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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림보훈 선림고경총서 6권 장경각

작성자
busong
작성일
2018-02-06 21:29
조회
184
禪 林 寶 訓

선림고경총서 6권 도서출판 장경각 제공

해 제(解題)

『선림보훈(禪林寶訓)』은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스님들의 도와 덕에 대한 교훈을 모은
글이다. 이 책은 처음에는 송(宋)나라 때 임제종 양기파(楊岐派)의 묘희 종고(妙喜宗果:佛果
克勤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스님과 죽암 사규(竹庵君珪:佛眼淸遠스님의 법
을 이었으며, 남악의 15세 법손)스님이 운거산(雲居山) 운문사(雲門寺)의 옛터에 토굴을 짓
고 20여년간을 살면서 송고(頌古) 100여편을 지었는데 이때에 모은 것이다. 이는 총림의 도
덕이 쇠퇴하여 감을 염려하여 옛스님들의 말씀이나 수행을 수립하여 납자들의 귀감이 되게
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출판 유포되지 못하고 순희(淳熙:1173∼1189) 연간에 동오(東吳)의 정선
(淨善)스님이 운거산에 갔다가 조암(祖庵:靑原惟信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의 14세 법손.
衡岳에 30년간 은거함)스님에게서 보훈(寶訓)을 얻었다. 그러나 벌레먹고 손실된 불완전한
상태여서 10여년간 다른 어록(語錄)들과 전기(傳記)를 참고하여 황룡 혜남(黃龍慧南:남악의
11세 법손)에서 불조 졸암(佛照拙庵:남악의 16세 법손) 및 간당 행기(簡堂行機:남악의 16세
법손)스님까지 50여편을 더 수집 보완하여 300여편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편집된 『선림보훈』은 그 뒤 명말(明末)에서 청대(淸代)에 걸쳐 몇가지 주석서가
저술되었다. 명말 숭정(崇楨) 8년(1635) 운서사의 대건(大建)스님이 지은 『선림보훈음의(禪
林寶訓踵義)』 1권이 처음 나왔고, 이를 토대로 명말 영력(永曆) 4년(1650) 장문가(張文圈)와
장문헌(張文憲)이 편찬한 『선림보훈합주(禪林寶訓合註)』 4권이 나왔다. 이어 영력(永曆) 8
년(1654) 앞의 합주(合註)에 서(序)를 썼던 행성(行盛)스님은 42분 스님의 깊은 뜻을 염송
(頌) 74수로써 나타내고, 『선림보훈염송(禪林寶訓頌)』 1권을 지었다. 그 후 청(淸) 강희(康
熙) 17년(1678) 덕옥(德玉)스님의 『선림보훈순주(禪林寶訓順)』 4권과 강희(康熙) 45년
(1706) 지선(智禪)스님의 『선림보훈필설(禪林寶訓筆說)』 3권이 있다. 이처럼 많은 주석서
가 나오게 된 것은 그들 서문에서 번번히 밝히고 있듯 총림이 쇠퇴함에 따라 총림의 귀감이
되는 것을 밝히고자 한 때문이다.
정선(淨善)스님이 중편(重編)한 명간(明刊)의 선림보훈집(禪林¿訓集) 4권본에 의하면 권1
에는 명교 설숭(明敎契崇)에서 진정 극문(眞淨克文)까지 77편, 권2에는 담당 문준(湛堂文準)
에서 절옹 여담(浙翁如)까지 72편, 권3에는 설당 도행(雪堂道行)에서 서현사 변공(棲賢寺 辯
公)까지 77편, 권4에는 불지 단유(佛智端裕)에서 뇌암 도추(懶庵道樞)까지 64편, 모두 290편
을 싣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일찍 『선림보훈』이 간행되었다. 현재 보물 제700호로 지정되어 있
는 『선림보훈』(上·下)는 그 간기(刊記)에 의하면, 고려 우왕(王) 4년(宣光 8년, 1378) 충
주의 선찰(禪刹)인 청룡선사(淸龍禪寺)에서 개판(開板)하였다.
양가(兩街) 요암행제공(了庵行齊公)이 『선림보훈』을 얻어보고는 처음 보는 것이라 감탄
하여서 그의 문인 상위선사(尙偉禪師)에게 판각하여 유포할 것을 부탁하니, 상위선사는 만회
(萬恢)스님과 함께 모연하고 고식기(高息機)와 최성록(崔星錄)이 모연을 도왔다. 그리고 환
암(幻庵)스님이 글〔題〕을 써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조선 중종(中宗) 20년(圈紛 4년, 1525) 순천 대광사(大光寺)에서도 상·하 두 권
으로 된 『선림보훈』2이 간행되었다.
선림보훈서(禪林寶訓序)

『선림보훈(禪林寶訓)』은 옛날 묘희 대혜(妙喜大慧:1088∼1163)스님과 죽암 사규(竹庵 君
珪:1082∼1146)스님이 강서(江西)땅 운문사(雲門寺)에서 토굴을 짓고 살 때 함께 편집한 것
이다.
나는 순희(淳熙:1173∼1189) 연간에 운거산(雲居山)에 노닐다가 이를 조암(祖庵) 노스님에
게서 얻었는데, 세월이 오래된 탓에 좀이 슬어 처음과 끝이 완전하지 못함을 애석해 하였다.
그 뒤 어록(語錄)이나 전기(傳記) 가운데 보이는 것을 10여 년간이나 모았더니 가까스로 50
여 편이 되었다. 그리하여 황룡 혜남(黃龍惠南:1002∼1069)스님에서 불조 졸암(佛照拙庵:112
1∼1203)·간당 행기(簡堂行機)스님에 이르기까지 모든 큰스님들이 남긴 어록을 가지고 절
요(節要)하고 수집하여 300편으로 분류하였다. 그런데 이는 얻어진 대로 순서를 정하였을
뿐, 시대순으로 편집하지는 않았다.
대체의 내용은 납자들로 하여금 권세와 이익을 구하거나 나와 남을 구별하는 마음〔人我
見〕을 깎아내고, 도덕과 인의〔仁義〕로 나아가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 문체는 여유롭고 평
이하여 궤변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투가 없어서 실로 입도(入道)를 돕는 원대한 법문이라 할
만하였다.
그러나 경판에 새겨 널리 퍼뜨리려면 반드시 한 번 보고 마음으로 인정하는 도반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내 비록 언덕이나 골짜기에서 늙어 죽는다 해도 뜻〔圍〕과 바
람〔願〕이 만족되리라.
동오(東吳)지방 사문(沙門) 정선(淨善)이 쓰다.



선림보훈



1
도보다 높고 덕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명교 계숭(明敎契嵩)스님 / 1007∼1072

1.
도보다 높고 덕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도덕이 간직되었다면 보통사람이라 해도 곤궁하
지 않으며, 도덕이 없다면 천하에 왕노릇을 한다 해도 되는 일이 없다. 백이(伯夷)와 숙제
(叔齊)는 옛날에 굶어 죽은 사람이지만 지금 사람들까지도 자기를 그에게 비교하여 주면 모
두가 기뻐한다. 한편 걸(桀)·주()·유(幽)·여()는 옛날의 임금이었으나 지금도 사람들은 자
기를 그에게 비교하면 모두가 화를 낸다. 그러므로 이 때문에 납자는 도덕이 자신에게 충만
하지 못한 것을 근심할지언정, 세력과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심진집(津
集)』

2.
부처되는 공부는 하루아침에 완전해지지 않는다. 낮으로 부족하면 밤까지 이어가며 오랜
세월이 지나야 자연스럽게 성취된다. 그 때문에 『주역(周易)』에서도, `배움으로써 뭇 이치
를 모으고 질문으로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공부에 있어서 질문과 변
론이 아니면 이치를 알아낼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즈음의 납자들 중에는 어딜 가나 다른 사람에게 한 마디 질문이나 변론을 꺼내는 사람이
드물다. 이들은 무엇으로 성품자리를 도와 날로 새로와지는 공부를 하려는지를 모르겠다.

3.
태사공(太史公)은 『맹자(孟子)』를 읽다가, 양혜왕(梁惠王)이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
게 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대목에 이르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책을 덮어버리고 길
게 탄식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슬프다. 이익이란 실로 혼란의 시초이다. 때문에 공부자(軫夫子)께서도 이익에 대해서는
드물게 말씀하셨는데, 이는 항상 그 근원을 막고자 함이었다."
근원이란 시초이다. 귀천을 막론하고 이익을 좋아하는 폐단은 다를 수 없다. 공직자가 이익
을 챙기느라 공정하지 못하면 법이 문란해지고, 보통사람이 속임수로 이익을 취한다면 일이
혼란해진다. 일〔事〕이 혼란해지면 사람들이 다투어 화평하지 못하고, 법이 문란해지면 대
중이 원망하여 복종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서로가 뒤틀려 싸우며 죽음도 돌아보지 않는 것
이 이로부터 비롯하니, `이익은 실로 혼란의 시초이다'라고 한 경우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성현께서 이익을 버리고 인의(仁義)를 무엇보다도 존중해야 한다고 깊이 주의를 주
기까지 하셨는데도 후세에는 이익을 걸고 서로를 속이며 성현의 가르침을 상하게 했던 자들
이 있었으니, 이를 어떻게 막겠는가. 더구나 이익 취하는 방법을 공공연히 벌여놓고 자행하
면서 세상 풍속을 올바르게 하여 야박하지 않게 하려 하나, 될 법이나 하겠는가.

4.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에는 드러나는 것도 있고 드러나지 않는 것도 있다. 드러
나지 않는 악은 사람을 해치며, 드러난 악은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죽이는 악은 작고, 사람
을 해치는 악은 크다. 그러므로 잔치하는 가운데도 독주〔毒〕가 있고 담소하는 중에도 창
〔戈〕이 숨겨져 있으며, 안방 구석에도 호랑이와 표범이 있고 길거리에는 첩자가 있다. 스
스로가 마음속에 악이 싹트기도 전에 끊어버리는 성현이 아닌 다음에야 예의와 법도로써 미
리 막아야 하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 해로움이 얼마나 크겠는가.

5.
대각 회연(大覺懷璉:1008∼1090)스님께서 육왕산(育王山)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두 스님이
시주물 때문에 다툼이 그치지 않는데도 일을 주관하는 스님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스님이 불러서 오라 하고는 그들을 꾸짖었다.
"지난날 포공(包公)이 개봉(開封)지방의 판관(判官)으로 있을 때, 그 동네 어떤 사람이 와서
`백금(白金) 백 냥을 저에게 맡겨둔 사람이 있었는데 죽어버렸읍니다. 지금 그 집안에 되돌
려주었으나 그 아들이 받질 않으니, 공께서는 그 아들을 불러 되돌려주십시오' 하였다. 공은
기특하다고 칭찬하며 즉시 그의 아들을 불러 말하자, 그는 사양하며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는 백금을 개인적으로 다른 사람의 집에 맡겨둔 일이 없읍니다'라고 말하였다. 두 사람이
굳이 사양하자, 공께서는 부득이 성내에 있는 사찰과 도관(道觀)에 부탁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어 천도하라 하였다. 나는 그 일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번뇌 속에 사는 속인도
재물을 멀리하고 의로움 사모하기를 그토록 하는데, 너희들은 부처님의 제자임에도 불구하
고 어찌 이다지도 염치를 모르는가."
하고는 드디어 총림의 법규에 따라 쫓아내버렸다. [서호광기(西湖廣記)]


2
명예를 피하여 절개를 지키다
원통 거눌(圓通居訥)스님 / 1009∼1071

1.
대각 회연스님이 과거 여산(山)에 갔을 때, 원통 거눌(圓通居訥:1009∼1071)스님이 한 번
보고 바로 대기(大器)라고 확신하였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런 줄을 아셨읍니까?"
하고 묻자, 거눌스님은 말하였다.
"이 사람은 마음이 정대(正大)하여 치우치지 않고 모든 행동이 고상합니다. 더우기 도학(道
學)을 이뤄 의로움을 실천하며, 말은 평이하나 이치를 극진히 하니, 일반적으로 타고난 품격
이 그러하고도 그릇을 이루지 않는 자는 드문 것입니다." 『구봉집(九峯集)』

2.
인조(仁祖) 황우(皇祐) 초년(皇祐 12年 즉 1049年)에 조정에서 환관을 파견, 비단에 조서를
적어서 거눌스님을 큰 절인 효자사(孝慈寺)에 머물도록 청하였다. 거눌스님은 병을 핑계로
일어나지 않고 소문(疏文)을 올려 대각스님을 추천하는 것으로 조정의 부름에 응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성스러운 천자께서 도덕을 높이 드러내시어, 그 은혜가 샘물이나 돌에게까지도 미쳤읍니
다. 스님은 무엇 때문에 사양하시는지요?"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외람되게도 승려의 무리에 끼어들긴 하였으나 보고 듣는 것이 총명하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요행히 숲속에 안주하여 거친 밥을 먹고 흐르는 물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비록 불
조(佛祖)의 경지라 해도 하지 않으신 일이 있는데 그러하지 못한 사람이야 말해 무엇하겠읍
니까? 선철(先哲)도 `큰 명예는 오래 간직하기 어렵다'고 하셨으니 나는 평생을 자족할 줄
아는 뜻을 실천할 뿐, 명성과 이익으로 자신을 얽어매지는 않겠읍니다. 마음이 넉넉하다면
언제인들 만족스럽지 않겠읍니까?"
그러므로 동파(東坡)도 언젠가 말하기를, "편안한 줄 알면 영화롭고, 만족한 줄 알면 부자
다"라고 하였다. 원통스님은 명예를 피하여 절개를 지키고, 훌륭하게 시작하여 훌륭하게 마
치는 일을 체득했다 하겠다. 『행실(行實)』

3.
절름발이의 생명은 지팡이에 있으니 지팡이를 잃으면 넘어지고, 물을 건너는 사람의 운명
은 배에 있으므로 배를 잃으면 익사한다. 보편적으로 스스로 도를 지키지 않고 외부의 세력
을 믿고 이를 대단하게 여기는 수행자는 하루아침에 그가 기대고 있던 배경을 잃으면 모두
가 넘어지고 빠져죽는 난리를 면치 못한다.[여산야록(廬山野錄)

4.
옛날 백장 대지(百丈大智:720∼814)스님께서는 총림(叢林)을 세우고 법도를 정하셨다. 이는
상법(像法)·말법(末法)시대의 바르지 못한 폐단을 고쳐보고자 했을 뿐, 상법·말법시대의
납자가 법도를 도적질하여 백장의 총림을 무너뜨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주 옛날에는 스님들이 둥우리나 바위굴에 살면서도 사람마다 스스로를 다스렸다. 그러다
가 대지스님 후로는 높고 널찍한 집에 살면서도 사람마다 스스로를 피폐시켰다. 그러므로 "
안위(安危)는 덕에 달렸으며, 흥망은 운수에 달렸다"라고 말한 것이다.
실로 받들어 행할 만한 덕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총림이 필요하겠으며, 기댈 만한 운수가
있다면 무엇 때문에 법도를 사용하겠는가? 『야록(野錄)』

5.
원통스님이 대각스님에게 말하였다.
"옛 성인은 싹트기 전에 마음을 다스렸고, 혼란해지기 전에 미혹한 마음〔情念〕을 막았으
니, 미리 대비하면 큰일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중으로 문을 잠그고 목탁을 치면서 도둑에
대비하였는데, 이는 『주역(周易)』의 예괘(豫卦 )에서 원리를 취한 것이다.
일은 미리 하면 쉽고, 갑자기 하면 어렵다. 훌륭한 분〔賢哲〕들에게 평생의 근심은 있었을
지언정 하루아침의 근심이 없었던 이유가 실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구봉집(九峯集)』

3
말세학인은 안위를 살펴야 한다
대각 회연(大覺懷璉)스님 / 1008∼1090

1.
옥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듯,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 현재로 옛날을
알 수 있으며 후세로 선대를 알 수 있듯, 착한 자를 보고는 본받을 만하고 악한 자를 보고
는 자기의 악을 조심할 만하다. 당세에 입신양명(立身揚名)했던 선배들을 차례로 관찰해 보
았더니, 배우지 않고 도를 완성했던 자가 드물었다.[구봉집(九峯集)]

2.
묘도(妙道)의 이치는 성인께서 일찌기 『주역(周易)』에 밝혀놓았다. 주(周)나라가 기울자
선왕(先王)의 도는 무너지고 예법은 없어졌다. 그런 뒤에 궤변과 술수가 더러 튀어나와 세상
을 혼란시키다가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으로 들어온 후 으뜸가는 진리〔第一義諦〕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자비를 베풀어 중생들을 교화시켰는데,
그것은 시대의 요청에 따랐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태어난 뒤로 순박함이 흩어지지 않았을 때는 삼황(三皇)의 가르침이 간단하면서
도 소박하였으니, 절기로 치자면 봄에 해당된다. 마음 구멍이 날로 뚫리자 오제(五帝)의 가
르침은 좀더 자세하게 형식을 갖추게 되었는데, 이는 여름에 해당한다. 시대와 세상이 달라
짐에 따라 마음도 날로 변해 가서 삼왕(三王)의 가르침이 조밀하고도 엄격해졌는데, 이는 가
을에 해당한다. 옛날 상(商)·주(周) 때 행해졌던 『서경(書脛)』의 일깨워주고〔誥〕 맹서
하는〔誓〕 글들을 이제 배우는 뒷사람들은 깨우치지 못하니, 듣기만 해도 어기지 않았던
당시 사람들에게 비교한다면 그때와 지금의 풍속 차이가 어떠하겠는가? 폐단으로 말하자면
진(秦)·한(漢) 시대에 와서는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천하에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의 일까지 있게 되었다. 이때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결같이 마음 도리를
추구하게 하셨으니 이는 겨울에 해당된다.
하늘에는 사철〔四時〕이 있어 순환하면서 만물을 낳고 성인께서는 가르침을 베풀어 그것
이 서로 부지(扶持)하면서 천하를 교화해 완성해 가니, 모두가 이런 이치에서다. 그러나 그
끝에 가서는 모두가 폐단이 없을 수 없었다. 폐단이 자취로 남게 됨에 따라 반드시 대대로
성현이 나와서 이를 구제해야 했다. 진·한 시대 이래로 천여 년 동안은 풍속이 점점 야박
해지면서 성인의 가르침이 여러 갈래로 정립(鼎立)하자, 서로가 헐뜯어서 대도(大道)는 쓸쓸
하게도 근원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실로 한탄스러운 일이다.[답시랑손화노서(答
侍郞孫華老書)

3.
한 곳의 주지로서 체득한 도를 실천하여 남을 이롭게 하고자 한다면, 우선 사욕을 극복하
고 상대에게 은혜를 베풀며, 모든 일에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뒤에 비단이나 금
등의 값진 물건을 썩은 흙처럼 보아버린다면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존경하며 귀의할 것이다.
[여구선허화상서(與九仙 和尙序)

4.
선배 중에 자질은 총명하였으나 안위(安危)를 염려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었으니, 석문사(石
門寺) 온총(蘊聰:964∼1032)*스님이나 서현사(棲賢寺) 효순(曉舜)**스님 같은 태도는 경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나면서부터 정해진 업(業)은 실로 분명하게 알기는 어렵다 하겠으나, 그
근원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소홀하고 태만하여 사려깊지 않았던 데서 생긴 허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재앙은 깊은(隱微) 곳에 간직되어 있다가 사람이 소홀하게
하는 곳에서 튀어나온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더욱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구봉집(九峯集)]

*1 온총(蘊聰):양주(襄州) 곡은산(谷隱山) 석문사(石門寺)의 스님. 수산 성념(首山省念)스님
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南嶽)의 9세 법손이다. 법을 얻은 후 석문사에서 살았다. 하루는 양
주 태수가 개인적 감정으로 때리며 욕을 보였다. 되돌아오는 길에 여러 스님들이 길가에서
영접하였는데, 수좌가 급히 앞으로 나아가면서 "태수가 무고하게 스님을 욕보이셨읍니다"
하고 말하자, 스님이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평지에 뼈무더기가 일어나리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손을 따라 한 뼈무더기가 솟아올랐다. 태수가 듣고 사람을 시켜 치우라 하였더니, 다
시 솟아나 처음과 같이 되면서 태수의 온 집안이 양주에서 죽었다.
*2 효순스님의 일은 바로 다음 글에 나오는 횡역에 걸리게 된 사건을 가리킨다.


4
늙고 가난할수록 뜻을 굳게 가져야 한다
효순 노부(曉舜老夫)스님 / 1009∼1090

1.
운거산(雲居山) 효순(曉舜)스님의 자(字)는 노부(老夫)이다. 여산(山) 서현사(棲賢寺)에 살
때, 군수(郡守) 괴도관(槐都官)에게 사사로운 노여움을 사 횡역(橫逆)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환속을 당하여 속인의 옷을 입고 서울로 가 대각(大覺)스님을 방문하려 하였는데, 산양(山
陽) 지방에 이르러 눈으로 길이 막히자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하루 저녁에는 어떤 길손
이 종 둘을 데리고 눈을 헤치며 왔는데, 노부(老夫)스님을 보더니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하
였다. 이윽고 옷을 갈아입고 앞에서 절을 하므로 노부스님이 누구냐고 묻자, 길손은 대답하
였다.
"옛날 동산(洞山)에 있을 때 스님을 따라 짐을 지고 한양(漢陽)에 갔을 때, 종을 지휘한 송
영(宋榮)입니다."
스님이 지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송영은 길게 탄식하였다. 첫 새벽에 밥을 준비하고
백금(白金) 다섯 냥(兩)을 주더니 이어서 종 하나를 불러놓고 말하였다.
"이 아이는 서울을 여러 차례 갔다왔으므로 험한 길을 자세하게 알고 있으니 스님께서는
가시는 길을 염려하실 것 없읍니다."
덕분에 스님은 서울에 갈 수가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그 두 사람은 평소에 간직한
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구봉집(九峯集)』

2.
효순 노부(曉舜老夫)스님은 천성이 대범하고 강직해서 저울질하여 재산 불리는 일 따위는
알지 못하였다. 매일 일정한 일과를 정해놓고 조금도 어김이 없었으며, 등불을 켜고 청소하
는 일까지도 모두 몸소하였다. 한번은 이렇게 탄식하였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옛사람의 훈계가 있으셨거늘 도대체 나는 어떤 사
람인가?"
늙어갈수록 그 뜻은 더욱 견고해지니,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왜 시자들을 시키지 않습니까?"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추운 날 더운 날에 그저 지내는 것도 편안치 않을테니, 그들을 수고롭게 하고 싶진 않다."
[탄연집(坦然集)]

3.
우리 불도를 전수하고 지키는 데는 진실한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긴다. 삿됨과 바름을 구별
하고 망정(妄情)을 제거하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요점이며, 인과(因果)를 식별하고 죄와
복을 밝히는 것이 꾸준히 도를 실천하는 요점이다. 또한 도덕을 넓히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
을 맞이하는 것이 주지(住持)의 요점이고, 재능을 헤아려 일을 맡기는 것은 사람을 쓰는 요
점이며, 말과 행동을 살펴 가부를 판정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구하는 요점이다.
알맹이는 간직하지 않은 채 헛된 명예만을 자랑한다면 진리에는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사
람이라면 지조와 실천에 있어서 반드시 성실해야 한다. 이를 굳게 지켜 변함이 없다면 평탄
과 험난을 하나로 여길 수 있다. 『탄연암집(坦然庵集)』

4.
효순 노부스님이 부산(浮山)의 법원 녹공(法遠錄公:991∼1067)스님에게 말하였다.
"위 없는 오묘한 도를 탐구하려면 곤궁할수록 뜻을 더욱 굳게 먹고 늙을수록 기상을 더욱
씩씩하게 가져야 한다. 세속을 따라 구차하게 명리(名利)를 훔치느라 지극한 덕을 스스로 잃
어서는 안된다. 옥의 귀한 특성은 깨끗한 빛깔에 있으므로 다른 색 때문에 자기 색을 잃지
않으며, 소나무는 엄동설한에도 변함이 없으므로 눈과 서리도 그 지조를 시들게 하지는 못
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절개와 의리가 천하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공정한 목표만을 받들 만하니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옛사람도 말하기를, `여
유로운 새는 홀로 훨훨 날아 외로운 바람을 탈 뿐 떼를 짓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지당한
말씀이라 하겠다." 『광록(廣錄)』


5
대중을 받드는 요점을 말하다
법원 녹공(法遠錄公)스님 / 1990∼1067

1.
옛사람은 스승을 가까이 모시고 벗을 골라 사귀며 밤낮으로 감히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부엌에서 밥 짓고 절구질하며 남 몰래 천한 일을 하는 고생까지도 꺼려하지 않았다. 나도
섭현(葉縣)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다 해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 번이라도 이해관
계를 따지고 잘잘못을 비교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배반하느냐 의지하느냐에 있어서 구차한
태도로 편안함을 구하느라 못할 짓이 없었을 것이다. 우선 자기 처신이 바르지 않다면 어떻
게 도를 배울 수 있겠는가. 『악시자법어(岳侍者法語)』

2.
천지만물은 모두 쉽게 태어난다. 그러나 가령 하루를 따뜻하게 해주고 열흘을 차갑게 한다
면 살아날 수 있는 생물은 없을 것이다.
위 없는 오묘한 도는 밝고 밝아 아주 가까이에 있으므로 보기 어렵지 않다. 요컨대 뜻을
굳게 세우고 힘써 실천한다면 그 자리에서 완성을 기대해 볼 만하다. 그러나 혹 하루 믿다
가 열흘 의심하며, 아침에는 부지런을 떨다가 저녁에는 꺼려한다면 어찌 유독 목전의 것만
보기 어렵겠는가. 목숨이 끝날 때까지 도를 등질까 염려스럽다. 『운수좌서(雲首座書)』

3.
주지(住持)하는 요령에는 취사(取捨)를 살핌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해야 할 것인가 말아
야 할 것인가를 판단함은 마음 속에서 결정되고, 안위(安危)의 싹은 바깥 환경에서 판정된
다. 그러나 편안함이나 위태로움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점진적으로
쌓여서 되는 것이므로 반드시 살펴야 한다.
도덕과 예의로 주지를 하면 도덕과 예의가 쌓이고, 각박함으로 주지를 하면 원한이 쌓이게
된다. 원한이 쌓이면 권속과 사부대중이 등지고 떠나며, 예의와 도덕이 쌓이면 안팎이 기뻐
하며 감복한다. 그러므로 도덕과 예의가 대중에게 두루 미치면 권속과 사부대중이 기뻐하고,
각박함과 원한이 극에 이르면 안팎이 슬퍼하니 슬픔과 기쁨에 따라 재앙과 복이 내려진다.
[여정인진화상서(與淨因臻和尙書)]

4.
주지하는 데는 세 가지 요령이 있으니, 어짐〔仁〕·총명함〔明〕·용기〔勇〕이다. 어진
자는 도덕을 행하여 교화를 일으키고 상하를 편안하게 하여 오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총명한 사람은 예의를 지키고 안위(安危)를 식별하며 훌륭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살피고 시
비를 분별한다. 용기있는 사람은 과단성 있게 일을 처리하고, 한번 했으면 의심치 않으며,
간사하고 아첨하는 이를 반드시 제거한다.
어질기만 하고 총명하지 못하면 마치 밭이 있어도 갈지 않는 것과 같고, 총명하기만 하고
용기가 없으면 싹은 자랐으나 김을 매주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용기만 있고 어질지 못하
면 거둬들이는 것만 알 뿐 파종할 줄은 모르는 것과 같다. 이 세 가지를 다 갖추면 총림이
일어나고 하나가 모자라면 기울 것이며, 두 가지가 부족하면 위태롭고, 셋 중에 하나도 없으
면 주지의 도는 폐지될 것이다. 『여정인진화상서(與淨因臻和尙書)』

5.
지혜로움과 어리석음, 훌륭함과 어질지 못함은 마치 물과 불이 한 그릇에 섞이지 못하며
추위와 더위가 동시일 수 없는 것과도 같으니, 이는 대체로 타고난 분수가 그러하기 때문이
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인재는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단정하고 도타와 도덕과 인의만을 생각한
다. 그리하여 모든 언행에 있어서 혹 대중의 뜻에 부합되지 못할까, 또는 사물의 이치를 깨
닫지 못할까를 염려할 뿐이다. 한편 어질지 못한 사람은 간사·음험·속임수·아첨으로 자
기를 뽐내고 능력을 과시하며, 오욕에 빠져 이익에 구차하면서 아무것도 되돌아볼 줄 모른
다.
그러므로 선림(禪林)에서 훌륭한 사람을 얻으면 도덕이 닦이고 기강이 확립되어 드디어는
법석(法席)을 이루지만, 그 사이에 하나라도 어질지 못한 자가 끼어들어 대중들을 교란시키
면 안팎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니, 큰 지혜와 예의법도가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혜와 어리석음, 훌륭함과 어질지 못함의 우열이 이러하니 어떻게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
가. 『혜력방화상서(惠力芳和尙書)』

6.
웃사람인 주지는 겸손하게 아랫사람을 이끌어주며, 일 맡은 아랫사람은 마음을 다해 웃사
람을 받들어야 하리니, 위아래가 화목하면 주지의 도가 통한다. 웃사람이 교만하게 높은 체
하면 아랫사람은 태만하여 자연히 소원해지리니, 위아래가 마음이 통하지 못하면 주지의 도
는 막히게 된다.
고덕(古德)들은 주지하는 중에 한가하여 일이 없으면 납자들과 부드럽게 극진한 대화를 나
누었는데, 그때 하신 일언반구까지도 전기(傳記)에 실려 지금까지도 읽혀진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는 웃사람의 마음이 아랫사람에게 통하게 하고자 하여 도가 막힘
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납자들의 재능과 품성이 어떠한지를 미리 알아 모두 도리에
맞게 진퇴시켰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상하가 화목하고도 엄숙해져서 먼 곳
가까운 곳 모두가 존경하니 총림이 잘 되는 이유가 여기에 달렸을 뿐이다. 『여청화엄서(與
靑華嚴書)』

7.
법원스님이 도오사(道吾寺) 가진(可眞)스님에게 말하였다.
"배움이 아직 도에 이르지 못하였는데도 자기의 견문을 자랑하고 궁극의 도리를 깨달았노
라고 과장하면서 말재주를 가지고 잘났다고 떠드는 자는 마치 더러운 변소간에 단청을 바른
것처럼 악취만 더할 뿐이다." 『서호기문(西湖記聞)』

8.
법원스님이 수좌 오조 법연(五祖法演:?∼1104) 스님에게 말하였다.
"마음은 한 몸의 주인이며 만행의 근본이다. 마음을 오묘하게 깨닫지 못하면 허망한 생각
이 스스로 생기고, 허망한 생각이 스스로 생기고 나면 이치를 보아도 분명치 못하며, 이치를
보아도 분명치 못하면 시비가 요란하다. 그러므로 마음을 다스리자면 반드시 오묘한 깨달음
을 구해야 한다.
오묘하게 깨닫고 나면 정신은 여유롭고 혈기는 안정되며, 태도와 용모는 공경스러우면서도
씩씩하여 망상이 모두 녹아서 진심(眞心)이 된다. 이런 식으로 마음을 다스려가면 마음은 스
스로 영묘(靈妙)해진다. 그런 뒤에 상대방을 인도하고 미혹함을 지적한다면 누구라서 교화되
지 않겠는가." 『부산실록(浮山實錄)』

6
계행이 청정해야 명성을 얻는다
오조 법연(五祖法演)스님 / ?∼1104
1.
요즈음 총림에서 도를 배우는 인재들이 명성을 드날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믿
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행〔梵行〕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됨은 진실하고 바
르지 못하면서 구차하게도 명예·이익·음식을 구하려고 화려한 겉치레만 벌여놓다가 마침
내는 식자(識者)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러므로 도를 덮어버린 상태에서는 부처님이나 조사
와 같은 도덕을 가졌다 해도 듣고 보는 사람들이 의심하며 믿어주질 않게 된다. 그대들이
뒷날 초암(草庵)을 짓고 살거든 이 점을 힘쓰도록 하라. 『여불감불과서(與佛鑑佛果書)』

2.
스승 방회(方會:996∼1049)스님께서 처음 양기산(楊岐山)에 머무실 때, 집이 낡아 서까래가
무너져 겨우 비바람을 가릴 정도였다. 그런데다가 마침 늦겨울이라 싸락눈이 침상에 가득하
여 편안히 거처하질 못하였다. 납자들이 정성껏 수리하겠다고 하였으나 스승께서는 물리치
며 말씀하셨다.
"우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감겁(減劫:복과 수명이 줄어드는 시기)에는 높은 언덕 깊
은 골이 모두 뒤바뀌어 항상하지 않으리라'하셨으니, 어떻게 뜻대로 다 만족하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출가하여 도를 배우느라 손발이 편안치 못한 채 이미 사오십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어쩌자고 공부는 등한히 하면서 집짓는 일에 더 신경을 쓰느냐." 하며 끝내 따
르지 않으시고, 다음날 법당에 올라 노래로 말씀하셨다.
내 잠시 머무는 집 담벽은 헐어
침상 가득 흩뿌려진 진주빛 눈발
움츠러든 목을 하고 가만히 탄식하노라
나무 밑에 살았던 옛사람을 되새기자고
楊岐乍住屋壁疎 滿牀盡撒雪珍珠
縮却項暗嗟 蒜憶古人樹下居 『광록(廣錄)』

3.
납자는 마음의 성(城)을 지키고 계율을 받들되 밤낮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어떠한
실천도 사려를 벗어나지 않고, 어떠한 사려도 실천을 넘어서는 안되니, 시작에서 끝맺음까지
를 농부의 밭두덕처럼 분명하게 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탄연집(坦然集)]

4.
이른바 총림이란 성인과 범부들이 도를 닦으며 인재를 길러내는 곳으로서 교화가 여기로부
터 나온다. 그러나 무리짓고 모여 산다 해도 통솔하여 다스리는 데에는 각각 자기 스승을
계승해 왔다. 그런데 요즈음 몇몇 총림에서는 옛성인의 법도를 지키는 데는 힘쓰지 않고, 좋
고 싫은 치우친 감정으로 대부분 주관적인 척도를 가지고 상대를 뜯어고치려 하니, 후배들
에게 무엇을 본받게 하려는가.[탄연집(坦然集)]

5.
중생을 이롭게 하고 도를 전수하는 데는 적임자를 얻도록 힘써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알
아보기란 성현도 어렵게 여겼던 일이다. 말만 듣고는 행실을 보증하지 못하며, 행동만 구한
다면 재능을 빠뜨릴까 염려스럽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사귀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자세하게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그 목표와
실천, 도량과 재능을 잘 관찰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도를 지켜 홀로 있을 땐 간직하고, 행
세할 땐 펴는 자인 줄 알아볼 수 있다. 또한 명예를 팔고 외모나 꾸미는 자도 그 거짓이 용
납되지 않게 되니, 비록 몰래 한다 해도 그 내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자세히 살피고 주의깊게 듣는 일은 원래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때문에 남악 회
양(南嶽懷讓:754∼815)스님은 6조 대감(六祖大監)스님을 뵙고 나서도 15년이나 잡일을 했으
며, 마조(馬祖:709∼788)스님도 남악스님을 10여 년이나 모셨던 것이다. 옛 성인들이 도를
전수하고 받는 일은 실로 천박한 사람으로서는 감히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로써 알 수
있다.
마치 이 그릇의 물을 저 그릇에 쏟아붓듯 해야 비로소 큰 법을 감당해서 계승할 수 있다.
이를 세속일로 치자면 가문을 감당할 만한 덕 있는 자손을 뽑아 조상의 유풍을 기리고, 농
가에서 파종할 때 땅의 상태를 살피는 격이다. 이것이 자세히 살피고 주의깊게 듣는 이치의
분명한 사례이다. 어떻게 교묘한 말과 좋은 얼굴빛, 편벽된 아첨으로써 선발되었겠는가. 『
원오서(圓悟書)』

6.
주지(住持)의 요점은 은혜와 덕 두 가지를 겸비하는 데 있으니, 이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안된다. 은혜롭기만 하고 덕이 없으면 대중이 공경하지 않고, 덕스럽기만 하고 은혜가 없으
면 대중이 그리워하질 않는다.
은혜로운 이를 대중이 생각해 준다는 것을 알고 여기에 덕을 보충한다면 베푸는 은혜가 상
하를 편안하게 하고 사방에서 오는 납자를 이끌어 줄 만하다. 덕 있는 이를 공경할 만하다
는 것을 알고 거기에 은혜를 보태면 지닌 덕이 선각(先覺)을 계승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지
도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훌륭한 주지는 덕을 기름으로써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베품으로써 덕을 지닌다.
덕스러우면서도 은혜를 기를 수 있으면 굴욕스럽지 않고, 은혜로우면서도 덕을 실천하면 은
택(恩澤)이 있게 된다. 그리하여 덕과 은혜가 함께 쌓여가며 맞물려 시행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굳이 덕을 닦지 않아도 불조와 같은 공경을 받고, 은혜를 수고롭게 허비하지 않
아도 대중이 부모 그리워하듯 한다. 그러므로 도를 깨닫고자 하는 수행자라면 누구라서 이
런 사람에게 귀의하지 않겠는가? 도덕을 전수하고 교화를 일으키려는 주지라면 이러한 요점
에 밝지 못하고서는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여불안서(與佛眼書)』

7.
법연스님이 해회(海會)로부터 동산(東山)으로 옮겨가자, 태평 불감(太平佛鑑:1059∼1117)스
님과 용문 불안(龍門佛眼:1067∼1120) 스님이 산마루에 나아가 살피고 맞이하였다. 법연스님
은 나이가 지긋한 주사(主事)들을 모이라 하고 차와 과일을 준비하여 밤에 이야기를 나누었
다.
법연스님이 불감스님에게 물었다.
"서주(舒州)고을은 풍년이 들었느냐?"
"풍년입니다."
"태평주(太平州)도 풍년이냐?"
"그렇습니다."
"그밖의 다른 농지에서는 벼를 어느 정도 수확하였느냐?"
불감스님이 잠시 생각해 보고 대답하려고 머뭇거리자 법연스님은 정색을 하며 엄한 목소리
로 꾸짖었다.
"그대들은 외람되게도 한 절의 소임을 맡고 있다. 그러니 큰 일 작은 일 할 것 없이 모두
마음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해마다 소용되는 상주물(常住物)을 계획함은 전 대중이 걸린 문
제인데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나머지 세세한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하다. 산문에서 일
맡은 이라면 인과(因果) 알기를 우리 스승(양기스님)께서 자명(慈明:985∼1039) 노스님을 보
좌하셨듯 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상주물이 산처럼 소중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느냐?"
법연스님은 평소에 말과 행동이 엄격하고 날카로왔으므로 불감스님이 제자의 예(禮)를 깍
듯이 한다고 너그럽게 대하였는데도 이 정도였던 것이다. 옛사람도 `스승이 엄해야 배우는
도가 높아진다'라고 하였다. 동산 문하에 고매한 도와 인격을 지닌 법손들이 많았던 이유는
실로 근원이 깊어 지류도 길었기 때문이라 하겠다.[경룡학여고암서(耿龍學與高庵書)]

8.
법연스님은 제대로 해나갈 만큼 절개와 의리를 가진 납자에게는 방안에서도 엄하게 거절하
며 말과 얼굴빛을 보내지 않았다. 한편 편협하여 삿되게 아첨하고, 하는 짓이 외람되고 좀스
러워 가르치지 못할 자를 더욱 애지중지하였으니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 아,
스님의 처신에는 반드시 도가 있었으리라.

9.
옛사람은 자기 허물 지적받기를 좋아하고, 덕담을 들으면 기뻐했다. 또한 관대하게 포용하
기를 잘 했고, 남의 단점을 보아주는 데 너그러웠다. 겸손하게 친구와 사귀고 부지런히 대중
을 구제하며 이해관계로 변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 빛이 찬란하게 고금을 비추는 것
이다. 『답영원서(答靈源書)』

10.
법연스님이 불감스님에게 말하였다.
"주지의 요점은 대중에게는 넉넉하게 하고 자기 처신은 간소하게 하는 데 있다. 그 나머지
자잘한 일은 그리 신경쓸 것 없다.
매우 정성을 들여 사람을 채용하고, 정중한 쪽으로 말을 가려 쓰도록 주의해야 한다. 말이
정중하게 보이면 주지는 자연히 존대받고, 대중에게 정성을 쏟으면 대중이 저절로 감동한다.
주지가 존대받으면 근엄하지 않아도 대중이 복종하고, 대중이 감동하면 명령하지 않아도 일
이 저절로 된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훌륭한 사람, 어리석은 자가 각각 속마음을 털어놓고
크고 작은 일에 모두가 자기 힘을 분발하게 된다. 그러니 세력을 가지고 협박과 공갈로 몰
아부쳐서 어쩔 수 없어 따르게 하는 것과 어찌 만배 차이뿐이겠는가." 『견섬시자일록(見蟾
侍者日錄)』

11.
법연스님이 정공 거사(淨空居君) 곽공보(郭功輔)에게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일정하게 지키지 않으면 외물에 따라 날로 변한다. 예로부터 불법이
융성하고 쇠퇴하는 데는 운수탓도 있긴 하나, 흥하고 쇠하는 이치는 다 교화에 달려 있다.
옛날 강서(江西) 남악(南嶽)의 모든 스님께서 중생을 이롭게 할 때, 맑은 도풍으로 일으키
고 청정으로 절제하였으며, 도덕을 베풀고 예의를 가르쳤다. 그리하여 납자로 하여금 보고
듣는 것을 가려 사벽(邪僻)을 막으며, 정욕〔嗜慾〕과 물욕〔利養〕을 다 끊게 하였다. 때문
에 날마다 선을 실천하고 허물을 멀리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도덕이 완전해졌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은 옛사람보다 훨씬 못하다. 기어코 이 불도를 참구하고자 한다면 모름
지기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깨닫고야 말겠다는 뜻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그런 뒤에 재앙이
나 잘잘못은 하늘에 맡기고 구차하게 면하려 해서는 안된다. 안되리라고 미리 근심하여 해
보지도 않아서야 되겠는가. 털끝만큼이라도 주저하고 의심하는 마음이 가슴 속에 싹텄다 하
면 금생에 깨닫지 못할 뿐 아니라 천생만겁을 지낸다 할지라도 성취될 날이 없을 것이다."
『탄연암집(坦然庵集)』



7
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으나 사람이 도를 버린다
백운수단(白雲守端)스님 / 1024∼1072


1.
공보(功輔)가 태평주(太平州)의 요직을 맡고 강을 건너 해회(海會)에서 백운 수단(百雲守
端:1024∼1072)스님을 방문하였다. 스님이 공에게 "소가 순하던가?"하고 묻자, 공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스님이 호통을 치자 공은 팔짱을 낀 채 끄떡도 안했다. 스님은 찬탄하였다.
"순하고 순하군. 남전(南泉)과 위산(山) 큰스님도 꼭 이러하셨다네."
그리고는 이어 노래를 지어 불러주었다.
산속에서 소가 내려오니
물도 풀도 가득하네.
소가 산을 떠나니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노니네.
牛來山中 水足草足
牛出山去 東觸西觸
또 한 수 읊었다.
훌륭하신 공자(軫子)는
삼천 제자를 교화했으니
예의를 알았다 하리라.
上大人 化三千 可知禮也 『행장(行狀)』

2.
백운스님이 공보에게 말하였다.
"옛날 취암 가진(翠巖可眞:?∼1064)스님은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선관(禪觀)의 맛에 빠져들
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말재주로 여러 납자들을 꾸짖고 욕하며 자기 마음에 든다고 인정
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깨달음에 있어서는 확실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는 금란 선(金¡善) 시자(侍者)가 그를 보고 비웃으며 말하였다.
`사형(師兄)께서는 참선은 많이 했지만 오만하여 깨닫지는 못했으므로 어리석은 선(痴禪〕
을 한다고밖에 못하겠군요.'" 『백운야화(百雲夜話)』

3.
도가 융성하고 폐지되는 문제에 어찌 정해진 원칙이 있겠는가. 사람이 도를 넓히는 데 있
을 뿐이다. 그러므로 "잡으면 존재하고 놓아버리면 없어진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도가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도를 버리는 것이다.
옛사람은 산림(山林)에 살거나 조정과 시장에 은둔하거나 명리에 끄달리지 않고 외물에 눈
멀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청아한 기풍은 그 시대에 진동하고 아름다운 명성은 만세에 드날
렸다. 그러나 어찌 옛날에만 그랬고 요즈음이라 해서 되지 않겠는가. 교화가 지극하지 못하
고 실천에 힘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옛사람은 순박했기 때문에 교화될 수 있었지만 요즈음 사람은 들뜨고 천박하
므로 교화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실로 사람들을 부채질하여 현혹시키는 말로써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 『답공보서(答功輔書)』

4.
백운스님이 무위 거사(無爲居君) 양걸(楊傑)에게 말하였다.
"말만 하고 실천에 옮길 수 없다면 아예 말하지 않느니만 못하며, 해놓고도 말하지 못할
것은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낫다. 말을 꺼내려면 반드시 그 결과를 생각해야 하고, 행동을 개
시하려면 반드시 폐단을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선철(先哲)께서는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가
려 하셨다.
말을 꺼내는 이유는 되지도 않는 말로 진리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깨닫지 못한 납자를
끌어주기 위함이며, 무엇인가를 시행함은 자기 하나만 착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지
못한 납자를 가르치려 함이었기에 언행에는 모두 법도가 있었다. 그리하여 말과 행동이 재
앙과 욕됨을 부르지 않고 떳떳한 법칙이 되었다. 그러므로 `언행(言行)은 군자의 핵심〔樞
機〕이며 몸을 닦는 큰 근본으로서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도 감동시킨다'라고 한 것이니, 조
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백운광록(百雲廣錄)』

5.
백운스님이 오조 법연(五祖法演)스님에게 말하였다.
참선하는 사람의 지혜로는 지난 자취를 보는 경우는 많아도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보지
못한다. 지관정혜(缺觀定慧)로는 나타나기 전에 방비하며, 작지임멸(作止任滅)로는 지난
뒤에 깨닫는다. 그러므로 작지임멸은 보기 쉽지만 지관정혜는 어떻게 닦는지를 알기 어렵다.
옛사람은 깨달음에 뜻을 두고 싹이 트기 전에 사념을 끊어버렸다. 비록 지관정혜와 작지임
멸을 말했다 해도 모두가 본말관계(本末關係)를 논했을 뿐이다. 때문에 `털끝만큼이라도 본
말에다가 말을 붙이는 자는 모두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궁극
적인 경지를 봄으로써 자신을 속이지 않았던 옛사람의 태도이다." 『실록(實錄)』

6.
경전도 보지 않고 원대한 계획도 없는 납자를 종종 보게 되면, 나는 총림이 쇠퇴할까 염려
스럽다. 양기(楊岐)스님께서도 늘 걱정하시기를, "웃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자신만의 편안을
도모하는 것이 불교 문중의 가장 큰 근심거리이다"라고 하셨다.
나는 지난날 귀종사(歸宗寺)의 서당(書堂)에 은거하면서 경전과 역사를 열람할 때, 수백번
도 더 읽었으므로 책장이 떨어지고 매우 낡아버렸다. 그러나 책을 펼 때마다 반드시 새로운
의미를 터득해냈다. 여기에서 `학문이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
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백운광록(百雲廣錄)』

7.
백운스님이 과거 구강(九江)의 승천사(承天寺)에 살다가 다음으로는 원통사(圓通寺)로 옮겨
갔는데, 그때 나이가 매우 어렸다. 당시 회당 조심(晦堂祖心:1024∼1100)스님이 보봉사(¿峯
寺)에 머물고 있으면서 효월 공회(曉月公晦)스님에게 말하였다.
"새로 온 백운은 투철하게 근원을 보았으므로 양기(楊岐)스님의 가문을 욕되게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다. 너무 일찍 드러나 쓰였으니 총림의 복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공회스님이 곧 그 까닭을 묻자 회당스님은 대답하였다.
"명성과 재능은 하늘이 아끼는 것이므로 사람에게 둘 다 주지는 않는다. 사람이 굳이 욕심
내면 하늘이 반드시 빼앗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백운스님이 서주(舒州)의 해회사(海會寺)에서 56세로 돌아가시자 식자(識者)들은 회당스님
이 기미(機微)를 알았으니 참으로 지혜로운 이라고들 하였다. 『담당기문(湛堂記聞)』



8
활짝 트인 것이 도인의 마음씀슴이다
회당조심(晦堂祖心)스님 / 1024∼1100

1.
회당 조심(晦堂祖心)스님이 효월 공회(曉月公晦)스님을 보봉사(¿峯寺)에서 뵈었다. 공회스
님은『능엄경(嚴脛)』의 심오한 뜻을 환하게 알아 바닷가 지방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회
당스님은 그에게 한 구절 한 글자를 들을 때마다 마치 지극한 보배를 얻은 듯 기쁨을 가누
지 못하였다. 납자들 사이에서는 나름대로 이러쿵저러쿵하는 자가 있었는데, 회당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상대방의 장점을 본받아 나의 부족한 점을 메꾼다는데 나에게 무슨 거리낌이 있겠는가."
홍영 소무(洪英邵武 1012∼1070)스님은 말하였다.
"회당 스님의 도학은 참선하는 납자들 가운데서 으뜸이다. 그런데도 덕 있는 이를 높임으
로써 스스로 나아지려고 애썼고, 아직 견문이 넓지 못하다고 부끄럽게 여겼다. 그러니 자기
의 잘난 점을 가지고 남 못난 점을 멸시하는 총림의 납자들에게 본받게 한다면 어찌 도움이
적다 하겠는가." 『영원습유(靈源拾遺)』

2.
주지(住持)의 요점은 원대(遠大)한 것은 하고 사소한 것은 생략하는 데에 있다. 일이 어려
워 결단이 나지 않거든 덕도 있고 나이도 지긋한 분에게 자문해야 하고, 그래도 의심스러운
점에 대해서는 다시 잘 아는 사람에게 묻는다면 미진한 점이 있다 하여도 아주 잘못 되지는
않으리라.
혹시라도 책임을 맡은 사람이 사심(私心)을 내어 자기 멋대로 주고받다가 하루아침에 소인
의 꾀부림을 만나게 되면 죄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그러므로 "계획은 여럿이 세우되 결단은 나 혼자에게 있다"라고 말한다. `계획은 여럿이 세
운다' 라고 한 말은 손익의 결과를 관찰할 수 있다는 뜻이고, `결단은 나 혼자에게 있다' 함
은 총림의 시비를 판가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초당서(與草堂書)』

3.
회당스님이 위산스님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연평(延平)의 진영중(陳瑩中)이 편지를 보내
간곡하게 말하였다.
"옛날 주지에게는 사무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덕 있는 사람을 뽑아 그자리에 있게 하였으
니, 이 책임을 감당한 사람은 반드시 도〔宗法〕로써 납자를 깨우쳐 주려 하였지 결코 세력
이나 지위, 명성이나 이익 때문에 변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런데 요즈음 배우는 사람들은 대도(大道)는 아직 밝히지도 못하고서 각각 다른 학문을
좇아가 명상(名相)에 흘러들어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소리와 색에 움직여져서 훌륭한 사
람과 어질지 못한 사람이 잡다하게 뒤섞여 흑백을 가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읍니다. 덕 있
고 연로하신 분이라면 바로 이러한 때에 측은한 마음을 내어 관심을 보여야 할 것이니, 도
를 자기의 책임으로 여겨, 우(禹) 임금이 역류하는 모든 강물을 막고 물길을 돌려 틔웠듯이
순조롭게 제 갈길을 찾게 해주신다면 실로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물러나 고요함만
을 구하고 편안함을 힘쓴다면, 자기 한 몸만을 위하고자 하는 사람의 독선(獨善)일 뿐, 총림
이 큰스님에게 바라는 바는 아닙니다. 『출영원습유(出靈源拾遺)』

4.
회당스님이 하루는 황룡스님의 편치 않은 기색을 눈치채고 물으니 황룡스님이 말씀하였다.
"감수(監收) 일을 맡길 만한 적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회당스님이 감부사(惑副寺)를 추천하자 황룡스님이 말씀하였다.
"감부사는 성미가 급하여 소인들의 꾀에 휘말릴까 염려스럽다."
회당스님이 "화시자(化侍者)가 청렴하고 근실한 편입니다"하고 추천하니 황룡스님이 그를
두고 말씀하였다.
"화시자가 비록 청렴하고 근실하기는 하나 도량도 있고 충직한 수장주(秀莊主)만은 못하
다."
영원(靈源:?∼1117)스님이 한번은 회당스님에게, "황룡스님은 한 사람의 감수(監收)를 채용
하는 데 왜 그렇게도 사려가 지나칠까요?"라고 하니, 스님이 말하였다.
"나라나 가문에서 책임을 맡은 자는 모두 다 적임자를 선발하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
으니, 어찌 유독 황룡스님만 그러하겠는가. 옛 성인들도 이 일을 조심하셨다." 『통암벽기
(通庵璧記)』

5.
회당스님이 급사(給事) 주세영(朱世英)에게 말하였다.
"내가 처음 입도(入道)하여서는 매우 쉽다고 스스로 믿었으나 돌아가신 황룡스님을 뵌 후
물러나서 나의 일상생활을 곰곰이 돌아보니 이치에 어긋난 점이 매우 많았다. 그리하여 심
한 추위와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확고한 뜻을 바꾸지 않고 3년을 힘써 수행하고서야 바야흐
로 일마다 이치에 맞게 되었으니, 지금은 기침하고 침뱉고 팔 흔드는 것까지도 `조사가 서
쪽에서 오신 뜻'이 되었다." 『장강집(章江集)』

6.
주세영(朱世英)이 회당스님에게 물었다.
"군자는 불행히도 조그마한 허물만 있으면 듣고 보는 사람들이 틈도 없이 손가락질하지만
소인은 종일토록 악을 자행해도 그렇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군자의 덕은 아름다운 옥과도 같아서 안에 흠집이 있으면 반드시 밖으로 나타난다. 그러므
로 보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하고 손가락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소인은 날마다 하
는 짓이 다 허물과 악이니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장강집(章江集)』

7.
성인의 도는 천지가 만물을 길러내는 것처럼 완전한 도를 갖추었다. 일반 사람의 도는 크
고 작은 강과 바다, 산천의 능선과 골짜기나 초목 곤충들이 저마다 타고난 도량을 다할 뿐
임과 같다. 그리하여 자기 밖에 모두를 다 갖추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한다.
도는 어째서 둘이 되었는가? 체득의 깊음과 얕음에 따라서 성취의 크고 작음이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답장무진서(答張無盡書)』

8.
오래 폐지되었던 일은 신속하게 되살릴 수 없고, 누적된 폐단은 갑자기 제거하지 못하며,
여유롭게 노니는 것에 오래 마음을 두어서는 안된다. 또한 바라는 것을 다 채울 수는 없고,
재앙은 구차하게 면할 수 없다. 선지식이 되려는 자는 이 다섯 가지 일을 통달해야만 세상
살아가는 데에 번민이 없을 것이다. 『여상화상서(與祥和尙書)』

9.
스승(황룡스님)께서는 행동이 엄중하시었으므로 뵙는 사람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납
자들이 어떤 일을 핑계삼아 여가를 내어 주십사고 청하면 따끔하게 거절하고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셨다. 단 부모와 노인을 살펴 모시겠노라는 말을 들을 경우만은 얼굴 색이 환해
지시며, 예의를 극진히 하여 청하는 이를 나룻터까지 바래다 주곤 하셨다. 사람을 사랑하고
공손하게 효도하심이 이러하셨다. 『여사경온서(與謝景溫書)』

10.
스승(황룡스님)께서 옛날 운봉 문열(雲峯文悅:998∼1062)스님과 형주 남쪽 봉림사(鳳林寺)
에서 하안거를 할 때 일이다. 운봉스님은 말하기를 좋아하여 하루는 납자와 시끄럽게 떠들
고 있었는데 황룡스님께서는 태연자약하게 경전을 보며 마치 못 본 체하였다. 그러자 운봉
스님이 황룡스님의 책상머리에 다가가서 눈을 부릅뜨고 "그대는 여기에서 선지식의 도량이
나 익히고 있는가?"라고 따졌으나 황룡스님께서는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고는 여전히 경전을
보았다.[영원습유(靈源拾遺)]



9
대중을 얻는 요점은 사람 마음을 살피는 데 있죠
/황룡혜남(黃龍慧南)스님 / 1002∼1069

1.
내가 옛날 문열(文悅)스님과 호남땅에 유람할 때, 대나무로 된 상자를 메고 가는 납자 하나
를 만나게 되었다. 문열스님이 보고는 놀란듯 이맛살을 찌푸리며 꾸짖었다.
"자기 집 속의 물건도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서 게다가 남의 짐까지 걸머졌으니 너무 무겁
지 않느냐?" 『임간록(林間錄)』

2.
주지하는 요점은 대중을 얻는 데 있고, 대중을 얻는 요점은 사람 마음을 살피는 데 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도 "사람 마음이 세상의 복밭이 된다"고 하셨으니, 다스리는 도(道)가
여기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시운(時運)의 막힘과 트임 및 일의 손익이 반드시 사람 마음을 원인으로 하는 것
이다. 말하자면 사람 마음에는 통함과 막힘이 있으므로 시운에도 막힘과 트임이 생겨나고,
일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므로 손해와 이익을 보게 되는데, 오직 성인이라야 천하의 마음
을 다 아실 수 있다. 그러므로 『주역(周易)』에서도 다음과 같이 괘(卦)를 나누고 있다.
하늘이 아래, 땅이 위에 있는 형상을 태(泰 ; 편안함, 통함)괘라 하였고, 하늘이 위, 땅이 아
래에 있는 것을 비(否 ; 막힘)괘라 하였으며, 그 점괘의 상(象)을 보고 나서 위를 덜어내고
아래를 더해 주는 것을 익(益)괘라 하였고, 아래를 덜고 위를 더하는 것을 손(損)괘라 하였
다.
건(乾)은 하늘이고 곤(坤)은 땅이니,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는 것은 진실로 제자
리가 아니라고 하겠으나 반대로 이를 태괘(泰卦)라고 하는 이유는 위 아래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며, 주인은 위에 있고 손님은 아래에 자리하는 것이 이치로는 맞는 순서라 하겠으나
반대로 이를 비괘(否卦)라고 말하는 것은 위와 아래가 서로 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문에 천지가 통하지 못하면 생물들이 자라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이 통하지 못하면 만사가
화목하지 못하다.
손괘(損卦)와 익괘(益卦)의 의미도 이와 같다. 다른 사람의 위에 있는 이로서 자신에게는
간략하게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너그럽게 하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기쁜 마음으로 웃사람을
받들 것이니, 어찌 이것을 익(益)이라 하지 않겠는가? 위에 있는 이로서 아랫사람을 능멸하
며 자기 욕심대로 한다면 아랫사람은 반드시 원망을 하며 웃사람을 배반하리니, 이를 어찌
손(損)이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위와 아래가 통하면 태평하고, 통하지 못하면 막힌다. 자신이 손해를 보면 남이
이익을 보고, 자신을 이롭게 하는 이는 남에게 손해를 끼치니, 대중의 마음을 얻는 것이 어
찌 쉬운 일이겠는가? 옛 성인도 일찌기 "사람은 배와 같고,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다"라고
비유하였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한편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으니 물의 본성을 따
르면 배가 뜨지만 거슬리면 가라앉는다.
그러므로 주지가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흥하고 잃으면 쫓겨나니 대중의 마음을 완전히 얻
으면 온전히 흥하고 완전히 잃으면 아주 쫓겨난다. 때문에 착한 사람과 함께 하면 복이 많
고 악한 사람과 함께 하면 재앙이 심하다. 선·악이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꿰어진 염주와
같고 흥하고 쫓겨나게 되는 모양은 해를 보듯 분명하다. 이것이 역대의 원칙인 것이다. 『여
황벽승서(與黃擘勝書)』

3.
황룡스님이 형공(荊公:왕안석)에게 말하였다.
"일반적으로 조심해야 될 일은 항상 면전의 길을 곧게 활짝 열어놓아 모든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대인(大人)의 마음 씀씀이이다. 만약 면전의 길을 험난하게 막
아 다니지 못하게 하면 다른 사람만 다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도 발 놓을 땅이 없으리
라." 『장강집(章江集)』

4.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여 일거일동에 있어서 위로는 하늘을 속이지 아니하고 밖으로는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아니하며, 안으로는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고 여길 만하면 참으로 되었
다 하리라. 그러나 남이 알아차릴 수 없는 자기 마음 속 깊은 곳까지도 조심하고 삼가하여
과연 털끝만큼도 속임이 없을 때야말로 완전히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답형공서
(答荊公書)』

5.
장로(長老)의 직책이란 도덕을 담는 그릇이다. 옛 성인이 총림을 세워 기강을 마련하고 이
름과 자리를 정해 도덕있는 납자를 선택하여 그를 장로로 임명함은 도를 시행하고자 함이었
지 구차하게 이름을 훔치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날 자명(慈明:987∼1040)스님도 말씀하시기를, "자기 혼자 도를 지키며 언덕이나 골짜
기에서 늙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도를 실천하며 총림에서 대중을 거느리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장로의 직분을 잘 지킨 자가 없었더라면 불조의 도와 덕이 어찌 남아 있겠는가.
『여취암진서(與翠巖眞書)』

6.
황룡스님이 은자(隱者) 반연지(潘延之)에게 말씀하였다.
"성현의 학문은 단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모름지기 착실히 쌓아가는 틈에 이루어진
다. 착실히 쌓아가는 요점은 부지런히 전념하여 좋아하는 것을 끊고 실천에 게으르지 말아
야 한다. 그런 뒤에 그것을 넓혀서 충만하게 하면 천하의 묘함을 다할 수 있으리라." 『용산
광록(龍山廣錄)』

7.
반연지가 황룡스님의 법도가 엄밀하다는 말을 듣고 그 요점을 물으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버지가 엄격하면 자식이 공경하듯 오늘의 규훈(規訓)은 뒷날의 모범이 된다. 그것은 땅
을 고르는 것과도 같아서 높은 곳은 깍고 움푹 패인 곳은 채워야 한다. 그가 천길의 높은
산을 오르려 하거든 나도 그와 함께 해야 하고, 깊은 연못 밑바닥까지 가려 하거든 나도 함
께 해야 한다. 기량이 다하고 허망이 끝까지 가면 저들이 스스로 쉬게 된다."
또 말씀하였다.
"따뜻한 기운으로 봄 여름에 만물을 낳아 기르고, 서리와 눈으로 가을 겨울에 만물을 성숙
시킨다. 공자는 `나는 말하지 않고자 하노라'하였는데, 옳은 말이다." 『임간록(林間錄)』

8.
황룡스님 가풍에 삼관어(三關語)가 있었는데, 이 기연에 계합하는 납자가 적었다. 혹 대꾸
하는 이가 있어도 눈을 감고 꽃꽃이 앉아서 가타부타를 말하지 않았다. 반연지가 좀더 설명
해주기를 청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관문을 통과한 자는 팔을 흔들며 가버리면 그만이다. 관문을 지키는 관리에게 들어가도
되느냐고 묻는 자는 아직 관문을 지나가지 못한 자이기 때문이다." 『임간록(林間錄)』


9.
도(道)는 산처럼 오를수록 더욱 높고, 땅처럼 갈수록 더욱 멀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정도
가 낮아 힘을 다해도 중도에서 그칠 뿐이다. 오직 뜻을 도에 둔 사람만이 높고 먼 끝까지
갈 수 있다. 그 나머지는 누구라서 여기에 끼어들 수 있겠는가? 『기문(記聞)』

10.
천지일월은 예나 지금이나 같고, 만물의 성정(性情)도 예나 지금이나 같다. 천지일월도 원
래 바뀜이 없으며 만물의 성정도 본디 변화가 없는데 도(道)라고 무엇 때문에 유독 변할 것
인가?
슬프다, 아직 도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옛것은 싫어하고 새로운 것만 좋아하며, 이것을 버
리고 저것을 취한다. 이는 마치 월(越)나라를 가려는 사람이 남쪽으로 가지 아니하고 북쪽으
로 가는 것과도 같으니, 이것이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부질없이 심신을 수고롭게 할
뿐이니 그 뜻이 굳어질수록 도에서는 더욱 멀어진다. 『순암벽기(遁庵璧記)』

11.
황룡스님이 홍영 소무(洪英邵武:1012∼1070)스님에게 말하였다.
"뜻을 하나로 돌아가게 하여 오래도록 물러나지 아니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묘한 도에 돌아
갈 바를 알게 될 것이다. 그가 혹시 마음에 좋고 싫음이 있어 감정이 삿되고 편벽함을 따른
다면 옛사람과 같은 뜻과 기상이 있다 해도 나는 그가 끝내 도를 보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벽기(璧記)』



10
공안을 설명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하라
홍영소무(洪英邵武)스님 / 1012∼1070

1.
곳곳의 노숙(老宿)들이 선각(先覺)의 말씀을 비판하고 공안(公案)을 설명하는 것은 마치 한
줌의 흙으로 태산을 높이고 한 움큼의 물로 동해를 깊게 하려는 격이다. 저분들의 뜻이 어
찌 우리 불법을 더 높게 하거나 깊게 하겠는가. 생각해 보면 보충설명으로 이해를 도우려는
그들의 뜻은 살 만하나, 그런 방법으로는 될 수 없는 문제임을 그들은 알지 못했을 뿐이다.
『광록(廣錄)』

2.
홍영 소무스님은 배우는 납자들이 방자하게 멋대로 굴면서도 인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볼 때마다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수고로운 삶은 마치 길손이 여인숙에 묵고 나룻터에 배가 쉬듯 잠깐이어서, 살아 있는 동
안 인연을 따르다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데에서 욕심으로 구하고 얻는 것이 얼
마나 되기에 너희들은 염치를 모르고 분수를 넘어 이토록 가르침을 더럽히는가?
대장부의 뜻이 조사의 도를 크게 넓히고 후학을 이끌어 줌에 있다면, 자기 욕심만 챙기느
라고 무엇이든 거리낌없이 마구 해서는 안된다. 일신상에 닥친 화를 피하기 위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도모한다면 결국 만겁 동안의 재앙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삼악도의 지옥에서 고
통받는 정도로는 아직 괴로움이라 할 수 없다. 한번 가사를 걸쳤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
이 진실로 고통이 되는 것이다." 『벽기(璧記)』

3.
홍영 소무스님이 회당스님에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선지식(善知識)이라 불리는 이는 불조(佛祖)의 교화를 도와 납자들에게는 도를
닦는 데에 마음을 쏟게 하고 민간에게는 풍속을 선도해 나가야 하는 것이니, 본디 천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말법시대의 비구들은 도덕을 닦지 않아 절개와 의리가 거의 없다. 번번이 뇌물을 싸들고
문전에 기대어 꼬리치고 구걸하여 권세있는 문하에서 명성과 이익을 추구한다. 그러다 하루
아침에 이생에서 받을 업과 복이 다하여 죽게 되는 날이면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하리니, 자
기에게 재앙이 될 뿐만 아니라 바른 가르침을 더럽히고 스승과 벗에게 허물을 끼치게 되니
크게 탄식할 일이 아닌가."
회당스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4.
홍영 소무스님이 반연지에게 말했다.
"옛날의 배우는 이는 마음을 다스렸고 요즘의 배우는 이는 모습을 다스리나 이 둘 사이는
천지차이라 하겠다."

5.
홍영 소무스님이 진정 극문(眞淨克文:1025∼1102)스님에게 말했다.
"무엇이든 갑자기 자라나는 것은 반드시 중도에서 꺾이며, 급하게 이루어지는 일은 반드시
쉽게 허물어지니, 먼 앞날을 내다보지 않고 계획하여 갑자기 만들어 낸 일은 모두가 원대한
일의 밑천이 될 수 없다.
자연은 가장 신령스럽지만 그래도 3년마다 한 번씩은 윤달이 끼어야 조화신공(造化神功)을
완수할 수 있다. 하물며 무상대도(無上大道)의 오묘함을 어떻게 급히 서둘러 이룰 수 있겠는
가. 요컨대 공부를 축적하고 덕을 쌓아가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급하게 하려 하면
도달하지 못하고 꼼꼼하게 행하면 실수하지 않으니, 아름답고 묘하게 이룸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어 마침내 종신토록 도모함이 있게 된다'는 말이 있다.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도(道)에
대해서 믿음으로써 지키고 민첩하게 실천하며 진심으로 이루면, 아무리 큰일이라도 반드시
된다'라고 하셨다.
지난날 철시자(喆侍者)는 앉은 채로 밤을 새우면서 자지 않았다. 둥근 나무로 목침을 만들
어 괴고는 잠깐이라도 졸게 되면 목침이 굴러떨어져 깜짝 놀라게 함으로써 다시 일어나 전
처럼 자리를 펴고 앉곤 하였다. 늘 이렇게 해나가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마음씀이 너무 지
나치다고 하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반야(般若)와의 연분이 본래 엷어서, 만일 애써 뜻을 가다듬지 않는다면 허망한 습관
에 끄달릴까 염려스럽다. 더구나 꿈 같고 허깨비 같은 이 몸은 본래 진실이 아닌데, 어떻게
이것만을 믿고 장구한 계책을 삼겠는가.'
나는 그때 상강(湘江)의 서쪽에 있으면서 그 지조와 실천이 이러함을 직접 보았다. 그러므
로 총림에서는 그의 명성에 머리 숙이고 그의 덕에 경배하며 칭찬한다." 『영원습유(靈源拾
遺)』



11
도인이 가니 총림이 시들다
진정 극문(眞淨克文)스님 / 1025∼1102


1.
진정 극문(眞淨克文)스님은 가장 오랫동안 황룡(黃龍)스님을 모셨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사
람들 앞에 나서서 남의 스승이 되기를 사절하였다가 뒤에 동산(洞山)스님의 청을 받고 가는
길에 서산(西山)을 지나게 되어 향성 경순(香城景順)스님을 찾아뵈니 경순스님이 그를 놀리
며 시를 한 수 지어 주었다.
지난날 제갈량은 은자라 불리웠지만
유비의 삼고초려에 와룡을 내려왔네
송화가루가 봄기운에 만발하려면
그 뿌리 바위 깊이 묻혀야 하리
諸昔年稱隱者
芽廬堅請出山來
松華若也春力
根在深巖也著開粘 淑
그러자 진정스님은 고개 숙이고 물러났다. 『순어록(順語錄)』

2.
진정스님이 구봉 희광(九峯希廣)스님을 오봉사(五峯寺)의 주지로 천거하니, 대중은 그가 거
칠고 졸렬하여 세간을 감화시킬 만한 그릇이 못된다고들 하였다. 그러나 희광스님이 주지가
되어서는 자기를 다스리는 데에는 엄정하고 대중에게는 관대하게 대하니, 오래지 않아서 절
의 모든 폐단이 제대로 시정되었다. 납자들이 오가며 다투어 전하니 진정스님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였다.
"배우는 사람들이 어찌 그토록 쉽게 남을 비방하고 칭찬하는가. 내가 매번 보니, 총림에서
멋대로 논의하기를 어느 장로(長老)는 도를 실천하여 대중을 편안하게 한다 하고, 어느 장로
는 일용품을 사사로이 쓰지 않고 대중과 고락을 같이 한다고들 한다.
선지식이라 불리워 한 절의 주지가 되면 도를 실천하여 대중을 편안하게 하고 일용품을 사
사로이 쓰지 않고 대중과 고락을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다시 무슨 말할 거리가 되
겠는가. 그것은 사대부가 관리가 되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는, 나는 뇌물
을 받지 않았으며 백성을 어지럽히지 않았노라고 내세우는 것과 같다. 뇌물을 받지 않고 백
성을 어지럽히지 않음이 어찌 분수 밖의 일이겠는가." 『산당소참(山堂小參)』

3.
진정스님이 귀종사(歸宗寺)에 머물 때, 해마다 화주(化主)가 써서 바치는 조목에 베와 비단
이 구름같이 쌓여 있었는데, 스님은 이를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탄식하였다.
"이것은 모두 신심 있는 신도의 피와 땀이니 나에게 도덕이 없음이 부끄러울 뿐이다. 무엇
으로 이것을 감당하겠는가." 『이상로일섭기(李商老日涉記)』

4.
말법시대에는 절개와 의리가 있는 비구가 드물다. 그들의 고상한 이야기나 폭넓고 트인 의
론을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은 그들에게 미칠 수 없다는 생각이 내게도 든다. 그러나 밥 한
그릇의 이익을 놓고는 처음에는 쳐다보지도 않는 듯하다가 끝에 가서는 그것을 차지하며,
처음에는 헐뜯다가 뒤에는 칭찬한다. 그들이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을 살펴보니, 이욕(利欲)에
현혹되지 않고서 중정(中正)에 입각하여 사실을 숨기지 않는 자가 적었다. 『벽기(璧記)』

5.
비구의 법도는 물건을 수용(受用)함에 있어서 많고 넉넉히 해서는 안된다. 넉넉하고 많으면
넘쳐 흘러버린다. 마음에 맞는 일이라도 많이 계획해서는 안되니 많은 계획은 끝내 실패하
기 때문이다. 완성이 있으려면 반드시 파괴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황룡스님을 보니, 세상을 교화하는 40년 동안에 모든 일에서 한번도 안색이나 예의·
글재주 따위로 당시의 납자들을 억지로 얽어매지는 않았다. 확고한 견지(見地)를 가지고서
진실을 실천하는 자만이 평범한 도로써 제자들을 성취시킬 수 있다. 스님이 고인의 격식을
진실하게 체득한 점은 어디에도 비교할 만한 자가 드물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내가 대
중 앞에 서면 스님을 본받으라 가르친다. 『일섭기(日涉記)』

6.
진정스님이 건강(建康) 보령사(保寧寺)에 머물 때, 서왕(舒王)이 재(齋) 때에 흰 명주를 바
쳤다. 스님은 시자에게 "이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비단입니다"하니, 스님이 다시 "어
디에 쓰려고 하느냐?"하자 "가사를 지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스님은 입고 있던 베가
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늘 이렇게 입어 왔지만 보는 사람이 천하다고 하지 않더라."
하고는, 즉시 그 비단을 창고로 보내어 그것을 팔아서 대중에게 공양하라 일렀다. 스님이 옷
따위에 신경쓰지 않음이 이러하였다. 『일섭기(日涉記)』

7.
진정스님이 서왕(舒王)에게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옳은 것은 힘써 실천하고, 잘못된 것은 기어코 그만두어야 한다. 또한 일의
쉽고 어려움 때문에 자기 뜻을 바꿔서도 안된다. 당장 어렵다 하여 고개를 저으며 내버려
둔다면 뒷날이 오늘보다 더 어렵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하겠는가." 『일섭기(日涉
記)』

8.
진정스님은 어느 지방에서 도 있는 인재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으면 매우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 담당 문준(湛堂文準:1061∼1115)스님이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만물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 일단 몸을 갖게 되면 죽고 썩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당연
한 이치인데, 무엇 때문에 그토록 상심합니까?"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불교가 일어나는 것은 도 있는 사람 덕분인데 지금 모두 죽어가니, 총림의 쇠퇴를 이로써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섭기(日涉記)』



12
도덕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긴다
담당 문준(湛堂文準)스님 / 1061∼1115

1.
담당 문준(湛堂文準:1061∼1115)스님이 처음 진정스님을 참례하고 나서 항상 휘장 속에서
불을 켜 놓고 책을 읽자, 진정스님이 이렇게 꾸짖었다.
"배우는 목적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이니, 많이 배웠다 해도 마음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면 배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더구나 저마다 다른 백가(百家)의 이론은 산처럼 바다처럼
방대한데 그것을 다 보려 하는가. 그대는 지금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좇고 있는데 이는 마
치 하인이 주인을 부리는 격이니 도업(道業)을 방해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모름지기 모든
바깥 인연을 다 끊고 오묘한 깨달음을 구해야 하니, 그렇게 해나가다가 뒷날 되돌아본다면
문을 밀어젖힐 때 지도리에 맞듯 순조로울 것이다."
담당스님은 그때부터 익히던 것을 버리고 선관(禪觀)에만 전일(專一)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날, 한 납자가 제갈공명의 출사표(出師表)를 읽는 소리를 듣고 활연히 깨달아 응
어리가 풀린 뒤, 말물이 틔어 대중 가운데 스님을 능가하는 자가 드물었다.

2.
도덕이 있는 사람은 대중과 같이 즐기고, 도덕이 없는 사람은 혼자 즐기기를 좋아한다. 대
중과 즐기는 사람은 발전하지만 자기 몸만 즐기는 사람은 망한다. 요즈음 주지라 불리우는
자들은 자기의 좋고 싫은 감정으로 대중을 대하는 경우가 많아, 그 때문에 대중들이 그를
거스른다. 좋아하면서도 단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사람의 장점을 알아주는 사람은 찾아
보아도 드물다. 그러므로 근심과 즐거움을 대중과 함께 하고, 좋고 싫음을 같이하는 자를 의
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의(義)가 있는 곳이라면 천하 누군들 귀의하지 않겠는가.
『췌우집(贅集)』

3.
도라는 것은 고금의 바른 저울이다. 그런데 그것을 널리 펴는 문제는 변화에 통달하는 데
달려있다. 변화를 알지 못하는 자는 문자에 구애되고 가르침에 집착하여 모양과 감정에 막
히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방편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스님이 조주(趙州:778∼898)스님에게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면〔萬法歸
一〕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一歸何處〕"라고 묻자, 조주스님은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 삼베로 옷을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옛사람이 권도
(權道)의 변화에 통달하지 못했더라면 이처럼 응수할 수 있었겠는가?
성인이 말씀하시길, "그윽한 골짜기는 사심이 없어 마침내 메아리를 이루고, 커다란 종은
종틀에 매여 있기 때문에 치는 대로 소리가 난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큰
방편에 막힘이 없는 상근기(上根氣) 인재가 상도(常道)로 되돌아가 합치하려면, 하나만 고집
하느라 변화에 응하지 못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이상로서(與李商老書)』

4.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승이 될 만한 사람으로 벗을 삼아야 한다. 언제든지 깊이 존경
하는 마음을 품고 일마다 본받을 만하여 나에게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혹 지식이 나보
다 약간 나은 경우도 사귈 만하나, 부족한 점을 경책해야 하고 만일 나와 비슷한 경우라면
없느니만 못하다. 『보봉실록(¿峯實錄)』

5.
조정(祖庭)이 말운(末運)에 당하여, 시끄럽게 들뜨지 않는 정도의 수행자도 진실로 만나기
어렵다. 옛날에 진여(眞如:?∼1095)스님이 지해사(智海寺)에 머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상강(湘江)의 서쪽 도오사(道吾寺)에 있을 때, 대중은 많지 않았으나 늙은 납자 몇 명이
이 도리를 참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위산(大山)으로부터 여기에 와서는 대중이 9백명을 밑
돌지 않았으나 대여섯 사람도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로써 사람을 얻는 것이 많은 숫자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안다. 『실록(實錄)』

6.
상대방의 실천에 관한 문제는 한 번 대답하고 따져 묻는 정도로는 다 알지 못한다. 입으로
는 날카롭게 변론하는 자라도 실제 일 처리는 미덥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으며, 말솜씨가
없는 자도 더러 이치에 밝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말로는 끝까지 했다 해도 그
이치를 다하지 못했을까 염려스러우며, 입은 굴복시켰다 해도 그 마음은 굴복시키지 못했을
까 염려스럽다.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운 문제는 성인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겼다.
요즘의 납자들은 저 잘난 줄만 알 뿐 대중의 마음을 아는 데는 힘쓰지 않고 보고 듣는다는
것이 그저 남의 허물과 틈이나 엿보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대중의 바람을 저버리고 어기면
서 서로가 속임수를 더할 뿐이다. 그리하여 불조(佛祖)의 도들 더욱 얄팍하게 하여 거의 구
제할 도리가 없게 하였다. 『답노직서(答魯直書)』

7.
담당스님이 묘희(妙喜)스님에게 말하였다.
"상법(像法)·말법(末法)시대에는 밖으로 사물을 따라가 마음을 밝히지 못하는 비구가 많
다. 비록 큰일을 한다 해도 그것이 도에 관한 것은 아니니, 이는 비루하고 외람된 데 붙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서, 마치 소의 등에 붙어 있는 등에〔〕가 날다가 얼마 못 가는 꼴이다. 가
령 천리마의 꼬리에 붙는다면 문득 바람을 좇고 해를 따르는 능력을 가지게 되리니, 이는
몸을 맡긴 곳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는 반드시 처소를 가려 머물고, 큰 인재에게 가서 배워야 한다. 그래야
만 사벽(邪僻)을 끊고 중정(中正) 가까이서 바른 말을 들을 수 있다.
옛날 복엄 양아(福嚴良雅)스님은 진여 모철(眞如慕喆)스님이 내건 목표를 존중하여 매양
사랑하였으나, 그가 의지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몰랐었다. 하루는 그가 대영 도관(大寧道
寬)·장산 찬원(莊山贊元)·취암 가진(翠巖可眞)스님과 함께 가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 기쁨
을 누르지 못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선문(禪門)의 용상(龍象)인 모든 큰스님들을 그대가 따르며 배우고 있으니, 뒷날 무너지는
우리 도(道)를 지탱해 주고 조사의 가르침을 드러내어 대중을 구제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