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中阿含經) 21~30권

중아함경 제21권

승가제바 한역

7. 장수왕품(長壽王品) 제2 ⑤
84) 무자경(無刺經) 제13제2 소토성송(小土城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국(鞞舍離國)을 유행(遊行)하실 때에 미후강(獼猴江) 가의 높은 누각에 계셨다. 그때 그 나라에는 곧 차라(遮羅)ㆍ우파차라(優簸遮羅)ㆍ현선(賢善)ㆍ현환(賢患)ㆍ무환(無患)ㆍ야사(耶舍) 등 상좌로 불리고 명성과 덕망 있는 여러 장로상존(長老上尊)1) 대제자(大弟子)들이 있었다. 이와 같은 명성과 덕망 있는 여러 장로상존 대제자들도 비사리 미후강 가에 있는 높은 누각을 거닐다가 모두 부처님께서 계시는, 나뭇잎으로 지붕을 이은 집[葉屋] 가까이 머물렀다.

비사리의 여러 리체(麗掣)2)들은 세존께서 비사리 미후강가에 있는 높은 누각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이제 대여의족(大如意足)을 행하여 왕의 위덕으로써 큰 소리로 알리고, 비사리를 출발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자.’

그때 명성과 덕망 있는 여러 장로 상존 대제자들은 비사리의 모든 리체들이 대여의족을 부려 왕의 위덕으로써 큰 소리로 알리며 비사리를 출발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공양하고 예로써 섬길 것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선(禪)에는 소리가 가시[刺]3)가 된다. 세존께서도 선에는 소리가 가시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차라리 우각사라림(牛角娑羅林)4)으로 가서 거기서 어지러움 없이 멀리 떠나 혼자 머물며 한가롭고 조용한 곳에 고요히 앉아 생각하자.’
이에 명성과 덕망 있는 여러 장로 상존 대제자들은 우각사라림으로 가서, 거기서 어지러움 없이 멀리 떠나 혼자 머물며 한가롭고 조용한 곳에 앉아 생각하였다.

그때 많은 비사리의 리체들은 대여의족을 행하여 왕의 위덕으로써 큰 소리로 알리며 비사리를 출발해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공양하고 예로 섬겼다. 어떤 비사리의 리체들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기도 하였고 혹은 부처님께 문안을 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기도 하였으며, 혹은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기도 하였고 혹은 멀리서 부처님을 보고 나서 잠자코 앉기도 하였다.

그때 많은 비사리의 리체들이 각기 자리를 잡고 앉자,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시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셨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들을 위해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시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신 다음에는 잠자코 계셨다. 이에 많은 비사리의 리체들은 세존께서 그들을 위해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시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돈 다음 물러갔다.

비사리의 리체들이 물러간 지 오래지 않아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모든 장로 상존 대제자들은 어디 갔는가?”

비구들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모든 장로 상존 대제자들은 비사리의 리체들이 대여의족을 행하여 왕의 위덕으로써 큰 소리로 알리며 비사리를 떠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리라는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선(禪)에는 소리가 가시가 된다. 세존께서도 또한 선에는 소리가 가시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차라리 우각사라림으로 가서 거기서 어지러움 없이 멀리 떠나 혼자 머물며 한가롭고 고요한 곳에 고요히 앉아 생각하자.’
세존이시여, 그래서 모든 장로 상존 대제자들은 모두 그리로 갔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구나, 훌륭하구나. 만일 장로 상존 대제자들이라면 마땅히 이와 같이 말했을 것이다.
‘선에는 소리가 가시가 된다. 세존께서도 또한 선에는 소리가 가시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진실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선에는 가시(刺)가 있다. 계(戒)를 지닌 자에게는 계를 범하는 것이 가시가 되고, 모든 근(根)을 보호하는 자에게는 몸을 치장하는 것이 가시가 되며, 오로(惡露:不淨)를 닦아 익히는 자에게는 깨끗하다는 생각이 가시가 되고, 자애로운 마음[慈心]을 닦아 익히는 자에게는 성내는 것[恚]이 가시가 되며, 술을 떠난 자에게는 술을 마시는 것이 가시가 되고, 범행(梵行)을 행하는 자에게는 여색(女色)을 보는 것이 가시가 된다.
초선(初禪)에 들어간 자에게는 소리가 가시가 되고, 제2선(禪)에 들어간 자에게는 각(覺)과 관(觀)이 가시가 되며, 제3선에 들어간 자에게는 기쁨[喜]이 가시가 되고, 제4선에 들어간 자에게는 들숨[入息]ㆍ날숨[出息]이 가시가 되며, 공처(空處)에 들어간 자에게는 색상(色想)이 가시가 되고, 식처(識處)에 들어간 자에게는 공처상(空處想)이 가시가 되며, 무소유처(無所有處)에 들어간 자에게는 식처상(識處想)이 가시가 되고, 무상처(無想處)에 들어간 자에게는 무소유처상(無所有處想)이 가시가 되며,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들어간 자에게는 상지(想知)가 가시가 된다.

또 세 가지 가시가 있으니, 탐욕의 가시[欲刺]ㆍ성냄의 가시[恚刺]ㆍ어리석음의 가시[愚刺]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가시를 번뇌가 다한 아라하[漏盡阿羅訶]는 이미 끊고 이미 알아서 그 근본을 뽑아 단절했기 때문에 멸하여 다시 나지 않는다. 이것을 아라하의 가시 없음이라 하고 아라하의 가시 여읨이라 하며 아라하의 가시 없고 가시 여읨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무자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835자이다.

85) 진인경(眞人經) 제14 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참된 사람의 법[眞人法]과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不眞人法]을 설명할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어 잘 기억하라.”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서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인가?
어떤 사람이 부호(富豪)한 귀족으로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데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부호한 귀족이라는 이런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부호한 귀족이라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음욕[淫]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부호한 귀족이 아니면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지만, 그는 법 행하기를 법답게 하고 법을 따르며 법을 향하고 법을 이어받기 때문에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眞諦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는 단정하여 사랑할 만한데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단정하여 사랑할 만하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단정하여 사랑할 만하다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단정함으로 사랑 받을 만하지 못한데도 그는 법 행하기를 법답게 하고 법을 따르며, 법을 향하고 법을 이어받기 때문에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는 재주 있는 말과 교묘한 말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재주 있는 말과 교묘한 말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재주 있는 말과 공교한 말을 한다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재주 있는 말과 공교한 말을 못하지만 그는 법 행하기를 법답게 하고 법을 따르며 법을 향하고 법을 이어받기 때문에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는 장로(長老)로서 왕이 알고 또 여러 사람이 알며 큰 복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장로로서 왕이 알고 또 여러 사람이 알며 큰 복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장로로서 왕이 알고 또 여러 사람이 알며 큰 복이 있다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장로도 아니고 왕이 알지도 못하고 또 여러 사람이 알지 못하며 또한 큰 복도 없지만 그는 법 행하기를 법답게 하고 법을 따르며, 법을 향하고 법을 이어받기 때문에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는 경을 외우고 계율을 지니며 아비담(阿毘曇)5)을 배우고 아함을 기억하며[阿含慕]6) 경을 많이 배웠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아함을 기억하고 경서를 많이 배웠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아함을 기억하고 경서를 많이 배웠다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아함을 기억하지 못하고 또한 경서를 많이 배우지 않았지만 그는 법 행하기를 법답게 하고 법을 따르며 법을 향하고 법을 이어받기 때문에 이로 인해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는 분소의(糞掃衣)를 입고 세 가지 법복(法服)을 갖추고 불만의(不慢衣)7)를 가졌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경우,그는 불만의를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이 불만의를 가졌다는 이유 때문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불만의를 가지지 않았지만 그는 법 행하기를 법답게 하고 법을 따르며 법을 향하고 법을 이어받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는 항상 걸식하되 밥은 다섯 되까지만 일곱 집에 한정하여 얻고, 혹은 하루 한 끼로써 오후에는 음료수[漿]도 마시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오후에는 음료수도 마시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오후에는 음료수[漿]도 마시지 않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오후에 음료수 마시기를 끊지 않지만 그는 법 행하기를 법답게 하고 법을 따르며 법을 향하고 법을 이어받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자기는 한적한 곳[無事處]이나 숲속의 나무 밑에서 지내고 혹은 높은 바위에 머무르며, 혹은 한데[露地]에 살거나 무덤 사이에서 지내며 혹은 때를 잘 아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때를 잘 안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때를 아는 이런 이유 때문에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는 것이 아니다. 혹 어떤 사람은 때를 알지 못하지만 그는 법 행하기를 법답게 하고 법을 따르며 법을 향하고 법을 이어 받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초선(初禪)을 얻었는데, 그는 초선을 얻었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초선에 대해 세존께서는 〈초선에는 사량하는 종자[量種]가 없다. 만일 사량하는 것이 있으면 이것을 애착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이 제2선(禪)ㆍ제3선ㆍ제4선을 얻고, 공처(空處)ㆍ식처(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얻었는데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경우, 그는 비유상비무상처를 얻었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이것을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참된 사람의 법은 이렇게 관찰하는 것이다.
‘비유상비무상처에 대해 세존께서는 〈비유상비무상처에는 사량하는 종자가 없다. 만일 사량하는 것이 있으면 이것을 애착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공양과 공경을 받는다.’
이렇게 나아가 진실한 법을 얻은 이는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모든 비구들아, 이것을 참된 사람의 법과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이라고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참된 사람의 법과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을 알고, 참된 사람의 법과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을 안 뒤에는 참되지 않은 사람의 법은 여의고 참된 사람의 법을 배우도록 하라.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부호한 귀족과 단정함과 말과
장로와 모든 경을 암송하는 것과
옷과 음식과 한적한 곳과 선정을 설하였고
맨 뒤에 4무색(無色)이 설해져 있다.
이 진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293자이다.

86) 설처경(說處經) 제15제2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존자 아난(阿難)은 해질 녘에 좌선[宴坐]에서 일어나, 여러 젊은 비구들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렀다. 다른 젊은 비구들도 역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젊은 비구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어떻게 훈계하며 어떻게 저들을 위하여 설법해야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처(處)8)를 설명하고 처(處)를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처를 설명하고 처를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梵行)을 행할 것이다.”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처(處)를 설명하시고 처(處)를 가르쳐주신다면 저는 젊은 비구들과 함께 부처님께 들은 뒤에 마땅히 잘 받아 지니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나는 마땅히 너와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널리 분별하여 설명하겠다.”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5성음(盛陰), 곧 색성음(色盛陰)ㆍ각성음(覺盛陰)ㆍ상성음(想盛陰)ㆍ행성음(行盛陰)ㆍ식성음(識盛陰)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성음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성음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내처(內處)인 안처(眼處)ㆍ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내처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내처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외처(外處)인 색처(色處)ㆍ성처(聲處)ㆍ향처(香處)ㆍ미처(味處)ㆍ촉처(觸處)ㆍ법처(法處)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외처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외처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식신(識身)인 안식(眼識)ㆍ이식(耳識)ㆍ비식(鼻識)ㆍ설식(舌識)ㆍ신식(身識)ㆍ의식(意識)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식신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식신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아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갱락신(更樂身)인 안갱락(眼更樂)ㆍ이갱락(耳更樂)ㆍ비갱락(鼻更樂)ㆍ설갱락(舌更樂)ㆍ신갱락(身更樂)ㆍ의갱락(意更樂)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갱락신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갱락신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각신(覺身)인 안각(眼覺)ㆍ이각(耳覺)ㆍ비각(鼻覺)ㆍ설각(舌覺)ㆍ신각(身覺)ㆍ의각(意覺)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각신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각신을 설명하여 가르치면,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상신(想身)인 안상(眼想)ㆍ이상(耳想)ㆍ비상(鼻想)ㆍ설상(舌想)ㆍ신상(身想)ㆍ의상(意想)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상신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상신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사신(思身)인 안사(眼思)ㆍ이사(耳思)ㆍ비사(鼻思)ㆍ설사(舌思)ㆍ신사(身思)ㆍ의사(意思)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사신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사신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애신(愛身)인 안애(眼愛)ㆍ이애(耳愛)ㆍ비애(鼻愛)ㆍ설애(舌愛)ㆍ신애(身愛)ㆍ의애(意愛)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애신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애신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6계(界)인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계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6계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인연하여 일어남과 인연하여 생기는 법을 설명하였다.
‘만일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만일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만일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만일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行)을 인연하여 식(識)이 있으며 식을 인연하여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6처(處)가 있으며 6처를 인연하여 갱락(更樂)이 있고 갱락을 인연하여 각(覺)이 있으며, 각을 인연하여 애(愛)가 있고 애를 인연하여 수(受)가 있으며 수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인연하여 생(生)이 있으며 생을 인연하여 노사(老死)가 있다. 만일 무명(無明)이 멸(滅)하면 곧 행(行)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識)이 멸하며 식이 멸하면 명색(名色)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처(處)가 멸하며 6처가 멸하면 갱락(更樂)이 멸하고, 갱락이 멸하면 각(覺)이 멸하며 각이 멸하면 애(愛)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수(受)가 멸하며 수가 멸하면 유(有)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生)이 멸하며 생이 멸하면 곧 노사(老死)가 멸한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인연하여 일어남과 인연하여 생기는 법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인연하여 일어남과 인연하여 생기는 법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념처(念處)를 설명하였다.
‘몸[身]을 관찰하기를 몸과 같이 하고, 각(覺)ㆍ심(心)ㆍ법(法)을 관찰하기를 각ㆍ심ㆍ법과 같이 하라.’
아난아, 너는 마땅히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념처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념처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겁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정단(正斷)을 설명하였다.
‘비구는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키고 방편행(方便行)을 구하여 정근하며 마음을 다하여 끊어야 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키고 방편행을 구하여 정근하며 마음을 다하여 끊어야 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선법(善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키고 방편행을 구하여 정근하며 마음을 다하여 끊어야 한다. 이미 생긴 선법은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더욱 늘어나게 하기 위하여,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하여, 가득하여 두루 갖추어지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키고 방편행을 구하여 정근하며 마음을 다하여 끊어야 한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정단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정단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여의족(如意足)을 설명하였다.
‘비구는 욕정(欲定)을 성취하여 모든 행을 불사르고, 여의족을 닦아 익히되 욕심 없음[無欲]으로 말미암아, 떠남[離]으로 말미암아, 멸함[滅]으로 말미암아 끊어 버림[非品]에 이르기를 원해야 한다. 이렇게 정진정(精進定)과 심정(心定)도 또한 그러하며 관정(觀定)을 성취하여 모든 행을 불사르고 여의족을 닦아 익히되 욕심 없음으로 말미암아, 떠남으로 말미암아, 멸함으로 말미암아 끊어 버림[非品]에 이르기를 원해야 한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여의족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여의족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선(禪)을 설명하였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선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선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 곧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聖諦]ㆍ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習聖諦:苦集聖諦]ㆍ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명하고,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성제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상(想)을 설명하였다.
‘비구는 작은 생각[小想]이 있고 큰 생각[大想]이 있으며, 한량없는 생각[無量想]이 있고 소유한 바가 없는 생각[無所有想]이 있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상(想)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사상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무량(無量)을 설명하였다.
‘비구는 자애[慈]와 함께하는 마음으로 1방(方)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닐며, 이렇게 2ㆍ3ㆍ4방ㆍ4유(維)ㆍ상ㆍ하의 모든 곳을 가득 채운다. 자애로움[慈]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無結] 원한도 없으며[無怨], 성냄도 없고[無恚] 다툼도 없으며[無諍],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렇게 불쌍히 여김[悲]ㆍ기뻐함[喜]도 역시 그러하며 평정[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무량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무량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무색(無色)을 설명하였다.
비구는 일체의 색상(色想)을 끊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무색(無色)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무색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성종(聖種)을 설명하였다.
‘비구ㆍ비구니는 거칠고 질박한 옷[衣]을 얻더라도 만족할 줄을 알며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기 위해 옷을 입어보지 않는다. 비록 옷을 얻지 못하더라도 걱정하지 않고 울지 않으며 가슴을 치지 않고 어리석은 의혹을 내지 않는다. 만일 옷을 얻으면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며 욕심 내지 않고 탐하지 않으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재앙을 보고 벗어날 줄을 아는 그런 용도로 옷을 입는다. 이렇게 일에 민첩하고 게으르지 않아 바르게 알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가 바르게 옛 성종(聖種)에 머무는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음식[食]과 사는 곳[住處]에 대하여도 역시 마찬가지이며, 끊기[斷]를 좋아하고 끊기를 즐기며, 닦기[修]를 좋아하고 닦기를 즐긴다. 그는 끊기를 좋아하고 끊기를 즐기며, 닦기를 좋아하고 닦기를 즐긴다 하여 자기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이렇게 일에 민첩하고 게으르지 않아 바르게 알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가 바르게 옛 성종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한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성종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성종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4사문과(沙門果), 곧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과 최상의 아라하과(阿羅訶果)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사문과(沙門果)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4사문과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5숙해탈상(熟解脫想), 곧 무상하다는 생각[不常想],무상하여 괴롭다는 생각[無常苦想], 괴로워 나라는 것은 없다는 생각[苦無我想], 몸은 더럽다는 생각[不淨惡露想],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없다는 생각[一切世間不可樂想]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숙해탈상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숙해탈상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5해탈처(解脫處)를 설명하였다.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이것을 의지한다면 아직 마음이 해탈하지 못한 사람은 마음의 해탈을 얻고, 아직 모든 누(漏)를 다하지 못한 사람은 누를 다하여 남음이 없게 되며, 아직 무상열반(無上涅槃)을 얻지 못한 사람은 무상열반을 얻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아난아, 세존은 비구ㆍ비구니를 위하여 설법하고 모든 지자(智者)나 범행자(梵行者)도 역시 비구ㆍ비구니를 위하여 설법한다. 아난아, 만일 세존이 비구ㆍ비구니를 위하여 설법하고 모든 지자나 범행자가 또한 비구ㆍ비구니를 위하여 설법하면 그들은 그 법을 들은 뒤에는 곧 법을 알고 뜻을 해득하게 된다. 그들은 법을 알고 뜻을 해득함으로 말미암아 곧 환열(歡悅)을 얻으며 환열함으로 말미암아 환희(歡喜)를 얻고 환희로 말미암아 곧 몸이 쉬게 되며 몸이 쉼으로 말미암아 곧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고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곧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아난아, 비구ㆍ비구니는 마음의 안정으로 말미암아 곧 사실대로 보고 사실 그대로 알게 되며 사실대로 보고 사실 그대로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싫어하게[厭] 되며, 싫어함으로 말미암아 욕심이 없게 되고 욕심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으며 해탈로 말미암아 해탈한 줄을 알게 되어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아난아, 이것을 제1해탈처(解脫處)라고 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비구ㆍ비구니는 아직 해탈하지 못하였으면 마음의 해탈을 얻고,아직 모든 누(漏)가 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남김없이 다하게 되며, 아직 무상열반(無上涅槃)을 얻지 못하였으면 무상열반을 얻는다.

또 아난아, 세존도 비구ㆍ비구니를 위하여 설법하지 않고, 모든 지자나 범행자들도 역시 비구ㆍ비구니를 위하여 설법하지 않으면 그저 이전에 듣고 외워 익힌 법대로 그것을 널리 읽어라.
만일 이전에 듣고 외워 익힌 법을 널리 읽지 않으려면 그저 이전에 듣고 외워 익힌 법에 따라 남을 위해 널리 설명하라.
만일 이전에 듣고 외워 익힌 법에 따라 널리 설명하지 않으려면 그저 이전에 듣고 외워 익힌 법에 따라 마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하라.
만일 이전에 듣고 외워 익힌 법을 마음으로 생각하고 분별하지 않으려면 그저 모든 삼매상(三昧相)을 잘 받아 지니기만 하라.
아난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모든 삼매상을 잘 받아 지니면 곧 법을 알고 뜻을 해득하게 된다. 그들은 법을 알고 뜻을 해득함으로 말미암아 곧 환열(歡悅)을 얻고 환열로 말미암아 곧 환희(歡喜)를 얻으며 환희로 말미암아 곧 몸이 쉬게[止身] 되고 몸이 쉼으로 말미암아 깨달음의 즐거움[覺樂]을 얻으며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마음의 안정[心定]을 얻는다.

아난아, 비구ㆍ비구니는 마음의 안정으로 말미암아 사실대로 보고 사실 그대로 알게 되며, 사실대로 보고 사실 그대로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싫어하게 되고 싫어함으로 말미암아 욕심이 없게 되며 욕심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해탈을 얻고 해탈로 말미암아 해탈한 줄을 알게 되어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有]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아난아, 이것을 제5해탈처라고 한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비구ㆍ비구니는 아직 해탈하지 못하였으면 마음의 해탈을 얻고, 아직 모든 누(漏)가 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남김없이 다하게 되며, 아직 무상열반을 얻지 못하였으면 무상열반을 얻는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해탈처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해탈처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5근(根), 곧 신근(信根)ㆍ정진근(精進根)ㆍ염근(念根)ㆍ정근(定根)ㆍ혜근(慧根)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근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근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5력(力), 곧 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염력(念力)ㆍ정력(定力)ㆍ혜력(慧力)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력을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력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5출요계(出要界)를 설명하였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탐욕[欲]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탐욕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탐욕을 향하지 않고 탐욕을 좋아하지 않으며 탐욕을 가까이 하지 않고 탐욕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탐욕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고 버리고 떠나 탐욕에 머무르지 않으며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탐욕을 싫어한다. 아난아, 마치 닭털이나 힘줄을 가져다 불 속에 넣으면 당장에 녹고 타서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그와 같이 탐욕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탐욕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탐욕을 향하지 않고, 탐욕을 즐기지 않으며 탐욕을 가까이 하지 않고 탐욕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탐욕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고 버리고 떠나 탐욕에 머무르지 않으며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탐욕을 싫어한다. 탐욕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마음은 탐욕이 없는 데로 향하고 탐욕이 없는 것을 즐기며, 탐욕이 없는 것을 가까이 하고 탐욕이 없을 것을 믿고 이해한다. 그리하여 마음에는 걸림도 없고 마음에는 탁함도 없으며 마음은 즐거움을 얻어, 능히 즐거움을 이룬다. 일체의 탐욕과 탐욕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누(漏)와 번열(煩熱)과 근심[憂慼]을 멀리 떠나 그것을 풀고 그것을 벗어난다. 또 그것을 해탈하여 그는 다시 이 감각[覺]을 받지 않는데, 감각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이런 것이 탐욕의 출요[欲出要]이다. 아난아, 이것을 첫 번째 출요계(出要界)라고 한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성냄[恚]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성냄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성냄을 향하지 않고 성냄을 좋아하지 않으며 성냄을 가까이하지 않고 성냄을 믿거나 이해하지 않는다. 만일 성내는 마음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고 버리고 떠나 욕심에 머무르지 않으며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성냄을 싫어한다. 아난아, 마치 닭털이나 힘줄을 가져다 불 속에 넣으면 당장에 녹고 타서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역시 그와 같이 성냄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성냄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성냄을 향하지 않고 성냄을 좋아하지 않으며 성냄을 가까이 하지 않고 성냄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성내는 마음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고 버리고 떠나 성냄에 머무르지 않으며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성냄을 싫어한다. 성냄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마음은 성냄이 없는 데로 향하고 성냄이 없는 것을 즐기며 성냄이 없는 것을 가까이 하고 성냄이 없는 것을 믿고 이해한다. 그리하여 마음에는 걸림도 없고 마음에는 흐림도 없으며 마음은 즐거움을 얻어 능히 즐거움을 이룬다. 일체의 성냄과 성냄으로 인하여 생기는 모든 누(漏)와 번열과 근심을 멀리 떠나 그것을 풀고 그것을 벗어나며 다시 그것을 해탈하여 그는 이 감각[覺]을 다시는 가져다 받지 않는다. 감각은 성냄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성냄의 출요[恚出要]이다. 아난아, 이것을 두 번째 출요계라고 한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해침[害]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해침을 극히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해침을 향하지 않고 해침을 좋아하지 않으며 해침을 가까이 하지 않고 해침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해칠 마음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며, 버리고 떠나 해침에 머무르지 않고,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해침을 싫어한다. 아난아, 마치 닭털이나 힘줄을 가져다 불 속에 넣으면 당장에 녹고 불타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역시 이와 같이 해침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해침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해침을 향하지 않고 해침을 좋아하지 않으며 해침을 가까이 하지 않고 해침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해칠 마음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않게 하며, 버리고 떠나 해침에 머무르지 않고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해침을 싫어한다. 해침이 없음을 관찰하여 마음은 해침이 없는 데로 향하고 해침이 없는 것을 즐기며 해침이 없는 것을 가까이 하고 해침이 없는 것을 믿고 이해한다. 그리하여 마음에는 걸림도 없고 마음에는 흐림도 없으며 마음은 즐거움을 얻어 능히 즐거움을 이룬다. 일체의 해침과 해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누와 번열과 근심을 멀리 떠나 그것을 풀고 그것을 벗어나며, 다시 그것을 해탈하여 그는 이 감각을 받지 않는데, 곧 감각은 해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해침의 출요[害出要]이니, 이것을 세 번째 출요계라고 한다.

또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色)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색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색을 향하지 않고 색을 좋아하지 않으며 색을 가까이 하지 않고 색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색심(色心)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며 버리고 떠나 색에 머무르지 않고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색을 싫어한다. 아난아, 마치 닭털이나 힘줄을 가져다 불 속에 넣으면 당장에 녹고 불타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역시 이와 같이 색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색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색을 향하지 않고 색을 좋아하지 않으며 색을 가까이 하지 않고 색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색심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며 버리고 떠나 색에 머무르지 않고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색을 싫어한다. 색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마음은 색이 없는 데로 향하고 색이 없는 것을 좋아하며 색이 없는 것을 가까이 하고 색이 없는 것을 믿고 이해한다. 마음에는 걸림도 없고 마음에는 흐림도 없으며 마음은 즐거움을 얻어 능히 즐거움을 이룬다. 일체의 색과 색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누(漏)와 번열과 근심을 멀리 떠나 그것을 풀고 그것을 벗어나며, 다시 그것을 해탈하여 그는 다시 이 감각을 받지 않는데, 곧 감각은 색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색의 출요이니, 이것을 네 번째 출요계라고 한다.

또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자기 몸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자기 몸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자기 몸을 향하지 않고, 자기 몸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기 몸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자기 몸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자기 몸에 대한 마음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며, 버리고 떠나 자기 몸에 머무르지 않고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자기 몸을 싫어한다. 아난아, 마치 닭털이나 힘줄을 가져다 불 속에 넣으면 당장에 녹고 불타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역시 이와 같이 자기 몸을 매우 잘 관찰한다. 그는 자기 몸을 매우 잘 관찰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은 곧 자기 몸을 향하지 않고 자기 몸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기 몸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자기 몸을 믿거나 이해하지도 않는다. 만일 자기 몸에 대한 마음이 생기면 당장에 녹이고 불태워 다시 도로 펴지지 못하게 하며, 버리고 떠나 자기 몸에 머무르지 않으며 더럽고 나쁘다고 여겨 자기 몸을 싫어한다. 자기 몸이 없는 것을 관찰하여 마음은 자기 몸이 없는 데로 향하고 자기 몸이 없는 것을 좋아하며, 자기 몸이 없는 것을 가까이 하고 자기 몸이 없는 것을 믿고 이해한다. 마음에는 걸림도 없고 마음에는 흐림도 없으며 마음은 즐거움을 얻어 능히 즐거움을 이룬다. 일체의 자기 몸과 자기 몸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모든 누와 번열과 근심을 멀리 떠나 그것을 풀고 그것을 벗어나며, 다시 그것을 해탈하여 그는 다시 이 감각을 받지 않는데, 곧 감각은 자기 몸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자기 몸의 출요[己身出要]이니, 아난아, 이것을 다섯 번째 출요계라고 한다.

아난아, 이 5출요계를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5출요계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은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梵行)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7재(財), 곧 신재(信財)ㆍ계재(戒財)ㆍ참재(慙財)ㆍ괴재(愧財)ㆍ문재(聞財)ㆍ시재(施財)ㆍ혜재(慧財)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7재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7재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몸이 마치도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7력(力), 곧 신력(信力)ㆍ정진력(精進力)ㆍ참력(慙力)ㆍ괴력(愧力)ㆍ염력(念力)ㆍ정력(定力)ㆍ혜력(慧力)을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7력을 설명하고 이것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7력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은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7각지(覺支), 곧 염각지(念覺支)ㆍ택법각지(擇法覺支)ㆍ정진각지(精進覺支)ㆍ희각지(喜覺支)ㆍ식각지(息覺支)ㆍ정각지(定覺支)ㆍ사각지(捨覺支)를 설명하였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7각지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이 7각지를 설명하여 가르치면,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전에 너를 위하여 8성도(聖道:正道)를 설명하였으니, 곧 정견(正見)ㆍ정지(正志)ㆍ정어(正語)ㆍ정업(正業)ㆍ정명(正命)ㆍ정방편(正方便)ㆍ정념(正念)ㆍ정정(正定), 이 여덟 가지이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8정도를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8정도를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이합니다. 세존께서는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처(處)를 설명하시고 처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그렇다. 그렇다. 매우 기이하고 매우 특별하다. 나는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처를 설명하고 처를 가르쳐 주었다. 아난아, 만일 네가 여래에게 다시 정법(頂法)과 정법에서 물러남[頂法退]을 묻는다면 너는 곧 여래를 극진히 믿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정법(頂法)과 정법에서 물러남[頂法退]을 설명하고 가르쳐 주신다면, 저와 모든 젊은 비구들은 세존께 들은 뒤에 마땅히 잘 받아 지니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라. 나는 마땅히 너와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정법과 정법에서 물러남을 설명하겠다.”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진실로 마음으로 인하여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를 생각하고 헤아리며 잘 관찰하고 분별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헤아리며 이렇게 잘 관찰하고 분별한 뒤에는 인내[忍]를 내고 즐거움을 내고 의욕을 일으켜 듣고자 하고 생각하고자 하고 관찰하고자 한다. 아난아, 이것을 정법(頂法)이라고 한다. 아난아, 만일 이 정법을 얻었더라도 다시 잃어 쇠퇴하고 닦아 수호하지 않고 정근하여 익히지 않으면 아난아, 이것을 정법에서 물러남[頂法退]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내처(內處)와 외처(外處)ㆍ식(識)ㆍ갱락(更樂)ㆍ각(覺)ㆍ상(想)ㆍ사(思)ㆍ애(愛)ㆍ계(界)ㆍ인연하여 일어남[因緣起]도 역시 그러하다. 아난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인연하여 일어남과 인연하여 일어나는 법에 대하여 무상ㆍ고ㆍ공ㆍ비아를 생각하고 헤아리며 잘 관찰하고 분별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헤아리며 이렇게 잘 관찰하고 분별한 뒤에는 인내[忍]를 내고 즐거움[樂]을 내고 의욕[欲]을 일으켜 듣고자 하고 생각하고자 하고 관찰하고자 한다. 아난아, 이것을 정법이라고 한다. 아난아, 만일 이 정법을 얻었더라도 도로 잃어 쇠퇴하고 닦아 수호하지 않으며 정근하여 익히지 않으면 아난아, 이것을 정법에서 물러남이라고 한다. 아난아, 이 정법과 정법에서 물러남을 너는 마땅히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고 그것으로써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만일 모든 젊은 비구들을 위하여 이 정법과 정법에서 물러남을 설명하여 가르치면, 그들은 곧 안온함을 얻고 힘을 얻고 즐거움을 얻어 몸과 마음이 번뇌의 열로 뜨거워지지 않고 종신토록 범행을 행할 것이다.

아난아,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처(處)를 설명하고 처를 가르쳤으며, 정법과 정법에서 물러남을 가르쳤다. 높은 스승이 제자를 위하여 하는 것처럼, 큰 자애로움과 불쌍히 여김을 일으켜 어여삐 생각하고 가엾이 여기며,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는 일을 나는 이미 다하여 마쳤다. 너희들은 마땅히 다시 스스로 노력하라. 한가한 곳ㆍ숲 속ㆍ나무 밑ㆍ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편안히 앉아 고요히 생각하되 방일하지 말고,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여 후회가 없게 하라. 이것이 바로 나의 가르침이며 이것이 나의 훈계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젊은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음(陰)ㆍ내처[內]ㆍ외처[外]ㆍ식(識)ㆍ갱락[更]과
각(覺)ㆍ상(想)ㆍ사(思)ㆍ애(愛)ㆍ계(界)와
인연(因緣)ㆍ염(念)ㆍ정단(正斷)과
여의(如意)ㆍ선(禪)ㆍ제(諦)ㆍ상(想)이며

무량(無量)ㆍ무색(無色)ㆍ종(種)과
사문과(沙門果)ㆍ해탈과(解脫果)
처(處)ㆍ근(根)ㆍ역(力)ㆍ출요(出要)와
재(財)ㆍ력(力)ㆍ각(覺)ㆍ도(道)ㆍ정(頂)이다.

주석
1 팔리어로는 thera라고 한다. 통칭하여 상좌(上座)ㆍ상랍(上臘)이라고도 한다. 출가하여 계(戒)를 받은 지 15년이 경과한 비구로서 덕이 높고 나이가 많아 대중들을 통솔할 만한 지위에 있는 이를 말한다.
2 범어로는 Licchavī라고 한다. 또는 리차(離車)ㆍ리사(離奢)ㆍ율창(栗昌)ㆍ율첩비(栗呫毘)라고 하며, 발지(跋祗)ㆍ비제하(毘提訶)라고도 한다. 찰제리 종족의 명칭으로서 혹은 선족왕종(仙族王種)이라고도 하는데, 비사리성 중심에 거주하였다.
3 팔리어로는 Kahaka라고 한다. 물고기 가시[魚骨]를 뜻하며, 의역하면 방애(妨礙)ㆍ장해(障害)ㆍ사마(邪魔) 등이 된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음성(音聲)이 선정에 큰 장애가 된다고 말씀하신 데서 유래된 것이다.
4 사라쌍수림(娑羅雙樹林)의 별칭으로 우사사원(牛師師園)이라고도 한다. 쌍수(雙樹)가 사방에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쇠뿔[牛角]과 같은 데서 유래된 명칭으로, 부처님께서 최후 열반에 드신 곳이다.
5 범어로는 Abhidharma라 하며, 한역하여 논(論)ㆍ승론(勝論)ㆍ최상법(最上法)ㆍ증상법(增上法)이라 한다. 불교경전을 경ㆍ율ㆍ논으로 나눌 경우 논부(論部)에 대한 총칭으로 이 말을 사용했다. abhidharma는 또 대법(對法)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진리[法]를 대관(對觀)하는 지혜를 의미하기 때문에 논부를 abhidharma라 하였다. 신역에서는 아비달마(阿毘達磨)라 하였다.
6 범어로는 Āgama라 하며, 음역하여 아함(阿含)ㆍ아급마(阿笈摩)ㆍ아가마(阿伽摩)라고도 한다. 또 의역하여 법귀(法歸)ㆍ교법(敎法)ㆍ전법(傳法)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곧 교법(敎法)의 전승, 성전(聖典)의 집성(集成)을 의미한다.
7 교만심(憍慢心)을 제거하기 위해 제정한 법의(法衣)를 말한다.
8 범어로는 āyatana이고, 구역에서는 입(入)이라고 번역하였다. 근(根)과 경(境)이 심(心)과 심소(心所)의 작용을 일으키는 곳이므로 처(處)라 하고, 근(根)과 경(境)이 서로 섭입(涉入)되므로 입(入)이라고 한다. 신체 각각에 대비시킨 6근(根)과 6경(境)의 12법(法)을 12처(處) 또는 12입(入)이라고 하였다.
9 제21권 경문 글자 수를 합해보면 7,325자로서 여기 표기한 7,324자보다 1자 많다. 「장수왕품」에 수록된 경문의 실제 총 글자 수는 43,948자로서 여기 표기한 44,947자보다 999자가 적다. 이는 제19권의 실제 글자 수가 표기된 수보다 1,000자 적고, 21권은 오히려 1자 많은 데서 온 착오이다.

해제보기

중아함경 제22권

승가제바 한역

8. 예품(穢品) 제3①
이 예품에는 총 열 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예품경(穢品經)ㆍ구법경(求法經)ㆍ비구청경(比丘請經)과
지법경(知法經)ㆍ주나문견경(周那問見經)과
청백연화유경(靑白連華喩經)ㆍ수정범지경(水凈梵志經)과
흑비구경(黑比丘經)ㆍ주법경(住法經)ㆍ무경(無經)이다.

87) 예품경(穢品經) 제1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기수(婆奇瘦)를 유행하실 때에 타산(鼉山) 포림(怖林)의 녹야원(鹿野園)에 계셨다.

그때 존자 사리자(舍梨子)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현자(賢者)여, 세상에는 네 종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어떤 사람은 안에 실로 더러움[穢]이 있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안에 더러움이 있다는 참 모양을 알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안에 실로 더러움이 있는 것을 스스로 알고 안에 더러움이 있다는 참 모양을 압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안에 실로 더러움이 없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안에 더러움이 없다는 참 모양을 알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안에 실로 더러움이 없는 것을 스스로 알고 안에 더러움이 없다는 참 모양을 압니다.

여러 현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안에 실로 더러움이 있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안에 더러움이 있다는 참 모양을 알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하천하다고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안에 실로 더러움이 있는 것을 스스로 알고, 안에 더러움이 있다는 참 모양을 안다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수승하다고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안에 실로 더러움이 없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안에 더러움이 없다는 참 모양을 알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하천하다고 할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안에 실로 더러움이 없는 것을 스스로 알고 안에 더러움이 없다는 참 모양을 안다면, 이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수승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어떤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존자 사리자를 향하여 말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무슨 인연으로 앞의 두 사람은 똑같이 더러움이 있고 더러운 마음이 있는데, 한 사람은 하천하다 하고 한 사람은 가장 수승하다고 하십니까? 또 무슨 인연으로 뒤의 두 사람은 똑같이 더러움이 없고 더러운 마음이 아닌데, 한 사람은 하천하다 하고 한 사람은 가장 수승하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러자 존자 사리자가 그 비구에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안에 실로 더러움이 있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안에 더러움이 있다는 참 모양을 알지 못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더러움을 끊으려 하지 않아 방편을 구하지도 않고, 정근하여 배우지도 않아 그는 곧 더러움이 있고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그는 더러움이 있고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곧 어질지 않은 채로 죽어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더러움이 있고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어떤 사람이 저자거리나 유기 그릇 만드는 집에서 먼지와 때에 더럽혀진 유기 쟁반[銅槃]을 사왔다고 합시다. 그가 가지고 와서도 자주 먼지를 씻지 않고 자주 닦지도 않으며 또한 볕에 쬐지도 않고 또 먼지가 많은 곳에 둔다면, 유기 쟁반은 더욱 먼지와 때로 더러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현자여, 이와 같이 만일 어떤 사람이 안에 실로 더러움이 있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안에 더러움이 있다는 참 모양을 알지 못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더러움을 끊으려 하지 않아 방편을 구하지도 않고 정근하여 배우지도 않아 그는 곧 더러움이 있고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그는 더러움이 있고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곧 어질지 않은 채로 죽어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더러움이 있고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더러움이 있고 자기 안에 실로 더러움이 있다는 참 모양을 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이 더러움을 끊으려고 방편을 구하고 정근하고 배워서, 그는 곧 더러움이 없고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그는 더러움이 없고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곧 어진 채로 죽어 좋은 곳에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더러움이 없고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어떤 사람이 혹은 저자나 유기 그릇 만드는 집에서 유기 쟁반을 사왔다고 합시다. 그가 먼지와 때에 더럽혀진 것을 가지고 왔지만 자주 먼지를 씻고 닦으며 자주 자주 볕에 쬐고 먼지가 많은 곳에 두지도 않는다면, 유기 쟁반은 곧 지극히 깨끗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더러움이 있고 자기 안에 더러움이 있다는 참 모양을 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이 더러움을 끊으려고 방편을 구하고 정근하고 배워 그는 곧 더러움이 없고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그는 더러움이 없고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곧 어진 채로 죽어 좋은 곳에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더러움이 없고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더러움이 없지만 자기 안에 실로 더러움이 없다는 참 모양을 알지 못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눈과 귀로 들어 아는 법을 단속하지 않습니다. 그는 눈과 귀로 들어 아는 법을 단속하지 않기 때문에 곧 욕심에 묶이게 되어, 그는 욕심이 있고 더러움이 있어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그는 욕심이 있고 더러움이 있어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곧 어질지 않은 채로 죽어 좋지 않은 곳에서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욕심이 있고 더러움이 있어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어떤 사람이 저자나 유기 그릇 만드는 집에서 때가 없는 깨끗한 유기 쟁반을 사왔다고 합시다. 그가 가지고 와서는 자주 먼지를 씻지도 않고 닦지도 않으며 자주 볕에 쬐지도 않고 먼지가 많은 곳에 둔다면 유기 쟁반은 반드시 먼지와 때로 더러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더러움이 없지만 자기 안에 실로 더러움이 없다는 참 모양을 알지 못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눈과 귀로 보고 들어 아는 법을 단속하지 않습니다. 그는 눈과 귀로 보고 들어 아는 법을 단속하지 않기 때문에 곧 욕심에 묶이게 되어, 그는 곧 욕심이 있고 더러움이 있어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그는 욕심이 있고 더러움이 있어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어질지 않은 채로 죽어 좋지 않은 곳에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욕심이 있고 더러움이 있어 더러운 마음으로 목숨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더러움이 없고 자기 안에 실로 더러움이 없다는 참 모양을 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눈과 귀로 보고 들어 아는 법을 단속하는데, 그는 눈과 귀로 보고 들어 아는 법을 단속하기 때문에 곧 욕심에 묶이지 않게 되어 그는 곧 욕심이 없고 더러움이 없어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그는 욕심이 없고 더러움이 없어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곧 어진 채로 죽어 좋은 곳에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욕심이 없고 더러움이 없어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어떤 사람이 저자나 유기그릇을 만드는 집에서 때가 없는 깨끗한 유기 쟁반을 사왔다고 합시다. 그가 가지고 와서도 자주 자주 먼지를 씻고 자주 자주 닦으며 자주자주 볕에 쬐고 먼지가 많은 곳에 두지 않는다면, 유기 쟁반은 지극히 깨끗해지는 것과 같습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안에 더러움이 없고 자기 안에 실로 더러움이 없다는 참 모양을 안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눈과 귀로 보고 들어 아는 법을 단속하니, 그는 눈과 귀로 보고 들어 아는 법을 단속하기 때문에 곧 욕심에 묶이지 않게 되어, 그는 곧 욕심이 없고 더러움이 없어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치게 됩니다. 그는 욕심이 없고 더러움이 없어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침으로 말미암아 어진 채로 죽어 좋은 곳에 태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욕심이 없고 더러움이 없어 더럽지 않은 마음으로 목숨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현자여,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앞의 두 사람은 똑같이 더러움이 있고 더러운 마음이지만 한 사람은 하천하고 한 사람은 가장 수승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또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뒤의 두 사람은 다 같이 더러움이 없고 더럽지 않은 마음이지만 한 사람은 하천하고 한 사람은 가장 수승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어떤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존자 사리자를 향하여 말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말씀하신 더러움[穢]이란 어떤 것을 더럽다고 합니까?”

존자 사리자가 비구에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욕심에서 생기니, 이것을 더러움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계율을 범했으나 내가 계율을 범한 사실을 남이 알지 못하게 해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혹 다른 사람이 그가 계율 범한 것을 알기도 하는데 그는 계율 범한 것을 남이 알게 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내가 계율 범한 것을 남으로 하여금 은밀한 곳에서 꾸짖게 하되, 대중 앞에서 내가 계율 범한 것을 꾸짖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혹 어떤 사람은 은밀한 곳에서 꾸짖지 않고 대중 가운데에서 꾸짖기도 하는데, 그는 남이 은밀한 곳이 아닌 대중 가운데에서 꾸짖으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내가 계율 범한 것을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하여금 꾸짖게 하되,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계율 범한 것을 꾸짖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혹 그보다 나은 사람이 아닌 그보다 못한 사람이 그가 계율 범한 것을 꾸짖기도 하는데, 그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 아닌 그보다 못한 사람이 꾸짖으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내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세존께 법을 물어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시게 하되, 다른 비구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세존께 법을 물어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시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혹 다른 비구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세존께 법을 물어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시기도 하는데, 그는 다른 비구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세존께 법을 물어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시게 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 내가 제일 앞에 있다가 모든 비구들이 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게 하되,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앞에 있다가 모든 비구들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 혹 다른 비구가 제일 앞에 있다가 모든 비구들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는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앞에 있다가 모든 비구들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제일 위에 있다가 가장 윗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먼저 물을 받으며 제일 먼저 밥을 받되,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위에 있다가 가장 윗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먼저 물을 받으며 제일 먼저 밥을 받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혹 어떤 다른 비구가 제일 위에 있다가 가장 윗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먼저 물을 받으며 제일 먼저 밥을 받기도 하는데, 그는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위에 있다가 가장 윗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먼저 물을 받으며 제일 먼저 밥을 받게 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모든 비구들이 밥을 먹고 밥그릇을 거두고 물[澡水]을 돌린 뒤에 내가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되, 비구들이 밥을 먹고 밥그릇을 거두고 물을 돌린 뒤에 다른 비구가 모든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모든 비구들이 밥을 먹고 밥그릇을 거두고 물을 돌린 뒤에 혹 어떤 다른 비구가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기도 하는데, 그는 비구들이 밥을 먹고 밥그릇을 거두고 물을 돌린 뒤에 다른 비구가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거사들이 절[衆園]에 왔을 때 내가 그들과 함께 인사하고 함께 모이며 함께 앉아 함께 의논하되, 거사들이 절에 왔을 때 다른 비구가 그들과 함께 인사하고 함께 모이며 함께 앉아 의논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거사들이 절에 왔을 때 혹 어떤 다른 비구가 그들과 함께 인사하고 모이며 함께 앉아 의논하기도 하는데, 그는 거사들이 절에 왔을 때 다른 비구가 그들과 함께 인사하고 모이며 함께 앉아 의논하게 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나를 왕이 알고 왕과 대신ㆍ범지ㆍ거사와 나라 안의 백성들이 알아 존경하게 하되, 다른 비구를 왕이 알고 왕과 대신ㆍ범지ㆍ거사와 나라 안의 백성들이 알아 존경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혹 어떤 다른 비구를 왕이 알고 왕과 대신ㆍ범지ㆍ거사와 나라 안의 백성들이 알고 존경하기도 하는데, 그는 다른 비구를 왕이 알고 왕과 대신ㆍ범지ㆍ거사와 나라 안의 백성들이 알아 존경하게 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내가 사부대중인 비구(比丘)ㆍ비구니(比丘尼)ㆍ우바새(優婆塞)ㆍ우바이[優婆私]의 존경을 받되, 다른 비구가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존경을 받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혹 어떤 다른 비구가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존경을 받기도 하는데, 그는 다른 비구가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존경을 받게 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냅니다.
‘내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의 모든 생활 도구를 얻되, 다른 비구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의 모든 생활 도구를 얻게 하지 말아야겠다.’
그러나 현자여, 혹 어떤 다른 비구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얻기도 하는데, 그는 다른 비구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얻게 되면 곧 악한 마음을 냅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낸다면 그것은 다 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梵行者)들이 있을 때, 그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마음과 욕심내는 것을 그 사람이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문이 아닌 자를 사문이라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문이 아닌 자를 지혜로운 사문이라 생각하며 바른 지혜가 아닌 것을 바른 지혜라 생각하고, 바른 생각이 아닌 것을 바른 생각이라 생각하며 청정하지 않은 것을 청정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이 있을 때, 그들이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마음과 욕심을 내는 것을 그 사람이 안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문이 아닌 자를 사문이 아니라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문이 아닌 자를 지혜로운 사문이 아니라 생각하며 바른 지혜가 아닌 것을 바른 지혜가 아니라 생각하고 바른 생각이 아닌 것을 바른 생각이 아니라 생각하며 청정하지 않은 것을 청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혹 저자나 유기그릇을 만드는 집에서 유기 합반(合槃)을 사 가지고 와서 그 안에 똥을 가득 채워 그 위에 뚜껑을 덮어 가지고 가다 점방을 지나 여러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중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먹고 싶어 매우 좋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을 싫어하지 않고 깨끗하다는 생각을 냅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가다가 어느 곳에 멈추어 서서 문득 뚜껑을 열어 보이면 여러 대중들은 그것을 본 뒤에는 모두 먹으려 하지 않고 좋아하는 생각이 없으며 그것을 매우 싫어하고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을 냅니다. 먹고 싶어 하던 자라도 다시는 요구하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본래부터 스스로 먹고 싶어 하지 않던 자이겠습니까?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이 있을 때, 그들이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마음과 욕심을 내는 것을 그 사람이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문이 아닌 자를 사문이라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문이 아닌 자를 지혜로운 사문이라 생각하며 바른 지혜가 아닌 것을 바른 지혜라 생각하고 바른 생각이 아닌 것을 바른 생각이라 생각하며 청정하지 않은 것을 청정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이 있을 때, 그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마음과 욕심을 내는 것을 그 사람이 안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문이 아닌 자를 사문이 아니라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문이 아닌 자를 지혜로운 사문이 아니라 생각하며 바른 지혜가 아닌 것을 바른 지혜가 아니라 생각하고 바른 생각이 아닌 것을 바른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청정하지 않은 것을 청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자여,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그런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고 공경하거나 예로써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비구가 마땅히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자를 가까이하고 마땅히 공경하거나 예로써 섬기지 않아야 할 자를 공경하고 예로써 섬긴다면 이렇게 하여 그는 곧 긴 세월[長夜] 동안 이익도 없고 옳음도 없을 것이며, 곧 요익하지도 않고 안온하거나 즐겁지도 않아 고통과 걱정과 슬픔이 생길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계율을 범했으나 내가 계율을 범한 사실을 남이 알지 못하게 해야겠다.’
현자여, 혹 다른 사람이 그가 계율 범한 사실을 알기도 하는데 그는 남이 계율 범한 것을 아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과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어떤 사람은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계율 범한 것을 남으로 하여금 은밀한 곳에서 꾸짖게 하되 대중 앞에서 내가 계율 범한 것을 꾸짖게 하지 말아야겠다.’
현자여, 혹 다른 사람이 은밀한 곳에서 꾸짖지 않고 대중 가운데에서 꾸짖기도 하는데, 그는 남이 은밀한 곳이 아닌 대중 가운데에서 꾸짖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계율 범한 것을 나보다 나은 사람으로 하여금 꾸짖게 하되,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계율 범한 것을 꾸짖게 하지 말아야겠다.’
현자여, 혹 그보다 나은 사람이 아닌 그보다 못한 사람이 그가 계율 범한 것을 꾸짖기도 하는데,그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 아닌 그보다 못한 사람이 꾸짖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세존께 법을 물어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시게 하되, 다른 비구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세존께 법을 물어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시게 하지 말아야겠다.’
현자여, 혹 다른 비구가 부처님 앞에 앉아서 세존께 법을 물어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시기도 하는데, 그는 다른 비구가 부처님 앞에서 세존께 법을 물어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설명하시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 내가 제일 앞에 있다가 모든 비구들이 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되,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앞에 있다가 모든 비구들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현자여, 혹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앞에 있다가 모든 비구들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그는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갈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앞에 있다가 모든 비구들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가 제일 위에 있다가 가장 윗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먼저 물을 받으며 제일 먼저 밥을 받되,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위에 있다가 가장 윗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먼저 물을 받으며 제일 먼저 밥을 받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현자여,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혹 어떤 다른 비구가 제일 위에 있다가 가장 윗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먼저 물을 받으며 제일 먼저 밥을 받기도 하는데 그는 모든 비구들이 안으로 들어갔을 때 다른 비구가 제일 위에 있다가 가장 윗자리에 제일 먼저 앉고 제일 먼저 물을 받으며 제일 먼저 밥을 받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모든 비구들이 밥을 먹고 밥그릇을 거두고 물을 돌린 뒤에 내가 모든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되, 비구들이 밥을 먹고 밥그릇을 거두고 물을 돌린 뒤에 다른 비구가 모든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현자여, 모든 비구들이 밥을 먹고 밥그릇을 거두고 물을 돌린 뒤에 혹 다른 비구가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기도 하는데, 그는 비구들이 밥을 먹고 밥그릇을 거두고 물을 돌린 뒤에 다른 비구가 거사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여러 거사들이 절에 왔을 때 내가 그들과 함께 인사하고 모이며 함께 앉아 의논하되, 거사들이 절에 왔을 때 다른 비구가 그들과 함께 인사하고 함께 모이며 함께 앉아 의논하게 하지 말아야겠다.’
현자여, 여러 거사들이 절에 왔을 때 혹 어떤 다른 비구가 그들과 함께 인사하고 함께 모이며 함께 앉아 의논하기도 하는데, 그는 거사들이 절에 왔을 때 다른 비구가 그들과 함께 인사하고 함께 모이며 함께 앉아 의논하는 것 때문에 마음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나를 왕이 알고 왕과 대신ㆍ범지ㆍ거사와 나라 안의 백성들이 알아 존경하게 하되, 다른 비구를 왕이 알고 왕과 대신ㆍ범지ㆍ거사와 나라 안의 백성들이 알아 존경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현자여, 혹 어떤 다른 비구를 왕이 알고 왕과 대신ㆍ범지ㆍ거사와 나라 안의 백성들이 알고 존경하기도 하는데, 그는 다른 비구를 왕이 알고 왕과 대신ㆍ범지ㆍ거사와 나라 안의 모든 백성들이 알아 존경하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사부대중[四衆]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존경을 받되, 다른 비구가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존경을 받게 하지는 말아야겠다.’
현자여, 혹 다른 비구가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존경을 받기도 하는데, 그는 다른 비구가 사부대중인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의 존경을 받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이러한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내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얻되, 다른 비구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얻게 하지 말아야겠다.’
현자여, 혹 어떤 다른 비구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얻기도 하는데, 그는 다른 비구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얻는 것 때문에 악한 마음을 내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가 마음에 악이 없고 마음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이 둘은 다 착한 것입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梵行者)들이 있을 때, 그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착한 마음의 욕구를 내는 것을 그 사람이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문을 사문이 아니라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문을 지혜로운 사문이 아니라 생각하며 바른 지혜를 바른 지혜가 아니라 생각하고 바른 생각을 바른 생각이 아니라 생각하며 청정한 것을 청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이 있을 때, 그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착한 마음의 욕구를 내는 것을 그 사람이 안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문을 사문이라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문을 지혜로운 사문이라 생각하며 바른 지혜를 바른 지혜라 생각하고 바른 생각을 바른 생각이라 생각하며 청정한 것을 청정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혹 저자나 유기그릇을 만드는 집에서 유기 합반(合槃)을 사 가지고 와서 여러 가지 깨끗하고 맛난 음식을 가득 채워 그 위에 뚜껑을 덮어 가지고 가다가 점방을 지나 여러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대중들은 그것을 보고는 이전에 똥이 담겨져 있던 기억에 모두 먹고 싶어 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생각도 없으며 그것을 매우 싫어하며 깨끗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내어 곧 이렇게 말합니다.
‘저 똥을 치워라. 저 똥을 치워라.’
그래서 그가 가지고 가다가 한곳에 멈추어 서서 뚜껑을 열어 보이면, 대중들은 이것을 본 뒤에는 곧 다들 먹고 싶어 하고 매우 좋다는 생각을 하며 그것을 싫어하지도 않고 곧 깨끗하다는 생각을 냅니다. 본래 먹고 싶어 하지 않던 자라도 보고 나면 먹고 싶어 할 텐데 하물며 본래부터 먹고 싶어 하던 자이겠습니까?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이 있을 때, 그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착한 마음의 욕구를 내는 것을 그 사람이 알지 못한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문을 사문이 아니라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문을 지혜로운 사문이 아니라 생각하며 바른 지혜를 바른 지혜가 아니라 생각하고 바른 생각을 바른 생각이 아니라 생각하며 청정한 것을 청정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자여,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이 있을 때 그들이 이와 같이 한량없는 착한 마음의 욕구를 내는 것을 그 사람이 안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사문을 사문이라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문을 지혜로운 사문이라 생각하며 바른 지혜를 바른 지혜라 생각하고 바른 생각을 바른 생각이라 생각하며 청정한 것을 청정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자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가까이하고 공경하고 예로써 섬겨야 합니다. 만일 비구가 마땅히 가까이해야 할 자를 곧 가까이하고 마땅히 공경하고 예로써 섬겨야 할 자를 곧 공경하고 예로써 섬긴다면, 그렇게 하여 그는 긴 세월[長夜] 동안 이익을 얻고 옳음을 얻을 것이며 곧 요익하고 안온함과 즐거움도 얻게 되며 또한 고통과 걱정과 슬픔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때 존자 대목건련(大目揵連)도 대중 가운데 있었다. 존자 대목건련이 물었다.
“존자 사리자여, 나는 지금 이 일을 비유로써 말하고자 하는데 내가 말하는 것을 허락하시겠습니까?”

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현자 대목건련이여, 비유로 말하고 싶으시다면 곧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존자 대목건련이 곧 다시 말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제 기억으로는 언젠가 왕사성을 유행하다가 바위산 속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나는 그때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 안으로 들어가 걸식하면서 옛날에 수레 만들던 나형 외도[無衣] 만자(滿子)의 집으로 갔었습니다. 그때 그 이웃에도 수레 만드는 이[車師]가 있어 수레 속바퀴를 고치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수레 만들던 나형 외도 만자도 그 집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옛날에 수레 만들던 나형 외도 만자는 그가 수레 속바퀴를 고치는 것을 보고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만일 저 수레 만드는 이가 도끼를 가지고 속바퀴를 고치면서 여기저기 나쁜 곳을 찍어낸다면 저 수레 속바퀴는 곧 매우 좋게 될 것이다.’
그때 그 수레 만드는 이는 곧 옛날에 수레 만들던 나형 외도 만자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처럼, 곧 도끼를 가지고 여기저기 나쁜 곳을 찍어내었습니다.

그러자 옛날에 수레 만들던 나형 외도 만자는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수레 만드는 이여, 그대 마음은 이렇게도 곧 내 마음을 알아챘구려. 왜냐하면 그대가 도끼를 가지고 수레 속바퀴의 여기저기 나쁜 곳을 찍어 고치는 것이 내 생각과 같았기 때문이오.’
이와 같이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아첨하고 속이고 질투하며 믿음이 없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고 정(定)과 혜(慧)가 없으며 그 마음이 미치고 미혹하여 모든 근(根)을 보호하지 않고 사문의 길을 닦지 않아 분별이 없으면, 존자 사리자께서는 마음으로 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이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질투가 없으며 믿음이 있고 정진하여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정(定)을 닦고 혜(慧)를 닦으며 마음이 미치고 미혹하지 않아 모든 근을 지켜 보호하고 널리 사문의 길을 닦아 잘 분별한다고 합시다. 그가 존자 사리자의 설법을 듣는다면 마치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얻고자 하고 목마를 때 입과 뜻으로 마실 것을 얻고자 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여, 마치 찰리녀(刹利女)나 범지(梵志)ㆍ거사(居士)ㆍ기술자의 딸이 단정하고 아름다운데, 매우 깨끗하게 목욕하고 향을 몸에 바르고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여러 가지 영락으로 그 몸을 장식하였을 때 혹 어떤 사람이 그 여자를 사모하기 때문에 이익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여 푸른 연꽃[靑連華]다발이나 혹은 첨복꽃[瞻蔔華]다발ㆍ수마나꽃[修摩那華]다발ㆍ바사꽃[婆師華]다발 혹은 아제모다꽃[阿提牟哆華]다발을 가져다 그 여자에게 주면 그 여자는 기뻐하면서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그 머리를 장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와 같이 만일 어떤 사람이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질투가 없으며 믿음이 있고 정진하여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정을 닦고 혜를 닦으며 마음이 미치거나 미혹하지 않아 모든 근을 지켜 보호하고 널리 사문의 길을 닦아 잘 분별한다고 합시다. 그가 존자의 설법을 듣는다면 마치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얻고자 하고 목마를 때 입과 뜻으로 마실 것을 얻고자 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께서는 참으로 뛰어나고 참으로 특출하십니다. 존자 사리자께서는 항상 모든 범행자를 구제하여 선하지 않은 곳을 떠나 선한 곳에 편안히 머물게[安立] 하십니다.”

이렇게 두 존자는 서로 칭찬하는 말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존자 사리자가 이렇게 말하자, 존자 대목건련과 비구들은 존자 사리자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예품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5,196자이다.

88) 구법경(求法經) 제2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사라국(拘娑羅國)을 유행하실 때에 큰 비구들과 함께 오사라촌(五娑羅村)의 북쪽에 있는 시섭화(尸攝和) 숲속으로 가셨다. 그리고 이름과 덕망이 있는 상존장로(上尊長老)와 대제자들 곧 존자 사리자(舍梨子)ㆍ존자 대목건련(大目揵連)ㆍ존자 대가섭(大迦葉)ㆍ존자 대가전연(大迦旃延)ㆍ존자 아나율타(阿那律陀)ㆍ존자 리월(麗越)1)ㆍ존자 아난(阿難) 등 이와 같이 이름과 덕망이 있는 상존장로와 대제자들도 오사라촌에 있으면서 모두 부처님의 나뭇잎 집[葉屋] 근처에 머물렀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너희들은 마땅히 법을 구하는 수행을 하고 음식을 구하는 수행을 하지 말라. 무슨 까닭인가? 나는 제자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기 때문에 법을 구하는 수행을 하고 음식을 구하는 수행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만일 너희들이 음식을 구하는 수행을 하고 법을 구하는 수행을 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이미 스스로 나를 미워한 것이고 또한 명예도 없어질 것이다.

어떤 것이 모든 제자가 음식을 구하기 위해 부처님을 의지하여 수행하고 법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인가? 언젠가 나는 배불리 먹어 식사를 마치고도 아직 남은 밥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굶주리고 목말라 기력이 쇠한 두 비구가 찾아 왔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배불리 먹어 식사를 마치고도 아직 남은 밥이 있다. 너희들이 먹고 싶으면 곧 그것을 갖다 먹으라. 만일 너희들이 먹지 않으면 나는 곧 가져다 깨끗한 땅에 쏟던지 혹은 벌레가 없는 물속에 쏟을 것이다.’
그러자 그 두 비구 중 첫째 비구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 식사를 마치셨는데도 아직 남은 밥이 있다. 만일 내가 먹지 않으면 세존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갖다 깨끗한 땅에 쏟던지 혹은 벌레가 없는 물속에 쏟으실 것이다. 차라리 내가 지금 그것을 갖다 먹어야겠다.’
그리고 곧 가져다 먹었다.

그 비구는 이것을 먹은 뒤에 비록 하루 낮 하룻밤은 즐겁고 안온하였지만 그 비구는 이 밥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 뜻에는 맞지 않게 되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비구는 이 밥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욕심이 적어지지 않았고 만족할 줄을 몰랐으며 쉽게 장양(長養)하지 못했고 쉽게 만족하지 못했으며 때를 알지 못하게 되었고 한정을 알지 못하게 되었으며, 정진하지 못하게 되었고 연좌(宴坐)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행이 깨끗하지 못하게 되었고 멀리 여의지 못하게 되었으며 한마음이 되지 못하였고 정근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또한 열반을 얻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비구는 이 밥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 뜻에 맞지 않게 되었으니 이것이 모든 제자가 음식을 구하기 위해 부처님을 의지하여 수행하고 법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것이 모든 제자가 법을 구하는 수행을 하고 음식을 구하기 위해 수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 두 비구 중 둘째 비구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식사를 마치셨는데도 아직 남은 밥이 있다. 만일 내가 먹지 않으면 세존께서는 반드시 그것을 갖다 깨끗한 땅에 쏟던지 혹은 벌레가 없는 물속에 쏟으실 것이다. 그러나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음식 중에서 가장 나쁜 것이 남은 밥이라 하셨으니,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밥을 먹지 않겠다.’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먹지 않았다.

그 비구는 이 밥을 먹지 않은 뒤에 비록 하루 낮 하룻밤은 괴롭고 안온하지 못했지만, 그 비구는 이 밥을 먹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 뜻에는 맞게 되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 비구는 이 밥을 먹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욕심이 적어지게 되었고 만족할 줄을 알게 되었으며 쉽게 장양하게 되었고 쉽게 만족하게 되었으며 때를 알게 되었고 한정을 알게 되었으며, 정진하게 되었고 연좌하게 되었으며 행이 깨끗하게 되었고 멀리 여의게 되었으며 한마음이 되었고 정근하게 되었으며 또한 열반을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비구는 이 밥을 먹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 뜻에 맞게 되었으니 이것이 모든 제자가 법을 구하기 위해 부처님을 의지하여 수행하고 음식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는 모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법률(法律)에서 스승이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그 상제자(上弟子)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법률은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은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지 못하게 되며 또한 하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하여 옳음과 요익을 구하지 못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중ㆍ하의 제자들이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법률은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은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지 못하게 되며 또한 하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하여 옳음과 요익을 구하지 못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이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상제자도 역시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한다면, 그 법률은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여 많은 사람은 즐거움을 얻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게 되며 또한 하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하여 옮음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이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중ㆍ하의 제자도 역시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한다면, 그 법률은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여 많은 사람이 즐거움을 얻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게 되며 또한 하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하여 옳음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게 된다.”

이때 존자 사리자도 대중 가운데 있었다. 그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너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법답게 설법하도록 하라. 나는 등에 병이 나서 지금 조금 쉬어야겠다.”

존자 사리자는 곧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었다.
“예, 세존이시여.”
이에 세존께서는 우다라승(優多羅僧:울다라승)을 네 겹으로 접어 평상 위에 깔고 승가리를 개어 베개로 삼으시고 오른쪽으로 누워 발과 발을 포개시고 광명상(光明想)을 지으시면서 바른 생각[正念]과 바른 지혜[正智]로써 언제나 일어나기를 생각하셨다.

그때 존자 사리자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조금 전 간략히 설법하셨습니다.
‘만일 어떤 법률(法律)에서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그 상제자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법률은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이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지 못하게 되며, 또한 하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하여 옮음과 요익을 구하지 못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중ㆍ하의 제자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 법률은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이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지 못하게 되며,또한 하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하여 옳음과 요익을 구하지 못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이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상제자도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한다면 그 법률은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여 많은 사람이 즐거움을 얻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게 되며, 또한 하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하여 옳음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이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중ㆍ하의 제자도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한다면, 그 법률은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여 많은 사람이 즐거움을 얻고 세간을 가엾이 여기게 되며 또한 하늘을 위해서나 사람을 위하여 옳음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이 법을 지극히 간략하게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은 어떻게 그 뜻을 이해하고 어떻게 널리 분별하였습니까?”

그때 대중 가운데서 어떤 비구가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모든 장로상존(長老上尊)이 스스로 ‘나는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모든 범행자는 그 비구가 스스로 구경의 지혜를 얻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곧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다시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만일 중ㆍ하의 제자가 위없는 열반[無上涅槃]을 구하고 원한다면 모든 범행자는 그의 행을 보고 곧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 그 뜻을 말하였으나 존자 사리자의 뜻에는 맞지 않았다.

존자 사리자가 그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내가 그대들을 위하여 해설할 것이니 여러분은 들으십시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그 상제자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상제자에게는 비방을 받을 만한 3사(事)가 있게 됩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상제자는 버리고 떠나기를 배우지 않으니 그 상제자는 이로써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 스승은 이처럼 끊어야 할 법을 말하는데 상제자가 그 법을 끊지 않으니 그 상제자는 이로써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증명을 받을 만한 상제자인데도 방편을 버리니 그 상제자는 이로써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상제자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상제자에게는 비방을 받을 만한 이런 3사(事)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중ㆍ하의 제자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중ㆍ하의 제자에게는 비방을 받을 만한 3사가 있게 됩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중ㆍ하의 제자가 버리고 떠나기를 배우지 않으니, 그 중ㆍ하의 제자는 이로써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 스승은 이처럼 끊어야 할 법을 말하는데 중ㆍ하의 제자가 그 법을 끊지 않으니, 그 중ㆍ하의 제자는 이로써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 그는 증명을 받을 만한 중ㆍ하의 제자인데도 방편을 버리니, 그 중ㆍ하의 제자는 이로써 비방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중ㆍ하의 제자가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중ㆍ하의 제자에게는 비방을 받을 만한 이런 3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이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상제자도 또한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면, 그 상제자에게는 칭찬받을 만한 3사가 있게 됩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스승도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상제자도 또한 버리고 떠나기를 배우니 그 상제자는 이로써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스승이 이처럼 끊어야 할 법을 말하면 상제자가 곧 그 법을 끊으니 그 상제자는 이로써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증명을 받을 만한 상제자가 정진하고 부지런히 배워 방편을 버리지 않으니 그 상제자는 이로써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도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상제자도 또한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면 그 상제자에게는 칭찬을 받을 만한 이런 3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도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중ㆍ하의 제자도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면, 그 중ㆍ하의 제자에게는 칭찬을 받을 만한 3사가 있게 됩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스승도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중ㆍ하의 제자도 또한 버리고 떠나기를 배우니, 그 중ㆍ하의 제자는 이로써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스승이 이처럼 끊어야 할 법을 말하면 중ㆍ하의 제자가 곧 그 법을 끊으니, 그 중ㆍ하의 제자는 이로써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증명을 받을 만한 중ㆍ하의 제자가 정진하고 부지런히 배워 방편을 버리지 않으니, 그 중ㆍ하의 제자는 이로써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법률에서 스승도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고 중ㆍ하의 제자도 또한 멀리 떨어져 머물기를 좋아하면, 그 중ㆍ하의 제자에게는 칭찬을 받을 만한 이런 3사가 있게 될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능히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정(定)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하며 법을 따르고 법을 이어받게 하며 신통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하며 또한 열반을 얻게 하는 중도(中道)가 있습니다. 여러분, 능히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정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하며 법을 따르고 법을 이어받게 하며 신통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하며 또한 열반을 얻게 하는 중도란 무엇인가?
여러분, 염욕(念欲)은 나쁘고 악한 염욕도 역시 나쁩니다. 중도는 염욕을 끊고 악한 염욕도 또한 끊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냄과 원결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 없음[無慙]ㆍ남부끄러움 없음[無愧]ㆍ거만[慢]ㆍ최상만(最上慢:증상만)ㆍ공고(貢高)ㆍ방일(放逸)ㆍ호귀(豪貴)ㆍ미워함ㆍ다툼도 또한 끊는 것입니다.
여러분, 탐욕도 나쁘고 집착도 또한 나쁩니다. 중도는 탐욕을 끊고 또한 집착도 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능히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정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하며 법을 따르고 법을 이어받게 하며 신통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하며 또한 열반을 얻게 하는 중도라고 합니다.

여러분, 다시 능히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정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하며 법을 따르고 법을 이어받게 하며 신통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하며 또한 열반을 얻게 하는 중도가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능히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정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하며 법을 따르고 법을 이어받게 하며 신통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하며 또한 열반을 얻게 하는 중도란 무엇인가?
곧 8정도[支聖道]로서 바른 소견과 나아가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이니, 이것을 여덟 가지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능히 마음을 머무르게 하고 정(定)을 얻고 즐거움을 얻게 하며 법을 따르고 법을 이어받게 하며 신통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하며 또한 열반을 얻게 하는 중도라고 합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아픔이 가시고 안온하게 되시자, 곧 자리에서 일어나 결가부좌하시고 존자 사리자를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자여, 여러 비구들을 위하여 법답게 설법하였구다. 사리자여, 그대는 마땅히 다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법답게 설법하도록 하라. 사리자여, 그대는 마땅히 자주자주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법답게 설법하도록 하라.”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함께 법 배우기를 법답게 하여 외우고 익혀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법은 법다워 법이 있고 뜻이 있어 범행의 근본이 되며 신통을 얻고 깨달음을 얻게 하며 또한 열반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족성자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이 법을 법답게 잘 받아 지녀야 한다.”

부처님께 말씀하시자, 존자 사리자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팔리어로 Revata이고 리왈(離曰)ㆍ리바다(離婆多)로도 음역한다. 마음이 산란하지 않기로 제일인 비구이다.

중아함경 제23권

승가제바 한역

8. 예품 제3②
89) 비구청경(比丘請經) 제3제2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竹林) 가란다(迦蘭哆)동산에 계시면서 대비구 대중과 함께 하안거[夏坐]를 맞으셨다.

그때 존자 대목건련(大目揵連)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만일 어떤 비구가 여러 비구들에게 ‘여러분, 나에게 말하고 나를 가르치며 나에게 충고하고 나를 비난하지는 말라’고 간청한다면,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은 설복(說服)시키기 쉽지 않고 가르쳐 설복시키기 어려운[戾語] 법을 성취하였으며 가르쳐 설복시키기 어려운 법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모든 범행자(梵行者)들이 그와 말하지 않고 그를 가르치지도 않으며 그에게 충고하지도 않으면서 그를 비난합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가르쳐 설복시키기 어려운 법[戾語法]인가? 만일 가르쳐 설복시키기 어려운 법을 성취한 자가 있다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와 말하지도 않고 그를 가르치지도 않으며 그에게 충고하지도 않고 그를 비난하기만 할 것입니다.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은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면 이것을 가르쳐 설복시키기 어려운 법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더러운 행에 물들어 서로 말하지 않는 원한[結]을 맺으며 속이고 아첨하며 간탐하고 질투하며 제 부끄러움[慚]과 남부끄러움[愧]이 없고 성내고 모질며 나쁜 마음을 품고 성내어 말을 하며 비구의 충고를 꾸짖고 비구를 깔보며 비구의 들추어냄을 꾸짖고 아주 서로 피하면서 외부에다 일을 퍼뜨리며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하며 악한 벗과 악한 도반이 되고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는 것도 역시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면 이것을 가르쳐 설복시키기 어려운 법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을 모든 가르쳐 설복시키기 어려운 법이라고 하니, 만일 가르쳐 설복시키기 어려운 법을 성취한 자가 있으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와 말하지도 않고 그를 가르치지도 않으며 충고하지도 않으면서 그를 비난만 할 것입니다.
여러분, 비구는 마땅히 스스로 헤아려 생각해야만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 만일 내가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면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여 나쁜 욕심을 행하지 말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는 자가 되지 말 것이니,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더러운 행에 물들어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으며 속이고 아첨하며 간탐하고 질투하며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고 성내고 모질며 악한 뜻을 품고 성내어 말을 하며 비구의 충고를 꾸짖고 비구를 깔보며 비구의 들추어냄을 꾸짖고 아주 서로 피하면서 외부에다 일을 퍼뜨리며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하며 악한 벗과 악한 도반이 되고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는 것도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 만일 내가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하면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여,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 것이니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혹 어떤 비구가 여러 비구들에게 ‘여러분, 나에게 말하고 나를 가르치며 나에게 충고하고 나를 비난하지는 말라’고 간청하지 않는다면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은 말로 잘 타이를 수 있고[善語] 말로 잘 타이를 수 있는 법을 성취하였으며 말로 잘 타이를 수 있는 법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모든 범행자들은 그에게 잘 말하고 잘 가르치며 잘 충고하고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떤 것이 말로 잘 타이를 수 있는 법[善語法]인가? 만일 말로 잘 타이를 수 있는 법을 성취한 자가 있다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에게 잘 말하고 잘 가르치며 잘 충고하고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혹 어떤 사람은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지도 않는데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말로 잘 타이를 수 있는 법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더러운 행에 물들지 않아 서로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지 않고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으며 간탐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지 않으며, 성내고 모질거나 나쁜 마음을 품지 않으며 성내어 말하지 않고 비구의 충고를 꾸짖지 않으며 비구를 깔보아 꾸짖지 않고 비구의 들추어냄을 꾸짖지 않으며, 서로 피하면서 외부에다 일을 퍼뜨려 말하지 않고 서로 말하지 않거나 성내거나 미워함이 치성하지 않으며 악한 벗과 악한 도반이 되지 않고 은혜가 없지도 않고 은혜를 모르지도 않는 것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가 없지도 않고 은혜를 모르지도 않는다면 이것을 말로 잘 타이를 수 있는 법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말로 잘 타이를 수 있는 법으로써, 만일 말로 잘 타이를 수 있는 법을 성취한 자가 있으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에게 잘 말하고 잘 가르치며 잘 충고하여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비구는 마땅히 스스로 헤아려 이렇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만일 내가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할 것이다.’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여 나쁜 욕심을 행하지 말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는 자가 되지 말 것이니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더러운 행에 물들지 않아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지 않고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으며 간탐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지 않으며, 성내고 모질거나 나쁜 마음을 품지 않으며 성내어 말을 하지 않고 비구의 충고를 꾸짖지 않으며 비구를 깔보아 꾸짖지 않고 비구의 들추어냄을 꾸짖지 않으며, 서로 피하면서 외부에다 일을 퍼뜨려 말하지 않고 서로 말하지 않거나 성내거나 미워함이 치성하지 않고 악한 벗과 악한 짝이 되지 않으며 은혜가 없지도 않고 은혜를 모르지도 않는 것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사람이 은혜가 없지도 않고 은혜를 모르지도 않는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고, 만일 내가 은혜가 없지도 않고 은혜를 모르지도 않는다면 그도 또한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비구는 이렇게 관찰하여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하니,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이렇게 관찰한다면 반드시 요익함이 많을 것입니다.
‘나는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했는가?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지 않았는가?’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했을 때 ‘나는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였다’고 알았다면,곧 기뻐하지 않고 바로 끊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했을 때 ‘나는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았다면, 곧 기뻐하며 ‘나는 스스로 청정하고 거룩한 법 배우기를 구한다. 그래서 기쁘다’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마치 눈이 있는 사람이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그 얼굴이 깨끗한가 깨끗하지 않은가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자기 얼굴에 때가 있는 것을 본다면 기뻐하지 않고 곧 씻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자기 얼굴에 때가 없는 것을 본다면 곧 기뻐하며 ‘내 얼굴은 청정하다. 그래서 기쁘다’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나쁜 욕심이 있고 나쁜 욕심을 생각한다’고 알았다면, 기뻐하지 않고 곧 끊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나쁜 욕심을 행하지 않고 나쁜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알았다면, 곧 기뻐하며 ‘나는 스스로 청정하고 거룩한 법 배우기를 구한다. 그래서 기쁘다’라고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더러운 행에 물들었는가, 더러운 행에 물들지 않았는가?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었는가, 말하지 않는 원한을 맺지 않았는가? 속이거나 아첨했는가, 속이거나 아첨하지 않았는가? 간탐하거나 질투했는가, 간탐하거나 질투하지 않았는가?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는가,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는가? 성내고 모질거나 나쁜 생각을 품었는가, 성내고 모질거나 나쁜 생각을 품지 않았는가? 성내어 말했는가, 성내어 말하지 않았는가? 비구의 충고를 꾸짖었는가, 비구의 충고를 꾸짖지 않았는가? 비구를 깔보고 꾸짖었는가, 비구를 깔보고 꾸짖지 않았는가? 비구의 들추어냄을 꾸짖었는가, 비구의 들추어냄을 꾸짖지 않았는가? 서로 피했는가, 서로 피하지 않았는가? 외부에다 일을 퍼뜨렸는가, 외부에다 일을 퍼뜨리지 않았는가?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했는가, 서로 말하지 않고 성내고 미워함이 치성하지 않았는가? 악한 벗과 악한 도반이 되었는가, 악한 벗과 악한 도반이 되지 않았는가?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했는가, 은혜가 없거나 은혜를 알지 못하지 않았는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한다’고 알았다면 기뻐하지 않고 곧 끊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은혜가 없지 않고 은혜를 모르지도 않는다’고 알았다면 곧 기뻐하며 ‘나는 스스로 청정하고 거룩한 법 배우기를 구한다. 그래서 기쁘다’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마치 눈이 있는 사람이 거울로 자신을 비추어 그 얼굴이 깨끗한가, 더러운가를 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자기 얼굴에 때가 있는 것을 보았다면 기뻐하지 않고 곧 씻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눈이 있는 사람이 얼굴에 때가 없는 것을 보았다면 곧 기뻐하며 ‘내 얼굴은 청정하다. 그래서 기쁘다’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은혜도 없고 은혜를 알지도 못한다’고 알았다면 기뻐하지 않고 곧 끊으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은혜가 없지 않고 은혜를 모르지도 않는다’고 알았다면, 곧 기뻐하며 ‘나는 스스로 청정하고 거룩한 법 배우기를 구한다. 그래서 기쁘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뻐함으로 말미암아 곧 환희를 얻고 환희로 말미암아 곧 몸의 휴식을 얻게 하며 몸의 휴식으로 말미암아 곧 깨달음의 즐거움[覺樂]을 얻고 깨달음의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곧 고요한 마음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 아는 것이 많은 거룩한 제자는 고요한 마음으로 말미암아 곧 여실하게 보고 사실 그대로 알며 여실하게 보고 사실 그대로 앎으로 말미암아 곧 싫어하게 되며, 싫어함으로 말미암아 곧 욕심이 없게 되고 욕심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곧 해탈을 얻고 해탈로 말미암아 곧 해탈한 줄을 알게 되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 것입니다.”

존자 대목건련이 이렇게 말하자, 모든 비구들은 존자 대목건련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비구청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63자이다.

90) 지법경(知法經) 제4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사미(拘舍彌)를 유행하실 때에 구사라(瞿師羅)동산에 머무셨다.

그때 존자 주나(周那)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다.’
그러나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고 삽니다. 마찬가지로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않는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음ㆍ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를 가지고 삽니다. 모든 범행자들은 그 현자가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지 못하고 탐욕이 없지 않음을 아니, 무슨 까닭인가? 그 현자는 마음에 탐욕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음ㆍ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가 없지 않음을 아나니, 무슨 까닭인가?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를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치 어떤 사람이 부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일컬어 부자라 말하고 또한 나라의 벼슬[封]도 없으면서 나라의 벼슬이 있다고 말하며 또 목축이 없으면서 목축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만일 쓰고자 할 때에는 곧 금ㆍ은ㆍ진주ㆍ유리ㆍ수정ㆍ호박이 없고 목축과 곡식이 없으며 또한 노비들도 없으니, 그러면 모든 친한 벗들이 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는 진실로 부자가 아니면서 스스로 부자라 일컫고 또한 나라의 벼슬이 없으면서 나라의 벼슬이 있다고 말하며, 또 목축이 없으면서 목축이 있다고 말했구나. 따라서 정작 쓰고자 할 때에는 곧 금ㆍ은ㆍ진주ㆍ유리ㆍ수정ㆍ호박이 없고 목축과 곡식이 없으며, 또한 노비들도 없구나.’

이와 같이 여러분,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다.’
그러나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고 삽니다. 마찬가지로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않는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ㆍ나쁜 욕심ㆍ나쁜 견해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를 가지고 삽니다. 모든 범행자들은 그 현자가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지 못하고 탐욕이 없지 않음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현자의 마음이 탐욕이 다 사라진 무여열반(無餘涅槃)을 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ㆍ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가 없지 않음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현자의 마음이 나쁜 견해의 법이 다 사라진 무여열반을 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혹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다.’
그러나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지 않고 삽니다. 마찬가지로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ㆍ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가 없다고 말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를 가지지 않고 삽니다. 모든 범행자들은 그 현자가 진실로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는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ㆍ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가 없는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를 가지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부자이면서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또한 나라의 벼슬이 있으면서 나라의 벼슬이 없다고 말하며 또 목축이 있으면서 목축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만일 쓰려고 할 때에는 곧 금ㆍ은ㆍ진주ㆍ유리ㆍ수정ㆍ호박이 있고 목축과 곡식이 있으며 또한 노비들도 있다. 그러면 모든 친한 벗들이 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는 진실로 큰 부자이면서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또한 나라의 벼슬이 있으면서 나라의 벼슬이 없다고 말하며 또 목축이 있으면서 목축이 없다고 말했구나. 그래서 쓰려고 할 때에는 곧 금ㆍ은ㆍ진주ㆍ유리ㆍ수정ㆍ호박이 있고 목축과 곡식이 있으며 또한 노비들이 있구나.’

이와 같이 여러분, 혹 어떤 비구는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다.’
그러나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탐욕을 가지지 않고 삽니다. 마찬가지로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ㆍ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현자는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를 가지지 않고 삽니다. 모든 범행자들은 그 현자가 알 만한 모든 법을 알아 탐욕이 없는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현자의 마음이 탐욕이 다 사라진 무여열반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ㆍ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가 없는 줄을 안다. 무슨 까닭인가? 그 현자의 마음이 나쁜 견해의 법이 다 사라진 무여열반을 향하기 때문입니다.”

존자 주나가 이렇게 말하자, 모든 비구들은 존자 주나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지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881자이다.

91)주나문견경(周那問見經) 제5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사미(拘舍彌)를 유행하실 때에 구사라(瞿師羅)1)동산에 머무셨다.

이때 존자 대주나(大周那)는 해질 무렵에 연좌(宴坐)에서 일어나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여러 견해가 생겨나고 또 생겨납니다. 소위 신(神)이 있다고 헤아리거나 중생(衆生)이 있다, 사람[人]이 있다, 수(壽)가 있다, 명(命)이 있다, 세간(世間)이 있다고 헤아립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이런 견해를 멸하거나 떨쳐버려 다른 견해를 계속 주장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게 할 수 있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주나야, 세상에는 여러 견해가 생겨나고 또 생겨나서, 소위 신이 있다고 헤아리거나 중생이 있다, 수(壽)가 있다, 명(命)이 있다, 세간이 있다고 헤아린다. 주나야, 만일 모든 법을 남김없이 멸해 다하려거든 이와 같이 알고 이렇게 보아야 이런 견해를 멸하거나 떨쳐버려 다른 견해를 계속 주장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게 할 수 있다. 마땅히 점차 줄이는 것[漸損]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 거룩한 법률(法律) 가운데 어떤 것이 점차 줄이는 것인가?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점차 줄여 나가야겠다.’
주나야, 거룩한 법률에는 단지 이렇게 점차 줄여 나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4증상심(增上心)이 있어 현법(現法)에 즐겁게 머무는데, 수행자는 이것을 쫓아 일어났다가 다시 들어온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점차 줄여 나가야겠다.’
주나야, 거룩한 법률 가운데에는 단지 이렇게 점차 줄여 나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구는 일체의 색상(色想)을 넘어섬으로부터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까지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점차 줄여 나가야겠다.’
주나야, 거룩한 법률 가운데에는 단지 이렇게 점차 줄여 나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4식해탈(息解脫)이 있어 색을 떠나고 무색(無色)을 얻는데, 수행자는 이것을 좇아 일어나 마땅히 남을 위하여 설법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점차 줄여 나가야겠다.’

주나야, 거룩한 법률에는 단지 이렇게 점차 줄여 나가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나야,‘남들은 나쁜 욕심과 나쁜 욕심에 대한 생각이 있는데, 나는 나쁜 욕심과 나쁜 욕심에 대한 생각이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해칠 생각과 분노가 있는데, 나는 해칠 생각과 분노가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취하고 범행이 아닌 짓을 하는데 나는 범행이 아닌 짓을 한 적은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탐욕과 다툼ㆍ수면ㆍ얽매임ㆍ들뜸ㆍ뽐냄이 있고 또 의혹이 있는데 나는 의혹이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분노와 원한ㆍ아첨ㆍ속임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는데, 나는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거만이 있는데 나는 거만이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증상만(增上慢)이 있는데 나는 증상만(增上慢)이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많이 듣지 못했는데, 나는 들은 것이 많은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모든 선법(善法)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나는 모든 선법을 관찰했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법이 아닌 악행을 행하는데 나는 옳은 법인 묘행(妙行)을 행하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 남들은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거친 말ㆍ꾸밈말의 나쁜 계(戒)가 있는데, 나는 나쁜 계가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믿지 않고 게으르며 생각이 없고 정(定)이 없고 또 나쁜 지혜가 있는데 나는 나쁜 지혜가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점차 줄여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나야, 그저 마음을 내어 모든 선법을 배우겠다는 생각만 하더라도 곧 요익되는 바가 많을 텐데, 하물며 다시 몸과 입으로 선법을 행함이겠는가? 주나야,‘남들은 나쁜 욕심과 나쁜 욕심에 대한 생각이 있는데, 나는 나쁜 욕심과 나쁜 욕심에 대한 생각이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해칠 뜻과 분노가 있는데 나는 해칠 뜻과 분노가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생물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며 범행(梵行)이 아닌 짓을 하는데 나는 범행이 아닌 짓을 한 적은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탐욕과 다툼ㆍ수면ㆍ얽매임ㆍ들뜨고 뽐냄이 있으며 또 의혹이 있는데 나는 의혹이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분노와 원한ㆍ아첨ㆍ속임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는데 나는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거만이 있는데 나는 거만이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증상만(增上慢)이 있는데 나는 증상만이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많이 듣지 못했는데 나는 들은 것이 많은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모든 선법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나는 모든 선법을 관찰했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법이 아닌 악행을 행하는데, 나는 옳은 법인 묘행을 행하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거친 말ㆍ꾸밈말의 나쁜 계가 있는데, 나는 나쁜 계가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남들은 믿지 않고 게으르며 생각이 없고 정(定)이 없으며 나쁜 지혜가 있는데 나는 나쁜 지혜가 없는가?’라고 하며 마땅히 마음을 내어야 한다.

주나야, 마치 나쁜 길[惡道]과 좋은 길[正道]이 대(對)가 되고 마치 나쁜 나루터[度]와 좋은 나루터가 대가 되듯이, 이와 같이 주나여, 나쁜 욕심은 나쁜 욕심이 아닌 것과 대가 되고 해칠 뜻과 분노는 해칠 뜻과 분노가 아닌 것과 대가 되며, 생물을 죽이거나 주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과 범행이 아닌 것은 범행과 대가 되고 탐욕과 다툼ㆍ수면ㆍ들뜨고 뽐냄과 의혹은 의혹이 아닌 것과 대가 되며, 분노와 원한ㆍ아첨ㆍ속임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은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과 대가 되고 거만은 거만이 아닌 것과 대가 되며, 증상만은 증상만이 아닌 것과 대가 되고 많이 듣지 못한 것은 많이 들은 것과 대가 되며, 모든 선법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선법을 관찰하는 것과 대가 되고 법이 아닌 악행을 행하는 것은 옳은 법인 묘행을 행하는 것과 대가 되며,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거친 말ㆍ꾸밈말의 나쁜 계는 좋은 계와 대가 되고 믿지 않음ㆍ게으름ㆍ생각 없음ㆍ정이 없음과 나쁜 지혜는 좋은 지혜와 대가 된다.

주나야, 혹 어떤 법이 더러우면 더러운 과보[黑報]가 있어 나쁜 곳으로 나아가고, 혹 어떤 법이 깨끗하면 깨끗한 과보[白報]가 있어 위로 오르게 된다. 이와 같이 주나야, 나쁜 욕심은 나쁜 욕심이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해칠 뜻과 분노는 해칠 뜻과 분노가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생물을 죽이거나 주지 않는 것을 취한 것과 범행이 아닌 것은 범행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탐욕과 다툼ㆍ수면ㆍ들뜸ㆍ뽐냄과 의혹은 의혹이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분노와 원한ㆍ아첨ㆍ속임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는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거만은 거만이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증상만은 증상만이 아닌 것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많이 듣지 못한 것은 많이 들음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모든 선법을 관찰하지 않은 것은 모든 선법을 관찰함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법이 아닌 악행을 행한 것은 옳은 법인 묘행을 행함으로써 위로 오르게 되며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거친 말ㆍ꾸밈말의 나쁜 계는 좋은 계로써 위로 오르게 되고, 믿지 않음ㆍ게으름ㆍ생각 없음ㆍ정이 없음과 나쁜 지혜는 좋은 지혜로써 위로 오르게 된다.

주나야, 만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면서 남이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제어하려 한다면 끝내 그렇게 될 수 없고, 스스로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남이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건져 주려 한다면 끝내 그렇게 될 수 없으며, 스스로 반열반하지 못하면서 남이 반열반하지 못하는 것을 반열반시키려고 한다면 끝내 그렇게 될 수 없다. 주나야, 만일 스스로 제어하면서 남이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제어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며 스스로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면서 남이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건져 주려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으며 스스로 반열반하고서 남이 반열반하지 못하는 것을 반열반시키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나야, 나쁜 욕심은 나쁜 욕심이 아닌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해치려는 생각과 분노는 해치려는 생각과 분노가 아닌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며 생물을 죽인 것과 주지 않는 것을 취한 것과 범행이 아닌 것은 범행으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탐욕과 다툼ㆍ수면ㆍ들뜸ㆍ뽐냄과 의혹은 의혹이 아닌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며, 분노와 원한ㆍ아첨ㆍ속임과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은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으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거만은 거만이 아닌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며 증상만은 증상만이 아닌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많이 듣지 못한 것은 많이 듣는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며, 모든 선법을 관찰하지 못한 것은 모든 선법을 관찰하는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법이 아닌 악행을 행한 것은 옳은 법인 묘행을 행하는 것으로써 반열반하게 되며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거친 말ㆍ꾸밈말의 나쁜 계는 좋은 계로써 반열반하게 되고 믿지 않음ㆍ게으름ㆍ생각 없음ㆍ정이 없음과 나쁜 지혜는 좋은 지혜로써 반열반하게 된다.

이것은 주나를 위한 것이니, 나는 이미 너를 위하여 점차 줄여 나가는 법[漸損法]을 말하였고 이미 마음을 내는 법[發心法]을 말하였으며 이미 대치하는 법[對法]을 말하였고 이미 위로 오르는 법[昇上法]을 말하였으며 이미 반열반의 법[般涅槃法]을 말하였다. 높은 스승이 제자를 위하는 것처럼 큰 사랑과 슬픔을 일으켜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며 옳음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기를 나는 이제 이미 다하였으니,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노력하라. 일없이 한적한 곳이나 산림ㆍ나무 밑ㆍ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좌선하고 사유하되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을 더하여 후회가 없게 하라. 이것은 나의 가르침이며 나의 훈계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대주나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주나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75자이다.

92)청백연화유경(靑白蓮華喩經) 제6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법은 몸[身]을 따라서 멸하고 입[口]을 따라서 멸하지 않으며 어떤 법은 입을 따라서 멸하고 몸을 따라서 멸하지 않으며 또 어떤 법은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단지 지혜로운 견해를 따라 멸한다.

어떤 법이 몸을 따라 멸하고 입을 따라 멸하지 않는 것인가? 비구가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충만하고 구족하게 받아 가지고서 몸에 집착하면,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그 비구를 꾸짖는다.
‘현자여, 그대는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충만하고 구족하게 받아 가졌는데 무엇 하러 몸에 집착합니까? 현자여,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버리고 착한 몸의 행을 닦아 익혀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그 뒤에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버리고 착한 몸의 행을 닦아 익힐 것이다. 이것을 몸을 따라 멸하고 입을 따라 멸하지 않는 법(法)이라 고 한다.

어떤 법이 입을 따라 멸하고 몸을 따라 멸하지 않는 것인가? 비구가 착하지 않은 입의 행을 충만하고 구족하게 받아 가지고서 입에 집착하면,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그 비구를 꾸짖는다.
‘현자여, 그대는 착하지 않은 입의 행을 충만하고 구족하게 받아 가졌는데, 무엇하러 입에 집착합니까? 현자여, 착하지 않은 입의 행을 버리고, 착한 입의 행을 닦아 익혀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그 뒤에 착하지 않은 입의 행을 버리고 착한 입의 행을 닦아 익힐 것이다. 이것을 입을 따라 멸하고 몸을 따라 멸하지 않는 법이라고 한다.

어떤 법이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단지 지혜로운 견해[慧見]를 따라 멸하는 것인가? 탐욕[增伺]은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다만 지혜로운 견해를 따라 멸한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음ㆍ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도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단지 지혜로운 견해를 따라 멸한다. 이것을 몸과 입을 따라서는 멸하지 않고 단지 지혜로운 견해를 따라서 멸하는 법이라고 한다.

여래는 혹 관찰할 때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이 사람은 이렇게 몸을 닦지 않고 계를 닦지 않으며 마음을 닦지 않고 지혜를 닦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데, 만일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는다면 탐욕을 멸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마음으로 나쁜 탐욕을 내며 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 없음과 남부끄러움 없음도 또한 그러하며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도 멸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마음으로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를 내며 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이와 같이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는다는 것을 아는데, 만일 몸을 닦고 계를 닦으며 마음을 닦고 지혜를 닦으면 탐욕을 멸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마음에 나쁜 탐욕을 내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툼과 성냄ㆍ원한ㆍ분노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속임ㆍ아첨ㆍ제 부끄러움 없음과 남부끄러움 없음도 역시 그러하며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도 멸할 수 있다. 무슨 까닭인가? 이 사람은 마음에 나쁜 욕심과 나쁜 견해를 내지 않고 살기 때문이다. 마치 푸른 연꽃과 붉고ㆍ빨갛고ㆍ흰 연꽃이 물에서 나서 물에서 자랐지만 물 위로 나와 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여래는 세간에서 나서 세간에서 자랐지만 세간을 초월하여 행하고 세간법에 집착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은 일체 세간을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그때 존자 아난은 불자(拂子)를 잡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존자 아난이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받아 지녀야 하겠습니까?”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경을 청백연화유(靑白蓮華喩)라고 이름하며 너는 마땅히 이렇게 잘 받아 지니고 외워야 한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함께 이 청백연화유경을 받아 외워 익히고 지켜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청백연화유경은 법다운 뜻이 있으며 이것은 범행의 근본으로써 신통을 이루고 깨달음을 이루며 또한 열반을 이루기 때문이다. 만일 족성자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라면 마땅히 이 청백연화유경을 받아 잘 외워 지녀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청백연화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703자이다.

93) 수정범지경(水淨梵志經) 제7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울비라(鬱鞞羅) 니련연하(尼連然河) 강가를 유행하시다가 아야화라니구류(阿耶■羅尼拘類)나무 아래에 계시면서 처음으로 도를 얻으셨을 때였다.

그때 어떤 수정(水淨) 범지가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수정 범지가 오는 것을 보시고 수정 범지를 인연으로 하여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스물한 가지 번뇌[穢]에 마음을 더럽힌 자가 있으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어떤 것이 스물한 가지 번뇌[穢]인가? 곧 삿된 견해[邪見]의 심번뇌[心穢]ㆍ법 아닌 욕심[非法欲]의 심번뇌ㆍ나쁜 탐욕[惡貪]의 심번뇌ㆍ삿된 법[邪法]의 심번뇌ㆍ탐하는[貪] 심번뇌ㆍ성내는[恚] 심번뇌ㆍ수면(睡眠)의 심번뇌ㆍ들뜨는[掉悔] 심번뇌ㆍ의혹(疑惑)의 심번뇌ㆍ분노에 얽매인[瞋纏] 심번뇌ㆍ말하지 않는 원한[不語結]의 심번뇌ㆍ아끼는[慳] 심번뇌ㆍ질투[嫉]의 심번뇌ㆍ속이는[欺誑] 심번뇌ㆍ아첨하는[諛諂] 심번뇌ㆍ제 부끄러움이 없는[無慙] 심번뇌ㆍ남부끄러움[無愧]이 없는 심번뇌ㆍ거만한[慢] 심번뇌ㆍ크게 거만한[大慢] 심번뇌ㆍ업신여기는[憍慠] 심번뇌ㆍ방일(放逸)한 심번뇌이다.

만일 이 스물한 가지 번뇌에 마음을 더럽힌 자가 있으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마치 기름때 묻은 옷을 물들이는 집에 가져다주면, 그 물들이는 집에서는 잿물이나 가루비누로 혹은 흙물로 잘 빨아 깨끗하게 하려는 것과 같다. 이 때 묻은 옷에는 물들이는 집에서 혹 잿물이나 가루비누 혹은 흙물에 잘 빨아 깨끗하게 하려 해도 이 때 묻은 옷은 여전히 더러운 빛이 남는다.
이와 같이 만일 스물한 가지 번뇌[穢]에 마음을 더럽힌 자가 있으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어떤 것이 스물한 가지 번뇌인가? 곧 삿된 견해의 심번뇌ㆍ법 아닌 욕심의 번뇌ㆍ나쁜 탐욕의 심번뇌ㆍ삿된 법의 심번뇌ㆍ탐하는 심번뇌ㆍ성내는 심번뇌ㆍ수면 심번뇌ㆍ들뜨는 심번뇌ㆍ의혹하는 심번뇌ㆍ분노에 얽매인 심번뇌ㆍ말하지 않는 원한의 심번뇌ㆍ아끼는 심번뇌ㆍ질투하는 심번뇌ㆍ속이는 심번뇌ㆍ아첨하는 심번뇌ㆍ제 부끄러움 없는 심번뇌ㆍ남부끄러움 없는 심번뇌ㆍ거만한 심번뇌ㆍ크게 거만한 심번뇌ㆍ업신여기는 심번뇌ㆍ방일한 심번뇌이다. 만일 스물한 가지 번뇌에 마음을 더럽힌 자가 있으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만일 스물한 가지 번뇌에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 어떤 것이 스물한 가지 번뇌인가? 삿된 견해의 심번뇌ㆍ법 아닌 욕심의 번뇌ㆍ나쁜 탐욕의 심번뇌ㆍ삿된 법의 심번뇌ㆍ 탐하는 심번뇌ㆍ성내는 심번뇌ㆍ수면 심번뇌ㆍ들뜨는 심번뇌ㆍ의혹하는 심번뇌ㆍ분노에 얽매인 심번뇌ㆍ말하지 않는 원한의 심번뇌ㆍ아끼는 심번뇌ㆍ질투하는 심번뇌ㆍ속이는 심번뇌ㆍ아첨하는 심번뇌ㆍ제 부끄러움 없는 심번뇌ㆍ남부끄러움 없는 심번뇌ㆍ거만한 심번뇌ㆍ크게 거만한 심번뇌ㆍ업신여기는 심번뇌ㆍ방일한 심번뇌이다.

만일 이 스물한 가지 번뇌에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 마치 희고 깨끗한 바라나의(波羅奈衣)를 물들이는 집에 가져다주면 그 물들이는 집에서는 잿물이나 가루비누, 혹은 흙물로 잘 빨아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 희고 깨끗한 바라나의를 물들이는 집에서 잿물이나 가루비누, 혹은 흙물로 잘 빨아 깨끗하게 하면 이 희고 깨끗한 바라나의는 본래 이미 깨끗했던 것이 더욱 깨끗해진다.

이와 같이 만일 스물한 가지 번뇌가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 어떤 것이 스물한 가지 번뇌인가? 곧 삿된 견해의 심번뇌ㆍ법이 아닌 욕심의 번뇌ㆍ나쁜 탐욕의 심번뇌ㆍ삿된 법의 심번뇌ㆍ탐하는 심번뇌ㆍ성내는 심번뇌ㆍ수면 심번뇌ㆍ들뜨는 심번뇌ㆍ의혹하는 심번뇌ㆍ분노에 얽매인 심번뇌ㆍ말하지 않는 원한의 심번뇌ㆍ아끼는 심번뇌ㆍ질투하는 심번뇌ㆍ속이는 심번뇌ㆍ아첨하는 심번뇌ㆍ 제 부끄러움 없는 심번뇌ㆍ남 부끄러움 없는 심번뇌ㆍ거만한 심번뇌ㆍ크게 거만한 심번뇌ㆍ업신여기는 심번뇌ㆍ방일한 심번뇌이다. 만일 이 스물한 가지 번뇌가 마음을 더럽히지 않은 자가 있으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날 것이다.

만일 삿된 견해가 심번뇌[心穢]인 줄 아는 이는 알고 나면 곧 끊는다. 이와 같이 법 아닌 욕심의 번뇌ㆍ나쁜 탐욕의 심번뇌ㆍ삿된 법의 심번뇌ㆍ탐하는 심번뇌ㆍ성내는 심번뇌ㆍ수면 심번뇌ㆍ들뜨는 심번뇌ㆍ의혹하는 심번뇌ㆍ분노에 얽매인 심번뇌ㆍ말하지 않는 원한의 심번뇌ㆍ아끼는 심번뇌ㆍ질투하는 심번뇌ㆍ속이는 심번뇌ㆍ아첨하는 심번뇌ㆍ제 부끄러움 없는 심번뇌ㆍ남부끄러움 없는 심번뇌ㆍ거만한 심번뇌ㆍ크게 거만한 심번뇌ㆍ업신여기는 심번뇌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방일이 심번뇌인 줄 아는 이는 알고 나면 곧 끊는다.
그의 마음은 자애로움[慈]과 함께하여 1방(方)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렇게 2방(方)ㆍ3방(方)ㆍ4방(方)ㆍ4유(維)ㆍ상하(上下)의 일체를 가득 채우고,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원결[結]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悲]과 기뻐함[喜]도 역시 그러하며 평정[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원결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범지여, 이것을 ‘안 마음[內心]을 목욕시키되 바깥 몸[外身]을 목욕시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때 범지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구담이시여, 물이 많은 강[多水河]으로 가셔서 목욕하시지요.”

세존께서 물으셨다.
“범지여, 만일 물이 많은 강에 가서 목욕하면 어떤 이득이 있는가?”

범지가 답하여 말씀드렸다.
“구담이시여, 저 물이 많은 강에서 목욕하는 것은 이 세간에서 청결히 재계하는 상(相)이며 제도[度]의 상이며 복(福)의 상입니다. 구담이시여, 물이 많은 강에 가서 목욕하는 사람은 곧 일체의 악을 깨끗이 없앨 것입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범지를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묘호수(妙好首) 범지여
물이 많은 강에 들어간다 해도
그것은 어리석고 장난질에 불과한 것
검게 물든 업을 깨끗하게 할 수 없다.

호수(好首)여, 무엇하러 샘으로 가겠는가?
물 많은 강에 무슨 뜻 있겠는가?
사람이 좋지 않은 업을 지으면
맑은 물인들 무슨 도움 되겠는가?

깨끗한 사람은 때와 더러움 없고
깨끗한 사람은 항상 계율을 말하며
깨끗한 사람의 청백한 업은
언제나 청정한 행을 얻는다.

또 너는 살생하지 말고
주지 않는 것 가지지 말며
언제나 진실하게 거짓말하지 말고
늘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알아야 한다.

범지여, 이와 같이 배운다면
일체 중생은 편안해질 것이다.
범지여, 무엇하러 집에 돌아가느냐?
집의 샘물은 맑지 않으니

범지여, 너는 마땅히 배워
선법(善法)으로 깨끗이 씻어내야 하는데
어찌 더럽고 나쁜 물 쓰느냐?
그것은 단지 몸의 때만 없앨 뿐

범지는 부처님께 여쭈었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선법으로 깨끗이 씻어내야 하는데
어찌 더럽고 나쁜 물 쓰랴?

범지는 부처님 가르침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하며
곧바로 부처님 발에 예를 올리고
불(佛)ㆍ법(法)ㆍ승가[衆]에 귀의하였다.

범지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습니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이미 해득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우바새(優婆塞)가 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호수(好首)와 수정(水淨) 범지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수정범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210자이다.

94) 흑비구경(黑比丘經) 제8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동원(東園) 녹모당(鹿母堂)에 머무셨다.

이때 항상 싸움을 좋아하는 녹모의 아들 흑 비구가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흑 비구가 오는 것을 보시고, 흑 비구를 인연하여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항상 싸움을 좋아하고 싸움 그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항상 싸움을 좋아하고 싸움 그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되며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지니게 할 수 없으며 사문(沙門)이 되게 할 수 없고 한뜻[一意]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다.

혹 어떤 사람은 나쁜 욕심을 지니고 나쁜 욕심 그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을 지니고 나쁜 욕심 그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되며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지니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다.

또 어떤 사람은 계율[戒]을 범하고 계율을 벗어나며 계율을 깨고 계율을 허물며 계율을 더럽히고 계율 지니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범하고 계율을 벗어나며 계율을 깨고 계율을 허물며 계율을 더럽히고 계율 지니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되며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지니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 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다.

혹 어떤 사람은 분노에 얽매이고 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있으며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남 부끄러워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분노에 얽매이고 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있으며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남 부끄러워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되며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지니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다.

혹 어떤 사람은 모든 범행자(梵行者)를 위로하지 않고 모든 범행자 위로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지 않고 모든 범행자를 위로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되며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지니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다.

혹 어떤 사람은 모든 법을 관찰하지 않고 모든 법 관찰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법을 관찰하지 않고 모든 법 관찰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되며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지니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연좌(宴坐)하지 않고 연좌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는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연좌하지 않고 연좌하는 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이 법은 즐겨할 것이 못되고 사랑하고 기뻐할 것이 못되며 사랑스럽게 생각할 수 없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할 수 없으며 닦아 익히게 할 수 없고 거두어 지니게 할 수 없으며 사문이 되게 할 수 없고 한뜻을 얻게 할 수 없으며 열반을 얻게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모든 범행자들이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모든 범행자들은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거나 예로써 섬기지 않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에게는 이런 한량없이 악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는 이런 한량없이 악한 법이 모든 범행자들로 하여금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거나 예로써 섬기지 못하게 한다.

마치 못된 말이 마판에 매여 길러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사람들이 나를 안온한 곳에 매어 두고 내게 좋은 음식을 주며 잘 보살피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사람들은 안온한 곳에 매어두지도 않고 좋은 음식을 주지도 않으며 잘 보살피지도 않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말의 못된 성질 곧 지극히 추하고 더러우며 온순하지 않은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안온한 곳에 매어 두지 않고 좋은 음식을 주지도 않으며 잘 보살피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도 ‘모든 범행자들이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더라도 모든 범행자들은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거나 예로써 섬기지 않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람에게는 이런 한량없이 악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는 이 한량없이 악한 법이 모든 범행자들로 하여금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거나 예로써 섬기지 않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싸움 그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싸움을 좋아하지 않고 싸움 그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지니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 그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쁜 욕심이 없고 나쁜 욕심 그치는 것을 칭찬하면,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지니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계율을 범하지 않고 계율을 벗어나지 않으며 계율을 깨지 않고 계율을 허물지 않으며 계율을 더럽히지 않고 계를 지니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범하지 않고 계율을 벗어나지 않으며 계율을 깨지 않고 계율을 허물지 않으며 계율을 더럽히지 않고 계를 지니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지니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분노에 얽매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 원한도 없으며 아낌ㆍ질투도 없고 아첨ㆍ속임이 없으며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남부끄러워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분노에 얽매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 원한도 없으며 아낌ㆍ질투도 없고 아첨ㆍ속임이 없으며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남부끄러워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지니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범행자들을 위로하고 모든 범행자 위로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범행자들을 위로하고 모든 범행자 위로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지니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한다.

혹 어떤 사람은 모든 법을 관찰하고 모든 법 관찰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법을 관찰하고 모든 법 관찰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지니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연좌(宴坐)하고 연좌하는 것을 칭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연좌하고 연좌하는 것을 칭찬하면, 이 법은 즐겨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사랑스럽게 생각하게 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게 하며 닦아 익히게 하고 거두어 지니게 하며 사문이 되게 하고 한뜻을 얻게 하며 열반을 얻게 한다. 이 사람은 비록 ‘모든 범행자들로 하여금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모든 범행자들은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길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람에게는 이렇게 한량없이 선한 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는 이런 한량없이 선한 법이 모든 범행자들로 하여금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는 것이다. 마치 좋은 말이 마판에 매여 길러지는 것과 같아서 그가 비록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안온한 곳에 매어 두고 내게 좋은 음식을 주며 잘 보살피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그를 안온한 곳에 매어 두고 좋은 음식을 주며 잘 보살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말은 착한 성질이 있어 곧 부드럽고 길들이기 좋으며 지극히 온순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안온한 곳에 매어 두고 좋은 음식을 주며 잘 보살피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이 비록 ‘모든 범행자로 하여금 나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기게 하자’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모든 범행자들은 그를 공양하고 공경하며 예로써 섬길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흑비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27자이다.

95) 주법경(住法經) 제9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선법(善法)에서 후퇴하여 머물지도 않고[不住] 더하지도 않는 것[不增]을 말하고, 나는 선법에 머물러 후퇴하지 않고 더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나는 선법을 더해 후퇴하지 않고 머물지도 않는 것을 말하겠다.
어떤 것을 선법에서 후퇴하여 머물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만일 금계(禁戒)를 독실하게 믿고 널리 듣고 보시하며 지혜ㆍ말솜씨[辯才]와 아함(阿含)과 또 얻는 바가 있으면, 그 사람은 이 법에서 후퇴하여 머물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을 것이니 이것을 선법에서 후퇴하여 머물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선법에 머물러 후퇴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않는다고 하는가? 만일 비구가 금계를 독실하게 믿고 널리 듣고 보시하며, 지혜ㆍ말솜씨ㆍ아함과 또 그 얻는 바가 있으면 그 사람은 이 법에 머물러 후퇴하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을 것이니 이것을 선법에 머물러 후퇴하지 않고 더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선법을 더해서 후퇴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고 하는가? 비구가 만일 금계를 독실하게 믿고 널리 듣고 보시하며 지혜와 말솜씨와 아함과 또 그 얻는 바가 있으면, 그 사람은 이 법을 더해서 후퇴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을 것이니 이것을 선법을 더해서 후퇴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 것이라고 한다.

비구가 이렇게 관찰하면 반드시 이익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나는 탐욕이 많은가, 탐욕 없음이 많은가? 나는 성내는 마음이 많은가, 성내지 않는 마음이 많은가? 나는 수면에 얽매임이 많은가, 수면에 얽매이지 않음이 많은가? 나는 조롱하고 뽐냄이 많은가, 조롱하고 뽐내지 않음이 많은가? 나는 의혹이 많은가, 의심하지 않음이 많은가? 나는 몸으로 다툼이 많은가, 몸으로 다투지 않음이 많은가? 나는 더러운 마음이 많은가, 더럽지 않은 마음이 많은가?나는 믿음이 많은가, 믿지 않음이 많은가? 나는 정진이 많은가, 게으름이 많은가? 나는 기억이 많은가, 기억하지 못함이 많은가? 나는 선정[定]이 많은가, 선정이 없음이 많은가? 나는 나쁜 지혜가 많은가, 나쁘지 않은 지혜가 많은가?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탐욕과 성내는 마음ㆍ수면의 얽맴ㆍ조롱과 뽐냄ㆍ의혹ㆍ몸의 다툼ㆍ더러운 마음ㆍ믿지 않음ㆍ게으름ㆍ기억 못함ㆍ선정이 없음과 나쁜 지혜가 많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기 위해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후퇴하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사람이 불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급히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기 위해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탐욕 없음을 많이 행하고 또 성내는 마음ㆍ수면의 얽맴ㆍ들뜸이나 뽐냄ㆍ의혹ㆍ몸의 다툼ㆍ더러운 마음이 없고 믿음이 있고 정진과 기억과 선정이 있으며 나쁜 지혜가 없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이 법에 머물러 잊지 않고 후퇴하지 않고 수행하여 널리 펴기 위해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물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사람이 불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급히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이 법에 머물러 잊지 않고 후퇴하지 않고 수행하여 널리 펴기 위해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후퇴하지 않게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주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631자이다.

96)무경(無經) 제10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존자 사리자(舍梨子)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아직 들어보지 못한 법을 듣지 못하고 이미 들었던 법도 곧 잊으며, 또 본래부터 수행하고 널리 펴고 외워 익혀 그 지혜를 이해한 법이 있더라도 그것을 다시 기억하거나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청정한 법[淨法]이 쇠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아직 들어보지 못한 법은 곧 듣고 이미 들은 법도 잊어버리지 않으며, 또 본래부터 수행하고 널리 펴고 외워 익혀 그 지혜를 이해한 법을 늘 기억하여 안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청정한 법이 점점 증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합니다.
‘나는 탐욕이 있는가, 탐욕이 없는가? 나는 성내는 마음이 있는가, 성내는 마음이 없는가? 나는 수면에 얽매임이 있는가, 수면에 얽매임이 없는가? 나는 조롱하거나 뽐냄이 있는가, 조롱하거나 뽐냄이 없는가? 나는 의혹이 있는가, 의혹이 없는가? 나는 몸으로 다툼이 있는가, 몸으로 다툼이 없는가? 나는 더러운 마음이 있는가, 더러운 마음이 없는가? 나는 믿음이 있는가, 믿음이 없는가? 나는 정진이 있는가, 정진이 없는가? 나는 기억[念]이 있는가, 기억이 없는가? 나는 정(定)이 있는가, 정이 없는가? 나는 나쁜 지혜가 있는가, 나쁜 지혜가 없는가?’

여러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탐욕이 있고 성내는 마음ㆍ수면의 얽맴ㆍ조롱과 뽐냄ㆍ의혹ㆍ몸의 다툼과 더러운 마음이 있으며 믿음이 없고 정진과 기억ㆍ선정이 없으며 나쁜 지혜가 있다’고 알면 여러분, 그 비구는 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후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마치 사람이 불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급히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이 비구도 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후퇴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나는 탐욕이 없고 성내는 마음ㆍ수면의 얽맴ㆍ조롱과 뽐냄ㆍ의혹ㆍ몸의 다툼과 더러운 마음이 없으며, 믿음이 있고 정진ㆍ기억ㆍ선정이 있으며 나쁜 지혜가 없다’고 알면 그 비구는 이 착한 법에 머물러 잊지 않고 후퇴하지 않고 수행하여 널리 펴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근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후퇴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불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급히 방편을 써서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도 이 착한 법에 머물러 잊지 않고 후퇴하지 않고 수행하여 널리 펴고자 하므로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정진하기를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나아가 후퇴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가 이렇게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존자 사리자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팔리어로는 Ghositā이고 미음(美音) 혹은 묘음성(妙音聲)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구사미(拘舍彌:Kosambī)국에 살던 장자의 이름이다. 부처님께 귀의하고 동산과 정사를 보시하였다.

중아함경 제24권

승가제바 한역

9. 인품(因品)제4①
이 인품에는 총 열 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대인경(大因經)ㆍ염처경(念處經)ㆍ고음경(苦陰經) 상ㆍ하와
증상심경(增上心經)ㆍ염경(念經)과
사자후경(師子吼經)ㆍ우담바라경(優曇婆羅經)과
원경(願經)ㆍ상경(想經)이다.

97) 대인경(大因經) 제1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에 머무셨다.

그때 존자 아난은 한가히 홀로 지내면서 연좌(宴座)하여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 연기(緣起)는 매우 기이하고 지극히 깊으며 이해하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관찰하여 본 바로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
이에 존자 아난은 저녁때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한가히 홀로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연기는 매우 기이하고 지극히 깊으며 이해하기도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관찰하여 본 바로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이 연기는 지극히 얕고도 얕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마라. 무슨 까닭인가? 이 연기는 지극히 깊고 이해하기도 또한 매우 어렵다. 아난아, 이 연기를 참답게 알지도 못하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며 깨닫지 못하고 통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저 중생들은 베틀이 서로 얽매는 것 같고 넝쿨풀이 어지러운 것 같으며 바쁘고 부산하게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며 왔다 갔다 하면서 생사(生死)를 뛰어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난아, 그러므로 이 연기는 지극히 깊고 이해하기 또한 매우 어려운 줄 알아야 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늙고 죽음에 연(緣)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늙고 죽음에는 연이 있다’하고 대답하라. 또 어떤 이가 ‘늙고 죽음에는 어떤 연(緣)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생(生)에 인연한다’하고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생에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생에도 역시 연이 있다’하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생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유(有)에 인연한다’하고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유에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유에도 연이 있다’하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유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수(受:取)에 인연한다’하고 대답하라. 아난아, 만일 어떤 이가 ‘수에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수에도 역시 연이 있다’하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이가 ‘수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애(愛)에 인연한다’하고 이렇게 대답하라. 아난아, 이것을 ‘애(愛)를 인연하여 수(受)가 있고 수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으며 유를 인연하여 생(生)이 있고 생을 인연하여 노(老)ㆍ사(死)가 있으며 노ㆍ사를 인연하여 걱정[愁]과 슬픔[慼]이 있고 울음[啼哭]ㆍ걱정[憂]ㆍ괴로움[苦]ㆍ번민[懊惱]은 모두 노ㆍ사를 인연하여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苦陰)만 생긴다.

아난아, 생을 인연하여 노ㆍ사가 있으면 이것을 ‘생을 인연하여 노ㆍ사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생을 인연하여 노ㆍ사가 있다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생이 없다면 고기[魚]면 고기 종자[魚種], 새[鳥]면 새 종자[鳥種], 모기[蚊]면 모기 종자[蚊種], 용(龍)이면 용 종자[龍種], 신(神)이면 신 종자[神種], 귀신[鬼]이면 귀신 종자[鬼種], 하늘[天]이면 하늘 종자[天種], 사람[人]이면 사람 종자[人種] 등 아난아, 저마다의 중생들이 저마다의 처소[處]를 따라 생이 없을 것이다. 제각기 생이 없다면, 가령 생을 떠나더라도 노ㆍ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노ㆍ사의 원인[因], 노ㆍ사의 성취[習], 노ㆍ사의 근본[本], 노ㆍ사의 인연[緣]은 곧 이 생이다. 무슨 까닭인가? 생을 인연하여 곧 노ㆍ사가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유(有)를 인연하여 생(生)이 있으면 이것을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유가 없으면 고기면 고기 종자, 새면 새 종자, 모기면 모기 종자, 용이면 용 종자, 신이면 신 종자, 귀신이면 귀신 종자, 하늘이면 하늘 종자, 사람이면 사람 종자 등 아난아, 저마다의 중생들이 저마다의 처소[處]를 따라 유가 없을 것이다. 제각기 유가 없다면 가령 유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생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생의 원인, 생의 성취, 생의 근본, 생의 인연은 곧 이 유이다. 무슨 까닭인가? 유를 인연하여 곧 생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수(受)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으면 이것을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수가 없어 제각기 수가 없다면, 가령 수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다시 유가 있거나 유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유의 원인, 유의 성취, 유의 근본, 유의 인연은 곧 이 수(受)이다. 무슨 까닭인가? 수를 인연하여 곧 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애를 인연하여 수(受)가 있으면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수가 있다’고 말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애(愛)를 인연하여 수가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애가 없어 제각기 애가 없다면, 가령 애를 떠나더라도 마땅히 다시 수가 있거나 수가 성립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수의 원인, 수의 성취, 수의 근본, 수의 인연은 곧 이 애(愛)이다. 무슨 까닭인가? 애를 인연하여 곧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구함[求]이 있고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利]이 있으며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分]이 있고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染欲]이 있으며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著]이 있고 집착을 인연하여 아낌[慳]이 있으며 아낌을 인연하여 집[家]이 있고 집을 인연하여 지킴[守]이 있다고 말한다. 아난아, 지킴을 인연하기 때문에 곧 칼과 몽둥이ㆍ싸움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이 있으며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苦陰)만 생긴다. 아난아, 만일 지킴이 없어 제각기 지킴이 없다면, 가령 지킴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칼과 몽둥이ㆍ싸움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이 있고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칼과 몽둥이ㆍ싸움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키는 원인[因], 성취[習], 근본[本], 인연[緣]은 곧 이 지킴[守]이다. 무슨 까닭인가? 지킴을 인연하기 때문에 곧 칼과 몽둥이ㆍ싸움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이 있고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일으킨다. 이와 같이 구족하면 오로지 큰 고음만 생긴다.

아난아, 집[家]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으면 이것을 ‘집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집을 인연하여 지킴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집이 없어 제각기 집이 없다면, 가령 집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지킴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한다. 이 지킴의 원인, 지킴의 성취, 지킴의 근본, 지킴의 인연은 곧 이 집이다. 무슨 까닭인가? 집을 인연하여 곧 지킴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아낌[慳]을 인연하여 집이 있으면 이것을 ‘아낌을 인연하여 집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아낌을 인연하여 집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아낌이 없어 제각기 아낌이 없다면, 가령 아낌을 떠나더라도 집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집[家]의 원인, 집의 성취, 집의 근본, 집의 인연은 곧 이 아낌이다. 무슨 까닭인가? 아낌을 인연하여 곧 집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집착[著]을 인연하여 아낌[慳]이 있으면 이것을 ‘집착을 인연하여 아낌이 있다’고 한다. 아난아, 만일 집착이 없어 제각기 집착이 없다면 가령 집착을 떠나더라도 아낌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아낌의 원인,아낌의 성취, 아낌의 근본, 아낌의 인연은 곧 이 집착이다. 무슨 까닭인가? 집착을 인연하여 곧 아낌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욕심[欲]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으면 이것을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욕심이 없어 제각기 욕심이 없다면, 가령 욕심을 떠나더라도 집착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집착의 원인, 집착의 성취, 집착의 근본, 집착의 인연은 곧 이 욕심이다. 무슨 까닭인가?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분별[分]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으면 이것을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분별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다. 아난아, 만일 분별이 없어 제각기 분별이 없다면, 가령 분별을 떠나더라도 욕심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욕심의 원인, 욕심의 성취, 욕심의 근본, 욕심의 인연은 곧 이 분별이다. 무슨 까닭인가? 분별을 인연하여 곧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分]이 있으면 이것을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이익을 인연하여 분별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이익이 없어 제각기 이익이 없다면, 가령 이익을 떠나더라도 분별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분별의 원인, 분별의 성취, 분별의 근본, 분별의 인연은 곧 이 이익[利]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익을 인연하여 곧 분별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구함[求]을 인연하여 이익[利]이 있으면 이것을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구함이 없어 제각기 구함이 없다면, 가령 구함을 떠나더라도 이익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이익의 원인, 이익의 성취, 이익의 근본, 이익의 인연은 곧 이 구함이다. 무슨 까닭인가? 구함을 인연하여 곧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애(愛)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으면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다’고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애를 인연하여 구함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애가 없어 제각기 애가 없다면, 가령 애를 떠나더라도 구함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구함의 원인, 구함의 성취, 구함의 근본, 구함의 인연은 곧 이 애이다. 무슨 까닭인가? 애를 인연하여 곧 구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욕애(欲愛)와 유애(有愛) 이 두 법은 각(覺)을 인(因)하고 각을 연(緣)하여 오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각에 연(緣)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각에도 연이 있다’라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각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갱락(更樂)을 인연한다’라고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눈[眼]의 갱락이 없어 제각기 눈의 갱락이 없다면, 가령 눈의 갱락을 떠나더라도 눈의 갱락을 인연하여 생기는 낙각(樂覺)ㆍ고각(苦覺)ㆍ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귀ㆍ코ㆍ혀ㆍ몸도 역시 그러하며, 만일 뜻의 갱락이 없어 제각기 뜻[意]의 갱락이 없다면 가령 뜻의 갱락을 떠나더라도 뜻의 갱락을 인연하여 생기는 낙각ㆍ고각ㆍ불고불락각이 있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각의 원인, 각의 성취, 각의 근본, 각의 인연은 곧 이 갱락이다. 무슨 까닭인가? 갱락을 인연하여 곧 각(覺)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갱락에도 연(緣)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갱락에도 연이 있다’라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갱락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名色)을 인연한다’라고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명색을 인연하여 갱락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행하는 바와 연하는 바에 명신(名身)이 있다. 이 행을 떠나고 이 연을 떠나더라도 상대가 있는 갱락[有對更樂]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행하는 바와 연하는 바에 색신(色身)이 있다. 이 행을 떠나고 이 연을 떠나더라도 증어갱락(增語更樂)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가령 명신(名身)과 색신(色身)을 떠나더라도 마땅히 갱락이 있어 갱락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갱락의 원인, 갱락의 성취, 갱락의 근본, 갱락의 인연은 곧 이 명색이다. 무슨 까닭인가? 명색을 인연하여 곧 갱락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명색에도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에도 연이 있다’라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명색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식(識)을 인연한다’라고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하니, 이른바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식이 어머니 태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이 몸을 이루는 명색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식이 태에 들어갔다가 곧 나온다면 명색이 정(精)을 만나겠는가?”

“만나지 못합니다.”

“아난아, 만일 어린 소년과 소녀의 식(識)이 처음부터 끊어지고 부서져서 없다면 명색이 더 자랄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명색의 원인, 명색의 성취, 명색의 근본, 명색의 인연은 곧 이 식이다. 무슨 까닭인가? 식을 인연하여 곧 명색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식에도 연이 있는가?’라고 묻거든 마땅히 ‘식에도 역시 연이 있다’라고 대답하라. 만일 어떤 사람이 ‘식에는 어떤 연이 있는가?’하고 묻거든 마땅히 ‘명색을 인연한다’라고 대답하라.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명색을 인연하여 식이 있는 것이다. 아난아, 만일 식이 명색을 얻지 못하고 만일 식이 명색에 서지도[立] 않고 의지하지도 않는다면, 식은 과연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괴로움이 있겠는가?”

“없습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식의 원인, 식의 성취, 식의 근본, 식의 인연은 곧 이 명색이다. 무슨 까닭인가?명색을 인연하여 곧 식이 있기 때문이다.
아난아, 이것을 명색을 인연하여 식이 있고 식을 인연하여 또한 명색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말을 보태고 거듭 말을 보태어 설명하고 전하고 전하여 설명하며 주장할 만한 것이 있게 되니, 그것은 곧 ‘식과 명색은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神)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하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건대 그것을 해설하여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겠다.”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神)이라 보고 어떤 사람은 각을 신이라 보지 않으면서 신(神)은 능히 깨닫고 또 신법(神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본다. 또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이라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3각(覺) 곧 낙각(樂覺)ㆍ고각(苦覺)ㆍ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는데, 너는 이 3각에서 어느 각을 신이라고 보는가?’하고 물어야 한다. 아난아, 마땅히 다시 그에게 말해야 한다. 만일 낙각을 깨닫는다면 그때 그는 2각 곧 고각ㆍ불고불락각이 멸하고 오직 낙각만을 깨달을 것이다. 낙각은 무상(無常)의 법이며 괴로움[苦]의 법이며 멸하는[滅] 법이니, 만일 낙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만일 다시 1각 곧 고각이 있으면, 그는 그때에는 2각 곧 낙각ㆍ불고불락각이 멸하고 다만 고각만을 깨닫는다. 고각은 무상의 법이며 괴로움의 법이며 멸하는 법이니, 만일 고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만일 다시 1각 곧 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 있으면, 그때 그는 2각 곧 낙각ㆍ고각이 멸하고 다만 불고불락각만을 깨닫는다. 불고불락각은 무상의 법이며 괴로움의 법이며 멸하는 법이다. 만일 불고불락각이 이미 멸해 버리면 그는 신이 멸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아난아, 그가 이와 같은 무상의 법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떠나고서도 마땅히 다시 각을 신이라고 보겠는가?”

“아닙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그가 이와 같은 무상의 법에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떠나기만 한다면 다시는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못할 것이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각을 신이라고 보지 않으면서, 신(神)은 능히 깨닫고 신법(神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네게 만일 각이 없다면 깨달을 수가 없어 응당 이것은 내 소유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아난아, 그가 다시 이렇게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면서도 신은 능히 깨닫고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그는 이와 같이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면서 신은 능히 깨닫고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보거든 마땅히 그에게 말하기를 ‘네게 만일 각이 없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신이 각을 떠나면 응당 신은 청정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아난아, 그가 다시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아난아, 그러므로 그는 응당 이와 같이 ‘각을 신이 아니라고 보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다만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한다. 아난아,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건대 그것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해 그 뜻을 분별하리라.”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떤 사람은 각(覺)을 신(神)이라고 보지 않고 또한 신이 능히 깨닫거나 신법도 능히 깨닫는다고 보지 않으며 또한 신은 깨닫는 바가 없다고도 보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보지 않은 뒤에는 곧 이 세간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는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는 곧 피로해하지 않으며 피로해하지 않은 뒤에는 곧 열반에 든다. 그래서 ‘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아난아, 이것이 거듭 거듭 말을 보태어 설명하고 전하고 전하여 설명하며 주장할 만한 것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알면 곧 받아들임[所受]이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이렇게 바르게 해탈하면 그는 다시 여래는 마침이 있다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없다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있으면서 마침이 없다고 보거나 여래는 마침이 있는 것도 마침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보는 일이 없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 고 하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오직 원하건대 그것을 해설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리라.”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떤 사람은 소색(少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무량색(無量色)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소색(少色)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소무색(少無色)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또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무량무색(無量無色)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소색을 신이라 하여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며, 만일 소색(少色)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지만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무량색을 신이라 하여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며, 만일 무량색(無量色)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는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소무색(少無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지금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며, 만일 소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고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도 않지만, 무량무색(無量無色)을 신(神)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면 그는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볼 것이며, 만일 무량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여 그는 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고 하며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한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한다고 한다.

아난아, 무엇을 어떤 사람이 신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니,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그것을 해설해 주십시오. 저는 그것을 들은 뒤라야 널리 그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너를 위하여 그 뜻을 분별하겠다.”
존자 아난이 분부를 받아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소무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또한 무량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소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만일 소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만일 무량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금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만일 소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소무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아난아,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면,그는 지금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으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도 또한 신이 있다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보지 않을 것이며, 만일 무량무색을 떠나더라도 또한 이러이러하다 생각하지 않고 또한 이렇게 늘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난아,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주장하고 또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무량무색을 신이라 하지 않고 견해에 집착하고 또 집착하지도 않는다. 아난아,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신이 없다고 주장하고 또 주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7식주(識住)와 2처(處)가 있다. 어떤 것을 7식주라고 하는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有色衆生]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인간과 욕계천(欲界天)이다. 이것을 제1식주(識住)라고 한다. 다시 또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초선천(初禪天)에 태어나 요절하지 않고 사는 범천(梵天)을 말한다. 이것을 제2식주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황욱천(晃昱天)이다. 이것을 제3식주라고 한다. 또 아난아,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변정천(遍淨天)이다. 이것을 제4식주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색(色)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 약간의 생각도 없어, 무량공처(無量空處)인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곧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이다. 이것을 제5식주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나 무량식처(無量識處)인 이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곧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이다. 이것을 제6식주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량식처를 벗어나 무소유처(無所有處)인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곧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다. 이것을 제7식주라고 한다.

아난아, 어떤 것을 2처(處)라고 하는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생각[想]도 없고 감각[覺]도 없으니, 무상천(無想天)이다. 이것을 제1처라고 한다. 다시 아난아, 어떤 색이 없는 중생들은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나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인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곧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想處天)이다. 이것을 제2처라고 한다.

아난아, 제1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인간과 욕계천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識住)를 알고 식주의 성취[習]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2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다른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초선천(初禪天)에 태어나 요절하지 않고 오래 사는 범천(梵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3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황욱천(晃昱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4식주라는 것은 어떤 색이 있는 중생들은 서로 같은 몸에 서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곧 변정천(遍淨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5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색(色)이란 생각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여 약간의 생각도 없으면, 무량공처(無量空處)인데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6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나면 무량식처(無量識處)인데, 이 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7식주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량식처(無量識處)를 벗어나면 무소유처(無所有處)인데,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식주를 알고 식주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식주를 좋아하고 그 식주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1처라는 것은 색이 있는 중생으로서 생각[想]도 없고 감각[覺]도 없는 것이니, 곧 무상천(無想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 처(處)를 알고 그 처의 성취를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처를 좋아하고 그 처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제2처라는 것은 색이 없는 중생이 일체의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벗어나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인데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곧 비유상비무상처천(非有想非無想處天)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그곳을 알고 그곳의 성취를 알고 그 멸함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근심을 알고 그것을 벗어날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안다면, 아난아, 이 비구는 그래도 그 처를 좋아하고 그 처에 집착하여 머물려고 생각하겠느냐?”

“아닙니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저 7식주(識住)와 2처(處)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아 해탈을 얻으면 그를 비구 아라하(阿羅訶)라 하고 혜해탈(慧解脫)이라 부른다.

아난아, 8해탈(解脫)이 있으니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색(色)을 색(色)으로 관찰하니, 이것을 제1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안으로 색상(色想)이 없이 밖으로 색을 관찰하니, 이것을 제2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정해탈(淨解脫)을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3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일체의 색상(色想)을 벗어나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약간의 생각도 없는 무량공처, 이 공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4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일체의 무량공처(無量空處)를 벗어난 무량식처(無量識處),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5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일체의 무량식처를 벗어난 무소유처(無所有處),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6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는데 이것을 제7해탈이라고 한다. 다시 다음에는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상(想)과 지(知)가 멸한 해탈(解脫)을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고 지혜로 모든 누진지(漏盡知)를 관하여 아는데 이것을 제8해탈이라고 한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저 7식주와 2처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알고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아 해탈을 증득하고 또 이 8해탈을 순역(順逆)으로 해서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또한 지혜로 관찰하여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그를 비구 아라하라 하고 구해탈(俱解脫)이라고 부른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대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5,472자이다.

98) 염처경(念處經) 제2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檢磨瑟曇)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을 깨끗하게 하고 걱정과 두려움에서 제도하며 고뇌를 없애고 슬픔을 끊고 바른 법을 얻게 하는 도(道)가 있으니, 곧 4념처(念處)이다. 과거의 모든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모두 5개(蓋)1)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覺支)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無上正盡之覺)을 얻으셨다. 또 미래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도 다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지금 현재의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으로서 나도 또한 5개와 마음의 번뇌[心穢]와 지혜의 미약함을 끊고 마음을 세워 4념처에 바르게 머무르고 7각지를 닦아 위없는 정진의 깨달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몸[身]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이고 이와 같이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며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이다.
어떤 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하는가? 비구는 다니면[行] 다니는 줄을 알고 머물면[住] 머무는 줄을 알며 앉으면[坐] 앉은 줄 알고 누우면[臥] 누운 줄 알며 자면 자는 줄 알고 깨면 깬 줄 알며 자다 깨면 자다 깨는 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內身]을 몸[身]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外身]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明]이 있고 통달함[達]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고 남[出入]을 바르게 알고 굽히고 펴거나 낮추고 우러르는 것을 분별하고 잘 관하여 몸가짐과 거동에 질서가 있고, 승가리(僧伽梨)와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 다니고 머물거나 앉고 눕거나 자고 깨거나 말하고 침묵하는 것을 다 바르게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善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니, 마치 목수나 목수의 제자가 먹줄을 나무에 튀기고 나서 곧 날카로운 도끼로 쪼아 곧게 다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착한 법의 생각으로써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서, 생각을 몸에 두어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인 채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하니, 마치 두 역사(力士)가 나약한 한 사람을 붙잡고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마음대로 두드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잇몸 천장에 붙이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다스려서 다스려 끊고 없애 그치게 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고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들숨[入息]을 생각하되 곧 들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고 날숨[出息]을 생각하되 곧 날숨을 생각하는 줄을 알며 들숨이 길면 곧 들숨이 긴 줄을 알고 날숨이 길면 곧 날숨이 긴 줄을 알며 들숨이 짧으면 곧 들숨이 짧은 줄을 알고 날숨이 짧으면 곧 날숨이 짧은 줄을 알며 온몸으로 숨을 들이쉬는 것을 배우고 온몸으로 숨을 내쉬는 것을 배우며 몸의 행[身行]을 그치고 숨 들이쉬는 법을 배우고 입의 행[口行]을 그치고 숨 내쉬는 법을 배운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목욕하는 도구를 만드는 어떤 사람이 그릇에 가루비누[澡豆]를 담아 물과 섞어서 덩어리로 만든 것을 물에 가져다 담그면 그 물이 윤택해지는데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욕망을 여의고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하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산의 샘물이 청정하여 흐리지 않고 충만하게 흘러 넘쳐 사방의 물이 흘러들어갈 길이 없으면,곧 그 샘 밑바닥에서 저절로 솟아나는 물은 밖으로 흘러 넘쳐 산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되 두루 충만하여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선정에서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기쁨[喜]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樂]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푸른 연꽃이나 붉고 빨갛고 흰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 물밑에 있으면, 그 뿌리와 줄기와 꽃과 잎은 모두 촉촉하고 윤택하며 두루 충만하게 되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기쁨이 없는 데서 생겨난 즐거움으로 몸을 적시고 윤택하게 하며 두루 충만하게 하면, 기쁨이 없는데서 생겨난 즐거움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속에서 청정한 마음으로 뜻을 터득하여 두루 충만하게 성취하여 노닐면, 청정한 마음은 온몸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마치 어떤 사람이 7주(肘)나 8주 되는 옷을 입으면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그 몸을 감싸지 못하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청정한 마음이 온몸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게 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광명상(光明想)을 생각하여 잘 받아 지니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여 앞에서와 같이 뒤에서도 또한 그러하고 뒤에서와 같이 앞에서도 또한 그러하며, 낮과 같이 밤에도 그러하고 밤과 같이 낮에도 그러하며, 아래서와 같이 위에서도 그러하고 위에서와 같이 아래서도 그러하다. 이렇게 뒤바뀌지 않고 마음에 얽매임 없이 광명심을 닦으면 마음은 끝내 어둠에 덮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觀相]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하는데, 마치 어떤 사람이 앉아서 누운 사람을 관찰하고 누워서 앉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관찰하는 모습을 잘 받아들이고 생각한 바를 잘 기억한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거나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더러운 것으로 충만해 있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ㆍ털ㆍ손톱ㆍ이ㆍ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심장ㆍ콩팥ㆍ간ㆍ허파ㆍ큰창자ㆍ작은창자ㆍ지라ㆍ밥통ㆍ똥ㆍ골ㆍ뇌수[腦根]ㆍ눈곱ㆍ땀ㆍ눈물ㆍ가래침ㆍ고름ㆍ피ㆍ기름ㆍ골수ㆍ침ㆍ쓸개ㆍ오줌이 있다.’
마치 그릇에 몇 가지 종자(種子)를 담은 것 같아서 눈이 있는 사람은 다 분명히 본다. 곧 벼나 조의 종자나 갓ㆍ무ㆍ겨자의 종자와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은 어디 있거나 좋고 밉거나 머리에서 발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더러운 것이 충만해 있다고 관찰한다.
‘내 이 몸 가운데에는 머리털ㆍ털ㆍ손톱ㆍ이ㆍ추하고 곱고 엷은 살갗ㆍ가죽ㆍ살ㆍ힘줄ㆍ뼈ㆍ심장ㆍ콩팥ㆍ간ㆍ허파ㆍ큰창자ㆍ작은창자ㆍ지라ㆍ밥통ㆍ똥ㆍ골ㆍ뇌수ㆍ눈곱ㆍ땀ㆍ눈물ㆍ가래침ㆍ고름ㆍ피ㆍ기름ㆍ골수ㆍ침ㆍ쓸개ㆍ오줌이 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하는 것이다.
‘내 몸에는 흙의 요소[地界]ㆍ물의 요소[水界]ㆍ불의 요소[火界]ㆍ바람의 요소[風界]ㆍ허공의 요소[空界]ㆍ의식의 요소[識界]가 있다.’
마치 백정이 소를 잡아 껍질을 벗겨 땅에 펴고 그것을 여섯 동강으로 가르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있는 모든 경계를 관찰한다.
‘내 몸에는 흙의 요소ㆍ물의 요소ㆍ불의 요소ㆍ바람의 요소ㆍ허공의 요소ㆍ의식의 요소가 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가 저 송장이 하루ㆍ이틀 혹은 엿새나 이레가 되어 까마귀나 솔개[鵄]에게 쪼이고 승냥이나 이리에게 먹히며 불에 타고 땅에 묻혀 다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다. 관찰한 뒤에는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해골이 푸른빛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반쯤 남은 뼈 사슬이 땅에 뒹구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이 가죽과 살과 피가 분리되어 오직 힘줄만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마디가 분리되어 여러 곳에 흩어져 발 뼈ㆍ장딴지 뼈ㆍ넓적다리뼈ㆍ허리뼈ㆍ등뼈ㆍ어깨뼈ㆍ목뼈ㆍ머리뼈들이 제각기 다른 곳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역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는 것은 비구는 묘지에 버려진 몸의 뼈가 마치 소라[螺]처럼 희고 집비둘기처럼 푸르며 피를 칠한 것처럼 붉고 썩어 문드러지고 부서져 가루가 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을 관찰한 뒤에 자기에게 견준다.
‘이제 내 이 몸도 역시 이와 같아서 이 법이 함께하니 끝내 벗어날 길이 없다.’
이렇게 비구는 안 몸을 몸 그대로 관하고 바깥 몸을 몸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몸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몸을 몸 그대로 관한다면 이것을 몸을 몸 그대로 관하는 염처(念處)라고 한다.

어떤 것을 각(覺)을 각(覺)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하는가?비구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즐거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고 괴로운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로운 감각을 깨닫는 줄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깨닫는 줄 안다. 즐거운 몸[樂身]ㆍ괴로운 몸[苦身]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몸[不苦不樂身]과 즐거운 마음[樂心]ㆍ괴로운 마음[苦心]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마음[不苦不樂心]과 좋아하는 음식[樂食]ㆍ괴로운 음식[苦食]ㆍ괴롭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음식[不苦不樂食]과 즐거운 무식[樂無食]ㆍ괴로운 무식[苦無食]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식[不苦不樂無食]과 즐거운 욕심ㆍ 괴로운 욕심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욕심과 즐거운 무욕각[樂無欲覺]ㆍ괴로운 무욕각[苦無欲覺]도 또한 그러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달을 땐 곧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무욕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각[內覺]을 각 그대로 관하고 바깥 각[外覺]을 각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각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각을 각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한다.

어떤 것을 마음[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하는가? 비구는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성냄[恚]이 있고 성냄이 없는 것과 어리석음[癡]이 있고 어리석음이 없는 것과 더러움[穢]이 있고 더러움이 없는 것과 모임이 있고 흩어짐이 있는 것과 낮춤이 있고 높임이 있는 것과 작음이 있고 큼이 있는 것과 닦고[修] 닦지 않음과 정[定]하고 정하지 않은 것도 그러하며,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 있으면 해탈하지 않은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해탈한 마음이 있으면 해탈한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 마음[內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고 바깥 마음[外心]을 마음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마음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마음을 마음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한다.

어떤 것을 법(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하는가? 눈은 색을 연(緣)하여 안의 번뇌[內結]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結]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약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도 또한 그러하며 뜻은 법을 연하여 안의 번뇌가 생긴다. 비구는 안에 진실로 번뇌가 있으면 안에 번뇌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번뇌가 없으면 안에 번뇌가 없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안의 번뇌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안의 번뇌가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하니 곧 안의 6처(處)이다.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욕심이 있으면 욕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욕심이 없으면 욕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욕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욕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성냄[瞋恚]ㆍ수면[睡眠]ㆍ들뜸[掉悔]도 역시 그러하며, 안에 진실로 의심이 있으면 의심이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의심이 없으면 의심이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의심이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의심이 멸해 다시 생기지 않으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고 하니, 곧 5개(蓋)이다.

또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은 비구는 안에 진실로 염각지(念覺支)가 있으면 염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염각지가 없으면 염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염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염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또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택법(擇法)ㆍ정진(精進)ㆍ기쁨[喜]ㆍ쉼[息]ㆍ정(定)도 그러하며 비구는 안에 진실로 사각지(捨覺支)가 있으면 사각지가 있음을 사실 그대로 알고 안에 진실로 사각지가 없으면 사각지가 없음을 사실 그대로 알며 만일 아직 생기지 않은 사각지가 생기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만일 이미 생긴 사각지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고 쇠퇴하지도 않고 더욱 닦아 더하고 넓어지면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렇게 비구는 안의 법을 법 그대로 관하고 바깥 법을 법 그대로 관하여, 생각을 법에 두어서 앎이 있고 봄이 있으며 밝음이 있고 통달함이 있다. 이것을 비구가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것이라 하니, 곧 7각지(覺支)이다.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이렇게 조금이라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면 이것을 법을 법 그대로 관하는 염처라고 한다.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7년 동안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念處)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現法)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餘]이 있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다. 7년ㆍ6년ㆍ5년ㆍ4년ㆍ3년ㆍ2년ㆍ1년은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7개월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재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7개월ㆍ6개월ㆍ5개월ㆍ4개월ㆍ3개월ㆍ2개월ㆍ1개월은 그만두고,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이레 낮ㆍ 이레 밤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무르면 그는 반드시 2과(果)를 얻을 것이니, 현법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이레 낮ㆍ이레 밤이나 6ㆍ5ㆍ4ㆍ3ㆍ2일은 그만두고 하루 낮ㆍ하룻밤도 그만두고, 만일 어떤 비구ㆍ비구니가 잠깐 동안이라도 마음을 세워 바르게 4념처에 머물러 아침에 이렇게 행하면 저녁에는 반드시 승진(昇進)하게 될 것이며 저녁에 이렇게 행하면 아침에는 반드시 승진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범어로는 panca āvaraāni이며, 5장(障)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심성(心性)을 장애하여 선법(善法)을 낼 수 없게 하는 5법(法)을 말함. 첫째 탐욕개(貪欲蓋)로서 5욕(欲)에 집착하기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둘째 진에개(瞋恚蓋)로서 성냄 때문에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셋째 수면개(睡眠蓋)로서 마음이 흐려지고 몸이 둔해짐으로 인하여 심성을 장애하는 것이다. 넷째 조희개(調戱蓋)로서 마음이 들뜨고 희동함 때문에 심성을 장해하는 것이다. 다섯째 의개(疑蓋)로서 결연한 의지가 미약하여 법에 후퇴함으로써 심성을 장애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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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제25권

승가제바 한역

9. 인품제4②
99) 고음경(苦陰經) 제3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머무셨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점심 뒤에 조그마한 일로 강당에 모여 앉았다. 이때 많은 이학(異學)들이 오후에 천천히 걸어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 서로 인사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사문 구담(瞿曇)께서는 욕심[欲]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치고, 색(色)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치며, 각(覺)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우리도 또한 욕심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치고 색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치며 각을 알고 끊는 것을 가르칩니다. 사문 구담과 우리들의 이 두 가지 앎과 두 가지 끊음 중에 어느 것이 나으며 어떠한 차별이 있는가?

이에 모든 비구들은 많은 이학(異學)들의 말을 듣고 옳다고도 않고 그르다고도 않은 채 잠자코 일어나 자리를 뜨며 모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말의 뜻을 우리들은 세존에게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른바 많은 이학들과 서로 의논할 만한 것들을 모두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즉시 저 많은 이학들에게 이렇게 물어라.
‘여러분, 어떤 것을 욕심의 맛[味]이라 하고 어떤 것을 욕심의 환(患)이라 하며 어떤 것을 욕심의 출요(出要)라 하는가? 어떤 것을 색(色)의 맛이라 하고, 어떤 것을 색의 환이라 하며 어떤 것을 색의 출요라고 하는가? 어떤 것을 각(覺)의 맛이라 하고 어떤 것을 각의 환이라 하며 어떤 것을 각의 출요라고 하는가?’
모든 비구들아, 만일 너희들이 이렇게 물으면 저들은 그 말을 듣고 곧 서로 난처해하며 다른 일을 끌어다 말하며 점점 성이 나서 다투다가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 잠자코 물러갈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 세상의 하늘ㆍ마군ㆍ범(梵)ㆍ사문 범지 등 일체의 다른 무리들 중에 능히 이 뜻을 알아 해설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고 오직 여래나 여래의 제자한테서만 이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욕심의 맛[欲味]이라고 하는가? 곧 5욕(欲)의 공덕(功德)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기니, 이 욕심의 맛은 지극하여 다시금 이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또 우환도 매우 많은 것이다.

어떤 것을 욕심의 환[欲患]이라고 하는가? 족성자(族姓子)들은 그 기술에 따라 각자 생활해 가는데, 혹은 밭농사를 짓고 혹은 살아갈 방도를 세우며 혹은 글을 배우고 혹은 산술을 밝히며 혹은 공수(工數)를 알고 혹은 도장을 정교하게 새기며 혹은 글을 짓고 혹은 붓을 만들며 혹은 경서(經書)를 깨닫고 혹은 용맹스런 장군이 되며 혹은 왕을 받들어 섬긴다. 그들은 추울 때에는 추워하고 더울 때에는 더워하며 굶주리고 목마르고 피로하며 모기와 등에에게 뜯기면서 이러한 직업으로 돈이나 재물 구하기를 도모한다. 저 족성자들은 이러한 방편으로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구하다가 만일 돈이나 재물을 얻지 못하면 곧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시름하고 슬퍼하고 번민하며 마음에는 곧 어리석음이 생겨 이렇게 말한다.
‘헛되이 노력하고 헛되이 괴로워하면서 구했지만 아무런 결실이 없구나.’
저 족성자들은 이러한 방편으로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구하다가 만일 돈이나 재물을 얻으면 그는 곧 사랑하고 아껴 지켜 보호하고 몰래 감추어 둔다.

무슨 까닭인가?
‘내 이 재물을 왕에게 빼앗기거나 도둑을 맞거나 불에 타버리거나 썩어 없어지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하자. 재물을 꺼내 써 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고 혹 여러 사업을 해 보아도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지켜 보호하고 몰래 감추어 두었다가 만일 왕에게 빼앗기거나 도적이 겁탈하고 불에 타버리거나 썩어 없어지며 잃어버리게 되면 그들은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시름하고 슬퍼하고 번민하며 마음에는 곧 어리석음이 생겨 이렇게 말한다.
‘만일 오랫동안 사랑할 만하다고 여기는 것을 가지면 그는 곧 잃게 될 것이다.’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苦陰]이라고 하니 욕심을 인(因)으로 하고 욕심을 연(緣)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本]으로 하는 것이다.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因)으로 하고 욕심을 연(緣)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本]으로 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과 다투고 아들은 어머니와 다투며 부자ㆍ형제ㆍ자매ㆍ친족들이 계속 줄지어 서로 다툰다. 저들은 이미 이렇게 서로 다툰 뒤에는 어머니는 아들의 허물을 말하고 아들은 어머니의 허물을 말하며 부자ㆍ형제ㆍ자매ㆍ친족들끼리도 서로 허물을 말하는데, 하물며 다시 다른 이들이겠는가? 이것을 현법(現法)의 괴로움의 음[苦陰]이라고 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욕심을 인(因)으로 하고 욕심을 연(緣)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本]으로 하기 때문에 왕과 왕이 서로 다투고 범지와 범지가 서로 다투며 거사와 거사가 서로 다투고 백성과 백성이 서로 다투며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툰다. 그들은 다투어 서로 미워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무기로써 갈수록 서로에게 해를 더하니, 혹은 주먹질을 하거나 돌을 던지고 혹은 몽둥이로 치고 칼로 찍는다. 그들은 서로 싸울 때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며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고 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거나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싸움터에 들어가며 혹은 코끼리로써 싸우고 혹은 말ㆍ수레ㆍ보병(步兵)으로 혹은 남녀로써 싸운다. 그들은 싸울 때에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여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고 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거나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다른 나라를 공격해 빼앗고 성을 공격하고 마을을 파괴하면서 서로 격전하며 북을 치고 뿔 나발을 불며 큰 소리로 고함치고 혹은 몽둥이로 치고 혹은 창으로 혹은 날카로운 바퀴로 혹은 활을 쏘고 혹은 돌을 어지럽게 날리며 혹은 쇠뇌(大弩)로 혹은 벌겋게 달군 구리쇠 탄자를 퍼붓는다. 그들은 싸울 때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며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고 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고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촌락으로 들어가고 도읍으로 들어가며, 나라로 들어가고 성으로 들어가며 담을 뚫고 창고를 열어 재물을 겁탈하고 왕의 길을 끊으며 혹은 남의 거리에 가서 촌락을 부수고 도읍을 해치며 나라를 멸하고 성(城)을 부순다. 그 중에 혹은 왕의 신하에게 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는데, 손을 베고 발을 끊고 혹은 손과 발을 자르며 귀를 끊고 코를 베고 혹은 귀와 코를 자르며 혹은 난도질을 하며, 수염을 뽑고 머리털을 뽑고 혹은 수염과 머리털을 모두 뽑으며 혹은 우리에 가두고 옷으로 싸서 불에 태우며 혹은 모래로 덮으며 혹은 풀에 싸서 불에 태우며, 혹은 쇠 나귀의 뱃속에 넣고 혹은 쇠 돼지의 입안에 넣고 혹은 쇠 호랑이 입안에 넣고 태우며 혹은 구리쇠 솥 안에 넣고 혹은 쇠 솥 안에 넣어 지지며, 혹은 동강동강 끊으며 혹은 작살로 찌르고 혹은 쇠갈고리에 매달며 혹은 쇠 평상에 눕히고 끊는 기름을 부으며 혹은 쇠절구에 앉히고 쇠공이로 찧으며 혹은 뱀이 물게 하고 혹은 채찍으로 치며 혹은 작대기로 때리고 혹은 몽둥이로 두들기며 혹은 산 채로 높은 가지에 꿰고 혹은 그 목을 벤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며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니,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한다. 그는 훗날에 병이 들어 자리에 들고 혹은 땅에 앉거나 누우면 괴로움이 몸을 핍박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조금도 즐거워하지 못한다. 그가 만일 몸으로 악행을 하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질렀다면 그는 죽음에 임박해서 앞에 장막이 드리워지는데, 마치 해가 지려 할 때에 큰 산등성이 그림자가 땅을 덮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가 만일 몸으로 악행을 하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질렀다면 앞에 장막이 드리워진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본래의 악행이 앞에서 나를 덮는구나. 나는 본래 복된 업을 짓지 않고 악업을 많이 지었다. 만일 흉악하고 사나운 짓을 하여 오직 죄를 행하고 복을 짓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았으며 두려워한 바가 없고 의지한 곳이 없으며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그곳에 날 것이다.’
그래서 뉘우치지만 뉘우치는 사람이 선하지 않으므로 죽으면서 복 없이 목숨을 마치게 된다.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苦陰]이라고 하는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한다. 그는 몸과 입과 뜻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이것을 후세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을 욕심의 환(患)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욕심의 출요(出要)라고 하는가? 만일 욕심을 끊어 없애고 욕심을 버려 여의며 욕심을 멸하여 욕심이 다하고 욕심을 건너 뛰어 벗어나면 이것을 욕심의 출요(出要)라고 한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욕심의 맛[欲味]과 욕심의 환[欲患]과 욕심의 출요[欲出要]를 참답게 알지 못한다면 그는 마침내 스스로도 그 욕심을 끊을 수 없을텐데, 하물며 다시 다른 이의 욕심을 끊을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욕심의 맛과 욕심의 환과 욕심의 출요를 참답게 안다면 그는 스스로도 없앨 수 있고 또한 능히 다른 이의 욕심도 끊을 수 있다.

어떤 것을 색의 맛[色味]이라고 하는가? 만일 찰리녀(刹利女)나 범지ㆍ거사ㆍ기술자[工士]의 여자가 나이 14ㆍ5세가 되면, 그녀는 그때 아름다운 모습이 가장 묘하다. 만일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인으로 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연으로 하여 즐거움을 내고 기쁨을 내면 이것은 지극한 색의 맛으로써 다시 이보다 더한 것이 없고 우환거리도 매우 많다.

어떤 것을 색의 환[色患]이라고 하는가? 만일 그 여인이 훗날 몹시 쇠하고 늙어 머리가 희고 이는 빠지며 등은 꼬부라지고 다리가 뒤틀려 지팡이를 의지하여 다니며 젊음은 날로 쇠하여 수명이 곧 다하려 하며 몸은 떨리고 모든 기관이 허물어지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했었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또 만일 그 여인이 병이 있어 자리에 들고 혹은 땅에 앉거나 누우며 괴로움이 몸을 핍박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본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했었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또 만일 그 여인이 죽어, 혹 1, 2일 내지 6, 7일이 지나 까마귀나 솔개에게 쪼이고 승냥이나 이리에게 먹히며 불에 태워지고 땅에 묻히며 모두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했었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또 만일 묘지에 버려진 그 여인의 해골이 푸른빛으로 썩어 문드러지고 반쯤 남은 뼈 사슬이 땅에 뒹구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혹 본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했었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또 만일 그 여인이 묘지에 버려져 가죽과 살과 피는 분리되고 오직 힘줄만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본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했었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또 만일 그 여인이 묘지에 버려져 뼈마디가 풀리고 여러 곳에 흩어져 발 뼈ㆍ장딴지 뼈ㆍ넓적다리뼈ㆍ허리뼈ㆍ등뼈ㆍ어깨뼈ㆍ목뼈ㆍ머리뼈들이 각각 다른 곳에 뒹굴고 있는 것을 본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본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또 만일 그 여인이 묘지에 버려져 뼈가 마치 소라처럼 희어지고 마치 집비둘기 빛깔처럼 푸르며, 피를 칠한 것처럼 붉고 썩어 문드러지고 부서져 가루가 된 것을 본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본래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그것이 없어지니 걱정이 생기겠는가?”

“그렇습니다.”

“이것을 색의 환이라고 한다.

또 어떤 것을 색의 출요[色出要]라고 하는가? 만일 색을 끊어 없애고 색을 버리고 여의어 색이 멸해 색이 다하고 색을 건너 뛰어 벗어나게 되면 이것을 색의 출요라고 한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색의 맛[色味]과 색의 환[色患]과 색의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는 끝내 스스로도 그 색을 끊지 못할 텐데, 하물며 다시 다른 이의 색을 끊어줄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색의 맛과 색의 환과 색의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는 스스로도 없앨 수 있고 또한 능히 다른 이의 색도 끊어줄 수 있다.

어떤 것을 각의 맛[覺味]이라고 하는가?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그때에는 스스로 해치기를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남 해치기를 생각하지도 않는다. 만일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각의 즐거운 맛[覺樂味]이라고 한다. 무슨 까닭인가? 해치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즐거움을 성취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각의 맛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각의 환[覺患]이라고 하는가? 각이란 무상한 법[無常法]이며 괴로움의 법[苦法]이며 멸의 법[滅法]이니 이것을 각의 환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각의 출요[覺出要]라고 하는가? 만일 각을 끊어 없애고 각을 버려 여의며 각을 멸하여 각이 다하고 각을 건너 뛰어 벗어나면 이것을 각의 출요라고 한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각의 맛[覺味]과 각의 환[覺患]과 각의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그는 끝내 스스로도 그 각을 끓을 수 없을 텐데 하물며 다시 다른 이의 각을 끊어줄 수 있겠는가?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각의 맛과 각의 환과 각의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는 스스로도 없앨 수 있고 또한 능히 다른 이의 각도 끊어줄 수 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고음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165자이다.

100) 고음경(苦陰經) 제4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기수(釋羈瘦)를 유행하실 때에 가유라위(加維羅衛)의 니구류원(尼拘類園)에 머무셨다.

그때 석마하남(釋摩訶男)은 오후에 이리저리 서성이다 부처님 처소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법[世尊法]은 제 마음속의 세 가지 번뇌[三穢], 곧 물들어 탐하는 마음의 번뇌[染心濊]ㆍ성내는 마음의 번뇌[恚心穢]ㆍ어리석은 마음의 번뇌[癡心穢]를 멸하게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법을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제 마음속에는 다시 탐하는 법ㆍ성내는 법ㆍ어리석은 법이 생깁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게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않고서 내 마음속에 다시 탐하는 법ㆍ성내는 법ㆍ어리석은 법을 생기게 하는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하남아, 너에게는 한 법이 없어지지 않았다. 곧 너는 집에 있으면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서 집 없이 도를 배우지 않았다. 만일 네가 이 한 법을 없애면 너는 반드시 집에 있지 않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서 집 없이 도를 배울 것이다. 너는 한 법을 없애지 않은 까닭에 집에 있으면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리고서 집 없이 도를 배우지 않는 것이다.”

이에 석마하남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 한 자락을 벗어 메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한 채 세존께 말씀드렸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위해 법을 설하셔서 제가 마음이 깨끗해져 의심을 없애고 도를 얻게 하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하남아, 5욕(欲)의 공덕이 있어 사랑할 만하고 생각할 만하며 기뻐할 만하고 욕심과 서로 응하여 사람을 즐겁게 한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곧 눈은 색을 알고 귀는 소리를 알며 코는 냄새를 알고 혀는 맛을 알며 몸은 감촉을 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왕이나 왕의 권속으로 하여금 안락과 환희를 얻게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이 욕심의 맛은 지극하여 다시금 이 보다 더한 것은 없고 또 우환도 매우 많은 것이다.

마하남아, 어떤 것을 욕심의 환[欲患]이라고 하는가? 마하남아, 족성자들은 그 기술에 따라 각자 생활해 가는데, 혹은 밭농사를 짓고 혹은 살아갈 방도를 세우며 혹은 글을 배우고 혹은 산술을 밝히며 공수(工數)를 알고 혹은 도장을 정교하게 새기며 혹은 글을 짓고 혹은 붓을 만들며 혹은 경서를 깨닫고 혹은 용맹스런 장군이 되며 혹은 왕을 받들어 섬긴다. 그들은 추울 때에는 추워하고 더울 때에는 더워하며 굶주리고 목마르고 피로하며 모기와 등에에게 뜯기면서 이러한 직업으로 돈이나 재물 구하기를 도모한다. 마하남아, 이 족성자들은 이러한 방편으로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구하다가 만일 돈이나 재물을 얻지 못하면 곧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시름하고 슬퍼하고 번민하며 마음에는 곧 어리석음이 생겨 이렇게 말한다.
‘헛되이 노력하고 헛되이 괴로워하면서 구했지만 아무런 결실이 없구나.’
마하남아, 저 족성자들은 이러한 방편으로 이렇게 행하고 이렇게 구하다가 만일 돈이나 재물을 얻으면 그는 곧 사랑하고 아껴 지켜 보호하고 몰래 감추어 둔다.

무슨 까닭인가?
‘내 이 재물을 왕에게 빼앗기거나 도둑을 맞거나 불에 타버리거나 썩어 없어지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하자. 재물을 꺼내 써 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고 혹 여러 사업을 해 보아도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지켜 보호하고 몰래 감추어 두었다가 만일 왕에게 빼앗기거나 도적에게 겁탈 당하고 불에 타거나 썩어 없어지며 잃어버리게 되면 그들은 곧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시름하고 슬퍼하고 번민하며 마음에는 곧 어리석음이 생겨 이렇게 말한다.
‘만일 오랫동안 사랑할 만하다고 여기는 것을 가지면 그는 곧 잃게 될 것이다.’
마하남아, 이러한 것을 현법(現法)의 괴로움의 음[苦陰]이라고 하는데 욕심을 인(因)으로 하고 욕심을 연(緣)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本]으로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들과 다투고 아들은 어머니와 다투며 부자ㆍ형제ㆍ자매ㆍ친족들이 연이어 서로 다툰다. 저들은 이미 이렇게 서로 다툰 뒤에는 어머니는 아들의 허물을 말하고 아들은 어머니의 허물을 말하며 부자ㆍ형제ㆍ자매ㆍ친족들끼리도 서로 허물을 말하는데 하물며 다시 다른 이들이겠는가? 마하남아,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고 하는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왕과 왕이 서로 다투고 범지와 범지가 서로 다투며 거사와 거사가 서로 다투고 백성과 백성이 서로 다투며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툰다. 그들은 다투어 서로 미워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무기로써 갈수록 서로에게 해를 더하니, 혹은 주먹질을 하거나 돌을 던지며 혹은 몽둥이로 치고 칼로 찍는다. 그들은 서로 싸울 때 혹은 죽거나 혹은 두려워하며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마하남아,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고 하는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거나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싸움터에 들어가며 혹은 코끼리로써 싸우고 혹은 말ㆍ수레ㆍ보병으로 혹은 남녀로써 싸운다. 그들은 싸울 때 죽거나 혹은 두려워하며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마하남아,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는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다시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거나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가서 다른 나라를 빼앗고 성을 공격하고 마을을 파괴한다. 서로 전투하며 북을 치고 뿔 나발을 불며 큰 소리로 고함치고 혹은 몽둥이로 치고 혹은 창으로 혹은 날카로운 바퀴로 혹은 활을 쏘고 혹은 돌을 어지럽게 날리며 혹은 쇠뇌[大弩]로 혹은 벌겋게 달군 구리쇠탄자를 퍼붓는다. 그들은 싸울 때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며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마하남아,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고 하는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다시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으며 창과 활과 화살을 가지고 혹은 칼과 방패를 잡고 촌락으로 들어가고 도읍으로 들어가며, 나라로 들어가고 성(城)으로 들어가며 담을 뚫고 창고를 열어 재물을 겁탈하고 왕의 길을 끊으며 혹은 남의 거리에 가서 촌락을 부수고 도읍을 해치며 나라를 멸하고 성을 부순다. 그 중에 혹은 왕의 신하에게 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는데, 손을 베고 발을 끊고 혹은 손과 발을 자르며 귀를 끊고 코를 베고 혹은 귀와 코를 자르며 혹은 난도질을 하며 수염을 뽑고 머리털을 뽑고 혹은 수염과 머리털을 모두 뽑으며 혹은 우리에 가두고 옷으로 싸서 불에 태우며 혹은 모래로 덮고 풀에 싸서 불에 태우며 혹은 쇠 나귀의 뱃속에 넣고 혹은 쇠 돼지의 입안에 넣고 혹은 쇠 호랑이 입안에 넣고 태우며 혹은 구리쇠 솥 안에 넣고 혹은 쇠 솥 안에 넣어 지지며 혹은 동강동강 끊으며 혹은 작살로 찌르고 혹은 쇠갈고리로 매달며 혹은 쇠 평상에 눕히고 끓는 기름을 부우며 혹은 쇠절구에 앉히고 쇠공이로 찧으며 혹은 뱀으로 물게 하고 혹은 채찍으로 치며 혹은 작대기로 때리고 혹은 몽둥이로 두들기며 혹은 산 채로 높은 가지에 꿰고 혹은 그 목을 벤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혹은 죽고 혹은 두려워하며 극심한 고통을 받는다. 마하남아,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고 하는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다시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한다. 그는 훗날 병이 들어 자리에 들고 혹은 땅에 앉거나 누우면 괴로움이 몸을 핍박하여 지극히 심한 고통을 받으면서 조금도 즐거워하지 못한다. 그가 만일 몸으로 악행을 하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질렀다면 그는 죽음에 임박해서 앞에 장막이 드리워지는데, 마치 해가 지려 할 때에 큰 산등성이 그림자가 땅을 덮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가 만일 몸으로 악행을 하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했다면 앞에 장막이 드리워진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본래의 악행이 앞에서 나를 덮는구나. 나는 일찍 복된 업을 짓지 않고 악업을 많이 지었다. 만일 흉악하고 난폭한 짓을 하여 오직 죄를 행하고 복을 짓지 않고 선을 행하지 않으며 두려워한 바가 없고 의지한 곳 없으며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 있다면 나도 반드시 그곳에 태어날 것이다.’
그래서 뉘우치지만 뉘우치는 사람이 선하지 않으므로 죽으면서 복 없이 목숨을 마치게 된다. 마하남아, 이것을 현법의 괴로움의 음이라고 하는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또 중생들은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기 때문에 몸의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의 악행을 행한다. 그는 몸과 입과 뜻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인연으로 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마하남아, 이것을 후세의 괴로움의 음이라 하는데 욕심을 인으로 하고 욕심을 연으로 하며 욕심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욕심이란 전혀 즐거움이 없고 한량없는 괴로움과 우환이 있는 것이다.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多聞聖弟子]로서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면 그는 욕심에 덮여 평정의 즐거움과 위없는 안식을 얻지 못한다. 마하남아, 이와 같이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점차 후퇴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나는 욕심이란 즐거움이 없고 한량없는 괴로움과 우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마하남아, 욕심에 덮이지 않고 또한 악에 얽매이지 않아 곧 평정의 즐거움과 위없는 안식을 얻었다. 마하남아, 그러므로 나는 욕심으로 말미암아 점차 후퇴하지는 않는다.

마하남아, 한때 나는 왕사성을 유행하다 비다라산(鞞哆邏山)의 선인들이 사는 칠엽옥(七葉屋)에 머물렀다. 나는 해거름에 연좌(宴坐)에서 일어나 광산(廣山)으로 갔다가 거기서 많은 니건타(尼犍陀)들이 앉지 않는 행을 닦으며 항상 서서 앉지 않고 매우 심한 고통을 받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가서 물었다.
‘니건타들이여, 그대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 앉지 않는 행을 닦으면서 항상 서서 앉지 않고 이러한 고통을 받는가?’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구담이시여, 우리에게는 존경하는 스승 니건타가 계신데, 이름을 친자(親子)라고 합니다. 그는 우리들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니건타들아, 너희들이 만일 전생에 착하지 않은 업을 지었다면 이 고행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없어질 것이다. 만일 지금 몸의 묘행을 보호하고 입과 뜻의 묘행을 보호하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업을 짓지 않을 것이다.〉’

마하남아, 나는 다시 물었다.
‘니건타들이여, 그대들은 그 존경하는 스승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는가?’
그들은 다시 내게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우리들은 존경하는 스승을 아무런 의혹 없이 믿습니다.’
마하남아, 나는 다시 물었다.
‘니건타들이여, 만일 그렇다면 그대들이 존경하는 스승 니건타는 과거에 여러 번 악하고 착하지 않은 업을 짓고 과거에 니건타가 되었다가 죽었으며, 지금은 인간으로 태어나 출가해 니건타가 되어 앉지 않는 행을 닦고 항상 서서 앉지 않으며 이렇게 고통을 받는 것인가? 그대들이나 다른 제자들도 역시 마찬가지인가?’
그러자 그들은 다시 내게 말했다.
‘구담이시여, 즐거움은 즐거움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빈비사라왕(頻鞞娑羅王)의 즐거움에 비하면 사문구담은 그만 못한 것과 같습니다.’

나는 다시 말하였다.
‘너희들은 어리석고 말한 것도 무의미하다. 무슨 까닭인가? 너희들은 착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으며 또 때를 알지 못하여 너희들은 이렇게 말했다.
〈빈비사라왕의 즐거움에 비하면 사문 구담은 그만 못하다.〉
니건타들이여, 그대들은 본래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누구의 즐거움이 나은가? 빈비사라왕인가, 사문 구담인가?〉
니건타들이여, 만일 내가 내 즐거움이 뛰어나서 빈비사라왕은 그만 못하다고 이렇게 말한다면, 니건타들이여, 그대들은 곧 빈비사라왕의 즐거움에 비하면 사문 구담은 그만 못하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모든 니건타들이 곧 이렇게 말했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이 지금 사문 구담께 여쭙겠습니다. 누구의 즐거움이 더 났습니까? 빈비사라왕입니까,구담입니까?’

나는 또 말했다.
‘니건타들이여, 나는 이제 그대들에게 물을 것이니 아는 대로 대답하라. 모든 니건타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빈비사라왕은 자기 뜻대로 잠자코 말이 없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이레 낮ㆍ이레 밤 동안 환희와 쾌락을 얻을 수 있겠는가?’
니건타들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6ㆍ5ㆍ4ㆍ3ㆍ2일이나 하루 낮ㆍ하룻밤 동안만이라도 환희와 쾌락을 얻을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니건타들이여, 내가 내 뜻대로 잠자코 말이 없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하루 낮ㆍ하룻밤 동안 환희와 쾌락을 얻겠는가?’
니건타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2ㆍ3ㆍ4ㆍ5ㆍ6일이나, 이레 낮ㆍ이레 밤 동안 환희와 쾌락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나는 다시 물었다.
‘모든 니건타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의 즐거움이 더 나은가? 빈비사라왕인가, 바로 나인가?’
니건타들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우리들이 사문 구담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 이해한 바로는 구담의 즐거움이 더 뛰어나고 빈비사라왕은 그만 못합니다.’

마하남아, 이런 까닭에 욕심이란 즐거움이 없고 한량없는 괴로움과 우환이 있는 줄을 안다. 만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多聞聖弟子]로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면 그는 욕심에 덮이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얽매여 평정의 즐거움[捨樂]과 위없는 안식을 얻지 못할 것이다. 마하남아, 이와 같이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욕심 때문에 후퇴하는 것이다. 마하남아, 나는 욕심이란 즐거움이 없고 한량없는 괴로움과 우환이 있는 줄을 알며 나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욕심에 덮이지 않고 또한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얽매이지 않아 곧 평정의 즐거움과 위없는 안식을 얻었다. 마하남아, 이런 까닭에 나는 욕심 때문에 후퇴하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마하남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고음경에 수록된 경문 글자 수는 2,254자이다

101) 증상심경(增上心經) 제5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로서 증상심(增上心)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자주 5상(相)을 생각해야 한다. 자주 5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 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定]을 얻을 것이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비구는 상(相)이 선(善)과 상응(相應)하는가를 생각하여 만일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그는 이 상(相)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상(相)이 선과 상응하는가를 생각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지 않게 한다. 그는 이 상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상이 선(善)과 서로 상응하는가를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하고 나면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마치 목수와 목수의 제자가 먹줄을 나무에 퉁긴 다음에 곧 날카로운 도끼로 깎고 다듬어 곧게 만드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이 상(相)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상이 선과 상응하는가를 생각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지 않게 한다. 그는 이 상으로 말미암아 다시 다른 상이 선과 상응하는가를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가 증상심(增上心)을 얻고자 하면 마땅히 자주 이 제1의 상(相)을 생각해야 한다. 이 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定]을 얻을 것이다.

또 비구여,상(相)이 선(善)과 상응하는가를 생각하여 만일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그는 이렇게 관찰한다.
‘이 생각은 악하여 재환(災患)이 있으며 이 생각은 착하지 않고 이 생각은 악하며 이 생각은 지혜 있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다. 이 생각이 만일 그득하게 갖추어지면 곧 신통(神通)을 얻지 못할 것이며 도(道)를 터득하지 못할 것이며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니, 그것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악을 관찰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마치 나이 젊고 단정하여 사랑스러운 사람이 목욕하여 몸을 씻고 밝고 깨끗한 옷을 입고 몸에 향을 바르고 수염과 머리를 고루고 지극히 정결하게 하였는데, 반쯤 뜯어 먹히고 푸르죽죽하게 부풀어 문드러지고 더러운 물이 흐르는 죽은 뱀이나 죽은 개나 죽은 사람의 송장을 그의 목에 걸친다면 그는 싫어하고 더럽게 여겨 기뻐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여, 그는 이렇게 관찰한다.
‘이 생각은 악하여 재환이 있으며 이 생각은 착하지 않고 이 생각은 악하며 이 생각은 지혜 있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다. 이 생각이 만일 그득하게 갖추어지면 곧 신통을 얻지 못할 것이며 도를 터득하지 못할 것이며 열반을 얻지 못할 것이니, 그것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악을 관찰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증상심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자주 이 제2의 상(相)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 상(相)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또 비구여, 상(相)이 선(善)과 상응한다고 생각할 때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고 이 생각은 악(惡)이며 우환이라고 관찰할 때에도 다시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그 비구는 응당 이 생각을 생각[念]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생각을 생각[念]하지 않으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도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마치 눈을 가진 사람은 색(色)이 눈동자로 들어오면 보려고 하지 않고 눈을 감거나 몸을 피해 가는 것과 같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한가? 색이 눈동자에 있더라도 그 사람은 색상(色相)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비구도 마땅히 이 생각을 생각[念]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을 생기게 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생각을 염하지 않으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증상심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자주 이 제3의 상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 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또 비구여 상(相)이 선(善)과 상응한다고 생각할 때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고 이 생각은 악이며 우환이라고 관찰할 때에도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며 생각을 생각[念]하지 않을 때에도 다시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그 비구는 마땅히 사행(思行)으로써 차츰 그 생각을 감소시켜야겠다고 생각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그가 마땅히 사행(思行)으로써 차츰 그 생각을 감소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마치 사람이 길을 갈 때에 너무 급하게 빨리 가다가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엇 하러 빨리 갈까? 나는 지금 천천히 걸어도 되지 않는가?’
그는 곧 천천히 가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엇 하러 이렇게 천천히 가는가? 차라리 서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는 곧 섰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엇 하러 섰는가? 차라리 앉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그는 곧 앉았다가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엇 하러 앉았는가? 차라리 눕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는 곧 눕는다.

이렇게 하여 그 사람은 차츰 몸의 추한 행동을 그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비구도 역시 이와 같아서 마땅히 사행(思行)으로써 그 생각을 차츰 감소시켜야겠다고 이렇게 생각하여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그가 마땅히 사행으로써 차츰 생각을 감소시켜야겠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증상심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자주 이 제4의 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 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또 비구여, 상이 선과 상응한다고 생각할 때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고 이 생각은 악이며 우환이라고 관찰할 때에도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며 생각을 염하지 않을 때에도 또한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고 마땅히 사유로써 차츰 생각을 감소시켜야겠다고 할 때에도 역시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비구는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구는 곧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윗잇몸 천장에 대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닦아 받아 지니고 항복받아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그가 마음으로써 마음을 닦아 받아 지니고 항복받으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니 마치 두 역사(力士)가 한 나약한 사람을 붙잡아 받아 가지고 항복받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아래윗니를 서로 붙이고 혀를 윗잇몸 천장에 대고 마음으로써 마음을 닦아 받아 지니고 항복받아서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그가 마음으로써 마음을 닦아 받아 지니고 항복받으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증상심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자주 이 5상(相)을 생각해야 한다. 자주 5상을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증상심을 얻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자주 이 5상을 생각해야 한다. 이 5상을 자주 생각하면 이미 생긴 착하지 않은 생각은 곧 멸하게 되고 나쁜 생각이 멸한 뒤에는 마음은 곧 항상 머물러 마음속에 있으면서 모든 것이 그쳐 쉬어버리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을 것이다.
만일 비구가 상이 선과 상응한다고 생각할 때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고 이 생각은 악이며 우환이라고 관찰할 때에도 역시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으며 생각을 생각[念]하지 않을 때에도 또한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고 만일 사행(思行)으로써 차츰 생각을 감소시켜야겠다고 생각할 때에도 또한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으며 마음으로써 마음을 닦아 받아 지니고 항복받을 때에도 또 나쁜 생각이 생기지 않으면 곧 자재를 얻어 생각하고 싶으면 곧 생각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면 곧 생각하지 않게 된다. 만일 비구가 생각하고 싶으면 곧 생각하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면 곧 생각하지 않게 된다면 이것을 비구가 모든 생각을 마음대로 하고 모든 생각을 자재하게 하는 자취[跡]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증상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456자이다.

102) 염경(念經) 제6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옛날 아직 무상정진각(無上正盡覺)을 깨닫지 못하였을 때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였다.
‘나는 차라리 모든 생각을 구별해 두 부분(分)으로 나누어 욕심의 생각[欲念]ㆍ성냄의 생각[恚念]ㆍ해침의 생각[害念]을 한 부분으로 하고 욕심이 없는 생각[無欲念]ㆍ성냄이 없는 생각[無恚念]ㆍ해침이 없는 생각[無害念]을 다시 한 부분으로 하자.’
나는 그 뒤에 곧 모든 생각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욕심의 생각ㆍ성냄의 생각ㆍ해침의 생각을 한 부분으로 하고 욕심이 없는 생각ㆍ성냄이 없는 생각ㆍ해침이 없는 생각을 한 부분으로 하였다. 나는 이렇게 행하여 멀리 떠나 혼자 있으면서 마음에 방일함 없이 부지런히 힘써 수행할 때에 욕심의 생각이 생겼다. 나는 곧 욕심의 생각이 생기면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고 둘을 함께 해치며 지혜를 멸하고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많아 열반을 증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고 둘을 함께 해치며 지혜를 멸하고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많아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곧 빨리 그것을 없앴다. 그러자 다시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이 생겼다. 나는 곧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이 생기면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고 둘을 함께 해치며 지혜를 멸하고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많아 열반을 증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며 둘을 함께 해치고 지혜를 멸하고 번거로움과 괴로움이 많아 열반을 얻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곧 빨리 그것을 없앴다.

나는 욕심의 생각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끊어 없애 버리며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이 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끊어 없애 버렸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한량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다음과 같다. 봄이 지난 뒤에는 밭에 종자를 뿌리기 때문에 방목(放牧)할 토지가 좁아지게 된다. 그래서 소치는 아이는 소를 들에 풀어놓는데 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면 소치는 아이는 곧 작대기를 가지고 가서 막는다. 무슨 까닭인가? 소치는 아이는 그 때문에 반드시 꾸지람을 받거나 매를 맞거나 결박당하거나 잘못이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치는 아이는 작대기를 가지고 가서 그것을 막는 것이다. 나도 역시 이와 같이 욕심의 생각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끊어 없애 버리며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끊어 없애 버렸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한량없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비구는 뜻[思]하는 바를 따라 생각[念]하는 바를 따라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만일 비구가 욕심의 생각을 많이 생각[念]하면 곧 욕심이 없는 생각을 버리고 욕심의 생각을 많이 생각[念]하기 때문에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만일 비구가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을 많이 생각[念]하면 곧 성냄 없고 해침 없는 생각을 버리고 성냄의 생각과 해침의 생각을 많이 염하기 때문에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한다. 이렇게 비구가 욕심의 생각을 여의지 않고 성냄의 생각을 여의지 않고 해침의 생각을 여의지 않으면 곧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와 시름[愁]ㆍ걱정[憂]ㆍ울음[啼哭]을 벗어나지 못하고 또한 일체의 괴로움을 여의지 못한다.

나는 이와 같이 행하여 멀리 떠나 혼자 있으면서 마음에 방일이 없이 부지런히 힘써 수행하여 욕심 없는 생각이 생겼다. 나는 곧 욕심 없는 생각이 생기면 자신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또한 둘을 함께 해치지 않으며 지혜를 닦고 번거롭고 괴롭지 않아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또한 둘을 함께 해치지 않으며 지혜를 닦고 번거롭고 괴롭지 않아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 빨리 닦아 익혀 널리 폈다. 그러다 다시 성냄 없는 생각과 해침 없는 생각이 생겼다. 나는 곧 성냄 없는 생각과 해침 없는 생각이 생기면 자신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또한 둘을 함께 해치지 않으며 지혜를 닦고 번거롭고 괴로움이 없어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또한 둘을 함께 해치지 않으며 지혜를 닦고 번거롭고 괴로움이 없어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 빨리 닦아 익혀 널리 폈다.

나는 욕심 없는 생각[無欲念]과 뜻이 많은 생각[多思念]이 생겼고 성냄 없는 생각[無恚念]ㆍ해침 없는 생각[無害念]ㆍ뜻이 많은 생각[多思念]이 생겼다.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뜻이 많은 생각은 몸으로 선정의 기쁨을 망각하게 해 곧 마음을 상하게 한다. 나는 차라리 안 마음을 다스려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어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하자.’

나는 뒤에 곧 안 마음을 다스려 항상 머물러 안에 있어서 그치고 쉬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선정을 얻어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였다. 나는 욕심 없는 생각을 낸 뒤에 다시 생각을 내어 법을 향하고 법을 따르며 성냄 없는 생각 해침 없는 생각을 낸 뒤에 다시 생각을 내어 법을 향하고 법을 따랐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기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치 가을이 지난 뒤에 모든 곡식을 추수해 마치면 소치는 아이가 소를 들과 밭에 방목할 때 ‘내 소를 저기에 무리 지어 놓아야겠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소치는 아이는 이런 이유로 꾸지람을 받거나 매를 맞거나 결박당하거나 잘못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내 소를 저기에 무리 지어 놓아야겠다’고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나도 또한 이와 같이 욕심 없는 생각을 낸 뒤에는 다시 생각을 내어 법을 향하고 법을 따르며 성냄 없는 생각 해침 없는 생각을 낸 뒤에는 다시 생각을 내어 법을 향하고 법을 따른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그로 말미암아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기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구는 뜻[思]하는 바에 따라 생각[念]하는 바에 따라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하게 된다. 만일 비구가 욕심 없는 생각을 많이 생각한다면 욕심의 생각을 버리고 욕심 없는 생각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하게 된다. 만일 비구가 성냄 없는 생각 해침 없는 생각을 많이 생각한다면 성냄의 생각 해침의 생각을 버리고 성냄 없는 생각 해침 없는 생각을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은 곧 그 가운데서 즐거워하게 된다. 그는 각(覺)과 관(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覺)도 없고 관(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1)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와 같이 선정의 마음이 청정하여 더러움도 없고 번뇌도 없으며 부드럽게 잘 머물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서 누(漏)가 다한 신통의 지혜로 향해 나아가 증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곧 이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苦集]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苦滅]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한 이 누(漏)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누의 발생을 알며 이 누의 소멸을 알고 이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 뒤에는 곧 욕루(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 비구는 욕심의 생각을 여의고 성냄의 생각을 여의며 해침의 생각을 여의어 곧 생ㆍ노ㆍ병ㆍ사와 시름ㆍ걱정ㆍ울음에서 해탈하게 되고 일체의 괴로움을 떠난다.

마치 어떤 한가한 곳에 큰 샘물이 있는데 그곳에서 노닐며 사는 사슴 떼가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사슴 떼를 위하여 이로움과 요익을 구하지 않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않아 평평하고 바른 길은 막고 나쁜 길 하나만 열어 큰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사람을 시켜 지키고 감시하게 하면 이렇게 하여 사슴 떼는 모두 죽고 말 것이다.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사슴 떼를 위하여 이로움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여 평평하고 바른 길을 열고 나쁜 길은 닫아 막으며 지키고 감시하던 사람도 물리치면 이렇게 하여 사슴 떼는 모두 편안히 구제를 받을 것이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이 비유를 들어 말해 그 뜻을 알게 하려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곧 그 취지를 아는데 이 비유에도 의미가 있다. 큰 샘물[大泉水]은 곧 5욕(欲)에 대한 사랑스러움과 즐거움이다. 어떤 것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눈은 빛깔을 알고 귀는 소리를 알며 코는 냄새를 알고 혀는 맛을 알며 몸은 촉감을 안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큰 샘물이란 이 5욕이며 사슴 떼란 이 사문과 범지들이다.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을 위하여 이로움과 요익을 구하지 않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로 마왕(魔王) 파순(波旬)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평평하고 바른 길은 막고 나쁜 길 하나만 연다는 것은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니 곧 욕심의 생각ㆍ성냄의 생각ㆍ해침의 생각이다. 나쁜 길이란 이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이다. 다시 나쁜 길이 있으니 곧 8사도(邪道)로서 삿된 견해(邪見)와 나아가 삿된 선정(邪定)에 이르기까지의 여덟 가지이다. 큰 구덩이를 만든다는 것은 무명(無明)임을 알아야 하고 사람을 시켜 지킨다는 것은 마왕 파순의 권속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그들을 위하여 이로움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한다는 것은 이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임을 마땅히 알아야 하고 나쁜 길[惡道]은 막고 평평하고 바른 길[平正路]을 연다는 것은 세 가지 착한 생각이니 곧 욕심 없는 생각ㆍ성냄 없는 생각ㆍ해침 없는 생각이다. 길[道]이란 이 세 가지 착한 생각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다시 길이 있다. 곧 8정도(正道)로서 바른 견해[正見]와 나아가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의 여덟 가지이다.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평평하고 바른 길을 열고 나쁜 길은 닫아 막으며 구덩이를 메워 평평하게 하고 지키는 사람을 물리치며 높은 스승이 제자를 위하는 것처럼 큰 사랑과 슬픔을 일으켜 가엾이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이로움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는 일을 나는 이제 다해 마쳤다.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노력하라.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이나 비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연좌(宴坐)하며 깊이 생각하되 방일하지 말고 더욱 부지런히 정진하여 후회가 없게 하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며 이것이 나의 훈계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부분과 더불어 많은 부분이 고려대장경에는 실(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중아함경 제2경인 주도수경(晝度樹經)과 제3경인 성유경(城喩經)에는 공(空)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실(室)은 공(空)의 오자(誤字)가 아닌가 추측된다. 따라서 실(室)로는 의미가 불분명하여 이하 모두 공(空)의 의미로 해석했다.

중아함경 제26권

승가제바 한역

9. 인품 제4③
103) 사자후경(師子吼經) 제7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가운데는 제1의 사문(沙門)과 제2ㆍ제3ㆍ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도(異道:外道)는 모든 것이 공(空)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 너희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師子吼)를 하여라. 비구들아, 혹 어떤 이학(異學)이 와서 너희에게 묻기를 ‘여러분, 그대들은 어떤 행(行)이 있고 어떤 힘[力]이 있으며 어떤 지혜가 있어서 그대들로 하여금 〈여기에는 제1의 사문과 제2ㆍ제3ㆍ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 도는 모든 것이 공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고 말하게 하는가? 그대들은 어떻게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를 하는가?’

라고 하거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그 이학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여라.
‘여러분 우리 세존께서는 지식[知]이 있으시고 견해(見解)가 있으십니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는 네 가지 법을 말씀하셨는데 이 네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이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제1의 사문과 제2ㆍ제3ㆍ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도는 모든 것이 공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
우리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를 합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여러분, 우리는 스승님을 믿고 법을 믿고 계덕(戒德)의 구족(具足)을 믿고 도를 같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깁니다. 여러분, 우리 세존께서는 지식이 있고 견해가 있으십니다.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는 이 네 가지 법을 말씀하시고 이 네 가지 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이렇게 말하게 하셨습니다.
〈여기 제1의 사문과 제2ㆍ제3ㆍ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도는 모든 것이 공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
우리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를 합니다.’

비구들아, 이학들은 혹 다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 우리도 역시 스승님을 믿으니 곧 우리 스승을 말하며 법을 믿으니 곧 우리 법을 말하며 계덕의 구족은 곧 우리 계율을 말하고 도를 같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니 곧 우리의 도를 같이 하는 출가자와 재가자들을 말합니다. 여러분, 사문 구담과 우리들의 이 두 가지 말에 어느 것이 낫고 어떤 뜻이 있으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그 이학자들에게 이렇게 물어라.
‘여러분 구경(究竟)을 하나라고 합니까, 구경을 많다고 합니까?’
비구들아, 혹 그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한 구경이 있되 많은 구경은 없습니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욕심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욕심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욕심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욕심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성냄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성냄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성냄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고 성냄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어리석음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어리석음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어리석음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어리석음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애욕이 있고 집착[受]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지혜가 없고 지혜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지혜가 있고 지혜를 말하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지혜가 있고 지혜를 말하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지혜가 없고 지혜를 말하지 않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다시 이학들에게 물어라.
‘여러분,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을 옳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면 비구들아, 혹 이학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 사람이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너희들은 그 이학들을 위하여 응당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러분, 그대들의 말처럼 한 구경이 있다는 것이 옳고 많은 구경이 있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욕심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욕심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성냄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성냄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어리석음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어리석음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지혜가 있고 지혜를 말하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지혜가 없고 지혜를 말하지 않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않으며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고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 자가 구경을 얻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한량없는 견해에 의지하면 그는 모든 것에 대해 있다는 견해[有見]와 없다는 견해[無見]의 두 가지 견해에 의지한다. 만약 있다는 견해에 의지하면 그는 곧 있다는 견해에 집착하고 있다는 견해만 쫓으며 있다는 견해에 머물러 없다는 견해를 미워하고 비난한다. 만일 없다는 견해에 의지하면 그는 곧 없다는 견해에 집착하고 없다는 견해만 좇으며 없다는 견해에 머물러 있다는 견해를 미워하고 비난한다.

어떤 사문 범지가 인(因)을 모르고 습(習:集)을 모르며 멸(滅)을 모르고 다함[盡]을 모르며 맛[味]을 모르고 환(患)을 모르며 출요(出要)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면 그는 모든 것에 욕심이 있고 성냄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있고 애욕이 있고 집착이 있으며 지혜가 없고 지혜를 말하지 않으며 미워함이 있고 다툼이 있다. 그는 곧 생ㆍ노ㆍ병ㆍ사를 떠나지 못하고 또한 시름과 슬픔ㆍ울음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을 벗어나지 못하며 괴로움의 끝[苦邊]을 얻지 못한다.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이 두 견해에 대해서 인(因)을 알고 습(習)을 알며 멸(滅)을 알고 다함[盡]을 알며 맛을 알고 환을 알며 출요를 사실 그대로 안다면 그는 모든 것에 욕심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고 애욕이 없고 집착이 없으며 지혜가 있고 지혜를 말하며 미워함이 없고 다툼이 없다. 그는 곧 생ㆍ노ㆍ병ㆍ사를 떠나게 되고 또한 시름과 슬픔ㆍ울음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을 벗어나게 되어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다.

혹 어떤 사문 범지는 집착[受]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욕심에의 집착[欲受]을 끊으라고 말하지만 계에의 집착[戒受]ㆍ견해에의 집착[見受]ㆍ나에의 집착[我受]을 끊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범지는 3처(三處:戒受ㆍ見受ㆍ我受)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욕심[欲]에의 집착과 계[戒]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말하지만 견해에의 집착과 나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범지는 2처(處)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또 어떤 사문 범지는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욕심에의 집착ㆍ계에의 집착ㆍ견해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말하지만 나에의 집착을 끊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범지는 1처(處)를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비록 집착 끊기를 말하지만 모든 집착을 끊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법(法)과 율(律)에 있어서는 혹 스승을 믿더라도 그것은 바른 것이 아니며 제1이 아니다. 만약 법을 믿더라도 또한 바른 것이 아니며 제1이 아니다. 혹 계덕(戒德)을 구족하더라도 또한 바른 것이 아니며 제1이 아니다. 도를 같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더라도 바른 것이 아니며 제1이 아니다.

만일 어떤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면 그는 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고 불린다. 그는 집착을 끊을 것을 말씀하시고 현법(現法)에서 모든 집착을 끊을 것을 말씀하시며 욕심에의 집착ㆍ계에의 집착ㆍ견해에의 집착ㆍ나에의 집착을 끊을 것을 말씀하신다. 이 4집착은 무엇을 인(因)하고 무엇을 습(習)하며 무엇을 좇아 나고 무엇을 근본으로 하는가? 이 네 가지 집착은 무명(無明)을 인으로 하고 무명을 습으로 하며 무명을 좇아 나고 무명을 근본으로 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무명(無明)이 이미 다하고 명(明)이 이미 생겼다면 그는 곧 그로부터 다시는 욕심에의 집착ㆍ계에의 집착ㆍ견해에의 집착ㆍ나에의 집착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집착을 가지지 않은 뒤에는 곧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은 뒤에는 곧 인연을 끊어 반드시 반열반(般涅槃)을 얻는다. 그리하여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러한 법과 율에 있어서는 만일 스승을 믿으면 그것은 바른 것이며 그것은 제1이다. 만일 법을 믿으면 그것은 바른 것이며 그것은 제1이다. 만일 계덕을 구족하면 그것은 바른 것이며 그것은 제1이다. 만일 도(道)를 같이 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정성껏 받들어 섬기면 그것은 바른 것이며 그것은 제1이다.(그러므로 너희들은 이렇게 말하라.)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런 행(行)이 있고 이런 힘[力]이 있으며 이런 지혜[智]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여기 제1의 사문과 제2ㆍ제3ㆍ제4의 사문이 있고 이 밖에 다시 다른 사문 범지는 없다. 이도(異道)는 모든 것이 공해서 사문 범지가 없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대중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렇게 바로 사자후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사자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690자이다.

104) 우담바라경(優曇婆邏經)1) 제8제2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成)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가란다원(竹林伽蘭哆園)에 머무셨다.

그때 어떤 한 거사가 있었는데 이름을 실의(實意)라고 하였다. 실의 거사는 이른 아침에 왕사성에서 나와 부처님께 나아가 공양하고 예로써 섬기고자 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우선 부처님께 가는 것을 그만두자. 세존께는 여러 비구들과 연좌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나는 차라리 우담바라(優曇婆邏)숲에 있는 이학(異學)들의 동산으로 가자.’
이에 실의 거사는 곧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으로 갔다.

그때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에는 무에(無恚)라고 하는 한 이학이 있었는데 그는 그들 가운데서 존경을 받아 이학들의 스승이 되었고 대중들의 존경을 받고 많은 사람을 항복받아 500이학들은 그를 추종하여 우두머리로 삼았다. 그는 대중 가운데서 요란스럽게 높고 큰 음성으로 조론(鳥論)ㆍ어론(語論)ㆍ왕론(王論)ㆍ적론(賊論)ㆍ투쟁론(鬪諍論)ㆍ음식론(飮食論)ㆍ의피론(衣被論)ㆍ부녀론(婦女論)ㆍ동녀론(童女論)ㆍ음녀론(淫女論)ㆍ세속론(世俗論)ㆍ비도론(非道論)ㆍ해론(海論)ㆍ국론(國論)을 설하였다. 이와 같이 갖가지 조론 등을 설하며 모두 그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때 이학 무에는 멀리서 실의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그 대중들에게 분부하여 조용하게 하였다.
“여러분, 그대들은 떠들지 말라. 잠자코 있기를 즐기고 잠자코 있으면서 제각기 몸을 단속하라. 왜냐하면 실의 거사가 오기 때문이니, 그는 사문 구담의 제자다. 또 그는 사문 구담의 제자로서 이름과 덕이 높고 훌륭하여 우두머리로 존중할 만하고 집에 머무는 거사로서 왕사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제1로 칠 것이다. 그는 말하지 않기를 즐기고 잠자코 있으면서 스스로 단속한다. 만일 그가 이 대중이 잠자코 있는 줄을 알면 그는 기꺼이 여기로 올 것이다.”
이에 이학 무에는 대중을 잠자코 있게 하고 자기도 잠자코 있었다.

그때 실의 거사는 이학 무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문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실의 거사는 말하였다.
“무에여, 우리 불세존께서는 일 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계시고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또한 사람도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불ㆍ세존께서 그와 같이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계시고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멀리 떠난 곳에 계시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고 안온하고 쾌락하십니다. 불세존께서 하루 낮과 하룻밤 동안 법회를 소집해 함께하신다 해도 오늘 그대와 그대의 권속들이 한 것과는 애초에 같지 않습니다.”

이에 이학 무에가 말하였다.
“거사여, 그만 두시오. 그대가 어떻게 알 수 있겠소? 사문 구담의 공허한 지혜의 해탈이라면 족히 말할 것도 없소. 혹 서로 맞는가[相應] 하면 서로 맞지 않으며 혹은 따르는가 하면 따르지 않소. 저 사문 구담은 가장자리[邊]로 가서 가장자리에 이르고 가장자리를 즐겨하여 가장자리에 이르며 가장자리에 머물러 가장자리에 이르는데 마치 애꾸눈 소가 변지(邊地)에서 먹이를 먹을 때 가장자리로 가서 가장자리에 이르고 가장자리를 즐겨하여 가장자리에 이르며 가장자리에 머물러 가장자리에 이르는 것과 같이 저 사문 구담도 또한 그와 같소. 거사여, 만일 저 사문 구담이 이 대중들에게 온다면 나는 한마디 말로 그를 쳐부수어 마치 빈 병을 놀리듯 할 것이오. 그리고 그에게 애꾸눈 소의 비유를 말할 것이오.”

이에 이학 무에는 자기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사문 구담이 혹 이 대중 가운데 오더라도 만일 반드시 오더라도 그대들은 공경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합장하지 말고 앉기를 청하지도 말라, 미리 한자리를 남겨 두었다가 그가 여기에 오거든 이렇게 말하라.
‘구담이여, 자리가 있으니 앉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연좌하고 계시다가 사람의 귀보다 훨씬 나은 청정한 하늘귀[天耳]로써 실의 거사가 이학 무에와 나눈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시고 해거름에 곧 연좌에서 일어나 우담바라숲에 있는 이학들의 동산으로 가셨다. 이학 무에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찬탄하여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오랫동안 여기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원컨대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제 약속을 어기는구나.’
세존께서는 그런 줄 아시고도 곧바로 자리에 앉으셨다. 이학 무에는 곧 세존과 서로 문안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무에여, 전에 실의 거사와 무슨 일을 의논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모여 앉았는가?”

이학 무에는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사문 구담은 어떤 법이 있어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가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안온을 얻게 하며 그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깨끗이 닦고 또 남을 위하여 설명하는가?’
구담이시여, 전에 실의 거사와 이런 일을 의논하였고 이 일로 말미암아 여기 모여 앉았습니다.”

실의 거사는 그의 말을 듣고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이학 무에는 이상하게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 면전에서 세존을 속이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이미 아시고서 곧 말씀하셨다.
“무에여, 내 법은 매우 깊고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여 깨닫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려우며 보기도 어렵고 얻기도 어렵다. 곧 내 제자를 가르치면 제자는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깨끗이 닦고 또한 남을 위하여 설명한다. 무에여, 만일 그대의 스승이 옳다고 하는 바를 네가 이해하지 못하고 그 행을 미워하거든 너는 그것을 내게 물어라. 내가 반드시 잘 대답하여 네가 마음으로 옳다고 여기게 하리라.”

이에 소란스럽던 이학 무리들은 같은 음성으로 함께 크게 외쳤다.
“사문 구담께서는 매우 기이하고 특별하시며 큰 여의족[大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大威德]이 있으며 큰 복[大福]이 있고 큰 위신[大威神]이 있다. 무슨 까닭인가? 능히 자기의 종교를 버리고 남의 종교로써 사람들의 질문에 따라 대답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학 무에는 자기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분부한 뒤에 물었다.
“구담이시여,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해야 할 행은 어떻게 하면 구족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구족할 수 없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어떤 사문 범지는 옷이 없는 알몸으로 혹은 손으로 옷을 삼거나 나뭇잎으로 옷을 삼거나 구슬로 옷을 삼는다. 혹 병으로 물을 뜨지 않거나 바가지로 물을 뜨지 않기도 하며 무기로 뺏은 음식을 먹지 않고 속여서 얻은 음식을 먹지 않으며 청하지 않는 데는 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지도 않는다. 와서 존경하기를 구하지 않고 존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존경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만일 두 사람이 먹으면 그 가운데서 먹지 않고 아기 밴 집의 음식을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의 음식을 먹지 않고 만일 집에 똥파리가 날아오면 곧 먹지 않는다. 물고기를 먹지 않고 짐승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나쁜 물을 마시지 않으며 혹 도무지 마실 것이 없으면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 입을 먹고는 한 입으로 만족하고 혹은 2ㆍ3ㆍ4 내지 일곱 입을 먹고는 일곱 입으로 만족하며 혹은 한 번 얻어먹고는 한 번 얻는 것으로 만족하고 혹은 2ㆍ3ㆍ4 내지 일곱 번 얻어먹고는 일곱 번 얻는 것으로 만족한다. 혹은 하루에 한 번 먹고는 한 번으로 만족하고 혹은 2ㆍ3ㆍ4ㆍ5ㆍ6ㆍ7일이나 보름ㆍ한 달에 한 번 먹고는 한 번으로 만족한다.

채소를 먹거나 피[稗子]를 먹으며 혹은 기장을 먹고 잡보리를 먹으며 두두라식(頭頭邏食)을 먹고 거친 밥을 먹는다. 혹은 일 없는 곳으로 가서 일 없이 한가하게 지내며 풀뿌리를 먹거나 혹은 열매를 먹되, 저절로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누더기를 입고 털옷을 입으며 두사옷[頭舍衣]을 입고 털두사옷[毛頭舍衣]을 입으며 성한 가죽 옷[全皮]을 입거나 해진 가죽 옷[穿皮]을 입으며 혹은 완전히 해진 가죽 옷[全穿皮]을 입는다.
머리를 흩트리거나 머리를 땋기도 하고 흩트리고 땋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깎거나 수염을 깎고 수염과 머리를 모두 깎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뽑거나 수염을 뽑고 머리와 수염을 모두 뽑기도 한다.
혹은 꼿꼿이 서서 앉지 않고 혹은 앉은걸음을 익히며 혹은 가시 위에 누워 가시로 평상을 삼고 혹은 열매에 누워 열매로 평상을 삼는다.
혹은 물을 섬겨 밤낮으로 손으로 긷고 혹은 불을 섬겨 그날부터 계속해 태우며 혹은 해와 달의 존우대덕(尊祐大德)을 섬겨 그것을 향하여 합장한다. 이런 따위로써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번거롭고 답답한 행을 배운다. 무에여, 그대의 생각에는 어떠한가? 이렇게 하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구족했다 하겠는가,구족하지 못했다 하겠는가?”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그렇게 한다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이로써 구족하였고 구족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다고 말하리라.”

이학 무에가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저를 위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진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淸苦行者)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있고 욕심을 생각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있고 욕심을 생각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고 해의 정기를 빨아먹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고 해의 정기를 빨아먹으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잘난 체하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곧 얽매여 집착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잘난 체하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는 마음이 곧 얽매여 집착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자신은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는 귀하게 여기고 남은 천하게 여긴다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수행은 청고(淸苦)하며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수행은 청고(淸苦)하며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면 이것을 고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질투하여 이렇게 말한다.
‘무엇하러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질투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무엇하러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말한다.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으며 항상 뿌리종자ㆍ줄기종자ㆍ열매종자ㆍ마디종자ㆍ씨종자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暴雨)처럼 5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곧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말한다.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ㆍ줄기종자ㆍ열매종자ㆍ마디종자ㆍ씨종자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오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 견디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그러면 진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과 두려움ㆍ무서움ㆍ은밀한 행동ㆍ의심ㆍ명예의 상실ㆍ탐욕ㆍ방일이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과 두려움ㆍ무서움ㆍ은밀한 행동ㆍ명예의 상실ㆍ탐욕ㆍ방일이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見取)ㆍ난위(難爲)를 내어 뜻에 절제가 없으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인데 통용되지 못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ㆍ난위를 내고 뜻에 절제가 없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인데 통용되지 못하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ㆍ말하지 않는 원결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있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과 얽맴ㆍ말하지 않는 원결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있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없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다시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추한 말ㆍ꾸밈말을 하여 나쁜 계를 구족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추한 말ㆍ꾸밈말을 하여 나쁜 계를 구족하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正念]과 바른 지혜[正智]가 없고 나쁜 슬기[惡慧]가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지 않고 게으르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없고 나쁜 슬기가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이라고 한다.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진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에여, 나는 다시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가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도 말하리라.”

이학 무에가 다시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없고 욕심을 생각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을 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나쁜 욕심이 없고 욕심을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지 않고 해의 기운을 먹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햇빛을 우러러보지 않고 해의 기운을 먹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잘난 체하지 않으며 이 청고행자는 고행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잘난 체하지 않으며 청고행자가 고행을 마친 뒤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행은 청정한 수행이고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집집마다 다니면서 스스로를 일컬어 ‘내 행은 청정한 수행이고 내 수행은 매우 어렵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무에여,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혹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질투하여 ‘무엇 때문에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질투하여 ‘무엇 때문에 저 사문 범지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는가? 마땅히 나를 존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야 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고행을 행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 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면 이 사문 범지를 맞대고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ㆍ줄기종자ㆍ열매종자ㆍ마디종자ㆍ씨종자 따위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5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문 범지가 남의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 것을 보고도 이 사문 범지를 꾸짖어 ‘무엇 때문에 존경과 공양과 예로써 섬김을 받는가? 너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도 많아 항상 뿌리종자ㆍ줄기종자ㆍ열매종자ㆍ마디종자ㆍ씨종자 따위의 5종을 먹는다. 마치 폭우처럼 5곡 종자를 많이 해치고 짐승과 사람을 못살게 군다. 이와 같이 너희 사문 범지들이 남의 집에 자주 들어가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거나 은밀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의심하거나 명예를 잃지 않고 탐욕을 내거나 방일하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시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거나 은밀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의심하거나 명예를 잃지 않고 탐욕을 내거나 방일하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身見)ㆍ변견(邊見)ㆍ사견(邪見)ㆍ견취(見取)를 내지 않고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뜻에 절제가 있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이라고 통용된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를 내지 않고 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으며 뜻에 절제가 있어 모든 사문 범지들에게 통용될 만한 법이라고 통용된다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없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성냄ㆍ얽매임ㆍ말하지 않는 원한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속임이 없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추한 말ㆍ꾸밈말을 하지 않고 나쁜 계를 갖추지 않는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거짓말과 이간하는 말ㆍ추한 말ㆍ꾸밈말을 하지 않고 나쁜 계를 갖추지 않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또 무에여,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는데 이 청고행자는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나쁜 슬기가 없다. 무에여, 만일 어떤 청고행자가 고행하고 이 청고행자가 고행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있고 게으름이 없으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있고 나쁜 슬기가 없으면 이것을 무에여, 고행을 행하는 자의 더러움 없음이라고 한다.
무에여, 나는 너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학(異學) 무에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를 위하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을 구족한 자라도 한량없는 더러움에 더렵혀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학 무에가 물었다.
“구담이시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도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제일이 될 수 없고 진실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두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껍질[皮]을 얻고 마디[節]를 얻는 것이다.”

이학 무에가 다시 물었다.
“구담이시여, 어떻게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겉껍질을 얻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무에여, 여기 혹 어떤 사문 범지는 4행을 행한다.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그는 이 4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도 잘난 체하지 않고 자애로움[慈]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1방(方)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方)과 4유(維)ㆍ상ㆍ하를 다 가득 채우고 자애로움[慈]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悲]과 기뻐함[喜]도 역시 그러하다. 평정함[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 무에여,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이렇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겉껍질[表皮]을 얻을 수 있겠는가?”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이렇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겉껍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어떻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마디를 얻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어떤 사문 범지는 4행을 행하니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그는 이 4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도 잘난 체하지 않는다. 그는 행(行)이 있고 상모(相貌)가 있어 한량없는 과거의 경력(經歷)을 기억하는데 혹은 ‘1생ㆍ2생ㆍ백 생ㆍ천 생과 성겁(成劫)ㆍ패겁(敗劫)과 한량없는 성패겁 동안 그 중생의 이름은 아무개였고 옛날에 나는 일찍이 거기서 나서 이러한 성과 이러한 이름으로써 이렇게 태어나고 이런 음식을 먹었으며 이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이렇게 오래 살았으며 이렇게 오래 머물렀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으며 여기서 죽어 저기 태어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 태어났다’는 것을 알며 ‘나는 거기에 태어나서도 이러한 성과 이러한 이름으로써 이렇게 태어나고 이렇게 먹었으며 이렇게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이렇게 오래 살았으며 이렇게 오래 머물렀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고 기억한다. 무에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렇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마디를 얻겠는가?”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이렇게 하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도 마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어떻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무에여, 어떤 사문 범지는 4행을 행하는데 곧 생물을 죽이지 않고 생물을 죽이게 하지 않으며 생물을 죽이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도둑질하지 않고 도둑질하게 하지 않으며 도둑질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남의 여자를 취하지 않고 남의 여자를 취하게 하지 않으며 남의 여자를 취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고 거짓말하게 하지 않으며 거짓말하는 데 함께하지 않는다. 그는 이 4행을 행하여 즐거워하면서 잘난 체하지 않는다. 그는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청정한 천안(天眼)으로 이 중생들의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왕래하는 것을 보고 이 중생들은 그 지은 업을 따른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본다.
‘만일 이 중생들이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로써 삿된 견해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만일 이 중생이 몸의 묘행과 입과 뜻의 묘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로써 바른 견해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무에여, 네 뜻에는 어떠한가? 이렇게 하면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도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겠는가?”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그렇습니다.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은 제일이 되고 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구담이시여, 어떻습니까?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사문 구담의 제자들은 사문 구담에 의지해 범행을 행하는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무에여, 이 이해할 수 없고 미워할 만한 행으로 말미암아 증험을 얻기 때문에 내 제자들이 나를 의지해 범행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무에여, 그것과는 다른 최상(最上)ㆍ최묘(最妙)ㆍ최승(最勝)이 있어서 그들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의지해 범행을 행한다.”

이에 들뜨고 소란스럽던 이학의 무리들이 높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고 그렇습니다. 그들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사문 구담의 제자들은 사문 구담을 의지해 범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때 이학 무에는 스스로 자신의 대중들에게 명령하여 잠자코 있게 한 다음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다시 다른 최상ㆍ최묘ㆍ최승이 있어서 그들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사문 구담의 제자는 사문 구담을 의지해 범행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에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무에여, 만일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의 명호를 가진 분이 세상에 나오면 그는 5개(蓋)의 마음의 더러움[心穢]과 슬기의 쇠약함을 버리고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미 이렇게 정한 마음[定心]이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번뇌가 없으며 부드럽고 유연하게 잘 머물러 동요하지 않는 마음[不動心]을 증득하고 누진지(漏盡智)의 신통으로 나아가 그것을 증득한다. 그는 이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苦習]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苦滅]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한 이 누(漏)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누의 발생을 알며 이 누의 소멸을 알고 이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보아 욕루(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무에여, 이것이 ‘다시 다른 최상ㆍ최묘ㆍ최승이 있어서 그들이 증험을 얻기 때문에 내 제자들은 나를 의지해 범행을 행한다’는 것이다.”

이에 실의 거사는 말하였다.
“무에여, 세존께서 여기 계십니다. 그대는 이제 한 마디 말로 쳐부수어 빈 병을 놀리듯 하고 애꾸눈 소가 변두리에서 먹이를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해보시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이학 무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진실로 그렇게 말하였는가?”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무에여, 너는 일찍이 장로 구학(舊學)에게서 이런 사실을 들은 적이 있는가?
‘과거의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께서는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셨다. 또 모든 불세존께서도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신다.’
그분들은 멀리 떠난 곳에 계시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고 안온하고 쾌락하시며 너나 너의 권속들과 같은 집회는 애초에 하루 낮ㆍ하룻밤도 함께하시지 않았다.”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저는 일찍이 장로 구학에게서 ‘과거의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는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셨고 모든 불세존께서도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서 혹은 높은 바위에 계시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연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멀리 떠난 곳에 계시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고 안온하고 쾌락하시며 저나 저의 권속들과 같은 집회에는 애초에 하루 낮ㆍ하룻밤 동안도 함께하시지 않았습니다.”

“무에여, 너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저 세존처럼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밑 혹은 높은 바위에 있으면서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이 없는 데서 이치를 따라 연좌하자. 그는 멀리 떠난 곳에 있으면서 항상 연좌하기를 즐기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저 사문 구담의 정각(正覺)의 도를 배우자.’”

이학 무에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제가 만일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한 마디 말로써 쳐부수어 빈 병을 놀리듯 할 것이고 애꾸눈 소가 변두리에서 먹이를 먹는 것과 같다고 말할 것이다’라는 이런 말을 다시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무에여, 나에게는 지금 선과 서로 잘 상응하는 법이 있다. 그것은 저 해탈하는 글귀로서 능히 증험을 얻는데 여래는 이로써 스스로 두려움이 없다고 일컫는다. 모든 비구들은 내 제자가 된 뒤로는 아첨이 없고 속이지 않으며 질박하고 정직하여 거짓이 없고 내 가르침을 받은 뒤에는 반드시 구경의 지혜[究意智]를 얻는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구담은 스승이 되기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스승을 너에게 돌릴 것이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구담은 제자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제자를 너에게 돌릴 것이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구담은 공양을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공양은 너에게 돌릴 것이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일 네가 ‘사문 구담은 칭찬과 명예를 탐하기 때문에 설법한다’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칭찬과 명예를 너에게 돌릴 것이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무에여, 만약 네가 ‘만일 내게 선과 서로 잘 상응하는 법과 이런 저런 해탈하는 글귀가 있다면 능히 증험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저 사문 구담은 나를 침탈하고 나를 멸망시키는 자이다’하고 생각한다면 너는 그런 생각을 말라. 그 법을 너에게 돌릴 것이니 나는 그저 너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이다.”

이에 대중들은 잠자코 있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마왕에게 제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실의 거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대중들이 잠자코 있는 것을 보아라. 무슨 까닭인가? 그들은 마왕에게 제압되었기 때문이다. 마왕은 저 이학의 대중들로 하여금 ‘나는 사문 구담이 수행한 범행을 시험해 보리라’하고 생각하는 자가 한 명도 없게 하였다.”

세존께서는 이미 아시고 나서 실의 거사를 위하여 설법하셔서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셨다.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그를 위해 설법하시고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기쁨을 성취하게 한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실의 거사의 팔을 잡고 신족(神足)으로써 날아 허공을 타고 가버리셨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실의 거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우담바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5,898자이다.

105) 원경(願經) 제9제2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어떤 한 비구가 멀리 떠나 혼자서 고요하고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 연좌하여 생각에 잠겼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나를 위로하여 나와 말씀하셨고 나를 위해 설법하셨다. 나는 구족계(具足戒)를 받고서 선(禪)을 중단하지 말고 비고 고요한 곳[空靜處] 에서 관행(觀行)을 성취하자.’
이에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해질 녘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처소로 나아갔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그 비구가 오는 것을 보시고 그 비구로 인하여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세존께서는 나를 위로하여 나와 말씀하셨고 나를 위해 설법하셨다. 나는 구족계를 받고서 선을 중단하지 말고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내게는 친족이 있다. 그들이 나로 인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하여 나는 구족계를 받고서 선을 중단하지 말고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내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 등 모든 생활 도구를 베푸는 자는 이 보시로 말미암아 큰 공덕이 있고 큰 광명이 있으며 큰 과보가 있게 하기 위하여 나는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굶주림과 갈증 추위와 더위, 모기와 등에, 벼룩과 이, 바람과 햇볕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또한 능히 참으며 몸에 병이 들어 몹시 괴로워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이 모든 즐겁지 않은 일도 다 능히 참을 것이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즐겁지 않은 일을 견디고 만일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은 끝내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두려움을 견디고 만일 두려움이 생기더라도 마음은 끝내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내게 만일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 곧 욕심의 생각[欲念]ㆍ성냄의 생각[恚念]ㆍ해침의 생각[害念]이 생기더라도 마음은 이 세 가지 악하고 착하지 않은 생각에 끝내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까지 증득해 성취하여 노닐 것이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3결(結)이 이미 다하여 수다원을 증득하였다. 이제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정각(正覺)으로 나아가며 최대 일곱 번까지 몸을 받아 천상과 인간을 일곱 번 왕래한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苦邊]을 증득하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3결이 이미 다하고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엷어져 사다함[一往來]을 얻었다. 이제 천상과 인간을 한 번 왕래한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증득하리라.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5하분결(下分結)이 이미 다하였으니 그곳에 태어나서 곧 반열반에 들고 물러나지 않는 법[不退法]을 증득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쉬어 해탈하고 색(色)을 여의어 색(色) 없음을 정해진 그 형상대로의 몸으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지혜로 관찰하여 누(漏)를 끊고 누를 안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나는 여의족(如意足)ㆍ천이지(天耳智)ㆍ타심지(他心智)ㆍ숙명지(宿命智)ㆍ생사지(生死智)가 있고 모든 누(漏)가 다한 무루(無漏)를 증득하였으며 심해탈(心解脫)ㆍ혜해탈(慧解脫)을 증득해 현재에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며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안다. 구족계를 받고 선을 중단하지 말며 비고 고요한 곳에서 관행을 성취하자’하고 서원을 세워야 한다.”

이에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지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고요한 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고 수행하기를 부지런히 힘써 마음에 방일함이 없었다. 고요한 곳에 한가히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은 생각에 잠기고 수행하기를 부지런히 힘써 마음에 방일함이 없었기 때문에 족성자(族姓子)들처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워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치고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었다. 그리하여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되었다. 그 존자는 법을 안 뒤에는 아라하(阿羅訶:아라한)가 되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원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865자이다.

106) 상경(想經)2) 제10제2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사문 범지가 땅에 대해 ‘땅은 곧 신(神)이다, 땅은 신의 소유[神所]이다, 신은 땅의 소유[地所]이다’라는 땅에 대한 생각[地想]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가 ‘땅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린다면 그는 곧 땅을 알지 못하게 된다. 이와 같이 물ㆍ불ㆍ바람ㆍ신ㆍ하늘ㆍ생주(生主)ㆍ범천(梵天)ㆍ무번천(無煩天)ㆍ무열천(無熱天)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그가 깨끗함[淨]에 대해 ‘깨끗함은 곧 신이다, 깨끗함은 신의 소유이다, 신은 깨끗함의 소유이다’라는 깨끗함에 대한 생각[淨想]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가 ‘깨끗함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린다면 그는 곧 깨끗함을 알지 못하게 된다. 무량공처(無量空處)ㆍ무량식처(無量識處)ㆍ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일(一)ㆍ별(別)ㆍ약간(若干)ㆍ견(見)ㆍ문(聞)ㆍ식(識)ㆍ지(知)에 대해 뜻의 생각하는 바[意所念]와 뜻의 헤아리는 바[意所思]를 관찰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게 된다. 그가 일체(一切)에 대해서 ‘일체는 곧 신(神)이다, 일체는 신의 소유이다, 신은 일체의 소유이다’라는 일체에 대한 생각[一切想]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가 ‘일체는 곧 신이다’라고 헤아린다면 그는 곧 일체를 알지 못하게 된다.

어떤 사문 범지가 땅에 대해서 곧 ‘땅은 신이 아니며, 땅은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땅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땅을 안다고 하자. 그가 ‘땅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는 곧 땅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물ㆍ불ㆍ바람ㆍ신ㆍ하늘ㆍ생주ㆍ범천ㆍ무번천ㆍ무열천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그가 깨끗함에 대해서 곧 ‘깨끗함은 신이 아니며 깨끗함은 신의 소유도 아니며 신은 깨끗함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깨끗함을 안다고 하자. 그가 ‘깨끗함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는 곧 깨끗함을 알게 된다. 무량공처ㆍ무량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와 일(一)ㆍ별(別)ㆍ약간(若干)ㆍ견(見)ㆍ문(聞)ㆍ식(識)ㆍ지(知)에 대해 뜻의 생각하는 바와 뜻의 헤아리는 바를 관찰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게 된다. 그가 일체에 대해서 곧 ‘일체는 신이 아니며 일체는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일체가 아니다’라고 일체를 안다고 하자. 그가 ‘일체는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는 곧 일체를 알게 된다.

나는 땅에 대해서 곧 ‘땅은 신이 아니며 땅은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땅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땅을 알고 있다. 나는 ‘땅은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으므로 나는 곧 땅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물ㆍ불ㆍ바람ㆍ신ㆍ하늘ㆍ생주ㆍ범천ㆍ무번천ㆍ무열천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나는 깨끗함에 대해서도 곧 ‘깨끗함은 신이 아니며 깨끗함은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깨끗함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깨끗함을 안다. 나는 ‘깨끗함은 곧 신이다’고 헤아리지 않으므로 나는 곧 깨끗함을 안다. 무량공처ㆍ무량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와 일(一)ㆍ별(別)ㆍ약간(若干)ㆍ견(見)ㆍ문(聞)ㆍ식(識)ㆍ지(知)에 대해 뜻의 생각하는 바와 뜻의 헤아리는 바를 관찰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오게 된다. 나는 일체에 대해서도 곧 ‘일체는 신이 아니며 일체는 신의 소유가 아니며 신은 일체의 소유가 아니다’라고 일체를 안다. 나는 ‘일체는 곧 신이다’라고 헤아리지 않으므로 나는 곧 일체를 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 니구타범지경(尼拘陁梵志經)』과 『장아함경(長阿含經)』의 8번째 소경인 「산타나경(散陀那經)」이 있다.
2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불설낙상경(佛說樂想經)』이 있다.

중아함경 제27권

승가제바 한역

10. 임품(林品) 제5 ①
[이 임품에는 모두 열 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임경(林經)이 둘이고 자관심경(自觀心經)도 둘이며
달범행경(達梵行經)ㆍ아노파경(阿奴波經)ㆍ제법본경(諸法本經)과
우타라경(優陀羅經)ㆍ그리고 밀환유경(蜜丸喩經)과
맨 마지막에 구담미경(瞿曇彌經)이 수록되었다.

107) 임경(林經) 제1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가 어떤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자신이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바른 생각을 얻고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안정된 마음을 얻게 하며 만일 해탈하지 못했으면 해탈을 얻고 모든 누(漏)를 다하지 못했으면 누를 다하게 되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열반을 얻게 될 것이며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는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렀으나 이 숲을 의지하여 머문 뒤에도 여전하였다.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여전히 바른 생각을 얻지 못했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여전히 안정된 마음을 얻지 못했으며 또 해탈하지 못했으면 여전히 해탈을 얻지 못했고 모든 누를 다하지 못했으면 여전히 누를 다하지 못했으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여전히 열반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만큼은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었다.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의복을 위해서가 아니요며 음식ㆍ침구ㆍ탕약을 위해서도 아니며 또한 모든 생활 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도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여전히 바른 생각을 얻지 못했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여전히 안정된 마음을 얻지 못했으며 해탈하지 못했으면 여전히 해탈을 얻지 못했고 모든 누를 다하지 못했으면 여전히 누를 다하지 못했으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여전히 열반을 얻지 못했다.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만큼은 내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었을 뿐이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이 숲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비구가 어떤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바른 생각을 얻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안정된 마음을 얻게 하며 만일 해탈하지 못했으면 해탈을 얻고 모든 누(漏)를 다하지 못했으면 누(漏)를 다하게 되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열반을 얻게 될 것이며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는 그 숲에 의지하여 머물렀는데,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바른 생각을 얻었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안정된 마음을 얻었으며 만일 해탈을 얻지 못했으면 곧 해탈을 얻었고 모든 누가 다하지 않았으면 누를 다하게 되었으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곧 열반을 얻게 되었다.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만큼은 그가 구해 보았으나 일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의복을 위해서가 아니며 음식ㆍ침구ㆍ탕약을 위해서도 아니며 또한 모든 생활 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이 숲을 의지하여 머문 뒤에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바른 생각을 얻었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안정된 마음을 얻었으며 만일 해탈하지 못했으면 곧 해탈을 얻었고 모든 누를 다하지 못했으면 누를 다하게 되었으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곧 열반을 얻게 되었다.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만큼은 내가 구해보았으나 일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 뒤에 이 숲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가 어떤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자신이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바른 생각을 얻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안정된 마음을 얻게 하며 만일 해탈하지 못했으면 해탈을 얻고 모든 누(漏)를 다하지 못했으면 누를 다하게 되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곧 열반을 얻게 될 것이며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가 이 숲에 머물렀으나 이 숲에서 머문 뒤에도 여전하였다.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여전히 바른 생각을 얻지 못했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여전히 안정된 마음을 얻지 못했으며 만일 해탈하지 못했으면 여전히 해탈을 얻지 못했고 모든 누를 다하지 못했으면 여전히 누를 다하지 못했으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여전히 열반을 얻지 못했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모두 구해보았으나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이 숲에 머물면서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여전히 바른 생각을 얻지 못했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으면 여전히 안정된 마음을 얻지 못했으며 혹 해탈을 얻지 못했으면 여전히 해탈을 얻지 못했고 모든 누를 다하지 못했으면 누를 다하지 못했으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여전히 열반을 얻지 못했고 또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구해 보았으나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곧 이 숲을 버리고 밤중에 떠나되 그들과 이별을 고하지 말아야 한다.

비구가 어떤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자신이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곧 바른 생각을 얻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안정된 마음을 얻게 하며 만일 해탈하지 못했으면 해탈을 얻고 모든 누(漏)를 다하지 못했으면 누를 다하게 되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곧 열반을 얻게 될 것이며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는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렀는데,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는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곧 바른 생각을 얻었고 그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으면 안정된 마음을 얻었으며 만일 해탈하지 못했으면 곧 해탈을 얻었고 모든 누를 다하지 못했으면 누를 다하게 되었으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곧 열반을 얻었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었다.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혹 바른 생각이 없을 경우 곧 바른 생각을 얻었고 그 마음이 고요하지 못했으면 고요한 마음을 얻었으며 만일 해탈하지 못했으면 곧 해탈을 얻었고 모든 누를 다하지 못했으면 누를 다하게 되었으며 위없는 안온한 열반을 얻지 못했으면 곧 열반을 얻었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도 내가 구하면 모두를 어렵지 않게 얻었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이 숲에서 몸을 마치고 목숨이 다하도록 머물러야 한다. 숲에 의지하여 머무는 것처럼 무덤 사이나 마을이나 사람을 의지하여 머무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165자이다.

108) 임경 제2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가 어떤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자신이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 혹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자신의 몸으로 얻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는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렀으나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도 여전히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자신의 몸으로 얻지 못했고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었을 뿐이었다.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의복을 위해서가 아니며 음식ㆍ침구ㆍ탕약을 위해서도 아니며 또한 모든 생활 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도 여전히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내 몸으로 얻지 못했고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는 내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었을 뿐이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 뒤에 이 숲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비구가 어떤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자신이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자신의 몸으로 얻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가 이 숲을 의지하여 머물렀는데,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는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자신의 몸으로 얻었다.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만큼은 그가 구해보았으나 일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의복을 위해서가 아니며, 음식ㆍ침구ㆍ탕약을 위해서도 아니며 또한 모든 생활 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내 몸으로 얻었다.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는 내가 구해보았으나 일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을 뿐이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 뒤에 이 숲에 머물러야 한다.

비구가 어떤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자신이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자신의 몸으로 얻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는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렀는데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도 여전히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자신의 몸으로 얻지도 못했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도 그가 구해보았으나 모두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면 그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도 여전히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내 몸으로 얻지도 못했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도 내가 구해 보았으나 얻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 뒤에 곧 이 숲을 버리고 밤중에 떠나되 그들과 이별을 고하지 말아야 한다.

비구가 어떤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서 자신이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면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자신의 몸으로 얻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비구는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렀고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문 뒤에는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자신의 몸으로 얻었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도 그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었다.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관찰하여야 한다.
‘내가 이 숲에 머물면서 출가하여 도를 배워 사문의 뜻을 얻고자 하는 그 이익을 내 몸으로 얻었고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도 내가 구하면 일체를 어렵지 않게 얻었다.’
그 비구는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몸을 마치고 목숨이 다하도록 이 숲에 의지하여 머물러야 한다. 숲에 의지하여 머무는 것처럼 무덤 사이나 마을이나 사람을 의지하여 머무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831자이다.

109) 자관심경(自觀心經) 제3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남의 마음을 잘 관찰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스스로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무엇을 비구가 스스로 마음을 잘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가 만일 이렇게 관찰하면 반드시 이익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나는 마음은 쉬게 되었는데 최상의 지혜의 관법은 얻지 못하였는가? 나는 최상의 지혜의 관법은 얻었는데 마음이 쉬게 되지 못하였는가? 나는 마음도 쉬게 되지 못하고 또한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지 못하였는가? 나는 마음도 쉬게 되었고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었는가?’

만일 비구가 관찰한 뒤에 ‘나는 마음은 쉬게 되었지만 최상의 지혜의 관법은 얻지 못하였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마음이 쉬게 된 뒤에는 마땅히 최상의 지혜의 관법을 구해야 한다. 그는 그 뒤에 마음도 쉬게 되고 또한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관찰한 뒤에 ‘나는 최상의 지혜의 관법은 얻었지만 마음이 쉬게 되지 못하였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최상의 지혜의 관법에 머문 뒤에는 마땅히 마음이 쉬기를 구해야 한다. 그는 그 뒤에는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고 또한 마음도 쉬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관찰한 뒤에 ‘나는 마음도 쉬게 되지 못하고 또한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지 못하였다’고 알았다면 그러한 비구는 얻지 못한 이 선법을 얻기 위해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힘써 꾸준히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뎌 물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사람이 머리가 불에 타고 옷이 불에 탈 때에 빨리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가 얻지 못한 이 선법을 얻으려고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힘써 부지런히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뎌 물러나지 않게 하면 그는 그 뒤에는 마음도 쉬게 되고 또한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게 될 것이다.

만일 비구가 관찰한 뒤에 ‘나는 마음도 쉬게 되었고 최상의 지혜의 관법도 얻었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이 선법에 머문 뒤에는 누진지(漏盡智)의 신통(神通) 얻기를 구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일체의 옷을 비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또한 일체의 옷을 비축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나는 어떤 옷을 비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가? 만일 옷을 비축함으로써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더하게 하고 착한 법을 쇠퇴하게 하면 나는 이러한 옷은 비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어떤 옷을 비축할 수 있다고 말했는가?만일 옷을 저축함으로써 곧 착한 법을 더하게 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쇠하게 하면 나는 이러한 옷은 비축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옷과 마찬가지로 음식ㆍ침구ㆍ마을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나는 모두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또한 모든 사람을 가까이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어떤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가? 만일 사람을 가까이함으로써 곧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더하게 하고 착한 법을 쇠퇴하게 하면 나는 이러한 사람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을 가까이할 수 있다고 말했는가? 만일 사람을 가까이함으로써 곧 착한 법을 더하게 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쇠퇴하게 하면 나는 이러한 사람은 가까이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가 익혀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익혀서는 안 될 법을 사실 그대로 알며 그가 익혀야 할 법과 익혀서는 안 될 법을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익혀서는 안 될 법은 곧 익히지 않고 익혀야 할 법은 곧 익히며, 그가 익혀서는 안 될 법은 익히지 않고 익혀야 할 법은 익힌 뒤에는 곧 착한 법은 더하게 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쇠퇴하게 하면 이것을 비구가 스스로 마음을 잘 관찰하고 스스로 마음을 잘 알아 잘 취하고 잘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자관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635자이다.

110) 자관심경 제4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남의 마음을 잘 관찰하지 못한다면 마땅히 스스로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무엇을 비구가 스스로 마음을 잘 관찰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가 만일 이렇게 관찰한다면 반드시 이익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나는 탐욕[增伺]의 행동이 많은가, 탐욕이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성내는 마음[瞋恚心]의 행동이 많은가, 성내는 마음이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수면에 얽매인 행동이 많은가, 수면에 얽매임이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들뜬 행동이 많은가, 들뜸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의혹의 행동이 많은가, 의혹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몸으로 다투는 행동이 많은가, 몸으로 다툼이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오염된 마음의 행동이 많은가, 오염된 마음이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믿는 행동이 많은가, 믿지 않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부지런한[精進] 행동이 많은가, 게으른[懈怠] 행동이 많은가? 나는 생각하는 행동이 많은가, 생각이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정(定)의 행동이 많은가, 나는 정(定)이 없는 행동이 많은가? 나는 나쁜 지혜의 행동이 많은가, 나쁜 지혜가 없는 행동이 많은가?’

만일 비구가 관찰했을 때 ‘나는 탐욕과 성내는 마음과 수면의 얽매임ㆍ들뜸ㆍ의혹ㆍ몸으로 다툼ㆍ오염된 마음ㆍ믿지 않음ㆍ게으름ㆍ생각 없음ㆍ정(定)이 없는 행동이 많고 나쁜 지혜의 행동이 많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기 위해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힘써 꾸준히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뎌 물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사람의 머리가 불에 타고 옷이 불에 탈 때에 급하게 방편을 구하여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도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멸하기 위해 곧 빨리 방편을 구하여 지극히 힘써 꾸준히 배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뎌 물러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만일 비구가 관찰했을 때 ‘나는 탐욕이 없고 성내는 마음이 없으며 수면의 얽매임이 없고 들뜸이 없으며 의혹이 없고 몸의 다툼이 없고 오염된 마음이 없으며 믿음[信]이 있고 정진[進]이 있고 정[定]이 있는 행동이 많으며 나쁜 지혜가 없는 행동이 많다’고 알았다면 그 비구는 이 착한 법에 머문 뒤에는 마땅히 누진지의 신통 얻기를 구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일체의 옷을 비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또한 일체의 옷을 비축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나는 어떤 옷을 비축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가? 만일 옷을 비축함으로써 곧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더하게 하고 착한 법을 쇠퇴하게 하면 나는 이런 옷은 비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어떤 옷을 비축할 수 있다고 말했는가? 만일 이 옷을 비축함으로써 곧 착한 법을 더하게 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쇠퇴하게 하면 나는 이런 옷은 비축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옷과 마찬가지로 음식ㆍ침상ㆍ마을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나는 모든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또한 모든 사람을 가까이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어떤 사람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가? 만일 사람을 가까이함으로써 곧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더하게 하고 착한 법을 쇠퇴하게 하면 나는 이런 사람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을 가까이할 수 있다고 말했는가? 만일 사람을 가까이함으로써 곧 착한 법을 더하게 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쇠퇴하게 하면 나는 이런 사람은 가까이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가 익혀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익혀서는 안 될 법을 사실 그대로 알며 그가 익혀야 할 법과 익혀서는 안 될 법을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익혀서는 안 될 법은 곧 익히지 않고 익혀야 할 법은 곧 익히며 그가 익혀서는 안 될 법은 익히지 않고 익혀야 할 법은 익힌 뒤에는 곧 착한 법은 더하게 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쇠퇴하게 하면 이것을 비구가 스스로 마음을 잘 관찰하고 스스로 마음을 잘 알아 잘 취하고 잘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자관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666자이다.

111) 달범행경(達梵行經)1) 제5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구루수(拘樓瘦)를 유행하실 때에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겠다. 그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 또한 묘하며 문채(文彩)도 있고 뜻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밝게 나타낸다. 그 이름은 곧 달범행(達梵行)으로서 이는 모든 누(漏)를 다하게 한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누(漏)를 알고 누가 생겨난 원인을 알며 누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누의 우열[勝如]을 알며 누가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누가 소멸하여 다하는 길[道]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각(覺)을 알고 각이 생겨난 원인을 알며 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각의 우열을 알며 각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각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상(想)2)을 알고 상이 생겨난 원인을 알며 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상의 우열을 알며 상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상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욕(欲)을 알고 욕이 생겨난 원인을 알며 욕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욕의 우열을 알며 욕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욕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업(業)을 알고 업이 생겨난 원인을 알며 업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업의 우열을 알며 업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업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아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괴로움[苦]을 알고 괴로움이 생겨난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괴로움의 우열을 알며 괴로움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괴로움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아야 한다.

무엇을 누(漏)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3루(漏)가 있으니 욕루(欲漏)ㆍ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이다. 이것을 누를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누가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무명(無明)이니 무명으로 인하여 곧 누가 있다. 이것을 누가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누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무명에 얽매인 사람은 모든 누에 적셔지는데,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과보를 받아 혹은 좋은 곳에 태어나고 혹은 나쁜 곳에 태어난다. 이것을 누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누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혹 누가 있으면 지옥 가운데 나거나 혹 누가 있으면 축생 가운데 나며 혹 누가 있으면 아귀 가운데 나거나 혹 누가 있으면 천상에 나며 혹은 누(漏)가 있으면 인간에 난다. 이것을 누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누가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무명(無明)이 멸하면 누가 곧 멸한다. 이것을 누가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누가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8정도[八支聖道]3)이니, 바른 견해[正見] 내지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의 여덟 가지로서 이것을 누가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가 이렇게 누를 알고 누가 생겨난 원인을 알며 누의 과보를 받는 줄을 알고 누의 우열을 알며 누가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누가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면 이것을 일체의 누를 다하게 하는 달범행(達梵行)이라고 한다.

무엇을 각(覺)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3각(覺)이 있으니 낙각(樂覺)ㆍ고각(苦覺)ㆍ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이다. 이것을 각을 아는 것이라 고 한다. 무엇을 각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갱락(更樂)이니 갱락을 인하여 곧 각(覺)이 있다. 이것을 각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애(愛)이니 애는 각의 과보가 된다. 이것을 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각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비구는 낙각(樂覺)을 깨달을 때에는 낙각을 깨닫는 줄을 알고 고각(苦覺)을 깨달을 때에는 곧 고각을 깨닫는 줄을 알며 불고불락각(不苦不樂覺)을 깨달을 때에는 곧 불고불락각을 깨닫는 줄을 안다. 낙신(樂身)ㆍ고신(苦身)ㆍ불고불락신(不苦不樂身)과 낙심(樂心)ㆍ고심(苦心)ㆍ불고불락심(不苦不樂心)과 낙식(樂食)ㆍ고식(苦食)ㆍ불고불락식(不苦不樂食)과 낙무식(樂無食)ㆍ고무식(苦無食)ㆍ불고불락무식(不苦不樂無食)과 낙욕(樂欲)ㆍ고욕(苦欲)ㆍ불고불락욕(不苦不樂欲)과 낙무욕(樂無欲)ㆍ고무욕(苦無欲)도 마찬가지며, 불고불락무욕각(不苦不樂無欲覺)을 깨달을 때에는 곧 불고불락무욕각(不苦不樂無欲覺)을 깨닫는 줄을 안다. 이것을 각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각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갱락(更樂)이 멸하면 각이 곧 멸한다. 이것을 각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각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곧 8정도이니 바른 견해[正見]와 나아가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의 여덟 가지로서 이것을 각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가 이렇게 각을 알고 각이 생겨나는 원인을 알며 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각의 우열을 알며 각이 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각이 멸하는 길을 알면 이것을 일체의 각을 다하게 하는 달범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상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4상(想)이 있으니 비구는 소상(小想)도 알고 대상(大想)도 알며 무량상(無量想)도 알고 무소유처상(無所有處想)도 안다. 이것을 상(想)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이 상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인가? 곧 갱락(更樂)이니 갱락으로 말미암아 곧 상(想)이 있다. 이것을 상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말[說]이니 그 상(想)을 따라서 곧 말한다. 이것을 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상(想)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혹 상(想)이 있어 빛깔[色]을 생각하고 혹 상이 있어 소리[聲]를 생각하며 혹 상이 있어 향기[香]를 생각하고 혹 상이 있어 맛[味]을 생각하며 혹 상이 있어 촉감[觸]을 생각한다. 이것을 상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상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갱락(更樂)이 멸하면 상(想)이 곧 멸하는 것이다. 이것을 상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상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8정도이니 바른 견해와 나아가 바른 선정까지의 여덟 가지로서 이것을 상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가 이렇게 상을 알고 상이 생겨난 원인을 알며 상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상의 우열을 알며 상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상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면 이것을 일체의 상을 다하게 하는 달범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욕(欲)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5욕공덕[欲功德]4)이 있어 사랑할 만하고 기뻐할 만하며 아름다운 빛깔로서 욕심과 서로 맞아 매우 즐길 만하다. 무엇을 다섯 가지라고 하는가? 눈으로 빛깔을 알고 귀로 소리를 알며 코로 냄새를 알고 혀로 맛을 알며 몸으로 촉감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욕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욕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즉 갱락을 말하니 갱락으로 인하여 곧 욕이 있게 된다. 이것을 욕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욕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욕의 종류를 따라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집착하여 거기에 머문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과보를 받는데 곧 복이 있는 곳과 복이 없는 곳과 복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곳이다. 이것을 욕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욕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욕이 있어 빛깔을 탐하거나 소리를 탐하며 혹은 욕이 있어 냄새를 탐하거나 맛을 탐하며 혹은 촉감을 탐한다. 이것을 욕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욕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갱락이 멸하면 욕이 멸하는데, 이것을 욕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 한다. 무엇을 욕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8정도이니 바른 견해와 나아가 바른 선정까지의 여덟 가지로서 이것을 욕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 고 한다. 만일 비구가 이렇게 욕을 알고 욕의 생겨난 원인을 알며 욕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욕의 우열을 알며 욕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욕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면 이것을 일체의 욕(欲)을 다하게 하는 달범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업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2업(業)이 있으니 사이업(思已業)5)과 사업(思業)이다. 이것을 업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업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갱락을 말하는데 갱락으로 인하여 곧 업이 있게 된다. 이것을 업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업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업이 검으면 검은 과보가 있고 혹은 업이 희면 흰 과보가 있으며 혹은 업이 검고도 희면 검고도 흰 과보가 있고 혹은 업이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면 과보가 없어 업과 업이 다한다. 이것을 업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업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혹 업이 있어 지옥 가운데 나거나 혹 업이 있어 축생 가운데 나며 혹은 업이 있어 아귀 가운데 나거나 혹 업이 있어 천상에 나며 혹은 업이 있어 인간에 난다. 이것을 업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업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갱락이 멸하면 업이 곧 멸한다. 이것을 업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업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곧 8정도이니 바른 견해와 나아가 바른 선정까지의 여덟 가지로서 이것을 업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만일 비구가 이렇게 업을 알고 업의 생겨난 원인을 알며 업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업의 우열을 알며 업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업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면 이것을 일체의 업을 다하게 하는 달범행이라고 한다.

무엇을 괴로움[苦]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태어남[生]이 괴로움이며 늙음[老]이 괴로움이며 병듦[病]이 괴로움이며 죽음[死]이 괴로움이며며 원수와 만남이 괴로움이며 사랑하는 이와 이별함이 괴로움이며 구하되 얻지 못함이 괴로움이니 간략히 말해 5성음(盛陰)이 괴로움이다. 이것을 괴로움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괴로움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애욕을 말하는데 애욕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을 괴로움이 생겨난 원인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괴로움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곧 괴로움이 아주 미세하게 있지만 더디게 멸하고 혹은 괴로움이 아주 미세하게 있어 빨리 멸하며, 혹은 괴로움이 왕성하여 더디게 멸하고, 혹은 괴로움이 왕성하지만 빨리 멸하여 괴로움과 괴로움이 다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괴로움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많이 알지 못하는[不多聞] 어리석은 범부는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하여 몸에 각(覺)이 생겨 지극히 괴롭고 몹시 괴로워 목숨이 끊어지려 하면 여기서 나가 다시 저들에게서 구한다.

어떤 사문 범지는 1구의 주문을 지녔고 혹은 2ㆍ3ㆍ4의 많은 문구의 주문을 지녔으며 혹은 100구의 주문을 지니고 있다. 저들이 나의 괴로움을 치유할 것이다.
이렇게 구함[求]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습(習)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며 괴로움이 멸한다. 이것을 괴로움의 우열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괴로움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애욕[心欲]이 멸하면 괴로움이 멸하는데 이것을 괴로움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을 괴로움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만일 비구가 이렇게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생겨난 원인을 알며 괴로움의 과보가 있는 줄을 알고 괴로움의 우열을 알며 괴로움이 소멸하여 다하는 것을 알고 괴로움이 소멸하여 다하는 길을 알면 이것을 일체의 괴로움을 다하게 하는 달범행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달범행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642자이다.

112) 아노파경(阿奴波經)6) 제6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발기수(跋耆瘦)를 유행하실 때에 발기국(跋耆國)의 도읍인 아노파(阿奴波)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해거름에 연좌에서 일어나 당상에서 내려와 말씀하셨다.
“아난아, 같이 아이라화제강[阿夷羅和帝河]에 가서 목욕하자.”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예.”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을 데리고 아이라화제강으로 가셔서 언덕 위에 옷을 벗어 놓고 곧 물에 들어가 목욕하시고 도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으셨다. 그때 아난은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쳐 드렸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돌아보시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제화달다(提■達哆)는 방일하였기 때문에 지극한 고난에 떨어졌다.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날 텐데 거기서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너는 일찍이 모든 비구들로부터 내가 한결같이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날 것이고 거기에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는 말을 들었느냐?”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때 어떤 비구가 존자 아난에게 물었다.
“세존께서는 타심지(他心智)로써 제화달다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한결같이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고 1겁을 거기에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하셨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아, 저 비구가 어리건 장년이건 혹은 늙었건 젊었건 간에 나를 알지 못하고 있구나. 무슨 까닭인가? 여래가 이미 반드시 저 제화달다에 대해 예언했지만 거기에 의혹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난아, 나는 이 세상이나 하늘ㆍ마군ㆍ범천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내가 예언한 가운데 제화달다와 같은 경우는 보지 못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나는 한결같이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 거기에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고 예언하였다. 아난아, 만일 내가 제화달다를 볼 때에 희고 깨끗한 법이 털끝만큼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 거기에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난아, 나는 제화달다에게서 희고 깨끗한 법을 털끝만큼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는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고 거기에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이다.

아난아,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크고 깊은 뒷간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거기 떨어져 그 밑에 빠져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와서 그에게 크게 자비스런 마음을 일으키고 가엾고 불쌍히 여겨 그를 이익되게 하고 편안하고 즐겁게 할 방법을 찾았다. 그는 주위를 돌며 살펴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똥이 묻지 않아 내가 붙잡고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 털끝만큼이라도 이 사람에게 있을까?’
그리고 그는 두루 살펴보았으나 똥에 더럽혀지지 않아 붙잡고 끌어낼 수 있는 깨끗한 부분을 이 사람에게서 털끝만큼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난아, 이와 같이 만일 내가 제화달다에게서 털끝만큼이라도 희고 깨끗한 법이 있는 것을 보았다면 나는 한결같이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 거기서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고 예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난아, 나는 제화달다에게서 희고 깨끗한 법을 털끝만큼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는 한결같이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 거기서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이다.”

이에 존자 아난은 흐느껴 울다가 손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십니다. 세존께서는 한결같이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 거기서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고 예언하셨으니 말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나는 한결같이 ‘제화달다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 거기서 1겁을 머문다 해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하였다. 아난아, 네가 여래에게서 대인(大人)의 근본지혜의 분별을 들으면 반드시 여래를 더욱 믿게 되고 또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비구들을 위하여 대인의 근본지혜의 분별을 말씀해주시면 모든 비구들은 세존께 그것을 듣고는 잘 받아 지닐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이제 너를 위하여 대인의 근본지혜의 분별을 말하겠다.”
존자 아난이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他心智)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한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한 법이 멸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한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생겼지만 다른 선근이 있어 끊어지지 않고 이 선근을 좇아 마땅히 다시 선이 생겨날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이 청정한 법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마치 이른 아침에 해가 뜨기 시작하면 어둠이 없어지고 밝음이 생기는 것과 같다. 아난아,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해가 점점 떠올라 아침 무렵이 되면 어둠은 이미 멸해버리고 밝음은 이미 생겼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한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한 법이 멸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한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생겼지만 다른 선근이 있어서 끊어지지 않고 그 선근을 좇아 마땅히 다시 선이 생겨날 것이고 이렇게 그 사람이 청정한 법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마치 파괴되지 않고 썩지 않고 갈라지지 않았으며 바람이나 더위에 상하지 않은 것으로 가을에 잘 저장해 두었던 곡식 종자와 같다. 만일 저 거사가 좋은 밭을 갈아 그 종자를 뿌리고 때맞추어 비가 온다면 아난아,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그 종자는 과연 점점 크게 자라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한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한 법이 멸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한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생겼지만 다른 선근이 있어서 끊어지지 않고 그 선근을 좇아 마땅히 다시 선이 생겨날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이 청정한 법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이것을 여래의 대인(大人)의 근본지혜라고 한다. 이렇게 여래는 바로 모든 법의 근본을 안다.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한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한 법이 멸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한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생긴 것과 다른 선근이 있어서 아직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장차 반드시 끊어질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이 쇠퇴한 법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마치 해거름이 되어 해가 지려 하는 어스름한 때에 밝음이 멸하고 어둠이 생기는 것과 같다. 아난아,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그 해가 지면 밝음은 이미 멸해 버리고 어둠은 이미 생겼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한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그 착한 법이 멸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한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생긴 것과 다른 선근이 있어서 아직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장차 반드시 끊어질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이 쇠퇴한 법을 얻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마치 곡식 종자와 같으니 파괴되지 않고 썩지 않고 갈라지지 않았으며 바람이나 더위에 상하지 않은 것을 가을에 잘 저장해 두었다가 만일 저 거사가 좋은 밭을 잘 갈아 그 종자를 뿌렸더라도 때맞추어 비가 오지 않는다면 아난아,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그 종자는 과연 점점 크게 자랄 수 있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한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한 법이 멸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한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생긴 것과 다른 선근이 있어서 아직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장차 반드시 끊어질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이 쇠퇴한 법을 얻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이것을 여래의 대인의 근본지혜라고 한다. 이렇게 여래는 바로 모든 법의 근본을 안다.

아난아,여래가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에게서 희고 깨끗한 법을 털끝만큼도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으로 한결같이 충만하고 더러우니 그것은 미래 생명의 근본이 되고 괴로운 번뇌의 과보가 되며 생ㆍ노ㆍ병ㆍ사의 원인이 되어 이렇게 하여 그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아난아, 마치 종자와 같은데 썩거나 파괴되거나 쪼개지고 바람이나 더위에 상하고 가을에도 잘 저장해 두지 않은 것을, 만일 저 거사가 좋지 않은 밭을 잘 갈지도 않고 곧 그 종자를 뿌리되 때맞추어 비도 오지 않는다면 아난아,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그 종자는 과연 점점 크게 자랄 수 있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난아, 여래가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에게서 희고 깨끗한 법을 털끝만큼도 보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으로 한결같이 충만하고 더러우니 그것은 미래 생명의 근본이 되고 괴로운 번뇌의 과보가 되며 생ㆍ노ㆍ병ㆍ사의 원인이 되어 이렇게 하여 그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여래의 대인의 근본지혜라고 한다. 이렇게 여래는 바로 모든 법의 근본을 안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미 이러한 세 종류의 사람을 말씀해 주셨으니 다시 다른 세 종류의 사람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말해주겠다.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한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하지 않은 법이 멸하고 착한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한 법이 이미 생겼지만 다른 착하지 않은 뿌리[不善根]가 있어서 끊어지지 않고 이 착하지 않은 뿌리를 좇아 마땅히 다시 착하지 않은 것이 생길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이 쇠퇴한 법을 얻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마치 불을 붙이는 것과 같다. 치성하게 붙을 때에는 다 붙어서 한 불꽃이 된다. 거기에 어떤 사람이 건조한 풀을 보태고 마른 나무를 태운다면 아난아,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그 불은 과연 점점 크게 치성하게 붙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한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하지 않은 법이 멸하고 착한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한 법이 이미 생겼지만 다른 착하지 않은 뿌리가 있어서 끊어지지 않고 이 착하지 않은 뿌리를 좇아 마땅히 다시 착하지 않은 것이 생길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이 쇠퇴한 법을 얻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이것을 여래의 대인의 근본지혜라 하나니, 이렇게 여래는 바로 모든 법의 근본을 안다.

또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한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하지 않은 법이 멸하고 착한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한 법이 이미 생긴 것과 다른 착하지 않은 뿌리가 있어서 아직은 끊지 못했지만 장차 반드시 끊어질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은 청정한 법을 얻으리라는 것을 안다. 아난아, 마치 불을 붙이는 것과 같다. 치성하게 붙을 때에는 다 붙어서 한 불꽃이 된다. 어떤 사람이 이 치성한 불을 평평하고 깨끗한 땅에 두거나 돌 위에 둔다면 아난아, 네 생각에는 어떠한가? 그 불은 과연 점점 크게 치성하게 붙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난아, 여래는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이 착하지 않은 법을 성취할 것과 또한 착한 법을 성취할 것을 안다. 여래는 그 다음에 타심지로써 다시 그 사람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의 착하지 않은 법이 멸하고 착한 법이 생길 것과 그 사람의 착하지 않은 법이 이미 멸했고 착한 법이 이미 생긴 것과 다른 착하지 않은 뿌리가 있어서 아직은 끊지 못했지만 장차 반드시 끊을 것이라고 이렇게 그 사람은 청정한 법을 얻을 것을 안다. 아난아, 이것을 여래의 대인의 근본 지혜라고 한다. 이렇게 여래는 바로 모든 법의 근본을 안다.

아난아, 여래가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에게서 털끝만큼도 검은 업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착한 법으로 한결같이 충만하고 즐거움과 즐거움의 과보와 함께하니 반드시 즐거운 곳에 태어나 장수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이 사람은 현세에서 반드시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될 것이다. 아난아, 마치 숯불이 꺼진 지 오래되어 싸늘한 것과 같으니, 거기 어떤 사람이 비록 건조한 풀을 보태고 마른 나무를 대준다고 그 꺼진 숯불이 과연 다시 치성하게 탈 수 있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씀드렸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아난아, 여래가 타심지로써 남의 마음을 관찰하여 그 사람에게서 털끝만큼도 검은 업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착한 법으로 한결같이 충만하고 즐거움과 즐거움의 과보와 함께하니 반드시 즐거운 곳에 태어나 장수하게 될 것이며 이렇게 이 사람은 현세에서 반드시 반열반을 얻게 될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여래의 대인의 근본지혜라고 한다. 이렇게 여래는 바로 모든 법의 근본을 안다.

아난아, 앞에 말한 세 사람 중에서 첫째 사람은 청정한 법을 얻고 둘째 사람은 쇠퇴한 법을 얻고 셋째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뒤에 말한 세 사람 중에서 첫째 사람은 쇠퇴한 법을 얻고 둘째 사람은 청정한 법을 얻고 셋째 사람은 곧 현세에서 반열반을 얻게 될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미 너를 위하여 대인의 근본지혜를 말해주었다. 스승이 제자를 위해 하는 것처럼 대자비와 슬퍼하는 마음을 일으켜 가엾게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는 것을 나는 이제 이미 마쳤다. 너희들은 마땅히 스스로 노력하여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산림의 나무 밑이나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연좌(宴坐)하고 깊이 생각하며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힘쓰고 꾸준히 나아가 후회가 없게 하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며 이것이 나의 훈계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후한(後漢)시대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불설누분포경(佛說漏分布經)』이 있다
2 범어로는 sajña 이며, 심성(心性) 작용의 하나,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5변행(遍行)의 하나. 마음속에 떠오른 온갖 사물의 모양(相)으로서 객관적 사물에 대한 정신작용이 언어로 표현되기까지의 원인이 되는 것. 모든 것이 마음과 서로 상응하여 일어나는 것이다.
3 고려대장경 본문에는 8지성도(支聖道)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8정도(正道)의 다른 명칭으로서 불교의 실천수행 종목을 여덟 가지로 나눈 것임. 일반적으로 8정도란 용어로 많이 알려져 있으므로 이하 8정도로 표기한다.
4 범어로는 Pañca-Kāmagua 이며 다섯 가지의 욕망을 말한다. 여기서 gua의 한 낱말에 공덕(功德)ㆍ덕성(德性)ㆍ성질(性質)ㆍ종류(種類)등의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경전 중에서 5욕(欲)을 늘 5욕공덕(欲功德)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지(地)ㆍ수(水)ㆍ화(火)ㆍ풍(風)ㆍ공(空) 5대(大)의 서로 다른 덕성(德性:guna), 즉 색(色)ㆍ성(聲)ㆍ향(香)ㆍ미(味)ㆍ촉(觸) 등의 덕성이 사람들에게 욕망이 생기게 하는 공력(功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대장경 본문대로 5욕(欲)에 공덕(功德)이 있다거나 5욕의 공덕 등으로 해석하면 본문의 취지를 벗어나게 된다.
5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분별 사유(思惟)하는 사고(思考)가 겉으로 표현되어 동작ㆍ언어 등으로 발동되는 것.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의업(意業)과 합하여 3업(業)이라고 한다.
6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동진(東晋)시대 축담무란(竺曇無蘭)이 한역한 『불설아뇩풍경(佛說阿耨風經)』이 있다.
7 소경의 글자 수를 합해 보면 7,585자인데 여기 표기엔 7,582자로 되어 있어 실제 숫자보다 3자가 적게 나타나 있다.

해제보기

중아함경 제28권

승가제바 한역

10. 임품 제5 ②
113) 제법본경(諸法本經)1) 제7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모든 이학(異學)들이 너희들에게 와서 모든 법은 무엇을 근본[本]으로 삼느냐고 묻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그들에게 모든 법은 욕(欲)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대답하라. 그들이 만일 다시 무엇을 화(和:集起)로 삼느냐고 묻거든 갱락(更樂:觸)으로 화(和)를 삼는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그들이 또 무엇을 래(來:等趣)로 삼느냐고 묻거든 각(覺:受)을 래(來)로 삼는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그들이 만일 다시 무엇을 유(有:生成)로 삼느냐고 묻거든 사상(思想:作意)을 유로 삼는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그들이 만일 다시 무엇을 상주(上主:增上)로 삼느냐고 묻거든 염(念:正念)을 상주로 삼는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그들이 만일 다시 무엇을 전(前:上首)으로 삼느냐고 묻거든 정(定:等持)을 전으로 삼는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그들이 만일 다시 무엇을 상(上:最上)으로 삼느냐고 묻거든 혜(慧:智慧)를 상으로 삼는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그들이 만일 다시 무엇을 진(眞:眞實)으로 삼느냐고 묻거든 해탈(解脫:自在)을 진(眞)으로 삼는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그들이 만일 다시 무엇을 흘(訖:究盡)로 삼느냐고 묻거든 열반을 흘로 삼는다고 이렇게 대답하라. 이것을 비구가 욕(欲)을 모든 법의 근본으로 삼고 갱락(更樂)을 모든 법의 화(和)로 삼으며 각(覺)을 모든 법의 래(來)로 삼고 사상(思想)을 모든 법의 유(有)로 삼으며 염(念)을 모든 법의 상주(上主)로 삼고 정(定)을 모든 법의 전(前)으로 삼으며 혜(慧)를 모든 법의 상(上)으로 삼고 해탈을 모든 법의 진(眞)으로 삼으며 열반을 모든 법의 마지막[訖]으로 삼는 것이라 고 한다. 그러므로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출가하여 도를 배우려는 마음을 익히려면 무상하다는 생각[無常想]을 익히고 무상은 괴로움이라는 생각[無常苦想]을 익히며 괴로움에는 나가 없다는 생각[苦無我想]을 익히고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不淨想]을 익히며 나쁜 것을 먹는다는 생각[惡食想]을 익히고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一切世間不可樂想]을 익히며 죽는다는 생각[死想]을 익히고 세간의 좋고 나쁜 것을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을 익히며 세간 습(習)이 있는 것을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을 익히고 세간의 습(習)의 멸(滅)과 맛[味]과 근심[患]과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出要]을 사실 그대로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을 익혀야 한다.
만일 비구가 출가하여 도를 배우려는 마음을 익히게 되면 무상하다는 생각을 익히게 되고 무상은 괴로움이라는 생각을 익히게 되며 괴로움에는 나가 없다는 생각을 익히게 되고 깨끗하지 않다는 생각을 익히게 되며 나쁜 것을 먹는다는 생각을 익히게 되고 일체 세간은 즐거워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익히게 되며 죽는다는 생각을 익히게 되고 세간의 좋고 나쁜 것을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을 익히게 되며 세간의 습이 있는 것을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을 익히게 되고 세간의 습의 멸과 맛과 근심과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사실 그대로 알아 이렇게 생각하는 마음을 익히게 된다. 이것을 비구가 애욕을 끊고 번뇌[結]를 없애 모든 법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관찰한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제법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57자이다.

114) 우다라경(優陀羅經) 제8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우다라라마자(優陀羅羅摩子)는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자주 이렇게 말했다.
‘이 생에서 이것을 관찰하고 이것을 깨달았다. 종기[癰]의 근본을 모르겠더니 이제야 종기의 근본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
우다라라마자는 일체지(一切知)가 없으면서 일체지가 있다고 자칭하고 진실로 깨달은 바가 없으면서 깨달음이 있다고 자칭하였다. 우다라라마자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했다.
‘유(有)란 병(病)이며 종기[癰]이며 가시[刺]이다. 설사 생각이 없더라도 그것은 어리석음이다.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것은 그쳐 쉼[止息]이며 가장 묘한 것이다. 말하자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몸을 좋아하고 스스로 몸을 받아 스스로 그 몸에 집착한 뒤에 닦아 익혀 비유상비무상처까지 이르렀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 가운데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수명이 다한 뒤에는 다시 이 세간으로 와 삵[狸]으로 태어날 것이다.
여기 비구야말로 ‘이 생에서 이것을 관찰하고[觀] 이것을 깨달았다[覺]. 종기의 근본을 모르다가 이제야 종기의 근본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이다.

무엇을 비구의 바른 관찰이라고 하는가? 비구는 6갱촉(更觸)2)을 알고 그 원인[習]을 알며 멸[滅]을 알고 맛[味]을 알며 근심[患]을 알고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出要]을 알며 지혜로써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비구의 바른 관찰이라고 한다.
어떤 것을 비구의 각(覺)이라고 하는가? 비구는 3각(覺)을 알고 그 원인을 알며 멸을 알고 맛을 알며 근심을 알고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며 지혜로써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비구의 각이라고 한다.
무엇을 비구가 종기의 근본을 모르다가 이제야 종기의 근본을 온전히 아는 것이라고 하는가? 비구는 유에 대한 애착[有愛]의 멸을 알아 그 근본을 뽑아내 끝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비구가 종기의 근본을 모르다가 이제야 종기의 근본을 온전히 아는 것이라고 한다.
종기란 곧 이 몸이다. 그것은 4대(大:地ㆍ水ㆍ火ㆍ風)로 이루어진 거친 물질[色]로서 부모로부터 났고 음식으로 자라나고 옷을 입고 문지르며 목욕하고 억지로 참는 것으로서 덧없는 법이며 무너지는 법이며 흩어지는 법이다. 이것을 종기라고 한다.
종기의 근본이란 곧 3애(愛)이니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이다. 이것을 종기의 근본이라고 한다.
종기의 일체 누(漏)란 곧 6갱촉처(更觸處)이니 눈의 누(漏)는 색을 보는 것이며 귀의 누는 소리를 듣는 것이며 코의 누는 냄새를 맡는 것이며 혀의 누는 맛을 맛보는 것이며 몸의 누는 촉감을 깨닫는 것이며 뜻의 누는 모든 법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종기의 일체 누라고 한다.

비구들아, 나는 이미 너희들을 위하여 종기의 근본을 말하였다. 마치 스승이 제자를 위하듯이 큰 사랑과 연민으로 가엾게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는 것을 나는 이미 마쳤다.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노력하라. 일 없는 곳이나 나무 밑이나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편안히 앉아 깊이 생각하며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힘쓰고 꾸준히 나아가 후회가 없게 하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며 이것이 나의 훈계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우타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514자이다.

115) 밀환유경(蜜丸喩經)3) 제9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기수(釋羇瘦)를 유행하실 때에 가유라위국(迦維羅衛國)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기 위하여 가유라위로 들어가셨다. 걸식을 마치고 오후가 되어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손과 발을 씻으시고 니사단(尼師壇)을 어깨에 메고 죽림(竹林)의 석가사(釋迦寺)로 가셔서 큰 숲으로 들어가 한 나무 밑에 이르러 니사단을 펴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하셨다.

그때 집장석(執杖釋)4)이 오후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거닐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서로 문안하고 지팡이를 짚고 부처님 앞에 서서 세존께 여쭈었다.
“사문 구담(瞿曇)이시여, 무엇으로써 가르침의 근본[宗本]을 삼고 어떠한 법을 연설하십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집장석이여, 일체 세간과 하늘[天]ㆍ마군[魔]ㆍ범(梵)ㆍ사문(沙門)ㆍ범지(梵志)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서로 싸우지 않게 하고 또 욕심을 떠나 청정한 범행을 닦아 익히며 아첨과 거짓말을 버려 여의고 뉘우침을 없애며 유(有)와 비유(非有)와 또한 무상(無想)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 가르침의 근본이고 설법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이에 집장석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다가 머리를 흔들고 떠나갔다.

이에 세존께서는 집장석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해거름에 연좌에서 일어나 강당으로 가셔서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걸식하기 위하여 가유라위로 들어갔다. 걸식을 마치고 오후가 되어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손과 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에 메고 죽림의 석가사로 가서 큰 숲으로 들어가 한 나무 밑에 이르러 니사단을 펴고 결가부좌하고 있었다. 그때 집장석이 오후에 지팡이를 짚고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서로 문안하였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내 앞에 서서 내게 물었다.
‘사문 구담이시여, 무엇으로써 가르침의 근본을 삼으며 어떤 법을 연설하십니까?’
내가 대답했다.
‘석종이여, 일체 세간과 하늘ㆍ마군ㆍ범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서로 싸우지 않게 하고 또 욕심을 떠나 청정한 범행을 닦아 익히며 아첨과 거짓을 버려 여의고 뉘우침을 없애며 유와 비유와 또한 무상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 가르침의 근본이고 설법하는 것도 역시 이와 같다.’
그러자 그 집장석은 내 말을 듣고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다가 머리를 흔들고 떠나갔다.”

그러자 어떤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일체 세간과 하늘ㆍ마군ㆍ범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싸우지 않게 하며 또 어떻게 욕심을 떠나 청정한 범행을 닦아 익히고 어떻게 아첨과 거짓을 버리고 뉘우침을 없애며 유와 비유와 또한 무상에도 집착하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만일 사람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히고 또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을 사랑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한다. 탐욕의 번뇌[欲使]ㆍ성냄의 번뇌[恚使]ㆍ존재의 번뇌[有使]ㆍ교만의 번뇌[慢使]ㆍ무명의 번뇌[無明使]ㆍ견해의 번뇌[見使]ㆍ의심하는 번뇌[疑使]ㆍ싸움ㆍ미워함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셔서 연좌하셨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여 말하였다.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다음과 같이 대충 말씀하시고 널리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연좌하십니다.
〈만일 사람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히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을 사랑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한다. 탐욕의 번뇌ㆍ성냄의 번뇌ㆍ존재의 번뇌ㆍ교만의 번뇌ㆍ무명의 번뇌ㆍ견해의 번뇌ㆍ의심의 번뇌ㆍ싸움ㆍ미워함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여 말하였다.
‘여러분,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바의 뜻을 누가 널리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존자 대가전연(大迦旃延)은 항상 세존의 칭찬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바의 뜻을 널리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 함께 존자 대가전연에게 가서 이 뜻을 설명해줄 것을 청하고 만일 존자 대가전연께서 그것을 분별하거든 우리는 마땅히 잘 받아 지닙시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이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문안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말하였다.
“존자 대가전연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다음의 이치를 간략히 말씀셔서 널리 분별하지 않으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연좌하셨습니다.
‘비구여, 만일 사람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히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을 사랑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한다. 탐욕의 번뇌ㆍ성냄의 번뇌ㆍ존재의 번뇌ㆍ교만의 번뇌ㆍ무명의 번뇌ㆍ견해의 번뇌ㆍ의심의 번뇌ㆍ싸움ㆍ미워함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저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여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누가 능히 세존께서 조금 전에 간략히 말씀하신 바의 뜻을 널리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은 항상 세존의 칭찬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능히 세존께서 조금 전에 간략히 말씀하신 바의 뜻을 널리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원컨대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저희를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셔서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때 존자 대가전연은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내가 비유로 말하는 것을 들으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곧 그 뜻을 이해합니다. 여러분, 마치 어떤 사람이 나무심[實:목재]을 구하려고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간 것과 같습니다. 그는 큰 나무가 뿌리와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나무심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뿌리와 줄기ㆍ마디ㆍ나무심은 건드리지 않고 가지와 잎만을 건드렸습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것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현재 계시는데 그분을 저버리고 그 뜻을 내게 와서 물으니 말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눈이며 지혜시며 이치이며 법이시며 법의 주인이며 법의 장수로서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시는 것은 오직 저 세존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땅히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서 ‘세존이시여, 이것은 어떠하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뜻을 여쭈어 보십시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거든 여러분은 마땅히 잘 받아 가져야 합니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시여, 세존께서는 눈이며 지혜이시며 이치이며 법이시며 법의 주인이며 법의 장수로서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는 것은 오직 세존께 있습니다. 저희들은 마땅히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서 ‘세존이시여, 이것은 어떠하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뜻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일 세존께서 말씀해주시면 저희들은 마땅히 잘 받아 지녀야 합니다. 그러나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항상 세존의 칭찬과 또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시라면 능히 세존께서 조금 전에 간략히 말씀하신 바의 뜻을 자세히 분별하실 것입니다. 오직 원컨대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저희를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셔서 널리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 대가전연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다 같이 내 말을 들으시오. 여러분, 눈과 색(色)을 인연하여 눈의 식(識)이 생기고 세 가지가 함께 모여 곧 갱촉(更觸)이 있으며 갱촉을 인연하여 곧 감각[覺]이 있습니다. 만일 감각이 있으면 곧 생각하고[想] 만일 생각하면 곧 헤아리며[思] 만일 헤아리면 곧 기억하고[念] 만일 기억하면 곧 분별하게 됩니다. 비구는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힙니다. 이 가운데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을 사랑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苦邊]이라고 말합니다. 탐욕의 번뇌ㆍ성냄의 번뇌ㆍ존재의 번뇌ㆍ교만의 번뇌ㆍ무명의 번뇌ㆍ견해의 번뇌ㆍ의심의 번뇌ㆍ싸움ㆍ미워함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뜻[意]과 법(法)을 인연하여 의식이 생기고 세 가지가 함께 모여 곧 갱촉이 있으며 갱촉을 인연하여 곧 감각이 있습니다. 만일 감각이 있으면 곧 생각하고 만일 생각하면 곧 헤아리며 만일 헤아리면 곧 기억하고 만일 기억하면 곧 분별하게 됩니다. 비구는 이 생각으로 말미암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힙니다. 이 가운데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사랑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합니다. 탐욕의 번뇌ㆍ성냄의 번뇌ㆍ존재의 번뇌ㆍ교만의 번뇌ㆍ무명의 번뇌ㆍ견해의 번뇌ㆍ의심의 번뇌ㆍ싸움ㆍ미워함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비구가 눈[眼]을 없애고 색(色)을 없애고 눈의 인식[眼識]을 없애고서도 갱촉(更觸)이 있다고 갱촉을 설정한다면 그것은 그럴 이치가 없습니다. 만일 갱촉을 설정하지 않고서도 감각[覺]이 있다고 감각을 설정한다면 그것은 그럴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감각을 설정하지 않고서도 생각을 설정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힌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럴 이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意]을 없애고 법(法)을 없애고 의식(意識)을 없애고서도 갱촉이 있다고 갱촉을 설정한다면 그것은 그럴 이치가 없습니다. 만일 갱촉을 설정하지 않고서도 감각이 있다고 감각을 설정한다면 그것은 그럴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감각을 설정하지 않고서도 생각을 설정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힌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럴 이치가 없습니다.

여러분, 비구가 눈을 인연하고 색을 인연하고 눈의 인식을 인연하여 갱촉이 있다고 갱촉을 설정한다면 반드시 그런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갱촉을 설정함을 인연하여 감각이 있다고 감각을 설정한다면 반드시 그런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감각을 설정함을 인연하여 생각이 있다고 설정하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힌다고 한다면 반드시 그런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을 인연하고 법을 인연하고 의식을 인연하여 갱촉이 있다고 갱촉을 설정하면 반드시 그런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갱촉을 설정함을 인연하여 감각이 있다고 감각을 설정하면 반드시 그런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감각을 설정함을 인연하여 생각이 있다고 설정하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힌다고 한다면 반드시 그런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존께서는 간략히 이 이치를 말씀하셔서 널리 분별하지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연좌하셨습니다.
‘비구여, 만일 사람이 생각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생각하며 닦아 익히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법을 사랑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한다. 욕심의 번뇌ㆍ성냄의 번뇌ㆍ존재의 번뇌ㆍ교만의 번뇌ㆍ무명의 번뇌ㆍ견해의 번뇌ㆍ의심하는 번뇌ㆍ싸움ㆍ미워함ㆍ아첨ㆍ속임ㆍ거짓말ㆍ이간하는 말과 한량없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면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고 말한다.’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셔서 널리 그 뜻을 분별하시지 않은 것을 나는 이 글귀와 이 글로써 이렇게 자세히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부처님께 가서 자세히 여쭈어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신 뜻과 같거든 여러분은 곧 받아 지녀도 좋습니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의 말을 듣고 잘 받아 지녀 외우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대가전연을 세 번 돌고 떠났다. 그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전에 이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셔서 널리 분별하시지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연좌하셨는데, 존자 대가전연이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내 제자 중에서 그는 눈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법이 있고 이치가 있다. 무슨 까닭인가? 곧 스승은 제자를 위해 간략히 이 이치를 말하고 널리 분별하지 않았는데, 제자는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대가전연의 설명은 틀림이 없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렇게 받아 지녀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뜻을 관찰하여 설명하는 것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구들아, 마치 어떤 사람이 일 없는 곳이나 산림이나 나무 사이에 갔다가 갑자기 밀환(蜜丸)을 얻어, 그 먹는 바를 따라 그 맛을 얻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족성자도 나의 바른 법률에서 그의 관찰하는 바를 따라 그 맛을 얻는다. 눈을 관찰하여 맛을 얻고 귀ㆍ코ㆍ혀ㆍ몸을 관찰하고 뜻을 관찰하여 맛을 얻는다.”

그때 존자 아난은 불자(拂子)를 잡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법을 무엇이라고 이름해야 하며 저는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법을 밀환유(蜜丸喩)라고 이름하여 너는 마땅히 받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이 밀환유법을 받아 읽고 외워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아, 이 밀환유는 법이 있고 뜻이 있으며 범행(梵行)의 근본으로서 신통(神通)으로 나아가고 깨달음[覺]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만일 족성자로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이 밀환유를 잘 받아 지녀야 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밀환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272자이다.

116) 구담미경(瞿曇彌經)5) 제10제2 소토성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기수(釋羇瘦)를 유행하실 때에 가유라위(迦維羅衛)의 니구류(尼拘類)나무 동산에 계시면서 대 비구들과 함께 여름 안거를 맞으셨다.

그때 구담미 대애(瞿曇彌大愛)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인도 제4의 사문과(沙門果)를 얻을 수 있습니까? 또 이로 말미암아 여인도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구담미(瞿曇彌)여, 그대는 ‘여인도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울 것이다’라고 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마시오. 구담미여, 이와 같이 그대도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범행을 깨끗이 닦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이에 구담미 대애는 부처님의 제지를 받자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때 모든 비구들은 세존께서는 오래지 않아 석기수에서 3개월 동안의 여름 안거를 마치신 뒤에는 옷을 기워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세간을 유행하실 것이라고 하여 부처님을 위하여 옷을 만들었다. 구담미 대애는 모든 비구들이 세존께서는 오래지 않아 석기수에서 3개월 동안 여름 안거를 마치신 뒤에는 옷을 기워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세간을 유행하실 것이라고 하여 부처님을 위하여 옷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담미 대애는 이 소식을 듣고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인도 제4의 사문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또 이로 말미암아 여인도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구담미여, 그대는 ‘여인도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것이다’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오. 구담미여, 이와 같이 당신도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그 몸과 목숨을 다해 범행을 깨끗이 닦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마시오.”

이에 구담미 대애는 다시 부처님의 제지를 받자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석기수에서 3개월 동안의 여름 안거를 마치고 옷을 기워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세간을 유행하셨다. 구담미 대애는 세존께서 석기수에서 3개월 동안의 여름 안거를 마치고 옷을 기워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세간을 유행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구담미 대애는 곧 사이(舍夷)6)의 모든 늙은 어머니들과 함께 부처님 뒤를 좇아, 계속해서 나마제까지 가서 나마제(那摩提)의 건니정사(揵尼精舍)에 머물렀다. 이에 구담미 대애는 다시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인도 제4의 사문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또 이로 말미암아 여인도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는 세 번째 말씀하셨다.
“그만두시오, 그만두시오. 구담미여, 당신은 ‘여인도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리라’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오. 구담미 대애여, 이와 같이 그대도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범행을 깨끗이 닦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마시오.”

이에 구담미 대애는 세 번째 부처님의 제지를 받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때 구담미 대애는 흙 묻은 맨발에 몸에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지극히 피로해 슬피 울면서 문밖에 서 있었다. 존자 아난은 구담미 대애가 흙 묻은 맨발에 몸에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지극히 피로해 슬피 울면서 문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구담미여, 무슨 까닭으로 흙 묻은 맨발에 몸에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지극히 피로해 슬피 울면서 문밖에 서 있습니까?”

구담미 대애가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여, 여인은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없습니까?”

“구담미여, 지금 잠깐만 여기 계십시오. 제가 부처님께 나아가 이 일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구담미 대애가 말했다.
“부디 그래 주십시오. 존자 아난이여.”

이에 아난은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인도 제4의 사문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또 이로 말미암아 여인도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아난아,너는 ‘여인도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있으리라’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 아난아, 만일 여인으로 하여금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있게 하면, 곧 이 범행을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할 것이다. 아난아, 마치 사람의 집에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은 것과 같으니, 그런 집이 흥성할 수 있겠는가?”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아난아, 만일 여인으로 하여금 이 바른 법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있게 하면 이 범행을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할 것이다. 아난아, 마치 벼 밭이나 보리밭에 병균이 생기면 반드시 그 밭을 못 쓰게 만드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이 아난아, 만일 여인으로 하여금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울 수 있게 한다면 이 범행을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할 것이다.”

존자 아난이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구담미 대애는 세존을 위하여 많은 요익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의 모친께서 돌아가신 뒤에 구담미 대애가 세존을 기르셨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구담미 대애는 나에게 많은 요익을 주었으니 곧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나를 기르셨다. 아난아, 나도 역시 구담미 대애에게 많은 요익을 주었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구담미 대애는 나로 인해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승가에 귀의하게 되었으며 이 3존(尊)과 고(苦)ㆍ습(習:集)ㆍ멸(滅)ㆍ도(道)를 의심하지 않고 믿음을 성취하고 금계(禁戒)를 받들어 지니며 학문을 닦아 많이 들었으며 보시를 성취하고 지혜를 얻었다. 생물을 죽이는 것을 떠나고[離殺] 생물을 죽이는 것을 끊었으며[斷殺]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떠나고[離不與取]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끊었으며[斷不與取] 사음을 떠나고[離邪淫] 사음을 끊었으며[斷邪淫] 거짓말을 떠나고[離妄言] 거짓말을 끊었으며[斷妄言] 술을 떠나고[離酒] 술을 끊었다[斷酒].

아난아, 만일 어떤 그 사람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부처님께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며 승가에 귀의하게 되고 3존(尊)과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의심하지 않으며 믿음을 성취하고 금계를 받들어 지니며 학문을 닦아 많이 듣고 보시를 성취하고 지혜를 얻게 하며 생물을 죽이는 것을 떠나고 생물을 죽이는 것을 끊으며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떠나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을 끊으며 사음을 떠나고 사음을 끊으며 거짓말을 떠나고 거짓말을 끊으며 술을 떠나고 술을 끊었다면 아난아, 설사 이 사람은 그 사람에게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모든 생활도구를 공양한다 하더라도 그 은혜를 갚을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제 여인을 위하여 8존사법(尊師法)을 세울 것이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서는 안 되고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마치 어부나 어부의 제자가 깊은 물에 둑을 만들어 물을 막아 흘러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난아, 나도 이제 여인을 위하여 8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아난아, 비구니는 마땅히 비구에게서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1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2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만일 머무는 곳에 비구가 없으면 비구니는 곧 여름 안거를 받지 못한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3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비구니는 여름 안거를 마친 뒤에는 2부대중[二部衆:此丘ㆍ此丘尼] 가운데서 본 것ㆍ들은 것ㆍ의심스러운 것의 3사(事)에 대하여 비판을 구하여야 한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4존사법을 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비구니의 물음을 허락하지 않으면 비구니는 곧 비구에게 경(經)ㆍ율(律)ㆍ아비담(阿毘曇)을 물을 수 없고 만일 물음을 허락하면 비구니는 비구에게 경ㆍ율ㆍ아비담을 물을 수 있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5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비구니는 비구의 허물을 말할 수 없지만 비구는 비구니의 허물을 말할 수 있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6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비구니가 만일 승가바시사(僧伽婆尸沙)7)를 범했으면 마땅히 2부대중 가운데서 보름동안 근신을 행하여야 한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7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비구니는 구족계를 받고서 100세가 되었더라도 처음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비구를 향해서 지극히 마음을 낮춰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합장하고 문안하여야 한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8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나는 여인을 위하여 이 8존사법을 세운다.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한다. 아난아, 만일 구담미 대애가 이 8존사법을 받들어 지닌다면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아 비구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존자 아난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지니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린 뒤에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는 구담미 대애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구담미여, 여인도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구담미 대애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8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할 것입니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구담미여, 비구니는 마땅히 비구에게서 구족계를 받아야 합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1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비구니는 보름마다 비구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2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만일 머무는 곳에 비구가 없으면 비구니는 여름 안거를 받을 수 없습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3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비구니는 여름 안거를 마친 뒤에는 2부대중 가운데서 본 것ㆍ들은 것ㆍ의심스러운 것의 3사에 대하여 비판을 구하여야 합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4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만일 비구가 비구니의 물음을 허락하지 않으면 비구니는 비구에게 경ㆍ율ㆍ아비담을 물을 수 없고 만일 물음을 허락하면 비구니는 경ㆍ율ㆍ아비담을 물을 수 있습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5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비구니는 비구의 허물을 말할 수 없지만 비구는 비구니의 허물을 말할 수 있습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6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비구니가 만일 승가바시사(僧伽婆尸沙)를 범했으면 마땅히 2부대중 가운데서 보름동안 근신을 행하여야 합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7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비구니는 구족계를 받은 지 100세가 되었더라도 처음 구족계를 받은 비구를 향해서 지극히 마음을 낮춰,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공경하고 받들어 섬기며 합장하고 문안하여야 합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제8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8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여인은 그것을 범해선 안 되고 여인은 그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받들어 지녀야 합니다. 구담미여,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구담미 대애가 이 8존사법을 받들어 지닌다면 그는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아 비구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구담미 대애가 말했다.
“존자 아난이여, 내가 비유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곧 그 뜻을 이해할 것입니다. 존자 아난이여,마치 용모가 단정하고 아름다운 찰리(刹利)의 여자나 범지(梵志)ㆍ거사ㆍ기술자의 여자가 깨끗하게 목욕한 뒤에 몸에 향을 바르고 환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온갖 영락으로 용모를 잘 꾸몄을 때, 어떤 사람이 그 여자를 생각하기 때문에 이익과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여 푸른 연꽃다발이나 첨복꽃[瞻蔔華]다발, 혹은 수마나꽃[修摩那華]다발ㆍ바사꽃[婆師華]다발ㆍ아제모다꽃[阿提牟多華]다발을 가져다 그 여자에게 주면, 그 여자는 기뻐하며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 머리에 장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존자 아난이여, 세존께서는 여인을 위하여 이 8존사법을 세우셨으니 저는 몸과 목숨을 마칠 때까지 모셔 받아 받들어 지니겠습니다.”

그때 구담미 대애는 바른 법률 가운데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아 마침내 비구니가 되었다. 구담미 대애는 훗날 점차 큰 비구니 대중을 이루게 되었을 때 왕에게 잘 알려지고 오랫동안 범행을 닦은 모든 장로 상존(長老上尊) 비구니들과 함께 존자 아난에게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말씀드렸다.
“존자 아난이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이 모든 비구니들은 다 장로 상존으로서 왕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오랫동안 범행을 닦았습니다. 저 비구들은 나이 젊은 신학(新學)으로서 늦게 출가하여 이 바른 법률 가운데 들어온 지 오래지 않았습니다. 원컨대 저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이 모든 비구니들을 위하여 그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공경하여 받들어 섬기며 합장하고 문안하게 하십시오.”

이에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구담미여, 지금 잠깐 여기 계십시오. 제가 부처님께 나아가 이 일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구담미 대애가 말하였다.
“예, 그러십시오, 존자 아난이시여.”

이에 존자 아난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구담미 대애는 왕에게 잘 알려지고 오랫동안 범행을 닦은 모든 비구니 장로 상존과 함께 저에게 와서 제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합장하고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이 모든 비구니들은 다 장로 상존으로서 왕에게 잘 알려져 있으며 오랫동안 범행을 닦았습니다. 저 여러 비구들은 나이 젊은 신학으로서 늦게 출가하여 이 바른 법률에 들어온 지 오래지 않았습니다. 원컨대 저 모든 비구들로 하여금 이 모든 비구니들을 위하여, 그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라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공경하여 받들어 섬기며 합장하고 문안하게 하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둬라, 그만둬라. 아난아, 그 말을 조심하고 삼가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아난아, 네가 만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반드시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을 것인데 하물며 그런 말을 하겠는가?
아난아. 만일 여인이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범지와 거사들은 옷을 땅에 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정진하는 사문께서는 이 위로 가십시오. 정진하는 사문께서는 힘든 수행을 하시니 저희들로 하여금 영원히 이익과 요익을 얻게 하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십시오.’
아난아, 만일 여인이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범지와 거사들은 머리털을 땅에 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정진하는 사문께서는 이 위로 가십시오. 정진하는 사문께서는 힘든 수행을 하시니 저희들로 하여금 영원히 이익과 요익을 얻게 하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십시오.’

아난아, 만일 여인이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범지와 거사들은 사문을 보면 손에 여러 가지 음식을 받들고 길가에 서서 기다리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을 받아 드시고 이것을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쓰시고 저희들로 하여금 영원히 이익과 요익을 얻게 하시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십시오.’
아난아, 만일 여인이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믿음이 있는 범지들은 정진하는 사문을 보면 공경하는 마음으로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가 여러 가지 재물을 가져다 정진하는 사문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여러분, 이것을 받아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쓰시고 저희들로 하여금 영원히 이익과 요익을 얻게 하시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십시오.’

아난아, 만일 여인이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이 해와 달이 큰 여의족(如意足) 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威神)이 있다지만 정진하는 사문의 위신의 덕에는 미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저 앙상하고 나약한 이학이겠는가?
아난아, 만일 여인이 이 바른 법률 가운데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도록 하지 않았더라면, 이 바른 법은 1천 년은 더 계속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500년을 잃었으니 남은 것은 500년뿐이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인은 5사(事)를 얻을 수 없으니 비록 여인이 여래ㆍ무소착(無所着)ㆍ등정각(等正覺)과 전륜왕ㆍ천제석ㆍ마왕ㆍ대범천이 되려 하더라도 끝내 그렇게 될 수 없다. 그러나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남자는 5사를 얻을 수 있고 만약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과 전륜왕ㆍ제석천ㆍ마왕ㆍ대범천이 되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오(吳)나라 시대 지겸(支謙)이 한역한 『불설제법본경(佛說諸法本經)』이 있다.
2 6촉처(觸處) 즉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ㆍ의(意)를 말한다.
3 이 경의 내용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것으로는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35권 「칠일품(七日品)」의 열 번째 소경이 있다.
4 팔리어로는 Dandapni Sakka 로서 의역하면 석씨집장자(釋氏執杖者)란 뜻. 석가족(釋迦族) 사람으로서 이름이 집장자(執杖者)이다. 또 밀환유경(蜜丸喩經)의 이역경인 『증일아함경』「칠일품(七日品)」10에는 집장종종(執杖種種)으로 나온다.
5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남전장경(南傳藏經)의 율장소품(律藏小品)과 유송(劉宋)시대 혜간(慧簡)이 한역한 『불설구담미기과경(佛說瞿曇彌記果經)』이 있으며 참고가 될 경으로는 『사분율(四分律)』 제48권과 『오분율(五分律)』 제29권이 있다.
6 팔리어로는 Sākiyānī이고 석가족 여인들이라는 뜻이다.
7 범어로는 Saṇghāvaseṣa라고 한다. 또는 음사하여 승가벌시사(僧伽伐尸沙), 승가지시사(僧伽胝施沙)라고도 한다. 승잔죄(僧殘罪)를 말하며 7취계(聚戒)의 하나. 바라이(波羅夷,Pārājikā)죄 다음가는 무거운 죄로서 여러 스님들에게 참회하여 허락하면 구제될 수 있는 계법. 여기에 비구가 지닐 13승잔과 비구니가 지닐 17종ㆍ19종ㆍ20종 승잔죄의 구별이 있다.
8 「임품」인 제27권과 제28권의 글자 수를 합하면 총 14,181자인데, 여기엔 14,182자로 되어 있어 실제 기록보다 1자 더 많다.

해제보기

중아함경 제29권

승가제바 한역

11. 대품(大品) 제1①
이 품에는 모두 25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이 품은 제3 일일송(一日誦)으로서 이 송의 이름은 염송(念誦)이다. 이 염송 안에는 두 개의 품(品)에 25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1)

유연경(柔軟經)ㆍ용상경(龍象經)ㆍ설처경(說處經)과
설무상경(說無常經)ㆍ청정경(請請經)ㆍ첨파경(瞻波經)이며
사문이십억경(沙門二十億經)ㆍ팔난경(八難經)과
빈궁경(貧窮經)ㆍ행욕경(行欲經)ㆍ복전경(福田經)일세.

우바새경(優婆塞經)ㆍ원가경(怨家經)과
교담미경(敎曇彌經)ㆍ항마경(降魔經)이며
뢰타화라경(賴吒■羅經)ㆍ우바리경(優婆離經)과
석문경(釋問經)ㆍ선생경(善生經)이네.
상인구재경(商人求財經)ㆍ세간경(世間經)ㆍ복경(福經)과
식지도경(息止道經)ㆍ지변경(至邊經)ㆍ유경(喩經)이라네.

117) 유연경(柔軟經) 제1제3 염송(念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옛날 출가하여 도를 배운 뒤로는 여유 있게 노닐며 조용하고 한가하고 즐거워 매우 유연하였다. 내가 부왕 열두단(悅頭檀)2)의 집에 있을 때에는 나를 위해 여러 가지 궁전, 곧 봄 궁전ㆍ여름 궁전ㆍ겨울 궁전을 지었으니 나를 잘 노닐게 하기 위해서였다.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엔 다시 푸른 연꽃못ㆍ붉은 연꽃못ㆍ빨간 연꽃못ㆍ흰 연꽃못 등 여러 가지 꽃못을 만들고 그 못 가운데에는 푸른 연꽃ㆍ붉은 연꽃ㆍ빨간 연꽃ㆍ흰 연꽃 등 온갖 물꽃을 심어서 언제나 물이 있고 언제나 꽃이 있었으며, 사람을 시켜 지키게 해 일체 통행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나를 잘 노닐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못 언덕에는 또 수마나(修摩那)꽃ㆍ바사(婆師)꽃ㆍ첨복(瞻蔔)꽃ㆍ수건제(修揵提)꽃ㆍ마두건제(摩頭揵提)꽃ㆍ아제모다(阿提牟多)꽃ㆍ파라두(波羅頭)꽃 등 온갖 육지 꽃을 심었으니 나를 잘 노닐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네 사람을 시켜 나를 목욕시키고는 목욕 후에 붉은 전단향을 내 몸에 바르고 몸에 향을 바른 후에 새 비단옷을 입혔으니 위아래나 안팎이나 겉과 속이 다 새 것이었다. 그리고 밤낮으로 언제나 일산을 내게 씌웠으니 나[太子]로 하여금 밤에는 이슬에 젖지 않고 낮에는 볕에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항상 다른 집에서는 밀기울ㆍ보리밥ㆍ콩국ㆍ생강채를 제일가는 음식으로 삼는 것처럼 내 아버지 열두단의 집 가장 낮은 하인은 쌀밥과 기름진 반찬을 제일가는 음식으로 삼았다.

다시 다음에는 혹은 들짐승으로 최고로 맛있는 짐승들이 있었으니 곧 제제라화타(提帝邏■吒)ㆍ겁빈사라(劫賓闍邏)ㆍ혜미하리니사시라미(奚米何犁泥奢施羅米)같은 들짐승으로, 가장 맛난 짐승은 언제나 나를 위한 요리가 되었다.

내가 옛날의 아버지 열두단의 집을 생각하면, 여름 4개월 동안은 정전(正殿) 위에 올라가 있었는데 남자는 없고 오직 기생만 있어서 스스로 즐기면서 애당초 내려오지 않았다. 내가 동산을 구경하러 나가려고 할 때에는 30명의 제일 훌륭한 기병을 뽑아 의장이 앞뒤에서 시종하고 인도하게 하였으니 하물며 그 나머지였겠느냐? 나는 이런 여의족(如意足)이 있었으니, 이것이 가장 유연한 것이었다.

나는 또 옛날을 생각하면, 농부가 밭 위에서 쉬는 것을 보고 염부(閻浮)나무 아래로 가서 결가부좌 하여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여의며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스스로 병을 가지고 있어 병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다른 사람의 병을 보고 스스로 자기를 관찰하지 못한다 하여 미워하고 천하게 여겨 사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자신이 병을 가지고 있어 병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만일 내가 남의 병을 보고 미워하고 천히 여겨 사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게도 또한 이 병이 있기 때문에 나 또한 옳지 못하다.’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병들지 않았다고 해서 일어나는 뽐내는 마음은 곧 저절로 없어졌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스스로 늙는 법이 있어 늙음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남의 늙음을 보고 스스로 자기를 관찰하지 못한다 하여, 미워하고 천하게 여겨 사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스스로 늙는 법이 있어 늙음을 떠나지 못했으면서 만일 내가 남의 늙음을 보고 미워하고 천하게 여겨 사랑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게도 역시 이 법이 있기 때문에 나 또한 옳지 못하다.’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오래 산다고 하여 일어나는 뽐내는 마음은 곧 저절로 없어졌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병들지 않았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름 피우며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는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젊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름 피우며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는다.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오래 산다고 하여 뽐내고 거드름 피우며 방일하고 욕심으로 말미암아 어리석음이 생겨 범행을 행하지 않는다.”

이에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앓는 법과 늙는 법
그리고 죽는 법
그것은 으레 있는 법인데
범부는 그것 보고 미워하도다.

만일 내가 미워만 하고
이 법을 건너가지 못하면
내게도 이 법 있기에
나 또한 옳지 못하네.

그가 만일 이렇게 행하면
법을 알아 생을 떠나련만
병이 없는 젊은 사람은
오래 산다고 뽐내는구나.

모든 뽐내는 마음 끊어 버리면
욕심이 없어 편안하게 되리라.
그가 만일 이렇게 깨달으면
욕심에 대하여 두려움 없고
생각도 없게 되어
깨끗한 범행을 할 수 있으리.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유연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총 791자이다.

118) 용상경(龍象經) 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동원(東園)의 녹자모당(廘子母堂)3)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질녘에 연좌에서 일어나 당상에서 내려오셔서 말씀하셨다.
“오다이(烏陀夷)여, 너와 함께 동하(東河)에 가서 목욕해야겠다.”

존자 오타이가 말했다.
“예.”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오다이를 데리고 동하로 가셔서 언덕 위에서 옷을 벗고 곧 물에 들어가 목욕하셨다. 목욕을 마친 뒤에 도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으셨다.

그때 바사닉왕(波斯匿王)에게는 염(念)이라는 이름의 용상(龍象)이 있어 갖가지 소리를 내며 씩씩하게 동하를 건너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대용왕(大龍王)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

존자 오다이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사람들이 몸집이 큰 코끼리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대용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오다이여, 그렇다. 오다이여, 사람들은 몸집이 큰 코끼리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대용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
오다이여, 말ㆍ낙타ㆍ소ㆍ나귀ㆍ뱀ㆍ사람ㆍ나무로 큰 몸집을 가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용 중의 용으로서 대용왕이다. 이것은 이름이 무엇인가?’
오다이여, 만일 세간이나 하늘ㆍ마군ㆍ범(梵)ㆍ사문(沙門) 범지(梵志)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몸과 입과 뜻으로써 해치지 않으면, 나는 그를 용이라고 말한다.
오다이여, 여래는 세간이나 하늘ㆍ마군ㆍ범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몸과 입과 뜻으로써 해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를 용이라고 이름한다.”

이에 존자 오다이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하건대 제게 위력을 주십시오. 선서(善逝)시여, 제게 위력(威力)을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로 하여금 부처님 앞에서 용에 알맞은 노래로써 세존을 찬탄하게 하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이에 존자 오다이는 부처님 앞에서 용에 알맞은 노래로써 세존을 찬탄하였다.

정각(正覺)께서는 인간 세계에 나셔서
스스로 제어하여 바른 선정 얻고
깨끗한 행을 닦아 익히고
마음을 쉬어 스스로 즐거워하시네.

사람의 공경과 존중 받아
일체법을 뛰어 넘었고
또한 하늘의 공경을 받으니
집착이 없는 지극히 참된 사람

일체의 번뇌[結]를 뛰어 넘어서
숲에서 숲을 버려 떠나고
욕심을 버려 무욕(無欲)을 즐기는 것
돌에서 황금이 나오는 것 같네.

널리 듣고 바로 다 깨닫기는
마치 허공에 해가 돋는 듯
일체 용 가운데서 우뚝하기는
뭇 산 위로 솟은 멧부리 같네.

일컬어 큰 용이라 말하지만
남을 해치지 않으시니
일체 용 중의 용으로서
진실로 참되어 위없는 용이시라.

온화함과 해침이 없음
이 두 가지는 이 용의 발이며
고행과 범행
그것은 용의 행동이라네.

큰 용은 믿음을 손으로 삼고
두 가지 공덕을 어금니로 삼으며
생각은 목이며 지혜는 머리로서
법을 깊이 생각하고 분별하시네.

모든 법을 받아 지니는 것은 배[腹]이며
멀리 떠남 즐기는 것은 두 팔
숨길의 드나듦에 잘 머물고
속마음은 지극히 잘 선정에 드시네.

용은 다니거나 멈추거나 선정에 들고
앉아서도 누워서도 또한 선정에 들어
용은 모든 때에 선정에 드나니
이것을 용의 상법(常法)이라고 한다.

더러움 없는 집에서 음식을 받고
더러움이 있으면 곧 받지 않으며
나쁘고 깨끗하지 못한 음식 얻으면
그것 버림을 사자처럼 하시네.

만일 공양을 얻게 되면
남을 자애롭고 가엾게 여겨 받으니
용은 남의 보시 받아먹으나
목숨을 보존함에 집착이 없으시네.

크고 작은 번뇌를 끊어 없애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하셔서
어느 곳에 가서 노닐더라도
마음에는 얽매임과 집착이 없으시네.

그것은 마치 새하얀 연꽃이
물에서 나고 물에서 자라도
진흙물이 거기에 붙지 못하고
묘한 향기와 사랑스런 빛깔 가진 것 같네.

이와 같이 최상의 깨달은 사람
세상에 나서 세상에서 살아도
욕심 때문에 물들지 않으시니
꽃이 물에 물들지 않듯이.

마치 치성하게 타오르던 불길도
섶을 대지 않으면 곧 꺼지듯이
섶 없으면 불은 잇닿지 못해
이 불은 이 때문에 꺼진다.

지혜로운 분께선 이 비유를 말해
그 뜻을 알리고자 하시니
이것이 용께서 아시는 바이며
용 중의 용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

음욕과 성냄을 멀리 여의고
어리석음을 끊어 무루(無漏) 얻은 뒤
용께선 그 몸을 버려 떠나니
이것을 이 용의 멸함이라 한다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오다이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용상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730자이다.

119) 설처경(說處經) 제3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4도 아니고 5도 아닌, 3설처(說處)4)가 있다. 만일 비구가 그것을 본[見] 뒤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말하고 싶다면 ‘나는 보았다’라고 말하라. 듣고[聞] 인식한 것[識]도 마찬가지이며, 알고[知]나서 비구는 말할 때 ‘이것이 내가 아는 것이다’라고 말하라.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비구여, 과거 세상에 대해 말할 때는 ‘이러한 과거 세상이 있었다’라고 말하라. 비구여, 미래 세상에 대해 말할 때는 ‘이러한 미래 세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라. 현재 세상에 대해 말할 때는 ‘이러한 현재 세상이 있다’고 말하라. 이것을 4도 아니고 5도 아닌 3설처라고 하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그것을 본[見] 뒤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말하고 싶다면 ‘나는 보았다’고 말하라. 듣고[聞] 인식한 것[識]도 마찬가지이며, 알고[知]나서 비구는 말할 때 ‘이것이 내가 아는 것이다’라고 말하라. 그 말로 인해 다른 이들이 그 뜻을 잘 배워 얻을 것이며 말하지 않으면 그 뜻을 잘 배워 익히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성의 제자들은 두 귀와 한마음으로 법을 듣는데, 그는 두 귀와 한마음으로 법을 들은 뒤에는 1법을 끊고 1법을 닦아 1법을 증득한다. 그는 1법을 끊고 1법을 닦아 1법을 증득한 뒤에는 곧 바른 선정을 얻는다. 현성의 제자는 마음에 바른 선정을 얻은 뒤에는 곧 일체의 음욕[淫]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끊는다. 현성의 제자는 이렇게 하여 심해탈(心解脫)을 얻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고 사실 그대로 안다.
그 말로 인해 4처(處)가 있으니 그것으로써 사람을 관찰하여 이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는가, 함께 말할 수 없는가를 살펴보라. 만일 그 사람이 일향론(一向論)에 일향으로 대답하지 않고 분별론(分別論)에 분별로 대답하지 않으며 힐론(詰論)에 힐(詰)로 대답하지 않고 지론(止論)에 지(止)로 대답하지 않으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없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없다. 만일 그 사람이 일향론에 일향으로 대답하고 분별론에 분별로 대답하며 힐론에 힐로 대답하고 지론에 지로 대답하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있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있다.

또 그 말로 인해 다시 4처가 있으니 그것으로써 사람을 관찰하여 이 사람은 함께 말할 수 있는가, 함께 말할 수 없는가를 살펴보라. 만일 그 사람이 처(處)ㆍ비처(非處)에도 머물지 않고 소지(所知)에도 머물지 않으며 설유(說喩)에도 머물지 않고 도적(道跡)에도 머물지 않으면 그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없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없다. 만일 그 사람이 처ㆍ비처에도 머물고 소지(所知)에도 머물며 설유에도 머물고 도적에도 머물면 그러한 사람은 함께 말할 수도 있고 또한 함께 의논할 수도 있다.
그 말하는 때로 인해 입의 행[口行]을 쉬고 자기의 소견을 버리고 원결(怨結)의 뜻을 버리며 욕심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며 어리석음을 버리고 거만을 버리며 말하지 않음을 버리고 아낌과 질투함을 버리며 이기기를 구하지 말고 남을 항복받으려 하지 말며 남의 과실을 트집 잡지 말고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하라. 이치를 말하고 법을 말한 뒤에는 가르치고 가르친 뒤에는 그쳐 스스로 기뻐하고 그를 기뻐하게 한다. 이렇게 이치를 말하고 이렇게 일을 말하는데 이것이 거룩한 이치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 거룩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서 마지막에는 누가(漏) 다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다투는 논란이 있고
잡된 생각으로 뽐내는 마음 품고
성인을 비방하고 덕을 헐뜯고
제각기 서로 틈만 엿보며

다만 남의 허물만 찾고
뜻은 남을 항복받으려 하며
다시 서로 이기기를 구하는 것
성인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만일 서로 논의코자 하거든
지혜로운 사람은 마땅히 때를 아는데
법도 있고 또한 이치도 있어
모든 성인의 말씀은 이러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다툼도 없고 뽐냄도 없으며
마음에는 싫증을 내는 일 없고
맺음도 없고 또한 누(漏)도 없다.

이치를 따라 뒤바뀌지 않고
바르게 알아 말하며
잘 말하고 그렇게 옳게 여겨
끝내 악을 말하지 않는다.

다툼으로써 논란하지 않고
또한 남의 다툼을 받지도 않으며
다만 아는 것과 말해야 할 것
이것이 그가 논하는 바이다.

거룩한 사람은 이렇게 말하며
지혜로운 사람은 모두 그 뜻을 얻어
현재에서도 즐거움 얻고
또한 후세에서도 편안하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총명하고 통달한 사람은
뒤바뀜도 아니고
항상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설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723자이다.

120) 설무상경(說無常經) 제4 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색(色)은 무상(無常)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은 곧 신(神)이 아니다. 각(覺) 또한 무상(無常)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다. 상(想)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다. 행(行)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은 신이 아니다. 식(識) 또한 무상이다. 무상은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다. 이것을 색은 무상이며 각ㆍ상ㆍ행ㆍ식도 무상이며 무상은 곧 괴로움이며 괴로움은 곧 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많이 아는[多聞] 거룩한 제자들은 이렇게 관찰하고 7도품(道品)을 닦아 익혀 걸림이 없어 바른 생각[正思]과 바른 기억[正念]이 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루(欲漏)에서 심해탈(心解脫)하고 유루(有漏)ㆍ무명루(無明漏)에서 심해탈하며 해탈한 뒤에는 해탈한 줄을 알아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서며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몸[後有]을 받지 않는다고 사실 그대로 안다. 만일 중생이 아홉 가지 중생 세계에서 곧 유상무상처(有想無想處)의 행(行)을 하여 제일유(第一有)에 이르게 되면 그 중간에서 그는 제일이며 그는 크며 그는 훌륭하고 그는 최상이며 그는 제일 높고 그는 묘하며 곧 세간의 아라하(阿羅訶:아라한)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 세간에서 아라하는 안온과 쾌락을 증득했기 때문이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집착이 없는 것은 제일의 즐거움
욕심을 끊고 애욕도 없으며
길이 아만(我慢)을 버리고 떠나
무명(無明)의 그물을 찢어 없애네.

그는 흔들리거나 움직이지 않게 되어
마음속에는 더러움 없고
세간에도 물들지 않아
범행으로써 무루(無漏)를 얻는다.

5음(陰)을 똑똑히 깨닫고 알아
일곱 가지 선법(善法)으로 경계를 삼았는데
대웅(大雄)은 노니는 어디에서도
일체의 두려움을 떠났다.

7각(覺)의 보배5)를 이루어 마치고
세 가지 학문을 갖추어 배우면
묘한 최상의 벗이라 일컬으며
부처의 으뜸가는 참제자이다.

10지(支)의 도를 성취했으며
큰 용은 지극히 고요한 마음이라네.
이는 세상에서 제일이니
그는 곧 다시 애욕이 없네.

세상 모든 일에 움직이지 않아
미래의 유(有)에서 벗어났으며
생ㆍ노ㆍ병ㆍ사를 끊어 버리고
할 일을 마치고 누(漏)를 멸했네.

무학(無學)의 지혜를 떨쳐 일으켜
가장 마지막의 몸을 얻었고
범행을 제일로 갖추었으니
그의 마음은 다른 것을 연유하지 않네.

상ㆍ하 사방의 모든 곳에 대해
그는 기쁨과 즐거움 없고
능히 사자처럼 포효하므로
세상에서 위없는 부처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설무상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총 413자이다.

121) 청정경(請請經)6) 제5제3 염송
위 경 이름의 뒤 글자 청(請)은 자(慈)와 정(井)의 반절로 발음해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王舍城)을 유행하실 때에 죽림가란다(竹林迦蘭哆園)에 계시며, 대 비구 대중 500명과 함께 여름 안거를 맞으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달 15일에 종해탈(從解脫)7)을 말씀하시고 서로 청정(請請)8)할 때 비구들 앞에서 자리를 펴고 앉아,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범지로서 멸(滅:涅槃)을 얻어 마치고 위없는 의왕(醫王)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받은 이 몸은 최후의 몸이다. 나는 범지로서 멸을 얻어 마친 뒤에는 위없는 의왕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받은 이 몸은 최후의 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의 참 제자이니, 내 입에서 나온 법으로 직접 교화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나의 참 제자이니 내 입에서 나온 법으로 직접 교화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교화하여 서로 전하며 가르쳐야 한다.”

그때 존자 사리자도 대중 가운데 있었다. 존자 사리자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나는 범지로서 멸을 얻어 마치고 위없는 의왕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받은 이 몸은 최후의 몸이다. 나는 범지로서 멸을 얻어 마친 뒤에 위없는 의왕이 되었다. 내가 지금 받은 이 몸은 최후의 몸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의 참 제자이니 내 입에서 나온 법으로 직접 교화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나의 참 제자이니 내 입에서 나온 법으로 직접 교화되었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교화하여 서로 전하며 가르쳐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법은 모든 조복(調伏)되지 못한 자를 조복하여 제어하게 하였고 모든 쉬지 못한 자를 그쳐 쉬게 하고 모든 제도되지 못한 자를 제도되게 하였으며 모든 해탈하지 못한 자를 해탈하게 하고 모든 멸(滅)을 얻지 못한 자를 멸을 얻게 하고 도를 얻지 못한 자를 도를 얻게 하며 범행을 행하지 못하는 자를 범행을 행하게 하여, 도를 알고 도를 깨닫고 도를 판단하고 도를 설명하게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제자들은 뒷날에 법을 얻어 가르침을 받고 꾸짖음을 받으며 가르침과 꾸짖음을 받은 뒤에는 세존의 말씀을 따라 곧 행하여 그 뜻을 얻어 바른 법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존이시여, 저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싫어하시지는 않습니까?”

그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나는 너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싫어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자여, 너는 총명한 지혜ㆍ큰 지혜ㆍ빠른 지혜ㆍ민첩한 지혜ㆍ예리한 지혜ㆍ넓은 지혜ㆍ깊은 지혜ㆍ벗어나는 지혜ㆍ환하게 통달한 지혜가 있다. 사리자여, 너는 진실한 지혜를 성취하였다. 마치 전륜왕의 태자가 부왕의 가르침을 빠뜨리지 않고 그 전하는 바를 받아 숭배하고 능히 다시 전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사리자여, 내가 굴리는 법의 수레바퀴[法輪]를 네가 다시 능히 굴렸다. 사리자여, 그러므로 네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싫어하지 않는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제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싫어하지 않으신다면 세존께서는 이 500비구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해서도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나는 또한 이 500비구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해서도 싫어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사리자여, 이 500비구 중에서 오직 한 비구만을 제외하고는 다 집착이 없게 되었고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하였으며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쳤으며 무거운 짐을 이미 버렸고 유결(有結)이 이미 다해 좋은 이치와 바른 지혜와 바른 해탈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과거에 이미 ‘현세에서 구경(究竟)의 지혜를 얻어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알 것이다’라고 수기(授記)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 500비구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해서도 싫어하지 않는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세 번째로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제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하여 싫어하지 않으시고 또한 이 500비구의 몸과 입과 뜻의 행에 대해서도 싫어하시지 않는다면 세존이시여, 이 500비구 중에 몇 비구가 3명(明)을 얻었고 몇 비구가 구해탈(俱解脫)을 얻었으며 몇 비구가 혜해탈(慧解脫)을 얻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이 500비구 중에서 90비구는 3명을 얻었고 90비구는 구해탈을 얻었으며 그 나머지 비구는 혜해탈을 얻었다. 사리자여, 이 무리 중에는 가지도 없고 잎도 없으며 또한 마디도 없어 청정하고 진실하며 바르게 머물러 서게 되었다.”

그때 존자 방기사(傍耆舍)도 대중 가운데 있었다. 존자 방기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그렇다면 세존이시여, 제게 위력(威力)을 주십시오. 오직 원하건대 선서(善逝)시여, 제게 위력을 주셔서 제가 부처님과 비구대중 앞에서 이치에 알맞은 게송을 짓게 하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방기사여, 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이에 존자 방기사는 부처님과 비구대중 앞에서 이치에 알맞은 게송으로 찬탄하였다.

오늘 15일 청정일(請請日:自恣日)에
모여 앉은 500대중은
모든 결박을 끊어 없애고
걸림이 없고 유(有)가 다한 신선일세.

청정한 광명으로 비추어
일체의 유(有)를 벗어났으니
생ㆍ노ㆍ병ㆍ사가 다하고
누(漏)를 멸하고 해야 할 일을 마쳤다네.

들뜸과 뉘우침과 의혹의 번뇌와
거만과 유루(有漏) 이미 다하고
애욕의 번뇌 가시 뽑아낸
다시없는 최상의 의원이라네.

사자처럼 용맹스럽고
일체의 두려움과 무서움 없으며
나고 죽음 이미 건너고
모든 번뇌 이미 멸해 다하셨도다.

마치 저 전륜왕이
뭇 신하들에 둘러싸여
일체의 땅을 모두 통치해
대해에까지 미치는 것처럼

이렇게 용맹하여 모든 것 항복받고
다시 위없는 상인(商人)의 주인
제자들은 즐겁게 공경하며
3달(達)로 죽음의 두려움 벗어났네.

모두가 부처님 제자로서
가지와 잎과 마디 영원히 없애고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면서
제일 높은 이에게 머리를 조아리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청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013자이다.

122) 첨파경(瞻波經)9) 제6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첨파국(瞻波國)을 유행하실 때에 긍가못[恒迦池] 가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그 달 15일에 종해탈(從解脫)을 말씀하시려고 비구대중 앞에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세존께서는 앉으신 뒤에 곧 선정에 들어 타심지(他心智)로써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셨다.
대중의 마음을 관찰하신 뒤에 초야(初夜:오후 6시~오후 10시)가 끝나도록 끝내 잠자코 앉아만 계셨다. 이에 어떤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초야가 이미 끝났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여 와 앉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이에 세존께서는 다시 중야(中夜)에 이르도록 잠자코 앉아만 계셨다.

그때 한 비구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초야는 이미 지났고 중야도 곧 끝나려 하며 부처님과 비구들은 모여 와 앉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또한 다시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이에 세존께서는 다시 후야(後夜)에 이르도록 잠자코 앉아만 계셨다.

그러자 거기의 한 비구가 세 번째로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초야도 이미 지났고 중야도 또 끝났으며 후야도 다하려 합니다. 장차 먼동이 터서 해가 뜰 때도 얼마 남지 않았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여 와 앉은 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께서는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때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이 대중 가운데 이미 청정하지 못한 한 비구가 있다.”

그때 존자 대목건련(大目揵連)도 대중 가운데 있었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은 문득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어떤 비구 때문에 이 대중 가운데 이미 청정하지 못한 한 비구가 있다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차라리 여기상정(如其像定)에 들어가 타심지(他心智)로써 대중의 마음을 관찰해 보리라.’

존자 대목건련은 즉시 여기상정(如其像定)에 들어가 타심지(他心智)로써 대중의 마음을 관찰해 보았다. 그리고 존자 대목건련은 곧 세존께서 어떤 비구 때문에 이 대중 가운데 이미 청정하지 못한 한 비구가 있다고 말씀하셨는지를 알았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은 곧 선정에서 일어나 그 비구 앞으로 가서 그 팔을 잡고 끌어내 문을 열고 밖으로 밀어내면서 ‘이 어리석은 자야, 여기 머물지 말고 멀리 떠나라. 다시는 다른 비구들과 만나지 말라. 지금부터 너는 비구가 아니다’ 하고는 문을 닫아 빗장을 걸었다. 그리고 부처님께 돌아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이 대중 가운데 이미 청정하지 못한 한 비구가 있다고 말씀하신 자를 제가 이미 쫓아냈습니다. 세존이시여, 초야도 이미 지났고 중야도 이미 끝났으며 후야도 다하려 하여 장차 먼동이 터서 해가 뜰 때도 얼마 남지 않았고 부처님과 비구들이 모여 와 앉은 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오직 원하건대 세존이시여, 종해탈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목건련이여, 그 어리석은 자는 세존과 비구들을 희롱하였기 때문에 마땅히 큰 죄를 얻게 될 것이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여래가 청정하지 못한 무리가 있는 데서 종해탈을 말하면 그들은 곧 머리가 일곱 조각이 날 것이다. 그러므로 대목건련아, 지금부터는 너희들이 종해탈을 말하라. 여래는 다시는 종해탈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와 같이 대목건련이여,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드나드는 숨길을 바로 알고 잘 관찰하여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의 몸 가지는 태도와 승가리(僧伽梨)와 모든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자고 깨기와 말하고 침묵할 줄을 다 바로 알아 마치 진정한 범행자처럼 보인다. 그런 자가 여러 진정한 범행자가 있는 곳에 가면 그들은 혹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그런 줄을 안다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더러움이며 사문의 욕이며 사문의 미움이며 사문의 비방[刺]이다.’
그런 줄을 안 뒤에는 그들은 당장 그를 내쫓아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범행자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목건련이여, 마치 거사에게 좋은 벼논이나 보리밭이 있는데, 예맥(穢麥)이라는 풀이 거기 나는 것과 같다. 그 뿌리도 비슷하고 줄기ㆍ마디ㆍ잎ㆍ꽃 또한 비슷하지만 뒤에 열매를 맺었을 때에 거사는 그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보리의 더러움이며 보리의 욕이며 보리의 미움이며 보리의 비방이다.’
그는 그런 줄 안 뒤에는 곧 뽑아서 밭 밖에다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다른 순종의 좋은 보리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대목건련이여,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드나드는 숨길을 바로 알고 잘 관찰하여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의 몸 가지는 태도와 승가리와 모든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깨기와 말하고 침묵할 줄을 다 바로 알아 마치 진정한 범행자처럼 보인다. 그런 자가 여러 진정한 범행자가 있는 곳에 가면 그들은 혹 알지 못할 것이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그런 줄을 안다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더러움이며 사문의 욕이며 사문의 미움이며 사문의 비방이다.’
그런 줄을 안 뒤에는 그들은 당장 그를 내쫓아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범행자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목건련이여, 마치 거사가 가을에 곡식을 흔들어 털 때 곡식 무더기 속에 만일 알찬 곡식이 있으면 흔들어 털어도 그 자리에 있겠지만 만일 알차지 못한 쭉정이나 껍질은 곧 바람을 따라 날아가는 것과 같다. 거사는 그것을 본 뒤에는 곧 비를 가지고 가려 쓸어서 깨끗하게 한다. 무슨 까닭인가? 다른 깨끗하고 좋은 벼가 나쁜 것과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와 같이 대목건련이여,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드나드는 숨길을 바로 알고 잘 관찰하여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의 몸 가지는 태도와 승가리와 모든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자고 깨기와 말하고 침묵할 줄을 다 바로 알아 마치 진정한 범행자처럼 보인다. 그런 자가 여러 진정한 범행자가 있는 곳에 가면 그들은 혹 알지 못할 것이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그런 줄을 안다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더러움이며 사문의 욕이며 사문의 미움이며 사문의 비방이다.’
그런 줄을 안 뒤에는 그들은 당장 그를 내쫓아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범행자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목건련이여, 마치 거사가 샘물을 끌기 위하여 홈통[通水槽]를 만들려고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가 여러 나무를 두드려 보는데, 만일 단단하고 속이 찼으면 그 소리는 작고 만일 속이 비었으면 그 소리는 클 것이다. 거사는 그것을 안 뒤에는 곧 베어서 마디를 다듬고 홈통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대목건련이여,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드나드는 숨길을 바로 알고 잘 관찰하여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의 몸 가지는 태도와 승가리와 모든 옷과 발우를 잘 지니고,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자고 깨기와 말하고 침묵할 줄을 다 바로 알아 마치 진정한 범행자처럼 보인다. 그런 자가 여러 진정한 범행자가 있는 곳에 가면 그들은 혹 알지 못할 것이다. 대목건련이여, 만일 모든 범행자가 그런 줄을 안다면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더러움이며 사문의 욕이며 사문의 미움이며 사문의 비방이다.’
그런 줄을 안 뒤에는 그들은 당장 그를 내쫓아 버릴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모든 범행자들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함께 모여 있거든 마땅히 알라.
나쁜 욕심ㆍ미움ㆍ성냄과
말하지 않음ㆍ맺음ㆍ원한ㆍ아낌과
질투와 아첨과 속임이 있으면서

대중 가운데선 간사한 말 않다가
은밀한 곳에서는 사문이라 일컬으며
남 몰래 모든 악을 행하여
나쁜 견해로써 수호하지 않으며

거짓으로 속이고 거짓말하거든
마땅히 그를 이렇게 알아
가서 모여 사귀지 말고
내쫓아 버려 함께하지 말라.

속이고 간사하고 거짓말 많고
그쳐 쉬지 못했으면서 쉬었다 일컬으며
남이 아는 때에만 청정한 행 갖추거든
내쫓아 버려 그를 멀리 떠나라.

청정한 이와 같이 청정해지도록
언제나 마땅히 서로 화합하여라.
화합은 진실로 안온함을 얻으며
이리하여 괴로움이 끝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첨파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51자이다.

123) 사문이십억경(沙門二十億經)10) 제7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존자 사문 이십억(二十億)11)도 사위국을 유행하다가 암림(闇林)에 있으면서, 초야에도 후야에도 잠자지 않고 공부하며 꾸준히 힘써 바르게 머물러서 도품(道品)을 닦아 익혔다. 이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편안하고 고요하게 혼자 있으면서 연좌(宴坐)하여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만일 세존의 제자로서 꾸준히 힘써 바른 법률(法律)을 학습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제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모든 누(漏)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 부모의 집은 아주 대부호로서 즐겁고 돈과 재물이 많이 있다. 나는 이제 차라리 계를 버려 도행을 그만두고 보시를 행하며 모든 복업을 닦는 것이 어떨까?’

그때 세존께서는 타심지로써 존자 사문 이십억이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아시고 곧 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저기 가서 사문 이십억을 불러오라.”

이에 한 비구가 말했다.
“예.”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세 번 돌고 곧 물러갔다. 그는 존자 사문 이십억에게 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 그대를 부르시오.”

존자 사문 이십억은 비구의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사문이여, 그대는 참으로 편안하고 조용한 곳에 혼자 있으면서 연좌하여 깊이 생각하다가 마음으로 ‘만일 세존의 제자로서 꾸준히 힘써 바른 법률을 학습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제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모든 누(漏)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 부모의 집은 아주 대부호로서 즐겁고 돈과 재물이 많이 있다. 나는 이제 차라리 계를 버려 도행을 그만두고 보시를 행하며 복업을 닦는 것이 어떨까’라고 생각하였는가?”

그때 존자 사문 이십억은 수치스럽고 부끄러워하면서 곧 무외(無畏)가 없어졌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내가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아셨구나’라고 하면서 곧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사문이여, 나는 이제 너에게 물을 것이니 아는 대로 대답하라.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너는 집에 있을 때에 거문고를 잘 탔었다. 거문고는 노랫소리를 따르고 노랫소리는 거문고를 잘 따랐는가?”

존자 사문 이십억이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거문고를 탈 때에 줄을 바짝 조인다면 그 화음(和音)이 사랑스럽고 즐길 만하겠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거문고를 탈 때에 줄을 느슨하게 한다면 그 화음이 사랑스럽고 즐길 만하겠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거문고를 탈 때에 줄이 고르고 너무 조이지도 않으며 너무 느슨하지도 않아 적당하면 그 화음이 사랑스럽고 즐길 만하겠느냐?”

사문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사문아, 너무 지나치게 정진하면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너무 지나치게 정진하지 않으면 마음을 게으르게 한다. 그러므로 너는 마땅히 이 때를 분별하고 이 상(相)을 관찰하여 방일하게 하지 말라.”

그때 존자 사문 이십억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지니고서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는 부처님의 거문고 타는 비유의 가르침을 받고 멀리 떠나 혼자 지내면서 마음에 방일함 없이 꾸준히 힘써 수행하였다. 그는 멀리 떠나 혼자 지내면서 마음에 방일함 없이 꾸준히 힘써 수행한 뒤에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족성자가 해야 할 바인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치고 현재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체득하여 성취하여 노닐었다. 그리고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다. 존자 사문 이십억은 법을 알고 나서는 아라하(阿羅訶)를 증득하였다.
그때 존자 사문 이십억은 아라하가 된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나는 차라리 세존께서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구경(究竟)의 지혜를 설명하면 어떨까?’

이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집착이 없게 되어 모든 누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서고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무거운 짐을 이미 버렸으며 유(有)의 번뇌[結]가 이미 해결되어 스스로 좋은 이치를 증득해 해탈한 줄을 바로 알면 그는 그때에는 이 6처(處)를 즐거워합니다. 곧 욕심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고 멀리 떠난 것을 즐거워하며 다툼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고 애욕이 다한 것을 즐거워하며 집착이 다한 것을 즐거워하고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세존이시여,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현자(賢者)는 믿음에 의지하기 때문에 욕심이 없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렇게 관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탐욕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해야만 욕심 없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세존이시여,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현자는 이익과 명예(稱譽)를 탐하고 공양을 구하려 하기 때문에 멀리 떠남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렇게 관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탐욕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해야만 멀리 떠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세존이시여, 혹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계에 의지하기 때문에 다툼이 없는 것을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렇게 관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탐욕이 다하고 성냄이 다하고 어리석음이 다해야만 다툼이 없는 것을 즐거워하고 애욕이 다한 것을 즐거워하며 집착이 다한 것을 즐거워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집착이 없게 되어 모든 누가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치고 무거운 짐은 이미 버렸으며 번뇌가 이미 해결되어 스스로 좋은 이치를 증득해 해탈한 줄을 바로 알면 그는 그때 이 6처를 즐거워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배워야 할 것을 아직 얻지 못하여 마음으로 위없는 안온과 열반을 원하여 구한다면, 그는 그때 배워야 할 것이 있는 근(根)과 계(戒)를 성취하게 됩니다. 그는 그 뒤에 모든 누(漏)가 이미 다하여 무루(無漏)를 증득하고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하여,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체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됩니다. 즉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해야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배워야할 것이 없는 근(根)과 계(戒)를 성취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린 아이와 같아서 그는 작은 근과 작은 계를 성취하였다가 그 뒤에 배워야 할 근을 완전히 갖추면, 그는 그때에는 배워야 할 근과 계를 성취합니다.

이와 같이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배워야 할 것을 아직 얻지 못하여 마음으로 위없는 안온과 열반을 원하여 구한다면 그는 그때 배워야 할 근과 계를 성취하게 됩니다. 그는 그 뒤에 모든 누가 이미 다하여 무루(無漏)를 증득하고 심해탈(心解脫)하고 혜해탈(慧解脫)하여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체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됩니다. 즉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이 이미 섰으며 해야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음을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리고 그는 그때 배워야 할 것이 없는 근과 계를 성취할 것입니다.
그에게 혹 눈으로 지각되는 색(色)이 있어 눈과 마주하더라도 이 심해탈과 혜해탈을 잃게 하지 못하고 마음은 안에 머물러 있어 잘 제어하고 잘 지켜 보호하면서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할 것입니다. 혹 귀로 지각되는 소리와 코로 지각되는 냄새와 혀로 지각되는 맛과 몸으로 지각되는 촉감이 있고 나아가 뜻으로 지각되는 법이 있어 뜻과 마주하더라도 이 심해탈과 혜해탈을 잃게 하지 못하고 마음은 안에 머물러 있어 잘 제어하고 잘 보호하면서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돌산이 있는 것과 같아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도 않으며 뚫리지도 않고 든든하게 서서 속이 비지 않고 서로 붙어 있다면, 혹 동방에서 큰 폭풍우가 들이치더라도 흔들리게 하지 못하여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동풍(東風)만이 아니라, 옮겨 남방에 이르러 혹 남방에서 큰 폭풍우가 들이치더라도 흔들리게 하지 못하여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남풍만이 아니라, 옮겨 서방에 이르러 혹 서방에서 큰 폭풍우가 들이치더라도 흔들리게 하지 못하여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서풍만이 아니라, 옮겨 북방에 이르러 혹 북방에서 큰 폭풍우가 들이치더라도 흔들리게 하지 못하여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북풍만이 아니라, 옮겨 모든 방위에 이르러도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그에게 혹 눈으로 지각되는 색이 있어 눈과 마주하더라도 이 심해탈과 혜해탈을 잃게 하지 못하고, 마음은 안에 머물러 있어 잘 제어하고 잘 지켜 보호하면서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할 것입니다. 혹 귀로 지각되는 소리와 코로 지각되는 냄새와 혀로 지각되는 맛과 몸으로 지각되는 촉감과 뜻으로 지각되는 법이 있어 뜻과 마주하더라도 이 심해탈과 혜해탈을 잃게 하지 못하고 마음은 안에 머물러 있어 잘 제어하고 잘 지켜 보호하면서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할 것입니다.”

이에 존자 사문 이십억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즐거움은 욕심이 없는데 있으며
마음을 멀리 떠남에 두어
다툼 없음을 기뻐하고
집착이 다하여 기뻐하도다.

또한 집착이 다함을 즐거워하고
마음이 이동하지 않아
모든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되니
그로 말미암아 심해탈 하게 되네.

심해탈을 증득하고 나면
비구는 모든 근이 쉬게 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관찰하지 않으니
다시는 애써 구할 것 없네.

그것은 마치 돌로 된 산은
바람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빛깔과 소리와 냄새와 맛
몸의 촉감 또한 그러하며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법도
마음을 움직이진 못한다네.

존자 사문 이십억은 부처님 앞에서 증득한 구경지(究竟智)를 설명한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때 세존께서는 존자 사문 이십억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족성자들이여, 마땅히 이렇게 내 앞에서 구경의 지혜를 설명하라. 저 사문 이십억처럼 내 앞에 와서 구경의 지혜를 설명하되, 스스로 칭찬하지도 말고 남을 업신여기지도 말며 현재에 가는 곳마다 이치를 설명하라. 그러나 어리석음과 증상만(增上慢)에 얽매인 자처럼 내 앞에 와서 구경의 지혜를 설명하지는 말라. 그런 자들은 이익은 얻지 못하고 그저 크게 피로해질 뿐이다. 사문 이십억은 내 앞에 와서 구경의 지혜를 설득하였지만 스스로 칭찬하지도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으며 현재에 있어서 가는 곳마다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사문이십억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739자이다.

124) 팔난경(八難經)12) 제8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여덟 가지 어려움[八難]과 여덟 가지 적당하지 않은 때[八非時]가 있다. 어떤 것이 여덟 가지인가? 어느 때 여래(如來)ㆍ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고 불리는 분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법(法)을 설하시는데, 그 법(法)은 그쳐 쉼[止息]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하여 끝남으로 나아가게 하며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선서께서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때 지옥 가운데 태어나니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1의 어려움과 제1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한다.

또 어느 때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고 불리는 분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법을 설하시는데, 그 법은 그쳐 쉼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하여 끝남으로 나아가게 하며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선서께서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때 축생 가운데 태어나고 아귀 가운데 태어나며 장수천(長壽天) 가운데 태어난다.13) 또 주변국[邊國]에 있는 오랑캐 가운데 태어나는데 그곳엔 믿음도 없고 은혜도 없으며 은혜를 갚음도 없고 혹은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도 없다.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5의 어려움과 제5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한다.

또 어느 때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고 불리는 분이 세상에 나와 법을 설하시는데, 그 법은 그쳐 쉼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하여 끝남으로 나아가게 하며 깨달음의 도로 나아가게 하고 선서께서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때 비록 중앙국에 태어나더라도 귀머거리나 벙어리로 태어나 그 말이 염소가 우는 것 같고 항상 손짓으로 말하며 선악의 이치를 알거나 설명하지 못한다.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6의 어려움과 제6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한다.

또 어느 때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리는 이가 세상에 나와 법을 설하시는데, 그 법은 그쳐 쉼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하여 끝남으로 나아가게 하며 깨달음의 도로 나아가게 하고 선서께서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때 중앙국에 태어나고 귀머거리도 아니며 벙어리도 아니어서 염소가 우는 것 같지도 않고 손짓으로 말하지도 않으며 또 선악의 이치를 설명할 줄도 알지만, 삿된 견해와 뒤바뀐 견해가 있어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재(齋)도 없으며 또한 주문[呪說]도 없다. 선ㆍ악의 업도 없고 선ㆍ악의 업보도 없으며 이 세상ㆍ저 세상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 이 세상에는 참 사람[眞人]이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ㆍ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일도 없다.’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7의 어려움과 제7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한다.

또 어느 때는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고 불리는 이가 세상에 출현하지 않으시고, 또한 그쳐 쉼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하여 끝남으로 나아가게 하며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선서께서 설명하는 것인 법을 설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때 중앙국에 태어나고 귀머거리도 아니며 벙어리도 아니어서 염소가 우는 것 같지도 않고 손짓으로 말하지도 않으며 또 선ㆍ악의 이치를 잘 알아 설명하고 바른 견해와 뒤바뀌지 않은 견해가 있어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재도 있으며 또한 주문[呪說]도 있다. 선ㆍ악의 업도 있고 선ㆍ악의 업보도 있으며 이 세상ㆍ저 세상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다. 세상에는 참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ㆍ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일도 있다.’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제8의 어려움과 제8의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한다.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한 가지 어렵지 않음과 한 가지 적당한 때가 있다. 어떤 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한 가지 어렵지 않음과 한 가지 적당한 때라고 하는가?
어느 때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고 불리는 분이 세상에 나와 법을 설하는데, 그 법은 그쳐 쉼으로 나아가게 하고 멸하여 끝남으로 나아가게 하며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게 하고 선서께서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 사람은 그때 중앙국에 태어나고 귀머거리도 아니며 벙어리도 아니라서 염소가 우는 것과도 같지 않고 손짓으로 말하지도 않으며 또 선악의 이치를 잘 알아 설명하고 바른 견해와 뒤바뀌지 않은 견해가 있어서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재도 있으며 또한 주문도 있다. 선ㆍ악의 업도 있고 선ㆍ악의 업보도 있으며 이 세상ㆍ저 세상도 있고 아버지도 있고 어머니도 있다. 이 세상에는 참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가고 이 세상ㆍ저 세상으로 잘 가고 잘 향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험하여 성취하여 노니는 일도 있다.’
이것을 사람이 범행을 행함에 있어서 한 가지 어렵지 않음과 한 가지 적당한 때라고 한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으로 태어난 자가
가장 미묘한 법 설하는데도
만일 그 과를 얻지 못한다면
다시는 그때를 만나지 못하리.

많이들 범행의 어려움을 말하는데
만일 사람이 후세에 가서
그런 때를 만날 수 있다면
이는 세상에서 매우 힘든 일이라네.

만일 다시 사람의 몸을 얻고
또 미묘한 법 들으려 하거든
마땅히 정근하여 배워야 하니
자기를 가엾게 여기기 때문일세.

많은 말에서 좋은 법 들어
그때를 놓치지 말도록 하라.
만일 그때를 놓칠 양이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질 것 근심하리.

만일 그때를 만나지 못하여
좋은 법 설하는 것 듣지 못하면
장사꾼이 재물을 잃은 것 같아
생과 사를 받기 한량없으리.

만일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바르고 좋은 법 설하는 것 듣고
세존의 가르침 받들어 좇으면
반드시 그때를 만나게 되리.

만일 그때를 만나게 되어
바른 범행을 견디어 내면
위없는 눈[眼]이신 세존의
말씀한 바를 성취하리라.

그는 언제나 자신을 보호하고
나아가서는 모든 번뇌를 여의며
일체의 맺음을 끊어 없애
악마와 그의 권속 항복받으리.
그는 이 세상을 건너갔으며
곧 모든 누를 다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팔난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총 1,033자이다.

125) 빈궁경(貧窮經) 제9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욕심이 있는 사람이 빈궁한 것은 큰 고통이겠는가?”

비구들이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욕심 있는 사람이 빈궁하면 남의 집 재물을 빌린다. 세상에서 남의 집 재물을 빌리는 것은 큰 고통이겠는가?”

비구들이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욕심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려 제 때에 갚지 못하면 날마다 이자가 늘어난다. 세상에서 이자가 늘어나는 것은 큰 고통이겠는가?”

비구들이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욕심 있는 사람이 이자가 늘어나도 갚지 못하면 빚쟁이는 꾸짖는다. 세상에서 빚쟁이가 꾸짖는 것은 큰 고통이겠는가?”

비구들이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욕심 있는 사람이 빚쟁이가 꾸짖어도 갚지 못하면 빚쟁이는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할 것이다. 세상에서 빚쟁이가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하는 것은 큰 고통이겠는가?”

비구들이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욕심 있는 사람이 빚쟁이가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하는데도 일부러 갚지 않으면 곧 빚쟁이에게 결박된다. 세상에서 빚쟁이에게 결박되는 것은 큰 고통이겠는가?”

비구들이 말씀드렸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을 세상에서 욕심 있는 사람이 빈궁한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리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 있는 사람이 남의 재물을 빌려 이자가 늘어가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 있는 사람이 빚쟁이의 독촉을 받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 있는 사람이 빚쟁이가 자주 그 집에 가서 독촉하는 것은 큰 고통이며, 세상에서 욕심 있는 사람이 빚쟁이에게 결박되는 것은 큰 고통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만일 이 거룩한 법 가운데 선법(善法)에 믿음이 없고 금계(禁戒)가 없으며, 널리 들음이 없고 보시가 없으며 선법에 지혜가 없으면 그는 비록 금ㆍ은ㆍ유리ㆍ수정ㆍ마니(摩尼)ㆍ백가(白珂)ㆍ나벽(螺璧)ㆍ산호(珊瑚)ㆍ호박(琥珀)ㆍ마노(碼)ㆍ대모(瑇瑁)14)ㆍ자거(車渠)ㆍ벽옥(碧玉)ㆍ적석(赤石)ㆍ선주(琁珠) 따위가 많이 있더라도 그는 짐짓 빈궁하여 아무 세력도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 불선(不善)의 빈궁이라고 한다.

그는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이 있는데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 불선의 빚이라고 한다.
그는 그 몸의 악행을 숨기려고 하여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도(道)를 말하려 하지 않으며 남의 꾸지람을 받으려 하지 않고 순종하여 구하지 않을 것이다. 또 입과 뜻의 악행을 숨기고자 하여 스스로 드러내지 않고 도(道)를 말하려 하지 않으며 남의 꾸지람을 받으려 하지 않고 순종하여 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의 이자가 늘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혹 마을이나 마을 밖으로 가면 모든 범행자들은 그를 보고 곧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 이 사람은 이렇게 일하고 이렇게 행하며 이렇게 악하고 부정(不凈)하다. 이 사람은 이 마을의 수치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러분, 나는 그렇게 일하지 않았고 그렇게 행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악하지 않고 그렇게 부정하지 않으며 또한 이 마을의 수치도 아니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의 꾸짖음이라고 한다.

그는 일 없는 곳에 있거나 산림이나 나무 밑에 있거나 혹은 비고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도 세 가지 착하지 않은 생각 곧 욕심내는 생각[欲念]ㆍ성내는 생각[恚念]ㆍ해치는 생각[害念]을 한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이 자주 가서 독촉함이라고 한다.
그는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을 짓는다. 그는 몸의 악행과 입과 뜻의 악행을 지은 뒤에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 가운데의 불선의 결박이라고 한다. 나는 지옥ㆍ축생ㆍ아귀의 결박처럼 이처럼 괴롭고 이처럼 무거우며 이처럼 추하고 이처럼 즐거워할 것이 못되는 결박은 보지 못하였다. 이 세 가지 고통의 결박을 누(漏)가 다한 아라하 비구는 이미 알아 멸해 다하고 그 근본을 뽑아, 다시 와서 태어나는 일이 없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빈궁은 고통이어서
다른 사람에게서 재물을 빌리고
남의 재물을 빌린 뒤에는
남에게 구박받아 고뇌가 되네.

빚쟁이는 와서 독촉하다가
그 때문에 끝내는 결박하는데
그 결박 너무도 괴롭고 괴로워라.
세상의 욕심을 즐거워했기 때문이네.

거룩한 법에 있어서 또한 그러하니
만일 바른 믿음이 없으면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 없고
악하여 착하지 않은 짓을 하네.

몸으로도 착하지 않은 짓을 하고
입이나 뜻도 또한 함께 그러해
그것을 숨겨 말하려 하지 않고
또 바른 충고도 즐거워하지 않네.

만일 그것을 되풀이해 행하면
뜻과 생각은 곧 고통이 되며
마을에서나 혹은 고요한 곳에서나
그 때문에 반드시 뉘우침 있네.

몸과 입으로 모든 행 익히고
또 뜻으로 온갖 것 생각하여
악한 업은 갈수록 많아지며
무수히 되풀이해 짓고 또 짓네.

그는 악한 업으로 지혜가 없어
착하지 않은 짓을 많이 지은 뒤
태어나는 곳을 따르다가 마지막에는
반드시 지옥의 결박으로 간다.

그 결박은 가장 심한 괴로움
용맹한 자만이 떠날 수 있네.
법답게 재물과 이익을 얻어
빚지지 않으면 안온을 얻고

보시를 행하면 기쁨을 얻으며
이 둘은 다 함께 이익을 가져오네.
이와 같이 세상의 모든 거사는
보시로 말미암아 복이 더욱 증가하네.

이와 같이 거룩한 법 가운데서
만일 좋은 정성과 믿음 있고
제 부끄러움과 남 부끄러움 갖추면
거의 간탐이 없게 되리라.

이미 5개(蓋)를 버려 떠나고
항상 즐겁게 정진을 행하여
모든 선정 이루어 마치고
마음을 오로지해 즐거움을 버리네.

이미 무식(無食)의 즐거움 얻어
마치 물에 목욕하여 깨끗해짐 같네.
동요됨 없는 심해탈로
일체 유(有)의 맺음 다했다네.

병이 없음으로 열반을 삼으니
이것을 위없는 등불이라 하고
걱정도 티끌도 없는 편안함
이것을 이동하지 않음이라 말하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고려대장경에서는 이 제3 일일송(一日誦)에 2품 25경이 수록되었다 하였고, 송본ㆍ원본에서는 1품 반 25경이 수록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재 조사해 보니 「대품(大品)」 27경과 「범지품(梵志品)」의 전반부 10경이 제3 일일송에 수록되어 있었다. 따라서 1품 반에 35경이 수록되었다고 해야 올바르다.
2 범어로는 Suddhodana라고 한다. 음역하여 수두단(輸頭檀)ㆍ수도타나(首圖馱那)ㆍ설두(屑頭) 등이라고도 하며, 의역하여 백정왕(白凈王)ㆍ정반왕(凈飯王)이라고도 한다. 사자협왕(師子頰王)의 아들. 구리성 임금 선각왕의 누이동생 마하마야를 왕비로 맞았으나 실달타를 낳고 죽었다. 그래서 그녀의 동생인 마하파사파제를 왕비로 정하여 기르게 하였고, 그 뒤에 난타(難陀)를 낳았다.
3 사위성 기원정사(祇園精舍)의 동쪽에 위치한 2층의 큰 강당. 녹모(鹿母) 비사가(毘舍佉)가 180만금을 시주하여 목건련(目揵連)의 감독으로 지어 부처님께 공양한 정사. 동원정사(東園精舍)라고도 한다.
4 설처(說處:kathāvatthu)는 말[言]의 소의(所依)라는 뜻이다.
5 팔리본에 의하면 7보(寶)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7각분(覺分)이라고도 한다. 7각분은 또 7각지(覺支)로 쓰기도 하는데 곧 택법각지(擇法覺支)ㆍ정진각지(精進覺支)ㆍ희각지(喜覺支)ㆍ경안각지(輕安覺支)ㆍ염각지(念覺支)ㆍ정각지(定覺支)ㆍ사각지(捨覺支)를 말한다.
6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송(宋)시대 법현(法賢)이 한역한 『불설해하경(佛說解夏經)』과 동진(東晋)시대 축담무란(竺曇無蘭)이 한역한 『불설신세경(佛說新歲經)』 과 서진(西晋)시대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불설수신세경(佛說受新歲經)』이 있으며, 비슷한 내용의 경전으로는 『잡아함경』 제45권 1169번째 소경과 『별역잡아함경』 제12권 228번째 소경, 그리고 『증일아함경』「선취품(善聚品)」 5번째 경이 있다.
7 범어로는 Prātimokṣa라고 한다.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라고도 하며, 또는 별해탈(別解脫)ㆍ처처해탈(處處解脫)ㆍ별처처해탈(別處處解脫)ㆍ정순해탈(正順解脫)ㆍ해탈생사(解脫生死)ㆍ보득해탈(保得解脫) 등으로 의역하여 쓰기도 한다. 7중(衆)이 몸과 입으로 7지(支) 등의 잘못을 막아서 그치게 하고, 모든 번뇌와 혹업(惑業)을 멀리 여의고 해탈을 증득하기 위해 계율을 받아 지니는 것을 가리킨다.
8 범어로는 Pravāraṇa라고 한다. 또는 자자(自恣)ㆍ수의(隨意)ㆍ만족(滿足)이라고도 한다. 여름 안거(安居)의 마지막 날 같이 공부하던 스님 대중이 모여 서로 보고ㆍ듣고ㆍ의문을 가진 세 가지 일을 가지고 그동안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행사.
9 이 경의 이역경으로는 서진(西晋)시대 법거(法炬)가 한역한 『불설첨파비구경(佛說瞻波比丘經)』이 있다.
10 이 경과 관련된 경으로는 『잡아함경』 제9권 256번째 소경(小經)과 『증일아함경』「지주품(地主品)」 3번째 경이 있으며, 그리고 『사분율』 제39권과 『오분율』 제21권을 참조할 것.
11 팔리어로는 Soṇa Kolivīsa라고 한다. 중인도 이란나발벌다국(伊爛挐鉢伐多國) 장자의 아들. 거문고를 잘 타고 성문(聲聞) 가운데 4위의(威義)를 구족하고 대정진(大精進)을 한 비구가 되었다. 『오분율(五分律)』ㆍ『사분율(四分律)』 중에서는 모두 억이(億耳)로 번역되어 쓰였으나 한역 『증일아함경』과 『잡아함경』 중에서는 이십억이(二十億耳)로 되어 있다.
12 이 경과 연관된 경으로는 『증일아함경』「팔난품(八難品)」 첫 번째 경이 있다.
13 이 경에는 제2, 제3, 제4의 어려움과 적당하지 않은 때라고 구체적으로 명기하지 않았다. 『증일아함경』「팔난품」 첫 번째 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출현하셨을 때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을 두 번째 어려움, 아귀로 태어나는 것을 세 번째 어려움, 장수왕천에 태어나는 것을 네 번째 어려움이라고 하였다.
14 송(宋)ㆍ원(元)ㆍ명(明) 3본(本)에는 대모(蝳蝐)로 되어 있다. 대모(瑇瑁)는 또한 대모(玳瑁)로 쓰기도 하는데 거북 종류의 동물로서 몸길이는 3척(尺) 남짓. 그 껍데기를 삶으면 매우 부드러워져 각종 장식품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중아함경 제30권

승가제바 한역

11. 대품 제1②
126) 행욕경(行欲經) 제10제3 염송(念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급고독 거사는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몇 종류나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거사여, 세상에는 대략 열 종류의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있다. 어떤 것이 열 종류인가?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스스로도 안온하지 않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 못하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를 공양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이 있다.
또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만,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는 공양하지 않는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또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어떤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한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또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한 뒤에는 스스로도 안온하지 않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 않으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하지 않는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한 뒤에는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만,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는 공양하지 않는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또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한 뒤에는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한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또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 뒤에 스스로도 안온하지 않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 않으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하지 않는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또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만,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는 공양하지 않는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또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한다. 그러나 재물을 얻은 뒤에는 거기에 물들고 집착하여 묶이고 얽매이며 얽매인 뒤에는 그 물들어 집착함의 재환(災患)을 보지 못하여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또 거사여,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은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다. 그는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한다. 재물을 얻은 뒤에도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묶이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얽매이지 않은 뒤에는 그 물들어 집착함의 재환(災患)을 보아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서 사용한다.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도 있다.

또 거사여, 만일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이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하고 그가 법에 맞지 않고 도의에 어긋나게 재물을 구한 뒤에는 스스로도 안온하지 않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지 않으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모든 욕심을 부리는 사람 중에서 최하가 된다.
거사여, 만일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이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하고 그가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한 뒤에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한다면,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모든 욕심을 부리는 사람 중에서 최상이 된다.

거사여, 만일 욕심을 부리는 어떤 사람이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하고 그가 법답고 도의에 맞게 재물을 구한 뒤에 능히 스스로도 안온하고 또 부모ㆍ처자ㆍ노비ㆍ하인들도 안온하게 하며, 또한 하늘에 올라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의 과보를 받아 하늘에 나서 장수하게 하는 사문과 범지도 공양하며 재물을 얻은 뒤에도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아 묶이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얽매이지 않은 뒤에는 그 물들어 집착함의 재환을 보아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서 사용한다면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모든 욕심을 부리는 사람 중에서 가장 제일이며 가장 크며 가장 으뜸이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높고 가장 묘함이 된다.
마치 소로 인하여 우유가 있고 우유로 인하여 낙(酪)이 있으며 낙으로 인하여 생소(生酥)가 있고 생소로 인하여 숙소(熟酥)가 있으며 숙소로 인하여 소정(酥精:제호)이 있으니, 소정이야말로 가장 제일이요 가장 크며, 가장 으뜸이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높고 가장 묘함이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거사여,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 사람은 모든 욕심을 부리는 사람 중에서 가장 제일이며 가장 크며 가장 으뜸이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높고 가장 묘함이 된다.”

이에 세존께서는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만일 법답지 않게 재물을 구하거나
또 법답건 법답지 않건 재물을 구해
남도 대주지 않고 자기도 쓰지 않으며
또한 널리 베풀어 복도 짓지 않으면
이 둘은 다 악(惡)이 있으니
욕심 부리는 것 중에 최하이다.

만일 법답게 재물 구하거나
자기 스스로 수고롭게 얻은 것
남에게도 대어 주고 자기도 쓰며
또한 널리 베풀어 복도 지으면
이 둘은 다 덕이 있으니
욕심 부리는 것 중에 최상이다.

만일 번뇌를 벗어나는 지혜를 얻어
욕심을 부리며 집에 살되
재환을 보고 만족할 줄 알아
절약하고 검소하게 재물을 쓰면
그는 욕심을 벗어나는 지혜를 얻어
욕심 부리는 것 중에 최상이리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급고독 거사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행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253자이다.

127) 복전경(福田經) 제11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급고독 거사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복전인(福田人)이 몇이나 있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거사여, 세상에는 대략 두 종류의 복전인(福田人)1)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종류인가? 첫째는 학인(學人)2)이며 둘째는 무학인(無學人)3)이다. 다시 학인에 열여덟 종류가 있고 무학인에 아홉 종류가 있으니 거사여, 어떤 것이 18학인인가? 신행(信行)4)ㆍ법행(法行)5)ㆍ신해탈(信解脫)6)ㆍ견도(見到)ㆍ신증(身證)ㆍ가가(家家)7)ㆍ일종(一種)8)ㆍ향수다원(向須陀洹)ㆍ득수다원(得須陀洹)ㆍ향사다함(向斯陀含)ㆍ득사다함(得斯陀含)ㆍ향아나함(向阿那含)ㆍ득아나함(得阿那含)ㆍ중반열반(中般涅槃)ㆍ생반열반(生般涅槃)ㆍ행반열반(行般涅槃)ㆍ무행반열반(無行般涅槃)ㆍ상류색구경(上流色究景)이니, 이것을 18학인이라 한다.
거사여, 어떤 것이 9무학인인가? 사법(思法)ㆍ승진법(昇進法)ㆍ부동법(不動法)ㆍ퇴법(退法)ㆍ불퇴법(不退法)ㆍ호법(護法)보호하면 물러나지 않고 보호하지 않으면 물러난다ㆍ실주법(實住法)ㆍ혜해탈(慧解脫)ㆍ구해탈(俱解脫)이니, 이것을 9무학인9)이라고 한다.”

이에 세존께서는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학인과 무학인은
존숭할 만하고 받들어 공경할 만하도다.
그들은 능히 그 몸을 바로하고
그 입과 뜻 또한 그러하니
거사여, 그들은 좋은 밭이다.
그들에게 보시하면 큰 복 얻으리.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급고독 거사와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복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67자이다.

128) 우바새경(優婆塞經) 제12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급고독 거사는 대 우바새(優婆塞) 500인과 함께 존자 사리자(舍梨子)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500우바새도 또한 존자에게 절하고 한쪽에 앉았다. 급고독 거사와 500우바새가 한쪽에 앉은 뒤에 존자 사리자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일으키고 기쁨을 성취하게 하였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일으키고 기쁨을 성취하게 한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사리자가 떠난 뒤 오래지 않아 급고독 거사와 500 우바새도 또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사리자와 대중들이 모두 자리를 정하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리자여, 만일 백의성제자(白衣聖弟子)가 5법을 잘 보호하여 행하고, 또 4증상심(增上心)을 얻어 현재 세상에서 즐겁게 살며 어렵지 않은 줄을 네가 알았거든 사라자여, 너는 마땅히 ‘백의성제자는 지옥이 다하고 축생ㆍ아귀와 모든 나쁜 곳도 다하여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악법(惡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정각(正覺)으로 나아갈 것이며 끝으로 일곱 번 유(有)를 받아 천상ㆍ인간에 일곱 번을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의 끝을 볼 것이다’라고 기별(記別)하라.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어떻게 5법을 잘 보호하여 행하는가?
백의성제자는 살생을 떠나고 살생을 단절해 칼이나 몽둥이를 버리고, 제 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이 있고, 자비심이 있어서 일체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를 요익하게 하니 그는 살생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앤다. 백의성제자는 이 제1법을 잘 보호하여 행한다.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불여취(不與取)를 떠나고 불여취를 단절해 주어진 뒤에 받고 주어진 것 받기를 즐기며 항상 보시를 좋아하고 기뻐하여 인색함 없고 그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도둑질의 마음에 뒤덮이지 않고 항상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며 그는 불여취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하게 없앤다. 백의성제자는 이 제2법을 잘 보호하여 행한다.

또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사음(邪淫)을 떠나고 사음을 끊는다. 그는 혹 아버지의 보호가 있거나 어머니의 보호,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호가 있거나 형제의 보호, 자매의 보호 혹 아내와 부모의 보호 혹 친족의 보호 혹 동성(同姓)의 보호가 있거나 혹 남의 아내로서 범하면 매를 맞을 두려움이 있거나 혹은 꽃다발을 받는 명고채(名雇債)가 있는 이러한 여자는 범하지 않으니 그는 사음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하게 없앤다. 백의성제자는 이 제3법을 잘 보호하여 행한다.

또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거짓말을 떠나고 거짓말을 끊어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즐기며 진실에 머물러 이동하지 않으며 일체를 믿을 만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으니, 그는 거짓말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하게 없앤다. 백의성제자는 이 제4법을 잘 보호하여 행한다.

또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술을 떠나고 술을 끊으니, 그는 술을 마시는데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없앤다. 백의성제자는 이 제5법을 보호하여 행한다.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어떻게 4증상심(增上心)을 얻어 현재에서 즐겁게 살기가 어렵지 않은가?
백의성제자는 여래를 생각한다.
‘저 여래는 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 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고 부른다.’
이렇게 여래를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착하지 않은 더러움과 시름ㆍ괴로움ㆍ걱정ㆍ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백의성제자는 여래를 반연하여 마음이 편안해져 기쁨을 얻어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착하지 않은 더러움과 시름ㆍ괴로움ㆍ걱정ㆍ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백의성제자는 이 제1의 증상심을 얻어 현재 세상에서 살기가 어렵지 않다.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법을 생각한다.
‘세존께서는 법을 잘 말씀하셔서 반드시 구경(究竟)에 이르러 번거로움도 없고 열(熱)도 없으며 항상 있어서 이동하지 않는다.’
이렇게 관찰하고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알고 이렇게 법을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좋지 않은 더러움과 시름ㆍ괴로움ㆍ걱정ㆍ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백의성제자는 법을 반연하여 마음이 편안하며 기쁨을 얻어,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좋지 않은 더러움과 시름ㆍ괴로움ㆍ걱정ㆍ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백의성제자는 이 제2의 증상심을 얻는다.

또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승가 대중을 생각한다.
‘여래의 성중(聖衆)은 잘 나아가고 바르게 나아가며 법을 향하고 법에 나아가며 법답게 순행(順行)한다. 저 대중에는 진실로 아라하(阿羅訶)와 아라하로 나아가는 이[趣阿羅訶]가 있고, 아나함[阿那含]과 아나함으로 나아가는 이가 있으며 사다함(斯陀含)과 사다함으로 나아가는 이가 있고 수다원(須陀洹)과 수다원으로 나아가는 이가 있으니, 이것을 사쌍팔배(四雙八輩)10)라고 한다. 곧 여래의 대중은 계[尸賴]를 성취하고 삼매를 성취하였으며 반야(般若)를 성취하고 해탈(解脫)을 성취하였으며 해탈지견(解脫知見)을 성취하였으니 공경할 만하고 소중히 할 만하며 받들 만하고 공양할 만한 세상의 좋은 복전이다.’
그는 이렇게 여래 대중을 생각하여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좋지 않은 더러움과 시름ㆍ괴로움ㆍ걱정ㆍ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백의성제자는 여래 대중을 반연하여 마음이 편안하며 기쁨을 얻어,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좋지 않은 더러움과 시름ㆍ괴로움ㆍ걱정ㆍ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이것을 백의성제자가 제3의 증상심을 얻어 현재 세상에서 즐겁게 살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또 사리자여, 백의성제자는 스스로 계를 생각한다.
‘이 계는 이지러지지도 않고 훼손되지도 않았으며 더러움도 없고 흐려짐도 없으며 진실한 자리에 머물러 허망하지 않고 성인께서 칭찬하는 것이니 완전히 잘 받아 지니자.’
그는 이렇게 스스로 계를 생각하여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좋지 않은 더러움과 시름ㆍ괴로움ㆍ걱정ㆍ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백의성제자는 계를 반연하여 마음이 편안하고 기쁨을 얻으며 만일 나쁜 욕심이 있으면 곧 멸할 수 있고 마음 가운데 좋지 않은 더러움과 시름ㆍ괴로움ㆍ걱정ㆍ슬픔이 있으면 또한 멸할 수 있다. 이것을 백의성제자가 제4의 증상심을 얻어 현재 세상에서 즐겁게 살기가 어렵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사리자여, 만일 백의성제자가 이 5법을 잘 보호하여 행하고 이 4증상심을 얻어 현재 세상에서 즐겁게 살기가 어렵지 않은 줄을 네가 알았거든 사리자여, 너는 마땅히 ‘백의성제자는 지옥이 다하고 축생ㆍ아귀와 모든 나쁜 곳도 또한 다하여 수다원을 얻어 악법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정각(正覺)으로 나아가는데 끝으로 일곱 번 유(有)를 받아 천상ㆍ인간에 일곱 번을 왕래한 뒤에 괴로움의 끝을 볼 것이다’라고 기별하라.”

이에 세존께서 이 게송을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집에 있으면서
지옥의 두렵고 무서운 것 보고
성법(聖法)을 받아 지님으로 말미암아
일체의 악한 것 없애 버리네.

중생을 살해하면 안 됨을
알고는 능히 버려 떠나고
진실하여서 거짓말 않고
남의 재물을 훔치지 않네.

자기 아내에 만족할 줄 알아
남의 아내를 좋아하지 않고
마음 어지럽히고 미치게 하는 근본
술 마시기를 끊어버리네.

마땅히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모든 착한 법 깊이 생각하고
스님대중을 생각하고 계를 관찰하여
그것을 좇아 기쁨을 얻어야 하네.

만일 보시를 행하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 복을 바래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사문[息心]에게 보시하라.
그렇게 해야 과보를 이루리라.

나는 이제 너에게 사문을 말할 것이니
사리자여, 마땅히 잘 들으라.

만일 검은색과 흰색
그리고 붉은색과 누런색
온갖 잡색과 좋아하는 색깔의
소 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있으면
그들이 태어난 곳을 그대로 따르되

잘 길들여진 소가 있다면
몸의 힘이 완전히 갖추어지고
가고 오고 달림이 빠르고 날렵하거든
그의 능력을 취하고
빛깔을 따지지 말라.

이와 같이 이 인간 세상에서도
만일 그 태어난 곳에 따라
찰제리(刹帝利)와 범지(梵志)
거사와 기술자가 있으니

그들이 타고난 그대로 따르되
깨끗한 계를 가진 장로에게나
세상에 집착 없는 선서(善逝)에게
보시하면 큰 과보를 얻으리.

어리석고 미련해 아는 것 없고
지혜도 없고 들은 바 없으면
그에게 보시해도 과보가 적고
광명이 없어 비추는 바 없다.

만일 광명이 있어 비추고
지혜가 있는 부처님 제자로서
선서를 믿고 향해 나아가는 이는
선근이 생겨 꿋꿋하게 머물리라.

그는 이 좋은 곳에 태어나
마음대로 세상 자재하다가
마지막에는 열반을 얻을 것이니
이렇게 각각 그 인연이 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사리불과 비구들과 급고독 거사와 500우바새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우바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49자이다.

129) 원가경(怨家經) 제13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곱 가지 원가법(怨家法)이 있어 원가(怨家)를 만드는데, 곧 남녀 무리들의 성냄을 유발한다. 어떤 것이 일곱인가?
원가는 그의 원가에 미인[好色]이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원가는 그 원가에 미인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냄이 있어 성냄을 익히고 성냄에 덮여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아무리 잘 목욕하고 이름난 향을 몸에 바르더라도 그 형색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성냄에 덮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1의 원가법으로서 원가를 만드는 것이라 하니, 곧 남녀 무리들의 성냄을 유발한다.

또 원가는 그의 원가가 안온하게 잠자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원가는 그 원가가 안온하게 잠자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냄이 있어 성냄을 익히고 성냄에 덮여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비록 좋은 침대에 누워 털 담요ㆍ털자리를 깔고 금실로 짠 비단 이불을 덮고 비단 속이불과 양두안(兩頭安) 베개와 가릉가파화라파차실다라나(加陵伽波■邏波遮悉多羅那)11)가 있더라도 더욱 괴롭게 잘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성냄에 덮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2의 원가법으로서 원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 곧 남녀 무리들의 성냄을 유발한다.

또 원가는 그 원가가 큰 이익 얻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원가는 그 원가가 큰 이익을 얻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냄이 있어 성냄을 익히고 성냄에 덮여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이익을 얻어야 하는데서 이익을 얻지 못하고 이익을 얻지 말아야 하는 데서 이익을 얻는다. 그는 이 두 법이 서로 어긋나 크게 이롭지 못하게 된다. 무슨 까닭인가? 성냄에 덮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3의 원가법으로서 원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 곧 남녀 무리들의 성냄을 유발한다.

또 원가는 그 원가에 벗이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원가는 그 원가에 벗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냄이 있어 성냄을 익히고 성냄에 덮여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면 그에게 혹 벗이 있더라도 그를 버리고 피해 갈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성냄에 덮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4의 원가법으로서 원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 곧 남녀 무리들의 성냄을 유발한다.

또 원가는 그 원가에 칭찬이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원가는 그 원가에 칭찬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냄이 있어 성냄을 익히고 성냄에 덮여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나쁜 이름과 추한 소문이 사방에 두루 들린다. 무슨 까닭인가? 성냄에 덮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5의 원가법으로 원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 곧 남녀 무리들의 성냄을 유발한다.

또 원가는 그 원가가 지극히 큰 부자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원가는 그 원가가 지극히 큰 부자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냄이 있어 성냄을 익히고 성냄에 덮여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면 그는 이러한 몸[身]과 입[口]과 뜻[意]의 행을 행하여 크게 재물을 잃게 된다. 무슨 까닭인가? 성냄에 덮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6의 원가법으로서 원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 곧 남녀 무리들의 성냄을 유발한다.

또 원가는 그 원가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원가는 그 원가가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냄이 있어 성냄을 익히고 성냄에 덮여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면,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짓을 한다. 그는 몸과 입과 뜻으로 나쁜 짓을 한 뒤에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 가운데 태어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성냄에 덮임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성냄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7의 원가법으로서 원가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니, 곧 남녀 무리들의 성냄을 유발한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분노하면 형색이 나빠지고
누워 자도 편안하지 않으며
마땅히 큰 재물 얻을 것인데
도리어 이롭지 못하게 되네.

친족과 착한 벗들도
성내는 사람을 멀리 떠나고
자주 성내는 버릇 익히면
나쁜 이름 사방에 퍼져 떠도네.

분노[瞋]는 몸과 입의 악업 짓고
성냄[恚] 얽매이면 뜻의 악업 지으며
사람은 성냄에 덮이게 되어
모든 재물마저 잃게 되며

성냄은 이롭지 못한 것 생기게 하고
성냄은 마음의 더러움 생기게 하며
마음에 두려움 생기게 하건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네.

성내는 자는 이치 알지 못하고
성내는 자는 법을 깨닫지 못해
눈앞이 캄캄하고 막히며
이를 성냄을 즐기는 사람이라 하네.

성냄이 처음 일어나 형색이 나빠짐은
마치 불이 처음 연기를 일으키는 것 같네.
이를 따라 미움ㆍ질투 생기고
이 인연으로 모든 사람 성내네.

만일 성난 사람이 행한
착한 행이나 착하지 않은 행도
조금 있다가 성이 그치고 나면
번민의 괴로움 불붙듯 하리.

이른바 괴로운 번민의 업과
그 밖의 모든 법에 얽매인 것을
내 이제 낱낱이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마음으로 잘 들으라.

성내는 자는 그 부모와
모든 형제를 거역해 해치고
그 누나와 누이동생 죽인다.
성내는 자 이렇게 잔인함이 많다.

그의 자식들이 성장하여
이 세상에 대한 견해가 생기면
그들에 의지해 목숨을 이어가는
그 어미도 성내어 해치며

자신이나 남에 대한 부끄럼 없고
성냄에 얽매어 할 말이 없건만
사람은 성냄에 덮여
입으로 지껄여 못할 말 없고

어리석고 미련한 죄업을 지어
스스로 그 목숨을 줄이네.
죄를 지을 때는 깨닫지 못하다가
성냄으로 인해 두려움 생겼다네.

스스로 자기 몸에 얽매이고 집착하여
사랑하고 좋아함이 끝이 없구나.
비록 자기 몸 사랑할 만하다고 생각하나
성내는 자는 자신도 해친다.

혹은 칼로써 제 몸 찌르고
혹은 높은 바위에서 스스로 떨어지며
혹은 노끈으로 목을 조르고
또 여러 가지 독약을 마신다네.

이러한 성냄의 형상과
이러한 죽음은 성냄에서 비롯된 것이니
지혜로 모든 것 하나하나 끊으면
명료하게 깨달을 수 있으리.

착하지 못한 소소한 업도
지혜로운 사람은 알아서 없애며
마땅히 이 행을 견디고 참아
나쁜 형색 없게 하고자 하네.

성냄도 없고 또한 걱정도 없으며
연기[烟]를 없애 뽐냄도 없으며
마음을 제어하여 성냄을 끊으면
완전히 적멸하여 번뇌가 없으리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원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115자이다.

130) 교담미경(敎曇彌經) 제14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때에 승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존자 담미(曇彌)는 그 고향의 존장으로서 불도(佛圖)의 주인이 되어 사람들의 존숭을 받았다. 그러나 성질이 흉악하고 난폭하며 또 극히 추악하여 모든 비구들을 욕설로 꾸짖고 나무랐다. 그러므로 그 지방의 비구들은 다 고향을 버리고 떠나 거기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에 그 지방의 모든 우바새(優婆塞)들은 그 지방의 비구들이 모두 고향을 버리고 떠나, 거기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지방의 모든 비구들은 무슨 생각으로 다 고향을 버리고 떠나 여기서 살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그 지방의 모든 우바새들은 ‘이 지방의 존자 담미는 고향의 존장으로서 불도의 주인이 되어 사람들의 존숭을 받지만 성질이 악하고 난폭하며, 또 극히 추악하여 모든 비구들을 욕설로 꾸짖고 나무랐다. 그러므로 이 지방의 모든 비구들은 다 고향을 버리고 떠나 여기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은 이 말을 들은 뒤에 곧 존자 담미가 있는 곳으로 함께 가서 담미를 쫓아내고 고향의 모든 절에서도 쫓겨나게 하였다.

이에 존자 담미는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에게 내몰려 고향의 모든 절에서 쫓겨나게 되자, 곧 옷을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길을 떠나 사위국으로 가서 승림급고독원에 머물렀다. 이에 존자 담미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제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에게 욕되게 한 일도 없었고 말한 바도 없었으며 잘못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은 횡포를 부려 저를 쫓아냈고 제 고향의 모든 절에서도 쫓겨나게 하였습니다.”

그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담미여, 그런 말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존자 담미는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제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에게 욕되게 한 일도 없었고 말한 바도 없었으며 잘못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은 횡포를 부려 저를 쫓아냈고 제 고향의 모든 절에서도 쫓겨나게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담미여, 옛날 이 염부주의 여러 상인들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면 시안응(視岸鷹)을 가지고 갔다. 그들은 큰 바다로 나아간 지 오래지 않아 곧 시안응을 풀어주었다. 그 시안응은 만일 큰 바다의 언덕에 이르게 되면 끝내 배로 돌아오지 않았고 만일 큰 바다의 언덕에 이르지 못하게 되면 그 시안응은 곧 배로 돌아왔다. 이와 같이 담미여, 너는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에게 쫓겨 네 고향의 모든 절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므로 곧 내게로 돌아온 것이다. 그만두어라, 그만두어라. 담미여, 어찌 굳이 그런 말이 다시 필요하겠는가?”

존자 담미는 다시 세 번째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제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에게 욕되게 한 일도 없었고 말한 바도 없었으며 잘못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은 횡포를 부려 저를 쫓아냈고 제 고향의 모든 절에서도 쫓겨나게 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또한 세 번째로 말씀하셨다.
“담미여, 네가 사문의 법에 머물렀는데도 고향의 모든 우바새들이 쫓아냈고 고향의 모든 절에서도 쫓겨나게 하였는가?”

이에 존자 담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을 사문이 사문의 법에 머무는 것이라고 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담미여, 옛날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일 때가 있었다. 담미여,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이던 때에는 이 염부주(閻浮州)는 지극히 크고 풍족하고 즐거워 백성이 많았고 마을들은 서로 가까워 닭이 한 번 날면 닿을 정도였다. 담미여,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이던 때에 여자는 나이 500세가 되어야 시집을 갔다. 담미여,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이던 때에는 이러한 병이 있었으니, 곧 대변ㆍ소변ㆍ욕심ㆍ먹지 못함ㆍ늙음이었다.
담미여, 사람의 수명이 8만 세이던 때에 고라바(高羅婆)라는 왕이 있었는데, 총명하고 지혜로워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네 종류의 군사로써 천하를 바로 거느렸고 법다운 법왕(法王)으로서 7보(寶)를 성취하였다. 그 7보는 윤보(輪寶)ㆍ상보(象寶)ㆍ마보(馬寶)ㆍ주보(株寶)ㆍ여보(女寶)ㆍ거사보(居士寶)ㆍ주병신보(主兵臣寶)이니 이것이 일곱 가지가 된다. 천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용모는 단정하고 용맹스럽고 두려움이 없어 능히 다른 무리들을 항복받았다. 그는 반드시 이 일체의 땅 나아가 대해까지 통치했음에도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 다스리고 교화하여 안온을 얻게 하였다.

담미여, 고라바왕에게는 선주니구류수왕(善住尼拘類樹王)이라는 나무가 있었다. 담미여, 선주니구류수왕에게는 다섯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 가지는 왕과 왕후가 먹는 것이며 두 번째 가지는 태자와 모든 신하가 먹는 것이며 세 번째 가지는 나라의 백성들이 먹는 것이며 네 번째 가지는 사문 범지가 먹는 것이며 다섯 번째 가지는 짐승들이 먹는 것이다. 담미여, 선주니구류수왕의 열매는 크기가 두 되들이 병과 같고 맛은 순수하여 꿀사탕과 같았다. 담미여, 선주니구류수왕의 열매는 지키는 사람도 없지만 또한 서로 훔치는 일도 없었다.
그때 어떤 굶주리고 목마르고 몹시 파리하며 안색이 초췌한 사람이 와서 그 열매를 먹고자 선주니구류수왕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열매를 실컷 먹은 뒤에 그 가지를 꺾어 열매를 가지고 돌아갔다. 선주니구류수왕에는 어떤 하늘 사람이 그것을 의지해 살고 있었는데, 그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염부주 사람은 이상하다. 은혜도 없고 은혜를 갚을 줄도 모른다. 무슨 까닭인가? 선주니구류수왕에게서 그 열매를 실컷 먹고도 그 가지를 꺾어 열매를 가지고 돌아갔다. 차라리 선주니구류수왕의 열매를 없애버리고 또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자.’
그래서 선주니구류수왕은 곧 열매가 없어졌고 또한 열매가 맺지도 않았다.

또 어떤 굶주리고 목마르고 몹시 파리하며 안색이 초췌한 사람이 그 열매를 먹고자 선주니구류수왕이 있는 곳으로 갔다가 선주니구류수왕의 열매가 없어졌고 또한 열매를 맺지도 않는 것을 보고, 곧 고라바왕의 처소로 가서 말씀드렸다.
‘천왕이시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선주니구류수왕의 열매가 없어졌고 또한 열매를 맺지도 않습니다.’
고라바왕은 이 말을 듣자마자, 마치 역사(力士)가 팔을 굽혔다 펴는 것 같은 시간에, 구루수(拘樓瘦)에서 사라져 삼십삼천(天) 가운데 이르러 천제석 (天帝釋) 앞에 서서 말씀드렸다.
“구익(拘翼)12)이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선주니구류수왕의 열매가 없어졌고 또한 열매를 맺지도 않습니다.”
이에 천제석과 고라바왕은 마치 역사가 팔을 굽혔다 펴는 것 같은 시간에, 삼십삼천 가운데서 사라져 구루수에 이르러 선주니구류수왕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물렀다. 천제석은 여기상여의족(如其像如意足)을 지어 그 여기상여의족으로써 큰 물과 사나운 비바람을 변화로 만들었고, 그 큰물과 사나운 비바람을 만들고 나서 선주니구류수왕의 뿌리를 뽑아 넘어뜨렸다.

이에 선주니구류수왕에게 의지해 살던 나무의 하늘사람[天人]은 그로 말미암아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면서 천제석 앞에 섰다.
천제석은 물었다.
‘하늘사람이여, 그대는 왜 걱정하고 괴로워하며 슬피 울고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앞에 섰는가?’
그 하늘사람이 말했다.
‘구익이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큰물과 사나운 비바람이 선주니구류수왕의 뿌리를 뽑아 넘어뜨렸습니다.’
그때 천제석은 그 나무의 하늘사람에게 말하였다.
‘하늘사람이여, 그대 나무의 하늘사람이여, 그대가 나무의 하늘사람 법에 머물렀는데도 큰물과 사나운 비바람이 선주니구류수왕의 뿌리를 뽑아 넘어뜨렸느냐?’
나무의 하늘사람이 말했다.
‘구익이여, 어떻게 나무의 하늘사람은 나무의 하늘사람 법에 머물러야 합니까?’
천제석이 말하였다.
‘하늘사람이여, 혹 사람이 나무뿌리를 얻어 나무뿌리를 가지고 가고자 하고, 나무줄기ㆍ나뭇가지ㆍ나뭇잎ㆍ나무 꽃ㆍ나무 열매를 얻어 가지고 가고자 하더라도 나무의 하늘사람이여, 그대는 마땅히 성내지 말아야 하고 미워하지 말아야 하며 마음으로 한스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나무의 하늘사람이여, 생각을 버리고 나무왕에 머물러야 하며 이렇게 나무의 하늘사람은 나무의 하늘사람 법에 머물러야 한다.’

하늘사람은 천제석에게 다시 말하였다.
‘구익이여, 나 나무의 하늘사람은 나무의 하늘사람 법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나무의 하늘사람으로서 나무의 하늘사람 법에 머물겠습니다. 원컨대 선주니구류수왕을 본래대로 만들어 주십시오.’
이에 천제석은 여기상여의족(如其像如意足)을 지어 여기상여의족으로써 다시 큰물과 사나운 비바람을 변화로 만들었고, 큰물과 사나운 비바람을 만들어서는 선주니구류수왕을 곧 본래대로 만들었다.
이와 같이 담미여, 만일 어떤 비구가 꾸짖더라도 사문은 꾸짖지 않고 성내는 자 있어도 성내지 않으며 부수는 자 있어도 부수지 않고 치는 자 있어도 치지 않아야 한다. 이와 같이 담미여, 사문은 사문의 법에 머문다.”

이에 존자 담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쪽을 벗어 메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의 법에 머물렀습니다. 오늘부터는 사문으로서 사문의 법에 머물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담미여, 옛날 선안(善眼)이라는 대사가 있었는데, 외도 선인들의 스승이 되어 욕애(欲愛)를 버리고 여의족(如意足)을 얻었다. 담미여, 선안 대사에게는 한량없는 백천 제자가 있었다. 담미여, 선안 대사는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梵世法)13)을 연설하였다. 담미여, 선안 대사가 범세법을 연설할 때 만일 그 법을 구족하게 받들어 행하지 않는 제자들이라면 그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는 혹은 4천왕천(天王天)에 나고 혹은 삼십삼천(天)에 나며 혹은 염마천(焰摩天)에 나고 혹은 도솔타천(兜率哆天)에 나며 혹은 화락천(化樂天)에 나고 혹은 타화락천(他化樂天)에 났다. 담미여, 만일 선안 대사가 범세법을 연설할 때, 만일 그 법을 구족하게 받들어 행한 제자들이라면 그들은 4범실(梵室)을 닦아 욕심을 떠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태어나게 되었다.
담미여, 그때 선안 대사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마땅히 후세에는 제자들과 함께 한곳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이제 차라리 다시 증상자(增上慈)를 닦아야겠다. 증상자를 닦은 뒤에는 목숨을 마치면 황욱천(晃昱天)14)에 나게 될 것이다.’

담미여, 그때 선안 대사는 곧 다시 증상자를 닦고 증상자를 닦은 뒤에는 목숨을 마치고 황욱천에 태어나게 되었다. 담미여, 선안 대사와 그 제자들은 도를 배움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얻었다. 선안 대사와 같이 모리파군나(牟犁破羣那)ㆍ아라나차바라문(阿羅那遮婆羅門)ㆍ구타리사다(瞿陀梨舍哆)ㆍ해제바라마납(害提婆羅摩納)ㆍ저제마려교비타라(儲提摩麗橋鞞陀邏) 및 살다부루해다(薩哆富樓奚哆)들도 역시 그러하다.

담미여, 7부루해다사(富樓奚哆師)에게도 역시 한량없는 백천 제자가 있었다. 담미여, 7부루해다사도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범세법을 연설하였다. 7부루해다사가 범세법을 연설할 때, 만일 그 법을 구족하게 받들어 행하지 않는 제자들이라면 그들은 목숨을 마친 뒤에는 혹은 4천왕천에 나고 혹은 삼십삼천에 나며 혹은 염마천에 나고 혹은 도솔타천에 나며 혹은 화락천에 나고 혹은 타화락천에 태어났다. 7부루해다사가 범세법을 연설할 때, 만일 그 법을 구족하게 받들어 행한 제자들이라면 그들은 4범실을 닦아 욕심을 떠나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범천에 태어나게 되었다.
담미여, 7부루해다사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 제자들과 함께 한곳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 이제 차라리 다시 증상자(增上慈)를 닦아야겠다. 증상자를 닦은 뒤에는 목숨을 마치면 황욱천에 나게 될 것이다.’

담미여, 그때 7부루해다사는 곧 다시 증상자를 닦고 증상자를 닦은 뒤에는 목숨을 마치고 황욱천에 태어나게 되었다.
담미여, 7부루해다사와 그 제자들은 도를 배움이 헛되지 않아 큰 과보를 얻었다. 담미여, 만일 저 7사(師)와 한량없는 백천의 그 권속들을 꾸짖고 쳐부수며 성내고 나무라는 자 있으면 반드시 한량없는 죄를 받을 것이다. 만일 바른 견해를 성취한 부처님의 제자 비구로서 조그마한 과보라도 얻은 사람을 꾸짖고 쳐부수며 성내고 나무라는 자 있으면, 이 자가 받는 죄는 저 자보다 클 것이다. 그러므로 담미여, 너희들은 제각기 서로 보호하라. 무슨 까닭인가? 이 허물을 떠나면 다시 다른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수열(須涅)15)ㆍ모리파군나
아라나차 바라문
구타리사다ㆍ해제바라마납
저제마려교비타라ㆍ살다부루해다

이들은 과거세의
7사(師)로서 그 이름과 덕망이 있었고
애욕의 결박이나 즐거움ㆍ슬픔 없고
욕심의 맺음도 과거에 다했다.

그들의 모든 제자들
그 수는 한량없는 백천
그들도 역시 욕심의 맺음 끊어
오래지 않아 괴로움을 끝내네.

만일 저 외도 선인들이
잘 보호해 고행하는 것 보고
마음속에 미움을 품어
꾸짖는 자는 많은 죄를 받으리.

만일 바른 견해를 얻은
작은 과보라도 얻은 부처님의 제자를
꾸짖고 나무라며 치고 부수면
그보다 더 많은 죄 받으리.

그러므로 담미여, 너희들은
제각기 서로를 보호하라.
제각기 서로 보호하는 까닭은
이보다 더한 중죄 없기 때문이라.

이렇게 매우 중한 고통은
또한 성인이 미워하는 바이니
반드시 나쁜 몸 받게 되고
삿된 견해로 잘못 나아간다네.

이들은 최하의 사람이라
성인의 법에서 말하였는바
곧 아직 음욕을 떠나지 못해서이니
미묘한 5근을 얻어야 하리.
즉 믿음과 정진과 염처와
바른 선정과 바른 관찰 얻어야 하리.

이렇게 이 고통을 얻어
앞에서 그 재앙을 받고
스스로 재앙을 받은 뒤에는
곧 다시 다른 사람 해친다네.

만일 스스로 보호할 수 있으면
그는 또한 남을 보호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마땅히 스스로 보호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다함없는 즐거움이 있다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담미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교담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424자이다.

131) 항마경(降魔經) 제15제3 염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바기수(婆奇瘦)16)를 유행하실 때에 타산(鼉山) 포림(怖林)의 녹야원에 머무셨다.

그때 존자 대목건련(大目揵連) 교수(敎授)는 부처님을 위해 선옥(禪屋)을 짓고 한데[露地]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 마왕(魔王)이 세형(細形)으로 변화하여 존자 대목건련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내 뱃속은 마치 콩을 먹은 듯하다. 나는 이제 여기상정(如其像定)에 들어가 여기상정으로써 내 뱃속을 관찰해야겠다.’
이때 존자 목건련은 거닐던 길머리로 가서 니사단(尼師檀)을 펴고 결가부좌하여 여기상정에 들어 여기상정으로써 스스로 그 배를 관찰해 보았다. 존자 목건련은 곧 마왕이 그 뱃속에 있는 것을 알았다.

존자 대목건련은 곧 선정에서 깨어나 마왕에게 말하였다.
“너 파순(波旬)아, 나오너라. 너 파순아, 나오너라. 여래를 희롱하지 말고 또한 여래의 제자를 희롱하지 말라. 오래도록 뜻도 없고 요익도 없게 하지 말라. 반드시 나쁜 곳에 태어나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때 마왕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너 파순아, 나오너라. 너 파순아, 나오너라. 여래를 희롱하지 말고 또한 여래의 제자도 희롱하지 말라. 오래도록 뜻도 없고 요익도 없게 하지 말라. 반드시 나쁜 곳에 나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구나. 그대의 스승은 큰 여의족(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威德)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威神)이 있지만 그도 오히려 빨리 알아차리고 빨리 보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그 제자가 그렇게 빨리 알아차리고 볼 수 있겠는가?’

존자 대목건련은 다시 마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네 마음도 안다. 너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사문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면서 〈너 파순아, 나오너라. 너 파순아, 나오너라. 여래를 희롱하지 말고 또한 여래의 제자도 희롱하지 말라. 오래도록 뜻도 없고 요익도 없게 하지 말라. 반드시 나쁜 곳에 나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하고 있구나. 또 너의 스승은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지만, 그도 오히려 빨리 알아차리고 빨리 보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그 제자가 그렇게 빨리 알아차리고 그렇게 빨리 볼 수 있겠는가?”

마왕 파순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사문은 나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구나.’
이에 마왕 파순은 세형(細形)으로 변화하여 입으로 나와 존자 대목건련 앞에 섰다.

존자 대목건련은 말하였다.
“파순아, 옛날 각력구순대(覺礫拘荀大) 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이라는 여래가 계셨다. 나는 그때 마군이 되어 이름을 악(惡)이라 하였고 내게 여동생이 있었는데 이름을 흑(黑)이라고 하였다. 너는 바로 그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생질이다.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에게 두 명의 대제자가 있었는데, 첫째는 이름이 음(音)이며 둘째는 이름이 상(想)이었다. 파순아, 무슨 뜻으로 존자 음의 이름을 음이라고 하였는가? 파순아, 존자 음은 범천(梵天)에 머물면서 항상 음성이 1천 세계에 가득 차서 제자의 음성으로서 그와 같은 자와 비슷한 자와 나은 자가 없었다. 파순아, 이런 이유로 존자 음은 음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파순아, 다시 무슨 뜻으로 존자 상(想)의 이름을 상이라고 하였는가? 파순아, 존자 상은 의탁하는 마을에서 노닐고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걸식할 때, 그 몸을 잘 보호하고 모든 근(根)을 잘 거두어 바른 생각을 세웠다. 그는 걸식을 하고 나서 식사를 마치고 오후가 되어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손과 발을 씻고 나서 니사단을 어깨에 걸치고 일 없는 한가한 곳이나 혹은 산림이나 나무 밑이나 혹은 한가한 곳이나 고요한 곳으로 가서, 니사단을 펴고 결가부좌하고 앉아 어느새 상지멸정(想知滅定)에 들었다. 그때 소나 염소를 방목하는 사람, 나무꾼, 혹은 길 가던 사람들은 그 산림에 들어갔다가 그가 상지멸정에 든 것을 보고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이 사문은 일 없는 한가한 곳에 앉아서 목숨을 마쳤다. 우리들은 차라리 마른 나무나 섶을 주어다 쌓아 그 몸을 덮어 화장할까?’
그리고 곧 마른 나무나 섶을 주어다 쌓아 그 몸을 덮고 불을 붙인 뒤에 곧 버리고 떠났다.

그 존자 상은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선정에서 깨어 일어나 옷을 털고 의지해 살던 마을을 노닐 때에, 예전처럼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면서 그 몸을 잘 보호하고 모든 근을 잘 거두어 바른 생각을 세웠다. 그때 산림에 들어갔다가 그를 보았던 소나 염소를 방목하는 사람 나무꾼이나 혹은 길 가던 사람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금 이 사문은 일 없는 한가한 곳에 앉아서 목숨을 마쳤으므로 우리들이 어제 이미 마른 나무나 섶을 주어다 쌓아 그 몸을 덮고 불을 붙인 뒤에 떠났었다. 그런데 이 현자는 다시 살아나 생각하고 있구나.’
파순아, 이 이유로 존자 상은 상이라고 하였다.

파순아, 그때 악마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까까머리 사문은 흑(黑)에 얽매임으로써 종자를 끊어 아들이 없다. 그는 선(禪)을 배워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며 자꾸자꾸 관찰한다. 마치 나귀가 온종일 무거운 짐을 지고 마판에 매어 있어 보리를 먹지 못할 때, 그는 보리 때문에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며 자꾸자꾸 관찰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이 까까머리 사문은 흑에 얽매임으로써 종자를 끊어 아들이 없고 선을 배워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며 자꾸자꾸 관찰한다. 또 마치 고양이가 쥐구멍 가에 있으면서 쥐를 잡으려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며 자꾸자꾸 관찰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이 까까머리 사문은 흑에 얽매임으로써 종자를 끊어 아들이 없다. 그는 선을 배워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며 자꾸자꾸 관찰한다.

또 마치 수리부엉이나 여우가 마른 풀 더미 사이에서 쥐를 잡으려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며 자꾸자꾸 관찰하는 것과 같이 이 까까머리 사문은 흑에 얽매임으로써 종자를 끊어 아들이 없고 선을 배워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며 자꾸자꾸 관찰한다. 또 마치 두루미가 물가에서 고기를 잡으려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며 자꾸자꾸 관찰하는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이 까까머리 사문은 흑에 얽매임으로써 종자를 끊어 아들이 없고 선을 배워 관찰하고 한층 더 관찰하고 자꾸자꾸 관찰한다.
그는 무엇을 관찰하고 무슨 뜻으로 관찰하며 무엇을 구하려고 관찰하는가? 그는 생각이 어지럽고 안정되지 않아 실패하여 무너질 것이다. 나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고 또한 그가 어디로 갈 것인지도 알지 못하며 또한 머무는 것도 알지 못하고 죽는 것도 알지 못하며 사는 것도 알지 못한다. 나는 차라리 범지와 거사들에게 분부할 것이다.
〈너희들은 다 같이 와서 이 정진하는 사문을 꾸짖고 때리며 혼내주어라.〉’

파순아, 그때 악마는 곧 범지와 거사들에게 분부하였고 저 범지와 거사들은 이 정진하는 사문을 꾸짖고 때리며 혼내주었다. 저 범지와 거사들은 혹은 몽둥이로 때리거나 혹은 돌을 던지거나 혹은 작대기로 때렸다. 혹은 정진하는 사문의 머리를 다치게 하고 혹은 옷을 찢으며 혹은 발우를 부수기도 하였다. 그때 범지나 거사로서 혹 죽는 사람이 있으면 이 인연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 가운데 났다. 그들은 거기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 고통을 받아 마땅하다. 또 이보다 더한 고통도 받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정진하는 사문에게 못된 짓을 하였기 때문이다.’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제자는 그 머리를 다치고 그 옷을 찢기고 그 발우가 깨진 뒤에,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그때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서는 한량없는 백천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고 있었다.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멀리서 제자가 머리를 다친 데다 옷이 찢기고 발우는 깨져서 오는 것을 보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보았느냐? 악마는 범지와 거사들에게 분부하였다.
〈너희들은 다 같이 와서 이 정진하는 사문을 꾸짖고 때리며 혼내주어라. 무슨 까닭인가? 혹 꾸짖고 때리며 혼낼 때 만일 나쁜 마음을 일으키면 나는 그 틈을 노릴 것이다.〉
비구여, 너희들은 마땅히 자애로움[慈]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1방(方)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고,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維)ㆍ상ㆍ하 일체에 두루하게 하라.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이렇게 불쌍히 여김[悲]과 기뻐함[喜]도 역시 그러하다. 또 평정함[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어라. 그래서 악마로 하여금 그 틈을 노려도 틈을 얻지 못하게 하라.’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이 가르침으로써 모든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그들은 이 가르침을 받고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1방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었고,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ㆍ하 일체를 가득 채웠으며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었다. 이렇게 불쌍히 여김과 기뻐함도 역시 그러하였다. 또 평정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음도 없고 원한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워 성취하여 노닐었다. 그래서 악마는 그 틈을 노렸으나 틈을 얻지 못하였다.

파순아, 그때 악마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 일로써 정진하는 사문의 틈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나는 이제 차라리 범지와 거사들에게 분부할 것이다.
〈너희들은 다 같이 와서 이 정진하는 사문을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라.〉
혹은 정진하는 사문을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면서 만일 나쁜 마음을 일으키면 나는 그 틈을 노려야겠다.’
파순아, 저 범지와 거사들은 악마의 분부를 받은 뒤에 곧 함께 정진하는 사문을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겼다. 혹은 옷을 땅에 펴고 이렇게 말하였다.’
정진하는 사문이여, 이 위로 가십시오. 정진하는 사문은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는 분이시니 저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익ㆍ안온ㆍ쾌락을 얻게 하십시오.’

혹은 머리카락을 땅에 펴고 이렇게 말하였다.
‘정진하는 사문이여, 이 위로 가십시오. 정진하는 사문은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니, 저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익ㆍ안온ㆍ쾌락을 얻게 하십시오.’
범지와 거사들은 손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받들고 길가에 서서 기다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정진하는 사문이여, 이 음식을 받아 드시고 이것을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쓰셔서 저로 하여금 오랫동안 이익ㆍ안온ㆍ쾌락을 얻게 하십시오.’
모든 믿음이 있는 범지와 거사들은 정진하는 사문을 보고 나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축해 모시고 안으로 들어가 여러 가지 재물을 정진하는 사문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을 받아쓰시고 이것을 가지고 가서 마음대로 쓰십시오.’
그때 범지와 거사로서 혹 죽는 사람이 있으면 이 인연으로써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天上)에 태어났다. 그들은 거기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마땅히 이 즐거움을 받아야 한다. 다시 또 이보다 더한 즐거움을 받아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정진하는 사문에게 선행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제자는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김을 받은 뒤에,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계시는 곳으로 갔다. 그때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한량없는 백천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멀리서 제자가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김을 받고 오는 것을 보시고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보았느냐? 악마는 범지와 거사들에게 분부하였다.
〈너희들은 다 같이 와서 이 정진하는 사문을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겨라. 혹 이 정진하는 사문을 받들어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길 때, 그가 만일 나쁜 마음을 일으키면 나는 그 틈을 노릴 것이다.〉
비구여, 너희들은 마땅히 모든 행의 무상(無常)을 관찰하고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며 욕심 없음을 관찰하고 버리고 떠남을 관찰하며 없어짐을 관찰하고 끊음을 관찰하여 악마로 하여금 그 틈을 노려도 틈을 얻지 못하게 하라.’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이 가르침으로써 모든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그들은 이 가르침을 받고 곧 일체 행의 무상을 관찰하였고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였으며 욕심 없음을 관찰하였고 버리고 떠남을 관찰하였으며 없어짐을 관찰하였고 끊음을 관찰하여 악마로 하여금 그 틈을 노려도 틈을 얻지 못하게 하였다.

파순아, 그때 악마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 일로써 정진하는 사문의 틈을 노렸으나, 얻지 못하였다. 나는 차라리 소년의 몸으로 변화하여 손에 큰 몽둥이를 잡고 길가에 있다가 존자 음(音)의 머리를 쳐서 머리가 깨져 그 얼굴에 피가 흐르게 할 것이다.’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그 뒤에 의지해 살던 마을을 유행하였다. 그는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 존자 음은 그 뒤에서 시종하였다. 파순아, 그때 악마는 소년으로 변화하여 손에 큰 몽둥이를 잡고 길가에 있다가, 존자 음의 머리를 깨뜨려 얼굴에 피가 흐르게 하였다. 파순아, 존자 음은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면서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뒤에서 마치 그림자가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시종하였다.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마을에 이르러서 그 몸의 힘을 다하여 오른쪽을 돌아보는 것이 마치 용이 보는 것과 같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으며 놀라지 않고 겁내지 않으면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존자 음이 머리가 깨져 그 얼굴에 피를 흘리면서도 마치 그림자가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부처님 뒤를 따르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악마는 흉악하고 사나우며 큰 위력이 있다. 이 악마는 싫증내거나 만족할 줄을 모르고 있구나.’
파순아, 각력구순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의 말씀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악마는 곧 그 자리에서 그 몸이 무결(無缺) 대지옥에 떨어졌다. 파순아, 이 대지옥은 네 가지의 이름이 있으니, 첫째는 무결(無缺) 둘째는 백정(百釘)이며 셋째는 역자(逆刺)이며 넷째는 육갱(六更)이다. 그 대지옥 가운데 있는 옥졸은 악마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이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못들을 너에게 다 박으려면 100년을 채워야 할 것이다.’”

이에 마왕 파순은 이 말을 듣고는 곧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렵고 놀라워 몸의 털이 다 곤두섰다. 그래서 존자 대목건련을 향하여 게송으로 말하였다.

어찌하여 그 지옥에는
옛날부터 악마가 머무는가?
부처님의 범행을 희롱하여 방해하고
또 저 비구들을 범했기 때문이네.

존자 대목건련은 곧 게송으로써 마왕 파순에게 답하였다.

무결이라는 지옥에
일찍이 머무는 악마들
부처님의 범행을 희롱하여 방해하고
저 비구들을 범하였다.

그 100개의 쇠못에는
제각기 거꾸로 선 가시가 있으니
무결이라는 지옥에는
일찍부터 악마가 있었다.

만일 비구와 부처님 제자들을
알지 못하는 이 있다면
반드시 이러한 고통을 받고
나쁜 업의 과보를 받으리라.

여러 종류 동산에
사람들 땅에서 살며
저절로 생긴 멥쌀을 먹었으니
그곳은 북주(北洲).

큰 수미산암(須彌山巖)에서
잘 수행하여 몸에 훈습되고
해탈을 닦아 익혀
최후의 몸을 받아 가졌네.

그 산은 큰 물 가운데 있고
몇 겁에 이르도록 서 있는 궁전
사랑스러운 금색을 띠고 있어
마치 불꽃처럼 빛났네.

갖가지 기악을 울리며
제석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니
본래는 한 조그마한 집
잘 깨달은 이를 위해 보시한 것이네.

만일 제석이 앞장을 서서
비사연(毘闍延) 궁전으로 올라가면
제석을 보고 못내 기뻐해
천녀들은 제각기 춤을 추었네.

비구가 오는 것 보고는
서로들 돌아보며 부끄러워하였고
그 비사연 궁전에서
비구를 보자 이치를 물었네.

‘대선(大仙)은 자못 알고 있는가?
애욕이 다하면 해탈을 얻으리라는 것을.‘
비구는 곧 거기에 답하였으니
그 물음과 그 뜻이 같았네.

‘구익이여, 나는 능히 안다네.
애욕이 다하면 해탈을 얻는다.’
그 비구의 대답을 듣고
제석은 기쁨과 즐거움을 얻었네.

비구는 요익됨이 많아
말하는 바는 그 뜻과 같았네.
그 제석천왕에게
비사연 궁전에 대해 물었네.

‘이 궁전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대 제석이 이 성(城)을 다스리는가?’
제석은 대선인에게 대답했네.
‘이 궁전 이름은 비사연다

이른바 1천 세계(世界)
이 천 세계 가운데서는
이 궁전보다 나은 것 없고
이 비사연다와 비슷한 것도 없다네.’

제석천의 제석천왕
가는 곳마다 뜻대로 노니는데
누리는 그 즐거움 나유다(那遊哆)17)나 되고
능히 하나를 100으로 만들며
이 비사연 궁전 안에서
제석은 자재하게 노닐 수 있네.

비사연의 큰 궁전도
발가락으로 진동시키고
천왕의 눈으로 보이는 대로
제석은 자재하게 노닐 수 있네.

저 녹자모(鹿子母) 강당은
기초가 지극히 깊고 또 견고하여
움직이거나 떨게 할 수 없지만
여의족(如意足)으로 능히 흔드는 것과 같네.

유리로 된 그 땅은
성인들이 밟고 다니는 곳이라
윤택하고 부드러워 촉감이 좋으며
부드럽고 연한 솜으로 된 요를 편 듯하네.

정다운 말로 서로 함께 화합하며
천왕은 언제나 즐거워하고
훌륭한 솜씨로 기악을 울리면
그 가락가락은 서로 잘 어우러진다네.

모든 하늘들 한데 모여
수다원 법을 연설하니
그 수는 한량없는 여러 천백의
모든 나술(那術:나유타).

삼십삼천(天)에 이르러
혜안(慧眼)을 가진 이 그곳에서 설법하면
그가 연설하는 법문을 듣고
모두들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네.

내게도 또한 이 법이 있어
저 선인의 말한 바와 같으며
곧 저 범천에 올라가
저 범천의 일을 물어 보았네.

‘범천에겐 이런 견해 있으리니
이른바 옛날이 있다고 보고
나는 영원히 머물러 있고
한결같이 존재해 변하지 않는다고.’
범천은 그를 위해 대답하였네.

‘대선(大仙)이여, 나는 그런 견해 없다.
이른바 옛날이 있다고 보거나
나는 항상하여 변하지 않는다는 것 말일세.

내 이 경계를 보매
모든 범천은 다 과거의 일이니
내 이제 무엇을 의지하여
항상하여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리?

내 이 세상을 보매
부처님[正覺]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인연에 따라 태어나
간 곳에서 과보를 받게 된다네.’

‘나는 어리석은 이를 불태우리라.’
불은 그런 생각 없건만
어리석은 이 불에 닿으면
반드시 불에 타게 된다.

이와 같이 너 마왕 파순아
요망한 짓으로 여래를 방해하며
착하지 않은 행을 오랫동안 행했으니
그 과보 또한 오랫동안 받으리라.

너 마왕아, 부처님을 싫어하거나
비구들을 희롱하여 해치지 말라.
이렇게 한 비구 악마를 항복받고
포림(怖林)에 머물렀네.

존자 목건련의 꾸짖음 받고
그 귀신 걱정하고 슬퍼하면서
지혜 없음을 두려워하며
곧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네.

존자 목건련이 이렇게 말하자, 저 마왕 파순은 존자 대목건련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팔리어로는 dakkhieyya라고 한다. 직접 공양을 받을 만한 사람을 말한다. 즉 여래나 아라한 등의 공양을 받을 만한 법력(法力)이 있는 이에게 공양하면 복(福)이 되는 것이 마치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면 다음에 결실을 얻는 것과 같으므로 이런 비유를 한 것이다.
2 팔리어로는 sekha라고 한다. 항상 배우고 익히는 사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수다원향(須陀洹向)ㆍ사다함향(斯陀含向)ㆍ아나함향(阿那含向)ㆍ아라한향(阿羅漢向)ㆍ수다원과(須陀洹果)ㆍ사다함과ㆍ아나함과ㆍ아라한과 등의 4향(向) 4과(果) 중 앞의 일곱 사람이 해당된다.
3 팔리어로는 asekha 라고 한다. 번뇌가 이미 멸하며 다시는 배워 익힐 필요가 없는 경계에 도달한 사람, 즉 4향 4과 중 맨 마지막 아라한과(阿羅漢果)를 말한다.
4 팔리어로는 saddhãnusãrin 이라고 한다. 근기가 둔한 이로서, 스스로 부처님 경전을 탐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에 의지해 깨달음의 도를 얻고자 하는 이를 말한다.
5 팔리어로는 dhammānusārin 이라고 한다. 근기가 예리한 이로서, 스스로 부처님 경전을 읽어 탐구하여 법(法)을 따라 수행하는 이를 말한다.
6 팔리어로는 saddhāvimutta 라고 한다. 즉 이 사람은 근기가 둔하나 신심(信心)이 있어 그것으로 진해(眞解)를 일으켜 해탈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7 팔리어로는 kolaṅkola 라고 한다. 사다함향(斯陀含向)의 성자 중에서 욕계(欲界)에서 닦아야 할 9품(品)의 의혹번뇌 가운데 전(前) 3품 혹은 전 4품을 끊는 자를 말한다. 가가(家家)란 집에서 나와서 다시 돌아간다는 뜻으로 인계(人界)에서 천계(天界)에 태어나 다시 천계(天界)에서 인계(人界)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9품 의혹번뇌 중 전 3품 혹은 전 4품을 끊으면 천계 중 두세 집에 태어나거나 혹은 인계 중 두세 집에 태어나서야 비로소 제2 사다함과를 증득하게 된다.
8 팔리어로는 ekabījin 이라고 한다. 아나함향의 성자를 말한다. 이미 7품ㆍ8품까지의 의혹번뇌를 끊었으나 제9품의 의혹번뇌가 남아 있으므로 다시 욕계의 인계(人界), 혹은 천계(天界)에서 1생을 받아야 하는 것을 일간(一間) 또는 일종자(一種子), 일종(一種)이라고 한다.
9 무학인(無學人:阿羅漢)의 위계에 9종의 차별이 있다. 첫째 퇴법(退法)이란 질병 등의 특별한 인연이 닥치면 곧 얻었던 과(果)를 잃어버리는 자이니 아라한 중 가장 근기가 둔한 자이다. 둘째 사법(思法)이란 얻은 아라한과를 잃게 될까 두려워 자살하여 얻은 과를 지키려는 자이다. 셋째 호법(護法)이란 얻은 법에서 물러나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키지만 만일 조금만 나태해도 곧 물러나고 잃어버리게 되는 자이다. 넷째 실주법(實住法)이란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물러나지도 않고 또 특별한 인연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도 않는 자이다. 다섯째 승진법(昇進法)이란 수행을 능히 감내해 움직이지 않는 경지를 빨리 증득하는 자이다. 여섯째 부동법(不動法)이란 어떤 역경계를 만나더라도 수행의 의지와 갖가지 삼매의 인연이 부서지지 않는 자이다. 일곱째 불퇴법(不退法)이란 어떤 역경을 만나더라도 얻은 법의 공덕을 잃지 않는 자이다. 여덟째 혜해탈(慧解脫)이란 지혜를 방해하는 번뇌를 끊어 지혜의 자유를 얻은 자이다. 아홉째 구해탈(俱解脫)이란 선정과 지혜를 방해하는 모든 번뇌를 끊어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모두 성취한 자를 말한다.
10 팔리어로는 cattri purisayugni aha purisapuggal 라고 한다. 소승(小乘) 4향(向) 4과(果)의 성자. 향(向)과 과(果)를 한 쌍(雙)으로 하고 4쌍의 향(向)과 과(果)를 8배(輩)라고 한다.
11 팔리어로는 kadalimigapavara-paccattharaa 라고 한다. 영양[羚鹿]의 최고로 좋은 가죽털로 만든 깔개.
12 팔리어로는 kosiya 라고 한다. 또는 교시가(憍尸迦)라고 하며 제석천의 별명(別名)이다. 제석천이 본래 인간이었을 때 일찍이 교시가 족성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기도 한다.
13 뒤 문장에 나오는 4범실(梵室)과 같은 뜻이다. 자(慈)ㆍ비(悲)ㆍ희(喜)ㆍ사(捨)의 4무량심(無量心)으로서 이 네 가지 법을 닦아 익히면 대범천(大梵天)의 과보가 생겨남을 느끼게 된다.
14 팔리어로는 ābhāsvara 라고 한다. 또는 광음천(光音天)이라고 하며 색계(色界) 2선(禪)의 제3천에 해당한다.
15 팔리어로는 Sunetta라고 한다. 앞의 선안(善眼) 대사와 동일 인물이다.
16 팔리어 Bhaggesu의 음역이다. ‘바기(婆奇) 즉 발지국(跋祇國)에서’라는 뜻이다.
17 범어로 nayuta이고 나유타(那由他)ㆍ나유다(那由多)ㆍ나술(那術)로도 음역한다. 인도의 수량 단위이다. 천억을 1나유타라고도 하고 혹은 백천 구지(俱胝)를 1나유타라고도 한다.
18 소경의 글자 수를 합해 보면 총 9,882자인데 여기에서는 9,515자로 표기하여 367자가 부족하다.

중아함경 1~10권, 11~20권, 21~30권, 31~40권, 41~50권, 51~6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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