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中阿含經) 41~50권

중아함경 제41권

승가제바 한역

12. 범지품 제1⑦
161) 범마경(梵摩經)1) 제20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타제국(鞞陀提國)을 유행하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계셨다.

그 때 미살라(彌薩羅)에 범바(梵摩)라는 범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아주 큰 부자로서 재산이 한량없이 많았고 목축(牧畜)과 산업(産業)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봉호와 식읍(食邑) 등 여러 가지를 구족하여 매우 풍족하였다. 미살라와 거기서 나는 물 그리고 초목(草木)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은 비타제의 아들 마갈타(摩竭陀)왕 미생원(未生怨)이 특별히 범봉(梵封)으로 하사한 것이었다. 범지 범마에게는 우다라(優多羅)라는 마납이 있었다. 그는 부모가 천거한 바요 태어남이 청정하며, 7대 동안 그 부모가 종족을 끊지 않았고 대대로 악이 없었으며 총지를 널리 듣고 네 가지 경전을 환히 외워 인(因)ㆍ연(緣)ㆍ정(正)ㆍ문(文)ㆍ희(戲)의 5구설(句說)을 깊이 통달한 자였다.

범지 범마는 들었다.
‘사문 구담(瞿曇)이라는 석가 종족의 아들은 석가 종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는 자인데 지금 비타제국에 노닐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계신다. 그 사문 구담은 큰 명성이 있어 시방(十方)에 두루 소문이 났고 그 사문 구담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호칭한다. 그는 이 세상과 하늘ㆍ악마ㆍ범(梵)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징험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법을 설하면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또한 묘하며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낸다.’

그는 또 들었다.
‘그 사문 구담은 32대인상(大人相)을 성취하였다. 만일 저 대인의 상(相)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두 길만이 있으니 그것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곧 만일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왕이 되어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4종류의 군사를 두어 천하를 다스리며 자기로 말미암아 자재하게 되고 법다운 법왕으로서 7보를 성취한다. 7보란 윤보(輪寶)ㆍ상보(象寶)ㆍ마보(馬寶)ㆍ주보(珠寶)ㆍ여보(女寶)ㆍ거사보(居士寶)ㆍ주병신보(主兵臣寶)이다. 이것을 7보라 한다. 그는 1천의 아들을 두는데 얼굴이 단정하며 용맹하고 두려움이 없어 모든 무리들을 능히 항복받을 수 있다. 그는 반드시 이 일체의 땅과 나아가 저 큰 바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스리되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가르쳐 안온을 얻게 한다. 그리고 그가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면 반드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되고 이름이 널리 퍼져 시방(十方)에 두루 들리게 될 것이다.’

범지 범마는 이 말을 듣고 우다라에게 말하였다.
“우다라여, 나는 이렇게 들었다.
‘저 사문 구담이라는 석가(釋迦)족의 아들은 석가 종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는 자인데 지금 비타제국에 노닐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계신다. 우다라여, 그 사문 구담은 큰 명성이 있어 시방(十方)에 두루 퍼졌고 그 사문 구담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호칭한다. 그는 이 세상과 하늘ㆍ악마ㆍ범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법을 설하면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또한 묘하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낸다.’

또 우다라여 나는 이런 말도 들었다.
‘그 사문 구담은 32대인상을 성취하였다. 만일 대인상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두 길만이 있으니 그것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곧 만일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왕이 되어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4종의 군사를 두어 천하를 다스리며 자기로 말미암아 자재하게 되고 법다운 법왕으로서 7보를 성취한다. 그 7보란 윤보ㆍ상보ㆍ마보ㆍ주보ㆍ여보ㆍ거사보ㆍ주병신보이다. 이것을 7보라 한다. 그는 1천 아들을 두는데, 얼굴이 단정하며 용맹하고 두려움이 없어 모든 무리들을 능히 항복받는다. 그는 반드시 이 일체의 땅과 큰 바다까지 다스리지만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가르쳐 안온을 얻게 한다. 그리고 그가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면 반드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되고 이름이 널리 퍼져 시방(十方)에 두루 들리게 될 것이다.’

우다라여, 너는 모든 경전에 있는 32대인상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 가지거라.
만일 대인상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두 길만이 있으니 그것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만일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왕이 되어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4종의 군사를 두어 천하를 다스리며 자기로 말미암아 자재하게 되고 법다운 법왕으로서 7보를 성취한다. 그 7보란 윤보ㆍ상보ㆍ마보ㆍ주보ㆍ여보ㆍ거사보ㆍ주병신보이다. 이것을 7보라 한다. 그는 1천 아들을 두는데 얼굴은 단정하며 용맹하고 두려움이 없어 모든 무리들을 능히 항복받는다. 그는 반드시 이 일체의 땅과 큰 바다까지 다스리되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가르쳐 안온을 얻게 한다. 그리고 그가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면 반드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되고 이름이 널리 퍼져 시방(十方)에 두루 들리게 될 것이다.”

우다라가 대답하였다.
“예, 세존(世尊)2)이시여. 저는 모든 경전에 있는 32대인상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 가지겠습니다.
만일 대인상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두 길만이 있으니, 그것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습니다. 만일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왕이 되어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4종의 군사를 두어 천하를 다스리며 자기로 말미암아 자재하게 되고 법다운 법왕으로서 7보를 성취할 것입니다. 그 7보란 윤보ㆍ상보ㆍ마보ㆍ주보ㆍ여보ㆍ거사보ㆍ주병신보입니다. 이것을 7보라고 합니다. 그는 1천 아들을 두는데 얼굴은 단정하며 용맹하고 두려움이 없어 모든 무리들을 능히 항복받습니다. 그는 반드시 이 일체의 땅과 큰 바다까지 다스리되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가르쳐 안온을 얻게 합니다. 그리고 그가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면 반드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되고 이름이 널리 퍼져 시방에 두루 들리게 될 것입니다.”

범지 범마가 말하였다.
“우다라여, 너는 저 사문 구담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저 사문 구담이 정말 그러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관찰해 보라. 정말로 서른 두 가지 대인상을 가졌을까?”

우다라 마납은 이 말을 듣고 범지 범마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세 번 돌고 떠났다. 그는 세존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문안을 드린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세존의 몸에서 서른두 가지 상을 살펴보았다. 그는 세존의 몸에서 서른 가지 상이 있는 것은 보았지만 두 가지 상에 대해서는 의혹을 가졌으니, 곧 음마장(陰馬藏)과 광장설(廣長舌)이었다.
세존께서는 생각하셨다.
‘이 우다라는 내 몸에서 서른두 가지 상을 관찰하다가 서른 가지 상만 있는 것을 보고 두 가지 상에 대해서는 의혹을 가졌으니 곧 음마장과 광장설이다. 내가 이제 그 의혹을 끊어주리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곧 ‘여기상여의족(如其像如意足)을 부려 우다라 마납으로 하여금 내 몸의 음마장과 광장설을 보게 하리라’고 생각하셨다.

이에 세존께서는 곧 여기상여의족을 부렸고 여기상여의족을 부리자 우다라 마납은 세존의 몸에서 음마장과 광장설을 볼 수 있었다. 광장설은 입에서 나온 혀가 온 얼굴을 다 덮는 것이었다.
우다라 마납은 그것을 보고 나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사문 구담은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성취하였다. 만일 대인상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두 길만이 있으니 그것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만일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왕이 되어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4종의 군사를 두어 천하를 다스리며 자기로 말미암아 자재하게 되고 법다운 법왕으로서 7보를 성취한다. 그 7보란 윤보ㆍ상보ㆍ마보ㆍ주보ㆍ여보ㆍ거사보ㆍ주병신보이다. 이것을 7보라고 한다. 그는 1천 아들을 두는데 얼굴은 단정하며 용맹하고 두려움이 없어 다른 무리들을 능히 항복받는다. 그는 이 일체의 땅과 나아가 큰 바다까지 다스리되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가르쳐 안온을 얻게 한다. 그리고 그가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면 반드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되고 이름이 널리 퍼져 시방(十方)에 두루 들리게 된다.’

우다라 마납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그 위의와 예절을 더욱 세심히 관찰하고 또 그가 노닐며 가는 곳마다 다 관찰하리라.’
이에 우다라 마납은 곧 부처님을 따라 여름 4개월 동안 그 위의와 예절을 관찰하고 또 그가 노닐며 가는 곳마다 다 관찰하였다. 우다라 마납은 여름 4개월을 지내면서 세존의 위의와 예절을 기뻐하였고 또 그가 노닐며 가는 곳마다 관찰한 뒤에 세존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저는 이제 일이 생겨 돌아가고자 하직을 청하나이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다라여, 네 마음대로 하라.”

우다라 마납은 세존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는 범지 범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 그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범지 범마는 물었다.
“우다라여, 참으로 소문대로 사문 구담은 큰 명성이 있어 시방(十方)에 두루 퍼졌으며 참으로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가졌더냐?”

우다라 마납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스승님. 참으로 소문대로 사문 구담께서는 큰 명성이 있어 시방에 두루 퍼졌습니다. 사문 구담은 바로 그런 분이시고 그렇지 않은 분이 아니며, 참으로 서른두 가지 상도 있었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발바닥이 편편하여 똑바로 서십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발바닥에 수레바퀴 같은 무늬가 있는데 그 바퀴에 1천 개의 바큇살이 있어 일체를 구족하였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발가락이 가늘고 깁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발 둘레가 똑바르고 곧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발꿈치의 양쪽이 편편합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고 합니다. 사문 구담은 발의 두 복사뼈가 겉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몸의 털이 위로 향해 났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막이 있어 마치 기러기발과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손과 발이 아주 아름답고 보드라워 마치 도라(兜羅)3)꽃과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살결이 부드럽고 매끄러워 티끌이나 물이 묻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털이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털은 온몸의 털구멍마다 한 개씩 나 있고 그 빛은 감청색(甘靑色)이며 고둥과 같이 오른쪽으로 말려 있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장딴지가 마치 사슴 다리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남근(男根)이 오므라들어 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마치 말의 그것과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몸매가 둥글고 아름다워 니구류(尼拘類)나무와 같고 아래위가 둥글어 서로 잘 어울립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몸이 구부정하지 않습니다. 몸이 구부정하지 않은데도 바로 서서 팔을 펴면 무릎을 만질 수 있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몸이 황금색으로서 자마금(紫磨金)과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몸의 일곱 군데가 충만합니다. 일곱 군데가 충만하다는 것은 두 발바닥ㆍ두 손바닥ㆍ두 어깨 및 목 부분입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상체가 커서 마치 사자와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턱이 사자와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등이 판판하고 곧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두 어깨가 가지런하며 목이 편편하고 충만합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이가 40개나 되고, 이가 성글게 나지 않았으며, 이가 희고 가지런하며, 가장 훌륭한 맛을 맛볼 수 있는 감각이 있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목소리가 맑고 아름다워 그 소리가 마치 가라비가(迦羅毘伽) 소리와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혀가 넓고 깁니다. 혀가 넓고 길다는 것은 혀를 입에서 내면 온 얼굴을 두루 덮을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속눈썹이 충만하여 마치 소의 눈썹과 같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눈동자가 검푸릅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정수리에 육계(肉髻)가 있어 둥글고 머리털은 고둥처럼 오른쪽으로 말려 있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사문 구담은 눈썹 사이에 털이 나 있는데 깨끗하고 희며 오른쪽으로 말려 있습니다. 스승님이여, 이것을 사문 구담 대인의 대인상이라 합니다.
스승님이여, 이상의 것들을 사문 구담의 서른두 가지 대인상 성취라고 합니다.

만일 대인상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두 길만이 있는데 그것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습니다. 만일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왕(轉輪王)이 되어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4종의 군사를 두어 천하를 다스리며 자기로 말미암아 자재하고 법다운 법왕으로서 7보를 성취합니다. 그 7보란 윤보ㆍ상보ㆍ마보ㆍ주보ㆍ여보ㆍ거사보ㆍ주병신보입니다. 이것을 7보라 합니다. 그는 1천 아들을 두는데 얼굴이 단정하며 용맹하고 두려움이 없어 다른 무리들을 능히 항복받습니다. 그는 반드시 일체 땅은 물론 큰 바다까지 다스리는데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가르쳐 안온을 얻게 합니다. 또 그가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면 반드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얻어 이름이 널리 퍼져 시방에 두루 알려질 것입니다.

또 스승님이여, 제가 사문 구담을 뵈오니 옷을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이미 옷이 입혀져 있고 옷을 걸치려고 생각하면 이미 옷이 걸쳐지며 방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방에서 나와 있고 동산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동산에서 나와 있으며 길을 걸어 마을에 이르러 마을로 들어갈 마음을 가지면 어느새 마을에 들어가 있으며 거리에 있다가 집으로 들어갈 마음을 내면 어느새 집으로 들어가 있고 평상을 바로 잡으려 하면 어느새 평상이 바로 잡혀 있고 앉으려는 마음을 내면 어느새 앉아 있고 손을 씻으려 하면 어느새 손이 씻어지고 음식을 받고자 하면 어느새 음식을 받고 먹으려 하면 이내 먹으며 손을 씻고 주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서 나오고자 하면 어느새 집에서 나와 있으며 거리에서 마을로 나오려 하면 어느새 마을을 나와 있고 동산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어느새 동산으로 들어가며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어느새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옷을 입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하되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하며 옷이 몸에 달라붙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도 몸에서 옷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언제나 새 옷을 지을 적에는 성인들을 따라 칼로 마름질하여 나쁜 빛깔로 물을 들입니다. 이와 같이 그 성인은 나쁜 빛깔로 물을 들입니다. 그가 옷을 가지는 것은 재물을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자신의 몸을 꾸미기 위해서도 아니요, 장엄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모기ㆍ등에에게 물리지 않고 바람과 햇볕을 가리기 위해서이며, 또 부끄러워서 그 몸을 가리는 것입니다.

그는 방을 나올 때 몸을 구부리거나 젖히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방을 나올 때 끝내 몸을 구부리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만약 걸어가려 할 때에는 먼저 오른발을 듭니다. 바르게 들어 바르게 놓아 걸어갈 때 요란스럽지 않고 또한 비틀거리지도 않으며 복사뼈가 서로 부딪치지도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걸어갈 때 먼지에 더럽혀지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원래 잘 걸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동산을 나올 때 몸을 구부리거나 젖히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동산을 나올 때 끝내 몸을 구부리지 않습니다. 마을에 이르러서는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관찰하되 마치 용처럼 관찰하며 두루두루 관찰하여 살피고 두려워하지 않고 겁내지도 않으며 또한 놀라지도 않고 사방을 관찰합니다. 왜냐 하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을로 들어갈 때 몸을 구부리거나 젖히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마을로 들어갈 때 끝내 몸을 구부리지 않습니다. 그는 거리에 있을 때에도 굽어보거나 우러러보지 않으며 오직 곧바로 보아 그 사이에 아는 바와 보는 바에 걸림이 없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모든 감각기관이 언제나 고요합니다. 왜냐 하면 원래 잘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집으로 들어갈 때 몸을 구부리거나 젖히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집으로 들어갈 때 끝내 몸을 구부리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몸을 돌려 오른쪽으로 돌아 평상을 바루고 앉습니다. 그는 자리 위에서 온몸에 힘을 주고 앉지도 않고 또한 손으로 무릎을 괴고 앉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은 뒤에는 답답해하지도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으며 또한 기뻐하지도 않습니다. 씻을 물을 받을 때에는 높이 들지도 않고 낮게 들지도 않으며 많이 받지도 않고 적게 받지도 않습니다.
그는 음식을 받을 때에도 그릇을 높이 들지도 않고 낮추지도 않으며 많이 받지도 않고 적게 받지도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음식을 받을 때 발우에 가득 채우지 않으며 국도 음식과 비등하게 받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단식을 반듯하게 다듬어서 천천히 입에 넣습니다. 단식(摶食)을 입에 넣기 전에는 입을 벌리지 않고 입에 넣은 뒤에는 세 번 씹은 뒤에 삼키고 밥이나 국이 없어도 또한 씹으며 입안에 나머지가 조금 있을 때 다시 단식을 넣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3사(事)가 청정한 음식으로써 맛을 얻고자 하고 그 맛에 집착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가 음식을 얻는 것은 재물로 삼기 위해서도 아니요 뽐내기 위해서도 아니며 겉치레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장엄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몸을 보존하여 오래 살면서 병이 없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으로써 묵은 질병[故疹]을 낫게 하고 새로 병이 생기지 않게 하며 목숨을 보존하고 병이 없게 하며 기운이 있고 쾌락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식사하기를 마치고 손 씻을 물을 받을 때에는 그릇을 높이 들지도 않고 낮게 들지도 않으며 물을 많이 받지도 않고 적게 받지도 않으며 발우 물을 받을 때에도 그릇을 높이 들지도 않고 낮게 들지도 않으며 많이 받지도 않고 적게 받지도 않습니다. 그는 손을 깨끗이 씻은 뒤에 발우도 깨끗이 씻고 발우를 깨끗이 씻은 뒤에는 또 그 손도 깨끗이 씻으며 손을 닦은 뒤에는 곧 발우를 닦고 발우를 닦은 뒤에는 곧 손을 닦습니다. 그는 발우를 씻고 닦은 발우를 한쪽에 가만히 두되 가까이 두지도 않고 멀리 두지도 않으며 발우를 자주 살펴보지도 않고 또 발우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이 음식을 비방하지도 않고 저 음식을 찬양하지도 않으며 다만 잠자코 있을 뿐입니다.
그는 모든 거사들을 위해 법을 설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합니다.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한 뒤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갑니다.
그는 집을 나갈 때 몸을 구부리거나 젖히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시여, 사문 구담은 집을 나갈 때 끝내 몸을 구부리지 않습니다. 그는 거리에 있으면서는 굽어보지도 않고 우러러보지도 않으며 오직 곧바로 보는데 그 중간에 알고 보는 바에 장애가 없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모든 감각기관이 언제나 일정합니다. 왜냐 하면 원래 잘 행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을을 나갈 때 몸을 구부리거나 젖히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마을을 나갈 때 끝내 몸을 구부리지 않습니다. 그는 동산으로 들어갈 때에도 몸을 구부리거나 젖히지 않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동산으로 들어갈 때 끝내 몸을 구부리지 않습니다.
그는 점심 뒤에는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손과 발을 씻고는 니사단(尼師檀)을 어깨에 걸치고 방에 들어가 고요히 앉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세상을 요익하게 하기 위하여 방에 들어가 고요히 앉습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해질 무렵에 연좌(宴坐)에서 일어나면 얼굴에 광택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시기 때문입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여덟 가지 음성을 냅니다.
첫째 심심(甚深), 둘째 비마루파(毘摩樓簸), 셋째 입심(入心), 넷째 가애 (可愛), 다섯째 극만(極滿), 여섯째 활구(活瞿), 일곱째 분료(分了), 여덟째 지(智)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즐겨하며 생각하는 것으로서 그 마음의 선정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이 대중을 따라 설법하면 그 음성은 대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직 대중들에게만 들립니다.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합니다.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그들을 위해 법을 설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한 뒤에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스승님이여, 사문 구담은 그 형상이 이러하며 이보다 뛰어난 점들만 있습니다. 어르신이여, 저는 저 사문 구담에게 나아가 그를 따라 범행을 배우고 싶습니다.”

범지 범마가 말하였다.
“네 마음대로 하라.”

이에 우다라 마납은 범지 범마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세 바퀴 돌고 나서 물러갔다.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을 따라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되어 세존을 따라 범행 닦기를 원하나이다.”

이에 세존께서는 우다라 마납을 제도하여 도를 배워 구족계를 받게 하시었다. 우타라 마납을 제도하여 도를 배워 구족계를 받게 한 뒤에 세존께서는 비타제국(鞞陀提國)에 노니시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점점 앞으로 나아가 미살라의 대천내림(大天㮈林)에 머무르셨다.

저 미살라의 범지와 거사들은 이렇게 들었다.
‘사문 구담은 석가족(釋迦族)의 아들로서 석가 종족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는 비타제국에 노니시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계속 걸어서 이 미살라의 대천내림에 오셔서 머물고 계신다. 사문 구담은 큰 명성이 있어 시방(十方)에 두루 알려져 있고 그 사문 구담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호칭한다. 그는 이 세상과 하늘ㆍ악마ㆍ범(梵)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법을 설하면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또한 묘하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낸다. 만일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뵈옵고 존경하고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면 유쾌하게 좋은 이익을 얻는다.’

미살라의 범지와 거사들은 “우리도 모두 가서 저 사문 구담을 뵈옵고 예배하고 공양하자” 하고는 각각 그 권속을 데리고 미살라를 나와 북으로 가서 대천내림에 이르렀다. 그들은 세존을 뵈옵고 예배하고 공양하려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미살라의 범지와 거사들은 혹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기도 하고 혹은 부처님께 문안을 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기도 하며 혹은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기도 하고 혹은 멀리서 부처님을 뵙고는 잠자코 앉기도 하였다.
저 미살라의 범지와 거사들이 각각 제자리에 앉자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셨다.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그들을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시고 나서 잠자코 계셨다.

범지 범마도 ‘사문 구담은 석가 종족의 아들로서 석가 종족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는 비타제국에 노니시면서 큰 비구들과 함께 이리저리 다니시다가 이 미살라국 대천내림에 이르러 머물고 계신다. 큰 명성이 있어 시방에 두루 알려져 있고 사문 구담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호칭한다. 그는 이 세상과 하늘ㆍ악마ㆍ범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법을 연설하면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또한 묘하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만일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뵈옵고 존경하고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면 유쾌하게 좋은 이익을 얻는다’는 소문을 듣고는 ‘나도 이제 가서 사문 구담을 뵈옵고 예배하고 공양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범지 범마는 어자(御者)에게 분부했다.
“너는 어서 수레를 꾸며라. 내가 지금 사문 구담에게로 가리라.”

어자는 분부를 받고 곧 수레를 꾸민 뒤에 돌아와 아뢰었다.
“수레를 다 꾸몄습니다. 어르신께선 때를 알려 주소서.”
이에 범마는 지극히 아름다운 수레를 타고 미살라를 나와 북으로 대천내림에 이르러 세존을 뵈옵고 예배하고 공양하려고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인 채 그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셨다. 범지 범마는 세존께서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그들을 위해 설법하고 계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두려움이 생겼다. 이에 범마는 곧 그 자리를 피해 길 가 나무 밑으로 가서 어떤 마납에게 분부했다.
“너는 저 사문 구담에게 가서 나를 위해 ‘거룩하신 몸은 병이 없이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起居)도 경편(輕便)하시고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하고 문안을 드려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라.
‘구담이시여, 우리 스승 범마는 〈거룩하신 몸은 병이 없이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도 경편하시고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하고 문안을 드리나이다. 구담이시여, 우리 스승 범마는 와서 사문 구담을 뵙고자 하나이다’라고 하여라.”

이에 마납은 분부를 받고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우리 스승 범마는 ‘거룩하신 몸은 병이 없이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도 경편하시고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하고 문안드리나이다. 구담이시여, 우리 스승 범마는 와서 사문 구담을 뵙고자 하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범지 범마로 하여금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고, 하늘ㆍ사람ㆍ아수라ㆍ건답화(揵沓■)ㆍ나찰 및 다른 모든 몸도 다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리라. 마납아, 범지 범마가 오고 싶어 하면 오라고 하라.”

이에 마납은 부처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가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는 물러갔다. 그는 범지 범마에게 돌아와 아뢰었다.
“스승님이여, 저는 이미 사문 구담에게 전달했습니다. 저 사문 구담은 지금 스승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스승님은 때를 아소서.”

범지 범마는 곧 수레에서 내려 걸어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그 대중들은 멀리서 범지 범마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열고 옆으로 피했다. 왜냐 하면 이름과 덕망과 지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범지 범마는 그 대중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모두들 자리에 앉으시오. 나는 곧장 가서 사문 구담을 뵙고자 합니다.”
이에 범마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범마의 두 감각기관인 안근(眼根)과 이근(耳根)은 무너지지 않았었다. 범지 범마는 자리에 앉아 부처님 몸의 서른두 가지 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는데, 그 중 서른 가지 상만 보고 두 가지 상에 대해서는 의심을 가졌다. 두 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곧 음마장(陰馬藏)과 광장설(廣長舌)이었다.
그 때 범마는 게송으로 세존께 여쭈었다.

내 일찍 들은 바에 의하면
스승 사문 구담 몸에는
서른두 가지 대인상이 있다 하던데
그 중의 두 가지 상은 볼 수 없구려.

참으로 음마장이 있다 하는가?
그것은 모든 사람 지극히 높이는 것
어떻게 사람 중에 가장 높다 하는가?
이제 그 미묘한 혀도 보이지 않네.

스승이여, 만일 넓고 긴 혀 있으면
원컨대 나에게 보여주소서.
내 지금 실로 의혹을 가졌나니
원컨대 조어(調御)하여 의혹을 풀어 주소서.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범지 범마는 내 몸에서 서른두 가지 상을 찾다가 그 서른 가지 상만을 보고 두 가지 상에 대해서는 의혹을 가졌으니 곧 음마장과 광장설(廣長舌)이다. 나는 이제 그 의혹을 풀어 주리라.’
세존께서는 그런 줄을 아시고 곧 여기상여의족(如其像如意足)을 지으셨다. 세존께서 여기상여의족을 지으시자 범지 범마는 세존의 몸에서 음마장과 광장설을 보았다. 그 중에서 광장설이란 입에서 혀를 내밀면 온 얼굴을 모두 뒤덮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여의족을 그치시고 범지 범마를 위해 게송을 설하셨다.

네가 일찍이 들은 바
서른두 가지 대인상
그것은 모두 내 몸에 있어
원만하게 구족했고 최상으로 똑바르니
내게서 조어(調御)받고 의심을 끊어
범지야, 미묘한 믿음 내어라.

지극히 보고 듣기 어려운 것은
최상의 정진각(正盡覺)이요
세상에 나타나기 극히 어려운 것도
최상의 정진각이니
범지야, 나는 정각(正覺)으로서
최상의 올바른 법왕(法王)이니라.

범지 범마는 이 게송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문 구담은 서른두 가지 대인상을 성취하였다. 이른바 대인의 상을 성취하면 그에게는 반드시 두 길만이 있으니 그것은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다. 만일 집에 있으면 반드시 전륜왕이 되어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며 4종의 군사를 두고 천하를 다스리되 법다운 법왕으로서 7보를 성취한다. 그 7보란 윤보ㆍ상보ㆍ마보ㆍ주보ㆍ여보ㆍ거사보ㆍ주병신보로서 이것을 7보라 한다. 그는 1천 아들을 두는데 얼굴은 단정하며 용맹하고 두려움이 없어 다른 무리들을 능히 항복받는다. 또 그는 이 모든 땅은 물론 나아가 저 큰 바다까지도 다스리지만 무기를 쓰지 않고 법으로써 가르쳐 안온을 얻게 한다. 그리고 그가 만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우면 그는 반드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되고 그 이름이 널리 퍼져 시방에 두루 알려지게 된다.’

이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범지 범마는 오랫동안 아첨함이 없었고 속임이 없었던 자이다. 그가 묻고자 하는 것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서지 장난치고 희롱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이제 그에게 매우 심오한 아비담(阿毘曇)을 설명해주리라.’
세존께서 그런 줄을 아시고 범지 범마를 위해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서 법을 즐겼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선 요익(饒益)할 것이다.
바라문아, 너는 무슨 일이나
네가 생각한대로 물으라.
이런저런 모든 것 네가 묻는 일
내 너를 위해 의혹을 끊어주리라.

세존께서는 이미 범지 범마 위해
무엇이나 아뢰라 허락하셨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 세존님께 여쭈오리라.

어떠한 것을 범지라 하고
3달(達)에는 어떠한 뜻이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무착(無着)이라 하고
어떤 것을 정진각(正盡覺)이라 합니까?

그 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 멸하고
잘 선택하여 범행에 머무르며
범지의 행을 닦아 익히면
그 때문에 범지라 한다.

지난 일 환히 통달해 알고
즐거움과 또 나쁜 길 보며
무명(無明)이 모두 끝나게 되는 것
이것을 알면 모니(牟尼)라 한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잘 알고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세 가지 밝음[三明]을 성취하면
그 때문에 3달(達)이라 한다.

착하지 않은 법을 멀리 여의고
제일의(第一義)에 바르게 머무르면
세상에서 제일로 존경받나니
그 때문에 무착(無着)이라 한다.

하늘과 사람을 요익하게 하고
눈[眼]을 주고 다툼을 부수어 없애며
두루 알고 현세에서 모두 보나니
그 때문에 정진각(正盡覺)이라 한다.

이 때 범마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자 하였다. 그 때 대중들은 모두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다. “사문 구담은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시다. 큰 여의족(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威德)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威神)이 있다. 왜냐 하면 이 미살라국에 있는 범지나 거사 중에서는 범지 범마가 그 태생이 제일이다. 범지 범마는 부모의 칭찬을 받았고 그 태어남이 청정하여 7대 동안 그 부모가 종족을 끊지 않았으며 대대로 나쁜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사문 구담에게 최대한 마음을 낮추어 존경하고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기 때문이다.
사문 구담은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시다.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威神)이 있다. 왜냐 하면 이 미살라국에 있는 범지나 거사 중에서는 범지 범마가 학문이 제일이다. 범지 범마는 총지(總持)를 널리 듣고 네 가지 전경(典經)을 환히 외우며 인(因)ㆍ연(緣)ㆍ정(正)ㆍ문(文)ㆍ희(戱)의 5구설(句說)을 깊이 통달하였다. 그런데 그가 사문 구담에게 최대한 마음을 낮추어 존경하고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기 때문이다.

사문 구담은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시다.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다. 왜냐 하면 이 미살라국에 있는 범지나 거사 중에서는 범지 범마가 재물이 가장 많다. 범지 범마는 지극히 큰 부자로 재산이 한량없고 목축과 산업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봉호(封戶)와 식읍(食邑) 등 여러 가지가 다 구족하고 풍족하였으니 미살라 안에 있는 것은 거기서 나는 물ㆍ초목까지도 비타제(鞞陀提)의 아들인 마갈타(摩竭陀)왕 미생원(未生怨:阿闍世)이 범봉(梵封)으로 특별히 하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사문 구담에게 최대한 마음을 낮추어 존경하고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기 때문이다.
사문 구담은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시다.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다. 왜냐 하면 이 미살라국에 있는 범지나 거사 중에서는 범지 범마가 가장 수명이 많은 분이다. 그는 극히 오래 산 장로(長老)로서 수명이 구족하여 나이가 126세나 된다. 그런데 그가 사문 구담에게 최대한 마음을 낮추어 공존경하고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기 때문이다.”

이 때 세존께서는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로써 대중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범지 범마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범지여. 마음만 기쁘면 족하니라. 돌아가 다시 자리에 앉아라. 너를 위해 설법해 주리라.”

범지 범마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셨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시어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신 뒤에 모든 부처님의 법과 같이 먼저 단정법(端政法)을 연설하시자 듣는 이들이 모두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 이른바 보시(布施)를 말씀하시고 계율에 대해 말씀하시며 하늘에 나는 법을 말씀하시고 욕심은 재환(災患)이 된다고 꾸짖으시고 나고 죽음은 더러움이라 하시며 욕심이 없음을 묘한 도(道)의 희고 깨끗함이라 칭찬하셨다. 말씀을 마치시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마음, 두루 만족하는 마음, 부드럽고 연한 마음, 견디고 참는 마음, 위로 오르는 마음, 한결같은 마음, 의심이 없는 마음, 덮임이 없는 마음이 있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받을 만한 능력이 있음을 아셨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르고 긴요한 법인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갖추어 설명하셨다. 범지 범마는 그 자리에서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보았다. 마치 흰 천이 물들기 쉬운 것처럼 범마는 그 자리에서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보았다.

이에 범마는 법을 보아 법을 얻고 희고 깨끗한 법을 깨달아 의심을 끊고 의혹에서 벗어나 달리 존경하는 이가 없고 또한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아무 망설임이 없이 이미 과증(果證)에 머물러 세존의 법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께 귀의하나이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를 받아들이시어 우바새가 되게 해주십시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여 목숨을 마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범지 범마는 부처님을 향해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디 내일 비구들과 함께 저의 초대를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는 범지 범마를 위하여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셨다.

범지 범마는 세존께서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심을 알고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세 바퀴 돌고 나서 물러갔다.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 곧 그 날 밤으로 아주 맛있는 반찬과 갖가지 풍성한 음식을 준비하였다. 준비를 마치고는 이른 아침에 자리를 펴고 때가 되자 외쳤다.
“세존이시여, 음식은 이미 다 준비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때를 아소서.”

이에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시고 비구들을 데리고 세존께서 앞장서서 범지 범마의 집으로 나아가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범지 범마는 세존과 비구들이 자리에 앉아 고요해지자, 몸소 손 씻을 물을 돌리고 맛난 반찬과 갖가지 풍성한 음식을 손수 권하며 한껏 공양하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발우를 거두고, 손 씻을 물을 돌리고는 작은 평상을 가져다 앉아서 주원(呪願)을 받았다.

범지 범마가 자리에 앉자, 세존께서는 그를 위해 주원을 말씀하셨다.

불(火)에 비는 것 제일의 재(齋)요
통(通)하는 음성은 모든 음성의 근본이며
임금은 사람 중의 가장 높은 이요
바다는 강물의 제일이 되며
달은 모든 별 중에 가장 밝고
밝게 비춤은 해보다 더한 것 없네.

상ㆍ하와 4유(維)와 모든 방위와
또 일체의 모든 세간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부처님만이 가장 제일이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범지 범마를 위해 주원을 말씀하신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세존께서는 미살라국에서 며칠을 지내신 뒤에 가사를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계속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이르러 그곳에 머무셨다. 이 때 많은 비구들은 사위국에서 밥을 빌다가 저 미살라의 범지 범마가 게송으로 부처님께 질문한 일이 있은 후 곧 목숨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밥을 먹은 뒤 오후에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손과 발을 씻고 니사단(尼師檀)을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 많은 비구들은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으로 들어가 밥을 빌다가 저 미살라의 범지 범마가 게송으로 부처님께 질문한 일이 있은 후 곧 목숨을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는 어느 곳으로 가서 어디에 태어날 것이며 그 뒷세상은 어떠하겠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범지 범마는 지극히 큰 이익이 있다. 그는 마지막에 법을 알았고 법을 위하여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비구들아, 범지 범마는 5하분결(下分結)이 다해 저 세계에 태어나 열반(涅槃)을 얻고 다시는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었으니 이 세상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는 범마가 아나함을 얻을 것이라고 기별(記別)을 주셨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자 범지 범마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오(吳)나라 시대 지겸(支謙)이 한역한 『범마유경(梵摩渝經)』이 있다.
2 우다라가 자기의 스승인 범마 범지에게 쓴 존칭이다.
3 필리어로 tūla이고 면(綿)ㆍ세면(細綿)이라 한역한다. 또 도라면(兜羅綿)이라 한역한 곳도 있다. 풀이나 나무에 생기는 솜처럼 부드러운 보푸라기나 꽃을 가리킨다.
4 제4 분별송에 들어 있는 「범지품」, 즉 『중아함경』 제38권부터 제41권까지의 수록되어 있는 경문의 총 글자 수는 실제로 총 30,471자인데 여기에서는 30,454자로 기록되어 있다. 각 권마다의 총 글자 수를 합하면 30,424자로서 그 또한 여기 기록된 30,454자보다 30자가 적고 38권부터 41권까지 소경을 전부 합한 실제 글자 수보다는 17자가 적다.

중아함경 제42권

승가제바 한역

13. 근본분별품(根本分別品) 제2①
이 품에는 모두 10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분별육계경(分別六界經)ㆍ분별육처경(分別六處經)과
분별관법경(分別觀法經)ㆍ온천림천경(溫泉林天經)과
석중선실존경(釋中禪室尊經)과
아난설경(阿難說經)ㆍ의행경(意行經)과
구루수무쟁경(拘樓瘦無諍經)과
앵무경(鸚鵡經)ㆍ분별대업경(分別大業經)이다.

162) 분별육계경(分別六界經) 제1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갈타국(摩竭陁國)을 유행하실 적에 왕사성에 들어가 묵으시게 되었다.
그 때 세존께서 어느 질그릇 만드는 집에 가셔서 말씀하셨다.
“도사(陶師)1)여, 내가 저 질그릇 굽는 방에서 하룻밤 묵고 싶은데 들어주겠는가?”

질그릇 굽는 기술자가 대답하였다.
“저에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비구가 먼저 그 방에 묵고 있습니다. 만일 그가 허락한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 때 존자 불가라사리(弗迦邏娑利)2)가 이미 그 질그릇 굽는 방에 먼저 묵고 있었다. 이에 세존께서는 도사(陶師)의 집에서 나와 그 질그릇 굽는 방으로 가서 존자 불가라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나는 이 질그릇 굽는 방에서 하룻밤을 묵고자 하는데 그대는 허락해 주겠는가?”

존자 불가라사리가 대답하였다.
“그대여, 나에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이 질그릇 굽는 방에는 풀자리가 이미 깔려져 있습니다. 그대가 묵고자 하거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질그릇 굽는 방에서 밖으로 나와 발을 씻으시고 도로 안으로 들어가 풀 자리 위에 니사단(尼師檀)을 펴고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밤이 새도록 조용히 선정에 드셨다. 존자 불가라사리도 또한 밤이 새도록 조용히 선정에 들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비구는 선정에 머물러 있다. 참으로 기특하다. 나는 이제 저 비구에게〈너의 스승은 누구며 너는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누구에게 법을 받았는가〉고 물어 보리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곧 물으셨다.
“비구여, 너의 스승은 누구인가? 너는 누구를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며 누구에게 법을 받았는가?”

존자 불가라사리가 대답하였다.
“현자여, 사문 구담(瞿曇)이라는 석가 종족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분은 석가 종족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워 위없는 정진각(正盡覺)을 얻었습니다. 그 분이 제 스승입니다. 나는 그 분을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법을 받았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비구여, 스승을 뵌 일이 있는가?”

“뵙지 못했습니다.”

“만일 스승을 뵌다면 알아보겠는가?”

존자 불가라사리가 대답하였다.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자여, 나는 그 분이 세존ㆍ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ㆍ불중우(佛衆祐)라고 호칭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분이 내 스승입니다. 나는 그 분을 의지하여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법을 받았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족성자는 나를 의지해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법을 받았다. 내가 지금 어찌 그를 위해 설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시고 존자 불가라사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내가 너를 위해 설법해 주리라. 이 법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마지막도 또한 좋다.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청정함을 구족하였고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이른바 육계(六界)를 분별하는 것이니 너는 마땅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존자 불가라사리가 대답하였다.
“예.”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사람에게는 6계취(界聚)ㆍ6촉처(觸處)ㆍ18의행(意行)ㆍ4주처(住處)가 있다. 만일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근심스럽고 슬픈 일을 듣지 않을 것이요 근심스럽고 슬픈 일을 듣지 않은 뒤에 마음은 곧 미워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을 것이며 수고롭지도 않고 또한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침이 있으면 지혜에 게으르지 않게 되고 참된 진리를 지켜 보호하게 되며 은혜로운 보시를 기르게 되느니라. 비구여, 마땅히 이 최상을 배우고 지극히 고요함을 배워 6계를 분별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비구여, 사람에게는 6계취(界聚)가 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지계(地界)ㆍ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이다. 비구여, 사람에게 6계취가 있다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사람에게는 6촉처(觸處)가 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비구여, 안촉(眼觸)은 빛깔을 보고 이촉(耳觸)은 소리를 들으며 비촉(鼻觸)은 냄새를 맡고 설촉(舌觸)은 맛을 보며 신촉(身觸)은 촉감을 느끼고 의촉(意觸)은 법을 아느니라. 비구여, 사람에게 6촉처가 있다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사람에게는 18의행(意行)이 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비구여, 눈이 빛깔을 보아 빛깔에 기쁨[喜]이 있다고 관찰하고 빛깔에 근심[憂]이 있다고 관찰하며 빛깔에 기쁘지도 근심하지도 않음[捨]이 있다고 관찰한다. 이렇게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이 법을 알아 법에 희가 있다고 관찰하고 법에 우가 있다고 관찰하며 법에 사가 있다고 관찰한다. 비구여, 이 6희관(喜觀)과 6우관(憂觀)과 6사관(捨觀)을 합하면 18행이 된다. 비구여, 사람에게 18의행이 있다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사람에게 4주처(住處)가 있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른바 참된 진리의 주처[眞諦住處]와 지혜의 주처[慧住處]와 보시의 주처[施住處]와 쉼의 주처[息住處]니라. 비구여, 사람에게 4주처가 있다 함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어떤 것이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不放逸慧]’인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내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 받은 안의 지계[內地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머리털과 몸털ㆍ손톱ㆍ이ㆍ거칠고 섬세한 살갗ㆍ껍질ㆍ살ㆍ뼈ㆍ힘줄ㆍ콩팥ㆍ염통ㆍ간ㆍ허파ㆍ지라ㆍ대장ㆍ위ㆍ똥 등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 받은 몸속의 단단한 것, 단단한 성질로 몸 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지계라 한다. 비구여, 혹 안의 지계와 바깥의 지계[外地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지계(地界)라고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는 그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神)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지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나의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 받은 안의 수계(水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뇌막(腦膜)3)ㆍ눈물ㆍ땀ㆍ콧물ㆍ가래침ㆍ고름ㆍ피ㆍ기름ㆍ골수ㆍ침ㆍ담(痰)ㆍ오줌 따위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 받은 몸 속의 물 종류와 물의 성질로 몸 안을 적시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수계[內水界]라 한다. 비구여, 혹 안의 수계와 바깥 수계[外水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수계(水界)라고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는 그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神)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수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또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지혜란, 만일 어떤 비구가 이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내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 받은 안의 화계[內火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뜨거운 몸ㆍ따뜻한 몸ㆍ번민하는 몸ㆍ온장(溫莊)한 몸으로서 곧 음식을 소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 받은 몸속의 불과 불의 성질로 몸 안을 뜨겁게 하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화계라 한다. 비구여, 안의 화계와 바깥 화계[外火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화계라고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내가 그것의 소유도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화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또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내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 받은 안의 풍계[內風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상풍(上風)ㆍ하풍(下風)ㆍ협풍(脇風)ㆍ제축풍(掣縮風)ㆍ축풍(蹴風)ㆍ비도풍(非道風)ㆍ절절풍(節節風)ㆍ식출풍(息出風)ㆍ식입풍(息入風)4) 등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 받은 몸속의 바람과 바람의 성질로 몸 안을 움직이는 다른 모든 것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풍계라 한다. 비구여, 안의 풍계와 바깥 풍계[外風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풍계(風界)라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는 그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풍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또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란 만일 어떤 비구가 몸의 경계를 분별하여 이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지금 내 이 몸에는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안의 공계[內空界]가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구멍ㆍ귓구멍ㆍ콧구멍ㆍ입구멍과 목구멍을 움직여 먹은 것과 마신 것이 조용히 목구멍에 머물거나 혹은 밑으로 내려가 나오는 것 등이다. 또 이와 비슷한 것들로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몸속의 공간, 살과 살갗과 뼈와 힘줄에 덮이지 않은 다른 모든 빈 공간들이다.’
비구여, 이것을 안의 공계라 한다. 비구여, 혹 안의 공계와 바깥 공계[外空界]가 있는데 그 일체를 통틀어 공계(空界)라고 말한다.
‘그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도 그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 관찰하여 그 진실을 알아 마음이 이 공계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구여, 이것을 지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 5계(界)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를 알고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 마음이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해탈하면 오직 식(識)만이 남는다. 그것은 어떠한 식인가? 즐거워하는 식[樂識]ㆍ괴로워하는 식[苦識]ㆍ기뻐하는 식[喜識]ㆍ근심하는 식[憂識]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식[捨識]5)이니라.
비구여, 낙갱락(樂更樂)6)으로 인하여 즐거운 감각[樂覺]이 생기고 그는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 즐거운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즐거운 감각을 느낀 줄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낙갱락(樂更樂)을 멸하고 이 낙갱락을 멸한 뒤에 혹 낙갱락으로부터 생긴 즐거운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쉬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고갱락(苦更樂)으로 인하여 괴로운 감각[苦覺]이 생기고 그는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 괴로운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괴로운 감각을 느낀 줄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고갱락을 멸하고 이 고갱락을 멸한 뒤에 혹 고갱락으로부터 생긴 괴로운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쉬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희갱락(喜更樂)으로 인하여 기쁜 감각[喜覺]이 생기고 그는 기쁜 감각을 느낀다. 기쁜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기쁜 감각을 느낀 줄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희갱락을 멸하고 이 희갱락을 멸한 뒤에 혹 희갱락으로부터 생긴 기쁜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쉬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우갱락(憂更樂)으로 인하여 근심의 감각[憂覺]이 생기고 그는 근심의 감각을 느낀다. 근심의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근심의 감각을 느낀 줄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우갱락을 멸하고 이 우갱락을 멸한 뒤에 혹 우갱락으로부터 생긴 근심스런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쉬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사갱락(捨更樂)으로 인하여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捨覺]이 생기고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 뒤에는 곧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 줄 안다. 만일 어떤 비구가 이 사갱락을 멸하고 이 사갱락을 멸한 뒤에 혹 사갱락으로부터 생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이 있을 때 그것도 또한 멸하고 그친다면, 그는 이미 차갑게 된 줄을 알게 되느니라.
비구여, 이런저런 갱락(更樂) 때문에 이런저런 감각[覺]이 생기고 이런저런 갱락이 멸한 뒤에는 이런저런 감각도 또한 멸한다. 그는 이 감각은 갱락으로부터 생기고 갱락이 근본이요 갱락이 원인이며 갱락으로부터 생기고 갱락이 우두머리가 되며 갱락에 의지하여 행해진다는 것을 안다.

비구여, 마치 불씨는 찬목(鑽木)7)과 사람의 방편으로 말미암아 열이 생기기 때문에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비구여, 저 많은 나무를 서로 떨어뜨려 흩어 놓으면 거기서 생겨나던 불은 다 꺼져서 차가운 나무토막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비구여, 이런저런 갱락 때문에 이런저런 감각이 생기고 이런저런 갱락이 멸한 뒤에는 이런저런 감각도 또한 멸한다. 그는 이 감각은 갱락으로부터 생기고 갱락이 근본이요 갱락이 원인이며 갱락으로부터 생기고 갱락이 우두머리가 되며 갱락을 의지하여 행해진다는 것을 안다.
만일 비구가 이 3각(覺)8)에 물들지 않고 해탈한다면 그 비구에게는 오직 평정[捨]만 있어 지극히 청정할 것이다. 비구여,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청정한 평정[捨]으로 한량이 없는 공처(空處)로 옮겨 들어가고 이러한 마음을 닦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에서 서고 그것을 인연하며 그것에 묶이리라. 나는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식처(識處)와 무소유처(無所有處)ㆍ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로 옮겨 들어가 이러한 마음을 닦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에서 서고 그것을 인연하며 그것에 묶이리라.’

비구여, 마치 쇠붙이를 제련하는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 불로 쇠붙이를 달구어 극히 얇게 만들고 또 화람(火燣)으로 자꾸 불기운을 더해 여러 차례 단련하여 깨끗하게 하며 지극히 부드럽고 광명이 나게 하는 것과 같다. 비구여, 이 쇠붙이가 그 장인에게서 여러 차례 불기운이 가해가고 여러 차례 단련되어 깨끗해지고 지극히 부드럽고 광명이 나게 된 뒤에 그 장인은 자기가 만들고 싶은 대로 혹은 오색 비단을 잇기도 하고 새 옷을 꾸미기도 하며 가락지ㆍ팔찌ㆍ영락ㆍ보만 등 만들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만든다. 이와 같아서 비구여, 그 비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공처로 옮겨 들어가 이러한 마음을 닦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에서 서고 그것을 인연하며 그것에 묶이리라. 나는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로 옮겨 들어가 이러한 마음을 닦아서 그것을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거기에서 서고 그것을 인연하며 그것에 묶이리라.’

그 비구는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공처를 의지한다면 이것은 바로 유위(有爲)이다. 만일 그것이 유위라면 그것은 곧 무상(無常)한 것이다. 만일 그것이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운 것이다.’
만일 그것이 괴로운 것이라면 곧 괴로운 것인 줄 알 것이요, 괴로운 것인 줄 안 뒤에 그는 다시는 이 평정을 옮겨 한량없는 공처(空處)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 청정한 평정으로 한량없는 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를 의지한다면 이것은 바로 유위이다. 만일 그것이 유위라면 그것은 곧 무상한 것이요, 만일 그것이 무상한 것이라면 그것은 곧 괴로운 것이다.’
만일 그것이 괴로운 것이라면 곧 괴로운 것인 줄 알 것이요, 괴로운 것인 줄 안 뒤에 그는 다시는 이 평정을 옮겨 한량없는 식처ㆍ무소유처ㆍ비유상비무상처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비구여, 만일 어떤 비구가 이 네 곳을 지혜로 관찰하여 진실 그대로를 알아 마음으로 성취하지 않고 옮겨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는 그 때에는 다시는 유위가 아니요, 또한 있다거나 없다고 생각할 대상도 없을 것이다. 그는 몸을 받아 최후로 깨달았으면 곧 몸을 받아 최후로 깨달은 줄을 알 것이요, 목숨을 받아 최후로 깨달았으면 곧 목숨을 받아 최후로 깨달은 줄을 알 것이다.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수명을 이미 마친 뒤에는 그가 깨달은 모든 것들도 멸하고 쉬고 그쳐 차갑게 되는 줄을 알 것이다.

비구여, 비유컨대 타오르는 등불은 기름과 심지를 의지하나니, 만일 기름을 계속해서 더해 주지 않고 심지를 이어 주는 사람이 없으면 먼저 것은 이미 다 타고 뒤의 것은 계속 이어지지 않아 다시 받을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가 몸을 받아 최후로 깨달았으면 곧 몸을 받아 최후로 깨달은 줄을 알고 목숨을 받아 최후로 깨달았으면 곧 목숨을 받아 최후로 깨달은 줄을 안다.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수명을 이미 마친 뒤에는 그가 깨달은 모든 것들도 멸하고 쉬고 그쳐 차갑게 되는 줄을 안다.
비구여, 이것을 비구의 제일 바른 지혜라 한다. 이른바 최후의 경지까지 멸한 데 이른 것이니 누(漏)가 다한 비구가 이것을 성취한다면 제일 바른 지혜를 성취하는 것이니라.
비구여, 이 해탈은 참다운 진리[眞諦]에 머물러 이동하지 않게 되나니 참다운 진리란 법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고, 거짓말이란 허망한 법을 말하는 것이다. 비구여, 그는 그 제일 참다운 진리를 성취한 것이다.

비구여, 그 비구는 보시를 베푸는데, 보시 받는 사람들 중에 혹 옛날 원수가 있더라도 그는 그 때의 일을 놓아버리고 토하고 떠나서 해탈하고 멸해 없앤다.
비구여, 이것을 비구의 제일 올바른 혜시(惠施)라 한다. 이른바 일체의 세간을 모두 버리고 욕심이 없으며 멸하고 쉬고 그치나니 비구여, 이것을 성취한다면 제일의 혜시를 성취하는 것이니라.
비구여, 그 비구의 마음이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더럽혀진다면 그는 해탈을 얻지 못한다. 비구여, 이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다해 탐욕이 없어지고 멸하고 쉬고 그치면 제일의 쉼[息]9)을 얻게 된다. 비구여, 이것을 성취한다면 제일의 쉼을 성취하는 것이니라.

비구여,‘나[我]’란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요,‘나는 존재하지도 존재하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색유(色有)가 될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요,‘나는 무색유(無色有)가 될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며,‘나는 색유도 무색유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想]이 있을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요,‘나는 생각이 없을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며,‘나는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여도 또한 스스로 자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뽐내는 것[貢高]이요,이것은 교만[憍慠]이며, 이것은 방일(放逸)이다. 비구여, 만일 이 일체의 자랑과 뽐냄과 교만과 방일이 없으면 그것을 마음의 쉼[意息]이라 하느니라.
비구여, 만일 그 마음이 쉬면 곧 미워하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며 고달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그 비구는 법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밉다고 말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미워하지 않으면 걱정하지 않을 것이요, 걱정하지 않으면 시름하지 않을 것이며, 시름하지 않으면 고달파하지 않을 것이요, 고달파하지 않으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곧 반열반(般涅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 그대로 알게 될 것이니라.”

이렇게 설법을 마치자 존자 불가라사리는 티끌을 멀리 하고 때[垢]를 여의어 모든 법안(法眼)이 생겼다.
이에 존자 불가라사리는 법을 보아 법을 얻고 희고 깨끗한 법[白淨法]을 깨달아 의심을 끊고 의혹을 벗어나 다시는 더 이상 존경할 사람이 없고 다시는 남을 의지할 것도 없어 아무 망설임 없이 이미 과증(果證)에 머물러 세존의 법에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드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잘못을 뉘우칩니다. 선서(善逝)시여, 저는 고백합니다. 미련한 사람처럼 미친 사람처럼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바보처럼 좋은 밭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깨달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저는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일컬어 ‘그대’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원컨대 세존이시여,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저는 이제 참회한 뒤에는 다시는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너는 진실로 미련하고 어리석었으며 너는 진실로 정신이 나간 바보였다. 너는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을 일컬어 ‘그대’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비구여, 만일 네가 스스로 참회하고 잘못을 알아 드러내며 조심해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면 비구여, 그와 같이 한다면 곧 거룩한 법(法)과 율(律)에 있어서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능히 스스로 참회하고 잘못을 알아 드러내었으며 조심하여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불가라사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분별육계경의 경문 글자 수는 3,131자이다.

163) 분별육처경(分別六處經) 제2 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그것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의미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청정(淸淨)을 구족하고 범행(梵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분별육처경(分別六處經)이라고 하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도록 하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6처(處)의 안[內]을 알아야 하고10) 6갱락처(更樂處)의 안을 알아야 하며11) 18의행(意行)의 안을 알아야 하고 36도(刀)의 안을 알아야 한다. 그 중에서 그것을 끊고 이것을 성취하고 한량없는 설법에서 마땅히 안[內]을 알아야 한다.
또 3의지(意止)는 이른바 성인이 익히는 것이요, 성인은 이를 익히고 나서야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 또 위없는 조어사[無上調御士]는 사람들을 다루어 일체의 방위로 나아가게 하나니 이것을 분별육처경의 일이라 하느니라.

마땅히 6처(處)의 안[內]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른바 안처(眼處)ㆍ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이다. 마땅히 6처의 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마땅히 6갱락처(更樂處)의 안[內]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른바 눈의 갱락은 빛깔[色]을 보는 것이요, 귀의 갱락은 소리[聲]를 듣는 것이며, 코의 갱락은 냄새[香]를 맡는 것이요, 혀의 갱락은 맛[味]을 보는 것이며, 몸의 갱락은 촉감[觸]을 느끼는 것이고, 뜻의 갱락(更樂)은 법(法)을 아는 것이니, 6갱락처의 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

마땅히 18의행(意行)의 안[內]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비구는 눈으로 빛깔을 본 뒤에 그 빛깔을 기뻐할 만한 것[喜住]이라고 분별하고 그 빛깔을 근심할 만한 것[憂住]이라고 분별하며 그 빛깔을 덤덤한 것[捨住]이라고 분별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도 또한 그러하며 뜻이 법을 안 뒤에는 그 법을 기뻐할 만한 것이라고 분별하고 그 법을 근심할 만한 것이라고 분별하며 그 법을 무덤덤한 것이라고 분별한다. 이것을 6희(喜)를 분별하고 6우(憂)를 분별하고 6사(捨)를 분별하는 것이라 하며 통틀어 18의행이라고 말한다. 마땅히 18의행의 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마땅히 36도(刀)의 안[內]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집착을 의지하는 6희(喜)가 있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6희도 있으며 집착을 의지하는 6우(憂)가 있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6우도 있으며 집착을 의지하는 6사(捨)가 있고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6사도 있다.

어떤 것이 6희가 집착을 의지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6희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는 기쁨[喜]을 내는 데에 두 종류가 있으니 혹은 집착을 의지하고 혹은 욕심 없음을 의지한다. 어떤 기쁨이 집착을 의지하는 것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사랑스럽다 하여 마음으로 생각하고 빛깔을 사랑하며 욕심과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어 아직 얻지 못한 것은 얻고자 하고 이미 얻은 것은 기억하며 기뻐한다면 이러한 기쁨을 ‘집착에 의지하는 기쁨’이라 한다. 어떤 기쁨이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빛깔은 무상한 것이라서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아 모든 욕심을 없애고 멸하고 쉬며 과거나 현재의 일체 빛깔은 무상한 것이요 괴로움이며 멸하는 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기쁨을 낸다면 이러한 기쁨을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기쁨’이라 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뜻이 법을 알고 기쁨을 내는 데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혹은 집착을 의지하고 혹은 욕심 없음을 의지한다. 어떤 기쁨이 집착을 의지하는 것인가? 뜻이 법을 알고 사랑스럽다 하여 마음으로 생각하고 법을 사랑하며 욕심과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어 아직 얻지 못한 것은 얻고자 하고 이미 얻은 것은 기억하며 기뻐한다면 이러한 기쁨을 ‘집착을 의지하는 기쁨’이라 한다. 어떤 기쁨이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법은 무상한 것이어서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아 모든 욕심을 없애고 멸하고 쉬며 과거나 현재의 일체 법은 무상한 것이요 괴로운 것이며 멸하는 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기쁨을 낸다면 이러한 기쁨을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기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6우(憂)가 집착을 의지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6우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근심하는 데에 두 종류가 있으니 혹은 집착을 의지하고 혹은 욕심 없음을 의지한다. 어떤 근심[憂]이 집착을 의지하는 것인가? 눈으로 빛깔을 보고 사랑스럽다 하여 마음으로 생각하고 빛깔을 사랑하면 욕심과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지 못하고 이미 얻은 것이 오래되어 흩어져 무너지고 멸하거나 변하고 바뀌면 근심이 생긴다. 이러한 근심을 ‘집착을 의지하는 근심’이라 한다. 어떤 근심이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빛깔은 무상한 것이어서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아 모든 욕심을 없애고 멸하고 쉬며 과거나 현재의 일체 빛깔은 무상한 것이요 괴로운 것이며 멸하는 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성취하여 저곳에서 노닐 수 있을까? 모든 성인들이 성취하여 노니신 저곳에서.’
이는 위로 구족하려는 바람에서 생기는 두려움이고 괴롭고 근심스러움을 알아서 생긴 근심이다. 이러한 근심을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근심’이라 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뜻이 법을 알고 근심하는 데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혹은 집착을 의지하기도 하고, 혹은 욕심 없음을 의지하기도 한다. 어떤 근심이 집착을 의지하는 것인가? 뜻이 법을 알고 사랑스럽다 하여 마음으로 생각하고 법을 사랑하면, 욕심과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게 된다. 그러나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지 못하고, 이미 얻은 것이 오래되어 흩어져 무너지고 멸하며 변하고 바뀌면 근심이 생긴다. 이러한 근심을 ‘집착을 의지하는 근심’이라 한다. 어떤 근심이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법이란 무상한 것이어서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아 모든 욕심을 없애고 멸하고 쉬며 과거나 현재의 모든 법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멸하는 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성취하여 저곳에서 노닐 수 있을까? 모든 성인들이 성취하여 노니신 저곳에서.’
이것은 위로 구족하려는 바람에서 생기는 두려움이고 괴롭고 근심스러움을 알므로 생겨나는 근심이다. 이러한 근심을 ‘욕심 없음을 의지한 근심’이라 한다.

어떤 것이 6사(捨)가 집착을 의지하는 것이며 어떤 것이 6사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 담담한 데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혹은 집착을 의지하고 혹은 욕심 없음을 의지한다. 어떤 담담함[捨]12)이 집착을 의지하는 것인가? 눈이 빛깔을 보고는 그것에 담담하지만 그가 평등하고 많이 듣지 않았고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범부라서 빛깔에 대해 담담하더라도 빛깔[色]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한다면 이것을 ‘집착을 의지하는 담담함’이라 한다. 어떤 담담함이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빛깔은 무상한 것이어서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아 모든 욕심을 없애고 멸하고 쉬며 과거나 현재의 일체 빛깔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멸하는 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담담함에 머무르며, 만일 지극한 뜻이 있더라도 담담함을 닦아 익힌다면 이것을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담담함’이라 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니라.

뜻이 법을 알고 그것에 담담한 데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혹은 집착을 의지하고, 혹은 욕심 없음을 의지한다. 어떤 담담함이 집착을 의지하는 것인가? 뜻이 법을 알고는 그것에 담담하지만 그가 평등하고 많이 듣지 않았고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범부라서 법에 대해 담담하더라도 법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한다면 이것을 ‘집착을 의지하는 담담함’이라 한다. 어떤 담담함이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것인가? 뜻이 법은 무상한 것이어서 변하고 바뀌는 것인 줄을 알아 모든 욕심을 없애고 멸하고 쉬며 과거나 현재의 일체 법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멸하는 법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담담함에 머무르며 또 만일 지극한 뜻이 있더라도 담담함을 닦아 익힌다면 이것을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담담함’이라 하느니라.
이것을 집착을 의지하는 6희(喜),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6희, 집착을 의지하는 6우(憂),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6우, 집착을 의지하는 6사(捨), 욕심 없음을 의지하는 6사라 하나니, 이를 통틀어 36도(刀)라고 한다. ‘마땅히 안을 알아야 한다’고 한 것은 이로 인해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이 가운데에서 ‘그것을 끊고 이것을 성취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른바 6희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면 이것을 취하고 이것에 의지하며 이것에 머무른다. 이른바 6희가 집착을 의지하면 그것을 멸하고 그것을 없애며 그것을 뱉나니, 이와 같이 그것을 끊는다. 이른바 6우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면 이것을 취하고 이것에 의지하며 이것에 머무른다. 이른바 6우가 집착을 의지하면 그것을 멸하고 그것을 없애며 그것을 뱉나니, 이와 같이 그것을 끊는다. 이른바 6사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면 이것을 취하고 이것에 의지하며 이것에 머무른다. 이른바 6사가 집착을 의지하면 그것을 멸하고 그것을 없애며 그것을 뱉나니, 이와 같이 그것을 끊는다.
이른바 6우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면 이것을 취하고 이것에 의지하며 이것에 머무른다. 이른바 6희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면 그것을 멸하고 그것을 없애며 그것을 뱉나니 이와 같이 그것을 끊는다. 이른바 6사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면 이것을 취하고 이것에 의지하며 이것에 머무른다. 이른바 6우가 욕심 없음을 의지하면 그것을 멸하고 그것을 없애며 그것을 뱉나니, 이와 같이 그것을 끊는다.

평정[捨]에는 한량없는 갱락(更樂), 여러 종류의 갱락이 있는 것이 있다. 또 평정에는 단 하나의 갱락, 여러 종류가 아닌 갱락이 있는 것도 있다. 어떤 평정에 한량없는 갱락, 여러 종류의 갱락이 있는가? 만일 평정이 빛깔이나, 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을 버리는 것이라면, 그 평정에는 한량없는 갱락, 여러 종류의 갱락이 있다. 어떤 평정에 단 하나의 갱락, 여러 종류가 아닌 갱락이 있는가? 이른바 평정이 한량없는 공처(空處)를 의지하거나 혹은 한량없는 식처(識處)를 의지하거나 혹은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의지하거나 혹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의지한다면 이 평정에는 단 하나의 갱락, 여러 종류가 아닌 갱락이 있다.
이른바 그 평정에 단 하나의 갱락, 여러 종류가 아닌 갱락이 있으면 이것을 취하고 이것에 의지하며 이것에 머무른다. 이른바 그 평정에 한량없는 갱락, 여러 종류의 갱락이 있으면 그것을 멸하고 그것을 없애며 그것을 뱉나니 이와 같이 그것을 끊는다. 한량이 없음을 취하고 한량이 없음에 의지하며 한량이 없음에 머무는 것, 이른바 이런 평정에는 단 하나의 갱락, 여러 종류가 아닌 갱락이 있으니, 이것을 취하고 이것에 의지하며 이것에 머무른다. 이른바 그 평정에 한량없는 갱락, 여러 종류의 갱락이 있으면 그것을 멸하고 그것을 없애며 그것을 뱉나니, 이와 같이 그것을 끊는다. ‘그 중에서 그것을 끊고 이것을 성취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마땅히 한량없는 설법에서 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여래에게는 네 부류의 제자가 있으니, 그들에게는 증상하는 행[增上行]이 있고 증상하는 뜻[增上意]이 있으며, 증상하는 생각[增上念]이 있고 증상하는 지혜[增上慧]가 있다. 그리고 변재가 있어서 제일가는 변재를 성취하였으며 수명은 백 세이니라. 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백 년 동안을 설법하였다. 다만 음식을 먹을 때와 대소변을 볼 때와 잠잘 때 및 모임이 있을 때는 제외된다. 그들은 여래가 말하는 법의 문구와 법의 글귀에 대해서 그 뜻을 관찰하는데 지혜로써 얼른 그 뜻을 관찰하고 다시는 여래의 법을 묻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의 설법은 끝이 없고 그 법을 다할 수가 없기에 그 많은 문구와 법구(法句)의 뜻을 관찰하다가는 결국 네 부류의 제자가 목숨을 마치게 되기 때문이다. 마치 활 잘 쏘는 네 사람이 활줄을 세게 당겨 화살을 한꺼번에 쏘면 잘 배우고 잘 알고 또 방편도 있기 때문에 순식간에 꿰뚫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세존에게는 네 부류의 제자가 있으니, 그들에게는 증상하는 행이 있고 증상하는 뜻이 있으며 증상하는 생각이 있고 증상하는 지혜가 있다. 변재가 있어서 제일가는 변재를 성취하였으며 수명은 백 세이니라. 여래는 그들을 위하여 백 년 동안을 설법하였다. 다만 음식 먹을 때와 대소변을 볼 때와 잠잘 때 및 모임이 있을 때는 제외된다. 그들은 여래가 말하는 문구와 법의 글귀에 대해서 그 뜻을 관찰하는데 지혜로써 얼른 그 뜻을 관찰하고 다시는 여래의 법을 묻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의 설법은 끝이 없고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니라. ‘마땅히 한량없는 설법의 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이니라.

‘3의지(意止)13)는 이른바 성인이 익히는 것이요, 성인은 이를 익힌 뒤에야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만일 여래가 제자들을 위하여 설법한다면 이는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그들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며 자비심을 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요익을 위함이요 쾌락을 위함이며 요익의 즐거움을 위함이다. 혹 그 제자들이 공경하지 않고 또한 순종하지 않으며 지혜를 세우지 않고 그 마음이 법을 향해 법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바른 법을 받지 않고 세존의 가르침을 어겨 선정[定]을 얻지 못하더라도 세존은 그것 때문에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그저 세존은 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평등함[捨]으로 항상 생각하고 항상 지혜로울 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의지(意止)로서 이른바 성인이 익히는 것이요 성인은 이를 익히고 나서야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

또 여래가 제자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은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그들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며 자비심을 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요익을 위함이요 쾌락을 위함이며 요익의 즐거움을 위함이다. 혹 그 제자들이 공경하고 또한 순종하며 지혜를 세우고 그 마음이 법을 향해 법으로 나아가며 바른 법을 받아 가지고 세존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아 능히 선정을 얻더라도 세존은 그것 때문에 기뻐하지 않는다. 그저 세존은 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항상 생각하고 항상 지혜로울 뿐이다. 이것이 두 번째 의지로서 이른바 성인이 익히는 것이요, 성인은 이를 익힌 뒤에야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

또 여래가 제자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은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그들을 위하여 이치와 요익을 구하고 안온과 쾌락을 구하며 자비심을 내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은 요익을 위함이요 쾌락을 위함이며 요익의 즐거움을 위함이다. 그러나 혹 어떤 제자들은 공경하지 않고 또한 순종하지 않으며 지혜를 세우지 않고 그 마음이 법을 향해 법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바른 법을 받지 않고 세존의 가르침을 어겨 선정을 얻지 못한다. 또 어떤 제자는 공경하고 순종하며 지혜를 세우고 그 마음이 법을 향해 법으로 나아가며 바른 법을 받아 가지고 세존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아 능히 선정을 얻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존은 그것 때문에 근심하고 슬퍼하거나 또는 기뻐하지도 않는다. 그저 세존은 하고자 하는 바가 없는 평등한 마음으로 항상 생각하고 항상 지혜로울 뿐이다. 이것이 세 번째 의지로서 이른바 성인이 익히는 것이요, 성인은 이를 익힌 뒤에야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 ‘3의지는 이른바 성인이 의지하는 것이요, 성인은 이를 익힌 뒤에야 대중을 가르칠 수 있다’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니라.

‘위없는 조어사(調御士)는 사람들을 다루어 일체의 방위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조어사는 사람들을 다루어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나니, 혹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코끼리를 다루는 사람은 코끼리를 다루어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나니, 혹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으로 나아가게 한다. 말을 다루는 사람은 말을 다루어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나니, 혹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으로 나아가게 한다. 소를 다루는 사람은 소를 다루어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나니, 혹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와 같이 위없는 조어사는 사람들을 다루어 일체의 방위로 나아가게 한다.

그 중에 방위[方]란, 색(色)을 색으로 관찰하면 이것을 첫 번째 방위라 한다. 안으로 색이란 생각[想]이 없고 밖으로 색을 관찰하면 이것을 두 번째 방위라 한다. 깨끗하게 해탈하여 몸의 촉감을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세 번째 방위라 한다. 일체의 색이라는 생각을 넘어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으면 곧 한량없는 공(空)이다. 이 한량없는 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을 네 번째 방위라 한다. 일체의 한량없는 공처를 넘으면 곧 한량없는 식(識)이다. 이 한량없는 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을 다섯 번째 방위라 한다.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넘으면 곧 무소유이다.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을 여섯 번째 방위라 한다. 일체의 무소유처를 넘으면 곧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이다. 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을 일곱 번째 방위라 한다.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넘어 상(想)과 지(知)가 멸해 다한 몸의 촉감을 성취하여 노니는 것, 지혜로 관찰해 번뇌[漏]가 완전히 끊어진 지혜, 이것을 여덟 번째 방위라 한다. ‘위없는 조어사가 사람들을 다루어 일체의 방위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분별육처경의 경문 글자 수는 2,512자이다.

164)분별관법경(分別觀法經) 제3제4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14)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그것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청정을 구족하고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이를 분별관법경(分別六處經)이라 하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러자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고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못하며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마음이 안에 머물고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생ㆍ노ㆍ병ㆍ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고통의 끝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러분,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런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습니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고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못하며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마음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마음이 안에 머물고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생ㆍ노ㆍ병ㆍ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고통의 끝이라 하느니라.〉’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러분, 누가 능히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하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존자 대가전연(大迦旃延)은 항상 부처님과 여러 지혜로운 범행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존자 대가전을 찾아가 이 뜻을 설명해 달라고 간청해 봅시다. 만일 존자 대가전연이 그것을 분별해 주거든 우리들은 그것을 잘 받아가집시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을 찾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존자 대가전연이여, 세존께서는 간략히 이런 이치를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않으셨습니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고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법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하고 나면 비구들아, 너희들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마음이 안에 머물고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생ㆍ노ㆍ병ㆍ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고통의 끝이라 하느니라.’
저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누가 자세하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은 항상 부처님과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하게 분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존자 대가전연이여, 저희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그 때 존자 대가전연이 말했다.
“여러분, 제가 비유를 들어 말할 터이니 들어 보십시오. 슬기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어 말하면 곧 그 뜻을 이해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나무 심[實]15)을 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나무 심을 구하기 위하여 도끼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 나무가 뿌리와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뿌리와 줄기ㆍ마디와 심은 건드리지 않고 그저 가지와 잎만 건드렸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말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현재 계시는데 그 분을 내버려두고 제게 와서 그 뜻을 묻다니요. 무슨 까닭인가? 여러분은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은 곧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이십니다. 진리[眞諦]의 이치를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심은 오직 세존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이치를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거든 여러분은 마땅히 잘 받아 가지십시오.”

그러자 비구들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여. 세존께서는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이십니다.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심은 오직 세존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뜻을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면 저희들은 마땅히 잘 받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항상 세존과 여러 지혜로운 범행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존자 대가전연이시라면 조금 전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존자 대가전연이여, 저희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 대가전연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모두 제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어떻게 비구의 마음이 밖으로 나가 흩어지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눈으로 색(色)을 보면 식(識)은 색의 모양을 먹고[食] 식은 색의 즐거운 모양에 집착하며 식은 색의 즐거운 모양에 묶입니다. 그리고 그 색의 모양[相]과 맛[味]은 마음을 결박해 밖으로 나가 흩어지게 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또 뜻으로 법을 알면 식은 법의 모양을 먹고 식은 법의 즐거운 모양에 집착하며 식은 법의 즐거운 모양에 묶입니다. 그리고 그 법의 모양과 맛은 마음을 결박해 밖으로 나가 흩어지게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여 비구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집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의 마음이 밖으로 나가 흩어지지 않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눈으로 색을 보아도 식은 색의 모양을 먹지 않고 식은 색의 즐거운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며 식은 색의 즐거운 모양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색의 모양과 맛은 마음을 결박하지 않고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뜻으로 법을 알아도 식은 법의 모양을 먹지 않고 식은 법의 즐거운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며 식은 법의 즐거운 모양에 묶이지 않습니다. 그 법의 모양과 맛은 마음을 결박하지 않고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여 비구의 마음은 밖으로 나가 흩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의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않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읩니다. 그리하여 각(覺)이 있고 관(觀)이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악을 여의는 맛에 집착해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또 여러분, 비구는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이 고요하여 한마음이 됩니다. 그리하여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識)이 선정의 맛에 집착해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습니다. 이는 저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입니다. 바로 이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기쁨이 없는 맛[無喜味]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색이라는 생각을 벗어나서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공(空)으로 들어가 이 한량없는 공처(空處)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공의 지혜[空智]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한량없는 공처를 벗어나서 한량없는 식으로 들어가고 이 한량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식의 지혜[識智]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벗어나서 무소유로 들어가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무소유의 지혜[無所有智]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벗어나서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으로 들어가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무상의 지혜[無想智]의 맛에 집착하여 그것에 의지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그것을 인연하고 그것에 묶이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지 못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여 비구의 마음은 안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 마음이 안에 머무르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읩니다. 그리하여 각이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러나 그의 식이 떠나는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이 고요해져 한마음이 됩니다. 그리하여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선정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습니다. 이는 저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입니다. 바로 이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기쁨이 없는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과 기억ㆍ 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물게 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색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한량없는 공(空)으로 들어가 이 한량없는 공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공의 지혜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한량없는 공처를 넘어 한량없는 식으로 들어가고 이 한량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식의 지혜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벗어나 무소유로 들어가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무소유의 지혜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다시 여러분, 비구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넘어 비유상비무상으로 들어가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 때 그의 식이 무상의 지혜[無常智]의 맛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그것을 인연하지 않고 그것에 묶이지 않으면 그 식은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여 비구의 마음은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는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되는가?16) 여러분, 어떤 비구는 색염(色染)을 떠나지 않고 색욕(色欲)을 떠나지 않으며 색애(色愛)를 떠나지 않고 색갈(色渴)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비구가 색염을 떠나지 않고 색욕을 떠나지 않으며 색애(色愛)를 떠나지 않고 색갈(色渴)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는 색을 얻고자 하여 색을 구하고 색에 집착하며 색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색은 곧 나[我]요, 색은 내 소유다’라고 생각합니다. 색을 얻고자 하여 색에 집착하고 색에 머물러 ‘색은 곧 나요 색은 내 소유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식은 색에 대하여 집착하게 됩니다. 식이 색을 집착한 뒤에는 그 색이 변하고 바뀔 때마다 식도 색을 따라 바뀝니다. 식이 색을 따라 바뀐 뒤에 그는 두려움을 일으켜서 마음이 그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마음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곧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覺)17)ㆍ상(想)ㆍ행(行)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식염(識染)을 떠나지 않고 식욕(識欲)을 떠나지 않으며 식애(識愛)를 떠나지 않고 식갈(識渴)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비구가 식염을 떠나지 않고 식욕을 떠나지 않으며 식애를 떠나지 않고 식갈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는 식을 구하고자 하여 식을 구하고 식에 집착하며 식에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식은 곧 나요, 식은 내 소유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식을 얻고자 하여 식을 구하고 식에 집착하며 식에 머물러 ‘식은 곧 나요, 식은 내 소유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식(識)은 식(識)에 대하여 집착하게 됩니다. 식이 식을 집착한 뒤에는 그 식이 변하고 바뀔 때마다 식도 식을 따라 바뀝니다. 식이 식을 따라 바뀐 뒤에 그는 두려움을 일으켜서 마음이 그 가운데 머무르게 됩니다. 마음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곧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것이 비구가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는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색염을 떠나고 색욕을 떠나며 색애를 떠나고 색갈을 떠납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비구가 색염을 떠나고 색욕을 떠나며 색애를 떠나고 색갈을 떠난다면 그는 색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서 색을 찾지도 않고 색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색에 머무르지도 않게 됩니다. 그래서 ‘색은 나가 아니요, 색은 내 소유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색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서 색을 구하지도 않고 색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색에 머무르지도 않아 ‘색은 나가 아니요, 색은 내 소유도 아니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식은 색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색을 집착하지 않은 뒤에는 그 색이 변하고 바뀔 때에도 식은 색을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식이 색을 따라 변하지 않은 뒤에는 그는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도 그 가운데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알기 때문에 곧 두려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각ㆍ상ㆍ행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식염을 떠나고 식욕을 떠나며 식애를 떠나고 식갈을 떠납니다. 여러분, 만일 어떤 비구가 식염을 떠나고 식욕을 떠나며 식애를 떠나고 식갈을 떠난다면 그는 식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 식을 구하지도 않고 식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식에 머무르지도 않게 됩니다. 그래서 ‘식은 나가 아니요, 식은 내 소유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식을 얻으려고 하지 않아 식을 구하지도 않고 식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식에 머물지도 않아 ‘식은 나가 아니요 식은 내 소유도 아니다’라고 생각한 뒤에는 식은 식에 대하여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식을 집착하지 않은 뒤에는 그 식이 변하고 바뀔 때에도 식은 식을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식이 식을 따라 변하지 않은 뒤에는 그는 두려움을 일으키지 않고 마음도 그 가운데 머무르지 않게 됩니다. 마음이 알기 때문에 곧 두려워하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나니 이것이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것이 비구가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은 채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찰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찰한다면 비구들아, 마음이 밖으로 나가 흩어지고 마음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게 된다. 비구들아, 이러이러한 관찰이 있다. 너희들이 이렇게 관찰한다면 마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마음이 안에 머물고 집착하지 않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면 다시는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苦邊]이라 하느니라.’
이처럼 세존께서는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 글귀와 이 글로써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 부처님께 나아가 이 말을 자세하게 말씀드리고 나서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신 이치와 같거든 여러분은 마땅히 받아 가지십시오.”

이에 여러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의 말을 듣고 잘 받아 외우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대가전연을 세 번 돌고 떠났다. 그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아까 이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이에 존자 대가전연은 이러한 글귀와 이러한 글로써 그것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는 내 제자 중에서 눈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법이 있고 이치가 있는 사람이다. 왜냐 하면 스승이 제자들에게 그 이치를 간략히 말하고 자세히 분별하지 않자 그 제자가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것을 자세히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가전연 비구가 설명한 그대로를 너희들은 마땅히 받아 가져라. 왜냐 하면 이치를 살펴 설명한다면 응당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팔리본에는 도사(陶師)의 이름이 Bhaggava로 기록되어 있는데, 한역본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2 팔리어로는 Pukkusāti이고 불가사(弗加沙) 또는 불가라바리(弗加羅婆利)라고도 한다.
3 송(宋)ㆍ원(元)ㆍ명(明) 3본에는 모두 뇌수(腦膸)로 되어 있다.
4 한역본에는 9종의 풍(風)이 나오지만 팔리본에는 7종풍으로 되어 있다. 7종풍은 다음과 같다. 상행풍(上行風, uddhaṃgamā vātā:구토나 딸꾹질)ㆍ하행풍(下行風, adhogamā vātā:대ㆍ소변)ㆍ장외풍(腸外風, kucchisayā vātā)ㆍ장내풍(腸內風, koṭṭhāsayā vātā)ㆍ지체순환풍(支體循環風, aṅgamoṅgānusārino vātā:몸을 굽혔다 펴고 혈액이 순환하는 것)ㆍ식입풍(息入風, assāso:들숨)ㆍ식출풍(息出風, passāso:날숨)이다.
5 사식(捨識)은 고(苦)ㆍ락(樂)과 구별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식[不苦不樂識]을 말한다.
6 낙갱락은 곧 낙촉(樂觸)이다. 즉 즐거움[樂]을 감수(感受)하는 촉(觸)을 말한다. 이하 고갱락(苦更樂)ㆍ희갱락(喜更樂)ㆍ우갱락(憂更樂)ㆍ사갱락(捨更樂) 또한 괴로움ㆍ기쁨 등을 감수하는 촉(觸)을 말한다.
7 나무에 구멍을 뚫고 다른 나무로 비벼 불을 얻는 일, 또는 그럴 때 쓰는 나무를 말한다.
8 3수(受)라고도 한다. 고각(苦覺)ㆍ낙각(樂覺)ㆍ사각(捨覺)이다.
9 팔리어로는 upasama이고, 지식(止息) 또는 적정(寂靜)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10 팔리본에는 이 부분이 ‘6내처(內處)를 알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또 팔리본에는 6외처(外處:六境)와 6식신(識身)도 거론하고 있으나 한역본에는 없다.
11 팔리본에는 ‘6촉신(觸身)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갱락(更樂)은 후대에 촉(觸)으로 번역되었다.
12 다른 부분에서는 주로 사(捨)를 평정으로 번역을 했는데, 여기에서는 ‘평정’보다는 ‘담담함’이라고 번역했다.
13 의지(意止)는 팔리본에 satipahn 즉 염처(念處)ㆍ염주(念住)로 되어 있다.
14 승림급고독원은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고도 한다.
15 팔리본에는 sāra 즉 진수(眞髓)로 되어 있는데 이는 나무의 심[樹心]을 가리킨다.
16 한역에는 ‘불수이공포(不受而恐怖)’로 되어 있는데 팔리본에는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공포가 있다[不取着而有恐怖, anupādā paritassanā hoti]로 되어 있다.
17 5온(蘊)의 수(受)에 해당한다.

중아함경 제43권

승가제바 한역

13. 근본분별품 제2②
165)온천림천경(溫泉林天經)1) 제4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2)園)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삼미제(三彌提)3)도 또한 왕사성에 노닐며 온천림(溫泉林)에 머물고 있었다. 존자 삼미제는 먼동이 트는 새벽에 방을 나와 온천으로 가서 언덕 위에 옷을 벗어놓고 온천에 들어가 목욕한 뒤에 다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었다.

그 때 몸이 지극히 아름답고 얼굴이 의젓한 어떤 한 하늘[有一天]4)이 있었다. 그는 먼동이 틀 무렵에 존자 삼미제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 있었다. 그 하늘의 얼굴은 위엄스럽고 극히 아름다워 그 광명이 온천 언덕을 두루 비추었다. 그 하늘은 한쪽에 서서 존자 삼미제에게 여쭈었다.
“비구여, 발지라제(跋地羅帝)5)의 게송을 받아 지니고 계십니까?”6)

존자 삼미제는 그 하늘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하늘에게 도로 물었다.
“그대는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지니고 계십니까?”

그 하늘이 대답하였다.
“저도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존자 삼미제가 그 하늘에게 물었다.
“그러면 누가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졌습니까?”

하늘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 이 왕사성에 노니시면서 죽림 가란타동산에 계시는데 그분은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다. 비구여, 그대는 가서 세존에게 직접 발지라제의 게송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십시오. 왜냐 하면 발지라제의 게송은 법이 있고 뜻이 있어 범행(梵行)의 근본이 되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족성자로서 지극한 믿음이 있어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발지라제의 게송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이렇게 말한 뒤 존자 삼미제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 번 돌고는 거기서 사라졌다.

그 때 존자 삼미제는 하늘이 사라진 지 오래지 않아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오늘 먼동이 틀 무렵 방에서 나와 저 온천에 가서 언덕 위에 옷을 벗어 놓고 온천에 들어가 목욕한 뒤에 곧 언덕으로 나와 몸을 닦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몸이 지극히 아름답고 얼굴이 의젓한 어떤 하늘이 먼동이 트는 새벽에 저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섰습니다. 그 하늘은 얼굴이 위엄스럽고 지극히 아름다웠으며 그 광명은 온천 언덕을 두루 비추었습니다. 그 하늘은 물러나 한쪽에 서서 제게 물었습니다.
‘비구여,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지니고 계십니까?
저는 그 하늘에게 대답했습니다.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도로 그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졌습니까?’
그 하늘은 대답했습니다.
‘저도 또한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그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졌습니까?’
그 하늘은 대답했습니다.
‘세존께서 이 왕사성에 노니시면서 죽림 가란타동산에 계시는데 그분은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지셨습니다. 비구여, 그대는 가서 세존에게 직접 발지라제의 게송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십시오. 왜냐 하면 발지라제의 게송은 뜻이 있고 법이 있고 범행의 근본이 되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족성자로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발지라제의 게송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이와 같이 말한 뒤 제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는 곧 거기서 사라졌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삼미제여, 너는 그 하늘이 어디서 왔으며 그 하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그 하늘이 어디서 왔으며 그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삼미제여, 그 천자의 이름은 정전(正殿)이며 33천 군대의 장수이니라.”

이에 존자 삼미제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발지라제의 게송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세존에게서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삼미제여,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를 위하여 설명하리라.”

존자 삼미제가 대답했다.
“예.”
그 때 모든 비구들도 가르침을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法]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고요히 앉으셨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러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러분,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누가 자세히 분별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존자 대가전연은 언제나 세존 및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아까 세존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다 같이 존자 대가전연에게 가서 그 뜻을 설명해 달라고 청합시다. 만일 존자 대가전연께서 설명해 주거든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잘 받아 가집시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에게 가서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존자 대가전연이여,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저희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누가 자세히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은 언제나 세존 및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라면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원컨대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저희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 대가전연이 말하였다.
“여러분, 제가 비유로 말하리니 잘 들으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곧 그 뜻을 잘 이해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나무 심[實]7)을 얻기 위해 도끼를 가지고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 나무가 뿌리와 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뿌리와 줄기ㆍ마디ㆍ심은 건드리지 않고 가지와 잎만 건드렸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말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현재 계시는데 그 분을 버려두고 내게 와서 그 뜻을 묻다니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여러분은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세존께서는 곧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이십니다.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심은 오직 세존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뜻을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거든 여러분은 마땅히 잘 받아 가지십시오.”

그 때 모든 비구들이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존자 대가전연이여. 세존께서는 곧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이십니다.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의 이치를 나타내심은 오직 세존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희들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고 그 뜻을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시면 저희들은 마땅히 잘 받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존자 대가전연께서는 항상 세존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존자 대가전이시라면 능히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존자 대가전연이여. 저희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존자 대가전연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다 함께 제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기억[念]하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실로 눈[眼]이 있어서 좋아하는 빛깔[色]을 보고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빛깔을 사랑하며 욕심과 상응(相應)하고 마음으로 즐기며 그 근본을 더듬어 보는데 그 근본은 곧 과거입니다. 그리고 그의 식(識)은 과거에 대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합니다. 식(識)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고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과거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실로 뜻[意]이 있어서 좋아하는 법(法)을 알고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법을 사랑하며 욕심과 상응하고 마음으로 즐기며 그 근본을 더듬어 보는데 그 근본은 곧 과거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대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합니다. 식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고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과거를 기억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실로 눈이 있어서 좋아하는 빛깔을 보고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빛깔을 사랑하며 욕심과 상응하고 마음으로 즐기며 그 근본을 더듬어 보는데 그 근본은 곧 과거입니다. 그러나 그의 식은 과거에 대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과거를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실로 뜻이 있어서 좋아하는 법을 알고는 마음으로 기억하고 법을 사랑하며 욕심과 상응하고 마음으로 즐기며 그 근본을 더듬어 보는데 그 근본은 곧 과거입니다. 그러나 그의 식은 과거에 대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과거를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는 과거를 기억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미래에 바라는 것이 있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미래의 눈[眼]과 빛깔[色]과 눈의 식[眼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얻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랍니다. 그는 마음으로 바라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며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미래에 바라는 것이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미래의 뜻[意]과 법(法)과 뜻의 식[意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고 얻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랍니다. 그는 마음으로 바라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며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미래에 바라는 것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 비구는 이와 같이 미래를 원하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미래에 바라는 것이 없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미래의 눈과 빛깔과 눈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지 않고 얻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원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며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미래에 바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미래의 뜻과 법과 뜻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얻지 못한 것을 얻으려 하지 않고 얻게 되기를 마음으로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는 마음으로 바라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며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미래에 바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여러분, 비구는 이와 같이 미래에 바라는 것이 없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현재의 눈과 빛깔과 눈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식(識)은 현재에 대해서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합니다. 식(識)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고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현재의 법(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현재의 뜻과 법과 뜻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식은 현재에 대해서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합니다. 식이 욕심내고 물들고 집착하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게 되며 그것을 즐기기 때문에 곧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분,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가? 여러분, 어떤 비구는 현재 눈과 빛깔과 눈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식은 현재에 대해서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현재의 법(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합니다.
어떤 비구는 현재의 뜻과 법과 뜻의 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식은 현재에 대해서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식이 욕심내거나 물들고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곧 그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그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곧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 세존께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간략히 말씀하시고 널리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그것을 결코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이렇게 세존께서는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런 글귀와 글로써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여러분, 부처님께 나아가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신 이치와 같거든 여러분들은 마땅히 받아 가지십시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대가전연에게서 들은 말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대가전연을 세 번 돌고 떠났다. 그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아까 세존께서는 이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히 분별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편안하게 앉으셨습니다. 이에 존자 대가전연이 이런 글귀와 글로써 그것을 자세히 분별해 주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그는 내 제자 중에서 눈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법이 있고 이치가 있는 사람이다. 무슨 까닭인가? 스승이 제자들에게 이 이치를 간략히 말하고 자세히 분별해 주지 않자 그 제자는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전연 비구가 설명한 그대로를 너희들은 마땅히 받아 가져라. 왜냐 하면 이치를 살펴 설명한다면 응당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온천림천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580자이다.

166) 석중선실존경(釋中禪室尊經)8) 제5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노이강기(盧夷强耆)9)는 석(釋)10)씨 중에 노닐면서 일이 없는 선실[無事禪室]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존자 노이강기는 먼동이 트는 새벽에 그 선실에서 나와 선실 바깥 그늘에 있는 평상에 니사단(尼師檀)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 때 몸이 지극히 아름답고 얼굴이 의젓한 한 하늘이 있었다. 그 하늘은 먼동이 트는 새벽에 존자 노이강기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 있었다. 그 하늘의 얼굴은 위엄스럽고 지극히 아름다웠으며 광명이 그 선실을 두루 비추었다. 그 하늘은 한쪽에 서서 존자 노이강기에게 여쭈었다.
“비구여, 발지라제(跋地羅帝)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까?”11)

존자 노이강기가 그 하늘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 하늘에게 도로 물었다.
“그대는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졌습니까?”

그 하늘이 대답했다.
“저는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지만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존자 노이강기는 다시 그 하늘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으면서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까?”

그 하늘이 대답하였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 가란타(迦蘭哆)동산에 계셨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발지라제의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法]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비구여, 저는 이와 같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받아 가졌지만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존자 노이강기는 다시 그 하늘에게 물었다.
“누가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있습니까?”

하늘이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시는데, 그 분은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다. 비구여, 그대는 세존께 가서 세존에게 직접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잘 지니고 독송하십시오. 왜냐 하면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에는 이치가 있고 법이 있어 범행의 근본이 되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큰 족성의 아들로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는 마땅히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잘 받아 가지고 독송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이렇게 말한 뒤 존자 노이강기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세 번 돌고는 거기서 사라졌다.

그 하늘이 사라진 지 오래지 않아 이에 존자 노이강기는 석가족이 사는 곳에 있으면서 여름 안거를 마쳤다. 그는 3개월을 지낸 뒤 옷을 기우고 나서 옷과 발우를 챙겨 사위국을 향하였다. 그는 여러 곳을 거치며 앞으로 나아갔고 사위국에 이르러 승림급고독원에 머물렀다.

그 때 존자 노이강기는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느 때 석가족이 사는 곳에서 노닐며 일이 없는 선실(禪室)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먼동이 트는 새벽 선실에서 나와 선실 바깥 그늘에 있는 평상에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몸은 지극히 아름답고 얼굴이 의젓한 어느 하늘이 먼동이 트는 새벽에 저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하늘은 얼굴이 위엄스럽고 지극히 아름다웠으며 그 광명은 선실을 두루 비쳤습니다. 그 하늘은 한쪽에 서서 제게 물었습니다.
‘비구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그 하늘에게 대답했습니다.
‘발지라제의 게송도 받지 못했고 그 뜻도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도로 그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그대는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졌습니까?
그 하늘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지만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그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으면서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까?’
그 하늘은 제게 대답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 가란타(迦蘭哆)동산에 계셨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해 발지라제의 게송을 말씀하셨습니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비구여, 저는 이와 같이 발지라제의 게송은 받아 가졌지만 그 뜻은 받아 가지지 못했습니다.’
저는 다시 하늘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있습니까?’
그 하늘은 제게 대답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시는데 그 분은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받아 가지고 계십니다. 비구여, 그대는 가서 세존에게 직접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하십시오. 왜냐 하면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은 의미가 있고 법이 있어 범행의 근본이 되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큰 족성의 아들로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잘 받아 지니고 독송해야 합니다.’
그 하늘은 이렇게 말한 뒤 제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 번 돌고는 거기서 사라졌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노이강기에게 물으셨다.
“너는 그 하늘이 어디서 왔으며, 그 하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그 하늘이 어디서 왔으며 또 그 이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강기여, 그 하늘 남자의 이름은 반나(般那)12)라 하며 33천 군사의 장수이니라.”

그 때 존자 노이강기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그 때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지금이야말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세존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강기여,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여라. 나는 마땅히 너를 위하여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리라.”

존자 노이강기가 아뢰었다.
“예, 분부대로 경청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과거의 색(色)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과거의 각(覺)13)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과거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과거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미래를 원하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미래의 색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미래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미래를 원하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미래를 바라지 않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미래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미래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미래를 바라지 않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현재의 색을 즐겨하여 않아서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현재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되느니라.
강기여,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가? 만일 비구가 현재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현재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서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노이강기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석중선실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36자이다.

167) 아난설경(阿難說經) 제6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밤에 강당에 모여 발지라제(跋地羅帝)14)의 게송과 그 뜻을 설명하였다.

그 때 어떤 비구가 밤이 지나 이른 아침에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 존자 아난이 모든 비구들을 위해 밤에 강당에 모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난 비구에게 가서 ‘아난아,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말하라.”

그 비구는 세존의 분부를 받들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 번 돌고 나서 떠났다. 그는 아난에게 가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존자 아난을 부르십니다.”

존자 아난은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섰다. 세존께서는 물으셨다.
“아난아, 네가 정녕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밤에 강당에 모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설명하였느냐?”

“예, 그렇습니다.”

“아난아, 너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어떻게 설명하였느냐?”

존자 아난이 곧 말씀드렸다.

부디 과거를 생각지 말고
또한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사라졌고
미래는 아직 이르지 않았느니라.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法]
그것 또한 이렇게 생각해야 하나니
어느 것도 견고하지 못함을 기억하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렇게 아느니라.

만일 성인의 행을 실천하는 이라면
어찌 죽음을 근심하리.
나는 결코 그것을 만나지 않으리니
큰 고통과 재앙 여기서 끝나리라.

이와 같이 열심히 힘써 행하며
밤낮으로 쉬지 말고 게으르지 말지니
그러므로 이 발지라제의 게송을
언제나 마땅히 설해야 하느니라.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비구가 과거의 색(色)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과거의 각(覺)ㆍ상(想)ㆍ행(行)ㆍ식(識)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서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게 됩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과거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과거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미래를 원하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미래의 색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미래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미래를 원하게 됩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는 미래를 바라지 않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미래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미래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미래를 바라지 않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현재의 색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현재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여 욕심내고 집착하고 거기에 머문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난아, 어떻게 비구가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가 현재의 색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으며 현재의 각ㆍ상ㆍ행ㆍ식을 즐겨하지 않아서 욕심 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비구는 현재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밤에 강당에 모여 발지라제의 게송과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내 제자는 안목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이치가 있고 법이 있다. 왜냐 하면 내 제자는 스승 앞에서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 이치를 자세하게 설명하였기 때문이니라. 진실로 아난 비구의 설명과 같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와 같이 받아 가져라. 왜냐 하면 내가 이치를 살펴 설명한다고 해도 응당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아난설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772자이다.

168) 의행경(意行經) 제7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에게 설법하리라. 이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이 경의 이름은 분별의행경(分別意行經)이고, 의행(意行)15)대로 태어나는 것을 설한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대로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의행대로 태어나는 것인가? 혹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16)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定]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범신천(梵身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범신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離生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범신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고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범신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意行)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각과 관이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內靜] 한마음이 되어[一心],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제2선(第二禪)17)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황욱천(晃昱天)18)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황욱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제2선에 들어가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定生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황욱천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황욱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意行)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기쁨의 욕심[喜欲]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저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생각[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19)이 있는 제3선(禪)20)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변정천(遍淨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변정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게 되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제3선에 들어가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게 되는데 이 두 가지 ‘기쁨도 없고 즐거움도 없음[無喜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변정천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변정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으며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禪)21)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과실천(果實天)에 태어나게 된다. 과실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즐거움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면서 제4선에 들어가 평정과 기억과 청정의 즐거움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평정[捨]과 기억[念]과 청정의 즐거움[淸淨樂]’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과실천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과실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일체의 빛깔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멸하고 약간의 생각[想]도 기억[念]하지 않는 한량없는 공(空)이 되고 이 한량없는 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定]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량공처천(無量空處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량공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한량없는 공처의 생각[無量空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공처천(空處天)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량공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한량없는 공처를 벗어나 한량없는 식(識)이 되고 이 한량없는 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량식처천(無量識處天)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량식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한량없는 식처의 생각[無量識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식처천(識處天)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량식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한량없는 식처를 벗어나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무소유처천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무소유처의 생각을 누리고 비구는 이 곳에 머물며 무소유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무소유처의 생각[無所有處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도 먼저 이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무소유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일체 무소유처의 생각을 벗어나 비유상비무상이 되고 이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다면 그는 이 선정을 좋아하여 거기에 머무르려고 한 뒤에 반드시 그렇게 되어 거기에 머무르고 그것을 즐기게 되며 목숨을 마치고는 비유상비무상처천에 태어나게 된다. 모든 비유상비무상처천은 그 곳에 태어나 그 곳에 머물며 비유상비무상처의 생각[非有想非無想處想]을 누리고 비구는 이곳에 머물며 비유상비무상처의 생각을 누리는데 이 두 가지 생각[想]은 차별이 없고 두 가지가 똑같은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 비유상비무상처천도 먼저 이 곳에서 선정을 행한 뒤에 그 곳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선정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익히며 이렇게 널리 폈기 때문에 비유상비무상처천에 태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의행대로 태어나느니라.

또 비구는 일체 비유상비무상처를 벗어나 상(想)과 지(知:受)가 멸한 촉(觸)을 성취하여 노닐고 혜(慧)로 모든 번뇌가 사라진 지혜[諸漏盡斷智]를 본다. 저 모든 선정[定] 가운데서 이 선정을 가장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한다. 마치 소로 인해 젖이 있고 젖으로 인해 낙(酪)이 있으며 낙으로 인해 생소(生酥)가 있고 생소로 인해 숙소(熟酥)가 있으며 숙소로 인해 소정(酥精)22)이 있는데, 이 소정을 가장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저 모든 선정 가운데서 이 선정을 가장 제일이요 가장 위대하며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며 가장 묘하다고 말한다. 이 선정을 얻어 이 선정에 의지하고 이 선정에 머무르고 나면 다시는 생ㆍ노ㆍ병ㆍ사의 괴로움을 받지 않나니 이것을 괴로움의 끝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의행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19자이다.

169)구루수무쟁경(拘樓瘦無諍經)23) 제8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바기수(婆奇瘦)24)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낸다. 그 이름은 분별무쟁경(分別無諍經)이니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극히 하천(下賤)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苦行)도 구하지 말라. 이 두 가지 치우침을 여의면 곧 중도(中道)가 되나니, 그것은 눈을 이루고 지혜를 이루어 자재로이 선정[定]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또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다. 재(齊)를 결정하며 결정된 사실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서로 끌어 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며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진 말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따지지 말라. 이것이 분별무쟁경(分別無諍經)이니라.
‘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라’ 함은 하나의 치우친 견해를 말한 것이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또 다른 치우친 견해를 말한 것이다. ‘지극히 하천한 업이고 범부의 행인 탐욕의 즐거움을 구하지 말고, 또한 지극히 괴롭기만 하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자신의 고행을 구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이 두 가지 극단적 견해를 여의면 곧 중도로서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8지성도(支聖道)가 있으니 바른 소견[正見]에서부터 나아가 바른 선정[正定]까지의 여덟 가지이다. ‘이 두 가지 극단적 견해를 여의면 곧 중도로서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했는가?
왜 칭찬하거나 꾸짖고 설법은 하지 않는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ㆍ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인 범부의 행을 짓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苦]이 있고 번민[煩]이 있으며 흥분[熱]이 있고 걱정[憂]과 슬픔[慼]과 삿된 행[邪行]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탐욕이란 무상(無常)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며 닳아 없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는 탐욕은 무상하므로 저들 모두에게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자신의 고행(苦行)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저 사문 범지는 괴로움을 두려워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들이다. 그런데 저 사문 범지가 도리어 이 괴로움을 끌어안는다면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될 것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가령 유결(有結)25)이 다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으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번민이 있고 흥분이 있으며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한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고,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칭찬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유결이 다하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칭찬하는 것이니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꾸짖는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라면 또한 마음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꾸짖는 것이니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몸소 칭찬한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라면 그는 또한 마음도 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몸소 칭찬한다. 이와 같은 경우에는 칭찬하거나 꾸짖고 설법은 하지 않는다.
칭찬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가 있다.

왜 칭찬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ㆍ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인 범부의 행을 짓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탐욕은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으로서 닳아 없어지는 법이다’라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탐욕은 무상한 것이므로 저들 모두에게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고행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서로 호응하는 어떤 이치도 없는 고행을 하면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므로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은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왜냐 하면 ‘만일 유결이 다하지 않으면 그 생명[有]도 다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알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유결(有結)이 다한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만일 유결이 다하면 그 생명[有]도 또한 다한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은 통달하지 못하고 그저 괴로운 법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이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만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면 그는 또한 마음을 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을 통달하지 못하여 오직 괴로운 법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니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다. 그는 이것을 알고는 곧 설법한다. 무슨 까닭인가?‘만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면 그는 또한 마음도 구한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에게는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게 된다’고 저 사람이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사람은 이 법은 통달하지 못하고 오직 괴로운 법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이 없고 걱정과 슬픔이 없으며 바른 행이 있을 뿐이다. 그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곧 설법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 칭찬하거나 꾸짖지 않고 사람을 위해 설법하느니라.
‘칭찬하는 경우도 있고 꾸짖는 경우도 있으며 칭찬도 꾸짖음도 없이 사람을 위해 설법하는 경우도 있다’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제(齊)를 결정하고, 결정된 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ㆍ등창의 근본ㆍ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食)26)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은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ㆍ악을 여읜 즐거움ㆍ마음을 쉰 즐거움ㆍ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食)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ㆍ종기의 근본ㆍ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그가 만일 5욕의 공덕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낸다면 이 즐거움은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며 병의 근본ㆍ종기의 근본ㆍ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어떤 즐거움이 있다. 이는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ㆍ악을 여읜 즐거움ㆍ마음을 쉰 즐거움ㆍ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만일 어떤 비구가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한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게 되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 즐거움은 성인의 즐거움이며 욕심이 없는 즐거움ㆍ악을 여읜 즐거움ㆍ마음이 쉰 즐거움ㆍ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齊)를 결정하고 결정된 줄 안 뒤에는 언제나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서로 끌어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고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고 허망하지는 않으나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며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 중에 어떤 것은 진실하고 허망하지 않으며 이치와 서로 호응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지 않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끝내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고 허망하지는 않지만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으면 그것도 또한 배우기는 하되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 중에서 만일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이치와도 서로 호응하면 그는 때를 알아 바른 지혜와 바른 생각으로 그것을 성취시켜야 한다. 면전에서 칭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로 끌어들여 말하지 말고 또한 면전에서 칭찬하지도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지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절도 없이 말하면 몸이 번거롭고 잊어버리기 쉬우며 마음은 지극히 피로하고 목소리가 쉬기도 하여 지혜로 나아가는 사람이 자재하지 못하게 된다. 절도 있게 말하면 몸이 번거롭지 않고 쉽게 잊어버리지 않으며 마음도 피로하지 않고 목소리도 쉬지 않아서 지혜로 나아가는 사람이 자재하게 되느니라. ‘절도 있게 말하고 절도 없이 말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 함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인가?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혹은 옳다고 하고 혹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혹은 발우라 말하며 혹은 종지라 말하고 혹은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일에 대해서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라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고 또는 그르다고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인가?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은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 이런 저런 지방에서 이런 저런 사람이 이런 저런 것을 두고 혹은 사발이라 말하고 발우라 말하며 종지라 말하고 주발이라 말하며 혹은 그릇이라 말한다고 하자. 이런 경우 만일 이런 저런 것에 대해 그 힘을 따르지 않고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한결같이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와 같은 것은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다고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을 따라 옳거니 그르거니 말하지 말라’ 함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니라.

다툼[諍]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다툼이 있는 법이며 어떤 것이 다툼이 없는 법인가? 만일 탐욕과 서로 호응하고 기쁨ㆍ즐거움과 함께하여 지극히 하천한 업(業)인 범부의 행을 지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만일 지극히 괴롭고 거룩한 행이 아니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않는 고행을 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느니라.
이 두 가지 치우침을 떠나면 곧 중도이다. 그것은 눈이 되고 지혜가 되어 자재로이 선정을 이루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나니 이 법은 다툼이 없다. 왜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없고 번민이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유결(有結)이 다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유결이 다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마음속의 즐거움을 구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즐거움이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라면 그것은 병의 근본ㆍ종기의 근본ㆍ화살이나 가시의 근본이다. 식이 있고 나고 죽음이 있으니 닦아서는 안 되고 익혀서도 안 되며 널리 펴서도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은 닦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즐거움이 성인의 즐거움이라면, 그것은 욕심이 없는 즐거움ㆍ악을 여읜 즐거움ㆍ마음을 쉰 즐거움ㆍ바르게 느낀 즐거움이다. 식이 없고 나고 죽음이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널리 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즐거움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지 못하고 허망하며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못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는 않지만 이치와 서로 호응하지 못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서로 끌어들여 하는 말이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고 이치와 서로 호응한다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절도 없이 말하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다. 절도 있게 말하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 하고 또는 그르다고 하면 이 법은 다툼이 있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있는가? 이 법은 괴로움이 있고 번민이 있으며, 흥분이 있고 걱정과 슬픔과 삿된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다툼이 있다. 그 나라의 풍속과 법에 따라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으면 이 법은 다툼이 없다. 무엇 때문에 이 법은 다툼이 없는가? 이 법은 괴로움도 없고 번민도 없으며 흥분도 없고 걱정과 슬픔도 없으며 바른 행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법은 곧 다툼이 없느니라.
이것을 다투는 법[諍法]이라 하나니, 너희들은 마땅히 다툼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을 알라. 그리고 다툼이 있는 법과 다툼이 없는 법을 안 뒤에는 다툼이 있는 법은 버리고 다툼이 없는 법만 닦아 익혀라. 너희들은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이렇게 큰 족성의 아들 수보리(須菩提)는 다툼이 없는 도로써 뒷날에 법을 법다이 알게 되었다.

법을 진실 그대로 알아
수보리는 게송을 읊었네.
이 행은 진실한 공(空)이니라.
이것을 버리고 푹 쉬어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서진(西晋) 시대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불설존상경(佛說尊上經)』이 있다.
2 명본(明本)에는 이 부분의 가란다(迦蘭哆)가 가란타(迦蘭陁)로 되어 있다.
3 팔리어로는 Samiddhi이다.
4 팔리어본에는 ‘어떤 한 천녀[某一天女, aatara devatā]로 되어 있다.
5 발지라제는 음역어이다. 그 뜻은 ‘밤마다 또는 날마다 한결같이 현명하고 착하게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6 한역에는 수지(受持)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의역하면 ‘기억하다’라는 뜻이 된다. 즉 ‘외우고 계십니까?’ 정도의 뜻이다.
7 팔리본에는 진수(眞髓, sāva)로 되어 있다. 이는 나무의 심[樹心]을 가리킨다.
8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서진(西晋)시대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불설존상경(佛說尊上經)』 이 있다.
9 팔리어로는 Lomasakagiya이다. 석가족의 왕족 출신이다.
10 팔리어로는 Sakka이고 석가족을 말한다.
11 원문은 ‘수지(受持)’이다. 이것을 의역하면 ‘기억하다ㆍ외우다’ 정도의 뜻이다.
12 팔리어로는 Candana이고, 전단(栴檀)으로도 음역한다. 『존상경』에는 반나말난(般那末難)으로 되어 있다.
13 5온(蘊)의 수(受)에 해당한다.
14 발지라제는 음역이고,‘밤마다(날마다) 한결같이 현명하고 착하게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15 팔리본에는 Saṅkhāra로 되어 있다. 팔리어 장경의 영역본 설명에 따르면 Saṅ- khāra는 이 경에서 일반적인 의미와 좀 다르게 쓰였다고 한다. 즉 ‘의도적인 지적작용’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한역(漢譯)에서 Saṅkhāra를 행(行)으로 번역하지 않고 의행(意行)으로 번역한 것은 매우 타당하다. 영역에서는 열망ㆍ포부ㆍ열정 등의 뜻이 있는 aspiration으로 번역하였다.
16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인 초선(初禪)은 각(覺)ㆍ관(觀)ㆍ희(喜)ㆍ낙(樂)ㆍ일경성(一境性) 다섯 가지를 함유하고 있다.
17 정생희락지(定生喜樂地)인 제2선은 내정(內靜)ㆍ희(喜)ㆍ낙(樂)ㆍ일심(一心) 네 가지를 함유하고 있다.
18 황욱천(晃昱天, Ābhassarā deva)은 곧 광음천(光音天)으로 색계 2선(禪)의 제3천이다.
19 고려대장경에 ‘실(室)’로 되어 있는데 『중아함경』 제1권 세 번째 경인 성유경(城喩經)에 의거하여 ‘공(空)’으로 수정하였다.
20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인 제3선은 사(捨)ㆍ염(念)ㆍ낙(樂)ㆍ혜(慧)ㆍ일심(一心) 다섯 가지를 함유하고 있다.
21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인 제4선은 불고불락(不苦不樂)ㆍ사(捨)ㆍ염(念)ㆍ일심(一心) 네 가지를 함유하고 있다.
22 제호(醍醐)라고도 한다.
23 이 경의 참조가 될 경으로는 『장아함경』 제32권 904번째 경이 있다.
24 팔리어로는 Bhaggesu이고 ‘바기국(婆奇國)’의 라는 뜻이다.
25 유결(有結, bhavasaṃyojana)의 유(有)는 생사(生死)의 과보를 말하고 결(結)은 그 과보를 초래하는 번뇌를 말한다.
26 식(食)은 범어로 Ahāra이고 끌어들이다[牽引]ㆍ유지시키다[任持]는 뜻이다. 음식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을 증장시키는 것을 모두 식(食)이라 한다.

중아함경 제44권

승가제바 한역

13. 근본분별품 제2③
170)앵무경(鸚鵡經)1) 제4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새벽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밥을 비실 때에 앵무 마납(鸚鵡摩納)2)의 집으로 가셨다. 이 때 도제(都提)의 아들 앵무 마납은 볼 일이 있어 밖에 나가고 집에 없었다. 그 때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의 집에 있던 흰 개가 큰 평상 위에 올라가서 금쟁반에 담긴 밥을 먹고 있다가 멀리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짖었다. 세존께서는 흰 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래서는 안 된다. 으르렁거리다가 짖기까지 하는구나.”
흰 개는 그 말을 듣고 몹시 성질을 부리다가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으로 가더니 시름에 잠겨 누웠다.

조금 뒤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크게 성질을 부리고는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에 가서 시름에 잠겨 누워 있는 흰 개를 보고 집안사람에게 물었다.
“누가 우리 개를 건드렸기에 개가 몹시 성이 나서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에 가서 시름에 잠겨 누웠는가?”

집안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저희들이 저 흰 개를 건드려 몹시 성나게 하고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에 가서 시름하면서 누워 있게 한 것이 아닙니다. 마납께서는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오늘 사문 구담(瞿曇)께서 밥을 빌러 오셨을 때 저 흰 개가 그 분을 보고 곧 쫓아가며 짖었습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흰 개를 보고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으르렁거리더니 짖기까지 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마납이시여, 그 때문에 저 흰 개가 몹시 성이나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으로 가서 시름하며 누워 있는 것입니다.”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은 이 말을 듣고 화를 발칵 내며 세존을 모함하고 세존을 비방하고 세존을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이렇게 사문 구담을 모함하고 비방하고 떨어뜨리려는 생각으로 곧 사위성을 나가 승림급고독원으로 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이 오는 것을 보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이 오는 것이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은 이제 목숨을 마치면 팔을 굽혔다 펴는 짧은 시간 내에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왜냐 하면 그는 내게 몹시 화를 내었기 때문이다. 어떤 중생이라도 마음으로 크게 화를 내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지옥에 태어나게 된다.”

이 때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이 부처님께 나아가 말했다.
“사문 구담이여, 오늘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빌었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내가 오늘 너의 집에 가서 밥을 빌었다.”

“구담이여, 우리 집 흰 개를 보고 무슨 말을 하였기에 우리 개가 몹시 성이 나서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에 가서 시름하며 누워 있는 겁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나는 오늘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밥을 빌러 이집 저집 다니다가 너의 집에 가서 밥을 빌게 되었다. 그 때 흰 개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짖기에 나는 그 흰 개를 보고 말했다.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는 으르렁거리더니 짖기까지 하는구나.’
그랬더니 그 흰 개가 몹시 성을 내며 평상에서 내려와 나무더미 주변으로 가서 시름하며 누웠다.”

앵무 마납이 세존에게 여쭈었다.
“저 흰 개는 전생에 나와 어떤 관계였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마납아, 부디 내게 묻지 말라. 네가 그것을 들으면 틀림없이 언짢아 할 것이다.”

앵무 마납은 두 번 세 번 세존에게 여쭈었다.
“저 흰 개는 전생에 나와 어떤 관계였습니까?”

세존께서도 또한 두 번 세 번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마납아, 부디 내게 묻지 말라. 네가 그것을 들으면 틀림없이 언짢아 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다시 마납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두 번 세 번 내게 묻기를 그치지 않는구나. 마납아, 마땅히 알라. 저 흰 개는 전생에 네 아버지였고 이름은 도제(都提)3)이었느니라.”

앵무 마납은 이 말을 듣고 몇 배나 더 화가 나서 세존을 모함하고 세존을 비방하고 세존을 떨어뜨리려 하였다. 이렇게 사문 구담을 모함하고 비방하고 떨어뜨리려는 생각으로 세존께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크게 보시를 행하였고 큰 사당을 지었으니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서는 바로 범천에 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인연으로 저 하천한 개로 태어났겠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 도제는 증상만(增上慢) 때문에 저 하천한 개로 태어났느니라.

범지로서 증상만을 가지고서
그 생을 마치면 여섯 곳에 태어나니
닭ㆍ개ㆍ돼지ㆍ승냥이
다섯째는 나귀 여섯째는 지옥이라네.

앵무 마납아, 만일 네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너는 돌아가 흰 개에게 ‘흰 개야, 만일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저 큰 평상 위로 돌아가거라’고 말해 보라. 마납아, 그러면 그 흰 개는 반드시 평상 위로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흰 개야,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다시 저 금쟁반에 담긴 밥을 먹거라’고 말해 보라. 마납아, 그러면 그 흰 개는 반드시 또 금쟁반의 밥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또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내가 모르고 있는 금ㆍ은ㆍ수정 등의 보물을 숨겨 둔 장소를 내게 가르쳐다오’라고 말해 보라. 마납아, 그 흰 개는 반드시 그가 이전에 가졌던 금ㆍ은ㆍ수정 등의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또 그것은 네가 모르던 것이리라.”

이에 앵무 마납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져 외웠으며 세존의 주위를 돌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 흰 개에게 말했다.
“흰 개야,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저 큰 평상 위로 돌아가거라.”
그러자 흰 개는 곧 큰 평상 위로 돌아갔다.
“흰 개야,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저 금쟁반에 담긴 밥을 다시 먹거라.”
그러자 흰 개는 곧 돌아가 금쟁반에 담긴 밥을 먹었다.
“만일 네가 전생에 내 아버지였다면 아버지가 예전에 가졌던 금ㆍ은ㆍ수정 등의 보물이 숨겨진 내가 모르는 장소를 가르쳐다오.”
흰 개는 곧 큰 평상 위에서 내려와 전생에 잠을 자던 방으로 가서 입과 발로 침상의 네 다리 밑을 파헤쳤다. 앵무 마납은 그 곳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다.

이에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은 뜻밖의 보물을 얻고 매우 기뻐하며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는 승림급고독원을 향해 두 번 세 번 큰 소리로 세존을 찬탄하였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진실이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참되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찬탄한 뒤에 사위성을 나서 승림급고독원으로 갔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대중에게 앞뒤로 둘러싸여 설법하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멀리서 앵무 마납이 오는 것을 보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앵무 마납이 오는 것이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앵무 마납은 이제 목숨을 마치면 팔을 굽혔다 펴는 짧은 시간 내에 틀림없이 좋은 곳으로 갈 것이다. 왜냐 하면 그는 나에 대해 지극히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중생이라도 착한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 때 앵무 마납은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어떻더냐, 마납아. 그 흰 개가 내 말대로 하더냐?”

“구담이시여, 진실로 그 말씀과 같았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다시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 주신다면 감히 여쭙겠습니다.”

“네 마음대로 물으라.”

“구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저 중생들은 다 같이 사람 몸을 받고도 지위에 높고 낮음이 있고 얼굴이 묘하고 묘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구담이시여, 제가 살펴보니 단명하는 자와 장수하는 자가 있고 병이 많은 이와 병이 적은 이가 있으며 얼굴이 단정한 자와 얼굴이 단정하지 못한 자가 있고 위덕이 없는 자와 위덕이 있는 자가 있으며 비천한 종족과 존귀한 종족이 있고 재물이 없는 자와 재물이 있는 자가 있으며 나쁜 지혜를 가진 자와 착한 지혜를 가진 자가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저 중생들은 자기가 행한 업으로 말미암아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다. 업을 인연하고 업을 의지하여 업에 따른 장소에서 중생은 그 업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며 묘하고 묘하지 않은 곳에 태어난다.”

앵무 마납이 세존께 여쭈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너무 간략하고 자세하지 않아 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사문 구담이시여, 자세히 말씀하시어 저로 하여금 그 뜻을 알게 하소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마납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를 위해 자세히 분별해서 설명해 주리라.”

“예,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수명이 지극히 짧은가? 어떤 남자나 여자는 생물을 죽인다. 그들은 지극히 흉악하여 피를 마시고 해칠 뜻을 가지며 언제나 모질어 모든 중생과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그 수명이 지극히 짧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짧은 수명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지극히 흉악하여 생물을 죽이고 피를 마셨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報]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수명이 지극히 긴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다. 그들은 칼이나 막대기를 버리고 제 자신이나 남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지며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있어 모든 중생들은 물론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이익을 준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그 수명이 지극히 길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긴 수명을 받나니 그 남자나 여자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었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질병이 많은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중생을 못살게 군다. 그들은 혹은 주먹으로 혹은 막대기나 돌로 혹은 칼이나 몽둥이로 중생을 못살게 군다. 그들은 이 업을 남김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질병이 많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많은 질병을 받나니 그 남자나 여자는 중생을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니라.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질병이 없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중생을 못살게 굴지 않는다. 그들은 주먹으로 막대기 돌이나 칼이나 몽둥이로 중생을 못살게 굴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질병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질병 없음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중생을 못살게 굴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형체가 단정하지 못한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성질이 급하고 번민이 많다. 그들은 조금만 말을 들어도 곧 몹시 화를 내고 증오와 질투로 괴로워하며 여러 사람들과 다툰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형체가 단정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길은 단정하지 못한 형체를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성질이 급하고 번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형체가 단정한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성질이 급하지 않고 번민도 많지 않다. 그들은 부드러운 말을 듣건 추악하고 나쁜 말을 듣건 몹시 화내지 않고 미워하거나 질투하고 걱정하지 않으며 여러 사람들과 다투지도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형체가 단정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단정한 형체를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성질이 급하지 않고 번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위덕(威德)이 없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속으로 질투를 품는다. 그들은 남이 공양과 공경을 받는 것을 보고는 곧 질투를 내며 혹 남이 물건을 가진 것을 보면 곧 내 소유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위덕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위덕 없음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속으로 질투를 품었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큰 위덕이 있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질투하지 않는다. 그들은 남이 공양과 공경을 받는 것을 보아도 질투를 내지 않으며, 혹 남이 물건을 가진 것을 보아도 내 소유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큰 위덕이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위덕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질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비천한 종족으로 태어나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매우 방자하고 거만하다. 그들은 공경해야 할 사람을 공경하지 않고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며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받들어야 할 사람을 받들지 않으며 공양해야 할 사람을 공양하지 않고 길을 비켜 주어야 할 사람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으며 자리를 내주어야 할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합장하고 절하며 문안드려야 할 사람에게 합장하고 절하며 문안드리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비천한 종족으로 태어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비천한 종족에 태어남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와 여자는 매우 방자하고 거만했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존귀한 종족으로 태어나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매우 방자하거나 거만하지 않다. 그들은 공경해야 할 사람을 공경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받들어야 할 사람을 받들며 공양해야 할 사람을 공양하고 길을 비켜 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길을 비켜 주며 자리를 내주어야 할 사람에게는 자리를 내주고 합장하고 절하며 문안드려야 할 사람에게는 합장하고 절하며 문안드린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존귀한 종족으로 태어날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존귀한 종족에 태어남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매우 방자하거나 거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재물이 없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시주가 되지 않고 보시를 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문 범지ㆍ빈궁한 사람ㆍ고독한 사람ㆍ나그네ㆍ거지에게 음식ㆍ의복ㆍ꽃다발ㆍ바르는 향ㆍ집ㆍ평상ㆍ등불ㆍ급사를 보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재물이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많은 재물이 없음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시주가 되지 않고 보시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재물이 많은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시주가 되어 보시한다. 그는 사문 범지ㆍ빈궁한 사람ㆍ고독한 사람ㆍ나그네ㆍ거지에게 음식ㆍ의복ㆍ꽃다발ㆍ바르는 향ㆍ집ㆍ평상ㆍ등불ㆍ급사를 보시한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재물이 많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많은 재물을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시주가 되어 보시를 행하였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나쁜 지혜만 있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저들에게 자주 가서 일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혹 이름과 덕망이 있는 사문 범지가 있더라도 수시로 저들을 찾아가 이렇게 그 뜻을 묻지 않는다.
‘여러 존자시여, 어떤 것이 착한 것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것입니까? 어떤 것이 죄가 되며 어떤 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이 묘하며 어떤 것이 묘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이 백법(白法)이고 어떤 것이 흑법(黑法)입니까? 흑법과 백법은 어디서 생깁니까? 어떤 이유로 현세에 과보를 받고 어떤 이유로 후세에 과보를 받습니까?’
또 설사 묻더라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나쁜 지혜가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나쁜 지혜를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나 여자는 저들에게 자주 가서 일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 무슨 인연으로 어떤 남자나 여자는 착한 지혜가 있는가? 혹 어떤 남자나 여자는 저들에게 자주 가서 일을 묻는다. 그들은 혹 이름과 덕망이 있는 사문 범지가 있으면 수시로 저들에게 자주 찾아가 이렇게 그 뜻을 묻는다.
‘여러 존자시여, 어떤 것이 착한 것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것입니까? 어떤 것이 죄가 되며 어떤 것이 죄가 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이 묘한 것이며 어떤 것이 묘하지 않은 것입니까? 어떤 것이 백법(白法)이고 어떤 것이 흑법(黑法)입니까? 흑법과 백법은 어디서 생깁니까? 어떤 이유로 현재에 과보를 받고 어떤 이유로 후세에 과보를 받습니까?’
이렇게 그 뜻을 물은 뒤에는 그것을 잘 실천한다. 그는 이 업을 빠짐없이 받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날 것이요, 혹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훌륭한 지혜가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길은 훌륭한 지혜를 받나니 이른바 그 남자와 여자는 저들에게 자주 가서 일을 물었기 때문이다. 마납아, 마땅히 알라. 이런 업에는 이런 갚음이 있느니라.

마납아,마땅히 알라. 짧은 수명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수명이 짧고 긴 수명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수명이 길며 병이 많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병이 많고 병이 적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병이 적으며 단정하지 않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단정하지 않고 단정하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단정하며 위덕이 없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위덕이 없고 위덕이 있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위덕이 있으며 비천한 종족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비천한 종족으로 태어나고 존귀한 종족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존귀한 종족으로 태어나며 재물이 없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재물이 없고 재물이 많기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재물이 많으며 나쁜 지혜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나쁜 지혜를 얻고 착한 지혜에 알맞은 업을 지으면 반드시 착한 지혜를 얻는다.
마납아, 이것이 내가 앞에서 말한 ‘저 중생들은 자기가 행한 업을 말미암아 그 업에 따라 과보를 얻는다. 업을 인연하고 업을 의지하여 업에 따른 장소에서 중생은 그 업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며 묘하고 묘하지 않은 곳에 태어난다’고 한 것이니라.”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이해했습니다. 선서시여, 저는 이미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부처님과 법과 비구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우바새로 받아 주소서. 오늘부터 몸이 마치도록 귀의하여 목숨을 다하겠나이다. 세존이시여, 오늘부터 도제의 집에 들어가기를 이 사위국 땅 여느 우바새 집에 들어가시듯 하시어 도제 가문이 늘 이익과 진리를 얻게 하시고 요익과 안온과 즐거움을 얻게 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도제의 아들 앵무 마납과 한량없는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앵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465자이다.

171) 분별대업경(分別大業經) 제10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 가란타(迦蘭哆)동산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삼미제(三彌提)4)도 또한 왕사성에 유행하면서 일이 없는 선실[無事禪屋]5)에 머물고 있었다.

이 때 이교도[異學] 포라타자(哺羅陀子)6)는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존자 삼미제에게로 가서 서로 안부를 묻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물었다.
“현자 삼미제여,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들어 주겠습니까?”

존자 삼미제가 대답했다.
“현자 포라타자여, 묻고 싶으면 편히 물어보십시오. 저는 듣고 나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교도 포라타자가 곧 물었다.
“현자 삼미제여, 저는 사문 구담에게서 직접 들었고, 사문 구담에게서 직접 받았습니다. 곧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은 허망하고, 오직 뜻으로 짓는 업[意業]만이 진실하다. 어떤 선정이 있는데 비구가 그 선정에 들면 아무 감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존자 삼미제가 말했다.
“현자 포라타자여, 그대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세존을 모함하고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자 포라타자여,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일부러 업을 지어 이룬 것이면 나는 〈그 갚음[報]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 혹은 현세에서 받기도 하고 혹은 후세에서 받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일부러 업을 지어 이룬 것이 아니면 나는 〈반드시 그 갚음을 받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교도 포라타자는 존자 삼미제에게 두 번 세 번 말했다.
“현자 삼미제여, 저는 사문 구담에게 직접 들었고 사문 구담에게 직접 받았습니다. 곧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은 허망하고 오직 뜻으로 짓는 업만이 진실하다. 어떤 선정이 있는데 비구가 그 선정에 들면 아무 감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존자 삼미제도 또한 두 번 세 번 말했다.
“현자 포라타자여, 그대는 그런 말마시오. 세존을 모함하고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현자 포라타자여,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일부러 업을 지어 이룬 것이면 나는 〈그 갚음을 받지 않을 수 없으니 혹은 현세에서 받기도 하고 혹은 후세에서 받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일부러 업을 지어 이룬 것이 아니면 나는 〈반드시 그 갚음을 받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이교도 포라타자는 존자 삼미제에게 물었다.
“만일 일부러 업을 지어 이룬 것이면 어떤 갚음을 받습니까?”

존자 삼미제가 대답했다.
“현자 포라타자여, 만일 일부러 업을 지어 이룬 것이면 반드시 괴로운 과보를 받습니다.”

이교도 포라타자가 다시 존자 삼미제에게 물었다.
“현자 삼미제여, 그대는 이 법(法)과 율(律)7)에서 도를 배운 지 얼마나 됩니까?”

“현자 포라타자여, 저는 이 법과 율에서 도를 배운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겨우 3년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교도 포라타자는 곧 이렇게 생각했다.
‘나이 젊은 비구도 오히려 그 스승을 보호할 줄 아는데 하물며 오래 배운 상존인(上尊人)8)이겠는가?’
이에 이교도 포라타자는 존자 삼미제의 말을 듣고 옳다고도 않고 그르다고도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저으면서 떠나갔다.

그 때 존자 대주나(大周那)9)는 존자 삼미제가 낮에 좌선하는 곳[晝行坐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에 존자 대주나는 존자 삼미제와 이교도 포라타자가 서로 토론한 내용을 다 외워 익히고 잘 받아 가진 뒤에 곧 존자 아난의 처소로 찾아가 서로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리고 존자 삼미제와 이교도 포라타자가 토론한 내용을 존자 아난에게 모두 말했다.

존자 아난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현자 주나여, 이 토론이면 가지고 가서 부처님을 뵈옵고 여쭐 만합니다. 현자 주나여, 지금 같이 부처님께 나아가 세존께 이 뜻을 말씀드립시다. 아마도 이것으로 인해 세존에게서 특별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존자 아난은 존자 대주나와 함께 부처님께 나아갔다. 존자 대주나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아난도 또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 때 존자 아난이 말했다.
‘현자 대주나여, 말씀하십시오. 말씀하십시오.’

이에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난아, 주나 비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존자 아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 들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존자 대주나는 존자 삼미제와 이교도 포라타자가 서로 토론한 내용을 부처님께 모두 아뢰었다.

세존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삼미제 비구를 보라.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로구나. 왜냐 하면 이교도 포라타자의 물음이 일정하지 못한데 어리석은 삼미제 비구는 한결같이 대답하였기 때문이다.”

존자 아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삼미제 비구가 이 일로 인해 ‘감수하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을 꾸짖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보라, 아난 비구 너도 또한 미련하구나. 아난아, 이 삼미제 비구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저 이교도 포라타자는 즐거운 느낌[樂覺]ㆍ괴로운 느낌[苦覺]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覺] 세 가지 느낌[三覺]10)을 다 물었다. 아난아, 어리석은 삼미제가 이교도 포라타자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자.
‘현자 포라타자여, 만일 일부러 즐거움을 얻을 만한 업을 지어 이루었다면 마땅히 즐거운 갚음[報]을 받을 것이요, 만일 일부러 괴로움을 얻을 만한 업을 지어 이루었다면 마땅히 괴로운 갚음을 받을 것이며,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얻을 만한 업을 지어 이루었다면 마땅히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갚음을 받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리석은 삼미제가 이교도 포라타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하였다면 이교도 포라타자는 눈으로 감히 어리석은 삼미제를 쳐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그런 일을 물을 수 있었겠느냐? 아난아, 네가 만일 나에게서 분별대업경(分別大業經)을 듣는다면 여래에 대한 믿음이 몇 곱이나 더하고 마음도 편안해져 기쁨을 얻을 것이다.”

이에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善逝)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분별대업경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자세히 분별하여 설명해 주리라.”

존자 아난이 대답했다.
“예.”
모든 비구들도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윈다. 그러나 그는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고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한다. 그리고 그는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했으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윈다. 그리고 그는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였으므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했는데, 그가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났다고 하자.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천안통을 얻고 그 천안통을 성취하여 이것을 본다면 그는 보고 나서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몸으로 짓는 나쁜 행도 없고 또한 몸으로 짓는 나쁜 행의 갚음[報]도 없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행도 없고 또한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행의 갚음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도 모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바른 소견이고 이와 다르게 본다면 그것은 삿된 지혜이다.’11)
이처럼 그는 본 바와 아는 바를 맘껏 집착하여 한결같이 주장할 것이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하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였는데 그가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고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났다고 하자.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천안통(天眼通)을 얻고 천안통을 성취하여 이것을 본다면 그는 보고 나서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몸으로 짓는 묘한 행도 없고, 또한 몸으로 짓는 묘한 행의 갚음도 없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도 없고 또한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의 갚음도 없다. 왜냐 하면 나는 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고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살생ㆍ도둑질ㆍ 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는 무리가 있다면,그들도 모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바른 소견이고, 이와 다르게 본다면 그것은 삿된 지혜이다.’
이처럼 그는 본 바와 아는 바를 맘껏 집착하여 한결같이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하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그가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났다고 하자.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천안통을 얻고 그 천안통을 성취하여 이것을 본다면 그는 보고 나서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몸으로 짓는 악한 행도 있고, 또한 몸으로 짓는 악한 행의 갚음도 있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도 있고 또한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행의 갚음도 있다. 왜냐 하면 나는 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도 모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바른 소견이고 이와 다르게 본다면 그것은 삿된 지혜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본 바와 아는 바를 맘껏 집착하여 한결같이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그가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났다고 하자.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천안통을 얻고 천안통을 성취하여 이것을 본다면 그는 보고 나서 곧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몸으로 짓는 묘한 행도 있고 또한 몸으로 짓는 묘한 행의 갚음도 있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도 있고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의 갚음도 있다. 왜냐 하면 나는 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그가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일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도 모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바른 소견이고 이와 다르게 본다면 그것은 삿된 지혜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이 본 바와 아는 바를 맘껏 집착하여 한결같이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하다.’

아난아,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천안통을 얻고 그 천안통을 성취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몸으로 짓는 악한 행도 없고 몸으로 짓는 악한 행의 갚음도 없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도 없고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의 갚음도 없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했는데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만일 이처럼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도 또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이렇게 보는 것은 바른 소견이고 이와 다르게 보는 것은 삿된 지혜이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본 바와 아는 바를 맘껏 집착하여 한결같이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자.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하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아난아, 여래는 그 사람과 다르게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천안통을 얻고 천안통을 성취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몸으로 짓는 묘한 행도 없고 또한 몸으로 짓는 묘한 행의 갚음도 없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도 없고, 또한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의 갚음도 없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했는데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할 것이다.

만일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만일 이처럼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도 또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이렇게 보는 것은 바른 소견이고 이와 다르게 보는 것은 삿된 지혜이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본 바와 아는 바를 맘껏 집착하여 한결같이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자.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하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아난아, 여래는 그 사람과 다르게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천안통을 얻고 천안통을 성취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몸으로 짓는 악한 행도 있고 또한 몸으로 짓는 악한 행의 갚음도 있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도 있고 또한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의 갚음도 있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할 것이다. 만일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만일 이처럼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도 또한 모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날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이렇게 보는 것은 바른 소견이고 이와 다르게 보는 것은 삿된 지혜이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본 바와 아는 바를 맘껏 집착하여 한결같이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자.
‘이것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하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아난아, 여래는 그 사람과 다르게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그 중에서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천안통을 얻고 천안통을 성취하여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몸으로 짓는 묘한 행이 있고, 또한 몸으로 짓는 묘한 행의 갚음도 있으며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도 있고 또한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의 갚음도 있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할 것이다. 만일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만일 이처럼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는 무리가 있다면 그들도 또한 모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날 것이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이렇게 보는 것은 바른 소견이고 이와 다르게 보는 것은 삿된 지혜이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본 바와 아는 바를 맘껏 집착하여 한결같이 이렇게 주장한다고 하자.
‘이것만이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하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아난아, 여래는 그 사람과 다르게 알고 있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함으로써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했는데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다. 그가 만일 과거에 착하지 않은 업을 지은 자라면 그는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한 갚음[報]을 현재에서 모두 받고 나서 그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나중에 그 갚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 업을 인연하지 않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또 과거에 착한 업을 지어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였고 좋은 곳에 태어나는 갚음을 아직 다 받지 못한 경우이다.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또 죽을 때에 착한 마음이 생겨 심소법(心所法)이 바른 견해와 서로 호응한 경우이다.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이다. 아난아, 여래는 그 사람이 이러하다는 것을 아느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였더라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다. 그가 만일 과거에 착한 업을 지은 자라면 그는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한 갚음[報]을 현재에 모두 받고 나서 그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또 나중에 그 갚음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 업을 인연하지 않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과거에 착하지 않은 업을 지어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였고 아직 그 지옥의 갚음을 다 받지 못한 경우이다.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또 죽을 때 착하지 않은 마음이 생겨 심소법(心所法)이 삿된 소견과 서로 호응한 경우이다.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이다. 아난아, 여래는 그 사람이 이러하다는 것을 아느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의지 못했으므로 그는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그는 곧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또 과거에 착하지 못한 업을 지어 악을 여의지 못하고 몸을 보호하지 못했고 아직 지옥의 갚음을 다 받지 못한 경우이다.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또 죽을 때에 착하지 않은 마음이 생겨 심소법이 삿된 소견과 서로 호응한 경우이다.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지옥과 같은 나쁜 곳에 태어난 것이다. 아난아, 여래는 그 사람이 이러하다는 것을 아느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살생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여읨으로써 그는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그는 곧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또 과거에 착한 업을 지어 악을 여의고 몸을 보호하였고 아직 그 갚음을 다 받지 못한 경우이다.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이다. 혹은 또 죽을 때에 착한 마음이 생겨 심소법이 바른 소견과 서로 호응한 경우이다.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하늘과 같은 좋은 곳에 태어난 것이다. 아난아, 여래는 그 사람이 이러하다는 것을 아느니라.

또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 혹 어떤 사람은 없으면서 있는 것 같고 혹은 있으면서 없는 것 같으며 혹은 없어서 없는 것 같고 혹은 있어서 있는 것 같다. 아난아, 마치 네 종류의 사과와 같으니라. 혹 어떤 사과는 익지 않았는데 익은 것과 같고 혹은 익었는데 익지 않은 것 같으며 혹은 익지 않아서 익지 않은 것 같고 혹은 익어서 익은 것 같다. 이와 같이 아난아, 네 종류의 사과로 사람을 비유하면 혹 어떤 사람은 없으면서 있는 것 같고 혹은 있으면서 없는 것 같고 혹은 없어서 없는 것 같고 혹은 있어서 있는 것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송(宋) 시대 천식재(天息災)가 한역한 『분별선악보응경(分別善惡報應經)』ㆍ실역(失譯) 『불설도조경(佛說兜調經)』ㆍ유송(劉宋) 시대 구나발타라가 한역한 『불설앵무경(佛說鸚鵡經)』ㆍ수(隋) 시대 구담범지가 한역한 『불위수가장자설업보차별경(佛爲首迦長者說業報差別經)』ㆍ송시대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정의우바새소문경(佛說淨意優婆塞所問經)』이 있다.
2 앵무는 이름이고 마납(摩納, mānava)은 바라문 동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앵무는 바라문 도제(都提, Todeyya)의 아들이다.
3 코살라국에 살았던 유명한 바라문이다.
4 삼미제(三彌提, Samiddhi)는 삼밀리제(三蜜離提)라고도 하며 선각(善覺)으로 한역한다.
5 팔리어로는 araññakuṭikā이고 한적한 숲에 있는 방사를 말한다.
6 팔리어로는 Potaliputta이다.
7 법(法, dhamma)과 율(律, vinaya)은 불법의 총칭이다.
8 팔리본에는 장로비구(長老比丘, there bhikkhu)로 되어 있다.
9 대주나(大周那, Mahācunda)는 주나(周那)ㆍ존나(尊那)라고도 한다. 마가다국 바라문 출신으로 사리불의 제자이다.
10 3수(受)라고도 한다.
11 고려대장경에는 ‘피지취야(彼智趣耶)’로 되어 있다. 그러나 팔리본을 살펴보면 ‘그들은 삿된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또 적사장(磧砂藏)에도 ‘피지취사(彼智趣邪)’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적사장에 의거하여 사(邪)자로 고쳐 번역한다. 뒤에서도 모두 ‘피지취사(彼智趣耶)’를 ‘피지취사(彼智趣邪)’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중아함경 제45권

승가제바 한역

14. 심품(心品) 제3①
이 「심품」에는 모두 열 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심경(心經)ㆍ부미경(浮彌經)과 두 개의 수법경(受法經)과
행선경(行禪經)ㆍ설경(說經)ㆍ엽사경(獵師經)과
오지물주경(五支物主經)과
구담미경(瞿曇彌經)ㆍ다계경(多界經)이다.

172) 심경(心經)1) 제1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비구가 혼자 조용한 곳에서 편안하게 앉아 깊이 사색하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무엇이 이 세상을 이끌고 가는가? 무엇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는가? 무엇이 자재(自在)를 일으키는가?’
그 때 그 비구는 해질 무렵에 선정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혼자 조용한 곳에서 좌선하며 깊이 사색하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이 세상을 이끌고 가는가? 무엇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는가? 무엇이 자재(自在)2)를 일으키는가?’”

세존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야. 좋은 도가 있어야 좋은 관찰이 있고 지극히 묘한 변재가 있으며 좋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비구야, 너는 ‘무엇이 이 세상을 이끌고 가는가. 무엇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는가. 무엇이 자재를 일으키는가’ 하고 그렇게 물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마음[意]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마음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며 마음이 자재를 일으킨다. 비구여, 그것이 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그것이 탐욕에 물들어 집착하며 그것이 자재를 일으킨다. 비구야,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마음으로 세상을 이끌 가지 않고 마음이 물들어 집착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자재하지 않는다. 비구야,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는 마음의 자재함을 따르지 않고 마음이 많이 들은 거룩한 제자를 따르느니라.”

비구가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비구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많이 들은 비구[多聞比丘], 많이 들은 비구라고들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를 많이 들은 비구라 하며, 많이 들은 비구를 어떻게 시설(施設)하십니까?”

세존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야. 이른바 좋은 도가 있어야 좋은 관찰이 있고 지극히 묘한 변재가 있으며 좋은 생각이 있는 법이다. 비구야, 너는 ‘세존이시여, 많이 들은 비구, 많이 들은 비구라고들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를 많이 들은 비구라 하며, 많이 들은 비구를 어떻게 시설하십니까?’ 하고 그렇게 물었는가?”

비구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내가 설한 것은 매우 많다. 이른바 정경(正經)ㆍ가영(歌詠)ㆍ기설(記說)ㆍ게타(偈他)ㆍ인연(因緣)ㆍ찬록(撰錄)ㆍ본기(本起)ㆍ차설(此說)ㆍ생처(生處)ㆍ광해(廣解)ㆍ미증유법(未曾有法) 및 설의(說義)가 그것이니라. 비구야, 만일 어떤 족성(族姓)의 아들이 내가 말한 사구게(四句偈)에 대해 그 뜻을 알고 그 법을 알아서 법으로 나아가고 법으로 향하며 범행(梵行)을 따라 나아간다면 비구야, 많이 들은 비구를 말하는 데 있어서 이보다 더 뛰어난 것은 없을 것이니라. 비구야, 이와 같은 자를 많이 들은 비구라고 하며 여래는 많이 들은 비구를 이렇게 시설하느니라.”

비구가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비구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多聞比丘明達智慧],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고들 말합니다. 세존이여, 어떤 자를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 하며,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를 어떻게 시설하십니까?”

세존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야, 이른바 좋은 도가 있어야 좋은 관찰이 있고 지극히 묘한 변재가 있으며 좋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비구야, 너는 ‘세존이시여,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를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 하며,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를 어떻게 시설하십니까?’ 하고 그렇게 물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야, 만일 비구가 괴로움[苦]에 대해 듣고 다시 지혜로써 괴로움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본다면 괴로움의 발생[苦集]과 괴로움의 소멸[苦滅]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해 듣고 다시 지혜로써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바르게 본다면, 비구야, 이런 자를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라고 하며, 여래는 많이 들어 밝은 지혜가 있는 비구를 이와 같이 시설하느니라.”

비구가 여쭈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비구가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영리하고 큰 지혜가 있는 총명한 비구[聰明比丘黠慧廣慧], 영리하고 큰 지혜가 있는 총명한 비구라고들 말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자를 영리하고 큰 지혜가 있는 총명한 비구라 하며 영리하고 큰 지혜가 있는 총명한 비구를 어떻게 시설하십니까?”

세존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야, 이른바 좋은 도가 있어야 좋은 관찰이 있고 지극히 묘한 변재가 있으며 좋은 생각이 있는 것이다. 비구야, 너는 ‘세존이시여, 어떤 자를 영리하고 큰 지혜가 있는 총명한 비구라 하며, 영리하고 큰 지혜가 있는 비구를 어떻게 시설하십니까?’ 하고 그렇게 물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가 자기 자신을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남을 해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또한 자기와 남을 한꺼번에 해칠 생각을 하지 않고 비구가 다만 자기를 요익하게 하고 남을 요익하게 하며 또한 많은 사람을 요익하게 하기를 생각하며 세상을 불쌍히 여겨 하늘과 사람을 위해 이치와 요익을 구한다면 비구야, 이런 자를 영리하고 큰 지혜가 있는 총명한 비구라 하며 여래는 영리하고 큰 지혜가 있는 총명한 비구를 이렇게 시설하느니라.”

비구가 아뢰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그 비구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지고 잘 외워 익힌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부처님을 세 번 돌고 나서 돌아갔다.

그 때 그 비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멀리 떠나 혼자 머물러 있으면서 게으른 마음이 없이 꾸준히 힘써 수행하였다. 그는 멀리 떠나 혼자 살면서 게으른 마음이 없이 꾸준히 힘써 수행한 뒤에는 큰 종족의 아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가 현재 세상에서 오직 위없는 범행을 이루어 마쳤다. 그래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었다. 그리하여 생(生)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다. 그리고 그 존자는 법을 알아 결국 아라하가 되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054자이다.

173) 부미경(浮彌經) 제2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유행하실 적에 죽림 가란타(迦蘭哆)동산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부미(浮彌)3)도 또한 왕사성에 있는 일이 없는 선실[無事禪室]4)에 있었다.
이때에 존자 부미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왕사성으로 들어가 밥을 빌려고 하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왕사성으로 들어가 밥을 비는 것은 우선 중단하고 나는 지금 왕자 기바선나동자(耆婆先那童子)5)의 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그리하여 존자 부미는 곧 왕자 기바선나 동자의 집으로 갔다.

왕자 기바선나 동자는 멀리서 존자 부미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고 합장하고 존자 부미를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존자 부미시여.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존자 부미시여. 이 평상에 앉으십시오.”
존자 부미가 자리에 앉았다.

왕자 기바선나 동자는 존자 부미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서 아뢰었다.
“존자 부미시여, 제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들어 주시겠습니까?”

존자 부미가 대답하였다.
“왕동자(王童子)여, 묻고 싶으면 물으십시오. 제가 듣고 나서 마땅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왕동자는 곧 존자 부미에게 물었다.
“혹 어떤 사문 범지가 제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동자여, 어떤 사람이 원(願)을 세우고 바른 범행(梵行)을 행하면 그는 곧 과(果)6)를 얻습니다. 혹은 원이 없거나 혹은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혹은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라 하더라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결과를 얻습니다.’
존자 부미의 스승님께서는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며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존자 부미가 말하였다.
“왕동자여, 저는 세존에게서 직접 듣지 못하였고 또 모든 범행자에게서도 직접 듣지 못하였습니다. 왕동자여, 세존께서도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혹 어떤 사람이 원을 세우고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틀림없이 과(果)를 얻는다. 혹은 원이 없거나 혹은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혹은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더라도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는다.’”

왕동자가 아뢰었다.
“만일 존자 부미의 스승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 분은 이 세상의 하늘ㆍ악마ㆍ범(梵)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그 가운데 제일 높으신 분입니다. 존자 부미시여, 여기서 공양을 받으소서.”
존자 부미는 잠자코 그 청을 받아 들였다. 왕동자는 존자 부미가 잠자코 청을 허락한 것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몸소 손 씻을 물을 돌리고 매우 깨끗하고 맛있는 여러 가지 음식을 직접 집어 드리며 맘껏 배불리 드시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그릇을 거두고 다시 손 씻을 물을 돌린 뒤에 조그만 평상을 가지고 와서 따로 앉아 설법을 들었다. 존자 부미는 그를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하였다.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여 간절히 우러르는 마음을 내게 하고 성취하여 기뻐하게 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왕동자와 함께 의논한 것을 모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말씀하셨다.
“부미야, 왜 왕동자를 위하여 네 가지 비유를 말하지 않았느냐?”

존자 부미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네 가지 비유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삿된 소견[邪見]이 있고 삿된 소견의 선정[邪見定]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우고 삿된 범행을 행하지만 결코 과(果)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삿된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삿된 방법 즉 도(道)가 없는 것으로 기도 하거나 과(果)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소의 뿔에서 우유를 얻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는 결코 우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 바라지 않거나 바라기도 하고 바라지 않기도 하거나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우유를 얻으려는 사람이 쇠뿔에서 젖을 짜내려고 한다면 그는 결코 우유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잘못된 방법 즉 쇠뿔을 짜서 우유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삿된 소견과 삿된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삿된 범행을 행하더라도 결코 그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삿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그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삿된 방법 즉 도가 없는 것으로 결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바른 소견[正見]과 바른 소견의 선정[正見定]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바른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도가 있는 것으로 과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우유를 얻기 위하여 소를 배불리 잘 먹이고 소의 젖을 짜는 것과 같아서 그는 반드시 우유를 얻을 것이다. 바라지 않거나 바라기도 하고 바라지 않기도 하거나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우유를 얻으려는 사람이 소를 배불리 잘 먹이고 소의 젖을 짠다면 그는 반드시 우유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소의 젖을 짜서 우유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바른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도가 있는 것으로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삿된 소견이 있고 삿된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삿된 범행을 행하지만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삿된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삿된 방법 즉 도가 없는 것으로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소(酥)를 얻으려고 하면서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놓고 두드리는 것과 같으니 그는 결코 소를 얻지 못할 것이다. 바라지 않거나 바라기도 하고 바라지 않기도 하거나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소(酥)를 얻으려는 사람이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놓고 두드린다면 그는 결코 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잘못된 방법 즉 물을 두드려서 소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삿된 소견과 삿된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삿된 범행을 행하더라도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건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삿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삿된 방법 즉 도가 없는 것으로 결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바른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도가 있는 것을 가지고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마치 어떤 사람이 소(酥)를 얻으려고 그릇에 낙(酪)을 가득 채우고 두드리는 것과 같다. 그는 반드시 소를 얻을 것이다. 바라지 않거나 바라기도 하고 바라지 않기도 하거나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소를 얻으려는 사람이 그릇에 낙을 가득 채우고 두드린다면 그는 반드시 소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낙(酪)을 두드려서 소(酥)를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바른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도가 있는 것으로 결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삿된 소견과 삿된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삿된 범행을 행하지만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삿된 범행을 행하면 그는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삿된 방법 즉 도가 없는 것으로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기름을 얻으려고 하면서 기름 짜는 기구에 모래를 가득 담아 냉수에 담갔다가 꺼내 눌러 짜는 것과 같다. 그는 결코 기름을 얻지 못할 것이다. 바라지 않거나 바라기도 하고 바라지 않기도 하거나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기름을 얻으려는 사람이 기름 짜는 기구에 모래를 담아 냉수에 담갔다가 꺼내 눌러 짠다면 결코 기름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잘못된 방법 즉 모래를 짜서 기름을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삿된 소견과 삿된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삿된 범행을 행하지만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삿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삿된 방법 즉 도가 없는 것으로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바른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도가 있는 것으로 결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기름을 얻기 위해서 기름 짜는 기구에 깨를 가득 담아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그것을 꺼내 눌러 짜는 것과 같다. 그는 반드시 기름을 얻을 것이다. 바라지 않거나 바라기도 하고 바라지 않기도 하거나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기름을 얻으려는 사람이 기름 짜는 기구에 깨를 담아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꺼내 눌러 짠다면 그는 반드시 기름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깨를 짜서 기름을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바른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도가 있는 것으로 결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삿된 소견과 삿된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삿된 범행을 행하지만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삿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삿된 방법 즉 도가 없는 것으로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불을 얻으려고 하면서 젖은 나무로 불 섶을 삼고 젖은 비비개로 비비는 것과 같다. 그는 결코 불을 얻지 못할 것이다. 바라지 않거나 바라기도 하고 바라지 않기도 하거나 바라는 것도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불을 얻으려는 사람이 젖은 나무로 불 섶을 삼고 젖은 비비개로 비비다면 결코 불을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잘못된 방법 즉 젖은 나무에 불 비비개를 가지고 비벼 불을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삿된 소견과 삿된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삿된 범행을 행하지만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삿된 범행을 행하면 결코 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삿된 방법 즉 도가 없는 것으로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바른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도가 있는 것으로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이는 마치 어떤 사람이 불을 얻으려고 할 때 마른 나무로 불 섶을 삼고 마른 비비개로 비비는 것과 같다. 그는 반드시 불을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불을 얻으려는 사람이 마른 나무로 불 섶을 삼고 마른 비비개로 비빈다면 그는 반드시 불을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마른 나무를 비벼서 불을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미야,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바른 소견과 바른 소견의 선정이 있다면 그는 원을 세워 바른 범행을 행하면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원이 없거나 원이 있기도 하고 원이 없기도 하거나 원이 있는 것도 아니요 원이 없는 것도 아니거나 간에 바른 범행을 행하면 그는 반드시 과를 얻을 것이다. 왜냐 하면 바른 방법 즉 도가 있는 것으로 과를 구했기 때문이다.

부미야, 만일 네가 왕동자를 위해 이 네 가지 비유를 들어 말했더라면 왕동자는 이것을 듣고 분명 매우 기뻐하며 한평생 너에게 의복ㆍ음식ㆍ침구ㆍ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공양했을 것이니라.”

존자 부미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저는 이 네 가지 비유를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세존에게서 처음 듣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부미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부미경의 경문 글자 수는 2,083자이다.

174) 수법경(受法經) 제3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7)에 계셨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진실로 네 가지 수법(受法)8)이 있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苦報]를 받고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樂報]를 받으며 혹 어떤 수법은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고 혹 어떤 수법은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어떤 것이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혹 어떤 사문 범지는 아름답게 꾸민 여자와 즐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 사문과 범지는 애욕에서 미래에 어떠한 두려움이 있고 어떠한 재환(災患)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기를 주장하는가?’
그러면서 아름답게 꾸민 여자 몸에서 즐거운 촉감을 느끼며 그 여자와 서로 즐기고 유희한다. 그는 이 법을 빠짐없이 받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그제야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과 범지는 애욕에서 이 미래의 두려움과 이 재환을 보았으므로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으라고 시설하였구나. 우리는 애욕을 시설하고 애욕을 다투고 애욕을 인연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극심한 고통과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마치 여름날 몹시 뜨거운 한낮에 등나무나 칡의 열매가 햇볕에 바짝 말라 씨가 퉁겨져 사라(娑羅)나무 밑에 떨어지는 것과 같다. 그 때 그 사라나무의 신이 그 때문에 두려워하게 되면 그 나무신의 인근 종자촌(種子村)이나 신촌(神村)에 사는 친척과 친구들 즉 온갖 곡식과 약초와 나무의 신들은 그 종자에서 미래에 두려움과 재환이 있을 것을 보고 곧 그 나무신을 찾아가 위로하여 말한다.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이 종자는 혹은 사슴에게 먹히기도 하고 공작에게 먹히기도 하며 혹은 바람에 날려 가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기도 하며 혹은 들불에 타기도 하고 혹은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나무신이여, 너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 날려가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불에 타지도 않고 또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지도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았고 구멍이 뚫리지도 않았으며 쪼개지지도 않았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하지도 않았으므로 큰비를 만나 젖게 되면 곧 빠른 속도로 자라날 것이다.’

그 나무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변방의 종자촌이나 신촌에 사는 친척과 친구들, 즉 온갖 곡식과 약초와 나무의 신들은 종자에서 미래의 어떤 두려움과 어떤 재환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을까?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이 종자는 혹 사슴에게 먹히기도 하고 혹은 공작에게 먹히기도 하며 혹은 바람에 날려가기도 하고 혹은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기도 하며 혹은 들불에 타기도 하고 혹은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나무신이여, 너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 날려가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불에 타지도 않고 또한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지도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았고 구멍 나지도 않았으며 또한 쪼개지지도 않았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하지도 않았으므로 큰비를 만나 젖게 되면 곧 빠른 속도로 자라날 것이다.〉’
그 씨앗에서 싹이 터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가 생기고 부드러운 마디가 생겨 몸에 부딪치면 사라나무는 기뻐한다. 이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가 생기고 부드러운 마디를 이루어 몸에 부딪치면 사라나무는 기뻐하며 즐거운 촉감을 느낀다.

그러나 덩굴은 나무에 의지하여 큰 가지와 마디와 잎사귀를 이루어 그 나무를 둘러싸고 그 위를 뒤덮는다. 온통 뒤덮이고 나면 그때서야 그 나무신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인근 종자촌이나 신촌에 사는 친척과 친구들 즉 온갖 곡식과 약초와 나무의 신들은 종자에서 이 미래의 두려움과 이 재환을 보았기 때문에 나를 찾아와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었구나.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나무신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이 종자는 혹 사슴에게 먹히기도 하고, 혹은 공작에게 먹히기도 하며. 혹은 바람에 날려가기도 하고 혹은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기도 하며 혹은 들불에 타기도 하고 혹은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나무신이여, 너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종자가 사슴에게 먹히지도 않고 공작에게도 먹히지도 않으며 바람에도 날려가지도 않고 마을 사람들이 지른 불에 타지도 않으며 들불에도 타지도 않고 또 부서져서 종자노릇을 못하게 되지도 않는다고 하자. 이 종자는 깨어지지도 않았고 구멍이 나지도 않았으며 또한 쪼개지지도 않았고 바람이나 비나 햇볕에 상해를 입지도 않았다. 따라서 큰비를 맞아 촉촉해지면 곧 빠른 속도로 싹이 자라날 것이다.〉
나는 종자를 말미암고 종자를 반연하였기 때문에 이 극심한 고통과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구나.’

이와 같이 어떤 사문 범지는 아름답게 장식한 여자와 서로 즐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저 사문과 범지들은 애욕에서 미래의 어떤 두려움과 어떤 재환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욕심을 끊고 욕심을 끊으라고 시설(施設)하는가?’
그들은 아름답게 치장한 여자 몸에서 기분 좋은 촉감을 느껴 그 여자와 서로 즐기고 유희한다. 그들은 이 법을 빠짐없이 받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그제야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문과 범지들은 애욕에서 이 미래의 두려움과 재환을 보았기 때문에 애욕을 끊고 애욕을 끊으라고 시설하였구나. 우리는 애욕을 말미암고 애욕을 다투고 애욕을 인연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극심한 고통과 매우 심한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이상의 법을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혹 어떤 사람에게는 타고난 무겁고 탁한 탐욕ㆍ무겁고 탁한 성냄ㆍ무겁고 탁한 어리석음이 있다. 그는 자주 욕심을 따라 괴로움을 받고 걱정하고 슬퍼하며 자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따라 괴로움을 받고 걱정하고 슬퍼한다. 그는 그 괴로움과 걱정 때문에 한평생 범행을 닦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기까지 한다. 그는 이 법을 받아 완전히 이루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하늘에 태어난다. 이것을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어떤 사문 범지는 옷을 입지 않고 맨몸이 되어 혹은 손으로 옷을 삼기도 하고 혹은 나뭇잎으로 옷을 삼기도 하며 혹은 구슬로 옷을 삼기도 한다. 혹은 병으로 물을 뜨지 않기도 하고 혹은 두레박으로 물을 뜨지 않기도 한다. 칼이나 몽둥이를 사용해서 빼앗은 음식은 먹지 않고 남을 속여서 얻은 음식도 먹지 않는다. 직접 찾아가지도 않고 소식을 보내지도 않는다. 존자를 오게 하지도 않고 존자를 좋게 여기지도 않으며 존자를 머물게 하지도 않는다. 만일 둘이서 음식을 먹으면 그 가운데 끼어서 먹지 않고 아이 밴 여자가 있는 집 음식은 먹지 않으며 개를 기르는 집 음식은 먹지 않고 똥파리가 날아다니는 집 음식은 먹지 않는다. 생선을 먹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고 더러운 물도 마시지 않으며 혹은 물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마시지 않는 행을 배운다.

혹은 한 입만 먹고 그 한 입으로 만족하기도 하고, 혹은 2ㆍ3ㆍ4 내지 일곱 입을 먹고 일곱 입으로 만족하기도 한다. 혹은 한 집에서 얻은 음식을 먹고 한 번 얻은 것으로 만족하기도 하며, 혹은 2ㆍ3ㆍ4 내지 일곱 집에서 음식을 얻고 일곱 집에서 얻은 음식으로 만족기도 한다. 혹은 하루에 한 끼를 먹고 한 끼를 먹는 것으로 만족기도 하며, 혹은 2ㆍ3ㆍ4ㆍ5ㆍ6ㆍ7일이나 반 달, 한 달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로 만족하기도 한다. 혹은 들판의 채소를 먹기도 하고 혹은 피[稞子]를 먹기도 하며 혹은 메기장을 먹기도 하고 혹은 보리 기울을 먹기도 하며 혹은 두두라(頭頭邏)9)로 지은 밥을 먹기도 하고 혹은 거친 밥을 먹기도 한다. 혹은 일 없는 곳으로 가서 일 없이 지내기도 하며 혹은 나무뿌리를 먹기도 하고 혹은 나무열매를 먹기도 하며 혹은 저절로 떨어진 과일을 먹기도 한다.

혹은 여러 조각의 천을 이어 만든 옷을 입기도 하고 혹은 털옷을 입기도 하며 혹은 두사(頭舍)옷을 입기도 하고 혹은 털두사옷을 입기도 하며 혹은 통가죽 옷을 입기도 하고 혹은 구멍 난 가죽옷을 입기도 하며 혹은 완전히 너덜거리는 가죽옷을 입기도 한다.
혹은 머리를 흩트리기도 하고 혹은 머리를 땋기도 하며 혹은 머리를 흐트러지게 땋기도 하며 혹은 머리를 깎기도 하고 혹은 수염을 깎기도 하고 혹은 수염과 머리를 깎기도 하며 혹은 머리를 뽑기도 하고 혹은 수염을 뽑기도 하며 혹은 수염과 머리를 뽑기도 한다.
혹은 섰기만 하기도 하고 혹은 앉기만 하기도 하며 혹은 앉은걸음을 배기도 한다. 혹은 가시덤불에 누워 가시덤불로 평상을 삼기도 하고 풀 위에 누워 풀로 평상을 삼기도 한다.
혹은 물을 섬겨 밤낮 손으로 물을 긷기도 하고 혹은 불을 섬겨 밤이 새도록 불을 피우기도 하며 혹은 해와 달을 섬겨 높고 큰 신이라 하며 그를 향해 합장기도 한다.
이러한 무리들은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고 번거롭고 갑갑한 행을 배운다. 그들은 이 법을 받아 완성하고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이런 것들을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어떤 사람은 애초부터 무겁고 탁한 탐욕ㆍ무겁고 탁한 성냄ㆍ무겁고 탁한 어리석음이 없다. 그는 자주 욕심을 따르지 않아 괴로움과 걱정과 슬픔을 받지 않으며 자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을 따르지 않아 괴로움과 걱정과 슬픔을 받지 않는다. 그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한평생 범행을 닦아 그 마음이 즐겁고 기쁘다. 그는 이 법을 받아 완전히 이룬 뒤에 다섯 가지 하분결(下分結)이 다하고 저곳에 화생하여 반열반(般涅槃)에 들어가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을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한다. 따라서 세간에는 진실로 이 네 가지 수법(受法)이 있다고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수법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83자이다.

175)수법경(受法經)10) 제4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탐욕을 부리고 이렇게 희망하며 이렇게 애착하고 이렇게 소원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하게 하고 기쁘고 사랑스럽고 옳은 법만 생겨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탐욕을 부리고 이렇게 희망하며 이렇게 애착하고 이렇게 원하며 이렇게 생각하지만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만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멸한다. 이것은 어리석은 법이기 때문이다.
내 법은 매우 심오하여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우며 통달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내 법은 매우 심오하여 보기도 어렵고 깨닫기도 어려우며 통달하기도 어렵지만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멸하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만 생기게 한다. 이것은 어리석지 않은 법이기 때문이니라.

세상에는 진실로 네 가지 수법(受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고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혹 어떤 수법은 현재에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고 혹 어떤 수법은 현재에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어떤 것이 현재에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혹 어떤 사람은 스스로 좋아하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살생하는데 살생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다. 또 그는 스스로 좋아하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가지는데 삿된 소견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다. 이렇게 몸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지만 불선(不善)을 따르고 불선을 일으켜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을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어떤 사람은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근심하면서 살생을 끊는데 살생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근심이 생긴다. 또 그는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근심하면서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끊는데 삿된 소견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근심이 생긴다. 이렇게 몸도 괴롭고 마음도 괴롭지만 선을 따르고 선을 일으켜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이것을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혹 어떤 사람은 스스로 괴로워하고 스스로 근심하면서 살생하고 살생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근심이 생긴다. 또 그는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가지고 삿된 소견으로 말미암아 괴로움이 생기고 근심이 생긴다. 이렇게 몸도 괴롭고 마음도 괴로워하면서 불선을 따르고 불선을 일으켜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것을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受法)인가? 혹 어떤 사람은 스스로 즐거워하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살생을 끊고 살생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다. 또 그는 스스로 즐거워하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삿된 소견을 끊고 삿된 소견을 끊음으로 말미암아 즐거움이 생기고 기쁨이 생긴다. 이렇게 몸도 즐겁고 마음도 즐거워하면서 선을 따르고 선을 일으켜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이것을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 수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수법(受法)은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 수법이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가 따르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곧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은 마치 좋은 빛깔에 향기롭고 맛있는 아마니약(阿摩尼藥)에 독을 섞은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것을 복용한다면 먹을 때에는 좋은 빛깔과 향기와 맛이 입에도 맞고 또 목도 상하게 하지 않지만 먹고 난 뒤에 배에 들어가서는 약이 되지 못한다. 이와 같이 그 수법은 현재에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그 수법이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가 있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곧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며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만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癡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 수법이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과보가 있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곧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으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만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수법은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이 수법이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곧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만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사라진다. 이는 마치 대소변에 또 독약까지 섞은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것을 복용한다면 먹을 때에도 색깔과 냄새가 지독하고 맛이 없어 입에 맞지 않고 또 목도 상하게 하며 먹고 난 뒤에 배에 들어가서도 약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 수법은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 수법이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곧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못하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만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수법은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은 그 수법이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가 있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곧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으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만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그들은 익히고 행해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익히고 행해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만 익히고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은 익히지 않는다.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만 익히고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은 익히지 않으므로 곧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만 생기고 기쁘고 사랑스럽고 올바른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어리석은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는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그리고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수법이 현재는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곧 그것을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이 생기고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慧法]이라 한다.
혹 어떤 수법은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그리고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수법이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으므로 곧 기쁘고 즐겁고 올바른 법만 생기고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사라진다. 이는 마치 대소변에 여러 가지 약을 섞은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것을 복용한다면 먹을 때에는 색깔과 냄새가 지독하고 맛이 없어 입에도 맞지 않고 목도 상하게 하지만 먹고 난 뒤에 배에 들어가면 곧 약이 된다. 이와 같이 그 수법은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는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그리고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수법이 현재는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고, 자꾸 행해 끊지 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럽고 올바른 법만 생기고,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수법은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또한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 그리고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수법이 현재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받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앎으로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 그것을 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러우며 옳은 법은 생기고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수법은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그리고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수법이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고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으므로 기쁘고 사랑스럽고 올바른 법만 생기고 기쁘지 않고 즐겁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사라진다. 이는 마치 소(酥)나 꿀에 여러 가지 약을 섞은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것을 복용한다면 먹을 때에도 좋은 빛깔과 향기와 맛이 있어 입에도 맞고 목을 상하게도 하지 않으며 먹고 난 뒤에도 배에 들어가서 곧 약이 된다. 이와 같이 그 수법은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또한 즐거운 과보를 받는다. 그리고 저 슬기로운 사람은 그 수법이 현재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받는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자꾸 익히고 행해 끊지 않고 자꾸 행해 끊지 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럽고 올바른 법만 생기고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옳지 않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느니라.

그들은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안다.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알기 때문에 곧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은 익히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익히지 않는다. 익히고 행해야 할 법은 익히고, 익히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익히지 않으므로 곧 기쁘고 사랑스럽고 올바른 법만 생기고 기쁘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으며 올바르지 않은 법은 사라진다. 이것을 슬기로운 법이라 하느니라. 따라서 세상에는 진실로 이 네 가지 수법(受法)이 있다고 말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서진(西晉) 시대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불설의경(佛說意經)』이 있다.
2 여기서 자재(自在)는 ‘해탈의 자재’가 아니라 탐착심(貪着心)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을 말한다. 즉 염심(染心)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3 팔리어로는 Bhūmija이다.
4 무사선실(無事禪室, araññakuṭikā)은 한적한 숲에 있는 방사를 말한다.
5 기바선나동자는 팔리어로 환원시키면 Jīvasena kumāra, 즉 수군동자(壽軍童子)이다. 그러나 팔리본에는 Jayasena rājakumāra, 즉 승군동자(勝軍王子)로 되어 있다.
6 선악(善惡) 등의 결과[果]과 아니라 ‘성문사과(聲聞四果)’ 등의 용어에 쓰인 과(果)의 의미이다. 즉 수행(修行)의 결과로 얻게 되는 훌륭한 경지를 말한다.
7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고도 한다. 바사닉왕의 태자인 제타(Jeta)가 숲을 보시하였다. 제타는 기타(祇陀)ㆍ제다(制多)로 음역하기도 하고 승(勝)ㆍ전승(戰勝)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8 본문에서 현재의 고(苦)ㆍ락(樂) 등 감수작용(感受作用)과 그에 따른 과보를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수법(受法)은 곧 감수작용이나 느낌을 말한다.
9 두두라(頭頭邏, daddula)는 쌀의 일종이다.
10 이 경의 이역본으로 서진(西晋) 시대 축법호가 한역한 『불설응법경(佛說應法經)』이 있다.

중아함경 제46권

승가제바 한역

14. 심품 제3②
176)행선경(行禪經) 제5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선(禪)을 닦는 사람에는 진실로 네 종류가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衰退)했다고 생각하고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며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알고 또 선을 닦는 어떤 사람은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안다.”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正思]을 닦아 익히면 곧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息]이요 고요함[寂]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초선을 잃어버리고 선정을 없애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定)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또 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2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몸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생각[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3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생각[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제4선에서 무량공처(無量空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4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禪)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무량공(無量空)이 되고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無量識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無量識)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無所有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식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無所有)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히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런데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소유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리하여 선을 닦는 그 사람은 ‘나는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라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여(如)에서 물러나고 그 마음에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한데도 스스로는 쇠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小想]들을 사유하며 제2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想]을 사유하여 초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2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하고 전일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생각하며 제3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2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3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4선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 선에서 제4 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3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제4선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함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공처(無量空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제4선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공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서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無量空)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식처(無量識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량공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량식처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처가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을 생각하며 무소유처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無所有處)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량식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무소유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의 길을 닦아 익힌다.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그 사람은 ‘차라리 욕심을 싫어하는 생각을 사유하여 무소유처에 들어갈지언정 다른 잡다한 생각들을 사유하며 비유상비무상처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므로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곧 선정을 잃고 만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했는데도 스스로는 불길처럼 왕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소유처를 지나 곧 비유상비무상이 되고 이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소유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비유상비무상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定]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소유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무량공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고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색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무량공처를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과 괴로움이 없어지고 기쁨과 걱정은 벌써 이미 멸하였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제3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4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몸의 즐거움을 느낀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거룩한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과 공이 있는 제3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3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초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제2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떠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지도 않으며 오직 본래의 자리로 물러서게 하는 생각, 즉 욕심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한다고 하자.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본래의 모양을 떠나 다시 다른 곳으로 나아갔고 초선을 잃어버리고 선정도 사라져버렸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여(如)에서 물러나지 않고 그 마음도 선정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쇠퇴하면 곧 쇠퇴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 중 어떤 자를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선을 닦는 사람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곧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초선에서 제2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2선에서 제3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3선에서 제4선으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제4선에서 무량공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공처에서 무량식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량식처에서 무소유처로 나아갔으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그가 마음으로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해지면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러면 선을 닦던 그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내 마음은 바른 생각을 닦아 익혀 쾌락하고 고요하다. 즉 무소유처에서 비유상비무상처로 나아가는데 이것은 훌륭한 쉼이요 고요함이다.’
그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알고 나서는 곧 그 마음을 깨달아 선정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선을 닦는 사람을 불길처럼 왕성하면 곧 불길처럼 왕성한 줄을 사실 그대로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니라.
‘세상에서 선을 닦는 사람에는 진실로 네 종류가 있다’고 한 것은 이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행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577자이다.

177) 설경(說經) 제6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며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梵行)을 나타내나니 그 이름을 사종설경(四種說經)이라고 한다. 이 사종설경의 뜻을 분별해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이제 설명해 주겠노라.”

그 때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사종설경의 뜻을 분별하는 것인가?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하며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욕계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초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초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초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초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2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어 각도 있고 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으며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초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초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2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2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2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2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고,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3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2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반드시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2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3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3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3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3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定]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이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4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제4선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3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제3선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제4선에 머무르지도 않고 제4선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제4선을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제4선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공처(無量空處)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ㆍ기억ㆍ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滅息)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제4선을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漏]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想]조차 기억[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색(色)의 즐거움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량공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량공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량공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무량공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성취하여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생각과 목표도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량식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조차 기억하지 않아 곧 무량공이 되고 이 무량공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공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뒤로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공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량식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량식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량식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식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하여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소유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무소유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공처를 지나 곧 무량식이 되고 이 무량식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멸식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위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량식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없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또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물러섬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무량식처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무소유처에 머무르지도 않고 무소유처에서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무소유처를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를 무소유처에서 물러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진 못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고 이 생각과 목표를 기억하며 법답게 기억을 수립해 한 뜻에 머문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나아가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이 선정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오직 위로 올라감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와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싫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위로 올라가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비유상비무상처를 얻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비구는 행하고 생각하고 목표한 바에 따라 일체 무량식처를 지나 곧 무소유가 되고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그가 이 행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생각과 목표도 기억하지 않은 채, 욕심 없음의 바탕이 되는 생각, 즉 싫어함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만 가진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물러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또한 올라가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어 나로 하여금 무소유처를 싫어하게 한다. 따라서 나는 오래지 않아 번뇌가 다하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마땅히 이와 같이 알아야 하느니라.

생각[想]이 있고 앎[知]이 있어 이와 같이 알게 되면 나아가 제일인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까지도 알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제46권에 수록된 소경 두 개의 숫자를 합하면 5,397자인데 여기에서는 6,397자로 되어 있어 1,000자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아함경 제47권

승가제바 한역

14. 심품 제3③
178) 엽사경(獵師經) 제7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1)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냥꾼은 사슴에게 먹이를 줄 때 이렇게 마음먹지는 않는다.
‘사슴을 살찌우고 빛깔을 아름답게 하며 힘이 세 지게하고 즐겁게 오래 살게 해 주리라.’
사냥꾼은 사슴에게 먹이를 줄 때에는 이런 마음으로 먹이를 준다.
‘오직 먹이를 가까이 하게 하여 먹게 한 뒤에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게 하리라. 방심하고 나면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를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첫 번째 사슴 떼는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고, 방심한 뒤에는 곧 사냥꾼과 그 권속을 따른다. 그리하여 그 첫 번째 사슴 떼는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 사슴 떼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 첫 번째 사슴 떼는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었다.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곧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게 되었고, 방심하게 된 뒤에는 곧 사냥꾼과 그 권속을 따르고 있다. 이와 같이 되어 저 첫 번째 사슴 떼는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먹지 말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일 없는 곳[無事處:숲]에서 풀이나 먹고 물이나 마시는 게 낫지 않을까?’
두 번째 사슴 떼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버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아무 일이 없는 곳[無事處]을 의지하여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살았다.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풀과 물이 없어져 몸이 극히 여위어지고 기력마저 쇠하자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랐다. 이렇게 그 두 번째 사슴떼들도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세 번째 사슴 떼도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첫 번째ㆍ두 번째 사슴 떼들은 모두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 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방심하지 않으면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세 번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았으며 방심하지 않아서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셋째 사슴 떼들은 참으로 기이하며 교활하고 꾀가 많구나. 너무도 교활하고 꾀가 많구나. 왜냐 하면 내가 주는 먹이를 먹는데도 그들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길고 둥근 그물을 만들어 곧 저 세 번째 사슴 떼들이 의지하여 사는 곳에 쳐서 저들을 잡으리라.’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길고 둥근 그물을 만들어 세 번째 사슴 떼들이 의지하여 사는 곳에 둘러치고 그들을 잡았다. 이렇게 그 세 번째 사슴 떼들도 또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첫 번째ㆍ두 번째ㆍ세 번째 사슴 떼들은 모두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우리는 이제 저 사냥꾼과 그 권속들이 이르지 못하는 곳에 가서 살자. 그 곳을 의지하여 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방심하지 않으면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그 곳을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게 되었으며, 방심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은 참으로 기이하고 용감하구나. 기이하고 용맹스럽기가 으뜸이구나. 우리가 저들을 쫓더라도 분명 그들을 잡지 못할 것이고 오히려 다른 사슴들만 두렵고 놀라게 해서 흩어지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에게 그물 치는 일은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그물 치기를 포기하였다. 이리하여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은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게 되었다.

비구들이아, 내가 이런 비유를 들어 말한 것은 그 뜻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내가 그것을 설명하리니 너희들은 그 뜻을 관찰하여 보라. 저 사냥꾼이 주는 먹이란 5욕(欲)의 공덕(功德)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즉 눈이 빛깔을 지각(知覺)하고 귀가 소리를 지각하며 코가 냄새를 지각하고 혀가 맛을 지각하며 몸이 촉감을 지각하는 것이다. 사냥꾼의 먹이란 마땅히 이 오욕의 공덕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냥꾼이란 악마의 왕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요, 사냥꾼의 권속이란 악마의 권속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며 사슴 떼들이란 사문과 범지(梵志)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첫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마왕이 주는 먹이, 곧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 하여 먹는다. 그들은 그것을 가까이하여 먹은 뒤 곧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게 되며 방심하게 된 뒤에는 곧 마왕과 그 권속을 따르게 된다. 이와 같이 첫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저 첫 번째 사슴 떼들이 사냥꾼의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 곧 교만하고 방심하게 되며, 방심한 뒤에는 사냥꾼과 그 권속을 따르고, 이렇게 하여 첫 번째 사슴 떼들이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마땅히 저 첫 번째 사문과 범지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두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저 첫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마왕이 주는 먹이, 곧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었다.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게 되었고, 방심한 뒤에는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르게 되었다. 이리하여 저 첫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이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에서 살면서 과일이나 나무뿌리를 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저 두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에서 과일과 나무뿌리를 먹고 살았다.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과일과 나무뿌리가 없어지자 몸이 극히 여위고 기력도 쇠하였다. 기력이 쇠하자 곧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의 해탈[慧解脫]이 쇠퇴해졌고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이 쇠퇴해진 뒤에는 곧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랐다. 이렇게 저 두 번째 사문과 범지도 또한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는 마치 저 두 번째 사슴 떼들의 경우와 같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첫 번째 사슴 떼들은 사냥꾼의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었고, 가까이하여 먹은 뒤에는 교만하고 방자해져 방심하였으며, 방심한 뒤에는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랐다. 이렇게 저 첫 번째 사슴 떼들은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의 먹이를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에서 살면서 풀이나 먹고 물이나 마시는 게 낫지 않을까?’
저 두 번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의 먹이를 버리고 두려움을 떠나 일 없는 곳에서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살았다. 그러다가 그들은 여름이 되어 모든 풀과 물이 다해 몸이 극히 여위고 기력이 쇠하자 곧 사냥꾼과 그 권속을 따랐다. 이렇게 저 두 번째 사슴 떼들도 또한 사냥꾼과 그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저 두 번째 사문과 범지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저 세 번째 사문과 범지는 또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첫 번째ㆍ두 번째 사문과 범지는 모두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마왕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방심하지 않으면 마왕과 마왕의 권속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세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마왕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게 되었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아서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소견[有見]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견[無見]의 두 가지 견해를 받아 가졌다. 그들은 이 두 가지 견해를 받아 가졌기 때문에 곧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랐다. 이렇게 저 셋째 사문과 바라문도 또한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는 마치 저 세 번째 사슴 떼들과 같다. 그들도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다.
‘첫 번째ㆍ두 번째 사슴 떼들 모두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멀지 않은 곳에서 살면서 사냥꾼의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으면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세 번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서 살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 사냥꾼의 먹이를 가까이 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게 되었으며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세 번째 사슴 떼들은 참으로 기이하며 교활하고 꾀가 많다. 너무도 교활하고 꾀가 많구나. 왜냐 하면 내 먹이를 먹는데도 그것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길고 둥근 그물을 만들어 곧 저 세 번째 사슴 떼들이 의지하여 머무는 곳에 쳐서 그들을 잡으리라.’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길고 둥근 그물을 쳐서 그들을 잡았다. 이렇게 세 번째 사슴 떼들도 또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여기에서 ‘의지한다’는 것은 모든 것은 존재한다는 소견[有見]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머무른다’는 것은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견[無見]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저 세 번째 사문과 범지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저 네 번째 사문과 범지들도 또한 이렇게 생각한다.
‘저 첫 번째ㆍ두 번째ㆍ세 번째 사문과 범지들 모두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무르자. 그 곳에 의지하여 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고 방심하지 않으면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네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곧 마왕과 그 권속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그 곳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세상 시주들의 음식을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았으며 방심하지 않아서 마왕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이렇게 저 네 번째 사문과 범지들은 곧 마왕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났다.

이는 마치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의 경우와 같다. 그들도 또한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첫 번째ㆍ두 번째ㆍ세 번째 사슴 떼들 모두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저 사냥꾼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살자. 그 곳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말자. 가까이하여 먹지 않으면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을 것이며 방심하지 않으면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으리라.’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여 머물렀다. 그 곳에 의지하여 머무르면서 사냥꾼이 주는 먹이를 가까이하여 먹지 않았고 가까이 하여 먹지 않음으로써 교만하고 방자하거나 방심하지 않았으며 방심하지 않아서 사냥꾼과 그 권속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은 참으로 기이하고 용맹하구나. 기이하고 용맹스럽기가 으뜸이구나. 우리가 저들을 쫓더라도 분명 그들을 잡지 못할 것이요, 오히려 다른 사슴들만 두려워하고 놀라서 흩어지게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차라리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에게는 그물 치기를 포기하리라.’
그 사냥꾼과 그 권속들은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그물 치기를 포기하였다. 이렇게 저 네 번째 사슴 떼들은 곧 사냥꾼과 그 권속들의 경계를 벗어났느니라. 저 네 번째 사문과 범지들도 또한 이와 같다고 관찰하여야 하느니라.

비구들아, 마땅히 이러한 것을 배워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의지하고 머물러라. 그러면 어떤 것이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들이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또 어떤 것이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들이 자애로운 마음[慈心]으로 1방(方)을 두루 채워 성취하여 노닐고,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維)ㆍ상ㆍ하 일체를 두루 채우는 것이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맺힘[結]도 없고 원망[怨]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諍]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워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슬픈 마음[悲心]ㆍ기쁜 마음[喜心]도 마찬가지이며ㆍ평정한 마음[捨心]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이 잘 닦아 모든 세간을 두루 채워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이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인가? 이른바 비구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며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성취하여 노니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또 어떤 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하는가? 이른바 비구가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처를 지나 생각[想]과 앎[知]이 사라진 몸의 촉감[身觸]을 성취하여 노닐고 모든 번뇌가 다한 지혜[漏盡智]로 보는 것이니 이것을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 비구들아, 이런 곳에 의지하고 머물러 마왕과 그 권속들이 미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엽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396자이다.

179) 오지물주경(五支物主經) 제8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에 오지(五支)라는 물주(物主)2)가 이른 아침에 사위성을 나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부처님을 뵈옵고 공양하고 받들어 섬길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오지 물주는 곧 이렇게 생각하였다.
‘고요히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뵈옵거나 여러 높은 비구를 뵈옵는 것은 우선 그만두자. 나는 이제 차라리 한 그루 사라(娑邏)나무가 있는 말리(末利)라는 이교도의 동산으로 가리라.’
이에 오지 물주는 비도(比道)3)로 가서 유희하여 좋아하여 건두아리(巾頭阿梨)숲 부근에 있는 한 그루 사라나무가 있는 말리 이교도의 동산으로 나아갔다.

그 때 사라나무가 있는 말리 이교도의 동산에는 문기자(文祁子)4)라는 어떤 이교도 사문이 그 곳의 큰 종주가 되어 여러 사람의 스승으로서 존경을 받으면서 이교도 5백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그 시끄러운 무리 가운데서 높은 소리로 떠들어대면서 몇 가지 축생론(畜生論)에 대하여 연설하였다. 그것은 이른바 왕론(王論)ㆍ적론(賊論)ㆍ투쟁론(鬪諍論)ㆍ음식론(飮食論)ㆍ의복론(衣被論)ㆍ부인론(婦人論)ㆍ동녀론(童女論)ㆍ음녀론(淫女論)ㆍ세간론(世間論)ㆍ사도론(邪道論)ㆍ해중론(海中論) 등이었다. 이와 같이 여러 대중들과 함께 여러 가지 축생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다.
이교도의 사문 문기자는 멀리서 오지 물주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분부하였다.
“너희들은 조용히 하라. 떠들지 말고 스스로 조심하라. 저기 사문 구담의 제자 오지 물주가 온다. 이 사위국에 살고 있는 사문 구담의 재가 제자 중에 저 오지 물주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 왜냐 하면 저 사람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조용한 것을 찬양한다. 만일 그가 이 대중들의 조용한 모습을 본다면 아마 다가올 것이다.”
그 때 이교도 사문 문기자는 대중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자기도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에 오지 물주는 이교도 사문 문기자에게로 가서 서로 안부를 묻고 나서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이교도 사문 문기자가 말하였다.
“물주야, 만일 누군가 네 가지 일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善行) 중에 제일선(第一善)을 성취한 무상사(無上士)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고 시설한다. 어떤 것이 넷인가? 몸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삿된 생활을 하지 않고, 나쁜 생각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물주야, 만일 누군가 이 네 가지를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善行) 중에 제일선(第一善)을 성취한 무상사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고 시설하리라.”

오지 물주는 이교도 사문 문기자의 말을 듣고 옳다고도 하지 않고 그르다고도 하지 않은 채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제 부처님께 나아가 그가 한 말을 말씀드리고 그 뜻을 여쭈어 보리라.’
그리고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이교도 사문 문기자와 나눈 이야기를 모두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나서 곧 말씀하셨다.
“물주야, 만일 이교도 사문 문기자의 말과 같다면 사지의 뼈마디가 부드럽고 연한 어린 아이가 똑바로 누워 잠을 자더라도 또한 선행 중에 제일선을 성취한 무상사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 할 것이다. 물주야, 어린아이는 아직 몸이라는 생각도 없는 자인데 하물며 몸으로 나쁜 업을 짓겠느냐? 아이는 그저 몸을 움직일 뿐이다. 물주야, 어린아이는 아직 입이라는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나쁜 말을 하겠느냐? 오직 울 뿐이다. 물주야, 어린아이는 아직 생활이라는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삿된 생활을 하겠느냐? 오직 끙끙거리는 소리를 낼 뿐이다. 물주야, 어린아이는 아직 생각이 없는데 하물며 나쁜 기억이 있겠느냐? 오직 어머니의 젖만 기억할 뿐이다. 물주야, 만일 이교도 사문 문기자의 말과 같다면 이러한 어린아이도 선행 중에 제일의 선행을 성취한 무상사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주야, 만일 누가 다음의 네 가지 일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 중에 제일의 선행을 성취하였다고 말하리라. 그러나 무상사는 아니요, 제일의 진리를 얻은 것도 아니며 또한 정직한 사문도 아니라고 시설한다. 어떤 것이 넷인가? 몸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삿된 직업을 가지지 않고 나쁜 생각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물주야, 만일 누군가 이 네 가지 일을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 중에 제일의 선행을 성취하였다고 하리라. 그러나 무상사는 아니요 제일의 진리를 얻은 것도 아니며 또한 정직한 사문도 아니라고 시설한다. 물주야, 몸의 업[身業]과 입의 업[口業]을 나는 계(戒)라고 시설한다. 그리고 물주야, 나는 기억[念]은 마음이 소유하는 것이고 마음과 서로 따르는 것이라고 시설한다.

물주야, 나는 말하나니 마땅히 착하지 않은 계[不善戒]를 알아야 하고 마땅히 착하지 않은 계가 어디서 생기는 것인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착하지 않은 계가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성현의 제자들이 어떻게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애는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야, 나는 말하나니 마땅히 착한 계[善戒]를 알아야 하고 마땅히 착한 계가 어디서 생기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착한 계가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성현의 제자들이 어떻게 착한 계를 없애는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야, 나는 말하나니 마땅히 착하지 않은 기억[不善念]을 알아야 하고 마땅히 착하지 않은 기억이 어디서 생기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착하지 않은 기억이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성현의 제자들이 어떻게 착하지 않은 생각을 없애는지를 알아야 한다.
물주야, 나는 말하나니 마땅히 착한 기억[善念]을 알아야 하고 마땅히 착한 기억이 어디서 생기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착한 기억이 어디에서 남김없이 소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지 알아야 하며 마땅히 성현의 제자들이 어떻게 착한 기억을 없애는지를 알아야 하느니라.

물주야,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계[不善戒]인가? 착하지 않은 몸의 행과 착하지 않은 입과 뜻의 행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계라고 한다. 물주야, 이 착하지 않은 계는 어디서 생기는가? 내가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해 주리라. 마땅히 그것은 마음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왜 마음에서 생긴다고 하는가? 만일 마음에 탐욕이 있고 성냄이 있으며 어리석음이 있으면 이런 마음에서 그 착하지 않은 계가 생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주야, 착하지 않은 계(戒)는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몸의 착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몸의 착한 업을 닦으며 입과 뜻의 착하지 않은 업을 버리고 입과 뜻의 착한 업을 닦나니 이것이 착하지 않은 계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자신의 몸[內身]을 몸으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覺]과 마음[心]과 법(法)을 감각과 마음과 법으로 관찰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행하여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애느니라.

물주야, 어떤 것이 착한 계[善戒]인가? 착한 몸의 업과 착한 입과 뜻의 업이니, 이것을 착한 계라고 한다. 물주야, 이 착한 계는 어디서 생기는가? 내가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해 주리라. 그것은 마음에서 생기는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왜 마음에서 생긴다고 하는가? 만일 마음에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어리석음이 없으면 이런 마음에서 착한 계가 생기는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물주야, 착한 계는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가? 만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이 계를 행하되 계에 집착하지 않으면 이 착한 계는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진다.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착한 계를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자신의 몸을 몸으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감각과 마음과 법으로 관찰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행하여 착한 계를 없애느니라.

물주야,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기억[不善念]인가? 탐욕의 기억[欲念]과 성냄의 기억[恚念]과 해침의 기억[害念]이니 이것을 착하지 않은 기억이라 한다. 물주야, 착하지 않은 기억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내가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해 주리라. 그것은 생각[想]에서 생기는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왜 생각에서 생긴다고 하는가? 나는 말하나니 생각에는 많은 종류ㆍ한량없는 종류ㆍ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는 혹 탐욕스러운 생각ㆍ혹은 성내는 생각ㆍ해치려는 생각도 있다. 물주야, 중생은 탐욕 세계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기억을 일으켜 탐욕의 세계[欲界]와 서로 호응한다. 만일 이런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기억을 일으켜 탐욕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물주야, 중생은 성냄과 해침 세계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기억을 내어 성냄과 해침의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만일 이런 기억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하지 않은 생각을 일으켜 성냄과 해침의 세계와 서로 호응하나니 이 착하지 않은 생각은 이런 생각으로 말미암아 생기느니라.

물주야, 착하지 않은 기억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여기에서 착하지 않은 기억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진다.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착하지 않은 기억을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자신의 몸을 몸으로 관찰하고 감각과 마음과 법을 감각과 마음과 법으로 관찰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행하여 착하지 않은 기억을 없애느니라.

물주야, 어떤 것이 착한 기억[善念]인가? 탐욕이 없는 기억[無欲念]ㆍ성냄이 없는 기억[無恚念]ㆍ해침이 없는 기억[無害念]이니, 이것을 착한 기억이라고 한다. 물주야, 착한 기억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내가 그것이 생기는 곳을 말해 주리라. 그것은 생각[想]에서 생기는 줄을 알아야 한다. 왜 생각에서 생긴다고 하는가? 나는 말하나니, 생각에는 많은 종류ㆍ한량없는 종류ㆍ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는 혹 탐욕이 없는 생각[無欲想]ㆍ성냄이 없는 생각[無恚想]ㆍ해침이 없는 생각[無害想]도 있다. 물주야, 중생은 탐욕 세계의 생각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착한 생각을 내어 탐욕이 없는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만일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한 기억을 일으켜 탐욕이 없는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물주야, 중생은 성냄과 해침이 없는 세계를 말미암아 착한 기억을 일으켜 성냄과 해침이 없는 세계와 서로 호응한다. 만일 생각이 있으면 그 생각으로 말미암아 착한 기억을 일으켜 성냄과 해침이 없는 세계와 서로 호응하나니 이런 착한 기억은 이런 생각[想]으로 말미암아 생기느니라.

물주야, 착한 기억은 어디에서 남김없이 멸하고 어디에서 남김없이 무너지는가? 만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여기에서 착한 기억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진다.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은 어떻게 착한 기억을 없애는가?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자신의 몸을 몸으로 관찰하고 나아가 느낌[覺:受]과 마음[心]과 법(法)을 감각과 마음과 법으로 관찰한다.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행하여 착한 기억을 없애느니라.

물주야, 혹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지혜로써 착하지 않은 계[不善戒]를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하지 않은 계가 어디서 생기는지 사실 그대로 알며 지혜로써 관찰하여 착하지 않은 계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착하지 않은 계를 없앤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혹 지혜로써 착한 계[善戒]를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한 계가 생기는 곳을 사실 그대로 알며 지혜로써 관찰하여 착한 계가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착한 계를 없앤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혹 지혜로써 착하지 않은 기억[不善念]을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하지 않은 기억이 생기는 곳을 사실 그대로 알며 지혜로써 관찰하여 착하지 않은 기억이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착하지 않은 기억을 없앤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혹 지혜로써 착한 기억[善念]을 관찰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착한 기억이 생기는 곳을 사실 그대로 알며 지혜로써 관찰하여 착한 기억이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짐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현의 제자들은 이렇게 착한 기억을 없앤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왜냐 하면 바른 소견[正見]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뜻[正志]이 생기고 바른 뜻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말[正語]이 생기며 바른 말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행동[正業]이 생기고 바른 행동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생활이 생기며 바른 생활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방편[正方便]이 생기고 바른 방편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기억[正念]이 생기며 바른 기억을 말미암기 때문에 바른 선정[正定]이 생긴다. 성현의 제자들 마음이 이렇게 확고해지면 곧 일체의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해탈하게 되느니라.

물주야, 성현의 제자들이 이렇게 바로 마음이 해탈하면, 곧 ‘일체의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목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나니 이것을 두고 길을 본 유학(有學)이 8지(支)를 성취하고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10지(支)5)를 성취한 것이라 하느니라.
물주야, 무엇을 길을 본 유학(有學)이 성취하는 8지라 하는가? 이른바 유학의 바른 소견과 나아가 유학의 바른 선정이니 이것을 길을 본 유학이 성취하는 8지라 한다. 물주야, 무엇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성취하는 10지라고 하는가? 이른바 무학의 바른 소견과 나아가 무학의 바른 지혜이니 이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성취하는 10지(支)라고 한다. 물주야, 만일 누군가 이 10지를 갖추었다면 나는 그를 선행 중 제일의 선행을 성취하고 무상사로서 제일의 진리를 얻은 정직한 사문이라 시설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오지 물주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오지물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178자이다.

180) 구담미경(瞿曇彌經)6) 제9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기수(釋羇瘦)를 유행하실 적에 가비라위(加鞞羅衛)7)의 니구류(尼拘類)나무 동산에 계셨다.

그 때 마하파라사발제구담미(摩訶簸邏闍鉢提瞿曇彌)8)는 금실로 지은 옷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금실로 지은 황금색 새 옷은 제가 세존을 위해 손수 만든 것입니다. 원컨대 저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구담미여, 이 옷을 가져다 비구들에게 보시하시오. 비구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곧 내게 공양하는 것이고 또한 대중에게 공양하는 것입니다.”

대생주(大生主) 구담미는 재삼 되풀이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금실로 짠 이 황금색 새 옷은 제가 세존을 위해 손수 만든 것입니다. 원컨대 저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받아 주소서.”

세존께서도 또한 재삼 되풀이해 말씀하셨다.
“구담미여, 이 옷을 가져다 비구들에게 보시하십시오. 비구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곧 내게 공양하고 또한 대중에게 공양하는 것입니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세존 뒤에 서서 불자(拂子)를 들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이에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대생주 구담미는 세존에게 은혜가 많습니다. 세존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세존을 젖 먹여 길렀나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대생주 구담미는 진실로 내게 은혜를 많이 베풀었다. 내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 젖을 먹여 나를 길러 주었다. 그러나 아난아, 나도 또한 대생주 구담미에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왜냐 하면 대생주 구담미는 나로 인해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 스스로 귀의하게 되어 3존(尊)9)과 괴로움[苦]ㆍ괴로움의 발생[習]ㆍ괴로움의 소멸[滅]ㆍ괴로움의 소멸[道]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믿음ㆍ계ㆍ많은 지식ㆍ보시ㆍ지혜를 성취하였으며 살생을 멀리해 끊고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과 술을 멀리해 끊었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남을 인해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 스스로 귀의하게 되어 3존과 괴로움ㆍ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고, 믿음ㆍ계ㆍ많은 지식ㆍ보시ㆍ지혜를 성취하며 살생을 멀리해 끊고,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과 술을 멀리해 끊게 되었다면, 그 사람은 그에게 한평생 동안 음식ㆍ의복ㆍ평상ㆍ탕약과 그 밖에 많은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공양한다 하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이다.

또 아난아, 보시의 대상이 되는 대중[施衆]10)에 일곱 부류가 있고, 열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十四私施]가 있다. 그런 보시를 하면 큰 복을 얻고 큰 과보를 증득할 것이며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을 것이다. 아난아, 큰 복이 있고 큰 결과가 있으며 큰 공덕이 있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게 하는 일곱 부류의 대중에게 하는 보시란 무엇인가? 믿음이 있는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부처님을 비롯해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보시하면 이것을 첫 번째 대중에게 하는 보시라 하니, 그것은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를 받는다. 또 믿음이 있는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세존께서 반열반하신 지 오래지 않아 2부중에게 보시하는 것, 비구대중에게 보시하는 것, 비구니대중에게 보시하는 것, 비구들의 동산에 들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대중 가운데 이러한 비구가 오면 그에게 보시하리라’ 하는 것이다. 다시 비구니들의 방에 들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대중 가운데 이러한 비구니가 오면 그들에게 보시하리라’고 하면 이것을 다섯 번째 대중에게 하는 보시라고 하나니, 큰 복을 얻고 큰 결과를 얻으며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으리라.

아난아, 미래에는 유명한 종족 출신으로, 정진하지 않으면서 가사를 입는 비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정진하지 않지만 대중을 의지하기 때문에, 대중을 인연하기 때문에, 대중을 높이기 때문에, 대중을 말미암기 때문에 정진하지 않는 그에게 보시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때의 그 시주는 한량없고 셀 수 없으며 계산할 수 없는 복을 얻고 착함과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물며 현재 비구가 행할 일을 성취하거나 버릴 일을 성취하고 행할 일과 버릴 일을 다 성취하며 소박하고 정직함을 성취하거나 부드럽고 유연함을 성취하거나 소박함과 정직함과 부드럽고 유연함을 다 성취하며 인욕을 성취하거나 즐거움을 성취하거나 인욕과 즐거움을 다 성취하며 서로 호응함을 성취하거나 기강(紀綱)을 성취하거나 서로 호응함과 기강 세움을 다 성취하며 위엄 있는 거동을 성취하거나 유행하며 노닒을 성취하거나 위엄 있는 거동과 유행하며 노닒을 다 성취하며 믿음을 성취하거나 계를 성취하거나 많은 지식을 성취하거나 보시를 성취하거나 지혜를 성취하고 믿음ㆍ계ㆍ많은 지식ㆍ보시와 지혜를 다 성취함이겠는가? 이것을 일곱 부류의 대중에게 하는 보시라 하나니,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일곱 부류의 대중에게 보시를 행하면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을 얻고 큰 과보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큰 복을 얻고 큰 결과를 얻으며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는 열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인가? 어떤 믿음이 있는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여래에게 보시하고 연각에게 보시하며 아라하에게 보시하고 아라하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아나함에게 보시하고 아나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사다함에게 보시하고 사다함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수다원에게 보시하고 수다원으로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며 모든 욕심을 떠난 외도 선인(仙人)11)에게 보시하고, 정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며 정진하지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축생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아난아,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복을 얻고 정진하지 않는 이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복을 얻고 정진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복을 얻고 모든 욕심을 떠난 외도 선인에게 보시하면 억백천 배의 복을 얻게 되며 수다원을 향하는 이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고 수다원을 얻은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사다함을 향하는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고 사다함을 얻은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아나함을 향하는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고 아나함을 얻은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아라하를 향하는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고 아라하를 얻은 이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으며 연각에게 보시해도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 하물며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께 보시함이겠는가? 이 열네 가지 사사로운 보시는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을 얻고 크고 넓은 과보가 있으리라.

다시 아난아, 네 가지 보시와 세 가지 깨끗한 보시[三淨施]가 있다. 어떤 것을 넷이라 하는가?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이 깨끗하지 못하며 혹 어떤 보시는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이 깨끗하지 못하며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하며 혹 어떤 보시는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다.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주는 사람은 정진하여 묘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
그러나 받는 사람은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
이런 보시를 주는 사람은 깨끗한데 받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보시가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주는 사람은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
그러나 받는 사람은 정진하고 묘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
이런 보시를 받는 사람은 깨끗한데 주는 사람은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한 것인가?
주는 사람도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

그리고 받는 사람도 또한 정진하지 않고 나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지 않고 결과도 보지 않으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없고 보시의 결과도 없다.’
이런 보시를 주는 사람도 깨끗하지 못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보시가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한 것인가? 주는 사람도 정진하여 묘한 법을 행하고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
그리고 받는 사람도 또한 정진하고 묘한 법을 행하며 미래도 보고 결과도 보며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보시도 있고 보시의 결과도 있다.’
이런 보시를 주는 사람도 깨끗하고 받는 사람도 또한 깨끗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정진하는 사람이 정진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해 기쁜 마음 얻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있다 믿으면
이는 주는 이가 깨끗한 보시니라.

정진하지 않는 이가 정진하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하지 않아 기쁜 마음 없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믿지 않으면
이는 받는 이가 깨끗한 보시니라.

게으른 사람이 정진 않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치 않아 기쁜 마음 없으며
업과 또 그 과보 믿지 않으면
이런 보시 크고 넓은 과보 없으리.

정진하는 이가 정진하는 이에게 보시하고
법다이 행하여 기쁜 마음 얻으며
업과 또한 그 과보 있다 믿으면
이런 보시 크고 넓은 과보 있으리.

종들과 가난하고 궁한 이에게
제 것 갈라 보시하고 또 기뻐하면서
업을 믿고 또한 과보 있다 믿으면
이런 보시 훌륭하다고 사람들 칭찬하네.

바르게 몸과 입을 잘 보호하고
손을 펴 법으로 물건을 빌며
욕심 없이 욕심을 떠난 이에게 보시하면
이런 재물 보시가 제일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구담미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20자이다.

181) 다계경(多界經)12) 제10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혼자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서 편안히 앉아 깊이 사유(思惟)하다가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모든 두려움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은 다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이에 존자 아난이 해질 무렵이 되어 편안하고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편안한 곳에서 편안히 앉아 깊이 사유하다가 마음속으로 ‘모든 두려움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모든 두려움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는 것이다. 아난아, 마치 갈대 무더기나 풀 무더기에서 불이 일어나 누각과 집을 태우는 것처럼 아난아, 그와 같이 모든 두려움은 어리석음에서 생기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느니라.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도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며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느니라.

아난아, 과거에 만일 두려움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겼던 것이지 지혜에서 생겼던 것이 아니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에서 생겼던 것이지 지혜에서 생겼던 것이 아니다. 아난아, 미래에 만일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길 것이요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길 것이요 지혜에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난아, 현재에 있는 모든 두려움도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요 지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도 모두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요 지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난아, 이것을 어리석음에는 두려움이 있고 지혜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어리석음에는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있고 지혜에는 사고와 재앙과 걱정과 슬픔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아난아, 모든 두려움ㆍ사고ㆍ재앙ㆍ걱정 및 슬픔은 어리석음에서 생기는 것이지 지혜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니라.”

이에 존자 아난은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계(界)를 알지 못하고 처(處)13)를 알지 못하며 인연을 알지 못하고 옳은 것[是處]과 옳지 않은 것[非處]을 알지 못한다면 아난아, 이런 비구는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한 자이니라.”

“세존이시여,그런 비구는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지혜로우며 어리석지 않은 비구입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계를 알고 처를 알고 인연을 알며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안다면 아난아, 이런 비구는 지혜로우며 어리석지 않은 자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지혜로우며 어리석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계(界)14)를 아는 비구입니까?”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18계(界)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안계(眼界)ㆍ색계(色界)ㆍ안식계(眼識界)와 이계(耳界)ㆍ성계(聲界)ㆍ이식계(耳識界)와 비계(鼻界)ㆍ향계(香界)ㆍ비식계(鼻識界)와 설계(舌界)ㆍ미계(味界)ㆍ설식계(舌識界)와 신계(身界)ㆍ촉계(觸界)ㆍ신촉계(身觸界)와 의계(意界)ㆍ법계(法界)ㆍ의식계(意識界)를 아느니라. 아난아, 이 18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또 아난아,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땅의 경계[地界]ㆍ물의 경계[水界]ㆍ불의 경계[火界]ㆍ바람의 경계[風界]ㆍ허공의 경계[空界]ㆍ의식의 경계[識界]이다. 아난아, 이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탐욕의 경계[欲界]ㆍ성냄의 경계[恚界]ㆍ해침의 경계[害界]ㆍ탐욕이 없는 경계[無欲界]ㆍ성냄이 없는 경계[無恚界]ㆍ해침이 없는 경계[無害界]이다. 아난아, 이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즐거움의 경계[樂界]ㆍ괴로움의 경계[苦界]ㆍ기쁨의 경계[喜界]ㆍ근심의 경계[憂界]ㆍ평정의 경계[捨界]ㆍ무명의 경계[無明界]이다. 아난아, 이 6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4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느낌의 경계[覺界]ㆍ생각의 경계[想界]ㆍ지어감의 경계[行界]ㆍ의식의 경계[識界]이다. 아난아, 이 4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ㆍ멸계(滅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과거의 경계[過去界]ㆍ미래의 경계[未來界]ㆍ현재의 경계[現在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묘한 경계[妙界], 묘하지 않은 경계[不妙界], 중간의 경계[中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착한 경계[善界]ㆍ착하지 않은 경계[不善界]ㆍ무기(無記)의 경계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유학(有學)의 경계ㆍ무학(無學)의 경계ㆍ유학도 무학도 아닌 경계[非學非無學界]이다. 아난아, 이 3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2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유루계(有漏界)와 무루계(無漏界)이다. 아난아, 이 2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또 2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유위계(有爲界)와 무위계(無爲界)이다. 아난아, 이 2계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이상의 62계(界)를 보아 진실 그대로 알면 이러한 비구를 계를 아는 비구라고 하느니라.”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계를 아는 비구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처(處)를 아는 비구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12처(處)를 보아 사실 그대로 아나니, 곧 안처(眼處)ㆍ색처(色處)ㆍ이처(耳處)ㆍ성처(聲處)ㆍ비처(鼻處)ㆍ향처(香處)ㆍ설처(舌處)ㆍ미처(味處)ㆍ신처(身處)ㆍ촉처(觸處)ㆍ의처(意處)ㆍ법처(法處)이다. 아난아, 이 12처를 보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이런 비구는 처를 아는 비구이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처를 아는 비구입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가 인연(因緣)을 아는 비구입니까?”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인연과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을 보아 진실 그대로 아나니, 곧 이것을 인하여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함을 안다. 이른바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行)이 있고 나아가 생(生)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으며 만일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나아가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사라진다고 보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아난아, 이런 비구는 인연을 아는 비구이니라.”

존자 아난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인연을 아는 비구입니다. 어떤 비구가 그렇지 않은 것을 아는 비구입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그런 것은 그렇다고 보아 진실 그대로 알고 그렇지 않은 것은 그렇지 않다고 보아 진실 그대로 안다. 아난아, 만일 한 세상에 두 전륜왕이 있어 아울러 다스린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고 만일 한 세상에는 한 전륜왕만이 있어 혼자 다스린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한 세상에 두 여래가 있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고 만일 한 세상에는 한 여래만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일부러 부모를 해치고 아라하를 죽이며 성현들을 쳐부수고 부처님에게 악한 마음을 품으며 여래에게 피를 흘리게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일부러 부모를 해치고 아라하를 죽이며 성현들을 쳐부수고 부처님에게 악한 마음을 품으며 여래에게 피를 흘리게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일부러 계를 범하고 계를 버리며 도를 그만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일부러 계를 범하고 계를 버리며 도를 그만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이 마음을 버리고 밖을 향하여 높은 것을 구하고 복밭을 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이 마음을 버리고 밖을 향하여 높은 것을 구하고 복밭을 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다른 사문 범지를 좇아 ‘여러분, 보아야 할 것은 보고 알아야 할 것은 아시오’라고 말하더라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다른 사문 범지를 좇아 ‘여러분,보아야 할 것은 보고 알아야 할 것은 아시오’라고 말하더라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좋고 나쁨을 점치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점을 믿고 길흉을 묻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다른 사문 범지를 좇아 좋고 나쁨을 점치는 점쟁이와 서로 어울려 괴로움이 있고 번거로움이 있다고 보며 이것은 진실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다른 사문 범지를 좇아 좋고 나쁨을 점치는 점쟁이와 서로 어울려 괴로움이 있고 번거로움이 있다고 보며 이것은 진실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심한 괴로움, 너무도 심한 괴로움을 일으켜 사랑하지도 못하고 좋아하지도 못하며 생각하지도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하며 나아가 목숨을 끊으려 하고 이 마음을 버리고 다시 밖을 향해 구해 ‘혹 어떤 사문 범지가 한 구절의 주문이나 두 구절ㆍ세 구절ㆍ네 구절ㆍ많은 구절ㆍ백천 구절의 주문을 가지고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여, 거기서 괴로움의 발생[苦習]과 괴로움에서 나아갈 길[苦趣]과 갖가지 괴로움의 다함[苦盡]을 구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 이 마음을 버리고 다시 밖을 향해 구하여 ‘혹 어떤 사문 범지가 한 구절의 주문이나 두 구절ㆍ세 구절ㆍ네 구절ㆍ많은 구절ㆍ백천 구절의 주문을 가지고 나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리라’ 하여 거기서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에서 나아갈 길과 갖가지 괴로움의 다함을 구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진리를 본 사람이 8유(有)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리 없다. 그러나 만일 범부가8유(有)를 받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몸으로 악한 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한 행을 저질러서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몸으로 악한 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한 행을 저질러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있어서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있고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 좋은 곳으로 가서 하늘에 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으로 악한 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한 행을 저지르고도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아난아, 만일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질러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이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느니라.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蓋)15)를 끊지 않고서 마음이 바르게 4념처(念處)를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지 않고 또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지 않고서 7각의(覺意)를 닦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5개를 끊고 또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고서 7각의를 닦으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지 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지 않고 또 7각의를 닦지 않고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고 또 7각의를 닦고서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지 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지 못하고 7각의를 닦지 않고 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서 괴로움의 끝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만일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5개를 끊고 마음이 바르게 4념처를 세우고 7각의를 닦고 또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얻고서 괴로움의 끝을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럴 수 있다. 아난아, 이런 비구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아는 비구이니라.”

존자 아난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비구는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아는 비구입니다.”

이에 존자 아난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은 무엇이라 이름하며, 어떻게 받들어 가져야 합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다계(多界)ㆍ법계ㆍ감로계ㆍ다고(多鼓)ㆍ법고ㆍ감로고ㆍ 법경(法鏡)인 4품(品)16)을 받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경을 일컬어 다계경(多界經)이라 이름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송ㆍ원ㆍ명 3본에는 이 부분의 가란다(迦蘭哆)가 모두 가란타(迦蘭陀)로 되어 있다.
2 팔리어로는 thapati이고 장인(匠人) 또는 건축가(建築家)라는 뜻이다.
3 송ㆍ원 2본에는 차도(此道)로 되어 있다.
4 팔리어로는 maṇḍikāputta이다.
5 8정도에 정지(正智)와 정해탈(正解脫)을 더해 10지(支)라고 한다.
6 이 경의 이역본으로 송(宋) 시대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분별보시경(佛說分別布施經)』이 있다.
7 팔리어로는 Kapilavathu이고 가비라위(加毘羅衛)로 음역하기도 한다. 부처님 탄생지이다.
8 팔리어로 Mahāpajāpati이고 부처님의 이모이다. 대생주(大生主) 혹은 대애도(大愛道)로 의역하기도 한다.
9 3보(寶)라고도 하며 불(佛)ㆍ법(法)ㆍ승(僧)을 말한다.
10 팔리본에는 보시의 대상이 되는 일곱 가지 부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①부처님 재세시의 2부중 ②부처님 멸도 후 2부중 ③비구 승단 ④비구니 승단 ⑤특정한 비구ㆍ비구니 ⑥일정한 숫자의 비구대중 ⑦일정한 숫자의 비구니대중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11 탐욕의 더러움을 벗어난 이교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원문은 ‘이욕외선인(離欲外仙人)’으로 되어 있다.
12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송(宋) 시대 법현(法賢)이 한역한 『불설사품법분경(佛說四品法門經)』이 있다.
13 처(處, āyatana)는 곧 12처를 가리킨다.
14 범어로는 Dhātu이고 결부(結付)의 뜻을 가진 Dhā에서 나온 말이다. 요소(要素)ㆍ기초(基礎)ㆍ층(層)이라는 뜻이 있다.
15 탐욕(貪欲)ㆍ진에(瞋恚)ㆍ수면(睡眠)ㆍ도거(掉擧)ㆍ의(疑) 다섯 가지이다.
16 여기서 4품은 앞에서 지적한 계(界)ㆍ처(處)ㆍ연기(緣起)ㆍ처비처(處非處)를 가리킨다.
17 제45권에서 제47권까지 「심품」의 경문 글자 수는 실제 20,022자인데 여기에서는 21,022자로 기록되어 있어 실제 숫자보다 1,000자가 많다. 그것은 제46권에서 1,000자의 차이 때문인 듯하다.

중아함경 제48권

승가제바 한역

15. 쌍품(雙品) 제4
이 「쌍품」에는 모두 열 개의 소경이 있는데, 앞에 있는 다섯 개의 소경은 제4 분별송에 해당되고 뒤에 있는 다섯 개의 소경은 제5후송(後誦)에 해당되므로 쌍품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두 개의 마읍경(馬邑經)과
우각사라림경(牛角娑羅林經)과
또 하나의 우각사라림경이 있고
구해경(求解經)이 마지막에 수록되었다.

182) 마읍경(馬邑經)1) 제1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앙기국(鴦騎國)2)을 유행하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마읍(馬邑)3)으로 가시어 비구들과 함께 마림사(馬林寺)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그대들을 보고 사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사문인가 하고 물으면 너희들은 스스로 사문이라고 말하는가?”

모든 비구들은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런 까닭에 너희들은 그런 뜻에서 사문으로서 마땅히 사문다운 법과 범지다운 법을 배워야 한다. 사문다운 법과 범지다운 법을 배우고 나면 너희는 진정한 참 사문이 되고 거짓 사문이 아니다. 따라서 너희들이 만일 의복ㆍ음식ㆍ평상ㆍ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받으면 그것을 공급해 준 사람은 큰 복을 얻고 큰 결과를 얻으며 큰 공덕과 크고 넓은 과보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그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무엇이 사문다운 법이고 범지다운 법인가? 몸으로 행하는 일을 청정히 하여 하늘을 향해 드러내 숨기지 말고 잘 보호하여 결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몸으로 행하는 일이 청정하다 하여 스스로 뽐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면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나는 몸으로 행하는 일이 청정하여 내가 할 일을 이미 마쳤으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도덕과 도리를 이미 이루었으니 다시 더 해야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사문의 도리를 구하다가 사문의 도리를 잃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윗단계의 수행을 희망하여 비구의 몸이 청정해졌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꾀해야 할까? 마땅히 입으로 행하는 일을 청정히 하기를 배워 하늘을 향해 드러내 숨기지 말고 잘 보호하여 결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입으로 행하는 일이 청정하다 하여 스스로 뽐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면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나는 몸과 입으로 행하는 일이 청정하여 내가 할 일을 이미 마쳤으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도덕과 도리를 이미 이루었으니 다시 위로 더 올라가야 할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사문의 도리를 구하다가 사문의 도리를 잃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윗단계의 수행을 희망하여 비구의 몸과 입이 청정해졌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꾀해야 할까? 마땅히 뜻으로 행하는 일을 청정히 하기를 배워 하늘을 우러러 드러내 숨기지 말고 잘 보호하여 결함이 없게 하는 것이다. 뜻으로 행하는 일이 청정하다 하여 스스로 뽐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면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나는 몸과 입과 뜻으로 행하는 일이 청정하여 내가 할 일을 이미 마쳤으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도덕과 도리를 이미 이루었으니 다시 위로 더 올라가야 할 데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사문의 도리를 구하다가 사문의 도리를 잃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윗단계의 수행을 희망하여 비구가 몸과 입과 뜻의 행을 청정히 했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꾀해야 할까? 마땅히 명(命)의 행4)을 청정히 하는 것을 배워 하늘을 우러러 드러내 숨기지 말고 잘 보호하여 결함이 없게 해야 한다. 이 명이 청정하다 하여 스스로 뽐내지도 않고 남을 깔보지도 않으며 더러움도 없고 혼탁함도 없으면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나는 몸과 입과 뜻과 명의 행이 청정하여 내가 할 일을 이미 마쳤으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도덕과 도리를 이미 이루었으니 다시 위로 더 올라가야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사문의 도리를 구하다가 사문의 도리를 잃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윗단계의 수행을 희망하여 비구가 몸과 입과 뜻과 명의 행을 청정히 했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꾀해야 할까? 비구는 마땅히 모든 근(根)을 보호하기를 배워 언제나 근을 닫아 막기를 생각하고 밝게 통달하기를 생각하며 그 생각을 지켜 보호하고 성취하여야 한다. 그리고 항상 스스로 이런 마음을 내야 한다.
‘혹 눈이 빛깔을 보더라도 그 모양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그 빛깔을 음미하지도 않으리라. 이른바 성내고 다투게 되기 때문에 눈을 잘 지켜 보호하여 마음속에서 탐욕ㆍ걱정ㆍ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을 내지 않나니 그리로 나아가기 위하여 눈을 지켜 보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혹 뜻이 법을 알더라도 그 모양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법을 음미하지 않으리라. 이른바 성내고 다투게 되기 때문에 뜻을 잘 지켜 보호하여 마음속에서 탐욕ㆍ걱정ㆍ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을 내지 않나니 그리로 나아가기 위하여 뜻을 지켜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나는 몸ㆍ입ㆍ뜻ㆍ명의 행이 청정하고 모든 근을 지켜 보호하여 내가 할 일을 이미 마쳤으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도덕과 도리를 이미 이루었으니 다시 더 올라가야 할 데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사문의 도리를 구하다가 사문의 도리를 잃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다시 윗단계의 수행을 희망하여 비구가 몸ㆍ입ㆍ뜻ㆍ명으로 행하는 것을 청정히 하고 모든 근을 잘 지켜 보호하였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꾀해야 할까? 비구는 마땅히 출입(出入)에 대하여 바르게 알기를 배워야 하나니,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와 몸가짐과 차례를 잘 관찰하여 분별하고 승가리와 모든 옷을 바로 입고 발우를 바로 가지며 다니고 서고 앉고 눕기와 잠자고 깨고 말하고 침묵하기를 다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만일 너희들이 ‘나는 몸ㆍ입ㆍ뜻ㆍ명으로 행하는 것이 청정하고 모든 근을 잘 지켜 보호하며 출입에 대해서도 바르게 알아 내가 할 일을 이미 마쳤으니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도덕과 도리를 이미 이루었으니 다시는 더 올라가야 할 데도 없다’고 말한다면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리라.
‘사문의 도리를 구하다가 사문의 도리를 잃는 일이 없게 하라.’
만일 윗단계의 수행을 희망하여 비구가 몸ㆍ입ㆍ뜻ㆍ명의 행을 청정히 하고 모든 근을 지켜 보호하며 출입에 대해서도 바로 알았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꾀해야 할까? 비구는 마땅히 멀리 떠나 홀로 살기를 배워야 하나니 일 없는 곳에 있거나 혹은 나무 밑이나 비고 편안하며 고요한 곳이나 산ㆍ바위ㆍ돌집[石室]ㆍ한데[露地]나 짚더미로 가거나 혹은 숲 속이나 화장터로 가야 한다. 그가 이미 일 없는 곳에 있거나 혹은 나무 밑이나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 이르렀다면 니사단(尼師檀)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야 한다. 바른 몸과 바른 원(願)으로 생각을 다른 데로 보내지 않고 탐욕을 끊고 마음에 다툼을 없애며 남의 재물과 모든 생활 도구를 보아도 탐욕을 일으켜 내 소유로 삼으려고 하지 않나니, 그는 탐욕에 대해서 그 마음을 깨끗이 비운다. 이와 같이 성냄과 잠과 들뜸과 후회함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며 의혹을 끊어 모든 착한 법에 대해서 망설임이 없나니 그는 의혹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비우느니라.

그는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이 5개(蓋)를 끊고 탐욕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떠나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미 이와 같은 선정을 얻고 나서는 마음이 청정하여 더러움도 없고 번거로움도 없게 되며 부드럽고 연하여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고 번뇌가 다한 지혜의 신통으로 나아가 징험을 얻게 된다. 그래서 그는 곧 이 괴로움과 이 괴로움의 발생과 이 괴로움의 소멸과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또한 이 누(漏:煩惱)와 이 누의 발생과 이 누의 소멸과 이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안 뒤에는 욕루(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하고 난 다음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남[生]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이런 자를 사문 범지ㆍ거룩한 사람ㆍ깨끗이 씻은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자를 사문이라 하는가? 이른바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모든 누(漏)의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을 그친 자, 이런 자를 사문이라 한다. 어떤 자를 범지라 하는가? 이른바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모든 누의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을 멀리 여읜 자, 이런 자를 범지라 한다. 어떤 자를 거룩한 사람이라 하는가?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모든 누의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을 멀리 여읜 자, 이런 자를 거룩한 사람이라 한다. 어떤 자를 깨끗이 씻은 사람이라 하는가? 이른바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모든 누의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을 깨끗이 씻는 자, 이런 자를 깨끗이 씻은 사람이라 한다. 이들을 사문 범지ㆍ거룩한 사람ㆍ깨끗이 목욕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마읍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47자이다.

183) 마읍경(馬邑經) 제2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앙기국(鴦騎國)을 유행하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마읍으로 가시어 비구들과 함께 마림사에 머무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그대들을 보고 사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너희들에게 사문인가 하고 물으면 너희들은 스스로 사문이라고 말하는가?”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그런 뜻에서 사문으로서 마땅히 사문의 도의 자취[道迹]를 배워 사문답지 않게 되지 말라. 사문의 도의 자취를 배우고 나면 너희는 진정한 참 사문으로서 거짓 사문이 아니다. 따라서 너희들이 만일 의복ㆍ음식ㆍ평상ㆍ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받으면 그것을 공급해 준 사람은 큰 복과 큰 결과와 큰 공덕과 크고 넓은 과보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그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사문의 도의 자취가 아니며 또한 사문이 아닌가? 만일 탐욕이 있는데 탐욕을 쉬지 못하고 성냄이 있는데 성냄을 쉬지 못하며 미워함이 있는데 미워함을 쉬지 못하고 말 끊음[不語]이 있는데 말 끊음을 쉬지 못하며 맺힘[結]이 있는데 맺힘을 쉬지 못하고 아낌이 있는데 아낌을 쉬지 못하며 질투가 있는데 질투를 쉬지 못하고 아첨이 있는데 아첨을 쉬지 못하며 속임이 있는데 속임을 쉬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름을 쉬지 못하며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데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름을 쉬지 못하며 나쁜 욕심이 있는데 나쁜 욕심을 쉬지 못하며 삿된 소견이 있는데 삿된 소견을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때[垢]요 사문의 아첨이며 사문의 거짓이요 사문의 굽음이며 나쁜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며 이미 배운 것을 다하지 못한 것이고 사문의 도의 자취가 아니며 또한 사문이 아니니라.

비유하면 마치 머리도 있고 날도 있는 매우 예리한 새로 만든 도끼가 승가리(僧伽梨)에 싸여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저 어리석은 자들이 사문의 도를 배우는 것도 또한 그와 같다고 말한다. 이른바 탐욕이 있는데 탐욕을 쉬지 못하고 성냄이 있는데 성냄을 쉬지 못하며 미워함이 있는데 미워함을 쉬지 못하고 말 끊음이 있는데 말 끊음을 쉬지 못하며 결(結)이 있는데 결을 쉬지 못하고 아낌이 있는데 아낌을 쉬지 못하며 질투가 있는데 질투를 쉬지 못하고 아첨이 있는데 아첨을 쉬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워할 줄 모르며 남에게 부끄러워함이 없어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나쁜 욕심이 있는데 나쁜 욕심을 쉬지 못하며 삿된 소견이 있는데 삿된 소견을 쉬지 못하니 승가리를 입고 있지만 나는 그를 사문이라 말하지 않는다.
만일 승가리를 입은 자라면 탐욕이 있으면 탐욕을 쉬고 성냄이 있으면 성냄을 쉬며 미워함이 있으면 미워함을 쉬고 말 끊음이 있으면 말 끊음을 쉬고 결이 있으면 결을 쉬며 아낌이 있으면 아낌을 쉬고 질투가 있으면 질투를 쉬며 아첨이 있으면 아첨을 쉬고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름이 있으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름이 있으면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나쁜 욕심이 있으면 나쁜 욕심을 쉬고 삿된 소견이 있으면 삿된 소견을 쉬어야 한다.

또 그 친척과 벗들은 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어진이여, 그대는 마땅히 승가리 입기를 배워야 한다. 어진이여, 그대는 승가리 입기를 배워 탐욕이 있으면 탐욕을 쉬고 성냄이 있으면 성냄을 쉬며 미워함이 있으면 미워함을 쉬고 말 끊음이 있으면 말 끊음을 쉬며 결이 있으면 결을 쉬고 아낌이 있으면 아낌을 쉬며 질투가 있으면 질투를 쉬고 아첨이 있으면 아첨을 쉬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나쁜 욕심이 있으면 나쁜 욕심을 쉬고 삿된 소견이 있으면 삿된 소견을 쉬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승가리를 입은 자를 보더라도 그가 탐욕ㆍ성냄ㆍ미워함ㆍ말 끊음ㆍ결(結)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름ㆍ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름ㆍ나쁜 욕심ㆍ삿된 소견이 있으면 그가 승가리를 입었더라도 나는 그를 사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옷이 없거나 머리를 땋거나 앉지 않거나 한끼를 먹거나 항상 목욕하거나 물을 지니는 것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물을 지녔다고 해서 나는 그를 사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만일 물을 지니는 자로서 탐욕이 있으면 탐욕을 쉬고 성냄이 있으면 성냄을 쉬며 미워함이 있으면 미워함을 쉬고 말 끊음이 있으면 말 끊음을 쉬며 결이 있으면 결을 쉬고 아낌이 있으면 아낌을 쉬며 질투가 있으면 질투를 쉬고 아첨이 있으면 아첨을 쉬며 속임이 있으면 속임을 쉬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나쁜 욕심이 있으면 나쁜 욕심을 쉬고 삿된 소견이 있으면 삿된 소견을 쉬어야 한다.

또 그 친척과 벗들은 그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한다.
‘어진이여, 그대는 마땅히 물을 지녀야 한다. 그대는 물을 지니고 나서 탐욕이 있으면 탐욕을 쉬고 성냄이 있으면 성냄을 쉬며 미워함이 있으면 미워함을 쉬고 말 끊음이 있으면 말 끊음을 쉬며 결이 있으면 결을 쉬고 아낌이 있으면 아낌을 쉬며 질투가 있으면 질투를 쉬고 아첨이 있으면 아첨을 쉬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나쁜 욕심이 있으면 나쁜 욕심을 쉬고 삿된 소견이 있으면 삿된 소견을 쉬어라.’
그러므로 나는 그가 물을 지닌 것을 보더라도 탐욕ㆍ성냄ㆍ미워함ㆍ말 끊음ㆍ결ㆍ아낌ㆍ질투ㆍ아첨ㆍ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름ㆍ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름ㆍ나쁜 욕심ㆍ삿된 소견이 있으면 그가 아무리 물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사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문의 도의 자취가 아니라 하고 또한 사문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사문의 도의 자취이고 또한 사문이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경우인가? 만일 탐욕이 있으면 탐욕을 쉬고 성냄이 있으면 성냄을 쉬며 미워함이 있으면 미워함을 쉬고 말 끊음이 있으면 말 끊음을 쉬며 번뇌가 있으면 번뇌를 쉬고 아낌이 있으면 아낌을 쉬며 질투가 있으면 질투를 쉬고 아첨이 있으면 아첨을 쉬며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모름이 있으면 자신에 대해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모름이 있으면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며 나쁜 욕심이 있으면 나쁜 욕심을 쉬고 삿된 소견이 있으면 삿된 소견을 쉬는 것이다. 이것은 사문의 질투ㆍ사문의 아첨ㆍ사문의 거짓ㆍ사문의 굽음 등 나쁜 곳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을 이미 없앤 것이고, 사문의 도의 자취를 배운 것이며 또한 사문이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경우이니라. 이것을 사문의 도의 자취라 하고 또한 사문이 아니라고 하지 못하는 경우이니라.

그는 이와 같이 계를 성취하고 몸도 청정하고 입과 뜻도 청정하며 마음에는 탐욕도 없고 성냄도 없으며 잠도 없고 들뜸과 교만도 없으며 의혹이 끊어지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지녔고 어리석음이 없으며 그 마음은 자애로움[慈]과 함께하여 1방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ㆍ하 일체에 두루 한다. 그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맺힘[結]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다.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닌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悲]ㆍ기뻐함[喜]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그 마음은 평정함[捨]과 함께하여 결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니느니라.
그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추한 것도 있고 묘한 것도 있으며 생각[想]도 있다. 이상 나열한 것에서 벗어나는 길을 사실 그대로 꼭 알아야 한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본 뒤에는 곧 욕심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有漏]와 무명의 번뇌[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이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고 사실 그대로 안다.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좋은 못이 있는데 맑은 물이 가득 차 있고 푸른 풀은 언덕을 덮었으며 꽃과 나무는 사방에 둘러 있는 것과 같다. 그러면 혹 동쪽에서 굶주리고 목이 말라 지극히 피로한 어떤 사람이 와서 언덕 위에서 옷을 벗고 못에 들어가 시원하게 목욕하여 때를 씻고 더위를 식히고 또한 목마름을 던다. 이렇게 남쪽ㆍ서쪽ㆍ북쪽에서도 굶주리고 목이 말라 지극히 피로한 어떤 사람들이 와서 언덕 위에서 옷을 벗고 못에 들어가 시원하게 목욕하여 때를 씻고 더위를 식히고 또한 목마름도 던다. 이와 같이 찰리(刹利) 큰 종족의 아들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이 없이 도를 배워 마음의 행이 그치면 마음이 고요하게 된다. 이 마음이 고요한 사람을 나는 사문 범지ㆍ거룩한 사람ㆍ깨끗이 목욕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범지ㆍ거사ㆍ공사(工師)의 큰 종족의 아들들도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집을 버려 가정 없이 도를 배워 마음의 행이 그치면 마음이 고요하게 된다. 이 마음이 고요한 사람을 나는 사문 범지ㆍ거룩한 사람ㆍ깨끗이 목욕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어떤 자를 사문이라 하는가?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모든 누(漏)의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을 그치는 자, 이런 자를 사문이라 한다.
어떤 자를 범지(梵志)라 하는가?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모든 누의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을 멀리 여읜 자, 이런 자를 범지라 한다.
어떤 자를 거룩한 사람이라 하는가?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모든 누의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을 멀리 여읜 자, 이런 자를 거룩한 사람이라 한다.
어떤 자를 깨끗이 목욕한 사람이라 하는가?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모든 누의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을 깨끗이 씻은 자, 이런 자를 깨끗이 목욕한 사람이라 한다. 이들을 사문 범지ㆍ거룩한 사람ㆍ깨끗이 목욕한 사람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마읍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460자이다.

184) 우각사라림경(牛角娑羅林經)5) 제3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발기수(跋耆瘦)를 유행하실 적에 우각사라(牛角娑羅)라는 숲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사리자ㆍ존자 대목건련ㆍ존자 대가섭ㆍ존자 대가전연ㆍ존자 아나율타ㆍ존자 이월다(離越哆)ㆍ존자 아난 등 지식이 많은 높고 큰 비구 제자들도 또한 발기수에 노닐다가 우각사라 숲에 있으면서 모두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나뭇잎으로 지은 집 가까이에 머물렀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ㆍ존자 대가섭ㆍ존자 대가전연ㆍ존자 아나율타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에 존자 사리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존자 아난은 멀리서 그 여러 존자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존자 이월다에게 아뢰었다.
“현자 이월다여, 저 존자 대목건련ㆍ존자 대가섭ㆍ존자 대가전연ㆍ존자 아나율타가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존자 사리자에게로 가십니다. 현자 이월다여, 우리도 저 여러 존자들과 함께 존자 사리자에게로 가십시다. 혹 저분들을 따라 가면 존자 사리자로부터 많은 법을 들을 지도 모릅니다.”
이에 존자 대목건련ㆍ존자 대가섭ㆍ존자 대가전연ㆍ존자 아나율타ㆍ존자 이월다ㆍ존자 아난은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에 존자 사리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존자 사리자는 멀리서 여러 존자들이 오는 것을 보았다. 존자 사리자는 여러 존자들을 위해 말하였다.
“잘 왔소. 현자 아난이여, 잘 왔소. 아난이여, 잘 왔소. 아난이여, 아난은 세존의 시자로서 세존의 뜻을 잘 알고 언제나 세존의 칭찬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소. 나는 이제 현자 아난에게 묻겠소.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착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 나무들이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아난이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널리 배우고 많이 듣고 잘 지녀 잊지 않으며 널리 아는 것을 쌓아 둡니다. 그가 말하는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또한 묘하며,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두루 갖추고 청정하여 범행을 드날립니다. 이러한 모든 법을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 천 번이나 음미하며 익히고 생각하고 관찰하는 것은 밝게 보고 깊이 통달하며 그가 설명하는 법은 간단하고 긴요하며 빠르고 날카로워 바른 이치와 서로 호응하고 모든 번뇌를 끊게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다시 현자 이월다에게 물었다.
“현자 이월다여, 현자 아난 비구는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내가 이제 다시 묻겠소. 현자 이월다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착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이월다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존자 이월다가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편안히 앉기를 좋아하여 마음의 행이 그치고 좌선을 폐하지 않아 관(觀)을 성취하고 항상 한가히 살기를 좋아하여 편안하고 고요한 곳을 즐깁니다.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는 다시 현자 아나율타에게 물었다.
“현자 아나율타여, 현자 이월다 비구가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내가 이제 다시 묻겠소. 현자 아나율타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착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아나율타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존자 아난율타는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천안통(天眼通)을 얻고 천안통을 성취하여 1천 개의 세계를 조그마한 방편으로 잠깐 동안에 다 봅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는 마치 눈이 밝은 사람이 높은 누각 위에 서 있으면서 그 아래 노지(露地)에 있는 1천 흙구덩이를 조그마한 방편으로 잠깐 동안에 다 보는 것과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와 같이 혹 어떤 비구는 천안통(天眼通)을 얻고 성취하여 1천 세계를 조그마한 방편으로 잠깐 동안에 다 봅니다.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현자 가전연에게 물었다.
“현자 가전연이여, 현자 아나율타 비구가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나는 이제 다시 묻겠소. 현자 가전연이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착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는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가전연이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존자 대가전연이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마치 두 비구 법사가 함께 매우 심오한 아비담(阿毘曇)을 논하는 것과 같이 남이 묻는 일을 다 잘 알아 이해하고 그 답도 또한 걸림이 없어 설법하는 말재주가 민첩하다면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존자 대가섭에게 물었다.
“존자 대가섭이여, 현자 가전연 비구가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내가 이제 다시 묻겠소. 존자 대가섭이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착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존자 대가섭이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존자 대가섭이 대답하였다.
“현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스스로 일 없이 지내며 일이 없음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욕심이 적으며 욕심이 적음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족함을 알고 족함을 아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멀리 떠나 홀로 살아가는 것을 즐기며 멀리 떠나 홀로 살기 좋아하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수행하고 정근하며 수행하고 정근하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바른 생각[正念]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 세우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선정을 얻고 선정을 얻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지혜가 있고 지혜 있음을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했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한 것을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러 성취하고 기뻐하며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러 성취하고 기뻐하는 것을 칭찬하여 말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존자 사리자가 다시 존자 목건련에게 물었다.
“현자 목건련이여, 존자 대가섭은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내가 이제 다시 묻겠소. 현자 목견련이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목건련이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존자 대목건련이 대답하였다.
“존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큰 여의족(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으며 자재하기 한량없는 여의족이 있습니다. 그는 한량없는 여의족을 행하여 하나를 변화시켜 여럿을 만들고 여럿을 합해 하나를 만들며 하나는 곧 하나 그대로 둡니다.
그는 아는 것이 있고, 보는 것이 있어 돌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 허공에서와 같이 걸림이 없고 땅속으로 드나드는 것이 마치 물에서와 같으며 땅을 밟듯이 물 위를 걸어 빠지지 않고 허공에 올라가 가부좌를 하고 앉는 것이 마치 새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어 저 해와 달을 손으로 움켜잡고 몸은 범천까지 이릅니다.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존자 대목건련이 존자 사리자에게 물었다.
“존자 사리자여, 저와 여러 존자들은 각각 자기가 아는 대로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제 묻겠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고 즐길 만합니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에서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하겠습니까?”

존자 사리자가 대답하였다.
“현자 목건련이여, 혹 어떤 비구는 마음 쓰기를 따라 자재하면서도 마음을 따르지 않소. 그가 만일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오전에 노닐고자 하면 그는 곧 선정에 들었다가 오전에 노닐며 그가 만일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한낮이나 해질 녘에 노닐고자 하면 그는 곧 선정에 들었다가 한낮이나 해질 녘에 노닙니다. 현자 목건련이여, 마치 왕이나 왕의 대신에게는 여러 가지 묘한 빛깔이 섞인 옷이 매우 많이 있어서 그가 만일 오전에 입고자 하면 곧 내어 입고 한낮이나 해질 녘에 입고자 해도 곧 내어 입는 것과 같소. 현자 목건련이여, 이와 같이 혹 어떤 비구는 마음 쓰기를 따라 자재하면서도 마음을 따르지 않소. 그가 만일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오전에 노닐고자 하면 그는 곧 선정에 들었다가 오전에 노닐며 그가 만일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한낮에나 해질 녘에 노닐고자 하면 그는 곧 선정에 들었다가 한낮에나 해질 녘에 노닙니다. 현자 목건련이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오.”

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현자 목건련이여, 나와 여러 현자들은 이미 각각 아는 대로 말하였소. 현자 목건련이여, 우리는 이제 저 여러 현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것 중에서 누가 가장 잘 말하였는가를 알아봅시다.”
이에 존자 사리자ㆍ존자 대목건련ㆍ존자 대가섭ㆍ존자 대가전연ㆍ존자 아나율타ㆍ존자 이월다ㆍ존자 아난 등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 여러 존자들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아난도 또한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조용히 섰다.

존자 사리자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현자 대목건련ㆍ존자 대가섭ㆍ현자 가전연ㆍ현자 아나율타ㆍ현자 이월다ㆍ현자 아난 등은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제게 왔었습니다. 저는 멀리서 여러 현자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 현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 왔소. 현자 아난이여, 잘 왔소. 아난이여, 잘 왔소. 아난이여, 세존의 시자는 세존의 뜻을 알고 항상 세존의 칭찬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소. 나는 이제 현자 아난에게 묻겠소.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아난이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현자 아난이 곧 제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널리 배우고 많이 듣고 잘 지녀 잊지 않으며 널리 아는 것을 쌓아 둡니다. 그가 말하는 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또한 묘하며 뜻도 있고 문체도 있으며 두루 갖추고 청정하여 범행을 드날립니다. 이러한 모든 법을 널리 듣고 많이 들어 천 번이나 음미하며 익히고 생각하고 관찰하는 것은 밝게 보고 깊이 통달하며 그가 설명하는 법은 간단하고 긴요하며 빠르고 날카로워 바른 이치과 서로 호응하고 모든 번뇌를 끊게 합니다.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자여, 진실로 아난 비구가 말한 것과 같다. 왜냐 하면 아난 비구는 많이 듣기[多聞]를 성취하였기 때문이니라.”

존자 사리자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현자 아난이 이렇게 말한 뒤에 저는 다시 현자 이월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현자 이월다여, 현자 아난 비구는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내가 이제 다시 묻겠소. 현자 이월다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이월다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현자 이월다가 곧 제게 대답하였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편안히 앉기를 좋아하여 마음의 행이 그치고 좌선을 폐하지 않아 관을 성취하고 항상 한가히 살기를 좋아하여 편안하고 고요한 곳을 즐깁니다. 존자 사리자여,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자여, 이월다 비구가 말한 바와 같다. 왜냐 하면 이월다 비구는 언제나 좌선(坐禪)을 즐기기 때문이니라.”

존자 사리자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현자 이월다가 이렇게 말한 뒤에 저는 다시 현자 아나율타에게 물었습니다.
‘현자 아나율타여, 현자 이월다 비구가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내가 이제 다시 묻겠소. 현자 아나율타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아나율타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하겠는지요?’
현자 아나율타는 곧 제게 대답하였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천안통을 얻고 천안통을 성취하여 1천 세계를 조그마한 방편으로 잠깐 동안에 다 봅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는 마치 눈이 밝은 사람이 높은 누각 위에 있으면서 그 아래 노지에 있는 1천 개의 흙구덩이를 조그마한 방편으로 잠깐 동안에 다 보는 것과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와 같이 만일 어떤 비구가 천안통을 얻고 천안통을 성취하여 1천 세계를 조그마한 방편으로 잠깐 동안에 다 본다면,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자여, 아나율타 비구가 말한 것과 같다. 왜냐 하면 아나율타 비구는 천안통(天眼通)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니라.”

존자 사리자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현자 아나율타가 이렇게 말한 뒤에 저는 다시 현자 가전연에게 물었습니다.
‘현자 가전연이여, 현자 아나율타 비구가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나는 이제 다시 묻겠소. 현자 가전연이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 즐길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가전연이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하겠는지요?’
현자 가전연이 곧 제게 대답하였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마치 두 비구 법사가 함께 매우 심오한 아비담을 논하는 것과 같이 남이 묻는 일을 다 알아 이해하고 그 답도 또한 걸림이 없어 설법하는 말재주가 민첩하면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자여, 가전연 비구가 말한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가전연 비구는 법을 잘 분별(分別)하는 법사이기 때문이니라.”

존자 사리자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현자 가전연이 이렇게 말한 뒤에 저는 다시 대가섭에게 물었습니다.
‘존자 대가섭이여, 현자 가전연 비구가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내가 이제 다시 묻겠소. 존자 대가섭이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고 즐길 만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는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존자 대가섭이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존자 대가섭이 곧 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현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스스로 일이 없이 지내며 일이 없음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욕심이 적으며 욕심이 적음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족함을 알며 족함을 아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멀리 떠나 홀로 사는 것을 즐기고 멀리 떠나 홀로 사는 삶을 즐기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수행하고 정근하며 수행하고 정근하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고 스스로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를 세우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 세우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선정을 얻고 선정을 얻는 것을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지혜가 있고 지혜를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모든 번뇌가 이미 다했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한 것을 칭찬하여 말하며 스스로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러 성취하고 기뻐하며 마음을 내고 못내 우러러 성취하고 기뻐하는 것을 칭찬하여 말합니다. 현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오.’”

세존께서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자여, 가섭이 말한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가섭 비구는 항상 일 없기를 행하기 때문이니라.”

존자 사리자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대가섭이 이렇게 말한 뒤에 저는 다시 현자 목건련에게 물었습니다.
‘현자 목건련이여, 존자 대가섭이 이미 아는 대로 말하였소. 내가 이제 다시 묻겠소. 현자 목건련이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고 즐길만 하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다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소. 현자 목건련이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지요?’
현자 대목건련이 곧 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으며 자재하기 한량없는 여의족이 있습니다. 그는 한량없는 여의족을 행하여 하나를 변화시켜 여럿을 만들고 여럿을 합해 하나로 만들며 하나는 곧 하나 그대로 둡니다. 그는 아는 것이 있고 보는 것이 있어 돌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은 허공에서와 같이 걸림이 없고 땅속으로 드나드는 것은 마치 물에서와 같으며 땅을 밟듯이 물 위를 걸어 빠지지 않고 허공에 올라가 가부좌를 하고 앉는 것이 마치 새와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어 저 해와 달을 손으로 움켜잡고 몸은 범천까지 이릅니다. 존자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사리자여, 목건련 비구가 말한 것과 같다. 왜냐 하면 목건련 비구는 큰 여의족이 있기 때문이니라.”

이에 존자 대목건련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와 여러 존자들은 그렇게 말한 뒤에 곧 존자 사리자에게 말했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저와 여러 존자들은 각각 자기가 아는 대로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제 묻겠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이 우각사라 동산은 매우 애정이 가고 즐길 만합니다. 밤이 되면 밝은 달이 뜨고 모든 사라나무들은 묘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마치 하늘꽃과 같습니다. 존자 사리자여, 어떤 비구가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수 있겠습니까?’

존자 사리자가 곧 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현자 목건련이여, 혹 어떤 비구는 마음 쓰기를 따라 자재하면서도 마음을 따르지 않소. 그가 만일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오전에 노닐고자 하면 그는 곧 선정에 들었다가 곧 오전에 노닐며 그가 만일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한낮이나 해질 녘에 노닐고자 하면 그는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한낮이나 해질 녘에 노니오. 현자 목건련이여, 마치 왕이나 왕의 대신에게는 여러 가지 묘한 빛깔이 섞인 옷이 매우 많이 있어서 그가 만일 오전에 입고자 하면 곧 내어 입고 한낮이나 해질 녘에 입고자 하면 곧 내어 입는 것과 같소. 현자 목건련이여, 이와 같이 혹 어떤 비구는 마음 쓰기를 따라 자재하면서도 마음을 따르지 않소. 그가 만일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오전에 노닐고자 하면 그는 곧 선정에 들었다가 오전에 노닐며 그가 만일 어디서나 선정에 들었다가 한낮이나 해질 녘에 노닐고자 하면 그는 곧 선정에 들었다가 한낮이나 해질 녘에 노닙니다. 현자 목건련이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오.’”

세존께서는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목건련이여, 사리자 비구가 말한 것과 같다. 왜냐 하면 사리자 비구는 마음 쓰기를 따라 자재하기 때문이니라.”

이에 존자 사리자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와 여러 현자들이 이렇게 말한 뒤에 저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현자 목건련이여, 나와 모든 현자들은 이미 각각 아는 대로 말하였소. 현자 목건련이여, 우리는 이제 저 여러 현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것 중에서 누가 가장 잘 말하였는가를 알아봅시다.’
세존이시여. 저희들 중에 누가 가장 잘 말하였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사리자여, 모두가 다 좋다. 왜냐 하면 그 모든 법은 다 내가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리자여, 내 말을 들으라. 그러한 비구들이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다. 사리자여, 혹 어떤 비구는 그가 의지해 사는 성이나 촌ㆍ읍의 어디에서 밤을 지내고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 몸을 잘 보호하고 모든 근을 잘 단속하고 그 기억[念]을 잘 세운다. 그는 걸식한 뒤 오후가 되면 옷과 발우를 챙기고 손과 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에 메고 혹은 일 없는 곳이나 혹은 나무 밑이나 혹은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서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그는 가부좌를 풀기 전에 결국은 번뇌가 다하게 된다. 그가 가부좌를 풀기 전에 결국은 번뇌가 다하게 되면 사리자여, 그러한 비구라면 이 우각사라 동산을 더욱 아름답게 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우각사라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785자이다.

185) 우각사라림경(牛角娑羅林經) 제4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마제(那摩提)6)수(瘦)를 유행하실 적에 건기정사(揵祁精舍)7)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나마제로 가서 걸식하셨고 걸식을 마치고 오후가 되어 우각사라 동산으로 가셨다.

그 때 우각사라 동산에는 존자 아나율타(阿那律陀)와 존자 난제(難提)8)와 존자 금비라(金毘羅)9) 등 세 족성의 아들이 함께 있었다.
그 존자들의 소행은 이러하였다. 걸식하고 먼저 돌아온 자는 자리를 펴고 물을 길으며 발 씻는 그릇을 내어놓고 씻은 발을 올려놓는 등상[橙]ㆍ발 닦는 수건ㆍ물병ㆍ대야를 준비해 놓는다. 빌어온 밥을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먹고 남으면 그릇에 덮어둔다. 먹은 뒤에는 발우를 거두고 손과 발을 씻고 니사단10)을 어깨에 메고 방에 들어가 고요히 앉는다. 혹 걸식하고 뒤에 돌아온 자는 빌어 온 밥을 다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먹고 모자라면 앞사람이 남겨둔 밥을 가져다 먹는다. 그래도 남으면 깨끗한 땅이나 벌레가 없는 물에다 쏟는다. 그는 먹은 밥그릇을 깨끗이 씻어 닦은 뒤에는 한쪽에 치워 두고 자리를 걷고 씻은 발을 얹는 등상을 치우고 발 닦는 수건을 거두고 발 씻는 그릇ㆍ물병ㆍ대야를 챙기고 물을 뿌려 식당을 쓸고 변소를 소제한 뒤에 가사와 발우를 챙겨 두고 손과 발을 씻고 니사단을 어깨에 메고 방에 들어가 편안히 앉는다. 그 존자들은 해질 무렵이 되어 혹 편안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난 자는 물병이나 대야가 비어 물이 없는 것을 보면 곧 가지고 가서 물을 긷고 그 물그릇이 힘에 겹지 않으면 그대로 가지고 와서 한쪽에 둔다. 만일 그 물 그릇이 힘에 겨우면 곧 손으로 한 비구를 불러 둘이서 들고 와서 한쪽에 두되 서로 말하지도 않고 서로 묻지도 않는다. 그 존자들은 닷새 만에 한 번 모여 서로 법을 말하거나 혹은 성스러운 침묵을 지킨다.

그 때 동산지기는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꾸짖어 막으면서 말하였다.
“사문, 사문, 이 동산에 들어오지 마시오. 왜냐 하면 지금 이 동산에는 존자 아나율타ㆍ존자 난제ㆍ존자 금비라 등 세 족성의 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일 당신을 보면 아마 싫어 할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동산지기여, 그들이 만일 나를 보면 틀림없이 좋아하면 했지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 존자 아나율타가 멀리서 세존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곧 동산지기를 꾸짖었다.
“동산지기여, 세존을 나무라지 말라. 그대 동산지기여, 선서(善逝)를 나무라지 말라. 우리 세존께서 오신다. 우리 선서께서 오신다.”

존자 아나율타는 나아가 세존을 맞아 그 가사와 발우를 받들었고 존자 난제는 부처님을 위하여 평상을 폈으며 존자 금비라는 부처님을 위하여 물을 가지고 왔다.

그 때 세존께서 손과 발을 씻으시고 그 존자가 펴놓은 자리에 앉으셔서 곧 물으셨다.
“아나율타여, 너는 항상 안온하고 부족한 것은 없느냐?”

존자 아나율타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늘 안온하며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물으셨다.
“아나율타여, 어떻게 안온하고 부족한 것은 없는가?”

존자 아나율타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곧 내게는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말하자면 나는 이미 이러한 범행자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 저 범행자들을 향해 자비스러운 몸의 업을 행하되 남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한결같아서 다름이 없으며 자비스러운 입의 업과 자비스러운 뜻의 업을 행하되 남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한결같아서 다름이 없이 그렇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 ‘나는 이제 내 마음을 버리고 저 현자들의 마음을 따르자’는 생각이 들면 곧 제 마음을 버리고 저 현자들의 마음을 따랐고 아직 한번도 언짢아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항상 안온하고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세존께서 존자 난제에게 물으셨고, 존자 난제의 대답도 또한 그와 같았다. 세존께서는 다시 존자 금비라에게 물으셨다.
“너는 늘 안온하고 부족한 것은 없느냐?”

존자 금비라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늘 안온하며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안온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가?”

존자 금비라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내게는 좋은 이익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말하자면 나는 이러한 범행자들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항상 저 범행자들을 향해 자비스러운 몸의 업을 행하되 남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한결같아서 다름이 없으며 자비스러운 입의 업과 자비스러운 뜻의 업을 행하되 남이 보거나 보지 않거나 한결같아서 다름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또 ‘나는 이제 내 마음을 버리고 저 현자들의 마음을 따르자’는 생각이 들면 저는 곧 제 마음을 버리고 저 현자들의 마음을 따랐고 저는 아직 한 번도 언짢아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항상 안온하고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나율타여, 그와 같이 너희들은 언제나 서로 화합하고 안온하여 다툼이 없으며 마음을 하나로 하고 스승을 하나로 하며 물과 젖처럼 하나로 합하였구나. 그러면 혹 사람보다 뛰어난 어떤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내는 것인가?”

존자 아나율타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항상 서로 화합하고 안온하여 다툼이 없으며 마음을 하나로 하고 스승을 하나로 하며 물과 젖처럼 하나로 화합하여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욕심을 여의었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었으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희들은 항상 서로 화합하고 안온하여 다툼이 없으며 마음을 하나로 하고 스승을 하나로 하며 물과 젖처럼 하나로 화합하며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냅니다.”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나율타여,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 혹 다시 다른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내는가?”

“세존이시여,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 다시 다른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제 마음은 자애로움[慈]과 함께하여 1방(方)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닐며,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ㆍ하 일체에 두루합니다.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번민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悲]과 기뻐함[喜]도 또한 그러하며, 마음은 평정함[捨]과 함께하여 번민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는 것이니, 이른바 다른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나율타여,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 혹 다시 다른 어떤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내는가?”

“세존이시여,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 다시 다른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넘어서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는 것이니 이른바 다시 다른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나율타여,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 혹 다시 다른 어떤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내는가?”

존자 아나율타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 다른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여의족(如意足)ㆍ천이지(天耳智)ㆍ타심지(他心智)ㆍ숙명지(宿命智)ㆍ생사지(生死智)를 얻었고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었으며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며 현재에 있어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험하여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고 사실 그대로 압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는 것이니, 이른바 다시 다른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낸다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아나율타여,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 혹 다시 다른 어떤 것이 있어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내는가?”

존자 아나율타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그렇게 머무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더 지나서는 다시 사람보다 뛰어난 법을 얻어 차등을 두고 안락하게 지내게 하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곧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큰 종족의 아들들이 노니는 곳은 안온하고 쾌락하다. 나는 이제 저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곧 존자 아나율타ㆍ존자 난제ㆍ존자 금비라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셨다.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그들에게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신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셨다.
이에 존자 아나율타ㆍ존자 난제ㆍ존자 금비라는 세존이 가시는 곳까지 전송해 드리고 곧 자기들 처소로 돌아왔다.

존자 난제와 존자 금비라는 존자 아나율타를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존자 아나율타여, 저희는 존자 아나율타께서 저희들에게 그처럼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을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존자 아나율타께서는 세존께 저희들을 너무도 칭찬하였습니다.”

존자 아나율타도 존자 난제와 금비라를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존자들이여, 나도 또한 일찍 존자들에게 이렇게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다는 말을 다른 이들에게서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래 전부터 마음으로 존자들의 마음을 알았고 또 존자들에게 그렇게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는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세존에게 그러그러한 말을 한 것입니다.”

이 때 형체가 아주 묘하고 광명이 아주 빛나는 귀천(鬼天)의 수장은 먼동이 트려 할 때에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세존께 아뢰었다.
“큰 선인이시여, 모든 발기(跋耆) 사람들은 대단히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과 존자 아나율타ㆍ존자 난제ㆍ존자 금비라 등 세 족성의 아들들이 현재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 지신(地神)은 귀천(鬼天) 수장(首長)의 이 말을 듣고 큰 소리로 외쳤다.
“큰 선인이여, 모든 발기 사람들은 대단히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세존과 존자 아나율타ㆍ존자 난제ㆍ존자 금비라 등 세 족성의 아들들이 현재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신에게서 이 소리를 들은 허공천(虛空天)ㆍ사왕천ㆍ삼십삼천ㆍ험마천(■摩天:焰摩天)ㆍ도솔천ㆍ화락천ㆍ타화락천도 이렇게 외쳤고 그 소리는 잠깐 동안에 범천까지 들렸다.
“큰 선인이시여, 모든 발기 사람들은 아주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과 존자 아나율타ㆍ난제ㆍ금비라 등 세 족성의 아들들이 현재 이 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고 그렇다, 귀천의 수장이여. 모든 발기 사람들은 큰 좋은 이익을 얻었다. 무슨 까닭인가? 세존과 존자 아나율타ㆍ난제ㆍ금비라 등 세 족성의 아들들이 현재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귀천의 수장이여, 지신은 네 소리를 듣고 곧 큰 소리로 외쳤다.
‘큰 선인이여, 모든 발기 사람들은 큰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과 존자 아나율타ㆍ난제ㆍ금비라 등 세 족성의 아들들이 현재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신에게서 이 소리를 들은 허공천ㆍ사왕천ㆍ삼십삼천ㆍ험마천ㆍ도솔천ㆍ화락천ㆍ타화락천도 이렇게 외쳤고 그 소리는 잠깐 동안에 범천까지 들렸다.
‘큰 선인이여, 모든 발기 사람들은 아주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과 존자 아나율타ㆍ난제ㆍ금비라 등 세 족성의 아들들이 현재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귀천의 수장이여, 저 세 족성 집안의 이 세 아들들은 수염과 머리를 깎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운다. 만일 저 세 족성 집 안 사람들이 이 세 아들들의 의지한 바와 행한 바를 기억해 생각한다면 그들도 또한 오랫동안 크게 좋은 이익을 얻어 안온하고 쾌락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저 촌ㆍ읍 사람이나 하늘ㆍ악마ㆍ범천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 이 세 족성의 아들이 의지한 바와 행한 바를 기억해 생각한다면 그들도 또한 오랫동안 요익을 얻어 안온하고 쾌락할 것이다. 귀천의 수장이여, 이 세 족성의 아들들은 이렇게 큰 여의족이 있고, 이렇게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세 족성의 아들들과 귀천의 수장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우각사라림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308자이다.

186) 구해경(求解經) 제5제4 분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자기의 뜻으로 남의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 그들은 세존이 바로 깨달은 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여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 때 비구들은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세존께서는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에게서 나옵니다. 원하옵건대 말씀하여 주소서. 저희들이 듣는다면 그 뜻을 자세히 알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자세히 분별하여 설명하리라.”
비구들은 분부를 받아 경청하였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뜻으로써 남의 마음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은 마땅히 두 가지 방법으로 여래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는 눈으로 색(色)을 보는 방법이고, 둘째는 귀로 소리를 듣는 방법이다.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더러우면 ‘이것이 그 존자에게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살펴보라. 그렇게 살펴볼 때 그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더러운 법이 그 존자에게는 없음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것이 없거든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잡(雜)되면 ‘이것이 그 존자에게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살펴보라. 그렇게 알아 볼 때 그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잡된 법이 그 존자에게는 없는 것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것이 없거든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희고 깨끗하면 ‘이것이 그 존자에게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살펴보라. 이렇게 살펴볼 때 그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희고 깨끗한 법이 그 존자에게 있는 것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것이 있거든 ‘그 존자는 오랫동안 그 법을 행하였는가 잠깐 동안 행하였는가?’ 다시 살펴보라. 이렇게 살펴볼 때 그 존자는 오랫동안 이 법을 행하였고 잠깐 동안 행한 것이 아님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가 항상 수행하거든 다시 ‘그 존자는 명예나 이익을 위해서 이 선(禪)에 드는가? 명예나 이익을 위해서 이 선에 드는 것이 아닌가’를 살펴보라. 이렇게 살펴 볼 때 그 존자는 재환(災患)을 위해서 이 선에 드는 것이 아님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존자는 즐거이 행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욕심을 여의고 욕심을 행하지 않으며 욕심이 이미 다했다’고 말하거든 곧 그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현자여, 현자는 어떤 행이 있고 어떤 힘이 있으며 어떤 지혜가 있기에 현자 스스로 바로 관찰하고는 〈그 존자는 즐거이 행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욕심을 여의고 욕심을 행하지 않으며 욕심이 이미 다했다〉고 말하는가?’
그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하자.
‘현자여, 나는 그의 마음도 알지 못하고 또한 다른 일도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그 존자는 혹 혼자 있거나 혹 대중 가운데 있거나 혹은 어떤 모임에 있으면서 선서가 되기도 하고 또는 선서의 교화를 받는 자들의 그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나는 식사 때 그 현자를 볼 수 있었다.
현자여, 나는 그를 알지 못하지만 그 존자에게 직접 이렇게 들었다.
〈나는 즐겁게 행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욕심을 여의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욕심을 이미 다했다.〉
현자여, 내게는 이런 행과 이런 힘과 이런 지혜가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 바르게 관찰하고 〈그 존자는 즐겁게 행하며 두려워하지 않고 욕심을 여의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욕심이 이미 다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그에게 여래의 법을 물어 보라.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더러우면 그 법은 거기서는 다 없어져 남음이 없는가?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잡되면 그 법도 거기서는 다 없어져 남음이 없는가?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희고 깨끗하면 그 법도 거기서는 다 없어져 남음이 없는가?’
이제 여래는 그를 위하여 대답하리라.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더러우면 그 법은 거기서는 다 없어져 남음이 없다.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잡되면 그 법은 거기서 다 없어져 남음이 없다.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더러우면 여래는 그것을 끊어 없애고 뿌리째 뽑아 다시는 나지 않게 한다. 만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잡되면 나는 그것을 끊어 없애고 뿌리째 뽑아 다시는 나지 않게 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법이 희고 깨끗하면 그것은 나의 희고 깨끗한 법이니, 이러한 것이 나의 경계요, 이러한 것이 사문이다. 나는 이와 같이 바른 법과 율을 성취하였다.’
어떤 믿음이 있는 제자가 여래를 찾아와 뵙고 여래를 받들어 모시고 여래를 따라 법을 들으면 여래는 그를 위하여 높고 또 높으며 묘하고 또 묘한 법을 설하고 검고 흰 것을 잘 가름해 줄 것이다. 여래가 그를 위하여 높고 또 높으며 묘하고 또 묘한 법을 설하고 검고 흰 것을 잘 가름해 주면 그는 그것을 들은 뒤에는 한 법을 끊을 줄 알아 모든 법에서 구경을 얻고 세존을 깨끗한 마음으로 믿으며 ‘저 세존은 바르게 깨달은 이’라고 할 것이다.

다시 그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현자여, 그대는 어떤 행이 있고 어떤 힘이 있으며 어떤 지혜가 있기에 한 법을 끊을 줄 알아 모든 법에서 구경을 얻고 세존을 깨끗한 마음으로 믿으며 저 세존을 바르게 깨달은 이라고 하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현자여, 나는 세존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또한 다른 일을 아는 것도 아니다. 나는 세존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깨끗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세존께서는 나를 위하여 높고 또 높으며 묘하고 또 묘한 법을 설하시고 검고 흰 것을 잘 가름해 주셨다. 현자여, 세존께서 사실 그대로 법을 말씀하시면 나도 사실 그대로 그것을 들었다. 여래께서는 나를 위해 높고 또 높으며 묘하고 또 묘한 법을 설하고 검고 흰 것을 잘 가름해 주셨다. 나는 그것을 사실 그대로 들은 뒤 한 법을 끊을 줄 알아 모든 법에서 구경을 얻고 〈저 세존은 바르게 깨달은 분이구나〉라고 깨끗한 마음으로 세존을 믿게 되었다.
현자여, 내게는 이런 행과 이런 힘과 이런 지혜가 있으므로 나는 한 법을 끊을 줄 알아 모든 법에서 구경을 얻고 〈저 세존은 바르게 깨달은 분〉이라고 깨끗한 마음으로 세존을 믿는다.’
만일 이런 행이 있고 이런 힘이 있으며 여래에게 깊이 마음을 주어 믿음의 뿌리가 이미 서면 이것을 근본을 보고 무너지지 않으며 지혜와 상응한 믿음이라 한다. 사문 범지ㆍ하늘ㆍ악마ㆍ범천 및 어떠한 세상도 그것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여래에 대해 알아보고 이렇게 여래를 바르게 알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증일아함경』 제47권 「목우품」 여덟 번째 소경이 있다.
2 팔리어로는 Agā이고, 앙가(央伽) 또는 앙가(鴦伽)로 음역하기도 한다. 부처님 재세시 16국 중의 하나였으나 후에 마가다국에 병합되었다.
3 마읍(馬邑, Assapura)은 앙가국의 도성이었다.
4 명의 행[命行]이란 팔정도의 정명(正命)에서와 마찬가지로 생활방식 혹은 직업 등을 의미한다. 명(命)을 청정히 한다는 것은 계율(戒律)에 합당한 생활방식으로 살아감을 말한다.
5 이 경의 이역본으로 서진(西晋)시대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생경(生經)』 중의 소경 「비구각언지경(比丘各言志經)」이 있다.
6 팔리어로는 Nādika이고 나제가(那提迦)로 음역하기도 한다. 『잡아함경』 제30권 854번째 소경에서는 나리가(那犁迦)로 되어 있다.
7 팔리어로는 Gijakāvasatha이고 긴기가정사(緊耆迦精舍)라고도 한다. 초벌구이한 벽돌로 지은 정사라는 뜻이다.
8 난제(難提)는 팔리어로 Nandiya이다.
9 금비라(金毘羅)는 팔리어로 Kimbila이다.
10 니사단(尼師壇)은 범어로 Niīdana이고 좌구(坐具)ㆍ부구(敷具)ㆍ수좌의(隨坐衣)로 한역한다. 부처님께서 제정한 비구 6물(物)의 하나로 앉거나 누울 때 땅에 펴는 네모난 깔개이다.
11 소경의 숫자를 더하면 9,918자인데 여기엔 9,919자로 되어 있어 1자가 더 많다.

중아함경 제49권

승가제바 한역

15. 쌍품 제1
이 쌍품에는 총 다섯 개의 경이 수록되어 있다. 이 후송(後誦)은 3품 반으로 되어 있으며, 총 36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설지경(說智經)과 아이나경(阿夷那經)과
구루(拘樓)에게 밝힌 성도경(聖道經)과
동원(東園)에서 논한 소공경(小空經)과
그리고 마지막엔 대공경(大空經)이다.

187) 설지경(說智經) 제1제5일송 후송(後誦)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비구가 너희들에게 와서 그가 이미 얻은 지혜를 말하면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고 말하거든 너희들은 그 말을 듣고는 마땅히 ‘그렇다’ 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라. ‘그렇다’ 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현자여, 세존께서는 색성음(色盛陰:色取蘊)ㆍ각성음(覺盛陰:受取蘊)ㆍ상성음(想盛陰:想取蘊)ㆍ행성음(行盛陰:行取蘊)ㆍ식성음(識盛陰:識取蘊), 이 5성음(盛陰)에 대해 말씀하셨다. 현자여, 이 5성음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그것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물었을 때 만일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응당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색성음은 과(果)가 아니요 공허한 것이며 욕심 낼 것이 아니요 항상 있는 것도 아니며 의지할 것도 아니요 변하는 법이다. 나는 그런 줄을 알기 때문에 만일 색성음에 대해서 욕망이 있고 물듦이 있으며 집착함이 있고 묶임과 묶임의 번뇌가 있으면 그것을 없애고 욕심 내지 않으며 마음을 멸하고 쉬고 그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각ㆍ상ㆍ행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또 식성음은 과(果)가 아니요 공허한 것이며 욕심 낼 것이 아니요 항상 있는 것도 아니며 의지할 것도 아니요 변하는 법이다. 나는 그런 줄을 알기 때문에 만일 식성음에 대해서 욕망이 있고 물듦이 있으며 집착이 있고 묶임과 묶임의 번뇌가 있으면 그것을 없애고 욕심 내지 않으며 마음을 멸하고 쉬고 그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안다.
여러분, 나는 이 5성음(盛陰)을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기 때문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마땅히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여야 하느니라.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현자여, 세존께서는 4식(食)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중생들은 그것으로써 살고 몸을 기르게 된다. 어떤 것이 그 넷인가? 첫째는 거칠거나 섬세한 단식(摶食)이요, 둘째는 갱락식(更樂食)이요, 셋째는 의념식(意念食)이요, 넷째는 식식(識食)이다.
현자여, 이 네 가지 음식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되는가?’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나는 단식에 대해서 만족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으며 의지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해탈을 얻고 다 해탈하여 마음에 전도됨이 없다. 그리하여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갱락식과 의념식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식식에 대해서도 만족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으며 의지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해탈을 얻고 모두 해탈하여 마음에 전도됨이 없다. 그리하여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여러분, 나는 이 4식에 대하여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기 때문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마땅히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해야 하느니라.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현자여, 세존께서는 4설(說)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견견설(見見說)이요, 둘째는 문문설(聞聞說)이요, 셋째는 식식설(識識說)이요, 넷째는 지지설(知知說)이다. 현자여, 이 4설에 대하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되는가?’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나는 견견설에 대해서 만족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으며 의지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해탈을 얻고 모두 해탈하여 마음에 전도됨이 없다. 그리하여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이와 같이 문문설ㆍ식식설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지지설에 대해서도 만족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으며 의지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으며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아 해탈을 얻고 모두 해탈하여 마음에 전도됨이 없다. 그리하여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여러분, 나는 이 4설을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기 때문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마땅히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여야 하느니라.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현자여, 세존께서는 안처(眼處)ㆍ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 등 이 안[內]의 6처(處)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현자여, 이 안의 6처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되는가?’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나는 눈[眼]과 눈의 식[眼識]과 눈의 식으로 아는 법을 함께 알아 두 법을 다 알아 마쳤다. 여러분, 만일 눈과 눈의 식과 눈의 식으로 아는 법의 즐거움을 다하고 나서 그것을 없애고 욕심 내지 않으며 마음을 멸하고 쉬고 그치면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또 뜻[意]과 뜻의 식[意識]과 뜻의 식으로 아는 법을 함께 알아 두 법을 다 알아 마쳤다. 여러분, 만일 뜻과 뜻의 식과 뜻의 식으로 아는 법의 즐거움을 다하고 나서 그것을 없애고 욕심 내지 않으며 마음을 멸하고 쉬고 그치면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없어져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여러분, 나는 안의 6처를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기 때문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마땅히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여야 하느니라.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현자여, 세존께서는 땅 경계[地界]ㆍ물 경계[水界]ㆍ불 경계[火界]ㆍ바람 경계[風界]ㆍ허공 경계[空界]ㆍ식 경계[識界] 등의 6계(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현자여, 이 6계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되는가?’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나는 땅 경계를 내 소유라고 보지 않고 나는 땅 경계의 소유도 아니며 땅 경계는 신(神)도 아니다. 그런데 이른바 3수(受)는 땅 경계를 의지하여 머무르고 식의 사자(使者)는 이를 집착한다. 그것을 없애고 욕심 내지 않으며 마음을 멸하고 쉬고 그치면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물 경계ㆍ불 경계ㆍ바람 경계ㆍ허공 경계도 또한 그러하다. 식 경계는 내 소유가 아니요 나도 식 경계의 소유가 아니며 식 경계는 신(神)도 아니다. 그런데 3수는 식 경계를 의지하여 머무르고 식의 사자는 이를 집착한다. 그것을 없애고 욕심 내지 않으며 마음을 멸하고 쉬고 그치면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여러분, 나는 이 6계를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기 때문에 집착함이 없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이 해탈한 줄을 알게 된다.’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마땅히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여야 하느니라.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이렇게 물어 보라.
‘현자여, 어떻게 알고 보아야 이 안 몸[內身]이 함께 가지고 있는 식과 또 바깥의 모든 모양과 일체의 나와 내가 지은 것과 또 교만의 번뇌를 끊고 그것을 뿌리째 뽑아 다시는 나지 않게 하겠는가?’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러분, 나는 출가하여 도를 배우기 전에 이미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울고 괴로워하고 근심하고 슬퍼하는 것을 싫어해서 이 큰 괴로움의 무더기를 끊고자 하였다. 여러분, 나는 그것을 싫어한 끝에 이렇게 관찰하였다.
〈집이란 지극히 비좁고 괴로운 곳이요, 집을 나가 도를 배우는 것은 시원하고 넓고 크다. 내가 지금 집에서 살면 쇠사슬에 묶여 한 평생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적거나 많거나 상관없이 재물을 버리고, 또 적거나 많거나 상관없이 친척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자.〉
여러분, 나는 그 뒤에 적거나 많거나 상관없이 재물을 버리고 적거나 많거나 상관없이 친척을 버리고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닦았다.
여러분, 나는 친척과 재물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운 뒤에는 비구가 갖추어야 할 요목을 배우고 금계(禁戒)를 닦아 익히며 종해탈(從解脫)1)을 지켜 보호하였다. 또 위의와 예절을 잘 지키고 털끝만한 죄를 보아도 언제나 두려워하였으며 학문의 요긴한 뜻을 받아 가졌었다.

여러분, 나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었다. 그래서 칼이나 막대기를 버렸고 자신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고 남에게도 부끄러워하였으며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곤충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이익하게 하였으니 나는 살생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또 나는 도둑질을 여의고 도둑질을 끊었다. 그래서 남이 준 뒤에야 받고 주는 것 받기를 좋아하였으며 언제나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기뻐하여 아낌이 없었고 그리고 그 갚음을 바라지 않았으니, 나는 도둑질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범행이 아닌 것을 여의고 범행이 아닌 것을 끊었다. 그래서 범행을 부지런히 닦고 묘한 행을 힘써 닦아 청정하고 더러움이 없었고 욕심을 여의고 사음을 끊었으니 나는 범행이 아닌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었다. 그래서 진실한 말을 하여 진실을 즐거워하고 진실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았으며 일체를 믿어 세상을 속이지 않았으니 나는 거짓말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이간질하는 말을 여의고 이간질하는 말을 끊었다. 그래서 이간질하는 말로 사람들의 화합을 깨뜨리지 않았다. 여기서 들은 말을 저기에 옮겨 이것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고 저기서 들은 말을 여기에 옮겨 저것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다. 갈라서려는 자는 합치게 하고 합친 자에겐 서로 기뻐하게 하며 당파를 만들지 않고 당파를 즐기지 않으며 당파를 칭찬하지 않았으니, 나는 이간질하는 말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추악한 말을 여의고 추악한 말을 끊었다. 만일 말하는 바 말씨가 추하고 거칠며 악한 음성이 귀에 거슬리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므로 남을 괴롭게 하고 안정을 얻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말을 끊었다. 만일 그 말이 맑고 온화하며 부드럽고 윤택해 귀에도 순하고 마음에도 들면 기뻐할 만하고 사랑할 만하여 남을 안락하게 하고 말과 음성이 함께 분명하여 남을 두렵게 하지 않고 남을 안정되게 한다. 나는 이런 말을 하나니, 나는 추한 말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꾸밈말을 여의고 꾸밈말을 끊었다. 때에 맞는 말ㆍ참말ㆍ법다운 말ㆍ이치에 맞는 말ㆍ고요한 말을 하여 다툼을 그치게 하는 것을 좋아하고 때를 따라 적당함을 얻고 잘 가르치고 잘 꾸짖나니 나는 꾸밈말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나는 살림살이를 여의고 살림살이를 끊었다. 그래서 저울과 말[斗]과 섬을 버렸고 또한 재물을 받지 않으며 사람을 결박하지 않고 말질을 속이려 하지 않으며 조그마한 이익으로 남을 속이지 않나니 나는 살림살이에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과부나 처녀 받는 것을 여의고 과부나 처녀 받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과부나 처녀 받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종(奴) 받는 것을 여의고 종 받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종 받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 받는 것을 여의고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 받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 받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닭이나 돼지 받는 것을 여의고 닭이나 돼지 받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닭이나 돼지 받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농사나 상점 받는 것을 여의고 농토나 점포 받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농토나 점포 받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생벼ㆍ보리ㆍ콩 받는 것을 여의고 생벼ㆍ보리ㆍ콩 받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생벼ㆍ보리ㆍ콩 받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술을 여의고 술을 끊었으니 나는 술 마시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높고 넓고 큰 평상 쓰는 것을 여의고 높고 넓고 큰 평상 쓰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높고 넓고 큰 평상 쓰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화만ㆍ영락ㆍ바르는 향ㆍ연지분 쓰는 것을 여의고 화만ㆍ영락ㆍ바르는 향ㆍ연지분 쓰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화만ㆍ영락ㆍ바르는 향ㆍ연지분 쓰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노래ㆍ춤ㆍ풍류와 그것을 보고 듣는 것을 여의고 노래ㆍ춤ㆍ풍류와 그것을 보고 듣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노래ㆍ춤ㆍ풍류를 보고 듣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금[生色]2)ㆍ은[像]3) 등 보배를 받는 것을 여의고 금ㆍ은 등의 보배 받는 것을 끊었으니 나는 금ㆍ은 등의 보배 받는 것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오후의 음식을 여의고 오후의 음식을 끊고 하루에 한 끼 먹으며 밤이나 공부 때에는 먹지 않나니 나는 오후의 음식에 있어서 내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이미 이 거룩한 계의 몸을 성취하였다. 그리고 또 나는 만족할 줄을 안다. 옷은 다만 몸을 가리기 위해 가지고 음식은 다만 몸을 기르기 위해 먹는다. 내가 가는 곳마다 옷과 발우가 나를 따르니 더 이상 돌아보거나 그리울 것이 없다. 마치 기러기가 두 날개로 공중을 나는 것과 같나니 나도 또한 그와 같다. 여러분, 나는 이미 이 거룩한 계의 몸과 또 매우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성취하였으며 다시 모든 감각기관[根]을 지켜 언제나 막기를 생각하고 밝게 통달하기를 생각하며 그 생각하는 마음을 잘 지켜 보호하여 성취하게 되었다. 그래서 항상 생각을 일으키기를 좋아하여 혹 눈으로 빛깔을 보더라도 그 모양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그 빛깔을 음미하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분노하고 다투게 되기 때문에 눈을 지켜 단속하여 마음속에 탐욕ㆍ근심ㆍ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을 일으키지 않으며 그리로 나아가기 위해 눈을 지켜 단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혹 뜻으로 법을 알더라도 그 모양을 받아들이지 않고 또한 그 법을 음미하지 않는다. 무슨 까닭인가? 분노하고 다투게 되기 때문에 뜻을 지켜 단속하여 마음속에 탐욕ㆍ근심ㆍ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을 일으키지 않으며 그리로 나아가기 위해 뜻을 지켜 단속하는 것이다.
여러분, 나는 이 거룩한 계의 몸과 아주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성취하고 모든 감각[根]을 깨끗이 단속하고 들고남을 바로 알아 잘 관찰하고 분별하며 굽히고 펴기와 구부리고 우러르기와 몸가짐을 바로 알고 승가리와 여러 가지 옷을 바르게 입고 발우를 바르게 가지며 다니고 서기와 앉고 눕기와 잠자고 깨기와 말하고 잠잠하기를 바르게 알고 있다.

여러분, 나는 이미 이 거룩한 계의 몸과 매우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성취하고 또한 거룩한 계로 모든 감관을 단속하고 들고남을 바르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일 없는 곳에서 혼자 살거나, 혹은 나무 밑이나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이나 산바위ㆍ돌집ㆍ한데[露地]ㆍ짚무더기로 가고 혹은 숲 속이나 혹은 화장터로 갔다. 여러분, 나는 일 없는 곳에 있거나 혹은 나무 밑이나 비고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 가서는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바른 몸과 바른 소원으로 생각이 다른 데로 향하지 않게 하였다. 탐욕을 끊어 없애고 마음에는 다툼이 없어 남의 재물이나 모든 생활 도구를 보아도 탐욕을 일으켜 내 소유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으니 나는 탐욕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이와 같이 성냄ㆍ수면ㆍ들뜸ㆍ뉘우침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의심을 끊고 미혹을 없애 모든 착한 법에 대해서 망설임이 없나니 나는 의혹에 있어서 그 마음을 깨끗이 버렸다. 여러분, 나는 이미 마음을 더럽히고 지혜를 약하게 하는 이 5개(蓋)를 끊고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증득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여러분, 나는 이미 이러한 청정하고 고요한 마음을 얻어 더러움이 없고 번거로움이 없고 부드럽고 연하며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고 번뇌가 다한 신통의 지혜로 나아가 스스로 징험을 얻었다.

여러분, 나는 이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과 이 괴로움의 소멸과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았다. 또 이 누(漏)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누의 발생과 이 누의 소멸과 이 누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았다. 나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욕루(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유루(有漏)와 무명루(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았다. 그리하여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다.
여러분, 나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안 몸에 있는 식과 바깥의 모든 모양과 일체의 나와 내가 지은 것과 또 교만을 끊고 뿌리째 뽑아 다시는 나지 않게 하였다.’
번뇌가 다한 비구로서 범행을 알고 이미 법을 세운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마땅히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여야 하느니라.
그렇다고 인정하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는 다시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라.
‘현자여, 현자가 처음에 말하였을 때 우리는 이미 옳다 하고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현자에게서 높고 또 높으며 지혜로운 대답의 변재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자에게 묻고 또 물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설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846자이다.

188) 아이나경(阿夷那經) 제2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동원(東園) 녹자모(鹿子母) 강당4)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해질 무렵이 되어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당(堂) 아래로 내려와 밖의 당 그늘을 거니시면서 여러 비구들을 위해 매우 깊고 미묘한 법을 널리 설명하셨다. 그 때 이교도인 사문 만두(蠻頭)의 제자 아이나(阿夷那)5)는 멀리서 세존께서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당에서 내려와 당 그림자로 인해 생긴 그늘 속을 거니시며 모든 비구들을 위해 매우 깊고 미묘한 법을 널리 설명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 때 이학(異學)인 만두의 제자 아이나는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문안드리고 부처님을 따라 거닐었다. 세존께서는 돌아보시고 물으셨다.
“아이나여, 사문 만두는 참으로 5백 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른 어떤 사문 범지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았으면 그는 스스로 ‘나는 남음이 없고 남음이 없음을 안다’고 일컬으며 그에게 허물이 있는 것을 보면 스스로 ‘허물이 있다’고 일컫는가?”

만두의 제자 아이나가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사문 만두는 참으로 5백 가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다른 어떤 사문 범지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았으면 그는 스스로 ‘나는 남음이 없고 남음이 없음을 안다’고 일컬으며 그에게 허물이 있는 것을 보면 스스로 ‘허물이 있다’고 일컫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아이나여, 그대는 왜 ‘사문 만두는 참으로 5백 가지 생각을 한다. 그리고 만일 다른 어떤 사문 바라문이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았으면 그는 스스로 〈나는 남음이 없고 남음이 없는 것을 안다〉고 일컬으며 그에게 허물이 있는 것을 보면 스스로 〈허물이 있다〉고 일컫는다’고 말하는가?”

“구담이시여, 사문 만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혹은 잠자거나 깨어있거나 혹은 낮이나 밤이나 항상 걸림이 없이 알고 또 본다. 때로는 달리는 코끼리ㆍ방일하게 날뛰는 말ㆍ달리는 수레ㆍ반역한 군사ㆍ달리는 남자ㆍ달리는 여자를 만나고, 혹은 이런 길을 가다가 사나운 코끼리ㆍ사나운 말ㆍ사나운 소ㆍ사나운 개를 만나며, 혹은 독사 떼를 만나고 던지는 흙덩이에 맞으며 혹은 막대기로 맞으며 개천에 떨어지거나 뒷간에 빠지며, 혹은 누운 소를 타거나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며, 혹은 가시밭 속에 들어가고, 혹은 촌이나 읍을 보고 그 이름과 길을 물으며, 혹은 남자나 여자를 보고 그 성과 이름을 묻고, 혹은 빈 집을 관찰한다. 이렇게 하고는 대중 속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들어온 뒤에 내게 이렇게 묻는다.
〈존자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여러분, 나는 나쁜 세계로 가게 된다.〉’
구담이시어, 사문 만두(蠻頭)는 이러한 종류의 5백 가지 생각을 생각하고, 만일 다른 어떤 사문 범지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았으면 그는 스스로 〈나는 남음이 없고 남음이 없는 것을 안다〉고 말하며, 또 그에게 허물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거닐기를 그만두시고 곧 거니시던 길 머리로 가시어 니사단(尼師檀)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모든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비구들아, 내가 말한 지혜에 대한 일을 너희들은 받아 가졌느냐?”
모든 비구들은 잠자코 대답이 없었다.

세존께서는 재삼 물으셨다.
“내가 말한 지혜에 대한 일을 너희들은 받아 가졌느냐?”
모든 비구들도 또한 재삼 잠자코 대답이 없었다.

그 때 어떤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은 위하여 지혜에 대한 일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그것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이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자세히 분별하여 말하리라.”

비구들이 아뢰었다.
“예, 분부대로 경청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개 두 가지 무리가 있다. 하나는 법다운 무리요, 다른 하나는 법답지 않은 무리이다. 어떤 것이 법답지 않은 무리인가? 어떤 사람이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하고 법답지 않은 법을 말하면 그 무리들도 또한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하고 법답지 않은 법을 말한다. 그 법답지 않은 사람은 법답지 않은 무리들 앞에서 자기가 아는 것을 허망하게 말한다. 진실이 아닌 것을 나타내 보이고 분별하면서 그 행을 주장하고 널리 펴서 차례차례 법을 설명한다. 그러나 남의 잘못을 끊고자 하더라도 그것을 힐난하여 말하지 못하고, 이 바른 법과 율 중에서는 자기가 아는 것을 칭찬하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저 법답지 않은 사람은 법답지 않은 무리 앞에서 스스로 ‘나는 지혜가 있어 두루 안다’고 일컫는다. 이 중에서 만일 지혜에 대한 일을 이렇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법답지 않은 무리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법다운 무리인가? 혹 어떤 사람이 법다운 일을 행하고 법다운 법을 말하면 그 무리도 또한 법다운 일을 행하고 법다운 법을 말한다. 그 법다운 사람은 법다운 무리 앞에서 자기가 아는 것을 진실 되게 말한다. 진실을 나타내 보이고 분별하여 그 행을 주장하고 널리 펴 차례차례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남의 잘못을 끊고자 하면 힐난하여 곧 그것을 말할 수 있고 이 바른 법 중에서 자기가 아는 것을 칭찬하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법다운 사람은 법다운 무리 앞에서 스스로 ‘나는 지혜가 있어 두루 안다’고 말한다. 이 중에서 만일 지혜에 대한 일을 이렇게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법다운 무리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법과 법 아님, 이치와 이치 아님을 알아야 하고 법과 법 아님, 이치와 이치 아님을 안 뒤에는 너희들은 마땅히 법다움과 이치다움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마땅히 아셔야 하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법(法)과 법 아님[非法], 이치[義]와 이치 아님[非義]을 알아야 하고 법과 법 아님, 이치와 이치 아님을 안 뒤에는 마땅히 법다움과 이치다움을 배워야 하느니라.’
이렇게 그 뜻을 간략히 말씀하시고는 자세하게 분별하시지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누가 자세하게 분별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시자로서 부처님의 뜻을 알고 항상 부처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존자 아난이라면 능히 아까 부처님께서 간략하게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하게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존자 아난에게 가서 이 뜻을 설명해 달라고 간청해 봅시다. 그리고 만일 존자 아난이 우리를 위해 분별해 주거든 우리는 마땅히 잘 받아 가집시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아난에게 가서 서로 안부를 묻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존자 아난이여, 마땅 아셔야 합니다. 아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마땅히 법과 법 아님, 이치와 이치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법과 법 아님, 이치와 이치 아님을 안 뒤에는 마땅히 법다움과 이치다움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그 뜻을 간략히 말씀하시고는 더 이상 자세하게 분별해 주시지 않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누가 자세하게 분별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저희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시자로서 부처님의 뜻을 알고 항상 부처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존자 아난이라면 능히 아까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그 뜻을 자세하게 분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아난이여, 저희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 뜻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여러분, 내가 비유를 들어 말하리니 잘 들어보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어 말하면 그 뜻을 빨리 이해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나무 심[實]6)을 얻기 위하여 도끼를 가지고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큰 나무가 뿌리ㆍ줄기ㆍ마디ㆍ가지ㆍ잎ㆍ꽃ㆍ나무 심으로 된 것을 보고 뿌리ㆍ줄기ㆍ마디ㆍ나무 심은 건드리지 않고 가지와 잎만 건드렸습니다. 여러분의 말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세존께서 현재 계시는데 그 분을 내버려두고 내게 와서 그 뜻을 묻다니요. 왜냐 하면 여러분, 세존께서는 눈이요 지혜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로서 진리의 뜻을 말씀하십니다. 일체의 뜻은 오직 저 세존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세존께 나아가 ‘세존이시여, 이것은 무엇이며, 이것은 어떠한 뜻입니까?’ 하고 물어보십시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여 주시거든 여러분은 마땅히 잘 받아 가지십시오.”

모든 비구들이 아난에게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존자 아난이여, 세존께서는 눈이요 지혜이며, 이치요 법이며, 법의 주인이요 법의 장수로서 진리의 뜻을 말씀하시고, 일체 뜻은 오직 저 세존에게서 나옵니다. 그러나 존자 아난께서는 부처님의 시자로서 부처님의 뜻을 아시고, 항상 부처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존자 아난이시라면 아까 저 세존께서 간략히 말씀하신 뜻을 자세하게 분별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존자 아난이여, 저희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그것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존자 아난이 모든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모두 내 말을 들으시오. 여러분, 삿된 소견은 법이 아니요 바른 소견이라야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삿된 소견으로 말미암아 한량없이 악한 법을 내면 이것은 이치가 아니며, 만일 바른 소견으로 말미암아 한량없이 착한 법을 내면 이것은 바른 이치입니다. 여러분, 나아가 삿된 지혜는 법이 아니며, 바른 지혜가 법입니다. 만일 삿된 지혜로 말미암아 한량없이 악한 법을 내면 이것은 이치가 아니며, 만일 바른 지혜로 말미암아 한량없이 착한 법을 내면 이것은 바른 이치입니다.
여러분, 이른바 세존께서는 ‘너희들은 마땅히 법과 법 아님, 이치와 이치 아님을 알아야 한다. 법과 법 아님, 이치와 이치 아님을 안 뒤에는 마땅히 법다움과 이치다움을 배워야 하느니라’라고 그 뜻을 간략히 말씀하시고는 자세하게 분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습니다. 이렇게 세존께서 그 뜻을 간략히 말씀하시고 자세하게 분별하지 않으신 것을 나는 이런 글귀로써 자세하게 분별하였습니다. 여러분, 부처님께 나아가 이 일을 낱낱이 말씀드리십시오. 만일 세존께서 말씀하신 그 뜻과 같거든 여러분들은 곧 받아 가지십시오.”

이에 모든 비구들은 존자 아난의 말을 들어 잘 받아가져 외우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아난을 세 번 돌고는 떠나갔다. 그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아까 간략히 이 뜻을 말씀하시고 자세하게 분별하지 않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가 편안히 앉으셨습니다. 그래서 존자 아난이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세존께서 들으시고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내 제자 중에는 안목도 있고 지혜도 있으며 법도 있고 이치도 있구나. 왜냐 하면 스승이 제자를 위하여 그 뜻을 간략히 말하고 자세하게 분별해 주지 않자 그 제자가 이런 글귀와 이런 글로써 그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아난이 말한 바와 같이 너희들은 마땅히 그렇게 받아 가져야 한다. 왜냐 하면 설해진 대로 그 뜻을 관찰해 보면 분명 그러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아이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828자이다.

189) 성도경(聖道經) 제3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루수(拘樓瘦)의 도읍인 검마슬담(劍磨瑟曇)이라는 곳을 유행하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으로 하여금 청정을 얻고 근심과 슬픔과 울음을 여의게 하며 걱정과 괴로움과 번민을 없애 곧 법다움을 얻게 하는 하나의 도(道)가 있다. 이른바 거룩한 바른 선정[正定]이 그것인데, 그것을 익히고 그것을 도우며 또한 그것을 준비하는 것으로 또 7지(支)가 있다. 그러므로 거룩한 바른 선정에서는 익힘을 말하며 도움을 말하고 또한 갖춤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7지라 하는가? 바른 소견[正見]ㆍ바른 뜻[正志]ㆍ바른 말[正語]ㆍ바른 업[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방편[正方便]ㆍ바른 생각[正念]이다. 만일 이 7지의 익힘과 도움과 준비가 있어 잘 나아가 마음이 하나가 되면 이것을 거룩한 바른 선정이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익힘과 도움과 준비가 있다. 왜냐 하면 바른 소견은 바른 뜻을 낳고 바른 뜻은 바른 말을 낳으며 바른 말은 바른 업을 낳고 바른 업은 바른 생활을 낳으며 바른 생활은 바른 방편을 낳고 바른 방편은 바른 생각을 낳으며 바른 생각은 바른 선정을 낳기 때문이다. 현성의 제자는 이렇게 마음에 바른 선정이 있어 갑자기 사음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없앤다. 현성의 제자는 이렇게 바른 마음으로 해탈하여 갑자기 알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 중에서 바른 소견이 제일 앞에 있다.

만일 삿된 소견을 삿된 소견이라고 보면 이것은 바른 소견[正見]이요, 만일 바른 소견을 바른 소견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소견이다. 어떤 것을 삿된 소견이라 하는가? 이른바 보시도 없고 재(齋)도 없고 또한 주설(呪說)도 없으며 선악의 업도 없고 선악업의 과보도 없으며 이 세계도 없고 저 세계도 없으며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또 세상에는 좋은 곳에 이르고 잘 가고 잘 향하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징험하고 성취하여 노니는 참 사람도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삿된 소견이라 한다.
어떤 것을 바른 소견이라 하는가?이른바 보시도 있고 재도 있고 또한 주설도 있으며 선악의 업도 있고 선악업의 과보도 있으며 이 세계도 있고 저 세계도 있으며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 세상에는 좋은 곳에 이르고 잘 가고 잘 향하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징험하고 성취하여 노니는 참 사람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한다. 이것이 ‘삿된 소견을 삿된 소견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소견이요, 바른 소견을 바른 소견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소견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안 뒤에 곧 배우기를 구하고 삿된 소견을 끊어 바른 소견을 성취하려고 하면 이것을 바른 방편이라 한다. 비구가 삿된 소견을 끊고 바른 소견을 성취하려고 생각하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한다. 이 3지(支)는 바른 소견을 따르고 바른 소견의 방편을 따른다. 그러므로 바른 소견이 가장 앞에 있느니라.

만일 삿된 뜻을 삿된 뜻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뜻[正志]이라 할 것이요, 만일 바른 뜻을 바른 뜻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뜻이라 할 것이다. 어떤 것을 삿된 뜻이라 하는가? 탐욕이 있는 생각ㆍ성냄이 있는 생각ㆍ해침이 있는 생각이니, 이것을 삿된 뜻이라 한다. 어떤 것을 바른 뜻이라 하는가? 탐욕이 없는 생각ㆍ성냄이 없는 생각ㆍ해침이 없는 생각, 이것을 바른 뜻이라 한다. 이것이 ‘삿된 뜻을 삿된 뜻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뜻이라 할 것이요, 바른 뜻을 바른 뜻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뜻이라 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안 뒤에 곧 배우기를 구하고 삿된 뜻을 끊어 바른 뜻을 성취하려고 하면 이것을 바른 방편이라 한다. 비구가 삿된 뜻을 끊고 바른 뜻을 성취하려고 생각하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한다. 이 3지는 바른 뜻을 따르고 바른 소견의 방편을 따른다. 그러므로 바른 소견이 가장 앞에 있다고 하느니라.

만일 삿된 말을 삿된 말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말[正語]이요, 만일 바른 말을 바른 말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말이다. 어떤 것을 삿된 말이라 하는가? 거짓말ㆍ이간하는 말ㆍ추악한 말ㆍ꾸밈말이니, 이것을 삿된 말이라 한다. 어떤 것을 바른 말이라 하는가? 거짓말ㆍ이간하는 말ㆍ추악한 말ㆍ꾸밈말을 여읜 말이니 이것을 바른 말이라 한다. 이것이 ‘삿된 말을 삿된 말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말이요, 바른 말을 바른 말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말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안 뒤에 곧 배우기를 구하고 삿된 말을 끊어 바른 말을 성취하려고 하면 이것을 바른 방편이라고 한다. 비구가 삿된 말을 끊고 바른 말을 성취하려고 생각하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고 한다. 이 3지는 바른 말을 따르고 바른 소견의 방편을 따른다. 그러므로 바른 소견이 가장 앞에 있느니라.

만일 삿된 업을 삿된 업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업[正業]이요, 만일 바른 업을 바른 업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업이다. 어떤 것이 삿된 업인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이니 이것을 삿된 업이라 한다. 어떤 것을 바른 업이라 하는가? 살생ㆍ도둑질ㆍ사음을 여읜 업이니 이것을 바른 업이라 한다. 이것이 ‘삿된 업을 삿된 업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업이요, 바른 업을 바른 업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업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안 뒤에 곧 배우기를 구하고 삿된 업을 끊어 바른 업을 성취하려고 하면 이것을 바른 방편이라 한다. 비구가 삿된 업을 끊고 바른 업을 성취하려고 생각하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한다. 이 3지는 바른 업을 따르고 바른 소견의 방편을 따른다. 그러므로 바른 소견이 가장 앞에 있느니라.

만일 삿된 생활을 삿된 생활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생활[正命]이요, 만일 바른 생활을 바른 생활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생활이다. 어떤 것을 삿된 생활이라 하는가? 만일 구하는 것이 있어 뜻에 차지 않으면 여러 가지 축생의 주문을 외우는 등 삿된 방법으로 존속해 가는 것이다. 그는 법답지 않게 법이 아닌 것으로써 의복을 구하고 법답지 않게 법이 아닌 것으로써 음식ㆍ평상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를 구한다. 이것을 삿된 생활이라 한다. 어떤 것을 바른 생활이라 하는가? 만일 구하지도 않고 구하는 것이 뜻에 차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축생의 주문을 외우는 등 삿된 방법으로 생활을 존속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는 법답게 의복을 구하고 법답게 음식ㆍ평상ㆍ탕약과 여러 가지 생활 도구를 구한다. 이것을 바른 생활이라 한다. 이것이 ‘삿된 생활을 삿된 생활이라 보면 이것은 바른 생활이요, 바른 생활을 바른 생활이라 보면 이것도 또한 바른 생활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안 뒤에 곧 배우기를 구하고 삿된 생활을 끊고 바른 생활을 성취하려고 하면 이것을 바른 방편이라 한다. 비구가 삿된 생활을 끊고 바른 생활을 성취하려고 하면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한다. 이 3지는 바른 생활을 따르고 바른 소견의 방편을 따른다. 그러므로 바른 소견이 가장 앞에 있느니라.

어떤 것을 바른 방편[正方便]이라 하는가? 비구는 이미 생긴 나쁜 법은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서둘러 방편을 구하고 온 마음을 다해 정근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쁜 법은 생기지 않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서둘러 방편을 구하고 온 마음을 다해 정근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서둘러 방편을 구하고 온 마음을 다해 정근한다. 이미 생긴 착한 법은 그대로 머물게 하고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게 하며 더 자라고 널리 퍼지게 하며 닦아 익히고 원만히 갖춰지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서둘러 방편을 구하고 온 마음을 다해 정근한다. 이것을 바른 방편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바른 생각[正念]이라 하는가? 비구는 안 몸[內身]을 몸으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ㆍ마음ㆍ법에 이르기까지 법 그대로 관찰한다. 이것을 바른 생각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바른 선정[正定]이라 하는가?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을 바른 선정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바른 해탈[正解脫]이라 하는가? 욕심내는 마음으로부터 해탈하고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해탈한다. 이것을 바른 해탈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바른 지혜[正智]라 하는가? 비구는 욕심내는 마음으로부터 해탈한 줄을 알고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해탈한 줄을 안다. 이것을 바른 지혜라 하느니라.
다시 이것을 학자(學者)7)가 성취하는 8지라 하고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성취하는 10지8)라 한다.

어떤 것을 학자가 성취하는 8지라 하는가? 유학(有學)의 바른 소견과 나아가 유학의 바른 선정이니, 이것을 학자가 성취하는 8지라 한다. 어떤 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성취하는 10지라 하는가? 무학(無學)의 바른 소견과 나아가 무학의 바른 지혜이니, 이것을 번뇌가 다한 아라하가 성취하는 10지라 한다. 왜냐 하면 바른 소견은 삿된 소견을 끊기 때문이다. 만일 삿된 소견으로 인하여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면 그는 그것도 또한 끊고 만일 바른 소견으로 인하여 한량없는 착한 법이 생기면 그는 곧 그것을 닦고 익혀 가득 차고 구족하게 한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바른 지혜는 삿된 지혜를 끊기 때문이다. 만일 삿된 지혜로 인하여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면 그는 또한 그것을 끊고 만일 바른 지혜로 인하여 한량없는 착한 법이 생기면 그는 곧 그것을 닦고 익혀 가득 차고 구족하게 한다.

이것을 20선품(善品)과 20불선품(不善品)이라 한다. 곧 이 40대법품(大法品)을 설하여 범륜(梵輪)을 굴리면 어떤 사문 범지ㆍ하늘ㆍ악마ㆍ범천 및 그 밖의 세상도 그것을 제어하거나 그르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말한 40대법품으로 범륜을 굴리면 어떤 사문 범지ㆍ하늘ㆍ악마ㆍ범천 및 그 밖의 세상도 그것을 제어하거나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 따라서 만일 다음과 같은 사문 범지가 있다면 그들은 법다움에 있어서 열 가지 꾸지람[詰責]이 있게 된다. 어떤 것이 열 가지 꾸지람인가? 혹 어떤 이는 바른 소견을 헐뜯고 삿된 소견을 칭찬하거나 혹은 삿된 소견을 가진 사문 범지를 공양하고 칭찬한다. 내가 말한 40대법품으로 범륜을 굴리면 사문 범지ㆍ하늘ㆍ악마ㆍ범천 및 그 밖의 세상도 그것을 제어하거나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 따라서 만일 그런 사문 범지가 있다면 그는 법다움에 있어서 첫 번째의 꾸지람을 듣게 된다.

더 나아가서 어떤 이는 바른 지혜를 헐뜯고 삿된 지혜를 칭찬하거나, 혹은 삿된 지혜를 가진 사문 바라문을 공양하고 칭찬한다. 내가 말한 40대법품으로 범륜을 굴리면 어떤 사문 범지ㆍ하늘ㆍ악마ㆍ범천 및 그 밖의 세상도 그것을 제어하거나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 따라서 만일 그런 사문 범지가 있다면 그는 법다움에 있어서 열 번째의 꾸지람을 듣게 된다. 이처럼 내가 말한 40대법품으로 범륜을 굴리면 어떤 사문 범지ㆍ하늘ㆍ악마ㆍ범천 및 그 밖의 세상도 그것을 제어하거나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 따라서 만일 위와 같은 사문 범지가 있다면 그들은 법다움에 있어서 열 가지 꾸지람을 듣게 되느니라. 또 혹 어떤 사문 범지는 쭈그리고 앉아 쭈그려 앉으라고 말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면서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말하며 원인이 없다고 말하고 지음이 없다고 말하여 이른바 이런 저런 지은 바 선악을 주장하고 서로를 단절하고 파괴한다. 그러나 내가 말한 40대법품으로 범륜을 굴리면 어떤 사문 범지ㆍ하늘ㆍ악마ㆍ범천 및 그 밖의 세상도 그것을 제어하거나 그르다고 말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도 또한 꾸지람과 근심과 두려움이 있게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성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805자이다.

190) 소공경(小空經) 제4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동원(東園)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이 해질 무렵이 되어 고요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언젠가 석도읍(釋都邑)이라고 하는 석가족의 성을 유행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 세존에게서 이러한 이치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아난아, 나는 공(空)을 많이 수행한다.’
세존께서 설하신 말씀을 제가 잘 이해하였고 잘 받아 가졌다고 하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너는 그 때 내 말을 진실로 잘 알고 잘 받아 가졌다. 왜냐 하면 나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공을 많이 수행하였다. 아난아, 이 녹자모 강당은 텅 비어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ㆍ재물ㆍ미곡ㆍ종들이 없다. 비지 않은 것이 있다면 오직 비구들뿐이다. 아난아, 만일 이 가운데 그것이 없다면 그 때문에 나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여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마을에 대한 생각[村想]을 하지 말고 사람에 대한 생각[人想]을 생각하지 말며, 오로지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無事想]9)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이렇게 알아 마을에 대한 생각을 비우고, 사람에 대한 생각을 비운다. 그러나 오직 할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마을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사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다.’
만일 그것이 그 가운데 없다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사람에 대한 생각도 하지 말고,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도 하지 말며, 오로지 땅에 대한 생각[地想]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 비구는 혹 그 땅에 높고 낮음이 있고 뱀떼가 있으며, 가시덤불이 있고, 모래가 있으며, 돌산이 험하고 깊은 물이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생각하지 말라. 만일 그 땅이 편편하기 손바닥 같고 경관이 좋은 곳을 보거든 마땅히 그것을 자꾸 생각하라.
아난아, 마치 소가죽을 백 개의 못으로 펴 바를 때에 팽팽하게 펴 바르면 주름살도 없고 오그라들지도 않는 것과 같다. 만일 그 땅에 높고 낮음이 있고 뱀 떼가 있으며, 가시덤불이 있고 모래가 있으며, 돌산이 험하고 깊은 물이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은 생각하지 말라. 만일 그 땅이 편편하기 손바닥 같고, 경관이 좋은 곳을 보거든 마땅히 그것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이렇게 알아 사람에 대한 생각도 비우고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도 비운다. 그러나 오직 땅에 대한 생각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사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땅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다.’
만일 그것이 그 가운데 없다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을 생각하지 말고 땅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며 오로지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無量空處想]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이렇게 알아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도 비우고 땅에 대한 생각도 비운다. 그러나 오직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일이 없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땅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땅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고 한량이 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며 오로지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無量識處想]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이렇게 알아 땅에 대한 생각도 비우고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도 비운다. 그러나 오직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땅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고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며 오로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無所有處想]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이렇게 알아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도 비우고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도 비운다. 그러나 오직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한량없는 허공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아난아, 비구가 만일 공을 많이 행하려고 한다면 그 비구는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을 생각하지 말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도 생각하지 말며 오로지 무상심정(無想心定)만을 자꾸 생각하라. 그는 이렇게 알아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을 비우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대한 생각도 비운다. 그러나 오직 무상심정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한량없는 식이 있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곳에 대한 생각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무상심정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으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상심정(無想心定)을 이미 행하였고 이미 생각하였다. 이미 행하고 이미 생각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즐기지도 않고 그것을 구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탐욕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有漏]에서 마음이 해탈하며 무명의 번뇌[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아 탐욕의 번뇌를 비우고 생명의 번뇌를 비우고 무명의 번뇌를 비운다. 그러나 오직 생명이 있는 자기 몸의 6처(處)만은 비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깨닫는다.
‘혹 어떤 피로는 탐욕의 번뇌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다. 혹 어떤 피로는 생명의 번뇌 때문에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없다. 피로가 있다면 오직 생명이 있는 내 몸의 6처 때문에 있다.’
만일 그 가운데 그것이 없으면 그 때문에 그는 그것을 공하다고 볼 것이다. 만일 거기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는 진실로 있다고 볼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였기 때문이니라.

아난아, 과거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도 모두 이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았으니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였기 때문이다. 아난아, 미래의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도 모두 이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을 것이니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난아, 지금 현재의 나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도 또한 이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나니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였기 때문이다.
아난아,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나도 또한 이 진실과 공을 행하여 거꾸로 되지 않나니 왜냐 하면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어지고 함이 없는 마음으로 해탈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너도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소공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423자이다.

191) 대공경(大空經) 제5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석가족이 사는 가유라위(迦維羅衛)에 유행하실 적에 니구류(尼拘類) 동산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가유라위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걸식을 마치시고 오후가 되어 가라차마석정사(加羅差摩釋精舍)10)로 가셨다. 그 때 가라차마석정사에는 많은 평상자리를 펴고 많은 비구들이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세존께서는 가라차마석정사에서 나와 다시 가라석정사(加羅釋精舍)11)로 가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많은 비구들과 함께 가라석정사에 있으면서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존자 아난은 멀리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마중을 나가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를 받아 들고 돌아와 자리를 펴고 물을 길어다 부처님 발을 씻어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발을 씻으시고 가라석정사에서 존자 아난이 펴놓은 자리에 앉아 말씀하셨다.
“아난아, 가라차마석정사에는 많은 평상자리를 펴고 많은 비구들이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존자 아난이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가라차마석정사에는 많은 평상자리를 펴고 많은 비구들이 그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저희들이 지금 가사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는 떠들기를 좋아하거나 떠들기를 즐겨하거나 떠드는 자리에 모이지 않아야 하고 무리 짓기를 좋아하거나 무리 짓기를 즐겨하거나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지 않아야 하며 무리를 떠나려고 하지 않거나 멀리 떠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떠들기를 좋아하며 떠들기를 즐겨하고 떠드는 자리에 모이며 무리 짓기를 좋아하고 무리 짓기를 즐겨하며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며 무리를 떠나려 하지 않고 멀리 떠나 혼자 지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이른바 생명의 즐거움ㆍ거룩한 즐거움ㆍ욕심이 없는 즐거움ㆍ떠난 즐거움ㆍ쉬는 즐거움ㆍ바르게 깨닫는 즐거움ㆍ먹음이 없는 즐거움ㆍ나고 죽지 않는 즐거움 등 이러한 즐거움을 쉽게 얻으려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떠들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떠들기를 즐겨하지 않고 떠드는 자리에 모이지 않으며 무리 짓기를 좋아하지 않고 무리 짓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지 않고 무리를 떠나기를 좋아하고 항상 멀리 떠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즐겨한다고 하자. 그는 이른바 생명의 즐거움ㆍ거룩한 즐거움ㆍ욕심이 없는 즐거움ㆍ떠나는 즐거움ㆍ쉬는 즐거움ㆍ바르게 깨닫는 즐거움ㆍ먹음이 없는 즐거움ㆍ나고 죽지 않는 즐거움 등 이러한 즐거움을 쉽게 얻으려면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느니라.

아난아, 비구는 떠들기를 좋아하거나 떠들기를 즐겨하거나 떠드는 자리에 모이지 않아야 하고 무리 짓기를 좋아하거나 무리 짓기를 즐겨하거나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지 않아야 하며 무리를 떠나기를 좋아하고 멀리 떠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즐겨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어떤 비구가 떠들기를 좋아하고 떠들기를 즐겨하며 떠드는 자리에 모이고 무리 짓기를 좋아하고 무리 짓기를 즐겨하며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며 무리를 떠나려 하지 않고 멀리 떠나 혼자 지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잠깐 동안의 즐거운 마음의 해탈이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해탈을 얻으려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떠들기를 좋아하지 않고 떠들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떠드는 자리에 모이지 않고 무리 짓기를 좋아하지 않고 무리 짓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무리 짓는 자리에 모이지 않으며 무리 떠나기를 좋아하고 항상 멀리 떠난 곳에서 혼자 있기를 즐겨한다고 하자. 그는 잠깐 동안의 즐거운 마음의 해탈이나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해탈을 얻으려 하면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느니라.
왜냐 하면 나는 나를 즐겁게 하는 어떠한 색(色)도 보지 못하였다. 그 색은 무너지고 변하여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슬픔ㆍ울음ㆍ근심ㆍ괴로움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나는 이 곳이나 다른 곳에 머무르면서 바르게 깨닫고 모두 깨달았나니, 이른바 색에 대한 모든 생각을 넘어서서 바깥의 허공을 관찰하였다.

아난아, 나는 그 곳에 머무른 뒤에 기쁨이 생겼다. 나는 이 기쁨을 모두 몸으로 깨닫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서 기쁨이 생기고 고요함이 생기고 즐거움이 생기고 선정[定]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 선정을 전부 몸으로 깨닫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되었다. 아난아, 혹 어떤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이 함께 나를 찾아오면 나는 곧 그들을 위하여 멀리 떠나 욕심이 없음을 즐기는 이런 마음을 쓰고 다시 그들에게 이 법을 설명하여 그들에게 권하고 그들을 돕는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공(空)을 많이 행하려 한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마음을 꼭 붙잡아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하여야 한다. 그는 마음을 붙잡아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한 뒤에 반드시 마음의 공을 생각하여야 한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나는 마음을 꼭 붙잡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일정하게 하지 않고도 마음의 공을 생각한다’고 말한다면 그 비구는 스스로 크게 피로하기만 할 것이다.

아난아, 비구는 어떻게 마음을 꼭 붙잡고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하는가? 비구가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에 그 몸을 모두 담그고 적시면 두루 충만해져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된다. 아난아, 마치 사람이 목욕하는 그릇에 가루비누를 담고 거기에 물을 섞어 환을 만들고 그 몸을 담그고 적시면 두루 충만해져 안팎에 골고루 빠진 곳이 없게 되는 것과 같다. 비구도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에 그 몸을 모두 담그고 적시면 두루 충만해져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두루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되느니라.
아난아, 비구는 이와 같이 마음을 꼭 붙잡아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한다. 그는 마음을 꼭 붙잡아 거기에 머물러 일정하게 한 뒤에는 마땅히 마음의 공(空)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마음의 공을 생각한 뒤에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마음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마음의 공을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마음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바깥의 공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가 바깥 공을 생각한 뒤에도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바깥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바깥의 공을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고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바깥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마음의 공과 바깥의 공을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가 안팎의 공을 생각한 뒤에도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안팎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안팎의 공을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안팎의 공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비구는 마땅히 움직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생각한 뒤에도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움직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움직이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청정하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아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비구는 이런 저런 마음을 정(定)으로 다루고 또 다루고 익히고 또 익히며 부드럽고 또 부드럽게 하여 좋고 유쾌하고 온화하게 하고 멀리 떠난 즐거움을 누리게 해야 한다. 만일 이런 저런 마음을 이런 저런 정으로 다루고 또 다루고 익히고 또 익히며 부드럽고 또 부드럽게 하여 좋고 유쾌하고 온화하게 되고 멀리 떠난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면 마땅히 마음의 공을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그는 마음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마음의 공을 이해하게 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관찰할 때 마음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마음의 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비구는 마땅히 바깥의 공을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그는 바깥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바깥의 공을 이해하게 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관찰할 때 바깥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바깥의 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비구는 마땅히 안팎의 공을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그는 안팎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안팎의 공을 이해하게 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관찰할 때 안팎의 공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안팎의 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마땅히 움직이지 않음을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그는 움직이지 않음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관찰할 때 움직이지 않음을 성취하여 노닌 뒤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며 청정하게 머무르게 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그 비구가 이 곳에 머무르면서 만일 그 마음이 거닐고자 하면 그 비구는 선실(禪室)에서 나와 바깥의 선실 그늘을 거닐며 모든 근을 안에 머물게 하고 마음이 밖으로 향하지 않게 하며 뒤에도 앞의 생각을 계속해야 한다. 이와 같이 거닌 뒤 마음속에 탐욕과 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그 비구가 이곳에 머물면서 만일 그 마음이 앉아서 선정에 들려고 하면, 그 비구는 거닐기를 그만두고 거니는 길머리로 가서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아야 한다. 이와 같이 앉아서 선정에 든 뒤 탐욕과 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그 비구가 이곳에 머물면서 만일 그 마음이 무엇을 생각하고자 하면 그 비구는 만일 그것이 욕심ㆍ성냄ㆍ해침의 세 가지 착하지 않은 악한 생각이면 그 세 가지 착하지 않은 악한 생각을 생각하지 말고 만일 그것이 욕심이 없고 성냄이 없으며 해침이 없는 세 가지 착한 생각이면 그 세 가지 착한 생각을 마땅히 생각하여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뒤 마음속에 탐욕과 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한다.

아난아, 그 비구가 이곳에 머물면서 그 마음이 만일 무엇을 말하고자 하면 그 비구는 만일 그 이야기가 거룩하지 않은 이야기로서 이치와 서로 걸맞지 않는 이른바 왕론(王論)ㆍ적론(賊論)ㆍ투쟁론(鬪爭論)ㆍ음식론(飮食論)ㆍ의복론(衣服論)ㆍ부인론(婦人論)ㆍ동녀론(童女論)ㆍ음녀론(淫女論)ㆍ세간론(世間論)ㆍ사도론(邪道論)ㆍ해중론(海中論)과 같은 여러 가지 축생론(畜生論)이면 논하지 말고, 만일 그 이야기가 거룩한 논으로서 이치와 서로 걸맞아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모든 음개(陰蓋)가 없는 이른바 시론(施論)ㆍ계론(戒論)ㆍ정론(定論)ㆍ혜론(慧論)ㆍ해탈론(解脫論)ㆍ해탈지견론(解脫知見論)ㆍ점손론(漸損論)ㆍ불회론(不會論)ㆍ소욕론(少欲論)ㆍ지족론(知足論)ㆍ무욕론(無欲論)ㆍ단론(斷論)ㆍ멸론(滅論)ㆍ연좌론(燕坐論)ㆍ연기론(緣起論)과 같은 사문의 이야기이면 논하여야 한다. 이렇게 논한 뒤 마음속에 탐욕과 슬픔과 착하지 않은 악법이 생기지 않으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또 아난아, 즐거워할 만하고 마음으로 생각할 만하며 애욕과 서로 걸맞는 5욕(欲)의 공덕(功德)12)이 있다. 그것은 눈으로 빛깔을 지각하고 귀로 소리를 지각하며 코로 냄새를 지각하고 혀로 맛을 지각하며 몸으로 촉감을 지각하는 것이다. 만일 비구의 마음이 거기에 이르면 그는 ‘이 5욕의 공덕은 욕의 공덕에 따라 내 마음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하고 관찰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이 5욕의 공덕은 앞도 없고 뒤도 없이 그 욕의 공덕을 따라 마음에서 활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관찰할 때 이 5욕의 공덕은 그 욕의 공덕을 따라 마음에서 활동하는 것임을 안다면 그 비구는 이런 저런 욕의 공덕을 항상됨이 없다고 관찰하고 쇠해서 없어지는 것이라 관찰하며 욕심낼 것이 없다고 관찰하고 끊어 없애야 할 것이라 관찰하며 끊어 버리고 떠나야 할 것이라고 관찰할 것이다. 그리하여 만일 이 5욕의 공덕에 욕심이 생기고 물듦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애버릴 것이다. 아난아, 만일 비구가 이렇게 관찰할 때 이 5욕의 공덕에 탐욕이 있고 물듦이 있는 줄 알아 그것을 이미 끊었다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다시 아난아, 5성음(盛陰)이 있으니 색성음(色盛陰)과 각(覺)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성음(盛陰)이다. 이른바 비구는 ‘이것은 색(色)이요, 이것은 색의 원인[色集]이요, 이것은 색의 멸[色滅]이다. 각ㆍ상ㆍ행도 또한 그러하며 이것은 식(識)이요, 이것은 식의 원인[識集]이요, 이것은 식의 멸[識滅]이다’라고 이와 같이 흥하고 쇠함을 관찰한다. 만일 이 5성음에 아만(我慢)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앤다. 아난아, 만일 어떤 비구가 이와 같이 관찰할 때 5음(陰)에 아만이 이미 없어진 줄을 알면 이것을 바른 앎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이 법은 한결같이 옳고 한결같이 즐거우며 한결같이 생각해야 할 것으로서 번뇌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악마도 이르지 못하고 악도 이르지 못하며, 모든 착하지 않은 악법과 더러움과 미래 생명의 근본과 번거롭고 극심한 괴로움의 과보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원인이 되는 것도 또한 거기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이 이른바 방일하지 않음을 성취한 것이다. 왜냐 하면 이 방일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모든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은 깨달음을 얻었고 방일하지 않은 근(根)으로 인하여 한량없는 착한 법이 나고, 혹은 도품(道品)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난아,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니 ‘나도 또한 방일하지 않음을 성취하리라’고 그렇게 배워야 한다. 아난아, 믿음이 있는 제자가 무슨 까닭으로 목숨이 다하도록 세존을 따라 행하고 받들어 섬기느냐?”

존자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나옵니다. 원하옵건대 말씀하여 주소서. 저희들이 그것을 들으면 그 뜻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그것을 잘 기억하라. 내가 너를 위해 자세히 분별해 말하리라.”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아난아, 그 정경(正經)과 가영(歌詠)과 기설(記說) 때문에 믿음이 있는 제자가 목숨이 다하도록 세존을 따라 행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이 아니다. 아난아, 그런 법은 다만 저들이 오랫동안 자주 듣고 천 번이나 외워 익히며 마음으로 관찰하고 밝은 지혜로 깊이 통달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만일 그 논(論)이 이치와 상응하는 성인의 논으로서 마음을 부드럽고 연하게 하며 모든 음개(陰蓋)를 없애는 이른바 시론ㆍ계론ㆍ정론ㆍ혜론ㆍ해탈론ㆍ해탈지견론ㆍ점손론ㆍ불회론ㆍ소욕론ㆍ지족론ㆍ무욕론ㆍ단론ㆍ멸론ㆍ연좌론ㆍ연기론이면 이것은 바로 사문들이 논해야 할 것이다. 이것 때문에 믿음이 있는 제자가 목숨이 다하도록 세존을 따라 행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아난아, 다음과 같이 하면 번잡한 스승이 되고 번잡한 제자가 되며 번잡한 범행이 된다.

아난아, 어떤 자를 번잡한 스승이라 하는가? 혹 어떤 스승은 세상에 나와 꾀하고 생각하는 일이 있어 꾀하고 생각하는 땅에 머물며 생각하고 관찰하는 것이 잡되고 범인이지만 말재주는 있다. 그는 일 없는 곳[無事處:阿蘭若]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 살며,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다. 혹은 그런 곳에 살면서 악을 멀리 여의기를 배우고 꾸준히 힘써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어 현재에서 즐겁게 산다. 그가 악을 멀리 여의기를 배우고 꾸준히 힘써 안온하고 쾌락하게 노닌 뒤에 제자를 데리고 돌아오면 범지ㆍ거사ㆍ마을의 백성들이 따른다. 그는 제자를 데리고 돌아와 범지ㆍ거사ㆍ마을의 백성들이 따른 뒤에는 곧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와 같은 자를 번잡한 스승이라 하는데 이것은 착하지 않은 악법이요, 더러운 것으로서 미래에 존재하는 근본이 되고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가 되며 생ㆍ노ㆍ병ㆍ사의 원인이 되는 재앙이니 이런 자를 번잡한 스승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자를 번잡한 제자라고 하는가? 그 스승의 제자들은 멀리 떠나기를 배운다. 그들은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서 살며,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다. 혹은 그런 곳에 살면서 멀리 떠나기를 배우고 꾸준히 힘써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어 현재 세상에서 즐겁게 산다. 그가 멀리 떠나기를 배우고 꾸준히 힘써 안온하고 쾌락하게 노닌 뒤에 제자를 데리고 돌아오면 바라문ㆍ거사ㆍ마을의 백성들이 따른다. 그는 제자를 데리고 돌아와 바라문ㆍ거사ㆍ마을의 백성들이 따른 뒤에는 곧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와 같은 자를 번잡한 제자라고 하는데 이것은 착하지 않은 악법이 되고 더러운 것으로서 미래 생명의 근본이 되며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가 되고 생ㆍ노ㆍ병ㆍ사의 원인이 되는 재앙이니 이런 자를 번잡한 제자라 하느니라.

아난아, 어떤 것을 번잡한 범행이라 하는가? 만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면 그는 무소착(無所著)ㆍ등정각(等正覺)ㆍ명행성위(明行成爲)ㆍ선서(善逝)ㆍ세간해(世間解)ㆍ무상사(無上士)ㆍ도법어(道法御)ㆍ천인사(天人師)ㆍ불중우(佛衆祐)라 불린다. 그는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 살고,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다. 아난아, 여래는 무엇 때문에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 살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가?”

존자 아난이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법의 근본이시고 법의 주인이시며 법은 세존으로부터 나옵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설하여 주십시오. 들으면 그 뜻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곧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내가 너를 위해 두루 분별해 말하리라.”
존자 아난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아난아, 여래는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고자 하고 아직 거두지 못한 것을 거두고자 하며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닫고자 하기 때문에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 살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 것이 아니다. 아난아, 여래는 다만 두 가지 뜻이 있기 때문에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 살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 것이다. 첫째는 현재 스스로 즐겁게 살고자 함이요, 둘째는 후세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다.
혹 후세에 태어나는 어떤 사람은 여래를 본받아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 살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을 것이다. 아난아, 여래는 이 때문에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 살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 것이다.

혹은 그는 그런 곳에 살면서 악을 멀리 여의기를 배우고 꾸준히 힘써 기운이 왕성한 마음을 얻어 현재에 즐겁게 산다. 그가 악을 멀리 여의기를 배우고 꾸준히 힘써 안온하고 쾌락하게 노닌 뒤에 범행을 지니고 돌아오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13)들이 따른다. 그는 범행을 지니고 돌아와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이 따르더라도 교만하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아난아, 만일 그가 움직이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징험을 얻었다. 나는 그에게는 장애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4증상심(增上心)을 얻어 현재 즐겁게 산다면 그것은 본래 꾸준히 힘써 방일함이 없이 노닐었기 때문이요, 거기에 혹 실수가 있더라도 그것은 제자가 많이 모였기 때문이다.

또 아난아, 그 스승의 제자들도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 살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 것을 본받는다. 혹은 그런 곳에 살면서 멀리 떠나 정근(精勤)을 배우고 4증상심을 얻어 현재 즐겁게 산다. 그들이 멀리 떠나 꾸준히 힘써 안온하고 쾌락하게 노닌 뒤에는 범행을 지니고 돌아오면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따른다. 그러나 그들은 범행을 지니고 돌아와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따르면 곧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와 같은 것을 번잡한 범행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착하지 않은 악법이고 더러운 것으로서 미래 존재의 근본이 되며 번거롭고 뜨거운 괴로움의 과보가 되고 생ㆍ노ㆍ병ㆍ사의 원인이 되는 재앙이니 이것을 번잡한 범행이라 하느니라.
아난아, 번잡한 스승과 번잡한 제자보다도 이 번잡한 범행이 더 옳지 못하고 좋아할 만한 것이 아니며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니요 가장 마음으로 생각할 것이 못 된다.
아난아,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아난아, 어떤 것이 제자가 스승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인가? 만일 스승이 제자들을 위해 설법하고 가엾이 여겨 불쌍하게 생각하며 진리를 구하고 요익(饒益)을 구하며 안온과 쾌락을 구하여 자비심을 낸다면 이것은 요익을 위하고 쾌락을 위하며 요익의 즐거움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만일 그 제자가 공경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며 지혜를 세우지 않고 그 마음이 법과 그 다음 법으로 향해 가지 않으며 바른 법을 받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며 능히 선정[定]을 얻지 못하면 이러한 제자는 스승에 대해서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니라.

아난아, 어떤 것이 제자가 스승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인가? 만일 스승이 제자를 위해 설법하고 가엾이 여기고 불쌍하게 생각하며 진리를 구하고 요익을 구하며 안온과 쾌락을 구하여 자비심을 낸다면 이것은 요익을 위하고 쾌락을 위하며 요익의 즐거움을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 제자가 공경하고 순종하여 지혜를 세우고 그 마음이 법과 그 다음 법으로 향해 가며 바른 법을 받아 가지고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지 않으며 능히 선정을 얻으면 이러한 제자는 스승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원망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아난아, 너희들은 나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원망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 왜냐 하면 나는 도공(陶工)이 기와를 만들듯이 그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난아, 내가 말하는 것은 지극히 엄하고 급하며 지극히 괴로운 것이다. 만일 진실히 가지는 자라면 반드시 거기에 머무르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계율(戒律), 즉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이다.
2 생색(生色)은 범어로 jāta-rupa이고 금(金)의 이명이다.
3 상(像)은 범어로 rūpya이고 사색(似色)이라고도 하며 은(銀)의 이명이다.
4 동원 녹자모 강당은 사위성의 동쪽에 있다. 따라서 동원(東園)이라고도 한다. 사위성의 장자 미가라(Migāra)는 본래 외도를 신봉하였다. 그 후 딸인 비사가(毘舍佉)의 교화로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고, 이 때 “비사가가 비록 나의 딸이지만 실재 나의 부모와 같다”고 말했다 한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비사가를 ‘미가라의 어머니’로 불렀다. 미가라는 의역하면 녹(鹿)이다. 따라서 녹자모 강당은 곧 미가라의 딸인 비사가가 지어 부처님께 공양한 정사를 말한다.
5 팔리어로 Ajita이다.
6 팔리본에는 Sāra로 되어 있다. 이는 수심(樹心) 혹은 목재로 쓸 만한 부분을 뜻한다.
7 아라한 즉 무학(無學)에 상대되는 개념이다.
8 8지(支) 즉 팔정도에 정지(正智)ㆍ정해탈(正解脫)을 더한 것이다.
9 팔리본에는 한림상(閑林想, araññasaññā)으로 되어 있다. 즉 한적한 숲속에서의 생활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10 팔리본에는 Kāakhemakassa Sakkassa vihāra로 되어 있다. 즉 석가족 가라차마(加羅差摩:Kālakhemaka)가 건립한 정사라는 뜻이다.
11 팔리본에는 석가족 Ghaāya의 정사로 되어 있다.
12 오욕공덕(五欲功德)은 5욕을 구성하는 요소(要素), 혹은 5욕을 일으키는 힘을 가진 요소 또는 원인을 뜻한다.
13 고려대장경에는 우바사(優婆私)로 되어 있고, 성본(聖本)에는 우바이(優婆夷)로 되어 있다. 이하 우바사를 우바이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14 소경의 경문 글자 수를 합하면 11,579자인데 여기에서는 11,580자로 되어 있어 실제보다 1자가 더 많다.

중아함경 제50권

승가제바 한역

16. 대품(大品) 제2①
이 「대품」에는 총 열 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가루오다이경(加樓烏陀夷經)과
모리파군나경(牟犁破群那經)과
발타화리경(跋陀和利經)ㆍ아습구경(阿濕具經)과
주나경(周那經)ㆍ우바리경(優婆離經)과
조어지경(調御地經)ㆍ치혜지경(癡慧地經)과
아리타경(阿梨吒經)ㆍ다제경(嗏帝經)이다.

192) 가루오다이경(加樓烏陀夷經) 제1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앙가국(鴦伽國)에 노니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아화나(阿■那)1)로 가시어 건야정사(揵若精舍)2)에 머물고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아화나로 들어가 걸식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가 되자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손과 발을 씻은 뒤에 니사단을 어깨에 걸치고 어떤 숲으로 가서 거닐려고 하셨다.
그 때 존자 오다이(烏陀夷)3)도 또한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아화나로 들어가 걸식하였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오후가 되자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손과 발을 씻은 뒤에 니사단을 어깨에 걸치고 부처님 뒤를 따라 모시고 가면서 생각하였다.
‘만일 세존께서 지금 거닐려고 하신다면 나도 또한 거기 가서 거닐으리라.’

그 때 세존께서는 숲속으로 들어가 어떤 나무 밑에 이르러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으셨다. 존자 오다이도 또한 그 숲으로 들어가 부처님에게서 멀지 않은 어떤 나무 밑에 이르러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존자 오다이는 고요한 곳에서 혼자 앉아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시고 선서께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안온을 주신다. 세존께서는 우리들의 많은 괴로운 법을 덜어주시고 즐거운 법을 더해 주신다. 세존께서는 우리들의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을 덜어주시고 한량없는 모든 착하고 묘한 법을 더해 주신다.’

존자 오다이는 해질 무렵에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오다이여, 부족한 것 없이 안온하고 쾌락하며 기력은 한결같은가?”

“예, 세존이시여. 저는 부족한 것 없이 안온하고 즐거우며 기운도 한결같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오다이여, 너는 왜 부족한 것 없이 안온하고 즐거우며 기력이 한결같은가?”

“세존이시여, 저는 고요한 곳에서 혼자 앉아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세존께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이익을 주시고 선서께서는 우리들에게 많은 안온을 주신다. 세존께서는 우리들의 많은 괴로운 법을 덜어주시고 즐거운 법을 더해 주신다. 세존께서는 우리들의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을 덜어주시고 한량없는 모든 착하고 묘한 법을 더해 주신다.’
세존께서는 옛날 모든 비구들에게 ‘너희들은 점심때가 지나서 먹는 음식을 끊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그 말씀을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어떤 믿음이 있는 바라문이나 거사가 동산에 찾아와 큰 보시로써 복을 지으면 우리는 제각기 손으로 받아 그것을 먹었다. 그런데 이제 세존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끊게 하시고 선서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끊게 하신다.’
또 저희들은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세존의 위신과 묘한 덕을 공경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차마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점심때가 지나서 먹는 음식을 끊었습니다.

또 세존께서는 옛날에 모든 비구들에게 ‘너희들은 밤에 먹는 음식을 끊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감당하지 못하였고 그 말씀을 좋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두 끼 중에서 가장 제일이요 가장 미묘하며 가장 훌륭하고 가장 맛있는 것인데 이제 세존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끊게 하시고 선서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끊게 하신다.’
또 저희들은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옛날에 어떤 거사는 여러 가지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그 아내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이것을 받아 한곳에 잘 두시오. 내가 여러 사람들과 모여 밤에 함께 먹을 것이며 아침이나 점심으로는 먹지 않으리라.’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러 집에서 베푸는 것으로서 지극히 맛있고 가장 훌륭한 것은 오직 밤에 먹는 음식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침이나 점심만 먹는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끊게 하시고 선서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끊게 하신다.’
또 저희들은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세존의 위신과 묘한 덕을 공경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차마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밤에 먹는 음식을 끊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떤 비구는 그 때가 아닌 때에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다가 혹은 이미 일을 벌였거나 아직 일을 벌이지 않은 도적을 만나고 혹은 호랑이를 만나고 사슴을 만나며 혹은 호랑이와 사슴을 한꺼번에 만나고 혹은 표범을 만나고 큰 곰을 만나며 혹은 표범과 큰 곰을 한꺼번에 만났다. 또 어떤 이는 그러한 곳을 가다가 혹은 사납고 모진 코끼리ㆍ모진 말ㆍ사나운 소ㆍ사나운 개를 만나고 혹은 뱀 떼를 만나며 혹은 흙덩이에 맞고 혹은 막대기로 맞으며 혹은 개울에 떨어지고 혹은 뒷간에 빠지며 혹은 누운 소를 타고 혹은 깊은 구덩이에 떨어지며 혹은 가시덤불에 들어갔다. 혹은 빈집을 보고 그런 집에 들어갔는데 여자가 그를 보고 불러 서로 부정한 짓을 행했다.’

세존이시여, 예전에 깜깜한 밤 보슬비가 내리고 번개가 번쩍번쩍 치는데 어떤 비구가 때 아닌 때[非時]에 남의 집에 들어가 걸식하였습니다. 그 때 그 집 부인은 밖에 나와 그릇을 씻다가 번개불빛 속에서 멀리 비구를 보았습니다. 그녀는 ‘저것은 귀신이다’고 하면서 놀라고 두려워 온몸에 털이 곤두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치는 바람에 뱃속의 아기가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귀신입니다. 당신은 귀신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그 비구는 부인을 보고 말했습니다.
‘부인이여, 나는 귀신이 아닙니다. 나는 사문으로서 지금 걸식하러 왔습니다.’
그 때 부인은 그 비구를 지극히 매섭고 모질게 꾸짖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문을 일찍 죽게 하소서. 이 사문의 부모도 일찍 죽게 하소서. 이 사문의 종족은 모두 없어지게 하소서. 이 사문으로 하여금 배가 터지게 하소서. 이 까까중이 스스로 검은 옷을 두르고는 자식을 없애고 종자까지 끊는구나. 너는 차라리 예리한 칼로 네 배를 가를지언정 때 아닌 때[非時]인 밤중에 걸식하지는 말라. 아, 이 사문이 내 아기를 떨어뜨렸구나.’
세존이시여, 저는 그 일을 기억하고 곧 기쁨을 느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문에 기쁨이 온몸에 가득 차고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써 기쁘고 고요하며 즐거운 선정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선정이 온몸에 가득 참으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가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세존이시여, 저는 부족함 없이 안온하고 쾌락하며 기력도 여전합니다.”

세존께서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오다이여, 너는 지금 저 어리석은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나는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못된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들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고 선서는 우리들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신다’고 말하고, 또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 하며 그들은 그것을 끊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또한 불만을 가진다.
오다이여, 저 어리석은 사람은 욕심에 아주 굳고 단단하게 결박되어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해지며 그것을 끊지 못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다이여, 그것은 마치 파리가 콧물이나 가래침에 엉겨 붙어 그 속에서 혹은 괴로워하고 혹은 죽는 것과 같다. 오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그 파리는 굳고 단단하게 결박되지 않았고 갈수록 심하고 급하지 않아서 그것을 끊고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바른 말이라 하겠느냐?”

존자 오다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그 파리는 콧물이나 가래침에 엉겨 붙어 그 속에서 혹은 괴로워하거나 혹은 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그 파리는 아주 굳고 단단하게 결박되어 갈수록 심하고 갈수록 급해지며 그것을 끊지 못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오다이여, 나는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고 하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끊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또한 불만을 가진다. 오다이여, 저 어리석은 사람은 욕심에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여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해지며 그것을 끊지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다이여, 내가 만일 큰 종족의 아들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고 하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그들은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끊는다. 또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지지도 않고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또한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다이여,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은 그렇게 굳고 단단하게 결박되지도 않고 갈수록 더하고 급하지도 않아서 곧 그것을 끊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느니라.

오다이여, 그들은 마치 코끼리왕이 나이 60이 되어 자신감이 넘치는 마하능가(摩訶能伽)4)로서 그 어금니와 발과 몸뚱이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고 근력도 왕성한 것과 같다. 그는 아무리 단단하게 묶여 있어도 한 번 힘을 내어 몸을 움직이면 그 단단한 결박을 곧 끊고 제 집으로 돌아간다. 오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저 큰 코끼리왕은 나이 60이 되어 자신감이 넘치는 마하능가로서 그 어금니와 발과 몸뚱이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고 근력도 왕성하다. 그러나 그는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여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해지며 그것을 끊지도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도 못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바른 말이라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그 큰 코끼리왕이 나이 60이 되면 자신감이 넘치는 마하능가로서 그 어금니와 발과 몸뚱이가 완전하게 갖추어지고 근력도 왕성합니다. 그는 아무리 굳고 단단하게 묶였어도 만일 한번 힘을 써 몸을 움직이면 그 단단한 결박을 단박에 끊고 제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그 큰 코끼리 왕은 나이 60이 되면 자신감이 넘치는 마하능가로서 그 어금니와 발과 몸뚱이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고 근력도 왕성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굳고 단단하게 묶이지도 않고 갈수록 더하고 급하지도 않아서 그것을 끊고 곧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 오다이여, 내가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고 말씀하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곧 그것을 끊는다. 또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지지 않고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또한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다이여,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은 그렇게 굳고 단단하게 묶이지 않고 갈수록 더하고 급하지도 않아서 그것을 곧 끊고 거기서 벗어난다.
오다이여, 만일 내가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한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끊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또한 불만을 가진다. 오다이여,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여,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해지며, 그것을 끊지도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도 못한다.

오다이여, 그들은 마치 재물도 없고 세력도 없는 어느 가난하고 궁한 사람과 같다. 그에게 하나 있는 아내는 애꾸눈에 못생겨서 사랑할 만하지 못하고 겨우 한 채 있는 집은 무너져 비가 새고 까마귀나 새들이 깃들어 살아 더러워 살 수가 없으며 하나뿐인 침상도 부서지고 부러져 누울 수가 없고 겨우 하나 있는 병도 깨어져 쓸 수가 없다. 그는 비구가 걸식을 마치고 오후가 되어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어떤 나무 밑에서 니사단을 펴고 앉아 시원하고 고요하게 증상심을 닦는 것을 보면 그는 그것을 본 뒤에 이렇게 생각한다.
‘사문은 쾌락하다. 사문은 열반과 같다. 그러나 나는 못나고 덕이 없다. 왜냐 하면 내게 하나뿐인 아내는 애꾸눈에 못생겨서 사랑할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오직 한 채 있는 집은 무너져 비가 새며 까마귀나 새들이 깃들어 더러워서 살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거기에 있는 침상 한 개도 부서지고 부러져 누울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마침 하나 있는 병도 깨어져 쓸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나도 차라리 저 비구처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웠으면 좋겠다.’
오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저 가난하고 궁한 사람은 재물도 없고 또한 세력도 없다. 그는 그 가난에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이지 않았고 갈수록 더하고 급하지도 않아서 그것을 곧 끊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바른 말이라 하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그 가난하고 궁한 사람은 재물도 없고 또한 세력도 없습니다. 그에게 하나 있는 아내는 애꾸눈에 못생겨서 사랑할 수 없지만 그는 버리지 못합니다. 겨우 한 채 있는 집은 무너져 새며 까마귀나 새들이 깃들어 더러워서 살 수 없지만 그는 버리지 못합니다. 거기에 있는 침상 한 개도 부서지고 부러져 누울 수 없지만 그는 버리지 못합니다. 겨우 하나 있는 병도 깨어져 쓸데가 없지만 그는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고도 그는 비구처럼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그 가난하고 궁한 사람은 재물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 가난에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여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해지며 그것을 끊지도 못하고 벗어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 오다이여. 만일 내가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또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끊지 못한다. 또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비구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진다. 오다이여, 그러므로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여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해서 그것을 끊지도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것이다.
오다이여, 만일 내가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곧 그것을 끊는다. 또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지지 않고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또한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다이여, 그러므로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은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이지도 않고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하지도 않아서 그것을 끊을 수도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도 있느니라.

오다이여, 그들은 마치 아주 큰 부자로서 재물이 많이 있고 목축과 산업은 헤아릴 수 없으며 봉호와 식읍과 미곡이 풍부하며 또 여러 가지 생활 도구와 종들과 코끼리, 말들도 그 수가 한량없는 어떤 거사나 거사의 아들과 같다. 그는 비구가 걸식한 뒤에 오후가 되어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어떤 나무 밑에 니사단을 펴고 앉아 시원하고 고요하게 증상심을 닦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한다.
‘사문은 쾌락한다. 사문은 열반과 같다. 나도 차라리 이 지극히 풍부한 금보(金寶)ㆍ재산ㆍ곡물ㆍ코끼리ㆍ말ㆍ종들을 버리고 저런 비구가 되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닦았으면 좋겠다.’
오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저 거사나 거사의 아들은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여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해지며 그것을 끊지도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도 못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을 바른 말이라 하겠느냐?”

존자 오다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그 거사나 거사의 아들은 지극히 풍부한 금보ㆍ재산ㆍ곡물ㆍ코끼리ㆍ말ㆍ종들을 버리고 즐거이 비구가 되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므로 그 거사나 거사의 아들은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이지 않았고 갈수록 더하지도 않으며 갈수록 급하지도 않아서 그것을 곧 끊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 오다이여. 만일 내가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 하면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곧 그것을 끊는다. 또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지지 않고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다이여, 그러므로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은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이지 않고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하지도 않아서 곧 그것을 끊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느니라.

오다이여, 비구는 모든 법을 버리려고 한다. 그는 모든 법을 버리려고 하다가 욕심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내어 사랑하고 좋아하는 데에 얽매인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좋아하여 끊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뱉지도 않는다. 오다이여, 나는 그것을 결박(結縛)이라 말하고 해탈이라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모든 번뇌는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오다이여, 모든 번뇌는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결박이라 말하고 해탈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다이여, 비구는 모든 법을 버리려 한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다가 욕심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을 내어 사랑하고 좋아하는 데에 얽매인다. 그래서 그는 이 끊고 머무르고 뱉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 오다이여, 나는 또한 그것을 결박이라 말하고, 해탈이라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모든 번뇌는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오다이여, 모든 번뇌는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결박이라 말하고, 해탈이라 말하지 않느니라.

오다이여, 비구는 모든 법을 버리려고 한다. 그는 모든 법을 버리려고 하다가 혹 때로 그 뜻을 잊어버리고는 타고난 욕심과 서로 호응하는 기억[念]으로 사랑하고 즐겨하는 데에 얽매이고 느린 관찰[遲觀]은 빨리 멸해버린다. 오다이여, 마치 쇠뭉치나 쇠보습이 온종일 불에 달았을 때에 어떤 사람이 두 세 방울의 물을 떨어뜨리면 물방울은 오래 가지 못하고 물이 곧 없어지는 것과 같다. 오다이여, 이와 같이 어떤 비구는 모든 법을 버리려 한다. 그는 모든 법을 버리려 하다가 혹 때로는 그 뜻을 잊어버리고 타고난 욕심과 서로 호응하는 생각으로 사랑하고 즐겨하는 데에 얽매이고 느린 관찰은 빨리 멸해버린다. 오다이여, 나는 또한 이것도 결박이라 말하고 해탈이라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모든 번뇌는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오다이여, 모든 번뇌는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결박이라 말하고 해탈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다이여, 괴로움의 뿌리 속에 있으면서 생사가 없는 데서 노닐고 애욕이 다한 위없는 경계에서 마음이 잘 해탈하면 오다이여, 나는 그것을 해탈이라 말하고 결박이라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였기 때문이다. 오다이여, 모든 번뇌가 다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해탈이라 말하고 결박이라 말하지 않느니라.
오다이여,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병의 근본이요, 등창의 근본이며, 화살과 가시의 근본이다. 그것은 밥[食]이 있고 생ㆍ사가 있으니 닦을 것도 아니요 익힐 것도 아니며 자세하게 펼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닦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다이여, 성인의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욕심이 없는 즐거움ㆍ악을 여읜 즐거움ㆍ번뇌를 쉰 즐거움ㆍ바르게 깨닫는 즐거움이다. 그것은 밥도 없고 생ㆍ사도 없으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자세하게 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다이여, 무엇이 성인의 즐거움이 아닌 범부의 즐거움으로서 병의 근본이요 등창의 근본이며 화살과 가시의 근본이요 밥이 있고 생ㆍ사가 있어 닦을 것도 아니요 익힐 것도 아니며 자세하게 펼 것도 아니어서 내가 닦을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5욕으로 인하여 즐거움이 생기고 좋은 것이 생기면 그것은 성인의 즐거움이 아니요 범부의 즐거움이다. 그것은 병의 근본이요 등창의 근본이며 화살과 가시의 근본이요 밥이 있고 생ㆍ사가 있으니 닦을 것이 아니요 익힐 것이 아니며 자세하게 펼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닦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다이여, 무엇이 성인의 즐거움으로서 욕심이 없는 즐거움ㆍ악을 여읜 즐거움ㆍ번뇌를 쉰 즐거움ㆍ바르게 깨달은 즐거움이며 밥도 없고 생ㆍ사도 없는 것이니 닦아야 할 것이요, 익혀야 할 것이며, 자세하게 펴야 할 것이어서 내가 그것을 닦아야 한다고 말한 것인가? 오다이여, 만일 비구가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 즐거움은 성인의 즐거움이다. 그것은 욕심이 없는 즐거움ㆍ악을 여읜 즐거움ㆍ번뇌를 쉰 즐거움ㆍ바르게 깨달은 즐거움으로서 밥도 없고 생사도 없으니 닦아야 하고 익혀야 하며 자세하게 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은 닦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다이여,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이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데 성인은 이것을 ‘이동한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을 성인은 ‘이동한다’고 말하는가? 그 가운데에는 각과 관이 있다. 이것을 성인은 ‘이동한다’고 말한다. 또 이 가운데 어떤 것을 성인은 ‘이동한다’고 말하는가? 오다이여, 그 비구는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 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데 성인은 이것을 ‘이동한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어떤 것을 성인은 ‘이동한다’고 말하는가? 만일 여기서 기쁨을 얻으면 성인은 이것을 ‘이동한다’고 말하느니라.

또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성인은 ‘이동한다’고 말하는가? 오다이여, 그 비구는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모든 법을 버리고 구함이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의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이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데 성인은 이것을 ‘이동한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성인은 ‘이동한다’고 말하는가? 만일 그것을 이동한다고 하여 마음으로 즐거워하면 성인은 그것을 ‘이동한다’고 말한다. 또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성인은 ‘이동하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오다이여, 그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다. 그리하여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니는데 성인은 이것을 ‘이동하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오다이여, 어떤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오다이여, 나는 이것을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지 못했다’ 한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이 넘어서는 것인가? 오다이여, 그 비구가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히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이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그 가운데서 넘어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다이여, 나는 이것도 또한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어서지 못했다’ 한다.
또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이 넘어서는 것인가? 오다이여, 그 비구는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모든 법을 여의어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이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을 그 가운데서 넘어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다이여, 나는 이것도 또한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지 못했다’ 한다.
또 그 가운데 어떤 것이 넘어서는 것인가? 그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다. 그리하여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과 기억과 청정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그 가운데서 넘어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다이여, 나는 이것도 또한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지 못했다’ 하느니라.

또 그 가운데 어떤 것이 넘어서는 것인가? 오다이여, 그 비구가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지나서 상대가 있다는 생각을 없애고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 한량없는 공인, 이 한량없는 공처를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그 가운데서 넘어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다이여, 나는 이것도 또한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지 못했다’ 한다.
또 그 가운데 어떤 것이 넘어서는 것인가? 오다이여, 그 비구가 일체 한량없는 공처를 지나서 한량없는 식인, 이 한량없는 식처를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그 가운데서 넘어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다이여, 나는 이것도 또한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지 못했다’ 하느니라.

또 그 가운데 어떤 것이 넘어서는 것인가? 오다이여, 그 비구가 일체 한량없는 식처를 지나서 무소유인, 이 무소유처를 성취하여 노니면, 이것을 그 가운데서 넘어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다이여,나는 이것도 또한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지 못했다’ 한다.
또 그 가운데 어떤 것이 넘어서는 것인가? 그 비구가 일체 무소유처를 지나서 생각이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그 가운데서 넘어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오다이여, 나는 비유상비무상처까지 이르더라도 이것도 또한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지 못했다’ 하느니라.
오다이여, 비록 어떠한 번뇌라도 그것이 많거나 혹은 적거나 거기에 오래 머무르면 나는 그것을 ‘아직 없애지 못했다’ 하고 ‘끊지 못했다’ 하며 ‘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도 그것을 끊지 못한다고 생각하느냐?”

존자 오다이가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찬탄해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오다이여, 너는 저 어리석은 사람들과는 같지 않구나. 내가 저 어리석은 사람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시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끊지 않는다. 또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진다. 오다이여, 그러므로 저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여 갈수록 더하고 갈수록 급해지며 그것을 끊지도 못하고 거기서 벗어나지도 못하느니라.
그러나 오다이여, 만일 내가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을 위해 ‘너희들은 그것을 끊으라’고 말하면 그들은 ‘이것은 사소한 일이다. 끊을 것도 없다. 그런데 세존은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시고 선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끊으라 하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이 대사문은 음식을 소화시키지도 못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곧 그것을 끊는다. 또 그들은 내게 불만을 가지지 않고 계를 잘 보호해 지키는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다이여, 그러므로 저 큰 종족의 아들들은 아주 굳고 단단하게 묶이지 않아 갈수록 더하고 급하지 않으며 그것을 곧 끊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오다이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받들어 행하였다.
이 가루오다이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467자이다.

193) 모리파군나경(牟犁破群那經)5) 제2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모리파군나(牟犁破羣那)는 비구니들과 자주 모임을 가졌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리파군나 비구에게 비구니들에 대하여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듣고는 곧 성내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마침내는 싸우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비구니들에게 모리파군나 비구에 대하여 말하면 그 비구니들도 그 말을 듣고는 곧 성내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마침내는 싸우기까지 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곧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리파군나 비구는 비구니들과 함께 자주 모임을 가집니다. 그래서 만일 어떤 사람이 모리파군나 비구에게 비구니들에 대하여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듣고는 곧 성내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마침내는 싸우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또 만일 어떤 사람이 비구들에게 모리파군나 비구에 대하여 말하면 그 비구니들도 그 말을 듣고는 곧 성내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마침내는 싸우기까지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모리파군나 비구에게 가서 세존이 부른다고 전하라.”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이렇게 대답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 바퀴 돌고 나서 물러갔다. 그는 모리파군나 비구에게 가서 말했다.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
모리파군나는 그 말을 듣고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파군나여, 너는 참으로 비구니들과 함께 자주 모임을 가지느냐? 그리고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비구니에 대하여 말하면, 너는 그 말을 듣고는 곧 성내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마침내는 싸우기까지 하느냐? 또 만일 어떤 사람이 비구니들에게 너에 대하여 말하면, 그 비구니들도 그 말을 듣고는 곧 성내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마침내는 싸우기까지 하느냐? 파군나여, 너는 참으로 그렇게 했느냐?”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파군나여, 너는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파군나여, 네가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곧 만일 집 때문에 욕심과 생각이 생기거든 그것을 끊고, 만일 욕심 없는 것에 대해 의욕과 생각이 생기거든 그것을 익히고 그것을 닦고 그것을 널리 펴야 한다. 파군나여,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그런 까닭에 너희들이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한다. 곧 만일 집 때문에 욕심과 생각이 생기거든 그것을 끊고, 만일 욕심이 없는 것에 대해 의욕과 생각이 생기거든 그것을 익히고 그것을 닦고 그것을 널리 펴야 한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나는 예전에 여러 비구들에게 일찍이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비구들아, 지식이 많은 비구이건 혹 지식이 적은 비구이건 모두 한 자리에 앉아 먹는 것[一坐食]을 배우라. 한 자리에 앉아 먹는 것을 배우고 나면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프지 않아 몸은 가볍고 기력도 편하고 단단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저 모든 비구들은 지식이 많거나 지식이 적거나 그들은 모두 한 자리에 앉아 먹기를 배웠다. 한 자리에 앉아 먹기를 배운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프지도 않아 몸은 가볍고 기력도 편하고 단단하며 안온하고 쾌락하였다. 그래서 모든 비구들은 다 내 마음에 들었고 나도 또한 그들을 많이 꾸짖지 않았다. 그 모든 비구들은 그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이 생겨 법으로 향하고 법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마치 말몰이가 마차에 올라 왼손에는 고삐를 잡고 오른손에는 채찍을 들고 팔방으로 난 길 어느 곳이나 마음대로 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 모든 비구들은 모두 내 마음에 들었고 나도 또한 많이 꾸짖지 않았다. 그들은 이로 말미암아 바른 생각이 생겨 법으로 향하고 법으로 나아갔다. 또 그것은 마치 좋은 땅에 사라(娑羅)나무 숲이 있고 그 숲을 관리하는 사람이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또 게으르지 않은 것과 같다. 그는 때를 따라 그 사라나무 뿌리를 기르되 자주자주 호미로 북돋고 거름을 주며 또 물을 대어 준다. 높은 데는 파 내리고 낮은 데는 메워 주며, 만일 그 주위에 나쁜 풀이 나면 김매어 없애 버리고, 만일 어울려 나서 굽고 뒤틀려 곧지 않으면 뿌리를 뽑아 옮겨 심으며, 만일 가지가 가로 굽으면 곧 그것을 잘라 준다. 그리고 만일 그 가까운 쪽에 곧고 좋은 나무가 새로 나면 곧 때맞춰 손질하되 자주자주 호미로 북돋고 거름을 주며 물을 대어준다. 이렇게 하여 그 좋은 땅의 사라나무 숲은 갈수록 더욱 무성해진다. 이와 같이 그 모든 비구들은 내 마음에 들었고, 나도 또한 많이 꾸짖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옷ㆍ발우ㆍ음식ㆍ평상ㆍ탕약과 모든 생활 도구 때문에 좋은 말만 하거나 공손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만일 그것들을 얻지 못하면 도리어 말이 곱지 않고 공손하지 않게 되어 말이 곱지 않고 공손하지 않는 법을 성취하게 되기 때문이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멀리 떠나서 멀리 떠남을 의지하고 멀리 떠난 곳에 머물며 말이 곱고 공손하여 고운 말과 공손한 법을 성취한다면 나는 그를 말이 곱고 공손하다고 말한다.
왜냐 하면 혹 어떤 사람은 잘 보호하고 착하게 노닐지만 다른 사람이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만일 남이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면 그는 곧 화를 내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며 근심에 휘감기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으며 악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여러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곧 ‘이 사람은 욕됨을 참고 온화하며 잘 견디고 잘 제어하며 매우 안정되고 잘 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남이 나쁜 말을 하면 그는 곧 화내고 미워하며 근심에 휘감기고 성내며 악을 드러낸다. 그 때 그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이 사람은 성질이 모질고 급하며 더럽고 거칠어 안정되지 못하고 제어하지도 못하며 쉬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러한가?

비구들아, 옛날에 어떤 거사의 부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비타제(鞞陀提)6)였다. 그는 큰 부자로서 재물이 많고 목축(牧畜)과 산업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며 봉호(封戶)와 식읍(食邑)과 미곡이 풍부하였으며 또 여러 가지 생활 도구도 풍부하였다. 그 때 비타제라는 그 부인은 다음과 같은 큰 명성이 사방에 널리 퍼졌다.
‘거사의 부인 비타제는 욕됨을 참고 잘 견디고 온화하며 잘 제어하고 매우 안정되며 잘 쉰다.’
그 때 거사의 부인 비타제에게는 흑(黑)이라는 종이 있었다. 그녀는 본래부터 부인의 시종으로서 묘하고 고운 말을 쓰고 많은 착한 일을 행했다. 그 종 흑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집 거사의 부인 비타제에게는 ‘거사의 부인 비타제는 욕됨을 참고 잘 견디고 온화하며 잘 제어하고 매우 안정되며 잘 쉰다’는 큰 명성이 있어 사방에 널리 퍼져 있다. 내가 이제 이 부인 비타제가 정말 성을 내는지 성을 내지 않는지 시험해 보리라.’

이에 종 흑은 아침에 일부러 드러누워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 부인은 ‘흑아, 왜 빨리 일어나지 않느냐?’고 불렀다. 흑은 그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집 거사의 부인 비타제도 사실 성을 내는구나. 성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요리를 잘 만들고 살림을 잘 경영하고 잘 지켜주기 때문에 이제 우리 집 거사의 부인 비타제에게 〈거사의 부인 비타제는 욕됨을 참고 잘 견디며 온화하여 잘 제어하고 매우 안정되며 잘 쉰다〉는 이러한 큰 명성이 있게 된 것이고 사방에 널리 퍼지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다시 우리 집 거사의 부인이 참으로 성을 내는가, 성을 내지 않는가를 확실히 시험해 보리라.’

이에 종 흑은 아주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부인은 ‘흑아, 왜 이토록 늦게까지 일어나지 않느냐?’ 하며 불렀다. 흑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 집 거사의 부인 비타제는 사실 성을 낸다. 성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요리를 잘 만들고 가업(家業)을 잘 경영하고 잘 지켜주기 때문에 우리 집 거사의 부인에게 〈거사의 부인 비타제는 욕됨을 참고 잘 견디고 온화하며 잘 제어하고 매우 안정되며 잘 쉰다〉는 큰 명성이 있게 되었고 사방에 그 이름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일 뿐이다. 나는 이제 다시 우리 집 거사의 부인이 참으로 성을 내는가, 성을 내지 않는가를 더 확실히 시험해 보리라.’

이에 종 흑은 해질 무렵에야 일어났다. 그러자 부인은 ‘이 종년 흑아, 왜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일어나 제가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또한 남을 시킬 일도 시키지 않느냐? 흑아, 너는 이제 내 말도 잘 듣지 않는구나. 이 흑이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하고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져 이마에 세 줄 핏대를 세우고 얼굴을 실쭉거리더니 스스로 달려가 문을 닫아 빗장을 채우고는 몽둥이로 머리를 때리니 머리가 터져 피가 흘렀다. 이에 종 흑은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자 곧 밖으로 달려 나가 이웃들에게 말하고 호소하는 소리로 시끄러이 여러 곳에 외쳐댔다.
‘여러분, 욕됨을 참기를 공부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잘 견디고 온화하며 잘 제어하고 매우 안정되며 잘 쉬는 것을 보았습니까? 부인은 〈이 종년 흑아, 어쩌자고 해질 무렵에야 일어나서 제가 할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남을 시킬 일도 시키지 않느냐? 이 종년이 이젠 내 말도 듣지 않는구나. 이 종년이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하며 나를 꾸짖더니 곧 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져 이마에 세 줄 핏대를 세우고 얼굴을 실쭉거리더니 스스로 달려가 문을 닫아 빗장을 채우고 몽둥이로 내 머리를 때려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게 하였습니다.’
그 때 거사의 부인 비타제는 이렇게 하여 곧 ‘거사의 부인 비타제는 성질이 모질고 급하며 더럽고 거칠며 안정되지 못하고 제어하지 못하며 쉬지 않았다’는 지극히 나쁜 이름이 사방에 흘러 퍼지게 되었다.

비구들아, 이처럼 혹 어떤 자는 남이 나쁜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보호하고 착하게 노니는 것이다. 만일 남이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면 그는 곧 화내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으며 근심에 휘감기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으며 악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여러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곧 ‘이 사람은 잘 참고 온화하고 잘 견디며 잘 제어하고 매우 안정되며 잘 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남이 나쁜 말을 하면 그는 곧 화를 내고 미워하며 근심에 휘감기고 성내며 악을 드러낸다. 그 때에는 비구들이 그것을 보고 곧 ‘이 사람은 성질이 모질고 급하며 더럽고 거칠다. 안정되지도 못하고 제어하지도 못하며 쉬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느니라.

“다시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7)이 있으니, 어떤 사람은 말을 할 때 혹은 때에 알맞기도 하고 혹은 때에 알맞지 않기도 하며 혹은 참되기도 하고 혹은 참되지 않기도 하며 혹은 부드럽기도 하고 혹은 딱딱하기도 하며 혹은 상냥하기도 하고 혹은 거칠기도 하며 혹은 뜻이 있기도 하고 혹은 뜻이 없기도 하다. 너희 비구들아,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으로 남이 말할 때에 혹 마음이 변하거나 바뀌어 혹 입으로 나쁜 말을 하면, 나는 ‘너희들은 그로 인해 반드시 쇠하리라’고 말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으로 남이 말할 때에도 마음이 변하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원수를 향해서도 그를 위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마음은 자애로움[慈]과 함께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고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ㆍ하 일체에 두루하며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이 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悲]과 기뻐함[喜]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마음은 평정함[捨]과 함께하여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이 없이 잘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큰 호미와 가래를 가지고 와서 ‘나는 이 땅덩이를 땅덩이가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고, 곧 여러 곳을 파내고 또 파내어 가래침과 오줌으로 그것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만일 나쁜 말을 하는 자가 ‘이 땅덩이를 땅덩이가 아닌 것으로 만들겠다’고 말한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사람이 이런 방법으로 이 땅덩이를 땅덩이가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이 땅덩이는 매우 깊고 지극히 넓어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 사람의 이런 방법으로는 이 땅덩이를 땅덩이가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다만 그 사람을 피로하게 할 뿐일 것입니다.”

“그렇다.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이 있으니, 어떤 사람은 말을 할 때 혹은 때에 알맞기도 하고 혹은 때에 알맞지 않기도 하며 혹은 참되기도 하고 혹은 참되지 않기도 하며 혹은 부드럽기도 하고 혹은 딱딱하기도 하며 혹은 상냥하기도 하고 혹은 거칠기도 하며 혹은 뜻이 있기도 하고 혹은 뜻이 없기도 하다. 너희 비구들아,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으로 남이 말할 때에 혹 마음이 변하거나 혹은 입으로 나쁜 말을 한다면 나는 ‘너희들은 그로 인해 틀림없이 쇠하리라’고 말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으로 남이 말할 때에도 마음이 변하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그 말하는 사람을 향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마음의 활동을 땅처럼 하여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이 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큰 횃불을 들고 말하기를 ‘나는 이 횃불로써 항하수[恒伽水]를 태워 끓일 것이다’라고 한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사람이 그런 방법으로 항하수를 데워 끓일 수 있겠는가?”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저 항하수는 매우 깊고 지극히 넓어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그런 방법으로는 항하수를 데워 끓일 수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그를 피로하게만 할 뿐일 것입니다.”

“그렇다.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이 있으니, 어떤 사람은 말을 할 때 혹은 때에 알맞기도 하고 혹은 때에 알맞지 않기도 하며 혹은 참되기도 하고 혹은 참되지 않기도 하며 혹은 부드럽기도 하고 혹은 딱딱하기도 하며 혹은 상냥하기도 하고 혹은 거칠기도 하며 혹은 뜻이 있기도 하고 혹은 뜻이 없기도 하다. 너희 비구들아,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으로 남이 말할 때에 혹 마음이 변하여 바뀌거나 혹은 입으로 나쁜 말을 한다면 나는 ‘너희들은 그로 인해 반드시 쇠퇴하게 되리라’고 말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으로 남이 말할 때에도 마음이 변하여 바뀌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그 말한 사람을 향하여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마음의 활동을 항하수처럼 하여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이 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마치 그림을 그리는 스승과 제자가 여러 가지 채색을 가지고 와서 ‘나는 이 허공에 형상을 그리고 채색으로 칠해 장엄하리라’고 말한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그림을 그리는 스승과 제자가 그런 방법으로 허공에 형상을 그리고 채색으로 칠해 장엄할 수 있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저 허공은 물질[色]이 아니어서 볼 수도 없고 마주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그림을 그리는 스승과 제자의 그런 방법으로는 허공에 형상을 그리고 채색으로 칠해 장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그 그림 그리는 스승이나 제자를 피로하게만 할 뿐일 것입니다.”

“그렇다. 이 다섯 가지 하는 방식이 있으니, 어떤 사람은 말을 할 때 혹은 때에 알맞기도 하고 혹은 때에 알맞지 않기도 하며, 혹은 참되기도 하고 혹은 참되지 않기도 하며, 혹은 부드럽기도 하고 혹은 딱딱하기도 하며, 혹은 상냥하기도 하고 혹은 거칠기도 하며, 혹은 뜻이 있기도 하고 혹은 뜻이 없기도 하다. 너희 비구들아,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으로 남이 말할 때 혹 마음이 변하고 바뀌거나 혹은 입으로 나쁜 말을 한다면 나는 ‘너희들은 그로 인해 반드시 쇠퇴하리라’고 말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 다섯 가지 말하는 방식으로 남이 말할 때에도 마음이 변하여 바뀌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그 말한 사람을 위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마음의 활동을 허공처럼 하여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또 마치 고양이 가죽 주머니를 부드럽게 다루어 매우 연하게 하고 찔꺽거리는 소리를 없애면 찔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과 같다. 혹 어떤 사람이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때리거나 혹은 칼로 베고 혹은 땅에 메친다면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 부드럽게 다루어 매우 연하게 하고 찔꺽거리는 소리를 없애 찔꺽거리는 소리가 없는 고양이 가죽 주머니가 다시 찔꺽거리는 소리를 내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 하면 세존이시여, 저 고양이 가죽 주머니는 부드럽게 다루어 매우 연하고 찔꺽거리는 소리를 없애 찔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시는 찔꺽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모든 비구들아, 혹 어떤 사람은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때리거나 칼로 벨 것이다. 비구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때리거나 또는 칼로 벨 때에 혹 마음이 변하여 바뀌거나 입으로 나쁜 말을 한다면 나는 ‘너희들은 그로 인해 반드시 쇠퇴하리라’고 말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남이 주먹으로 치거나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때리거나 또는 칼로 벨 때에도 마음이 변하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그 때린 사람을 향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마음의 활동을 고양이 가죽 주머니처럼 하여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매우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혹은 어떤 도적이 와서 예리한 톱이나 칼로써 너희들의 몸을 마디마디 자른다고 하자. 비구들아, 만일 어떤 도적이 와서 예리한 톱이나 칼로써 너희들의 몸을 마디마디 자를 때 혹 마음이 변하여 바뀌거나 입으로 나쁜 말을 한다면 나는 ‘너희들은 그로 인해 반드시 쇠퇴하리라’고 말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어떤 도적이 와서 예리한 톱이나 칼로써 너희들의 몸을 마디마디 자를 때에도 마음이 변하여 바뀌지 않고 입으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그 자르는 사람에게 자애로움과 슬픈 마음을 일으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1방(方)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고 이렇게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에 두루하고 마음은 자애로움과 함께하여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지극히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하여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과 기뻐함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마음은 평정함[捨]과 함께하여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이 매우 넓고 매우 크며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에 두루 차서 성취하여 노닐어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이에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사문의 가르침인 예리한 톱과 칼의 비유를 자주자주 생각하고 사문의 가르침인 예리한 톱과 칼의 비유를 자주자주 생각해 마쳐야 한다. 너희들은 남이 좋지 못한 나쁜 말을 나에게 했을 때 내가 그 말을 듣고 참지 못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

모든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다시 모든 비구들을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사문의 가르침인 예리한 톱과 칼의 비유를 자주자주 생각하여야 한다. 사문의 가르침인 예리한 톱과 칼의 비유를 자주자주 생각하고 나면 너희들은 동방에서 노닐더라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운 재앙이 없을 것이요, 남방ㆍ서방ㆍ북방에 노닐더라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운 재앙이 없을 것이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사문의 가르침인 예리한 톱과 칼의 비유를 자주자주 생각하여야 한다. 너희들이 사문의 가르침인 예리한 톱과 칼의 비유를 자주자주 생각한다면 나는 너희들이 모든 착한 법에 머무른다고도 말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쇠퇴한다고 말하겠는가? 밤ㆍ낮으로 착한 법만이 자라나고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은 마땅히 사문의 가르침인 예리한 톱과 칼의 비유를 자주자주 생각하여야 한다. 비구들아, 사문의 가르침인 예리한 톱과 칼의 비유를 자주자주 생각하고 나면, 2과(果) 중에서 반드시 그 하나를 얻을 것이니, 곧 현세에서 구경의 지혜를 얻거나 혹은 다시 남음이 있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팔리어로 Āpaa이고 마을 이름이다.
2 건야는 팔리어로 Keniya이고 어느 결만외도(結鬘外道)의 정사 이름이다.
3 팔리어로 Udāyin이다.
4 마하능가(摩訶能伽, mahānāga)는 큰 코끼리를 말한다. 팔리본에는 rañño nāga 즉 왕의 코끼리로 되어 있다.
5 이 경의 이역본으로 『증일아함경』「예삼보품(禮三寶品)」 여덟 번째 소경이 있다.
6 팔리어로는 Vedehikā이다.
7 고려대장경에는 호언도(互言道)로 되어 있다. 여기서는 원ㆍ명ㆍ성본에 의거하여 오언도(五言道)로 수정하여 번역하였다.

중아함경 1~10권, 11~20권, 21~30권, 31~40권, 41~50권, 51~60권
한글대장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