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입문

위빠사나 입문

일시 : 불기 2542(1998)년 7월 8일 – 12일 (4박 5일)
장소 : 서울 성북구 길상사
법사 : 정원(正圓)

<목차>
삼 귀 의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한 기원
<약 어>

마음챙김에 의거한 위빠사나 수행
수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두 가지 양식의 수행
집중적인 수행을 위한 7 가지 조건
수행의 초심자와 경험자
마음챙김 수행을 위한 제언
마음챙김의 역할
마음챙김의 네 가지 대상 (四念處)

수행의 실제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
최초의 단계 –
좌선의 경우
마음챙김의 순서와 보고 내용
행선[걷는 수행]의 경우 –
기타 동작을 할 경우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의 중요성
인식과 느낌과 번뇌의 발생 과정
『대념처경(大念處經)』에 제시된
마음챙김 수행의 7 가지 이익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과 삼학(三學)
『청정도론』의 선정 수행의 주제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과 지혜의 향상
서른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요인들[七覺支]과 조건들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五根]의 균형
마음집중, 지혜,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극복해야 할 번뇌
1. 다섯 가지 덮개[五蓋]와 대치법
2. 마라[魔]의 열 가지 군대
3. 1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十觀隨染]
4. 열 가지 족쇄
聖人(四道四果)과 10가지 족쇄의 소멸

<부록 1>
마음챙김(싸띠팟타나)의 의미
0. 머리말
1. 마음챙김의 일곱 가지 이익
2. 싸띠팟타나의 어원 분석
3. 네 가지 마음챙김
4. 마음챙김 sati
5. 마음챙김의 특성 – 들뜨지 않음
6. 마음챙김의 기능 – 대상을 항상 관찰하고 있는 것
7. 마음챙김의 나타남[顯現]
– 대상과 직면하고 있음과 보호함
8.마음챙김의 직접적인 원인
9. 마음챙김은 지금 이곳에서(卽時性) – immediacy
10. 동시발생 – concurrence
11. 비상한 마음챙김 – extraordinary mindfulness
12. 결론

<부록 2>
대념처경(大念處經)
1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1.1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1.2 동작[行住坐臥]에 대한 마음챙김
1.3 분명한 앎[正知]
1.4 육체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厭逆作意]
1.5 네 가지 요소[四大; 地水火風]에 대한 관찰
1.6 묘지에서의 아홉 가지 관찰 [부정관(不淨觀)]
1.7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열 가지 이익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受念處]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4.1 다섯 가지 덮개[五蓋]에 대한 마음챙김
4.2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에 대한 마음챙김
4.3 여섯 가지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
4.4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에 대한 마음챙김
4.5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에 대한 마음챙김
4.6 네 가지 마음챙김의 이익

<부록 3.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참고 서적>

나모 따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다싸 (세 번)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존귀한 분, 공양받을만한 분,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께 경배합니다.

삼 귀 의
(Tisaraṇa)

붓담 사라남 갓차미
담맘 사라남 갓차미
상감 사라남 갓차미

두띠얌삐 붓담 사라남 갓차미
두띠얌삐 담맘 사라남 갓차미
두띠얌삐 상감 사라남 갓차미

따띠얌삐 붓담 사라남 갓차미
따띠얌삐 담맘 사라남 갓차미
따띠얌삐 상감 사라남 갓차미

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Saṅgaṃ saraṇaṃ gacchāmi

Dutiyaṃ pi 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Dutiyaṃ pi 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Dutiyaṃ pi Saṅgaṃ saraṇaṃ gacchāmi

Tatiyaṃ pi Buddhaṃ saraṇaṃ gacchāmi
Tatiyaṃ pi Dhammaṃ saraṇaṃ gacchāmi
Tatiyaṃ pi Saṅgaṃ saraṇaṃ gacchāmi

저는 부처님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저는 가르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저는 스님들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두 번째도 저는 부처님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두 번째도 저는 가르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두 번째도 저는 스님들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도 저는 부처님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도 저는 가르침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세 번째도 저는 스님들을 피난처로 하겠습니다.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한 기원
(慈觀)

∙지금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상가와 재가자들 모두가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많은 덕을 갖추신 고귀한 스승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한량없는 덕을 갖추신 부모님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도량에 살고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마을에 살고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지방에 살고있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상가의 모든 스님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사사(四事)의 모든 시주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국가의 정부가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도둑, 강도, 거짓말쟁이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한량없는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인간, 천상의 천신, 범천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지옥에서 범천에 이르는 모든 존재들이 항상 평온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행한 모든 선행에 의해서,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영원한 행복인 열반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바른 길을 따르고 잘못된 길을 따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만일 다시 태어나게 되더라도 위난과 고통과 재난과 적, 그리고 모든 악을 만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지금 발원한,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위한 기원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내가 행한 선행의 공덕이, 우리의 부모와 스승과 친척들과 수호신장과 천신들과 모든 존재들에게 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이 공덕에 의해 모든 존재들이 기뻐하기를 기원합니다.

<약 어>
본서에서 사용된 팔리 문헌에 대한 약어는 기본적으로 Critical Pāli Dictionary(CPD) Vol.1의 Epiloegomena에 따랐다.
주요 팔리 문헌은 다음과 같다.

AN Aṅguttara-Nikāya[增支部], PTS (Morris & Hardy),
Vols. I-VI, 1885-1910.
Dhp Dhammapada[法句經], PTS (O. von Hinüber &
K.R. Norman) 1994.
DN Dīgha-Nikāya[長部], PTS (T.W. Rhys Davids & J. E.
Carpenter), Vols.I-III, 1890-1911. Reprint, 1966-1976.
MN Majjhima-Nikāya[中部], PTS (V.Trenckner, Chalmers,
C.Rhys Davids), Vols. I-IV, 1888-1925.
Paṭis Paṭisambhidā-magga[無碍解道], PTS (Taylor), Vols. I-II,
1905-1907.Combined Reprint, 1979.
SN Saṃyutta-Nikāya[相應部], PTS (M.L. Feer),
Vols. I-VI, 1884-1904. Rerprint, 1960-1976.
Vism Visuddhimagga[淸淨道論], PTS (C. Rhys Davids),
Vols. I-II, 1920-21. Reprinted in one vol., 1975.

-a는 주석서를 의미한다. 예, DN-a는 Dīgha-Nikāya의 주석서인 Sumaṅgala-vilāsinī (PTS, Vol.I, T.W. Rhys Davids, J.E. Carpenter, 1886, Vols. II-III, W. Stede, 1931~1932)를 가리킨다.

<범례>
①는 PTS판 『상응부』 제5권, 2쪽, 13행에서 18행까지를 의미함.
② PTS판 『법구경』게송 200.

마음챙김에 의거한 위빠사나 수행
(Satipaṭṭhāna Vipassanā Bhāvanā)

수행에 들어가기에 앞서.

1. 수행이란 무엇인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체험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올바로 이해하려는 작업.

특히 여기에서 사용되는 수행이라는 용어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마음챙김 수행 또는 마음챙김에 의거한 위빠사나 수행, 즉 간단히 말하면 위빠사나 수행을 의미함을 미리 밝혀 둔다. 또 한 가지, 여기서 말하는 위빠사나 수행의 방법은 『대념처경(大念處經)』을 기본 교제로 하고, 『청정도론(淸淨道論)』을 보조로 하며, 구체적인 수행의 지침은 현대 미얀마의 선지식 마하시 사야도(1908-1982)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그 분의 제자들(우 판디타 사야도, 우 자나카 사야도, 우 실라난다 사야도, 우 쿤달라 사야도 등)의 가르침을 참조로 하면서 정리해 본 것이다. 이분들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부록 3> 참조.

2. 왜 수행을 하는가.
마음의 청정과 지혜를 얻어 궁극의 행복인 열반을 이루기 위하여.

3.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모든 괴로움이 소멸한, 궁극적인 마음의 평온과 안락인 열반.

시시한 쾌락을 버림으로써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지혜로운 이는 보다 큰 기쁨을 위해 시시한 쾌락을 기꺼이 버리리라.

4. 마음의 청정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번뇌[五蓋], 마음의 문제(심리적인 갈등, 노이로제, 콤플렉스 등)를 가라앉힌 상태.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 마음집중[禪定]의 힘으로 마음의 청정을 이룸.

5. 지혜란 무엇인가.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란 마음과 몸[名色; 五蘊, 十二處]의 정체를 바르게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즉, 마음과 몸은 항상 변하며[無常],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苦], 영원한 실체가 없다[無我]는 사실을 수행의 힘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을 말한다. 마음챙김[正念]에 의거한 위빠사나 수행으로 지혜를 얻음.

6. 수행자의 기본적인 마음가짐
수행에 임하는 수행자는 스스로 자신의 수행의 동기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기본적으로 불∙법∙승의 삼보(三寶)에 대한 신심과 수행 방법에 대한 신심, 그리고 수행을 하려고 하는 열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심이란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지성과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구도의 마음, 자유 – 칼라마경』참조, 서울: 고요한소리), 처음에는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법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의 마음을 지니고 수행을 시작할 수 있으면 된다. 수행이 진전되고 스스로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체험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약하던 신심은 확고한 확신으로 자리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은 언제나 제자들이 스스로 확인하도록 길을 제시하셨다. 이 길은 스스로 가야 하는 길이다. 열심히 그 길을 감으로써 얻어지게 되는 확신은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자신의 재산이 될 것이다. 수행을 해보려고 일으킨 마음은 귀한 기회를 만든 것이다. 기회는 올바른 노력과 올바른 방법에 의해서 현실화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나는 것임을 명심하며 부처님이 보증한 수행의 좋은 결실인 최상의 행복을 스스로 거두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이 수행자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다.
그 어느 누구의 말보다도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확인된 진실만이 자신의 참다운 의지처가 될 것이다.

두 가지 양식의 수행
수행에는 두 가지의 양식이 있다. 일정 기간 동안 일정한 장소에서 진행되는 집중적인 수행과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해 나가는 수행이 그 두 가지이다. 집중적인 수행은 수행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이므로 효과적으로 수행법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수행의 초보자는 일정 기간 동안의 집중수행을 통해서 수행법을 익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집중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에는 일상생활의 일부분을 할애해서 수행을 할 수 있다. 수행의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고, 수행할 열의가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수행은 가능할 것이다. 집중수행을 통해서 얻은 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살려 가면서 활용할 때, 수행의 참된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1.1 일정 기간 동안의 집중적인 수행 – 수련회, 안거.
생활 규범[戒] · 마음집중[定] · 지혜[慧]의 조화를 이루는 생활을 하면서 집중적으로 마음의 향상을 위해서 노력하는 수행.

1.2 일상 생활에서의 수행. – 가정과 일상의 사회 활동 가운데에서의 수행. 일상에서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항상 길러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조절하며 사는 것이 안정을 유지하는 길이라 하겠다.
마음은 들떠 흔들리기 쉽고, 지키기 어렵고 억제하기 어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 갖기를 활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곧게 하듯이 한다.

마음챙김을 기본으로 하여 질서 있는 생활을 해 나가며, 시간을 정해서 틈틈이 마음집중 수행을 해 나간다. 세상일에 부딪힐 때, 마음챙김을 놓치지 않으면서 대처해 나갈 수 있는 힘을 미리 미리 갖추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네 가지 고귀한 마음가짐[四無量心; 慈悲喜捨]을 정해진 시간에 닦는 것은 마음의 평온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자관(慈觀)의 실천을 바탕으로 항상 자기 자신과 모든 존재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갖는다.

집중적인 수행을 위한 7 가지 조건
1.적절한 거주처 – 주거 환경
2.가까운 탁발처 – 음식의 조달
3.바른 언어생활 – 법과 열반의 성취에 도움이 되는 말과 성스러운 침묵.
4.좋은 벗, 도반, 선지식과 함께 지낼 것. – 잘 다스려진 자기 자신은 좋은 스승. 자기야말로 자기의 주인. 어떤 주인이 따로 있을까.
자기를 잘 다룰 때, 얻기 힘든 주인을 얻은 것이다.

5.적절한 음식 – 건강의 유지
6.적절한 기후
7.적절한 자세 – 좌선과 행선을 할 때, 자신에게 가장 좋은 자세가 무엇인지 알아낼 것.
좌선의 경우, 중요한 것은 등을 바로 하고 앉는 것.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는 자신의 몸의 조건에 맞게 시도할 것.

수행의 초심자와 경험자
초심자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붓다의 말씀을 의지하고, 수행을 잘 지도해 주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법을 지도 받되, 수행은 자신의 힘으로 해 나아가는 것임을 명심하고 부지런히 정진해서, 스스로 마음이 청정해지고 지혜가 계발되는 방법을 자신의 몸으로 익혀야 한다. 수행은 실제적인 ‘길’이므로,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경험을 디딤돌로 해서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경험자의 경우는 이미 배워 익힌 방법을 항상 활용해 가면서 물러남이 없는 정진을 해 나갈 것. 이 생에서 聖人의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 노력을 더해 가며, 자신의 체험을 늘 돌아보며, 점검해 나가야 한다.

마음챙김 수행을 위한 제언
위빠사나 수행의 기반이며, 때로는 위빠사나 수행 그 자체를 의미하는 바른 마음챙김[正念]이란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현상 (복부의 움직임, 가려움, 통증, 저림, 뻣뻣함 등)을 있는 그대로 단순한 주위 집중(bare attention)을 통해서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즉, 현재 분명히 깨어 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심신의 모든 현상을 좋거나 나쁘다는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면서, 경험되는 그대로 명확하게 알아차리고 있는 것을 말한다.
마음챙김[正念]은, 파악된 현상에 대한 분명한 앎[正知]과 항상 짝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마음챙김은 단순한 작업이지만 쉽지는 않다. 끊임없는 마음챙김을 지니기 위해서는 강한 열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한 사람들만 마음챙김을 닦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듯이, (호흡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하나이므로, 마음챙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마음챙김 수행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수행을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바른 방법이다. 왜 수행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고, 수행에의 열의가 있는 사람이 바른 방법으로 쉬지 않고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스스로 얻게 될 것이다.
마음챙김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곧 육체적∙정신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몸은 익숙하지 않은 자세 때문에 여기 저기서 통증이 생겨나며, 마음은 쉴새없이 피어나는 생각들로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 때문에 다리가 아프고, 일상생활에서의 의식의 흐름이 수행을 시작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몸의 통증은 4-5일 정도 지나면 조금씩 덜어지게 되므로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을 끊어 버리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키므로 생각들이 일어나면 그 생각들을 단지 알아차리기만 하는 것이 마음챙김 수행의 핵심이다. 좋은 생각도 붙들지 말고 나쁜 생각도 없애려 하지 말라. 좋은 생각도 망상도 수행자에게는 마음챙김의 대상일 뿐이다. 생겨나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 단지 생겨난 현상을 생겨나는 바로 그 순간 알아차리려고 노력하라. 그러면 이러한 의식의 흐름은 점차 가라앉게 될 것이다. 이렇게 수행은 향상되어 가는 것이다.

마음챙김과 분명한 앎이 예리해지고 정확해지면, 마음집중(三昧)이 이루어지고 마음집중에서 현상들에 대한 올바른 앎(지혜)이 생겨난다.
마음집중과 지혜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마음에서는 번뇌, 갈등, 불안, 우울 등의 부정적인 요소들이 제거되어 나아가기 시작한다. 이 때가 되면 더욱 수행을 가속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며, 수행 자체가 행복과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게 해준다. 이는 깨달음의 7가지 요인(七覺支)이 경험되는 때이다. 하지만 좋은 현상들이 경험되더라도 이러한 현상에 집착하지 말고, 쉬지 말며 최종 목표에 이를 때까지 마음챙김을 지녀야 한다.

마음챙김의 역할
마음챙김은 일종의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역할을 한다. 이 문지기가 가려내는 적은 탐진치(貪瞋癡)가 근본이며, 이 적들에 대한 각각의 대치법의 근본에는 마음챙김(念; sati)이 항상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독특한 적들을 막아내는 힘이 약하다. 자신이 어떤 적들에 대해서 약한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청정도론』에서 말하는 여섯 부류의 인간의 성향여섯 부류의 인간의 성향은 각각의 성향에 맞는 수행의 주제와 함께 『淸淨道論』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性向          修行의 주제(業處)
(1)貪行(rāga-cariyā;貪欲이 많은 성향) 十不淨․身至念
(2)瞋行(dosa-c°;화내기 쉬운 성향) 四梵住․靑遍․黃遍․赤遍․白遍
(3)痴行(moha-c°;우둔한 성향)   出入息念
(4)信行(saddhā-c°;신앙이 깊은 성향)六隨念(佛․法․僧․戒․捨․天)
(5)覺行(buddhi-c°;지혜가 날카로운 성향) 死隨念․寂止隨念․界差別․食厭想
(6)尋行(vitakka-c°;사변적인 성향) 出入息念
(Vism 114-5)
<밑줄이 쳐진 부분은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보조적으로 사용되며, 身至念과 界差別은 위빠사나 수행에 직접 사용된다.>
은 자신의 성향과 수행의 주제를 이해하는데 참고가 될 것이다.
마음챙김은 마음에 발생하는 모든 현상에 대하여, 놓치지 않고 밀착해서 보는 것이며, 객관적으로 보는 것. 따라서 결과적으로 그 현상들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 ·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때 얻어지는 것이 지혜이다. 지혜에 의해 번뇌의 적을 다스린다.

마음챙김의 네 가지 대상 (四念處) 마음챙김의 네 가지 대상 (四念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부록 2>의『대념처경』번역을 참조.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경전에는 몸, 느낌, 마음, 법[身受心法]의 네 가지가 설해져 있다. 네 가지 대상은 간단하게 육체적인 현상[色; rūpa]과 정신적인 현상[名; nāma]으로 분류된다.

1.身念處 – 14 가지 육체적인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
육체와 그 동작(호흡·행·주·좌·와) 및 부정관(不淨觀)을 주제로 한 마음챙김.
(1)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2)가고, 서고, 앉고, 눕는 동작[行住坐臥]에 대한 마음챙김
(3)분명한 앎[正知]을 지니고 행동;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돌아올 때,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돌아볼 때, (팔 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 (탁발을 하기 위해서) 가사(승복)를 수하고(옷을 입고), 발우를 들 때,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 대소변을 볼 때, 가고, 서고, 앉을 때,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 말하거나, 침묵을 하고 있을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닌다.
(4)육체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厭逆作意]; 신체의 31(또는 32)가지 부분에 대한 상기(想起).
(5)네 가지 요소 –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四大; 地水火風]
<네 가지 요소 가운데 바람의 요소가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에서 일차적인 알아차림의 대상>
(6-14)9가지 묘지에서의 관찰. – 현재 이 수행은 시행되지 않고 있음

2.受念處 – 1 가지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정신적인 현상]
고(苦)·락(樂)·불고불락(不苦不樂)의 세 가지 육체적·정신적인 느낌[感受]에 대한 마음챙김.

3.心念處 – 1 가지 마음의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 [정신적인 현상] 8쌍 16 가지.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의식의 순간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특히 사소한 마음의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는 수행 중의 수행자의 마음 또는 의식의 순간들을 가리키고 있다.

(1)탐욕이 있는 마음[有貪心], 탐욕이 없는 마음[無貪心]
(2)성내는 마음[有瞋心], 성냄이 없는 마음[無瞋心].
(3)어리석은 마음[有癡心],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無癡心].
(4)침체된 마음, 산만한 마음.
(5)(선정 수행으로) 커진 마음[大心], (선정 수행을 닦지 않아) 커지지 않은 마음.
(6)(色界禪과 無色界禪 수행이) 향상된 마음, 향상이 안된 마음.
(7)(선정에 의해) 잘 집중된 마음, 집중이 안된 마음.
(8)(선정 수행에 의해 일시적으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解脫心],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非解脫心]을 (있는 그대로) 안다.

4.法念處 – 5 가지의 육체적∙정신적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
(1) 다섯 가지 덮개[五蓋; 욕망, 분노, 혼침과 졸음, 들뜸과 우울, 회의적 의심]
(2) 五蘊[色受想行識]
(3) 十二處[眼耳鼻舌身意와 色聲香味觸法]
(4) 七覺支[念, 擇法, 精進, 喜, 輕安, 定, 捨]
(5) 四聖諦[苦集滅道]

법에 대한 마음챙김은 법에 대해서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즉, 교리적으로 법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수행의 일차적인 주제와 수행 도중에 생기는 장애, 그리고 수행이 향상됨에 따라서 생겨나는 긍정적인 심신의 상태와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 등이 제시되어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법에 대한 마음챙김이라 하더라도 일차적인 마음챙김 수행의 대상은 오온(五蘊) 가운데 육체적∙물질적인 현상인 색온(色蘊)이다. 육체적∙물질적인 현상인 색온(色蘊)은 다름 아닌 신념처(身念處)의 대상이며, 십이처(十二處)의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과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이다.
다섯 가지 덮개[五蓋]는 수행을 시작하면서 곧 부딪히는 장애이다. 감각적인 욕망과 분노의 마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 속에서 부침하며, 좌선할 때의 혼침과 졸음은 수행자들의 오래된 벗처럼 슬며시 찾아온다. 마음은 들떠서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 과거의 잘못이 마음에 떠오르며 회한에 싸이기도 한다. 수행이 잘 진전되지 않을 때에는 불법승(佛法僧) 삼보와 수행법 또는 지도 법사에 대해서 회의적인 의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장애가 나타나면 즉시 알아차린 후,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마음을 빨리 가져가야 한다. 마음챙김의 힘이 강해지면서, 점차로 장애들은 극복되기 시작한다. 자세한 극복 방법은 다섯 가지 장애를 다스리는 법을 참조.
다섯 가지 덮개를 극복하면서 수행을 계속해 나아가면,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七覺支]가 경험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안정되며 수행에 대한 확신도 강해진다. 마음챙김[念覺支]이 더욱 예리해지고, 현상에 대한 이해[擇法覺支]가 심화된다. 좋은 현상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더욱 더 정진에 힘을 가하게 된다[精進覺支]. 마음에서 희열을 맛보기도 하며[喜覺支], 마음과 몸은 편안해지고 안정된다[輕安覺支]. 희열을 맛보며 안정된 마음은 더욱 집중을 이루게 되며[定覺支], 생겨났다가는 사라지는 현상들에 대해서 집착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평온이 유지된다[捨覺支]. 이처럼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七覺支]가 경험될 때, 이러한 긍정적인 현상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 수행의 핵심은 마음챙김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현상들도 마음챙김의 대상일 뿐이다. 경험되면 바로 알아차리고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을 알아차리는 일로 마음을 돌려야 한다.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七覺支]들을 일으키는 방법 참조.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七覺支]가 경험되면서 네 가지 고귀한 진리는 이론적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이해되게 된다. 괴로움의 고귀한 진리[苦聖諦], 괴로움의 발생의 고귀한 진리[苦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의 고귀한 진리[苦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고귀한 진리[苦滅道聖諦]가 체험적으로 파악되면서 성인의 도과(道果)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수행의 실제
본격적인 좌선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경직되어 있는 마음을 부드럽고 민첩하게 해주며, 정진에 힘을 불어넣기 위한 예비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먼저 삼배를 하면서 간절하게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붓담 사라남 갓차미
담맘 사라남 갓차미
상감 사라남 갓차미’

그리고 나서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자관(慈觀)을 한다.

나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자관을 마친 후,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관하며[死隨觀], 굳은 결의로 수행에 임할 마음을 일으킨다.

이 목숨 언제 끊어질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단 하나의 현상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리라

그리고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하면서 호흡에 동반되는 복부의 움직임[風界; 바람의 요소]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하여 알아차려 나간다.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
신수심법(身受心法)의 네 가지 대상 가운데에서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은 자신의 육체와 그 동작이다.
즉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處]이 마음챙김을 닦는 이들에게 있어서 수행의 첫 걸음이 된다.
육체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제반 현상들에 마음을 챙기면서 그 육체적인 현상에 수반되어 생겨나는 느낌을 포착해 가면서 수행은 자연스럽게 네 가지 대상(몸, 느낌, 마음의 상태, 법) 전체로 확산되어 가게 된다.

신념처를 마음챙김의 일차적인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육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보다 거칠어서 알아차리기가 쉽고, 변화도 더디기 때문에 마음집중[禪定] 수행의 기초가 없는 초보자들이 마음을 집중하는 데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최초의 단계 –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處] 수행에서의 마음챙김의 일차적인 대상과 보고의 내용

좌선의 경우
앉는 자세는 반가부좌나 결가부좌 어느 쪽도 좋음. 여러 가지 앉는 방법을 시도해 보아 가장 편하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자세를 스스로 찾아 익힌다. 주의해야 할 점은 허리를 바르게 펴 주는 것이다. 좌선을 처음 하거나 오랜만에 하는 이들은 누구나 다리와 등에서 통증을 느낀다. 앉는 자세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다리의 통증은 참아 내기보다는 포기하는 것이 낳다. 자세가 익숙해질 때까지는 자세를 바꾸어도 통증은 여전히 생기므로.
호흡은 자연스럽게 한다. 단전호흡이나 특별한 호흡법은 위빠사나 수행과는 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의도적인 호흡은 수행에 방해가 된다.

마음챙김의 순서와 보고 내용
1.자연스러운 들숨과 날숨에 동반되는 복부(배)의 움직임에 마음을 둘 것.
2.들숨에 따라 복부가 불러오면, ‘일어남’ 하고 마음속으로 알아차릴 것.
3.날숨에 따라 복부가 꺼지면, ‘사라짐’ 하고 마음속으로 알아차릴 것.
4.복부의 일어남과 사라짐에 수반되어 생겨나는 복부의 감각들을 주의 깊게 살필 것.
5.어떠한 감각들이 있었는가 기록해 두었다가 두드러진 현상들을 간단, 명료하게 보고할 것.
6.복부의 일어남·사라짐에 마음을 챙기고 알아차리는 도중에 자연스럽게 어떤 생각이나 몸의 느낌들이 생겨나면, 그 순간 파악 할 것. 파악한 후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가를 보고할 것.

행선[걷는 수행]의 경우 –
1.초보자들은 너무 빨리 걷거나 너무 느리게 걷지 말고 천천히 조금 느린 속도로 걷는다.
2.적당한 거리(10-20미터)를 왕복한다.
3.마음챙김의 순서 – 처음에 걸으려고 하는 의도에서 시작하여 주요 동작들에 마음을 챙긴다.
2 단계의 알아차림 :
좌선에서 행선으로 바꿀 때, 처음의 5분 정도는 굳어 있는 다리를 풀어 주기 위해서 보통의 걸음으로 걸으며, 왼발,오른발하며 각 걸음을 알아차린다.
3 단계의 알아차림 :
다리의 근육이 풀리면 걷는 속도를 느리게 하여 움직이고 있는 다리 동작의 각 단계를 ‘들음’, ‘나아감’, ‘놓음’이라는 3단계의 동작으로 나누어 알아차린다.
보다 느린 동작의 알아차림 :
마음챙김이 향상됨에 따라 걷는 동작의 각 단계가 더욱 세분된다. 5 단계 이상으로 세분되면서는 순간 순간의 움직이는 동작에 마음을 집중시켜 알아차린다.
4.이처럼 걸으면서 알아차려야 하는 현상은 발바닥에서 무릎 아랫부분의 다리의 감각들이다.
5.걷는 동작에 수반되어 일어나는 제반 감각들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어느 순간에 어떤 감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가를 알아차려 보고할 것.

기타 동작을 할 경우
(1)일상의 행동에 대한 마음챙김 – 분명한 앎[正知]의 적용
좌선에서 행선으로 또는 행선에서 좌선으로 자세를 바꿀 때에도 마음챙김을 놓아서는 안 된다. 자세를 바꾸려는 의도를 먼저 알아차리고, 천천히 움직이며 주요 동작들을 알아차린다. 식사∙ 세면∙목욕 등의 여타의 동작들과 한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옮겨가는 때의 마음의 상태(의도)와 몸의 움직임도 놓치지 말고 알아차릴 것. 일상적인 행동을 할 때에도 마음챙김을 놓쳐서는 안 된다. 마음챙김은 잠에서 깨어나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끊어짐 없이 이어져야 한다. 일상적인 동작을 할 경우에는 가장 두드러진 동작을 알아차린다. 밥 먹을 때에는 손의 동작에서 음식을 씹는 동작, 삼키는 동작 등으로 순간 순간의 두드러진 동작이 마음챙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수행의 핵심은 끊어짐 없는 마음챙김을 지니는 일. 즉 한 순간의 放心도 없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일이다.
(2)바른 언어생활
집중수행 기간 중에 법문을 듣거나 점검 때를 제외하고는 침묵(고귀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
일상적인 언어 활동은 마음을 집중시키는데 장애가 되므로 묵언하면서 오직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지 철저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수행 중에는 법에 대한 언어와 고귀한 침묵이 올바른 언어생활[正語]이다.

(3)수행의 주대상 –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
타인의 행동이나 말은 일차적인 관찰의 대상이 아니므로 신경쓸 필요가 없다. 오직 자신의 몸과 마음에 몰두해야 한다. 귀중한 시간을 틈내서 가지게 된 길지 않은 집중수행이므로 타인의 수행을 방해해서는 안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타인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위 하여야 한다. 특히 남에게 말을 거는 일은 가장 삼가야 한다.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의 중요성
가장 근본적인 번뇌인 탐욕과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 발생하는 것은 느낌에 의해서이므로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은 중요하다. 쉴새없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끊을 수는 없다. 하지만 느낌에 의해서 생기는 번뇌는 마음챙김을 통해서 다스려야 한다.
수행의 초기 단계에서는 좋은 느낌보다는 아프고, 싫은 느낌이 강하게 일어날 것이다. 특히, 좌선할 때에는 다리와 등에서 통증을 느끼게 되고, 더위와 가려움 등의 싫은 느낌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러한 느낌이 일어나면 아픔,아픔,가려움,가려움하면서 알아차린다. 이렇게 알아차림에 의해서 사라지는 느낌이 있는가 하면, 한 동안 지속되는 느낌들도 있다. 지속되는 느낌들에 대해서는 한 두 번 알아차린 후에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돌아오는 것을 권한다. 여러 가지 느낌들이 동일한 강도로 일어날 때에는 스스로 선택해서 알아차리면 된다. 앉는 자세가 익숙하지 않아 생기는 다리와 등의 통증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조금 통증을 느낀다고 자세를 바꾼다면 마음집중이 향상되지 않는다. 너무 통증이 심해져서 마음챙김 자체에 장애가 될 때에는 자세를 바꾸되, 자세를 바꾸는 과정의 모든 동작을 철저히 알아차리면서 바꾼다. 마음챙김은 사소한 동작에도 항상 밀착해서 동반되어야 한다.

인식과 느낌과 번뇌의 발생 과정
1.감각기관[六根]과 감각대상[六境]에 의해서 인식[六識]이 발생한다.
2.위의 세 가지가 어우러진 것이 접촉[六觸]이다.
3.접촉에 의해서 싫거나[苦], 좋거나[樂], 무덤덤한[不苦不樂] 느낌[受]이 생겨남.
4.마음챙김이 없을 때, 괴로운 느낌에서는 성냄[진심, 瞋心]이, 좋은 느낌에서는 탐욕[탐심, 貪心]이, 무덤덤한 느낌에서는 어리석음[치심, 癡心)이 생겨난다.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을 통해서 탐진치의 번뇌가 생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문지기 또는 방패로서의 마음챙김이다. 마음챙김이라는 문지기가 없으면, 탐진치의 번뇌들이 마음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

『대념처경(大念處經)』에 제시된 마음챙김 수행의 7 가지 이익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은 다음의 7 가지 이익을 얻기 위한 하나의 길(혼자서 가는 길, 유일한 길)이다.

(1)마음의 청정 – 번뇌의 제거,
(2)슬픔과 근심의 극복,
(3)비탄의 극복,
(4)육체적인 고통의 극복,
(5)정신적인 고뇌의 극복,
(6)네 가지의 도(道)와 과(果)의 성취,
(7)열반의 성취.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과 삼학(三學)
『청정도론(淸淨道論)』은 일곱 가지 청정을 내용으로 하여 계정혜(戒定慧)의 삼학을 밝힌 남방상좌불교의 고전적인 논서이다. 일곱 가지 청정과 삼학의 관계와 『청청도론』의 해당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七淸淨       『淸淨道論』    三學

①戒淸淨 1-2章 ──  戒學
②心淸淨 3-13章 ──  定學
③見淸淨 18章 ─┐
④度疑淸淨 19章 │   慧學(14-23章)중에
⑤道非道智見淸淨 20章 ├─ 慧體(18-22章)에 해당
⑥行道智見淸淨 21章 │
⑦智見淸淨 22章 ─┘

『청정도론』의 선정 수행의 주제  –  四十業處
(1)十遍; 地․水․火․風․靑․黃․赤․白․光明․限定虛空 (4-5章)
(2)十不淨; 膨張想․靑瘀想․膿爛想․斷壞想․食殘想․散亂想․斬斫離散想․血塗想․蟲聚想․骸骨想. (6章)
(3)十隨念; 佛隨念․法隨念․僧隨念․戒隨念․捨隨念․天隨念․死隨念․身至念․出入息念․寂止隨念. (7-8章)
(4)四梵住; 慈梵住․悲梵住․喜梵住․捨梵住. (9章)
(5)四無色定; 空無邊處․識無邊處․無所有處․非想非非想處. (10章)
(6)一想; 食厭想. (11章)
(7)一差別; 四界差別. (11章)

일곱 가지 청정[七淸淨]과 지혜의 향상

7 청정       지혜의 향상
(1)戒淸淨
(2)心淸淨 – (40 가지 수행의 주제; 四十業處)
(3)見淸淨 – 1.마음의 현상과 육체의 현상을 구별하는 앎
名色區別知; nāma-rūpa-pariccheda-ṇāṇa
(4)度疑淸淨 – 2.조건을 파악하는 앎
緣把握知; paccaya-pariggaha-ṇāṇa
(5)道非道智見淸淨 – 3. 현상들의 무상․고․무아에 대한 사유에 의한 앎 [思惟知]
sammasana-ṇāṇa
4-1. 발생과 소멸에 대한 앎
生滅隨觀知; udayabbayānupassanāñāṇa,-초기 단계
(이 단계에서 1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동반되는 번뇌[十觀隨染] 1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十觀隨染)에 대해서는 뒤의 수행을 통해서 극복해야 할 번뇌 참조.
가 생김)
(6) 行道智見淸淨 – 4-2. 발생과 소멸에 대한 앎 [生滅隨觀智] –
본격적인 단계.,
5. 소멸에 대한 앎 壞隨觀智
bhaṅgānupassanā-ṇāṇa,
6. 두려움에 대한 앎 怖畏隨觀智
bhayatupaṭṭhāna-ñāṇa,
7. 허물에 대한 앎 過患隨觀智
ādīnavānupassanā-ñāṇa,
8. 싫어해 멀리하는 앎 厭離隨觀智
nibbhedānupassanā-ñāṇa,
9 벗어나고자 하는 앎 脫欲智
muccitukamyatā-ñāṇa,
10. 되돌아 살펴보는 앎 省察隨觀智
paṭssaṅahānupassanā-ñāṇa
11. 모든 현상들에 대해서 초연한 앎 行捨智
saṅkhārupekkhā-ñāṇa
(7) 智見淸淨 12-16.네 가지 도(道)와 네 가지 과(果)에 대한 앎.

서른 일곱 가지 깨달음을 도와주는 법[三十七助道品]
(bodhipakkhiyā dhammā)

(1)사념처(四念處) cattāro satipaṭṭhānā, 네 가지 마음챙김
①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處]
②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受念處]
③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心念處]
④ 법에 대한 마음챙김[法念處]

(2)사정근(四正勤), 사정단(四正斷) cattāro sammappadhānā 네 가지 노력.
①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하고 온전치 못한 법은 생겨나지 않도록 의욕을 일으키고, 애쓰고, 정진하고, 마음을 책려(策勵)하고 노력함 [未生惡令不生]
②이미 생겨난 악하고 온전치 못한 법은 없애려고 의욕을 일으키고, 애쓰고, 정진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함. [已生惡令永斷]
③아직 생겨나지 않은 선한(온전한) 법은 생겨나도록 의욕을 일으키고, 애쓰고, 정진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함.[未生善令生]
④이미 생겨난 선한(온전한) 법은 유지시키고, 잃지 않도록 하며, 증장시키고, 많아지도록 하며, 계발하고, 완성시키도록 의욕을 일으키고, 애쓰고, 정진하고, 마음을 책려하고 노력함. [已生善令增長].

(3)사신족(四神足) cattāro iddhipādā, 네 가지 신통의 기반.
①욕신족(欲神足) 또는 욕여의족(欲如意足) : (신통을 얻으려고 하는) 의욕에 의해 생겨난 선정(禪定)과 노력의 힘을 갖춘 신통의 기반[足].
②정진신족(精進神足) : 정진에 의해 생겨난 선정(禪定)과 노력의 힘을 갖춘 신통의 기반.
③심신족(心神足) : 마음에 의해 생겨난 선정(禪定)과 노력의 힘을 갖춘 신통의 기반.
④사유신족(思惟神足) : 사유[관찰]에 의해 생겨난 선정(禪定)과 노력의 힘을 갖춘 신통의 기반.

(4)오근(五根) pañca-indriyāni,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 오근(五根)에 대한 설명은 상응부(相應部) 5권의 근상응(根相應)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특히, SN V, 196-199를 참조한다.

①믿음의 기능 [信根, saddhā-indriya] :
붓다의 깨달음[tathāgatassa bodhiṃ]에 대한 믿음. 불․법․승 삼보와 계에 대한 네 가지 불괴(不壞)의 정신(淨信)[aveccappasāda] 네 가지 불괴(不壞)의 정신(淨信)은 수타원과[預流果]의 네 가지 덕목(cattāri sotāpattiyaṅgāni)이다. 수타원의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믿음의 기능[信根]이 완성된다.
.
②노력의 기능 [精進根,viriya-indriya] : 사정근(四正勤)
③마음챙김의 기능 [念根 sati-indriya] : 사념처(四念處)
④마음집중의 기능 [定根samādhi-indriya] : 사선(四禪)
⑤지혜의 기능 [慧根paññā-indriya] :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앎.
성스러운 통찰에 의해 올바르게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생멸하는 현상에 대한 지혜의 성취. ‘그리고, 어디에서 혜근(慧根)을 보아야 하는가? 사성제(四聖諦)에서. 여기에서 혜근을 보아야 한다.’ kattha ca bhikkhave paññindriyaṃ daṭṭhabbaṃ. catusu ariyasaccesu. ettha paññindriyaṃ daṭṭhabbaṃ.
udayatthagāminiyā paññāya samannāgato ariyāya nibbedhikāya sammā- dukkhakhayagāminiyā.

(5)오력(五力) pañca balāni, 다섯 가지 마음의 힘. 팔리 니카야의 단계에서는 오력(五力)의 내용은 오근(五根)과 같다. AN III, 10-12, SN V, 219-20 참조.
오근과 오력의 차이에 대해서『지도론』[指導論, Nettippakaraṇa]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다름 아닌 오근이 정진의 힘에 의해서 오력이 된다. 지배한다(영향력이 있다)라는 의미로 근(根)이며, 동요되지 않는다(확고 부동하다) 라는 의미로 력(力)이다’
tāni yeva indriyāni viriya-vasena balāni bhavanti. adhipateyyaṭṭhena indriyāni, akampiyaṭṭhena balāni.
『무애해도』(無碍解道) Paṭisambhidāmaggo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신근은 확신의 의미라고 분명히 알아야한다.’
saddhindriyassa adhimokkhaṭṭho abhiññeyyo. Paṭis 16.14.
‘신력의 경우, 불신(不信)에 의해서 동요되지 않는 의미라고 분명히 알아야 한다.’
saddhābalassa assaddhiye/ akampiyaṭṭho/ abhiññeyyo <Paṭis 16.18> 이처럼 『무애해도』에서는 오력(五力)의 의미를 반대되는 사항[對治法]에 의해 동요되지 않는 힘으로 정의하고 있다.
다섯 가지 힘[五力]에 반대되는 사항이란 다음과 같다.
①믿음[信, saddhā] ↔ 불신[不信, assaddhiya]
②정진[精進, viriya] ↔ 게으름[懈怠, kossaja]
③마음챙김[念, sati] ↔ 방일[放逸, pamāda]
④마음집중[定, samādhi] ↔ 들뜸 또는 산만[散漫, uddhacca]
⑤지혜[慧力, paññā] ↔ 어리석음 또는 무명[無明, avijjā]

①믿음의 힘 [信力, saddhā-bala]
②정진의 힘 [精進力, viriya-bala]
③마음챙김의 힘 [念力, sati-bala]
④마음집중의 힘 [定力, samādhi-bala]
⑤지혜의 힘 [慧力, paññā-bala]

(6)칠각지(七覺支) satta bojjhaṅgā
①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 sati-sambojjhaṅga]
②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dhamma-vicaya-s°]
③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 viriya-s°]
④기쁨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 pīti-s°]
⑤(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 passaddhi- s°]
⑥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 samādhi-s°]
⑦평온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 upekkhā-s°].

(7)팔지성도(八支聖道), 팔정도(八正道)ariyo aṭṭhaṅgiko maggo

①바른 이해[正見] 지혜[慧]
②바른 사유[正思惟] (paññā)

③바른 언어[正語] 윤리[戒]
④바른 행위[正業] (sīla)
⑤바른 생계[正命]

⑥바른 노력[正精進] 마음집중[定]
⑦바른 마음챙김[正念] (samādhi)
⑧바른 마음집중[正定]

『대념처경』의 팔정도 설명. (DN II, 312-3)
①바른 이해 – 四聖諦에 대한 앎.
‘괴로움’에 대해서 아는 것, ‘괴로움의 발생’에 대해서 아는 것,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아는 것,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②바른 사유
감각적인 욕망이 없는 마음가짐[出離], 나쁜 의도[惡意]가 없는 마음가짐, 남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는 마음가짐.
③바른 언어[正語]
거짓말[妄語], 이간질하는 말[兩舌], 거친 말[惡口], 쓸모 없는 말[綺語]을 삼가함.
④바른 행위[正業]
살생을 하지 않음[不殺生],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음[不偸盜], 삿된 성행위를 하지 않음[不邪淫].
⑤바른 생계[正命]
잘못된 생계를 버리고 바른 생계에 의해서 생활하는 것. 『中部』117경(『四十大經』MN III, 75)에 의하면, 잘못된 생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기행위, 배신, 점, 예언, 속임수, 고리대금에 의한 생계.
『增支部』V, 177에 의하면 잘못된 생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기, 살아 있는 동물, 고기, 술, 독극물 등을 거래하는 상업 그리고 직업적인 군인, 어부, 사냥꾼.

⑥바른 노력[正精進] – 네 가지 노력[四正勤]
⑦바른 마음챙김[正念] –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
⑧바른 마음집중[正定] –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
(1)초선(初禪)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감각적인 욕망을 떨어버리고, 모든 온전하지 못한 법들[不善法]을 떨쳐 버리고 (마음집중의 대상에 대한)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있고, (감각적인 욕망 등에서) 멀리 떠남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喜, pīti]과 행복감[樂, sukha]이 있는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을 성취하여 거기에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벗들이여,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에는 다섯 가지 덮개[五蓋]가 끊어지고, 다섯 가지 선정의 요소[五禪支]가 갖추어진다.
[오개(五蓋)의 사단(捨斷)]
벗들이여, 여기에 첫 번째 마음집중에 도달한 비구에게는
①감각적 욕망에의 희구[kāmacchanda]가 끊어진다.
②악의[惡意, byāpāda]가 끊어진다.
③혼침과 졸음[thīna-middha]이 끊어진다.
④들뜨는 마음과 회한에 잠기는 마음[uddhacca-kukkucca]이 끊어진다.
⑤회의적인 의심[vicikicchā]이 끊어진다.
[오선지(五禪支)의 구족(具足)]
첫 번째 마음집중에 도달한 비구에게는
①거친 사유[尋, vitakka],
②미세한 사유[伺, vicāra],
③희열[喜, pīti],
④행복감[樂, sukha],
⑤하나의 대상에 대한 마음의 통일[心一境性, cittekaggatā]이 작용한다.
中部 43, 有明大經 MN I, 294.

*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에서 작용하는 다섯 가지 현상을 초선의 다섯 구성요소라고 한다. 그 가운데 거친 사유[尋, vitakka]와 미세한 사유[伺, vicāro]는 마음의 언어적인 작용[vaci-saṅkhāra]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의식의 이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淸淨道論』에 의하면, 거친 사유[尋, vitakka]는 물병을 잡는 행위에 비유되고, 미세한 사유[伺, vicāro]는 잡은 물병을 닦는 행위에 비유된다. 초선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하고 있지만, 수행의 대상에 마음이 완전히 몰입되어 있을 때, 미세한 사유는 산만함이 없어지고 탐색하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이 두 가지 초선의 요소는 제 2선(第二禪) 이후에는 완전히 없어진다.

(2) 제2선(第二禪)
다시 비구들이여,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가라앉고 마음의 정결함[sampasādana]과 전일성(專一性)이 있는, 거친 사유가 없고[無尋] 미세한 사유도 없는[無伺] 마음집중[samādhi]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감이 있는 제2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2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희열[喜], 행복감[樂] 그리고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3.

(3) 제3선(第三禪)
다시 비구들이여, 희열을 버리고, 평온[捨,upekkha]에 머문다.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을 지니고, 몸으로 행복을 경험하면서, 성자들이 `평온함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행복감에 머문다’고 한 제3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3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행복감[樂]과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4.

(4) 제 4선(第四禪)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감[樂]을 떠나고 괴로움[苦]도 떠나고,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애버린, 불고불락(不苦不樂)인, 그리고 평온(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또는, 평온과 마음챙김이 청정하게된; upekkhā-sati-pārisuddhi) 제4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4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평온[捨]과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4.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마음집중[正定]이라고 한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깨달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요인들[七覺支]과 조건들 DN-a III, 786-96.

1 마음챙김[念]을 생기게 하고 향상시키는 4 가지 방법
①분명한 앎과 함께 마음챙김을 지닐 것.
②마음이 혼란한 이들을 멀리할 것.
③마음챙김을 지니고 있는 이들과 가까이 할 것.
④마음챙김에 마음을 기울일 것.

2 법에 대한 고찰[擇法]을 생기게 하고 향상시키는 7 가지 방법
①부처님의 가르침,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사대(四大),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탐구.
②자신의 몸과 주위 환경을 깨끗이 할 것.
③오근(五根)의 균형을 이룰 것.
④어리석은 이들을 멀리할 것.
⑤지혜로운 이들과 가까이 할 것.
⑥부처님의 가르침을 탐구하여 깊이 있게 사유할 것.
⑦법에 대한 고찰에 마음을 기울일 것.

3 용맹스런 정진(精進)을 생기게 하고 향상시키는 11 가지 방법
①삼악도(三惡道)의 고통에 대해서 생각할 것.
②정진의 이로움에 대해서 생각할 것.
③붓다와 독각(獨覺)과 위대한 제자들이 정진에 의해서 도(道)를 이루었음을 생각할 것.
④제공받는 음식에 대해 고마움을 생각할 것.
⑤부처님의 법의 유산의 위대함에 대해서 생각할 것.
⑥스승이신 부처님의 덕에 대해 생각할 것.
⑦자신이 부처님의 제자임을 생각할 것.
⑧사리풋타와 목갈라나 존자 등의 부처님의 위대한 제자들을 생각할 것.
⑨게으른 이들을 멀리할 것.
⑩열심히 정진하는 이들과 가까이 할 것.
⑪정진에 마음을 기울일 것

4 기쁨[喜]을 생기게 하고 향상시키는 10 가지 방법
①부처님[佛]의 덕에 대하여 생각할 것.
②가르침[法]의 덕에 대하여 생각할 것.
③상가[僧]의 덕에 대하여 생각할 것.
④계행[戒]에 대해서 생각할 것.
⑤베풂[捨]에 대해서 생각할 것.
⑥천상[天]에 대해서 생각할 것.
⑦적정(寂定) 즉, 열반에 대해서 생각할 것.
⑧마음씀과 행동이 거친 이들을 멀리할 것.
⑨마음이 맑고, 부드러운 이들과 가까이 할 것.
⑩기쁨에 마음을 기울일 것

5 심신의 평안[輕安]을 생기게 하고 향상시키는 7 가지 방법
①몸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적절한 음식을 취할 것.
②수행하기에 적적할 기후에서 지낼 것.
③안정되고 편안한 자세로 지낼 것.
④업은 자신의 것, 자기는 자기의 업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생각할 것.
⑤들떠서 안정되지 못한 이들을 피할 것.
⑥안정된 이들과 가까이 할 것.
⑦평안에 마음을 기울일 것

6 마음집중[定]을 생기게 하고 향상시키는 10 가지 방법
①자신의 몸과 주위 환경을 깨끗이 할 것.
②오근(五根)의 균형을 이룰 것.
③마음집중의 대상(kasiṇa)에 익숙할 것.
④침체된 마음을 택법(擇法), 정진(精進) 기쁨으로 고무시킬 것
⑤들뜬 마음을 평안[輕安], 마음집중[定], 평온[捨]으로 가라앉힐 것.
⑥소침해진 마음은 부처님의 덕 등을 생각하면서 밝게 할 것.
⑦수행이 균형을 유지하며 잘 지속 될 때는 평온[捨]을 생각하며 수행을 지속시켜 나갈 것.
⑧마음이 잘 집중되지 않은 이들을 멀리할 것.
⑨마음이 잘 집중되어 있는 이들과 가까이 할 것.
⑩마음집중에 마음을 기울일 것

7 평온[捨]을 생기게 하고 향상시키는 5 가지 방법
①존재나 사람들에 대해서 초연한 자세를 지닐 것
②사물들에 대해서 초연한 자세를 지닐 것.
③다른 존재들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멀리할 것.
④사물에 대해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멀리할 것.
⑤평온에 마음을 기울일 것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五根]의 균형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五根)의 균형 잡기에 대해서는 우 자나카 사야도의 『위빠사나 수행』(서울: 경서원, 1998) 140-52쪽 참조 바람.

①믿음[信]과 지혜[慧]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②마음집중[定]과 정진(精進)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③마음챙김[念]은 믿음과 지혜, 마음집중과 정진이 균형을 이루도록 해주므로 언제나 필요하다. 마음챙김은 강하면 강할수록 바람직하다. 부처님께서는 마음챙김은 어느 곳에서나 바람직하다고 하셨다. 지나친 마음챙김이란 있을 수 없다. 마음챙김은 약방의 감초이며, 모든 음식의 맛을 내는 소금이며, 왕의 모든 일을 맡아보는 대신이다. 마음챙김은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마음집중[禪定, 止, samatha 사마타], 지혜[智慧, 觀, vipassana 위빠사나], 마음챙김[念, sati 싸띠]

마음집중이 없으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如實하게] 보는 지혜는 생기지 않는다. 마음챙김은 마음집중과 지혜의 공통되는 기반이다.
마음집중은 번뇌를 일시적으로 억누르고, 지혜는 번뇌를 잘라 내버린다.
수행자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사마타 행자와 위빠사나 행자이다.
사마타 행자(行者)란 사선(四禪) 또는 팔선(八禪)의 마음집중을 먼저 닦아, 완전한 마음집중[安止定]의 힘으로 다섯 가지 덮개를 억누른 후, 위빠사나를 닦는 수행자이다.
위빠사나 행자는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이나, 40 가지 선정 수행의 주제 가운데 네 가지 요소에 대한 관찰[四界差別]에 의해서 특별한 마음집중 수행이 없이 처음부터 대상을 관찰하는 수행자를 말한다. 위빠사나 행자는 완전한 마음집중이 아니라 순간적인 마음집중[刹那定]에 의해 다섯 가지 덮개를 억누르며, 수행을 해 나간다. 위빠사나 수행의 기반이 되는 마음집중은 따라서 찰나정임을 알 수 있다.

수행을 통해서 극복해야 할 번뇌
위빠사나 수행에서의 번뇌에 대한 대치법은 간단하다. 어떠한 번뇌가 생겨나도 생겨나는 그 순간에 즉각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챙김이라는 방패로 모든 번뇌를 대처한다는 의미이다. 끊어짐이 없는 마음챙김만이 번뇌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번뇌가 생기면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알아차림을 지니려 해야 한다. 수행의 초보 단계에서는 번뇌의 힘이 강하고 마음챙김이 약하므로 수행 자체가 쉽사리 진행되지 않는다. 무리하게 번뇌와 정면으로 맞부딪히려 하지 말고 마음챙김을 지니려고 노력하라. 마음챙김이 강해질수록 번뇌의 거센 물결은 점차 가라앉게 될 것이다.
다음에 제시되는 번뇌와 대치법은 경전과 주석문헌을 참고로 하여 정리한 것이다. 번뇌를 극복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조언이므로 잘 새겨서 기억해 두면 좋을 것이다.

1. 다섯 가지 덮개[五蓋]와 대치법 中部『念處經』주석; MN-a I, 281-6 = 長部 『大念處經』주석 : DN-a III, 778-82.

(1)감각적인 욕망을 없애는 6 가지 방법
①부정관을 할 것.
(不淨相의 획득; asubbha-nimittassa uggaho)
②부정관에 전념할 것.
(부정관 수행에의 노력; asubbha- bhāvāanuyogo)
③감각기관을 잘 제어할 것.
(감각기관의 보호; indriyesu guttadvāratā)
④음식에 대해서 소중한 생각을 지니고 양을 조절할 것.
(식사의 양을 알 것; bhojane mattññutā)
⑤도심이 굳은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
(선지식; kalyāṇa-mittatā)
⑥감각적 욕망에 대한 말을 피하고 욕망을 제어하는 말을 할 것.
(적절한 말; sappāyakathā)

(2)분노[惡意]를 없애는 6 가지 방법
①자관(慈觀)을 닦을 것.
(慈相의 획득; mettānimittassa uggaho)
②자관(慈觀)에 전념 할 것.
(慈觀 수행에의 노력; mettābhāvanānuyogo)
③업은 자신의 것임을 생각할 것.
(자신이 지은 업의 자성을 관찰; kammassakatāpaccavekkhaṇā)
④자관의 좋은 점과 분노의 해로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것.
(관찰을 많이 닦을 것; paṭisaṅkhānabahulīkatā)
⑤분노를 잘 다스리는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
(선지식; kalyāṇa-mittatā)
⑥자관의 이로움과 분노의 불이익에 대한 말을 할 것.
(적절한 말; sappāyakathā)

(3)혼침과 졸음을 없애는 6 가지 방법 수행 도중 졸음에 시달리던 목갈라나 존자에게 부처님이 일러주신 졸음을 극복하는 방법.
① 졸음의 원인이 되는 생각들을 떨쳐 버릴 것.
② 이전에 들은 가르침(法)을 상기할 것.
③ 가르침을 자세하게 반복해서 생각하며 외울 것.
④ 양 귓불을 잡아당기고 팔 다리를 문지를 것.
⑤ 자리에서 일어나 찬물로 눈을 씻을 것.
⑥ 광명상(光明想)에 주의를 기울일 것.
⑦ 경행(걷는 수행)을 할 것.
⑧ 사자와 같이 누워서 쉬되 일어날 시간을 정하고 잠에 들 것

①혼침과 졸음의 원인이 과식에 있음을 알 것.
(과식에 대한 相의 획득; atibhojane nimittaggāho)
②자세를 바꿀 것.
(威儀의 전환; iriyāpatha-samparivattanatā)
③광명상(光明想)을 닦을 것.
(광명상의 사유; ālokasaññā-manasikāro)
④지붕이 없는 곳에서 수행할 것.
(露地에서 머물 것; abbhokāsavāso)
⑤잠자기를 즐기지 않는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
(선지식; kalyāṇa-mittatā)
⑥수면의 불이익과 깨어 있음의 이로움에 관한 말을 할 것.
(적절한 말; sappāyakathā)

(4)들뜸과 우울(회한)을 없애는 6 가지 방법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배울 것.
(多聞할 것; bahussutatā)
②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돼는 일을 두루 물을 것.
(널리 물을 것; paripucchakatā)
③계율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
(율에 대한 분명한 앎; vinaye pakataññutā)
④계를 잘 이해하고 지키는 연장자[長老]와 함께 지낼 것.
(老長老를 가까이 모실 것; vuddhasevitā)
⑤들뜸과 우울을 잘 다스리는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
(선지식; kalyāṇa- mittatā)
⑥들뜸과 우울의 해로움과 마음의 고요함의 이로움에 관한 적절한 말을 할 것.
(적절한 말; sappāyakathā)

(5)회의적 의심을 없애는 6 가지 방법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배울 것.
(多聞할 것; bahussutatā)
②불법승 삼보에 대한 의심이 있으면 질문을 하여 의심을 풀 것.
(널리 물을 것; paripucchakatā)
③계율을 잘 이해하고 있을 것.
(율에 대한 분명한 앎; vinaye pakataññutā)
④삼보의 진실함에 대한 믿음을 기를 것.
(신심[勝解]을 많이 닦을 것; adhimokkhabahulatā)
⑤삼보에 대한 신심이 지극한 좋은 벗을 가까이 할 것.
(선지식; kalyāṇa- mittatā)
⑥의심의 해로움과 의심을 없애는 일의 이로움에 대한 적적한 말을 할 것.
(적절한 말; sappāyakathā)

<다섯 가지 덮개와 대치법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섯 가지 장애와 그 극복 방법』(서울: 고요한소리, 1988) 참조.>

2. 마라[魔]의 열 가지 군대 『숫타니파타』「大品」,「정진경」Padhāna-sutta, Sn 436-8. 마라[魔]의 열 가지 군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U Paṇḍita Sayadaw, In this very Life; The Liberation Teachings of the Buddha, pp.63-95 참조.

①감각적 쾌락; kāma.
②불쾌[憂愁]; arati.
③배고픔과 목마름[飢渴]; khuppipāsā.
④갈망[渴愛]; taṇhā.
⑤혼침(昏沈)과 졸음[睡眠]; thīna-middha.
⑥공포; ābhīrū.
⑦회의적 의심[疑]; vicikicchā.
⑧자신의 잘못을 감추는 것[僞善]과 고집; makkho, thambho.
⑨이익, 칭찬, 존경받음, 잘못 얻은 명성; lābho, siloko, sakkāro, micchāladdho yaso.
⑩자신에 대한 칭찬과 타인에 대한 비방; attānaṃ samukkaṃse pare avajānati.

3. 1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十觀隨染]
1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十觀隨染]는 모두 처음 위빠사나 수행을 열심히 하는 수행자에게만 생기는 번뇌이다. (Vism 633-8)
①마음속에서 강한 빛을 경험하기도 하고[光明 ochāsa],
②예리한 이해력이 생겨 경전이나 교리의 깊은 의미를 꿰뚫듯이 이해되기도 하며[知 ñāṇa],
③몸의 전율을 느끼는 희열이 생기기도 하고[喜 pīti],
④몸과 마음은 아주 안정되어 편안해지며[輕安 passaddhi],
⑤마음에서 강렬한 즐거운 느낌을 느끼기도 하며[樂 sukha],
⑥강한 신심이 생겨나기도 하고[勝解 adhimokkha],
⑦더욱더 수행에 전념하여 정진을 하며[努力 paggaho],
⑧흔들림 없는 마음챙김이 뚜렷하게 항상 자리잡고 있기도 하고[現起 upaṭṭhāna],
⑨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현상들에 대해서 마음은 더욱더 무덤덤해지며[捨 upekkhā],
⑩이러한 제 현상들에 대하에 미세한 집착과 욕망이 일어난다[欲求 nikanti].
光明․知․喜․輕安․樂는 모두 위빠사나 수행을 함으로써 생겨나는 현상이다. 勝解는 강한 믿음이며, 노력은 정진(viriya)을 말한다. 現起는 마음챙김[念, sati]이다. 위빠사나와 관련되어 있는 흔들림이 없는 마음챙김이 생긴다. 捨는 위빠사나의 捨이다. 이 捨가 생기면, 모든 현상[一切行]에 대하여 탐착과 싫어함을 떠난 중간의 입장이 된다(majjhattabhūtā).마지막의 욕구는,光明 등에 의해 장엄된 위빠사나에 대해서 집착을 일으켜, 미세하며, 고요한 형태를 지닌 欲求를 말한다. okāsādi-paṭimaṇḍitāya hi ‘ssa vipassanāya ālayam kurumānā sukhumā santākārā nikanti upajjati. Vism 636

이렇게 10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가 생길 때,’나는 道를 얻었다. 나는 果를 얻었다.’라고 도가 아닌 것[非道]을 道라고 집착하며, 깨달음이 아닌 것[非果]을 깨달음[果]이라고 집착한다. maggappatto ‘smi ! phalappatto ‘smīti amaggam eva maggo ti, aphalam eva ca phalan ti gaṇhā ti.
Vism 637.

따라서 10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에 대해서 견해의 집착[見執, diṭṭhigāha], 나라고 하는 집착[慢執, mānagāha], 더욱 갈망하는 집착[愛執, taṇhāgāha]이 생겨나서 3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三十觀隨染]가 된다.
이 30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에 대해서, 이것들은 無常하며, 만들어진 것들[有爲]이며, 조건에 의해 생겨난 것[緣已生]이며, 소멸해 버리는 현상[滅盡法]이며,,사라져 버리는 현상[消滅法]이며, 탐착을 해서는 안될 현상[離貪法]이며, 멸하는 현상[滅法]이다라고 anicco saṅkhato paṭiccasamuppanno khaya-dhammo vaya- dhammo virāga-dhammo nirodha-dhammo ti. Vism 637.
지혜에 의해 고찰해서 이러한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에서 벗어나서,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는 非道이며, 바른 길로 이끄는 위빠사나의 앎은 道라고 확실하게 이해한다. 이것이 도비도지견청정(道非道智見淸淨)이다.
견청정(見淸淨)에서 명색구별(名色區別)에 의해 苦諦의 분석을 행하고, 도의청정(度疑淸淨)에서 연파악(緣把渥)에 의해 集諦의 분석을 행하며, 도비도지견청정(道非道智見淸淨)에서 正道의 강조에 의해 道諦의 분석을 행한다. 이 세 가지 청정에 의해서, 세 가지 진리[三諦]에 대한 분석이 행해진다. 즉, 괴로움의 진리[苦諦]․발생의 진리[集諦]․길의 진리[道諦]에 대하여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4. 열 가지 족쇄 DN III, 234.

5하분결(五下分結); 욕망의 세계[欲界]에 존재를 붙들어 매는 번뇌.
pañcannam orambhāgiyānaṃ samyojanānam
① 유신견(有身見) 또는 자신견(自身見) – 오온을 영원한 자아와 관련 지워 보는 견해. sakkāyadiṭṭhi
② 회의적 의심 – 삼보와 수행법 등에 대한 의심. vicikicchā
③ 계율이나 금지 조항에의 집착[戒禁取見]. sīlabbataparāmāso
④ 감각적 욕망[愛慾]. kāmacchando
⑤ 악의 – 분노. vyāpādo

5상분결(五上分結); – 미세한 물질의 세계[色界]와 정신의 세계[無色界]에 존재를 붙들어 매는 번뇌.
pañcannam uddhambhāgiyānaṃ samyojanānam
⑥ 색계에 대한 욕망. rūparāgo
⑦ 무색계에 대한 욕망. arūparāgo
⑧ 아만. māno
⑨ 들뜸. uddhaccaṃ
⑩ 어리석음[無明]. avijjā

聖人(四道四果)과 10가지 족쇄의 소멸 MN I, 34.

聖人 10 가지 족쇄의 소멸

흐름에 들어선 분 – 預流, sotāpanno (1-3의 소멸)
한 번 오는 분 – 一來 sakadāgāmī (1-3의 소멸, 4-5의 약화)
돌아오지 않는 분 – 不還 anāgamī (1-5의 소멸)
공양받을만한 분 – 阿羅漢 ārahato (1-10의 소멸)

<부록 1> 마음챙김(싸띠팟타나)의 의미
(The Meaning of Satipaṭṭhāna)

사야도 우 판디타 비왐사
Sayadaw U Panditābhivamsa

0. 머리말
사야도 우 판디타께서는 자주 마음챙김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는 수행 도중에 생겨나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대상들을 알아차리고 관찰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을 설명하기 위하여 어원학적인 분석방법(etymology)을 사용한다.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싸띠팟타나’라는 용어에 대한 자세하며 그리고 실제적인 설명은 사야도의 신용이 걸려있는 설명이다. 이 설명은 수행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공식이며 비결이다. 만일 누구라도 여기에서 제시되는 설명을 자신의 수행에 정확하게 적용시킨다면, 법(dhamma)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in no time; ⓟ akāliko)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 가운데 법보에 해당하는 법(dhamma)의 여섯 가지 덕목 가운데 하나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akāliko)’ 도(道)와 과(果), 그리고 열반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즉, 올바른 수행을 하면, 그 결과로 수타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깨달음과 열반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체험된다는 것이 법이 지니고 있는 덕목의 하나이다.
법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덕목이 있으며, 세 번째 덕목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음’이다.
① 잘 설해져 있음(svākkhāto), ② 지금 이곳에서 경험될 수 있음(sandiṭṭhiko), ③ 시간을 지체하지 않음(akāliko), ④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ehipassiko), ⑤ 열반으로 이끌어 줌(opanayiko), ⑥현명한 사람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체험되는 것(paccattaṃ veditabbo viññūhi).
법의 여섯 가지 덕목은 『청정도론』의 ‘법에 대한 마음챙김’(dhammānussati)을 해설하는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어져있다. Vism 213-218. 참조.
열려질 것이다.

1. 마음챙김의 일곱 가지 이익
마음챙김 수행에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의 이익이 있다. 마음챙김 수행의 일곱 가지 이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우 자나카 사야도,『위빠사나 수행』 pp.84-95참조.
마음챙김 수행의 일곱 가지 이익은 장부(長部)경전 속의『大念處經』(DN, II. pp.290.9-12)에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육체의 고통과 정신적 고뇌를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하나의 길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
‘ekāyano ayaṃ, bhikkhave, maggo sattānaṃ visuddhiyā, sokapariddavānaṃ samatikkamāya, dukkhadomanassānaṃ atthagamāya, ñāyassa adhigamāya, nibbānassa sacchikiriyāya. yadidaṃ cattāro satipaṭṭhānā.’

① 마음의 청정 sattānaṃ visuddhiyā
② 슬픔의 극복
③ 비탄의 극복 soka-pariddavānaṃ samatikkamāya
④ 육체적인 고통의 소멸
⑤ 정신적인 고뇌의 소멸 dukkha-domanassānaṃ atthagamāya
⑥ 올바른 길[八正道]에 도달함 ñāyassa adhigamāya
⑦ 열반의 성취 nibbānassa sacchikiriyāya

2. 싸띠팟타나의 어원 분석
팔리어의 싸띠팟타나satipaṭṭhāna는 일반적으로 ‘마음챙김의 네 가지 기반’ (Four foundations of mindfulness)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여러 단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복합어를 분석하고, 분석한 단어들의 의미를 각각 검토함과 동시에 복합어의 의미를 검토해 봄을 통해서 이 말의 전체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satipaṭṭhāna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구성되어있다.
sati + paṭṭhāna 또는 sati + pa + (ṭ)ṭhāna

싸띠 sati라는 말은 ‘기억하다 (samsarati)’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어근(語根)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하지만, 마음의 기능의 하나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기능(mental faculty)’이란 수행자가 갖추어야할 다섯 가지 덕목으로서의 오근(五根)을 말한다. 오근은 믿음[信], 노력[精進], 마음챙김[念], 마음집중[定], 지혜[慧]를 말한다.
로서의 싸띠는 ‘과거를 기억하는 기능’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현전(現前, presence of mind), 현재에 대한 주의 집중(attentiveness of the present), 분명한 알아차림(awareness), 충분히 깨어있음(wakefulness), 그리고 주의 깊음 (heedfulness)을 의미한다.
파타나 paṭṭhāna라는 말은 ‘긴밀하고(close), 확고하며(firm), 흔들리지 않는(steadfast) 확립 establishment, 적용 application, 세우는 일 setting up을 의미한다.
이 두 말을 결합해 보면, 복합어의 의미는 ‘관찰 대상에 대한, 긴밀하고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알아차림의 확립’이 된다. 이러한 종류의 알아차림을 ‘확고 부동하게 잘 정립된 마음챙김’(suppatiṭṭhita sati; steadfast mindfulness)이라고 한다.

3. 네 가지 마음챙김‘네 가지 마음챙김’이란 사념처(四念處, ⓟ cattāro satipaṭṭhānā)를 말한다. 영어로는 ‘The four foundations of mindfulness’로 번역한다. 직역하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 또는 기반’이지만 간단하게 ‘네 가지 마음챙김’으로 옮겨 본다.

네 가지 마음챙김에는 오직 하나의 가장 중요한 본질(a single essence)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마음을 챙기고 관찰하는 것’(mindful contemplation of natural phenomena)이다. 이러한 마음을 챙긴 관찰이 네 가지 대상에 적용될 때, 다음의 네 가지로 분류된다.
(1) 육체적인 현상(kāya),
(2) 느낌 또는 감각 (vedanā),
(3) 마음의 여러 가지 상태(citta),
(4) 마음의 여러 가지 대상(dhammā).
네 번째 마음의 여러 가지 대상(dhammā)에는, 수행의 장애인 다섯 가지 덮개[五蓋] 수행의 장애인 다섯 가지 덮개(五蓋; pañca-nīvaraṇa) : 수행을 시작하면서 경험되는 번뇌로 다섯 가지가 있다. ① 감각적 욕망(kāmacchanda), ② 악의(惡意, 분노)(vyāpāda), ③ 혼침(마음이 혼미함)과 졸음(thīna-middha), ④ 들뜸과 회한(우울)(uddhacca-kukkucca), ⑤ 회의적 의심(vicikiccaha).
,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 色受想行識], 일상적인 행동영역인 여섯 감각기관[六內處; 眼耳鼻舌身意]과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대상[六外處; 色聲香味觸法],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 苦集滅道]가 포함되어 있다.

4. 마음챙김 sati
‘mindfulness’라는 말이 팔리어의 ‘sati’라는 용어에 대한 영어 번역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하지만, 이 말은 불완전한 번역이다. ‘관찰하는 힘’(Observing power)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번역이다. 마음챙김의 특성, 기능, 나타남, 직접적인 원인 남방상좌부의 경∙율∙론 삼장(三藏)에 대한 주석문헌에서는, 한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그 용어의 특성(lakkhaṇa), 기능(rasa), 나타남(paccutaṭṭhāna), 직접적인 원인(padaṭṭhāna)을 제시하는 네 가지 측면의 전문적인 해석방법이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우 판디타 사야도는 마음챙김(sati)이란 용어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전통적인 해석방법을 도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sati에 대한 정의와 네 가지 측면의 해석은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그것에 의해 사람들이 기억함으로(saranti tāya), 또는 그 자체가 기억함으로(sayaṃ vā sarati), 또는 단지 기억하는 것 그 자체이므로(saraṇamattaṃ eva vā), 이것을 마음챙김(念)이라고 한다 (esā ti sati) .
그것은 들뜨지 않는 것을 특성으로 하며 (sā apilāpana-lakkhaṇā),
잊지 않는 것을 기능으로 하고 (asammoha-rasā),
보호하는 것을 나타남으로 하거나 (ārakkha-paccupaṭṭhānā)
대상을 향한 상태를 나타남으로 한다 (visayābhimukha-bhāva-paccupaṭṭhānā vā).
견고한 생각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거나(thirasaññā-padaṭṭhānā),
몸 등(身受心法)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고하게 하는 것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다 (kāyādisatipaṭṭhāna- padaṭṭhānā vā). ”
그리고 마음챙김의 특징적인 요소들과 같은 다양한 측면을 검토하면서 이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의 전체적인 범위를 살펴보려고 한다.

5. 마음챙김의 특성 – 들뜨지 않음
마음챙김의 특성은 흔들리지 않음, 들뜨지 않음이다. 즉, (관찰) 대상으로부터 들떠버리지 않는 것(apilāpana-lakkhana)이 마음챙김의 특성이다. 주석서 여기서의 주석서는 『淸淨道論』Visuddhimagga에 대한 대주석서(Visuddhimagga-mahāṭīkā)인 『第一義寶函』Paramatthamañjūsā를 말한다.
Visuddhimagga-mahāṭīkā, 미얀마 6차 결집판, Vol 2, p.142., s. v. Ñāṇamoli, The path of Purification, p.524, note 64.
에서는 물 속에 던져져 있는, 마르고 속이 빈 호박을 비유로 하여 이 말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물위에 떠있는 코르크나 속이 빈 호박은 수면 위에 떠있지 바닥에 가라앉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챙김을 지니고 대상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마음(noting and observing mind)은 (호박이 물위의 떠있는 것과 같은) 피상적인 방식으로 대상을 그냥 스쳐지나가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 마음은 관찰 대상 속으로 가라앉거나 잠겨들어야 한다. 마치 물 속에 돌을 던졌을 때, 그 돌이 바닥에 가라앉아 잠겨버리는 것과 같이.
여러분들이 마음챙김 수행의 대상으로 여러분의 복부(의 움직임)를 관찰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여러분은 아주 확고하게 마음챙김의 주요 대상에 주의를 집중하려고 노력해서 마음이 들뜨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러면, 마음은 복부의 일어남과 사라지는 현상에 깊이 가라앉게 될 것이다. 마음이 이러한 일어남과 사라지는 현상들을 꿰뚫어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이 현상의 진정한 본질인 긴장(tension), 압박(pressure), 움직임(movement) 등등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6. 마음챙김의 기능 – 대상을 항상 관찰하고 있는 것
마음챙김의 기능은 (알아차려야 할 대상에 대해서) 혼돈이 없는 것 또는 잊지 않고 있는 것(asammosa-rasa)이다. 이 말은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마음이 관찰 대상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빼놓지 않으며, 잊어버리지 않고, 대상이 사라지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측면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마음챙김의 기능이란, 대상을 항상 시야에 넣어 두고 관찰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풋볼 선수가 항상 공을 시야에 넣어 두고 있는 것처럼, 배드민턴 선수가 배드민턴 볼을 항상 놓치지 않고 보고 있는 것처럼, 권투선수가 상대의 움직임을 항상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수행자는 항상 마음챙김의 대상을 시야에서 놓쳐버리면 안된다.

7. 마음챙김의 나타남[顯現] – 대상과 직면하고 있음과 보호함
마음챙김이 나타나는 모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즉, 대상과 일대일로 직면하고 있는 것과 보호하는 것이다.

7.1 대상과 일대일로 직면하고 있음 Face-to-face with the object
마음챙김의 주요한 나타남은 대상과 직면하고 있는 상태이다. 즉, 마음챙김은 마음을 직접적으로 관찰대상과 일대일로 직면하게 한다(visayābhimukha-bhāva-paccupaṭṭhānā).
마음챙김은 마음이 대상이나 대상영역(visaya)에 일대일로 직면하고 있는(abhimukha) 상태(bhāva)로 나타난다.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성격의 거울(index of character)이라고 한다. 따라서,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파악하기를’ 원한다면, 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 사람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의 판단은 올바를 것이다. 만일 한 쪽 측면이나 뒤에 또는 멀리 떨어져서 서 있으면, 여러분은 그 사람의 얼굴의 두드러진 특징을 분간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숨을 들여 마실 때) 복부의 일어나는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을 때, 마음이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에 일대일로 직면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복부의 일어나는 현상에서 긴장, 압박, 열, 차가움, 또는 움직임과 같은 여러 가지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7.2 보호함 – Protection
만일,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마음이 상당한 기간에 관찰 대상에 일대일로 직면하고 있다면, 수행자는 (이렇게 관찰하고 있는 동안에는 마음에서) 번뇌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상당히 깨끗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마음의 청정함은 마음챙김의 두 번째의 나타남 즉, 번뇌의 공격으로부터의 막아주거나 보호하는 것(ārakkha-paccupaṭṭhānā)에 기인한 것이다.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을 때, 정신적인 때(번뇌)는 의식의 흐름 속으로 들어올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챙김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문지기에 비유된다. 성을 지키는 문지기는 악한 사람과 해를 끼치는 사람이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며, 오직 착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만을 통과시킨다. 마음챙김은 온전하지 못한[不善; akusala] 생각들을 막아내고, 온전한[善; kusala] 생각들만을 받아들인다. 온전하지 못한 생각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마음은 보호되는 것이다.

8.마음챙김의 직접적인 원인
– The proximate causes of mindfulness
마음챙김을 발생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견고한 생각(thirasaññā- padaṭṭhānā)과 몸 등[身受心法]에 대한 마음챙김을 확고하게 하는 것(kāyādisatipaṭṭhāna-padaṭṭhānā)이다.

8.1견고한 생각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챙기기 위해서는 강하고 견고한(thira) 생각이 필요하다. 생각이 확고하고, 강하고, 흔들림이 없으면 없는 만큼, 마음챙김도 견고하고, 강하고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생각의 두 가지 기능은 형성작용들[行; sankharā]을, 그것들이 온전하고 온전하지 않은 본성에 관계없이, 기록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생각[想, 表象作用; saññā]은 녹음기나 비디오 카메라의 도움으로 말하는 것을 녹음하는 것에 비유된다. 녹음은 녹음되는 말의 내용이나 특성에 관계없이 진행된다. 고전음악의 연주나 오페라를 CD에 녹음하는 고도의 디지털 방식의 녹음 기술 덕분에, 녹음된 음악을 재생할 때, 분명하고, 강하며, 인상에 남는 듣는 경험(마음챙김)이 가능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챙김 수행에서, 일어나고 있는 관찰대상에 대한 강하고 분명한 생각(알아차림 또는 명칭 붙이기)은 강하고, 분명하며 흔들리지 않는 마음챙김을 지니는 아주 강한 지원자가 된다.

8.2 네 가지 마음챙김
마음챙김을 발생시키는 직접적인 또 다른 원인의 하나는, 네 가지 마음챙김(kāyādi-satipaṭṭhāna-padaṭṭhānā)이다. 즉, 마음챙김 그 자체가 마음챙김의 원인이라는 말이다. 사실, 마음챙김이 향상되는 것은 끊어짐이 없는 마음챙김의 지속에 의해서이다. 한 순간의 마음챙김이 다음 순간의 마음챙김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교육을 받는 과정에 비유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숙제도 제대로 해 가는 학생을 가정해보자. 저학년에서 받은 교육은 고학년에서 받는 교육을 위한 바탕이 된다. 초등학교의 교육은 중등학교의 교육의 바탕과 원인이 되며, 중등학교의 교육은 3 단계 교육과정인 대학과정의 교육의 바탕과 원인이 된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면, 마음챙김에 의해서 더욱 크고 더욱 강한 마음챙김이 생겨하는 것이다.

9. 마음챙김은 지금 이곳에서(卽時性) – immediacy
관찰 대상을 알아차릴 때, 즉시성은 아주 중요하다.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상과 알아차림 그리고 관찰 사이에 그 어느 것도 존재해서는 안된다. 일어나고 있는 대상과 알아차리는 마음은 시간적으로 분리되어서는 안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상에 대한 관찰은 바로 대상이 일어나는 그 순간, 지체하지 말로 생겨야 한다. 관찰은 대상이 일어나는 것과 동시적이어야 한다. 관찰 대상이 생겨나는 바로 그 순간, 그 대상을 알아차려야 하고, 관찰해야 한다.
만일, 알아차림과 관찰이 지체되면, 알아차리려는 마음이 대상으로 향했을 때에는 이미 대상은 지나가 버렸을 것이다. (이미 사라져버린) 과거의 대상이나 (아직 생겨나지 않은) 미래의 대상은 올바르게 알 수 없다. 주의 집중이 대상과 함께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더 이상 위빠사나 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 더 이상 실재하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10. 동시발생 – concurrence
두 가지 이상의 현상들이 동시에 생겨나는 것을 동시발생 현상이라고 한다. 알아차림과 관찰하는 마음과 관찰하는 대상의 동시발생은 마음챙김의 중요한 측면이다. 예컨대, 하나의 대상이 생겨날 때, 마음은 그 대상의 발생과 동시에 그 대상에 가 있어야 하며, 그 대상과 동시적으로 함께 있어야한다.

11. 비상한 마음챙김 – extraordinary mindfulness
‘sati-pa-(ṭ)ṭhāna’의 접두사 ‘pa’라는 말에는, 마음챙김은 비상하거나 두드러진 본질 – 대단한, 강력한, 드리고 지속적인(bhusattha) 본질을 지닌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일반적인 마음챙김은 집중적인 마음챙김 수행에서는 있을 자리가 없다. 이것이 접두사 pa가 지니는 의미의 본질이다. 이 말의 실제적인 측면에 대해서 검토해본다.

11.1 돌진함 – rushing (돌진하면서 작용한다; pakkhanditva pavattati)
‘sati-pa-(ṭ)ṭhāna’의 접두사 ‘pa’는 pa-(k)khandana : 돌진함, 뛰어듦, 돌입함으로 해석될 수 있다. 관찰 대상이 생겨나는 순간, 마음은 관찰 대상을 향해서 큰 힘과 용기를 지니고 돌진해야 한다. 주저함, 생각함, 반성함, 분석함, 상상함, 질문함, 숙고함, 의심함 또는 환상함이 없이, 마음은 대상을 공격해야한다. 따라서, ‘돌진함’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측면이 내포되어 있다.
∙ 격렬하고 빠르게 또는 강한 힘과 세력과 활력을 지니고, 갑작스럽고 맹렬하며 빠르고 신속한 움직임.
예) 어떤 사람이 병원으로 달려들어가는 것과 같이.
∙ 갑작스런 공격으로 붙잡고, 잡아내고, 체포하는 것. 신속한 공격이나 급습. 돌격하는 것.
예) 갑작스럽게 강한 공격을 가함으로써, 상대방인 적군을 잡아 승리하는 것.
∙특정한 장소에 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왕성하게 움직이는 것.
예) 축구 시합이 시작하기 직전에 군중들이 경기장에 몰려가는 것.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서둘러서 긴급하게 움직이는 것.
예)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이 “나는 죽을힘을 다해 매진하고 있다”라고 말할 때. 또는 ‘쇠가 달구어졌을 때 쳐라’라는 속담처럼, 수행자는 대상이 신선하고 뜨거울 때 알아차려야 한다.
수행자는 가다가 멈추는 방식(stop-and-go manner)으로 대상을 알아차리고 관찰해서는 안된다.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마음은 느슨해지거나, 나태해지거나, 우발적이어서는 안된다. 즉, 꾸물거리거나, 뒤에 처지거나, (알아차리는데) 늦어버리거나, 유심히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알아차리는 마음에는 헤메이는 마음(wandering mind)이 없어야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올 틈을 제공해서는 안된다. 알아차리는 마음과 관찰하는 마음은 식어버리거나 꾸물거려서는 안된다. 반면에, 체계적이며, 규칙적인 방식으로 대상에 돌진해야 한다.

11.2. 대상을 확고하게 쥐거나 붙잡는 것 (upagganhitva pavattati)
농부가 추수를 하고 있을 때, 베려고 하는 한 다발의 벼를 한 손으로 확고하게 쥐거나 붙잡을 필요가 있다. 오직 이렇게 할 때에만, 낫으로 그 벼 다발을 자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관찰 대상을 확고하게 붙잡아야만 한다. 그러면, 마음은 관찰하는 동안에 대상을 살짝 놓쳐버리거나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마음챙김이 확고부동하게 될 때, 수행자는 거친 대상을 확고하게 붙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보다 더 수행을 하게되면, 주의력은 예민해져서 세세한 대상을 붙잡을 수 있게되고, 때로는 아주 미세한 대상들도 마음으로 확고하게 붙잡을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의도나 생각 등과 같은 보다 미세한 형태의 정신적인 대상들을 붙잡으려고 하기 이전에, 우선 (정신적인 대상보다도 거칠고 파악하기 쉬운) 육체적인 대상들을 붙잡으려고 해야 한다.

11.3. 대상을 완전하게 덮어버림 (pattharitva pavattati)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마음은 관찰 대상을 완전하게 덮어버려야 하고, 전체 대상으로 확산되어, 그 대상전체를 덮어 싸야 하며, 대상을 전체적으로 붙잡아야 한다. 대상의 일부만을 관찰해서는 안되며, 대상이 생겨나는 처음 상태에서부터 지속되는 중간 상태를 거쳐, 사라지는 마지막 상태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알아차리고 관찰해야만 한다.

11.4 끊어짐이 없는 이어짐 (pavattati)
실제적인 의미에서, 이 측면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지금 생겨나고 있는 관찰대상에 대한 알아차림과 관찰은 연속적이어야 한다. 즉, 한 순간의 마음챙김은 다음 순간의 마음챙김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이렇게 순간 순간 마음챙김은 이어져야 한다. 직전의 마음챙김의 순간은 다음 순간의 마음챙김의 순간으로 이어져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마음챙김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1) 마루 바닥의 수 널빤지 사이에 틈이 있다면, 먼지나 모래가 그 사이로 들어갈 것이다. 만일 마음챙김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마음에는 틈이 생겨서 번뇌가 스며들어 올 것이다.
예2) 옛날에는, 불을 피우기 위해서 두 나뭇조각을 마찰해야만 했다. 만일 끊임없이 나뭇조각을 마찰하지 않고, 도중에 쉬엄쉬엄 나뭇조각을 마찰한다면, 불을 피우지는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챙김이 지속적이지 못하면, 지혜의 불은 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부정적인 방법으로 이 측면을 다시 확인해 본다.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과 관찰함 또는 마음챙김에는 틈이 있어서는 안되고,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즉, 가다가 멈추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어느 정도 적당히 수행을 하고는 때때로 쉬다가 다시 수행을 시작하는 수행자가 있다. 이들은 어느 정도 마음챙김을 지니고 수행을 하다가는 공상에 잠기어 수행을 멈추어 버린다. 이런 수행자들을 ‘카멜레온 요기’라고 한다.

11.5 대상을 조작하지 않음 – Non-manipulating
무아(無我)라고 하는 보편적인 특성은 지금 생겨나고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대상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나타나는 대상을 조작하거나, 컨트롤하거나, 조절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관찰 대상을 바라보려고, 수행자는 아주 조심을 해야 한다. 수행자는 다만 그곳에 지금 있는 대상만을 관찰해야하지, 무엇을 기대하거나, 그곳에 무엇이 있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12. 결론
이제 싸띠팟타나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싸띠팟타나는 관찰된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이며, 대상에 돌진하고 속으로 파고 들어가며, 대상 전체를 덮어버리는 마음챙김이다. 그래서 마음은 대상과 함께 딱 맞붙어서, 확고하게 머문다.
‘일어남’하고 알아차릴 때, 마음은 그 알아차려진 대상 즉, 복부의 일어나는 움직임 속으로 들어간다. 마음챙김은 그 대상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며, 그 대상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마음은 이 대상 또는 현상에 딱 맞붙어서 확고하게 머물고 있다. ‘사라짐’ 하고 알아차릴 때에도 이 과정은 반복된다. 그리고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른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싸띠 또는 마음챙김은 활발해야 하며, 대상에 직면하고 있어야 한다. 마음챙김은 대상으로 뛰어들어 가야하며, 완전하게 대상을 뒤덮어야 하고, 대상으로 파고들어 가서 그 대상의 (생겨남과 지속함과 소멸하는 과정의) 모든 부분을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된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챙김이 이러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수행에 빠른 진전이 보장될 것이며, 수행의 완성과 더불어 열반을 보게 되는 것이 확실하게 보장될 것이다.

한 눈에 보는 마음챙김(싸띠팟타나)
∙밀접하고 확고한 확립
∙들뜨지 않음
∙항상 대상을 시야에 두고 있음
∙대상과의 일대일의 대면
∙번뇌의 공격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함
∙강한 생각에 의해 마음챙김이 생겨남
∙마음챙김이 마음챙김의 원인
∙돌진함과 파고 들어감
∙대상을 확고하게 붙잡음
∙대상을 완전하게 덮어씌움
∙즉시성
∙지속성
∙동시에 일어남
∙조절하지 않음

<참고 문헌>
1. Buddhaghosa, Acariya. The path of purification (Visuddhimagga). Ñāṇamoli(tr.), B.P.S., Chapter XIV, pg.141.
2. Sayadaw U Pandita Bhivamsa, Ven. In this very life, Wisdom, 1992.
3. Sayadaw U Pandita Bhivamsa, Ven. Raindrops in hot summer. M.Bṃ.C., 1994.
4. Bodhi, Bhikkhu, et. al.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B.P.S.
5. Mahasi Sayadaw, Ven. Vipassana shu nyi gyan. (Burmese)
6. Mahagandayon Sayadaw U Janaka Bhivamsa, Ven.
Sangabhasa-tika. (Burmese). 1990.
7. Sayadaw U Pandita Bhivamsa, Ven. Various dhamma talks.
<양곤, 판디타라마, 1997>

<부록 2> 『대념처경(大念處經)』 여기에 부록으로 소개하는 『대념처경』은 필자가 약수법보(서울: 약수암)에 연재한 냐나틸로카 스님의 『붓다의 말씀』(The Word of the Buddha)가운데 바른 마음챙김[正念]에 대한 부분에 약간 손을 댄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캄마사담마라고 하는 쿠루 족의 마을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하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세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괴로움과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하나의 길[ekāyano maggo]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
(1)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비구들이여, 여기 [이 가르침]에서 어떤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受念處]
그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그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그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1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1.1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서, 다리는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 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단단히 하여 앉는다. 그리고는 마음을 챙겨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챙겨서 숨을 내쉰다.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pajānāti), 길게 내쉬면서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는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sikkhati)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호흡이라는) 육체의 작용[身行]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육체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마치 도자기공이나 그 의 도제가 원반을 돌릴 때, 오랫동안 돌리면서는 ‘오랫동안 돌린다’라고 알아차리며, 짧게 돌리면서는 ‘짧게 돌린다’라고 알아차리는 것과 같이, 바로 이처럼 비구들이여,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는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호흡이라는) 육체의 작용[身行]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육체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 『대념처경』주석서의 보충설명; ‘몸이 있다’라는 것은 오직 육체적인 현상만이 있지, 거기에 중생, 인격체, 여자, 남자, 자아는 없다는 의미이다. 즉, 몸에는 자아에 속한 것이나, 자아나, 인격체에 속한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 존재하는 것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무수한 물질적인 현상들로서의 ‘육체’와 이 물질적인 현상을 알아차리는 정신적인 현상만이 있다. 하지만 이 때의 정신적인 현상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자, 여자, 인격체, 자아 등은 발견할 수 없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음의 현상과 육체의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DN-a III, 765.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은 가장 중요한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방법은 위빠사나 수행을 닦기 위한 예비 단계나,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을 계발하는 방법이나 위빠사나와 선정 의 양쪽을 닦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지금 이 『대념처경』에서의 출입식념은 다음과 같이 전개될 위빠사나 수행을 닦기 위한 예비단계로서의 마음집중과 고요함을 얻기 위해서 제시되었다.
정기적인 출입식념의 수행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마음의 고요와 마음집중(사선 가운데 한 가지의 선정)을 얻은 후, 수행자는 호흡의 시작(origin of breath)을 검토한다. 그는 사대(四大; 地水火風)와 다섯 감각기관과 같이 사대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물질적인 현상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육체[色]에 의해서 호흡이라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인상[觸]으로부터 인식[識]이 생겨나고, 이 인식과 함께 오온(五蘊)의 나머지 세 가지 요소인 느낌[受], 표상작용[想], 의지작용[行]이 생겨난다는 사실도 통찰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른바 인격체라고 불리는 에고라는 실체 또는 자아는 어디에도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다만 여러 가지 요건에 의해서 조건 지워져 있는 육체와 마음의 흐름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본다. 그런 후, 그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세 가지 특성을 적용시켜서, 그것들을 전적으로 무상하며, 괴로움이며, 영원한 실체가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中部』118經 『出入息念經』과『淸淨道論』8장을 참고하기 바람.

1.2 동작[行住坐臥]에 대한 마음챙김
또한 비구들이여, 걸어갈 때는걸어간다라고 알아차리고, 서 있을 때에는 서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앉아 있을 때에는 앉아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누워 있을 때에는 누워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이외의 다른 몸의 동작이 있을 때, 그러한 동작을 그때그때 알아차린다. 위의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대한 팔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나는 걸어간다, 나는 서 있다,나는 앉아 있다,나는 누워 있다라고 번역해야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주어인 나는이라는 표현이 없는 것이 실제의 수행에 비추어 볼 때 더욱 적합한 표현이므로 주어는 전부 생략했다. 팔리어나 영어와 같은 印歐語에서는 문장의 문법적인 구조 상 주어가 생략되지 않지만, 실제의 수행에서는 행위의 주체인 나라는 존재의 설정이 없어도 행주좌와(行住坐臥) 등의 동작에 대한 알아차림이 가능하며, 결국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수행의 한 목적이라 할 때,나라고 하는 행위의 주체를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됨을 알 수 있다. 수행이 향상됨에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나라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단지 정신적인 현상(名)과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현상(色)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은 정신적인 현상(名)과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현상(色)일 뿐, 어디에서도 실체적인 자아는 발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육체적인 동작이나 행위에 마음을 챙겨 알아차릴 때, 처음부터 나는또는 내가라고 하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은 실제의 수행에 있어서 중요하다. 실제로 행주좌와 등의 동작을 알아차릴 때, 간단하게 걸음,서 있음,앉음,누움이라고 마음으로 알아차리면 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3 분명한 앎[正知]
또한 비구들이여,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로 들아 갈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사(승복)를 입고, 발우를 들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고, 서고, 앉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도, 말하거나, 침묵을 하고 있을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닌다.분명한 앎(正知)의 절(節)은 앞의 행주좌와의 동작에 대한 마음챙김에 이어지는 부분으로, 일상의 모든 육체적인 동작과 행위를 할 때에는 반드시 분명한 앎이 동반되어야 함을 제시되어 있다.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수레의 두 바퀴, 새의 두 날개와 같은 관계이다. 마음챙김이 있으면, 분명한 앎이 있고, 분명한 앎이 있으면 반드시 마음챙김이 동반되어 있다. 마음챙김이 대상에 마음을 보내서 그 대상에 대해서 순간 순간 잊지 않고, 놓치지 않는 마음의 작용이라 한다면. 분명한 앎은 마음챙김과 동반되는,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인식, 파악을 의미한다. 수행자 특히, 일정 기간의 집중적인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잠에 드는 순간까지 의식이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자신의 육체적인 모든 행위와 동작에 마음을 챙기고 분명한 앎을 지녀야 한다. 한 순간의 방심도 없이 마음챙김이 이어질 때, 마음집중(定)과 지혜(慧)가 성숙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4 육체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厭逆作意]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육신을 아래로는 발바닥에서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덮여져 있으며 가지가지의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즉, 이 육신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 발톱, 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내장, 내장의 내용물, 위장, 위장의 내용물, 대변, 담즙, 가래, 고름, 혈액, 땀, 고형지방질, 눈물, 액체지방질, 침, 콧물, 관절액, 소변 등.
비구들이여, 마치 위아래 양쪽에 구멍이 나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 즉, 벼, 보리, 녹두, 콩, 깨, 쌀 등이 들어있는 경우, 이 자루를 눈이 있는 사람이 풀어보고서이것은 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콩, 이것은 깨, 이것은 쌀이라고 직접 관찰하는 것과 같이,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바로 자신의 육신을 직접 관찰한다. 즉, 이 육신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 발톱, 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내장, 내장의 내용물, 위장, 위장의 내용물, 대변, 담즙, 가래, 고름, 혈액, 땀, 고형지방질, 눈물, 액체지방질, 침, 콧물, 관절액, 소변 등으로.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어떤)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현재의 미얀마를 중심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위에서 설해진 육신의 32가지 부분에 대한 관찰은 그다지 하지 않는다. 부정관(不淨觀)의 일환으로 제시되어 있는 육신의 32가지 구성부분에 대한 관찰은 마음집중(禪定)을 닦는 수행에서 실천되고 있다. 현재에는 태국의 아찬 먼(Ajhan Mun, 1870-1949) 스님의 전통을 따르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실천되고 있다.

1.5 네 가지 요소[四大; 地水火風]에 대한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이 육신을 현재 있는 그대로, 구성되어진 그대로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즉, 이 육신에는,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가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백정이나 그의 제자가 소를 도살해서 사거리의 큰길에 부위별로 해체해 놓고 앉아있는 것과 같이, 바로 이처럼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바로 자신의 육신을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즉, 이 육신에는,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가 있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어떤)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요소에 대한 관찰은 현재 미얀마의 마하시 스님(1904-1982)의 전통에 따르는 위빠사나 수행의 토대가 되는 수행의 방법이다. 마하시 스님의 위빠사나 수행의 특징은 좌선을 할 때, 들숨과 날숨(出入息) 에 마음을 챙기는 출입식념(出入息念)을 택하지 않고) 호흡에 동반되어 발생하는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라 하겠다. 호흡이라는 자연스런 생명의 현상에 따라 발생하는 복부의 팽창과 수축에 마음을 챙겨서 바로 이 복부의 움직임이 다름 아닌 바람의 요소(風界)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려가면서 마음집중과 지혜를 동시에 향상시켜나가는 것이 마하시 스님의 위빠사나 수행의 기본적인 좌선의 방법이다. 물론 좌선 이외의 동작을 할 경우에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는 모든 동작에 마음을 챙기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하시 스님의 수행법은 마하시 스님 이전에는 일반화되지 못한 채 몇몇 수행승들에 의해서 전해져 내려왔으나,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현재에도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닦는 수행법이 바로 마하시 스님이 일반화한 위빠사나 수행법이다. 미얀마에는 마하시 수행법이외에도 손꼽을 수 있는 몇몇의 수행법이 현재 승려는 물론 일반 재가자들 사이에서도 실천되고 있다.)

1.6 묘지에서의 아홉 가지 관찰 [부정관(不淨觀)]현재의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등의 남방불교권에서도 위에서 설하진 묘지에서의 부정관 수행은 할 수가 없다. 고대 인도에서처럼 시체를 그대로 묘지에 버리는 장례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묘지에서의 시체에 대한 관찰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태국에서는 스님들에게 의과 대학의 인체 해부시간에 견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체의 썩어 가는 과정을 직접 관찰하면서 수행을 할 수는 없으나, 전신의 해골을 전시해 놓아 백골관을 할 수 있게 준비해 놓은 수행처는 태국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태국의 동북 지역의 한 수행처에는 백골과 함께 생전의 사진(30대 중반에 죽은 여인의 사진)이 걸려 있다. 방콕의 교외에 있는 한 수행처에서는 죽은 시체 네 구(남녀 각각 두 구)를 백골이 아닌 미라로 만들어서 수행자들이 관찰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죽은 시체나 백골을 보면서 하는 수행의 전통은 현재 미얀마의 위빠사나 수행법에서는 그다지 가르치지 않고 있다. 태국의 경우에는 동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수행처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예비 단계로서의 사마타 수행의 한 대상으로 실천되고 있다. 묘지에서의 아홉 가지 관찰[부정관] 수행의 핵심은 수행자 자신이 자신의 육체의 속성도 이와 같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서 육신에의 집착과 욕망을 극복하는 데에 있다. 이상으로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處]」의 설명이 마무리된다.

① 첫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져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 된 시체가 부풀어오르고, 검푸러지고, 썩어 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② 두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까마귀, 매, 독수리, 개, 표범, 호랑이, 재칼 등에 의해서 먹혀지고, 갖가지의 벌레에 의해서 파 먹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③ 세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 있고, 살점이 붙어있는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④ 네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 있고, 살점은 없이 핏자국만 얼룩진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⑤ 다섯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만 남아 있고, 살점이나 핏기가 없는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⑥ 여섯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 여기에 손뼈, 저기에 발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골반, 등뼈, 두개골 등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⑦ 일곱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조개껍질의 색처럼 하얗게 변해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⑧ 여덟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일 년도 더되어 한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⑨ 아홉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뼈마저 썩어 가루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7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열 가지 이익냐나틸로카 스님이 정리한「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 kāyagatāsati]」의 열 가지 이익은 『대념처경』의 내용이 아니라, 별도의 경전인 『중부』의 『신념경(身念經)』Kāyagatāsati-sutta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신념경(身念經)』은 『대념처경』의 「몸에 대한 마음챙김」부분만이 제시되어 있는 독립된 경전이지만, 몸에 대한 마음챙김 수행이 선정(禪定) 수행으로 이어지는 면이 중심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 kāyagatāsati]을 거듭 닦고, 향상시키며, 계발하고, 수레(수행법)로 쓰며, 기반으로 하고, 확고하게 하며, 강화시켜, 잘 수행한다면, 다음의 열 가지 이익이 기대될 것이다.
(1)불쾌함과 즐거움을 제어하게 되어 불쾌함이 그를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 불쾌함이 생겨날 때 (즉각 알아차림으로써) 불쾌함을 극복하며 지낸다.
(2)공포와 두려움을 제어하게 되어 공포와 두려움이 그를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 공포와 두려움이 생겨날 때 (즉각 알아차림으로써)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며 지낸다.
(3)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갈증, 등에, 모기, 바람, 햇빛, 기어다니는 벌레등과 접촉할 때 견디어 내게 되며, 험담이나 불쾌한 말, 고통스럽고 통증이 심하며, 살을 애는 듯한 괴로움이나, 뼈를 깍아내는 듯한 괴로움, 의견의 불일치, 고뇌 그리고 생명에의 위협을 견디어 내게 된다.
(4)어려움이나 곤란함 없이 자신의 의지의 따라서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을 얻을 수 있다, 사선은 마음이 정화된 높은 경지이며, 사선을 얻으면 바로 여기에서 안락하게 지내게 된다.
(5)여러 가지의 신통력을 얻게 된다. 몸이 하나의 상태에서 여럿이 되기도 하며, 여럿인 상태에서 하나로 되기도 한다.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며, 벽이나 사방이 가로막힌 곳을 가로질러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도 하고, 마치 빈 공간을 지나가듯이 산을 뚫고 지나가며, 마치 물 속으로 잠수하듯이 땅 속으로 들어가며, 마치 땅 위를 걷듯이 물위를 빠지지 않고 걸어간다. 가부좌를 한 채로 새처럼 공중을 날아가며, 손으로 달과 태양을 만질 정도로 신통력이 생긴다. 범천의 세계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그의 신통력이 미치게 된다.[神足通]
(6) 인간의 귀를 뛰어넘는 청정한 천상의 귀(청각기관)로 천상과 인간세계의 소리를 듣는다. 멀리서 나는 소리나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나.[天耳通]
(7) 다른 존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마치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의) 탐심에 물든 마음을 탐심에 물들어 있다고 알며, 탐심이 없는 마음을 탐심이 없다고 안다. 성내는 마음을 성내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에 덮여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에 덮여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인색한 마음을, 인색한 마음이라고 알며, 인색한 마음이 없어지면 인색한 마음이 없어졌다고 안다.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에 의해) 고양된 마음을 고양된 마음이라고 알며, 고양된 마음이 없으면, 고양된 마음이 없다고 안다. 보다 뛰어난 마음을 뛰어난 마음이라고 알며, 보다 뛰어난 마음이 없으면 보다 뛰어난 마음이 없다고 안다. 집중이 되어 있는 마음을 집중이 되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된 마음을 집중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며,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안다.[他心通]
(8) 자신의 수많은 과거 전생에 대해서 기억한다. 즉, 한 생이나 두 생 …..등등의 과거생의 자신의 이름, 태생, 모습, 생전의 경험 내용,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 등을 기억하게 된다.[宿命通]
(9)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청정한 천상의 눈(시각 기관)으로 뭇 중생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좋은 곳에 태어나는가 나쁜 곳에 태어나는가, 잘 생겼는가 추하게 생겼는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를 보게 된다. 이처럼 그는 중생들이 자신의 행위[業].에 따라서 받게 되는 삶의 양태를 알게 된다.[天眼通]
(10) 모든 번뇌를 없애 버려서,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이 생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증득해서 깨달아 완성을 이루어 지낸다.[漏盡通]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거듭 닦고, 향상시키며, 계발하고, 수레(수행법)로 쓰며, 기반으로 하고, 확고하게 하며, 강화시켜, 잘 수행한다면, 위와 같은 열 가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中部』119, 『身念經』MN III, 97-99.

* 열 가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이익 가운데 뒤의 여섯 가지(5에서 10까지)의 이익은 여섯 가지 신통[六神通]을 말한다. 이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신통은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세간적인 조건들이어서 범부들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의 여섯 번째의 누진통은 (번뇌를 모두 제거한) 출세간적인 신통력으로서 아라한만이 지니는 덕목이다. 네 가지의 마음집중[四禪]을 이룬다면 다섯 가지의 세간적인 신통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통력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 네 가지 신족(神足)이 있다. 몸에 대한 마음집중 수행을 통해 네 가지의 마음집중[四禪]을 이룬다면, 바로 이 선정의 힘으로 다섯 가지 세간의 신통력과 더 나아가 출세간의 누진통(漏盡通)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受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비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느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네 가지의 마음챙김」 가운데에서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 뒤에 설해져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집중수행을 하는 수행자의 경우와 일상생활에서의 경우를 들어서 생각해 보자.
(1) 집중수행의 경우
집중적인 수행을 하고 있는 수행자는 몸과 마음에서 생겨나는 감각적인 느낌을 생생하게 파악하게 된다. 우선적으로는 육체적인 느낌(주로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 좌선을 할 때에는 다리의 통증이나, 등의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때, 통증이 느껴지는 과정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몸에서 통증이 생기면, 바로 그 통증을 제거하기 위한 조건 반사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수행 도중에도 이러한 조건 반사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감각적인 느낌의 본질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수행은 자극에 대해서 반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 자체를 알아차리는 작업이다. 다리의 통증이나 등의 통증이 있을 때, 견디어 낼 수 있을 때까지 견디면서(이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할 것) 느낌 자체를 관찰하면서 그 본질을 알아 차려야 한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즐거운 느낌, 불쾌한 느낌 등의 자극을 반사적인 반응 없이 알아차려 나갈 때, 그 느낌들의 본질을 직접 이해하게 된다. 즉 모든 느낌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서, (조건이 없어지면) 사라져 가는 것이라는 본질을 자신의 관찰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가 생기면, 고통을 견디어 내는 힘도 강해지고, 즐거운 느낌에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된다.
수행 도중에는 마음의 집중이 향상함에 의해서 강한 기쁨이나 희열 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 때 경험하는 기쁨도 생겨나는 순간에 관찰해야 하는 대상일 뿐, 붙들고 집착할 대상은 아니다. 좋은 경험도 결국은 사라지는 경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들을 집착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관찰해 나갈 때, 지혜가 성숙해 가는 것이다. 느낌은 지혜를 계발하는 재료이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은 일차적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
(2)일상생활에서의 느낌에 대한 관찰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갖가지 감각적인 자극들로 가득 차 있다.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은 무방비 상태로 개방된 채 수많은 자극들을 소화도 시키지 못한 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은 이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자극들을 정리도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매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즐거운 느낌이 있으면, 더욱 그 느낌을 얻으려 하고, 불쾌한 느낌이 있으면, 그 느낌을 없애려고 애를 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탐욕과 성냄이 생겨나는 것이다. 탐욕과 성냄이라는 마음의 번뇌는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에 의해서 생겨난다. 즉 번뇌의 원인은 느낌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느낌을 없앨 수는 없다. 느낌은 감각 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느낌 자체가 아니라 느낌에 대한 집착과 거부감이다.
예를 들면, 여름철의 무더위 때문에 육체의 불쾌한 느낌이 생긴다. 이 불쾌한 느낌 때문에 정신적인 짜증이 생기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육체의 불쾌감이 정신의 불쾌감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일상에서 언제나 경험되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살피려 하고 탐욕과 성냄이라는 마음의 번뇌를 덜어내려면, 느낌에 의해서 이러한 번뇌가 일어나는 과정을 잘 이해해서, 느낌 뒤에 번뇌가 생겨나는 것을 방지하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여름은 더운 계절이라는 상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 더위를 정신적으로 견디어 내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느낌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그 느낌을 극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탐욕이 있는 마음[有貪心]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또는 탐욕이 없는 마음[無貪心]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성냄이 있는 마음[有瞋心]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無瞋心]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有癡心]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無癡心]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침체된 마음을 침체된 마음이라고 알며, 산만한 마음을 산만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으로) 커진 마음[大心]을 커진 마음이라고 알며, (선정 수행을 닦지 않아)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 수행이) 향상된 마음을 향상된 마음이라고 알며, 향상이 안된 마음을 향상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에 의해) 잘 집중된 마음을 잘 집중된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된 마음을 집중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에 의해 일시적으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解脫心]을 자유로워진 마음이라고 알며,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非解脫心]을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 여기에서 사용된 마음(citta)이란 마음 또는 의식의 순간들(moments of consciousness)을 통틀어서 일컫는 집합적인 용어(collective term)이다. 인식작용[識; viññāņa]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마음 또는 의식이라는 용어를 사고(思考; thought)라고 번역해서는 안된다. 사고(思考)와 생각함(thinking)은 마음의 언어적인 작용, 즉 거친 생각[尋]과 미세한 생각[伺]에 해당하며, 형성작용의 무더기인 행온(行蘊)이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마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냐나틸로카 스님의 해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의식의 순간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특히 사소한 마음의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는 수행중의 수행자의 마음 또는 의식의 순간들을 가리키고 있다.
마음 또는 의식이란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의해서 생겨났다가는 사라지는 순간 순간의 마음의 총체를 말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마음은 순간 순간 변하므로 동일한 두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마음을 만들어낸 조건도 변하므로, 동일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동일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은 이렇게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마음을 어떤 범주를 정해서 편의상 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경전에 설해진 마음의 범주를 후대의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정밀하게 분류하였다. 아비달마 불교의 분류는 지면상 생략하지만, 大念處經의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에서 제시된 마음은 16가지의 마음의 범주임을 알 수 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근본적인 번뇌와 관계된 마음과 수행과 관계된 마음의 순간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 경전을 듣는 청중이 수행승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행 도중에 경험되는 마음의 순간들에 대한 언급이 자세히 설해진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요점은 수행 도중에 경험하는 마음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며, 그러한 마음을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탐심이 일어나면, 탐심이라고 알아차리면 된다. 알아차리게 되면, 생겨난 탐심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수행의 힘이 약한 일상의 마음으로는 탐심이 있다는 점을 알아도 그 탐심을 다루는 법에 능숙하지 못하므로 탐심이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마음챙김의 힘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면, 탐심이 일어나는 순간 탐심을 알아차려 탐심의 진행은 차단된다. 알아차리는 순간 탐심은 끊어져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에 의해 생겨난 지혜의 힘에 의해서 번뇌가 제어되는 과정이다. 탐심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뿐만 아니라, 탐심이 없는 마음이라는 긍정적인 마음도 정확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즉, 탐심을 알아차린 후 탐심이 사라졌으면, 탐심이 사라졌음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알아차림이라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부정적인 마음들은 사라지고, 긍정적인 마음,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긍정적인 마음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짐으로써 생겨난 긍정적인 마음도 집착의 대상이 된다면 결국 또 다른 탐심(부정적인 마음)이 생겨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마음이 생겨나면, 생겨났음을 바로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정적인 마음도 긍정적인 마음도 거부나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챙김(알아차림)의 대상이 될 때, 수행은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 어떠한 것이라도 생겨나고 경험된 것은 알아차림의 대상이지, 집착의 대상은 아니다. 부정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긍정적인 요소가 생겨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소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수행의 바른 길이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좋은 마음의 순간들은 수행이 향상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향상된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챙김을 지니는 것은 수행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순간 순간의 마음을 잘 살피고 마음챙김을 굳게 지닐 때, 부정적인 마음은 사라지고, 마음은 청정해지며, 더욱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마음챙김 수행의 이로움은 바로 스스로 청정해지며,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갖추게 해주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얻은 지혜의 힘으로 최상의 행복인 열반을 얻는 데에 있는 것이다.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다섯 가지 종류의 육체적∙정신적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

4.1 다섯 가지 덮개[五蓋]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감각적 욕망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惡意, 분노)가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악의(惡意)가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가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악의가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악의가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악의가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혼침과 졸음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혼침과 졸음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혼침과 졸음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우울)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한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들뜸과 회한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들뜸과 회한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의적 의심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회의적 의심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회의적 의심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네 가지 마음챙김」 가운데 네 번째의 「법에 대한 마음챙김」에 대한 부분은 마음챙김 수행의 대상과 장애, 수행 도중에 경험하는 현상들 그리고 마지막 목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 설해진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受念處),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등의 수행의 전 과정이 요약 정리되어 제시되면서, 초기불교의 주요 교설인 오개(五蓋),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칠각지(七覺支), 사성제(四聖諦)가 설해져 있다. 법념처(法念處)에서는 이처럼 5 가지 종류의 육체적∙정신적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이 설해지고 있으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교리들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수행을 해 나가면서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법념처에서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삼는 수행의 대상 또는 주제는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현상의 전체인 오온(五蘊)이다. 이렇게 우리 자신의 정신적∙육체적인 현상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수행을 시작하는 수행자가 처음 부딪히는 문제가 다섯 가지 덮개[蓋; 욕망, 악의(분노), 혼침과 졸음, 들뜸과 회한(우울), 회의적 의심]다. 일차적인 수행의 대상인 육체적인 현상(좌선 시에는 호흡이나 호흡에 동반되어 발생하는 복부의 움직임이며, 행선(걷는 수행)시에는 들어올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내려놓는 동작임)을 마음챙겨서 알아차리다가 마음에서 수행에 방해가 되는 다섯 가지 장애가 생기면 생기는 바로 그 즉시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후 이 장애들이 사라지면 사라졌다고 바로 알아차려야 한다고 이 부분에서 설하고 있는 것이다.
집중적인 수행을 하지 않을 때에도 다섯 가지 덮개는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번뇌이므로 항상 주의 깊게 살펴서 마음에서 생겨난 이러한 번뇌들이 주인 노릇을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번뇌를 차단시키려면 항상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기민한 마음챙김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마음챙김이라는 문지기가 없으면 우리의 마음에는 각가지 번뇌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번뇌라는 정신적인 현상으로서의 법을 생겨날 때 그리고 사라질 때 즉시 즉시 알아차리는 것이 마음챙김에 의거한 위빠사나 수행에서의 법에 대한 마음챙김의 한 부분이다.

4.2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이것은 물질적 현상[色]이다’, ‘이것은 물질적 현상의 발생이다’, ‘이것은 물질적 현상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감수 작용[受]이다’, ‘이것은 감수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감수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표상 작용[想]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형성 작용[行]이다’, ‘이것은 형성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형성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인식 작용[識]이다’, ‘이것은 인식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인식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3 여섯 가지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六內外處]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여기에 비구가 눈[眼; 시각 기관]을 알아차리고, 색[色; 시각 대상으로서의 모양과 색깔]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結; samyojana] 여기에서의 족쇄란 눈[眼]과, 색[色]을 조건으로 해서 생겨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착[欲貪, kāmarāga]의 속박과 성냄[瞋, paṭigha], 아만심[慢, māna], 잘못된 견해[見, diṭṭhi], 회의적인 의심[疑, vicikicchā], 계와 금기에 대한 집착[戒禁取, sīlabbata-parāmāsa], 존재에 대한 탐착[有貪, bhavarāga], 질투[嫉妬, issā], 인색[吝嗇, macchariya], 어리석음[無明, avijjā]이라는 열 가지 속박이라고 주석서에서 말하고 있다.
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귀[耳; 청각기관]를 알아차리고, 소리[聲]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코[鼻; 후각기관]를 알아차리고, 냄새[香]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혀[舌; 미각기관]를 알아차리고, 맛[味]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몸[身; 촉각 기관]을 알아차리고, 접촉[觸]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마음[意; 사고 기관]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현상[法]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六內外處]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오개(五蓋),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칠각지(七覺支), 사성제(四聖諦)가 설해져 있는 법에 대한 마음챙김(法念處)의 수행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교리들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수행을 해 나가면서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바탕으로 하여 수행하는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 또는 주제는 인간의 정신적∙육체적(물질적) 현상을 세분한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이다. 다섯 가지 무더기로 제시된 우리들 자신의 정신적∙육체적인 현상이 생겨나면 생겨나는 그 순간 바로 알아차리고, 사라지면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 알아차리는 것이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의 비결이다. 즉, 끊임없이 생겨났다가는 사라지는 정신적∙육체적 현상들을 바로 그 생멸의 순간에 포착하는 것이 마음챙김이며, 이러한 마음챙김이 있을 때, 현상들에 대한 바른 이해인 지혜가 생겨나는 것이다. 법에 대한 마음챙김의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에 대한 항목에서는 이처럼 생멸하는 심신의 현상을 하나도 빠트림 없이 마음챙겨서 알아차릴 것을 가르치고 있다.
법에 대한 마음챙김의 세 번째 항목인 여섯 가지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六內外處)에 대한 마음챙김에서는 인식 기관이 인식 대상과 부딪힐 때 생겨나는 번뇌를 다스리는 가르침으로 제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눈으로 사물을 보는 순간 마음챙김이 없으면 우리의 마음에는 탐욕과 싫어함이라는 번뇌가 생겨나서 번뇌에 의해서 속박되어 버리고 만다. 이때, 번뇌가 생겨났으면 생겨났다고 바로 알아차리면, 그 번뇌는 끊어지게 된다. 번뇌가 끊어지면, 바로 번뇌가 끊어졌다고 알아차리고 다시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돌아와서 마음챙김에 틈이 없게 해야 한다. 번뇌가 생겨나는 관문인 감각기관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챙김이라는 문지기를 감각기관의 문에다 굳게 세워 놓는 것이다. 마음챙김이 굳게 자리하고 있을 때,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하는 등의 인식이 생길 때, 마음을 얽어매는 족쇄인 번뇌는 생기지 않는다. 마음챙김이라는 하나의 방패가 있을 때, 온갖 번뇌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4.4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 sati-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dhamma-vicaya -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 viriya-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 pīti-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 passaddhi- sambojjhaṅga]가 있을 때,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 samādhi-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 upekkhā- sambojjhaṅga]가 있을 때,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다섯 가지 덮개를 극복하면서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관찰하는 수행을 계속해 나아가면,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七覺支)가 경험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안정되며 수행에 대한 확신도 강해진다. 마음챙김(念覺支)이 더욱 예리해지고, 몸과 마음이라는 현상(法)에 대한 이해(擇法覺支)가 심화된다. 수행이 향상됨에 따라 좋은 현상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더욱 더 정진에 힘을 가하게 된다(精進覺支). 마음에서 강한 기쁨을 맛보기도 하며(喜覺支), 마음과 몸은 편안해지고 안정된다(輕安覺支). 기쁨을 맛보고 편안해진 마음은 더욱 집중을 이루게 되며(定覺支), 생겨났다가는 사라지는 심신의 온갖 현상들에 대해서 집착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마음의 평온이 유지된다(捨覺支).
수행이 진전되면서 생겨나는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가 경험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긍정적인 현상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수행의 핵심은 마음챙김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현상들도 마음챙김의 대상일 뿐이다. 경험되면 바로 알아차리고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을 알아차리는 일로 마음을 돌려야 한다.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는『청정도론』에서 제시된 위빠사나를 닦는 수행자가 경험하게 되는 10 가지 번뇌(十觀隨染)와 대조해보면 흥미롭다.
10 가지 번뇌(十觀隨染)란 다음과 같다. (자세한 내용은 수행을 통해서 극복해야 할 번뇌 3 위빠사나 10 가지 번뇌를 참조)
①光明 obhāsa, ②知 ñāṇa, ③喜 pīt), ④輕安 passaddhi, ⑤樂 sukha, ⑥勝解 adhimokkha, ⑦努力 paggaho, ⑧現起 upaṭṭhāna, ⑨捨 upekkhā, ⑩欲求 nikanti.
수행 도중에 위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집착하거나 미세한 욕망이 마음에 있는가를 잘 살펴서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는 번뇌라고 알아차리고 계속해서 수행을 해 나아가야 한다. 1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와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와의 차이는 집착 또는 욕망이라는 번뇌에 있다.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와 같이 수행을 통해서 얻은 좋은 현상에도 집착하면 안된다는 가르침을 10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에서 찾아볼 수 있다.

4.5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네 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올바르게 [있는 그대로; yathābhūtaṃ]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원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장부(長部)』의 『大念處經』에서 상세하게 설해져 있는 사성제의 자세한 내용에 대한 부분 (DN II, 305-313)은 『중부(中部)』의 『念處經』을 인용하고 있는 냐나틸로카 스님의 편집에 따라서 생략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해설하고 있는 경전으로는 『장부』의 『大念處經』과 함께 『중부』의 『念處經』(MN I, 55-63)이 있다. 이 두 경전의 차이는 바로 사성제에 대한 설명에 있다. 『대념처경』에서는 자세한 설명이 제시되어 있음에 반해서 『念處經』은 위와 같이 간단하게 사성제에 대한 항목만이 설해져 있다.
사성제는 불교의 근본적인 입장을 대표하는 교설이다. 불교는 다름 아니라 괴로움(苦)이라는 인간의 현실 상황에 대한 파악과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이상(涅槃)을 설한 가르침이다. 사성제에 대한 이해는 불교의 시발점이자 종착역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라는 법에 대한 마음챙김을 끝으로 네 가지 마음챙김 수행에 대한 설명이 막을 내렸다. 앞에서도 누누이 설명했듯이 사성제에 대한 마음챙김도 이론적으로 사성제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파악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성제에 대한 마음챙김이 마지막에 제시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성제에 대한 이해는 세 번째의 고귀한 진리인 열반의 체험으로 완성되는 것이므로, 마음챙김 수행도 궁극적으로는 열반의 체험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열반의 체험은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아라한의 깨달음을 의미한다.

4.6 네 가지 마음챙김의 이익 – 마음챙김 수행에 의한 깨달음의 보증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7년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不還]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7년은 그만 두어도 좋다 (7년은 걸리지 않아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이와 같이 6년간, … 5년간, … 4년간, … 3년간, … 2년간, … 1년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1년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이와 같이 7개월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7개월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6개월간, … 5개월간, … 4개월간, … 3개월간, … 2개월간, … 1개월간, … 반달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반달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7일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괴로움과 마음의 언짢음을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라고 앞에서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연유로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세존은 설하셨다. (설법을 들은) 그 비구들은 만족해하며, 세존의 설법에 대해 환희에 찼다.『대념처경』과 『염처경』은 마지막으로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열반을 얻을 수 있는 수행 기간에 대해서 설하면서, 마음챙김 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보증하고 있다. 7년간의 긴 시간과 7일이라는 짧은 기간의 차이는 개개인의 수행의 차이에 있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 현재 이 생에서 아라한이 될 수 있다는 붓다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그 길을 각자 자신의 발로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붓다는 길을 가리키는 분이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290-315

<부록 3.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참고 서적>
위빠사나 수행을 위한 서적 가운데에서도 마하시 수행 전통을 중심으로 중요한 책들을 소개해 본다. 영어로 출판된 저술이 중심이 되어있다. 우리말 번역이 있는 것은 필자가 아는 한도에서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우리말 번역본을 읽을 때에는 용어의 번역에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번역용어가 정착되지 않은 것이 현재의 실정에서 역자마다 각기 번역 용어가 다른 점이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팔리어나 산스크리트 원어로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체험을 통한 이해일 것이다. 체험을 통해 이해한 법은 다시, 경전을 바탕으로 남에게 해설되어야 한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수행의 지침서들은 ‘지도’에 불과하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장 안전하고 정확한 여행을 하는데는 지도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 특히, 초행길이나 여행의 초보자에게는 더욱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독도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여행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다. 목적지까지 이르는 길에 정통해 있는 ‘여행 안내인’이 있다면, 여행은 보다 안전하고, 빠르며,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적인 수행도 여행과 마찬가지이다. 좋은 지침서만으로는 수행 길에 제대로 들어서는 것이 쉽지 않다.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길이나, 장애물이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뢰할 수 있으며, 경험이 풍부한 스승의 지도하에 수행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수행을 완성하는데 있어서 스승[선지식]의 비중을 절반으로 보았던 아난 존자에게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있지 않은가. 수행에서 스승은 거의 전부라고. ‘존자시여, 선지식인 것, 선지식과 함께 지내는 것,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것은 바로 청정한 수행[梵行]의 절반입니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다. 선지식인 것, 선지식과 함께 지내는 것,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것은 바로 청정한 수행[梵行]의 전부와 같다.’
‘upaḍḍham idam bhante brahmacariyassa yad idaṃ kalyāṇamittatā kalyānasahāyatā kalyāṇasampavaṅkatā ti. mā hevam ānanda mā hevam ānanda/ sakalam eva hidam ānanda brahmacariyaṃ yad idaṃ kalyāṇa- mittatā kalyāṇasahāyatā kalyāṇasampavaṅkatā’

(1)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의 가르침

①The Satipaṭṭhāna Vipassanā Meditation; A Basic Buddhist Mindfulness Excercise, English Translation by U Pe Thin, Rangoon: Department of Religious Affairs, 1979.
Reprint as The Wheel Publication No. 370/371 b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1990.
<우리말 번역>
『깨달음으로 이끄는 명상』11-65쪽, 정동하 옮김, 서울: 경서원, 1995.

1951년의 마하시 사야도의 설법을 녹음한 위빠사나 수행의 교과서. 미얀마 인들은 이 법문을 녹음 테이프로 듣고 수행을 해오고 있다. 마하시 사야도의 가르침에 따라 위빠사나 수행을 하려는 수행자들의 필독서의 하나이다.

②Practical Insight Meditation; Basic and Progressive Stages, Rangoon : Department of Religious Affairs, 1979.
Reprint b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1980.
<우리말 번역>
『위빠사나 II』253-316쪽, 김열권 편저, 서울: 불광출판사, 1993.
『깨달음으로 이끄는 명상』67-140쪽, 정동하 옮김, 서울: 경서원, 1995.

본서는 위빠사나 수행의 기본 단계에서 향상된 단계에 이르기까지 실제적인 수행법을 설명해 놓은 명저이며, 필독서의 하나이다. 수행에 대한 다른 해설서와 마찬가지로 수행의 경험이 없는 이가 처음 읽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수행을 해나가면서 늘 가까이 두고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본서의 서문에서 는 마하시 사야도는 주저(主著)인 위빠사나 수행법 2권(Vipassanā shu nyi gyan라는 이름으로 미얀마어로 1944년에 완간됨. 총 7장으로 되어 있음) 가운데 제 5장을 영역한 것이다.
미얀마어 위빠사나 수행법은 총 858쪽에 달하는 대저로 마하시 사야도의 주저(主著)이다. 본서의 저술경위들에 대한 소개는 마하시 사야도의 전기인 The Venerable Mahāsi Sayādaw Biography (Mahasi Biography), Rangoon, Buddha Sāsanā Nuggaha Organization, pp.58ff 참조.

③The Progress of Insight through the Stages of Purification; A modern Pāli treatise on Buddhist Satipaṭṭhanā Meditation, English Translation with note by Nyānaponika Thera,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78.

본서에서는 칠청정(七淸淨)과 18 단계의 위빠사나 지혜의 향상에 대한 해설이 제시되었다. 부록의 청정지론(淸淨智論, Visuddhi-ñāṇa- kathā)에서 마하시 사야도는 팔리어로 본서의 내용을 정리했다.
위빠사나 수행의 향상 단계가 설명되어 있어 수행자가 자신의 수행의 단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위빠사나 수행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본서와 유사한 내용으로 잘 정리된 유용한 저술에 다음이 있다.
Matara Sri Ñāṇārāma Mahāthera, The Seven Stages of Purification and The Insight Knowledge, Kandy: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1983, 1993.

(2)우 판디타 사야도(U Paṇḍita Sayadaw)의 가르침

①In this very Life; The Liberation Teachings of the Buddha, Boston/Kandy: Wisdom/BPS, 1992.

본서는 우 판디타 사야도께서 1984년 미국 메사츄세츠주의 Insight Meditation Society에서 3개월간의 집중수련회(Retreat) 동안에 법문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실제적인 위빠사나 수행의 지침과 인터뷰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은 초보자에게 도움이 되는 법문이며, 오근(五根)을 계발하는 아홉 가지 방법, 열 가지 악마의 군대, 칠각지(七覺支), 위빠사나선(禪) 등의 가르침이 제시되어 있다.

②『지금 이 순간 그대는 깨어있는가』정원 옮김, 서울: 고요한소리, 1992.(절판)

본서는 옮긴이가 1990년 우안거(雨安居) 3개월 동안 미얀마 양곤의 판디타라마 수행센터에서 수행하면서 들은, 우 판디타 사야도의 법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본서에서는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적인 단계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하루하루의 법문을 그날그날 기록한 것이어서 반복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실제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있는 수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소감인지 몰라도, 필자를 포함하여 당시 함께 이 법문을 들으며 수행하던 수행자들은 스승과 법의 중요성을 깊이 느끼면서 수행에 임했다. 법은 법을 실천하는 이를 보호한다는[장로게(長老偈) 303] 경전의 의미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면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위와 같은 법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빠사나 수행을 진심으로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공감되는 바가 많은 법문집이다.

③On the Path to Freedom; A mind of wise discernment and openness, English Translation by Mya Thaung, Selangor: Buddhist Wisdom Centre, 1995.

본서는 우 판디타 사야도가 양곤 마하시 수행센터의 원장으로 수행을 지도하실 때인 1986년 8월에서 1987년 3월에 거쳐 미얀마어 외국 수행자에게 법문한 내용을 번역, 정리한 것이다.
내용은 47 소항목으로 나뉘어져, 수행과 직접, 간접으로 관련된 법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문의 특징은 팔리어를 사용하면서 용어들에 대한 아비담마[論書] 및 주석서적인 자세한 해설을 하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본서를 읽고 이해하는데 기본적인 팔리어에 대한 이해가 많은 도움이 된다. 500쪽에 이르는 사전적인 성격의 법문집이므로 필요한 부분을 읽으면서 수행의 지침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3) 우 실라난다 사야도(U Sīlānanda Sayadaw)의 가르침

①The Venerable Mahāsi Sayādaw (Chatta Sangiti Pucchaka Agga Mahā Pandita) Biography (Abridged Edition – Part I), Compiled by Ashin Sīlānandābhivumsa, translated by U Min Swe, Rangoon(Yangon): Mahāsī Thāthana Yeikthā, 1982.

본서는 마하시 사야도가 생존해 있었던 1974년에 이르기까지의 마하시 사야도의 생애와 행적에 대한 기록이다.
현대 미얀마 불교의 대표적인 수행승이자 학승이었던 마하시 사야도의 생애는 마하시 위빠사나 수행 전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②The Four Foundation of Mindfulness, Boston: Wisdom Publication, 1990.

1979년, Insight Meditation Society의 초빙으로 미국을 처음 방문하여 위빠사나를 지도하신 이래, 당시 동행했던 우 실라난다 스님은 미국에 남아 위빠사나를 지도해 오셨다. 본서는 우 실라난다 스님의 오랜 세월 동안의 법문을 정리한 것이다.
본서는 위빠사나 수행의 근본 경전인 『대념처경』을 팔리어의 주석서와 복주(複注) 그리고 마하시 사야도의 미얀마어 주석을 바탕으로 상세히 해설하고 있다. 『대념처경』의 이해를 위한 좋은 번역서이자, 해설서이다. 주석서에 충실한 해설은 특히 경전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우 실라난다 사야도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위빠사나를 지도하고 있다.

(4) 우 자나카 사야도(U Janaka Sayadaw)의 가르침

①Vipassana Meditation; Lectures on Insight Meditation, Yangon: Chanmyay Yeiktha Meditation Centre, 1992, 1995.
<우리말 번역>
『위빠사나 수행 – 통찰 수행에 대한 가르침』正圓 옮김, 서울: 경서원, 1998.

우 자나카 사야도의 영어로 된 대표적인 수행지침서.
영어본으로 142쪽에 달하는 그리 분량이 많지 않은 법문집이지만, 알기 쉽고 요점을 잘 간추린 위빠사나 수행의 지침서로 권할 수 있는 법문집이다. 기초적인 위빠사나 수행법, 사념처에 대한 여러 방면에서의 해설, 일곱 단계의 청정[七淸淨], 오근(五根)을 예리하게 하는 9 방법, 그리고 간략하면서도 요긴한 수행의 지침에서 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 위빠사나 수행법의 핵심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영어 원문에는 없는 부록의 <자비관(慈悲觀)>은, 현재 우 자나카 스님이 지도하고 계시는 양곤의 찬매 수행센터에서 실제로 암송하고 있는 내용을 옮긴 것이다.

(5)우 쿤달라 사야도(U Kundala Sayadaw)의 가르침

①The Nine Essential Factors which strengthen the Indriya of a Vipassanā Meditating Yogi (Volume 1), Translated and Published by Khin Mya Mya, Singapore/Yangon: Saddhammaransi Meditation Center, 1994.
<우리말 번역>
『위빠사나를 돕는 아홉 요인』혜조 옮김, 서울: 자유아카데미, 2541(1997), 법공양판, 배포처: 직지사 백련암(전화; 0574-436-6060)

본서는 우 쿤달라 사야도께서 1993년 10일간의 집중수행 기간 동안에 법문하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내용은 위빠사나 수행자의 오근(五根)을 강화시켜주는 9 가지 요인이다. 위에 소개한 영어본에서는 5 번째 요인까지가 정리되어 있고, 6 번째에서 마지막의 9 번째 요인은 다른 역자에 위해서 번역되었으나, 정식으로 출판되지 않은 채 프린트되어 읽혀지고 있다. 삿담마란시(따담마란디) 수행센터에서 직접 우 쿤달라 사야도의 지도하에 수행을 한 혜조 스님이 법문 전체를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우 쿤달라 사야도의 자상하면서도 간절한 수행에의 지도방식을 잘 엿 볼 수 있는 법문집이다. 우 쿤달라 사야도가 지도하시는 삿담마란시(따담마란디) 수행센터에서는 외국인 수행자들에게는 위 법문이 녹음된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려준다.

(6) 기타

6-1. The Heart of Buddhist Meditation, Nyanaponika Thera, London, Rider, 1962.
<우리말 번역>
『불교 선수행의 핵심』냐나포니카 지음, 송위지 옮김, 서울: 시공사, 1999.
본서는 독일인이면서 남방상좌부 승려로 일생을 보낸 냐나포니카 스님의 저서이다. 사념처(四念處)수행을 중심으로 불교수행을 정리한 유명한 저술로 현재도 판을 거듭하며 읽혀지고 있다. 1999년 3월 한국외국어 대학의 송위지 교수에 의해서 우리말 번역이 나온 것은 반가운일이다.

한글대장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