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頓悟入道要門論 대주 혜해(大株慧海)스님

작성자
busong
작성일
2018-02-06 21:53
조회
283
돈오입도요문론 [頓悟入道要門論] - 머리말....

이 논을 지은이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스님의 제자인 대주 혜해(大株慧海)스님
입니다. 스님의 전기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다만 [조당집(祖堂集)]권14,[경
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등에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이를 종합해 보면 마
조스님을 6년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만이 스님의 생존 연대를 추정할수 있는 유일
한 단서 입니다.

혜해스님은 건주(福建省) 사람으로 성은 주[朱]씨이며 월주(浙江省)의 대운사 도지
(道智)스님에게 출가 득도 하였습니다. 그후 스님은 강서(江西)에 있는 마조스님을
찾아가 뵈오니, 마조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와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구
하려 하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떤 불법(佛法)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자 혜해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혜해 자신의 보배창고 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 너의 보배창고이다. 일체가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
이 없고 사용[使用]이 자제한데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이 말 끝에 혜해스님은 크게 깨쳐서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았는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뛸듯이 기뻐서 절을 올려 감사를 드리고 6년 동안 마조스님을 시봉하였습니
다. 그후 도지스님이 연로 하시므로 대운사로 다시 돌아와서 도지스님을 봉양하였
습니다. 그리고 자취와 활동을 감춘채 겉으로는 어리석게 살면서 [돈오입도요문론
(頓悟入道要門論)] 한 권을 저술 하였습니다. 이책을 조카 상좌인 현안(玄晏)스님
이 훔쳐서 마조스님에게 보이니 스님이 이것을 보시고 대중들에게
"월주(越州)에 큰 구슬이 있으니 둥글고 밝은 광명이 비추어 자유자재로와 걸림이
없구나"
하고 감탄하시었습니다. 대중가운데 혜해스님이 주씨임을 알고 있던 자가 있어서
큰 구슬(大珠)은 바로 혜해스님을 크게 칭찬하는 말임을 알아차리고,
"옛날 같이 살았을때는 그렇게 훌륭한 스님인줄 몰랐는데 이제보니 큰 도인임에 틀
림 없구나."
하고 다시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도반을 이루어 앞을 다투어 월주의 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공
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혜해스님을 대주(大珠)스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
다.

마조스님 문하에서 대주스님의 위치를 본다면 마조스님 비문에서나 [경덕전등록],
[조당집]에서나 모두 스님을 마조 스님 수제자(首第子)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덕전등록]에 1700여명의 큰 스님 법문이 실려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주 스님의
법문이 가장 많이 실려있고 제 28권에도 다시 스님의 긴 법어가 따로 실려 있습니
다.

마조스님의 정맥은 백장(百丈)스님에게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선가의 정설로 되
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백장(百丈)스님, 남전(南泉)스님, 법상(法常)스님들보다
대주스님이 더 유명하였으며 천하에 이름을 더 날렸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돈오입도요문론]은 당대에 명성을 떨친 대주 스님의
저술이고 또 선가의 대조사이신 마조스님이 극찬한 책이므로 선종(禪宗)의 정통사
상을 아는데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자료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육조단경(六祖壇經)] 이라든
가, [전심법요(傳心法要)]라든가, [백장광록(百丈廣錄)]이라든가 하는 선종의 어록
들이 많이 있지만 이러한 어록들은 당시 사람들이나 후세 사람들이 그 스님이 입적
하신뒤에 그 법문을 기록하거나 수집한 것이지 본인들이 직접 편찬한 것이 아닙니
다.
하지만 [돈오입도요문론]은 대주스님이 직접 저술하였으므로 거기에 가필이나 착오
가 없다고 보며 다른 어떠한 어록보다도 완전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
니다. 또 마조스님이 인가하신 논이니 만큼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정확하게 기술
한 것으로서, 선종 초기의 근본사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증도가(證道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오(頓悟)란 구경각(究竟覺)을 말합니다. 즉 제 8 아뢰야 근본 무명이 완전히 끊
어져서 중도(中道)를 정등각(正等覺)하여 진여본성(眞如本性)을 깨친 증오(證悟)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를 정등각한 구경각을 돈오라고 하는 만큼, 입도(入道)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성불과 같은 뜻으로서 증도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돈오입도요문론]은 영가스님의 [증도가]와 그 사상과 내용이 같다고 할수 있겠
습니다.


### 돈오입도요문론 차례. ###

1. 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2. 돈오(頓悟)
3. 선정(禪定) 4. 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5. 자성견(自性見)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7. 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8. 무소견(無所見)
9. 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11.삼학(三學)을 힘쓰다. 12.무생심(無生心)
13.상주(常住) 14.오종법신(五種法身)
15.등각(等覺)과 묘각(妙覺) 16.설법(說法)
17.금강경(金剛經)의 경전(輕賤) 18.여래(如來)의 오안(五眼)
19.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20.정혜(定慧)를 함께 씀
21.경상(鏡像)과 정혜(定慧) 22.언어도단심행처멸(言語道斷心行處滅)
23.여여(如如) 24.즉색즉공(卽色卽空)
25.진(盡)과 무진(無盡) 26.불생불멸(不生不滅)
27.불계(佛戒)는 청정심(淸淨心) 28.불(佛)과 법(法)의 선후(先後)
29.설통(說通)과 종통(宗通) 30.도(度)와 부도(不度)
31.부진유위(不盡有爲)며 부주무위(不住無爲) 32.지옥유무(地獄有無)
33.중생(衆生)과 불성(佛性) 34.삼신사지(三身四智)
35.불진신(佛眞身) 36.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
37.무위법(無爲法) 38.중도(中道)
39.오음(五陰) 40.이십오유(二十五有)
41.무념(無念)과 돈오(頓悟) 42.중생자도(衆生自度)
43.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 44.일체처(一切處)에 무심(無心)
45.필경정(畢竟淨) 46.필경증(畢竟證)
47.진해탈(眞解脫) 48.필경득(畢竟得)
49.필경공(畢竟空) 50.진여정(眞如定)
51.중도(中道)는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 52.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이 해탈-解脫


1.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 숙여 예배를 올립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이 논을 지었으나 부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을까 두려우
니 부디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만약 부처님의 이치를 알았거든 일체 유정의 중생
에게 모두 회향하여 내세(來世)에 다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다.


2.돈오(頓悟)

"어떤 법을 닦아야 곧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돈오의 한 문[一門]만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까?"
"돈(頓)이란 단박에 망념(妄念)을 없앰이요, 오(悟)란 얻은 바 없음[無所得]을 깨
치는 것이니라."

"무엇부터 닦아야 합니까?"
"근본(根本)부터 닦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하는것이 근본부터 닦는 것입니까?"
"마음이 근본이니라."
"마음이 근본임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능가경]에 이르기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고,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淨土)를 얻고저 하면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 불국토가 깨끗해진다' 하였
고, [유교경]에 이르기를 '마음을 한곳으로 통일하여 제어하면 성취하지 못하는 일
이 없다' 고 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성인은 마음을 구하나 부처를 구하지 아니하
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면서 마음을 구하지 아니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
음을 다스리나 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은 다스리나 마음을 다
스리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불명경]에 이르기를 '죄는 마음에서 났다가 다시 마
음을 좇아서 없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악과 일체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으
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알지니, 그런 까닭에 마음이 근본이니라. 만약 해탈을 구
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모름지기 근본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노력을 허비하여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옳지 않느니라. [선문
경]에 이르기를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비록 몇 겁을 지난다 해도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요, 안으로 마음을 관조하여 깨치면 한 생각 사이에 보리를 증득한다'고
하였느니라."


3.선정(禪定)

"근본을 닦으려면 무슨 법으로써 닦아야 합니까?"
"오직 좌선하여 선정을 하면 얻을 수 있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성
스러운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할진댄 곧 선정(禪定)이 요긴한 것이니, 만
약 선정이 없으면 망상이 시끄럽게 일어나서 그 선근(禪根)을 무너뜨린다' 고 하였
느니라."

"어떤 것을 선(禪)이라 하며 어떤 것을 정(定)이라 합니까?"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선(禪)이요, 앉아서 본성(本性)을 보는 것이 정
(定)이니라. 본성이란 너의 무생심(無生心)이요, 정이란 경계를 대(對)함에 무심하
여 팔풍(八風)에 움직이지 아니함이니라. 팔풍이란, 이로움과 손실(利.衰), 헐뜯음
과 높이 기림(毁.譽), 칭찬함과 비웃음(稱.譏),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을 말하느
니라. 만약 이와 같이 정(定)을 얻은 사람은 비록 범부(凡夫)라고 하더라도 부처님
지위(佛位)에 들어 가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계경(菩薩戒經)]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계(佛戒)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 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얻은 것을 '해탈' 이라고 하
며 또 '피안에 이르렀다'고 하느니라. 이는 육도(六度)를 뛰어넘고 삼계(三界)를
벗어난 대력보살(大力菩薩)이며 무량력존(無量力尊)이니 대장부(大丈夫)인 것이니
라."


4.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야 곧 머무는 것 입니까?
"머무는 곳이 없는데 머무는 것이 곧 머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머무는 곳이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함이 곧 머무는 곳 없는데 머무는 것 이니라."
"어떤 것이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선악(善惡).유무(有無).내외(內外).중간(中間)에
머물지 아니하며,공(空)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공(空)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禪定)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함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함이니, 다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곧 머무는 곳이니라. 이와 같이
얻은 것을 머물음이 없는 마음(無住心) 이라 하는 것이니 머물음이 없는 마음이란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그 마음은 어떤 물건과 같습니까?"
"그 마음은 푸르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으며, 붉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아
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담연(湛然)하고 항상 고요한 이것이 본
래 마음의 형상이며 또 본래 몸이니 본래의 몸이란 곧 부처님의 몸이니라."


5.자성견(自性見)

"몸과 마음은 무엇으로써 보는 것입니까, 눈으로 봅니까, 귀로 봅니까,
몸과 마음 등으로 봅니까?"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이미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을진댄 다시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성(自性)으로 보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담연히 비
고 고요하므로, 비고 고요한 본체(體) 가운데서 이 보는 것[見]이 능히 나느니라."

"다만 청정의 본체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이 보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
입니까?"
"비유하면 밝은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일체 모양을 볼수 있는 것과 같으
니, 왜냐하면 밝은 거울이 무심이기 때문이니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마음에 물든
바 없어 망심이 나지 아니하고 주관과 객관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자연히 청
정한 것이니, 청정한 까닭에 능히 이 보는 것이 생겨나느니라. [법구경]에 이르기
를 '필경의 공 가운데서 불꽃 일듯 건립함이 선지식이다' 고 하였느니라.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열반경] 금강신품(金剛身品)에 이르기를 '볼 수 없되 분명하고 밝게 볼 수 있어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하니 무슨 뜻 입니까?"

" '볼수 없다'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모양이 없어서 얻을 수 없는 까닭에 볼 수
없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얻을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공적하고
담연하여 가고 옴이 없으나 세간의 흐름을 여의지 않으니 세간의 흐름이 능히 흐르
지도 아니하여 탄연히 자재[自在]함이 곧 '분명하고 밝게 보는 것' 이니라.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자성의 모양이 없어서 본래 분별(分別)이 없음을 이름하
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알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사묘용을 갖추어서 능히
일체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알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반야(般若)의 게송]에 이르기를 '반야(般若)는 아는 것이 없으나 알지 못하는 것
이 없으며, 반야는 보지 못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고 하였느니라."


7.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경에서 이르기를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해탈이다'고 하
시니 어떤 것이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않는 것 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였을 때를 곧 '있음'이라 하고, 그 가운데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음이 곧 '있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얻고서,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
각을 짓지 않는 것이 곧 '없음'을 보지 못함이니, 그런 까닭에 `있음과 없음'을 보
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니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견(知見)에 앎(知)을 세우면 무명(無明)의 근본이 되고 지
견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반이며 또한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8.무소견(無所見)

"어떤 것이 보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만약 남자나 여자 및 일체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사랑함과 미워함[愛憎]을 일
으키지 아니하여 보지 못함과 더불어 같은 것이 곧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는 곧 본다고 하거니와 색상을 대하지 않을 때도 또한 본다고
할 수 있읍니까?"
"보느니라."
"물건을 대할 때는 설령 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
게 해서 보는 것이 있읍니까?"
"지금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대하거나 물건을 대하지 않거나를 논(論)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고 하는 그 성품은 영원한 까닭에 물건이 있을 때도 보고 물
건이 없을 때도 또한 보는 것 이니라. 그런 까닭에 물건에는 본래 스스로 가고 옴
(去來)이 있으나 본다는 성품에는 가고 옴이 없음을 알지니, 다른 모든 감각 기관
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바로 물건을 볼 때에 보는 가운데 물건이 있읍니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서지 못 하느니라."
"바로 물건이 없음을 볼 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없읍니까?"
"보는 가운데는 물건 없는 것도 서지 못하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는 곧 들을 수 있거니와 소리가 없을 때에도 들을 수 있읍니까?"
"역시 듣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엔 설령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소리가 없을 때는 어떻게 듣습니
까?"
"지금 '듣는다'고 하는 것은 소리가 있거나 없거나를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
는다'는 자성은 영원한 까닭에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소리가 없을 때도 또한 듣
느니라."
"이렇게 듣는 자는 누구 입니까?"
"이는 자기의 성품이 듣는 것이며 또한 아는 이가 듣는다고 하느니라."


9.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 종지와 체용

"이 돈오문은 무엇으로써 종취(宗趣)를 삼고 무엇으로써 참 뜻(旨)을 삼고 무엇으
로써 본체로 삼으며 무엇으로써 작용(用)으로 삼는 것 입니까?"
"무념을 종취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참 뜻으로 삼으며 청정을 본체로 삼
고 지혜로써 작용을 삼느니라."
"이미 무념으로 종취를 삼는다고 말씀할진댄 무념이란 어떤 생각이 없는 것 입니
까?"
"무념이란 삿된 생각이 없음이요 바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삿된 생각이며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있음(有)을 생각하고 없음(無)을 생각하는 것이 삿된 생각이요 있음과 없음을 생
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괴로움[苦]과 즐거움[樂], 나는 것[生]과 없어
짐[滅], 취함[取]과 버림[捨], 원망(怨)과 친함(親), 미워함(憎)과 사랑함(愛)을
생각하는 것이 모두 삿된 생각이요, 괴로움과 즐거움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바른 생각이란 오직 보리(菩提)만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보리는 얻을 수 있습니까?"
"보리는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얻을 수 없을진댄 어떻게 오직 보리만 생각 합니까?"
"보리는 다만 거짓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라 실지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과거에도
미래에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까닭에 곧 생각 있음이 없느니라.
오직 이 무념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 것이니 보리는 생각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니, 다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무념이란 모두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운 것
인지라 모두가 하나의 본체로서 같음이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는 것이니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함을 알면 곧 이것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 때에 자연해탈이니
라."

"어떻게 하여야 부처님의 행을 하는 것입니까?"
"일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 행동이라 하며 또 바른 행동이라 하며 또 성
스러운 행동이라 함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있음과 없음 미워함과 사랑함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대율]5권 보살품에서 이르기를 '일체 성인들은 중생의 행동을 행하지 않고 중생들
은 이와같은 성인의 행동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까?"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곧 바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이라 합니까?"
"일체 색을 볼 때에 물들거나 집착함을 일으키지 아니함이니,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한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므로 곧 보는 바 없음
을 본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약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얻었을 때 곧 부처님의 눈이라 하나니 다시 별다른
눈이란 없느니라.
만약 일체 색을 볼 때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보는 바가 있다
고 하는 것이니 보는 바가 있음이 곧 중생의 눈이니라. 다시 별다른 눈을 가지고
중생의 눈이라 할 것이 없으니, 내지 다른 오근(五根)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2. 이성공(二性空)

"이미 지혜로써 작용을 삼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空)한 줄 아는 것이 곧 해탈이며 두가지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 알면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며 또 삿됨과 바름을 요달하였다고
하며 또 본체와 작용을 안다고 하느니라.
두 가지 성품이 공했다고 하는 것은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사랑함과 미워함이
나지 아니한 것을 이름하여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고 하느니라."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蘿蜜)로 부터

"이 돈오의 문은 어디로부터 들어갑니까?"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행(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단바
라밀 하나만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구족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미혹한 사람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로 말미암아 나는 것인줄 알지 못한 것
이니 오직 단바라밀만을 수행하면 곧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 것이니라."

"어떤 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고 합니까?"
"단(檀)이란 보시(布施)를 말하느니라."
"어떤 물건을 보시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가지 성품입니까?"
"선과 악의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성품, 사랑함과 미워함의
성품,공과 공 아님의 성품,정과 정 아님의 성품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의 성
품을 보시해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해 버리면 두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
느니라.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을 때에 또한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하며 또 보시한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함이 곧 진실로 보시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고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
함은 곧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법의 성품이 공하다 함은 곧 일체처에 무
심함이니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는 한 모양(一相)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느니라.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다 함은 곧 실상이니 실상이란 여래의 묘한 색신의 모양이니
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를 말하며 능히 구족할 수 있
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라건대 하나가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는 까닭을 말씀해 주십
시요."
[사익경]에 이르기를 '망명존이 범천에게 말하되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리면 단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보시요,
모든 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지계요,
모든 법에 대하여 손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인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모양을 떠남이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정진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선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니니 곧 지혜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 법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다시 여섯가지 법에 이름을 붙이면 첫째는 버림과 둘째는 일어나지 아니함과
세째는 손상하지 않음과 네째는 모양을 떠남과 다섯째는 머물지 않음과 여섯째는
희론이 없음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여섯가지 법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
짓 이름을 세움이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다만 하나를 버릴줄 알면 일체를 버림이요, 하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일체가 일
어나지 않거늘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모두 말 하느니라. 어리
석은 사람은 여섯가지 법의 숫자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라.
너희들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나니, 다만 보시의 법만을 닦으면 만법이 두루
원만해지거늘 하물며 다섯가지 법이 어찌 구족하지 않겠는가."


11.삼학(三學)을 함께 쓰다.

"삼학을 함께 쓴다 하니 어떤 것이 삼학이며 어떤 것이 함께 쓰는 것입니까?"
"삼학이란 계.정.혜니라."
"어떤 것을 계.정.혜라 합니까?"
"청정하여 물들지 아니함이 계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아 경계를 대하여
고요함이 정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 때에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함을 알 때에 청정하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여 내지
선.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물들지 아니하여 자재를 얻음을 혜라고
하느니라. 만약 계.정.혜의 본체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 때에 곧 분별함이
없어서 곧 동일의 본체이니 이것이 삼학을 함께 쓴다고 하는 것이니라."


12.무생심(無生心)

"만약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 때에는 청정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까?"
"청정함에 머뭄을 얻었을 때에 청정함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청
정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마음이 공에 머물 때에는 공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공하다는 생각을 짓는다면 곧 공에 집착한 것이니라."
"만약 마음이 머뭄이 없는 곳에 머물 때에 머뭄이 없는 곳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
까?"
"다만 공한 생각을 지으면 곧 집착할 곳이 없으니 네가 만약 머물 바 없는 마음을
분명하고 밝게 알고저 할진댄 바로 좌선할 때에 다만 마음만 알고, 모든 사물을 생
각하여 헤아리지 말며 모든 선악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생각하여 헤아리지 아니하면 과거의 마음이 스
스로 끊어지니 곧 과거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미래의 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
니 원하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면 미래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미래
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라 일체의 일에 집착함이 없음을 알
뿐이니, 집착함이 없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집착함
이 없음인지라 현재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곧 현재의 일이 없다고 하느니라.
삼세를 거두어 모을 수 없음이 또한 삼세가 없다고 말하느니라.

마음이 만약 일어날 때에 따라가지 아니하면 가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 없어짐이
요, 만약 마음이 머물 때에 또한 머뭄에 따르지 아니하면 머무는 마음이 스스로 끊
어져서 머무는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이 머무는 곳 없는 곳에 머문다고 하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머뭄이 머뭄에 있을 때에는 다만 사물이 머물 뿐이요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면 머무는 곳 없음도 없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마음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면 곧 본래 마음[本心]
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성품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느니라.

만약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이란 곧 부처님 마음[佛心]이며, 또한 해탈심
이며, 또한 보리심이며, 또한 무생심이며, 또한 색의 성품이 공함이라 이름하나니,
경에 이르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했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너희들이 만약 이와 같이 아직 체득하지 못하였을 때는 노력하고 노력하여 부지런
히 공력을 더하여 공부를 성취하면 스스로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안다고 하는 것
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아는 것 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되어 참되지 않음이 없으니, 거짓됨이란 사랑하고 미
워하는 마음인 것이며 참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다만 사
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
이란 자연해탈이니라."


13.상주(常住)

"앉아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다닐 때도 또한 쓸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공(功)을 쓴다고 말함은 단지 앉아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거나 머
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짓는 바 움직이는 모든 때 가운데 항상 써서 사이가 끊
어짐이 없음이 항상 머문다고 하느니라."


14.오종법신(五種法身)

[방광경(方廣經)]에 이르기를 '다섯가지 법신은 첫째는 실상 법신이요, 둘째는 공
덕법신이요, 셋째는 법성법신이요, 네째는 응화법신이요, 다섯째는 허공법신이다'
고 하였는데, 자기의 몸에는 어떤 것이 이것입니까?

"마음이 무너지지 아니함을 아는 것이 실상 법신이며, 마음이 만상을 포함하는 것
을 아는 것이 공덕법신이며, 마음이 무심임을 아는 것이 법성법신이며, 근기따라
응하여 설법함이 응화법신이며, 마음이 형상이 없어 얻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 허
공법신이니, 만약 이 뜻을 확실히 아는 이는 곧 증득할 것이 없음을 아느니라.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음이 곧 불법법신을 증득한 것이요, 만약 증득함이 있고
얻음이 있음을 증득으로 삼는 이는 곧 삿된견해의 증상만인이며 외도라고 하느니
라. 왜 그러냐 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되 그대는 얻은 바
가 무엇이며 증한 바가 무엇이기에 말재주가 이와 같으냐' 하고 물으니, 천녀가 대
답하기를 '나는 얻음도 없고 증함도 없어서 이와 같음을 얻었오. 만약 얻음이 있고
증함이 있으면 불법 가운데에 증상만인이 되는 것이오' 라고 하였느니라.


15.등각(等覺)과 묘각(妙覺)

"경에 이르기를 '등각,묘각'이라하니, 무엇이 등각이며 무엇이 묘각입니까?
"색(色)에 즉하고 공(空)에 즉함이 등각이요, 두 가지 성품이 공한(二性空) 까닭에
묘각이라 하며,또한 깨달음이 없음과 깨달음이 없음도 없음을 일컬어 묘각이라 하
느니라."
"등각과 묘각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두 이름을 세운 것으로서, 본체는 하나요,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내지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니라."


16.설법(說法)

"[금강경]에 이르기를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다'하니 그 뜻이 무엇 입니
까?
"반야의 체는 필경 청정하여 한 물건도 얻을 수 없음이 설할 법이 없다고 함이요,
반야의 공적한 본체 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을 갖추어서 알지 못할 일이 없음이 법을
설한다고 함이니, 그러므로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라고 하느니라."


17.금강경의 경천(輕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경을 수지독송하여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전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의 경멸
과 천대를 받음으로 해서 전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여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 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선지식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오직 악업만 짓고 청정한
본래 마음이 삼독의 무명에 덮여서 능히 나타나지 못하므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
대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금세의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 것은, 곧 오
늘 발심하여 불도를 구함으로 무명이 다 없어지고 삼독이 나지를 아니해서 곧 본래
마음이 명랑하고 다시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며, 모든 악이 영원이 없어져 버리므로
써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무명이 모두 없어져서 어지러운
생각이 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한 것이므로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
니, 곧 발심한 때를 금세라 하는 것이요, 격생이 아니니라."


18. 여래(如來)의 오안(五眼)

"또 여래의 다섯가지 눈이란 어떤 것입니까?"
"색의 청정함을 보는 것이 육안이요, 색의 본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이 천안이요,
모든 색의 경계와 내지 선악에 대해서 모두 미세하게 분별하여 물듦이 없고 그 가
운데 자제함이 혜안이요, 보아도 보는 바가 없음이 법안이요, 보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음도 없는 것이 불안이라고 하느니라."


19. 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또 대승과 최상승의 뜻은 어떠합니까?"
"대승이란 보살승이요, 최상승이란 불승이니라."
"어떻게 닦아야 이 승을 얻습니까?"
"보살승을 닦음이 대승이니 보살승을 증득하여 다시 관(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닦을 곳이 없음에 이르러 담연히 항상 고요하여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이
최상승이니 곧 이것이 불승이니라."


20. 정혜(定慧)를 함께 씀

"[열반경]에 이르기를 '선정은 많고 지혜가 적으면 무명을 떠나지 못하며 선정은
적고 지혜가 많으면 삿된 견해를 증장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하는 까닭에 해탈이
다'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일체 선악에 대하여 모든 것을 분별함이 지혜요, 분별하는 곳에 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물드는 바에 따라가지 아니함이 선정이니,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21. 경상(鏡像)과 정혜(定慧)

"말이 없고 설함이 없음이 곧 선정이라 하니, 바로 말하고 설할 때도 선정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말함과 말하지 않음을 논하지 않고 항상 선정인 것이
니라. 왜냐하면 선정의 본성을 쓰기 때문에 말하거나 분별할 때에 곧 말하거나 분
별함도 선정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공(空)한 마음으로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을 볼
때도 또한 공이며, 만약 색을 보지 아니하고 말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을 때도 또한
공이며, 내지 보고 듣고 깨닫고 알 때에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곧 일체처에 있어서 모두 공한 것이니, 공이란 곧 집착이 없음이며
집착이 없음이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와 같이 공
그대로[等空]의 법을 써서 구경에 이르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가 함께 함을 곧 해탈
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다시 그대들을 위하여 비유로써 나타내 보여 그대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알아
서 의심을 끊게 하리라.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모습을 비출 때에 그 밝음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할 때도 또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밝은 거울의 작용에는 밝게 비친다는 정(情)이 없으므로 비출 때도 움직
이지 않고 비추지 아니할 때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분별
의 정(情)이 없는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것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없기 때문이
니라. 또,

'햇빛이 세상을 비출 때 그 빛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비추지 않을 때도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분별의 정(情)이 없기 때문이니 정이 없음으로써 빛이 비추므로 움
직이지 아니하며 비추지 않을 때도 또한 움직이지 아니 하느니라. 비춘다 함은 지
혜요, 움직이지 아니한다 함은 선정이니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한 법을 써서
삼먁삼보리를 얻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를 함께 씀이 곧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정(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범부의 정이 없음이요, 성인의 정이 없는 것이 아니
니라"
"어떤 것이 범부의 정이며 어떤 것이 성인의 정입니까?"
"만약 두 가지 성품을 일으키면 곧 범부의 정이요, 두가지 성품이 공(空)하기 때문
에 곧 성인의 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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