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3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제 26~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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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6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 ②

“선남자여, 또 눈으로 보는[眼見] 일이 있으니, 부처님 여래와 10주 보살은 불성을 눈으로 보느니라. 또 들어서 보는[聞見] 일이 있으니 모든 중생과 9지 보살들은 불성을 들어서 보느니라. 보살이 만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 함을 듣고, 마음에 믿음을 내지 아니하면, 들어서 본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를 보고자 하거든 마땅히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할지니라.”
사자후보살마하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오니, 어떻게 관찰하여야 알게 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진실로 여래의 마음을 알지 못하거니와, 만일 관찰하여 알고자 하면 두 가지 인연이 있으니, 하나는 눈으로 보는 것이요 둘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의 몸으로 하는 업을 본다면, 이것이 곧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을 눈으로 본다 하느니라. 만일 여래의 입으로 하는 업을 본다면, 이것이 곧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을 들어서 본다 하느니라. 만일 얼굴빛이 모든 중생으로는 같을 수 없는 줄을 본다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음성이 미묘하고 훌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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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의 음성과 같지 않음을 들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의 짓는 신통이 중생을 위함인가 이양을 위함인가 하여, 중생을 위함이요 이양을 위함이 아닌 줄을 보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만일 여래가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智]로 중생을 관찰할 때에, 이양을 위하여 말함인가 중생을 위하여 말함인가 하여, 중생을 위함이요 이양을 위함이 아닌 줄을 보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여래가 어떻게 이 몸을 받았으며 무슨 까닭으로 몸을 받았으며 누구를 위하여 몸을 받았는가 하면,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요, 만일 여래가 어떻게 법을 말하며 무슨 까닭으로 법을 말하며 누구를 위하여 법을 말하는가 관찰하면,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몸으로 짓는 나쁜 업으로 나에게 더하여도 성내지 않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니라. 입으로 짓는 나쁜 업으로 내게 더하여도 성내지 않으면, 이것이 여래인 줄을 알지니 이것은 들어서 보는 것이니라.
만일 보살이 처음 태어날 적에 시방으로 일곱 걸음씩 다녔고, 마니발타(摩尼跋陀)·부나발타(富那跋陀) 신장들이 깃발과 일산을 들고 한량없는 세계를 진동하매 금빛이 찬란하게 허공에 가득하였으며, 난타(難陀)용왕과 발난타(跋難陀)용왕이 신통의 힘으로 보살의 몸을 목욕시켰고, 모든 하늘의 형상들이 영접하여 예배하였으며, 아사타(阿私陀) 선인이 합장하여 공경하였고, 청년시절에는 욕락을 버리기를 침뱉듯 하여 세상 향락에 미혹하지 아니하였으며, 출가하여 수도하면서 고요한 데를 좋아하였고, 삿된 소견을 깨뜨리기 위하여 6년 동안 고행하였으며, 여러 중생에게 평등하여 둘이 없었고, 마음은 항상 선정에 있어 애초부터 산란치 아니하였으며, 얼굴과 몸매가 단정하고 그 몸을 장엄하였고, 다니는 곳마다 언덕이나 구렁이 평탄하였으며, 옷은 몸에서 네 치쯤 떨어져 있어도 흘러내리지 아니하고, 다닐 적에는 앞만 보고 좌우로 살피지 아니하며, 음식은 항상 갖춰져 있어 거르는 일이 없고, 앉고 일어나는 곳에는 풀이 요동하거나 어지럽지 아니하며, 중생을 조복하기 위하여 일부러 가서 법을 말하되 마음에 교만이 없는 것을 보면,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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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보살이 일곱 걸음을 다니면서 말하기를, 이번에 나의 몸은 마지막 몸이라 하였고, 아사타 선인도 합장하고 말하기를 ‘대왕은 아십시오. 실달 태자는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요, 집에 있으면서 전륜왕이 되지 아니하리니, 왜냐 하면 32상과 80종호(種好)가 분명한 까닭입니다. 전륜왕은 상호가 분명치 못하지만 태자의 상호는 매우 분명하시니,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입니다’ 하였으며, 늙고 병들고 죽은 것을 보고는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은 참으로 가련하다. 이렇게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므로 함께 따라다니면서도 보지 못하고 항상 괴로움만 행하니 내가 마땅히 끊으리라’ 하였고, 아라라(阿羅邏) 5통 선인에게서 무상정(無想定)을 받아 성취하고는 옳지 못함을 말하고, 울다(鬱陀) 선인에게서는 생각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정[非有想非無想定]을 받아 성취하고는 열반이 아니고 생사하는 법이라 말하였으며, 6년 동안 고행하고서도 얻은 바가 없어 말하기를 ‘고행을 하는 일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만일 실지가 있다면 내가 마땅히 얻었을 터인데, 허망한 연고로 얻은 바가 없으니 그것은 삿된 술법이요, 바른 도가 아니라’ 하였으며, 성도한 뒤에 범천이 권청하기를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중생을 위하여 감로의 문을 열어 위없는 법을 말씀하소서’ 하니, 여래가 말하기를 ‘범왕이여, 모든 중생들이 번뇌에 가리워져서 내가 말하는 바른 법을 듣지 못하리라’ 하였는데, 범천은 다시 여쭙기를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은 세 가지가 있으니, 영리한 근성과 중품 근성과 둔한 근성입니다. 영리한 근성은 받을 수 있사오니 말씀하시옵소서’ 하였다.
여래는 말하기를 ‘범왕이여, 자세히 들으라. 내가 지금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감로문을 열리라’ 하고, 바라나국에 나아가 바른 법륜을 운전하여 중도를 말하였느니라. 모든 중생이 여러 가지 결박을 깨뜨리지 아니하였으나, 깨뜨리지 못한 것이 아니니, 깨뜨린 것도 아니요 깨뜨리지 못한 것도 아니므로 중도라 하느니라. 중생을 제도하지 아니하였으나 제도하지 못한 것이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온갖 것을 이룬 것도 아니요 이루지 못한 것도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라. 무릇 말한 것이 있으나 스스로 스승이라 말하지도 않고 제자라 말하지도 아니하므로 중도라 이름하느니라. 말하는 것이 이양을 위함이 아니나 과를 얻지 못함도 아니니, 이것을 중도라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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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바른 말이요 진실한 말이요 때에 맞는 말이요 참된 말이며, 말을 헛되이 내지 아니하여 미묘하기가 제일이니, 이런 법을 들어서 본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마음은 실로 볼 수 없거니와,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여래를 보고자 할진댄 마땅히 이 두 가지 인연을 의지할 것이니라.”
이 때에 사자후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앞서 말씀하신 암라 열매는 네 가지 사람에 비유한 것이오니, 어떤 사람은 행은 세밀하나 마음이 정당[正實]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은 세밀하나 행이 정당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도 세밀하고 행도 정당하며, 어떤 사람은 마음이 세밀하지도 못하고 행이 정당하지도 못하나이다. 이 처음의 두 가지를 어떻게 아오리까?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이 두 인연에 의지하여도 알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암라의 열매를 두 가지 사람에게 비유한 것은 진실로 알기 어려우니라. 알기 어려우므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함께 있어야 한다’고 하였느니라. 함께 있어도 모르겠거든 오래 있어야 하며, 오래 있어도 모르겠거든 지혜를 써야 하며, 지혜로도 모르겠거든 깊이 관찰하여야 하나니, 관찰하는 까닭으로 계행을 가짐과 파함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함께 있고 오래 있고 지혜를 쓰고 깊이 관찰하는 네 가지를 구족한 후에야, 계행을 가지고 계행을 파함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계행에 두 가지가 있고 가지는 것도 두 가지니, 하나는 끝까지의 계행이요 다른 하나는 끝까지 아닌 계행이니라. 어떤 사람이 인연이 있어서 계율을 받아 가지거든 지혜 있는 사람이면 이 사람이 가지는 계행이 이양을 위함인지 끝까지 가짐인지를 관찰할지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계율은 인연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끝까지의 계율[究竟戒]이라 이름하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은 비록 나쁜 중생들의 상해함을 받더라도 성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필경까지 가지는 계행과 끝까지 가지는 계행을 성취하였다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내가 예전에 한 번은 사리불과 5백 제자들과 함께 마가다국의 첨파(瞻婆)성에 있었다. 그 때에 사냥꾼이 비둘기 한 마리를 따라오는데, 그 비둘기가 무서워서 사리불의 그림자 속에 들어와서도 파초나무처럼 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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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나, 나의 그림자 속에 와서는 몸과 마음이 편안하여 무서운 마음이 없어졌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끝까지 가지는 계행이어서 그림자까지도 이런 힘이 있느니라. 선남자여, 끝까지 아닌 계행으로는 성문이나 연각도 얻지 못하거든, 하물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는가.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이양을 위함이요 하나는 정법(正法)을 위함이니라. 이양을 위하여서 계율을 받아 가지는 것은 그 계행으로는 불성이나 여래를 보지 못할 줄을 알지니, 비록 불성과 여래의 이름을 듣는다 하더라도 들어서 본다고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만일 정법을 위하여 계율을 받아 가지면, 이 계는 불성과 여래를 볼 수 있는 줄을 알지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며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뿌리가 깊어 뽑기 어려운 것이요, 하나는 뿌리가 얕아서 흔들리기 쉬운 것이니라. 만일 공하고 모양 없고[無相] 원이 없음[無願]을 닦아 익히면, 이를 뿌리가 깊어 뽑기 어렵다 하고, 이 3삼매를 닦지 아니하면, 비록 25유(有)를 닦더라도 이는 뿌리가 얕아 흔들리기 쉽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제 몸을 위함이요 둘은 중생을 위함이니라. 중생을 위하는 이는 불성과 여래를 보느니라. 계행을 가지는 사람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제 성품으로 가지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함이라. 만일 계를 받은 뒤에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도 잃어버리지 않거나, 나쁜 나라에 나거나 나쁜 친구와 나쁜 때와 나쁜 세상을 만나거나 나쁜 법을 듣거나 나쁜 소견 가진 이와 함께 있을 적에, 계를 받는 법이 없더라도 본래와 같이 계율을 가지고 범하지 아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 성품으로 가진다 하느니라. 만일 계사(戒師)를 만나서 네 번 아뢰어 갈마[白四羯磨]한 뒤에 계를 얻는 것은, 비록 계를 얻은 뒤에라도 모름지기 화상이나 승가나 함께 공부하는 동무들의 가르침을 의지하여야 행동할 줄을 알며, 법을 듣고 법을 말하는 데 모든 위의를 갖추나니, 이것은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제 성품으로 가지는 이는 불성과 여래를 눈으로 보는 것이며 또 들어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계율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문의 계요 둘은 보살의 계니라.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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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마음을 낼 적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때까지를 보살의 계라 하고, 백골을 관하거나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까지를 성문의 계라 하나니, 성문의 계를 받아 지니면, 이 사람은 불성과 여래를 보지 못하는 줄을 알아야 하고, 보살의 계를 받아 지니면 이 사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불성과 여래와 열반을 볼 것임을 알지니라.”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금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마음으로 뉘우치지 아니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뉘우치지 아니하는가. 낙을 받으려 함이니라. 어찌하여 낙을 받는가. 멀리 여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멀리 여의는가. 편안하기 위함이니라. 어찌하여 편안한가. 선정을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선정에 드는가. 진실하게 알고 보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진실하게 알고 보는가. 생사의 모든 근심을 보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생사의 근심을 보려 하는가. 마음이 탐착하지 않으려 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마음이 탐착하지 않는가. 해탈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해탈을 얻으려 하는가. 위없는 대반열반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대반열반을 얻으려 하는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을 얻으려 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으려 하는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법을 얻기 위함이니라. 무슨 연고로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을 얻으려 하는가. 불성을 보기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보살은 제 성품으로 끝까지 깨끗한 계율을 가지느니라.
선남자여, 계율을 지니는 비구는, 비록 원을 세우고 후회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구하지 않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마음을 저절로 얻나니,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 그러한 까닭이니라. 비록 낙과 멀리 여읨과 편안함과 진실하게 알고 보는 것과 생사의 근심을 보는 것과 마음이 탐착하지 않음과 해탈과 열반과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음과 불성을 보려 함을 구하지 아니하여도 저절로 얻나니, 왜냐 하면 법의 성품이 그러한 까닭이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세존께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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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계행을 가짐으로 인하여 후회하지 않는 과를 얻고, 해탈로 인하여 열반의 과를 얻는다면 계행은 인이 없고 열반은 과가 없겠나이다. 계행이 만일 인이 없다면 항상하다 이름할 것이요, 열반이 인이 있으면 이는 무상함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열반은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은 있는 것이니 본래 없던 것이 지금은 있다면 이는 무상한 것입니다. 마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을 것이며, 열반이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고 즐겁고 깨끗하다 하오리까?”
“선남자여, 참으로 훌륭하다. 그대는 일찍이 한량없는 부처님께 선근을 심었으므로 여래에게 이러한 깊은 이치를 묻는구나. 선남자여, 본래의 생각을 잃지 않고 이렇게 물음이로다.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겁 전에, 바라나성에 부처님이 나셨으니 이름이 선득(善得)이었다. 그 때에 그 부처님이 3억 년 동안에 이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시었고, 나는 그대와 더불어 저 부처님 회상에 있으면서 내가 이런 일을 그 부처님께 물었느니라. 그 때에 여래께서 중생을 위하여서 삼매에 드시고 이 뜻을 대답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대사가 능히 이러한 지난 생의 일을 기억하나니, 자세히 들으라. 그대에게 말하리라. 계행에도 인이 있으니 바른 법을 들은 것이다. 바른 법을 듣는 것도 인이 있으니 선지식을 가까이 함이다. 선지식을 가까이 함에도 인이 있으니 믿는 마음이 있음이다. 믿는 마음이 있음도 인이 있는데,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법을 들음[聽法]이요 둘은 뜻을 생각함[思性義]이니라.
선남자여, 믿는 마음은 법문 들음을 인하고 법문 들음은 믿는 마음을 인함이니, 이 두 법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니건외도(尼乾外道)들이 틀[拒]을 세워 병(甁)을 드는 것이 인과가 되어 서로 여의지 못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무명의 연(緣)으로 행이 있고 행의 연으로 무명이 있음과 같아서, 무명과 행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내지 생(生)은 능히 법을 내지만 스스로 나지는 못하나니, 스스로 나지 못하므로 생생(生生)을 말미암아 나는 것이며, 생생도 스스로 나지 못하고 생을 의지하여 나느니라. 그러므로 두 생은 인도 되고 인의 인도 되며, 과도 되고 과의 과도 되느니라. 선남자여, 믿는 마음과 법문을 들음도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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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과이고 인이 아닌 것은 대반열반이니, 무슨 까닭으로 과라 하는가. 으뜸가는 과[上果]인 까닭이며, 사문의 과며 바라문의 과며 생사를 끊었으며 번뇌를 깨뜨렸으므로 과라 하며, 모든 번뇌의 꾸짖음이 되므로 열반을 과라 이름하고, 번뇌를 허물의 허물[過過]이라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열반은 인이 없으나 그 자체는 과이니, 왜냐 하면 났다 없어졌다 함이 없는 연고며, 지음이 없는 연고며 함이 있음이 아닌 연고며 함이 없는 법인 연고며 항상 변하지 않는 연고며 처소가 없는 연고며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만일 열반이 인이 있다면 열반이라 하지 못하리라. 반(槃)은 인(因)이란 말이요 반열(般涅)은 없다[無]는 말이니, 인이 없으므로 열반이라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 말씀과 같이 열반이 인이 없다 하시나,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만일 없다고 한다면 여섯 가지 뜻에 맞아야 하리이다. 첫째는 끝까지 없으므로 없다고 이름하나니, 온갖 법이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음과 같음이요, 둘째는 어떤 때에 없으므로 없다고 하나니,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못이나 내에 물이 없다거나, 해와 달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음이요, 셋째는 적으므로 없다고 하나니, 세상 사람들이 음식에 간이 적은 것을 간이 안 됐다 하고, 설탕물에 설탕이 적은 것을 달지 않다고 하는 것과 같음이요, 넷째는 받지 아니하였으므로 없다고 함이니, 전다라가 바라문 법을 받아 가지지 못하였으므로 바라문이 없다는 것과 같음이요, 다섯째는 나쁜 법을 받았으므로 없다고 함이니, 세상 사람들이 나쁜 법을 받은 자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고 함과 같음이요, 여섯째는 상대가 되지 아니하므로 없다고 하나니, 마치 희지 아니한 것을 검다고, 밝음이 없는 것을 무명이라 함과 같나이다. 세존이시여, 열반도 그와 같아서 어떤 때에 인이 없으므로 열반이라 이름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지금 말하는 여섯 가지 뜻은, 어찌하여 끝까지 없는 것을 가져다가 열반에 비유하지 아니하고, 어떤 때에 없는 것을 취하였는가? 선남자여, 열반의 자체는 끝까지 인이 없음이, 마치 내가 없고 내 것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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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세상 법과 열반과는 마침내 상대가 되지 아니하므로, 여섯 가지 일은 비유가 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은 모두 내가 없지만, 이 열반은 진실로 내가 있나니, 그런 뜻으로 열반은 인이 없지만 그 자체는 과라는 것이니라. 인이요 과가 아닌 것을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인으로 생긴 것이 아니므로 인이요 과가 아니라 하며, 사문의 과가 아니므로 과가 아니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으로 인이라 하는가. 아는 인[了因]인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는 인[生因]이요 하나는 아는 인이다. 능히 법을 내는 것을 내는 인이라 이름하고, 등불이 물건을 비치듯 함을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번뇌의 결박은 내는 인이라 하고, 중생·부모는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곡식의 씨는 내는 인이라 하고, 땅과 물과 거름은 아는 인이라 하느니라. 또 내는 인이 있으니, 6바라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함이요, 또 아는 인이 있으니, 불성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말함이니라. 또 아는 인이 있으니, 6바라밀 불성이요, 또 내는 인이 있으니 수릉엄삼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또 아는 인이 있으니 8정도(正道)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또 내는 인이 있으니 믿는 마음의 6바라밀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 여래와 불성을 본다는 것은 뜻이 어떠하오니까?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은 형상이 없사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있는 곳이 없어 삼계에 있지 아니하며, 함이 있는 모양이 아니며 안식(眼識)으로 볼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보겠나이까? 불성도 그러하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부처의 몸이 두 가지니, 하나는 항상하고 둘은 무상하니라. 무상한 것은 모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나타내는 것이니, 이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요, 항상한 것은 여래 세존의 해탈한 몸이니, 눈으로 본다고도 하고 들어서 본다고도 하느니라. 불성도 두 가지니, 하나는 볼 수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볼 수 있는 것은 10주 보살과 부처님 세존이요, 볼 수 없는 것은 모든 중생이니라. 눈으로 본다 함은 10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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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나 부처님 여래가 중생에게 있는 불성을 눈으로 보는 것이요, 들어서 본다는 것은 온갖 중생이나 9주 보살이 불성이 있음을 듣는 것이니라. 여래의 몸이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빛[色]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非色]. 빛이라 함은 여래의 해탈이요, 빛이 아니라 함은 여래가 모든 빛 모양을 영원히 끊은 까닭이니라. 불성도 두 가지니, 하나는 빛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 빛이라 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요, 빛이 아니라 함은 범부나 내지 10주 보살이니, 10주 보살이 보기를 분명히 하지 못하므로 빛이 아니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불성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빛이요 둘은 빛이 아니니라. 빛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을 말함이요, 빛이 아니라 함은 모든 중생이니라. 빛인 것은 눈으로 본다 하고, 빛이 아닌 것은 들어서 본다 이름하니라.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비록 안도 바깥도 아니나 잃어지거나 부서지는 것도 아니므로,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는 것은, 젖 속에 타락이 있는 것이나 금강역사와 같고, 부처님들의 불성은 청정한 제호와 같다고 하셨는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나도 젖 속에 타락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타락이 젖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타락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모든 생기는 법은 제각기 시절이 있나이다.”
“선남자여, 젖 상태일 때에는 타락이 없고 생소(生酥)와 숙소(熟酥)와, 제호도 없느니라. 모든 중생도 젖이라 할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젖 속에 타락이 없다 한 것이니라. 만일에 있다면 어찌하여 두 가지 이름을 얻지 못하여, 두 가지 기능이 있는 사람을 은장이·대장장이라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타락 상태일 때에는 젖과 생소와 숙소와 제호가 없나니, 중생도 타락이라 하면, 젖도 아니고 생소나 숙소나 제호도 아니며, 내지 제호일 때에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정인(正因)과 연인(緣因)이다. 정인이라 함은 젖에서 타락이 생기는 것과 같고, 연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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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은 효모[酵]나 따뜻함 등이니 젖에서 생기므로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젖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각(角) 가운데도 없을 터인데, 어찌하여 각 가운데서는 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각에서도 타락이 나느니라. 왜냐 하면 내가 말하기를 연인에 두 가지가 있다 하였으니, 하나는 효모요 다른 하나는 따뜻함이다. 각의 성품이 따뜻하므로 역시 타락을 내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각이 타락을 낸다면 타락을 구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젖만 구하고 각은 찾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그러기에 내가 말하기를 정인과 연인이 있다 하였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여쭈었다.
“만일 젖 속에 본래는 타락이 없었는데 지금 비로소 생긴다면, 젖 속에 본래 암마라나무가 없었으니, 어찌하여 암마라나무는 나지 않나이까? 두 가지가 모두 없었던 까닭이옵니다.”
“선남자여, 젖에서도 암마라나무가 나나니, 만일 젖을 부어 주면 하룻밤 동안에 다섯 자쯤 자라느니라. 그런 뜻으로 내가 두 가지 인을 말하였나니,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한 가지 인으로만 난다면, 젖 속에서 어찌하여 암마라나무는 나지 않느냐고 따질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4대가 온갖 색법(色法)의 인연이 되거니와, 빛이 제각기 달라서 같지 않나니 그런 이치로 젖 속에서 암마라나무가 나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정인과 연인의 두 가지 인이 있다 하오면, 중생의 불성은 무슨 인이라 하오리까?”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도 두 가지 인이니, 하나는 정인이요 하나는 연인이니라. 정인은 모든 중생을 말함이요 연인은 6바라밀을 말함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음을 아나이다. 왜냐 하면 세상에서 타락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젖만 찾고 물은 찾지 않는 것을 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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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선남자여, 그대가 물은 것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마치 사람들이 얼굴을 보려고 칼을 드는 것과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그런 뜻으로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나이다. 칼에 만일 얼굴 모양이 없으면 무슨 까닭으로 칼을 들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칼 가운데 얼굴 모양이 있다면, 어찌하여 뒤바뀌겠느냐? 칼을 세우면 얼굴이 길게 보고 뉘면 얼굴이 넓게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만일 자기의 얼굴이라면 어째서 길게 보이며, 만일 다른 이의 얼굴이라면 어찌하여 자기의 얼굴 그림자라 하느냐? 만일 자기의 얼굴로 인하여 다른 이의 얼굴을 본다면, 어찌하여 나귀나 말의 얼굴은 보이지 않느냐?”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얼굴이 길게 보이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눈의 광명이 실제로 저기 이르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먼 데와 가까운 데를 일시에 다 보는 까닭이며 중간에 있는 물건을 보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본다면 모든 중생이 모두 불을 볼 적에 어찌하여 타지 않느냐? 사람이 멀리 있는 흰 물건을 볼 적에 따오기인지 깃발인지 사람인지 나무인지 의심하지 아니하리라. 광명이 이르러 간다면 어떻게 수정 속에 있는 물건이나, 물 속에 있는 고기와 돌을 보게 되느냐? 만일 이르지 않고서 본다면 어찌하여 수정 속의 물건을 보면서, 담 바깥 물건은 보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눈의 광명이 저기 이르므로 길게 본다는 말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젖에 타락이 있다면, 젖을 파는 사람이 어째서 젖 값만 받고 타락 값은 받지 않으며, 피마[騲馬]를 파는 사람이 말 값만 받고 망아지 값은 달라 하지 않느냐.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아들이 없는 까닭으로 아내를 맞았는데, 아내가 만일 아기를 배면 처녀라 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이 여자에게 아기를 낳을 성품[兒性]이 있었기에 맞았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아기를 낳을 성품이 있다면 손자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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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낳는다면, 이는 곧 형제이니, 왜냐 하면 한배에서 나온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여자에게 아기의 성품이 없다 하느니라. 만일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어찌하여 한꺼번에 다섯 가지 맛이 보이지 아니하는가. 만일 나무의 씨 속에 니구타의 다섯 길 되는 성질이 있다면 어찌하여 한꺼번에 움과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과실의 다른 모양을 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잎과 꽃과 과실의 다른 모양을 보지 못하는가. 선남자여, 젖빛이 때를 따라 다르고, 맛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며, 내지 제호도 그러하거늘, 어찌하여 젖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 하겠느냐.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내일 생소를 먹을 터인데, 오늘 벌써 냄새를 걱정하는 것과 같나니, 젖 속에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붓과 종이와 먹으로써 글자를 이루거니와, 이 종이에는 본래 글자가 없었느니라. 본래는 없었으므로 연을 반연하여 글자를 이루는 것이니 만일 본래부터 있었다면 어찌하여 여러 가지 연을 반연하겠느냐. 마치 푸르고 누른 것이 화합하여 초록빛을 이루는 것 같아서 이 두 가지 빛에는 본래 초록빛 성품이 없는 것이니, 만일 본래 있었다면 어찌하여 화합하여서야 이루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중생들이 먹음을 인하여 목숨을 얻거니와 음식 속에는 실로 목숨이 없나니, 만일 본래 있었다면 먹기 전에는 음식이 목숨일 것이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들이 본래 성품이 없는 것이니, 그런 뜻으로 내가 이런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본래는 없으나 지금은 있으며
본래는 있으나 지금은 없으니
이 세상 앞세상 지나간 세상에
있다는 모든 법 옳은 곳 없나니.

선남자여, 온갖 법이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없어지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들 속에 불성이 있다면, 모든 중생은 지금의 나와 같이 부처의 몸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니라. 중생의 불성은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끄달리지 않고 붙잡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고 속박되지 아니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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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 가운데 허공이 있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에게 다 허공이 있건만, 장애되지 아니하므로 제각기 허공 있음을 보지 못하거니와, 만일 중생에게 허공이 없다면, 가고 오고 다니고 서고 앉고 누움이 없을 것이며, 나지도 못하고 자라지도 못할 것이니라. 이런 뜻으로 나의 경 가운데 말하기를, 모든 중생에게 허공계가 있다 하였으니 허공계를 이름하여 허공이라 한다. 중생의 불성도 이와 같아 10주 보살이라야 그것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으니, 마치 금강주(金剛珠)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은 부처님의 경계요, 성문·연각으로는 알 바가 아니니라. 모든 중생들은 불성을 보지 못하는 까닭에 항상 번뇌에 얽매여서 생사에 헤매는 것이며, 불성을 보는 연고로 모든 번뇌가 속박하지 못하여 생사에서 해탈하여 대열반을 얻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에게 불성의 성질이 있는 것이, 마치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는 것과 같나이다. 만일 젖에 타락의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인이요 하나는 연인인데, 연인이라 함은 효모와 따뜻함이니, 허공은 성품이 없으므로 연인이 없다’ 하셨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어찌하여 연인(緣因)을 필요로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성품이 있는 연고로 연인을 구하나니, 왜냐 하면 분명하게 보려 함입니다. 연인은 곧 아는 인이오니, 세존이시여, 마치 어둠 속에 먼저 물건이 있었기에 물건을 보려고 등불로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본래 없었으면 무엇을 등불로 비치오리까. 마치 진흙 속에 병이 있으므로, 사람과 물과 물레와 노끈과 작대기 따위로 아는 인을 삼는 것이며, 니구타의 씨가 땅과 물과 거름을 추구하여, 아는 인을 짓는 것과 같나니, 젖 속에 있는 효모와 따뜻함도 이와 같아서, 아는 인을 짓나이다. 그러므로 비록 먼저부터 성품이 있어도 아는 인을 빌려서야 보게 되나니, 젖 속에 먼저 타락의 성품이 있는 줄을 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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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이것이 곧 아는 인일 것이요, 만일 아는 인이라면 어찌하여 다시 알려 하겠는가. 선남자여, 만일 이 아는 인의 성품이 아는 것이라면, 항상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요, 만일 스스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것을 알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아는 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스스로 아는 것이요, 하나는 다른 것을 아는 것이라 하면 그 뜻이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아는 인은 한 법인데 어떻게 둘이 있겠는가. 만일 둘이 있다면 젖도 마땅히 둘일 것이며, 만일 젖 속에 두 가지 모양이 없다면, 어찌하여 아는 인에만 둘이 있다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까지 모두 여덟 사람이다’ 하는 것과 같이, 아는 인도 그와 같아서 스스로도 알고 다른 이도 아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아는 인이 만일 그렇다면 아는 인이 아니니, 왜냐 하면 세는 이는 제 몸[自色]과 다른 몸을 셀 수 있으므로, 여덟 사람이라 말하거니와, 이 몸의 성품은 스스로 아는 상[了相]이 없으며, 아는 상이 없으므로 지혜의 성품을 의지하여야 저와 다른 것을 셀 수 있나니, 그러므로 아는 인은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다른 것도 알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불성 있는 이가 무슨 까닭으로 한량없는 공덕을 닦는가. 만일 닦는 것이 아는 인이라 한다면, 이미 타락이 없어짐[壞]과 같으니라. 만일 인 가운데 결정코 과가 있다면,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증장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내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없다가 스승에게서 받고 나서는 점점 증장하니, 만일 스승의 가르치는 것이 아는 인이라 한다면 스승이 가르칠 때에는 받는 사람에게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있지 않았을 것이니라. 만일 이것이 아는 인이라면 아는 것이 있지 않았을 터이니, 어떻게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알아서 증장케 하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는 인이 없다면, 어떻게 젖이 있는 것이 타락이 있다고 이름하오리까?”
“선남자여, 세상에서 물음을 대답하는 데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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츰 대답함[轉]이니, 앞에서 말함과 같이 무슨 인연으로 금하는 계율을 받아 지니는가. 뉘우치지 아니하기 위함이니라. 내지 대반열반을 얻기 위함이니라 하는 따위요, 둘은 잠자코[黙然] 대답함이니, 범지가 나에게 와서 묻기를, 내가 항상합니까 하기에, 내가 잠자코 있음과 같은 것이요, 셋은 반문하는[疑] 대답이니, 이 경에서 말한 것처럼 ‘만일 아는 인이 둘이 있다면, 젖 속에는 어찌하여 두 가지가 있지 않은가’ 하는 등이니라. 선남자여, 나는 지금 차츰차츰 대답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이 젖이 있으면 타락이 있다고 하는 것은, 결정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젖이 있는 것을 타락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느니라.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있으면 불성이 있는 것이니, 마땅히 볼 수 있는 연고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과거는 이미 없어졌고, 미래는 오지 아니하였사온데, 어떻게 있다 하오리까. 만일 마땅히 있으리라 하여서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나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현재에 아들이 없으면, 아들이 없노라 말하는 것이온데,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는 것을 어떻게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지나간 것을 있다고 함은, 가령 귤을 심어서 싹이 나고 씨가 없어졌으나, 싹도 달고 풋과일 맛도 달다가, 익고 나면 이에 시어지느니라. 선남자여, 이 신맛이 씨나 싹이나 풋과일 때에는 없었다가 익을 때의 빛과 모양을 따라서 생기는 것이니, 이 신맛은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 있는 것이다. 본래는 없던 것이 지금에 있지만 근본을 인하지 않은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본래의 씨가 비록 지나갔으나 있었다고 이름할 것이니, 이런 이치로 지나간 것을 있었다고 이름하니라. 또 어찌하여 미래를 있다고 하는가. 어떤 사람이 참깨를 심을 적에, 누가 묻기를 무엇하려고 심는가 하면, 기름이 있기에 심노라 하는 것 같나니, 실로 기름이 있는 것 아니지만 참깨가 여문 뒤에 깨를 받아서 찌고 누르면 기름이 생길 터이므로, 이 사람의 말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이런 뜻으로 미래를 있다고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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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찌하여 과거를 있다고 하는가.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외딴 데서 임금을 욕하였더니, 여러 해 뒤에 임금이 듣고 불러 묻기를 ‘어찌하여 나를 욕하였느냐’ 하기에, 대답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욕하지 않았나이다. 왜냐 하면 욕한 일은 이미 없어진 까닭입니다’ 하였다.
임금은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욕을 한 너와 내가 모두 있는데, 어찌하여 없어졌다 하느냐?’ 이리하여 목숨을 잃었느니라. 선남자여, 이 둘이 실로 없지만 결과는 없지 아니하였으니, 이것을 말하여 지나간 것이 있다 하느니라.
또 어찌하여 미래를 있다 하느냐. 어떤 사람이 옹기장이에게 가서 병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옹기장이는 있다고 대답하였다. 옹기장이에게 실상은 병이 없었지만 진흙이 있으므로 병이 있다고 한 것이니, 이 사람의 말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젖 속에 타락이 있다는 것이나,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불성을 보고자 하면 마땅히 시절과 인연을 관찰할 것이니,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 허망하지 아니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나이까. 정인이 있는 까닭입니다. 무엇이 정인인가 하오면, 불성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니구타 씨에 니구타나무가 없다면 어찌하여 니구타 성씨라 하고, 가타라(佉陀羅) 씨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구담 씨를 아지야(阿坻耶) 성씨라 일컫지 못하고, 아지야도 구담이라고 일컬을 수 없는 것처럼, 니구타 씨도 그와 같아서 가타라 씨라 일컫지 못하고, 가타라 씨도 니구타 씨라고 일컬을 수 없나이다. 마치 세존이 구담 성씨를 버릴 수 없듯이,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사오니, 이런 뜻으로 중생에게 모든 불성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씨 속에 니구타가 있다고 말하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만일에 있다면 어찌하여 보이지 않는가. 선남자여, 세간의 물건들은 인연이 있어서 보이지 않나니, 무엇을 인연이라 하는가. 멀어서 보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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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허공을 나는 새의 발자국이요, 가까워서 보이지 않음은 사람의 속눈썹이요, 망그러져서 보지 않음은 눈이 먼 이요, 생각이 어지러워서 보지 못함은 마음이 전일하지 못한 이와 같고, 작아서 보지 못함은 가는 티끌이요, 가리워서 보지 못함은 구름에 덮인 별이요, 많아서 보지 못함은 볏단 속의 삼씨와 같고, 비슷하여서 보지 못함은 콩더미에 있는 콩과 같거니와, 니구타나무는 이러한 여덟 가지와는 같지 않거늘, 만일 있다면 어찌하여 보이지 않는가. 만일 작아서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나무의 모양이 큰[麤] 까닭이니라. 만일 성품이 가늘다면 어떻게 자라겠는가. 만일 가리워서 보이지 않는다면, 항상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며, 본디는 큰 모양이 없었는데, 지금에 큰 것을 본다 하면 이 큰 것이 본디는 보이는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며, 본디는 보이는 성품이 없었는데 지금에 볼 수 있다면 이 보는 것도 본디는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씨도 그와 같아서 본디는 나무가 없던 것이 지금에 있다고 한들,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인이요 다른 하나는 아는 인[了因]이라 하겠나이다. 니구타의 씨가 땅과 물과 거름으로 아는 인을 삼는 연고로, 작던 것이 커진다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본래 있었다면, 어찌 아는 인을 요구하겠는가. 만일 본디 성품이 없다면, 아는 인이 무엇을 알겠는가. 만일 니구타에 본래 큰 모양이 없건만 아는 인을 인하여 큰 모양을 내었다 하면, 어찌하여 가타라나무는 내지 않는가. 둘이 다 없던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작아서 보지 못한다면 큰 것은 볼 수 있으리라. 마치 한 티끌은 보지 못하더라도, 여러 티끌이 화합하면 볼 수 있을 것이니, 그와 같이 씨 가운데 큰 모양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이 속에 이미 싹과 줄기와 꽃과 과실이 있고, 낱낱 과실마다 한량없는 씨가 있고, 낱낱 씨 속에 한량없는 나무가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크다고 하느니라. 이러한 큰 것이 있으므로 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니구타 씨에 니구타의 성품이 있어서 나무를 자라게 한다고 하면, 이 씨가 불에 타는 것을 볼 적에는, 이러한 타는 성품도 본래 있었다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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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며, 만일 본래 있다면 나무는 자라지 못할 것이니라. 만일 온갖 법이 본래 나고 없어짐이 있다면 어찌하여 먼저 났다가 나중에 없어지고, 한꺼번에 나고 없어지지 않는가. 이런 뜻으로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니구타 씨에 본래 나무의 성품이 없는데 나무를 내었다면, 이 씨에서 어찌하여 기름은 나오지 않나이까? 둘이 마찬가지로 없는 까닭입니다.”
“선남자여, 이 씨 속에서 기름도 낼 수 있나니, 본래는 성품이 없었으나 인연으로 하여서 있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어찌하여 참깨 기름이라고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참깨가 아닌 연고니라. 선남자여, 불의 인연으로는 불을 내고, 물의 인연으로는 물을 내는 것이어서, 모두 인연을 따르지만 상대되는 것이 함께 있지는 못하는 것이니라. 니구타의 씨와 참깨 기름도 그와 같아서, 모두 인연을 따르지만 제각기 서로 내지는 못하나니, 니구타 씨의 성품은 냉(冷)을 다스리고, 참깨 기름의 성품은 풍(風)을 다스리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탕수수[甘蔗]의 인연으로 석밀(石蜜)과 흑설탕이 생기나니, 비록 한 가지 인연이지만 빛과 모양이 제각기 달라서, 석밀은 열(熱)을 다스리고 흑설탕은 냉을 다스리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젖 속에 타락의 성품이 없고 참깨에 기름의 성품이 없고, 니구타 씨에 나무의 성품이 없고, 진흙에 병의 성품이 없고,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면,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바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고 한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않겠나이다. 왜냐 하면 사람과 하늘이 성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품이 없기 때문에 사람이 하늘도 되고 하늘이 사람도 되거니와, 이는 업의 인연으로 되는 것이요, 성품으로 되는 것이 아니겠사오며 보살마하살도 업의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겠나이다. 만일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일천제(一闡提)들은 선근을 끊어 버리고 지옥에 떨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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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까? 만일 보리심이 불성이라면 일천제들이 끊지 못하여야 할 것이요, 만일 끊을 수 있다면 어떻게 불성이 항상하다고 말하겠나이까. 만일 항상함이 아니라면 불성이라 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중생들에게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처음으로 보리심을 낸다고 하오며, 어찌하여 비발치(毗跋致)·아비발치(阿毗跋致)라 하겠나이까? 비발치라 하면 이 사람에게는 불성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이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로 나아가며, 대자대비로 나고 늙고 죽음과 번뇌의 걱정을 보았고, 대반열반에는 나고 늙고 죽음과 번뇌의 걱정이 없음을 보았으며, 삼보와 업과 과보를 믿고, 계율을 받아 지니는 따위의 법을 불성이라 하리니, 만일 이런 법을 여의고 불성이 있다면, 무슨 필요로 이런 법으로써 인연을 삼았겠나이까?
세존이시여, 마치 젖은 인연을 의지하지 않고도, 반드시 타락을 이루려니와, 생소(生酥)는 그렇지 아니하여 모름지기 인연을 의지하여야 하나니, 사람의 공력과 물병과 혼합시키는 것과 노끈입니다. 중생도 그러하여 불성이 있다면, 인연을 여의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며, 만일 결정코 있을진댄 수행하는 사람이 어찌하여 3악도의 고통과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보고, 퇴타하는 마음을 내나이까? 그리고 6바라밀을 닦지 않고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마치 젖이 인연이 아니고도 타락을 이루는 것 같으리이다. 그러나 6바라밀을 인하지 아니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오니, 이런 뜻으로 중생들에게 불성이 없음을 알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승보가 항상하다 하였사온데, 만일 항상하다면 무상이 아닐 것이며, 무상이 아니라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이까? 승보가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온갖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만일 중생들이 본래부터 보리심이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도 없었다가 뒤에 있다 하오면, 중생들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본래는 없다가 뒤에 있을 것이오니, 이런 이치로 온갖 중생이 마땅히 불성이 없으리라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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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그대는 오래전부터 불성의 이치를 알았지만 중생들을 위하여서 짐짓 이렇게 물음이리라. 모든 중생이 진실로 불성이 있건만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에게 만일 불성이 있다면, 처음 보리심을 내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을 수 없다 하거니와, 선남자여, 마음은 불성이 아니니라. 왜냐 하면 마음은 무상한 것이고 불성은 항상한 까닭이니라. 그대의 말이 어찌하여 마음이 퇴타하는가 하지만, 실로는 퇴타하는 마음이 없나니 마음이 퇴타한다면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려니와, 더디게 얻게 되므로 퇴타한다고 이름하는 것이니라. 이 보리심은 실로 불성이 아니니, 왜냐 하면 일천제들이 선근을 끊고 지옥에 떨어지는 연고니라. 만일 보리심이 불성이라 하면 일천제들을 일천제라고 이름할 수 없으며, 보리심도 무상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보리심이 결정코 불성이 아닌 것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에게 만일 불성이 있다면, 인연을 의지할 필요가 없는 것이, 젖이 타락되는 것과 같다고 함은,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다섯 가지 인연이 생소를 이룬다 하면, 불성도 그와 같은 줄을 알기 때문이니라. 마치 여러 가지 돌에 금도 있고 은도 있고 구리[銅]도 있고 철도 있는데, 모두 4대로 되었으며, 이름도 같고 실상도 같으나 내는 것은 각각 같지 아니하며, 반드시 중생의 복덕과 용광로와 사람의 공력 따위의 여러 가지 인연을 의지한 뒤에야 나오는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본래 금의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중생의 불성도 부처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여러 가지 공덕과 인연이 화합하여 불성을 본 뒤에야 부처를 얻게 되느니라.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보지 못하는가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모든 인연이 화합하지 못한 연고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내가 두 가지 인을 말하였으니, 정인(正因)과 연인(緣因)이니라. 정인은 불성이요 연인은 보리심을 내는 것이니, 이 두 가지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 마치 돌에서 금이 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승보가 항상하다면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으리라 하거니와, 선남자여, 승가라 함은 화합(和合)이란 말이요, 화합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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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의 화합이요 하나는 제일의의 화합이니라. 세간의 화합은 성문승이라 하고, 제일의의 화합은 보살승이라 하나니, 세간승은 무상하고 불성은 항상하며 불성이 항상한 것처럼 제일의의 승도 그러하니라. 또 승가가 있으니 법 화합을 말하는 것이다. 법 화합은 12부경을 말함이니, 12부경이 항상한 것이므로, 내가 말하기를 법승도 항상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승가는 화합이라 이름하고, 화합은 12인연이라 하나니, 12인연 가운데도 불성이 있으며, 12인연은 항상한 것이요 불성도 그러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승가에게 불성이 있다 하느니라. 또 승가란 것은 부처님의 화합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승가에게 불성이 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이 중생에게 만일 불성이 있다면, 어찌하여 퇴타하는 이가 있고 퇴타하지 않는 이가 있는가 하나니, 자세히 들으라. 내가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세 가지 법이 있으면 퇴타하느니라. 무엇을 열세 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마음에 믿지 않음이요, 둘은 마음을 짓지 않음이요, 셋은 의심하는 마음이요, 넷은 몸과 재물을 아낌이요, 다섯은 열반에 대하여 두려움을 내어서 어떻게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멸하게 하겠는가 함이요, 여섯은 마음에 견디지 못함이요, 일곱은 마음이 조복되지 못함이요, 여덟은 수심함이요, 아홉은 즐거워하지 않음이요, 열은 방일함이요, 열하나는 제몸을 가벼이 여김이요, 열둘은 스스로 번뇌를 보고 깨뜨릴 수 없다 함이요, 열셋은 보리에 나아가는 법을 좋아하지 아니함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열세 가지 법이라 하나니, 보살로 하여금 보리에서 퇴타하게 하느니라.
또 여섯 가지 법이 있어서 보리심을 파괴하나니, 무엇이 여섯인가. 하나는 법을 아낌이요, 둘은 모든 중생에게 선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킴이요, 셋은 나쁜 동무를 친근함이요, 넷은 부지런히 정진하지 아니함이요, 다섯은 스스로 교만함이요, 여섯은 세상 사업을 경영함이니라.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이 보리심을 파괴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부처님 세존은 인간 천상의 스승이며, 중생 중에 가장 높아서 비길 이 없으며, 성문이나 벽지불보다 훌륭하며, 법에 대한 눈이 밝아서 걸림없이 법을 보며, 큰 고통 바다에서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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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는 곧 서원을 내되,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마땅히 얻으리라 하고, 이런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기도 하고, 혹은 다른 이의 가르침을 듣고 보리심을 내기도 하였으나, 혹은 보살이 아승기겁 동안에 고행을 닦은 뒤에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말을 듣고는 생각하기를, ‘나는 이런 고행을 감당할 수 없으니 어떻게 얻으리요’ 하고 퇴타하는 마음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또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보리심을 퇴타케 하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하나는 외도에 출가하기를 좋아함이요, 둘은 대자대비의 마음을 닦지 않음이요, 셋은 법사의 허물 보기를 좋아함이요, 넷은 항상 생사에 있기를 좋아함이요, 다섯은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기를 좋아하지 않음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다섯 가지 법으로 보리심을 퇴타케 한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 법으로 보리심을 퇴타케 하나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5욕락을 탐함이요, 둘은 3보를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음이니라.
이런 인연으로 보리심이 퇴타하느니라.
어떤 것을 퇴타하지 않는 마음이라 하는가.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서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는 속에서 중생을 제도하며, 스승에게 묻지 않고도 자연히 닦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말을 듣고는, 만일 보리의 도를 얻을 수 있다면, 나도 닦아서 반드시 얻으리라 하여 이 인연으로 보리심을 내고, 짓는 공덕이 많거나 적거나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회향하면서, 서원을 세우되 내가 항상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를 친근하며, 항상 깊은 법을 듣고 다섯 가지 근[五情]이 구족하며, 설사 괴롭고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이 마음을 잃지 말아지이다 하며, 또 원하기를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나에게 항상 환희한 마음을 내되, 다섯 가지 선근을 갖추어지니이다 하며, 만일 중생들이 나의 몸을 찍으며 나의 수족과 머리와 눈과 사지를 베더라도 이런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스스로 기뻐하며, 이런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보리심이 증장케 하나니, 만일 이런 일이 없으면, 내가 무슨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수 있으리요 하느니라.
또 원을 세우되, 나는 근(根)이 없거나 근이 둘이거나 여인의 몸을 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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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며, 남에게 얽매이지 말며 악한 주인을 만나지 말며 악한 임금에게 소속되지 말며 나쁜 나라에 나지 않게 하여지이다. 만일 좋은 몸을 얻으면 문벌이 훌륭하고 재물이 많더라도 교만을 내지 않게 하며, 내가 항상 12부경을 듣고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만일 중생을 위하여 연설하면 듣는 이가 공경하고 믿고 의심이 없으며, 나에게 대하여 나쁜 마음을 내지 않게 하여지이다. 차라리 조금 듣고 뜻을 많이 이해할지언정, 많이 듣고 뜻을 알지 못함을 원치 아니하며 마음의 스승이 되기를 원하고 마음을 스승함을 원치 아니하며,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업이 악한 일과 어울리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에게 안락함을 베풀고, 몸의 계행과 마음의 지혜가 산과 같아서 동하지 아니하며, 위없는 바른 법을 받아 지니기 위하여서는 몸과 목숨과 재물을 아끼지 아니하며 부정한 물건은 복업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정당한 생업[正命]으로 살아가고 삿된 마음이 없어지이다.
은혜를 받은 때에는 작은 은혜라도 크게 갚기를 생각하며, 세상에 있는 사업과 기술을 잘 알고, 중생들의 각 지방 말을 잘 알아서 12부경을 읽고 외우고 쓰면서 게으른 마음을 내지 아니하며, 만일 중생들이 듣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면 방편으로 인도하여 듣기를 좋아하게 하며, 말이 항상 부드러워서 나쁜 말을 하지 아니하며, 화합하지 못하는 대중은 화합하게 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이가 있으면 근심과 두려움을 여의게 하며, 흉년 드는 세상에는 풍족하게 하고, 병이 도는 세상에선 용한 의원이 되어 병에 쓰는 약이나 재물을 마음대로 하여, 앓는 이로 하여금 쾌차하게 하며, 도병겁(刀兵劫)이 생길 적에는 큰 세력이 있어서 상하고 해하려는 것을 끊어 버리고 남는 일이 없게 하며, 중생들의 가지가지 공포를 덜어 줄 것이니, 이른바 죽는 공포, 가두고 얽어매고 때리는 일, 수재, 화재, 법률을 범하고 난리가 생기는 일, 빈궁하고 파계하는 일, 나쁜 소문, 나쁜 갈래, 이런 따위의 공포를 모두 끊을 것이니라.
부모와 스승과 어른에게는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원수들에게는 자비한 마음을 가지며, 항상 여섯 가지 생각함[六念]과 공삼매문(空三昧門)과 12인연과 생멸하는 관[生滅等觀]과 숨을 내쉬고[出息] 들이쉬는 것[入息]과 하늘의 행과 범행과 성행(聖行)과 금강삼매와 수릉엄정을 닦으며, 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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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없는 데서는 스스로 고요한 마음을 얻게 하며, 설사 몸과 마음으로 큰 고통을 받을 때라도 위없는 보리심을 잃지 말게 하며, 성문이나 벽지불의 마음으로 만족한 줄을 알지 못하게 하며, 삼보가 없는 곳에서는 삿된 소견을 파할지언정 그의 도를 익히지 아니하며, 법에 자재함을 얻고 마음에 자재함을 얻으며, 함이 있는 법에는 분명하게 허물을 보고 나로 하여금 2승의 도과를 무서워하기를 목숨을 아끼는 이가 몸 버리기를 무서워하듯 하며, 중생을 위하여 세 나쁜 갈래에 있기를 좋아하기를 중생들이 도리천에 나기를 좋아하듯 하며, 낱낱 사람들을 위하여 한량없는 겁 동안에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마음에 뉘우치지 않게 하며, 다른 이가 이익 얻음을 보고도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항상 기뻐하기를 자기가 낙을 얻은 듯이 할지니라.
삼보를 만나거든 외복과 음식과 와구와 가옥과 의약과 등과 꽃과 향과 풍악과 깃발과 일산과 7보로 공양할 것이며, 부처님의 계율을 받거든 견고하게 보호하고 범할 생각을 내지 말며, 보살들이 행하기 어려운 고행을 한다는 말을 듣거든, 환희한 마음으로 후회함을 내지 말며, 지나간 세상의 숙명(宿命)을 알고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업을 짓지 말며, 과보를 받기 위하여 인연을 모으지 말고, 현재의 낙에 탐착함을 내지 말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러한 서원을 내는 이가 있으면 보살이라 이름할 것이니, 보리심을 퇴타하지 아니할 것이며, 시주라고도 이름할 것이니, 여래를 뵈옵고 불성을 분명히 알 것이며, 중생들을 조복하여 생사에서 해탈케 하며, 위없는 바른 법을 보호하여 가지고, 6바라밀을 구족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런 뜻으로 퇴타하지 않는 마음을 불성이라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퇴타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비유하여 말하면 어떤 두 사람이 이런 말을 들었다. ‘다른 지방에 7보로 된 산이 있고, 산에 맑은 샘이 있는데, 물맛이 매우 좋고, 그 산에 가는 사람은 빈궁을 영원히 면하고 그 물을 먹으면 만년을 살 수 있거니와, 길이 멀고 험하여서 가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이 함께 길을 떠나는데, 한 사람은 가지가지 행구를 준비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빈손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함께 앞으로 향하여 가다가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보물을 많이 가지고 오는데 7보가 구족하였다. 두 사람은 앞으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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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물었다. ‘여보시오. 그 지방에 참으로 7보 산이 있더이까?’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참으로 있고 거짓말이 아니며 나는 보물을 많이 얻어 가졌고, 그 물도 먹었소만, 길이 험하고 도적이 많고 자갈밭 가시밭뿐이요, 물도 풀도 없어서 가는 사람은 천명 만명이나 도착한 사람은 대단히 적소.’
이 사실을 듣고 한 사람은 후회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길이 그렇게 멀고 고생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가는 사람은 많으나 도착한 사람은 몇 사람 안 된다 하니, 난들 어떻게 갈 수 있겠는가. 지금 나의 살림은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는데, 거기를 가다가는 혹시 죽을지도 모른다. 몸을 보전하지 못하면 장수가 무슨 소용인가’ 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다른 이도 도착한 사람이 있으니, 나도 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가기만 하면 소원이 만족하여 보물도 많이 얻고 장수하는 물도 마실 것이요, 만일 이르지 못하면 죽기로 한정하리라.’ 이 때에 두 사람이 하나는 후회하여 돌아서고, 한 사람은 앞으로 가서 그 산에 당도하였다. 그래서 보물을 많이 얻었고 물도 마음껏 먹었으며, 많은 보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부모를 봉양하고 친척들까지 이바지하였다. 후회하면서 먼저 돌아왔던 사람이 이 일을 보고는 마음에 열이 나서, 저 사람이 갔다 왔는데, 난들 어찌 그냥 있으리요 하고, 곧 행장을 차려서 길을 떠났다.
7보 산은 대반열반에 비유하고, 맛나는 물을 불성에 비유하고, 두 사람은 초발심한 두 보살에 비유하고, 험악한 길은 생사에 비유하고, 길에서 만난 사람은 부처님 세존에 비유하고, 도적이 있는 것은 네 마군에 비유하고, 자갈밭 가시밭은 번뇌에 비유하고 물도 풀도 없다는 것은 보리의 도를 익히지 않는 데 비유하고, 한 사람이 돌아선 것은 퇴타한 보살에 비유하고 곧장 간 사람은 퇴타하지 않는 보살에 비유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이 항상 있어 변하지 않는 것이 저 험한 길과 같거든, 어떤 사람이 후회하고 돌아왔다고 하여서, 도가 무상하다고 말할 수 없나니, 불성도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보리의 길에 마침내 퇴타하는 이가 없나니, 선남자여, 그 때에 후회하고 돌아왔던 사람도 저번에 같이 가던 사람이 보배를 얻어 가지고 와서 형제가 자재하게 부모를 봉양하고 친척들을 도와주면서 안락하게 사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열이 나서 즉시 행장을 차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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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 다시 떠나서, 몸도 돌아보지 않고 모든 곤란을 참아가면서 마침내 7보 산에 이르렀으니 퇴타하였던 보살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나 내지 5역죄나 4중금을 범한 이와 일천제들도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보살이 퇴전하는 이와 퇴전하지 않는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여래의 32상을 얻는 업의 인연을 닦아 익히는 이는 퇴전하지 않는다 이름하며, 보살마하살이라 이름하며, 불퇴전이라 이름하며, 모든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다 이름하며, 모든 성문·연각보다 훌륭하다 이름하며, 아비발치라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계행을 가지어 흔들리지 아니하며 보시하는 마음을 옮기지 아니하며, 진실한 말에 머물기를 수미산같이 하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발바닥이 상자 바닥처럼 평평한 모양[奩底相]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부모에게나 화상(和上)에게나 어른에게나 내지 축생에게까지 법다운 재물로 공양하거나 공급하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 무늬[千輻輪相]가 있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생명을 죽이지 아니하고 훔치지 아니하고 부모와 스승에게 항상 환희한 마음을 내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세 가지 잘 생긴 몸매[相好]를 얻느니라. 하나는 손가락이 가늘고 길며, 둘은 발꿈치가 길며, 셋은 몸이 방정하고 곧나니, 이 세 가지 모양은 같은 업의 인연이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4섭법[攝法]으로 중생을 이끌어들이면, 이러한 업의 인연으로 손가락 발가락 사이에 흰 거위와 같은 비단결 같은 막이 있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부모나 스승의 병들었을 적에 손수 씻고 붙들고 안마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손과 발이 보드랍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가지고 법을 듣고 보시하기를 만족함이 없이 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관절이나 복사뼈가 통통하고 원만하며, 몸의 털이 위로 쏠리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전심으로 법을 듣고 바른 교법을 연설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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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가 사슴의 다리 같으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에게 해치려는 마음을 내지 않고, 음식에는 만족함을 알며, 보시하기를 항상 좋아하고 병든 이를 보살피고 약을 주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몸이 원만하기가 니구타나무와 같고, 손이 무릎을 지나고, 정수리에 육계가 있으며, 정상을 볼 수 없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두려워하는 이를 보면 구호하여 주고, 헐벗은 이를 보고는 옷을 주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남근이 몸안에 숨어 있는 모양[陰藏相]을 얻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지혜 있는 이를 친근하고 어리석은 이를 멀리하며, 묻는 일에 대답하기 좋아하고 다니는 길을 깨끗이 쓸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살결이 보드랍고 몸의 털이 오른쪽으로 쏠리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상 의복·음식·와구·의약·향·꽃·등불 따위로 남에게 보시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몸이 금빛 같고 늘 광명이 빛나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적에, 보배로운 것들을 아낌없이 버리되 복밭인가 아닌가를 보지 아니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일곱 군데가 원만한 모양[七處滿相]을 얻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보시할 적에 마음에 의심을 내지 아니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부드러운 음성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법답게 재물을 구하여 보시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뼈마디가 원만하고 사자의 웃통 같고 팔과 팔꿈치가 원만하고 가늘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간하는 말과 욕설하는 말과 성내는 마음을 멀리 여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40개의 이가 희고 깨끗하고 가지런하고 조밀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에게 대자비를 닦으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두 송곳니가 희고 크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항상 원하기를 와서 달라는 이에게 달라는 대로 주리라 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사자와 같은 빰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중생들이 달라는 대로 음식을 주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맛 가운데 좋은 맛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스스로 열 가지 선한 일을 행하고 남에게까지 교화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넓고 긴 혀를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다른 이의 단점을 들추어내지 않고, 정법을 비방하지 아니하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범(梵) 음성을 얻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원수나 미운 이를 보고 기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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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을 내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속눈썹이 검붉게 되느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다른 이의 덕을 숨기지 않고, 잘한 일을 드날리면, 이런 업의 인연으로 양미간의 백호상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32상을 얻을 업의 인연을 닦으면 보리심이 퇴전하지 않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중생들을 헤아릴 수 없으며, 부처님의 경계와 업의 과보와 불성을 헤아릴 수 없느니라. 왜냐 하면 이 네 가지 법은 모두 항상한 것이며, 항상한 연고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니라. 온갖 중생은 번뇌가 덮이었으므로 항상하다 이름하며, 항상한 번뇌를 끊으므로 무상하다 하느니라. 만일 온갖 중생이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8성도를 닦아서 모든 괴로움을 끊겠는가. 모든 괴로움이 만일 끊어지면 무상하다 이름하고, 받는 낙은 항상하다 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번뇌가 덮이어서 불성을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연고로 열반을 보지 못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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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7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 ③

사자후보살이 또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모든 법에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정인(正因)이요 하나는 연인(緣因)이오나, 이 두 가지 인으로는 묶고 푸는 것이 없으리이다. 이 5음은 잠깐잠깐 사이에 났다 없어졌다 하나니, 만일 났다 없어졌다 한다면, 누가 묶고 누가 푸나이까? 세존이시여, 이 5음으로 인하여 뒤의 5음을 내거니와, 이 5음은 스스로 멸하고 저 5음에 이르지 않으며, 비록 저 5음에 이르지 않더라도 능히 저 5음을 내나이다. 마치 씨를 인하여 싹이 나거니와 씨는 싹에 이르지 않으며, 비록 싹에 이르지 않더라도 능히 싹을 내는 것 같나이다. 중생도 그러하옵거늘 어찌하여 묶고 푼다 하오리까?”
“선남자여, 자세히 잘 들으라. 내가 그대에게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목숨을 버리려고 크게 괴로울 적에 일가 친척들이 둘러앉아 울고불고 슬퍼하거든 그 사람이 공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며, 비록 다섯 가지 정(情)이 있으나 감각이 없고, 팔 다리는 떨리어 스스로 진정하지 못하며, 몸은 식어가고 더운 기운은 다하려 하거든, 먼저 닦아 익혔던 선과 악의 과보를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해가 지려 할 적에는 산이나 언덕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나타나고, 서쪽으로 기울어질 이치가 없느니라. 중생의 업과 과보도 그와 같아서 이 5음이 없어질 때에 저 5음이 계속하여 생기나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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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 등불이 켜지면 어둠이 없어지고, 등불이 꺼지면 어둠이 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밀랍으로 만든 인[蠟印]을 인주[泥]에 찍으면 인과 인주가 합하였다가, 인은 없어지고 글씨가 생기거니와, 밀랍으로 만든 인이 변하여서 인주에 있지도 아니하고 글씨가 인주에서 나오지도 아니하고,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요, 밀랍으로 만든 인의 인연으로 글씨가 생기느니라. 현재의 5음이 없어지면 중음신의 5음이 생기거니와, 이 현재의 5음이 변하여서 중음신의 5음이 되지도 아니하고, 중음신의 5음이 스스로 생기는 것도 아니며,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요, 현재의 5음을 인해서 중음의 5음이 생기는 것이니, 마치 밀랍으로 만든 인을 인주에 찍으면, 인이 망그러지면서 글씨가 생기는 것과 같아서 이름은 비록 차별이 없으나 시절이 제각기 다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중음신의 5음은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고, 천안(天眼)으로야 본다고 하느니라.
이 중음신에는 세 가지 먹는 것이 있으니, 하나는 생각으로 먹음[思食]이요 둘은 닿이어서 먹음[觸食]이요 셋은 뜻으로 먹음[意食]이니라. 중음신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업의 과보요, 둘은 악한 업의 과보니라. 선한 업을 인해서는 선한 알음알이[覺觀]를 얻고, 악한 업을 인해서는 악한 알음알이를 얻나니, 부모가 교접할 적에 업의 인연을 따라서 태에 들게 되는데, 어미에게는 사랑함을 내고, 아비에게는 미워함을 내며, 아비의 정수가 나올 적에는 자기의 것이라 여기고, 보고서는 기뻐서 환희한 마음을 내나니, 이 세 가지 번뇌의 인연으로 중음신의 5음이 없어지고 후생(後生)의 5음을 내는 것이, 마치 인주에 찍었던 인이 망그러지고, 글씨가 생기는 것과 같으니라. 태어날 적에 모든 근이 구족하기도 하고 구족하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구족한 이는 색을 보고 탐심을 내며, 탐심을 내므로 사랑이라 하며, 광란(狂亂)하여 탐심을 내는 것을 무명이라 하느니라. 탐애(貪愛)와 무명의 두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는 경계가 모두 뒤바뀌어서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 보고, 내가 없는 것을 내가 있다 보고, 낙이 없는 것을 즐겁다 보고, 부정한 것을 깨끗하다 보느니라. 네 가지 뒤바뀜으로 말미암아 선한 행과 악한 행을 짓나니, 번뇌는 업을 짓고 업은 번뇌를 짓는 것을 속박이라 이름하며,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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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5음이 생긴다 이름하느니라.
이 사람이 만일 부처님이나 부처님의 제자나 선지식을 친근하면, 문득 12부경을 듣게 되고, 법문을 들었으므로 선한 경계를 관찰하고, 선한 경계를 관찰하므로 큰 지혜를 얻고, 지혜를 얻은 이는 바른 지견[正知見]이라 하고, 바른 지견을 얻었으므로 생사 중에서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뉘우치는 마음을 내었으므로 즐거운 마음을 내지 않고, 즐거움을 내지 아니하므로 탐심을 깨뜨리고, 탐심을 깨뜨렸으므로 8성도를 닦고, 8성도를 닦으므로 생사가 없어지고, 생사가 없어지므로 해탈을 얻었다 하나니, 불이 섶을 만나지 못한 것을 꺼졌다고 이름하는 것과 같으니라. 생사를 멸하였으므로 멸도(滅度)라 이름하나니, 이런 뜻으로 5음이 멸하였다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허공 가운데 가시가 없거늘 무엇을 뽑는다 하오며, 5음에 속박하는 이가 없다면, 어찌하여 속박이라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번뇌의 사슬로 5음을 속박하나니, 5음을 여의고 따로 번뇌가 없고, 번뇌를 여의고 따로 5음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기둥이 집을 지탱함과 같아서, 집을 여의고 기둥이 없으며, 기둥을 여의고 집이 없나니, 중생의 5음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있으므로 속박이라 하고 번뇌가 없으므로 해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주먹과 손바닥을 모으는 것과 결박하는 것 등 세 가지는 합하고 흩어져서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요, 다시 다른 법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중생의 5음도 그와 같아서, 번뇌가 있으므로 속박이라 하고 번뇌가 없으므로 해탈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명과 색[名色]이 중생을 속박하였다는 말과 같나니, 명과 색이 멸하면 중생이 없거니와 명과 색을 여의고 따로 중생이 없으며, 중생을 여의고 따로 명과 색이 없지만,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고도 이름하고, 중생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고도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마치 눈이 스스로 보지 못하고, 손가락이 스스로 찌르지 못하고, 칼이 스스로 깎지 못하고, 수(受)가 스스로 받지 못하옵거늘, 어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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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여래께서 명과 색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 말씀하시나이까? 왜냐 하면 명과 색이라 말하면 곧 중생이요, 중생이라 말하면 곧 명과 색이기 때문이니, 만약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 말하면 이는 곧 명과 색이 명과 색을 속박한다 함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두 손을 합할 적에 다른 법이 와서 합함이 없느니라. 명과 색도 그와 같나니, 이런 뜻으로 내가 말하기를 명과 색이 중생을 속박한다 하는 것이며, 만일 명과 색을 여의면 곧 해탈이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중생이 해탈한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명과 색이 있는 것을 속박이라 한다면, 아라한들이 아직 명과 색을 여의지 못한 것도 속박이라 하겠나이다.”
“선남자여, 해탈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종자를 끊음[子斷]이요, 둘은 과보를 끊음[果斷]이니라. 종자를 끊음은 번뇌를 끊음이라 하나니, 아라한은 이미 번뇌를 끊었으므로 모든 속박[結]이 무너졌느니라. 그러므로 종자의 번뇌는 속박하지 못하거니와, 과보를 끊지 못하였으므로 과보의 속박이라 이름하니라. 아라한들이 불성을 보지 못하였나니, 보지 못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과보의 속박이라고는 말할지언정, 명과 색의 속박이라고는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등불을 켜는 것과 같아서, 기름이 다하기 전에는 밝은 빛이 꺼지지 않거니와, 기름이 다하면 꺼질 것이 의심없느니라. 선남자여, 기름은 번뇌에 비유하고 등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니, 모든 중생들이 번뇌의 기름인 연고로 열반에 들지 못하거니와, 만일 번뇌를 끊는다면 열반에 드느니라.”
사자후보살이 또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등과 기름은 두 성품이 각각 다르거니와, 중생과 번뇌는 그렇지 아니하여, 중생이 곧 번뇌요 번뇌가 곧 중생이며, 중생을 5음이라 하고 5음을 중생이라 하며, 5음을 번뇌라 하고 번뇌를 5음이라 하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등에 비유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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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비유에 여덟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수순하는 비유[順喩]요, 둘은 거슬러 하는 비유[逆喩]요, 셋은 현재에 있는 비유[現喩]요, 넷은 실제가 아닌 비유[非喩]요, 다섯은 먼저 하는 비유[先喩]요, 여섯은 뒤에 하는 비유[後喩]요, 일곱은 앞과 뒤에 하는 비유[先後喩]요, 여덟은 두루하는 비유[遍喩]니라. 어떤 것을 수순하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 말하기를 ‘하늘에서 큰비가 오면 도랑이 넘치고, 도랑이 넘치므로 작은 구렁이 넘치고, 작은 구렁이 넘치므로 큰 구렁이 넘치고, 큰 구렁이 넘치므로 큰 샘이 넘치고, 큰 샘이 넘치므로, 작은 못이 넘치고, 작은 못이 넘치므로 큰 못이 넘치고, 큰 못이 넘치므로 작은 강이 넘치고, 작은 강이 넘치므로 큰 강이 넘치고, 큰 강이 넘치므로 큰 바다가 넘치나니, 여래의 법비도 이와 같아서 중생의 계행이 만족하고, 계행이 만족하므로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 만족하고,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 만족하므로 환희한 마음이 만족하고, 환희가 만족하므로 멀리 여의는 것이 만족하고, 멀리 여의는 일이 만족하므로 편안함이 만족하고, 편안함이 만족하므로 삼매가 만족하고, 삼매가 만족하므로 바른 지견이 만족하고 바른 지견이 만족하므로 싫어함이 만족하고, 싫어함이 만족하므로 꾸짖음이 만족하고, 꾸짖음이 만족하므로 해탈이 만족하고, 해탈이 만족하므로 열반이 만족하니라’ 한 것을 수순하는 비유라 이름하니라.
어떤 것을 거슬러 하는 비유라 하는가. 큰 바다의 근본이 있으니 큰 강이요, 큰 강의 근본이 있으니 작은 강이요, 작은 강의 근본은 큰 못이요, 큰 못의 근본은 작은 못이요, 작은 못의 근본은 큰 샘이요, 큰 샘의 근본은 작은 샘이요, 작은 샘의 근복은 큰 구렁이요, 큰 구렁의 근본은 작은 구렁이요, 작은 구렁의 근본은 도랑이요, 도랑의 근본은 큰비인 것처럼, 열반의 근본이 있으니 해탈이요, 해탈의 근본이 있으니 꾸짖음이요, 꾸짖음의 근본은 싫어함이요, 싫어함의 근본은 바른 지견이요, 바른 지견의 근본은 삼매요, 삼매의 근본은 편안함이요, 편안함의 근본은 멀리 여의는 일이요, 멀리 여의는 일의 근본은 환희한 마음이요, 환희한 마음의 근본은 후회하지 아니함이요, 후회하지 않는 근본은 계행을 가짐이요, 계행을 가지는 근본은 법비니라 하는 것은, 거슬러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현재에 있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중생의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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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같나니, 원숭이의 성품은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가짐이니라. 중생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빛과 소리와 향과 맛과 닿임과 법에 취착하여 잠시도 머무는 때가 없다고 함은 현재에 있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떠한 것을 실제가 아닌 비유라 하는가. 내가 예전에 바사닉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어떤 믿는 사람이 사방에서 와서 각각 말하기를, 대왕이시여, 네 개의 큰 산이 사방으로부터 백성들을 해하려 한다고 하면 왕은 이 말을 듣고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왕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설사 이런 일이 있어도 도피할 곳이 없으니, 다만 전심으로 계율을 지키고 보시할 뿐입니다.’
나는 이렇게 찬탄하였노라.
‘훌륭합니다. 대왕이여, 내가 말한 네 개의 산이라 함은, 곧 중생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데 비유한 것입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항상 와서 사람을 침노하거늘, 대왕은 어찌하여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하지 않습니까?’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하여 어떠한 과보를 얻나이까?’
나는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인간에나 천상에 태어나서 훌륭한 쾌락을 받나이다.’
왕은 또 말하기를 ‘니구타나무가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하여도, 인간에나 천상에서 쾌락을 받겠나이까?’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니구타 나무는 계율을 지키고 보시를 행할 수가 없거니와, 그렇게 하기만 하면 쾌락을 받을 것이 다를 것 없습니다.’ 이런 것을 실제가 아닌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먼저 하는 비유라 하는가. 내가 경 가운데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아름다운 꽃을 탐내어 꽃을 꺾다가 물에 떠내려갔으니,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5욕락에 탐착하다가 나고 늙고 죽음의 물에 떠내려가느니라’ 하였으니, 이런 것을 먼저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는가. 『법구경』에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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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악을 가벼이 여겨
재앙이 없다 말하지 말라.
물방울이 작지만
큰 그릇을 채우느니라.

이런 것을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앞과 뒤에 하는 비유라 하는가. ‘마치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죽는 것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이양을 얻는 것도 그와 같나니, 노새가 새끼를 배면 생명을 오래 보전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하는 것이, 앞과 뒤에 하는 비유니라.
어떤 것을 두루하는 비유라 하는가. 경에 말하기를 ’33천에 파리질다나무가 있는데, 뿌리는 땅속으로 5유순이나 깊이 들어가고 높이는 1백 유순이요 가지와 잎은 사방으로 50유순이나 퍼지었다. 잎이 성숙하면 누렇게 되므로 하늘 사람들이 보고 환희한 마음을 내어, 이 잎은 오래지 않아 반드시 떨어지리라 하고, 잎이 떨어지면 또 환희심을 내어 이 가지가 오래지 않아 빛이 변하리라 하고, 가지의 빛이 변하면 또 환희심을 내어 이 빛이 오래지 않아 반드시 포(皰)가 생기리라 하고, 포를 보고는 또 기뻐서 이 포가 오래지 않아 꽃봉오리가 생기리라 하고, 꽃봉오리를 보고는 또 기뻐서 이 꽃봉오리가 오래지 않아 활짝 피리라 하나니, 필 적에는 향기가 50유순까지 퍼지고 광명이 80유순까지 비치나니, 그 때에 하늘 사람들이 여름 석 달 동안 그 아래서 낙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제자들도 그와 같나니, 잎이 누렇게 되는 것은 나의 제자가 출가하려는 데 비유하고, 잎이 떨어짐은 나의 제자의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는 데 비유하고, 빛이 변함은 나의 제자의 네 번 고하는 갈마[白四羯磨]를 하여 구족계를 받는 데 비유하고, 처음으로 포가 생기는 것은 나의 제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는 데 비유하고, 꽃봉오리는 10주 보살이 불성을 보는 데 비유하고, 꽃이 피는 것은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데 비유하고, 향기는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이 계율을 받아 갖는 데 비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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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광명은 여래의 명호가 걸림없이 시방에 두루 퍼짐에 비유하고, 여름 석 달은 세 가지 삼매에 비유하고, 33천이 쾌락을 받음은 부처님들이 대열반에 계시면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는 데 비유하였으니, 이것을 두루하는 비유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릇 비유하는 것은 반드시 모두 취할 것이 아니요, 혹 조금만 취하기도 하고, 혹 많이 취하기도 하고, 혹은 전부를 취하기도 하나니, 마치 여래의 얼굴이 보름달 같다고 함은, 조금만 취한 비유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애초에 젖은 알지 못하여서 다른 이에게 젖이 어떠냐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물과 같고 꿀과 같고 조개와 같다고 하였으니, 물은 습한 모양이고 꿀은 단 성품이고 조개는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비유를 말하였으나 젖의 실상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내가 등불을 이끌어서 중생에게 비유한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물을 떠나서는 강이 없나니, 중생도 그러하여 5음을 떠나서는 따로 중생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수레 바탕과 바퀴와 바퀴살과 굴대와 덧바퀴와 수레 지붕을 떠나서는 따로 수레가 없듯이, 중생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만일 저 등불의 비유를 법에 합치하려면 자세히 잘 들으라, 내가 이제 말하리라. 심지는 25유에 비유하고, 기름은 애욕에 비유하고, 밝은 빛은 지혜에 비유하고, 어둠을 깨뜨림은 무명을 없애는 데 비유하고, 더움은 성인이 도에 비유하고, 기름이 다하면 밝은 불꽃이 꺼지는 것은 중생의 애욕이 다하면 불성을 보는 데 비유한 것이다. 비록 명과 색이 있어도 속박하지 못하나니, 비록 25유에 있더라도 모든 유의 더럽힘을 받지 않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5음이 공하여 있지 않다면, 누가 가르침을 받고 도를 닦겠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중생이 모두 생각하는 마음, 지혜의 마음, 처음 내는 마음[發心], 정진하는 마음, 믿는 마음, 선정의 마음이 있나니, 이런 따위의 법이 비록 순간순간 생멸하더라도, 오히려 비슷하게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도를 닦는다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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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이 모두 순간순간 멸하나이다. 이 잠깐잠깐 사이에 멸하는 것도 비슷하게 서로 계속하오나, 어떻게 닦아 익히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마치 등불이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광명이 있어 어둠을 깨뜨리나니, 생각하는 마음 등의 여러 가지 법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먹는 것이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굶주린 이로 하여금 배가 부르게 하며, 좋은 약도 순간순간 멸하지만 능히 병을 다스리며, 해와 달의 광명도 순간순간 멸하지만, 초목들을 자라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잠깐잠깐 사이에 멸하는데 어떻게 자라게 하겠는가 하지만, 마음이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자란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글을 읽을 적에 읽는 구절이나 글자가 한꺼번에 읽는 것이 아니어서, 앞의 것이 중간에 이르지 못하고, 중간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하여, 사람과 글자와 마음이 모두 순간순간 멸하지만 오래오래 닦으므로 통달하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은장이가 처음 견습할 적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비록 순간순간 멸하여서 앞의 것이 뒤에 이르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익힌 연고로 교묘하게 되는 것이며, 그러므로 잘하는 은장이라 하나니, 글을 읽고 외우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씨앗을 보고 ‘네가 싹을 내라’고 땅이 가르치지 않지만, 법의 성품인 연고로 싹이 스스로 나는 것이며, 내지 꽃도 네가 열매를 맺으라고 말하는 것 아니지만, 법의 성품인 연고로 열매가 저절로 생기나니, 중생의 도를 닦음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셈하는 법[數法]이 하나가 둘에 이르지 아니하고 둘이 셋에 이르지 아니하며 순간순간 멸하지만, 천과 만에 이르나니, 중생이 도를 닦음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저 등불이 순간순간 멸하거니와, 처음 멸하는 불꽃이 뒤의 불꽃에게 가르치기를 ‘내가 멸하거든 네가 나서 어둠을 깨뜨리라’ 하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마치 송아지가 나면서 문득 젖을 찾는데 젖을 찾는 지혜는 누가 가르친 적이 없으며, 비록 순간순간 멸하지만, 처음은 주리었으나 나중에 배부르니라. 이러므로 서로 같지 않음을 많이 알지니, 만일 서로 같다면 마땅히 다른 데서 나지 않을 것이니라. 중생의 도를 닦음도 이와 같아서, 처음에는 증장하지 못하지만, 오래오래 닦으므로 모든 번뇌를 능히 깨뜨리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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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수다원이 과를 증득한 뒤에는, 비록 나쁜 나라에 태어나더라도 오히려 계율을 지키어 살생과 도적질과 음행과 이간하는 말과 술을 마시는 일을 하지 아니한다 하오니, 수다원의 5음이 여기서 멸하고 나쁜 나라에 이르지 아니한다면, 도를 닦는 것도 그와 같아서 나쁜 나라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만일 서로 같다면 무슨 연고로 깨끗한 나라에 나지 않나이까? 만일 나쁜 나라의 5음은 수다원의 5음이 아니라 하오면, 어찌하여 나쁜 법을 짓지 아니할 수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수다원은 비록 나쁜 나라에 나더라도, 수다원의 이름을 잃지 아니하거니와, 5음은 서로 같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내가 송아지로 비유하였느니라. 수다원은 비록 나쁜 나라에 나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업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향산에 사자왕이 있으므로, 모든 새와 짐승들이 이 산에는 종적을 감추고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더니, 어느 때에 이 사자왕이 설산으로 갔는데도, 온갖 새와 짐승들이 오히려 있지 못하는 것처럼, 수다원도 그와 같아서, 비록 도를 닦지 아니하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일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감로를 먹었으면, 감로는 비록 멸하였으나 그 세력으로 이 사람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느니라. 선남자여, 수미산에 능가리(楞伽利)라 하는 좋은 약이 있는데, 사람이 먹으면 비록 그것은 순간순간 없어지나 그 약의 효력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전륜왕이 앉는 자리에는 왕이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가까이 가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왕의 위력이 있는 까닭이니라. 수다원도 그와 같아서 비록 나쁜 나라에서 나서 도를 닦지 않더라도, 도력으로 말미암아 나쁜 업을 짓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의 5음이 여기서 없어지고 다른 5음이 생겼다 할지라도 여전히 수다원의 5음은 잃지 않느니라. 어떤 중생이 과일을 얻기 위하여 종자를 심느라고 애를 많이 쓰며 거름을 주고 물을 대었으나 과일을 얻기 전에 종자까지 없어졌지만, 그래도 종자로 인하여 과일을 얻는다 이름하나니, 수다원의 5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재산이 매우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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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아들은 먼저 죽었고, 그 아들의 아들이 있었으나, 다른 지방에서 살았다. 그 사람이 홀연히 죽으매, 손자가 기별을 듣고 그 재산을 모두 차지하였느니라. 비록 그 재산이 자기가 모은 것이 아니지만, 그 재산을 차지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왜냐 하면 그 내림[姓]이 같은 연고니, 수다원의 5음도 그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이런 게송을 말씀하였나이다.

비구들이 만일에
계와 정과 지혜를 닦으면
그것은 언제나 물러가지 않고
대열반에 친근하게 되리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계를 닦는 것이며, 어떤 것이 정을 닦는 것이며, 어떤 것이 지혜를 닦는 것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을 받아 지니더라도 다만 제 몸만 위하여 인간이나 천상에서 쾌락을 받으려 하고,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지 않으며, 위없는 정법을 보호하지 않고, 자기의 이양을 위하여 3악도를 무서워하거나, 생명과 색신(色身)과 힘과 편안함과 걸림없는 변재를 위하거나, 국법과 나쁜 이름과 나쁜 소문이 두려워서, 세간 사업만을 한다면, 이렇게 계율을 가지는 것은 계를 닦는다 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참으로 계를 닦는다 하는가. 계율을 받아 지닐 때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고 정법을 보호하기 위하며, 제도되지 못한 이를 제도하고 알지 못하는 일을 알게 하고, 귀의할 데 없는 이를 귀의하게 하고 열반에 들지 못한 이를 열반에 들게 하기 위하며, 이렇게 계를 닦으면서도 계도 보지 않고 계의 모양도 보지 않고 계를 가지는 사람도 보지 않고 과보도 보지 않고 파계함도 보지 아니한다면, 선남자여, 이렇게 하는 이는 계를 닦는다고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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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삼매를 닦는다 하는가. 삼매를 닦을 때에 스스로 해탈하기를 위하여 이양만을 위하고, 중생을 위하지 아니하며 법을 보호하기를 위하지 아니하고, 탐욕과 더러운 음식 따위의 허물을 보기 위하며, 남녀의 근(根)이나 아홉 구멍이 부정함과 소송하고 때리고 서로 살해함을 보기 위한다면, 이런 일을 위하여 삼매를 닦는 이는, 삼매를 닦는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참으로 삼매를 닦는다 하는가. 만일 중생을 위하여 삼매를 닦되, 중생들 가운데서 평등한 마음을 얻으며, 중생으로 하여금 물러가지 않는 법을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성인의 마음을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대승을 얻게 하기 위하며, 위없는 법을 두호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수릉엄삼매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금강삼매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다라니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4무애를 얻게 하기 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불성을 보게 하기 위하여 이러한 행을 닦을 적에, 삼매를 보지 아니하며 삼매라는 모양을 보지 아니하며 닦는 사람도 보지 아니하며 과보도 보지 아니하나니, 선남자여, 만일 능히 이렇게 한다면, 이것은 삼매를 닦는다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는가. 만일 지혜를 닦는 이가 생각하기를, 내가 만일 이러한 지혜를 닦으면 해탈함을 얻어 3악도에서 벗어나리니, 누가 능히 모든 중생을 이익케 하며, 누가 능히 생사하는 갈래에서 사람을 제도하리요. 부처님께서 나시기 어려움이 우담꽃과 같나니, 내가 이제 번뇌의 결박을 끊고 해탈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마땅히 부지런히 지혜를 닦아 빨리 번뇌를 끊고 해탈을 얻으리라 하여, 이렇게 닦는 이는 지혜를 닦는다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겠는가. 만일 나고 늙고 죽는 고통을 관하되, 모든 중생들은 무명에 덮이어서 위없는 바른 도를 닦을 줄 알지 못하나니, 나의 이 몸으로 중생들을 대신하여 이 큰 고통을 받기 원하며, 중생들의 빈궁함과 미천함과 파계하는 마음과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은 죄업이 모두 나의 한 몸에 모이기를 원하며, 중생들이 탐욕으로 취(取)함을 내지 아니하여, 명과 색의 속박이 되지 아니함을 원하며, 중생들은 하루 빨리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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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를 벗어나고 나의 한 몸이 그 자리에 처하여 싫어하지 아니하기를 원하며, 모든 사람들이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원하며, 이렇게 닦을 때에 지혜를 보지 아니하고 지혜의 모양을 보지 아니하고 닦는 이도 보지 아니하고 과보도 보지 아니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렇게 계와 정과 지혜를 닦으면, 보살이라 이름할 것이요, 이렇게 계와 정과 지혜를 닦지 못하면, 성문이라 이름하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다시 이름하여 계를 닦는다 하겠는가. 모든 중생의 16가지 나쁜 율의[惡律儀]를 깨뜨릴 것이니, 무엇을 16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이익을 위하여 양이나 염소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둘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셋은 이익을 위하여 돼지 따위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넷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다섯은 이익을 위하여 소와 송아지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여섯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일곱은 이익을 위하여 닭이나 오리를 길러서 살찌워 파는 것이요, 여덟은 이익을 위하여 그런 것들을 사서 잡는 것이요, 아홉은 물고기를 낚는 것이요, 열은 사냥함이요, 열하나는 겁탈함이요, 열둘은 푸줏간을 경영함이요, 열셋은 새를 잡는 것이요, 열넷은 이간하는 말을 함이요, 열다섯은 옥사장이요, 열여섯은 용을 주문으로 길들이는 것이니라. 만일 중생을 위하여 이런 16가지 나쁜 직업을 끊게 하면 이것을 계를 닦는다 이름할 것이니라.
무엇을 일컬어 정을 닦는다 하는가. 모든 세간의 삼매를 능히 끊는 것이니, 이른바 무신(無身)삼매는 중생으로 하여금 뒤바뀐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 생각하게 함이요, 또 무변심(無邊心)삼매와 정취(淨聚)삼매와 세변(世邊)삼매와 세단(世斷)삼매와 세성(世性)삼매와 세장부(世丈夫)삼매와 비상비비상삼매들도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뒤바뀐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 생각하게 하느니라. 만일 이런 삼매들을 영원히 끊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정을 닦는다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다시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는가. 세간에 있는 나쁜 소견들을 깨뜨림이니라. 모든 중생이 다 나쁜 소견을 가지었으니, 이른바 색(色)이 곧 나이고, 또한 나의 것이며, 색 가운데 내가 있고, 내 가운데 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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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내지 식(識)도 그러하다 하느니라. 항상함이 곧 나이니, 색은 멸하나 나는 존재한다 하고, 색이 곧 나이니, 색이 멸하면 나도 멸한다 하는데, 어떤 사람은 짓는 이는 나라 하고 받는 이를 색이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는 색이라 하고 받는 이는 나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어 스스로 나고 스스로 멸하는 것이므로 모두 인연이 아니라 하느니라. 또 어떤 사람은 짓는 것도 없고 받는 것도 없어서 모두 자재천의 조작이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어서, 모두가 시절(時節)로 되는 것이라 하며, 또 어떤 사람은 짓는 이나 받는 이가 모두 없고 지대[地] 등의 5대를 중생이라 이름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중생들의 이러한 나쁜 소견을 깨뜨리면, 이런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계를 닦는 것은 몸이 고요하기 위함이요, 삼매를 닦는 것은 마음이 고요하기 위함이요, 지혜를 닦는 것은 의심을 깨뜨리기 위함이며, 의심을 깨뜨림은 도를 닦아 익히기 위함이요, 도를 닦음은 불성을 보기 위함이요, 불성을 보는 것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기 위함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음은 위없는 대열반을 얻기 위함이며, 대열반을 얻음은 중생들의 모든 생사와 온갖 번뇌와 모든 유[一切諸有]와 모든 경계[界]와 모든 진리[諦]를 끊기 위함이며, 생사를 끊고 내지 모든 진리를 끊는 것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을 얻기 위함이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만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을 대반열반이라 이름한다면, 나는[生] 것도 그러하여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겠거늘, 어찌하여 열반이라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러하고 그러하니라. 그대가 말한 것처럼, 나는 것이 비록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나 처음과 나중은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이 생사하는 법도 처음과 나중이 없나이다. 만일 처음과 나중이 없다면 항상하다 이름할 것이며, 항상하면 곧 열반이온데 어찌하여 생사를 이름하여 열반이라 하지는 않나이까?”
“선남자여, 생사하는 법은 모두 인과 과가 있나니, 인과 과가 있으므로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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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열반의 자체에는 인도 과도 없는 연고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열반에도 인과 과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인을 따라서 천상에 나고
인을 따라서 나쁜 갈래에 나고
인을 따라서 열반하나니
그러므로 모두 인이 있느니라.

부처님께서 예전에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사문의 도과(道果)를 말하리라. 사문이라 함은 계와 정과 지혜를 갖추고 닦는 것이요, 도라 함은 8성도요, 사문의 과는 열반이니라’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열반이 이러하옵거늘, 어찌 과가 아니오니까? 어찌하여 말씀하시기를, 열반의 자체에는 인도 과도 없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내가 말한 열반의 인이라 함은 불성을 말한 것인데, 불성의 자성은 열반을 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말하기를 열반은 인이 없다는 것이며, 능히 번뇌를 깨뜨리므로 대과(大果)라 하는데, 도(道)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므로 과가 없다 하나니, 그러므로 열반은 인도 없고 과도 없다 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불성은 모두 함께 가졌나이까, 각각 가졌나이까? 함께 가졌다면 한 사람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 모든 중생들도 함께 얻어야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20명이 함께 원수진 사람이 있는데 만일 한 사람이 원수를 없앴다면, 다른 19명도 함께 원수가 없어진 것이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한 사람이 얻을 적에 다른 사람들도 얻을 것입니다. 만일 각각 가졌다면 곧 무상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셀 수가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중생의 불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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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각각 가졌다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고,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며 모든 부처님께서는 평등하고 허공과 같아서, 모든 중생들이 공동으로 가졌으니, 만일 8성도를 닦는 이가 있으면, 이 사람은 분명히 보게 될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설산에 풀이 있으니 이름이 인욕(忍辱)이라. 소가 먹으면 제호가 되나니, 중생의 불성이 이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인욕초는 하나입니까, 여럿입니까? 만일 하나라면 소가 먹으면 끝날 것이요, 여럿이라면 어떻게 중생의 불성도 이와 같다 하시나이까? 부처님 말씀과 같이 8성도를 닦는 이는 불성을 보리라 하시나,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왜냐 하면 도가 만일 하나라면, 인욕초와 같아서 끝남이 있을 것이요, 만일 끝난다면 한 사람이 닦고 나면 다른 이는 닦을 분이 없을 것입니다. 도가 만일 여럿이라면 어찌하여 구족하게 닦는다고 말할 수 있겠으며, 또한 살바야 지혜[薩婆若智]라고는 이름하지 못한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치 평탄한 큰길은, 모든 중생들이 모두 그 위로 다니고 장애할 것이 없으며, 중간에 나무가 있어 그늘이 매우 서늘하여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수레를 멈추고 그 아래서 쉬어가거니와, 그 나무 그늘은 항상 있어서 옮겨가지 아니하며 없어지지도 아니하고 가지고 가는 사람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길은 성인의 도에 비유하고, 그늘은 불성에 비유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어떤 큰 성에 문이 하나뿐인데 여러 사람이 드나들지만, 아무도 막을 자가 없으며, 파괴하거나 훼손하거나 가지고 가는 자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마다 다니는 다리가 막을 사람도 없고 파괴하거나 가지고 갈 이도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용한 의원이 여러 사람의 병을 모두 치료하거든, 아무도 의원을 제지하여 이 병을 다스리고 저 병은 버리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과 같나니, 성인의 도와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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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끌어대시는 여러 가지 비유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앞에 가던 사람이 길에 있으면,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거늘, 어찌하여 장애할 것이 없다 하나이까? 다른 비유도 그러하오니 성인의 도와 불성이 그와 같다면, 한 사람이 닦을 때에 다른 이에게는 방해가 될 것입니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은 이치가 맞지 아니하니라. 내가 비유한 것은 일부분만 비유함이요, 전부를 비유한 것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세간의 도는 장애가 있으며, 이것과 저것이 달라서 평등하지 않거니와, 무루의 도는 그렇지 아니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장애가 없게 하고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이것과 저것이 다른 곳이 없느니라. 이렇게 바른 도는 모든 중생의 불성을 위하여 아는 인[了因]이 되는 것이요, 내는 인[生因]을 짓지 아니하니, 마치 밝은 등불이 물건을 비쳐 알게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모두 무명의 인으로 행(行)을 반연하여 주나니, 한 사람의 무명이 행을 반연하여 주면, 다른 이는 그러한 몫이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모든 중생이 다 무명의 인이 있어서 행을 반연하여 주므로, 12인연이 모든 것에 평등하다고 말하느니라. 중생들이 닦을 무루의 바른 도(道)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번뇌와 네 가지로 태어나는[四生] 모든 경계의 유(有)의 길을 평등하게 끊느니라. 이런 뜻으로 평등하다고 이름하며, 그를 증득하는 이는 피차의 지견(知見)이 장애됨이 없으므로 살바야 지혜라 이름하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모든 중생들의 몸은 한 가지가 아니어서, 혹은 하늘의 몸이요 혹은 사람의 몸이요 혹은 축생·아귀·지옥의 몸이라, 이렇게 여러 가지 몸으로 차별하여 한결같지 아니한데, 어떻게 불성이 하나라 말씀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젖에 독약을 넣으면, 내지 제호까지도 모두 독이 있게 된다. 그러나 젖은 타락이라 이름하지 않고, 타락은 젖이라 이름하지 아니하며, 내지 제호도 그와 같으니라. 이름은 비록 변하였으나, 독약의 성질은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섯 가지 맛 속에 두루 있으며, 모두 그와 같아서 설사 제호를 먹더라도 사람을 죽게 하거니와, 제호에 독약을 넣은 것은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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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다섯 갈래로 다니면서 다른 몸을 받더라도, 불성은 항상 동일하여 변함이 없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16대국에 여섯 성이 있사오니, 사위(舍衛)성, 바기다(婆枳多)성, 첨바(瞻婆)성, 비사리성, 바라나성, 왕사성의 여섯 성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이온데, 어찌하여 여래는 큰 성을 버리고 이렇게 변방의 나쁘고 누추하고 작은 구시나성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대는 구시나 성이 변방이고 나쁘고 누추하고 작다고 말하지 말고, 이 성이 미묘한 공덕으로 장엄한 것임을 말하라. 왜냐 하면 부처님들과 보살들이 수행하시던 곳이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미천한 사람의 집이라도, 임금이 한번 다녀가면 반드시 찬탄하기를, 이 집이 화려하고 웅장하여 복덕으로 이룩되었으므로 임금까지 거둥하였다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렸을 적에 보잘것없는 약을 먹고라도 병이 나으면, 반드시 기뻐서 찬탄하기를 이 약이 가장 훌륭하여서 내 병이 낳았다 하리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배가 별안간에 파괴되어 의지할 데 없더니, 마침 송장을 의지하여 저 언덕에 이르면, 크게 기뻐서 찬탄하기를 이 송장을 뜻밖에 만나서 내가 살아났노라 하리라. 구시나성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과 보살들이 수행하시던 곳이거늘, 어찌하여 변방이요 나쁘고 누추하고 좁다고 하겠느냐.
선남자여, 내가 기억하기로 지나간 옛적 항하의 모래 수겁 전에 선각(善覺)이란 겁이 있고, 그 때에 전륜성왕이 있으니 이름이 교시가(憍尸迦)였다. 7보를 성취되고 1천 아들을 구족하였는데, 그 임금이 이 성을 설치하였으니 사방이 12유순씩이요 7보로 장엄하고, 흐르는 강이 많은데 밝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맛나는 물이 가득하였느니라. 이른바 니련선하·이라발제하(伊羅跋提河)·히련선하(凞連禪河)·이수말퇴하(伊搜末堆河)·비파사나하(毗婆舍那河) 등의 강이 5백이며, 강의 언덕에는 수목이 무성하고 꽃과 열매가 아름다웠으며, 그 때에 백성들의 수명이 한량없었느니라. 그 전륜왕이 백 년을 지난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온갖 법이 모두 무상하거니와, 열 가지 선한 법을 닦는 이는 이렇게 무상한 고통을 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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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 있으리라’ 하니, 백성들이 이 말을 듣고는 모두 열 가지 선한 법을 닦았느니라.
나는 그 때에 부처님의 명호를 듣고 열 가지 선한 법을 받아 지니고 생각하고 닦아 행하면서,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이 마음을 내고는 또 이 법으로 한량없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온갖 법이 무상하고 변천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느니라.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서 모든 법이 무상하여 변천하는 것이며, 오직 부처님 몸만이 항상 있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나는 지난 옛적에 행하던 인연을 생각하므로, 지금 여기 와서 열반에 들려는 것이며, 또 이 땅의 지나간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서 말하기를 나의 권속들은 받은 은혜를 갚으라고 하였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나간 옛적 중생들의 나이가 한량없을 적에, 그 때에 이 땅의 이름이 구사발제(拘舍跋提)요, 가로와 세로가 50유순이었으며, 염부제에 사는 사람들은 닭이 날아서 서로 미칠 만큼 인접하여 살았다. 전륜왕의 이름은 선견(善見)이라, 7보가 성취되었고, 1천 아들이 구족하여 사천하에서 임금이 되었는데, 제1 태자가 바른 법을 생각하여 벽지불과를 얻었느니라. 전륜왕이 태자가 벽지불 된 것을 보니 위의가 단아하고 신통이 희유하였다. 그런 것을 보고는 즉시 임금의 지위를 침뱉듯이 버리고, 출가하여 이 사라나무 사이에서 8만 년 동안 인자한 마음[慈心]을 닦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悲非], 기뻐하는 마음[喜心], 버리는 마음[捨心]도 각각 8만 년씩 닦았느니라. 선남자여, 그 때의 선견왕은 곧 나의 몸이었으니, 그러므로 내가 지금 이러한 네 가지 법에 노닐기를 항상 좋아하는 것이며, 이 네 가지 법은 삼매라 이름하나니, 이런 뜻으로 여래의 몸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니라. 선남자여, 이런 인연으로 지금 이 구시나성의 사라나무 사이에 와서 삼매에 드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생각하니 지나간 옛적 한량없는 겁 전에는 이 성의 이름이 가비라(迦毗羅)였고, 그 성에 있는 임금의 이름은 백정(白淨)이요, 그 부인의 이름은 마야(摩耶)였고, 왕의 외아들은 실달다(悉達多)라 하였다. 그 왕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지도 아니하고 저절로 생각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며, 두 제자가 있으니 하나는 사리불이요, 다른 하나는 목건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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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 시봉하는 제자는 아난이었다. 그 때에 세존께서 쌍으로 선 나무 사이에서 이와 같은 대반열반경을 연설하였는데, 나도 그 때에 그 회중에 참석하여서,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 말을 듣고는 보리에서 물러나지 아니하고, 스스로 원을 세워서 내가 이 다음에 부처를 이룰 적에 부모와 나라 이름과 제자와 시봉하는 사람과 법문을 말하여 교화하는 일이 지금 부처님과 같게 하여지이다 하였으며, 이 인연으로 지금 여기 와서 대반열반경을 연설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내가 처음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적에, 빈바사라왕이 사신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실달 태자여, 그대가 만일 전륜성왕이 되면 나는 신하가 될 것이요,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거든, 바라건대 먼저 왕사성에 와서 법을 말하여 사람을 제도하면서 나의 공양을 받으라’ 하기에, 그 때에 나는 말 없이 그의 청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교살라국으로 향하였느니라. 그 때에 니련선하에 바라문이 있었으니, 성은 가섭(迦葉)이었다. 5백 제자들과 함께 그 강가에서 위없는 도를 구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일부러 가서 법을 말하였더니, 가섭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는 지금 나이 늙어서 백스무 살이 되었고, 마가다국 사람들과 그 임금 빈바사라왕은 모두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제 당신의 앞에서 법을 듣는다면, 모든 사람들이 뒤바뀐 마음을 내어서 대덕 가섭이 아라한이 아니었던가 하리니, 바라건대 구담이여, 빨리 다른 데로 가시오. 만일 이 사람들이 구담의 공덕이 나보다 나은 줄을 알게 되면, 우리들은 다시 공양을 받을 길이 없소.’
나는 그 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가섭이여, 당신이 나를 대단히 미워하지 않을진댄 하룻밤만 쉬고 내일 아침에 가게 하시오.’
가섭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의 마음에는 다른 생각이 없고, 당신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독한 용이 있는데 성질이 매우 포악하여서 당신을 해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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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염려되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가섭이여, 독한 것 가운데는 3독보다 더 독한 것이 없는데, 나는 그것을 모두 끊었소. 그래서 세간에 독한 것은 두려울 것이 없소.’
가섭은 또 말하였다.
‘만일 두렵지 않다면 자고 가도 좋소.’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가섭을 위하여서 경에서 말한 것처럼 18 변화를 나타내었다. 가섭과 5백 권속들이 이것을 보고 듣고는 모두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고, 이 때에 가섭은 두 동생이 있었으니 하나는 가야가섭이고, 하나는 나제가섭이며, 그들의 권속까지 모두 5백 사람인데, 역시 아라한과를 얻었느니라. 이 때에 왕사성에 있던 외도 6사(師)들이 이 소문을 듣고는, 나에게 대하여 악한 마음을 가지었다. 나는 그 때에 신의를 지키고 왕의 청을 받아서 왕사성으로 가는데, 반쯤 갔을 적에 왕이 한량없는 백천 사람으로 더불어 와서 나를 영접하였고, 나는 그들에게 법을 말하였다. 이 법문을 듣고 욕계천의 8만 6천 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빈바사라왕이 거느리고 왔던 12만 사람은 수다원과를 얻고, 한량없는 중생들이 인위의 마음[忍心]을 성취하였다. 성에 들어가서는 사리불과 대목건련과 그의 권속 2백50 사람을 제도하여, 본래의 마음을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게 하고, 나는 그 성중에 있으면서 왕의 공양을 받았는데, 외도 6사들은 서로 모이어 사위성으로 나아갔느니라.
그 때에 그 사위성에 사는 수달다(須達多)라 하는 한 장자가 며느리를 맞으려고 왕사성에 왔다가 산단나사(珊檀那舍) 장자의 집에서 묵었다. 그런데 주인 장자가 밤중에 일어나서 권속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일어나서 옷을 정돈하고 방과 뜰을 깨끗하게 쓸고 음식을 장만하라’라고 했다. 수달다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아마 마가다국 왕을 청하려는 것인가, 경사스러운 혼인 잔치를 하려는 것인가’ 하였다. 그리고는 장자에게 가서 물었다.
‘대사(大士)여, 마가다국의 빈바사라왕을 초청하렵니까, 즐거운 혼인 잔치가 있습니까, 무슨 일로 바쁘게 서두르십니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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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거사여, 나는 아침에 위없는 법왕(法王)이신 부처님을 청하려는 것입니다.’
수달다 장자는 처음으로 부처님이란 말을 듣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래서 ‘어떤 이를 부처님이라 합니까’ 라고 물었다. 장자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당신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까? 가비라성의 석가씨 문중에 한 아들이 있으니, 이름이 실달다요 성은 구담이요, 부왕의 이름은 백정(白淨)인데, 처음 났을 적에 관상보는 이가 말하기를, 결정코 전륜성왕이 될 것이니, 마치 암라 열매를 손바닥에 놓은 듯하다고 하였더라오. 그런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버리고 출가하여서 스승도 없이 혼자 깨달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소.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아주 없어지고, 항상 있어서 변하지 아니하며,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근심과 두려운 일이 없으며, 모든 중생에게 마음이 평등하기가 마치 부모가 외아들 보듯 하며, 몸과 마음이 여러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지만 교만한 생각이 없고, 살을 베거나 약을 발라 주거나 두 가지 일에서 마음이 한결같으며, 지혜가 통달하여 무슨 법에나 걸림이 없으며, 10력·4무소외·다섯 가지 지혜삼매와 대자대비와 3념처에 머무는 일을 구족하였으므로 부처님이라 합니다. 아침에 우리집에 오시게 되었으므로 바쁘게 서두르느라 서로 쳐다볼 겨를도 없습니다.’
수달다는 이렇게 물었다.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보살[大士]의 말과 같이 부처님의 공덕이 그지없사온데, 지금 어디 계십니까?’
장자가 대답했다.
‘이 왕사성의 가란타 죽림정사(竹林精舍)에 계십니다.’
수달다는 일심으로 부처님의 공덕이신 10력, 4무소외, 5지혜삼매, 대자대비 및 3념처를 생각하였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니, 그 밝기가 대낮과 같았다. 밝은 빛을 따라서 성문까지 이르니 부처님의 신력으로 성문이 저절로 열리고, 문 밖으로 나가니 천인을 위하는 사당이 길 곁에 있었다. 수달다가 지나다가 공경하여 예배하였더니 밤은 다시 캄캄하여졌다. 무서운 생각이 나서 있던 데로 다시 돌아오려 하였더니, 그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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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어떤 천신이 있다가 수달다에게 말했다.
‘당신이 만일 부처님 계신 데 가면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오.’
수달다가 ‘어떤 것이 좋은 이익이냐’ 하고 묻자 천신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장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좋은 보배로 장식한 준마(駿馬)가 백 필, 향상(香象)이 백 마리, 보배 수레가 백 대, 금으로 만든 사람 백 명과 몸에 영락을 차고 있는 단정한 여인과, 여러 가지 보배로 잘 꾸민 훌륭한 궁전과 여러 가지 무늬를 아로새긴 전당과 금쟁반에는 은쌀을 담고 은쟁반에는 금쌀을 담은 것들을 각각 일백으로써 한 사람에게 보시하며, 이렇게 염부제에 있는 사람에게 모두 보시하여 얻는 공덕도 어떤 사람이 부처님 계신 데 한 걸음만 나아가려는 마음을 낸 공덕에 미치지 못합니다.’
수달다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냐?’
천신이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나는 승상(勝相) 바라문의 아들로서 당신의 옛날 선지식이오. 나는 예전에 사리불과 대목건련을 보고 환희한 마음을 낸 인연으로 몸을 버리고 북방천왕 비사문의 아들이 되어 이 왕사성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오. 나는 사리불과 목건련에게 예배하고 환희심을 낸 인연으로도 이렇게 훌륭한 몸을 얻었거늘, 하물며 부처님을 뵈옵고 예배하고 공양한 과보겠습니까?’
수달다 장자는 이 말을 듣고는 곧 걸음을 돌려서 나에게 왔느니라. 와서는 머리를 조아려 나의 발에 예배하기에 나는 그에게 알맞게 법을 말하였더니, 장자는 법을 듣고 수다원과를 얻었으며, 그리고는 다시 나에게 청하였다.
‘대자대비하신 여래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굽어살피사 사위성에 왕림하시어 저의 변변치 못한 공양이나마 받으시옵소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의 사위성에는 우리가 묵을 만한 절이 있느냐?’
수달다가 대답하였다.
‘부처님께서 저를 가엾히 여겨 왕림하신다면, 힘을 다하여 절을 새로 짓겠나이다.’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잠자코 청함을 받았다. 수달다 장자는 허락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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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나에게 말하기를 ‘저는 한 번도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하였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사리불을 보내시어 규모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하였다. 나는 곧 사리불에게 가서 감독하라 하였더니, 사리불은 수달다와 함께 수레를 타고 사위성으로 떠나서, 나의 신력으로 밤낮 하루 동안에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 때에 수달다는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시여, 이 성밖에 어느 곳에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으면서 샘과 못이 많고, 훌륭한 숲과 꽃과 과일이 무성하고 한적하고 깨끗한 데가 있습니까? 나는 거기에 부처님 세존과 비구스님들을 위하여 절을 짓겠나이다.’
사리불은 이렇게 말하였다.
‘기타숲 동산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고 깨끗하고 고요하며, 샘도 시내도 많고 수목이 우거지며 꽃과 과일이 때를 따라 열리니, 거기가 절을 짓기에 가장 적당합니다.’
수달다는 그 말을 듣고는 그길로 기타 장자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내가 지금 위없는 법왕을 위하여 절을 지으려 하는데, 그대의 동산이 절터로 적당하기에 사려 하니, 허락하실 수 있겠소?’
기타가 대답하였다.
‘설사 진금을 그 땅에 가득히 깔아 놓는대도 팔 수 없습니다.’
수달다가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기타여, 숲 동산은 내것이 되었으니 그대는 금이나 받으시오.’
기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동산을 팔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금을 받겠는가?’
수달다가 말했다.
‘뜻에 맞지 않거든 나와 함께 재판관에게 가서 말합시다.’
두 장자는 함께 재판관에게 갔더니, 재판관은 이렇게 말했다.
‘숲 동산은 수달다가 차지하고 기타는 금을 받으라.’
수달다는 사람을 시켜 말과 차에 금을 실어오게 하여, 오는 대로 땅에 깔았는데 하루 동안에 5백 보밖에 금이 채 깔리지 못하였다. 기타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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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여, 만일 후회하거든 그만두어도 좋소.’
수달다가 대답하였다.
‘나는 조금도 후회하지 아니하오. 생각건대 몇 광의 금만 더 가져오면 넉넉할 것이오.’
기타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여래이신 법왕은 진실로 위가 없으시고, 말씀하는 법문은 청정하여 티가 없는가 보다. 이 사람이 그렇기에 보배를 아끼지 않는구나.’
그리고 즉시 수달다에게 말하였다.
‘아직 깔지 못한 것은 그만두시오. 그대로 당신에게 주겠소. 그리고 나는 문루를 지어서 여래께서 출입하시도록 하겠소.’
그래서 기타 장자는 문을 짓고, 수달다 장자는 이레 동안에 3백 간의 큰 집을 지었는데, 조용한 선방이 63개요, 겨울에 머무는 방과 여름에 쓰는 방이 각각 다르고, 부엌과 욕실과 발씻는 데와 대·소변 보는 곳을 모두 구비하였다. 절 짓는 역사를 마치고는 곧 향로를 받들고 멀리 왕사성을 향하여 말하였다.
‘지을 것을 모두 마치었사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사 이 절을 받으시옵소서.’
나는 그 때에 장자의 마음을 알고, 대중을 데리고 왕사성을 떠나서 장사가 팔 한 번 굽힐 동안에 사위성의 기타숲 동산 수달다의 절에 이르렀더니, 수달다 장자는 그 절을 나에게 보시하고, 나는 그것을 받아 그 가운데 머물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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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8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 ④

“이 때에 6사는 질투하는 마음으로 바사닉왕에게 몰려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왕의 나라는 깨끗하고 고요하여 출가한 이가 있을 만한 곳이옵기에 우리들이 모여왔나이다. 대왕께서 바른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들의 근심을 없게 하는데, 사문 구담은 나이도 어리고 공부한 날짜도 얼마 안 되며 도술도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 먼저부터 있는 장로 대덕들에게 왕족이라 자세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나이다. 만일 왕족이라면 이치가 백성을 다스려야 할 것이요, 출가하였으면 장로들께 공경하여야 할 것입니다. 대왕이여, 잘 들으십시오. 사문 구담은 진실로 왕족 중에서 나지 않았나이다. 그에게 만일 부모가 있다면 무슨 이유로 다른 이의 부모를 빼앗았겠나이까. 대왕이시여, 우리들의 경에 말하기를, 천년을 지내고는 한 요망한 허깨비가 날 것이라 하였으니, 사문 구담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문 구담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는 줄을 알 것입니다. 만일 부모가 있다면 어찌하여 모든 법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고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다 말하겠나이까. 요술로 중생을 속이는 것을 어리석은 자는 그대로 믿고 지혜 있는 이는 버리나이다.
대왕이시여, 임금은 천하의 부모라, 저울 같고 땅 같고, 바람 같고 불 같고 길 같고 강 같고 다리 같고 등불 같고 해 같고 달 같아서, 법대로 사리(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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理)를 판단하고 원수와 친한 이를 가리지 않는 줄 압니다. 사문 구담은 우리의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쫓아다니기를 그만두지 아니하나이다. 바라건대 대왕이시여, 우리가 그 사람으로 더불어 도력을 비교해 보는 것을 허락하소서. 그가 만일 우리를 이기면 우리가 그에게 소속될 것이요, 우리가 만일 그를 이기면 그가 마땅히 우리에게 소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사닉왕이 말하였다.
“대덕들이여, 그대들은 각각 행하는 법이 있고 머물러 있는 데도 제각기 다르지 않소. 내가 알기로는 여래 세존께서는 그대들에게 방해될 일이 없으리라 생각되오.”
6사들이 대답하였다.
‘어찌하여 방해가 없다 하오리까. 사문 구담이 환술하는 법으로 여러 사람들과 바라문들을 속이어서 모두 그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나이다. 대왕이 만일 우리에게 도력을 비교하도록 허락하시면, 대왕의 거룩할 명성(名聲)이 팔방에 퍼질 것이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나쁜 소문이 자자할 것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그대들이 여래의 도력과 위덕이 갸륵함을 알지 못하여 비교하려 하거니와, 만일 분명히 안다면 이길 수 없을 것이오.’
6사는 또 이렇게 하였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는 벌써 그의 요술에 걸렸습니까? 바라옵건대 대왕은 잘 살펴주시고 우리를 경솔하게 생각하지 마옵소서. 꾸며댄 빈말은 실지로 증험함만 못하나이다.’
왕이 좋다고 허락하니, 6사의 무리들은 환희하여 물러나왔다.
그 때에 바사닉왕은 화려하게 꾸민 수레를 타고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한편에 물러가 앉아서 나에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6사들이 여래께 도력을 비교하기를 요구하기에, 나는 요량하지 못하고 감히 허락하였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참으로 잘하셨습니다. 다만 이 나라 곳곳에 절을 많이 지으십시오. 왜냐 하면, 내가 만일 그들과 도력을 비교하면, 그들의 제자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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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화를 받고 돌아올 사람이 많을 터이니, 이곳만으로는 좁아서 수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6사들을 위하여 초하루부터 보름날까지 희유하게 큰 신통 변화를 나타내었느니라. 이 때에 한량없는 중생들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중생은 삼보에 대하여 신심을 내고 의심하지 않았으며, 6사의 무리들로 한량없는 사람이 잘못된 소견을 깨뜨리고 바른 법에 출가하였으며, 한량없는 중생은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게 되고, 한량없는 중생은 다라니와 모든 삼매문을 얻었고, 한량없는 중생들은 수다원과나 내지 아라한 과를 얻었느니라.
이 때에 6사들은 부끄러운 마음을 품고 서로 붙들고 바기다(婆枳多)성으로 가서, 그곳 백성들을 가르치어 사특한 법을 믿게 하며, 구담 사문은 헛된 일만 말한다고 선전하였다.
선남자여, 내가 그 때에 어머니를 위하여 도리천의 파리질다나무 아래서 안거하면서 법을 말하였더니, 그 때에 6사들은 매우 좋아서 구담의 환술도 이제는 없어졌다고 선전하며, 다시 한량없고 수없는 중생을 가르쳐 삿된 소견을 증장케 하였다. 이 때에 빈바사라왕과 바사닉왕과 사부중들은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이 염부제에 삿된 소견이 증장하여 저 중생들이 어두운 곳으로 가는 것이 매우 딱하옵니다. 원컨대 대덕께서 도리천에 올라가서 세존께 예배하고 우리의 말을 여쭈어 주십시오. 마치 송아지가 난 지 오래지 않아 어미의 젖을 먹지 못하면 죽을 것이 의심 없는 것과 같나니 우리들도 그러합니다. 바라옵건대, 여래께서는 중생을 가엾이 여기시어 이 세계에 돌아오시옵소서 하여지이다.’
목건련은 잠자코 허락하고는,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펼 동안에 천상에 올라가 세존 계신 데 이르러 여쭈었다.
‘염부제에 있는 사부대중이 여래를 갈망하여 법을 듣고자 하나이다. 빈바사라왕과 바사닉왕과 사부중들이 부처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이 염부제에 있는 중생들의 삿된 소견이 증장하여 어두운 곳으로 가게 되오며 매우 딱하옵니다. 마치 송아지가 난 지 오래지 않아 어미의 젖을 먹지 못하면 죽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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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없는 것과 같나이다. 우리도 그러하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중생을 위하시어 염부제로 도로 오시어지이다 합니다.’
나는 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너는 속히 염부제에 내려가서 여러 국왕과 사부중에게 말하여라. 앞으로 칠 일 후에 내려갈 터이니 6사들을 위하여 바기다성으로 갈 것이다.’
이레가 지나자 여래는 제석천왕·범천왕·마혜수라의 모든 천자와 수타회(首陀會)의 모든 천인들에게 앞뒤로 호위되어 바기다성에 내려와서 대사자후로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나의 법에만 사문과 바라문이 있으며, 모든 법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열반은 고요하여 모든 허물이 없는 것이다. 만일 다른 법에도 사문이 있고 바라문이 있으며 항상하고 내가 있고 열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그 때에 한량없고 그지없는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으며, 외도 6사들은 서로 말하기를 ‘만일 우리의 법에 참으로 사문과 바라문이 없다면, 어떻게 세간의 공양을 받겠는가’ 하면서, 서로 모여서 비사리성으로 가버렸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어느 때에 비사리성의 암라 숲 사이에 있었는데, 그 때에 암라 아씨가 내가 있는 줄을 알고 내가 있는 곳에 오려고 하였다. 나는 그 때에 비구들에게 말하기를 ‘생각이 머물 곳[念處]을 관찰하거나, 지혜를 닦되 닦는 것을 따라서 방일하지 말라. 어떤 것을 말하여 생각이 머물 곳을 관찰한다 하는가. 만일 비구가 속몸[內身]을 관찰하되 나와 내 것을 보지 아니하며, 바깥몸[外身]을 관찰하거나, 안팎몸[內外身]을 관찰하되 나와 내 것을 보지 아니하며, 받음[受]과 마음과 법을 관찰하는 것도 그와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생각이 머물 곳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는다 하는가. 만일 비구가 진실하게 고와 집과 멸과 도를 본다면, 이것을 말하여 비구가 지혜를 닦는다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마음이 방일하지 않다 하는가. 만일 비구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보시하여 버림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비구가 마음을 방일하지 않는다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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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이 때에 암라 아씨는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서 공경하기를 마치고는 한쪽에 앉았다.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암라 아씨에게 알맞게 법을 말하였더니, 암라녀가 듣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느니라.
이 때에 그 성중에 리차(梨車)의 아들 4백 사람이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면서 공경하기를 마치고 한쪽에 앉거늘, 나는 다시 리차들을 위하여 알맞게 법을 말하였다.
‘모든 선남자들아, 방일한 데는 다섯 가지 과보가 있으니, 하나는 재물을 마음대로 못 쓰고, 둘은 나쁜 이름이 밖으로 퍼지고, 셋은 가난한 이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넷은 사부중 보기를 좋아하지 않고, 다섯은 하늘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느니라. 선남자들아, 방일하지 아니한 인연으로는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내게 되나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려거든, 마땅히 방일하지 않는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방일하면 또 열세 가지 과보가 있나니, 무엇이 열셋인가. 하나는 세간에서 업을 짓기를 좋아하고, 둘은 쓸데없는 말 하기를 좋아하고, 셋은 오래오래 잠자기를 좋아하고, 넷은 세상 일을 말하기 좋아하고, 다섯은 항상 나쁜 동무를 친근하기 좋아하고, 여섯은 게으르며 느리고, 일곱은 다른 이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여덟은 비록 들었다가도 곧 잊어버리고, 아홉은 변방[邊地]에 있기를 좋아하고, 열은 여러 근(根)을 조복하지 못하고, 열하나는 음식에 만족함을 모르고, 열둘은 고요한 데를 좋아하지 않고, 열셋은 소견이 바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열셋이니라. 선남자여, 방일한 사람은 비록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친근하려 하여도 짐짓 멀어지느니라.’
리차의 아들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들은 방일한 사람인 줄을 스스로 아나이다. 왜냐 하면 우리가 만일 방일하지 않았으면, 여래 법왕께서 우리 나라에 나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회중에 바라문이 있으니 이름이 무승(無勝)이라, 리차들에게 말하였다.
‘좋은 말이오. 그대들의 말과 같으면, 빈바사라왕이 큰 이익을 얻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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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 여래께서 그 나라에 나셨으니까. 마치 큰 못에 연꽃이 났다면, 비록 물 속에 있어도 물이 더럽히지 못하는 것과 같소. 리차들이여,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그 나라에 났더라도 세상 법에 거리끼지 않습니다. 부처님 세존은 나오는 일도 없고 들어가는 일도 없지만 중생을 위하는 연고로 세상에 나면서도, 세상 법에 장애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아득하여 5욕락에 빠져 미혹하고, 부처님 계신 데는 갈 줄을 모르므로 방일한 사람이라 하는 것이요,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 나셨다 해서 그대들을 방일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세존은 해와 달과 같아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위하여 세상에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여러 리차들은 이 말을 듣고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고, 또 이렇게 말하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무승 동자여, 이렇게 훌륭한 말을 통쾌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리차들은 제각기 입었던 옷을 벗어서 무승에게 보시하였고, 무승은 그 옷을 받아서 나에게 받들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나는 리차들에게 이 옷을 받았나이다. 바라옵건대 여래시여, 중생을 가엾이 여기사 저의 받드는 것을 받으시옵소서.’
나는 무승을 가엾이 여겨 받았다. 이 때에 리차들이 한꺼번에 합장하고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여래시여, 이 땅에 얼마 동안 안거하시면서 우리의 변변치 못한 공양이나마 받아 주시옵소서.’
나는 잠자코 리차들의 청을 받았다.
이 때에 6사들은 이 소문을 듣고 스승과 무리들이 서로 따라서 바라나성으로 갔고, 나는 다시 바라나에 나아가 바라나 강가에 머물렀다. 그 때에 바라나에 보칭(寶稱)이라 하는 장자의 아들이 있었다. 그는 5욕에 빠져서 무상함을 모르고 지냈는데, 내가 그곳에 간 인연으로 자연히 백골관(白骨觀)을 얻고는, 그 집에 있는 사람들과 채녀들을 보니 모두 백골로 보였다. 무서운 마음이 생겨서 칼과 같고 독사와 같고 도둑과 같고 불과 같이 여겨져 그 집을 뛰어나와 나에게로 오면서 길에서부터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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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이여, 저는 지금 도둑에게 쫓기듯이 몹시 두렵기만 하오니, 바라건대 구제하여 주옵소서.’
나는 말하였다.
‘선남자여, 부처님과 법과 승가는 편안하여 두려움이 없느니라.’
장자의 아들이 ‘삼보 중에 두려움이 없다면, 저도 이제 두려움 없음을 얻으려 하나이다’ 하기에, 나는 그의 출가를 허락하여 도를 닦게 하였다. 장자의 아들에게 50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보칭이 세상을 여의고 출가하였다는 말을 듣고, 서로 화합하여 함께 출가하였느니라.
6사들은 이 말을 듣고 다시 첨파성으로 갔다. 이 때에 첨파국 사람들은 6사의 무리를 섬기고, 삼보의 이름은 듣지도 못하였고, 여러 사람들은 대단히 나쁜 업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때에 중생을 위하여서 첨파성으로 갔느니라. 그 성중에 한 장자가 있는데, 자손이 없어서 6사를 공양하여 받들면서 아들 낳기를 구하였다. 오래지 아니하여 그의 아내가 아기를 배었다. 장자가 그 사실을 알고 6사에게 가서 기뻐하면서, ‘나의 아내가 아기를 배었는데 아들입니까, 딸입니까’ 하고 물었다. 6사가 ‘반드시 딸을 낳을 것이라’고 대답하니, 장자는 그 말을 듣고 수심에 잠기었다. 어떤 친구가 장자에게 와서 ‘무슨 일로 그렇게 수심하느냐’고 물었다.
장자는 대답하였다.
‘아내가 잉태하였기에 아들인지 딸인지 몰라서 6사에게 물었더니, 6사의 말이 내가 보는 관상법으로는 딸을 낳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말을 듣고 생각하니, 나는 이제 나이 늙었고 재물은 많은데, 아들을 낳지 못하면 누구에게 전하겠는가, 그래서 수심하노라.’
친구는 다시 말하였다.
‘자네는 지혜도 없네. 왜 듣지 못하였는가. 우루빈나가섭 형제는 누구의 제자였던가. 부처님인가, 6사인가? 6사가 만일 일체지(一切智)를 가졌다면, 가섭이 어찌하여 6사를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겠는가. 또 사리불과 목건련이나 임금인 빈바사라 왕들이나 왕의 부인인 말리 부인들이나 장자인 수달다들이나 이런 여러분들이 모두 부처님의 제자가 아닌가. 광야의 귀신[曠野鬼神]과 아사세왕과 재물을 지키는 취한 코끼리[護財醉象]나 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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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 등 욕심이 많아서 어미를 죽이려던 것들을 모두 여래께서 조복한 것이 아닌가. 장자여, 여래는 온갖 법에 지견이 걸림이 없으므로 부처님이라 하고, 말씀함이 두 가지가 아니므로 여래라 하고, 번뇌를 끊으셨으므로 아라하(阿羅訶)라 하는 것이네. 세존의 말씀은 두 가지가 없으시나 6사는 그렇지 못하거늘 어떻게 믿겠는가. 여래께서 지금 가까이 계시니, 진실하게 알려거든 부처님께 가 물으시게.’
그래서 장자는 그 사람과 함께 나에게 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합장하고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이렇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 원수거나 친한 이나 한결같사오나 저는 애정에 얽히어서 원수와 친한 이가 다르지 않을 수 없나이다. 부처님께 세상일을 물으려 하오나, 황송하고 부끄러워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내가 아기를 가졌는데, 6사들이 상을 보고는 딸을 낳으리라 합니다. 어떠하겠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장자여, 그대의 아내가 아기를 배었으니 아들을 낳을 것이 의심 없고, 그 아들이 나면 복덕이 그지없으리라.’
그 때에 장자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집으로 갔느니라. 육사들은 내가 예언하기를 ‘아들을 낳을 것이고 아기의 복덕이 그지없으리라’ 하였단 말을 듣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고는, 암라 과실에 독약을 넣어 가지고 그 집에 가서 장자에게 말하였다.
“통쾌한 일이오. 구담은 예언을 잘 하였소. 그대의 부인이 만삭이 되었으니 이 약을 쓰시오. 이 약을 먹으면 아기도 단정하고 산모도 탈이 없을 것이오.”
장자가 기뻐서 그 약을 받아 아내에게 주었더니 먹고는 곧 죽었다. 6사는 기뻐서 온 성내를 다니면서 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사문 구담은 저 장자의 아내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 아기의 복덕은 천하에 짝할 이 없다고 예언하더니, 이제 아기도 낳기 전에 산모가 죽었도다.’
그 때에 장자는 나의 말은 믿지 아니하고, 세상법대로 염습하여 관에 넣어 가지고 성밖에 나가서 장작을 쌓아 불을 질렀다. 나는 도안(道眼)으로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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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고 아난에게 명하기를 ‘나의 옷을 가져 오너라. 나는 저기 가서 삿된 소견을 부수리라’ 하였다.
그 때에 비사문천왕은 마니발타(摩尼跋陀) 대장에게 말하였다.
‘여래께서 지금 무덤들 있는 데로 가려 하시니, 그대는 빨리 가서 깨끗이 쓸고 사자좌를 놓고 좋은 꽃들을 구하여 훌륭하게 장엄하라.’
그 때에 6사들이 멀리서 내가 가는 것을 보고 서로 빈정대기를 ‘구담이 무덤 있는 데로 가니 고기나 한 점 먹으려는가’ 하였다. 이 때에 법안(法眼)을 얻지 못한 우바새들은 두려운 생각을 품고 내게 말하기를 ‘저 여인이 이미 죽었사오니 가실 것 없나이다’ 하였다. 그 때에 아난은 여러 사람에게 ‘잠깐만 기다리시오, 여래께서 곧 부처님의 경계를 열어 보일 것이오’ 하였다. 내가 무덤 곁에 가서 사자좌에 앉으니, 장자는 이렇게 힐난했다.
‘두 가지 말이 없어야 세존이라 할 터인데, 어미가 죽었으니 아들을 어떻게 낳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장자여, 그대는 그 때에 산모의 명이 길고 짧음은 묻지 아니하고, 뱃속에 든 아기가 아들인가, 딸인가만 물었느니라. 부처님 여래는 두 말 하는 일이 없으니 결정코 아들이 생길 줄을 알라.’
이 때에 송장이 불에 타서 배가 터지면서 아들이 나와서 불 속에 단정하게 앉았는 것이 마치 연꽃 위에 원앙이 노는 듯 하였다. 6사가 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사한 구담이여, 요술을 잘도 부리는구나.’
장자가 그것을 보고는 마음이 기뻐서 6사를 꾸짖었다.
‘만일 요술이라면 그대들은 어찌하여 부리지 못하오?’
나는 기바에게 말하여 불 속에 들어가서 아기를 안아 오라 하였더니, 기바가 가려는 것을 6사가 붙들고 이렇게 말했다.
‘구담 사문이 만든 환술이 오래갈 수 없을 것이오. 만일에 오래가지 못하면 반드시 타서 없어질 것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 말을 믿는가?’
기바가 대답하였다.
‘여래께서 설사 아비지옥에 들어가라고 시킨다면 지옥의 맹렬한 불에도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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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을 것인데 세간의 불이 어떻게 태우겠는가.’
기바는 앞으로 나아가 불더미 속에 들어가기를 시원한 물 속에 들어가듯 하여서 아기를 안고 도로 나와서 나에게 아기를 주었다. 나는 아기를 받아 안고 장자에게 말하였다.
‘모든 중생들의 목숨이 일정치 아니하여 물 위에 뜬 거품 같거니와 중생이 만일 중대한 과보가 있으면 불도 태우지 못하고 독약도 해하지 못하나니 이는 이 아이의 업보요, 나의 지음이 아니니라.’
이 때에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잘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이 아이가 만일 천명으로 오래 살겠사오면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옵소서.’
내가 말하였다.
‘장자여, 이 아이는 맹렬한 불 속에서 나왔고 불은 수제(樹提)라 하는 것이니 수제라고 이름하라.’
이 때에 모인 사람들이 나의 신통 변화를 보고, 한량없는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었느니라.
이리하여 6사들은 여섯 성으로 돌아다니어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부끄러워 머리를 숙이고 구시나성으로 다시 왔다. 여기 와서는 이렇게 선전하였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아시오. 구담 사문은 큰 환술쟁이요. 천하 사람들을 속이면서 여섯 성으로 돌아다녔소. 마치 환술쟁이가 환술로 거병(事兵)과 보병을 만들고, 또 여러 가지 영락과 성곽과 궁전과 강과 숲을 환술로 만들 듯이, 그도 그와 같아서 왕의 몸을 환술로 만들고, 법을 말하기 위하여서 혹은 사문의 몸·바라문의 몸을 만들고, 혹은 남자의 몸·여자의 몸·작은 몸·큰 몸도 되며, 혹은 축생의 몸·귀신의 몸도 되며, 혹은 무상하다 말하고 혹은 항상하다 말하며, 어떤 때는 괴롭다 말하고 어떤 때는 즐겁다 말하고, 혹은 내가 있다 말하고 혹은 내가 없다 말하고, 혹은 깨끗하다 혹은 깨끗하지 않다, 혹은 있다 혹은 없다 말하여 하는 짓이 허망하므로 환술이라 하는 것이오. 씨를 심으면 씨를 따라서 열매를 얻나니, 구담도 그와 같아서 마야가 낳았는데 어머니가 이미 환술이거니, 아들이 어찌 환술이 아니겠는가. 사문 구담은 진실한 지견이 없소. 여러 바라문들은 10년 20년을 지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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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고 계율을 가지어도 진실한 지견이 없다 하거늘, 하물며 구담은 나이 젊고 학식이 옅으며 고행을 닦지 못하였거늘 어떻게 진실한 지견이 있겠는가. 설사 7년 동안 고행을 채웠어도 지견이 많지 못할 터인데, 하물며 닦은 고행이 6년도 차지 못함에랴. 어리석은 사람들이 지혜가 없어서 그의 가르침을 믿거니와, 마치 환술쟁이가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는 것과 같이 사문 구담도 이와 같소이다.’
선남자여, 이렇게 6사들이 이 성중에서 중생들로 하여금 사견을 증장케 하기에, 내가 이것을 보고 딱한 마음을 내어, 신력으로 시방의 대보살을 부르니, 구름처럼 이 숲으로 모여 와서 40유순에 가득하였으므로, 지금 여기서 크게 사자후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아무도 없는 데서는 아무리 말을 많이 하여도 큰 사자후라고 말할 수 없거니와, 지혜가 많은 대중 가운데서 큰 소리를 하여야 대사자후라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라 함은 모든 법이 다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고 부정한 것이요, 여래만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그 때에 6사들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구담이 내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도 내가 있나니, 나라고 하는 것은 보는 것을 나라고 이름합니다. 구담이여, 마치 어떤 사람이 창문 안[向中]에서 물건을 보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러하니, 창문은 눈에 비유하고 보는 것은 나에게 비유함이오.’
나는 6사에게 말하였다.
‘만일 보는 것을 나라 한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대들이 비유하기를 창문을 인하여 본다고 하거니와, 사람이 한 창문에 있을 적에 6근(根)이 한꺼번에 작용하기 때문이니라. 결정코 내가 있어서 눈을 인하여 본다고 한다면, 어찌하여 저것과 같이 하나의 근 중에서 여러 경계[塵]를 한꺼번에 깨닫지 못하느냐. 만일 하나의 근 중에서 한꺼번에 여섯 경계를 깨닫지 못한다면, 내가 없는 줄을 알 것이다. 그대들이 말한 창문의 비유는 백년을 지나더라도 보는 사람이 창문 인하면 보는 바가 다르지 아니하니라. 눈이 만일 그렇다면, 나이 늙어 근이 쇠약해져도 다름이 없어야 할 것이다. 사람과 창이 다르므로 안도 밖도 보나니, 눈도 만일 그렇다면 안과 밖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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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번에 모두 보아야 할 것이며, 만일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내가 있다 하겠는가.’
6사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보겠습니까?’
나는 말하였다.
‘빛이 있고 밝음이 있고 마음이 있고 눈이 있어서, 이 넷이 화합하는 것을 본다고 이름하거니와, 이 가운데는 참으로 보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이 없건만, 중생들이 뒤바뀌어서 보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과 있다고 말하나니, 이런 이치로 모든 중생들은 보는 바가 뒤바뀌었고, 부처님과 보살은 보는 바가 진실하다 하느니, 6사여, 만일 색(色)이 나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옳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색은 진실로 내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색이 만일 나라고 하면, 누추한 얼굴도 있을 수 없겠거늘, 무슨 까닭으로 다시 4성(姓)의 차별이 생기고 한결같이 바라문이 되지 못하는가. 무슨 까닭으로 다른 이에게 부속되어 자재하지 못하며 여러 근이 결함이 생겨 구족하지 못한 이가 있는가. 무슨 까닭으로 천인의 몸을 받지 못하고 지옥이나 축생이나 아귀의 몸을 받는가. 만일 나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을진댄 결정코 내가 없음을 알 것이니라. 내가 없으므로 무상하다 이름하고 무상하므로 괴롭다 하고, 괴로우므로 공하다 하고, 공하므로 뒤바뀌었다 하며, 뒤바뀌었으므로 모든 중생이 생사에서 헤매나니,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도 이와 같으니라.
6사여, 여래 세존은 색의 속박에서부터 내지 식의 속박을 아주 끊었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이름하니라. 또 색이란 것은 곧 인연이니, 인연이라면 내가 없다 할 것이요, 내가 없다면 괴롭고 공하다 하려니와 여래의 몸은 인연이 아니니, 인연이 아니므로 내가 있다 하며, 내가 있다면 곧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한 것이니라.’
6사는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색도 내가 아니고 내지 식도 내가 아니니, 나란 것은 온갖 곳에 두루함이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나는 말하였다.
‘만일 두루하여 있다면, 내가 처음에는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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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만일 처음에는 보지 못하였다 하면, 이 보는 견(見)이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요, 만일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다면, 이것은 무상한 것이라 이름하리니, 만일 무상하다면 어떻게 두루하였다 말하겠는가. 만일 두루하여 있다면 5도(道) 가운데에 모두 내 몸이 있을 것이요, 만일 몸이 있다면 반드시 각각 보를 받을 것이며, 만일 각각 보를 받는다면, 어떻게 번갈아 인간과 천상의 몸을 받는다 말하겠는가.
또 그대들이 두루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란 말이냐 여럿이란 말이냐. 내가 만일 하나라면 아비와 아들과 원수와 친한 이와 중간 사람이 없을 것이며, 내가 만일 여럿이라면, 모든 중생의 가진 5근이 모두 평등할 것이며, 업과 지혜도 역시 그러할 것이니라. 만일 그렇다면 어떻게 근을 구족한 이와 구족하지 못한 이가 있다 하며, 선한 업과 나쁜 업과 어리석음과 지혜로운 차별이 있다 하겠는가.’
‘구담이여, 중생의 나란 것은 끝간 데가 없거니와, 법답고 법답지 않은 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중생이 법다운 것을 닦으면 좋은 몸을 얻고, 법답지 않은 것을 닦으면 나쁜 몸을 얻는 것이오니, 이런 이치로 중생의 업과 과보가 차별이 없지 않은 것이외다.’
내가 말하였다.
‘6사여, 법다운 것과 법답지 않은 것이 그와 같다면, 나라는 것은 두루하지 못할 것이요, 만일 두루하였다면 반드시 어디나 다 이르렀을 것이며, 만일 다 이르렀다면 선을 닦은 사람에게도 악이 있을 것이요, 악을 행한 사람에게도 선이 있을 것이니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두루하였다고 말하겠는가.’
‘구담이여, 마치 하나의 방 안에 백천 개의 등을 켜면, 제각기 밝게 비치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 것같이, 중생의 나란 것도 그와 같아서 선을 닦고 악을 행함이 서로 섞이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나라는 것이 등과 같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 하면 저 등의 밝은 빛은 인연을 따라서 있는 것이므로, 등이 많아지면 밝은 빛도 더 밝아지거니와 중생의 나라는 것은 그와 같지 아니하기 때문이니라. 밝음은 등으로부터 나와서 다른 곳에 머물러 있거니와, 중생의 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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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그와 같이 몸으로부터 나와서 다른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니라. 등불의 광명은 어둠과 함께 있나니, 왜냐 하면 어두운 방에서 등불 하나를 켰을 적에는 비치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다가도 여러 개의 등불을 켰을 적에는 분명하게 되기 때문이니라. 만일 처음의 등불이 어둠을 아주 깨뜨렸으면, 뒤의 등불이 필요치 않을 것이요, 뒤의 등불이 필요하다면 처음의 밝은 것은 어둠과 함께 있었던 줄을 알 것이니라.’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선과 악을 지으오리까?’
나는 대답하였다.
‘만일 내가 짓는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이름하며, 만일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어떤 때는 선을 짓고 어떤 때는 악을 짓겠는가. 만일 어떤 때에 선을 짓고 악을 짓는다면 어떻게 내가 가없다[無邊]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짓는다면, 무슨 까닭으로 다시 악한 법을 익히겠는가. 만일 내가 짓는 자요 아는 자라면, 어찌하여 중생은 내가 없다는 의심을 내겠는가. 이런 뜻으로 외도의 법에는 결정코 내가 없는 것이요, 만일 내가 있다고 말하면 이는 곧 여래니라. 왜냐 하면 몸이 가없는 까닭이며, 의심이 없는 까닭이니, 짓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므로 항상하다 이름하고,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므로 즐겁다 하고, 번뇌의 때가 없으므로 깨끗하다 하고, 열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공하다 하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항상 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고 공하여 온갖 모양이 없느니라.’
외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여래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고 모양이 없으므로 공하다면, 구담의 말하시는 법은 공한 것이 아님을 알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정수리에 얹어 받아 지녀야 하리라.’
이 때에 수없는 외도들이 여래의 법에 신심으로 출가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인연으로 내가 이 쌍으로 선 사라나무에서 크게 사자후하는 것이니, 사자후라 함은 대반열반을 일컫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동방의 쌍수는 무상을 깨뜨리고 항상함을 얻는 것이며, 내지 북방의 쌍수는 부정을 깨뜨리고 깨끗함을 얻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 가운데 중생들이 쌍으로 선 나무를 위하여서 사라숲을 수호하며, 다른 이가 그 가지와 잎까지도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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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하게 하며, 찍거나 파괴하지도 못하게 하느니라. 나도 그와 같아서, 네 가지 법을 위하여서 제자들로 하여금 부처의 법을 수호하라 하나니,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니라. 이 네 개의 쌍수는 사천왕이 맡은 것이니, 나는 사천왕으로 하여금 나의 법을 수호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속에서 열반에 드느니라.
선남자여, 쌍으로 선 사라나무에는 꽃과 열매가 항상 무성하여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케 하나니, 나도 그와 같아서 성문과 연각을 항상 이익케 하느니라. 꽃은 나에 비유하고, 열매는 즐거움에 비유한 것이니, 이런 뜻으로 나는 이 쌍으로 선 사라나무 사이에서 크고 고요한 정에 드는 것이나, 크고 고요한 정을 대열반이라 이름하니라.”
사자후는 이렇게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무슨 연고로 2월에 열반하시나이까?”
“선남자여, 2월은 봄이다. 봄에는 만물이 자라나고, 가지가지 화초와 나무를 심고, 꽃이 피고 열매 맺고, 강물이 많아지고 온갖 짐승들이 새끼를 치는 때이므로, 이 때에는 중생들이 흔히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중생들의 이러한 항상하다는 생각을 깨뜨리기 위하여, 온갖 법은 모두 무상하고, 여래만이 항상 있어서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여섯 철 중에 초겨울은 낙엽이 지고 쓸쓸하여 사람들이 즐거워하지 아니하고, 봄철은 따뜻하고 화창하여 사람들이 사랑하나니, 중생의 세간 낙을 깨뜨리기 위하여 항상하고 즐거움을 연설하는 것이며, 나이고 깨끗한 것도 그와 같나니, 여래는 세간의 나와 세간의 깨끗함을 깨뜨리기 위하여, 여래의 참된 나와 참되게 깨끗함을 연설하느니라.
2월은 여래의 두 가지 법신에 비유하였으며, 겨울이 즐겁지 않다 함은, 지혜 있는 이는 여래가 무상하게 열반에 드심을 즐겨 하지 아니함이요, 2월이 즐겁다는 것은, 지혜 있는 이는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사랑함에 비유하였고, 초목을 심는 것은 중생들이 법을 듣고 환희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마음을 내어 선근을 심는 데 비유하였고, 강물은 시방의 보살들이 나에게 와서 이러한 대반열반을 물어 배우는 데 비유하였고, 온갖 짐승들이 새끼를 치는 것은 나의 제자들이 선근을 내는 데 비유하였고, 꽃은 7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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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에 비유하고, 열매는 4과(果)에 비유하였나니, 이런 뜻으로 나는 2월에 열반에 드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여래께서 처음 나실 때와 출가할 때와 성도(成道)할 때와 미묘한 법수레를 운전하실 때를 모두 8일에 하셨는데, 어찌하여 열반에 드심은 15일에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잘 물은 말이다. 선남자여, 15일은 달이 이지러짐도 자라남도 없는 것이다. 그런 뜻으로 15일에 대반열반에 드느니라. 선남자여, 15일에 달이 둥글었을 적에는 열한 가지 일이 있으니, 무엇이 열한 가지인가. 하나는 어둠을 깨뜨리고, 둘은 중생들로 하여금 길인지 아닌지를 보게 하고, 셋은 중생들로 하여금 길이 굽었는지 똑바른지 보게 하고, 넷은 찌는 듯 답답함을 덜고 서늘한 낙을 얻게 하고, 다섯은 반딧불같이 교만한 마음[高心]을 깨뜨리고, 여섯은 모든 도둑질할 생각을 그만두게 하고, 일곱은 중생들의 사나운 짐승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고, 여덟은 우발라꽃을 피게 하고, 아홉은 연꽃을 오무리게 하고, 열은 집 떠나는 이의 길 가려는 마음을 내게 하고, 열하나는 중생들로 하여금 5욕락을 받아들여 쾌락케 하는 것이다.
선남자여, 여래의 보름달도 그와 같나니, 하나는 무명의 어둠을 깨뜨리고, 둘은 정도와 사도를 연설하고 셋은 생사는 험하고 열반은 평탄함을 보여 주고, 넷은 사람들로 하여금 탐·진·치의 뜨거움을 여의게 하고, 다섯은 외도의 광명을 깨뜨리고, 여섯은 번뇌의 도둑을 파괴하고, 일곱은 5개(蓋)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고, 여덟은 중생의 선근 심는 마음을 열어 주고, 아홉은 중생들의 5욕락 마음을 덮어주고, 열은 중생들의 대반열반으로 나아가려는 마음을 일으키고, 열하나는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즐기게 하느니라.
이런 뜻으로 15일에 대반열반에 들거니와, 나는 진실로 열반에 드는 것이 아니거늘, 나의 제자들 중에서 어리석은 사람들이 여래가 열반에 든다고 말하느니라. 마치 여러 아들을 둔 어떤 어머니가 아이들을 두고 다른 나라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을 적에, 그의 아이들이 어머니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실로는 어머니가 죽지 않은 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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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후보살이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비구들이 이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하겠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구절을 바로 알고 뜻을 통달하며, 남에게 해설하되 처음이나 중간이나 나중이 모두 잘하며, 한량없는 중생들을 이익하려고 범행을 연설하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잘 장엄하는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아난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아난 비구는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이에게 옳은 말과 바른 뜻을 해설하나이다. 마치 물을 부어 다른 그릇에 담듯이, 아난 비구도 그와 같아서 부처님께 법문을 듣고는 들은 대로 말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깨끗한 천안통을 얻어, 시방의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물건 보기를 손바닥에 있는 암마륵 열매를 보듯이 한다면, 이런 비구도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오면 아니루타(阿尼樓馱)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아니루타는 천안통으로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물건이나 중음신까지도 분명하게 보고 막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알며, 고요함을 좋아하여 정진함과 기억함과 선정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으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하는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러하오면 가섭 비구가 그 사람이겠사오니, 왜냐 하면 가섭 비구는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아는 법을 잘 닦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중생을 이익하기 위하여 다투지 않는 삼매[無諍三昧]와 성인의 행과 공한 행을 닦고 자기의 이양을 위하지 않으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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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수보리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수보리는 다툼이 없는 삼매와 성인의 행과 공한 행을 잘 닦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신통을 닦아서 잠깐 동안에 가지각색 신통 변화를 짓되, 한 마음 한 선정으로 물과 불의 두 가지 결과를 지으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목건련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목건련은 신통을 잘 닦아서 한량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큰 지혜, 이로운 지혜, 장엄한 지혜, 해탈한 지혜, 매우 깊은 지혜, 넓은 지혜, 끝없는 지혜, 이길 이 없는 지혜, 실다운 지혜, 이러한 지혜를 구족하게 성취하고서, 원수거나 친한 이거나 차별하는 마음이 없으며, 여래가 열반하여 무상하다는 말을 들어도 걱정하지 아니하고, 항상 머물러 있어 열반에 들지 않겠다는 말을 들어도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런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 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사리불 비구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사리불은 그러한 큰 지혜를 구족하게 성취하였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말하기를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어 금강 같은 몸을 얻으며, 그지없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며, 몸과 마음이 걸림이 없어 여덟 가지 자재함을 얻는다고 하면, 이러한 비구는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장엄할 것이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오직 여래가 그 사람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의 몸은 금강 같고, 그지없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오며, 몸과 마음에 걸림이 없어 여덟 가지 자재함을 구족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세존이라야 쌍으로 선 사라나무를 능히 장엄한 것이옵고, 세존이 아니시면 장엄할 수 없겠사오니, 바라옵건대 대자대비로 장엄하기 위하여 이 사라숲에 항상 머무시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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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온갖 법의 성품은 머무름이 없이 머무는 것이거늘, 그대는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바란다고 말하는가. 선남자여, 무릇 머문다 함은, 색법(色法)을 일컫는 것이니, 인연으로부터 생기므로 머문다 말하고, 인연이 없는 데서는 머무름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여래는 이미 모든 색의 속박을 여의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바란다 하느냐.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머문다고 함은 교만이라 하나니, 교만하기 때문에 해탈하지 못하고, 해탈하지 못하므로 머문다 말하거니와, 어떤 교만이 어디서 오겠는가.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이 머문다 하느니라. 여래는 온갖 교만을 아주 끊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원한다고 말하는가.
머문다 함은 함이 있는 법을 말하는 것인데, 여래는 이미 함이 있는 법을 끊었으므로 머물지 않느니라. 머문다 함은 공한 법을 말한 것인데, 여래는 이미 공한 법을 끊었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원한다고 말하는가. 머문다 함은 25유를 일컬은 것인데, 여래는 이미 25유를 끊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머물기를 원한다 하는가. 머문다 함은 곧 온갖 범부요, 성인들은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고 머무는 일도 없느니라. 여래는 이미 가고 오고 머무는 모양을 끊었거늘, 어찌하여 머물라고 말하는가.
무주(無住)라 함은 가없는 몸을 말함이니, 몸이 가없는데, 어떻게 여래가 사라숲에 머물기를 원한다고 말하는가. 만일 이 숲에 머문다면 그것은 가가 있는 몸이요, 만일 가가 있다면 그것은 무상이다. 여래는 항상하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무주라 함은 허공이라 말하나니, 여래의 성품은 허공과 같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금강삼매라 하나니, 금강삼매는 온갖 머무는 것을 파괴하며, 금강삼매는 곧 여래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환술이라 이름하나니, 여래는 환술과 같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처음과 나중이 없음을 이름하나니, 여래의 성품은 처음과 나중이 없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가없는 법계를 이름함이니, 가없는 법계는 곧 여래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수릉엄삼매를 이름함이니, 수릉엄삼매는 온갖 법을 알면서도 집착함이 없으며, 집착함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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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릉엄이라 이름하니라. 여래는 수릉엄삼매를 구족하였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옳고 그른 것을 가르는 힘을 말한다. 여래는 옳고 그른 것을 가르는 힘을 성취하였거늘, 어찌하여 머문다 말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단(檀)바라밀이니, 단바라밀이 만일 머무는 것이라면, 시(尸)바라밀이나 내지 반야바라밀에 이르지 못할지니, 이런 뜻으로 단바라밀을 무주라 이름하거니와, 여래는 내지 반야바라밀에도 머물지 않거늘, 어찌하여 여래가 항상 사라숲에 머물기를 원한다 하겠는가. 또 무주라 함은 4념처(念處)를 닦는다 이름하나니, 여래가 만일 4념처에 머문다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할 것이므로, 머물지 않으면서 머문다[不住住]고 이름하느니라. 또 무주라 함은 가없는 중생계라 이름하나니, 여래가 모든 중생의 가없는 경계에까지 이르지만, 머무는 바가 없느니라. 또 무주라 함은 집이 없다[無屋宅]고 이름하나니, 집이 없다는 것은 남이 없다[無生]고 이름하고, 남이 없다 함은 죽음이 없다고 이름하고, 죽음이 없다 함은 모양이 없다고 이름하고, 모양이 없다 함은 얽매임이 없다고 이름하고, 얽매임이 없다 함은 집착이 없다고 이름하고, 집착이 없다 함은 무루(無漏)라 이름하나니, 무루는 곧 선이요, 선은 곧 함이 없음[無爲]이요, 함이 없음은 대열반의 항상함이요, 대열반에 항상함은 곧 나요, 나는 곧 깨끗함이요, 깨끗함은 곧 즐거움이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은 곧 여래니라.
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동방·남방·서방·북방이나, 네 간방이나 위나 아래에 머물지 않나니, 여래도 그와 같아서 동방·남방·서방·북방이나 네 간방이나 위나 아래에 머물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악하면서 선한 과보를 받는다 하면 옳지 아니하며,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선하면서 악한 과보를 받는다 함도 옳지 아니하니라. 만일 말하기를 범부는 불성을 보고, 10주 보살은 불성을 보지 못한다 함도 옳지 아니하고, 일천제들이 5역죄를 범하고 방등경을 비방하고 4중금을 범하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함도 옳지 아니하며, 6주 보살이 번뇌의 인연으로 3악도에 떨어진다 함도 옳지 아니하니라. 보살마하살이 참말 여인의 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함도 옳지 아니하며, 일천제는 항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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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3보는 무상하다고 함도 옳지 아니하고, 여래가 구시나성에 머문다 함도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지금 이 구시나성에서 큰 삼매인 깊은 선정의 굴에 드는 것을 대중이 보지 못하므로 대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여래께서 무슨 연고로 선정의 굴에 드시나이까?”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려는 연고며, 선근을 심지 못한 이를 선근을 심게 하려는 연고며, 이미 선근을 심은 이를 증장케 하려는 연고며, 선한 과보가 성숙하지 못한 이를 성숙케 하려는 연고며, 이미 성숙한 이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게 하려는 연고며, 선한 법을 천히 여기는 이를 존중한 마음을 내게 하려는 연고며, 방일한 이들이 방일을 여의게 하려는 연고며, 문수사리 등 여러 대향상(大香象)들이 함께 논의하려는 연고며, 경을 읽고 외우기 좋아하는 이들을 교화하여 선정을 사랑케 하려는 연고며, 성인의 행과 범행과 천행(天行)으로 중생을 교화하려는 연고며, 함께하지 않는 깊은 법장을 관찰케 하려는 연고며, 방일한 제자들을 꾸짖되 ‘여래는 항상 고요하면서도 선정을 좋아하거늘, 하물며 너희들이 번뇌를 다하지 못하고 방일하겠느냐’ 하려는 연고며, 모든 나쁜 비구로서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고, 욕심이 적지 않아 만족함을 알지 못하는 이를 꾸짖으려는 연고며, 중생들로 하여금 들은 바 선정법을 존중히 여기게 하려는 연고니, 이런 인연으로 선정의 굴에 들어가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양이 없는 선정[無相定]은 대열반이라 이름하옵나니, 그러므로 열반을 모양이 없음이라 하거니와, 무슨 인연으로 모양이 없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열 가지 모양이 없는 연고니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빛깔 모양, 소리 모양, 향기 모양, 맛 모양, 닿이는 모양, 나는 모양, 머무는 모양, 망그러지는 모양, 사내 모양, 여자 모양이므로 모양이 없다고 이름하니라. 선남자여, 모양에 집착한 이는 어리석음을 내고, 어리석으므로 사랑을 내고, 사랑하므로 속박되고, 속박되므로 태어나게 되고, 태어나므로 죽게 되고, 죽으므로 무상하거니와,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면 어리석음을 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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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이 나지 않으므로 사랑이 없고, 사랑이 없으므로 속박이 없고 속박이 없으므로 태어나지 않고 태어나지 않으므로 죽는 일이 없고, 죽음이 없으므로 항상하다 하나니, 이런 뜻으로 열반을 항상하다 이름하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비구가 능히 열 가지 모양을 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때때로 세 가지 모양을 닦아 익히면, 열 가지 모양을 끊나니, 때때로 삼매의 선정 모양을 닦아 익히고, 때때로 지혜의 모양을 닦아 익히고, 때때로 버리는 모양[捨相]을 닦아 익히는 것을 세 가지 모양이라 하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선정의 모양, 지혜의 모양, 버리는 모양이라 이름하나이까? 선정이 삼매라면 모든 중생이 모두 삼매가 있거늘, 어찌하여 바야흐로 삼매를 닦는다 하오리까? 마음이 한 경계에 있는 것을 삼매라 하오면, 만일 다시 다른 반연이라면 삼매라 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선정이 아니면 온갖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가 아닐 것이요, 온갖 것을 아는 지혜가 아니라면 어떻게 선정이라 하오리까? 만일 한 가지 행으로 삼매를 얻는다면, 다른 행들은 삼매가 아닐 것이요, 삼매가 아니면 온갖 것을 아는 지혜가 아니리니, 만일 온갖 것을 아는 지혜가 아니라면, 어떻게 삼매라 이름하오리까? 지혜의 모양과 사(捨)의 모양도 그와 같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한 경계를 반연함을 삼매라 한다면, 다른 반연들은 삼매라 이름하지 못하리라 하는 것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다른 반연들도 한 경계인 까닭이니, 다른 행도 그와 같으니라. 또 말하기를, 중생이 먼저부터 삼매가 있으므로 닦을 필요가 없다 함도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삼매라고 말함은 선한 삼매를 말함이니, 모든 중생들은 참으로 가지지 못하였거늘, 어찌하여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하겠는가. 이러한 선한 삼매에 머물러서 온갖 법을 관찰하는 것을 선한 지혜의 모양이라 하고, 삼매의 모양과 지혜의 모양이 다른 줄로 보지 않는 것을, 버리는 모양[捨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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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만일 색의 모양[色相]을 취하고, 색의 항상하거나 무상한 모양을 관찰하지 아니하면 삼매라 이름하고, 만일 색의 항상하거나 무상한 모양을 관찰하면, 지혜라 이름하고 삼매와 지혜가 평등하게 온갖 법을 관찰하면 이것을 버리는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수레 멘 말을 잘 모는 사람은 빠르고 더딤이 알맞은 것같이, 빠르고 더딤이 알맞은 것을 버리는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도 그러하여 삼매가 많으면 지혜를 닦고, 지혜가 많으면 삼매를 닦으며, 삼매와 지혜가 평등하면 버리는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10주 보살은 지혜의 힘이 많고 삼매의 힘이 적으므로, 불성을 분명하게 보지 못하고, 성문과 연각은 삼매의 힘은 많고 지혜는 적으므로, 이를 인연하여 불성을 보지 못하고, 부처님 세존은 삼매와 지혜가 평등하므로 불성을 분명하게 보고 걸림이 없는 것이, 마치 손바닥에 있는 암마륵 열매같이 하나니, 불성을 보는 것을 버리는 모양이라 하느니라.
사마타(奢摩他)는 능히 없앤다[能滅] 이름하나니 온갖 번뇌를 없애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조복한다 이름하나니 모든 근의 악하고 선하지 못한 것을 조복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고요하다 이름하나니 3업을 고요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멀리 여읜다 이름하나니 중생으로 하여금 5욕락을 멀리 여의게 하는 연고며, 또 사마타는 능히 맑힌다 이름하나니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의 흐린 법을 맑히는 연고니라. 이런 뜻으로 선정의 모양[定相]이라 이름하느니라.
비바사나(毘婆舍那)는 바르게 본다[正見] 이름하며, 또 분명히 본다[了見] 이름하며, 또 능히 본다[能見] 이름하며, 두루 본다[遍見]·차례로 본다[次第見]·딴 모양으로 본다[別相見] 이름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느니라.
우필차(憂畢叉)는 평등이라 이름하며, 다투지 않는다[不諍] 이름하며, 관찰하지 않는다[不觀] 이름하며, 행하지 않는다[不行] 이름하나니, 이것을 사(捨)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사마타는 두 가지가 있으니 세간과 출세간이요,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성취와 성취하지 못함이니라. 성취는 부처님과 보살이요, 성취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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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함은 성문과 벽지불 등이니라. 또 세 가지가 있으니, 하와 중과 상이니라. 하는 범부들이요, 중은 성문과 연각이요, 상은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또 네 가지가 있으니, 물러가는 것과 머무는 것과 나아가는 것과 크게 이익하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가 있으니, 5지(智) 삼매라. 무엇이 다섯인가. 하나는 먹지 않는[無食] 삼매요, 둘은 허물없는[無過] 삼매요, 셋은 몸과 뜻이 청정한 일심(一心)삼매요, 넷은 인과 과가 모두 즐거운[因果俱樂] 삼매요, 다섯은 항상 생각하는[常念] 삼매니라. 또 여섯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백골을 관하는[觀骨] 삼매요, 둘은 인자한[慈] 삼매요, 셋은 20인연을 관하는 삼매요, 넷은 아나파나[數息觀] 삼매요, 다섯은 염각관(念覺觀) 삼매요, 여섯은 생멸을 관하는[觀生滅] 삼매니라.
또 일곱 가지가 있으니 곧 7각분(覺分)이니라. 하나는 염각분(念覺分)이요, 둘은 택법(擇法)각분이요, 셋은 정진(精進)각분이요, 넷은 희(喜)각분이요, 다섯은 제(除)각분이요, 여섯은 정(定)각분이요, 일곱은 사(捨)각분이니라. 다시 일곱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수다원삼매요, 둘은 사다함삼매요, 셋은 아나함삼매요, 넷은 아라한삼매요, 다섯은 벽지불삼매요, 여섯은 보살삼매요, 일곱은 여래각지(覺知)삼매니라. 또 여덟 가지가 있으니, 곧 8해탈삼매니라. 하나는 안에는 빛 모양이 있으면서 밖으로 빛을 관찰하여 해탈하는[內有色相外觀色解脫]삼매요, 둘은 안에는 빛 모양이 없으면서 밖으로 빛을 관찰하여[內無色相外觀色] 해탈하는 삼매요, 셋은 깨끗하게 해탈하여 몸으로 증험하는[淨解脫身證] 삼매요, 넷은 공처(空處)해탈삼매요, 다섯은 식처(識處)해탈삼매요, 여섯은 무소유처(無所有處)해탈삼매요, 일곱은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해탈삼매요, 여덟은 멸진정(滅盡定)해탈삼매니라.
또 아홉 가지가 있으니, 곧 9차제정(次第定)이니라. 4선(禪)과 4공(空)과 멸진정삼매니라. 또 열 가지가 있으니, 10일체처삼매니라. 무엇이 열인가. 하나는 지일체처(地一切處)삼매요, 둘은 수(水)일체처삼매요, 셋은 풍일체처삼매요, 넷은 청(靑)일체처삼매요, 다섯은 황(黃)일체처삼매요, 여섯은 적(赤)일체처삼매요, 일곱은 백(白)일체처삼매요, 여덟은 공(空)일체처삼매요, 아홉은 식(識)일체처삼매요, 열은 무소유(無所有)일체처삼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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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또 수없는 종류가 있으니, 이른바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삼매의 모양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세간이요, 둘은 출세간이니라. 또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반야요 둘은 비파사나요, 셋은 사나니라. 반야는 온갖 중생이라 이름하고 비파사나는 온갖 성인이요, 사나는 부처님과 보살이니라. 또 반야는 별상(別相)이라 하고, 비파사나는 총상(總相)이라 하고, 사나는 파상(破相)이라 하느니라. 또 네 가지가 있으니, 4진제(眞諦)를 관찰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 가지 일을 위하여서 사마타를 닦나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방일하지 않기 위함이요, 둘은 큰 지혜를 장엄하기 위함이요, 셋은 자재함을 얻기 위함이니라. 또 세 가지 일을 위하여서 비파사나를 닦나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나고 죽는 나쁜 과보를 관찰하려 함이요, 둘은 모든 선근을 증장하려 함이요 셋은 모든 번뇌를 깨뜨리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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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29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 ⑤

사자후보살이 다시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파사나(毗婆舍那)가 능히 번뇌를 깨뜨린다면, 어찌하여 다시 사마타(奢摩他)를 닦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그대가 말한 비파사나가 번뇌를 깨뜨린다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지혜가 있을 때에는 번뇌가 없고, 번뇌가 있을 때에는 지혜가 없는데, 어떻게 비파사나가 번뇌를 깨뜨린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밝을 적에는 어둠이 없고, 어두울 적에는 밝음이 없는 것과 같나니, 어떤 이가 말하기를 밝음이 능히 어둠을 깨뜨린다 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누구에게 지혜가 있고 누구에게 번뇌가 있어서, 지혜가 번뇌를 깨뜨린다고 말하는가. 만일 없다면 깨뜨릴 것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지혜가 번뇌를 깨뜨린다 하면, 이르러서 깨뜨리는가, 이르지 않고도 깨뜨리는가. 만일 이르지 않고 깨뜨린다면 범부 중생도 능히 깨뜨릴 것이며, 이르러서 깨뜨린다면, 첫 생각에 깨뜨릴 것이요. 만일 첫 생각에 깨뜨리지 못한다면, 뒷생각으로도 깨뜨리지 못한 것이니라. 만일 처음 이르러서 문득 깨뜨린다면, 이는 이르지 못함이거늘 어떻게 지혜가 깨뜨린다 말하겠는가. 만일 이르거나 이르지 못하거나 능히 깨뜨린다고 한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또 비파사나가 번뇌를 혼자서 깨뜨리는가, 동무가 있어서 깨뜨리는가.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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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 깨뜨린다면 무슨 연고로 보살이 8정도(正道)를 닦겠는가. 만일 동무가 있어서 깨뜨린다면, 혼자서는 깨뜨리지 못함을 알지니, 만일 혼자서 깨뜨리지 못하면 동무들도 깨뜨리지 못하리라. 마치 소경 한 명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여러 동무 소경도 보지 못하나니, 비파사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땅은 굳은 성품이요, 불은 뜨거운 성품이요, 물은 젖는 성품이요, 바람은 동하는 성품이거니와, 땅의 굳은 성품과 내지 바람의 동하는 성품이 인연으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요, 성품이 스스로 그런 것이니라. 4대의 성품과 같이 번뇌도 그러하여 성품이 스스로 끊는 것이니, 만일 성품이 끊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지혜가 끊는다 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비파사나가 결정코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소금의 성질이 짜므로 다른 물건을 짜게 하고, 꿀의 성질이 달므로 다른 물건을 달게 하고, 물의 성질이 젖으므로 다른 물건을 젖게 하듯이, 지혜의 성품이 멸한 것이므로 다른 법을 멸한다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법이 멸함이 없다면 어떻게 지혜가 억지로 멸하게 하겠는가. 만일 소금이 짜서 다른 물건을 짜게 하듯이, 지혜의 멸함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을 멸하게 한다면 그것도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지혜의 성품은 잠깐잠깐 멸해 가기 때문이니라. 만일 잠깐잠깐 멸한다면 어떻게 다른 법을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이런 뜻으로 지혜의 성품이 번뇌를 깨뜨리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이 두 가지 멸함이 있으니, 하나는 성품의 멸함이요, 둘은 필경까지 멸함이니라. 만일 성품이 멸한다면, 어찌하여 지혜가 능히 멸한다고 말하겠는가. 만일 지혜가 능히 번뇌를 멸함이 불이 물건을 태움과 같다고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불이 물건을 태움에는 남은 불똥이 있기 때문이니, 지혜도 그렇다면 남은 불똥이 있어야 하고, 도끼로 나무를 찍음에는 찍은 흔적을 볼 수 있나니, 지혜도 그렇다면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혜가 번뇌를 떠나게 한다면, 떠난 번뇌가 다른 곳에 나타날 것이니, 마치 외도들이 6대성에서 떠나서 구시나성에 나타남과 같을 것이며, 만일 번뇌가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혜가 번뇌를 떠나게 하지 못하는 줄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법의 성품이 스스로 공하다면, 누가 나게 하며 누가 멸하게 하겠는가. 남[生]이 다르고 멸함이 달라서 짓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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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선정을 닦으면 이러한 바른 지혜와 바른 소견을 얻느니라. 이런 뜻으로 나의 경에 말하기를 만일 비구가 선정을 닦으면 5음의 생멸하는 모양을 본다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선정을 닦지 않고는 세간의 일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출세간의 일이리요. 만일 선정의 힘이 없으면 평지에서 엎어지며, 마음으로 다른 법을 반연하고 입으로 다른 말을 이야기하고 귀로 다른 소리를 듣고 마음으로 다른 이치를 이해할 것이며, 다른 글자를 만들려고 하고 손으로 다른 글을 쓰며, 다른 길로 다니려고 몸이 딴 갈래에 가려니와, 만일 삼매의 선정을 닦는 이는 크게 이익하며, 내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구족하면 크게 이익하리니, 하나는 선정이요 둘은 지혜니라. 선남자여, 왕골을 벨 적에 급히 서두르면 끊어지는 것과 같나니,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굳게 박힌 나무를 뽑을 적에, 먼저 손으로 흔들면 뒤에 뽑기가 쉽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아서, 먼저 선정으로 흔들고 나중에 지혜로 뽑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때 묻은 옷을 빨 적에 먼저 잿물에 담그고 뒤에 맑은 물로 씻으면 옷이 깨끗하여지나니,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용맹한 사람이 먼저 갑옷으로 몸을 단속한 뒤에 진중에 나아가면 대적을 파하게 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공교로운 공장이 도가니에 금을 담고는 마음대로 저어서 녹이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밝은 거울로 얼굴을 비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먼저 땅을 고루고 뒤에 씨를 심으며, 먼저 스승에게 배우고 뒤에 뜻을 생각하듯이 보살의 선정과 지혜도 그와 같으니라. 이런 뜻으로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크게 이익케 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5근을 조섭하여 모든 괴롬을 견디나니, 이른바 기갈과 차고 더움과, 매맞고 욕설함과, 나쁜 짐승에게 물리는 일과, 모기 따위에 물리는 일들이니라. 항상 마음을 거두어들여 방일하지 못하게 하며, 이양을 위하여 법답지 못한 일을 행하지 아니하며, 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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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에 더럽히지 아니하고, 사특한 소견에 의혹되지 아니하며, 모든 나쁜 관념[覺觀]을 멀리 여의어, 오래지 않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니, 중생들을 성취시켜 이익케 하려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 두 가지 법을 닦으면, 네 가지 뒤바뀐 폭풍도 흔들지 못함이, 마치 수미산을 네 가지 바람으로도 동요하지 못하는 듯하며, 삿된 외도들에게 동요되지 아니함이, 마치 제석천왕의 짐대를 이전할 수 없는 듯하며, 여러 가지 요술로도 의혹하지 못하고 항상 미묘하고 제일가는 안락을 받으며, 여래의 깊고 비밀한 도리를 이해하여 낙을 받아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괴롬을 만나도 슬퍼하지 아니하며, 천상 사람 세상 사람들이 공경하고 찬탄하며, 생사와 생사 아닌 것을 분명하게 보고 법계와 법의 성품을 잘 알며, 몸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이 있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대반열반의 낙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정의 모양은 공삼매(空三昧)라 하고, 지혜의 모양은 무원(無願)삼매라 하고, 버리는[捨] 모양은 무상(無相)삼매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선정의 때와 지혜의 때와 버리는 때를 잘 알고 때 아닌 것도 알면, 이것을 말하여 보살마하살이 보리의 도를 행한다 하느니라.”
사자후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쾌락을 받는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법을 연설한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정근하노라 하여 교만을 내거나, 이치를 알고 문답을 잘한다 하여 교만을 내거나, 나쁜 동무를 가까이 하면서 교만을 내거나, 소중한 물건을 보시하면서 교만을 내거나, 세간의 선한 공덕을 짓노라 하여 교만을 내거나, 세상의 지위 높은 사람에게 공경을 받노라 하여 교만을 내게 되거든, 이 때에는 지혜를 닦지 말고 선정을 닦아야 할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부지런히 정진하면서도 이익한 열반의 낙을 얻지 못하거나, 얻지 못한 연고로 후회하는 마음을 내거나, 근성이 둔하여서 5근을 조복하지 못함은 모든 번뇌의 세력이 치성한 연고며, 계율이 이로울까 해로울까 의심하는 연고니, 이런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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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선정을 닦지 말고 지혜를 닦아야 할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의 두 가지가 평등하지 못할 때에는, 사(捨)를 닦지 않아야 할 줄을 알며, 두 가지가 평등하면 닦아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때와 때 아닌 것을 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닦다가 번뇌가 일어나면 그럴 적에는 사를 닦지 않아야 하고, 마땅히 12부경을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사함을 생각하여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함을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이렇게 세 가지 법을 닦으면, 이 인연으로 무상(無相)열반을 얻느니라.”
사자후가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열 가지 모양이 없는 연고로 대열반을 이름하여 무상(無相)이라 한다 하오면, 또 무슨 인연으로 남이 없다[無生], 냄이 없다[無出], 지음이 없다[無作], 집이다[屋宅], 섬이다[洲], 귀의할 데다, 편안하다, 멸도(滅度)다, 열반이다, 고요하다[寂靜], 병고가 없다[無諸病苦], 있는 것이 없다[無所有] 이름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선남자여, 인연이 없으므로 남이 없다 하고, 함이 없으므로 냄이 없다 하고, 짓는 일이 없으므로 지음이 없다 하고, 다섯 가지 소견에 들어가지 아니하므로 집이라 하고, 4폭류를 여의었으므로 섬이라 하고, 중생을 조복하므로 귀의할 데라 하고, 번뇌의 도적을 깨뜨렸으므로 편안하다 하고, 번뇌의 불이 꺼졌으므로 멸도라 하고, 각관(覺觀)을 여의었으므로 열반이라 하고, 시끄러운 것을 멀리하였으므로 고요하다 하고, 죽는 일을 아주 끊었으므로 병고가 없다 하고, 온갖 것이 없으므로 있는 것이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불성을 분명히 보게 되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법을 성취하면 이러한 무상열반과 내지 있는 것이 없음을 보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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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무상열반과 내지 있는 것이 없음을 분명히 보느니라. 무엇을 열이라 하는가. 하나는 믿는 마음이 구족함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 하는가. 부처님과 법과 승가는 항상하지만 시방의 부처님이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과 일천제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보이신 줄을 믿고, 여래의 나고 늙고 병나고 죽음과 고행을 하심과, 제바달다가 참으로 화합승을 파하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낸 것과, 여래가 필경에 열반에 들어서 바른 법이 없어진다는 일을 믿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믿는 마음이 구족하다 하느니라.
둘은 깨끗한 계행이 구족함이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 하는가. 선남자여,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노라고 말하면서 여인과 어울리지 않더라도 여인을 볼 적에 조롱하고 꾀이고 웃고 지껄이고 희롱하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함이라, 깨끗한 계율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노라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지 아니하며 조롱하고 꾀이고 웃고 희롱하지 않더라도, 담 밖에서 나는 여인의 영락 가락지·팔찌 따위의 소리를 듣고, 마음에 애착을 낸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행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함이라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노라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거나 조롱하고 지껄이고 꾀이거나 모든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다른 남자가 여인을 따라가거나 여인이 남자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는 문득 탐욕을 낸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함이라,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또 어떤 보살이 계행이 깨끗하노라고 말하면서, 여인과 더불어 어울리거나 지껄이고 꾀이거나 모든 소리를 듣거나, 남자와 여인이 서로 따라감을 보지 않더라도, 천상에 태어나서 5욕락을 받는다면, 이런 보살은 애욕을 이루어 깨끗한 계율을 파하며 범행을 더럽히고 계율을 문란케 함이라, 깨끗한 계행이 구족하다고 이름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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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되, 계율을 위하지 아니하고 시바라밀을 위하지 아니하고 중생을 위하지 아니하고, 이양을 위하지 아니하고, 보리를 위하지 아니하고, 열반을 위하지 아니하고, 성문과 벽지불을 위하지 아니하고, 오직 가장 훌륭한 제일의[最上第一義]를 위하여서, 금하는 계율을 보호하여 가진다면 선남자여, 이것은 보살의 깨끗한 계율이 구족하다고 이름하느니라.
셋은 선지식을 친근함이니, 선지식이라 함은 믿음과 계율과 많이 아는 것과 보시와 지혜를 말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 행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선지식이라 하느니라.
넷은 고요함을 좋아함이니, 고요하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법의 깊고 깊은 법계를 관찰함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고요하다 하느니라.
다섯은 정진이니, 정진이라 함은 마음을 두어 네 가지 바른 법[四正諦]을 관찰하되, 머리에 불이 붙더라도 놓아 버리지 않는 것이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정진이라 하느니라.
여섯은 생각함이 구족함[念具足]이니, 생각이 구족하다는 것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승가를 생각하고 계율을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고 사함을 생각함이라, 이런 것을 이름하여 생각함이 구족하다 하느니라.
일곱은 부드러운 말[軟語]이니, 부드러운 말이라 함은 진실한 말과 미묘한 말과 먼저 문안함과 때 맞추어 말함과 참된 말 등 이런 것을 이름하여 부드러운 말이 하느니라.
여덟은 법을 보호함[護法]이니, 법을 보호한다는 것은 바른 법을 사랑하여 항상 연설하기를 좋아하며, 읽고 외우고 쓰고 뜻을 생각하고, 널리 선전하여 멀리 퍼지게 하며, 만일 다른 이가 쓰고 해설하고 읽고 외우고 찬탄하고 뜻을 생각함을 보거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여 공양하되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의약으로 이바지하며, 법을 보호하기 위하여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나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법을 보호한다 하느니라.
아홉은 보살마하살이 함께 배우고 함께 계를 받은 이가 부족한 것이 있음을 보거든, 발우나 물든 옷이나 간병에 필요한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방 같은 것을 다른 데서 빌어서라도 공급하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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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은 지혜를 구족함이니, 지혜라 함은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과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음을 관찰하며, 법의 두 가지 모양을 관찰함이니, 이른바 공함과 공하지 않은 것, 항상함과 무상한 것, 즐거움과 즐겁지 않은 것, 내가 있고 내가 없는 것, 깨끗함과 부정한 것, 이법(異法)의 끊을 것과 끊지 못할 것, 이법의 인연으로 나는 것과 이법을 인연으로 보는 것, 이법의 인연으로 생긴 과보와 이법의 인연으로 생기지 않는 과보니라. 이런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구족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열반의 무상(無相)함을 분명하게 본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는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순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미 불성을 보았으니, 대열반을 얻을 것이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하리라’ 하셨사오니, 그 뜻이 어떠한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경에 말씀하기를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 배의 과보를 받고, 일천제에게 보시하면 천 배의 과보를 받고, 계행 가지는 이에게 보시하면 백천 배의 과보를 받고, 번뇌를 끊은 외도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고, 4향(向)과 4과와 벽지불에게 보시하면 한량없는 과보를 받고, 불퇴(不退) 보살이나 최후신(最後身) 보살이나 여래 세존께 보시하면, 받는 과보의 복덕이 한량없고 가없고 헤아릴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다’ 하였사오니, 순타 대사(大士)가 이렇게 한량없는 과보를 받을진댄, 과보가 한량없삽거늘 어느 때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겠나이까?
세존이시여, 경에 또 말씀하기를 ‘사람이 중대한 마음으로 좋은 업이나 나쁜 업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를 받는데, 이 세상에서 받기도 하고 다음 세상에서 받기도 하고 뒷세상에서 받기도 한다’ 하였나이다. 순타는 중대한 마음으로 선한 업을 지었사온즉 그 업으로 반드시 과보를 받을 터이니, 만일 반드시 과보를 받사오면 어떻게 아뇩다라삼략삼보리를 성취하오며, 어떻게 불성을 보겠나이까? 세존이시여, 경에 또 말씀하기를 ‘세 가지 사람에게 보시하면 과보가 그지없나니, 병인과 부모와 여래라’ 하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또 경에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에게 욕계의 업이 없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니, 색계와 무색계의 업도 그러하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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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나이다.
세존이시여, 법구게에는 ‘허공도 아니요 바다 속도 아니요, 산 속도 바위 속도 아니며, 어느 곳에서도 벗어나서 업보를 받지 아니할 수 없다’고 하였나이다. 또 아니루타는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생각하오니 지난 옛적에 밥 한 그릇을 보시하고 8만 겁 동안 나쁜 갈래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였사오니, 세존이시여, 밥 한 그릇을 보시한 과보도 그러하옵거늘, 하물며 순타가 신심으로 부처님께 보시하고 단바라밀을 구족히 성취한 것이겠습니까? 세존이시여, 선한 과보가 끝이 없을진댄 방등경을 비방하고 5역죄를 범하고 4중금을 깨뜨린 일천체의 죄보인들 어찌 끝이 있겠나이까. 만일 끝이 없사오면 어떻게 불성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이 한량없고 가없는 공덕을 얻어서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며, 능히 생사에 표류하는 큰 강물을 말리고 마군과 원수를 항복받으며 마군이 이겼다는 짐대를 꺾고, 여래의 위없는 법수레를 운전하리니, 하나는 묻기를 잘함이요 둘은 대답을 잘함이니라. 선남자여, 부처님의 10력 중에 업의 힘이 가장 깊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들이 업의 인연에 대하여 업신여기고 믿지 아니하기에 그런 자를 제도하려고 이런 말을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업이 가벼운 것이 있고 무거운 것이 있으며, 가벼운 업과 무거운 업이 또 각각 둘이니, 하나는 결정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결정되지 않은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악한 업이 과보가 없나니, 만일 악한 업이 결정코 과보가 있다면, 어찌하여 기허전다라(氣噓旃陀羅)가 천상에 태어나고, 앙굴마라가 해탈의 과보를 얻었겠는가. 이런 이치로 보아, 지은 업으로 과보를 얻기도 하고, 과보를 얻지 않기도 하는 줄을 알겠다’ 하였는데, 나는 이런 잘못된 소견을 없애기 위하여 경에 말하기를 ‘모든 지은 업은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혹은 무거운 업을 가볍게 받을 수도 있고, 혹은 가벼운 업을 무겁게 받을 수도 있거니와, 모든 사람이 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직 어리석고 지혜 있는 데 달렸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업이 모두 결정한 과보를 얻는 것이 아니며, 비록 얻는 것 아니나 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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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 것도 아니니라.
선남자여, 중생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혜 있는 사람이요, 둘은 어리석은 사람이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지혜의 힘으로써 지옥에서 받을 중대한 업을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기도 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받을 가벼운 업을 지옥에서 중하게 받기도 하느니라.”
사자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렇다면 청정한 범행도, 해탈의 과보도 구할 것이 아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범행과 해탈을 구할 것이 없지만, 결정되지 않았기에 범행과 해탈의 과보를 닦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악한 업을 멀리 여의면 선한 과보를 얻고, 선한 업을 멀리 여의면 악한 과보를 얻느니라.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을진댄 성인의 도를 닦아 구할 필요가 없을 것이요, 만일 도를 닦지 아니하면 해탈이 없을 것이니라. 모든 성인이 도를 닦는 것은 결정된 업을 깨뜨리어 가벼운 과보를 얻으려 함이니, 결정되지 않은 업은 과보가 없는 연고니라. 만일 온갖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다면, 성인의 도를 닦아 구할 것이 없으려니와, 사람들이 성인의 도를 닦는 일을 여의고 해탈을 얻는다 함은 옳지 아니하고, 해탈을 얻지 않고 열반을 얻는다 함도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을진댄 한평생 동안 지은 선한 업으로는 마땅히 영원히 안락을 받을 것이요, 한평생 동안 지은 악한 업으로는 마땅히 영원히 큰 고통을 받을 것이며, 업의 과보가 만일 그렇다면 도를 닦음과 해탈과 열반이 없을 것이요, 사람이 지은 것은 사람이 받고 바라문이 지은 것은 바라문이 받을 것이니라. 만일 그렇다면 하천한 종정[下姓]과 하천한 존재가 없어서, 사람은 항상 사람이요 바라문은 항상 바라문일 것이며, 젊어서 지은 업은 마땅히 젊어서 받고, 중년(中年)에나 늙어서는 받지 않을 것이다. 늙어서 나쁜 업을 짓고 지옥에 태어나면 지옥의 초년[初身]에는 받지 않을 것이요 늙어서야 받을 것이며, 만일 늙어서 살생을 않는다면 마땅히 장년(壯年)에는 장수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장년에 장수하지 아니하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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떻게 노년(老年)에 이를 수 있겠는가. 업이 없어지지 않은 까닭이며, 업이 만일 없어지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도를 닦는 일과 열반이 있겠는가.
선남자여, 업에 두 가지가 있으니, 결정된 것과 결정되지 않은 것이니라. 또 결정된 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과보가 결정된[報定] 것이요, 하나는 시기가 결정된[時定] 것이니라. 혹 과보는 결정되었으나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면 받으며, 혹은 세 때에 받나니, 현생에 받는 것, 다음 생에 받는 것, 후생에 받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결정한 마음으로 선한 업이나 악한 업을 짓고, 지은 뒤에 신심으로 기뻐하고 원을 세워 삼보에게 공양하면, 이것을 결정한 업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은 선근이 견고하여 동요하기 어려우므로 무거운 업을 가볍게 하거니와,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이 두터우므로 가벼운 업으로 무거운 과보를 얻게 되나니, 이런 뜻으로 모든 업이 결정되었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보살마하살은 지옥에 갈 업이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서원을 세우고 지옥에 나느니라. 선남자여, 지나간 옛적 중생의 수명이 백세이던 때에, 항하의 모래 수 같은 중생들이 지옥의 업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 큰 서원을 세우고 지옥의 몸을 받았느니라. 보살이 그 때에 그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지옥의 과보를 받은 것이니라. 내가 그 때에 지옥에서 한량없는 세월을 지내면서 죄인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널리 분별하여 말하였더니, 여러 사람들이 경을 듣고는 악한 과보를 깨뜨려서 지옥이 비게 되었는데, 일천체들은 제외하였으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현겁(賢劫) 중에 한량없는 중생들이 축생에 떨어져서 나쁜 과보를 받았으므로, 내가 그것을 보고는 다시 큰 서원을 내고 법을 연설하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서, 혹은 노루·사슴·곰·비둘기·원숭이·용·뱀·금시조(金翅鳥)·물고기·자라·여우·토끼·소·말 따위의 몸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실로 이런 축생의 업보가 없었지만, 큰 원력으로 중생을 위하여서 이런 몸을 받은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이 현겁 중에 다시 한량없고 가없는 중생들이 아귀에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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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국물·비계·고름·피·똥·오줌·콧물·침 따위를 먹었다 뱉았다 하면서, 수명이 한량없어 백천만 년을 지내어도 장이나 물이란 이름도 듣지 못하거든, 어찌 눈으로 보고 먹을 수 있으리요. 만일 멀리 있는 물을 보고 먹을 욕심으로 가서 보면, 불더미나 고름으로 변하기도 하고, 혹시 변하지 않을 때에는 여러 사람들이 창을 들고 붙잡고 가지 못하게 하며, 혹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몸에 닿으면 불이 되나니, 이것은 나쁜 업의 과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이런 악업이 없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해탈을 얻게 하려고 서원을 세우고 이런 몸을 받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현겁 중에 백정의 집에 태어나서, 닭·돼지·소·양 따위를 기르기도 하고, 사냥하고 고기잡는 일도 하였으며, 전다라의 집에서 도둑질도 하였으니, 보살이 실로는 이런 나쁜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려고 큰 원력으로 이런 몸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의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음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현겁 중에 또 변방에 태어나서, 흔히 욕심 많고 성 잘내고 어리석은 사람이 되며, 법답지 않은 일을 행하고 삼보와 후세의 과보를 믿지 아니하며, 부모·천척·늙은이·장로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실로 이런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현겁 동안에 여인의 몸, 나쁜 몸, 탐욕의 몸, 성내는 몸, 어리석은 몸, 질투하는 몸, 간탐하는 몸, 어린 몸, 속이는 몸, 속박하는 몸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은 이런 업이 없건만 중생으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그 가운데 나기를 원한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현겁 동안에 내시의 몸, 근이 없는 몸, 근이 둘인 몸, 근이 일정하지 않은 몸을 받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실로 이런 나쁜 몸을 받을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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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그 가운데 나기를 원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런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또 현겁에서 외도 니건자의 법을 익히고 그 법을 믿었으므로, 보시도 없고 사당[祠]도 없고 보시와 사당의 과보도 없으며, 선한 업도 없고 악한 업도 없고 선한 업 악한 업의 과보도 없으며, 현재의 세상도 없고 미래의 세상도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며, 성인도 없고 변화하는 몸도 없고 도와 열반도 없었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실로 이런 나쁜 업이 없었지만 중생들로 하여금 해탈을 얻게 하기 위하여 큰 원력으로 이런 삿된 법을 받은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생도 다음 생도 후생도 아니면서 이 나쁜 업보를 받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생각하니 지난 옛적에 제바달다와 더불어 함께 장사치의 우두머리가 되어 각각 5백의 장사꾼이 있었는데, 이익을 위하여 바다에 나아가 보배를 따다가, 나쁜 인연으로 폭풍을 만나서 배가 파선되고 동무들이 모두 죽었으나, 나와 제바달다만은 살생하지 않은 과보로 장수할 팔자가 되어 바람에 불려서 함께 육지에 이르렀다. 그 때에 제바달다는 보물을 탐하는 마음으로 크게 고통하면서 소리를 높여 통곡하였다. 나는 제바달다에게 통곡하지 말라고 일렀더니, 제바달다는 이렇게 말했다. ‘내 말을 들어보시오. 어떤 가난뱅이가 하도 빈궁하고 곤고하여서 무덤들이 있는 데 가서 송장을 붙들고 말하기를, 그대가 나에게 죽음의 낙을 준다면, 나는 그대에게 가난한 목숨을 주겠노라 하였소. 그 때에 송장이 일어나 앉아서 가난뱅이에게 하는 말이 선남자여, 가난한 목숨은 그대나 가지시오. 나는 이 죽음의 낙이 매우 좋아서, 그대의 빈궁하고 사는 목숨을 반가워하지 않노라 하였소. 그런데 나는 지금 죽는 낙도 없고 겸하여 빈궁하기까지 하였으니, 어떻게 울지 않겠소.’
나는 다시 위로하기를 ‘그대는 너무 근심하지 말라. 나에게 지금 두 개의 보주가 있으니 값이 한량이 없소. 한 개를 그대에게 나누어 주리라’ 하면서 한 개를 주고, 말하기를 ‘생명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런 보배를 가지는 것이지, 생명이 없으면 어떻게 가지겠소’ 하였노라. 그러고 나는 너무 고달파서 나무 아래 누워서 쉬노라니, 제바달다는 탐욕이 불같이 일어나 한 개의 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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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마저 빼앗으려고, 나쁜 마음으로 나의 눈을 찌르고 보주를 빼앗았느니라. 나는 그 때에 눈이 아파서 앓는 소리를 내었더니, 어떤 여인이 나에게 와서 묻기를 ‘당신은 왜 그렇게 고통하는가’ 하여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였더니, 여인이 듣고는 또 묻기를 ‘당신의 이름은 누구요’ 하기에 ‘나의 이름은 참말 하는 이요’ 하였다. 여인이 또 말하기를 ‘무엇으로 당신이 참말 하는 것을 증명하겠는가’ 하기에 나는 이렇게 맹세하였노라. ‘내가 만일 제바달다에게 원통한 마음이 있으면, 내 눈이 지금 모양으로 영원히 소경이 될 것이고 원통한 마음이 없으면, 눈이 도로 온전하게 될 것이오’ 하였더니,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눈이 예전과 같이 되었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세의 과보로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지나간 옛적에 남천축 부단나(富單那)성의 바라문 집에 났더니, 그 때에 가라부(迦羅富)라는 임금이 있는데, 성질이 포악하고 교만이 많으며 나이 젊었고 얼굴이 잘생기어 5욕락을 즐기었느니라. 나는 그 때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 성 밖에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었더니, 그 임금이 때마침 봄놀이를 하느라고 권속과 채녀들을 데리고 성에서 나와 구경을 다니다가 나무숲 아래서 욕락을 즐기고 있었다. 채녀들은 왕의 곁을 떠나서 구경 다니다가 나에게 왔으므로, 나는 그들의 탐욕을 끊기 위하여 법을 말하였다. 왕이 따라와서 나를 보고는 좋지 않은 마음으로 나에게 묻기를 ‘너는 아라한과를 얻었느냐’ 하기에, 나는 ‘얻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또 묻기를 ‘아나함과를 얻었느냐’ 하기에, ‘얻지 못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왕이 또 말하였다.
‘네가 만일 두 가지 도과를 얻지 못하였으면, 탐욕 번뇌가 구족하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방자하게 나의 채녀들을 보느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내가 지금 탐욕의 결박을 끊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에는 진실로 애착이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아, 세상에 있는 신선들이 기운을 삼키고 과실만을 먹으면서도 여색을 보면 탐심이 생기는데, 너는 한창 나이가 젊었고 탐욕을 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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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였거늘, 어찌하여 여색을 보고 애착이 없겠느냐?’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여색을 보고 애착하지 아니함은, 기운을 삼키고 과실을 먹는 데 달린 것이 아니요, 무상하고 부정한 줄로 생각하는 데 있나이다.’
왕은 또 말했다.
‘남을 업신여기고 비방을 한다면 어떻게 청정한 계율을 지킨다고 말하겠느냐?’
나는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만일 질투하는 마음이 있으면 비방도 하려니와, 나는 질투하는 마음이 없는데 왜 비방한다고 말합니까?’
왕은 또 말했다.
‘대덕이여, 어떤 것을 계행이라 하는가?’
‘대왕이여, 참는 것을 계행이라 합니다.’
왕은 또 말하였다.
‘참는 것이 계행이라면 내가 네 귀를 벨 터이니, 만일 참으면 네가 계행을 가지는 줄을 믿겠다.’
그러면서 귀를 베었으나, 나는 귀를 잘리우면서도 얼굴빛이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였다.
그 때에 왕의 신하들은 이 광경을 보고 왕에게 간하기를, ‘이런 대사를 해하지 마옵소서’ 하니, 왕은 신하들에게 ‘너희들은 이 사람이 대사인 줄을 어떻게 아느냐?’ 했다. 신하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고통을 받으면서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 것을 보았나이다.’
그러자 왕은 ‘내가 다시 시험하여서 얼굴이 변하는지 않는지를 보겠다’ 하면서, 코를 베고 손발을 끊었다. 이 때에 보살은 벌써부터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상에서 자비를 닦았으므로 고통받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었다.
이때에 사천왕은 분노한 마음을 품고 모래와 자갈비를 내리었다. 왕은 그것을 보고 공포를 품고 내 앞에 와서 무릎을 세우고 꿇어앉아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나의 참회를 허락하소서.’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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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여, 나의 마음에 성내지 아니함도 애욕이 없음과 같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대덕이여, 성내는 마음이 없는 줄을 어떻게 증명하오리까?’
나는 곧 맹세하기를 ‘내가 참으로 성내는 마음이 없다면, 나의 몸이 예전과 같아지이다’ 하였더니, 이렇게 서원함을 따라서 몸이 예전과 같이 되었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마하살이 현세의 과보를 말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한 업으로 다음 생에 받는 과보와 후생에 받는 과보와 나쁜 업의 과보도 이와 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때에는, 모든 업이 현세에 과보를 얻게 되느니라. 나쁜 업으로 받는 현세의 과보는 왕이 나쁜 업을 지으매 하늘에서 나쁜 비를 내리는 것과 같고, 또 어떤 사람이 사냥꾼에게 곰이 있는 곳과 보배빛 사슴을 가리켜 주고 손이 떨어진 것과 같나니, 이런 것을 이름하여 나쁜 업으로 현세에 받는 과보라 하느니라. 다음 생에 받는 과보는 일천제가 4중금이나 5역죄를 범한 것과 같고, 그 이후의 생에 받는 과보는, 마치 계행을 지니는 사람이 서원을 세우고 미래의 세상에도 항상 이와 같은 깨끗한 계율을 지키는 몸이 되어지이다 하다가, 중생의 수명이 백년이나 80년 되는 때에 전륜성왕이 되어서 중생을 교화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만일 업이 반드시 현세의 과보를 얻는다면, 다음 생의 과보나 그 이후 생의 과보는 얻지 못할 것이요, 보살마하살이 32대인상(大人相)의 업을 닦는 것은, 현세의 과보는 얻지 못하는 것이며, 업이 만일 세 가지의 과보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을 결정되지 않은 업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업이 결정된 과보를 얻는 것인즉, 범행과 해탈과 열반을 닦는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나의 제자가 아니요, 마의 권속인 줄을 알 것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모든 업은 결정된 것과 결정되지 않음이 있나니, 결정된 것은 현세에 받는 것, 다음 생에 받는 것, 후생에 받는 것이요, 결정되지 않은 것은 인연이 합하면 받고 합하지 않으면 받지 않는 것이니, 그러므로 범행과 해탈과 열반을 닦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참으로 나의 제자요 마의 권속이 아닌 줄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은 결정되지 않은 업이 많고 결정된 업은 적으니라. 그런 뜻으로 도를 닦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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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고, 도를 닦으므로 결정된 중대한 업을 가볍게 받을 수 있으며, 결정되지 않은 업은 다음 생의 업보로 받을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두 가지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결정되지 않은 과보를 결정된 과보로 만들며, 현생에 받을 과보를 다음 생에 받을 과보로 만들며, 가벼운 과보를 중한 과보로 만들어서, 인간에서 받을 과보를 지옥에서 받는 것이요, 둘은 결정된 과보를 결정되지 않은 과보로 만들며, 다음 생에 받을 것을 현생에 받게 하며, 중한 과보를 가볍게 만들어서 지옥에서 받을 것을 인간에서 가볍게 받는 것이니라. 이러한 두 사람이 하나는 어리석고 하나는 지혜로우며, 지혜 있는 이는 가볍게 하고 어리석은 이는 무겁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유컨대 두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지었을 적에 권속이 많은 이는 죄가 가벼워지고, 권속이 적은 이는 가벼운 죄도 무거워지느니라. 어리석고 지혜로운 사람도 그와 같아서, 지혜로운 이는 선한 업이 많으므로 중한 업도 가볍게 받고, 어리석은 이는 선한 업이 적으므로 가벼운 업도 무겁게 받느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살이 쪄서 건장하고 한 사람은 여위었으니, 함께 수렁에 빠졌을 적에 건장한 이는 나올 수 있으나 여윈 이는 점점 빠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독약을 먹었을 적에, 한 사람에게는 주문의 힘과 아가다약이 있고 한 사람은 없으면 주문과 약이 있는 이는 독약이 해치지 못하고 없는 이는 먹고는 곧 죽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모두 즙을 많이 먹었을 적에, 한 사람은 화기가 성하고 한 사람은 화기가 미약하거든, 화기가 성한 이는 능히 소화하지만 화기가 미약한 이는 병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임금의 옥에 갇혔을 적에 한 사람은 지혜가 있고 한 사람은 어리석거든, 지혜 있는 이는 놓여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놓여날 기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위험한 길을 갈 적에 한 사람은 눈이 잘 보이고 한 사람은 소경이라면, 눈이 잘 보이는 사람은 걱정없이 잘 가지만 소경은 구렁에 떨어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술을 먹을 적에 한 사람은 양이 크고 한 사람은 양이 적거든, 양이 큰 사람은 먹어도 근심이 없지만, 양이 적은 사람은 먹는 대로 걱정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두 사람이 함께 원수와 싸울 적에 한 사람은 갑주로 몸을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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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한 사람은 맨몸이면, 갑주로 무장한 이는 원수를 파하지만, 맨몸인 이는 면하기 어려운 것과 같으니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더러운 것이 옷에 묻었을 적에, 한 사람은 알고 곧 빨았으나 한 사람은 알고도 빨지 않는다면, 빤 사람은 옷이 깨끗하지만 빨지 않은 사람은 옷이 점점 더러워지는 것과 같으니라. 또 두 사람이 모두 수레를 탔을 적에, 하나는 바퀴가 있고 하나는 바퀴가 없으면, 바퀴가 있는 것은 마음대로 가려니와, 바퀴가 없는 것은 한 발자국도 가지 못하느니라. 또 두 사람이 모두 먼길을 떠났을 적에 한 사람은 양식이 있고 한 사람은 그냥 간다면 양식이 있는 이는 무사하게 지나갈 수 있지만, 그냥 가는 이는 지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도적에게 겁탈을 당하였을 적에, 한 사람은 보배 광이 있고 한 사람은 광이 없으면, 보배 광이 있는 이는 근심이 없지만 광이 없는 이는 근심이 되는 것과 같으니라. 어리석은 이와 지혜 있는 이도 그와 같아서, 선한 광이 있는 이는 무거운 업도 가볍게 받고 선한 광이 없는 이는 가벼운 업도 무겁게 받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업이 모두 결정된 과보를 얻는 것도 아니요, 모든 중생이 반드시 받는 것도 아니라면, 세존이시여, 어떻게 중생이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무겁게 받으며, 지옥의 무거운 업보를 현세에 가볍게 받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온갖 중생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혜 있는 이요, 하나는 어리석은 자니라.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으면 지혜 있다 이름할 것이요, 몸도 계율도 마음도 지혜도 닦지 않으면 어리석다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몸을 닦지 않는다 하는가. 만일 5정(情)의 감관을 거두어들이지 못하면 몸을 닦지 못한다 하고, 일곱 가지 깨끗한 계율[淨戒]을 받아 지니지 못하면 계행을 닦지 못한다 하고, 마음을 조복하지 못하므로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하고, 성인의 행을 익히지 못하므로, 지혜를 닦지 못한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청정한 계율의 자체를 구족하지 못함이요,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둠이요, 마음을 닦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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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한다 함은 세 가지 모양을 닦지 못함이요, 지혜를 닦지 못한다 함은 범행을 닦지 못하는 연고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몸을 관찰하지 못하고 빛을 관찰하지 못하고 색상(色相)을 관찰하지 못하고 몸의 모습을 관찰하지 못하고 몸에 딸린 것[身數]을 알지 못하며, 이 몸이 여기로부터 저기에 이름을 알지 못하여 몸이 아닌 데서 몸이란 상(相)을 내고 색이 아닌 데에 색이란 상을 짓는 것이니, 그리하여 나의 몸과 몸에 딸린 것에 탐착함을 이름하여 몸을 닦지 못한다 하느니라.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만일 하열한 계를 받으면 계율을 닦는다 이름하지 못하나니, 한쪽으로 치우친 계율[邊戒]이나 자기의 이익을 위한 계율이나 자기만 조율하는 계율[自調戒]을 받아 가지고, 중생들을 널리 안락케 하지 못하며, 위없이 바른 법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고, 천상에 나서 5욕락 받기를 위하는 것은 계율을 닦는다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함은, 마음이 산란하여 자기의 경계를 전일하게 지키지 못함이니, 자기의 경계란 것은 4념처(念處)요 다른 경계는 5욕락이니, 4념처를 닦지 못하면 마음을 닦지 못한다 이름하며, 나쁜 업 가운데서 마음을 잘 보호하지 못하면 지혜를 닦지 못한다 이름하느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이 몸이란 것이 무상하고, 머물러 있지 않고 위태하고 연약하고 잠깐잠깐 사이에 멸하는 것이어서, 마군의 경계인 줄을 깊이 관찰하지 못함이요,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시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함이요,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함은 선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함이요, 지혜를 닦지 못한다 함은 반야바라밀을 구족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나의 몸과 나의 몸에 딸린 것을 탐착하여 나의 몸은 항상하여 변역함이 없다 함이요,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자기의 몸을 위하여서 10악업을 지음이요,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함은 나쁜 업 가운데서 마음을 거두지 못함이요, 지혜를 닦지 못한다 함은 마음을 거두지 못하므로 선한 법 악한 법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나라는 소견을 끊지 못함이요, 계율을 닦지 못한다 함은 계율에 집착함[戒取]을 끊지 못함이요, 마음을 닦지 못한다 함은 탐욕과 성내는 업을 지어서 지옥으로 향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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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지혜를 닦지 못한다 함은 어리석은 마음을 끊지 못하는 것이니라.
또 몸을 닦지 못한다 함은, 몸이 비록 허물은 없더라도 항상 원수가 되는 줄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남자에게 원수가 항상 따라다니면서 짬을 엿보거든 지혜 있는 이는 알아차리고 마음을 두어 방비하나니, 방비하지 아니하면 해를 받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음식과 차고 더움을 따라 보호하여 기르나니 그렇게 보호하여 기르지 아니하면 곧 무너지느니라. 선남자여, 저 바라문이 불을 섬길 때에, 매양 향과 꽃으로 공양하고 찬탄하고 예배하며 백년 동안을 섬기는데, 만일 한 번만 닿더라도, 곧 사람의 손을 데이나니, 이 불을 그렇게 공양하지만 조금도 섬기는 이의 은혜를 갚을 생각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아무리 여러 해를 두고 좋은 향과 꽃과 영락과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병나면 의약으로 공급하더라도, 어쩌다가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쁜 인연만 만나면, 곧 파멸하여 버리고 지나간 날에 의복과 음식으로 이바지한 은혜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임금이 네 마리 독사를 기를 때에, 한 궤짝에 넣어서 어떤 사람에게 맡기어 기르게 하면, 네 마리 중에서 한 마리가 성을 내어도 사람을 해치므로, 이 사람이 항상 조심하고 무서워서 먹을 것을 구하여 때때로 수호하는 것과 같이 모든 중생의 4대인 독사도 그와 같아서 1대만 성내어도 곧 몸을 망가뜨리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오래도록 병이 들었으면, 마땅히 지성으로 의원을 구하여 치료하여야 하나니, 만일 부지런히 구원하지 않으면 반드시 죽게 되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항상 정신을 차려서 방일하지 말게 할 것이니, 만일 방일하면 곧 멸망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날기와는 비 바람이나 던지거나 밟는 것을 견디지 못하듯이,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아서 기갈과 덥고 춥고 비와 바람과 때리고 얽어매고 꾸짖는 것을 견디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부스럼이 곪지 않았을 적에는 잘 수호하여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며, 만일 건드리면 아픔을 참을 수 없나니,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노새가 새끼를 배면 제몸을 해롭게 하나니,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아서 속에 풍이나 냉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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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고통을 받느니라. 선남자여, 파초가 열매를 맺으면 말라죽듯이, 중생들의 몸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또 파초는 속에 굳은 고갱이가 없듯이 모든 중생의 몸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뱀과 쥐와 이리가 각각 서로 원수라는 마음을 내듯이, 중생의 4대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거위가 무덤을 좋아하지 않듯이, 보살도 그러하여 몸이란 무덤에 탐착을 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전다라가 7대를 계속하여 그 업을 버리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듯이, 이 몸의 종자도 그러하여 종자와 정혈(精血)이 끝까지 부정한 것이며, 부정한 연고로 부처님과 보살들이 천하게 꾸짖느니라. 선남자여, 이 몸이 마라야(摩羅耶)산에서 전단을 내는 것과 같지 아니하며, 우발라꽃·분다리꽃·첨파꽃·마리가꽃·바사가꽃을 내지 못하고, 아홉 구멍에서 농혈과 부정한 것이 항상 흐르며, 난 곳이 더럽고 추하고 미우며 온갖 벌레들과 함께 있느니라.
선남자여, 세간에서 아무리 훌륭하고 정결한 숲 동산이라도 송장이 그 가운데 이르면 부정하여져서, 여러 사람이 모두 버리고 사랑하지 아니하나니, 색계(色界)도 그와 같아서 비록 깨끗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몸이 있는 연고로 부처님과 보살들이 모두 버리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런 관찰을 하지 못하면 몸을 닦지 않는다고 이름하느니라.
계율을 닦지 않는다 함은, 선남자여, 계율은 모든 선한 법의 사다리며, 모든 선한 법의 근본이니, 마치 땅이 모든 나무들이 나는 근본인 것과 같으며, 계율은 모든 선근을 인도하는 우두머리니, 장사치의 두목이 여러 장사꾼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 계율은 모든 선한 법의 우뚝한 짐대니, 제석천왕의 세우는 짐대와 같으며, 나쁜 병을 치료하는 약 나무와 같이 계율은 모든 악업과 3악도를 영원히 끊어 버리느니라. 계율은 생사의 험한 길을 걸어가는 양식이며, 계율은 번뇌의 도둑을 쳐부수는 병장기며, 계율은 번뇌의 독사를 없애는 주문이며, 계율은 나쁜 업을 건네는 다리라고 관찰할 것이니, 만일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면, 계율을 닦는다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마음을 닦지 않는다 함은, 마음은 경솔하고 조급하고 요동하는 것이어서 붙잡기 어렵고 조복하기 어려우며, 멋대로 달아나기는 사나운 코끼리 같고, 잠깐잠깐 신속하기는 번갯불 같고, 경망하여 가만 있지 못함은 원숭이 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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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요술 같고 아지랑이 같아서 모든 악의 근본이 되며, 5욕락으로도 만족하지 못함은 불이 섶을 얻은 듯, 바다가 여러 강물을 삼키는 듯, 만다(曼陀)산에 초목이 무성한 듯하고 생사의 허망함은 관찰하지 못하고 탐을 내다가 환난에 부딪치는 것은, 고기가 미끼를 삼키는 듯하며, 항상 앞서서 인도하면 모든 업이 따라오는 것은, 마치 조개 어미[貝母]가 새끼들을 인도하는 듯하니라. 5욕을 탐하고 열반을 좋아하지 아니함은 마치 약대가 꿀을 먹고 죽음에 이르도록 꼴을 돌아보지 않는 듯하고 현재의 욕락만 탐착하고 뒷날의 허물을 관찰하지 못함은, 소가 여린 싹을 먹느라고 채찍을 무서워하지 않는 듯하며, 25유(有)로 두루 돌아다니는 것은, 강한 바람이 도라솜을 날리는 듯하니라. 구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만족함을 모르는 것은, 지각 없는 사람이 뜨겁지 않은 불을 구하는 듯하고, 매양 생사를 좋아하고 해탈을 좋아하지 아니함은, 임바(紝婆)벌레가 임바나무를 좋아하듯 하며, 미혹하여 생사의 더러움을 애착함은 옥중의 죄수가 옥졸 여인을 좋아하는 듯하고, 뒷간에 기르는 돼지가 부정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듯하나니,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마음을 닦지 않는다 하느니라.
지혜를 닦지 않는다 함은, 지혜는 큰 세력을 가진 것이 금시조와 같아서 악한 업을 깨뜨리며, 무명의 어둠을 파함은 햇빛과 같으며, 5음의 나무를 뽑는 것은 홍수가 물건을 떠내려 보내듯 하며, 나쁜 소견을 불사름은 맹렬한 불과 같으니라. 지혜가 온갖 선한 법의 근본이며 부처님과 보살의 어머니 되는 종자임을 관찰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렇게 관찰하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지혜를 닦지 않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제일의(第一義) 중에서 만일 몸과 몸의 모양과 몸의 인과 몸의 과와 몸의 모임[身聚]과 몸이 하나임[身一]과 몸이 둘임[身二]과 이 몸과 저 몸과 몸이 멸함과 몸이 평등함과 몸으로 닦음[身修]과 닦는 이를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몸을 닦지 않는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계율과 계율의 모양과 계율의 인과 계율의 과와 상계(上戒)와 하계와 계율의 모임과 계율이 하나임과 계율이 둘임과 이 계율과 저 계율과 계율이 멸함과 계율이 평등함과 계율로 닦음과 닦는 이와 계바라밀을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계율을 닦지 않는다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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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마음과 마음의 모양과 마음의 인과 마음의 과와 마음의 모임과 심왕과 심수(心數)와 마음이 하나임과 마음이 둘임과 이 마음과 저 마음과 마음이 멸함과 마음이 평등함과 마음으로 닦음과 닦는 이와 상심(上心)과 중심과 하심과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본다면, 이렇게 보는 이는 마음을 닦지 않는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지혜와 지혜의 모양과 지혜의 인과 지혜의 과와 지혜의 모임과 지혜의 하나임과 지혜의 둘임과 이 지혜와 저 지혜와 지혜의 멸함과 지혜의 평등함과 상품 지혜와 중품 지혜와 하품 지혜와 둔한 지혜와 예리한 지혜와 지혜로 닦음과 닦는 이를 본다면, 이런 소견이 있는 이는 지혜를 닦지 않는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지 않으면, 이런 사람은 작은 나쁜 업에도 크게 나쁜 과보를 받으며, 공포하는 연고로 항상 ‘나는 지옥에 딸렸으니 지옥으로 가리라’ 고 생각하고, 지혜 있는 이가 지옥의 고통을 말함을 듣고도, ‘쇠로는 쇠를 치고 돌로는 돌을 치고 나무는 나무를 치고 불에 있는 벌레는 불을 좋아하듯이, 지옥에 가는 몸은 지옥과 같을 것이며 설사 지옥과 같다 한들 괴로울 것이 무엇이랴’ 하고 생각하느니라. 마치 파리가 가래침에 붙어 서로 벗어나지 못하듯이, 이 사람도 그러하여 조그만 죄에서도 벗어나지 못하며, 처음부터 뉘우치는 마음도 없고 선한 일을 닦지도 못하며 있는 허물을 숨기기만 하므로, 비록 지난 세상에 지었던 선한 업이 있어도 이 죄에 더럽혀져 이 사람의 현세에 받을 가벼운 업보도, 지옥의 중대한 나쁜 과보로 변하느니라. 선남자여, 적은 물에 소금 한 되를 넣으면 너무 짜서 마실 수 없듯이, 이 사람의 죄업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남에게 빚 한 돈을 지고도 갚지 않으면, 몸이 속박을 당하고 많은 고통을 받듯이, 이 사람의 죄업도 그와 같으니라.”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무슨 연고로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받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이 다섯 가지 일을 갖추었으면, 현세에 받을 가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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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업보를 지옥에서 받게 되느니라. 무엇이 다섯 가지 일인가. 하나는 어리석은 탓이요, 둘은 선근이 적은 탓이요, 셋은 악한 업이 무거운 탓이요, 넷은 참회하지 아니한 탓이요, 다섯은 근본 선업을 닦지 못한 탓이니라. 또 다섯 가지 일이 있으니, 하나는 나쁜 업을 닦아 익힌 탓이요, 둘은 계율의 재산이 없는 탓이요, 셋은 모든 선근을 멀리 여읜 탓이요, 넷은 몸의 계행과 마음의 지혜를 닦지 아니한 탓이요, 다섯은 나쁜 동무를 친근한 탓이니라. 선남자여, 이런 연고로 현세에서 받을 가벼운 업보를 지옥에서 무겁게 받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지옥에서 받을 과보를 바꾸어 이 세상에서 가볍게 받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아 익히되 앞서 말한 바와 같이하며, 모든 법이 허공과 같은 줄을 관찰하면서 지혜도 보지 않고 지혜로운 이도 보지 않고 어리석음도 보지 않고 어리석은 자도 보지 않고 닦음도 보지 않고 닦는 이도 보지 않으면, 그런 이는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리니, 이런 사람은 능히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을 것이며, 이런 사람은 지옥에서 받을 업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느니라.
이런 사람은 설사 중대한 나쁜 업을 지었더라도 생각하고 관찰하여 가볍게 하며, ‘나의 업이 비록 무겁더라도 선한 업만은 못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마치 목화가 백 근이라도 순금 한 냥을 대적하지 못하며, 항하수에 소금 한 되를 넣더라도 짠맛이 없어서 마시는 이가 알지 못하며, 억만 부자가 비록 남의 빚을 천냥 만냥을 졌더라도 그를 속박하여 괴롬을 받게 하지 못할 것이며, 큰 코끼리가 쇠사슬을 끊고 자재하게 달아나듯이,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항상 ‘나의 선근은 크고 나쁜 업은 미약하니 내가 능히 모두 드러내어 참회하여 나쁜 업을 없애고 지혜를 닦으면 지혜의 힘은 커지고 무명의 힘은 적어지리라’고 생각하느니라.
이렇게 생각하고는 선지식을 친근하여 바른 지견을 닦으며, 12부경을 배우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경전을 배우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는 이를 보면 공경하는 마음을 내고, 겸하여 의복과 음식과 방과 가구와 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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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향으로 공양하고 찬탄하고 존중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의 선한 일을 칭찬하고 잘못을 말하지 아니하며, 삼보께 공양하고 방등대승의 대반열반경을 공경하며, 여래는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고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는 줄을 믿으면, 이런 사람은 능히 지옥의 중한 업보를 현세에서 가볍게 받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이치로 온갖 업이 모두 결정된 과보가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중생이 결정코 받는 것도 아니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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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0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3. 사자후보살품 ⑥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업이 과보가 결정되어 받는 것이 아니며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면 8성도를 닦을 것이온데, 무슨 인연으로 모든 중생이 대반열반을 모두 얻지 못하나이까?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불성이 있다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온데, 어찌하여 8성도를 닦아야 하나이까? 세존이시여, 이 경에서 말하기를, 병난 사람이 만일 의원과 약과 간병할 사람과 병에 따르는 음식을 얻거나 얻지 못하거나 모두 병이 낳는다 하였사오니,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성문·벽지불·부처님·보살·선지식을 만나서 법을 듣고 성인의 도를 닦거나, 만나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성인의 도를 닦지 않거나 간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어야 할 것이오니, 왜냐 하면 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해와 달을 막아서 알다(頞多)산 주변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4대하의 물을 바다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일천제들을 지옥에 이르지 못하게 할 수가 없는 것처럼, 모든 중생도 그와 같아서, 누가 능히 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지 못하게 할 수가 없나니, 왜냐 하면 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런 이치로 모든 중생이 도를 닦지 않더라도 불성의 힘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고, 성인의 도를 닦는 힘으로 할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일천체나 4중금(重禁)을 범한 자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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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죄를 지은 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다면 마땅히 도를 닦아야 할 것이니, 불성을 인하여 결정코 얻게 되는 것이고, 닦음을 인하여서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자석(磁石)이 철에서 멀리 있더라도 자석의 힘으로 철이 따라가서 붙는 것과 같이, 불성도 그와 같은 것이오매, 반드시 도를 닦을 것이 아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항하 가에 일곱 사람이 있어서 목욕하기 위하여, 혹은 도둑이 무서워서, 혹은 꽃을 따려고 물에 들어가는데, 첫 사람은 물에 들어가서 곧 빠지니, 왜냐 하면 기운이 없고 헤엄을 익히지 못한 탓이니라. 둘째 사람은 빠졌다가 도로 솟아오르고 솟았다가 다시 빠지니, 왜냐 하면 기운이 세어서 능히 솟았으나, 헤엄을 익히지 못한 탓에 솟았다가 다시 빠지었느니라. 셋째 사람은 빠졌다가 곧 솟아오르고 솟아서는 빠지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몸이 무거워서 빠지고 기운이 세어서 솟아오르고, 먼저 헤엄을 익혔으므로 솟아서는 그대로 떠 있는 것이니라. 넷째 사람은 물에 들어가서 빠지고 빠졌다가 도로 솟고 솟아서는 그대로 떠서 사방을 살펴보았으니, 왜냐 하면 몸이 무거워서 빠졌고 기운이 세어서 도로 솟고 헤엄을 익히어서 떴으며, 나갈 데를 몰라서 사방을 살펴보았느니라. 다섯째 사람은 들어가서는 빠지고 빠졌다가 도로 솟고 솟아서는 떠 있고 떠서는 사방을 살펴보고 곧 나아갔으니, 왜냐 하면 두려워한 까닭이니라. 여섯째 사람은 들어가서는 헤엄쳐 가서 얕은 데에 머물렀으니, 왜냐 하면 도둑이 가까이 있는지 멀리 있는지 살펴보려 한 까닭이니라. 일곱째 사람은 저 언덕으로 가서 산위에 오르니 다시 두려움이 없으며, 원수를 멀리 떠나서 매우 쾌락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생사의 큰 강도 그와 같나니, 일곱 가지 사람이 번뇌의 도둑이 무서워서 생사의 강을 건너려고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었으나, 출가하고는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여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삿된 법을 받았느니라. 이른바 중생의 몸은 5음이요 5음은 곧 5대라 하나니, 중생이 죽으면 5대를 영원히 끊는 것이요, 5대를 끊었으므로 선업이나 악업을 닦을 필요가 없으며, 그러므로 선업 악업과 선업 악업의 과보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나니, 이런 이를 일천체라 하느니라. 일천제는 선근을 끊었다는 말이요, 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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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끊었으므로 생사의 강에 빠져서 다시 나오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나쁜 업이 중한 탓이며 믿는 힘이 없는 탓이니, 항하 가에 사는 첫 번째 사람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일천체들은 여섯 가지 인연이 있으므로 3악도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나니, 무엇이 여섯인가. 하나는 나쁜 마음이 성한 연고요, 둘은 후세를 보지 못하는 연고요, 셋은 번뇌 익히기를 좋아하는 연고요, 넷은 선근을 멀리 여읜 연고요, 다섯은 나쁜 업에 막힌 연고요, 여섯은 나쁜 동무를 친근한 연고니라. 또 다섯 가지가 있어서 3악도에 빠지나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하나는 비구에게 법답지 못한 짓을 한 연고요, 둘은 비구니에게 법답지 못한 짓을 한 연고요, 셋은 제멋대로 승가의 물건을 사용한 연고요, 넷은 어미에게 법답지 못한 짓을 한 연고요, 다섯은 5부 승중에게 서로 시비를 일으킨 연고니라.
또 다섯 가지 일이 있어서 3악도에 빠지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하나는 선업과 악업의 과보가 없다고 항상 말하는 연고며, 둘은 보리심을 낸 중생을 죽인 연고며, 셋은 법사의 허물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연고며, 넷은 법을 법 아니라 말하고, 법 아닌 것을 법이라 말하는 연고며, 다섯은 법의 허물을 구하기 위하여 법을 듣는 연고니라. 또 세 가지 일이 있어서 3악도에 빠지나니, 무엇이 셋인가. 하나는 여래가 무상하여 아주 멸한다 말함이요, 둘은 정법이 무상하여 변천한다 말함이요, 셋은 승보가 없어진다 말함이니, 이런 연고로 항상 3악도에 빠지느니라.
두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은 까닭에 빠지고 솟아나오지 못하느니라. 솟아나온다 함은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는 것이니, 신심이란 보시와 보시의 과보를 믿으며, 선한 업과 선한 업의 과보를 믿으며, 악한 업과 악한 업의 과보를 믿으며, 생사의 고통과 무상하여 파괴됨을 믿는 것으로 이것을 신심이라 하느니라. 신심을 얻음으로써 깨끗한 계율을 닦으며,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항상 보시를 행하고 지혜를 닦는 것이니라. 그러나 근기가 암둔하여 다시 나쁜 동무를 만나서, 몸과 계율과 마음과 지혜를 닦지 못하고 삿된 법을 받으며, 혹은 나쁜 시절을 만나거나 나쁜 나라에 있어서 선근을 끊어 버리며, 선근을 끊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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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항상 생사에 빠지나니, 항하 가에 사는 두 번째 사람과 같으니라.
세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솟아나온다 하느니라. 여래는 온갖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이어서 항상하고 변역함이 없으며, 중생을 위하여 위없는 도를 말씀하며,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으며, 여래는 멸하는 것이 아니고, 법과 승가도 그러하여 멸하지 아니하며, 일천체들은 그 법을 끊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거니와, 멀리 여읜 뒤에야 얻을 줄을 믿으며, 믿는 마음을 인하여 깨끗한 계율을 닦고, 계율을 닦은 후에는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선포하며,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가지 아니하나니, 항하 가에 있는 세 번째 사람과 같으니라.
네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었으니 솟아나온다 이름하느니라. 신심을 얻었으므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을 위하여서 널리 선포하고,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나지 아니하고 사방을 두루 살피나니, 사방이라 함은 네 가지 사문의 과보며, 저 항하 가에 있는 네 번째 사람과 같으니라.
다섯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었으니 솟아나온다 하느니라. 신심으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을 위하여서 널리 선포하고, 보시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나지 아니하며, 물러나지 않으면서 곧 앞으로 나아가나니, 앞으로 나아간다 함은 벽지불을 말함이요, 비록 자기는 건너갔으나 중생에게 미치지 못하므로 갔다 이름하나니, 저 항하 가에 있는 다섯 번째 사람과 같으니라.
여섯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고, 신심을 얻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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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나온다 이름하며, 신심이 있으므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을 위하여서 널리 선포하며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 마음이 물러나지 아니하고,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면서 다시 앞으로 나아가 얕은 곳에 이르고, 얕은 데 이르고는 머물고 가지 아니하느니라. 머물고 가지 않는다는 것은 보살이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서 머물러 있으면서 번뇌를 관찰함이니, 저 항하 가에 있는 여섯 번째 사람과 같으니라.
일곱 번째 사람은 뜻을 내어 생사의 강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근을 끊었으므로 그 가운데 빠지고, 선지식을 친근하여 신심을 얻으니, 신심을 얻은 것을 솟아나온다 이름하며, 신심이 있으므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중생을 위하여 널리 선포하고, 보시를 좋아하고 지혜를 닦으며, 근성이 예리하므로 믿음과 지혜에 머물러서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으면서 곧 앞으로 나아가며, 앞으로 나아가서는 저 언덕에 이르러 높은 산에 올라 모든 공포를 여의고 안락을 얻는다 하였으니, 선남자여, 저 언덕은 여래를 비유하고, 안락을 얻음은 부처님이 항상 머무는 데 비유하고, 높은 산은 대열반에 비유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 항하 가에 사는 여러 사람이 모두 손과 발을 구족하였지만 건너가지 못하나니,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불보·법보·승보가 있고, 여래가 항상 법의 중요한 이치를 말하여, 8성도와 대반열반이 있다고 하지만, 중생들이 얻지 못하는 것은 나의 허물이 아니며, 성인의 도의 허물도 아니요, 중생들의 허물이며 번뇌의 허물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런 까닭으로 모든 중생들이 열반을 얻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용한 의원이 병을 잘 알고 약을 말하여 주었지만, 환자가 먹지 않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시주가 그에게 있는 대로 여러 사람에게 주지만, 받지 않는 것은 시주의 허물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마치 해가 떠서 어둡던 것이 모두 밝아지는데, 소경이 길을 보지 못함은 해의 허물이 아닌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항하의 물이 갈증을 없애 주지만, 목마른 이가 마시지 아니함은 물의 허물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땅에서 여러 가지 과실을 내는 일이 평등하여 다르지 않지만, 농부가 씨를 심지 아니함은 땅의 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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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중생들을 위하여 12부경을 분별하여 연설하지만 중생들이 듣지 아니함은 여래의 허물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도를 닦는 이라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으므로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 마치 자석과 같다’고 한 말은 잘한 말이니라. 불성의 인연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것이라 하여, 성인의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함은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넓은 벌판을 걸어가다가 갈증이 심하던 차에 우물을 만났는데, 그 우물이 깊어서 물이 보이지 않지만 물은 반드시 있거니와, 이 사람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두레박을 구하여 길어 내고서야 물을 마실 수 있게 되나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있기는 하지만 모름지기 무루인 성인의 도를 닦은 뒤에야 보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참깨가 있으면 기름을 짤 수 있지만, 방법을 모르고는 짜지 못하나니, 사탕수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33천과 북울단월(北鬱單越)이 있기는 하지만, 선한 업과 신통력이 없으면 보지 못하느니라. 땅속에 있는 풀 뿌리와 땅밑에 있는 물은 땅에 덮였으므로 중생이 보지 못하나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성인의 도를 닦지 아니하면 보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병난 사람이 간병할 이와 용한 의원과 좋은 약과 병에 필요한 음식을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병이 낫는다 한 것은, 선남자여, 내가 6주 보살을 위하여 그런 뜻을 말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중생에 대하여 안도 아니요, 밖도 아니요 안팎도 아니므로 걸림이 없는 것과 같나니,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의 재산이 다른 지방에 있으면, 비록 앞에는 없더라도 마음대로 쓰는 것이며, 사람이 물으면 내게 있노라 하나니, 왜냐 하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니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여기도 아니요 저기도 아니지만, 결정코 얻을 것이므로 온갖 것에 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중생이 모든 업을 지음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간에,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이런 업의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인이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이것이 짓고 이것이 받으며, 이것이 짓고 저것이 받으며, 저것이 짓고 저것이 받는 것도 아니며,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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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화합하면 과보를 받느니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도 아니며,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니고 다른 데서 오는 것도 아니며, 인연이 없음도 아니고 모든 중생이 보지 못함도 아니며, 모든 보살들은 시절 인연이 화합하여 보느니라. 시절이라 함은 10주 보살마하살이 8성도를 닦아 중생들에게 평등한 마음을 얻는 것이니, 그 때에 보게 되는 것은 짓는다고 이름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자석과 같다 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자석이 쇠를 빨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같나니, 그 까닭을 말하면 마음의 작용[心業]이 없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생겨나고, 다른 법이 없으므로 다른 법이 없어지는 것이요, 짓는 이가 없어 파괴하는 이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불길이 맹렬한 것으로 섶을 태운다 하는 것이 아니요, 불이 나고 섶이 없어짐을 섶을 태운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서 돌지만, 해바라기는 공경하는 마음도 없고 알음알이도 없고 업도 없으며 다른 법의 성품이므로 스스로 도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파초나무가 천둥을 인하여 자란다 하지만 이 나무는 귀도 없고 마음도 뜻도 식도 없으며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자라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망가지느니라. 선남자여, 아숙가(阿叔迦)나무를 여인이 만지면 꽃이 나오나니, 이 나무는 마음도 없고 감각도 없지만,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나오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파괴되느니라. 선남자여, 귤나무 아래 송장을 묻으면 과실이 많이 열리나니, 귤나무는 마음도 없고 감각도 없지만,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많아지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파멸하느니라. 선남자여, 안석류(安石榴)가 흙[塼]과 골분과 분뇨로 과실이 번성하거니와, 안석류나무도 마음이나 감각이 없는 것이고,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생겨나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파멸하느니라.
선남자여, 자석이 철을 빨아들임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이 있으므로 다른 법이 생겨나고, 다른 법이 없어지므로 다른 법이 파멸하느니라. 중생의 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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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그와 같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아들이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무명도 행(行)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행도 식을 빨아들이지 못하거니와, 역시 무명이 행을 반연하여 주고, 행이 식을 반연하여 준다고 이름하나니, 부처님이 있거나 부처님이 없거나 법계는 항상 머무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불성이 중생들 중에 머문다 말하면, 선남자여, 항상한 법은 머무름이 없나니, 만일 머무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무상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12인연이 일정하게 머무는 곳이 없나니, 만일 머무는 곳이 있다면 항상하다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여래의 법신도 머무는 곳이 없고, 법의 경계[界]와 법의 인식 대상[入]과 법의 요소[陰]와 허공도 모두 머무는 곳이 없나니, 불성도 그러하여 머무는 데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4대의 힘이 균등하지만 굳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젖기도 하고 동하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희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고 검기도 하거니와, 4대는 업이 없으며 다른 법의 경계이므로 각각 같지 아니하니, 불성도 그와 같아서 다른 법의 경계이므로 때가 되면 나타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불성이 물러가지 아니하므로 있다고 이름하나니, 아비발치(阿毗跋致)인 까닭이며, 마땅히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결정코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마땅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임금이 대신에게 분부하되 ‘너는 코끼리를 한 마리 가져다가 소경들에게 보여라’ 하였다. 대신은 임금의 명령을 받고, 여러 소경을 모아놓고 코끼리를 보이었더니, 소경들은 제각기 손으로 만져 보았다. 대신은 돌아가서 임금에게 여쭈기를, ‘신이 코끼리를 보였나이다’ 하였다. 그러자 임금은 여러 소경들을 불러서 각각 묻기를 ‘너희들은 코끼리를 보았느냐?’ 하였다. 소경들은 제각기 보았다고 대답하였다. 임금은 코끼리가 무엇과 같냐고 물었다. 상아를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 모양이 무와 같다 하고, 귀를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가 키와 같다 하고, 코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절굿공이와 같더라 하고, 다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나무통과 같다 하고, 등을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평상과 같다 하고, 배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독과 같다 하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동아줄과 같다고 여쭈었다. 선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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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저 소경들이 코끼리의 전체를 말하지 못하였으나 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 만일 그 여러 모양이 모두 코끼리가 아니라면 그것을 떠나서는 따로 코끼리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임금은 여래·응공·정변지에 비유하고, 대신은 방등의 대반열반경에 비유하고, 코끼리는 불성에 비유하고, 소경들은 모든 무명 중생에게 비유하였느니라.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혹은 색이 불성이라 말하는데, 왜냐 하면 색이 비록 멸하지만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므로 위없는 여래의 32상을 얻기 때문이다. 여래의 색은 항상하고, 여래의 색은 항상 끊어지지 않는 까닭으로 색을 말하여 불성이라 하느니라. 마치 진금이 모양은 변천하지만 빛은 달라지지 않나니, 혹은 팔찌를 만들고, 비녀도 만들고, 쟁반을 만들어도 그 누런 색은 처음 그대로 달라지지 않음과 같다.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아서 바탕은 비록 무상하나 빛은 항상한 것이니, 그러므로 색을 말하여 불성이라 하느니라. 어떤 이는 말하기를 수(受)가 불성이라 하나니, 왜냐 하면 수의 인연으로 여래의 진실한 낙(樂)을 받기 때문이니, 여래의 수는 끝간[畢竟] 수요, 제일의(第一義)의 수니라. 중생의 수(受)의 성품은 무상하거니와,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여래의 항상한 수를 얻느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성을 교시가(憍尸迦)라 하였는데, 사람은 비록 무상하나 성은 항상하여서, 천만 대[世]를 지내어도 바뀌지 않는 것과 같으니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므로 수를 불성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상(想)이 불성이라 하나니, 왜냐 하면 상의 인연으로 여래의 진실한 상을 얻기 때문이다, 여래의 상은 생각이 없는 상[無想想]이며, 생각이 없는 상은 중생의 상이 아니고, 남녀의 상도 아니고, 색·수·상·행·식의 상도 아니며, 상이 끊어진 상도 아니니라. 중생의 상은 무상하거니와, 상이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여래의 항상한 상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중생의 12인연과 같아서, 중생은 멸하더라도 인연은 항상한 것이니라.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므로 상을 말하여 불성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행(行)이 불성이라 하나니, 왜냐 하면 행을 수명이라 하며 수명의 인연으로 여래의 항상 머무는 수명을 얻기 때문이니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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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수명은 비록 무상하나, 수명이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여래의 진실하고 항상한 수명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12부경을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비록 무상하지만, 이 경전은 항상하여 변하지 아니하나니,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므로, 행을 말하여 불성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식(識)이 불성이라 하나니, 식의 인연으로 여래의 평등한 마음을 얻기 때문이니라. 중생의 의식(意識)이 무상하지만, 식이 차례차례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므로 여래의 진실하고 항상한 마음을 얻느니라. 마치 불의 뜨거운 성품과 같아서, 불은 무상하지만 더운 것은 무상하지 아니하니,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므로 식을 말하여 불성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음(陰)을 여의고 내[我]가 있으므로 나를 불성이라 하나니, 왜냐 하면 나의 인연으로 여래의 여덟 가지 자재한 나를 얻기 때문이니라. 여러 외도들이 말하기를, 가고 오고 보고 듣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말하는 것을 나라 하나니, 이러한 나라는 것이 비록 무상하나 여래의 나는 진실하여 항상하니라. 선남자여, 5음·6입·18계가 비록 무상하지만 항상하다 이름하나니,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저 소경들이 제각기 코끼리를 말하는 것이 비록 코끼리의 실상을 얻지는 못하였으나, 코끼리를 말하지 않은 것이 아닌 것처럼, 불성을 말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여섯 가지 법이 곧 그것은 아니나, 여섯 가지 법을 여의지도 않았느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나는 중생의 불성은 색도 아니고 색을 여의지도 아니하였으며, 내지 나도 아니고 나를 여의지도 않았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외도들이 비록 내[我]가 있다고 말하나, 실로는 내가 없는 것이며, 중생의 나라는 것은 곧 5음이니 5음을 여의고는 다시 다른 내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줄기와 잎과 꽃술과 꽃판이 합하여 연꽃이 되었으므로, 이런 것을 여의고는 따로 연꽃이 없나니, 중생의 나란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담과 벽과 풀과 나무가 화합한 것을 집이라 하나니,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집이 없으며, 또 가타라(佉陀羅)나무, 파라사나무, 니구다나무, 울담발(鬱曇鉢)나무들이 화합하여 숲이 되었나니, 이런 것을 여의고는 따로 숲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마치 거병(車兵)·상병(象兵)·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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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보병이 화합하여 군대가 되었으니,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군대가 없으며, 마치 5색 실이 화합하여 짜진 것을 비단이라 하나니,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비단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또 4성이 화합한 것을 대중이라 하나니, 이런 것을 떠나서는 따로 대중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중생의 나라는 것도 그러하여 5음을 여의고는 따로 내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항상 머무는 것을 나라고 하며, 여래의 법신이 가없고 걸림이 없고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아니하여 여덟 가지 자재함을 얻음을 나라고 하거니와, 중생은 참으로 이러한 나[我]와 나의 것[我所]이 없고, 다만 반드시 필경에 제일의공(第一義空)을 얻을 것이므로 불성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대자대비를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대자대비가 항상 보살을 따르는 것이,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 하기 때문이니라. 모든 중생은 반드시 대자대비를 얻을 것이므로, 다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느니라. 대자대비를 이름하여 불성이라 하고, 불성은 여래라 이름하느니라. 대희대사(大喜大捨)를 불성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만일 25유를 버리지 못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대희대사는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여래니라. 불성은 큰 신심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신심이 있으므로 보살마하살이 능히 단바라밀과 내지 반야바라밀을 구족하기 때문이니라.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결정코 큰 신심을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큰 신심은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여래니라.
불성이라 함은 외아들의 지위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외아들의 지위인 인연으로 보살이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얻기 때문이니라.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결정코 외아들의 지위를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외아들의 지위는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여래니라. 불성은 네 번째 힘[第四力]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네 번째 힘의 인연으로 보살이 능히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모든 중생이 반드시 결정코 네 번째 힘을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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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네 번째 힘은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여래니라.
불성은 12인연이라 이름하나니, 왜냐 하면 12인연으로써 여래가 항상 머무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모든 중생이 결정코 이러한 12인연이 있으므로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12인연은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여래니라. 불성은 4무애지(無碍智)라 이름하나니, 네 가지 걸림없는 인연으로 글자의 뜻이 걸림없다 말하고, 글자의 뜻이 걸림없으므로 능히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니라. 네 가지 걸림없는 것은 곧 불성이요, 불성은 곧 여래니라.
불성은 정삼매(頂三昧)라 이름하나니, 이와 같은 정삼매를 닦아 능히 모든 부처님 법을 통틀어 거두므로 정삼매를 이름하여 불성이라 하느니라. 10주 보살은 이 삼매를 닦으나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비록 불성을 보아도 분명하지 못하며, 모든 중생들은 결정코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위에서 말한 가지가지 법을 모든 중생들이 결정코 얻을 것이므로, 모든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만일 색이 불성이라고 말하면, 중생들이 듣고는 잘못된 사견을 낼 것이요, 잘못된 사견으로써 목숨을 마치면 아비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여래가 법을 말함은 지옥을 끊으려 하는 것이므로, 색이 불성이라 말하지 아니하며, 내지 식(識)을 말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들이 불성을 분명히 알았으면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하거니와, 10주 보살은 8성도를 닦고도 불성을 조금만 보거든, 하물며 닦지 않은 이가 볼 수 있겠는가. 문수사리보살 같은 이들은 한량없는 세상에서 이미 성인의 도를 닦았으므로 불성을 분명히 알거니와, 성문이나 벽지불이 어떻게 불성을 알겠는가. 모든 중생들 가운데 불성을 분명하게 알려는 이는, 마땅히 일심으로 이 열반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며,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할 것이며, 이 경을 받아 가지거나 내지 찬탄하는 이를 보거든, 마땅히 좋은 집과 의복과 음식과 와구와 병을 치료하는 의원과 약으로 이바지하고, 겸하여 찬탄하고 예배하고 문안하여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나간 옛적 한량없고 그지없는 세상에서 한량없는 부처님께 이미 친근하여 공양하고 선근을 많이 심은 뒤에야, 이 경의 이름을 듣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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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선남자여, 불성은 헤아릴 수 없으며, 부처님과 법과 승가도 헤아릴 수 없으며,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으면서 알지 못하는 것도 헤아릴 수 없으며, 여래의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도 헤아릴 수 없으며, 모든 중생들이 이 대반열반경을 능히 믿는 것도 헤아릴 수 없느니라.”
사자후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모든 중생들이 이렇게 대반열반경을 능히 믿는 것이 헤아릴 수 없다 하시니, 세존이시여, 이 대중 가운데에서는 8만 5천억 사람이 이 경에 신심을 내지 않았나이다. 그러므로 이 경을 믿는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다고 이름하나이까?”
“선남자여, 이런 사람들도 오는 세상에는 결정코 이 경전을 믿을 것이며 불성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사자후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물러가지 않는 보살들이 자기에게 결정코 물러가지 않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시었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마땅히 고통으로 그 마음을 시험하되, 하루에 참깨 한 낱을 먹으면서 이레를 지내고, 멥쌀·녹두·삼씨·좁쌀·흰콩도 그와 같이 각각 이레 동안을 한 개씩 먹으면서 생각하기를, 이렇게 하는 고행이 조금도 이익이 없다 하나니, 이익이 없는 일도 능히 하거든 하물며 이익이 있는 일을 어찌 짓지 아니하겠는가. 이익이 없는 일도 능히 참고 견디어 물러가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이렇게 날마다 고행을 할 때에 모든 살과 가죽은 여위고 쭈그러져서 여물지 않은 박을 쪼개서 볕에 말린 듯하고 눈이 움푹 들어간 것은 우물 밑의 별빛과 같으며, 살이 빠지고 힘줄이 드러난 것은 이엉이 썩은 초가집 같고, 등골뼈가 드러난 것은 벽돌을 포개 놓은 듯하니라. 앉았던 곳은 말발굽 자국 같으며, 앉으려면 엎어지고 일어나려면 쓰러지나니, 이렇게 이익 없는 고통을 받더라도 보리심이 물러가지 않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고통을 깨뜨리고 안락을 주기 위하여는, 내지 안팎 재물[內外財物]과 목숨까지도 버리기를 풀 한 포기같이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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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면, 이런 보살은 결정코 물러가지 않는 마음이 있는 줄을 스스로 알고, 내가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하느니라.
또 보살이 법을 위하는 인연으로 몸을 갉아 등잔을 만들면서, 천으로 살을 싸고 기름을 부어 심지를 만들어 불을 켜거든, 보살이 그 때에 큰 고통을 받으면서 스스로 꾸짖어 말하기를 ‘이만한 고통은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 비하면 백천만 분의 일도 되지 못하거늘, 너는 한량없는 백천겁 동안에 큰 고통을 받았지만 아무 이익도 없지 않았느냐. 네가 이만한 가벼운 고통도 받지 못하고야 어떻게 지옥 속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하여 내겠느냐?’ 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할 때에는, 몸으로 고통을 깨닫지 아니하고, 그 마음도 물러가거나 흔들리거나 변하지 아니하나니, 보살이 이럴 때에 내가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을 깊이 아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그 때에 번뇌를 구족하고 끊지 못한 이는, 법의 인연을 위하여서 머리와 눈과 골수와 수족과 피와 살로 사람에게 보시하며, 몸에 못을 박고 바위에서 떨어지며 불구렁에 들어가나니, 보살이 이럴 때에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물러가거나 흔들리거나 변하지 아니하면, 보살이 자기에게 결정코 물러가지 않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며,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모든 중생의 고통과 번뇌를 깨뜨리기 위하여, 큰 축생의 몸이 되기를 발원하여서 그 몸의 피와 살을 중생에게 보시하며, 중생이 먹을 때에 다시 가엾은 생각을 내고는, 보살이 그 때에 숨을 안 쉬고 죽은 모양을 보이어, 먹는 이로 하여금 살해한다는 의심을 내지 않게 하느니라. 보살이 비록 축생의 몸을 받았으나 축생의 업을 짓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선남자여, 보살이 이미 물러가지 않는 마음을 얻었으므로 마침내 3악도의 업을 짓지 않기 때문이니라. 보살마하살이 만일 오는 세상에 티끌만한 나쁜 업의 과보라도 반드시 받지 않을 것이 있으면, 큰 원력으로 중생을 위하여 모두 받느니라. 마치 병난 사람에게 귀신이 붙어서 몸속에 숨었다가, 주문의 힘으로 모습이 드러나면 말도 하고 기뻐하기도 하고 성내고 꾸짖고 울고 통곡하는 것과 같나니, 보살마하살의 오는 세상에 받는 3악도의 업보도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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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으니라.
보살마하살이 곰의 몸을 받았을 때에는, 항상 중생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며, 혹은 가빈사라(迦賓闍羅) 새의 몸을 받는 것도 중생들에게 바른 법을 말하기를 위한 것이며, 구다(瞿陀)의 몸, 사슴의 몸, 토끼 몸, 코끼리 몸, 암양·원숭이·흰 비둘기·금시조·뱀의 몸을 받나니, 이런 축생의 몸을 받았을 적에도 마침내 축생의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고, 항상 다른 축생들을 위하여 바른 법을 연설하나니, 그들로 하여금 법을 듣고 축생의 몸을 빨리 여의게 하려는 연고니라. 보살이 그 때에 비록 축생의 몸을 받았으나,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므로 받드시 결정코 물러가지 않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지니라.
보살마하살이 흉년 드는 세상에서 굶주린 중생을 보고는, ‘한량없이 큰 거북이나 고기의 몸이 되고, 다시 원을 세우되 모든 중생들이 나의 살을 뜯어갈 때에 뜯는 대로 살이 따라 생기며, 나의 고기를 먹고는 기갈의 고통을 여의고,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지이다’ 하며, 또 보살의 원을 세우기를 ‘만일 나를 인하여 기갈을 면한 이가 있으면, 오는 세상에 빨리 25유에서 기갈하는 근심을 여의어지이다’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이런 고통을 받으면서도 마음이 물러가지 않는 이는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을 아느니라.
또 보살마하살이 병이 유행하는 세상에서 앓는 이를 보고는 생각하기를 ‘마치 약 나무가 있거든 병난 이들이 뿌리를 캐고 줄기를 찍고 가지를 꺾고 잎을 뜯고 꽃을 따고 열매를 취하고 껍질을 벗기고 살을 깎아다가 먹고 병이 낫듯이, 나의 이 몸도 그와 같아서, 병난 이가 소리를 듣거나 몸을 만지거나 피와 살을 먹거나, 내지 뼈와 골수를 먹고는 모두 병이 쾌차하여지이다’ 하며, 또 원하기를 ‘중생들이 나의 고기를 먹을 때에, 악한 마음을 내지 말고 아들의 살을 먹듯이 하며, 병을 고친 뒤에는 내가 항상 법을 말하는 것을 그들이 믿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가르쳐지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이 번뇌를 구족하고 몸의 고통을 받더라도, 마음이 물러가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반드시 물러가지 않는 마음을 얻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줄을 알지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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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침책으로 병이 들렸거든, 보살이 보고는 원을 세우되 ‘귀신의 몸·큰 몸·건장한 몸·권속이 많은 몸이 되어, 저로 하여금 보고 듣고 병이 나아지이다’ 하나니, 보살마하살이 중생을 위하여서 부지런히 고행을 닦으면, 비록 번뇌가 있으나 마음을 더럽히지는 않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비록 6바라밀을 닦더라도 6바라밀의 과보를 구하지 아니하고 위없는 6바라밀을 닦을 때에 이러한 원을 세우나니, ‘내가 지금 6바라밀로 낱낱 중생들에게 베풀면, 중생들이 나의 보시를 받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하며, 나도 6바라밀을 위하여 부지런히 고행을 닦으며 모든 고통을 받거든, 고통을 받을 때에도 나의 보리심이 물러가지 아니하여지이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이런 서원을 짓는 때를 이름하여 보리에서 물러가지 않는 모습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니,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생사에는 죄와 허물이 많은 줄을 잘 알며, 대반열반에는 큰 공덕이 있음을 관찰하고, 중생들을 위하여 생사 중에 있으면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아도 마음이 물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살은 불가사의하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인연이 없으면서도 불쌍한 생각을 내어 은혜를 입지 않고도 항상 은혜를 베풀며, 은혜를 베풀면서도 갚음을 바라지 아니하므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중생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고행을 닦거니와, 보살마하살은 다른 이를 이익케 하기 위하여 고행을 닦으면서 스스로 이익함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하다 하느니라.
또 보살이 번뇌를 구족하고도 원수라 친한 이라 하여, 받는 고통을 깨뜨리기 위하여 평등한 마음을 닦나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또 보살이 만일 나쁘고 착하지 않은 중생을 보고는 꾸중하거나 좋은 말을 하거나 쫓아내거나 내버려 두거나 하되, 나쁜 성질이 있는 이에게는 좋은 말을 하고, 교만한 이에게는 큰 교만을 보이기도 하거니와, 속마음에는 실로 교만이 없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방편이 불가사의하다 하느니라. 또 보살이 번뇌를 구족하고 재물이 없을 때에 달라는 이가 많이 오더라도 마음이 협착하지 않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또 보살이,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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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였을 때에 부처님의 공덕을 알면서도 중생들을 위하여 부처님이 없는 곳에서 변방에 나는 몸을 받는데, 소경도 같고 귀먹은 이도 같고 절름발이도 같고 조막손이도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또 보살이 중생의 죄악을 알면서도 제도하기 위하여 함께 다니며, 그의 뜻을 따르면서도 죄악에 물들지 않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또 보살은 중생의 모습도 없고 번뇌의 더러움도 없고 도를 닦아서 번뇌를 여읠 것도 없으며, 비록 보리를 닦는다 하나 보리의 행도 없고, 보리의 행을 성취할 것도 없으며, 괴롬을 받을 것도 괴롬을 깨뜨릴 것도 없는 줄을 분명하게 알고 분명하게 보지만 그래도 중생들을 위하여 괴롬을 깨뜨리고 보리의 행을 행하나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고 이름하느니라.
또 보살이 나중 몸[後邊身]을 받아서 도솔타(兜率陀)천에 있는 것도 불가사의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도솔타천은 욕계 중에서 가장 훌륭한 데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 하늘에 있는 이는 마음이 방일하고, 위의 하늘에 있는 이는 모든 근이 암둔(闇鈍)하니, 그러므로 훌륭하다 하느니라. 보시를 닦고 계행을 닦는 이는 위의 하늘의 몸과 아래 하늘의 몸을 얻고, 보시와 계행과 선정을 닦으면 도솔타천의 몸을 얻느니라. 모든 보살들이 모든 유(有)를 나무라고[毁呰] 모든 유를 파괴하면서도, 마침내 도솔타천의 업을 짓고 그 하늘의 몸을 받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보살이 다른 데 있어서도 중생들을 교화하고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욕계의 마음이 없으면서도 욕계에 나는 것이니, 그러므로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도솔타천에 나면 세 가지 훌륭한 일이 있으니, 하나는 수명이요 둘은 색신(色身)이요 셋은 이름이니라. 보살마하살은 진실로 수명이나 색신이나 이름을 구하지 않나니, 비록 구하는 마음은 없으나 얻어짐이 훌륭하다. 보살마하살은 열반을 매우 좋아하지만 유의 인연도 훌륭하니, 여러 천인들이 보살에게 대하여 성내는 마음·질투하는 마음·교만한 마음을 내지 아니하고 항상 기쁜 마음을 내며, 보살도 천인들에게 교만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오래 살 업을 짓지 않지만 그 하늘에서 끝까지 오래 사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수명이 훌륭하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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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신의 업도 없지만 묘한 색신에 광명이 가득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색신이 훌륭하다 하며, 보살마하살이 저 천궁에 있으면서도 5욕을 즐기지 않고 불법(佛法)의 일만 하므로 이름이 시방에 충만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이름이 훌륭하다 하느니라. 이러한 연고로 또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올 때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나니,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왜냐 하면 보살이 내려올 때에, 욕계·색계의 천인들이 모두 와서 전송하면서 큰 음성으로 보살을 찬탄하며, 입으로 바람을 불어서 땅이 진동케 하기 때문이니라. 또 보살은 사람 중에 상왕(象王)이며, 사람 중에 상왕을 용왕이라 하나니, 용왕이 처음 태에 들 때에는 모든 용왕들이 이 땅 밑에서 혹은 무서워하고 혹은 깨닫나니, 그래서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며, 그러므로 또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보살마하살은 태에 드는 때와 머무는 때와 나올 때를 알며, 아버지도 알고 어머니도 알며, 깨끗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않음이 마치 제석천왕의 머리에 있는 푸른빛 구슬과 같으므로 또 불가사의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대반열반경도 그와 같아서 불가사의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큰 바다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가 있음과 같으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나는 점점 더 깊어지고, 둘은 깊어서 바닥을 얻기 어렵고, 셋은 꼭 같은 짠맛이요, 넷은 조수가 시간을 어기지 않고, 다섯은 가지가지 보배가 있고, 여섯은 몸이 큰 중생들이 그 속에 살고, 일곱은 송장을 묵혀 두지 아니하고, 여덟은 모든 강물과 큰 비가 모두 들어가도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이니라. 선남자여, 점점 더 깊어짐에 세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세 가지인가. 하나는 중생의 복력(福力)이요, 둘은 바람을 따라 행함이요, 셋은 강물이 들어가는 까닭이며, 내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이 각각 세 가지가 있느니라.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도 그와 같아서, 여덟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하나는 점점 깊어짐이니, 이른바 5계·10계·2백50계·보살계와 수다원과(果)·사다함과·아나함과·아라한과·벽지불과·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니라. 이 열반경에는 이런 법들을 말하였으니, 이것을 점점 깊어짐이라 하며, 그러므로 이 경을 이름하여 점점 깊음이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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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깊어서 바닥을 얻기 어려움이니, 여래 세존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도 않고 법 수레를 운전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보시를 행하지도 않나니, 그러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이름하며,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지만, 불성은 색도 아니고 색을 여의지도 않았으며, 내지 수·상·행·식도 아니고 내지 식을 여의지도 않았느니라. 이것이 항상 볼 수 있는 요인(了因)이요, 짓는 인[作因]이 아니며, 수다원 내지 벽지불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며, 번뇌도 없고 머무는 곳도 없으며, 비록 번뇌가 없으나 항상하다고 이름하지 아니하므로 깊다고 하느니라.
다시 더 깊은 것이 있나니, 이 경전에서 어떤 때는 나라 말하고 혹은 내가 없다고 말하며, 혹은 항상하다 말하고 혹은 무상하다 말하며, 어떤 때는 깨끗하다 말하고 어떤 때는 부정하다 말하며, 혹은 즐거움이라 말하고 혹은 괴로움이라 말하며, 혹은 공하다 말하고 혹은 공하지 않다 말하며, 혹은 모든 것이 있다 말하고 혹은 모든 것이 없다 말하며, 혹은 3승을 말하고 혹은 1승을 말하며, 혹은 5음이 불성이라 말하며, 금강삼매·중도(中道)·수릉엄삼매·12인연·제일의공(第一義空)을 말하며, 자비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며, 정지(頂智)와 신심으로 모든 근(根)과 역(力)을 알며, 모든 법 중에 걸림이 없는 지혜를 말하며, 불성이 있지만 결정되었다 말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깊다고 하느니라.
셋은 꼭 같은 한맛이니, 모든 중생들이 꼭 같이 불성이 있고, 같은 1승이요 같은 해탈이요 한 인이요 한 과보요 같은 감로요 모든 이가 마땅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나니, 그러므로 한맛이라 하느니라.
넷은 조수가 시간을 어기지 않음이니, 경전 중에서 비구들은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지 못하게 하였고, 만일 내 제자로서 이 대반열반의 미묘한 경전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고 분별하거든, 차라리 생명을 잃을지언정 범하지 말라고 한 것은, 조수가 시간을 어기지 않음이니라.
다섯은 가지가지 보배가 있음이니, 이 경이 곧 한량없는 보배 광이니라. 보배라 함은 4념처(念處), 4정진(正勤), 4여의분(如意分), 5근·5력, 7각분(覺分), 8성도(聖道)며, 어린아기 행[嬰兒行], 거룩한 행[聖行], 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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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행[梵行], 하늘의 행[天行]이며, 선한 방편과 중생의 불성이며, 보살의 공덕·여래의 공덕·성문의 공덕·연각의 공덕과, 6바라밀, 한량없는 삼매, 한량없는 지혜를 보배 광이라 하느니라.
여섯은 몸 큰 중생들의 사는 곳이니, 몸 큰 중생이라 함은, 부처님과 보살을 이름이니 큰 지혜이므로 대중생이라 하고, 큰 몸인 연고며, 큰 마음인 연고며, 크게 장엄한 연고며, 크게 조복하는 연고며, 큰 방편인 연고며, 크게 법을 말하는 연고며, 큰 세력인 연고며, 큰 무리인 연고며, 큰 신통인 연고며, 크게 자비한 연고며, 항상 변하지 않는 연고며, 모든 중생에게 걸림이 없는 연고며, 모든 중생들을 포용하여 받아들이는 연고로, 몸 큰 중생들이 사는 곳이라 하느니라.
일곱은 송장을 묵혀 두지 않음이니, 송장이라 함은 일천제를 말한 것으로, 4중금을 범한 것, 5무간죄를 지은 것, 방등경을 비방한 것과, 법이 아닌 것을 법이라 말하고 법을 법이 아니라 말하는 것과, 여덟 가지 부정한 물건을 받아 두는 것, 부처님의 물품과 승가의 물품을 마음대로 쓰는 일과, 비구와 비구니에게 법답지 못한 일을 하는 것 따위를 송장이라 하는데, 이 대반열반경에는 이런 것들을 여의었으므로, 송장을 묵혀 두지 않는다 하느니라.
여덟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음이니, 가없는[無邊際] 연고며,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연고며, 색이 아닌 연고며, 지음이 아닌 연고며, 항상 머무는 연고며, 생멸하지 않는 연고며, 모든 중생이 다 평등한 연고며, 모든 법의 성품이 동일한 연고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이런 연고로 이 경이 저 큰 바다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가 있는 것과 같다고 하느니라.”
사자후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여래의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음을 깊다고 한다 하오면, 모든 중생이 네 가지 나는 일이 있사온데, 알로 나고 태로 나고 습기로 나고 화하여 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나는 일이 사람에게는 구족하게 있나이다. 시파라(施婆羅) 비구, 우바시파라(優婆施婆羅) 비구, 미가라(彌迦羅) 장자의 어머니, 니구타(尼拘陀) 장자의 어머니, 반사라(半闍羅) 장자의 어머니 같은 이들은 각각 5백 아들을 알로 낳았으니, 사람 중에 알로 낳은 일이 있음을 알겠사오며, 습기로 나는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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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난 세상에 보살일 때에, 정생왕(頂生王)과 수생왕(手生王)이 되었다 하신 것과 지금 말씀하신 암라수녀(庵羅樹女)와 가부다수녀(迦不多樹女)와 같사오니, 사람들도 습기로 나는 일이 있음을 알겠사오며, 겁의 처음에는 모든 중생들이 모두 화생하였나이다. 여래 세존께서 여덟 가지 자재함을 얻으셨는데, 무슨 인연으로 화생하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네 가지 나는 법으로 나지만 성인의 법을 얻고는 본래와 같이 알로 나거나 습기로 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겁의 처음에 중생들이 모두 화생하였지만, 그때에는 부처님의 세상에 나지 않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들이 병이 났을 때에는 의원이 필요하고 약이 필요하니라. 겁초(劫初)의 중생은 화생하여 번뇌가 있지만, 병이 생기지 않았으므로 여래가 그 세상에는 나지 아니하며, 겁초의 중생들은 몸과 마음이 법 그릇이 아니므로, 여래가 그 세상에는 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여래 세존의 하는 일은 중생들보다 수능하니, 문벌이나 권속이나 부모가 모든 수승하므로, 말하는 법을 사람들이 믿고 받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화생을 받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이 아비는 아들의 업을 짓고, 아들은 아비의 업을 짓느니라. 여래 세존이 만일 화생한다면 부모가 없을 것이니, 부모가 없으면 어떻게 모든 중생들로 선한 업을 짓게 하겠느냐. 그러므로 여래는 화생의 몸을 받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부처님의 정법에는 두 가지 보호함이 있나니, 하나는 안으로 보호함이요, 둘은 밖으로 보호함이니라. 안으로 보호함은 금하는 계율이요, 밖으로 보호함은 친척과 권속이니, 부처님 여래가 화생의 몸을 받으면, 밖으로 보호함이 없을 것이므로 여래는 화생하는 몸을 받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은 문벌을 믿고 교만한 마음을 내나니 여래는 이러한 교만을 깨뜨리기 위하여 훌륭한 문벌에 태어나고 화생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여래 세존은 진정한 부모가 있으니, 아버지 이름은 정반이요 어머니 이름은 마야건만, 중생들은 오히려 환술과 같다 하거늘, 어찌하여 화생의 몸을 받겠는가. 만일 화생의 몸을 받는다면, 어찌 쇄신사리(碎身舍利)가 있겠느냐. 여래는 중생의 복덕을 이익케 하려고 쇄신사리를 내어 공양케 하니, 그러므로 화생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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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받지 않느니라. 여러 부처님들이 화생하는 이가 없거늘, 어찌 홀로 나만이 화생의 몸을 받겠느냐?”
이 때에 사자후보살은 합장하고 한쪽 무릎을 세워 꿇어앉아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더미를
내가 어찌 말씀할 수 있으리요만
중생 위해 한 부분만 말씀하오니
이 정성 살피시와 들어주소서.

중생들이 무명의 어둠 속에서
그지없는 온갖 고통 갖추 받거늘
세존께서 벗어나게 지도하시니
온 세상이 대자비라 일컫습니다.

중생들이 생사에서 헤매느라고
미혹하고 혼란하여 괴로운 것을
여래께서 큰 안락을 베푸시오매
나고 죽는 먼길을 끊게 됩니다.

부처님이 중생에게 낙을 주려고
당신의 즐거움을 탐하지 않고
중생을 위하여서 고행하시매
세상 사람 정성으로 공양합니다.

중생들의 받는 고통 애닯게 여겨
지옥의 갖은 고초 생각지 않고
중생을 위하여서 고행하시매
위없이 우뚝하심 한량이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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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중생 위해 고행 닦으사
바라밀 구족하게 성취하시려
삿된 바람 가운데도 끄덕없으니
세상의 대사(大士)에서 뛰어나시네.

중생들은 안락을 얻고 싶지만
좋은 인 닦을 줄 모르는 것을
여래께서 가르치자 닦게 하시니
외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인 듯.

부처님이 중생의 번뇌 보시고
아기 병을 걱정하는 어머니처럼
치료할 모든 방법 생각하실새
이내 몸을 부처님께 맡기옵니다.

중생들은 모든 괴롬 받으면서도
뒤바뀌게 낙인 줄만 여기는 것을
여래께서 낙과 괴롬 연설하시니
그러므로 대자비라 일컫습니다.

세상 사람 무명이란 알 속에 있어
껍데기를 깨뜨릴 지혜 없거늘
여래의 지혜 부리[智嘴] 깨뜨리시매
큰 아들이 되었다고 이름하나니.

삼세의 구애함을 받지도 않고
이름도 자(字)도 호(號)도 모두 다 없고
열반의 깊은 뜻만 깨달았으매
부처님을 대각(大覺)이라 일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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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도는 강물에 중생이 빠져
무명에 눈이 멀어 못 나오는 이
부처님 오시어서 건져 주옵기
큰 배의 사공이라 일컫습니다.

온갖 법의 인과를 죄다 아시고
괴롬이 없어지는 도(道)까지 통해
중생에게 좋은 약 베푸시옵기
부처님 대의왕(大醫王)을 찬탄합니다.

외도들의 나쁜 소견 고행하므로
위없는 낙 얻는다 말하지만
여래는 참된 복락 말씀하시어
중생들로 좋은 쾌락 받게 하시며

여래께서 삿된 외도 깨뜨리시고
중생에게 바른 길을 지시하시어
그대로 수행하면 안락 얻나니
부처님을 대도사(大導師)라 일컫습니다.

나도 남도 함께도 짓지 않으며
원인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여래께서 말씀하는 고(苦) 받는 일은
여러 가지 외도보다 뛰어나시며,

계와 정과 지혜를 갖추 이루고
이 법으로 중생들을 교화하시되
아끼거나 질투하는 생각 없나니
그러므로 인연 없는 자비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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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는 일도 없으며 인연 없으나
인도 없고 과도 없는 보(報)를 얻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어른의 말씀
과보를 구하지 않는 여래라 하네.

방일한 일 사람들과 같이 하시나
부처님께서는 방일에 물들지 않아
그러므로 부사의라 이름하나니
여덟 가지 세상 일도 흔들지 못해

세존께선 친한 이도 원수도 없어
그의 마음 어느 때나 평등하시매
사자후 내 입으로 칭찬하는 말
한량없는 사자후를 연설하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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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1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4. 가섭보살품 (迦葉菩薩品) ①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사, 조복되지 못한 이를 조복하시며, 깨끗하지 못한 이를 깨끗하게 하시며, 귀의할 데 없는 이를 귀의케 하시며,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케 하시어 여덟 가지 자재함을 얻으셨으며, 대의사(大醫師)가 되시고 대약왕(大藥王)이 되셨사오며, 선성(善星) 비구는 부처님께서 보살이시던 때의 아들로서, 출가한 뒤에는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분별하여 해설하며, 욕계의 결박을 부수고 4선정을 얻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선정 비구를 수기하시되, ‘일천제(一闡提)여, 하천한 사람으로서 지옥에 몇 겁으로 있어서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이다’ 하셨나이까? 여래께서 어찌하여 먼저 그를 위하여 바른 법을 말씀하시고, 뒤에 보살이 되도록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래 세존께서 만일 선성 비구를 구제하지 못하신다면 어떻게 크게 자민(慈愍)하시고 큰 방편이 있다고 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치 부모가 아들 셋을 두었는데, 맏아들은 믿고 효순하는 마음이 있어 부모를 공경하고, 근성이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세상 일을 빨리 알고, 둘째 아들은 부모에게 공경하지 않으며, 믿고 효순하는 마음이 없으나 근성이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세상 일을 빨리 알고, 셋째 아들은 부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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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하지도 않고 믿고 효순하는 마음도 없으며, 근성이 둔하고 지혜가 없다면, 부모가 가르치려 할 적에, 먼저 누구를 가르치고 먼저 누구를 사랑하고 먼저 누구로 하여금 세상 일을 알게 하겠는가?”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마땅히 먼저 믿고 효순하는 마음이 있어 부모를 공경하고, 근성이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세상 일을 아는 사람을 가르치고, 그 다음에 둘째와 셋째까지도 가르치리니, 그 두 아들이 비록 믿고 효순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지만, 자비하고 염려하므로 가르칠 것입니다.”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으니라. 그 세 아들은, 맏이는 보살에 비유한 것이고, 가운데는 성문(聲聞)에 비유한 것이고, 막내는 일천제에 비유한 것이니라. 12부경의 수다라(修多羅) 중에서 현미한 이치는 내가 먼저 보살들을 위하여 말하였고, 천근(淺近)한 뜻은 성문을 위하여 말하였고, 세간의 이치는 일천제와 5역죄(逆罪)를 지은 이를 위하여 말하였으니, 이 세상에서는 이익이 없더라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후세의 선근 종자를 내게 하기 위함이니라.
선남자여, 세 가지 밭이 있으니, 첫째는 물대기가 편리하고, 모래·자갈·가시덤불이 없어서 하나를 심으면 백을 얻고, 둘째는 모래·자갈·가시덤불은 없으나, 물대기가 어려워 추수가 반이나 감하고, 셋째는 물대기도 험하고, 모래·자갈·가시덤불이 있어서 하나를 심으면 하나를 거두지만, 짚이나 거두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농부가 봄에 어느 밭에 먼저 씨를 심겠느냐?”
“세존이시여, 먼저 첫째 밭에 씨를 심고, 다음에 둘째 밭 나중에 셋째 밭에 미치리이다.”
“첫째 밭은 보살에 비유한 것이고, 다음은 성문에 비유한 것이고, 나중은 일천제에 비유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기 세 그릇이 있는데, 하나는 온전하고, 둘째는 새고, 셋째는 깨졌으면, 우유·타락[酪]·생소[酥]나 물을 담으려면 먼저 어느 그릇을 쓰겠느냐?”
“세존이시여, 마땅히 온전한 것을 쓰고, 다음에 새는 것을 쓰고,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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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것을 쓰겠나이다.”
“그 온전하고 깨끗한 것은 보살에 비유한 것이고, 새는 것은 성문에 비유한 것이고, 깨진 것은 일천제에 비유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병자 세 사람이 함께 의사에게 왔는데, 한 사람은 고치기 쉽고, 둘째는 고치기 어렵고, 셋째는 고칠 수 없다. 선남자여, 의사가 고치려면 누구를 먼저 치료하겠느냐?”
“세존이시여, 먼저 고치기 쉬운 이를 치료하고, 다음에 두 번째 사람을 치료하고, 나중에 셋째 사람에게 미치리니, 왜냐 하면 권속을 위한 때문입니다.”
“고치기 쉬운 자는 보살에 비유한 것이고, 고치기 어려운 자는 성문에 비유한 것이고, 고칠 수 없는 자는 일천제에 비유한 것이니, 지금 세상에서는 선한 과보가 없지만 불쌍히 여기는 까닭으로 후세의 선근종자를 심기 위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왕에게 세 가지 말이 있는데, 하나는 길이 잘 들고 장대하고 기운이 세며, 둘째는 길이 들지 않고 젊고 기운이 세며, 셋째는 길이 들지 않고 늙었고 기운이 없으니, 왕이 말을 타려면 어느 말을 먼저 타겠는가?”
“세존이시여, 마땅히 길 잘 들고 장대하고 기운이 센 말을 먼저 타고, 다음에 둘째 말을 타고, 나중에 셋째에 미치리이다.”
“선남자여, 길이 잘 들고 장대하고 기운이 센 말은 보살승(菩薩僧)에 비유한 것이고, 둘째는 성문승(聲聞僧)에 비유한 것이고, 셋째는 일천제에 비유한 것이니, 지금 세상에는 이익이 없더라도 불쌍히 여기어서 후세의 선한 종자를 심으려 하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크게 보시할 때에 세 사람이 왔는데, 하나는 귀족으로서 총명하고 계율을 가졌고, 둘째는 중품 문벌로서 둔하고 계율을 가졌고, 셋째는 미천하고 둔하고 계율을 파괴하였다면, 선남자여, 이 대시주가 누구에게 먼저 보시하겠는가?”
“세존이시여, 마땅히 귀족으로서 총명하고 계율을 가진 사람에게 먼저 보시하고, 다음에 둘째요, 나중에 셋째에 미치리이다.”
“첫째는 보살승에 비유한 것이고, 둘째는 성문승에 비유한 것이고, 셋째는 일천제에 비유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큰 사자가 큰 코끼리를 죽일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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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다하고, 토끼를 죽일 때에도 그렇게 하여 소홀한 생각을 내지 않나니, 부처님 여래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이나 일천제를 위하여 법을 연설할 때에, 공용(功用)이 다르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에 왕사성에 있을 때에 선성 비구가 나에게 시중을 들었는데, 내가 초저녁에 천제석(天帝釋)을 위하여 법을 연설하였다. 제자의 도리는 스승보다 나중에 자는 법인데, 선성은 내가 오래 앉아 있다고 마음으로 좋지 않은 생각을 하였다. 그 시절에 왕사성에서 어린아이들이 울고 그치지 않으면, 그의 부모들이 달래는 말이, ‘네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너를 박구라(薄拘羅) 귀신에게 주겠다’는 말이 있었는데, 선성 비구가 그 말에 집착되어 내게 말하기를 ‘빨리 선실(禪室)에 들어가십시오. 박구라가 옵니다’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어리석은 사람아, 여래 세존은 두려움이 없는 줄을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고 하였느니라. 그 때에 제석(帝釋)이 나에게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저런 사람이 불법(佛法) 중에 들어왔나이까?’ 하기에, 나는 대답하기를 ‘교시가(憍尸迦)여, 이런 사람이 불법 중에 들어온 것은 불성(佛性)이 있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니, 내가 비록 선성을 위하여 법을 말하였지만, 저는 믿는 마음이 조금도 없도다’ 하였다.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에 가시국(迦尸國) 시바부라(尸婆富羅)성에 있을 때에, 선성 비구가 나의 시중을 들었다. 그 때에 내가 그 성안에 들어가서 걸식을 하려 할 때에, 한량없는 중생들이 갈망하는 마음으로 나의 발자국을 보려 하였는데, 선성 비구가 내 뒤를 따라오면서 자국을 없애려 하였으나 없애지도 못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불쾌한 마음을 내게 하였느니라. 내가 성에 들어갔을 때에, 어느 술집 앞에 한 니건(尼乾 : 6대 외도의 하나)이 등을 꾸부리고 걸터앉아 술지게미를 먹고 있었다. 선성 비구가 그것을 보고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세간에 만일 아라한이 있다면, 이 사람이 제일이겠나이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이 말하기를 (인(因)도 없고 과(果)도 없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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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아, 너는, 아라한은 술을 먹지 않고, 사람을 해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훔치지 않고 음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저런 사람은 부모를 살해하고 술지게미를 먹는데 어찌 아라한이라 하겠느냐? 저 사람은 몸을 버리고는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요, 아라한은 3악도를 영원히 여의었거늘, 어떻게 아라한이라 말하겠느냐?’
선성은 또 말하였다.
‘4대의 성품은 변역할 수 있사오며, 이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함은 옳지 않은가 하나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아,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부처님들은 말씀이 진실하고 두 가지가 없느니라.’
내가 선성을 위하여 법을 말하였으나, 그는 절대로 믿는 마음이 없었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 선성 비구와 함께 왕사성에 있을 때에, 그 성안에 한 니건이 있었으니, 이름은 고득(苦得)이었는데, 항상 말하였다.
‘중생의 번뇌는 인(因)도 없고 연(緣)도 없으며, 중생의 해탈도 인연이 없다.’
선성 비구는 또 이런 말을 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상에 만일 아라한이 있다면, 고득이 으뜸이 되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어리석은 사람아, 고득 니건은 아라한이 아니니, 아라한의 도를 알지 못하느니라.’
선성은 또 말하였다.
‘어찌하여 아라한이 아라한에 대하여 질투심을 내나이까?”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어리석은 사람아, 나는 아라한에게 질투심을 내지 않았는데, 네가 스스로 나쁜 소견을 내었느니라. 만일 고득이 아라한이라 한다면, 이제부터 이레 만에 과식하고 병이 나서 복통으로 죽을 것이요, 죽은 뒤에는 식토아귀(食吐餓鬼)에 태어날 것이며, 그와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송장을 메어다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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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寒林]에 둘 것이니라.’
그 때에 선성은 즉시로 고득 니건자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장로여,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사문 구담이 말하기를, (그대가 이레 뒤에 과식하고 병이 나서 복통으로 죽을 것이요, 죽은 뒤에는 식토아귀에 태어날 것이며, 함께 공부하던 이들이 송장을 메어다가 시다림에 두리라) 하였으니, 장로여, 잘 생각하고 좋은 방편을 지어 구담으로 하여금 허망한 말이 되게 하라.’
그래서 고득은 그 말을 듣고는, 곧 단식하여 하루부터 6일이 되고 이레가 찬 뒤에는 흑설탕을 먹었고, 흑설탕을 먹고는 또 냉수를 먹었다. 그런데 냉수를 먹고는 복통이 나서 죽었고, 죽은 뒤에는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송장을 메어다가 시다림에 두었는데, 그 혼은 식토아귀의 몸을 받아 송장 곁에 있었다. 선성 비구는 그 소문을 듣고 시다림에 가서 고득이 식토아귀의 몸을 받고 송장 곁에 꾸부리고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선성이 물었다.
‘대덕이여, 죽었는가?’
고득은 대답했다.
‘나는 죽었노라.’
‘어떻게 죽었는가.’
‘복통으로 죽었노라.’
‘그대의 송장은 누가 메어 왔는가.’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메고 왔노라.’
‘어디에 두었는가?’
‘이 바보야, 그대는 여기가 시다림인 줄을 모르는가?’
‘어떤 몸을 받았는가?’
‘나는 지금 식토아귀의 몸을 받았노라. 선성이여, 잘 들으라. 여래께서는 훌륭한 말씀, 진실한 말씀, 때에 맞는 말씀, 옳은 말씀, 법다운 말씀을 하시나니, 선성이여, 여래께서는 이런 진실한 말씀을 하시거늘, 너는 어찌하여 믿지 않느냐? 중생이 만일 여래의 진실한 말씀을 믿지 아니하면, 그 사람도 내 몸과 같은 몸을 받게 되느니라.’
그 때에 선성은 나에게 도로 와서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세존이시여, 고득 니건은 죽은 뒤에 33천에 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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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아, 아라한은 나는 데가 없거늘, 어찌하여 고득이 33천에 났다고 말하느냐?’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것과 같아서, 고득 니건이 실상은 33천에 나지 아니하고, 지금 식토아귀의 몸을 받았나이다.’
‘어리석은 사람아, 부처님 여래는 두 가지 말이 없나니, 여래가 두 가지 말이 있다고 말하면, 옳지 아니하니라.’
선성이 말하였다.
‘여래께서 그 때에 그렇게 말씀하였으나, 저는 그 일을 믿지 않았나이다.’
선남자여, 나는 항상 선성 비구를 위하여 진실한 법을 말하였건만 그는 절대로 믿는 마음이 없었느니라. 선남자여, 선성 비구가 비록 12부경을 읽고 외우고 4선정을 얻었지만, 한 게송 한 글자의 뜻도 알지 못하였고, 나쁜 동무를 친근하여 4선정을 잃어버렸고, 4선정을 잃고는 나쁜 소견이 생겨서 이렇게 말하였다.
‘부처도 없고 법도 열반도 없으며, 사문 구담은 상보는 법을 잘 알아서 다른 이의 마음을 안다.’
나는 그 때에 선성에게 말하였다.
‘내가 말하는 법은 처음도 잘하고 중간도 잘하고 나중도 잘하는 것이니라. 말이 교묘하고 뜻이 진정(眞正)하고 말한 것이 잡란되지 않아서 청정한 범행을 구족하게 성취하느니라.’
선성 비구는 또 이런 말을 하였다.
‘여래께서 비록 저에게 법을 말씀하시지만 저는 참으로 인(因)도 과(果)도 없다고 하나이다.’
선남자여, 그대가 이런 일을 믿지 아니하면, 선성 비구가 지금 니련선하에 있으니, 함께 가서 물을지어다.”
그 때에 여래께서 가섭보살과 함께 선성이 있는 데로 가니, 선성 비구는 부처님께서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는 나쁜 마음을 내었고, 나쁜 마음을 내었으므로 산 채로 아비지옥에 떨어졌다.
“선남자여, 선성 비구는 비록 불법의 한량없는 보배 더미에 들어 왔으나,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으며, 나아가 한 법의 이익도 얻지 못하였으니,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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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 탓이며 나쁜 동무의 탓이니라. 마치 어떤 사람이 큰 바다에 들어가서 많은 보배를 보고서도 얻은 바가 없는 것은 방일한 때문이며, 또 바다에 들어가서 보배 더미를 보더라도 자살하여 죽거나 나찰귀가 살해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성 비구도 그와 같아서 불법 가운데 들어왔지만, 나쁜 동무라는 나찰귀에게 살해되었느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여래가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선성이 방일함이 많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본래부터 빈궁하였으면 그 사람에게는 불쌍한 마음을 내어도 그 마음이 박약하지만, 본래 부자였던 사람이 뒤에 재산이 없어졌으면, 그 사람에게 불쌍한 마음을 내는 것은 두터우니라. 선성 비구도 그와 같아서 12부경을 받아 가지고 읽고 외우며 4선정을 얻었다가 물러나 앉았으므로 매우 가련한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선성 비구는 방일함이 많다’고 하느니라. 방일함이 많아서 선근을 끊었으므로, 나의 제자로서 보고 듣는 이는, 이 사람에게 거듭 가련한 마음을 내는 것이 마치 큰 부자가 재산을 잃어버린 듯이 하느니라. 내가 오래전부터 선성과 함께 다녔건만 그가 스스로 나쁜 마음을 내었고, 나쁜 마음인 연고로 나쁜 소견을 버리지 못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예전부터 이 선성 비구가 터럭만큼이나 선근이 있음을 보았으며, 그가 선근을 끊어버린 일천제며 하천한 사람이어서 지옥에 오래 있으리라고 말하지 않으련만 그가 말하기를 ‘인도 없고 과도 없으며 짓는 업도 없다’고 하므로, 저는 영원히 선근을 끊어 버린 일천제며, 하천한 사람이어서 지옥에 오래 있으리라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똥구덩이에 빠졌을 때에, 어떤 선지식이 손으로 더듬으면서 머리카락이라도 잡으면 끌어내려고 오래 찾다가 잡히지 않으면 생각을 그만두듯이, 나도 그와 같아서 선성의 조그만 선근이라도 찾으면 제도하려고 오랫동안 구하였지만, 터럭만치도 구하지 못하였으므로 지옥에서 빼어낼 수가 없었느니라.”
가섭보살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어찌하여 그가 아비지옥에 빠진다고 수기하셨나이까?”
“선남자여, 선성 비구의 많은 권속들이 모두 말하기를 ‘선성은 아라한이니 도과(道果)를 얻었다’ 하기에, 나는 그들의 삿된 마음을 깨뜨리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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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이 방일하므로 지옥에 떨어지리라고 수기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말은 진실하여 둘이 없는 줄을 알아야 하나니, 왜냐 하면 만일 부처가 마땅히 지옥에 떨어지리라고 수기하였는데, 떨어지지 아니한다면 옳지 아니하니라. 성문이나 연각에게 수기한 것은 두 가지가 있으니, 허망하기도 하고 진실하기도 하니라. 저 목건련이 마가다국에 있으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제부터 이레 뒤에 비가 오리라’ 하였으나 비는 오지 아니하였고, 또 새끼 밴 암소가 마땅히 흰 송아지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나 새끼를 낳고 보니 얼룩송아지였으며, 아들을 낳으리라 수기하던 것이 나중에 딸을 낳았느니라.
선남자여, 선성 비구는 항상 한량없는 중생들에게 선전하기를, ‘온갖 것이 선과 악의 과보가 없다’ 하였으니, 그 때에 영원히 모든 선근이 끊어져서 나아가 털끝만치도 없어졌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오래전부터 선성 비구가 선근이 끊어질 줄을 알았지만 그래도 20년이 되도록 함께 있으면서 기르고 행을 닦게 하였느니라. 내가 만일 멀리 버리고 곁에 있지 못하게 하였더라면, 이 사람이 한량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나쁜 업을 짓게 하였을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여래의 다섯째 아는 힘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일천제들은 무슨 인연으로 선한 법이 없나이까?”
“선남자여, 일천제들은 선근을 끊어 버린 탓이니라. 중생들이 모두 믿는 등의 5근(根)이 있건만 일천제들은 영원히 끊어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개미 새끼를 죽여도 살생한 죄를 얻지만 일천제를 죽인 것은 살생한 죄가 없다고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일천제는 마침내 선한 법이 없을 것이므로 그래서 일천제라 이름하나이까?”
“그러하니라.”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세 가지 선이 있사오니, 과거의 선, 미래의 선, 현재의 선입니다. 일천제들도 미래의 선은 끊지 못할 것이온데, 어찌하여 모든 선한 법을 끊었으므로 일천제라 한다고 하겠습니까?”
“선남자여, 끊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에 멸함이요, 둘은 현재가 미래를 장애함이니라. 일천제들은 이 두 가지 끊는 일을 갖추었으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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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내가 모든 선근을 끊었다고 말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똥구덩이에 빠졌을 적에 한 터럭 끝이 채 빠지지 아니하였으면, 비록 한 터럭 끝이 빠지지 아니하였더라도 한 터럭 끝만으로는 전신을 끌어낼 수 없나니, 일천제들도 그와 같아서 비록 미래세에 선근이 있을지라도 지옥의 고통을 구할 수가 없으며, 미래의 세상에서 구할 수가 있다 하더라도, 현재의 세상에서는 어찌할 수 없나니, 그러므로 구제하지 못한다 이름하느니라. 불성(佛性)의 인연으로는 구할 수 있지만 불성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니, 그러므로 불성은 끊을 수 없거니와, 썩은 종자는 싹이 날 수 없나니, 일천제들도 그와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일천제들이 불성을 끊지 않았다면 불성도 선이온데 어찌하여 온갖 선을 끊었다 하겠습니까?”
“선남자여, 모든 중생이 현재의 세상에서 불성이 있는 이는 일천제라고 이름하지 아니하나니, 세간에 있는 중생의 나라는 성품과 같으려니와, 불성은 항상한 것이므로 3세에 간섭되지 않나니, 만일 3세에 간섭되면 무상하다 할 것이며, 불성은 미래에 볼 수 있으므로, 중생들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요, 이런 뜻으로 10주(主) 보살이 구족하게 장엄하고야 조금 보게 되느니라.”
가섭보살이 또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불성은 항상함이 허공과 같거늘 무슨 연고로 여래께서 미래를 말씀하시나이까? 여래께서 일천제들이 선한 법이 없다 하시오면, 일천제들인들 함께 공부하는 이나 스승을 같이한 이[同師]나 부모와 친족과 처자에 대하여 어찌 사랑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오리까? 만일 사랑하는 마음을 낸다면, 어찌 선이 아니오리까?”
“장하고 장하다. 선남자여, 잘 물었도다. 불성은 허공과 같아서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현재도 아니다. 모든 중생은 세 가지 몸이 있으니 과거와 미래와 현재며, 중생들은 미래에 청정한 몸을 구족히 장엄하여 불성을 보게 될 것이므로, 불성이 미래라고 내가 말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중생을 위하여 어떤 때에는 인을 과라고 말하였고, 어떤 때에는 과를 인이라고 말하였나니, 그러므로 경전에서 목숨을 먹음[食]이라고 말하였고, 빛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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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닿음[觸]이라 말하였으며, 미래의 몸이 깨끗하므로, 불성이라 말하였느니라.”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뜻이 그렇다면 어찌하여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말하나이까?”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이 현재에는 비록 없으나,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 마치 허공의 성품이 비록 현재함이 없으나, 없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라. 모든 중생은 비록 무상하지만 불성은 항상 머물러 변함이 없으므로, 내가 이 경에서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님이, 마치 허공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님과 같다’고 하였느니라. 만일 허공이 안과 밖이 있다면 허공을 말하여 하나다, 항상하다 할 수 없고, 또한 온갖 곳에 있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허공이 비록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나 모든 중생들이 모두 가지고 있나니, 중생의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그대가 말하는 바와 같이 일천제들도 선한 법이 있다고 함은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일천제들에게 만일 몸으로 짓는 업, 입으로 짓는 업, 마음으로 짓는 업, 취하는 업, 구하는 업, 베푸는 업, 아는 업이 있다면, 이런 업은 모두 삿된 업이니, 왜냐 하면 인과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가리륵(呵梨勒) 열매는 뿌리·줄기·가지·잎·꽃·열매가 모두 쓴 것과 같이 일천제의 업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모든 근(根)을 아는 힘을 구족하였으므로, 중생들의 상근·중근·하근을 잘 분별하여, 이 사람은 하근을 변화시켜 중근이 될 것을 알고, 이 사람은 중근을 변화시켜 상근이 될 것을 알고, 이 사람은 중근을 변화시켜 하근이 될 것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중생들의 근성은 결정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 결정이 없는 연고로 혹 선근을 끊더라도 다시 나거니와, 만일 중생들의 근성이 결정되었다면, 마침내 먼저 끊으면 다시 나지 못할 것이며, 또 일천제들이 지옥에 떨어져서 수명이 한 겁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모든 법이 일정한 모양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든 근성을 아시는 힘을 구족하여 선성이 선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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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을 줄을 아셨다면, 무슨 인연으로 그의 출가를 허락하셨나이까?”
“선남자여, 내가 예전에 처음 출가하였을 때에, 동생 난타와 사촌 동생 아난과 제바달다와 아들 라후라와 이런 무리들이, 모두 나를 따라 출가하여 도를 닦았는데, 내가 선성의 출가를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가 마땅히 왕위(王位)를 이을 것이요, 그래서 그 자재한 권력으로 불법을 파괴하였을 것이니라. 그런 인연으로 그가 출가하여 수도함을 허락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선성 비구가 출가하지 않았더라도, 선근을 끊어서 한량없는 겁에 아무 이익도 없을 것이지만, 지금 출가하여 선근을 끊었으나, 능히 계율을 받아 가졌고, 유덕한 장로와 어른에게 공양하고 공경하였으며, 초선으로부터 4선까지 닦았으니, 이것은 선한 일이라 이름하며, 이런 선한 인으로는 선한 법이 생길 것이요, 선한 법이 생기면 도를 닦을 것이요, 도를 닦으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선성의 출가를 허락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내가 선성 비구가 출가하여 계를 받음을 허락하지 않았으면, 나를 일컬어 여래는 10력을 갖추었다고 하지 아니하리라.
선남자여, 부처님께서는 중생이 선한 법과 선하지 못한 법을 구족한 것을 관찰하며, 이 사람이 비록 두 가지 법을 구족하였더라도, 오래지 않아서 모든 선근을 끊고 선하지 못한 근을 갖출 것이니, 왜냐 하면 이러한 중생은 선지식을 친하지 아니하고 바른 법을 듣지 아니하고 잘 생각하지 아니하고, 법답게 행하지 아니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선근을 끊고 선하지 못한 근을 구족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또 이 사람이 현세나 미래세에 젊었을 때에나 장년일 때에나 늙었을 때에, 선지식을 친근하고 바른 법인 고·집·멸·도를 들을 것이요, 그 때에는 선근이 도로 생길 줄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샘이 있는데, 맛이 좋고 여덟 가지 공덕을 갖추었다. 어떤 사람이 목이 말라서 샘이 있는 데로 가려 하면, 곁에 있던 지혜 있는 사람은 이 목마른 사람이 샘이 있는 데로 갈 줄을 아나니, 왜냐 하면 다른 길이 없는 까닭이니라. 여래 세존이 중생들을 관찰함도 그와 같으므로, 여래를 이름하여 모든 근성을 아는 힘을 구족하였다 하느니라.”
이 때에 세존께서 땅의 흙을 조금 집어서 손톱 위에 두고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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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흙이 많으냐, 시방 세계에 있는 땅의 흙이 많으냐?”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손톱 위에 있는 흙은 시방에 있는 흙에 비교할 수 없나이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이 몸을 버리고 도로 사람의 몸을 받으며, 3악도의 몸을 버리고 사람의 몸을 받으며, 여러 근이 온전하여 나라의 중앙에 나며, 바른 신심을 갖추어 도를 닦으며, 도를 닦아서는 해탈을 얻으며, 해탈을 얻어서 열반에 드는 것은 손톱 위에 있는 흙과 같고, 사람의 몸을 버리고 3악도의 몸을 받으며, 3악도의 몸을 버리고 도로 3악도의 몸을 받으며, 모든 근이 갖추어지지 않아 변방에 태어나며, 삿된 소견을 믿고 삿된 소견을 닦으며, 해탈의 항상하고 즐거운 열반을 얻지 못함은, 시방세계에 있는 흙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계율을 보호하여 가지고 정근하여 게으르지 아니하며, 4중죄(重罪)을 범하지 않고, 5역죄(逆罪)를 짓지 아니하며, 승가의 물건을 쓰지 않고, 일천제를 짓지 아니하며, 선근을 끊지 않고, 이러한 열반경을 믿는 이는 손톱 위에 있는 흙과 같고, 계율을 깨뜨리고 게으르며, 4중죄를 범하고, 5역죄를 지으며, 승가의 물건을 사용하고, 일천제를 지으며 선근을 끊고 이 경전을 믿지 않는 이는 시방세계에 있는 흙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이렇게 중생들의 상근·중근·하근을 잘 아는 연고로, 부처님을 일컬어 모든 근성을 아는 힘을 갖추었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근성을 아시는 힘을 갖추셨으므로 모든 중생들의 상근·중근·하근의 영리하고 둔한 차별을 아시며, 현재의 중생들의 근성도 아시고, 미래의 중생들의 근성도 아시나이다. 이런 중생들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이러한 말을 할 것입니다. 여래는 필경에 열반에 든다 혹은 필경에 열반에 들지 않는다 말하며, 혹은 내가 있다 하고 혹은 내가 없다고 말하며, 혹은 중음(中陰)이 있다 하고 혹은 중음이 없다고 말하며, 혹은 물러감이 있다 하고 혹은 물러감이 없다고 말하며, 혹은 여래의 몸이 함이 있다[有爲] 하고 혹은 여래의 몸이 함이 없다 말하며, 혹은 12인연이 함이 있는 법이라 하고 혹은 12인연이 함이 없는 법이라 말하며, 혹은 마음이 항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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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고 혹은 마음이 무상하다 말하며, 혹은 5욕락을 받음이 성인의 도에 장애된다 하고 혹은 장애되지 않는다 말하며, 혹은 세제일법(世第一法)이 오직 욕계라 하고 혹은 3계라 말하며, 혹은 보시가 뜻으로 짓는 업이라 하고 혹은 5음으로 짓는다 하며, 혹은 세 가지 함이 없음[三無爲]이 있다 하고 혹은 세 가지 함이 없음이 없다고 말할 것이옵니다.
또 혹은 짓는 색[造色]이 있다 하고 혹은 지음 없는 색이 없다고 말하며, 혹은 심수법(心數法)이 있다 하고 혹은 짓는 색이 없다 말하며, 혹은 지음 없는 색[無作色]이 있다 하고 혹은 심수법이 없다고 말하며, 혹은 다섯 가지 유(有)가 있다 하고 혹은 여섯 가지 유가 있다고 말하며, 혹은 8계재법(戒齋法)·우바새계(優婆塞戒)를 구족하게 받는다 하고 혹은 구족하게 받지 않는다 말하며, 혹은 비구가 4죄를 범하고도 비구계가 있다 하고 혹은 있지 않다 말하며, 혹은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이 모두 부처님 도를 얻는다 하고 혹은 얻지 못한다 말하며, 혹은 불성이 중생에게 즉(卽)하여 있다 하고 혹은 불성이 중생을 여의고 있다 말하며, 혹은 4중죄를 범하고 5역죄를 지은 일천제들에게 불성이 있다 하고 혹은 없다고 말하며, 혹은 시방의 부처님이 있다 하고 혹은 시방의 부처님이 없다고 말할 것이옵니다. 만일 여래께서 근성을 아는 힘을 구족히 성취하셨으면, 어찌하여 오늘에 결정하여 말씀하지 않으시나이까?”
부처님께서 가섭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런 이치는 안식(眼識)으로 알 것도 아니고, 나아가 의식(意識)으로 알 것도 아니고 지혜로 알 것이니라. 만일 지혜가 있는 이면, 나도 그 사람에게 두 가지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도 내가 두 가지 말을 하지 않는다 할 것이건만 지혜가 없는 이에게는 결정되지 않은 말을 하고 그 지혜 없는 사람도 내가 결정되지 않은 말을 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가지는 모든 선행(善行)은 모두 중생들을 조복하기 위한 것이니라. 마치 의원에게 있는 방문이 모두 온갖 병을 다스리기 위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여래 세존은 국토를 위하는 까닭이며, 시절을 위하는 까닭이며, 남을 위하여 말하는 까닭이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까닭이며, 여러 근기를 위하는 까닭으로, 한 법 중에 두 가지 말을 하며, 한 이름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하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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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하며, 한량없는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하느니라.
어떤 것을 한 이름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한 것이라 하는가. 마치 열반을 열반이라고도 이름하고, 무생(無生)이라고도 하고, 무출(無出)이라 하고, 무작(無作)이라 하고, 무위(無爲)라 하고, 귀의라 하고, 굴택(窟宅)이라 하고, 해탈이라 하고, 광명이라 하고, 등명(燈明)이라 하고, 저 언덕[彼岸]이라 하고, 두려움 없다[無畏] 하고, 물러감이 없다[無退] 하고, 편안한 곳이라 하고, 적정(寂靜)이라 하고, 모양 없다[無相] 하고, 둘이 없다[無二] 하고, 한 가지 행이라 하고, 청량(淸凉)이라 하고, 어둠 없다 하고, 걸림없다 하고, 다툼 없다 하고, 흐리지 않다 하고, 넓고 크다 하고, 감로라 하고, 길상이라 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한 가지 이름에 한량없는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한 가지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한 것이라 하는가. 마치 제석(帝釋)을 제석(帝釋)이라고도 이름하고, 교시가(憍尸迦)라고도 하고, 바차바(婆蹉婆)라 하고, 부란타라(富蘭陀羅)라 하고, 마가바(摩佉婆)라 하고, 인다라(因陀羅)라 하고, 천안(千眼)이라 하고, 사지부(舍脂夫)라 하고, 금강이라 하고, 보정(寶頂)이라 하고, 보당(寶幢)이라 하는 것과 같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한 가지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한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한량없는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한 것이라 하는가. 마치 부처님 여래를 여래라 이름하니 뜻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며, 아라가(阿羅呵)라 이름하니 뜻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며,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이름하니 뜻이 다르고 이름이 다르며, 뱃사공[船師]이라 하고, 도사(導師)라 하고, 정각(正覺)이라 하고, 명행족(明行足)이라 하고, 대사자왕(大師子王)이라 하고, 사문이라 하고, 바라문이라 하고, 적정이라 하고, 시주(施主)라 하고, 저 언덕에 이르렀다[到彼岸] 하고, 대의왕(大醫王)이라 하고, 대상왕(大象王)이라 하고, 대용왕이라 하고, 시안(施眼)이라 하고, 대역사(大力士)라 하고, 대무외(大無畏)라 하고, 보배더미[寶聚]라 하고, 장사꾼의 우두머리[商主]라 하고, 해탈을 얻었다 하고, 대장부라 하고, 천인사(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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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師)라 하고, 대분타리(大分陀利)라 하고, 홀로이고 짝할 이 없다[獨無等侶] 하고, 큰 복밭[大福田]이라 하고, 큰 지혜 바다라 하고, 모양이 없다 하고, 여덟 가지 지혜를 구족하였다 하는 것과 같나니, 이런 것들이 뜻이 다르고 이름이 다른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런 것을 이름하여 한량없는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한 것이라 하느니라.
또 한 가지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한 것이 있으니, 이른바 음(陰)을 음(蔭)이라고도 이름하고, 전도(顚倒)라고도 하고, 제(諦)라 하고, 4념처(念處)라 하고, 4식(食)이라 하고, 4식주처(識住處)라 하고, 유가 된다[爲有] 하고, 도가 된다[爲道] 하고, 때가 된다[爲時] 하고, 중생이라 하고, 세가 된다[爲世] 하고, 제일의(第一義)라 하고, 3수(修)라고도 하니, 몸과 계율과 마음이요, 인과(因果)라 하고, 번뇌라 하고, 해탈이라 하고, 12인연이라 하고, 성문·벽지불이라 하고, 지옥·아귀·축생·인간·천(天)이라 하고, 과거·현재·미래라 이름하나니, 이것이 한 가지 뜻에 한량없는 이름을 말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래 세존이 중생을 위하여서 자세한 가운데 간략하게 말하고 간략한 가운데 자세하게 말하며,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세제(世諦)로 말하고, 세제법(世諦法)을 제일의제로 말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자세한 가운데 간략하게 말한 것이라 하는가. 비구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12인연을 연설하노니 무엇을 12인연이라 하는가, 이른바 인(因)과 과(果)니라’ 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어떤 것을 간략한 가운데 자세하게 말한 것이라 하는가. 비구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고·집·멸·도를 연설하노니, 고라 함은 한량없는 고통을 이름이요, 집이라 함은 한량없는 번뇌를 이름이요, 멸이라 함은 한량없는 해탈을 이름이요, 도라 함은 한량없는 방편을 이름이니라’ 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제일의제를 세제로 말한 것이라 하는가. 비구에게 말하기를, ‘나의 지금 이 몸에 늙음과 병듦과 죽음이 있느니라’ 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세제를 제일의제로 말한 것이라 하는가. 교진여(憍陳如)에게 말하기를 ‘네가 법을 얻었으므로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라 이름하느니라’ 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이렇게 사람을 따르고 뜻을 따르고 시기를 따르므로, 여래를 이름하여 모든 근성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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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만일 이러한 이치에 대하여 일정한 말을 하였으면, 나를 일컬어서 여래는 근성을 아는 힘을 구족하였다 하지 아니하리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은 코끼리에게 싣는 것을 나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줄을 아나니, 모든 중생이 행하는 것이 한량이 없으므로, 여래가 가지가지 한량없는 법을 말하느니라. 왜냐 하면 중생들이 번뇌가 많은 까닭이니라. 만일 여래가 한 가지 행만을 말하였으면, 여래는 모든 근성을 아는 힘을 구족하게 성취하였다 이름하지 않았을 것이니라. 그런 까닭으로 내가 다른 경전에서 말하기를 ‘다섯 가지 중생에게 다섯 가지 법을 말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 하였으니, 믿지 않는 이에게 바르게 믿음을 찬탄하지 말 것이며, 계율을 훼방하는 이에게 계행 가짐을 찬탄하지 말 것이며, 간탐하는 이에게 보시를 찬탄하지 말 것이며, 게으른 이에게 많이 기억함을 찬탄하지 말 것이며, 어리석은 이에게 지혜를 찬탄하지 말 것이니라. 왜냐 하면 지혜 있는 이로서 다섯 종류의 사람을 위하여 이 다섯 가지를 말한다면, 말하는 이는 근성을 아는 힘을 구족하지 못하였고, 또 중생을 가엾이 여긴다고 이름하지 못할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 까닭을 말하면 이 다섯 종류의 사람이 이런 것을 듣고는 믿지 않는 마음과 나쁜 마음과 성내는 마음을 낼 것이요, 이 인연으로 한량없는 세상에서 괴로운 과보를 받을 것이므로, 중생을 가엾이 여긴다거나 근성을 아는 힘을 갖추었다고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다른 경전에서 사리불에게 말하기를 ‘조심하여 영리한 사람에게 법을 자세하게 말하지 말며, 둔한 사람에게 법을 간략하게 말하지 말라’ 하였더니, 사리불이 말하되, ‘저는 가엾이 여겨서 말하는 것이요, 선근을 아는 힘을 갖추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법을 자세하게도 말하고 간략하게도 말하는 것은 부처의 경계이고, 성문이나 연각으로서 알 바가 아니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여러 제자들이 제각기 다른 말을 하리라’ 한 것은, 이 사람들은 모두 뒤바뀐 인연으로 바른 견해를 얻지 못한 것이니, 그러므로 스스로 이롭게 하거나 다른 이를 이롭게 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중생들은 한 가지 성품, 한 가지 행,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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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근성, 한 가지 국토, 한 가지 선지식만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저들을 위하여 가지가지로 법을 말하는 것이니, 이런 인연으로 시방 3세의 부처님 여래들이 중생을 위하여서 12부경을 연설하여 보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이 12부경을 말한 것은 스스로에게 이롭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려 한 것이니, 그러므로 여래의 다섯째 힘을 일컬어 아는 힘[解力]이라 하느니라. 이 두 가지 힘으로 말미암아 여래가, 이 사람은 현재에 선근을 끊으며, 이 사람은 후세에 선근을 끊을 것이며, 이 사람은 현재에 해탈을 얻고, 이 사람은 후세에 해탈을 얻을 것을 잘 아나니, 그러므로 여래를 이름하여 위없는 힘을 가진 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여래가 필경에 열반한다 필경에 열반하지 않는다 하면, 이 사람은 여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 향산(香山) 가운데 5만 3천의 신선이 있는데, 모두 과거의 가섭불 계신 데서 공덕을 닦았으나, 아직 정도(正道)를 얻지 못하고 부처님을 친근하여 바른 법을 듣지 못하였느니라. 여래가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서 아난에게 말하기를, ‘석 달을 지내고는 내가 열반에 들리라’ 하였더니, 천인들이 듣고 그 소리가 점점 퍼져서 나아가 향산에 이르니, 선인들이 듣고는 후회하는 마음을 내어 말하기를, ‘어째서 우리들이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부처님께 친근하지 못하였는가. 부처님 여래께서 세상에 나시기 어려움이 우담화(優曇花)와 같다 하였으니, 우리들은 지금 세존께서 계신 데 가서 바른 법을 들어야 하리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그 때에 5만 3천 신선들이 나에게 오거늘, 나는 그들을 위하여 적당하게 법을 말하기를 ‘여러 대사들이여, 색은 무상한 것이니, 왜냐 하면 색의 인연은 무상한 연고니라. 무상한 인연으로 생긴 색이 어떻게 항상하겠는가. 나아가 식도 그러하니라’ 하였더니, 그 때에 신선들은 이 법문을 듣고 즉시에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느니라.
선남자여, 구시나갈(拘尸那竭)에 30만 역사가 있는데, 매인 데가 없고, 교만과 색신(色身)과 힘과 수명과 재물을 믿으며, 미치고 취한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게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이 역사들을 조복하기 위하여 목련에게 ‘너는 마땅히 모든 역사들을 조복하라’ 하였더니, 목련이 나의 가르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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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5년 동안을 여러 가지로 교화하였으나, 한 사람도 법을 받고 조복하지 못하였느니라. 그래서 나는 다시 저 역사들을 위하여 아난에게 말하기를, ‘석 달을 지내고는 내가 열반에 든다’고 하였노라. 선남자여, 그 때에 역사들이 이 말을 듣고 여럿이 모여서 길을 닦고 있었더니라. 석 달을 지낸 뒤에 나는 비사리국으로부터 구시나성으로 가던 도중에 멀리 있는 역사들을 보고 몸을 변화하여 사문의 모양을 지어 가지고 역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말하였다.
‘여러 동자들은 무슨 일을 하느냐?’
역사들이 듣고는 성을 내어서 말하였다.
‘사문이여,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를 동자라고 하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노라.
‘그대들 30만이나 되는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하여도 이 조그만 돌 한 개도 옮기지 못하니, 어째서 동자라고 이름하지 않겠느냐?’
역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우리를 동자라고 하니, 그대는 반드시 어른일 것이오.’
선남자여, 나는 그 때에 두 발가락으로 그 돌을 들어내었더니, 그 역사들이 이것을 보고는 자기들에게 변변치 못한 생각을 내고 다시 말했다.
‘사문이여, 당신은 지금 이 바위를 옮겨서 길 밖으로 꺼낼 수가 있는가?’
그래서 나는 물었다.
‘동자들은 무슨 일로 이 길을 닦느냐?’
역사들은 대답하였다.
‘사문이여, 당신은 아직도 모르는가? 석가여래께서 이 길로 걸어서 사라숲에 가시어 열반에 드실 것이요, 그런 인연으로 우리가 이 길을 잘 닦는 것이오’
그 때에 나는 칭찬하였다.
‘훌륭하도다, 동자들이여. 너희들이 그런 선한 마음을 내었으니, 내가 너희들을 위하여 이 돌을 치우리라.’
손으로 돌을 들어서 높이 던지니, 아가니타천(阿迦尼吒天)까지 올라갔다. 역사들은 바위가 공중에 있음을 보고 무서운 생각을 내어 사방으로 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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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려 하였다. 나는 또 말하였다.
‘역사들아, 너희들은 지금 두려운 마음으로 달아나지 말아라.’
역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문이여, 우리를 구호하여 준다면 우리는 안심하고 있겠소.’
그래서 나는 다시 손으로 돌을 받아서 오른쪽 손바닥에 놓았더니, 역사들이 보고는 기쁜 마음을 내고 다시 말하였다.
‘사문이여, 그 바위가 항상합니까, 무상합니까?’
내가 그 때 입으로 돌을 불었더니, 돌은 티끌처럼 부서졌다. 역사들이 이것을 보고는 말하였다.
‘사문이여, 그 돌이 무상합니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생각을 내고, 스스로 꾸짖었다.
‘어찌하여 우리들이 자재한 색신과 힘과 수명과 재물을 믿고 교만한 마음을 내었던가?’
내가 그들의 마음을 알고 즉시 변화하였던 몸을 버리고, 본래의 몸을 회복하여 법을 연설하였더니, 역사들이 보고는 모두 보리심(菩提心)을 내었느니라.
선남자여, 구시나갈에 한 공교한 장인이 있었으니, 이름이 순타(純陀)였다. 이 사람은 먼저 가섭불 계신 데서 큰 서원을 세우기를, ‘석가여래께서 열반에 드실 때에 내가 최후의 음식을 공양하겠다’ 했으므로, 내가 비사리국에서 비구 우바마나(優波摩那)에게 유언하기를, ‘선남자여, 석 달을 지내고는 내가 구시나갈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에 들 것이니, 너는 순타에게 가서 말하여 알게 하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왕사성 안에 5통(通)을 얻은 신선이 있었으니, 이름은 수발타(須跋陀)였다. 나이는 120세요,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온갖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 하였으며, 큰 교만을 내었으나, 지나간 세상에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을 심었느니라. 나는 또 그 사람을 조복하기 위하여서도 아난에게 말하기를, ‘석 달을 지내고는 내가 열반하겠노라’ 하였더니, 수발타가 듣고는 나에게 와서 믿고 공경하는 마음을 낼 것이며, 나는 그를 위하여 여러 가지 법을 말하거든, 그 사람이 듣고는 번뇌가 다함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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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라열기(羅閱耆) 왕은 빈바사라요, 그 왕의 태자는 선견(善見)이니, 업의 인연으로 나쁜 역적의 마음을 내어 그 부왕을 죽이려 하면서도 틈을 얻지 못하였고, 그 때에 악한 사람인 제바달다도 과거의 업의 인연으로 나에게 나쁜 마음을 내고 나를 해하려고 5통을 닦았으며, 오래지 아니하여 신통을 얻고는 선견 태자와 친하게 되었다. 태자를 위하여 가지가지 신통을 나타낼 적에 문 아닌 데로 나와서 문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문으로 나와서 문 아닌 데로 들어가기도 하며, 어떤 때에는 코끼리·말·소·양·남자·여자의 몸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선견 태자는 그것을 보고는 사랑하는 마음, 환희하는 마음, 공경하는 마음을 내었고, 그 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공양할 것을 마련하여 공양하였다.
그리고는 말하였다.
‘대사인 성인이시여, 제가 지금 만다라꽃을 보려 하옵니다.’
제바달다는 문득 33천에 가서 천인들에게 만다라꽃을 달라고 하였으나, 복이 다한 탓으로 주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꽃을 구하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만다라꽃은 나[我]도 없고 내 것[我所]도 없나니, 설사 내가 스스로 가진들 무슨 죄가 있으리요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 취하려다가 신통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살펴보니 자기의 몸이 왕사성에 있었으매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선견 태자를 다시 볼 낯이 없었다. 다시 생각하였다.
‘내가 지금 여래 계신 데 가서 대중을 달라고 하겠다.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면 나는 내 멋대로 사리불 등을 호령하고 시키리라.’
그 때에 제바달다가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바라옵건대 여래시여, 이 대중을 저에게 주옵소서, 제가 마땅히 가지가지로 법을 말하고 교화하여 조복케 하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 바보야, 사리불 등은 총명하고 지혜가 많아서 세상에서 믿고 복종하지만 내가 대중을 맡겨 주지 않았는데, 하물며 너 같은 바보로 침이나 먹는 사람에게랴.’
이 때에 제바달다는 악한 마음을 곱이나 내며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당신이 지금 대중을 조복하고 있지만 형세가 오래가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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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없어질 것이오.’
이렇게 말하자, 땅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제바달다는 즉시로 땅에 넘어졌고 몸에서 폭풍이 일어나며, 먼지와 흙을 날려다가 얼굴에 얹었다. 제바달다는 이러한 나쁜 꼴을 보고는, 나의 이 몸이 이 세상에서 반드시 아비지옥에 들어가리니, 나는 마땅히 이런 원수를 갚으리라 하면서, 일어나서 선견 태자에게로 갔다.
선견 태자가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성인께서 무슨 일로 얼굴이 초췌하여 근심이 있나이까?’
제바달다는 말하였다.
‘나는 매양 이러한 것을 당신이 모르는가?’
‘무슨 인연으로 그러는가를 말하소서.’
‘나와 당신은 매우 친한 사이가 아니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꾸짖기를 도리에 어긋난다 하니, 그 말을 들은 내가 어떻게 근심하지 않겠소?’
선견 태자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나를 욕하는가?’
‘온 나라 사람들이 당신을 욕하는 말이 나기 전 원수[未生怨]라 하오.’
‘어찌하여 나를 나기 전 원수라 하며, 누가 그런 이름을 지었는가?’
제바달다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나기 전에 모든 관상가들이 말하기를 이 아이가 나면 마땅히 아비를 죽일 것이라고 하였소. 그래서 바깥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나기 전 원수라 부르지만, 집안 사람들은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느라고 선견이라 하였소. 위제(韋提) 부인은 이 말을 들었으므로, 당신을 낳고는 높은 다락 위에서 어린 것을 땅에 던져서 당신의 한 손가락이 끊어지게 하였소. 그런 인연으로 사람들이 당신을 별명지어 바라류지(婆羅留枝)라 불렀소. 내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분했지만, 차마 당신에게 말하지 못하였던 것이오.’
제바달다는 이런 여러 가지 나쁜 일로 선견을 부추겨서 부왕을 죽이라 하면서 말하였다.
‘만일 당신의 아버지가 죽으면, 나도 구담을 죽이겠노라.’
선견 태자는 우행(雨行)이라는 대신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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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 무슨 연고로 내 이름을 나기 전 원수라고 하였는가?’
우행은 곧 전후의 사실을 말하였는데, 제바달다의 이야기와 틀리지 아니하였다. 선견이 이 말을 듣고는 대신과 함께 부왕을 붙들어 성밖에 가두고 네 가지 병사로 지키게 하였다. 위제 부인이 그 소문을 듣고 왕을 가둔 곳에 갔으나, 지키는 병사는 거절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부인이 성을 내어 꾸짖었더니, 지키는 사람이 태자에게 고하였다.
‘대왕의 부인께서 대왕을 보시겠다 하니 허락하오리까?’
선견은 그 말을 듣고 성이 나서 어머니에게 가서 어머니의 머리채를 끌어당기며 칼을 빼어 끊으려 하였다. 이 때에 기바(耆婆)가 태자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나라가 생긴 이래로 죄가 아무리 중하여도 여인에게 미치지 아니하였는데, 하물며 내 몸을 낳아 준 어머니에게이겠습니까?’
선견 태자는 이 말을 듣고 기바의 낯을 보아 놓아 주었으나, 부왕의 의복·음식·금침·탕약을 아주 끊어 버렸다. 이레가 지내자, 부왕의 목숨이 끊어졌다.
선견 태자는 부왕의 죽음을 보고는 후회하는 마음이 생겼으나, 우행 대신은 다시 여러 가지 사특하고 나쁜 일로 태자를 달래었다.
‘대왕이시여, 모든 업행(業行)이 모두 죄가 없는 것이온데, 무슨 연고로 이제 뉘우치는 마음을 내나이까?’
기바가 다시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그런 업은 2중의 죄를 겸한 것입니다. 하나는 부왕을 죽임이요, 다른 하나는 수다원을 죽임이오니, 이런 죄는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다시 제멸할 이가 없나이다.’
선견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래께서는 청정하시어서 조금도 더러움이 없으신데,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뵈올 수 있겠는가?’
선남자여, 내가 이런 일을 알았으므로, 아난에게 말하기를, ‘석 달을 지내고는 나는 마땅히 열반에 든다’ 하였더니, 선견이 듣고 나에게 왔기에 내가 그에게 법을 말하여 무거운 죄가 가벼워지고 뿌리 없는 신심을 얻었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알지 못하고서 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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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서는 결정코 필경에 열반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진실한 뜻이요, 하나는 이름만 빌린 것이다. 이름만 빌린 보살은 내가 석 달 뒤에 열반에 들리라는 말을 듣고, 모두 물러나는 마음을 내어 말하였다.
‘만일 여래께서 무상하여 머물지 않으신다면 우리들은 무엇하려고 이 일을 위하여 한량없는 세상에 큰 괴로움을 받겠는가. 여래 세존께서는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구족하시고서도, 이런 죽음의 마(魔)를 깨뜨리지 못하시는데, 하물며 우리 따위가 어떻게 깨뜨리겠는가?’
선남자여, 그래서 나는 이런 보살들을 위하여 ‘여래는 항상 머물러 변역하지 않는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마침내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않으신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들이 아주 없다는 소견을 내고는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몸이 없어진 뒤에는, 선업과 악업의 과보를 받을 이가 없다’고 하기에, 나는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선업과 악업의 과보는 진실로 받을 이가 있다고 말하느니라. 어떻게 있는 줄을 아는가. 선남자여, 지나간 세상에 구시나갈에 한 임금이 있었으니, 이름은 선견이라. 동자가 되었을 때에 8만 4천 세를 지내었고, 태자로 있을 때도 8만 4천 세요, 왕의 자리에 올라서도 8만 4천 세를 지내면서 외딴 곳에 홀로 앉아 생각하였다.
‘중생들이 박복하여 수명이 짧고 네 가지 원수가 항상 따르건만 알지 못하고 짐짓 방일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출가하여 도를 닦아서 이 네 가지 원수인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끊어야 하리라.’
곧 책임자에게 명령하여 성밖에 7보로 전당을 짓게 하였고, 지은 뒤에는 여러 대신·벼슬아치·후비(后妃)·자질(子姪)·권속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사람들아, 내가 지금 출가하려는데 허락하겠느냐?’
대신과 권속들이 제각기 말하였다.
‘훌륭하신 일입니다, 대왕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이 때에 선견왕은 시종 한 사람을 데리고 7보당에 가서 또 8만 4천 세를 지내면서 자비심을 닦았고, 이 자비심 인연으로 그 뒤부터 8만 4천 세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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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차례차례 전륜성왕이 되었고, 30세 동안은 석제환인(釋提桓因)이 되었고, 한량없는 세상에서 작은 왕이 되었느니라. 선남자여, 그 때의 선견이 어찌 다른 사람이겠느냐. 이런 관찰을 하지 말라. 곧 나의 몸이었느니라. 선남자여, 나의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는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결정코 내가 있고 내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또 어느 때에 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노라.
‘나라는 것은 곧 성품이니, 안팎 인연·12인연·중생의 5음·심계(心界)의 세간·공덕·업행(業行)·자재천세(自在天世)를 나라고 이름한다.’
그랬더니 내 제자들은 이 말을 듣고는 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결정코 내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어느 때에는 한 비구가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나라 하오며, 누가 나이며, 무슨 연고로 나라 하나이까?’
나는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였노라.
‘비구여 나와 내 것이 없느니라. 눈이란 것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으며, 이미 있었으나 도로 없어질 것이다. 날 때에도 좇아온 데가 없고 멸할 때에도 가는 데가 없느니라. 비록 업과 과보가 있으나, 짓는 이도 없고 음(陰)을 버리는 이도 음을 받는 이도 없느니라. 네가 묻기를 ‘어떤 것을 나라 하느냐’ 함은 나는 곧 시기[期]니라. ‘누가 나이냐’ 함은, 곧 업이니라. ‘무슨 연고로 나라 하느냐’ 함은, 곧 사랑[愛]이니라. 비구여, 마치 두 손바닥을 마주치면 소리가 나나니, 나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중생과 업과 사랑의 세 인연으로 나라고 이름하느니라. 비구여, 모든 중생의 색(色)은 내가 아니니, 나 가운데 색이 없고 색 가운데 내가 없으며, 나아가 식(識)도 그와 같으니라. 비구여, 모든 외도들이 내가 있다고 말하거니와, 음을 여의지 못하였나니, 만일 음을 여의고 따로 내가 있다 함은, 그런 이치가 없느니라. 온갖 중생의 행(行)은 환술과 같고, 더울 때의 아지랑이와 같으니라. 비구여, 5음은 모두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내가 없고 깨끗하지 아니하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그 때 한량없는 비구들이, 이 5음이 나와 내 것이 없음을 관찰하고 아라한과를 얻었느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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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결정코 내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세 가지가 화합하여 이 몸을 얻었으니, 하나는 아버지, 하나는 어머니, 하나는 중음(中陰)이니, 이 셋이 화합하여 이 몸을 받게 되었다’고 하였느니라. 어떤 때에는 아나함이 현재에 열반한다 말하였고, 혹은 중음으로서 열반에 든다 말하였고, 혹은 또 중음의 몸은 구족하고 분명하게 아나니, 모두 지나간 업으로 말미암아 깨끗한 제호(醍醐)와 같다고 말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또 말하기를, 나쁜 중생이 받는 중음은 세간의 누더기 담요와 같고, 순일하게 선한 중생이 받는 중음은 바라나에서 생산하는 흰 담요와 같다고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되, ‘여래께서 중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또 죄악을 지은 중생들을 위하여, ‘5역죄를 지은 이는 몸을 버리고는 즉시로 아비지옥에 들어간다’ 말하였고, 나는 또 ‘담마류지 비구는 몸을 버리자 바로 아비지옥에 들어가서 중간에 무색인 데가 없다’ 하였고, 나는 또 독자(犢子) 범지(梵志)에게 말하기를 ‘범지여, 만일 중음이 있다면 여섯 갈래가 있으리라’ 하였고, 나는 또 ‘무색(無色) 중생은 중음이 없다’고 말하였더니,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게서 결정코 중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경전 중에서 퇴전(退轉)하는 일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왜냐 하면 한량없이 많이 게으른 비구들이 도를 닦지 아니하므로, 다섯 가지 퇴전이 있다고 하였느니라. 하나는 일이 많음을 좋아하고, 둘은 세상 일 말하기를 좋아하고, 셋은 잠 자기를 좋아하고, 넷은 집에 있는 이[在家]와 친근하기를 좋아하고, 다섯은 돌아다니기를 좋아함이니, 이런 인연이 비구들을 퇴전케 한다고 하였다. 퇴전하는 인연도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였으니, 안과 밖이니라. 아라한은 안의 인연은 여의었으나 바깥의 인연을 여의지 못하였고, 바깥 인연으로써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가 생기므로 퇴전하는 것이다. 또 여러 비구가 있으니 이름은 구지(瞿坻)라. 여섯 번째 퇴전하였으나, 퇴전하고는 부끄러워서 다시 정진하고 닦아서 일곱 번만에 얻었고, 얻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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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까 두려워서 칼로 자살하였다. 나는 또 어떤 때에는 해탈한다 말하였고, 혹은 여섯 가지 아라한을 말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결정코 퇴전함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경전 중에서 또 말하기를, ‘마치 불에 탄 숯이 다시 나무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또 깨어진 병이 다시 병의 구실을 할 수 없는 것처럼, 번뇌도 그러하여서 아라한이 끊은 것은 마침내 도로 나지 못한다’ 하였다. 또 중생의 번뇌를 내는 원인이 세 가지가 있다 말하였으니, 하나는 번뇌를 끊지 않음이요, 둘은 인연을 끊지 않음이요, 셋은 잘 생각하지 못함이니라. 그런데 아라한에게는 두 인연이 없으니, 번뇌를 끊음과 잘 생각하지 못함이 없다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결정코 퇴전함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 중에서 말하기를, ‘여래의 몸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신(生身)이요, 또 하나는 법신(法身)이니라. 생신이라 함은 곧 방편으로 중생을 위하여 화생한 몸이니, 이런 몸은 태어난다 늙는다 병든다 죽는다, 길다 짧다 검다 희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유학(有學)이다 무학(無學)이다 말할 수 있느니라.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결정코 부처의 몸이 함이 있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법신은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我]이고 깨끗하여서 모든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영원히 여의었으며,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유학도 아니고 무학도 아니며, 부처님이 세상에 나거나 나지 않거나 간에 항상 머물러 동요하지 않고 변역함이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부처의 몸이 함이 없는 법이라고 결정코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어떤 것을 12인연이라 하느냐. 무명으로부터 행을 내고, 행으로부터 식(識)을 내고, 식으로부터 명색(名色)을 내고, 명색으로부터 6입(入)을 내고, 6입으로부터 촉(觸)을 내고, 촉으로부터 수(受)를 내고, 수로부터 애(愛)를 내고, 애로부터 취(取)를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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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로부터 유(有)를 내고, 유로부터 생을 내고, 생으로부터 늙고 죽고 근심하고 괴로워함을 낸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12인연이 결정코 함이 있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나는 또 어느 때에 비구에게 일러 말하기를, ’12인연은 부처님이 있거나 부처님이 없거나 간에 성품과 모양이 항상 머문다’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12인연이 인연으로부터 나지 않는 것이 있고, 인연으로부터 나고도 12인연 아닌 것이 있고, 인연으로부터 나고 12인연인 것도 있고, 인연으로 난 것도 아니며, 12인연이 아닌 것도 있느니라. 12인연이 인연으로 나지 않았다는 것은 미래세의 12지(支)요, 인연으로부터 나고도 12인연이 아닌 것은 아라한의 가진 5음(陰)이요, 인연으로 나고 또한 12인연인 것은 범부들이 가진 5음의 12인연이요, 인연으로 난 것도 아니고 12인연도 아닌 것은 허공이나 열반과 같은 것이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12인연이 결정코 함이 없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은 선업과 악업을 지었으므로 몸을 버릴 때에는 4대(大)가 즉시에 흩어지느니라. 순전히 선업을 지은 이는 마음이 위로 행하고, 순전히 악업을 지은 이는 마음이 아래로 행한다’고 하였더니,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마음이 결정코 항상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에 빈바사라왕을 위하여 이런 말을 하였으니, ‘대왕이여, 색은 무상한 줄을 아십시오. 왜냐 하면, 무상한 인(因)으로 생긴 연고외다. 색이 무상한 인으로부터 났다면, 지혜 있는 이가 어떻게 항상하다 말하오리까. 만일 색이 항상하다면, 멸하여져서 고뇌(苦惱)를 내지 않을 것인데, 지금에 색이 흩어지고 파괴됨을 보는 연고로 색이 무상한 줄을 알겠으며, 나아가 식도 그와 같나이다’ 하였더니,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마음이 결정코 없어지는 것[斷]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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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내가 경에서 말하기를 ‘나의 제자들은 향·꽃·금·은·보물·처자·노비(奴婢)와 온갖 부정한 물건을 받고 바른 도를 얻었으며, 바른 도를 얻고도 버리지 않는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 5욕(欲)을 받음이 성인의 도에 방해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또 내가 어느 때에 ‘집에 있는 사람이 바른 도를 얻는 것은 그럴 이치가 없다’고 말하였더니,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5욕락을 받는 것이 결정코 바른 도에 장애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에서 말하기를 ‘번뇌를 멀리 여의고도 해탈을 얻지 못함은, 마치 욕계에서 세간의 제일법을 닦음과 같다’ 하였더니,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제일법은 오직 욕계뿐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또 내가 말하기를, ‘난법(煖法)과 정법(頂法)과 인법(忍法)과 세제일법(世第一法)이 초선으로부터 4선까지에 있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이런 법들이 색계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또 내가 말하기를 ‘모든 외도들이 먼저 4선의 번뇌를 끊고서, 난법·정법·인법·세제일법을 닦았으며, 4진제(眞諦)를 관찰하여 아나함과를 얻는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제일법이 무색계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네 가지 보시 중에 세 가지 깨끗함이 있나니, 하나는 시주는 인(因)을 믿고 과(果)를 믿고 보시를 믿는데, 받는 이가 믿지 아니함이요, 둘은 받는 이는 인과 과와 보시를 믿는데, 시주가 믿지 아니함이요, 셋은 시주와 받는 이 둘이 다 믿음이요, 넷은 시주와 받는 이 둘이 모두 믿지 아니함이라. 이 네 가지 보시에서 처음의 세 가지는 깨끗하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보시는 오직 뜻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에 말하기를 ‘시주가 보시할 때에 다섯 가지 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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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하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하나는 색(色)을 보시하는 것이고, 둘은 힘을 보시하는 것이고, 셋은 편안함을 보시하는 것이고, 넷은 명(命)을 보시하는 것이고, 다섯은 변재를 보시하는 것이라. 이런 인연으로 시주가 도로 다섯 가지 과보를 받는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보시가 곧 5음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에 말하기를, ‘열반은 곧 멀리 여의는 것이라, 번뇌가 영원히 다하여 남음이 없음이, 마치 등불이 꺼지면 다시 날 수 없는 것처럼 열반도 그러하니라. 허공이라 함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마치 세간에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허공이라 이름함과 같으니라. 지혜로 반연하지 않고 멸함[非智緣滅]이라 함은, 있는 바가 없는 것이니, 만일 있다면 인연이 있을 것이요, 인연이 있는 연고로 마땅히 멸하여 다함도 있으려니와, 인연이 없으므로 멸하며 다함도 없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알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3무위(無爲)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에 목련에게 말하기를 ‘목련아, 열반이라 함은 곧 글귀[章句]며, 곧 발자국[足跡]이며, 끝간 곳[畢竟處]이며, 두려움 없음[無所畏]이며, 큰 스승[大師]이며, 큰 결과[大果]이며, 끝까지의 지혜[畢竟智]며, 크게 참음[大忍]이며, 걸림없는 삼매[無礙三昧]며, 대법계(大法界)며, 감로수[甘露味]며, 보기 어려움[難見]이니라. 목건련아, 만일 열반이 없다고 할진댄 어찌하여 사람들이 비방하고 지옥에 떨어지느냐?’ 하였노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열반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또 어느 때에 나는 목련에게 이렇게 말하기를 ‘목련아, 눈이 견고하지 않으며, 나아가 몸도 그러하여 모두 견고하지 않으니라. 견고하지 않으므로 허공이라 이름하며, 먹은 것이 내려가며, 돌아다니고 소화되는 곳과 모든 음성을 모두 허공이라 하느니라’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결정코 허공무위(虛空無爲)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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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느 때에 목련을 위하여 말하기를 ‘목련아, 어떤 사람이 수다원과를 얻지 못하고 인법(忍法)에 머물렀을 때에, 한량없는 3악도의 업보를 끊음은, 지혜로 반연함을 좇지 않고 멸한 것임[不從智緣而滅]을 알지니라’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되 ‘여래께서는 결정코 지혜로 반연하지 않고 멸함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또 어느 때에 발파(跋波) 비구에게 말하기를, ‘만일 비구가 색을 관찰하되 과거나 미래나 현재나 가깝거나 멀거나 굵거나 가늘거나 이런 색들이 나와 내 것이 아니니, 어떤 비구가 이렇게 관찰하면, 색의 애(愛)를 끊을 수 있느니라’ 하였고, 발파가 묻기를 ‘어떤 것을 색이라 합니까?’ 하기에, 나는 말하기를 ‘4대는 색이라 하고, 4음(陰)은 명(名)이라 하느니라’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결정코 색이 4대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또 말하기를, ‘마치 거울을 인하여 영상이 나타나듯이 색도 그와 같아서 4대를 인하여 지어지나니, 이른바 굵고 가늘고 껄끄럽고 미끄럽고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희고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고 기울고 뾰죽하고 가볍고 무겁고 차고 덥고 굶주리고 목마른 것과 연기·구름·먼지·안개 등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지은 색이 마치 메아리나 영상과 같다고 하느니라’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4대가 있으면 짓는 색이 있고, 4대가 없으면 짓는 색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옛날 어느 때에 보리(菩提) 왕자가 말하기를 ‘만일 비구가 계율을 보호하여 지니다가 나쁜 마음을 내면, 그 때에 비구계를 잃게 됩니다’ 하기에, 내가 보리 왕자에게 말하되 ‘계에 일곱 가지가 있으니, 몸과 입으로 좇아 무작색(無作色)이 있는 것이며, 이 무작색의 인연으로써 그 마음이 비록 악이나 무기(無記) 중에 있더라도 계를 잃었다 이름하지 않고, 계를 가진다고 하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무작색이라 이름하는가. 이색인(異色因)이 아니면 이색과(異色果)를 짓지 못한다’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무작색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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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내가 다른 경에서 말하기를 ‘계율은 나쁜 짓을 못하게 하는 것이니, 만일 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것을 이름하여 계를 가진다 하느니라’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 결정코 무작색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성인(聖人)의 색음(色陰)으로부터 식음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무명(無明)의 인연으로 내는 것이며, 모든 범부들도 그와 같으니라. 무명으로부터 애(愛)를 내나니, 애가 곧 무명인 줄을 알 것이며, 애로부터 취(取)를 내나니, 취가 곧 무명과 애인 줄을 알 것이며, 취로부터 유(有)를 내나니, 유가 곧 무명·애·취며, 유로부터 수(受)를 내나니, 수가 곧 행(行)·유(有)며, 수의 인연으로부터 명색(名色)·무명·애·취·유·행·수·촉식(觸識)·6입(入) 등을 내나니, 그러므로 수는 곧 12지(支)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심수(心數)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눈과 빛과 밝음과 악욕(惡欲)의 네 가지 법으로부터 안식(眼識)을 내나니, 악욕이라 함은 곧 무명이요, 욕의 성품으로 구하는 것을 애(愛)라 이름하며, 애의 인연으로 취(取)하나니, 취를 업(業)이라 하며, 업은 식의 연(緣)이 되고, 식은 명색의 연이 되고, 명색은 6입의 연이 되고, 6입은 촉의 연이 되고, 촉은 상(想)·수(受)·애(愛)·신(信)·정진·정(定)·혜(慧)의 연이 되느니라. 이런 법들이 촉을 인하여 나는 것이요, 곧 촉은 아니라’ 하였더니,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심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에는 다만 1유(有)만이 있다 하였고, 어느 때에는 2유, 3유, 4유, 5유, 6유, 7유, 8유, 9유로부터 25유까지 말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5유가 있으며, 혹 6유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옛날 어느 때에 가비라위(迦毘羅衛)의 니구타숲[尼拘陀林]에 있을 때에, 석마남(釋摩男)이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어떤 것을 우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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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 하나이까?’ 하기에, 나는 ‘선남자와 선여인으로서 모든 근을 구족하고 3귀의 계를 받으면, 우바새라 하느니라’ 하였고, 석마남은 또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1분(分) 우바새라 이름하나이까?’ 하기에, 나는 ‘삼귀의 계와 1계를 받으면 1분 우바새라 하느니라’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우바새계(優婆塞戒)는 구족하게 받지 않고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어느 때에 항하 가에 있었는데, 그 때에 가전연(迦旃延)이 나에게 와서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중생으로 하여금 재법(齋法)을 받게 하옵는데, 혹은 하루, 혹은 한 밤, 혹은 한 시(時) 혹은 한 찰나를 하게 하였는데, 이런 사람도 재를 성취하리이까?’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비구여, 이런 사람은 선을 얻었으나 재를 얻었다고는 이름하지 않느니라’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 8계재(戒齋)는 구족하게 받아야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만일 비구가 4중죄를 범하였으면, 비구라 이름하지 않고 계를 깨뜨린 비구, 계를 잃은 비구라 하나니, 다시는 선한 싹을 낼 수 없음이 마치 볶은 종자는 열매를 낼 수 없으며, 다라나무의 우죽(우두머리 가지)을 끊으면 열매를 내지 못함과 같아서 중죄를 범한 비구도 그러하니라’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 비구들이 중죄를 범하면 비구계를 잃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순타(純陀)를 위하여 네 가지 비구에 대해 말하였는데, 하나는 필경까지 도에 이르는 자이고[畢竟到道], 둘은 도를 보이는 자이고[示道], 셋은 도를 받는 자이고[愛道], 넷은 도를 더럽히는 자이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비구가 4중죄를 범하여도 금계(禁戒)를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비구들에게 말하기를 ‘1승(乘)·1도(道)·1행(行)·1연(緣)이니, 이러한 1승으로부터 내지 1연까지도 중생을 위하여 크게 고요함[大寂靜]을 지으며, 영원히 모든 속박과 걱정과 고통과 고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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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을 끊어 버리고, 모든 중생으로 1유(有)에 이르게 한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수다원으로부터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처님의 도를 얻는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말하기를 ‘수다원은 인간과 천상을 일곱 번 왕래하고는 반열반하며, 사다함은 인간과 천상에 한 번 나고는 반열반하며, 아나함은 다섯 가지가 있으니, 중간반열반(中間般涅槃)으로부터 상류(上流)반열반까지 있으며, 아라한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요, 또 하나는 미래인데, 현재에도 번뇌 5음(陰)을 끊고 미래에도 번뇌 5음을 끊는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여래께서는 수다원으로부터 아라한까지 부처님의 도를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이 경에서 말하기를 ‘불성이 여섯 가지를 갖추었으니, 항상하고 진실하고 참되고 선하고 깨끗하고 볼 수 있는 것[可見]이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불성이 중생을 떠나서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또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은 허공과 같으니라. 허공은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며, 안도 아니요, 밖도 아니며, 빛·소리·향기·맛·닿임에 잡히지도 아니하나니, 불성도 그와 같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불성이 중생을 떠나서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또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이 가난한 여인의 집에 묻혀 있는 보배 광과 같고, 역사(力士)의 이마에 박힌 금강주와 같고, 전륜성왕의 감로 샘과 같다’고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불성이 중생을 떠나서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또 말하기를 ‘4중죄를 범한 이나 일천제나 방등경(方等經)을 비방한 이나 5역죄를 지은 이도 다 불성이 있으며, 이런 중생이 선한 법이 조금도 없지만 불성이 선한 것이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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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불성이 중생을 떠나서 있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또 말하기를 ‘중생이 곧 불성이니, 왜냐 하면 만일 중생을 떠나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바사닉왕과 더불어 코끼리 비유를 말할 때에 소경들이 코끼리 말을 하는 것이 비록 코끼리를 옳게 말하지는 못하였으나 코끼리를 여읜 것도 아니니, 중생들이 말하기를 색이 불성이라, 나아가 식이 불성이라 하는 것도 그와 같아서 비록 불성이 아니나 불성이 아닌 것도 아니며, 내가 왕을 위하여 공후의 비유를 말한 것처럼 불성도 그러하니라’ 하였더니, 선남자여,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말을 하되 ‘소경이 젖빛을 묻는 것처럼 불성도 그러하다’ 하여 이런 인연으로 혹은 말하기를, 4중죄를 범하였거나 방등경을 비방하였거나 5역죄를 지었거나 일천제들도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고, 혹은 모두 없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여러 경전에서 말하기를 ‘한 사람이 세상에 나면 여러 사람에게 이롭고, 한 국토에 두 전륜왕이 난다거나, 한 세계에 두 부처님이 출세한다는 것이 옳지 아니하며, 한 사천하에 여덟 사천왕이 있다거나 더 나아가 두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다는 것도 옳지 아니하니라’ 하였다. 그러나 내가 말하기를 ‘염부제와 아비지옥으로부터 위로는 아가니타천까지 이른다’ 하였더니, 내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는 내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부처님께서 시방의 부처님이 없다고 말하였다 하거니와, 나는 여러 대승경(大乘經)에서 시방의 부처님이 있다’고 말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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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2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4. 가섭보살품 ②

“선남자여, 이러한 쟁론[諍訟]은 부처님의 경계요 성문이나 연각이 알 바가 아니니, 어떤 사람이 여기에 의심을 내더라도 오히려 한량없는 번뇌의 수미산 같은 것을 끊으려니와, 이 가운데 결정을 내는 이는 집착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집착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런 사람이 다른 이에게서 듣거나 스스로 경을 보거나 다른 이가 짐짓 가르칠 때에, 그런 일에 놓아 버리지 못하는 것을 집착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집착을 선이라 하오리까, 선이 아니라 하오리까?”
“선남자여, 이런 집착은 선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왜냐 하면 능히 의심을 깨뜨리지 못하는 연고니라.”
“세존이시여, 이런 사람이 본래 스스로 의심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의심을 깨뜨리지 못한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대개 의심하지 않는 것이 곧 의심이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수다원이 3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면, 이 사람도 집착이라 이름하며, 의심이라 이름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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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그것은 결정함이라 이름할 것이요, 의심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마치 어떤 사람이 먼저 인수(人樹)를 보고, 그 뒤에 밤에 다니다가 우죽(우두머리 가지)이 무지러진 나무를 보았으면, 의심하기를 사람인가 나무인가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먼저 비구와 범지를 보고 뒤에 길을 가다가 멀리서 비구를 보았으면, 의심하기를 사문인가 범지인가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먼저 소와 물소를 보고, 뒤에 멀리서 소를 보았으면, 의심하기를 저것이 소인가 물소인가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들이 먼저 두 물건을 보았으면, 뒤에 의심을 내나니, 왜냐 하면 마음에 분명치 않은 연고니라. 나는 수다원이 3악도에 떨어지기도 하고, 떨어지지 않기도 한다고 말하지 않았거늘,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의심을 냈는가?”
가섭보살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본 뒤에야 의심한다’ 하옵거니와, 어떤 사람은 두 가지 물건을 보지 않고도 의심을 내는 때가 있사오니, 무엇이냐 하면 열반이니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떤 이가 길가다가 흐린 물을 만나면 미리 보지 않았건만 역시 의심하기를 이 물이 깊은가 얕은가 하는 것 같사오니, 이 사람이 일찍 보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의심을 내나이까?”
“선남자여, 열반은 괴로움을 끊은 것이요, 열반 아닌 것은 괴로움이니라. 모든 중생이 두 가지 있음을 보았나니 괴로움과 괴롭지 않음을 보았느니라. 괴로움과 괴롭지 않음이라 함은 곧 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성냄과 기쁨, 병남과 평안, 늙음과 건강함, 속박과 해탈, 사람과 이별함과 원수를 만남이니라. 중생이 보고는 의심하기를, 필경에 이런 괴로움을 멀리 여의는 수가 있을까 없을까 하나니, 그러므로 중생이 열반에 대하여 의심을 내느니라. 그대의 생각에 그 사람이 먼저 흐린 물을 보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의심하는가 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 사람이 먼저 다른 데서 보았으므로, 아직 이르지 않았던 여기에서 의심을 내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먼저 깊고 얕은 데를 보았을 때에는 의심하지 않았는데, 이제 어째서 의심을 내나이까?”
“선남자여, 본래 다녀 보지 않았으므로 의심을 내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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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를 분명히 알지 못하므로 의심한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의심이 곧 집착이요, 집착이 곧 의심이라 함은, 어떤 이를 가리키나이까?”
“선남자여, 선근을 끊은 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무리들이 선근을 끊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총명하고 잔꾀 있고 근성이 영리하고 잘 분별하면서 선지식을 멀리 떠나고, 바른 법을 듣지 않고, 잘 생각하지 않고, 법답게 머물지 않으면, 이런 사람이 선근을 끊느니라. 이 네 가지를 떠나고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보시하는 물건이 없나니, 왜냐 하면 보시한다는 것은 재물을 버리는 것이매, 만일 보시한 과보가 있다면, 시주는 항상 빈궁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종자로부터 생긴 과보[子果]와 같은 까닭이니라. 그러므로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나니,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것이 곧 선근을 끊는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시주와 받는 이와 재물의 세 가지가 무상하여 머물지 않는 것이니, 만일 머물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시주라 받는 이라 재물이라고 말하겠는가. 만일 받는 이가 없다면 어떻게 과보를 얻으리요. 이런 이치로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나니,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시주가 보시할 때에 다섯 가지로 보시하거든, 받는 이가 받고는 혹은 선한 일을 짓고, 혹은 선하지 아니한 일을 짓거니와 시주는 선한 과보나 선하지 않은 과보를 얻지 않느니라. 마치 세간법이 씨로부터 열매가 생기고, 열매는 다시 씨를 내는 것과 같나니, 인은 시주요, 과는 받는 이지만 받는 이가 능히 선한 법과 선하지 않은 법으로써 시주로 하여금 얻게 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이런 이치로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나니,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보시하는 물건이 없나니, 왜냐 하면 보시하는 물건은 무기(無記)라, 무기라면 어떻게 선한 과보를 얻으리요. 선과 악의 과보가 없으면 곧 무기요, 재물이 무기라면 선과 악의 과보가 없을 것이니, 그러므로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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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없고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느니라.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보시한다는 것은 뜻이니, 만일 뜻이라면 볼 것도 없고 상대도 없으므로 색법(色法)이 아니리니, 색법이 아니라면 어떻게 보시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보시도 없고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느니라.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시주가 만일 불상(佛像)이나 천상(天像)이나 목숨을 마친 부모를 위하여 보시를 행한다면 곧 받을 이가 없고, 만일 받을 이가 없다면 마땅히 과보가 없는 것이며, 만일 과보가 없으면 이것은 인이 없는 것이니, 만일 인이 없으면 이는 과가 없음이라 말하느니라. 이렇게 인도 없고 과도 없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선근을 끊는 줄을 알 것이니라.
또 생각하기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나니, 만일 부모가 중생의 인이어서 중생을 낳는다고 말한다면 마땅히 항상 낳아서 끊어짐이 없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 인이 항상 있는 연고니라. 그러나 항상 낳는 것이 아니므로 마땅히 부모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나니, 왜냐 하면 만일 중생의 몸이 부모를 인하여 있는 것이라면, 한 사람이 남근(男根)과 여근(女根)을 갖추어야 할 것이건만, 그러나 갖춘 이가 없으니, 중생은 부모를 인한 것이 아님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부모를 인하여 중생을 낳는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지금 보건대 중생이 부모와 같지 아니하니, 몸과 빛깔과 마음과 위의(威儀)와 행동 등이니라. 그러므로 부모가 중생의 인이 아니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세간에 네 가지 없는 것이 있나니, 하나는 생기지 않음을 없다 하나니, 흙반죽[泥團] 때에는 질그릇의 작용이 없음과 같고, 둘은 멸한 뒤에는 없다 하나니 질그릇이 깨어진 뒤에는 없다는 것과 같고, 셋은 각각 다른 것을 제각기 없다 하나니, 소에는 말[牛]이 없고 말에는 소가 없음과 같고, 넷은 끝까지 아주 없음이니, 토끼의 뿔, 거북의 털과 같음이니라. 중생의 부모도 그러하여 이 네 가지 없는 것과 같으며, 만일 부모가 중생의 인이라면 부모가 죽을 때에 자식은 반드시 죽지 않아야 할 것이니, 그러므로 부모는 중생의 인이 아니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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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생각하기를, 만일 부모가 중생의 인이라면 마땅히 부모를 인하여 항상 중생을 낳아야 할 것이건만, 그러나 다시 화생(化生)과 습생(濕生)도 있으니, 그러므로 부모를 인하여 중생을 낳는 것이 아니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어떤 중생은 부모를 인하여 나지 않는 것이 있으니, 공작이 천둥 소리를 듣고 새끼를 배는 것과, 청작(靑雀)이 수컷의 눈물을 먹고 새끼를 배는 것과, 명명조(命命鳥)가 수컷이 춤추는 것을 보고 새끼를 배는 것과 같다 하느니라. 이런 생각을 할 때에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이 사람은 선근을 끊는 줄을 알지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세간에 선과 악의 과보가 없나니, 왜냐 하면 어떤 중생들은 열 가지 선한 법을 갖추고, 보시하기를 좋아하면 좋아하며 공덕을 부지런히 닦지만 이 사람도 병이 들어서 일찍 죽기도 하고, 재물이 손실되어 고생하기도 하며, 어떤 이는 열 가지 나쁜 짓을 하고 간탐하고 질투하고 게을러서 선한 일을 행하지 않지만, 몸이 편안하고 무병하고 장수하며 재물이 많고 걱정이 없나니, 그러므로 선과 악의 과보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나도 일찍 성인의 말씀을 들으니, 어떤 사람은 선한 일을 행하고도 죽어서 3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있고, 어떤 사람은 나쁜 일을 행하고도 죽어서 인간에나 천상에 나는 일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선과 악의 과보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성인들이 두 가지 말이 있으니, 혹은 살생을 하고도 선한 과보를 얻는다 하고, 혹은 살생을 하면 나쁜 과보를 얻는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도 일정하지 않음을 알 것이니, 성인이 일정치 않다면 내가 어떻게 일정하겠는가. 그러므로 선과 악의 과보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세간에 성인이 없나니, 왜냐 하면 만일 성인이라면 마땅히 바른 도를 얻는다 할진대, 모든 중생이 번뇌를 구족하였을 때에 바른 도를 닦는 이는, 이 사람은 바른 도와 번뇌가 동시에 갖추어져 있을 것이요, 만일 동시에 갖추어져 있다면 바른 도가 번뇌를 깨뜨리지 못할 것을 알 것이며, 만일 번뇌가 없으면서 바른 도를 닦는다면 이런 도는 무슨 작용을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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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가. 그러므로 번뇌를 갖추었다면 바른 도가 깨뜨리지 못하고, 번뇌를 갖추지 않았다면 바른 도가 소용이 없으리니, 그러기에 모든 세간에 성인이 없다고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무명(無明)은 행의 반연이 되고, 나아가 나는 것[生]은 늙고 죽음의 반연이 되나니, 이 12인연은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가졌고, 8성도가 그 성품이 평등함도 이와 같을 터인즉, 한 사람이 도를 얻을 때에 모든 사람이 마땅히 얻을 것이요, 한 사람이 닦을 때에도 모든 사람의 괴로움이 멸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번뇌가 평등한 까닭이니라. 그러나 이제 그렇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바른 도가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성인들도 모두 범부와 같은 법이 있나니, 마시고 먹고 가고 서고 앉고 눕고 자고 웃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덥고 근심하고 두려워함이니라. 이런 일이 범부와 같을진대, 성인이 성스런 도를 얻지 못한 것임을 알 것이요, 만일 성스런 도를 얻었으면 마땅히 이런 일을 끊었을 것인데, 이런 일을 끊지 못하였으니 바른 도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성인도 몸이 있어 5욕락을 받기도 하고, 또 사람을 꾸짖고 때리며, 질투하고 교만하며,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고 선한 업과 악한 업을 짓나니, 이런 인연으로 성인이 없음을 알 것이며, 만일 도가 있다면, 이런 일을 끊을 터인데, 이런 일을 끊지 못하니 도가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가엾이 여기는 생각이 많은 이를 성인이라 이름하거니와, 무슨 인연으로 성인이라 하는가. 도의 인연으로 성인이라 하는 것이다. 도의 성품이 가엾이 여김이라면, 마땅히 모든 중생들을 가엾이 여길 것이니, 반드시 닦은 뒤에야 얻어질 것이 아니며, 만일 가엾게 여기는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성인이 성스런 도를 얻고야 가엾이 여기느냐. 그러므로 세상에 성인의 도가 없음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모든 4대는 인으로부터 나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평등하게 4대의 성품이 있으므로, 중생의 여기에는 마땅히 이르고, 저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느니라. 만일 성인의 도가 있다면 성품이 그와 같을 것인데 이제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으로 세상에 성인이 없음을 알겠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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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만일 여러 성인에게 한 열반이 있다면 이것은 성인이 없다는 것임을 알지니, 왜냐 하면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니라. 항상 머무는 법은 얻을 수 없으며, 취하고 버리지 못할 것이요, 만일 여러 성인에게 열반이 여럿이라면 이것은 무상한 것이니, 왜냐 하면 셀 수 있는 법인 연고니라. 열반이 하나라면 한 사람이 얻었을 때에 모든 사람이 얻을 것이며, 열반이 많다면 이는 끝이 있는 것이요, 끝이 있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열반의 자체는 하나이나 해탈이 많은 것이니, 마치 일산은 하나이나 아설(牙舌)이 많은 것 같다 하면,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하나 하나씩 얻는 것은 모두가 얻는 것이 아니며, 또 끝이 있으므로 무상할 것이요, 만일 무상하다면 어떻게 열반이라 이름하며, 열반이 만일 없다면 누가 성인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이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성인의 도는 인연으로 얻을 것이 아니며, 만일 성인의 도가 인연으로 얻을 것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지 못하는가. 만일 모든 사람이 성인이 아니라면, 이는 성인과 성인의 도가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성인의 바른 소견이라고 말하는 것이 두 인연이 있으니, 하나는 다른 이에게서 법을 들음이요, 둘은 안으로 스스로 생각함이니라. 이 두 인연이 만일 인연으로부터 생긴다면, 생길 그것도 또 인연으로부터 생길 것이니, 그렇다면 점점 미루어서 끝이 없는 허물[無窮過]이 있을 것이며, 만일 이 두 가지가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면, 모든 중생들은 어찌하여 얻지 못하는가. 이런 관찰을 할 때에 능히 선근을 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이렇게 인연이 없고 과가 없음을 깊이 본다면, 이 사람은 신(信) 등의 5근을 끊음이니라. 선남자여, 선근을 끊는 사람은 하열(下劣)하고 우둔(愚鈍)한 사람이 아니며, 천상이나 3악도의 중생도 아니니, 승가를 파괴[破僧]하는 일도 그와 같으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런 사람은 어느 때에 선근이 도로 생겨나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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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이 사람은 두 때에 선근이 도로 생기나니, 처음 지옥에 들어갈 때와 지옥에서 나올 때니라. 선남자여, 선에 세 가지가 있으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니라. 과거인 것은 그 성품이 스스로 멸하는 것이며, 인은 비록 멸하였지만 과보가 성숙하지 못하였으므로 과거의 과보를 끊는다고 이름하지 않거니와, 3세의 인을 끊으므로 끊었다 이름하느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3세의 인을 끊으므로 선근을 끊는다 이름하오면, 선근을 끊은 사람도 불성이 있을 것이니, 이 불성은 과거라 하오리까, 현재라 하오리까, 미래라 하오리까? 3세에 두루하였다 하오리까? 만일 과거라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오리까? 불성은 항상한 것이오매 과거가 아닌 줄을 알겠나이다. 만일 미래라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오며, 무슨 연고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중생이 반드시 결정코 얻으리라 하였나이까? 만일 결정코 얻는다면 어찌하여 끊었다 하나이까? 만일 현재라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오며, 무슨 연고로 반드시 결정코 본다고 하였나이까?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성이 여섯 가지니, 항상함과 참됨과 진실함과 선함과 깨끗함과 볼 수 있음이라 하였나이다. 만일 선근을 끊었어도 불성이 있다면, 선근을 끊었다고 이름할 수 없으며, 만일 불성이 없다면 어찌하여 다시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 하나이까? 만일 불성이 있기도 하고 끊기도 한다면,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항상하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여, 여래 세존이 중생을 위하여 네 가지로 대답하였으니, 하나는 결정한 대답이요, 둘은 분별하는 대답이요, 셋은 물음을 따르는 대답이요, 넷은 두는 대답[置答]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것을 결정한 대답이라 하는가. 만일 묻기를 ‘악한 업이 선한 과보를 얻는가? 불선한 과보를 얻는가?’ 하면, 이것은 마땅히 불선한 과보를 얻는다고 결정하여 대답할 것이며, 선한 업도 이와 같으니라. 만일 묻기를 ‘여래께서는 일체지(一切智)신가?’ 하면, 이것은 마땅히 일체지라고 결정하여 대답할 것이니라. 만일 묻기를 ‘부처님 법이 청정하냐?’ 하면, 이것은 반드시 청정하다고 결정하여 대답할 것이니라. 만일 묻기를 ‘여래의 제자는 법답게 머무느냐[如法住]?’ 하면, 이것은 마땅히 법답게 머문다고 결정하여 대답할 것이니, 이런 것을 결정한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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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는가. 내가 4진제법(眞諦法)을 말하는데, 무엇이 네 가지인가. 고·집·멸·도니라. 어떤 것을 고제라 하는가. 여덟 가지 괴로움이 있으므로 고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집제라 하는가. 5음의 인이므로 집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멸제라 하는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끝까지 없어졌으므로 멸제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도제라 하는가. 37조도법(助道法)을 도제(道諦)라 함과 같은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물음을 따르는 대딥이라 하는가. 내가 온갖 법이 무상하다 말하였는데, 다시 묻기를 ‘여래 세존께서 무슨 법을 위하여서 무상하다 말씀하시나이까?’ 하면, 대답하되 ‘여래는 함이 있는 법을 위하여 무상하다 말한다’ 하나니, 내가 없다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내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저것을 태운다’ 하였는데, 또 묻기를 ‘여래 세존께서는 무슨 법을 위하므로 온갖 것이 태운다 하나이까?’ 하매, 대답하기를 ‘여래는 탐욕과 성내는 것과 어리석음을 위하여서 온갖 것이 태운다 하느니라’ 한 것과 같은 것이니라.
선남자여, 여래의 10력(力), 4무소외(無所畏), 대자대비, 3념처(念處), 수릉엄(首楞嚴) 등 8만억 삼매문, 32상(相), 80종호(種好), 5지인(智印) 등 3만 5천 삼매문, 금강정(金剛定) 등 4천 2백 삼매문, 방편삼매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것 등의 법은, 이것이 부처님의 불성이니라. 이와 같은 불성은 일곱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항상함[常], 둘은 나인 것[我], 셋은 즐거움[樂], 넷은 깨끗함[淨], 다섯은 참됨[眞], 여섯은 진실함[實], 일곱은 선함[善]이니라. 이런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후신(後身) 보살의 불성은 여섯 가지니, 항상함·깨끗함·참됨·진실함·선한 것·조금 보는 것[少見]이라,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그대가 먼저 묻기를, 선근을 끊은 사람이 불성이 있느냐?’ 한 것은, 이 사람은 여래의 불성도 있고, 후신 보살의 불성도 있거니와, 이 두 불성은 미래를 장애하는 연고로 없다고 이름하고, 필경에는 얻는 연고로 있다고 이름한다 하나니,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여래의 불성은 과거도 아니며 현재도 아니며 미래도 아니요, 후신 보살의 불성은 현재며 미래니 조금 볼 수 있으므로 현재라 하고, 구족하게 보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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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므로 미래라 하느니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때의 불성은, 인인 연고로 또한 과거요 현재요 미래거니와 과(果)는 그렇지 아니하매, 이것은 3세이기도 하고 3세가 아니기도 하니라. 후신 보살의 불성은 인인 연고로 또한 과거요 현재요 미래이며, 과도 그와 같으니라. 이런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9주(住) 보살의 불성은 여섯 가지니, 항상함·선함·참됨·진실함·깨끗함·볼 수 있음이며, 불성이 인인 연고로 또한 과거요 현재요 미래며, 과도 그러하니,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8주 보살에서 6주 보살까지의 불성은 다섯 가지니, 참됨·진실함·깨끗함·선함·볼 수 있음이며, 불성이 인인 연고로 역시 과거요 현재요 미래며, 과도 그러하니,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5주 보살에서 초주(初住) 보살까지의 불성은 다섯 가지니, 참됨·진실함·깨끗함·볼 수 있음·선과 불선이니라. 이 다섯 가지 불성과 여섯 가지 불성과 일곱 가지 불성은, 선근을 끊은 사람이 마땅히 얻을 것이므로 있다고 이름할 수 있나니,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일 말하되 선근을 끊은 이는 결정코 불성이 있다, 결정코 불성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두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가 듣기로는 대답하지 아니함을 두는 대답이라 이름한다 하였사온데, 여래께서 지금은 무슨 인연으로 대답하시면서 두는 대답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나는 두고 대답하지 아니함을 두는 대답이라 한다고 말하지 않았노라. 선남자여, 이 두는 대답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막는 것이요, 또 하나는 집착하지 말게 함이다. 이런 뜻으로 두는 대답이라 할 수 있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어찌하여 인은 과거요 현재요 미래며, 과는 과거·현재·미래이기도 하고, 과거·현재·미래가 아니기도 하다고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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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5음이 두 가지니, 하나는 인이요 하나는 과니라. 이 인의 5음은 과거요 현재요 미래며, 과의 5음은 과거·현재·미래이기도 하고, 과거·현재·미래가 아니기도 하니라. 선남자여, 모든 무명 번뇌 등의 결박이 모두 불성이니, 왜냐 하면 불성의 인인 연고니라. 무명·행과 모든 번뇌로부터 선의 5음을 얻는 것을 불성이라 하며, 선의 5음으로부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 얻나니, 그러므로 내가 경에서 먼저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은 피 섞인 젖과 같다’ 하였느니라. 피는 곧 무명·행 등의 모든 번뇌요, 젖은 곧 선의 5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모든 번뇌와 선의 5음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를 얻음이, 마치 중생의 몸이 모두 정기와 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하였으며, 불성도 그러하니라. 수다원이나 사다함이 일부분의 번뇌를 끊은 불성은 젖과 같고, 아나함의 불성은 타락[酪]과 같고, 아라한은 생소(生酥)와 같고, 벽지불로부터 10주 보살까지는 숙소(熟酥)와 같고, 여래의 불성은 제호(醍醐)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현재의 번뇌가 장애를 짓는 연고로, 중생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치 향산 속에 있는 인욕초(忍辱草)는 모든 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불성도 그러하니라. 이런 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다섯 가지 불성, 여섯 가지 불성, 일곱 가지 불성이 만일 미래에 있다면, 어찌하여 선근을 끊은 사람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모든 중생이 과거의 업이 있고, 이 업으로 인하여 중생이 현재에 과보를 받는 것이며, 미래의 업은 아직 생기지 않았으므로 과를 내지 못하거니와, 현재의 번뇌가 있나니, 만일 번뇌가 없으면, 모든 중생들이 마땅히 현재에 불성을 분명하게 보리라. 그러므로 선근을 끊은 사람은 현재의 번뇌 인연으로 능히 선근을 끊고, 미래세의 불성의 힘인 인연으로 선근을 도로 내느니라.”
가섭보살이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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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미래에 어떻게 능히 선근을 내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등불이나 해가 비록 나오지 않았더라도, 능히 어둠을 깨뜨릴 수 있는 것처럼, 미래에 나올 것이 능히 중생의 미래의 불성을 내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5음이 불성이라면, 어찌하여 중생의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무슨 인연으로 그렇게 뜻을 잃어버리느냐? 내가 먼저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이 중도(中道)라고 하지 않았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실로 뜻을 잃어버리지 않았사오나, 중생이 이 중도에서 이해하지 못하겠기에 이렇게 물었나이다.”
“선남자여, 중생이 이해하지 못함이 중도니, 어떤 때는 이해하고 어떤 때는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중생들이 이해하게 하기 위하여서 불성이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고 말하였느니라. 왜냐 하면 범부 중생이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5음 가운데 있음이, 마치 그릇 가운데 과실이 있는 것과 같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5음을 여의고 있음이, 마치 허공과 같다’ 하나니, 그러므로 여래는 중도를 말하되 ‘중생의 불성이 안의 6입도 아니며 밖의 6입도 아니고, 안과 밖이 화합함을 중도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말하기를 ‘불성이 곧 중도니,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므로 중도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이것을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것을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라 이름하는가. 선남자여,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곧 외도(外道)니, 왜냐 하면 보살마하살이 한량없는 겁 동안에 외도 중에 있어서 번뇌를 끊고 마음을 조복하고 중생을 교화한 연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불성이 외도라고 한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곧 내도(內道)니, 왜냐 하면 보살이 비록 한량없는 겁 동안에 외도를 닦았다 하더라도, 내도를 여의었으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것이므로, 불성이 내도라고 한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역시 안과 밖이라고 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이름한다고 말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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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곧 여래의 금강 같은 몸인 32상과 80종호니, 왜냐 하면 허망하거나 속이지 않는 연고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곧 10력 4무소외, 대자대비, 3념처, 수릉엄 등의 모든 삼매니, 왜냐 하면 이 삼매로 인하여 금강 같은 몸인 32상과 80종호를 내는 연고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역시 안과 밖이라고도 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이름한다고 말하느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분별하는 대답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혹은 말하기를 ‘불성은 곧 안으로 잘 생각하는 것[內善思惟]이니, 왜냐 하면 잘 생각함을 여의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불성은 곧 안으로 잘 생각함이다’라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은 곧 다른 이로부터 법을 들음이니, 왜냐 하면 다른 이로부터 법을 듣고야 안으로 잘 생각할 것이니, 만일 법을 듣지 않고서는 생각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불성은 곧 다른 이로부터 법을 들음이다’라 하느니라. 그래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역시 안과 밖이라고도 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이름한다고 말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어떤 이는 말하기를 ‘불성은 바깥이니 단바라밀(檀波羅蜜)을 말함이라. 단바라밀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나니, 그러므로 단바라밀이 불성이다’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은 안이니, 다섯 가지 바라밀을 말함이니라. 왜냐 하면 이 다섯 가지를 여의고는 불성의 인과 과가 없는 줄을 알지니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다섯 가지 바라밀이 불성이다’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하다고 말하나니, 이것을 중도라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혹은 말하기를 ‘불성은 안에 있는 것이 비유하면 역사의 이마 위에 있는 보배 구슬과 같나니, 왜냐 하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보배 구슬과 같은 연고니라. 그러므로 불성이 안에 있다’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불성이 밖에 있음이 가난한 이의 보물 광과 같나니, 왜냐 하면 방편으로 보는 연고니라. 불성도 그와 같아서 중생의 밖에 있나니, 방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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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음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이 두 극단을 막기 위하여 ‘불성은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안이기도 하고 밖이기도 하다’고 말하나니, 이것을 중도라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의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니, 무슨 까닭이냐. 불성이 비록 있으나 허공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세간의 허공은 한량없는 공교한 방편으로도 볼 수 없거니와, 불성은 볼 수 있나니, 그러므로 비록 있으나 허공과는 같지 않다 하느니라. 불성이 비록 없으나 토끼의 뿔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거북의 털과 토끼의 뿔은 한량없는 공교한 방편으로도 낼 수 없거니와, 불성은 낼 수 있나니, 그러므로 비록 없으나 토끼의 뿔과는 같지 아니하니라. 그러므로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라. 어찌하여 있다고 하는가. 온갖 것에 모두 있나니, 모든 중생들이 끊어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음이 불꽃과 같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므로 있다고 하느니라. 어찌하여 없다고 하는가. 모든 중생들이 현재에는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부처님 법이 있지 아니하므로 없다고 하느니라. 있음과 없음이 합하므로 중도라 하나니,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이 종자 속에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하면, 결정코 대답하기를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하리니, 왜냐 하면 종자를 떠나서는 열매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있다 하고, 종자에서 싹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 하리니, 이런 뜻으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니라. 무슨 까닭이냐. 시절은 다르나 그 자체는 하나이니, 중생의 불성도 이와 같으니라. 만일 중생 중에 따로 불성이 있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무슨 까닭이냐. 중생이 곧 불성이요, 불성이 곧 중생이지만 다만 시절이 다르므로 깨끗하고 깨끗지 못할 뿐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묻기를 ‘이 종자가 열매를 내겠는가, 이 열매가 종자를 내겠는가?’ 하면, 결정코 대답하기를 ‘내기도 하고 내지 않기도 한다’ 하리라.”
“세존이시여, 세상 사람이 젖 속에 타락[酪]이 있다 말한다면 그 이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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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합니까?”
“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타락이 있다고 말하면 이것은 집착이요, 타락이 없다고 말하면 이것은 허망함이니, 이 두 가지를 떠나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하여야 하느니라. 어째서 있다 하는가. 젖으로부터 타락을 내나니, 인은 젖이요 과는 타락이니라. 그래서 있다 하느니라. 어째서 없다 하는가. 빛과 맛이 각각 다르고, 쓰는 데도 같지 아니하니, 열이 나는 병에는 젖을 쓰고 냉한 병에는 타락을 쓰며, 젖은 냉병을 일으키고 타락은 열병을 일으키느니라.
선남자여, 젖 속에 타락의 성질이 있다고 말한다면 젖이 곧 타락이요 타락이 곧 젖이어서 그 성품이 하나일 것이거늘, 무슨 인연으로 젖이 먼저 나고 타락은 먼저 나지 못하느냐. 만일 인연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찌하여 말하지 못하며, 만일 인연이 없다면 어찌하여 타락이 먼저 나지 못하는가. 만일 타락이 먼저 나지 못한다면, 누가 차례차례로 젖과 타락과 생소와 숙소와 제호를 짓는가. 그러므로 타락이 먼저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니, 만일 먼저는 없다가 지금에 있다면, 이것은 무상한 법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젖에는 타락의 성질이 있어서 타락을 내고, 물에는 타락의 성질이 없어서 타락을 내지 못한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물과 풀에도 젖과 타락의 성품이 있나니, 무슨 까닭인가. 물과 풀로 인하여 젖과 타락이 나느니라. 만일 젖에는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고, 물과 풀에는 없다고 말하면 이는 허망한 것이니, 왜냐 하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므로 허망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젖 속에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면, 타락에도 역시 결정코 젖의 성품이 있을 것이거늘, 무슨 인연으로 젖에서는 타락을 내는데, 타락은 젖을 내지 못하는가. 만일 인연이 없다면 이 타락이 본래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말하기를 ‘젖 속에는 타락의 성품이 있지도 않고 타락의 성품이 없지도 않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여래가 이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결정코 불성이 있다 하면 이는 집착함이요, 만일 불성이 없다 하면 이는 허망한 것이니,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중생의 불성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할 것이니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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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네 가지가 화합하여 안식(眼識)을 내나니,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눈과 빛과 밝음과 의욕[欲]이니라. 이 안식의 성품은 눈도 아니요 빛도 아니요 밝음도 아니요 의욕도 아니나, 화합함을 따라서 생기게 되느니라. 이와 같은 안식이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으며 있다가는 도로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본래의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며, 젖 속의 타락 성품도 그와 같으니라. 만일 말하기를 ‘물에는 타락의 성품이 없으므로 타락을 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젖 속에는 결정코 타락의 성품이 있다’고 한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모든 법들이 인이 다르고 과가 다르니, 한 인에서 모든 과가 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과가 한 인에서 나는 것도 아니니라. 선남자여, 네 가지로부터 안식이 생긴다고 하여 또 이 네 가지로부터 이식(耳識)이 생기리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설사 방편을 여의고 젖 속에서 타락을 얻더라도 타락에서 생소가 생기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여, 반드시 방편을 요구하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면 방편을 여의고 젖으로부터 타락 얻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생소를 얻는 것도 이와 같이 방편을 여의고 얻으리라’고 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경에서 인이 나므로 법이 있고 인이 멸하므로 법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소금의 성품이 짬으로 해서 짜지 않은 물건을 짜게 하나니, 만일 짜지 아니한 물건에 먼저 짠 성품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무슨 연고로 소금을 구하겠느냐. 만일 먼저 짠 성품이 없었다면, 먼저는 없다가 지금에 있음을 알 것이니, 다른 인연으로 짜게 되는 것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모든 짜지 아니한 물건들이 모두 짠 성품이 있지만 미미한 연고로 알지 못하나니, 이 미미한 성품으로 말미암아 소금이 능히 짜게 하거니와, 만일 본래 짠 성품이 없다면 비록 소금이 있더라도 짜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치 종자에 스스로 4대가 있기 때문에 바깥 4대로 말미암아 움과 줄기와 가지와 잎이 자라는 것처럼 소금의 성품도 그렇다’ 하면,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무슨 까닭이냐. 짜지 아니한 물건에 먼저 짠 성품이 있었다면, 소금에도 미미하게 짜지 아니한 성품이 있을 것이니, 소금에 만일 이런 두 성품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짜지 아니한 물건을 여의고는 혼자 작용하지 못하는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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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므로 소금에 본래 두 성품이 없음을 알지니라. 소금과 같아서 온갖 짜지 아니한 물건도 모두 그와 같으니라.
만일 바깥 4대의 힘으로 안의 4대를 자라게 한다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차례로 말하는 연고로 방편을 따르지 않음이니, 젖 속에서 타락과 생소를 얻으나, 나아가 모든 법이 다 그와 같지 아니하여 방편으로 얻는 것이 아니니, 4대도 그와 같으니라. 만일 바깥 4대로부터 안의 4대를 자라게 한다 하여도 안의 4대로부터 바깥 4대를 자라게 함을 보지 못하느니라. 마치 시리사 열매는 먼저는 형체가 없다가 좀생이별[昴生]을 볼 때에 열매가 생겨서 다섯 치나 자라나니, 이런 과실은 바깥 4대로 인하여 커지는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내가 말한 12부경은 혹은 자기 뜻을 따라 말하고, 혹은 남의 뜻을 따라 말하고, 혹은 자기 뜻과 남의 뜻을 따라 말하였느니라. 어떤 것을 자기 뜻을 따라 말한 것이라 하는가. 마치 다음과 같다.
5백 비구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큰스님이시여, 부처님께서 몸의 인(因)을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이 옳습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스님들이여, 당신들도 각각 바른 해탈을 얻었은즉, 스스로 알 터인데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묻는가?’
어떤 비구가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가 바른 해탈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무명이 몸의 인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관찰하다가 아라한과를 얻었나이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큰스님, 제가 바른 해탈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애(愛)와 무명이 몸의 인이리라 생각하고, 이렇게 관찰하다가 아라한과를 얻었나이다.’
어떤 이는 말하였다.
‘행(行)·식(識)·명색(名色)·6입(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음식·5욕락이 곧 몸의 인이겠나이다.’
그래서 5백 비구가 각각 자기가 아는 소견을 말하고는 함께 부처님 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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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서 예배를 마치고 한쪽에 물러가 앉았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대로 자기가 이해한 뜻을 부처님께 말하였다.
사리불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여러 사람의 말이 누구의 것이 옳은 말이옵고 누구의 것이 옳지 않은 말이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한 말이다. 여러 비구들의 말이 하나도 옳은 말 아닌 것이 없느니라.’
사리불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뜻은 어떠하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욕계의 중생을 위하여서는 부모가 몸의 인이라 말하였노라.’
이런 경전을 자기 뜻을 따라 말한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남의 뜻을 따라 말한 것이라 하는가. 마치 다음과 같다. 파타라(巴吒羅) 장자가 내게 와서 말하였다.
‘구담이시여, 당신이 환술을 아는가? 만일 환술을 안다면 곧 대환인(大幻人)이요, 만일 모른다면 온갖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가 아니외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장자여, 환술을 아는 사람을 환인이라 하는가?’
‘옳소, 환술을 아는 사람이 환인이오.’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장자여, 사위국의 바사닉왕에게 기허(氣噓)라는 전다라가 있는데, 그대가 아는가?’
‘구담이시여, 제가 벌써부터 알았소.’
나는 또 물었다.
‘그대가 벌써부터 알았다면, 그대도 전다라이겠구려.’
‘구담이시여, 제가 그 전다라를 알지만 제 몸은 전다라가 아니오.’
‘장자여, 그대는 전다라를 알아도 전다라가 아닌 이치를 알았으니, 나는 어찌하여 환술은 알면서도 환인이 아닐 수가 없겠는가. 장자여, 나는 환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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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환인도 알고 환술의 과보도 알고 환술하는 기술도 아노라. 나는 죽이는 것도 알고, 죽이는 사람도 알고, 죽인 과보도 알고, 죽이고 해탈함도 아노라. 나아가 나쁜 소견도 알고, 나쁜 소견을 가진 사람도 알고, 나쁜 소견의 과보도 알고, 나쁜 소견에서 해탈함도 아노라. 장자여, 만일 환술 아닌 사람을 환인이라 말하거나, 나쁜 소견 아닌 사람을 나쁜 소견 가진 사람이라 말하면, 한량없는 죄를 얻느니라.’
‘구담이시여, 당신의 말과 같을진댄 저는 큰 죄를 지었고, 제가 가진 물건을 모두 드릴 터이니, 바라건대 바사닉왕으로 하여금 저의 이 일을 알지 않게 하여 주소서.’
‘장자여, 그 죄로 인하여 재물을 잃을 것까지는 없고, 마땅히 3악도에 떨어질 것이오.’
이 때에 장자는 나쁜 갈래라는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을 내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성인이시여, 제가 잘못하여서 큰 죄를 얻게 되었는데, 성인께서는 온갖 지혜를 가진 어른이시니, 해탈을 얻는 일도 아실 것이오. 제가 어떻게 하면 지옥·아귀·축생에서 해탈하겠나이까?’
내가 그 때에 4진제를 말하여 주었더니, 장자가 듣고는 수다원과를 얻었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부처님께 참회하였다.
‘제가 본래 어리석어서 환인이 아니신 부처님을 환인이라 말하였사오니, 저는 오늘부터 3보에 귀의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한 일이오, 장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남의 뜻을 따라서 말한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자기 뜻과 남의 뜻을 따라서 말한 것이라 하는가. 내가 말한 바와 같다. 만일 모든 세간의 지혜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면 나도 있다고 말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나도 없다고 말하며, 세간의 지혜 있는 사람이 말하되, 5욕락에는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는 것을 끊어야 한다고 하면, 나도 그렇다 말하고, 세간의 지혜 있는 사람이 말하되, 5욕락에는 항상하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는 것이 그럴 리가 없다 하면, 나도 그럴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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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말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기와 남의 뜻을 따라서 말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말한 바 10주(住) 보살이 조그만큼 불성을 본다 함은, 남의 뜻을 따라서 말한 것이라 하나니, 어찌하여 조금 본다고 하는가. 10주 보살은 수릉엄삼매와 3천 법문을 얻었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을 분명하게 알지만 모든 중생이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줄은 보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10주 보살은 불성을 조그만큼 본다고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항상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한 것은,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한 말이요, 모든 중생이 끊지도 않고 멸하지도 아니하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한 것은,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한 말이며,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지만, 번뇌에 가렸으므로 보지 못한다 하여 나의 말도 이러하고 그대의 말도 그러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기의 뜻과 남의 뜻을 따라서 한 말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는 한 법을 위하여 한량없는 법을 말하나니, 경에서 말하기를 ‘온갖 범행(梵行)의 인은 선지식이라’ 하였으니, 온갖 범행의 인이 한량없지만 선지식을 말하면 모두 그 속에 들었고, 내가 말하기를 ‘온갖 나쁜 행은 삿된 소견이 인이 된다’ 하였으니, 온갖 나쁜 행의 인이 한량없지만 삿된 소견이라 말하면 그 속에 모두 들었느니라. 혹은 말하기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신심이 인이 된다’ 하였으니, 보리(菩提)의 인이 한량없지만 신심이라 말하면 그 속에 모두 들었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비록 한량없는 법을 말하여 불성이라 하였으나, 5음·6입·18계를 여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법을 말함이 중생을 위하므로 일곱 가지 말이 있으니, 하나는 인에 대한 말[因語], 둘은 과에 대한 말[果語], 셋은 인과 과에 대한 말[因果語], 넷은 비유하는 말[喩語], 다섯은 안 맞는 말[不應說語], 여섯은 세상에 퍼뜨리는 말[世流布語], 일곱은 뜻대로 하는 말[如意語]이니라.
어떤 것을 인에 대한 말이라 하는가. 현재의 인에서 미래의 과를 말하는 것이니, 내가 말하기를 ‘선남자여, 네가 중생들이 살생을 좋아하고, 나아가 나쁜 소견을 행하기를 좋아함을 보거든, 이 사람이 곧 지옥 사람인 줄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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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하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살생이나 나아가 삿된 소견을 좋아하지 않거든, 이 사람이 곧 천상 사람인 줄로 관찰하라’ 한 것은, 인에 대한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과에 대한 말이라 하는가. 현재의 과에서 과거의 인을 말하는 것이니,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네가 만일 빈궁한 중생으로서 얼굴이 누추하고, 자재하지 못한 이를 보거든, 이 사람은 결정코 파계(破戒)하고 시기하고 성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 것이며, 어떤 중생이 재물이 거부인데다가 모든 근을 구족하여 위엄과 덕이 자재한 것을 보거든, 이 사람은 결정코 계를 지키고 보시하고 정진하고 부끄러움을 알며, 질투하거나 성내는 마음이 없는 줄을 알 것이라’ 한 것은 과에 대한 말이니라.
어떤 것을 인과 과에 대한 말이라 하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여, 중생들의 현재의 6입은 촉(觸)의 인이며, 과거의 업의 과보라 하나니, 여래도 업이라고 말하며, 이 업의 인연으로 미래의 과를 얻는다’ 한 것은, 인과 과에 대한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비유하는 말이라 하는가. 마치 사자왕을 내 몸에 비유한 것과 같은 것이니, 대상왕(大象王)·대용왕·파리질다라나무·7보 더미·큰 바다·수미산·땅덩이·큰비·뱃사공[船師]·도사(導師)·조어장부(調御丈夫)·역사(力士)·우왕(牛王)·바라문·사문·큰 성(城)·다라(多羅)나무 따위로 비유한 것은, 비유하는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안 맞는 말이라 하는가. 경에서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합할 수 있다, 강물이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과 바사닉왕을 위하여 사방에서 산이 온다는 것과, 녹모(鹿母) 우바이를 위하여 사라수(婆羅樹)가 8계를 받으면 인간이나 천상의 낙을 받으리라 한 것과, 10주 보살이 퇴전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할지언정, 여래는 두 가지 말씀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수다원이 3악도에 떨어진다고 말할지언정, 10주 보살이 퇴전할 마음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 등은 안 맞는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세상에 퍼뜨리는 말이라 하는가. 부처님의 말씀과 같이 남자·여자·큰 것·작은 것·가는 것·오는 것·앉는 것·눕는 것·수레·집·질그릇·옷·중생·항상함·즐거움·나·깨끗함·군대·숲·성·동리·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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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幻]·화신[化]·모임·흩어짐 등을 세상에 퍼뜨리는 말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뜻대로 하는 말이라 하는가. 내가 계율을 깨뜨린 사람을 꾸짖어서 그로 하여금 스스로 책망하고 계율을 보호하도록 하는 것과, 수다원을 찬탄하여 범부들로 하여금 선한 마음을 내게 하는 것과, 보살을 찬탄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보리심을 내게 하는 것과, 3악도의 고통을 말하여 선한 법을 닦게 하는 것과, 온갖 것이 탄다고 말한 것은 오직 모든 함이 있는 법을 말하는 연고니, 내가 없다는 것도 그와 같으며,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방일하지 못하게 한 것 등은 뜻대로 하는 말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또 자기의 뜻을 따르는 말이 있느니라. 여래의 불성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있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없다는 것이니라. 있다는 것은 32상과 80종호와 10력과 4무소외와 3념처와 대자대비와 수릉엄 등의 한량없는 삼매와, 금강 등 한량없는 삼매와, 방편 등 한량없는 삼매와 5지인(智印) 등 한량없는 삼매는 있는 것이라 하고, 없다는 것은, 여래의 지난 세상의 선과 불선과 무기(無記)와 업과 인과 과와 보(報)와 번뇌와 5음(陰)과 12인연 등이니, 이것을 없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유·무·선·불선·유루(有漏)·무루·세간·비세간(非世間)·성인·비성인·유위(有爲)·무위·진실함·진실치 못함·고요함·고요하지 아니함·다툼·다투지 않음·계(界)·비계(非界)·번뇌·비번뇌·취(取)·비취·수기(受記)·비수기·유·비유·삼세·비삼세·시(時)·비시·항상함·무상·나·내가 없음·즐거움·즐겁지 않음·깨끗함·깨끗하지 않음·색·수·상 행·식·비색·비수·비상·비행·비식·내입(內入)·비내입·외입(外入)·비외입·12인연·비12인연들을, 여래의 불성이 있는 것, 없는 것이라 이름하며, 나아가 일천제 불성이 있는 것, 없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내가 비록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이 있다고 말하지만 중생들은 부처님의 이러한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런 말은 후신 보살도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2승이나 다른 보살들이겠느냐. 선남자여, 내가 지나간 어느 때에 기사굴산(耆闍崛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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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미륵보살과 더불어 세제(世諦)를 의논할 때에, 사리불 등 5백 성문은 이런 일을 전혀 알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출세간의 제일의제(第一義諦)이랴.
선남자여, 어떤 불성은 일천제에게는 있고 선근인(善根人)에게는 없으며, 어떤 불성은 선근인에게는 있고 일천제에게는 없으며, 어떤 불성은 두 사람에게 모두 있고, 어떤 불성은 두 사람에게 모두 없느니라. 선남자여, 내 제자들로서 이와 같은 네 글귀의 뜻[四句義]을 아는 이는, 마땅히 논란하기를 일천제가 결정코 불성이 있느냐, 결정코 불성이 없느냐 하지 아니 하리라. 만일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여래가 자기의 뜻을 따라서 하는 말이니, 여래의 이러한 자기의 뜻을 따라 하는 말을 중생이 어떻게 한결같이 이해하겠는가.
선남자여, 마치 항하 속에 일곱 가지 중생이 있는데, 하나는 항상 잠겨 있고, 둘은 잠깐 나왔다가 도로 잠기고, 셋은 나와서는 곧 머물고, 넷은 나와서는 사방을 두루 살피고, 다섯은 살펴보고는 가고, 여섯은 가다가 다시 머물고, 일곱은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느니라. 항상 잠겨 있는 것은 큰 고기니, 크고 나쁜 업보를 받아 몸이 무거워서 깊은 데 있고, 이 때문에 항상 잠겨 있는 것이다. 잠깐 나왔다가 도로 잠기는 것은 이 큰 고기가 나쁜 업보로 몸이 무거우나 옅은 데 있으면서 잠깐 광명을 보며, 광명을 인하여 잠깐 나오고, 무거우므로 도로 잠기는 것이다. 나와서 곧 머무는 것은 지미어(抵彌魚)가 얕은 물에 있으면서 광명을 좋아하므로 나와서는 머무는 것이다. 사방을 두루 살피는 것은 상어[▩魚]가 먹이를 구하기 위하여 사방을 살피느라고 이리저리 보는 것이다. 살펴보고 가는 것은 상어가 멀리 있는 물건을 보고 먹을 것인가 하여 빨리 따라가느라고 보고는 가는 것이다. 가다가 다시 머무는 것은 이 고기가 따라가서 먹이를 얻고는 즉시 정지하므로 가다가 머무는 것이다.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는 것은 거북이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미묘한 대열반의 강에도 일곱 가지 중생이 있으니, 처음의 항상 잠겨 있는 것으로부터 일곱째까지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니라. 항상 잠겨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이 대반열반경을 들으니, ‘여래는 항상 머물러 있어 변하지 아니하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여 필경까지 열반에 들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들이 다 불성이 있고, 일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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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방등경을 비방하고, 5역죄를 짓고, 4중죄를 범하고도 반드시 보리를 이루며,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벽지불들도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룬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는 믿지 아니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는 말하기를, ‘이 열반경은 외도의 글이요 부처님 경전이 아니라’ 하며, 그래서 선지식을 멀리하고 바른 법을 듣지 아니하며, 비록 듣더라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설사 생각하더라도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나쁜 법에 머무느니라. 나쁜 법에 머무는 것이 여섯 가지니, 하나는 악함이요, 둘은 선이 없음이요, 셋은 더러운 법이요, 넷은 업보를 더함이요[增有], 다섯은 번열함[熱]이요, 여섯은 나쁜 과보를 받음이니, 이것을 잠긴다 하느니라.
어째서 잠긴다 이름하는가. 선한 마음이 없는 연고며, 나쁜 짓을 항상 행하는 연고며, 다스릴 것을 닦지 아니하므로 잠긴다 하느니라. 악하다 함은 성인이 꾸짖는 연고며, 마음에 두려운 연고며, 선한 사람이 멀리 떠나는 연고며, 중생을 이익케 하지 못하는 연고로 악하다 하느니라. 선이 없다 함은 한량없는 나쁜 과보를 내는 연고며, 항상 무명에 얽히는 연고며, 나쁜 사람과 동무하기를 좋아하는 연고며, 선한 일을 닦는 방편이 없는 연고며, 마음이 뒤바뀌어 항상 잘못되므로 선이 없다 하느니라. 더러운 법이라 함은 몸과 입을 항상 더럽히는 연고며, 깨끗한 중생을 더럽히는 연고며, 불선한 업을 더하는 연고며, 선한 법을 멀리 하는 연고로 더러운 법이라 하느니라.
업보를 더한다 함은 위에 말한 세 사람이 행하는 법이 지옥·축생·아귀의 업을 더하고 해탈하는 법을 닦지 못하며, 몸과 입과 마음의 업으로 생사를 싫어하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말하여 업보를 더한다 하느니라. 번열이라 함은 이 사람이 위에 말한 네 가지 짓을 모두 행하여 몸과 마음을 시끄럽게 하나니, 고요함을 멀리 떠남을 번열이라 하고, 지옥의 보를 받으므로 번열이라 하고, 중생들을 태우므로 번열이라 하고, 선한 법을 불사르므로 번열이라 하나니, 선남자여, 신심의 서늘함을 이 사람이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번열이라 하느니라. 나쁜 과보를 받는다 함은 이 사람이 위에 말한 다섯 가지를 구족하게 행하였으므로 죽어서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느니라. 선남자여, 세 가지 나쁜 일이 있으므로 나쁜 과보라 하나니 하나는 번뇌가 나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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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업이 나쁘고, 셋은 과보가 나쁘니, 이것을 이름하여 나쁜 과보를 받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사람이 위에 말한 여섯 가지를 갖추었으므로, 선근을 끊고, 5역죄를 짓고, 4중죄를 범하고, 3보를 비방하며, 승가의 물건을 사용하며, 여러 가지 법답지 못한 일을 지었으므로 이 인연 때문에 아비지옥에 빠지는 것이며, 받는 몸은 가로 세로가 8만 4천 유순[由延]이요, 이 사람의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죄업이 중하여서 나올 수가 없느니라. 왜냐 하면 마음에 선한 법을 내지 못하므로 한량없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더라도,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므로 항상 잠겨 있다 하나니, 항하의 큰 고기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내가 비록 일천제들을 항상 잠겨 있다 말하였으나, 일천제가 아니면서 항상 잠겨 있는 이가 있으니, 무엇이냐 하면, 어떤 사람이 생사를 위하여 보시와 계율의 선한 일을 닦으면, 항상 잠겨 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네 가지 선한 일이 있으면 나쁜 과보를 얻나니, 무엇을 네 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남을 이기려고 경전을 읽음이요, 둘은 이양(利養)을 위하여서 계율을 가짐이요, 셋은 다른 이에게 붙기 위하여 보시를 행함이요, 넷은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위하여 마음을 두어 생각함이니, 이 네 가지 일로는 나쁜 과보를 얻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런 네 가지를 닦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빠졌다가 나오고 나왔다가 다시 빠진다 하느니라. 어찌하여 빠진다 하는가. 3유(有)를 즐거워하는 연고요, 어찌하여 나온다 하는가. 광명을 보는 연고니라. 광명이라 함은 계율과 보시와 선정을 들음이니라. 어찌하여 도로 빠지는가. 나쁜 소견이 늘고 교만을 내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경전에서 이런 게송을 말하였느니라.

어떤 중생 생사 업을 좋아하면서
생사를 위해 선업 악업 짓는다 하면
이 사람은 열반 길을 잃게 되나니
이를 일러 나왔다가 빠진다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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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생사 바다 돌아다니며
해탈을 얻더라도 번뇌 섞이면
이 사람은 나쁜 과보 다시 받나니
이를 일러 나왔다가 빠진다 하네.

선남자여, 저 큰 고기가 광명을 보기 위하여 잠깐 나왔다가도 몸이 무거워서 도로 빠지듯이 위의 두 사람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3유(有)를 좋아하면 빠진다 하고, 이 대반열반경을 듣고 신심을 내면 나온다 하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나온다 하는가. 이 경을 듣고는 나쁜 법을 멀리 여의고 선한 법을 닦으므로 나온다 하느니라. 이 사람이 비록 믿으나 구족하지는 못하니, 무슨 인연으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는가. 이 사람이 비록 대반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줄을 믿지만 여래의 몸은 무상하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다고 말하느니라. 여래에게 두 가지 열반이 있으니, 하나는 함이 있음이요, 또 하나는 함이 없음이라. 함이 있는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없고, 함이 없는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 하며, 비록 불성이 중생에게 있음을 믿으나 반드시 온갖 중생에게 다 있는 것은 아니라 하나니, 그러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믿음이 두 가지니, 하나는 믿음이요, 또 하나는 구함이니라. 이런 사람은 믿음은 있으나 능히 구하지 못하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믿음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들음으로부터 생기고, 또 하나는 생각함으로부터 생기느니라. 이 사람의 신심은 들음으로부터 생겼고, 생각으로부터 생기지 아니하였으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도가 있음을 믿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얻는 이를 믿는 것이니라. 이 사람의 신심은 도가 있는 것만 믿고, 도를 얻는 사람이 있는 것을 믿지 아니하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바른 것을 믿고 하나는 삿된 것을 믿음이라. 인과 과가 있음을 믿고 부처님과 교법과 승가가 있음을 믿는 것은 바른 것을 믿는다 하고, 인도 과도 없고, 3보의 성품이 다르다 말하며, 부란나(富蘭那) 등의 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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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말을 믿는 것은 삿된 것을 믿는다 하느니라. 이 사람은 비록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믿으나 3보가 동일한 성품인 줄은 믿지 아니하며, 인과 과는 믿으나 얻는 이는 믿지 아니하므로 믿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이 사람이 구족하지 못한 신심을 구족하였으므로 받은 계율도 구족하지 못하였느니라. 무슨 인연으로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는가. 인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얻은 계율도 구족하지 못하였느니라. 또 무슨 인연으로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는가. 계율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위의계(威儀戒)요, 또 하나는 종계계(從戒戒)니라. 이 사람은 위의계만 구족하였고, 종계계는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짓는 계[作戒]요, 또 하나는 지음이 없는 계[無作戒]니라. 이 사람은 짓는 계만 구족하였고, 지음이 없는 계는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몸과 입으로 좇아 정명(正命)을 얻음이요, 또 하나는 몸과 입으로 좇아 정명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 사람은 비록 몸과 입을 좇으나 정명을 얻지 못하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이름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구하는 계요, 또 하나는 버리는 계니라. 이 사람이 구하는 계만 갖추었고, 버리는 계는 얻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유를 따름[隨有]이요, 또 하나는 도를 따름[隨道]이니라. 이 사람이 유를 따르는 계만 갖추었고, 도를 따르는 계는 갖추지 못하였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계요, 또 하나는 악한 계니라. 몸과 입과 뜻이 선한 것을 계요 하나는 악한 계니라. 몸과 입과 뜻이 선한 것을 선한 계라 하고, 우계(牛戒)·구계(狗戒)를 악한 계라 하나니, 이 사람이 이 두 가지 계가 모두 선한 과가 있다고 믿으므로 계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이 사람이 믿음과 계율을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닦는 바 들음[多聞]도 구족하지 못하느니라. 어떤 것을,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는가. 여래가 말한 12부경에서 6부만 믿고 6부는 믿지 아니하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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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고 이름하며, 비록 이 6부경을 받아 가지면서도 읽거나 외우거나,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하지 못하며 이익됨이 없으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이름하며, 비록 이 6부경을 받았더라도, 논의(論議)하기 위하고, 남을 이기기 위하고, 이양을 위하고, 모든 유를 위하여서 지니고 읽고 외우고 해설하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경전 중에서 들음이 구족함을 말하였으니, 어떤 것을 구족하였다 하는가. 만일 비구가 몸과 입과 뜻이 선하고, 예전부터 화상과 스님들과 덕이 있는 이를 공양하였으며, 이 스님들이 이 사람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이런 인연으로 경을 가르쳐 주거든, 이 사람이 이 지성으로 받아 지니고 외우며, 외워서 익히고는 지혜를 얻으며, 지혜를 얻고는 잘 생각하고 법답게 머물며, 잘 생각하고는 바른 이치를 얻으며, 바른 이치를 얻고는 몸과 마음이 고요하며,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는 기쁜 마음을 내며, 기쁜 마음의 인연으로 마음에 선정을 얻고, 선정을 얻었으므로 바른 지견(知見)을 얻으며, 바른 지견을 얻고는 모든 생사 업과에 대하여 뉘우치는 마음을 내고, 뉘우치는 연고로 해탈을 얻느니라. 그러나 이 사람은 이러한 일이 없으므로 들음을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이 사람이 이렇게 세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보시도 구족하지 못하느니라. 보시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재물 보시요, 또 하나는 법 보시니라. 이 사람이 비록 재물 보시는 행하지만 구함이 있는 연고며, 비록 법으로 보시하지만 구족하지 못하니, 왜냐 하면 비밀이고 모두 다 말하지 아니하며, 다른 이가 이길까 두려워하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하느니라. 재물 보시와 법 보시에 각각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성스럽고 또 하나는 성스럽지 못함이니라. 성스러운 것은 보시하고는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이요, 성스럽지 못한 것은 보시하고는 과보를 바라는 것이며, 성스러운 것은 법 보시가 법을 증장하기 위함이요, 성스럽지 못한 것은 법 보시가 유(有)를 증장하기 위함이니라. 이 사람은 재물을 늘리기 위하여 재물을 보시하고, 유를 증장하기 위하여 법을 보시하는 것이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이 사람이 6부경을 받고서도, 법을 받는 이를 보고는 이바지하고, 법을 받지 않은 이에게는 이바지하지 아니하므로 보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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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니라.
이 사람이 위에 말한 네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므로 닦는 지혜도 구족하지 못하느니라. 지혜의 성품은 분별하는 것이거늘, 이 사람은 여래가 항상한지 무상한지를 분별하지 못하며, 여래는 이 열반경에서 말하기를 ‘여래가 곧 해탈이요, 해탈이 곧 여래며, 여래가 곧 열반이요, 열반이 곧 해탈이라’ 하였거늘, 이런 이치를 능히 분별하지 못하느니라. 범행(梵行)이 곧 여래요, 여래가 곧 자비희사(慈悲喜捨)요, 자비희사가 곧 해탈이요, 해탈이 곧 열반이요, 열반이 곧 자비희사라 하였거늘, 이런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이름하느니라.
또 불성을 분별하지 못하나니, 불성이 곧 여래요, 여래가 곧 함께하지 않는 법이요, 함께하지 않는 법이 곧 해탈이요, 해탈이 곧 열반이요, 열반이 곧 함께하지 않는 법이거늘, 이런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하느니라. 또 고·집·멸·도의 4제를 분별하지 못하나니, 4진제(眞諦)를 분별하지 못하므로 성인의 행을 알지 못하고, 성인의 행을 알지 못하므로, 여래를 알지 못하고, 여래를 알지 못하므로 해탈을 알지 못하고, 해탈을 알지 못하므로 열반을 알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고 이름하느니라.
이 사람이 이러한 다섯 가지를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법을 증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악한 법을 증장하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악한 법을 증장한다 하는가. 이 사람이 자기가 구족하지 못함을 보지 못하므로, 스스로 구족하였노라 말하면서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동등한 이에게 자기가 수승하다 하며, 자기와 같은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며, 가까이하고는 다시 구족하지 못한 법을 들으며, 듣고는 마음이 기쁘고, 거기에 마음이 물들어서 교만을 일으키고, 방일한 짓을 행하며, 방일함을 인하여 집에 있는 이를 친근하고, 집에 있는 이의 일을 듣기를 좋아하며, 청정하게 출가한 법을 멀리 여의느니라. 이런 인연으로 나쁜 법을 증장하고 나쁜 법이 증장하므로, 몸과 입과 뜻 등에 부정한 업을 짓고, 3업이 부정하므로 지옥·축생·아귀를 증장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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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 함은, 나의 불법 가운데서 누구인가. 제바달다와 구가리(瞿伽離) 비구와 완수(惋手) 비구와 선성 비구와 저사(低舍) 비구와 만수(滿宿) 비구와 자지(慈地) 비구니와 광야(曠野) 비구니와 방(方) 비구니와 만(慢) 비구니와 정결(淨潔) 장자와 구유(求有) 우바새와 사륵(舍勒) 석종(釋種)과 상(象) 장자와 명칭 우바이와 광명 우바이와 난타 우바이와 군(軍) 우바이와 영(鈴) 우바이 등이니라. 이런 사람을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진다 하나니, 마치 큰 고기가 광명을 보려고 나왔다가 몸이 무거워서 빠지는 것과 같으니라.
둘째 사람은 행을 구족하지 못한 줄을 깊이 깨닫고, 구족하지 못하였으므로 선지식을 친근하려 하고, 선지식을 친근하므로 듣지 못한 것을 즐겁게 물으며, 듣고는 받아 가지기를 좋아하고, 받고는 잘 생각하기를 좋아하며, 잘 생각하고는 법답게 머무르므로 선한 법이 증장하고, 선한 법이 증장하므로 다시는 빠지지 아니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머문다 이름하나니, 나의 불법 가운데서는 누구일까. 이른바 사리불·대목건련·아야교진여 등 다섯 비구, 야사 등 5백 비구, 아누루타(阿·樓陀)·동자 가섭·마하가섭·십력 가섭·수구담미(瘦瞿曇彌) 비구니·파타라화(波吒羅花) 비구니·승(勝) 비구니·실의(實義) 비구니·의(意) 비구니·발타(跋陀) 비구니·정(淨) 비구니·불퇴전 비구니·빈바사라왕·욱가(郁伽) 장자·수달다(須達多) 장자·석마남(釋摩男)·빈(貧) 수달다·서랑장자자(鼠狼長者子)·명칭 장자·구족(具足) 장자·사자(師子) 장군·우바리(優波離) 장자·도(刀) 장자·무외(無畏) 우바이·선주(善住) 우바이·애법(愛法) 우바이·용건(勇建) 우바이·천득(天得) 우바이·선생(善生) 우바이·구신(具身) 우바이·우득(牛得) 우바이·광야(曠野) 우바이·마하사나(摩訶斯那) 우바이 등이니, 이러한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들은 머문다 이름할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머문다 하는가. 선한 광명을 항상 보기 좋아하는 연고니라. 이 인연으로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거나 나시지 않거나 간에, 이런 사람은 끝내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하니라. 이것을 머문다 이름하나니, 마치 저미어(低彌魚)가 광명을 보기 좋아하여 잠기지도 않고 빠지지도 않는 것과 같으니라. 이런 대중들도 그와 같으므로 내가 경전 중에서 게송을 말하였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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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어떤 사람 바른 뜻을 잘 분별하여
지성으로 사문 과보 항상 구하며
일체의 생사 업보 꾸짖는다면
그 사람은 법답게 머문다 하리.

한량없는 부처님께 늘 공양하고
한량없는 오랜 세월 도를 닦으며
세상락을 받더라도 방일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법답게 머문다 하리.

선지식을 친근하여 바른 법 듣고
속으로 잘 생각하며 법답게 있어
광명을 즐겨 보고 도를 닦으면
해탈을 얻고 나서 편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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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3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4. 가섭보살품 ③

“선남자여, 지혜를 구족하지 못함이 무릇 다섯 가지가 있거니와, 이 사람이 그것을 알고 선지식을 친근하면, 그 선지식은, 이 사람이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생각 중 어느 것에 치우쳐 많은가를 관찰하느니라. 만일 이 사람이 탐욕이 많은 줄을 알면 부정관(不淨觀)을 말하여 주고, 성내는 일이 많은 줄을 알면 자비관(慈悲觀)을 말하여 주고, 어리석은 생각이 많은 줄을 알면 수식관(數息觀)을 가르쳐 주고, 나에 집착함이 많은 줄을 알면 18계(界) 등을 분석하여 주나니, 이 사람이 듣고는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지니며, 마음으로 받아 지닌 뒤에는 법답게 수행하고, 법답게 수행하여서는 몸[身]과 받음[受]과 마음[心]과 법[法]의 4념처관(念處觀)을 차례로 얻고, 이 관(觀)을 얻고는 차례차례 12인연을 관찰하나니, 이렇게 관찰하여서는 다음에 난법(煖法)을 얻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다 난법이 있사오니, 왜냐 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 법이 화합한 것을 중생이라 이름하나니, 수명[壽]과 난기[煖]와 알음알이[識]라’ 하셨나이다. 만일 이 뜻을 따른다면 모든 중생이 먼저부터 난법이 있었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 말씀하시기를 ‘난법이 선지식으로 인하여 생긴다’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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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그대가 물은 난법은 모든 중생과 일천제까지 모두 있다 하는 것이거니와 내가 말하는 난법은 방편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니, 본래는 없다가 지금에 있는 것이니라.
이런 이치로 모든 중생들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니까 그대는 모든 중생에게 모두 난법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이러한 난법은 색계의 법이요 욕계에 있는 것이 아니니, 만일 모든 중생이 모두 있다고 말하면 욕계의 중생에게도 있어야 하련만 욕계에는 없는 것이므로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님을 알라. 선남자여, 색계에는 비록 있더라도 모든 중생에게 있는 것은 아니니라. 왜냐 하면 내 제자에게는 있고 외도에게는 없나니, 이런 뜻으로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있는 것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모든 외도들은 6행(行)만 보거니와, 나의 제자는 16행을 구족하였으니, 이 16행은 모든 중생에게 반드시 다 있는 것이 아니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씀하시는 난법은 어째서 난이라 하나이까? 제 성품이 따뜻하나이까, 다른 것 때문에 따뜻하나이까?”
“선남자여, 이 난법은 제 성품이 따뜻한 것이요, 다른 것 때문에 따뜻한 것이 아니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마사(馬師)와 만수(滿宿)는 난법이 없나니, 왜냐 하면 3보에게 신심이 없는 탓으로 난이 없다’고 하였사오니, 신심이 난법인가 하나이다.”
“선남자여, 신심이 난법이 아니다. 왜냐 하면 신심으로 인하여 그 뒤에 난법을 얻는 까닭이니라. 선남자여, 난법이라 함은 곧 지혜니, 왜냐 하면 4제를 관찰하는 연고로 16행이라 하나니, 행은 곧 지혜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난이라 하느냐 했거니와, 선남자여, 난법은 곧 8성도(聖道)의 불 모습[火相]이므로 난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나무를 비벼서 불을 낼 때에, 먼저 따뜻한 기운이 있고 다음에 불이 나고 나중에 연기가 나듯이 무루의 도도 그와 같으니라. 따뜻하다 함은 16행이요, 불은 수다원과요, 연기는 도를 닦는 자리에서 번뇌를 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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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라.”
가섭보살은 또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난법은 역시 유(有)의 법이요, 함이 있는 법이오니, 이 법은 과보로 색계의 5음을 얻으므로 유라 하고, 인연인 연고로 함이 있는 것이라 하겠사오니, 만일 함이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무루의 도가 되겠나이까?”
“선남자여, 그러하니라. 그대의 말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난법이 비록 함이 있는 법이요 유의 법이지만 도리어 함이 있는 법과 유의 법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무루도의 모습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말을 탔을 때에 사랑하면서도 채찍질하듯이 따뜻한 마음도 그와 같아서 사랑하는 연고로 태어나고, 싫어하는 연고로 행을 관찰하느니라. 그러므로 비록 유의 법이며 함이 있는 법이지만 바른 도의 모습이 되느니라. 난법을 얻는 사람이 일흔세 종류로서 욕계가 열 가지니, 이 사람이 온갖 번뇌를 구족하고 1분을 끊기 시작하여 9분까지 이르며, 욕계와 같이 초선(初禪)으로부터 무소유처(無所有處)까지도 그와 같나니, 이것을 일흔세 종류라 하느니라. 이런 사람들이 난법을 얻고는, 다시 선근을 끊거나 5역죄를 짓거나 4중죄를 범하지 않느니라.
이 사람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선한 동무를 만나는 것이요, 둘은 나쁜 동무를 만나는 것이니라. 나쁜 동무를 만난 이는 잠깐 나왔다가 도로 빠지고, 선한 동무를 만난 이는 사방을 두루 살피나니, 사방을 살피는 것은 곧 정법(頂法)이니라. 이 법이 비록 성품은 5음이나 4제를 반연하므로 사방을 두루 살핀다고 이름하느니라. 정법을 얻고는 다음에 인법(忍法)을 얻나니, 인법도 그와 같아서 성품이 5음이며, 4제를 반연하느니라. 이 사람이 다음에는 세제일법(世第一法)을 얻나니, 이 법도 비록 성품이 5음이나 4제를 반연하느니라. 이 사람이 다음에는 고법인(苦法忍)을 얻나니, 인(忍)의 성품은 지혜며, 1제를 반연하느니라. 이 인법이 1제를 반연하고는 나아가 견도위(見道位)에서 번뇌를 끊고 수다원과를 얻으며, 이것을 이름하여 넷째의 사방을 두루 살핀다 하나니, 사방은 곧 4제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기를 ‘수다원이 끊은 번뇌는 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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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길이가 40리 되는 물과 같고, 남아 있는 것은 털 한 개로 찍어 낸 물방울과 같다 하시더니, 여기서는 어찌하여 세 가지 결박[三結]을 끊은 것을 수다원이라 한다’고 말씀하시나이까? 하나는 나라는 소견[我見]이요, 둘은 인이 아닌 것을 인으로 봄이요, 셋은 의심입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 사방을 살핀다 하오며, 또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라 하오며, 또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상어[▩魚]에 비유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선남자여, 수다원이 비록 한량없는 번뇌를 끊지만 이 셋이 중대한 연고며, 또 모든 수다원들이 끊을 결박을 포함한 연고니라. 선남자여, 마치 대왕이 순행할 때에 네 가지 군병이 따르지만, 세상 사람들이 ‘왕이 오셨다, 왕이 가셨다’ 말하나니, 왜냐 하면 세간에서 소중한 연고니라. 이 세 가지 번뇌도 그와 같으니라. 무슨 인연으로 중대하다 하는가. 온갖 중생들이 항상 일으키는 연고며, 미세하여 알기 어려운 연고로 중대하다 하는 것이요, 이 세 결박을 끊기 어려운 연고며, 모든 번뇌의 원인이 되는 연고며, 이것이 세 가지로 다스릴 대적인 연고니, 계율과 선정과 지혜니라. 선남자여, 어떤 중생들은 수다원이 한량없는 번뇌를 끊는다는 말을 듣고는, 물러나는 마음을 내어 말하기를, ‘중생이 어떻게 이러한 한량없는 번뇌를 끊으리요’ 하기에, 여래가 방편으로 셋을 말하였느니라.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사방을 살피는 데 비유하였습니까?’ 하였으니, 선남자여, 수다원이 4제를 관찰하여 네 가지를 얻나니, 하나는 견고한 도에 머무는 것, 둘은 두루 살피는 것, 셋은 실상과 같이 보는 것, 넷은 원수를 깨뜨림이니라. 견고한 도라 함은, 수다원이 가지는 5근(根)을 흔드는 이가 없으므로 이것을 견고한 도에 머문다 하고, 두루 살핀다 함은, 안팎 번뇌를 능히 꾸짖음이요, 실상과 같이 본다 함은, 곧 인(忍)과 지(智)요, 원수를 깨뜨린다 함은 4전도(顚倒)를 말하는 것이니라. 또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이라 이름하였습니까?’ 함은 선남자여, 수(須)는 무루요, 다원(陀洹)은 닦음이니, 무루를 닦으므로 수다원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수는 흐른다는 뜻이라, 흐르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흐름을 따르는 것이요, 또 하나는 흐름을 거스름이니라. 흐름을 거스르므로 수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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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그 뜻을 따른다면, 무슨 인연으로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은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수다원으로부터 부처님까지도 수다원이라 이름할 수 있느니라. 만일 사다함으로부터 부처님까지 수다원이 없다면, 어떻게 사다함으로부터 부처님까지라 이름하겠는가. 모든 중생의 이름이 두 가지니, 하나는 옛 것[舊]이요, 또 하나는 객(客)이라. 범부인 때에는 세간의 이름이 있고, 도를 얻은 뒤에는 다시 이름하여 수다원이라 하느니라. 먼저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 하고, 뒤에 얻었으므로 사다함이라 하나니, 이 사람은 수다원이라고도 하고 사다함이라고도 하며, 나아가 부처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흐르는 것이 두 가지니, 하나는 해탈이요, 또 하나는 열반이라. 모든 성인들이 다 이 두 가지가 있으므로 수다원이라고도 하고, 사다함이라고도 하며, 나아가 부처님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을 보살이라고도 하나니, 왜냐 하면 보살은 곧 다 끊은 지혜[盡智]와, 나지 않는 지혜[無生智]니라. 수다원도 이 두 가지 지혜를 구하는 것이므로, 수다원을 보살이라 이름할 수 있느니라. 수다원을 각(覺)이라고도 이름할 수 있으니, 왜냐 하면 도를 보고 번뇌를 끊음을 바로 깨달은 연고며, 인과 과를 바로 깨달은 연고며, 공도(共道)와 불공도를 바로 깨달은 연고니, 사다함으로부터 아라한까지도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영리한 근성이요, 하나는 둔한 근성이라. 둔한 근성의 사람은 인간과 천상에 일곱 번 오고 가느니라. 둔한 근성의 사람은 또 다섯 가지가 있으니, 혹 여섯 번, 다섯 번, 네 번, 세 번, 두 번 오고 가며, 영리한 근성의 사람은 현재에 수다원과로부터 아라한과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무슨 인연으로 수다원을 상어에 비유하였습니까?’ 하였거니와, 선남자여, 상어에 네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뼈가 가늘어서 가벼운 것이고, 둘은 지느러미가 있어서 가벼운 것이고 셋은 광명을 보기 좋아하는 것이고, 넷은 물건을 물고 놓지 않는 것이니라. 수다원도 네 가지가 있으니, 뼈가 가는 것은 번뇌가 경미한 데 비유한 것이고, 지느러미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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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奢摩他)와 비바사나(毘婆舍那)에 비유한 것이고, 광명을 보기 좋아함은 도를 보는 데 비유한 것이고, 물건을 물고 놓지 않음은 여래가 말하는 무상과 괴로움과 내가 없음과 부정함을 듣고 꼭 가지고 놓지 않는 데 비유한 것이니라. 마치 마왕(魔王)이 부처님 모양으로 변화한 것을 수라(首羅) 장자가 보고 놀라거늘, 마왕은 장자의 마음이 동요함을 보고 장자에게 말하기를 ‘내가 먼저 말한 4제는 진실하지 못한 것이니, 이제 다시 너에게 5제, 6음(陰), 13입(入), 19계(界)를 말하리라 하였으나, 장자가 듣고는 법상(法相)을 자세히 생각하니, 그럴 리가 없으므로 굳게 가지고 마음이 동하지 아니한 것과 같으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수다원은 먼저 도를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 이름하나이까, 초과(初果)인 연고로 수다원이라 이름하나이까? 만일 먼저 도를 얻었으므로 수다원이라 한다면, 고법인(苦法忍)을 얻었을 때에는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못하고, 수다원향(須陀洹向)이라 하나이까? 만일 초과이므로 수다원이라 한다면, 외도들이 먼저 번뇌를 끊고 무소유처에 이르러서 무루도를 닦아 아나함과를 얻은 것은,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초과인 연고로 수다원이라 하느니라. 그대가 묻기를 ‘외도들이 먼저 번뇌를 끊고 무소유처에 이르러서 무루도를 닦아 아나함과를 얻는 것은,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않습니까?’ 하였지만 선남자여, 초과인 연고로 수다원이라 이름하는 것은, 이 사람이 그 때에 8지(智)와 16행(行)을 구족하기 때문이니라.”
“세존이시여, 아나함을 얻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8지와 16행을 구족하옵거늘, 어찌하여 수다원이라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유루(有漏) 16행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함께함이요, 또 하나는 함께하지 않음이니라. 무루 16행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향하는 과[向果]요, 또 하나는 얻는 과니라. 8지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향하는 과요, 또 하나는 얻는 과니라. 수다원은 함께하는 16행을 버리고 함께 하지 않는 16행을 얻으며, 향하는 과의 8지를 버리고 얻는 과의 8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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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거니와 아나함은 그렇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초과를 수다원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수다원은 4제를 반연하고 아나함은 1제만 반연하나니, 그러므로 초과를 수다원이라 하느니라. 이런 인연으로 상어에 비유하느니라. 두루 살피고 가는 것은, 곧 사다함이 마음을 두어 도를 닦음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교만을 끊기 위함이니, 저 상어가 사방을 두루 살피고는, 먹이를 위하여 가는 것과 같으니라.
가서는 다시 머무는 것은 아나함에 비유한 것이니, 먹을 것을 얻고는 머무는 것이니라. 이 아나함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에 아나함을 얻고 닦아 나아가서 아라한과를 얻음이요, 또 하나는 색계와 무색계의 적정(寂靜)삼매에 탐착함이니, 이 사람은 욕계의 몸을 받지 아니하므로 아나함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아나함에 또 다섯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중반열반(中般涅槃)이요, 둘은 수신(受身)반열반이요, 셋은 행(行)반열반이요, 넷은 무행(無行)반열반이요, 다섯은 상류(上流)반열반이니라. 또 여섯 가지가 있으니, 다섯 가지는 위와 같고, 여섯은 현재(現在)반열반이니라. 또 일곱 가지가 있으니, 여섯은 위와 같고, 일곱은 무색계(無色界)반열반이니라. 행반열반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혹은 두 몸을 받고, 혹은 네 몸을 받느니라. 만일 두 몸을 받았다면 영리한 근성이라 하고, 네 몸을 받았다면 둔한 근성이라 하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진하고 자재한 선정이 없음이요, 또 하나는 게으르고 자재한 선정이 있음이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진과 선정을 갖춤이요, 또 하나는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함이니라.
선남자여, 욕계 중생에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짓는 업이요, 또 하나는 태어나는 업이니라. 중열반(中涅槃)은 짓는 업만 있고 태어나는 업은 없나니, 그러므로 중간에서 반열반하느니라. 욕계의 몸을 버리고 색계까지 이르기 전에 영리한 근성이므로 중간에서 열반하나니, 이것을 중열반이라 하느니라. 아나함에 네 가지 마음이 있으니, 하나는 비학비무학(非學非無學)이요, 둘은 학(學)이요, 셋은 무학이요, 넷은 비학비무학으로 열반에 드는 것이니라. 어찌하여 중반열반이라 하는가. 선남자여, 이 아나함의 네 가지 마음 중에서 두 가지는 열반이요, 두 가지는 열반이 아니니, 그러므로 중반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수신열반에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짓는 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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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또 하나는 나는 업이니라. 이 사람이 욕계의 몸을 버리고 색계의 몸을 받아서 부지런히 도를 닦다가 수명이 다한 뒤에 열반에 드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수명이 다하여 열반에 든다면 어찌하여 수신열반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이 사람이 몸을 받은 뒤에야 삼계의 번뇌를 끊나니, 그러므로 수신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행반열반은 항상 도를 수행하여 함이 있는 삼매의 힘으로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드나니, 이것을 행반열반이라 하느니라. 무행반열반은 이 사람이 열반을 얻을 줄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게으르지만 역시 함이 있는 삼매의 힘으로 수명이 다하면 열반에 드나니, 이것을 무행반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상류반열반은 어떤 사람이 제4선을 얻고는, 초선천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그 인연으로 물러나 초선천에 나느니라. 여기에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번뇌류(煩惱流)요, 또 하나는 도류(道流)니, 도류인 연고로 이 사람이 수명이 다하면 2선천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고, 사랑하는 인연으로 2선천에 태어나며, 나아가 제4선도 그와 같으니라. 이 4선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무색계에 들어가고, 또 하나는 5정거천(淨居天)에 들어가느니라. 이 두 사람이 하나는 삼매를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지혜를 좋아하나니, 지혜를 좋아하는 이는 5정거천에 들어가고, 삼매를 좋아하는 이는 무색계에 들어가느니라.
이 두 사람에서 하나는 4선정을 닦는 데 다섯 가지 계급이 있고, 또 하나는 닦지 않나니, 무엇이 다섯인가. 하(下)와 중(中)과 상(上)과 상중(上中)과 상상(上上)이니라. 상상을 닦는 이는 무소천(無小天)에 있고, 상중을 닦는 이는 선견천(善見天)에 있고, 상품(上品)을 닦는 이는 선가견천(善可見天)에 있고, 중품을 닦는 이는 무열천(無熱天)에 있고, 하품을 닦는 이는 소광천(少廣天)에 있느니라. 이 두 사람에서 하나는 논의를 좋아하고, 또 하나는 고요함을 좋아하나니, 고요함을 좋아하는 이는 무색계에 들어가고, 논의를 좋아하는 이는 5정거천에 있느니라.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훈선(熏禪)을 닦고, 또 하나는 훈선을 닦지 않으며, 훈선을 닦는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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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거천에 들어가고, 훈선을 닦지 않는 이는 무색계에 났다가 그 수명이 다하면 반열반하나니, 이것을 상류반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만일 무색계에 들고자 하는 이는 4선의 다섯 계급을 닦지 못하거니와, 만일 다섯 계급을 닦으면 무색계정을 꾸짖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열반하는 이가 영리한 근성이라 하나니, 만일 영리한 근성이라면, 어찌하여 현재에 열반에 들지 아니하오며, 무슨 연고로 욕계에는 중열반이 있고 색계에는 없나이까?”
“선남자여, 이 사람이 현재에는 4대(大)가 쇠약하여서 도를 닦지 못하느니라. 어떤 비구가 4대가 건강하더라도 집과 음식과 의복과 와구와 의약이 없으면, 모든 연(緣)을 구족하지 못하였므로 현재에 열반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내가 예전 어느 때에 사위국 아나빈저(阿那邠低 : 給孤獨) 정사에 있을 때에 어떤 비구가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항상 도를 닦지만 수다원과로부터 내지 아라한과까지를 얻지 못하나이다.’
내가 아난에게 말하여 이 비구를 위하여 모든 필요한 용품을 준비하여 주라 하였더니, 아난이 그 비구를 데리고 기타숲에 가서 좋은 방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 때에 비구가 아난에게 말하였다.
‘스님이여, 바라건대 나의 방을 훌륭하게 장엄하고 정결하게 치우며, 7보로 꾸미고 비단 번[繪幡]과 일산을 달아 주시오.’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가 사문이온데, 내가 이런 것을 어떻게 마련하겠는가?’
비구가 말하였다.
‘스님이 나를 위하여 이런 것을 마련하면 좋겠으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세존께서 계신 데로 도로 가겠노라.’
이 때에 아난은 부처님께 이를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난번에 그 비구가 저에게 요구하기를 여러 가지 장엄과 7보로 된 번과 일산을 달라 하오니, 이 일을 어찌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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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난에게 일렀다.
‘너는 도로 가서 그 비구가 달라는 대로 이바지하라.’
아난이 도로 그 방에 가서 그 비구를 위하여 온갖 것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 비구는 그런 것을 얻은 뒤에는 마음을 전심하여 도를 닦다가 오래지 않아서 수다원과로부터 아라한과까지를 얻었느니라.
선남자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마땅히 열반에 들 것이지만, 궁핍한 것이 많아 마음을 산란케 하므로 얻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어떤 중생들은 교화하기를 좋아하면서도, 마음이 분주하여서 선정을 얻지 못하며, 그래서 현재에 열반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무슨 연고로 욕계의 몸을 버리고는 중열반하는 이가 있고, 색계에는 없습니까?’ 하였거니와 선남자여, 이 사람이 욕계의 번뇌 인연을 관찰하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이요, 또 하나는 밖이나 색계에는 바깥 인연이 없으며, 욕계에 또 두 가지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하나는 탐욕하는 사랑이요, 또 하나는 먹는 사랑이니라. 이 두 가지 사랑을 관찰하고 지성으로 꾸짖으며, 꾸짖기를 마치고는 열반에 드느니라.
이 욕계 중에서 모든 거친 번뇌를 꾸짖게 되나니, 아끼고 탐하고 성내고 질투하고 부끄럼 없고 수줍은 줄 모르는 것이라. 이런 인연으로 열반을 얻느니라. 욕계의 도는 성품이 용맹하니, 왜냐 하면 4과를 얻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욕계에는 중열반이 있고 색계에는 없느니라.
선남자여, 중열반에 세 가지가 있으니, 상과 중과 하니라. 상은 몸을 버리고서 욕계를 떠나지 않고 열반을 얻고, 중은 처음 욕계를 떠나서 색계에 이르기 전에 열반을 얻고, 하는 욕계를 떠나고 색계의 끝에 이르러서야 열반을 얻나니, 상어가 먹이를 얻고는 머무는 데 비유하였으니, 이 사람도 그러하니라. 어떤 것을 머문다 이름하는가. 색계와 무색계에 처해 있으면서 몸을 받는 것이니, 그러므로 머문다 하며, 욕계의 인간·천상·지옥·축생·아귀의 몸을 받지 아니하므로 머문다 하며, 이미 한량없는 번뇌의 결박을 끊고 조금만 남았으므로 머문다 하느니라. 다시 무슨 인연으로 머문다 이름하는가. 마침내 범부와 함께하는 일을 짓지 아니하므로 머문다 하며, 스스로 두려움이 없고 다른 이도 두려움이 없게 하므로 머문다 하며, 두 가지 애욕인 간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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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는 일을 멀리 여의었으므로 머문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저 언덕에 이른다 함은 아라한·벽지불·보살·부처님을 비유한 것이니, 마치 거북이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니는 것과 같으니라. 무슨 인연으로 거북에 비유하는가. 다섯 가지를 잘 감추는 연고니, 아라한으로부터 부처님에 이르기까지도 그와 같아서 5근을 잘 가리므로 거북에 비유하였고, 물과 육지라 함에서 물은 세간에 비유하였고, 육지는 출세간에 비유하였으며, 여러 성인들도 또한 이와 같이 능히 모든 나쁜 번뇌를 능히 관찰하므로 저 언덕에 이른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물과 육지에 모두 다닌다고 비유하였느니라.
선남자여, 항하 속의 일곱 가지 중생이 비록 고기라 거북이라 하는 이름은 다르나 물을 떠나지 아니함과 같이 이 미묘한 대열반 가운데도 일천제로부터 위로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이름은 비록 다르나 불성이란 물을 떠나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이 일곱 중생이 선한 법이거나 선하지 않은 법이거나 방편도(方便道)거나 해탈도(解脫道)거나 차제도(次第道)거나 인이거나 과거나 모두 불성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여래가 자기의 뜻을 따르는 말이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만일 인이 있으면 과가 있고, 인이 없으면 과가 없을 것입니다. 열반을 과라고 한다면 항상한 연고로 인이 없을 것이오니, 만일 인이 없다면 어떻게 과라고 이름하오며, 이 열반을 사문이라 이름하며 사문과(沙門果)라 이름하오니, 어찌하여 사문이오며 어찌하여 사문과입니까?”
“선남자여, 모든 세간에 일곱 가지 과보가 있나니, 하나는 방편의 과보[方便果]요, 둘은 은혜 갚는 과보[報恩果]요, 셋은 친근한 과보[親近果]요, 넷은 남은 과보[餘殘果]요, 다섯은 평등한 과보[平等果]요, 여섯은 과보의 과보[果報果]요, 일곱은 멀리 여읜 과보[遠離果]니라. 방편의 과보라 함은 세상 사람들이 가을에 곡식을 많이 거두면, 말하기를 방편의 과보를 얻었다 하나니, 방편의 과보는 업행(業行)의 과보라 이름하며, 이런 과보에는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종자를 말함이요, 먼 인은 물과 거름과 사람의 공력이니, 이것을 방편의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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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느니라. 은혜 갚는 과보라 함은 세상 사람이 부모에게 공양하면, 부모가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낳아 길러 준 과보를 받는다’ 하며, 자식이 능히 은혜를 갚으므로 과보라 하느니라.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니라. 가까운 인은 부모의 과거의 선한 업이요, 먼 인은 곧 낳은 바 효자니, 이것을 은혜 갚는 열매라 하느니라.
친근한 과보라 함은 마치 어떤 이가 선지식을 친근하면 수다원과으로부터 아라한과까지를 얻나니,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지금 친근한 과보를 얻었노라’ 하느니라.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믿는 마음이요, 먼 인은 선지식이니, 이것을 친근한 과보라 하느니라. 남은 과보라 함은 살생하지 않음을 인하여 셋째 번 몸에 오래 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남은 과보라 하며, 이런 과보에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함이요, 먼 인은 장수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을 남은 과보라 하느니라. 평등한 과보라 함은, 세계란 그릇[世界器]을 말함이니라.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중생들이 열 가지 선한 업을 닦음이요, 먼 인은 3재(災)를 말함이니, 이것을 평등한 과보라 하느니라.
과보의 과보라 함은 마치 사람이 청정한 몸을 얻고는 몸과 입과 마음의 청정한 업을 닦음과 같나니, 이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과보의 과보를 얻었노라’ 하느니라. 이런 과보에도 두 가지 인이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현재의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함이요, 먼 인은 과거의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함이니, 이것을 과보의 과보라 하느니라.
멀리 여읜 과보라 함은 곧 열반이니, 모든 번뇌를 여읜 온갖 선한 업은 열반의 인이니라. 이 인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가까운 인이요, 또 하나는 먼 인이라. 가까운 인은 곧 3해탈문이요, 먼 인은 한량없는 세월에서 닦은 선한 법이니라.
선남자여, 세간의 법에서 혹은 내는 인[生因]을 말하고, 혹은 나타내는 인[了因]을 말하는 것처럼 출세간의 법도 그와 같아서 내는 인도 말하고, 나타내는 인도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3해탈문과 37품(品)은 모든 번뇌를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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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나지 않는 내는 인[不生生因]이 되고, 열반을 위하여는 나타내는 인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번뇌를 멀리 여의면 분명하게 열반을 보게 되나니, 그러므로 열반에는 나타내는 인만 있고 내는 인은 없느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묻기를 ‘어찌하여 사문나(沙門那)며, 어찌하여 사문과입니까?’ 하였나니, 선남자여, 사문나는 곧 8정도(正道)요, 사문과는 도로부터 필경에 모든 탐욕, 성내는 일, 어리석음을 영원히 끊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사문나라 사문과라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8정도를 사문나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세상에서 말하기를 사문(沙門)은 궁핍이라 하고, 나(那)는 도라 하나니, 도라는 것은 온갖 궁핍을 끊고 온갖 도를 끊음이니라. 이런 뜻으로 8정도를 사문나라 하며, 이 도로부터 과를 얻으므로 사문과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또 사문나라 함은 세상 사람으로서 고요한 데를 좋아하는 이도 사문나라 하나니, 도라는 것도 그러하여 행자(行者)로 하여금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나쁜 일과 삿된 목숨[邪命]을 여의고 고요함을 즐기게 하므로 사문나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세상에서 하등 사람으로서 상등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을 사문나라 하나니, 도라는 것도 그와 같아서 하등 사람으로 하여금 상등 사람이 되게 하므로 사문나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아라한으로서 이 도를 닦는 이는 사문과를 얻나니, 그러므로 저 언덕에 이르렀다고 이름하느니라. 아라한과는 곧 무학(無學)의 오분법신(五分法身)이니,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解脫知見)이니라. 이 다섯 가지로 인하여 저 언덕에 이를 수 있으므로 저 언덕에 이른다 이름하며,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는 일이 끝났고, 범행이 이미 섰고, 할 일을 이미 마쳤고, 다시 생사[有]를 받지 않노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아라한은 3세(世)에 태어나는 인연을 영원히 끊었으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태어나는 일이 끝났다’ 하고, 삼계의 5음으로 이루는 몸을 끊었으므로 ‘나는 태어나는 일이 끝났다’ 하고, 닦는 범행을 마쳤으므로 ‘범행이 이미 섰다’ 말하고, 또 도를 배움을 버렸으므로 ‘이미 섰다’고 이름하며, 본래 구하던 일을 오늘 얻었으므로 ‘할 일을 이미 마쳤노라’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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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도를 닦아서 과를 얻었으므로 ‘이미 마쳤노라’ 말하며, 다하는 지혜[盡智]와 나지 않는 지혜를 얻었으므로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는 일이 이미 끝났고 모든 유[有]의 결박을 다하였다’ 하나니, 이런 뜻으로 아라한을 이름하여 저 언덕에 이르렀다[到彼岸] 이름하느니라. 아라한과 같이 벽지불도 그러하며, 보살과 부처님께서는 6바라밀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므로 저 언덕에 이르렀다 이름하느니라. 이 부처님과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6바라밀을 구족하였다 하나니, 왜냐 하면 6바라밀의 결과를 얻은 까닭이며, 결과를 얻었으므로 구족하였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일곱 중생은 몸을 닦지 아니하고 계행을 닦지 아니하고 마음을 닦지 아니하고 지혜를 닦지 아니하나니, 이 네 가지 일을 닦지 아니하면, 5역죄를 지으며 선근을 끊으며 4중죄를 범하며 3보를 비방하나니, 그러므로 항상 빠진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일곱 사람 중에 능히 선지식을 친근하는 이는, 지성으로 여래의 바른 법을 듣고 속으로 잘 생각하여 법답게 머물며, 몸과 계행과 마음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나니, 그러므로 생사의 강을 건너서 저 언덕에 이른다 이름하느니라. 만일 말하기를, 일천제들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는 이는 잘못 집착한다 이름하고, ‘얻지 못한다’ 말하면 허망하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일곱 가지 사람은, 혹 한 사람이 일곱을 갖추기도 하고, 혹 일곱 사람이 각각 한 가지를 가지기도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마음과 입으로 달리 생각하고 달리 말하되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마음과 입으로 달리 생각하고 달리 말하되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한다’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8성도(聖道)는 범부가 얻을 것이라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며, 만일 말하기를, ‘8성도는 범부가 얻을 것이 아니라’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결정코 불성이 있다거나 결정코 불성이 없다’고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한다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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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내가 경에서 말하기를, ‘두 가지 사람이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나니, 하나는 믿지 않고 성내는 마음이 있는 연고요, 둘은 믿으면서도 뜻을 알지 못하는 연고라’ 하였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사람이 신심은 있으나 지혜가 없으면, 이 사람은 무명을 증장하고, 지혜는 있으나 신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삿된 소견을 증장하느니라. 선남자여, 믿지 않는 사람은 성내는 마음 때문에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가 없다고 말하고, 믿는 이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뒤바뀌게 뜻을 해석하여 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케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성내는 마음이 있는 연고며, 믿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연고로 이 사람들이 불보·법보·승보를 비방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일천제들이 선한 법을 내지 못하고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것이요, 또 말하기를 ‘일천제가 이 일천제를 버리고 다른 몸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 하면, 이 사람도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한다 이름하거니와 만일 말하기를 ‘일천제가 능히 선근을 내며, 선근을 내고는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그러므로 일천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말한다 하면, 이 사람은 3보를 비방하지 않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결정코 불성이 있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고 짓지도 않고 나지도 않지만 번뇌의 인연으로 보지 못한다’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줄을 알아야 하며, 만일 말하기를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이 없는 것이 마치 토끼의 뿔과 같지만 방편으로 나는 것이어서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으며, 있고서는 도로 없어진다’ 하면, 이 사람은 부처님·교법·승가를 비방하는 줄을 알아야 하는데, 만일 말하기를 ‘중생의 불성은 있어도 허공과 같은 것이 아니요, 없어도 토끼의 뿔과 같은 것이 아니니, 왜냐 하면 허공은 항상한 연고며, 토끼의 뿔은 없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하리니, 있으므로 토끼의 뿔을 깨뜨리고, 없으므로 허공을 깨뜨린다 하면 이런 말은 3보를 비방함이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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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불성은 1법이라 말하지 않고 10법이라 말하지 않고 백 법이라 말하지 않고 천 법이라 말하지 않고 만 법이라 말하지도 않나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지 못하였을 때에는, 모든 선과 불선과 무기(無記)를 모두 불성이라 말하느니라. 여래가 어느 때에는 인 가운데 과를 말하고 과 가운데 인을 말하나니, 이것을 여래가 자기의 뜻을 말함이라 이름하느니라.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여래라 이름하고,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아라하라 이름하고, 자기의 뜻을 따라 말하므로 삼먁삼불타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이 중생의 불성이 허공과 같다 하시니, 어찌하여 허공과 같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여, 허공의 성품이 과거도 아니요 미래도 아니요 현재도 아니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허공이 과거가 아니니, 왜냐 하면 현재가 없는 연고니라. 법이 만일 현재하다면 과거를 말하려니와, 현재가 없는 연고로 과거가 없느니라. 또한 현재도 없나니 왜냐 하면 미래가 없는 연고니라. 법이 만일 미래라면 현재를 말하려니와, 미래가 없는 연고로 현재가 없느니라. 또한 미래도 없나니 왜냐 하면 현재와 과거가 없는 연고니라. 만일 현재와 과거가 있다면 미래가 있으려니와, 현재와 과거가 없는 연고로 미래가 없느니라. 이런 이치로 허공의 성품이 3세에 잡히지 아니하느니라. 선남자여, 허공이 없는 연고로 3세가 없는 것이요, 있음으로써 3세가 없는 것이 아니니라. 마치 허공화(虛空花)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3세가 없는 것처럼 허공도 그와 같아서 있는 것이 아니므로 3세가 없느니라. 선남자여, 물건이 없는 것이 곧 허공이니, 불성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허공은 없으므로 3세에 잡히지 아니하였고, 불성은 항상하므로 3세에 잡히지 아니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으므로, 있는 바 불성과 모든 부처님의 법이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나니, 이런 뜻으로 3세가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허공은 없는 연고로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며, 불성은 항상한 연고로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니니, 그러므로 불성이 허공과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세간에서 거리낄 것이 없는 데를 허공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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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는, 온갖 부처님 법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불성이 허공과 같다 하며, 이 인연으로 내가 말하기를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불성·열반이 3세에 잡히지 않았지만 있다고 이름하면서, 허공도 3세에 잡히지 아니하였는데, 무슨 연고로 있다고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열반 아닌 것을 위하여서 열반이라 이름하고, 여래 아닌 것을 위하여서 여래라 이름하고, 불성 아닌 것을 위하여서 불성이라 이름하느니라. 어떤 것을 열반이 아니라 하는가. 모든 번뇌의 함이 있는 법이니, 이러한 함이 있는 번뇌를 깨뜨리기 위하여 열반이라 이름하느니라. 여래 아니라 함은, 일천제로부터 벽지불에 이르기까지이니, 이런 일천제로부터 벽지불까지를 깨뜨리기 위하여 여래라 이름하느니라. 불성 아니라 함은, 온갖 장벽과 질그릇과 돌 등의 무정물(無情物)이니, 이러한 무정물을 깨뜨리기 위하여 불성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세간에는 허공 아닌 것으로 허공을 상대할 것이 없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에는 4대가 아닌 것으로 상대할 것이 없지만 4대가 있는 것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허공과 상대할 것이 없는 것은, 무슨 연고로 있는 것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열반이 3세에 잡히지 아니한 것처럼 허공도 그렇다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열반은 있는 것이매 볼 수 있고 증득할 수 있으며, 색이며 발자국이며 구절[章句]이며, 유(有)며 모양이며 반연이며 귀의할 곳이며 고요[寂靜]하며 밝게 빛나며 편안하며 저 언덕이니, 그러므로 3세에 잡히지 않는다 이름하려니와, 허공의 성품은 이런 법이 없나니, 그러므로 없다 하느니라. 만일 이러한 법들을 여의고 다시 있는 법이라면, 마땅히 3세에 잡힐 것이며, 허공이 만일 있는 법과 같을진대 3세에 잡히지 아니할 수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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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허공은 빛도 없고 대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고 하나니, 만일 빛이 없고 대할 수가 없고 볼 수가 없으면, 이것은 심수법(心數法)이요, 허공이 만일 심수법과 같다면, 3세에 잡히지 않는다고 할 수가 없으며, 만일 3세에 잡힌다면, 곧 4음(陰)이니, 그러므로 4음을 여의고는 허공이 없느니라. 또 선남자여, 외도들이 말하기를 ‘허공은 곧 광명이라’ 하거니와, 만일 광명이라면 그것은 색법(色法)이니, 허공도 그와 같이 색법이라면 곧 무상이며, 무상한 연고로 3세에 잡힐 것이거늘, 어째서 외도들은 3세가 아니라 하는가. 만일 3세에 잡힌다면 허공이 아닐 것이며, 또한 허공이 항상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선남자여, 또 어떤 이가 말하기를 ‘허공이 머물 곳’이라 하나니, 만일 머물 곳이 있다면 곧 색법일 것이며, 온갖 처소는 다 무상이어서 3세에 잡히는 것인데, 허공은 항상한 것이면서 3세에 잡히지 않겠는가. 만일 처소라 말한다면 허공이 없음을 알지니라. 또 어떤 이가 말하기를 ‘허공은 곧 차례[次第]라’ 말하나니, 만일 차례라면 이것은 셈하는 법이며, 만일 셀 수 있다면 3세에 잡힐 것이니, 3세에 잡힌다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또 말하기를 ‘허공은 세 법을 여의지 않았다’ 하나니, 공함[空]과 실함[實]과 공하고 실함[空實]이니라. 만일 공한 것이 맞다면, 허공이 무상한 법일 것이니, 왜냐 하면 실한 곳에는 없는 연고며, 만일 실한 것이 맞다면, 역시 허공이 무상한 것이니, 왜냐 하면 공한 곳에는 없는 연고며, 만일 공하고 실한 것이 맞다면 허공이 역시 무상한 것이니, 왜냐 하면 두 곳에 없는 연고니, 그러므로 허공을 이름하여 없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는 허공이 만들 수 있는 것[可作法]이라 하여 말하기를 ‘나무를 치우고, 집을 헐어서 허공을 만들며, 평탄하게 하여 허공을 만들고 허공의 빛을 그려 바닷물과 같이 할 수 있으므로, 허공을 만들 수 있는 법이라’ 한다면, 온갖 만든 법은 모두 무상함이 질그릇과 같나니, 허공도 만일 그럴진댄 반드시 무상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든 법 가운데 걸림이 없는 곳을 허공이라 이름한다’고 할진댄 이 걸림없는 곳이 한 법 있는 곳에 구족하게 있느냐, 부분으로 있느냐. 만일 구족하게 있다면 다른 곳에는 허공이 없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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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부분으로 있다면 곧 이것과 저것이 셀 수 있는 법일 것이니, 만일 셀 수 있다면 무상한 줄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는 말하기를 ‘허공의 걸림없는 것이 있는 것과 함께 합해진다’ 하며, 또 말하기를 ‘허공이 물건에 있는 것이 마치 그릇 안의 과실과 같다’ 하거니와, 둘이 다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함께 합해진다고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다른 업이 합해진다면 나는 새가 나무에 모이는 것 같을 것이요, 둘은 같은 업이 합해진다면 두 양(羊)이 서로 받는 것과 같을 것이요, 셋은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해진다면 두 쌍의 손가락이 한 곳에 합해져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니라.
만일 다른 업이 함께 합해진다면, 다르다는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물건의 업이요, 또 하나는 허공의 업이니라. 만일 허공의 업이 물건에 합해진다면 허공은 무상한 것이요, 물건의 업이 허공에 합해진다면 물건은 두루하지 못한 것이니, 두루하지 못하다면 그것도 무상한 것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허공은 항상하고 성품이 동하지 않는 것인데, 동하는 물건과 합해진다’면 그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허공이 만일 항상하다면 물건도 마땅히 항상할 것이요, 물건이 만일 무상하다면 허공도 무상할 것이며, 만일 허공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면 옳지 아니하니라. 만일 같은 업이 합해진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허공은 두루하다 이름하는 것인즉, 업과 더불어 합해진다면 업도 마땅히 두루할 것이며, 만일 두루하다면 온갖 것에 두루할 것이며, 온갖 것에 두루하다면 마땅히 온갖 것에 합해졌을 것이니, 그렇다면 합해지고 합해지지 않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만일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해진다면, 두 쌍의 손가락이 합해진다는 것과 같을 것이니,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먼저 합해짐이 없다가 뒤에 바야흐로 합해지는 까닭이니, 먼저 없다가 뒤에 있다면 이는 무상한 법이니라. 그러므로 허공이 이미 합해진 것이 함께 합한 것이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세간법이 먼저는 없다가 뒤에 있다면, 그 물건은 무상한 것임과 같아서 허공이 그렇다면 역시 무상할 것이니라. 만일 허공이 물건에 있는 것이, 마치 그릇 안의 과실과 같다고 말하면, 그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이 허공이 처음에 그릇에 없었을 때에는 어디에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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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가. 만일 있는 곳이 있다면 허공이 여럿이리라. 만일 여럿이라면 어떻게 항상하다 말하고, 하나다 말하고, 두루하다 말하겠는가. 만일 허공이 허공을 떠나서 있는 데가 있다면, 다른 물건도 허공을 떠나서 있을 것이니, 그러므로 허공이 없는 줄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머무는 데를 가리켜 허공이라 이름한다면, 허공이 무상한 법임을 알 것이니라. 왜냐 하면 가리키는 것은 사방이 있나니, 만일 사방이 있다면 허공도 사방이 있음을 알지니라. 모든 항상한 법은 모두 방소가 없거늘, 방소(方所)가 있는 연고로 허공이 무상할 것이며, 만일 무상하다면 5음을 여의지 못한 것이니, 5음을 여의려 하면 있는 데가 없을 것이니라.
선남자여, 어떤 법이 인연을 따라 머문다면, 이 법은 무상하다 할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모든 중생이나 나무가 땅으로 인하여 머무는 것처럼, 땅이 무상한 연고로 땅으로 인한 물건도 차례로 무상하니라. 선남자여, 땅이 물로 인하였거든 물이 무상한 연고로 땅도 무상하며, 물이 바람으로 인하였다면 바람이 무상한 연고로 물도 무상하며, 바람이 허공으로 인하였다면 허공이 무상한 연고로 바람도 무상하니라. 만일 무상한 것이라면 어떻게 말하기를 허공이 항상하여서 온갖 곳에 두루한다 하겠는가.
허공이 없는 것이므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니니, 마치 토끼뿔이 없는 물건이므로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아닌 것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불성은 항상한 연고로 3세에 잡힌 것이 아니요, 허공은 없는 연고로 3세에 잡히지 않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세간과 더불어 함께 다투지 아니하나니, 왜냐 하면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면 나도 있다고 말하고,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면 나도 없다고 말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이 몇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 법에 더럽히지 않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 법에 더럽히지 아니하느니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나는 신심이요, 둘은 계율이요, 셋은 선지식을 친근함이요, 넷은 안으로 잘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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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 다섯은 정진을 구족함이요, 여섯은 바른 생각[正念]을 구족함이요, 일곱은 지혜를 구족함이요, 여덟은 바른 말을 구족함이요, 아홉은 바른 법을 좋아함이요, 열은 중생을 불쌍히 여김이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이러한 열 가지 법을 구족하면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 법에 더럽히지 아니함이 우발라꽃과 같으리라.”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에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면 나도 있다고 말하고,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면 나도 없다고 말한다 하시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 없다 함이옵니까?”
“선남자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기를 ‘색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으며, 나아가 식도 그렇다’ 하나니,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있다고 말하고 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기를 ‘색은 항상함과 즐거움과 나와 깨끗함이 없으며, 수·상·행·식도 그러하다’ 하나니,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없다고 말하고 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간의 지혜 있는 이는 곧 부처님과 보살과 모든 성인이니, 모든 성인이 색은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고 하옵거늘,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부처님의 색신이 항상하여 변역함이 없다 하시나이까? 세상의 지혜 있는 이가 말하는 바 없다는 법을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있다고 하시나이까? 여래 세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찌하여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의 법에 더럽히지 않는다 하시나이까? 여래께서 세 가지 뒤바뀜을 여의셨으니, 생각이 뒤바뀜, 마음이 뒤바뀜, 소견이 뒤바뀜이옵니다. 마땅히 부처님 색신이 무상하다고 말씀하실 것이거늘 이제 항상하다 하시니, 어떻게 뒤바뀜을 여의시고 세상과 더불어 다투지 않는다 하시겠나이까?”
“선남자여, 범부의 색신은 번뇌로 생긴 것이매, 지혜 있는 이가 말하기를, ‘색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가 없다 하지만 여래의 색신은 번뇌를 여의었느니라. 그러므로 항상하고 변역함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색이 번뇌로부터 생긴다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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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번뇌가 세 가지니, 욕루(欲漏)·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니라.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이 3루의 허물을 관찰할 것이니, 왜냐 하면 허물을 알고는 멀리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니라. 마치 의사가 먼저 병인의 맥을 짚어보고 병난 데를 알고야 약을 주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소경을 데리고 가시덤불 속에 갔다가 버리고 돌아온다면, 소경은 그 뒤에 헤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며, 설사 헤어나더라도 몸이 모두 찢겼을 것이니, 세간의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세 가지 번뇌의 허물을 보지 못하였으면 따라다닐 것이며, 만일 보았으면 멀리 여읠 것이요, 허물을 알고는 과보를 받더라도 과보가 가벼울 것이니라. 선남자여, 네 가지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업을 지을 때는 중하고 과보를 받을 때에는 가벼우며, 둘은 업을 지을 적에는 가볍고 과보를 받을 때에는 중하며, 셋은 업을 지을 때도 중하고 과보를 받을 때도 중하며, 넷은 업을 지을 때도 가볍고 과보를 받을 때도 가벼우니라. 선남자여, 사람이 만일 번뇌의 허물을 관찰하였으면, 이 사람은 업을 짓고 과보를 받음이 모두 가벼우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느니라.
‘나는 마땅히 이런 번뇌를 멀리 여의고, 다시는 이러한 나쁜 일을 짓지 않아야 할 것이니, 왜냐 하면 내가 지금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의 업보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며, 내가 만일 도를 닦으면 그 힘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괴로움을 파괴하리라.’
이 사람이 이렇게 관찰하고는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미약하여질 것이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가벼워짐을 보고는 마음이 기뻐지며, 다시 생각하기를 ‘내가 지금 이렇게 되는 것이 모두 도를 닦은 인연의 힘이니, 나로 하여금 불선한 법을 여의고 선한 법을 친근하게 할 것이며, 그리하여 현재에 바른 도를 보게 될 것이니, 마땅히 부지런히 닦아야 하리라’ 하며, 이 사람이 이렇게 부지런히 도를 닦은 힘으로 한량없는 나쁜 번뇌를 멀리 여의며,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의 과보를 여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계경(契經)에서 말하기를 ‘마땅히 모든 유루의 번뇌와 유루의 인을 관찰할지니, 왜냐 하면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만일 유루만 보고 유루의 인을 보지 아니하면 모든 번뇌를 끊지 못하리라. 왜냐 하면 지혜 있는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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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기를 ‘번뇌가 이 인으로부터 생기나니, 내가 이제 인을 끊으면 번뇌가 생기지 못하리라’ 하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의사가 먼저 병의 원인을 끊으면 병이 생기지 못하는 것처럼, 지혜 있는 이가 먼저 번뇌의 인을 끊음도 그와 같으니라. 지혜 있는 사람은 먼저 인을 관찰하고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되, 선한 인으로부터는 선한 과보가 생기는 줄을 알고, 나쁜 인으로부터는 나쁜 과보가 생기는 줄을 알며, 과보를 관찰하고는 나쁜 인을 멀리 여의느니라. 과보를 관찰하고는 다시 번뇌의 경중을 관찰하며 경중을 관찰하고는 먼저 중한 것을 여읠지니, 중한 것을 여의면 가벼운 것은 스스로 물러가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만일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면, 이 사람은 부지런히 도를 닦아서 쉬지도 아니하고 뉘우치지도 아니하며, 선지식을 친근하고 지성으로 법을 들으리니, 이러한 모든 번뇌를 멸하기 위한 연고니라. 선남자여, 마치 병자가 자기의 병이 가벼워 반드시 나을 줄을 알면, 비록 쓴 약을 먹더라도 먹고 후회하지 아니하나니, 지혜 있는 사람도 그와 같아서 부지런히 성인의 도를 닦으면서 기뻐하고, 근심하지 않고 쉬지 않고 후회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사람이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면, 번뇌를 없애기 위하여 부지런히 성인의 도를 닦을 것이니, 이 사람은 번뇌로부터 색이 생기지 아니할 것이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와 같으려니와, 만일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지 못하면, 부지런히 닦지 아니하여 이 사람은 번뇌로부터 색이 생길 것이니,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고, 번뇌를 끊기 위하여 도를 닦는 이는 곧 여래니, 이런 인연으로 여래의 색이 항상하며, 나아가 식이 항상하니라. 선남자여, 번뇌와 번뇌의 인과 번뇌의 과보와 번뇌의 경중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지 못하는 이는, 곧 범부니, 그러므로 범부의 색이 무상하며, 나아가 수와 상과 행과 식도 모두 무상하니라.
선남자여, 세상의 지혜 있는 모든 성인과 보살과 부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이치를 말씀하셨고, 나도 그와 같이 두 가지 이치를 말하였나니, 그러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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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내가 말하기를 ‘세상의 지혜 있는 이와 더불어 다투지 아니하며, 세상의 법에 더럽히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가섭보살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유루란 것은 어찌하여 욕루·유루·무명루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욕루라 함은 안으로의 나쁜 각관(覺觀)이 바깥 인연으로 인하여 욕루를 낸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예전에 왕사성에서 아난에게 이르기를 ‘아난아, 네가 이제 이 여인이 말하는 게송을 들으라. 이 게송은 과거 여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니라. 그러므로 모든 안으로의 나쁜 각관과 밖으로의 모든 인연을 이름하여 탐욕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욕루니라. 유루라 함은 색계·무색계의 안으로의 나쁜 법들과 바깥의 인연들이니, 욕계 중의 바깥 인연들과 안의 각관들을 없앤 것을 유루라 하느니라. 무명루라 함은 나와 내 것을 알지 못하며, 안과 밖을 분별하지 못함을 무명루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무명은 모든 번뇌의 근본이니, 왜냐 하면 모든 중생들이 무명의 인연으로 5음·6입·18계에 대하여 생각하고 모양을 짓는 것[作相]을 중생이라 이름하나니, 이것이 생각이 뒤바뀌고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뀌었다는 것이니라. 이런 인연으로 모든 번뇌를 내나니, 그러므로 내가 12부경 중에서 말하기를 ‘무명이란 것은 곧 탐욕의 인이며 성내는 인이며 어리석음의 인이라’ 하였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예전에 12부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잘 생각하지 못하는 인연으로 탐욕·성내는 일·어리석음이 생긴다’ 하시더니, 이제는 무슨 인연으로 무명이라 말씀하시나이까?”
“선남자여, 이 두 가지 법은 서로 인이 되고 과가 되어서 서로서로 증장하게 하나니, 잘 생각하지 못하므로 무명을 내고, 무명의 인연으로 잘 생각하지 못함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능히 모든 번뇌를 자라게 하는 것은 다 번뇌의 인연이라 이름하고, 이 번뇌의 인연을 친근함을 무명이요 잘 생각하지 못함이라 하느니라. 종자가 싹을 내는 것과 같아서 종자는 가까운 인이요 4대는 먼 인이니, 번뇌도 그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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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무명이 곧 누라’ 하시더니, 어찌하여 다시 말씀하시기를 ‘무명으로 인하여서 모든 누를 낸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내가 말한 바 무명루라는 것은 안의 무명이요, 무명으로 인하여 모든 누를 낸다는 것은 안과 바깥이니라. 만일 무명루라 말하면 이는 안으로 뒤바뀜[內倒]이라 하나니, 무상과 괴로움과 공함과 내가 없음을 알지 못함이요, 만일 모든 번뇌의 인연이라 하면 이는 바깥의 나와 내 것을 알지 못한다 이름하며, 만일 무명루라 하면 이는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다 이름하나니, 무명으로부터 5음·6입·18계 등을 내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은 번뇌의 인을 안다’ 하셨사오니, 어떤 것을 이름하여 번뇌의 인을 안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무슨 인연으로 이 번뇌를 내며, 무슨 행을 지어서 이 번뇌를 내며, 어느 때에 이 번뇌를 내며, 누구와 함께 있으면 이 번뇌를 내며, 어디에 있으면 이 번뇌를 내며, 무슨 일을 관찰하면 번뇌를 내며, 누구의 집과 와구와 음식과 의복과 탕약을 받았길래 번뇌를 내며, 무슨 인연으로 하품을 변하여 중품을 만들고, 중품을 변하여 상품을 만들며, 하품 업으로 중품을 짓고, 중품 업으로 상품을 짓는가’를 관찰할지니, 보살마하살이 이렇게 관찰하면, 번뇌를 내는 인연을 여의게 되느니라.
이렇게 관찰할 때에 생기지 아니한 번뇌는 막아서 생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생긴 번뇌는 없애어 멸하게 되나니, 그러므로 내가 계경 중에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번뇌를 내는 인을 관찰할지라’ 하였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의 한 몸으로 어떻게 가지가지 번뇌를 일으키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한 그릇에 여러 가지 씨가 있는데, 물이나 비를 얻으면 제각기 싹이 나는 것과 같이 중생도 그와 같으니라. 그릇은 하나이지만 탐애의 인연으로 가지가지 번뇌를 생장시키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지혜 있는 이는 어떻게 과보를 관찰하여야 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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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관찰하기를 ‘번뇌의 인연으로 지옥·아귀·축생을 내며, 번뇌의 인연으로 인간과 천상의 몸을 얻게 되나니, 이것이 곧 무상이요 괴로움이요 공함이요 내가 없음이로다’ 할 것이며, 이 몸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괴로움과 세 가지 무상을 얻는 것이며, 이 번뇌의 인연이 중생으로 하여금 5역죄를 짓고 나쁜 과보를 받게 하며, 선근을 끊고 4중죄를 범하고 삼보를 비방하게 한다 할 것이며, 지혜 있는 이는 내가 이미 이런 몸을 받았으니, 이런 번뇌를 다시 일으켜 나쁜 과보를 받지 않아야 하리라고 관찰할지니라.”
“세존이시여, 무루과(無漏果)도 있거늘, 다시 말씀하시기를 ‘지혜 있는 사람은 모든 과보를 끊는다’ 하시니, 무루의 과보도 끊는 가운데 드나이까? 도를 얻은 사람은 무루의 과가 있사오며, 지혜 있는 이는 무루의 과를 구할 것이온데, 어찌하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지혜 있는 이는 모든 과보를 끊을 것이라’ 하오며, 만일 끊을 것이라면, 지금 성인들은 어찌하여 있나이까?”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는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하고,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하느니라. 마치 세상 사람이 진흙 반죽을 질그릇이라 말하고, 실[縷]을 옷이라 하는 것 등을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한다 하느니라.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는 것은, 소를 보고 여물이라 하고, 사람을 보고 밥이라 하는 것이니, 나도 그와 같이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하느니라. 먼저 경에서 말하기를 ‘나는 마음과 몸[마음으로 인하여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라고 이름하였다]으로 좇아 범천의 곁에 이른다’ 한 것은,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한 것이요,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 함은, 6입은 과거의 업이라 하면, 이것을 과 가운데서 인을 말한다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모든 성인이 진실로 무루의 과보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모든 성인의 도를 닦는 과보에는 다시 누가 생기지 아니하므로 무루의 과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이 이렇게 관찰할 때에 곧 번뇌의 과보를 영원히 멸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관찰하고 나서는 이런 번뇌의 과보를 끊기 위하여 성인의 도를 닦나니, 성인의 도는 곧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이니라. 이 도를 닦고는 모든 번뇌의 과보를 멸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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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4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4. 가섭보살품 ④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온갖 중생들이 다 번뇌로부터 과보를 얻나니, 번뇌는 악이라 하오며, 악한 번뇌로부터 생긴 번뇌도 악이라 하나이다. 이런 번뇌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인(因)이요, 또 하나는 과(果)입니다. 인이 악하므로 과가 악하고 열매가 좋지 않으므로 씨가 좋지 않나니, 마치 임파(임婆) 열매는 씨가 쓴 까닭에 꽃과 열매와 줄기와 잎이 모두 쓴 것과 같으며, 독한 나무는 씨가 독하므로 열매도 독한 것입니다. 인이 중생이매 과도 중생이며, 인이 번뇌이매 과도 번뇌니, 번뇌의 인과 과가 곧 중생이요, 중생이 곧 번뇌의 인과 과라 하나이다. 이러하다면 어찌하여 여래께서 먼저 비유하시기를, ‘설산에 독한 풀과 미묘한 약왕이 있다’ 하셨나이까? 만일 번뇌가 곧 중생이요 중생이 곧 번뇌라 할진댄 어찌하여 중생의 몸 속에 묘한 약왕이 있다고 말씀하셨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말이다. 선남자여, 한량없는 중생들이 모두 그 의심과 같거늘, 그대가 능히 물어서 해답을 구하였고, 나도 능히 결단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내가 이제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설산이라 비유한 것은 곧 중생이요, 독한 풀은 곧 번뇌요, 미묘한 약왕은 곧 깨끗한 범행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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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어떤 중생이 이렇게 깨끗한 범행을 닦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몸에 묘한 약왕이 있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중생에게 깨끗한 범행이 있다 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세상에 씨로부터 열매가 나거든, 이 열매가 씨에게 인이 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거니와, 능히 인이 되는 것은 열매인 씨[果子]라 하고, 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열매라고만 하고, 씨라고는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다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인 것이요, 또 하나는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이 아닌 것이니라. 이 번뇌의 과로서 번뇌의 인이 아닌 것을 깨끗한 범행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은 수(受)를 관찰하여 이것이 온갖 번뇌의 가까운 인임을 아나니, 이른바 안팎 번뇌니라. 수의 인연인 연고로 온갖 번뇌를 끊지 못하고, 삼계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중생이 수로 인하여 나와 내 것에 집착하며, 마음이 뒤바뀌고 소견이 뒤바뀜을 내느니라.
그러므로 중생은 먼저 수를 관찰하되, 이 수가 온갖 애(愛)에게 가까운 인이 된다 하리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가 애를 끊으려 하면 먼저 수를 관찰할지니라.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12인연으로 짓는 선과 악은, 모두 수하는 때로 인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내가 아난에게 말하기를 ‘아난아, 모든 중생이 짓는 선과 악은 모두 수하는 때이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먼저 수를 관찰할 것이요, 수를 관찰하고는 다시 관찰하되 ‘이러한 수는 무슨 인연으로 생기는가, 만일 인연으로 생긴다면, 이런 인연은 무엇으로 생기는가, 만일 인이 없이 생긴다면, 인이 없는 것이 무슨 연고로 수가 없음[無受]은 내지 않는가’ 하느니라. 또 관찰하기를 ‘이 수는 자재천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장정[士夫]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미진(微塵)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시절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생각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성품으로 인하여 나지도 않고, 자기로부터 나지도 않고, 다른 이로부터 나지도 않고, 자기와 다른 이로부터 나지도 않고, 인이 없이 나는 것도 아니요, 이 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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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 화합하여 생기는 것이니, 인연은 곧 애니라. 이 화합 중에는 수가 있는 것도 아니요 수가 없는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나는 마땅히 화합을 끊을 것이요, 화합을 끊으면 수가 생기지 않으리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나니, 중생이 수로 인하여 지옥·아귀·축생과 나아가 삼계의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으며, 수의 인연으로 무상한 즐거움을 받으며, 수의 인연으로 선근을 끊으며, 수의 인연으로 해탈을 얻는다 하느니라. 이런 관찰을 할 때에는 수의 인을 짓지 아니하나니, 무엇을 이름하여 수의 인을 짓지 않는다 하는가. 수를 분별하되 ‘어떠한 수가 애(愛)의 인을 지으며, 어떠한 애가 수의 인을 짓는가’ 하느니라. 선남자여, 중생이 능히 이렇게 애의 인과 수의 인을 깊이 관찰하면, 능히 나와 내 것을 끊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이가 이러한 관찰을 지으면, 마땅히 애와 수가 어디에서 멸하는가를 분별할 것이니, 애와 수가 조금 멸하는 곳을 본다면, 역시 끝까지 멸함을 알 것이니라. 그러하면 해탈에 대하여 믿는 마음을 낼 것이요, 믿는 마음을 내고는 이 해탈하는 곳은 무슨 인연으로 얻는가 하며, 8정도로부터인 줄 알고 곧 닦을 것이니라. 무엇을 8정도라 하는가. 이 도로 수를 관찰하는 데 세 가지 모양이 있으니, 하나는 괴로움이요, 둘은 즐거움이요, 셋은 괴로움도 아니요 즐거움도 아니니라. 이 세 가지가 모두 몸과 마음을 증장하나니, 무슨 인연으로 증장하는가. 촉(觸)하는 인연이니라. 촉이 세 가지니, 하나는 무명촉(無明觸)이요, 둘은 명촉(明觸)이요, 셋은 명도 무명도 아닌 촉[非明無明觸]이니라. 명촉은 곧 8정도요, 다른 두 촉은 몸과 마음과 세 가지 수를 증장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두 가지 촉의 인연을 끊으리니, 촉이 끊어지면, 세 가지 수가 생기지 아니하리라.
선남자여, 이와 같은 수는 인이라고도 이름하고 과라고도 이름하나니,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인도 되고 과도 되는 줄을 관찰할 것이니라. 무엇을 인이라 하는가. 수로 인하여 애를 내는 것을 인이라 하느니라. 무엇을 과라 하는가. 촉으로 인하여 생기므로 과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수를 인도 되고 과도 된다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이와 같이 수를 관찰하고는, 다시 애를 관찰할지니 과보를 받으므로 애라 이름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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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는 이가 애를 관찰하는 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잡식(雜食)이요, 하나는 무식(無食)이니라. 잡식애(雜食愛)라 함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유를 인함이요, 무식애(無食愛)라 함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유를 끊고 무루의 도를 탐함이니라. 지혜 있는 이는 또 이렇게 생각할지니, 내가 만일 잡식애를 내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끊지 못할 것이며, 내가 비록 무루의 도를 탐하지만 수의 인을 끊지 못하면 무루의 도과를 얻지 못할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촉을 먼저 끊어야 하며, 촉이 끊어지면 수가 스스로 멸하며, 수가 멸하면 애도 따라서 멸할 것이니, 이것을 8정도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이렇게 관찰하면 비록 몸에 독이 있으나 미묘한 약왕도 있느니라.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미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런 중생은 비록 번뇌로부터 과보를 얻더라도, 이 과보는 다시 번뇌의 인이 되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깨끗한 범행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수와 애의 두 가지가 무슨 인연으로 생기는가를 관찰하면, 생각으로 인하여 생기는 줄을 알지니, 왜냐 하면 중생이 색을 보아도 탐심을 내지 아니하고, 수를 관찰할 때에도 탐심을 내지 아니하지만 만일 색에 대하여 뒤바뀐 생각을 내어 색이 곧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 하며, 수가 항상하여 변역함이 없다 하면, 이 뒤바뀐 생각으로 인하여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을 내게 되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생각을 관찰할지니라. 어떻게 생각을 관찰하는가.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이 바른 도를 얻지 못하면, 다 뒤바뀐 생각이 있나니, 무엇을 뒤바뀐 생각이라 하는가. 항상하지 아니한데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고, 즐거움이 아닌데 즐겁다는 생각을 내고, 깨끗하지 아니한데 깨끗하다는 생각을 내고, 공한 법에 나라는 생각을 내고, 남자·여자·큰 것·작은 것·낮·밤·해·달·의복·집·와구가 아닌데 남자·여자, 나아가 와구란 생각을 내는 것이니라.
이 생각이 세 가지니, 하나는 작은 것, 둘은 큰 것, 셋은 그지없는 것이니라. 작은 인연으로 작은 생각을 내고, 큰 인연으로 큰 생각을 내고, 그지없는 인연으로 그지없는 생각을 내느니라. 또 작은 생각이 있으니 선정에 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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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함이요, 큰 생각이 있으니 이미 선정에 듦이요, 그지없는 생각이 있으니 열 가지 온갖 곳[一切處]에 들어감이니라. 또 작은 생각이 있으니 욕계의 모든 생각들이요, 큰 생각이 있으니 색계의 모든 생각들이요, 그지없는 생각이니라. 세 가지 생각이 멸하므로 수가 스스로 멸하고, 생각과 수가 멸하므로 해탈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온갖 법이 멸한 것을 해탈이라 하옵는데 여래께서 어찌하여 생각과 수가 멸한 것을 해탈이라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거든 듣는 이는 법이라고 이해하며, 어떤 때에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거든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거든 듣는 이는 법이라고 이해한다’ 하는가. 내가 예전에 대가섭에게 말하기를 ‘가섭아, 중생이 멸할 때에 선한 법이 멸하느니라’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으로 인하여 말하거든 듣는 이는 법이라 해석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을 이름하여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거든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한다’ 하는가. 내가 전에 아난에게 말하기를 ‘나는 온갖 법을 친근한다고 말하지도 않고, 또 온갖 법을 친근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도 않나니, 만일 법을 친근하여서 선한 법이 쇠약하고 불선한 법이 치성하면, 그런 법은 친근하지 말아야 하고, 법을 친근하여서 불선한 법이 쇠약하고 선한 법이 증장하면, 그런 법은 친근하여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을 이름하되 법으로 인하여 중생을 말하거든 듣는 이도 중생을 말한다고 이해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여래가 비록 생각과 수 두 가지가 멸함을 말하였으나 이미 온갖 것을 끊는다 말한 것이니, 지혜 있는 이가 이러한 생각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생각의 일을 관찰하되, ‘이 한량없는 생각이 무엇을 인하여 생기는가’ 하면, 촉으로 인하여 생기는 줄을 알 것이니라. 촉은 두 가지니, 하나는 번뇌의 촉이요, 또 하나는 해탈의 촉이니라. 무명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을 번뇌의 촉이라 하고, 명(明)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을 해탈의 촉이라 하나니,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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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촉으로 인하여서 뒤바뀐 생각이 생기고, 해탈의 촉으로 인하여서 뒤바뀌지 않은 생각이 생기느니라. 생각의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할지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이 번뇌의 생각으로 인하여 뒤바뀐 생각이 생긴다면, 모든 성인이 실로 뒤바뀐 생각이 있으면서도 번뇌가 없사오니, 이 이치는 어떠하겠습니까?”
“선남자여, 어찌하여 성인이 뒤바뀐 생각이 있다 하는가?”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성인들이 소[牛]에 소라는 생각을 내고는 소라고 말하고, 말이라는 생각을 내고는 말이라고 말하며, 남자·여인·큰 것·작은 것·집·수레·가고, 오는 데도 그러하니, 이것을 뒤바뀐 생각이라 하나이다.”
“선남자여, 모든 범부는 두 가지 생각이 있으니, 하나는 세간에 퍼지는 생각이요, 또 하나는 집착하는 생각이니라. 모든 성인들은 세간에 퍼지는 생각만 있고, 집착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모든 범부들은 나쁜 각관(覺觀)이므로 세간에 퍼지는 것에 집착하는 생각을 내거니와, 모든 성인들은 좋은 각관이므로 세간에 퍼지는 것에 집착하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범부는 뒤바뀐 생각이라 하고, 성인은 비록 알지만 뒤바뀐 생각이라 하지 않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생각의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되 나쁜 생각의 과보는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에서 받는다 하느니라. 내가 나쁜 각관을 끊음으로 인하여 무명과 촉이 끊어지고, 그리하여 생각이 끊어지며, 생각이 끊어짐으로 인하여 과보도 끊어지나니,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생각의 인을 끊기 위하여 8정도를 닦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러한 관찰을 하는 이가 있으면, 청정한 범행이라 할 것이니,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의 독한 몸에 미묘한 약왕이 있다 하나니,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미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으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탐욕을 관찰하나니, 탐욕은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촉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은 곧 여래가 인 가운데서 과를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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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니, 이 다섯 가지로부터 탐욕을 내는 것이요, 실로 탐욕은 아니니라.
선남자여,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것을 받으려고 탐하여 구하는 연고로 이 빛에 대하여 뒤바뀐 생각을 내며, 나아가 촉에 대하여서도 뒤바뀐 생각을 내고, 뒤바뀐 생각의 인연으로 수(受)를 내나니, 그래서 세상에서 말하기를 ‘뒤바뀐 생각으로 인하여 열 가지 생각을 낸다’고 하느니라. 탐욕의 인연으로 세간에서 나쁜 과보를 받고, 나쁜 것을 부모와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가하기도 하고, 짓지 않아야 할 일을 짐짓 지으면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나니,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나쁜 생각의 인연으로 탐욕의 마음을 내게 하는 줄을 관찰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탐욕의 인연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되, 이 탐욕으로 모든 나쁜 과보가 많으니,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이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과보를 관찰한다 하느니라. 만일 나쁜 생각을 제멸하면 욕심이 생기지 아니하고, 욕심이 없으므로 나쁜 수를 받지 아니하며, 나쁜 수가 없으므로 나쁜 과보가 없으리니, 그러므로 내가 먼저 나쁜 생각을 끊어야 하며, 나쁜 생각이 끊어지면 이런 법이 자연히 없어진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가 나쁜 생각을 없애기 위하여 8정도를 닦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청정한 범행이라 하며,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의 독한 몸 가운데 묘한 약왕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도 있지만 묘한 약도 있음과 같다고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이렇게 탐욕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업을 관찰하나니, 왜냐 하면 지혜 있는 사람은 마땅히 생각하기를, 수와 생각과 촉의 탐욕이 곧 번뇌며, 이 번뇌는 능히 나는 업은 지으나 받는 업은 짓지 못한다 하느니라. 이러한 번뇌가 업과 함께 행해지는 데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나는 업을 지음이요, 또 하나는 받는 업을 지음이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업을 관찰할 것이니라. 업에 세 가지가 있으니, 몸과 입과 뜻이니라.
선남자여, 몸과 입의 두 업은 업이라고도 하고, 업의 과보라고도 하거니와 뜻은 업이라고만 이름하고, 과보라고는 이름하지 않나니, 업의 인이므로 업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몸과 입의 두 업은 바깥 업이라 하고, 뜻의 업은 안의 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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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이 세 가지 업이 번뇌와 함께 행해지므로 두 가지 업을 짓나니, 하나는 나는 업이요, 또 하나는 받는 업이니라.
선남자여, 정업(正業)은 뜻으로 짓는 업이요, 기업(期業)은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이니라. 먼저 나는 것이므로 뜻의 업이라 하고, 뜻으로부터 생기므로 몸의 업, 입의 업이라 하나니, 그러므로 뜻의 업을 정업이라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업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업의 인을 관찰하나니, 업의 인은 무명과 촉이며, 무명과 촉으로 인하여 중생이 유(有)를 구하고, 유를 구하는 인연이 곧 애(愛)니라. 애의 인연으로 몸·입·뜻의 세 가지 업을 짓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업의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하느니라. 과보에 넷이 있으니, 하나는 흑흑과보(黑黑果報)요, 둘은 백백(白白)과보요, 셋은 잡잡(雜雜)과보요, 넷은 불흑불백불흑불백(不黑不白不黑不白)과보니라. 흑흑과보라 함은 업을 지을 때도 더럽고, 과보도 더러운 것이요, 백백과보라 함은 업을 지을 때도 깨끗하고 과보도 깨끗한 것이요, 잡잡과보라 함은, 업을 지을 때도 섞였고 과보도 섞인 것이요, 불백불흑불백불흑과보라 함은, 무루의 업을 이름하는 것이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먼저 말씀하시기는 무루는 과보가 없다 하시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불백불흑과보라 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선남자여, 이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과도 되고 보도 되며, 다른 하나는 과뿐이요 보는 아니니라. 흑흑과보는 과도 되고 보도 되나니, 검은 인으로 생겼으므로 과라 하고, 능히 인을 지으므로 보라 하며, 깨끗함과 섞인 것도 그러하니라. 무루의 과라 함은, 유루로 인하여 생겼으므로 과라 하고, 다른 인을 짓지 아니하므로 보라고는 이름하지 않나니, 그러므로 과라고 이름하고 보라고는 이름하지 않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무루의 업이 흑법이 아니온데, 무슨 인연으로 백(白)이라고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보가 없으므로 백이라고 이름하지 아니하고, 흑(黑)을 다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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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백이라고 이름하나니, 나는 지금 과보를 받는 것을 백이라고 이름하는데, 무루의 업은 보를 받지 아니하므로 백이라고 이름하지 않고, 적정(寂靜)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러한 업은 결정코 보를 받는 곳이 있나니, 10악법은 지옥·아귀·축생에 나고, 10선업은 인간과 천상에 나느니라. 10불선업에 상품·중품·하품이 있으니, 상품의 인연으로는 지옥의 몸을 받고, 중품의 인연으로는 축생의 몸을 받고, 하품의 인연으로는 아귀의 몸을 받느니라. 인간의 업인 10선업에 또 네 가지가 있으니, 하품·중품·상품·상상품이니라. 하품의 인연으로는 울단월(鬱單越)에 나고, 중품의 인연으로는 불바제(弗婆提)주에 나고, 상품의 인연으로는 구다니(瞿陀尼)주에 나고, 상상품의 인연으로는 염부제(閻浮提)주에 나느니라.
지혜 있는 사람이 이렇게 관찰하고는 이런 생각을 하되 ‘내가 어떻게 이 과보를 끊을 것인가’ 하고, 또 생각하기를 ‘이 업의 인연이 무명과 촉으로 생겼으니, 내가 만일 무명과 촉을 끊어 버린다면, 이런 업과는 멸하고 나지 아니하리라’ 하느니라. 그래서 지혜 있는 이는 무명과 촉을 끊으려는 인연으로 8정도를 닦나니, 이것이 곧 청정한 범행이라 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의 독한 몸 속에 묘한 약왕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으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업을 관찰하며 번뇌를 관찰하고는, 다음에 이 두 가지로 얻게 되는 과보를 관찰하나니, 두 가지의 과보는 곧 고통이니라. 이미 고통인 줄을 알고는, 온갖 것에 태어나는 일을 버리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되 ‘번뇌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고, 업의 인연으로도 번뇌를 내고, 번뇌의 인연으로 다시 업을 내며, 업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고, 괴로움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며, 번뇌의 인연으로 유(有)를 내고, 유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며, 유의 인연으로 유를 내고, 유의 인연으로 업을 내며, 업의 인연으로 번뇌를 내고, 번뇌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내며, 괴로움의 인연으로 괴로움을 낸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능히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이 사람은 능히 업과 괴로움을 관찰하리니, 왜냐 하면 위에서 말한 것은 곧 나고 죽는 12인연이니, 만일 사람이 나고 죽는 12인연을 관찰하면, 이 사람은 새로운 업은 짓지 아니하고 낡은 업은 깨뜨릴 것임을 알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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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은 지옥의 고통을 관찰하나니 한 지옥으로부터 136지옥까지를 관찰하되 ‘낱낱 지옥에 가지가지 고통이 있는 것이 모두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난다’ 하리라. 지옥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아귀와 축생 등의 고통을 관찰하며, 이렇게 관찰하고는 인간과 천상에 있는 모든 고통을 관찰하되 ‘이런 고통들이 모두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천상에는 크게 괴롭고 시끄러운 일은 없지만 그러나 몸이 보드랍고 매끄러워서 다섯 가지 모양을 보게 될 때에는, 지극히 괴로운 것이 지옥의 고통과 같아서 차별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삼계의 모든 고통이 다 번뇌와 업의 인연으로 생기는 줄을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날기와가 부서지기 쉽듯이 중생의 몸을 받음도 그와 같으니라. 이미 몸을 받으면 이는 괴로움의 그릇이니, 마치 큰 나무에 꽃과 열매가 번성하면 새의 무리가 쪼아 먹듯이, 마른 풀 무더기를 조그만 불이 태울 수 있듯이 중생이 받는 몸이 괴로움 때문에 부수어지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여덟 가지 괴로움을 관찰할 때에 성인의 행과 같이 하면, 이 사람은 능히 모든 괴로움을 끊을 것이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 여덟 가지 괴로움을 깊이 관찰하고는, 다음에 괴로움의 인을 관찰할지니, 괴로움의 인은 곧 애와 무명이니라. 애와 무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몸을 구함이요, 또 하나는 재물을 구함이니라. 몸을 구함과 재물을 구함이 모두 괴로움이니, 그러므로 애와 무명이 괴로움의 인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이 애와 무명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이요, 또 하나는 밖이니라. 안의 것은 능히 업을 짓고, 바깥 것은 능히 증장케 하느니라. 또 안의 것은 업을 짓고, 바깥 것은 업의 과보를 짓나니, 안의 애를 끊으면 업이 끊어지고, 바깥 애를 끊으면 과보가 끊어지느니라. 안의 애는 오는 세상의 괴로움을 내고, 바깥 애는 지금 세상의 괴로움을 내나니, 지혜 있는 이는 애가 괴로움의 인임을 관찰하느니라. 이미 인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과보를 관찰할지니, 괴로움의 과보는 곧 취(取)니라. 애의 과보를 취라 이름하나니, 취의 인연이 곧 안팎의 애이므로 애의 고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애는 취의 인연이요 취는 애의 인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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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관찰할 것이니, 만일 내가 애와 취의 두 가지를 끊으면, 업을 짓고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애의 괴로움을 끊기 위하여 8정도를 닦느니라. 어떤 사람이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깨끗한 범행이라 이름하며, 이것을 이름하여 중생의 독한 몸 속에 묘한 약이 있는 것이 마치 설산 속에 독한 풀이 있지만 묘한 약도 있는 것과 같다고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깨끗한 범행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법이 그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온갖 법이라 함은 뜻이 결정되지 않았나니, 왜냐 하면 여래께서 혹은 선과 불선을 말씀하시고, 혹은 4념처관(念處觀)을 말씀하시고, 혹은 12입(入)을 말씀하시고, 혹은 선지식을 말씀하시고, 혹은 12인연을 말씀하시고, 혹은 중생이라 말씀하시고, 혹은 바른 소견과 삿된 소견을 말씀하시고, 혹은 12부경을 말씀하시고, 혹은 2제(諦)를 말씀하시더니 여래께서 이제는 온갖 법이 깨끗한 범행이라 말씀하시니, 어떠한 온갖 법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이 미묘한 대열반경이 모든 선한 법의 보배 광이니라. 마치 큰 바다가 여러 가지 보배의 광이듯이 이 열반경도 그와 같아서 온갖 글자와 뜻의 비밀한 광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수미산이 모든 약의 근본이듯이 이 경도 그와 같아서 보살계(菩薩戒)의 근본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온갖 물건이 있는 곳인 것처럼 이 경도 그와 같아서 온갖 선한 법이 머무는 곳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맹렬한 바람을 붙들어 맬 수 없듯이 모든 보살로서 이 경을 행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의 나쁜 법에 얽매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금강을 깨뜨릴 수 없듯이 이 경도 그와 같아서 외도나 나쁜 사람들이 깨뜨릴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항하의 모래를 셀 수 없듯이 이 경의 뜻도 그와 같아서 셀 사람이 없느니라.
선남자여, 이 경전이 모든 보살에게 법의 짐대[幢]가 되는 것이 제석의 짐대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열반의 성에 나아가는 장사꾼의 우두머리니, 마치 길잡이가 장사꾼들을 데리고 큰 바다로 가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이 모든 보살들에게 법의 광명이 되는 것이 마치 세상의 해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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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둠을 깨뜨림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병들어 고생하는 중생들에게 훌륭한 약이 되나니, 마치 향산 속에 있는 미묘한 약왕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일천제의 지팡이가 되나니, 마치 쇠약한 사람이 짚고 일어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모든 나쁜 사람에게 다리가 되나니, 마치 세간의 다리가 모든 사람을 건너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3유(有)에 다니는 이로서 번뇌의 뜨거움을 만난 이에게 서늘한 그늘이 되나니, 마치 세간의 일산이 햇볕을 가리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두려움이 없는 큰 왕이어서 모든 번뇌의 악마를 깨뜨릴 수 있으니, 마치 사자 왕이 뭇 짐승을 항복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신기한 주문의 스승이어서 온갖 번뇌의 마귀들을 부수나니, 마치 세간의 주문하는 사람이 도깨비를 쫓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더할 수 없는 우박이어서 모든 생사의 과보를 파괴하나니, 마치 세간의 우박이 모든 과실을 부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계율의 눈[戒目]이 망가진 이에게 좋은 약이 되나니, 마치 세간의 안사타약(安闍陀藥)이 안질을 치료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모든 선한 법을 머물게 하나니, 세간의 땅이 모든 물건을 머물러 두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계율을 깨뜨린 중생에게 밝은 거울이 되나니, 세상의 거울이 모든 모양을 나타내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이에게 의복이 되나니, 세간의 옷이 몸을 가리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선한 법이 부족한 이에게 큰 보물이 되나니, 마치 공덕천(功德天)이 가난한 이를 이익케 하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법에 목마른 중생에게 감로수가 되나니, 마치 여덟 가지 맛을 가진 물이 목마른 이를 만족케 함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번뇌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법상(法床)이 되나니, 세상의 궁핍한 사람이 편안한 평상을 만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초지 보살로부터 10지 보살에 이르기까지 영락·향기 있는 꽃·바르는 향·가루향·사르는 향과 청정한 성품을 구족한 수레가 되어 모든 6바라밀을 지나서 훌륭한 즐거움을 받는 곳이니, 마치 도리천의 파리질다라나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경은 금강처럼 잘 드는 도끼니, 모든 번뇌의 나무를 찍으며, 잘 드는 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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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를 베며, 날쌘 장사니 원수를 부수며, 지혜의 불이니 번뇌의 섶을 태우며, 인연의 광이니 벽지불을 내며, 성문의 광이니 성문인을 내며, 모든 하늘들의 눈이며, 모든 사람의 바른 길이며, 모든 축생이 의지할 곳이며, 아귀가 해탈할 곳이며, 지옥의 위없는 어른이며, 모든 시방 중생의 위없는 그릇이며, 시방의 과거·미래·현재의 여러 부처님의 부모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이 경은 모든 법을 포섭하였느니라. 내가 전에 말하기를 이 경이 비록 모든 법을 포섭한다 하였으나, 내가 말하는 범행은 곧 37조도법(助道法)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이 37품을 여의고는, 마침내 성문의 바른 과(果)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를 얻지 못하며, 불성과 불성의 과를 보지 못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범행이 곧 37품이라 하느니라. 왜냐 하면 37품은 성품이 뒤바뀐 것이 아니매 능히 뒤바뀐 것을 깨뜨리며, 성품이 나쁜 소견이 아니매 능히 나쁜 소견을 깨뜨리며, 성품이 공포스러운 것이 아니매 능히 공포스러움을 깨뜨리며, 성품이 깨끗한 행이매 중생으로 하여금 끝까지 청정한 범행을 짓게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유루법도 능히 무루법의 인을 지을 수 있거늘, 여래께서 어찌하여 유루가 청정한 범행이라 말씀하시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모든 유루는 곧 뒤바뀐 것이므로, 유루는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세제일법(世第一法)은 유루가 되나이까, 무루가 되나이까?”
“선남자여, 그것은 유루니라.”
“세존이시여, 비록 유루라 하지만 성품은 뒤바뀐 것이 아니온데, 무슨 연고로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지 않나이까?”
“선남자여, 무루의 인이므로 무루와 비슷하고, 무루로 향하는 것이므로 뒤바뀌었다 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청정한 범행은 마음을 내어 서로 계속하여 필경까지 이르거니와, 세제일법은 한 생각뿐이므로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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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의 5식(識)도 유루이지만 뒤바뀌지 아니하였사오며, 또 한 생각도 아니온데, 무슨 연고로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지 못하나이까?”
“선남자여, 중생의 5식은 비록 한 생각은 아니나, 유루이고 또 뒤바뀐 것이라 모든 누(漏)를 더하게 하므로 유루라 이름하고, 자체가 진실하지 아니하고 생각에 집착하였으므로 뒤바뀐 것이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자체가 진실하지 아니하고 생각에 집착하였으므로 뒤바뀌었다 하였는가. 남녀가 아닌데 남녀라는 생각을 내고, 나아가 집과 수레와 질그릇과 옷에도 그와 같으므로 뒤바뀌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37품은 성품이 뒤바뀌지 않았으므로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이 37품에 대하여 근본을 알고 원인을 알고 섭취함을 알고 증장함을 알고 주인됨을 알고 인도함을 알고 훌륭함을 알고 진실함을 알고 필경을 안다면, 이런 보살은 청정한 범행이라 이름할 수 있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근본을 알며, 나아가 필경을 안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훌륭한 말이다. 보살이 묻는 것이 두 가지 일을 위하여서니, 하나는 스스로 알기 위함이요, 또 하나는 다른 이를 알게 하려는 것이니라. 그대는 지금 이미 알았지만 한량없는 중생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묻는 것이므로 내가 그대를 찬탄하노라. 훌륭하고 훌륭하다. 선남자여, 37품의 근본은 욕망이요, 원인은 밝은 촉[明燭]이요, 섭취함은 수(受)라 하고, 증장함은 잘 생각함이라 하고, 주인되는 것은 억념(憶念)이라 하고, 인도함은 선정이라 하고, 휼륭함은 지혜라 하고, 진실함은 해탈이라 하고, 필경은 대반열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선한 욕망은 처음 도심(道心)을 내는 것으로부터 아뇩다라삼먁삼보리까지의 근본이니, 그러므로 내가 욕망이 근본이라 한 것이니라. 선남자여, 마치 세간에서 말하기를 ‘모든 번뇌는 애가 근본이요, 모든 병은 식체가 근본이요, 모든 결단하는 일은 투쟁(鬪諍)이 근본이요, 모든 악한 일은 허망함이 근본이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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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이 경에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선한 법에는 방일하지 아니함이 근본이 된다’ 하시더니, 이제 욕망이라 말씀하시니, 무슨 뜻이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내는 인[生因]을 말하면 선한 욕망이요, 나타내는 인[了因]을 말하면 방일하지 않음이니라. 마치 세간에서 말하기를 ‘모든 열매에는 씨가 인이 된다’ 하거니와, 혹은 말하기를 ‘씨는 내는 인이요, 땅은 나타내는 인이라’ 하나니, 이 뜻도 그와 같으니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전에 다른 경에서는, ’37품은 부처가 근본이라’고 말씀하셨사온데, 이 뜻이 어떠하옵니까?”
“선남자여, 여래가 전에는 ‘중생이 처음 37품을 아는 데는 부처가 근본이라’ 하였거니와, 스스로 증득하는 것은 욕망이 근본이니라.”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밝은 촉이 원인이 된다 이름하시나이까?”
“선남자여, 여래가 어떤 때에는 밝은 것이 지혜라 말하고, 어떤 때는 믿음이라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믿는 인연으로 선지식을 친근하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친근하는 인연으로 바른 법[正法]을 듣게 되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바른 법을 들음으로 인하여 몸과 입과 뜻이 깨끗하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3업이 깨끗함으로 인하여 바른 생명[正命]을 얻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바른 생명으로 인하여 근을 깨끗하게 하는 계율[淨根戒]을 얻고, 근을 깨끗하게 하는 계율로 인하여 고요한 곳을 좋아하고, 고요한 곳을 좋아함으로 인하여 잘 생각하고, 잘 생각함으로 인하여 법답게 머물게 되고, 법답게 머무름으로 인하여 37품을 얻어서 한량없는 나쁜 번뇌를 깨뜨리나니 이것을 촉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수(受)를 섭취라 이름하느니라. 중생이 수할 때에 선과 악을 짓나니, 그러므로 수를 이름하여 섭취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수하는 인연으로 모든 번뇌를 내거든 37품이 능히 깨뜨리나니, 그러므로 수하는 것을 섭취라 하느니라. 잘 생각함으로 인하여 능히 번뇌를 깨뜨리나니, 그러므로 증장한다 이름하느니라. 왜냐 하면 부지런히 닦는 연고로 이러한 37품을 얻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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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만일 관찰하여 나쁜 번뇌를 깨뜨리려 하면, 반드시 오로지 생각하여야 하나니, 그래서 생각하는 것으로 주인을 삼느니라. 마치 세간에서 네 가지 군대들이 주장(主將)의 뜻을 따르듯이 37품도 그와 같아서 생각하는 주장을 따르느니라. 선남자여, 이미 선정에 든 뒤에 37품이 모든 법의 행상(行相)을 잘 분별하나니, 그러므로 선정으로 인도를 삼느니라. 37품이 법의 행상을 분별함에는 지혜가 가장 뛰어나므로 지혜를 훌륭하다 하느니라. 이렇게 지혜가 번뇌를 안 뒤에는 지혜의 힘으로 번뇌가 소멸되느니라. 마치 세상의 네 가지 군대가 원수를 하나나 둘이나 파괴하려면 용맹한 이라야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37품도 그와 같아서 지혜의 힘으로 번뇌를 깨뜨리는 것이므로 지혜를 훌륭하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37품을 닦음으로 인하여 4선정의 신통과 안락을 얻더라도 진실하다 이름하지 않거니와, 번뇌를 깨뜨리고 해탈을 증득할 때에야 진실하다 이름하느니라. 이 37품에 마음을 내고 도를 닦아서, 세상의 즐거움이나 출세간의 즐거움이나 네 가지 사문의 과나 해탈을 얻더라도 필경이라 이름하지 못하거니와, 만일 37품으로 행하는 일을 끊어 버려야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필경이란 것은 곧 대열반이다’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잘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곧 욕망이니 잘 사랑하고 생각함으로 인하여 선지식을 친근하므로 촉이라 이름하며, 이것을 인이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을 친근함으로 인하는 연고로 수라 이름하며, 이것을 섭취라 이름하느니라. 선지식을 친근함으로 인하여 잘 생각하나니, 그러므로 증장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네 가지 법으로 인하여 도를 생장케 하나니, 욕망과 생각과 선정과 지혜며, 이것을 이름하여 주인이라 인도[導]라 훌륭하다 이름하느니라. 이 세 가지 법으로 인하여 두 해탈을 얻나니, 애를 끊어 버리므로 마음의 해탈을 얻고, 무명을 끊어 버리므로 지혜의 해탈을 얻나니, 이것을 진실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러한 여덟 가지 법으로 필경에 과를 얻음을 이름하여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그러므로 필경이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욕망이라 함은, 마음을 내어 출가하는 것이요, 촉은 곧 백사 갈마(白四羯磨)니, 이것을 인이라 이름하며, 섭취한다 함은 곧 두 가지 계를 받는 것이니, 하나는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又戒)요, 또 하나는 정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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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根戒)라, 이것을 수라 하며, 이것을 섭취라 하느니라. 증장한다 함은 4선을 닦음이요, 주인이라 함은 수다원과와 사다함과요, 인도라 함은 아나함과요, 훌륭하다 함은 아라한과요, 진실하다 함은 벽지불과요, 필경이라 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과니라.
또 선남자여, 욕망은 식이라 이름하고, 촉은 6입이라 이름하고, 섭취는 수라 이름하고, 증장함은 무명이라 이름하고, 주인은 명색(名色)이라 이름하고, 인도함은 애라 이름하고, 훌륭함은 취라 이름하고, 진실함은 유라 이름하고, 필경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근본과 인과 증장하는 이 세 가지 법이 어떻게 다르나이까?”
“선남자여, 근본이라 함은 곧 처음 마음을 내는 것이요, 인은 비슷하게 끊어지지 않음이요, 증장함은 비슷한 것을 멸하고는 능히 비슷한 것을 내는 것이니라. 또 선남자여, 근본은 곧 짓는 것이요, 인은 곧 과요, 증장함은 곧 쓸 수 있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미래의 세상에 과보가 있더라도 받지 못하였으므로 인이라 이름하였다가, 받을 때에는 증장한다 이름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근본은 곧 구함이요, 얻으면 곧 인이요, 작용은 곧 증장이니라. 선남자여, 이 경에서 근본은 도를 보는 것이요, 인은 도를 닦는 것이요, 증장은 무학의 도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근본은 정인(正因)이요, 인은 방편인(方便因)이니, 이 두 인으로부터 과보를 얻는 것을 증장이라 이름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과 같이 필경이 곧 열반이오면, 이런 열반은 어떻게 얻겠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열 가지 생각을 닦아 익히면, 이 사람은 열반을 능히 얻으리라. 무엇을 열 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무상하다는 생각이요, 둘은 괴롭다는 생각이요, 셋은 내가 없다는 생각이요, 넷은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이요, 다섯은 모든 세간이 즐거울 것 없다는 생각이요, 여섯은 죽는다는 생각이요, 일곱은 죄가 많다는 생각이요, 여덟은 여의려는 생각이요, 아홉은 멸한다는 생각이요, 열은 사랑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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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는 생각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보살마하살·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가 이 열 가지 생각을 닦으면, 이 사람은 필경에 열반을 얻어서 다른 이의 마음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능히 선한 것과 선하지 못한 것을 분별하리니, 이것을 이름하여 진실하게 비구의 뜻에 적합하며, 나아가 우바이의 뜻에 적합하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보살로부터 우바이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는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보살이 두 가지니, 하나는 처음 마음을 낸 이요, 또 하나는 이미 도를 행하는 이니라. 무상하다는 생각이 두 가지니, 하나는 거친 것이요, 또 하나는 미세한 것이니라. 처음 마음을 낸 보살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관찰할 때에 생각하기를, ‘세간의 물건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안의 것이요, 또 하나는 바깥 것이라. 이 안의 물건이 무상하게 변하여 달라지느니라. 내가 보건댄 날 때·어렸을 때·컸을 때·장성하였을 때·늙은 때·죽을 때, 그런 시절들이 각각 같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안의 물건이 무상한 줄을 아느니라’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내가 보건댄 중생이 어떤 이는 비대하고 얼굴빛과 기운을 구족하였으며, 가고 오는 행동이 자재하여 장애가 없으며, 혹은 병들어 시달리고 얼굴빛과 기운이 쇠약하고 얼굴이 초췌하여 자재하지 못하며, 혹은 재물이 많아서 창고에 가득하고, 혹은 빈궁하여 간 데마다 궁색하며, 혹은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고 혹은 한량없이 나쁜 법을 구족하나니, 그러므로 안의 법이 결정코 무상한 줄을 아느니라’ 하느니라.
또 밖의 법을 보건댄 종자 때·싹틀 때·줄기 때·잎필 때·꽃필 때·열매 때, 그런 시절들이 각각 같지 아니하니라. 이러한 바깥 법들을 혹은 구족하고 혹은 구족하지 못하므로, 온갖 바깥 것이 결정코 무상한 줄을 알지니라. 보는 법이 무상함을 관찰하고는, 다시 듣는 법을 관찰하나니, 모든 하늘들은 묘한 쾌락을 구족하게 성취하고 신통이 자재하거니와, 다섯 가지 쇠하는 모양이 있다 하니, 그러므로 바깥 법이 무상한 줄을 아느니라. 또 듣건댄 겁이 처음 생길 때의 중생들은 훌륭한 공덕을 각각 성취하여 제 몸의 광명으로 비추고 일월을 빌리지 아니하다가 무상한 세력으로 광명이 없어지고 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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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손하였다 하며, 또 들으니 옛적에는 전륜성왕이 있어 사천하를 통솔하고 7보를 성취하여 크게 자재하지만 무상한 모양을 깨뜨리지 못한다 하며, 또 땅을 보더라도 옛적에는 한량없는 중생들을 평안히 널리 퍼져서 살게 하되, 수레바퀴 둘 만한 빈 곳도 없었으며, 온갖 기묘한 약이 모두 생장하고 숲과 나무에는 과실이 무성하더니, 중생이 점점 박복하게 되어 이 땅도 다시 세력이 없어지고 나는 물건들도 저절로 소모되었다 하니, 이런 것으로 안팎의 물건들이 모두 무상한 줄을 알 것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거친 무상이라 하느니라.
거친 것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미세한 것을 관찰하나니, 무엇을 미세하다 하는가. 보살마하살이 온갖 팎의 물건들과 나아가 티끌까지도 미래의 세상에 있어서 벌써 무상함을 관찰하나니, 왜냐 하면 파괴한 모양을 구족하게 성취한 연고니라. 만일 미래의 색신이 무상하지 않다면, 색신에 열 가지 차별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리라. 무엇이 열 가지인가. 하나는 액체이던 때, 둘은 망울질 때, 셋은 껍질 생겼을 때, 넷은 살덩이 때, 다섯은 사지가 생겼을 떄, 여섯은 갓난아이 때, 일곱은 어린이 때, 여덟은 소년 때, 아홉은 장년 때, 열은 늙은이 때니라. 보살이 관찰하기를, 액체이던 것이 무상하지 않다면 망울 지는 데 이르지 못하고, 나아가 장정 때가 무상하지 않다면 마침내 늙은 데 이르지 못할 것이며, 이 여러 시절이 찰나찰나 멸하지 않는다면, 점점 자라지 않고 일시에 성장할 것이나, 이런 일이 없으므로 찰나찰나 미세하게 무상한 줄을 알지니라.
또 어떤 사람이 모든 근이 구족하고 안색이 충실하였다가 나중에 초췌하여짐을 보고는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결정코 찰나찰나 동안에 무상하였으리라’ 하며, 다시 4대와 4위의(威儀)를 관찰하고, 또 안팎의 각각 두 가지 괴로움의 인을 관찰하나니,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더움이니라. 또 이 네 가지를 관찰하되, 만일 찰나찰나 미세하게 무상하지 아니하면, 이 네 가지 괴로움을 말할 수 없으리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이렇게 생각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미세하게 무상함을 관찰한다 하느니라. 안팎의 색법과 같이 마음도 그러하니, 왜냐 하면 여섯 군데에 행하는 연고니라. 여섯 군데에 행할 때에, 기쁜 마음도 내고 성내는 마음도 내고 사랑하는 마음도 내고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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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내어서 여러 가지 다른 마음이 생기어 한결같지 못하니, 그러므로 온갖 색법과 색법 아닌 것이 모두 무상한 줄을 아느니라. 선남자여, 보살이 한 생각 가운데서 온갖 법의 나고 멸함이 무상한 것을 본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갖추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무상하다는 생각을 닦아 익히고는, 항상하다는 교만과 항상하다는 뒤바뀜과 생각의 뒤바뀜을 멀리 여의느니라.
다음에 괴롭다는 생각을 닦나니,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괴로움이 있는가. 이 괴로움이 무상을 인하여 있는 줄을 깊이 아나니, 무상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받고,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연으로 무상하다 이름하는 것이며, 무상한 인연으로 안팎의 괴로움을 받나니, 주리고 목마르고 춥고 덥고 채찍으로 때리고 꾸짖고 욕하는 이런 괴로움이 모두 무상으로 인하는 것이라 하며, 다음에는 지혜 있는 이가 이 몸이 무상한 그릇이니, 그릇이 곧 괴로움이며, 그릇이 괴로움인 연고로 담는 법도 괴로운 줄을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또 나는 것이 괴로움이며 멸하는 것이 괴로움인 줄을 관찰하나니, 괴로움이 나고 멸하는 것이므로 무상한 것이며, 나와 내 것이 아니라 하여 내가 없다는 생각을 닦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다시 관찰하되 괴로움이 곧 무상이요, 무상이 곧 괴로움이니, 만일 괴롭고 무상하다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괴로움이 내가 아니며 무상도 그러하여 이와 같이 5음도 괴로움이며 무상하거늘, 중생이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는가 하느니라. 다음에는 온갖 법이 다른 화합이 있다고 관찰하나니, 한 화합으로부터 모든 법이 나는 것 아니고, 한 법이 모든 화합의 과(果)도 아니며, 모든 화합은 다 제 성품이 없고, 한 성품도 없고 다른 성품도 없으며, 물건의 성품도 없고 자재함도 없느니라. 모든 법이 만일 이러한 모양이라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하여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하느니라.
또 생각하기를 ‘온갖 법 가운데 한 법도 능히 지을 이가 없나니, 만일 한 법을 지을 이가 없다면, 모든 법이 화합하는 것도 짓지 못하리라’ 하느니라. 온갖 법의 성품이 마침내 홀로 났다가 홀로 멸하지 못할 것이요, 화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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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로 멸하고 화합하는 연고로 날 것이니라. 이 법이 난 뒤에는 중생들이 뒤바뀐 생각으로 말하기를, ‘이 화합도 화합으로부터 나리라’ 하여, 중생의 생각이 뒤바뀌고 진실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진실한 내가 있으리요. 그러므로 지혜 있는 이는 내가 없다고 관찰하느니라. 또다시 자세하게 관찰하기를, 무슨 인연으로 중생들이 나라고 말하는가. 내가 만일 있다면 하나인가 여럿인가. 내가 만일 하나라면 어떻게 찰리(刹利)·바라문·비사(毘舍)·수타(首陀)·인간·천상·지옥·아귀·축생과 크고 작고 늙고 장성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하나가 아닌 줄을 알지로다 하며, 내가 만일 여럿이라면 어찌하여 말하기를 중생의 나란 것이 하나이며 두루하여 가[邊際]가 없다 하겠는가. 하나거나 여럿이거나 모두 내가 없다고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는 내가 없다고 관찰하고는 다시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을 관찰하면서 생각하기를 ‘만일 온갖 법이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면, 어찌하여 먹는 것을 위하여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업을 일으키는가’ 하느니라. ‘만일 중생이 먹는 것을 탐하여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나쁜 업을 일으킨다면, 얻는 재물은 여럿이 다 한가지로 하는데, 뒤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은 함께 나누지 않는가’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음식을 위하여 몸과 마음으로 괴로움을 받나니, 만일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음식을 얻는다면, 내가 어찌하여 먹는 데에 탐착을 내겠는가. 그러므로 먹는 데에 탐심을 내지 아니하리라’ 하느니라.
또 지혜 있는 이는 마땅히 음식으로 인하여 몸이 증장함을 관찰하되, ‘내가 이제 출가하여 계를 받고 도를 닦는 것은 몸을 버리기 위함이거늘, 이제 음식을 탐한다면 어떻게 이 몸을 버릴 수 있겠는가’ 하느니라. 이렇게 관찰하고는 비록 음식을 받더라도, 마치 빈 벌판에서 아들의 살을 먹듯이 마음에 싫고 미운 생각이 나서 조금도 달게 여기지 아니하며, 뭉쳐 먹음[摶食]이 이런 허물이 있음을 관찰하느니라. 다음에는 즐겨 먹음[觸食]을 관찰하되, 벗겨진 소가 무수한 벌레에게 먹힘과 같이 하며, 다음에는 생각으로 먹음[思食]이 큰 불더미 같고, 식의 먹음[識食]이 3백 자루 창과 같음을 관찰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네 가지 먹음을 관찰하고는 음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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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탐하는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그러다가도 탐심이 생기거든 부정한 줄을 관찰할지니, 왜냐 하면 탐욕을 여의기 위하여 모든 음식에 부정하다는 생각을 잘 분별하고는 모든 부정한 것과 같이 여기느니라. 이렇게 관찰하면 좋은 음식이나 나쁜 음식을 만나더라도, 받을 때에는 창병에 붙였던 고약과 같이 여기고 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먹기를 싫어하는 생각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지혜 있는 이가 음식을 관찰하고 부정하다는 생각을 내는 것은 진실한 관찰입니까, 빈 생각만의 관찰입니까? 만일 진실한 관찰이라면 관찰하는 음식이 실제로 부정한 것이 아니요, 빈 생각만이라면 이런 법을 어떻게 잘하는 생각이라 하오리까?”
“선남자여, 이런 관찰은 진실한 관찰도 되고, 빈 생각만이기도 하나니, 음식에 대한 탐욕을 없애는 편으로는 진실한 관찰이라 하고, 벌레가 아닌 것을 벌레라고 보는 편으로는 빈 생각뿐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유루(有漏)를 모두 빈 생각이라고도 하고, 진실한 것이라고도 하느니라. 선남자여, 어떤 비구가 걸식하려는 마음을 낼 때에 미리 생각하기를 ‘내가 걸식하는데 맛좋은 음식을 얻고, 험악한 것을 얻지 말며, 많이 얻고 적게 얻지 말며, 빨리 얻고 더디게 얻지 말라’고 원한다면, 이 비구는 음식에 싫어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이름하지 못하며, 수행하는 선한 법은 밤낮으로 소모되고, 선하지 못한 법은 점점 증장되느니라. 선남자여, 비구가 걸식하려 할 때에는 먼저 원하기를 ‘여러 걸식하는 이가 다 배가 부르게 되고, 밥을 주는 이는 한량없는 복을 받을지이다. 내가 밥을 얻으면 독한 몸을 치료하고 선한 법을 닦아서 시주를 이익케 하리라’ 하라. 이렇게 원할 때에 닦는 선한 법은 밤낮으로 증장되고, 선하지 못한 법은 점점 소멸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이렇게 수행하면, 이 사람은 온 나라 안 시주들의 보시를 부질없이 먹지 않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 네 가지 생각을 갖추면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닦으면서 생각하기를 ‘온갖 세간에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하지 않는 데가 없으며, 내 몸은 태어나지 않는 데가 없나니, 이 세간에서 한 곳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을 여읠 데가 없다면, 나는 어찌하여 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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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좋아하겠는가. 모든 세간에 나아가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 데가 없나니, 그러므로 세간은 결정코 무상한 것이며, 만일 무상하다면 지혜 있는 이가 어찌 세간을 즐거워하겠는가. 낱낱 중생들이 모든 세간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괴로움과 즐거움을 갖추어 받나니, 비록 범천의 몸이나 나아가 비상비비상천의 몸을 받더라도, 목숨을 마치면 3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며, 설사 사왕천이나 나아가 타화자재천에 나더라도, 목숨을 마치면 축생 중에 태어나서, 혹은 사자 혹은 범·들소·이리·늑대·코끼리·말·소·나귀 따위가 되리라’ 하느니라.
다음에는 관찰하기를 ‘전륜성왕은 사천하를 통솔하여 호화롭고 귀하여 자재하지만 복이 다하면 빈곤하여져서 의식을 계속하기 어려우니라’ 하여,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깊이 관찰하고는,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내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또 관찰하기를 ‘세간에 있는 집이나 의복이나 음식이나 와구, 의약, 향, 꽃, 영락이나 가지가지 풍류, 재물, 보배 등이 모두 괴로움을 여의려는 것이지만 이런 물건 자체가 괴로운 것이니, 어떻게 괴로움으로 괴로움을 여의리요’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이렇게 관찰하고는, 세상 물건에 대하여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겁다는 생각을 내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몸에 중병이 생겼을 때에는, 아무리 여러 가지 음악과 연극과 향과 꽃과 영락이 있더라도 탐애를 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지혜 있는 이가 물건을 관찰함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온갖 세간을 깊이 관찰하되 ‘귀의할 곳이 아니며 해탈하는 곳이 아니며 고요한 곳이 아니며 사랑할 만한 곳이 아니며 저 언덕이 아니며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곳이 아니거늘, 내가 만일 이런 세간을 탐한다면, 내가 어떻게 법을 떠나겠는가’ 하나니, 어두운 데를 좋아하지 아니하여 광명을 구하면서 도리어 어두운 데로 가는 것과 같으니라.
어두운 데는 세간이요 밝은 데는 출세간이니, 만일 내가 세간을 좋아하면 어둠은 증장되고 밝은 것을 멀리 여의리라. 어둠은 무명(無明)이요 밝음은 지혜의 광명이며, 밝은 지혜의 인은 곧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는 생각이니라. 온갖 탐욕의 번뇌가 비록 속박한다 하거니와, 이제는 지혜의 밝음을 탐하고 세간은 탐하지 아니하리라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이런 법을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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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고는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구족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사람이 세간이 즐거울 것이 없다는 생각을 닦고는, 다음에 죽는다는 생각을 닦되, 이 목숨이 항상 한량없는 원수에게 둘러싸여서 찰나찰나 감손하고 증장하지 못함이 마치 산에 있는 홍수가 머물러 있지 못함과 같고, 아침 이슬이 오래가지 못함과 같고, 사형수가 저자로 나아감이 걸음마다 죽음에 가까워지듯 하며, 소나 양을 끌고 푸주로 나아가는 듯하다 하느니라.”
가섭보살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지혜 있는 이가 찰나찰나 멸하는 것을 관찰하나이까?”
“선남자여, 마치 네 사람이 활을 잘 쏘는데, 한 곳에 모여서 제각기 한 방위씩 쏘면서 모두 생각하기를 ‘우리들의 네 화살이 함께 나가서 함께 떨어지리라’ 하거든, 또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이 네 개의 살이 미처 떨어지기 전에 내가 한꺼번에 손으로 살을 잡으리라’ 한다면, 선남자여, 이런 사람을 빠르다 하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여, 땅으로 다니는 귀신[地行鬼]은 이 사람보다 더 빠르고, 날아다니는 귀신은 땅으로 다니는 귀신보다 더 빠르고, 사천왕은 날아다니는 귀신보다 더 빠르고, 해와 달은 사천왕보다 더 빠르고, 행견질천(行堅疾天)은 해와 달보다 더 빠르고, 중생의 수명은 행견질천보다 더 빠르니라. 선남자여, 눈 한 번 깜짝할 동안에 중생의 수명이 4백 번 났다 없어졌다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수명을 관찰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을 찰나찰나 멸함을 관찰한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목숨이 사왕(死王)에게 매인 것을 관찰하고, 내가 능히 이런 사왕을 여의기만 하면, 무상한 수명을 영원히 끊으리라 하느니라.
또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관찰하기를 ‘목숨이란 것은 강 언덕에 위태롭게 서 있는 큰 나무와 같으며, 큰 역적죄를 지은 사람이 사형을 당할 때에 불쌍히 여길 이가 없는 것과 같으며, 사자왕이 오래 굶었을 때와 같으며, 독사가 큰 바람을 삼켰을 때와 같으며, 목마른 말이 물을 아끼는 것과 같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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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귀신이 성낼 때와 같나니, 중생의 사왕도 이와 같으리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가 만일 이렇게 관찰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죽는다는 생각을 닦는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지혜 있는 이는 또 관찰하기를 ‘내가 지금 출가하여 수명이 7일 7야가 된다 하여도, 나는 그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법을 말하여 교화하며 중생을 이익케 하리라’ 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 있는 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닦는다 하느니라. 다시 7일 7야도 많다 하여, 설사 엿새·닷새·나흘·사흘·이틀·하루·한 시간, 나아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만이라 하여도 나는 그동안에 부지런히 도를 닦고 계율을 지키고 법을 말하여 교화하며 중생을 이익케 하리라 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 있는 이가 죽는다는 생각을 잘 닦는다 하느니라.
지혜 있는 이가 위에서 말한 여섯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일곱 가지 생각의 인이 되나니, 무엇을 일곱 가지라 하는가. 하나는 항상 닦는다는 생각, 둘은 닦기를 좋아하는 생각, 셋은 성내는 일 없는 생각, 넷은 질투함이 없는 생각, 다섯은 선하게 원하는 생각, 여섯은 교만이 없는 생각, 일곱은 삼매에 자재한 생각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일곱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이를 이름하여 사문이라 하고, 바라문이라 하고, 고요함이라 하고, 깨끗함이라 하고, 해탈이라 하고, 지혜 있는 이라 하고, 바른 지견이라 하고, 저 언덕에 이름이라 하고, 큰 의원이라 하고, 큰 상단의 주인이라 하고, 여래의 비밀을 잘 안다 하고, 모든 부처님들의 일곱 가지 말을 안다 하고, 바른 소견으로 안다 하고, 일곱 가지 말에 생기는 의심을 끊었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여섯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이 사람은 능히 삼계를 꾸짖으며 삼계를 멀리 여의며 삼계를 없애 버리며 삼계에 대하여 애착을 내지 아니할 줄을 알지니, 이것을 이름하여 지혜 있는 이가 열 가지 생각을 구족하였다 하느니라. 만일 비구가 열 가지 생각을 구족하면 사문의 모습에 적합하다 하리라.”
이 때에 가섭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이 세상을 연민(憐愍)하는 큰 의왕이여,
몸과 지혜 모두 다 고요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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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법 가운데 참나 있나니
그러므로 위없이 존귀하신 분 예배합니다.

첫 발심과 마지막이 다르지 않건만
이 가운데 첫 발심이 더욱 어려워
자기 제도 못하고도 남을 제도해
그러므로 첫 발심께 예배합니다.

첫 발심에 천상 인간 스승이 되니
성문보다 연각보다 뛰어나시며
이런 발심 삼계보다 훨씬 뛰어나니
그러므로 가장 높다 이름합니다.

구세(救世) 보살 청구해야 얻어지건만
여래께선 안 청해도 스승이 되어
세상을 따르시기 송아지처럼
그러므로 대비우(大悲牛)라 이름합니다.

여래의 크신 공덕 시방에 가득
범부들은 지혜 없어 찬탄 못하나
내가 지금 자비한 맘 찬탄하여서
몸과 입의 두 가지 업 갚으렵니다.

세상 사람 제 이익만 좋아하지만
여래께선 이런 일을 뜻하지 않고
중생들의 세간 업보 끊어 주시니
자리이타(自利利他)하는 이께 예배합니다.

세상 사람 친한 이만 이익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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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선 친한 이도 원수도 없어
세상처럼 그런 차별 아니하실새.
그 마음 평등하사 둘이 없나니.

세간에선 말 다르고 업도 다르나
여래께선 말도 업도 차별이 없어
행을 닦아 모든 행을 끊으시나니
그러므로 여래라고 이름합니다.

번뇌 허물 미리부터 아시지만
중생들을 위하여서 거기 계시며
오래전에 세간에서 해탈을 얻으시고도
생사에 나시는 건 자비의 연고.

천상 몸과 인간 몸을 나타내지만
자비로 따르시기 송아지 같네,
여래는 중생들의 어머니시매
자비하신 마음을 송아지라고.

모든 고통 받으시며 중생을 염려
가엾이 여기는 맘 뉘우침 없고
자비심이 많사올새 괴로움도 몰라
고통 구해 주는 이께 예배합니다.

여래께서 무량한 복 지으시지만
몸과 입과 마음이 늘 청정하고
항상 중생들만 위하시고 당신을 몰라
그러므로 맑은 업에 예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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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께선 많은 괴로움 받으셔도 괴로운 줄 몰라
중생들의 괴로움을 내가 당한 듯
중생을 위하여선 지옥에 가도
괴로움도 뉘우침도 내지 않으며

온갖 중생들이 받고 있는 갖가지 고통
모두 다 부처님의 괴로움이나
깨닫고는 마음이 더욱 견고해
부지런히 위없는 도 닦으시도다.

부처님의 자비하신 마음 갖추고
중생들을 아들처럼 사랑하지만
중생들은 그 은혜를 알지 못하고
여래와 법보와 승보 비방만 하네.

세상 사람 모든 번뇌 구족하였고
한량없는 죄와 허물 수가 없지만
이러하게 많은 번뇌 많은 죄악도
부처님이 첫 맘으로 소멸하시네.

부처만이 부처님을 찬탄하나니
다른 이는 찬탄할 줄 아는 이 없어
내가 지금 한 가지 법 찬탄하오니
자비하신 마음으로 세간에 오심.

여래는 대자비가 큰 법 덩어리
자비로써 많은 중생 제도하시며
이것이 위가 없는 참해탈이며
해탈이 곧 대반열반경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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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5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5. 교진여품(憍陳如品) ①

이 때에 세존께서 교진여(憍陳如)에게 말씀하셨다.
“색법[色]이 무상하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항상 있는 색[解脫常住之色]을 얻으며,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도 무상하니, 식을 멸하면 해탈의 항상 있는 식을 얻느니라. 교진여여, 색법이 괴로움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안락한 색[解脫安樂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법이 공한 것이니 공한 색을 멸하면 해탈의 공이 아닌 색[解脫非空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법이 나가 없나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참나인 색[解脫眞我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법이 부정하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청정한 색[解脫淸淨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양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아닌 색[解脫非生老病死相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무명의 인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무명의 인이 아닌 색[解脫非無明因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나아가 색법이 내는 인이니, 색이 멸하면 해탈의 내는 인이 아닌 색[解脫非生因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곧 네 가지 뒤바뀐 인이니 뒤바뀐 색을 멸하면 해탈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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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뒤바뀜이 아닌 색[解脫非四倒因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한량없는 나쁜 법의 인이니, 남자의 몸, 여인의 몸, 식욕, 애욕, 탐욕, 성내는 일, 질투, 악한 마음, 아끼는 마음, 뭉치어 먹음, 식으로 먹음, 생각으로 먹음, 즐겨 먹음,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5욕, 5개(蓋) 이런 법들이 모두 색으로 인하는 것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이런 한량없는 악한 색[解脫無如是等無量惡色]이 없음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속박이니 속박인 색을 멸하면 해탈의 속박 없는 색[解脫無縛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흐름이니 흐름을 멸하면 해탈의 흐르지 않는 색[解脫非流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귀의할 데가 아니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귀의할 색[解脫歸依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부스럼이니 색을 멸하면 해탈의 부스럼 없는 색[解脫無瘡疣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색은 고요하지 못한 것이니 색을 멸하면 열반의 고요한 색[涅槃寂靜之色]을 얻으며, 수·상·행·식도 그와 같으니라. 교진여여, 어떤 사람이 이렇게 알면 사문이라 하고 바라문이라 하여, 사문과 바라문의 법을 구족하였다고 하느니라. 교진여여, 만일 부처님 법을 여의면 사문도 없고 바라문도 없고 사문·바라문의 법도 없느니라. 모든 외도들은 비었고 거짓이고 속이는 것이어서 진실한 행이 없으며, 비록 모양을 지어서 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하나, 실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사문·바라문의 법이 없다면, 어떻게 사문·바라문이 있다 하겠느냐. 내가 항상 이 대중 가운데서 사자후(師子吼)를 하는 것이니, 너희들도 대중 속에 있어서 사자후를 지을 것이니라.”
이 때에 한량없는 외도들이 이 말을 듣고 미워하는 마음을 내어 말하였다.
“구담이 지금 말하기를 ‘우리 대중 가운데 사문과 바라문이 없고, 사문·바라문의 법도 없다’고 하니, 우리는 마땅히 방편을 베풀어 구담에게 ‘우리 대중에도 사문이 있고 사문의 법이 있으며, 바라문이 있고 바라문의 법이 있다’고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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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그 대중 가운데 어떤 범지가 외쳐 말하였다.
“여러분이여, 구담의 말은 미친 이의 말이나 다름없거늘 탓할 것 무엇인가. 세상에 미친 사람이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울고 웃고 꾸짖고 칭찬하면서 원수도 친한 이도 분별하지 못하나니, 사문 구담도 그와 같아서, 혹은 내가 정반왕의 궁전에서 태어났다 하고, 혹은 그렇게 나지 않았다 하며, 혹은 나면서 곧 일곱 걸음을 걸었다 하고, 혹은 걷지 않았다 하며, 혹은 어려서부터 세간 일을 배웠다 하고, 혹은 나는 온갖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 하며, 혹은 어느 때에는 궁전에서 향락을 받고 아들을 낳았다 하고, 혹은 싫증나고 미워서 꾸짖고 천하게 여기며, 어떤 때는 친히 6년 동안 고행을 하였다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외도의 고행함을 꾸짖기도 하며, 어떤 때는 울두람불(鬱頭藍弗)·아라라(阿羅邏) 등을 따라가서 듣지 못하던 것을 배웠다 하고, 어떤 때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어떤 때는 보리수 밑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노라 말하고, 어떤 때는 나는 그 나무 밑에 가지 아니하였으며 얻은 것이 없노라 하며, 어떤 때에는 나의 이 몸이 곧 열반이라 하고, 어떤 때는 몸이 없어지는 것이 열반이라고 말하느니라.
구담이 말하는 것이 미친 사람이나 다름이 없거늘,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
바라문들이 대답하였다.
“대사(大士)여, 우리가 어찌하여 걱정하지 않겠는가. 사문 구담이 먼저 출가하고서 말하기를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고 부정하다’ 하는 것을, 나의 제자들이 듣고 무서워하는 마음을 내기에 ‘중생이 어찌하여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고 부정하리요’ 하고, 그 말을 받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구담이 다시 와서 사라숲 속에 있으면서 대중을 위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법이 있다’고 말하여, 나의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는 나를 버리고 가서 구담의 말을 듣지 않는가. 이런 인연으로 매우 걱정하노라.”
그 때에 또 다른 바라문이 말하였다.
“여러분들 자세하게 들으시오. 사문 구담은 말로는 자비를 닦는다 하지만, 이는 허망한 말이고 진실이 아니오. 만일 자비가 있다면 어째서 우리 제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법을 받게 하겠소? 자비의 과(果)는 남의 뜻을 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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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인데, 지금 우리의 원을 어기니 어떻게 있다 하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사문 구담이 세간의 여덟 가지 법에 물들지 않는다’면 이것도 허망한 것이며, 만일 구담이 욕심이 적고 만족함을 안다면 지금 어째서 우리의 이익을 빼앗겠소? 만일 가문이 훌륭하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허망하니, 왜냐 하면 옛날부터 대사자왕이 조그만 쥐를 죽인다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는데, 구담이 참으로 훌륭한 문벌이라면 어째서 지금 우리를 시끄럽게 하겠소? 만일 구담이 큰 세력을 갖추었다면 그것도 허망하니, 왜냐 하면 옛날부터 금시조왕이 까마귀와 싸운다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소. 만일 기운이 세다면 우리와 함께 다투겠는가. 구담이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갖추었다면 그것도 허망이니, 왜냐 하면 그런 지혜가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우리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여러분들이여, 내가 예전에 지혜 있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는데, 백 년 후에 이 세간에는 요망한 환술쟁이가 나리라 하더니, 그것이 구담이오. 이런 요망한 것이 이제 이 사라숲 속에서 오래지 않아 멸망할 것이니, 여러분들은 그다지 걱정할 것이 없소.”
이 때에 또 어떤 니건자가 대답하였다.
“그대여,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자신과 제자의 공양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간이 어두컴컴하고 눈이 없어 복밭과 복밭 아닌 것을 알지 못하며, 오래 되고 지혜 있는 바라문을 버리고 젊은이에게 공양함을 걱정하는 것이오. 사문 구담은 주문의 술법을 알고, 주문의 힘으로 인하여 한 몸이 한량없는 몸이 되기도 하고, 한량없는 몸이 도로 한 몸이 되기도 하며, 혹은 자기의 몸으로 남자나 여인의 모양이 되기도 하고, 소·양·코끼리·말이 되기도 하지만 나의 힘은 그런 주술을 소멸할 수 있으니, 구담 사문의 주술이 소멸되면 당신들은 공양을 많이 얻으며 안락을 받을 것이오.”
이 때에 또 어떤 바라문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들, 사문 구담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으니, 당신들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대중들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어리석은 사람아, 무엇으로 사문 구담이 대공덕을 갖추었다 하는가? 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가 죽었으니, 이것을 복덕이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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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은 이렇게 대답했다.
“꾸짖어도 성내지 않고 때려도 앙갚음하지 않으니, 이것이 큰 복덕 모양이니라. 몸에는 32상과 80종호와 한량없는 신통을 구족하였으니, 이것으로 복덕의 모양을 알 것이며, 마음에는 교만이 없어 먼저 문안하고, 말이 부드러워 거칠지 아니하며, 나이와 생각이 장성하되 마음이 갑자기 화를 내지 아니하고, 국왕의 부귀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 버리고 출가하기를 침뱉듯 하였으매, 내가 말하기를 ‘사문 구담은 한량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성취하였다’ 하느니라.”
대중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좋은 말이오. 그대여, 사문 구담이 진실로 말씀과 같이 참으로 한량없는 신통과 변화를 성취하였다면, 우리는 그와 더불어 이런 일을 겨루지는 않겠소만 사문 구담이 성품이 유순하여 고행을 견디지 못하며, 깊은 궁궐에서 생장하여 바깥 일에 능란하지 못할 것이요, 다만 말만이 부드러울 것이나, 기술과 공부와 논의하는 일을 알 수 없는 터이니, 그와 더불어 바른 법의 요령을 토론하여 보아서 그가 우리를 이기면 우리가 그를 섬길 것이고, 우리가 그를 이기면 그가 우리를 섬겨야 할 것이오.”
이 때에 한량없는 외도들이 함께 모여서 마가다(摩伽陀)의 왕 아사세(阿闍世)에게 가니, 왕이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들, 당신들은 제각기 성인의 도를 닦는 출가한 사람들이라, 재물과 집에서 살림하는 일을 버렸으므로, 이 나라 인민들이 모두 공양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우러르며 범접하지 못하는 터이거늘, 무슨 일로 함께 오셨는가. 여러분들, 당신들은 각각 다른 법과 다른 계율을 받으며, 출가하는 일도 같지 아니하며, 또 각각 자기의 계법을 따라서 출가하고 수도하는 터인데, 이제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 화합함이, 마치 떨어지는 잎이 바람에 불려서 한 곳에 모이듯이 무슨 인연을 말하려고 여기 왔는가? 나는 매양 출가한 사람들을 보호하되, 나아가 몸이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노라.”
이 때에 모든 외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대왕께서는 지금 대법의 다리며 대법의 숫돌이며 대법의 저울이며, 모든 공덕의 그릇이며 모든 공덕의 진실한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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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며 바른 법의 길이시니, 곧 종자의 좋은 밭이며 모든 국토의 근본이며 모든 국토의 거울이며 모든 천인의 형상이며 온 나라 사람의 부모입니다. 대왕이시여, 모든 세간에서 공덕의 보배 광이 곧 대왕의 몸이십니다.
공덕의 보배 광이라 함은, 대왕께서는 나라 일을 판단하시되 원수와 친한 이를 가리지 아니하시며, 마음이 평등하심이 땅·물·불·바람과 같사올세, 대왕을 이름하여 공덕의 광이라 하나이다. 대왕이시여, 현재의 중생들은 비록 장수하기도 하고 단명하기도 하거니와, 대왕의 공덕은 옛적에 장수하고 안락하던 때의 임금과 같사오며, 또한 정생왕(頂生王)·선견왕(善見王)·인욕왕(忍辱王)·나후사왕(那睺沙王)·야야제왕(耶耶帝王)·시비왕(尸毗王)·일차구왕(一叉鳩王) 들과 같사오니, 이런 임금들은 선한 법을 구족하였나이다.
지금 대왕도 그와 같나이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인연으로 나라가 태평하고 인민이 번성하오매, 모든 출가한 사람들이 이 나라를 사모하여 계율을 지니고 부지런히 수행하고 바른 도를 닦나이다. 대왕이시여, 우리의 경전에서 말하기를 ‘만일 출가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계율을 지니고 부지런히 수행하고 바른 도를 닦으면, 그 임금도 선한 일을 닦는 것이라’ 하였나이다.
대왕께서 모든 도둑을 이미 정리하셨사오매, 출가한 사람들이 조금도 두려움이 없사오나, 한 가지 나쁜 사람인 구담 사문이 있사온데, 대왕께서 아직 금지하시지 아니하오니, 저희들이 매우 두려워하나이다. 그 사람은 호화로운 집 자손이요 문벌이 훌륭하고 몸이 잘생긴 것을 믿사오며, 또 과거에 보시한 과보로 공양하는 이가 많사오며 이런 일을 믿고 교만이 대단하오며, 혹은 주문의 힘으로 인하여 거만한 생각을 내며, 이런 인연으로 고행을 하지 못하고 부드러운 의복과 와구를 많이 받나이다. 그래서 모든 세간의 나쁜 사람들이 이익을 위하여서 그에게 모여 가서 권속이 되었지만 고행을 하지 아니하오며, 주문을 외워서 가섭·사리불·목건련 등을 조복하더니, 요사이는 저희들이 있는 사라숲에 와서 있으면서 이 몸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선전하여 저희들의 제자들을 꾀어 가나이다. 대왕이시여, 구담이 먼저는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하다고 말하는 것을 저희들이 참았거니와, 지금 와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 것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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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수 없나이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저희들이 구담과 더불어 논란하는 일을 허락하여 줍소서.”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러 대사들, 당신들은 지금 누구의 부추김을 받고 마음이 산란하여 진정하지 못하는가. 마치 물의 파도 같으며, 불 바퀴[旋火輪] 같으며, 원숭이가 나무를 던지는 것 같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오. 지혜 있는 이가 들으면 가엾은 마음을 낼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이 들으면 빈정거릴 것이오. 당신들이 하는 말이 출가한 사람답지 못하오. 당신들이 풍병(風病)이 들렸거나 황수병[黃水患]에 걸렸으면, 내게 좋은 약이 있으니 치료할 수 있고, 만일 귀신이 준 병이라면 나의 형 기바(耆婆)가 고칠 수 있을 것이오. 당신들이 지금 하려는 것은 손톱으로 수미산을 헐려는 것이며, 이빨로 금강을 씹으려는 것이오. 여러 대사들, 비유하면 어떤 바보가 사자가 굶어서 자는 것을 보고 깨우려는 것 같으며, 손가락을 독사의 입에 넣는 것 같으며, 재를 덮어 놓은 불을 손으로 헤치려는 것과 같이 당신들도 지금 그러하오. 선남자여, 비유하면 마치 여우가 사자의 소리를 하려는 듯, 모기가 금시조와 달음박질 내기를 하려는 듯, 토끼가 바다의 밑바닥을 밟고라도 건너려는 듯이 당신들도 지금 그와 같소. 당신들이 만일 꿈에라도 구담을 이겼다면 그 꿈은 허망하여 믿을 수 없을 것이오. 여러분이 지금 그 생각을 낸 것은 마치 나비가 불더미에 뛰어드는 격이니, 당신들은 내 말을 따르고 다시 말하지 마시오. 당신들이 나를 칭찬하기를 평등하기 저울 같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이런 말을 듣게 하지 마시오.”
이 때에 외도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구담 사문이 짓는 환술이 왕에게까지 이르렀나이까? 대왕의 마음을 의심케 하여 이런 성인을 믿지 않게 하겠나이다. 대왕께서는 이런 대사(大士)를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대왕이시여, 달이 둥글었다 이지러졌다 하고, 바닷물이 짜고, 마라연산(摩羅延山) 같은 것이 누가 짓는 일입니까? 우리의 바라문이 아니오니까? 대왕이시여, 아갈다(阿竭多) 신선이 12년 동안 항하의 물을 귀 속에 넣어 둔 일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구담 선인이 큰 신통으로 12년 동안 제석의 몸으로 변화하였고, 아울러 제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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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는 숫양[羝羊]의 모양을 만들고, 천 개의 여근(女根)이 제석의 몸에 있게 한 것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기누(耆·) 선인이 하루 동안에 사해의 물을 마셔 땅이 마르게 된 일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바수(婆藪) 선인이 자재천을 위하여 세 눈을 지었던 것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라라(羅邏) 선인이 가부라성(迦富羅城)을 변화하여 개펄로 만든 일을 듣지 못하셨나이까? 대왕이시여, 바라문들 가운데는 이런 엄청난 힘을 가진 선인들이 많사오니, 지금도 증거할 수 있거늘, 대왕께서 어찌하여 멸시하시나이까?”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내 말을 믿지 않고 기어이 겨루어 보려면, 여래 정각께서 지금 사라숲 안에 계시니, 당신들이 가서 마음대로 문난하여 보라. 여래께서는 당신들을 위하여 분별하며, 당신들의 뜻에 맞도록 대답할 것이오.”
이 때에 아사세왕이 외도들의 무리를 데리고 부처님 계신 데 가서,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서 예경하기를 마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외도들이 마음대로 문난하려 하오니, 원컨대 여래께서 뜻을 따라 대답하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만하시오. 내가 스스로 때를 아나이다.”
이 때에 대중 가운데 한 바라문이 있었으니, 이름이 사제수나(闍提首那)였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은 열반이 항상한 법이라 하나이까?”
“그렇노라, 대바라문이여.”
“구담이여, 만일 열반이 항상하다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오. 왜냐 하면 세상의 법은 종자에서 열매가 생기며, 서로 계속하여 끊어지지 아니하나니, 마치 흙반죽에서 질그릇이 생기고, 실에서 옷을 얻는 것과 같소. 당신이 항상 말하기를 ‘무상한 생각을 닦아서 열반을 얻는다’ 하였으니, 인이 무상인데 결과가 어떻게 항상하겠는가. 당신이 또 말하기를 ‘욕계의 탐[欲貪]에서 해탈하면 곧 열반이요, 색계의 탐과 무색계의 탐에서 해탈하면 곧 열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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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등의 모든 번뇌를 멸하면 곧 열반이라’ 하였으니, 욕계의 탐으로부터 무명 번뇌에 이르기까지가 다 무상한 것이니, 인(因)이 무상하면 얻는 열반도 반드시 무상할 것이 아니겠소? 당신은 또 말하기를 ‘인으로 말미암아 천상에 나고, 인으로 말미암아 지옥에 떨어지고, 인으로부터 해탈을 얻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이 다 인으로부터 생긴다’ 하였으니, 만일 인으로부터 해탈을 얻는다면, 어떻게 항상하다고 말하겠는가.
당신이 또 말하기를 ‘색이 인연으로부터 났으므로 무상하다 이름하며, 수·상·행·식도 그러하다’ 하였으니, 해탈이 만일 색이라면 무상할 것이며, 수·상·행·식도 그러할 것이오. 만일 5음을 여의고 해탈이 있다면 해탈은 마땅히 허공과 같을 것이며, 만일 허공이라면 인연으로부터 생겼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니, 왜냐 하면 허공은 항상하고 하나이고 온갖 곳에 두루한 까닭이오. 당신은 또 말하기를 ‘인연으로 생긴 것은 괴로움이라’ 하였으니, 만일 괴로움이라면 어찌하여 해탈이 즐거운 것이라 말하겠소? 당신이 또 말하기를 ‘무상한 것이 곧 괴로움이요, 괴로움이면 나가 없다’고 하였으니, 만일 무상하고 괴롭고 내가 없다면 곧 부정한 것이므로 모든 인으로부터 난 모든 법이 모두 무상하고 어찌하여 열반은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는가. 만일 당신이 말하기를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나이기도 하고 내가 없기도 하고, 깨끗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다고 하면, 이런 것은 두 가지 말이 아니겠는가. 나도 일찍이 옛날 지혜 있는 이에게 들으니, 부처님께서 만일 세상에 나시면 말씀에 두 가지가 없다고 하였소. 당신은 지금 두 가지 말을 하면서 부처님이 곧 내 몸이라 하니, 그 뜻이 어떠하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바라문이여, 그대의 말과 같이 내가 지금 그대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대답하시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구담이여.”
“바라문이여, 그대의 성품이 항상한가, 무상한가?”
“내 성품은 항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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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문이여, 그 성품이 모든 안팎 법의 인이 되는가?”
“그렇소, 구담이여.”
“바라문이여, 어떻게 인이 되는가?”
“구담이여, 성품으로부터 대(大)가 생기고, 대로부터 아만[慢]이 생기고, 아만으로부터 16법이 생기니, 이른바 지(地)·수(水)·화(火)·풍(風)·공(空)과, 5지근(知根)인 눈·귀·코·혀·몸과, 5작업근(作業根)인 손발·입 소리·남녀의 근[男女二根]과 심평등근(心平等根)이오. 이 16법은 5법으로부터 나는 것이니, 빛·소리·냄새·맛·닿임이오. 이 21법의 근본은 셋이니, 물드는 것[染]과 거친 것[麤], 검은 것[黑]인데, 물드는 것은 탐애[愛]라 하고, 거친 것은 성내는 것이라 하고, 검은 것은 무명이라 하나니, 구담이여, 이 24법이 모두 성품으로부터 나는 것이오.”
“바라문이여, 이 대(大)라는 법들이 다 항상한가, 무상한가?”
“구담이여, 나의 법에는 성품은 항상하고, 대라는 등의 모든 법은 무상한 것이오.”
“바라문이여, 그대의 법에서 인은 항상하고, 과는 무상한 것처럼, 나의 법에서 인은 무상하나 과는 항상한 것이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바라문이여, 그대의 법에 두 가지 인이 있는가.”
“있지요.”
“무엇이 둘인가?”
“하나는 내는 인[生因]이고, 둘은 나타내는 인[了因]이오.”
“어떤 것을 내는 인이라 하고, 어떤 것을 나타내는 인이라 하는가?”
“내는 인이라 함은 흙반죽에서 질그릇을 내는 것과 같고, 나타내는 인이라 함은 등불로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두 가지 인이 인 되는 성품은 하나인가? 만일 하나라면 내는 인으로 하여금 나타내는 인이 되게 할 수도 있고, 나타내는 인으로 내는 인이 되게 할 수도 있는가?”
“그렇지 못합니다, 구담이여.”
“만일 내는 인으로 나타내는 인이 되게 할 수 없고, 나타내는 인으로 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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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되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을 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비록 서로 될 수는 없지만 인이라고는 하나이다.”
“바라문이여, 나타내는 인으로 나타낸 것이 내는 인과 같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구담이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이 비록 무상으로부터 열반을 얻지만 무상한 것이 아니니라. 바라문이여, 나타내는 인으로부터 얻었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한 것이요, 내는 인으로부터 얻었으므로 무상하고 즐겁지 않고 내가 없고 부정하니라. 그러므로 여래의 말이 두 가지가 있으나, 이 두 가지 말은 둘이 있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여래를 이름하여 두 말이 없다 하느니라. 그대의 말과 같이, 옛날에 지혜 있는 사람에게 들으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시면 두 말이 없다고 한 말은, 진실로 훌륭한 말이니라. 모든 시방 3세의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 것은 차별이 없나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두 말이 없다고 하시느니라. 어찌하여 차별이 없다 하는가. 있는 것은 동일하게 있다 말하고, 없는 것은 동일하게 없다고 말하나니, 그러므로 한 뜻이라 이름하느니라. 바라문이여, 여래 세존이 비록 두 말이라 하나 한 가지 말을 나타내려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말하여 두 말이 한 가지 말을 나타낸다 하는가. 마치 눈이라, 빛이라 하는 두 말이 식(識)이란 한 가지 말을 나타내는 것이며, 나아가 뜻이라, 법이라 함도 그와 같으니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이러한 말과 뜻을 잘 분별하시오나, 지금 말씀하신 바 두 말이 한 말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나이다.”
이 때에 세존께서 그를 위하여 4진제법(眞諦法)을 말씀하셨다.
“고제(古諦)란 것이 둘도 되고 하나도 되며, 나아가 도제(道諦)도 둘도 되고 하나도 되느니라.”
“세존이시여, 이미 알았나이다.”
“선남자여, 어떻게 알았는가?”
“세존이시여, 고제를 범부들은 둘이라 하고 성인은 하나라 하오며, 나아가 도제도 그와 같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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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일이다, 이미 알았음이여.”
바라문이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법을 듣고 바른 지견을 얻었사오며, 이제 불보·법보·승보에 귀의하려 하오니,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저의 출가를 허락하옵소서.”
이 때에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사제수나의 머리를 깎아 주고 출가하게 하여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명령을 받잡고 머리를 깎으려고 손을 대는 때에 두 가지가 떨어졌으니, 하나는 수염과 머리카락이요, 하나는 번뇌였으며, 앉은 자리에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또 범지가 있었으니, 성은 바사타(婆私吒)였는데, 그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열반이 항상하다고 말하는가?”
“그러하오, 범지여.”
“구담이여, 번뇌가 없는 것을 열반이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하오, 범지여.”
“구담이여, 세상에서 네 가지를 없다고 이름합니다. 하나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법을 없다고 하나니, 마치 질그릇이 흙반죽에서 나오지 않았을 때를 질그릇이 없다 하는 것과 같고, 둘은 이미 멸한 법을 없다고 하나니, 마치 병이 깨어진 후를 병이 없다 하는 것과 같고, 셋은 다른 모양이 서로 없는 것을 없다고 하나니, 마치 소에게는 말이 없고 말에게는 소가 없는 것 등과 같은 것이요, 넷은 끝까지 없는 것을 없다고 하나니, 마치 거북의 털, 토끼의 뿔 등과 같은 것이다. 구담이여, 만일 번뇌를 없애 버린 것을 열반이라 한다면 열반이 곧 없는 것이니, 만일 없다면 어떻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이 있다고 하겠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열반은 먼저 없었던 것이 흙반죽 때의 질그릇과 같지 않고, 멸하여 없어진 것이 병이 깨어진 때와 같지도 않고, 끝까지 없는 것이 거북의 털, 토끼의 뿔과도 같지 않고, 다른 모양이 서로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소에게는 말이 없거니와 소까지 없다고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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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으며, 말에게는 소가 없거니와 말까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느니라. 열반도 그와 같아서 번뇌 가운데는 열반이 없고 열반 가운데는 번뇌가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다른 모양이 서로 없다고 이름하느니라.”
바사타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다른 모양이 없는 것을 열반이라 한다면, 다른 모양이 없으니까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도 없을 것이거늘, 구담이여, 어떻게 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는 다른 모양이 없다는 데는, 세 가지 없음이 있느니라. 소나 말은 다 먼저는 없다가 뒤에 있는 것이니 이것은 먼저 없다고 이름하며, 이미 있다가 도로 없어지는 것은 깨어져서 없다고 이름하며, 다른 모양이 없다는 것은 그대가 말한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이 세 가지 없음이 열반 가운데는 없나니, 그러므로 열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니라. 마치 세상에서 병난 사람이 하나는 열병이요, 둘은 풍병이요, 셋은 냉병이라면, 이 세 가지 병은 세 가지 약으로 다스리는 것과 같으니라. 열병 앓는 이는 소(蘇)로 다스리고, 풍병은 기름으로 다스리고, 냉병은 꿀로 다스리나니, 이 세 가지 약으로 세 가지 나쁜 병을 다스리느니라.
선남자여, 풍병에는 기름이 없고, 기름에는 풍병이 없으며, 나아가 꿀에는 냉병이 없고, 냉병에는 꿀이 없나니, 그러므로 능히 다스리느니라. 모든 중생도 이와 같아서 세 가지 병이 있으니, 하나는 탐욕이요, 둘은 성내는 것이요, 셋은 어리석음이니라. 이 세 가지 병에도 세 가지 약이 있나니, 부정관(不淨觀)은 탐욕에 약이 되고, 자심관(慈心觀)은 성내는 데 약이 되고, 인연을 관찰하는 지혜는 어리석은 데 약이 되느니라. 선남자여, 탐욕을 없애기 위해서는 탐욕이 아닌 관찰[非貪觀]을 하고, 성내는 것을 없애기 위해서는 성내지 않는 관찰[非瞋觀]을 하고, 어리석음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리석지 않은 관찰[非癡觀]을 하느니라. 세 가지 병 가운데는 세 가지 약이 없고, 세 가지 약 가운데는 세 가지 병이 없나니, 선남자여, 세 가지 병 가운데는 세 가지 약이 없으므로 항상함이 없고 내가 없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함이 없거니와, 세 가지 약 가운데는 세 가지 병이 없으므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일컫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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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저를 위하여 항상함과 무상함을 말씀하시니, 무엇을 항상하다 하고, 무엇을 무상하다 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색은 무상하고 해탈의 색은 항상하며, 나아가 식은 무상하고 해탈의 식은 항상하니라. 선남자여, 만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색이 무상하며, 나아가 식이 무상한 줄을 관찰하면, 이 사람은 항상한 법을 얻을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항상하고 무상한 법을 알았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항상한 법과 무상한 법을 어떻게 알았는가?”
“세존이시여, 지금 저의 색은 무상하고, 해탈을 얻는 것이 항상함을 알았사오며, 나아가 식도 그와 같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제 잘 되었으니, 이미 이 몸에 과보를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이 바사타가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니, 너는 3의(衣)와 발우를 주어라.”
교진여는 부처님의 명령에 따라 가사와 발우를 주었다.
바사타는 가사와 발우를 받고 이렇게 말하였다.
“큰스님 교진여여, 제가 이제 추악한 몸으로 선한 과보를 얻었나이다. 원컨대 큰스님께서 저를 위하여 뜻을 굽히시고, 세존 계신 데 가서 저의 마음을 여쭈어 주십시오. 제가 나쁜 사람이 되어서 여래의 존엄을 모독하옵고 구담이란 성을 일컬었사오니, 바라옵건대 이 죄를 참회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저는 또 이 독한 몸을 오래 머물러 둘 수 없사오니, 이제 열반에 들겠나이다.”
이 때에 교진여는 부처님 계신 데 가서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사타 비구가 부끄러운 마음을 내고 스스로 말하기를 ‘무지하고 악한 놈이 되어서 여래의 존엄을 모독하옵고 구담이란 성을 일컬었노라’ 하오며, 이 독사 같은 몸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어 지금 몸을 멸하겠다 하면서 저에게 의뢰하며 참회를 원하더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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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진여여, 바사타 비구는 지난 세상 한량없는 부처님 계신 데서 선근을 성취하였고, 이제 내 말을 듣고 법답게 머물렀으며, 법답게 머물렀으므로 바른 과를 얻었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그의 몸에 공양하여라.”
이 때에 교진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바사타의 몸이 있는 데 와서 공양을 베풀었다. 바사타는 몸을 화장할 때에 가지가지 신통을 지었다. 외도들은 이것을 보고 외치며 말하였다.
“바사타가 이미 구담 사문의 주문하는 술법을 얻었으니, 이 사람이 오래지 않아서 구담보다 수승하리라.”
이 때에 대중 가운데 다시 한 범지가 있었으니, 이름이 선니(先尼)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내[我]가 있습니까?”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구담이여, 내가 없습니까?”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두 번 세 번 이렇게 물었으나 부처님께서는 잠자코 계셨다.
선니는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온갖 중생이 내가 있다면, 모든 곳에 두루하였을 것이며, 하나일 것이며, 짓는 이일 것이거늘, 구담이여, 무슨 연고로 잠자코 대답하지 않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니여, 그대는 내가 모든 곳에 두루하였다고 말하는가?”
“구담이여, 내가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지혜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오.”
“선남자여, 만일 나가 모든 곳에 두루하였다면, 마땅히 5도(道)에서 한꺼번에 과보를 받을 것이며, 만일 5도에서 한꺼번에 과보를 받는다면, 그대 범지들은 무슨 인연으로 나쁜 업을 짓지 아니함은 지옥을 막기 위함이요, 선한 법을 닦는 것은 천상의 몸을 받기 위함이라 하는가?”
“구담이여, 우리의 법 가운데는 두 가지 내가 있으니, 하나는 짓는 몸인 나[作身我]요, 다른 하나는 항상한 몸인 나[常身我]요, 짓는 몸인 나를 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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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악을 여의는 법을 닦아서 지옥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선한 법을 닦아서 천상에 나는 것이오.”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내가 온갖 곳에 두루하였다 하거니와 이러한 내가 짓는 몸 가운데는 항상함이 없을 것이니, 만일 짓는 몸에 없다면 어떻게 두루하였다 하겠는가?”
“구담이여, 내가 세우는 나는 짓는 몸 가운데 있으면서도 역시 항상한 법이오. 구담이여, 어떤 사람이 실수로 불을 내어 집이 탈 때에 주인이 나갔다 하면, 집이 탈 때에 주인도 탔다고 말하지 아니할지니, 나라는 법도 그와 같아서 이 짓는 몸이 비록 무상하지만 무상할 때에는 나는 나간 것이니, 그러므로 우리의 나는 두루하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한 것이오.”
“선남자여, 그대의 말에 내가 두루하기도 하고 항상하기도 하다는 말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두루함이 두 가지니, 하나는 항상함이요 하나는 무상함이며, 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색이요 하나는 무색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온갖 것에 있다면,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며, 색이기도 하고 무색이기도 할 것이며, 만일 집 주인이 나갔으므로 무상하다고 이름하지 않는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집은 주인이라 이름하지 않고 주인은 집이라 이름하지 아니하여 타는 것이 다르고 나가는 것이 다르므로 그러할 수가 있거니와, 나는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내가 곧 색이요, 색이 곧 나이며, 무색이 곧 나이고, 내가 곧 무색이거늘, 어떻게 색이 무상할 때에 내가 나갔다고 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모든 중생이 다 같이 한 나’라면, 이것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어기는 것이니, 왜냐 하면 세간법으로는 아비·어미·아들·딸이라 하나니, 만일 내가 하나라면, 아비가 곧 아들이요, 아들이 곧 아비일 것이며, 어미가 곧 딸이요, 딸이 곧 어미일 것이며, 원수가 곧 친한 이요, 친한 이가 곧 원수일 것이며, 이 사람이 곧 저 사람이요, 저 사람이 곧 이 사람일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모든 중생이 다 같이 한 나라면, 이것은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어긴다 하느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나도 모든 중생이 같이 한 나라고 말한 것이 아니요, 한 사람마다 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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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일 한 사람마다 한 내가 있다면, 이것은 내가 여럿이니,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대가 먼저 말하기를 ‘내가 온갖 것에 두루하였다’ 하였으니, 만일 온갖 것에 두루하다면 모든 중생의 업과 근이 같을 것이니, 천득(天得)이 볼 때에는 불득(佛得)도 볼 것이요, 천득이 지을 때에는 불득도 지을 것이며, 천득이 들을 때에는 불득도 들을 것이니, 온갖 법이 모두 그와 같으니라. 만일 천득이 보는 것을 불득이 보지 못한다면, 내가 온갖 곳에 두루하였다고 말할 수 없으며, 만일 두루하지 않았다면 그는 곧 무상하니라.”
“구담이여, 모든 중생의 나는 온갖 것에 두루하였고, 법과 법 아닌 것은 온갖 것에 두루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런 뜻으로 불득의 지음이 다르고, 천득의 지음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구담이여, 불득이 보는 때에 천득도 보아야 하고, 불득이 들을 때에 천득도 들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 아니외다.”
“선남자여, 법과 법 아닌 것이 업으로 짓는 것이 아닌가?”
“구담이여, 업으로 짓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법과 법 아닌 것이 업으로 짓는 것이라면, 곧 같은 법이거늘, 어찌하여 다르다 하겠는가. 왜냐 하면 불득의 업이 있는 데 천득의 내가 있고, 천득의 업이 있는 데 불득의 내가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불득이 업을 지을 때에 천득도 지을 것이요, 법과 법 아닌 것도 마땅히 이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런 연고로 온갖 중생의 법과 법 아닌 것이 만일 그러하면, 얻는 과보도 다르지 아니하리라. 선남자여, 종자로부터 열매가 나지만 이 종자가 생각하고 분별하기를 ‘나는 다만 바라문의 과만 짓고, 찰리나 비사나 수타의 과는 짓지 않으리라’ 하지는 아니할 것이니, 왜냐 하면 종자에서 열매를 낼 때에 이러한 네 계급을 장애하지 아니하나니, 법과 법 아닌 것도 그와 같아 능히 분별하기를 ‘나는 다만 불득의 과만 짓고, 천득의 과는 짓지 않겠다거나, 천득의 과는 짓되 불득의 과는 짓지 아니하리라’ 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업이 평등한 연고니라.”
선니는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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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이여, 마치 한 방에 백천 개의 등불이 있다면, 심지는 비록 각각이나 광명은 차별이 없는 것과 같나니, 등잔과 심지가 각각인 것은 법과 법 아닌 데 비유하고, 광명이 차별 없는 것은 중생의 나에 비유하는 것이오.”
“선남자여, 그대가 등의 광명으로 나에 비유함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방이 다르고 등이 다르니, 이 등의 광명이 심지에도 있고 방 안에도 두루하느니라. 그대가 말하는 내가 이와 같다면, 법과 법 아닌 데 모두 내가 있어야 하고, 나에도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어야 하리라. 만일 법과 법 아닌 데에 내가 없다면, 온갖 곳에 두루하였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모두 있다면 어떻게 심지와 광명으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선남자여, 그대의 생각에 심지와 광명이 진실로 다르다고 한다면, 무슨 연고로 심지가 커지면 광명이 성하고, 심지가 마르면 광명이 꺼지는가. 그러므로 법과 법 아닌 것으로 심지에 비유하고, 광명이 차별 없는 것으로 나에 비유하지 못할 것이니라. 왜냐 하면 법과 법 아닌 것과 나의 셋이 곧 하나인 연고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이 인증(引證)하는 등불 비유는 불길한 것이오. 왜냐 하면 등불 비유가 길하다면 내가 먼저 끌어 온 것이요, 만일 불길하다면 어찌하여 다시 말하는가?”
“선남자여, 내가 인증하는 비유는, 길하고 불길함과 관계된 것이 전혀 아니고, 그대의 뜻을 따라 말하는 것이니라. 이 비유는 심지를 여의고 광명이 있다 할 수도 있고, 심지에 즉(卽)하여 광명이 있다 말할 수도 있건만 그대의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여서 심지로는 법과 법 아닌 데 비유하였고, 광명으로는 나에 비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를 책망하되 ‘심지가 곧 광명이냐, 심지를 여의고 광명이 있느냐, 법이 곧 나이냐, 내가 곧 법이냐, 법 아닌 것이 곧 나이냐, 내가 곧 법 아닌 것이냐’ 하는 것인데, 그대는 무슨 이유로 한쪽만을 인정하고 한쪽은 인정하지 않는가. 이런 비유는 그대에게 불길한 것이므로, 내가 도로 그대에게 가르치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이런 비유는 잘못된 비유니, 잘못된 비유이므로, 내게는 길하고 그대에게는 불길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내게 불길하면 당신에게도 불길하리라’ 한다면, 그 이치가 옳지 아니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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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왜냐 하면 세상 사람이 자기의 칼로 자기를 해하여 자기의 짓는 일이 남에게 소용됨을 보나니, 그대가 끌어 온 비유도 그와 같아서 내게는 길하지만 그대에게는 불길하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당신이 먼저는 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하다고 책망하더니,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도 평등하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구담이여, 지금 길한 것은 자기에게 돌리고 불길한 것은 내게 돌리니,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진실로 평등하지 못합니다.”
“선남자여, 나의 불평등으로 그대의 불평등을 깨뜨리나니, 그러므로 그대의 평등과 나의 불평등이 모두 길한 것이니라. 나의 불평등으로 그대의 불평등을 깨뜨려서 그대로 하여금 평등을 얻게 함이 곧 나의 평등이니, 왜냐 하면 여러 성인들과 같이 평등을 얻는 연고니라.”
“구담이여, 나는 항상 평등하거늘, 당신은 어찌하여 나의 불평등을 깨뜨린다 하는가?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내가 있거늘, 어찌하여 내가 평등하지 않다 하는가?”
“선남자여, 그대도 말하기를 ‘마땅히 지옥을 받고, 마땅히 아귀를 받고, 마땅히 축생을 받고, 마땅히 인간과 천상을 받는다’ 하였으니, 내가 먼저 5도에 두루하였다면, 어찌하여 마땅히 모든 갈래를 받으라고 말하는가. 그대도 말하기를 ‘부모가 화합하여 아들을 낳는다’ 하였으니, 만일 아들이 먼저부터 있었다면 어찌하여 화합한 뒤에야 있다 하는가.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다섯 갈래의 몸이 있는 것이니, 만일 다섯 곳에 먼저부터 몸이 있었다면 무슨 인연으로 몸을 위하여 업을 짓겠는가. 그러므로 평등하지 못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내가 짓는 것[作者]이라’ 한다면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내가 짓는다면, 무슨 연고로 스스로 괴로운 일을 짓겠는가. 그러나 지금 중생들이 실로 괴로움을 받는 터이니, 이런 연고로 내가 짓는 것이 아닌 줄을 알지니라. 만일 말하기를 ‘이 괴로움은 내가 짓는 것이 아니요, 인으로부터 나지도 않는다’ 하면, 온갖 법이 모두 그러하여, 인으로부터 나지 아니하리니, 무슨 인연으로 내가 짓는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중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실로 인연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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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은 능히 근심과 기쁨을 지어서 근심할 때에는 기쁨이 없고 기쁠 때에는 근심이 없으며, 혹은 기뻐하고 혹은 근심하나니, 지혜 있는 사람이야 어떻게 이것을 항상하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내가 항상하다’ 하거니와, 만일 항상하다면 어찌하여 열 가지 시절의 다름이 있겠는가. 항상한 법이라면, 가라라 시절로부터 늙은 시절까지가 있지 아니할 것이며, 허공은 항상한 법이므로 한 때도 없는데, 하물며 열 시절이 있겠는가. 선남자여, 나는 가라라 시절도 아니고, 나아가 늙은 시절도 아니거늘, 어찌하여 열 시절의 차별이 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만일 내가 짓는 것이라면, 이 내가 성할 때와 쇠할 때가 있고, 중생도 성할 때와 쇠할 때가 있으니, 만일 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항상하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내가 만일 짓는 것이라면, 어째서 한 사람에게 영리하고 둔함이 있는가. 선남자여, 내가 만일 짓는 것이라면, 이 내가 능히 몸으로 짓는 업과 입으로 짓는 업과 뜻으로 짓는 업을 짓나니, 만일 이런 것이 내가 짓는 것이라면, 어찌하여 입으로 내가 없다고 말하겠는가. 어찌하여 스스로 있느냐 없느냐를 의심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눈을 여의고 봄이 있다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만일 눈을 여의고 따로 보는 것이 있다면, 왜 눈을 필요로 하는가. 나아가 몸도 그와 같으니라. 그대의 생각에 ‘내가 능히 본다’고 하지만 반드시 눈으로 인하여 본다면, 그것도 그렇지 아니하니, 무슨 까닭이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수만나꽃[須曼那花]이 큰 마을을 태운다 하고, 어떻게 태우느냐 하면 불을 일으켜 태운다 하는 것같이, 그대가 말하는 내가 본다는 것도 그와 같으니라.”
“구담이여, 마치 사람이 낫을 들고 풀을 베는 것처럼, 내가 5근(根)으로 인하여 보고 듣고, 나아가 닿이는 것도 그와 같나이다.”
“선남자여, 사람과 낫은 각각 다르므로 낫을 들고 작용할 수 있지만 근을 여의고는 따로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내가 근으로 인하여 작용함이 있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낫으로 풀을 베듯이 나도 그와 같다’ 하면, 이 내가 손이 있느냐, 손이 없느냐. 만일 손이 있다면, 어째서 제가 들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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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냐. 만일 손이 없다면 어떻게 내가 짓는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능히 풀을 베는 것은 곧 낫이고, 나도 아니며 사람도 아니니라. 만일 나나 사람이 능히 벤다면, 어찌하여 낫을 필요로 하는가. 선남자여, 사람에게 두 가지 업이 있으니, 하나는 풀을 잡고, 하나는 낫을 드나니, 이 낫은 능히 끊는 공만 있느니라. 중생이 법을 보는 것도 그와 같아서 눈이 능히 빛을 보는 것은 화합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니, 만일 인연이 화합함으로 인하여 본다면, 지혜 있는 사람이야 어찌 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몸이 짓고 내가 받는다’ 하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이 세상에서 천득이 업을 짓고 불득이 과보를 받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만일 말하기를, 몸으로 짓는 것이 아닌데, 나도 인이 아닌 것으로 받는다고 한다면, 그대들이 어찌하여 인연으로부터 해탈을 구하느냐. 그대의 몸이 인연이 아닌 것으로 났다면, 해탈을 얻고 나서도 역시 인연이 아닌 것으로 다시 몸이 나야 할 것이며, 몸과 같아서 모든 번뇌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나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앎이 있고, 또 하나는 앎이 없나이다. 앎이 없는 나는 능히 몸을 얻거니와, 앎이 있는 나는 능히 몸을 버리나니, 마치 날기와를 가마에 구우면 본 빛을 잃고, 다시는 생기지 아니하는 것과 같나니, 지혜 있는 이의 번뇌도 그와 같아서 한번 멸하고는 다시 생기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안다고 하는 것은 지혜가 아는 것인가, 내가 아는 것인가. 만일 지혜가 아는 것이라면, 무슨 연고로 내가 아는 것이라고 말하며, 만일 내가 안다면 무슨 연고로 방편으로 지혜를 구하는가. 그대가 생각하기를, ‘내가 지혜로 인하여 안다’고 하면, 꽃이 태운다는 비유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찔레나무의 성질이 찌르는 것을, 나무가 가시를 잡고 찌른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지혜도 그와 같아서 지혜가 스스로 아는 것인데, 어떻게 내가 지혜를 가지고 안다고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그대의 법에서는 내가 해탈을 얻는 것을 앎이 없는 내가 얻는다 하는가, 앎이 있는 내가 얻는다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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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만일 앎이 없는 것이 얻는다면, 예전대로 번뇌를 구족하였을 것이요, 만일 앎이 있는 것이 얻는다면, 이미 5정(情)이 있을 것이니, 왜냐 하면 근을 떠나서는 따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근을 갖추었다면, 어떻게 해탈을 얻었다 하겠는가? 만일 말하기를 ‘나의 성품이 청정하여 5근을 여의었다’ 한다면, 어찌하여 5도(道)에 두루하였다 하며, 무슨 인연으로 해탈하기 위하여 선한 법을 닦겠느냐? 선남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에서 가시를 뽑는다는 것처럼, 그대도 그러하니, 내가 만일 청정하다면, 어찌하여 번뇌를 끊는다고 말하는가. 그대가 또 생각하기를, ‘만일 인연을 반연하지 않고 해탈을 얻는다’ 하면, 모든 축생들은 어찌하여 얻지 못하느냐?”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능히 기억합니까?”
부처님께서 선니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내가 있다면, 무슨 인연으로 잊어버리는가. 선남자여, 만일 기억하는 것이 나라면, 무슨 인연으로 나쁜 생각을 기억하며, 기억하지 않을 것은 기억하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지 않는가?”
선니가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누가 보고 누가 듣나이까?”
“선남자여, 안으로는 6입(入)이 있고, 밖으로는 6진(塵)이 있으며, 안과 밖이 화합하여 여섯 가지 식을 내나니, 이 여섯 가지 식이 인연으로 이름을 얻느니라. 선남자여, 다 같은 불이로되 나무로 인하여 생겼으면 장작불이라 하고, 짚으로 인하여 생겼으면 짚불이라 하고, 겨로 인하여 생겼으면 겻불이라 하고, 쇠똥으로 인하여 생겼으면 쇠똥불이라 하듯이, 중생의 알음알이도 그와 같아서 눈으로 인하고 빛으로 인하고 밝음으로 인하고 의욕(意欲)으로 인한 것은 안식(眼識)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안식은 눈에 있지도 않고, 나아가 의욕에 있지도 않고, 네 가지가 화합하여서 이 식이 생긴 것이며, 나아가 의식도 그와 같으니라. 만일 인연이 화합하여서 지혜가 생겼으면, 마땅히 보는 것이 나라, 나아가 닿임이 나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안식으로부터 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이 다 환(幻)이라 하느니라. 어찌하여 환이라 하는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고, 이미 있다가도 도로 없어지는 연고니라. 선남자여, 마치 소면(蘇麵)·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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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蜜薑)·후추·필발(蓽茇)·포도·호도·석류·유자(桵子)가 화합하여 된 것을 환희환(歡喜丸)이라 하거니와, 이렇게 화합한 것을 여의고는 환희환이 없는 것처럼, 안팎 6입을 중생·나·사람·사내라 이름하나니, 이 안팎 6입을 여의고는 따로 중생이라, 나라, 남이라, 사내라 할 것이 없느니라.”
선니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내가 없다면 어찌하여 말하기를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 내가 괴롭다, 내가 즐겁다, 내가 근심한다, 내가 기쁘다’ 하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내가 보고 내가 듣는다고 해서 내가 있다고 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세상에서 말하기를 ‘네가 짓는 죄를 나는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하는가. 선남자여, 마치 네 가지 병사가 화합한 것을 군대라 이름하는 것과 같나니, 이 네 가지 병사를 하나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말하기를 ‘우리 군대가 용맹하다, 우리 군대가 이겼다’ 하나니, 안팎 입(入)이 화합하여 짓는 것도 그와 같아서 비록 하나가 아니지만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 내가 괴롭다, 내가 즐겁다’ 하느니라.”
“구담이여, 당신의 말과 같이 안팎이 화합하였다면, 누가 소리를 내어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고 말하나이까?”
“선니여, 애와 무명의 인연으로 업이 생기고, 업으로부터 유(有)가 생기고, 유로부터 한량없는 심수(心數)가 생기고, 심수로부터 각관(覺觀)이 생기고, 각관이 풍(風)을 동하고, 풍이 마음을 따라서 인후[喉]와 혀와 이와 입술을 접촉하거든, 중생의 생각이 뒤바뀌어서 소리가 나는 것을 내가 짓는다, 내가 받는다, 내가 본다, 내가 듣는다고 말하느니라.
선남자여, 마치 짐대[幢] 끝에 달린 풍경이 바람의 인연으로 소리를 낼 때에, 바람이 크면 소리가 크고 바람이 작으면 소리가 작지만 짓는 것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마치 뜨거운 쇠를 물 속에 넣으면 여러 가지 소리가 나지만 그 가운데는 소리를 짓는 이가 없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범부들은 이런 일을 생각하고 분별하지 못하므로, 내가 있고, 내 것이 있고, 내가 짓고, 내가 받는다고 말하느니라.”
“구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내가 없고, 내 것이 없다면, 무슨 연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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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씀하시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나도 안팎 6입과 6식(識)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지 아니하였고, 안팎 6입으로 생긴 6식을 멸한 것이 항상하다 이름하고, 항상하므로 나라 이름하고, 항상하고 내가 있으므로 즐겁다 이름하고, 항상하고 나이고 즐거우므로 깨끗하다 이름한다고 말하였느니라. 선남자여, 중생들은 괴로움을 싫어하고, 괴로움의 인을 끊어서 자재하게 여의는 것을 나라 하거니와, 이런 인연으로 내가 지금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하다고 말하느니라.”
선니는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대자대비로 저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어찌하오면 그러한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온갖 세간 사람들이 본래부터 지금에 이르도록 큰 교만을 구족하고 교만을 증장하였으며, 또 교만한 인과 교만한 업을 지었으므로, 지금 교만의 과보를 받느라고, 모든 번뇌를 여의지 못하여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지 못하나니, 만일 모든 중생들이 온갖 번뇌를 멀리 여의려거든, 먼저 교만을 여의어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그러하옵니다. 진실로 성인의 가르침과 같사와 저는 먼저 교만이 있었나이다. 교만한 인연으로 여래를 일컬어 당신 구담이라 불렀사오나, 저는 이미 이런 교만을 여의었으므로, 정성된 마음으로 법을 구하옵나니, 어떻게 하오면 항상하고 즐겁고 나이고 깨끗함을 얻겠나이까?”
“선남자여, 자세히 들으라. 이제 그대를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선남자여, 만일 능히 자기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중생도 아닌 이면, 이 법을 멀리 여의리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고 이해하여 바른 법 눈[正法眼]을 얻었나이다.”
“선남자여, 너는 어떻게 알고 이해하여 바른 법 눈을 얻었느냐?”
“세존이시여, 말한 바 색이란 것이 자기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중생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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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며, 나아가 식도 그와 같사오니, 저는 이렇게 관찰하고 바른 법 눈을 얻었나이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출가하여 수도하기를 지극히 원하오니, 바라옵건대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 비구여”라고 말씀하시니, 즉시에 청정한 범행을 구족하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외도들 중에 또 성(姓)이 가섭씨(迦葉氏)인 범지가 있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몸이 곧 수명인가,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른가?”
여래께서는 잠자코 계셨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그와 같이 하셨다.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만일 어떤 사람이 몸을 버리고 아직 뒤의 몸을 얻지 못하였을 때에, 그동안을 말하여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만일 다르다면, 구담은 어찌하여 잠자코 대답하지 않는가?”
“선남자여, 나는 말하기를 ‘몸과 수명은 모두 인연으로 있는 것이요, 인연 아닌 것이 아니라’ 하였노니, 몸이나 수명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와 같으니라.”
범지는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보건댄 세간에는 인연을 따르지 않는 법이 있더이다.”
“범지여, 그대는 세간의 어떤 법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 것을 보았는가?”
“저는 큰불이 나서 개암나무를 태울 때에 바람이 불면 불길이 끊어져서 다른 곳으로 날아감을 보았나니, 이런 것은 인연이 없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선남자여, 나는 이 불길도 인연으로부터 생긴 것이라 말하고, 인연이 없이 생겼다고 말하지 아니하노라.”
“구담이여, 불길이 끊어져 갈 때에는, 섶이나 숯을 인하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인연을 인하였다 하겠는가?”
“선남자여, 비록 섶이나 숯은 없으나 바람을 인하여 날아간 것이니, 바람의 인연으로 불길이 꺼지지 않는 것이니라.”
“구담이여, 사람이 몸을 버리고 뒤의 몸을 얻지 못하였을 동안의 수명은, 무엇이 인연이 되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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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지여, 무명과 애가 인연이 되나니, 무명과 애의 두 가지 인연으로 수명이 머물게 되느니라. 선남자여, 인연이 있으므로 몸이 곧 수명이요 수명이 곧 몸이며, 인연이 있으므로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니, 지혜 있는 이는 한결같이 말하여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 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범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시고 해설하시어 인과 과를 분명히 알게 하시옵소서.”
“범지여, 인(因)도 5음(陰)이요, 과(果)도 5음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중생이 불을 사르지 아니하면 연기가 없느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알았으며 이미 이해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세존이시여, 불은 곧 번뇌인지라,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을 사르는 것이오며, 연기는 곧 번뇌의 과보인지라, 무상하고 부정하고 냄새가 더러워서 미운 것이오매 연기라 하나이다. 만일 중생이 번뇌를 짓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번뇌의 과보가 없을 것이오니, 그러므로 여래께서 ‘불을 사르지 아니하면 연기가 없다’ 하시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미 바르게 보았사오니, 원컨대 대자대비로 제가 출가함을 허락하옵소서.”
이 때에 세존께서는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이 범지가 출가하여 계를 받음을 허락하노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을 모으고 그로 하여금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게 하였더니, 닷새를 지나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다시 범지 중에 부나(富那)라는 범지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구담이여, 당신은 세간에 항상한 법을 보고 항상하다고 말하였는가? 그런 이치가 진실한가 헛된가, 항상한가 무상한가,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한가,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닌가, 가[邊]가 있는가 가가 없는가, 가가 있기도 하고 가가 없기도 한가, 가가 있음도 아니고 가가 없음도 아닌가, 몸인가 수명인가,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른가, 여래가 멸도한 후에는 여여히 가는가[如去], 여여히 가지 않는가[不如去], 여여히 가기도 하고 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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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가지 않기도 하는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닌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나여, 세간의 항상함이 헛되다, 진실하다, 항상하다,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다, 가가 있다 가가 없다, 가가 있기도 하고 가가 없기도 하다, 가가 있음도 아니고 가가 없음도 아니다, 몸이다 수명이다, 몸이 다르고 수명이 다르다, 여래가 멸도한 후에 여여히 간다 여여히 가지 않는다, 여여히 가기도 하고 여여히 가지 않기도 한다,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말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부나는 또 말하였다.
“구담이여, 지금에 무슨 허물을 보고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부나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세간이 항상하니 이것만이 진실하고 다른 것은 허망한 말이다’ 한다면, 이것은 소견이라 하고, 소견으로 보는 곳은 견의 행[見行]이라 하고, 견의 업이라 하고 견의 집착이라 하고, 견의 속박이라 하고, 견의 괴로움이라 하고, 견의 취[見取]라 하고, 견의 공포[見怖]라 하고, 견의 열[見熱]이라 하고, 견의 얽힘이라 하느니라. 부나여, 범부는 견의 얽힘이 되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여의지 못하고, 6취(趣)로 돌아다니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는 것도 이와 같으니라.
부나여, 나는 소견이 이러한 허물이 있음을 보았으므로 집착하지 않고 사람에게 말하지 아니하노라.”
“구담이여, 만일 이러한 허물을 보고 집착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무엇을 보고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선남자여, 보고 집착함은 나고 죽는 법이라 하나니, 여래는 나고 죽는 법을 이미 여의었으므로 집착하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능히 본다, 능히 말한다 이름하고, 집착한다 이름하지 않느니라.”
“구담이여, 어떤 것을 능히 본다 하고, 어떤 것을 능히 말한다 하는가?”
“선남자여, 나는 고·집·멸·도를 능히 보았고, 이러한 4제를 능히 분별하여 해설하느니라. 나는 이런 것을 보았으므로 모든 소견과 모든 애와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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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流]과 모든 교만을 멀리 여의었나니, 그러므로 나는 청정한 범행과 위없이 고요함을 갖추어 항상한 몸을 얻었으며, 이 몸은 동·서·남·북이 아니니라.”
“구담이여, 무슨 인연으로 항상한 몸은 동·서·남·북이 아니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내가 이제 그대에게 물으리니 마음대로 대답하라. 그대의 마음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남자여, 그대 앞에서 불더미를 사른다면, 한창 탈 때 그대가 타는 줄을 아는가?
“그러하오, 구담이여.”
“불이 꺼질 때 그대가 꺼지는 줄을 아는가?”
“그러하오, 구담이여.”
“부나여, 만일 어떤 이가 묻기를 ‘그대 앞에서 불더미가 타는데, 그것은 어디서 왔으며, 꺼져서는 어디로 가는가’ 하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구담이여, 그렇게 묻는 이가 있으면 나는 대답하기를 ‘이 불이 생길 때에는 모든 인연을 말미암았고, 본래의 인연이 이미 다하고 새 인연이 오지 아니하면 불이 꺼진다’고 하겠소.”
“또 묻기를 ‘이 불이 꺼져서는 어느 방면에 이르는가’ 하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구담이여, 나는 대답하기를 ‘인연이 다하여서 꺼지는 것이므로 어느 방소에도 이르지 않는다’고 하리라.”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아서 만일 무상한 색으로부터 무상한 식에 이르기까지 있는 것은 애로 인하여 타는 것이니, 타는 것은 25유(有)를 받는 것이므로 탈 때에는 불의 동·서·남·북을 말할 수 있거니와, 현재의 애가 멸하면 25유의 과보가 타지 않나니, 타지 아니하므로 동·서·남·북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여래는 무상한 색으로부터 무상한 식에 이르기까지를 이미 멸하였으므로 몸이 항상하며, 몸이 항상하므로 동·서·남·북이 있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부나는 말하였다.
“한 비유를 말하오리니 바라옵건대 들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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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좋은 일이다. 마음대로 말하여라.”
“세존이시여, 마치 큰 마을 앞에 사라나무숲이 있고 그 가운데 한 나무가 숲보다 먼저 난 지 백 년이 넘었습니다. 그 때에 숲 주인은 물을 주면서 철을 따라 가꾸었는데, 그 나무가 오래되어서 껍질과 가지와 잎은 다 떨어지고 굳은 고갱이만 남아 있습니다. 여래께서도 그와 같아서 낡은 것은 모두 제하여 없어지고, 온갖 진실한 법만 남아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출가하여 수도하기를 진정으로 원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 비구여” 하고 말씀하시니, 이 말을 마치자 곧 출가하여 번뇌가 다하였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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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 제 36 권

송대 사문 혜엄 등이 니원경에 의거하여 덧붙임

25. 교진여품 ②

또 범지(梵志)가 있으니, 이름은 청정부(淸淨浮)라.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은 무슨 법을 알지 못하여서 세간이 항상하다, 무상하다, 항상하기도 하고 무상하기도 하다, 항상함도 아니고 무상함도 아니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아니함도 아니라 보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색을 알지 못하는 연고며, 나아가 식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느니라.”
범지가 말하였다.
“구담이여, 중생들이 무슨 법을 알면,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지 않겠나이까?”
“선남자여, 색을 아는 연고며, 나아가 식을 아는 연고로 세간이 항상하다, 나아가 여여히 감도 아니고 여여히 가지 않음도 아니라고 보지 않느니라.”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세간이 항상함과 무상함을 분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선남자여, 만일 사람이 낡은 것을 버리고 새 업을 짓지 않으면, 이 사람이 항상하고 무상함을 아는 것이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고 보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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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알았으며 어떻게 보았는가?”
“세존이시여, 낡은 것은 무명과 애라 하옵고, 새것은 취(取)와 유(有)라 하나니, 사람이 만일 무명과 애를 멀리 여의고, 취와 유를 짓지 아니하면, 이 사람은 진실하게 항상함과 무상함을 아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바른 법의 깨끗한 눈을 얻삽고 3보에 귀의하오니, 바라옵건대 여래께서 제가 출가함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이 범지가 출가하여 계를 받음을 허락하여라.”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에게로 데리고 가서 갈마(羯磨)를 행하여 출가하게 하였더니, 보름 후에 모든 번뇌가 아주 다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독자(犢子) 범지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물으려는데 허락하겠습니까?”
여래는 잠자코 계셨고, 두 번째 세 번째도 그리하셨다.
독자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구담이여,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의 친구가 되었으며, 당신은 나와는 둘이 아닌데, 내가 묻는 것에 어찌 잠자코 계십니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범지는 성품이 선비답고 아담하며 착하고 질직(質直)하여서 매양 알기 위하여 묻는 것이요, 남을 시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 저가 물으면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독자여, 훌륭한 일이다. 의심나는 대로 물으면 내가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세상에 선(善)이 있는가?”
“그러니라, 범지여.”
“불선이 있는가?”
“그러니라, 범지여.”
“구담이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말하여서 저로 하여금 선과 불선의 법을 알게 하소서.”
“선남자여, 나는 그 뜻을 자세히 분별하여 말할 수 있거니와, 이제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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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간략히 말하리라. 선남자여, 탐욕을 불선이라 하고, 탐욕에서 해탈함을 선이라 하며,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도 그와 같으니라. 살생을 불선이라 하고, 살생하지 않음을 선이라 하며, 나아가 삿된 소견도 그와 같으니라. 선남자여, 나는 지금 그대를 위하여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으며, 또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말하였노라. 만일 나의 제자가 이러한 세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 나아가 열 가지 선한 법과 불선한 법을 능히 분별하면, 이 사람은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은 온갖 번뇌를 다하였고 온갖 유를 끊은 것이니라.”
“구담이여, 불법 가운데 한 비구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다한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비구들이 이러한 탐욕과 생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하였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는 한 비구니라도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다한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나,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비구니들이 이러한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과 온갖 번뇌와 온갖 유를 능히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와 한 비구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한 우바새(優婆塞)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고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새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 한 우바새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서 한 우바이(優婆夷)라도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은 이가 있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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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나의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이들이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5하분결을 끊고 아나함을 얻었으며, 의심의 저 언덕에 건너가서 의심을 끊었느니라.”
“구담이여, 한 비구, 한 비구니가 온갖 번뇌를 다하거나, 한 우바새, 한 우바이가 계행을 가지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범행이 청정하며 의심을 끊은 이는 그만두고, 불법 가운데 우바새로 5욕락을 받으면서 마음에 의심이 없는 이가 있나이까?”
“선남자여, 이 불법 가운데는 하나, 둘, 셋, 나아가 5백 사람만이 아니라, 한량없는 우바새가 세 가지 결박을 끊고 수다원을 얻었으며,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을 얻었으며, 우바새와 같이 우바이도 그러하니라.”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유를 말하려 하나이다.”
“좋은 말이다. 말하려거든 말하여 보아라.”
“세존이시여, 마치 난타(難陀)와 바난타(婆難陀) 용왕들이 큰비를 내리듯이 여래의 법비도 그와 같아서 우바새·우바이에게 평등하게 내리나이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들이 와서 출가하려 하오면, 여래께서는 몇 달 동안이나 시험하시나이까?”
“선남자여, 다 넉 달씩 시험하거니와, 한결같지는 아니하니라.”
“세존이시여, 만일 한결같지 않사오면, 바라건대 대자대비로 제가 출가하는 것을 허락해 주소서.”
이 때에 세존께서 교진여에게 분부하셨다.
“독자가 출가하여 계를 받는 것을 허락하라.”
그 때에 교진여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대중 가운데서 갈마를 하였더니, 보름이 찬 뒤에 수다원과를 얻었다. 수다원과를 얻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지혜를 배워서 얻을 것은 내가 이미 얻었으니, 이제는 부처님을 뵈올 만하다.’
곧 부처님 계신 데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예경을 마치고는 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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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서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배워서 얻을 모든 지혜를 제가 이미 얻었나이다.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다시 분별하여 말씀하시어, 저로 하여금 무학의 지혜를 얻게 하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너는 부지런히 정진하여 두 가지 법을 닦을지니, 하나는 사마타(奢摩他)요, 또 하나는 비바사나(毘婆舍那)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수다원과를 얻으려면, 이 두 법을 부지런히 닦아야 하고, 사다함과나 아나함과나 아라한과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비구가 4선정·4무량심·6신통·8배사(背捨)·8승처(勝處)·무쟁지(無諍智)·정지(頂智)·필경지(畢竟智)·4무애지(無礙智)·금강삼매·진지(盡智)·무생지(無生智)를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10주지(住地)·무생법인(無生法忍)·무상법인(無相法忍)·불가사의법인(不可思議法忍)·성행(聖行)·범행(梵行)·천행(天行)·보살행·허공삼매·지인삼매(智印三昧)·공(空)삼매·무상(無相)삼매·무작(無作)삼매·지(地)삼매·불퇴(不退)삼매·수릉(首楞)삼매·금강삼매·아뇩다라삼먁삼보리·불행(佛行)을 얻으려 하여도 이 두 법을 닦아야 하느니라.”
독자가 듣고는 예배하고 나와서 사라숲 속에서 이 두 법을 닦더니,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때에 또 한량없는 비구들이 부처님 계신 데 가려고 하는 것을 독자가 보고 물었다.
“큰스님들 어디로 가십니까?”
“부처님 계신 데 가렵니다.”
“큰스님들, 부처님께 가시거든 원컨대,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하여 반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어 주십시오.”
비구들은 부처님 계신 데 이르러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독자 비구가 저희들에게 부탁하기를 ‘세존이시여, 독자 범지가 두 가지 법을 닦아서 무학의 지혜를 얻었고, 이제 부처님 은혜를 갚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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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열반에 듭니다’라고 여쭈라 하더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아, 독자 범지가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너희들은 함께 가서 그 몸에 공양하라.”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그 시신이 있는 데 가서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
납의(納衣) 범지가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의 말과 같이 ‘한량없는 세상에서 선과 불선을 지었으므로 오는 세상에서 선한 몸과 불선한 몸을 얻는다’ 하였으나, 이치가 그렇지 않나이다. 왜냐 하면 구담이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이 몸을 얻는다’ 하였으니, 번뇌로 인하여 몸을 얻는다면, 몸이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는가, 번뇌가 먼저 있었다면, 누가 지었으며 어디 머물러 있었던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면, 어떻게 번뇌로 인하여 얻는다 말하겠는가. 그러므로 번뇌가 먼저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고, 몸이 먼저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고, 한꺼번에 있었다 함도 옳지 못하니라. 먼저 있었다, 나중에 있었다, 한꺼번에 있었다 함이 모두 옳지 못하므로, 나는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는 것이고,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하오.
또 구담이여, 굳은 것은 땅의 성품이요, 젖는 것은 물의 성품이요, 더운 것은 불의 성품이요, 동함은 바람의 성품이요, 걸림이 없는 것은 허공의 성품이니, 이 5대의 성품은 인연으로 인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만일 세간에서 한 가지 법의 성품이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면, 모든 법의 성품도 그와 같아서 인연으로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니라. 만일 한 가지 법이라도 인연으로 있는 것이라면, 무슨 연고로 5대의 성품은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는가.
구담이여, 중생들이 선한 몸으로나 불선한 몸으로나 해탈을 얻는 것은 모두 자기의 성품이요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법들이 제 성품으로 있는 것이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오.
구담이여, 세간의 법들이 일정하게 쓰는 곳이 있나니, 마치 목수는 말하기를 ‘이 나무로는 수레를 만들고, 이 나무로는 창호나 책상을 만들 것이라’ 하며, 금사(金師)가 만드는 것도 이마에 두르는 것은 화만[鬘]이라 하고, 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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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뜨리는 것은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은 팔찌라 하고, 손가락에 끼는 것은 가락지라 하듯이, 쓰는 곳이 일정한 연고로 결정된 성품이라 합니다. 구담이여, 모든 중생들도 그와 같아서 5도의 성품이 있으므로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이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하여 인연을 따른다 하겠는가.”
구담이여, 모든 중생의 성품이 제각기 다르므로 온갖 가지 제 성품이라 합니다. 구담이여, 거북은 육지에 나서도 스스로 물에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젖을 먹을 수 있고, 물고기가 낚시의 미끼를 보고는 스스로 삼키며, 독사가 나서는 자연히 흙을 먹나니, 이런 것은 아무도 가르치는 이가 없는 것이며, 가시는 나면서 끝이 뾰족하고, 나는 새는 털빛이 제각기 다르나니, 세간의 중생들도 그러하여 영리한 이도 있고 둔한 이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이도 있고, 잘난 이도 있고 못난 이도 있으며,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나쁜 데 사는 이도 있나이다. 그러므로 온갖 법 중에는 제각기 제 성품이 있는 것이오.
또 구담이 말하기를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인연으로 생긴다’ 하며, 이 3독(毒)이 5진(塵)을 인연한다 하거니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합니다. 왜냐 하면 중생들이 잘 때에는 5진을 멀리 여의었지만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고, 태 속에 있을 때도 그러하며, 태에서 처음 나와서는 5진이 좋고 나쁨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신선이나 성현들이 한적한 곳에 있을 때에는 5진이 없지만 그래도 탐욕과 성내는 일과 어리석음이 생기는 것이며, 어떤 이는 5진으로 인하여 탐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어리석지 않음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인연으로부터 온갖 법이 생기는 것이 아니니, 제 성품이 있는 까닭입니다.
또 구담이여, 제가 보건대 세상 사람들이 5근을 구족하지 못하고도 재물이 많고 자재한 이가 있으며, 5근을 구족하고도 빈궁하고 하천하여 자재로 하지 못하고 남의 하인이 되는 이가 있으니, 만일 인연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이러합니까?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인연을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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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구담이여,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을 분별할 줄 모르면서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웃을 때에는 기쁜 줄 알고, 울 때에는 걱정하는 줄 아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모두 제 성품이 있는 줄을 알겠나이다.
또 구담이여, 세상 법이 두 가지니, 하나는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없는 것입니다. 있는 것은 허공이요, 없는 것은 토끼의 뿔이니, 이 두 가지 법에서 하나는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아니하고, 또 하나는 없는 것이므로 인연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있는 것이므로 인연을 따르지 않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의 말이 5대의 성품과 같아서 모든 법도 그러하다 하거니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그대의 법에서 5대가 항상한 것이라면, 무슨 인연으로 온갖 법이 모두 항상하지 아니하며, 만일 세상 물건이 무상하다면, 5대의 성품은 무슨 인연으로 무상하지 아니한가. 만일 5대가 항상하다면, 세상 물건도 항상하여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5대의 성품은 제 성품이 있으므로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여 온갖 법으로 하여금 5대와 같게 하리라’ 함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쓰는 곳이 일정하므로 제 성품이 있다’는 것도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모두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 연고니라. 만일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면, 역시 인연으로부터 뜻을 얻어야 할 것이니라. 어떤 것을 인연으로부터 이름을 얻는다 하는가. 마치 이마 위에 있는 것을 화만이라 이름하고, 목에 있는 것을 영락이라 하고, 팔에 끼는 것을 팔찌라 하고, 수레에 있는 것을 바퀴라 하고, 초목에 불이 있는 것을 초목의 불이라 이름하는 것과 같거니와, 선남자여, 나무가 처음 날 때에는 화살이나 창대의 성품이 없었지만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살을 만들고, 인연을 따라서 공장이 창대를 만드는 것이니,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거북은 육지에서 났으나 성품이 물로 들어가고, 송아지는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먹을 수 있다 함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물에 들어가는 것이 인연이 아닐진댄 마찬가지 인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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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어찌하여 불에는 들어가지 않는가. 송아지가 나면서부터 성품이 젖을 빨 수 있는 것이 인연이 아닐진댄 마찬가지 인연이 아닌데 어찌하여 뿔은 빨지 않는가. 선남자여, 만일 말하기를 ‘모든 법이 다 제 성품이 있으므로 가르칠 필요도 없고 증장할 것도 없다’ 하는 것은,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지금 보건대 가르침이 있으며, 가르침으로 인하여 증장하나니, 그러므로 제 성품이 없음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바라문들이 마땅히 청정한 몸을 위하여 양을 잡아서 제사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만일 몸을 위하여 제사한다면, 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세간에서 말하는 법이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으려 함이요, 둘은 짓는 때요, 셋은 지어 마친 때니라. 만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무슨 연고로 세상에 세 가지 말이 있겠는가. 세 가지 말이 있으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없는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만일 모든 법이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법이 각각 일정한 성품이 있을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사탕수수라는 한 물건이 무슨 연고로 즙이 되고, 꿀이 되고 얼음사탕[石蜜]이 되고 술이 되고 초[苦酒]가 되는가. 만일 한 가지 성품이라면, 어떻게 이러한 여러 가지 맛이 되는가. 만일 한 물건 가운데서 이런 것들이 난다면, 모든 법은 일정하게 각각 한 성품이 있지 아니한 줄을 알 것이다.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일정한 성품이 있다면, 성인이 무슨 연고로 사탕수수 즙이나 얼음사탕이나 흑설탕은 먹고, 술이었을 때에는 먹지 않다가, 초가 된 뒤에는 다시 먹는가. 그러므로 일정한 성품이 없는 줄을 알 것이며, 만일 일정한 성품이 없다면, 어찌하여 인연으로 말미암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다’ 하거니와, 어떻게 비유를 말하겠는가. 만일 비유할 것이 있다면,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며,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비유가 없음을 알지니라. 세간에 지혜 있는 이는 모두 비유를 말하는 터인즉, 모든 법은 제 성품이 없으며 일정한 성품이 없음을 알 것이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몸이 먼저 있는가, 번뇌가 먼저 있는가’ 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 왜냐 하면 내가 만일 몸이 먼저 있었다고 말하였다면, 그대가 그렇게 문난할 수 있거니와, 그대도 나와 같아서 몸이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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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있던 것이 아니거늘, 무슨 인연으로 그런 문난을 짓는가.
선남자여, 모든 중생의 몸과 번뇌가 다 먼저 있던 것도 뒤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시에 있는 것이며, 일시에 있더라도 반드시 번뇌로 인하여 몸이 있는 것이요, 마침내 몸으로 인하여 번뇌가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대가 생각하기를, ‘마치 사람의 두 눈이 일시에 있던 것이요 서로 인한 것이 아니니, 왼 눈이 오른 눈을 기다리지 않았고, 오른 눈이 왼 눈을 기다리지 않은 것처럼, 번뇌와 몸도 그와 같다’ 하면,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세상 사람이 볼 때에는 심지와 광명이 비록 일시이지만, 광명이 심지로 인하여 있고 광명으로 인하여 심지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생각하기를 ‘몸이 먼저 있지 아니하였으므로 인이 없는 줄을 안다’ 하면,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몸보다 먼저는 인연이 없으므로 없다고 이름한다면, 그대도 온갖 법이 다 인연이 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며, 만일 보지 못하였으므로 말하지 못한다 할진대, 지금 병(甁) 등이 인연으로 생긴 줄을 보거늘, 어찌하여 병과 같이 몸보다 먼저의 인연도 그와 같다고 말하지 않는가. 선남자여, 보거나 보지 않거나, 온갖 법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요, 제 성품이 없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만일 온갖 법이 다 제 성품이 있고, 인연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왜 인연으로 5대를 말하는가. 이 5대의 성품이 곧 인연이니라. 선남자여, 5대의 인연이 비록 이러하지만 역시 모든 법이 다 5대의 인연과 같다고도 말하지 못할 것이니, 마치 세상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출가한 이들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지나니, 전다라들도 그와 같이 부지런히 정진하며 계행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같으니라. 선남자여, 그대는 5대가 결정코 굳은 성품이 있다고 말하거니와, 나는 그 성품이 변하는 것이어서 일정하지 않다고 보느니라. 선남자여, 소랍(酥蠟)과 호교(胡膠)를 그대의 법에서는 지대라 하지만 이 지대[地]란 것이 일정치 아니하여 혹은 물과도 같고, 혹은 땅과도 같으므로 제 성품이 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선남자여, 백랍(白鑞)과 납과 땜납[錫]과 동과 철과 금과 은을 그대의 법에서는 화대[火]라 말하지만 이 화대가 네 가지 성품이 있으니, 흐를 때에는 물의 성품이요, 동할 때에는 바람의 성품이요, 더울 때에는 불의 성품이요, 굳을 때에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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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품이거늘, 어떻게 결정코 화대의 성품이라 말하겠는가.
선남자여, 물의 성품은 흐르는 것이라 하면서 물이 얼었을 때에도 땅이라 이름하지 아니하고 물이라 한다면, 무슨 인연으로 파도가 동할 때를, 바람이라 이름하지 않는가. 만일 동하는 것을 바람이라 이름하지 않는다면, 얼었을 때도 물이라고 이름하지 말아야 할지니라. 만일 이 두 가지 뜻이 인연을 따르는 것이라 할진댄 무슨 연고로 온갖 법이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선남자여, 만일 5근의 성품이 능히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감촉하는 것이므로 모두 제 성품이요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 하면,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제 성품이란 성품은 변동할 수 없는 것이니, 만일 눈의 성품이 보는 것이라면 항상 보아야 할 것이요, 보는 때도 있고 보지 못할 때도 있지 않아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인연을 따라서 보는 것이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닌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함은 그 뜻이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5진의 인연으로 인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쁜 각관(覺觀)인 연고로 탐욕을 내고, 선한 각관인 연고로 해탈을 내느니라. 선남자여, 안의 인연으로 탐욕과 해탈을 내고, 바깥 인연으로 증장케 하나니, 그러므로 그대가 말하기를 ‘온갖 법이 각각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5진으로 인하여 탐욕과 해탈을 내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모든 근을 구족하고도 재물이 없어 자재하지 못하기도 하고, 모든 근을 구족하지 못하였는데도 재물이 많고 자재하기도 한다’고 하며, 이런 것으로써 제 성품이 있는 것이요, 인연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것은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선남자여, 중생들이 업을 따라서 과보를 받거니와, 이 과보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현재에 받는 과보요, 둘은 다음 생에 받는 과보요, 셋은 후생에 받는 과보니라.
빈궁하거나 부자거나 근을 구족하였거나 구족하지 못한 것은 업이 각각 다른 까닭이니라. 만일 제 성품이 있다면 모든 근을 구족한 이가 마땅히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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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부유하고, 재물이 부유한 이는 마땅히 근을 구족할 것이나, 이제 그렇지 아니하므로 결정코 제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요,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인 줄을 알지니라.
선남자여, 그대가 말하기를 ‘세상의 어린아이들이 5진의 인연을 분별하지 못하면서도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므로, 온갖 것이 제 성품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만일 제 성품이라면 웃는 이는 항상 웃고, 우는 이는 항상 울어야 할 것이요, 한 번 웃고 한 번 울지 않을 것이니라. 만일 한 번 웃다가 한 번 운다면 이것은 모두 인연을 따르는 것이니, 그러므로 온갖 법이 제 성품이 있어서 인연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느니라.”
범지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만일 온갖 법이 인연으로 있다면, 이 몸은 무슨 인연이오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몸의 인연은 번뇌와 업이니라.”
“세존이시여, 이 몸이 번뇌와 업을 따른 것이라면, 이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나이까?”
“그러하니라.”
범지는 다시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저를 위하여 분별하여 말씀하시어서 제가 듣고 이 자리에서 모두 끊게 하시옵소서.”
“선남자여, 만일 두 끝과 중간이 장애되지 않는 줄을 알면 이 사람은 번뇌와 업을 끊을 수 있느니라.”
“세존이시여, 저는 이미 알았사옵고 바른 법의 눈을 얻었나이다.”
“너는 어떻게 알았느냐?”
“세존이시여, 두 끝은 색과 색의 해탈이옵고, 중간은 8정도(正道)이오며, 수와 상과 행과 식도 그러하나이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선남자여, 두 끝을 잘 알아서 번뇌와 업을 끊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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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제가 출가하여 계를 받을 것을 허락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잘 왔도다, 비구여” 하시니, 즉시에 삼계의 번뇌를 끊어 버리고 아라한과를 얻었다.
이 때에 다시 홍광(弘廣) 바라문이 이렇게 말하였다.
“구담이여, 제가 지금 생각하는 것을 아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열반은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성인의 도니라.”
“구담이여, 무슨 인연으로 이런 말씀을 하나이까?”
“선남자여, 그대가 항상 생각하기를, ‘걸식은 항상하고 별청(別請)은 무상하며, 굽은 것은 자물쇠[戶鑰]요, 곧은 것은 제석의 짐대’라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열반이 항상하고, 함이 있는 법이 무상하며, 굽은 것은 삿된 소견이요, 곧은 것은 8정도니라’라고 하였나니, 그대가 먼저 생각하던 것은 법에 맞지 않느니라.”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이여, 진실로 제 마음을 아시나이다. 이 8정도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두 멸하게 할 수 있나이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으셨다. 바라문이 말하였다.
“구담께서는 이미 저의 마음을 아셨나이다. 제가 지금 묻는 것은 무슨 연고로 잠자코 대답하지 않나이까?”
이 때에 교진여가 말하였다.
“대바라문이여, 만일 세상의 가가 있고 가가 없음을 물으면, 여래께서는 항상 잠자코 계시고 대답하지 않으시오. 8정도는 곧은 것이요, 열반은 항상한 것이니, 8정도를 닦으면 곧 멸진(滅盡)함을 얻으려니와, 닦지 아니하면 얻지 못하는 것이오. 대바라문이여, 마치 큰 성이 있는데, 사면 성벽에는 모두 구멍이 없고, 오직 한 문이 있으며, 그 문지기가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분별하여서 출입할 이는 출입하게 하고 거절할 이는 거절하는데, 출입하는 이가 얼마인지는 알지 못하거니와, 모든 출입하는 이는 반드시 이 문으로만 드나드는 것처럼, 선남자여, 여래도 그와 같나니, 성은 열반에 비유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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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은 8정도에 비유한 것이고, 문지기는 여래에게 비유한 것이오. 선남자여, 여래께서 지금 그대에게 멸진하고 멸진하지 아니함을 대답하지 아니하셨으나, 멸진하는 이는 모름지기 8정도를 닦아야 하오.”
바라문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대덕 교진여여, 여래께서 미묘한 법을 잘 말씀하셨사오며, 저는 지금 성(城)을 알고 도(道)를 알며 스스로 문지기가 되려 하나이다.”
교진여가 말하였다.
“훌륭한 일이오. 그대 바라문이 능히 위없고 넓고 큰 마음을 내었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두어라, 교진여여. 이 바라문은 오늘에만 이런 마음을 낸 것이 아니니라. 지나간 세상 한량없는 겁에 부처님 세존께서 계셨으니, 명호는 보광명(普光明)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시니라. 이 사람이 그 부처님 계신 곳에서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으며, 이 현겁에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며, 오래전부터 법의 행상을 통달하여 분명하게 알았지만 중생을 위하여서 현재 외도에 있으면서 알지 못하는 척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교진여여, 그대는 ‘훌륭한 일이오. 그대가 능히 이러한 큰 마음을 내었소’라고 칭찬할 것이 아니니라.”
그 때에 세존께서 아시면서도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아난 비구가 지금 어디 있느냐?”
교진여가 여쭈었다.
“아난 비구는 사라숲 밖에 있사온데, 이 대회에서 12유순이 되오며, 6만 4천억 마군의 요란함을 받나이다. 이 마군들은, 모두 여래의 형상처럼 몸을 변화하고서, 혹은 말하되, 온갖 법이 인연으로 생긴다 하고, 혹은 온갖 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기지 않는다 하고, 혹은 온갖 인연이 다 항상한 법이요, 인연으로 생기는 것은 모두 무상하다 하고, 혹은 5음이 진실한 것이라 하고, 혹은 허망한 것이라 하며, 6입과 18계도 그러하다 하고, 혹은 12인연이 있다 하고, 혹은 네 가지 인연이라 하고, 혹은 모든 법이 환술 같고 변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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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고 아지랑이 같다 하고, 혹은 들음[聞]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생각함[思]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닦음[修]으로 인하여 법을 얻는다 하고, 혹은 부정관(不淨觀)하는 법을 말하고, 혹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법을 말하고, 혹은 4념처관(念處觀)을 말하고, 혹은 세 가지 관하는 뜻과 일곱 가지 방편을 말하고, 혹은 난법(煖法)·정법(頂法)·인법(忍法)·세제일법(世第一法)·학지(學地)·무학지(無學地)와 보살의 초주(初住)로부터 10주까지를 말하고, 혹은 공(空)·무상(無相)·무작(無作)을 말하고, 혹은 수다라(修多羅)·기야(祇夜)·비가라나(毗伽羅那)·가타(伽陀)·우타나(憂陀那)·니타나(尼陀那)·아파타나(阿波陀那)·이제목다가(伊帝目多伽)·사타나(闍陀伽)·비불략(毗佛略)·아부타달마(阿浮陀達摩)·우바제사(優波提舍)를 말하고, 혹은 4념처·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5근·5력·7각분(覺分)·8성도를 말하고, 혹은 내공(內空)·외공(外空)·내외공(內外空)·유위공(有爲空)·무위공(無爲空)·무시공(無始空)·성공(性空)·원리공(遠離空)·산공(散空)·자상공(自相空)·무상공(無相空)·음공(陰空)·입공(入空)·계공(界空)·선공(善空)·불선공(不善空)·무기공(無記空)·보리공(菩提空)·도공(道空)·열반공(涅槃空)·행공(行空)·득공(得空)·제일의공(第一義空)·대공(大空)을 말하고, 혹은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몸에서 물과 불을 내되, 몸 위로는 물을 내고 몸 아래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몸 아래로는 물을 내고 몸 위로는 불을 내기도 하며, 왼 옆구리가 아래 있고 오른 옆구리에서 물을 내며, 오른 옆구리가 아래 있고 왼 옆구리에서 물을 내기도 하며, 한 옆구리로는 천둥을 내고 한 옆구리로는 비를 내리며, 혹은 여러 부처님의 세계를 나타내고, 혹은 보살이 처음 탄생하여 일곱 걸음을 걷는 때와, 깊은 궁궐에서 5욕락을 받는 때와, 처음 출가하여 고행을 닦는 때와, 보리수 아래 나아가 삼매에 들던 때와 마(魔)의 군중을 항복받고 법수레를 굴릴 때와, 대신통을 보여 열반에 들 때를 나타내기도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 비구는 이런 일들을 보고 생각하기를 ‘이러한 신통 변화는 예전에 보지 못하던 것인데, 누가 짓는 것인가. 석가세존께서 지으시는 것이 아닌가’ 하며, 일어나려 하여도 말을 하려 하여도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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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며, 아난 비구는 마군의 그물에 들었으므로 생각하기를 ‘여러 부처님의 말씀이 각각 같지 아니하시니, 나는 이제 누구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가’ 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아난은 지금 엄청난 고통을 받사오며, 아무리 여래를 생각하오나 구원할 이가 없나이다. 이런 인연으로 이 대중 가운데 오지 못하였나이다.”
이 때에 문수사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대중 속에 있는 모든 보살들은 이미 한 생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나아가 한량없는 생에서 보리의 마음을 내어 이미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였사오며, 마음이 견고하여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까지를 구족하게 수행하여 공덕을 성취하였사오며, 오래전부터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을 친근하고 범행을 깨끗이 닦았으며, 물러나지 않는 보리의 마음을 얻었으며, 불퇴인(不退忍)과 불퇴전지(不退轉持)를 얻었으며, 여법인(如法忍)과 수릉엄(首楞嚴) 등의 한량없는 삼매를 얻었나이다.
이런 무리들이 대승 경전을 듣고도 의심을 내지 아니할 것이며, 3보가 한 가지 성품과 모양이어서 항상 머물러 변하지 아니함을 잘 분별하여 해설할 것이며, 부사의한 것을 듣고도 놀라지 아니할 것이며, 가지가지 공(空)함을 듣고도 마음으로 무서워하지 아니하며, 모든 법의 성품을 분명하게 통달하고, 모든 12부경을 능히 지니고 뜻을 자세히 해설하며, 한량없는 부처님의 12부경이라도 능히 받아 지닐 것이옵거늘, 이 대반열반경을 받아 지니는 것이야 무엇이 근심되오리까? 무슨 인연으로 교진여에게 아난이 있는 데를 물으시나이까?”
이 때에 세존께서 문수사리에게 말씀하시었다.
“자세히 들으라. 선남자여, 내가 성불한 지 20년쯤 지나서 왕사성에 있었더니, 그 때에 내가 여러 비구들에게 말하였다.
‘여러 비구들이여, 이 대중 가운데서 누가 능히 나를 위하여 여래의 12부경을 받아 지니고, 좌우에서 필요한 일을 공급하여 주며, 그러고도 자기의 좋은 이익을 잃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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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교진여가 대중 속에 있다가 와서 나에게 말하였다.
‘제가 능히 12부경을 받아 지니며, 좌우에서 시봉하면서 저에게 이익될 일을 잃지 않겠나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노라.
‘교진여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할 터인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겠느냐?’
이 때에 사리불이 또 말하였다.
‘제가 능히 부처님의 온갖 말씀을 받아 지니오며, 필요하신 대로 시중들겠사옵고, 저에게 이익된 일을 하는 것도 잃지 않겠나이다.’
나는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너는 이미 늙어서 심부름할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나의 시중을 들고자 하느냐?’
이리하여 나아가 5백 아라한들까지도 모두 이렇게 말하였으나, 나는 모두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 때에 목련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생각하였다.
‘여래께서 이제 5백 비구들이 시중하려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니, 부처님 뜻에 누구를 시중을 들게 하시려는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고는, 문득 선정에 들어서 여래를 관하니, 마음이 아난에게 있는 것이, 마치 해가 처음으로 뜰 때에 빛이 서쪽 벽에 비치는 것과 같았다. 이런 것을 보고, 선정에서 일어나 교진여에게 말하였다.
‘대덕이여, 제가 여래를 뵈오니 아난으로 하여금 좌우에서 시중들게 하려 하더이다.’
그 때에 교진여는 5백 아라한과 함께 아난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이 이제 여래의 시중을 들어야 하겠으니, 이 일을 승낙하라.’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 큰스님들이시여, 저는 참으로 여래의 시중을 들 수가 없나이다. 왜냐 하면 여래께서는 존종하시기 사자왕 같사옵고 용과 불과 같사온데, 저는 더럽고 미약하오니, 어떻게 책임을 감당하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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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은 말하였다.
‘아난이여, 당신은 우리 말을 듣고, 여래를 모시면 큰 이익을 얻을 것이오.’
두 번 세 번 이렇게 말하였으나, 아난은 말하였다.
‘여러 큰스님들이여, 저는 큰 이익을 구함도 아니오며, 진실로 좌우에서 시중드는 일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이 때에 목련은 또 아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이여, 그대는 아직 모르는구나.’
‘큰스님, 바라건대 말씀하십시오.’
‘여래께서 저번에 대중 가운데서 시중들 사람을 구하시기에 5백 아라한이 모두 시중을 들려 하였으나, 여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였소. 내가 정에 들어서 여래의 뜻을 살펴뵈오니, 그대로 하여금 시자를 삼으려 하시는 것인데, 그대가 어찌하여 받들지 않는가?’
아난이 이 말을 듣고는 합장하고 꿇어앉아 말했다.
‘여러분 큰스님들, 일이 그러하다면, 여래 세존께서 저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시면, 승가의 명령을 받들어 좌우에서 모시겠나이다.’
목련이 말하였다.
‘세 가지 소원이 무엇인가?’
아난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는 여래께서 설사 낡은 옷을 저에게 주셔도 제가 받잡지 아니함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둘은 여래께서 단월의 별청(別請)을 받게 될 때에 제가 따라가지 아니함을 허락하시는 것이고, 셋은 저의 출입이 일정한 시간이 없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부처님께서 허락하시면 승가의 명령을 따르겠나이다.’
교진여 등 5백 비구는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희들이 아난 비구에게 권하였더니, 세 가지 소원을 말하면서 부처님께서 들어주시면 대중의 명을 따르겠노라 하였습니다.’
문수사리여, 나는 그 때에 아난을 이렇게 칭찬했노라.
‘훌륭하도다.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여 미리 혐의가 있을 것을 보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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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왜냐 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의식을 위하여 여래의 시중을 드는 것이냐?’ 하겠으므로, 먼저 낡은 옷이라도 받지 않고 별청에 따라가지 않겠다 한 것이니라. 교진여여, 아난 비구는 지혜를 구족하였으니, 들고 나는 시간이 한정되면 4부 대중을 이익되게 하는 일을 널리 지을 수 없으므로, 출입하는 시간이 제한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니라.
교진여여, 내가 아난을 위하여 그 세 가지 일을 허락하여 그 소원을 따르리라.’
이 때에 목련은 아난에게 가서 말하였다.
‘내가 그대의 말대로 세 가지 일을 여쭈었더니, 여래께서 대자비로 모두 들어 주셨느니라.’
아난이 대답하였다.
‘큰스님이여, 만일 부처님께서 허락하셨으면 가서 모시겠나이다.’
문수사리여, 아난이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에 여덟 가지 불가사의한 것을 구족하였느니라.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나는 나를 시봉한 지 20여 년에 한 번도 나를 따라서 별청식(別請食)을 받지 아니한 것이고, 둘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한 번도 나의 옷을 받지 아니한 것이고, 셋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마침내 때 아닌 때에 나에게 온 적이 없는 것이고, 넷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번뇌를 구족하였으면서도 나를 따라서 임금과 찰리와 훌륭한 대갓집에 드나들면서 여러 여인과 천녀·용녀들을 보았지만 탐욕을 내지 아니한 것이고, 다섯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내가 말한 12부경을 받아 지니되, 한번 들은 것은 다시 묻지 아니하고도 병에 든 물을 다른 병에 붓듯이 한 것이다. 다만 한 번 물은 적이 있었으니, 선남자여, 유리(琉璃) 태자가 석씨들을 모두 죽이고 가비라성을 파괴할 때에 아난이 걱정하여 울면서 나에게 와서 말하였다.
‘여래와 제가 함께 이 성에서 태어났고, 같은 석가 종족이온데,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화평한 얼굴이 평상시와 같으신데, 저는 초조하나이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난아, 나는 공정(空定)을 닦았으므로 너와는 같지 아니하니라.’
3년이 지난 뒤에 다시 와서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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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난번 가비라성에 있을 때에, 여래께서 공삼매를 닦으신다는 말씀을 들었사온데, 그 일이 진실하오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아난아, 그렇다. 네가 말한 바와 같으니라.’
여섯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다른 이의 마음을 아는 지혜를 얻지 못하였으나, 여래가 드는 선정을 항상 안 것이고, 일곱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소원대로 아는 지혜[願智]는 얻지 못하였으나, 여러 중생들이 여래에게 와서는, 현재에 네 가지 사문의 과를 얻기도 하고, 나중에 얻는 이도 있고, 사람의 몸을 얻을 이와 천인의 몸을 얻을 이들을 분명하게 안 것이고, 여덟은 나를 시봉한 이후로 여래의 비밀한 말을 다 안 것이니라. 선남자여, 아난 비구가 이렇게 여덟 가지 부사의한 일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아는 광[多聞藏]이라고 칭찬하는 바니라.
선남자여, 아난 비구는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여 12부경을 갖추어 지녔으니, 무엇이 여덟인가. 하나는 신심이 견고한 것이고, 둘은 마음이 질직(質直)하고, 셋은 몸에 병고가 없는 것이고, 넷은 항상 부지런히 정진한 것이고, 다섯은 기억하는 마음을 구족한 것이고, 여섯은 교만한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일곱은 선정과 지혜를 성취한 것이고, 여덟은 들음을 따라 생기는 지혜를 구족한 것이니라.
문수사리여, 비바시(毘婆尸)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아숙가(阿叔迦)인데, 역시 이런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고, 시기(尸棄)여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차마가라(差摩迦羅)요, 비사부(毗舍浮)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우파선타(優波扇陀)요, 가라구촌타(迦羅鳩村馱)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발제(跋提)요, 가나함모니(迦那含牟尼)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소지(蘇坁)요, 가섭(迦葉)부처님의 시자인 제자는 이름이 섭파밀다(葉婆蜜多)인데, 모두 이와 같은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는데, 지금 나의 아난도 이와 같이 여덟 가지 법을 구족하였으므로, 내가 아난 비구를 많이 아는 광이라고 칭찬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말과 같이 이 대중 중에서 한량없는 보살들이 있으나, 이 보살들은 다 중대한 책임이 있나니, 이른바 대자대비니라. 이 대자대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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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으로 각각 일이 바쁘고 권속을 조복하고 몸을 장엄하여야 하나니, 이런 인연으로 내가 열반한 뒤에 12부경을 선전하고 유통할 수 없으며, 어떤 보살이 혹시 연설하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으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는 나의 동생이고, 나를 시중한 지 20여 년에 들을 만한 법은 모두 구족하게 지니었으매, 마치 물을 부어 한 그릇에 담는 듯하느니라. 그래서 내가 지금 아난이 어디 있는가 물은 것은, 이 열반경을 받아 지니게 하려는 것이로다.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후에 아난 비구가 듣지 못한 것은 홍광(弘廣)보살이 유포할 것이요, 아난이 들은 것은 스스로 유통하리라. 문수사리여, 아난 비구가 지금 다른 곳에 있는데, 이 회상에서 12유순이 된다고 하며, 6만 4천억 마군에게 시달린다 하니, 그대는 그곳에 가서 큰 소리로 외치라.
‘모든 마군들은 자세히 들으라. 여래께서 지금 대다라니(大陀羅尼)를 말씀하시나니, 모든 천인·용·건달바(乾闥婆)·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伽)·사람·사람 아닌 이[非人]와 산신·목신·수신·해신·가택신 들이 이 지명(持名)을 듣고는 공경하여 받아 지니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이 다라니는 10항하사 부처님 세존들이 함께 말씀하시는 것이어서 여인의 몸을 전환시킬 수 있으며, 스스로 숙명(宿命)을 알게 하느니라.
만일 다섯 가지 일을 받되, 하나는 범행이요, 둘은 어육을 끊는 것이고, 셋은 술을 끊는 것이고, 넷은 5신채(辛菜)를 끊는 것이고, 다섯은 고요한 데 있기를 좋아하는 것이니, 이 다섯 가지를 받고 지성으로 이 다라니를 믿으며 읽고 외우고 쓰면, 이 사람은 즉시에 77억 더러운 몸을 초월하게 되느니라.'”
이 때에 세존께서 다라니를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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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이 다라니를 받잡고, 아난이 있는 곳에 이르러 마군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마와 권속들아, 내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다라니주를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들으라.”
마왕들이 이 다라니를 듣고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 마의 업을 버리고 아난을 놓았다. 문수사리가 아난을 데리고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니, 아난은 부처님을 뵈옵고 지성으로 예경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분부하셨다.
“이 사라숲 밖에 수발타라는 범지가 있는데, 나이는 120세이다. 비록 5통(通)을 얻었으나 교만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비상비비상정(非想非非想定)을 얻고는 일체지(一切智)라는 마음을 내어 열반이라는 생각을 일으켰느니라. 네가 거기 가서 수발타에게 말하였다.
‘여래가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과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들리니, 만일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 때에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아난아, 너의 말이면 그가 믿을 것이니, 왜냐 하면 네가 지나간 옛적 5백 세 동안에 수발타의 아들이 되었는데, 그 사랑하는 애정이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인연으로 너의 말을 믿을 것이니라.”
그 때에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잡고 수발타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마땅히 알라. 여래께서 세상에 나심이 우담바라꽃 같은데, 오늘 밤중에 열반에 드실 것이니, 하려는 일이 있거든 이 때에 하고, 후일에 후회하지 말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좋습니다, 아난이여. 제가 지금 여래께서 계신 곳에 가겠습니다.”
아난은 수발타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돌아왔다. 이 때에 수발타는 문안을 여쭙고 이렇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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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담이여, 제가 지금 물으려 하오니, 제 뜻을 따라 대답해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발타여, 지금이 바로 그 때니, 그대의 마음대로 물으라. 나는 방편으로 그대의 뜻을 따라 대답하리라.”
“구담이여, 여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온갖 중생들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음은 모두 지난날에 지은 업의 인연이니, 만일 계행을 지니고 정진하여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받으면 본래의 업이 없어지고, 본래의 업이 다하면 모든 고통이 멸하고, 고통이 멸하면 곧 열반을 얻는다’ 하오니, 이 이치가 어떠하오니까?”
“선남자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으면, 나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그런 사람에게 갈 것이요, 가서는 물을 것이다.
‘당신이 참으로 이런 말을 하였는가?’
그 사람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였소. 왜냐 하면 구담이여, 내가 보니 중생들이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재물이 넉넉하고 몸이 자재한 이가 있으며, 또는 선한 일을 닦으면서도 빈궁하고 자재하지 못한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은 갖은 애를 써서 재물을 구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구하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얻는 이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을 하지 아니하여도 도리어 단명하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살생을 좋아하여도 장수하는 이가 있으며, 또 어떤 이는 범행을 깨끗이 닦고 정진하며, 계행을 지니면서 해탈을 얻는 이도 있고, 얻지 못하는 이도 있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중생이 괴롭고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은 다 지난날의 본래 업으로 말미암는다고 합니다.’
수발타여, 나는 다시 묻을 것이다.
‘당신은 참으로 과거의 업을 보았는가? 만일 과거의 업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가. 현재의 고행으로 얼마나 깨뜨릴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하고 다하지 못함을 알 수 있는가. 그 업이 다한다면 온갖 것이 다하느냐?’
저 사람이 ‘나는 진실로 알지 못하노라’라고 대답하면, 나는 그 사람을 위하여 비유를 말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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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몸에 독한 화살을 맞았을 때에 집안 권속들이 의사를 청하여 살을 뽑게 하였고, 살을 뽑은 후에 몸이 편안해졌다면 10년 후에도 이 사람은 분명하게 기억할 것이오. 이 의사가 나의 독한 살을 뽑고 약을 붙여 주었으므로 나의 살 맞은 자리가 나아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라고. 그런데 당신은 과거의 본래 업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현재의 고행으로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아는가?’
저가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당신도 지금 과거의 본래 업이 있다고 하면서, 무슨 연고로 나의 과거 업을 책망하는가? 구담의 경전에서도 말하기를, 만일 어떤 사람이 호화롭게 자재함을 보거든, 이 사람은 지난 세상에서 보시하기를 좋아한 줄을 알라 하였으니, 이런 것이 과거의 업이 아닌가?’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대답하리라.
‘그대여, 그렇게 아는 것은 비겨서 아는 것[比知]이요, 참으로 아는 것[眞知]이라 하지 않느니라. 나의 불법에는 혹은 인으로 말미암아 과를 알기도 하고, 혹은 과를 따라서 인을 알기도 하는 것이며, 나의 불법 중에는 과거의 업도 있고 현재의 업도 있거니와, 그대는 그렇지 아니하여 오직 과거의 업뿐이요 현재의 업은 없으며, 그대들의 법에는 방편을 따라서 업을 끊지 않거니와, 나의 법은 그렇지 아니하며, 방편으로 끊느니라. 그대는 업이 다하면 곧 괴로움이 다한다 하거니와, 나는 그렇지 아니하여 번뇌가 다하여야 업과 고가 다한다 하나니, 그러므로 내가 지금 그대의 과거의 업을 책망하는 것이라.’
저 사람이 만일 말하기를 ‘구담이여, 나는 실로 알지 못하거니와, 스승에게서 배운 것이요, 스승이 이런 말을 한 것이므로 나는 허물이 없노라’ 하면, 나는, ‘그대의 스승이 누구냐?’ 하겠고, 저가 대답하기를 ‘부란나요’ 하면, 나는 또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은 과거의 업을 아느냐고 낱낱이 묻지 않았느냐. 그대의 스승이 만일 나는 알지 못하노라 한다면, 그대는 어찌하여 스승의 말을 믿으며, 만일 내가 아노라 하거든, 다시 묻기를 (하품 고[下苦]의 인연으로 중품과 상품의 고도 받나이까? 중품 고의 인연으로 하품과 상품의 고도 받나이까? 상품 고의 인연으로 중품과 하품의 고도 받나이까?) 하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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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아니라 하거든, 다시 묻기를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의 과보는 오직 과거의 업뿐이요, 현재가 아니라고 하나이까?) 할 것이며, 또 묻기를 (이 현재의 괴로움이 과거에 있었나이까? 만일 과거에 있었다면, 과거의 업은 다 없어졌을 것이요, 만일 다 없어졌다면, 어찌하여 또 오늘의 몸을 받나이까? 만일 과거에는 없었고 현재에만 있다면, 어찌하여 중생의 괴로움과 즐거움은 다 과거의 업이라 하나이까?) 할 것이니라.
그대여, 만일 현재의 고행이 과거의 업을 깨뜨릴 줄을 안다면, 현재의 고행은 또 무엇으로 깨뜨리겠는가. 만일 깨뜨리지 못한다면 괴로움이 항상할 것이요, 괴로움이 만일 항상하다면, 어떻게 괴로움에서 해탈함을 얻는다 하겠는가. 만일 다른 행이 고행을 깨뜨릴수 있다면 과거에 이미 다하였을 것이거늘 어찌하여 괴로움이 있는가.
그대여, 이런 고행은 즐거운 업으로 하여금 괴로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또 괴로운 업으로 하여금 즐거운 과를 받게 할 수 있는가.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업으로 하여금 받지 않는 과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현재의 업보로 하여금 다음 생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다음 생의 업보로 하여금 현재의 업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업보로 하여금 없는 보[無報]를 짓게 할 수 있는가. 결정된 보로 없는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없는 보로 결정된 보를 짓게 할 수 있는가 할 것이니라.’
저가 만일 ‘구담이여, 그러할 수가 없노라’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하리라.
‘그대여, 만일 그러할 수 없다면, 무슨 인연으로 이 고행을 받는가. 그대는 결정코 과거의 업과 현재의 인연이 있는 줄을 알아야 할지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번뇌로 인하여 업을 내고, 업으로 인하여 보를 받는다고 했느니라. 그대여, 모든 중생이 과거의 업이 있고, 현재의 인이 있음을 알아야 하나니, 중생이 비록 과거에 장수할 업이 있더라도, 모름지기 현재에 음식의 인연을 힘입어야 하느니라.
그대가 만일 말하기를, 중생이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음이 결정코 과거의 본래 업의 인연으로 말미암는다 하면, 그 이치가 그렇지 아니하니라. 왜냐 하면 그대여, 마치 어떤 사람이 왕을 위하여 원수를 없애고, 그 인연으로 재물을 많이 받았다면, 이 재물로 인하여 현재의 즐거움을 받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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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 이런 사람은 현재에 즐거운 인을 짓고, 현재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또 어떤 사람이 왕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고, 그 인연으로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이 사람은 현재에 괴로운 인을 짓고, 현재에 괴로운 과보를 받는 것이니라. 그대여, 모든 중생들이 현재에 4대(大)와 시절과 토지와 인민들로 인하여 괴로움을 받고 즐거움을 받나니,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온갖 중생이 모두 과거의 본업만으로 인하여 괴로움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였노라.
만일 업을 끊는 인연의 힘으로 해탈을 얻는다 할진대, 모든 성인이 해탈을 얻지 못함은 무슨 까닭인가. 모든 중생의 과거의 본래 업이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연고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성인이 도를 닦을 때에, 이 도가 능히 처음과 나중이 없는 업을 막는다 했느니라. 만일 고행을 받는 것으로 도를 얻는다 하면, 온갖 축생들이 다 도를 얻을 것이니라. 그러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요, 몸을 조복할 것이 아니니라. 이런 인연으로 나의 경전에서 말하기를, 숲을 찍을 것이언정 나무를 찍을 것이 아니라 하였으니, 왜냐 하면 숲으로부터 공포가 생길지언정 나무로부터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니라. 몸을 조복하려면 먼저 마음을 조복할 것이라 하나니, 마음은 숲에 비유한 것이고, 몸은 나무에 비유한 것이니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나는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나이다.”
“선남자여, 그대는 어떻게 마음을 먼저 조복하였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먼저 생각하오니, 욕계는 무상하고 즐거움이 없고 깨끗지 아니하옵기에 색계가 항상하고 즐겁고 깨끗한 줄을 관찰하였사오며, 이런 관찰을 하여 마치니, 욕계의 결박이 끊어졌고 색처(色處)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 이름하였나이다. 다음에 또 색계를 관찰하니, 색계가 무상하여 등창과 같고 창질과 같고 독약과 같고 화살과 같사오며, 무색계가 항상하고 청정하고 고요하더이다. 이렇게 관찰하여 마치니, 색계의 결박이 다하였고 무색계를 얻었으므로, 먼저 마음을 조복하였다 이름하였나이다. 다음에 또 생각[想]을 관찰하니, 곧 무상하고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더이다. 이렇게 관찰하고는 비상비비상처를 얻었사오니, 이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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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상처는 곧 일체지며 고요하며 청정하여 타락함이 없고, 항상하여 변역하지 아니하오매, 그러므로 제가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가 어찌 능히 마음을 조복하였다 하겠느냐. 그대가 얻은 비상비비상정도 오히려 생각이라 이름하는 것이요, 열반이라야 생각이 없는 것이거늘, 그대가 어떻게 열반을 얻었다 말하겠느냐. 선남자여, 그대가 먼저는 능히 거친 생각을 꾸짖더니, 이제는 어찌하여 미세한 생각에 애착하느냐. 이 비상비비상처를 꾸짖을 줄을 알지 못하므로, 생각을 이름하여 등창 같고 창질 같고 독약 같고 화살 같다 하느니라. 선남자여, 그대의 스승인 울두람불은 영리하고 총명하지만 그래도 이 비상비비상처를 끊지 못하고 나쁜 몸을 받았거늘, 하물며 다른 사람일까 보냐.”
“세존이시여, 어찌하오면 모든 유를 능히 끊겠나이까?”
“선남자여, 만일 실상(實相)을 관찰하면, 이 사람이 능히 모든 유를 끊게 되느니라.”
수발타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실상이라 이름하나이까?”
“선남자여, 모양이 없는 모양[無相之相]을 실상이라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이름하여 모양이 없는 모양이라 하나이까?”
“선남자여, 온갖 법이 제 모양도 없고 남의 모양도 없고, 저와 남의 모양도 없고 인이 없는 모양도 없으며, 짓는 모양도 없고 받는 모양도 없고, 짓는 이의 모양도 없고 받는 이의 모양도 없으며, 법의 모양도 없고 법 아닌 모양도 없으며, 남녀 모양도 없고 장정 모양도 없으며, 티끌 모양도 없고 시절 모양도 없으며, 자기를 위하는 모양도 없고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고, 자기와 남을 위하는 모양도 없으며, 있는 모양도 없고 없는 모양도 없으며, 나는 모양도 없고 내는 이 모양도 없으며, 인(因) 모양도 없고 인의 원인 모양도 없고, 과(果) 모양도 없고 과의 결과 모양도 없고, 낮과 밤의 모양도 없고 어둡고 밝은 모양도 없으며, 보는 모양도 없고 보는 이 모양도 없으며, 듣는 모양도 없고 듣는 이 모양도 없으며, 깨닫는 모양도 없고 깨닫는 이 모양도 없으며, 보리의 모양도 없고 보리를 얻은 이 모양도 없으며, 업 모양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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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주인 모양도 없으며, 번뇌 모양도 없고 번뇌 주인 모양도 없나니, 선남자여, 이런 모양들이 멸한 곳을 진실한 모양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온갖 법이 모두 헛된 가짜이거든, 그것이 없어진 데를 참이라 하나니 이것을 실상(實相)이라 하고, 법계(法界)라 하고, 필경지(畢竟智)라 하고, 제일의제(第一義諦)라 하고, 제일의공(第一義空)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실상·법계·필경지·제일의제·제일의공을 하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성문보리(聲聞菩提)를 얻고, 중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연각보리(緣覺菩提)를 얻고, 상품 지혜로 관찰하므로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얻느니라.”
이 법을 연설할 때에, 10천 보살이 1생에 실상을 얻었고, 1만 5천 보살이 2생에 법계를 얻었고, 2만 5천 보살이 필경지를 얻었고, 3만 5천 보살이 제일의제를 깨달았으니, 이 제일의제를 제일의공이라고도 하고, 수릉엄삼매라고도 하느니라. 4만 5천 보살이 허공삼매를 얻었으니, 이 허공삼매를 광대(廣大)삼매라고도 하고, 지인(智印)삼매라고도 하느니라. 5만 5천 보살이 불퇴인(不退忍)을 얻었으니, 이 불퇴인을 여법인(如法忍)이라고도 하고, 여법계(如法界)라고도 하느니라. 6만 5천 보살이 다라니를 얻었으니, 이 다라니를 대염심(大念心)이라고도 하고, 걸림없는 지혜라고도 하느니라. 7만 5천 보살이 사자후(師子吼)삼매를 얻었으니, 이 사자후삼매를 금강삼매라고도 하고, 오지인(五智印)삼매라고도 하느니라. 8만 5천 보살이 평등삼매를 얻었으니, 이 평등삼매를 대자대비라고도 하느니라.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연각의 마음을 내었고, 한량없는 항하사 중생들이 성문의 마음을 내었고, 세간의 여자와 천상의 여자 2만억 사람들이 현재에서 여인의 몸을 변하여 남자의 몸을 얻었고, 수발타는 아라한과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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