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아함경(中阿含經) 51~60권

중아함경 제51권

승가제바 한역

16. 대품 제2②
194) 발타화리경(跋陀和利經)1) 제3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서 큰 비구들과 함께 여름 안거를 지내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한 자리에서 먹고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는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도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한 자리에서 먹기[一坐食]를 배워야 한다.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는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도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존자 발타화리(跋陀和利)2)도 또한 대중 가운데 있었다. 이에 존자 발타화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자리에서 먹기를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기를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만일 내가 청을 받았을 때에 너도 또한 나를 따라오면 나는 너에게 한 자리에서 먹을 음식을 가져갈 것을 허락하리라. 발타화리여, 그렇게 하면 너는 유쾌하게 생활할 수 있으리라.”

존자 발타화리가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그렇게 하시더라도 저는 또한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은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만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만 먹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재삼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도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한 자리에서 먹기를 배워야 한다. 한 자리에서 먹은 뒤에는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 병이 없어 가볍고 기력도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게 되리라.”

존자 발타화리도 또한 재삼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은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세존께서도 다시 재삼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만일 내가 청을 받았을 때에 너도 또한 나를 따라오면 나는 너에게 한 자리에서 먹을 음식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하리라. 발타화리여, 만일 그렇게 하면 너는 유쾌하게 생활할 수 있으리라.”

존자 발타화리도 또한 재삼 아뢰었다.
“세존께서 그렇게 하시더라도 저는 다시 한 자리에서 먹는 것만은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왜냐 하면 만일 제가 한 자리에서 먹으면 일을 마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괴롭고 후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한 자리에서 먹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겠습니다.”

그 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위하여 한 자리에서 먹는 계율에 대하여 자세하게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그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다. 그러나 오직 존자 발타화리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왜냐 하면 그는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자 발타화리는 드디어 숨어서 한 여름 동안 세존을 만나지 않았다. 왜냐 하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을 위하여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셨고 석 달을 지낸 뒤에 의복을 기우셨다. 그런 뒤에 가사를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돌아다니려고 하셨다.
존자 발타화리는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을 위해 가사를 만들고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고 석 달을 지낸 뒤에 가사를 기우시고 그 가사를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행각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존자 발타화리는 그 소식을 듣고 여러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모든 비구들은 멀리서 존자 발타화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이렇게 말하였다.
“현자 발타화리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것은 부처님을 위해 짓는 가사이다. 세존께서는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마치셨다. 석 달을 지낸 뒤에 가사를 기우시고 그 가사를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장차 세상에 나가 행각하려 하신다. 발타화리여, 너는 마땅히 스스로 거기 가서 몸을 잘 지켜 조심하여 뒷날에 번민과 괴로움을 가져오게 하지 말라.”

존자 발타화리는 이 말을 듣고 나서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참으로 잘못하였습니다. 제가 참으로 잘못하였습니다. 바보 같고 어리석었으며 멍텅구리 같고 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널리 말씀하시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드는데 오직 저만이 감당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었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많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들은 ‘발타화리라고 하는 비구는 세존의 제자로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 때 그것을 몰랐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 그런 사실을 몰랐느냐?
또 발타화리여, 많은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들은 ‘발타화리라는 비구는 세존의 제자로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 때 그것을 몰랐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에 그런 사실을 몰랐느냐?
또 발타화리여, 많은 이교도의 사문 범지들이 사위국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알고 나를 보았다. 그들은 ‘발타화리라는 어떤 비구는 사문 구담의 제자로서 이름과 덕망이 있으면서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너는 그 때 그것을 몰랐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 그런 사실을 몰랐느냐?
발타화리여, 내가 만일 구해탈(俱解脫)을 한 어떤 비구에게 말하기를 ‘너는 와서 이 진탕에 들어가라’고 한다면 발타화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내가 그 비구에게 명령하였는데 그 비구가 과연 가만히 있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피해 가겠느냐?”

“아닙니다.”

“발타화리여, 만일 어떤 비구가 비록 구해탈은 아니더라도 혜해탈(慧解脫)이 있거나 비록 혜해탈은 아니더라도 신증(身證)이 있거나 비록 신증은 아니더라도 견도(見到)가 있거나 비록 견도는 아니더라도 신해탈이 있거나 비록 신해탈(身解脫)은 아니더라도 법행이 있거나 비록 법행(法行)은 아니더라도 신행(信行)이 있는 자인 경우에 내가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와서 이 진탕에 들어가라’고 한다면 발타화리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내가 그 비구에게 명령하였는데 그 비구가 과연 가만히 있거나 혹은 다른 곳으로 피해 가겠느냐?”

“아닙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너는 그 때에 신행ㆍ법행ㆍ신해탈ㆍ견도ㆍ신증ㆍ혜해탈ㆍ구해탈을 얻었는가?”

“아닙니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 빈집과 같지 않았더냐?”

이에 존자 발타화리는 세존 면전에서 직접 꾸지람을 듣자 마음속에 근심과 슬픔을 품고 머리를 떨어뜨려 잠자코 변명할 말이 없었으나 무엇을 물으려는 듯하였다.

이에 세존께서 존자 발타화리를 면전에서 직접 꾸짖기를 마치시고 다시 그를 기뻐하게 하려고 곧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너는 그 때에는 내게 대해서 법을 믿는 생각이 없었고 법을 사랑하는 생각이 없었으며 법에 대해 논쟁하려는 생각도 없었다. 어째서 그런 줄 아는가? 내가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자세하게 설명하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너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었다. 왜냐 하면 구족계와 및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자 발타화리가 아뢰었다.
“실로 그렇습니다. 왜냐 하면 세존께서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자세히 설명하셨을 때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저만이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왜냐 하면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의 잘못을 용서하옵소서. 저는 이 잘못을 안 뒤에는 스스로 뉘우치고 지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그와 같이 너는 참으로 바보 같고 어리석었으며, 멍텅구리 같고 착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내가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서 먹는 계를 자세히 설명하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우는데 오직 너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하였던가? 너는 구족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타화리여, 만일 네가 너에게 있는 허물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지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는다면 발타화리여, 만일 그렇게 하면 이 거룩한 법과 율에 있어서 이익이 있고 손해는 없을 것이다. 만일 네가 너에게 있는 허물을 보거든 스스로 뉘우치고 지금부터는 조심하여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발타화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혹 어떤 비구는 계를 배우지 않고 그는 일 없는 곳이나 숲속이나 나무 밑에 살기도 하고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기도 한다. 또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증상심(增上心)을 얻어 현세에서 즐겁게 산다.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안온하고 쾌락해진 뒤에는 세존의 계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하고 비방한다. 그는 세존의 계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하고 비방하며 또한 스스로의 계를 모함하고 비방한 뒤에는 곧 즐거움을 내지 않게 된다. 즐거움을 내지 않은 뒤에는 곧 기쁨을 내지 않게 되고 기쁨을 내지 않은 뒤에는 곧 몸을 쉬지 못하고 몸을 쉬지 못한 뒤에는 곧 편안함을 깨닫지 못하며 편안함을 깨닫지 못한 뒤에는 곧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 발타화리여, 그 어진 제자는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뒤에는 곧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느니라.

발타화리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혹 어떤 비구는 구족계를 배우고 그는 일 없는 곳이나 숲이나 나무 밑에서 살거나 혹은 고요하여 소리가 없고 멀리 떠나 악이 없으며 사람들이 없는 높은 바위에 살면서 이치를 따라 편안히 앉는다. 또 그는 멀리 떠난 곳에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증상심을 얻어 현세에서 즐겁게 산다. 그는 멀리 떠난 곳에서 살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안온하고 쾌락해진 뒤에는 세존의 계를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는다. 그는 세존의 계를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고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를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으며 또한 스스로의 계도 모함하거나 비방하지 않은 뒤에는 곧 즐거움을 내게 된다. 즐거움을 낸 뒤에는 곧 기쁨을 내며 기쁨을 낸 뒤에는 곧 몸을 쉬고 몸을 쉰 뒤에는 곧 편함을 깨닫고 편함을 깨달은 뒤에는 곧 마음이 안정된다.

발타화리여, 그 어진 제자는 마음이 안정된 뒤에는 곧 사실 그대로 보고 사실 그대로 알며, 사실 그대로 보고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곧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떠나 각(覺)과 관(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1의 증상심(增上心)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를 곧 현세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다시 거기서 각과 관을 이미 쉬고 안으로 고요하여 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2의 증상심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를 곧 현세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다시 거기서 기쁨과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3의 증상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것은 그를 곧 현세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락하고 쾌락하게 하여 열반에 오르게 한다.
그는 다시 거기서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4의 증상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것은 그를 곧 현세에서 힘들지 않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하며 두려움이 없이 편안히 살고 안온하고 쾌락하게 하여 열반에 오르게 하느니라.

그는 이와 같이 선정을 얻고 마음이 청정해져 더러움도 없고 번뇌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과거를 기억하는 숙명지(宿命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행을 하고 어떠한 모양이었는지 한량없는 과거에 겪었던 일을 다 기억한다. 곧 1생ㆍ2생ㆍ백생ㆍ천생과 성겁(成劫)ㆍ패겁(敗劫)과 한량없는 성겁ㆍ패겁 동안에 그 중생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는지 또 그가 옛날에 겪은 일, 곧 ‘나는 거기에 태어나 어떤 성과 어떤 이름으로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으며, 얼마큼 오래 살고 얼마큼 오래 머물렀으며, 어떻게 목숨을 마쳤다’는 것과 여기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서 죽어 여기에 난 것을 다 기억한다. 또 ‘나는 태어나 이 세상에서는 어떤 성과 어떤 이름으로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으며 얼마큼 오래 살고 얼마큼 오래 머물렀으며 어떻게 목숨을 마쳤다’는 것을 다 기억한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이 제1의 명달(明達)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는 본래 방일함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살기 좋아하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둠이 무너져 환함이 되고 무명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다. 이른바 과거를 기억하는 숙명지(宿命智)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다.

그는 또 이와 같이 선정을 얻고 마음이 청정해져 더러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생사지(生死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눈보다 훌륭한 청정한 천안으로써 이 중생들이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육체인지 나쁜 육체,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오가는 것을 본다. 이 중생들이 짓는 업을 따라 그것을 사실 그대로 보나니, 만일 이 중생들이 몸의 나쁜 행과 입과 뜻의 나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소견으로써 삿된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또 만일 중생들이 몸의 묘한 행과 입과 뜻의 묘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으로 바른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이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 천상에 나는 것을 본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2의 명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는 본래 방일함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하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둠이 무너져 환함이 생기며 무명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다. 이른바 생사지(生死智)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다.

그는 또 이와 같이 선정을 얻고 마음이 청정해져 더러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게 잘 머무르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어 누진지(漏盡智)의 신통을 깨달아 스스로 체험한다. 그래서 그는 이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 이 번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번뇌의 발생을 알며 이 번뇌의 소멸을 알고 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심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有漏]와 무명의 번뇌[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발타화리여, 이것을 그가 그 때 제3의 명달을 얻은 것이라 한다. 그는 본래 방일함이 없이 멀리 떠난 곳에서 살기를 좋아하면서 수행하고 정근하여 어리석음이 멸해 지혜가 생기고 어둠이 무너져 밝음이 생기며 무명이 멸해 밝음이 생긴 것이다. 이른바 누진지(漏盡智)의 신통을 체험하여 명달한 것이다.”

이에 존자 발타화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여러 비구들이 똑같이 계를 범했는데도 어떤 사람은 애써 다스리고 어떤 사람은 애써 다스리지 않습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어떤 비구는 자주 계를 범한다. 그는 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산다. 그는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사고서는 곧 논(論)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면서 화내고 미워하며 분노하고 발악하며 대중을 괴롭히고 대중을 업신여기다가 ‘내가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생각한다. 발타화리여, 그 때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주 계를 범하고 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산다. 그는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사고서는 곧 논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면서 화내고 미워하며 분노하고 발악하며 대중을 괴롭히고 대중을 업신여기다가 〈내가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말하는구나.’
그래서 그 비구들은 이것을 보고 ‘여러분, 그 사람은 그대로 보아 언제나 그 허물에 있게 하자’고 이렇게 서로 말한다. 발타화리여, 모든 비구들은 이와 같이 그를 그대로 보아 언제나 그 허물에 있게 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계를 범한다. 그는 자주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梵行)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살 뿐이다. 그는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사고도 논(論)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지 않고 화내고 미워하고 질투하거나 분노하고 발악하지도 않으며 대중을 괴롭히지도 않고 대중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 ‘나는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이렇게 말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발타화리여,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 사람은 자주자주 계를 범하고 자주자주 계를 범하기 때문에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산다. 그러나 그는 모든 범행인들의 꾸지람을 받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남의 의심을 사고도 논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일을 주장하지 않고 화내고 미워하고 질투하거나 분노하고 발악하지도 않으며 대중을 괴롭히지도 않고 대중을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또 〈나는 이제 대중을 기쁘게 하고 또 만족하게 하리라〉고 이렇게 말하지도 않는구나.’
그래서 그 비구들은 이것을 보고 ‘여러분, 이 사람은 이대로 보아 빨리 그 허물을 멸하게 하자’고 이렇게 서로 말한다. 발타화리여, 모든 비구들은 그를 이대로 보아 빨리 그 허물을 멸하게 하였다. 그리고 가볍게 금계를 범한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발타화리여, 만일 어떤 비구가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이 있으면 ‘이제 이 비구는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이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사람을 애써 고치려고 한다면 이제 이 사람은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으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끊을 것이다. 우리들은 차라리 함께 이 사람을 잘 이끌어 보호하자’고 하며 모든 비구들은 곧 그를 잘 이끌어 보호한다. 발타화리여, 비유하면 애꾸눈인 사람과 같다. 그 친족들은 그를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겨 그의 이익과 넉넉하기를 바라고 안온과 쾌락을 구해 서로 잘 이끌어 보호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춥거나 덥거나 목마르거나 굶주리게 하지 않고 병이나 근심을 없게 하며 먼지를 씌우거나 연기로 맵게 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이 한쪽 눈을 마저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족들은 그를 잘 이끌어 보호하는 것이다. 발타화리여, 이와 같이 또 어떤 비구가 사소한 믿음이 있고 조그만 사랑이 있으며 조금 생각이 있으면 모든 비구들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제 이 비구는 믿음이 조금 있고 사랑이 조금 있으며 생각이 조금 있다. 만일 우리가 이 사람을 혹독하게 다스리면 이 사람은 조그만 믿음이 있고 조그만 사랑이 있으며 조금 생각이 있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끊을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함께 이 사람을 잘 이끌어 보호하자.’
그래서 모든 비구들은 함께 잘 이끌어 보호하기를 마치 친족들이 애꾸눈인 사람을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느니라.”

이에 존자 발타화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옛날에는 작은 계를 시설하여도 받들어 가지는 비구가 많더니 요즘은 세존께서 많은 계를 시설하여도 받들어 가지는 비구가 적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만일 비구들이 이익을 얻지 못하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喜好法]이 없고, 만일 비구들이 이익을 얻으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낸다.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면 나 세존은 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끊고자 하기 때문에 곧 제자들을 위해 계를 설한다. 그래서 칭찬과 명예가 넓고 커져서 임금까지 알게 되어 큰 복이 있고 많은 지식을 얻는다. 발타화리여, 만일 대중이 많이 들어 알지 못하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지 않고, 대중이 많이 알면 곧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낸다. 만약 대중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내면 나 세존은 이 기뻐하고 좋아하는 법을 끊고자 하기 때문에 곧 제자들을 위해 계를 설한다. 발타화리여, 나는 현세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위하여 계를 설하는 것이 아니요, 나는 후세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제자들을 위하여 계를 설하는 것이다. 발타화리여, 그러므로 나는 제자들의 번뇌를 끊으려고 하기 때문에 계를 설하는 것이요, 그들이 내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발타화리여, 나는 옛날에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청정한 말[馬]의 비유를 들어 말한 적이 있다. 거기에는 어떤 까닭이 있었는지 너는 기억하느냐?”

존자 발타화리는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거기에는 이런 까닭이 있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오면,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해 한 자리에 앉아 먹는 계를 자세히 말씀하셨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습니다. 그러나 오직 저만은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으니, 그것은 구족한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그 까닭이었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거기에는 그 까닭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발타화리여, 만일 내가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청정한 말의 비유를 들어 말하였다면 너는 반드시 한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요, 잘 공경하지 않았을 것이며, 생각하여 듣지 않았을 것이다. 발타화리여, 이것이 이 가운데 있는 다른 까닭이니라.”

이에 존자 발타화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청정한 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 모든 비구들은 세존의 가르침을 듣고 마땅히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발타화리여, 마치 말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청정한 좋은 말을 얻은 것과 같아서 먼저 그 입짓을 다스리고 그 입짓을 다스린 뒤에는 저야 좋아하건 말건 날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아직 완전히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타화리여, 만일 청정한 좋은 말이 조련사의 훈련에 따라 첫째 훈련을 성취하면 그 말 조련사는 다시 입에 재갈물리기와 다리 옭아매기를 훈련시킨다. 다리를 옭아매고, 입에 재갈을 물려 달리기를 훈련시켜, 궁중에 올려 임금이 타는 위없는 행을 감당하게 한다. 가장 훌륭한 쉼으로 모든 사지와 뼈마디를 훈련시켜 모든 훈련이 성취되면 저야 좋아하건 말건 날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왜냐 하면 자주자주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발타화리여, 만일 청정한 좋은 말을 그 말 조련사가 자주자주 다스려 성취하게 되면 그 때 그 말은 부드러워지고 매우 부드러워져 위없는 부드러움이 되고, 제일 위없는 부드러움이 된다. 그래서 위없는 행을 얻고, 제일의 행을 얻어 곧 왕이 타게 되면 왕의 곡식을 먹고 왕의 말이라고 일컬어진다.

발타화리여, 이와 같이 만일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10무학법(無學法)3), 즉 무학의 바른 소견에서부터 나아가 무학의 바른 지혜에 이르기까지를 다 성취하면 그는 그 때 부드러워지고 매우 부드러워져 위없는 부드러움이 되고 제일의 위없는 부드러움이 된다. 그래서 위없는 그침을 얻고 제일의 그침을 얻어 모든 굽은 것을 버리고 모든 더러움을 버리며 모든 두려움을 버리고 모든 어리석음을 없애며 모든 아첨을 버리고 모든 번뇌를 그치며 모든 때를 깨끗이 하여 집착이 없게 된다. 그래서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받들 만하고 제사지낼 만하여 모든 천상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발타화리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발타화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307자이다.

195) 아습패경(阿濕貝經)4) 제4 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가시국(迦尸國)에 노니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몸에는 병이 없으며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애씀도 없고 구함도 없어서 몸에는 병이 없으며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 먹는 계를 시설하셨고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배웠다.
이에 세존께서는 여기 저기 다니시다가 가라뢰(迦羅賴)에 이르러 가라뢰의 북쪽 마을 시섭화(尸攝和) 숲에 계셨다.

이 때 가라뢰에는 아습패(阿濕貝)와 불나바수(弗那婆修)5)라는 두 비구가 있었는데, 그들은 옛날 그 지방의 지주(地主)요 사주(寺主)요 종주(宗主)였었다. 그들은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고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이 소식을 듣고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세존께서는 가시국에 노니시다가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 먹는 계를 자세히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소.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그대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시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대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마시오.”

아습패와 불나바수는 이 말을 듣고 대답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습니다.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다.

그 여러 비구들은 아습패와 불나바수의 나쁘고 사특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버리고 떠났다. 비구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가라뢰에는 아습패와 불나바수라는 두 비구가 있는데 그들은 옛날 이 지방의 지주요 종주요 사주였습니다. 그들은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고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 말을 듣고 곧 그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세존께서는 가시국에 노니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이 없이 몸은 가볍고 기력은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하루에 한 끼 먹는 계를 시설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소.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그대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만 먹으시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대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마시오.’

아습패와 불나바수는 이 말을 듣고 저희들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습니다.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쾌락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으나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습패와 불나바수의 나쁘고 삿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버리고 떠나왔습니다.”

세존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한 비구에게 분부하셨다.
“너는 저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가 있는 곳에 가서 아습패와 불나바수에게 세존이 부른다고 전하라.”

“예, 세존이시여.”
그 비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바퀴 돌고는 물러갔다. 그는 아습패와 불나바수에게 가서 말했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세존께서 두 분을 부르십니다.”

아습패와 불나바수는 이 말을 듣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여러 비구들은 너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여, 세존께서는 가시국을 유행하실 적에 큰 비구들과 함께 어떤 곳에 계시면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소.
〈나는 하루에 한 끼를 먹는다.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다. 너희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계를 자세히 시설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다 계와 세존의 경계와 모든 미묘한 법을 받들어 배웠소.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그대들도 또한 하루에 한 끼만 먹으시오.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하리라. 그대들은 세존과 비구들의 뜻을 어기지 마시오.’

그리고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너희들은 그 말을 듣고 모든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우리는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습니다. 아침ㆍ저녁ㆍ점심ㆍ오후 참을 먹은 뒤에는 하는 일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병들어 아픈 일도 없고 몸은 가볍고 편안하며 기력이 강녕하며 안온하고 쾌락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현재를 버리고 미래를 기다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으나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그 모든 비구들은 너희들의 그 나쁘고 삿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너희들을 버리고 떠나갔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냐?”

아습패와 불나바수는 아뢰었다.
“사실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너희들은 내가 ‘만일 즐거운 감각[樂覺]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며 만일 괴로운 감각[苦覺]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난다’고 이렇게 설법한 것으로 아는가?”

“예, 저희들은 세존께서 ‘만일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며 만일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난다’고 그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아습패와 불나바수 비구를 꾸짖으셨다.
“너희 미련한 사람들아, 어떻게 내가 그렇게 설법했다고 알게 되었느냐? 너희들 미련한 사람들아, 누구에게서 듣고 그렇게 설법했다고 알게 되었느냐? 너희 미련한 사람들아, 나는 전혀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너희들은 완전히 그렇게 받아 가지는구나. 너희들 미련한 사람들아, 많은 비구들을 위하여 물음을 받았을 때는 마땅히 ‘저희는 알지 못합니다’ 하고 이렇게 법답게 대답했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 모든 비구들에게 물어 보리라.”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도 또한 내가 ‘만일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즐거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며 만일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그는 괴로운 감각을 깨달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난다’고 이렇게 설법했다고 알고 있느냐?”

여러 비구들이 아뢰었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 설법하였다고 알고 있느냐?”

여러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는 너희들의 말과 같다. 왜냐 하면 나도 또한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즐거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드는 수도 있으며 혹은 괴로운 감각을 깨달으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는 수도 있다’고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며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더라도 나는 응당 ‘즐거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며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더라도 나는 응당 ‘즐거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며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법이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더라도 나는 응당 ‘괴로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내가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며 바르게 다 깨닫지 못했다면 혹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더라도 나는 응당 ‘괴로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나 나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이해하고 얻었으며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 때문에 나는 ‘즐거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이해하고 얻었으며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 즐거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 때문에 나는 ‘즐거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이해하고 얻었으며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 때문에 나는 ‘괴로운 감각을 끊으라’고 말한다. 나는 사실 그대로 알고 보며 이해하고 얻었으며 바르게 다 깨달았으므로 혹 괴로운 감각을 깨달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 때문에 나는 괴로운 감각을 닦으라고 말한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모든 몸의 즐거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몸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몸의 괴로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몸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마음의 즐거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마음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마음의 괴로움을 닦으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마음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어떠한 몸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즐거움을 닦아서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몸의 즐거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즐거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몸의 즐거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몸의 괴로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몸의 괴로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몸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러한 몸의 괴로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즐거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마음의 즐거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즐거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즐거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러한 마음의 즐거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괴로움을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늘어나고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면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은 닦지 말라고 나는 말한다. 어떠한 마음의 괴로움을 닦으라고 나는 말하는가? 만일 마음의 괴로움을 닦아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면 그러한 마음의 괴로움은 닦으라고 나는 말하느니라.
그는 닦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닦지 않아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닦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닦지 않아야 할 법도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닦지 않아야 할 법은 곧 닦지 않고, 닦아야 할 법은 곧 닦는다. 닦지 않아야 할 법은 곧 닦지 않고, 닦아야 할 법을 곧 닦은 뒤에는 곧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난다.

나는 모든 비구에게 ‘방일(放逸)하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모든 비구에게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비구에게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하는가?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俱解脫)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구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8해탈(解脫)을 몸으로 체험해 성취하여 노닐고 지혜로써 관찰하여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또 이미 그것을 안다. 이런 비구는 구해탈이 있으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함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본래 이미 방일한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 비구가 본래부터 방일함이 있었다면 끝내 그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이 아닌 혜해탈(慧解脫)만 있다. 어떤 비구에게 혜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8해탈을 몸으로 체험해 성취하여 노닐지는 못하지만 지혜로써 관찰하여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이미 그것을 안다. 이런 비구는 혜해탈이 있으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도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은 본래 이미 방일한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람이 본래부터 방일함이 있었다면 끝내 그리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두 부류 비구에게는 ‘방일함이 없게 행동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가?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俱解脫)도 아니요, 또한 혜해탈도 아니지만 신증(身證)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신증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8해탈을 몸으로 체험해 성취하여 노닐지만 지혜로써 관찰하여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고 또 이미 그것을 알지는 못한다. 이런 비구는 몸의 증득[身證]만 있나니 이런 비구에게 나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根)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또한 신증도 아니지만 견도(見到)가 있다. 어떤 비구에게 견도가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곧 지혜로써 관(觀)을 왕성하게 하고 인(忍)을 왕성하게 한다. 이런 비구는 견도가 있나니, 이런 비구에게 나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또한 견도도 아니지만 신해탈(信解脫)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신해탈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지혜로써 관(觀)하고 인(忍)하지만 견도(見到)만은 못하다. 이런 비구는 신해탈이 있나니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해 번뇌가 없게 되어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가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된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견도도 아니며 또한 신해탈도 아니지만 법행(法行)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법행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곧 지혜로써 관을 왕성하게 하고 인을 왕성하게 한다. 이런 비구는 행법이 있나니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두 가지 결과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니, 곧 현세에서 구경지(究竟智)를 얻거나 만일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阿那含)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가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는 구해탈도 아니요 혜해탈도 아니며 신증도 아니요 견도도 아니며 신해탈도 아니요 또한 법행도 아니지만 신행(信行)이 있다. 어떤 비구에게 신행이 있는가? 혹 어떤 비구는 한결같이 결정코 부처님과 법과 스님을 믿고 들은 법을 따라 지혜로써 관(觀)하고 인(忍)하지만 법행(法行)만은 못하다. 이런 비구는 신행이 있나니 나는 이런 비구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어떠한 결과가 있는 것을 보기에 이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이 비구가 모든 근을 항복받고 선지식을 친근히 하며 이치를 따라 머무른다면 두 가지 결과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니, 곧 현세에서 구경지를 얻거나 만일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나는 이 비구가 방일하지 않으면 이러한 결과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비구에게 ‘방일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여러 비구들에게는 ‘방일하지 말라’고 말하느니라.

나는 ‘일체 모든 비구가 구경지(究竟地)를 얻는다’고도 말하지 않고, 또한 ‘일체 모든 비구는 처음부터 구경지(究竟地)를 얻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점 배우고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는 모든 비구가 구경지를 얻나니, 이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이니라. 어떻게 비구는 점점 배우고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 모든 비구가 구경지를 얻게 되는가? 또 어떤 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인가? 혹 믿음이 있는 자들은 나를 찾아오고 찾아와서는 곧 받들어 익히며 받들어 익힌 뒤에는 곧 일심으로 법을 듣고 일심으로 법을 들은 뒤에는 곧 그 법을 가지며 법을 가진 뒤에는 곧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는 곧 헤아리며 헤아린 뒤에는 곧 관찰한다. 어진 제자들은 관찰한 뒤에는 몸으로 진리를 증득하고 지혜로 더욱 왕성하게 관찰한다. 곧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진리를 나는 아직 몸으로 증득하지 못했고 또한 지혜로 왕성하게 관찰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이 진리를 몸으로 증득하고 지혜로 더욱 왕성하게 관찰하리라.’
이렇게 점점 배우고 익혀 자취로 나아가고 가르침을 받고 꾸지람을 받은 뒤에 모든 비구들은 구경지를 얻나니 이것이 모든 비구가 얻는 구경지이니라.”

이에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아습패와 불나바수여, 사구(四句)라는 법이 있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말하리니 너희들은 알고자 하는가?”

아습패와 불나바수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누구이며 또 무엇으로 말미암아 법을 알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나의 바른 법과 율을 지나쳐 버리는구나. 혹 어떤 법률에서는 스승이 음식에 탐착해서 음식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그 제자들이 금방 방일하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음식에 탐착하지 않고 음식을 멀리 떠난 나에게 있어서이겠는가? 믿음이 있는 제자들이면 응당 이렇게 말하리라.
‘세존께서는 저희들의 스승이요, 저희들은 세존의 제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위해 설법하시고 선서시여, 저희들을 위해 설법하시어 저희들로 하여금 이 길고 긴 밤에 진리를 얻고 이익과 안온과 기쁨을 얻게 하소서.’

그래서 그 믿음 있는 제자들은 세존의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을 것이며 세존의 경계에서 유익한 것이 많을 것이다. 세존의 경계에서 많은 일을 하며 세존의 경계에 들어와 세존의 경계에 머무르는 자는 혹 동방에서 놀더라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움이 없을 것이다. 또 혹 남방ㆍ서방ㆍ북방에서 놀더라도 반드시 안락을 얻어 여러 가지 괴로움이 없을 것이다.
만일 믿음이 있는 제자라면 세존의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고 세존의 경계에서 이익이 많을 것이다. 세존의 경계에서 행하는 것이 많고 세존의 경계에 들어와 세존의 경계에 머무른다면 나는 그들에게 ‘모든 착한 법에 머무르게 된다’고도 말하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쇠퇴하리라’고 말하겠는가? 밤낮으로 착한 법을 자라게만 하고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믿음이 있는 제자라면 세존의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고 세존의 경계에서 이익이 많을 것이다. 세존의 경계에서 하는 일이 많고 세존의 경계에 들어와 세존의 경계에 머무르는 자는 두 가지 결과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얻을 것이다. 곧 현세에서 구경지를 얻거나 혹은 다시 남음이 있으면 아나함을 얻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참고 경문으로는 『증일아함경』 제47권 「목우품(牧牛品)」 일곱 번째 경이 있다.
2 팔리어로는 Bhaddāli이다.
3 8정도에 정지(正智)와 정해탈(正解脫)을 더한 것이다.
4 송ㆍ원ㆍ명 3본에는 아습구경(阿濕具經)으로 되어 있다. 송ㆍ원ㆍ명 3본에서는 본문에서도 아습구라고 하였다.
5 팔리어 Assaji의 음역이고 마숙(馬宿)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이 비구는 석가족 왕족 출신으로 무리를 지어 계율에 어긋나는 행위들을 자행했던 6군 비구 중 한 사람이다. 위엄 있고 단정하며 걸음걸이가 훌륭하기로 제일이었던 아습구(阿濕具, Assaji,馬勝)와는 다른 사람이다. 불나바수(弗那婆修, Punabasuka)는 만숙(滿宿)이라 의역하고 역시 석가족 출신으로 6군 비구 중 한 사람이다.

해제보기

중아함경 제52권

승가제바 한역

16. 대품 제2③
196) 주나경(周那經)1) 제5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발기국(跋耆國)을 유행하실 적에 사미촌(舍彌村)에 계셨다.

그 때 사미 주나(周那)는 저 파화(波和)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었다.
그 파화에는 친자(親子)라는 니건(尼揵)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목숨을 마쳤다. 목숨을 마친 지 오래지 않아 니건 친자2)의 모든 제자들은 각각 서로 헐뜯으며 화합하지 않았고 각각 서로 헐뜯으며 화합하지 못할 일만 말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서 결박하며 서로 미워하고 다투었다.
“나는 이 법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너는 어떤 법을 아느냐? 내가 아는 것 만 하냐? 나는 단정한데 너는 단정하지 않다. 나는 법에 맞는데 너는 맞지 않다. 너는 앞에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앞에 말한다. 나는 네게 이겼고 너는 나만 못하다. 내가 네게 일을 물으면 너는 대답하지 못하니 나는 이미 너를 항복받았다. 너는 다시 내게 물으라. 만일 네가 움직이면 나는 다시 너를 묶으리라.”
이렇게 서로 교만하고 그저 말싸움에서 이기려고만 하는데 아무도 그들을 꾸짖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속가에 남아 있던 니건 친자의 재가 제자들은 이 니건 친자의 모든 제자들을 싫어하고 걱정하였다. 무슨 까닭인가? 그들이 하는 말은 다 나쁜 법(法)과 율(律)로서 그것은 번뇌를 벗어나는 길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선서(善逝)의 말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파괴하여 머무를 곳이 없었고, 의지할 데가 없었으며, 그들이 존경하는 스승도 또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아니었다.

이에 사미 주나는 여름 안거를 마치고 3개월을 지낸 뒤 기운 옷을 챙기고 발우를 가지고 사미촌 북쪽에 있는 시섭화림(尸攝和林)으로 갔다. 사미 주나는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아난이 물었다.
“현자 주나여, 어디서 오는 길이며 어디서 여름 안거를 지냈느냐?”

사미 주나는 대답하였다.
“존자 아난이시여, 저는 파화에서 오는 길이며 파화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습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파화에는 친자라는 한 니건이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가 목숨을 마친 지 오래지 않아 니건 친자의 모든 제자들은 각각 서로 헐뜯으며 화합하지 않았고 각각 서로 헐뜯으며 화합하지 못할 일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서로 결박하며 서로 미워하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나는 이 법을 아는데 너는 알지 못한다. 너는 어떤 법을 아느냐? 내가 아는 것만 하냐? 나는 단정한데 너는 단정하지 않다. 나는 법에 맞는데 너는 법에 맞지 않다. 너는 앞에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앞에 말한다. 나는 네게 이겼고 너는 내게 졌다. 내가 네게 일을 물으면 너는 대답하지 못하니 나는 이미 너를 항복받았다. 너는 다시 내게 물으라. 만일 네가 움직이면 나는 너를 다시 묶으리라.”
이렇게 서로 교만만 부리고 그저 말싸움에서 이기려고만 하는데 아무도 그들을 꾸짖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흰 옷을 입는 니건 친자의 재가 제자들은 모두 이 니건 친자의 모든 제자들을 싫어하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이 하는 말은 다 나쁜 법과 율로서 그것은 번뇌를 벗어나는 길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선서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파괴하여 머무를 곳이 없었고 의지할 데가 없었으며, 그들이 존경하는 스승도 또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아니었습니다.”

존자 아난이 이 말을 듣고 곧 말하였다.
“현자 주나여, 이 이야기로 말미암아 부처님을 가서 뵙고 부처님께 여쭐 수 있으리라. 현자 주나여, 이제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세존께 이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자. 혹 이로 말미암아 부처님에게서 다른 법을 들을지도 모르겠구나.”

이에 존자 아난은 사미 주나와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예배하였다. 존자 아난은 물러나 한쪽에 앉고 사미 주나도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아난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오늘 사미 주나는 저를 찾아와 제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한쪽에 앉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현자 주나여, 너는 어디서 오는 길이며, 어디서 여름 안거를 지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나는 곧 저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저는 파화에서 오는 길이며 파화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습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파화에는 친자라는 한 니건이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가 목숨을 마친 지 오래지 않아 니건 친자의 모든 제자들은 각각 서로 헐뜯으며 화합하지 않았고 각각 서로 헐뜯으며 화합하지 못할 일만 말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서로 결박하며 서로 미워하고 서로 다투었습니다.
〈나는 이 법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너는 어떤 법을 아느냐? 내가 아는 것만 하냐? 나는 단정한데 너는 단정하지 않다. 나는 법에 맞는데 너는 법에 맞지 않다. 너는 앞에 말해야 할 것을 뒤에 말하고 뒤에 말해야 할 것을 앞에 말한다. 나는 네게 이겼고 너는 내게 졌다. 내가 네게 일을 물으면 너는 대답하지 못하니 나는 이미 너를 항복받았다. 너는 다시 내게 물으라. 만일 네가 움직이면 나는 다시 너를 묶으리라.〉

이렇게 서로 교만만 부리고 그저 말싸움에서 이기려고만 하는데 아무도 그들을 꾸짖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니건 친자의 재가 제자들은 모두 니건 친자의 모든 제자들을 싫어하고 걱정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이 하는 말은 나쁜 법과 율로서 그것은 번뇌를 벗어나는 길이 아니요,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선서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파괴하여 머무를 곳이 없었고 의지할 데가 없었으며 그들이 존경하는 스승도 또한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이 아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 말을 듣자 놀랍고 두려워 온몸의 털이 곤두섰으며 세존께서 돌아가신 뒤에 어떤 비구라도 대중 가운데서 이런 싸움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하고 걱정하였습니다. 왜냐 하면 이런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도리도 아니요 이익도 아니며 또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나아가 천상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일으킬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떤 비구가 세존 앞에 앉아 지극한 마음으로 세존을 존경하고 선서를 잘 보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이 비구가 세존께서 돌아가신 뒤에 대중 가운데서 이런 싸움을 일으키면 그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줄 것이다. 그것은 도리가 아니요 이익이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나아가 천상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일으킬 것이다.’”

이에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난아, 너는 대중 가운데에서 어떤 싸움이 있는 것을 보았기에 그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이익 되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은 도리도 아니요 이익도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나아가 천상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하느냐?”

“세존이시여, 이른바 어떤 싸움은 증상계[增上戒], 증상심[憎上心], 증상관[增上觀]으로 인하여 대중 가운데서 생깁니다. 세존이시여, 이른바 이런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은 도리도 아니요 이익도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나아가 천상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일으킬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른바 증상계ㆍ증상심ㆍ증상관으로 인한 그런 싸움은 매우 드물다. 아난아, 만일 어떤 싸움이 도를 인하고 도의 자취[道迹]를 인해서 대중 가운데서 생기면 아난아, 이른바 그런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그것은 도리가 아니요 이익도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다. 아난아, 너는 그 중에서 어떤 두 비구가 각기 다른 소견으로 싸움을 일으키는 것을 볼 것이다.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법이 아니다, 이것은 율이다, 이것은 율이 아니다,이것은 범하는 것이다, 이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다, 가볍다, 무겁다, 참회해야 한다, 참회할 것이 아니다, 조심해야 한다, 조심할 것이 아니다, 남음이 있다, 남음이 없다, 일어난다, 일어나지 않는다.’
아난아,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 4념처(念處)ㆍ4정단(正斷)ㆍ4여의족(如意足)ㆍ5근(根)ㆍ5력(力)ㆍ7각지(覺支)ㆍ8지성도(支聖道) 등 나의 법취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겠는가? 아난아, 니건(尼揵) 친자는 사실 살운야(薩云若)3)가 아니면서 스스로 살운야라고 일컬었다. 아난아, 만일 니건 친자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는 자라면 그는 제자들을 위하여 여섯 가지 싸움의 원인[六諍本]을 시설하여 그것을 듣고 그치게 하였을 것이니라.”

이에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해 여섯 가지 싸움의 원인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세존에게서 그것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나는 너희들을 위해 자세히 분별하여 설명하리라.”

존자 아난이 아뢰었다.
“예, 분부대로 듣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화를 잘 내어 원한을 맺는다. 아난아, 사람이 화를 잘 내어 원한을 맺으면 그는 스승을 공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 않는 것이다. 그는 스승을 공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 않은 뒤에는 곧 대중 가운데서 이러한 싸움을 일으킨다. 이른바 이런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만 준다. 그것은 도리가 아니요 이익이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나아가 천상과 인간에 지극한 고통과 재앙을 일으킨다. 아난아, 이러한 싸움을 네가 안팎에서 보아 다하지 않거든 너는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빨리 방편을 구해서 지극히 부지런히 공부하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디어 물러나지 않게 하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불 때문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빨리 방편을 구해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이와 같이 만일 네가 싸움을 안팎에서 보아 다하지 않았거든 그 싸움을 끊기 위해 너는 빨리 방편을 구해서 지극히 부지런히 공부하여 바른 생각과 지혜로 참고 견디어 물러나지 않게 하라.

아난아, 네가 다시 안팎에서 보아 이러한 싸움이 다 없어졌거든 너는 그 싸움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거듭 보호하며 언제나 방일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 싸움의 뿌리를 끊게 되리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불 때문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빨리 방편을 써서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너는 싸움을 안팎에서 보아 다 없어졌거든 너는 그 싸움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거듭 보호하며 언제나 방일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 싸움의 뿌리를 끊게 되리라.

이와 같이 말 끊음[不語]ㆍ맺음[結]ㆍ아낌[慳]ㆍ질투[嫉]ㆍ아첨[諂]ㆍ속임[誑]ㆍ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慚]ㆍ남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음[無愧]ㆍ나쁜 욕심[惡欲]ㆍ삿된 소견[邪見] 등 이런 것들은 다 나쁜 성질로서 제어하기 어렵다.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이러한 나쁜 욕심과 삿된 소견으로 나쁜 성질들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는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 못한다. 그는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법을 보지 못하며 계를 지키지 못한 뒤에는 곧 대중 가운데서 이러한 싸움을 일으키나니 이러한 싸움은 많은 사람에게 유익하지 못하고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그것은 도리가 아니요 이익이 아니며 안온과 쾌락도 아니요 나아가 천상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극한 고통과 재앙만 일으키느니라.

아난아, 네가 안팎에서 보아 이러한 싸움이 다하지 않았거든 이 싸움을 끊기 위해 너는 빨리 방편을 구해서 아주 부지런히 공부하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디어 물러나지 않게 하라. 아난아,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불 때문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빨리 방편을 써서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아난아, 이와 같이 너는 싸움을 안팎에서 보아 다하지 않았거든 그것을 끊기 위해 너는 빨리 방편을 구해 아주 열심히 공부하여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참고 견디어 물러나지 않게 하라.

아난아, 네가 안팎에서 보아 이러한 싸움이 다 없어졌거든 너는 그 싸움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거듭 보호하며 언제나 방일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 싸움의 뿌리를 끊게 되리라.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불 때문에 머리가 타고 옷이 타면 빨리 방편을 써서 머리를 구하고 옷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네가 안팎에서 보아 싸움이 다 없어졌거든 그것을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거듭 보호하며 언제나 방일하지 말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 싸움의 뿌리를 끊게 되리라.

다시 아난아, 싸움을 그치게 하는 일곱 가지 방법[七止諍] 있다. 첫째는 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面前止諍律]을 주는 것이요, 둘째는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憶止諍律]을 주는 것이며, 셋째는 제정신일 때 가르쳐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不癡止諍律]을 주는 것이요, 넷째는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自發露止諍律]을 주는 것이며, 다섯째는 그대라 하며 죄를 추궁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君止諍律]을 주는 것이요, 여섯째는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의견을 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展轉止諍律]을 주는 것이며, 일곱째는 똥 닦은 걸레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如棄糞掃止諍律]을 주는 것이다.

아난아, 어떤 것이 ‘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어떻게 그 싸움을 끊는가? 아난아, 한 사람이 한 사람을 가르치고 나무래서 법률로써 보호하며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또 한 사람이 두 사람, 한 사람이 많은 사람,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가르치고 나무래서 법률로써 보호하며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두 사람이 두 사람을 가르치고 나무래서 법률로써 보호하며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또 두 사람이 많은 사람, 두 사람이 여러 사람, 두 사람이 한 사람을 가르치고 나무래서 법률로써 보호하며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많은 사람이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나무래서 법률로써 보호하며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또 많은 사람이 여러 사람, 많은 사람이 한 사람, 많은 사람이 두 사람을 가르치고 나무래서 법률로써 보호하며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여러 사람이 여러 사람을 가르치고 나무래서 법률로써 보호하며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또 여러 사람이 한 사람, 여러 사람이 두 사람, 여러 사람이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나무래서 법률로써 보호하며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아난아, 이것을 ‘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면전에서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그 싸움을 끊는다.

아난아, 어떤 것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어떻게 그 싸움을 끊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계를 범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면, 여러 비구들은 그것을 보고 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너는 일찍이 계를 범하고도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그대는 마땅히 여러 사람에게서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憶律]을 구해야 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은 분명 그대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줄 것이다.’
아난아, 그래서 만일 어느 곳에 여러 사람들이 화합해서 모이면 그 비구는 거기 가서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신을 벗고 그 속에 들어가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꿇고 앉아 합장하고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러 스님들이여, 제가 일찍이 계를 범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지금부터 여러 스님들에게 기억하고 계신 것을 말씀해 주시는 율을 구합니다. 원컨대 여러 스님들께서는 화합하여 저에게 기억하고 계신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아난아, 대중들은 그 비구를 위해 화합하여 모였으니 마땅히 그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고 법과 율로써 스승처럼 가르쳐서 면전에서 기뻐하게 한다. 아난아, 이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그 싸움을 끊는다.

아난아, 어떤 것이 ‘제정신일 때 가르쳐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제정신일 때 가르쳐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어떻게 그 싸움을 끊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미친 증세가 생겨 마음이 뒤집히고 미친 증세가 생겨 마음이 뒤집힌 뒤에 사문의 법이 아닌 부정한 짓을 많이 저지르고 법다운 행을 따르지 않으며 또 거슬리는 말을 했다고 하자. 뒷날 그가 본심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비구들은 그를 보고 말할 것이다.
‘너는 일찍이 미친 증세가 생겨 마음이 뒤집히고 미친 증세가 생겨 마음이 뒤집힌 뒤에는 사문의 법이 아닌 부정한 짓을 많이 저지르고 사문의 법다운 행을 따르지 않았으며 또 거슬리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본심으로 돌아왔다. 그대는 마땅히 여러 사람들에게서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不癡律]을 구해야 한다. 여러 사람들은 그대에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줄 것이다.’

아난아, 만일 어느 곳에 대중이 화합해서 모이면 그 비구는 거기 가서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신을 벗고 그 속에 들어가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꿇고 앉아 합장하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러 스님들이여, 저는 일찍이 미친 증세가 생겨 마음이 뒤집혔고 미친 증세가 생겨 마음이 뒤집힌 뒤에는 사문의 법이 아닌 부정한 짓을 많이 저지르고 법다운 행을 따르지 않았으며 거슬리는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본심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 스님들에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구합니다. 원컨대 여러 스님들께서는 화합하여 저에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십시오.’
아난아, 대중들은 그 비구를 위해 화합하여 모였으니 마땅히 그에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율을 주고 법과 율로써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해야 한다. 아난아, 이것을 ‘제정신일 때 가르쳐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그 싸움을 끊는다.

아난아, 어떤 것이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어떻게 그 싸움을 끊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계를 범했는데 남이 혹은 말하고 혹은 말하지 않으며, 혹은 기억하고 혹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난아, 만일 어느 곳에 대중이 화합해서 모이면 그 비구는 거기 가서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신을 벗고 그 속에 들어가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들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 꿇고 앉아 합장하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러 스님들이여, 제가 이러 이러한 계를 범했사온데 용서하십시오. 저는 이제 여러 큰스님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저의 죄를 드러내 스스로 말하고 보이며 감히 숨기지 않습니다. 보다 더 잘 보호하고 지켜 뒤에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아난아,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그에게 ‘그대는 스스로 범한 줄을 아는가?’고 물어야 하고, 그는 마땅히 ‘저는 진실로 제가 범한 줄을 압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대중들은 다시 그에게 ‘보다 더 잘 보호하고 지켜 다시는 범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아난아, 이것을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그 싸움을 끊는 것이다.

아난아, 어떤 것이 ‘그대라 하며 죄를 추궁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그대라 하며 죄를 추궁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어떻게 그 싸움을 끊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사람이 수치를 알지 못하고 보고 들은 것을 뉘우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쁜 욕심을 가진 것으로 의심받는다고 하자. 그는 계를 범한 뒤에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컫고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컫는다.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컬은 뒤에는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컫고,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컬은 뒤에는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컫는다. 그는 또 대중 가운데서도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컫고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컫는데,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컬은 뒤에는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컫고,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컬은 뒤에는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컫는다.

아난아, 그 비구를 위하기 때문에 대중은 서로 화합해 모여 마땅히 다음과 같이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어야 한다.
‘그대는 도가 없고, 그대는 이치가 없으며, 그대는 악하고 착하지 않다. 무슨 까닭인가? 이른바 그대는 계를 범한 뒤에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컫고 한곳을 보았다고 일컬었다.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컬은 뒤에는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컫고,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컬은 뒤에는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컬었다. 또 그대는 대중 가운데서도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컫고,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컬었다.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컬은 뒤에는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컬었고, 어떤 것을 보았다고 일컬은 뒤에는 어떤 것을 안다고 일컬었기 때문이다.’
아난아. 이것을 ‘그대라 하며 죄를 추궁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그대라 하며 죄를 추궁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그 싸움을 끊는다.

아난아, 어떤 것이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의견을 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의견을 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어떻게 그 싸움을 끊는가? 아난아, 어떤 두 비구가 그 사이에 약간 뜻이 달라 싸움을 일으킨다고 하자.
‘이것은 법이다, 이것은 법이 아니다, 이것은 율이다, 이것은 율이 아니다, 이것은 범하는 것이다, 이것은 범하는 것이 아니다, 가볍다, 무겁다, 말해야 한다, 말할 것이 없다, 보호해야 한다, 보호할 것이 없다, 남음이 있다, 남음이 없다, 참회해야 한다, 참회할 것이 없다.’

아난아, 그 비구들은 이 싸움을 외처(猥處)에서 그쳐야 한다. 만일 외처에서 그치면 이 싸움은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을 외처에서 그치지 못하면 이 싸움은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만일 대중 속에서 그치면 이 싸움은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대중 속에서도 그치지 않으면 아난아, 근처에 머무는 이들 중에 만일 경을 가졌고 율을 가졌으며 모(母)4)를 가진 비구가 있거든 이 비구들은 마땅히 그리로 가서 이 싸우는 일에 대해 말해야 한다. 만일 그리로 가던 길에서 그치면 이 싸움은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리로 가던 길에서도 그치지 않으면 이 싸움은 다시 대중을 향해 말해져야 한다. 만일 대중 앞에서 그치면 이 싸움은 그쳤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대중 앞에서도 그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난아, 만일 경을 가졌고, 율을 가졌으며, 모(母)를 가진 많은 도반과 조력자들이 있다면, 그 비구들은 마땅히 이 싸움을 그치게 하고, 법과 율로써 스승처럼 가르쳐 면전에서 기뻐하게 하여야 한다. 아난아, 이것을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의견을 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여기 저기 찾아다니며 의견을 물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그 싸움을 끊는다.

아난아, 어떤 것이 ‘똥 닦은 걸레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며,‘똥 닦은 걸레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어떻게 그 싸움을 끊는가? 아난아, 만일 어떤 절에서 모든 비구들이 서로 싸우고 미워하며 서로 다투면 아난아, 그 모든 비구들은 두 파로 갈라진다. 두 파로 갈라진 뒤에 만일 한 파 중에 나이와 덕이 가장 많은 비구거나 그 다음 비구, 또는 종주거나 그 다음이 있으면 아난아, 이 비구는 저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러분, 우리들이 도가 없고 이치가 없었던 것을 용서하십시오. 우리들은 악하고 착하지 못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이 잘 말해진 법과 율에 대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며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싸움으로 인해 우리들이 계를 범했거든 우리들 자신을 위하고 또 여러분들을 위해 투라자(偸羅柘)5)로 다스리고 가상응(家相應)으로 다스리십시오. 우리들은 이제 여러분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보이며 감히 숨기지 않습니다. 보다 더 잘 보호하고 지켜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아난아, 만일 이 부파 중에서 응하는 비구가 아무도 없으면 아난아, 이 비구는 다시 저 둘째 부파로 가서 나이와 덕이 많은 비구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합장하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러 존자시여, 우리들이 도가 없고 이치가 없는 것을 용서하십시오. 우리들은 악하고 착하지 못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우리들은 이 잘 말해진 법과 율에 대해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서로 미워하며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싸움으로 인해 우리들이 계를 범했거든 우리들 자신을 위하고 또 여러분들을 위해 투라자로 다스리고 가상응으로 다스리십시오. 이제 여러 장로들과 존자들께 지극한 마음으로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어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보이며 감히 숨기지 않습니다. 보다 더 잘 보호하고 지켜서 뒤에 다시는 범하지 않겠습니다.’
아난아, 그 비구들은 이 비구에게 ‘현자여, 그대는 스스로 계를 범한 줄을 아는가?’라고 말하고, 이 비구는 응당 ‘실로 스스로 계를 범한 줄을 압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러면 그 비구들은 마땅히 ‘보다 더 잘 보호하고 지켜서 다시는 범하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둘째 부파도 또한 이와 같다.
아난아, 이것을 ‘똥 닦은 걸레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주는 것이라 하며, 이렇게 ‘똥 닦은 걸레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을 의지하여 그 싸움을 그친다.

아난아, 나는 이제 너를 위해 6위로법(慰勞法)을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존자 아난이 아뢰었다.
“예, 분부 받자와 경청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을 6위로법이라 하는가? 사랑하는 몸의 업으로써 모든 범행인을 대하라. 이 법은 위로법으로서 사랑스런 법이요 즐거운 법이다. 이것은 남을 사랑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받들게 하고 공경하게 하며 닦게 하고 거둬주게 하여 사문을 얻고 한 마음을 얻게 하며 정진을 얻고 열반을 얻게 한다. 사랑하는 입의 업과 사랑하는 뜻의 업도 또한 그러하다.
또 만일 법다이 얻은 법의 이익이 있고 자기가 얻은 밥이 발우에 있거든 이러한 이익을 나누어 모든 범행인들에게 베풀어라. 이 법은 위로법으로서 사랑스런 법이요 즐거운 법이다. 이것은 남을 사랑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받들게 하고 공경하게 하며 닦게 하고 거둬주게 하여 사문을 얻고 한 마음을 얻게 하며 정진을 얻고 열반을 얻게 한다.

또 만일 이지러지지 않고 뚫리지도 않으며, 더러움도 없고 검지도 않으며, 땅과 같아서 남을 따르지 않고 성인이 칭찬하는 바로서 완전하게 갖추어 잘 받아 가진 계가 있거든 이러한 계를 나누어 모든 범행인들에게 베풀어라. 이 법은 위로법으로서 사랑스런 법이요 즐거운 법이다. 이것은 남을 사랑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받들게 하고 공경하게 하며 닦게 하고 거두어주게 하여 사문을 얻고 한 마음을 얻게 하며 정진을 얻고 열반을 얻게 한다.
또 만일 생사를 벗어나는 거룩한 소견이 있어서 밝게 보고 깊이 통달하여 능히 바로 괴로움을 없앴거든 이러한 소견을 나누어 펴 모든 범행인들에게 베풀어라. 이 법은 위로법으로서 사랑스런 법이요 즐거운 법이다. 이것은 남을 사랑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받들게 하고 공경하게 하며 닦게 하고 거두어 주게 하여 사문을 얻고 한 마음을 얻게 하며 정진을 얻고 열반을 얻게 한다. 아난아, 내가 말하는 6위로법이란 이 때문에 말한 것이다.

아난아, 만일 너희들이 저 여섯 가지 싸움의 원인을 바로 끊고, 혹 대중 가운데서 싸움이 일어나더라도 이 싸움을 그치게 하는 일곱 가지 방법[七止諍]으로 ‘똥 닦은 걸레를 버리듯 하여 싸움을 그치게 하는 율’로써 그치게 하고, 다시 이 6위로법을 행하면 아난아, 너희들은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함께 어울려 화합하고 기뻐하며 싸우지 않을 것이다. 한 마음을 같이 하고 한 가르침을 같이 하며 물과 젖이 하나로 합하듯 쾌락하게 노니는 것이 내가 세상에 있을 때와 같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주나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230자이다.

197) 우바리경(優婆離經) 제6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첨파국(瞻波國)에 노니실 적에 항가(恒伽)못 기슭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우바리(優婆離)는 해질 무렵에 편안한 자리[燕坐:참선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다른 업을 짓고 다른 업을 말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에서 가르치는 율[面前律]’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憶律]’을 주고,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면전에서 가르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不癡律]’을 주고,‘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自發露律]’을 주고,‘마땅히 잘못을 스스로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君律]’을 주고,‘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꾸짖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를 아래에 두고,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꾸짖는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위로 올리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아래에 둔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물리치고,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를 위로 올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물리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를 몰아내고,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를 근본을 좇아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에게 교만하지 않음[不慢]6)을 보이게 하고, 마땅히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해야 할 자를 몰아낸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이시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해야 할 자를 다스리고,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를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한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며 율다운 업이 되겠습니까?”

“아니니라. 우바리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다른 업을 짓고 다른 업을 말한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에서 가르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면전에서 가르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고, 마땅히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느니라.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꾸짖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에게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를 아래에 두고,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꾸짖는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를 위로 올리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아래에 둔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를 물리치고,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를 위로 올린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느니라.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물리친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를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근본을 좇아 다스릴 자에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준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를 몰아내고,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를 근본을 좇아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에게 겸손하고, 마땅히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해야 할 자를 몰아낸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해야 할 자를 다스리고,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를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한다면 이것은 법답지 않은 업이요 율답지 않은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있느니라.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화합해 살면서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곧 그 업을 말하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요 율다운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없다. 우바리여, 만일 비구들이 서로 화합해 살면서 마땅히 ‘면전에서 가르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면전에서 가르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기억해야 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며, 마땅히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며, 마땅히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마땅히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죽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꾸짖으며,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는 곧 아래에 두고,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는 곧 위로 올리며,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는 물리치고, 마땅히 기억할 자는 곧 기억하며,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는 곧 근본을 좇아 다스리고, 몰아내야 할 자는 곧 몰아내며, 마땅히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해야 할 자에게는 곧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하고,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는 곧 다스린다면, 이것은 법다운 업이요 율다운 업으로서 대중에게도 또한 죄가 없느니라.

우바리여, 너는 마땅히 짓는 업에 따라 곧 그 업을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마땅히 ‘면전에서 가르치는 율’을 줄 자에게는 곧 ‘면전에서 가르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기억하고 있는 것을 말해 주는 율’을 주며, 마땅히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제정신일 때 가르쳐 주는 율’을 주고, 마땅히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스스로 잘못을 드러내게 하는 율’을 주며, 마땅히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어야 할 자에게는 곧 ‘그대라고 부르며 죄를 추궁하는 율’을 주고, 마땅히 꾸짖어야 할 자는 곧 꾸짖고, 마땅히 아래에 두어야 할 자는 곧 아래에 두며, 마땅히 위로 올려야 할 자는 곧 위로 올리고, 마땅히 물리쳐야 할 자는 곧 물리치며, 마땅히 기억해야 할 자는 곧 기억하고, 마땅히 근본을 좇아 다스려야 할 자는 곧 근본을 좇아 다스리며, 마땅히 몰아내야 할 자는 곧 몰아내고, 마땅히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해야 할 자는 곧 교만하지 않음을 보이게 하며, 마땅히 다스려야 할 자는 곧 다스려야 한다. 우바리여, 너는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우바리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우바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561자이다.

198) 조어지경(調御地經) 제7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陀園)에 계셨다.

그 때 사미 아이나화제(阿夷那和提)도 또한 왕사성에 노닐면서 일 없는 곳[無事處:절]의 선실(禪室)에 있었다.
그 때 왕의 동자[王童子] 기바선나(耆婆先那)는 오후에 천천히 걸어 사미 아이나화제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인사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말하였다.
“현자 아기사나(阿寄舍那)여, 물을 말이 있는데 들어 주겠습니까?”

“어진 왕동자여, 묻고 싶으면 물으십시오. 제가 듣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왕동자가 물었다.
“아기사나여,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어진 왕동자여, 사실입니다.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됩니다.”

“현자 아기사나여, 그러면 그대가 들은 대로 그대가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저에게 모두 말해주십시오.”

“어진 왕동자여, 저는 제가 들은 대로 제가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당신에게 자세히 말할 수 없습니다. 어진 왕동자여, 혹 제가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말하더라도 아마 어진 왕동자는 그것을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헛수고만 하게 될 것입니다.”

왕동자는 사미에게 말했다.
“현자 아기사나여, 그대는 아직 다른 사람에게 항복 당한 적이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스스로 물러섭니까? 현자 아기사나여, 그대가 들은 대로 그대가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저에게 말해 보십시오. 만일 제가 알아들으면 좋고, 만일 제가 알아듣지 못하면 저는 다시는 아무 법도 묻지 않겠습니다.”

이에 사미 아이나화제는 들은 대로 외운 대로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그대로를 왕동자 기바선나에게 말하였다.

이에 왕동자 기바선나가 말하였다.
“현자 아기사나여, 설령 비구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방일하지 않고 수행하고 정근한다고 하더라도 한 마음은 끝내 될 수 없습니다.”
왕동자는 이렇게 말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하직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 버렸다.

왕동자 기바선나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미 아이나화제는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왕동자 기바선나와 서로 이야기한 것을 모두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들으시고 곧 사미에게 말씀하셨다.
“아기사나여, 그만두라. 왕동자 기바선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여 욕애(欲愛)에 먹히고 욕심에 불타고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고 욕심의 번열을 끊어 욕지(欲知)가 없고 욕견(欲見)이 없으며 욕각(欲覺)이 없는 경지를 이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아기사나여, 왕동자 기바선나는 언제나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니라.

아기사나여, 마치 코끼리 길들임ㆍ말 길들임ㆍ소 길들임ㆍ사람 길들임의 네 가지 길들임[四調御]이 있는데, 그 중에는 길들이려 해도 길들일 수 없는 둘과 길들이려 하면 길들일 수 있는 둘이 있는 것과 같다. 아기사나여, 네 뜻에는 어떠하냐? 만일 그 둘이 길들이려 해도 길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길들이지 않았고, 길들이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훈련받지 않은 그것이 훈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끝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그 둘이 길들이려 하면 길들일 수 있고 잘 길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 길들일 수 있지만 아직 길들이지 못한 상태에 있고 훈련받지 못한 그것이 훈련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분명 있을 수 있는 일이니라.
이와 같으니 아기사나여, 그만 두라. 왕동자 기바선나를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며 욕애에 먹히고 욕심에 불타고 있다. 그래서 지금으로서는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으며 욕심에 불타는 것을 끊어 욕지가 없고 욕견이 없으며 욕각이 없는 경지를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아기사나여, 왕동자 기바선나는 언제나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니라.

아기사나여,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돌산이 있었는데 그 산이 이지러진 데도 없고 뚫린 곳도 없으며 속이 꽉 차 비지 않았고 견고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모두 붙어 한 덩이로 되어 있었다. 어떤 두 사람은 그것을 직접 보려고 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은 곧장 산으로 올라갔고 다른 한 사람은 산 아래 머물러 있었다. 돌산 위로 올라간 사람은 돌산 너머 있는 좋고 편편한 땅과 동산ㆍ수풀ㆍ맑은 샘ㆍ꽃이 피어 있는 못ㆍ긴 강과 하수(河水)를 본 뒤에 산 아래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너는 저 산 너머에 있는 좋고 편편한 땅과 동산ㆍ수풀ㆍ맑은 샘ㆍ꽃이 피어 있는 못ㆍ긴 강과 하수가 보이느냐?’
산 밑에 있는 사람이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 너머에 좋고 편편한 땅과 동산ㆍ수풀ㆍ맑은 샘ㆍ꽃이 피어 있는 못ㆍ긴 강과 하수가 있을 수 없다.’

이에 돌산 위에 있던 사람은 재빨리 내려와 산 아래 있는 사람을 붙들고 산 위로 얼른 올라가서 물었다.
‘너는 이 산 너머에 있는 좋고 편편한 땅과 동산ㆍ수풀ㆍ맑은 샘ㆍ꽃이 피어 있는 못ㆍ긴 강과 하수가 보이느냐?’
그 사람은 그제서야 비로소 ‘보인다’고 대답했다. 다시 그 사람에게 물었다.
‘네가 아까는 그것이 있을 수 없다고 하다가 지금은 보인다고 하니 무슨 까닭인가?’
그 사람은 대답했다.
‘내가 아까는 산이 가려서 보지 못했다.’
이와 같나니, 아기사나여 그만두라. 왕동자 기바선나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욕심을 부리고 욕심에 집착하며 욕애에 먹히고 욕심에 불타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욕심을 끊고 욕애를 끊고 욕심의 번열을 끊어 욕지가 없고 욕견이 없으며 욕각이 없는 경지를 왕동자는 알려고 하고 보려고 하더라도 끝내 그리 될 수 없느니라.

아기사나여, 옛날에 찰리족(刹利族)의 정생왕(頂生王)에게 코끼리 잡는 사람이 있었다. 왕은 그에게 ‘너 코끼리 잡는 기술자야, 나를 위해 야생 코끼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내게 알려라’고 했다. 그 때 코끼리 잡는 기술자는 왕의 명령을 받고 곧 왕의 코끼리를 타고 들판의 숲으로 갔다. 그는 들판 숲속에서 큰 야생 코끼리를 보고 그것을 잡아 왕의 코끼리 목에 잡아매었다. 왕의 코끼리는 그 야생 코끼리를 끌고 숲 밖으로 나와 궁으로 갔다. 코끼리 잡는 기술자는 정생왕에게 가서 아뢰었다.
“대왕이시여, 이미 야생 코끼리를 잡아다가 밖에 매어 두었습니다. 왕의 뜻대로 하소서.”
정생왕이 명하였다.
“훌륭한 코끼리 조련사여, 너는 이제 빨리 이 야생 코끼리를 길들이고 항복받아 길이 잘 든 코끼리로 만들어라. 그리고 잘 길들인 뒤에는 곧 내게 와서 알려라.”
이에 훌륭한 코끼리 조련사는 왕의 명령을 받고 아주 큰 막대기를 어깨에 메고 야생 코끼리가 있다는 곳으로 가서 막대기를 땅에 박고 야생 코끼리의 목을 매어 야생을 좋아하는 코끼리의 마음을 억제하고 야생에 대한 욕심을 없애고 야생에 대한 생각에서 생긴 피로를 쉬게 하였다. 그래서 마을을 좋아하게 하고 사람을 따르게 하기 위해 코끼리 조련사는 먼저 음식부터 주었다.

아기사나여,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처음부터 코끼리 조련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 그 코끼리 조련사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 야생 코끼리는 반드시 살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큰 야생 코끼리가 처음부터 음식을 받아먹기 때문이다.’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처음부터 코끼리 조련사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면 코끼리 조련사는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집고 버리며 굽히고 펴라고 말한다.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를 따른다면 부드럽고 상냥한 말로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집고 버리며 굽히고 펴라’고 하면 그 말대로 야생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가 시키는 대로 따를 것이다.
아기사나여,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명을 따르면 그 코끼리 조련사는 곧 두 앞다리ㆍ두 뒷다리ㆍ두 볼기짝ㆍ두 옆구리ㆍ꼬리ㆍ등ㆍ목ㆍ머리ㆍ귀ㆍ어금니를 결박하고, 또 그 코를 결박한 뒤에 사람을 시켜 갈고리를 가지고 그 머리 위에 타게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을 시켜 칼ㆍ방패ㆍ긴 창ㆍ양지창ㆍ민눈창ㆍ도끼ㆍ큰 도끼를 가지고 그 앞에 서게 한다. 코끼리 조련사는 손에 칼을 들고 야생 코끼리 앞에서 ‘나는 이제 너를 다루어 움직이지 못하게 하리니 너를 다룰 때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말한다.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가 다루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 때 그는 앞다리를 들지 않고 또한 뒷다리도 움직이지 않으며, 두 볼기짝ㆍ두 옆구리ㆍ꼬리ㆍ등ㆍ목ㆍ머리ㆍ귀ㆍ어금니 및 코를 모두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야생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의 명령을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느니라.

아기사나여,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명령을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그 때에는 칼과 방패ㆍ긴 창ㆍ양지창ㆍ민눈창ㆍ도끼와 큰 고함 소리를 참고, 또 고둥을 불고 북을 치며 종을 치더라도 능히 다 참고 견딘다. 만일 그 야생 코끼리가 그것들을 능히 참고 견딘다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여져서 제일 빠르고 위없이 빨라 왕이 타는 코끼리가 되어 왕의 곡식을 받아먹고 왕의 코끼리라 일컬어진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이 세상에서 하늘ㆍ악마ㆍ범천ㆍ사문 범지 등 사람에서 하늘에 이르기까지를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달으며 스스로 체험하고 성취하여 노닌다. 그의 설법은 처음도 묘하고 중간도 묘하고 마지막도 또한 묘하다. 뜻도 있고 문채도 있으며, 구족하고 청정하여 범행을 나타낸다. 그의 설법을 거사의 아들이 들으면 거사의 아들은 그것을 듣고는 여래의 설법을 믿게 되고 그는 그것을 믿은 뒤에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느니라.
아기사나여, 그 때 거룩한 제자들은 집에서 나와 밖에서 산다. 이 야생 코끼리가 탐욕을 내고 즐기고 집착하는 것은 숲속에서 살기 때문인 것처럼 아기사나여, 이 하늘과 사람이 탐욕을 내고 즐기고 집착하는 것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 등 이 5욕 가운데서 살기 때문이다. 여래는 처음으로 그 비구들을 길들일 때 ‘너희들은 마땅히 몸과 목숨을 청정히 보호하고 입과 뜻과 목숨을 청정히 보호하라’고 말한다.

만일 거룩한 제자가 몸과 목숨을 청정히 보호하고 입과 뜻과 목숨을 청정히 보호하면,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인다.
‘너희들은 마땅히 안 몸[內身]을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覺]과 마음[心]과 법(法)에 이르기까지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 그대로 관찰하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몸을 관찰하기를 몸 그대로 하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에 이르기까지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관찰하면 이 4념처(念處)는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그 마음을 결박하여 집을 좋아하는 뜻을 제어하고 집에 대한 욕심을 없애며 집에 대한 생각에서 생기는 피로를 쉬게 한다. 그래서 바른 법을 좋아하게 하고 성인의 계를 닦아 익히게 한다.
아기사나여, 마치 코끼리 조련사가 찰리 정생왕의 명령을 받고는 아주 큰 막대기를 오른쪽 어깨에 메고 야생 코끼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막대기를 땅에 박고 야생 코끼리 목을 매어 야생을 좋아하는 뜻을 제어하고 야생에 대한 욕심을 없애고 야생의 피로를 쉬게 하여 마을을 좋아하게 하고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이 4념처는 이른바 거룩한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그 마음을 결박하여 집을 좋아하는 뜻을 제어하고 집에 대한 욕심을 없애고 집에 대한 생각에서 생기는 피로를 쉬게 한다. 그래서 바른 법을 좋아하게 하고 성인의 계를 닦아 익히게 한다.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안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에 이르기까지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관찰하면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인다.
‘너희들은 마땅히 안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를 관찰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말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말라.’
만일 거룩한 제자가 안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를 관찰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않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이런 거룩한 제자들은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니라.
아기사나여, 마치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부드럽고 상냥한 말을 따라 눕고 일어나며 가고 오며 집고 버리며 굽히고 펴고 한다면 이런 야생 코끼리는 코끼리 조련사의 명령을 따르는 것인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안 몸을 관찰하되 몸 그대로를 관찰하여 욕심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않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되 감각과 마음과 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여 법이 아닌 것과 서로 어울리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면 이런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니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따르면 여래는 다시 그 비구들을 길들인다.
‘너희들은 마땅히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런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를 따라 머물고 이동하지 않는다. 아기사나여, 마치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의 다룸을 좇아 움직이지 않을 때에는 앞다리도 들지 않, 또한 뒷다리도 움직이지 않으며 두 볼기짝ㆍ두 옆구리ㆍ꼬리ㆍ등ㆍ목ㆍ머리ㆍ귀ㆍ어금니 및 코를 모두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게 되면 이런 거룩한 제자들은 곧 여래를 따라 머물고 이동하지 않느니라.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머물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은 그 때에는 능히 굶주림과 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벼룩ㆍ바람ㆍ햇볕 따위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능히 참아내며 몸이 모든 병에 걸려 지극히 고통스럽고 심지어는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그런 어려움을 다 능히 참고 견뎌낸다. 아기사나여, 마치 야생 코끼리가 코끼리 조련사를 따라 가만히 있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그 때에는 칼과 방패ㆍ긴 창ㆍ양지창ㆍ민눈창ㆍ도끼와 큰 고함 소리 등을 참고, 또 고둥을 불고 북을 치며 종을 치더라도 다 능히 참고 견디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머물러 움직이지 않으면 그는 그 때에는 능히 굶주림과 목마름ㆍ추위ㆍ더위ㆍ모기ㆍ등에ㆍ파리ㆍ벼룩ㆍ바람ㆍ햇볕 따위의 시달림을 참고 욕설과 매질도 능히 참아내며 몸이 모든 병에 걸려 지극히 고통스럽고 심지어는 목숨이 끊어지려 하더라도 그런 어려움까지 다 능히 참고 견디느니라.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가 여래를 따라 능히 참고 견디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여져서 제일로 쉬고 최상으로 쉬어, 모든 악과 두려움, 어리석음 및 아첨을 버리고 청정하게 티끌을 없애 때가 없고 더러움이 없어 부를 만하고 청할 만하며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실로 공양할 만하여 모든 하늘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된다. 아기사나여, 마치 야생 코끼리가 잘 참아내면 그는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여져서, 제일 빠르고 위없이 빨라 왕이 타고 다니는 코끼리가 되어 왕의 곡식을 받아먹고 왕의 코끼리라고 불리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기사나여, 만일 거룩한 제자들이 여래를 따라 잘 참고 견뎌내면 그들은 그 때에는 길들고, 잘 길들고, 제일로 길들고, 최상으로 길들여져서 제일로 쉬고 최상으로 쉬어 모든 악과 두려움, 어리석음 및 아첨을 버리고 청정하게 티끌을 없애 때가 없고 더러움이 없어 부를 만하고 청할 만하며 공경할 만하고 존중할 만하며 실로 공양할 만하여 모든 하늘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되느니라.

아기사나여, 어린 야생 코끼리가 길들지 못하고 죽으면 길들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하며, 젊거나 늙은 야생 코끼리도 길들지 못하고 죽으면 길들지 못하고 죽었다고 말한다. 아기사나여, 어린 거룩한 제자가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치면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며, 젊거나 늙은 거룩한 제자도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치면 길들지 못하고 목숨을 마쳤다고 말한다.
아기사나여, 어린 야생 코끼리가 잘 길들여졌다가 죽으면 잘 길들여졌는데 죽었다고 말하고 젊거나 늙은 야생 코끼리도 잘 길들여졌다가 죽으면 잘 길들여졌는데 죽었다고 말한다. 아기사나여, 어린 거룩한 제자가 잘 길들여졌다가 목숨을 마치면 잘 길들여졌는데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고 젊거나 늙은 거룩한 제자도 잘 길들여졌다가 목숨을 마치면 잘 길들여졌는데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사미 아이나화제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송나라 때 시호(施護)가 한역한 『불설식쟁인연경(佛說息諍因緣經)』이 있다.
2 니건친자(尼揵親子;Nigaha nātaputta)는 부처님 시대에 생존했던 자이나교의 중흥조이며 6사외도 중 한 사람이다.
3 살운야(薩云若, Sabbañña)는 일체지자(一切知者)를 말한다.
4 모(母, mātika)를 이역본인 『불설식재인연경』에서는 마달리가(摩怛里迦)로 음역하였다. 율(律)에서는 논장(論藏) 즉 아비담(阿毘曇)을 모(母)ㆍ본모(本母)ㆍ논본(論本)이라고 한다. 또 마덕륵가(摩德勒迦)ㆍ마다라가(摩多羅迦)로 음역하기도 한다.
5 투라자(偸羅柘, thulavajja)는 중죄(重罪)라는 뜻이다
6 팔리본에는 mānatta 즉 속죄의식(贖罪儀式)이라 하였고,『사분률(四分律)』에서는 마나타(麽那唾)라 하였다. 이는 6일 밤낮 동안 참회하여 스스로도 기뻐하고 대중을 기쁘게 하는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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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함경 제53권

승가제바 한역

16. 대품 제2④
199) 치혜지경(癡慧地經)1) 제8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어리석은 법과 지혜로운 법을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모든 비구들은 분부를 받고 경청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 어리석은 법[愚癡法]인가? 저 어리석은 사람은 세 가지 모양의 어리석은 표(標)와 어리석은 상(像)이 있기 때문에 곧 어리석음을 성취하고 사람들도 그를 어리석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생각을 하고 나쁜 말을 하며 나쁜 일을 행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어진 것이고 사람들도 그를 어리석다고 말한다.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나쁜 생각을 하지 않고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나쁜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리석지 않고 사람들도 그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나쁜 생각을 하고 나쁜 말을 하며 나쁜 일을 행한다. 그러므로 어리석고 사람들도 그를 어리석다고 말하느니라.

그 어리석은 사람은 현세에서 몸과 마음으로 세 가지 근심과 고통을 받는다. 어리석은 사람이 현세에 몸과 마음으로 받게 되는 세 가지 근심과 고통이란 무엇인가? 어리석은 사람은 하는 일이 있거나 혹은 모여 앉거나 뒷골목에 있거나 시장판에 있거나 혹은 네거리에 있으면서 어리석은 사람에 해당되는 일을 말한다. 또 어리석은 사람은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을 행하고 거짓말과 나아가 삿된 소견을 가지며, 또 다른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성취한다. 만일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성취한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나서 곧 그를 나쁘다고 말한다. 그 어리석은 사람은 이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성취한 사람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나서 그를 나쁘다고 말한다면 내게도 또한 이러한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있으니,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그들도 또한 나를 나쁘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을 어리석은 사람이 현세에서 몸과 마음으로 받는 첫 번째 근심과 고통이라 하느니라.

그 어리석은 사람은 또 왕의 신하가 죄인을 붙들어다 여러 가지로 괴롭게 다스리는 것을 본다. 이른바 손을 끊고 발을 끊고 손과 발을 한꺼번에 끊으며 귀를 자르고 코를 자르고 귀와 코를 한꺼번에 자르며 혹은 난도질하기도 하고 혹은 수염을 뽑고 머리를 뽑고 수염과 머리를 한꺼번에 뽑기도 하며 혹은 감옥에 가두고 옷에 불을 싸서 태우기도 하며 혹은 사옹초(沙壅草)로 묶어 불사르기도 하고 혹은 쇠로 만든 나귀의 뱃속에 넣기도 하며 혹은 쇠로 만든 돼지의 입안에 넣기도 하며 혹은 쇠로 만든 호랑이의 입안에 넣고 태우기도 하며 혹은 구리솥에 두기도 하고 혹은 쇠솥에 넣어 삶기도 하며 혹은 동강동강 끊기도 하고 혹은 날카로운 꼬챙이로 찌르기도 하며 혹은 갈고리에 꿰기도 하고 혹은 쇠평상에 눕혀 끓는 기름을 쏟기도 하며 혹은 쇠절구에 앉혀 쇠공이로 찧기도 하고 혹은 독룡에 쏘이게도 하며 혹은 채찍으로 갈기기도 하고 혹은 지팡이로 때리기도 하며 혹은 방망이로 치기도 하고 혹은 산채로 푯대 끝에 꿰기도 하며 혹은 목을 베어 나무에 매달기도 한다. 그 어리석은 이는 이것을 보고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한량없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성취하면 왕은 그것을 알고 붙들어다 저렇게 괴롭게 다스린다. 내게도 또한 이러한 한량없이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있으니, 만일 왕이 알면 나도 또한 저렇게 괴롭게 다스려지고 고문을 당하리라.’
이것을 어리석은 사람이 현세에서 그 몸과 마음으로 받는 두 번째 근심과 고통이라 하느니라.

또 저 어리석은 사람은 몸으로 짓는 악행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악행을 행한다. 그는 혹 때로 병이 들어 고통스러워하며 평상에 앉거나 눕고, 혹은 침대에 앉거나 누우며, 혹은 땅에 앉거나 누우면서 몸으로 혹독한 고통을 느끼고 심지어는 목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른다. 그 때 그가 몸으로 지은 악행과 입과 뜻으로 지은 악행은 그의 위에 매달려 있게 되는데, 마치 해질 무렵에 해가 넘어가면 높은 산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가 몸으로 지은 악행과 입과 뜻으로 지은 악행은 때가 되면 그의 위에 매달려 있게 된다. 그 때 그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내가 몸으로 지은 악행과 입과 뜻으로 지은 악행이 내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날 복을 짓지 않고 악을 많이 지었다. 나는 어떤 곳에서 악한 짓을 했고 흉하고 사납게 굴었으며 이치답지 않은 짓을 했으며 복을 짓지 않고 선을 짓지 않았고 두려워할 줄 몰랐다. 따라서 만일 내가 돌아가고 의지할 곳이 있다면 나는 틀림없이 나쁜 곳으로 갈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뉘우치고 그것을 뉘우친 뒤에는 어질지 않은 채로 죽으며 착하지 않은 채로 목숨을 마치게 된다. 이것을 어리석은 사람이 현세에서 그 몸과 마음으로 받는 세 번째 근심과 고통이라 하느니라.

또 저 어리석은 사람은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지른다. 그는 몸으로 악행을 저지르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저지른 뒤에는 그것을 인연하여 그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그 곳에 태어난 뒤에는 괴로움의 과보를 받는데 전혀 좋아할 만한 것이 없고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으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한 것이 없다. 만일 ‘전혀 좋아할 만한 것이 없고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으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한 것이 없는 곳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곧 지옥을 말한다. 왜냐 하면 그 지옥이란 전혀 좋아할 만한 것이 없고 즐거워할 만한 것이 없으며 생각할 만한 것이 없는 곳이기 때문이니라.”

그 때 어떤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옥의 고통은 어떻습니까?”

“비구야, 지옥의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느니라. 이른바 지옥의 고통이란 비구야, 지옥에는 오직 고통만이 있을 뿐이니라.”

비구가 또 물었다.
“세존이시여, 비유로써 그 뜻을 나타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유로써 그 뜻을 나타낼 수 있다. 비구야, 비유하면 왕의 신하들은 도적을 붙잡아 찰리 정생왕에게 가서 이렇게 말한다.
‘천왕이여, 이 도적은 죄가 있습니다. 원컨대 천왕께서 다스리소서.’
찰리 정생왕이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너희들이 데리고 가서 이 죄인을 다스리되 아침에 창 백 개를 찔러라.’
왕의 신하들은 분부를 받고 곧 데리고 가서 그 죄를 다스리되 아침에 창 백 개를 찔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찰리 정생왕이 물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
‘천왕이여,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너희들은 가서 낮에 다시 창 백 개를 찔러라.’
신하들은 명령을 받고 낮에 다시 창 백 개를 찔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찰리 정생왕이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
‘대왕이여,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너희들은 가서 저녁때에 다시 창 백 개를 찔러라.’
신하들은 명령을 받고 저녁때에 다시 창 백 개를 찔렀다. 그러나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러나 온몸이 뚫어지고 부서지고 문드러져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었으며, 마치 돈 구멍처럼 되었다. 찰리 정생왕이 다시 물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느냐?’
‘대왕이여, 그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온몸이 뚫어지고 부서지고 문드러져 한 곳도 성한 곳이 없으며, 마치 돈 구멍처럼 되었습니다.’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그 사람이 하루에 3백 번 창에 찔렸다면 그 사람은 이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괴로움을 느껴 매우 근심하고 괴로워하겠느냐?”

“세존이시여, 창에 한 번만 찔려도 오히려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데 하물며 하루에 3백 번 창에 찔리는 것이겠습니까? 어찌 괴로움을 느끼지 않겠으며 매우 근심하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세존께서 손으로 팥알만 한 돌을 집어 들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내가 손으로 집어 든 이 팥알만 한 돌이 보이느냐?”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내가 든 이 팥알만 한 돌과 저 설산을 비교한다면 어느 것이 더 크냐?”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에 든 그 팥알만 한 돌을 저 설산과 비교한다면 비록 그것을 백 배ㆍ천 배ㆍ백천만 배를 하더라도 결국 저 설산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으며, 비유할 수도 없고 견줄 수도 없습니다. 그저 저 설산왕이 지극히 크고 매우 클 뿐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만일 내가 손에 든 팥알만 한 돌을 저 설산과 비교한다면 비록 그것을 백 배ㆍ천 배ㆍ백천만 배를 하더라도 결국 저 설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으며 비유할 수도 없고 견줄 수도 없다. 그저 저 설산왕이 지극히 크고 매우 클 뿐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만일 그 사람이 하루에 3백 번 창에 찔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 몸과 마음이 극심한 근심과 고통을 느끼더라도 그것을 지옥의 고통에 비한다면 비록 백 배ㆍ천 배ㆍ백천만 배를 하더라도 마침내 미치지 못할 것이요,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으며, 비유할 수도 없고 견줄 수도 없다. 그저 저 지옥은 지극히 괴롭고 매우 괴로울 뿐이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잡고 벌겋게 달군 쇠도끼를 가지고 그 몸을 쪼개어 혹은 8각형으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6각형으로 만들기도 하며 혹은 네모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둥글게 만들기도 하며 혹은 높이고 혹은 낮추며 혹은 좋게도 하고 혹은 나쁘게도 한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너무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도 심하지만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들고 벌겋게 달은 쇠대패를 가지고 그 몸을 깎아 내는데 혹은 8각형으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6각형으로 만들기도 하며 혹은 네모로 만들기도 하고 혹은 둥글게 만들기도 하며 혹은 높이고 혹은 낮추며 혹은 좋게 하고 혹은 나쁘게 한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너무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도 심하지만 그는 반드시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들고 벌겋게 달은 쇠창 위에 억지로 앉게 하고 곧 쇠집게로 그 입을 벌려 벌겋게 달은 쇠구슬을 입에 넣는다. 그러면 그 쇠구슬은 입술을 태우고 혀를 태우며 잇몸을 태우고 목구멍을 태우며 심장을 태우고 위를 태우면서 몸을 통과해 밑으로 내려간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매우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 심하지만 그는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들고 벌겋게 달은 쇠창 위에 억지로 앉게 하고, 곧 쇠집게로 그의 입을 벌려 끓는 구리 쇳물을 그 입에 부어 넣는다. 그러면 그 구리 쇳물은 입술을 태우고 혀를 태우며 잇몸을 태우고 목구멍을 태우며 심장을 태우고 위를 태우면서 몸속을 통과해 밑으로 나온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매우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 심하지만 그는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들고 벌겋게 달은 쇠바닥에 반듯이 눕게 하고 사지를 벌려 다섯 곳을 묶고는 두 손과 두 발에 쇠못을 치고 따로 쇠못 하나를 배에 못질한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매우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 심하지만 그는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들고, 벌겋게 달은 쇠바닥에다 엎드리게 하고는 입에서 혀를 뽑아 백 개의 못을 쳐서 팽팽하게 펴 주름살이 없게 하는데, 마치 소가죽에 백 개의 못을 쳐서 팽팽하게 펴 주름살이 없게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들고 벌겋게 달은 쇠판에 엎드리게 하고는 입에서 혀를 뽑아 백 개의 못을 쳐서 팽팽하게 펴서 주름살이 없게 한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매우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 심하지만 그는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들고 머리에서 가죽을 벗겨 발까지 내려가거나 발에서 가죽을 벗겨 머리까지 올라온다. 그리고는 곧 벌겋게 달은 쇠수레에 잡아매고 벌겋게 달은 쇠바닥 위에서 끌고 오락가락 한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매우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 심하지만 그는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벌겋게 타는 불덩어리를 들고 땅에 치게 하고, 또 다시 손으로 집어 그 몸에 쏟아 붓게 한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매우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 심하지만 그는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벌겋게 타는 불산 위를 오르내리게 한다. 그가 만일 발을 내리면 그 껍질과 살과 피가 곧 타서 없어지고 그가 발을 들면 그 껍질과 피는 이전처럼 살아난다. 그는 이렇게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매우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 심하지만 그는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곧 손으로 그를 붙들고 벌겋게 달은 쇠솥에 그의 몸을 거꾸로 들어 발을 위로 하고 머리를 밑으로 하여 솥 안에 집어넣는다. 그러면 그는 그 안에서 올라왔다가 내려갔다가 하고 혹은 사방으로 빙빙 돌며 그 몸에서 거품이 생겨 그 몸을 다시 삶는다. 마치 콩이나 팥ㆍ온두(蘊豆)ㆍ고두(苦豆)ㆍ겨자를 물이 많은 솥 안에 넣고 그 밑에다 불을 세게 때면 그 콩들은 그 안에서 혹은 올라왔다가 혹은 내려갔다가 하고 혹은 사방으로 빙빙 돌며 제 거품에 휘감겨 삶기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이 지옥에 나게 되어 이미 거기에 태어나고 나면 옥졸들은 손으로 곧 그를 붙들고 벌겋게 달은 쇠솥에 그를 거꾸로 들어 발을 위로 하고 머리를 밑으로 하여 솥 안에 넣는다. 그러면 그는 그 안에서 올라왔다가 내려갔다가 하고 혹은 사방으로 빙빙 돌며 그 몸에서 거품이 생겨 그 몸을 도로 삶는다. 그는 이와 같이 고문을 당해 고통이 닥쳐와 지치고 햇수 또한 매우 길어 백천 년 동안 한량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고통은 지극하고 심하지만 그는 착하지 않은 나쁜 업이 다 없어질 때까지는 끝내 죽지도 못한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지옥의 괴로움인가? 그 지옥 속에는 또 6갱락(更樂)이라는 지옥이 있다. 중생이 그 곳에 나게 되어 이미 그 곳에 태어나고 나면 비록 눈으로 빛깔을 보아도 기쁘지 않고 맘에 들지도 않으니, 그것은 기쁜 것도 또한 맘에 드는 것도 아니다.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으니 그것은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마음이 좋다 하거나 즐겁다 하지도 않으니 그것은 좋은 것도 아니요 즐거운 것도 아니다. 귀로 듣는 소리ㆍ코로 맡는 냄새ㆍ혀로 맛보는 맛ㆍ몸으로 느끼는 촉감ㆍ뜻으로 아는 법이 모두 기쁘지 않고 맘에 들지도 않으니, 그것은 기쁜 것도 맘에 드는 것도 아니다.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으니 그것은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며, 마음이 좋아하고 즐거워하지도 않으니 그것은 좋은 것도 즐거운 것도 아니다. 이것을 지옥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저 지옥에 대하여 말하였고 그 지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말하였다. 그러나 지옥의 고통을 낱낱이 다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지옥에는 오직 괴로움만 있을 뿐이니라.
비구들아, 만일 어리석은 사람이 혹 때로는 지옥을 벗어나 축생으로 태어나면 그 축생도 또한 몹시 괴로운 것이다.

비구들아, 어떤 것이 축생의 괴로움인가? 어떤 중생은 축생 세계에 태어나 이른바 어둠 속에서 나서 어둠 속에서 자라고 어둠 속에서 죽는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땅에서 사는 벌레를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부터 음식 맛을 탐하고 집착함으로써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짓는다. 그는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지은 뒤에는 그 인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축생 세계에 태어난다. 이른바 어둠 속에서 나서 어둠 속에서 자라다가 어둠 속에서 죽나니 이것을 축생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축생의 괴로움인가? 어떤 중생은 축생 세계에 태어나 이른바 몸속에서 나서 몸속에서 자라고 몸속에서 죽는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부스럼 벌레를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부터 음식 맛을 탐하고 집착함으로써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짓는다. 그는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지은 뒤에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축생 세계에 난다. 이른바 몸속에서 나서 몸속에서 자라다가 몸속에서 죽나니 이것을 축생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축생의 괴로움인가? 어떤 중생은 축생 세계에 태어나 이른바 물에서 나서 물에서 살고 물속에서 죽는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이른바 고기ㆍ마갈어(摩竭魚)2)ㆍ거북ㆍ악어ㆍ바다뱀[婆留尼]ㆍ제비(提鼻)3)ㆍ제비가라(提鼻伽羅)4)ㆍ제비가라(提鼻伽羅)5)들을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부터 음식 맛을 탐하고 집착함으로써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짓는다. 그는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지은 뒤에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축생 세계에 난다. 이른바 물속에서 나서 물속에서 자라다가 물속에서 죽나니, 이것을 축생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축생의 괴로움인가? 어떤 중생은 축생 세계에 태어나 생풀이나 생나무를 씹어 먹는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코끼리와 말ㆍ낙타ㆍ소ㆍ나귀ㆍ사슴ㆍ물소ㆍ돼지 따위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부터 음식 맛을 탐하고 집착함으로써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짓는다. 그는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지은 뒤에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축생 세계에 난다. 이른바 생풀이나 생나무를 씹어 먹나니 이것을 축생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축생의 괴로움인가? 어떤 중생은 축생 세계에 태어나 사람의 대소변 냄새만 맡아도 곧 그리로 달려가 그것을 먹는데, 마치 뭇 남녀들이 음식 냄새를 맡고 곧 그리로 달려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그 음식 그 음식’하고 되뇐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어떤 중생은 축생 세계에 태어나 사람의 대소변 냄새만 맡아도 곧 그리로 달려가 그것을 먹는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닭ㆍ돼지ㆍ개ㆍ승냥이ㆍ까마귀ㆍ구루라(拘樓羅)ㆍ구릉가(拘稜迦) 따위를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본래부터 음식 맛을 탐하고 집착함으로써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짓는다. 그는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지은 뒤에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축생 세계에 태어나서 오줌ㆍ똥을 먹나니 이것을 축생의 괴로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저 축생에 대하여 말하고 그 축생들이 겪는 일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 축생의 괴로움을 낱낱이 다 말할 수는 없다. 그저 축생은 오직 괴로움만 있을 뿐이니라.

비구들아, 혹 어리석은 사람이 축생을 벗어나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려 하더라도 그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 하면 저 축생들은 인의(仁義)를 행하지 않고 예법을 행하지 않으며 묘하고 착한 일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축생들은 다시 서로 잡아먹는데 강한 놈은 약한 놈을 잡아먹고 큰놈은 작은 놈을 잡아먹는다. 비구들아, 마치 이 땅에 가득 찬 물 속에 수명이 한량없는 백천 년이나 산 눈먼 거북이 있고, 그 물 위에는 오직 구멍이 하나뿐인 작고 가벼운 나무 판때기가 바람에 불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것과 같다.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저 눈먼 거북이의 머리가 과연 그 작고 가벼운 나무 판때기의 하나뿐인 구멍에 맞아 들어갈 수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혹 맞아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언제 있을지도 모를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비구들아, 혹 때로는 그 눈먼 거북이 한 백년쯤 지난 뒤에 동방으로 와서 한 번 머리를 쳐들면 그 구멍이 하나뿐인 작은 목판은 동풍에 불려 남방으로 옮겨간다. 혹 때로는 그 눈먼 거북이 한 백년쯤 지난 뒤에 남방으로 와서 한 번 머리를 쳐들면 그 구멍이 하나뿐인 작은 목판은 남풍에 불려 서방으로 옮겨간다. 혹 때로는 그 눈먼 거북이 한 백년쯤 지난 뒤에 서방으로 와서 한 번 머리를 쳐들면 그 구멍이 하나뿐인 목판은 서풍에 불려 북방으로 옮겨간다. 혹 때로는 그 눈먼 거북이 북방으로 와서 한 번 머리를 쳐들면 그 구멍이 하나뿐인 목판은 북풍에 불려 여러 곳으로 떠돈다.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저 눈먼 거북이의 머리가 과연 그 목판의 하나뿐인 구멍에 맞아 들어갈 수 있겠느냐?

“세존이시여, 혹 맞아 들어갈 수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언제 있을지도 모를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비구들아, 이와 같이 저 어리석은 사람이 축생에서 벗어나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도 또한 매우 어렵다. 왜냐 하면 저 축생들은 인의를 행하지 않고 예법을 행하지 않으며 묘하고 착한 일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축생들은 서로를 잡아먹는데 강한 놈은 약한 놈을 잡아먹고 큰놈은 작은 놈을 잡아먹느니라.
비구들아, 혹 어리석은 사람이 축생을 벗어나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더라도 그가 태어나는 집안은 보잘것없는 종족으로서 신분이 천하며 괴롭고 빈궁하며 음식이 부족해도 먹을 것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옥졸의 집ㆍ장인의 집ㆍ교수(巧手)의 집ㆍ옹기장이의 집 등이다. 이와 같은 여러 하천한 집으로서 괴롭고 빈궁하며 음식이 부족해도 먹을 것을 구하기 매우 어렵느니라. 그는 이러한 집에 나게 되는데 이러한 집에 태어난 뒤에는 혹은 장님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절름발이가 되기도 하며 혹은 팔이 짧거나 혹은 꼽추가 되기도 하고 혹은 왼손잡이거나 나쁜 빛깔에 염소 얼굴로서 추하고 더럽고 수명이 짧기도 하며 언제나 남에게 부림을 받느니라.
그는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짓는다. 그는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지은 뒤에는 그 인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도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이는 마치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함께 도박을 하였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은 처음으로 이런 짓을 한 자였다. 그는 곧 종들을 잃고 또 처자도 잃고 다시 그 몸이 연기 나는 방 안에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다. 그는 곧 생각하였다.
‘나는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했다. 나는 처음으로 이런 짓을 하고도 곧 종들을 잃고 처자도 잃고 다시 내 몸이 연기 나는 방 안에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다.’
비구들아, 이 짓이 아주 조그마한 것이지만 그는 종들을 잃고 처자도 잃고 다시 그 몸이 연기 나는 방 안에 거꾸로 매달리게 되었다. 비구들아, 그는 이 짓을 해도 되는 행이라 하여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지었다. 그는 몸으로 악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악행을 지은 뒤에는 그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도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아, 이런 모든 행은 가장 사랑할 만한 것이 아니요, 진실로 즐겨할 만한 것이 아니며, 뜻으로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니니라. 비구들아, 그러면 이제 나는 어리석은 법을 낱낱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은 법을 낱낱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그러면 어떤 것이 지혜로운 법[智慧法]인가? 저 지혜로운 사람은 세 가지 모양의 지혜로운 표(標)와 지혜로운 상(像)이 있기 때문에 곧 지혜를 성취하고 사람들도 그를 지혜롭다고 말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착한 생각을 하고 착한 말을 하며 착한 일을 행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워 지고 사람들도 그를 지혜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착한 생각을 하지 않고 착한 말을 하지 않으며 착한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지혜롭지 않고 사람들도 그를 지혜롭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착한 생각을 하고 착한 말을 하며 착한 일을 행한다. 그러므로 지혜로워지고 사람들도 그를 지혜롭다고 말하느니라.

그 지혜로운 사람은 현세에서 몸과 마음의 세 가지 기쁨과 즐거움을 받는다. 지혜로운 사람이 현세에서 몸과 마음으로 받게 되는 세 가지 기쁨과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지혜로운 사람은 혹은 하는 일이 있거나 혹은 모임이 있는 자리에서나 혹은 길거리에 있거나 혹은 시장판에 있거나 혹은 네거리에 있으면서도 지혜로운 사람에 걸맞은 것을 설법한다. 또 지혜로운 사람은 살생과 도둑질과 사음과 거짓말을 끊어 여의고 나아가 삿된 소견을 끊으며 바른 소견을 얻고 또 다른 한량없는 착한 법을 성취한다. 만일 한량없는 착한 법을 성취한 사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곧 칭찬한다. 그 지혜로운 사람은 이 말을 듣고 곧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한량없는 착한 법을 성취하였을 적에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보고 칭찬한다면 내게도 또한 이런 한량없는 착한 법이 있으니, 만일 다른 사람이 이를 안다면 그들은 나도 칭찬할 것이다.’
이것을 지혜로운 사람이 현세에서 그 몸과 마음으로 받는 첫 번째 기쁨과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또 그 지혜로운 사람은 왕의 신하가 온갖 방법으로 도적 다스리는 것을 본다. 이른바 손을 끊고 발을 끊고 손과 발을 한꺼번에 끊으며 귀를 자르고 코를 자르고 귀와 코를 한꺼번에 자르며 혹은 난도질하기도 하고 혹은 수염을 뽑고 혹은 머리를 뽑고 수염과 머리를 한꺼번에 뽑으며 혹은 함(檻) 속에 가두고 옷으로 싸서 불로 태우기도 하며 혹은 사옹초(沙壅草)로 묶어 불사르며 혹은 쇠로 만든 나귀의 뱃속에 넣기도 하며 혹은 쇠로 만든 돼지의 입안에 넣기도 하고 혹은 쇠로 만든 호랑이의 입안에 넣기도 하며 혹은 구리솥에 넣어 두기도 하고 혹은 쇠솥에 넣어 삶기도 하며 혹은 동강동강 끊기도 하고 혹은 날카로운 꼬챙이로 찌르기도 하며 혹은 갈고리로 매달기도 하고 혹은 쇠평상에 눕혀 끓는 기름을 쏟기도 하며 혹은 쇠절구에 앉혀 쇠공이로 찧기도 하며 혹은 독룡에 쏘이게 하기도 하며 혹은 채찍으로 갈기기도 하고 혹은 지팡이로 때리고 혹은 방망이로 치기도 하며 혹은 산채로 푯대에 꿰기도 하고 혹은 목을 베어 나무에 달기도 한다. 그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을 보고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만일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성취하면 왕은 그를 붙들어다 저렇게 고문해 다스린다. 그러나 내게는 그러한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없으니, 혹 왕이 알더라도 끝내 저렇게 나를 괴롭게 다스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을 지혜로운 사람이 현재 세상에서 그 몸과 마음으로 받는 두 번째 기쁨과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또 그 지혜로운 사람은 몸으로 착한 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착한 행을 짓는다. 그는 혹 때로 병이 들어 평상에 앉거나 눕고 혹은 침대에 앉거나 누우며 혹은 땅에 앉거나 누워서 몸으로 지극히 심한 고통을 느끼고 나아가 목숨이 끊어질 지경에 이른다. 그 때 그가 몸으로 지은 착한 행과 입과 뜻으로 지은 착한 행은 그의 위에 매달려 있게 되는데 마치 해질 무렵에 해가 넘어가면 높은 산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그가 몸으로 지은 착한 행과 입과 뜻으로 지은 착한 행은 그 때가 되면 그의 위에 매달려 있게 된다. 그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내가 몸으로 지은 착한 행과 입과 뜻으로 지은 착한 행이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날 악을 짓지 않고 복을 많이 지었다. 나는 어떤 곳에서도 악을 짓지 않았고 흉하거나 사납지 않았으며, 이치답지 않은 일은 행하지 않았으며 복을 지었고 착한 일을 행했으며 두려워할 줄 알았다. 따라서 만일 내가 돌아가고 의지해야 할 곳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갈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것이요 후회하지 않은 뒤에는 어진 채로 죽고 착한 채로 목숨을 마칠 것이다.’
이것을 지혜로운 사람이 현재 세상에서 그 몸과 마음으로 받는 세 번째 기쁨과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또 그 지혜로운 사람은 몸으로 착한 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착한 행을 짓는다. 그는 몸으로 착한 행을 짓고 입과 뜻으로 착한 행을 지은 뒤에는 그 인연으로 그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반드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 곳에 태어나서는 즐거움의 과보를 받는데 오로지 사랑할 만하고 오로지 즐거워할 만하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하다. 만일 그가 ‘오로지 사랑할 만하고 오로지 즐거워할 만하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곧 좋은 곳을 말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좋은 곳은 오로지 사랑할 만하고 오로지 즐거워할 만하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때 어떤 비구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좋은 곳[善處]의 즐거움은 어떻습니까?”

“비구야, 좋은 곳의 즐거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른바 좋은 곳의 즐거움은 다만 좋은 곳의 즐거움으로서 오직 즐거움만 있을 뿐이니라.”

“세존이시여, 비유를 들어 그 뜻을 나타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유를 들어 그 뜻을 나타내리라. 비유하면 마치 전륜왕(轉輪王)이 7보(寶)와 4종의 인여의족(人如意足)을 성취한 것과 같다. 비구야,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저 전륜왕이 7보와 4종의 인여의족을 성취하였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해 그 몸과 마음으로 지극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겠느냐?”

비구가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1보와 1인여의족만 성취하여도 오히려 지극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데 하물며 전륜왕이 7보와 4종의 인여의족을 성취한 것이겠습니까? 어떻게 지극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세존께서는 팥알만 한 돌을 집어 들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내가 손으로 집어든 이 팥알만 한 돌이 보이느냐?”

“보입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내가 가진 이 팥알만 한 돌을 저 설산과 비교한다면 어느 것이 더 크다고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손으로 집어든 그 팥알만 한 돌을 저 설산과 비교한다면 비록 그 팥알을 백 배ㆍ천 배ㆍ백천만 배를 하더라도 결국 설산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으며 비유할 수도 없고 견줄 수도 없습니다. 그저 저 설산왕은 지극히 크고 매우 클 뿐입니다.”

“비구들아, 만일 내가 손으로 집어든 이 팥알만 한 돌을 저 설산과 비교한다면 비록 그 팥알을 백 배ㆍ천 배ㆍ백천만 배를 하더라도 결국 설산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으며, 비유할 수도 없고 견줄 수도 없다. 그저 설산왕이 지극히 크고 매우 클 뿐이다. 이와 같이 비구들아, 만일 전륜왕이 7보와 4종의 인여의족을 성취하여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을 저 모든 하늘의 즐거움과 비교한다면 비록 전륜왕의 즐거움을 백 배ㆍ천 배ㆍ백천만 배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하늘의 즐거움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으며 비유할 수도 없고 견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른바 좋은 곳인 하늘 세계의 즐거움은 다만 좋은 곳의 즐거움으로서 오직 즐거움만 있을 뿐이니라.

비구들아, 어떤 것이 좋은 곳의 즐거움인가? 그 좋은 곳에는 6갱락이라는 것이 있다. 만일 중생이 그 곳에 태어날 일을 지어 그 곳에 태어나게 되면, 눈으로 빛깔을 보고 마음으로 ‘기쁘고 옳다’ 하면 그것은 곧 기쁘고 옳은 것이 되고, 마음으로 ‘사랑스럽고 윤택하다’ 하면 그것은 사랑스럽고 윤택한 것이 되며, 마음으로 ‘좋고 즐겁다’ 하면 그것은 곧 좋고 즐거운 것이 된다. 귀로 듣는 소리ㆍ코로 맡는 냄새ㆍ혀로 보는 맛ㆍ몸으로 느끼는 촉감도 그러하며, 뜻으로 아는 법도 모두 마음으로 ‘기쁘고 좋다’고 하면 그것은 곧 기쁘고 좋은 것이 되고, 마음으로 ‘사랑스럽고 윤택하다’고 하면 그것은 곧 사랑스럽고 윤택한 것이 되며, 마음으로 ‘착하고 즐겁다’ 하면 그것은 곧 착하고 즐거운 것이 된다. 이것을 좋은 곳의 즐거움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저 좋은 곳에 대하여 말하였고 그 좋은 곳에서 겪는 일들을 말하였다. 그러나 이 좋은 곳의 즐거움은 낱낱이 말할 수 없다. 다만 좋은 곳에는 오직 즐거움만 있을 뿐이니라.

비구들아,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혹 때로 좋은 곳에서 내려와 인간 세계에 태어난다면 그의 집은 지극히 크고 풍부하며 즐거워 돈과 재물이 한량없고 여러 가지 목축도 많으며 봉호(封戶)와 식읍(食邑)과 미곡이 넘치고 또 여러 가지 생활 도구도 풍족할 것이다. 그것은 어떤 집들인가? 이른바 찰리의 큰 장자의 집ㆍ바라문의 큰 장자의 집ㆍ거사의 큰 장자의 집과 또 그 밖의 다른 집으로서 그 집은 지극히 크고 풍부하며 즐거워 돈과 재물이 한량없고 여러 가지 목축도 많으며 봉호와 식읍과 미곡이 차 넘치고 또 여러 가지 생활 도구도 풍족하다. 그는 이런 집에 태어나 몸은 단정하고 사랑스러워 모든 사람들이 공경하고 순종하며 큰 명예가 있고 큰 위덕이 있어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많은 사람이 생각한다. 그는 몸으로 착한 행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착한 행을 행한 뒤에는 그 인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다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태어난다.

이는 마치 다음과 같다. 두 사람이 도박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처음으로 이런 짓을 하였으나 많은 돈과 재물을 얻었다. 그는 곧 생각하였다.
‘나는 농사도 짓지 않았다. 그런데도 처음으로 이런 짓을 해서 많은 재물과 돈을 얻었다.’
비구들아, 이 행은 사소한 것이지만 그는 많은 돈과 재물을 얻었다. 비구들아, 이른바 이 행이란 몸으로 착한 행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착한 행을 행하는 것이다. 그는 몸으로 착한 행을 행하고 입과 뜻으로 착한 행을 행한 뒤에는 그 인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면 다시 좋은 곳으로 가서 천상에 태어난다. 비구들아, 이런 모든 행은 가장 사랑할 만한 것이요. 가장 즐거워할 만한 것이며 마음으로 가장 생각할 만한 것이니라.
비구들아, 그러면 나는 이제 지혜로운 사람의 법에 대하여 다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지혜로운 사람의 법에 대하여 낱낱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이것을 어리석은 사람의 법과 지혜로운 사람의 법이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어리석은 사람의 법과 지혜로운 사람의 법을 알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의 법과 지혜로운 사람의 법을 안 뒤에는 어리석은 사람의 법은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법을 취해야 하나니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동진(東晋) 시대 축담무란(竺曇無蘭)이 한역한 『불설니리경(佛說泥犁經)』이 있다.
2 말갈어(摩竭魚, makara)는 바다에 사는 큰 물고기이다.
3 팔리어로 timi이고 큰 물고기 이름이다.
4 팔리어로 timigala이고 배를 삼켜버린다는 큰 물고기이다.
5 송ㆍ원ㆍ명 3본에는 제제비가라(提提鼻伽羅)로 되어 있다.

중아함경 제54권

승가제바 한역

16. 대품 제2⑤
200) 아리타경(阿梨吒經) 제9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에 이전에 솔개를 길들이던[伽陀婆利] 아리타(阿梨吒) 비구는 이러한 나쁜 소견을 내었다.
“나는 세존께서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아리타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물었다.
“아리타여, 그대는 참으로 ‘나는 세존께서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설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였는가?”

그 때 아리타 비구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나는 참으로 세존께서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설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비구들이 아리타를 꾸짖었다.
“너는 그런 말을 말라. 세존을 모함하고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아리타여, 욕심에는 장애가 있다. 아리타여,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욕심에는 장애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리타여, 너는 빨리 그런 견해를 버려야 한다.”

아리타 비구는 여러 비구들의 꾸지람을 받고도 그 나쁜 견해를 굳게 고집하며 여전히 말하였다.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
이렇게 재삼 되풀이하였다.

여러 비구들은 아리타 비구의 이 나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리타 비구가 ‘나는 세존께서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설법하신 것으로 안다’는 이런 나쁜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 말을 듣고 아리타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물었습니다.
‘아리타여, 너는 참으로 〈나는 세존께서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설법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하였는가?’
아리타 비구가 저희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참으로 세존께서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설법하신 것으로 압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리타를 꾸짖었습니다.
‘아리타여,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세존을 모함하고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아리타여, 욕심에는 장애가 있다.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욕심에는 장애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리타여, 너는 빨리 그런 소견을 버려야 한다.’
저희들이 이렇게 꾸짖었지만 그는 그 나쁜 소견을 굳게 고집하며 여전히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재삼 되풀이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아리타 비구의 그 나쁜 소견을 버리게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왔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한 비구에게 분부하셨다.
“너는 아리타 비구에게 가서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말하라.”

이에 한 비구가 세존의 분부를 받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바퀴 돌고는 떠나갔다. 그는 아리타 비구에게 가서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말하였다.
아리타 비구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아리타여, 너는 참으로 ‘나는 세존께서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설법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하였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참으로 세존께서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꾸짖으셨다.
“아리타여, 너는 어떻게 내가 그렇게 설법했다고 알고 있느냐? 누구에게서 내가 그렇게 설법했다고 들었느냐? 너 어리석은 사람아,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너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는구나. 너 어리석은 사람아, 여러 비구들의 꾸지람을 들었으면 너는 그 때 당연히 법대로 대답했어야 할 것이다. 내가 이제 여러 비구들에게 물어 보리라.”

이에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비구들아, 너희들도 또한 내가 ‘욕심을 부려도 장애가 없다’고 이렇게 설법한 것으로 알고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 설법한 것으로 알고 있느냐?”

“저희들은 세존께서 ‘욕심에는 장애가 있다’고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욕심에는 장애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은 뼈다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뼈다귀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은 살덩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살덩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은 손에 잡은 횃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손에 잡은 횃불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은 불구덩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불구덩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은 독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독사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은 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꿈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은 빌린 물건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빌린 물건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은 나무열매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나무열매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압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비구들아, 너희들은 내가 그렇게 설법한 것을 알고 있구나. 왜냐 하면 나도 또한 ‘욕심에는 장애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에는 장애가 있다고 말한다. 욕심은 뼈다귀와 같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은 뼈다귀와 같다고 말한다. 욕심은 살덩이와 같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은 살덩이와 같다고 말한다. 욕심은 손에 잡은 횃불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은 손에 잡은 횃불과 같다고 말한다. 욕심은 불구덩이와 같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은 불구덩이와 같다고 말한다. 욕심은 독사와 같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은 독사와 같다고 말한다. 욕심은 꿈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은 꿈과 같다고 말한다. 욕심은 빚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은 빚과 같다고 말한다. 욕심은 나무열매와 같다. 그러므로 나는 욕심은 나무열매와 같다고 말한다’고 그렇게 설법했기 때문이다.”

세존께서 다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은 내가 이렇게 설법한 것을 알고 있구나. 그러나 저 어리석은 사람 아리타는 거꾸로 그 뜻과 글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거꾸로 배우고 이해함으로 인해 나를 모함해 비방하고 자기 자신을 해쳤으며, 계를 범하고 죄를 지어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의 나무람을 받고 또 큰 죄를 지었다. 너 어리석은 사람 아리타여, 너는 이렇게 악하고 착하지 않은 줄을 아느냐?”

이에 아리타 비구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꾸지람을 듣고 마음에 근심과 슬픔을 품고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 있었다. 비록 할 말을 잃고 말이 없었으나 무엇인가 물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세존께서 아리타 비구를 직접 꾸짖고 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만일 내 설법을 완전하게 이해했으면 마땅히 그와 같이 받아 가지고 만일 내 설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면 곧 나나 저 여러 지혜로운 범행자들에게 물으라. 왜냐 하면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거꾸로 그 뜻과 글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제 자신이 거꾸로 받아 이해하기 때문에 이른바 정경(正經)ㆍ가영(歌詠)ㆍ기설(記說)ㆍ게타(偈他)ㆍ인연(因緣)ㆍ찬록(撰錄)ㆍ본기(本起)ㆍ차설(此說)ㆍ생처(生處)ㆍ광해(廣解)ㆍ미증유법(未曾有法) 및 설의(說義) 등 법에 대해 이러이러하다고 안다. 그는 이렇게 안 뜻으로 남과 다투지만 이렇게 안 뜻으로 해탈하지는 못한다.
그가 하는 일은 이 법을 아는데 있었으나 그 뜻은 알지 못하였으니, 그저 지극한 고통만 받고 한갓 스스로 피로할 뿐이다. 왜냐 하면 그는 거꾸로 이 법을 받아 이해하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뱀을 잡으려고 곧 뱀을 찾아 나섰다. 그는 뱀을 찾아 들과 숲속을 헤매다가 아주 큰 뱀을 보고 곧 손으로 그 허리를 움켜잡았다. 그러자 뱀은 몸을 돌려 머리를 들더니 그 손 또는 발이나 혹은 다른 곳을 물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뱀을 잡는 데 있었지만 그 이치를 얻지 못하였으니, 그저 지극한 고통만 받고 부질없이 제 자신만 피로하게 하였을 뿐이니라. 왜냐 하면 그는 뱀 잡는 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혹 어떤 어리석은 사람은 거꾸로 그 뜻과 글을 받아 이해한다. 그는 자신이 거꾸로 그 뜻과 글을 받아 이해하였기 때문에 이른바 정경ㆍ가영ㆍ기설ㆍ게타ㆍ인연ㆍ찬록ㆍ본기ㆍ차설ㆍ생처ㆍ광해ㆍ미증유법과 설의 등 법에 대해 이러이러하다고 안다. 그는 이렇게 안 뜻을 가지고 남과 다투지만 이렇게 안 뜻으로 해탈하지는 못한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이 법을 아는데 있었으나 그 뜻은 알지 못하였으니, 그저 지극한 고통만 받고 제 자신만 피로하게 하였을 뿐이다. 왜냐 하면 그는 거꾸로 이 법을 받아 이해하였기 때문이니라.

혹 어떤 큰 종족의 아들은 전도되지 않고 그 뜻과 글을 받아 바르게 이해한다. 그는 바르게 그 뜻과 글을 잘 받아 이해하였기 때문에 이른바 정경ㆍ가영ㆍ기설ㆍ게타ㆍ인연ㆍ찬록ㆍ본기ㆍ차설ㆍ생처ㆍ광해ㆍ미증유법과 설의 등 법에 대해 이러이러하다고 안다. 그는 이렇게 안 뜻을 가지고 남과 다투지 않고 이렇게 뜻을 알아 오직 해탈할 뿐이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이 법을 아는 데 있었고 또 그 이치를 알았으니 지극한 고통도 받지 않고 또한 피로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전도되지 않고 그 법을 받아 이해하기 때문이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뱀을 잡으려고 곧 뱀을 찾아 나섰다. 그는 뱀을 찾아 손에 쇠막대기를 잡고 들 숲 속을 헤매다가 아주 큰 뱀을 보자 먼저 쇠막대기로 그 정수리를 누르고 손으로 그 머리를 잡았다. 그러자 그 뱀은 비록 꼬리를 틀어 돌려 손이나 발 혹은 다른 곳을 감기는 했지만 끝내 물지는 못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이 뱀을 잡는 데 있었고 또 그 이치를 알았으니 지극한 고통도 받지 않고 또한 피로하지도 않는다. 무슨 까닭이가? 그는 뱀 잡는 법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혹 어떤 큰 종족의 아들들은 전도되지 않고 올바르게 그 뜻과 글을 잘 받아 이해한다. 그들은 전도되지 않고 올바르게 그 뜻과 글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이른바 정경ㆍ가영ㆍ기설ㆍ게타ㆍ인연ㆍ찬록ㆍ본기ㆍ차설ㆍ생처ㆍ광해ㆍ미증유법과 설의 등 법에 대해 이러이러하다고 안다. 그는 이렇게 안 뜻을 가지고 남과 다투지 않고 이렇게 뜻을 알아 오직 해탈할 뿐이다.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이 법을 아는 데 있었고 또 그 뜻마저 알았으니 지극한 고통도 받지 않고 또한 피로하지도 않는다. 왜냐 하면 전도되지 않고 그 법을 받아 이해하였기 때문이니라. 또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긴 세월 동안 뗏목의 비유를 설한 것은 그것을 버리게 하고 그것을 받지 않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긴 세월 동안 뗏목의 비유를 설하여 그것을 버리게 하고 그것을 받지 않게 하려 한 것인가? 마치 산과 물이 매우 깊고 지극히 넓으며 긴 물살은 빠르고 급해서 떠내려가는 물건이 많은데 그 가운데에는 배도 없고 또한 다리도 없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와서 저 쪽 언덕에 볼 일이 있어서 그 곳을 건너고자 하였다. 그는 건너려 하다가 곧 생각하였다.
‘이 산과 물은 매우 깊고 지극히 넓으며 긴 물살은 빠르고 급해서 떠내려가는 물건이 많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건너갈 수 있는 배도 없고 또한 다리도 없다. 그런데 나는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꼭 건너가야 한다. 어떤 방편을 써야 내가 저쪽 언덕까지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이쪽 언덕에서 풀과 나무를 끌어 모아 엮어서 뗏목을 만들어 그것을 타고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야 하겠다.’
그는 곧 이쪽 언덕에서 풀과 나무를 끌어 모아 엮어서 뗏목을 만들어 그것을 타고 안전하게 저쪽으로 건너갔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이 뗏목은 네게 이익이 많았다. 나는 이 뗏목을 타고서야 안전하게 저쪽 언덕에서 이쪽 언덕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이것을 오른 쪽 어깨에 메거나 혹은 머리에 이고 가리라.’
그래서 그는 곧 이 뗏목을 오른 쪽 어깨에 메거나 혹은 머리에 이고 간다면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그 뗏목에게 어떤 이익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해야 그 뗏목을 위해 유익한 일이 되겠는가? 그 사람이 만일 ‘이 뗏목은 내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나는 이것을 타고서야 안전하게 저쪽 언덕에서 이쪽 언덕으로 건너올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이 뗏목을 도로 물에 두거나 혹은 언덕 가에 버리고 갈까?’ 하고 생각하고는 그가 곧 이 뗏목을 도로 물에 두거나 혹은 언덕 가에 버리고 간다면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이 그 뗏목을 위해 유익한 일이 되겠느냐?”

모든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유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긴 세월 동안 뗏목의 비유법으로 설명하여 그것을 버리게 하고 그것을 받지 않게 하려 했다. 만일 너희들이 내가 긴 세월 동안 설한 뗏목의 비유에 대해 잘 안다면 너희들은 마땅히 이 법도 버려야하겠거늘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겠는가?

다시 6견처(見處)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여섯 가지인가? 비구는 지니고 있는 색질에 대하여 ‘과거ㆍ미래ㆍ현재나 혹은 안이거나 밖이거나, 혹은 정밀하거나 추하거나, 혹은 묘하거나 묘하지 않거나, 혹은 가깝거나 멀거나, 다 나[我]의 소유가 아니요, 나라는 것이 또한 그의 소유도 아니며, 또한 신(神)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지혜롭게 관찰하여 그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또 ‘내가 가진 감각[覺]ㆍ내가 가진 감정[想]ㆍ내가 가진 이 소견도 다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라는 것이 또한 저것의 소유도 아니며, 나에는 마땅히 나[我]라는 것이 없고 마땅히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저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도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지혜롭게 관찰하여 그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또 이런 견해가 있다.
‘보고[見] 듣고[聞] 분별하고[識] 아는[知] 것을 통해 얻은 것이거나 관찰된 것이거나 마음으로 생각한 것으로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도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
이렇게 지혜롭게 관찰하여 그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또 ‘〈이것은 신이다, 이것은 세상이다, 이것은 나다, 나는 응당 후세에 존재하게 되어 있으므로 언제나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언제나 멸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는 내가 가진 이 소견 모두는 다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지혜롭게 관찰하여 그것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그 때 한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혹 안[內]을 인하여 두려움이 있습니까?”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안을 인하여 두려움이 있습니까?”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어떤 비구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혹은 이전에는 나[我]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나라는 것을 주장해 보아도 나를 얻을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하면서 근심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고 울며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킨다. 비구야, 이와 같이 안을 인하여 두려움이 있느니라.”

비구는 세존을 찬탄한 뒤에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안을 인하여 두려움이 없기도 합니까?”

“없을 수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안을 인하여 두려움이 없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비구는 이렇게 보지 않고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혹 이전에는 나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나라는 것을 주장해 보아도 나를 얻을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보지 않고 이렇게 말하지 않아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거나 울지 않으며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비구야, 이와 같이 안을 인하여 두려움이 없느니라.”

비구는 세존을 찬탄한 뒤에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혹 밖을 인하여 두려움이 있기도 합니까?”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밖을 인하여 두려움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비구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신이다, 이것은 세상이다, 이것은 나다, 나는 마땅히 후세에도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보고 이렇게 말하다가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말을 잘하고 지혜를 성취한 여래를 만나거나, 혹은 여래의 제자를 만난다. 그러면 여래나 혹은 여래의 제자는 일체의 자기 몸을 멸하였기 때문에 법을 연설하고 일체의 번뇌와 일체의 나와 나의 할 일을 버리고 교만의 번뇌를 멸하였기 때문에 법을 연설한다.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일체의 자기 몸을 멸하였기 때문에 법을 연설하고 일체의 번뇌와 일체의 나와 나의 할 일을 버리고 교만의 번뇌를 멸하였기 때문에 법을 연설하면 그는 그 때 근심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고 울며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완전히 멸망해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구나.’
왜냐 하면 그 비구는 이른바 긴 세월 동안 사랑할 것도 없고 즐겨할 것도 없으며, 마음으로 생각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비구야, 많이 행한 그는 곧 근심하고 슬퍼하며 괴로워하고 울면서 가슴을 치고 미친 증세를 일으킨다. 비구야, 이렇게 밖을 인하여 두려움이 있느니라.”

비구가 세존을 찬탄하고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혹 밖을 인하여 두려움이 없기도 합니까?”

“없을 수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떻게 밖을 인하여 두려움이 없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비구는 이렇게 보지 않고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신이다, 이것은 세상이다, 이것은 나다, 나는 마땅히 후세에도 존재하게 될 것이다.’
또 그는 이렇게 보지 않고 이렇게 말하지 않다가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말을 잘하고 지혜를 성취한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만난다. 그러면 여래나 혹은 여래의 제자는 일체의 자기를 멸하였기 때문에 법을 연설하고, 일체의 번뇌와 일체의 나와 나의 할 일을 버리고 교만의 번뇌를 멸하였기 때문에 법을 연설한다.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일체의 자기 몸을 멸하였기 때문에 법을 연설하고 일체의 번뇌와 일체의 나와 나의 할 일을 버리고 교만의 번뇌를 멸하였기 때문에 법을 연설하면 그 때, 그는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거나 울지 않으며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완전히 멸망해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구나’라고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그 비구는 이른바 오랜 세월 동안 사랑할 만하고 즐겨할 만하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하기 때문이다. 비구야, 많이 행한 그는 곧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지도 않으며 울지도 않고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비구야, 이렇게 밖을 인하여 두려움이 없느니라.”

그 때 비구는 세존을 찬탄하며 아뢰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이렇게 세존을 찬탄한 뒤에 부처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가져 외우고 곧 잠자코 있었다.

그러자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찬탄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받을 만한 이러한 것을 받고, 받은 뒤에는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괴로워하거나 울지 말며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키지 말라. 너희들은 받을 만한 받을 것을 보고 본 뒤에는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거나 울지 않으며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키지 않는가?”

“그러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은 의지할 만한 이러한 견해에 의지하고 본 뒤에는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괴로워하거나 울지 말며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키지 말라. 너희들은 의지할 만한 이러한 견해에 의지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본 뒤에는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괴로워하거나 울지 않으며 가슴을 치면서 미친 증세를 일으키지 않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은 ‘언제나 존재하여 변하지 않고 멸하지 않는 그러한 몸을 받아야 한다’고들 한다. 너희들은 ‘받을 만한 몸인 그러한 몸을 받고 나면 언제나 존재하여 변하지 않고 멸하지 않는다’고 보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다. 이른바 ‘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고 신이 없으면 내가 없다’고 하지만, 신이나 신의 소유라 할 만한 것은 얻을 수도 없고 시설할 수도 없다. 또 마음속에 있는 견해나 맺힌 것이나 모든 번뇌도 또한 얻을 수도 없고 시설할 수도 없는 것이다. 비구들아, 소견과 소견의 대상이 서로 계속하는 것을 갖추어 말한다는 것은 마치 ‘저 아리타(阿梨吒) 비구는 본래 솔개를 길들이던 사람이었다’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소견과 소견의 대상이 서로 계속하는 것을 갖추어 말한다는 것은 마치 ‘저 아리타 비구는 본래 솔개를 길들이던 사람이었다’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다시 6견처가 있다.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비구는 ‘과거ㆍ미래ㆍ현재나 혹은 안이나 밖이나, 혹은 정밀하거나 거칠거나, 혹은 묘하거나 묘하지 않거나, 혹은 가깝거나 멀거나, 그 모든 색(色)은 다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도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神)도 아니다’라고 사실 그대로를 안다.
또 ‘내가 가진 감각ㆍ내가 가진 감정ㆍ내가 가진 이 소견도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도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며, 나에는 마땅히 나라는 것이 없고, 나는 응당 없는 것이다. 저 일체는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도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지혜롭게 관찰하여 그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또 이런 견해가 있다.
‘보고 듣고 분별하고 아는 것을 통해 얻은 것이거나 관찰된 것이거나 마음으로 생각한 것으로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온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은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라는 것도 저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
이렇게 지혜롭게 관찰하여 그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또 〈이것은 신이다, 이것은 세상이다, 이것은 나다. 또 나는 응당 후세에 존재하는 것이어서 변하거나 바뀌지 않고 언제나 멸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하는 이런 소견도 모두 나의 소유가 아니요, 나도 또한 저것의 소유가 아니며, 또한 신도 아니다’라고 이렇게 지혜롭게 관찰하여 그것을 진실 그대로 아느니라.”

만일 어떤 비구가 이 6견처를 신(神)이라 보지 않고, 또한 신의 소유라고도 보지 않으면 그는 이렇게 보지 않은 뒤에는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는 곧 두려움이 없어지며 두려워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곧 열반을 얻는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梵行)은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이것을 ‘비구가 해자를 건너고 해자를 지나며 성을 부수고 문도 없애며 거룩한 지혜의 거울이 되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떻게 비구가 해자를 건너는가? 무명(無明)의 해자를 이미 없애고 이미 알아서 그 근본을 뽑아 끊어버리고 부수고 깨뜨려 다시는 나지 않게 하나니 이렇게 비구가 해자를 건넌다. 어떻게 비구는 해자를 지나는가? 생명에 대한 사랑[有愛]을 이미 없애고 이미 알아서 그 근본을 뽑아 끊어버리고 부수고 깨뜨려 다시는 나지 않게 하나니 이렇게 비구는 해자를 지난다. 어떻게 비구가 성을 부수는가? 끝없는 생사를 이미 없애고 이미 알아서 그 근본을 뽑아 끊어버리고 부수고 깨뜨려 다시는 나지 않게 하나니 이렇게 비구가 성을 부순다. 어떻게 비구가 문을 없애는가? 5하분결(下分結)을 이미 없애고 이미 알아서 그 근본을 뽑아 끊어버리고 부수고 깨뜨려 다시는 나지 않게 하나니 이렇게 비구는 문을 없앤다. 어떻게 비구가 거룩한 지혜의 거울이 되는가? 아만을 이미 없애고 이미 알아서 그 근본을 뽑아 끊어버리고 부수고 깨뜨려 다시는 나지 않게 하나니 이렇게 비구는 거룩한 지혜의 거울이 된다. 이것을 ‘비구가 해자를 건너고 해자를 지나며 성을 부수고 문을 없애며 거룩한 지혜의 거울이 되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렇게 바르게 해탈한 여래를 저 인제라(因提羅:제석천)나 천왕 이사나(伊沙那), 또 범천이나 그 권속들은 아무리 구해도 여래가 의지한 식을 얻지 못한다. ‘여래는 범(梵)이요, 여래는 차거운 것이며, 여래는 번뇌로 뜨거워지지 않고, 여래는 변하지 않는다’고 나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문 범지들은 나를 모함하고 비방하여 ‘사문 구담은 중생을 다룰만한 시설이 없다. 그는 진실로 중생이며 모든 것은 단멸해 없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만일 이 자리에 있다면 나가 없다고 말하지는 못하리라’고 진실이 아닌 거짓말을 한다. 저 여래는 현재에 있어서 근심이 없다고 말한다. 혹 어떤 사람이 여래를 몹시 욕하고 매질하고 꾸짖더라도 여래는 그 때문에 성내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끝내 그를 해칠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만일 사람들이 여래를 몹시 욕하고 매질하며 꾸짖으면 그 때 여래의 마음은 어떠한가? 여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본래 만든 것이요 내가 본래 지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당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여래를 몹시 욕하고 매질하며 성내고 꾸짖더라도 여래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또 혹 다른 사람이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서 섬기고 존중하더라도 여래는 그 때문에 반가워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으며 마음으로 즐거워하지 않는다. 만일 다른 사람이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고 존중하면 여래의 마음은 어떠한가? 여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지금 아는 것이 있고 끊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 보답을 받는다.’
만일 다른 사람이 여래를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서 섬기고 존중하면 여래는 이렇게 생각하느니라.”

이에 세존께서는 다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너희들을 몹시 욕하고 매질하며 성내고 꾸짖거나 또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고 존중하더라도 너희들은 그 때문에 성내거나 미워하지 말고 해칠 마음을 일으키지 말며 또한 반가워하거나 기뻐하지 말고 마음으로 즐거워하지도 말라. 왜냐 하면 우리는 신(神)이 없고 신의 소유도 없기 때문이다. 마치 이제 이 승림(勝林) 문 밖에 있는 마른 풀이나 나무를 다른 사람이 가지고 가서 불태우거나 마음대로 쓰는 것과 같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그 마른 풀이나 나무가 혹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지고 가서 불태우고 또 마음대로 쓴다’고 이렇게 생각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만일 다른 사람들이 너희들을 몹시 욕하고 매질하며 성내고 꾸짖거나 또 혹은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로써 섬기고 존중하더라도 너희들은 그 때문에 성내거나 미워하지 말고 해칠 마음을 일으키지 말며 또한 반가워하고 기뻐하거나 마음으로 즐거워하지 말라. 왜냐 하면 우리는 신도 없고 신의 소유도 없기 때문이니라.
비구들아, 이제 내 법은 잘 말해져서 드러났고 널리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다. 이와 같이 내 법이 잘 말해져서 드러나고 널리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으므로 혹 바른 지혜로 해탈해 목숨이 끝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생명[有]은 끝이 없다’고 주장하지 않으리라. 내 법은 잘 말해져서 드러났고, 자세히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다. 이와 같이 내 법은 잘 말해져서 드러났고 널리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으므로 혹 5하분결을 없애고 목숨이 끝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저 세상에 나서 곧 열반에 들고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내 법은 잘 말해져서 드러났고 널리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다. 이와 같이 내 법은 잘 말해져서 드러났고 널리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으므로 혹 저 3결(結)이 이미 없어지고 사음ㆍ성냄ㆍ어리석음의 세 번뇌가 엷어진 자는 천상과 인간에 한 번 왕래하게 되며 한번 왕래한 뒤에는 곧 괴로움의 끝을 본다.
내 법은 잘 말해져서 드러났고 널리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다. 이와 같이 내 법은 잘 말해져서 드러났고, 널리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으므로 혹 세 번뇌가 이미 없어지고 수다원을 얻은 자는 나쁜 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 천상과 인간을 일곱 번 왕래하고 일곱 번 왕래한 뒤에는 괴로움의 끝을 본다. 내 법은 잘 말해져 드러났고 자세히 퍼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다. 이와 같이 내 법은 잘 말해져서 드러났고 자세히 펴져 비거나 이지러짐이 없으며 두루 퍼져 천상과 인간에 전해졌으므로 혹 나를 믿고 즐거워하다가 목숨이 끝나는 자들은 다 좋은 곳에 태어나고 이와 같이 남음이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아리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총 4,570자이다.

201) 다제경(嗏帝經) 제10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계화타자(雞和哆子) 다제(嗏帝) 비구1)는 이러한 나쁜 소견을 내었다.
‘나는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識)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비구들은 이 말을 듣고 다제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가서 물었다.
“다제여, 너는 참으로 ‘나는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렇게 말하였는가?”

다제 비구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나는 참으로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든 비구들이 다제 비구를 꾸짖어 말하였다.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세존을 모함해 비방하지 말라. 세존을 모함해 비방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제 비구야, 지금의 이 식(識)은 연(緣)을 인연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 ‘식은 연을 인연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식은 연이 있으면 일어나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제 비구야, 너는 빨리 그런 나쁜 소견을 버려야 한다.”

다제 비구는 모든 비구들의 꾸짖음을 받고도 그 나쁜 소견을 굳게 고집하여 여전히 ‘이것은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하다’고 그렇게 거듭거듭 되풀이 해 말했다.

많은 비구들은 다제 비구의 이 나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들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다제 비구는 이러한 나쁜 소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그 말을 듣고 다제 비구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다제 비구야, 너는 참으로 〈나는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였는가?’
다제 비구가 저희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참으로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희들은 그를 꾸짖었습니다.
‘다제 비구야, 너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세존을 비방해 모함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다제 비구야, 지금의 이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제 비구야, 너는 빨리 그 나쁜 소견을 버려야 한다.’
저희들이 이렇게 꾸짖었으나 그는 나쁜 소견을 굳게 고집하여 여전히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라고 그렇게 재삼 되풀이 해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리하여 다제 비구의 나쁜 소견을 버리게 하지 못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습니다.”

세존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한 비구에게 분부하셨다.
“너는 다제 비구에게 가서 ‘세존께서 너를 부르신다’고 말하라.”

이에 한 비구가 세존의 분부를 받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바퀴 돌고 나서 떠나갔다. 그는 다제 비구에게 가서 말하였다.
“세존께서 그대를 부르십니다.”
다제 비구는 곧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물으셨다.
“너는 참으로 ‘나는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識)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안다’고 그와 같이 말하였는가?”

다제 비구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참으로 세존께서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어떤 것이 식(識)인가?”

“세존이시여, 이른바 이 식이란 말하고 깨달으며 스스로 짓고 남을 짓게 하며 일어나고 함께 일어나는 것으로서 여기저기서 선하고 악한 업을 지어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꾸짖어 말씀하셨다.
“다제 비구야, 너는 어떻게 내가 그렇게 설법하였다고 알고 있으며 너는 누구에게서 내가 그렇게 설법하더라고 들었느냐? 너 어리석은 사람아, 나는 전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너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는구나. 너 어리석은 사람아, 모든 비구들에게 꾸짖음을 들었으면 너는 그 때 마땅히 법대로 대답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모든 비구들에게 물어 보리라.”

이에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비구들아, 너희들도 또한 내가 ‘지금의 이 식은 저 세상에 가서 태어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이렇게 설법했다고 기억하고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너희들은 내 설법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느냐?”

모든 비구들이 아뢰었다.
“저희들은 세존께서 ‘식은 연(緣)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법하신 것으로 압니다.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방편으로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세존께서 이렇게 설법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내가 그렇게 설법한 것을 알고 있구나. 왜냐 하면 나도 또한 그렇게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법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식은 연을 따르기 때문에 일어난다.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멸한다’고 말했다. 식은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데 그 연이란 곧 눈과 빛깔을 연하여 식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식이 생긴 뒤에는 눈의 식[眼識]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과 법을 인연하여 식이 생기고 식이 생긴 뒤에는 뜻의 식[意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마치 불이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 것과 같나니, 그 연이란 나무를 연하여 불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불이 생긴 뒤에는 나무의 불이라고 말한다. 또 풀이나 똥무더기를 연하여 생긴 불은 풀의 불, 똥무더기의 불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식은 연하는 바를 따라 생기는데 그 연이란 곧 눈과 빛깔을 연하여 식이 생기는 것을 말하며 식이 생긴 뒤에는 눈의 식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과 법을 연하여 식이 생기고 식이 생긴 뒤에는 뜻의 식이라 하느니라.”

세존께서 다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너희들은 내가 이렇게 설법한 것을 알고 있구나. 그런데 저 어리석은 사람 다제 비구는 거꾸로 그 뜻과 글을 받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거꾸로 받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모함해 비방하고 스스로 자기를 해쳤으며 계를 범하고 죄를 지어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의 나무람을 받고 또 큰 죄를 지었다. 너 어리석은 사람아, 네가 이렇게 악하고 착하지 않은 줄을 알겠느냐?”

이에 다제 비구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꾸지람을 듣고 마음에 근심과 슬픔을 품고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 있었다. 할 말을 잃고 말이 없었으나 무엇인가 물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이에 세존께서 다제 비구를 면전에서 직접 꾸짖으신 뒤에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너희들을 위하여 번뇌의 뜨거움도 없고 항상 존재하며 변화하지 않는 법의 최후의 경지에 대하여 설명하리라. 모든 지혜 있는 자들은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잘 듣고 잘 생각해 기억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참말을 보느냐?”

“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참말을 보느냐?”

“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멸한 뒤에는 그 참말도 또한 멸하는 법이라고 보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참말을 이미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참말을 이미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멸한 뒤에는 그가 가진 참말도 또한 멸하는 법이라고 이미 보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참말에 대하여 의혹이 없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참말에 의혹이 없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멸한 뒤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참말도 또한 멸하는 법이라는 데에 의혹이 없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참말은 이러하다고 지혜로써 진실 그대로를 보면 그가 가진 의혹도 또한 멸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참말은 이러하다고 지혜로써 진실 그대로를 보면 그가 가진 의혹도 또한 멸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멸한 뒤에는 그가 가진 참말도 또한 멸하는 법이라고 이렇게 지혜로써 진실 그대로를 보면 그가 가진 의혹도 또한 멸하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참말에 대하여 이미 의혹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참말에 대하여 이미 의혹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가 멸하면 그가 가진 참말도 또한 멸하는 법이라는 데에 이미 의혹이 없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시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보고는 이른바 ‘나의 이 소견은 이렇게 청정하다’고 하며, 그것에 집착하고 그것을 아끼며, 그것을 지켜 버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너희들은 내가 긴 세월 동안에 설한 뗏목의 비유에 대해 알고, 그것을 안 뒤에 막힌 것이 트이겠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이른바 ‘나의 이 소견은 이렇게 청정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아끼지 않으며, 그것을 지키지 않고 그것을 버리려고 한다면, 너희들은 내가 긴 세월 동안에 설한 뗏목의 비유를 알고, 그것을 안 뒤에 막힌 것이 트이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어떤 이교도(異敎徒)들이 와서 너희들에게 ‘여러분, 그대들에게 만일 그렇게 청정한 소견이 있다면 거기에는 무슨 뜻이 있고,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이교도들이 와서 저희들에게 ‘여러분, 그대들에게 만일 그렇게 청정한 소견이 있다면 거기에는 무슨 뜻이 있고 무엇을 위한 것이며,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저희들은 마땅히 ‘여러분, 그것은 싫어하는 도리를 위한 것이며, 욕심이 없는 도리를 위한 것이며, 참된 도리를 보고 알기 위한 까닭입니다’라고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이교도들이 와서 저희들에게 묻는다면 저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이교도들이 와서 너희들에게 묻거든 너희들은 마땅히 그렇게 대답하라. 왜냐 하면 여기에서 말한 바 관찰이란 첫째 굵고 가는 단식(摶食)이요, 둘째 갱락식(更樂食)이며, 셋째 의념식(意念食)이요, 넷째 식식(識食)이다. 이 4식(食)은 무엇을 말미암고 무엇을 원인하며, 어디서 생겨 무엇 때문에 있는가? 이 4식은 애(愛)를 말미암고 애를 원인하며, 애에서 생겨 애 때문에 있다. 애는 무엇을 말미암고 무엇을 원인하며, 어디서 생겨 무엇 때문에 있는가? 애는 각(覺)을 말미암고 각을 원인하며, 각에서 생겨 각 때문에 있다. 각은 무엇을 말미암고 무엇을 원인하며, 어디서 생겨 무엇 때문에 있는가? 각은 갱락(更樂)을 말미암고 갱락을 원인하며, 갱락에서 생겨 갱락 때문에 있다.

갱락은 무엇을 말미암고 무엇을 원인하며, 어디서 생겨 무엇 때문에 있는가? 갱락은 6처(處)를 말미암고 6처를 원인하며, 6처에서 생겨 6처 때문에 있다. 6처는 무엇을 말미암고 무엇을 원인하며, 어디서 생겨 무엇 때문에 있는가? 6처는 명색(名色)을 말미암고 명색을 원인하며, 명색에서 생겨 명색 때문에 있다. 명색은 무엇을 말미암고 무엇을 원인하며, 어디서 생겨 무엇 때문에 있는가? 명색은 식(識)을 말미암고 식을 원인하며, 식에서 생겨 식 때문에 있다. 식은 무엇을 말미암고 무엇을 원인하며, 어디서 생겨 무엇 때문에 있는가? 식은 행(行)을 말미암고 행을 원인하며, 행에서 생겨 행 때문에 있다. 행은 무엇을 말미암고 무엇을 원인하며 어디서 생겨 무엇 때문에 있는가? 행은 무명(無明)을 말미암고 무명을 원인하며, 무명에서 생겨 무명 때문에 있느니라.

이것을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6처가 있으며 6처를 인연하여 갱락이 있고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으며 감각을 인연하여 애가 있고 애를 인연하여 수(受)가 있으며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고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으며 생(生)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ㆍ시름ㆍ슬픔ㆍ울음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이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리하여 이러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고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으니, 이것을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말한다.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생(生)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은 저희들의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나니, 이것을 유(有)를 인연하여 생이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受)를 인연하여 유가 있나니, 이것을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애(愛)를 인연하여 수가 있나니, 이것을 애를 인연하여 수가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애를 인연하여 수가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애를 인연하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각(覺)을 인연하여 애가 있나니 이것을 각을 인연하여 애가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각을 인연하여 애가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각을 인연하여 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갱락(更樂)을 인연하여 각이 있나니 이것을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6처(處)를 인연하여 갱락이 있나니, 이것을 6처를 인연하여 갱락이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6처를 인연하여 갱락이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6처를 인연하여 갱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명색(名色)을 인연하여 6처가 있나니, 이것을 명색을 인연하여 6처가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명색을 인연하여 6처가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명색을 인연하여 6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식(識)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나니, 이것을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기 때문입니다.”

“행(行)을 인연하여 식이 있나니, 이것을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이 있나니, 이것을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6처가 있으며 6처를 인연하여 갱락이 있고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으며 각을 인연하여 애가 있고 애를 인연하여 수가 있으며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고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으며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고 시름ㆍ슬픔ㆍ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 한다. 이리하여 이러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게 됩니다.”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들이 한 말이 옳다. 왜냐 하면 나도 또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곧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6처가 있으며 6처를 인연하여 갱락이 있고 갱락을 인연하여 각이 있으며 각을 인연하여 애가 있고 애를 인연하여 수가 있으며 수를 인연하여 유가 있고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으며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고 시름ㆍ슬픔ㆍ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기게 되며 이리하여 이러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게 되느니라.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하나니, 이것을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하기 때문입니다.”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나니 이것을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기 때문입니다.”

“수가 멸하면 유가 멸하나니, 이것을 수가 멸하면 유가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수가 멸하면 유가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수가 멸하면 유가 멸하기 때문입니다.”

“애가 멸하면 수가 멸하나니, 이것을 애가 멸하면 수가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애가 멸하면 수가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애가 멸하면 수가 멸하기 때문입니다.”

“각이 멸하면 애가 멸하나니, 이것을 각이 멸하면 애가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각이 멸하면 애가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각이 멸하면 애가 멸하기 때문입니다.”

“갱락이 멸하면 각이 멸하나니, 이것을 갱락이 멸하면 각이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갱락이 멸하면 각이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갱락이 멸하면 각이 멸하기 때문입니다.”

“6처가 멸하면 갱락이 멸하나니, 이것을 6처가 멸하면 갱락이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6처가 멸하면 갱락이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6처가 멸하면 갱락이 멸하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멸하면 6처가 멸하나니, 이것을 명색이 멸하면 6처가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명색이 멸하면 6처가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명색이 멸하면 6처가 멸하기 때문입니다.”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나니, 이것을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기 때문입니다.”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나니, 이것을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기 때문입니다.”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나니, 이것을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한다고 말한다.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세존이시여,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한다는 것은 저희들 생각에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왜냐 하면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며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처가 멸하며 6처가 멸하면 갱락이 멸하고 갱락이 멸하면 각이 멸하고 각이 멸하면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며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하고 시름ㆍ슬픔ㆍ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멸하게 되는 것이라 한다. 이리하여 이러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아, 너희들의 그 말이 옳다. 왜냐 하면 나도 또한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곧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며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처가 멸하며 6처가 멸하면 갱락이 멸하고 갱락이 멸하면 각이 멸하며 각이 멸하면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수가 멸하며 수가 멸하면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며 생이 멸하면 늙음과 죽음이 멸하고 시름ㆍ슬픔ㆍ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을 멸하게 되며 이리하여 이러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게 되느니라.”

세존께서는 다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과거에 대해서 ‘나는 과거에 있었던가, 과거에 없었던가? 어떻게 과거에 있었으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있었던가?’라고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혹 너희들은 미래에 대해서 ‘내가 미래에 있을 것인가, 내가 미래에 없을 것인가? 어떻게 미래에 있을 것이며, 무엇으로 말미암아 미래에 있을 것인가?’라고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마음에 대해서 ‘이것은 어떠하고, 이것은 무엇인가? 이 중생들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어떤 인(因)이 이미 있었고 어떤 인이 있을 것인가?’라고 의혹을 가지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일부러 부모를 죽이거나, 부처님의 제자 아라하를 해치거나, 대중의 화합을 부수거나, 나쁜 뜻으로 부처님을 대하거나, 여래의 몸에서 피를 내는 그런 짓을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일부러 계를 범하고 계를 버리거나, 도를 닦다가 그만두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이것을 버리고 다시 다른 높은 이와 다른 복밭을 구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사문 범지를 보고 ‘여러 존자시여, 알 수 있는 것은 알고 볼 수 있는 것은 보시는군요’ 하고 그렇게 말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길상(吉祥)을 청정하다고 생각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이 혹 모든 사문 범지를 위해서 길상과 서로 어울리며, 모든 소견에 고통을 섞고 독을 섞으며, 번열(煩熱)을 섞고 오뇌(懊惱)를 섞는 것은 진실한 일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이 혹 몸에 홍역이 나서 몹시 고통스럽고 심지어는 목숨이 끊어지려 할 때에 이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구해서 주문(呪文) 1구(句)나 2구ㆍ3구ㆍ4구ㆍ다구(多句)ㆍ백 구를 가진 혹 어떤 사문 범지가 있으면,‘그 주문으로 내 고통을 없애 주시오’라고 하며, 이것을 ‘괴로움의 발생과 괴로움의 득(得)과 괴로움의 다함을 구하는 것이다’라고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8유(有)2)를 받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본다면, 너희들은 혹 ‘우리는 사문을 공경하고 사문을 존중하며 사문 구담은 우리 스승이시다’라고 이렇게 말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훌륭하고 훌륭하다. 만일 너희들이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아서 제일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면 너희들은 물음을 따라 대답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찬탄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나는 너희들을 바르게 제도해 주려고 끝까지 사물의 이치를 알아 괴로움도 없고 흥분도 없으며 언제나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법에 대해서 바른 지혜로 알고 바른 지혜로 보며 바른 지혜로 깨닫게 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나는 이전에 ‘나는 너희들을 위해 법을 설명하여 끝까지 사물의 이치를 알아 괴로워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언제나 변하거나 바뀌지 않는 법에 대해서 바른 지혜로 알고 바른 지혜로 보며 바른 지혜로 깨닫게 하리라’고 말한 것이니라.
다시 3사(事)가 모여 어머니 태에 들어간다. 아버지 어머니가 한곳에 모여 어머니가 정(精)이 가득해질 때까지 참고 견디면 향음(香陰)3)이 이르게 된다. 이 3사가 서로 모여 어머니 태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태속에 아홉 달이나 열 달 동안 지니고 있다가 곧 낳는다. 낳은 뒤에는 피로써 기르니 피란 이 거룩한 법에서는 어머니의 젖을 말하는 것이다.

그 아이는 차츰 모든 근(根)이 갈수록 커지고 갈수록 성취되어 밥이나 보릿가루를 먹게 되고, 소유(蘇油)를 몸에 바른다. 그는 눈으로 빛깔을 보아 좋은 빛깔은 좋아하고 나쁜 빛깔은 싫어하며 몸을 세우지 않고 못된 마음만 생각하여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진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서 생기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남김없이 사라지지도 않고 남김없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으로 법을 알아 좋은 법은 좋아하고 나쁜 법은 싫어하며 몸을 세우지 않고 못된 마음만 생각하여, 심해탈과 혜해탈을 진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서 생기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이 남김없이 사라지지도 않고 남김없이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이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는 감각을 따라 혹은 즐거워하고 혹은 괴로워하며 혹은 괴로워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 감각을 좋아하고 구하고 집착해서 그 감각을 받아들인다. 그 감각을 좋아하고, 구하고 집착해서 그 감각을 받아들인 뒤에는 만일 즐거움을 깨달으면 이것을 수(受)라 한다. 그래서 수를 인연하여 유(有)가 있고, 유를 인연하여 생(生)이 있으며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ㆍ시름ㆍ슬픔ㆍ울음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기게 되며 이리하여 이러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게 되느니라.
비구들아,그러면 완전히 애(愛)에 얽매어 서로 계속하는 것이 저 어부의 아들 다제 비구와 같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완전히 애에 얽매어 서로 계속하는 것이 저 어부의 아들 다제 비구와 같습니다.”
“비구들아,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호칭[號]한다. 그는 눈으로 빛깔을 보아 좋은 빛깔에 대해서도 좋아하지 않고, 나쁜 빛깔에 대해서도 싫어하지 않으며, 몸을 세우고 한량없는 마음을 생각하여 심해탈ㆍ혜해탈에 대하여 진실 그대로를 안다. 그래서 그에게서 생기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뜨린다. 이와 같이 귀ㆍ코ㆍ혀ㆍ몸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며, 뜻으로 법을 알아 좋은 법에도 집착하지 않고, 나쁜 법이라도 미워하지 않으며, 몸을 세우고 한량없는 마음을 생각하여 심해탈과 혜해탈을 진실 그대로 안다. 그래서 그에게서 생기는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남김없이 멸하고, 남김없이 무너뜨린다. 그는 이렇게 싫어하고 싫어하지 않는 감각을 없애 혹은 즐거워하고 혹은 괴로워하며, 혹은 괴로워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지만, 그는 그 감각을 즐거워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으며, 집착하지도 않아서 그 감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감각을 즐거워하지 않고 구하지도 않으며 집착하지도 않은 뒤에는, 만일 즐거움을 깨달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애 버린다. 그래서 즐거움이 멸하여 곧 수(受)가 멸하고, 수가 멸하여 곧 유(有)가 멸하며, 유가 멸하여 곧 생(生)이 멸하고, 생이 멸하여 곧 늙음과 죽음이 멸하며, 시름과 슬픔ㆍ울음ㆍ걱정ㆍ괴로움ㆍ번민도 멸하게 되고, 이리하여 이러한 큰 괴로움의 무더기가 멸하게 되느니라.

비구들아, 그러면 이것이 완전히 애(愛)가 다한 해탈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완전히 애가 다한 해탈일 것입니다.”

이 법을 말씀하실 때 이 삼천대천세계가 세 차례 진동하여 움직이고 모두 움직이며, 떨고 두루 떨며, 울리고 두루 울리었다. 그러므로 이 경(經)을 ‘애(愛)가 다한 해탈[愛盡解脫]’이라 일컬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계화타자(雞和哆子)는 팔리본에 Kevaaputta로 되어 있다. 즉 어부(漁夫)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다제(嗏帝)는 Sāti의 음역이다.
2 8유(aṭṭhama-bhava)는 여덟 번째로 받는 생명을 말한다. 불법에 들어와 처음 얻게 되는 과위(果位)인 수다원(須陀洹)만 얻어도 일곱 번 하늘과 인간 사이를 왕래하고 다시는 생명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진실하게 수행하는 자에게는 여덟 번째로 생명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없다.
3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 존재하는 음(陰)을 중음(中陰) 혹은 중유(中有)라 하며, 중유는 향기를 쫓아 이동하고 향기를 먹는다고 하여 이를 건달바(乾闥婆)라 하기도 한다. 건달바는 식향(食香)ㆍ심향(尋香)ㆍ향음(香陰)이라 번역한다.

중아함경 제55권

승가제바 한역

17. 포리다품(晡利多品) 제3 ①
이 품에는 10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지재경(持齋經)ㆍ포리다경(晡利多經)과
라마경(羅摩經)ㆍ오하분결경(五下分結經)과
심예경(心穢經)ㆍ전모경(箭毛經) 둘이며
비마나수경(鞞摩那修經)과
법락비구니경(法樂比丘尼經)과
마지막은 대구치라경(大拘絺羅經)이다.

202) 지재경(持齋經)1) 제1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동원(東園)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계셨다.

그 때 녹자모 비사가(毘舍佉)는 이른 아침에 목욕하고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며느리들을 데리고 권속들에게 둘러 싸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거사 부인이여, 오늘 목욕하였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재(齋)를 지내고 있습니다. 선서시여, 저는 지금 재를 지내고 있습니다.”

“거사 부인이여, 지금 어떤 재를 지내고 있는가? 재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첫째는 소치는 아이의 재요, 둘째는 니건(尼揵)의 재이며, 셋째는 거룩한 8지(支)의 재이니라.
거사 부인이여, 어떤 것을 소치는 아이의 재라고 하는가? 만일 소치는 아이가 아침에 늪 가운데 소를 풀어놓았다가 저녁에 소를 몰고 마을로 돌아오면 그는 마을로 돌아올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오늘은 여기에 소를 풀어놓았으니 내일은 저기에 소를 풀어놓아야겠다. 나는 오늘은 여기서 소에게 물을 먹였으니 내일은 저기서 소에게 물을 먹어야겠다. 우리 소가 오늘은 여기서 자니 내일은 저기에서 재우자.’
거사 부인이여, 이와 같이 혹 어떤 사람은 재를 지낼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오늘은 이러한 밥을 먹었으니 내일은 저런 밥을 먹어야겠다. 나는 오늘은 이런 물을 마셨으니 내일은 저런 물을 마셔야겠다. 나는 오늘은 이런 음식을 먹었으니 내일은 저런 음식을 먹어야겠다.’
그 사람은 여기서 밤낮으로 욕심의 허물에 집착하나니 이것을 소치는 아이의 재라고 한다. 만일 이처럼 소치는 아이의 재를 지내면 그는 큰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큰 결과를 얻지 못하며 큰 공덕도 없고 또 널리 펴지도 못하리라.

거사 부인이여, 어떤 것을 니건의 재라고 하는가? 만일 집을 나가 니건을 배우는 자라면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할 것이다.
‘너는 여기서 동방으로 1백 유연(由延)을 지나 그 밖에 중생이 있으면 그를 옹호하기 위해 칼과 막대기를 버려라. 이와 같이 남방ㆍ서방ㆍ북방으로 1백 유연을 지나 그 밖에 중생이 있으면 그를 옹호하기 위해 칼과 막대기를 버리라.’
이렇게 그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혹은 생각이 있으면 중생을 보호하고, 혹은 생각이 없으면 중생을 보호하지 말라. 너는 보름날 종해탈(從解脫)2)을 말할 때에는 옷을 벗고 알몸으로 동쪽을 향해 서서 이렇게 말하라.
〈내게는 부모가 없고 나는 부모의 소유도 아니요, 내게는 처자가 없고 나는 처자의 소유도 아니며, 내게는 노비가 없고 나는 노비의 주인도 아니다.〉’

거사 부인이여, 그는 진실한 말을 권한다고 하지만 도리어 허망한 말을 권하는 것이다. 그는 날마다 그 부모를 보고 곧 ‘이는 내 부모다’라고 생각하고 그 부모는 날마다 그 아들을 보고 또한 곧 ‘이는 내 아들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처자들을 보고 ‘이는 내 처자식이다’라고 생각하고 그 처자도 또한 그를 보고 ‘이는 내 남편이다’라고 생각하며 그는 그 노비들을 보고 ‘이들은 내 노비다’라고 생각하고 그 노비들도 또한 그를 보고 ‘이는 우리 상전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쓰려고 하니 이것은 주어져서 쓰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니건의 재라고 한다. 만일 이러한 니건의 재를 가지면 그는 큰 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큰 결과를 얻지 못하며 큰 공덕이 없고 또 널리 펴지도 못하느니라.

거사 부인이여, 어떤 것을 거룩한 8지(支)의 재라고 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라하(阿羅訶:阿羅漢) 진인(眞人)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어 칼과 막대기를 버리고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에서부터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편안하고 이익 되게 하니 그는 살생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렸다. 나도 또한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어 칼과 막대기를 버리고 자신과 남에게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비심으로 일체 중생에서부터 나아가 곤충에 이르기까지도 편안하고 이익 되게 하자. 나도 이제 살생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리자. 그러면 나는 이 부분에서 아라하와 같아져서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재를 말하는 것이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라하 진인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도둑질을 여의고 도둑질을 끊어주는 것만 가지고, 주는 것만 가지기를 즐겨하며 언제나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마음은 버리기를 즐겨하고 기뻐하며 아까워함이 없고 그 보답을 바라지도 않으며 도둑질로써 숨기지 않고 마음을 능히 스스로 억누르니, 그는 도둑질에 있어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렸다. 나도 또한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도둑질을 여의고 도둑질을 끊어주는 것만 가지고, 주는 것만 가지기를 즐겨하며, 언제나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마음은 버리기를 즐겨하고 기뻐하며 아까워함이 없고, 그 보답을 바라지도 않으며, 도둑질로써 숨기지 않고, 마음을 능히 스스로 억누르자. 그래서 도둑질에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리자. 그러면 나는 이 부분에서 아라하와 같아져서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재를 말하는 것이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라하 진인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梵行)이 아닌 것을 여의고 범행이 아닌 것을 끊어 범행을 닦고 지극한 정성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 나쁜 냄새와 더러움이 없으며 탐욕을 여의고 음욕을 끊었으니 그는 범행이 아닌 것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렸다. 나도 오늘과 오늘밤만은 범행이 아닌 것을 여의고 범행이 아닌 것을 끊어 범행을 닦고 지극한 정성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여 나쁜 냄새와 더러움을 없애며 탐욕을 여의고 음욕을 끊자. 그래서 범행이 아닌 것에 있어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리자. 그러면 나는 이 부분에서 아라하와 같아져서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재를 말하는 것이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라하 진인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어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만을 좋아하며 진실에 머물러 남의 신용을 얻고 세상을 속이지 않으니 그는 거짓말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렸다. 나도 또한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어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만을 좋아하며 진실에 머물러 남의 신용을 얻고 세상을 속이지 말자. 그래서 거짓말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리자. 그러면 나는 이 부분에서 아라하와 같아져서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재를 말하는 것이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라하 진인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술의 방탕을 여의고 술의 방탕을 끊었으니, 그는 술의 방탕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렸다. 나도 또한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술의 방탕을 여의고 술의 방탕을 끊자. 그래서 술의 방탕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리자. 그러면 나는 이 부분에서 아라하와 같아져서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재를 말하는 것이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라하 진인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높고 넓고 큰 평상을 여의어 높고 넓고 큰 평상을 쓰지 않으며 낮은 평상이나 혹은 풀을 깔고 낮은 데서 앉고 눕기를 즐겨하나니 그는 높고 넓고 큰 평상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렸다. 나도 오늘과 오늘밤은 높고 넓고 큰 평상을 여의고 높고 넓고 큰 평상을 쓰지 않으며 낮은 평상이나 혹은 풀을 깔고 낮은 데서 앉고 눕기를 즐기자. 그래서 높고 넓고 큰 평상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리자. 그러면 나는 이 부분에서 아라하와 같아져서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재를 말하는 것이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가질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라하 진인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화만(華鬘)과 영락(瓔珞)ㆍ바르는 향ㆍ연지분ㆍ노래와 춤ㆍ광대놀이를 가서 보거나 듣기를 여의고, 화만과 영락ㆍ바르는 향ㆍ연지분ㆍ노래와 춤ㆍ광대놀이를 가서 보거나 듣기를 끊었으니, 그는 화만과 영락ㆍ바르는 향ㆍ연지분ㆍ노래와 춤ㆍ광대놀이를 가서 보거나 듣는 데에 있어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렸다. 나도 오늘과 오늘 밤은 화만과 영락ㆍ바르는 향ㆍ연지분ㆍ노래와 춤ㆍ광대놀이를 가서 보거나 듣기를 여의고 화만과 영락ㆍ바르는 향ㆍ연지분ㆍ노래와 춤ㆍ광대놀이를 가서 보거나 듣기를 끊자. 그래서 화만과 영락ㆍ바르는 향ㆍ연지분ㆍ노래와 춤ㆍ광대놀이를 가서 보거나 듣는 데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깨끗이 버리자. 그러면 나는 이 부분에서 아라하와 같아져서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재를 말하는 것이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이렇게 생각한다.
‘아라하 진인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때가 아닌 때에 음식 먹는 것을 여의고, 때가 아닌 때에 음식 먹는 것을 끊어, 하루 한 끼를 먹고 밤에는 먹지 않으며 제 때에 먹기를 즐기니, 그는 때가 아닌 때에 음식 먹는 것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렸다. 나도 오늘과 오늘밤은 때가 아닌 때의 음식 먹는 것을 여의고 때가 아닌 때의 음식 먹기를 끊어 하루 한 끼를 먹고 밤에는 먹지 말며 제 때에 먹기를 즐기자. 그래서 때가 아닌 때의 음식 먹는 것에 있어서 깨끗이 하여 그 마음을 버리자. 그러면 나는 이 부분에서 아라하와 같아져서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재를 말하는 것이니라.

그는 이 거룩한 8지재(支齋)를 행한 뒤에는 그 위에 다시 5법(法)을 닦아 익힌다. 어떤 것이 저 다섯 가지 법인가?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여래를 생각한다.
‘저 세존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이시다.’
그는 이렇게 여래를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여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서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으며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사람의 머리에 때가 있을 때 윤기 나는 기름과 더운 물과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씻어내면 그가 곧 깨끗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여래를 생각한다.
‘저 세존은 여래ㆍ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이시다.’
그는 이렇게 여래를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여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깨끗한 재[梵齋]를 지내고 깨끗한 이와 함께 만나며 깨끗한 이를 따르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마음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바른 법을 생각한다.
‘이 법은 세존께서 잘 말씀하신 것으로서 사리에 지극하여 언제나 변하지 않고 바른 지혜로 아신 것이요 바른 지혜로 보신 것이며 바른 지혜로 깨달으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법을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마치 사람의 몸이 깨끗하지 못할 때 밀기울과 가루비누와 더운물과 사람의 힘으로 그 몸을 씻으면 그 몸은 곧 깨끗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법을 생각한다.
‘이 법은 세존께서 잘 말씀하신 것으로써 사리에 지극하여 언제나 변함이 없고 바른 지혜로 아신 것이요 바른 지혜로 보신 것이며 바른 지혜로 깨달으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법을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이것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법의 재[法齋]를 지내고 법과 함께 모이며 법을 따르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대중들을 생각한다.
‘세존의 제자 대중들은 좋은 곳으로 나아가고 소박하고 정직하며 긴요한 일을 행하고 좋은 결과를 닦는다. 여래의 대중 가운데에는 실로 아라하(阿羅訶:阿羅漢) 진인으로 나아가는 사람ㆍ아라하의 결과를 얻은 사람ㆍ아나함(阿那含)으로 나아가는 사람ㆍ아나함의 결과를 얻은 사람ㆍ사다함(斯陀含)으로 나아가는 사람ㆍ사다함의 결과를 얻은 사람ㆍ수다원(須陀洹)으로 나아가는 사람ㆍ수다원의 결과를 얻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4쌍(雙) 8배(輩)의 거룩한 선비라 하며, 이들은 세존의 제자 대중으로서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을 성취하여 부를 만하고 청할 만하며 공양할 만하고 받들어 섬길 만하며 공경하고 존중할 만하여 천상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된다.’
그는 이렇게 대중을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대중을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사람의 옷에 더러운 때가 있을 때 잿물ㆍ콩깍지ㆍ가루비누ㆍ더운 물ㆍ사람의 힘으로 씻으면 그것이 깨끗해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대중들을 생각한다.
‘세존의 제자 대중들은 좋은 곳으로 나아가고 소박하고 정직하며 긴요한 일을 행하고 좋은 결과를 닦는다. 여래의 대중 가운데에는 실로 아라하 진인 으로 나아가는 사람ㆍ아라하의 결과를 얻은 사람ㆍ아나함으로 나아가는 사람ㆍ아나함의 결과를 얻은 사람ㆍ사다함으로 나아가는 사람ㆍ사다함의 결과를 얻은 사람ㆍ수다원으로 나아가는 사람ㆍ수다원의 결과를 얻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4쌍 8배의 거룩한 선비라 하며, 이들은 세존의 제자 대중으로서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을 성취하여 부를 만하고 청할 만하며, 공양할 만하고 받들어 섬길 만하며 공경하고 존중할 만하여 곧 천상과 인간의 좋은 복밭이 된다.’
그는 이렇게 대중을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대중을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대중의 재[衆齋]를 지내고 대중과 함께 모이며 대중을 따르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자성(自性)의 계를 생각한다.
‘이 계는 이지러지지도 않고 뚫어지지도 않았으며 거칠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으며 지극히 넓고 지극히 커서 그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이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칭찬한 것으로서 잘 갖추고 잘 나아가며 잘 받고 잘 가져야 한다.’
그는 이렇게 자성의 계를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계를 따르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거울에 때가 묻어 깨끗하지 않을 때 돌로 갈아 빛내고 사람의 힘으로 닦으면 곧 맑고 깨끗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자성의 계를 생각한다.
‘이 계는 이지러지지도 않고 뚫어지지도 않았으며, 거칠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으며, 지극히 넓고 지극히 커서 그 보답을 바라지도 않는다. 이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칭찬한 것으로서 잘 갖추고 잘 나아가며 잘 받고 잘 가져야 한다.’
그는 이렇게 자성의 계를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 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계의 재[戒齋]를 지내고 계와 함께 모이며 계를 따르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라 하느니라.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가질 때에 모든 하늘을 생각한다.
‘진실로 4왕천이 있다. 저 하늘이 만일 믿음을 성취함으로써 여기서 목숨이 끝나고 저기에 나게 되었다면 내게도 또한 그런 믿음이 있다. 저 하늘이 만일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를 성취함으로써 여기서 목숨이 끝나고 저기에 나게 되었다면 내게도 또한 그런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가 있다. 진실로 삼십삼천ㆍ염마천ㆍ도솔다천ㆍ화락천ㆍ타화락천이 있다. 저 하늘들이 만일 믿음을 성취함으로써 여기서 목숨이 끝나고 저기에 나게 되었다면 내게도 또한 그런 믿음이 있다. 저 하늘들이 만일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를 성취함으로써 여기서 목숨이 끝나고 저기에 나게 되었다면 내게도 또한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가 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모든 하늘들의 믿음과 계ㆍ지식ㆍ보시ㆍ지혜를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다. 거사 부인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모든 하늘을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고요해져 기쁨을 얻고,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마치 훌륭한 빛을 가진 금에 더러운 때가 생길 때에는 불에 달구어 망치로 두드리며 붉은 흙과 사람의 힘으로 갈고 닦고 빛내면 그것은 곧 밝고 깨끗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라면 재를 지낼 때에 모든 하늘을 생각한다.
‘진실로 4왕천이 있다. 저 하늘들이 만일 믿음을 성취함으로써 이 목숨이 끝나 저기에 나게 되었다면 내게도 또한 그런 믿음이 있다. 저 하늘들이 만일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를 성취함으로써 여기서 목숨이 끝나 저기에 나게 되었다면 내게도 또한 그런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가 있다. 진실로 삼십삼천과 염마천ㆍ도솔다천ㆍ화락천ㆍ타화락천이 있다. 저 하늘들이 만일 믿음을 성취함으로써 여기서 목숨이 끝나 저기에 나게 되었다면 내게도 또한 그런 믿음이 있다. 저 하늘들이 만일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를 성취함으로써 여기서 목숨이 끝나 저기에 나게 되었다면 내게도 또한 그런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가 있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또 모든 하늘들의 믿음과 계와 지식ㆍ보시ㆍ지혜를 생각한 뒤에는 만일 나쁜 생각이 있으면 그는 곧 그것을 없앨 수 있고, 그가 가진 더럽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도 또한 없앨 수 있느니라.

거사 부인이여, 만일 이러한 거룩한 8지재를 행하면 저 열여섯 큰 나라, 이른바 첫째 앙가(鴦迦), 둘째 마갈다(摩竭陀), 셋째 가시(迦尸), 넷째 구살라(拘薩羅), 다섯째 구루(拘樓), 여섯째 반사라(般闍羅), 일곱째 아섭패(阿攝貝), 여덟째 아화단제(阿和檀提), 아홉째 지제(枝提), 열째 발지(跋耆), 열한째 발차(跋蹉), 열두째 발라(跋羅), 열셋째 소마(蘇摩), 열넷째 소라타(蘇羅吒), 열다섯째 유니(喩尼), 열여섯째 검부(劍浮) 등, 이 모든 나라에 있는 돈ㆍ금ㆍ은ㆍ마니ㆍ진주ㆍ유리ㆍ양가(壤伽)3)ㆍ벽옥ㆍ산호ㆍ유소(留邵)ㆍ비류(鞞留)ㆍ비륵(鞞勒)ㆍ마노ㆍ대모(蝳蝐)4)ㆍ적석(赤石)ㆍ선주(琁珠)들을 설사 어떤 사람이 거기서 왕이 되어 마음대로 쓴다고 하더라도 그 일체는 비구가 거룩한 8지재를 지키는데 비한다면 16분의 1의 가치도 없다.

거사 부인이여, 그러므로 나는 인간의 왕은 천상의 즐거움보다는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50년은 바로 4왕천의 1주야(晝夜)에 해당된다. 30주야를 한 달로 하고 열두 달을 한 해로 하여 이렇게 5백 년 한 것이 4왕천의 수명이다. 거사 부인이여,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니, 만일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이 거룩한 8지재를 지키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저 4왕천에 난다. 거사 부인이여, 그러므로 나는 인간의 왕은 천상의 즐거움보다는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백년은 바로 삼십삼천의 1주야에 해당된다. 이 30주야를 한 달로 하고 열두 달을 한 해로 하여 이렇게 천 년 한 것이 삼십삼천의 수명이다. 거사 부인이여,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니 만일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이 거룩한 8지재를 지키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저 삼십삼천에 난다.

거사 부인이여, 그러므로 나는 인간의 왕도 천상의 즐거움만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2백 년은 염마천(焰摩天)의 1주야다. 이 30주야를 한 달로 하고 열두 달을 한 해로 하여 이렇게 2천년 한 것이 염마천의 수명이다. 거사 부인이여,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니, 만일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이 거룩한 8지재를 지키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저 염마천에 난다.
거사 부인이여, 그러므로 나는 인간의 왕이라 하더라도 천상의 즐거움만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4백년은 도솔타천(兜率陀天)의 1주야에 해당된다. 이 30주야를 한 달로 하고 열두 달을 한 해로 하여 이렇게 4천 년 한 것이 도솔타천의 수명이다. 거사 부인이여,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니, 만일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이 거룩한 8지재를 지키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저 도솔타천에 난다.

거사 부인이여, 나는 그러므로 인간의 왕이라 하더라도 천상의 즐거움만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8백 년은 화락천(化樂天)의 1주야에 해당된다. 이 30주야를 한 달로 하고 열두 달을 한 해로 하여 이렇게 8천 년 한 것이 화락천의 수명이다. 거사 부인이여,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니, 만일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이 8지재를 지키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저 화락천에 난다.
거사 부인이여, 그러므로 나는 인간의 왕이라 하더라도 천상의 즐거움만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1천 6백 년은 타화락천(他化樂天)의 1주야에 해당된다. 이 30주야를 한 달로 하고 열두 달을 한 해로 하여 이렇게 1만 6천 년을 한 것이 타화락천의 수명이다. 거사 부인이여, 거기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으니, 만일 큰 종족의 남자나 여자가 이 거룩한 8지재를 지키면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저 타화락천에 나느니라.”

이에 녹자모 비사가는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거룩한 8지재는 참으로 기이하고 특이합니다. 그것은 큰 이익과 큰 결과가 있고 큰 공덕이 있으며 널리 퍼짐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거룩한 8지재를 힘닿는 대로 보시하며 복을 닦겠습니다.”

녹자모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진 뒤에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물러갔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녹자모 비사가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지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049자이다.

203) 포리다경(晡利多經) 제2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난대(那難大)5)에 유람하실 적에 파화리나(波和利㮈) 동산에 계셨다.

그 때 포리다(晡利多) 거사는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흰 수건으로 머리를 싸고 지팡이를 짚고 일산을 들고 세속의 신을 신고 집에서 집으로 동산에서 동산으로 숲에서 숲으로 두루 돌아다니다가 만일 사문 범지를 만나면 곧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나는 세속을 떠나고 세속을 끊었으며 모든 세속 일을 버렸습니다.”

그 사문 범지들은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현명한 포리다여, 당신은 세속을 떠나고 세속을 끊었으며 모든 세속 일을 버렸습니다.”

포리다 거사는 두루 돌아다니다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문안드리고 부처님 앞에 지팡이를 짚고 섰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거사여, 거기 자리가 있으니 앉고 싶으면 앉으시오.”

포리다 거사가 아뢰었다.
“구담이여, 그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일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세속을 떠나고 세속을 끊었으며 모든 세속 일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문 구담께서는 어떻게 나를 거사라고 부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그대는 겉모양이 거사와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거사라고 부릅니다. 거사여, 자리가 있으니 앉고 싶으면 앉으시오.”

세존께서 거듭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사여, 자리가 있으니 앉고 싶으면 앉으시오.”

포리다 거사도 또한 재삼 아뢰었다.
“구담이여, 이 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일은 옳지 않습니다. 나는 세속을 떠나고 세속을 끊어 모든 세속 일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문 구담께서는 어떻게 나를 거사라고 부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그대는 겉모양이 거사와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대를 거사라고 부릅니다. 거사여, 자리가 있으니 앉고 싶으면 앉으시오.”

그리고 세존께서는 이윽고 물으셨다.
“그대는 어떻게 세속을 떠나고 세속을 끊었으며 모든 세속 일을 버렸습니까?”

“구담이여, 나는 우리집 재산 전부를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함도 구함도 없이 놀고 있으며, 오직 거기 가서 밥을 먹고 목숨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는 세속을 떠나고 세속을 끊었으며 모든 세속 일을 버렸습니다.”

“거사여, 우리 거룩한 법(法)과 율(律) 가운데에서는 그렇게 세속 일을 끊지 않습니다. 거사여, 우리 거룩한 법과 율 가운데에는 세속 일을 끊는 여덟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에 포리다 거사는 지팡이를 버리고 일산을 물리치고 또 세속의 신을 벗은 뒤에 부처님께 합장하고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그 거룩한 법 가운데에서는 어떤 것이 세속을 끊는 여덟 가지 일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 데에 의지하며 도둑질을 여의고 도둑질을 끊는 데에 의지하며 사음을 여의고 사음을 끊는 데에 의지하며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는 데에 의지하며 욕심과 집착이 없고 욕심과 집착을 끊는 데에 의지하며 해침과 성냄이 없고 해침과 성냄을 끊는 데에 의지하며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가 없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를 끊는 데에 의지하며 증상만(增上慢)이 없고 증상만을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어떻게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 데에 의지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살생하는 자는 반드시 현세와 후세에 나쁜 과보를 받는다. 만일 내가 살생하면 곧 자기를 해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은 내게 계를 말할 것이요, 사방에서는 모두 내 나쁜 이름을 들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이와 같이 살생하면 현세와 후세에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나는 이제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 데에 의지하자.’
그래서 그는 곧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 데에 의지하나니 이렇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어떻게 도둑질을 여의고 도둑질을 끊는 데에 의지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반드시 현세와 후세에 나쁜 과보를 받는다. 만일 내가 도둑질하면 곧 자기를 해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은 내게 계를 말할 것이요, 사방에서는 모두 내 나쁜 이름을 들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이와 같이 도둑질하면 현세와 후세에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나는 이제 도둑질을 여의고 도둑질을 끊는 데에 의지하자.’
그래서 그는 곧 도둑질을 여의고 도둑질을 끊는 데에 의지하나니,이렇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도둑질을 여의고 도둑질을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어떻게 사음(邪淫)을 여의고 사음을 끊는 데에 의지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음하는 자는 반드시 현세와 후세에 나쁜 과보를 받는다. 만일 내가 사음하면 곧 자기를 해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은 내게 계를 말할 것이요, 사방에서는 모두 내 나쁜 이름을 들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이와 같이 사음하면 현세와 후세에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나는 이제 사음을 여의고 곧 사음을 끊는 데에 의지하자.’
그래서 그는 곧 사음을 여의고 사음을 끊는 데에 의지하나니, 이렇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사음을 여의고 사음을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어떻게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는 데에 의지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반드시 현세와 후세에 나쁜 과보를 받는다. 만일 내가 거짓말하면 곧 자기를 해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은 내게 계를 말할 것이요, 사방에서는 모두 내 나쁜 이름을 들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이와 같이 거짓말하면 현세와 후세에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나는 이제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는 데에 의지하자.’
그래서 그는 곧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는 데에 의지하나니, 이렇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거짓말을 여의고 거짓말을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어떻게 탐착(貪著)이 없고 탐착을 끊는 데에 의지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탐착하는 자는 반드시 현세와 후세에 나쁜 과보를 받는다. 만일 내가 탐착하면 곧 자기를 해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은 내게 계를 말할 것이요, 사방에서는 모두 내 나쁜 이름을 들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이와 같이 탐착하면 현세와 후세에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나는 이제 탐착이 없고 탐착을 끊는 데에 의지하자.’
그래서 그는 곧 탐착이 없고 탐착을 끊는 데에 의지하나니, 이렇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탐착이 없고 탐착을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어떻게 해침과 성냄이 없고, 해침과 성냄을 끊는 데에 의지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해치고 성내는 자는 반드시 현세와 후세에 나쁜 과보를 받는다. 만일 내가 해치고 성내면 곧 자기를 해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은 내게 계를 말할 것이요, 사방에서는 모두 내 나쁜 이름을 들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이와 같이 해치고 성내면 현세와 후세에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나는 이제 해침과 성냄이 없고 해침과 성냄을 끊는 데에 의지하자.’
그래서 그는 곧 해침과 성냄이 없고, 해침과 성냄을 끊는 데에 의지하나니, 이렇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해침과 성냄이 없고 해침과 성냄을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어떻게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가 없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를 끊는 데에 의지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가 있는 자는 반드시 현세와 후세에 나쁜 과보를 받는다. 만일 네게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가 있으면 곧 자기를 해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은 내게 계를 말할 것이요, 사방에서는 모두 내 나쁜 이름을 들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이와 같이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가 있으면 현세와 후세에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나는 이제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가 없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를 끊는 데에 의지하자.’
그래서 그는 곧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가 없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를 끊는 데에 의지하나니, 이렇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가 없고 미워하고 질투하는 번뇌를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어떻게 증상만(增上慢)이 없고 증상만을 끊는 데에 의지하는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증상만이 있는 자는 반드시 현세와 후세에 나쁜 과보를 받는다. 만일 내게 증상만이 있으면 곧 자기를 해치고 남을 속이고 비방하며, 하늘과 모든 지혜로운 범행자들은 내게 계를 말할 것이요, 사방에서는 모두 내 나쁜 이름을 들을 것이며,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이와 같이 증상만이 있으면 현세와 후세에 이런 나쁜 과보를 받는다. 나는 이제 증상만이 없고 증상만을 끊는 데에 의지하자.’
그래서 그는 곧 증상만이 없고 증상만을 끊는 데에 의지하나니, 이렇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증상만이 없고 증상만을 끊는 데에 의지합니다. 거사여,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과 율 가운데에 있는 세속을 끊는 여덟 가지 일이라 합니다.”

거사가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그 거룩한 법과 율 안에는 세속 일을 끊는 그런 것만이 있고, 다시 다른 것은 없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우리 거룩한 법과 율 안에는 세속 일을 끊는 그 일뿐만이 아니라, 다시 세속 일을 끊는 여덟 가지가 있어 몸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포리다 거사는 이 말씀을 듣고 곧 흰 수건을 벗은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그 거룩한 법과 율 안에는 다시 어떤 여덟 가지가 있어 세속 일을 끊으며 몸으로 경험하게 됩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거사여, 어떤 개가 굶주리고 배고파서 바짝 여윈 채 푸주간에 갔을 적에 백정이나 백정의 제자는 깨끗이 살을 도려내고 그 뼈다귀를 개에게 던져줍니다. 개는 그 뼈다귀를 얻어 가지고 여기 저기 물어뜯다가 입술이 찢기고 이가 빠지며 혹은 목구멍을 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개는 그것으로 굶주림을 채우지는 못합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뼈다귀와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뼈다귀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은 많아서 많은 재환이 따른다. 마땅히 그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 만일 여기 욕심을 버리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면 이른바 이 일체 세간의 음식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닦아 익혀야 한다.’
거사여, 또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그마한 고깃덩어리가 땅에 떨어져 있을 때에 혹은 까마귀나 솔개가 그것을 물고 달아나면 나머지 까마귀와 솔개들은 앞다투어 그 뒤를 쫓습니다. 거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이 까마귀나 솔개가 그 조그마한 고깃덩이를 재빠르게 버리지 않는다면 다른 까마귀나 솔개들이 앞 다투어 계속 쫓아오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거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그 까마귀나 솔개가 조그마한 고깃덩이를 재빠르게 버리더라도 다른 까마귀나 솔개가 쫓아가겠습니까?”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고깃덩이와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고깃덩이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서 많은 재환이 따른다. 마땅히 그것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일 여기 욕심을 버리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여의면 이른바 이 일체 세간의 음식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닦아 익혀야 한다.’
거사여,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손에 횃불을 잡고 바람을 향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거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이 사람이 그 횃불을 빨리 버리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손이나 몸뚱이나 다른 곳을 데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거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이 사람이 빨리 그 횃불을 버리더라도 그 손이나 몸뚱이나 다른 곳을 데겠습니까?”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횃불과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횃불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 많은 재환이 따른다. 마땅히 그것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일 여기 욕심을 버리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버리면 이른바 이 일체 세간의 음식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닦아 익혀야 한다.’
거사여, 또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불구덩이가 있어 그 안에는 불이 가득 찼으나 연기나 불꽃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어리석지도 않고 미련하지도 않으며 정신이 돌지도 않아서 스스로 본마음에 머물러 자유자재하면서 즐거우려고 하고 괴로우려고 하지 않으며 괴로움을 몹시 싫어하고 살려고 하지 죽으려 하지 않으며 죽기를 몹시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그 곳에 왔다고 합시다. 거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사람이 과연 그 불구덩이에 들어가겠습니까?”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왜냐 하면 그는 그 불구덩이를 보고는 곧 ‘만일 불구덩이에 떨어지면 의심할 여지없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설사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 극심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구덩이를 보고는 곧 거기서 멀리 떠나기를 생각하고 그것을 버리기를 바라고 원할 것입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불구덩이와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불구덩이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 많은 재환이 따른다. 반드시 그것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일 여기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는 악법을 버리면 이른바 이 일체 세간의 음식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닦아 익혀야 한다.’
거사여,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극히 모질고 독하며 시꺼먼 빛이 매우 무서운 큰 독사가 있는 것과 같다. 만일 어리석지도 않고 미련하지도 않으며 정신이 돌지도 않아서 본마음에 머물러 자유자재하면서 즐거우려고 하지 괴로우려고 하지 않고 괴로움을 몹시 싫어하며 살려고 하지 죽으려 하지 않으며 죽기를 몹시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그 곳에 왔다고 합시다. 거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사람이 과연 그 손이나 몸뚱이의 다른 부위를 내밀며 ‘나를 물어라, 나를 물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왜냐 하면 그는 독사를 보고는 곧 ‘만일 내가 손이나 몸뚱이의 어떤 부위를 내밀어 독사가 물게 한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설사 죽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분명 극심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독사를 보고는 곧 거기서 멀리 여의기를 생각하고 그것을 버리기를 바라고 원할 것입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독사와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독사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서 많은 재환이 따른다. 마땅히 그것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일 여기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버리면 이른바 이 일체 세간의 음식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닦아 익혀야 한다.’
거사여, 또 마치 어떤 사람이 꿈에 5욕(欲)을 구족하여 스스로 즐기다가 깬 뒤에는 하나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꿈과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꿈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서 많은 재환이 있다. 마땅히 그것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일 여기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버리면 이른바 이 일체 세간의 음식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닦아 익혀야 한다.’

거사여, 또 마치 어떤 사람이 오락의 도구를 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혹은 궁전ㆍ누각ㆍ동산ㆍ목욕하는 못ㆍ코끼리ㆍ말ㆍ수레, 혹은 비단과 무명옷, 혹은 가락지ㆍ팔찌ㆍ영락ㆍ목걸이ㆍ금ㆍ화만ㆍ명의(名衣)ㆍ상복(上服)을 빌렸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찬탄합니다.
‘이처럼 좋고 이처럼 유쾌하다. 만일 재물이 있으면 마땅히 이처럼 스스로 즐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물건의 본래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빼앗고, 혹은 사람을 시켜 빼앗고자 하면 그는 곧 자기 마음대로 빼앗고, 혹은 사람을 시켜 빼앗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말합니다.
‘저 물건을 빌린 사람은 사실 사람들을 속인 것이다. 저것들은 빌린 것이 아닌가? 왜냐 하면 그 물건의 본래 주인은 자기 마음대로 빼앗고 사람을 시켜 빼앗고자 하면 그는 곧 자기 마음대로 빼앗고 사람을 시켜 빼앗게 하기 때문이다.’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빌린 물건과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빌린 물건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서 많은 재환이 따른다. 마땅히 그것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일 여기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버리면 이른바 일체 세간의 음식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닦아 익혀야 한다.’

거사여, 또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언제나 곱고 아름다운 과일이 많이 달리는 큰 과일나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굶주리고 고달파 그 과일을 먹고자 한다고 합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나무에는 언제나 곱고 아름다운 과일이 많이 달린다. 나는 배고프고 힘이 떨어져 저 과일을 먹고 싶다. 그러나 이 나무 밑에는 저절로 떨어진 과일이 없어 배불리 먹을 수도 없고 또 가지고 돌아갈 수도 없다. 나는 나무에 올라갈 수가 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나무에 올라가리라.’
그는 이렇게 생각한 뒤에 곧 올라갔습니다. 다시 어떤 사람이 굶주리고 고달파 그 과일을 먹고자 하여 아주 날카로운 도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 나무에는 언제나 곱고 아름다운 과일이 많이 달린다. 그러나 이 나무 밑에는 저절로 떨어진 과일이 없어 배불리 먹을 수도 없고 또 가지고 돌아갈 수도 없다. 또 나는 나무에 오르지도 못한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나무를 베어 넘기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는 곧 그 나무를 찍어 넘어뜨렸습니다. 거사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만일 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빨리 내려오지 않는다면 나무가 땅에 쓰러질 때에 과연 그 팔이나 몸뚱이 중 다른 부분이 부러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거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무 위에 있던 사람이 빨리 내려오더라도 나무가 땅에 쓰러질 때에 과연 그 팔이나 몸뚱이 중 다른 부분이 부러지겠습니까?”

“아닙니다. 구담이시여.”

“거사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도 또한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심은 나무 열매와 같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욕심은 나무 열매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만 많아서 많은 재환이 따른다. 마땅히 그것을 멀리 여의어야 한다. 만일 여기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버리면 이른바 이 일체 세간의 음식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을 것이니, 마땅히 그렇게 닦아 익혀야 한다.’
거사여, 이것을 우리 거룩한 법과 율에는 다시 이런 여덟 가지가 있어 세속 일을 끊어 몸으로 징험하는 것이라 합니다.

거사여, 그는 각(覺)과 관(觀)을 쉬고 마음은 고요하여 한 마음이 되어 거친 생각도 없고 세밀한 생각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다시 그는 이미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습니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다시 그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는 이와 같이 선정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 더러움도 없고 괴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여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고, 번뇌가 다한 지혜의 신통을 닦아 익혀 몸으로 그것을 증득합니다. 그래서 그는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苦集]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苦滅]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압니다. 또 이 번뇌[漏]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번뇌의 발생[漏集]을 알며 이 번뇌의 소멸[漏滅]을 알고 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漏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압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심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有漏]와 무명의 번뇌[無明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 그대로 압니다.”

이렇게 설법하실 때에 포리다 거사는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모든 법에 대한 법안(法眼)이 생겼다. 이에 포리다 거사는 법을 보아 법을 얻고 희고 깨끗한 법을 깨달아 의심을 끊고 의혹에서 벗어나 다시는 달리 높일 이가 없고 다시는 남을 의지할 것 없으며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미 결과를 증득해 머물러 세존의 법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부터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우바새로 받아 주소서. 저는 오늘부터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본래는 희고 깨끗한 옷을 입고 흰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지팡이를 짚고 일산을 들었으며 또 세속의 신을 신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집으로 동산에서 동산으로 숲에서 숲으로 두루 돌아다니다가 사문 범지를 만나면 곧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세속을 떠났고 세속을 끊었으며 모든 세속 일을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사문 범지들은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곧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진 포리다여, 당신은 세속을 떠났고 세속을 끊었으며 모든 세속 일을 버렸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 저들이 실로 지혜가 없는데도 저들을 지혜로운 자들이 머무는 곳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였고 실로 지혜가 없는데도 저들에게 제사 드렸으며 또 지혜가 없는데도 저들을 먹였고 실로 지혜가 없는데도 저들을 마치 지혜로운 이들처럼 받들어 섬겼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모든 비구들과 세존의 제자들은 실로 지혜로운 자들이므로 지혜로운 자들이 머무는 곳에 편안히 머무르게 하고 실로 지혜로운 자들이므로 제사 드리며, 또 지혜로운 자들이므로 음식을 공양하고 실로 지혜로운 자들이므로 지혜로운 사람답게 받들어 섬기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시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우바새로 받아 주소서. 오늘부터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전부터 믿고 존경하던 이교도의 사문이나 범지들을 오늘부터 끊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부터 세 번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세존이시여, 저를 우바새로 받아 주소서. 저는 오늘부터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포리다 거사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오(吳)나라 때 지겸(支謙)이 한역한 『불설재경(佛說齋經)』과 실역(失譯)인 우파이타사가경(優陂夷墮舍佉經)과 유송(劉宋) 때 저거경성(沮渠京聲)이 한역한 『불설팔관재경(佛說八關齋經)』이 있다.
2 계율(戒律), 즉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를 말한다.
3 팔리어 Saṅkha의 음역어이다.
4 바다거북의 일종으로 등껍질은 장식품 또는 공예품으로 쓰인다.
5 나난대(那難大)는 팔리어로 Nālandā이고 나란다(那爛陀)로 음역하기도 한다.

중아함경 제56권

승가제바 한역

17. 포리다품 제3②
204) 라마경(羅摩經)1) 제3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동원(東園) 녹자모(鹿子母) 강당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오후에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 당(堂)에서 내려와 존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너와 함께 아이라바제(阿夷羅婆提)2)강으로 가서 목욕하리라.”

존자 아난이 대답했다.
“예.”

존자 아난은 지게문 자물쇠를 가지고 여러 집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모든 비구들을 보고 말하였다.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범지 라마(羅摩)의 집으로 가시오.”
모든 비구들은 그 말을 듣고 곧 함께 범지 라마의 집으로 갔다.
세존께서 존자 아난을 데리고 아이라바제강으로 가 언덕 위에서 옷을 벗고, 곧 물에 들어가 목욕하신 뒤 도로 나와 몸을 닦고 옷을 입으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세존 뒤에 서서 부채로 세존을 부쳐 드리고 있었다.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범지 라마의 집은 극히 좋고 잘 정리되어 매우 즐거운 곳입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그를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시어 범지 라마의 집으로 가 주소서.”
세존께서 존자 아난을 위해 잠자코 받아 주셨다.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을 데리고 범지 라마의 집으로 가셨다.

그 때 범지 라마의 집에서는 많은 비구들이 모여 앉아 설법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문 밖에 서서 모든 비구들의 설법이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많은 비구들이 이내 설법을 마치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세존께서 그런 줄 아시고 기침을 하시면서 문을 두드리자 모든 비구들은 곧 나와 문을 열었다. 세존께서 곧 범지 라마의 집에 들어가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물으셨다.
“비구들아, 아까는 무엇을 이야기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이렇게 모여 있는가?”

비구들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아까는 법을 연설하였고 이 법을 연설하기 위해 이렇게 여기 모여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들이 모여 앉으면 마땅히 두 가지 일을 행하여야 하나니, 그것은 설법과 침묵이니라.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예, 분부 받자와 경청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 두 가지의 구함이 있으니, 첫째는 거룩한 구함이요, 둘째는 거룩하지 못한 구함이다. 어떤 것이 거룩하지 못한 구함인가? 어떤 사람은 실로 병드는 법인데 그 병드는 법을 구하고 실로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하는 법인데 그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하는 법을 구하며 실로 더러운 법인데 그 더러운 법을 구한다. 실로 병드는 법인데 그 병드는 법을 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병드는 법인가? 자식과 형제들이 바로 병드는 법이요,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ㆍ노비ㆍ재물ㆍ보배ㆍ미곡들이 바로 병드는 법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것에 물들고 집착하며 교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환(災患)을 보지 못하고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한 채 그것을 받아쓰고 있다.

어떤 것이 늙고 죽는 법이고 근심하는 법이며 더러운 법인가? 자식과 형제들이 바로 늙고 죽는 법이고 근심하는 법이며 더러운 법이다.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ㆍ노비ㆍ재물ㆍ보배ㆍ미곡(米穀)들이 늙고 죽는 법이요 근심하는 법이며 더러운 법이다. 그런데 중생들은 그것에 빠져 더럽혀지고 집착하며 오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환(災患)을 보지 못하고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한 채 취해 쓰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하지만 끝내 그리 될 수 없다.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하지만 끝내 그리 될 수 없다. 이것을 거룩한 구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 것이 거룩한 구함인가? 어떤 사람은 곧 이렇게 생각한다.
‘나[我]라고 하는 것은 실로 병드는 법인데도 까닭 없이 병드는 법을 구한다. 나라고 하는 것은 실로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하고 걱정하는 법ㆍ더러운 법인데도 까닭 없이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하는 법ㆍ더러운 법을 구한다. 나는 지금 차라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
그래서 그 사람이 곧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다. 또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느니라.

나도 본래 위없는 정각을 깨닫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라는 것은 실로 병드는 법인데 까닭 없이 병드는 법을 구한다. 나라는 것은 실로 늙는 법이요 죽는 법이며 근심 걱정하는 법이고 더러운 법인데 까닭 없이 늙는 법ㆍ죽는 법ㆍ근심 걱정하는 법ㆍ더러운 법을 구한다. 나는 지금 차라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함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
나는 그 때 나이 젊은 동자(童子)로서 맑고 깨끗한 새까만 머리에 한창 나이인 29세였다. 그 때 한없이 즐겁게 유희하고 화려하게 장식하고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나는 그 때 부모님이 울부짖고 여러 친척들이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면서 몸을 청정하게 보호하였고 입과 뜻을 청정하게 보호하였다.

그래서 나는 이 계의 몸을 성취한 뒤에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자 하여 다시 아라라가라마(阿羅羅伽羅摩:仙人名)를 찾아가서 그에게 물었다.
‘아라라여, 저는 당신에게서 범행(梵行)을 법답게 행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라라가 대답하였다.
‘현자(賢者)여, 나는 상관없다. 행하고 싶거든 곧 행하라.’
‘아라라여, 당신은 어떻게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아라라가 나에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일체의 식처(識處)를 지나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런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믿음이 있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정진이 있다. 아라라 혼자에게만 이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지혜가 있다. 그런데 아라라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나는 이 법을 증득하기 위하여 곧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였다. 나는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서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증득하게 되었다.

그 법을 증득한 뒤에 나는 다시 아라라가라마에게로 가서 물었다.
‘아라라여, 당신은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이른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닙니까?’
아라라가라마는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이른바 일체의 한량없는 식처를 지나 무소유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아라라가라마는 다시 내게 말했다.
‘현자여, 내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그대도 또한 그러하며 그대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나도 또한 그러하다. 현자여, 그대는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이 대중을 통솔하자.’
이렇게 아라라가라마는 스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나를 동등하게 대접하고 최상으로 공경하였으며 최상으로 공양하고 최상의 기쁨을 표하였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자.’
그래서 나는 곧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 뒤에 울다라라마자(鬱陀羅羅摩子:仙人名)가 있는 곳으로 가서 그에게 물었다.
‘울다라여, 저는 당신의 법 안에서 배우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울다라라마자가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나는 상관없다. 그대가 배우고 싶으면 배우라.’
‘울다라여, 그대 아버지 라마(羅摩)께서는 어떤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현자여, 나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현자여,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도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 믿음이 있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런 정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런 정진이 있다. 라마 혼자에게만 이런 지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도 또한 이런 지혜가 있다. 라마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나라고 어찌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지 못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 법을 증득하기 위해 곧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였다. 나는 멀리 떠나 비고 고요한 곳에 혼자 머물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한 지 오래지 않아 그 법을 증득하게 되었다.

그 법을 증득한 뒤에 나는 다시 울다라라마자에게로 가서 물었다.
‘울다라여, 당신의 아버지는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습니까? 이른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닐었습니까?’
울다라라마자가 내게 대답하였다.
‘현자여,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도 이 법을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였다. 이른바 일체의 무소유처를 지나 비유상비무상처를 얻어 성취하여 노닐었다.’
울다라가 다시 내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 라마께서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그대도 또한 그러하며 그대가 이 법을 증득한 것과 같이 우리 아버지도 또한 그러했다. 현자여, 그대는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이 대중을 통솔하자.’
울다라라마자는 스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나를 스승처럼 대접하고 최상으로 공경하였으며 최상으로 공양하고 최상의 기쁨을 표하였다.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법은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제 차라리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리라.’
그래서 곧 이 법을 버리고 다시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한 뒤에 상정산(象頂山) 남쪽에 있는 울비라(鬱鞞羅)의 사나(斯那)라는 범지 마을로 갔다. 그 땅은 아주 좋아서 즐길 만하며 산림은 울창하고 니련선하(尼連禪河)의 맑은 물도 언덕까지 찰랑찰랑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고 곧 이렇게 생각했다.
‘이 땅은 아주 좋아서 즐길 만하다. 산림은 울창하고 니련선하의 맑은 물도 언덕까지 찰랑찰랑 흐르고 있구나. 만일 큰 종족의 아들이 공부하고자 한다면 이런 곳이 좋을 것이다. 내가 공부하기에도 아주 적절하다. 나는 이제 차라리 여기서 공부하리라.’
그리고는 곧 풀을 가지고 보리수가 있는 데로 가서 그 밑에 깔고 니사단(尼師檀)을 풀 위에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나는 번뇌를 다할 때까지는 결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과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번뇌를 다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곧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곧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다. 그리고 내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결정된 도품법(道品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느니라.

나는 처음으로 위없는 정진각(正盡覺)을 깨달은 뒤에 곧 ‘나는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라고 생각하다가 다시 ‘나는 이제 차라리 저 아라라가라마에게 먼저 설법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 때 어떤 하늘이 허공에게 내게 말하였다.
‘큰 선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아라라가라마가 이미 목숨을 마친 지 벌써 7일째입니다.’
나도 또한 내 스스로 아라라가라마가 이미 목숨을 마친지 7일째 되는 날인 줄을 알고 있었다. 나는 또 생각하였다.
‘아라라가라마, 그 사람은 아주 가버렸으니 이 법을 듣지 못하겠구나. 만일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그는 빨리 법을 알아 법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내가 처음 위없는 정진각(正盡覺)을 깨달은 뒤에 ‘나는 마땅히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차라리 울다라라마자에게 먼저 설법하리라.’
그 때 하늘은 다시 허공에서 내게 말했다.
‘큰 선인이여,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울다라라마자가 목숨을 마친 지 벌써 14일째입니다.’
나도 또한 내 스스로 울다라라마자가 목숨을 마친지 14일째인 줄 알았다.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울다라라마자는 아주 가버렸으니 이 법을 듣지 못하겠구나. 만일 그가 이 법을 들었더라면 그는 빨리 법을 알아 법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위없는 정진각을 깨달은 뒤에 ‘나는 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옛날의 저 다섯 비구는 나를 위해 수고하고 내게 많은 이익을 주었다. 내가 고행할 때 그 다섯 비구는 나를 받들어 섬겼다. 나는 이제 저 다섯 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명해 주리라.’
나는 다시 생각하였다.
‘옛날의 그 다섯 비구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래서 나는 사람의 눈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天眼)으로써 그 다섯 비구들이 바라나국(波羅㮈國)의 선인이 사는 녹야원(鹿野園)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곧 보리수 밑에서 옷을 챙겨 발우를 가지고 바라나국의 도읍 가시(加尸)로 갔다. 그 때 이교도 우타(優陀)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내게 말하였다.
‘현자 구담이여, 모든 감관[根]은 청정하고 형상은 극히 묘하며 얼굴의 광명은 빛나고 있습니다. 현자 구담이여, 당신의 스승은 누구시며 누구에게서 도를 배웠고 누구의 법을 믿습니까?’

나는 그 때 우타에게 곧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나는 가장 높고 가장 훌륭하니라.
일체의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모든 애욕 벗어나 스스로 깨쳤거니
다시 또 그 누구를 스승이라 하겠는가.

같은 사람도 없고 나은 사람도 없다.
위없는 깨달음을 스스로 깨쳤나니
나는 여래요 또 천상ㆍ인간의 스승으로
그 힘을 성취한 것 두루 아노라.

우타가 다시 내게 물었다.
‘현자 구담이시여, 스스로 훌륭하다고 하셨습니까?’

나는 다시 게송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훌륭한 사람은 이러하나니
이른바 모든 번뇌 이미 다하고
나는 모든 악법 파괴했으니
우타여, 그러므로 나는 훌륭하니라.

우타가 다시 네게 물었다.
‘현자 구담이시여, 어디로 가시려 하십니까?’

나는 또 게송으로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바라나(波羅㮈)로 가서
묘한 감로(甘露)의 북 두드리고
세상에서 아직 굴리지 못한
위없는 법의 바퀴 굴리려 하네.

우타가 내게 말하였다.
‘현자 구담이시여, 혹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렇게 말한 뒤에 그는 곧 삿된 길을 지나 돌아왔다. 나는 선인이 사는 곳인 녹야원으로 갔다. 그 때 다섯 비구들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고 제각기 서로 행동지침을 약속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저 사문 구담이 온다. 그는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이 많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쌀밥ㆍ보릿가루ㆍ소(酥)ㆍ꿀을 먹고 삼씨기름을 몸에 바른다. 지금 그가 다시 오고 있으나 너희들은 아예 일어나 맞이하지도 말고 또한 예도 올리지 말며 미리 자리를 준비하여 앉기를 청하지도 말라. 그리고 그가 오거든 〈그대가 앉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자.’
그 때 나는 다섯 비구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내게 있는 지극히 훌륭한 위덕(威德)에 어쩔 수 없어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와 발우를 받는 사람도 있고 자리를 펴는 사람도 있으며 물을 가져와 발을 씻어주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어리석은 사람들이여, 어찌 이처럼 마음이 굳지 못한가. 저희끼리 행동지침을 만들어 약속하더니 저희끼리 어기고 있구나.’
나는 그들의 마음을 안 뒤에 그들이 편 자리에 앉았다.

그 때 다섯 비구들은 내 성(姓)과 자(字)를 부르고 나를 경(卿)이라고 불렀다. 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나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이다. 너희들은 내 본래의 성과 자를 부르지 말고 또한 나를 경이라고 부르지도 말라. 왜냐 하면 나는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고 나는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결정된 도품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았느니라.’

그들은 내게 말하였다.
‘경(卿) 구담이여, 그대는 이전에 그러한 행과 그러한 도의 자취와 그러한 고행을 하고서도 오히려 사람의 법을 벗어난 지극히 거룩한 앎과 소견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하물며 욕심이 많고 구하는 것이 많아 맛있는 음식과 좋은 쌀밥ㆍ보릿가루ㆍ소ㆍ꿀을 먹으며 삼씨기름을 몸에 바르는 오늘에 있어서이겠는가?’
나는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너희들은 이전에 내가 이와 같이 모든 감각기관[根]이 청정하고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다섯 비구가 내게 대답하였다.
‘이전에는 경의 모든 감각기관이 청정하고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대 구담이여, 지금은 모든 감각기관이 청정하고 형색도 매우 아름다우며 얼굴에 광명이 빛나는 것을 본다.’

나는 그 때 곧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야, 마땅히 알라. 도를 닦는 모든 사람이 배워서는 안 될 두 가지 치우친 행이 있으니, 하나는 욕심과 향락의 하천한 업인 범인의 행에 집착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성현의 법이 아닌 것으로서 도리에 맞지 않는 것에 스스로 번거로워하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다섯 비구들아, 이 두 가지 치우친 행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취하면 밝음을 이루고 지혜를 이루며 선정[定]을 성취하여 자재함을 얻고 지혜로 나아가며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열반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 중도란 이른바 8정도(正道)이니, 바른 소견[正見]에서부터 바른 선정[正定]에 이르기까지의 이 여덟 가지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섯 비구를 가르쳤는데 두 사람을 교화할 때면 세 사람이 밥을 빌고 세 사람이 밥을 가지고 오면 여섯 사람이 먹기에 넉넉하였다. 세 사람을 교화할 때면 두 사람이 밥을 빌고 두 사람이 밥을 가지고 오면 여섯 사람이 먹기에 넉넉하였다. 나는 이렇게 저들을 가르치고 이렇게 저들을 교화시켜 그들로 하여금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구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 걱정ㆍ더러움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앎이 생기고 소견이 생기고 틀림없는 도품법이 있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알게 하였느니라.’

세존이 다시 그들에게 말하였다.
‘다섯 비구들아, 좋아할 만하고 즐길 만하며 마음으로 생각할 만하고 욕심과 잘 어울리는 5욕의 공덕이 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눈으로 빛깔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으로 감촉을 느끼는 것이다. 다섯 비구야, 어리석은 범부는 많이 듣지 못하고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한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쳐 물들고 탐하고 집착하며 교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앙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하여 그것을 취하여 쓴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진 악마의 손에 떨어지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려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섯 비구야, 마치 들사슴이 올가미에 걸린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그 사슴은 사냥꾼을 따르고 스스로 사냥꾼의 뜻대로 움직이며 사냥꾼의 손에 떨어지고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사냥꾼이 와도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어리석은 범부는 많이 듣지 못하고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한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쳐 물들고 그것을 탐하고 집착하며 교만스럽게 받아들여 그 재앙을 보지 못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하여 그것을 받아쓴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진 악마의 손에 떨어지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려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섯 비구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한 벗을 만나고 거룩한 법을 알며 또 거룩한 법을 모신다. 그는 이 5욕의 공덕에 부딪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탐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교만스럽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그 재앙을 보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아 그것을 취해 쓰지 않는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모진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악마의 손에 떨어지지 않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 않아 곧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난다.
다섯 비구야, 마치 들사슴이 올가미를 벗어나는 것과 같나니, 마땅히 알라. 그 사슴은 사냥꾼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사냥꾼의 뜻대로 움직이지도 않으며 사냥꾼의 손에 떨어지지도 않고 사냥꾼의 그물에 걸리지도 않아 사냥꾼이 와도 곧 벗어날 수 있다.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한 벗을 만나고 거룩한 법을 알며 또 거룩한 법을 모신다. 그는 5욕의 공덕에 부딪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으며 탐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며 또한 교만하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그 재앙을 보고 그것을 벗어나는 길을 보았으므로 그것을 취해 쓰지 않는다. 마땅히 알라. 그는 모진 악마를 따르지 않고 스스로 악마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며 악마의 손에 떨어지지도 않고 악마의 그물에 걸리지도 않으며 악마의 올가미에 걸리지도 않아 곧 악마의 올가미를 벗어나게 되느니라.

다섯 비구야,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5개(蓋)와 마음의 더러움 내지 슬기의 병을 끊고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떠나 제4선(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와 같이 선정[定]의 마음이 맑고 깨끗해 더러움도 없고 번거로움도 없으며 부드럽고 연하여 잘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얻게 되고 번뇌가 다한 지혜의 신통을 닦아 익혀 몸으로 증득한다. 그래서 그는 이 괴로움[苦]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괴로움의 발생[苦集]을 알며 이 괴로움의 소멸[苦滅]을 알고 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또 이 번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이 번뇌의 발생을 알며 이 번뇌의 소멸을 알고 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안다. 그는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아 욕심의 번뇌[欲漏]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생명의 번뇌와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하고 해탈한 뒤에는 곧 해탈한 줄을 알아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그는 그 때에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왜냐 하면 그는 스스로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이 다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다섯 비구야, 마치 일이 없고 사람이 없는 곳에 있는 저 들사슴은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엎드리고 자재롭게 눕는 것과 같다. 왜냐 하면 그 들사슴은 사냥꾼의 경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엎드리고 자재롭게 눕느니라. 이와 같이 다섯 비구야, 비구는 번뇌가 다하여 번뇌가 없게 되어 심해탈(心解脫)하고 혜해탈(慧解脫)하며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닌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 그대로 안다. 그는 그 때에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는다. 왜냐 하면 그는 스스로 한량없는 착하지 않은 악법이 다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재롭게 다니고 자재롭게 머무르며 자재롭게 앉고 자재롭게 눕느니라. 다섯 비구야 이것을 남음이 없는 해탈이라 하고 이것을 병이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이라 하며 이것을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으며 근심 걱정도 없고 더러움도 없는 위없이 안온한 열반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라마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121자이다.

205) 오하분결경(五下分結經) 제4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일찍이 5하분결(下分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너희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모든 비구들은 잠자코 대답이 없었다.

세존께서 다시 두 번 세 번 비구들에게 물으셨다.
“내가 일찍이 5하분결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너희들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그러나 모든 비구들은 여전히 잠자코 대답이 없었다.

그 때 존자 만동자(鬘童子)3)가 대중들 속에 있었다. 이에 존자 만동자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께서는 일찍이 5하분결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만동자여, 나는 예전에 5하분결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다. 너는 그것을 기억하느냐?”

“세존께서는 예전에 탐욕[貪]이 첫 번째 하분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성냄[恚]ㆍ몸에 대한 그릇된 소견[身見]ㆍ그릇된 계에 대한 집착[戒取]을 말씀하셨고 의심[疑心]이 다섯 번째 하분결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나무라시며 말씀하셨다.
“만동자여, 너는 어떻게 내가 말한 5하분결을 받아 가졌느냐? 너는 누구에게서 내가 말한 5하분결을 듣고 기억하고 있느냐? 만동자여, 많은 이교도들이 와서 어린 동자의 비유로 너를 꾸짖고 힐책하지는 않았느냐?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마음에는 아무 욕심이란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욕심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使]이기 때문에 짐짓 욕심의 번뇌[欲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중생이란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성냄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이기 때문에 짐짓 성냄의 번뇌[恚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내 몸이란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몸이 있다는 소견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이기 때문에 짐짓 몸이 있다는 소견의 번뇌[身見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계라는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계에 집착하는 마음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이기 때문에 짐짓 계에 집착하는 번뇌[戒取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 어린애는 어리고 연약하여 반듯이 누워, 법이란 생각이 없거늘 하물며 의심의 얽매임이 있겠느냐? 그러나 그 성질은 번뇌이기 때문에 짐짓 의심의 번뇌[疑使]라고 말한다. 만동자여, 많은 이교도들이 와서 이 어린 동자를 비유로 들어 꾸짖고 너를 힐책하지 않았느냐?”
이에 존자 만동자는 면전에서 세존께 꾸지람을 듣고는 마음에 근심을 품고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 말이 없었으나, 무엇인가 물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 때 세존께서는 만동자를 면전에서 나무라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세존 뒤에 서서 부채를 들고 세존께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이에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선서이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을 위해 5하분결을 말씀하신다면 모든 비구들은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 가질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자세히 듣고 잘 기억하라.”

존자 아난이 대답했다.
“예, 분부를 받들어 경청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탐욕에 얽매여 욕심이 생기고 나면 평정[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욕심[欲]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성냄[恚]에 얽매여 성내는 마음이 생기고 나면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지 못한 뒤에는 성냄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 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내 몸이 있다는 소견[有身]에 얽매여 내 몸이 있다는 소견이 생기고 나면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내 몸이 있다는 소견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 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그릇된 계율의 집착[戒取]에 얽매여 그릇된 계율에 집착하는 마음이 생기고 나면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그릇된 계율에 집착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 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의심[疑]에 얽매여 의심이 생기고 나면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의심이 갈수록 불꽃처럼 왕성해져 그것을 없애 버리지 못하나니, 이것이 하분결이니라.

아난아, 만일 도를 의지하고 자취[迹]를 의지한다면 5하분결을 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 도를 의지하지 않고 이 자취를 의지하지 않고서 5하분결을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될 수 없느니라. 아난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나무 심[實]4)을 구하기 위해 도끼를 가지고 숲속에 들어갔다. 그는 나무가 뿌리와 줄기ㆍ가지ㆍ잎과 심으로 된 것을 알았다. 이 때 그가 그 뿌리와 줄기는 베지 않고 그 심을 얻어 돌아오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될 수 없는 것과 같으니라. 이와 같이 아난아, 만일 도를 의지하고 자취를 의지한다면 5하분결을 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 도를 의지하지 않고 이 자취를 의지하지 않고서 5하분결을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될 수 없느니라.
아난아, 만일 도를 의지하고 자취를 의지하면 5하분결을 끊는다. 그가 이 도를 의지하고 이 자취를 의지해서 5하분결을 끊는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될 수 있다. 아난아,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나무심을 구하기 위해 도끼를 가지고 숲속에 들어갔다. 그는 나무가 뿌리와 줄기ㆍ가지ㆍ잎과 심으로 된 것을 보았다. 이 때 그가 그 뿌리와 줄기를 베어 심을 얻어 돌아오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난아, 만일 도를 의지하고 자취를 의지한다면 5하분결을 끊을 수 있다. 그가 이 도를 의지하고 이 자취를 의지하여 5하분결을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될 수 있느니라.

아난아, 어떤 도를 의지하고 어떤 자취를 의지하여야 5하분결을 끊는가?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욕심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욕심의 얽매임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는 그 욕심의 얽매임은 곧 소멸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성냄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성냄의 얽매임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는 그 성냄의 얽매임은 곧 소멸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내 몸이 있다는 소견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내 몸이 있다는 소견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알면 내 몸이 있다는 소견의 얽매임은 소멸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그릇된 계율의 집착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그릇된 계율에 집착하여 얽맴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는 그 그릇된 계율에 대한 집착이 소멸된다.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은 의심에 얽매이지 않는다. 만일 의심의 얽맴이 생기면 그는 곧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다. 그가 평정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를 안 뒤에는 그 의심의 얽매임이 곧 소멸된다. 아난아, 이 도를 의지하고 이 자취를 의지하여 5하분결을 끊느니라.

아난아, 마치 긍가하(恆伽河:갠지스강)와 같다. 그 물이 언덕까지 차서 넘치는데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건너려고 할 때에 그는 생각한다.
‘이 긍가하의 물은 언덕까지 차서 넘치는데 나는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건너가려고 한다. 그러나 내 몸에는 저쪽 언덕까지 안온하게 헤엄쳐 갈 힘이 없다.’
아난아,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힘이 없다. 이와 같이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이 깨달음ㆍ멸(滅)ㆍ열반으로 가는데, 그 마음이 거기로 향하지도 않고 청정하지도 않으며 해탈에 머무르지도 않는다면 아난아,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저 사람이 병에 걸려 힘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아난아, 마치 긍가하와 같다. 그 물이 언덕까지 차서 넘치는데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건너가려고 할 때에 그는 생각한다.
‘이 긍가하 물은 언덕까지 차서 넘치는데 나는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건너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내 몸에는 저쪽 언덕까지 헤엄쳐 갈 힘도 있다.’
아난아, 마땅히 알라. 그 사람은 힘이 있다. 이와 같이 아난아, 혹 어떤 사람이 깨달음ㆍ멸ㆍ열반으로 가는데 그 마음이 거기로 향하고 청정하며 또 해탈에 머무른다면 아난아,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저 힘 있는 사람과 같으니라.

아난아, 또 마치 산과 물이 매우 깊고 지극히 넓으며 긴 물결은 빠르고 급해 많은 물건들이 떠내려가는데 거기엔 배도 없고 또 다리도 없는 것과 같다. 그 때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저쪽 언덕에 일이 있어 곧 건너가려고 한다. 그는 건너가려고 하다가 곧 생각한다.
‘지금 이 산과 물은 매우 깊고 지극히 넓으며 긴 물결은 빠르고 급해 많은 물건들이 떠내려가고 있다. 여기엔 배도 없고 또 다리도 없어 건너갈 수가 없다. 내가 이제 저쪽 언덕에 볼 일이 있어 건너가고 싶은데 어떤 방편을 써야 안온하게 저쪽 언덕까지 건너갈 수 있을까?’
그는 다시 생각한다.
‘나는 이제 이쪽 언덕에서 풀과 나무를 주워 모아 묶어서 떼배를 만들어 그것을 타고 건너가자.’

그는 곧 언덕 가에서 풀과 나무를 주워 모아 묶어서 떼배를 만들고 그것을 타고 강을 건너 저쪽 언덕에 다다랐다. 이와 같이 아난아, 혹 어떤 비구는 염리(厭離)를 반연하고 염리를 의지하며 염리에 머물러 몸의 악행을 그친다. 그리하여 마음이 여읨[離]과 선정[定]에 들어감으로써 욕심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이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고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고 깨달은 뒤에는 거기에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서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어떻게 위로 올라가서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각과 관이 이미 쉬고 안이 고요하여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의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에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기쁨에 대한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께서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에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모든 색(色)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고 걸림이 있다는 생각을 멸하며 약간의 생각도 기억하지 않아서 한량없는 허공 세계인 이 무량공처(無量空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일체의 무량공처를 지나서 한량없는 식(識)인 무량식처(無量識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닫는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해서 그것이 흥하고 쇠하는 것을 관찰하여 깨달은 뒤에는 거기 머물러 반드시 번뇌가 다하게 된다. 비록 거기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다.

어떻게 위로 올라가 그치고 쉴 경계를 얻는가? 그는 일체의 무량식처를 지나고 무소유인 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성취하여 노닌다. 그가 만일 즐겁고 혹은 괴로우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것을 깨달으면 그는 이 깨달음이 무상(無常)한 것임을 관하고 흥하고 쇠함을 관하며 욕심이 없음을 관하고 멸함을 관하며 끊음을 관하고 평정을 관한다. 그는 이렇게 이 깨달음이 무상한 것임을 관하고 흥하고 쇠함을 관하여 욕심이 없음을 관하고 멸함을 관하며 끊음을 관하고 평정을 관한 뒤에 그는 곧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는 곧 두려워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곧 반열반을 얻는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파초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도끼를 가지고 그 파초를 베어 조각내기를 혹은 열 조각을 내기도 하고 혹은 백 조각을 내기도 한다고 하자. 열 조각을 내고 혹은 백 조각을 낸 뒤에 그 잎사귀 잎사귀를 다 헤쳐 보더라도 그 마디조차 보이지 않는데 하물며 그 심이겠느냐? 아난아, 이와 같이 비구가 만일 혹은 괴롭고 혹은 즐거우며 혹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깨달음이 있다면 그는 이 깨달음이 무상한 것임을 관하고 흥하고 쇠함을 관하며 욕심이 없음을 관하고 멸함을 관하며 끊음을 관하고 평정을 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이 깨달음이 무상한 것임을 관하고 흥하고 쇠함을 관하며 욕심이 없음을 관하고 멸함을 관하며 끊음을 관하고 평정을 관한 뒤에는 곧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는 곧 두려워하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으므로 인하여 곧 반열반을 얻는다. 그래서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아느니라.”

이에 존자 아난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합니다.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의지할 곳을 의지하고 의지할 곳을 세워 번뇌를 여읠 것을 말씀하시고 번뇌를 벗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비구들은 이른바 위없는 구경의 다함[究竟盡]을 빨리 얻지 못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난아, 그렇다. 아난아,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니라. 나는 모든 비구들을 위하여 의지할 곳을 의지하고 의지할 곳을 세워 번뇌를 여읠 것을 말했고 번뇌를 벗어날 것을 말하였다. 그러나 모든 비구들은 이른바 위없는 구경의 다함을 빨리 얻지 못한다. 왜냐 하면 사람에게는 우세하고 못함이 있기 때문이니, 사람에게 우세하고 못함이 있기 때문에 도를 닦는 데에 곧 정밀함과 거침이 있고 도를 닦는 데에 정밀함과 거침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 우세하고 못함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에게는 우세하고 못함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오하분결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326자이다.

206) 심예경(心穢經)5) 제5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마음속의 5예(穢)를 뽑아내지 못하고, 마음속의 5박(縛)을 풀지 못한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반드시 물러나는 법이라고 말한다. 어떤 것이 마음속의 5예를 뽑지 못하는 것인가? 혹 어떤 이는 세존을 의심하여 망설이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존을 의심하여 망설이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의 더러움을 뽑지 못한 것이라 하나니, 곧 세존(世尊)에 대해서 이니라. 이와 같이 법(法)과 계(戒)와 교(敎)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모든 범행자들이 세존의 칭찬을 받을 때에 다른 비구들이 이 범행자들을 나무라고 업신여기며 건드리고 침해하면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마음을 풀지 못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의 더러움을 뽑지 못한 것이라 하나니 곧 범행(梵行)에 대해서이니라.

어떤 것이 마음속의 5박을 풀지 못하는 것인가?혹 어떤 이는 그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 만일 그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燕坐:坐禪)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 못하며 머무르지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 못한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몸[身]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비구는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 만일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지 못하고 탐욕을 여의지 못하며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목마름을 여의지 못한다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것을 두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욕심[欲]에 대한 것이니라.

또 성인의 도리와 서로 맞고 부드럽고 연하여 의개(疑蓋)가 없는 말씀[說], 곧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ㆍ손해ㆍ모이지 않음ㆍ욕심이 적음ㆍ만족할 줄 앎ㆍ끊음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고요히 앉음ㆍ연기(緣起)에 대해 설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비구는 이 사문이 말하는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말씀[說]에 대한 것이니라.
또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여 희락질하고 교만을 부리며 공부하지 않는다. 만일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여 희락질하고 교만을 부리며 공부하지 않으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모임[聚會]에 대한 것이니라.

또 어떤 비구는 조금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물러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하지 않는다. 만일 조금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물러 다시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그 마음은 나아가지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지도 못하고 편안하지도 못하며 머무르지도 못하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의 결박을 풀지 못하는 것이라 하나니 곧 위로 올라감[昇進]에 대한 것이니라.
비구들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를 뽑지 못하고 그 마음속의 5박을 풀지 못한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반드시 물러나는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를 잘 뽑고 그 마음속의 5박을 잘 푼다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맑고 깨끗한 법이라 한다.

어떤 것이 그 마음속의 5예를 잘 뽑는 것인가? 혹 어떤 비구는 세존을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아 마음을 열고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하다. 만일 어떤 비구가 세존을 의심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아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편안하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속의 더러움을 잘 뽑는 것이라 하나니 세존(世尊)에 대한 것이니라. 이와 같이 법(法)과 계(戒)와 교(敎)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어떤 범행자가 세존의 칭찬을 받을 때 다른 비구들이 그 범행자를 나무라지 않고 업신여기지 않으며 건드리지 않고 침해하지 않고서 마음을 열고 마음이 풀리며 마음이 편안하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속의 더러움을 잘 뽑는 것이라 하나니, 곧 범행(梵行)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마음속의 5박을 푸는 것인가? 혹 어떤 비구는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읜다. 만일 몸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燕坐:坐禪)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첫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몸[身]에 대한 것이니라.
다시 어떤 비구는 욕심에 있어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며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읜다. 만일 욕심에 있어서 물듦을 여의고 탐욕을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목마름을 여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두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욕심[欲]에 대한 것이니라.

성인의 도리와 서로 맞고 부드럽고 연하여 의개가 없는 말씀[說], 곧 계ㆍ정ㆍ혜ㆍ해탈ㆍ해탈지견ㆍ손해ㆍ모이지 않음ㆍ욕심이 적음ㆍ만족할 줄 앎ㆍ끊음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고요히 앉음ㆍ연기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 때 그 비구는 이 사문이 말한 곳으로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세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말씀[說]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비구는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이지 않고 희락질하지도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공부한다. 만일 자주자주 속인들과 함께 모이지 않고 희락질하지도 않으며 교만하지도 않고 공부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네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모이지 않음[不聚會]에 대한 것이니라.

어떤 비구는 조그만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한다. 만일 조그만 소득이 있다 하여 그 중간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위로 올라가기를 구하면 그 마음은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하게 된다. 만일 그 마음이 나아가고 편안하며 머무르고 스스로 방편을 써서 끊는 연좌를 이해한다면 이것을 다섯 번째 마음속의 결박을 푸는 것이라 하나니 곧 위로 올라감[昇進]에 대한 것이니라.
만일 비구ㆍ비구니가 그 마음속의 5예(穢)를 잘 뽑고 또 그 마음속의 5박(縛)을 잘 풀면 이것을 비구ㆍ비구니의 맑고 깨끗한 법이라 하느니라.
비구들아, 그들은 이 10지(支)에 머무른 뒤에 다시 5법(法)을 닦는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욕심의 정[欲定]을 닦아 단여의족(斷如意足)을 성취하여 떠남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평정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가고, 정진의 정[精進定]ㆍ마음의 정[心定]ㆍ생각의 정[思惟定]을 닦아 단여의족을 성취하여 떠남ㆍ욕심이 없음ㆍ멸함ㆍ평정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으로 나아가며, 참고 견딤[堪任]이 그 다섯 번째이다. 그들이 이 참고 견딤 등의 열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고 스스로 그 기쁨을 누리는 경지를 성취한다면 반드시 알고 반드시 보고 반드시 바르게 다 깨달아 감로문에 이르러 열반에 가까이 머무르리니,‘이런 자들은 열반에 이르지 못할 이가 없다’고 나는 말한다. 마치 닭이 알을 열 개나 혹 열두 개를 낳아 때때로 품어주고 때때로 덥히며 때때로 보살피는 것과 같다. 어미 닭이 설령 게을러서 그 중에 혹 다른 닭이 부리로 쪼고 발로 밟아 부수더라도 거기서 스스로 안온하게 나오는 것이 있다면 그를 제일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가 이 참고 견딤 등의 열다섯 가지 법을 성취하여 스스로 그 기쁨을 누린다면 그는 반드시 알고 반드시 보고 반드시 바르게 다 깨달아 반드시 감로문에 이르러 열반에 가까이 머물리니,‘이런 자들은 열반에 이르지 못할 이가 없다’고 나는 말한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이 경의 이역본으로 당(唐)나라 때 현장(玄獎)이 한역한 『본사경(本事經)』이 있다.
2 아이라바제(阿夷羅婆提)는 팔리어로 Ajitavati이고 아시다벌저(阿恃多伐底), 또는 발제(跋提)로 음역하기도 하며, 또 무승(無勝)ㆍ유금(有金)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인도 5하(河)의 하나로서 중인도 구시나가라국에 있던 강 이름이다. 세존께서 이 강의 서쪽 언덕에서 입멸하셨다. 현장대사는 희련선하(熙連禪河)와 아이라바제하를 같은 강으로 보았다.
3 만동자(鬘童子, Mālukyāputta)는 사위성(舍衛城)사람으로 평민 출신이다. 바사닉왕(波斯匿王)의 재무관(財務官) 아들로서 장성하여 출가하였다. 그는 각처를 유행하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문(佛門)에 들어가 6신통을 얻었다. 『잡아함경』 제12권 290번째 경에서는 마라가구(摩羅迦舅)로 되어 있다.
4 팔리본에 sāra 즉 나무심으로 되어 있다. 문장 내용으로 보아 ‘목재’를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5 이 경의 참고 경문으로는 『증일아함』 제49권 「비상품(非常品)」의 네 번째 경이 있다.

중아함경 제57권

승가제바 한역

17. 포리다품 제3③
207) 전모경(箭毛經) 상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伽蘭哆園)에서 1,250명의 큰 비구들과 함께 여름 안거를 지내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 들어가 밥을 비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손과 발을 씻으시고 니사단을 어깨에 걸치고 이교도의 동산 공작림(孔雀林)으로 가셨다.

그 때 그 이교도의 동산 공작림에는 전모(箭毛)1)라는 이교도가 있었다. 그는 명성과 덕망이 있는 종주(宗主)로서 여러 사람의 스승이었고 또 큰 명예가 있어 대중들의 공경과 존중을 받으면서 5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대중 속에서 높고 큰 소리로 여러 가지 축생들의 이야기[畜生之論]2)를 시끄럽게 외쳐대고 있었다. 이른바 왕ㆍ도적ㆍ싸움ㆍ음식ㆍ의복ㆍ부인ㆍ처녀ㆍ음녀ㆍ세상ㆍ공야(空野)ㆍ바다ㆍ나라 백성들, 그는 이런 축생들의 논리를 전개하며 대중들과 함께 앉아 떠들고 있었다. 이교도 전모는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그 대중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잠자코 있으라. 저기 사문 구담이 오신다. 저 대중들은 침묵하는 대중들로서 늘 침묵을 좋아하고 침묵을 찬양한다. 그가 만일 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혹 여기로 올지도 모른다.”
이교도 전모는 대중들에게 침묵하게 하고 자기도 잠자코 있었다.

세존께서 이교도 전모가 있는 곳으로 가시자 전모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사문 구담께서는 오랜만에 여기 오셨습니다. 이 자리에 앉으소서.”
세존께서 곧 이교도 전모가 펴놓은 자리에 앉으시자 이교도 전모는 곧 세존께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우다이(優陀夷)여, 아까는 무슨 일을 이야기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이렇게 모여 앉아 있느냐?”

이교도 전모가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그 이야기는 우선 거론하지 마소서. 그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으셔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거듭 물으셨다.
“우다이여, 아까는 무슨 일을 이야기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이렇게 모여 앉아 있느냐?”

이교도 전모도 또한 똑같이 거듭해서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그 이야기는 우선 거론하지 마소서. 그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으셔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다시 말하였다.
“그러나 사문 구담께서 재삼 거론하시니 굳이 듣고자 하신다면 지금 곧 말씀드리겠습니다. 구담이시여, 우리는 구살라국(拘薩羅國)의 많은 범지들과 함께 구살라 학당에 모여 앉아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앙가국(鴦伽國)ㆍ마갈타국(摩竭陀國) 사람들에게는 크고 좋은 이익이 있다. 앙가국과 마갈타국 사람들은 크고 좋은 이익을 얻었다. 이런 큰 복밭들이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함께 지내고 있다.’
구담이시여, 그 복밭이란 곧 불란가섭(不蘭迦葉)3)을 말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구담이시여, 불란가섭은 이름과 덕망이 있는 종주로서 여러 사람들의 스승이며, 또 큰 명예가 있어 대중의 존경과 존중을 받으면서 5백 명의 이교도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은 이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식가리구사리자(摩息迦利瞿舍利子)4)ㆍ사야비라지자(娑若鞞羅遲子)5)ㆍ니건친자(尼揵親子)6)ㆍ파부가전(波復迦栴)7)ㆍ아이다계사검바리(阿夷哆雞舍劍婆利)8)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담이시여, 아이다계사검바리는 이름과 덕망이 있는 종주로서 여러 사람의 스승이며, 또 큰 명예가 있어 대중의 공경과 존중을 받으면서 5백 명의 이교도 제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도 이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있습니다.
구담이시여, 또 아까 우리는 사문 구담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문 구담은 이름과 덕망이 있는 종주로서 여러 사람들의 스승이시며 또 큰 명예가 있어 대중의 공경과 존경을 받으면서 큰 비구 1,250명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 분 또한 이 왕사성에서 여름 안거를 지내고 계신다.’
구담이시여, 우리들은 다시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제 이 모든 사문 범지들 중에 그 누가 제자들의 공경ㆍ존중ㆍ공양ㆍ섬김을 받는가? 혹 제자들에게서 법의 꾸짖음을 받거나, 또는 제자가 스승을 비난하여 〈이 분은 전연 옳지도 않고 당치도 않으며 비슷하지도 않다〉고 말하고는 그만 그를 버리고 떠난 일은 없는가?’
구담이시여, 우리는 또 이런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불란가섭은 제자들의 공경ㆍ존중ㆍ공양ㆍ섬김을 받지 못하고 제자들에게서 법의 꾸짖음을 받았다. 또 많은 제자들이 그를 비난하여 〈이 분은 옳지도 않고 당치도 않으며 비슷하지도 않다〉고 말한 뒤에는 곧 그를 버리고 떠났다.’

구담이시여, 옛날에 불란가섭은 자주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손을 들고 이렇게 크게 외쳤습니다.
‘너희들은 조용하라. 너희들에게 와서 일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일을 묻는다. 너희들은 이 일을 결단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결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그 중간에 다시 다른 일을 의논하며 스승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구담이시여, 우리는 또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불란가섭은 제자들의 공경ㆍ존중ㆍ공양ㆍ섬김을 받지 못하고 제자들에게서 법의 꾸짖음을 들었다. 또 많은 제자들이 그를 비난하여 〈이 분은 옳지도 않고 당치도 않으며 비슷하지도 않다〉고 말한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났다.’
마식가리구사리자ㆍ사야비라지자ㆍ니건친자ㆍ파부가전ㆍ아이다계사검바리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구담이시여, 저희들은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아이다계사검바리는 제자들의 공경ㆍ존중ㆍ공양ㆍ섬김을 받지 못하고 제자들에게서 법의 꾸짖음을 들었다. 또 많은 제자들이 그 스승을 비난하여 〈이 분은 옳지도 않고 당치도 않으며 비슷하지도 않다〉고 말한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났다.’
구담이시여, 옛날에 아이다계사검바리는 자주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손을 들고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너희들은 조용하라. 너희들에게 와서 일을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일을 묻는다. 너희들은 이 일을 결단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을 결단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은 그 중간에 다시 다른 일을 의논하며 스승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구담이시여, 우리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아이다계사검바리는 제자들의 공경ㆍ존중ㆍ공양ㆍ섬김을 받지 못하고 제자들에게서 법의 꾸짖음을 들었다. 또 많은 제자들이 그를 비난하여 〈이 분은 옳지도 않고 당치도 않으며 비슷하지도 않다〉고 말한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났다.’

그러나 구담이시여, 우리는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사문 구담은 제자들의 공경ㆍ존중ㆍ공양ㆍ섬김을 받고 제자들에게서 법의 꾸짖음을 듣지 않는다. 또 제자들이 스승을 비난하여 〈이 분은 옳지도 않고 당치도 않으며 비슷하지도 않다〉고 말한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난 일도 없다.’
구담이시여, 옛날에 사문 구담께서는 자주 대중들과 함께 계시면서 한량없는 백천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설법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어떤 사람이 코를 골면서 졸고 있었는데 다른 한 사람이 그를 보고 ‘코를 골면서 졸지 말라. 너는 세존께서 설하시는 감로(甘露)처럼 미묘한 법을 듣고 싶지 않은가?’라고 말하자 그 사람은 곧 잠자코 소리가 없었습니다. 구담이시여, 우리는 또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이 사문 구담은 제자들의 공경ㆍ존중ㆍ공양ㆍ섬김을 받고 제자들에게서 법의 꾸짖음을 듣지 않는다. 또한 제자들이 스승을 비난하여 〈이 분은 옳지도 않고 당치도 않으며 비슷하지도 않다〉고 말한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난 일도 없다.’”

세존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이교도 전모에게 물으셨다.
“우다이여, 내게 몇 가지 법이 있기에 제자들이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는지 너는 아느냐?”

이교도 전모가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구담에게는 다섯 가지 법(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사문 구담께서는 거친 옷으로도 만족할 줄 아시고 거친 옷으로써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십니다. 이처럼 사문 구담께서 거친 옷으로써 만족할 줄 아시고 거친 옷으로써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시는 것, 사문 구담에게는 이 첫 번째 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거친 음식으로써 만족할 줄 아시고 거친 음식으로써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십니다. 이처럼 사문 구담께서 거친 음식으로써 만족할 줄 아시고 거친 음식으로써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시는 것, 사문 구담에게는 이 두 번째 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적게 자시면서 적게 먹는 것을 찬양하십니다. 이처럼 사문 구담께서 적게 자시면서 적게 먹는 것을 찬양하시는 것, 사문 구담에게는 이 세 번째 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거친 평상으로써 만족할 줄 아시고 거친 평상으로써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십니다. 이처럼 사문 구담께서 거친 평상으로써 만족할 줄 아시고 거친 평상으로써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시는 것, 사문 구담에게는 이 네 번째 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또 사문 구담께서는 직접 좌선하시고 좌선하는 것을 찬양하십니다. 이처럼 사문 구담께서 직접 좌선하시고 좌선하는 것을 찬양하시는 것, 사문 구담에게는 이 다섯 번째 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나는 그 다섯 가지 법으로써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게 하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니라.
우다이여, 내가 가진 옷은 깨끗한 칼로 마름질한 것에 나쁜 빛깔로 물들인 것이다. 이와 같이 거룩한 옷에 나쁜 빛깔로 물들인 것이다. 우다이여, 그런데 혹 나의 어떤 제자들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이른바 내다버린 분소의(糞掃衣)를 입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존께서는 거친 옷으로써 만족할 줄 아시고 거친 옷으로써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신다.’
우다이여, 만일 나의 제자들이 거친 옷으로써 만족할 줄을 안다고 하여 나를 찬양했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공양하지도 받들어 섬기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서로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우다이여, 나는 때때로 겨가 섞이지 않고 갖가지 맛이 풍족한 익힌 쌀밥을 먹는다. 우다이여, 그런데 혹 나의 어떤 제자들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밥을 빌어먹거나 내버린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존께서는 거친 음식으로써 만족할 줄을 아시고 거친 음식으로써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신다.’
우다이여, 만일 나의 제자들이 거친 음식으로써 만족할 줄을 안다고 하여 나를 찬양했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공양하지도 받들어 섬기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서로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또 우다이여, 나는 비라(鞞羅)9) 한 개만큼의 밥을 먹고 혹은 그 반 개만큼의 밥을 먹는다. 우다이여, 그런데 혹 나의 어떤 제자들은 구타(拘拖)10) 하나 만큼의 밥을 먹고 혹은 그 반 개만큼의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존께서는 적게 자시면서 적게 먹는 것을 찬양하신다.’
우다이여, 만일 나의 제자들이 적게 먹는다고 하여 나를 찬양했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공양하지도 받들어 섬기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서로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또 우다이여, 나는 혹은 높다란 다락에서 지내고 혹은 누각[棚閣]에서 지내기도 한다. 우다이여, 그런데 혹 나의 어떤 제자들은 9개월이나 10개월 동안 겨우 하룻밤 정도 지붕이 있는 곳에서 자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존께서는 거친 평상에서 지내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시고 거친 평상에서 지내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을 찬양하신다.’
우다이여, 만일 나의 제자들이 거친 평상에서 지내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안다고 하여 나를 찬양했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공양하지도 받들어 섬기지도 않을 것이다. 또 서로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또 우다이여, 나는 항상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들 사이에서 시끄럽게 지낸다. 그런데 혹 나의 어떤 제자들은 청정한 법을 위해 반 달 만에 한번 대중 속에 들어오면서 또한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존께서는 직접 좌선하시면서 좌선을 찬양하신다.’
우다이여, 만일 나의 제자들이 내가 친히 좌선한다고 하여 나를 찬양했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지도 존중하지도 않고 공양하지도 받들어 섬기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서로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우다이여,내게 이 다섯 가지 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자들이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다이여, 내게는 다시 이런 다섯 가지 법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공경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공양하게 하고 받들어 섬기게 하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게 한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우다이여, 내 제자들은 이른바 내게 위없는 계율[無上戒]이 있다고 하여 나를 찬양한다.
‘세존께서는 계와 큰 계를 행하시는데 그 말씀하신 대로 행동하고 또한 그 행동하신 대로 말씀하신다.’
우다이여, 만일 내 제자들이 내게 위없는 계율이 있다고 하여 나를 찬양한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또 우다이여, 내 제자들은 이른바 내게 위없는 지혜[無上智]가 있다고 하여 나를 찬양한다.
‘세존께서는 지혜와 지극히 큰 지혜를 써서 만일 담론이 있어 상대하는 사람이 오면 반드시 그를 항복받는다. 이른바 그 말씀은 가히 말로 할 수 없는 바른 법과 율에 대한 것이고 가히 말로 할 수 없는 당신의 말씀에 대한 것이다.’
우다이여, 만일 내 제자들이 내게 위없는 지혜가 있다고 하여 나를 찬양한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다이여, 내 제자들은 이른바 내게 위없는 지견[無上知見]이 있다고 하여 나를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세존께서는 두루 아시어 모르시는 것이 없고 두루 보시어 못 보는 것이 없다. 그는 제자를 위해 설법하시되 인(因)이 있어서 인이 없는 것이 없고 연(緣)이 있어서 연이 없는 것이 없으며 모두 답하시어 답하시지 못하는 것이 없고 모두 여의어서 여의시지 못한 것이 없다.’
우다이여, 만일 내 제자들이 내게 위없는 지견이 있다고 하여 나를 찬양한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을 것이니라.
우다이여, 내 제자들이 이른바 애욕의 화살을 싫어하여 내게 와서 ‘괴로움이란 어떤 것이며 괴로움의 발생은 무엇이며 괴로움의 소멸은 어떤 것이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을 때 나는 곧 ‘괴로움이란 이런 것이요 괴로움의 발생은 이런 것이며 괴로움의 소멸은 이런 것이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이런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우다이여, 만일 내 제자들이 내게 와서 물을 때에 내가 그들의 뜻에 맞게 대답하여 그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다이여, 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혹은 과거를 아는 지혜의 신통을 증득하여 환히 통달한 것[宿命智通作證明達]을 설명하고, 혹은 번뇌가 다한 지혜의 신통을 증득하여 환히 통달한 것[漏盡智通作證明達]을 설명한다. 우다이여, 만일 내 제자들이 이 바른 법(法)과 율(律)에서 가르침을 받고 제도를 얻고 저쪽 언덕에 이르게 되어 의심도 없고 의혹도 없으며 이 착한 법에 대하여 망설임이 없으면 그들은 이 때문에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을 것이니라.
우다이여, 이것을 내게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나를 공경하게 하고 존중하게 하며 공양하게 하고 받들어 섬기게 하며 언제나 따르고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 때 이교도[異學] 전모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십니다. 묘한 일을 잘 말씀하시어 제 몸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마치 감로(甘露)와 같습니다. 구담이시여, 마치 큰 비가 내려 이 땅의 높고 낮은 곳이 두루 젖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처럼 사문 구담께서는 저희들을 위해 묘한 일을 잘 말씀해 주시어 저희들의 몸을 감로처럼 윤택하게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이해하였습니다. 선서시여, 저는 이미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스스로 귀의합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저를 우바새로 받아 주소서.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이교도 전모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전모경 상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807자이다.

208) 전모경(箭毛經) 제7하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밤이 지나고 이른 아침이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왕사성에 들어가 밥을 비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손과 발을 씻으시고 니사단을 어깨에 걸치고 이교도[異學]의 동산 공작림(孔雀林)으로 가셨다.

그 때 그 이교도의 동산 공작림에는 전모(箭毛)라는 이교도가 있었다. 그는 명성과 덕망이 있는 종주(宗主)로서 여러 사람의 스승이었고 또 큰 명예가 있어 대중들의 공경과 존중을 받으면서 5백 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대중 속에서 우렁차고 큰 소리로 여러 가지 축생들의 이야기를 하며 시끄럽게 외쳐대고 있었다. 이른바 왕ㆍ도적ㆍ싸움ㆍ음식ㆍ의복ㆍ부인ㆍ처녀ㆍ음녀ㆍ세상ㆍ빈 들판ㆍ바다ㆍ나라 백성들, 그는 이런 축생들의 논리를 전개하며 대중들과 함께 앉아 떠들고 있었다. 이교도 전모는 멀리서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그 대중들에게 명령하였다.
“너희들은 잠자코 있으라. 저기 사문 구담이 오신다. 저 대중들은 침묵하는 대중들로서 늘 침묵을 좋아하고 침묵을 찬양한다. 그가 만일 우리가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혹 여기로 올지도 모른다.”
이교도 전모는 대중에게 침묵하게 하고 자기도 잠자코 있었다.

세존께서 이교도 전모가 있는 곳으로 가시자 전모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 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잘 오셨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사문 구담께서는 오랜만에 여기 오셨습니다. 이 자리에 앉으소서.”
세존께서 곧 이교도 전모가 펴놓은 자리에 앉으시자 이교도 전모는 곧 세존께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우다이(優陀夷)여, 아까는 무슨 일을 이야기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이렇게 모여 앉아 있느냐?”

이교도 전모가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그 이야기는 우선 거론하지 마소서. 그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으셔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거듭 물으셨다.
“우다이여, 아까는 무슨 일을 이야기하였으며, 무슨 일로 여기 이렇게 모여 앉아 있느냐?”

이교도 전모도 또한 똑같이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그 이야기는 우선 거론하지 마소서. 그 이야기는 재미가 없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으셔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다시 말하였다.
“사문 구담께서 재삼 거론하시니 굳이 듣고자 하신다면 지금 곧 말씀드리겠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묘한 헤아림이 있고 깊은 생각이 있어 묘한 헤아림 자리에 머무르고 깊은 생각 자리에 머물며 지혜가 있고 변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누가 ‘나는 진실로 일체를 아는 지혜가 있어서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므로 모르는 것이 없고 못 보는 것이 없다’고 말하면 저는 그에게 가서 어떤 일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이냐?’고 생각했습니다.”

세존께서는 물으셨다.
“우다이여, 너는 묘한 헤아림이 있고 깊은 생각이 있어 묘한 헤아림 자리에 머무르고 깊은 생각 자리에 머물며 지혜가 있고 변재가 있다고 하였다. 누군가 ‘나는 진실로 일체를 아는 지혜가 있어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므로 모르는 것이 없고 못 보는 것이 없다’고 말할 때 네가 그에게 가서 어떤 일을 물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그가 누구인가?”

이교도 전모가 대답했다.
“구담이시여, 그는 곧 불란가섭(不蘭迦葉)입니다. 왜냐 하면 구담이시여, 불란가섭은 스스로 ‘나는 진실로 일체를 아는 지혜가 있어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므로 모르는 것이 없고 못 보는 것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묘한 헤아림이 있고 깊은 생각이 있어 묘한 헤아림 자리에 머무르고 깊은 생각 자리에 머물며 지혜가 있고 변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가서 어떤 일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래서 저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하는 사람이냐?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마식가리구사리자(摩息迦利瞿舍利子)ㆍ사야비라지자(娑若鞞羅遲子)ㆍ니건친자(尼揵親子)ㆍ파부가전(波復迦旃)ㆍ아이다계사검바리(阿夷哆雞舍劒婆利)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구담이시여, 아이다계사검바리는 스스로 ‘나는 일체를 아는 지혜가 있어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므로 모르는 것이 없고 못 보는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묘한 헤아림이 있고 깊은 생각이 있어 묘한 헤아림 자리에 머무르고 깊은 생각 자리에 머물며 지혜가 있고 변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가서 어떤 일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래서 저는 ‘이들은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이냐?’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내가 사문 구담을 찾아가 내 과거의 일을 물으면 사문 구담은 반드시 내 과거의 일을 대답해 주실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내가 사문 구담을 찾아가 내 미래의 일을 물으면 사문 구담은 반드시 내 미래의 일을 대답해 주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만일 내가 사문 구담에게 묻고 싶은 것을 다 물어도 사문 구담은 또한 반드시 내가 물은 대로 대답해 주실 것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그만두라. 그만두라. 너는 오랜 세월 동안 다른 소견ㆍ다른 인내ㆍ다른 즐거움ㆍ다른 욕심ㆍ다른 뜻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뜻을 다 알지 못한다. 우다이여, 어떤 내 제자는 어떤 인(因)과 어떤 연(緣)으로 한량없는 과거 먼 옛날의 삶을 다 기억한다.
말하자면 1생(生)ㆍ2생ㆍ백생ㆍ천생 동안과 성겁(成劫)ㆍ패겁(敗劫)과 한량없는 성겁ㆍ패겁 동안의 일을 기억한다. 중생들의 이름은 무엇이었다는 것과 나는 일찍 저곳에 태어나 어떠한 성ㆍ어떠한 이름ㆍ어떠한 신분으로서 어떠한 음식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는가에 대한 것과 얼마큼 오래 살고 얼마큼 오래 머무르다가 어떻게 목숨을 마쳤는지를 죄다 기억한다. 또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에서 죽어 여기에 난 것과 내가 여기에 태어나서는 어떠한 성ㆍ어떠한 이름ㆍ어떠한 신분으로 어떠한 음식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는가에 대한 것과 얼마큼 오래 살고 얼마큼 오래 머무르다가 어떻게 목숨을 마쳤는가를 다 기억한다. 그가 내게 와서 과거의 일을 물으면 나는 그에게 과거의 일을 대답해 주고 나도 또한 그에게 가서 과거의 일을 물으면 그도 또한 내게 과거의 일을 대답해 준다. 내가 묻고 싶은 대로 그에게 물으면 그도 또한 내가 물은 대로 대답해 주느니라.

우다이여, 어떤 내 제자는 사람 눈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天眼)으로써 이 중생들의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을 보며, 그 중생들이 지은 바 업에 따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오고 가는 것을 사실 그대로 본다. 곧 ‘만일 그 중생들이 몸으로 짓는 나쁜 행을 성취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모함해 비방하고 사특한 소견으로써 사특한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그것을 인연하여 그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만일 그 중생들이 몸으로 짓는 묘한 행을 성취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모함해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으로써 바른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그것을 인연하여 그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서 하늘에 나게 될 것이다’라고 본다. 그가 내게 와서 미래의 일을 물으면 나는 그에게 미래의 일을 대답해 주고 나도 또한 그에게 가서 미래의 일을 물으면 그도 또한 내게 미래의 일을 대답해 준다. 내가 묻고 싶은 대로 그에게 물으면 그도 또한 내가 물은 대로 대답해 주느니라.”

이교도 전모가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만일 사문 구담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갈수록 모르겠고 저는 갈수록 볼 수 없으며 점점 더 어리석어져서 결국엔 어리석음에 떨어지게 될 겁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다이여, 그만 두라. 그만 두라. 너는 오랜 세월 동안 다른 소견ㆍ다른 인내ㆍ다른 즐거움ㆍ다른 욕심ㆍ다른 뜻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뜻을 다 알지 못한다. 우다이여, 어떤 내 제자는 어떤 인과 어떤 연으로 한량없는 과거 먼 옛날의 삶을 다 기억한다. 말하자면 1생ㆍ2생ㆍ백생ㆍ천생 동안과 성겁ㆍ패겁 동안과 한량없는 성겁ㆍ패겁 동안의 일을 기억한다. 중생들의 이름은 무엇이라는 것과 나는 일찍 저곳에 태어나 어떠한 성ㆍ어떠한 이름ㆍ어떠한 신분으로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는가에 대한 것과 얼마큼 오래 살고 얼마큼 오래 머무르다가 어떻게 목숨을 마쳤는지를 죄다 기억한다. 여기에서 죽어 저기에 나고 저기에서 죽어 여기에 난 것과 내가 여기에 태어나서는 어떠한 성ㆍ어떠한 이름ㆍ어떠한 신분으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았는가에 대해서와 얼마큼 오래 살고 얼마큼 오래 머무르다가 어떻게 목숨을 마쳤는가를 다 기억한다. 그가 내게 와서 과거의 일을 물으면 나는 그에게 과거의 일을 대답해 주고 나도 또한 그에게 가서 과거의 일을 물으면 그도 또한 내게 과거의 일을 대답해 준다. 내가 묻고 싶은 대로 그에게 물으면 그도 또한 내가 물은 대로 대답해 주느니라.

또 우다이여, 어떤 내 제자는 사람 눈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으로써 이 중생들의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을 보며 그 중생들이 지은 바 업에 따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오고 가는 것을 사실 그대로 본다. 곧 〈만일 그 중생들이 몸으로 짓는 나쁜 행을 성취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모함해 비방하고 사특한 소견으로써 사특한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그것을 인연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나쁜 곳으로 가서 지옥에 날 것이다. 만일 그 중생들이 몸으로 짓는 묘한 행을 성취하고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을 성취하여 성인을 모함해 비방하지 않고 바른 소견으로써 바른 소견의 업을 성취하면 그는 그것을 인연하여 그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좋은 곳으로 올라가서 하늘에 나게 될 것이다〉라고 본다. 그가 내게 와서 미래의 일을 물으면 나는 그에게 미래의 일을 대답해 주고 나도 또한 그에게 가서 미래의 일을 물으면 그도 또한 내게 미래의 일을 대답해 준다. 내가 묻고 싶은 대로 그에게 물으면 그도 또한 내가 물은 대로 대답해 주느니라.’

구담이시여, 저는 생에 있어서 이전에 한 일과 이전에 얻은 일도 오히려 기억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어떻게 어떤 인(因)과 어떤 연(緣)으로 한량없는 먼 옛날에 살았던 일을 다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구담이시여, 저는 오히려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는 귀신도 보지 못하거늘 어떻게 사람 눈보다 뛰어난 청정한 천안으로써 이 중생들의 죽는 때와 나는 때, 좋은 빛깔과 나쁜 빛깔, 묘하고 묘하지 않은 것을 보며, 그 중생들이 지은 바 업에 따라 좋은 곳과 좋지 않은 곳으로 오고 가는 것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겠습니까? 구담이시여, 저는 ‘만일 사문 구담께서 나에게 스승에게서 배운 법을 물으신다면 나는 혹 그에게 만족시킬만한 대답을 할 수도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우다이여, 너는 스승에게서 어떤 법을 배웠느냐?”

“구담이시여, 그가 말한 빛깔[色]은 다른 어떤 빛깔보다 낫습니다. 그러므로 그 빛깔은 가장 훌륭하며 그 빛깔은 최상(最上)입니다.”

“우다이여, 그것은 어떤 빛깔인가?”

“구담이시여, 그 빛깔 이외에 다시 가장 제일이요 가장 묘하며 가장 훌륭하다 할 빛깔은 없습니다. 따라서 그 빛깔은 가장 훌륭하고 최상입니다.”

“우다이여, 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 어떤 사람과 같다.
‘만일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면 나는 그녀를 얻고 싶다.’
그럴 때에 혹 어떤 사람은 그에게 묻는다.
‘그대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어떠한 성ㆍ어떠한 이름ㆍ어떠한 신분인 줄 아는가? 또 키는 큰 가, 작은가? 살결은 거친가, 고운가? 피부는 흰가, 검은가, 혹은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가? 찰제리의 여자인가? 혹은 바라문ㆍ거사ㆍ공사(工師)의 여자인가? 또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의 어느 곳에 있는지 아는가?’
그는 대답한다.
‘모른다.’

다시 그에게 묻는다.
‘그대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어떠한 성ㆍ어떠한 이름ㆍ어떠한 신분이고, 키는 큰지 작은지, 살결은 거친지 부드러운지, 피부는 흰지 검은지 혹은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지, 찰제리 여자인지 혹은 바라문ㆍ거사ㆍ공사의 여자인지, 또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의 어느 곳에 있는 여자인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으면서 ‘나는 그 여자를 얻고 싶다’고 말하는가?’
이와 같이 우다이여, 너는 ‘그가 말한 그 빛깔은 다른 빛깔보다 낫다. 그러므로 그 빛깔은 가장 훌륭하고 그 빛깔은 최상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너에게 그 빛깔에 대해 물으면 너는 그 빛깔을 모르고 있다.”

이교도 전모가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마치 지극히 묘한 자마(紫磨)색의 금정(金精)을 금 다루는 기술자가 잘 갈고 닦아 흰 비단을 깔고 햇볕에 놓아두면 그 빛이 지극히 아름답고 그 광명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구담이시여, 저는 ‘그 빛깔은 다른 빛깔보다 낫다. 그러므로 그 빛깔은 가장 훌륭하고 그 빛깔은 최상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나는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아는 대로 대답하라. 우다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자마색의 금정을 흰 비단을 깔고 햇볕에 놓아두었을 때 지극히 아름답고 빛나는 그 광명과 캄캄한 밤 빛나는 반딧불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구담이시여, 반딧불 광명이 자마 금정의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다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캄캄한 밤에 빛나는 반딧불의 광명과 캄캄한 밤에 빛나는 기름 등불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구담이시여, 기름 등불의 광명이 반딧불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다이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캄캄한 밤에 빛나는 기름 등불의 광명과 캄캄한 밤에 큰 장작더미를 쌓고 태웠을 때 빛나는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구담이시여, 큰 장작더미를 태우는 그 광명이 기름 등불 광명보다 더 낫고 더 훌륭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다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캄캄한 밤에 큰 장작더미를 쌓고 태웠을 때 빛나는 광명과 맑게 갠 이른 아침 서방에 빛나는 샛별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구담이시여, 샛별 광명이 큰 장작더미를 태우는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 하겠습니다.”

“우다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맑게 갠 이른 아침 빛나는 샛별의 광명과 맑게 갠 한 밤중 빛나는 달궁전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구담이시여, 달궁전의 광명이 샛별의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다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맑게 갠 한 밤중 빛나는 달궁전의 광명과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날 정오에 빛나는 해궁전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구담이시여, 햇빛의 광명이 달빛 광명보다 더 낫고 우수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다이여, 다시 많은 하늘이 있다. 저 해와 달이 비록 큰 여의족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다고 하지만 그 광명은 원래 저 모든 하늘의 광명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나는 옛날 저 모든 하늘과 함께 모여 저들과 의논하였는데 내 말이 저 하늘들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빛깔은 다른 빛깔보다 낫다. 그 빛깔은 가장 우수하고, 그 빛깔은 최상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다이여, 그런데 너는 반딧불 광명보다도 더 더럽고 더 추한 것으로써 그 빛깔을 다른 빛깔보다 낫다고 하고 그 빛깔이 가장 우수하다 하며 그 빛깔이 최상이라고 말한다. 또 그것에 대해 물으면 모른다고 하는구나.”

이교도 전모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 선서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

“우다이여, 너는 무슨 생각으로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 선서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라고 말하는가?”

“구담이시여, 저는 ‘그 빛깔은 다른 빛깔보다 낫다. 그 빛깔은 가장 우수하며 그 빛깔은 최상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문 구담께서는 저를 잘 단속하시고 잘 가르치고 잘 꾸짖으시어 저의 허망한 생각들을 없애주셨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래서 저는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 선서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교도 전모가 다시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후세에는 한결같은 즐거움이 있고 그것을 완전히 현세에서 증득하는 길의 자취도 있습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우다이여, 무엇이 후세의 한결같은 즐거움이고 그것을 완전히 현세에서 증득하는 길의 자취인가?”

“구담이시여, 혹 어떤 사람은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고 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 내지 사특한 소견을 여의고 바른 소견을 얻습니다. 구담이시여, 이것을 후세의 한결같은 즐거움이라 하고 이것을 현세에서 완전히 증득하는 길의 자취라고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아는 대로 대답하라. 우다이여,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살생을 여의고 살생을 끊으면 그는 한결같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혹은 괴로움이 섞이겠는가?”

“구담이시여, 거기에는 괴로움이 섞일 것입니다.”

“우다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도둑질과 사음 거짓말 내지 사특한 소견을 여의고 바른 소견을 얻으면 그는 한결같이 즐겁기만 하겠는가? 혹은 괴로움이 섞이겠는가?”

“구담이시여, 거기에는 괴로움이 섞일 것입니다.”

“우다이여, 그렇다면 그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인 것을 현세에서 증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구담이시여, 그렇다면 그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인 것을 현세에서 증득하는 것입니다.”

이교도 전모가 다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 선서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

“우다이여, 너는 무슨 생각으로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라고 말하는가?”

“구담이시여, 저는 아까 ‘후세에는 한결같은 즐거움이 있고, 그것을 완전히 현세에서 증득하는 길의 자취도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문 구담께서는 저를 잘 단속하시고 잘 가르치고 잘 꾸짖으시어 저의 허망한 생각들을 없애주셨습니다. 구담이시여, 그래서 저는 ‘세존이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 선서시여, 저는 그 말을 후회합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세상에는 한결같은 즐거움이 있고 그것을 완전히 현세에서 증득하는 길의 자취도 있느니라.”

이교도 전모는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무엇이 세상의 한결같은 즐거움입니까? 그리고 무엇이 그것을 완전히 현세에서 증득하는 길의 자취입니까?”

“우다이여, 만일 때로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호칭한다. 그는 5개(蓋)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욕심을 끊고 착하지 않은 나쁜 법을 떠나 각(覺)과 관(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저 하늘과 같은 계와 마음과 소견은 함께하지 못한다. 다시 그는 각과 관을 이미 그치고 안으로 고요히 한 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定]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저 하늘과 같은 계(戒)와 마음[心]과 소견[見]은 함께하지 못한다. 다시 그는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이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捨]ㆍ기억[念]ㆍ즐거움에 머묾[樂住]ㆍ공(空)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러나 저 하늘과 같은 계와 마음과 소견은 함께하지 못한다. 우다이여, 이것을 한결같이 즐거운 세상이라 하느니라.”

“구담이시여, 세상의 한결같은 즐거움은 이것뿐입니까?”

“세상의 한결같은 즐거움은 그것만이 아니다. 우다이여, 현세에서 그것을 완전히 증득하는 또 다른 길의 자취가 있다.”

“구담이시여, 다시 어떤 것이 현세에서 그것을 완전히 증득하는 길의 자취입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우다이여, 비구는 욕심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악법을 떠나 각과 관이 있고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저 하늘과 같은 계와 마음과 소견을 함께하게 되느니라. 그는 다시 각과 관을 이미 그치고 안으로 고요히 한 마음이 되어 각과 관이 없고 선정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저 하늘과 같은 계와 마음과 소견을 함께하게 되느니라. 그는 다시 기쁨의 욕심을 여의고 평정하여 구함 없이 노닐며 바른 생각과 바른 지혜로 몸에 즐거움을 깨닫는다. 이른바 성인이 말씀하신 성인의 평정ㆍ기억ㆍ즐거움에 머묾ㆍ공이 있는 제3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그리고 저 하늘과 같은 계와 마음과 소견을 함께하게 되느니라. 우다이여, 이것을 현세에서 완전히 증득하는 한 길의 자취라 하느니라.”

이교도 전모가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사문 구담의 제자들은 이 세상의 한결같은 즐거움과 한 길의 자취를 현세에서 완전히 증득하기 위하여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배우는 것입니까?”

“우다이여, 내 제자들은 이 세상의 한결같은 즐거움과 또한 한 길의 자취를 현세에서 완전히 증득하기 위해서 나를 따라 범행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우다이여, 그보다 더 낫고 더 묘하며 더 훌륭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내 제자들은 나를 따라 범행을 배우는 것이니라.”

이 때 그 대중들은 높고 큰 소리로 ‘저 가장 제일이요 가장 묘하며 가장 훌륭한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사문 구담의 제자들은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배운다’고 외쳐댔다.

이에 이교도 전모는 대중들에게 조용하라고 명령한 뒤에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가장 제일이요 가장 묘하며 가장 훌륭한 어떤 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사문 구담의 제자들은 사문 구담을 따라 범행을 배웁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우다이여, 비구는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는데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닌다. 우다이여, 이것이 가장 제일이요 묘하며 가장 훌륭한 것으로 이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내 제자들이 나를 따라 범행을 배우는 것이니라.”

이에 이교도 전모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려고 하였다. 이 때 이교의 범행을 닦는 이교도 전모의 모든 제자들이 이교도 전모에게 아뢰었다.
“존자시여, 지금 마땅히 스승이 되어야 할 때인데 사문 구담의 제자가 되려 하십니까? 존자께서는 스승이 될 때이니 사문 구담의 제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이교도 전모의 제자로서 이교의 범행을 배우던 제자들이 이교도 전모를 막았지만 전모는 세존을 따라 범행을 배웠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이교도 전모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전모경 하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830자이다.

209) 비마나수경(鞞摩那修經)11) 제8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이교도 비마나수(鞞摩那修)는 오후에 천천히 걸어서 부처님 계신 곳에 나아가 문안드리고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가장 훌륭한 빛깔입니다. 가장 우수한 빛깔입니다. 구담이시여, 가장 우수한 빛깔입니다.”

세존께서는 물으셨다.
“가전(迦旃)12)이여, 어떤 빛깔인가?”

이교도 비마나수는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그 빛깔[色]보다 더 낫고 더 묘하며 더 우수한 빛깔은 없습니다. 구담이시여, 그 빛깔이 가장 우수하고 최상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전이여, 너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어떤 사람과 같다.
‘만일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있다면 나는 그 여자를 얻고 싶다.’
다시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는다.
‘그대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여자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가를 아는가? 또한 키가 큰지 작은지, 살결이 거친지 고운지, 피부가 흰지 검은지, 혹은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지 아는가? 그녀는 찰제리 여자인가? 혹은 바라문ㆍ거사ㆍ공사(工師)의 여자인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 어느 쪽에 사는지 아는가?’
그는 ‘나는 모른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다시 그에게 묻는다.
‘그대는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여자가 성은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지도 모르고 또 키가 큰지 작은지 살결이 거친지 고운지 피부가 흰지 검은지 혹은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은지 찰제리 여자인지, 혹은 바라문ㆍ거사ㆍ공사의 여자인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의 어느 쪽에 사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면서 〈나는 그 여자를 얻고 싶다〉고 말하는가?’
이와 같이 가전이여, 네가 ‘그것은 묘한 빛깔이요 가장 묘한 빛깔이다. 그 빛깔은 가장 우수하고 그 빛깔은 최상이다’라고 말하기에 너에게 그 빛깔에 대해 물었는데 너는 알지 못하는구나.”

이에 이교도 비마나수는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그것은 마치 지극히 묘한 자마(紫磨)색의 금정(金精)과 같습니다. 금 다루는 기술자가 그것을 잘 갈고 잘 다루어 깨끗하게 한 뒤에 흰 비단을 깔고 햇볕에 놓아두면 그 빛이 지극히 묘하고 그 광명은 찬란하게 빛납니다. 구담이시여, 그래서 나는 ‘그것은 묘한 빛깔이다. 가장 묘한 빛깔이다. 그 빛깔이 가장 우수하고 그 빛깔이 최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전이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아는 대로 대답하라. 가전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흰 비단을 깔고 자마 금정을 햇볕에 놓아두었을 때 지극히 묘하게 빛나는 그 광명과 캄캄한 밤에 반짝이는 반딧불의 광명 중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이교도 비마나수는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반딧불 광명이 자마 금정의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가전이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캄캄한 밤에 빛나는 반딧불의 광명과 캄캄한 밤에 빛나는 기름 등불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구담이시여, 기름 등불의 광명이 반딧불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전이여,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캄캄한 밤에 빛나는 기름 등불의 그 광명과 캄캄한 밤에 큰 장작더미를 태웠을 때 빛나는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느냐?”

“구담이시여, 큰 장작더미를 태우는 그 광명이 기름 등불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전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큰 장작더미를 쌓고 태웠을 때 빛나는 광명과 맑게 갠 이른 새벽에 반짝이는 샛별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가?”

“구담이시여, 샛별의 광명이 큰 장작더미를 태우는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전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맑은 날 이른 새벽에 반짝이는 샛별의 광명과 맑은 날 한밤에 빛나는 달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가?”

“구담이시여, 달의 광명이 샛별의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전이여, 네 생각은 어떠하냐? 맑은 날 한밤에 빛나는 달의 광명과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날 대낮에 빛나는 태양의 광명 중에 어느 광명이 더 낫고 더 우수하다고 생각하는가?”

“구담이시여, 햇빛의 광명이 달빛의 광명보다 더 낫고 더 우세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가전이여, 다시 많은 하늘이 있다. 이제 이 해와 달이 비록 큰 여의족(如意足)이 있고 큰 위덕이 있으며 큰 복이 있고 큰 위신이 있다고 하지만 그 광명은 원래 저 모든 하늘의 광명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나는 옛날 모든 하늘들과 함께 모여 저들과 의논하였는데 내 말이 저 하늘들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묘한 빛깔은 가장 묘한 빛깔이다. 그 빛깔이 가장 우수하고 그 빛깔이 제일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가전이여, 그런데 너는 반딧불 광명보다도 더 더럽고 더 추한 것을 가지고 ‘그 묘한 빛깔은 가장 묘한 빛깔이다. 그 빛깔이 가장 우수하고, 그 빛깔이 제일이다’라고 말하면서, 또 그것에 대해 물으면 모른다고 하는구나.”
이에 이교도 비마나수는 세존에게 직접 꾸지람을 들은 뒤에 마음에 근심이 생겨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 있으면서 할 말을 잃고 무언가 살피는 듯하였다.

이에 세존께서 직접 나무라신 뒤에 다시 기쁘게 하려고 곧 말씀하셨다.
“가전이여, 기뻐할 만한 것으로서 마음으로 생각하고 욕심과 어울려 즐거워하는 5욕의 공덕(功德)이 있으니, 곧 눈으로 빛깔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으며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며 몸으로 촉감을 느끼는 것이다. 가전이여, 빛깔[色]에는 사랑스러운 것도 있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도 있다. 혹 어떤 사람은 그 빛깔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맞으며 마음에 즐겁고 마음에 흡족하며 마음에 차면 그는 다른 빛깔은 아무리 좋고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원하지 않고 구하지 않으며 ‘이 빛깔만이 가장 우수하다’ 하고 제일이라고 한다. 가전이여, 이와 같이 소리ㆍ냄새ㆍ맛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가전이여, 촉감에도 혹은 사랑스러운 것이 있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있다. 혹 어떤 사람은 그 촉감이 마음에 들고 마음에 맞으며 마음에 즐겁고 마음에 흡족하며 마음에 차면 그는 다른 촉감은 아무리 좋고 아무리 우수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며 원하지 않고 구하지 않으며 ‘이 촉감만이 가장 우수하다’ 하고 제일이라고 하느니라.”

이에 이교도 비마나수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합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저를 위해 한량없는 방편으로 욕락을 말씀하시고 욕락이 제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구담이시여, 마치 풀에 불을 붙여 나무에 불을 붙이고 나무에 불을 붙여 풀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사문 구담께서는 저를 위해 한량없는 방편으로 욕락을 말씀하시고 욕락이 제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그만두라. 가전이여, 너는 오랜 세월 동안 다른 소견ㆍ다른 인내ㆍ다른 즐거움ㆍ다른 욕심ㆍ다른 생각을 가졌었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뜻을 다 알지 못한다. 가전이여, 이른바 내 제자들은 초저녁에서 새벽까지 언제나 잠자지 않고 바른 선정[正定]과 바른 뜻[正意]으로 도품을 닦아 익혀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 그들이라야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아느니라.”

이에 이교도 비마나수는 부처님에 대하여 분한 마음이 생겨 미워하고 언짢게 생각하며 세존을 비방하고 세존을 떨어뜨리고자 하였다. 그래서 세존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떤 사문 범지는 세상의 처음도 알지 못하고 세상의 끝도 알지 못하며 다함이 없는 생사도 알지 못하면서 ‘사리(事理)에 대한 지극한 지혜를 얻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고 말합니다. 구담이시여, 나는 그 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이 사문 범지는 세상의 처음도 알지 못하고 세상의 끝도 알지 못하며 다함이 없는 생사도 알지 못하면서 〈사리에 대한 지극한 지혜를 얻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고 말하는가?’”

그러자 세존께서는 곧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이교도 비마나수가 내게 분한 마음을 품고 나를 미워하고 언짢게 생각하며 나를 비방하고 나를 떨어뜨리려고 하는구나. 그래서 나를 비방하고 나를 떨어뜨리려고 이렇게 말하는구나.
〈구담이시여, 어떤 사문 범지는 세상의 처음도 알지 못하고 세상의 끝도 알지 못하며 다함이 없는 생사도 알지 못하면서 사리에 대한 지극한 지혜를 얻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고 말합니다. 구담이시여, 나는 어떻게 이 사문 범지는 세상의 처음도 알지 못하고 세상의 끝도 알지 못하며 다함이 없는 생사도 알지 못하면서 사리에 대한 지극한 지혜를 얻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고 말하는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존께서 그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가전이여, 만일 어떤 사문 범지가 세상의 처음도 알지 못하고 세상의 끝도 알지 못하며, 다함이 없는 생사도 알지 못하면서 ‘사리에 대한 지극한 지혜를 얻어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안다’고 말했다면 그는 응당 ‘세상의 처음도 놔두고 세상의 끝도 놔두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가전이여 나도 또한 ‘세상의 처음도 놔두고 세상의 끝도 놔두라’고 말하리라. 설사 1생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찾아오는 제자 비구들이 아첨하지도 않고 속이지도 않으며 소박하고 정직하다면 나는 그들을 교화한다. 만일 그들이 내 교화를 따라 그대로 행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바른 법을 알게 될 것이다.

가전이여, 마치 어린애가 나이 어리고 부드럽고 연해서 반듯이 누워 있을 때 그 부모가 아이의 손발을 묶어 놓는 것과 같다. 그 뒤 그 어린애가 자라 모든 감관[根]이 성취되었을 때에 그 부모가 그의 손발을 풀어 놓으면 그는 다만 그 결박이 풀린 때만 기억하고 결박되었던 때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가전이여, 그래서 나는 ‘세상의 처음도 놔두고 세상의 끝도 놔두라’고 말한다. 설령 단 1생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찾아오는 제자 비구들이 아첨하지도 않고 속이지도 않으며 소박하고 정직하다면 나는 그들을 교화한다. 만일 그들이 내 교화를 따라 그대로 행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바른 법을 알게 될 것이다.

가전이여, 비유하면 기름과 심지로 인하여 등불을 켜는 것과 같다. 사람이 기름을 대어주지 않고 또한 심지를 갈아주지 않으면 앞에 있었던 기름은 이미 없어지고 잇달아 기름을 대어주지 않아 다시 받는 것이 없어진 뒤에는 등불은 저절로 꺼지고 마느니라. 그러므로 가전이여, 나는 ‘세상의 처음도 놔두고 세상의 끝도 놔두라’고 말한 것이다. 설령 단 1생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찾아오는 제자 비구들이 아첨하지도 않고 속이지도 않으며 소박하고 정직하다면 나는 그들을 교화한다. 만일 그들이 내 교화를 따라 그대로 행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바른 법을 알게 될 것이다. 가전이여, 또 마치 나무 10묶음ㆍ20묶음ㆍ30묶음ㆍ40묶음ㆍ50묶음ㆍ60묶음을 불로 태우면 불이 왕성하게 일어나 결국은 불꽃이 보이는 것과 같다. 만일 사람이 풀이나 나무나 겨나 소똥을 잇달아 대주지 않으면, 먼저 있었던 나무는 이미 없어지고, 잇달아 나무를 대주지 않아 다시 받는 것이 없어진 뒤에는 불은 저절로 꺼지고 마느니라. 이와 같이 가전이여, 나는 ‘세상의 처음도 놔두고, 세상의 끝도 놔두라’고 말한 것이다. 설령 단 1생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찾아오는 제자 비구들이 아첨하지도 않고 속이지도 않으며 소박하고 정직하다면 나는 그들을 교화한다. 만일 그들이 내 교화를 따라 그대로 행한다면 그들은 반드시 바른 법을 알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설법하시자 이교도 비마나수는 티끌을 멀리 하고 때를 여의어 모든 법에 대하여 법안(法眼)이 생겼다. 이에 이교도 비마나수는 법을 보고 법을 얻어 희고 깨끗한 법을 깨달아 다시 따로 높일 것이 없어지고 다시 다른 것을 의지할 것이 없어져 스스로 의심을 끊고 미혹을 벗어나 망설임이 없이 이미 결과를 증득하여 세존의 법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되어 범행을 행하기를 원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비구가 되어 범행을 행하라.”

이에 이교도 비마나수는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도를 배우게 되었고, 곧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되어 범행을 행하였다. 그래서 존자 비마나수는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은 뒤에는 법을 알고 법을 보아 아라하(阿羅訶:아라한)가 되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비마나수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주석
1 전모(箭毛)는 팔리어로 sakuḷudāyi이다. 선생우다이(善生優陀夷)라고도 하며 이 경의 뒷부분에서는 우다이(優陀夷, udāyi)라고 하였다.
2 『중아함경』 제26권 우담바라경(優曇婆羅經)과 『장아함경』 제8권 산타나경(散陀那經)을 참고하면 ‘도를 막는 탁하고 어지러운 말[遮道濁亂之言]’이라 하였는데 그 안에 27종을 거론하고 있다.
3 팔리어로 Pūrāa-Kassapa이고 부처님 당시 6사외도의 한 사람이다.
4 팔리어로 Makkhali-Gosāla이고 부처님 당시 6사외도의 한 사람이다.
5 팔리어로 Sañjaya-Belahiputta이고 부처님 당시 6사외도의 한 사람이다.
6 팔리어로 Nigaha-Nātaputta이고 부처님 당시 6사외도의 한 사람이다.
7 팔리어로 Pakudha-Kaccāyana이고 부처님 당시 6사외도의 한 사람이다.
8 팔리어로 Ajita-Kesakambalī이고 부처님 당시 6사외도의 한 사람이다.
9 비라(鞞羅:beḷuva)는 나무 열매의 이름이다.
10 팔리어로는 Kosaka이고 음식을 담는 그릇 즉 발우를 가리킨다.
11 이 경의 이역본으로 유송(劉宋) 때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가 한역한 『불설비마숙경(佛說鞞摩肅經)』이 있다.
12 가전(迦旃, kaccāna)은 비마나수(鞞摩那修)의 성(姓)이다.

중아함경 제58권

승가제바 한역

17. 포리다품 제3④
210) 법락비구니경(法樂比丘尼經) 제9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비사가(毘舍佉) 우바이는 법락 비구니가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의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법락 비구니에게 아뢰었다.
“어진이여,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법락 비구니가 대답하였다.
“비사가여, 마음대로 물으시오. 내가 들은 뒤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비사가 우바이가 물었다.
“어진이여, 모두들 자기 몸을 자기 몸이라고 말하는데 어떤 것을 자기 몸이라 합니까?”

“세존께서는 5성음(盛陰)을 말씀하셨습니다. 곧 자기 몸이란 색성음(色盛陰)ㆍ각성음(覺盛陰)ㆍ상성음(想盛陰)ㆍ행성음(行盛陰)ㆍ식성음(識盛陰)이니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5성음입니다.”

비사가 우바이는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비사가 우바이가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어떤 것을 자기 몸이 있다고 보는 소견[自身見]이라 합니까?”

“많이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범부는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색이 곧 신[色是神]이다’고 보고,‘신은 색을 소유한다[神有色]’고 보며,‘신 속에 색이 있다[神中有色]’고 보고,‘색 속에 신이 있다[色中有神]’고 봅니다. 이와 같이 각(覺)ㆍ상(想)ㆍ행(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고 식(識)을 신이라 보고 신은 식을 소유한다고 보며 신 속에 식이 있다고 보고 식 속에 신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을 자기 몸이 있다고 보는 소견이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어떤 것을 자기 몸이 없다고 보는 소견[無身見]이라 합니까?”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착한 벗을 만나고 거룩한 법을 알며 거룩한 법을 모십니다. 그래서 그는 색을 신이라고 보지 않고 신은 색을 소유한다고 보지 않으며 신 속에 색이 있다고 보지 않고 색 속에 신이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각ㆍ상ㆍ행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고 식도 신이라고 보지 않고 신은 식을 소유한다고 보지 않으며 신 속에 식이 있다고 보지 않고 식 속에 신이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이것을 자기 몸이 없다고 보는 소견이라고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찬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어떤 것이 자신에 대한 소견을 멸하는 것입니까?”

“색성음을 남김없이 끊어 그것을 버리고 뱉고 다하고 거기에 물들지 않고 그것을 멸하고 그치고 없애는 것입니다. 각ㆍ상ㆍ행ㆍ식의 성음도 남김없이 끊어 그것들을 버리고 뱉고 다하고 거기에 물들지 않고 그것을 멸하고 그치고 없애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기 몸에 대한 소견을 멸하는 것이라 합니다.”

“흘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음(陰)을 음성(陰盛)이라 말하고, 음을 성음(盛陰)이라 말합니다. 음이 곧 성음이고 성음이 곧 음입니까? 아니면 음과 성음은 다른 것입니까?”

“어떤 음은 성음이고, 어떤 음은 성음이 아닙니다. 어떤 음이 곧 성음인가? 만일 색에 번뇌[漏]가 있고 집착[受]이 있으며, 각ㆍ상ㆍ행ㆍ식에 번뇌가 있고 집착이 있으면 이 음은 곧 성음입니다. 어떤 음이 성음이 아닌가? 만일 색에 번뇌가 없고 집착이 없으며 각ㆍ상ㆍ행ㆍ식에 번뇌가 없고 집착이 없으면 이 음은 성음이 아닙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어떤 것을 8지성도(支聖道)라 합니까?”

“8지성도란 바른 소견[正見]에서부터 바른 선정[正定]까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덟 가지이므로 8지성도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반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8지성도는 인위적으로 작용하는 것[有爲]입니까?”

“그렇습니다. 8지성도는 인위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몇 무더기[聚]가 있습니까?”

“세 무더기가 있으니 곧 계의 무더기[戒聚]ㆍ선정의 무더기[定聚]ㆍ지혜의 무더기[慧聚]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8지성도가 이 세 무더기[三聚]를 포섭합니까, 세 무더기가 8지 성도를 포섭합니까?”

“8지성도가 세 무더기를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세 무더기가 8지 성도를 포섭합니다. 곧 바른 말ㆍ바른 행동ㆍ 바른 생활 이 3도지(道支)는 거룩한 계의 무더기에 포섭되고 바른 생각ㆍ바른 선정 이 2도지는 거룩한 정의 무더기에 포섭되며 바른 소견ㆍ바른 뜻ㆍ바른 방편 이 3도지는 거룩한 지혜의 무더기에 포섭됩니다. 그래서 8지성도가 세 무더기를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세 무더기가 8지성도를 포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멸(滅)은 상대가 있습니까?”

“멸은 상대가 없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초선(初禪)에는 몇 가닥이 있습니까?”

“초선에는 다섯 가닥이 있으니 곧 각(覺)ㆍ관(觀)ㆍ기쁨[喜]ㆍ즐거움
[樂]ㆍ한 마음[一心]입니다. 이것을 초선에 있는 다섯 가닥이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어떤 것이 단(斷)이며, 어떤 것이 선정의 모양이며, 어떤 것이 선정의 공[定功]이며, 어떻게 선정을 닦습니까?”

“만일 마음이 잘 하나가 되면 이것을 선정[禪定]이라 하고, 4념처(念處)를 선정의 모양이라 하며, 4정단(正斷)을 선정의 힘이라 하고, 4여의족(如意足)을 선정의 공이라 합니다. 만일 이런 모든 훌륭한 법들을 익혀 꾸준히 힘쓰고 전념하여 닦으면 이것을 선정을 닦는 것이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몇 가지 법이 살아있던 몸에는 있다가 죽은 뒤에는 없어져 무덤 사이에 버려지면 나무처럼 무정하게 되는 것입니까?”

“세 가지 법이 살아 있던 몸에는 있다가 죽은 뒤에는 없어져 그 몸이 무덤 사이에 버려지면 나무처럼 무정하게 됩니다.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목숨이요, 둘째는 따뜻한 기운이요, 셋째는 의식[識]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 법이 살아 있던 몸에는 있다가 죽은 뒤에는 없어져 그 몸이 무덤 사이에 버려지면 나무처럼 무정하게 된다고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죽음과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것은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죽음이란 수명이 끝나고 따뜻한 기운이 사라지며 모든 기관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구가 멸진정에 드는 것은 목숨이 끝나는 것이 아니요, 따뜻한 기운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모든 기관이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과 멸진정에 드는 것은 이런 차별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것과 무상정(無想定)에 드는 것은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비구가 멸진정에 들면 생각[想]과 앎[知]이 멸하지만, 무상정에 들면 생각과 앎이 멸하지 않습니다. 멸진정에 드는 것과 무상정에 드는 것은 이런 차별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멸진정에서 일어나는 것과 무상정에서 일어나는 것은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나는 멸진정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구가 무상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나는 생각이 있다고 할까? 나는 생각이 없다고 할까?’라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멸진정에서 일어나는 것과 무상정에서 일어나는 것은 이런 차별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비구가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 ‘나는 멸진정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까?”

“비구가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 ‘나는 멸진정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래부터 그렇게 마음을 닦아 익혔기 때문에 그렇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 ‘나는 멸진정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 ‘나는 멸진정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몸과 6처(處)를 인(因)하고 목숨을 연(緣)하여 선정에서 일어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나고 나면 그 마음은 무엇을 즐거워하고 어디로 나아가며 무엇을 따릅니까?”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난 뒤에는 그 마음은 떠남을 즐거워하고 떠남으로 나아가며 떠남을 따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몇 가지 감각[覺]이 있습니까?”

“세 가지 감각이 있으니 곧 즐거운 감각ㆍ괴로운 감각ㆍ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인연하여 있게 되는가? 갱락(更樂)을 인연하여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어떤 것이 즐거운 감각이며 어떤 것이 괴로운 감각이며 어떤 것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입니까?”

“만일 즐거운 갱락에 부딪치면 몸과 마음에 즐겁고 좋은 감각이 생기나니, 이 감각을 즐거운 감각이라 합니다. 만일 괴로운 갱락에 부딪치면 몸과 마음에 괴롭고 좋지 않은 감각이 생기나니, 이 감각을 괴로운 감각이라 합니다.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갱락에 부딪치면 몸과 마음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으며 좋지도 않고 좋지 않은 것도 아닌 감각이 생기나니, 이 감각을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이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즐거운 감각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 즐겁고 어떤 것이 괴로우며 어떤 것이 무상(無常)하고 어떤 것이 재환(災患)이며 어떤 것이 번뇌[使]입니까? 괴로운 감각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 즐겁고 어떤 것이 괴로우며 어떤 것이 무상하고 어떤 것이 재환이며 어떤 것이 번뇌입니까? 또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에 있어서는 어떤 것이 즐겁고 어떤 것이 괴로우며 어떤 것이 무상하고 어떤 것이 재환이며 어떤 것이 번뇌입니까?”

“즐거운 감각에 있어서는 생기는 것은 즐겁고 머무르는 것도 즐거우나 변하는 것은 괴롭고 무상한 이것이 곧 재환이 되며 탐욕[欲]이 그 번뇌[使]입니다. 괴로운 감각에 있어서는 생기는 것은 괴롭고 머무르는 것도 괴로우나 변하는 것은 즐겁고 무상한 이것이 곧 재환이며 성냄[恚]이 그 번뇌입니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에 있어서는 괴로운 것도 알지 못하고 즐거운 것도 알지 못하며 무상한 것으로 곧 변하는 것이며 무명(無明)이 그 번뇌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모든 즐거운 감각은 다 탐욕이 그 번뇌가 되고 모든 괴로운 감각은 성냄이 그 번뇌가 되며 모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은 무명이 그 번뇌가 됩니까?”

“즐거운 감각이라 하여 모두가 다 탐욕이 그 번뇌가 되는 것은 아니요, 괴로운 감각이라 하여 모두가 다 성냄이 그 번뇌가 되는 것은 아니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이라 하여 모두가 다 무명이 그 번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즐거운 감각이 탐욕의 번뇌가 아닌가? 만일 비구가 탐욕을 여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어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여의는 데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초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탐욕의 번뇌가 아닌 즐거운 감각이라 합니다. 왜냐 하면 탐욕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괴로운 감각이 성냄의 번뇌가 아닌가? 만일 최상 해탈의 즐거움을 구하여 원하고 애를 쓰며 근심하고 괴로워하면 이것을 성냄의 번뇌가 아닌 괴로운 감각이라 합니다. 왜냐 하면 성냄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이 무명의 번뇌가 아닌가? 즐거움이 멸하고 괴로움도 멸하고 기쁨과 걱정의 뿌리는 이미 멸한 상태이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不苦不樂] 평정[捨]ㆍ기억[念]ㆍ청정(淸淨)이 있는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무명의 번뇌가 아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이라 합니다. 왜냐 하면 무명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즐거운 감각에는 어떤 상대가 있습니까?”

“즐거운 감각은 괴로운 감각으로 상대를 삼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괴로운 감각에는 어떤 상대가 있습니까?”

“괴로운 감각은 즐거운 감각으로 상대를 삼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감각에는 어떤 상대가 있습니까?”

“즐겁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감각은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으로 상대를 삼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에는 어떤 상대가 있습니까?”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은 무명(無明)으로 상대를 삼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무명에는 어떤 상대가 있습니까?”

“무명은 명(明)으로 상대를 삼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비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명에는 어떤 상대가 있습니까?”

“명은 열반으로 상대를 삼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여.”
바사가 우바이는 이렇게 대답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여, 열반에는 어떤 상대가 있습니까?”

“그대는 끝이 없는 일을 묻고자 하는군요. 그러나 그대가 아무리 물어도 내 대답의 끝을 다하진 못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열반은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열반은 그물이 없고 그물을 벗어나고 그물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세존을 따라 범행을 행합니다.”

이 때에 비사가 우바이는 법락 비구니의 설법을 들어 잘 받아 가지고, 잘 외워 익힌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려 법락 비구니의 발에 절하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이에 법락 비구니는 비사가 우바이가 떠난 지 오래지 않아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비사가 우바이와 나눈 이야기를 부처님께 모두 말씀드린 뒤에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혹 세존을 비방한 것이 되지는 않겠습니까? 진실을 말하고 법다이 말하며, 법과 다음 법을 말한 것이 되겠습니까? 혹 법다운 법 안에 있어서 틀림이나 시비나 허물이 있지는 않겠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니여, 네가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대답한 것은 나를 비방한 것이 아니다. 너는 진실을 말하고 법다이 말하며 법과 다음 법을 말하였다. 너의 말은 법다운 법 안에 있어서 틀리지 않았고 시비나 허물이 없다. 비구니여, 만일 비사가 우바이가 그런 뜻과 그런 말로 내게 와서 물었다면 나도 또한 비사가 우바이를 위하여 그런 뜻과 그런 말로써 대답하였을 것이다. 비구니여, 그 뜻은 네가 말한 것과 같다. 너는 마땅히 그렇게 기억하라. 왜냐 하면 그 말은 곧 진리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법락 비구니와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법락비구니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049자이다.

211) 대구치라경(大拘絺羅經)1) 제10 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을 유행하실 적에 죽림가란다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사리자는 오후에 연좌(燕坐)에서 일어나 존자 대구치라(大拘絺羅)가 있는 곳으로 가서 서로 문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존자 사리자가 말하였다.
“어진이 구치라여,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들어 주겠소?”

존자 구치라가 아뢰었다.
“존자 사리자여,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물으시오, 내가 듣고 나서 생각해 보리다.”

존자 사리자가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착하지 않은 것[不善]은 착하지 않다고 말하고, 착하지 않은 뿌리[不善根]는 착하지 않은 뿌리라고 말하는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것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은 뿌리입니까?”

“몸으로 짓는 악한 행과 입과 뜻으로 짓는 악한 행은 착하지 않은 것이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착하지 않은 뿌리입니다. 이것을 착하지 않은 것이라 하고 이것을 착하지 않은 뿌리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착한 것[善]은 착하다 말하고, 착한 뿌리[善根]는 착한 뿌리라 말하는데, 어떤 것이 착한 것이며, 어떤 것이 착한 뿌리입니까?”

“몸으로 짓는 묘한 행과 입과 뜻으로 짓는 묘한 행은 착한 것이요, 탐내지 않음과 성내지 않음과 어리석지 않음은 착한 뿌리입니다. 이것을 착한 것이라 하고, 이것을 착한 뿌리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지혜는 지혜라고 말하는데,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이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지혜라 하오. 어떤 것을 아는가?‘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사실 그대로를 알고,‘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라고 사실 그대로를 알며,‘이것은 괴로움의 멸함이다’라고 사실 그대로를 알고,‘이것은 괴로움을 멸하는 길이다’고 사실 그대로를 아는 것이니, 이러한 것을 알기 때문에 지혜라 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식은 식이라고 말하는데, 어떤 것이 식(識)입니까?”

“식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식이라 하오. 어떤 것을 아는가? 빛깔을 알고 소리를 알며 냄새를 알고 맛을 알며 촉감을 알고 법을 아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식이라 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지혜와 식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입니까, 갈라지는 것입니까? 또는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으로서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지혜로 아는 것이 곧 식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으로서 나눌 수 없고, 또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하십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알 때에 당신은 무엇으로써 압니까?”

“알 때에 나는 지혜로써 압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지혜에는 어떤 뜻이 있고, 어떤 우수함이 있으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지혜에는 싫어한다는 뜻이 있고, 욕심이 없다는 뜻이 있으며, 사실 그대로 본다는 뜻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어떤 것이 바른 소견[正見]입니까?”

“괴로움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괴로움의 발생ㆍ괴로움의 소멸ㆍ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면 이것을 바른 소견이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인연으로 바른 소견이 생깁니까?”

“두 가지 인연으로 바른 소견이 생기오. 어떤 것이 둘인가? 첫째는 남에게서 듣는 것이요, 둘째는 자기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 인연으로 바른 소견이 생기는 것이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거둠이 있어 바른 소견을 거두어 심해탈(心解脫)의 결과와 혜해탈(慧解脫)의 결과를 얻고, 심해탈의 공덕과 혜해탈의 공덕을 얻습니까?”

“다섯 가지 거둠이 있어 심해탈의 결과와 혜해탈의 결과를 얻고, 심해탈의 공덕과 혜해탈의 공덕을 얻소. 어떤 것이 다섯인가? 첫째는 진제(眞諦)에 거둠이요, 둘째는 계에 거둠이며, 셋째는 널리 들음에 거둠이요, 넷째는 그침에 거둠이며, 다섯째는 관찰에 거둠입니다. 이것을 다섯 가지 거둠이 있어 바른 소견을 거두어 심해탈의 결과와 혜해탈의 결과를 얻고 심해탈의 공덕과 혜해탈의 공덕을 얻는 것이라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어떻게 미래의 생명이 생깁니까?”

“어리석은 범부는 무지하고 많이 듣지 못하여 무명에 덮이고 애욕에 얽매이며 착한 벗을 만나지 못하고 거룩한 법을 알지 못하며 거룩한 법을 모시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생명이 생기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어떻게 미래의 생명이 생기지 않게 됩니까?”

“만일 무명이 이미 다하여 명(明)이 생기고 나면 반드시 괴로움도 다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생명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감각이 있습니까?”

“세 가지 감각이 있소. 곧 즐거운 감각과 괴로운 감각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감각이요. 이것들은 무엇을 인연하여 있는가 하면 갱락(更樂)을 인연하여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각(覺:受)과 상(想)과 사(思), 이 세 가지 법은 합해지는 것입니까, 갈라지는 것입니까? 또 이 세 가지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까?”

“각(覺)과 상(想)과 사(思), 이 세 가지 법은 합해지는 것이지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세 가지 법은 따로 주장[施設]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느낌[覺]이 느끼는 것[所覺]이요, 생각[想]이 생각하는 것[所想]이요, 의도[思]가 의도하는 것[所思]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 법은 합해지는 것이지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세 가지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멸(滅)에는 어떤 상대가 있습니까?”

“멸은 상대가 없소.”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5근(根)은 제각기 다른 행과 다른 경계가 있어서 각각 제 경계를 감수(感受)합니다. 곧 안근(眼根)ㆍ이근(耳根)ㆍ비근(鼻根)ㆍ설근(舌根)ㆍ신근(身根), 이 5근은 제각기 다른 행과 다른 경계가 있어서 각각 제 경계를 감수하는데, 무엇이 그 모든 경계를 다 감수하며 무엇이 그들의 의지처가 됩니까?”

“5근은 제각기 다른 행과 다른 경계가 있어서 각각 제 경계를 받습니다. 곧 안근ㆍ이근ㆍ비근ㆍ설근ㆍ신근, 이 5근은 제각기 다른 행과 다른 경계가 있어서 각각 제 경계를 감수하는데, 뜻[意]이 그 모든 경계를 다 감수하며 뜻이 그들의 의지처가 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뜻[意]은 무엇을 의지하여 머무릅니까?”

“뜻은 목숨을 의지하고 목숨을 의지하여 머무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목숨은 무엇을 의지하여 머무릅니까?”

“목숨은 따뜻한 기운[暖]을 의지하고 따뜻한 기운을 의지하여 머무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목숨과 따뜻한 기운,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입니까, 갈라지는 것입니까? 또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까?”

“목숨과 따뜻한 기운,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이지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목숨으로 인하여 따뜻한 기운이 있고, 따뜻한 기운으로 인하여 목숨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일 목숨이 없으면 곧 따뜻한 기운이 없고 따뜻한 기운이 없으면 곧 목숨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기름과 심지로 인하여 등불을 켤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불꽃으로 인하여 빛이 있고 빛으로 인하여 불꽃이 있으니, 만일 불꽃이 없으면 빛이 없고 빛이 없으면 불꽃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목숨으로 인하여 따뜻한 기운이 있고 따뜻한 기운으로 인하여 목숨이 있으니, 만일 목숨이 없으면 따뜻한 기운이 없고 따뜻한 기운이 없으면 곧 목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법은 합해지는 것이지 갈라지는 것이 아니며, 또 이 두 법은 따로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법이 산목숨에는 있다가 죽은 뒤에는 없어지고 그 몸이 무덤 사이에 버려지면 나무처럼 무정하게 됩니까?”

“세 가지 법이 산몸에는 있다가 죽은 뒤에는 없어지고 그 몸을 무덤 사이에 버리면 나무처럼 무정해집니다. 어떤 것이 셋인가? 첫째는 목숨이요, 둘째는 따뜻한 기운이며, 셋째는 의식[識]입니다. 이 세 가지 법이 산몸에 있다가 죽은 뒤에는 없어지고 그 몸이 무덤 사이에 버려지면 나무처럼 무정해지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죽음과 멸진정(滅盡定)에 드는 것은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죽음은 목숨이 이미 끝나고 따뜻한 기운이 이미 떠나며 모든 근(根)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비구는 멸진정에 들어도 목숨이 끝나지 않고 따뜻한 기운이 떠나지 않으며 모든 근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죽음과 멸진정에 드는 것은 이러한 차별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멸진정에 든 것과 무상정(無想定)에 든 것은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비구가 멸진정에 들면 생각[想]과 앎[知]이 멸합니다. 그러나 비구가 무상정에 들면 생각과 앎이 멸하지 않습니다. 멸진정에 든 것과 무상정에 든 것은 이러한 차별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멸진정에서 일어나는 것과 무상정에서 일어나는 것은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나는 멸진정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구가 무상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나는 생각[想]이 있다고 할까, 나는 생각이 없다고 할까?’ 하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멸진정에서 일어나는 것과 무상정에서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차별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비구가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는 몸의 행과 입과 뜻의 행 중 어느 법을 먼저 멸합니까?”

“비구가 멸진정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몸의 행을 멸하고 다음에 입의 행을 멸하며 나중에 뜻의 행을 멸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몸의 행과 입과 뜻의 행 중 어느 법이 먼저 생깁니까?”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먼저 뜻의 행이 생기고 다음에는 입의 행이 생기며 나중에 몸의 행이 생깁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 몇 가지 촉(觸)을 느낍니까?”

“비구가 멸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세 가지 촉(觸)을 느낍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촉감[不移動觸]이요, 둘째는 소유가 없다는 촉감[無所有觸]이며, 셋째는 모양이 없다는 촉감[無相觸]입니다. 비구가 멸진정에서 일어날 때에는 이 세 가지 촉감을 느낍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공(空)과 무원(無願)과 무상(無相), 이 세 법은 뜻도 다르고 말도 다릅니까? 혹은 뜻은 하나인데 말만 다릅니까?”

“공과 무원과 무상, 이 세 법은 뜻도 다르고 말도 다릅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인연으로 움직이지 않는 선정[不移動定]이 생깁니까?”
“네 가지 인연으로 움직이지 않는 선정이 생깁니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하면, 만일 비구가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네 가지 인연으로 움직이지 않는 선정이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인연으로 무소유정(無所有定)이 생깁니까?”

“세 가지 인연으로 무소유정이 생깁니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하면, 만일 비구가 일체의 색(色)에 대한 생각을 벗어나고, 마침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얻어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세 가지 인연으로 무소유정이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인연으로 무상정(無想定)이 생깁니까?”

“두 가지 인연으로 무상정이 생깁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일체의 생각[想]을 기억[念]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생각이 없는 경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인연으로 무상정이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인연으로 무상정에 머뭅니까?”

“두 가지 인연으로 무상정에 머무릅니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하면, 첫째는 일체의 생각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생각이 없는 경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 가지 인연이 있어 무상정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어진이 구치라여.”
존자 사리자는 이렇게 찬탄한 뒤에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물었다.
“어진이 구치라여, 몇 가지 인연으로 무상정에서 일어납니까?”

“세 가지 인연으로 무상정에서 일어납니다. 첫째는 일체의 생각을 기억하는 것이고, 둘째는 생각이 없는 경계를 기억하지 않는 것이며, 셋째는 이 몸과 6처와 명근(命根)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세 가지 인연으로 무상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그 두 분은 ‘훌륭하고 훌륭합니다’라고 서로를 찬탄하였고, 서로 이야기한 것을 기뻐하며 받들어 행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주석
1 이 경의 참고 경문으로는 『잡아함경』 제14권 343번째 경과 제9권 253번째 경이 있다.

중아함경 제59권

승가제바 한역

18. 예품(例品) 제4①[제5 후송]
이 「예품」에는 모두 11개의 소경이 수록되어 있다.

일체지경(一切智經)ㆍ법장엄경(法莊嚴經)과
비하제경(鞞訶提經)ㆍ제일득경(第一得經)과
애생경(愛生經)ㆍ팔성경(八城經)이며
아나율타경(阿那律陀經) 둘과
견경(見經)ㆍ전유경(箭喩經)이며
마지막엔 예경(例經)이 수록 되었다.

212)일체지경(一切智經) 제1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울두수야(鬱頭隨若)1)를 유행하실 적에 보극자림(普棘刺林)2)에 계셨다.

그 때에 구살라(拘薩羅)의 왕 바사닉(波斯匿)3)은 사문 구담께서 울두수야를 유행하시면서 보극자림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구살라의 왕 바사닉은 이 소식을 듣고 한 사람을 불러 명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사문 구담께 찾아가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볍고 기력도 한결같으신지 문안드리고 오라. 찾아가거든 이렇게 문안드려라.
‘구살라의 왕 바사닉은 문안드립니다.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은 한결같으십니까? 구살라왕 바사닉이 찾아와 뵙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전하라.
그 사람은 분부를 받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구살라국의 왕 바사닉은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은 한결같으십니까?’ 하고 문안드립니다. 그리고 또 구살라의 왕 바사닉이 와서 뵙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구살라 왕 바사닉은 안온하고 쾌락하소서. 또 하늘ㆍ사람ㆍ아수라ㆍ건탑화(揵塔和:건달바)ㆍ나찰과 그 밖의 여러 몸들도 다 안온하고 쾌락하기를, 그리고 구살라 왕 바사닉이 오고 싶다면 오라고 하라.”
그 사신은 부처님 말씀을 잘 받아 간직하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 번 돌고 물러갔다.

그 때 존자 아난은 부처님 뒤에서 불자(拂子)를 잡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그 사신이 떠난 뒤에 세존께서 아난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우리는 저 동으로 향한 큰 집으로 가서 창을 열고 지게문은 닫고 그 그윽한 곳에 있자. 오늘 구살라의 왕 바사닉이 혼란 없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내 설법을 들으려 한다.”

존자 아난이 대답했다.
“예.”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을 데리고 동으로 향한 큰 집으로 가서 창을 열고 지게문은 닫고 그윽한 곳에 자리를 깔고 니사단을 편 뒤에 가부좌를 하고 앉으셨다.

그 때 그 사신은 구살라의 왕 바사닉에게 돌아가 아뢰었다.
“천왕이시여, 저는 이미 사문 구담에게 통보하였습니다. 사문 구담께서 지금 천왕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원하옵건대 천왕께서는 때를 아소서.”

구살라의 왕 바사닉은 마부에게 명령하였다.
“너는 수레를 준비하라. 내가 지금 사문 구담을 뵈러 가겠다.”
마부는 명령을 받고 곧 수레를 준비하였다.

그 때 현(賢)과 월(月)4) 두 자매는 구살라의 왕 바사닉과 함께 앉아 밥을 먹다가 오늘 구살라의 왕 바사닉이 부처님을 찾아뵙는다는 말을 듣고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여, 만일 오늘 세존을 찾아가 뵙거든 저희들을 위해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신지, 기거는 가볍고 기력은 한결같으신지 문안드려 주소서. ‘현과 월 두 자매도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은 한결같으십니까?〉 하고 문안드린다’고 말씀드려 주소서.”
구살라왕 바사닉은 현과 월 두 자매를 위하여 잠자코 그 청을 받아 주었다.

그 때 마부가 수레 정비를 마치고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천왕(天王)이여, 수레가 준비되었습니다. 천왕의 뜻대로 하소서.”

그 때 왕은 곧 수레를 타고 울두수야를 떠나 보극자림으로 갔다.

그 때 보극자림 문 밖에는 많은 비구들이 한데서 거닐고 있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비구들에게 나아가 물었다.
“여러분, 사문 구담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제가 가서 뵙고자 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저 동으로 향한 큰 집이 창은 열려 있고 지게문은 닫혀 있는데 세존께서는 그 안에 계십니다. 대왕께서 뵙고 싶다면 저 집으로 가셔서 밖에서 기침을 하고 지게문을 두드리십시오. 세존께서 들으시면 반드시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구살라의 왕 바사닉은 곧 수레에서 내려 권속들에게 둘러 싸여 동으로 향한 큰 집까지 걸어가서는 밖에 서서 기침하고 지게문을 두드렸다. 세존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곧 지게문을 여셨다. 구살라의 왕 바사닉은 곧 그 집에 들어가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현과 월 두 자매는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도 한결같으십니까?’ 하고 문안드립니다.”

세존께서 왕에게 물으셨다.
“현과 월 두 자매는 따로 심부름시킬 사람이 없었던가요?”

“구담이시여, 저는 오늘 현과 월 두 자매와 같이 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부처님을 뵈러 가겠다는 말을 듣고 곧 저에게 말했습니다.
‘대왕이여, 만일 가서 부처님을 뵙거든 저희들을 위해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신지 기거는 가볍고 기력은 한결같으신지 문안드려 주소서. ‘현과 월 두 자매도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은 한결같으십니까?〉 하고 문안드린다’고 말씀드려주소서.’
구담이시여, 현과 월 두 자매는 세존께 머리를 조아리고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시고 편안하시며 기거는 가벼우시고 기력도 한결같으십니까?’ 하고 문안드립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현과 월 두 자매는 안온하고 쾌락하소서. 또 하늘ㆍ사람ㆍ아수라ㆍ건답화ㆍ나찰과 그 밖의 여러 몸들도 안온하고 쾌락하기를.”

이에 구살라 왕 바사닉은 부처님과 서로 안부를 물은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제가 여쭐 일이 있습니다. 들어 주신다면 감히 아뢰겠습니다.”

“대왕이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물으십시오.”

구살라왕 바사닉이 부처님게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저는 사문 구담께서 ‘다른 어떤 사문 범지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현재에도 또한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구담께서는 그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나는 ‘다른 어떤 사문 범지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현재에도 또한 없다’고 말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 때 비유라(鞞留羅)5) 대장은 구살라왕 바사닉 뒤에서 불자(拂子)를 들고 왕을 모시고 있었다. 이에 왕은 비유라 대장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지난날 내가 대중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에 누가 제일 먼저 ‘사문 구담은 다른 어떤 사문 범지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현재에도 또한 없다고 말합니다’라고 말하였는가?”

비유라 대장이 대답하였다.
“천왕(天王)이여, 상년소길상자(想年小吉祥子)가 제일 먼저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그 말을 듣고 곧 한 사람을 불러 명령하였다.
“너는 상년소길상자의 처소로 가서 ‘구살라의 왕 바사닉이 너를 부른다’고 말하라.”

그 사람은 분부를 듣고 상년소길상자에게 가서 말했다.
“연소(年小)여, 구살라의 왕 바사닉이 그대를 부르신다.”

그 사람이 간 뒤에 바사닉왕이 세존께 여쭈었다.
“사문 구담이시여, 혹 사문 구담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되는 다른 말씀이 있으십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시여, 나는 일찍이 ‘다른 어떤 사문 범지가 여래와 동시에 일체를 알고 동시에 일체를 보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현재에도 또한 없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왕이여, 나는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그 말을 듣고 나서 찬탄하며 말하였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스승답습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좋은 스승답습니다. 구담이시여, 제가 다시 여쭙고자 하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대왕이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물으십시오.”

구살라왕 바사닉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찰리(刹利)ㆍ범지(梵志)ㆍ거사(居士)ㆍ공사(工師), 이 네 종족은 낫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저 네 종족은 낫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습니다. 찰리와 범지 종족은 이 인간 세계에서 최상덕(最上德)이고, 거사ㆍ공사 종족은 이 인간 세계에서 최하덕(最下德)입니다. 이것이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저 네 종족에 낫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스승답습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좋은 스승답습니다.”

바사닉왕이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저는 현세의 도리만 묻지 않고 다시 후세의 도리를 여쭙고자 하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묻고 싶으면 마음대로 물으십시오.”

구살라왕 바사닉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이 네 종족은 후세에도 낫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저 네 종족은 후세에도 낫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을 것입니다.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이 네 종족이 만일 다섯 가지 단지(斷支)를 성취하면 반드시 좋은 스승인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을 증득할 것이요, 반드시 만족하여 불만이 없을 것이며, 또한 긴 밤 동안에 진리와 이익과 안온과 쾌락을 얻을 것입니다.

어떤 것이 그 다섯 가지인가 하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여래를 믿어 그 뿌리가 생기고 완전히 서서 이른바 사문 범지ㆍ하늘ㆍ악마 및 그 밖의 세간 어느 누구도 그것을 빼앗을 자가 없게 되면 이것을 첫 번째 단지라고 합니다. 대왕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병이 적고 병이 없으며 알맞게 먹는 도를 성취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고 공정하여 다투지 않아서 이른바 먹고 마신 것을 소화시키되 바르고 안온하게 소화시키면 이것을 두 번째 단지라 합니다. 대왕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아첨도 없으며 속임도 없고 소박하고 정직하여 세존과 모든 범행자들에게 참된 모습을 보이면 이것을 세 번째 단지라 합니다. 대왕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언제나 꾸준히 정진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으며 모든 착한 법을 닦고 항상 스스로 뜻을 일으켜 오로지 하고 굳건히 하며 모든 착함의 근본을 위하여 방편 쓰기를 버리지 않으면 이것을 네 번째 단지라 합니다.
또 대왕이여,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지혜를 닦아 흥하고 쇠하는 법을 관찰하고 이러한 지혜를 얻어 거룩한 지혜가 밝게 트이고 분별하고 환히 알아 그로써 바로 괴로움을 다하면 이것을 다섯 번째 단지라 합니다.

대왕이여, 이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이 네 종족이 저 다섯 가지 단지를 성취하면 반드시 좋은 스승인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을 증득할 것이요, 반드시 만족하게 되어 불만이 없을 것이며, 또한 오래도록 도리와 이익과 안온과 쾌락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이 네 종족이 후세에서도 낫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는 것이라 합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그 말을 듣고 나서 찬탄하며 말하였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스승답습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훌륭하신 스승답습니다. 구담이시여, 다시 묻고자 하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물으십시오.”

구살라왕 바사닉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이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의 네 종족은 끊는 행[斷行]에 있어서도 낫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이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의 네 종족은 끊는 행에 있어서도 낫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습니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믿음이 있는 사람이 끊는 것을 믿음이 없는 사람이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습니다. 또 만일 병이 적은 사람이 끊는 것을 병이 많은 사람이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습니다. 만일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사람이 끊는 것을 아첨하고 속이는 사람이 끊으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습니다. 만일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끊는 것을 게으른 사람이 끊으려 한다면 그것도 끝내 그리 될 수 없습니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 끊는 것을 나쁜 지혜로 끊으려 한다면 그것도 끝내 그리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코끼리 다루기ㆍ말 다루기ㆍ소 다루기ㆍ사람 다루기의 네 가지 다루는 일이 있는데, 그 중 두 가지는 길들일 수 없고 부릴 수도 없으며, 두 가지는 길들일 수도 있고 부릴 수도 있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길들일 수도 없고 부릴 수도 없는 그 둘을 길들이고 부려 부림을 감당하게 하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길들일 수도 있고 부릴 수도 있는 그 둘을 길들이고 부려 부림을 감당하게 하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리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 끊는 것을 믿음이 없는 사람이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병이 적은 사람이 끊는 것을 병이 많은 사람이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첨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사람이 끊는 것을 아첨하고 속이는 사람이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 끊는 것을 게으른 사람이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끊는 것을 나쁜 지혜로 끊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의 네 종족은 끊는 행에 있어서도 우세하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찬탄하며 말하였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스승답습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우세하고 스승답습니다. 구담이시여, 다시 묻고자 하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대로 물으십시오.”

구살라왕 바사닉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이 네 종족은 끊음[斷]에 있어서도 우세하고 못함이 있고 차별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이 네 종족이 끊음에 있어서 저들이 똑같이 끊으면 거기에는 우세하고 못함이 없고 차별도 없습니다. 대왕이여, 이를 비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방에서 찰리(刹利) 동자가 와서 마른 사라(娑羅)나무를 가져다가 불비비개[火母]를 만들어 구멍을 뚫고 비벼 불을 일으키고 남방에서는 범지(梵志) 동자가 와서 그도 마른 사라나무로 불비비개를 만들어 구멍을 뚫고 비벼 불을 일으키며 서방에서는 거사(居士) 동자가 와서 그는 마른 전단나무로 불비비개를 만들어 구멍을 뚫고 비벼 불을 일으키고 북방에서는 공사(工師) 동자가 와서 그는 마른 발투마(鉢投摩)나무로 불비비개를 만들어 구멍을 뚫고 비벼 불을 일으켰다고 합시다. 대왕이여, 대왕의 생각엔 어떻습니까? 저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나무를 가지고 불비비개를 만들어 구멍을 뚫고 비벼 불을 일으켰을 때, 혹 어떤 사람이 거기에다 마른 풀이나 나무를 놓는다면 연기가 나고 불꽃이 나고 불빛이 나게 됩니다. 대왕이여, 그 연기와 연기, 불꽃과 불꽃, 불빛과 불빛에 어떤 차별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구살라왕 바사닉이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이른바 저 여러 종류의 사람이 여러 가지 나무를 가지고 불비비개를 만들어 구멍을 뚫고 비벼 불을 일으켰을 때, 혹 어떤 사람이 거기에다 마른 풀이나 나무를 놓아 연기가 나고 불꽃이 나고 불빛이 생겨난다면 구담이시여, 나는 그 연기와 연기, 불꽃과 불꽃, 불빛과 불빛에 차별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이 대왕이여, 찰리ㆍ범지ㆍ거사ㆍ공사, 이 네 종족도 그들 모두가 똑같이 끊는다면 그 끊음에 있어서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찬탄하여 말하였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스승답습니다. 사문 구담의 말씀은 좋은 스승답습니다. 다시 여쭙고 싶은 말씀이 있사온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대로 물으십시오.”

“구담이시여, 하늘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물으셨다.
“대왕이여, 무슨 뜻으로 하늘이 있는가 하고 묻습니까?”

구살라왕 바사닉이 대답하였다.
“구담이시여, 만일 다툼이 있고 다툼을 즐기는 하늘이 있다면 그들은 분명 이 세상에 올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다툼이 없고, 다툼을 즐기지 않는 하늘이 있다면 그들은 마땅히 이 세상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 비유라 대장은 구살라왕 바사닉 뒤에 서서 불자(拂子)를 잡고 왕을 모시고 있었다. 비유라 대장이 세존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만일 다툼이 없고,다툼을 즐기지 않는 하늘이 있다면 우선 그 하늘들은 그대로 두십시오. 만일 다툼이 있고 다툼을 즐기는 하늘이 있어 이 세상에 온다면 사문 구담이시여, 반드시 이렇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그 하늘은 복이 수승하고 또한 범행도 수승합니다. 그러나 천왕[天]께서는 자재(自在)로이 그 하늘을 물리치고 그 하늘을 쫓아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존자 아난은 세존 뒤에 서서 불자(拂子)를 들고 세존을 모시고 있었다. 이에 존자 아난은 생각했다.
‘이 비유라 대장은 구살라의 왕 바사닉의 아들이요, 나는 세존의 아들이다. 지금이 바로 아들과 아들이 토론할 때이다.’

이에 존자 아난이 비유라 대장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묻고자 합니다. 당신은 아는 대로 대답해 주시오. 대장이여,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구살라왕 바사닉이 소유한 경계로서 명령이 미치는 곳이라면 구살라왕 바사닉은 복이 수승하고 범행이 수승하기 때문에 과연 자재로이 물리쳐 버리고 쫓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비유라 대장이 대답했다.
“사문이여, 만일 구살라왕 바사닉이 소유한 경계로서 명령이 미치는 곳이라면 구살라왕 바사닉은 복이 수승하고 범행이 수승하기 때문에 자재로이 물리쳐 버리고 쫓아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대장이여,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만일 구살라왕 바사닉의 경계가 아니라서 명령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면 구살라왕 바사닉은 복이 수승하고 범행이 수승하다 하여 마음대로 저들을 물리치고 저들을 쫓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비유라 대장이 대답하였다.
“사문이며, 만일 구살라왕 바사닉의 경계가 아니라 명령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면 구살라왕 바사닉은 복이 수승하고 범행이 수승하다 하더라도 자재로이 저들을 물리치고 저들을 쫓아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존자 아난은 다시 물었다.
“대장이여. 혹 삼십삼천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습니까?”

비유라 대장이 대답하였다.
“나는 구살라왕 바사닉과 유희할 때에 삼십삼천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대장이여, 그대 생각은 어떻습니까? 구살라왕 바사닉은 복이 수승하고 범행이 수승하다 하여 과연 저 삼십삼천을 물리칠 수 있고 저 삼십삼천을 쫓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비유라 대장이 대답하였다.
“사문이여, 구살라왕 바사닉은 오히려 삼십삼천을 볼 수도 없는데 하물며 삼십삼천을 물리치고 쫓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저 삼십삼천을 물리치고 쫓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와 같이 대장이여, 만일 다툼이 없고 다툼을 즐기지 않는 하늘이 있어 이 세상에 오지 않는다면 이 하늘은 복이 수승하고 범행이 수승합니다. 만일 다투고 다툼을 즐기는 하늘이 있어 이 세상에 온다면 이 천왕은 오히려 저 하늘도 볼 수 없는데 하물며 물리치고 쫓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저 하늘을 물리치고 쫓아 버리려 한다면 그것은 끝내 그리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구살라왕 바사닉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이 사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이 비구의 이름은 아난이라고 하며, 제 시자(侍者)입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찬탄하며 말하였다.
“아난의 말씀은 스승답습니다. 아난의 말씀은 좋은 스승답습니다. 다시 여쭈어보고 싶은 말씀이 있사온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여, 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마음대로 물어 보십시오.”

구살라왕 바사닉이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혹 범(梵)이 있습니까?”

세존께서 물으셨다.
“대왕이여, 무슨 뜻으로 범이 있느냐고 묻습니까? 대왕이여, 만일 제가 범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범은 청정한 것입니다.”

세존께서 구살라왕 바사닉과 이렇게 이야기하고 계실 때에 저 사신은 상년소길상자를 데리고 돌아와서 구살라왕 바사닉에게 나아가 아뢰었다.
“천왕이시여,상년소길상자가 여기 왔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상년소길상자에게 물었다.
“전일에 내가 대중과 함께 앉아 있을 때 누가 제일 먼저 ‘사문 구담께서는 〈어떤 다른 사문 범지가 일체를 알고 일체를 보는 일은 과거에도 없었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며 현재에도 또한 없다〉고 이와 같이 말합니다’라고 하였느냐?”

상년소길상자가 대답하였다.
“천왕이시여, 이 비유라 대장이 먼저 말하였습니다.”

비유라 대장은 이 말을 듣고 아뢰었다.
“천왕이시여, 이 상년소길상자가 먼저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그 두 사람이 서로 다투고 있을 때 마부는 곧 수레를 준비하고 구살라왕 바사닉에게 와서 아뢰었다.
“천왕이시여, 수레가 이미 도착했습니다. 천왕이시여, 마땅히 때를 아소서.”

바사닉왕은 이 말을 듣고 세존께 아뢰었다.
“제가 사문 구담께 일체지(一切知)에 대해 묻자 사문 구담께서는 일체지에 대해 대답해 주셨습니다. 제가 사문 구담께 네 가지 청정(淸淨)에 대하여 묻자 사문 구담께서는 제게 네 가지 청정에 대하여 대답해 주셨습니다. 제가 사문 구담께 얻으신 바를 묻자 사문 구담께서는 제게 얻으신 바를 대답해 주셨습니다. 제가 사문 구담께 범(梵)이 있느냐고 묻자 사문 구담께서는 저에게 범이 있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만일 제가 또 다른 일을 물었더라도 사문 구담께서는 반드시 저에게 다른 일에 대해 대답해 주셨을 것입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이제 일이 바빠 돌아가려고 하직 인사를 청합니다.”

세존께서 대답하셨다.
“대왕이시여, 알아서 하십시오.”

구살라왕 바사닉은 부처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가져 외우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 번 돌고 떠나갔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구살라왕 바사닉과 존자 아난 및 모든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일체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773자이다.

213) 법장엄경(法莊嚴經) 제2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석가족들의 나라를 유행하실 적에 석가족의 도읍인 미루리(彌婁離)라는 곳에 계셨다.

그 때 구살라왕 바사닉은 볼 일이 있어 장작(長作)과 함께 읍명성(邑名城)으로 나갔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그 동산을 지나가다가 고요해 소리도 없고 멀리 떠나 악도 없으며 사람도 없는 나무 아래에서 그 환경을 따라 연좌(燕坐)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것을 보자 그는 세존이 생각나 장작에게 말하였다.
“장작아, 지금 이 고요해 소리도 없고 멀리 떠나 죄악도 없으며 사람도 없는 나무 아래에서 그 환경을 따라 사람들이 연좌하고 있구나. 나는 자주 이곳을 찾아와 부처님을 뵈었다. 장작아, 세존은 지금 어디 계시냐? 내가 가서 뵙고 싶구나.”

장작이 대답하였다.
“천왕이여, 제가 들으니 세존께서는 지금 석가족 땅에서 유행하시면서 미루리라는 석가족의 서울에 계신다고 합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물었다.
“장작아, 미루리라는 석가족의 서울은 여기서 얼마나 되느냐?”

장작이 대답하였다.
“천왕이여, 여기서 3구루사(拘婁舍)6) 정도 됩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말하였다.
“장작아, 수레를 준비하라. 내가 부처님께 가리라.”

장작은 명령을 받고 곧 수레를 준비해 놓고는 아뢰었다.
“천왕이여, 수레가 준비되었습니다. 천왕의 뜻대로 하소서.”
구살라왕 바사닉은 곧 수레를 타고 성을 나가 미루리라는 석가족의 서울로 갔다.

그 때 미루리 문 밖에서는 많은 비구들이 한데[露地]에서 거닐고 있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비구들에게 가서 물었다.
“여러분,세존께서는 지금 어디서 거닐고 계십니까?”

비구대중들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저 동으로 향한 큰 집에서 창을 열고 지게문을 닫고 그 안에서 거닐고 계십니다. 대왕이여, 만일 뵙고 싶으시면 거기 가서 밖에서 기침하고 지게문을 두드리시오. 세존께서 들으시면 반드시 지게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곧 수레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는 찰리(刹利) 정생왕(頂生王)이 인간에 와서 대지를 호령할 때에 쓰는 다섯 가지 장식구 곧 칼ㆍ일산ㆍ화만ㆍ구슬 자루로 된 불자(拂子)ㆍ장식한 신을 다 벗어 장작에게 주었다. 장작은 ‘오늘은 천왕이 반드시 혼자서 들어가실 모양이다. 우리는 모두 여기서 기다려야 하겠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이에 구살라왕 바사닉은 권속들에게 둘러싸여 저 동으로 향한 큰 집으로 걸어가 밖에 서서 기침하고 문을 두드렸다. 세존께서는 들으시고 곧 문을 열어 주셨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곧 그 집으로 들어가 부처님 앞에 나아가 그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재삼 자기 성명을 대었다.
‘저는 구살라왕 바사닉입니다. 저는 구살라왕 바사닉입니다.’

세존께서는 대답하셨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당신은 구살라왕 바사닉이십니다. 당신은 구살라왕 바사닉이십니다.”
구살라의 왕 바사닉은 재삼 자기 성명을 일컬은 뒤에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대왕이여, 저에게 무슨 도리가 있다고 보았기에 스스로 마음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려 발에 예배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십니까?”

구살라왕 바사닉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에게 법의 고요함이 있음을 보나이다.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의 말씀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많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앉았을 때에 어미는 자식과 다투고 자식은 어미와 다투며 부자ㆍ형제ㆍ자매 친속들이 서로 돌아가며 다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다툴 때에는 어미는 자식의 허물을 말하고 자식은 어미의 허물을 말하며 부자ㆍ형제ㆍ자매ㆍ친속들이 서로의 허물을 말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보았습니다. 세존의 모든 제자 비구대중은 모두 세존을 따라 범행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혹 어떤 비구가 이런 저런 다툼이 있어 계율을 버리고 도를 중단하더라도 그들은 부처님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법의 허물을 말하지 않으며 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않고 다만 스스로 ‘내가 나쁘다. 내가 덕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나는 세존을 따라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닦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고 자책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세존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의 말씀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많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떤 사문 범지가 9개월이나 10개월 동안 다소 범행을 배우고 실천하다가 그것을 버리고 옛날로 돌아가 탐욕 때문에 더러워져 탐욕에 물들고 탐욕에 집착하고 탐욕에 얽매어 교만하고 방자하게 그것을 받아 들여 그 재앙을 보지 못하고 거기서 벗어날 길을 보지 못하면서 탐욕 행하기를 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았습니다. 세존의 모든 제자 비구들은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닦아 수억 생에까지 이릅니다. 저는 이밖에 세존의 집안처럼 이렇게 범행(梵行)이 청정한 자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의 말씀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보았습니다. 어떤 사문 범지는 몸이 몹시 마르고 초췌하며 형상이 매우 추악하고 몸에 흰 물집이 생겨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였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찌하여 몸이 저렇게도 마르고 초췌하며 형색은 매우 추악하고 몸에는 흰 물집이 생겨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게 되었을까? 이 사람은 반드시 범행을 좋아하지 않았거나 혹은 몸에 병이 있거나 혹은 으슥한 곳에서 나쁜 짓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몸은 마르고 초췌하며 형색은 매우 추악하고 몸에는 흰 버짐이 생겨 사람들이 보고는 기뻐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저는 그들에게 가서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어찌하여 몸은 마르고 초췌하며 형색은 매우 추악하고 몸에는 흰 버짐이 생겨 사람들이 보고는 기뻐하지 않게 되었는가? 여러분은 범행 닦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몸에 병이 있는가? 혹은 으슥한 곳에서 나쁜 짓을 했는가? 그 때문에 여러분은 몸은 마르고 초췌하며 형색은 매우 추악하고 몸에는 흰 버짐이 나서 사람들이 보고는 기뻐하지 않게 되었는가?’
그들은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은 백병(白病)입니다. 대왕이시여, 이것은 백병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는 보았습니다. 세존의 모든 제자 비구들은 단정한 행동을 좋아하고 얼굴빛이 화열하고 윤택하며 형체는 정결하고 애써 작용함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남의 아내의 밥을 받을 때에는 사슴처럼 하고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실천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분들은 왜 단정한 행동을 좋아하고 얼굴빛이 화열하고 윤택하며, 형체는 정결하고 애써 작용함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남의 아내의 밥을 받을 때에는 사슴처럼 하고,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실천하는 것일까? 이 분들은 혹은 탐욕을 여의었고 혹은 증상심(增上心)을 얻어 어렵지 않게 현재세계에서 즐겁게 산다. 그러므로 이 분들은 단정한 행동을 좋아하고 얼굴빛이 화열하고 윤택하며 형체는 정결하고 애써 작용함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남의 아내의 밥을 받을 때에는 사슴처럼 하고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실천한다. 만일 저들처럼 단정한 행동을 좋아하려는 마음처럼 행하면 나도 아마 단정한 행동을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나도 어렵지 않게 5욕(欲)의 공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분들은 탐욕을 떠나고 증상심을 얻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현재에서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분들은 단정한 행동을 좋아하고 얼굴빛이 화열하고 윤택하며 형체는 정결하고 애써 작용함도 없고 구함도 없으며 남의 아내의 밥을 받을 때에는 사슴처럼 하고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범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의 말씀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였습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저는 보았습니다. 어떤 사문 범지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널리 들어 결정한다’고 스스로 일컬으면서 모든 경전을 다 외우고 강한 적을 항복받으며 변론을 잘하고 이치를 깨달아 이름과 덕망이 널리 퍼져 모든 세상 사람들이 들어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며 가는 곳마다 모든 주장을 부수고 곧 스스로 자기 주장을 세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문 구담을 찾아가 이러이러한 일을 물어보자. 만일 그가 대답하면 우리는 저들을 힐난하고, 만일 그가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또한 그를 힐난하자. 그런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나자.’
그는 세존께서 어느 마을(村邑)에서 유행(遊行)하신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세존께 감히 어떤 일을 물어보지도 못했거늘 하물며 힐난하였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부처님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의 말씀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저는 보았습니다. 어떤 사문 범지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널리 듣고 결정한다’고 스스로 일컬으면서 모든 경전을 외우고 강한 적을 항복받으며 변론을 잘하고 이치를 깨달아 이름과 덕망이 널리 퍼져 모든 세상 사람들이 들어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며 가는 곳마다 모든 주장을 부수고 곧 스스로 자기 주장을 세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문 구담을 찾아가 이러이러한 일을 물어보자. 만일 그가 대답하면 우리는 저들을 힐난하고, 만일 그가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또한 그를 힐난하자. 그런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나자.’
그들은 세존께서 어느 마을에서 유행하신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을 찾아가 세존께 어떤 일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대답하시자 그들은 그 대답을 듣고는 곧 기뻐하며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는 물러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 설하신 법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저는 보았습니다. 어떤 사문 범지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널리 듣고 결정한다’고 스스로 일컬으면서 모든 경전을 외우고 강한 적을 항복받으며 변론을 잘하고 이치를 깨달아 이름과 덕망이 널리 퍼져 모든 세상 사람들이 들어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며 가는 곳마다 모든 주장을 부수고 스스로 자기 주장을 세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문 구담을 찾아가 이러이러한 일을 물어보자. 만일 그가 대답하면 우리는 그를 힐난하고, 만일 그가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또한 그를 힐난하자. 그런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나자.’
그들은 세존께서 어느 마을에서 유행하신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께 나아가 세존께 어떤 일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대답하시면 그들은 그 대답을 듣고는 기뻐하며 스스로 부처님과 법과 비구들에게 귀의하였습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그들을 우바새로 받아주셨고 그들은 목숨이 다하도록 스스로 귀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존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의 말씀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저는 보았습니다. 어떤 사문 범지는 총명하고 지혜로워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널리 들어 결정한다’고 스스로 일컬으면서 모든 경전을 외우고 강한 적을 항복받으며 변론을 잘하고 이치를 깨달아 이름과 덕망이 널리 퍼져 모든 세상 사람들이 들어 알지 못하는 이가 없으며 가는 곳마다 모든 주장을 부수고 스스로 자기 주장을 세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사문 구담을 찾아가 이러이러한 일을 물어보자. 만일 그가 대답하면 우리는 그를 힐난하고, 만일 그가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또한 그를 힐난하자. 그런 뒤에 곧 그를 버리고 떠나자.’
그들은 세존께서 어느 마을에서 유행하신다는 말을 듣고 부처님께 나아가 세존께 어떤 일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대답하시자 그들은 그 대답을 듣고는 곧 기뻐하며 세존을 따라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구족계를 받고 비구법 얻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곧 그들을 제도하여 구족계를 주고 비구법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출가하여 도를 배우되 구족계를 받고 비구법을 얻은 뒤에는 멀리 떠나 혼자 살면서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하였습니다. 그들은 멀리 떠나 혼자 살면서 마음에 방일함이 없이 수행하고 정근한 뒤에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족성자(族姓子)들이 해야 할 바인 오직 위없는 범행을 마치고 현재세계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었습니다. 곧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사실 그대로 보아 알았습니다. 만일 그 분들이 법을 안 뒤에 더 나아가 아라하(阿羅訶:아라한)가 되며 아라하가 된 뒤에는 곧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전에는 거의 틀렸었고 거의가 실수였다. 왜냐 하면 나는 전에는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일컬었고 범행자가 아니면서 범행자라 일컬었으며 아라하가 아니면서 아라하라 일컬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사문이요 범행자요 아라하이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 설하신 법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제가 나라에 있을 때에는 허물이 없는 자도 죽이게 하였고 허물이 있는 자도 죽이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럿이 앉아 토론하는 자리에서 저는 ‘그대들이 여기 함께 있지만 아무도 그대들에게 일을 묻지 않았소. 모두 내게 일을 물었소. 그대들은 이 일을 결정할 수 없지만 나는 이 일을 결정할 수 있소’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내가 말하는 중간에 다른 일로 서로 다투느라고 앞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존께서 대중에게 둘러싸여 설법하시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이 코를 골면서 졸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코를 골면서 졸지 말라. 너는 감로(甘露) 같은 세존의 설법을 들으려고 하지 않느냐?’
그는 이 말을 듣고 곧 잠자코 있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ㆍ중조어사(衆調御士)는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시다. 왜냐 하면 칼이나 막대기가 없이도 모두가 스스로 법다워 안온하고 쾌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 설하시는 법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선여(仙餘)와 숙구(宿舊) 두 대신에게 돈과 재물을 주고 또 항상 칭찬하였습니다. 또 그들의 목숨은 제게 달렸었습니다. 그러나 세존에게 뜻을 낮추어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듯이 선여와 숙구 두 신하가 마음을 낮추어 저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 설하시는 법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 정벌을 나갔다가 어떤 초막에 잘 때에 저 선여와 숙구 두 대신을 시험해 보려고 ‘머리를 어디로 두고 자는가? 곧 내 쪽으로 두고 자는가, 세존 쪽으로 두고 자는가’를 알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선여와 숙구 두 대신은 초저녁에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묵묵히 좌선하다가 밤중이 되자 세존께서 어느 쪽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는 곧 머리를 그 쪽으로 두고 발을 제 쪽으로 두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선여와 숙구 이 두 대신은 현재의 좋은 일만 보지 않는구나. 그 때문에 저들은 세존에게 뜻을 낮추어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는 것처럼 나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에게서 법의 고요함을 보았고 그 때문에 저는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 설하시는 법은 훌륭하고 세존의 제자들은 온갖 선행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또 세존이시여, 저는 나라의 왕이고 세존은 법의 왕입니다. 저도 찰리요 세존도 또한 찰리며, 저도 구살라에 있고 세존도 또한 구살라에 있으며, 제 나이도 80이요 세존의 나이도 80입니다. 세존이시여, 따라서 저는 세존의 몸과 목숨이 다할 때까지 기꺼이 뜻을 낮추어 세존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일이 많아 돌아가려고 하직 인사를 올립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때를 알아 하십시오.”
이에 구살라왕 바사닉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잘 받아가져 외운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그 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 뒤에서 불자(拂子)를 들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미루리(彌婁離) 동산에 있는 비구들을 모두 강당에 모이게 하라.”

이에 존자 아난은 부처님 분부를 받고 미루리 동산에 있는 비구를 모두 강당에 모이게 한 뒤에 부처님께 돌아와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미루리 동산에 있는 비구들이 모두 강당에 모였습니다.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때를 아소서.”

이에 세존께서는 존자 아난을 데리고 강당으로 가서 비구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이제 구살라왕 바사닉은 내 앞에서 이 법장엄경(法莊嚴經)을 설명하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마땅히 이 법장엄경을 잘 외우고 잘 익혀야 한다. 왜냐 하면 비구들아, 이 법장엄경은 이치답고 법다워 범행의 근본이 되며 그것은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족성자로서 지극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는 자라면 그도 또한 마땅히 이 법장엄경을 외우고 익혀야 하리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법장엄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037자이다.

214)비하제경(鞞訶提經) 제3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사위국에 머무르다가 동원 녹자모(鹿子母)강당에 조그만 일이 있어 어떤 비구를 데리고 사위국을 나가 동원 녹자모강당으로 가서 볼 일을 마치고 다시 비구를 데리고 승림급고독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때 구살라왕 바사닉이 일분다리(一奔陀利) 코끼리를 타고 대신 시리아다(尸利阿茶)와 함께 사위국을 나왔다. 존자 아난은 멀리서 구살라왕 바사닉이 오는 것을 보고 동행한 비구에게 물었다.
“저 분은 구살라왕 바사닉이 아니신가?”

“그렇다.”

존자 아난은 곧 길을 벗어나 어떤 나무 밑으로 피해갔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멀리서 나무 밑에 있는 존자 아난을 보고 물었다.
“시리아다여, 저 분은 사문 아난이 아니신가?”

“그렇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시리아다 대신에게 명령하였다.
“너는 이 코끼리를 저 사문 아난이 있는 곳으로 몰고 가라.”
시리아다는 왕의 명령을 받고 곧 코끼리를 몰아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이에 구살라왕 바사닉이 존자 아난에게 물었다.
“아난이여,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시려 합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저는 동원 녹자모강당에서 오며 승림급고독원으로 가는 길입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말하였다.
“아난이여, 만일 승림급고독원에 급한 일이 없다면 나와 함께 아이라바제(阿夷羅婆提)강으로 같이 가십시다.”
존자 아난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 구살라왕 바사닉을 위하여 묵묵히 그 청을 받아 주었다.

이에 구살라왕 바사닉은 존자 아난을 앞서게 하고 아이라바제강으로 함께 가서 코끼리에서 내려 코끼리 덮개를 가져다 네 겹으로 땅에 펴고, 존자 아난에게 청하였다.
“아난이여, 이 자리에 앉으소서.”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그만두십시오. 마음만 편하면 족합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재삼 존자 아난에게 간청하였다.
“아난이여, 이 자리에 앉으소서.”

존자 아난도 재삼 대답하였다.
“대왕이시여, 그만두십시오. 마음만 편하면 족합니다. 제게는 니사단(尼師檀)이 있으니 저는 여기 앉겠습니다.”
이에 존자 아난은 니사단을 펴고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존자 아난과 서로 안부를 묻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말하였다.
“아난이여,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으십시오. 제가 들은 뒤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여쭈었다.
“아난이여, 여래께서도 혹 사문 범지들이 싫어하는 몸의 행[身行]을 행하십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이른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문 범지 및 그 밖의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몸의 행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아난이여, 나는 미치지 못하겠나이다. 또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나 그 밖의 세상사람 어느 누구도 미치지 못하였음을 아난은 아시는군요. 아난이여, 만일 착하지 않은 생각으로 모두들 비방하거나 칭찬한다면 우리는 그의 진실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난이여, 만일 착한 생각으로 모두들 비방하거나 칭찬한다면 우리는 그의 진실을 보게 됩니다. 아난이여, 혹 여래께서도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문 범지 및 그 밖의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몸의 행을 행하십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문 범지 및 그 밖의 세상사람들이 싫어하는 몸의 행은 끝내 행하시지 않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물었다.
“아난이여, 어떤 몸의 행을 말하는 것입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물었다.
“아난이여, 어떤 것을 착하지 않은 몸의 행이라 합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죄가 있는 몸의 행을 말합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물었다.
“아난이여, 어떤 것을 죄가 있는 몸의 행이라 합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지혜로운 사람들이 싫어하는 몸의 행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물었다.
“아난이여, 지혜로운 사람은 무엇을 싫어합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이른바 몸의 행을 행하여 자기도 해치고 남도 해치고 모두 해치며 지혜를 멸하고 악을 도와 열반을 얻지 못하며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행하여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행하여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받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받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받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받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끊어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끊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끊어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끊지 않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성취하여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성취하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합니다.

성취하여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고 성취하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 뒤에는 행하여야 할 법은 행하지 않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을 행합니다. 행하여야 할 법은 행하지 않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을 행한 뒤에는 받아야 할 법은 받지 않고 받지 않아야 할 법만 받습니다. 받아야 할 법은 받지 않고 받지 않아야 할 법만 받은 뒤에는 끊어야 할 법은 끊지 않고 끊지 않아야 할 법을 끊습니다. 끊어야 할 법은 끊지 않고 끊지 않아야 할 법을 끊은 뒤에는 성취하여야 할 법을 성취하지 않고 성취하지 않아야 할 법은 성취합니다. 성취하여야 할 법은 성취하지 않고 성취하지 않아야 할 법을 성취한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늘어나 그 착한 법은 더욱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끝내 그런 법을 행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다시 물었다.
“아난이여, 여래께서는 어떻게 하여 끝내 그런 법을 행하지 않으십니까?”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탐욕을 떠나 탐욕이 이미 다하였고 성냄을 떠나 성냄이 이미 다하였으며 어리석음을 떠나 어리석음이 이미 다하였습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고 모든 착한 법을 성취하였으며 가르치는 스승이고 묘한 스승이고 잘 따르는 스승이시며 이끌어 다스리고 따라서 다스리시며 또 잘 말하고 묘하게 말하며 매우 순하게 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끝내 그런 법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찬탄하며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아난이여, 여래께서는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끝내 행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무소착ㆍ정진각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난이여, 당신은 그 스승 제자로서 도를 배워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으려고 하는 분입니다. 그런 당신도 오히려 그런 법을 행하지 않는데 하물며 여래께서 그런 법을 행하겠습니까?”

바사닉왕은 이렇게 찬탄한 뒤에 다시 물었다.
“아난이여, 여래께서는 혹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문 범지 및 그 밖의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는 몸의 행은 행하십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문 범지 및 그 밖의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는 몸의 행은 반드시 행하십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물었다.
“아난이여, 어떤 몸의 행을 말합니까?”

“대왕이여,착한 몸의 행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난이여, 어떤 것을 착한 몸의 행이라 합니까?”

“대왕이여, 죄가 없는 몸의 행을 말합니다.”

“아난이여, 어떤 것을 죄가 없는 몸의 행이라 합니까?”

“대왕이여, 몸의 행을 행하여 지혜로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는 몸의 행을 말합니다.”

“아난이여, 어떤 것을 지혜로운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이른바 몸의 행을 행하여 자기도 해치지 않고 남도 해치지 않고 모두 해치지 않으며 깨달음이 있고 지혜가 있으며 악을 돕지 않고 열반을 얻으며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행하여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압니다. 행하여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받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받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압니다. 받아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받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끊어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끊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압니다. 끊어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끊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성취하여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취하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압니다.

성취하여야 할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성취하지 않아야 할 법도 또한 사실 그대로 안 뒤에는 행하여야 할 법은 행하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행하지 않습니다. 행하여야 할 법은 행하고 행하지 않아야 할 법은 행하지 않은 뒤에는 받아야 할 법은 받고 받지 않아야 할 법은 받지 않습니다. 받아야 할 법은 받고 받지 않아야 할 법은 받지 않은 뒤에는 끊어야 할 법은 끊고 끊지 않아야 할 법은 끊지 않습니다. 끊어야 할 법은 끊고 끊지 않아야 할 법은 끊지 않은 뒤에는 성취하여야 할 법은 성취하고 성취하지 않아야 할 법은 성취하지 않습니다. 성취하여야 할 법은 성취하고 성취하지 않아야 할 법은 성취하지 않은 뒤에는 착하지 않은 법은 더욱 줄어들고 착한 법은 더욱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반드시 그런 법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아난이여, 여래께서는 어떻게 하여 반드시 그런 법을 행하십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탐욕을 떠나 탐욕이 이미 다하였고 성냄을 떠나 성냄을 이미 다하였으며 어리석음을 떠나 어리석음이 이미 다하였습니다. 여래께서는 모든 착한 법을 성취하고 모든 착하지 않은 법을 끊었으며 가르치는 스승이고 묘한 스승이고 잘 따르는 스승이시며 이끌어 다스리고 따라 다스리시며 또 잘 말하고 묘하게 말하며 순하게 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반드시 그런 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찬탄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아난이여, 여래께서는 행하여야 할 법은 반드시 행하십니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무소착ㆍ정진각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난이여, 당신은 그 스승의 제자로서 도를 배워 위없이 안온한 열반을 얻으려 하는 분입니다. 그런 당신도 오히려 그런 법을 행하는데 하물며 여래께서 그런 법을 행하시지 않겠습니까? 아난께서 잘 말씀해 주셔서 나는 지금 기쁩니다. 아난께서 시원스럽게 말씀해 주셔서 나는 지금 매우 기쁩니다. 만일 마을에서 실어 오는 벼를 아난께서 법으로 받을 수 있다면 나는 마을에서 실어오는 벼를 그 법을 위하여 모두 다 보시하겠습니다. 아난이여, 만일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를 아난께서 법으로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코끼리ㆍ말ㆍ소ㆍ염소를 그 법을 위하여 보시하겠습니다.

아난이여, 만일 부인이나 처녀를 아난께서 법으로 받을 수 있다면 나는 부인과 처녀를 그 법을 위하여 보시하겠습니다. 아난이여, 만일 금[生色寶]을 아난께서 법으로 받을 수 있다면 나는 금을 그 법을 위하여 보시하겠습니다. 아난이여,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아난께서 받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 구살라 가문에는 비하제(鞞訶提)라는 제일 좋은 옷이 있습니다. 이것은 왕7)이 일산자루 구멍에 넣어서 내게 선물로 보낸 것입니다. 아난이여, 우리 구살라 가문에는 겁패(劫貝)8)등의 여러 가지 옷이 있지만 이 비하제가 가장 낫습니다. 왜냐 하면 이 비하제옷은 길이가 16주(肘)이고 너비는 8주나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이 비하제옷을 그 법을 위하여 아난께 보시하겠습니다. 아난이여, 이것으로써 3의(衣)를 만들어 지니시고 우리 구살라 가문이 오래도록 복을 누리게 하소서.”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그만두십시오. 대왕이여, 마음만 편하면 족합니다. 저에겐 이미 받아 가진 3의가 있습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아뢰었다.
“아난이여, 내가 비유를 들어 말씀드릴 터이니 들어주소서. 슬기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으면 곧 그 이치를 압니다. 큰 비가 내릴 때면 이 아이라바제강엔 물이 가득 차서 언덕을 넘어 흘러넘치게 됩니다. 아난께서는 보셨습니까?”

“보았습니다.”

“그와 같습니다. 아난이여, 만일 3의가 있으시다면 저 비구ㆍ비구니와 배우는 단계에 있는 사라(舍羅:사미)ㆍ사라마니리(舍羅摩尼離:사미니)들에게 나누어주십시오. 아난이여, 이 비하제로 3의를 만들어 가지시고 우리 구살라 가문이 오래도록 복을 누리게 하소서.”
존자 아난은 구살라왕 바사닉을 위하여 묵묵히 청을 받아드렸다.

이에 바사닉왕은 존자 아난이 묵묵히 청을 받아 준 줄을 알고 비하제옷을 그 법을 위해 존자 아난에게 보시하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 번 돌고 떠나갔다.

왕이 떠나고 얼마 안 있어 존자 아난은 그 비하제옷을 가지고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비하제옷은 오늘 구살라왕 바사닉이 법을 위하여 저에게 보시한 것입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이 비하제옷 위에 두 발을 놓으시어 저 구살라 가문이 오래도록 복을 누리게 하소서.”

이에 세존께서는 그 옷 위에 두 발을 놓으시고 말씀하셨다.
“아난아, 만일 네가 구살라왕 바사닉과 이야기한 것이 있다면 지금 내게 전부 말해 보라.”

이에 존자 아난은 구살라왕 바사닉과 나눈 이야기를 전부 부처님께 아뢴 뒤 합장하고 여쭈었다.
“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혹 세존을 비방한 것이 되지나 않을는지요? 혹은 진실로 법다움을 말하고 법과 다음 법을 말한 것으로서 법다움에 있어서 잘못이 없겠습니까?”

“네가 그렇게 말한 것은 나를 비방한 것이 아니다. 진실로 법다움을 말하고, 법과 다음 법을 말한 것이며 법다움에 있어서 잘못이 없다. 아난아, 만일 구살라왕 바사닉이 그런 이치와 그런 말로써 내게 와서 물었다면 나도 또한 그를 위하여 그런 이치와 그런 말로써 대답하였을 것이다. 아난아, 그 이치는 네가 말한 것과 같다. 너는 마땅히 그렇게 받아 가져라. 왜냐 하면 그 말은 곧 이치에 맞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과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비하제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591자이다.

215)제일득경(第一得經) 제4 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구살라왕 바사닉의 명령이 미치는 소유 경계 안이라면 구살라왕 바사닉이 제일이다. 그러나 구살라왕 바사닉도 변하고 달라진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관찰하고 곧 그와 같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을 싫어하게 된 뒤에는 그 제일이 되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저 하천한 것이겠느냐?
이른바 해와 달의 광명이 비치는 모든 세계를 곧 1천 세계라고 한다. 이 1천 세계에는 1천 개의 해ㆍ1천 개의 달ㆍ1천 개의 불우체주(弗于逮洲)ㆍ1천 개의 염부주(閻浮洲)ㆍ1천 개의 구다니주(拘陀尼洲)ㆍ1천 개의 울단월주(鬱單越洲)ㆍ1천 개의 수미산ㆍ1천 사대왕천ㆍ1천 사천왕자ㆍ1천 삼십삼천ㆍ1천 석천인다라ㆍ1천 염마천ㆍ1천 수염마천자ㆍ1천 도솔다천ㆍ1천 도솔다천자ㆍ1천 화락천ㆍ1천 선화락천자ㆍ1천 타화락천ㆍ1천 자재천자ㆍ1천 범세계 및 1천 별범(別梵)이 있다. 그 중에 한 대범천(大梵天)이 있는데, 그는 매우 부유하고 큰 복이 있으며 화(化)해서 된 하늘 사람으로서 중생을 만들어 낸 아버지요,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범도 변하고 달라진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관찰하고 곧 그와 같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을 싫어하게 된 뒤에는 그 제일이 되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하천한 것이겠는가?

뒷날 이 세계는 무너져 없어진다. 이 세계가 무너져 없어질 때 중생들은 황욱천(晃昱天)에 태어나는데 거기서 훌륭한 빛깔을 가지며 마음대로 몸을 받아 나서 일체를 구족하고 지절(支節)은 줄어들지 않으며 모든 근(根)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은 기쁨으로 음식을 삼고 형색은 맑고 깨끗하며 몸에서 광명이 나고 허공을 타고 날아다니면서 오래도록 거기서 산다. 그러나 그 황욱천도 또한 다른 것으로 변한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가 이와 같이 관찰하고 곧 그와 같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을 싫어하게 된 뒤에는 그 제일이 되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하천한 것이겠는가?

또 네 가지 생각이 있어 어떤 비구들은 작다고 생각하고 어떤 비구들은 크다고 생각하며 어떤 비구들은 한량이 없다고 생각하고 어떤 비구들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중생들은 이렇게 생각[想]을 즐겨하고 뜻으로 이해하지만 그것도 또한 변하고 달라진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관찰하고 곧 그와 같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을 싫어하게 된 뒤에는 그 제일이 되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하천한 것이겠는가?
다시 여덟 가지 버리는 경계가 있다. 어떤 것이 그 여덟 가지인가? 비구는 안에 색(色)이라는 생각이 있으면서 밖으로 조그마한 좋은 색과 나쁜 색을 관찰하여 ‘저 색(色)을 버린 것을 알고 버린 것을 본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첫째의 버리는 경계라 한다.
다시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있으면서 밖으로 한량없이 많은 좋은 색과 나쁜 색을 관찰하여 ‘저 색을 버린 것을 알고 버린 것을 본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둘째의 버리는 경계라 한다.
다시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조그마한 좋은 색과 나쁜 색을 관찰하여 ‘저 색을 버린 것을 알고 버린 것을 본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셋째의 버리는 경계라 한다.
다시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한량없이 많은 좋은 색과 나쁜 색을 관찰하여 ‘저 색을 버린 것을 알고 버린 것을 본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넷째의 버리는 경계라 하느니라.

다시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저것은 푸른빛으로서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난다. 마치 푸른 물꽃[水華]이 푸르러 푸른빛으로서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만들어 잘 두드리고 잘 다듬어 빛깔이 곱고 윤택한 바라나옷이 푸른빛으로서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나는 것과 같다’고 색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저것은 푸르러 푸른빛으로서 푸르게 보이고 푸르게 빛난다’고 색을 관찰한다. 그래서 한량없고 한량없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윤택하게 하여 즐거워하며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저 색을 버린 것을 알고 버린 것을 본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다섯째의 버리는 경계라 하느니라.
또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저것은 누르러 누른빛으로서 누르게 보이고 누르게 빛난다. 마치 빈두가라(頻頭歌羅)꽃이 누르러 누른빛으로서 누르게 보이고 누르게 빛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잘 만들어 잘 두드리고 잘 다듬어 빛깔이 곱고 윤택한 바라나옷이 누른빛으로서 누르게 보이고 누르게 빛나는 것과 같다’고 색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저 색은 누르러 누른빛으로서 누르게 보이고 누르게 빛난다’고 색을 관찰한다. 그래서 한량없고 한량없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윤택하게 하여 즐거워하며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저 색을 버린 것을 알고 버린 것을 본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여섯째의 버리는 경계라 하느니라.

다시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저것은 붉어서 붉은빛으로서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난다. 마치 가니가라(加尼歌羅)꽃이 붉어서 붉은 빛으로서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잘 만들어 잘 두드리고 잘 다듬어 빛깔이 곱고 윤택한 바라나옷이 붉어서 붉은 빛으로서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나는 것과 같다’고 색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저 색은 붉어서 붉은 빛으로서 붉게 보이고 붉게 빛난다’고 색을 관찰한다. 그래서 한량없고 한량없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윤택하게 하여 즐거워하며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저 색을 버린 것을 알고 버린 것을 본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일곱째의 버리는 경계라 하느니라.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저 색은 희어서 흰빛으로서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난다. 마치 샛별이 흰 빛으로서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잘 만들어 잘 두드리고 잘 다듬어 빛깔이 곱고 윤택한 바라나옷이 희어서 흰빛으로서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나는 것과 같다’고 색을 관찰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안에 색이라는 생각이 없이 밖으로 ‘저 색은 희어서 흰빛으로서 희게 보이고 희게 빛난다’고 색을 관찰한다. 그래서 한량없고 한량없이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윤택하게 하여 즐거워하며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저 색을 버린 것을 알고, 버린 것을 본다’고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을 여덟째의 버리는 경계라 하느니라.
중생은 이렇게 버리는 경계를 즐거워하고 뜻으로 이해하지만 그것도 변하고 달라진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관찰하고 곧 그와 같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들을 싫어하게 된 뒤에는 그 제일이 되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하천한 것이겠는가?

다시 열 가지 일체의 경계가 있다. 어떤 것이 열 가지인가? 어떤 비구는 상ㆍ하와 모든 방위가 둘이 아니라는 한 생각을 닦는다. 이른바 한량없는 땅의 경계ㆍ한량없는 물의 경계ㆍ한량없는 불의 경계ㆍ한량없는 바람의 경계ㆍ한량없는 푸른 경계ㆍ한량없는 누른 경계ㆍ한량없는 붉은 경계ㆍ한량없는 흰 경계ㆍ한량없는 허공의 경계ㆍ한량없는 의식 등, 이러한 상ㆍ하 모든 방위가 둘이 아니라는 한 생각을 닦는다. 중생은 이렇게 일체의 경계를 즐거워하고 뜻으로 이해하지만 그것도 변하고 달라진다.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관찰하고 곧 그와 같이 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것들을 싫어하게 된 뒤에는 그 제일이 되는 것까지도 바라지 않는데 하물며 하천한 것이겠는가?
이른바 ‘나[我]가 없고 내 소유가 아니다’라고 하며, 그것을 증득하였기 때문에 도라고 주장하나니, 이것을 제일 맑고 깨끗한 말이라 하고, 가장 제일이라고 주장하느니라. 또 이른바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넘어서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처를 성취하여 노니나니, 이것을 제일가는 바깥을 의지하여 보는 경계라 하고, 가장 제일가는 의지하여 보는 경계[依見處]라 하느니라. 이른바 여섯 가지 갱락처(更樂處)에 대해서 그 생(生)ㆍ멸(滅)ㆍ맛들임[味]ㆍ벗어남[離]을 지혜로써 사실 그대로 보고 또 그것을 증득하기 때문에 도(道)라고 주장하나니, 이것을 현재에서 제일로 열반을 구해 열반에 이르는 것이라 하고 현재에서 가장 제일로 열반을 주장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다시 네 가지 끊음[斷]이 있다. 어떤 것이 넷인가? 즐거움을 더디 끊는 것, 즐거움을 빨리 끊는 것, 괴로움을 더디 끊는 것, 괴로움을 빨리 끊는 것이 있다. 그 중에서 만일 즐거움을 더디 끊으면 그것은 즐거움을 더디 끊기 때문에 하천하다고 말한다.9)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즐거운 탐욕을 끊는다. 만일 이 사람이 이 법을 익히면 조금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고,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술 마시기를 익히면 조금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으며,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잠자기를 익히면 조금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이것이 비구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세 법을 익히면 조금도 그것을 싫어하지 않고, 또한 그것을 완전히 끊을 수 없다고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모든 비구들은 언제나 이 세 법을 버리고 가까이 하지 말라. 모든 비구들은 마땅히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그 때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세 가지 좋은 뿌리 공양하면
세 가지 병과 덮음 치료되건만
세 가지 상법(相法) 깨닫지 못해
사랑하고 공경하며 싫어할 줄 모르네.
이 제일득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371자이다. 『중아함경』 제59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0,772자이다.
“그 중에서 만일 즐거움을 빨리 끊으면 그것은 즐거움을 빨리 끊기 때문에 또한 하천하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 만일 괴로움을 더디 끊으면 그것은 괴로움을 더디 끊기 때문에 그 끊음도 또한 하천하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 만일 괴로움을 빨리 끊으면 그것은 괴로움을 빨리 끊기 때문에 그 끊음은 널리 퍼지지 않고 두루 퍼지지 않으며 내지 하늘과 사람들도 또한 그것을 칭찬하지도 않고 널리 펴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의 끊음은 널리 퍼지고 두루 퍼지며, 나아가 하늘과 사람들까지도 또한 칭찬하며 널리 편다. 나의 끊음은 널리 퍼지고 두루 퍼지며 나아가 하늘과 사람들까지도 그것을 칭찬하고 또 널리 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바른 소견에서부터 바른 선정까지의 8정도를 말하는 것이니, 나의 끊음은 널리 퍼지고 두루 퍼지며 나아가 하늘과 사람들까지도 그것을 칭찬하고 또 널리 편다는 것은 이것을 말한다.
나는 이러하다. 그런데 저 모든 사문 범지들은 거짓으로 거짓말을 지어, 좋지 않고 진실하지 않게 나를 비방한다. 진실로 어떤 중생은 ‘사문 구담은 주장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며 끊어지고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진실로 어떤 중생은 끊어지고 없어지는 것[斷壞]이 나 없음[無我]과 같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는다.
‘저 여래는 현세에서 일체를 끊고 일체를 알아 쉼과 그침과 멸함과 열반을 얻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10)

주석
1 팔리본에는 ujuññā로 되어 있다. 교살라국(憍薩羅國)의 성읍이다.
2 팔리어로는 Kaakatthala이다. 장아함 25번째 경인 『나형범지경(倮形梵志經)』에서는 금반녹야림(金槃鹿野林)으로 한역하였다. 바라나국에 있던 녹야원(鹿野苑)과는 다르다.
3 바사닉(波斯匿, pasenadi)은 화열(和悅) 또는 월광(月光)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현장(玄奘)은 승군(勝軍)으로 한역하였고 의정(義淨)은 승광(勝光)으로 한역하였다.
4 현(賢, Sakulā)과 월(月, Somā)은 바사닉왕의 여자 형제들이다.
5 비유라(鞞留羅, Viḍūḍabha)는 유리(瑠璃) 또는 유리(流離)로 번역하기도 한다. 바사닉왕의 아들이다.
6 구루사(拘婁舍, kosa)는 거리를 측량하는 단위이다. 즉 1구루사는 한 마리 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거리를 말한다.
7 팔리본에는 왕이 구체적으로 ‘마가다의 왕인 위제희(韋提希)의 아들 아사세(阿闍世)’로 되어 있다.
8 겁패(劫貝, kappāsika)는 곧 면옷[綿衣]이다.
9 이 아래로 ‘그 중에서 어떤 사람은’에서부터 이 소경의 끝부분인 ‘싫어할 줄 모르네’라고 한 데까지는 본 경의 내용과 부합하지 않는다. 도리어 『증일아함경』 제12권 「삼공양품(三供養品)」제10경의 문장과 동일하다. 따라서 경의 말미에 원본(元本)을 토대로 하여 이 내용과 부합되는 부분을 번역하였으니 독자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10 “그 중에서 만일 즐거움을 빨리 끊으면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의 문단의 원문텍스트는 고려대장경에 없는 부분이다. 대정신수대장경에 의거해 번역하여 덧붙인다.

중아함경 제60권

승가제바 한역

18. 예품 제4②[제5 후송]
216) 애생경(愛生經)1) 제5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지극히 사랑하고 염려하여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보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 외아들을 둔 어떤 범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아끼던 그 아들이 갑자기 죽었다. 아들이 죽자 그는 슬픔에 잠겨 음식도 먹을 수 없고 옷도 입을 줄 모르며 또한 향도 바를 줄 모르고 그저 무덤에 가서 울면서 아들이 누워 있는 곳만 생각하였다. 이에 그 범지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범지여, 지금 그대의 모양을 보니 본정신이 아닌 것 같구려.”

범지가 대답하였다.
“지금 제가 무슨 경황으로 제 정신이 있겠습니까? 왜냐 하면 저에겐 오직 하나의 아들이 있었는데 지극히 사랑하고 생각하여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보고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외아들이 갑자기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죽자 저는 슬픔에 잠겨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옷도 입을 줄 모르며 또한 향도 바르지 않고 그저 무덤에 가서 울면서 아들이 누워 있는 곳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범지여, 그렇습니다. 범지여,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범지가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왜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십니까? 구담이시여, 마땅히 아소서. 애정이 생기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거듭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범지여, 그렇습니다. 범지여,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깁니다.”

범지도 또한 거듭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왜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십니까? 구담시여, 마땅히 아소서. 애정이 생기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때 저 바라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옳다고 말하지 않고 그르다고만 말한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내젓고 떠나갔다.

그 때 승림(勝林) 문 앞에서는 많은 시장 아이들이 도박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범지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곧 ‘세상에 만일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저 도박꾼보다 나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저기 가서 구담과 나눈 이야기를 저들에게 모두 말하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많은 시장 아이들이 도박놀이하는 곳으로 가서 세존과 나눈 이야기를 그들에게 모두 말하였다.

많은 도박꾼 시장 아이들은 이 말을 듣고 말하였다.
“범지여, 왜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십니까? 범지여, 마땅히 아소서. 애정이 생기면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범지는 이 말을 듣고 곧 ‘도박꾼 아이들의 말은 꼭 내 생각과 같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끄덕이고 떠났다.

이에 이 이야기는 계속해 퍼져서 마침내 왕궁까지 들어갔다. 구살라왕 바사닉은 사문 구담께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다는 말을 듣고 말리 황후2)에게 말하였다.

“나는 들으니 사문 구담께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오.”

말리 황후는 이 말을 듣고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그렇습니다. 대왕이시여,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깁니다.”

구살라왕 바사닉이 말리황후에게 말하였다.
“스승이 주장하는 말을 들으면 그 제자는 반드시 찬동하기 마련이오. 사문 구담이 당신의 스승이고, 당신은 그의 제자이기 때문에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하는 것이오.”

말리황후가 말하였다.
“대왕이여, 만일 믿지 못하시겠거든 몸소 가서 물으시든지 사신을 보내 물어 보십시오.”

이에 바사닉왕은 곧 나리앙가(那利鴦伽) 범지에게 분부하였다.
“그대는 사문 구담이 계신 곳으로 가서 나를 위해 사문 구담에게,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시고 편안하여 병환은 없으시며 기거는 가볍고 기력도 여전하신지 문안을 드리거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려라.
‘구살라왕 바사닉은 문안드립니다. 거룩한 몸은 건강하시고 편안하여 병환은 없으시며 기거는 가볍고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사문 구담께서는 진실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리잉가여, 만일 사문 구담께서 어떤 말씀이든 하시는 말씀이 있거든 그대는 마땅히 잘 받아 외워가지고 오너라. 왜냐 하면 그러한 분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이니라.”

나리앙가 범지는 왕의 분부를 받고 곧 부처님께 나아가 문안드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구살라왕 바사닉은 문안드립니다. 거룩하신 몸은 건강하시고 편안하여 병환은 없으시며 기거는 가볍고 기력도 여전하십니까? 또 사문 구담께서는 진실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리앙가여, 내가 이제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아는 대로 대답하라. 나리앙가여, 너의 생각에는 어떠하냐?혹 어떤 사람은 그 어머니가 목숨을 마치면 그는 광기가 발동하고 마음이 매우 어지러워 옷을 벗고 알몸으로 아무 길이나 마구 돌아다니면서 ‘여러분, 우리 어머니를 보았습니까? 여러분, 우리 어머니를 보았습니까?’ 하고 외치고 다닌다. 나리앙가여, 이 일만 가지고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ㆍ형님ㆍ누나ㆍ여동생의 경우에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며느리가 목숨을 마치면 그 사람은 광기를 발동하고 마음이 매우 어지러워 옷을 벗고 알몸으로 아무 길이나 돌아다니면서 ‘여러분, 우리 며느리를 보았습니까? 여러분, 우리 며느리를 보았습니까?’ 하고 외치고 다닌다. 나리앙가여 이 일만 가지고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니라.

나리앙가여, 옛날에 어떤 부인이 잠깐 친정에 들리러 왔는데, 그 친족들이 그 부인을 다른 곳으로 다시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그 부인은 이 말을 듣고 곧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 그 남편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은 마땅히 아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 친족들은 당신의 아내인 나를 억지로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다시 시집보내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 남자는 부인의 팔을 붙들고 방 안으로 들어가 ‘우리 저승으로 같이 갑시다. 우리 저승으로 같이 갑시다’ 하면서 곧 예리한 칼로 그 부인을 찔러 죽이고, 자기도 함께 죽었다. 나리앙가여, 이 일만 가지고 보아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느니라.”

나리앙가 범지는 부처님 말씀을 들어 잘 받아 외워 가지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세 번 돌고 물러나왔다.
그는 구살라왕 바사닉에게 돌아와 아뢰었다.
“천왕이여, 사문 구담께서는 진실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사닉왕은 이 말을 듣고 황후에게 말하였다.
“사문 구담께서는 진실로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고 말씀하셨소.”

“대왕이여, 제가 대왕에게 묻겠으니 아는 대로 대답하소서. 대왕이여, 대왕의 생각에는 어떠하십니까? 대왕은 비유라(鞞留羅)3) 대장을 사랑하십니까?”

“진실로 사랑하오.”

“만일 비유라 대장이 변하고 달라진다면 대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리여, 만일 비유라 대장이 변하고 달라진다면 나는 반드시 슬퍼하고 울며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번민할 것이오.”

“대왕이여, 이 일로써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리 황후는 다시 물었다.
“대왕이여, 대왕은 시리아다(尸利阿茶)4) 대신ㆍ일분다리(一奔陀利) 코끼리ㆍ바이리(婆夷利)5) 처녀ㆍ우일개(雨日蓋)6)ㆍ가시(加尸)국ㆍ구살라국을 사랑하십니까?”

“진실로 사랑하오.”

“만일 가시국이나 구살라국이 변하고 달라진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말리여, 내가 5욕 공덕을 구족하여 스스로 즐기고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저 두 나라 때문이오. 만일 가사국과 구살라국이 변하고 달라진다면 나도 목숨이 없는 지경이 될 것이어늘 하물며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 정도겠소?”

“대왕이여, 이 일만 가지고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리는 다시 물었다.
“대왕이여, 대왕의 생각에는 어떠하십니까? 대왕께서는 저를 사랑하십니까?”

“나는 진실로 그대를 사랑하오.”

“만일 제가 하루아침에 변하고 달라진다면 왕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리여, 만일 그대가 하루아침에 변하고 달라진다면 나는 반드시 슬퍼하고 울며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번민할 것이오.”

“대왕이여, 이 일만 가지고도 만일 애정이 생기면 거기에는 곧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자 바사닉왕이 말하였다.
“말리여, 오늘부터는 이 일로 말미암아 사문 구담이 내 스승이요, 나는 그의 제자가 되었소. 말리여, 나는 지금부터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하오. 다만 세존께서 나를 우바새로 받아 주시기를 바랄 뿐이오. 나는 오늘부터 귀의하여 이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할 것이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구살라왕 바사닉과 말리황후는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애생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1,678자이다.

217) 팔성경(八城經)7) 제6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지 오래지 않아 이름과 덕망이 있는 여러 높은 비구들이 파라리자성(波羅利子城)8)을 유행하면서 계원(雞園)에 머물고 있었다.

이 때 팔성(八城)의 제십(第十) 거사는 값진 재물을 많이 가지고 파라리자성에 가서 장사하고 있었다. 이에 팔성의 제십 거사는 그 많은 재물을 빨리 팔아 큰 이익을 얻고 너무 좋아 기뻐 뛰면서 파라리자성을 나와 이름과 덕망이 있는 높은 비구들이 많이 머무는 계원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들의 발에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그 때 이름과 덕망이 있는 여러 높은 비구들은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였다. 그들은 한량없는 방편으로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한 뒤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이름과 덕망이 있는 여러 높은 비구들이 그를 위해 설법하여 마음을 내게 하고 못내 우러르게 하며 성취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자 이에 팔성 사람 제십 거사가 아뢰었다.
“큰스님들이시여, 존자 아난은 지금 어디 계십니까? 제가 찾아가 뵙고자 합니다.”

여러 높은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거사여, 존자 아난은 지금 비사리(鞞舍離)의 미후(彌猴) 강가에 있는 높은 누각에 있소. 보고 싶으면 그리로 가보시오.”

그 때 팔성 사람 제십 거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 높은 비구들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리고 세 번 돌고 나서 떠나갔다. 그는 존자 아난이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여쭈었다.
“존자 아난이시여,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거사여, 마음대로 물으시오. 내가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다.”

거사가 물었다.
“존자 아난이시여, 세존ㆍ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는 혜안(慧眼)을 성취하여 제일의(第一義)를 보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만일 거룩한 제자가 거기에 머물면 번뇌가 남김없이 소멸되고 마음의 해탈을 얻게 된다는 그런 한 법을 혹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거사가 물었다.
“존자 아난이시여, 세존ㆍ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는 혜안을 성취하여 제일의를 보셨습니다. 만일 거룩한 제자가 거기에 머물면 번뇌가 남김없이 멸하고 마음의 해탈을 얻게 된다는 그런 한 법을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거사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대로 합니다. 그가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대로 하면 거기 머물러 혹 번뇌가 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못하게 되면, 혹은 그 법으로 말미암아 법을 욕심내고 법을 사랑하며 법을 좋아하고 법을 생각하며 즐겨하고 기뻐하게 되어 5하분결(下分結)을 끊습니다. 그리하여 저 세상에 화생하여 반열반한 뒤에는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마침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거사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자애로움[慈]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한 방위를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닙니다.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모두에 두루하게 합니다. 사랑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힘[結]도 없고 원망[怨]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닙니다. 불쌍히 여김[悲]ㆍ기뻐함[喜]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평정[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을 가득 채우고 성취하여 노닙니다.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대로 합니다. 그가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대로 하면 거기에 머물러 혹 번뇌가 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못하게 되면 혹은 그 법으로 말미암아 법을 욕심내고 법을 사랑하며 법을 좋아하고 법을 생각하며 즐겨하고 기뻐하여 5하분결을 완전히 끊습니다. 그리하여 저 세상에 화생하여 반열반(般涅槃)한 뒤에는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마침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혜안을 성취하여 제일의를 보신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 말씀하신 한 법으로서, 만일 거룩한 제자가 여기에 머문다면 번뇌가 남김없이 소멸되고 마음의 해탈을 얻게 됩니다.

또 거사여,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색(色)에 대한 모든 생각을 벗어나고 나아가서는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의 경계를 성취하여 노닐며 그는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대로 합니다.
그가 이 경계를 의지하여 법을 관찰하기를 법대로 하면 거기에 머물러 혹 번뇌가 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거기에 머물러 번뇌가 다하지 못하게 되면 혹은 그 법으로 말미암아 법을 욕심내고 법을 사랑하며 법을 좋아하고 법을 생각하며 즐겨하고 기뻐하여 5하분결을 완전히 끊습니다. 그리하여 저 세상에 화생하여 반열반한 뒤에는 물러나지 않는 법을 얻어 마침내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혜안을 성취하여 제일의를 보신 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 말씀하신 한 법으로서, 만일 거룩한 제자가 여기에 머문다면 번뇌가 남김없이 소멸되고 마음의 해탈을 얻게 됩니다.”

이에 팔성의 제십 거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가사 한자락을 벗어 메고 합장하고 아뢰었다.
“존자 아난이시여, 참으로 기이하고 참으로 특별하십니다. 저는 존자 아난께 하나의 감로문(甘露門)을 물었는데 존자 아난께서는 저를 위해 열두 개의 감로법문을 한꺼번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이 열두 감로법문은 반드시 의지하는 바를 따라 안온하게 나갈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집이 있어 열두 문을 열어 놓은 것과 같습니다. 혹 어떤 사람이 일이 있어 그 집 안에 들어갔을 때 다시 어떤 사람이 와서 그 사람의 볼 일과 이익과 안온은 생각하지 않고 그 집을 불사르더라도 존자 아난이시여, 그 사람은 반드시 그 열두 개의 지게문에서 자기가 의지하는 문을 따라 나와 안온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는 존자 아난께 하나의 감로문을 물었는데 존자 아난께서는 저를 위해 열두 개의 감로법문을 한꺼번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이 열두 개의 감로문에서 반드시 의지하는 문을 따라 안온하게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존자 아난이시여, 저 범지의 법과 율에서 착하지 않은 법과 율을 말하더라도 저는 오히려 그 스승들께 공양하거늘 하물며 제가 어찌 큰 스승이신 존자 아난께 공양하지 않겠습니까?”

이에 팔성의 제십 거사는 그날 밤으로 지극히 묘하고 깨끗하고 맛있고 또 풍성한 음식을 마련하였다. 그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 이른 아침에 자리를 펴고 계원(雞園)의 대중과 비사리(鞞舍離)의 대중을 청해 한 자리에 모으고 손수 손 씻을 물을 돌린 뒤에 곧 지극히 묘하고 깨끗하고 맛있고 또 풍성한 음식을 손수 나눠드려 모두 배불리 드시게 하였다. 공양이 끝나자 그릇을 거두고 손 씻을 물을 돌린 뒤에 5백 가지 물건으로 집을 사서 따로 존자 아난에게 보시하였다. 존자 아난은 그것을 받아 초제승(招提僧)9)에게 보시하였다.

존자 아난이 이렇게 말하자 팔성의 제십거사는 존자 아난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팔성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170자이다.

218)아나율타경(阿那律陀經) 제7 상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모든 비구들은 오후[晡時]가 되어 연좌(燕坐)에서 일어나 존자 아나율타(阿那律陀)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저희들이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으시오. 내가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다.”

그러자 여러 비구들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비구는 어질게 죽고 어질게 목숨을 마치게 됩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의 경지를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어질게 죽고 어질게 목숨을 마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비구가 어질게 죽고 어질게 목숨을 마치는 것이 그것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어질게 죽고 어질게 목숨을 마치는 것이 이것만은 아니오. 다시 여러분, 만일 비구가 여의족(如意足)ㆍ천이(天耳)ㆍ타심지(他心智)ㆍ숙명지(宿命智)ㆍ생사지(生死智)를 얻어 번뇌를 다하면 무루(無漏)를 증득하여 심해탈(心解脫) 하고 혜해탈(蕙解脫) 하며 현재 세계에서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증득하여 성취하여 노닐게 됩니다. 즉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후세의 생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진실 그대로 압니다. 이것을 어질게 죽고 어질게 목숨을 마치는 것이라 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비구가 어질게 죽고 어질게 목숨을 마치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여러분, 비구가 어질게 죽고 어질게 목숨을 마치는 것은 이것뿐이오.”

이에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나율타의 말을 듣고 잘 받아 가져 외운 뒤에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아나율타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존자 아나율타가 이렇게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나율타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아나율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353자이다.

219)아나율타경(阿那律陀經) 제8 하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은 오후가 되어 연좌에서 일어나 존자 아나율타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저희들이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들어주시겠습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으시오. 내가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다.”

여러 비구들이 물었다.
“어떤 것이 비구가 번열(煩熱)10)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입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소견이 소박하고 정직하며, 거룩한 사랑의 계[聖愛戒]를 얻으면 이것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친다고 말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안 몸을 관찰하기를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覺]과 마음[心]과 법[法]을 관찰할 때도 감각과 마음과 법을 사실 그대로 관찰하면 이것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친다고 말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말하였다.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이것만이 아니오. 여러분, 비구가 자애로움[慈]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1방(方)을 두루 채워 성취하여 노닐고 이와 같이 2ㆍ3ㆍ4방과 4유ㆍ상하 일체를 두루 채우며 자애로움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을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고 합시다. 이와 같이 불쌍히 여김[悲]ㆍ기뻐함[喜]도 또한 그러하며, 만일 비구가 평정[捨]과 함께하는 마음으로 맺힘도 없고 원망도 없으며,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지극히 넓고 매우 크고 한량없는 선행(善行)을 닦아 일체 세간을 두루 채우고 성취하여 노닌다면, 이것을 곧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색(色)에 대하여 모든 생각을 벗어나고 나아가 비유상비무상의 경계까지 성취하여 노닐면, 이것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오. 여러분, 만일 비구가 일체의 비유상비무상의 경계를 지나 상(想)과 지(知:受)가 멸한 신촉(身觸)을 성취하여 노닐고, 또 지혜로 관찰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면 이것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 비구들이 다시 물었다.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존자 아나율타가 대답하였다.
“여러분 비구가 번열하지 않고 죽으며 번열하지 않고 목숨을 마치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 때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나율타의 말을 듣고 잘 받아 가져 외우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존자 아나율타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 세 번 돌고 떠나갔다.

존자 아나율타가 이렇게 말하자 여러 비구들은 존자 아나율타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아나율타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651자이다.

220) 견경(見經)11) 제9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반열반하신 지 오래지 않아 존자 아난은 왕사성을 유행할 적에 죽림가란다원(竹林迦蘭哆園)에 있었다.

이 때 어떤 이학[異學:이교도] 범지가 있었는데, 그는 존자 아난이 출가하기 전의 친구였다. 그는 오후에 천천히 거닐어 존자 아난에게 가서 서로 인사한 뒤에 물러나 한쪽에 앉아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들어 주시겠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범지여,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으시오. 내가 들은 뒤에 생각해 보리다.”

이교도 범지가 물었다.
“사문 구담께서는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이런 소견들에 대해서는 죄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이러한 모든 견해에 대하여 마땅히 아셔야 할 일인데 알고 계셨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범지여, 세존ㆍ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는 이른바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이런 견해들에 대해서는 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세존ㆍ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는 이러한 모든 견해에 대하여 마땅히 알아야 할 일이었으므로 알고 계셨습니다.”

이교도 범지가 다시 물었다.
“사문 구담께서는 이른바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사문 구담께서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응당 알아야 할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했다.
“범지여, 세존ㆍ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는 이른바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이런 견해들에 대해서는 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교도 범지여, 그것은 곧 구(具)이고, 그것은 곧 수(受)이며, 그것은 곧 취(趣)이고, 그것은 곧 생(生)이며, 그것은 곧 후세에 이르는 것입니다. 세존ㆍ여래ㆍ무소착ㆍ정진각께서는 이른바 ‘세상은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이러한 견해들에 대해서는 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이 모든 견해가 그와 같음을 아셨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는 이와 같이 알아야 합니다.”

이교도 범지가 아뢰었다.
“나는 이제 아난께 귀의하겠습니다.”

존자 아난이 말하였다.
“범지여, 그대는 내게 귀의하지 마시오. 내가 부처님께 귀의한 것처럼 그대도 또한 부처님께 귀의하시오.”

이학 범지가 말하였다.
“아난이여, 저는 이제 부처님과 법과 비구승에게 귀의합니다. 세존께서 저를 우바새로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부터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 귀의하여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 아난이 이렇게 말하자 이학 범지는 아난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견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625자이다.

221) 전유경(箭喩經)12) 제10 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勝林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만동자(鬘童子)13)는 혼자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서 연좌(燕座)하고 사색하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세상은 영원한가,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 세존께서는 이런 소견들은 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으며, 나는 그것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신다면 나는 그 분을 따라 범행을 배우리라.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나는 그를 힐난한 뒤에 그를 버리고 떠나리라.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신다면, 나는 그분을 따라 범행을 배우리라.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나를 위하여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나는 그를 힐난한 뒤에 그를 버리고 떠나리라.”

존자 만동자는 해질 무렵에 연좌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아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 혼자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서 연좌하고 깊이 사색에 잠겼다가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가, 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 세존께서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다 제쳐놓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고 저는 그것을 참을 수 없으며 저는 그것을 옳게 여기지 않습니다.

만일 세존께서 분명하게 ‘세상은 영원하다’고 알고 계신다면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만일 세존께서 ‘세상은 영원한가’에 대해 분명하게 알지 못하신다면 ‘나는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 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세존께서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하게 아신다면 세존이시여,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그러나 만일 세존께서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하게 알지 못하신다면 ‘나는 모른다’고 정직하게 말씀하여 주소서.”

세존께서 물으셨다.
“만동자야, 내가 이전에 혹 너에게 ‘세상은 영원하다. 그러니 너는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라’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이전에 혹 너에게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 그러니 너는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라’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동자야, 너는 이전에 혹 내게 ‘만일 세존께서 저에게 〈세상은 영원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겠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여래는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동자야, 너는 이전에 혹 내게 ‘만일 세존께서 저에게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겠습니다’ 하고 말한 적이 있었더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동자야, 나도 이전에 너에게 말한 일이 없고 너도 또한 이전에 내게 말한 일이 없는데, 너 미련한 사람아, 어찌하여 너는 부질없이 나를 모함하고 비방하느냐?”

이에 존자 만동자는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꾸지람을 듣고 마음으로 근심하고 슬퍼하며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 말이 없었으나, 무엇인가 물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이에 세존께서 만동자를 면전에서 직접 꾸짖으신 뒤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에게 〈세상은 영원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중간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에게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 중간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몸에 독화살을 맞은 것과 같다. 그가 독화살로 말미암아 매우 심한 고통을 받을 때에 그 친족들은 그를 가엾이 생각하고 불쌍히 여기며 그의 이익과 안온을 위해 곧 의사를 청하였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자.
‘아직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그 사람이 어떤 성ㆍ어떤 이름ㆍ어떤 신분이며, 키는 큰가 작은가, 살결은 거친가 고운가, 얼굴 빛은 검은가 흰가, 혹은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가, 찰리족인가 혹은 바라문ㆍ거사ㆍ공사의 종족인가, 동방ㆍ서방ㆍ북방 어느 쪽에 사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이 산뽕나무로 되었는가, 뽕나무로 되었는가, 물푸레나무로 되었는가, 혹은 뿔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궁찰(弓扎)이 소 힘줄로 되었는가, 노루나 사슴 힘줄로 되었는가, 혹은 실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의 색깔이 검은가, 흰가,붉은가, 혹은 누른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줄이 힘줄로 되었는가, 실로 되었는가, 모시로 되었는가, 혹은 삼으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화살이 나무로 되었는가, 혹은 대나무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살촉을 화살대에 고정시킬 때 소 힘줄을 썼는가, 노루나 사슴 힘줄을 썼는가, 혹은 실을 썼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화살 깃이 매 털로 되었는가, 보라매나 독수리 털로 되었는가, 고니나 닭털로 되었는가, 혹은 학털로 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살촉이 넓고 길쭉하며 얇은 비(錍)모양인가, 창 모양인가, 혹은 양쪽으로 날이 선 칼 모양인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살촉을 만든 사람이 어떤 성ㆍ어떤 이름ㆍ어떤 신분이며, 키는 큰가 작은가, 살결은 거친가 고운가, 얼굴빛은 흰가 검은가, 혹은 검지도 않고 희지도 않은가, 혹은 동방ㆍ남방ㆍ서방ㆍ북방의 어느 쪽에 사는가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은 결국 그것을 알기도 전에 그 중간에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세존께서 나에게 〈세상은 영원하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지 않으시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기도 전에 그 중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견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만일 세존께서 나에게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말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면, 나는 세존을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으리라’고 한다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기도 전에 그 중간에서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런 견해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견해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이런 소견이 있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견해가 있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니라.

‘세상은 영원하다’라는 이런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은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는가?’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운다면 그것은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런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는가? 세상은 끝이 있는가, 세상은 끝이 없는가? 목숨이 곧 몸인가, 목숨과 몸은 다른가? 여래는 마침이 있는가, 여래는 마침이 없는가,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은가?’ 하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견해가 없기 때문에 나를 좇아 범행을 배우지 않는다면 이것도 옳지 못하니라.

‘세상은 영원하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있으니 이렇게 하여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긴다.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세상은 끝이 있다. 세상은 끝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하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다’는 견해를 가진 자도 남이 있고 늙음이 있으며 병이 있고 죽음이 있으며 슬픔과 울음ㆍ근심ㆍ괴로움ㆍ번민이 있으니 이렇게 하여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생기느니라.

‘세상은 영원하다’고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이치와 맞지 않고 법과 맞지 않으며, 또 범행의 근본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이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세상은 끝이 있다. 세상은 끝이 없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마침이 있다. 여래는 마침이 없다. 여래는 마침이 있기도 하고 마침이 없기도 하다. 여래는 마침이 있지도 않고 마침이 없지도 않다’고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무슨 까닭으로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이치와 맞지 않고 법과 맞지 않으며, 또 범행의 근본이 아니어서 지혜로 나아가지 않고 깨달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열반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같이 그렇게 말하지는 않느니라.
그러면 나는 어떤 법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나는 이런 이치를 한결같이 말하나니, 곧 괴로움[苦]과 괴로움의 발생[苦集]과 괴로움의 소멸[苦滅]과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자취이니, 나는 이것을 한결같이 말한다. 무슨 까닭으로 나는 이것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이것은 이치와 맞고 법과 맞으며 또 이것은 범행의 근본으로서 지혜로 나아가고 깨달음으로 나아가며 열반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나는 한결같이 이것만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말하지 않고 말하여야 할 것은 말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이렇게 가지고 이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전유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2,027자이다.

222) 예경(例經) 제11제5 후송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유행하실 적에 승림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아, 만일 무명(無明)을 끊고자 한다면 마땅히 4념처(念處)를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4념처를 닦아야 하는가?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5개(蓋)와 나아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안 몸[內身]을 관찰하기를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覺]과 마음[心]과 법(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 그대로 관찰한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네 곳을 관찰하기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벗어나며 무명을 빼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무명을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념처를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4념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안 몸을 관찰하기를 안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나아가 감각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 그대로 관찰한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념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正斷)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4정단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오래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더하고 자라게 하고 넓고 크게 하며 닦아 익히고 완전히 갖추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자꾸 끊어 해탈하고 벗어나며 뽑아 버리고 끊으며 멸하고 그치며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오래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더하고 자라게 하고 넓고 크게 하며 닦아 익히고 완전히 갖추기 위해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如意足)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4여의족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蓋)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욕정(欲定)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에서 떠남[離]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無欲]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滅]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정진정(精進定)ㆍ심정(心定)을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며 사유정(思惟定)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해탈하고 벗어나며 뽑아 버리고 끊으며 멸하고 그치며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4여의족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욕정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정진정과 심정을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며 사유정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선(禪)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4선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벗어나며 무명을 뽑아버리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선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4선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근(根)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근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탐욕을 여의며 믿음의 뿌리[信根]ㆍ정진의 뿌리[精進根]ㆍ생각의 뿌리[念根]ㆍ선정의 뿌리[定根]ㆍ지혜의 뿌리[慧根]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5근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벗어나며 무명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근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5근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믿음의 뿌리ㆍ정진의 뿌리ㆍ생각의 뿌리ㆍ선정의 뿌리ㆍ지혜의 뿌리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근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력(力)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5력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믿음의 힘[信力]ㆍ정진의 힘[精進力]ㆍ생각의 힘[念力]ㆍ선정의 힘[定力]ㆍ지혜의 힘[慧力]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력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벗어나며 무명을 뽑아버리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력(力)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력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믿음의 힘ㆍ정진의 힘ㆍ생각의 힘ㆍ선정의 힘ㆍ지혜의 힘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력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만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覺支)를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7각지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염각지(念覺支)를 닦아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법각지(法覺支)ㆍ정진각지(精進覺支)ㆍ희각지(喜覺支)ㆍ식각지(息覺支)ㆍ정각지(定覺支)를 닦고 사각지(捨覺支)를 닦아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벗어나며 무명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다.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염각지를 닦아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법각지ㆍ정진각지ㆍ희각지ㆍ식각지ㆍ정각지를 닦고 사각지를 닦아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聖道)를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8성도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바른 소견[正見]을 닦고 내지 바른 선정[正定] 등 여덟 가지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8성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벗어나며 무명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다.
만일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를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바른 소견을 닦고 내지 바른 선정 등의 여덟 가지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처(一切處)를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열 가지 일체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첫째로 땅의 일체 경계, 곧 4유(維)와 상ㆍ하에 둘이 아닌 한량없는 땅의 일체 경계[地一切處]를 닦는다. 이와 같이 물의 일체 경계[水一切處]ㆍ불의 일체 경계[火一切處]ㆍ바람의 일체 경계[風一切處]ㆍ파랑의 일체 경계[靑一切處]ㆍ노랑의 일체 경계[黃一切處]ㆍ빨강의 일체 경계[赤一切處]ㆍ하얀색의 일체 경계[白一切處]ㆍ한량없는 허공의 일체 경계[無量空處一切處]를 닦는다. 열째로 한량없는 식(識)의 일체 경계, 곧 4유와 상ㆍ하에 둘이 아닌 한량없는 식의 일체 경계[無量識處一切處]를 닦는다. 이것이 무명을 끊고자 하면 열 가지 일체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벗어나며 무명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처를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첫째로 땅의 일체 경계, 곧 4유와 상ㆍ하에 둘이 아닌 한량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와 같이 물의 일체 경계ㆍ불의 일체 경계ㆍ바람의 일체 경계ㆍ파랑의 일체 경계ㆍ노랑의 일체 경계ㆍ빨강의 일체 경계ㆍ하양의 일체 경계ㆍ한량없는 허공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열째로 한량없는 식의 일체 경계, 곧 4유와 상ㆍ하에 둘이 아닌 한량없는 식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것이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일체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무학법(無學法)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끊고자 하면 열 가지 무학법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무학(無學:아라한)의 바른 소견을 닦고 내지 무학의 바른 지혜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무학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무명에서 해탈하고 무명을 벗어나며 무명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무명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무명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무학법을 닦아야 한다. 왜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무학법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무학의 바른 소견을 닦고 내지 무학의 바른 지혜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무명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열 가지 무학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무명(無明)과 같이 행(行)도 또한 그러하고 행과 같이 식(識)도 또한 그러하며 식과 같이 명색(名色)도 또한 그러하고 명색과 같이 6처(處)도 또한 그러하며 6처와 같이 갱락(更樂)도 또한 그러하고 갱락과 같이 각(覺)도 또한 그러하며 각과 같이 애(愛)도 또한 그러하고 애와 같이 수(受)도 또한 그러하며 수와 같이 유(有)도 또한 그러하고 유와 같이 생(生)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老死]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념처(念處)를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념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안 몸[內身]을 관찰하기를 안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내지 느낌[覺]과 마음[心]과 법(法)을 관찰하기를 느낌과 마음과 법 그대로 관찰한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념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념처를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념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안 몸을 관찰하기를 안 몸 그대로 관찰하고, 내지 느낌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기를 감각과 마음과 법 그대로 관찰한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념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正斷)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오래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더하고 자라게 하고 넓고 크게 하며 닦아 익히고 완전히 갖추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을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이미 생긴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고 아직 생기지 않은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으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한 법은 생기게 하기 위하여 의욕을 일으켜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미 생긴 착한 법은 오래 머물러 잊지 않고 물러나지 않으며 더하고 자라게 하며 넓고 크게 하며 닦아 익히고 완전히 갖추기 위하여 욕심을 내어 방편을 구하고 꾸준히 노력하여 마음을 다해 끊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정단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如意足)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4여의족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욕정(欲定)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에서 떠남[離]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無欲]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滅]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가다. 이와 같이 정진정(精進定)의 여의족ㆍ심정(心定)의 여의족을 닦는다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사유정(思惟定)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욕정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정진정의 여의족과 심정의 여의족을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사유정의 여의족을 닦고 끊는 행을 성취하여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여의족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선(禪)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선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4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선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선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여의며 나아가 제4선을 성취하여 노닌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4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근(根)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근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믿음의 뿌리[信根]ㆍ정진의 뿌리[精進根]ㆍ생각의 뿌리[念根]ㆍ선정의 뿌리[定根]ㆍ지혜의 뿌리[慧根]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근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근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근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믿음의 뿌리ㆍ정진의 뿌리ㆍ생각의 뿌리ㆍ선정의 뿌리ㆍ지혜의 뿌리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근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5력(力)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5력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믿음의 힘[信力]ㆍ정진의 힘[精進力]ㆍ생각의 힘[念力]ㆍ선정의 힘[定力]ㆍ지혜의 힘[慧力]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력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5력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믿음의 힘ㆍ정진의 힘ㆍ생각의 힘ㆍ선정의 힘ㆍ지혜의 힘을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다섯 가지 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覺支)를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염각지(念覺支)를 닦아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법각지(法覺支)ㆍ정진각지(精進覺支)ㆍ희각지(喜覺支)ㆍ식각지(息覺支)ㆍ정각지(定覺支)를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사각지(捨覺支)를 닦아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염각지를 닦아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이 법각지ㆍ정진각지ㆍ희각지ㆍ식각지ㆍ정각지를 닦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사각지를 닦아 탐욕 여읨을 의지하고 탐욕 없음을 의지하며 번뇌의 멸함을 의지하여 끊어 버림[非品]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7각지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聖道)를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바른 소견[正見] 내지 바른 선정[正定] 등 여덟 가지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를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바른 소견 내지 바른 선정 등의 여덟 가지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8성도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10일체처(一切處)를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10일체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첫째로 땅의 일체 경계, 곧 4유(維)와 상ㆍ하에 둘이 아닌 한량없는 땅의 일체 경계[地一切處]를 닦는다. 이와 같이 물의 일체 경계[水一切處]ㆍ불의 일체 경계[火一切處]ㆍ바람의 일체 경계[風一切處]ㆍ파랑의 일체 경계[靑一切處]ㆍ노랑의 일체 경계[黃一切處]ㆍ빨강의 일체 경계[赤一切處]ㆍ하양의 일체 경계[白一切處]ㆍ한량없는 허공의 일체 경계[無量空處一切處]를 닦는다. 열째로 한량없는 식의 일체 경계, 곧 4유와 상ㆍ하에 둘이 아닌 한량없는 식의 일체 경계[無量識處一切處]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10일체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10일체처를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10일체처를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첫째로 땅의 일체 경계, 곧 4유와 상ㆍ하에 둘이 아닌 한량없는 땅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와 같이 물의 일체 경계ㆍ불의 일체 경계ㆍ바람의 일체 경계ㆍ파랑의 일체 경계ㆍ노랑의 일체 경계ㆍ빨강의 일체 경계ㆍ하양의 일체 경계ㆍ한량없는 허공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열째로 한량없는 식의 일체 경계, 곧 4유와 상ㆍ하에 둘이 아닌 한량없는 식의 일체 경계를 닦는다. 이것이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10일체처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10무학법(無學法)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10무학법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무학(無學:아라한)의 바른 소견과 내지 무학의 바른 지혜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끊고자 하면 마땅히 10무학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꾸 끊어 늙음과 죽음에서 해탈하고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나며 늙음과 죽음을 뽑아 버리고 끊으며 늙음과 죽음을 멸하고 그치게 하며 늙음과 죽음을 모두 알고 따로 알려고 해도 또한 그러하니라.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10무학법을 닦아야 한다. 왜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10무학법을 닦아야 하는가? 만일 어느 때 여래가 세상에 나오면 무소착ㆍ등정각ㆍ명행성위ㆍ선서ㆍ세간해ㆍ무상사ㆍ도법어ㆍ천인사ㆍ불중우라 불린다. 그는 나아가 5개와 마음의 더러움과 지혜의 병을 끊고 무학의 바른 소견과 내지 무학의 바른 지혜를 닦는다. 이것이 이른바 늙음과 죽음을 따로 알고자 하면 마땅히 10무학법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이 예경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4,873자이다. 『중아함경』 제60권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11,377자이고, 「예품」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22,149자이다.

후출중아함경기(後出中阿含經記)

예전에 석법사(釋法師)1)가 장안(長安)에서 『중아함경』ㆍ『증일아함경』ㆍ『아비담』ㆍ『광설(廣說)』2)ㆍ『승가라차소집경(僧伽羅叉所集經)』ㆍ『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ㆍ『존바수밀경(尊婆須蜜經)』ㆍ『삼법도론(三法度論)』ㆍ『이중종해탈(二衆從解脫)』ㆍ『종해탈연(從解脫緣)』을 번역해냈다. 이 모든 경과 율전은 모두 일백여만 자나 되는데, 대부분 근본 뜻과 어긋나고 취지를 잃어버려 이름과 실상이 서로 맞지 않고 글 짓는 일에 능숙치 못해 문장과 내용에도 차질이 있으니, 진실로 번역해낸 사람이 진(晉)나라 말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리라.
때마침 연(燕)나라와 진(秦)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서 관중(關中)이 크게 혼란에 빠졌었다. 그리하여 훌륭한 장인(匠人)들이 세상을 등졌기 때문에 바르게 고치는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 관동(關東)지방이 조금 안정을 찾을 무렵에 기주(冀州) 출신의 도인(道人) 석법화(釋法和)3)와 계빈(罽賓)사문 승가제화(僧伽提和)4)가 그 문도(門徒)들을 불러 모아서 함께 낙양(洛陽)을 유행(遊行)하면서 4ㆍ5년 동안 연구하고 강론하여 마침내 정밀해졌다.
그 사람은 차츰 한어(漢語:漢文語法)에 밝아지게 되었는데, 그렇게 된 연후에 비로소 선인들의 번역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석법화는 선인들의 잘못에 대하여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곧 승가제화를 따라서 『아비담』과 『광설』을 다시 번역 출간하였다. 이런 이후로 이 여러 경전과 율전들이 차츰차츰 올바르게 번역되기 시작하였으나,『중아함경』ㆍ『승가라차소집경』ㆍ『존바수밀경』ㆍ『종해탈연』만은 미쳐 다시 번역하여 출간하지 못했다.

때마침 승가제화가 그 나라 수도[京師]를 유람하면서 시운에 호응하여 그 교화를 유포하여 불법을 강좌(江左:江東)에 펼쳤다. 그 때 진(晉)나라의 큰 장자(長者)인 상서령(尙書令) 위장군(衛將軍)과 동정후(東亭侯) 왕원림(王元琳) 우바새(優婆塞)가 늘 바른 법을 보호하고 지키는 일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하여 즉시 단월(檀越:시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경전을 번역 출간할 목적으로 정사(精舍:사찰)를 세우고 도력이 있는 석혜지(釋慧持) 등 의학(義學)사문 40여 명을 초청해 맞아들여 편안하고 조용한 장소를 만들어 드리고 필요로 하는 물품[四事]을 대주어 부족함이 없게 하였다. 또 경사(經師)인 승가라차(僧伽羅叉)를 초청해 여러 해 동안 오래오래 공양하였다. 그런 연후에 진(晉) 융안(隆安) 원년(元年) 정유(丁酉, 397) 11월 10일에 양주(揚州) 단양군(丹陽郡) 건강현(建康縣)에 정사를 짓고 이 『중아함경』을 다시 번역하여 출간하였다.
계빈 사문 승가라차를 모셔다가 호본(胡本:梵本)의 경전을 암송하게 하고, 승가제화를 초청하여 호언(胡言:범어)을 진(晉)나라 말로 번역하게 하였다. 예주(豫州) 사문 도자(道慈)는 승가제화가 번역하는 말을 필수(筆受)하였고, 오(吳)나라 사람 이보(李寶)와 강화(康化)5)가 기록하였다. 융안 2년 무술(戊戌, 398) 6월 25일에 이르러서야 초본을 비로소 마쳤다.
이 『중아함경』은 모두 다섯 개의 송(誦)으로 되어 있고 총 18품, 222경이 수록되었으며 여기에 수록된 경문의 글자 수는 모두 514,825자 인데, 이것을 60권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그 당시 나라에 큰 난리가 나서 미처 정서(正書)하지 못하고 융안 5년 신축(辛丑, 401)에 이르러 비로소 정사(正寫)하고 교정을 거쳐 유포하여 전하였다.
이들이 전역(傳譯)한 것과 앞에 번역 출간된 것6)을 비교해 보면 같지 않은 부분이 많다. 여기 수록된 222경이 만약 힘을 잃어버리고 먼저 역출된 것을 따르고 말면 거룩한 뜻을 잃게 될까 두렵고, 만약 본래 붙였던 이름만을 따르자니 대부분 옛것과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먼저 익혔던 것을 거스르게 되어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을 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들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때때로 본래의 것을 고쳐 옛 명칭을 따랐을 뿐이다.
그러나 5부(部)의 같고 다른 점에 있어서 어느 것이 옳은지를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도자(道慈)는 어리석은 생각에 근본과 어긋나는 것이 마음에 걸려 개명(改名)한 모든 것들을 다 뽑아내 그 아래 주(注)를 붙이고 신역(新譯)과 구역(舊譯)을 함께 수록하여 따로 1권으로 만들고 목록과 서로 연결 지어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 주노라.
이렇게 하는 것은 미래의 여러 현인들에게 신역과 구역의 같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알게 하여 다시 채방(採訪:모르는 것을 물어서 찾음)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혹 외국의 고명한 사람들 중에 진(晉)나라 말과 호언(胡言:梵語)의 방언(方言)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 잘잘못을 찾아내어 바로잡아 주었으면 한다.

주석
1 이 경의 참고 경문으로는 『증일아함경』 제6권 「이양품(利養品)」 세 번째 소경이 있고, 이역본으로는 서진 때 축법호(竺法護)가 한역한 『생경(生經)』 제15 「자명과경(子命過經)」과 후한 때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불설바라문자명종애념불리경(佛說婆羅門子命終愛念不離經)』이 있다.
2 말리(末利, Mallikā)는 마리가(摩利迦)로 음역하기도 하고 승만(勝鬘)으로 의역하기도 한다. 『승만경(勝鬘經)』은 곧 부처님께서 말리황후의 딸인 승만부인에게 설한 경이다. 모녀의 이름이 같다.
3 비유라(鞞留羅, Viḍūḍabha)는 바사닉왕의 아들로서 후에 등극하여 유리왕(琉璃王)이 되었다.
4 시리아다(尸利阿茶, Sirivaḍḍha)는 바사닉왕의 대신이다.
5 바이리(婆夷利, Vajīrī)는 바사닉왕의 딸이다.
6 우일개(雨日蓋, Vāsabhā)는 석가족 마하나마(摩訶那摩)의 하천한 노비 소생의 여인이다. 바사닉왕이 석가족에게 구혼하였을 때 석가족은 그녀를 정비(正妃)로 위장하여 시집보냈다. 그 후 그녀가 비유라(鞞留羅)를 낳았다.
7 이 경의 이역본으로 후한(後漢) 시대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불설십지거사팔성인경(佛說十支居士八城人經)』이 있다.
8 파라리자성(波羅利子城, Pāṭaliputta-nāgara)는 파릉불성(巴陵弗城) 또는 화씨성(華氏城)이라고도 한다. 중인도 마가다국에 있던 성이다.
9 초제(招提, cātuddisa)는 곧 사방(四方)이란 뜻이다. 따라서 초제승은 사방승(四方僧)이라고도 한다. 일정한 거처 없이 사방을 유행하는 승려들을 말한다.
10 몸에 열이 나고 가슴속이 답답하며 괴로운 증세를 말한다.
11 이 경의 이역본으로는 역자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불설사견경(佛說邪見經)』이 있다.
12 이역본으로는 역자의 이름을 알 수 없는 『불설전유경(佛說箭喩經)』이 있다.
13 만동자(鬘童子, Māluṅkyaputta)는 마라가구(摩羅迦舅)라고도 한다. 사위성(舍衛城) 사람으로 바사닉왕의 재무장관 아들이다. 후에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6신통을 얻었다.
1 담마난제(曇摩難提)라고도 하며 중국말로 번역하여 법희(法喜)라고 한다. 부진(符秦) 건원 20년(384) 중국 장안(長安)에 와서 도안(道安)ㆍ축불념(竺佛念)과 함께 『중아함(中阿含)』ㆍ『증일아함(增壹阿含)』ㆍ『비담심(毘曇心)』 등 106권을 번역하였다.
2 『비바사아비담(毘婆沙阿毘曇)』을 말한다.
3 영양(榮陽) 사람으로 젊어서 도안스님과 같이 공부하였으며 촉(蜀) 땅 양평사(陽平寺)에 머물렀다.
4 중천(衆天)이라고 번역함. 성은 구담(瞿曇)으로 인도 계빈국 사람인데 부견(符堅)의 건원 연간(365~384)에 중국 장안에 와서 불교 전파에 노력하고 범본(梵本) 번역에 종사하였다.
5 성본(聖本)에는 당화(唐化)로 되어 있다.
6 담마난제의 번역본을 가리킨다.

중아함경 1~10권, 11~20권, 21~30권, 31~40권, 41~50권, 51~6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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