼거나 나뭇잎으로 옷을 삼거나, 구슬로 옷을 삼기도 하고, 혹은 병으로 물을 뜨지 않거나, 혹은 국자[魁]로 물을 뜨지 않기도 한다. 칼이나 몽둥이로 노략질해 얻은 밥은 먹지 않고 남을 속여 얻어온 밥도 먹지 않는다. 스스로 가서 공양을 받지 않고 지정된 공양은 받지 않으며,‘오너라. 존자여, 착하다. 존자여, 머물라. 존자여’ 하면서 주는 공양은 받지 않는다. 만일 두 사람의 밥이 있으면 그 중간에서 먹지 않고, 아기 밴 집의 밥은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의 밥은 먹지 않는다. 만일 집에 똥파리가 있어 날아오면 곧 먹지 않는다. 물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 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나쁜 물은 마시지 않는다. 전혀 마실 것이 없으면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 입만 먹고 한 입으로 족하다 하며, 혹은 두 입ㆍ세 입ㆍ 네 입 나아가 일곱 입을 먹고 일곱 입으로 족하다 한다. 혹은 하루에 한 끼를 먹고 한 끼로 족하다 하며, 2일ㆍ3일ㆍ4일ㆍ5일ㆍ6일ㆍ7일 나아가 반 달, 한 달에 한 끼를 먹고도 한 끼로 족하다고 말한다.

혹은 나물을 먹거나 돌피를 먹으며, 혹은 메기장을 먹거나 두꺼운 보리껍질을 먹으며, 혹은 두두라밥[頭頭邏食]5)을 먹거나 거친 밥을 먹으며, 일 없는 곳에 가서 일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나무뿌리를 먹거나 열매를 먹으며,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먹는다.
혹은 잇댄 옷[連合衣]을 가지거나 털옷을 가지며, 혹은 두사옷[頭舍衣]6)을 가지거나 털두사옷을 가지며, 혹은 온전한 가죽옷을 가지거나 좀 뚫어진 가죽옷을 가지거나, 전부 뚫어진 가죽옷을 가진다. 혹은 헝클어진 머리털을 가지거나 땋은 머리털을 가지며, 헝클어지고 땋은 머리털을 다 가지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깎거나 혹은 수염을 깎기도 하고, 혹은 머리와 수염을 다 깎기도 한다. 머리털을 뽑기도 하고 혹은 수염을 뽑기도 하며, 혹은 수염과 머리털을 다 뽑기도 한다.
혹은 꼿꼿이 선 채로 전혀 앉지 않는 이도 있고 무릎을 꿇은 채 걷는 이도 있다. 혹은 가시밭에 누워 가시밭으로 평상을 삼기도 하고, 과일 위에 누워 과일을 평상으로 삼기도 한다. 물을 섬겨 밤낮 없이 손으로 물을 퍼내기도 하고, 불을 섬겨 옛날부터 불을 지펴왔으며, 해와 달을 섬겨 존우대덕(尊祐大德)도 그것을 향하여 합장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은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고 번열(煩熱)의 행을 배우는 것이다.

사자여, 이런 고행에 대해서 나는 없애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사자여, 그러나 이런 고행은 하열하고 천한 업으로서, 지극히 고통스럽고 지극히 고달프며 범인(凡人)이 행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성인의 도가 아니다. 사자여,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저 고행의 법을 알아 번뇌를 끊어 다 없애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침내 다시 나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면 나도 고행을 말하겠다. 사자여,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은 저 고행의 법을 알아 번뇌를 끊어 다 없애고, 그 뿌리를 뽑아 다시 나지 않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나는 고행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고행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고행의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태(胎)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태에 들어가지 않는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미래에 태로 태어날 것을 알아 그것을 다 끊어 없애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침내 다시 나지 않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면, 나는 그에게 태에 들어가지 않는 법을 말해 주리라. 사자여,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미래에 태로 태어날 것을 알아 그것을 다 끊어 없애고 그 뿌리를 뽑아 마침내 다시 나지 않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므로 나는 태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태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또한 남을 위해 태에 들어가지 않는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사자여,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하자.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안은을 근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안은의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는가? 사자여, 족성자(族姓子)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사람은 오직 위없는 범행을 닦아 마친다. 그래서 나는 현재 세상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았으며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을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나는 자신도 안은하고, 또한 다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도 안은하게 한다. 나는 이미 그들을 편안하게 하여 곧 태어나는 법[生法]에 윤회하는 중생을 태어나는 법에서 해탈하게 하고, 늙는 법ㆍ병드는 법ㆍ죽는 법ㆍ걱정하고 슬퍼하는 더러운 법에 헤매는 중생들을 걱정하고 슬퍼하는 더러운 법에서 해탈하게 한다. 사자여, 이것이 이른바 일이 있어 그 일로 말미암아 여실한 법에 대해 사문 구담이 안은을 근본으로 하고 또한 남을 위해 안은의 법을 연설한다고 그를 비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자 대신이 세존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마치 눈 밝은 사람이 엎어진 것을 바로 세워 주고, 덮인 것을 열어 주며, 헤매는 자에게 길을 인도해 주고, 어둠 속을 밝게 비추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문득 빛을 볼 것입니다. 사문 구담도 그와 같아서 저를 위하여 한량없는 방편으로 법을 설명하셔서 이치를 밝혀주고 그 모든 도를 따르게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대중들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좋지 못한 말[馬]을 기르면서 이익 얻기를 바라지만 제 자신만 피로할 뿐 아무 이익도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았습니다. 저 어리석은 니건은 분명히 깨달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알지 못하며, 좋은 밭[良田]을 알지 못하면서 스스로 살피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랫동안 그를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면서 이익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부질없이 괴롭기만 하고 이익은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시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대중들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본래부터 무지하여 저 어리석은 니건을 믿고 존경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그와의 관계를 끊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저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세 번째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대중들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자 대신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사자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413자이다.

19) 니건경(尼乾經) 제9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기수국(釋羇瘦國)을 유행하실 때에 천읍성(天邑城)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니건(尼乾)들은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받는 과보는 다 본래 지었던 원인[因]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과거에 지은 업(業)이 고행(苦行)으로 인해 소멸되고, 새 업을 짓지 않는다면 곧 모든 업은 다 없어지고 만다. 모든 업이 다 없어지면 괴로움도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하게 되면 곧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
나는 그에게 가서 물었다.
‘니건이여, 너희들은 진실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하는가? 사람이 받는 과보는 다 그 원인을 본래 지었기 때문이다. 만일 과거에 지은 업이 고행으로 인해 소멸되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면 모든 업은 다 없어지고 만다. 모든 업이 다 없어지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고 말하는가?’
그는 내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瞿曇)이시여.’

나는 다시 그 니건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있어, 나[我]라는 것은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본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본래부터 악을 짓는다고 생각하는가, 짓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은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끝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끝이 있다면 곧 끝나게 되어, 현세(現世)에서 모든 선하지 않은 것을 끊고, 온갖 선한 법을 얻어 닦아 익혀 증득하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내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나는 다시 니건에게 물었다.
‘너희들이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없어 나는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 하고 나는 본래부터 없는 것이라 하며, 나는 본래부터 악을 지었다 하고 악을 짓지 않았다 하며, 내가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은 끝이 있다고 하고 끝이 없다고 하며, 만일 끝이 있다면 곧 끝나게 되어 현세에서 모든 선하지 않은 것을 끊고, 온갖 선한 법을 얻어 닦아 익혀 증득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받는 과보는 다 본래 지은 원인[因]이 있기 때문인데, 만일 과거에 지었던 업이 고행으로 인해 소멸되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면 모든 업이 다 없어진다. 그리하여 모든 업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고 말한다. 니건이여, 너희들이 만일 깨끗한 지혜가 있어, 나는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하거나 나는 본래부터 없는 것이라고 하며, 나는 본래부터 악을 짓는다 하고, 악을 짓지 않는다 하며, 내가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은 끝이 있다고 하고 끝이 없다고 하며, 만일 끝이 있다면 곧 끝나게 되어 현세에서 모든 선하지 않은 것을 끊고, 온갖 선한 법을 얻어 닦아 익혀 증득하게 된다면 니건이여, 너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받는 과보는 다 본래 지었던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과거에 지었던 업이 고행으로 인해 소멸되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는다면 모든 업은 다 없어지고 만다. 모든 업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

니건이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몸에 독화살을 맞은 것과 같다. 독화살을 맞음으로 말미암아 곧 심한 고통을 느낀다. 그 친척들은 가엾게 생각하고 민망히 여겨, 그에게 이익을 주고 편안하게 해주고자 하여, 곧 화살을 잘 뽑는 의사를 부를 것이다. 의사가 와서 즉시 잘 드는 칼로써 살을 째기 시작할 것이니, 살을 째기 때문에 다시 심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살을 짼 뒤에 살촉을 찾으면, 그 살촉을 찾는 동안에는 더 심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살촉을 발견한 뒤에 곧 그것을 뽑아내면 살촉을 뽑아냄으로 말미암아 다시 심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살촉을 뽑아낸 뒤에도 작은 상처를 싸매면 상처를 싸맬 때 다시 심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살촉을 뽑아 낸 뒤에는 힘을 얻고 걱정이 없어지며, 모든 감관이 무너지지 않고 회복되어 옛날과 같이 될 것이다.

니건이여, 그 사람은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있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전날 독화살을 맞았다. 독화살을 맞았기 때문에 곧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나의 친척들은 나를 보고 가엾게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나를 유익하게 해주고 안은하게 해주기 위하여 곧 화살을 잘 뽑는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와서 잘 드는 칼로 나를 위해 살을 쨌는데, 살을 쨀 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살을 짼 뒤에는 살촉을 찾았는데, 살촉을 찾을 때에는 다시 더 심한 고통을 느꼈다. 살촉을 찾은 뒤에는 곧 뽑아냈는데 뽑아 낼 때 다시 심한 고통을 느꼈다. 살촉을 뽑아 낸 뒤에는 작은 상처를 싸맸는데 상처를 싸맬 때 다시 심한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살촉을 뽑아낸 뒤에는 힘을 얻고 걱정이 없어졌으며, 모든 감관이 무너지지 않고 회복되어 옛날과 같이 되었다.〉

이와 같이 니건이여, 만일 너희들이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있어, 나는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 하고 나는 본래부터 없는 것이라고 하며, 나는 본래부터 악을 짓는다고 하고 혹은 악을 짓지 않는다고 하며,내가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은 끝이 있다고 하고 혹은 끝이 없다고 하며, 만일 끝이 있다면 곧 끝나게 되어 현세에서 선하지 않은 것을 끊고, 온갖 선한 법을 얻어 닦아 익혀 증득하게 된다면 니건이여, 너희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이 받는 과보는 다 본래 지었던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과거에 지었던 업이 고행으로 인해 소멸되고, 새 업을 짓지 않는다면 곧 모든 업은 다 없어지고 만다. 모든 업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 니건들은 내게 ‘구담이시여,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 나는 니건에게 물었다.
‘만일 니건들이 으뜸가는 것을 끊는 으뜸가는 고행을 행하면, 그때 모든 니건들은 으뜸가는 고통이 생기겠는가?’
그들은 내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중간 정도의 것을 끊는 중간 정도의 고행을 행하면, 그때 니건들은 중간 정도의 고통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최하의 것을 끊는 최하의 고행을 행하면 그때 니건들은 최하의 고통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이것이 이른바 니건들이 으뜸가는 것을 끊는 고행을 행하면, 그때 모든 니건들은 곧 최상의 고통을 느끼고, 중간 정도의 것을 끊는 중간 정도의 고행을 행하면, 그때 니건들은 곧 중간 정도의 고통을 느끼며, 최하의 것을 끊는 최하의 고행을 행하면, 그때 니건들은 곧 최하의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만일 니건들로 하여금 으뜸가는 것을 끊는 으뜸가는 고행을 행하게 하면, 그때 모든 니건들은 으뜸가는 고통이 그쳐 쉬고, 중간 정도의 것을 끊는 중간 정도의 고행을 행하게 하면, 그때 니건들은 중간 정도의 고통이 그쳐 쉬며, 최하의 것을 끊는 최하의 고행을 행하게 하면, 그때 니건들은 최하의 고통이 그쳐 쉬게 될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고서 극심한 고통과 매우 무거운 고통이 그쳐 쉬게 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니건들은 곧 현세에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다만 니건들은 어리석음에 덮이고 어리석음에 묶여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이 받는 과보는 다 본래 지었던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과거에 지은 업이 고행으로 인해 멸하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면 곧 모든 업은 다 없어지고 만다. 모든 업이 다 없어지면 괴로움이 다하게 되고, 괴로움이 다해 마치게 되면 괴로움이 끝나게 된다.〉’
내가 이렇게 물었을 때 니건들은 내게 대답하기를 ‘구담이시여,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고,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또 나는 모든 니건들에게 물었다.
‘니건들아, 만일 즐거움의 과보를 받을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혹은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괴로움의 과보로 만들 수 있겠는가?’
그들이 내게 대답했다.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모든 니건들아, 만일 괴로움의 과보를 받을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혹은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즐거움의 과보로 만들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니건들아, 만일 현세에서 과보를 받을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뒷세상의 과보로 만들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니건들아, 만일 후세에 과보를 받을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현세의 과보로 만들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니건들아, 만일 인연이 성숙되지 않은 과보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인연이 성숙된 과보로 만들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니건들아, 만일 인연이 성숙된 과보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니건들아, 이것이 이른바 즐거운 과보의 업이 있을 때, 그 업의 원인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괴로움의 과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니건들아, 이것이 이른바 괴로운 과보의 업이 있을 때, 그 업의 인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즐거움의 과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니건들아, 현세의 과보가 되는 업이 있으면 그 업의 원인[因]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후생의 과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니건들아,후생의 과보가 되는 업이 있으면 그 업의 원인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현세의 과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니건들아, 인연이 성숙되지 않은 업이 있으면, 그 업의 인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인연이 성숙된 과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니건들아, 인연이 성숙된 과보의 업이 있으면 그 업의 인을 끊거나 고행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돌려 다른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니건들아, 허망한 방편으로 부질없이 끊으려 하지만 얻는 것이 없다.’

그러자 그 니건들이 곧 내게 알렸다.
‘구담이시여, 저희에게는 존경받는 스승이 있는데 그 이름은 친자(親子) 니건이라고 합니다. 그는 〈여러 니건들이여, 너희들이 만일 본래 악한 업을 지었더라도 그 업은 이 고행으로 말미암아 다 멸해 없앨 수 있다. 만일 현재의 몸과 입과 뜻을 잘 보호하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악한 업을 짓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또 니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그 존경받는 스승인 친자 니건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가?’
그들은 내게 대답했다.
‘구담이시여, 우리는 존경받는 스승인 친자 니건을 믿고 있으며 의심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시 그 니건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가지의 법과 현세의 두 가지 과보가 있다. 다섯 가지의 법이란 믿음ㆍ즐거워함ㆍ들음ㆍ생각함ㆍ보고 잘 관찰함이다. 니건들아, 사람이 스스로 허망한 말을 하면 이것을 믿어야 하고 즐거워해야 하며, 들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며, 보고 잘 관찰해야 하겠는가?’
그들이 내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나는 또 니건들에게 말하였다.
‘이 허망한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하고 즐거워해야 하며, 들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며, 잘 관찰해야 하겠는가? 이른바 사람이 스스로 허망한 말을 하면서 〈믿음이 있고 즐거움이 있으며, 들음이 있고 생각함이 있으며, 잘 관찰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만일 니건들이 이렇게 말한다면 그는 법다운 것 가운데에서 다섯 가지 꾸짖음을 받고 미움을 받을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제 이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본래 지었던 원인[因]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니건들은 본래 악한 업을 지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런 이유로 말미암아 오늘날 저렇게 지극히 혹독한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첫 번째 니건들이 미움을 받을 만한 것이다.
또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모임에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니건들은 본래 나쁘게 모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로 말미암아 니건들이 오늘날 저렇게 지극히 혹독한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두 번째 니건들이 미움을 받을 만한 것이다.
또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목숨을 위하는 데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니건들은 본래 나쁘게 목숨을 위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로 말미암아 니건들이 오늘날 지극히 혹독한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세 번째 니건들이 미움을 받을 만한 것이다.

또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견해[見]에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니건들은 본래 나쁜 견해[惡見]를 가졌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로 말미암아 니건들이 오늘날 지극히 혹독한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네 번째 니건들이 미움을 받을 만한 것이다.
또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존우(尊祐)의 지음에 원인한다. 만일 그렇다면 니건들은 본래 나쁜 존우였다. 왜냐하면 그런 이유로 말미암아 니건들이 오늘날 지극히 혹독한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다섯 번째 니건들이 미움을 받을 만한 것이다.
만일 니건들이 본래 지은 악한 업과 나쁜 모임과 나쁘게 목숨을 위하는 것과 나쁜 견해와 나쁜 존우로 인하여 나쁜 존우를 만나는 원인이 되었다면, 그런 이유로 니건들이 오늘날 지극히 혹독한 괴로움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저 일로 인하여 니건들이 미움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가지고 너희들을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천 및 다른 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항복받지 못하고, 그것을 더럽힐 수 없으며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은 법을 가지고 너희들을 위해 설명한다면,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ㆍ악마ㆍ범천 및 다른 세간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그것을 항복받지 못하고, 그것을 더럽힐 수 없으며, 제압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으로 짓는 선하지 않은 업은 버리고 선한 업을 닦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선하지 않은 업은 버리고 선한 업을 닦으면, 그는 미래의 괴로움에 대해서 곧 자기는 미래의 괴로움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법답게 즐거움을 얻어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는 괴로움의 원인[因]인 행욕(行欲)을 끊으려 하고, 혹은 괴로움의 원인인 행사욕(行捨欲)을 끊으려고 할 것이다. 그가 만일 괴로움의 원인인 행욕(行欲)을 끊으려 하면 곧 그 행욕을 닦고, 이미 끊었으면 괴로움은 곧 다 없어질 것이다. 그가 만일 괴로움의 원인인 행사욕(行捨欲)을 끊고자 하면 곧 그 행사욕을 닦고, 이미 끊었으면 괴로움은 곧 다 없어질 것이다.

만일 그 비구가 곧 짓고 행한 대로 선하지 않은 법이 생겨나고 선한 법이 멸하는데,‘만일 스스로 괴로움을 끊으면 선하지 않은 법은 소멸되고 선한 법은 생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곧 스스로 괴로움을 끊을 것이고 스스로 괴로움을 끊어 마치면, 선하지 않은 법은 소멸되고 선한 법은 생겨 더 이상 괴로움을 끊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비구여, 본래 지은 일은 그 이치가 이미 성취되었는데, 만일 다시 괴로움을 끊겠다고 한다면 그런 이치는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구여, 그것은 마치 화살 만드는 사람이 칼을 사용하여 화살을 다듬는 것과 같아서 그 화살이 곧아지고 나면 더 이상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본래 하고자 했던 일이 이미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렇게 생각한다.
‘짓고 행한 대로 선하지 않은 법이 생겨나고 선한 법이 멸한다. 만일 스스로 괴로움을 끊으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이 생길 것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어야겠다.’
그래서 곧 스스로 괴로움을 끊고 스스로 괴로움을 끊어 마치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이 생겨 더 이상 괴로움을 끊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이 이미 성취되었는데, 만일 다시 괴로움을 끊는다면 그런 이치는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구여,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여자를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애착[染着]하는 것과 같다. 그는 그 여자를 공경을 다하여 대했는데, 그 여자는 다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절하게 인사하고 서로 오가고 같이 잠을 잔다면, 그 사람은 이 일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에 고뇌가 생겨 매우 걱정하고 슬퍼하겠는가?”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이냐? 그 사람은 여자를 사랑스럽게 생각하고 애착하여 지극히 공경을 다하여 대했는데 그 여자는 다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절하게 인사하고 서로 오가고 같이 잠을 잔다면 어찌 그 사람의 몸과 마음에 고뇌와 걱정과 슬픔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구여, 만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나는 부질없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여 그 여자를 공경을 다하여 대했는데, 그 여자는 다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절하게 인사하고 서로 오가고 같이 잠을 자다니, 내 이제 차라리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걱정하는 것으로 인해 저 여자를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애착하는 것을 끊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한다면, 그는 그 뒤로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걱정하는 것으로 인해 곧 그 여자를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애착하는 것을 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여자로 하여금 일부러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서로 친절히 인사하게 하며 서로 오가고 같이 잠을 자게 한다면, 그 사람이 그 이후에도 몸과 마음에 과연 다시 고뇌하고 매우 걱정하며 슬퍼하겠는가?”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 여자에 대해서 더 이상 사랑스럽게 생각하여 애착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혹 그 여자로 하여금 일부러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서로 친절히 인사하게 하며, 서로 오가고 같이 잠을 자게 하여 그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몸과 마음에 고뇌를 내어 매우 걱정하고 슬퍼하게 하려 해도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아서 비구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짓고 행한 대로 선하지 않은 법이 생겨나고 선한 법이 소멸한다. 만일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으면 선하지 않은 법은 소멸되고 선한 법은 생길 것이다. 나는 이제 차라리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으리라.’
그래서 그는 곧 스스로 그 괴로움을 끊을 것이니, 스스로 괴로움을 끊고 나면 선하지 않은 법은 멸하고 선한 법은 생겨 더 이상 괴로움을 끊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이 이미 성취되어 다시 괴로움을 끊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원인이 있어 그 괴로움을 끊는다면 나는 이미 끊었다. 그런데 나는 욕(欲)에 있어 아직 예전과 같아 끊지 못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욕을 끊기에 힘쓰리라.’
그래서 그는 곧 욕을 끊기에 힘쓰고, 욕을 끊기 위하여 멀리 떠나 혼자 있으면서 일 없는 곳에 사는데, 나무 밑이나, 아무도 없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이나, 바위나 돌집이나 맨땅에 짚을 깔아 만든 자리나 숲속으로 가거나 혹은 무덤 사이로 간다. 그는 이미 일 없는 곳에 살면서 나무 밑이나, 아무도 없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니사단을 깔고 가부(加趺)를 맺고 앉아 바른 몸과 바른 소원을 가지고, 비뚤어진 생각으로 향하지 않으며 탐욕[貪伺]을 끊어 없애 마음에 다툼이 없다. 남의 재물과 모든 생필품을 보고도 탐욕을 일으켜 내 소유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탐욕에 대해서 그 마음을 깨끗이 버린다. 이와 같이 그는 성냄[瞋恚]ㆍ혼침[睡眠]ㆍ들뜸[掉悔]을 없애고, 의심을 끊고 의혹을 대해서 모든 선한 법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의혹(疑惑)에 대해서 그 마음을 깨끗이 버린다.

그는 이미 5개(蓋)7)와 마음의 더러움[心穢]과 지혜의 미약함[慧羸]을 끊고,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선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마침내는 제4선(禪)에 이르러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와 같은 선정[定]을 얻어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 더러움도 없고 번뇌도 없게 되며, 유연하게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누진지통(漏盡智通)을 향해 나아가 그것을 증득한다. 그는 곧 이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集]에 대해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滅]에 대해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한 이 누(漏:煩惱)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누의 발생에 대해 알며, 이 누의 소멸에 대해 알며,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안 뒤에는 곧 욕루(欲漏)에서 심해탈(心解脫)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심해탈하며, 해탈해 마치면 곧 해탈한 줄을 안다. 그래서 생(生)은 이미 다했고 범행(梵行)은 이미 섰으며, 해야 할 일은 마쳤고, 다시는 생명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여래는 이와 같이 바르게 심해탈하여, 다섯 가지 칭예(稱譽)를 얻고, 법다워서 다툼이 없으며, 사랑할 만하고 존경할 만하게 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가 되는가? 저 중생들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모두가 본래 지었던 원인[因]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부터 묘한 업이 있었던 것이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 거룩한 무루(無漏)의 즐거움과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물러서 즐거운 느낌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첫 번째 칭예(稱譽)이다. 또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모임[合會]으로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 미묘한 모임이 있었던 것이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 거룩한 무루의 즐거움과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물러서 즐거운 감각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두 번째 칭예이다. 또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목숨을 위하는 데에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부터 미묘하게 목숨[命]을 위하는 것이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물러서 즐거운 감각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세 번째 칭예이다.

또 중생이 받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견해[見]로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 미묘한 견해가 있었던 것이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 거룩한 무루의 즐거움과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물러서 즐거운 감각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네 번째 칭예이다.
또 중생이 받는 업은 다 존우(尊祐)의 지음으로 말미암는다. 만일 그렇다면 여래는 본래부터 미묘한 존우였던 것이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 거룩한 무루의 즐거움과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물러서 즐거운 감각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여래가 얻은 다섯 번째 칭예이다.
이것을 여래 본래의 미묘한 업ㆍ미묘한 모임ㆍ미묘한 목숨을 위함ㆍ미묘한 견해ㆍ미묘한 존우라 하고 미묘한 존우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 거룩한 무루의 즐거움과 고요하고 편안하게 머물러서 즐거운 감각을 얻는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래는 지금 세상에서 다섯 가지 칭예를 얻었다.

다섯 가지 인연이 있어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음욕에 얽매이면 음욕에 얽매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 이와 같이 성냄[瞋恚]ㆍ수면(睡眠)ㆍ들뜸[掉悔]도 다 그러하며, 또한 의혹(疑惑)에 얽매이면 의혹에 얽매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을 다섯 가지 인연이 있어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을 내는 것이라고 한다.
다섯 가지 인연이 있어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사라진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만일 음욕에 얽매이면 음욕에 얽매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기지만, 음욕의 얽매임을 없애고 나면 걱정과 괴로움이 이내 사라진다. 음욕에 얽매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기지만 현재 세상에서 최후의 경지[究竟]를 증득하면 번뇌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냄ㆍ수면ㆍ들뜸도 그러하며, 만약 의혹에 얽매이면 의혹에 얽매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기지만, 의혹의 얽매임을 없애고 나면 걱정과 괴로움은 이내 사라진다. 의혹에 얽매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걱정과 괴로움이 생기지만 현재 세상에서 최후의 경지를 증득하면 번뇌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보는 것이다. 이것을 다섯 가지 인연으로써 마음의 걱정과 괴로움을 멸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현재 세상에서 최후의 경지를 증득하면 번뇌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보는 것이다. 어떤 것이 곧 현재 세상에서 최후의 경지를 증득하면 번뇌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 그것은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정도[支聖道]가 그것이니, 바른 견해[正見]에서부터 나아가 바른 선정[正定]까지이다. 이것을 여덟 가지라고 한다. 이것이 곧 현재 세상에서 최후의 경지를 증득하면 번뇌도 없고 뜨거움도 없으며,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않는 것으로서, 그것은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보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니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600자이다.

20) 파라뢰경(波羅牢經) 제10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리수국(拘麗瘦國:拘利國)을 유행하실 때에 큰 비구 대중들과 함께 북촌(北村)에 이르러, 북촌의 북쪽에 있는 시섭화림(尸攝惒林)에 계셨다.

그때 파라뢰(波羅牢) 가미니(伽彌尼)는 다음과 같이 들었다.
‘사문 구담(瞿曇)이라는 석가 종족의 아들은 석가 종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도를 배우고, 구리수를 유행하면서 큰 비구 대중들과 함께 여기 북촌에 이르러, 그 마을 북쪽에 있는 시섭화림에 계신다. 저 사문 구담은 큰 명호가 있어 시방(十方)에 두루 알려졌다. 사문 구담은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로 호칭된다. 그는 이 세간ㆍ하늘ㆍ악마ㆍ범천ㆍ사문 범지 등, 인간 세상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만일 설법하면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좋아, 이치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여 범행을 드러내 나타낸다. 만일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뵙고 존중하고 예배하고 공양하여 섬기면 빠르게 좋은 이익을 얻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나도 가서 사문 구담을 뵙고 예배하고 공양하며 섬겨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파라뢰 가미니는 소문을 듣고 북촌에서 나와 북으로 가서 시섭화림에 이르러 세존을 뵙고 예배하고 공양하며 섬기려고 하였다. 파라뢰 가미니가 멀리서 숲속에 계시는 세존을 보니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마치 별 가운데 달과 같았고, 빛나고 밝은 모습은 금산(金山)과 같았다. 상호를 구족하였고 위신(威神)이 위풍당당했으며, 모든 감각기관[根]은 고요하고 안정되어 있었으며 가려진 것이 없었다. 게다가 마음을 제어하는 능력까지 성취하여 마음이 그쳐 고요하고 잠잠하였다.

파라뢰 가미니는 멀리서 부처님을 바라본 뒤에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한쪽으로 물러나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저는 ‘사문 구담께서는 환(幻)을 환으로 알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이와 같이 ‘사문 구담께서는 환을 환으로 알고 계신다’고 말한다면 저들이 사문 구담을 비방하는 것이 아닙니까? 저들이 진실을 말한 것입니까? 저들이 옳은 법을 말한 것입니까? 저들이 법다운 법을 말한 것입니까? 법다운 것이라 허물이 없고 힐난할 것이 없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미니여, 만일 그와 같이 ‘사문 구담께서는 환을 환으로 알고 계신다’고 말한다면, 저들은 사문 구담을 비방한 것이 아니며, 저들은 진실을 말한 것이고, 옳은 법을 말한 것이며, 법다운 법을 말한 것이니, 저들은 법에 대해 아무 잘못도 없고 또한 힐난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가미니여, 나는 저 환에 대해서 알지만 내 자신이 환자(幻者)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 사문 범지들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고 하시지만, 저는 저들이 ‘사문 구담께서는 환을 환으로 알고 계신다’고 말한 것을 믿지 않습니다.”

“가미니여, 만일 환을 안다면 이것이 곧 환자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선서(善逝)이시여.”

“가미니여, 네 자신이 잘못 알고서 나를 비방하지 말라. 만일 나를 비방하면 곧 스스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거기에는 다툼이 있고 범함이 있으며, 성현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고 또 큰 죄를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로 네가 말한 것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너는 구리수국(拘麗瘦國)에 군졸이 있다는 말을 들었느냐?”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구리수국은 이 군졸들을 어디에 이용하겠느냐?”

“구담이시여, 보통 도적을 죽이는 데 이용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구리수국은 이 군졸을 기르는 것입니다.”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구리수국의 군졸은 계율이 있겠느냐, 없겠느냐?”

“구담이시여, 만일 세상에 계율의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구리수국의 군졸보다 더한 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리수국의 군졸은 지극히 금지된 계율을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 행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가미니여, 네가 이렇게 보고 이렇게 안다면 나는 너에게 더 이상 묻지 않겠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너 가미니에게 묻기를 ‘파라뢰 가미니여, 구리수국의 군졸들은 지극히 금지된 계율을 범하고 단지 악한 법만 행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이 일로 말미암아 파라뢰 가미니가 극히 금지된 계율을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 행하는가’라고 그렇게 말할 때 그것을 진실이라고 인정하겠느냐?”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왜냐하면 구리수국의 군졸들과는 견해도 다르고 욕망도 다르며 소원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구리수국의 군졸들은 지극히 금지된 계율을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 행하지만, 저는 계율을 끝까지 지니고 악한 법은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가미니여, 너는 구리수국의 군졸들이 지극히 금지된 계율을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 행하는 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해 너희들마저 금지된 계율을 범하고 오직 악한 법만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여래는 어찌하여 환을 알면서도 스스로 환자(幻者)가 아니라고 하는가? 왜냐하면 나는 환을 알고 환의 사람을 알며, 환의 과보를 알고 환을 끊을 줄 알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나는 또 생물을 죽이는 것을 알고 생물을 죽이는 사람을 알며, 생물을 죽인 과보를 알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을 줄 안다. 가미니여, 나는 또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알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사람을 알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한 과보를 알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을 끊을 줄 안다. 가미니여, 나는 또 거짓말을 알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알며, 거짓말로 인해 생겨나는 과보를 알고 거짓말을 끊을 줄 안다. 가미니여, 나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다. 만일 ‘사문 구담은 환을 안다. 그러니 그는 곧 환자이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마음ㆍ그의 욕망ㆍ그의 소원ㆍ그의 지식ㆍ그의 생각ㆍ그가 관찰하는 것을 아는데 마치 팔을 굽혔다 펴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다 알 것이다. 그리고 그는 목숨이 끝나면 지옥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

파라뢰 가미니는 이 말을 듣자, 두려워 떨면서 온몸에 털이 곤두섰다.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부처님 발에 대어 예배한 뒤에 길게 꿇어앉아 합장하고 세존께 여쭈었다.
“잘못을 뉘우치겠습니다. 구담이시여, 죄를 고백하겠습니다. 선서시여, 저는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으며,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며 나쁜 사람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망령되게 사문 구담이 곧 환자(幻者)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구담이시여, 제가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알아 드러내 밝히겠으니 부디 받아 주십시오. 저는 잘못을 뉘우친 뒤로는 꼭 지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 가미니여, 너는 실로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으며,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며 나쁜 사람인 것 같다. 왜냐하면 너는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에게 망령되게도 환자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능히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알아 드러내 밝혔으며, 꼭 지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와 같으니 가미니여, 만일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알아 드러내 밝히며, 꼭 지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면 곧 거룩한 법이 점점 자라나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그때 파라뢰 가미니는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세존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떤 사문 범지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생물을 죽이면 그는 곧 현재 세상에서 그 과보를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고통이 생긴다. 만일 주지 않는 것을 취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그는 곧 현재 세상에서 그 과보를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고통이 생긴다.’
사문 구담이시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미니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물을 것이니 너는 아는 대로 대답하라. 가미니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마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있는데, 머리에는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스스로 즐기고, 오직 기생들만 데리고 놀기를 마치 왕과 같이 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가 ‘이 사람은 본래 어떤 일을 하였기에 이제 머리에 화만(華鬘)을 쓰고 온갖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스스로 즐기며 오직 기생들만 데리고 노는 것을 왕처럼 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혹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왕을 위하여 원수를 죽였다. 왕은 기뻐하며 곧 그에게 상을 주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머리에 화만을 쓰고 여러 가지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스스로 즐기며, 기생들만 데리고 노는 것이 마치 왕과 같다’고 대답했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없는가?”

“보았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리고 과거에도 들었고 현재에도 들었습니다.”

“가미니여, 또 왕이 죄인을 잡는 것을 보면 두 손을 뒤로 묶어 가지고 북을 치고 외치면서 남쪽 성문을 나가, 높은 나무 밑에 앉힌 다음 그 머리를 베어 나무에 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무슨 죄로 왕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왕가의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죽였다. 그래서 왕이 이렇게 사형을 집행하게 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보았습니다. 구담이시여, 과거에도 들었고 현재에도 들었습니다.”

“가미니여,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이와 같은 일을 보고 말하기를,‘만일 생물을 죽이면 그는 곧 현재 세상에서 과보를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고 한다면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인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그가 거짓말을 했다면 너는 그 말을 믿겠는가?”

“믿지 않을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해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가미니여.”

그리고 다시 물으셨다.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이 머리에는 화만을 쓰고 온갖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스스로 즐기며, 기생들만 데리고 노는 것이 마치 왕과 같다고 하자.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본래 무슨 일을 하였기에 지금 머리에는 화만을 쓰고 온갖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스스로 즐기며, 기생들만 데리고 노는 것이 마치 왕과 같은가?’ 하고 물었을 때, 혹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다른 나라에서 주지 않는 물건을 훔쳐왔다. 그래서 이 사람은 머리에 화만을 쓰고 온갖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스스로 즐기며,기생들만 데리고 노는 것이 마치 왕과 같다’고 대답했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가미니가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구담이시여, 과거에도 들었고 현재에도 들었습니다.”

“가미니여, 또 왕이 죄인을 잡은 것을 보면 두 손을 뒤로 묶어가지고 북을 치고 외치면서 남쪽 성문을 나가, 높은 나무 밑에 앉히고 그의 목을 베어 나무에 단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무슨 죄로 왕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왕국에서 주지 않는 것을 취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사형을 집행하게 하였다’라고 대답하였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가미니가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구담이시여, 과거에도 들었고 현재에도 들었습니다.”

“가미니여, 혹 어떤 사문 범지가 이런 일들을 보고,‘만일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면 그는 현재 세상에서 과보를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고통이 생긴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인가, 거짓말을 한 것인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그가 거짓말을 했다면 너는 그것을 믿겠는가?”

“믿지 않겠습니다, 구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해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가미니여.”

다시 물으셨다.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약 마을에 사는 어떤 사람이 머리에는 화만을 쓰고 온갖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스스로 즐기며, 기생들만 데리고 노는 것이 마치 왕과 같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본래 무슨 일을 하였기에 지금 머리에 화만을 쓰고 온갖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스스로 즐기며 기생들만 데리고 노는 것이 마치 왕과 같은가?’ 하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기생을 데리고 잘 희롱하며 재미있게 웃는다. 그는 거짓말로 왕을 기쁘게 하였고 왕은 기쁜 나머지 곧 그에게 상을 주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머리에 화만을 쓰고 온갖 향을 몸에 바르고, 광대놀이를 하면서 노래하고 춤추고 스스로 즐기며 기생들만 데리고 노는 것이 마치 왕과 같다’고 대답하였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가미니가 대답하였다.
“보았습니다. 구담이시여, 과거에도 들었고 현재에도 들었습니다.”

“가미니여, 또 왕이 죄인을 잡는 것을 보면, 몽둥이로 쳐 죽이고 나무함에 담아 덮개 없는 수레에 싣고, 북쪽 성문으로 나가 깊은 구덩이 속에 버린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무슨 죄로 왕에게 죽임을 당했는가?’ 하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이 ‘이 사람은 왕 앞에서 거짓으로 증언했다. 그는 거짓말로 왕을 속였기 때문에 왕이 잡아다가 이렇게 벌하라고 한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가미니여, 너는 이런 일을 보고 이런 일을 들은 적이 있는가?”

“보았습니다. 구담이시여, 과거에도 들었고 현재에도 들었습니다.”

“가미니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문 범지가 이런 일들을 보고 말하기를,‘만일 거짓말을 하면 그는 곧 현재에 과보를 받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걱정과 괴로움이 생긴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그는 진실을 말한 것인가, 거짓을 말한 것인가?”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만일 그가 거짓말을 했다면 너는 그것을 믿겠는가?”

“믿지 않겠습니다, 구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해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가미니여.”

이에 파라뢰 가미니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입은 옷 한 자락을 벗어 메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 채, 세존께 여쭈었다.
“참으로 특이하십니다. 구담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지극히 미묘하여 잘 비유하시고 잘 증명하셨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북촌 가운데 높은 집을 짓고 평상과 자리를 펴고 물그릇을 두고 큰 등불을 켜 놓았습니다. 만일 정진하는 사문 범지가 와서 높은 집에서 자면, 저는 제 힘이 닿는 대로 그가 필요한 것을 대주었습니다. 네 명의 논사(論士)가 있었는데 그들의 견해가 각각 다르고, 또한 서로 어긋났지만 저의 높은 집으로 모두 모였습니다. 그 가운데 한 논사가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시도 없고 재(齋)도 없으며 주문[呪說]도 없다. 선과 악의 업도 없고, 선업과 악업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으며,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 세상 좋은 곳으로 가거나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그런 진인(眞人)도 없다.’

둘째 논사는 바른 견해가 있어 첫째 논사가 알고 본 것과 달리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시도 있고 재도 있으며 또한 주문도 있다. 선업도 있고 악업도 있으며, 선업의 과보도 있고 악업의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다 있으며,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다. 세상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진인도 있다.’

셋째 논사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도 짓고 남을 시켜 짓게 하며, 스스로도 끊고 남을 시켜 끊게 하며, 스스로도 삶고[煮] 남을 시켜 삶게 하거나, 시름하고 번뇌하며, 걱정하고 슬퍼하며, 가슴 치고 괴로워하며, 소리 내어 울거나, 어리석고 무지하여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술을 마시거나, 담을 뚫고 창고를 열며, 남의 동네에 가서 겁탈한다. 마을을 해치고 고을을 부수며 성을 부수고 나라를 멸망시킨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두고 악을 짓는다고 하지 않는다. 또 머리를 깎는 칼처럼 잘 드는 쇠바퀴로써 이 땅의 일체 중생을 하루 동안에 쪼개고 끊고 베고 토막 내며, 벗기고 찢고 자르고 썰어 한 살점을 만들고 한 푼[分]ㆍ한 무더기를 만들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은 악한 업도 없고 또 악업의 과보도 없다. 항하강 남쪽 언덕에서 죽여서 끊고 삶아 가지고 가서, 항하강 북쪽 언덕에서 보시하고 재를 지내며 주문을 외우고 오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은 죄도 없고 복도 없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은 죄와 복의 과보도 없다. 물건을 보시하고 마음을 제어하여 지켜 보호하고 거두어 가지며, 칭찬해 기리고 편안하고 이롭게 하며, 은혜로 베풀고 좋은 말을 쓰며, 이익되게 하고 또 고루 이익되게 하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은 복도 없고 이것으로 말미암은 복의 과보도 없다.’

넷째 논사는 바른 견해가 있어, 셋째 논사가 알고 본 것과는 반대로 그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스로 짓고 남을 시켜 짓게 하며, 스스로 끊고 남을 시켜 끊게 하며, 스스로 삶고 남을 시켜 삶게 하거나, 시름하고 번뇌하며 걱정하고 슬퍼하거나,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며 소리 내어 운다거나,어리석고 무지하여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술을 마시거나 담을 뚫고 창고를 열며, 남의 동네에 가서 겁탈하거나, 마을을 해치고 고을을 부수며 성을 부수고 나라를 멸망시킨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진실로 악을 짓는 사람이라고 한다. 또 머리를 깎는 칼처럼 잘 드는 쇠바퀴로써, 이 땅의 일체 중생을 하루 동안에 쪼개고 끊으며 베고 토막 내며 벗기고 찢고 자르고 썰어 한 살점을 만들고, 한 푼ㆍ한 무더기로 만들면, 이것으로 말미암은 악업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은 악업의 과보가 있다. 항하강 남쪽 언덕에서 죽여서 끊고 삶아 가지고 가서, 항하강 북쪽 언덕에 보시하고 재를 지내며 주문을 외우고 오면, 이것으로 말미암아 죄도 있고 복도 있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은 죄와 복의 과보가 있다. 물건을 보시하고, 마음을 제어하여 지켜 보호하고 거두어 가지며, 칭찬해 기리고 편안하고 이롭게 하며, 은혜로 베풀고 좋은 말을 쓰며, 이익되게 하고 또 고루 이익되게 하면, 이것으로 말미암은 복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은 복의 과보도 있다.’
구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고 문득 다음과 같이 의혹을 내었습니다.
‘이 사문 범지는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미니여, 너는 의혹을 내지 말라. 왜냐하면 의혹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곧 망설임이 있기 때문이다. 가미니여, 너는 네 자신이 깨끗한 지혜도 없으면서 후세(後世)가 있다고 하기도 하고 후세가 없다고 하기도 하느냐? 가미니여, 너는 또 깨끗한 지혜가 없으면서 지은 바를 악이라 하고 지은 바를 선이라 하느냐? 가미니여, 법의 선정[定]을 멀리 여윔[遠離]이라고 말한다. 너는 이 선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너는 현재 세상에서 곧 의혹을 끊고 위로 오를 수 있다.”

이에 파라뢰 가미니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입은 옷 한 자락을 벗어 메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서 세존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무엇을 법의 선정[定]을 멀리 여의는 것이라고 하며, 저로 하여금 그것으로 인하여 바른 생각을 얻게 하고 한마음을 얻게 하며, 이와 같이 저로 하여금 현재에 있어서 곧 의혹을 끊고 위로 오를 수 있게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생물 죽이는 것을 여의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을 끊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는 데까지 이른다. 그는 낮에는 밭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날이 저물면 휴식하여 방에 들어가 앉아 선정에 들었다가, 밤을 지내고 새벽이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물 죽이는 것을 여의었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을 끊었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곧 스스로 ‘나는 열 가지 악업도(惡業道)를 끊고 열 가지 선업도(善業道)를 생각한다’고 보고 그는 스스로 열 가지 악업도를 끊고 열 가지 선업도를 생각하는 것을 본 뒤에는 곧 즐거운 마음을 낸다. 즐거운 마음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곧 몸을 쉬며, 몸을 쉰 뒤에는 곧 몸으로 즐거움을 깨달으며, 몸으로 즐거움을 깨달은 뒤에는 곧 한마음을 얻게 된다.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한마음을 얻은 뒤에 곧 그 마음은 자애로움[慈]과 함께하여 1방(方)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維)ㆍ상ㆍ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善行)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어떤 사문 범지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施]도 없고 재(齋)도 없으며 주문[呪說]도 없다. 선과 악의 업도 없고, 선업과 악업의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으며,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 세상 좋은 곳으로 가거나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진인(眞人)도 없다.〉
만일 저 사문 범지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도 나는 세상의 두려움과 두렵지 않은 것을 범하지 않고, 항상 일체 세간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흐림이 없어 즐거워하리라. 나는 이제 위없는 사람의 법을 얻어 위로 올라 안락하게 살 수 있다.’

이른바 멀리 여읨은 법의 선정이다. 그는 사문 범지가 말한 것은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말한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하면 이미 속마음이 그쳐 쉼을 얻는다. 가미니여, 이것을 ‘법의 선정을 멀리 여읨[遠離]이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이 선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으니, 이와 같이 너는 현재 세상에서 곧 의혹을 끊고 위로 오르게 될 것이다.

또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생물 죽이는 것을 여의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을 끊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는 데까지 이른다. 그는 낮에는 밭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날이 저물면 휴식하여 방에 들어가 앉아 선정에 들었다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물 죽이는 것을 여의었고 생물을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을 끊었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는 곧 스스로 ‘나는 열 가지 악업도를 끊고 열 가지 선업도를 생각한다’고 보고 그는 스스로 열 가지 악업도를 끊고 열 가지 선업도를 생각하는 것을 본 뒤에는 곧 즐거운 마음을 낸다. 즐거운 마음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몸을 쉰다. 몸을 쉰 뒤에는 몸으로 즐거움을 깨닫고, 몸으로 즐거움을 깨달은 뒤에는 한마음을 얻게 된다.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한마음을 얻은 뒤에는 곧 그 마음은 불쌍히 여김[悲]과 함께하여 1방(方)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ㆍ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불쌍히 여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어떤 사문 범지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재도 있으며 또 주문도 있다. 선과 악의 업도 있고 선업과 악업의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으며,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다. 세상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노니는 진인도 있다.〉
만일 저 사문 범지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면, 나는 세상의 두려움과 두렵지 않음을 범하지 않고, 항상 일체 세간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흐림이 없어 즐거워하리라. 나는 이제 위없는 사람의 법을 얻어 위로 나아가 안락하게 살 수 있다.’

이른바 멀리 여읜다는 말은 법의 선정을 여의는 것이다. 그는 사문 범지가 말한 것을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한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하면 이미 속마음이 그쳐 쉼을 얻은 것이다. 가미니여, 이것을 ‘법의 선정을 멀리 여읨이라고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이 선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현재 세상에서 곧 의혹을 끊고 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또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생물 죽이는 것을 여의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을 끊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는 데까지 이른다. 그는 낮에는 밭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날이 저물면 휴식하여 방에 들어가 앉아 선정에 들었다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물 죽이는 것을 여의었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을 끊었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끊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는 곧 스스로 ‘나는 열 가지 악업도를 끊고 열 가지 선업도를 생각한다’고 보고, 스스로 열 가지 악업도를 끊고 열 가지 선업도를 생각하는 것을 본 뒤에는 곧 즐거운 마음을 낸다. 즐거운 마음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몸을 쉰다. 몸을 쉰 뒤에는 몸으로 즐거움을 깨닫고, 몸으로 즐거움을 깨달은 뒤에는 한마음을 얻게 된다.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한마음을 얻은 뒤에는 곧 그 마음은 기쁨[喜]과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ㆍ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기쁨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어떤 사문 범지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도 짓고 남을 시켜 짓게 하며 스스로도 끊고 남을 시켜 끊게 하며 스스로도 삶고 남을 시켜 삶게 한다. 시름하고 번뇌를 일으키며 걱정하고 슬퍼한다거나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며 소리 내어 운다거나 어리석고 무지하여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술을 마시거나 담을 뚫고 창고를 열며 남의 동네에 가서 겁탈한다거나 마을을 해치고 고을을 부수며 성을 부수고 나라를 멸망시킨다. 이와 같이 하는 사람도 진실로 악을 짓는 것이 아니다. 또 머리를 깎는 칼처럼 잘 드는 쇠바퀴로써 그가 이 땅의 일체 중생을 하루 동안에 쪼개고 끊고 베고 토막 내며 벗기고 찢고 자르고 썰어 한 살점을 만들고 한 푼ㆍ한 무더기를 만들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은 악업이 없고 이것으로 말미암은 악업의 과보도 없다. 항하강 남쪽 언덕에서 죽여서 끊고 삶아가지고 가서 항하강 북쪽 언덕에서 보시하고 재를 지내며 주문을 외우고 오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은 죄도 없고 복도 없으며 이것으로 말미암은 죄와 복의 과보도 없다. 물건을 보시하고 마음을 제어하여 지켜 보호하고 거두어 가지며 칭찬해 기리고 편안하고 이롭게 하며, 은혜로 베풀고 좋은 말을 쓰며 이익되게 하고 또 고루 이익되게 하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은 복이 없고 이것으로 말미암은 복의 과보도 없다.〉
만일 사문 범지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나는 세상의 두려움과 두렵지 않은 것을 범하지 않고, 항상 일체 세간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흐림이 없어 즐거워하리라. 나는 이제 위없는 사람의 법을 얻어 자꾸 위로 올라가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멀리 여읨이란 법의 선정을 여의는 것이다. 그는 사문 범지가 말한 것을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한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하면 이미 속마음이 그쳐 쉼을 얻는다. 가미니여, 이것이 이른바 ‘법의 선정을 멀리 여의는 것이라고 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는 이 선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너는 현재에 있어서 곧 의혹을 끊고 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또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생물 죽이는 것을 여의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을 끊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는 데까지 이른다. 그는 낮에는 밭농사 짓는 것을 가르치고 날이 저물면 휴식하여 방에 들어가 앉아 선정에 들었다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생물 죽이는 것을 여의었고 생물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과 삿된 음행과 거짓말을 끊었고, 나아가 삿된 견해를 끊어 바른 견해를 얻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는 곧 스스로 ‘나는 열 가지 악업도를 끊고 열 가지 선업도를 생각한다’고 보고, 그는 스스로 열 가지 악업도를 끊고 열 가지 선업도를 생각하는 것을 본 뒤에는 곧 즐거운 마음을 낸다. 즐거운 마음을 낸 뒤에는 기쁨을 내고, 기쁨을 낸 뒤에는 몸을 쉰다. 몸을 쉰 뒤에는 몸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몸으로 즐거움을 느낀 뒤에는 한마음을 얻게 된다.

가미니여, 많이 아는 성스러운 제자는 한마음을 얻은 뒤에는 곧 그 마음은 평정[捨]과 함께하여 1방(方)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평정함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善)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문 범지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도 짓고 남을 시켜 짓게도 하며, 스스로도 끊고 남을 시켜 끊게도 하며, 스스로도 삶고 남을 시켜 삶게도 한다거나, 시름하고 번뇌를 일으키며 걱정하고 슬퍼한다거나,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며 소리 내어 운다거나, 어리석고 무지하여,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며,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며 술을 마시거나, 담을 뚫고 창고를 열며, 남의 마을에 가서 겁탈한다거나, 마을을 해치고 고을을 부수며 성을 부수고 나라를 멸망시킨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진실로 악을 짓는다고 한다. 또 머리를 깎는 칼처럼 잘 드는 쇠바퀴로써, 그는 이 땅의 일체 중생을 하루 동안에 쪼개고 끊고 베고 토막 내며, 벗기고 찢고 자르고 썰어 한 살점을 만들고 한 푼ㆍ한 무더기를 만들면 이것으로 말미암은 악업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은 악업의 과보도 있다. 항하강 남쪽 언덕에서 죽여서 끊고 삶아가지고 가서, 항하강 북쪽 언덕에서 보시하고 재를 지내며 주문을 외우고 오면, 이것으로 말미암은 죄와 복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은 죄와 복의 과보도 있다. 물건을 보시하고 마음을 제어하여 지켜 보호하고 거두어 가지며, 칭찬해 기리고 편안하고 이롭게 하며 은혜로 베풀고 좋은 말을 쓰며 이익되게 하고 또 고루 이익되게 하면, 이것으로 말미암은 복이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은 복의 과보도 있다.〉
만일 사문 범지가 말한 것이 진실이라면 나는 세상의 두려움과 두렵지 않은 것을 범하지 않고, 항상 일체 세간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겨야 한다. 그래서 내 마음은 중생과 더불어 다투지 않고 혼탁함이 없어 즐거우리라. 나는 이제 위없는 사람의 법을 얻어 자꾸 위로 올라가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멀리 여읜다고 한 것은 법의 선정을 여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사문 범지가 말한 것은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옳지도 않고 그르지도 않다고 하면 이미 속마음이 그쳐 쉼을 얻는다. 가미니여, 이것이 이른바 ‘법의 선정을 멀리 여읜 것이라고 한다’라고 한 것이다. 너는 이 선정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을 얻을 수 있고 한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와 같이 현재 세상에서 곧 의혹을 끊고 위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법을 말씀하셨을 때 파라뢰 가미니는 티끌을 멀리하고 번뇌[垢]를 여의고, 모든 법에 대한 청정한 눈이 생겼다. 이에 파라뢰 가미니는 법을 보고 법을 얻고 희고 청정한 법을 깨달아 의심을 끊고 미혹을 버려 더 이상 존중해야 할 것이 없었으며, 다시는 남을 따르지 않고 망설임이 없었다. 그는 이미 과증(果證)에 머물러 세존의 법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께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파라뢰 가미니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을 참고할 만한 율장으로는 유송(劉宋) 시대 불타집(佛陀什)과 축도생(竺道生)이 공역한 『오분율(五分律)』 제22권과 요진(姚秦) 시대 불타야사(佛陀耶舍)와 축불념(竺佛念)이 공역한 『사분율(四分律)』 제42권이 있다.
2 리차(離車)족의 도성이었음. 부처님 당시 항하 북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나라로 마갈타(摩竭陀)족과 서로 대치하고 있던 작은 나라.
3 팔리어로는 Licchavi라고 함. 인도 비사리성(毘舍離城) 중심부에 사는 찰제리 종족의 이름이다. 한역하여 리사(離奢)ㆍ리차(梨車)ㆍ리차(離車)라고도 함. 그 선조가 한 덩이 고기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4 당시 니건(尼乾)들이 주장하던 여덟 가지 법 중 하나로서 즉 신(身)ㆍ구(口)ㆍ의(意)로 짓는 나쁜 행[惡行]을 말한다.
5 두두라(頭頭邏)는 쌀의 한 종류이다.
6 흰 무명, 즉 어떤 색깔이나 문양도 없는 천으로 만든 옷을 말한다.
7 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수면(睡眠)ㆍ도회(掉悔)ㆍ의혹(疑惑) 이 다섯 가지 법이 심성(心性)을 덮어 가려서 착한 법을 내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를 5개(蓋)라고 부른다.
8 제3권의 경문 글자 수의 총계 숫자가 틀린 까닭에 여기 「업상응품」의 경문 총계도 당연히 틀려 있다. 원래 소경의 경문 수를 합하면 21,956자인데 여기엔 21,060자로 되어 있어 어디에서 착오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해제보기

중아함경 제5권

3. 사리자상응품(舍梨子相應品) 제3①
이 품에는 모두 11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등심경(等心經)ㆍ성취계경(成就戒經)ㆍ지경(智經)ㆍ사자후경(師子吼)과
수유경(水喩經)ㆍ구니사경(瞿尼師經)ㆍ범지타연경(梵志陀然經)과
교화병경(敎化病經)ㆍ대구치라경(大拘絺羅經)ㆍ상적유경(象跡喩經)이며
분별성제경 (分別聖諦經)이 가장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21) 등심경(等心經) 제1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사리자(舍梨子:舍利弗)는 비구들과 밤에 강당에 모여, 내결(內結)과 외결(外結)에 대하여 여러 비구들을 위해 그 뜻을 분별해 설명하였다.
“여러분, 세상에는 실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내결(內結)이 있는 사람이니, 그는 아나함(阿那含)으로서 이 세간에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둘째는 외결(外結)이 있는 사람이니, 그는 아나함이 아니기 때문에 이 세간에 다시 돌아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내결이 있는 사람인 아나함으로서 이 세간에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금계(禁戒)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에게 칭찬을 받고 잘 닦고 잘 갖추었기 때문에,1) 그는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림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이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고 잘 닦고 잘 갖춤으로 인하여 탐욕을 싫어하고 탐욕을 없애고 탐욕을 끊는 것을 배웁니다. 탐욕을 싫어하고 탐욕을 없애고 탐욕을 끊는 것을 배움으로 인하여 식해탈(息解脫)과 심해탈(心解脫)을 얻고, 그 뒤에는 즐거움 속에서 사랑하고 아껴서 그것을 여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는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단식천(摶食天)2)을 지나 여의생천(餘意生天)에 태어나게 됩니다.

이미 거기에 태어난 뒤에는 곧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본래 사람으로 있을 때에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었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었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에게 칭찬을 받고 잘 닦고 잘 갖추었다. 때문에 나는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춤으로 인하여, 탐욕을 싫어하고 탐욕을 없애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웠다. 탐욕을 싫어하고 탐욕을 없애고 탐욕을 끊는 것을 배움으로 인하여 식해탈과 심해탈을 얻었다. 그것을 얻은 뒤에는 그 즐거움 속에서 사랑하고 아껴 그것을 여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했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태어나서 지금 여기에 있게 되었다.’

여러분, 또 어떤 사람은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이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추었습니다. 저는 금계를 닦고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춤으로 인하여 색계의 생명을 끊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우며, 탐욕을 버리고 여의기를 배웁니다. 그는 색유(色有)3)를 끊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우며, 탐욕을 버리고 여의기를 배움으로 말미암아 식해탈과 심해탈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얻은 뒤에는 그 즐거움 속에서 그것을 사랑하고 아껴 그것을 여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는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태어납니다.

거기에 난 뒤에 그는 곧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본래 사람으로 있을 때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었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었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에게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추었다. 때문에 나는 금계를 닦아 익혀서 구멍이 뚫린 적도 없고 이지러짐도 없었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었으며, 지극히 많은 어려움도 없어서 성인의 칭찬을 받았고, 잘 닦고 잘 갖춤으로 인하여 다시 색유(色有:色界)를 끊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웠으며 탐욕을 버리고 여의는 방법을 배웠다. 색유를 끊고 탐욕을 끊는 법을 배우고, 탐욕을 버리고 여의는 방법을 배움으로 인하여 식해탈과 심해탈을 얻었다. 그것을 얻은 뒤에는 그 즐거움 속에서 그것을 사랑하고 아껴 그것을 여의지 못했다. 그래서 현재 세상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나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이른바 내결(內結)이 있는 사람인 아나함으로서 이 세상에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외결(外結)이 있는 사람으로, 아나함이 아니어서 이 세간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하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금계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從解脫)4)을 지켜 보호하며, 또 위의와 예절을 잘 지키고 털끝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으며, 학문과 계를 받아 지니면 여러분, 이것이 이른바 외결이 있는 사람으로, 아나함이 아니어서 이 세간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때 많은 등심천(等心天)들은 형상이 위풍당당하고 광채가 찬란하게 빛났다.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려 할 때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사리자는 어젯밤에 비구들과 강당에 모여 내결과 외결 의 문제에 대하여 비구들을 위해 그 뜻을 분별해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실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곧 내결이 있는 사람과 외결이 있는 사람이다.’
세존이시여, 대중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다들 기뻐하였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저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셔서 저 강당으로 나가 주시기 바랍니다.”
세존께서는 여러 등심천들을 위하여 아무 말씀 없이 잠자코 허락하셨다. 등심천들은 세존께서 아무 말씀 없이 잠자코 허락하셨음을 알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돈 뒤에 곧 거기서 사라졌다.

등심천들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세존께서 강당으로 가셔서 비구들 앞에서 자리를 깔고 앉으셨다. 세존께서 앉으시고 나서 곧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자여, 너는 너무도 훌륭하다. 왜냐하면 네가 어젯밤에 비구들과 강당에 모였을 때에 비구들을 위하여 내결과 외결의 문제에 대해 그 뜻을 분별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세상에는 실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내결이 있는 사람과 외결이 있는 사람이다.’

사리자여, 어젯밤 동이 틀 무렵 여러 등심천들이 내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뒤에 한쪽으로 물러나서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존자 사리자가 어젯밤에 비구들과 강당에 모였는데 비구들을 위하여 내결과 외결의 문제에 대해 그 뜻을 분별해 해설하기를,〈세상에는 실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내결이 있는 사람과 외결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대중들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다들 기뻐하였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셔서 저 강당으로 나가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사리자여, 나는 곧 그 모든 등심천의 신들을 위해 아무 말 없이 잠자코 허락하였다. 등심천들은 내가 아무 말 없이 그저 허락한 것을 알고, 내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내 주위를 세 바퀴 돈 뒤에 거기서 사라졌다.

사리자여, 등심천들은 10ㆍ20, 혹은 30ㆍ40, 혹은 50ㆍ60명이 송곳 끝 같은 곳에 함께 살아도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는다. 사리자여, 등심천들은 본래 사람으로 있었을 때 이미 착한 마음을 닦아 지극히 넓고 매우 컸었다. 그래서 저 모든 등심천들은 혹은 10ㆍ20, 혹은 30ㆍ40, 혹은 50ㆍ60명씩 송곳 끝 같은 곳에서 함께 살아도 서로에게 방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리자여, 마땅히 적정(寂靜)을 배워야 한다. 모든 감각기관[根]이 적정해지고, 마음과 뜻이 적정해지며,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이 적정해져서 세존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향해야 한다. 사리자여, 저 거짓된 이학(異學)들은 영원히 쇠하고 멸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이러한 묘한 법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등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181자이다.

22) 성취계경(成就戒經) 제2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사리자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만일 비구로서 계(戒)를 성취하고, 정(定)을 성취하고, 혜(慧)를 성취하면 곧 현재 세상에서 당장 상지멸정(想知滅定)5)에 드나드는데,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만일 현재 세계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지 못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단식천(摶食天)을 지나 여의생천(餘意生天)에 태어날 것이다. 그는 거기서 상지멸정에 드나들 것이니,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이때에 존자 오타이(烏陁夷)가 대중 가운데 있다가 말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비구로서 여의생천에 태어나서 상지멸정에 드나든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존자 사리자는 두세 번 한결같이 비구들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로서 계율을 성취하고 선정을 성취하고 지혜를 성취하면, 그는 현재 세상에서 당장 상지멸정에 드나드는데,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만일 현재 세상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지 못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태어날 것이다. 그는 거기서 상지멸정에 드나들 것이니,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존자 오타이도 두세 번 반복해서 말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비구로서 여의생천에 태어나서 상지멸정에 드나든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에 존자 사리자는 곧 이렇게 생각했다.
‘이 비구는 두세 번 되풀이해서 내 말을 그르다고 하고 어느 비구도 내 말을 찬탄하는 사람이 없구나. 나는 차라리 세존께 가리라.’

존자 사리자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존자 사리자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존자 오타이와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거기서 존자 사리자는 다시 비구들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로서 계율을 성취하고 선정을 성취하고 지혜를 성취하면, 그는 곧 현재 세상에서 당장 상지멸정에 드나드는데,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만일 현재 세상에서 당장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태어날 것이다. 그는 거기서 상지멸정에 드나들 것이니,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존자 오타이가 다시 말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비구로서 여의생천에 태어나서 상지멸정에 드나든다고 말하는 것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두세 번 되풀이해 비구들에게 말했다.
“만일 비구로서 계율을 성취하고 선정을 성취하고 지혜를 성취하면, 그는 곧 현재 세상에서 당장 상지멸정에 드나드는데,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만일 현재 세상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태어날 것이며다. 그는 거기서 상지멸정에 드나들 것이니,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존자 오타이도 한결같이 몇 번이고 말했다.
“만일 비구로서 여의생천에 태어나서 상지멸정에 드나든다고 말하는 것은 끝내 그럴 수가 없습니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비구는 세존 앞에서도 두세 번 내 말을 그르다 하고, 또한 어느 비구도 내 말을 찬탄하는 사람이 없다. 나는 차라리 잠자코 있으리라.’

그때 세존께서 물으셨다.
“오타이야, 네가 말하는 여의생천을 색(色)이라고 생각하느냐?”

존자 오타이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자 세존께서 오타이를 면전에서 꾸짖으셨다.
“너는 어리석은 사람이고, 너는 장님처럼 눈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무슨 까닭에 매우 깊은 아비담(阿毗曇)을 논하는가?”
존자 오타이는 부처님께 면전에서 꾸지람을 받고 나서야 마음에 슬픔을 품고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 말없이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였다.

세존께서는 존자 오타이를 면전에서 꾸짖으신 뒤에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명망 있고 덕 있는 장로 비구가 남의 힐난을 받는데, 너는 왜 버려두고 단속하지 않았느냐? 너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자비스런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명망 있고 덕 있는 장로를 저버리다니.”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오타이와 아난을 면전에서 꾸짖으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로서 계율을 성취하고 선정을 성취하고 지혜를 성취하면, 그는 곧 현재 세상에서 당장 상지멸정에 드나들게 되는데,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만일 현재 세상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지 못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단식천을 지나 여의생천에 태어날 것이다. 그는 거기서 상지멸정에 드나들 것이니, 그것은 으레 그런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시고 곧 선실(禪室)에 들어가 고요히 앉아 잠자코 계셨다.

그때 대중 가운데 존자 백정(白淨)6) 비구가 있었다. 존자 아난이 존자 백정에게 말하였다.
“일은 다른 사람이 저질렀는데 꾸지람은 내가 들었습니다. 존자 백정이여, 세존께서는 저녁때가 되면 틀림없이 선실에서 나와 비구들 앞에 와서 자리를 깔고 앉아 이 문제를 함께 논하실 것입니다. 스님은 마땅히 이 일에 대하여 대답해 주셔야만 합니다. 저는 세존과 여러 범행자들을 대하기가 못내 부끄럽습니다.”

이윽고 세존께서 저녁때가 되자 선실에서 나와 비구들 앞에 와서 자리를 깔고 앉아 말씀하셨다.
“백정아, 장로 비구는 몇 가지 법(法)이 있어야 모든 범행자들의 애경(愛敬)과 존중을 받는가?”

존자 백정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장로 비구에게 만일 다섯 가지 법이 있으면 모든 범행자의 애경과 존중을 받습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 법인가?
첫째, 장로 비구가 금계(禁戒)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從解脫)을 지켜 보호하며 또 위의와 예절을 잘 지키고, 털끝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운 마음을 가지며 학문과 계행을 받아 가지면 세존이시여, 그는 금계를 지키는 장로이며 상존(上尊)이 될 만한 비구로서 모든 범행자들의 애경과 존중을 받습니다.
둘째, 장로 비구가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서 그것을 지켜 가지고 잊지 않으며 쌓아 모으고 널리 듣는 것이다. 이른바 그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淸淨)을 구족하여 범행을 드날립니다. 이와 같이 모든 법에 있어서 널리 배우고 많이 들으며 익숙하게 익혀 천(千)에까지 이르며, 마음으로 생각하고 관찰하는 바에 대하여 분명하게 보고 깊이 통달하면 세존이시여, 그는 다문(多聞)한 장로이며 상존이 되는 비구로서 모든 범행자들의 애경과 존중을 받습니다.

셋째, 장로 비구가 네 가지 증상심(增上心)을 얻고, 현재 즐겁게 살며 무엇이든 얻기가 어렵지 않으면 세존이시여, 그는 선사(禪伺)7) 장로이며 상존이 되는 비구로서, 모든 범행자들의 애경과 존중을 받습니다.
넷째, 장로 비구가 지혜를 닦아 실천하고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며, 이러한 지혜를 얻고 거룩한 지혜로 밝게 통달하여 분별하고 환히 알아 바로 괴로움을 다하면 세존이시여, 그는 지혜(智慧)의 장로이며 상존이 되는 비구로서 모든 범행자들의 애경과 존중을 받습니다.
다섯째, 장로 비구가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여 더 이상 번뇌[結]가 없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 세상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진실 그대로를 알면 세존이시여, 그는 누진(漏盡)의 장로이며 상존이 되는 비구로서 모든 범행자의 애경과 존중을 받습니다. 세존이시여, 장로 비구가 만일 이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면 그는 모든 범행자들의 애경과 존중을 받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백정이여, 만약 장로 비구가 이 다섯 가지 법이 없으면, 다시 어떤 일로 모든 범행자들의 애경과 존경을 받게 되겠는가?”
존자 백정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장로 비구가 이 다섯 가지 법이 없으면,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애경하고 존경하게 할 다른 일은 없습니다. 오직 늙었다는 것으로써, 곧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고 젊음은 날로 쇠하며, 신체는 굽어지고 다리는 뒤틀리며 몸이 무겁고 상기(上氣)되며, 지팡이를 의지해야 겨우 다니며, 살은 쭈그러들고 피부는 늘어나 주름살지고 마치 참깨와 같은 검버섯이 피며, 모든 감각기관은 헐고 얼굴빛은 추악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늙었다는 이유로 범행자들로 하여금 애경하고 존중하게 할 뿐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만일 장로 비구에게 이 다섯 가지 법이 없으면 더 이상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애경하고 존중하게 할 다른 일이 없다. 오직 늙었다는 것으로써, 곧 머리는 희고 이는 빠지고 젊음은 날로 쇠하며, 신체는 굽고 다리는 뒤틀리며, 몸은 무겁고 상기되어 지팡이를 의지해야 겨우 다니며, 살은 쭈그러들고 피부는 늘어나 주름살지고 마치 참깨와 같은 검버섯이 피고, 모든 감각기관은 허물어지고 얼굴빛은 추악하다. 그는 이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애경하고 존중하게 할 뿐이다. 백정아, 사리자 비구에게는 이 다섯 가지 법이 있다. 너희들은 마땅히 애경하고 존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리자 비구는 금계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을 지켜 보호하며, 또 위의와 예절을 잘 지키고 털끝만한 허물을 보아도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며 학문과 계행을 받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정아, 사리자 비구는 널리 배우고 많이 들었으며, 지켜 가져서 잊지 않으며 쌓고 모으고 널리 들었다. 이른바 그의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고 범행을 밝게 나타낸다. 이러한 모든 법에 대해서 널리 배우고 많이 들었으며,익숙하게 익혀 천(千)에까지 이르렀으며,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에 대하여 분명하게 보고 깊이 통달하였다. 또한 백정아, 사리자 비구는 네 가지 증상심을 얻어서 현재 세계에서 즐겁게 살고 무엇이든 얻기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또 백정아, 사리자 비구는 지혜를 닦아 실천하고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였으며, 이러한 지혜와 거룩한 슬기와 밝은 통달을 얻어 분별하고 환히 알아 바로 괴로움을 다한 사람이다.

또 백정아, 사리자 비구는 모든 번뇌[漏]가 이미 다하여 더 이상 번뇌[結]가 없고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여 현재 세상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에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고 있다. 사리자 비구는 이 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였다. 너희들은 마땅히 함께 애경하고 존중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자, 존자 백정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성취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746자이다.

23) 지경(智經) 제3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에 모리파군누(牟利破群) 비구가 계율을 버리고 도 닦기를 그만두었다. 흑치(黑齒) 비구는 모리파군누 비구가 계율을 버리고 도 닦기를 그만두었다는 말을 듣고, 곧 존자 사리자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다.
“사리자여, 모리파군누 비구가 계율을 버리고 도 닦기를 그만두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존자 사리자가 말했다.
“모리파군누 비구는 이 법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고 좋아하는가?”

흑치 비구가 도리어 반문했다.
“존자 사리자께서는 이 법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고 좋아하십니까?”

존자 사리자가 대답했다.
“흑치여, 나는 이 법에 대해서 아무 의혹도 없다.”

흑치 비구가 다시 물었다.
“존자 사리자여,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또한 어떠합니까?”

“흑치여, 나는 미래의 일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말을 듣고 망설임이 없다.”

흑치 비구는 이와 같은 말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사리자는 지금 제 자신을 지칭하여 ‘지혜를 얻었고 생이 이미 다했으며,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에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그대로를 안다’고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 그 말을 들으신 뒤 어떤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리자에게 가서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말하여라.”

그 비구는 분부를 받은 뒤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다. 그는 사리자를 찾아가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존자 사리자님을 부르십니다.”
사리자는 그 말을 듣고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자야, 너는 지금 제 자신을 지칭하여 ‘나는 지혜를 얻었고 생이 이미 다했으며,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에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그대로를 안다’고 말하였는가?”

사리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런 글을 쓰지 않았고 그런 글귀를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이치만을 설명했을 뿐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족성자는 그 방편을 따라 일컬어 말한다. 지혜를 얻었으면 곧 지혜를 얻었다고 말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아까 이미 ‘그런 글을 쓰지 않았고 그런 글귀를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이치만을 설명했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너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는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았기에 자신을 지칭하여 (나는 지혜를 얻었고 생이 이미 다했으며,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에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그대로를 안다)고 말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사리자야, 너는 이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존자 사리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너는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았기에 자신을 지칭하여 〈나는 지혜를 얻었고 생이 이미 다했으며,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에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그대로를 안다〉고 말하는가?’하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고 ‘여러분, 생겨나는 것은 모두 그 원인[因]이 있다. 이 생의 원인이 다했을 때에 이 생의 원인이 다한 줄을 알았기에 나는 자신을 지칭하여 〈나는 지혜를 얻었고, 생이 이미 다했으며,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생에 생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 그대로를 안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그렇게 묻거든 너는 마땅히 그와 같이 대답하라.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면 그들은 마땅히 그 뜻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들이 너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생은 무엇을 인(因)으로 하고 무엇을 연(緣)으로 하며, 무엇을 따라 나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생은 무엇을 인으로 하고 무엇을 연으로 하며, 무엇을 따라 나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듣고 ‘여러분, 생은 유(有)를 인으로 하고 유를 연으로 하며, 유를 따라 나고 유를 근본으로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이렇게 물으면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그렇게 묻거든 너는 그와 같이 대답하라.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면 그들은 마땅히 그 뜻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너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유(有)는 무엇을 인으로 하고 무엇을 연으로 하며, 유는 무엇을 따라 나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유는 무엇을 인으로 하고 무엇을 연으로 하며, 유는 무엇을 따라 나고 유는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고 ‘여러분, 유는 수(受)를 인으로 하고 수를 연으로 하며, 수를 따라 나고 수를 근본으로 한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이렇게 묻는다면 마땅히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그렇게 묻거든 너는 그와 같이 대답하라. 그렇게 말하면 그들은 마땅히 그 뜻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너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수(受)는 무엇을 인으로 하고 무엇을 연으로 하며, 무엇을 따라 나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만일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수는 무엇을 인으로 하고 무엇을 연으로 하며 , 무엇을 따라 나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고 ‘여러분, 수는 애(愛)를 인으로 하고 애를 연으로 하며, 애를 따라 나고 애를 근본으로 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마땅히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그렇게 묻거든 너는 그와 같이 대답하라. 그렇게 말하면 그들은 그 뜻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너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애(愛)라고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만일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어떤 것을 애라고 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듣고 ‘여러분, 이른바 3각(覺)8)이 있으니 즐거운 느낌[樂覺]ㆍ괴로운 느낌[苦覺]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覺]이다. 그 가운데서 즐기고자 하여 집착하는 것, 이것을 일러 애(愛)라고 한다’고 대답해 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이렇게 물으면 저는 마땅히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그렇게 묻거든 너는 마땅히 그와 같이 대답하라. 그렇게 말하면 그들은 그 뜻을 알 것이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너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당신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았기에, 저 3각(覺) 가운데서 즐기고자 하는 집착이 없는가?’ 하고 묻는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당신은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았기에 저 3각 가운데서 즐기고자 하는 집착이 없는가?’ 하고 묻는다면, 저는 이 말을 듣고 ‘여러분, 이른바 이 3각은 무상(無常)한 법이며, 괴로움의 법이며, 멸하는 법이다. 무상한 법은 곧 괴로움이니, 괴로움인 줄 알고 나서는 저 3각에 대해서 즐기고자 하는 집착이 없어졌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이렇게 물으면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그렇게 묻거든 너는 마땅히 그와 같이 대답하라. 그렇게 말하면 그들은 그 뜻을 알아들을 것이다.”

그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이 말은 또 이치가 있으니 간략하게 대답할 수가 있다. 사리자야, 이 말에 다시 어떤 뜻이 있기에 간략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느끼는 것과 작용하는 모든 것은 다 괴로움이 따르는 것이니, 사리자야, 다시 이치가 있어 이 말을 간략하게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너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어떻게 등진 채 향하지 않기에 스스로 〈나는 지혜를 얻었고 생이 이미 다했으며,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마쳐, 다시는 후세에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진실 그대로를 안다〉고 말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너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저에게 와서 ‘존자 사리자여, 어떻게 등진 채 향하지 않기에 스스로 〈나는 지혜를 얻었고 생이 이미 다했으며,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마쳐, 다시는 후세에 생을 받지 않는다는 진실 그대로를 안다〉고 말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듣고 ‘여러분, 나는 안에 대해서 등지고 향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애욕이 다하고, 놀람도 없고 두려움도 없으며, 의심도 없고 미혹도 없다. 이와 같이 수호하고, 그와 같이 수호한 다음에는 선하지 않은 번뇌[漏]를 내지 않는다’고 대답해 주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이렇게 물으면, 저는 이와 같이 대답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사리자야, 만일 모든 범행자가 와서 그렇게 묻거든 너는 그와 같이 대답하라. 그렇게 말하면 그들은 마땅히 그 뜻을 알 것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다시 이치가 있어 이 말에 대하여 간략하게 대답할 수 있다.
‘만약 모든 맺힘[結]에 대해서 사문이 말한 것이라면 그 맺힘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수호하고, 그와 같이 수호한 다음에는 선하지 않은 번뇌를 내지 않는다. 사리자야, 이것이 이른바 ‘다시 이치가 있어 그 말에 대하여 간략하게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존께서 이와 같이 말씀해 마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고요히 앉으셨다.

세존께서 방에 들어가신 뒤 조금 있다가 존자 사리자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내가 처음에 미처 생각하기 전에 세존께서 갑자기 이 이치를 물으셨다. 나는 ‘아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처음에 한 이치를 말했을 때 곧 세존께서는 옳다고 창찬하셨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와 같이 생각했다.
‘만일 세존께서 하루 낮 하룻밤을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내게 그 이치를 물으신다면, 나는 능히 세존을 위하여 하루 낮 하룻밤을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이 이치에 대하여 대답하리라. 만일 세존께서 2ㆍ3ㆍ4일 나아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그 이치에 대해 물으신다면, 나는 또 세존을 위하여 2ㆍ3ㆍ4일 나아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그 이치에 대하여 대답하리라.’”

흑치 비구는 존자 사리자가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들은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부처님께 나아가 여쭈었다.
“세존께서 방에 들어가시고 얼마 되지 않아 존자 사리자가 지극히 교만한 모습으로 한결같이 사자처럼 외치기를 ‘여러분, 내가 처음 미처 생각하기 전에 세존께서 갑자기 이 이치를 물으셨는데 나는 〈아마 능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처음에 한 이치를 말했을 때 곧 세존께서는 옳다고 칭찬하셨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와 같이 생각했다.
〈만일 세존께서 하루 낮 하룻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내게 이 이치에 대하여 물으신다면, 나는 세존을 위해 하루 낮 하룻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그 이치에 대하여 대답하리라. 만일 세존께서 2ㆍ3ㆍ4일 나아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내게 이 이치를 물으신다면, 나는 또 세존을 위해 2ㆍ3ㆍ4일 나아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그 이치에 대하여 대답하리라〉’하고 말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흑치야, 그렇다. 그렇다. 만일 내가 하루 낮 하룻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사리자 비구에게 그 이치를 묻더라도 사리자 비구는 반드시 나를 위해 하루 낮 하룻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그 이치에 대하여 대답할 것이다. 흑치야, 만일 내가 2ㆍ3ㆍ4일 나아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사리자 비구에게 그 뜻을 묻는다면 그 비구도 충분히 나를 위해 2ㆍ3ㆍ4일 나아가 이레 낮 이레 밤 동안 다른 글과 다른 글귀로써 그 이치에 대하여 대답할 것이다. 흑치야, 사리자 비구는 법계(法界)에 대하여 깊은 이치를 통달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존자 사리자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169자이다.

24) 사자후경(師子吼經)9) 제4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큰 비구들과 함께 그곳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셨다. 존자 사리자도 거기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데, 석 달 동안 안거를 지낸 뒤에 옷 깁기를 마치고 옷을 단정히 입고, 발우를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갔다.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쳤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상에 나가 유행(遊行)10)하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너는 떠나거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아직 제도(濟度)되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면 마땅히 제도시키고, 아직 해탈(解脫)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면 마땅히 해탈을 얻게 할 것이며, 아직 반열반(般涅槃)을 얻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반열반을 얻게 하라. 사리자야, 너는 떠나거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존자 사리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간직하였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나서 떠나갔다. 그는 자기 방에 돌아와 평상과 자리를 거두고 옷을 단정히 하고 발우를 가지고 즉시 나가 세간을 돌아다녔다.

존자 사리자가 떠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어떤 범행자[梵行]가 부처님 앞에서 상위법(上違法)11)을 범하고 세존께 말씀드렸다.
“오늘 존자 사리자가 나를 업신여긴 뒤에 세상을 유행하러 떠났습니다.”

세존께서 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사리자한테 가서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 네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어떤 범행자가 내 앞에 와서 상위법을 범하고,〈세존이시여, 오늘 존자 사리불은 나를 업신여기는 행위를 하고 나서 세상을 유행하러 떠났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하라.”
한 비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절하고 떠나갔다. 이때에 존자 아난(阿難)이 세존의 뒤에서 불자(拂子)를 잡고 세존을 모시고 있었다.

한 비구가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존자 아난이 곧 방문 열쇠를 가지고 여러 방을 두루 돌면서 비구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여러 존자들이여, 빨리 강당으로 갑시다. 지금 존자 사리자가 부처님 앞에서 사자처럼 외칠 것입니다. 사리자가 말하는 것은 매우 깊은 이치일 것이며 고요한 가운데 가장 고요한 것이며, 묘한 것 가운데 묘한 것으로서 여러분과 나는 이것을 들은 뒤에 잘 외워 익히고, 잘 받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듣고 모두 강당으로 갔다.

한 비구가 사리자에게 가서 말했다.
“세존께서 그대를 부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범행자가 내 앞에서 상위법을 범하고 〈세존이시여, 오늘 존자 사리불이 나를 업신여기는 행위를 하고 나서 세상을 유행하러 떠났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사리자야, 네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어떤 범행자가 내 앞에서 상위법을 범하고 ‘세존이시여, 오늘 존자 사리자가 나를 업신여긴 뒤에 세상을 유행하러 떠났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사리자야, 네가 진실로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긴 뒤에 세상을 유행하러 떠났느냐?”

사리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身身念)12)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는 행위를 하고 세상을 유행하러 떠났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뿔을 잘린 소가 매우 참을성이 많고 온순하며 잘 길들여져서, 마을에서 마을로 거리에서 거리로 노니는 곳마다 조금도 침범하지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마음은 뿔을 잘린 소와 같아서, 맺힘[結]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며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가지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며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두 손이 잘리고 그 마음이 매우 겸손한 전타라자(旃陀羅子:賤民童子)가 시골에서 시골로 읍에서 읍으로 유행하는 곳마다 전혀 침범하지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마음은 손을 잘린 전타라자와 같아,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원만히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땅은 깨끗한 것이거나 깨끗하지 않은 것, 즉 대변ㆍ소변ㆍ눈물ㆍ침 따위를 모두 받아들이면서도, 그 때문에 미움과 사랑이 생기지 않으며, 더럽다 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며 또 창피스럽다 하지도 않는 것과 같이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마음이 저 땅과 같아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물은 깨끗한 것이거나 깨끗하지 않은 것, 즉 대변ㆍ소변ㆍ눈물ㆍ침 따위를 모두 씻어도, 그로 인해 미움과 사랑이 생기지 않고 더럽다 하지도 않으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한 창피스럽다 하지도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마음이 저 물과 같아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원만히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불은 깨끗한 것이거나 깨끗하지 않은 것, 즉 대변ㆍ소변ㆍ눈물ㆍ침 따위를 다 불살라도, 그로 인해 미움과 사랑이 생기지 않고 더럽다 하지도 않으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창피스럽다 하지도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마음이 저 불과 같아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원만히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바람이 깨끗한 것이거나 깨끗하지 않은 것, 즉 대변ㆍ소변ㆍ눈물ㆍ침 따위를 다 불어도, 그로 인해 미움과 사랑이 생기지 않고 더럽다 하지도 않으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한 창피스럽다 하지도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마음이 저 바람과 같아서 맺힘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원만히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청소할 때 사용하는 비[掃箒]는 깨끗한 것이거나 깨끗하지 않은 것, 즉 대변ㆍ소변ㆍ눈물ㆍ침 따위를 다 쓸어도, 그로 인해 미움과 사랑이 생기지 않고 더럽다 하지도 않으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창피스럽다 하지도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마음이 저 비와 같아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원만히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포전니(晡旃尼)가 깨끗한 것이거나 깨끗하지 않은 것, 즉 대변ㆍ소변ㆍ눈물ㆍ침을 다 닦아도, 그로 인해 미움과 사랑이 생기지 않고 더럽다 하지도 않으며,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또 창피스럽다 하지도 않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이와 같습니다. 마음이 포전니와 같아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원만히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군데군데 부서진 고약 병에 고약을 가득 담은 뒤에 햇볕에 두었을 때 그 병 군데군데에서 고약이 새어 줄줄 흐르면, 눈이 있는 사람이 와서 한쪽에 서서 군데군데 부서진 고약 병에 고약을 가득 담은 뒤에 햇살 비추는 데에 두었을 때, 그 병 군데군데에서 고약이 새는 것을 보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항상 이 몸을 관찰해 보는데, 그 때마다 아홉 구멍에서 더러운 것이 새어 흐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지니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세존이시여, 마치 장식하기를 좋아하여 목욕하고 손발 씻고 바르는 향[塗香]을 몸에 바르고 깨끗한 옷을 입고, 영락으로 그 몸을 꾸미고 수염을 깎고 머리털을 다듬고, 머리에 화만을 쓴 젊은 사람이 만일 푸르딩딩하게 퉁퉁 붓고 지독한 냄새가 나며, 문드러져 더러운 물이 줄줄 흐르는 세 가지 시체, 즉 죽은 뱀ㆍ죽은 개, 또는 사람의 시체 따위를 그 목에 걸치면, 그는 부끄러움을 품고 지극히 싫어하고 더러워하는 것처럼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항상 이 몸은 곳곳에서 냄새가 나고 깨끗하지 못하니 마음에 부끄러움을 품고 지극히 그것을 싫어하고 더럽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관찰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신신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어떤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신신념을 잘 가지고 있는데 제가 어떻게 범행자를 업신여기고 세상을 유행하겠습니까?”

이때 그 비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씀드렸다.
“잘못을 뉘우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죄를 고백하겠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으며,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며 나쁜 사람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진실하지 못한 허망한 말로써 청정한 범행자인 사리자 비구를 모함하고 비방했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알아 드러내 밝히니 부디 받아주십시오. 저는 잘못을 뉘우친 뒤로는 꼭 지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비구야, 너는 실로 바보 같고 미치광이 같으며, 안정되지 못한 사람이며 착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왜냐하면 너는 전혀 진실하지 않은 허망한 말로써 청정한 범행자인 사리자 비구를 모함하고 비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잘못을 뉘우치고 죄를 알아 드러내 밝혔으며, 꼭 지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만일 잘못을 뉘우치고 잘못을 깨달아 드러내 밝히고 꼭 지켜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거룩한 법은 점점 자라나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존자 사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빨리 저 어리석은 사람이 잘못을 뉘우친 것을 받아들여, 저 비구로 하여금 네 앞에서 머리가 부서져 일곱 조각으로 나누어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

존자 사리자는 곧 그 비구를 가엾게 여겨 이내 그가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받아들였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사리자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사자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977자이다.

25) 수유경(水喩經) 제5 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사리자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나는 지금 당신들을 위하여 번뇌를 없애는 다섯 가지 방법을 말하겠습니다.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그것을 잘 기억하십시오.”
저 모든 비구들은 시키는 대로 듣고 있었다.

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여러분,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은 깨끗하지 못한데, 입으로 짓는 행은 깨끗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 짓는 행은 깨끗하지 못한데, 몸으로 짓는 행은 깨끗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고 입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한데, 마음에 조금 깨끗한 것이 있습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여러분, 또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도 깨끗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은 깨끗하지 못하고 입으로 짓는 행은 깨끗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성냄의 번뇌가 생기면 장차 어떻게 그것을 없애야 하는가? 여러분, 마치 아련야(阿練若) 비구13)가 분소의(糞掃衣)14)를 가지는 것과 같습니다. 똥무더기 가운데 버려진 해진 옷을 보니 혹은 대변에 더럽혀지기도 했고, 혹은 소변ㆍ눈물ㆍ침과 그 밖에 더러운 것에 더럽혀져 있을 때, 그러한 것을 보고 나서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펴 보아 만일 대변이나 소변ㆍ눈물ㆍ침, 그리고 그밖에 더러운 것에 더럽혀져 있지 않은 부분이나, 또 뚫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곧 그것을 찢어 가집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어떤 사람이 몸으로 짓는 행은 깨끗하지 못하나, 입으로 짓는 행이 깨끗하다면 그 몸으로 짓는 깨끗하지 않은 행은 생각하지 말고, 다만 그 입으로 짓는 깨끗한 행만을 생각하십시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이렇게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입으로 짓는 행은 깨끗하지 못한데, 몸으로 짓는 행은 깨끗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면 장차 어떻게 그것을 없애야 하는가? 여러분, 비유하면 마치 마을 바깥 멀지 않은 곳에 깊은 못이 있는데 그 못이 잡초에 덮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몹시 더워 번열이 일어나고 배고프고 목마름에 시달리며 뜨거운 바람에 핍박을 받는다면, 그는 못에 이르러 옷을 벗어 언덕에 두고 곧 못 속으로 들어가 두 손으로 잡초를 헤치고 마음껏 시원하게 목욕하여 더위의 괴로움과 굶주리고 목마른 시달림을 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어떤 사람이 입으로 짓는 행은 깨끗하지 못하나 몸으로 짓는 행이 깨끗하거든 그 깨끗하지 못한 입으로 짓는 행은 생각하지 말고, 다만 그 깨끗한 몸으로 짓는 행만 생각하십시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이렇게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고 입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한데, 마음에 조금 깨끗한 것이 있습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면 장차 어떻게 그것을 없애야 하는가? 여러분, 비유하면 마치 네 갈래 길에 소발자국이 있는데 그 안에 물이 고여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몹시 더워 번민하고 배고프고 목마름에 시달리며 뜨거운 바람에 핍박 받는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네 갈래 길 소 발자국에 고인 적은 양의 물을 내가 만일 손이나 나뭇잎으로 떠올린다면, 곧 물은 흔들려 더러워져서 내가 몹시 더워 괴로운 것과 배고프고 목마름에 시달리는 것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꿇어앉아 손으로 땅을 짚고 입으로 물을 마시는 것이 낫겠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곧 길게 꿇어앉아 손으로 땅을 짚고 입으로 물을 마셔 몹시 더워 번민하고, 배고프고 목마른 시달림을 풀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어떤 사람이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고 입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나 마음에 조금 깨끗한 것이 있거든, 그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 짓는 행과 깨끗하지 못한 입으로 짓는 행은 생각하지 말고, 다만 그 마음에 조금 있는 깨끗한 것만을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이렇게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면 장차 어떻게 그것을 없애야 하는가? 여러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다가 도중에 병이 들어 지극히 고달프고 몹시 시달리지만, 혼자 몸으로 길동무도 없고 마을로 되돌아가기는 더욱 먼데다가 앞마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경우와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한쪽에 서서 이 사람이 먼 길을 가다가 도중에 병이 들어 지극히 고달파하고 몹시 시달리지만, 혼자 몸으로 길동무도 없고 마을로 되돌아가기는 더욱 먼데다가 앞마을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을 보고,‘이 사람도 만일 시자를 얻으면 먼 들판에서 마을로 데리고 가서 좋은 탕약과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간병인을 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이 사람의 병은 틀림없이 나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은 이 병자에 대해서 지극히 가없게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보면 곧 ‘이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다. 그러나 이 사람으로 하여금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악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지 않게 하자. 만일 이 사람도 선지식을 만나면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 짓는 행을 버리고 깨끗한 몸으로 짓는 행을 닦으며, 깨끗하지 못한 입과 뜻으로 짓는 행을 버리고 입과 뜻으로 짓는 깨끗한 행을 닦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이 사람은 온몸의 깨끗한 행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이 사람에 대해 지극히 가엾게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이렇게 그것을 없애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몸으로 짓는 행이 깨끗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도 깨끗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면 장차 어떻게 그것을 없애야 하는가? 여러분, 마치 마을 바깥 멀지 않은 곳에 좋은 못물이 있어, 맑고 또 아름다운 데다 물조차 찰랑찰랑 가득 차 있으며 푸른 풀은 언덕을 뒤덮었고, 꽃나무가 사방에 두루 피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몹시 더워 괴로워하고 배고프고 목마름에 시달리며 뜨거운 바람에 핍박당한다면, 그는 못에 나가 옷을 벗어 언덕에 두고, 곧 못 속으로 들어가 마음껏 시원하게 목욕하여, 더위의 괴로움과 배고프고 목마른 시달림을 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이 몸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행도 깨끗하거든, 항상 그 몸으로 짓는 깨끗한 행과 입과 뜻으로 짓는 깨끗한 행을 생각하십시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그것을 보고 비록 성이 나는 번뇌가 생기더라도 마땅히 이와 같이 없애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아까 말한 번뇌를 없애는 다섯 가지 방법은 이러하기 때문에 말한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가 이와 같이 말하자 모든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금계를 닦아’에서부터 ‘잘 닦고 잘 갖추었기 때문에’까지의 내용이 『잡아함경』 제33권 923번째 소경에는 자념정계(自念淨戒)ㆍ불괴계(不壞戒)ㆍ불결계(不缺戒)ㆍ불오계(不汙戒)ㆍ부잡계(不雜戒)ㆍ불타취계(不他取戒)ㆍ선호계(善護戒)ㆍ명자칭예계(明者稱譽戒)ㆍ지자불염계(智者不厭戒)로 되어 있다.
2 덩어리로 되어 있는 음식을 먹는 천상세계를 말하는 것으로서 즉, 욕계(欲界)의 여러 하늘들을 뜻한다.
3 색계 제4선천의 과보(果報)를 총칭하는 말로서 과보의 실재가 있음을 뜻하여 여기서 유(有)라고 한 것이다.
4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말하는 것으로 별해탈(別解脫)로 번역하기도 한다. 해탈한다는 뜻으로서 계율(戒律)을 말하는 것인데, 즉 몸과 입으로 지은 허물을 따로따로 해탈하는 것이므로 별해탈이라고 한다.
5 팔리어로는 Saññāvedayitanirodha samāpati 이고, 멸진정(滅盡定)ㆍ멸수상정(滅受想定)ㆍ멸진삼매(滅盡三昧)라고도 한다. 무소유처(無所有處)에 염착하는 열망을 벗어난 자는 상(想)과 수(受:知)가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여 고요함을 구한다. 따라서 상(想)의 작용을 먼저 쉬고 마음[心]과 마음의 작용[心所]을 없애 무심한 경지에 머무른다. 따라서 이를 상지멸정이라고 한다. 무상정(無想定)과 더불어 두 가지 무심정(無心定)으로 불린다.
6 또는 우파마나(優波摩那)라고 쓰기도 한다. 비구의 이름이며 사위성(舍衛城) 사람으로서 기원정사(祇園精舍)를 건립할 때 신심을 내어 출가하였다.
7 원(元)과 명(明)의 두 본에는 사(伺)가 사(思)로 되어 있다.
8 3수(受)라고도 한다. 즉 세 가지 느낌을 말한다. 낙수(樂受:바깥 경계와 접촉하여 즐거움을 느낌)와 고수(苦受:바깥 경계와 접촉하여 몸과 마음에 받는 느낌)와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를 말한다.
9 이 경의 참고가 될 만한 경문으로는 『증일아함경』 제37권 제30품인 「육중품(六重品)」의 여섯 번째 소경이 있다.
10 안거(安居)를 마친 다음 사찰이나 토굴에서 나와 세속 마을로 나가 돌아다니면서 탁발(托鉢)하는 생활을 하는 것.
11 파리성전협회(巴利聖典協會)에서 간행한 사전에서 이 상위법(相違法)에 대하여 해석한 것을 보면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되어 있어 한역본의 의미와는 서로 다름을 나타내고 있다. 한역상의 의미는 서로 혐오하고 미워하는[嫌瞋] 법을 말하는 것과 같다. 참고 경문인 『증일아함경』 제30권 「육중품(六重品)」 여섯 번째 소경의 내용에는 “서로 다투고 참회하지 않았다”로 되어 있다.
12 파리본에 의하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반성하는 기미가 전혀 없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13 한림(閑林) 중에 기거하고 사찰[精舍]에는 머물지 않으면서 두타행(頭陀行)을 수행하는 비구.
14 세상 사람들이 입다 버린 헌옷을 가지고 만든 가사(袈裟). 탐심(貪心)을 없애고 검소함을 닦는 뜻으로 입는 법의(法衣).

중아함경 제6권

3. 사리자상응품 제3②
26) 구니사경(瞿尼師經) 제6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園)에 계셨다.

그때 구니사(瞿尼師) 비구도 왕사성을 유행하고 있었는데, 무사실(無事室)에 있으면서 조롱하며 비웃고 교만하게 남을 업신여기고 방정맞게 까불고 쉽게 잊어버리며,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 종잡을 수 없었다. 구니사 비구는 사소한 일로 왕사성에 왔었다. 이때에 존자 사리자는 비구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친 뒤에 조그마한 일 때문에 강당에 모여 있었다. 구니사 비구도 왕사성에서 볼 일을 마치고 강당으로 갔다.

사리자는 멀리서 구니사가 오는 것을 보고 구니사에 대해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무사(無事) 비구1)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공경하고 존중하며 순종하고 따라 관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할 때에 공경하고 존중하지 않거나 순종하고 따라 관찰하지 않으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공경하고 존중하지 않는 일이 허다하고 순종하고 따라 관찰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대중 가운데 가서도 또한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공경하고 존중하기를 배우고 순종하고 따라 관찰해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남을 조롱하거나 비웃지 않아야 하며 조급하게 서두르지도 않아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남을 조롱하거나 비웃으며 조급하게 서두르는 일이 많으면 곧 비구들의 이런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남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조급하게 서두르는 일이 많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남을 조롱하거나 비웃지 않는 것을 배우고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축생들과 관련되는 이야기[畜生論]2)를 하지 않기를 배워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축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축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중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축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기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교만하지 않고 또 말을 적게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교만하게 굴거나 말이 많으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 하면서 교만하게 굴고 말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교만하지 않고 또 말을 적게 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모든 감각기관[根]을 잘 보호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면서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않으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무사 비구라 하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고 하면서, 모든 감각기관을 잘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모든 감각기관을 잘 보호하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음식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더 많은 음식을 탐하여 만족할 줄 모르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더 많은 음식을 탐하여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음식에 만족할 줄 아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기를 배워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정진하지 않고 게을리 하면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정진하지 않고 도리어 게으름만 피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정진하여 게으르지 않기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바른 생각과 또 바른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바른 생각이 없고 바른 지혜가 없으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바른 생각이 없고 또 바른 지혜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바른 생각과 또 바른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때를 아는 것과 좋은 때를 배워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 밥을 빌지 않아야 하고, 또한 너무 늦게까지 마을에 나돌아 다니지도 않아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 밥을 빌거나 또는 늦게까지 마을에 나돌아 다니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너무 일찍 마을에 들어가 밥을 빌기도 하고 또는 너무 늦게까지 마을에 나돌아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때를 알고 좋은 때가 언제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자리에 잘 앉는 것을 배워서, 장로의 자리를 핍박하거나 젊은 비구를 꾸짖어 자리에서 내쫓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장로의 자리를 핍박하거나 젊은 비구를 꾸짖어 내쫓는다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장로의 자리를 핍박하고 젊은 비구를 꾸짖어 내쫓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자리에 잘 앉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대중들과 함께 율(律)과 아비담(阿毗曇:論)에 대하여 논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할 때 어떤 사람이 와서 율과 아비담에 대해 묻는데,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율과 아비담에 대해 대답할 줄 모른다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율과 아비담에 대해서 대답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대중들과 함께 율과 아비담에 대해서 의논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대중들과 함께 식해탈(息解脫)3)을 배워 색(色)의 선정을 여의고 무색정(無色定)에 이르는 것에 대하여 논하기를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할 때 어떤 사람이 와서 색정(色定)을 초월하여 무색정에 이르는 식해탈에 대하여 묻는데,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색정을 초월하여 무색정에 이르는 식해탈에 대하여 대답할 줄을 모른다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색의 선정을 초월하여 무색정에 이르는 식해탈에 대하여 대답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대중들과 함께 색의 선정을 초월하여 무색정에 이르는 식해탈에 대하여 의논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대중들과 함께 누진지통(漏盡智通)4)에 대하여 논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와서 누진지통에 대하여 묻는데,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누진지통에 대하여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면 곧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이 무사 비구라지만 어떻게 무사를 행한다고 하겠는가? 왜냐하면 이 사람은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한다면서 누진지통에 대하여 대답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대중들 가운데에서도 비구들의 꾸짖음과 힐책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사 비구로서 무사를 행하려면 마땅히 대중들과 함께 누진지통에 대하여 논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이때에 존자 대목건련도 대중 가운데 있었는데, 그가 말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무사 비구가 무사를 행하는 경우에만 이와 같은 법을 배워야 하고 마을에 거주하는 다른 비구는 배우지 않아도 되는가?”

존자 사리자가 대답하였다.
“존자 대목건련이여, 무사 비구가 무사를 행하는 데도 오히려 이와 같은 법을 배워야 하는데 하물며 다른 비구이겠는가?”

이와 같이 두 존자는 다시 서로를 ‘훌륭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이와 같이 이야기를 나눈 다음 그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공경하고 존중하여 조롱하거나 비웃지 말고
축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논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모든 감관[根]을 보호하고 먹는 것에 만족할 줄 알며
정진ㆍ바른 생각ㆍ바른 지혜를 가지도록 하라.

때를 알고 또한 잘 앉을 줄[善坐] 알고
율과 아비담에 대하여 논할 줄 알며
식해탈을 설명할 줄 알아야 하며
누진통(漏盡通) 또한 그러하다.
이 니구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740자이다.

27) 범지타연경(梵志陀然經) 제7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가란다원(竹林加蘭哆園)에서 큰 비구들과 함께 여름 안거를 지내셨다. 그때 존자 사리자(舍梨子)는 사위국(舍衛國)에서 또한 여름 안거를 지냈다.

이때 한 비구가 왕사성에서 3개월 동안의 여름 안거를 마치고, 옷을 기워 단속하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서 사위국으로 가서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머물고 있었다. 그 비구는 존자 사리자에게 가서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사리자가 물었다.
“현자는 어디서 왔으며 어느 곳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는가?”

그 비구는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왕사성에서 왔고 또한 그곳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습니다.”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여,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신 세존께서는 거룩한 몸이 건강하시고 편안하시며 무병하시고, 기거는 가벼우시며 기력도 여전하시던가?”

“그렇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신 거룩한 몸은 건강하시고 편안하시며 무병하시고 기거도 가벼우시며 기력도 한결같으십니다.”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여,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낸 비구와 비구니들도 다들 건강하고 편안하며, 무병하고 기거하기에 가벼우며 기력은 한결같으며, 자주 부처님을 뵙고 즐거이 법을 듣고자 하던가?”

“그렇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낸 비구와 비구니들도 다들 건강하고 편안하며 무병하고 기거도 가벼우며, 기력도 한결같고 자주 부처님을 뵙고 즐거이 법을 듣고자 했습니다.”

“현자여, 왕사성의 우바새와 우바이들도 몸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무병하고 기거도 가벼우며, 기력도 한결같고 자주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자 하던가?”

“그렇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왕사성의 우바새와 우바이들도 몸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무병하고 기거도 가벼우며 기력도 한결같고 자주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자 했습니다.”

“현자여,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낸 이학(異學)인 몇몇의 사문(沙門) 범지(梵志)들도 몸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무병하고 기거도 가벼우며, 기력도 한결같고 자주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자 하던가?”

“그렇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낸 이학인 몇몇의 사문 범지들도 여름 안거 동안 몸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기거도 가볍고 기력도 한결같으며, 자주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자 했습니다.”

사리자가 물었다.
“현자여, 왕사성에 타연(陀然)이라는 한 범지가 있는데, 그는 내가 출가하기 전의 옛 벗이다. 현자는 아는가?”
“압니다.”

“현자여, 왕사성의 범지 타연도 몸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무병하고, 기거도 가벼우며 기력도 한결같고 자주 부처님을 뵙고 법을 듣고자 하던가?

“존자 사리자여, 왕사성의 범지 타연도 몸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무병하고 기거도 가벼우며 기력도 한결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뵈려고 하지 않았고, 법 듣기를 즐겨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존자 사리자여, 범지 타연은 정진하지 않고 또한 금계(禁戒)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왕에게 붙어서는 범지와 거사들을 속이고, 또한 바라문과 거사들에게 의지해서 왕을 속이곤 합니다.”

사리자는 그 말을 듣고 사위국에서 3개월 동안의 여름 안거를 마친 뒤에, 옷을 기워 단속하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에서 왕사성으로 옮겨가서 죽림가란다원(竹林加蘭哆園)에 머물렀다.

그때 존자 사리자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 들어가 차례로 밥 빌기를 마치고, 범지 타연의 집에 이르렀다. 이때 범지 타연은 그 집에서 나와 우물가에 가서 그곳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었다.5)

범지 타연은 멀리서 존자 사리자가 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의 옷을 벗어 메고 합장한 채 사리자를 향해 찬탄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사리자여, 사리자께서는 오랫동안 여기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범지 타연은 공경스런 마음으로 존자 사리자를 부축해 모시고 집안으로 들어가, 좋은 자리를 깔고 앉기를 청했다. 사리자는 곧 그 평상에 앉았다. 범지 타연은 사리자가 앉는 것을 보고 금조관(金澡灌)을 잡고 사리자에게 드시기를 청했다.

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타연이여, 다만 마음이 기쁘면 만족한다.”

범지 타연은 다시 두 번 세 번 먹기를 청하였다. 존자 사리자도 두 번 세 번 말하였다.
“그만두라. 타연이여, 다만 마음이 기쁘면 만족한다.”

이때 범지 타연이 물었다.
“사리자여, 무슨 까닭으로 이 집에 들어오시고선 잡수려 하지 않습니까?”

사리자가 말했다.
“타연이여, 너는 정진하지도 않으면서 금계를 범하고 있다. 왕에게 붙어서는 범지와 거사들을 속이고, 범지와 거사들에게 붙어서는 왕을 속이고 있다.”

범지 타연이 말하였다.
“사리자여, 알아야 합니다. 나는 지금 세속에 있으면서 가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스스로도 안온해야 하겠으나 부모를 공양하고 처자를 보살피며 종들까지도 부양해야 합니다. 왕에게 조세를 보내야 하고, 모든 하늘에 제사지내야 하며 선조에게 제사지내고 또 사문 범지에게도 보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후세에 하늘에 나서 장수를 누리고 즐거운 과보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리자여, 이런 모든 일을 그만두고 한결같이 법만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이에 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타연이여, 내가 지금 너에게 물을 것이니 아는 대로 대답하라. 범지 타연이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어떤 사람이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나쁜 짓을 했다고 하자. 그는 나쁜 짓을 했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악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났다. 지옥에 나자, 옥졸들이 그를 잡아 몹시 괴롭게 다스릴 때 그는 옥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옥졸이여, 알아야 한다. 나를 괴롭게 다스리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서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어떠냐? 타연이여, 그 사람은 옥졸에게서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타연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사리자가 또 물었다.
“타연이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처자를 위하느라고 악을 행했다 하자. 그는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났다. 지옥에 나자, 옥졸이 그를 잡아 몹시 괴롭게 다스릴 때 그는 옥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옥졸이여, 알아야 한다. 나를 괴롭게 다스리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처자를 위하느라고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어떠냐? 타연이여, 그 사람은 옥졸에게서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타연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타연이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종들을 위하느라고 악을 행했다 하자.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났다. 지옥에 나자, 옥졸이 그를 잡아 몹시 괴롭게 다스릴 때 그는 옥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옥졸이여, 알아야 한다. 나를 괴롭게 다스리지 말라. 나는 종들을 위하느라고 악을 행했기 때문이다.’
어떠냐? 타연이여, 그 사람은 옥졸에게서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타연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또 물었다.
“타연이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왕을 위하고 하늘을 위하고 선조를 위하고 사문 범지를 위하느라고 악을 행했다 하자. 그는 악을 행하였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났다. 지옥에 나자, 옥졸이 그를 잡아 몹시 괴롭게 다스릴 때 그는 옥졸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옥졸이여, 알아야 한다. 나를 괴롭게 다스리지 말라. 나는 왕을 위하고 하늘을 위하고 선조를 위하고 사문 범지를 위하느라고 악을 행했다.’
어떠냐?타연이여, 그 사람은 옥졸에게서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타연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다시 물었다.
“타연이여, 족성자(族姓子)는 법답고 업다우며 공덕답게 재물을 얻어, 존중하고 공경을 다하며 효도로써 부모를 섬기고, 복덕의 업을 행하여 악한 업을 짓지 않아야 한다. 타연이여, 만일 족성자가 법답고 업다우며 공덕답게 재물을 얻어 존중하고 받들어 공경하며 부모를 효도로써 섬기고, 복덕의 업을 행하여 악한 업을 짓지 않으면, 그는 곧 부모의 사랑을 받게 되어 부모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로 하여금 굳세고 건강하여 수명이 끝없게 하리라. 왜냐하면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안온하고 쾌락하기 때문이다.’
타연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 그 덕은 날로 나아가 마침내 쇠퇴함이 없을 것이다.

타연이여, 족성자는 법답고 업다우며 공덕답게 재물을 얻어, 처자를 사랑하고 염려하며 공급해주어 보살피며 복덕의 업을 행하고 악한 업을 짓지 않아야 한다. 타연이여, 만일 족성자가 법답고 업다우며 공덕답게 재물을 얻어 처자를 사랑하고 염려하며, 공급해주어 보살피며 복덕의 업을 행하여 악한 업을 짓지 않으면, 그는 곧 처자들의 존경을 받게 되어 처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원컨대, 당신은 굳세고 건강하여 수명이 다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안온하고 쾌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연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처자의 지극한 존경을 받으면, 그 덕은 날로 늘어나 마침내 쇠퇴함이 없을 것이다.

타연이여, 족성자는 법답고 업다우며 공덕답게 재물을 얻어, 종들을 가엾이 여겨 먹을 것을 주어 보살피며, 복덕의 업을 행하여 악한 업을 짓지 않아야 한다. 타연이여, 만일 족성자가 법답고 업다우며 공덕답게 재물을 얻어 종들을 가엾이 여겨 먹을 것을 주어 보살피며, 복덕의 업을 행하여 악한 업을 짓지 않으면, 그는 곧 종들의 존경을 받게 되어 종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원컨대 상전께서는 굳세고 건강하여 수명이 다함없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상전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안온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타연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종들의 지극한 존경을 받으면, 그 덕은 날로 늘어나 마침내 쇠퇴함이 없을 것이다.

타연이여, 족성자는 법답고 업다우며 공덕답게 재물을 얻어, 사문 바라문을 존중하고 공양하며 복덕의 업을 행하여 악한 업을 짓지 않아야 한다. 타연이여, 만일 족성자가 법답고 업다우며 공덕답게 재물을 얻어, 사문 범지를 존중하고 공양하며 복덕의 업을 행하여 악한 업을 짓지 않으면, 그는 곧 사문 범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게 되어, 사문 범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주는 굳세고 건강하여 수명이 끝이 없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주로 말미암아 안온과 쾌락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타연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사문 범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 그 덕은 날로 늘어나 마침내 쇠퇴함이 없을 것이다.”

이에 범지 타연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의 옷을 벗어 메고 합장하며 존자 사리자에게 말했다.
“사리자여, 내게 단정(端正)이라는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데, 나는 그녀에게 반했기 때문에 방일하게 되어 크게 죄업을 지었습니다. 사리자여, 나는 오늘부터 아내 단정을 버리고 스스로 존자 사리자에게 귀의하겠습니다.”

존자 사리자가 대답하였다.
“타연이여, 너는 내게 귀의하지 말라. 너는 마땅히 내가 귀의한 부처님께 직접 귀의하라.”

“존자 사리자여, 나는 오늘부터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께 귀의하겠습니다. 원컨대 존자 사리자께서는 나를 받아 주셔서 부처님의 도량에 우바새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몸을 마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며, 마침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에 존자 사리자는 범지 타연을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그의 뜻을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그로 하여금 발심하게 하고 우러러 사모하게 하며, 그의 뜻을 성취하여 기뻐하게 한 다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왕사성을 유행하였다. 거기서 몇 날을 지내다가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서 나와 남산으로 가서, 남산 작은 마을 북쪽에 있는 섭화(攝惒)숲에 머물렀다.

그때에 어떤 비구도 왕사성을 유행하며 며칠을 지내다가 옷과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을 나왔으며, 역시 남산으로 가서 남산 작은 마을 북쪽에 있는 섭화숲에 머물렀다.

그 비구는 존자 사리자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사리자가 물었다.
“현자는 어디서 오며 어디서 유행하였는가?”

“존자 사리자여, 저는 왕사성에서 왔으며 그곳에서 유행하였습니다.”

“현자여, 왕사성에 내가 출가하기 전의 친한 친구 타연이란 범지가 있는데 그를 아는가?”

“압니다.”

“현자여, 왕사성에 있는 범지 타연은 몸이 건강하고 편안하며, 무병하고 기거가 가벼우며 기력도 한결같은가? 그리고 또 자주 부처님을 뵙고 즐거이 법을 듣고자 하던가?”

비구가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범지 타연은 자주 부처님을 뵙고자 하며, 또한 자주 법을 들으려고 합니다. 다만 편안하지 못해 기력이 갈수록 쇠해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존자 사리자여, 범지 타연은 지금 병을 앓아 아주 위독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로 말미암아 목숨을 마칠지도 모릅니다.”

존자 사리자가 이 말을 듣고는 곧 가사와 발우를 챙겨 가지고 남산에서 왕사성으로 가서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園)에 머물렀다. 존자 사리자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범지 타연의 집으로 갔다. 범지 타연은 멀리서 존자 사리자가 오는 것을 보고 곧 평상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존자 사리자가 달려가 만류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범지 타연이여, 그대는 누워 있으라. 일어나지 말라. 다른 평상이 있으니, 나는 거기에 따로 앉겠다.”

그리고는 존자 사리자는 곧 그 평상에 앉은 다음 물었다.
“타연이여, 병은 이제 어떤가? 음식은 얼마나 먹는가? 앓는 고통이 더 심하지나 않는가?”

“나는 병 때문에 너무도 고달프고 음식도 먹히지 않으며, 앓는 고통이 날로 더할 뿐 덜한 줄을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마치 역사(力士)가 잘 드는 칼로 머리를 찔러 심한 고통을 주는 것처럼, 지금 내 머리가 아픈 것도 그와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마치 역사가 단단한 노끈으로 머리를 졸라매어 심한 고통을 주는 것처럼 지금 내 머리가 아픈 것도 그와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마치 송아지를 잡을 때 잘 드는 칼로 그 배를 쪼개어 지극한 고통을 주는 것처럼, 지금 내 배가 아픈 것도 그와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마치 두 역사가 바짝 여윈 어떤 사람을 붙잡아 불 위에 올려놓고 구워 지극한 고통을 주는 것처럼, 지금 내 몸도 그렇게 아파서 온몸에 고통이 더할 뿐 덜하지 않음도 그와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타연이여,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을 것이니 그대는 아는 대로 대답하라. 범지 타연이여,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지옥과 축생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타연이 대답하였다.
“축생이 낫습니다.”

“타연이여, 축생과 아귀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아귀가 낫습니다.”

“타연이여, 아귀와 사람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사람이 낫습니다.”

“타연이여, 사람과 사왕천(四王天)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사천왕이 낫습니다.”

“타연이여, 사왕천과 삼십삼천(三十三天)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삼십삼천이 낫습니다.”

“타연이여, 삼십삼천과 염마천(焰摩天)6)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염마천이 낫습니다.”

“타연이여, 염마천과 도솔타천(兜率陀天)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도솔타천이 낫습니다.”

“타연이여, 도솔타천과 화락천(化樂天)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화락천이 낫습니다.”

“타연이여, 화락천과 타화락천(他化樂天)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타화락천이 낫습니다.”

“타연이여, 타화락천과 범천(梵天) 중 어느 것이 낫겠는가?”

“범천이 제일 좋습니다. 범천이 가장 좋습니다.”

존자 사리자가 말했다.
“타연이여, 세존(世尊)ㆍ지견(智見)ㆍ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께서 4범실(梵室)7)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족성남과 족성녀가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혀서 욕심을 끊고 욕념(欲念)을 버리게 되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범천에 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타연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이 자애[慈]와 함께하여 한 방위[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도록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悲]과 기뻐함[喜] 또한 그러하며, 마음은 평정[捨]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다.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도록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세존ㆍ지견ㆍ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 설하신 4범실이라는 것이다. 또 족성남과 족성녀가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혀서 욕심을 끊고 욕념을 버리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범천에 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에 존자 사리자는 타연을 교화하고 그를 위해 범천의 법을 설하여 마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사리자가 왕사성에서 나와 미처 죽림가란다원에 이르기도 전에, 범지 타연은 4범실을 닦아 익혀 욕심을 끊고 욕념을 버리고 나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범천에 태어났다.

이때 세존께서는 무량한 대중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그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셨다. 세존께서 멀리서 존자 사리자가 오는 것을 보시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리자 비구는 총명한 슬기[聰慧]ㆍ빠른 슬기[速慧]ㆍ민첩한 슬기[捷慧]ㆍ예리한 슬기[利慧]ㆍ넓은 슬기[廣慧]ㆍ깊은 슬기[深慧]ㆍ도(道)로 나아가는 슬기[出要慧]ㆍ밝게 통달한 슬기[明達慧]ㆍ변재의 슬기[辯才慧]가 있다. 사리자는 진실한 슬기를 성취했다. 사리자 비구는 범지 타연을 교화하고, 그를 위해 범천의 법을 설명해주고 오는 중이다. 만일 다시 범천법보다 더 윗단계의 법으로 교화했더라면 법다운 법을 속히 깨닫게 했을 것이다.”

이에 존자 사리자는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너는 어찌하여 범지 타연에게 범천보다 더 윗단계의 법을 가르치지 않았느냐? 만일 더 윗단계의 법으로 교화했더라면 그는 더 빨리 법다운 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리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 모든 범지들은 오랫동안 범천에 집착하고 범천을 좋아하며 범천을 구경(究竟)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범천을 존경하며 실로 범천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 범천’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제가 그렇게 대응해 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사리자와 한량없는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범지타연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331자이다.

28) 교화병경(敎化病經)8) 제8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마침 장자 급고독(給孤獨)이 병이 들어 위독하였다. 그때 장자 급고독이 한 심부름꾼[使者]에게 말했다.
“너는 부처님께 나아가 나를 위하여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세존께 ‘거룩한 몸은 건강하시고 편안하시며 병도 없으시고, 기거하시기에 불편한 점은 없으시며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하고 문안드려라. 또 ‘장자 급고독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세존께 문안드립니다. 거룩한 몸은 건강하시고 편안하시며 병도 없으시고, 기거하시기에 불편한 점은 없으시며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하고 나 대신 말씀드려라.
너는 나를 대신하여 부처님께 문안을 드린 뒤에 존자 사리자에게 가서 나를 위하여 그의 발에 절하고 ‘거룩한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며 질병이나 없으신지, 또 기거하는 데에 불편한 점은 없으며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하고 문안드려라.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씀드려라.
‘장자 급고독은 존자 사리자 발에 머리를 조아려 문안드립니다. 거룩한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며 질병이나 없으신지, 또 기거하는 데에 불편한 점은 없으며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존자 사리자여, 장자 급고독은 병을 앓아 지극히 피곤하며 지금은 위독하게 되었습니다. 장자 급고독은 지극한 마음으로 존자 사리자를 뵙고자 합니다. 그러나 몸이 몹시 쇠약하여 존자 사리자를 찾아뵐 힘이 없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부디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셔서 장자 급고독의 집으로 와 주십시오.’”

이에 심부름꾼은 장자 급고독의 분부를 받고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장자 급고독께서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존께 문안드립니다. 거룩한 몸은 건강하시고 편안하시며 질병이 없으시고, 기거하시는 데에 불편한 점은 없으시며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그러자 세존께서 심부름꾼에게 말씀하셨다.
“장자 급고독을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며, 하늘과 사람ㆍ아수라(阿修羅)ㆍ건탑화(揵塔惒)ㆍ나찰(羅刹)과 다른 온갖 중생들의 몸까지도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리라.”
이에 심부름꾼은 부처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지니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고 떠나갔다.

다시 존자 사리자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다.
“존자 사리자여, 장자 급고독은 존자 사리자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문안드립니다. 거룩한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며, 질병이 없으시고, 기거하시기 불편한 점은 없으시며,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존자 사리자시여, 장자 급고독은 병을 심하게 앓아 지금은 위독한 지경이 되었습니다. 장자 급고독은 지극한 마음으로 존자 사리자를 뵙고자 합니다. 그러나 몸이 몹시 쇠약하여 존자 사리자를 찾아뵐 힘이 없습니다. 존자 사리자시여, 부디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셔서 장자 급고독의 집으로 와 주십시오.”
존자 사리자는 곧 그를 위하여 잠자코 받아들였다. 심부름꾼은 존자 사리자가 잠자코 받아들인 것을 알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그 주위를 세 번 돌고 떠나갔다.

사리자는 그 밤을 지내고 이른 새벽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장자 급고독의 집으로 갔다. 장자 급고독은 멀리서 존자 사리자가 오는 것을 보고 곧 평상에서 일어나려 하였다.

사리자는 그것을 보고 곧 그를 만류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일어나지 마시오. 장자여, 일어나지 마시오. 다른 평상이 있으니 나는 거기에 따로 앉을 것입니다.”

사리자는 곧 그 평상에 앉은 뒤에 물었다.
“장자의 병은 지금은 어떠하며 음식은 얼마나 먹습니까? 앓는 고통이 더하지는 않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질병에 지극히 시달리고 음식도 잘 먹지 못하며, 앓는 고통이 날로 더할 뿐, 덜해짐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불신(不信)을 성취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태어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는 불신이 없고 오직 훌륭한 믿음만 있으니, 장자는 훌륭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혹은 사다함과(斯陁含果)를 증득하거나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須陁洹)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악한 계율로 인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에겐 악한 계율은 없고 오직 선한 계율만 있으니, 장자는 그 선한 계율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혹은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많이 듣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는 많이 들었으니, 장자는 많이 들음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많이 들었기 때문에 혹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간탐(慳貪)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에겐 간탐이 없고 오직 은혜로 보시한 일만 있으니, 장자는 은혜로써 베풀어 보시한 일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은혜로써 보시한 일로 말미암아 혹은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악한 지혜[惡慧]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에겐 악한 지혜는 없고 선한 지혜만 있으니, 장자는 선한 지혜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좋은 지혜로 말미암아 혹은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삿된 소견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는 삿된 소견이 없고 바른 소견만이 있으니, 장자는 바른 소견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바른 소견으로 인하여 혹은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삿된 뜻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는 삿된 뜻이 없고 오직 바른 뜻만 있으니, 장자는 바른 뜻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바른 뜻으로 인하여 혹은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삿된 깨침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에겐 삿된 깨침이 없고 바른 깨침만이 있으니, 장자는 바른 깨침으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바른 이해로 말미암아 혹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삿된 해탈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에겐 삿된 해탈이 없고 바른 해탈만이 있으니, 장자는 바른 해탈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마시오. 만일 어리석은 범부라면, 삿된 지혜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악한 곳에 이를 것이니 틀림없이 지옥에 날 것이오. 그러나 장자에겐 삿된 지혜가 없고 바른 지혜만 있으니, 장자는 바른 지혜로 말미암아 고통이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기며, 바른 지혜 때문에 혹 사다함과를 증득하거나 아니면 아나함과를 증득할 것이오. 장자는 옛날에 이미 수다원을 증득하였소.”

이와 같이 말하자 장자는 병이 곧 나아 옛날처럼 회복되었다. 그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존자 사리자를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병든 사람을 위하여 설법하시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병든 사람을 교화하는 법을 듣고 고통이 곧 없어지고 지극한 쾌락만 생겼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이제 병이 나아 옛날처럼 회복되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지난날 언젠가 일이 조금 있어서 왕사성에 갔다가 어떤 장자 집에서 묵었습니다. 그때 그 장자는 다음날 부처님과 비구 스님께 공양하기로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장자는 그 밤이 지나고 이튿날 새벽이 되자 아이들과 종들과 권속들에게 ‘너희들은 일찍 일어나 다 같이 준비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분부를 받고 주방을 만들고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함께 준비했습니다.장자는 몸소 높은 자리를 만들고 한량없이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그것을 보고는 ‘이제 저 장자가 무슨 혼인 잔치를 하려는가, 신부를 맞이하려는가, 국왕을 청하려는가, 대신을 부르려는가, 재회(齋會)를 열어 큰 보시를 행하려는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이렇게 생각하고 곧 장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혼인 잔치를 하려는가, 신부를 맞이하는 잔치를 하려는가, 국왕을 초대하려는가, 대신을 부르려는가, 재회를 열어 큰 보시를 행하려는가?’
그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혼인 잔치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신부를 맞이하려는 것도 아니며, 국왕을 초대하거나 대신을 부르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재회를 열어 큰 보시를 행하려고 하는데, 내일은 부처님과 비구 스님께 공양하려고 한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일찍이 부처라는 이름을 듣지 못했었는데, 그 말을 듣자 온몸의 털이 곤두섰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장자는 부처라고 말했는데, 어떤 것을 부처라고 하는가?’
장자는 저에게 답했습니다.
‘그대는 듣지도 못했는가? 어떤 석가(釋迦) 종족의 아들이 석가 종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 가정 없는 곳에서 도를 배워 위없는 등정각을 얻으셨다. 이분을 부처님이라고 한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장자는 비구 스님이라고 말했는데, 어떤 것을 스님이라 하는가?’
장자가 저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특별한 성명(姓名)을 지닌 여러 종족 출신으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 가정 없이 부처님을 따라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을 스님이라고 한다. 이 부처님과 스님을 오늘 내가 초대하는 것이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다시 그 장자에게 물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지금 어디 계신가? 내가 가서 뵙고자 한다.’
그 장자가 다시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세존께서는 지금 이 왕사성 죽림가란다원에 계신다. 가려거든 가보라.’

존자 사리자여,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서 날이 새어라. 빨리 가서 부처님을 뵈리라.’
존자 사리자여, 저는 그때 부처님을 찾아가 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곧 날이 밝았다는 생각을 하고는 곧바로 장자의 집을 나와 성식문(城息門)으로 갔습니다. 그때에 성식문에는 두 문지기가 있었습니다. 한 문지기는 초야(初夜)로서 바깥의 손님을 걸림 없이 들게 하고, 한 문지기는 후야(後夜)로서 만일 손님이 있으면 또한 걸림 없이 나가게 하였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직 날이 새지 않았구나. 성식문에는 두 문지기가 있다. 한 문지기는 초야로서 바깥의 손님을 걸림 없이 들게 하고, 한 문지기는 후야로서 만일 손님이 있으면 걸림 없이 나가게 한다.’
존자 사리자여, 성식문을 벗어나 밖으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밝음은 없어지고 도로 어두워졌습니다. 저는 갑자기 두려워져 온몸의 털이 곤두섰습니다.
‘사람인 듯 사람 아닌 것[人非人:긴나라]들이 저를 해치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그때 성식문에 있던 한 천인(天人)이 왕사성에서 죽림가란다원까지 광명을 널리 비추면서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장자여, 두려워하지 말라. 장자여,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전생에 너의 친구로서 이름을 밀기(密器)라 하며, 어릴 때부터 서로 아끼는 마음이 지극했다. 장자여, 나는 옛날 마하 목건련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었다. 존자 대목건련은 나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나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한 뒤에,세 가지 자귀(自歸)를 주고 다섯 가지 계를 주었다. 장자여, 나는 3귀의와 5계를 받아 가짐으로 말미암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사천왕천에 나서 이 성식문 안에 살게 되었다. 장자여, 빨리 가라. 장자여, 빨리 가라. 가는 것이 진실로 여기 있는 것보다 낫다.’

그 하늘[天]은 이렇게 저에게 권하고 또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말과 온갖 신하와 여자를 얻고
수레 백 대에 보배 가득 채웠어도
부처님께 나아가는 걸음, 한 걸음
그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네.

최고로 좋은 백 마리 흰 코끼리에
금ㆍ은의 안장 굴레 장식하여도
부처님께 나아가는 걸음, 한 걸음
그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네.

백 명의 여자 얼굴이 단정하고
영락과 꽃으로 몸을 꾸며도
부처님께 나아가는 걸음, 한 걸음
그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네.

전륜성왕이 공경하는 바
제일가는 옥녀보(玉女寶)도
부처님께 나아가는 걸음, 한 걸음
그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네.

하늘은 게송을 마치고 다시 저에게 권했습니다.
‘장자여, 빨리 가라. 장자여, 빨리 가라. 가는 것이 진실로 여기 있는 것보다 낫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는 존우(尊祐)의 덕이 있으시다. 법과 비구 스님께도 존우의 덕이 있다. 왜냐하면 하늘 신들까지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이 광명으로 인하여 죽림가란다원으로 갔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자, 선실에서 나와 바깥을 거니시면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저는 멀리서 부처님을 뵈었는데, 단정하고 아름다워 마치 뭇별 가운데 달과 같았고, 빛나고 환하여 그 밝기는 금산(金山)과 같았습니다. 좋은 상호를 두루 다 갖추셨고 위의는 당당하셨으며, 모든 감각기관은 고요하고 안정되어 아무런 장애가 없으며, 조어(調御)를 성취하셨으며 마음이 쉬어 고요하고 잠잠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며 부처님께 나아가 발에 예배한 뒤에, 부처님을 따라 거닐면서 장자의 법대로 게송으로 문안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지극히 안온하고
또 유쾌하게 주무셨습니까?
멸도에 든 바라문처럼
모든 욕심에 물들지 않으시네.

온갖 바람을 여의어 버리고
지극한 편안함을 체득하시어
마음을 없애고 번열도 없이
스스로 즐거이 주무셨습니까?

그때 세존께서는 곧 거니시던 길가에 니사단(尼師檀)을 깔고 가부좌하고 앉으셨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제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자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셨으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셨습니다. 그러신 뒤에 모든 부처님의 법과 같이 먼저 단정법(端正法)을 말씀하시자, 듣는 사람은 다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보시를 말씀하시고 계율을 말씀하시며 하늘에 나는 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을 꾸짖어 재앙과 걱정거리가 된다 하셨고, 나고 죽음을 더러움[穢]이라 하셨으며, 욕심 없음이 묘도품(妙道品)의 백정(白淨)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이러한 법을 말씀하신 뒤에, 저에게 기뻐하는 마음[歡喜心]ㆍ두루 갖춘 마음[具足心]ㆍ부드러운 마음[柔軟心]ㆍ참아내는 마음[堪耐心]ㆍ위로 오르는 마음[昇上心]ㆍ한결같이 향하는 마음[一向心]ㆍ의심 없는 마음[無疑心]ㆍ덮임이 없는 마음[無蓋心]이 있고, 또 재능이 있고 힘이 있어, 바른 법을 감당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른바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른 법칙과 같았습니다.
세존께서는 곧 나를 위해 또 괴로움[苦]ㆍ괴로움의 발생[習]ㆍ괴로움의 소멸[滅]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말씀하셨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곧 그 자리에서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깨달았습니다. 마치 흰 천은 물들기 쉬운 것처럼 저도 그와 같아서 그 자리에서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깨달았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이미 법을 깨달았고 그 법을 증득하였습니다. 백정법(白凈法)을 깨달아 의심을 끊고 의혹을 건너니, 이보다 더 높은 다른 것이 없었고 다시는 남을 따르지 않으며 망설임 없이 이미 과증(果證)에 머물러 세존의 법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께 귀의합니다.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받아들여 우바새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지금부터 시작하여 이 몸을 마치도록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또 합장하고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원하건대 제 청을 들어 주셔서,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시고 비구 스님들도 그렇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저에게 물었습니다.
‘네 이름은 무엇이며, 사위국 사람들은 너를 어떻게 부르는가?’
저는 곧 대답했습니다.
‘제 이름은 수달다(須達哆)이며, 저는 모든 고독한 사람들에게 베푼다고 해서 사위국 사람들은 저를 급고독이라고 부릅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사위국에는 방사(房舍)가 있는가?’
‘사위국에는 방사가 없습니다.’

세존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장자여, 마땅히 알라. 만일 방사가 있으면 비구들이 오고 갈 수가 있고 머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렇게 하기 위하여 방사를 짓겠습니다. 비구들이 오고 갈 수가 있게 하며, 사위국에서 머물 수 있게 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곁에서 저를 도와줄 사람을 한 명 임명해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존자 사리자를 보내어 일을 돕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부처님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지니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떠나갔습니다. 왕사성에서 볼 일을 마치고, 존자 사리자와 함께 사위국으로 가서는 사위성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또한 집에도 돌아가지 않고 성 밖에서 두루 땅을 살펴보았습니다.
‘어느 곳이 오고 가는데 가장 편리할까? 낮에도 시끄럽지 않고 밤이면 고요하며 모기나 등에도 없고 파리나 벼룩도 없으며 또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니, 방사를 세워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께 드릴만 할까?’
존자 사리자여, 저는 그때에 오직 동자(童子) 승(勝)9)의 동산이 오고 가는데 가장 편리하며 낮에도 시끄럽지 않고 밤이면 고요하며 모기나 등에도 없고 파리나 벼룩도 없으며,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안 뒤에 곧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곳이 좋겠다. 이곳이라면 방사를 세워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에게 드릴만 하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그때 사위국에는 들어갔으나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먼저 동자 승(勝)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동자여, 이 동산을 저에게 팔 수 있겠습니까?’
그때 동자는 곧 저에게 말했습니다.
‘장자여, 마땅히 아십시오. 나는 이 동산을 팔지 않겠습니다.’
‘동자여, 이 동산을 저에게 파십시오.’
이렇게 두세 번 말했습니다. 그때 동자도 두세 번 제게 말했습니다.
‘억억금을 가져다 이 동산에 쫙 깔아 놓기 전까진 나는 동산을 팔지 않겠소.’
저는 곧 그에게 말했습니다.
‘동자여, 이제 이미 값은 결정되었으니 그저 돈만 받으시면 됩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와 동자는 값을 결정했다느니 결정하지 않았다느니 하여 크게 승강이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곧 사위국의 재판소로 같이 가서 이 일에 대하여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때 사위국의 심판관은 동자 승에게 말했습니다.
“동자여, 이미 당신 스스로 값을 결정했으니, 그저 돈만 받으시면 됩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곧 사위국으로 들어가서 집으로 달려가 코끼리와 말과 수레에 억억금을 실어 내어 땅에 깔았습니다. 그런데 돈이 조금 모자랐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느 창고의 것을 가져 와야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남은 곳에 깔아 채울 수 있을까?’
이때 동자 승은 내게 말했습니다.
‘장자여, 만일 후회되거든 그만 돈을 거두어 돌아가고 이 동산을 내게 돌려주시오.’
제가 동자에게 말하였습니다.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창고의 것을 가져 와야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게 남은 곳을 깔아 채울 수 있을까 하고 생각 중일뿐입니다.’

이때 동자 승은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반드시 크고 높으신 어른으로 큰 덕과 복이 있는 분일 것이다. 그 법과 비구들도 반드시 크고 높으며 큰 덕과 복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 장자가 저토록 재물을 아끼지 않고 큰 보시를 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차라리 여기에 큰 집을 세워 부처님과 대중에게 보시해야겠다.’
이때 동자 승은 곧 저에게 말했습니다.
‘장자여, 잠시 멈추시오. 그리고 돈을 내어 여기 깔지 마시오. 내가 여기에 큰 집을 세워 부처님과 대중에게 보시할 것이오.’
존자 사리자여, 저는 그를 대견스럽게 여겨, 곧 그곳을 동자 승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그해 여름에 열여섯 개의 큰 집과 60개의 방사[拘絺:庫舍]를 세우게 하였는데, 그때 존자 사리자께서 그것을 감독하셨습니다. 그런 존자 사리자께서 병을 다스리는 법을 말씀해 주시니 너무도 기이하고 특별한 일입니다. 저는 병을 다스리는 이 법을 듣고 나서 그토록 심하던 고통이 곧 사라지고 지극한 쾌락을 얻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이제 병이 없고 지극히 편안하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존자 사리자께서는 이곳에서 공양하십시오.”
그때 존자 사리자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었다.

그러자 장자는 존자 사리자가 잠자코 청을 받아 준 것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몸소 손 씻을 물을 돌리고, 지극히 맛있고 깨끗하고 미묘한 갖가지 단단한 음식과 부드러운 음식을 손수 집어드리고 권하며 한껏 공양하게 하였다. 공양을 마치자, 그릇을 거두고 손 씻을 물을 돌린 뒤에 작은 자리를 깔고 따로 앉아 법을 들었다. 장자가 앉자, 존자 사리자는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이때 세존께서는 한량없이 많은 대중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존자 사리자가 오는 것을 보시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리자 비구는 총명한 지혜ㆍ신속한 지혜ㆍ민첩한 지혜ㆍ예리한 지혜ㆍ넓은 지혜ㆍ깊은 지혜ㆍ도(道)로 나아가는 지혜ㆍ환히 아는 지혜ㆍ변재의 지혜가 있다. 사리자 비구는 진실한 지혜를 성취하였다. 내가 간략하게 말한 네 종류의 수다원에 대하여, 그는 장자 급고독을 위하여 열 종류로 늘려 설명하였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아련야(阿練若) 비구로 표기하기도 하며, 곧 한림(閑林)에 머무르면서 수행하는 비구를 말한다.
2 『중아함경』 제17권 179번째 소경인 오지물품경(五支物品經)에 의하면 “왕론(王論)ㆍ적론(賊論)ㆍ투쟁론(鬪爭論)ㆍ음식론(飮食論)ㆍ의복론(衣服論)ㆍ세간론(世間論)ㆍ사도론(邪道論)ㆍ해중론(海中論) 등 이런 것들을 모아 몇 가지 축생론(畜生論)을 설명하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이런 내용으로 보아 쓸데없는 잡다한 이야기라는 뜻인 것 같다.
3 색(色)의 선정을 초월하여 무색(無色)의 선정에 이르러서 적정해탈(寂靜解脫)에 안주하는 것을 말한다.
4 누진지증통(漏盡智證通)이라고도 한다. 6통(通)의 하나로서 무명번뇌를 끊어 자유자재하며 4제(諦)의 이치를 깨달아 다시는 삼계(三界)에 미혹하지 않는 부사의(不思議)한 경지.
5 “우물가에 가서 그곳 백성들을 괴롭혔다”는 내용이 파리본(巴利本)에는 “성 밖 소 키우는 막사에 가서 사람을 시켜 소젖을 짜고 있었다”로 되어 있다.
6 고려대장경에는 험마천(㷿摩天)으로 되어 있다. 송ㆍ원ㆍ명 3본(本)에 의거하여 염마천(焰摩天)으로 수정하였다.
7 4무량심(無量心), 즉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 네 가지를 일컫는 말로서 이 네 가지를 잘 닦아 익히면 능히 대범천(大梵天)의 과보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8 이 경의 참고가 될 만한 경문으로는 『증일아함경』 제49권 제51품인 「비상품(非常品)」의 여덟 번째 소경이 있다.
9 원래 기원(祇園)을 소유하고 있던 바사닉왕(波斯匿王)의 아들인 기타태자(祇陀太子)를 말한다.

중아함경 제7권

3. 사리자상응품 제3③
29) 대구치라경(大拘絺羅經) 제9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園)에 계셨다.

그때에 존자 사리자는 해거름에 연좌(燕坐)에서 일어나, 존자 대구치라(大拘絺羅)에게 가서 안부를 묻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사리자가 존자 대구치라에게 말하였다.
“내가 물을 일이 있는데 들어 주겠습니까?”

존자 대구치라가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물을 일이 있거든 물어보십시오. 내가 듣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존자 사리자가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어떤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어지지 않는 청정함[不壞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불선(不善)을 알고 불선근(不善根)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불선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몸이 짓는 악행은 불선이며, 입과 뜻이 짓는 악행은 불선이라고 아는 것이니, 이것이 불선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불선근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탐욕은 불선근이며, 성냄과 어리석음은 불선근이라고 아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불선근을 아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불선과 불선근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어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어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선(善)을 알고 선근(善根)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선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몸이 짓는 묘행(妙行)은 선이며 입과 뜻이 짓는 묘행은 선이라고 아는 것이니, 이것을 선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선근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탐욕이 없는 것은 선근이며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는 것은 선근이라고 아는 것이니, 이것을 선근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선을 알고 선근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어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어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음식10)의 참뜻을 알고 음식의 원인을 알며, 음식의 멸함을 알고 음식이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음식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식(食)이 있는데, 첫째는 거칠거나 섬세한 단식(摶食)이며, 둘째는 갱락식(更樂食:觸食)이며, 셋째는 의사식(意思食)이며, 넷째는 식식(識食)임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음식의 참뜻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음식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사람으로 말미암아 음식이 있다고 아는 것이 음식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안다는 것이오. 어떤 것을 음식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사람이 멸하면 음식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이 음식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음식을 멸하는 도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支聖道)11)이니, 정견(正見)에서 정정(正定)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이 음식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안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음식의 참뜻을 알고 음식의 원인을 알며, 음식의 멸함을 알고 음식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있어서 깨어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어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누(漏:煩惱)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누의 발생을 알며, 누의 소멸을 알고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누(漏)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세 가지가 있는데, 욕루(欲漏)와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이니, 이것이 누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누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무명으로 말미암아 곧 누가 있다고 아는 것이 누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누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무명이 멸하면 누가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이 누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인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正見)에서 정정(正定)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이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누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누의 발생을 알며, 누의 소멸을 알고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어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集]에 대해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滅]에 대해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남[生]은 괴로움이며, 늙음도 괴로움이며, 병듦도 괴로움이며, 죽음도 괴로움이며, 싫어하는 것과 만나는 일도 괴로움이며,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일도 괴로움이며,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니, 간단히 줄여 5성음(盛陰)은 괴로움이라고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것을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늙음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곧 괴로움이 있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늙음과 죽음이 멸하면 괴로움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괴로움이 멸하는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괴로움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괴로움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며, 괴로움의 소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늙음과 죽음의 참뜻을 알고 늙음과 죽음의 원인을 알며, 늙음과 죽음이 멸함을 알고 늙음과 죽음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늙음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저 사람이 늙어지면 머리는 희어지고 이는 빠지며 젊음은 날로 쇠해 간다. 머리가 희어지고 다리도 휘어지며, 몸은 무겁고 피는 머리로 올라가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살은 쭈그러들고 피부는 늘어나 주름지는 것이 마치 얽은 것 같으며, 모든 감각기관은 헐고 얼굴빛이 추악해지면 이것을 늙음이라 한다’고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죽음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저 모든 중생들은 목숨을 마치고 항상됨이 없으므로 한번 죽으면 흩어져 없어지고, 수명이 다하면 부서져 명근(命根)이 닫히고 마는데, 이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죽음을 말했고, 앞에서는 늙음을 말했습니다. 이것을 늙음과 죽음이라 하고, 이것을 늙음과 죽음의 참뜻을 안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늙음과 죽음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까? 이른바 남으로 말미암아 곧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아는 것이 늙음과 죽음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늙음과 죽음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남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이 늙음과 죽음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늙음과 죽음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이 늙음과 죽음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안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늙음과 죽음의 참뜻을 알고 늙음과 죽음의 원인을 알며, 늙음과 죽음의 멸함을 알고 늙음과 죽음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깨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생의 참뜻을 알고 생의 원인[習]을 알며, 생의 멸함을 알고 생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생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저 중생과 저 모든 중생들이 생(生)하게 되면 생했다고 알고, 나오게 되면 나왔다고 알며, 자라게 되면 자랐다고, 알고 5음을 일으킨 뒤에는 이미 명근을 얻었다고 아는 것이니, 이것을 생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생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유(有)로 말미암아 곧 생이 있다고 아는 것을 생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생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유가 멸하면 생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생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생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생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생의 참뜻을 알고 생의 원인을 알며, 생의 멸함을 알고 생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해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유(有:존재)에 대한 참뜻을 알고 존재의 원인을 알며, 존재의 멸함을 알고 존재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존재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유(有)가 있으니,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라고 아는 것을 존재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존재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수(受)로 말미암아 곧 유가 있다고 아는 것을 유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유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수가 멸하면 유가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유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 합니다. 어떤 것을 유를 멸하는 도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유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유의 참뜻을 알고 유의 원인을 알며 유의 멸함을 알고 유를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수(受:取)의 참뜻을 알고 수의 원인을 알며, 수의 멸함을 알고 수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입니디. 어떤 것을 수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수(受)가 있으니, 욕수(欲受)ㆍ계수(戒受)ㆍ견수(見受)ㆍ아수(我受)라고 아는 것을 수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수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애(愛)로 말미암아 곧 수가 생긴다고 아는 것을 수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수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애가 멸하면 수가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수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수를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수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 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수의 참뜻을 알고 수의 원인을 알며, 수의 멸함을 알고 수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애(愛)의 참뜻을 알고 애의 원인을 알며, 애의 멸함을 알고 애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애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애(愛)가 있으니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라고 아는 것을 애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애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각(覺)으로 말미암아 곧 애가 있다고 아는 것을 애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애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각이 멸하면 애가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애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애를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애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애의 참뜻을 알고 애의 원인을 알며, 애의 멸함을 알고 애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현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각(覺:受)의 참뜻을 알고 각의 원인을 알며, 각의 멸함을 알고 각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각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각(覺)이 있으니, 낙각(樂覺)ㆍ고각(苦覺)ㆍ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라고 아는 것을 각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각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갱락(更樂)으로 말미암아 곧 각이 있다고 아는 것을 각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각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갱락이 멸하면 각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각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각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각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각의 참뜻을 알고 각의 원인을 알며, 각의 멸함을 알고 각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 가운데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또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서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갱락(更樂:觸)의 참뜻을 알고 갱락의 원인을 알며, 갱락의 멸함을 알고 갱락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갱락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갱락(更樂)이 있으니 낙갱락(樂更樂)ㆍ고갱락(苦更樂)ㆍ불고불락갱락(不苦不樂更樂)이라고 아는 것을 갱락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갱락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처(處)로 말미암아 곧 갱락이 있다고 아는 것을 갱락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 고 합니다. 어떤 것을 갱락의 멸함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처가 멸하면 갱락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갱락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갱락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갱락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갱락의 참뜻을 알고 갱락의 원인을 알며, 갱락의 멸함을 알고 갱락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해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비구가 6처(處:入)의 참뜻을 알고 6처의 원인을 알며, 6처의 멸함을 알고 6처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6처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안처(眼處)와 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라고 아는 것을 6처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6처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명색(名色)으로 인하여 6처가 생겨난다고 아는 것을 6처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6처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명색이 멸하면 6처가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6처를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6처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正見)에서 정정(正定)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6처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6처의 참뜻을 알고 6처의 원인을 알며, 6처의 멸함을 알고 6처를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난 다음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혹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명색(名色)의 참뜻을 알고 명색의 원인을 알며, 명색의 멸함을 알고 명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명(名)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색이 아닌 4음(陰)을 명이라고 한다고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색(色)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4대(大) 및 4대로 이루어진 것[四大造]을 색이라 한다고 아는 것입니다. 이렇게 색을 말하고 앞에서는 명을 말했는데, 이것이 곧 명색입니다. 이런 것을 아는 것을 명색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명색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식으로 말미암아 곧 명색이 있다고 아는 것을 명색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 고 합니다. 어떤 것을 명색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식(識)이 멸하면 명색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명색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명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명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명색의 참뜻을 알고 명색의 원인을 알며, 명색의 멸함을 알고 명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식(識)의 참뜻을 알고 식의 원인을 알며, 식의 멸함을 알고 식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식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식이 있으니,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이라고 아는 것을 식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식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행(行)으로 말미암아 곧 식이 있다고 아는 것을 식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식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행이 멸하면 식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식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식을 멸하는 방법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에서 정정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식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식의 참뜻을 알고 식의 원인을 알며, 식의 멸함을 알고 식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다시 그 일로 인하여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일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른바 어떤 비구가 행(行)의 참뜻을 알고 행의 원인을 알며, 행의 멸함을 알고 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행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행(行)이 있으니 신행(身行)ㆍ구행(口行)ㆍ의행(意行)이라고 아는 것을 행의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행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곧 행이 있다고 아는 것을 행의 원인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행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명이 멸하면 행이 곧 멸한다고 아는 것을 행의 멸함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8지성도이니, 정견(正見)에서 정정(正定)까지의 여덟 가지를 아는 것을 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렇게 행의 참뜻을 알고 행의 원인을 알며, 행의 멸함을 알고 행을 멸하는 방법에 대한 참뜻을 알면, 이것이 이른바 비구가 소견을 성취하여 바른 소견을 얻고, 법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청정함을 얻어 바른 법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찬탄하고 나서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대구치라여, 만일 어떤 비구가 무명이 이미 다하고 밝음[明]이 생겼다면 다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비구가 무명이 이미 다하고 밝음이 생겼다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존자 사리자는 이 말을 듣고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현자 대구치라여.”

이렇게 두 존자는 서로 이치를 이야기하고, 저마다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이 대구치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077자이다.

30) 상적유경(象跡喩經) 제10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사리자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비록 한량없는 선법(善法)이 있더라도 그 모든 법은 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포섭되는 것으로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일체법에서 제일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선법을 다 포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은 마치 모든 짐승의 발자국 중에 코끼리의 발자국이 제일 큰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저 코끼리 발자국이 가장 넓고 크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저 한량없는 일체 선법도 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포섭되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일체법에서 제일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ㆍ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習聖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가 그것입니다.
어떤 것을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하는가? 이른바 남[生]은 괴로움이며, 늙음도 괴로움이며, 병듦[病]도 괴로움이며, 죽음도 괴로움이다. 원수를 만나는 일도 괴로움이며,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것도 괴로움입니다.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며, 간략히 줄여서 5성음(盛陰)이 괴로움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5성음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색성음(色盛陰)과 각성음(覺盛陰)ㆍ상성음(想盛陰)ㆍ행성음(行盛陰)ㆍ식성음(識盛陰)이 그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을 색성음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색질이 있는 것으로서 그 일체는 4대와 4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어떤 것을 4대라고 하는가? 이른바 지계(地界)와 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가 그것입니다. 어떤 것을 지계라고 하는가? 지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지계(內地界)가 있고 외지계(外地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을 내지계라고 하는가? 이른바 몸속에 있는 것이니 몸에 내포되어 있는 단단한 성질의 것들로서, 몸 안에 수용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머리털ㆍ털ㆍ손톱ㆍ이ㆍ거칠고 고운 피부ㆍ살ㆍ근육ㆍ뼈ㆍ염통ㆍ콩팥ㆍ간ㆍ허파ㆍ지라ㆍ창자ㆍ밥통ㆍ똥 등 이와 같은 것들로서, 몸 안에 들어 있어 몸에 내포되어 있는 단단한 성질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니, 이것을 내지계라고 합니다. 여러분 외지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며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여, 때로 수재(水災)를 만나면 그때에 외지계는 멸망하게 됩니다.

여러 현자여, 이 외지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도 무상(無常)한 법이며 다함이 있는 법이며, 쇠하는 법이며 변하는 법인데, 하물며 잠깐 머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我]이다. 이것은 내 것[我所]이다. 나는 그의 것[彼所]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며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따라 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연이 되는가? 고갱락(苦更樂)이 연이 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覺)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界)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따라 나는 것으로써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樂更樂)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ㆍ상ㆍ행ㆍ식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界)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거나 혹은 무기로 때리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色法)의 거친 바탕으로 네 가지 요소[四大之種]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음식으로 키웠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부서질 법(法)이며, 없어져 다할 법이며, 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忘]12)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어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혹 마음이 변하거나 혹 추악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내 몸을 자르더라도, 그 때문에 내 마음이 변하거나 악한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마디마디 내 몸을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한 마음을 냈기 때문에, 마음은 사랑과 함께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닐며,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ㆍ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사랑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善)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그 비구는 반드시 제 자신과 다른 이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이익이 있을 만한 데도 이익이 없고, 덕이 있을 만한 데도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은 마치 처음 맞이한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보며,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그와 같이 반드시 자신과 남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이익에 대하여 이익이 없고, 덕에 대하여 덕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息寂)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을 수계(水界)라고 하는가? 이른바 수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수계(內水界)와 외수계(外水界)가 그것입니다. 어떤 것이 내수계인가? 몸속에 있으며 몸에 포함되어 있는 물로서 그 물의 성질은 촉촉하며, 몸 안에 수용된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골ㆍ뇌수ㆍ눈물ㆍ땀ㆍ콧물ㆍ가래침ㆍ고름ㆍ피ㆍ기름덩이ㆍ골수ㆍ침ㆍ가래ㆍ오줌, 이와 같은 것들로서 몸속에 들어 있는 것들입니다. 몸에 내포된 물로서 그 물의 성질은 촉촉하며 몸 안에 받은 것이니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을 내수계라고 합니다. 또 외수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며,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화재(火災)가 있을 때에는 외수계가 멸합니다.

여러 현자여, 이 외수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도 무상(無常)한 법이며 다함이 있는 법이며, 쇠하는 법이며 변하는 법인데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는 훌륭한 제자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거나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난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고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ㆍ상ㆍ행ㆍ식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ㆍ상ㆍ행ㆍ식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거나 무기로 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의 거친 바탕이며 4대(大)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음식으로 키웠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부서질 법(法)이며 없어져 다할 법이며, 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게 굴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어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일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며,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그 비구는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 아무 덕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은 마치 갓 시집 온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보면,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息寂)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화계(火界)인가? 이른바 화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화계(內火界)가 있고 외화계(外火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내화계인가? 이른바 몸속에 있으며 몸에 내포되어 있는 불로서 그 불의 성질은 뜨거우며 몸 안에 수용된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몸을 따뜻하게 하고 몸을 뜨겁게 하며, 번민을 일으키게 하고 체온을 따뜻하게 하여 건강하게 하며, 음식을 소화시키는,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몸 안에 있으며 몸속에 내포되어 있는 불로서 그 불의 성질은 뜨거우며 몸 안에 수용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바로 이것을 내화계라고 합니다.
또 외화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며,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혹 때로는 외화계가 일어나는데 그것이 일어나면 마을ㆍ성곽ㆍ산림ㆍ광야를 다 태우며, 태우다가 혹은 길에 이르고 물에 이르러 받아들이는 것이 없으면 저절로 소멸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외화계가 소멸한 뒤에 사람들은 불을 구하려고 나무를 비벼대거나 대나무를 끊으며, 혹은 구슬로 불을 일으키곤 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 외화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도 무상한 법이며 다함이 없는 법이며 쇠하는 법이며 변하는 법인데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만들어진 이 몸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는 훌륭한 제자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저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며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생긴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고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ㆍ상ㆍ행ㆍ식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생긴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ㆍ상ㆍ행ㆍ식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뒷날, 만일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며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거나 혹은 무기로 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의 거친 바탕이며 4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서 음식으로 키웠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부서질 법(法)이며 없어져 다할 법이며 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말미암아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는다.’
그러므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됩니다. 그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여러분, 세존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일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땅히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며,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다.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그 비구는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비유하면 마치 갓 시집 온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볼 때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말미암아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것이 풍계(風界)인가?풍계에 두 가지가 있으니, 내풍계(內風界)가 있고 외풍계(外風界)가 있습니다. 어떤 것이 내풍계인가? 이른바 몸속에 있으며 몸속에 내포되어 있는 바람으로서 그 바람의 성질은 움직이는 것으로서 몸 안에 수용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어떤 것들인가? 이른바 위로 부는 바람ㆍ밑으로 부는 바람ㆍ뱃속의 바람ㆍ움직이는 바람ㆍ끌어당기는 바람ㆍ칼바람ㆍ오르는 바람ㆍ정상적이지 않은 바람ㆍ뼈마디의 바람ㆍ내쉬는 바람ㆍ들이쉬는 바람, 이와 같은 것들로서 몸속에 있으며 몸에 내포되어 있는 바람으로 그 바람의 성질은 움직이는 것으로서 몸 안에 수용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내풍계라고 합니다.
외풍계란 무엇인가? 이른바 큰 것이 그것이며, 깨끗한 것이 그것이며, 미워하지 않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혹 어떤 때에는 외풍계가 일어나는데, 외풍계가 일어날 때에는 집을 뒤집고 나무를 뽑아내며, 산을 무너뜨리고 산을 뒤집은 뒤에는 곧 멈추어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외풍계가 그친 뒤에 사람들은 바람을 구하려고 부채로 혹은 다라(哆邏)나무 잎으로, 혹은 옷으로 바람을 구하곤 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외풍계는 지극히 크고, 지극히 깨끗하며, 지극히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이것도 무상한 물질이며 다함이 있는 물질이며 쇠하는 물질이며 변하는 물질인데, 하물며 잠깐 머무르는 애욕으로 받은 이 몸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른바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내 것이다. 나는 그의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만일 어떤 다른 사람이 꾸짖고 때리거나 성내어 나무라면,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인연을 좇아 생겨난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고갱락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覺)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뒷날 다른 사람이 와서 부드럽고 고운 말씨로 말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는 이 즐거움은 인연을 좇아 생겨나는 것으로서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인연하는가? 낙갱락(樂更樂)을 인연한다.’
그는 이 갱락이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고, 각ㆍ상ㆍ행ㆍ식도 무상한 것임을 관찰하여, 그의 마음은 계를 인연하여 머물러 그치고, 한마음과 합해 안정되어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또 뒷날에 어떤 어린이나 젊은이나 늙은이가 와서 못할 짓을 행하고, 혹은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며 혹은 무기 따위로 때리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받은 이 몸은 색법의 거친 바탕이며 4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부모에게서 태어나 음식으로 자랐으며 항상 옷을 입고 앉고 눕고 안마하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으며 살아간다. 이것은 부서질 법(法)이며 없어져 다할 법이며 떠나 흩어질 법이다. 나는 이 몸으로 인하여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 따위의 가해를 받는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힘써 게을리 하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지런히 힘써 게을리 하지 않고, 바른 몸과 바른 생각으로 잊지도 않고 어리석지도 않으며, 안정되고 한마음이 되었다. 나는 이 몸을 받았으므로 주먹질과 돌팔매질과 칼부림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부지런히 힘써 세존의 법을 배워야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을 자른다 하자. 만일 네가 도적에게 날이 예리한 톱으로 마디마디 몸이 잘릴 때에, 마음이 변하거나 나쁜 말을 한다면 너는 곧 쇠퇴하는 것이다. 너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하라.
〈비록 도적이 와서 날이 예리한 톱으로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더라도, 그 일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변하게 하거나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마땅히 내 몸을 마디마디 자르는 그를 위하여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리라.〉
그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닐며,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한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원만히 노닌다.’

여러 현자들이여, 저 비구가 만일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그 비구는 제 자신과 남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그것을 비유하면 마치 갓 시집온 신부가 시부모를 보거나 신랑을 볼 때에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반드시 제 자신과 남에게 다음과 같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나는 유익함에 대해서 아무 유익함도 없고, 덕에 대해서 아무 덕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로 인하여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곧 선과 서로 호응하는 평정한 마음에 머무를 것입니다. 이것은 묘한 식적(息寂)으로써 이른바 일체의 유(有)를 버리고 애욕을 여의고 욕탐이 다 멸해 남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마치 재목과 진흙과 물풀로써 허공을 덮으면 집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처럼, 여러 현자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몸도 그와 같아서 힘줄과 뼈와 피부와 살과 피로 허공을 싸면 곧 몸이라는 이름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안처(眼處)가 무너지고 바깥 경계인 빛깔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게 되어 안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안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경계인 빛깔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게 되어 안식이 생겨나게 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안의 안처와 빛깔, 안식이 바깥 빛깔을 알면 이것은 색음(色陰)에 속하고,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覺陰)이며, 상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想陰)이며, 사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思陰)이며, 식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識陰)이니,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왜냐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5성음(盛陰)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色盛陰)과 각성음(覺盛陰)ㆍ상성음(想盛陰)ㆍ행성음(行盛陰)ㆍ식성음(識盛陰)이 그것입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內]의 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가 무너지고, 바깥의 법이 광명을 받지 못하면 곧 생각이 없게 되어 의식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만일 안의 의처가 무너지지 않고 바깥 경계인 법이 광명을 받으면 곧 생각이 있게 되어 의식이 생기게 됩니다. 안의 의처와 법과 의식이 바깥의 색법을 알면 이것은 색음에 속하고, 만일 각이 있으면 이것은 각음(覺陰)이며, 상(想)이 있으면 이것은 상음(想陰)이며, 사(思)가 있으면 이것은 사음이며, 식(識)이 있으면 이것은 식음이니, 이렇게 음이 모여 합하는 것을 관찰합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연기를 보면 곧 법을 보고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본다.’
왜냐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5성음은 인연을 좇아 생긴다고 말씀하셨으니, 색성음ㆍ각성음ㆍ상성음ㆍ행성음ㆍ식성음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 과거ㆍ미래ㆍ현재의 5성음을 싫어하며, 싫어한 후에는 곧 욕심이 없어지고, 욕심이 없어지면 해탈하며, 해탈하면 해탈을 알게 되어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비구가 일체를 크게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존자 사리자가 이와 같이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상적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867자이다.

31) 분별성제경(分別聖諦經)13) 제11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정행설법(正行說法)이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라고 하는 것으로서 널리 포섭하고[廣攝] 두루 관찰하며[廣觀], 분별하고[分別] 드러내며[發露], 믿음을 열고[開仰] 시설(施設)하며, 나타내 보이고[顯示] 나아가게 한다[趣向].14)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들께서도 이 정행설법이 있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서 널리 포섭하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하셨다. 미래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들께서도 이 정행설법이 있을 것이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서 널리 포섭하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할 것이다. 지금 나 현재의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도 이 정행설법이 있으니, 이른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서 널리 포섭하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한다.

사리자 비구는 총명한 지혜ㆍ신속한 지혜ㆍ민첩한 지혜ㆍ예리한 지혜ㆍ넓은 지혜ㆍ깊은 지혜ㆍ고통에서 벗어나는 지혜ㆍ환히 아는 지혜ㆍ변재의 지혜가 있다. 사리자 비구는 진실한 지혜를 성취했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면, 사리자 비구는 능히 남을 위하여 더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두루 관찰하며, 분별하고 드러내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사리자 비구는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자세히 가르쳐 주고 두루 보여 주며, 분별해 주고 드러내 주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할 때에 한량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사리자 비구는 능히 바른 소견으로써 사람을 인도하고, 목건련 비구는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최상의 진제(眞際)에 서게 하는데, 이른바 번뇌[漏]가 완전히 다한 자들이다. 사리자 비구는 모든 범행을 나게 하는 것이 마치 생모(生母)와 같고, 목건련 비구는 모든 범행을 자라게 하는 것이 마치 양모(養母)와 같다. 그러므로 모든 범행자는 마땅히 사리자와 목건련 비구를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공경하고 예배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리자와 목건련 비구는 모든 범행자를 위하여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기 때문이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신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다.

이에 존자 사리자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오셨다. 이른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자세히 가르치시고 두루 보이시며, 분별하고 드러내시며, 믿음을 열고 시설하시며, 나타내 보이고 나아가게 하신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ㆍ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習聖諦:苦集聖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인가? 남[生]은 괴로움이며 늙음은 괴로움이며, 병은 괴로움이며 죽음은 괴로움이며, 원수와 만남도 괴로움이며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것도 괴로움이며,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이다. 간략하게 줄여서 5성음(盛陰)이 괴로움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남[生]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남이란 이른바 저 중생과 그리고 저러한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생기면 생겨나고 나오면 나오게 되며, 성립되면 성립되게 되어 5음(陰)을 일으킨 뒤에는 명근(命根:목숨)을 얻는다. 이것을 남[生]이라고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남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말은 이른바 중생은 태어날 때에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온몸이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고통을 받으며 온 마음이 고통스러움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고통을 받으며, 온몸과 마음이 다 고통을 느낀다. 몸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뜨거움을 느낀다. 마음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뜨거움을 느낀다. 몸과 마음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뜨거움을 받고 또한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뜨거움을 느낀다. 몸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으로 다 느낀다. 마음도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또한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여러 현자들이여, 남[生]이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늙음이 고통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늙음이란 이른바 이 모든 중생과 저 모든 중생의 무리들은 늙어지면 머리는 희어지고 이는 빠지며 젊음은 날로 쇠해진다. 허리는 굽고 다리는 휘어지며, 몸은 무겁고 상기병에 걸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살은 쭈그러들고 피부는 늘어져 주름살은 마치 얽은 것 같으며, 모든 감각기관들도 다 낡고 얼굴빛도 추악해진다. 이것을 늙음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늙음이 고통이라고 말한 것은 중생들이 늙을 때에는 몸이 다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고통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뜨거움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뜨거움을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여러 현자들이여, 늙음이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병이 고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질병이란 이른바 두통ㆍ눈병ㆍ귓병ㆍ콧병ㆍ낯병ㆍ입술병ㆍ잇병ㆍ혓병ㆍ잇몸병ㆍ목병ㆍ천식ㆍ기침병ㆍ구토ㆍ후비(喉痺)15)ㆍ지랄병ㆍ등창ㆍ경일(經溢)ㆍ피가래ㆍ열병ㆍ여윔병ㆍ치질ㆍ이질 따위이다. 만일 이러한 따위와 그 밖의 여러 가지 병이 갱락촉(更樂觸)에서 생겨 마음을 떠나지 않고 몸속에 있으면 이것을 병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병의 고통이란 이른바 중생이 앓을 때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뜨거움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여러 현자들이여, 병이 괴로움이라고 한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죽음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죽음이란 이른바 저 중생과 저러한 중생의 무리들은 목숨을 마치게 되어 있어 항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죽으면 흩어져 사라지고, 목숨이 다하면 부서지고 명근이 닫힌다.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죽음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중생은 죽을 때에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뜨거움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뜨거움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몸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도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열ㆍ번뇌ㆍ근심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고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죽음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원수나 미워하는 것을 만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원수나 미운 것을 만난다는 것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안의 6처(處)가 있으니, 사랑하지 않는 안처(眼處)와 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가 그것이다. 이것들이 함께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사귀고 가까이하게 되며 함께 어울리게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와 같이 외처(外處)의 갱락(更樂)ㆍ각(覺)ㆍ상(想)ㆍ사(思)ㆍ애(愛)도 그와 같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에게는 실로 6계(界)가 있으니, 사랑하지 않는 지계(地界)와 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가 그것이다. 이것들이 함께 모여 하나가 되고 서로 사귀고 가까이하게 되며 함께 어울리게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을 원수와 미운 것을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원수와 미운 것을 만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은 원수를 만날 때에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고통을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으로 다 고통을 느낀다. 마음도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 마음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원수와 미운 것을 만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이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안의 6처(處)가 있으니, 사랑하는 안처와 이처ㆍ비처ㆍ설처ㆍ신처ㆍ의처가 그것이다. 이런 것들이 달라지고 흩어져 서로 호응하지 못하게 되며 서로 떠나 모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며 화합하지 못하게 되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와 같이 외처의 갱락ㆍ각ㆍ상ㆍ사ㆍ애 또한 그와 같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에게는 실로 6계(界)가 있으니, 사랑하는 지계와 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가 그것이다. 이런 것들이 달라지고 흩어져 서로 응하지 못하게 되며 서로 떠나 모이지 못하고 사귀지 못하며, 가까이하지 못하고 화합하지 못하게 되면 괴로움이 된다. 이것을 사랑하는 것과의 이별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괴로움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중생은 이별할 때에 몸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이 다 느낀다.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는데, 온몸과 마음이 다 받으며 느낌에 있어서도 온몸과 마음이 다 느낀다.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여러 현자들이여, 이른바 중생은 나는 법[生法]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나는 법을 떠나지 못한다. 자신[我]을 나지 않게 하고자 해도 그것은 실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늙는 법ㆍ죽는 법ㆍ시름하는 법도 그러하다. 걱정하고 슬퍼하는 법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걱정하고 슬퍼하는 법을 떠나지 못한다. 자신을 걱정하고 슬퍼하지 않게 하고 싶어도 이 또한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은 실로 괴로운 것으로써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고 여겨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괴로운 것으로서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면, 이것을 바꾸어 사랑할 만한 것으로 만들자.’
그러나 이 또한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은 실로 즐거운 것을 가지고 사랑할 만한 것이라 여겨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즐거운 것이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이것을 항상 오래 있게 하여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자.’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은 실로 사상(思想)은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다고 여겨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사상이 즐거워할 것도 없고 사랑할 것도 없는 것이라면, 이것을 바꾸어 사랑할 만한 것으로 만들자.’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은 실로 사상을 좋아할 만한 것이라 여겨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내가 사상을 가지고 사랑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을 항상 오래 머물러 변하지 않는 법으로 만들자.’
그러나 이 또한 그리 될 수 없는 것이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간략하게 줄여 5성음(盛陰)이 괴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른바 색성음(色盛陰)과 각성음(覺盛陰)ㆍ상성음(想盛陰)ㆍ행성음(行盛陰)ㆍ식성음(識盛陰)이 그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5성음이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과거에도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였고, 미래에도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일 것이며, 현재에도 이것은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이다. 참된 진리로서 헛되지 않고 진여(眞如)에서 떠나지 않으며, 또한 뒤바뀌지도 않는 참된 진리로서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如是諦)에 부합된다. 성인이 가진 것이며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본 것이며 성인이 깨달은 것이며, 성인이 얻은 것이며 성인이 바르게 두루 깨친 바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애의 발생과 괴로움의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라고 하는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안의 6처(處)가 있으니, 안처와 이처ㆍ비처ㆍ설처ㆍ신처ㆍ의처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 만일 애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습(習)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내가 이와 같이 이 법을 알며,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환히 알며, 이와 같이 자세히 보고 이와 같이 깨달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을 애의 발생과 괴로움의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안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만일 처자ㆍ노비ㆍ하인ㆍ권속ㆍ토지ㆍ가옥ㆍ가게ㆍ이자가 불어나는 재물 따위를 사랑하며,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하여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습(習)이라고 한다.’
그는 이 애의 발생과 괴로움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를 안다. 이와 같이 외처(外處)의 갱락ㆍ각ㆍ상ㆍ사ㆍ애도 이와 같다. 여러 현자들이여,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6계(界)가 있으니, 지계ㆍ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가 그것이다. 그 가운데 만일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습(習)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내가 이와 같이 이 법을 알며,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환히 알며, 이와 같이 자세히 보고 이와 같이 깨달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을 애의 발생과 괴로움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안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만일 처자ㆍ노비ㆍ하인ㆍ권속ㆍ토지ㆍ가옥ㆍ가게ㆍ이자가 불어나는 재물을 사랑하고, 가지고 있는 직업에 대한 애정이 있고 더러움이 있으며 물듦이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습이라고 한다.’
그는 이 애의 발생과 괴로움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를 안다. 여러 현자들이여, 과거에도 이것은 애의 발생과 괴로움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였고, 미래에도 이것은 애의 발생과 괴로움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일 것이며 현재에도 이것은 애의 발생과 괴로움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이다. 참된 진리로서 헛되지 않고 진여(眞如)를 떠나지 않으며, 또한 뒤바뀌지도 않는다. 참된 진리로서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如是諦)에 부합된다. 성인이 가진 것이며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본 것이며 성인이 깨달은 것이며 성인이 얻은 것이며 성인이 바르게 두루 깨친 것이다. 그러므로 애의 발생과 괴로움 발생의 성스러운 진리[愛習苦習聖諦]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라고 하는가? 이른바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안의 6처(處)가 있으니, 안처와 이처ㆍ비처ㆍ설처ㆍ신처ㆍ의처가 그것이다.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서 버리고 다 뱉어 버리며 애욕을 아주 없애 버리면, 이것을 고멸(苦滅)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내가 이와 같이 이 법을 알며,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환히 알며, 이와 같이 자세히 보고 이와 같이 깨달았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안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만일 처자ㆍ노비ㆍ하인ㆍ권속ㆍ토지ㆍ가옥ㆍ가게ㆍ이자가 불어나는 재물을 사랑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직업이 없으며,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 버리고 다 뱉어서 애욕을 아주 없애 버리면, 이것을 고멸이라고 한다.’

그는 이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를 안다. 이와 같이 외처의 갱락ㆍ각ㆍ상ㆍ사ㆍ애 또한 그와 같다. 중생에게는 실로 사랑하는 6계(界)가 있으니, 지계ㆍ수계ㆍ화계ㆍ풍계ㆍ공계ㆍ식계가 그것이다. 그가 만일 해탈하여 거기에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 버리고 다 뱉어서 애욕을 아주 없애 버리면, 이것을 고멸이라고 한다.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내가 이와 같이 이 법을 알며,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환히 알며, 이와 같이 자세히 보고 이와 같이 깨달았다는 것을 안다. 이것을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라고 한다. 이와 같이 안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 것인가?
‘만일 처자ㆍ노비ㆍ하인ㆍ권속ㆍ토지ㆍ가옥ㆍ가게ㆍ이자가 불어나는 재물 따위를 사랑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직업이 없으며, 그가 만일 해탈하여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끊어서 버리고 다 뱉어서 애욕을 아주 없애 버리면, 이것을 고멸이라고 한다.’

그는 이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를 안다. 여러 현자들이여, 과거에도 이것은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였고, 미래에도 이것은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일 것이며 현재에도 이것은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이다. 참된 진리로서 헛되지 않고 진여(眞如)를 떠나지 않으며, 또한 뒤바뀌지도 않는다. 참된 진리로서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에 부합된다. 성인이 가진 것이며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본 것이며 성인이 깨달은 것이며, 성인이 얻은 것이며 성인이 바르게 두루 깨친 것이다. 그러므로 애의 소멸과 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愛滅苦滅聖諦]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라고 하는가? 이른바 바른 소견[正見]ㆍ바른 뜻[正志]ㆍ바른 말[正語]ㆍ바른 행동[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생각[正念]ㆍ바른 선정[正定]이 그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또 어떤 것을 바른 소견[正見]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가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습(習)을 습, 멸(滅)을 멸, 도(道)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거나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앙과 환난을 보거나 열반의 그쳐 쉼을 보며, 혹은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두루 가리고 가린 법을 결정하며, 두루 보고 관찰하여 환히 아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바른 뜻[正志]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습을 습,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거나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앙과 환난을 보거나 열반의 그쳐 쉼을 보며, 혹은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가운데에서 마음으로 살피고 두루 자세히 살피고 그것을 따라 살펴, 생각할 만한 것이면 생각하고 바랄 만한 것이면 바란다. 이것을 바른 뜻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바른 말[正語]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습을 습,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거나, 혹은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앙과 환난을 보거나, 혹은 열반의 그쳐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가운데 입이 짓는 네 가지 묘행(妙行)을 제외한 다른 모든 입이 짓는 악행을 멀리 여의고 끊어 없애, 행하지도 않고 짓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모으지도 않는다. 이것을 바른 말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바른 행동[正業]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습을 습,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거나 혹은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앙과 환난을 보고 혹은 열반의 그쳐 쉼을 보며, 혹은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중에서 몸의 세 가지 묘행(妙行)을 제외한 다른 모든 몸의 악행을 멀리 여의고 끊어 없애, 행하지도 않고 짓지도 않으며, 합하지도 않고 모으지도 않는다. 이것을 바른 행동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바른 생활[正命]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습을 습,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혹은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앙과 환난을 보고 열반에 그쳐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가운데에서 무리하게 구하지 않고 욕심이 많거나 만족할 줄 모르거나 하지 않으며, 온갖 기술과 주설(呪說)의 삿된 직업으로써 생활하지 않고 다만 법대로 옷을 구하고 법이 아닌 것을 쓰지 않으며, 또한 법으로써 음식과 자리를 구하고 법이 아닌 방법은 쓰지 않는다. 이것을 바른 생활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바른 방편[正方便]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는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습을 습,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앙과 환난을 보고 열반의 그쳐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가운데에서 만일 정진(精進) 방편이 있으면, 한결같이 꾸준히 힘써 구하고 힘차게 나아가 오로지 달라붙어 버리지 않으며, 또한 지쳐 물러나지도 않고 바르게 그 마음을 항복받는다. 이것을 바른 방편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바른 생각[正念]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가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습을 습,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앙과 환난을 보고 열반에 그쳐 쉼을 보며,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가운데에서 만일 따르는 생각은 기억하고 향하지 않는 생각은 등지며, 두루함을 생각하고 기억하며 되풀이해 기억해, 바른 마음으로 마음의 응하는 바를 잊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어떤 것을 바른 선정[正定]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거룩한 제자가 고통을 고통이라고 생각할 때, 습을 습, 멸을 멸, 도를 도라고 생각할 때, 혹은 본래 지은 바를 관찰하고 혹 모든 행을 생각하기를 배우며, 모든 행의 재앙과 환난을 보고 열반에 그쳐 쉼을 보며, 혹은 집착이 없이 마음의 해탈을 잘 생각하여 관찰할 때, 그 가운데에서 만일 마음이 머무르고 선정에 머무르며 순하게 머물러 어지럽지 않고 흩어지지 않아 바른 선정을 거두어 잡으면,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고 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과거에도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였고, 미래에도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일 것이며, 현재에도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이다. 참된 진리로서 헛되지 않고 진여를 떠나지도 않으며, 또한 뒤바뀌지도 않는다. 참된 진리로서 분명하고 진실하여 여시제(如是諦)에 부합된다. 성인이 가진 것이며 성인이 아는 것이며, 성인이 본 것이며 성인이 깨달은 것이며, 성인이 얻은 것이며 성인이 바르게 두루 깨친 것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모든 법을 환히 알아
한량없는 선한 덕을 보시고
고ㆍ습ㆍ멸ㆍ도의 4성제를
잘 나타내시고 분별하셨네.

존자 사리자가 이와 같이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0 팔리어로는 āhāra이고 생성시키고 증장시키는 요인이라는 뜻이다. 식(食)ㆍ음식(飮食)ㆍ소식(所食)ㆍ감미(甘美)ㆍ미식(美食)ㆍ자량(資糧) 등으로 한역되었고,『중아함경』 안에서도 식(食)과 습(習)으로 달리 한역된 경우가 있다.
11 8정도(正道)라고도 하며 정견(正見)ㆍ정사유(正思惟)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정진(正精進)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의 여덟 가지이다. 불교 실천 수행의 중요한 종목을 여덟 가지로 나눈 것으로 부처님의 최초 법문 가운데 이것을 말씀하셨다. 4제(諦)ㆍ12인연(因緣)과 함께 원시불교의 근본 교의(敎義)이다.
12 원본(元本)과 명본(明本) 두 본에는 이 글자가 ‘에(恚)’자로 되어 있다. ‘에’자가 뜻에 더 맞지 않은가 생각되지만 우선 고려대장경을 따라 망(忘)으로 번역해 둔다.
13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후한(後漢)시대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불설사제경(佛說四諦經)』과 『증일아함경』 제18권 제26품인 「사의단품(四意斷品)」 첫 번째 소경이 있으며, 참고자료로는 후진(後秦)시대 불야다라(弗若多羅)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공역한 『십송률(十誦律)』 제60권이 있다.
14 이상 8종의 내역이 파리 원문에는 개시(開示,ācikkhanā)ㆍ선설(宣說, desanā)ㆍ시설(施設, paāpanā)ㆍ건립(建立, pahapanā)ㆍ개현(開顯, vivaraā)ㆍ분별(分別, vibhajanā)ㆍ현발(顯發, uttanīkamma) 등 7개 항목으로 되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람.
15 목구멍에 종기가 생겨 목구멍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병.

중아함경 제8권

4. 미증유법품(未曾有法品) 제4①
이 품에는 모두 10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미증유법경(未曾有法經)ㆍ시자경(侍者經)
박구라경(薄拘羅經)ㆍ아수라경(阿修羅經)
지동경(地動經)ㆍ첨파경(瞻波經)
욱가장자경(郁伽長者經)ㆍ수장자경(手長者經)은 각각 두 개씩이라네.

32) 미증유법경(未曾有法經) 제1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존자 아난은 해질 무렵에 편안히 앉아 있던 자리[燕坐:참선하던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가섭불(迦葉佛) 때에 처음으로 불도에 뜻을 두어 범행(梵行)을 행하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가섭불 때에 처음으로 불도에 뜻을 두어 범행을 행하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未曾有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가섭불 때에 처음으로 불도에 뜻을 두어 범행을 행하고 도슬다천(兜瑟哆天:도솔타천)에 나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가섭불 때에 처음으로 불도에 뜻을 두어 범행을 행하고 도슬다천에 나셨다고 하니,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가섭불 때에 처음으로 불도에 뜻을 두어 범행을 행하고 도슬다천에 나셨는데, 세존께서는 훨씬 뒤에 나셨는데도 하늘의 수명[天壽]과 하늘의 빛깔[天色]과 하늘의 명예, 이 세 가지에 있어서 도슬다천에 훨씬 먼저 난 사람들보다 나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도슬다천은 기뻐하여 뛰면서 ‘이 천자는 너무나 기이하고 특별하다. 큰 여의족(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威德)이 있으며, 큰 복[福祐]이 있고 큰 위신력(威神力)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훨씬 뒤에 태어났지만 하늘 수명과 하늘 빛깔과 하늘 명예의 세 가지에 있어서 도슬다천에 먼저 태어난 사람들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라고 찬탄하였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가섭불 때에 처음으로 불도에 뜻을 두어 범행(梵行)을 행하고 도슬다천에 나셨는데, 세존께서는 훨씬 뒤에 나셨는데도 하늘의 수명과 하늘의 빛깔과 하늘의 명예, 이 세 가지에 있어서 도슬다천에 먼저 난 사람들보다 나았고, 그 때문에 모든 도슬다천이 다 기뻐 뛰면서 ‘이 천자는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다.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력이 있다. 왜냐하면 그는 훨씬 뒤에 태어났는데도 하늘 수명과 하늘 빛깔과 하늘 명예의 세 가지에 있어서 도슬다천에 먼저 태어난 사람들보다 낫기 때문이다’라고 찬탄했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도슬다천에 계시다가 거기서 목숨을 마치신 뒤에는 일부러 어머님의 태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때에 모든 천지를 진동시키시고, 크고 묘한 광명으로써 세간을 두루 비추시어 그윽하고 어두운 모든 곳까지도 가림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저 해와 달은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력이 있는데, 그 광명으로도 비치지 못하는 곳을 당신께서 다 환하게 비추셨습니다. 저 중생들은 이 묘한 광명으로 말미암아 각각 앎[知]이 생겨 ‘특별한 중생이 태어날 것이다. 특별한 중생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도슬다천에 계시다가 거기서 목숨을 마치신 뒤에는 일부러 어머님의 태에 들어가셨는데, 그때에 모든 천지를 진동시키고, 크고 묘한 광명으로써 세간을 두루 비추시어 그윽하고 어두운 모든 곳까지도 가림이 없어서 이른바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력이 있다는 저 해와 달의 광명으로도 비추지 못하는 곳을 당신께서는 다 환하게 비추셨으므로, 저 중생들은 이 묘한 광명으로 말미암아 각각 앎이 생겨 ‘특별한 중생이 태어날 것이다. 특별한 중생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일부러 어머님의 태에 머물러 계시다가 오른쪽 옆구리를 의지하여 태어나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어머님의 태에 머물러 계시다가 오른쪽 옆구리를 의지하여 태어나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몸을 펴시고 어머님의 태에 계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몸을 펴시고 어머님의 태에 계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태에 싸여 어머님의 태에 계시면서도 피에도 더럽혀지지 않고 또한 정(精)과 모든 부정(不淨)한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으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태에 싸여 어머님의 태에 계시면서 피에도 더럽혀지지 않고 정과 모든 부정한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일부러 어머님의 태에서 나오셨습니다. 그때 모든 천지를 진동시키고, 크고 묘한 광명으로써 세간을 두루 비추시어 그윽하고 어두운 모든 곳까지도 가림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저 해와 달이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는데도 그 광명으로 비추지 못하는 곳까지 당신께선 다 환하게 비추셨습니다. 저 중생들은 이 묘한 광명으로 말미암아 각각 앎을 내어 ‘특별한 중생이 태어났다. 특별한 중생이 났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일부러 어머님의 태에서 나오셨는데, 그때 천지가 다 진동하고, 크고 묘한 광명으로써 세간을 두루 비추시어 그윽하고 어두운 모든 곳까지도 가림이 없어서 이른바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력이 있다는 저 해와 달의 광명으로도 비추지 못하는 곳까지 당신께서 다 환하게 비추셨으므로 저 중생들은 이 묘한 광명으로 말미암아 각각 앎이 생겨 ‘특별한 중생이 태어났다. 특별한 중생이 태어났다’라고 말했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몸을 펴신 채 어머님의 태에서 나오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몸을 펴신 채 어머님의 태에서 나오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태에 싸여 어머님의 태에서 나오시면서도 피에 더럽혀지지 않고 정과 모든 부정한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으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태에 싸여 어머님의 태에서 나오시면서도 피에 더럽혀지지 않고, 정과 모든 부정한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처음 나셨을 때 네 천자(天子)가 손에 아주 고운 옷을 가지고 어머님 앞에서 어머님을 기쁘게 하였고,‘이 동자는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합니다.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습니다’라고 찬탄하였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처음 나셨을 때, 네 천자가 손에 아주 고운 옷을 가지고 어머님 앞에서 어머님을 기쁘게 하였고,‘이 동자는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합니다.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력이 있습니다’라고 찬탄했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처음 태어나셨을 때 곧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으시며, 또한 모든 방위를 관찰하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처음 태어나셨을 때에 곧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두려워하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으시며, 모든 방위를 관찰하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처음 태어나셨을 때 곧 그 어머님 앞에 큰 못이 생겼는데, 그 못의 물은 언덕까지 차올라, 어머니가 그 물로 깨끗이 씻을 수 있게 했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처음 태어나셨을 때 곧 어머님 앞에 큰 못이 생겼고, 그 물이 언덕까지 차올라 어머니가 그 물로 깨끗이 씻을 수 있게 했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처음 태어나셨을 때 허공에서 빗물이 쏟아져 내려왔는데, 하나는 차고 하나는 따뜻하여, 세존의 몸을 씻겼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처음 태어나셨을 때 허공에서 빗물이 쏟아져 내려왔는데, 하나는 차고 하나는 따뜻하여 세존의 몸을 씻겼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처음 태어나셨을 때 모든 하늘이 허공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하늘의 푸른 연꽃ㆍ분홍 연꽃ㆍ붉은 연꽃ㆍ흰 연꽃과 하늘의 문다라꽃[文陀羅華:만다라화]과 가루 전단향을 세존 위에 뿌렸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처음 태어나셨을 때 모든 하늘이 허공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하늘의 푸른 연꽃ㆍ분홍 연꽃ㆍ붉은 연꽃ㆍ흰 연꽃과 하늘의 만다라 꽃과 가루 전단향을 세존 위에 뿌렸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아버지 백정왕(白淨王)의 집에 계시면서 밭농사를 감독하시다가 염부나무 밑에 앉으셔서, 욕심[欲]을 여의시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겨나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노니셨습니다. 그때는 한낮이 좀 지난 때라서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으나 오직 염부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세존의 몸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석백정(釋白淨)은 밭농사를 짓는 곳으로 가서 살펴보다가 농부에게 물었습니다.
‘농부여, 동자는 어디 있느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하늘의 동자께선 지금 염부나무 밑에 있습니다.’
그러자 석백정은 염부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그때 백정은 한낮이 지나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으나 오직 염부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은 것을 보고,‘이제 이 아이는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구나.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력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한낮이 지나 다른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는데도 염부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아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한낮이 지난 뒤에,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으나 염부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았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느 때 비사리국(鞞舍離國)의 커다란 숲속에서 노니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밤을 지내시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비사리성으로 들어가 밥을 빌러 다니셨습니다. 걸식을 마치신 뒤에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손발을 씻고 니사단(尼師檀)을 어깨에 걸치고 숲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그루의 다라(哆羅)나무 밑에 이르러 니사단을 깔고 가부좌하고 앉으셨습니다. 이때 한낮이 지나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으나 오직 다라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석마하남(釋摩訶男)1)은 한낮이 훨씬 지난 시간에 어슬렁거리며 커다란 그 숲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한낮이 지난 시간에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는데, 오직 다라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은 것을 보고 ‘사문 구담(瞿曇)은 너무도 기이하고 특별하구나.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다. 왜냐하면 한낮이 지나서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는데도 오직 다라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사문 구담의 몸에서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한낮이 지난 뒤에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 갔는데도 오직 다라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았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느 때, 비사리의 커다란 숲속에서 노니셨습니다. 그때 여러 비구들은 발우를 맨땅에 두었습니다. 마침 세존의 발우도 또한 그 가운데 있었는데, 원숭이 한 마리가 부처님의 발우를 가지고 갔습니다. 비구들은 부처님의 발우를 깨뜨리지 않을까 걱정되어 꾸짖었으나,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꾸짖지 말라. 발우를 깨지 않을 것이다.’
그 원숭이는 부처님의 발우를 가지고 어떤 사라나무[娑羅樹]로 가더니, 천천히 나무 위로 올라가 벌꿀을 채취하여 발우에 가득 담은 다음 천천히 나무에서 내려와 부처님께 나아가 꿀 발우를 세존께 바쳤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그 원숭이는 한쪽에 물러나 앉아 젓가락으로 벌레를 집어낸 뒤에 다시 돌아와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부처님께서 또 받지 않으시자 원숭이는 다시 한쪽에 물러나 앉아 물을 떠다가 꿀을 타서 다시 가져와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세존께서는 그제야 비로소 받으셨습니다. 원숭이는 부처님께서 꿀이 담긴 발우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여 뛰면서 물러나 춤추고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떠나갔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그 원숭이로 하여금, 세존께서 꿀 발우를 받으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여 뛰고 물러나 춤추고 나서 빙 돌아 떠나가게 하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느 때 비사리의 미후수(獼猴水) 가에 있는 높은 다락집에서 노니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방석을 볕에 쪼여 말린 다음 먼지를 털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때 아니게 먹장구름이 허공을 뒤덮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하면서도 세존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세존께서는 볕에 쪼인 방석의 먼지를 털고 한곳에 거두어 두신 뒤에 빗자루로 쓸고 집의 바닥에 앉으셨습니다. 먹장구름은 세존께서 방석을 다 거두신 뒤에야 큰 비를 내려, 낮은 곳 높은 곳 할 것 없이 물에 다 잠겼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저 먹장구름으로 하여금, 세존께서 방석을 거두신 뒤에야 큰 비를 내려 낮은 곳이나 높은 곳 할 것 없이 물에 다 잠기게 하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느 때 발기국(跋耆國)을 유행하시면서 온천림(溫泉林) 사라나무 밑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때는 한낮이 지난 때라서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는데도, 오직 사라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라마(羅摩)동산 주인은 동산으로 구경을 나갔다가, 한낮이 지난 때라서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가 다 옮겨갔는데도 오직 사라나무 그림자의 그늘만은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은 것을 보고,‘사문 구담은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한 분이시다.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으신 분이다. 왜냐하면 한낮이 지나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는데, 오직 사라나무 그림자만은 그 그늘이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한낮이 지나 다른 모든 나무 그림자는 다 옮겨갔는데도 오직 사라나무 그림자의 그늘만은 세존의 몸에서 옮겨가지 않았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느 때 아부신실(阿浮神室)에 계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지니시고 아부촌에 들어가 걸식하셨습니다. 걸식하신 뒤에 가사와 발우를 거두어 손발을 씻으시고, 니사단을 어깨에 메고 신실에 들어가 고요히 앉으셨습니다. 그때 하늘에서는 크게 우레가 치고 우박이 내려, 소 네 마리와 농부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들을 장사 지낼 때에 대중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큰 소리들이 진동하였습니다. 이때 세존께서는 해질 무렵에 연좌에서 일어나, 신실에서 나와 한데[露地]서 거닐고 계셨습니다. 그때 그 대중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세존께서 해질 무렵에 연좌에서 일어나, 신실에서 나와 한데서 거닐고 계시는 것을 뵙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을 따라 거닐었습니다.

세존께서 돌아보시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무슨 일로 대중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저 큰 소리가 진동하는가?’
그가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오늘 하늘에서 크게 우레가 치고 우박이 내려, 소 네 마리와 농부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들을 장사지내느라고 대중들이 시끄럽게 떠들어 저렇게 큰 소리가 진동하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아까 그 소리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세존께서는 아까 주무셨습니까?’
‘아니다.’
‘세존께서는 그때 깨어 계시면서도 그 큰 소리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그렇다.’
그 사람은 곧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행동은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며 지극히 고요하구나. 왜냐하면 깨어 계시면서도 그 큰 소리를 듣지 못하셨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깨어 계시면서 그 큰 소리를 듣지 못하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저는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느 때 울비라(鬱鞞羅)2)의 니련연(尼連然:尼連禪) 강가에 있는 아사화라니구류(阿闍惒羅尼拘類)나무 밑에 계시면서 처음으로 불도를 얻었습니다. 그때 7일 동안 큰비가 와서 높은 데건 낮은 데건 할 것 없이 물이 가득 차서 넘쳐흘렀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맨땅 위를 거니셨는데, 거기서 먼지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물이 가득 차서 넘쳐흘렀는데도 맨 땅에서 거니시자 거기서 먼지가 일어났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마왕(魔王)이 6년 동안 부처님을 쫓아다니면서 그 장점과 단점을 엿보았으나 틈을 얻지 못하고 그만 지쳐 돌아갔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마왕이 6년 동안이나 쫓아다니면서 그 장점과 단점을 엿보았으나 틈을 얻지 못하고 그만 지쳐 돌아가게 하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의 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7년 동안 몸을 생각하시고, 항상 생각하셔서 끊지 않으셨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7년 동안 몸을 생각하시고, 항상 생각하셔서 끊지 않으셨다면, 저는 이것을 세존의 미증유법으로 받아 간직하겠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여래(如來)로부터 또 하나의 미증유법을 받아 간직하라. 아난아, 여래는 각(覺)이 생기는 것을 알고 머무르는 것을 알며 멸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항상 알아 모르는 때가 없다. 아난아, 여래는 사상(思想)이 생기는 것을 알고 머무르는 것을 알며 멸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항상 알아 모르는 때가 없다.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여래로부터 이 하나의 미증유법을 더 받아 간직하라.”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미증유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917자이다.

33) 시자경(侍者經) 제2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을 유행하고 계셨다.

그때 학식이 많고 명망이 높은 장로 비구로서 부처님의 큰 제자들인 존자 구린야(拘隣若:憍陳如)ㆍ존자 아섭패(阿攝貝:頞鞞)3)ㆍ존자 발제석가왕(跋提釋迦王)4)ㆍ존자 마하남구례(摩訶男拘隷)5)ㆍ존자 화파(惒破)ㆍ존자 야사(耶舍)ㆍ존자 빈누(邠耨:富樓那)ㆍ존자 유마라(維摩羅)ㆍ존자 가화파제(伽惒波提)ㆍ존자 수타야(須陀耶)ㆍ존자 사리자(舍梨子)ㆍ존자 아나율타(阿那律陀)ㆍ존자 난제(難提)ㆍ존자 금비라(金毘羅)ㆍ존자 례바다(隷婆哆)ㆍ존자 대목건련(大目乾連)ㆍ존자 대가섭(大迦葉)ㆍ존자 대구치라(大拘絺羅)ㆍ존자 대주나(大周那)ㆍ존자 대가전연(大迦旃延)ㆍ존자 빈누가누사(邠耨加惒寫) 장로ㆍ존자 야사행주(耶舍行籌) 장로 등, 이러한 무리들과 그 밖에 학식이 많고 명성과 덕망이 높은 장로 비구 큰 제자들도 왕사성을 유행하시면서 모두들 부처님의 엽옥(葉屋)6) 가까이에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늙어 몸은 갈수록 쇠약해지고 목숨은 끝나려 한다. 그러므로 시자가 필요하다. 너희들은 나를 위해 시자 한 사람을 천거하여,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보살피고, 내가 말하는 바를 받아 그 뜻을 잃지 않게 하라.”

그러자 존자 구린야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을 모시고 하셔야 할 일과 하시지 않아야 할 일을 보살피고, 또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 그 뜻을 잃지 않게 하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구린야야, 네 자신도 늙어 몸은 갈수록 쇠하고 목숨도 끝나려 하니, 너도 또한 보살펴 줄 사람을 써야 할 것이다. 구린야야, 너는 제 자리에 들어가 앉아라.”
그러자 존자 구린야는 곧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제 자리에 앉았다.

이와 같이 존자 아섭패ㆍ존자 발제석가왕ㆍ존자 마하남구례ㆍ존자 화파ㆍ존자 야사ㆍ존자 빈누ㆍ존자 유마라ㆍ존자 가화파제ㆍ존자 수타야ㆍ존자 사리자ㆍ존자 아나율타ㆍ존자 난제ㆍ존자 금비라ㆍ존자 례바다ㆍ존자 대목건련ㆍ존자 대가섭ㆍ존자 대구치라ㆍ존자 대주나ㆍ존자 대가전연ㆍ존자 빈누가누사 장로ㆍ존자 야사행주 장로들도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을 모시고 하셔야 할 일과 하시지 않아야 할 일을 보살피고, 또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 그 뜻을 잃지 않게 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야사에게 말씀하셨다.
“야사야, 네 자신도 늙어 몸이 갈수록 쇠해지고 목숨도 끝나려 하니, 너도 또한 보살피는 사람을 써야 할 것이다. 야사야, 너도 제 자리로 돌아가 앉으라.”
그러자 존자 야사는 곧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제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그때 대목건련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곧 이렇게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누구를 시자로 삼으려고 저러시는가? 하셔야 할 일과 하시지 않아야 할 일을 보살피고, 또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 그 뜻을 잃지 않게 할 비구로 누구를 마음에 두고 계신 걸까? 나는 이제 여기상정(如其像定)에 들어 여러 비구의 마음을 관찰해 보리라.’
이렇게 생각한 존자 대목건련은 곧 여기상정에 들어 여러 비구들의 마음을 관찰했다. 그는 곧 세존께서 존자 아난(阿難)을 시자로 삼고자 하신다는 것과, 하셔야 할 일과 하시지 않아야 할 일을 보살피고 또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 그 뜻을 잃지 않게 할 자로 아난을 마음에 두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은 곧 선정에서 일어나 여러 비구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세존께서는 아난을 시자로 삼고자 하십니다. 세존께서는 하셔야 할 일과 하시지 않아야 할 일을 보살피고, 또 말씀하시는 것을 받아 그 뜻을 잃지 않게 할 자로 아난을 마음에 두고 계십니다. 여러 현자들이여, 우리들은 이제 현자(賢者) 아난의 처소로 가서 그를 권해 세존의 시자가 되게 합시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과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난에게 가서 문안하고 한쪽에 앉았다. 이때에 존자 대목건련이 자리에 앉은 다음 말했다.
“현자 아난이여, 그대는 아는가? 부처님께서는 그대를 시자로 삼으려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아난에 두시고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보살피고, 내가 말한 것을 받아 그 뜻을 잃지 않게 하리라’하고 생각하십니다. 아난이여, 마치 마을 밖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락집이 있어, 동쪽을 향해 창을 열면 햇빛이 서쪽 벽에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현자 아난이여, 세존께서도 그와 같습니다. 현자 아난을 시자로 삼으려 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아난에게 두시고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보살피고, 내가 말한 것을 받아 그 뜻을 잃지 않게 하리라’하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현자 아난이여, 그대는 이제 세존의 시자가 되어야 합니다.”

존자 아난이 말씀드렸다.
“존자 대목건련이시여, 저는 세존을 시봉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불세존의 시자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기도 어렵고 또 모시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치 나이 60이 되어 교만하고 힘이 왕성하며 어금니와 발과 몸이 갖추어진 커다란 수코끼리를 보살핀다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기도 어렵고 가까이하기도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존자 대목건련이시여,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도 그와 같아서 그분의 시자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기도 어렵고 가까이하기도 어렵습니다. 존자 대목건련이시여, 저는 이런 까닭으로 시자의 역할을 감당해내지 못하겠습니다.”

존자 대목건련이 또 말하였다.
“현자 아난이여,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할 테니 잘 들어보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곧 그 뜻을 이해합니다. 현자 아난이여, 비유하면 우담발화(優曇鉢華)는 어쩌다 한 번씩 세상에 피어나는 것과 같이 현자 아난이여,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도 그와 같아서 어쩌다 한번 세상에 나오십니다. 현자 아난이여, 그대는 빨리 세존의 시자가 되는 것이 올바른 일일 것입니다. 구담(瞿曇)7)은 반드시 큰 성과를 얻을 것입니다.”

“존자 대목건련이시여, 만일 세존께서 저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저는 곧 부처님의 시자가 될 것입니다. 그 세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 저는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새 옷이나 헌 옷을 입지 않기를 바라며, 둘째 따로 초청하여 대접하는 부처님의 공양은 먹지 않기를 바라며, 셋째 때가 아니면 부처님을 뵙지 않기를 바랍니다. 존자 대목건련이시여, 만일 세존께서 저의 이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저는 곧 부처님의 시자가 되겠습니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은 아난을 권해 시자로 삼은 다음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아난을 돌고 난 다음 돌아갔다. 그는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현자 아난에게 부처님의 시자가 되기를 권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현자 아난은 부처님께 세 가지 소원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세 가지란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새 옷이나 헌 옷을 입지 않는 것, 따로 초청하여 대접하는 부처님의 공양을 받지 않는 것 , 때가 아니면 부처님을 뵙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그는 곧 부처님의 시자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목건련아, 아난 비구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반드시 비방할 사람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구나. 혹 여러 범행자들은 ‘아난 비구가 옷을 위하여 세존을 모신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아난이 총명하고 지혜로워 혹 여러 범행자들이 ‘아난은 옷을 위하여 세존을 모신다’고 비방할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이것은 아난 비구의 미증유법(未曾有法)이다.
대목건련아, 아난은 총명하고 지혜로워 반드시 비방할 사람이 있을 것을 미리 알고 있구나. 즉 여러 범행자들은 ‘아난 비구는 밥을 위하여 세존을 모신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아난이 총명하고 지혜로워 혹 여러 범행자들이 ‘아난은 밥을 위하여 세존을 모신다’고 비방할 것을 미리 알고 있다면, 이것은 아난 비구의 미증유법이다.

대목건련아, 아난은 때를 잘 알고 때를 잘 분별하는구나. 곧 ‘지금은 내가 여래를 찾아 뵐 때이고, 지금은 내가 여래를 찾아 뵐 때가 아니다. 지금은 비구ㆍ비구니가 여래를 찾아 뵐 때이고, 지금은 비구ㆍ비구니가 여래를 찾아 뵐 때가 아니다. 지금은 우바새ㆍ우바이들이 여래를 찾아 뵐 때이고, 지금은 우바새ㆍ우바이들이 여래를 찾아 뵐 때가 아니다. 지금은 많은 이학(異學)의 사문 바라문이 여래를 찾아 뵐 때이고, 지금은 많은 이학의 사문 바라문이 여래를 찾아 뵐 때가 아니다. 이 많은 이학의 사문 바라문들은 여래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며, 이 많은 이학의 사문 바라문들은 여래와 함께 이야기할 수 없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면 여래는 안온하고 요익하게 되며,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면 여래는 안온하고 요익하게 될 수 없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면 여래는 변재(辯才)로 설법하실 수 있고,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면 여래는 변재로 설법하실 수 없다’는 것 등을 다 안다. 이것은 아난 비구의 미증유법이다.

대목건련아, 아난 비구는 비록 타심지(他心智)8)는 없으나, 여래가 해질 무렵에 연좌에서 일어나 미리 다른 이들을 위하여 설법하시고, 오늘 여래의 행은 이러이러하며, 어떻게 현재에 안락하게 기거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살펴 알되 진리와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아난 비구의 미증유법이다.

아난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부처님을 모셔 온 지 25년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뽐낼 생각은 전혀 없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것은 존자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아난은 또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부처님을 모셔 온 지 25년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제 때가 아닌 때에는 부처님을 뵙지 않았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것은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아난은 또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부처님을 모셔 온 지 25년이다. 그러나 일찍이 부처님께 한 가지 허물을 제외하고는 꾸지람을 들은 일이 없다. 그것 역시 다른 사람 때문이었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것은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아난은 또 다시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여래에게서 8만 법문을 받아 잊지 않고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뽐낼 생각은 전혀 없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것은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아난은 또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여래에게서 8만 법문을 받았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한 구절을 제외하고는 두 번 묻지 않았다. 그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하였다면, 이것은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존자 아난은 또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여래에게서 8만 법문을 받아 가졌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남에게 법을 받은 일이 없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하였다면, 이것은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아난은 또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여래에게서 8만 법문을 받아 가졌지만 처음부터 〈내가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것은 다른 이에게 말해 주기 위해서이다〉라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여러 현자들이여, 다만 내 자신을 다스리고 내 자신이 쉬며, 내 자신이 반열반을 얻고자 함이었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하였다면 이것은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아난은 또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며 매우 특별한 일이다. 곧 사부대중이 내게 와서 법을 듣는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인하여 뽐내야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또한 만일 누가 와서 물으면, 나는 마땅히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리라고 미리 준비한 일도 없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다만 그 자리에서 현실에 맞게 이치대로 대답할 뿐이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것은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아난은 또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며, 매우 특별한 일이다. 곧 많은 이학(異學)의 사문 범지들은 내게 와서 일을 묻는다. 그러나 나는 그로 인해 두려워하고 놀라거나, 무서워서 털이 곤두서는 일이 전혀 없었다. 또한 누가 와서 물으면 나는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리라고 미리 준비한 적도 없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다만 그 자리에서 이치를 따라 대답할 뿐이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한다면, 이것은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어느 때에 존자 사리자ㆍ존자 대목건련ㆍ존자 아난이 사위국 바라라산(婆羅邏山)에 있었다. 이때 존자 사리자가 물었다.
‘현자 아난이여, 그대는 부처님을 모셔온 25년 동안에 때로는 욕심을 일으킨 기억이 있습니까?’
아난이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학인(學人)이라 욕심을 여의지 못했습니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물었다.
‘현자 아난이여, 나는 그대가 유학(有學)인지 무학(無學:아라한)인지를 물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대가 부처님을 모셔온 25년 동안에 때로는 욕심을 일으킨 기억이 있느냐고 물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사리자가 두 번 세 번 물었다.
‘현자 아난이여, 그대는 부처님을 모셔온 25년 동안에 때로는 욕심을 일으킨 기억이 있습니까?’
아난도 또한 두 번 세 번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학인이라 욕심을 여의지 못했습니다.’

‘현자 아난이여, 나는 그대가 유학인지 무학인지를 물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그대가 부처님을 모셔온 25년 동안에 때로는 욕심을 일으킨 기억이 있느냐고 물었을 뿐입니다.’
이때에 존자 대목건련이 말했다.
‘현자 아난이여, 빨리 대답하시오. 빨리 대답하시오. 아난이여, 그대는 높은 장로를 희롱하지 마시오.’
그러자 아난이 대답했다.
‘존자 사리자여, 저는 부처님을 모셔온 25년 동안에 처음부터 한 번도 욕심을 일으킨 기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항상 부처님을 향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또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에 대해서도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난이 이런 말을 하였다면, 이것은 존자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다시 어느 때 세존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때 바위산에 계셨다. 이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누울 때 마땅히 사자가 눕는 법처럼 그렇게 누우라.’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짐승의 왕인 사자가 눕는 법은 어떤 것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아난아, 짐승의 왕인 사자는 낮에는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다니기를 마치면 굴로 들어간다. 만일 자려고 할 때에는 발은 포개고 꼬리는 펴서 뒤에 두며, 오른쪽으로 눕는다.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면 제 몸을 돌아본다. 짐승의 왕 사자는 몸이 바르지 못한 것을 보면, 곧 언짢아하고, 그 몸이 모두 바른 것을 보면 곧 기뻐한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굴을 나오는데 굴 밖으로 나와서는 기지개를 켜며 으르렁거리고 기지개를 켜고 으르렁거린 다음에는 제 자신의 몸을 살펴보며, 제 몸을 살펴본 뒤에는 사방을 바라보고, 사방을 바라본 뒤에는 두세 번 포효하며, 두세 번 포효한 뒤에는 먹이를 구하러 간다. 짐승의 왕인 사자가 눕는 법은 이와 같다.’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짐승의 왕 사자가 눕는 법이 그와 같다면, 비구가 눕는 법은 마땅히 어떠해야 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마을을 의지하고 살면서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밥을 빌어야 하는데, 그때에 몸을 잘 보호해 가지고 모든 감관[根]을 거두어 지키며 바른 생각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 하여 마을에서 밥을 빌어 식사를 마친 뒤에는 가사와 발우를 거두어 챙기고, 손과 발을 씻고 니사단(尼師檀)을 어깨에 걸치고 일 없는 곳으로 간다. 혹 나무 밑이나 빈집에 들어가 혹은 거닐거나 좌선하기도 하며 마음속에 온갖 장애 되는 법을 깨끗이 버린다. 낮에도 혹 거닐거나 좌선하여 마음속의 모든 장애 되는 법을 깨끗이 버리고, 또 초저녁에도 거닐거나 좌선하여 마음속의 온갖 장애 되는 법을 깨끗이 버린다. 초저녁에 거닐거나 좌선하여 마음속의 온갖 장애 되는 법을 깨끗이 버린 뒤, 한밤[中夜]에는 방에 들어가 눕는다. 우다라승(優哆邏僧:울다라승)을 네 겹으로 접어 평상에 펴고, 승가리(僧伽梨)를 접어 베개를 만들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개며, 마음은 명상(明相)9)ㆍ바른 생각ㆍ바른 지혜ㆍ항념기상(恒念起想)에 매어 둔다. 그리고 새벽 무렵에는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거닐거나 좌선하며 마음속의 장애 되는 법을 깨끗이 버린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비구가 사자처럼 눕는 법이다.’

존자 아난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런 것이 비구가 사자처럼 눕는 법입니다.’
존자 아난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세존께서는 내게 사자가 눕는 법에 비유하여 눕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 뒤로 나는 한 번도 왼쪽으로 누운 적이 없었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하였다면, 이것은 존자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또 어느 때 세존께서는 구시나갈성(拘尸那竭城)을 유행하실 때에 화발단 역사사라림(和跋單力士娑羅林)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최후로 반열반에 드시려 하실 즈음에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로 가서 여래를 위해 북쪽으로 머리를 둘 수 있게 하여 자리를 펴라. 나는 오늘 밤중에 반열반에 들 것이다.’

존자 아난이 여래의 분부대로 곧 두 그루의 사라나무 밑으로 가서 그 사이에다 여래를 위해 북쪽으로 머리를 둘 수 있도록 자리를 폈다. 자리를 편 뒤에 다시 부처님께 돌아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미 여래를 위하여 두 그루 나무 사이에다 북쪽으로 머리를 둘 수 있도록 자리를 폈습니다. 부디 세존께서는 적당한 때를 선택하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을 데리고 두 그루 나무 사이에 이르러 우다라승(優哆邏僧)을 네 겹으로 접어 평상 위에 펴고, 승가리를 접어 베개로 만들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을 포개셨다. 최후로 반열반에 드시려 할 때, 존자 아난은 불자(拂子)를 잡고 부처님 곁에 서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까지는 여러 곳의 비구들이 세존께 와서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나 언제든지 와서 세존을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길 수 있었다. 만일 세존께서 반열반하셨다는 말을 들은 뒤에는 다시는 와서 세존을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길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역시 언제든지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길 수 없을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아난 비구는 지금 어디 있느냐?’
비구들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존자 아난은 불자(拂子)를 잡고 부처님 곁에 서서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지금까지는 여러 곳의 비구들이 세존께 와서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고자 하면, 언제든지 누구나 와서 세존을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길 수가 있었다. 만일 세존께서 반열반하셨다는 말을 들은 뒤에는, 다시는 와서 세존을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길 수 없을 것이다. 나도 역시 언제든지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고, 예로써 섬길 수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울지 말라. 또한 슬퍼하지도 말라. 왜냐하면 아난아, 너는 나를 모시면서 몸으로 행한 것도 착하였고 입과 뜻으로 행한 것도 착하였다. 처음부터 두 마음이 없어 안락하기 한량없었다. 아난아, 비록 과거에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모신 사람이 있었더라도 너보다 나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미래에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모실 사람이 있다 해도 너보다 낫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이제 나 현재의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모시는 사람이 있더라도 또한 너보다 낫지는 못할 것이다.

아난아, 너는 때를 잘 알고 때를 잘 분별했다.
〈지금은 내가 가서 여래를 뵐 때이다. 지금은 내가 가서 여래를 뵐 때가 아니다. 지금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가서 여래를 뵐 때이다. 지금은 비구ㆍ비구니들이 가서 여래를 뵐 때가 아니다. 지금은 우바새ㆍ우바사(優婆私)10)들이 가서 여래를 뵐 때이다. 지금은 우바새ㆍ우바이들이 가서 여래를 뵐 때가 아니다. 지금은 많은 이학의 사문 바라문들이 가서 여래를 뵐 때이다. 지금은 많은 이학의 사문 바라문들이 가서 여래를 뵐 때가 아니다. 이 많은 이학의 사문 바라문들은 여래와 함께 이야기할 수가 있다. 이 많은 이학의 사문 바라문들은 여래와 함께 이야기할 수가 없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면 여래께서는 안온하고 요익하실 것이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면, 여래께서는 안온하고 요익하게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면, 여래께서는 변재로 설법하실 수 있을 것이다. 이 음식을 먹고 마시면, 여래께서는 변재로 설법하실 수 없을 것이다.〉

또 아난아, 너는 비록 타심지(他心智)는 없으나 여래가 해질 무렵에 연좌(燕坐)에서 일어나 미리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오늘 여래의 행은 이와 같으며 이와 같이 현재에 안락하게 기거하시고 말씀하신 그대로를 살펴서 그 이치가 다름이 없는 것을 안다.’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을 기쁘게 하려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전륜성왕은 네 가지 미증유법(未曾有法)을 얻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찰리(刹利) 대중이 전륜성왕을 가서 보고, 만일 잠자코 있을 때면 보기만 해도 기뻐하고, 만일 말할 때면 그 말을 듣고서 기뻐한다. 범지ㆍ거사ㆍ사문들도 전륜성왕을 가서 보고, 만일 잠자코 있을 때면 보기만 해도 기뻐하고, 만일 말할 때면 그 말을 듣고서 기뻐한다. 아난도 이와 같이 네 가지 미증유법을 얻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비구들이 가서 아난을 보고, 만일 잠자코 있을 때면 보기만 해도 기뻐하고, 말할 때면 그 말을 듣고서 기뻐한다.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사들도 아난을 보고, 만일 잠자코 있을 때면 보기만 해도 기뻐하고, 말할 때면 그 말을 듣고서 기뻐한다.

또 아난은 대중을 위하여 설법함에 있어서 네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아난 비구는 비구들을 위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설법하고 성의 없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 비구들도 〈존자 아난이 항상 설법하여 중지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저 비구들은 존자 아난의 설법을 듣고 끝끝내 싫증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아난 비구는 끝내 잠자코 있다. 그는 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사들을 위해서도 지극한 마음으로 설법하고 성의 없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 우바사들도 〈존자 아난이 항상 설법하여 중지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한다. 우바사들도 존자 아난의 설법을 듣고 끝끝내 싫증을 내지 않는다. 그런데 아난 비구는 끝내 잠자코 있다.’

또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존자 아난은 금강(金剛)11)을 유행할 때에 금강촌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에 존자 아난이 한량없는 백천 무리들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설법하고 있었다. 존자 금강자(金剛子)도 이때 대중 가운데 있었다. 금강자는 가만히 이렇게 생각했다.
‘이 존자 아난은 원래 학인(學人)으로서 아직까지 욕심을 여의지 못했는가? 나는 차라리 여기상정(如其像定)에 들어 여기상정으로써 존자 아난의 마음을 관찰해 보리라.’
이에 존자 금강자는 곧 여기상정에 들어, 여기상정으로써 아난의 마음을 관찰하였다. 존자 금강자는 곧 존자 아난은 원래 학인으로서 아직까지 욕심을 여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존자 금강자는 삼매에서 일어나 존자 아난을 향하여 게송을 읊었다.

산림(山林) 속에서 고요히 생각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해야 하리.
구담(瞿曇)이여, 선정은 어지러움이 없어
오래지 않아 그 자취를 쉬리라.

이때 존자 아난은 존자 금강자에게서 대중으로부터 떠나 혼자 수행하며 어지러움 없이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대중에게서 떠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어지러움이 없었다. 그리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신심으로 집을 버려 가정 없이 도를 배우는 족성자들이 해야 할 바인 위없는 범행을 마쳤다. 그는 곧 현재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원만히 노닐었다. 생이 이미 다하였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았다. 존자 아난은 법을 안 뒤에 결국 아라하가 되었다. 존자 아난은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평상 위에 앉아 머리를 숙여 미처 베개에 닿기 전에, 문득 일체의 번뇌를 끊고 마음의 해탈을 얻었다.’
만일 존자 아난이 이런 말을 하였다면, 이것은 존자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존자 아난은 또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가부좌하고 앉은 채로 반열반에 들겠다.’
존자 아난은 곧 가부좌하고 앉아 반열반에 들었다. 만일 존자 아난이 가부좌하고 앉은 채로 반열반에 들었다면, 그것은 존자 아난의 미증유법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시자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399자이다.

34) 박구라경(薄拘羅經) 제3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오래지 않아 존자 박구라(薄拘羅)는 왕사성을 유행하시면서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園)에 있었다.

그때 어떤 이학(異學)이 있었는데, 그는 존자 박구라가 출가하기 전의 친한 벗이었다. 그는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존자 박구라에게 나아가 서로 문안한 뒤 한쪽에 앉았다. 이학이 말하였다.
“현자 박구라여, 내가 물을 일이 있는데 들어주겠는가?”

존자 박구라가 대답하였다.
“현자여, 그대는 묻고 싶은 대로 물어 보아라. 내가 듣고 생각해 보리라.”

이학이 물었다.
“현자 박구라여, 그대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얼마나 되는가?”

존자 박구라가 대답하였다.
“이학이여, 나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이 되었다.”

이학이 또 물었다.
“현자 박구라여, 그대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 동안에 혹시 음욕을 행한 기억이 있는가?”

존자 박구라가 이학에게 말했다.
“그대는 그런 질문은 하지 말고 다시 다른 일을 물어보라. ‘현자 박구라여, 너는 이 바른 법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 동안에 혹 욕상(欲想)을 일으킨 기억이 있는가?’라고 말이다. 이학이여, 그대는 마땅히 이렇게 물어야 하리라.”

그러자 이학은 곧 그렇게 물었다.
“나는 이제 다시 현자 박구라에게 묻겠다. 그대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 동안에 혹 욕상을 일으킨 기억이 있는가?”

그때 존자 박구라는 이 이학의 물음으로 인해 곧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뽐낼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만일 존자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욕상이 없었다.”
만일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말한다.
“여러분, 나는 분소의(糞掃衣)를 입은 지 80년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뽐낼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만일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나는 분소의를 가진 지 8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거사의 옷을 받은 기억이 없고, 아직까지 한 번도 멀쩡한 옷감을 끊어서 옷을 만들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까지 한 번도 다른 비구를 시켜 옷을 만들지 않았고, 아직까지 한 번도 바늘을 가지고 옷을 꿰매게 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 한 번도 바늘을 가지고 주머니를 깁게 하거나 나아가 바늘 한 땀도 뜨게 하지 않았다.”
만일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걸식한 지 8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뽐낼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만일 존자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존자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걸식한 지 8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거사의 청을 받은 기억이 없고, 아직까지 한 번도 차례를 넘겨 걸식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 한 번도 지극히 깨끗하고 맛있고, 풍성한 음식을 얻을 수 있는 큰 집으로 가서 걸식하지 않았고, 아직까지 한 번도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으며, 아직까지 한 번도 비구니 방에 들어간 기억이 없고, 아직까지 한 번도 비구니와 서로 안부를 물은 기억이 없으며, 나아가 길에서도 서로 말하지 않았다.”
만일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사미를 기른 기억이 없고, 아직 한 번도 속인을 위하여 설법한 기억이 없으며, 나아가 4구의 게송도 그를 위하여 말한 기억이 없다.”
만일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이 바른 법 안에서 도를 배운 지 80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앓거나 나아가 잠깐 동안이나마 두통을 앓아본 적이 없었고, 아직까지 한 번도 약이나 나아가 한 조각의 하리륵(訶梨勒)을 먹어본 기억조차 없다.”
만일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가부좌하고 앉은 지 80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아직까지 한 번도 벽에 기대거나 나무에 기댄 적이 없었다.”
만일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3일 밤낮 동안에 세 가지를 통달해 증득했다.”
만일 박구라가 이렇게 말한다면,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다시 박구라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현자들이여, 나는 가부를 맺고 앉아 열반에 들리라.”
박구라는 곧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열반에 들었다. 만일 박구라가 가부좌로 앉아 열반에 들었다면 이것은 박구라의 미증유법이다.

존자 박구라는 이렇게 말하자, 그때 이학과 많은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박구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980자이다.

35) 아수라경(阿修羅經) 제4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란야(鞞蘭若)를 유행하실 때에 황로원(黃蘆園)에 계셨다.

그때 파라라(婆羅邏) 아수라왕과 아들 모리차(牟梨遮) 아수라는 당당하고 환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밤이 지나고 날이 밝으려 할 무렵 부처님께 나아가 그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파라라여, 큰 바다 가운데서 아수라는 아수라의 수명ㆍ아수라의 빛깔ㆍ아수라의 즐거움ㆍ아수라의 힘에 있어서 쇠퇴하는 일이 없는가? 모든 아수라들은 큰 바다를 좋아하는가?”

파라라 아수라왕과 아들 모리차 아수라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우리 큰 바다 가운데서는 모든 아수라가 아수라의 목숨ㆍ아수라의 빛깔ㆍ아수라의 즐거움ㆍ아수라의 힘에 있어서 쇠퇴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아수라들은 큰 바다를 좋아합니다.”

“파라라여, 큰 바다에는 몇 가지 미증유법이 있기에, 모든 아수라들이 보고는 그것을 좋아하는가?”

“세존이시여, 우리 큰 바다에는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있어, 모든 아수라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여 거기서 즐거워하게 합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세존이시여, 우리의 큰 바다는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점점 넓어져 고르고 편편하며, 위는 언덕이 되고 물은 항상 가득 차서 일찍 흘러나간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우리의 큰 바다가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점점 넓어져 고르고 편편하며, 위는 언덕이 되고 물은 항상 가득 차서 일찍 흘러나간 적이 없다면, 이것은 우리 큰 바다의 첫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아수라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우리의 큰 바다는 그 조수가 일찍이 때를 잃은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우리의 큰 바다 조수가 일찍이 때를 잃은 적이 없다면, 이것은 우리 큰 바다의 두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아수라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우리의 큰 바다는 그 물이 매우 깊어 바닥이 없고 지극히 넓어 가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우리의 큰 바다가 매우 깊어 바닥이 없고, 지극히 넓어 가없다면 이것은 우리 큰 바다의 세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아수라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우리의 큰 바다는 그 물이 똑같이 짠맛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우리 큰 바닷물이 똑같이 짠맛이라면, 이것은 우리 큰 바다의 네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아수라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우리의 큰 바다 가운데에는 많은 보배가 있습니다. 한량없이 귀하고 기이한 갖가지 보배 구슬이 그 가운데 충만해 있습니다. 그 보배 이름은 금ㆍ은ㆍ수정ㆍ유리ㆍ마니ㆍ진주ㆍ벽옥(碧玉)ㆍ백가(白珂)ㆍ나벽(蠡璧)ㆍ산호ㆍ호박ㆍ마노ㆍ대모(瑇瑁)ㆍ적석(赤石)ㆍ선주(琁珠)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우리의 큰 바다 가운데 많은 보배가 있으며, 한량없이 귀하고 이상한 갖가지 보배 구슬이 그 가운데 충만해 있으며, 그 보배 이름은 금ㆍ은ㆍ수정ㆍ유리ㆍ마니ㆍ진주ㆍ벽옥ㆍ백가ㆍ나벽ㆍ산호ㆍ호박ㆍ마노ㆍ대모ㆍ적석ㆍ선주라면 이것은 우리 큰 바다의 다섯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아수라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우리의 큰 바다 가운데에는 큰 신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큰 신의 이름은 아수라ㆍ간탑화(乾塔惒)ㆍ나찰(羅刹)ㆍ어마갈(魚摩竭)ㆍ거북ㆍ악어ㆍ바류니(婆留泥)ㆍ제예(帝麑)ㆍ제예가라(帝麑伽羅)ㆍ제제예가라(提帝麑伽羅)입니다. 또 큰 바다 가운데는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여, 중생의 몸은 100유연(由延:由旬)도 되고, 200유연이나 300유연 나아가 700유연쯤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몸들이 모두 바다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큰 바다 가운데 큰 신들이 살고 있는데, 그 이름이 곧 아수라ㆍ간답화ㆍ나찰ㆍ어마갈ㆍ거북ㆍ악어ㆍ바류니ㆍ제예ㆍ제예가라ㆍ제제예가라이고, 다시 큰 바다 가운데는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여, 중생의 몸이 100유연도 되고, 200유연이나 300유연 나아가 700유연쯤 되는 것도 있는데, 이들이 모두 바다 가운데서 산다면, 이것은 우리 큰 바다의 여섯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아수라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우리의 큰 바다는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지 않습니다. 만일에 죽은 시체가 있으면 밤새껏 바람이 불어 곧 언덕 위로 밀어 붙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우리의 큰 바다가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지 않고, 죽은 시체가 있으면 밤새껏 바람이 불어 곧 언덕 위로 밀어 붙인다면, 이것은 우리 큰 바다의 일곱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아수라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다.

또 세존이시여, 우리의 큰 바다는 염부주(閻浮洲) 가운데 5대하(大河)가 있습니다. 첫째는 항가(恒伽:항하)이며, 둘째는 요우나(搖尤那)이고, 셋째는 사뢰부(舍牢浮)이며, 넷째는 아이라바제(阿夷羅婆提)이고, 다섯째는 마기(摩企)라고 하는데, 이 강물이 다 큰 바다로 들어갑니다. 이미 바다로 들어간 뒤에는 각각 본 이름을 버리고 모두 큰 바다라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우리의 큰 바다가 염부주 가운데 있는 5대하, 곧 첫째 긍가, 둘째 요우나, 셋째 사뢰부, 넷째 아이라바제, 다섯째 마기 등의 강물이 모두 큰 바다로 들어가고, 이미 바다로 들어간 뒤에는 각각 본 이름을 버리고 모두 큰 바다라고 이름한다면, 이것은 우리 큰 바다의 여덟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아수라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바른 법률(法律) 안에는 몇 가지 미증유법이 있기에 모든 비구들이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합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파라라여, 나의 바른 법률 안에도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있어,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여 거기서 즐거워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파라라여, 큰 바다는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점점 넓어지고 고르고 편편하며 위는 언덕이 되고 물은 항상 가득 차서 일찍 흘러나간 적이 없는 것처럼,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점진적으로 행하고 점진적으로 배우며 점진적으로 끊고 점진적으로 가르친다. 파라라여, 만일 나의 바른 법률 안에서 점진적으로 행하고 점진적으로 배우며 점진적으로 끊고 점진적으로 가르친다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첫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한다.

또 파라라여, 큰 바다의 조수가 일찍이 때를 어긴 적이 없는 것처럼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사를 위하여 금계(禁戒)를 만들고, 모든 족성자도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를 범하지 않는다. 파라라여,만일 나의 바른 법률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사를 위하여 금계를 만들고, 모든 족성자도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를 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두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한다.

또 파라라여, 큰 바다는 그 물이 매우 깊어 바닥이 없고 지극히 넓어 가없는 것처럼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법은 매우 깊고 매우 깊어 바닥이 없고, 지극히 넓어 가없다. 파라라여, 만일 내 바른 법률의 모든 법이 매우 깊고 너무 깊어 바닥이 없고 지극히 넓어 가없다면, 이것은 나의 바른 법률의 세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한다.

또 파라라여, 큰 바다는 물이 똑같이 짠맛인 것처럼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욕심이 없는 것으로 맛을 삼는데, 깨침의 맛[覺味]과 쉼의 맛[息味]과 도의 맛[道味]이다. 파라라여, 만일 나의 바른 법률이 욕심이 없는 것으로 맛을 삼되 그것이 깨침의 맛과 쉼의 맛과 도의 맛이라면, 이것은 바른 법률의 네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한다.

또 파라라여, 큰 바다에는 많은 보배가 있어, 한량없이 귀하고 기이한 갖가지 보배 구슬이 그 가운데 충만해 있는데, 그 보배 이름은 금ㆍ은ㆍ수정ㆍ유리ㆍ마니ㆍ진주ㆍ벽옥ㆍ백가ㆍ나벽ㆍ산호ㆍ호박ㆍ마노ㆍ대모ㆍ적석ㆍ선주인 것처럼 파라라여,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한량없이 귀하고 기이한 갖가지 보배 구슬이 그 가운데 충만해 있다. 그 보배 이름은 4념처(念處)ㆍ4정근(精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정도(正道)이다. 파라라여, 만일 나의 바른 법률에 많은 보배가 있어, 한량없이 귀하고 특이한 갖가지 보배 구슬이 그 가운데 충만해 있는데, 그 보배 이름이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정도라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다섯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한다.

또 파라라여, 큰 바다 가운데 큰 신들이 살고 있는데, 그 큰 신들의 이름은 아수라ㆍ간탑화ㆍ나찰ㆍ어마갈ㆍ거북ㆍ악어ㆍ바류니ㆍ제예ㆍ제예가라ㆍ제제예가라인 것처럼, 또 큰 바다는 참으로 신기하여 중생의 몸은 100유연도 되고, 200유연이나, 300유연 나아가 700유연까지 되는 것이 모두 바다 가운데서 사는 것처럼,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거룩한 대중인 큰 신들이 다 그 가운데서 산다. 그 신들의 이름은 곧 아라하(阿羅訶:아라한)ㆍ향아라하(向阿羅訶)ㆍ아나함(阿那含)ㆍ향아나함ㆍ사다함(斯陀含)ㆍ향사다함ㆍ수다원(須陀洹)ㆍ향수다원이다. 파라라여, 만일 우리 바른 법률 가운데 거룩한 대중인 큰 신들이 살고 있는데 그 큰 신들의 이름은 곧 아라하ㆍ향아라하ㆍ아나함ㆍ향아나함ㆍ사다함ㆍ향사다함ㆍ수다원ㆍ향수다원이라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여섯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한다.

또 파라라여, 큰 바다가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지 않고, 만일 죽은 시체가 있으면 밤새껏 바람이 불어 곧 언덕 위에 밀어 붙이는 것처럼, 파라라여,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거룩한 대중은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지 않는다. 만일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 악을 행하여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닌 것을 사문이라 일컬으면, 그는 비록 거룩한 대중을 따라 그 가운데 있더라도 결국 거룩한 대중과 거리가 멀어지고 거룩한 대중도 그와 거리가 멀어진다. 파라라여, 만일 나의 바른 법률 가운데 거룩한 대중은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지 않고, 만일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 악을 행하여 범행이 아닌 것을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이 아닌 것을 사문이라 일컬으면, 그는 비록 거룩한 대중을 따라 그 가운데 있더라도 거룩한 대중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거룩한 대중도 그와 거리가 멀어진다면, 이것은 우리 바른 법의 일곱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한다.

또 파라라여, 큰 바다의 염부제 가운데에는 다섯 개의 큰 강이 있는데, 첫째 긍가, 둘째 요우나, 셋째 사뇌부, 넷째 아이라바제, 다섯째 마기로서 모두 큰 바다로 들어가고, 이미 들어간 뒤에는 각각의 본 이름을 버리고 모두 큰 바다라고 불리는 것처럼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찰리종(刹利種)의 족성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 없이 도를 배우면, 그는 본 이름을 버리고 다 같이 사문이라고 한다. 범지종(梵志種)ㆍ거사종(居士種)ㆍ공사종(工師種)의 족성자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 없이 도를 배우면, 그들도 본 이름을 버리고 다 같이 사문이라고 한다. 파라라여, 만일 나의 바른 법률 가운데 찰리종의 족성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 없이 도를 배우면, 그는 본 이름을 버리고 다 같이 사문이라고 하며, 범지종ㆍ거사종ㆍ공사종의 족성자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 없이 도를 배우면 그들도 본 이름을 버리고 다 같이 사문이라 한다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여덟 번째 미증유법으로서 모든 비구는 그것을 보고 거기서 즐거워한다.

파라라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만일 나의 바른 법률에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있고 너희들의 큰 바다에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면, 이 두 가지 미증유법이 어느 것이 우세하고 나으며 묘하고 으뜸이 되겠느냐?”

파라라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우리 큰 바다의 여덟 가지 미증유법은 여래의 여덟 가지 미증유법에 미치지 못합니다. 저희의 법보다 천 배, 만 배나 되어 견줄 수도 없고 비교할 수도 없으며 무게로 따질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습니다. 세존의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우세하고 나으며 묘하고 으뜸이 될 뿐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께 귀의합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파라라 아수라왕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세존의 종제(從弟)로서 나중에 세존을 따라 출가하였다.
2 또는 우루빈라촌(優樓頻羅村)으로 쓰기도 하며, 니련선하(尼連禪河)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3 아설시(阿說示)라고도 하고 의역하여 말하면 마사(馬師)라고 한다. 이 사람은 특별히 용모가 단정하고 행실이 절제 있어 행보상서(行步庠序)의 제일인자로 불린다.
4 또는 발제리가(跋提利迦)라 하기도 하는데 출가하기 전의 가계가 석가족 출신인 왕족의 집안이었으므로 석가왕이라고 호칭하였다. 호족 출신으로 부귀하고 천성이 부드럽고 온화하기가 제일인 비구이다.
5 마하나마(摩訶那摩)라고 하기도 한다. 구례(拘隸)란 구례다족(拘隸多族) 출신임을 가리킨 말이다.
6 사라수(沙羅樹) 잎으로 만든 임시 사원(寺院)을 말한다.
7 여기서 구담은 아난을 가리킨다. 아난 역시 석가족 출신이므로 구담이라 하였다.
8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에 아난은 아직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아난 비구는 타심지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9 송ㆍ원ㆍ명 3본에는 명상(明想)으로 되어 있다.
10 송(宋)ㆍ원(元)ㆍ명(明) 세 본에는 우바이(優婆夷)로 되어 있다.
11 발기족(跋耆族)의 금강국(金剛國)을 말한다.

중아함경 제9권

4. 미증유법품 제4②
36) 지동경(地動經) 제5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금강국(金剛國)의 왈지성(曰地城)12)을 유행하셨다.

그때 땅이 크게 진동하였는데, 땅이 진동하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엔 혜성이 나타나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졌다.
그때 존자 아난은 대지가 진동하고, 땅이 진동하자 사방에서 태풍이 일어나고 온 하늘에 혜성이 나오며 집이 무너져 내리고 담장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아난존자는 보고는 무섭고 두려워져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땅이 크게 진동했습니다. 땅이 크게 진동하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엔 혜성이 나타나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졌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이 맞다. 아난아, 지금 땅이 크게 흔들렸다. 그렇다. 아난아, 땅이 크게 흔들리자 사방에서 태풍이 일어나고 온 하늘엔 혜성이 나타나며 집이 무너져 내리고 담장이 허물어지는 일이 있었다.”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몇 가지 인연으로 땅이 크게 진동하였고, 또 땅이 진동할 때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엔 혜성이 나타났으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졌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아난아, 세 가지 인연으로 땅이 크게 진동하였고, 땅이 진동할 때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에 혜성이 나타났으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졌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 인연인가? 아난아, 이 땅은 물 위에 얹혀 있고, 물은 바람 위에 얹혀 있으며, 바람은 또 허공을 의지하고 있다. 아난아, 가끔 허공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는데, 바람이 일어나면 물이 흔들리고, 물이 흔들리면 땅이 진동한다. 이것이 땅이 크게 흔들리고 땅이 크게 흔들릴 때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에는 혜성이 나타나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지는 첫 번째 인연이다.

또 아난아, 비구는 큰 여의족(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威德)이 있으며 큰 복[福祐]이 있고 큰 위신(威神)이 있으며 마음이 자재한 여의족이 있다. 그는 땅에 대해서 조그마한 생각을 내고 물에 대해서는 한량없는 생각을 낸다. 그 때문에 이 땅은 그의 욕망을 따르고 그의 뜻을 따라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진동하고 또 진동한다. 그 비구를 보호하는 하늘도 그와 같아서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력이 있으며 마음이 자재한 여의족이 있다. 그도 땅에 대해서 조그마한 생각을 내고 물에 대해서 한량없는 생각을 낸다. 그 때문에 이 땅은 그의 욕망을 따르고 그의 뜻을 따라 흔들리고 또 흔들리며 진동하고 또 진동한다. 이것이 땅이 크게 흔들리고, 땅이 크게 흔들릴 때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에는 혜성이 나타나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지는 두 번째 인연이다.

또 아난아, 만일 여래가 머지않은 시기, 즉 석 달쯤 지난 뒤에 열반에 드시게 되는데, 그 때문에 땅이 크게 진동하고 땅이 크게 흔들릴 때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에는 혜성이 나타나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진다. 이것이 땅이 크게 진동하고, 땅이 크게 흔들릴 때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에는 혜성이 나타나며 집들과 장벽들이 다 무너지는 세 번째 인연이다.”

아난은 이 말을 듣고 나서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정말로 신기한 일입니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는 공덕을 성취하셔서 미증유법을 얻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머지않아, 즉 석 달쯤 뒤에 장차 반열반에 드시게 되므로 지금 땅이 크게 진동하였는데, 땅이 크게 흔들릴 때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에는 혜성이 나타나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참으로 기이한 일이며 정말로 신기한 일이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공덕을 성취하고 미증유법을 얻었다. 왜냐하면 여래가 머지않아, 즉 석 달쯤 뒤에 장차 열반에 드시게 되어 지금 대지가 진동하였는데, 땅이 크게 진동할 때에 사방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고 온 하늘에는 혜성이 나타나며 집과 장벽들이 다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난아, 나는 한량없는 백천의 찰리(刹利) 대중들에게 가서 함께 앉아 이야기하여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킨 뒤에 그들의 색상(色像)처럼 내 색상도 그렇게 하고 그들의 음성처럼 내 음성도 그렇게 하며 그들의 위의와 예절처럼 내 위의와 예절도 그렇게 하여 만일 그들이 이치를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그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또 나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였으며 기쁨을 성취하게 하였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한 뒤에는 곧 거기서 사라졌다. 내가 거기서 사라지고 나면 그들은 내가 누군지 조차 몰라 ‘사람인가, 사람이 아닌가?’라고 하며 의아해 하였다. 아난아, 이와 같이 참으로 기이하고 매우 특이한 일이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공덕을 성취하여 미증유법을 얻었는데 이와 같이 범지ㆍ거사ㆍ사문들도 그러하다.

아난아, 나는 한량없는 백천의 사천왕 대중들에게 가서 함께 앉아 이야기하여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킨 뒤에, 그들의 색상처럼 내 색상도 그렇게 하고 그들의 음성처럼 내 음성도 그렇게 하며 그들의 위의와 예절처럼 내 위의와 예절도 그렇게 하여 만일 그들이 이치를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그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였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한 뒤에는 곧 거기서 사라졌다. 내가 거기서 사라지고 나면 그들은 내가 누군지 조차 몰라 ‘이 하늘의 신인가, 다른 하늘의 신인가?’라고 하며 의아해 하였다. 아난아, 이와 같이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도 특이한 일이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공덕을 성취하여 미증유법을 얻었다. 이와 같이 삼십삼천(三十三天)ㆍ험마천(㷿摩天)13)ㆍ도솔타천(兜率哆天)ㆍ화락천(化樂天)ㆍ타화락천(他化樂天)ㆍ범신천(梵身天)ㆍ범부루천(梵富樓天)ㆍ소광천(少光天)ㆍ무량광천(無量光天)ㆍ황욱천(晃昱天)ㆍ소정천(少淨天)ㆍ무량정천(無量淨天)ㆍ변정천(遍淨天)ㆍ무가애천(無罣礙天)ㆍ수복천(受福天)ㆍ과실천(果實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ㆍ선견천(善見天)ㆍ선현천(善現天) 또한 그러하다.

아난아, 나는 한량없는 백천의 색구경천(色究竟天) 대중들에게 가서 함께 앉아 이야기하여, 그들의 마음을 안정시킨 뒤에 그들의 색상처럼 내 색상도 그렇게 하고 그들의 음성처럼 내 음성도 그렇게 하며 그들의 위의와 예절처럼 내 위의와 예절도 그렇게 하여 만일 그들이 이치를 물으면 나는 그들에게 이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였다. 한량없이 많은 방편으로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한 다음, 곧 거기서 사라졌다. 내가 거기서 사라지고 나면 그들은 내가 누군지조차 몰라 ‘이 하늘의 신인가, 다른 하늘의 신인가?’라고 하며 의아해 하였다. 아난아, 이와 같이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도 특이한 일이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공덕을 성취하여 미증유법을 얻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지동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233자이다.

37) 첨파경(瞻波經)14) 제6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첨파국을 유행하실 때에 항하못[恒伽池] 가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보름날에 종해탈(從解脫)15)을 설하실 때 비구들 앞에서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세존께서는 자리에 앉으시자 곧 선정에 드셔서 타심지(他心智)로써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신 뒤에 초야(初夜)16)가 끝날 때까지 잠자코 앉아 계셨다.

그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한 채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초야가 이미 지났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두 모여 앉아 있은 지도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 침묵은 중야(中夜)가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그 비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초야가 지났고 중야도 끝나려 합니다.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여 앉아 있은 지도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또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 침묵은 다시 후야(後夜)가 되도록 계속되었다. 그 비구는 세 번째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초야는 벌써 지났고 중야도 끝났으며 후야도 거의 다하여 곧 날이 밝으려 합니다. 머지않아 해가 뜰 것입니다.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여 앉아 있은 지도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들 중에 부정(不淨)한 비구가 있다.”
그때 존자 대목건련(大目乾連)도 그 대중들 가운데 함께 있었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 때문에 이 대중 가운데 부정한 비구가 있다고 하시는가? 내가 지금 여기상정(如其像定)에 들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之智]로써 대중의 마음을 관찰해보리라.’
존자는 곧 여기상정에 들어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써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였다. 존자 대목건련은 세존께서 어느 비구를 두고 ‘이 대중 가운데 부정한 비구가 있다’고 말씀하셨는지를 알아냈다.

그때 존자 대목건련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 비구 앞으로 가서 팔을 잡아끌고 문 밖으로 내쫓으면서 ‘이 미련한 사람아, 멀리 가거라. 여기서 머물지 말라. 다시는 비구들과 만나지 말라. 지금부터 너는 비구가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문을 닫고 문고리를 걸었다. 그리고는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대중 가운데 있던 한 비구가 부정한 일을 저질렀기에 제가 그 비구를 이미 쫓아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초야가 벌써 지났고 중야도 끝났으며 후야도 거의 다하여 곧 날이 밝으려 합니다. 머지않아 해가 떠오를 것입니다.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두 모여 앉아 있은 지도 아주 오래 되었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목건련아, 저 미련한 사람은 세존과 비구 스님을 희롱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큰 죄를 받을 것이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여래가 부정한 자가 있는 데서 종해탈을 설하면, 그는 곧 머리가 부서져 일곱 조각이 날 것이다. 대목건련아,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종해탈을 설하라. 여래는 다시는 종해탈을 설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목건련아, 마치 저 바다가 밑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점점 넓어져 고르고 편편하며, 위는 언덕이 되고 물은 항상 가득 차서 일찍이 흘러나온 적이 없는 것과 같이, 나의 바른 법률 또한 그와 같아서 점차로 행하고 점차로 배우며 점차로 끊고 점차로 가르친다. 만일 나의 바른 법률 가운데서 점차로 행하고 점차로 배우며 점차로 끊고 점차로 가르친다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미증유법(未曾有法)이다.

대목건련아, 마치 큰 바다의 조수가 일찍이 때를 어긴 적이 없는 것처럼 대목건련아,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사(優婆私)를 위하여 금계(禁戒)를 만들고, 또 모든 족성자(族姓子)는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를 범하지 않는다. 대목건련아, 만일 나의 바른 법률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사를 위하여 금계를 만들고, 모든 족성자가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계를 범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미증유법이다.

대목건련아, 마치 큰 바닷물이 매우 깊어 밑이 없고, 지극히 넓어 가없는 것과 같이 대목건련아,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법이 매우 깊고 깊어 밑이 없고, 지극히 넓고 넓어 가없다. 대목건련아, 만일 내 바른 법률의 모든 법이 매우 깊고 깊어 밑이 없고 지극히 넓고 넓어 가없다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미증유법이다.

대목건련이여, 마치 바닷물은 똑같이 짠맛인 것처럼 대목건련아, 나의 바른 법률도 그와 같아서 욕심이 없는 것으로 맛을 삼는데, 깨침의 맛[覺味]과 쉼의 맛[息味]과 도의 맛[道味]이다. 대목건련아, 만일 나의 바른 법률이 욕심이 없는 것으로 맛을 삼는데, 그것이 깨침의 맛과 쉼의 맛과 도의 맛이라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미증유법이다.

대목건련아, 마치 큰 바다 가운데에는 많은 보배가 있는데 한량없이 많이 있고 신기한 여러 가지 보배 구슬이 그 가운데 충만해 있다. 그 보배 이름은 곧 금ㆍ은ㆍ수정ㆍ유리ㆍ마니(摩尼)ㆍ진주ㆍ벽옥(碧玉)ㆍ백가(白珂)ㆍ차거(車)ㆍ산호ㆍ호박ㆍ마노(馬瑙)ㆍ대모(瑇瑁)ㆍ적석(赤石)ㆍ선주(琁珠)인 것처럼 대목건련아, 나의 바른 법률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많은 보배가 있어 한량없이 귀하고 신기한 여러 가지 보배 구슬이 그 가운데 충만해 있다. 그 보배 이름은 곧 4념처(念處)ㆍ4정근(正勤)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지성도(支聖道)이다. 대목건련아, 만일 나의 바른 법률에 많은 보배가 있어 한량없이 귀하고 기이한 여러 가지 보배 구슬이 그 가운데 충만해 있는데, 그 보배 이름은 곧 4념처ㆍ4정근ㆍ4여의족ㆍ5근ㆍ5력ㆍ7각지ㆍ8지성도라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미증유법이다.

대목건련아, 마치 바다 가운데에 큰 신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아수라(阿修羅)ㆍ건답화(乾沓惒)ㆍ나찰(羅刹)ㆍ어마갈(魚摩竭)ㆍ거북ㆍ악어ㆍ바류니ㆍ제예(帝麑)ㆍ제예가라(帝麑伽羅)ㆍ제제예가라(提帝麑伽羅)인 것처럼, 또 큰 바다는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도 특이하여 중생의 몸이 100유연(由延)ㆍ200유연ㆍ300유연ㆍ700유연이나 되는 것도 있는데, 그런 몸들이 다 바다 가운데 사는 것처럼 대목건련아, 나의 바른 법률도 역시 그와 같아서 거룩한 대중의 큰 신들이 다 그 가운데 산다. 그 신들의 이름은 곧 아라하ㆍ향아라하ㆍ아나함ㆍ향아나함ㆍ사다함ㆍ향사다함ㆍ수다원ㆍ향수다원이다. 대목건련아, 만일 나의 바른 법률 가운데 거룩한 대중의 큰 신들이 다 그 가운데 살고 있는데, 그 큰 신들의 이름이 아라하ㆍ향아라하ㆍ아나함ㆍ향아나함ㆍ사다함ㆍ향사다함ㆍ수다원ㆍ향수다원이라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미증유법이다.

대목건련아, 마치 큰 바다는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만일 죽은 시체가 있으면 밤새껏 바람이 불어 곧 언덕 위로 밀어 붙이는 것처럼 대목건련아, 나의 바른 법률도 역시 그와 같아서, 거룩한 대중이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일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 악한 마음이 생겨 범행(梵行)을 행하지 않으면서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도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면 그는 비록 거룩한 대중을 따라 그 가운데 있더라도 거룩한 대중과 거리가 멀고, 거룩한 대중도 역시 그와 거리가 멀다. 대목건련아, 만일 나의 바른 법률 가운데 거룩한 대중이 맑고 깨끗하여 죽은 시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만일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 악한 마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으면서 범행이라 일컫고 사문도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으면, 그는 비록 거룩한 대중을 따라 그 가운데 있더라도 거룩한 대중과 거리가 멀고 거룩한 대중도 역시 그와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이것은 내 바른 법률의 미증유법이다.

대목건련아, 저 큰 바다의 염부주(閻浮洲) 가운데에는 5대하(大河)가 있으니, 첫째는 항가(恒伽)이며, 둘째는 요우나(搖尤那)이며, 셋째는 사뢰부(舍牢浮)이며, 넷째는 아이라바제(阿夷羅婆提)이며, 다섯째는 마기(摩企)이다. 이 큰 강물이 모두 큰 바다로 들어가고 또 큰 바다 가운데에는 용수(龍水)가 공중에서 수레바퀴처럼 쏟아져 내리지만 이 물이 큰 바다를 늘게 하거나 줄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대목건련아, 나의 바른 법률도 역시 그와 같아서 찰리종(刹利種)의 족성자(族姓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 가정을 이루지 않은 채로 도를 배워,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스스로 증득하여 원만히 노닌다. 대목건련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더라도 내 바른 법률에는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 이와 같이 범지종(梵志種)ㆍ거사종(居士種)ㆍ공사종(工師種)의 족성자들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 가정을 이루지 않은 채로 도를 배워,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스스로 증득하고 원만하게 노닌다. 대목건련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더라도 내 바른 법률에는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

대목건련아, 만일 내 바른 법률에 찰리종의 족성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면,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스스로 증득하여 원만히 노닌다. 대목건련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더라도 내 바른 법률에는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 이와 같이 범지종ㆍ거사종ㆍ공사종의 족성자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워서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스스로 증득하고 원만히 노닌다. 대목건련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더라도 나의 바른 법률에는 더함도 없고 덜함도 없다면, 내 바른 법률의 미증유법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대목건련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첨파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814자이다.

38) 욱가장자경(郁伽長者經) 제7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鞞舍離)를 유행하실 때에 대림(大林)에 계셨다.

그때 욱가(郁伽) 장자는 부녀자들만 시중을 들도록 하고 맨 앞에 서서 비사리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비사리와 대림 중간에서 기녀만을 데리고 왕처럼 놀이를 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때 욱가 장자는 술이 잔뜩 취해 부녀자들을 내버려 둔 채 대림으로 갔다. 술에 잔뜩 취한 욱가 장자는 숲 사이에 계시는 세존을 멀리서 보았는데, 그 모습은 단정하고 아름다워 별 가운데의 달과 같으시고 빛나고 환하여 금산(金山)과 같이 상호(相好)가 원만하고 위신이 의젓하며, 모든 감관[根]은 고요하고 안정되어 아무 장애가 없으시며 번뇌를 항복받고 마음은 쉬어 고요하고 잠잠하셨다. 그는 부처님을 뵙자 곧바로 취기가 사라졌다. 욱가 장자는 술이 깨자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를 위하여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시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셨다. 한량없이 많은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간절하게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쁜 마음을 내게 한 다음, 모든 부처님의 법을 따라 먼저 단정법(端正法)을 말씀하시자 듣는 사람마다 모두들 기뻐하였다. 그러자 곧 보시법을 설하시고 또 계율도 설하시며 천상에 나는 법을 설하셨다. 그리고는 또 욕심은 재앙과 우환이라 꾸짖으시고 나고 죽는 것을 더러움이라 하시고 욕심이 없는 것을 묘(妙)하다 찬탄하시고 도품(道品)을 청정한 것[白淨]이라고 하셨다.
세존께서는 그를 위하여 이러한 법을 설하신 다음 부처님께서 그에게 기뻐하는 마음[歡喜心]ㆍ구족한 마음[具足心]ㆍ부드럽고 연한 마음[柔軟心]ㆍ견뎌 참는 마음[堪耐心]ㆍ훌륭한 마음[勝上心]ㆍ한결같은 마음[一向心]ㆍ의심이 없는 마음[無疑心]ㆍ덮임이 없는 마음[無蓋心]이 있고, 능함[能]이 있고 힘이 있어, 바른 법을 감당해 받을 수 있음을 아셨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께서 바른 법의 요체[要]를 말씀하신 것처럼 세존께서도 곧 그를 위하여 괴로움[苦]ㆍ괴로움의 발생[習]ㆍ괴로움의 소멸[滅]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때 욱가 장자는 그 자리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인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깨달았다. 마치 흰 천이 물들기 쉬운 것처럼 욱가 장자도 역시 그와 같아서, 그 자리에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인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깨달았다.

이에 욱가 장자는 이미 법을 보고 법을 얻고 백정법(白淨法)을 깨달았다. 의심을 끊고 미혹을 벗어나고 달리 숭상하는 것이 없어 남을 따르지 않고,주저하며 망설임이 없어 이미 과증(果證)에 머물렀고 세존의 법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께 귀의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優婆塞)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세존을 따라 스스로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梵行)을 제일로 여기며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욱가 장자는 세존을 따라 스스로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기며,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닌 뒤에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돈 다음 물러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모든 부인들을 모아 놓고 말하였다.
“당신들은 아는가? 나는 세존을 따라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기며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닐 것이오. 그러니 당신들이 여기서 살고 싶다면 여기서 살되 보시를 행하여 복을 짓도록 하오. 만일 여기서 살고 싶지 않거든 곧 제각기 제 집으로 돌아가시오. 만일 당신들이 시집을 가고자 한다면 나는 당신들을 모두 다 시집보내 주겠소.”

이때 첫째 부인이 욱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만일 당신께서 부처님을 따라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기며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니신다면, 저를 저 아무개에게 시집보내 주십시오.”

욱가 장자는 곧 그 사람을 불러 놓고, 왼손으로 첫째 부인의 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금주전자를 들고 그 사람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첫째 부인을 너에게 아내로 주리라.”

그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 온몸의 털이 곤두서서 두려워 떨며 욱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장자께서는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장자께서는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너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처님을 따라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길 것이며,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키겠노라는 약속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첫째 부인을 너의 아내로 주는 것이다.”
욱가 장자는 첫째 부인을 이미 그에게 주었고 남은 부인들도 다 마땅하게 주되 그렇게 주고도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었다.

이때에 세존께서 한량없이 많은 백천 대중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욱가 장자를 칭찬하고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욱가 장자는 여덟 가지 미증유법을 가졌다.”

그때 어떤 비구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욱가 장자의 집으로 갔다. 욱가 장자는 멀리서 비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 어깨를 드러내 옷을 입고는 합장하고 비구에게 말하였다.
“존자여, 잘 오셨습니다. 존자께서는 오랜만에 여기에 오셨습니다. 원컨대 이 평상에 앉으십시오.”
그때 비구는 곧 그 자리에 앉았다. 욱가 장자는 비구의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비구가 장자에게 말하였다.
“장자여, 당신에게는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당신을 위하여 한량없이 많은 백천 대중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고 그대를 칭찬하셨기 때문입니다. 장자여, 당신에게는 어떠한 법이 있습니까?”

욱가 장자가 비구에게 대답하였다.
“존자여, 세존께서는 조금도 틀린 말씀은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저는 세존께서 무슨 이유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다만 존자께서는 제게 있었던 일을 들어보십시오.
어느 때 세존께서 비사리를 유행하실 때에 대림 가운데 계셨습니다. 존자여, 저는 그때는 오직 여자만 시중들게 하고는 내가 맨 앞에 서서 비사리를 나와, 비사리와 대림 중간에서 기녀들만 데리고 왕처럼 즐기고 놀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존자여, 저는 그때 너무나 술에 취해서 여러 여자들을 내버려 둔 채 대림 속으로 갔었습니다. 저는 술이 몹시 취해 있었는데, 멀리서 숲 사이에 계시는 세존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존의 모습은 단정하고 아름답기가 별 가운데 달과 같으셨고, 빛나고 환하기는 금산과 같으셨습니다. 상호가 원만하시고 위의는 의젓하시며, 모든 감관은 고요하고 편안하여 아무런 장애가 없으시고 마음을 항복받고 마음을 쉬어 고요하고 잠잠하셨습니다. 저는 부처님을 뵙자 금방 술이 깨었습니다. 존자여, 제게는 이런 법(法)이 있었습니다.”

비구가 찬탄하며 말했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존자여, 내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여, 나는 술이 깬 뒤에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셨으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한량없이 많은 방편으로 저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시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시고는 모든 부처님의 법과 같이 먼저 단정법을 말씀하셨는데, 듣는 사람들마다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뒤이어 보시에 대해 설하시고 계율에 대해 설하셨으며 천상에 나는 법을 설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욕심은 재앙과 우환이라 꾸짖으시고 나고 죽는 것을 더러움이라 하셨으며 욕심이 없는 것을 묘하다고 찬탄하시고 도품(道品)을 깨끗한 것[白淨]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나를 위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뒤 내게 기뻐하는 마음ㆍ구족한 마음ㆍ부드럽고 연한 마음ㆍ견뎌 참는 마음ㆍ훌륭한 마음ㆍ한결같은 마음ㆍ의심이 없는 마음ㆍ덮임이 없는 마음이 있고, 재능이 있고 힘이 있어, 바른 법을 감당해 받을 수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께서 바른 법의 대강령을 말씀하신 것처럼, 세존께서도 곧 저를 위하여 괴로움[苦]ㆍ괴로움의 발생[習]ㆍ괴로움의 소멸[滅]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道]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그 자리에서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달았는데, 마치 흰 천이 물들기 쉬운 것처럼 저도 역시 그와 같이 그 자리에서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존자여,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었습니다.”

비구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존자여, 저에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여, 저는 또 법을 보았고 법을 얻었으며 백정법(白淨法)을 깨달았습니다. 의심을 끊고 미혹을 건너고 더 이상 다른 것을 숭상할 것이 없어 남을 따르지 않으며 망설임 없이 이미 과증에 머물렀고 세존의 법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존자여,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께 귀의하겠습니다.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제가 우바새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세존을 따라 스스로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길 것이며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니겠습니다.’
존자여, 저는 세존을 따라 스스로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기며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녀 일찍이 그것을 범한 적이 없습니다. 존자여, 내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비구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존자여, 내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여, 저는 또 그때에 세존을 따라 스스로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기기로 하고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닌 뒤에,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물러 나왔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모든 부인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아는가? 나는 세존을 따라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길 것이며,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닐 것이오. 당신들이 여기서 살고 싶다면 여기서 살되 보시를 행하여 복을 짓도록 하오. 만일 여기서 살고 싶지 않거든 곧 각각 집으로 돌아가시오. 만일 당신들이 시집을 가고자 한다면 나는 당신들을 시집보내 주겠소.’
이때 첫째 부인이 저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부처님을 따라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길 것을 다짐하고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녔다면, 저를 저 아무개에게 시집보내 주십시오.’

저는 곧 그 사람을 불러 놓고 왼손으로 첫째 부인의 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금주전자를 들고 그 사람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이제 이 첫째 부인을 너에게 아내로 주겠다.’
그는 이 말을 듣고 몹시 놀라 온몸의 털이 다 곤두서서 두려워하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장자께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장자께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너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부처님을 따라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범행을 제일로 여길 것을 다짐하였고 따라서 다섯 가지 계를 받아 지녔다. 그래서 나는 지금 첫째 부인을 너에게 아내로 주는 것이다.’
존자여, 저는 첫째 부인을 그에게 주고 남은 부인도 마땅하게 주되 그렇게 주고도 조금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존자여,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비구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존자여, 저에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여, 저는 비구 대중이 사는 동산으로 갈 때면 처음 만나는 비구에게 곧 예배를 올립니다. 만일 그 비구가 거닐면 저도 따라 거닐고, 그가 앉으면 저도 따라 한쪽에 앉아 법을 듣습니다. 그 스님이 저를 위해 설법하면 저도 그 스님을 위해 설법하고, 그 스님이 제 사정을 물으면 저도 그 스님의 사정을 묻고, 그 스님이 제 물음에 대답하면 저도 그 스님의 물음에 대답합니다. 존자여, 저는 아직 상ㆍ중ㆍ하의 장로나 높은 비구를 업신여긴 기억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비구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존자여, 저에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자여, 제가 비구들에게 보시를 행할 때 하늘이 허공에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장자여, 이분은 아라하(阿羅訶)이며, 이분은 향아라하(向阿羅訶)이다. 이 분은 아나함(阿那含)이며, 이분은 향아나함(向阿那含)이다. 이분은 사다함(斯陀含)이며, 이분은 향사다함(向斯陀含)이다. 이분은 수다원(須陀洹)이며, 이분은 향수다원(向須陀洹)이다.17) 이 사람은 정진하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존자여, 저는 비구들에게 보시할 때 일찍이 차별된 마음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내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비구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존자여, 저에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비구들에게 보시를 행할 때 하늘이 허공에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장자여,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ㆍ세존(世尊)께서는 설법을 잘 하시고, 여래의 거룩한 제자들은 열반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존자여, 저는 저 하늘이 믿는 바를 따르지 않고 그가 즐기는 바를 따르지 않으며, 그들이 들은 바를 따르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있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세존께서는 설법을 잘 하시고 여래의 제자들은 열반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 줄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존자여,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비구가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도 특별한 일입니다.”

“존자여, 제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5하분결(下分結)18)은 곧 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신견(身見)ㆍ계취(戒取)ㆍ의(疑)인데, 저는 이 다섯 가지를 다 남김없이 끊었으므로 그것들이 저를 결박하여,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와 태에 들게 하지 못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존자여,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비구가 찬탄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도 특별한 일입니다.”

욱가 장자가 비구에게 말하였다.
“존자여, 부디 여기서 공양하십시오.”

비구는 욱가 장자를 위하여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였다. 욱가 장자는 그 비구가 잠자코 청을 들어주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손 씻을 물을 떠오고, 아주 깨끗하고 맛있는 여러 가지 음식을 풍족하게 장만하여 실컷 공양하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그릇을 거두고 손 씻을 물을 내온 뒤에 작은 평상을 가지고 와서 따로 앉아 법을 들었다. 비구는 장자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비구는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욱가 장자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모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때문에 욱가 장자에게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고 찬탄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욱가장자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329자이다.

39) 욱가장자경 제8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지 오래지 않아, 수많은 덕 높은 장로 비구들이 비사리를 유행하면서 미후수(獼猴水) 가의 높은 누대(樓臺)에 있었다.

그때 욱가 장자는 큰 보시를 베풀었다. 즉 멀리서 오는 손님ㆍ길 가는 나그네ㆍ병든 사람ㆍ간병하는 자들에게 밥을 주고, 늘 죽과 밥을 내어 승원(僧園) 관리인에게 먹이며, 늘 20명의 스님을 청하여 공양하게 하고 5일마다 모든 비구를 청하여 공양하게 하는 등 이와 같은 큰 보시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가 바다에서 큰 배로 재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다가 침몰하여 백천금의 가치가 있는 재물을 일시에 잃어버린 일이 발생했다.
많은 높은 장로 비구들은 욱가 장자가 ‘멀리서 오는 손님ㆍ길 가는 나그네ㆍ병든 사람ㆍ간병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늘 죽과 밥을 내어 승원 관리인에게 먹이며 항상 20명의 스님을 청하여 공양하게 하고 5일마다 모든 비구를 청하여 공양한다’는 등의 이와 같은 큰 보시를 베푼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은 그들은 서로 의논하였다.
“여러분, 누가 저 욱가 장자에게 가서 ‘장자여, 그만두시오. 다시는 보시하지 마시오. 장자여, 뒷날에 틀림없이 스스로 알게 될 것이오’라고 말해 주겠는가?”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시자로서 세존의 가르침을 받고 부처님과 지혜로운 모든 범행인(梵行人)의 칭찬을 받는 분이다. 존자 아난만이 능히 욱가 장자에게 가서 〈장자여, 그만두시오. 다시는 보시하지 마시오. 장자여, 뒷날에 틀림없이 스스로 알게 될 것이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현자들이여, 우리 다 같이 존자 아난에게 가서 이런 사정을 말합시다.”

이에 여러 높은 장로 비구들은 아난에게 가서 서로 문안한 뒤에 한쪽에 앉아 말하였다.
“현자 아난께서는 아십니까? 욱가 장자가 이러한 큰 보시를 베풀고 있습니다. 곧 멀리서 오는 손님과 길 가는 나그네ㆍ병든 사람ㆍ간병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늘 죽과 밥을 준비해 승원 관리인에게 먹이며 늘 20명의 스님을 청하여 공양하게 하고 5일마다 비구 대중을 모두 청하여 공양을 베푸는 등 이와 같은 큰 보시를 행합니다. 그러나 그는 바다에서 큰 배로 재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다가 백천금의 가치가 있는 재물을 일시에 잃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함께 이렇게 의논했습니다.
‘누가 저 욱가 장자에게 가서 〈장자여, 그만두시오. 다시는 보시하지 마시오. 장자여, 장자여, 뒷날 틀림없이 스스로 알게 될 것이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시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부처님과 지혜로운 모든 범행자들의 칭찬을 받는다. 존자 아난만이 능히 욱가 장자에게 가서 〈장자여, 그만 두시오. 다시는 보시하지 마시오. 장자여, 뒷날 틀림없이 스스로 알게 될 것이오〉라고 말을 할 수 있다.’
현자 아난이여, 욱가 장자에게 가서 ‘장자여, 그만 두시오. 다시는 보시하지 마시오. 장자여, 장자여, 뒷날 틀림없이 스스로 알게 될 것이오’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존자 아난은 여러 높은 장로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존자들이여, 욱가 장자는 그 성질이 엄숙하고 반듯합니다. 만일 내가 그런 말을 한다면 그는 곧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여러 존자들이여, 내가 누구의 말이라고 그에게 전하면 되겠습니까?”

여러 덕 높은 장로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현자여, 대중의 말이라고 전하십시오. 대중의 말이라고 전하면 그는 말이 없을 것입니다.”
아난은 잠자코 여러 높은 장로 비구들의 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높은 장로 비구들은 아난이 잠자코 받아들인 것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아난의 주위를 돌고 제각기 돌아갔다.

아난은 이튿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욱가 장자의 집으로 갔다. 욱가 장자는 멀리서 존자 아난이 오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드러내고 합장하고 아난에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아난께서는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어서 평상에 앉으십시오.”
존자 아난은 곧 그 자리에 앉았다. 욱가 장자는 아난의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아난이 말하였다.
“장자여, 아십니까? 장자는 큰 보시를 베푸시고 있습니다. 즉 멀리서 오는 손님과 길 가는 나그네ㆍ병든 사람ㆍ간병하는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늘 죽과 밥을 준비하여 승원 관리인에게 먹이며 늘 20명의 스님을 청하여 공양하게 하고 5일마다 많은 비구를 청하여 공양하게 하는 등 큰 보시를 베푼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배로 재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다가 백천금의 가치가 있는 재물을 일시에 잃었다고 했습니다. 장자여, 그만두십시오. 다시는 보시하지 마십시오. 장자여, 뒷날에 틀림없이 스스로 아실 것입니다.”

장자가 말하였다.
“존자 아난이시여, 그 말이 누구의 말입니까?”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장자여, 나는 비구 대중들의 말을 전한 것입니다.”

장자가 말하였다.
“만일 존자 아난께서 다른 비구의 말을 전하셨다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만일 존자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저는 매우 섭섭했을 것입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만일 제가 이렇게 주고 이렇게 베풀어, 모든 재물이 다 고갈된다 하더라도 다만 제 소원이 이루어져 전륜왕의 소원과 같이 되었으면 합니다.”

존자 아난이 물었다.
“장자여, 어떤 것이 전륜왕의 소원입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시여, 마을의 가난한 사람은 ‘내가 이 마을[村]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그의 소원입니다. 마을의 부자는 ‘내가 이 고을[邑]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그의 소원입니다. 고을의 부자는 또 ‘내가 이 성(城)안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그의 소원입니다. 성 안의 부자는 또 ‘내가 이 성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그의 소원입니다. 성의 주인은 ‘내가 이 나라의 정승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그의 소원입니다. 나라의 정승은 ‘내가 이 나라의 작은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그의 소원입니다. 작은 왕은 ‘내가 전륜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그의 소원입니다.

전륜왕은 ‘족성자(族姓子)가 하는 일처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위없는 범행을 닦아 마치고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곧 그의 소원입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만일 내가 이렇게 주고 이렇게 베풀어 모든 재물이 다 마르더라도 다만 제 소원이 이루어져 전륜성왕의 소원과 같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존자 아난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도 특별한 일입니다.”

“또 존자 아난이시여, 저에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승원(僧園)에 갈 때 처음 만나는 비구에게 곧 예를 올립니다. 만일 그 비구가 거닐면 저도 따라 거닐고, 그가 앉으면 저도 따라 한쪽에 앉아 법을 듣습니다. 그 스님이 저를 위하여 설법하면 저도 그 스님을 위하여 설법하고, 그 스님이 제 사정을 물으면 나도 그 스님의 사정을 물으며, 그 스님이 제 물음에 대답하면 저도 그 스님의 물음에 대답합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저는 아직 상ㆍ중ㆍ하의 장로나 높은 비구를 업신여긴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존자 아난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도 특별한 일입니다.”

“다시 존자 아난이시여, 저에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비구들에게 보시를 행할 때면 천인(天人)이 허공에서 저에게 말합니다.
‘장자여, 이분은 아라하(阿羅訶:아라한)이며, 이분은 향아라하이다. 이분은 아나함이며, 이분은 향아나함이다. 이분은 사다함이며, 이분은 향사다함이다. 이분은 수다원이며, 이분은 향수다원이다. 이 사람은 정진하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정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존자 아난이시여, 저는 비구들에게 보시할 때에 일찍이 차별된 마음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존자 아난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다시 존자 아난이시여, 저에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비구들에게 보시를 행할 때에 하늘이 허공에서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세존께서는 설법을 잘 하시고 여래의 제자들은 잘 닦아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존자 아난이시여, 저는 저 하늘이 믿는 바를 따르지 않고 그들이 즐기는 바를 따르지 않으며 그들이 들은 바를 따르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스스로 깨끗한 지혜가 있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세존께서는 설법을 잘하시고 여래의 제자들은 잘 닦아 나아가고 있는 줄을 알고 있을 따름입니다.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존자 아난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다시 존자 아난이시여, 저에게는 이런 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나아가 제4선(禪)을 성취하여 노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저에게는 이런 법이 있습니다.”

존자 아난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장자여, 만일 그런 법이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고 너무나 특별한 일입니다.”

그때에 욱가 장자가 말하였다.
“존자 아난이시여, 부디 여기서 공양하십시오.”

아난은 욱가 장자를 위하여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였다. 욱가 장자는 아난이 잠자코 그 청을 들어주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손수 손 씻을 물을 내오고 아주 깨끗하고 맛 좋은 여러 가지 음식을 풍족하게 장만하여 실컷 공양하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그릇을 거두고 손 씻을 물을 내온 뒤에 작은 평상을 가지고 와서 따로 앉아 법을 들었다. 아난은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한량없이 많은 방편을 설하여 마음을 내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쁜 마음을 일으키게 하고 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존자 아난이 이렇게 말하자 욱가 장자는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욱가장자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748자이다.

40) 수장자경(手長者經) 제9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아라비가라(阿邏鞞伽邏)를 유행하실 때에 화림(惒林)에 계셨다.

그때에 수 장자(手長者)는 큰 장자 500명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500장자도 역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수 장자여, 너는 지금 이처럼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있구나. 장자여, 너는 어떤 법으로 이 많은 대중들을 포섭하였는가?”

수 장자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4사섭(事攝)19)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세존께서 말씀하신 4사섭이란 첫째 은혜롭게 베푸는 것[惠施]이며, 둘째 부드럽고 고운 말[愛言]이며, 셋째 이익되게 하는 행동[利]이며, 넷째 행동을 같이 하는 일[等利]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것으로 대중들을 포섭하였습니다. 혹은 은혜롭게 베푸는 것으로, 혹은 부드럽고 고운 말로, 혹은 이익되게 하는 행동으로, 혹은 행동을 같이 하는 것으로써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 장자여, 너는 능히 법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이고, 문(門)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이며, 인연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였다. 수 장자여, 만일 과거에 어떤 사문(沙門) 범지(梵志)가 법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였다면, 그 전부는 곧 이 4사섭으로써 이끌어 들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수 장자여, 만일 미래의 사문 범지가 법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인다면, 그 전부는 곧 이 4사섭으로써 이끌어 들이고도 남을 것이다. 수 장자여, 만일 현재의 사문 범지가 법답게 대중을 이끌어 들인다면, 그 전부는 곧 이 4사섭으로써 이끌어 들이고도 남는다.”

이에 세존께서는 수 장자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셨다. 한량없이 많은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그때 수 장자는 부처님의 설법으로 인하여 마음을 내고 간절하게 우러르며 성취함을 기뻐한 다음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나서 물러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러 사람이 있으면 곧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中門)ㆍ안문[內門]을 지나 안에 들어가서도 만일 사람이 있으면 곧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堂)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은 자비[慈]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維)ㆍ상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슬퍼하는 마음[悲]과 기뻐하는 마음[喜]도 그렇게 하였으며 또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마음[捨]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그때에 삼십삼천의 천인(天人)들은 법당에 모여 수 장자를 찬탄하였다.
“여러분, 수 장자는 매우 훌륭한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저 수 장자는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시자 장자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나서 물러갔는데, 그는 집에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였으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과 안문을 지나 안에 들어가서도 만일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이 자비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 하였다.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와 같이 슬퍼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도 그러하였으며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마음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닌다.”

이에 비사문대천왕(毘沙門大天王)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광명을 발하며 이른 아침에 수 장자의 집에 가서 말했다.
“장자여, 그대는 훌륭한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 삼십삼천이 장자를 위하여 법당에 모여 다음과 같이 수 장자를 찬탄하였기 때문이다.
‘수 장자는 매우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여러 현자들이여, 수 장자는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시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물러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러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과 안문을 지나 안에 들어가서도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간절히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이 자비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이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슬퍼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도 그러하였으며, 그리고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마음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기 때문이다.’”

이 때 수 장자는 잠자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비사문대천왕을 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선정[定]을 존중하고 선정을 수호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한량없이 많은 백천 대중들 가운데서 수 장자를 찬탄하셨다.
“수 장자에게는 일곱 가지 미증유법(未曾有法)이 있다. 저 수 장자는 내가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더니,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예배하고 내 주위를 세 바퀴 돌고 나서 물러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러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과 안문을 지나,안에 들어가서도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堂)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슬퍼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도 그러하였고,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마음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제 삼십삼천도 그를 위하여 법당에 모여, 수 장자를 찬탄하고 있다.
‘수 장자는 크게 선한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 저 수 장자는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시자,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나서 물러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러 만일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과 안문을 지나 안에 들어가서도 만일 사람이 있으면 곧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슬퍼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도 그러했으며, 또한 평온한 마음[捨]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기 때문이다.’

지금 비사문대천왕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찬란한 광명을 발하며 이른 아침에 수 장자의 집에 가서 말하고 있다.
‘장자여, 그대는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 삼십삼천이 장자를 위하여 법당에 모여 수 장자를 이렇게 찬탄하기 때문이다.
〈수 장자는 매우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여러분, 저 수 장자는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시자,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 주위를 세 바퀴 돌고는 물러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러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과 안문을 지나 안에 들어가서도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堂)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슬퍼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도 그러했으며, 또한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마음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기 때문이다〉’”

이때 어떤 비구가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수 장자의 집으로 갔다. 수 장자는 멀리서 비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비구에게 말하였다.
“존자여, 잘 오셨습니다. 존자는 오랜만에 여기에 오셨습니다. 자,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때 그 비구는 곧 그 자리에 앉았다. 수 장자는 비구의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비구가 말하였다.
“장자여, 그대는 선한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존께서 당신을 위하여 한량없이 많은 백천 대중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수 장자를 찬탄하셨기 때문입니다.
‘수 장자에게는 일곱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 수 장자는 내가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더니,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예배하고 나를 세 바퀴 돌고는 물러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러 만일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과 안문을 지나 안에 들어가서라도 만일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堂)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하였으며,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와 같이 슬퍼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도 그러하였고 또한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마음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지금 삼십삼천도 장자를 위하여 법당에 모여 수 장자를 찬탄하고 있다.
〈수 장자는 매우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여러분, 저 수 장자는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시자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물러갔다. 그는 집에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러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과 안문을 지나 안에 들어가서도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슬퍼하는 마음과 기뻐하는 마음도 그러하였고 또한 평온하고 집착이 없는 마음과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에 비사문대천왕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찬란한 광명을 발하며 이른 아침에 수 장자의 집에 가서 말하였다.
〈그대는 매우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 삼십삼천이 수 장자를 위하여 법당에 모여 수 장자를 다음과 같이 찬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수 장자는 매우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왜냐하면 여러분, 저 수 장자는 부처님께서 그를 위해 설법하셔서,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더니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물러갔다. 돌아가 바깥문에 이르러 만일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중문과 안문을 지나 안에 들어가서도 만일 사람이 있으면 곧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그리고 당에 올라 자리를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면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여 1방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은 자비와 함께하므로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컸으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게 성취하여 노닐었다고 찬탄하기 때문이다.〉

이때 수 장자는 잠자코 아무 말이 없었고 또한 비사문대천왕을 보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선정을 존중하고 선정을 수호하기 때문이다.’”

이때에 수 장자가 비구에게 여쭈었다.
“존자여, 그때 속인[白衣]은 없었습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속인은 없었습니다.”
비구가 물었다.
“만일 속인이 있었다면 무슨 허물될 것이 있었겠습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존자여, 혹 세존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영원히 의롭지 않고 못 견뎌 지극히 나쁜 곳에 나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며, 만일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일로 인하여 저를 존중하고 공경하고 예로써 섬길 것입니다. 그러나 존자여, 저는 그렇게 하도록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존자여, 부디 여기서 공양하십시오.”

그 비구는 수 장자를 위하여 잠자코 그 청을 받아들였다. 수 장자는 비구가 잠자코 청을 받아들인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몸소 손 씻을 물을 내오고 지극히 깨끗하고 맛 좋은 여러 가지 음식을 풍족하게 장만하여 한껏 공양하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그릇을 거두고 손 씻을 물을 내온 뒤에 작은 평상을 가지고 와서 따로 앉아 법을 들었다. 그 비구는 수 장자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어 간절히 우러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지금까지 수 장자와 이야기한 것을 부처님께 자세히 말씀드렸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는 수 장자에게 일곱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다시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수 장자에게는 또 여덟 번째 미증유법이 있다. 그것은 수 장자는 구함도 없고 욕심도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수장자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658자이다.

41) 수장자경 제10㉻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아라비가라(阿邏鞞伽邏)를 유행하실 때에 화림(惒林)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수 장자에게는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수 장자는 욕심이 적고[少欲] 믿음이 있으며[信]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慙]이 있고 다른 사람에 대한 부끄러움[愧]이 있으며 정진(精進)이 있고 생각[念]이 있으며 선정[定]이 있고 지혜[慧]가 있다.
수 장자는 욕심이 적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 장자는 욕심이 적지만 자기가 욕심이 적다는 것을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 믿음이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며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고 정진이 있으며 생각이 있고 선정이 있으며 지혜가 있지만, 자기가 이렇다는 사실에 대해 남에게 알리려 하지 않는다. 수 장자가 욕심이 적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 장자는 믿음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 장자는 견고한 믿음을 얻어 여래에게 꼭 붙어 믿음의 뿌리가 이미 확고해졌다. 그래서 다른 사문 범지나 혹은 하늘이나 악마나 범천이나 그 밖의 세간을 따르지 않는다. 수 장자는 믿음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 장자가 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 장자는 항상 부끄러워할 줄을 알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대해서 부끄러워할 줄 안다.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더러운 번뇌는 온갖 나쁜 과보를 받아 나고 죽는 근본을 만든다는 것을 안다. 수 장자가 제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 장자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 장자는 항상 부끄러워할 줄 알며 부끄러워해야 할 일에 대하여 부끄러워할 줄 안다.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과 더러운 번뇌는 온갖 나쁜 과보를 받아 나고 죽는 근본을 만든다는 것을 안다. 수 장자가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 장자는 정진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 장자는 항상 정진을 실천하여 악함과 착하지 않음을 없애 온갖 착한 법을 닦으며 언제나 스스로 뜻을 내되, 전일(專一)하고 견고하며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해서 모든 방편을 버리지 않는다. 수 장자가 정진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 장자는 생각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엇인가? 그는 안몸[內身]을 관찰하되 몸의 뜻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의 각(覺)ㆍ심(心)ㆍ법(法)을 관찰하되 법답게 관찰한다. 수 장자는 생각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 장자는 선정이 있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수 장자는 욕심을 여의어 악함과 선하지 않은 법을 여의고 나아가 제4선(禪)까지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수 장자가 선정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 장자는 지혜가 있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는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러한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지혜가 밝게 통달하여 밝고 환히 깨쳐 바로 고통을 없앤다. 수 장자가 지혜가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 장자에게 여덟 가지 미증유법이 있다고 말한 것은 이런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2 왈지(曰地)는 Vajjī의 음역어이다. 발기(跋耆)라 하기도 하고 금강(金剛)이라고도 한다.
13 송ㆍ원ㆍ명 3본에는 염마천(焰摩天)으로 되어 있다.
14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서진(西晋) 시대 법거(法炬)가 한역한 『항수경(恒水經)』과 『법해경(法海經)』, 그리고 후진(後秦) 시대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한 『해팔덕경(海八德經)』이 있으며, 참고 경전으로는 『오분율(五分律)』 제28권과 『증일아함경』 제44권 제48품인 「십불선품(十不善品)」의 두 번째 소경이 있다.
15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ㆍ별해탈(別解脫)ㆍ처처해탈(處處解脫)로 쓰기도 하며, 비구나 비구니가 꼭 지켜야 할 계율을 말한다.
16 인도 사람들은 밤을 세 때로 구분하는데 초야는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이고 중야(中夜)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이며 후야(後夜)는 새벽 2시부터 아침 6시까지이다.
17 이 부분은 성자의 수행 계위인 4향4과(四向四果)를 말하는 것으로서, 4향은 아라하향(阿羅訶向:阿羅漢向), 아나함향(阿那含向), 사다함향(斯陀含向), 수다원향(須陀洹向)을 말함.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향(向) 부분이 도치되어 향아라하(向阿羅訶), 향아나함(向阿那含), 향사다함(向斯陀含), 향수다원(向須陀洹)으로 되어 있다.
18 여기에서 하분(下分)이란 욕계(欲界)를 말하고 결(結)은 번뇌(煩惱)를 일컫는다. 삼계(三界) 중 가장 밑에 있는 욕계에서 중생을 얽어매고 있는 다섯 가지 번뇌, 즉 욕탐(欲貪)ㆍ성냄[瞋恚]ㆍ유신견(有身見)ㆍ계금취견(戒禁取見)ㆍ의결(疑結)을 말한다.
19 보살이 중생을 제도할 때에 취하는 네 가지 기본적인 태도로서 4섭법(攝法)이라 고 하기도 한다.
20 『중아함경』 제9권은 모두 10,255자인데 12,088자라고 한 것은 착오인 듯하다. 게다가 제8권과 제9권에 수록된「미증유법품」의 경문 글자를 합해 보면 총 20,913자인데 여기에 10,946자라고 한 것은 착오에서 비롯된 듯하다. 여기의 기록대로 제8권 합계 10,658자와 제9권 합계 12,088자를 합해도 22,746자이니 10,946자는 터무니없는 숫자이다.

중아함경 제10권

5. 습상응품(習相應品) ①
이 품에는 모두 16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하의경(何義經)ㆍ불사경(不思經)ㆍ염경(念經)ㆍ두 개의 참괴경(慙愧經)
두 개의 계경(戒經)ㆍ두 개의 공경경(恭敬經)ㆍ본제경(本際經)
두 개의 식경(食經)ㆍ진지경(盡智經)ㆍ열반경(涅槃經)
미혜경(彌醯經)ㆍ즉위비구설경(卽爲比丘說經)이 있다.

42) 하의경(何義經) 제1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존자 아난이 해질 무렵에 연좌(燕坐)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계(戒)를 가지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계를 가지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후회하지 않게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계를 가지게 되면 곧 후회하지 않게 된다.”

“세존이시여,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워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후회하지 않으면 곧 즐거워할[歡悅] 것이다.”

“세존이시여, 즐거워함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즐거워하는 것은 기뻐하는[喜]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즐거워하면 곧 기뻐하게 될 것이다.”

“세존이시여, 기뻐함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기뻐하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쉰다[止]는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기뻐하면 곧 몸이 편안히 쉬게 된다.”

“세존이시여, 쉬는 것에는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쉰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안락하게[樂] 하는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몸이 쉬면 곧 안락함을 느끼게 된다.”

“세존이시여, 안락함을 느끼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안락함은 사람으로 하여금 선정[定]에 들게 하는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안락하면 곧 마음이 선정에 들게 된다.”

“세존이시여, 선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선정에 드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를 보고[見如實] 있는 그대로를 알게[知如眞] 하는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선정에 들면 곧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알게 된다.”

“세존이시여,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싫어하게[厭] 하는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알면 곧 싫어하게 된다.”

“세존이시여, 싫어함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싫어한다는 것은 욕심을 없게[無欲] 하는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싫어하면 곧 욕심이 없게 된다.”

“세존이시여, 욕심이 없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난아, 욕심이 없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아난아, 만일 욕심이 없으면 곧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해탈하게 된다. 아난아, 이것이 이른바 계를 가짐으로 말미암아 곧 후회하지 않게 되고 후회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으로 즐거워하게 되며 마음으로 즐거워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되고 기뻐함으로 말미암아 편안히 쉬게 되며 편안하게 쉼으로 말미암아 안락하게 되고 안락함으로 말미암아 선정에 들게 된다는 것이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多聞聖弟子]는 선정으로 말미암아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알게 되며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앎으로 말미암아 싫어하게 되며 싫어함으로 말미암아 곧 욕심이 없게 되고 욕심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해탈하게 되며 해탈함으로 말미암아 곧 해탈한 줄 알게 되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확립되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다음 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안다. 아난아, 이것을 법과 법이 서로 이익되게 하고 법과 법이 서로 의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계(戒)로 인하여 제일가는 경지에 이르게 되니, 곧 이쪽 언덕[此岸]에서 저쪽 언덕[彼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비구들이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하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529자이다.

43) 불사경(不思經) 제2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계를 가지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후회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계를 가지면 곧 후회하지 않게 될 뿐이다. 아난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후회하지 않으면 곧 즐거워하게 될 뿐이다. 아난아, 즐거워하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기뻐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즐거워하면 곧 기뻐하게 될 뿐이다. 아난아, 기뻐하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기뻐하면 곧 마음이 쉬게 될 뿐이다. 아난아, 쉬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쉬면 곧 안락하게 될 뿐이다. 아난아, 안락함을 느끼게 되면 분명 나로 하여금 선정[定]에 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안락하면 곧 선정에 들게 될 뿐이다.

아난아, 선정에 드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를 보게 하고, 있는 그대로를 알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선정에 들면 곧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알게 될 뿐이다. 아난아,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아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싫어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알면 곧 싫어하게 될 뿐이다. 아난아, 싫어하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욕심이 없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싫어하면 곧 욕심이 없게 될 뿐이다. 아난아, 욕심이 없는 것은 분명 나로 하여금 해탈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아난아, 다만 법이 그저 그러한 것이어서 욕심이 없으면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해탈하게 될 뿐이다.

아난아, 이것이 이른바 계를 가짐으로 인하여 곧 후회하지 않게 되고 후회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게 되며 즐거워함으로 인하여 기뻐하게 되고 기뻐함으로 인하여 쉬게 되며 쉼으로 인하여 안락하게 되고 안락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선정에 들게 된다는 것이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마음이 선정에 들게 됨으로 인하여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고 있는 그대로를 알게 되며, 있는 그대로를 보게 되고 있는 그대로를 알게 됨으로 인하여 싫어하게 되고 싫어함으로 인하여 욕심이 없게 되며 욕심이 없게 됨으로 인하여 해탈하게 되고 해탈함으로 인하여 해탈한 줄 알게 되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뒷세상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참뜻을 알게 된다. 아난아, 이것이 이른바 법과 법이 서로 이익되게 하며 법과 법이 서로 연관된다[因]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계를 지킴으로 제일가는 경지에 이르게 되니, 곧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에 이르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불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50자이다.

44) 염경(念經) 제3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망각함[忘]이 많고 바른 지혜가 없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해친다. 만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곧 모든 감각기관[根]의 보호와 계(戒)의 보호ㆍ후회하지 않음[不悔]ㆍ즐거움[歡悅]ㆍ기쁨[喜]ㆍ쉼[止]ㆍ안락[樂]ㆍ선정[定]ㆍ실다운 소견[見如實]과 참다운 앎[知如眞]ㆍ싫어함[厭]ㆍ욕심 없음[無欲]과 해탈(解脫)을 해치며, 해탈이 없으면 열반(涅槃)을 해친다. 만일 비구가 망각함이 많지 않고 바른 지혜가 있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닦을 수 있다.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ㆍ계의 보호ㆍ후회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닦을 수 있으며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닦을 수 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여러 비구들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1자이다.

45) 참괴경(慙愧經) 제4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慙]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愧]이 없으면 곧 사랑[愛]과 공경(恭敬)을 해치게 된다. 만약 사랑과 공경이 없으면 믿음을 해치고 만약 믿음이 없으면 바른 생각을 해치며 만약 바른 생각이 없으면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를 해치고 만약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감각기관[根]의 보호와 계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며 만약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치게 된다. 만일 비구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면 곧 사랑과 공경을 익히고 사랑과 공경이 있으면 믿음을 익히며 믿음이 있으면 바른 생각을 익히고 바른 생각이 있으면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를 익히며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와 계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며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히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참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04자이다.

46) 참괴경 제5㉻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사리자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으면 곧 사랑과 공경을 해칩니다. 만약 사랑과 공경이 없으면 믿음을 해치고 만약 믿음이 없으면 바른 생각을 해치며 만약 바른 생각이 없으면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를 해치고 만약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와 계율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며 만약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칩니다.
여러분, 비유하면 마치 나무와 같으니 만일 나무의 겉껍질을 해치면 속껍질이 성취되지 않고 속껍질이 성취되지 않으면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가 다 성취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그와 같아서 만약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으면 곧 사랑과 공경을 해치고, 만약 사랑과 공경이 없으면 믿음을 해치고 만약 믿음이 없으면 바른 생각을 해치고 만약 바른 생각이 없으면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를 해치며, 만약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와 계율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치고, 만약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칩니다.

여러분, 비구가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면 사랑과 공경을 익히고 만약 사랑과 공경이 있으면 믿음을 익히며 만약 믿음이 있으면 바른 생각을 익히고 만약 바른 생각이 있으면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를 익히며 만약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와 계율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고 만약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힐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비유하면 마치 저 나무와 같으니, 만일 나무의 겉껍질을 해치지 않으면 속껍질이 성취되고 속껍질이 성취되면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가 다 왕성하게 됩니다.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또한 역시 그와 같아서 만일 제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남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으면 곧 사랑과 공경을 익히고 만약 사랑과 공경이 있으면 믿음을 익히며 만약 믿음이 있으면 바른 생각을 익히고 만약 바른 생각이 있으면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를 익히며 만약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와 계율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며, 만일 해탈이 있으면 곧 열반을 익히게 됩니다.”

존자 사리자가 이렇게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참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62자이다.

47) 계경(戒經) 제6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계(戒)를 범하면 곧 후회하지 않음과 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칠 것이며 만약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치게 된다. 비구가 계를 지키면 후회하지 않음과 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과 해탈을 익히고 만약 해탈이 있으면 곧 열반을 익히게 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10자이다.

48) 계경1) 제7㉻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존자 사리자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계를 범하면 곧 후회하지 않음과 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쉼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칠 것이고, 만약 해탈이 없으면 열반을 해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비유하면 저 나무와 같으니, 저 나무의 뿌리를 해치면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가 모두 왕성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약 계를 범하면 곧 후회하지 않음과 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해칠 것이며 해탈이 없으면 곧 열반을 해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계를 지키면 후회하지 않음과 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힐 것이며 만약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힐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비유하면 마치 나무와 같으니 저 나무의 뿌리를 해치지 않으면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열매가 모두 왕성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비구도 역시 그와 같아서 만약 계를 가지면 후회하지 않음과 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익히게 될 것이고 만약 해탈이 있으면 열반을 익히게 될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가 이렇게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09자이다.

49) 공경경(恭敬經) 제8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는 마땅히 공경하고 모든 범행인(梵行人)들을 잘 관찰할 것이며, 또 공경하고 존중해야 한다. 만일 비구가 공경하지 않거나 모든 범행인들을 잘 관찰하지 않으며 또 공경하고 존중하지 않으면 아무리 위의법(威儀法)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위의법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학법(學法)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며 학법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계신(戒身)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며 계신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정신(定身)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며 정신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혜신(慧身)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며 혜신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해탈신(解脫身)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며 해탈신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해탈지견신(解脫知見身)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며 해탈지견신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열반(涅槃)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만일 비구가 공경하고 모든 범행인들을 잘 관찰하며 또 공경하고 존중하고 나서 위의법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위의법을 갖추고서 학법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학법을 갖추고서 계신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계신을 갖추고서 정신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정신을 갖추고서 혜신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혜신을 갖추고서 해탈신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해탈신을 갖추고서 해탈지견신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해탈지견신을 갖추고서 열반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공경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00자이다.

50) 공경경 제9㉻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는 마땅히 공경하고 모든 범행인(梵行人)들을 잘 관찰해야 하며 또 공경하고 존중해야 한다. 만일 비구가 공경하지 않거나 모든 범행인을 잘 관찰하지 않고 또 예의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위의법(威儀法)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 위의법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아무리 학법(學法)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며, 학법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아무리 모든 감각기관[根]의 보호ㆍ계(戒)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歡悅]ㆍ기쁨[喜]ㆍ쉼[止]ㆍ안락[樂]ㆍ선정[定]ㆍ실다운 소견[見如實]ㆍ참다운 앎[知如眞]ㆍ싫어함[厭]ㆍ욕심 없음ㆍ해탈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며, 만약 해탈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열반을 갖추려 해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비구가 공경하거나 모든 범행인들을 잘 관찰하고 또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위의법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만약 위의법을 갖추고서 학법을 갖추려 한다면 그 또한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학법을 갖추고서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ㆍ계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ㆍ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과 해탈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해탈을 갖추고서 열반을 갖추려 한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공경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17자이다.

51) 본제경(本際經)2) 제10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유애(有愛)3)에 대하여 그 최초의 한계[本際]를 알 수 없다. 본래는 유애가 없었으나 이제 유애가 생겨났으니 저 유애가 있게 된 이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다. 유애에는 발생 원인[習]4)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애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무명(無明)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무명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무명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5개(蓋)5)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5개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5개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 악행(惡行)6)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세 가지 악행에도 또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악행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根]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지혜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지혜에도 그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지혜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바르지 못한 사유(思惟)가 발생 원인이 된다. 바르지 못한 사유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못한 사유의 발생 원인이라 고 하는가? 믿지 않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믿지 않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다.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지 않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나쁜 법을 듣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나쁜 법을 듣는 것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법을 듣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악한 사람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이것은 이른바 악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벗을 친근히 하게 되고 나쁜 벗을 친근히 한 뒤에 곧 나쁜 법을 듣게 되며 나쁜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게 된 뒤에 곧 바르지 않은 사유를 하게 되며 바르지 않은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를 갖게 되고 바르지 않은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며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게 된 뒤에 곧 세 가지 악행을 갖추게 되고 세 가지 악행이 있은 뒤에 곧 5개(蓋)를 갖추게 되며 5개가 있은 뒤에 곧 무명(無明)을 갖추게 되고 무명이 있은 뒤에 곧 유애(有愛)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유애는 순서를 따라 점점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명(明)과 해탈(解脫)7)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과 해탈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7각지(覺支)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7각지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7각지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4념처(念處)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4념처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4념처의 발생원인이라고 하는가?세 가지 묘행(妙行)8)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세 가지 묘행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묘행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바른 사유(思惟)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바른 사유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믿음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믿음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에도 역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착한 사람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이것은 이른바 착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착한 벗을 사귀게 되고 착한 벗을 친근히 한 뒤에 곧 좋은 법을 듣게 되며 좋은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음을 내게 되고 믿음을 낸 뒤에 곧 바른 사유를 갖추게 되며 바른 사유를 갖춘 뒤에 곧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갖추게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갖춘 뒤에 곧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게 되며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한 뒤에 곧 세 가지 묘행(妙行)을 갖추게 되고 세 가지 묘행을 갖춘 뒤에 곧 4념처를 갖추게 되며 4념처를 갖춘 뒤에 곧 7각지(覺支)를 갖추게 되고 7각지를 갖춘 뒤에 곧 명과 해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명과 해탈은 차례를 따라 점점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본제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754자이다.

52) 식경(食經) 제11초 1일송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유애(有愛)9)에 대하여 그 최초의 한계[本際]를 알 수 없다. 본래는 유애가 없었으나 지금 유애가 생겨났으니, 저 유애가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유애가 생겨난 데에는 그 자양분[食]10)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애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무명(無明)이 그 자양분이 된다. 무명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무명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5개(蓋)가 그 자양분이 된다. 5개에도 또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5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 악행(惡行)이 그 자양분이 된다. 세 가지 악행에도 또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악행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根]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지혜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지혜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지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르지 못한 사유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르지 못한 사유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못한 사유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믿지 않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믿지 않는 것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지 않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나쁜 법을 듣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나쁜 법을 듣는 것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법을 듣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나쁜 사람이 그 자양분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나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벗을 친근히 하게 되고 나쁜 벗을 친근히 한 뒤에 곧 나쁜 법을 듣게 되며 나쁜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게 된 뒤에 바르지 못한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르지 못한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못한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며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한 뒤에 곧 세 가지 악행을 갖추게 되고 세 가지 악행이 있은 뒤에 곧 5개(蓋)가 있게 되며 5개가 있은 뒤에 곧 무명(無明)을 갖추게 되고 무명이 있은 뒤에 곧 유애(有愛)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저 유애는 차례를 따라 점점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큰 바다도 역시 그렇게 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바다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큰 하수(河水)가 그 자양분이 된다. 큰 하수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하수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작은 하수가 그 자양분이 된다. 작은 하수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작은 하수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큰 시내가 그 자양분이 된다. 큰 시내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시내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작은 시내가 그 자양분이 된다. 작은 시내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작은 시내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이 그 자양분이 된다.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비가 그 자양분이 된다.
어느 때 큰 비가 내리면 곧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의 물이 차고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의 물이 차면 곧 작은 시내가 차며 작은 시내가 차면 큰 시내가 차고 큰 시내가 차면 작은 하수가 차며 작은 하수가 차면 큰 하수가 차고 큰 하수가 차면 큰 바다가 차는데, 이와 같이 저 큰 바다는 차례를 따라 점점 갖추어지고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유애(有愛)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애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무명이 그 자양분이 된다. 무명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무명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5개(蓋)가 그 자양분이 된다. 5개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5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 악행이 그 자양분이 된다. 세 가지 악행에도 역시 그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악행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르지 못한 사유(思惟)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르지 못한 사유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못한 사유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믿지 못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믿지 못하는 것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나쁜 법을 듣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나쁜 법을 듣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법을 듣는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악한 사람이 그 자양분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악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벗을 친근히 하게 되고, 나쁜 벗을 친근히 한 뒤에 곧 나쁜 법을 듣게 되며, 나쁜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은 뒤에 곧 바르지 못한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르지 못한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를 가지게 되며,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게 되고,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못하게 된 뒤에 곧 세 가지 악행을 갖추게 되며, 세 가지 악행이 갖추어진 뒤에 5개를 갖추게 되고, 5개가 있은 뒤에 무명을 갖추게 되며, 무명이 있은 뒤에 유애를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유애는 차례를 따라 점점 갖추어지고 이루어지게 된다.

명(明)과 해탈(解脫)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과 해탈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7각지(覺支)가 그 자양분이 된다. 7각지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7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4념처(念處)가 그 자양분이 된다. 4념처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4념처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 묘행(妙行)이 그 자양분이 된다. 세 가지 묘행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묘행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역시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른 사유에도 또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믿음이 그 자양분이 된다. 믿음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에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자양분이 되는가? 착한 사람이 그 자양분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착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착한 벗을 친근히 하게 되고, 착한 벗이 있은 뒤에 곧 좋은 법을 듣게 되며, 좋은 법을 들은 뒤에 곧 믿음을 내게 되고, 믿음을 낸 뒤에 곧 바른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른 사유가 있은 뒤에 곧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은 뒤에 곧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게 되며,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한 뒤에 곧 세 가지 묘행을 갖추게 되고, 세 가지 묘행이 있은 뒤에 곧 4념처를 갖추게 되며, 4념처가 있은 뒤에 곧 7각지를 갖추게 되고, 7각지가 있은 뒤에 곧 명과 해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명과 해탈은 차례를 따라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큰 바다도 역시 자양분이 있으니,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바다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큰 하수가 그 자양분이 된다. 큰 하수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하수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작은 하수가 그 자양분이 된다. 작은 하수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작은 하수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큰 시내가 그 자양분이 된다. 큰 시내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시내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작은 시내가 그 자양분이 된다. 작은 시내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작은 시내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이 그 자양분이 된다.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비가 그 자양분이 된다.
어느 때 큰 비가 내리면 곧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에 물이 차고,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에 물이 차면 곧 작은 시내가 차며, 작은 시내가 차면 곧 큰 시내가 차고, 큰 시내가 차면 곧 작은 하수가 차며, 작은 하수가 차면 곧 큰 하수가 차고, 큰 하수가 차면 곧 큰 바다가 찬다. 이와 같이 저 큰 바다는 차례를 따라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명과 해탈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과 해탈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7각지가 그 자양분이 된다. 7각지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7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4념처가 그 자양분이 된다. 4념처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4념처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 묘행이 그 자양분이 된다. 세 가지 묘행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묘행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바른 사유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른 사유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믿음이 그 자양분이 된다. 믿음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착한 사람이 그 자양분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착한 사람이 있은 뒤에 착한 벗을 친근히 하게 되고, 착한 벗을 친근히 한 뒤에 좋은 법을 듣게 되며, 좋은 법을 들은 뒤에 믿음을 내게 되고, 믿음을 낸 뒤에 바른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른 사유가 있은 뒤에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가진 뒤에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게 되며,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한 뒤에 세 가지 묘행을 갖추게 되고, 세 가지 묘행이 있은 뒤에 4념처를 갖추게 되며, 4념처가 있은 뒤에 곧 7각지를 갖추게 되고, 7각지가 있은 뒤에 곧 명과 해탈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명과 해탈은 차례를 따라 점점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식경에 수록된 경문 글자 수는 1,833자이다.

53) 식경 제12㉻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유애(有愛)에 대하여 그 최초의 한계[本際]를 알 수 없다. 본래는 유애가 없었으나 지금은 유애가 생겨났으니, 저 유애가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유애가 생겨난 데에는 자양분[食]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애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무명(無明)이 그 자양분이 된다. 무명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무명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5개(蓋)가 그 자양분이 된다. 5개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5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 악행(惡行)이 그 자양분이 된다. 세 가지 악행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악행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根]을 보호하지 않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않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않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르지 못한 사유(思惟)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르지 못한 사유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르지 못한 사유의 자양분이라 하는가? 믿지 않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믿지 않는 것에도 또한 자양분이 있나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지 않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나쁜 법을 듣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나쁜 법을 듣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법을 듣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나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나쁜 사람이 그 자양분이 된다.

큰 바다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바다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비[雨]가 그 자양분이 된다. 어느 때 큰비가 내리면 곧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에 물이 차고,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에 물이 차면 작은 시내가 차며, 작은 시내가 차면 큰 시내가 차고, 큰 시내가 차면 작은 하수가 차며, 작은 하수가 차면 큰 하수가 차고, 큰 하수가 차면 큰 바다가 찬다. 이렇게 저 큰 바다는 점점 갖추어지고 이루어지게 된다.

이와 같아서 나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나쁜 벗을 친근히 하게 되고, 나쁜 벗을 친근히 한 뒤에 나쁜 법을 듣게 되며, 나쁜 법을 들은 뒤에 믿지 않게 되고 믿지 않게 된 뒤에 바르지 않은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르지 않은 사유가 갖추어진 뒤에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르지 못한 생각과 바르지 않은 지혜가 있은 뒤에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않게 되며,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지 않은 뒤에 곧 세 가지 악행을 갖추게 되고, 세 가지 악행이 있은 뒤에 5개(蓋)를 갖추게 되며, 5개가 있은 뒤에 곧 무명을 갖추게 되고, 무명이 있은 뒤에 곧 유애를 갖추게 된다. 이와 같이 이 유애는 점차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명(明)과 해탈(解脫)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과 해탈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7각지(覺支)가 그 자양분이 된다. 7각지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7각지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4념처(念處)가 그 자양분이 된다. 4념처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4념처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세 가지 묘행(妙行)이 그 자양분이 된다. 세 가지 묘행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세 가지 묘행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자양분이 된다. 바른 사유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믿음이 그 자양분이 된다. 믿음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 그 자양분이 된다.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에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착한 사람이 그 자양분이 된다.

큰 바다도 자양분이 있으니, 자양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큰 바다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비가 그 자양분이 된다. 어느 때 큰 비가 내리면 곧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에 물이 차고, 산과 바위와 산골짜기의 물과 늪에 물이 차면 작은 시내가 차며, 작은 시내가 차면 곧 큰 시내가 차고, 큰 시내가 차면 작은 하수가 차며, 작은 하수가 차면 큰 하수가 차고, 큰 하수가 차면 큰 바다가 찬다. 이와 같이 저 큰 바다는 점점 변천해서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와 같아서 착한 사람이 있은 뒤에 곧 착한 벗을 친근히 하게 되고 착한 벗이 있은 뒤에 좋은 법을 듣게 되며 좋은 법을 들은 뒤에 믿음을 내게 되고 믿음이 갖추어진 뒤에 바른 사유를 가지게 되며 바른 사유가 갖추어진 뒤에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가지게 되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갖추어진 뒤에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게 되며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한 뒤에는 세 가지 묘행을 갖추게 되고 세 가지 묘행이 갖추어진 뒤에 4념처를 갖추게 되며 4념처가 갖추어진 뒤에 7각지를 갖추게 되고 7각지가 갖추어진 뒤에 명(明)과 해탈(解脫)을 갖추게 된다. 이와 같이 이 명과 해탈은 점점 변천해서 갖추어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식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930자이다.

54) 진지경(盡智經)11) 제13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劒摩瑟曇)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는 것이 있고 본 것이 있으면 곧 번뇌[漏]가 다하게 되는데, 알지 못해서는 안 되고 보지 못해서도 안 된다. 어떤 것을 알고 보아야 곧 누(漏:번뇌)가 다하게 되는가?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보아 알면 번뇌가 다하게 되고, 괴로움의 발생[苦習]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보아 알고, 괴로움의 소멸[苦滅]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보아 알며,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보아 알면 곧 누가 다하게 된다.

진지(盡智)에도 발생 원인[習]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진지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해탈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해탈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해탈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욕심이 없는 것[無欲]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욕심이 없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욕심이 없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싫어하는 것[厭]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싫어하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싫어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실다운 소견[見如實]과 참다운 앎[知如眞]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선정[定]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선정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선정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안락[樂]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안락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안락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쉼[止]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쉼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쉼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기쁨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기쁨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기쁨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즐거움[歡悅]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즐거움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즐거움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후회하지 않는 것[不悔]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후회하지 않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계(戒)를 보호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계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계를 보호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根]을 보호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바른 사유(思惟)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바른 사유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믿음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믿음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법인(法忍)12)을 관찰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법인을 관찰하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법인을 관찰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법을 익혀 외우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법을 익혀 외우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법을 익혀 외우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법을 받아 가지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법을 받아 가지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법을 받아 가지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법의 뜻을 관찰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법의 뜻을 관찰하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법의 뜻을 관찰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이계(耳界)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이계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이계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좋은 법을 듣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좋은 법을 듣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좋은 법을 듣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훌륭한 스승에게 나아가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훌륭한 스승에게 나아가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훌륭한 스승에게 나아가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받들어 섬기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만일 훌륭한 스승을 받들어 섬기면 아직까지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되고, 들은 뒤에는 곧 이익이 된다. 만일 이렇게 훌륭한 스승을 받들어 섬기지 않으면 곧 받들어 섬기는 발생 원인을 해치고, 만일 받들어 섬기는 일이 없으면 훌륭한 스승에게 나아가는 발생 원인을 해치며, 만일 훌륭한 스승에게 나아가는 발생 원인이 없으면 좋은 법을 듣는 발생 원인을 해친다. 만일 좋은 법을 듣지 않으면 이계(耳界)의 발생 원인을 해치며, 만일 이계가 없으면 법의 뜻을 관찰하는 발생 원인을 해치고, 만일 법의 뜻을 관찰하는 일이 없으면 법을 받아 가지는 발생 원인을 해치며, 만일 법을 받아 가지는 일이 없으면 법을 즐겨 읽는 발생 원인을 해친다. 만일 법을 즐겨 읽는 일이 없으면 법인(法忍)을 관찰하는 발생 원인을 해치며, 만일 법인을 관찰하는 일이 없으면 믿음의 발생 원인을 해치고, 만일 믿음이 없으면 바른 사유를 해치며, 만일 바른 사유가 없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해친다. 만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으면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ㆍ계의 보호ㆍ후회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定]ㆍ실다운 소견ㆍ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ㆍ해탈의 인연을 해치고, 만일 해탈이 없으면 곧 진지(盡智)의 발생 원인을 해친다.

만일 착한 벗을 받들어 섬기면 아직까지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되고, 아직까지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난 뒤에는 곧 이익이 된다. 이와 같이 훌륭한 스승을 받들어 섬기면 받들어 섬기는 발생 원인이 되고, 만일 훌륭한 스승을 받들어 섬기는 일이 있으면 나아가는 발생 원인이 되며, 만일 나아가는 일이 있으면 좋은 법을 듣는 발생 원인이 되고, 만일 좋은 법을 듣는 일이 있으면 이계(耳界)의 발생 원인이 되며, 만일 이계가 있으면 법의 뜻을 관찰하는 발생 원인이 되고, 만일 법의 뜻을 관찰하는 일이 있으면 법을 받아 가지는 발생 원인이 되며, 만일 법을 받아 가지는 일이 있으면 법을 즐겨 읽는 발생 원인이 되고, 만일 법을 즐겨 읽는 일이 있으면 법인을 관찰하는 발생 원인이 되며, 만일 법인을 관찰하는 일이 있으면 믿음의 발생 원인이 되고, 만일 믿음이 있으면 바른 사유의 발생 원인이 되며, 만일 바른 사유가 있으면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발생 원인이 되고, 만일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으면 모든 감각기관의 보호ㆍ계율의 보호ㆍ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ㆍ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ㆍ해탈의 발생 원인이 되며, 만일 해탈이 있으면 곧 진지(盡智)의 발생 원인이 된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진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868자이다.

55) 열반경(涅槃經) 제14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열반(涅槃)에는 발생 원인[習]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열반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해탈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해탈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해탈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욕심이 없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욕심이 없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욕심이 없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싫어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싫어함에도 또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싫어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실다운 소견과 참다운 앎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선정[定]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선정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선정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안락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안락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안락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쉼[止]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쉼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쉼의 자양분이라고 하는가? 기쁨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기쁨에도 또한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기쁨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즐거움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즐거움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즐거움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후회하지 않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후회하지 않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계를 보호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계율을 보호하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계율을 보호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바른 사유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바른 사유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바른 사유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믿음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믿음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믿음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괴로움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괴로움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괴로움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늙음과 죽음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늙음과 죽음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늙음과 죽음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생(生)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생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생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유(有)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유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유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수(受)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수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수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애(愛)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애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애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각(覺:取)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각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각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갱락(更樂:觸)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갱락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갱락의 발생원인이라고 하는가? 6처(處)가 그 발생 원인이 된다. 6처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6처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명색(名色)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명색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명색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식(識)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식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식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행(行)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행에도 발생 원인이 있으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행의 발생 원인이라고 하는가? 무명(無明)이 그 발생 원인이 된다.

이것은 이른바 무명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행을 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을 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연하여 6처(處)가 있으며, 6처를 연하여 갱락(更樂)이 있고, 갱락을 연하여 각(覺)이 있으며, 각을 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연하여 수(受)가 있으며, 수를 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연하여 태어남[生]이 있으며, 태어남을 연하여 늙음[老]과 죽음[死]이 있고, 늙음과 죽음을 연하여 고통[苦]이 있다. 고통을 연하여 믿음[信]이 있으며, 믿음을 연하여 바른 사유[正思惟]가 있고, 바른 사유를 연하여 바른 생각[正念]과 바른 지혜[正智]가 있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연하여 모든 감각기관[根]을 보호하고, 모든 감각기관을 보호하는 것을 연하여 계[戒]를 보호하며, 계를 보호하는 것을 연하여 뉘우치지 않음ㆍ즐거움ㆍ기쁨ㆍ쉼ㆍ안락ㆍ선정ㆍ실다운 소견ㆍ참다운 앎ㆍ싫어함ㆍ욕심 없음ㆍ해탈이 있다는 것이다. 해탈을 연하여 열반을 얻는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열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663자이다.

56) 미혜경(彌醯經) 제15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갈타국(摩竭陀國)을 유행하실 때에 사투촌(闍鬪村)의 망나림굴[莽㮈林窟]에 계셨다.

그때 존자 미혜(彌醯)는 시자(侍者)로 있었는데, 존자 미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새벽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투촌으로 들어가 밥을 빌었다. 밥 빌기를 마치고 금비하(金鞞河) 가로 갔다. 그곳은 땅이 평평하였고 호나림(好㮈林)이라 불렸다. 그는 금비하의 물이 너무나 깨끗하여 즐길 만하고, 맑은 샘물은 천천히 흐르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은 기후인 것을 보고 기뻐하며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호나림은 땅이 평평하고 금비하의 물도 너무나 깨끗하여 즐길 만하며, 맑은 샘물은 천천히 흐르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은 기후로구나. 만일 족성자(族姓子)가 번뇌 끊는 공부를 하려면 마땅히 이런 곳에서 해야 할 것이다. 나도 역시 끊어야 할 것이 있으니, 차라리 이렇게 고요한 곳에서 끊는 공부를 하면 좋겠다.’

그리하여 미혜는 식사를 마친 뒤에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손과 발을 씻고 니사단(尼師檀)을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러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투촌으로 들어가 밥을 빌었습니다. 밥 빌기를 마친 뒤에는 금비하 가로 갔습니다. 그곳의 호나림은 땅이 평평하고, 금비하의 물은 너무나도 맑아 즐길 만하였으며, 맑은 샘물은 천천히 흐르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알맞은 기후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여 곧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호나림은 땅이 평평하고, 금비하의 물도 너무나 맑아 즐길 만하며 맑은 샘물은 천천히 흐르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후가 알맞구나. 만일 족성자가 번뇌 끊는 공부를 하려면 마땅히 이런 곳에서 해야 할 것이다. 나도 역시 끊어야 할 것이 있으니 차라리 이렇게 고요한 곳에서 끊는 공부를 하면 좋겠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저 호나림의 고요한 곳에 가서 번뇌 끊는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미혜야, 너는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 나는 혼자 몸으로서 내 곁엔 아무도 없고 시자도 없다. 그러니 네가 좀 더 내 곁에 머물러 있어다오. 나를 시봉할 비구가 오면 너는 그때 저 호나림의 고요한 곳에 가서 공부해도 좋다.”

존자 미혜는 두 번 세 번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저 호나림의 고요한 곳에 가서 번뇌 끊는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세존께서도 역시 두 번 세 번 말씀하셨다.
“미혜야, 너는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 나는 혼자 몸으로서 내 곁엔 아무도 없고 시자도 없다. 그러니 네가 좀 더 내 곁에 머물러 있어다오. 나를 시봉할 비구가 오면, 너는 그때 저 호나림의 고요한 곳에 가서 공부해도 좋다.”

미혜가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는 아무런 할 일도 없으며 또한 보살필 일도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는 해야 할 일도 있으며 또한 관찰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저 호나림의 고요한 곳에 가서 번뇌 끊는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미혜야, 네가 번뇌 끊는 공부하기를 바란다면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느냐? 미혜야, 너는 어서 가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이에 존자 미혜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잘 받아 가지고 또 열심히 외우고 익혔다. 그리고 곧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는 떠나갔다. 그는 저 호나림으로 가서 숲속에 들어가 한 그루 나무 밑에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加趺坐)를 하였다.

미혜는 호나림에 머물면서 세 가지 악(惡)한 좋지 못한 생각인 탐욕의 생각ㆍ성냄의 생각ㆍ해침의 생각을 내었다. 그는 이런 생각 때문에 문득 세존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해질 무렵에 곧 연좌(燕坐)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 조아려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호나림으로 가서 고요한 곳에 앉았다가 문득 세 가지 악한 좋지 못한 생각을 내었습니다. 그 생각은 곧 탐욕의 생각ㆍ성냄의 생각ㆍ해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문에 문득 세존이 생각났습니다.”

“미혜야, 심해탈(心解脫)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구나.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다섯 가지 익혀야 할 법[五習法]을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미혜야, 비구는 스스로 착한 벗이 되어야 하고 착한 벗과 함께 해야 하며 착한 벗과 화합해야 한다. 미혜야, 심해탈이 아직 완벽하지 못해서 심해탈을 익히고자 하는 자에겐 이것이 첫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또 미혜야, 비구는 금계(禁戒)를 닦고 익혀야 하며 종해탈(從解脫)을 지켜 보호하고 다시 위의와 예절을 잘 지키고 티끌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고 학계(學戒)를 받아 가져야 한다. 미혜야, 심해탈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여 만일 그것을 익히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것이 두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또 미혜야, 비구는 성스럽고 이치가 있는 말을 해야 하며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며 마음에 덮임이 없게 하여야 한다. 곧 계(戒)를 말하고 정(定)을 말하며, 혜(慧)를 말하고 해탈(解脫)을 말하며, 해탈지견(解脫知見)을 말하고 점점 덜어짐[損]을 말하며, 모이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욕심이 적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며, 족한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끊어야 함을 말하며,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하고 멸함을 말하며, 연좌(燕坐)를 말하고 연기(緣起)로 얻어지는 것임을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사문은 다 갖추게 될 것이며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미혜야, 심해탈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것이 세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또 미혜야, 비구는 항상 정진(精進)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專一)하고 견고히 하여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해서는 어떤 방편이라 할지라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 미혜야, 심해탈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것이 네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또 미혜야, 비구는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와 같은 지(智)와 거룩한 슬기와 밝게 통달함을 얻어 분별하고 환히 알아 괴로움을 없애야 한다. 미혜야, 심해탈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익히고자 하는 자에겐 이것이 다섯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저들이 이 다섯 가지 습법을 닦고 나면 다시 네 가지 법(法)을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오로(惡露:不淨)를 닦아 탐욕을 끊고 자비를 닦아 성냄을 끊으며 들고나는 숨길[息]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끊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아만(我慢)을 끊는 것이다.
미혜야,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틀림없이 금계(禁戒)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을 지켜 보호할 것이며 또 위의와 예절을 잘 껴잡고 티끌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으며 학계(學戒)를 받아 가질 것이다.

미혜야, 만약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틀림없이 거룩하고 뜻이 있는 말만 하고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며 마음에 덮인 것을 없앨 것이다. 곧 계(戒)를 말하고 정(定)을 말하며 혜(慧)를 말하고 해탈(解脫)을 말하며 해탈지견(解脫知見)을 말하고 점점 덜어짐을 말하며 모이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욕심이 적은 것을 말하며 만족할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끊어야 할 것을 말하며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하고 멸함을 말하며 연좌(燕坐)를 말하고 연기(緣起)로 얻어지는 것을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사문은 다 갖추게 될 것이며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미혜야,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고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런 비구는 틀림없이 정진(精進)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하고 견고해져서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해서는 방편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미혜야,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며 착한 법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런 비구는 틀림없이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러한 지(智)와 거룩한 슬기와 밝게 통달함을 얻어 분별하고 환히 알아 바로 고통을 없애게 될 것이다.
미혜야,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며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런 비구라면 틀림없이 부정(不淨)함을 닦아 탐욕을 끊고 자비를 닦아 성냄을 끊으며 들고나는 숨길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끊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아만을 끊게 될 것이다.
미혜야, 만일 비구가 무상(無常)하다는 생각을 얻으면 반드시 무아(無我)라는 생각을 얻을 것이다. 미혜야, 만일 비구가 무아라는 생각을 얻으면 곧 현재 세계에서 일체의 아만을 끊고 식(息)ㆍ멸(滅)ㆍ진(盡)ㆍ무위(無爲)ㆍ열반(涅槃)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존자 미혜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미혜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23자이다.

57) 즉위비구설경(卽爲比丘說經) 제16초 1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심해탈(心解脫)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다섯 가지로 익혀야 할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비구는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며 착한 벗과 화합하여야 한다. 심해탈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이 첫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또 비구는 금계(禁戒)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從解脫)을 지켜 보호하며 또 위의와 예절을 갖추고 티끌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으며 학계(學戒)를 받아 가져야 한다. 심해탈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이 두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또 비구는 성스럽고 뜻이 있는 말을 해야 하며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며 마음에 덮인 것이 없어야 한다. 곧 계(戒)를 말하고 정(定)을 말하며 혜(慧)를 말하고 해탈(解脫)을 말하며 해탈지견(解脫知見)을 말하고 점점 덜어짐[損]을 말하며 모이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욕심이 적은 것을 말하며 족한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끊는 것을 말하며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하고 멸함을 말하며 연좌(燕坐)를 말하고 연기(緣起)로 얻어지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사문은 다 갖추게 될 것이며,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심해탈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이 세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또 비구는 항상 정진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하고 견고히 해야 하며 모든 선(善)의 근본을 위해서는 방편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심해탈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이 네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또 비구는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러한 지혜를 얻어서는 거룩한 지혜와 밝게 통달함을 환히 알아 바로 괴로움을 없애야 한다. 심해탈이 아직 익숙하지 못하여 만일 익히고자 한다면 이것이 다섯 번째로 익혀야 할 법이다.

저들은 이 다섯 가지로 익혀야 할 법을 가진 뒤에 또 네 가지 법(法)을 닦아야 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오로(惡露:不淨)를 닦아 탐욕을 끊고 자비를 닦아 성냄을 끊으며 들고나는 숨길[息]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끊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아만(我慢)을 끊어야 한다.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며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틀림없이 금계를 닦아 익히고, 종해탈을 지켜 보호하며 또 위의와 예절을 잘 갖추고 티끌만한 죄를 보아도 항상 두려움을 품으며 학계(學戒)를 받아 가지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며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틀림없이 거룩하고 의미 있는 말만 하고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가지며 마음에 덮인 것을 없앨 것이다. 그리하여 곧 계(戒)를 말하고 정(定)을 말하며 혜(慧)를 말하고 해탈(解脫)을 말하며 해탈지견(解脫知見)을 말하고 점점 덜어짐[損]을 말하며 모이기를 즐겨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욕심이 적은 것을 말하며 족한 줄 아는 것을 말하고 끊는 것을 말하며 욕심이 없는 것을 말하고 멸함을 말하며 연좌(燕坐)를 말하고 연기(緣起)로 얻어지는 것을 말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말을 실천하는 사문은 다 갖추게 될 것이며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며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틀림없이 정진을 행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닦으며,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전일하고 견고히 하며 모든 선의 근본을 위해서는 방편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며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틀림없이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러한 지(智)와 거룩한 지혜와 밝게 통달함을 얻어 분별하고 환히 알아 바로 괴로움을 없애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스스로 착한 벗이 되고 착한 벗과 함께하며 착한 벗과 화합하면, 마땅히 알라. 그 비구는 틀림없이 오로(惡露:不淨)를 닦아 탐욕을 끊고 자비를 닦아 성냄을 끊으며 들고나는 숨길을 닦아 어지러운 생각을 끊고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아만을 끊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무상하다는 생각을 얻으면 반드시 무아(無我)라는 생각을 얻을 것이며, 만일 비구가 무아라는 생각을 얻으면 곧 현재에 있어서 일체의 아만을 끊고, 식(息)ㆍ멸(滅)ㆍ진(盡)ㆍ무위(無爲)ㆍ열반(涅槃)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참고 자료로는 『잡아함경』 제18권 495번째 소경인 계경(戒經)이 있다.
2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후한(後漢)시대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불설본상의치경(佛說本相猗致經)』과 역자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불설연본치경(佛說緣本致經)』이 있다.
3 생존(生存)에 대한 망령된 집착이나 색계ㆍ무색계에서의 여러 가지 갈애를 말한다.
4 팔리본에는 이에 상당하는 언어가 āhāra로 되어있다. 이는 생성(生成)하고 증장시키는 요인으로서 연(緣)이 되거나 조연(助緣)이 되는 것을 말한다. 식(食)ㆍ음식(飮食)ㆍ소식(所食)ㆍ감미(甘美)ㆍ미식(美食)ㆍ진수(珍羞) 등의 용어로 한역되었다. 『중아함경』 안에서 제51『본제경』과 제52『식경』은 거의 내용이 동일한데,『본제경』에서는 식(食)으로『식경』에서는 습(習)으로 한역되어 있다. 또 제54『진지경』과 제55『열반경』에서도 습(習)으로 한역되어 있다. 따라서 용어를 달리해 번역한 한역자의 의도를 존중하여 습(習)을 ‘발생 원인’으로 식(食)을 ‘자양분’으로 달리 번역한다.
5 탐욕(貪欲)ㆍ성냄[瞋恚]ㆍ수면(睡眠)ㆍ도회(掉悔)ㆍ의심[疑]을 말하는 것인데 이 다섯 가지가 늘 사람의 마음을 덮고 가려서 착한 마음을 내지 못하게 하므로 5개(蓋)라고 한 것이다.
6 세 가지 악행이란 몸과 입과 마음이 짓는 열 가지 악업을 말한다.
7 명(明)이란 3명을 말하는데 아라한이 증득하는 세 가지 신통으로서 지혜의 광명을 가지고 어둡고 어리석은 것을 깨뜨리기 때문에 3명이라고 한다. 자타(自他)의 숙명(宿命)의 상(相)을 아는 숙주지증명(宿住智證明), 미래 중생에 대한 생사의 상을 밝게 아는 사생지증명(死生智證明), 4제(諦)의 진리를 밝게 알아 번뇌를 단멸하는 누진지증명(漏盡智證明)이다. 해탈이란 정(定)ㆍ혜(慧)의 구해탈(俱解脫)을 말한다.
8 몸과 입과 마음이 짓는 선업(善業).
9 앞의 본제경(本際經) 주3) 참조.
10 제51『본제경』과 제54『진지경』, 제55 『열반경』에는 식(食: āhāra)자에 해당하는 글자가 습(習)자로 되어 있다. 식(食)이란 곧 생성(生成)하고 장양(長養)하는 데 필요한 요인이 되는 것을 말한다.
11 참고 자료로는 동진(東晋) 시대 구담 승가제바(僧伽提婆)가 한역한 『중아함경』 제10권 42ㆍ43ㆍ44번째 소경인 하의경(何義經)ㆍ불사경(不思經)ㆍ염경(念經)이 있다.
12 지금까지 믿기 어려웠던 이치를 잘 받아들이고 의혹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4제(諦)의 이치를 관하여 인가(忍可)하는 것을 말한다.
13 이 경의 소경 글자 수는 전부 합해 보면 9,786자인데 여기에서는 9,756자라 하여 차이를 보인다.

중아함경 1~10권, 11~20권, 21~30권, 31~40권, 41~50권, 51~6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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