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경훈

치문경훈

緇門警訓

▶ 原 序
道本無言, 因言顯道, 此三敎之書, 所由作也.《緇林寶訓》, 舊
版不存, 皇慶癸丑, 余因募緣, 重爲 梓. 乃 遺編斷簡中, 君臣
道俗, 凡可以激勸訓誡者, 頗增入之, 目曰《緇門警訓》, 庶廣學者
見聞. 至得意忘言之時, 則區區之志, 豈徒然哉!
吳城.西幻住庵, 比丘永中謹識.
도道는 본래 말(言)이 없으나 말로 인해 도가 드러나는 것이니, 이는 삼교三敎
의 서적들이 지어지게 된 연유이다.《치림보훈》의 옛 판본이 남아 있지 않음에
황경 연간의 계축년에 인연이 모였기에 내가 다시 판각하였는데, 흩어지고 빠진
문장들을 모아 정리하는 가운데 군신君臣이나 도속道俗의 격려되고 훈계될 수
있는 것들을 제법 삽입하여 그 제목을《치문경훈》이라 하였으니, 널리 배우고자
하는 자들은 보고 익히기를 바란다. 뜻(意)을 얻고 말(言)을 잊기에 이르러서는
곧 구구한 생각들이 될 뿐이겠지만, 어찌 그것이 헛되다고만 할 것인가?
오성 서환주암 비구 영중永中이 삼가 쓰다.
▶ 緇門警訓序
盡大地人, 誰無佛性, 誰無信心. 然, 不遇聖敎, 則不發無上菩
提之心, 長沈苦海, 頭出頭沒, 虛生浪死, 實可憫也. 是以, 佛祖聖
賢, 作不請友, 行無緣慈, 爲說種種方便, 敎化調伏, 令其生淨信
心, 成就無上佛果 菩提. 佛果 菩提, 豈異事乎! 正是當人本覺心
也.《大經》亦云: [欲知如來大涅槃者, 當須了知根本自性.] 若人
深信此語, 忽然反顧, 則卽知自心, 無量妙義 百千三昧, 本自具
足, 分毫不謬, 此是正信心也. 三世聖賢, 出現於世, 無言語中而
起言說, 正謂此耳. 太古南游求法時, 幸遇斯《警訓》, 將歸本土,
意欲廣宣流布, 利國利人, 有年矣. 今有勝士明會與道庵, 發大誓
願, 廣化檀緣, 鏤板印施, 殺國人一見一聞, 皆結勝因, 畢竟, 同成
無上正覺. 此, 斯《警訓》之大義歟!
戊午正月初吉, 三韓國尊.小雪山.利雄尊者謹序.
온 세상의 사람들 가운데 그 누가 불성佛性이 없을 것이며 그 누가 신심信心
이 없을 것인가? 그러나 성인의 가르침을 만나지 못하면 위없는 보리菩提의 마
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길이 고통의 바다에 빠져서 머리를 내밀었다 디밀었다 하
며 공허하게 살다가 헛되이 죽을 것이니 참으로 가련할 뿐이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과 성현들이 청하지 않은 벗이 되고 인연이 없는 자비를
행하여 갖가지 방편을 말씀함으로써 교화하고 다독거려 청정한 신심信心이 생기
게 하고 위없는 불과佛果와 보리菩提를 성취하게 해 주었다. 불과와 보리가 어찌
별다른 것이겠는가? 바로 그 사람의 본디 깨달은 마음(本覺心)인 것을.
《대경大經》에 이르기를 [여래의 대열반大涅槃을 알고자 하면 반드시 근본 자
성自性을 이해하여 알아야 한다] 하였다. 만약 사람들이 이 말을 깊이 믿어서 문
득 돌이켜 본다면 곧 자기의 마음에 무한한 묘의妙義와 백천가지 삼매三昧가 본
디 갖추어져 있어 털끝만큼도 어긋남이 없음을 알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올바른
신심信心이다. 삼세三世의 성현들이 세상에 출현하여 말할 것이 없는 가운데서
말씀을 일으켰다 하였으니, 바로 이를 일컫는 것이다.
내(太古)가 남방을 다니며 법을 구할 때에 다행히 이《경훈》을 얻어서 본국으
로 돌아옴에, 널리 유포시켜 나라와 백성들을 이롭게 하고자 한지가 여러 해였다.
이제 뛰어난 선비인 명회明會와 도암道庵이 있어서 큰 서원誓願을 내고 널리 단
월檀越의 인연을 받아들여 판각하고 인쇄하여 유포함으로써 나라 사람들로 하여
금 한 차례 보고 듣게 함에 모두 훌륭한 인연이 맺어지고 결국에는 다 함께 위없
는 바른 깨달음(無上正覺)을 이루게 될 것이니, 이것이 이《경훈》의 큰 뜻이다.
무오년 정월초 길일吉日, 삼한국존 소설산 이웅존자가 삼가 서문을 쓰다.
▶ 序
蓋衆生之根欲性殊, 若一以論之, 恐非得旨也. 故, 丈夫自有衝
天志, 不向如來行處行, 是也; 非佛之言不言, 非佛之行不行, 亦
是也. 等空法界焉有[是 不是]? 而言[是 不是]乃是妄想的分別,
旣有此分別, 自有是非的說話. 觀那古之明心見性的祖師, 擧皆博
學大家, 曹溪之不識文字云者, 不似今時禪客之根銀不識者; 又觀
那執 搖松之高座, 盡是宗說兼通, 泰沼之不聽半 云者, 何如今
之講家水乳不辨者乎! 此書自支那而朝鮮而行于緇門之中者, 久
矣. 於古則三券, 猶謂之略, 今則爲繁而略之爲一券, 學之者又謂
之爲繁, 而又略之必矣. 若如是, 則將見此書未生前之時節, 亦不
遠. 雖得不立文字之旨, 有乖受持讀誦之訓, 致使卽心卽佛之妙密
旨趣, 反爲撥無因果者之口實. 古德頌云: [深嗟末法實悲傷, 佛
法無人得主張. 未解讀文先坐講, 不曾行脚便陞堂. 將錢討院如狂
狗, 空復高心似啞羊.] 彼果是能知未來劫事之聖者歟? 何其寫得
末法今日之事情, 如此其深且切哉! 震湖講伯以善巧方便, 觀根逗
機, 略之爲一券而懸吐之, 至於註中亦懸吐, 於孟浪處則筆削之,
庶使不惱其惱而輒易解之, 可謂老婆心切矣. 請余校之, 遂不揆不
才, 敢妄閱之, 不覺於藏識中, 引起衆生根欲性殊之感. 書之於此,
庶幾不至略之又略, 至于無略, 而爲流通之一助云哉.
丙子春, 法輪寺.雪 山人.草牛堂.卞榮世謹識.
대저 중생은 그 근기와 욕망의 품성이 서로 다르기에 만약 하나 된 생각으로
이를 논한다면 아마도 그 요지를 얻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장부는 하늘
을 찌를 듯한 의지를 스스로 지니고 있으니, 여래행如來行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은 채 처신하고 행위 하는 것도 그것이요, 부처님의 말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부처님의 행위가 아니면 행하지 않음도 역시 그것이다. 허공과 같은 법계에 어
찌 옳고 옳지 않음이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 옳고 옳지 않음을 말한다면 이는
곧 망상에 의한 분별이니 이러한 분별이 있게 되면 시시비비의 말들이 저절로
있게 된다.
마음을 밝혀 견성한 저 예전의 조사들을 보면 거의 모두 배움이 넓은 대가들
이었으니 조계선사가 글을 알지 못하였다 운운하지만 지금의 선객들이 근根 자
와 은銀 자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며, 또한 총채를 잡고 소나무 가
지를 흔드는 저 높은 법상을 보면 모두 으뜸의 이치와 명쾌한 설명을 겸하여 꿰
뚫었으니 태소대사가 반절도 듣지 못하였다 운운하지만 어찌 지금의 강사들이
물과 우유도 분별하지 못하는 것과 같겠는가.
이 책은 중국에서 시작하여 조선에 들어와 불가에서 쓰여진지 오래 되었다.
예전에는 세 권이었으나 오히려 간략하다 말하였는데, 지금은 번거롭다 하여 한
권으로 줄였음에도 이를 배우는 이들이 또 번거롭게 여겨 다시 간략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곧 이 책이 생겨나기 전의 시절을 볼 수 있음
또한 멀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불립문자의 요지를 얻었다 하더라도 받아 지녀 독
송하는 가르침에 어그러짐이 있으면 설사 마음이 곧 부처라는 오묘한 으뜸의 이
치라 하더라도 도리어 인과법을 무시하여 물리치는 자의 구실이 될 뿐이다. 고승
대덕이 송頌하여 이르기를 [말법임을 깊이 탄식할 새 실로 슬프고도 상심하나니,
그 누구도 불법을 얻어 주재하는 이 없구나. 읽은 글월 이해도 못한 채 성급히
강백의 자리에 앉으며, 일찍이 행각도 경험하지 못한 채 별안간 설법의 자리로
올라선다. 돈을 가지고 도량을 거론함이 마치 미친개와 같고, 빈배에 마음만 높
음은 흡사 벙어리 염소와 같다] 하였으니, 그는 과연 미래겁의 일을 능히 아는
성자였던가? 그가 쓴 오늘날 말법의 사정이 어찌 이와 같이 깊이 있고도 또한
적절하단 말인가!
안진호 강백이 뛰어난 방편으로써 뿌리 되는 것은 들여다보고 거짓된 것은 피
하여 한 권의 책으로 간략히 하고 토를 달았으며, 심지어 주석에도 토를 달고 엉
터리없는 곳은 손을 보아 삭제함으로써 고민스러운 곳은 고민스럽지 않게 하여
쉽고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그 노파심이 가히 절실하다 할 것이다.
나에게 그것의 교감을 요청함에 마침내 재주 없음을 살피지 않고 감히 망령되게
그것을 살펴보다가 느끼지 못하는 무의식중에 중생의 근기와 욕망의 품성이 서
로 다르다는 느낌이 일게 되었다. 이 책이 여기에서 지극히 간략화 된 것이 또다
시 간략화 되지 않기를 바라기에 결국에는 간략화 하지 않은 채 다만 보다 널리
보급되는데 조그만 도움이나 되고자 한다.
병자년 봄, 법륜사의 설호산인 초우당 변영세 삼가 쓰다.
▶ 註緇門警訓
釋敎東漸, 每多註疏, 如《金剛》·《楞嚴》, 動輒百十, 其餘紀述,
亦或二三,《警訓》獨無解, 何哉? 豈海外 邦, 未及聞見耶? 抑亦
無事解釋也耶? 叢林中傳習旣久, 大略皆日用切近之誨, 不過
浮情 誡邪業, 以軌乎正道, 是學佛之發 , 迪蒙之慈訓也. 凡爲釋
子者, 不可不誦習依行, 正如爲山九 , 必澁乎一 , 行詣千里,
實昉乎初步, 捨一 初步, 望九 論千里, 雖三尺亦知其無能爲也.
此書雖曰入道初門, 矯矯群賢, 各出手眼, 多有引用, 若不博涉,
固難遊刃. 或根銀莫辨, 名義俱錯, 余每臨講授, 終不 然, 僭越
秉筆, 略爲箋釋, 行住必俱, 稽檢備忘, 祇堪自悅, 不可持贈他人
也. 客曰: [近有一種禪流, 高見, 但言{心卽是經, 何更
?}, 或復抹却疑團, 淨土諸門, 一皆掃除, 樂于放逸, 耽于閒寂,
自便己私. 子何沾沾以一竇自多, 從事於斯? 無乃見大笑耶?] 答:
[余卑卑雌伏, 言不出群, 乏應世之全才, 蔑 邪之慧力. 奈一齊
而衆楚之, 何? 是, 日夕扼腕而疾首者也. 且在余之志, 爲道不爲
名, 爲法不爲身. 譬如以鳥鳴春, 以雷鳴夏, 以蟲鳴秋, 以風冽冽
鳴乎其冬, 蓋出於自然而不能已也, 敢灑同雲之潤, 以公見聞
也? 聊私以示余之役而已. 至於曲註蔓解, 以抹幽奧之旨者, 亦解
則無解, 豈能體古人無事解釋之意! 庶可以助一 初步.]云爾.
時, 康熙乙亥仲秋日, 栢庵沙門性聰識.
석가의 가르침이 동쪽으로 젖어 들어옴에 매번 그 주석이 많아졌으니,《금강
경》이나《능엄경》같은 것은 번번이 수십 수백 가지가 되며 그 나머지 기록이나
서술 역시 두세 가지는 되는데《경훈》만이 유독 해석서가 없는 것은 무엇 때문
인가? 어찌 바다 바깥에 치우친 나라이기에 미처 듣고 보지 못해서이겠는가? 그
렇지 않다면 굳이 해석을 일삼지 않았기 때문인가? 총림叢林에 전해지며 익혀
온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니, 그 대략은 모두 날마다 쓰이는 절친한 가르침으로서
경박한 정情을 막고 사악한 업業을 경계하여 그로써 바른 도(正道)에 올라서게
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는 깨달음(佛)을 배우는 첫 출발이며 몽매함을 이끄는
자비로운 가르침이다. 무릇 석가의 자식된 자로서 암송하여 익히고 이에 의지하
여 수행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마치 아홉 길의 산이 이루어진 것도 반드시 한 삼태
기에서 비롯되었고 나아가 천리 길에 이른 것도 실로 첫 걸음에서 비롯되었음과
같으므로, 한 삼태기와 첫 걸음을 버리고 아홉 길의 산을 바라며 천리의 길을 거
론한다면 비록 삼척동자라도 그렇게 될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이 책이 비록 도道에 들어가는 기초 입문이라 일컬어지지만 쟁쟁한 여러 현인
들이 각기 솜씨와 혜안慧眼을 내어 지은 글로서 많은 인용문이 실려 있으니, 만
약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지 못했다면 여유롭게 칼날을 놀리기가 실로 어려울
것이다. 간혹 근根 자와 은銀 자를 분별하지 못하고 겉(名)과 속(義)을 모두 그르
치는 지라 내가 매번 강론을 듣는 자리에 나아갔으나 결국에는 속 시원히 여겨지
지 않기에 참람되게 붓을 들어 대략 주석한 것이니, 오가고 거처함에 반드시 갖
추었다가 머리를 조아려 살펴보며 잊을 것에 대비함으로서 다만 스스로 즐길 뿐
이지 가져다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손님이 말하기를 [근래에 한 무리의 선류禪流가 있어서 따로 고상한 견해로만
치달으며 단지 {마음이 곧 경전인데 어찌 다시 재잘거릴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하며, 혹은 또 의심 덩어리를 지워버리고 정토淨土의 모든 법문을 하나같이 모
두 쓸어버림으로써 방일放逸을 즐기고 한적함을 탐닉하며 스스로 자기의 사사로
움만을 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경망스럽게도 좁은 소견으로 스
스로 뛰어나다 여기며 이 일에 종사하십니까? 큰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나 없겠
습니까?] 하기에 대답하기를 [내가 미천하여 남에게 굴복하고 말은 뛰어나지 못
하며 세상의 필요에 상응할 완전한 재주는 결핍되고 사악한 견해를 꺾을 만한
지혜의 힘은 없습니다만, 한 명이 제齊나라 말을 가르치려 하나 한 무리의 초楚
나라 사람들이 떠든다면 더욱이 이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밤낮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골치를 앓아 온 까닭입니다. 또한 내가 지닌 뜻은 도道를 위함
이지 이름(名)을 위한 것이 아니며, 법法을 위함이지 몸(身)을 위한 것은 아닙니
다. 비유컨대 새는 봄에 울고 우뢰는 여름에 울며 벌래는 가을에 울고 바람은 차
디차게 겨울에 우는 것과 같으니 대개 스스로 우러나온 것이므로 그만 둘 수는
없는 것이거늘, 어찌 감히 구름과 같은 물기를 뿌림으로써 보고들은 것을 드러내
려는 것이겠습니까? 아쉬운 대로 사사로이 내가 애쓴 것을 보이고자 할뿐입니다.
나아가 잘못 주석하고 쓸데없이 풀이함으로써 오묘한 뜻을 지워버림에 이르러서
는 역시 풀이를 했다 하더라도 풀이한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니, 어찌 해석을 일삼
지 않은 고인의 뜻을 능히 체득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삼태기와 첫 걸음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였다.
때는 강희 연간의 을해년 중추仲秋, 백암사문 성총性聰이 쓰다.

山大圓禪師警策[1]
夫業[2]繫受身,[3] 未免形累, 父母之遺 ,[4] 假衆緣[5]而共成.[6]
雖乃四大扶持, 常相違背,[7] 無常老病,[8] 不與人期, 朝存夕亡,[9]
刹那異世.[10] 譬如春霜曉露, 忽卽無, 岸樹井藤, 豈能長久. 念
念迅速, 一刹那間, 轉息卽是來生, 何乃晏然空過. 父母不供甘
旨,[11] 六親[12]固以棄離, 不能安國治邦,[13] 家業頓捐繼嗣, 緬離鄕
黨,[14] 剃髮 師,[15] 內勤剋念之功, 外弘不諍之德,[16] 逈脫塵世,
冀期出離, 何乃裳登戒品,[17] 便言[我是比丘],[18] 檀越所須,[19] 喫
用常住,[20] 不解忖思來處,[21] 謂言[法爾合供], 喫了聚頭喧喧, 但
說人間雜話. 然卽一期 樂, 不知樂是苦因.[22] [23]劫[24]徇塵, 未
嘗返省, 時光淹沒, 歲月蹉 , 受用殷[25]繁, 施利濃厚, 動經年載,
不擬棄離, 積聚滋多, 保持幻質. 導師有勅, 戒 比丘: [進道嚴
身, 三常不足.][26] 人多於此, 貪味不休, 日往月來, 颯然白首.[27]
後學未聞旨趣,[28] 應須博問先知, 將謂出家, 貴求衣食? 佛先制
律, 啓創發蒙,[29] 軌則威儀,[30] 淨如氷雪, 止持作犯,[31] 束斂[32]初
心, 微細條章,[33] 革諸猥弊,[34] 毘尼[35]法席,[36] 曾未 [37]陪, 了義
上乘, 豈能甄別?[38] 可惜! 一生空過, 後悔難追, 敎理未嘗措懷,
玄道無因契悟.[39] 及至年高臘長,[40] 空腹高心, 不肯親附良朋, 惟
知倨傲, 未傷法律, 斂全無.[41] 或大語高聲, 出言無度,[42] 不敬
上中下座,[43] 婆羅門[44]聚會無殊. 椀鉢作聲,[45] 食畢先起, 去就[46]
乖角,[47] 僧 全無. 起坐 諸,[48] 動他心念, 不存些些軌則 小小
威儀, 將何束斂? 後昆新學,[49] 無因倣 . 裳相覺察, 便言[我是
山僧], 未聞佛敎行持, 一向情存序 .[50] 如斯之見, 盖爲初心
惰, [51]因循,[52] 荏苒[53]人間, 遂成疎野, 不覺 踵老朽,[54] 觸
事面墻.[55] 後學咨詢, 無言接引, 縱有談說, 不涉典章.[56] 或被輕
言, 便責後生無禮, 嗔心忿起, 言語該人, 一朝臥疾, 在牀衆苦, 榮
纏逼迫, 曉夕思忖, 心裡 惶,[57] 前路茫茫, 未知何往. 從玆, 始
知悔過, 臨渴掘井, 奚爲! 自恨早不預修, 年晩多諸過咎, 臨行[58]
揮?,[59] 怖 惶.[60] 穿雀飛,[61] 識心隨業, 如人負債, 强者先
牽, 心緖多端, 重處偏墜. 無常殺鬼, 念念不停, 命不可延, 時不可
待, 人天三有, 應未免之. 如是受身, 非論劫數,[62] 感傷嘆訝,[63]
哀哉切心, 豈可緘言, 遞相警策.[64] 所恨, 同生像季,[65] 去聖時遙,
佛法生疎, 人多懈怠, 略伸管見,[66] 以曉後來. 若不 [67]矜, 誠難
輪 .[68]
대저 업業에 얽매여 받은 이 몸은 형상이 연루됨(形累)을 면하지 못하니, 부모
께서 물려주신 몸을 이어 받고 뭇 인연에 의지하여 함께 이루어진 것이다. 비록
사대四大가 [이 몸을] 부지하여 나가지만 항상 서로 어기고 등지는 까닭에 무상
하게 늙고 병들어 가는 것이 사람과 더불어 기약하지 못하고 아침에 있다가도
저녁이면 없어지니 찰나에 세상을 달리하게 된다. 비유하면 마치 봄날의 서리나
새벽의 이슬과도 같아서 잠깐 사이에 곧 사라지니, 언덕 위의 나무와 우물 속의
등나무가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찰나찰나가 신속하여 한 순간에 숨을 돌리면
곧 내생來生인데 어찌 편안히 있으면서 헛되게 지낼 수 있겠는가. 부모를 맛있는
음식으로 공양하지도 않고, 육친六親도 굳이 버리고, 나라를 편안히 다스리지도
못하고, 가업의 상속마저 문득 던져버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와서 머
리를 깎고 스승으로부터 계를 받았으면 안으로는 생각을 이기는 공부를 부지런
히 하고 밖으로는 다투지 않는 덕행을 넓힘으로써 티끌세상을 멀리 벗어나서 해
탈의 기약을 바래야 할 것인데, 어찌하여 겨우 계를 받은 정도에 올라서서 문득
[나는 비구이다]라고 말하며 시주들이 바라는 바가 있는 상주물常住物만 먹고
쓰면서 그 온 곳을 헤아려 생각하지도 않고 [법이 그러하니 공양을 받음이 합당
하다]라고 일컬으며, 먹고 나서는 머리를 맞대고 시끄럽게 떠듦에 단지 세간의
잡된 말들만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한 것은 곧 한 때의 쾌락을 뒤쫓음에 있어서
쾌락이 고통의 원인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날에 세속의 인연(塵緣)만을 쫓음에 일찍이 반성하지 못하였으니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날수록 받아 쓴 것은 점차 많아지고 시주의 은혜는 두터워만
지는데, 여차하면 한 해가 지나가건만 버리고 여윌 생각은 하지 않으니 쌓이고
모인 것이 점점 많아지는데도 헛된 몸뚱이만 보호해 지키는구나. 지도하는 스승
이 글(勅)을 보내어 비구들을 경계하고 권면하기를 [나아가 도를 배우는 자들은
몸가짐을 엄히 하되 세 가지 상주물은 부족한 듯 하게 하라] 하셨거늘, 사람들이
대체로 여기에 대해서 그 맛을 탐내어 쉬지 않음에 해가 지고 달이 뜨니 바람결
에 머리는 허옇게 세고 만다. 뒤에 배우는 자들이 아직 요지(旨趣)를 듣지 못했으
면 응당 선지식先知識에게 널리 물어야 할 것이거늘, 출가하였다고 일컬으며 어
찌 옷과 음식을 귀히 여겨 추구하는 것인가? 부처님께서 먼저 계율을 제정하여
처음으로 계도하고 몽매함을 깨우쳐 주심에 그 궤칙軌則과 위의威儀는 깨끗하기
가 마치 얼음이나 눈과 같아서 그치고 지키며 짓고 범하는 것으로 처음 먹은 마
음(初發心)을 단속함에 미세한 조강條綱과 전장典章으로 모든 외람된 폐단을 개
혁하셨으나, 계율을 설파하는 자리에 일찍이 외람되게 참석하지 못하였으니 궁
극적인 진리가 되는 최상의 법을 어찌 밝히고 분별할 수 있겠는가?
애석하다! 일생을 헛되이 보내면 그 후회를 뒤쫓기 어려우며, 교리敎理에 일찍
이 마음을 두지 않으면 현묘한 도에 계합하여 깨달을 원인이 없다. 나이를 먹고
승랍僧臘이 많아지기에 이르면 빈 뱃속에 마음만 높아져서 어진 벗과 친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오직 거만할 줄만 알며, 불법과 계율을 깨닫지 못하므로 이를 가
다듬을 마음도 전혀 없다. 혹은 거창한 말투와 높은 목소리로 말을 함에 법도가
없으며 위아래의 품계를 공경하지도 않으니 바라문 집단의 모임과 다를 것이 없
다. [식사 중에는] 밥그릇 소리를 내거나 식사를 마치면 먼저 일어나며, 오고 감
에 있어서도 행동이 괴각스러우니 승려로서의 모습이 전혀 없다. 일어나고 앉을
때도 허둥대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혼란케하며 사사한 궤칙軌則이나 소소한
위의威儀도 가지고 있지 않음에 장차 어떻게 [스스로를] 단속하겠는가? 뒤에 새
로이 배우는 사람들이 본받을 것이 없다. 겨우 깨달아 성찰하게 되면 걸핏하면
하는 말이 [나는 산 속의 승려이다]라고 하지만 아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여 도를 닦아 가지지 못함에 한결같이 정情을 거친 곳에 둘 뿐이다. 이와 같
은 소견은 대개 처음 먹은 마음이 게으른 까닭으로 탐이나 내고 하는 일없이 사
람들 사이에서 그럭저럭 보내다가 마침내 성글고도 거칠게 되니, 어느덧 걸음걸
이도 배우지 못해 고루하게 늙어버리고 무슨 일에 부딪히면 마치 얼굴이 담벼락
에 맞닿은 것과도 같게 된다.
후학들이 물어오면 마땅히 이끌어 줄 말이 없으며, 비록 얘기한다 하더라도
전장典章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간혹 업신여기는 말이라도 들으면 곧장 후생後
生의 무례함을 질책하며 성내는 마음을 일으켜 그 사람을 꾸짖다가 하루아침에
병으로 누우니 병석의 온갖 고통이 얽히어 핍박함에 아침저녁으로 헤아려 생각
해 보면 마음속이 혼란하고 앞 길이 망망하여 어디로 갈지를 알지 못한다. 이로
부터 비로소 허물을 뉘우칠 줄 알지만 목말라 샘파는 격이니 어찌 하겠는가. 스
스로 일찍이 미리 수행하지 않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여러가지 과오와 허물이 많
음을 한탄하며, 죽음에 임해서는 몸부림치며 두려워 어찌할 줄을 모른다. 비단이
뚫어지면 참새는 날아가니, 식심識心이 업業을 따라가는 것은 마치 사람이 빚을
지게 되면 가장 큰 빚쟁이가 먼저 끌어당기듯이 마음의 실마리는 여러 갈래지만
무거운 쪽으로 치우쳐 떨어지기 마련이다. 무상한 살귀殺鬼는 순간순간에도 쉬
지 않음에 생명은 가히 늘리지 못하고 시간은 가히 기다리지 않으니, 인계人界나
천계天界나 삼계三界에 있어서 응당 이를 면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몸을 받은 것
이 몇 겁劫이나 되었는지 논할 것도 없이, 그 고통을 느낌에 탄식하고 놀라며 슬
픔은 마음을 저며내니 어찌 입을 다물고 경책의 말을 전하지 않을 것인가.
한스러운 것은 상법像法과 계법季法의 시기에 함께 태어나 성인의 시기와 요
원히 멀고 불법은 생소해져 사람들이 대체로 게으르고 나태해진 것이니, 간략하
게 소견을 펴서 뒤에 오는 이들을 깨우치고자 한다. 만약 자만을 없애지 아니하
면 진실로 윤회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1】 山.靈祐禪師, 福州.趙氏子, 嗣百丈, 代宗勅諡大圓.
【2】前因.
【3】今果.
【4】父精, 母血.
【5】乳哺, 洗浴, 衣食等.
【6】凡受身者, 皆有四相, 上卽生相.
【7】《智論》云: [四大爲身, 常相惱害, 一一大中, 百一病起. 冷病有二百二, 水風起故; 熱病有二百
二, 地火起故.]
【8】中間二相.
【9】死相.
【10】《仁王經》云: [一念中有九十刹那, 一刹那中, 經九百生滅.] 言極少時也.
【11】旨卽美也. 飮食之美者, 必以旨言.
【12】《善見論》云: [父六親, 伯叔兄弟兒孫; 母六親, 舅姨兄弟兒孫.]
【13】大曰國, 小曰邦.
【14】《禮》云: [五家爲隣, 二十五家爲里, 五百家爲黨, 萬二千五百家爲鄕.]
【15】初, 比丘於如來[善來]言下, 鬚髮自落, 袈裟披體, 成道十一年, 始以寶刀, 剪剃鬚髮, 又囑
陣如等, 遍於天下, 爲諸沙彌受戒, 是剃髮受戒之始.
【16】成而不朽者 功, 周而不 者 德也. 又德, 得也, 有自生而得之於天, 有躬行而得之於心, 此言
躬行也.
【17】品者, 類也. 比丘二百五十戒, 束爲八類, 故云戒品.
【18】比丘, 此云乞士, 內乞法, 以資慧命, 外乞食, 以資色身. 又有四義故, 存梵不譯.
【19】檀, 施也, 施之以財; 越, 越貧窮海. 言所須, 謂施財者欲邀福懺罪也.
【20】《 》云: [僧物有四種常住. 一, 常住常住, 謂衆所用什物, 體局當處, 不通餘界, 但得受用, 不
許分賣故, 重云常住. 二, 十方常住, 寺中飮食等物, 體通十方, 唯局本處, 食旣熟已, 乃打鼓
鍾, 盖明十方僧, 俱有分也. 上二, 名僧祇物. 三, 現前常住, 中有二, 一物現前, 二僧中現前,
謂此僧得多施物, 惟施此處現前僧衆故. 四, 十方現前常住, 謂亡僧遺物也, 體同十方, 唯本處
現在僧得分故. 此二, 名現前僧物. 今詳分亡僧物, 十方來僧, 在?磨數前, 卽得, ?磨後來者,
不得也.]
【21】來處者, 此一鉢之食, 出於作者一鉢之汗血也, 又施者所求也.
【22】不知今生受用快樂, 卽爲來世得苦果之因.
【23】昔也.
【24】時也.
【25】多也, 盛也.
【26】三常, 衣服 飮食 睡眠. 若圖取足, 何能行道?
【27】颯然, 風聲發貌.
【28】旨意向也, 意之所歸爲趣.
【29】創始啓導, 擊發蒙昧.
【30】威可畏也, 儀可象也.
【31】攝善法戒, 止善爲犯, 作善爲持; 攝律儀戒, 止惡爲持, 作惡爲犯.
【32】拘束收斂.
【33】三千威儀 八萬細行, 一一各有條陳章句, 如木之有枝條, 故曰條章.
【34】鄙猥愚弊.
【35】此云調伏, 調鍊三業, 制伏過非. 又蒜滅, 謂滅惑滅業, 得滅果也.
【36】凡說法之處, 必 筵設席, 故云法席.
【37】猥濫也.
【38】甄明, 陳別.
【39】凡爲比丘, 五載學律, 又五歲通經然後, 稱爲大師, 且復參學禪道.
【40】律中, 以七月十六日, 是比丘五分法身生來之歲, 則十五日, 是臘除也. 比丘出俗, 不以俗年爲
計, 乃數夏臘耳.
【41】虧身業.
【42】虧口業.
【43】虧意業.
【44】此云淨行, 劫初種族, 山野自閑故, 人以淨行稱之. 肇云, 其種別有經書, 世世相承, 以道學爲
業, 或在家或出家, 多恃見道術我慢人也. 惟五天有, 餘國無, 諸經中梵志卽同此名. 其人種類,
自云梵天口生.
【45】椀, 小盂; 鉢, 梵語具云[鉢多羅], 此云應器, 唐 梵雙擧. 食時若作聲, 餓鬼咽中火起.
【46】進退作爲.
【47】角亦乖也.
【48】 , 心動也, 又驚也.
【49】昆, 同也 咸也, 又後也.
【50】 與粗同.
【51】獸名, 羊身人面, 目在腋, 虎齒人爪, 音如孀兒. 性貪 , 食之無厭, 遂害其身. 縉雲氏有不才
子, 貪于飮食, 冒于貨賄, 故謂之 . 舜投諸四裔.
【52】無所作爲也.
【53】展轉也.
【54】 踵, 小兒行貌.
【55】孔子謂伯魚曰: [人而不學《周南》·《召南》, 猶面墻而立也歟?] 言物無所見, 一步不可行也.
【56】典法也, 五帝書也; 章文也, 言成事文也. 孟浪之談, 取笑傍觀, 發言輕率, 曰[孟浪].
【57】 , 昏亂貌; 惶, 卽惑也, 又恐也.
【58】大去之行也.
【59】揮?, 振動也. 業重者, 臨終手忙脚亂, 振動周章也.
【60】皆恐懼貌.
【61】《七賢女經》[有雀飛入甁中, 以 覆其甁口, 旣已穿破飛去.] 雀比識心, 甁比身, 紗也.
【62】劫, 梵語具云[劫波], 此云時分, 不論長時短時 大時小時, 皆曰劫.
【63】訝, 驚怪也.
【64】豈可緘口而不言哉!
【65】佛滅後, 正法一千年, 像法一千年, 末法一萬年, 然後法滅. 像 似也, 似正法時也; 季末也.
【66】古人云: [管中窺豹, 時見一班.] 自謙小見也.
【67】除也.
【68】 逃也, 未能逃脫輪廻三界也. 上敍出家人過咎, 以警覺, 下說出家人行履, 使其勉勵而策進也.
【1】위산 영우선사는 복주의 조씨 아들로서 백장의 법을 이었으며, 대종이 칙서를 내려 [대
원]이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2】예전의 원인이다.
【3】지금의 결과이다.
【4】아버지의 精과 어머니의 血을 말한다.
【5】젖을 먹여주는 일, 씻겨 주는 일, 그리고 의복과 음식 등을 말한다.
【6】무릇 몸을 받는 자는 모두 네 가지 相을 지니는데, 가장 처음의 것이 生相이다.
【7】《지론》에서 말하였다. [四大가 몸을 이루는데 항상 서로 번뇌로서 해악을 끼치니 하나하
나의 大마다 101 가지의 병이 일어난다. 차가운 질병에는 202 가지가 있는데 모두 水와 風
에 기인한 것이며, 더운 질병에는 202 가지가 있는데 모두 地와 火에 기인한 것이다.]
【8】[四相 가운데] 중간의 두 가지 相이다.
【9】죽음의 相이다.
【10】《인왕경》에 이르기를 [한 생각 중에 90 찰나가 있으며, 한 찰나 중에 9백 차례 생멸을 거
듭한다] 하였으니, 지극히 적은 시간을 말한다.
【11】旨는 곧 [맛이 좋다(美)]는 것이다. 음식의 맛깔스러운 것은 반드시 [旨]자로써 말한다.
【12】《선견론》에 말하였다. [父系의 六親은 백부 숙부 형 아우 자식 손자를 말하며, 모계의
육친은 외삼촌 이모 형 아우 자식 손자를 말한다.]
【13】큰 나라를 [國]이라 하고, 작은 나라를 [邦]이라 한다.
【14】《예기》에 말하였다. [다섯 집을 隣으로 삼고, 스물 다섯 집을 里로 삼으며, 5백 집을 黨으
로 삼고, 1만2천5백 집을 鄕으로 삼는다.]
【15】최초에는 비구들이 여래의 [잘 왔구나 비구야!] 하는 말끝에 머리카락이 저절로 떨어지
고 가사가 몸에 입혀지더니, 도를 이룬지 11년에 처음으로 보검으로써 머리카락을 잘라
삭발하였고 또 교진여 등에게 부촉해서 천하에 두루하며 모든 사미들을 위해 수계하게
하니, 이것이 머리를 깎고 계를 받는 시초가 된다.
【16】완전히 이루어져 허물어지지 않는 것을 功이라 하고, 두루 원만하여 빠진 것이 없는 것을
德이라 한다. 또한 德을 [얻음(得)]이라 하는데, 태어날 때는 그것(德)을 하늘로부터 얻고
몸을 굽혀 수행할 때는 그것(德)을 마음으로부터 얻으니, 그러한 것을 躬行이라 말한다.
【17】品은 종류(類)이다. 비구는 2백5십 가지 계가 있으며 이를 묶어서 여덟 가지 종류로 나누
니, 그 까닭에 戒品이라 일컫는 것이다.
【18】比丘는 중국말로 [걸인 선비(乞士)]라 일컫는데, 안으로는 법을 구걸하여 慧命의 바탕으
로 삼으며 밖으로는 음식을 구걸하여 色身의 바탕으로 삼는다. 또 달리 네 가지 뜻이 있
는 까닭에 梵語로 놓아두고 번역하지 않는 것이다.
【19】檀은 베푼다(施)는 것이니 재물로써 베푼다는 뜻이며, 越은 빈궁한 바다를 뛰어 넘는다는
뜻이다. [所須]라고 하는 것은 재물을 보시하는 자가 복을 구하며 죄를 참회하고자 한다
는 것을 일컫는다.
【20】《초》에 말하였다. [승려들이 쓰는 물건에 4종의 상주물이 있다. 첫 번째는 常住常住이니
말하자면 대중이 필요로 하는 생활의 온갖 사물로서, 體가 있어야 할 곳이 국한되어 있어
서 다른 곳으로 통용되지 못하며 다만 받아 사용할 수 있을 뿐 나누어 파는 것이 허락되
지 않는 까닭에 ‘항상 머문다’ 함을 거듭 말한 것이다. 두 번째는 十方常住이니 절 안의
음식 등의 물품은 體는 시방으로 통하지만 오직 본래의 장소에 국한된 것으로서, 음식이
이미 익으면 이에 북이나 종을 쳐서 대개 시방의 승려들 모두에게 배분이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이상의 두 가지는 僧祇物이라 이름한다. 세 번째는 現前常住로서 物現前과 僧中
現前의 두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어느 곳의 승려가 많은 시주물을 얻어서 오직 그곳에
현재 있는 대중승려들에게 시주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十方現前常住이니 말하자면 열
반에 든 승려의 유물로서, 體의 활용 형태는 시방상주와 같으나 오직 본래 있던 곳의 재
적승들이 배분을 받는 까닭이다. 이 두 가지는 現前僧物이라 이름한다. 이제 상세히 고찰
하니, 열반에 든 승려의 유물을 분배함에 사방에서 온 승려 가운데 숫자를 갈마하기 전에
왔으면 곧 배분을 얻고, 갈마한 후에 온 자는 얻지 못한다.]
【21】來處라는 것은 이 한 발우의 음식이 그 음식을 일군 자의 한 발우에 해당하는 땀과 피에
서 나온 것이며, 또한 시주자의 추구하는 바에서 나온 것임을 말한다.
【22】금생에 받아쓰는 쾌락이 곧 내생에 받게 되는 苦果의 원인이 됨을 알지 못한다.
【23】옛날을 말한다.
【24】때를 말한다.
【25】많다거나 번성함을 말한다.
【26】三常은 의복과 음식과 수면을 말하는데, 만약 풍족하게 가지기를 꾀한다면 어찌 능히 도
를 행하겠는가.
【27】颯然은 바람소리가 나는 모양이다.
【28】旨는 뜻이 향함을 말하며, 뜻이 돌아가는 곳을 趣라 한다.
【29】계도를 창시하고 몽매를 격발시키다.
【30】위엄은 가히 두렵게 하고, 거동은 가히 본받을 만하게 한다.
【31】善法의 계를 섭수함에 있어서는 善을 그치는 것이 犯하는 것이 되고 善을 짓는 것이 지
키는 것이 되며, 律儀의 계를 섭수함에 있어서는 惡을 그치는 것이 지키는 것이 되고 惡
을 짓는 것이 犯하는 것이 된다.
【32】다잡아 매고 거두어들이다.
【33】3천의 위의와 8만의 세행을 그 하나하나 각각 조목별로 章과 句로 벌려 놓음이 마치 나
무에 둥치와 가지가 있는 것과 같은 까닭에 條章이라 하였다.
【34】인색하거나 어리석은 마음으로 인해 함부로 함으로써 생긴 폐단.
【35】이곳 말로는 조복시킴(調伏)이니, 身口意 三業을 조련하여 과거의 그릇됨을 제압하고 굴
복시킴을 말한다. 또는 滅이라 번역하는데, 의혹을 소멸시키고 業을 소멸시킴으로써 滅果
를 얻음을 말한다.
【36】무릇 법을 설하는 장소에는 반드시 자리를 깔고 좌석을 마련하는 까닭에 법의 자리(法
席)라 한다.
【37】외람됨을 말한다.
【38】분명하게 밝혀서 나누어 늘어놓다.
【39】무릇 비구가 되어서는 다섯 해 동안 율을 배우고 또 다섯 해 동안 경전을 두루 익힌 연
후에야 大師라 일컬어지게 되며, 그러고는 다시 禪道를 참구하게 된다.
【40】율장에 7월 16일로써 비구의 五分法身이 생겨난 날로 삼으니 곧 15일이 臘除이다. 비구
는 세속을 떠났기에 세속의 햇수로 계산하지 않고 夏臘을 셈할 뿐이다.
【41】身業이 이지러짐.
【42】口業이 이지러짐.
【43】意業이 이지러짐.
【44】이곳 말로는 淨行이니, 개벽의 초기부터 있어 온 종족으로서 산과 들에 유유자적하며 생
활하는 까닭에 사람들이 淨行이라는 말로 그들을 일컫는다. 肇가 이르기를, 그 종족은 따
로 經書가 있어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며 도학으로써 업을 삼으니 혹은 在家하고 혹은 出
家하며, 도술을 보고 대체로 믿어 의지하는 我慢心이 높은 사람들이다. 오직 다섯 天竺國
에만 있고 여타의 나라에는 없으며, 여러 경전 가운데 梵志라는 것이 곧 이 이름과 같다.
그 사람들의 종족 유형은 梵天의 입에서 생겨났다고 자칭하고 있다.
【45】椀은 작은 발우이며 鉢은 범어로 갖추어 말하면 鉢多羅로써 이곳 말로는 應器라 하니, 당
나라 말과 범어를 함께 말한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만약 소리를 내면 아귀의 목구멍에
서 불길이 일어난다 하였다.
【46】나아가고 물러서며 행위를 짓는 것.
【47】角 역시 乖의 의미이다.
【48】 은 심장이 두근거림을 말하며 또는 놀람을 말한다.
【49】昆은 ‘같이(同)’ 혹은 ‘함께(咸)’를 말하며, 또는 ‘뒤(後)’를 말한다.
【50】 는 粗(거칠다, 精微하지 못하다)와 같다.
【51】짐승의 이름으로, 양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하고 눈은 겨드랑에 있으며 호랑이 이빨에 사
람 손톱으로 소리는 마치 갓난아기와 같다. 성격은 탐욕이 심하여 음식을 먹음에 만족해
하는 일이 없어서 마침내 자신의 몸을 해치기에 이른다. 진운씨에게 변변치 않은 아들이
있어 음식을 욕심 내고 재물을 탐내는 까닭에 도철이라 일컬었다. 순이 四裔에 던졌다.
【52】作爲하는 바가 없음을 말한다.
【53】展轉함을 말한다.
【54】’용종’은 갓난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이다.
【55】공자가 백어에게 말하기를 [사람으로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않는다면 담장에 얼
굴을 맞대고 서 있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하였으니, 한 가지의 물건도 보이는 바가 없을
것이며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56】典은 法이니 五帝의 書이며, 章은 文이니 成事의 文을 말한다. 맹랑이라는 사람의 얘기는
곁에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항상 웃음거리가 되었기에 발언을 경솔하게 하는 것을 ‘맹
랑하다’라 일컫게 되었다.
【57】 는 혼란한 모양이며, 惶은 곧 의혹을 말하거나 또는 두려움을 말한다.
【58】크게 가는 것, 즉 죽음을 말한다.
【59】揮?은 진동함을 말한다. 업이 무거운 자는 임종 때 손발을 어쩔 줄 몰라 하여 떨며 당황
해 한다.
【60】모두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61】《칠현녀경》에 [참새가 병 속으로 날아 들어가자 얇은 비단으로 그 병 입구를 덮어놓았더
니 얼마 있다가 구멍이 뚫려 터지자 날아가 버렸다]라 하였다. 참새는 識心에 비유하였
고 병은 몸에 비유한 것이며, 은 비단을 말한다.
【62】劫은 범어로 갖추어 말하면 劫波이며 이곳 말로 하면 時分이니, 긴 시간이나 짧은 시간
또는 큰 시간이나 작은 시간을 막론하고 모두 劫이라 한다.
【63】訝는 놀랍고도 괴이함을 말한다.
【64】어찌 입을 봉하고서 말하지 않으리요!
【65】부처님 입멸 후 正法 기간이 1천년이요 像法 기간이 1천년이요 末法 기간이 1만년이며,
그러한 후에 법은 소멸된다. 像은 흡사하다는 것이니 正法과 흡사한 시기를 말하며, 季는
끄트머리를 말한다.
【66】옛 사람이 말하기를 [대롱관으로 표범을 엿보면 때때로 한 개의 점을 볼뿐이다] 하였으
니, 스스로 소견임을 겸양해 하는 말이다.
【67】덜어버림(除)을 말한다.
【68】 은 도망(逃)이니 삼계의 윤회를 도망하여 능히 빠져 나오지 못함을 말한다. 위에서 출
가인의 허물을 말함으로써 경책하여 깨우치게 하고 아래에서 출가인의 마땅한 행적을 말
함으로써 힘써 권장하여 매진하게 하였다.
夫出家者,[1] 發足超方,[2] 心形異俗, 紹隆聖種, 震 魔軍,[3] 用
報四恩, 拔濟三有. 若不如此, 濫厠僧倫,[4] 言行荒疎,[5] 虛霑信
施, 昔年行處, 寸步不移, 恍惚一生, 將何憑恃? 乃堂堂僧相,
容貌可觀,[6] 皆是宿植善根, 感斯異報, 便擬端然拱手, 不貴寸
陰,[7] 事業不勤, 功果[8]無因克就. 豈可一生空過! 抑亦來業無裨.
辭親決志被緇, 意欲等超何所? 曉夕思忖, 豈可遷延過時! 心期佛
法棟樑,[9] 用作後來龜鏡,[10] 常以如此, 未能少分相應. 出言須涉
於典章, 談說乃傍於稽古,[11] 形儀挺特,[12] 意氣高閒. 遠行要假良
朋,[13] 數數淸於耳目, 住持必須擇伴, 時時聞於未聞. 故云: [生我
者, 父母; 成我者, 朋友.] 親附善者, 如霧露中行, 雖不濕衣, 時
時有潤; 狎習惡者, 長惡知見, 曉夕造惡,[14] 卽目交報, 沒後沈
淪.[15] 一失人身, 萬劫不復, 忠言逆耳,[16] 豈不銘心者哉![17] 便能
心育德,[18] 晦迹 名,[19] 蘊素精神,[20] 喧 止絶.[21] 若欲參禪學
道, 頓超方便之門, 心契玄津, 硏[22]幾[23]精妙, 決擇深奧,[24] 啓悟
眞源, 博問先知, 親近善友. 此宗難得其妙, 切須仔細用心. 可中
[25]頓悟正因,[26] 便是出塵階漸,[27] 此則破三界二十五有.[28] 內外
諸法,[29] 盡知不實, 從心變起, 悉是假名, 不用將心湊泊.[30] 但情
不附物, 物豈 人? 任他法性周流, 莫斷莫續.[31] 聞聲見色, 盖是
尋常, 遮邊那邊, 應用不闕, 如斯行止, 實不枉被法服, 亦乃酬報
四恩, 拔濟三有, 生生若能不退, 佛階決定可期. 往來, 三界之賓;
出沒, 爲他作則.[32] 此之一學, 最妙最玄, 但辦肯心, 必不相 .
若有中流之士, 未能頓超, 且於敎法留心, 溫尋貝葉,[33] 精搜義理,
傳唱敷揚, 接引後來, 報佛恩德, 時光亦不虛棄. 必須以此扶持,
住止威儀, 便是僧中法器. 豈不見? 倚松之葛, 上聳千尋, 附託勝
因,[34] 方能廣益, 懇修齋戒,[35] 莫 虧踰.[36] 世世生生, 殊妙因果,
不可等閒過日 兀兀度時. 可惜光陰, 不求升進, 徒消十方信施, 亦
乃孤負四恩, 積累轉深, 心塵易壅, 觸途成滯, 人所輕欺. 古云:
[彼旣丈夫, 我亦爾, 不應自輕而退屈.][37] 若不如此, 徒在緇門,
荏苒一生, 殊無所益. 伏望, 興決烈之志, 開特達之懷, 擧措,[38]
看他上流, 莫擅隨於庸鄙. 今生便須決斷, 想料不由別人, 息意忘
緣, 不與諸塵作對. 心空境寂, 只爲久滯不通, 熟覽斯文, 時時警
策, 强作主宰,[39] 莫徇人情. 業果所牽, 誠難逃避.[40] 聲和響順,
形直影端, 因果歷然, 豈無憂懼. 故,《經》云:[41] [假使百千劫, 所
作業不亡,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 故知! 三界刑罰, 絆殺
人, 努力勤修, 莫空過日. 深知過患,[42] 方乃相勸行持, 願百劫千
生, 處處同爲法侶. 乃爲銘曰:
幻身夢宅, 空中物色.[43] 前際無窮, 後際寧剋.
出此沒彼, 昇沈疲極, 未免三輪, 何時休息.[44]
貪戀世間, 陰緣成質.[45] 從生至老, 一無所得,
根本無明, 因玆被惑. 光陰可惜, 刹那不測,
今生空過, 來世窒塞.[46] 從迷至迷, 皆因六賊,
六道往還, 三界匍匐. 早訪明師, 親近高德,
決擇身心, 去其荊棘.[47] 世自浮虛, 衆緣豈逼.
硏窮法理, 以悟爲則, 心境俱捐, 莫記莫憶.
六根怡然, 行住寂默, 一心不生, 萬法俱息.
무릇 출가자出家者는 길을 떠나고 세간世間을 초월하여 마음과 몸을 속인과
달리하고 성현의 종자를 이어받아 융성하게 함으로써 마군魔軍이 두려워 떨게하
고 네 가지 은혜에 보답해야 하며 삼계三界를 남김없이 구제해야 한다. 만약 이
와 같이 하지 않으면 외람되게 승려의 무리에 섞였을 뿐 말과 행동이 거칠고 서
툴며, 헛되이 신도의 시주만 받을 뿐 예전에 행하던 처신을 조금도 바꾸지 않으
며 일생을 황홀히 보내게 될 것이니 장차 무엇에 의지하여 힘을 쓰겠는가.
하물며 당당한 승려의 모습은 그 용모가 가히 볼만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전생
에 선업善業의 뿌리를 심었기에 이와 같은 특이한 과보를 감응한 것이거늘 문득
단정히 앉아 손이나 마주잡고서 촌음寸陰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하나니,
사업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훌륭한 공을 쌓고 좋은 결과를 얻고자 하여도 능히
이룰 인연이 없을 것이다. 어찌 일생을 헛되이 보내겠는가! 그럴 뿐만 아니라 또
한 내세의 업業에도 도움이 없을 것이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뜻을 굳혀 먹물 옷을 입은 것은 그 마음속에 어느 곳을 몽
땅 뛰어넘기를 욕망 하였던가? 아침저녁으로 생각하고 헤아려 보건대 어찌 느직
느직 시간만 보낼 것인가? 불법의 동량이 되어 훗날의 귀감으로 쓰일 것을 마음
으로 기약해야 하느니, 항상 이와 같이 하더라도 약간의 상응相應 마저 쉽지 않
을 것이다. 말을 하면 모름지기 고전의 문장(典章)을 섭렵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얘기를 꺼내면 곧 옛 것에 가까이 머무르는 것이 되어야 하며, 형의形儀는 뛰어
나게 하고 의기意氣는 고상하게 해야 한다. 멀리 길을 나서면 반드시 어진 벗에
의지하여 자주자주 귀와 눈을 맑게 하고, 머물러 있을 때는 모름지기 도반을 가
려서 듣지 못했던 것을 때때로 들어야 한다. 그러한 까닭에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요 나를 완성시켜 주는 이는 벗이다]라고 하였으니, 어진 이를 가까이 따르
면 마치 안개와 이슬 속을 걷는 것과 같아 비록 옷이 젖지 않더라도 때로는 촉촉
함이 있을 것이며, 악한 자와 익숙하여 가까이하면 나쁜 지식과 견문만 늘어나
아침저녁으로 못된 짓만 할 것이니 곧 눈앞에서 과보를 받을 것이고 죽은 후에는
고통의 바다에 잠기게 될 것이다.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이 지나도록 회
복이 어려우니 충고하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 하여 어찌 마음에 새겨 두지 않겠는
가. 곧장 마음을 씻고 덕을 기름으로써 자취를 감추고 이름을 숨기며, 정신을 깨
끗하게 기름으로써 속세의 시끄러움이 그치고 끊어지게 해야 한다.
만약 참선參禪으로 도를 배워 문득 방편方便의 문을 뛰어넘고자 한다면 마음
을 현묘한 나루터에 계합시켜 그 정묘함을 남김없이 연구하고 심오한 진리를 가
리고 선택하여 진여眞如의 근원을 열어서 깨우쳐야 할 것이니, 널리 선지식에게
물어보고 착한 벗과 늘 가까이 하라. 이러한 종지宗旨는 그 현묘함을 얻기 어려
우니 모름지기 세심하게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중에 문득 올바른
인因을 깨달으면 곧 이것이 티끌세계를 벗어나는 층계이자 순서이니, 이로써 삼
계의 이십오유二十五有는 파괴되는 것이다. 안팎의 모든 법이 실없이 마음을 쫓
아 변화하여 일어난 것이니 그 모두가 거짓된 이름인 것을 남김없이 앎으로써
마음을 그 곳에 머무르게 하지 말라. 다만 정情이 물物에 붙지만 않는다면 물物
이 어찌 사람을 장애하겠는가. 저 법성法性이 두루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어 끊지
도 말고 잇지도 말라. 소리(聲)를 듣고 색色을 볼 때에 대체로 예사로운 것이나
이렇게 하건 저렇게 하건 응용함에 모자람이 없나니, 이와 같이 모든 일을 행하
고 그친다면 진실로 법복法服을 그릇 되이 입은 것이 아닐 것이며 또한 네 가지
은혜에 보답하고 삼계를 남김없이 구제하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 세세생생에 만
약 퇴보하지만 않는다면 깨달음의 지위(佛階)를 결정코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오고 감에 삼계의 나그네가 될 것이며, 나고 죽음에 다른 이의 본보기가 될 것이
다. 이 한 가지 학문이 가장 오묘하고 가장 그윽하니 단지 힘써 옳게 여기는 마음
만 가진다면 반드시 속임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중류中流의 선비가 있음에 단박에 초탈하지 못한다면 일단 교법敎法에
마음을 두어 경전과 율법을 원만히 익히고 그 뜻과 이치를 정밀하게 찾아서 널리
전하고 폄으로써 뒤에 오는 이들을 맞아들여 이끌어 준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은
덕에 보답하는 것이며 시간 역시 헛되게 낭비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반드시 이
러한 것으로써 자신을 붙들어 나간다면 머무르고 그치는 위의威儀가 곧 승려 가
운데 법다운 그릇이 될 것이다.
어찌 보지 못했는가! 소나무에 의지한 칡은 위로 천 길을 솟아오르듯이 경전
(勝因)에 의탁하면 바야흐로 널리 유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니, 정성스럽게 재齋
와 계戒를 닦을 뿐 부질없이 이지러뜨리거나 지나치지 말라. 세세생생에 빼어나
고도 현묘한 인과因果이기에 우두커니 날을 보내거나 멍청하게 시간을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가히 한 순간도 아껴야 하거늘 오르고 나아감을 추구하지 않고 한
갓 시방十方의 정성어린 시주물만 소비한다면 이는 또한 네 가지 은혜를 저버리
는 것이기에 쌓여가는 업이 더욱 깊어질 것이며 마음의 티끌은 막히기 쉬움에
닿는 곳마다 걸림이 될 것이니, 이로서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기만하는 바가 된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그도 원래 장부였고 나도 또한 그러하니 응당 스스로를
가벼이 여겨 물러서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였다.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한갓 불문佛門에 있으면서 한 생을 그럭저럭 보내는 것이니 결단코 유익할 것이
없을 것이다. 엎드려 바라건대, 결단성 있고 매서운 뜻을 일으키고 특별나고도
뛰어난 생각을 펼쳐서 행동하고 멈출 때는 저 상류上流를 볼지언정 용렬하고 비
속한 것을 제 멋대로 따르지 말라. 금생에는 모름지기 결연코 단절할 것임에 생
각건대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을 것이 아니니, 뜻을 쉬고 인연을 잊음으로써 모든
티끌과 더불어 대對를 짓지 말라. 마음은 텅 빈 것이고 경계 또한 공허한 것이건
만 단지 오래도록 막혀서 통하지 않게 되었을 따름이니, 이 글을 자세히 살펴보
고 때때로 경책함으로써 스스로를 기어코 주재하도록 하여 인정에 끄달리지 않
게 하라. 업業의 결과가 끌어당기는 바는 진실로 도피하기 어렵다. 소리가 부드
러우면 메아리도 순하고 형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단정하듯이 인과因果가 뚜렷한
데 어찌 근심과 두려움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경전에 이르기를 [비록 백천겁이
지나더라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서 인연을 마주할 때는 과보 또한 스스로
받게 된다] 하였다.
그러므로 알지어다! 삼계의 형벌은 사람들을 바짝 얽어맬 것이니 노력하고 삼
가 수행하여 헛된 나날을 보내지 말라. 허물 되고 근심되는 줄을 깊이 알고서야
바야흐로 이에 서로간에 수행修行하고 지계持戒하기를 권하는 것이니, 백겁百劫
과 천생千生 동안 곳곳에서 함께 법의 도반이 되기를 원하노라. 이에 명銘을 지
어 말한다.
덧없는이 몸뚱이는 꿈결속의 저택이요,
푸른허공 그가운데 物物이며 色色일세.
이미앞서 지나간때 다했음이 없건마는,
뒤이어서 다가올때 어찌다함 있으리요.
이곳에서 태어나서 저곳으로 죽어가니,
오르고또 내리기에 피로함이 지극하나,
삼계윤회 면하기는 아직아득 하올지니,
그어느때 어디에서 숨이라도 돌릴텐가.
티끌세상 탐을내어 내못잊어 하는것은,
오온덩이 열두인연 바탕이룬 때문일세.
이내몸이 나며부터 늙어주검 되기까지,
그어느것 한가지도 얻은바가 있지않아,
속속들이 뿌리깊은 無明이라 하는놈이,
이것으로 인하여서 더욱미혹 하게되다.
스쳐가는 한순간도 가히아껴 둘것이니,
찰나또한 순간이나 예측할수 없으리다.
지금이때 이금생을 허황되이 보낸다면,
이어오는 세상에는 궁색하게 막힐것을.
혼미하게 시작하여 혼미함에 다다름은,
그모든것 六塵으로 말미암은 것이리니,
그저六道 이리저리 하릴없이 오고가며,
그저三界 이리저리 슬금슬금 기어가네.
일찌감치 눈밝은이 스승으로 찾아뵙고,
높은덕을 지닌이는 친근하게 사귀어서,
몸과마음 잘잘못을 맺고풀음 받아들여,
그곳에다 뿌리놓인 가시덤불 들어내리.
이세상은 그본래가 들뜨고도 공허함에,
무리지은 인연인들 어찌핍박 하겠는가.
법의이치 남김없이 궁구하려 들려면은,
무엇보다 깨달음을 준칙으로 삼을지니,
이마음도 그경계도 모두모아 내버리고,
기억일랑 하지말며 생각마저 하지말라.
저六根이 화합한채 그렇게들 편안하면,
가고오고 머무는일 고요하여 질것이며,
그런채로 한마음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일만가지 모든법이 모두쉬어 들것이다.
【1】出家有三: 一, 辭親, 出世俗家; 二, 悟道, 出五蘊家; 三, 證果, 出三界家. 此卽初也.
【2】世間曰方, 發步而超出方之外.
【3】古譯經論, 魔字皆從石, 自梁.武以來, 謂魔能惱人, 字宜從鬼.
【4】《魏書》[無一人間厠其間.] 註, 厠雜也, 濫厠言泛雜也.
【5】言乃行之實, 行乃言之表, 謂言疎 行荒弊者也.
【6】堂堂, 自高貌, 又容貌之盛, 言[務外而自高, 不可輔而爲仁.]
【7】大禹聖人, 不棄寸陰, 衆人, 當惜分陰.
【8】積功獲果.
【9】期作法門棟樑.
【10】龜所以決猶豫, 鏡所以辨姸 .
【11】《禹謨》云: [無稽之言, 勿聽.] 註云, 無考, 無信驗也. 十口所傳, 爲古.
【12】挺然而特立也.
【13】律中, 比丘出行, 須假三人.
【14】《付法藏經》云: [佛言, 一切衆生, 志性無定, 近惡則惡, 近善則善. 昔, 王有惡象, 罪人當死者,
繫投象前, 嗇踐殺之. 象廐失火, 移象近寺累日, 後不殺人. 王怪問之, 智臣對曰: {在寺中, 聞
善言故然耳.} 又移置屠肆中, 其惡如前. 獸旣如是, 人而不親近善友者乎!]
【15】報有三種, 謂順現 順生 順後. 卽今目前, 相交其報, 卽順現; 死後淪墮, 卽順生 順後二報也.
【16】《家語》[忠言逆耳, 利於行; 良藥苦口, 利於病.]
【17】存心不忘, 如刻金石.
【18】洗滌心塵, 保育德業.
【19】隱晦其跡而和光同塵, 不市其名而去華就實.
【20】蘊, 積也蓄也; 素, 皎也潔也. 精者人之元氣, 氣之伸者曰神, 言藏蓄而潔白其神氣也.
【21】止息斷絶乎喧煩紛 之心跡也.
【22】究也.
【23】盡也.
【24】奧者, 室之西南隅. 得入門者, 必見其奧; 若未窺其奧者, 不入其門.
【25】可, 與箇通用, 箇中謂此中也. 又說話, 云猶 云萬一也.
【26】謂自心體性, 是正因也.
【27】階級漸次也.
【28】三界者: 一, 欲界, 欲有三種, 飮食 睡眠 淫欲也, 於此三事, 希求名欲, 下自風輪, 上至他化
天, 皆欲界攝; 二, 色界, 形質淸淨, 身相殊勝, 未出色籠, 故名色界; 三, 無色界, 於彼界, 非
有色故. 亦名三有, 各有業報故. 別分則二十五有, 荊溪頌曰: [四州四惡趣, 六欲 梵天, 四禪
四空處, 無想及那含.]
【29】約身心則心爲內 身爲外, 約心境則身心爲內 境界爲外, 一切諸法, 不出色心故.
【30】如來藏心, 與無明合爲賴耶, 變起諸識 諸境, 皆是虛假, 但有其名, 都無實狀, 安用其心, 攀緣
彼境.
【31】卽此眞心, 與諸法爲性, 無處不在, 豈可斷續.
【32】衆生輪廻三界之內, 永無出期, 諸佛菩薩示現受生, 皆爲利濟群品.
【33】溫亦尋也, 習也. 佛滅後, 阿難等結集經律, 書貝多羅樹葉.
【34】經敎.
【35】齋者, 過中不食爲名, 戒者, 防非止惡爲義.
【36】虧缺律行, 踰越敎戒.
【37】佛誡羅 羅偈也.
【38】擧者, 處置動作, 措者, 安布施爲.
【39】主 國主, 宰 宰相, 主則自在, 宰則割斷, 言我爲法王, 則於法自在, 不爲係滯而能制斷矣.
【40】《書》云: [天作孼, 猶可違, 自作孼, 不可 .] 猶亡也.
【41】《一切有部經》
【42】五欲生死爲過患.《止觀》明五欲過患: 色如熱金丸, 執之則燒; 聲如塗毒鼓, 聞之則死; 香如
龍氣, 嗅之則病; 味如蜜塗刀, 之則傷; 觸如獅子臥, 近之則 . 音別, 嗔也.
【43】物色空華, 根身器界, 虛幻不實, 如空華也.
【44】永捨爲休, 暫廢爲息.
【45】衆生形質, 從五陰十二因緣而成.
【46】盡未來際, 無出頭期.
【47】荊, 楚木也, 亦棘屬. 許氏曰: [棘, 如棗而多刺, 木堅赤色叢生. 大曰棗, 小曰棘, 棗性喬, 棘則
底矣, 故 束爲棘.] 此比煩惱也.
【1】出家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 번째는 어버이를 여의는 것이니 세속의 집을 나서는 것이
요, 두 번째는 도를 깨우치는 것이니 오온의 집을 나서는 것이요, 세 번째는 불과를 증득
하는 것이니 삼계의 집을 나서는 것이다. 여기서는 곧 첫 번째를 말한다.
【2】세간을 方이라 하니, 걸음을 옮겨 세간의 밖으로 초월하여 나가는 것이다.
【3】예전에 경론을 번역할 때는 魔 자를 모두 石에서 비롯한 글자(磨)로 하였는데, 양 무제 이
래로 마귀는 능히 사람을 번뇌케 한다 하여 글자를 마땅히 鬼에서 비롯한 글자(魔)로 한다
고 하였다.
【4】《위서》에서 [한 사람도 그 사이에 섞여있음(間厠)이 없다] 하고는 주석에서 厠은 섞이다
(雜)라고 하였으니, 濫厠은 외람되이 섞임을 말한다.
【5】말은 곧 행동의 열매이며 행동은 곧 말의 표상이니, 말이 거칠고 행동이 서투름을 일컬은
것이다.
【6】堂堂은 스스로 높이 여기는 모습이며 또는 용모가 성대함이니, 겉모양에만 힘을 써서 스
스로 높이 여길 뿐 속을 보완하여 어질게 되지 못함을 말한다.
【7】우임금 같은 성인도 寸陰을 버리지 않으셨으니 대중들은 마땅히 分陰도 아껴야 한다.
【8】공덕을 쌓아 과보를 얻다.
【9】佛法 門中의 동량이 되기를 기약하다.
【10】거북은 그것으로써 예측을 결정하며 거울은 그것으로써 예쁘고 추함을 판단한다.
【11】《우모》에 이르기를 [옛일을 詳考함이 없는 말은 듣지 말라] 하고는 그 주석에 ‘無考’는
믿거나 證驗할 바가 없음을 말한다고 하였다. 열 사람의 입으로 전해진 바는 ‘古’가 된다.
【12】특출하여 특별히 드러남이다.
【13】율장 가운데 비구가 길을 나섬에 모름지기 세 사람에게 假藉한다 하였다.
【14】《부법장경》에 말하였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모든 중생들은 뜻과 품성에 고정됨이 없
어서 악을 가까이 하면 곧 악해지고 선을 가까이 하면 곧 선해진다 하였다. 옛날에 어떤
왕에게 포악한 코끼리가 있어서 죄인 가운데 죽임을 당할 자는 묶여서 코끼리 앞에 던져
짓밟아 죽이고는 하였다. 코끼리의 우리에 불이 나서 근처 사찰에 며칠 동안 코끼리를 옮
겨 두었더니 그 후로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지혜있는 대신
이 대답하기를 {절에 있으면서 좋은 말을 들은 까닭일 뿐일 것입니다} 하였다. 또 도살장
에 옮겨 두었더니 그 포악함이 예전과 같았다. 짐승도 이미 이와 같거니 사람이 되어서
착한 벗을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5】과보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順現과 順生과 順後를 말한다. 즉 지금 당장 눈앞에서 그 과
보를 주고받게 되면 곧 順現이요, 죽은 후에 과보에 떨어지게 되면 곧 順生과 順後의 두
과보이다.
【16】《공자가어》에서 말하였다. [충성스런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함에 이로우며, 좋은 약은 입
에 쓰나 병에는 이롭다.]
【17】마음에 두고 잊지 않기를 마치 쇠와 돌에 새겨 놓은 듯 하다.
【18】마음의 티끌을 세척하고 덕스러운 업을 보호하여 기른다.
【19】그 자취를 숨겨서 빛을 감추고 티끌에 섞이며, 그 이름을 드러내지 않아서 화려함을 제거
하고 실다움에 나아간다.
【20】蘊은 쌓는다거나 모음을 말하고 素는 희다거나 깨끗함을 말한다. 精이란 사람의 원기이
며 氣를 펴는 것을 神이라 하니, 그 神氣를 모으고 쌓아서 결백하게 함을 말한다.
【21】시끄럽고 번잡하며 어지럽고 떠들썩한 마음의 자취를 그치고 쉬며 단절함을 말한다.
【22】연구함이다.
【23】남김없이 다함이다.
【24】奧란 방의 서남쪽 모퉁이다. 문을 들어서는 자는 반드시 그 모퉁이를 볼 것이며, 만약 그
모퉁이를 아직 엿보지 못하였다면 그 문을 들어서지 않았음이 된다.
【25】可는 箇와 통용되니 箇中이라 함은 ‘그렇게 하는 가운데(此中)’를 일컫는다. 또 말할 때는
‘마치 ∼와 같다’를 일컫거나 ‘만일 ∼하다면’을 일컫는다.
【26】자기 마음의 근본되는 품성이 곧 正因임을 말한다.
【27】섬돌의 계단과 점진적인 차례이다.
【28】삼계라는 것은, 첫 번째가 欲界로서 욕망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음식에 대한 욕망과 수면
에 대한 욕망과 음욕이다. 이 세 가지 일에 대해서 희망하고 추구하는 것을 이름하여 欲
이라 하니, 아래로는 風輪으로부터 위로 他化自在天에 이르기까지 모두 욕계에 포함된다.
두 번째는 色界로서 모양과 바탕이 맑고 깨끗하며 몸과 형상이 뛰어나게 수승하나 色의
굴레를 아직 벗어나지 못한 까닭에 색계라 이름한다. 세 번째는 無色界로서 그 세계에는
色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또한 [三界를] 三有라고도 이름하는데 각각에 業報가 있기
때문이다. 따로 분류하면 곧 25有이니, 형계의 頌에 이르기를 [4州와 4惡趣와 6欲과 梵天
과 4禪과 4空處와 無想과 那含]이라 하였다.
【29】몸과 마음을 기준하면 곧 마음은 안이 되고 몸은 밖이 되며, 마음의 경계를 기준하면 곧
몸과 마음은 안이 되고 경계는 바깥이 되니, 일체의 모든 법이 色心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30】如來藏心은 無明과 합하여져 賴耶識이 되어서 모든 識과 모든 境界를 변화시키고 일으키
지만 그 모든 것이 빈 것이고 헛된 것이어서 다만 그 이름이 있을 뿐 도무지 실상이 없
으니, 어찌 그러한 마음을 써서 저 경계에 반연하겠는가?
【31】곧 이 참된 마음은 모든 법과 더불어 품성(性)이 되며 존재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어찌
끊는다거나 잇는다거나 할 수 있겠는가?
【32】중생들이 삼계 안에서 윤회하며 도무지 벗어날 기약이 없기에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드러냄을 보이고 태어남을 받은 것이니, 이 모든 일은 많은 중생들을 이롭게 하여 구제하
기 위함이다.
【33】溫 역시 尋으로서 ‘익힘’이다. 부처님이 입멸한 후 아난 등이 경장과 율장을 결집할 때 패
다라 나무의 잎사귀에 글을 썼다.
【34】경전의 가르침이다.
【35】齋는 정오가 지나면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명색을 삼고, 戒는 그릇된 것은 방지하고
사악한 것은 그치게 하는 것으로 의미를 삼는다.
【36】율법의 행을 이지러뜨리고 교법의 계를 넘어선다.
【37】부처님이 라후라를 훈계한 게송이다.
【38】擧란 處置의 동작이요 措란 安布의 행위이다.
【39】主는 나라의 임금이요 宰는 재상임에 임금은 곧 능히 자유자재하고 재상은 곧 능히 베고
끊으니, 내가 법왕이 되어서 법에 대해 자유자재하고 걸리거나 막히지 않으며 능히 통제
하고 근절함을 말한다.
【40】《서》에 이르기를 [하늘이 지은 허물은 오히려 어길 수 있으나 스스로 지은 허물은 가히
도망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은 도망(亡)과 같다.
【41】《일체유부경》
【42】五欲과 生死가 허물과 근심이 된다.《지관》에 오욕의 허물과 근심을 밝혀 놓았으니, 色은
마치 뜨거운 쇠구슬과 같아서 그것을 집으면 곧 불타게 되고, 聲은 마치 독을 칠한 북과
같아서 그 소리를 들으면 곧 죽게 되고, 香은 마치 성난 용의 기운과 같아서 그 향기를
맡으면 곧 병이 들고, 味는 마치 꿀이 발려진 칼과 같아서 그것을 핥으면 곧 상처가 나
고, 觸은 마치 사자가 누워 있는 것과 같아서 그것에 가까이 가면 곧 물리게 된다. 의
음은 별(別)이며 성냄(嗔)이다.
【43】物과 色은 허공의 꽃이니, 식이 의지하는 몸뚱이나 몸뚱이가 의지하는 세계는 비어 있고
환상일 뿐 실답지 않음에 마치 허공의 꽃과 같다는 것이다.
【44】영원히 그만두면 休가 되고, 잠시 내버려두면 息이 된다.
【45】중생의 형상과 바탕은 五陰과 12인연에 따라 이루어진다.
【46】미래의 끝이 다하도록 머리를 내밀 기약이 없다.
【47】荊은 가시나무이며 또한 멧대추나무의 일종이다. 허씨가〔《설문해자》에서] 말하기를 [멧
대추나무는 대추나무와 같으나 가시가 많으며 나무가 견고하고 붉은 색을 띄며 군집생활
을 한다. 큰 것을 대추나무라 하고 작은 것을 멧대추나무라 하는데, 대추나무는 품종이
키가 크지만 멧대추나무는 나지막한 까닭에 나란히 묶은 모양의 棘이 된 것이다] 하였으
니, 이는 번뇌를 비유한 것이다.
長蘆慈覺 禪師龜鏡文
龜鏡文[1]
夫兩桂垂蔭,[2] 一華現瑞,[3] 自爾叢林之設,[4] 要之本爲衆僧. 是
以, 開示衆僧故, 有長老;[5] 表儀衆僧故, 有首座;[6] 荷負衆僧故,
有監院;[7] 調和衆僧故, 有維那;[8] 供養衆僧故, 有典座;[9] 爲衆僧
作務故, 有直歲;[10] 爲衆僧出納故, 有庫頭;[11] 爲衆僧主典翰墨
故, 有書狀;[12] 爲衆僧守護正敎故, 有藏主; 爲衆僧迎待檀越故,
有知客; 爲衆僧請召故, 有侍者; 爲衆僧看守衣鉢故, 有寮主; 爲
衆僧供侍湯藥故, 有堂主; 爲衆僧洗濯故, 有浴主 水頭; 爲衆僧
禦寒故, 有炭頭 爐頭; 爲衆僧乞 故, 有街坊化主; 爲衆僧執勞
故, 有園頭 磨頭 莊主; 爲衆僧滌除故, 有淨頭; 爲衆僧給侍故,
有淨人.[13] 所以, 行道之緣, 十分備足, 資身之具, 百色現成, 萬
事無憂, 一心爲道, 世間尊貴, 物外優閑. 淸淨無爲, 衆僧爲最, 廻
念多人之力, 寧不知恩報恩? 晨參暮請, 不捨寸陰, 所以報長老
也; 尊卑有序, 擧止安詳, 所以報首座也; 外遵法令, 內守規繩,
所以報監院也; 六和[14]共聚, 水乳相參,[15] 所以報維那也; 爲成道
故, 方受此食, 所以報典座也; 安處僧房, 護惜什物,[16] 所以報直
歲也; 常住之物, 一毫無犯, 所以報庫頭也; 手不把筆, 如救頭燃,
所以報書狀也; 明窓淨案, 古敎照心, 所以報藏主也; 韜光晦跡,
不事追陪, 所以報知客也; 居必有常, 請必先到, 所以報侍者也;
一甁一鉢, 處衆如山, 所以報寮主也; 寧心病苦, 粥藥隨宜, 所以
報堂主也; 輕徐靜默, 不昧水因,[17] 所以報浴主 水頭也; 緘言拱
手, 退己讓人, 所以報炭頭 爐頭也; 忖己德行, 全闕[18]應供, 所以
報街坊化主也; 計功多少, 量彼來處,[19] 所以報園頭 磨頭 莊主
也; 酌水運籌, 知 識愧, 所以報淨頭也; 寬而易從, 簡而易事,
所以報淨人也. 所以, 叢林之下, 道業惟新, 上上之機, 一生取辦,
中流之士, 長養聖胎, 至如未悟心源, 時中亦不虛棄. 是眞僧寶,
爲世福田, 近爲末法之津梁, 畢證二嚴之極果.[20] 若或叢林不治,
法輪不轉, 非長老所以爲衆也; 三業不調, 四儀不肅, 非首座所以
率衆也; 容衆之量不寬, 愛衆之心不厚, 非監院所以護衆也; 修行
者不安, 敗群者不去,[21] 非維那所以悅衆也; 六味不精, 三德不給,
非典座所以奉衆也; 寮舍不修, 什物不備, 非直歲所以安衆也; 畜
積常住, 減剋衆僧, 非庫頭所以贍衆也; 書狀不工, 文字滅裂,[22]
非書狀所以飾衆也; 案不嚴, 喧煩不息, 非藏主所以待衆也; 憎
貧愛富, 重俗輕僧, 非知客所以贊衆也; 禮貌不恭, 尊卑失序, 非
侍者所以命衆也; 打疊不勤, 守護不謹, 非寮主所以居衆也; 不閒
供侍, 惱亂病人, 非堂主所以恤衆也; 湯水不足, 寒煖失儀, 非浴
主 水頭所以浣衆也; 預備不前, 衆人動念, 非爐頭 炭頭所以向衆
也; 臨財不公, 宣力不盡, 非街坊化主所以供衆也; 地有遺利, 人
無全功, 非園頭 磨頭 莊主所以代衆也; 懶惰倂除, 諸緣不具, 非
淨頭所以事衆也; 禁之不止, 命之不行, 非淨人所以順衆也. 如其
衆僧, 輕師慢法, 取性隨緣, 非所以報長老也; 坐臥參差, 去就乖
角, 非所以報首座也; 意輕王法,[23] 不顧叢林, 非所以報監院也;
上下不和, 鬪諍堅固, 非所以報維那也; 貪 [24]美膳, 毁 序飡,
非所以報典座也; 居處受用, 不思後人, 非所以報直歲也; 多貪利
養,[25] 不恤[26]常住, 非所以報庫頭也; 事持筆硯, 馳騁文章, 非所
以報書狀也; 慢易金文, 看尋外典, 非所以報藏主也; 追陪俗士,
交結貴人, 非所以報知客也; 遺忘召請, 久坐衆僧, 非所以報侍者
也; 以己妨人, 慢藏誨盜,[27] 非所以報寮主也; 多嗔小喜, 不順病
緣, 非所以報堂主也; 桶杓作聲, 用水無節, 非所以報浴主 水頭
也; 身利溫煖, 有妨衆人, 非所以報爐頭 炭頭也; 不念修行, 安然
受供, 非所以報街坊化主也; 飽食終日, 無所用心,[28] 非所以報園
頭 磨頭 莊主也; 涕唾[29]墻壁, 狼藉東司, 非所以報淨頭也; 專尙
威嚴, 宿無善敎, 非所以報淨人也. 盖以旋風千 , 尙有不周,[30]
但知捨短從長,[31] 共辦出家之事. 所冀, 獅子窟中, 盡成獅子,
檀[32]林下, 純是 檀, 令斯後五百年, 再覩靈山之會. 然則, 法門
興廢, 係在僧徒, 僧是敬田,[33] 所應奉重, 僧重則法重, 僧輕則法
輕. 內護旣嚴, 外護必謹. 設使粥飯主人,[34] 一期王化, 叢林執事,
偶爾當權, 常宜敬仰同袍, 不得妄自尊大. 若也貢高我慢, 私事公
酬, 萬事無常, 豈能長保? 一朝歸衆, 何面相看? 因果無差, 恐難
回避. 僧爲佛子, 應供無殊,[35] 天上人間, 咸所恭敬, 二時粥飯,
理合精豊, 四事供須, 無令闕少. 世尊二十年遺蔭, 盖覆兒孫, 白
毫相一分功德, 受用不盡, 但知奉衆, 不可憂貧. 僧無凡聖, 通會
十方, 旣曰招提,[36] 悉皆有分, 豈可妄生分別, 輕厭客僧? 旦過寮
[37]三朝權住, 盡禮供承, 僧堂前暫爾求齋, 等心供養. 俗客尙猶照
管, 僧家忍不逢迎? 若無有限之心, 自有無窮之福. 僧門和合, 上
下同心, 互有長短, 遞相盖覆, 家中醜惡, 莫使外聞. 雖然於事無
傷, 畢竟減人瞻仰, 如獅子身中蟲, 自食獅子肉, 非外道天魔, 所
能壞也.[38] 若欲道風不墜, 佛日常明, 壯祖域之光輝, 補皇朝之聖
化, 願以斯文, 爲龜鏡焉.
무릇 두 그루의 계수나무가 그늘을 드리우자 한 송이의 꽃이 상서러움을 드러
내었으니 이러한 것으로부터 총림叢林이 개설된 것을 요약해 보건대 본디 대중
스님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스님들에게 [불법의 방향과 내용을] 열어 보이는 까닭에 장로長
老가 있고, 대중스님들에게 위의를 보여주는 까닭에 수좌首座가 있으며, 대중스
님들을 책망하고 감독하는 까닭에 감원監院이 있고, 대중스님들을 화합시키는
까닭에 유나維那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공양하는 까닭에 전좌典座가 있고, 대
중스님들을 위하여 사무를 보는 까닭에 직세直歲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
여 출납을 처리하는 까닭에 고두庫頭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글쓰는 일을
주관하는 까닭에 서장書狀이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경전을 수호하는 까
닭에 장주藏主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시주들을 영접하고 응대하는 까닭
에 지객知客이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심부름하는 까닭에 시자侍者가 있
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옷과 발우를 간수하는 까닭에 요주寮主가 있으며, 대중
스님들을 위해 탕약을 받들어 공양하는 까닭에 당주堂主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세탁을 하는 까닭에 욕주浴主와 수두水頭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해
추위를 막는 까닭에 탄두炭頭와 노두爐頭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탁발하
는 까닭에 가방화주街坊化主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노역을 맡는 까닭
에 원두園頭와 마두磨頭와 장주莊主가 있고,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소제하는 까
닭에 정두淨頭가 있으며, 대중스님들을 위하여 시봉하는 까닭에 정인淨人이 있
다. 이렇게 함으로써 도道를 수행하는 인연은 충분히 갖추어지고 몸을 유지하는
기구들은 여러모로 곧장 이루어짐에 만사에 아무런 근심 없이 일심으로 도道를
위하게 되는 것이니, 세간에서는 높고도 귀하며 세상 밖에서는 넉넉하고도 한가
롭다.
청정하고도 작위가 없기(無爲)로는 대중스님들이 으뜸일 것이나 많은 사람들
의 노력을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어찌 은혜를 알고서 그 은혜를 보답하지 않겠는
가? 새벽에 찾아 뵙고 물으며 해 저물어 더욱 물음을 청하여 한 치의 시간도 버
리지 않아야 장로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높고 낮음에 순서가 있고 행동거지
가 침착하여야 수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밖으로 법령을 준수하고 안으로
규약을 지켜야 감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육화六和[를 숭상하는 무리]가
함께 모여 물과 젖처럼 서로 섞여야 유나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도道를 이
루기 위하는 까닭에 바야흐로 이 음식을 받는다 하여야 전좌에게 보답하는 도리
가 되고, 승방에 편안히 거처하며 모든 생활의 도구들을 보호하고 아낄 줄 알아
야 직세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상주常住의 물품은 털끝만큼도 범함이 없어
야 고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손으로 붓을 잡지 않더라도 마치 머리에 붙
은 불을 끄듯 공부를 해야 서장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밝은 창가 맑은 책상
에서 옛 사람의 가르침을 마음에 비춰 볼 줄 알아야 장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마음의 빛을 감추고 행적을 숨길 뿐 따라다니거나 모시고 다님을 일삼지
않아야 지객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기거함에 반드시 일정한 장소가 있고 부
르면 반드시 먼저 도착해야 시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하나의 병甁과 하나
의 발우鉢盂로써 대중 가운데 처신함에 마치 산과 같이 하여야 요주에게 보답하
는 도리가 되며, 질병의 고통에도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미음과 약은 그 적절한
시기를 따라야 당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가볍고도 서서히 하고 조용하고
도 묵묵히 함으로써 수인水因을 어리석게 탐하지 않아야 욕주와 수두에게 보답
하는 도리가 되며, 입을 다물고 손을 맞잡은 채 자신은 물러 세우고 다른 사람에
게 양보해야 탄두와 노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고, 자신의 덕행이 공양을 받기
에 온전한가 온전치 못한가를 헤아릴 줄 알아야 가방화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되며, 공양의 공덕이 얼마인지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헤아릴 줄
알아야 원두와 마두와 장주에게 보답하는 것이고, 물은 조금씩 떠내어 쓰고 산가
지를 사용하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정두에게 보답하는 것이며, 관대하여 좇기 쉽
게 하고 간략하여 섬기기 쉽게 하여야 정인에게 보답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야
총림에서의 도업道業이 더욱 새로워질 것이니 뛰어난 근기라면 한 생(一生)으로
그 결과가 판별되고, 중간 무리의 선비라도 오래도록 성인의 씨앗을 기른다면 나
아가 마음의 근원을 깨닫지는 못할지라도 한나절을 헛되이 버리는 것은 아닐 것
이다. 이것이 진실된 승보僧寶이며 세상의 복밭이니 가깝게는 말법 시대의 나루
터와 다리가 되고 결국에는 화신장엄化身莊嚴과 법신장엄法身莊嚴의 궁극적인
결과를 증득하게 될 것이다.
만약 총림이 다스려지지 않고 불법의 수레가 구르지 않는다면 장로로써 대중
을 위하는 도리가 아니고, 몸과 입과 뜻의 업이 순조롭지 않고 가고 머무르고 앉
고 눕는 거동이 엄숙하지 못하면 수좌로써 대중을 통솔하는 도리가 아니며, 대중
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너그럽지 못하고 대중을 사랑하는 마음이 두텁지 못하면
감원으로써 대중을 보호하는 도리가 아니고, 수행하는 자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
고 해를 끼치는 무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유나로써 대중을 기쁘게 하는 도리가
아니며, 음식의 여섯 가지 맛이 정결하지 못하고 음식의 세 가지 덕이 넉넉하지
못하면 전좌로써 대중을 받드는 도리가 아니고, 사는 집을 정돈하지 않고 일상용
품을 갖추지 못하면 직세로써 대중을 편안하게 하는 도리가 아니며, 상주常住는
쌓아 축적하되 대중스님은 줄인다면 고두로써 대중을 넉넉하게 해주는 도리가
아니며, 글귀가 정교하지 못하고 문자가 짧으면 서장으로써 대중을 꾸미는 도리
가 아니고, 책걸상이 엄밀하지 못하여 시끄럽고 번잡스러움이 그치지 않으면 장
주로써 대중을 대우하는 도리가 아니며, 가난을 미워하고 부귀를 좋아하며 세속
을 중히 여기고 승려를 경시한다면 지객으로써 대중을 돕는 도리가 아니고, 예절
의 모습이 공손하지 못하고 높고 낮음에 그 순서를 잃으면 시자로써 대중이 편안
하게 명령하도록 하는 도리가 아니며, 청소하고 정돈함에 근실하지 않고 지키고
보호함에 삼가하지 않으면 요주로써 대중이 편안하게 있도록 하는 도리가 아니
고, 공급하고 시봉하기를 차분하게 하지 않아 병든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면 당
주로써 대중을 위로하는 도리가 아니며, 더운물이 부족하거나 차고 더운 것이 정
도를 잃으면 욕주와 수두로써 대중이 씻을 수 있도록 하는 도리가 아니고, 미리
앞세워 준비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일으키게 하면 노두와 탄두
로써 대중들이 [불을] 쪼이게 하는 도리가 아니며, 재물에 관련해서 공정하지 못
하고 힘껏 주선함을 다하지 않으면 가방화주로써 대중을 공양하는 도리가 아니
고, 땅은 묵히는 것이 있고 사람은 공들임을 온전히 하지 않는다면 원두와 마두
와 장주로써 대중을 대신하는 도리가 아니며, 게으른 마음에 몽땅 밀쳐 둔 채 모
든 관련 물품을 갖추어 놓지 않으면 정두로써 대중을 섬기는 도리가 아니고, 금
지한 것을 그치지 않고 명령한 것을 시행하지 않으면 정인으로써 대중을 따르는
도리가 아니다.
만일 대중스님들이 스승을 가벼이 여기거나 법에 대해 교만하여 성질이 나는
대로 하고 되는대로 한다면 장로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앉고 누움에 들쭉
날쭉하게 하고 물러나고 나아감에 행동이 어그러지면 수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뜻에 국왕의 법을 가벼이 여기고 총림을 돌아보지 않으면 감원에게 보답
하는 도리가 아니고, 위아래가 화목하지 못하여 다툼을 심하게 하면 유나에게 보
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맛깔진 음식만을 탐내고 거친 음식을 헐뜯으면 전좌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거처하는 자리와 함께 쓰는 물건에 대해 뒷사람을 생각
하지 않으면 직세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이익과 그 즐거움만 지나치게 탐
하고 상주물을 아끼지 않으면 고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붓과 벼루를 지
니고서 문장을 짓거나 다듬는 일에만 전념한다면 서장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
니며, 불경을 업신여겨 가벼이 보고 외전外典만 보고 뜻을 찾는다면 장주에게 보
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세속의 선비를 좇아 모시고 귀인들과 교류를 맺는다면 지
객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불러 청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대중스님들과 오
래도록 앉아 있으면 시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몸소 남을 방해하고 갈무
리를 게을리 함으로써 도적질을 가르치면 요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성
을 많이 내고 기쁜 마음은 적게 가져 질병의 올바른 인연에 따르지 않으면 당주
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물통과 표주박으로 소리를 내고 물을 씀에 절제가
없으면 욕주와 수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자기 한 몸 데우기에 유리하게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방해되는 바가 있으면 노두와 탄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수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편안히 공양만 받는다면 가방화주에게 보답하
는 도리가 아니며, 종일토록 배불리 먹으며 마음 쓰는 바가 없으면 원두와 마두
와 장주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고, 담과 벽에 코 풀고 침 뱉으며 변소를 어수
선하게 쓰면 정두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며, 오로지 위엄만 숭상하고 평소에
올바른 가르침이 없으면 정인에게 보답하는 도리가 아니다. 대저 회오리 바람이
천 번을 돌아 불어도 오히려 두루 미치지 못한 곳이 있는 법이니, 다만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좇아서 출가의 일을 다함께 끝낼 것만을 생각할지어다.
바라는 바는, 사자굴 안에서는 모두 사자가 되고 전단나무 숲 아래로는 순전히
전단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니, 이로부터 5백년 후에 다시 영산靈山의 모임을 볼
수 있도록 하자. 그러한 즉 법문의 흥폐는 승려 무리에게 달려 있기에 승려는 공
경해야 될 밭(敬田)이므로 응당 받들고 소중히 여겨야 할 바이니, 승려가 막중하
면 법도 막중하고 승려가 가벼우면 법도 가볍기 마련이다. 안에서 보호함이 이미
엄하고서야 밖에서 보호함이 필시 조심하게 될 것이다. 비록 죽과 밥만 먹고 지
내던 사람이라도 한 차례 왕의 덕화를 입어 총림의 집사로써 뜻하지 않게 권력을
맡게 되면 마땅히 같이 있던 도반들을 항상 공경하고 숭앙해야 할 것이니, 망령
되게 스스로를 존대하여 높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나를 높여 거만히 하고
사사로운 일을 공적으로 갚는다면 만사는 무상하니 어찌 능히 길이 보전할 것이
며, 하루아침에 대중으로 돌아오면 무슨 면목으로 마주 보겠는가? 인과는 어김이
없으니 아마도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승려는 부처님의 아들로서 응공應供과 더불어 다를 바 없으므로 천상이나 인
간이나 모두 공경하는 바이니, 두 끼니의 죽과 밥도 이치에 맞추어 정갈하고 풍
족하게 해야 하며 네 가지 일로 공양함에 조금의 빠트림도 없게 하라. 석가세존
이 남기신 20년의 음덕이 무릇 그 자손을 덮어 주고 있는 것이니 백호상白毫相의
일분 공덕도 다 받아쓰지 못할 것임에 다만 대중을 받들 줄만 알아야 할 것이요
가난은 근심할 것이 없다. 승려는 범부나 성인이나 할 것 없이 온 세상에 두루
통할 수 있기에 이미 초제招提라고 일컬으면 모두에게 다 몫이 있는데 어찌 망령
되게 분별심을 내어 객승이라 업신여기고 싫어할 수 있겠는가? 객실에서 사흘은
권리로써 묶는 것이니 예절을 다하여 받들어 모실 것이며, 승당僧堂 앞에서 잠깐
동안 먹을 것을 구하더라도 평등한 마음으로 공양하라. 세속의 손님도 오히려 보
살피거늘 승가僧家를 차마 영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유한한 마음이 없
으면 자연히 무궁한 복록이 있을 것이다.
승려 문중의 화합은 위아래가 같은 마음이 되어 서로간에 장단점이 있을지라
도 번갈아 서로 덮어 주어 집안의 추하고 흉한 일은 바깥으로 들리지 않게 하라.
비록 그러하더라도 큰 일에는 해됨이 없을 것이라 하지만 결국에는 우러러 숭앙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기에 마치 사자의 몸에서 생긴 벌레가 스스로 사자의
고기를 먹는 것과 같으니 외도外道나 하늘의 마귀가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만
약 도풍道風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고 부처님의 광명이 항상 밝아서 조사들의 영
역에 빛이 왕성하게 하고 황제와 조정의 성스러운 덕화를 돕고자 한다면 이 글로
써 귀감과 거울을 삼기 바란다.
【1】龜, 所以決猶豫; 鏡, 所以辨姸醜. 猶豫者, 猶卽 也, 善登木, 性多疑慮, 常居山中, 忽聞人聲,
豫先上樹, 久之無人, 其後敢下, 須臾又上, 如此非一故, 人之不決疑者, 以比之.
【2】兩桂者, 嵩山.少林窟前有二株桂樹故, 自謂之少林.《應聖讖》云[二株嫩桂久昌昌], 密記此也.
又臨濟 曹洞二宗, 聯芳不絶故, 云二株久昌昌. 垂蔭者, 初祖九載面壁于此, 得可大士, 以傳心
印, 此乃禪宗之始. 自此, 布于天下, 豈非垂蔭也!
【3】一華者優曇鉢羅, 此云靈瑞花. 葉似梨而果大, 無花而結子, 亦有花而難値故, 經中以喩希有.《泥
洹經》云: [閻浮提內, 有尊樹王, 名優曇鉢羅. 有實無花, 若金花生者, 佛乃現世.] 今百丈開法
出世, 亦如此花之希有故, 云現瑞也.
【4】自達磨來梁, 隱居魏地, 六代相繼, 至于大寂, 二百五十年間未有禪刹, 百丈 意別立禪居, 禪
衆行道資身禪宴食息之資, 一一備具, 各有司存.
【5】禪宗住持, 必呼爲長老者,《阿含》有三長老; 一, 耆年長老, 年臘多者; 二, 法長老, 了達法性,
內有智德; 三, 作長老, 假號之者, 今取第二. 又德高爲長, 年多爲老.
【6】卽古之上座也. 今禪門, 所謂首座者, 必擇其己事已辦 衆所服從 德業兼備者充之.
【7】卽監寺也.《僧史》曰: [知寺三綱者, 若綱 之巨繩也, 提之則百目正矣. 詳其, 寺主起於東漢.白
馬寺, 寺旣爰處, 人必主之.] 今禪門, 有內外知事, 以監寺爲首.《大集經》云: [僧物難掌, 佛法
無主, 我聽二種人掌三寶物, 一知業報者, 二知慙愧者.] 今禪門, 必擇心通法道 身忘利養者,
以掌僧務, 此先德之遺意也.
【8】《寄歸傳》云: [華 梵兼擧. 維是綱維, 那是略梵語, 刪去?磨陀三字, 此云悅衆.]《十誦》云: [以
僧坊中, 無人知時灑掃, 衆亂時, 無人彈指等, 佛令立維那.] 今禪門, 令掌僧籍及表白等事, 必
選當材也.
【9】《僧史》謂典主牀座, 九事, 今擧一以攝之, 乃通典雜事也. 今禪門, 相沿以立此名焉爾.
【10】《僧史》謂直一年之務故, 立此職. 今禪門, 雖不止定歲時立名, 亦法於古制.
【11】出納者, 出而用之, 納而藏之.
【12】執掌文翰. 山門, 疏 書簡 祈禱 語詞, 悉皆屬之.
【13】《毘奈耶》云: [由作淨業故, 名淨人.]
【14】戒和同修, 身和同住, 口和無諍, 意和同悅, 見和同解, 利和同均. 什師云: [如衆不和, 非敬順
之道也.]
【15】明公云: [水與乳, 本性和合, 加水於乳, 色不變也.]
【16】什, 衆也雜也. 會數之名, 資生之物, 非一故, 謂之什物. 關尹曰: [凡有貌相形色者, 皆曰物.]
【17】《楞嚴經》[跋多波羅浴時, 忽悟水因.] 注: 水爲所觸之因, 悟其了不可得也.
【18】闕則不宜也, 全乃可受.
【19】功多少者, 一鉢飯出於作夫一鉢汗血; 量來處者, 施者欲邀福免禍.
【20】五度, 莊嚴化身; 慧度, 莊嚴法身.
【21】卜式, 牧羊肥息曰, 非獨羊也, 治民亦猶是也. 惡者輒去, 毋令敗群. 注: 息謂蕃息也, 又盛多也.
【22】短也, 不熟也.
【23】王去聲, 下同.
【24】《左傳》[貪 無 ], 注: 愛財曰貪, 愛食曰 .
【25】財之所欲曰利, 利之所樂曰養.
【26】恤憂也.
【27】《係辭》[慢藏誨盜, 冶容誨淫.] 言慢易守藏則示誨盜賊也.
【28】孔子曰: [飽食終日, 無所用心, 難矣哉! 不有博奕者乎? 爲之, 猶賢乎已.] 註: 已, 止也.
【29】從目出者爲涕, 從口出者爲唾.
【30】廻旋之風, 雖吹之千 , 必有所未至處, 言人雖飾行措躬, 豈可盡善而無過咎哉!
【31】什公偈云: [譬如 泥中而生靑蓮華, 智者取蓮華, 勿取於 泥.]
【32】 檀, 此云與藥. 白檀能治熱病, 赤檀能去風腫, 皆除疾安身之藥, 故名與藥.
【33】福田有二, 衆生是悲田, 三寶是敬田.
【34】《智論》云: [佛制比丘一日一食. 後, 羅 羅幼少出家, 飢而啼之, 佛爲止啼, 且許朝粥, 後世比
丘, 見此開門, 朝粥中食, 以爲恒式.]《博物志》云: [雜食, 百疾妖邪之所鍾, 食逾少 心逾明,
食逾多 心逾損.] 又: [野干心念十善, 七日不食, 得生天上.]
【35】應供, 卽佛十號之一, 言與佛無異也.
【36】《音義》云: [梵語招鬪提奢, 唐言四方僧物, 又飜別房施. 後魏.太武.始光元年, 建伽藍, 創立招
提之名.]
【37】卽客堂也. 旅客遞相宿食而行過, 猶夜旦之更代故, 云旦過也.
【38】《蓮華面經》[佛告阿難: 譬如獅子, 命終身死, 所有衆生, 不敢食肉, 惟獅子身, 自生諸筮, 還
自食盡獅子之肉. 阿難! 我佛法中, 非餘破壞, 是諸比丘, 破我三大阿僧祇法.]《七夢經》亦同
此說.
【1】거북은 그것으로써 예측을 결정하며 거울은 그것으로써 예쁘고 추함을 판단한다. 猶豫의
猶는 곧 족제비이니, 나무를 잘 타고 성격에 의심이 많아서 항상 산 속에 머묾에 홀연히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미리 앞서 나무에 올랐다가 오래되어 사람이 없으면 그 후에 감히
내려왔다가는 잠깐 사이에 또 올라가는데, 이 같이 함이 한두 번이 아닌 까닭에 사람들이
무엇을 의심하여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이것에 비유한 것이다.
【2】두 그루의 계수나무란, 숭산의 소림굴 앞에 두 그루의 계수나무가 있는 까닭에 자연히 소
림을 일컫는다.《응성참》에 이르기를 [두 그루의 어린 계수나무 오래도록 푸르고 푸르도
다] 한 것은 이것을 은밀히 기록한 것이다. 또 임제와 조동의 두 종파가 잇달아 그 향훈이
끊이지 않는 까닭에 [두 그루는 오래도록 푸르고 푸르도다]라 하였다. 그늘을 드리운다는
것은 달마가 여기에서 9년을 면벽하고는 가대사를 얻어 그에게 心印을 전하니 이것이 선
종의 시초가 되었으며, 이로부터 천하에 널리 퍼지게 되었으니 어찌 그늘을 드리운 것이
아니겠는가.
【3】한 송이의 꽃이란 優曇鉢羅이니 이곳 말로는 靈瑞花이다. 잎사귀는 배나무와 흡사하나 열
매는 크고 꽃이 없이 열매를 맺으며, 또한 꽃이 피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만나기 어려운
까닭에 경전에서는 그것을 희유한 일에 비유하고 있다.《니원경》에 이르기를 [염부제 안
에 존수왕이 있으니 이름은 우담바라이다. 과실은 있으되 꽃은 없으나 만약 금빛 꽃이 피
면 부처님이 곧 세상에 나타나신다] 하였다. 이제 백장께서 법을 열어 세상에 나오셨으니
또한 이러한 꽃이 희유한 것과 같은 까닭에 상서러움을 드러내었다고 말하였다.
【4】달마가 양나라에 와서 위나라 땅에 은거하면서부터 6대 동안 이어져 내려와 대적에 이르
기까지 2백5십년 동안에는 선종의 사찰이 없었는데, 백장이 새로이 뜻을 내어 참선의 거
처를 따로 설립하니 참선하는 대중에 行道와 資身과 禪宴과 食息 등의 자격이 하나하나
구비되어 각각에 소임자가 있게 되었다.
【5】선종의 주지는 반드시 호칭하기를 장로라 하는데《아함경》에 세 가지 장로가 있으니, 첫
째는 기년장로로서 승랍이 많은 자요, 둘째는 법장로로서 불법의 성품을 속들이 통달하고
안으로 지혜와 덕행을 지닌 자이며, 셋째는 작장로이니 임시 그렇게 호칭할 뿐인 자인데,
지금은 그 두 번째를 취한 것이다. 또 덕이 높으면 長이 되고 승랍이 많으면 老가 된다.
【6】즉 예전의 上座이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소위 首座라 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의 일을 이미
모두 끝내 놓은 자로서 대중들이 복종하는 바 덕행과 선업을 겸비한 자를 택하여 소임을
맡긴다.
【7】즉 監寺이다.《승사》에 이르기를 [사찰을 맡고 있는 三綱은 마치 그물의 굵은 줄과도 같
이 그것을 들추면 곧 전체 그물의 눈이 바르게 되는 것과도 같다. 그것을 더욱 상세히 고
찰하면, 寺主는 동한 때의 백마사에서 시작되었는데 사찰이 도처에 퍼지게 되자 사람들이
반드시 사찰을 관리하게 되었다]라 하였다. 지금의 禪門에 안팎으로 사판(知事)들이 있는
데 監寺로써 우두머리를 삼는다.《대집경》에 이르기를 [僧物은 장악하기 어렵고 佛法은
주인이 없으나 내가 두 종류의 사람에게 삼보의 물건을 장악하도록 허락하여주노니, 첫째
는 업보를 아는 자요 둘째는 제부끄러움과 남부끄러움을 아는 자이다] 하였다. 지금의 선
문에서는 반드시 마음으로 법도를 통달하고 몸으로는 이익 배양함을 잊은 자를 선택하여
승려의 사무를 관장하게 하고 있으니, 이는 앞선 대덕께서 남긴 뜻이다.
【8】《기귀전》에 이르기를 [중화의 말과 범어를 함께 열거한 것이다. 維는 벼리의 밧줄(綱維)이
요 那는 범어를 간략하게 한 것으로 ?磨陀 3자를 떼어버린 것이니, 이곳 말로 하면 悅衆
이다]라 하였으며,《십송》에 이르기를 [승려가 거처하는 절에 때를 알아서 물 뿌리고 청
소하는 사람이 없으며 대중이 시끄럽게 할 때 그것을 지적하여 나무라는 사람이 없는 등
의 이유로 부처님께서 維那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하였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僧籍 및 表
白(선종에서 제문이나 회향문 등을 읽는 일 또는 그 소임) 등의 일을 관장하게 하고자 반
드시 마땅한 인재를 선출한다.
【9】《승사》에서 일컫는 ‘牀座의 소임을 맡아 주재함’을 말하는데, 9가지 소임 가운데 이제 한
가지 소임의 이름을 들어 그 전체의 의미를 포함시키고 있으며, 잡다한 일을 통틀어 맡음
을 말한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오랫동안 해 오던 관례에 따라 이 이름을 둔 것일 뿐이다.
【10】《승사》에서 일컫기를, 1년 동안 직무를 맡는 까닭에 이 직명을 두었다고 하였다. 지금의
선문에서는 비록 때와 시기를 한정 짓는 것으로 이름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옛
제도를 본받은 것이다.
【11】出納이란 꺼내어 쓰고 넣어 두어 간직함이다.
【12】문장이나 서한을 관장함이니, 山門에서의 방이나 상소문 및 서간문과 기도문과 일반글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13】《곤나야》에 이르기를 [깨끗한 업을 짓는 까닭으로 말미암아 淨人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14】戒和는 함께 수행함이요, 身和는 함께 거주함이요, 口和는 다툼이 없음이요, 意和는 함께
기뻐함이요, 見和는 함께 이해함이요, 利和는 함께 이익을 균등히 함이다. 집사가 이르기
를 [만약 대중이 화목하지 않으면 공경하고 순종하는 도리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15】명공이 말하였다. [물은 우유와 더불어 자못 근본 성질이 화합하니, 우유에 물을 더하면
색이 변하지 않는다.]
【16】什은 무더기이며 잡다한 것이다. 모아서 셈하는 법의 이름과 삶에 필요한 물건이 하나가
아닌 까닭에 그것을 일컬어 什物이라 한다. 관윤이 이르기를 [무릇 모양이나 형색이 있
는 것은 모두 物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17】《능엄경》에 [발다바라가 목욕할 때 홀연히 水因을 깨달았다] 하고는 주석에서, 물은 접
촉하는 바의 원인이 되기에 이해하는 것으로는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 하
였다.
【18】[자신의 덕행이] 부족하면 곧 [공양을 받기에] 마땅히 않으며, 온전하면 이에 받을 자격이
있다.
【19】’공덕이 얼마인가’란 한 발우의 밥이 그것을 일군 농부의 한 발우에 해당하는 땀과 피에
서 나왔음을 말하고, ‘그것이 온 곳’이란 시주하는 자가 복을 구하고 화를 면하고자 함을
말한다.
【20】五度로 化身을 장엄하고 慧度로 法身을 장엄한다.
【21】卜式의 牧羊肥息에 이르기를 비단 羊 뿐만이 아니라 백성을 다스림에도 역시 그러하니,
악한 자는 그때마다 제거하여 무리를 해치지 못하게 해야한다 하였다. 주석에 이르기를,
息은 불어남을 일컬으며 또한 번성하여 많아짐을 말한다고 하였다.
【22】[실력이] 짧음이요 익숙하지 못함이다.
【23】王은 去聲이니, 아래도 같다.
【24】《좌전》에 [탐하고 탐함에 물림이 없다] 하고는 주석에 이르기를, 재물을 좋아하는 것을
貪이라 말하고 음식을 좋아하는 것을 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25】재물에 대해 욕심 부리는 바를 利라 하고 그 利를 즐기는 바를 養이라 한다.
【26】恤은 근심함이다.
【27】《계사》에 [갈무리를 게을리 함은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이요 용모를 꾸미는 것은 음탕질
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였으니, 지키고 갈무리함을 게을리 하거나 건성으로 함은 곧 드
러내어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임을 말한다.
【28】공자가 이르기를 [종일토록 배불리 먹으며 마음 쓰는 바가 없으면 어렵도다. 도박하는
이가 있지 않은가? 그것은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만 두는 것이 현명하다] 하고는 주석에
이르기를, 已는 그만둠이라 하였다.
【29】눈에서 나오는 것은 涕가 되고 입에서 나오는 것은 唾가 된다.
【30】회오리 치는 바람이 비록 천 번을 돌아 불더라도 반드시 미치지 못한 곳이 있으니, 사람
이 비록 행위를 좋은 일로 꾸미며 몸소 행할지라도 어찌 선행을 남김없이 다하여 과오나
허물이 없겠는가를 말한 것이다.
【31】십공이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컨대 진흙 중에 푸른 연꽃이 생겨나는 것과 같으니, 지
혜로운 자는 연꽃을 취할 뿐 진흙을 취하지는 않는다.]
【32】 檀은 이곳 말로 하면 ‘약을 주다’는 뜻이다. 흰 전단은 열병을 능히 치료하고 붉은 전단
은 風腫을 능히 제거하니 모두 질병을 제거하여 몸을 편안케 해주는 약인 까닭에 與藥이
라 이름하는 것이다.
【33】복밭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중생은 자비의 복밭이요 삼보는 공경의 복밭이다.
【34】《지론》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비구는 하루에 한 끼의 식사를 하도록 제정하셨다. 후에
라후라가 어려서 출가하여 배고픔에 우니 부처님께서 울음을 그치게 하고는 아침에 죽
먹는 것을 하락하셨는데, 후세의 비구들이 이것을 시작으로 보아 아침에는 죽을 먹고 점
심때는 밥을 먹었으니 그것을 언제나 변치 않는 규칙으로 삼았다] 하였으며,《박물지》에
이르기를 [잡스러운 음식은 백 가지 질병의 요사함이 모인 것이니, 음식은 적게 먹을수
록 마음은 더욱 밝아지고 많이 먹을수록 마음에 손해가 된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野干
이 열 가지 선을 마음으로 생각하며 7일 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더니 천상에 태어남을 얻
었다]고 하였다.
【35】應供은 곧 부처님의 10가지 명호 가운데 하나이니 부처님과 더불어 다름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36】《음의》에 말하였다. [범어로 ‘초투제사’는 당나라 말로 ‘四方僧物(사방의 모든 승려가 사
용할 수 있는 물건)’이며 또는 別房施로 번역한다. 후위의 태무제 시광 원년에 가람을 건
축하고는 처음으로 ‘초제’라는 이름을 세웠다.]
【37】즉 객실이다. 나그네가 번갈아 숙식하며 거쳐가는 것이 마치 밤낮이 거듭 번갈아드는 것
과 같은 까닭에 旦過라 말하였다.
【38】《연화면경》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하였다: 비유컨대 사자가 명이 다하
여 죽음에 모든 중생들이 감히 그 고기를 먹지 못하였으나 오직 사자의 몸에서 저절로
여러 벌레가 생겨나서 도리어 사자의 고기를 모두 먹어 버렸다. 아난아! 나의 불법 가운
데는 파괴될 여지가 없으나 곧 모든 비구가 나의 3대 아승지겁의 법을 파괴하리다.]《칠
몽경》에도 이와 같은 얘기가 있다.
自 警 文
神心洞照, 聖默爲宗,[1] 旣啓三緘,[2] 宜遵四實.[3] 事關聖說, 理
合金文, 方能輔翼敎乘 光揚祖道, 利他自利, 功不浪施. 若乃竊議
朝廷政事,[4] 私評郡縣官僚, 講[5]國土之豊凶, 論風俗之美惡,[6] 以
至工商細務 市井閑談 邊鄙[7]兵戈 中原寇賊[8] 文章技藝[9] 衣食
貨財, 自恃己長, 隱他好事, 揄揚顯過, 指摘[10]微瑕, 旣乖福業,
無益道心. 如此游言, 傷實德, 坐消信施, 仰愧龍天. 罪始濫
觴,[11] 禍終滅頂, 何也? 衆生苦火, 四面俱焚, 豈可晏然, 坐談無
義![12]
신비스러운 마음을 속속들이 비추는데는 성스러운 침묵이 으뜸이지만 이미
세 겹이나 꿰매 두었던 입을 열었으면 마땅히 네 가지의 성실함을 좇아야 한다.
일은 성인의 말씀에 관계되고 이치는 경전에 합치해야만 비로소 능히 교승敎乘
을 돕고 조사님들의 도를 빛내어 드날림으로써 타인을 이롭게 하고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니 공덕을 헛되이 베푸는 것이 되지 않는다. 만약 조정의 정사를 몰래
논의하거나 군현의 관료들을 사사로이 비평하고 국토의 풍흉을 얘기하거나 풍속
의 좋고 나쁨을 논하며, 또는 공상工商의 세세로운 일과 저자거리의 한가로운 얘
기와 변방의 전쟁과 나라 안의 도적과 문장의 기예와 옷가지 먹거리 및 재물에
대해서 논하며, 스스로 자기의 장점만을 믿으며 다른 사람의 좋은 일은 숨기고
드러난 과실만을 끌어내어 퍼트리며 작은 허물을 지적한다면 이미 복된 업에 어
긋나는 것이니 도를 닦는 마음에 도움될 것이 없다. 이와 같이 떠도는 말은 참된
덕을 상하게 하고 아울러 앉아서 신도의 시주를 녹이는 것이니 우러러 용중龍衆
과 천중天衆에 부끄러울 뿐이다. 죄악은 작은 술잔을 넘치는 정도에서 시작되나
그 재앙은 정수리까지 마멸시킬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중생의 괴로운 불길은
사면에서 함께 타고 있는데 어찌 편안하게 의미 없는 좌담이나 늘어놓을 것인가.
【1】聖默: 佛於摩竭, 掩關七日; 淨名, 杜口毘耶; 達摩, 少林面壁九載之類也.
【2】《家語》[孔子觀周, 遂入太祖.后稷之廟, 堂右階之前, 有金人焉, 三緘其口, 而銘其背曰{古之
愼言人也}].
【3】如語, 實語, 不妄語, 不異語也.
【4】紀綱法度曰政, 動作云爲曰事. 又在君爲政, 在臣爲事. 又大曰政, 小曰事.
【5】論也.
【6】上所說曰風, 下所習曰俗.
【7】《周紀》[四里爲 , 五 爲鄙, 五百家也.] 又邊也, 或云都鄙. 都者, 君子之居; 鄙者, 野人之
居. 故, 古者謂野爲鄙, 謂都爲美.
【8】劫奪曰寇, 殺人曰賊.
【9】杜詩: 文章, 一小技.
【10】挑發也.
【11】《書》[三江濫觴.] 註言: 泉始流, 不過杯水, 泛溢而漸, 至于橫流也.
【12】身則生老病死, 心則生住異滅, 此無常苦火, 一時而四面俱起也. 全篇切戒口業也.
【1】성스러운 침묵이란, 부처님이 마갈에서 7일 동안 빗장을 걸어 닫고, 정명이 곤야에서 입을
다물고, 달마가 소림에서 9년 동안 면벽한 것과 같은 것들이다.
【2】《공자가어》에 [공자께서 주나라를 살펴보며 마침내 태조 후직의 묘에 들어감에 묘당의 오
른쪽 계단 앞에 金人이 있었는데, 그 입이 세 겹이나 꿰매어져 있었으며 그 등에 명문이
새겨져 있기를 {예전에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라고 되어 있었다.]
【3】사실과 똑 같은 말과 진실된 말과 거짓되지 않는 말과 다르게 하지 않는 말 등이다.
【4】기강이 있고 법도가 있음을 일컬어 政이라 하고 동작하고 언행함을 일컬어 事라 한다. 또
임금에 있어서는 政이 되고 신하에 있어서는 事가 된다. 또 큰 것을 일컬어 政이라 하고
작은 것을 일컬어 事라 한다.
【5】論함이다.
【6】윗사람이 말한 바를 일컬어 風이라 하고 아랫사람이 익힌 바를 일컬어 俗이라 한다.
【7】《주기》에 [4里가 이 되며 5 이 鄙가 되니 5백家이다]라 하였으며, 또는 변두리이며 혹
은 都鄙라 한다. 都는 군자의 거처요 鄙는 야만인의 거처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野라 일
컬으면 천한 것으로 여겼고 都라 일컬으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겼다.
【8】물건을 빼앗는 것을 도적질(寇)이라 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노략질(賊)이라 한다.
【9】두보의 시에 ‘文章은 하나의 작은 技藝’라 하였다.
【10】도발이다.
【11】《서경》에 [세 강이 작은 술잔에서 넘실거린다] 하고는 주석에서 말하기를, 샘이 처음으
로 흐를 때는 한 잔의 물에 불과하다가 불어나며 점점 나아가서는 [거대한 강둑도] 넘쳐
흐르기에 이른다.
【12】몸은 곧 태어나고 늙어서 병들어 죽으며 마음은 곧 생겨나서 머물다가 달라지고는 소멸
되니, 이는 무상한 괴로움의 불길로서 일시에 사면에서 함께 일어난다. 전체 문장에서 口
業을 간절히 경계하고 있다.
永明智覺壽禪師垂誡 및 八溢聖解脫門
垂誡[1]
學道之門, 別無奇特, 只要洗滌根塵下無量劫來業識種子. 汝等,
但能消除情念, 斷絶妄緣, 對世間一切愛欲境界, 心如木石相似,
直饒未明道眼, 自然成就淨身.[2] 若逢眞正導師, 切須勤心親近!
假使參而未徹 學而未成, 歷在耳根, 永爲道種, 世世不落惡趣, 生
生不失人身, 裳出頭來, 一聞千悟. 須信道! 眞善知識,[3] 爲人中
最大因緣, 能化衆生, 得見佛性. 深嗟! 末世?說一禪, 只學虛頭,
全無實解, 步步行有, 口口談空, 自不責業力所牽, 更敎人撥無因
果, 便說飮酒食肉不 菩提 行盜行狀無妨般若, 生遭王法,[4] 死陷
阿鼻, 受得地獄業消, 又入畜生[5] 餓鬼, 百千萬劫, 無有出期. 除
非一念回光, 立卽蒜邪爲正, 若不自懺自悔 [6]自度自修, 諸佛出來
也無救 處. 若割心肝, 如木石相似, 便可食肉; 若喫酒, 如喫屎
尿相似, 便可飮酒; 若見端正男女, 如死尸相似, 便可行狀; 若見
己財他財, 如糞土相似, 便可侵盜. 饒 鍊得到此田地, 亦未可順
汝意在, 直待證無量聖身, 始可行世間逆順事. 古聖施設, 豈有他
心! 只爲末法僧尼, 少持禁戒, 恐 他向善俗子, 多退道心, 所以
廣行遮護. 千經所說 萬論所陳: 若不去狀, 斷一切淸淨種; 若不
去酒, 斷一切智慧種; 若不去盜, 斷一切福德種; 若不去肉, 斷一
切慈悲種. 三世諸佛, 同口敷宣, 天下禪宗, 一音演暢, 如何後學,
略不聽從, 自毁正因, 反行魔說? 只爲宿熏業種, 生遇邪師, 善力
易消, 惡根難拔. 豈不見? 古聖道: [見一魔事, 如萬箭 心, 聞一
魔聲, 如千錐箚耳.] 速須遠離, 不可見聞, 各自究心, 愼莫容易.
도道를 배우는 문門에는 별로 기이하거나 특별난 것이 없으니, 다만 육근六根
과 육진六塵 아래에서 한량없는 겁劫 동안 길러 온 업식業識의 종자를 씻어 내기
바랄 뿐이다. 너희들이 단지 정에 어린 생각을 소제하고 허망한 인연을 단절할
수 있으며 세상 일체의 애욕 경계에 대해 마음이 마치 목석과 같아질 수 있다면
설사 도안道眼을 밝히지는 못하더라도 자연스레 청정한 몸을 성취할 수 있을 것
이다. 만일 진정한 마음으로 이끌어 주는 스승을 만나면 모름지기 근실한 마음으
로 가까이 해야 할 것이다. 가령 참구하였으나 철저하지 못하고 배웠으나 이루지
못하였더라도 귀를 스쳐 가기만 하면 영원히 불도佛道의 종자가 될 것이니, 세세
생생 악취惡趣에 떨어지거나 사람의 몸을 잃지 않을 것이며 태어나자마자 하나
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우칠 것이다. 모름지기 이르는 말을 믿으라! 참된 선지식
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거룩한 인연이 되며 능히 중생을 교화하여 불성을 얻어
보게 할 것이다.
심히 애달다! 말세에 기만의 말을 일삼는 한 부류 선객들이 단지 허황된 화두
만을 배울 뿐 실다운 이해는 전혀 없이 걸음걸음마다 유위有爲를 행하되 입과
입으로는 공空을 얘기하여 스스로 업력業力에 끌려 다니는 바를 따져 밝히지 않
고, 다시 사람들에게 인과가 없다고 가르치며 술 마시고 고기 먹는 일이 보리에
장애가 되지 않고 도적질하고 음행하는 것이 반야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 말하고
있으니, 살아서는 왕의 법에 저촉이 되고 죽어서는 아비지옥에 빠질 것이며, 지
옥의 모든 업을 받아서 소멸되면 또 축생과 아귀로 떨어져 백천만겁 동안 빠져
나올 기약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한 생각으로 빛을 돌이키면 그 자리에서 곧 삿
된 것을 뒤집어 올바른 것이 되게 할 것이니와 만약 스스로 참회하고 제도하여
수행하지 않는다면 모든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더라도 너를 구제할 근거가 없을
것이다.
만일 심장과 간을 도려내더라도 마치 목석과 같이 그렇게 여긴다면 곧 고기를
먹어도 좋을 것이며, 만일 술을 마시더라도 마치 똥오줌을 마시듯이 그렇게 여긴
다면 곧 술을 마셔도 좋을 것이며, 만일 단정한 남녀를 보더라도 마치 시체와 같
이 그렇게 여긴다면 곧 음행을 해도 좋을 것이며, 만일 자신의 재물이나 남의 재
물을 보아도 마치 똥덩어리 같이 그렇게 여긴다면 곧 도적질을 해도 좋을 것이
다. 설령 네가 연마하여 이 경지에 이르더라도 또한 네 뜻에 있는 대로 따를 수는
없을 것이니 곧장 한량없는 성스러운 몸을 증득하기 기다려야 비로소 세간의 거
꾸로 되고 바로 된 일들을 모두 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성인들이 베푼 설교에 어찌 별다른 마음이 있겠는가! 단지 말법의 승려가
되어 금지의 계율도 얼마 지니지 않은 채 저 선한 법을 향하는 속인들을 속임으
로써 도심道心이 많이 물러설까 두려운 까닭에 삿된 것을 막고 참된 것을 보호하
는 행위를 널리 펼친 것일 뿐이다.
천 가지의 경전에서 말하고 만 가지의 논설에서 진술하되, 만일 음행을 버리지
않는다면 일체의 청정종자(淸淨種)를 끊는다 하시고, 만일 음주를 버리지 않는다
면 일체의 지혜종자(智慧種)를 끊는다 하시고, 만일 도둑질을 버리지 않는다면
일체의 복덕종자(福德種)를 끊는다 하시고, 만일 육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일체의
자비종자(慈悲種)를 끊는다 하였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한 입으로 널리 선양
하셨고 천하 선문의 종사들이 한 목소리로 널리 진술하였는데 어찌하여 후학들
은 조금도 들어 따르지 않고 스스로 바른 인연을 헐어버리고 도리어 마귀의 말을
행하는 것인가. 단지 오래도록 묵힌 업의 종자가 되어 세상에 태어나서 삿된 스
승을 만나니 착한 힘은 쉽게 삭아들고 악의 뿌리는 뽑아 버리기 어려울 뿐일 것
이다.
어찌 보지 못했는가! 옛 성인이 말하기를 [한 가지 마군이의 일을 보면 마치
만 개의 화살이 심장을 뚫는 것과 같이 여기고, 한 마디 마군이의 소리를 들으면
마치 천 개의 송곳니 귀를 찌르는 것과 같이 여기라] 하였으니, 모름지기 신속하
게 멀리 여의어 보지도 듣지도 말 것이며 각자 스스로 마음을 공부함에 삼가 쉽
게 여기지 말 것이다.
【1】抗州.永明.智覺禪師, 諱延壽, 餘杭.王氏子. 七歲誦《法華》, 群羊 聽. 年二十八歲出家, 嗣天台.
德韶國師, 世傳阿彌陀佛後身.
【2】有說淨身, 淸淨法身者, 非也. 豈有未明道眼而先能成就法身也? 但自淨身業之謂也.
【3】善知識有三: 一, 外護.《止觀》云[不揀黑白, 但能如母養兒, 調理得所.]《輔行》[自己身心爲
內, 望他身心爲外, 爲外所護, 名外護善知識.] 二, 同行.《止觀》云[更相策發, 不昏不散, 日有
其新.]《輔行》云[己他遞相策發, 人異行同, 名同行善知識.] 三, 敎授.《止觀》云[內外通塞, 皆
能決了, 善巧說法.]《輔行》云[宣傳聖言, 名之爲敎, 訓誨於我, 名之爲授, 名敎授善知識.]
【4】佛告比丘: [若人作賊, 偸盜他物, 爲主所繫縛, 送付於王, 治其盜罪. 王卽遣人, 閉着牢獄, 或截
手足, 或時鋸解, 如是種種, 苦切殺之. 命終之後, 生地獄中, 受無量苦, 地獄罪畢, 生畜生中象
馬牛羊等, 經百千歲, 以償他力, 飢渴苦勞, 不可具言, 經百千歲, 受如是苦也.]
【5】《婆沙論》云: [謂彼橫生, 稟性愚痴, 不能自立, 爲人畜養而生故, 曰畜生.]
【6】自懺自悔者, 華.梵兩存. 懺名白法, 悔名黑法, 白法須尙, 黑法須捨. 又懺名披陳衆失, 悔名斷相
續念.
【1】항주 영명 지각선사의 휘는 연수이며 여항 왕씨의 아들이다. 7세 때 법화경을 외우니 羊
의 무리가 무릎을 꿇고 들었다. 18세 때 출가하여 천태 덕소국사의 법을 이으니 세간에서
는 아미타불의 후신이라고 전해졌다.
【2】어떤 이가 淨身을 淸淨法身이라 말하는데 틀린 말이다. 어찌 아직 道眼도 밝히지 못한 채
앞서서 능히 법신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다만 몸의 업을 스스로 맑게함을 말함일 뿐이다.
【3】선지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外護이니,《지관》에 이르기를 [흑백을 가리지 않고
단지 어머니가 아이를 양육하듯이 이치를 조절하여 마땅한 바를 얻는다] 하였으며,《보
행》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안으로 여기고 다른 이의 몸과 마음을 밖으로 여기니 바깥 사
람에 의해 보호받는 바가 되는 까닭에 外護선지식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두 번째는 同行
이니,《지관》에 이르기를 [거듭 서로를 채찍질로 분발하여 혼미하지 않게 하고 산란하지
않게 하니 날로 그 새로움이 있다] 하였으며,《보행》에 이르기를 [자신과 남이 번갈아 서
로 채찍질하여 분발함에 사람은 다를지라도 행하는 바는 같기에 同行선지식이라 이름한
다] 하였다. 세 번째는 敎授이니,《지관》에 이르기를 [안팎으로 통하고 막혔던 것을 모두
능히 마무리하여 정당하고도 공교함으로 설법한다] 하였으며,《보행》에 이르기를 [성인의
말을 널리 전하는 것을 敎라 이름하고 나 자신을 훈계하여 가르치는 것을 授라 이름하니
敎授선지식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하였다.
【4】부처님이 비구에게 알려 주었다. [만약 사람이 도적질하여 다른 이의 물건을 훔쳤다면 주
인에 의해 결박되어 왕에게 보내져서 그 도적질한 죄를 다스리게 할 것이며, 왕은 곧 사람
을 파견하여 잡아다 감옥에 가두고 손발을 절단시키거나 톱으로 쓰는 등 이와 같은 가지
가지의 고통으로 그를 죽일 것이다. 죽은 후에는 지옥에 태어나 무량한 고통을 받을 것이
며, 지옥의 벌이 끝나면 축생 가운데 코끼리나 말 또는 소나 양 등으로 태어나 백천세를
지나도록 다른 이의 힘든 일을 대신함에 飢渴의 고통과 수고로움은 갖추어 말할 수 없을
것이니, 백천세가 지나도록 이와 같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5】《파사론》에 말하였다. [저 橫生들은 품성이 어리석어 능히 자립할 수 없으므로 사람에 의
해 사육되어 살아가는 까닭에 畜生이라 일컫는다.]
【6】自懺自悔란 중화의 말과 범어를 같이 쓴 것이다.[→義淨의《有部毘奈耶》卷15 注에, 懺은
가벼운 의미로서 단지 용서를 구하는 것을 말하고, 悔는 범어 patti-pratide ana에 해당하
며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여 죄를 없애는 說罪로서 의미가 무겁다.] 懺은 白法
을 이름하고 悔은 黑法을 이름하니 백법은 모름지기 숭상해야 하고 흑법은 모름지기 버려
야 한다. 또 懺은 대중의 실수를 나누어 벌려 놓음을 이름한 것이고 悔는 연이어지는 생각
을 끊음을 이름한 것이다.

八溢聖解脫門[1]
禮佛者, 敬佛之德也; 念佛者, 感佛之恩也; 持戒者, 行佛之行
也; 看經者, 明佛之理也; 坐禪者, 達佛之境也; 參禪者, 合佛之
心也; 得悟者, 證佛之道也; 說法者, 滿佛之願也. 實際理地, 不
受一塵, 佛事門中, 不捨一法. 然此八事, 猶如四方四隅, 闕一不
可. 前聖後聖, 其揆一也, 六波羅蜜, 亦須兼行. 六祖云: [執空之
人, 滯在一隅, 謂不立文字. 自迷猶可, 又謗佛經, 罪障深重, 可不
戒哉!]
부처님께 예하는 것(禮佛)은 부처님의 덕을 공경하는 것이고, 부처님을 생각
한다는 것(念佛)은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며, 계를 지닌다는 것(持戒)은
부처님의 행위를 따라 행한다는 것이고, 경전을 본다는 것(看經)은 부처님의 이
치를 밝히는 것이며, 앉아서 선을 닦는다는 것(坐禪)은 부처님의 경계에 도달하
는 것이고, 선을 참구한다는 것(參禪)은 부처님의 마음에 합치하는 것이며, 깨달
음을 얻는다는 것(得悟)은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는 것이고, 법을 말한다는 것(說
法)은 부처님의 바램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의 영역과 진리의 경지에는 한 톨의 티끌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부처님의
일을 하는 문안에는 한 가지의 법도 버리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에 이 여덟 가지
일은 마치 네 방위 및 네 모서리와 같아서 하나라도 빠트릴 수 없다. 예전의 성인
과 이후의 성인도 그 법도는 한 가지이며, 육바라밀 또한 겸하여 수행해야 한다.
육조가 이르기를 [공空에 집착한 사람은 한 구석에 머물러 있으면서 일컬어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한다. 제 자신 미혹한 것은 그래도 괜찮으나 불경을 비방함
에 그 죄의 업장業障이 깊고도 무거우니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라 하였다.
【1】溢, 滿也. 若八事滿足, 則得解脫聖道.
【1】溢은 가득함이다. 만일 여덟 가지 일을 만족히 하면 곧 해탈의 성스러운 도를 얻을 것이다.

雪竇明覺禪師壁間遺文[1]
夫傳持祖燈,[2] 嗣續佛壽, 此非小任, 宜景前修, 肅爾威儀, 尊其
瞻視,[3] 懲忿窒慾, 治氣養心. 無以名利動於情, 無以得失介於意,
無隨世之上下, 無逐人之是非, 黑白置之于胸, 喜怒不形於色. 樂
人之樂, 猶己之樂, 憂人之憂, 若己之憂. 容衆尊賢, 克己復禮,[4]
無因小隙, 失素所善, 無背公議, 棄素所 . 能不可矜, 勢不可恃,
無護己短, 無掩人長, 見德不可忘身, 在貴不可忘賤. 且夫學本修
性, 豈 人之不知? 道貴全生, 無 世之爲用. 人或慕義, 理固推
餘, 必也篤爾心誠, 誨以規矩, 博授群籍, 深示妙宗. 慈室忍衣, 不
可須臾而離,[5] 大方寶所, 欲其造次必是. 動息有常, 嫌疑必愼. 人
不可侮, 天不可欺. 衆之去來, 無追無拒,[6] 人之毁譽, 無喪無貪,
內無所慙, 外無所恤. 或若聲華溢美, 利養豊多, 畏四趣之果因,
愼三寶之交互. 死生未脫, 業苦難逃, 方其得志, 思利正. 身如
行厠, 利稱軟賊, 百年非久, 三界無安, 可惜寸陰, 當求解脫. 古先
諸祖, 擧有懿範: 杖錫, 一味喫土; 丹霞, 只箇布 ; 趙州, 靑灰滿
首; 朗師, 編草爲氈; 或深禪久修; 或優詔不就. 大都[7]約則 失,
奢則招譏, 謙則有光, 退則無忌. 去佛逾遠, 行道有艱, 觀時進止,
無自辱也.
무릇 조사의 법등法燈을 전하여 가짐으로써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는 것은
작은 임무가 아니니, 마땅히 앞으로의 수행을 원대히 하고 위의를 엄숙히 하며
굽어보는 눈매를 존귀하게 가지고 성냄과 욕심을 막으며 기운을 다스리고 마음
을 길러야 한다. 명예와 이익으로 감정을 움직이는 일이 없어야 하고 이득과 손
실이 뜻에 개입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세상의 위아래를 따르는 일이 없어야 하
고 사람들의 시비를 쫓는 일이 없어야 하며, 검고 흰 것은 가슴속에 묻어 두고
기쁨과 분노를 얼굴빛에 드러내지 말라. 남의 즐거움을 즐거워함에 마치 자신의
즐거움처럼 하고, 남의 근심을 근심스러워 함에 흡사 자신의 근심처럼 하라. 대
중을 포용하고 현인을 존중하며 자신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갈 것이며, 조그마
한 틈으로 인하여 평소에 선하다고 여겼던 바를 잃는 일이 없어야 하며, 대중의
공론을 등져 가면서까지 평소에 성글었던 바를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능력은
자랑할 것이 못되고 권세는 믿을 것이 못되며, 자신의 단점을 보호하는 일이 없
어야 하고 남의 장점을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덕망 있는 자를 보면 자기 자신
은 어떤지를 잊지 말아야 하고 부귀한 곳에 있을 때는 빈천한 곳에 있을 때를
잊지 말아야 한다.
무릇 배움이란 본디 자성自性을 닦는데 있으니 어찌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
는다고 화낼 것인가. 도道는 삶을 온전히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 세상
의 쓰임이 되기를 바라는 일이 없도록 하라. 사람들이 혹 의리를 흠모하면 이치
에 마땅히 다른 이에게 미루어야 할 것이니, 반드시 마음과 정성을 돈독히 하고
규범으로써 가르치며 여러 서적들을 널리 주어서 현묘한 종지를 깊이 보여 주어
라. 자비의 방(慈室)과 인욕의 옷(忍衣)은 잠시라도 떼 놓을 수 없으며 큰 법이
있는 곳과 보배가 있는 장소는 잠깐만이라도 반드시 그 자리에 도달하고자 해야
할 것이다.
움직이고 쉼에 있어 항상성이 있어야 하고 의심스러운 것은 반드시 삼가야 할
것이다. 사람은 업신여길 수 없으며 하늘은 속일 수 없다. 대중이 가고 옴에 좇지
도 말고 거절하지도 말며 사람들이 헐뜯거나 칭찬함에 성내지도 말고 탐내지도
말 것이니, 안으로는 부끄러운 바가 없도록 하고 밖으로는 동정 받는 바가 없도
록 하라. 혹은 만약 화려한 명성이 지나치게 아름다워져서 이익과 그 즐거움이
풍족하고 많아지더라도 사취四趣의 인과를 두려워하고 삼보三寶의 물건을 바꿔
쓰는 것을 삼가라.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면 업의 고통을 피하기 어려우니 바야흐
로 해보아야겠다는 뜻을 얻었으면 빨리 날카롭고도 바르게 되기를 생각하라. 몸
뚱이는 돌아다니는 변소와 같고 이익은 부드러운 도적이라 일컬으며, 백년이라
도 오랜 것이 아니며 삼계 또한 편안한 바가 없으므로 한 순간을 아껴서 의당
해탈을 구해야 할 것이다.
예전의 앞선 여러 조사들은 모두 훌륭한 모범을 보였으니, 장석은 한결같은
맛으로 거친 음식을 먹었고, 단하는 단지 한 벌의 베옷뿐이었으며, 조주는 푸른
먼지가 머리에 가득하였고, 낭사는 풀을 엮어 이불을 삼았으며, 어떤 이는 심오
한 선禪을 오래도록 닦았고, 어떤 이는 넉넉한 조서詔書에도 나아가지 않았다.
대개 검약하면 잃는 것이 적고 사치하면 비방을 초래하며 겸손하면 빛이 있고
물러서면 시기함이 없을 것이다. 부처님 가신지 더욱 멀어져 도를 행함에 어려움
이 있으니 시기를 관찰하여 나아가고 머물러서 스스로 욕됨이 없도록 하라.
【1】雪竇山重顯禪師, 遂州李氏子, 嗣北塔.
【2】代代相承曰傳, 眷眷執守曰持. 祖燈, 祖師心燈也.
【3】《冠禮》曰: [整其衣冠, 尊其瞻視, 儼然人望而畏之.]
【4】《論語》[顔回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克 勝也, 己 身之私慾也, 復 反也, 禮 天理之節文
也, 言爲仁者, 勝私慾而反乎理之節文也.
【5】《法華》云: [入如來室者, 於一切衆生, 大慈悲心, 是也; 着如來衣者, 柔和忍辱心, 是也.] 今謂
慈悲, 如人之有堂室, 不可須臾而離也; 柔忍, 如人之有衣服, 不可須臾而棄也.
【6】《四行論》云: [物若欲來, 住之莫逆, 物之欲去, 放去勿追.]
【7】《書記》註云, 大都猶云大略也.
【1】설두산 중현선사는 수주 이씨의 아들로서 북탑의 법을 이었다.
【2】대대로 이어져 전해 내려오는 것을 傳이라 하고, 가지고서 돌보며 지켜 가는 것을 持라 한
다. 祖燈은 조사의 마음의 등불이다.
【3】《관례》에 말하였다. [의관을 단정히 하고 굽어보는 눈매를 존귀하게 가지면 엄숙하여 사
람들이 바라보며 두려워한다.]
【4】《논어》에 [안회가 仁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회복하면 어짊
을 이룰 것이라 하였다] 하였다. 克은 이기는 것이요, 己는 자신 몸의 사사로운 욕망이요,
復는 돌이킴이요, 禮는 하늘의 이치를 적절히 함축한 것이니, 어짊을 이룬다 함은 사사로
운 욕망을 이기고 이치의 적절한 자리에 돌아감을 말한다.
【5】《법화경》에 이르기를 [여래의 방에 들어온다는 것은 일체 중생에 대해 큰 자비심을 베푼
다는 바로 그것이요, 여래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부드러운 화합의 마음과 인욕의 마음을
가지는 바로 그것이다]라 하였다.
【6】《사행론》에 말하였다. [사물이 만약 오고자 하면 와서 머물게 하되 거역하지 말 것이며,
사물이 가고자 하면 놓아주어 가게 하되 뒤쫓지 말 것이다.]
【7】《서기》의 주석에 말하기를 大都는 大略이라고도 말한다고 하였다.
天台圓法師自戒
三界悠悠一囹圄,[1] 鎖生靈受酸楚,
本來面目久沈埋, 野馬無 恣飄鼓.
欲火燒殘功德林, 逝波傾入無明塢,
紛紛萬類器中蚊, 鳴亂沈還擧.
亦曾天帝殿中遊,[2] 也向閻公鍋裏煮,[3]
循環又撞入胞胎,[4] 交 腥 [5]成沫聚.
一包膿血暫扶持, 數莖白骨權撑 ,
七情[6]馳騎不知歸, 六賊[7]爭鋒誰作主.
春風不改昔時波, 依舊貪嗔若狼虎.
改頭換面弄機關,[8] 忍氣呑聲受辛苦.
貴賤賢愚我與人, 是非榮辱今猶古.
金烏[9]玉兎[10]自磨空, 雪 朱顔盡成土.
我嗟瞥地一何晩, 隨波逐浪空流轉.
追思古聖與先賢, 掩袂令人獨羞 .
而今捉住主人翁, 生死魔來我誰管.
昔時伎倆莫施呈, 今日生涯須自勉.
是非窟裏莫回頭, 聲利門前高着眼.
但於自己覓愆尤, 肯與時流較長短.
一點靈光直照西, 萬端塵事任舒卷.
不於蝸角竊虛名, 獨向金臺預高選.
從[11]他病死與生老, 只此一回相括惱.
修行惟有下梢難,[12] 竪起脊梁休放倒.
莫敎錯認定盤星,[13] 自家牢守衣中寶.[14]
願同法界寃與親, 共駕白牛遊直道.
삼계는 끝없는 하나의 감옥,
생령生靈을 재갈 물리고 사슬 씌워 혹독한 고통을 받게 하니,
본래면목이 오래도록 잠기고 묻혀서,
아지랑이는 고삐 없이 제멋대로 뛰놀도다.
욕심의 불길은 공덕의 숲을 모두 태우고,
흐르는 물결은 무명의 언덕으로 기울어져 들어가니,
어지럽고 어지러운 만류萬類는 그릇 가운데 모기라,
웅웅거리며 우는 소리 어지럽게 잠겼다가 다시 들려온다.
일찍이 천상 제왕의 뜰 가운데 노닐다가,
또한 염라대왕의 가마 속으로 들어가 삶기니,
돌고 돌다가 다시 포태胞胎로 들어가게 되는지라,
비린내 누린내 서로 엉겨서 거품덩이를 이루었다.
한 보따리 고름과 피로 잠시 붙들어 지니고,
두어 줄기 백골로 임시 버티고 있으니,
칠정七情은 치달림에 돌아올 줄을 모르고,
육적六賊이 선봉을 다투나 어느 누가 주인이 될까.
봄바람은 옛 시절의 물결을 고치지 않기에,
예와 다름없이 탐내고 성냄이 이리와 호랑이 같도다.
머리를 고치고 얼굴을 바꾸어 기관機關을 희롱하며,
기운을 참고 소리를 머금어 괴로움을 받도다.
귀하고 천하고 현명하고 어리석은 나와 더불어 남,
옳고 그르고 영예롭고 수치스러움이 지금도 예전과 같도다.
금가마귀와 옥토끼가 스스로 허공을 갈아 가니,
눈 내린 귀밑머리와 붉은 얼굴이 모두 흙이 되었다.
내 슬퍼하나니 깜빡 사이에 한 번 어쩌다 늦어서,
파도 따라 물결 쫓아 헛되이 흐르고 굴렀네.
옛 성인과 앞선 현인들을 추모하여 생각해 보건대,
소매를 가리고 사람으로 하여금 홀로 부끄러워 붉어지게 하도다.
지금이라도 주인옹을 붙잡아 안주시키면,
삶과 죽음의 마군이가 오더라도 나에게 무슨 관계가 될까.
예전의 잔재주를 베풀어 바치지 말고,
오늘의 삶이나 모름지기 스스로 힘쓸지어다.
시비의 굴속으로 머리를 돌이키지 말고,
명예와 이익의 문 앞에선 더 높은 곳에 눈을 둘지어다.
다만 자기에게서 허물을 찾을지언정,
어찌 시류時流와 더불어 즐겨 장단을 비교하겠는가.
한 가닥 신령스런 광채가 곧장 서쪽으로 비추면,
만 가지의 세속 일을 마음대로 펴고 쥘 것이다.
달팽이 뿔 위에서 헛된 이름을 도적질 말고,
홀로 금대金臺를 향하여 높은 선발選拔에 참예하라.
병들고 죽는 것은 나고 늙는 것과 더불어 내버려두고,
다만 이 한 차례에 과감히 힘써 볼 지어다.
수행은 오직 그 끝에 어려움이 있으니,
척량골脊梁骨을 곧추세울 뿐 놓아서 쓰러뜨리지 말지어다.
정반성定盤星을 그릇되게 인식하지 않도록 하고,
자기 옷 가운데 보배를 굳게 지켜라.
원컨대 온 세계의 원수와 친한 이가 더불어,
다 함께 흰 소를 멍에하고 곧은 길에 다니기를 바라노라.
【1】夏之夏臺, 殷之 里, 周之 土, 秦之囹圄, 皆獄名. 囹者, 令之使聆; 圄者, 語之使悟也.
【2】生天.
【3】入獄.
【4】得人身.
【5】生肉曰腥 , 豕犬曰膏臭. 阿難曰: [欲氣序濁, 腥 交 .]
【6】卽七識也.
【7】六識.
【8】《華嚴》 云: [機關, 抽之則動, 息之則無.] : 容物動處, 名爲機; 於中轉者, 說爲關.
【9】《淮南子》[日中有 烏], 謂三足烏也.
【10】《西域記》云: [劫初有兎 狐 猿, 異類相悅. 時, 天帝欲試修菩薩行者, 化爲一老夫, 謂三獸曰:
{二三者, 善安穩乎? 老夫故此遠尋, 今正飢乏, 何以饋我?} 曰: {幸小留.} 狐得鯉魚, 猿採花
菓, 同進老夫, 惟兎空還, 謂猿 狐曰: {多聚草木 火.} 兎謂老夫曰: {身雖卑劣, 充此一飡.}
入火致死. 是時, 老夫復帝釋身, 除燼取骸, 歎謂二獸曰: {一何至此, 不泯其迹.} 寄之月輪, 傳
于後世.]
【11】任也.
【12】下梢猶云末梢也.
【13】秤上第一星, 以比第八識.
【14】見《法華經》五百弟子授記品.
【1】夏나라 때의 하대, 殷나라 때의 유이, 周나라 때의 환토, 秦나라 때의 영어 등은 모두 감옥
이름이다. 囹은 명령을 내려 듣도록 하는 것이요, 圄는 말하여서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2】하늘에 태어남.
【3】지옥에 떨어짐.
【4】사람의 몸을 얻음.
【5】날고기의 역한 냄새를 腥 라 하고, 돼지나 개의 역한 냄새를 膏臭라 한다. 아난이 말하기
를 [욕망의 기운은 거칠고 혼탁하여 비린내와 누린내가 엇갈려 마주친다]라 하였다.
【6】곧 7식이다.
【7】6식이다.
【8】《화엄경》의 에 이르기를 [機關은 잡아당기면 곧 움직이고 그만두면 곧 아무런 동작도
없다]라 하고는 그 에, 물건을 받아들여 움직이는 곳을 機라 이름하고 그 가운데 회전하
는 것을 關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9】《회남자》에 [해 가운데 烏가 있다] 하였으니, 세발 달린 까마귀를 말한다.
【10】《서유기》에서 말하였다. [태초에 토끼와 여우와 원숭이가 있었는데 다른 부류였지만 서
로 기뻐하며 따랐다. 그 때 천제께서 보살행 닦는 것을 시험해 보고자 한 노인네로 변신
하여 세 짐승에게 이르기를 {너희들 편안히 잘 있었느냐? 이 노인네가 이렇게 멀리 찾아
온 까닭에 이제 막 배고프고 피곤한데 무엇으로 나를 대접하겠느냐} 하니 {잠시만 기다
리십시오} 한 뒤에, 여우는 잉어를 잡아오고 원숭이는 꽃과 과일을 따와서 함께 노인네
에게 올렸는데 오직 토끼만이 빈손으로 돌아와서 원숭이와 여우에게 말하기를 {풀과 나
무를 많이 모아 불을 지펴 달라} 하고는 토끼가 노인네에게 {제가 비록 비천하고 용렬하
나 이로써 한 끼의 식사로는 충분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뒤 불로 뛰어들어 죽기에 이르
렀다. 이 때 노인이 제석의 몸을 회복하고는 깜부기불을 제거하고 해골을 취한 뒤 두 짐
승에게 찬탄하며 {한결 같이 어찌 이러함에 이르렀는가, 그 자취를 없애지 않으리다}라
고 말하고는 달에 위탁하여 후세에 전해지게 하였다.]
【11】맡김이다.
【12】下梢는 ‘끄트머리’라고도 말한다고 하였다.
【13】저울의 제일 첫 번째 별자리이니, 그것으로 제8식에 비유한다.
【14】《법화경》의 <오백제자수기품>을 보라.
慈雲式懺主書紳[1]
知白! 汝知日之所爲, 害善之法, 偏宜遠之, 損惡之道, 益其用
之. 口無自伐, 心無自欺, 勿抱內 , 勿揚外儀. 欲人之譽, 畜己之
私, 殺義之始, 陷禍之基. 自恃其德, 必有餘譏, 自矜其達, 必有餘
非. 眷屬集樹,[2] 汝宜遠之, 利養[3]毛繩,[4] 汝宜畏之, 擇而思之.
懲惡之餘, 何則是宜? 淸香一炷, 紅蓮數枝, 口勿輟誦, 意勿他思.
安禪禮像, 其則勿虧, 量衣節食, 其志勿移. 造世文筆, 如佛戒之,
說人長短, 如法愼之. 縱對賓侶, 口勿多辭, 頻驚光影, 坐勿消時.
芭蕉虛質, 非汝久期,[5] 蓮花淨土, 是汝眞歸, 殺夜作晝, 勤而行
之.[6]
지백아! 너는 날마다 할 바를 알아야 할 것이니, 선한 것을 해치는 법은 마땅히
그것을 멀리하고 해악을 덜어내는 도는 더욱 그것을 사용토록 하라. 입으로는 스
스로 자랑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마음으로는 스스로 기만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안에 들은 좀벌레는 감싸안지 말고 밖으로 드러난 겉모양은 드날리지 말라. 사람
들의 칭찬을 바라고 자기의 사욕만 쌓으면 올바름을 죽이는 시초가 되고 재앙에
빠지는 기초가 된다. 스스로 그 덕을 믿다 보면 반드시 남는 비방이 있고 스스로
그 영달을 자랑하다 보면 반드시 남아 있는 잘못이 있기 마련이다. 권속이 나뭇
가지에 새 모이듯 하면 너는 마땅히 그것을 멀리해야 하고 이익과 그 즐거움이
터럭이나 실낱같더라도 너는 마땅히 그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니, 잘 선택하여
그것을 생각하라.
해악을 징계한 나머지에 어떻게 하면 마땅한 것인가? 맑은 향 한 묶음을 사르
고 붉은 연꽃 두어 가지를 공양하되 입으로는 경전의 암송을 그치지 말고 뜻으로
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 편안히 참선하여 불상에 예불하되 그 법칙에 있어 이
지러뜨리지 말며, 의복을 가늠하여 쓰고 음식을 절약하여 먹되 그 뜻을 옮기지
말라. 세상의 글월을 지을 때는 부처님처럼 그것을 경계하고, 다른 이의 장단을
말할 때는 법과 같이 그것을 삼가라. 비록 손님과 벗을 대하더라도 입으로는 많
은 말을 하지 말 것이며 자주자주 세월의 흐름을 두려워함으로써 앉아서 시간을
소비하지 말라. 파초의 텅 빈 바탕은 네가 오래도록 기약할 바가 아니며 연화정
토가 바로 너의 참된 귀의처이니, 밤을 낮 삼아 부지런히 행하라.
【1】師諱遵式, 字知白, 台州.葉氏子. 傳台敎, 以禮懺爲業, 故名.
【2】《遺敎經》云: [若樂衆者, 卽受衆惱, 譬如大樹衆鳥集之, 則有枯折之患.]
【3】財之所欲曰利, 利之所樂曰養.
【4】言小而不切也.
【5】山谷詩云[芭蕉自觀身], 又云[忍持芭蕉身], 注云,《維摩經》云: [是身如芭蕉, 中無有堅固.]
陸佃云: [蕉不落葉, 一葉舒則一葉焦故, 謂之蕉.] 俗謂乾物爲巴, 巴亦焦義也.
【6】師臨終, 預期十日, 使徒衆誦《彌陀經》, 以證其終.
【1】선사의 휘는 준식이요 자는 지백으로 태주 엽씨의 아들이다. 台敎를 전하며 禮懺으로써
업을 삼은 까닭에 이름한 것이다.
【2】《유교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무리를 좋아하는 자는 곧 온갖 번뇌를 받을 것이니, 비유컨
대 큰 나무에 한 무리의 새가 모여들면 곧 가지가 마르고 꺾여지는 근심이 있게 되는 것
과 같다.]
【3】재물에 대해 욕심 부리는 바를 利라 하고 그 利를 즐기는 바를 養이라 한다.
【4】작으나 끊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5】산곡의 시에서 [파초에 비겨 스스로 자신의 몸을 觀한다] 하고 또 [파초 같은 몸을 인내
하여 지탱한다] 하고는 주석에서 말하기를,《유마경》에 이르기를 [이 몸은 파초와 같아서
그 속에는 아무런 견고한 것이 없다]라 하였다. 육전이 말하기를 [파초의 잎은 낙엽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나의 잎사귀가 피어오르면 곧 하나의 잎사귀가 시들(焦)기 때문에 그것
을 일컬어 蕉라 하는 것이다] 하였다. 물건이 마르는 것을 보통 巴라 일컫는데 巴 역시 焦
의 뜻이다.
【6】선사는 임종 때 열흘을 미리 기약하고 문도와 대중들로 하여금《미타경》을 誦하게 함으로
써 그 임종을 증명하게 하였다.

孤山圓法師勉學篇줎 序
中人之性, 知務學而或惰於學, 乃作勉學.
중간근기를 지닌 사람의 성품은 배움에 힘 쓸 줄은 알면서도 혹 배움에 게으
르기 마련이니 이에 면학勉學을 짓는다.
勉學上
嗚呼![1] 學不可須臾怠, 道不可須臾離. 道由學而明,[2] 學可怠
乎? 聖賢之域,[3] 由道而至, 道可離乎? 肆[4]凡民之學不怠, 可以
至於賢, 賢人之學不怠, 可以至於聖. 求[5]之學, 可以至於顔淵
而不逮具體者,[6] 中心怠耳. 故曰: [非不悅子[7]之道, 力不足也.]
子曰: [患力不足者, 中道廢, 今汝 .][8] 顔淵之學, 可以至於夫
子, 以不齊於聖師者, 短命死耳.[9] 如不死, 安知其不如[10]仲尼哉!
以其學之不怠也. 故曰: [有顔氏子好學, 不幸短命死矣, 今也則
亡.][11] 或問: [聖人學耶?] 曰: [是何言歟? 是何言歟? 凡民與賢
猶知學, 豈聖人怠於學耶? 夫天之剛也而能學柔於地故, 不干四
時焉;[12] 地之柔也而能學剛於天故, 能出金石焉; 陽之發生也而亦
學肅殺於陰故, 靡草死焉;[13] 陰之肅殺也而亦學發生於陽故, 薺麥
生焉.[14]] 夫爲天乎 地乎 陽乎 陰乎, 交相學而不怠, 所以成萬
物, 天不學柔則無以覆, 地不學剛則無以載, 陽不學陰則無以啓,
陰不學陽則無以閉.[15] 聖人無他也, 則天地陰陽而行者, 四者學不
怠, 聖人惡乎怠! 或者避席曰: [予之孤陋也![16] 幸子發其蒙, 願
聞聖人之學.] 中庸子曰: [復坐! 吾語汝.《書》不云乎? {惟狂, 剋
念作聖; 惟聖, 罔念作狂.}[17] 是故, 聖人造次顚沛,[18] 未嘗不念正
道而學之也. 夫子大聖人也, 拔乎其萃, 出乎其類,[19] 自生民以來,
未有如夫子者; 入太廟,[20] 每事問, 則是學於廟人也; 三人行, 擇
其善者而從之,[21] 則是學於偕行也; 入周則問禮於老子, 則是學於
柱史也.[22] 豈仲尼之聖, 不若廟人 行人 柱史也? 盖聖人懼夫不
念正道而學之則至於狂也矣. 故曰 {必有如丘之忠信焉, 不如丘
之好學也.}] 曰: [聖人生而知之, 何必學爲?] 曰: [知而學, 聖人
也; 學而知, 常人也.] 雖聖人 常人, 莫有不由於學焉. 孔子曰:
[君子[23]不可不學.] 子路曰: [南山有竹, 不柔[24]自直, 斬而用之,
達乎犀革.[25] 以此言之, 何學之有?] 孔子曰: [括而羽之, 鏃而礪
之, 其入之不亦深乎?] 子路再拜曰:[26] [敬受敎矣.] 噫! 聖人之
學, 無乃括羽鏃礪 使深入乎? 豈生而知之者, 兀然不學耶!
오호라! 배움은 잠시라도 게을리 할 수 없으며 도道는 잠시라도 떼 놓을 수
없다. 도는 배움으로 말미암아 밝아지는 것이니 배움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성현의 경계는 도로 말미암아 이르는 것이니 도를 떼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러
므로 평범한 백성이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현인에 이를 수 있고 현인이 배
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성인에 이를 수 있다.
염구의 학문이 가히 안연에 이르렀다 할 것이나 그 실체를 갖춤에는 미치지
못한 것은 속마음이 게을렀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스승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할 뿐입니다]라 하니 공자께서 이르기를
[힘이 부족한 것을 근심하는 자는 중도에 [힘이 다하면 자연스레] 그만 둘 것인
데 지금의 너는 선을 긋고 말았구나] 하였다. 안연의 학문은 가히 공자에 이르렀
다 할 것이나 성현 조사들과 나란히 자리하지 못하는 것은 단명으로 죽었기 때문
일 뿐이다. 만일 죽지 않았다면 그가 중니와 같이 되었을지 어찌 알겠는가? 그가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안씨의 아들이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더니 불행히도 단명하여 죽었으니 이제는 그만이구나] 하
였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성인도 배웁니까?] 하니 이르기를 [이 무슨 말인가! 이
무슨 말인가! 평범한 백성과 현인도 오히려 배움을 알거늘 어찌 성인이 배움에
게으르겠느냐. 무릇 하늘은 강하지만 땅에게서 능히 부드러움을 배우는 까닭에
사시四時의 차례를 범하지 않는 것이며, 땅은 부드러우나 하늘로부터 능히 강함
을 배우는 까닭에 금석金石을 내는 것이며, 양陽은 생명을 피우는 것이지만 또한
음陰에게서 숙살肅殺을 배우는 까닭에 가는 잎의 풀들이 죽는 것이며, 음은 숙살
하는 것이지만 또한 양으로부터 생명을 피우는 것을 배우는 까닭에 냉이와 보리
가 나는 것이다] 하였다. 무릇 하늘과 땅과 양과 음은 사귀어 서로 배우기를 게을
리 하지 않으므로 만물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하늘이 부드러움을 배우지 않으면
곧 덮어 줄 수가 없고, 땅이 굳셈을 배우지 않으면 곧 실어 줄 수가 없으며, 양이
음을 배우지 않으면 곧 열 수가 없고, 음이 양을 배우지 않으면 곧 닫을 수가 없
다. 성인도 별다름이 없는지라 하늘과 땅과 양과 음을 본받아 행하는 분이시니,
이 네 가지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는데 성인이 어떻게 게을리 하리요.
어떤 사람이 자리를 피하며 이르기를 [나의 고루함이여! 다행히 그대께서 그
몽매함을 열어 주셨으니, 바라건대 성인의 학문을 듣기 원합니다] 하니 중용자가
말하였다. [다시 앉으라, 내가 너에게 말하리다.《상서》에서 말하지 않았더냐?
{오직 미치광이라도 생각을 이겨내면 성인이 되고, 오직 성인이라도 생각을 잊어
버리면 미치광이가 된다} 하였으니, 이러한 까닭에 성인은 창졸간에도 바른 도를
생각하여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공자는 큰 성인으로 그 무리 가운데 빼어났
으며 그 부류 가운데 출중하였으니 백성이 생긴 이래로 공자와 같은 자가 없었으
나,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일을 물어 행하였다 하였으니 곧 이는 묘지기에게
배운 것이며, 세 사람이 길을 감에 착한 사람을 가려서 그를 좇았다 하였으니 곧
이는 동행자에게 배운 것이며, 주나라에 들어가서는 예禮를 노자에게 물었다 하
였으니 곧 이는 도서관지기에게 배운 것이다. 어찌 중니와 같은 성인이 묘지기나
행인이나 도서관지기만 못하겠는가? 대개 성인은 바른 도를 생각하여 그것을 배
우지 않으면 곧 미치광이에 이르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반드시 나(孔子)와 같이 충실하고 믿음 있는 자는 있을 수 있을지언정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하지는 못할 것이다}라 하였다.]
말하기를 [성인은 나면서부터 안다 하였는데 어찌 배울 필요가 있습니까?] 하
니 말하기를 [알고도 배우는 것이 성인이며 배워서 아는 것이 보통 사람이다]
하였으니, 비록 성인이나 보통 사람이라 할지라도 배움으로 말미암지 않은 자는
없다.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는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하니 자로가 이르기를 [남산
에 대나무가 있음에 바로잡지 않아도 스스로 곧으니 베어서 사용하면 무소의 가
죽을 꿰뚫는다 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말하건대 무슨 배울 것이 있겠습니까?]
하므로 공자가 이르기를 [흠줄을 내어 깃털을 달고 촉을 박아서 숫돌에 갈면 그
들어가는 깊이가 또한 깊지 않겠느냐?] 하니 자로가 재차 절을 올리며 이르기를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하였다. 오호라, 성인의 배움이 흠줄을 내어 깃털을
달고 촉을 박아 숫돌에 갊으로써 더욱 깊게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
찌 나면서부터 안다고 하여 말뚝처럼 배우지 않을 것인가!
【1】烏見異則塞, 故以爲烏呼, 歎所異也. 本作烏, 後人加口於傍, 非也.
【2】在天者, 莫明於日月, 故以日月作明字.
【3】靈明洞鑑曰聖. 又聖猶正也, 以正敎誨人也. 超凡亞聖曰賢.
【4】承上起下之辭, 猶言遂也. 又故令也. 見《詩》注.
【5】孔子弟子, 字子有, 以政事著名.
【6】《傳》曰: [具體而微.] 注云: 具有聖人之全體, 但未若聖人之大而化之無限量, 故云微.
【7】謂夫子也.
【8】如劃地以自限, 謂自足而止也. 又截止也.
【9】顔回, 字子淵, 孔夫子稱其好學. 二十九髮白, 三十二夭.
【10】《詩》註: 不如者, 如也.
【11】季康子問: [弟子中, 孰爲好學?] 子曰[有顔氏子]云云, 顔輅之子.
【12】《左傳》[天爲剛德, 猶不干時.] 注云: 寒暑相順也, 猶不干犯四時之序.
【13】草之枝葉靡細者屬陰, 陽盛則死. 秋者, 百穀成熟之期, 於此時, 雖夏, 麥卽秋, 故云麥秋. 註
曰: 凡物盛陰而生者, 柔而靡, 謂之靡草, 卽至陰之所生, 故不勝陽而死焉. 又所謂夏枯草也,
其形類水荏蕙子, 好生平原砂土.
【14】薺, 甘草.《詩》[其甘如薺.]《淮南子》[薺, 水菜. 冬水而生, 夏土而死.] 麥, 秋種夏熟, 繼絶
續乏之穀也.《春秋》[於他穀則不書, 至無麥則書之.]
【15】《左傳》云: [凡分至啓閉, 必書雲物.] 註云: 分, 春分 秋分也; 至, 冬至 夏至也; 啓, 立春 立
夏; 閉, 立秋 立冬也. 雲物, 氣色以大變也.
【16】《學記》云: [獨學而無友則孤陋而寡聞.]
【17】剋念者, 改過遷善之謂也, 聖, 通明之稱, 言[狂愚, 剋念則爲聖, 雖聖, 而罔念則爲狂矣].
【18】造次, 急遽苟且之時; 顚沛, 傾覆流離之際.
【19】如草木拔出乎叢林之萃, 聖人特立乎衆庶之類.
【20】魯.周公廟也.
【21】《論語》[三人行, 必有我師, 擇其善者而從之, 不善者而改之.]
【22】老子, 姓李名耳, 字伯陽. 鶴髮龍顔, 又長耳, 故立諡曰聃. 其母夢見日精落入口, 因以有娠, 七
十二歲而生, 或曰八十載而生, 故號老子. 嘗爲柱下史, 守藏書之官. 孔子, 諱丘, 字仲尼. 周.
靈王庚戌二十一年十二月初四日, 生於魯國. 州.鄒邑.平昌闕里. 父先娶施氏, 生子孟皮, 後娶
顔氏女, 生孔子. 爲字言仲者, 次於孟皮也, 禱尼丘山而生, 故名丘字尼也.
【23】上敬尊長, 如臣事君, 下恤萬民, 如父育子, 故曰君子.
【24】與 同
【25】古者, 以犀革爲甲, 取堅而箭難穿破, 故謂兵甲爲兵革也.
【26】《荀子》曰: [平衡曰拜.] 註: 平衡, 謂磬折而首與腰平也.
【1】까마귀는 이상한 것을 보면 곧 지저귀는 까닭에 烏呼라 하니, 이상함을 찬탄하는 것이다.
본래 烏가 되어야 하거늘, 뒷사람들이 口를 곁에 덧붙인 것은 틀린 것이다.
【2】하늘에 있는 것은 해와 달보다 밝은 것이 없는 까닭에 日과 月로써 明 자를 지은 것이다.
【3】밝은 신령스러움으로 환하게 내다보는 것을 일컬어 聖이라 한다. 또 聖은 正과도 같은데,
正敎로써 사람들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범부를 초월하고 성인에 버금가는 자를 현인이라
한다.
【4】윗문장을 이어받아 아래문장을 일으키는 말이니 ‘마침내(遂)’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는
예전의 영令이다.《시경》의 주석에 보인다.
【5】공자의 제자로서 자는 자유이며 정치로써 저명하였다.
【6】《전》에 이르기를 [실체를 갖추었으나 미약하다]라 하고는 주석에 이르기를, 성인의 전반
적인 실체를 갖추어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다만 아직까지 성인의 위대함이나 덕화의 무한
함과 같지 않은 까닭에 미약하다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7】공자(孔夫子)를 일컬은 것이다.
【8】마치 땅에 선을 그어 스스로 제한하는 것과 같이 스스로 만족하여 그침을 일컫는다. 또는
차단하여 그만 둠을 말한다.
【9】안회의 자는 자연이며, 공자는 그가 배우기를 좋아함을 칭찬하였다. 29세 때 백발이 되었
으며, 32세 때 요절하였다.
【10】《시경》의 주석에, 不如란 如라고 하였다.
【11】계강자가 묻기를 [제자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하니 공자가 이르기를 [안씨
의 아들이 있는데…] 운운하였으니, 안로의 아들이다.
【12】《좌전》에 [하늘은 강한 덕이 되지만 오히려 때를 범하지 않는다] 하고는 주석에 이르기
를, 추위와 더위가 서로 따름이니 사시의 순서를 범하지 않음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13】풀 가운데 가지와 잎이 미세한 것은 陰에 속하므로 陽이 치성해지면 곧 죽는다. 秋란 모
든 곡식이 성숙하는 시기인데, 때가 비록 여름이라도 보리는 곧 성숙기인 까닭에 ‘麥秋
(보리가 익는 시절)’라 말한다. 주석에 말하기를, 무릇 사물 가운데 음이 치성하여 생겨난
것은 부드럽고도 枝葉이 가늘기에 靡草라 일컫는데, 즉 지극한 음기의 소생인 까닭에 양
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또는 夏枯草라 일컫는 것이니, 그 형태가 들깨 또는 蕙草
와 비슷하며 평원의 모래땅 위에 잘 자란다.
【14】薺는 단 맛이 나는 풀이다.《시경》에 [달기가 마치 냉이와 같다] 하였고,《회남자》에 [냉
이는 물에서 자라는 나물이다. 찬물에서 자라며 열기가 있는 땅에서는 죽는다] 하였다.
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렸다가 여름에 익으니 다른 곡식이 끊어져 먹거리가 궁핍할 때 이
어가는 곡식이다.《춘추》에 [다른 곡식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지만 보리가 흉년이 들면
곧 그 일을 기록하였다]라 하였다.
【15】《좌전》에 이르기를 [무릇 나누고 이르고 열고 닫음에 받듯이 천기의 길흉을 기록하였다]
라 하고는 그 주석에 이르기를, 分은 春分과 秋分이요, 至는 冬至와 夏至요, 啓는 立春과
立夏요, 閉는 立秋와 立冬이라 하였다. 雲物은 天氣와 物色이 크게 변화함을 말한다.
【16】《학기》에 말하였다. [홀로 배우며 친구가 없으면 곧 고루해지고 또한 듣는 바가 적다.]
【17】생각을 이긴다 함은 허물을 고쳐 선한 것으로 옮겨감을 말하는 것이요, 聖은 사리에 통달
하여 밝음을 일컫는 것이니, 지극히 어리석더라도 생각을 이겨내면 곧 성인이 되고 비록
성인이라도 생각을 잃게 되면 곧 미치광이가 된다는 말이다.
【18】造次는 갑작스럽고도 잠깐인 시간을 말하고, 顚沛는 기울어 뒤집혀지며 떨어져 나가는
때를 말한다.
【19】마치 풀이나 나무가 숲으로 우거진 가운데에서 특출 나게 드러나 있는 것처럼 성인이 평
범한 대중의 무리 가운데 특별히 우뚝함을 말한다.
【20】노나라 주공의 묘당이다.
【21】《논어》에서 말하였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을지니, 선한 자는 가
려서 그를 본받아 좇고 선하지 않은 자는 그를 본받아 고칠 것이다.]
【22】노자는 이씨 성에 이름이 耳이며 자는 백양이다. 머리털은 닭과 같고 얼굴은 용을 닮았
으며 또 긴 귀를 가졌기에 시호를 聃이라 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日精이 입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는 그로 인해 태기가 있다가 72년 뒤에 낳았는데 혹은 80년 뒤에 낳았다고 하
니, 그 까닭에 老子라 부르게 되었다. 일찍이 柱下史로 서고를 지키는 관직을 지냈다. 공
자의 휘는 丘이며 자는 중니이다. 주나라 영왕 경술 21년 12월 4일 노나라 연주의 추읍
평창궐리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앞서 시씨에게 장가들어 아들 맹피를 낳고, 뒤에 안씨
의 여식에게 장가들어 공자를 낳았다. 자를 仲이라 하게 된 것은 맹피 다음인 때문이요,
니구산에 기도하여 낳았기에 이름을 丘라 하고 자를 尼라 한 것이다.
【23】위로 어른을 존경하여 받들기를 마치 신하가 임금 섬기듯 하고, 아래로 만백성을 긍휼히
여기기를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기르는 듯 하는 까닭에 君子라 한다.
【24】 (주무르다, 손질하다)와 같다.
【25】옛사람들은 무소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든 것은 견고함을 취하여 화살이 뚫고 나가기 어
렵게 하기 위한 것이니, 그러므로 兵甲을 일컬어 兵革이라 하였다.
【26】《순자》에 이르기를 [평형을 拜라 한다] 하고는 주석에서, 평형은 경쇠가 꺾여져 있듯이
머리가 허리와 평평해진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勉學下
夫聖且賢, 必務於學, 聖賢以下, 安有不學而成人哉. 學猶飮食
衣服也. 人有聖乎 賢乎 衆庶乎, 雖三者異而飢索食 渴索飮 寒索
衣則不異矣, 學也豈得異乎! 惟禽獸土木, 不必學也. 嗚呼! 愚夫
嗜飮食而不怠, 冒[1]貨利而不休, 及就于學, 朝學而夕怠者有矣夫,
有春學而冬怠者有矣夫. 苟如嗜飮食 冒貨利之不知怠者, 何患於
不爲博聞乎 不爲君子乎! 曰: [世有至愚者, 不辨菽麥之異,[2] 不
知寒暑之變, 豈令學耶? 豈可敎耶?] 曰: [至愚, 由不敎也, 由不
學也. 苟師敎之不倦, 彼心之不怠者, 聖域可 而陞乎! 何憂菽麥
之不辨乎? 且愚者, 渴而知飮, 飢而知食, 寒而知衣, 旣知斯三者.
則與草木殊矣, 惡乎不可學也 不可敎也! 人之至愚, 豈不能日記
一言耶? 積日至月則記三十言矣, 積月至年則記三百六十言矣,
積之數年而不怠者, 亦幾於博聞乎? 又日取一小善而學行之, 積
日至月則身有三十善矣, 積月至年則身有三百六十善矣, 積之數年
而不怠者, 不亦幾於君子乎? 爲愚爲小人而不變者, 由不學耳.]
中庸子 然嘆曰: [吾嘗見恥智之不逮 才之不敏而輟於學者, 未
見恥飮食不如他人之多而輟飮食者. 輟飮食則殞其命, 何必恥於
不多耶; 輟學問則同夫禽獸土木, 何必恥才智之不如他人耶! 苟恥
才智不如而不學, 則亦應恥飮食不如他人則廢飮食. 以是觀之, 豈
不大誤乎! 吾亦至愚也, 每 才與智, 不逮他人者遠矣, 由知飮食
之不可輟而不敢怠於學也. 行年四十有四矣, 雖病且困而手未嘗
釋卷,[3] 所以懼同於土木禽獸耳, 非敢求臻聖域也, 亦非求乎聞達
也. 雖或彷 [4]戶庭, 夷猶[5]原野, 以暫 養,[6] 目觀心思, 亦未嘗
敢廢於學也. 由是, 登山則思學其高, 臨水則思學其淸, 坐石則思
學其堅, 看松則思學其貞, 對月則思學其明. 萬境森列, 各有所長,
吾悉得師而學之.[7] 萬境無言而尙可學, 人之能言! 雖萬惡, 必
有一善也, 師一善而學之, 其誰曰不然乎!] 中庸子曰: [世有求之
而或不得者也, 世有求之而必得者也. 求之而或不得者, 利也; 求
之而必得者, 道也. 小人之於利也, 雖或萬求而萬不得, 而求之彌
勇; 君子之於道也, 求之必得, 而望途懷 , 自念力不足者, 此求
利小人之罪耳.[8]] 仲尼曰: [仁遠乎哉? 我欲仁, 斯仁至矣.] 言求
之而必得也.
무릇 성인과 현인도 반드시 배움에 힘쓰거늘 성현도 못되는 자가 어찌 배우지
않고도 사람다운 사람을 이룰 수가 있겠는가. 배움이란 음식이나 의복과 같다.
사람에게는 성인이 있고 현인이 있고 서민이 있어서 비록 이 셋이 다르지만 주리
면 음식을 찾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찾으며 추우면 옷을 찾는 것은 다르지 않으
니, 배움 또한 어찌 다를 바가 있겠는가. 오직 날짐승과 들짐승이나 흙과 나무만
이 배울 필요가 없을 뿐이다. 오호라! 어리석은 사람은 먹고 마시기를 즐겨함에
게으르지 않으며 재물과 이익을 탐냄에 쉬지 않으나 배움에 나아가기에 이르러
서는 아침에 배우다가 저녁에 게을리 하는 자가 있으며 봄에 배우다가 겨울에
게을리 하는 자가 있다. 진실로 먹고 마시기를 좋아하고 재물과 이익을 탐하는
것과 같이 게으름을 모르는 자라면 어찌 널리 얻어듣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며
군자가 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이르기를 [세상에 지극히 어리석은 자가 있어 콩과 보리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추위와 더위의 변화를 알지 못하면 어찌 그로 하여금 배우게 할 수 있으
며 어찌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르기를 [지극히 어리석은 것도 가르치
지 않았기 때문이며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로 스승이 그를 가르침에 쉬지
않고 그의 마음이 게으르지 않다면 성인의 경지라도 가히 밟아 올라 설 것인데
어찌 콩과 보리를 분별하지 못함을 근심하겠는가? 또한 어리석은 자라도 목마르
면 마실 줄 알고 주리면 먹을 줄 알며 추우면 입을 줄 안다. 이미 이 세 가지를
안다면 곧 초목과 다르니 어찌 배우지 않을 것이며 어찌 가르치지 않겠는가. 사
람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어찌 하루에 한 마디의 말을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날
이 쌓여 달이 되면 곧 서른 마디의 말을 기억할 것이며 달이 쌓여 해가 되면 곧
3백6십 가지의 말을 기억할 것이니, 그렇게 쌓기를 몇 년 동안하며 게으르지 않
는다면 그 또한 박문博聞함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또 하루에 한 가지의 작
은 선행을 취하여 그것을 배우고 행한다면 날이 쌓여 달이 되면 곧 몸에는 서른
가지의 선행이 있게 될 것이며 달이 쌓여 해가 되면 곧 몸에는 3백6십 가지의
선행이 있게 될 것이니, 그렇게 쌓기를 몇 년 동안하며 게으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에 가까운 것이 아니겠는가? 어리석은 이가 되고 소인이 되어 변화하지 않
는 자는 배우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하였다.
중용자가 탄식하며 이르기를 [내 일찍이 지혜가 미치지 못하고 재주가 민첩하
지 못함을 수치스러워 하여 배움을 걷어치우는 자는 보았지만, 음식이 다른 사람
처럼 많지 않음을 수치스러워 하여 음식을 걷어치우는 자는 보지 못했다. 음식을
걷어치우면 곧 생명을 잃을 것인데 어찌 반드시 많지 않다고 부끄러워 할 것이
며, 학문을 걷어치우면 곧 금수나 토목과 같아질 것인데 어찌 반드시 재주나 지
혜가 다른 사람만 못하다고 부끄러워하겠는가. 진실로 재주와 지혜가 남만 못함
을 부끄러워하여 배우지 않는다면 또한 마땅히 음식이 다른 사람만 못함을 부끄
러워하여 음식을 폐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살펴 보건대 어찌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지극히 어리석음에 매번 재주와 지혜를 헤아려 보건대 다른
사람에게 미치려면 아직 멀었으나 음식은 가히 걷어치우지 못함을 앎으로 말미
암아 감히 배움에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내 나이 마흔 넷, 비록 병들고 고달프더
라도 일찍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음은 토목이나 금수와 같이 될까 두려웠을
뿐이니, 감히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고 또한 입신출세를 추구
한 것도 아니었다. 비록 간혹 뜰 앞을 배회하고 들녘을 거닐더라도 잠시나마 품
성을 기르고자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생각하며 또한 감히 배움을 폐한 적이 없었
다. 이로 말미암아 산을 오르면 곧 그 높음을 생각하여 배웠으며, 물에 다다르면
곧 그 맑음을 생각하여 배웠으며, 돌에 앉으면 곧 그 견고함을 생각하여 배웠으
며, 소나무를 보면 곧 그 절개를 생각하여 배웠으며, 달을 대하면 곧 그 밝음을
생각하여 배웠다. 만 가지 경계가 빽빽이 늘어서 있음에 각기 뛰어난 바가 있으
니 내가 그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아 배웠다. 만 가지 경계는 말이 없으나 그래도
배울 만 한데 하물며 사람은 능히 말을 할 수 있음에야! 비록 1만 가지 악을 지녔
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 가지 선은 있을 것이니 한 가지 선을 스승으로 삼아 그것
을 배운다면 그 누가 옳지 않다 하겠는가] 하였다.
중용자가 이르기를 [세상에서 구하여도 간혹 얻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세상
에서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구하고자 하나 간혹 얻지 못하는
것은 이익이며, 구하면 반드시 얻는 것은 도道다. 소인은 이익에 대해서 비록 1만
번을 구하여 1만 번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구함에 더욱 용맹스레 할뿐인데,
군자로서 도道에 대해 구하면 반드시 얻을 것임에도 앞길을 바라보고 겁을 먹어
스스로 힘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는 소인에게 죄스러울 뿐이다]
하였다.
중니가 이르기를 [어짊이 멀리 있느냐? 내가 어질고자 하면 이곳으로 어짊이
이를 것이다] 하였으니, 그것을 구하면 반드시 얻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1】貪也, 干也.
【2】《左傳》[周公有兄而不慧, 不能辨菽麥, 故不可立.] 註: 菽, 大豆也. 豆麥殊形易別, 以爲癡者
之候. 不慧, 世所謂白癡也.
【3】師早孀 , 而講道撰述, 未嘗休息, 傍助法化焉.
【4】《楚辭》[聊彷 而逍遙.] 註: 徙倚貌, 又徘徊也.
【5】盤桓也.
【6】 神養性也. 亦養也, 動於下, 應於上, 上下咀物, 以養人者也. 禪家齋後, 有小時經行, 以
養精性也.
【7】若志存學道, 則觸目萬物, 無非所學也.
【8】君子怠於求道, 小人勤於求利, 以勤怠言之, 則君子而不如小人矣. 是, 君子得罪於小人矣, 如
所謂五伯三王之罪人也.
【1】탐함(貪)이요 범함(干)이다.
【2】《좌전》에 [주공에게 형이 있었으나 지혜롭지 못하여 콩과 보리도 분별하지 못하였기에 보
위에 오르지 못하였다] 하고는 주석에, 菽은 콩이니 콩과 보리는 모양이 틀려 쉽게 분별할
수 있으므로 어리석은 자의 징후로 여긴 것이며, 不慧는 세속에서 소위 백치라는 것이라
하였다.
【3】선사가 일찍이 과로로 인해 앓는 병에 걸렸으나 도를 익히고 찬술하는 일은 그래도 쉬지
않은 채 교법의 교화를 곁에서 돕곤 하였다.
【4】《초사》에 [즐겨 배회하며 노닐다] 하고는 주석에, 한가하게 다니는 모양이며 또한 배회하
는 것이라 하였다.
【5】머뭇거리듯 슬슬 거니는 모양이다.
【6】정신과 성품을 기르는 것이다. 역시 養이니, 아래턱(이빨)을 움직여 위턱(이빨)에 부딪
치게 함으로써 위아래로 물건을 씹어 사람을 양육하기 때문이다. 선가에서는 공양 후에
잠시 동안 가벼이 거닒으로써 정신을 양성한다.
【7】만약 도를 배우고자 함에 뜻을 둔다면 곧 눈에 부딪치는 모든 사물들이 배울 바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다.
【8】군자는 도를 구함에 태만하고 소인은 이익을 구함에 부지런하니 부지런하고 태만한 것을
들어 말하자면 곧 군자이면서 소인만 못한 이가 된다. 이것이 군자로서 소인에게 죄를 짓
는 것이니, 소위 五伯이 三王의 죄인이라 하는 것과도 같다.
姑蘇景德寺雲法師務學十門 序[1]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2] 余十有五而志于學, 荏苒光
景, 忽老至, 歲月旣深, 粗知其趣. 蒜歎疇昔, 殊失斯旨, 限迫桑
楡,[3] 學不可逮. 因述十門, 垂裕[4]後昆,[5] 殺務學而成功, 助弘敎
而復顯云爾.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
다. 나는 열 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었으나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문득 늙기에 이
르니 세월이 이미 깊어서야 대강 그 취지를 알게 되었다. 예전을 돌아보며 이 취
지를 아주 잃어 버렸던 것을 거듭 한탄하지만 기한은 해 저물녘에 임박하였으니
다시 배워도 미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열 가지 법문을 지어 후학들에
게 드리워 줌으로써 배움에 힘써서 공을 이루도록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넓히
는데 도와서 다시 밝게 드러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1】師名法雲, 字天瑞, 自稱無機子. 五歲出家, 後賜號普潤大師.
【2】二句, 出《禮記 學記》
【3】桑楡, 晩也, 或云日入處.《淮南子》[西日垂影, 在樹端曰桑楡.] 言晩暮也.
【4】饒也, 寬也, 容也.
【5】昆亦後也.
【1】선사의 이름은 법운이요 자는 천서이며 스스로 무기자라 일컬었다. 5세에 출가하였으며,
후에 보윤대사의 법을 이었다.
【2】두 구절은《예기》의 학기편에 나온다.
【3】桑楡는 해질 무렵이며 혹은 해가 떨어지는 곳을 말한다.《회남자》에 [서쪽으로 해가 그림
자를 드리우며 나무의 끝에 있는 것을 桑楡라 한다] 하였으니 해질 무렵을 말한다.
【4】넉넉함이요, 너그러움이요, 포용력이 있음이다.
【5】昆 역시 後이다.
不修學, 無以成.[1]
《涅槃經》云: [凡有心者, 皆當得成阿 多羅三 三菩提.] 何以
故? 盖爲一切衆生,[2] 皆有佛性. 此性虛通, 靈明常寂, 若謂之有,
無狀無名, 若謂之無, 聖以之靈.[3] 群生無始, 不覺自迷, 煩惱[4]覆
蔽, 遺此本明, 能生諸緣, 枉入六趣. 由是, 大覺憫物迷盲, 設戒
定 慧三學之法. 其道恢弘, 示從眞以起妄, 軌範群品, 令息妄以歸
眞, 若能信受佛語, 隨順師學, 乃駕苦海之迅航, 則登聖道之梯
登.[5]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焉![6]
배움을 닦지 않으면 이룰 것이 없다.
《열반경》에 이르기를 [무릇 마음이 있는 것은 모두가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
보리를 얻어 이룰 것이다] 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런가? 대저 일체 중생은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성품은 비어 있고 융통하여 신령스럽고
밝으며 항상하고 고요하니, 만약 그것을 일컬어 ‘있다’고 하려 하지만 모양도 없
고 이름도 없으며 만약 그것을 일컬어 ‘없다’고 하려 하지만 성스러움은 이로써
나아가 신령스럽게 된다.
뭇 중생들이 무시無始 이래로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 미혹해져 번뇌
로 덮이고 가리워졌기에 그 본래의 밝음을 잃었으며 모든 반연攀緣들이 생겨나
서 그릇되게 육취六趣로 빠져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크게 깨우치신 세존께서 중
생들이 미혹하고 눈이 먼 것을 불쌍히 여겨 계戒 정定 혜慧의 세 가지 배움의
법을 베푼 것이다. 그 도는 넓고도 넓어 참된 것으로부터 허망한 것이 일어났음
을 드러내 보이고는 뭇 중생들에게 궤범이 되어 허망한 것을 쉬게 함으로써 참된
것으로 돌아가게 하시니, 만일 능히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 스승을 따
르고 순종하여 배운다면 이에 고통의 바다를 운행하는 빠른 배가 될 것이요 성스
러운 길에 오르는 사다리이며 계단이 될 것이다. 어느 누가 나갈 때 문을 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이 도道로 말미암지 않으리요!
【1】不修戒定慧三學, 無以成菩提, 戒定慧三, 通言學者, 所以 神達思, 怡情怡性, 聖人之上務也.
學猶飾也, 器不飾則無以爲美觀, 人不學則無以有懿德.
【2】[一切]二字, 六經無出.《史記》云: [一切皆高祖功臣.] <惠帝記>云: [一切滿秩.] 註云: 如刀
切物. 苟取外面整齊, 不稽內之長短巨細也. 佛經用此二字, 意義同此.
【3】聖通明也.
【4】憂煎爲煩, 迷亂爲惱.
【5】梯木階也, 登又梯也.
【6】洪氏曰: [人知出必由戶而不知行必由道, 道非遠人, 人自遠爾.] 朱子曰: [不合理處, 便是不由
道.]
【1】계정혜의 삼학을 닦지 않으면 보리를 이룰 수가 없나니, 계정혜 세 가지를 통틀어 學이라
말한 것은 그것으로써 정신을 소탈하게 하고 생각을 활달하게 하며 감정과 성품을 기쁘게
하기 때문이므로 성인이 가장 힘써야 할 바이다. 學은 장식하다는 것과도 같으니, 그릇은
장식하지 않으면 아름답게 여길 것이 없거니와 사람으로서 배우지 않으면 곧 기릴 만한
덕행이 없을 것이다.
【2】’一切’ 두 자는 六經에 출처가 없다.《사기》에 이르기를 [一切 모두 고조의 공신이다] 하
였으며,《혜제기》에 이르기를 [하나 같이 칼로 끊은 듯(一切) 질서정연하다] 하고는 주석
에서, 마치 칼로 물건을 절단한 듯 하다고 하였으니, 단지 외면의 가지런함만을 취한 것이
지 내면의 길고 짧음과 크고 세밀함을 헤아린 것은 아니다. 불경에서 이 두 자를 사용할
때도 그 의미가 이와 같다.
【3】聖은 사리에 통달하여 밝음을 말한다.
【4】근심으로 마음 졸이는 것을 煩이라 하고, 미혹하여 혼란스러운 것을 惱라 한다.
【5】梯는 나무 계단이며 登 또한 梯이다.
【6】홍씨가 이르기를 [사람들은 나갈 때 반드시 문을 통해야 한다는 것은 알면서도 반드시 도
를 통해 수행해야 함은 알지 못하니,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멀
어질 뿐입니다] 하였으며, 주자가 이르기를 [이치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곧 도를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다.
不折我, 無以學.
《說文》云: [我, 施身自謂也.]《華嚴》云: [凡夫無智, 執着於
我.]《法華》云: [我慢自矜高, 諂曲心不實.][1] 由執我見, 慢貢
高, 不愧無智, 妄自尊大, 見善不從, 罔受敎誨, 於賢不親, 去道甚
遠. 欲求法者, 當折我心, 恭默思道, 屈節[2]卑禮,[3] 以敬事長, 尊
師重道, 見賢思齊. 鳩摩羅什[4]初學小敎, 頂禮盤頭達多,[5] 此下
敬上, 謂之貴尊; 盤頭達多晩求大法, 復禮鳩摩羅什, 此上敬下,
謂之尊賢.[6] 故,《周易》曰: [謙, 德之柄也.]《書》云: [汝惟不
矜,[7] 天下莫與汝爭能; 汝惟不伐, 天下莫與汝爭功.][8] 晏子曰:
[夫爵[9]益高者, 意益下; 官益大者, 心益小; 祿益厚者, 施益博.]
子夏曰: [敬而無失, 恭而有禮,[10] 四海之內, 皆兄弟也.][11]
나를 굽히지 않으면 배울 만한 것이 없다.
《설문》에 말하였다. [‘나’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베풂을 받은 몸을 스스로 일
컫는 것이다.]《화엄경》에 말하였다. [범부는 지혜가 없기 때문에 ‘나’에 집착한
다.]《법화경》에 말하였다. [아만我慢으로 스스로 높음을 자랑하여 아첨하고 굽
은 마음이 진실치 못하다.]
‘나’라는 소견에 집착됨으로 말미암아 교만스럽고도 높은 채 하며, 지혜 없음
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망령되이 스스로 존귀하고도 위대하게 여기며, 착한 이를
보고도 따르지 않고 그 가르침을 받지도 않으며 어진 이를 가까이하지 않으니
도道와 매우 멀리 떨어져 있게 된다. 법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나의 교만한
마음을 꺾고 삼가 묵묵히 도를 생각하며, 절조를 굽히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예를
차리고 공경으로써 어른을 섬기며,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소중히 하며 현인을 보
면 그와 가지런해 질 것을 생각하라.
구마라습이 처음 소승小乘의 가르침을 배울 때는 반두달다에게 정례頂禮하였
으니 이것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라 이를 일컬어 ‘높은 이를 귀하
게 여긴다(貴尊)’라고 하며, 반두달다가 뒤에 대승大乘의 법을 구할 때 다시 구마
라습에게 예를 드렸으니 이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라 이를 일
컬어 ‘현명한 이를 존귀하게 여긴다(尊賢)’라고 한다. 그러므로《주역》에 이르기
를 [겸양은 덕의 근본이다] 하였고,《상서》에 이르기를 [네가 오직 뽐내지 않으
면 천하가 너와 더불어 능能을 다투지 않을 것이요, 네가 오직 자랑하지 않으면
천하가 너와 더불어 공功을 다투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안자가 이르기를 [무릇
작위가 높을수록 뜻을 더욱 낮추고, 관직이 클수록 마음을 더욱 작게 가지며, 녹
봉이 두터울수록 베풀기를 더욱 넓게 하라] 하였으며, 자하가 이르기를 [공경함
에 실수가 없고 공손함에 예의가 있으면 온 천하가 모두 형제이다]라고 하였다.
【1】諂曲者, 罔冒於他, 曲順時宜, 矯設異議, 或藏己失.
【2】屈折肢節以服事也.
【3】卑辭敬禮
【4】此云童壽, 其祖印土人. 父以聰敏見稱, 龜玆王聞之, 以女妻之而生什. 七歲出家, 日誦千偈, 亦
通義旨. 母生什後, 亦出家爲尼, 得第三果也.
【5】 賓國人, 未詳華言.
【6】達多晩求大乘, 禮什爲師曰: [和尙是我大乘師, 我是和尙小乘師.]
【7】自賢曰矜.
【8】舜誡禹之辭. 老子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爲長; 自伐者無功, 自矜者不長.]
【9】爵, 鳥名, 象其形爲酌器, 取其能飛而不溺於酒.《說文》[取其鳴節節, 足足也.] 陸佃云: [一升
曰爵, 亦取其鳴節節, 以誡荒淫. 大夫以上, 與燕享後賜爵, 以彰有德, 故因謂命秩, 爲爵祿爵位,
命秩曰爵, 守取曰官.]
【10】心多貌小曰敬, 貌多心小曰恭. 又形虔曰恭, 心重曰敬.
【11】《論語》司馬牛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答之.
【1】諂曲이란, 다른 사람을 속여넘기고자 그때 그때의 적당함에 따라 간사하게 순종하며 구구
한 의견만을 기만으로 늘어놓거나 혹은 자기의 실수를 숨기는 것이다.
【2】사지의 마디를 굴절시킴으로써 복종하고 섬기는 것이다.
【3】자신을 낮추고 사양함으로써 남을 공경하고 예우하는 것이다.
【4】이곳 말로 하면 童壽이니, 그의 조상은 인도 사람이다. 부친이 총명하고 민첩함으로 명성
을 얻자 구자왕이 그 얘기를 듣고는 그의 여식을 그에게 시집 보내니 구마라습을 낳았다.
7세 때 출가하여 날마다 1천의 게송을 외웠으며 또한 그 올바른 뜻을 통달하였다. 모친도
구마라습을 낳은 후에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어 제 3果를 증득하였다.
【5】계빈국 사람으로, 중국말로 어떤 뜻인지 상세하지 않다.
【6】반두달다는 만년에 대승의 법을 구함에 구마라습을 스승으로 예우하며 말하기를 [스님은
대승에 있어서 나의 스승이요, 나는 소승에 있어서 스님의 스승입니다] 하였다.
【7】스스로 현명하다 생각하는 것을 일컬어 矜이라 한다.
【8】순이 우를 훈계한 말이다. 노자가 말하기를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까닭에 공이 있게 되
고 스스로 뽐내지 않는 까닭에 어른이 되는 것이니,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이 없게 되고
스스로 뽐내는 자는 어른답지 못하다] 하였다.
【9】爵은 새 이름이니 그 모습을 본따서 술잔을 만든 까닭은, 새는 능히 날아다닌다는 뜻을 취
하여 술에 빠져들지 않고자 함이다.《설문》에는 [그 울음소리가 ‘절절족족’인 것을 취한
것이다]라 하였다. 육전이 말하기를 [1되(升)를 일컬어 爵이라 하며, 또한 그 울음소리가
‘節節’인 것을 취하여 邪淫을 경계한 것이다. 대부 이상에게 주연을 베푼 후에 잔(爵)을 줌
으로써 덕이 있음을 드러낸 까닭에 그로 인해 품계나 벼슬을 일컫게 되어 爵祿 또는 爵位
가 되었으니, [명예적인 벼슬로서의] 품계나 벼슬을 爵이라 하고 [실질적인 벼슬로서의]
관직을 官이라 한다] 하였다.
【10】[공손함의 정도에 있어서] 속마음에 비해 겉모습이 덜 깍듯한 것을 敬이라 하고, 속마음
에 비해 겉모습이 더 깍듯한 것을 恭이라 한다. 또는 겉모습이 [더욱] 정성스러운 것을
恭이라 하고, 속마음이 [더욱] 중후한 것을 敬이라 한다.
【11】《논어》에서 사마우가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으나 나는 혼자로서 아무도 없습니다]라
고 하자 자하가 그렇게 답하였다.
不擇師, 無以法.
鳥之將息, 必擇其林, 人之求學, 當選於師. 師乃人之模範, 模
不模 範不範, 古今多矣.[1] 爲模範者, 世有二焉: 上則智慧博達,
行業堅貞, 猶密室燈, 光徹窓隙; 次乃解雖洞曉, 行亦藏瑕, 如犯
罪人, 持燈照道. 斯二高座,[2] 皆蘊師法, 其如寡德適時, 名而不
高,[3] 望風依附, 畢世荒唐.[4] 東晋.安師, 十二出家, 貌黑形陋, 師
輕視之, 役田舍. 執勞三年, 方求師敎, 授《辨意經》, 執卷入田,
因息就覽, 暮歸還師, 經已闇誦, 師方驚歎, 乃爲剃髮.[5] 至受具
戒,[6] 恣其遊學, 投佛圖澄,[7] 見以奇之: [異哉! 小童. 眞世良驥,
不遇靑眼, 困駕鹽車. 自非伯樂, 奚彰千里之駿.][8] 故, 出家者,
愼宜詳擇, 察有匠成之能, 方具資 之禮. 故, 南山云: [眞誠出家
者, 怖四怨[9]之多苦, 厭三界之無常, 辭六親之至愛, 捨五慾之深
着.] 能如是者, 名眞出家. 則可紹隆三寶, 度脫四生, 利益甚深,
功德無量. 比, 眞敎凌遲,[10] 慧風掩扇, 俗懷侮慢, 道出非法,
由師無率誘之心, 資缺奉行之志.[11] 二彼相捨, 妄流鄙境, 欲令道
光, 焉可得乎!
스승을 가리지 않으면 본받을 것이 없다.
새가 쉬고자 하면 반드시 앉을 숲을 택하고 사람이 배움을 구하고자 하면 응
당 스승을 가리게 된다. 스승은 곧 사람의 모범인데 모模가 모답지 못하고 범範
이 범답지 못한 이가 고금에 허다하다. 모범이 되는 자는 세상에 두 가지가 있으
니, 그 중 뛰어난 자는 지혜가 넓고도 활달하며 행업行業이 굳고도 곧은 것이 마
치 밀실의 등불의 빛 줄기가 창 틈을 꿰뚫고 나가는 듯 하는 자이며, 그 다음은
곧 견해는 비록 훤히 밝으나 행行에 또한 티끌을 숨기고 있으니 마치 죄를 범한
사람이 등불을 가지고 길을 비춰 주는 듯 하는 자이다. 이러한 두 어른(高座)은
모두 스승으로서의 법도를 쌓은 자이지만, 만일 부족한 덕행으로 적당한 시기를
만나 이름은 났으나 실제는 높지 못한 자를 그 소문만 바라보고 의지한다면 생을
마칠 때까지 허탕을 칠 것이다.
동진의 도안법사는 12세에 출가함에 얼굴이 검고 몸이 비루하여 스승이 그를
가벼이 보고 농막에 내몰아 일만 시켰다. 수고를 3년하고야 바야흐로 스승에게
가르침을 구하니《변의경》을 주기에 책을 가지고 밭에 들어가 쉬는 틈에 모두
살펴보고 해 저물어 돌아와서 스승에게 돌려주고는 경전을 이미 모두 암송하니
스승이 그제서야 놀라며 찬탄하고는 이에 머리를 깎아 주었다. 구족계를 받기에
이르러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배우다가 불도징에게 귀의하니 그를 보고는 기이하
게 여겨 [기이하다 어린아이여! 참된 세상의 좋은 말(馬)이나 눈 푸른 자를 만나
지 못하여 수고롭게 소금수레를 멍에 하였구나. 만일 백낙이 아니었다면 어찌 천
리의 준마임이 드러났겠는가] 하였다.
그러므로 출가하는 자는 신중하고 자세히 알아보고 선택하되, 살펴보아 나를
다듬어 줄 능력이 있으면 그제서야 제자의 도리로써 법을 묻는 예를 갖추어라.
그러므로 남산이 이르기를 [참으로 순수하게 출가하는 자는 사원四怨의 많은 괴
로움을 두려워하고 삼계三界의 무상함을 싫어하며 육친六親의 지극한 사랑을 여
의고 오욕五慾의 깊은 애착을 버린다] 하였다.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이름하여
참된 출가라 할 것이다. 곧 삼보를 계승하여 융성케 하고 사생四生을 제도하여
해탈케 할 수 있으면 그 이익은 매우 깊고 공덕은 무량할 것이다.
요즈음 참된 가르침은 능멸되고 지연되며 지혜의 바람은 부채에 가려지고 속
인들은 업신여기는 마음을 품으며 도道에서 그릇된 법法이 나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스승은 이끌어 인도하는 마음이 없고 제자는 받들어 행하려는 뜻이 결핍된
때문이다. 둘 다 모두 서로를 버려 망령스레 비루한 경계로 흐르게 되니 도道로
하여금 빛이 발하도록 하고자 하나 어찌 그러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1】模範者, 以木曰模, 以竹曰範, 皆鑄器之式也. 楊子曰: [務學不如務求師. 師者, 人之模範, 模不
模 範不範, 爲不少矣.] 模又木名, 昔模木生於周公塚上, 其葉春靑 夏赤 秋白 冬黑, 以色得
其正也; 楷木生於孔子塚上, 其幹枝 以不屈, 以質得其直也. 若正與直, 可爲法則, 況在周 孔
之塚乎! 見《淮南子》.
【2】上則行解俱圓, 次則有解無行也. 尸黎密多羅, 天竺國王子, 讓位出俗, 至建康, 王導 庾亮 周
等一時名公, 皆造門結友, 號爲高座, 高座之號始此.
【3】《梁高僧傳》云: [實行潛光則高而不名, 寡德適時則名而不高.]
【4】虛而不實, 無所憑據.
【5】道安, 家世英儒, 早失覆蔭, 爲表兄所養. 七歲讀書, 一覽能記. 十二出家, 神雖聰敏, 形貌甚陋,
不爲師所重, 驅役執勞, 曾無怨色. 方啓師求經, 授《辯意長者經》一卷, 僅五千言, 入田因息而
覽, 暮歸以經還師, 更求餘者, 師曰: [昨經未讀, 今更求也?] 答: [已暗誦.] 師雖異而未信, 復
授《光明經》, 可九千言, 暮歸復還, 師執經覆之, 不差一字, 師大驚異. 以貌黑故, 時人謂之黑頭
陀, 又謂漆道人.
【6】佛在羅閱城, 有群童子, 大者年十七, 小者十二, 欲出家, 比丘卽度受大戒, 不堪一食, 夜啼. 佛
制年滿二十, 方受大戒, 依年受具, 是也.
【7】神異不測. 腹傍有一孔, 常以絮塞之, 夜乃拔之, 光照一室, 晝至流泉, 從孔中引出腸胃, 洗訖還
內腹中.
【8】《祖庭錄》云: [李伯樂, 字孫陽, 善相馬. 行至虞山之坂, 有一駿馬至而其人不識, 用駕 車, 遙
見伯樂乃鳴, 以坐下馬易之, 日行千里. 有人, 詩云: 花有梅花鳥有鶯, 早開先 悅人情, 可憐孤
竹 車馬, 不遇知音負一生.]
【9】四魔也.
【10】凋敗也.
【11】老子曰: [善人, 不善人之師, 不善人, 善人之資.] 說者曰: [善人有不善人然後, 善救之功著,
故曰資.]
【1】模範이란, 나무로 된 것을 模라 하고 대나무로 된 것을 範이라 하는데 모두 기물을 주조하
는 형틀이다. [添: 주조하는 형틀에 있어서 속틀을 模, 겉틀을 範이라고도 한다. 즉 밀랍
등으로 종모양을 만들었으면 그것은 模이며(鑄器必先用蠟爲模《洞天淸錄》), 그 밀랍에 鑄
砂를 씌운 뒤 밀랍을 녹여 낸 후 쇳물을 부을 수 있게 남은 거푸집이 範이다.] 양자가 말
하기를 [배움에 힘쓰는 것은 스승을 구함에 힘쓰는 것만 못하다. 스승이란 사람의 모범이
지만 模로서 모답지 못하고 範으로서 범답지 못한 이가 적지 않다] 하였다. 模는 또한 나
무의 이름이니, 옛날에 模나무가 주공의 무덤 위에 났는데 그 잎이 봄에는 푸른색을 여름
에는 붉은 색을 가을에는 흰색을 겨울에는 검은 색을 띄었음에 色으로써 그 바름을 얻은
것이며, 楷나무가 공자의 무덤 위에 났는데 그 줄기와 가지가 성글었으나 굽지 않았음에
質로써 그 곧음을 얻은 것이다. 만약 바르거나 곧은 것이라면 가히 법칙이 될 것이거늘
하물며 주공과 공자의 무덤에 있음에랴.《회남자》를 참고하라.
【2】보다 뛰어난 것은 行과 解가 모두 원만한 것이고, 그 다음 것은 解는 있으되 行이 없는 것
이다. 시려밀다라는 천축국의 왕자로써 왕위를 사양하고 출가하여 건강에 이르니 왕도와
유량 및 주의 등 한 때 이름 있는 공경대부들이 모두 몰려와 벗을 맺으며 그를 高座라 부
르니, 高座라는 호칭이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3】《양고승전》에 말하였다. [실다운 行이 빛을 잠재우고 있으면 곧 고귀하되 명성은 없으며,
적은 德으로 때를 만났으면 곧 명성은 얻을 것이나 고귀하지는 않다.]
【4】허망하면서도 실답지 않으니 기대어 의지할 바가 없다.
【5】도안은 그 집안이 대대로 뛰어난 유학자였는데 일찍 부모를 잃고 사촌형에 의해 양육되었
다. 7살 때 책을 읽음에 한 번 훑어보고는 능히 암기하였다. 12살 때 출가하였는데, 생각은
비록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나 외모가 매우 비루하여 스승이 중히 여기는 바가 되지 못하고
노역에 내몰려 일만 하였으나 그래도 원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바야흐로 스승에게 여쭈어
경전을 구하자《변의장자경》1권을 줌에 거의 5천 자(言)가 되었는데, 밭에 들어가 쉬는
틈에 훑어보고는 저물어 돌아와서 경을 스승에게 돌려주며 다시 나머지를 구하자 스승이
[어제 준 경전을 아직 다 읽지도 않고서 지금 다시 달라느냐?]라고 하자 [이미 모두 암송
하였습니다] 함에 스승이 비록 기이하게 여겼으나 믿지 않고 다시《광명경》을 줌에 거의
9천 자(言)가 되었는데, 저물어 돌아와서 다시 돌려주니 스승이 경을 덮었으나 한 자도 틀
리지 않음에 스승이 크게 놀라며 기이하게 여겼다. 외모가 검은 까닭에 당시 사람들은 그
를 흑두타라 일컬었고 또한 칠도인이라 일컬었다.
【6】부처님이 나열성에 계실 때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이 있었는데 큰아이는 17세였고 작은아
이는 12세로, 출가하고자 하므로 비구가 곧 구족계를 받게 하였더니 하루 한 끼의 식사를
견디지 못하고 밤이면 울었다. 부처님께서 20세를 채워서야 구족계를 받도록 계율을 제정
하시니, ‘나이에 의해 구족계를 받는다’ 함이 바로 이것이다.
【7】[불도징의] 신비와 이적은 헤아릴 수 없었으니, 배 옆구리에 구멍이 하나 나 있어서 항상
솜으로 그곳을 막고 있었는데 밤에 솜을 빼내면 빗줄기가 온 방안을 비추었으며, 낮에는
흐르는 샘물이 있는 곳에 이르러 구멍으로 창자와 위를 꺼내어 모두 씻은 후에 다시 배
안으로 넣곤 하였다.
【8】《조정록》에 말하였다. [이백락의 자는 손양으로 말을 볼 줄 알았다. 여행을 다니다 우산의
언덕에 이르니 한 필의 준마가 있었는데 그 주인은 알아보지 못하고 소금수레를 끄는데
부리고 있는지라, 말이 멀리서 백락을 보고는 울자 [백락이] 타고 있던 말과 바꾸니 하루
에 능히 천리를 달렸다. 어떤 사람이 시로써 말하였다: 꽃은 매화 새는 꾀꼬리, 일찍 피고
앞서 울어 사람 마음 기쁘나니, 가련하다 홀로 핀 대나무 소금수레 지친 말, 알아볼 이 만
나지 못해 헛된 한 생을 짊어졌구나.]
【9】네 마귀이다.
【10】시들고 무너짐이다.
【11】노자가 [착한 사람은 착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요, 착하지 않은 사람은 착한 사람의 밑
천이다]라고 하니 설자가 [착한 사람이란 착하지 않은 사람이 있은 연후에 착하고 구원
하는 공덕이 드러나는 까닭에 ‘밑천’이라 말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不習誦, 無以記.
記諸善言,[1] 諷[2]而誦之. 迦葉 阿難, 具足住持[3]八萬法藏, 西
域 東夏, 高德出家, 幼年始習, 皆學誦持. 竺佛圖澄, 能誦佛經數
百萬言; 佛陀跋陀, 此云覺賢,[4] 同學數人, 習誦爲業, 餘人一月
工誦, 覺賢一日能記, 其師歎曰: [一日之學, 敵三十夫.] 然, 人之
至愚, 豈不日記一言! 以日繫月, 以月繫年,[5] 積工必廣, 累課亦
深. 其道自微而生, 何患無所立矣!
익히고 소리내어 읽지 않으면 기억할 수 없다.
모든 착한 말들을 기록하여 읽되 소리 높여 읽어라. 가섭과 아난은 8만의 법전
을 온전하게 갖추어 지녔었고, 서역과 중국(東夏)의 고승대덕들은 출가하면 어려
서부터 익히기 시작하여 모두 외워 지니기를 배웠다. 축불도징은 불경의 수백만
글귀를 능히 외웠으며, 이곳 말로 각현覺賢이라 번역되는 불타발타는 몇 사람과
함께 배우면서 익혀 외우는 것을 업으로 삼음에 다른 사람은 한 달 만에야 능숙
하게 외우는 것을 각현은 하루에 능히 기억하니 그의 스승이 찬탄하여 이르기를
[하루 동안 배운 것이 서른 명의 것에 필적한다] 하였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어리석더라도 어찌 하루에 한 마디를 기억하지 못하겠는가. 날로써 달을 잇고 달
로써 해를 잇는다면 쌓여진 공부는 반드시 넓어지고 누적된 성과 역시 깊어질
것이다. 그러한 도道는 미약한 것으로부터 생겨나게 되니 어찌 이룰 바가 없을까
근심하겠는가!
【1】《祖庭》云:「《魯論》二十篇, 皆孔子弟子記諸善言也.]
【2】讀也.
【3】潛子云: [籍人持其法, 使之永住而不泯也. 夫戒 定 慧, 持法之具也; 僧園物務, 持法之資也;
法者, 大聖人之道也.]
【4】此乃甘露飯王之裔, 大乘三果人. 早失 恃, 從祖悼其孤露, 度爲沙彌. 至年十七, 與同學數人,
習誦爲業, 來神州, 與什相見, 什所有疑者, 多就咨決.
【5】《左傳》云: [記事者, 以事繫日, 以日繫月, 以月繫時, 以時繫年, 所以記遠近 別同異也.] 註:
時者, 三月爲一時; 繫者, 以下綴上之辭, 書其日有事, 卽以事綴於日, 紀年月之遠近, 分事物之
同異.
【1】《조정》에 말하였다.「《노론》20편은 모두 공자의 제자가 모든 좋은 말들을 기록한 것이
다.]
【2】읽는 것이다.
【3】잠자가 말하였다. [籍人이 그 법을 유지하여 보존함으로써 그 법이 영원히 머물러 없어지
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무릇 계정혜는 법을 유지 보존하는 도구이며, 승려와 사원 및 상
주물과 힘써 노력함은 법을 유지 보존하는 밑천이며, 법이란 큰 성인의 도이다.]
【4】그는 곧 감로반왕의 후손으로 대승의 三果를 증득한 사람이다. 일찍이 믿고 의지할 곳을
잃자 종조부가 그의 외롭고도 고달픔을 애석하게 생각하여 출가시켜 사미가 되게 하였다.
17세에 이르러 같이 공부하는 몇 사람과 경전을 익히고 외우는 일에 전념하다가 신주에
와서 구마라습과 더불어 서로 만나게 되자 구마라습이 의심스러웠던 바를 가지고 나아가
많은 자문을 구하여 해결하였다.
【5】《좌전》에 이르기를 [일을 기록한다는 것은, 사건을 날에 잇고 날을 달에 잇고 달을 절기
에 잇고 절기를 해에 이음으로써 멀고 가까움을 기록하고 같고 틀림을 구별짓는 것이다]
하고는 주석에서, 절기(時)라는 것은 3개월을 한 절기로 삼으며 잇는다(繫)는 것은 아래의
것으로써 위의 것에 연잇는다는 말이니 어느 날에 어떤 일이 있으면 기록하고 그 일을 그
날에 연결 지음으로써 연월의 멀고 가까움을 계통을 세워 기록하고 사건의 같고 다름을
분별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不工書, 無以傳.
書者, 如也, 事如人之意.[1] 防現生之忘失, 須繕寫而編錄,[2]
欲後代以流傳, 宜躬書以成集, 則使敎風不墜, 道久彌芳. 故, 釋
氏經律, 結集貝多,[3] 孔子詩書, 刪定竹簡,[4] 若不工書, 事難成
就. 蒜思智者無 之辯,[5] 但益時機, 自非章安[6]秉筆之力, 豈流
今日! 故, 賓高德槃頭達多, 從旦至中, 手寫千偈, 從中至暮,
口誦千偈. 但當遵佛, 能寫名字, 愼勿 世, 精草隸焉.[7]
글쓰는 법을 공부하지 않으면 전할 도리가 없다.
글(書)이란 같다(如)는 것이니, 사람의 뜻과 똑같이 어떤 일을 서술함을 말한
다. 현생에 잊어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정갈하게 엮어 베끼고
순서대로 엮어 기록할 것이요 후대에 전해지도록 하려면 마땅히 몸소 글을 써서
집성할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가르침의 기풍은 떨어지지 않게 되고 도道는 오랠
수록 더욱 꽃답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의 경전과 율법은 패다라 잎에 결집
結集되었고 공자의 시詩와 서書는 대나무 줄기에 산정刪定되었으니, 만약 글쓰
는 일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일은 성취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건대 지
자대사의 걸림 없는 변설은 단지 그 때의 근기根機에 유익하였으니, 만일 장안의
집필력이 아니었으면 어찌 오늘에까지 유포되었겠는가. 그러므로 계빈국의 고승
대덕인 반두달다는 새벽부터 낮까지 손수 1천 편의 게송을 쓰고 낮부터 저녁까
지 입으로 1천 편의 게송을 외웠다. 다만 응당 부처님을 좇아 능히 이름자를 쓸
수 있게 할 뿐, 세상을 본받아 초서와 예서를 정교하게 하는 것은 삼가하여 하지
않도록 하라.
【1】書者, 亦庶也, 記庶物也. 又如也, 寫其言如其意也.
【2】繕, 補也緝也. 綴緝文字, 謂之繕寫也.
【3】貝多羅, 此云岸形.《西域記》南印度.建那國北有多羅樹, 距三十里, 其葉長廣, 其色光潤, 諸國
書寫, 莫不採用. 故, 阿難等, 結集三藏, 皆書此葉也.
【4】簡, 竹片也. 古者無紙, 有事, 書之於簡. 單執一札曰簡, 連編諸簡曰策. 謂刪詩書, 定禮樂, 書
之於簡策也.
【5】師諱智 , 字德安, 華容.陳氏子. 七歲入寺, 聞僧誦《法華》, 忽自憶七卷之文, 宛如夙習, 位居十
信前五品弟子位. 辯才無 , 隋.文帝賜智者之號.
【6】灌頂法師, 字法雲, 章安人. 慧解天縱, 智者命爲侍者, 記其所說, 垂之未來, 殆與慶喜結集, 同
功而比德, 微章安, 智者之道, 將絶聞於今日也.
【7】吳郡.張芝, 字伯英, 善草書, 氣脈通連, 隔行不斷, 謂之一草書. 周太史 始制大篆, 秦.李斯又
爲小篆. 秦.下 人程邈爲獄吏, 得罪繫獄, 覃思十年, 易小篆爲隸書三千字, 秦始皇喜而免其罪,
用爲御使, 謂徒隸所造也.
【1】書는 많다(庶)는 것이니, 여러가지 사물에 대해 기록하기 때문이다. 또는 같다(如)는 것이
니, 말을 글로 쓸 때는 그 뜻과 같게 하기 때문이다.
【2】繕은 깁거나 꿰매는 것이다. 문자를 꿰매어 모으는 것을 일컬어 繕寫라 한다.
【3】패다라는 이곳 말로 하면 ‘언덕 모양’이다.《서유기》에서, 남인도 건나국의 북쪽에 多羅나
무가 있으니 크기가 30리로 그 잎이 길고도 넓은데 그 색이 빛나고도 윤기가 있어 모든
나라에서 글을 쓸 때는 그것을 가져다 쓰지 않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난 등이 三
藏을 결집할 때 모두 이 잎에다 글을 썼다.
【4】簡은 대나무 조각이다. 옛날에는 종이가 없었기에 일이 있으면 죽간에다 글을 썼다. 하나
의 대나무 조각을 홑으로 놓아둔 것을 簡이라 하고, 여러 개의 簡을 연결 지어 엮은 것을
策이라 한다. 詩와 書를 추리고 禮와 樂을 정리하여 簡策에 기록했음을 말한다.
【5】선사의 휘는 지의, 자는 덕안이며 화용 진씨의 아들이다. 7세 때 절에 들어와 스님이《법
화경》외는 것을 듣고는 문득 7권의 글귀를 스스로 기억하였는데, 그 완연함이 마치 옛날
부터 익혔던 것 같았기에 十信의 앞인 五品弟子의 지위에 자리하게 되었다. 말솜씨에 재
주가 있어 걸림이 없음에 수문제가 ‘智者’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6】관정법사의 자는 법운으로 장안 사람이다. 하늘이 내린 지혜와 이해력을 가졌기에 지자대
사가 명하여 시자로 삼자 그가 얘기한 바를 기록하였다가 뒷날까지 전해 주었으므로 경희
가 결집한 것과 더불어 그 공덕을 견줄 수 있을 것이니, 장안이 아니었다면 지자대사의 도
는 아마도 오늘날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7】오군의 장지는 자가 백영으로 초서에 뛰어났는데, 기맥이 연이어 통함에 [붓끝이] 멈추는
듯 나아감이 끊이지 않았으니 이를 일컬어 一草書라 하였다. 주나라 태사 주가 처음으로
大篆을 만들었고, 진나라 이사가 또 小篆을 만들었다. 진나라 하규사람 정막이 옥사의 관
리가 되었다가 죄를 받아 옥에 갇혀 생각에 잠겨 있기를 10년, 小篆을 바꿔 隸書 3천자를
만드니 진시황이 기뻐하여 그의 죄를 면하게 해주고 등용하여 御使로 임명하였는데, 죄수
가 만든 것이라 [하여 隸書라] 하였다.
不學詩, 無以言.
言善, 則千里之外應之; 言不善, 則千里之外違之.[1]《詩》陳褒
貶,[2] 語順聲律,[3]《國風》敦厚,[4]《雅 頌》溫柔,[5] 才華氣淸, 詞富
彬蔚.[6] 久習卽語論[7]自秀, 裳誦乃含吐不俗. 彼稱[四海, 習鑿
齒], 此對[彌天, 釋道安].[8] 陳留.阮瞻, 時忽嘲曰: [大晋龍興, 天
下爲家, 沙門何不全髮膚 去袈裟 釋梵服被綾紗?] 孝龍[9]對曰:
[抱一逍遙, 唯寂以致誠. 剪髮毁容, 改服變形, 彼謂我辱, 我棄彼
榮. 故, 無心於貴而愈貴, 無心於足而愈足.] 此乃氣蘊蘭芳,[10] 言
吐風采,[11] 雖不近乎聾俗, 而可接於淸才.[12] 佛法旣委王臣,[13] 弘
道須習文翰.[14] 支遁投書北闕,[15] 道安方逸東山,[16] 自非高才, 豈
感君主![17] 宜省狂簡之言, 徒虛語耳.[18]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잘 할 수 없다.
말을 올곧게 잘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그 말에 호응하고, 말을 올곧게 잘하지
못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그 말을 어기려 든다.《시경》은 칭찬하여 말하는 법과
비평하여 말하는 법을 갖추어 진술하였고 그 언어는 성조聲調와 운율韻律을 따
랐으니,《국풍》은 도탑고도 중후하고《아 송》은 온화하고도 부드러우며, 재치가
빛나고 기개가 청아하며 어휘가 풍부하고도 밝게 빛난다. 오래 익히면 곧 말과
논리가 저절로 빼어나고 가까스로 외우더라도 [말을] 머금고 내뱉음에 있어 속되
지 않는다.
저쪽에서 [이 세상(四海)의 습착치입니다]라고 일컫자 이쪽에서 [온 천하(彌
天)의 석도안입니다]라고 대꾸하였다. 진류의 완첨이 한 때 문득 조롱하여 이르
기를 [대진이 크게 일어나 천하로 집을 삼았거늘 사문沙門은 어찌 터럭과 피부
를 온전히 하고 가사를 버리며 승복을 벗고 비단옷을 입지 않는가?] 하니 효룡이
대답하기를 [참된 도(一)를 안고서 자유로이 노닐며 오직 고요하게 정성을 다할
뿐입니다. 머리를 깎아 얼굴을 헐고 의복을 고쳐 모습을 변화시키니 저네들은 내
가 욕되다 일컫지만 나는 그들의 영욕을 버렸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귀에 무심
하니 더욱 존귀하게 되고 만족에 무심하니 더욱 풍족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곧 기개는 난초의 향기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말은 풍류로운 문채를 내
뱉으니, 비록 귀먹고 속된 이들과는 친근할 수 없으나 맑고도 재주로운 이들과
교제할 수 있다 할 것이다. 불법을 이미 왕과 신하에게 맡기셨으니 도를 넓히고
자 하면 모름지기 글월을 익힐 것이다. 지둔은 북궐에 글을 올리고 도안은 동산
에 숨었으니, 스스로 뛰어난 재주를 가지지 못했다면 어찌 군주를 감동시켰겠는
가. 마땅히 사리 분별에 벗어나는 말을 살펴라, 단지 헛된 말일 뿐이다.
【1】《易 繫辭》[君子居其室, 出其言善, 則千里之外應之, 其邇者乎! 君子居其室, 出其言不善,
則千里之外違之, 其邇者乎!]
【2】褒, 揚美也; 貶, 抑挫也. 善者可以感發人之善心, 惡者可以懲創人之逸志也. 創, 亦懲也. 詩三
百, 褒揚其善, 貶抑其惡也.
【3】聲, 五音也; 律, 六律也. 犀於聲律故, 歌詩以鼓琴瑟. 聲屬陽, 律屬陰. 楊子曰: [聲生於日, 律
生於辰也.]
【4】十五國風俗歌謠, 敦大而重厚也. 風是民庶之作也.《詩》序云: [上以風化下, 下以風刺上.] 刺,
譏切也. 又如物因風之動以有聲, 而其聲又足以動物也.
【5】《雅》, 大小二《雅》;《頌》, 周 商 魯三《頌》.《雅》是朝延之詩,《頌》是宗廟之詩, 皆溫和而柔順也.
【6】彬, 文采炳朗也; 蔚, 文華深密貌.《易》曰: [其文蔚也.]
【7】以言告人曰語, 對人難辨曰論.
【8】襄陽高士習鑿齒先聞安重名, 致書通好, 安自陸渾山至壇溪寺. 習聞安至, 詣安, 旣坐自稱[四海
習鑿齒], 安曰[彌天釋道安]. 時人, 以爲名對.
【9】《高僧傳》云: [沙門支孝龍, 淮陽人. 少以風姿見重, 加以高論適時, 陳留 阮瞻等, 結知音之
交, 時人號爲八達.]
【10】蘭生幽谷, 淸香遠聞. 黃山谷曰: [一 一花而香有餘者, 蘭; 一 數花而香不足者, 蕙也.] 蕙
亦蘭屬也.
【11】風流文采.
【12】雖見棄於聾 無知之俗, 可以敵對於淸新才藝之士.
【13】佛於靈山付囑國王 大臣, 使其外護也.
【14】翰, 文詞也.
【15】晋.哀帝時, 竺潛辭闕而歸剡, 詔支遁繼講於禁中, 遁乃抗表還山. 北闕卽玄武門也. 未央殿前
雖南向, 而上書奏事謁見之徒, 皆詣北闕, 然則北闕爲正門.
【16】東晋.孝武聞安高名, 有詔曰: [法師以道德照臨天下, 使大法流行, 蒼生依賴. 故, 宜日食王公
祿.] 以時資給, 安因不受, 遂隱東山, 山在魯境. 逸, 逃遁也.
【17】二師非有盛德高才, 豈帝王之所感動哉!
【18】子曰: [吾黨之小子狂簡, 斐然成章, 不知所以裁之.] 適時狂簡, 志大而略於事也. 志大, 狂也;
略於事, 簡也. 斐然, 文貌; 成章, 言其文理成就有可觀者. 須省察而勿聽乎文章, 是狂簡之說,
非其實言也. 欲弘斯道, 可以傍閱詩編耳也.
【1】《역경》의 계사편에 말하였다. [군자가 집안에 앉아 있더라도 내뱉는 그 말을 올곧게 잘하
면 곧 천리 밖에서도 호응할 것이니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들이랴! 군자가 집안에 앉아
있더라도 내뱉는 그 말을 올곧게 잘하지 못하면 곧 천리 밖에서도 그 말을 어기려 들것이
니 하물며 가까이 있는 자들이랴!]
【2】褒는 아름다운 것을 선양하는 것이요, 貶은 [추악한 것을] 억눌러 꺾는 것이다. 선한 것은
사람들을 감응시켜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할 수 있으며, 악한 것은 사람들을 징계하여 해
이한 뜻을 혼내 줄 수 있다. 創 역시 징계한다는 뜻이다.《시경》의 시 3백편은 선한 것을
칭찬하여 선양하고 악한 것을 내쳐서 억눌렀다.
【3】聲은 다섯 가지 音階를 말하며, 律은 여섯 가지 音律을 말한다. 성조와 운률에 화합하는
까닭에 시를 노래하는 것으로써 금슬을 탈 수가 있다. 聲은 陽에 속하며 律은 陰에 속한
다. 양자가 말하기를 [聲은 해로부터 생겨났고 律은 별로부터 생겨났다]고 하였다.
【4】열 다섯 나라의 풍속과 가요는 크게 도타우면서도 중후하다. 風은 서민들이 지은 것이다.
《시경》의 서문에 이르기를 [윗사람은 風으로써 아랫사람을 교화하고 아랫사람은 風으로
써 윗사람을 풍자한다] 하였다. 刺는 나무라거나 충고함이 절실함을 말한다. 또한 사물은
風으로 인하여 움직이게 됨으로써 소리가 있게 되고 그 소리가 또한 사물을 움직이게 하
기에 넉넉함과 같다.
【5】雅에는 대아와 소아의 두 가지가 있으며, 頌에는 주송과 상송과 노송의 세 가지가 있다.
雅는 조정의 詩이며 頌은 종묘의 詩이니 [그 성격이] 모두 온화하고 유순하다.
【6】彬은 문장이 두드러지게 밝은 것이요, 蔚은 문장이 화려하고도 깊이가 있는 모습이다.《주
역》에 말하기를 [그 문장은 화려하고도 깊이가 있다]라고 하였다.
【7】말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語라 하고, 다른 사람과 상대하여 분별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論이라 한다.
【8】양양의 덕 높은 선비인 습착지가 먼저 도안의 높은 이름을 듣고는 글을 보내 호의를 알리
자 도안이 육혼산을 내려와 단계사에 이르렀다. 습착지가 도안이 도착하였다는 말을 듣고
는 도안에게 가서 이윽고 앉으며 스스로 일컫기를 [이 세상의 습착지입니다]라 하자 도안
이 [온 천하의 석도안입니다]라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그것을 유명한 댓구로 여겼다.
【9】《고승전》에 말하였다. [사문 지효룡은 회양인이다. 젊어서 기풍 있는 모습으로 중시를 받
았으며 더욱이 탁월한 논변으로 때의 흐름을 좇아가니 진류와 완첨 등이 더불어 知音의
교제를 맺음에 당시 사람들이 八達이라 불렀다.
【10】蘭은 깊은 계곡에서 자라나 맑은 향기가 멀리까지 퍼진다. 황산곡이 말하기를 [한 줄기
에 한 송이의 꽃이더라도 향기가 넉넉한 것을 蘭이라 하고, 한 줄기에 몇몇 송이 꽃이더
라도 향기가 부족한 것을 蕙라 한다] 하였다. 蕙 역시 蘭에 속한다.
【11】풍류가 있는 문채.
【12】비록 귀먹고 눈먼 무지한 속인들에게는 버림을 받을 지라도 청신하고도 재주로운 선비들
과는 맞서서 상대할 수 있다.
【13】부처님이 영취산에서 국왕과 대신들에게 부촉하여 그들로 하여금 불법을 외호하도록 하
였다.
【14】翰은 문헌의 글귀이다.
【15】진나라 애제 때 축잠이 대궐을 하직하고 염으로 돌아가자 지둔에게 조서를 내려 대궐에
서 계속 강설하게 하니 지둔이 이에 表를 올려 항명하고 산으로 돌아갔다. 북궐은 곧 현
무문이다. 미앙전의 앞쪽이 비록 남향을 하고 있으나 글을 올리거나 일을 아뢰는 이 또는
알현하는 무리들이 모두 북궐에 이르므로, 그러한 즉 북궐이 정문이 되었다.
【16】동진의 효무제가 도안의 덕 높은 이름을 듣고는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법사께서 도덕으
로써 천하에 임하여 밝은 빛을 비추어 큰 법을 유행하게 하니 창생들이 의지하고 힘입게
되었다. 그러므로 응당 왕공의 녹봉을 먹어야 할 것이다] 하고는 절기에 맞추어 재물을
대주었으나 도안이 받지 않고 마침내 동산에 은둔하였으니, 그 산은 노나라의 경계에 있
다. 逸은 도망하여 은둔함이다.
【17】두 선사에게 치성한 덕과 높은 재주가 없었다면 어찌 제왕이 감동할 바가 되었겠는가.
【18】공자가 말하기를 [나의 문중 어린 선비들이 사리분별을 벗어남에 오락가락 그렇게 문장
을 이루고는 그것을 마름질 할 줄을 알지 못하는구나] 하였다. 適時狂簡은 뜻은 크나 일
을 처리함에 있어서는 대충대충 하는 것을 말한다. 뜻이 크니 狂이요, 일을 대충대충 처
리하니 簡이다. 斐然은 문장의 모양이요, 成章은 문장의 이치가 성취되어 볼 만한 것이
있음을 말한다. 모름지기 살펴서 알기는 하되 문장을 자세히 받아들이지는 말지니, 이 狂
簡의 얘기는 그 참된 말이 아니다. 불도를 넓히고자 한다면 시편들을 그저 두루 살펴보면
될 따름이다.
不博覽, 無以據.[1]
《高僧傳》云: [非博則語無所據.] 當知今古之興亡, 須識華 梵
之名義.[2] 游三藏之敎海, 玩六經之詞林,[3] 言不妄談, 語有典據.
故, 習鑿齒讚安師曰: [理懷簡衷,[4] 多所博涉, 內外群書,[5] 略皆
遍覩, 陰陽算數, 悉亦能通, 佛經妙義, 故所游刃.][6] 眞宗皇帝詔
李侍讀飮,[7] 仲容起固辭曰: [告官家, 徹巨器.] 上問: [何故, 謂
天子爲官家?] 對曰: [臣嘗記蔣濟《萬機論》言{三皇官天下, 五帝
家天下},[8] 兼三五之德, 故曰官家.] 上喜曰: [眞所謂君臣千載一
遇.] 此由學問藏身, 多識[9]前言, 無所累矣.[10]
널리 살펴보지 않으면 근거할 것이 없다.
《고승전》에 이르기를 [널리 살펴보지 않으면 말함에 근거할 바가 없다]라 하
였으니, 응당 고금의 흥망을 알아야 하고 모름지기 한문과 범문의 명의名義에 자
세해야 한다. 삼장三藏이라는 가르침의 바다를 여행하고 육경六經이라는 어휘의
숲을 노닒으로써 말을 하면 허망한 얘기가 되지 않고 그 언어에는 전거典據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습착치는 도안법사를 찬양하여 [속마음을 다스려 간결하고
도 바르게 지니며 널리 섭렵한 바가 많아 안팎의 뭇 서적들을 대략 모두 훑어보
았고 음양과 산술 또한 능통하였으니, 불경의 오묘한 이치는 본래 칼날 놀리듯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진종황제가 시독 이중용을 불러들여 술을 마시는데 중용이 일어나 굳이 사양
하며 이르기를 [관가官家에게 아뢰나니 큰그릇은 거두소서] 하니 천자가 묻기를
[어인 까닭으로 천자를 일컬어 ‘관가’라 하는가?] 하기에 대답하기를 [신이 일찍
이 장제의《만기론》에 쓰여진 {삼황은 천하를 벼슬아치가 관청 다스리듯 하였
고, 오제는 천하를 가장이 집안 다스리듯 하였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음에 삼
황과 오제의 덕을 겸비하셨기에 ‘관가’라 말씀드린 것입니다] 하니 천자가 기뻐
하며 이르기를 [참으로 이른바 임금과 신하가 천 년에 한 번 만났음이로다] 하였
다. 이는 학문을 몸에 갈무리하여 두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앞사람들의 말을
많이 익혀 두어서 누累가 될 바는 없다.
【1】《高僧傳》云: [唱導所貴有四: 非聲則無以警衆, 非才則無以適時, 非辯則無言可採, 非博則語
無依據.]《事 》云[博學爲濟貧], 謂濟識見之貧也.
【2】法雲法師之自述名義集云: [名義者, 能詮曰名, 所詮曰義.]
【3】六經:《詩》,《書》,《易》,《春秋》,《周禮》,《禮記》.
【4】理, 治也; 懷, 中也; 簡, 不煩也; 衷, 正也. 言自治其心情, 不煩而且正也.
【5】儒以九經爲內, 以諸家雜書爲外.
【6】習與謝安書云: [來此見釋道安, 無變化伎術可以惑常人之耳目, 無重威大勢可以整群小之參差,
而師徒肅肅, 自相尊敬, 乃是吾由來素未見其人. 若安者, 非常勝士, 恨公不一見.] 敍丁解牛,
恢恢乎其游刃有餘地矣.
【7】宋侍讀李仲容善飮, 號李萬回, 眞宗飮無敵, 飮則必召仲容.
【8】《史》[五帝官天下, 三皇家天下, 官以傳聖賢, 家以傳子孫也.]
【9】音志記也.
【10】《易》曰: [君子多識前言往行, 以蓄其德.] 符堅於藍田得一古鼎, 容二十七斛. 朝士皆無知者,
以問安, 安曰: [魯.襄公所鑄也.] 腹有篆文, 果信. 堅勅諸學士, 皆師於安, 國人語曰: [學不師
安, 義不禁難.]
【1】《고승전》에 이르기를 [불도를 제창하여 대중을 이끌어 감에 있어서 소중하게 여겨야 할
바가 네 가지 있으니, 소리내어 말하는 것이 아니면 곧 대중을 경책할 수 없으며, 재주롭
지 못하면 곧 時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으며, 말을 잘하지 못하면 곧 채택할 만한 얘
기가 없으며, 널리 섭렵하지 않으면 곧 말을 하여도 근거하는 바가 없다]라고 하였다.《사
초》에 이르기를 [널리 배우는 것은 빈곤을 구제하는 것이 된다]라 하였으니, 식견의 빈곤
을 구제하는 것을 일컫는다.
【2】법운법사가 자신이 서술한 名義集에서 말하였다. [名義라는 것은 능동적으로 설명하는 것
을 名이라 하고 설명되어지는 바를 義라 한다.]
【3】6경은《시》,《서》,《역》,《춘추》,《주례》,《예기》이다.
【4】理는 다스림이요, 懷는 가운데(속마음)이며, 簡은 번뇌스럽지 않음이요, 衷은 바름이다. 스
스로 그 마음의 정서를 다스려 번뇌하지 않고 또한 바르게 됨을 말한다.
【5】유가에서는 아홉 종의 경전을 內典으로 삼고 諸家의 잡서를 外典으로 삼는다.
【6】습착지가 사안에게 준 글에서 말하기를 [이곳에 와서 석도안을 보니 변화무쌍한 재주와
꾀로써 보통사람들의 이목을 유혹할 만한 바가 없으며 중후하고 위엄있는 큰 위세로써 뭇
소인배들의 들쭉날쭉한 바를 정돈할 만한 바는 없으나 선사의 무리들이 엄숙하면서도 스
스로 서로를 존경하니 곧 이점이 내가 원래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의 사람됨입니다. 도안
과 같은 이는 비상하고도 뛰어난 선비이니 공께서 한 차례 만나보지 못했음이 한스럽습니
다] 하였다. 포정이 소를 해체함에 칼날을 놀리는 것이 여유로워 오히려 餘地가 있는 듯
하였다.
【7】송나라 시독 이중용은 술을 잘 마셔 호가 이만회였는데, 진종이 술을 마시면 대적하는 이
가 없음에 마실 때는 반드시 중용을 불렀다.
【8】《사기》에 말하였다. [오제는 천하를 벼슬아치가 관청 다스리듯 하였고 삼황은 천하를 가
장이 집안 다스리듯 하였으니, 관청은 성현에게 전해지고 집안은 자손에게 전해지는 것이
다.]
【9】[識의] 음은 지(志) 또는 기(記)이다.
【10】《주역》에 말하기를 [군자는 예전에 있었던 말과 행위 등을 많이 기억하여 그 덕을 기른
다] 하였다. 부견이 남전에서 오래된 솥 하나를 얻게 되었는데 용량이 27곡이나 되었다.
조정의 선비들이 모두 아는 자가 없기에 도안에게 물으니 도안이 말하기를 [노나라 양공
이 주조한 것입니다] 하였는데, 솥의 배 부분에 篆文이 있는지라 과연 믿을 수 있었다.
부견이 뭇 학사들에게 조칙을 내려 모두 도안에 대해 스승의 예를 취하게 하니 나라 사
람들이 말하기를 [배움에 있어 도안을 스승으로 삼지 않으면 도의 이치에 있어 어려움을
금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不歷事, 無以識.
子曰: [吾非聖人, 經事久矣.] 入太廟, 每事問者, 儆戒無虞,
罔失法度.[1] 羅漢雖聖, 赤鹽不知,[2] 方朔雖賢, 灰罔辨,[3] 多見
而識之, 未見而昧矣. 李後主得畵牛一軸, 晝則出於欄外,[4] 夜乃
歸於欄中,[5] 持貢闕下, 太宗張後苑, 以示群臣, 俱無知者, 惟僧錄
贊寧曰: [南倭海水或減則灘象微露, 倭人拾方諸,[6] 蚌 中有餘
淚數滴者得之, 和色着物則晝隱而夜顯; 沃焦山,[7] 時或風燒[8]飄
擊, 忽有石落海岸, 得之, 滴水磨色染物則晝顯而夜晦.] 諸學士皆
以爲無稽,[9] 寧曰: [見張騫《海外異記》.][10] 後, 杜鎬檢三?書
目,[11] 果見於六朝[12]舊本書中. 此乃博聞强識, 見幾而作也.
일을 겪지 않으면 익히 아는 것이 없다.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성인이 아니라 일을 경험한 지 오래 되었을 뿐이다]
하였으니, 태묘에 들어가자 모든 일을 [묘지기에게] 물은 것은 우려하는 마음이
없어서 법도를 잊을 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이다. 나한이 비록 성인이나 붉은 소금
을 알지 못하였고 동방삭이 비록 현인이나 겁회 灰를 분별하지 못하였으니, 견
문이 많으면 그것을 익히 알았겠지만 보고 듣지 않았기에 어두웠던 것이다.
이후주가 소 그림 한 폭을 얻었는데 낮이면 난간 밖으로 나왔다가 밤이면 이
내 난간 안으로 돌아가는지라 가져다가 대궐에 바치니 태종이 후원에 펼쳐놓고
뭇 신하들에게 보였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는데, 오직 승록 찬녕이 이르기를
[남쪽 왜倭 지방에 바닷물이 간혹 줄어들면 물 속의 자갈밭이 약간 드러나게 되
는데, 왜인들이 반듯한 돌이나 진주를 줍다가 큰 조개 안에 남아 있는 눈물 몇
방울을 얻어 물감에 타서 칠하면 곧 낮이면 숨었다가 밤이면 드러난다고 하며,
옥초산이 때때로 간혹 바람에 휩쓸리거나 회오리와 부딪치면 어쩌다 해안으로
잔돌이 떨어지는데 그것을 주워다 몇 방울의 물에 갈아서 색을 낸 뒤에 물건에
바르면 곧 낮에는 드러났다가 밤이면 숨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뭇 선비들이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여기기에 찬녕이 [장건의《해외이기》에서 보았습니다]
하였다. 후에 두호가 삼관三?의 책 목록을 검열하던 중에 과연 육조六朝의 옛
서적 가운데에서 보게 되었다. 이것은 곧 널리 듣고 잘 익혀 두었다가 기회를 보
아 지식을 드러낸 것이다.
【1】儆, 與警同; 虞, 度也; 罔, 勿也; 法度, 法則制度也. 言當無可虞度之時, 法度易至廢弛故, 戒其
失墮也.
【2】法預婆羅門, 將赤 問羅漢, 不知.《山海經》[大州南極有七大井, 晝夜煮而爲 , 其色赤. 此,
天下之毒物, 塗之門則諸鬼不能入, 塗之木則諸禽不能止.]
【3】東方朔, 生三日父母俱亡, 後遊澤中, 黃眉翁指朔曰: [此, 吾兒也. 服氣三千年一返髓, 三千年
一剝皮伐毛也. 吾生已三洗髓 三伐毛.] 從知朔是非常人也. 漢.武帝欲伐昆明國, 其國在水中,
鑿池終南山下三百里, 敎水戰, 號昆明池. 池低得異灰, 問朔, 朔曰: [非臣所知.] 後人問胡僧,
曰: [世界壞時, 劫火燒盡器界, 此 燒之灰也.]
【4】中圈曰欄.
【5】江南徐知 得之, 與南唐主李煜, 獻太宗.
【6】方石諸珠也.
【7】《山海經》有沃焦山, 沃焦者, 謂隨沃隨焦也.
【8】他本作撓.
【9】考也.
【10】《異記》者, 漢.武帝令張騫尋黃河水源, 乘 而直上崑崙山, 復上至銀河, 得天女支機石而來,
其往來時, 所記者也.
【11】宋.太宗於龍門東北 立三?, 至太平興國三年三?成, 賜名崇文院, 遷西?書貯焉, 凡八萬卷.
三?, 昭文? 集賢? 史?, 總名崇文院.
【12】晋 宋 齊 梁 陳 隋也.
【1】儆은 警(경계하다)과 같으며, 虞는 헤아림(度)이며, 罔은 하지 말라(勿)는 것이요, 法度는
법칙과 제도이다. 우려하고 헤아리는 일이 없게 되는 지경이 되면 법도는 쉽사리 피폐하
고 느슨해짐에 이르는 까닭에 잘못하여 무너지게 됨을 경계하는 것을 말한다.
【2】법예 바라문이 붉은 소금을 가져다 나한에게 물었으나 알지 못하였다.《산해경》에 [대주
의 남쪽 끝에 일곱 개의 큰 우물이 있음에 밤낮으로 [그 우물의 물을] 달이면 소금이 되는
데 그 빛깔이 붉다. 이것은 천하의 독극물로서 문에 바르면 모든 귀신들이 능히 들어오지
못하고 나무에 바르면 모든 날짐승이 능히 앉지를 못한다] 하였다.
【3】동방삭은 태어난 지 사흘만에 부모가 모두 죽었으며, 후에 택중을 유력할 새 눈썹이 누른
늙은이가 동방삭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는 나의 아들이다. 기운을 입은 지 3천년에 한
차례 골수가 새롭게 바뀌고 3천년에 한 차례 가죽이 벗겨지고 털을 갈게 된다. 나는 태어
나서 이미 세 차례 골수를 씻어 내렸고 세 차례 털을 갈았다] 하므로 이로써 동방삭이 비
상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한나라 무제가 곤명국을 치려고 함에 그 나라가 물 가운데 있
으므로 종남산 아래 3백 리 되는 못을 파서 수전을 교육시키며 그 못을 곤명호라 하였다.
못 바닥에서 이상한 재를 얻자 동방삭에게 물었더니 동방삭이 [신이 아는 바가 아닙니다]
하였는데, 뒤에 사람들이 오랑캐 승려에게 물으니 말하기를 [세계가 무너질 때 劫火가 일
체 세간을 모조리 태우는데 이것은 겁화가 세간을 태운 재입니다] 하였다.
【4】중간 크기의 우리를 欄이라 한다.
【5】강남의 서지악이 이것을 얻어 남당의 군주인 이욱에게 주니 [이욱이] 태종에게 바쳤다.
【6】반듯한 돌과 진주이다.
【7】《산해경》에 옥초산이 있으니, 沃焦란 물을 갖다 부으면 붓는 대로 마르는 것을 말한다.
【8】다른 판본에는 撓로 되어 있다.
【9】참고함이다.
【10】《異記》는, 한나라 무제가 장건에게 명하여 황하 물줄기의 근원을 찾도록 하자 뗏목을 타
고 곧장 곤륜산에 오르고 다시 위로 은하에 이르러 천녀의 지기석을 얻어 돌아왔는데, 그
가 왕래 할 때 기록하였던 것이다.
【11】송나라 태종이 용문 동북쪽에 삼관을 처음 세웠는데, 태평흥국 3년에 이르러 삼관이 낙
성되자 숭문원이란 이름을 하사하고 서관의 서적을 옮겨 갈무리해 두게 하였는데 무릇 8
만권이나 되었다. 삼관은 소문관과 집현관 및 사관으로 총명이 숭문원이다.
【12】진, 송, 제, 양, 진, 수나라이다.
不求友, 無以成.
生我者父母, 成我者朋友. 故, 君子以朋友講習, 以文會友, 以
友輔仁.[1] 品藻人物,[2] 商 同異,[3] 如切如磋, 如琢如磨.[4] 劉孝
標[5]云: [組織仁義,[6] 琢磨道德, 歡其愉樂,[7] 恤其陵夷,[8] 寄通靈
臺之下,[9] 遺跡江湖之上,[10] 風雨急而不輟其音, 雪霜零而不 其
色.[11]] 斯乃賢達之素交, 歷萬古而一遇. 東晋.道安未受戒時, 會
沙彌僧光於逆旅,[12] 共陳志慕, 神氣慷慨, 臨別相謂曰: [若俱長
大, 勿忘同遊.] 後, 光學通經論, 隱飛龍山,[13] 安後復從之, 相會
所喜, 謂昔誓始從. 因共披文屬思, 新悟尤多. 安曰: [先舊格義,
於理多違.] 光曰: [且當分析逍遙, 何容是非先達?] 安曰: [弘贊
理敎, 宜令允 , 法鼓競鳴, 何先何後!] 時僧道護亦隱飛龍,[14] 乃
共言曰: [居靜離俗, 每欲匡正大法, 豈可獨步山門, 使法輪輟
軫![15] 宜各隨力所被, 以報佛恩.] 衆僉[16]曰:[善!] 遂各行化.
벗을 구하지 않으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고 나를 이루어 주는 자는 벗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벗으로써 배우고 익힘에 글로써 벗을 모으고 모인 벗으로써 어질고자 하는 마음
을 돕는다. 인품을 차츰차츰 다듬어 나가며 같고 다름을 헤아리고 들추어내되 톱
으로 끊는 듯이 하고 돌로 가는 듯이 하고 정으로 쫓은 듯이 하고 줄로 가는 듯이
할지니라.
유효표가 이르기를 [인의仁義로서 조직하고 도덕道德으로 탁마함에 그가 기
뻐하고 즐거워함을 기뻐하고 그가 침체하고 쇠퇴함을 근심하며 신통의 경계는
신령스러운 누각 아래로 붙여 둔 채 그 자취를 강호 위에 남기니 비바람이 몰아
쳐도 그 소리는 그치지 않고 눈서리가 떨어져도 그 색깔은 바래지 않는다] 하였
으니 이는 곧 현명하고 활달한 이의 근본 교제로서 만고에 있어 겨우 한 차례나
마주치는 일이다.
동진 때 도안법사가 아직 계를 받지 않았을 때 사미 승광을 객점에서 만나 함
께 포부를 펴니 정신과 의기가 강개하여짐에 헤어지며 서로 일컫기를 [만약 함
께 크게 되거든 함께 노닐던 것을 잊지 말자]라고 하였다. 후에 승광이 경론을
배워 통달하고는 비룡산에 은거하자 도안이 뒤에 다시 그를 쫓아가 서로 만나
기뻐하며 예전에 서약하였던 것을 비로소 따르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로 인하
여 함께 글을 펴 보고 생각을 붙여가니 새로 깨달은 것이 더욱 많았다. 도안이
이르기를 [옛 어른들의 격의格義에도 이치에 어긋남이 제법 많다] 하자 승광이
이르기를 [우선 마땅히 [그 이치를] 분석하고 [그 도리에] 소요逍遙해야 할 것이
거늘 어찌 앞선 어른들을 옳고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 하므로 도안이 [진리의
교법을 넓히고 찬양하고자 하면 마땅히 진실과 합당하게 해야 할 것이니, 법고가
다투어 울림에 어찌 먼저와 뒤가 있겠는가?] 하였다. 이 때 승려 도호 역시 비룡
산에 은거하여 있다가 이에 함께 얘기하며 일컫기를 [고요한 곳에 거처하며 속
세와 떨어져 있는 것은 언제라도 큰 법을 곧게 바로잡고자 함인데 어찌 홀로 산
문을 거닐며 법의 수레로 하여금 구르는 것을 그만두게 하겠는가! 마땅히 각자
힘이 미치는 바에 따라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하니 대중이 모두 [좋
다!]라 말하고는 마침내 각자 교화를 행하였다.
【1】講學以會友, 則其道益明; 取善以輔仁, 則其德日進.
【2】《漢書》註云: 品其差次, 藻飾文質也.
【3】商量 擧乎人物之同異也, 又搜求義理之當否也.
【4】治骨角者, 旣切而復磋之, 治玉石者, 旣琢而復磨之, 言其治之有緖而益致其精也. 朋友之道,
亦如是也.
【5】名峻.
【6】組亦織也. 組織作布帛之總名, 行仁喩義, 如織布帛之有經緯也.
【7】愉亦樂也, 顔色和悅之貌.
【8】夷平也, 言人之頹替不振, 如丘陵之漸平.
【9】靈臺, 心也. 莊周曰: [萬惡不可內於靈臺.] 司馬彪曰: [心爲神靈之臺.] 選註云: [寄神通於心
府之下.]
【10】嚴子陵隱富春江, 有嚴陵釣臺.
【11】輟 止也, 變也.《詩》云[風雨如晦, 鷄鳴不已.] 言不失時也. 子曰: [歲寒然後, 知松栢之後
凋.] 言不變色也. 君子之交, 以貴賤得失, 不易時改節也.
【12】客店.
【13】僧光, 冀州人, 常山淵公弟子. 後, 受戒勵行, 値石氏之亂, 隱飛龍山.
【14】護亦冀州人, 貞節有慧解, 又隱飛龍.
【15】軫, 車後橫木, 又動也.
【16】亦衆也, 又皆也.
【1】학문을 강론함으로써 벗을 모으면 곧 그 도는 더욱 밝아지고, 착함을 취함으로써 어짊을
도우면 곧 그 덕이 날로 전진하게 된다.
【2】《한서》의 주석에 말하기를, 그 상이한 차례를 품별하고 문채와 실질을 수식한다 하였다.
【3】인물의 같고 다름을 헤아리고 들추어봄이며, 또한 義理의 정당성 여부를 찾아 구해봄이다.
【4】뼈나 뿔을 마름질하는 자는 먼저 톱으로 자른 다음에 다시 그것을 돌로 갈며, 옥이나 돌을
마름질하는 자는 먼저 정으로 쪼은 다음에 다시 그것을 줄로 가는 것이니, 그 마름질에 계
통이 있어서 정교함이 더욱 더함을 말한다. 친구의 도리도 역시 이와 같다.
【5】이름은 峻이다.
【6】組 역시 織이다. 組織은 베나 비단을 짜는 총명이니, 어짊을 행하고 정의를 깨우쳐 줌이
마치 베나 비단을 짜는 데 경선과 위선이 있는 것과 같다.
【7】愉 역시 즐거움이니 안색이 평화롭게 기뻐하는 모습이다.
【8】夷는 평평해 지는 것이니, 사람이 무너져 쇠퇴해 감이 마치 언덕이 점차 평평해져 가는 것
과 같음을 말한다.
【9】영대는 마음이다. 장주가 말하기를 [만 가지 악은 영대 안으로 들일 수 없다] 하였고, 사
마표가 말하기를 [마음은 신령한 돈대가 된다] 하였으며, 선주에 이르기를 [신통의 경계
를 심장 아래에 붙여 둔다]고 하였다.
【10】엄자릉이 부춘강에 은거하니 엄릉조대가 있게 되었다.
【11】輟은 그침이요, 는 변화함이다.《시경》에 [몰아치는 비바람 그믐 저녁 같으나 닭 울음
소리 그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시기를 잃지 않음이요, 공자가 말하기를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에 시듦을 안다] 하였으니 색이 변치않음을 말함이다.
군자의 교류는 귀하거나 천하거나 이해득실로써 때를 바꾸거나 절개를 고치지 않는다.
【12】객점이다.
【13】승광은 기주 사람으로 상산 연공의 제자이다. 후에 계를 받고는 만행을 다니다 석씨의
난을 만나 비룡산에 은거하였다.
【14】호 역시 기주 사람으로 정절에 지혜와 이해가 있었으니, 또한 비룡산에 은거하였다.
【15】軫은 수레 뒤편의 가로목이며, 또한 움직임을 말한다.
【16】[僉] 역시 대중(衆)이며 또한 모두(皆)이다.
不觀心, 無以通.
《維摩》云: [諸佛解脫, 當依衆生心行中求.] 何以故? 晋《華
嚴》[1]云: [心如工畵師, 造種種五陰, 一切世間中, 無不從心造.
如心, 佛亦爾,[2] 如佛, 衆生然.[3] 心 佛及衆生, 是三無差別.] 旣
爲生佛之母, 亦爲依正之源. 故,《楞嚴》云: [諸法所生, 唯心所現,
一切因果[4] 世界微塵,[5] 因心成體.] 欲言心有, 如空 聲, 求不
可見; 欲言其無, 如空 聲, 彈之亦響.[6] 不有不無, 妙在其中.
故,《般舟》[7]云: [諸佛從心得解脫, 心者淸淨名無垢, 五道鮮潔不
受色,[8] 有解此者大道成.]
마음을 관조하지 못하면 통할 것이 없다.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해탈은 마땅히 중생들의 마음의 움직임
에 의지하는 가운데에서 구하라] 하시거늘 어인 까닭인가? 진나라 판본인《화엄
경》에 이르기를 [마음은 마치 뛰어난 화가와 같아서 가지가지의 오음五陰을 짓
는 것이니 일체의 세간世間 가운데 마음으로 인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마치 마음처럼 부처님 역시 그러할 뿐이며, 마치 부처님처럼 중생도 그러하다.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하였으니 [마음은] 중생과 부처
의 어머니가 되며 또한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근원이 된다.
그러므로《능엄경》에 이르기를 [모든 법이 생겨난 바는 오직 마음이 드러난
바이니 일체의 인과와 세상의 작은 티끌은 마음으로 인하여 그 실체(體)가 이루
어진다] 하였다. 마음은 있다고 말하고자 하나 마치 공후의 소리와도 같아서 구
하여도 가히 볼 수가 없고, 마음은 없다고 말하고자 하나 마치 공후의 소리와도
같아서 그것을 퉁기면 또한 울림이 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니 오묘함이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반주삼매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은 마음을 좇
아 해탈을 얻으니, 마음이란 청정하여 무구無垢라 이름하며 오도五道에 [헤매더
라도] 선명하고 깨끗하여 색色을 받지 않으므로 이것을 해득하는 자는 큰 도를
이룰 것이다] 하였다.
【1】佛陀跋多所譯, 六十卷經.
【2】以心例佛也, 謂如世五蘊從心而造, 諸佛五蘊亦然.
【3】如佛五蘊, 餘一切衆生亦然, 皆從心造也.
【4】正報.
【5】依報.
【6】空 者, 盖空國之侯所作也. 師涓爲晋.平公鼓焉, 桓譚曰: [鄙人謂狐爲狸, 以瑟爲空 . 此, 非
徒不知狐與瑟, 乃不知狸與空 也.]
【7】《般舟三昧經》, 一切十方現在佛悉在前立定經, 此經三卷.
【8】五色譬五道: 黑喩地獄, 由黑業所感故; 靑喩餓鬼, 鬼面靑故; 赤喩畜生, 由 血故; 黃喩人道,
居天獄之中故; 白喩天道, 純善業所感故. 言五道空則五色亦不有也.
【1】불타발다가 번역한 것으로 60권《화엄경》이다.
【2】心으로써 佛에 예시한 것이다. 말하자면, 세간의 오온이 마음을 좇아 만들어진 것처럼 모
든 부처님의 오온 또한 그러하다는 것이다.
【3】부처님의 오온 처럼 나머지 일체 중생도 그러하니, 모두 마음을 좇아 만들어진 것이다.
【4】正報(과거세에 지은 業因에 의해 그 갚음으로 얻어진 有情의 몸)
【5】依報(正報의 그 몸이 의지하고 있는 환경, 곧 國土 또는 器世間)
【6】공후는 아마도 공국의 제후가 만든 것일 것이다. 사연이 진나라 평공을 위해 연주하자 환
담이 말하기를 [천박한 이들은 여우를 일컬어 너구리라 하고 거문고를 공후로 여기나니,
이는 단지 여우와 거문고를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너구리와 공후도 알지 못함을 말한다]
하였다.
【7】《반주삼매경》은 일체 시방 현재불이 모두 바로 앞에서 立定하여 나타나는 경이며, 이 경
은 3권이다.
【8】다섯 가지 색을 五道에 비유하면, 검은 색은 지옥에 비유되니 黑業으로 말미암아 감응 받
는 바인 까닭이며, 푸른색은 아귀에 비유되니 귀신이 얼굴이 푸른 까닭이며, 붉은 색은 축
생에 비유되니 피를 먹음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며, 황색은 인도에 비유되니 하늘과 지옥의
중간에 거처하는 까닭이며, 흰색은 천도에 비유되니 순수한 선업에 감응 받는 바인 까닭
이다. 五道가 공허함은 곧 五色 역시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遵此十門, 上行下效, 不倦終之, 則吾佛之敎可延于後世, 苟謂
不然, 祖道必喪. 傾望後裔, 覽而警焉.
이 열 가지 문을 준수하여 윗사람은 행하고 아랫사람은 본받아서 게으르지 않
고 그것을 마치면 곧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후세에까지 이어질 것이나, 진실로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조사들의 도는 반드시 상하게 될 것이다. 뒤를 잇는 이들
에게 바라나니 살펴보고 경계할지어다.
徐學老勸童行勤學文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 出家兒, 幸得身離塵網, 居於
廣堂大厦, 切不可以溫飽自滿其志. 少壯之時, 不勤學問, 不究義
理, 不正呼吸, 對聖前如何可以宣白? 士大夫前如何可以談吐?
不學一筆字, 文 如何寫? 士大夫往來書尺[1]如何回? 出家人胸
中貫古今, 筆下起雲烟, 方可了身[2] 了性,[3] 以至於了命,[4] 若自
懶惰, 託言[所 , 無受道之資], 是自壞了一生也. 且如猿 , 獸
類也, 尙可敎以藝解; , 禽鳥也, 尙可敎以歌唱.[5] 人爲萬物
之靈, 如不學, 視禽獸之不若也. 爲人師者, 自當尙嚴, 師嚴而後
道尊.[6] 與其初年失於寬, 而招異時之怨, 不若過於嚴, 招異時之
感. 人家子弟, 捨父事師, 師却不嚴而縱其懶, 及其時過失學也,
談吐又訥, 宣白又鈍, 發遣又 , 寫染又拙, 覺時事事無能, 方始
自悔而歸咎於其師, 何謂至感. 初年脫白從師, 師長訓導, 極其嚴
緊, 於公事畢然後, 敢治私事, 禁妄出. 讀書要背, 寫字要楷, 義理
要通, 道念要正. 日漸月磨, 復還固有之天, 得造洞然之妙. 由是,
性海淸澄, 心珠瑩澈, 學仙者着脚蓬萊,[7] 學佛者安身樂國. 到恁
?時, 却感師長嚴訓之功也.
옥은 쪼지 않으면 그릇을 이룰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
다. 출가한 남아로서 다행히 사람의 몸을 얻고 티끌의 그물을 벗어나 넓고도 큰
집에 거처하였으니 절대 따뜻하고 배부른 것으로써 스스로 그 뜻을 만족하게 여
겨서는 안된다. 젊고 건장할 때 학문에 힘쓰지 않고 의리義理를 깊이 연구하지
않으며 호흡呼吸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성인을 앞에 마주하여 어찌 생각을 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사대부 앞에서 어찌 담론을 토해 낼 수 있을 것인가. 한
글자도 배우지 않는다면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이며, 사대부와 오가는 서찰에 어떻
게 답할 것인가. 출가한 사람은 가슴속으로 고금을 꿰뚫고 붓 아래로는 구름과
연기를 일으켜야 비로소 입신立身을 깨닫고 천성天性을 깨달으며 천명天命을 깨
닫기까지 이를 수 있을 것인데, 만일 자신이 게으르면서도 핑계하여 [품성으로
보아 도를 받을 만한 자질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스스로 일생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또한 예컨대 원숭이는 짐승의 부류지만 그래도 기예와 지식으로써 가르
칠 수 있고 구욕새는 날짐승이지만 그래도 노래로써 가르칠 수 있는데,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 되어 만약 배우지 않으면 금수를 보는 것만 같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이의 스승이 되는 자는 스스로 마땅히 엄격함을 숭상해야 할 것이니, 스
승이 엄격하고서야 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초년에 관대함에 빠졌다가 다른 때에
원망을 불러들이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하였다가 다른 때에 감사히 여기는 마음
을 불러일으킴만 같지 못하다. 여염집 사람의 자제가 에비를 버리고 스승을 섬김
에 스승이 도리어 엄하지 않아 그 게으름을 방종함으로써 시기가 지나서 배움을
놓치기에 이르러, 담론을 토해 냄에 또한 더듬거리고 생각을 펴서 말함에 또한
우둔하며 편지를 보냄에 또한 엉성하고 글씨를 씀에 또한 졸렬하니, 때로 하는
일마다 무능함을 깨닫고는 그제야 비로소 스스로 후회하며 허물을 그 스승에게
돌린다면 어찌 지극히 감사하는 것이라 일컫겠는가.
초년에 흰옷을 벗고 스승을 따름에 스승이 가르치며 이끌되 그 엄하고 긴장함
을 지극히 하고 공공적인 일을 마친 연후에야 감히 사사로운 일을 다스릴 것이며
망령되이 외출함을 금해야 한다. 책을 읽을 때는 반드시 모두 외우도록 해야 하
고 글자를 쓸 때는 반드시 방정해야 하며, 의리義理는 반드시 능통해야 하고 도
를 생각하는 마음은 반드시 발라야 한다. 날로 차츰 나아가고 달로 연마해 가면
고유한 하늘로 돌아감을 회복하고 밝게 확 트인 묘한 자리에 나아감을 얻을 것이
다. 이로 말미암아 성품의 바다는 맑고 맑아지며 마음의 진주는 밝디 밝아질 것
이니, 선仙을 배우는 자는 봉래산에 발을 들여놓을 것이고 불佛을 배우는 자는
극락세계에 몸을 편안히 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이르면 스승이 엄하게 훈계한
공을 도리어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1】古者裁簡牘, 長咫尺, 故曰書尺.
【2】受之父母曰身, 可以知其立身.
【3】物之所受曰性, 可以知其天性.
【4】天之所賦曰命,《書》曰: [不知命, 無以爲君子.]
【5】《零陵記》云: [土人多養 . 五月五日, 去其舌尖則能語, 聲尤淸越, 雖鸚鵡不能過也, 號曰八
哥.]
【6】《學記》云: [凡學之道, 師嚴爲難, 師嚴然後道尊, 道尊然後民知敬學矣.]
【7】杜詩: 蓬萊如可到, 衰白問群仙.
【1】옛 사람들이 대쪽에 쓴 편지글을 마름질함에 그 길이가 여덟 치나 한 자가 되었던 까닭에
書尺이라 말하였다.
【2】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身이라 하니, 그럼으로써 立身할 줄을 안다.
【3】사물로부터 받은 것을 性이라 하니, 그럼으로써 天性을 아는 것이다.
【4】하늘이 부여한 바를 命이라 하니,《서경》에 이르기를 [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라고 여길
만한 것이 없다] 하였다.
【5】《영릉기》에 말하였다. [그 지방 사람들은 구욕을 많이 기르는데 5월 5일이면 그 혀끝을
잘라 냄에 곧 능히 말을 할 수 있었으니, 소리가 맑고 가락이 높아 비록 앵무새라 하더라
도 그에 지나치지 못하였으며 八哥라 불렀다]
【6】《학기》에 말하였다. [무릇 배움의 도는 스승이 엄하게 됨이 어려우니, 스승이 엄한 연후에
도가 존귀해지고 도가 존귀해진 연후에 백성들이 배움을 공경할 줄 안다.]
【7】두보의 시에, 봉래산에 만일 가 닿는다면 뭇 신선들에게 몸이 쇠퇴하고 머리가 희어짐에
대해 물을 것이라 하였다.
保寧勇禪師示看經[1]
夫看經之法, 後學須知, 當淨三業. 若三業無虧則百福俱集. 三
業者, 身 口 意也: 一, 端身正坐, 如對尊顔則身業淨也; 二, 口
無雜言, 斷諸嬉笑則口業淨也; 三, 意不雜亂, 屛息萬緣則意業淨
也. 內心旣寂, 外境俱捐, 方契悟於眞源, 庶硏窮於法理, 可謂水
澄珠瑩 雲散月明. 義海湧於胸襟, 智嶽凝於耳目, 輒莫容易, 實非
小緣. 心法雙忘, 自他俱利, 若能如是, 眞報佛恩.
무릇 경전을 보는 법을 후학들은 모름지기 알아야 할 것이니 응당 삼업三業을
깨끗이 하라. 만약 삼업三業에 이지러짐이 없으면 곧 많은 복이 모두 모일 것이
다. 삼업三業이란 몸과 입과 뜻이니, 첫째로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음에 마치
존귀한 얼굴을 대하듯 하면 곧 몸의 업(身業)이 깨끗해 질 것이요, 둘째로 입으로
잡스러운 말을 하지 않고 실없이 웃는 웃음을 끊으면 곧 구업(口業)이 깨끗해
질 것이요, 셋째로 뜻이 어지럽지 않고 온갖 인연을 물리쳐 버릴 수 있으면 곧
의업(意業)이 깨끗해 질 것이다. 안으로 마음이 이미 고요하고 밖으로 일체의 경
계를 모두 버리면 바야흐로 참된 근원에 계합하여 깨달을 것이며 머지않아 불법
의 이치를 궁극까지 연마하게 될 것이니, 가히 물이 맑으니 구슬이 빛나고 구름
이 흩어지니 닭이 밝아졌다고 일컬을 만 하다. 진리의 바다가 가슴에서 용솟음치
고 지혜의 뫼뿌리가 귀와 눈에 엉길 것이니, 행여라도 쉽게 여기지 말라 진실로
작은 인연이 아니다. 마음과 법을 모두 잊으면 자신과 남이 모두 이로우리니, 만
약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참으로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1】王荊公安石, 爲亡子 , 奏施金陵舊第爲寺, 賜額曰保寧, 請仁勇禪師居之. 師四明.竺氏子, 嗣
楊岐.
【1】왕형공 안석이 죽은 아들 방을 위해 금릉의 옛 저택을 보시하여 절로 삼고 편액을 하사하
여 ‘보녕’이라 하고는 인용선사를 청하여 거처하게 하였다. 선사는 사명 축씨의 아들로서
양기의 법을 이었다.
右街寧僧錄勉通外學
夫學不厭博,[1] 有所不知, 盖闕如也.[2] 吾宗致遠, 以三乘法而運
載焉. 然, 或魔障相陵, 必須禦侮, 禦侮之術, 莫若知彼敵情. 敵情
者, 西國則韋陀, 東夏則經籍矣. 故, 祇桓寺中有四韋陀院,[3] 外道
以爲宗極, 又有書院, 大千界內所有不同文書 集其中, 佛俱許讀
之, 爲伏外道而不許依其見也. 此土古德高僧, 能 伏異宗者, 率
由博學之故. 譬如夷狄之人, 言語不通, 飮食不同, 孰能達其志 通
其欲? 其或微解胡語, 立便馴和矣.[4] 是以, 習鑿齒, 道安以 諧
而伏之;[5] 宗 雷之輩, 慧遠以《詩》·《禮》而誘之;[6] 權無二,[7] 復
禮以《辨惑》而誘之; 陸鴻漸, 皎然以《詩式》而友之.[8] 此皆不施
他術, 唯通外學耳. 乎儒 道二敎, 義理玄邈, 釋子旣精本業, 何
妨鑽極?[9] 以廣見聞, 勿滯於一方也.
무릇 배울 때는 널리 익히는 것을 싫어하지 말 것이며 모르는 바가 있으면 대
개 무엇이 빠진 듯 여겨라. 우리의 종宗이 널리까지 이르는 것은 삼승三乘의 법
으로 실어 나르는 까닭이다. 그러나 간혹 마장魔障이 서로 능멸하려 들면 반드시
그 업신여김을 막아야 하니, 업신여김을 막는 방법에는 적의 실정을 아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 적의 실정이란 서쪽 나라에서는 곧 위타韋陀이며 동쪽의 중국에
서는 곧 경적經籍이다. 그러므로 기환사에는 사위타원四韋陀院이 있어서 외도들
은 그것을 가르침의 종지로 삼으며 또 서원이 있어서 대천세계 내의 서로 다른
모든 문서를 모두 그 안에 모아 놓았으니, 부처님이 그것들을 함께 읽는 것을 허
락한 것은 외도를 굴복시키기 위함이지 그들의 견해에 의지함을 허락한 것이 아
니다.
이 땅에 예전의 덕이 놓은 고승들이 능히 다른 종교를 두렵게 만들어 굴복시
킨 것은 널리 배움으로 말미암은 까닭이다. 비유하자면, 오랑캐들은 언어가 통하
지 않고 음식이 같지 않은데 누가 능히 그들의 뜻을 깨닫고 그들이 하고자하는
바를 꿰뚫어 보겠는가? 혹 오랑캐의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바로 길들여
순화시킬 수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까닭에 습착치는 도안이 익살로써 그를 굴
복시켰고, 종병과 뇌차종 같은 무리는 혜원이《시》와《예》로써 그들을 구슬려
인도하였으며, 권무이는 복례가《십문변혹론》을 지어 줌으로써 그를 구슬려 인
도하였으며, 육홍점은 교연이《시식》을 지어 줌으로써 그와 벗하였다. 이는 모두
다른 방술을 베푼 것이 아니라 오로지 외학에 능통하였기 때문일 뿐이다. 하물며
유교와 도교는 그 뜻과 이치가 깊고도 넓으니 승려가 되어 이미 본업을 면밀하게
하였다면 어찌 깊이 연구해 보는 것이 방해가 되겠는가. 널리 보고 들음으로써
한 쪽에만 치우쳐 머무르지 말라.
【1】《高僧傳》云: [學不厭博, 博則通矣.] 孔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不畔矣.] 言不
違反於道也.
【2】孔子謂子夏曰: [君子於其所不知, 盖闕如也.] 謂不知必闕, 問於知者, 盖不以己所見爲是也.
此言闕如義, 謂無也.
【3】韋陀, 此云智論, 知此生智, 卽邪智論. 韋陀有四: 一, 阿由, 此云方命亦曰壽, 謂養生繕性; 二,
殊夜, 謂祭祀祈禱; 三, 婆磨, 謂禮儀占卜兵法軍陣; 四, 阿達婆, 技藝禁呪醫方. 又云四明: 一,
聲明, 謂聲敎明了世間文子釋語訓字; 二, 工巧明, 技術陰陽曆數; 三, 醫方明, 謂禁呪針藥醫治
方法; 四, 因明, 因卽萬法生起之因, 種種言論圖印等, 一一硏 眞僞, 五明中除內明.
【4】此, 嚴尤《凶奴論》全文也.
【5】 諧, 嘲謔也. 以[彌天, 釋道安]對[四海, 習鑿齒]者, 是也. 或, 兩人同行, 安前習後, 習忽嘲
曰[箕而 之, 糟糠先去], 安卽對曰[淘而汰之, 沙石後來]語句.
【6】太子舍人宗炳 散騎常侍雷次宗, 皆遠公蓮社中客, 以《詩》·《書》·《禮記》誘致之也.
【7】唐文人.
【8】道士陸羽, 字鴻漸, 嘗著《茶經》. 詩僧淸晝, 字皎然, 謝康樂十世孫. 得詩人之奧旨, 傳乃祖之菁
華, 詞多芳澤, 律尙淸壯, 一時詞人, 莫不楷模.
【9】《補行》云: [讀《春秋》誦《左傳》, 終朝心遊戰陣, 口演詐謀, 助佛法者遠矣. 如老 莊 孔 孟之書,
文弘仁義故, 爲新學入道之門, 亦可時覽.《毘奈耶》中, 佛聽比丘一日三分, 初中二分讀佛經,
晩讀外著.《列仙傳》云: [有人入山求道, 老君與鐵杵使鑽石, 石厚五尺, 此若能穿, 便當得道.
晝夜鑽之, 積四十日, 石穿得仙丹, 遂爲仙, 曰鑽極.]
【1】《고승전》에 이르기를 [배움에 있어서 널리 익히는 것을 싫어하지 말 것이니 널리 익히면
곧 통달하게 되리다] 하였으며,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가 문장에 대해 널리 배우고 예법
으로 그것을 요약해 지니면 또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니, 도에 대해 어기거나
어긋나지 않음을 말한다.
【2】공자가 자하에게 이르기를 [군자는 알지 못하는 바에 대해서는 대개 무엇이 빠진 듯 여겨
야 한다] 하였으니, 말하자면 알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무엇이 빠진 듯이 여겼다가 아는
자에게 물으라는 것인데, 대개 자기의 소견으로써 옳음을 삼지 말라는 것이다.
【3】위타는 이곳 말로 하면 智論인데, 이것을 알면 지혜가 생기니 곧 삿된 지혜의 논리(邪智
論)이다. 위타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아유(Rg)위타로서 이곳 말로는 方命 또는
壽라 하는데 養生하고 繕性을 말한다. 두 번째는 수야(Yajur)위타로서 제사와 기도를 말한
다. 세 번째는 바마(S ma)위타로서 禮儀와 占卜과 병법과 軍陣을 말한다. 네 번째는 아달
바(Atharva)위타로서 기예와 禁呪와 醫方을 말한다. 또는 四明이라 말한다. 첫 번째는 聲
明으로서 소리를 통한 가르침으로 세간의 문자와 부처님의 말과 訓字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工巧明으로서 기술과 음양과 曆數이다. 세 번째는 醫方明으로서
禁呪와 針藥의 의술 치료 방법을 말한다. 네 번째는 因明으로서 因은 곧 만법이 생겨서 일
어나는 원인이니 각종의 언론과 圖印 등으로 하나하나 진위를 연구하여 엄격하게 하는 것
이다. 五明 가운데 內明을 빠트린 것이다.
【4】이것은 엄우의《흉노론》전문이다.
【5】 諧는 조롱하고 희롱거림이다. [온 천하의 석도안이요!]라는 말로써 [이 세상의 습착지
입니다!]라는 말에 대꾸한 것이 그것이다. 혹은 두 사람이 같이 가다가 도안이 앞서고 착
지가 뒤에 감에 착지가 갑자기 조롱하여 말하기를 [키로써 쌀을 까부르니 재강과 쌀겨가
앞서 간다] 하자 도안이 곧장 대꾸하여 말하기를 [쌀을 일어 씻기우니 모래돌이 뒤따라온
다]라는 語句이다.
【6】태자사인 종병과 산기상시 뇌차종은 모두 원공의 연사에 머물던 객으로서《시》《서》《예
기》등으로 불러들인 자들이다.
【7】당나라 때의 문인이다.
【8】도사 육우는 자가 홍점으로 일찍이《다경》을 저술하였다. 시인 승려인 청주는 자가 교연
으로 사강락의 10세손이다. 그는 시인의 오묘한 취지를 얻어 선조의 精華를 전하였으니,
詞는 대체로 화려하고도 윤택하며 律은 청아하고 건장함을 숭상하였음에 한 때의 詞人들
이 그를 본보기로 삼지 않음이 없었다.
【9】《보행》에 이르기를「《춘추》를 읽고《좌전》을 외우면 아침 내내 마음은 전장의 진영에서
노닐고 입으로는 술책과 모사를 연설하므로 불법을 돕고자 하는 자들이 멀리하는 것이다.
노자와 장자와 공자와 맹자의 서적 같은 것은 그 글이 인의를 넓히고자 하는 까닭에 새롭
게 도에 들어가는 것을 배우는 문호가 되므로 또한 때때로 살펴볼 만 하다] 하였다.《곤나
야》중에서, 부처님은 비구들이 하루를 3등분하여 처음과 중간의 두 차례 동안에는 불경
을 읽고 저녁에는 외도의 서적을 읽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하였다.《열선전》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산에 들어가 도를 구하자 노군이 쇠망치를 주며 돌을 뚫어라 함에 돌의 두
께는 5척이나 되었는데, 만약 능히 뚫는다면 곧 도를 얻을 것이라 하였다. 밤낮으로 그것
을 뚫기를 40일 동안 하여 돌을 뚫고는 仙丹을 얻어 마침내 신선이 되었으니, 일컬어 鑽極
이라 한다]고 하였다.

孤山圓法師示學徒[1]
於戱! 大法下衰, 去聖逾遠, 披緇雖衆, 謀道尤稀. 競聲利[2]爲己
能, 示流通[3]爲兒戱, 遂使法門罕闢, 敎網將頹. 實賴後昆, 克荷斯
道, 汝曹虛心聽法, 潔己依師, 近期於立身揚名, 遠冀於革凡成聖.
發揮像法, 捨子而誰? 故須修身踐言,[4] 愼終如始. 勤爾學問, 謹
爾行藏,[5] 避惡友如避虎狼, 事良朋如事父母. 奉師盡禮, 爲法忘
軀, 有善無自矜, 起過務速改. 守仁義而確乎不拔, 處貧賤則樂以
忘憂, 自然與禍斯違 與福斯會, 豈假相形問命, 諂求榮達之期, 擇
日選時, 苟免否屯之運.[6] 此豈沙門之遠識, 實唯俗子之妄情. 宜
乎見賢思齊, 當仁不讓, 慕雪山之求法, 學善財之尋師.[7] 名利不
足動於懷, 死生不足憂其慮. 功成而事遂, 必自邇而陟遐,[8] 不
沽名而名自揚, 不召衆而衆自至. 智足以照惑, 慈足以攝人. 窮則
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9] 使眞風息而再振, 慧炬滅而復明, 可
謂大丈夫焉, 可謂如來使矣. 豈得身捿講肆,[10] 跡混常徒, 在穢惡
則無所間然, 於行解則不見可畏,[11] 以至積習成性, 自滅其身! 始
敎慕彼上賢, 終見淪於下惡, 如斯之輩, 誠可悲哉!《詩》云: [靡不
有初, 鮮克有終.][12] 斯之謂矣, 中人以上, 可不誡歟![13] 抑又戒慧
分宗,[14] 大小異學, 悉自佛心而派出, 意存法界以同歸.[15] 旣而未
曉大猷, 於是各權所據,[16] 習經論則以戒學爲棄物,[17] 宗律部則以
經論爲憑虛,[18] 習大法者則滅沒小乘, 聽小乘者則輕毁大法, 但見
人師偏讚, 遂執之而互相是非, 豈知佛意常融. 苟達之而不見彼此,
應當互相成濟, 共熟機緣. 其猶萬派朝宗, 無非到海,[19] 百官 事,
咸曰勤王.[20] 未見護一派而擬塞衆流, 守一官而欲廢庶績. 原夫法
王之垂化也, 統攝群品, 各有司存, 小律比禮刑之權,[21] 大乘類鈞
衡之任,[22] 營福如司於漕輓,[23] 製撰若掌於王言.[24] 在國家之百
吏咸修, 類我敎之群宗競演, 果明此旨, 豈執異端. 當須量己才
能,[25] 隨力演布, 性敏則兼學爲善, 識淺則 [26]門是宜. 若然者,
雖各播風猷[27]而共成慈濟, 同歸和合之海, 共坐解脫之床,[28] 夫如
是則眞迷途之指南,[29] 敎門之木鐸也.[30] 居乎師位, 諒無慙德, 趣
乎佛果, 決定不疑. 汝無矜伐小小見知,[31] 樹立大大我慢, 輕侮先
覺, 熒惑後生. 雖云聽尋, 未補過咎,[32] 言或有中, 汝曹思之.
오호라! 큰 법은 점차 쇠퇴하고 가신 성인과는 더욱 멀어지니 승복을 걸친 이
는 비록 많으나 도를 도모하는 자는 더욱 드물다. 명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을 자
기의 능사로 삼고 바른 법이 흐르고 소통되는 것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아이들의
유희로 여기니 마침내 불법의 문이 드물게 열리게 함으로써 가르침의 규범이 곧
무너지려 한다. 진실로 뒤를 잇는 이에게 의뢰하려면 능히 이 도를 짊어져야 할
것이니, 너희들은 마음을 비우고 법을 들으며 몸을 깨끗이하여 스승에게 의지함
으로써 가까이로는 몸을 세워 이름을 드날릴 것을 기약하고 멀리로는 범부의 품
성을 개혁하여 성인의 품성을 이루기를 바래야 할 것이다. 상법像法을 꽃피워 드
날리고자 함에 그대가 아니면 그 누구이겠는가? 그러므로 모름지기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함에 끝까지 삼가기를 마치 처음과 같이 하라.
배우고 묻기를 부지런히 하며 나아가고 물러서는 일에 삼갈 것이니, 못된 벗
피하기를 마치 호랑이 피하듯 해야 하고 어진 벗 섬기기를 마치 부모 섬기듯 해
야 한다. 스승을 받듦에 예를 다하고 법을 위해서는 몸을 잊으며, 선행이 있으면
스스로 자랑함이 없어야 하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속히 고칠 것을 힘써야 한다.
인의仁義를 지킴에 확연히 흔들리지 않고 빈천貧賤에 거처하되 즐거움으로써 근
심을 잊으면 자연히 재난과는 떨어지고 복록과는 모이게 될 것이니, 어찌 관상을
보고 운명을 물음으로써 영달의 시기를 아첨하여 구할 것이며 날을 선택하고 때
를 가림으로써 막히고 어려운 운세를 구차하게 면하기를 빌겠는가. 이것이 어찌
사문의 원대한 식견이리요, 실로 오직 속인의 망령된 뜻일 뿐이다. 마땅히 현인
을 보면 그와 가지런해 질 것을 생각하고 어진 일을 당면해서는 양보하지 말아야
하며, 설산의 구법求法을 사모하고 선재善財가 스승을 찾던 일을 배우라.
명예와 이익은 가슴을 움직이기에 부족하며 삶과 죽음은 족히 근심할 바가 아
니다. 만약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성취되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먼 곳으
로 나아가야 할 것이니, 이름을 팔지 않아도 이름은 스스로 드날려질 것이며 대
중을 불러들이지 않아도 대중이 스스로 올 것이다. 지혜가 풍족함으로써 의혹을
비출 수 있고 자비가 풍족함으로써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 궁핍하면 곧 홀
로 그 자신만을 착하게 하고 통달하면 곧 천하까지 겸해서 착하게 하여 잠잠하던
참된 교화의 바람을 다시 떨쳐 일어나게 하고 꺼졌던 지혜의 횃불을 다시 밝게
밝힌다면 가히 대장부라 일컬을 것이며 가히 여래의 사자라 일컬을 것이다. 어찌
하여 몸은 강의하는 자리에 깃들어 있되 자취는 범상한 무리와 뒤섞여 있으며,
더럽고 추악한 곳에 있으나 조금도 그렇게 여기는 바가 없으며, 수행과 견해에
있어서도 가히 두려워할 만한 것을 볼 수 없으며, 나아가 그러한 습성을 쌓아 성
품을 이루기에 이름으로써 그 몸을 스스로 멸하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저 위의
현인들을 사모하다가 결국에는 아래로 추악함에 빠짐을 보이니 이와 같은 무리
는 진실로 슬플 뿐이로다.《시경》에 이르기를 [‘처음’은 있지 아니함이 없으나 능
히 ‘마침’이 있는 것은 드물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니, 중간 근기의 사
람 이상은 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계戒와 혜慧가 종파를 나누고 대승과 소승이 배움을 달리하나 모
두 부처님의 마음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니 뜻을 법계法界에 두고 모두 함께
돌아가야 한다. 아직까지 큰 법을 깨닫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각기 근거하는 바
를 고집하여, 경론을 익히면 곧 계학戒學을 쓰레기로 취급하고 율부律部를 으뜸
으로 삼으면 곧 경론을 헛된 곳에 기대는 것으로 여기며, 대승을 익히는 자는 곧
소승을 멸시하고 소승을 듣는 자는 곧 대승을 업신여기며, 단지 사람들의 스승이
될 만한 이의 치우친 찬사만 보고 마침내 그것에 집착하여 서로 옳고 그르다 하
고 있으니 어찌 부처님의 뜻은 항상 원융무애함을 알겠는가. 진실로 그것을 통달
하여 이것과 저것을 함께 보지 못한다면 응당 서로를 구제해 줌으로써 함께 [불
법을 올바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근기와 인연을 성숙시켜 가야 할 것이다. 그것
은 마치 1만 줄기의 물줄기가 머리를 조아림에 바다에 이르지 않는 것이 없으며
문무백관이 일에 임함에 모두들 왕을 위해 힘 쓸 것이라 일컫는 것과 같다. 한
가닥 물줄기를 보호하고자 여러 물줄기를 막으려 한다거나 하나의 벼슬을 지키
고자 수많은 벼슬을 폐지하려 한다는 것은 보지 못했다. 본디 무릇 법왕이 교화
를 드리움에 여러 종류의 중생들을 통괄하여 끌어안고자 각각에 소임所任을 두
었으니, 소승의 율律은 예부와 형부의 권위에 비견되고 대승大乘은 재상의 임무
와 비슷하며 복을 짓는 일(營福)은 배나 수레를 조종하는 것과 같고 서적을 찬술
하는 일(製撰)은 마치 왕의 말을 관장하는 것과도 같다. 나라에서 모든 벼슬아치
가 함께 자신의 직분을 닦는 것은 우리 불교의 여러 종파들이 다투어 포교하는
것과 유사하니 과연 이 취지를 밝히면 어찌 이단異端임을 고집하겠는가. 응당 모
름지기 자기의 재능을 가늠하고 능력에 따라 포교할 것이니, 성품이 민첩하면 곧
겸하여 배우는 것이 최선일 것이고 지식이 얕다면 곧 오로지 하나의 부문만 하여
도 마땅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비록 각각 교화와 법도를 전파하더라도
함께 자비로운 구제를 이루어서 같이 화합의 바다로 돌아갈 것이며 함께 해탈의
자리에 앉을 것이니, 무릇 이와 같다면 곧 참으로 미로의 나침판이며 교문敎門의
목탁일 것이다.
스승의 지위에 자리하여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가 없으면 불과佛果에 나아가
는데 결정코 의심스럽지 않으리니, 너희는 작디작은 견해와 지식을 자랑하거나
크디크게 나의 거만을 세워서 선각자들을 업신여기거나 뒤에 오는 사람들을 현
혹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비록 말하기를 [옛 말을] 듣고 [옛 글을] 찾아보는 것이
허물을 보완하지 못한다 하지만 말 가운데 혹시라도 맞는 것이 있다면 너희들은
그것을 생각하라.
【1】智圓法師, 字無外, 錢塘.徐氏子. 居杭州.孤山寺, 學者歸之如市. 自號中庸子.
【2】取名曰聲, 厚己曰利.
【3】不壞正法曰流, 無所壅滯曰通.
【4】《記》曰: [修身踐言, 謂之善行.] 註: 修治其身, 踐行其言, 是爲善行也.
【5】《語》曰: [用之則行, 捨之則藏.]
【6】否, 閉塞也, 天地不交而萬物不通也. 以一人言之, 則陰陽不合, 氣血不通, 表裡失度也, 物不可
以終通也. 屯, 難也, 剛柔始交而難生, 萬物始生, 屈而未申之象也.
【7】佛, 昔爲雪山童子, 求法而行, 天帝化爲羅刹, 說半偈, 又欲畢聞下半, 忘身而求. 見《涅槃經》.
善財童子, 初從文殊發心, 遂南行百城, 參五十三善知識. 見《華嚴經》.
【8】《書》云: [若升高, 必自下; 陟遐, 必自邇.] 註云: 行遠必自邇, 登高必自卑, 進德修業, 得如此也.
【9】獨善不失其身, 兼善不失其望.
【10】講道之所, 衆集如市肆, 故云講肆.《肇論》云: [學處, 陳列書史如市中陳列貨物也.] 後漢.張
楷, 字公超, 學徒隨之, 所居如市, 故今講學處, 稱肆焉.
【11】若有正解高行則人皆畏而敬之, 言無一可畏之解行也.
【12】《詩》<大雅>蕩之篇. 靡, 無也; 鮮, 小也; 克, 能也. 有始無終, 乃人之常情也.
【13】上善不待敎, 中人聞語而改, 下愚聞不遷. 故, 指中人, 一以誡之也.
【14】律詮於戒, 論詮於慧, 律論分其宗.
【15】《華嚴》云: [無不從此法界流, 無不還歸此法界.] 是同歸法界也.
【16】權, 執也.
【17】律制: 比丘, 五夏以前專精律部, 然後學經論. 今但習經論者, 以律學爲棄物也.
【18】比丘戒爲行本, 不能由之而但尙經論之學故, 謂爲憑虛.
【19】《傳》曰: [江 漢朝宗于海.] 謂江 漢之勢, 奔趨於海, 若諸候之朝宗於王也. 春見曰朝, 夏見曰
宗, 言諸宗融會於心海也.
【20】勤王, 如《詩》云[ 掌王事, 王事靡 ]之類是也. 掌, 失容也, 言王事煩勞, 不假爲儀容也.
音固, 不堅也, 言王事不可不堅固也.
【21】如禮部 刑部, 所執之權柄也.
【22】鈞, 陶鈞也. 陶家謂轉者爲鈞, 盖取周回均調之義. 言宰相法天而統百官馭萬民, 亦猶陶人轉鈞
也. 衡, 阿衡, 號伊尹曰阿衡. 阿倚也, 衡平也, 言依倚而取平也.
【23】舟運曰漕, 車運曰輓.
【24】如左史知製誥典翰之類, 掌記王言也.
【25】能, 獸名, 形色似熊, 其足似鹿, 爲物堅中而力强故, 人之有賢才者, 皆爲之能也.
【26】專同.
【27】猷道也, 風聲也, 王者聲敎, 亦謂之風敎. 又化也, 萬物以風動 以風化, 今言風猷者, 謂化道聲
敎也.
【28】出纏名解, 離障名脫.
【29】周時越裳入貢, 迷其去路, 周公作指南車, 載之而歸.
【30】木鐸者, 金口木舌, 施政敎時, 所振以警衆者. 若金鐸則金口金舌. 春用木, 秋用金, 文用木, 武
用金, 時與事之不同也. 或木鐸所以循于道路, 言天使夫子失位, 周流四方, 以行其敎, 如木鐸
之循于道路也.
【31】伐者如伐木之伐, 凡人矜誇其能, 乃所以自伐其身. 故謂矜爲伐也.
【32】古云: 聽經尋論, 未補道, 未除過.
【1】지원법사는 자가 무외이며 전당 서씨의 아들이다. 항주의 고산사에 거처하니 학자들이 그
에게 귀의하여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스스로 중용자라 불렀다.
【2】명예를 취하는 것을 聲이라 하고, 자기를 두텁게 하는 것을 利라 한다.
【3】바른 법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을 流라 하고, 막히거나 엉기는 곳이 없게 하는 것을 通이라
한다.
【4】《기》에 이르기를 [몸을 닦고 말을 실천하는 것을 일컬어 善行이라 한다] 하고는 주석에,
그 몸을 닦아 다스리고 그 말을 실천하여 행하면 그것이 선행이 된다고 하였다.
【5】《어》에 말하였다. [사용하면 곧 行이요, 버리면 곧 藏이다.]
【6】否는 맥혀있음이니 하늘과 땅이 교류하지 못하고 만물이 통하지 못함이다. 한 사람의 예
를 들어 말한다면 곧 음양이 화합되지 않고 기혈이 통하지 않으니 겉과 속이 그 법도를
잃고 사물은 궁극적인 곳까지 통할 수가 없다. 屯은 어려움으로서 굳센 것과 부드러운 것
이 처음 교차하며 어렵게 생겨나는 것이니, 만물이 처음 생겨나며 굽어진 채 아직 펴지지
않은 모습이다.
【7】부처님이 예전에 설산의 동자로서 법을 구하며 다닐 때 천제가 나찰로 변화하여 게송의
절반을 얘기하자 또 그 절반을 마저 듣고자 하여 몸을 염두에 두지 않고 법을 구했다.《화
엄경》에 보인다.
【8】《서》에 이르기를 [만약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아래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먼 곳을 오르려
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고는 주석에, 멀리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하고 높이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하니 덕에 힘쓰고 업을
닦음도 이와 같아야 할 것이라 하였다.
【9】홀로 선하면 그 몸을 잃지 않음이요, 함께 선하면 그 희망을 잃지 않음이다.
【10】불도를 강의하는 곳에 대중이 모여든 것이 마치 저자거리 같은 까닭에 講肆라 했다.《조
론》에 이르기를 [배움의 장소에는 뭇 서적을 진열해 놓은 것이 마치 저자거리에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것과 같다] 하였다. 후한 때의 장해는 자가 공초인데 배우고자 하는 무리들
이 그를 따르며 거처하는 곳이 마치 저자거리 같았던 까닭에 지금에 학문을 강의하는 장
소를 肆라 일컫는다.
【11】만약 바른 견해와 높은 수행이 있으면 곧 사람들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고 공경할 것이니,
어느 한 가지도 두려워할 만한 견해나 수행이 없음을 말한다.
【12】《시경》의 <대아> 탕지편이다. 靡는 없다는 것이요, 鮮은 작다는 것이요, 克은 능히 행하
다는 것이다.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것은 곧 人之常情이다.
【13】상근기는 착하여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으며, 중근기는 인간다워 말을 듣고는 고치며, 하
근기는 어리석어 듣더라도 실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근기의 사람을 지적하여 한결
같이 경계하게 한 것이다.
【14】律은 戒에 대해 설명하고 論은 慧에 대해 설명하니 律과 論이 그 종파를 나누었다.
【15】《화엄》에 이르기를 [이 법계로부터 흘러나오지 않은 것이 없기에 이 법계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 없다] 하니 곧 함께 법계로 돌아감이다.
【16】權은 집착함이다.
【17】律에 제정되어 있기를, 비구는 여름 다섯 철 이전에는 오로지 律部를 정미롭게 한 연후에
經論을 배우라 하였다. 지금에 단지 경론 만을 배우는 자들은 律學을 쓰레기로 여긴다.
【18】비구는 계를 수행의 근본으로 여겨야 하거늘 능히 이렇게 하지 못하고 단지 경론 만을
숭상하여 배우는 까닭에 ‘헛된 것에 기대는 것으로 여긴다’고 일컬은 것이다.
【19】《전》에 이르기를 [江水와 漢水가 바다에 머리를 조아리며 모여든다] 하였으니 강수와 한
수의 형세가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마치 제후들이 왕에게 복종하는 것과 같음을 말
한다. 봄에 임금을 알현하는 것을 朝라 하고 여름에 알현하는 것을 宗이라 하니, 모든 종
파가 융합하여 마음의 바다에 모이는 것을 말한다.
【20】勤王이란《시경》에서 말한 [제왕의 일로 바쁘게 힘쓰다, 제왕의 일은 견고하고도 치밀하
다]라고 한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掌은 바른 몸가짐을 잃는 것인데, 왕의 일로 번거
롭고 수고로워 의례와 위용을 꾸미지 않음을 말한다. 의 음은 고(固)이며 견고하지 않
음이니 왕의 일은 불가불 견고해야 됨을 말한다.
【21】예부나 형부가 권력의 핵심을 쥐고 있는 것과 같다.
【22】鈞은 도공의 녹로이다. 도공들은 [그릇을 만드는 도구 가운데] 회전시키는 것을 일컬어
鈞이라 하니, 아마도 일정하게 회전하며 균등하게 조절한다는 의미를 취한 것일 것이다.
재상이 하늘을 본받아 백관을 통치하고 만백성을 부리는 것 역시 도공들이 鈞을 회전시
키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衡은 아형(은나라 이윤이 한 벼슬로 지금의 국무총리 같음)인
데, 이윤을 호칭하여 아형이라 하였다. 阿는 의뢰함이요 衡은 평평하게 함이니, 의지하고
기대어 공평을 취함을 말한다.
【23】배를 운행함을 漕라 하고 수레를 운행함을 輓이라 한다.
【24】좌사 지제고 전한 등과 같은 종류로서 왕이 하는 말을 관장하여 기록한다.
【25】能은 짐승 이름으로 형색은 곰과 흡사하고 그 다리는 사슴과 흡사한데, 그 종류됨이 굳세
고도 힘이 있는 까닭에 사람으로서 현명하고 재주가 있는 자를 모두 ‘能하다’고 한다.
【26】專과 같다.
【27】猷는 법도(道)이며 風은 소리(聲)이다. 왕의 聲敎는 또한 그것을 일컬어 風敎라 한다. 또
한 敎化이니 만물은 바람으로써 움직이고 바람으로써 변화되는 것이며, 지금에 風猷라
말한 것은 교화의 법도에서 聲敎를 일컬은 것이다.
【28】얽힌 것으로부터 빠져 나온 것을 解라 이름하고 장애를 벗어난 것을 脫이라 이름한다.
【29】주나라 때 월상이 들어와 공물을 바치고는 돌아가는 길을 잃어 버렸기에 주공이 지남거
를 만들어 그것을 싣고 돌아가게 하였다.
【30】목탁은 쇠로 된 입에 나무로 된 혀가 있는 것이니, 나라의 일이나 종교의 가르침을 베풀
때 흔들어서 대중들을 경계시키는 것이다. 만약 金鐸이면 곧 쇠로 된 입에 쇠로 된 혀이
다. 봄에는 나무를 사용하고 가을에는 쇠를 사용하며 문신들은 나무를 사용하고 무관들
은 쇠를 사용하는 등, 시기와 더불어 일삼는 것이 같지 않다. 혹은 목탁은 길로 돌아다니
는 까닭에, 하늘이 공자로 하여금 벼슬의 지위를 잃게 하고 사방을 두루 다니게 함으로써
그 가르침을 행하게 하는 것이 마치 목탁이 도로를 돌아다니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31】伐이란 나무를 베다(伐) 할 때의 伐과 같은데, 무릇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긍지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곧 스스로 그 몸을 베는 것이다. 그러므로 긍지를 가지고 자랑함은 베는
것이 된다고 말하였다.
【32】옛 사람이 이르기를, 경전을 듣거나 논장을 탐구하는 것은 도를 이룸을 돕는 것도 아니요
허물을 제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하였다.
周京師大中興寺道安法師遺誡九章
周京師[1]大中興寺.道安法師遺誡九章以訓門人, 其詞曰:[2] 敬謝
諸弟子等.[3] 夫出家爲道至重至難, 不可自輕, 不可自易. 所謂重
者, 荷道佩德, 仁負義, 奉持淨戒, 死而有已; 所謂難者, 絶世離
俗, 永割親愛, 廻情易性, 不同於衆. 行人所不能行, 割人所不能
割, 忍苦受辱, 捐棄軀命, 謂之難者, 名曰道人. 道人者, 導人也,
行必可履, 言必可法, 被服出家, 動爲法則, 不貪不諍, 不讒不慝,
學問高遠, 志在玄默, 是爲名稱.[4] 參位三尊,[5] 出賢入聖, 滌除精
魂.[6] 故得君主不望其報, 父母不望其力, 普天之人莫不歸攝, 捐
妻減養, 供奉衣食, 屈身俯仰, 不辭勞恨者, 以其志行淸潔, 通於
神明, 泊[7]虛白,[8] 可奇可貴. 自獲荒流, 道法遂替, 新學之人,
未體法則, 着邪棄正, 忘其眞實, 以小 爲智, 以小恭爲足, 飽食
終日, 無所用心, 退自推觀, 良亦可悲. 計今出家, 或有年歲, 經業
未通, 文字不決, 徒喪一世, 無所成名. 如此之事, 可不深思? 無
常之限, 非旦卽夕, 三塗[9]苦痛, 無强無弱. 師徒義深, 故以伸示,
有情之流, 可爲永誡.
주나라 수도의 대중흥사 도안법사가 경계의 글 아홉 문장을 지어 문중의 사람
들을 훈계하였으니 그 글에서 말하였다.
삼가 여러 제자들에게 말을 남기노라. 무릇 출가하여 도를 이루는 것은 지극히
소중하고도 지극히 어려우니 스스로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쉽게 여
기지 말아야 한다. 소중하다 일컫는 것은 도를 울러매고 덕을 지니며 인을 두르
고 의를 짊어져서 청정한 계를 받들어 지킴에 있어서 죽어서야 그만 둘 수 있기
때문이며, 어렵다 일컫는 것은 세상과 단절하고 속세를 떠나 어버이의 사랑을 영
원히 베어내며 정을 돌이키고 습성을 바꾸어 뭇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
다. 사람들이 능히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고 사람들이 능히 베어내지 못하는
것을 베어내며 괴로움을 참고 욕됨을 받아들이며 몸뚱이와 생명을 버리니 이를
일컬어 어렵다는 것이며, [이 같은 사람을] 이름하여 도인道人이라 말한다. 도인
이란 사람을 인도하는 것을 말하니 그 행위는 반드시 붙좇을 만 해야 하고 그
언행은 반드시 본받을 만 해야 하며, 승복을 입고 출가함에 움직이면 곧 법칙이
되어야 하며, 탐내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고 헐뜯지도 않고 간사하지도 않아야 하
며, 학문은 고매하고 뜻은 그윽이 침묵하는 곳에 두어야 하니 이것이 명성과 칭
찬이 된다. [이러한 분은] 삼존三尊의 지위에 오르며 현인의 단계를 나와서 성인
의 단계로 들어감에 정기와 혼백을 씻어버렸다. 그러므로 군주는 그 보답을 바라
지 않고 부모는 힘을 바라지 않으며 온 천하의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가 포섭되지
아니함이 없으니, 아내의 것을 덜고 [부모를] 봉양할 몫을 줄여서 옷과 음식을
공양하고 몸을 굽혀 우러러 받들며 힘든 노역을 사양하지 않음을 얻게 되는 것은
그 뜻과 행위가 청결하고도 신명神明과 통해 있으며 담박 泊하고도 허백虛白하
기에 기이하고도 귀하게 여길 만 하기 때문이다.
황당하고 유락流落한 경계를 얻음으로부터 도법이 마침내 쇠퇴하니 새로 배
우는 사람은 법칙을 미처 체득하지도 못한 채 사악함에 집착하여 올바름을 버리
며, 그 진실은 망각한 채 조그만 꾀로써 지혜로 여기고 작은 공경으로써 만족하
여 배불리 먹으며 하루해를 마치고도 마음 쓰는 바가 없음에 물러나 스스로 미루
어 살펴보면 진실로 또한 슬프도다. 지금의 출가를 헤아려 보니 혹은 햇수는 지
났으되 경전의 수업은 아직 통하지 못하고 문자도 판별하지 못한 채 다만 일생을
허비하여 이름을 이룬 바가 없다. 이와 같은 일을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겠는가.
무상한 죽음의 기한은 아침이 아니면 곧 저녁이며 삼도三塗의 고통은 강함도 없
고 약함도 없다. 스승과 제자의 뜻은 깊은 까닭에 이로써 펴 보이니 유정有情의
무리들은 영원한 경계로 삼을 것이다.
其一曰: 卿已出家, 永違所生, 剃髮毁容, 法服加形. 辭親之日,
上下涕零, 割愛崇道, 意凌太淸, 當遵此志, 經道修明. 如何無心,
故存色聲? 悠悠竟日, 經業不成, 德行日損, 穢積遂盈. 師友慙恥,
凡俗所輕, 如是出家, 徒自辱名. 今故誨勵, 宜當專精.
그 첫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으니 태어난 바를 영원히 어기는 것이라, 머리를 깎아
겉모양을 헐고 법복을 몸에 걸쳤다. 어버이를 이별하던 날에는 위아래가 모두 눈
물을 흘렸으니, 사랑을 베어 내고 도를 숭상함에 그 뜻은 맑디맑은 하늘을 능가
하였으니 응당 이 뜻을 따라 불도를 수행하여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까닭으로 여전히 빛과 소리에 머물러 있는가?
유유자적하며 나날을 마치니 불경을 익히는 일은 이루지 못하고 덕행이 날로 줄
어듦에 더러움은 쌓여서 마침내 넘치기에 이르렀다. 스승과 벗에게는 부끄럽고
도 부끄러우며 범부나 속인들이 업신여기는 바가 되니, 이와 같은 출가는 다만
그 이름을 스스로 욕되게 할뿐이다. 이제 그러므로 가르쳐 격려하나니, 마땅히
전심전력으로 정진해야 할 것이다.
其二曰: 卿已出家, 棄俗辭君, 應自誨勵, 志果靑雲. 財色不顧,
與世不群, 金玉不貴, 惟道爲珍. 約己守節, 甘苦樂貧, 進德自度,
又能度人. 如何改操, 趨走風塵, 坐不暖席, 馳 東西? 劇如 役,
縣官所牽, 經道不通, 戒德不全. 朋友蚩弄, 同學棄捐, 如是出家,
徒喪天年. 今故誨勵, 宜各自憐.
그 두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세속을 버리고 임금을 하직하니, 응당 스스로 가르
치고 격려하여 푸른 구름 이루기를 마음먹어야 할 것이다. 재물이나 여색은 돌아
보지 않아서 세속과 더불어 무리 짓지 말며 금은 보석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오
직 도道를 진귀한 것으로 여기며, 자기를 검약하게 하고 절도를 지키며 괴로움을
달게 여기고 가난을 즐겨 하며 덕스러움에 나아가 스스로를 제도하고 또한 능히
다른 사람을 제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절조를 고치고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 속을 내달리며, 앉음에
자리가 따뜻해지지도 않아서 동쪽으로 서쪽으로 질주하는가? 그 심하기가 마치
부역을 부림에 있어 관청의 관리가 소매를 끌 듯하니, 경전의 도는 통하지 못하
고 계율의 덕은 온전하지 않게 된다. 벗들은 업신여겨 희롱하고 같은 학우들은
꺼려서 멀리할 것이니 이와 같은 출가는 다만 세월만 허비할 뿐이다. 이제 그러
한 까닭에 가르쳐 격려하나니, 마땅히 각자는 스스로를 가련히 여겨야 한다.
其三曰: 卿已出家, 永辭宗族, 無親無疎,[10] 淸淨無欲. 吉則不
歡, 凶則不 , 超然縱容, 豁然離俗. 志存玄妙, 軌眞守樸, 得度廣
濟, 普蒙福祿. 如何無心, 仍着染觸? 空諍長短, 銖兩升斛,[11] 與
世爭利, 何異 僕. 經道不明, 德行不足, 如是出家, 徒自毁辱. 今
故誨示, 宜自洗浴.
그 세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영원히 종족宗族과 헤어진 것이니 친함도 없고 성
김도 없음에 청정하여 욕심이 없게 되었다. 행운이 있더라도 기뻐하지 않으며 재
난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지 않으니 초연하고도 조용한 모습은 활연히 세속을 떠
났음에, 뜻은 현묘한 곳에 두고서 참된 것을 따르고 질박한 것을 지키며 득도하
여 널리 제도함으로써 두루 복록을 입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채 여전히 물들고 더러움에 집착되어 있는가.
공연히 길고 짧음을 다투며 세상의 모든 척도로써 세속과 더불어 이익을 따지니
어찌 머슴이나 종과 다를 바가 있겠는가. 경전의 도에는 밝지 못하고 덕스러운
행위는 부족하니 이와 같은 출가는 다만 스스로를 허물고 욕되게 할뿐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가르쳐 보이나니, 마땅히 스스로 씻어 내어 목욕할지어다.
其四曰: 卿已出家, 號曰道人, 父母不敬, 君帝不臣. 普天同奉,
事之如神, 稽首致敬, 不計富貧. 尙其淸修, 自利利人, 減割之重,
一米七斤. 如何怠慢, 不能報恩, 倚縱遊逸, 身意虛煩? 無戒食施,
死入泰山, 燒鐵爲食, 融銅灌咽, 如斯之痛,《法句》所陳. 今故誨
約, 宜改自新.[12]
그 네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일컬어 도인道人이라 부르니, 부모에게는 공경을
표하지 않고 임금에게는 신하 노릇을 하지 않는다. 온 천하가 함께 받듦에 있어
섬기기를 마치 신神과 같이 하며 머리를 조아려 공경을 다함에 있어 부귀와 빈천
을 헤아리지 않으니 오로지 청정한 수행을 숭상하여 스스로 이롭게 되고 또한
남도 이롭게 해야 할 것임에, 감하고 덜어 낸 은혜의 막중함은 쌀 한 톨에 일곱
근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태만함으로써 능히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 방종하여 노니
는 것에만 치우쳐 몸과 생각을 부질없이 번거롭게 하는가? 계행戒行도 없이 시
주물을 먹으면 죽어서 태산지옥에 들어가 달군 쇠로 음식을 삼고 동을 녹여 목구
멍에 부을 것이니, 이와 같은 고통은《법구경》에 진술된 바이다. 이제 그러한 까
닭에 가르쳐 약속하나니, 마땅히 고쳐서 스스로 새롭게 되어야 할 것이다.
其五曰: 卿已出家, 號曰息心, 穢雜不着, 惟道是欽, 志參淸潔,
如玉如氷. 當修經戒, 以濟精神, 衆生蒙祐, 幷度所親. 如何無心,
隨俗浮沈, 縱其四大, 恣其五根. 道德遂淺, 世事更深, 如是出家,
與世同塵. 今故誡約, 幸自開神.
그 다섯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일컬어 마음을 쉬는 사람(息心)이라 부르니, 더럽
거나 잡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오로지 도道만을 흠모할 것이며 청결에 참여할
뜻을 두어서 마치 옥과 같이 하고 마치 얼음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응당 경의經
義와 계행戒行을 닦아서 자신의 정신을 제도하면 중생들은 도움을 입을 것이고
아울러 가까운 자들도 제도가 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채 세속을 따라서 뜨고 가라앉기를 거듭하며 사
지四肢를 풀어놓고 오근五根을 마음대로 놓아두는가? 이에 도와 덕은 마침내 얕
아지고 세상의 일만 더욱 깊어지니, 이와 같은 출가는 세속과 더불어 그 티끌을
함께 덮어 쓸 뿐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경계하여 제약하나니, 바라건대 스스
로 정신을 차려야 할 것이다.
其六曰: 卿已出家, 捐世形軀, 當務竭情, 泥洹合符. 如何擾動,
不樂閒居, 經道損耗, 世事有餘, 淸白不履, 反入泥途? 過影之命,
或在須臾, 地獄之痛, 難可具書. 今故戒勵, 宜崇典謨.[13]
그 여섯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세속의 육체를 버린 것이니 응당 힘써 정情을 고갈
시킴으로써 열반에 부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지럽게 움직일 뿐 조용히 거처함을 즐기지 않고, 경전의
도는 덜어내 소모하되 세속의 일에는 남김이 있으며, 맑고도 밝은 것은 밟지 않
고 도리어 진흙길로 들어서는가? 지나치는 그림자와 같은 목숨은 혹은 잠깐 사
이에 있을 뿐이나 지옥의 고통은 글로 다 쓰기 어렵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경계
하고 격려하나니, 마땅히 옛 어른들의 좋은 말씀을 숭상해야 할 것이다.
其七曰: 卿已出家, 不可自寬. 形雖鄙陋, 使行可觀, 衣服雖序,
坐起令端, 飮食雖疎, 出言可餐. 夏則忍熱, 冬則忍寒, 能自守節,
不飮盜泉,[14] 不肖之供, 足不妄前, 久處私室, 如臨至尊, 學雖不
多, 可齊上賢. 如是出家, 足報二親, 宗親知識,[15] 一切蒙恩. 今
故誡汝, 宜各自敦.
그 일곱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스스로 관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형체는 비록 비루
하더라도 행위는 가히 볼만하게 해야 하며, 의복은 비록 누추하더라도 앉고 일어
서기를 단정하게 해야 하며, 음식은 비록 소박하더라도 말을 할 때는 먹음직스럽
게 해야 할 것이다. 여름이면 곧 더위를 참고 겨울이면 곧 추위를 참으며, 능히
스스로 절조를 지킴에 도천盜泉의 샘물은 마시지 않으며, 실답지 못한 공양에는
발길을 망령되게 앞세우지 않으며, 오랫동안 혼자 있는 방에 거처하더라도 마치
지극히 존귀한 사람 앞에 이른 듯 한다면 배움은 비록 많지 않더라도 옛 현인들
과 가히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출가는 족히 양친의 은혜에 보답하
고 종친과 아는 이들이 모두 은혜를 입을 것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그대에게
경계하나니, 마땅히 각자는 스스로 도탑게 해야 할 것이다.
其八曰: 卿已出家, 性有昏明, 學無多少, 要在修精. 上士坐禪,
中士誦經, 下士堪能塔寺經營,[16] 豈可終日, 一無所成? 立身無
聞, 可謂徒生. 今故誨汝, 宜自端情.
그 여덟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품성은 어두운 이와 밝은 이가 있으나 배움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중요한 것은 수행을 정밀하게 하는 데 있다. 윗근기를 가진 선
비는 좌선을 하고 중간 근기를 가진 선비는 경전을 외우며 아랫근기를 가진 선비
는 탑과 절을 능히 경영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종일토록 할 수 있다면 어찌
하나도 이루어지는 것이 없겠는가? 몸을 일으켰으나 알려지는 바가 없다면 헛되
이 살았다 할 것이다. 이제 그러한 까닭에 그대에게 가르치나니, 마땅히 스스로
뜻을 단정히 하라.
其九曰: 卿已出家, 永違二親, 道法革性, 俗服離身. 辭親之日,
乍悲乍欣, 邈爾絶俗, 超出埃塵, 當修經道, 制己履眞. 如何無心,
更染俗因? 經道已薄, 行無毛分, 言非可貴, 德非可珍, 師友致累,
喪恨日殷, 如是出家, 損法辱身. 思之念之, 好自將身.
그 아홉 번째로 말한다.
그대가 이미 출가하였음에 오래도록 양친을 어기는 것이니, 도법으로 성품을
개혁하고 속세의 옷을 몸에서 떨구어 내었다. 어버이를 하직하던 날 잠깐은 슬퍼
하기도 하고 잠깐은 기뻐하기도 하였지만 멀리 세속을 끊어 내고 티끌에서 멀리
벗어났으니 응당 경전의 도를 수행하여 자신을 억제하고 참된 것을 뒤밟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에 무심한 채 다시 세속의 인연에 물들려고 하는가? 경전
의 도는 이미 엷어지고 올바른 행은 털끝만큼도 없으며 말은 고귀한 것이 아니고
덕은 보배로운 것이 아님에 스승과 벗에게 누累가 되기에 이르러 원망만이 날로
더해지니, 이와 같은 출가는 법을 덜어내고 몸을 욕되게 할뿐이다. 이를 생각하
고 이를 염두에 두어 스스로 몸을 잘 거느릴 지어다.
【1】京大也, 師衆也, 天子所居, 必以衆大言之也.
【2】晋.道安, 姓魏, 此師姓姚氏.
【3】《淨名》 云: [師之謙光, 處資如弟子.] 則捨父從師, 如子事父. 又學從師後曰弟, 解從師生曰子.
【4】外聞之聲曰名, 犀於內實曰稱.
【5】位參僧寶.
【6】洗滌掃除心識也.
【7】 泊一作澹泊也, 恬靜無爲 .
【8】虛白,《莊子》虛室生白.
【9】三塗者,《四解脫經》以三塗對三毒: 一, 火塗瞋忿; 二, 刀塗?貪; 三, 血塗愚癡也.
【10】愛而近之曰親, 惡而遠之曰疎, 言無愛惡之念, 平等持心也.
【11】《律歷志》云: [權者, 所以知輕重, 本起於黃鍾. 黃鍾一 , 容千二百黍, 重十二銖: 二十四銖爲
一兩, 十六兩爲一斤, 三十斤爲一鈞, 四鈞爲一石. 量者, 合 升 斗 斛也: 千二百黍爲 ,
十爲合, 合十爲升, 升十爲斗, 斗十爲斛.]
【12】日新又日新.
【13】[典]主記事故, 堯 舜皆載其實; [謨]主記言故, 禹 皐陶則載其謨. 此言兩字通爲法則.
【14】廣州有水, 名曰盜泉, 一 懷千金, 如西國痴水也.
【15】流派所出爲宗, 姻眷爲親, 見面爲知, 聞名爲識.
【16】《無爲經》云: [沙門有三輩, 坐禪爲上, 誦經爲中, 助衆爲下.]《瑜伽論》云: [無二利行者, 下
士; 有自利無利他行者, 中士; 有二利行者, 名上士.] 經營者, 經謀爲也, 營量度也. 又縱橫爲
經, 回旋爲營也.
【1】京은 크다는 것이요 師는 대중의 무리를 말하니, 천자가 거처하는 곳은 반드시 무리를 이
룬다는 말과 크다는 말로써 일컫는다.
【2】진나라 도안법사는 성이 위씨요 이 법사의 성씨는 요씨이다.
【3】《유마경》의 소에 이르기를 [선사의 겸손한 빛은 헤아려 살펴봄이 마치 弟子와 같았다] 하
였으니, 곧 부친을 버리고 스승을 따름에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음이다. 또,
배움에 있어서는 스승의 뒤를 좇는 까닭에 弟라 하고, 그 견해는 스승을 좇아 생겨나는 까
닭에 子라 한다.
【4】겉으로 들려오는 명성을 名이라 하고, 내실에 부합되는 것을 稱이라 한다.
【5】그 지위가 승보에 참여하게 됨이다.
【6】마음의 識을 세척하고 소제함이다.
【7】 泊은 澹泊으로 되어 있기도 한데 편안하고 고요하며 굳이 행함이 없는 모습이다.
【8】虛白이란《장자》에서 말한 虛室生白(방이 비면 밝다는 뜻으로, 사람의 마음도 망상이 들
어가지 않으면 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이다.
【9】三塗는《사해탈경》에서 三塗로써 三毒에 대응시켰으니, 첫째로 불이 치솟는 길은 화내고
성냄이라 하였고, 둘째로 칼날이 우뚝 솟은 길은 아끼고 탐냄이라 하였고, 셋째로 피가 가
득 찬 길은 어리석고 미련함이라 하였다.
【10】사랑하기에 가까이 하는 것을 親이라 하고 싫어하기에 멀리 하는 것을 疎라 하니, 좋아하
고 싫어하는 생각이 없이 평등하게 마음을 유지함을 말한다.
【11】《율력지》에 말하였다. [저울추(權)란 그것으로써 무겁고 가벼움을 알 수 있는데 본래 黃
鍾에서 기원한다. 黃鍾 1약은 그 용량이 1천2백 알의 기장을 담을 수 있으며 무게는 12수
이니, 24수가 1량이 되고 16량이 1근이 되며 30근이 1균이 되고 4균이 1석이 된다. 분량
을 나타내는 것은 약합승두곡 등이니, 기장 1천2백 알이 1약이 되고 10약은 1합이 되고
10합은 1승이 되고 10승은 1두가 되고 10두는 1곡이 된다.]
【12】하루가 새롭고 또 하루가 새롭게 되다.
【13】典은 주로 어떤 일을 기록하는 까닭에 요임금과 순임금은 모두 그들의 실록을 기재하였
고, 謨는 주로 말을 기록하는 까닭에 우임금과 고도는 곧 그들의 책략을 기재하였다. 이
는 두 글자가 ‘법칙’으로 통용됨을 말한다.
【14】광주에 샘이 있어 ‘도둑놈 샘(盜泉)’이라 이름하는데 한 모금 마시면 1천금의 횡재를 꿈
꾸게 되는 것으로 서쪽 나라에 있다는 ‘어리석은 물(痴水)’과도 같다.
【15】부류와 파벌이 시작되어 나온 곳이 宗이 되고, 혼인으로 맺어진 권속들이 親이 되며, 보
고 마주했던 것이 知가 되고, 듣고 이름했던 것이 識이 된다.
【16】《무위경》에 이르기를 [사문은 세 무리가 있으니 좌선하는 이들을 가장 위로 치고 경전
읽는 이들을 중간으로 치며 대중을 돕는 이들을 아래로 친다] 하였으며,《유가론》에 이
르기를 [둘에 모두 이익됨이 없이 행하는 자를 아래 근기의 선비라 하고, 스스로에게는
이로움이 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이로움이 없이 행하는 자를 중간 근기의 선비라 하고,
둘 모두에게 이롭게 행하는 자를 이름하여 윗 근기의 선비라 한다] 하였다. 經營의 經은
헤아려서 무엇을 하는 것이요 營은 재량하고 헤아림이다. 또한 가로와 세로로 놓인 것이
經이 되고 빙글빙글 두른 것이 營이 된다.
梁高僧 法主遺誡小師[1]
塵世匪堅, 浮生不久. 我光陰以謝, 汝齒髮[2]漸高, 無以世利下
其身, 無以虛名苟其利. 莫輕仁賤義, 莫嫉善妬才,[3] 莫抑 無辜,
莫沈埋有德. 莫疎 人事, 莫懶惰焚修, 莫耽 睡眠,[4] 莫强知他
事. 莫空腹高心, 莫營私利己, 莫恃强欺弱, 莫利己損他. 無以長
而慢後生, 無以少而欺老宿, 無以財華下視物, 無以意氣高揖人.[5]
無以不善苦相親, 無以善而却憎惡, 無以片能稱我是, 無以少解道
他非. 無以在客慢主人, 無以爲主輕旅客, 無以在事失綱紀,[6] 無
以 幻衆[7]破條章, 無以誹謗怪他人, 無以穿鑿覓他過. 好向佛法中
用意, 多於塵境上除情. 袈裟下失却人身, 實爲苦也, 捺落裡受諸
異報, 可謂屈焉.[8] 端拱無爲, 安閑不役, 徐行金地, 高坐華堂,
足不履泥, 手不彈水, 身上衣而口中食, 豈易消乎? 圓却頂而方却
袍, 爲何事也? 其或剛柔得所,[9] 進退含容,[10] 堪行卽行,[11] 可止
須止,[12] 無貪眼下, 數省時中, 一點相當, 萬金消得. 予以千 萬
囑, 苦口甘言,[13] 依予言者, 來世相逢, 若不依予言者, 擬向何處
出頭! 珍重珍重.
티끌 세상은 견고한 것이 아니며 구름 같은 삶은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세월
따라 물러가고 너희는 나이가 점차 높아지니, 세상의 이익 때문에 그 몸을 낮추
는 일이 없어야 하고 헛된 이름 때문에 그 이익을 구차하게 구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어진 이를 가벼이 여기거나 의로운 이를 천하게 여기지 말며, 착한 이를
시기하거나 재주 있는 이를 질투하지 말며, 무고한 사람을 물리치거나 억누르지
말며, 덕 있는 사람을 매장하지 말라. 사람과의 일에 성글거나 게으르지 말며, 향
을 사르고 수행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며, 잠에 지나치게 빠지지 말며, 남의 일을
굳이 알려고 하지 말라. 빈배에 마음만 높이 가지지 말며, 사사로움을 도모함으
로써 자신을 이익 되게 하지 말며, 강한 것을 믿고서 약한 것을 기만하지 말며,
자신을 이롭게 하고자 하여 남에게 손해를 입히지 말라.
어른이라 하여 후생들을 업신여김이 없어야 하며, 젊었다 하여 나이 많은 이들
을 기만함이 없어야 하며, 재물과 영화가 있다 하여 남을 깔봄이 없어야 하며,
의기가 있다 하여 남에게 거만하게 읍(揖)함이 없어야 한다. 착하지 못한 몸으로
애써 상대와 친하고자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착하고자 하여 도리어 악한 이를
미워하여 물리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조그만 능력으로써 내가 옳다고 일컫는 일
이 없어야 하며, 조그만 견해로써 다른 이의 그릇됨을 말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손님으로 있으면 주인에게 거만히 구는 일이 없어야 하며, 주인이 되어서는 손님
을 업신여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 일을 함에 있어서는 기강을 잃는 일이 없어야
하며, 대중을 어김으로써 조장條章을 깨뜨리는 일이 없어야 하며, 비방함으로써
남을 의심스럽게 만드는 일이 없어야 하며, 억지를 부림으로써 남의 허물을 들춰
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슬기롭게 불법佛法을 향해 가는 가운데 마음을 쓸 것이
며 티끌의 경계 위에서 자주 세속의 정情을 제거하라.
가사袈裟 아래에서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은 실로 고통이 될 것이며 지옥 안에
서 온갖 기이한 과보를 받는 것은 가히 굴욕이라 일컬을 것이다. 하물며 단정히
팔짱을 끼고서 하는 일도 없이 편안하고 한가로이 노역도 하지 않은 채 절간을
서서히 노닐며 화려한 법당에 높이 앉아서, 다리로는 진흙을 밟지 않고 손으로는
물을 퉁기지 않으니 몸에 걸친 옷이며 입에 넣은 음식을 어찌 쉽사리 소화해 내
겠는가. 정수리를 둥글게 하고 소매를 모나게 한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그 가운
데 혹 강하고 부드러움이 언제나 그 마땅한 바를 얻어서 나아가고 물러섬에 넉넉
함을 감싸안아 감히 행할 만한 것은 곧 행하고 가히 그칠 것은 모름지기 그치며
눈앞의 것을 탐하는 일이 없이 그런 가운데 자주 살펴보아 한 점이 서로 마주치
면 황금 만냥이라도 녹여 낼 것이다.
내가 1천 번을 부탁하고 1만 번을 당부하며 쓰디쓴 입으로 달디달게 말하나니
나의 말에 의지하는 자는 내세에 서로 만날 것이지만 만약 나의 말에 의지하지
않는 자는 어느 곳을 향하여 머리를 내밀려 하는가? 진중하고 진중할 것이로다.
【1】 稱同. 受具而未滿十歲, 猶稱小師.
【2】年臘也.
【3】害賢曰嫉, 忌才曰妬. 又徇自名利, 不耐他榮曰嫉妬.
【4】睡眠之魔, 雖氷床雪被, 不覺中來, 令人無力, 厚敷茵席, 伸脚大臥, 則安能却之. 所以熟眠沈
溺, 猶如死人, 不知夜之旦 日之暮, 何暇攝心做工乎? 故, 戒莫沈 耳. 有五過: 一, 多有惡
夢; 二, 諸天不護; 三, 心不入法; 四, 不思明相; 五, 喜出精. 音勉.
【5】長揖者, 擧兩手而揖, 高揖者, 但擧一手而揖, 謂倨傲也.
【6】綱張也, 紀理也. 大綱小紀, 所以張理上下, 整齊衆僧也.
【7】 幻拗同, 音了, 固相違也.
【8】捺落, 具云捺落迦, 此蒜不可量, 又云極苦處, 苦具在地之下故, 稱地獄也. 異報者, 異之言多
也, 受種種諸苦報也.
【9】《素書》云: [剛有所施, 柔有所設.] 註云: 不妄設也, 如處女, 柔有所設也, 如脫兎, 剛有所施也.
【10】含容謂包函也, 進退行止, 可以寬裕, 少無刻急也.
【11】進也.
【12】退也.
【13】言之悅於耳者曰甘言.
【1】 은 稱과 같다. 구족계를 받았으나 10세 미만이면 小師라 일컫는다.
【2】연랍이다.
【3】어진 이를 해코지하는 것을 嫉이라 하고 재주 있는 이를 시기하는 것을 妬라 한다. 스스로
는 명리를 드러내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의 영예로움은 참지 못하는 것을 嫉妬라 한다.
【4】睡眠이라는 마구니는 비록 얼음침상에 눈 이불을 덮고 있다 하더라도 느끼지도 못하는 사
이에 와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거늘, 하물며 자리를 두텁게 깔고서 다리를 펴고 널찍하
게 누워 있으면서 어찌 능히 물리치겠는가. 그러한 까닭에 숙면에 깊이 빠져 있음은 흡사
죽은 사람과도 같이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날이 밝는 줄도 모르는데 어느 겨를에 마음을
수습하고 일을 해내겠는가. 그러므로 [잠에] 깊이 빠져들지 말라고 경계한 것이다. 항차
[과도한 수면에] 다섯 가지 허물이 있으니, 첫째는 악몽이 많음이요, 둘째는 모든 천신이
보호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마음이 법에 들어가지 못함이요, 넷째는 밝은 相을 생각하지
못함이요, 다섯째는 精을 내기 좋아함이다. 의 음은 면(勉)이다.
【5】長揖이란 두 손을 들어 읍하는 것이요, 高揖이란 단지 한 손을 들어 읍하는 것으로서 거만
함을 일컫는다.
【6】綱은 펼친다는 것이요 紀는 다스린다는 것이다. 大綱小紀는 그것으로써 위아래를 펼쳐 다
스리고 대중 스님들을 가지런히 하는 바이다.
【7】 幻는 拗와 같으며 음은 료(了)이니, 서로 어긋남을 고집하는 것이다.
【8】나락은 갖추어 말하면 ‘나락가’로서 이곳 말로 번역하면 ‘헤아릴 수 없음’ 또는 ‘지극히 고
통스러운 곳’인데, 고통은 모두 땅 밑에 있는 까닭에 지옥이라 일컫는다. 異報란 異가 종류
별로 많음을 말하니 각종의 모든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9】《소서》에 이르기를 [굳셈도 베풀어주는 바가 있고 부드러움도 베풀어주는 바가 있다] 하
고는 주석에서 허망하게 베풀지는 않음이라 하였으니, 마치 처녀는 그 부드러움으로 베푸
는 바가 있고 그물을 빠져 도망하는 토끼는 굳셈으로 베푸는 바가 있음과 같은 것이다.
【10】含容은 포함하여 감싸고 있음을 일컬으니, 나아가고 물러서며 행하고 그침에 있어서 관
대하고 너그러울 수 있으므로 조금도 각박하거나 성급함이 없음이다.
【11】나아감이다.
【12】물러섬이다.
【13】말하여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을 甘言이라 한다.
鍾山鐵牛印禪師示童行法晦[1]
唐.則天.延載元年五月十五日, 始括天下僧尼, 隸祠部; 玄宗.天
寶六年, 制所度僧尼, 令祠部給牒; 肅宗至德元年, 祠部牒賜, 功
臣賣始.[2] 以此論之, 延載前, 爲僧依天竺法, 有行業堪任受道者,
惟師攝授. 如唐宮使會通[3]謁鵲巢.道林禪師曰: [弟子不願爲官,
志慕出家, 願和尙攝授.] 道林曰: [今時爲僧, 行多浮濫.] 通曰:
[本淨非琢磨, 元明不隨照.] 道林曰: [汝若了淨智妙圓, 體自空
寂, 卽眞出家, 何假外相?] 通曰: [願垂攝授, 誓遵師敎.] 道林乃
與剃落. 後來行業旣濫, 檢制興焉, 自然之理. 所以, 黃面老子以
法付囑國王大臣, 盖以此也. 今國朝聖澤洪 , 特使穹其價者, 政
所以重敎尊僧, 貴尙其法也. 明敎.嵩禪師曰: [夫僧也者, 其防身
有戒, 攝心有定, 辨明有慧. 有威可敬, 有儀可則, 天人望而儼然.]
近世多輕僧, 固僧人自取. 然, 披僧伽梨者, 非數世願力之重 夙熏
種智之成熟, 未易得也. 如本朝王文正公旦, 臨薨背時, 悔當初錯
了路頭不作僧, 乃囑令諸子, 爲削其鬚髮 衣以僧家三衣然後入棺,
要第二世出頭來使成僧, 仍囑侍朗楊大年, 主其治命. 後, 楊以宰
臣薨背, 國家自有典故, 雖不從所請, 只以三衣剃刀置之棺中. 楊
亦自悔, 竟參禪宗, 了悟自心, 被旨詳定《景德傳燈錄》, 流布西天
此土.[4] 噫! 爲僧之難, 有如此者. 若是大丈夫漢, 興決烈之志, 屛
浮濫之行, 從脚 下一刀兩段, 向佛祖外一 便透, 身心俱了亦不
爲難, 亦不患護身符子不入手,[5] 所以道: [高山流水深深意, 自有
知音笑點頭.] 法晦致身寶公道場有年, 其爲人謹愿朴厚, 有決烈
之志, 無浮濫之行, 今謀進納爲僧, 敬投敬信, 英偉特達. 大賢揮
金,[6] 助成其志. 以此軸求警策, 因縷縷示之, 亦欲世間賢士大夫,
興重敎尊僧之心, 知前輩雖爲富貴所折困, 末後亦有悔之者. 歲在
己未中秋, 住鍾山.鐵牛.
당나라 측천의 연재 원년 5월 15일에 처음으로 천하의 비구와 비구니를 총괄
하여 사부祠部에 예속시켰으며, 현종 천보 6년에 득도한 비구와 비구니를 통제하
여 사부로 하여금 도첩度牒을 주게 하였으며, 숙종 지덕 원년에 사부에서 도첩을
내려주어 공신들이 팔기 시작하였다.
이로써 논하건대 연재 이전에 승려가 될 때는 천축의 법도에 의지하여 행업行
業이 도를 물려받기를 감당할 만한 자가 있으면 오직 스승이 받아들여 계를 주었
을 뿐이다. 마치 당나라 때의 궁사 회통이 작소 도림선사를 뵙고 이르기를 [제자
는 벼슬아치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뜻에 출가하기를 바라니 원하건대 스님
께서 받아들여 주십시오] 하니 도림이 이르기를 [지금 시기에 승려가 된 자들은
그 행실이 대체로 들뜨고 외람되다] 하므로 회통이 이르기를 [본디 맑은 것은
쪼아 갈지 않으며 원래 밝은 것은 비추는 빛을 따라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하
기에 도림이 이르기를 [네가 만약 깨끗한 지혜는 오묘하게 원만하며 그 실체는
스스로 비어있고도 고요한 것임을 알았다면 그것이 곧 참된 출가인데 어찌 겉모
습을 빌리려 하는가?] 하니 회통이 이르기를 [원하건대 받아들여 주십시오. 맹세
코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하므로 도림이 이에 머리를 깎아 주었던
일과 같은 것이다. 뒤로 오면서 행업이 외람되게 되자 검사 제도가 일어나게 되
었으니 자연스런 이치이다. 그러한 까닭에 금빛 얼굴의 노자께서 법으로써 국왕
과 대신들에게 부촉한 것은 대개 이러한 때문이다.
이제 이 나라 조정의 성스러운 은택이 넓고도 크니 특별히 그 가치를 높이고
자 하는 까닭에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스님을 존숭하며 그 법을 귀하게 여겨
숭상하는 것이다. 명교 숭선사가 이르기를 [무릇 승려라는 자는 몸을 방어함에
계戒가 있고 마음을 거두어들임에 정定이 있으며 사건을 분별하여 밝힘에 혜慧
가 있다. 위엄威嚴이 있기에 가히 공경할 만하며 의용儀容이 있기에 가히 본받을
만하므로 하늘과 사람이 우러러보아 엄연히 여기는 것이다] 라 하였으니 근세에
대체로 승려를 경시하는 것은 진실로 승려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승가
리僧伽梨를 걸친다는 것은 여러 생에 걸친 원력의 막중함과 일찍이 심어 둔 지혜
의 종자가 성숙되지 않고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본 조정의 왕인
문정공 단이 세상을 하직하려 할 때 애초에 길을 그르쳐서 승려가 되지 못한 것
을 후회하며 이에 뭇 아들에게 부촉하여 명하기를 그의 수염과 머리털을 깎게
하고 승려 집안의 세 가지 가사를 입힌 연후에 입관하게 하여 다음 생에 태어나
서는 승려가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으며, 아울러 시랑 양대년에게 부촉하여
그 유언을 주관하게 하였다. 후에 양대년이, 재신宰臣으로 죽었으면 나라에는 예
로부터 엄연한 법도가 있다 하여 비록 요청한 바대로 따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세 가지 가사와 삭발에 쓰이는 칼은 관 안에 넣어 두었다. 양대년 역시 스스로
후회하더니 결국에는 선종禪宗을 참구하여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고는 교지敎旨
를 받들어《경덕전등록》을 상세히 교정하여 서방과 이 땅에 유포시켰다.
오호라! 승려 되기 어렵다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로다. 만약 남아 대장부
라면 결단력 있고 장렬한 뜻을 일으켜 들뜨고 외람된 행업은 물리치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한 칼로 두 동강이를 내듯이 불조佛祖의 바깥을 향해 한 차례 힐끗 보
고는 문득 꿰뚫으면 몸과 마음을 함께 깨닫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또한 호
신의 부적이 손에 들어오지 않음을 근심하지도 않을 것이니, 그러한 까닭에 [높
은 산 흐르는 물의 깊고 깊은 뜻은, 예로부터 그 소리를 아는 이 있어 웃으며 머
리를 끄덕이네]라 하였다. 법회가 보공도량에 몸을 맡긴지 여러 해가 되었음에
그 사람됨이 근엄하고 성실하며 순박하고 후덕하며 결단력과 장렬한 뜻이 있고
들뜨거나 외람된 행업이 없으니, 이제 나아가 승려가 되게 하기를 꾀하나니 공경
히 의지하고 공경히 믿어서 뛰어나고도 훌륭하게 특별히 통달해야 할 것이다. 크
게 어진 이가 금옥 같은 음성으로 그 뜻을 도와 이루게 할 것이다.
이 서신으로써 경책을 구하러 왔음에 그로 인하여 이것을 자세히 내보이는 까
닭은 세간의 현명한 선비와 대장부로 하여금 가르침을 소중히 여기고 승려를 존
중하는 마음을 일으킴은 물론 선배들이 비록 부귀에 꺾여지기도 하였으나 결국
에는 후회하는 자 또한 있었음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때는 기미년 중추, 종산에 머무는 철우.
【1】諱宗印, 嗣佛照.德光禪師.
【2】按《通》載, 肅宗.至德二載, 聽白衣能誦經五百紙者度爲僧, 賜明經出身, 或納錢百緡, 請牒剃落.
及兩京平後, 又於關 輔諸州, 納錢度僧萬餘人, 買牒爲僧, 自此而始.
【3】招天寺.會通禪師, 杭州.吳氏子, 幼名元卿. 幼而聰敏, 德宗 憲宗時, 爲六宮使, 皇族咸美之, 後
出家.
【4】東吳僧道原作《傳燈錄》三十卷, 詣闕進呈, 眞宗覽之, 嘉賞, 勅翰林楊億, 使之詳定而撰序, 頒
行天下. 道原嗣天台.德韶國師, 爲法眼宗也.
【5】魏.武帝藏螢火丸於臂 之間, 流矢不入百步之內, 是爲護身符也.
【6】古詩[揮金見深意], 言揮振金玉之音也.
【1】휘는 종인으로 불조 덕광선사의 법을 이었다.
【2】《자치통감》에 실린 것에 의하면, 숙종 지덕 2년에 백성으로서 경전 5백 쪽을 능히 외우는
자들을 득도시켜 승려가 되게 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며, 경전에 밝은 출신들이나 혹은 돈 1
백 민을 납부하는 자들에게 도첩을 주어 머리를 깎게 하는 은덕을 베풀었다. 두 경사京師
가 평정되기에 이르자 또 관중과 경기의 모든 주에서 돈을 받고 승려로 득도시켜 준 것이
만 여 명이나 되었으니, 도첩을 사서 승려가 되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3】초천사 회통선사는 항주 오씨의 아들로서 어릴 때 이름은 원경이었다. 어려서 매우 총명
하여 덕종과 헌종 때 육궁사가 되니 황족들이 모두 그를 어여삐 여겼으며, 후에 출가했다.
【4】동오 때의 승려 도원이《전등록》30권을 지어 대궐에 나아가 바치니 진종이 그것을 살펴
보고는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주고는 한림 양억에게 칙서를 내려 그것을 상세히 교정하고
서문을 찬술하여 천하에 반포 통행시키게 하였다. 도원은 천태 덕소국사의 법을 이어 법
안종을 이루었다.
【5】위나라 무제는 반딧불의 불꽃알을 팔과 팔꿈치 사이에 갈무리해 둠으로써 흐르는 화살이
백보 안으로 날아들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몸을 보호하는 부적이 된다.
【6】옛 시에 [금을 휘둘러 깊은 뜻을 보이다] 하였으니, 금과옥조 같은 음성을 휘둘러 떨침을
말한다.
月窟淸禪師訓童行
咨爾[1]童行, 聽予誡云! 高以下基, 洪由纖起,[2] 古今賢聖, 莫不
由斯. 儒宗頗多, 釋氏尤甚, 玆不繁引, 略擧二三. 虞[3] 夏[4]至尊,
尙曾歷試, 可 能二祖,[5] 猶服勤勞, 一念因眞, 千生果實, 若其濫
服, 終無所成, 任是毁形, 徒增黑業. 爾等童牲,[6] 今各 誠, 履實
踐眞, 無隨流俗, 處淸淨地, 生難遭心, 見佛逢僧, 克勤敬慕. 如能
反責, 可謂丈夫.[7] 施主交肩, 宜先祗揖, 同衣相見, 莫後和南. 夕
火晨香, 常常勿懈, 齋餐蚤粥, 念念興慙. 當直殿堂, 供過寮舍, 宜
勤拂拭, 無怠應承. 進止威儀, 上流是則, 言默要道, 下輩休詢. 貝
葉固合精通, 墳典[8]尤宜博學. 稍知今古, 方解爲人, 若似啞羊, 出
家何益.[9] 如來未成佛果, 文武兼能;[10] 永嘉裳作人師, 宗說俱
備;[11] 顔 驥, 子雲有言;[12] 誦 [13]誦掃, 釋尊無誤,[14] 各須
努力, 莫 因循, 立志堅固, 不墮凡地. 故, 經云: [立志如高山,
種德若深海.] 如斯苦口, 期汝爲人, 報答佛祖莫大恩, 拔濟衆生無
量苦, 日日如是, 不愧自心. 頌曰:
負 [15] 草[16]示嘉模, 紹續須還猛烈徒.
一念豁然三際斷, 單傳肯下老 胡.[17]
오호라 너희 아이들아 내가 경계하여 일컫는 말을 들어라! 높은 것은 낮은 것
으로써 기초를 삼고 큰 것은 작은 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임에 고금의 성현
들도 이로 말미암지 않은 이가 없으니, 유가에는 자못 많고 불가에는 더욱 번성
하였기에 이를 번거롭게 인용하지 않고 대략 두세 가지만 들어 보이노라.
우순虞舜이나 하우夏禹와 같이 지극히 존귀한 이들도 일찍이 시련을 겪었고
혜가慧可와 혜능慧能 두 조사도 오히려 힘든 일에 부지런하였으니, 한 생각의 원
인이 참되면 1천 생이 바뀌도록 결과가 진실 되거니와 만약 외람 되게 법복을
입으면 결국에는 이루어지는 바가 없을 것이며 마음대로 형체를 허문 것이기에
단지 악업만 더 할 뿐일 것이다.
너희 아이들은 이제 각자 삼가 정성을 들여 견실하고 참된 것을 뒤쫓아 실천
함에 흘러가는 세속을 따르는 일이 없이 청정한 곳에 거처하며 만나기 어렵다는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을 보거나 스님을 만나면 지극한 마음으로 힘써 경모할 지
어다. 만일 능히 돌이켜 꾸짖을 수 있다면 가히 장부라 일컬을 것이다. 시주와
마주칠 때에는 마땅히 먼저 공경하여 읍해야 하며, 같은 옷 입은 사람과 마주 볼
때에는 합장하기를 나중에 하지 말라. 아침저녁으로 향과 등을 피움에 항상 게을
리 하지 말 것이며, 낮에 밥 먹고 아침에 죽을 먹을 때는 생각생각마다 부끄럽다
는 마음을 일으켜라. 전당殿堂에 당직을 서고 과료사過寮舍에 시중 들 때에는 응
당 부지런히 털고 닦아냄에 게으름 없이 응대하고 받들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고
멈추는 위의威儀에 대해서는 윗사람들이 곧 본보기가 될 것이며, 언담과 침묵의
긴요한 도리는 아래 무리에게 묻지를 말라. 불법의 경전은 진실로 정밀하게 능통
해야 하며 옛 전적은 더욱 마땅히 널리 배워야 한다. 조금이라도 고금의 일을 알
아야 바야흐로 사람 위하는 일을 이해할 것이니, 만약 벙어리 염소와 같다면 출
가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여래께서 아직 깨달음의 결과를 이루지 못하였을 적에 문무를 겸비하여 모두
능통하였으며, 영가는 다른 이들의 스승이 되자마자 종통宗通과 설통說通을 모
두 갖추었으며, 안연처럼 되기를 원하고 준마가 되기 원한다는 자운의 말이 있으
며, 추 자를 외우게 하고 소 자를 외우게 하며 석존께서 잘못이 없다고 하셨
으니, 각자는 모름지기 노력하여 부질없이 머뭇거리지 말 것이며 뜻 세우기를 견
고히 하면 평범한 경지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 이르기를
[뜻 세우기를 마치 높은 산과 같이 할 것이며, 덕 심기를 마치 깊은 바다와 같이
할 것이다]라 하였다.
이와 같이 간절하게 말하는 것은 그대가 사람이 되어서 부처님의 막대한 은혜
에 보답하고 중생을 한없는 고통으로부터 구제하여 건네주기를 바라는 것이니,
날마다 이와 같이 한다면 스스로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송頌하여 이
르기를:
돌 짊어지고 방아 찧은 일과 풀을 벤 일은 아름다운 모범을 보인 것이니,
이를 계승하려면 모름지기 맹렬한 무리라야 할 것이다.
한 생각으로 활연히 통하여 삼제三際를 끊으면,
홀로 전하는 것이 어찌 늙은 달마만 못하겠는가.
【1】咨嗟也, 爾汝也.
【2】合抱之木, 始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3】虞, 國名, 其帝名舜, 起自耕稼陶漁.
【4】夏亦國名, 其主號禹, 治洪水時, 手足 焉.
【5】二祖慧可, 求乎心法以至立雪斷臂; 六祖, 帶石夜 守網獵中.
【6】十五曰童, 八十曰牲. 牲, 至也, 年之至也. 又恐牲, 行字之誤也.
【7】《涅槃》云: [若具四法, 卽名丈夫: 一, 善知識; 二, 說法; 三, 思惟義; 四, 如說行. 無此四法, 不
名丈夫.]
【8】墳, 三皇書, 言大道也; 典, 五帝書, 言常道也.
【9】佛時, 有諸比丘結安居, 自作制不得共語問訊, 佛言: [汝等共住, 如似寃家, 猶如啞羊, 我以方
便, 敎諸比丘; 彼此相敎, 共相受語, 展轉覺悟. 不應如是, 共受啞法, 同於外道. 若行啞法者,
突吉羅.]
【10】《普曜經》云: [太子七歲, 王以選友波羅門爲師, 太子問: {如何典, 相敎?} 答曰: {梵 留等
書.} 太子曰: {異書有六十四, 何言只有二種?} 師云: {何等名耶?} 太子曰: {梵 留書 龍書
鬼書 阿修倫書等也.} 選友深慙而退.]《因果經》云: [太子年十歲, 王勅難陀 調達及五百童
子, 復令國有勇力者, 定日集於戱場 射. 調達領衆先出, 有象當門, 以手 倒; 難陀, 足跳路
側; 太子, 擲於空中, 以手還接, 不令損傷. 旣至戱場, 標鼓射之, 調達, 竪四十里鼓, 不能得過;
難陀, 竪六十里鼓, 亦莫能越; 太子, 竪百里鼓, 弓力弱, 取庫內諸王良弓古今無能張者, 太子
旣挽, 放一箭透七鼓, 箭入地, 泉水湧出.《西域記》云, 其泉至今存焉, 一切病人, 飮則皆愈,
傳名箭泉.]
【11】宗通, 自覺; 說通, 覺人.
【12】《楊子 學行篇》[ 顔之徒, 亦顔之類; 驥之馬, 亦驥之類.]
【13】古者少康, 初作箕 . 俗作 , 非也.
【14】《阿含》[周利槃特迦, 過去以?法故, 極暗鈍. 世尊使執 掃地, 敎掃 二字, 若誦 忘掃, 誦
掃忘 .]
【15】盧行子, 於黃梅會下, 負石而 .
【16】祝髮也. 丹霞.天然禪師爲行者時, 石頭使大衆 草, 惟師以水淨頭, 石頭前, 便與剃髮, 卽
無明草也. 祝, 斷也.
【17】《祖庭》云: [諸祖, 初以三藏敎乘兼傳. 後, 達磨單傳心印, 所謂敎外別傳也.] 老 胡, 指達磨也.
【1】咨는 탄식하는 것이요, 爾는 ‘너희’이다.
【2】한 아름의 나무도 가는 털과 같은 줄기로부터 시작하고, 9층의 누대도 흙무더기에서 일으
킨 것이다.
【3】虞는 나라 이름이며 그 제왕의 이름이 舜이니, 스스로 밭 갈고 벼 심으며 그릇 굽고 고기
잡는 일로부터 일어났다.
【4】夏 역시 나라 이름으로 그 군주는 禹라 부르는데 홍수를 다스릴 때 손발에 굳은살이 맺혔
다고 한다.
【5】2조 혜가는 마음의 법을 구하고자 눈 위에 서서 팔을 끊기까지 하였으며, 6조는 돌을 허리
에 맨 채 밤중에 방아를 찧었고 사냥 중에 그물을 지켰다.
【6】15세를 童이라 하고 80세를 牲이라 한다. 牲은 ‘도달하다’이니, 나이가 도래하였음이다. 또
牲은 行 자의 오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7】《열반경》에 말하였다. [만약 네 가지 법을 갖추면 곧 장부라 이름할 것이니, 첫째는 선지
식이요, 둘째는 법을 설함이요, 셋째는 의리를 사유하는 것이요, 넷째는 말한 것처럼 행하
는 것이다. 이 네 가지 법이 없으면 장부라 이름하지 않는다.]
【8】墳은 삼황의 서적으로 근본 도(大道)를 말하고, 典은 오제의 서적으로 변함없는 도(常道)
를 말한다.
【9】부처님 시기에 여러 비구들이 안거를 들어가며 스스로 제도를 만들어 함께 말하거나 묻지
않기로 하였더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함께 머무름에 마치 원수의 집안 같
거나 흡사 벙어리 염소와도 같기에 내가 방편으로써 모든 비구들에게 가르치나니, 피차간
에 서로 가르치며 함께 서로 말을 주고받아 꾸준히 깨닫고 깨우치라. 응당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함께 벙어리법을 받아 외도와 같아지게 되리다. 만약 벙어리법을 행하는 자라면
돌길라(犯戒의 죄명으로 몸과 입으로 지은 나쁜 업을 말함)이리라] 하셨다.
【10】《보요경》에 이르기를 [태자가 7살 때 왕께서 선우 바라문으로 스승을 삼으니 태자가 묻
기를 {어떠한 경전으로 가르치는가?} 하니 답하기를 {梵 留 등의 서적입니다} 하므로
태자가 말하기를 {異書가 64종이 있거늘 어찌 다만 2종이 있다고 말하는가?} 하니 스승
이 말하기를 {어떠한 이름들입니까?} 하기에 태자가 말하기를 {범거류서와 용서와 귀서
와 아수륜서 등입니다} 하니 선우가 깊이 부끄럽게 생각하고는 물러갔다]고 하였다.《인
과경》에 이르기를 [태자 나이 10세 때 왕이 난타와 조달 및 5백 동자들에게 칙서를 내리
고 다시 나라에서 용맹력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날을 정해 광장에 모여 사격술을 다투도
록 하였다. 조달이 무리를 거느리고 먼저 나오다가 코끼리가 문을 막고 있자 손으로 가슴
을 쳐서 넘어뜨렸으며, 난타는 발을 놀려 길옆으로 뛰어 넘었으며, 태자는 공중에 던졌다
가 손으로 다시 되받아서 상처를 입지 않게 하였다. 모두 광장에 도착하자 북을 표식으로
놓고 사격을 하였는데 조달은 40리에 북을 세워 두었으나 능히 통과시키지 못했으며, 난
타는 60리에 북을 세워 두었으나 역시 능히 넘기지 못했으나, 태자는 1백리에 북을 세워
둠에 활의 힘이 약하자 창고에서 모든 왕들의 좋은 활 가운데 고금을 통해 능히 다룰 수
가 없던 것을 가져다 태자가 잡아 당겨 화살 하나를 쏘니 7개의 북을 뚫고는 화살이 땅
으로 들어가더니 샘물이 용솟음쳐 올랐다.《서역기》에 이르기를, 그 샘은 지금까지 남아
있어 모든 병든 사람들이 마시면 곧 모두 낳는다 하며 화살샘(箭泉)이라 이름이 전한다
고 한다]고 하였다.
【11】宗通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요, 說通은 다른 사람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12】《양자》학행편에 말하였다. [안연처럼 되고자 하는 무리는 또한 안연과 비슷한 부류가 될
것이며, 천리마가 되고자 하는 말도 역시 천리마와 비슷한 부류가 될 것이다.]
【13】옛날에 소강이 처음으로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만들었다. [ 를] 속자로 로도 쓰지만 틀
린 것이다.
【14】《아함경》에 말하였다. [주리반특가는 과거세에 법에 인색했던 까닭에 지극히 어리석고도
둔했다. 세존께서 비를 들고 땅을 쓸게 하면서 掃와 두 글자를 가르쳤으나 만약 를
외우면 掃를 잊어 먹고 掃를 외우면 를 잊어 먹었다.]
【15】노행자가 황매의 문하에서 돌을 짊어지고 방아를 찧은 것이다.
【16】머리 깎음을 말한다. 단하 천연선사가 행자로 있을 때 석두대사가 대중들에게 풀을 베고
자 한다 하였더니 오직 선사만이 물로 머리를 깨끗이 씻고 석두대사 앞에 무릎을 꿇고
않는지라 곧바로 머리를 깎아 주었으니, 곧 無明草를 깎음을 말함이었다. 祝은 끊음이다.
【17】《조정》에 이르기를 [모든 조사들이 처음에는 三藏으로써 교법을 겸하여 전하였다. 후에
달마가 단지 心印만을 전하니 일컫는 바 ‘교법 외에 달리 전한 것(敎外別傳)’이다]라 하
였다. 늙고 비린내 나는 오랑캐는 달마를 가리킨다.

大唐慈恩法師出家箴[1]
捨家出家何所以, 稽首空王求出離.[2]
三師七證定初機,[3] 剃髮染衣發弘誓.
去貪嗔除鄙 , 十二時中常謹愼.
鍊磨眞性若虛空, 自然戰退魔軍陣.
勤學習尋師匠, 說與同人堪倚仗,
莫敎心地亂如麻, 百歲光陰等閒喪.
踵前賢斅先聖,[4] 盡假聞思修[5]得證,
行住坐臥要精專, 念念無差始相應.
佛眞經十二部, 縱橫[6]指示菩提路,
不習不聽不依行, 問君何日心開悟.
速須究似頭燃, 莫待明年與後年.
一息不來卽後世, 誰人保得此身堅.
不蠶衣不田食, 織女耕夫汗血力.
爲成道業施將來, 道業未成爭消得.
哀哀夫哀哀母, 嚥苦吐甘大辛苦,
就濕回乾養育成, 要襲門風繼先祖,
一旦辭親求剃落, 八十九十無依托.
若不超凡越聖流, 向此因循全大錯.
福田衣[7]降龍鉢,[8] 受用一生求解脫,
若因小利繫心懷, 彼岸涅槃爭得達.
善男子汝須知! 遭逢難得似今時,
旣遇出家披縷褐,[9] 猶如浮木値盲龜.[10]
大丈夫須猛利, 緊束身心莫容易.
能行願力相扶, 決定龍華親授記.[11]
집버리고 출가한것 이는무슨 까닭인가?
부처님께 머리숙여 벗어나길 구함일세.
三師하고 七證으로 애초근기 정하여서,
탐욕성냄 버리고서 비천인색 덜어내어,
열두시간 가운데서 어느때나 삼갈지니.
참된성품 연마하여 허공과도 같이하면,
자연스레 마군무리 두려워서 물러가리.
배우기를 부지런히 스승지식 찾아감에,
너와내가 더불어서 견뎌내고 의지할뿐,
이마음을 삼과같이 어지러이 하지말고,
백년광음 허황되이 보내지를 말지어다.
예전현인 추종하고 앞선성인 본받아서,
모든것을 듣고보고 수행하여 얻을지니,
가고서고 앉고누워 정밀하고 전일하며,
생각생각 빗남없이 그제서야 상응일새.
부처님이 말씀하신 참된경전 열두부에,
종횡으로 보리의길 지적하여 놓았으니,
익혀듣고 의지하여 행하지를 않는다면,
그대에게 묻자오니 어느날에 깨칠건가.
모름지기 신속하게 참구하길 서둘러서,
내년이니 후년이니 기다리지 말것이다.
단한차례 숨멈추면 그대로가 다음세상,
어느누가 이몸두고 견고하다 보장할까.
누에없이 옷입으며 밭갈잖고 밥먹으니,
베를짜는 아낙네와 밭가는이 수고로세.
도업만을 이루라고 시주들이 져오거늘,
도업마저 못이루면 어찌하여 녹여낼까.
슬프도다 아버지여 슬프도다 어머니여,
쓴것삼코 단것뱉아 큰어려움 받으시고,
젖은자리 마른자리 골라앉혀 기르심은,
가문잇고 기풍세워 선조잇자 함이온데,
졸지간에 어버이를 머리깎아 하직하니,
팔십구십 다되어도 의탁할곳 없으리다.
만약범부 초월하여 성현무리 못넘으면,
여기에서 머뭇머뭇 모든일을 그르치리.
단한벌의 홑가사와 단하나의 흙발우로,
받아쓰며 평생동안 해탈추구 할것이니,
만약에도 조그마한 이익에다 마음매면,
건너편의 열반언덕 어이하여 도달할까.
선남자야 모름지기 너는필시 알것이니,
만나기가 어려움이 흡사지금 같을진대,
이미출가 인연만나 가사까지 걸쳤으니,
떠다니던 나무토막 눈먼거북 만남일세.
대장부는 모름지기 맹렬하고 예리하여,
몸과마음 단속하여 쉽게생각 말지니라.
능히행해 원력으로 서로서로 돕는다면,
결정코 龍華會上서 친히수기 받으리다.
【1】師諱窺基, 近衛將軍尉遲敬宗之子也. 玄 法師 之而令出家, 群書過目成誦, 著論百部, 時稱
百部論師. 然, 性豪俊, 每出必治三車, 備經書食饌, 亦號三車法師. 高宗, 在春宮日, 爲母文德
皇后建慈恩寺凡十餘院千八百九十七間, 以師入居, 參譯諸經, 因居之, 人稱曰慈恩法師. 又南
山律師, 持律精嚴, 常感天供, 聞師三車之號, 心竊薄之. 一日, 師訪律師, 過午天供不至, 師辭
去, 天供乃至, 律師責以過時, 天曰: [大乘菩薩在此, 翊衛甚嚴, 無自而入.] 律師聞之, 遂大警
而懺謝.
【2】稽首者,《周禮》有九拜: 一曰稽首, 謂下首至地, 稽留乃起; 二, 頓首, 謂下首至地, 卽起, 又下
首叩地; 三, 空首, 謂頭至手, 所謂拜手; 四, 振動, 謂恐悚迫蹙而下手; 五, 吉拜, 謂雍容而下
手; 六, 凶拜, 鄭玄曰: [拜而後稽 吉拜, 稽 而後拜 凶拜]; 七, 奇拜, 奇不偶也, 謂禮簡不
再拜; 八, 褒拜, 謂答拜也, 古文, 報亦作褒; 九, 肅拜, 謂直身肅容而微下手, 如今婦人拜也.
【3】三師, 和尙 ?磨 敎授也. 和尙, 此云近讀, 謂親近承事, 受讀經法, 又力生, 由師之力, 生長法
身. ?磨, 此云辦事, 由玆能成辦比丘 比丘尼事故, 卽受戒師. 敎授, 卽受戒時敎威儀者.《 》
云: [阿 梨, 此云正行, 能糾正弟子行故.]《四分》明五種 梨: 一, 出家阿 梨, 所依得出家
者; 二, 受戒阿 梨, 受戒作?磨者; 三, 敎授阿 梨, 敎授威儀者; 四, 受經阿 梨, 所從受經
乃至一四句偈; 五, 依止阿 梨, 乃至依住一宿者. 五中第二, ?磨師; 第三, 敎授師; 四及五,
和尙師. 七證者, 受戒時證戒師七人, 若邊國則但三人作證.
【4】《商書》[斅于民.] 斅音效, 敎也, 又法效也.
【5】三慧也.
【6】縱說橫說.
【7】袈裟是無上大福田衣, 作者受者皆生無量福故. 又像彼溝 畦町, 以制條葉, 故曰田衣. 音升,
稻田畦畔也.
【8】迦葉三兄弟初事火龍, 佛欲度之, 往火龍窟, 火龍見佛而嗔, 先放毒火, 佛亦放三昧火, 毒龍熱
惱竄身無地, 投佛鉢水中, 佛爲說法得度三迦葉故, 謂之降龍鉢.
【9】褐, 毛布, 賤者所服也.
【10】須彌山下香水海中有一盲龜, 其壽無量劫, 百年一回出水. 又有一孔木頭, 漂流海浪, 若或相
値, 龜卽休止, 不得相遇, 卽能沈沒. 衆生亦如是, 漂溺五趣之苦海, 得人身難, 復甚於此. 得
人身, 其易出家乎?
【11】龍華, 樹名, 其華如龍故名.《彌勒下生經》云: [慈氏下生於翅頭末城中大波羅門妙梵家, 出家
日卽成正覺, 身長六十丈, 具八萬四千相好. 坐此樹下, 三會說法, 度盡釋迦遺法中, 乃至一稱
佛名者.]
【1】선사의 휘는 규기로서 근위장군위지 경종의 아들이다. 현장법사가 그를 달래어 출가하게
하였더니 뭇 서적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모두 외워버리고 論 1백부를 저술하였기에 당시
百部論師라 일컬어졌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고도 걸출하여 매번 외출 때는 반드시 3량
의 수레에 경서와 음식을 갖추고 다녔기에 또한 三車法師라 불리었다. 고종이 춘궁에 있
을 때 모후인 문덕황후를 위하여 무릇 10여 院 1천8백97칸의 자은사를 지어 선사에게 들
어와 거처하게 하며 모든 경전의 번역에 참여하게 하였는데, 그곳에 거처한 인연으로 사
람들이 자은법사라 일컬었다. 또 남산율사는 계율을 지님에 정밀하고도 엄격하여 항상 하
늘의 공양을 받고 있었는데, 선사의 三車라는 호를 듣고는 마음으로 남몰래 천하게 여겼
었다. 하루는 선사가 율사를 방문하였는데 정오가 지나도록 하늘로부터 공양이 도착하지
않자 선사가 인사를 하고 물러나오니 하늘의 공양이 그제야 도착하므로 율사가 때를 넘긴
것을 힐책함에 천인이 말하기를 [대승보살께서 여기에 계셔서 그 호위가 매우 엄하였기
에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하므로 율사가 그 말을 듣고는 마침내 크게 놀라며 참회하고
사죄하였다고 한다.
【2】稽首란,《주례》에 아홉 종류의 절이 있으니, 첫째는 稽首로서 머리를 아래로 내려 땅에 닿
게 하였다가 한참을 머문 뒤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頓首로서 머리를 아래로 내
려 땅에 닿게 하였다가 곧 일어나서는 또 머리를 내려 땅을 두드리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空首로서 머리끝을 손에 가져가는 것이니 소위 拜手라 일컫는 것을 말한다. 넷째는 振動
으로서 두렵고도 당황한 마음에 급박하게 손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는 吉拜로서
온화한 얼굴로 손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여섯째는 凶拜로서 정현이 말하기를 [절을 한 후
에 이마를 조아리면 吉拜요, 이마를 조아린 후에 절을 하면 凶拜이다]라 하였다. 일곱째는
奇拜로서 奇는 짝을 이루지 않음인데, 말하자면 예절을 간단히 하여 거듭 절하지 않는 것
이다. 여덟째는 褒拜로서 답례로 하는 절을 말하는데, 옛 문장에는 보답하다(報)는 의미를
나타낼 때 褒 자를 쓰기도 하였다. 아홉째는 肅拜로서 몸을 곧추세우고 숙연한 얼굴로 미
미하게 손을 내리는 것이니 마치 지금의 부인들이 하는 절과 같은 것을 말한다.
【3】세 스승은 화상과 갈마와 교수이다. 和尙은 이곳 말로 하면 近讀인데 이어받아 섬기는 일
을 친근히 하고 경전의 법을 받아서 읽음을 일컬으며, 또는 力生인데 스승의 힘으로 말미
암아 법신을 성장케 함을 말한다. ?磨는 이곳 말로 하면 辦事인데 이로 말미암아 비구와
비구니의 일을 능히 판단하는 까닭이니 곧 受戒師이다. 敎授는 곧 수계 때 위의를 가르치
는 자이다.《초》에 이르기를 [아사리는 이곳 말로 하면 正行인데, 능히 제자의 행위를 바
로잡아 주는 까닭이다]라 하였다.《사분율》에 다섯 종류의 아사리를 밝혀 놓았으니, 첫째
는 출가아사리로서 의지하여 출가를 얻은 자이다. 둘째는 수계아사리로서 수계 때 갈마를
한 자이다. 셋째는 교수아사리로서 위의를 가르쳐 준 자이다. 넷째는 수경아사리로서 좇아
서 경전의 강의를 받았거나 혹은 4구게 한 수라도 받은 자이다. 다섯째는 의지아사리로서
혹은 하루 저녁이라도 의지하여 머물렀던 자이다. 다섯 가운데 2번째는 ?磨師이며, 3번째
는 교수사이며, 4번째와 5번째는 화상사이다. 七證이란 수계 때의 證明戒師 7명을 말하는
데, 만약 변방국이면 단지 3사람으로 증명사를 삼는다.
【4】《상서》에 [백성들을 가르친다] 하였으니, 斅는 음이 효이며 가르침이나 또는 모범으로 삼
음이다.
【5】세 가지 지혜이다.
【6】縱說과 橫說이다.
【7】袈裟는 위없는 큰 복밭의 옷으로 지은 자나 받는 자 모두 무량한 복이 생기는 까닭이다.
또는 저 밭두둑의 경계를 본떠서 가지와 잎을 마름질한 까닭에 田衣라 한다. 은 음이 승
(升)이요 논의 두둑이다.
【8】가섭 3형제는 애초에 화룡을 섬겼는데 부처님이 그들을 제도하고자 화룡의 굴로 갔더니
화룡이 부처님을 보고는 성을 내어 먼저 독을 품은 불길을 뿜자 부처님 역시 삼매의 불길
을 놓으니 독룡이 그 열기에 괴로워하다가 몸을 숨길 곳이 없자 부처님 발우 가운데의 물
속으로 몸을 던지거늘 부처님께서 설법을 행하고는 가섭 3형제를 득도시켰던 까닭에 그것
을 일컬어 降龍鉢이라 한다.
【9】褐은 털로 짠 베이니 빈천한 자들이 입는 것이다.
【10】수미산 아래 香水海 가운데 한 마리의 눈 먼 거북이 있는데 그 수명은 무량겁으로서 백
년 마다 한 번씩 물 밖으로 나오는데, 또한 구멍 하나가 뚫린 나무토막이 있어서 파도에
표류하다가 만약 간혹 서로 마주치면 거북이 그것에 의지하여 쉬고 마주치지 못하면 곧
물 속으로 잠겨든다. 중생 역시 이와 같아서 五趣라는 고통의 바다에 빠져서 떠내려가다
가 사람의 몸을 얻기가 어려움이 이보다 심할 것이다. 혹시 사람의 몸을 얻었더라도 출가
하기란 또한 쉽겠는가?
【11】龍華는 나무 이름으로 그 꽃이 마치 龍과 같은 까닭에 이름하였다.《미륵하생경》에 이르
기를 [자씨는 하계의 시두말성 안의 대 바라문 묘범의 집안에 태어나서 출가하는 날 곧
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니, 신장이 60장이요 8만4천의 相好를 모두 갖추고 있다. 나무 아
래 앉아서 세 차례의 회상에서 설법하여 석가께서 남긴 법 가운데에서 혹은 한 번이라도
부처님의 이름을 일컬은 자들은 모두 남김없이 득도케 한다] 하였다.
圭峰密禪師座右銘[1]
寅起可辦事,[2] 省語終寡尤.
身安勤戒定, 事簡疎交遊.
他非不足辦, 己過當自修.
百歲旣有限, 世事何時休.
落髮墮僧數, 應須 上流,
胡爲逐世變, 志慮尙 浮.
四恩重山岳, 銖未能酬,[3]
蚩蚩[4]居大厦, 汲汲將焉求.
死生在呼吸,[5] 起滅若浮 ,
無令方服下, 飜作阿鼻由.[6]
寅時에는 일어나야 일을판단 할수있고,
하는말을 절약해야 짓는허물 적으리다.
몸을편히 하려하면 계와정을 닦을게고,
하는일을 줄이려면 노는것이 성글지라.
다른이의 작은허물 판별할바 못되나니,
제자신의 큰과오를 스스로가 닦을지라.
일백년의 긴세월도 어느듯에 한정되니,
세상의일 어느때에 마음놓고 쉬겠는가.
기왕에사 머리깎고 승려무리 되었으면,
모름지기 윗사람과 가지런히 하야거늘,
어찌하여 정신없이 세상변화 뒤쫓으며,
뜻은물론 생각까지 시끄럽고 들뜨는가.
네가지의 깊은은혜 무겁기가 뫼같거늘,
털끝만도 갚지못해 내몰라라 밀쳐두고,
어리석게 크나큰집 편안하게 거처하며,
그무엇에 급급하여 그무엇을 구하는가.
삶과죽음 어디인가 들숨날숨 사이일세,
일어나고 사라짐이 거품과도 같을지니,
가사마저 걸치고서 앉아있는 자리에서,
도리어 阿鼻地獄의 원인짓지 말지니라.
【1】師諱宗密, 果州.西充.何氏子, 嗣道圓和尙.
【2】孔子有三契圖: 一生之契, 幼而不學, 老無所知; 一年之契, 春而不耕, 秋無所穫; 一日之契, 寅
若不起, 日無所辦.
【3】八絲爲銖, 八銖爲 , 二十四銖爲一兩. 言四恩至重, 未能少分報答也.
【4】《楊子》云: [六國蚩蚩.] 註云: 無知貌.《詩》云: [民之蚩蚩.] 註: 愚也, 又輕侮也.
【5】《四十二章經》云: [佛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 {呼吸間.} 佛言: {善哉! 子知道矣.}]
【6】阿鼻, 此云無間, 卽最下地獄也. 所受苦報, 無有間歇故.
【1】선사의 휘는 종밀로서 과주 서충의 하씨 아들이며 도원화상의 법을 이었다.
【2】공자에게 三契圖가 있었다. 한 생의 서약은,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음
이다. 1년의 서약은,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할 것이 없음이다. 하루의 서약은,
인시에 만약 일어나지 않으면 하루종일 힘 쓸 바가 없음이다.
【3】명주실 여덟 올이 1수이며 8수가 1치가 되고 24수가 1량이 된다. 네 가지 은혜가 지극히
막중하여 일부분이라도 능히 보답하지 못함을 말한다.
【4】《양자》에 이르기를 [여섯 나라가 어리석고 어리석어(蚩蚩)] 하고는 주석에, 아는 것이 없
는 모양이라 하였다.《시경》에 이르기를 [백성들이 어리석고 어리석어(蚩蚩)] 하고는 주
석에, 어리석음이며 또는 가벼이 보아 업신여김이라 하였다.
【5】《사십이장경》에 말하였다. [부처님이 한 사문에게 묻기를 {사람의 목숨은 어느 사이에 있
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들숨과 날숨 사이입니다} 하므로 부처님께서 {좋구나! 그대는
도를 알고 있도다} 하였다.]
【6】阿鼻는 이곳 말로 하면 無間이니 곧 가장 아래에 있는 지옥이다. 그곳에서 받는 고통의 과
보는 쉴 틈이 없는 까닭[에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周渭濱沙門亡名法師息心銘[1]
法界有如意寶人焉, 久緘其身, 銘其膺曰[古之攝心人也], 誡之
哉誡之哉! 無多慮, 無多知. 多知多事, 不如息意, 多慮多失, 不
如守一. 慮多志散, 知多心亂, 心亂生惱, 志散妨道. 勿謂何傷, 其
苦悠長,[2] 勿言何畏, 其禍鼎沸. 滴水不停, 四海將盈, 纖塵不拂,
五嶽將成. 防末在本, 雖小不輕. 關爾七竅, 閉爾六情,[3] 莫窺於
色, 莫聽於聲. 聞聲者聾, 見色者盲. 一文一藝, 空中小 ,[4] 一技
一能, 日下孤燈. 英賢才藝, 是爲愚 . 捨其淳樸, 耽溺淫麗, 識馬
易奔, 心猿難制. 神旣勞役, 形必損斃, 邪逕終迷, 修途[5]永泥.[6]
英賢才能, 是曰 , 拙羨巧, 其德不弘, 名厚行薄, 其高速崩,
塗舒汗卷,[7] 其用不恒. 內懷 伐, 外致怨憎. 或談於口, 或書於
手, 要人令譽, 亦孔之醜. 凡謂之吉, 聖謂之咎, 賞翫暫時, 悲憂長
久. 畏影畏迹, 逾走逾劇, 端坐樹陰, 迹滅影沈.[8] 厭生患老, 隨思
隨造, 心想若滅, 生死長絶.[9] 不死不生, 無相無名, 一道虛寂, 萬
物齊平, 何勝何劣, 何重何輕, 何貴何賤, 何辱何榮. 澄天愧淨,
日慙明. 安夫岱嶺,[10] 固彼金城. 敬貽賢哲, 斯道利貞.
법계에 여의보인如意寶人이 있어 오랫동안 그 몸을 함봉한 채 그 가슴에 새겨
이르기를 [옛날에 마음을 잘 거두어 모으던 사람이다] 하였으니, 이를 경계하고
이를 경계할지라.
많이 생각하지 말고 많이 알려 하지 말라. 아는 것이 많으면 일이 많으니 뜻을
쉬는 것만 같지 못하고, 생각이 많으면 잃는 것이 많으니 하나를 지키는 것만 못
하다. 생각이 많으면 뜻이 흩어지고 아는 것이 많으면 마음이 어지러우니, 마음
이 어지러우면 번뇌가 일어나고 뜻이 흩어지면 도에 장애가 된다. 무슨 손해가
있을 것인가 라고 일컫지 말라 그 고통은 길고도 오랠 것이며, 무엇이 두려운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은 솥 속의 끓는 물 같다. 방울져 떨어지는 물도 그치지
않으면 장차 사해四海에 가득 찰 것이요, 가녀린 티끌도 털어 내지 않으면 장차
오악五嶽을 이룰 것이다. 끝을 막는 것은 근본에 있으니 비록 작은 것이라도 가
벼이 여기지 말라. 일곱 곳 구멍을 잠그고 여섯 가지 뜻을 닫아서, 색을 엿보지
말고 소리를 듣지 말라. 소리나 듣는 자는 귀머거리일 것이고 색이나 보는 자는
소경일 것이다.
한 가지 학문과 한 가지 기예는 허공 가운데의 작은 초파리이며, 한 가지 기량
과 한 가지 재능은 햇빛 아래의 외로운 등불이다. 영특하고 현명하며 재능이 있
고 기예가 뛰어난 것은 그대로가 곧 우매한 것일 뿐이다. 본래의 순박한 것을 버
린 채 음탐하고 화려함에 빠지면 식마識馬가 쉽게 날뛰어 마음은 원숭이 처럼
제어하기 어렵게 된다. 정신이 너무 힘들고 피로하면 몸은 반드시 상하여 쓰러질
것이니, 삿된 길에서 마침내 방황하며 길이 삼악도에 영원히 빠질 것이다. 영특
하고 현명하며 재능 있고 기예 있음은 이를 일컬어 혼몽 이라 하리니, 서툰
것을 숨기려 하고 기교스러운 것을 부러워하면 그 덕이 넓지 못하며, 명성은 두
터우나 행함이 경박하면 그 높은 지위는 속히 무너질 것이며, 융성할 때는 나아
가 펴고 침체할 때는 물러나 숨으면 그 쓰임이 한결같지 않을 것이다. 안으로 교
만하고 자랑하는 마음을 품으면 밖으로 원망하고 증오함이 이를 것이다. 혹은 입
으로 말을 하고 혹은 손으로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명예를 요구한다면 이 또한
매우 추악한 것이다. 범부는 그것을 좋다고 이를 것이나 성인은 그것을 허물이라
이를 것이니, 즐기어 구경함은 잠깐이요 슬퍼하고 근심함은 오랠 것이다.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발자취를 두려워함에 달아날수록 더욱 더할 것이나, 단
정히 나무의 그늘에 앉아 있으면 발자취는 사라지고 그림자는 없어질 것이다. 삶
을 싫어하고 늙음을 근심하다 보면 생각을 따라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니,
마음에 생각이 만약 사라지면 삶과 죽음이 영원히 끊어지리다. 죽지도 않고 나지
도 않으면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참 된 도가 텅비고 고요하여 만물이 가지
런히 평등하여지니, 무엇이 뛰어난 것이고 무엇이 열등한 것이며, 무엇이 무거운
것이고 무엇이 가벼운 것이며, 무엇이 고귀한 것이고 무엇이 비천한 것이며, 무
엇이 욕스런 것이고 무엇이 영예로운 것이겠는가. 맑은 하늘은 맑음을 부끄러워
하고 밝은 해는 밝음을 부끄러워한다. 태산 보다 편안히 하고 금성 보다 견고히
하라. 삼가 현철들에게 남겨 주나니 이 도를 이롭고도 곧게 할지어다.
【1】師南陽人. 梁.竟陵王爲友, 曾不婚娶, 梁敗, 師出家, 號亡名.
【2】周.武王楹銘曰: [毋曰何害, 其禍將大; 毋曰胡傷, 其禍將長.]
【3】六根也.
【4】《荀子》曰: [醯酸而 聚.] 一名 , 一名醯鷄也.
【5】卽三惡道. 人間六十劫, 泥犁爲一晝夜, 如是經無量劫也. 三惡道, 皆經無量無數劫, 則可謂長
遠之途矣.
【6】音例, 滯陷不通也.
【7】《高僧傳》, 塗作隆, 汗作汚. 言隆盛之時, 暫能舒展, 汚下之日, 卽復卷却, 謂其用無常而不恒一也.
【8】人有畏影惡迹, 去而走者, 擧足逾數而迹愈多, 走愈疾而影不離身, 不知處陰而休影, 處靜而息
迹, 愚亦甚矣. 起厭患心, 欲捨生死, 亦復如是也.
【9】所謂揚湯止沸不如釜底抽薪.
【10】岱岳在恒州, 爲山衆之長.
【1】선사는 남양 사람이다. 양나라 경릉왕이 벗으로 삼았으며, 일찍이 장가들지 않고 있다가
양나라가 패망하자 선사는 출가하여 호를 亡名이라 하였다.
【2】주나라 무왕이 기둥에 새긴 훈계의 글에서 말하였다. [무엇이 해로운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은 장차 심히 크리다, 어찌하여 상처를 주겠는가 하고 말하지 말라 그 재앙은 장차
오랠 것이다.]
【3】육근이다.
【4】《순자》에서 말하기를 [신맛이 나면 모기가 모여든다] 하였으니, 일명 ‘눈에놀이’라고도 하
고 일명 ‘초파리’라고도 한다.
【5】즉 삼악도이다. 인간세계의 60겁은 지옥에서 하루 밤낮이 되는데 이와 같이 무량겁을 지
낸다. 삼악도는 어디에서나 무량무수겁을 지나니, 즉 길고도 먼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6】음은 례(例)이며 막히고 빠져들어 통하지 않음이다.
【7】《고승전》에는 塗가 隆으로 되어 있고 汗은 汚로 되어 있다. 융성할 때는 잠시 펼치다가 비
천해지는 날에는 곧 다시 말아 들이니, 그 활용이 무상하여 언제나 하나같지 않음을 일컫
는다.
【8】사람 가운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발자취를 싫어하여 떼어버리고 달아나려는 자가 있었는
데, 발을 들어 자주 옮기면 옮길수록 발자취는 더욱 많아지고 빨리 달아나면 달아날수록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니, 그늘진 곳에 자리하면 그림자가 그치고 고요하게 자
리해 있으면 발자취도 쉬게 될 것을 알지 못했음에 그 어리석음이 매우 심하다. 싫어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일으켜 삶과 죽음을 떨쳐 버리고자 한다면 그 또한 다시 이와 같으리다.
【9】끓어 오르는 것을 끓지 못하게 하는 것은 솥 밑에서 장작을 빼내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
【10】대악은 항주에 있는데 뭇 산 가운데 우두머리이다.

洞山良价和尙辭親書[1]
初 書
伏聞, 諸佛出世, 皆托父母而受生, 萬類興生, 盡假天地之覆載.
故, 非父母而不生, 無天地而不長, 盡霑養育之恩, 俱受覆載之德.
嗟夫, 一切含靈, 萬像形儀, 皆屬無常, 未離生滅. 稚則乳哺情
重,[2] 養育恩深, 若把賄賂[3]供資, 終難報答, 若作血食侍養, 安得
久長. 故,《孝經》云: [日用三牲[4]之養, 猶爲不孝也.] 相牽沈沒,
永入輪廻, 欲報罔極之恩,[5] 未若出家功德. 截生死之愛河, 越煩
惱之苦海, 報千生之父母, 答萬劫之慈親, 三有四恩, 無不報矣.
故云[一子出家, 九族生天.] 良价, 捨今生之身命, 誓不還家, 將
永劫之根塵, 頓明般若. 伏惟, 父母心聞喜捨, 意莫攀緣, 學淨飯
之國王, 效摩耶之聖后.[6] 他時異日, 佛會上相逢, 此日今時, 且相
離別. 良价非拒五逆於甘旨, 盖時不待人, 故云[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伏冀尊懷, 莫相記憶. 頌曰:
未了心源度數春, 飜嗟浮世 逡巡.
幾人得道空門裡, 獨我淹留在世塵.
謹具尺書[7]辭眷愛, 欲明大法報慈親,
不須灑淚頻相憶, 比似當初無我身.
林下白雲常作伴, 門前靑 以爲隣,
免于世上名兼利, 永別人間愛與親.
祖意直敎言下曉, 玄微須透句中眞,
合門親戚[8]要相見, 直待當來正果因.
엎드려 듣자오니,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나올 때는 모두 부모에 의탁하여 삶을
받았으며 만물이 생겨날 때는 모두 하늘이 덮어 주고 땅이 실어 주는 힘을 빌었
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천지가 없으면 자라나
지 못하니, 모두가 길러 주는 은혜에 젖어 있으며 모두가 덮어 주고 실어 주는
은덕을 받았습니다. 오호라, 일체의 중생과 만 가지의 형상들은 모두 무상無常에
속하기에 태어나고 죽는 것을 여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려서는 곧 젖을 먹여
준 정이 무겁고 길러 준 은혜가 깊으니 만약 재물을 가지고 공양하고 돕더라도
결국에는 보답하기 어려우며, 만약 베어 낸 살로 음식을 지어 시봉하더라도 어찌
오래도록 장수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효경》에 이르기를 [날마다 세
가지의 희생물을 잡아 봉양하더라도 여전히 효를 다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서로
끌어당기며 잠겨들면 영원히 윤회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므로 망극한 은혜
를 보답하고자 하면 출가하는 공덕 만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삶과 죽음으로 이
어지는 애증의 물줄기를 끊어버리고 번뇌로 가득 찬 고통의 바다를 뛰어넘음으
로써 천 생의 부모에게 보답하고 만 겁의 자애로운 육친에게 보답한다면 삼계의
네 가지 은혜를 갚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한 아들이 출가
하면 구족九族이 천상에 난다] 했습니다. 양개는 금생의 몸과 생명을 버리더라도
맹세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겁의 근진根塵으로 반야를 깨쳐 밝히려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부모님께서는 마음으로 들으시고 기꺼이 버리시어 뜻으로
새로이 인연을 짓지 마시고 정반국왕을 배우시며 마야모후를 본받으십시오. 다
른 날 다른 때에 부처님의 회상會上에서 서로 만날 것이오니 지금 이 때에는 잠
시 서로 이별하는 것입니다. 양개는 오역죄五逆罪를 저지르고자 부모공양을 거
절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니, 그러한 까닭에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않으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할 것인
가]라고 한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부모님의 마음에 이 자식을 다시는 기억
하지 마십시오. 송頌하여 가로되:
마음근본 못깨친채 그몇해를 지냈던가,
뜬세상에 부질없이 머뭇거려 슬퍼하네.
수많은이 빈문에서 무상도를 얻었거늘,
나홀로만 세상티끌 파묻힌채 남아있네.
외람되이 짧은글로 깊은사랑 하직하고,
큰법밝혀 자애로운 육친은혜 보답코자.
눈물뿌려 애달게도 자주생각 하지마소,
애초부터 이한몸은 없던걸로 비기소서.
깊은숲속 흰구름이 언제라도 벗될게고,
문앞에선 푸른뫼봉 이웃으로 삼을지니,
그와같이 세상명예 이익에서 벗어나서,
오래도록 사람사이 애증이별 하렵니다.
조사들이 품은참뜻 잠식간에 깨우치려,
묘한눈빛 모름지기 참된것을 꿰뚫지니,
온집안의 친척들이 서로간에 보자하면,
마땅히 찾아들어올 바른인과 기다리소.
【1】和尙, 會稽.兪氏子, 嗣雲巖.曇晟禪師.
【2】《經》云: [子在母胎, 飮乳八斛四斗.] 又《心地觀經》: [一切男女, 處於胎中, 口 乳根, 飮 母
血, 及出胎, 已飮乳百八十斛.]《中陰經》亦如此說.
【3】賄, 財也, 又贈送也. 賂, 以財與人也.
【4】牛 羊 豕也. 始養謂之畜, 將用謂之牲.
【5】《詩》云: [欲報之德, 昊天罔極.]
【6】淨飯 摩耶, 佛之父母.
【7】古者, 簡牘之長, 只裁咫尺故, 曰尺書也.
【8】近曰親, 遠曰戚; 內族曰親, 外族曰戚; 父黨曰親, 母黨曰戚.
【1】화상은 회계 유씨의 아들로서 운암 담성선사의 법을 이었다.
【2】경전에 이르되 [자식이 에미의 태중에 있을 때 마신 젖이 84말이다] 하였으며, 또《심지
관경》에는 [모든 남녀가 태중에 자리할 때 입으로 젖의 뿌리를 빨고 에미의 피를 마시니
모태를 나설 때는 이미 마신 젖이 1천8백말이나 된다] 하였고,《중음경》역시 이와 같이
얘기하고 있다.
【3】賄는 재물이며 또는 선물을 보낸다는 것이다. 賂은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4】소와 양과 돼지이다. 처음으로 사육하던 것(養謂 蕃息)을 일컬어 畜이라 하고, 그것을
가지고 제물로 쓰던 것(用謂共祭及膳)을 일컬어 牲이라 한다.
【5】《시경》에 말하였다. [그 덕을 갚고자 하니 넓고 크기가 하늘같아 망극하도다.]
【6】정반과 마야는 부처님의 부모이다.
【7】옛날에는 대쪽으로 만드는 편지조각의 길이를 단지 8치나 1척으로 마름질했던 까닭에 尺
書라 한다.
【8】가까운 이를 親이라 하고 먼 이를 戚이라 하며, 내부의 가계를 親이라 하고 외부의 가계를
戚이라 하며, 부친의 일가를 親이라 하고 모친의 일가를 戚이라 한다.
後 書
良价, 自離甘旨, 策杖南遊, 星霜已換於十秋,[1] 岐路俄隔於萬
里. 伏惟, 慈母收心慕道, 攝意歸空, 休懷離別之情, 莫作倚門之
望. 家中家事, 但且隨緣, 轉有轉多, 日增煩惱. 阿兄勤行孝順, 須
求氷裡之魚,[2] 少弟竭力奉承, 亦泣霜中之 .[3] 夫! 人居世上, 修
己行孝, 以合天心; 僧在空門, 慕道參禪, 而報慈德. 今則千山萬
水, 杳隔二途,[4] 一紙八行, 聊書寸懷. 頌曰:
不求名利不求儒, 願樂空門捨俗途,
煩惱盡時愁火滅, 恩情斷處愛河枯.
六根空慧香風引, 一念才生慧力扶,
爲報北堂休 望, 比如死子比如無.
양개가 부모님 곁을 떠나면서부터 지팡이를 짚으며 남방을 돌아다님에 세월
은 이미 열 차례나 바뀌었고 갈림길은 어느새 1만 리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엎드
려 바라옵건대 자애로운 어머님께서는 마음을 가다듬어 도를 사모하시고 뜻을
거두시어 공空에 귀의함으로써 이별의 정을 품지 마시고 문에 기대어 바라보는
일은 행하지 마십시오. 집안의 일들은 다만 인연에 따를 뿐이기에 있으면 있을수
록 더욱 많아지니 날로 번뇌만 더할 뿐입니다. 옥형은 부지런히 효도를 행하여
모름지기 얼음 속에서 고기를 구할 수 있을 것이며, 아우는 힘을 다하여 받듦에
또한 서리 속에서 죽순을 구하고자 울 것입니다. 대저 사람은 이 세상에 거처함
에 자기 몸을 수양하고 효도를 행함으로써 하늘의 마음에 합치 될 것이며, 승려
는 불가의 문중에 있으면서 도를 사모하고 선을 참구함으로써 자비로운 덕에 보
답할 것입니다. 지금은 곧 1천의 산과 1만의 물줄기가 아득히 두 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한 장의 종이에 여덟 줄의 글월로써 아쉬운 대로 한 치 품은 마음을 쓰고
자 합니다.
명리얻기 바라잖고 선비되기 바라잖고,
빈문에서 노닐고자 세속길을 버렸으니,
이번뇌가 다할때면 근심의불 꺼질게고,
은혜온정 끊어진곳 애증줄기 마를것을.
육근공해 얻는지혜 향기바람 끌어안고,
한생각이 일기도전 지혜힘이 지탱할세,
어머님께 드릴말씀 슬픈눈물 쉬실지니,
죽은듯 생각하시고 없는듯이 여기소서.
【1】杜詩: 三霜楚戶砧. 註云: 在楚, 三換星霜也.
【2】《類苑》云: [王祥, 性至孝, 繼母朱氏不慈, 數 之, 由是失愛於父. 朱嘗病, 欲食生魚, 時天寒
氷凍, 魚不可得, 祥臥氷求之, 氷忽自開, 雙鯉躍出.]
【3】又孟宗, 字恭武, 性至孝, 母好食竹 , 冬月無竹 , 宗入竹林中哀號, 爲之生.
【4】物外人間.
【1】두보의 시에 [세 차례 서리 초 땅의 문지방 모룻돌에 서리다] 하고는 주석에, 초 땅에 있
으며 한 해가 세 차례 바뀌었음을 말한다.
【2】《유원》에서 말하였다. [왕상은 성품이 매우 효성스러웠으나 계모 주씨가 자애스럽지 못하
여 자주 그를 헐뜯게 되자 그로 말미암아 부친으로부터 사랑을 잃게 되었다. 주씨가 병을
얻음에 싱싱한 물고기를 먹고 싶었으나 때는 한겨울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 있었기에 물
고기를 얻을 수가 없었는데 왕상이 얼음에 누워 그것을 구하니 얼음이 홀연히 저절로 열
리더니 두 마리의 잉어가 뛰쳐나왔다.]
【3】또 맹종은 자가 공무로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는데, 어머니가 죽순을 먹고 싶어하였
으나 겨울에 죽순이 없음에 맹종이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 슬피 우니 죽순이 그를 위해 자
라났다.
【4】출세간과 세속이다.
娘 廻 答
吾與汝, 夙有因緣, 始結母子, 取愛情注. 自從懷孕, 禱神佛天,
願生男子, 胞胎月滿, 命若懸絲, 得遂願心, 如珠寶惜, 糞穢不嫌
於臭惡, 乳哺不倦於辛勤. 稍自成人, 送令習學, 或暫逾時不歸,
便作倚門之望. 來書堅要出家, 父亡母老, 兄薄弟寒, 吾何依賴?
子有抛母之意, 娘無捨子之心. 一自汝往他方, 日夕常灑悲淚, 苦
哉苦哉! 旣誓不還鄕, 卽得從汝志. 我不期汝如王祥臥氷 丁蘭刻
木,[1] 但望汝如目連尊者, 度我解脫沈淪, 上登佛果.[2] 如其未然,
幽愆有在, 切須體悉.
나는 너와 더불어 예로부터 인연이 있어오다 비로소 에미와 아들로 맺어짐에
애욕을 취하여 정을 쏟게 되었다. 너를 가지면서부터 부처님과 하늘에 기도를 드
려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원하였더니, 임신한 몸에 달이 차자 목숨이 마치 실
끝에 매달린 듯 하였으나 마침내 마음에 바라던 것을 얻게 되어서는 마치 보배처
럼 아낌에 똥오줌도 그 악취를 싫어하지 않았으며 젖먹일 때도 그 수고로움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차츰 성인이 되면서부터 밖으로 보내어 배우고 익히게 함에
간혹 잠깐이라도 때가 지나 돌아오지 않으면 곧장 문에 기대어 바라보곤 하였다.
보내 온 글에는 굳이 출가하기를 바라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에미는 늙었음
에, 네 형은 인정이 메마르고 아우도 성격이 싸늘하니 내가 어찌 기대어 의지할
수 있겠느냐. 아들은 에미를 팽개칠 뜻이 있으나 에미는 아들을 버릴 마음이 없
다. 네가 훌쩍 다른 지방으로 떠나가고부터 아침저녁으로 항상 슬픔의 눈물을 뿌
림에 괴롭고도 괴롭구나. 이미 맹세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였으니 곧 너
의 뜻을 따를 것이로다. 나는 네가 왕상이 얼음 위에 누운 것이나 정란이 나무를
새긴 것과 같이 하기를 기대함이 아니라 단지 네가 목련존자 같이 나를 제도하여
고해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하여주고 위로는 불과佛果에 오르기를 바랄 뿐이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깊이 허물이 있을 것인 즉 모름지기 간절하게 이를
체득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1】《類苑》云: [蘭, 河內人. 少喪考 , 不及供養, 乃刻木彷彿親形, 事之如生, 朝暮定省. 隣人張
叔妻從蘭妻有所借, 蘭妻 拜木人, 不悅, 不以借之. 叔乘醉來, 罵木人, 以杖叩其頭, 蘭還見
木人色不悅, 問妻, 妻以具告, 卽奮刃殺叔. 吏捕蘭, 蘭辭木人, 木人見蘭, 爲之垂淚. 縣嘉其至
孝通於神明, 圖其形於公堂.]
【2】目連見其亡母生地獄中, 不得食, 以此白佛, 佛言: [七月十五日, 具百味五果着盆中, 供養十方
佛菩薩然後, 得食.] 目連如敎, 母得食生天.
【1】《유원》에서 말하였다. [난은 하내 사람이다. 젊어서 어머니를 여의고 공양하지 못하자 이
에 모친의 형상과 흡사하게 나무를 조각하여 생시 때와 같이 섬기며 아침저녁으로 시간에
맞춰 보살폈다. 이웃사람 장숙의 처가 난의 처에게 빌릴 것이 있다고 하자 난의 처가 목
인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니 기꺼워하지 않는지라 빌려주지 않았다. 장숙이 술김에 와
서 목인을 꾸짖고 욕하며 지팡이로 그 머리를 두드렸는데, 난이 돌아와서 목인의 안색이
기쁘지 않음을 보고는 처에게 묻자 처가 소상하게 일러주었더니 곧 분격하여 칼로 장숙을
살해하였다. 관리가 난을 체포하자 난이 목인에게 하직인사를 하니 목인이 난을 보고는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현에서 그의 지극한 효심이 신명에 통했음을 가상히 여겨 公堂
에 그의 모습을 그려 놓았다.
【2】목련존자는 그의 죽은 어머니가 지옥에 태어나서 음식을 먹지 못함을 보고는 이러한 것을
부처님께 아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7월 15일에 백 가지 음식과 다섯 가지 과일을
동이그릇에 담아 시방의 부처님과 보살님께 공양한 후에 드시게 하라] 하므로 목련존자가
가르침대로 하니 어머니가 음색을 먹고는 하늘에 태어나게 되었다.

州左溪山朗禪師召永嘉大師山居書[1]
召 書
自到靈溪, 泰然心意. 高低峰頂, 振錫常遊, 石室巖龕, 拂乎宴
坐, 靑松碧沼, 明月自生, 風掃白雲, 縱目千里. 名花香果, 蜂鳥啣
將, 猿嘯長吟, 遠近皆聽, 鋤頭當枕, 細草爲氈. 世上觴嶸, 競爭人
我, 心地未達, 方乃如斯, 有寸陰, 願垂相訪.
영계靈溪에 도착한 뒤로는 마음이 매우 편안합니다. 높고 낮은 산봉우리에 석
장을 흔들며 늘상 노닐고 돌집과 바위굴에 먼지를 털고 들어앉으니 푸른 솔과
파란 못으로 밝은 달이 저절로 생겨나고 바람이 흰 구름을 쓸어 감에 시선을 천
리 밖으로 던져 봅니다. 이름난 꽃과 향기로운 과실은 벌과 새들이 물어 나르고
원숭이의 휘파람 소리가 길게 이어져 멀고 가까이에서 모두 들리니 호미 자루를
베개 삼고 가느다란 풀잎으로 포단을 삼아봅니다. 세상은 시끌벅적 너와 나를 다
투는 것은 마음 바탕을 통달하지 못했기에 바야흐로 이와 같으니 만약 조금의
시간이 있으시면 원컨대 한 차례 찾아오시기 바랍니다.
【1】溪山.朗尊者, 東陽.傅大士六世孫, 所居左 碧澗故, 號曰左溪.
【1】계산 낭존자는 동양 부대사의 6세손으로, 거처하던 곳의 왼쪽이 푸른 계곡으로 둘려져 있
던 까닭에 호를 ‘좌계’라 하였다.
永嘉答書
自別已來, 經今數載, 遙心眷想, 時復成勞, 忽奉來書, 適然無
慮. 不委信後, 道體如何? 法味資神, 故應淸樂也. 粗得延時, 欽
詠德音, 非言可述.[1] 承懷節操, 獨處幽棲, 泯跡人間, 潛形山谷,
親朋絶往, 鳥獸時遊, 竟夜綿綿, 終朝寂寂, 視聽都息, 心累 然.
獨宿孤峰, 端居樹下, 息繁餐道, 誠合如之.[2] 然而正道寂寥, 雖有
修而難會, 邪徒喧擾, 乃無習而易親. 若非解契玄宗, 行符眞趣者,
則未可幽居抱拙, 自謂一生歟? 應當博問善知, 伏膺[3]誠懇, 執掌
屈膝, 整意端容, 曉夜忘疲, 始終虔仰, 折挫身口, 矜怠慢, 不顧
形骸, 專精至道者, 可謂澄神方寸歟.[4] 夫欲採妙探玄, 實非容易,
決擇之次, 如履輕氷, 必須側耳目而奉玄音, 肅情塵而賞幽致, 忘
言晏旨, 濯累餐微, 夕 朝詢, 不濫絲髮. 如是則乃可潛形山谷,
寂累絶群哉![5] 其或心逕未通, 物成壅, 而欲避喧求靜者, 盡世
未有其方. 乎鬱鬱長林, 峨峨聳 , 鳥獸嗚咽, 松竹森梢, 水石
觴嶸, 風枝蕭索, 藤蘿 絆, 雲霧 , 節物衰榮, 晨昏眩晃, 斯之
種類, 豈非喧雜耶? 故知! 見惑尙紆, 觸途成滯耳.[6] 是以, 先須
識道, 後乃居山. 若未識道而先居山者, 但見其山, 必忘其道; 若
未居山而先識道者, 但見其道, 必忘其山. 忘山則道性怡神, 忘道
則山形眩目. 是以, 見道忘山者, 人間亦寂也; 見山忘道者, 山中
乃喧也.[7] 必能了陰無我, 無我誰住人間? 若知陰入如空, 空聚何
殊山谷? 如其三毒未祛, 六塵尙擾, 身心自相矛盾, 何關人山之喧
寂耶?[8] 且夫道性庶虛, 萬物本非其累, 眞慈平等, 聲色何非道
乎? 特因見倒惑生, 遂成輪轉耳. 若能了境非有, 觸目無非道場,
知了本無, 所以不緣而照圓融法界, 解惑何殊? 以含靈而辨悲, 卽
想念而明智, 智生卽法應圓照, 離境何以能觀? 悲起則機合通收,
乖生何以能度? 度盡生而悲大, 照窮境而智圓, 智圓則喧寂同觀,
悲大則怨親普救. 如是則何假長居山谷? 隨處任緣哉![9] 乎! 法
法虛融, 心心寂滅, 本自非有, 誰强言無? 何喧擾之可喧, 何寂靜
之可寂? 若知物我冥一, 彼此無非道場, 復何徇喧雜於人間, 散寂
寞於山谷? 是以, 釋動求靜者, 憎枷愛杻也; 離怨求親者, 厭檻
籠也.[10] 若能慕寂於喧, 市廛無非宴坐, 徵違納順, 怨債由來善友
矣. 如是則劫奪毁辱, 何曾非我本師, 叫喚喧煩, 無非寂滅.[11] 故
知! 妙道無形, 萬像不乖其致, 眞如寂滅, 衆響靡異其源, 迷之則
見倒惑生, 悟之則違順無地. 寂非有, 緣會而能生, 峨祥非無,
緣散而能滅. 滅旣非滅, 以何滅滅, 生旣非生, 以何生生. 生滅旣
虛, 實相常住矣.[12] 是以, 定水滔滔, 何念塵而不洗, 智燈了了,
何惑霧而不祛. 乖之則六趣循環, 會之則三途逈出. 如是則何不乘
慧舟而遊法海, 而欲駕折軸於山谷者哉.[13] 故知! 物類 , 其性
自一, 靈源寂寂, 不照而知, 實相天眞, 靈智非造. 人迷謂之失, 人
悟謂之得, 得失在於人, 何關動靜者乎? 譬夫, 未解乘舟而欲怨其
水曲者哉.[14] 若能妙識玄宗, 虛心冥契, 動靜常矩, 語默恒規, 寂
爾有歸, 恬然無間, 如是則乃可逍遙山谷, 放曠郊廛, 遊逸形儀,
寂泊心腑, 恬澹息於內, 蕭散揚於外, 其身兮若拘, 其心兮若泰,
現形容於 宇, 潛幽靈於法界. 如是則應機有感, 適然無準矣.[15]
因信略此, 餘更何申? 若非志朋, 安敢輕觸. 宴寂之暇, 時暫思量.
予必?言無當, 看竟廻充紙燼耳. 不宣. 同友玄覺和南.
작별한 이후 지금까지 몇 해를 지나오며 멀리서 마음으로 돌아보고 생각함에
때로는 오히려 걱정이 되더니 문득 보내 주신 서신을 받음에 적연히 근심이 없어
집니다. 서신을 주신 뒤로는 도체道體가 어떠하신지 자세하지 않습니다만, 법의
재미로움이 정신을 북돋울 것이기에 응당 맑디맑은 즐거움에 계시리라 믿습니
다. 언뜻 시간을 내어 덕스러운 법음法音을 조심스레 읊조려 보니 이는 말로써
가히 표현할 수 있음이 아닙니다.
절개와 지조를 받들어 가슴에 품고 홀로 그윽한 곳에 머무르며 사람들 가운데
자취를 없앤 채 깊은 산과 골짜기에 몸을 잠기우고 친한 벗과는 오고감을 끊은
채 새나 짐승과 때때로 노닒에, 밤이 다하도록 간단없이 이어지고 아침녘 한나절
을 적적히 지내면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쉬어지고 마음의 번뇌는 고요해 질 것입
니다. 외로운 봉우리에 홀로 머물며 나무 아래로 단정히 거처하면 번거로움을 쉬
고 도에 맛들일 것이니, 진실로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도는 고요하고도 고요하니 비록 닦음이 있더라도 익혀 알기 어렵
고, 삿된 무리는 떠들썩하니 이에 익히지 않고도 가까이 하기 쉽습니다. 만약 이
해하는 바가 현묘한 종지에 계합하지 않거나 수행하는 바가 참된 취지에 부합하
지 않는 자라면 아직은 한적하게 머무르며 무위자적無爲自適하는 몸으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니 한 생의 삶을 살았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응당 선지식
에게 널리 물음에 가슴으로 엎드려 정성을 간절히 하고 합장하여 무릎을 꿇은
채 생각과 용모를 단정히 하고 아침저녁으로 피로함을 잊고서 시종일관 경건히
우러러 몸과 입과 뜻의 업을 꺾고 태만함을 힘써 없앰에 몸뚱이를 돌아보지 않은
채 지극한 도에 이르도록 오로지 정진하는 자 만이 혼과 마음을 맑힌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릇 오묘한 이치를 채득하고 현묘한 종지를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니 결택할 때는 마치 엷은 얼음을 밟듯이 하여 반드시 귀와 눈을 기울
여 현묘한 법음法音을 받들고 본성의 티끌을 말끔히 하여 그윽한 이치를 맛볼
것이며, 말을 잊은 채 근본 종지에 편안히 깃들어 번뇌를 씻고 미묘한 이치를 맛
들임에 아침저녁으로 삼가 생각하고 다시 물어 실 한 올과 터럭 하나라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으면 곧 몸뚱이를 산 속 골짜기에 잠기운 채
세속의 번거로움을 잠재우고 무리들과의 인연을 끊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마음의 좁은 길이 뚫리지 않아 사물을 대할 때마다 막힘이 생기게 되면
서도 시끄러움을 피해 고요한 것을 구하고자 한다면 세상이 다하더라도 그 방법
이 있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빽빽이 늘어선 숲과 높이 솟구친 가파른 언덕에
뭇 새와 짐승들이 목메어 울고 소나무와 대나무는 울창하게 솟아 있으며, 물옷
입은 바위들이 험준하게 엉켜 있고 바람 이는 가지는 쓸쓸히 서 있으며 등나무와
여라이끼가 얼기설기 얽혀 있고 구름과 안개의 기운이 어려있으며 절기마다 사
물이 피고 짐을 거듭하고 아침녘과 저물녘으로 어둠과 밝음을 반복하니, 이러한
가지가지의 모습들이 어찌 시끄럽고 번잡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미혹
된 것을 보아서 오히려 굽어지면 부딪치는 것마다 막힘이 될 뿐임을 알 수 있습
니다.
이러한 까닭에 먼저 모름지기 도를 알고 난 후에야 산에 거처해야 할 것입니
다. 만약 도를 알지 못한 채 앞서서 산에 거처하는 자는 단지 그 산을 볼 뿐 필시
그 도는 잊게 될 것이요, 만약 아직 산에 거처하지 않더라도 앞서서 도를 아는
자는 단지 그 도 만을 볼뿐이니 필시 그 산은 잊게 될 것입니다. 산을 잊으면 곧
도의 성품이 정신을 기쁘게 할 것이요, 도를 잊으면 곧 산의 형상이 눈을 현혹케
할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도를 보고 산을 잊은 자는 사람들 사이에 있더라도
또한 고요할 것이요, 산을 보고 도를 잊은 자는 산중도 시끄러울 것입니다.
반드시 오음五陰에 나 자신이 없음을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니 나 자신이 없
다면 그 누가 사람들 사이에 머무는 것이며, 만약 오음과 육입六入이 허공과 같
음을 안다면 허공이 모인 것이니 어찌 깊은 산 골짜기와 다르겠습니까. 만일 삼
독三毒을 미쳐 떨쳐버리지 못했다면 육진六塵이 오히려 어지러울 것이니 몸과
마음이 스스로 서로간에 모순 될 것이므로 어찌 사람들이나 산 속의 시끄러움이
나 고요함에 상관이 있겠습니까.
또한 무릇 도의 본 성품은 그윽이 비어 있는 것이기에 만물은 본디 그것의 번
뇌가 쌓여진 것이 아니며 진실한 자비는 평등하니 소리와 빛깔이 어찌 도가 아니
겠습니까. 보는 바가 거꾸러져 의혹이 생겨남에 특별히 기인하여 마침내 윤회의
바퀴가 구르게 될 뿐입니다. 만약 모든 경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깊이 이해
할 수 있으면 눈에 닿는 것이 도량 아님이 없을 것이며 깊이 이해해야 할 것 또한
본디 없음을 알 것이니, 그러한 까닭에 인연에 끄달리지 않고 원만융통한 법계를
비추어 본다면 올바른 견해와 잘못된 미혹이 어찌 다르겠습니까. 중생이 있음으
로써 자비가 분별되고 상념想念에 나아감으로써 지혜가 밝혀지니 지혜가 생기면
곧 법이 응당 원만히 비춰질 것인데 이러한 경계를 여의고 무엇으로써 능히 들여
다 볼 것이며, 자비심이 일어나면 곧 모든 근기를 통틀어 거두어 들여야 할 것인
데 중생과 괴리되면 어찌 능히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면
자비가 커지고 궁극적인 경계까지 비추어 보면 지혜가 원만하여질 것이니, 지혜
가 원만해지면 시끄러움과 고요함이 똑 같이 들여다보일 것이고 자비가 커지면
원수나 친한이나 두루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어찌 산 속 골짜기
에 오래도록 거처함을 빌미 하겠습니까, 머무는 곳에 따라 인연에 맡길 뿐입니다.
하물며 모든 법은 공허롭고도 융통하며 일체 마음은 고요하고도 고요하여 본
래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데 그 누가 굳이 말하여 ‘없다’라고 하겠습니까. 시끄럽
고 떠들썩한 그 어떤 것이 가히 [그것을] 시끄럽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적막하고
고요한 그 어떤 것이 가히 [그것을] 적막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만물과 나
자신이 그윽하게 하나임을 안다면 저곳이나 이곳이나 도량 아닌 곳이 없을 것인
데 다시 어찌 사람들 사이에서 떠들썩하고 혼잡함을 따르고 산 속 골짜기에서
고요하고 쓸쓸함을 흩뿌리겠습니까. 이러한 까닭에 움직임을 버리고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은 목칼을 미워하면서 쇠고랑을 좋아하는 꼴이요, 원수를 멀리 여의
고 친한 이를 가까이 하려는 것은 수레감옥을 싫어하면서 죄인덮개를 즐기는 꼴
입니다.
만약 시끄러운 가운데에서 고요함을 능히 사모할 수 있다면 저잣거리도 참선
의 자리가 아닌 곳이 없을 것이며, 어긋남을 징계하고 순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
면 원수거나 빚진 이도 본디 착한 벗일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곧 위협하여 빼앗
거나 헐뜯으며 욕함이 나의 근본되는 스승이 어찌 아닐 것이며, 규환지옥의 시끄
럽고 번잡함도 적멸 아님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진대, 오묘한 도는 형상이 없으므로 일체 모습에서 본래의 이치가
어그러져 있지 않으며 진여는 적멸하므로 일체 소리에서 본래의 근원과 다르지
않으니, 이에 미혹되면 곧 견해가 전도되어 의혹이 생기게 되고 이를 깨달으면
곧 어기는 것이나 따르는 것이나 자리할 곳이 없을 것입니다. 고요함은 본디 존
재하지 않으나 인연이 모이면 능히 생겨나고, [아상과 분별 같이] 높고도 높은
것은 없지 않으나 반연이 흩어지면 능히 소멸할 것입니다. 소멸은 이미 소멸이
아닌데 무엇으로써 소멸을 소멸시킬 것이며, 생겨남은 이미 생겨남이 아닌데 무
엇으로써 생겨남을 생겨나게 하겠습니까. 생겨남과 소멸이 다하여 텅 비게 되면
진실한 모습이 항상 머물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선정의 물줄기가 고요하고도
맑으면 어떠한 망념의 티끌일지언정 어찌 씻겨지지 않을 것이며, 지혜의 등불이
밝게 타오르면 어떠한 미혹의 안개더라도 어찌 떨쳐 없애지 못하겠습니까. 이것
이 어긋나면 곧 육취六趣에서 순환할 것이요, 이것을 익혀 깨달으면 곧 삼도三途
로부터 멀리 벗어날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어찌 지혜의 배를 타고서 법의 바다
에 노닐지 않고 산 속 골짜기에서 바퀴 축이 부러진 수레를 몰고자 합니까.
그러므로 사물은 종류가 어지러이 많다지만 그 성품은 본래가 하나이며 신령
스러운 근원은 고요하고 고요하지만 비추지 않고도 알 수 있으니 진실한 모습은
천진하며 신령한 지혜는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미혹하
면 그것을 일컬어 ‘잃었다’하고 사람이 깨달으면 그것을 일컬어 ‘얻었다’하니, 얻
고 잃음이 사람에게 있을지언정 어찌 움직임과 고요함에 연관되겠습니까. 비유
컨대, 아직 배타는 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 물줄기가 굽어져 있는 것만을 원
망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만약 현묘한 종지를 능히 잘 알아 텅 비운 마음으로 그윽이 계합하면 움직임
과 고요함이 항상 법다웁고 언어와 침묵이 늘 모범되어 고요한 마음이 돌아갈
바가 있으며 편안한 마음은 간단間斷이 없으리니, 이와 같으면 곧 산 속 골짜기
를 자유로이 거닐고 성밖 저자거리를 활달하게 노닒에 겉모습은 즐거이 노닐지
라도 속마음은 고요히 머물러 있으며 안으로는 담박하게 쉬고 밖으로는 조용하
고도 한가롭게 드날리니 그 몸은 마치 얽매인 듯 하나 그 마음은 마치 태연한
듯하여 모습을 천하에 드러내고 그윽한 영혼을 법계에 침착히 잠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으면 곧 근기根機에 응하여 감응이 있게 됨에 자유로워서 [따로이] 준칙
이 없을 것입니다.
서신에 답하여 이처럼 간략히 적으니 나머지 말은 다시 어찌 펼치겠습니까.
만약 뜻 있는 벗이 아니면 어찌 감히 가벼이 범하여 들었겠습니까. 한적함을 즐
기는 여가에 때때로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필시 미친 듯이 한 말은
[그대에게] 해당되는 바가 없을 것이니 다 보고 난 뒤 불쏘시개로나 사용하여 주
십시오. 이만 줄이겠습니다. 도반 현각 합장.
【1】上問候, 下領旨.
【2】下省己求反.
【3】胸也, 爲首俯伏於胸也.
【4】下, 隱居得失, 先明得.
【5】下卞失.
【6】下約道結得失.
【7】下約行結得失.
【8】下悲智由道.
【9】下喧寂在人先雙 喧寂.
【10】次雙會喧寂.
【11】下雙結喧寂.
【12】下約定慧責.
【13】下約迷悟責.
【14】下結旨應機.
【15】下敍謙光.
【1】이상은 문안을 나눈 말이고, 아래는 편지글을 이해한 내용을 얘기하였다.
【2】아래는 자기 자신을 살펴보고 반대되는 내용을 구한 것이다.
【3】가슴이니, 머리를 가슴에 부복하는 것이다.
【4】아래는 은둔하여 거처하는 득실을 말함에 먼저 그 이득을 밝혔다.
【5】아래는 손실을 밝혔다.
【6】아래는 道를 지니고 있음과 있지 못함에 [산에 거처하는] 득실이 달려있음을 말하고 있다.
【7】아래는 行을 지니고 있음과 있지 못함에 [산에 거처하는] 득실이 달려있음을 말하고 있다.
【8】아래는 자비와 지혜가 道에 말미암았음을 밝혔다.
【9】아래는 시끄럽고 고요함이 사람에게 있으니 먼저 시끄럽고 고요함에 대한 사실을 함께 조
사하여 밝힌 것이다.
【10】그 다음으로 시끄럽고 고요함을 함께 會通시킨 것이다.
【11】아래는 시끄럽고 고요함을 함께 結付시킨 것이다.
【12】아래는 선정과 지혜에 기준하여 책망하였다.
【13】아래는 미혹과 깨달음에 기준하여 책망하였다.
【14】아래는 종지에 결부되어 근기에 반응함을 말한다.
【15】아래는 겸손한 빛을 서술하였다.
應庵華禪師答詮[1]長老法嗣書[2]
老僧自幼出家, 正因也; 方袍圓頂, 正因也; 念生死未明, 撥草
瞻風, 親近眞善知識亦正因也. 至於出世領衆, 今三十餘年, 未嘗
毫髮厚己也; 方丈之務, 未嘗少怠也; 晝夜精勤, 未嘗敢懈也; 念
衆之心, 未嘗斯須忘也;[3] 護惜常住之念, 未嘗敢私也. 行解雖未
及古人, 隨自力量行之, 亦不負愧也. 痛心佛祖慧命懸危, 甚於割
身肉也; 念報佛祖深恩, 寢息不遑安處也; 念方來衲子心地未明,
不 倒懸也; 雖未能盡古人之萬一, 然此心不欺也. 長老隨侍吾三
四載, 凜然卓卓, 可喜. 去年夏末, 命悅衆, 是吾知長老也. 吾謝鍾
山寓宣城.昭亭, 未幾赴姑蘇.光孝, 方兩月, 長老受鳳山之請, 道由
姑蘇, 首來相見, 道義不忘, 其如此也. 別後, 杳不聞耗,[4] 正思念
間, 懷淨上人來,[5] 承書 信物, 方知入院之初, 開堂[6]爲吾燒香,
乃知不負之心昭廓也. 今旣爲人天眼目, 與前來事體不同也. 果能
如吾自幼出家, 爲僧行脚, 親近眞善知識, 以至出世住持, 其正因
行藏, 如此行之, 則吾不妄付授也. 又何患宗門寂寥哉! 至祝! 無
以表信, 付拂子一枝 法衣一領, 幸收之.
紹興壬午七月初七日, 住平江府.光孝.應庵老僧曇華書復.
이 늙은 승려가 어려서 출가한 것은 바른 인연이고, 네모진 소매에 둥근 정수
리를 한 것도 바른 인연이며,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아직 밝히지 못했음을 염려하
여 풀밭을 헤치고 바람을 쳐다보며 참된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 역시 바른 인연
이다.
대중 앞에 발탁되어 대중을 이끌어 온 지 이제 삼십 여 년이 되었으나 털끝만
큼도 자신의 몸을 후하게 하지 않았고 방장의 임무를 조금도 태만하지 않았으며,
밤낮으로 정근함에 감히 게으르지 않았고 대중의 마음을 생각함에 잠깐 동안도
잊어 본 적이 없으며 상주물은 보호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감히 사사로이 하지
않았다. 수행과 견해가 비록 옛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하나 스스로의 역량에 따라
행하여 온지라 또한 부끄럽지 않도다.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혜명慧命이 위태로
운 지경임을 마음 아프게 여기기를 육신의 살을 베어 내는 것 보다 심하게 여겼
으며,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깊은 은혜에 보답하고자는 마음에 잠자거나 쉴 때도
한가로이 편안한 처소에 머무르지 못했으며, 사방에서 몰려드는 납자衲子들의
심지를 밝혀주지 못함을 생각함에 거꾸로 매달린 것 같이 여겼을 뿐만이 아니었
으니, 비록 옛 사람들의 만분지일萬分之一도 능히 다하지 못하였지만 그러나 이
마음은 속이지 않았다.
장로가 나를 따르며 시중 든 지 서너해 되었는데 늠름하고도 탁월하여 매우
기뻤다. 지난 해 여름이 끝날 무렵 열중悅衆에 임명하니 이는 내가 장로를 잘 알
기 때문이다. 내가 종산을 떠나와 선성의 소정에 머물다가 얼마지 않아 고소의
광효에 부임하였더니 바야흐로 두 달 만에 장로가 봉산의 부탁을 받고 도중에
고소를 경유하며 먼저 찾아와 서로 보았으니, 도의를 잊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헤어진 후 묘연하여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마침 생각하고 있던 중에 회정상인이
와서 서신과 신물을 받들어 전하기에 그제서야 사원에 들어가던 초에 법당을 열
어 나를 위해 향을 사루었음을 알았으니, 이로서 저버리지 않는 마음이 밝고도
넓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미 인천人天의 동량이 되었으니 예전과는 일의 형
편이 같지 않을 것이다. 과연 내가 어려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 운수행각하며
참된 선지식을 가까이하고 대중 앞에 발탁되어 주지하기에 이르기까지의 그 바
른 인연인 행장行藏과도 같이 이처럼 행하였으니 곧 내가 망령되이 부탁하지 않
겠다. 또한 종문宗門이 적적함을 어찌 근심하겠는가. 지성으로 축하하나니, 달리
믿음을 표할 길 없기에 불자拂子 하나와 법의法衣 한 벌을 붙이니 받아 주기 바
란다.
소흥 임오년 칠월 칠일, 평강부의 광효에 머물고 있는 응암 노승 담화가 글을
써서 답한다.
【1】守詮.
【2】曇華禪師, 州.江氏子, 嗣虎丘.紹隆禪師.
【3】斯者, 辨於此; 須者, 待於彼. 辨則離, 待則合, 謂一離一合之頃.
【4】董仲舒《策》: [察天下之息耗] 註: 息, 生也; 耗, 虛也. 息耗, 一云善惡.
【5】上人,《律》云: [甁沙王稱佛弟子, 謂上人.]《大品》云: [佛言: 若菩薩一心行阿 菩提, 心不散
亂, 是名上人.]
【6】《祖庭》云: [今宗門, 命長老, 住持演法之初, 亦皆謂之開堂者, 謂演佛祖正法眼藏, 上祝天算,
又以祝四海生靈之福, 是謂開堂也.]
【1】이름이 수전이다.
【2】담화선사는 기주 강씨의 아들이며 호구 소융선사의 법을 이었다.
【3】斯란 여기에서 변별함이요 須란 저기에서 기다림이다. 변별한 즉 헤어지고 기다린 즉 만
나나니, 한 차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잠시간을 일컫는다.
【4】동중서의《책》에 [천하의 정황(息耗)을 살핀다] 하고는 주석에, 息은 생겨남이요 耗는 텅
비게 하는 것이다. 息耗를 또는 善惡이라고도 한다.
【5】上人이란《율》에 이르기를 [병사왕이 불제자를 일컬어 上人이라 하였다]고 하였으며,《대
품》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약 보살이 일심으로 아뇩보리를 행하면 마음
이 산란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을 上人이라 이름한다고 하셨다]고 하였다.
【6】《조정》에서 말하였다. [지금의 종문에서 장로나 주지로 명을 받아 법을 연설하는 그 처음
역시 모두 開堂이라 일컫는 것은 부처님의 正法眼藏을 연설하여 위로 하늘의 지혜를 축원
함을 말하며,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 생령들의 복을 기원하는 그것을 開堂이라 일
컫는다.]
大智照律師送衣鉢與圓照本禪師書[1]
某年月日, 比丘元照謹裁書, 獻于淨慈.圓照禪師. 元照早嘗學律
知佛制, 比丘必備三衣 一鉢 坐具 囊, 是爲六物. 上中下根, 制
令遵奉故, 從其門者不可輒違, 違之則抵逆上訓, 非所謂師資之道
也. 三衣者何? 一曰僧伽梨, 謂之大衣, 入聚應供, 登座說法則着
之; 二曰鬱多羅僧, 謂之中衣, 隨衆禮誦 入堂受食則着之; 三曰
安陀會, 謂之下衣, 道路往來 寺中作務則着之. 是三種衣, 必以序
麻苧爲其體, 靑 黑 木蘭染其色,[2] 三 五 爲其量. 裂碎還縫,
所以息貪情也; 條葉分明, 所以示福田也.[3] 言其相則三乘聖賢而
同式, 論其名則九十六道所未聞, 敍其功則人得免凶危之憂 龍被
逃金翅之難,[4] 備存諸大藏, 未可以卒擧也. 一鉢者, 具云鉢多羅,
此云應器. 鐵瓦二物, 體如法也; 煙薰靑翠, 色如法也; 三斗斗半,
量如法也. 盖是諸佛之標幟, 而非廊廟之器用矣. 昔者迦葉如來授
我釋迦本師,《智論》所謂十三條序布僧伽梨, 是也. 至垂滅, 遣
飮光尊者持之於鷄足山以待彌勒, 有以見佛佛之所尊也;[5] 祖師西
至, 六代相付, 表嗣法之有自, 此又祖祖之所尙也. 今有講下僧在
原, 奉持制物有年數矣. 近以病卒, 將啓手足,[6] 囑令以衣鉢坐具
奉于禪師, 實以賴其慈蔭, 資其冥路故也. 恭惟, 禪師道邁前修,
德歸庶物, 黑白蟻慕,[7] 遐邇雲奔, 天下叢林, 莫如斯盛. 竊謂事因
時擧, 道假人弘, 果蒙暫屈高明, 俯從下意, 許容納受, 特爲奉持,
如是則大聖之嚴制可行, 諸祖之餘風未墜. 謹遣僧, 齎衣鉢共五事,
修書以道其意, 可否間惟禪師裁之. 不宣.[8]
모년 모월일에 비구 원조는 삼가 글을 다듬어서 정자 원조선사에게 드립니다.
원조는 일찍이 율장을 배워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바를 알고 있으니, 비구는 반드
시 세 가지 옷과 하나의 바루 그리고 앉는 도구와 녹랑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를
육물六物이라 합니다. 상중하의 근기에 따라 제정하여 좇아 지키며 받들도록 한
까닭에 불문佛門을 따르는 자는 가벼이 어길 수 없으니, 이를 어기면 곧 높으신
가르침을 거역하는 것이므로 스승과 제자의 도리라고 일컬을 바가 아닙니다.
세 가지 옷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를 승가리僧伽梨라 하여 ‘큰 옷’이라 일컫는
데 마을에 들어가 공양에 응하거나 자리에 올라 법을 설할 때 착용하며, 두 번째
를 울다라승鬱多羅僧이라 하여 ‘가운데 옷’라 일컫는데 대중을 따라 예불이나 경
을 읽을 때 또는 전당에 들어가 음식을 받을 때 착용하며, 세 번째를 안타회安陀
會라 하여 ‘안쪽 옷’이라 일컫는데 길을 왕래할 때나 절 안에서 운력할 때 착용합
니다. 이 세 종류의 옷은 반드시 거칠고 성긴 삼베로 그 바탕을 삼고 푸른색과
검은색 및 목란색으로 염색하여 3주 에 5주 를 그 크기로 삼습니다. 찢어지고
헤지면 다시 바느질하는 것은 탐내는 마음을 쉬고자 하는 까닭이며, 가닥과 잎을
분명하게 하는 것은 복밭임을 표시하고자 하는 까닭입니다. 그 모습을 말하면 곧
삼승三乘의 성현이 같은 형식이고, 그 이름을 논하면 아흔 여섯 외도에게서도 들
어보지 못했던 바이며, 그 공을 서술하면 곧 사람이 얻음에 재앙과 위태로움의
근심을 면하고 용이 입음에 금시조의 난을 피할 수 있으니, 이러한 내용들이 대
장경에 갖추어져 있으나 졸지에 열거할 수 없을 뿐입니다.
하나의 발우라는 것은 갖추어 말하면 발다라鉢多羅로서 이곳 말로는 알맞은
그릇(應器)이라 합니다. 쇠와 질그릇의 두 가지 물질로 되어 있으니 그 몸체가
법답다 할 것이며, 연기를 쏘여 푸른 비취빛을 뛰게 하였으니 그 색채가 법답다
할 것이며, 세 두斗와 한 두斗 반이니 그 양이 법답다 할 것입니다. 대개 이는
모든 부처님의 표식이지 묘당의 제구는 아닙니다.
옛적에 가섭여래께서 우리 석가본사께 건네주셨으니,《지론》에서 말하는 거
친 베로 된 13조의 승가리가 그것입니다. 입멸에 임박하여 음광존자를 보내 그것
을 가지고 계족산에서 미륵을 기다리게 하였으니 모든 부처님들이 존중하는 바
임을 드러내 보이려는 까닭이며, 조사께서 서쪽에서 이른 뒤로 6대가 서로 부촉
함은 법을 이어가는 것에 그 비롯한 근원이 있음을 드러내는 까닭이니 이는 또한
모든 조사님들이 숭상하는 바입니다.
지금 논강제자 중 재원在原이 있어 법다운 육물을 받들어 지닌 지 수 년째 되
었습니다. 근자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막 손발을 열어 보이려 할 때에 가사
와 발우 및 앉는 도구를 선사에게 드릴 것을 부탁하였으니 실로 자애로운 음덕에
힘입어 그 저승길을 돕고자 하는 까닭일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사의 도력이
앞서 수행하던 분들을 뛰어넘고 덕행은 만물이 돌아와 의지하니 사문이나 속인
들이 개미떼처럼 붙좇으며 멀고 가까이서 구름처럼 몰려오는지라, 천하의 총림
이 이같이 번성한 적이 없었습니다. 가만히 말씀드리건대 모든 일은 때에 인연하
여 거행되고 도는 사람에 빌미하여 넓혀지는 것이므로 높고 밝으신 뜻을 잠시
굽히고 아랫사람의 뜻을 굽어 따름으로서 과연 허락하고 받아들여 특별히 지녀
주시면 이로서 곧 큰 성인의 엄한 법제가 행해질 수 있을 것이며 모든 조사님의
남겨진 교화의 바람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삼가 승려를 보내며 가사와 발우를 꾸리고 다섯 가지 일과 함께 글을 써서 그
뜻을 아뢰오니 가부간에 오직 선사께서는 이를 헤아려 받아들여 주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1】照本禪師, 常州.無錫.管氏子, 嗣天衣.義懷禪師.
【2】《四分》有三壞色, 靑 黑 木蘭. 靑謂銅靑色也, 黑謂雜泥色也. 木蘭, 樹皮色也, 其皮染作赤色
也.
【3】《章服儀》云: [條堤之相, 事等田疇, 如畦貯水而養嘉苗, 譬服此衣而生功德也. 佛令像此, 義不
徒然.]《五分》云: [衣下數破, 當倒彼之.]
【4】《海龍王經》云: [龍王白佛: {如此海中, 無數龍種, 有四金翅鳥, 常來食之, 願佛擁護, 令得安
穩.} 於是, 佛脫身 衣, 告龍王言: {汝取是衣, 分與諸龍, 皆令周遍, 於中有値一縷者, 鳥不能
觸犯.}]
【5】《祖庭》云: [迦葉入王舍城, 最後乞食. 食已未久, 登鷄足山, 山有三峯, 如仰鷄足. 迦葉入中,
結跏趺坐, 作誠實言: {願我此身幷衲鉢等, 久住不壞, 乃至經於五十七俱 六十百千歲, 慈氏如
來出現世時, 施作佛事.} 作此誓已, 尋般涅槃. 時, 彼三峯, 便合成一.]
【6】曾子有疾, 召門弟子曰: [啓予手足! 而今而後, 吾知免矣. 小子!] 盖曾子平日, 以身體不敢毁
傷故, 於此使弟子開衾而視之, 以其所保之全, 示門人, 至於將死而後, 以其得免於毁傷. 小子,
門人.
【7】言緇素嚮往, 如蟻集腥 .
【8】準薩婆多中, 三衣長五 廣三 , 每 一尺八寸. 準姬周尺, 長九尺 廣五尺四寸.
【1】조본선사는 상주 무석의 관씨 아들로서 천의 의회선사의 법을 이었다.
【2】《사분율》에 세 가지 壞色이 있으니 푸른 색과 검은 색과 목란색이다. 푸른 색은 구릿빛 같
이 푸른 색을 말하며, 검은 색은 잡다한 진흙색이다. 목란은 [목란의] 나무껍질색인데 그
껍질로 염색하여 붉은 색을 만든다.
【3】《장복의》에 이르기를 [가닥이 진 모습을 밭두둑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은 마치 두둑을 쌓고
물을 저장하여 벼를 기르는 것과 같음이니, 이 옷을 입으면 모든 공덕이 자라남을 비유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러한 모양을 띄게 한 것은 그 뜻이 공연한 것이 아니다] 하였으며,
《오분율》에 이르기를 [옷 아래쪽이 자주 닿아 떨어지면 응당 거꾸로 입으라] 하였다.
【4】《해룡왕경》에 말하였다. [용왕이 부처님께 아뢰기를 {이 바다 가운데 무수한 용의 종자를
네 마리의 금시조가 있어서 항상 와서 먹으니 원컨대 부처님께서 옹호하시어 편안함을 얻
게 하여 주십시오} 하였더니 이에 부처님께서 몸에서 검게 물들인 옷을 벗어서 용왕에게
고하기를 {너는 이 옷을 가져다 모든 용들에게 나누어주어 모두가 두르도록 할 것이니, 그
가운데 할 올만 가지게 되더라도 금시조가 능히 범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5】《조정》에 말하였다. [가섭이 왕사성에 들어가 최후로 걸식을 하였다. 식사가 끝나고 얼마
후에 계족산에 오르니 산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었는데 마치 닭의 발이 하늘을 우러러보
고 있는 것 같았다. 가섭이 그 가운데로 들어가 결가부좌를 하고는 정성스럽고도 진실된
말로 {원하옵건대, 나의 이 몸과 가사 및 발우 등이 오래도록 허물어지지 않은 채 57구지
60백천세가 지나기에 이르러 자씨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할 때 불사를 이루어 베풀도록
하여 주십시오} 하여 이러한 서약을 짓고 난 후에 곧 열반에 드셨다. 이 때 그 세 봉우리
가 문득 합쳐져서 하나로 되었다.]
【6】증자가 병이 있자 문중의 제자들을 불러 말하기를 [나의 손과 발을 펴 보아라. 지금 이후
에야 내가 면하였음을 알았도다. 문인들아!] 하였다. 아마도 증자가 평소에 신체를 감히
훼손시키지 않았던 까닭에 여기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이불을 헤치고 그것을 보게 함으로
써 온전히 보전시킨 바를 문하인들에게 보여준 것이니, 막 죽게 됨에 이른 뒤에야 훼상을
면하였음을 알았다고 말한 것이다. 소자는 문하인이다.
【7】사문과 속인들이 심복하여 향해감이 마치 개미가 비린 것에 모여드는 것 같음을 말한다.
【8】살바다율의 내용에 기준하면 세 종류 가사는 길이가 5주이고 넓이는 3주이며, 1주는 1척8
촌이다. 희씨 성의 주나라 척도에 기준하면 길이가 9척이요 넓이가 5척4촌이다.
開善密庵謙禪師答陳知丞書[1]
某啓. 欣審官舍多暇, 焚香靜默, 坐進此道, 何樂如之? 參禪如
應擧. 應擧之志, 在乎登第, 若不登第而欲功名富貴, 光華一世者,
不可得也; 參禪之志, 在乎悟道, 若不悟道而欲福德智慧, 超越三
界者, 不可得也. 竊嘗思, 悟道之爲易, 登第之爲難, 何故? 學術
在我, 與奪在彼, 以我之所見, 合彼之所見, 不亦難乎? 是以, 登
弟之難也. 參究在我, 證入在我, 以我之無見, 合彼之無見, 不亦
易乎? 是以, 悟道之爲易也. 然, 參禪者衆, 悟道者寡, 何也? 有
我故也. 有我則不能證入, 亦易中之難也. 讀書者衆, 及第者亦衆,
何也? 見合故也. 見合則推而應選, 是難中之易也. 故, 見合爲易,
無我爲難; 無我爲易, 無無爲難; 無無亦易, 亦無無無爲難; 亦無
無無亦易, 亦無無無亦無爲難; 亦無無無亦無爲易, 和座子撞飜爲
難. 故, 龐居士云: [鍊盡三山鐵, 鎔銷五嶽銅.] 豈欺人哉! 因筆
及此, 庶火爐邊團欒頭, 說無生話時, 聊發一笑.[2]
아무개가 아뢰노라. 흔쾌히 살피건대, 관사에 여가가 많아서 향을 사르고 조용
히 침묵하는 가운데 가만히 앉아 이 도에 나아간다고 하니 어떠한 즐거움이 이와
같겠는가. 참선은 과거에 응시하는 것과 같다. 과거에 응하는 뜻은 급제함에 있
으니 만약 급제하지 못하고서 부귀공명으로 한 세상을 영화롭고자 하는 것은 이
룰 수 없는 일이며, 참선하는 뜻은 도를 깨치는데 있으니 만약 도를 깨치지 못하
고서 복덕과 지혜로 삼계를 초월하고자 하는 것은 이룰 수 없는 일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건대 도를 깨치기는 쉽고 과거는 급제하기 어려우니 무슨 까
닭인가? 학문과 기술은 나에게 있으나 주고 빼앗는 것은 저들에게 있으므로 나
의 소견으로써 저들의 소견에 합치시켜야 하기에 대단히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
한 까닭에 과거에 급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참선으로 진리를 구함도 나에게 있고
증득하여 들어가는 것도 나에게 있으므로 나의 소견이 없는 자리로써 저 소견이
없는 자리에 합치시키는 것이기에 대단히 쉽지 않겠는가. 그러한 까닭에 도를 깨
치기는 쉬운 것이다.
그러나 참선하는 자는 많으나 도를 깨치는 자는 적으니 어찌된 까닭인가? 내
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으면 증득하여 들어갈 수 없으니 대단히 쉬운 가
운데 어려운 것이다. 글을 읽는 자가 많고 급제하는 자 또한 많으니 어찌된 까닭
인가? 견해가 계합하기 때문이다. 견해가 계합하면 추천하여 선발에 응하는 것이
니 이는 어려운 가운데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견해가 계합되기는 쉬우나 내가 없기는 어려우며, 내가 없기는 쉬우
나 내가 없음이 없기는 어려우며, 내가 없음이 없기는 또한 쉬우나 또한 내가 없
음이 없는 것까지 없기는 어려우며, 또한 내가 없음이 없는 것까지 없기는 또한
쉬우나 또한 내가 없음이 없는 것이 없는 것까지 또한 없기는 어려우며, 내가 없
음이 없는 것이 없는 것까지 또한 없기는 쉬우나 앉은 방석까지도 아울러 흔들어
뒤집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방거사가 [세 산줄기의 쇠를 모두 정련하고 다섯 산
맥의 구리를 모두 녹여낸다] 하였으니 어찌 사람을 속이겠는가. 쓰다보니 여기까
지 왔음에 화롯가에서 단란하게 무생無生에 관한 얘기를 말할 때 그저 한 차례
웃기를 바라노라.
【1】縣百戶以上爲令, 皆有丞, 主刑獄囚徒, 多以本部人爲之. 俗謂之閑官, 不領公事. 道謙禪師, 建
寧府人, 嗣大慧.
【2】龐居士頌云: [有男不婚, 有女不嫁, 大家團欒頭, 共說無生話.]
【1】현에서 1백 가구 이상을 令으로하여 모두 丞을 두었으니, 주로 옥사나 죄인의 일을 다루며
대체로 본 부락의 사람으로써 그 보직을 삼았다. 속칭 閑官이라 하니 공적인 일에는 매달
리지 않는다. 도겸선사는 건녕부 사람으로 대혜의 법을 이었다.
【2】방거사의 송에 말하였다. [남자가 있으되 장가들지 않고 여자가 있으되 시집가지 않고, 집
안 모두 단란하게 둘러앉아 無生의 얘기를 함께 말한다.]
顔侍郞答雲行人書
近辱書誨, 且以禪敎之說見敎, 讀之, 深有開慰. 而向來亦嘗有
所開示, 適以多事, 不能與師周旋,[1] 今復有言, 自非見愛之深, 孰
能以此相警? 顧我愚昧, 何足知之, 然師所言者, 予竊疑焉. 於如
來方便之道, 似執一偏, 猶有人我之見, 以我爲是, 以人爲非, 於
佛法中, 是爲大病. 人我不除, 妄談優劣, 只爲戱論, 爭之不已, 遂
成謗法, 未獲妙果, 先招惡報, 不可不愼. 但能於先佛一方便門,
精進修行, 行滿功圓, 自然超脫, 不必執我者爲是 以餘爲非也. 修
行淨土, 佛及菩薩皆所稱歎, 在家 出家, 往生非一, 今末法之
中, 修此門者, 可謂捷經. 然, 於是中間, 亦須洗去根塵, 折我
慢, 於其他種種法門, 雖非正修行路, 隨力隨分, 亦加欽信, 豈可
妄論優劣, 自爲高下? 達磨西來, 不立文字, 直傳心印, 一花五葉.
自曹溪來, 悟此法者, 如稻麻竹葦, 在李唐時, 世主尊崇, 如事師
長, 以至于今, 師授不絶, 特未可以優劣議也. 若必欲引敎家義目,
定其造證, 謂如是修者方入某地 如是行者方登某位, 眞所謂描畵
虛空, 徒自勞耳. 故,《經》云: [如人數他寶, 自無半錢分.] 於法不
修行, 多聞亦如是, 願師屛去知見, 勿論其他, 專心自修於淨業也.
某每與師談, 見師多斥不立文字之說, 使此說非善則達磨必不西
來, 二祖必不肯斷臂求之也. 今禪家文字 滿天下, 此乃末流自然
至此, 何足怪耶? 娑婆世界衆生知見種種差別, 非可以一法而得
出離故, 佛以方便設種種法門, 使其東西南北縱橫小大, 皆可修行,
皆可證入. 華嚴會上, 文殊師利, 盖嘗問於覺首言: [心性是一, 云
何見有種種差別?] 問於德首言: [如來所悟, 唯是一法, 云何乃說
無量諸法?] 問於智首言: [於佛法中, 智爲上首, 如來何故, 或讚
布施, 或讚持戒, 或讚堪忍, 以至或復讚歎慈悲喜捨, 終無有以一
法而得出離者?] 咸有頌答, 是師之朝夕所讀者也, 斯理必深明之.
夫受病旣殊, 處方亦異, 今以手足之疾, 服某藥而愈, 他人病在腹
心而責其不進手足之藥, 乃以治腹心之劑爲非, 可乎? 楞嚴會中
二十五行, 獨推觀音, 豈可便優觀音而劣諸菩薩? 神仙外道, 於我
法中, 皆爲邪見. 然, 華嚴知識, 或在外道, 或爲人王, 或爲淫女,
引導衆生, 若以正修行者爲是, 則善財所參勝熱 婆須密女 無厭足
王等, 皆可指爲非也.[2] 千經萬論, 止爲衆生除病, 病去藥除, 何須
無病而自灸? 此心垢重, 故修淨因, 淨垢若亡, 復何修證. 三界無
住, 何處求心, 四大本空, 佛依何住? 衣中之寶, 只爲衣纏, 衣若
壞亡, 珠當自現. 聊敍鄙見, 以復來誨, 或別有可敎者, 更垂一言,
幸甚. 愼勿支離蔓衍, 以成戱論也. 邇來, 四大輕安否? 所苦不下
食, 今復差退否? 某隨緣過日, 只求無事耳. 未間千萬珍重.
근자에 수고스럽게 서신으로써 깨우쳐 주시고 또한 선禪과 교敎의 말씀으로
써 가르침을 드러내 보이심에 그것을 읽으니 깨닫고 위로됨이 절실하였습니다.
또한 지난번에도 계도해 보이셨으나 마침 여러 일로 하여 스님과 더불어 서신을
내왕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다시 말씀이 있으시니, 만약 사랑을 드러내 보임이 깊
지 않다면 그 누가 능히 이러한 것으로써 서로 경책하여 주겠습니까.
돌이켜보건대 제가 우매한 까닭에 어찌 흡족히 그것을 알겠습니까 마는 스님
께서 말씀하신 바는 제가 그윽이 의심스럽습니다. 여래 방편의 도에 있어서 흡사
치우친 한 편에 집착하는 것 같아 오히려 인상과 아상의 견해가 있게 되어 나
자신을 옳다 하고 남을 그르다 하니 부처님 법에서는 이것이 큰 병폐입니다. 인
상과 아상을 떨치지 못하고 망령되이 우열을 논한다면 단지 쓸모 없는 이론이
될 뿐이니 이를 다투어 그치지 않으면 마침내 정법을 헐뜯게 되어 오묘한 결과를
얻지 못한 채 앞서 죄악의 과보 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므로 삼가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단지 앞선 부처님의 한 가지 방편문에 능하여 오로지 수행해 나간다면
덕행과 공덕이 원만해지고 자연스럽게 초탈해질 것이므로 나 자신만이 옳고 그
나머지는 그르다는 생각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토淨土를 수행하면 부처
님과 보살이 모두 칭송하고 찬탄할 것이며 재가와 출가 가운데 왕생往生한 이가
한 둘이 아닐진대 하물며 지금과 같은 말법 시대에 이 정토염불문을 수행하는
것은 가히 첩경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서 또한 오근五根과
오진五塵을 씻어버리고 아만을 꺾어야 하고 기타 가지가지의 법문에서 비록 미
리 마음먹었던 수행의 행로는 아니더라도 역량과 분수에 따라 또한 한층 더 공경
하여 믿어야 할 것이니, 어찌 망령되이 우열을 논하여 스스로 높고 낮다 여기겠
습니까.
달마가 서쪽에서 오셔서 문자를 세우지 않고 마음의 흔적으로 곧장 전하니 한
송이 꽃에 다섯 잎이 되었습니다. 조계선사로부터 내려오며 이 법을 깨달은 자가
마치 빽빽이 들어찬 볏단이나 대나무숲처럼 많았고 이씨의 당나라 때는 대대로
군주들이 존경하고 숭앙하기를 마치 스승이나 어른을 섬기듯 하였으며, 그렇게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승의 전수가 끊이지 않았으니 별스럽게 우열로써 의론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반드시 교학의 가문에서 말하는 정의와 조목을 인용하
여 증득의 경지에 나아가는 단계를 정하고자 하여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라야
바야흐로 어떠어떠한 경지에 들어간다’거나 ‘이와 같이 수행하는 자라야 바야흐
로 어떠어떠한 계위에 오른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참으로 허공을 묘사하여 그림
을 그리는 것이니 다만 스스로 수고로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경전에 이르기를
[마치 어떤 사람이 다른 이의 보물을 헤아릴 뿐 자신에게는 반푼도 몫도 없는
것과 같다]라 하였듯이 법에 있어서도 수행하지 않으면 비록 많이 들었다 하더
라도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니, 바라건대 스님께서는 알음알이 소견을 물리쳐서 버
린 채 그 외의 것은 논하지 말고 전심으로 업을 깨끗이 하는 일을 스스로 닦으십
시오.
제가 매번 스님과 얘기를 나눌 때 스님께서 여러번 불립문자의 논설을 배척함
을 보았는데 만일 이 논설이 옳은 것이 아니라면 필시 달마가 서쪽에서 오지는
않았을 것이며 반드시 혜가대사 또한 기꺼이 팔을 끊으며 그것을 구하지는 않았
을 것입니다. 지금 선가禪家의 문자가 만천하에 두루하니 이는 말법의 흐름이 자
연히 이러한 지경에 이른 것이기에 어찌 괴이하다고만 하겠습니까. 사바세계 중
생의 지혜와 견해는 가지가지로 차별이 있어 하나의 법으로써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닌 까닭에 부처님이 방편으로써 가지가지의 법문을 베풀어 동서남북과
대소종횡으로 하여금 모두 수행할 수 있게 하였고 모두 증득하여 들어갈 수 있게
하였습니다. 화엄회상에서 문수사리보살이 일찍이 각수보살에게 묻기를 [마음
과 성품은 하나인데 어찌하여 가지가지의 차별이 있음을 보게 됩니까?] 하였고,
덕수보살에게 묻기를 [여래가 깨달은 바는 오직 한 가지 법인데 어찌하여 ‘무량
한 모든 법’이라 말합니까?] 하였으며, 지수보살에게 묻기를 [부처님 법 가운데
지혜를 가장 우두머리로 여기는데 여래는 어떤 까닭으로 혹은 보시함을 찬탄하
고 혹은 계를 지킴을 찬탄하며 혹은 감내함을 찬탄하거나 혹은 자비하고 희사함
을 찬탄하기까지 함으로써 결국에는 하나의 법으로써 벗어남을 얻게 하지 못하
는 것입니까?] 하였는데 모두 게송으로 답한 것이 있으니 이는 스님께서 아침저
녁으로 읽은 것이라 필시 그 이치에는 매우 밝을 것입니다.
무릇 얻은 병이 이미 다르면 그 처방도 다른 법인데, 지금 손발의 질환에 어떤
약을 복용하고 쾌유하였다 하여 다른 사람의 병이 뱃속에 있는데도 손발의 질환
에 먹는 약을 쓰지 않았다고 힐책하며 뱃속 치료약을 그른 것이라 한다면 옳겠습
니까? 능엄회상 가운데 25행에 유독 관음보살만을 추대한 것이 어찌 관음보살만
이 우수하고 다른 모든 보살은 열등하다는 것이겠습니까. 신선이나 외도들은 우
리 불법에서는 모두 삿된 지견이 됩니다. 그러나 화엄의 선지식은 혹은 외도에
있기도 하고 혹은 임금이기도 하며 혹은 음녀가 되기도 하여 중생들을 인도하는
데, 만약 바르게 수행하는 자 만을 옳다 여긴다면 곧 선재가 나아가 도를 물은
승열과 파수밀녀 또는 무염족왕 등은 모두 그르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 가지의 경전과 만 가지의 논소들은 단지 중생들을 위해 병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니 병이 제거되어 약이 폐기되었음에 어찌하여 병이 없는데도 스스로 뜸을
뜨겠습니까. 이 마음의 때가 무거운 까닭에 청정한 인연을 닦는 것이니 깨끗함이
나 때가 만약 없어졌다면 다시 어찌 수행하고 증득할 것이 있겠습니까. 삼계三界
에 머무름이 없으니 어디에서 마음을 구할 것이며 사대四大가 본디 비어 있는데
부처님이 어디에 의지하여 머물겠습니까. 옷 속의 보배는 단지 옷으로 쌓여져 있
을 뿐이니 옷이 만약 닳아 없어지면 구슬은 응당 저절로 드러날 것입니다.
비천한 견해를 애오라지 서술함으로써 보내 주신 가르침에 답하오니, 혹시 달
리 지도해 주실 것이 있으면 다시 한 말씀 내려 주시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난
잡하게 너저분한 글이지만 삼가 노닥거리는 공론이나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근
자에 심신은 편안하신지? 소화가 되지않아 고생하시던 것은 이제 차도가 있으신
지? 저는 인연을 따라 날을 보내며 단지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뵙지 못하
는 사이 아무쪼록 자중자애하시기 바랍니다.
【1】周旋, 旋旗指麾也, 又回也, 幹也.
【2】勝熱, 示行癡行, 使善財得般若解脫門; 婆須密女, 示行貪行, 使善財得離欲解脫門; 無厭足王,
示行嗔行, 使善財得如意解脫門.
【1】周旋은 깃발을 흔들어 지휘하는 것이고, 회전시키는 것이요, 일을 감당해냄이다.
【2】승열은 어리석은 행위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선재로 하여금 반야해탈문을 얻게 하였으며,
바수밀녀는 탐욕의 행위를 드러내 보임으로써 선재로 하여금 이욕해탈문을 얻게 하였으
며, 무염족왕은 성냄의 행위를 드러내 보여서 선재로 하여금 여의해탈문을 얻게 하였다.
古鏡和尙回汾陽太守
南陽.忠國師, 三詔竟不赴, 遂使唐.肅宗, 愈重於佛祖. 然我望南
陽, 雲泥雖異路, 回首思古人, 愧汗下如雨.[1] 如何汾陽侯, 視我如
泥土, 戱以玉峯寺, 出帖請權住? 豈可爲一身, 法門同受汚? 萬古
長江水, 惡名洗不去. 謹謹納公帖, 觀使自收取, 放我如猿鳥, 雲
山樂幽趣. 他年無以報, 朝夕香一炷.
남양의 혜충국사는 세 차례의 조서에도 결국에는 나아가지 않아 마침내 당 숙
종으로 하여금 더욱더 불조를 존중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남양을 바라봄에
구름과 진흙처럼 현격히 차이나고 비록 길은 다르지만 머리를 돌려 옛사람을 생
각해 보니 부끄러움에 흐르는 땀이 마치 빗줄기와 같습니다. 어찌하여 분양후는
나를 마치 진흙 보듯하여 옥봉사로 부임 문서를 내어 머무르기 청하는 것으로써
희롱하는 것입니까? 어찌 이 한 몸뚱이를 위하여 불법 문중이 함께 더러움을 받
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고의 장강 물로도 더럽혀진 이름은 씻어 낼 수 없습니다.
삼가고 삼가며 공문서를 바치니 관사께서는 스스로 거두시고 저를 원숭이나 새
처럼 놓아주어 구름 낀 산속에서 그윽한 정취를 즐기게 하여 주십시오. 다른 때
에 보답할 길이 없기에 아침저녁으로 한 심지의 향을 사릅니다.
【1】以我望於南陽, 雖似雲泥之逈隔, 然彼感皇王之詔, 余得太守之帖, 持今較古, 寧無愧汗之 乎?
【1】나를 남양에 견주어 보면 비록 구름과 진흙 같은 현격한 차이가 있으나 그는 황제의 조서
를 받았고 나는 태수의 서첩을 얻음에 지금으로 예전을 비교하면 어찌 제부끄러워 흐르는
땀이 가랑비 같음이 없겠는가.

南岳法輪寺省行堂記 超然居士趙令衿撰[1]
嘗謂, 諸苦之中, 病苦爲深, 作福之中, 省病爲最.[2] 是故, 古人
以有病爲善知識, 曉人以看病爲福田, 所以叢林爲老病之設. 今叢
林聚衆凡有病, 使歸省行堂, 不惟修省改行以退病, 亦欲人散夜靜
孤燈獨照之際, 究索大事,[3] 豈徒然哉! 旣命知堂以司藥餌,[4] 又
戒[5]常住以足供須, 此先佛之規制, 近世不然, 堂名延壽, 鄙俚[6]
不經. 病者不自省咎, 補躬乖方, 湯藥妄投, 返成沈痼.[7] 至有酷
疾, 不參堂以務疎逸者,[8] 大失建堂命名之意也. 知堂名存實廢,
或同路人,[9] 常住急於日用, 殊不存撫, 又復失優婆待老病之意
也.[10] 由是, 病人呻吟痛楚, 日益增極, 過在彼此, 非如來咎.[11]
縱有親故問病, 率皆鄕曲故舊,[12] 心旣不普, 事忽有差. 今法輪病
所, 奐然一新,[13] 盖有本分人, 是事色色成辦, 無可論者, 惟有病
人, 宜如何哉? 省躬念罪, 世之有識者皆能達此, 衲僧分上, 直截
[14]機緣, 當於頭痛額熱之時, 薦取掉動底, 於聲寃叫苦之際, 領略
徹困之心, 密密究思, 是誰受病, 人旣不見, 病從何來, 人病雙亡,
復是何物? 直饒見得分明, 正好爲他將息.
일찍이 말하기를, 모든 괴로움 가운데 병으로 인한 고통이 가장 심하고 복을
짓는 일 가운데 병자를 보살피는 것이 으뜸이라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옛사람들
은 병이 있는 것을 선지식으로 삼았고 밝은 사람은 간병하는 것으로써 복전을
삼았으니, 그러므로 총림은 늙고 병든 자를 위한 시설이다. 이제 총림에 모인 대
중 가운데 병든 자가 있으면 성행당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단지 수행과 반성으
로 행을 고침으로써 병을 물리치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들이 흩어지고 밤은
고요해진 뒤 외로운 등불이 홀로 비추는 때에 큰 일을 추구하여 찾고자 하는 것
이므로 어찌 헛되이 지낸다고만 하겠는가.
예전에는 지당知堂에게 명하여 탕약과 음식을 맡아보게 하였고 또 상주물常
住物을 갖추어 공양에 필요한 것에 보태게 하였으니 이는 앞서 부처님의 규칙과
제도이지만 근세에는 그렇지 못하며, 건물 이름을 ‘수명을 연장함(延壽)’이라 한
것도 야비하고 속되어 경우에 맞지 않다. 병자가 스스로 허물은 돌아보지 않은
채 몸의 기력을 보충함에 처방을 어기며 탕약을 함부로 투여하면 도리어 고질병
을 이루게 될 것이다. 심지어 혹독한 질병이 있음에도 당堂에 들어가지 않고 게
으르고 편안한 것에만 힘쓰는 것은 당을 세우고 이름 지은 뜻을 크게 잃어버리는
것이다. ‘지당’은 이름만 있을 뿐 실제는 폐지되어서 혹은 길가는 사람처럼 여기
고 상주물은 하루하루 쓰는 일에 급하여 보관하였다가 어루만져 주지는 거의 못
하고 있으니 또한 우바리사타가 늙고 병든 이를 대접하는 뜻을 다시 잃은 것이
다. 이로 말미암아 병든 사람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워함이 날로 더욱 심해지니 잘
못이 피차에 있을 뿐 여래의 허물은 아니다. 설령 친분이 있는 까닭으로 문병하
더라도 대개 모두 고향의 옛친구들이니 마음이 이미 두루하지 못하여 일이 문득
어긋남이 있게 된다.
이제 법륜사의 간병 장소가 완연히 새로워졌음에 대개 본분이 있는 사람은 이
일을 가지가지로 이루어 처리할 것이니 가히 논할 것도 없거니와, 오직 병이 있
는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되는가? 자기 몸을 돌아보고 허물을 생각함은 세
간의 식견이 있는 자들도 모두 그 정도는 알 것이니, 승려의 신분으로는 근기와
인연을 곧장 끊음에 머리가 아프고 이마에 열이 날 때를 직면하면 마음이 들뜨려
하는 존재를 알아차려야 할 것이며, 소리내어 원망하고 괴로움을 부르짖을 때는
피로해 하고 고단해 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서 면밀히 궁구하여 생각하기를, 이는
누가 병고를 받는 것인가? 사람이 이미 보이지 않는데 병은 어디로부터 온다는
말인가? 사람과 병을 함께 잊어버린다면 다시 이는 무슨 물건인가? 해야 할 것이
니, 설사 보기를 분명히 하였더라도 그것을 위해서 휴식을 가지는 것이 정말 좋
을 것이다.
【1】字表之, 嗣圓悟禪師.
【2】八福田中, 給事病人, 其福甚大.
【3】《法華》, 以佛知見爲大事;《涅槃》, 以佛性爲大事;《維摩》, 以不思議爲大事;《華嚴》, 以法界
爲大事;宗門, 以一着子爲大事. 名雖有別, 其義則一也.
【4】餌亦藥也.
【5】備也, 理也.
【6】俚亦鄙也, 又俗也.
【7】久固之疾.
【8】頑疎放逸.
【9】視其病僧, 如同行路之人也.
【10】優婆離沙陀, 持律行故, 於佛會中, 看待老病, 如今之知堂也.
【11】不順先佛明誨之過, 在乎病者及知堂, 豈吾佛制法之咎哉!
【12】鄕里曰曲. 又曲者, 里之曲也.
【13】奐大也, 又文彩粲明貌, 言居室之美也.
【14】無有分別, 不饒病人故, 曰直截.
【1】자는 표지이며 원오선사의 법을 이었다.
【2】여덟 가지 복밭 가운데 병든 이에게 시중들어 주는 것은 그 복이 매우 크다.
【3】《법화경》에서는 깨달음의 知見으로써 大事를 삼고,《열반경》에서는 깨달음의 성품으로써
대사를 삼고,《유마경》에서는 생각하고 헤아리지 않는 것으로써 대사를 삼고,《화엄경》에
서는 법계로써 대사를 삼고, 선종의 문중에서는 한 자리 틀어앉는 것으로써 대사를 삼으
니, 이름은 비록 차이가 있으나 그 뜻은 곧 하나이다.
【4】餌 역시 약이다.
【5】갖춘다는 것이며 다스린다는 것이다.
【6】俚 역시 野鄙하다는 것이며 또한 속되다는 것이다.
【7】오랫동안 굳어진 질병.
【8】완고하고 소홀하며 제멋대로임.
【9】병든 승려 보기를 마치 길가는 사람과 같이 여김이다.
【10】우바리사타는 율을 준수하는 품행을 지녔던 까닭에 부처님의 회상 중에 늙고 병든 자들
을 간호하였으니 지금의 지당과도 같다.
【11】앞선 부처님의 밝은 가르침을 순종하지 않는 허물은 병자와 지당에게 있으니 어찌 우리
부처님이 제정하신 법의 허물이겠는가.
【12】향리를 曲이라 한다. 또한 曲이란 마을이라는 의미의 曲이다.
【13】奐은 크다는 것이며 또한 문채가 찬연하게 밝은 모습이니, 거처하는 방이 훌륭함을 말한
다.
【14】분별이 있지 않아 [구분을 두어] 병자에게 관대하지 않는 까닭에 ‘곧장 끊는다’고 하였다.

撫州永安禪院新建法堂記同僧堂記 無盡居士撰[1]
法堂記
臨川.陳宗愈, 於永安.常老會中得大法喜, 捐其家 , 爲建丈室
作脩廊. 方且鳩材, 以新法堂而宗愈死, 其二子號訴於常曰: [吾
先子之未奉佛也安且强, 旣奉佛也病且亡, 佛之因果可信耶? 其
不可信耶?] 常曰: [吾野 也, 不足以譬子, 子第成父之志而卒吾
堂. 吾先師有得法上首無盡居士, 深入不二, 辯才無碍, 隨順根性,
善演法音. 法堂成, 當爲子持書求誨, 決子之疑.] 紹聖元年春, 常
遣明鑑至山陽, 以書來言, 會予方以諫官, 召還未暇. 明年, 鑑又
至京, 待報於智海禪刹. 爾時, 居士默處一室, 了明幻境, 鐵輪旋
頂, 身心泰定. 明鑑雨淚悲泣, 慇懃三請: [大悲居士! 佛法外護,
付與王臣. 今此衆生, 流浪苦海, 貪怖死生, 迷惑因果, 唯願居士,
作大醫王, 施與法藥.] 居士曰: [善哉善哉! 汝乃能不遠千里爲陳
氏子, 諮請如來無上秘密甚深法要, 諦聽吾說, 持以告之. 善男子!
大空寂間, 妄生四相, 積氣爲風, 積形爲地, 積陽爲火, 積陰爲水,
建爲三才, 散爲萬品. 一切有情, 水火相摩, 形氣相結, 以四小相,
具四大界, 因生須養, 因養須財, 因財須聚, 因聚成貪, 因貪成競,
因競成瞋, 因瞋成 , 因 成愚, 因愚成癡, 此貪瞋癡, 諸佛說爲
三大阿僧祇劫. 人於百年劫中, 或十歲二十歲, 或三十四十歲, 或
五六十歲, 或七八十歲, 各於壽量, 自爲小劫, 於此劫中而欲超越
不可數劫, 譬如?蚓欲昇烟雲, 無有是處. 諸佛悲愍, 開示檀波羅
蜜大方便門, 勸汝捨財, 汝財能捨, 卽能捨愛; 汝愛能捨, 卽能捨
身; 汝身能捨, 卽能捨意; 汝意能捨, 卽能捨法; 汝能捨法, 卽能
捨心; 汝心能捨, 卽能契道. 昔迦葉尊者行化, 有貧 以破瓦器中
潘汁施之, 尊者飮訖, 身虛空, 現十八變, 貧 瞻仰, 心大歡喜.
尊者謂曰: {汝之所施, 得福無量. 若人若天, 輪王 帝釋 四果聖
人及佛菩提, 汝意所願, 無不獲者.} 曰: {止求生天.} 尊者曰:
{知汝所欲. 過後七日命終, 生 利天, 受勝妙樂.}[2] 又 賓國王,
在佛會聽法, 出衆言曰: {大聖出世, 千劫難逢, 今欲發心, 造立精
舍, 願佛開許.} 佛云: {隨爾所作.} 賓持一枝竹, 揷於佛前曰:
{建立精藍竟.} 佛云: {如是如是!.} 以是精藍, 含容法界, 以是供
養, 福越河沙. 鑑來! 爲吾持此二說, 歸語檀越, 善自擇之. 汝父
所建堂室 廊 , 比一器潘, 得福甚多, 生天受樂, 決定無疑. 若比
賓國王揷一枝竹, 乃能含容無量法界. 汝欲進此, 聽吾一偈: 一
竿脩竹建精藍, 風捲 螟入海南.[3] 惡水潑來成第二,[4] 鈍根蹉過
問前三.[5]] 於是, 明鑑 躍信受, 歸告其人, 筆集緖言, 刻以爲記.
임천의 진종유가 영안의 요상 노스님의 법회에서 큰 법희法喜를 얻고 그의 집
안 재물을 기부하여 방장실을 건립하고 긴 행랑을 지었다. 바야흐로 또 재목을
모아 새로 법당을 세우려다 종유가 죽자 그의 두 아들이 요상에게 호소하여 말하
기를 [저희 부친께서 부처님을 받들지 않았을 때는 편안하고 건강하였는데 부처
님을 받들게 되어서는 병이 들더니 돌아가셨음에 부처님의 인과는 믿을 만한 것
입니까? 아니면 믿을 수 없는 것입니까?] 하였다. 요상이 말하기를 [나는 시골의
늙은이라 자네를 깨우쳐 주기에는 부족하니 자네는 다만 부친의 뜻을 이루어 우
리 법당을 끝마쳐라. 나의 돌아가신 스승님에게 법을 전해 받은 상수좌 무진거사
가 있는데 둘 아닌 진리에 깊이 들어가 설법함에 걸림이 없고 근성에 따라서 법
음을 아주 잘 설한다. 법당이 낙성되면 응당 자네를 위해 서신을 지니고 가서 가
르침을 구하도록 하여 자네의 의심을 해결토록 해 주겠노라] 하였다.
소성 원년 봄에 요상이 명감을 보내 산양에 도착하여 서신을 가지고 와서 말
하였으나 마침 내가 간관諫官으로써 소환되었기에 겨를이 없었다. 이듬해 명감
이 또 서울에 도착하여 지해선찰에서 회신을 기다렸다. 이때 거사는 한 곳에 묵
묵히 거처하며 일체의 허황된 경계를 남김없이 밝혔기에 쇠바퀴가 정수리를 선
회하더라도 몸과 마음은 매우 편안하였다. 명감은 비오듯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
며 정성껏 세 번을 청하기를 [대자대비하신 거사님이여! 부처님 법의 외호는 국
왕과 대신에게 부촉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이 중생들은 괴로움의 바다에서 방랑
하며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인과에 미혹되어 있으니 오직 원하건대 거
사께서 크나큰 의왕醫王이 되시어 불법의 약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거사가 말하였다. [착하고 착하도다! 네가 천 리 길을 멀다 않고 진씨의 아들
을 위하여 여래의 위없고 비밀스러우며 심원한 법요를 물어 청하니 나의 말을
자세히 듣고는 가지고 가서 일러주어라. 선남자여! 크게 비어 있고 고요한 가운
데 망령되이 네 가지 모습이 생겼으니, 기운이 쌓여 바람을 이루었고 형상이 쌓
여 땅을 이루었고 따뜻함이 쌓여 불을 이루었고 음기가 쌓여 물을 이룸이라, 세
우면 삼재三才가 되고 흩어지면 만품萬品이 된다.
일체의 유정이 물과 불로 더불어 서로 마찰하여 형상과 기운이 서로 맺어짐에
네 가지 작은 모습으로써 네 가지 큰 세계를 갖추게 되니, 태어남으로 인하여 성
장하길 바라게 되고 성장함으로 인하여 재물을 바라게 되고 재물을 대함으로 인
하여 재물 모으기를 바라게 되고 재물을 모음으로 인하여 탐욕이 이루어지게 되
고 탐욕으로 인하여 경쟁이 이루어지게 되고 경쟁으로 인하여 성냄이 이루어지
게 되고 성냄으로 인하여 한스러워 함이 이루어지게 되고 한스러워 함으로 인하
여 우매함이 이루어지게 되고 우매함으로 인하여 어리석음이 이루어지는 것이
니, 이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3대 아승지겁이라
하였다.
사람이 백년겁百年劫 가운데 혹은 10세나 20세 혹은 3,40세 혹은 5,60세 혹은
7,80세로 각기 수명의 한계 안에서 스스로 소겁小劫을 삼는데, 이 소겁 가운데에
서 헤아릴 수 없는 겁을 초월하고자 함은 비유컨대 지렁이가 연기를 타고 구름에
오르려는 것과 같으니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
모든 부처님이 자비로써 불쌍히 여기고 단바라밀의 큰 방편문을 열어 보여 그
대에게 재물을 버릴 것을 권하시니 그대가 재물을 능히 버리면 곧 애욕을 버릴
수 있을 것이요, 그대가 애욕을 능히 버리면 곧 몸을 버릴 수 있을 것이요, 그대
가 몸을 능히 버리면 곧 뜻을 버릴 수 있을 것이요, 그대가 뜻을 능히 버리면 곧
법을 버릴 수 있을 것이요, 그대가 법을 능히 버리면 곧 마음을 버릴 수 있을 것
이요, 그대가 마음을 능히 버리면 곧 도에 계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가섭존자가 교화하러 다닐 때 가난한 노파가 깨진 질그릇으로 뜨물을
시주하니 존자께서 다 마시고는 몸을 허공으로 솟구쳐 열 여덟 가지 변화를 드러
내니 가난한 노파가 우러러보고 마음으로 크게 기뻐하였다. 존자께서 이르기를
{그대가 보시한 바는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 사람으로나 천상에서나 또는
전륜성왕이나 제석천이나 네 가지 계위를 얻은 성인 및 부처님의 보리 등 그대
뜻에 원하는 바는 얻지 못할 것이 없으리다} 하니 노파가 이르기를 {단지 천상에
태어나길 바랄 뿐입니다} 하므로 존자께서 이르기를 {그대가 하고자하는 바를
알겠노라. 이후 일곱 날이 지나면 목숨이 다하고 도리천에 태어나 뛰어나고도 오
묘한 즐거움을 받을 것이다} 하였다.
또 계빈국의 왕이 부처님의 회상에서 법을 듣다가 대중 가운데서 나와 말하기
를 {큰 성인께서 세상에 나시기는 1천 겁이 지나더라도 마주치기 어렵다 하였으
니 이제 마음을 내어 정사를 건립하고자 하오니 원컨대 부처님께서 허락하여 주
십시오} 하니 부처님께서 이르기를 {그대가 하는 바대로 따르겠다} 하므로 계빈
국왕이 한 가지의 대나무를 가져다 부처님 앞에 꽂으며 이르기를 {정사의 건립
을 마쳤습니다} 하기에 부처님께서 {잘하였도다, 잘하였도다!} 하였으니, 이 훌
륭한 가람은 온 법계를 품어안을 것이기 때문이요 이 공양은 그 복이 항하의 모
래알을 넘어설 것이기 때문이다.
명감은 이리 오라! 나를 위해 이 두 가지 얘기를 지니고 돌아가 단월에게 말해
주되 스스로 잘 선택하게 하라. 그대의 부친이 지은 당실과 행랑은 한 그릇의 뜨
물에 비한다면 얻는 복이 매우 많으리니 천상에 태어나 복락을 누림은 결정코
의심할 바가 없을 것이다. 만약 계빈국왕이 한 가지의 대나무를 꽂은 것에 비하
더라도 능히 무량한 법계를 품어 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이것을 가지고 나
아가고자 한다면 나의 한 구절 게송을 들으라.]
단한줄기 긴대나무 정사세워 바치오니,
돌개바람 초명몰아 바다남쪽 잠겨든다.
더러운물 뿌린뒤론 第二만을 이루는데,
둔한근기 삐끗하니 前三三을 묻는구나.
그리하여 명감이 뛸 듯이 기뻐하며 서신을 받아 돌아와서 그 사람에게 일러주
고는 사연을 써 모으고 새겨서 기록으로 삼는다.
【1】宋丞相張商英, 字天覺號無盡居士, 得法於從悅禪師.
【2】《金藏集》云: [迦葉欲乞食時, 先入三昧, 何所貧人, 吾當福之, 於王舍城, 見一老母, 極貧又病,
無衣掩身, 施籬障形, 迦葉知其命終. 有長者婢, 棄臭潘汁, 母乞盛甁. 迦葉乞食, 母言: {貧窮加
疾, 食從何得? 但有臭米汁, 欲以布施, 哀我受不?} 迦葉言: {善!} 母以裸形, 不得出外, 側身
, 籬上授與, 迦葉受之, 飮訖昇空, 現十八變云云.]
【3】明含容之義.
【4】不存軌則.
【5】未容疑議.
【1】송나라 승상 장상영은 자가 천각이요 호가 무진거사로서 종열선사로부터 법을 얻었다.
【2】《금장집》에 말하였다. [가섭이 걸식을 하고자 할 때 먼저 삼매에 들어가 어느 곳의 가난
한 이를 내가 마땅히 복을 줄꼬 하다가 왕사성에서 한 늙은 할미가 지극히 빈곤하고도 병
까지 들었으나 몸을 가릴 옷이 없어 울타리로 몸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가섭은 그
의 목숨이 곧 다할 것을 알았다. 어떤 장자의 계집종이 악취 나는 뜨물을 버리려다 할미가
구걸하자 병에 담아 주었다. 가섭이 음식을 구걸하자 할미가 말하기를 {빈궁한 몸에 병까
지 들었는데 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만 악취 나는 쌀뜨물이 있어 이것으로 보시하
고자 하는데 저를 애석히 여겨서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므로 가섭이 말하기를 {좋
다} 하였다. 할미가 벌거벗은 몸이라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몸을 옆으로 기울인 채 울타리
위로 건네주니 가섭이 그것을 받아 모두 마시고는 공중으로 솟구쳐 열 여덟가지 변화를
나타내었다 한다.]
【3】머금고 있는 모습의 뜻을 밝혔다.
【4】궤칙을 두지 않음이다.
【5】의심스러운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였음이다.
僧堂記
古之學道之士, 灰心泯志於深山幽谷之間, 穴土以爲廬, [1]草
以爲衣, ?溪而飮, 煮藜而食, 虎豹之與隣, 猿狙[2]之與親, 不得已
而聲名腥 [3] 文彩發露, 則枯槁同志之士, 不遠千里 粮 ,[4]
來從之遊. 道人深拒而不受也, 則爲之樵蘇,[5] 爲之 炊, 爲之灑
掃, 爲之刈植, 爲之給侍奔走. 凡所以效勞, 苦致精一, 積月累歲,
不自疲厭,[6] 師見而愍之, 賜以一言之益而超越死生之岸, 烏有
今日所謂堂殿宮室之華, 床榻臥具之安, 氈幄之溫, 席之凉, 窓
爽之明, 巾單之潔, 飮食之盛, 金錢之饒, 所須而具, 所求而獲也
哉? 嗚乎! 古之人, 吾不得而見之矣, 因永安禪院之新其僧堂也,
得以發吾之緖言. 元祐[7]六年冬十一月, 吾行郡過臨川, 聞永安主
僧老病物故,[8] 以兜率從悅[9]之徒了常繼之, 常陞座說法, 有陳氏
子,[10] 一歷耳根, 生大欣慰, 謂常曰: [諦觀師誨, 前此未聞. 當有
淨侶雲集而僧堂狹陋, 何以待之? 願出家 百萬,[11] 爲衆更造.]
明年堂成, 高廣宏曠,[12] 殆甲江右.[13] 常遣人來求文曰: [公迫常
於山而及此也,[14] 幸卒成之.][15] 吾使謂常: [擊鼓集衆, 以吾之意
而告之曰: 汝比丘, 此堂旣成, 坐臥經行, 惟汝之適. 汝能於此, 帶
刀而眠, 離諸夢想, 則百丈卽汝, 汝卽百丈; 若不然者, 昏沈睡眠,
毒蛇[16]伏心, 暗冥無知, 晝入幽壤.[17] 汝能於此, 跏趺宴坐, 深入
禪定, 則空生卽汝, 汝卽空生; 若不然者, [18]在檻, 外覩
栗,[19] 雜想變亂, 坐化異類.[20] 汝能於此, 橫經而誦, 硏味聖意,
因漸入頓, 因頓入圓, 則三藏卽汝, 汝卽三藏; 若不然者, 春禽晝
啼, 秋蟲夜鳴, 風氣所使, 曾無意謂. 汝能於此, 閱古人話, 一見千
悟, 入紅塵裡,[21] 轉大法輪,[22] 則諸祖卽汝, 汝則諸祖; 若不然者,
狗 枯骨, 啄腐鼠, 鼓喙 唇, 重增飢火. 是故, 析爲垢淨, 列爲
因果, 判爲情想, 感爲苦樂, 漂流汨溺, 極未來際. 然則, 作此堂者
有損有益, 居此堂者有利有害, 汝等比丘, 宜知之! 汝能斷毘盧
,[23] 截觀音臂,[24] 文殊目,[25] 折普賢脛,[26] 碎維摩座,[27] 焚迦
葉衣.[28] 如是受者, 黃金爲瓦, 白銀爲壁, 汝尙堪任, 何 一堂!
戒之勉之, 吾說不虛.] 了常諮參悅老十餘年, 盡得其末後大事, 盖
古德所謂金剛王寶劍云.
元祐七年十二月十日, 南康.赤烏觀, 雪夜擁爐, 書以爲記.
예전에 도를 배우던 선비들은 심산유곡 가운데에서 마음과 뜻을 타 버린 재처
럼 없애 버리고, 땅을 파서 움막을 삼고 풀잎을 엮어 옷을 삼으며 시냇물을 움켜
마시고 명아주를 삶아 먹으며 호랑이나 표범과 더불어 이웃하고 원숭이와 더불
어 가까이 하였으며, 부득이 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문채가 드러나게 되면
곧 같은 뜻을 지닌 고고한 선비들이 천리를 마다 않은 채 양식을 짊어지고 짚신
을 신고 와서 그를 좇아 노닐었다. 도인이 엄히 거절하고 받아주지 않으면 곧 그
를 위해 나무하고 풀 베며 그를 위해 방아 찧고 불 때며 그를 위해 물 뿌리고
소제하며 그를 위해 베어내고 심으며 그를 위해 시중 들기에 분주하였다.
무릇 수고로움을 다 할 자리에 고생스러움이 극치에 이르도록 하고 그 정미로
움을 꾸준하게 해 나가며 달이 쌓이고 해가 쌓여도 스스로 지치거나 싫증내지
않아서 스승이 이를 보아 불쌍히 여기게 하여 유익한 말 한 마디를 내려 받음으
로써 삶과 죽음의 언덕을 초월하고자 바라는 것이니, 어찌 오늘날 같이 전당이나
궁실의 화려함과 평상이나 침구의 안락함과 담요나 휘장의 따뜻함과 대자리와
깔개의 서늘함과 창문과 출입문의 밝음과 수건과 방석의 깨끗함과 음식의 풍성
함과 금전의 풍부함에 더불어 바라는 바는 갖추어지고 구하는 바는 얻어짐 등이
있었겠는가.
오호라! 옛사람은 내가 직접 만나 보지 못했으나 영안선원에서 새로 승당을
건립함에 그 인연으로 내가 머릿글을 써 보내노라.
원우 6년 겨울 11월, 내가 군을 순행하며 임천을 지나다가 영안의 큰스님이
노병으로 돌아 가셨음을 듣고는 도솔종열의 문도인 요상으로 뒤를 잇게 하였더
니 요상이 법좌에 올라 설법함에 어떤 진씨 성을 가진 이가 한 번 귓전에 스치자
크게 기쁜 마음을 내어 위안을 찾으며 요상에게 말하기를 [선사의 가르침을 가
만히 살펴보니 앞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청정한 승려들이 운집하게 되
면 승당이 좁고 누추할 것인데 어찌 대처하겠습니까. 원하건대 집안의 재물 백만
을 내어 대중들을 위해 다시 짓고자 합니다] 하였다.
이듬해 승당이 완성되니 높고 넓고도 장대하여 아마도 장강 이남에서는 으뜸
일 것이다. 요상이 사람을 보내와서 글을 구하며 이르기를 [공께서 요상을 다그
쳐 산에 머무르게 함에 여기에 이르렀는데 결국에는 다행스럽게 이러한 결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내가 사람을 시켜 요상에게 말하였다. [북을 쳐서
대중을 모아 나의 뜻으로써 알려 말하여라. 그대 비구들이여 이 승당이 이미 완
성되었으니 앉고 누우며 경행함에 오직 그대들에게 적합하리다. 그대들이 여기
에서 칼을 차고 잠에 들어 모든 망상을 능히 여윌 수 있으면 백장이 곧 그대이고
그대가 곧 백장일 것이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수면에 혼미하게 빠지고 독사는
마음속에 엎드려 있기에 어둡고도 무지하여 대낮에도 암흑의 구덩이로 떨어질
것이다. 그대들이 여기에서 가부좌하여 편안히 앉아 선정에 깊이 들어갈 수 있으
면 공생이 곧 그대이고 그대가 곧 공생일 것이나, 만약 그렇지 않으면 원숭이가
우리 안에서 밖으로 아가위 밤을 쳐다보듯이 잡된 생각이 어지럽게 변하여 앉은
자리에서 축생으로 변할 것이다. 그대들이 여기에서 경전을 비껴 차고 외우며 성
스러운 뜻을 연구하고 음미하여 점차 닦아 가는 인연으로 문득 깨달음에 들어가
고 문득 깨달음에 인연하여 교법과 원만히 융화되는 경지에 능히 들어갈 수 있으
면 삼장이 곧 그대이고 그대가 곧 삼장일 것이나, 만약 그렇지 않으면 봄날의 날
짐승이 낮에 울고 가을날의 벌레들이 밤에 소리를 내듯이 바람기운이 부리는 바
와 같기에 아무런 의미나 일컬을 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대들이 여기에서 옛
사람들의 말을 두루 살펴봄에 한 가지를 보아 천 가지를 깨닫고 붉은 티끌 속으
로 들어가 큰 법의 바퀴를 능히 굴릴 수 있으면 모든 조사가 곧 그대이고 그대가
곧 모든 조사일 것이나, 만약 그렇지 않으면 개가 마른 뼈를 깨물고 소리개가 썩
은 쥐를 쪼는 것과 같기에 쪼는 부리와 벌린 입술에 굶주림의 불길만 더할 뿐일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분석함에 더러움과 깨끗함을 이루고 나열함에 원인과
결과를 이루고 판단함에 욕심(情)과 생각(想)을 이루고 감응함에 괴로움과 즐거
움을 이룬다면 깊이 빠져 표류하다 아득한 미래의 끝이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
한 즉 이 승당을 지은 자는 손해도 있고 유익도 있을 것이며 이 승당에 거처하는
자 또한 이익도 있고 해악도 있을 것이니 그대 비구들은 마땅히 이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대들은 비로자나불의 상투를 자르고 관음보살의 팔을 끊고 문수보살
의 눈을 도려내고 보현보살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유마거사의 자리를 잘게 부수
고 가섭존자의 옷을 능히 불태울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황금으
로 기와를 삼고 백은으로 벽을 짓더라도 그대가 오히려 감당할 수 있을진대 하물
며 어찌 한 채의 승당이겠는가. 경계하고 힘쓸지니 나의 말은 헛되지 않으리다.]
요상이 종열스님에게 물어 참구한지 10여 년에 그 궁극적인 큰 일을 남김없이
증득하였으니 아마도 옛 덕인들이 말하던 금강왕보검이라는 것이리다.
원우 7년 12월 10일, 남강 적오관에서 눈오는 밤 화로를 끼고 글을 써서 기록
으로 삼다.
【1】《禮》[ 針請補綴], 以線貫針爲 . 又 蘭爲佩.
【2】猿長臂, 善攀援樹枝. 狙 猿屬, 又 , 音但, 似狼, 赤眉鼠目狗頭, 以猿爲雌.
【3】生肉曰腥, 穀氣曰 .《禮 內則》[鷄膏, 腥; 犬膏, ; 牛膏, ; 羊膏, .] 然則 非穀氣也.
言名聲有聞於外人也.
【4】 蹈也, 着 履也. 音覺,《廣韻》草履. 又麻曰 , 木曰 .《史》[馮驩 ], 見<孟嘗君傳>.
【5】採薪曰樵, 刈草曰蘇.
【6】身不疲, 心不厭.
【7】宋.哲宗年號.
【8】物故者, 死也, 言其同於鬼物而故也. 一說, 不欲斥死, 但云其所服用之物已故耳. 又高堂隆曰:
[物無也, 故事也, 言死者無復所能於事也.]
【9】戇州.熊氏子, 嗣眞淨.克文禪師.
【10】臨川.陳宗愈.
【11】錢百萬貫.
【12】空也, 洞也, 大也.
【13】甲爲十干之首, 言爲江右首也.
【14】言及此山也.
【15】卒, 畢也, 言幸而畢成其堂也.
【16】毒蛇者,《搜神記》云: [嶺南.蒙岫山中有蛇, 見人輒呼, 爲片片花塊, 行人不知, 捉其一塊則皆
合而 人. 又北地有蛇, 能呼人名, 人苟應之則夜來食人腦.] 言沈 昏睡, 如蛇處窟穴中, 冥
然睡痴而已.
【17】黑暗地獄.
【18】陸佃云: [此獸無脾, 以行消食.] 盖猿之德, 靜而緩, 之德, 躁而 .
【19】 , 果屬, 似梨而酸.
【20】畜生.
【21】以朱土 散於九陌上, 塵飛於車轍馬蹄之間, 故曰紅塵. 音玆, 撒土大道上也. 一云塵本不
紅, 以言其染也. 此言紅塵者, 通言世間也.
【22】輪有二義: 一, 圓滿義, 具 輻輞軸等, 體用周遍; 二, 輾義, 輾煩惱, 如 未降也. 流演圓
通之謂輪, 自我之彼謂轉.
【23】 表中道, 謂中道不須安也.
【24】觀音有千手臂, 謂不求大悲接引也.
【25】目表文殊大智. , 括去也, 又剖也.
【26】脛, 脚也, 言不依普賢萬行也.
【27】淨名於十笏方丈, 容八萬四千獅子座, 言不用其不思議神通也.
【28】迦葉奉釋迦金 裟, 於鷄足山中入定, 以待慈氏下生, 言不須傳衣也.
【1】《예기》에 [바늘을 꿰어 깁고 꿰맴을 청하다]라 하였으니 실을 바늘에 꿴 것을 이라 한
다. 또한 난초를 꿰어 노리개를 삼는다.
【2】원숭이는 팔이 길어 나뭇가지를 잘 탄다. 狙는 원숭이 속하는데 또는 ‘큰이리원숭이’이니,
[ 의] 음은 단(但)으로 이리와 흡사하며 붉은 눈썹에 쥐의 눈을 하고 개의 머리 모습으로
서 원숭이를 암컷으로 삼는다.
【3】날고기[에서 나는 냄새]를 腥이라 하고 곡기[에서 나는 냄새]를 이라 한다.《예기》내칙
에 [닭이 기름져 나는 노린내가 腥이고, 개가 기름져 나는 노린내가 이며, 소가 기름져
나는 노린내가 이고, 양이 기름져 나는 노린내가 이다] 하였으므로 은 곡기에서 나
는 냄새가 아니다. 명성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가 있음을 말한다.
【4】 은 밟는다는 것으로 나막신을 신음을 말한다. 의 음은 각(覺)이며《광운》에서는 짚신
이라 하였다. 또 삼으로 엮은 것을 짚신( )이라 하고 나무로 만든 것을 나막신( )이라 한
다.《사기》에 [빙환이 짚신을 신다] 하였으니 <맹상군전>에 보인다.
【5】땔나무를 하는 것을 樵라 하고, 풀을 베는 것을 蘇라 한다.
【6】몸으로는 피로함을 느끼지 않고 마음으로는 싫어함이 없다.
【7】송나라 철종의 연호이다.
【8】物故란 죽음이니 도깨비(鬼物)와 같이 낡았음(故)을 말한다. 일설에는, 죽었다는 사실을 나
타내고자 하지 않아서 단지 그 복용한 물질(物)이 이미 오래되었음(故)을 말하는 것일 뿐
이다. 또 고당융이 말하기를 [物은 없음이요 故는 일이니, 죽은 자는 일에 대해 다시 능한
바가 없음을 말한다] 하였다.
【9】당주 웅씨의 아들로서 진정 극문선사의 법을 이었다.
【10】임천 진종유이다.
【11】돈 백만관.
【12】비어 있고 공허하며 큼이다.
【13】甲은 십간의 처음이니 장강의 이남에서 가장 首位임을 말한다.
【14】이 산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15】卒은 마침이니 다행스럽게도 그 승당의 낙성을 마쳤음을 말한다.
【16】毒蛇란《수신기》에 이르기를 [영남의 몽수산에 뱀이 있는데 사람을 보면 번번이 소리내
어 부르고는 조각조각 꽃잎이 되었다가 행인이 알지 못하고 그 한 조각이라도 잡으면 곧
모두 합쳐져 사람을 깨물어버린다 한다. 또 북쪽 땅에 뱀이 있어 능히 사람의 이름을 부
르는데 사람이 만약 그 소리에 대답하면 곧 밤중에 와서 그 사람의 뇌를 먹는다 한다]고
하였다. 혼미한 수면에 깊이 빠져있다는 말은 마치 뱀이 굴의 구멍 안에 들어앉은 것과
같이 어둠침침하게 수면에 빠진 듯이 어리석다는 것일 뿐이다.
【17】흑암지옥이다.
【18】육전이 말하기를 [이 짐승은 지라(脾)가 없어서 돌아다니는 것으로 음식을 소화시킨다]
하였다. 대개 猿의 행위는 고요하고도 느긋하며 의 행위는 성급하고도 떠들썩하다.
【19】 는 과일 종류로서 배와 비슷하나 신맛이 난다.
【20】축생이다.
【21】붉은 흙을 큰길에 뿌려 길을 돋아 놓으니 먼지가 수레바퀴와 말발굽 사이에서 일어나는
까닭에 붉은 먼지라 하였다. 의 음은 자(玆)이며 큰길에 흙을 뿌리는 것을 말한다. 또는
먼지가 본디 붉은 것이 아니라 [석양 등에 의해] 먼지가 붉게 물든 것임을 말한 것이라고
도 한다. 여기서 말한 붉은 먼지란 통상적으로 世間을 말한다.
【22】바퀴(輪)는 두 가지 뜻이 있음에, 첫째는 원만하다는 뜻이니 바퀴의 통과 살과 테와 굴대
등이 갖추어져 있듯이 체와 용이 두루하여 고루 미침이요, 둘째는 구르는 것을 꺾는다는
뜻이니 번뇌를 꺾음이 마치 아직 항복하지 않은 것을 꺾는 것과 같음이다. 흘러서 원만하
게 통하는 것을 輪이라 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부터 저쪽으로 가는 것을 轉이라 한다.
【23】상투는 中道를 나타내니, 중도 또한 온전히 둘 바가 아님을 말한다.
【24】관음보살은 천 개의 손과 팔이 있으니, 대자대비로 이끌어 줌도 구하지 않음을 말한다.
【25】눈은 문수의 큰 지혜를 나타낸다. 은 도려서 들어내는 것이며 또는 갈라내는 것이다.
【26】脛은 다리이니, 보현보살의 만 가지 선행에도 의존하지 않음을 말한다.
【27】유마거사가 십홀의 사방 1장 넓이에 8만4천 사자좌를 넣었으니, 그런 불가사의한 신통력
도 쓰지 않음을 말한다.
【28】가섭이 석가의 금란가사를 받들고는 계족산 속에서 선정에 들어가 자씨의 출현을 기다리
고 있다 하니, 가사의 전수도 필요 없음을 말한다.
洪州寶峯禪院選佛堂記 丞相張商英撰
崇寧, 天子[1]賜馬祖塔號慈應, 諡曰祖印, 歲度僧一人以奉香火.
住山老福深, 卽祖殿後建天書閣, 承閣爲堂, 以選佛名之, 使其徒
請記於余, 余三辭而請益堅, 余謂之曰: [古人謂選佛而及第者,
涉乎名言爾, 子以名堂, 余又記之, 無乃不可乎? 憐子之勤, 爲
之記.] 夫選者, 選擇之謂也, 有去有取, 有優有劣, 施之於科擧,
用之於人才. 此, 先王所以勵世磨鈍之具,[2] 非所以選佛也. 使佛
而可選也, 取六根乎? 取六塵乎? 取六識乎? 取三六則, 一切凡
夫, 皆可以作佛; 去三六則, 無量佛法, 誰修誰證? 取四諦六度
七覺八正 九定十無畏乃至十八不共法 三十七助道品乎? 取之則
有法也; 去四諦六度乃至三十七助道品乎? 去之則無法也. 去取
有無, 渺然如絲之留于心中, 然如埃之入乎胸次. 此在修多羅藏,
或謂之二障, 或謂之四病, 或謂之不了義, 或謂之戱論, 或謂之遍
計邪見, 或謂之微細流注. 取之非佛也, 去之非佛也, 不去不取亦
非佛也, 佛果可以選乎? 曰: [先生之論, 相宗也, 吾祖之論, 禪宗
也, 凡與吾選者, 心空而已矣. 弟子造堂而有問, 宗師踞座而有答:
或示之以玄要, 或示之以料揀, 或示之以法鏡三昧, 或示之以道眼
因緣, 或示之以向上一路, 或示之以末後一句, 或示之以當頭, 或
示之以平實, 或揚眉瞬目, 或擧拂敲床, 或畵圓相, 或劃一劃, 或
拍掌, 或作舞. 契吾機者, 知其心之空也, 知其心之空則佛果可以
選矣.] 余曰: [世尊擧花, 迦葉微笑, 正法眼藏, 如斯而已矣, 後世
宗師之所指示, 何其粉粉之多乎? 吾恐釋氏之敎, 中衰於此矣.]
深.河東人也, 甘序 ,[3] 耐辛苦, 久從關西.眞淨遊, 孤硬卓立, 必
能宏其敎. 盖釋氏之敎, 枯槁以遺其形, 寂寞以灰其慮, 戒定密行,
鬼神所莫窺, 慈悲妙用, 幽顯所同仰, 迫而後應則, 五衆[4]喪其伴
侶, 不得已而後言則, 六聚亡其畛域. 生死之變, 人之所畏也, 吾
未嘗有生, 安得有死, 則奚畏之有? 利害之境, 人之所擇也, 吾未
嘗有利, 安得有害, 則奚擇之爲? 夫如是則, 不空於外而內自空,
不空於境而心自空, 不空於事而理自空, 不空於相而性自空, 不空
於空而空自空. 空則等, 等則大, 大則圓, 圓則妙, 妙則佛. 嗟呼!
吾以此望子, 子尙無忽哉!
숭녕 연간에 천자께서 마조에게 탑호를 자응, 시호를 조인이라 내리고 해마다
승려 한 명을 득도시켜 제사를 받들도록 하였다. 산에 거처하는 노승 복심이 조
사전 뒤에 천서각을 짓고 천서각에 이어 승당을 지어 ‘선불’이라 이름하고는 그
의 문도를 시켜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하였음에 내가 세 차례나 사절하였으나 요
청이 더욱 견고하기에 내가 그에게 일러 말하기를 [옛 사람들이 말하기를 부처
를 가려내어 급제시킨다는 것은 이름과 말에 끄달린 것일 뿐이라 하였는데 그대
가 그것으로써 승당의 이름을 짓고 내가 또 그것의 기문을 지으면 옳지 않음이
없으리요만, 그대가 애씀을 가엾게 여겨 부질없이 그것을 위해 기문을 적는다]
하였다.
무릇 ‘가려 뽑는다(選)’는 것은 선별하여 채택함을 일컬으니, 덜어내야 할 것도
있고 취해야 할 것도 있으며 우수한 자도 있고 열등한 자도 있기에 그로써 과거
를 실시하였고 그로써 인재를 등용하였다. 이는 앞선 제왕들이 세상을 권면하고
아둔함을 갈고 닦는 도구로 쓰고자 함이지 부처를 가려 뽑자는 까닭이 아니다.
만약 부처님도 가히 선별할 수 있다면 육근六根에서 취하겠는가, 육진六塵에서
취하겠는가, 아니면 육식六識에서 취하겠는가? 이 세 가지 육六을 취한다면 곧
일체의 평범한 사내도 모두 부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이 세 가지 육六을 버린
다면 무량한 부처님의 법을 그 누가 닦을 것이며 그 누가 증득하겠는가? 사제四
諦와 육도六度와 칠각지七覺支와 팔정도八正道와 구차제정九次第定과 십무외十
無畏 내지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과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취하겠는가?
이를 취한다면 곧 법이 있게 되며, 사제와 육도 내지 삼십칠조도품을 버리겠는
가? 이를 버린다면 곧 법이 없게 된다. 버리느냐 취하느냐 있느냐 없느냐는 [그
분별관념이] 묘연히 마치 한 올의 실이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으며, 홀연
히 마치 한 톨의 먼지가 가슴속에 들어온 것과 같다.
이것은 수다라장에 있으니 혹은 이를 일컬어 이장二障이라 하고, 혹은 이를
일컬어 사병四病이라 하고, 혹은 이를 일컬어 불료의不了義라 하고, 혹은 이를
일컬어 희론戱論이라 하고, 혹은 이를 일컬어 편계사견遍計邪見이라 하고, 혹은
이를 일컬어 미세류주微細流注라 한다. 이것을 취하면 부처가 아니요 이것을 버
려도 부처가 아니며 버리지도 않고 취하지도 않더라도 역시 부처가 아니니 그럼
에도 불과佛果를 선별할 수 있겠는가?
이르기를 [선생의 논지는 상종相宗의 얘기이고 나의 선조의 논지는 선종禪宗
의 얘기이니 무릇 나의 선별에 참여한 자는 마음이 공空할 따름이다. 제자가 승
당에 나아가 질문을 하면 종사는 자리에 앉아 답하기를 혹은 삼현삼요三玄三要
로써 보여주며 혹은 사요간四料揀으로써 보여주며 혹은 법경삼매法鏡三昧로써
보여주며 혹은 도안인연道眼因緣로써 보여주며 혹은 위로 향하는 한 가닥 길로
써 보여주며 혹은 최후의 한 마디 말로써 보여주며 혹은 맞닥뜨린 당장의 그 상
태로써 보여주며 혹은 평상스럽고 진실한 것으로써 보여주며 혹은 눈썹을 치켜
뜨고 눈을 깜짝거리며 혹은 불자를 들어 법상을 치며 혹은 둥근 모양을 그리며
혹은 한 획을 그으며 혹은 손바닥을 치며 혹은 춤을 추는 것으로써 보여주는 것
이니, 나의 근기에 계합하는 자는 그 마음이 공한 줄을 아는 것이며 그 마음이
공한 줄을 안다면 곧 불과佛果를 선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므로 내가 이르기
를 [세존께서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존자가 미소를 지었으니 진리를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으로 깨달은 비밀의 법(正法眼藏)이란 다만 이와 같을 따름인데 후세
에 종사들이 가리키며 드러내 보이는 바는 어찌 그리도 분분하여 많은가. 나는
석가의 가르침이 중도에 여기에서 쇠퇴해질까 두렵다] 하였다.
복심은 하동 사람인데 거친 양식을 달게 여기고 혹독한 고생을 참아내며 오랫
동안 관서의 진정을 좇아 교류함에 의젓하게 우뚝 섰으니 반드시 그 가르침을
능히 크게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석가의 가르침은 마르고 말라버림으로써
그 형체를 돌보지 않고 적막함으로써 그 근심을 삭이며, 계를 지키고 선정에 드
는 그윽한 수행은 귀신도 엿보지 못할 바이며 자비의 오묘한 운용은 어둡거나
밝은 세계가 함께 숭앙하는 바이니, 절박한 후에 응하면 곧 다섯 가지 무리(五衆)
가 그 반려를 잃어버리고 부득이한 후에 말하면 곧 여섯 가지 모임(六聚)이 그
경계와 영역을 잃게 될 것이다.
삶과 죽음의 변화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바이나 나는 일찍이 태어남을 맛보
지 못하였음에 어찌 죽음이 있을 것이며 또한 어찌 두려움이 있겠는가. 이익과
손해의 경계는 사람들이 가려 택하는 바이나 나는 아직 이익을 맛보지 못하였음
에 어찌 손해가 있을 것이며 또한 어찌 가려 택함이 있겠는가.
무릇 이와 같으면 곧 외면에 공하지 않아도 내면은 저절로 공하여지고, 경계에
공하지 않아도 마음은 저절로 공하여지고, 일에 공하지 않아도 이치는 저절로 공
하여지고, 형상에 공하지 않아도 성품은 저절로 공하여지고, 공에 공하지 않더라
도 공은 저절로 공하여진다. 공하면 곧 평등하고, 평등하면 곧 크고, 크면 곧 둥글
고, 둥글면 곧 오묘하고, 오묘하면 곧 깨달음(佛)이다. 오호라! 내가 이것으로써
그대에게 바라나니 그대는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1】徽宗年號.
【2】梅福云: [爵祿束帛者, 天下之砥石也, 高祖所以勵世磨鈍也.] 勵世者, 有修飾振起之意.
【3】粟一石, 得米六斗爲 ; 米一石, 爲八斗爲鑿. 與鑿同, 精也.
【4】五衆者, 漢末, 飜爲五陰, 僧叡, 改爲五衆, 唐.三藏, 改爲五蘊.《法華》一如註五趣生滅之衆, 此
言五蘊和合之衆皆喪亡也.
【1】휘종의 연호이다.
【2】매종이 이르기를 [작위와 녹봉 및 비단 등은 천하의 숫돌이니 고조가 그것으로써 세상을
권면하고 아둔함을 갈고 닦고자 하였다] 하였으니 勵世란 수식을 하여 떨쳐 일어나게 한
다는 뜻이 있다.
【3】껍질을 벗기지 않은 벼 1석으로 현미 상태의 쌀 6두를 얻으며, 현미쌀 1석을 찧으면 정미
를 거친 8두의 쌀이 된다. 鑿과 같으니 정미롭다는 것이다.
【4】五衆이란, [原典의 것을] 한나라 말기에 五陰으로 번역하였다가 승려 예가 고쳐서 五衆이
라 하였으며, 당나라 삼장법사는 고쳐서 五蘊이라 하였다.《법화경》에서 일여는 ‘五趣에서
나고 죽음을 거듭하는 무리’라고 주석하였으니, 이것은 오온과 화합한 무리들이 모두 없어
짐을 말한다.
隋州大洪山靈峯寺十方禪院記
元祐[1]二年九月, 詔隋州.大洪山.靈峯寺, 革律爲禪, 紹聖[2]元年,
外臺始請移洛陽.少林寺長老報恩[3]爲住持. 崇寧[4]改元正月, 使來
求《十方禪院記》, 書曰: [大洪山在隋州西南, 盤基百餘里, 峯頂
俯視, 漢東諸國林巒丘嶺猶平川也. 以耆舊所聞攷之, 洪或曰胡,
或曰湖, 未詳所謂. 今以地理攷之, 四山之間, 昔爲大湖, 神龍所
居, 洪波洋溢, 莫測涯 . 其後, 二龍鬪 , 開層崖, 湖水南落. 故,
今負山之鄕, 謂之落湖管, 此大洪所以得名也. 唐.元和[5]中, 洪州.
開元寺僧善信, 卽山之慈忍大師. 師從馬祖, 密傳心要, 北遊五臺
山, 禮文殊師利, 瞻覩殊勝, 自慶菩薩有緣, 發願爲衆僧炊 [6]三
年, 寺僧却之, 流涕嗟慽, 有老父曰: {子緣不在此, 往矣行焉, 逢
[隨]卽止, 遇[湖]則住.} 師卽南邁, 以寶曆二年秋七月抵隋州, 遠
望高峯, 問鄕人曰: {何山也?} 鄕人曰: {大湖山也.} 師默契前語,
尋山轉麓, 至于湖側, 屬歲亢旱, 鄕人張武陵具羊豕, 將用之以祈
于湖龍. 師見而悲之, 謂武陵曰: {雨暘不時, 本因人心黑業所感,
害命濟命, 重增乃罪. 可且勿殺, 少須三日, 吾爲爾祈.} 武陵亦異
人也, 聞師之言, 敬信之. 師則披榛 石, 得山北之巖穴, 泊然宴
坐, 運誠冥禱, 雷雨大作. 霽後數日, 武陵迹而求之, 師方在定, 蛛
絲冪面, 號耳 體, 久之方覺. 武陵卽施此山, 爲師興建精舍, 以
二子給侍左右, 學徒依嚮, 遂成法席. 太和[7]元年五月二十九日,
師密語龍神曰: {吾前以身代牲, 輟汝血食, 今捨身餉汝, 汝可享
吾肉.} 卽引利刀, 截左膝, 復截右膝. 門人奔馳, 其慈忍膝不克斷,
白液[8]流出, 儼然入滅, 張氏二子, 立觀而化. 山南東道, 奏上其
狀, 唐.文宗嘉之, 賜所居額, 爲幽濟禪院. 晋.天福中,[9] 改爲奇峯
寺, 本朝元豊元年,[10] 又改爲靈峯寺, 皆以祈禱獲應也. 自師滅至
今三百餘年而漢 廣 汝 汾之間十數州之民, 尊嚴奉事, 如赴約束,
金帛粒米, 相尾於道. 貨强法弱, 僧範乃革. 前此, 山峯高峻, 堂殿
樓閣, 依山製形, 後前不倫, 向背靡序. 恩老至止, 熟閱形勝, 闢道
南入, 以正賓主, 崖壘澗, 補 , 嵯峨萬 , 化爲平頂. 三門
[11]堂殿, 翼舒繩直, 通廊大 , 疏戶四達, 淨侶雲集, 爲叢林,
峨嵋[12]之寶燈瑞相, 淸凉[13]之金橋圓光, 他方詭觀, 異境同現. 方
其廢故而興新也, 律之徒懷土而 . 會予謫爲郡守, 舍禪律而證
之曰: {律以甲乙, 禪以十方, 而[14]所謂甲乙者, 甲從何來? 乙從
何立? 而必曰[我, 慈忍之子孫也, 今取人於十方則忍後絶矣.] 乙
在子孫, 甲在慈忍; 乙在慈忍, 甲在馬祖; 乙在馬祖, 甲在南嶽;
乙在南嶽, 甲在曹溪. 推而上之, 甲乙乃在乎菩提達摩 西天四七,
所謂甲乙者, 果安在哉? 又而所謂十方者, 十從何生? 方從何起?
世間之法, 以一生二, 一二爲三, 二三爲六, 三三爲九. 九者究也,
復歸爲一, 一九爲十, 十義乃成, 不應突然無一有十. 而所謂方者,
上爲方耶? 下爲方耶? 東爲方耶? 西爲方耶? 南爲方耶? 北爲方
耶? 以上爲方則諸天所居, 非而境界; 以下爲方則風輪所持, 非而
居止; 以東爲方則毘提訶人, 面如半月;[15] 以北爲方則鬱單越人,
壽命久長;[16] 以西爲方則瞿耶尼洲, 滄波浩渺;[17] 以南爲方則閻
浮提洲, 象馬殊國.[18] 然則, 甲乙無定, 十方無依, 競律競禪, 奚
是奚非?} 律之徒曰: {世尊嘗居給孤獨園 竹林精舍, 必如太守言,
世尊非耶?} 余曰: {汝豈不聞? 以大圓覺爲我伽藍, 身心安居平
等性智. 此非我說, 乃是佛說.} 於是, 律之徒默然而去. 禪者曰:
{方外之士, 一甁一鉢, 涉世無求, 如鳥飛空, 遇枝則休, 如龜遊海,
値木則浮, 來如聚梗, 去如滅 . 不識! 使君, 甲乙之乎? 十方之
乎?} 予曰: {善哉! 佛子. 不住內外, 不住中間, 不住四維上下虛
空, 應無所住而住持, 是眞十方住持矣.} 尙何言哉, 尙何言哉!]
時, 崇寧元年正月上元日, 記.[19]
원우 2년 9월에 수주 대홍산 영봉사靈峯寺에 조서를 내려 율종을 혁파하여 선
종으로 만들고, 소성 원년에 외대에서 비로소 낙양 소림사의 장로 보은報恩에게
청하여 옮겨가서 주지가 되게 하였다.
숭녕 원년 정월에 사자가 와서《시방선원기》를 구하기에 이에 글을 써서 말하
였다.
[대홍산은 수주의 서남쪽에 있으며 자리한 기반이 백 여 리로, 산봉우리에서
굽어 살펴보면 한수 동쪽 모든 지방의 산림과 구릉이 오히려 평탄한 물줄기와
같다. 노인네들에게 들은 바로써 상고하여 보건대 ‘洪’을 ‘胡’라고도 말하며 혹은
‘湖’라고도 말한다는데 정확히 일컫는 바는 상세하지 않다. 이제 지리적으로 상고
하여 보건대, 네 봉우리의 중간이 예전에는 큰 호수여서 신룡들이 거처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거대한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기에 그 물가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
후에 두 마리의 용이 싸우며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암반을 벌려 놓으니 호수물이
남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므로 지금에 그 산을 등진 고을을 ‘낙호관’이라 일컬으
니, 이것이 ‘대홍’이라 이름을 얻게 된 연유이다.
당나라 원화 때에 홍주 개원사의 승려 선신이 곧 이 산의 자인대사이다. 대사
가 마조선사로부터 심요心要를 은밀히 전수 받고 북쪽으로 오대산을 만행하다가
문수사리보살에게 예불함에 그 수승함을 우러러보고는 문수보살과 인연이 있음
을 스스로 기쁘게 생각하여 대중 스님들을 위해 3년 동안 불때고 밥짓기를 발원
하였으나 그 절의 승려들이 거절하거늘 눈물을 흘리고 탄식하며 근심하고 있었
더니 한 노인이 이르기를 {그대의 인연은 여기에 있지 않으니 떠나가되 [隨]를
만나면 곧 쉬고 [湖]를 만나면 곧 머무르라} 하였다.
대사가 곧 남쪽으로 가다 보력 2년 가을 7월에 수주에 이르러 멀리 높은 봉우
리를 바라보며 고을 사람들에게 무슨 산이냐고 묻자 사람들이 대호산이라 말하
였다. 대사가 예전의 말과 은연중에 합치함을 알고는 산기슭을 찾아들어 호수가
에 이르니 그 해에 극심한 가뭄이 들어 고을 사람 장무릉이 양과 돼지를 갖추어
그것으로써 호수의 용에게 기도를 드리려고 하였다. 대사가 그것을 보고는 가련
하게 여겨 무릉에게 말하기를 {비오거나 개는 것이 제 때에 되지 않는 것은 본래
사람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악업에 감응하는 바에 인연하는 것인데 생명을 해
치고서 생명을 건지려는 것은 거듭 죄업만 증장시킬 뿐이다. 가능하면 잠시 죽이
지 말고 사흘만 기다리면 내가 그대를 위해 기도를 올리겠다} 하니 무릉 역시
비범한 사람이라 대사의 말을 듣고는 존경하여 그를 믿어 주었다. 대사는 곧 덤
불을 헤치고 돌을 뒤적여서 산 북쪽의 바위혈을 발견하고 고요히 편안하게 앉아
정성을 기울여 가만히 기도하니 우뢰가 치고 비가 크게 내렸다. 비가 갠 뒤 며칠
후에 무릉이 자취를 따라 그를 찾으니 대사가 바야흐로 선정에 들어 거미줄이
얼굴을 덮고 있는지라 귀에다 소리를 지르고 몸을 흔드니 얼마만에 비로소 깨어
났다. 무릉이 곧 그 산을 시주하고 대사를 위해 정사를 건축하고는 두 아들로 좌
우에서 시봉을 들게 하니 배우고자 하는 무리들이 의지하고 뒤따름에 마침내 법
석을 이루게 되었다.
태화 원년 5월 29일에 대사가 용의 신에게 은밀히 말하기를 {내가 이전에 이
몸으로 희생을 대신함으로써 그대의 혈식血食을 그치게 하였음에, 이제 이 몸을
버려 그대에게 먹히고자 하니 그대는 나의 육신을 먹어라} 하고는 곧 예리한 칼
을 꺼내어 왼쪽 무릎을 끊고 다시 오른쪽 무릎을 끊었다. 문도들이 급히 달려가
니 자인대사의 무릎이 완전히 끊기지 않은 채 흰 액이 흘러나오며 근엄한 자태로
입멸하였으며, 장씨의 두 아들은 선 채로 이를 보고는 감화가 되었다. 산남의 동
도東道가 그 상황을 상소하여 올리니 당나라 문종이 가상히 여겨 그가 거처하던
곳에 현액을 내려 ‘유제선원’이라 하였다. 진나라 천복 연간에 ‘기봉사’라 고쳐 부
르고 본조의 원풍 원년에 ‘영봉사’라 다시 고쳐 불렀으니 모두 기도로써 감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대사가 입멸하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3백 여 년 동안 한수漢水와 광수廣水
및 여수汝水와 분수汾水 사이의 10여 주 주민들이 존엄히 받들어 섬기기를 마치
약속하여 이르듯 하였으니 금과 비단이며 백미가 길에서 서로 꼬리를 이었다. 재
물이 강성해지자 불법이 약해지므로 승려의 궤범이 이에 개혁되었다.
이보다 앞서서 산의 봉우리가 높고 험준함에 전당과 누각을 산에 의지하여 형
상을 지었기에 뒤와 앞이 가지런하지 않았고 마주보거나 등지고 있는 모습에 질
서가 없었다. 노승 보은이 머물게 되자 지세가 뛰어남을 익히 살피고는 길을 열
어 남쪽으로부터 들어감으로써 주되고 부수되는 것을 바로잡았으며, 가파른 곳
을 깎아내어 계곡을 메우고 높은 곳은 깎아내려 섬돌을 고이니 울쑥불쑥 솟았던
만 길의 형세가 바뀌어 평정하게 되었다. 삼문과 전당이 날개를 편 듯 먹줄을 그
은 듯 하였으며 시원스레 뚫린 행랑과 커다란 헛간이 드문드문 놓인 문을 통해
사방으로 닿음에 청정한 승려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무성히 총림을 이루었으
니, 아미산의 보배등불이 상서러운 형상을 드러내던 것과 청량산의 황금다리가
원만한 빛을 뿜어내던 것처럼 여러 지방의 기이한 경관들이 다른 경계에서 함께
나타났다.
바야흐로 낡은 것을 폐하고 새로운 것을 일으키려 할 때 율종의 무리들이 자
리를 잡고서 왁자지껄 떠들었다. 마침 내가 좌천되어 군수가 되었기에 선과 율을
버리고 증명하여 이르기를 {율律은 갑을甲乙로써 하고 선禪은 시방十方으로써
하니 그대가 말하는 갑을이라는 것은 갑이 어디로부터 온 것이며 을은 어디를
좇아 세워진 것인가? 그대는 필시 [나는 자인慈忍의 자손인데 이제 사람들을 시
방에서 취하면 곧 자인의 후손은 끊어질 것이다] 할 것이나, 을이 자손에게 있으
면 갑은 자인에 있을 것이고, 을이 자인에 있으면 갑이 마조에 있을 것이고, 을이
마조에 있으면 갑이 남악에 있을 것이고, 을이 남악에 있으면 갑이 조계에 있을
것이다. 미루어 올라가면 갑을이 보리달마와 서천의 28대 존자들에게 있을 것이
니 이른 바 갑을이란 것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또 그대가 말한 시방이란 것은
십十이 어디로부터 생겨났으며 방方은 어디로부터 일어난 것인가? 세간의 법은
하나로써 둘이 생겨나고, 하나와 둘이 셋이 되고, 둘과 셋이 여섯이 되고, 셋과
셋이 아홉이 된다. 아홉이란 끝점이니 다시 돌아가 하나가 되며 하나와 아홉이
열이 됨에 열의 뜻이 이에 이뤄지니 응당 하나가 없이 돌연 열이 있게 되지는
않는다. 그대가 말한 방方이란 것은 위가 네모나다는 것인가, 아래가 네모나다는
것인가, 동쪽이 네모나다는 것인가, 서쪽이 네모나다는 것인가, 남쪽이 네모나다
는 것인가, 북쪽이 네모나다는 것인가? 위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제천
諸天이 거처하는 바이니 그대의 경계가 아니요, 아래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
면 곧 풍륜風輪이 지탱되는 바이니 그대가 차지하여 머물 곳이 아니요, 동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비제하의 사람이니 얼굴이 반달 같을 것이며, 북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울단월의 사람이니 수명이 장구할 것이며, 서쪽을 네모
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구야니주이니 큰 바다의 물결이 크고도 아득할 것이며,
남쪽을 네모난 것으로 삼는다면 곧 염부제주이니 코끼리와 말이 나라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한 즉 갑을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시방은 의지할 바가 없으니 율을
다투고 선을 다툼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겠는가} 하였다.
율의 무리들이 말하기를 {세존께서 일찍이 급고독원과 죽림정사에 거처하셨
는데, 필시 태수의 말과 같다면 세존이 그르다는 것인가?}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대들은 어찌 듣지 못했는가? 크고도 원만히 깨달음으로써 나의 가람을 삼으
니 몸과 마음이 편안히 평등성지에 머물게 된다 하였다. 이는 나의 말이 아니라
곧 부처님의 말씀이다}라 하였더니 율의 무리가 묵묵히 가버렸다.
참선을 하는 자가 이르기를 {네모난 곳 바깥의 선비가 하나의 호리병과 하나
의 발우로 세간을 섭렵함에 구하는 바가 없으니, 마치 새처럼 허공을 날다가 나
뭇가지를 만나면 곧 쉬고 마치 거북이처럼 바다를 노닐다가 나무토막을 만나면
곧 떠오르며, 올 때는 마치 가시나무가 모이듯 하고 갈 때는 마치 거품이 꺼지듯
합니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군께서는 갑을을 하시겠습니까? 시방을 하시겠습
니까?} 하므로 내가 이르기를 {옳도다 불자여. 안팎에 머무르지 않고 중간에 머
무르지 않고 사유四維나 상하나 허공에 머무르지 않은 채 응당 머무는 바가 없이
머물러 지탱한다면 이것이 참으로 시방에 머무르며 지탱하는 것이리다} 하였다.
무슨 말을 바랄 것이며 무슨 말을 바라겠는가.]
때는 숭녕 원년 정월 십오일에 쓰다.
【1】宋.哲宗年號.
【2】又哲宗年號.
【3】黎陽.劉氏子, 未冠擧方略, 擢上第. 後, 厭塵, 乞謝簪纓, 爲僧, 嗣投子.義靑禪師.
【4】徽宗年號.
【5】憲宗年號.
【6】取其進火謂之 , 取其氣上謂之炊.
【7】文宗年號.
【8】《四諦論》云: [菩薩行慈, 血變成乳, 如慈母育子, 以慈愛心故, 生子有乳, 自然流出.]
【9】後晋.高祖年號.
【10】宋.神宗年號.
【11】梵刹, 外建三門, 夫三者, 乃空無相無作三法, 謂之三解脫門. 令一入此門, 卽當達此三法, 今
之人, 入是門者, 果能達此否? 愼毋口則談空, 行則着有, 故曰: [君子以空進其德, 小人以空
肆其欲.] 入空門者, 須諦審焉. 見《天樂鳴空集》.
【12】山名, 在蜀, 眞普賢住處.
【13】山名, 在北五臺山是也, 眞文殊住處.
【14】汝也, 下同.
【15】東毘提訶, 亦曰弗派提. 此云勝身, 形如半月, 壽五百歲.
【16】北鬱單越, 亦曰拘盧洲. 此云勝洲, 形如方座, 壽一千歲.
【17】西瞿耶尼, 亦曰瞿陀尼. 此云牛貨, 形如滿月, 壽二百五十歲.
【18】南閻浮提, 亦曰贍部洲. 此云勝金, 形如車箱, 壽一百歲.
【19】正月十五日, 上元; 七月十五日, 中元; 十月十五日, 下元.
【1】송나라 철종의 연호이다.
【2】이 또한 철종의 연호이다.
【3】여양 유씨의 아들로서 성인의 관례를 아직 올리지도 않아서 方略을 올렸다가 上第로 발탁
되었다. 후에 세속에 염증을 느끼고 관직을 물러나 승려가 되어 투자 의청선사의 법을 이
었다.
【4】휘종의 연호이다.
【5】헌종의 연호이다.
【6】위로 솟구치는 불기운을 취하는 것을 일컬어 이라 하고, 위로 솟구치는 기운을 취하는
것을 炊라 한다.
【7】문종의 연호이다.
【8】《사제론》에서 말하였다. [보살의 행이 자애로움에 피가 변하여 젖이 되었으니, 마치 자애
로운 어머니가 자애심으로 자식을 기르는 까닭에 자식을 낳으면 젖이 자연스레 생겨나는
것과 같다.]
【9】후진의 고조 연호이다.
【10】송나라 신종의 연호이다.
【11】인도의 사찰에는 바깥으로 문 3개를 세우는데, 무릇 셋이란 곧 空과 無相과 無作의 세 가
지 법이니 이것을 일컬어 三해탈문이라 한다. 이 문에 한 번 들어서기만 하면 곧 응당 이
三法에 통달해야 하나니, 지금의 사람으로서 이 문에 들어서는 자가 과연 이것을 능히 통
달해 내는가? 삼가 입으로는 空을 이야기하지 말고 행위는 有에 집착되지 말 것이라, 그
러므로 이르기를 [군자는 空으로써 그 덕을 향상시키고 소인은 空으로써 그 욕심을 방자
하게 한다] 하였으니 空門에 들어선 자는 모름지기 살피고 또 살필지라.《천락명공집》에
[이 내용이] 보인다.
【12】산 이름으로 촉 지방에 있으며 보현보살이 항상 거주하는 곳이다.
【13】산 이름으로 북쪽에 있는 오대산이 그것이며 문수보살이 항상 거주하는 곳이다.
【14】’그대(汝)’이다. 아래도 같다.
【15】동비제가 또는 불파제라 한다. 이곳 말로는 승신인데 모습이 반달 같으며 수명이 5백세
이다.
【16】북울단월 또는 구노주라 한다. 이곳 말로는 승주인데 모습이 사방 네모진 자리 같으며
수명이 1천세이다.
【17】서구야니 또는 구타니라 한다. 이곳 말로는 우화인데 모습이 보름달 같으며 수명이 2백
50세이다.
【18】남염부제 또는 섬부주라 한다. 이곳 말로는 승금인데 모습이 수레상자 같으며 수명이 1
백세이다.
【19】정월 15일이 상원이며, 7월 15일이 중원이며, 10월 15일이 하원이다.
襄州石門寺僧堂記 宋待制査道撰[1]
乾明寺者, 去郡百里, 古曰石門, 因勅易之. 高山峻谷, 虎豹所
伏, 岐路 ,[2] 人煙 絶, 非志于道者, 罔能捿其心也. 遊宦之
徒, 束利名, 雖觀其勝絶, 而罕能陟其境. 道守郡日, 知有學者,
法字守榮, 自雍熙[3]三年, 參尋而至. 後, 安禪之堂, 卑隘 壞, 於
是發心重構, 克堅其志, 聚落求化, 多歷年所, 召良工 市美材,
景德[4]三年, 始告成, 凡五間十一架.[5] 春, 有學徒慧果, 携錫至
京, 請余識之, 將刊于石, 乃書曰: [自佛法廣被, 達磨西來, 具信
根者, 求證本源, 星居曠野, 蔽身草木, 衣不禦寒, 食不充腹. 及正
法漸?, 人法替怠, 百丈禪師乃營其棟宇, 以安老病, 邇來禪刹,
競構宏壯. 少年初學, 恣臥其間, 殊不知化緣者勞形苦骨 施財者
邀福懺悔. 明因果者, 如臥鐵床, 若當寃敵, 自非朝夕, 密密增長
聖胎, 其次親善知識者, 志求解脫, 可以暫容其形, 龍神攸護. 其
或心沒盖纏,[6] 身利溫煖, 不察無明, 不知命縮, 惟記語言, 自謂究
竟, 韶盡遷謝,[7] 墮彼惡趣, 丈夫猛利, 得不動心哉! 榮公生鳳翔.
?邑, 出家於雍州. 縣.白雲山.淨居禪院.]
大中祥符[8]二年四月八日, 記.
건명사乾明寺는 군郡으로부터 1백리 떨어져 있으며 예전에는 석문사石門寺라
하였는데 칙령에 의해 이름을 바꾸었다. 높은 산과 험준한 골짜기는 호랑이와 표
범이 숨어 있고 갈림길은 울퉁불퉁한 자갈길로서 사람의 자취로부터 아득히 단
절되어 있으니 도 닦는 일에 뜻을 둔 이가 아니면 능히 깃들고자 하는 마음이
없을 것이며, 벼슬길에서 하릴없이 노니는 무리들은 이익과 명예에 매여있기에
비록 그 뛰어난 절경을 보더라도 능히 그 경계에 오를 이가 드물었다.
사도査道가 군郡을 지키던 때에 한 학자를 알고 있었는데 법명이 수영守榮으
로, 옹희 3년부터 찾아다니며 법을 묻더니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후에 좌선하는
승당이 낮고 좁으며 여기저기 허물어졌기에 발심하여 다시 짓고자 그 뜻을 굳게
가지고 마을에서 시주를 구함에 여러 해를 지나고 여러 곳을 다니다가 좋은 장인
을 부르고 훌륭한 재목을 구입하여 경덕 3년에 이르러 비로소 낙성을 고하니 무
릇 5간間 11가架였다. 봄에 학승인 문도 혜과慧果가 석장을 끌고 서울에 이르러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하며 가지고 가서 돌에 새기겠다 하므로 이에 글을 써서
말하였다.
[부처님 법이 널리 미쳐서 달마가 서쪽에서 건너옴으로부터 신근信根을 갖춘
자들이 근본 원류의 증득을 추구하여 광야에 별처럼 거처하니, 초목으로 몸을 가
리우나 옷은 추위를 막지 못하였고 음식은 배를 채우지 못하였다. 정법이 점차
경박해짐에 이르러 사람과 법이 쇠퇴하고 태만해져 백장선사가 이에 건물을 지
어서 늙고 병든 이들을 편안케 하였더니 그로부터 선종의 사찰들이 경쟁적으로
건물을 크고 웅장하게 짓게 되었다. 젊은 나이의 초학들은 그 곳에 제멋대로 누
워 있으되 교화할 인연을 가진 자(化緣者)들이 고달픈 몸으로 고초를 겪은 일과
재물을 시주한 자들이 복을 맞기 위해 깊이 참회한 것은 거의 알지 못한다. 인과
에 밝은 자는 마치 쇠로 된 평상에 누워 있는 듯이 여기고 흡사 원수나 도적을
마주친 듯이 여긴 것이 원래 하루이틀이 아니었기에 가만가만히 꾸준하게 성현
의 씨앗을 늘려 자라게 하였고, 그 다음으로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자는 뜻에 해
탈을 구하고 있기에 잠시 그 형상을 용납하더라도 용신이 보호하는 바가 되는
것이다. 만일 마음이 온갖 번뇌에 빠져서 몸으로 따뜻한 것만 이롭게 여기며 무
명을 살피지 않고 명이 줄어듦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언어만 기억하여 스스로 궁
극적인 것을 다 끝마쳤다 일컫는다면 세월이 다하여 물러갈 때 저 악도에 떨어질
것이니, 장부로서 용맹하고 예리한 자라면 어찌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
가! 영공은 봉상의 괵읍에서 태어나 옹주의 호현 백운산의 정거선원에서 출가하
였다.]
대중상부 2년 4월 8일에 글을 쓰다.
【1】谷隱山.石門寺.蘊禪師, 嗣首山念禪師. 住石門日, 太守以私意笞辱, 旣歸衆迎於道側, 首座問訊
曰: [太守無辜屈辱和尙如此.] 師以手指地云: [平地起骨堆.] 隨指湧一土堆, 太守聞之, 令人
削去, 復湧如初. 其後, 太守全家死於襄州. 宋査道爲待制, 每食必盡一膳, 常曰: [福當如是
惜.]
【2】石地不平.
【3】宋.太宗年號.
【4】眞宗年號.
【5】《史》註: 兩家爲一間. 此言五間十一架, 未詳.
【6】五盖十纏, 皆煩惱名.
【7】春光, 謂之韶光, 取和暢之義. 言此韶光 忽已盡, 報緣遷變謝落則當沒溺惡道也.
【8】眞宗年號.
【1】곡은산 석문사 온선사는 수산 염선사의 법을 이었다. 석문사에 머물러 있을 때 태수가 사
사로운 뜻으로 태장을 가해 욕을 보였는데, 이윽고 돌아옴에 대중들이 길 옆으로 서서 맞
아주며 수좌가 물어 가로되 [태수가 무고하게 스님을 이와 같이 굴욕케 하였습니다] 하므
로 스님이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며 이르기를 [평지에서 뼈무더기가 솟아오르리다] 하
니 가리킨 곳에서 한 무더기의 흙이 솟아올랐다. 태수가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시켜
깎아 버리게 하였으나 다시 처음처럼 솟아올랐다. 그 후에 태수의 온 집안이 양주에서 죽
었다. 송사도는 대제가 되어 매번 식사 때마다 반드시 반찬 한 가지를 남김없이 먹고는
항상 말하기를 [복록도 응당 이와 같이 아까워해야 한다]고 하였다.
【2】자갈 땅으로 평탄하지 않음이다.
【3】송나라 태종의 연호이다.
【4】진종의 연호이다.
【5】《사기》의 주석에 2家를 1間으로 한다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5간 11가는 무엇인지 상세하
지 않다.
【6】5盖와 10纏으로 모두 번뇌의 이름이다.
【7】春光을 韶光이라 일컬은 것이니 화창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이 세월의 빛이 홀연히 다
하여 과보의 인연이 옮겨지고 변하여 물러나게 되면 곧 응당 악도에 침몰하여 헤어나지
못함을 말한다.
【8】진종의 연호이다.
褒禪山慧空禪院輪藏記 無爲居士楊傑作[1]
法界本無衆生, 衆生緣乎妄見; 如來本無言敎, 言敎爲乎有情.
妄見者衆生之病, 言敎者如來之藥, 以藥治病則病無不治, 以言覺
妄則妄無不覺, 此如來不得已而言, 賢智不得已而述也. 故阿難陀
集而爲經, 優婆離結而爲律, 諸菩薩衍爲論,[2] 經 律 論雖分乎三
藏, 戒 定 慧盖本乎一心. 藏以示其函容,[3] 心不可以滯 .[4] 是
以雙林大師接物隨機, 因權表實, 聚言敎而爲藏, 載寶藏而爲輪,
以敎依輪則敎流而無 ,[5] 以輪顯敎則輪運而無窮.[6] 使披其敎者,
理悟變通,[7] 見其輪者, 心不退轉. 然後, 優遊性海, 解脫意筌, 無
一物不轉法輪, 無一塵不歸華藏. 非有深智者, 其孰能與於此哉!
법계에는 본디 중생이 없건마는 중생은 망령된 견해에서 반연하였으며, 여래
는 본디 말이나 가르침이 없건마는 말이나 가르침은 유정有情들을 위한다. 망령
된 견해라는 것은 중생의 병고이며 말이나 가르침이란 것은 여래의 양약이므로
양약으로 병을 치료하면 곧 치료되지 않을 병이 없으며 말로써 망령됨을 깨우치
면 곧 깨닫지 못할 망령됨은 없으니, 그래서 여래가 부득이 말을 한 것이며 어진
이와 지혜있는 이들이 부득이 저술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난타는 결집하여 경장
經藏을 이루었고 우바리는 결집하여 율장律藏을 이루었으며 모든 보살들이 부연
하여 논장論藏을 이루었으니, 경과 율과 논이 비록 삼장으로 나뉘어졌으나 계정
혜는 대개 하나 되는 마음에 뿌리를 둔다.
장藏은 그것으로써 함용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며 심心은 가히 막히거나 거
리낄 수 없다. 그러한 까닭에 쌍림대사雙林大師가 중생들을 제접하고 근기를 따
라서 방편에 의지하여 실다움을 표방함에 말씀과 가르침을 모아서 장藏을 이루
고 그러한 보물스런 장藏을 실어서 윤輪을 만들었으니, 가르침을 폄에 바퀴에 의
지하면 가르침이 번져가는데 장애가 없고 바퀴로써 가르침을 드러내 보이면 바
퀴가 굴러가는데 끝이 없을 것이므로, 그 가르침을 입는 자로 하여금 이치에 변
통을 깨닫고 그 바퀴를 보는 자로 하여금 마음에 물러섬이 없게 할 것이다.
그러한 후에 성품의 바다에 자유롭게 노닐며 뜻의 통발(文字)에서 벗어난다면
어느 한 물건도 법륜法輪을 굴리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며 어느 한 티끌도 화장
華藏의 세계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깊은 지혜를 지닌 자가 아니면
그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겠는가.
【1】楊傑, 字次公, 仕至禮部侍郞. 無爲州人, 嗣天衣義懷禪師.
【2】如來滅後, 於畢鉢羅窟, 立三座部主, 各結集爲三藏, 阿難誦出經藏, 迦葉誦出論藏, 優婆離誦
出律藏, 此卽上座部. 更有一千賢聖, 命波尸迦, 於窟外結集, 名大衆部. 此二部通稱爲僧祇律,
是爲根本, 分三藏爲三部, 是小乘. 又阿難海與文殊, 於鐵圍山, 結集菩薩藏, 此是大乘, 不分經
律. 其後諸菩薩, 作大乘諸論, 亦爲論藏.
【3】有藏義.
【4】有輪義.
【5】橫流十方.
【6】竪通三際.
【7】變識爲智.
【1】양걸의 자는 차공으로 관직이 예부시랑까지 이르렀다. 무위주의 사람으로 천의 의회선사
의 법을 이었다.
【2】여래께서 입멸한 후 필발라窟에서 三座部의 部主를 세우고 각기 결집하여 三藏을 이룸에
아난은 經藏을 외어내었고 가섭은 論藏을 외어내었고 우바리는 율장을 외어내었으니 이것
이 곧 상좌부이다. 다시 1천의 현인과 성인들이 있어 파시가에게 명하여 굴 밖에서 결집하
니 대중부라 이름한다. 이 2부는 통상적으로 승기율이라 일컫고 곧 근본이 되며 三藏을 나
누어 三部로 하였으니 바로 소승이다. 또 아난해가 문수와 더불어 철위산에서 菩薩藏을
결집하니 이것이 바로 대승으로서 經과 律을 따로 나누지 않았다. 그 후에 모든 보살들이
대승에 관한 여러 論을 지으니 이 역시 論藏이 되었다.
【3】감추어 지닌다는 뜻이 있다.
【4】움직여 굴러가게 한다는 뜻이 있다.
【5】시방에 널리 퍼져 감.
【6】三際에 널리 통함.
【7】識을 변화시켜 지혜가 됨.

藍谷信法師自鏡錄序
余九歲出家, 于今過六十矣, 至於逍遙廣厦, 顧步芳除,[1] 體安
輕軟, 身居閑逸, 星光未旦, 十利之精饌已陳,[2] 日彩方中,[3] 三德
[4]之珍羞總萃, 不知耕穫[5]之頓弊, 不識鼎 [6]之 勞, 長六尺之
軀, 全百年之命者, 是誰所致乎? 卽我本師之願力也. 余且約計五
十之年, 朝[7]中[8]飮食盖費三百餘碩矣,[9] 寒署衣藥盖費二十餘萬
矣.[10] 爾其高門 邃宇 碧 丹楹 軒乘[11] 僕竪之流, 机案牀褥之
類, 所費又無涯矣; 或復無明暗起 邪見橫生, 非法妄用 非時飮
, 所費又難量矣. 此皆出自他力, 資成我用, 與夫汲汲之位,[12]
豈得同年而較其苦樂哉? 是知! 大慈之敎至矣, 大悲之力深矣.
十號調御, 以我爲子而覆之; 八部天龍, 以我爲師而奉之! 皇王雖
貴, 不敢以臣禮畜之, 則其貴可知也; 尊親雖重, 不敢以子義瞻之,
則其尊可知也. 若乃悠悠四俗,[13] 茫茫九土,[14] 誰家非我之倉儲?
何人非我之子弟? 所以提盂入室, 緘封之膳遽開,[15] 振錫登衢,[16]
施慢之容肅敬.[17] 古人以一飡之惠, 猶能效[18]節,[19] 一言之顧, 尙
或亡軀,[20] 從頂至踵, 皆如來之養乎, 從生至死, 皆如來之蔭乎!
向使不遇佛法, 不遇出家, 方將曉夕犯霜露, 晨昏勤 畝, 馳驟萬
端, 逼迫[21]千計. 塵絮,[22] 或不足以盖形, 藿[23]茹[24]饌食, 或
不能以充口, 何暇 衡[25]廣宇, 策杖閑庭, 曳履淸談, 披襟閒謔,
避寒署 擇甘辛, 呵斥童稚, 徵求捧汲, 縱意馬之害群, 任情猿之矯
樹也.[26] 但三障[27]雲聳, 十纏[28] 結, 癡愛亂心, 狂愚患惱, 自悔
自責, 經瞬息而已遷, 悲之恨之, 歷旬朔而俄變. 或復升堂致禮,
恥尊儀而雨泣, 對格披文, 慙聖敎而垂淚. 或 衣[29]犬食,[30] 困辱
而治之, 損財去友, 孤窮而苦之,[31] 竟不能屈慢山 淸欲火, 捨序
弊之聲色, 免 湯之深誅, 豈不痛哉! 豈不痛哉! 所以, 常慘 常
啼,[32] 酸辛而不拯, 空藏 地藏, 救接而無方. 余又反覆求己, 周旋
自撫, 形容耳目, 不減於常流, 識悟神淸, 參差於名輩. 何福而生
中國, 何善而預出家, 何罪而戒檢多違,[33] 何 而剛强難化. 所以,
紆日徐, 佇歎中宵, 莫識救之之方, 未辨革之之術. 然幼蒙庭
訓,[34] 早霑釋敎, 頗聞長者之遺言, 屢謁名僧之高論, 三思之士,[35]
假韋絃以是資,[36] 九折之賓, 待箴銘而作訓,[37] 故乃詳求列代, 披
閱群編, 採同病之下流, 訪迷津之野客. 其有蔑聖言 輕業累 縱逸
無恥 頑疎不檢, 可爲懲勸者, 集而錄之, 仍簡十科, 分爲三軸,
朝夕觀覽, 庶裨萬一. 若乃坐[38]成龍報, 立[39]驗蛇身,[40] 牛泣登坡,
駝鳴 寺, 或杖楚[41]交至, 遍體火燃, 或戈戟去來, 應時流血, 或
舌銷眉落, 或失性發狂, 或取把菜而作奴,[42] 或侵束柴而燃足,[43]
寄神園木, 割肉酬施主之恩,[44] 托跡 扉, 變骨受謗人之罰,[45] 昔
不見而今見, 先不知而始知, 號天叩地, 莫以追, 破膽 肝, 非所
及. 當此時也, 父母百身而無贖, 親賓四馳而不救, 貨賂委積[46]而
空陳, 左右撫膺而奚補. 向之歡娛美樂, 爲何在乎? 向之朋流眷
屬, 爲何恃乎? 烏呼! 朝爲盛德, 唱息於長廊, 夕爲傷子, 哀慟於
幽房. 匪斯人之獨有, 念余身兮或當, 百年而一遇, 將 悔兮何
央,[47] 可不愴乎? 可不懼乎? 故編其終始, 備之左右, 佇勖書紳之
誡,[48] 將期戰勝之功.[49] 其有名賢雅誥,[50] 哲人殊迹, 道化之 [51]
隆, 時事之臧[52]否,[53] 亦附而錄之, 以寄通識. 古人云: [百年影
, 千載心在.] 實望千載之後, 知余心之所在焉.
내가 아홉 살에 출가하여 지금까지 육십 년이 지났음에 넓은 기와집을 한가로
이 노닐고 꽃향기 가득한 섬돌을 두리번거리며 거닒에 몸은 가볍고도 부드러운
곳에 두고 또한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거처하며, 별빛이 아직 아침이 되기도 전
에 열 가지 이로움을 담은 공양의 정미로운 음식이 이미 펼쳐지고 햇빛이 바야흐
로 정오에 이르면 청정하고 법답고 부드러운 진수성찬이 모두 모이지만, 밭 갈고
수확하는 고달픔을 알지 못하고 솥에 익히는 수고로움을 깨닫지 못한 채 6척의
몸뚱이를 길러 1백년의 수명을 온전히 함은 이것이 누구의 덕택인가? 곧 우리
본사本師의 원력이다.
내가 우선 50여 년을 대략 계산해 보건대 아침과 낮에 마시고 먹은 것으로 대
략 3백여 석碩을 소비하였고, 추위와 더위에 쓴 의복과 약재로 대략 20여 만萬을
소비하였다. 그리고 높은 문과 깊숙한 집과 푸른 섬돌과 붉은 기둥과 덮개 수레
와 노복의 무리 및 걸상과 책상과 평상과 침구 같은 온갖 것들을 소비한 것은
또 끝이 없으며, 혹은 거듭하여 무명이 가만히 일어나거나 삿된 견해가 제멋대로
생겨서 법답지 않은 것을 망령되게 사용하거나 때가 아닌 때 마시고 먹으며 소비
한 것 또한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이의 힘으로부터 나왔으
나 가져와서 내가 쓰게 되었음에 무릇 저 급급한 무리와 더불어 어찌 같은 햇수
로 셈하여 그 고락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로서 대자大慈로움의 가르침이 지극하고 대비大悲로움의 힘이 깊음을 알
수 있으니, 하물며 열 가지 명호를 모두 갖추신 조어장부께서 나를 아들로 삼아
덮어 기르고 팔부의 천룡이 나를 스승으로 삼아 받들어 모심에랴! 황제나 군왕이
비록 존귀하나 감히 신하의 예로써 기르지 아니하니 곧 그 존귀함을 알 수 있으
며, 높으신 어버이가 비록 중하나 감히 자식의 의미로써 굽어보지 않으니 곧 그
높음을 알 수 있다. 이에 하고많은 세속의 네 무리와 끝도 없이 너른 땅에 그 누
구의 집이 나의 곳집이 아니겠으며 그 어떤 사람이 나의 자제가 아니겠는가. 그
러한 까닭에 발우를 들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깊이 간직했던 음식을 급히 열고,
석장을 떨치며 거리에 나서면 거만만 피우던 얼굴이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된다.
옛 사람들은 한 끼 음식의 은혜를 받더라도 오히려 능히 절개를 바쳤고 한 마디
의 보살핌을 입더라도 오히려 혹은 몸을 바쳤으니, 하물며 머리부터 발끝에 이르
기까지 모두 여래께서 길러 주심이고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래의 음덕임에랴!
예전에 만약 불법을 만나지 못했거나 출가를 하지 못하였다면 바야흐로 아침
저녁으로 서리와 이슬을 범하고 밤낮으로 밭두둑과 논이랑에서 수고스러우며 만
가지 일로 뛰어다니며 천 가지 계교에 핍박되었을 것이다. 해진 행주치마와 때
낀 솜옷이라도 혹은 몸뚱이를 가리기에 부족하고 콩잎과 채소로 된 반찬과 먹거
리라도 간혹 입을 채우기에 부족하였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넓은 집에서 두리번
거리며, 한가한 정원에서 지팡이를 짚고 신을 끌며 맑은 얘기를 나누며, 옷깃을
헤치고 한가로이 농짓거리하며, 추위와 더위를 피하고 달고 매운 것을 가리며,
어린아이를 야단쳐 물리치며, 물을 떠다 받치기를 불러 구하며, 뜻의 야생마가
무리를 훼방함을 놓아두며, 감정의 원숭이가 나무를 옮겨 탐을 내버려두겠는가?
단지 세 가지 업장이 구름 같이 솟아 있고 열 가지 번뇌가 얼기설기 얽혀 있으
며 어리석음과 애욕이 마음을 어지럽혀 미친듯한 어리석음으로 근심하고 고뇌하
나니 스스로 후회하고 꾸짖는다 하더라도 순식간을 지나면 이미 달라지고, 슬퍼
하고 한탄한다 하더라도 열흘이나 한달 만 지나면 갑자기 변한다. 혹은 다시 승
당에 올라 예를 지극히 함에 존엄한 위의에 부끄러워하여 비오듯 울음을 울며,
책상을 대하여 글을 펴 봄에 성스러운 가르침에 수치스러워 하여 눈물을 떨군다.
혹은 해진 옷과 거친 밥으로 피곤하고 욕됨을 치르며 재물을 덜고 벗을 떠나와서
외롭고 곤궁함으로 괴로움을 겪더라도 결국에는 교만의 산을 굴복시키지 못하고
욕망의 불길을 식히지 못하며 거칠고 피폐한 소리와 빛을 버리지 못하고 가마솥
에 삶기는 극심한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슬프고 슬프지 않겠는가!
그러한 까닭에 상참보살과 상제보살은 괴롭고 괴롭더라도 [자신을 수행의 괴
로움에서] 건져내지 않았고 공장보살과 지장보살은 구제하고 제접하기를 일정한
지방에 국한함이 없었다. 내가 또 반복하여 이 몸을 구해보고 거듭하여 스스로를
어루만져 보았기에 몸뚱이 모습이나 귀와 눈은 보통의 무리보다 모자라지 않지
만 식識을 깨닫고 신神을 맑힘에 있어서는 이름 난 사람들과 가지런하지 못하다.
무슨 복으로 중국에 태어나서 무슨 선행으로 출가에 참여하였으며, 무슨 죄업으
로 계율로 검속한 것을 그리 많이 어겼으며 무슨 허물로 강경하게 되어 교화하기
어렵게 되었는가. 그러한 까닭에 해 기울며 얽혀 들었다가 한밤중까지 우두커니
서서 한탄하지만 그것을 구제할 방법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변혁시킬 수단을 판
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려서 가정의 교훈을 입고 일찍이 석가의 가르침에 젖어 자못 장자長
者의 유언을 듣고 누차 이름 있는 스님들의 높은 경륜을 참구하였으나, 세 번 생
각하는 선비라도 무두질한 가죽과 악기의 현을 빌어 그것으로써 의지하는 바를
삼으며 구절판九折坂 고개의 빈객이라도 잠箴과 명銘을 기다려서 훈계를 삼았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이에 여러 세대에서 상세히 구하고 뭇 서적들을 자세히 살펴
보았으며 같은 병을 지닌 아래 무리들에게서 채집하고 길 잃은 나루터의 들손들
을 방문하였다. 혹 성인의 말씀을 능멸하며 업의 과보를 가벼이 여기며 수치심도
없이 멋대로 안일하며 완고하고 성기어도 단속하지 않는 등 징계하여 권선할 만
한 것이 있으면 모두 모아 기록하여 그대로 열 과목으로 간략하게 한 뒤 세 권으
로 나누었으니 아침저녁으로 살펴보아 만의 하나라도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만약 앉은자리에서 용의 과보를 이루거나, 곧장 뱀의 몸으로 징험을 받거나,
소가 되어 눈물을 흘리며 비탈을 오르거나, 낙타가 되어 울며 절을 빙빙 돌거나,
혹은 곤장과 회초리가 번갈아 이르러 온 몸이 불길로 타오르거나, 혹은 곧은 창
과 굽은 창이 오고감에 그 때마다 피를 흘리거나, 혹은 혀가 녹아 없어지고 눈썹
이 떨어지거나, 혹은 실성하여 광기를 부리거나, 혹은 한 줌의 나물을 가졌다가
노비가 되거나, 혹은 한 다발의 땔나무를 도둑질하였다가 발을 태우거나, 정신을
동산의 나무에 의탁하여 살을 베어 시주의 은혜를 갚거나, 자취를 지옥에 의탁하
여 뼈가 변하도록 남을 비방한 죄를 받게 되면, 예전에는 보지 못한 것을 지금에
야 보게 되고 앞서 알지 못한 것을 비로소 알게 되니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땅을 치더라도 뒤따를 수 없으며 쓸개를 쪼개어 내고 간을 도려내도 미칠 바가
아니다.
이 때를 당해서는 부모가 1백 개의 몸을 지녔다 하더라도 죄를 대신할 수 없고
친지나 빈객들이 사방에서 달려오더라도 구원할 수 없으며 뇌물을 내버리듯 쌓
아 두어도 헛되이 벌려 놓은 것이니 좌우에서 가슴을 어루만져준들 어찌 도움이
되겠는가. 예전의 환락과 멋진 즐거움이 어찌 존재하는 바가 될 것이며, 예전의
벗들과 권속들이 어찌 믿을 바가 될 것인가.
오호라! 아침에는 성대한 덕을 지닌 이가 되어 기다란 행랑에서 노래하며 쉬
다가 저녁에는 상처받은 자가 되어 어둑한 방안에서 서럽게 운다. 이 사람에게만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도 혹시 해당될까 염려되니 만일 백년에 한 번
만나면 장차 수치스러워 하고 한스러워 한들 어찌 미칠 것인가? 어찌 슬프지 않
을 것이며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 처음과 끝을 엮어서 왼편과 오른편에 갖추어 두었다가 옷끈에 적
어 둔 훈계의 글로써 묵묵히 힘씀으로서 장차 전승의 공로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밖에 혹은 이름난 현인들의 고아한 경계나, 지혜가 밝은 이의 뛰어난 자취나,
불도의 교화가 쇠퇴하고 융성함이나, 그때 그때의 일로서 선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 등이 있으면 역시 덧붙여 기록함으로써 널리 알려고 하는 이에게 붙이노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백년의 그림자는 갔으나 천년의 마음은 그대로 있다] 하였
으니, 진실로 천년 후라도 나의 마음이 있는 곳을 알아주기를 바라노라.
【1】除階 也.
【2】《四分》云: [明相出時, 食粥. 或出已久後, 或未出時, 卽是非時.]《僧祇》云: [佛因難陀母施衆
僧粥, 說偈云: {持戒淸淨人所奉, 供敬隨時以粥施, 十利饒益於行者, 是名良藥佛所說.}] 十利
者: 資色, 增力, 益壽, 安樂, 辯說, 風除, 消宿食, 詞淸, 消飢, 消渴. 詞淸, 謂訓釋言辭; 辯說,
謂言出無礎.
【3】《毘羅三昧經》云: [佛告法惠菩薩, 食有四種: 早起, 諸天食; 日中, 諸佛食; 日西, 畜生食; 日
暮, 鬼神食. 佛制, 斷六道因, 同三世佛故, 令中食.]
【4】淸淨如法柔軟.
【5】春耕秋穫.
【6】熟食.
【7】粥.
【8】齋食.
【9】米也.
【10】錢也.
【11】車上有盖曰軒乘.
【12】汲汲, 不暫休息之意.
【13】四俗, 士農工商; 悠悠, 言四俗之多.
【14】茫茫, 曠蕩貌, 言九州之廣也.
【15】釋上倉儲句.
【16】《根本雜事》云: [比丘乞食, 入長者房, 遂招譏謗, 比丘白佛, 佛言: {可作聲警覺.} 卽訶呵作
聲, 喧鬧招毁. 佛復制以拳打門, 家人怪問: {何故, 打破我門?} 比丘默爾無對. 佛言: {應作錫
杖, 令杖頭安環子, 搖振作聲而爲警覺, 動可二三, 無人問時, 卽須行也.}]
【17】釋上子弟句.
【18】致也又獻也.
【19】峠桑餓人靈輒事也.
【20】雪山童子事.
【21】任重無替曰逼, 强力所使曰迫.
【22】衣之弊前者曰 .《說文》[絮, 弊綿也.] 繰餘爲絮, 不繰爲緬. 繰, 繹繭爲絲也. 又 之別名,
精曰綿, 序曰絮.
【23】豆葉.
【24】菜之總名.
【25】<左太沖賦> [ 衡而誥.] 註: , 張目也, 眉上曰衡, 謂擧眉揚目也. 誥, 告也.
【26】《呂氏春秋》云: [楚王有神白猿, 王自射之則矯樹而嬉, 使群臣各射而未能中之, 又使養由基射
之, 始調弓擧矢, 猿擁樹而號, 由基發箭能中之.] 矯, 詐也; 矯樹, 如搏樹而嬉也. 搏, 抱也.
【27】惑障, 業障, 報障.
【28】纏有五纏八纏十纏, 皆數數增盛, 纏繞一切觀行者之心. 又纏縛身心故, 名.
【29】子夏家貧, 衣若懸 .
【30】序食也.
【31】無友曰孤, 無所依也; 無財曰窮, 無所資也.
【32】常慘, 未詳. 薩陀波崙, 此云常啼, 求佛法故, 憂愁啼哭, 七日七夜, 因是號常啼. 具如《大般若
經》.
【33】檢束也, 以戒律檢束身心故, 曰戒檢也.
【34】夫子嘗獨坐, 鯉趨而過庭, 子曰: [學詩乎?] 曰: [不學詩.] 子曰: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
詩. 他日, 鯉又趨而過庭, 子曰: [學禮乎?] 曰: [不學禮.] 子曰: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
禮. 出《雜記》. 後人, 學於其親者, 謂之[庭訓].
【35】季文子, 每事三思而後行.
【36】韓非子曰: [西門豹, 性急故佩韋; 董安子, 性緩故佩弦.] 註: 韋, 皮繩, 喩緩; 弦, 弓弦, 喩急.
劉 曰: [韋絃, 非能言之物, 而古人引而自匡, 臣願比於韋絃.]
【37】王陽爲益州刺史, 至九折坂, 歎曰: [身體髮膚, 受之父母, 無敢毁傷.] 仍以不赴. 此, 以孝子作
箴也. 後, 王遵爲益州至此, 戒從驅策進曰: [此豈王陽所畏乎? 志士不忘喪其元, 勇士不忘棄
溝壑.] 此, 以忠臣作訓也.
【38】忽也.
【39】卽也.
【40】坐成龍報: 梁.武帝. 皇后性妬忌, 帝初立, 未及冊命, 因憤怒, 忽投殿前井, 衆趨救之, 已化爲
毒龍, 莫敢近之. 立驗蛇身:《自鏡錄》云: [高麗有大興輪寺, 有一比丘, 厥名道安, 善講說, 恒
居此寺, 評量衆僧, 呵斥童兒, 大行嗔喪. 後因抱疾, 生變蛇身, 經出林野, 長十丈餘.]
【41】大曰杖, 小曰楚.
【42】《自鏡錄》又云: [昔有一人, 春月夜, 乘興遊友人之家, 隱取一把之菜, 死作厥家之奴也.]
【43】又云: [昔, 朗州有金鎰者, 先富後貧, 終無眷屬, 時値雪不勝寒苦, 於隣家竊一束之柴, 死後遭
燃足之患也.]
【44】園菌見上.
【45】地獄之制, 以象斗星, 墻曰 墻, 扉曰 扉, 總以名之曰 土. 今言 扉, 謂地下之獄.
【46】金玉曰貨. 賂, 遺贈也. 委音畏, 積音恣, 皆蓄積也. 小曰委, 多曰積, 凡指所聚之物而言之則音
畏恣, 指聚物而積累之則如字也.
【47】及也.
【48】《論語》, 子張願聞一言, 書諸紳. 紳, 大帶也.
【49】《韓非子》云: [子夏始 而後肥, 有問之者, 曰: {吾戰勝.} 問: {何爲戰勝?} 曰: {吾入見夫子
之義而榮之, 出見富貴又榮之. 二者戰於胸中, 故 , 今見夫子之義勝, 故肥.}]
【50】雅, 正也; 誥, 上之警下之言也.
【51】 音 , 汚下之地, 濁水不流處也.
【52】善也.
【53】不善也.
【1】除는 섬돌층계이다.
【2】《사분율》에 이르기를 [하늘이 훤하게 동이 트는 첫 새벽에 죽을 먹는다. 동이 튼지 이미
오래 되었거나 혹은 아직 동이 트지 않았을 때는 [먹을] 때가 아니다] 하였다.《승기율》에
[부처님께서 난타의 에미가 대중스님에게 죽을 시주한 것을 인연하여 게송을 읊어 말하였
다. {청정계율 지켜가니 사람들이 받들기를, 공경으로 공양함에 때에 맞춰 죽시주라, 열
가지로 유익하여 수행자를 도웁나니, 이름하여 良藥이라 옛부처님 말씀일세}] 하였는데,
열 가지 이익이란 혈액순환에 좋고, 체력을 증진시키고, 수명을 더하고, [몸과 마음이] 安
樂하고, 말이 유창해 지고, 風症의 질환을 없애고, 묵은 음식(宿食)을 소화시키고, 말에 조
리가 있고, 주림을 해소하고, 갈증을 없애 주는 것 등이다. 詞淸이란 한마디 한마디의 말에
조리가 있음을 말하고, 辯說이란 말을 함에 거침이 없음을 말한다.
【3】《비라삼매경》에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법혜보살에게 일러주시기를 음식을 먹음에 네 가
지 유형이 있다 하였으니, 새벽에 일어나며 먹는 것은 모든 하늘신들이 먹는 것이요, 해가
중천에 있을 때 먹는 것은 모든 부처님들이 먹는 것이요, 해가 서녘에 기울어서 먹는 것은
축생들이 먹는 것이요, 해가 저문 뒤에 먹는 것은 귀신들이 먹는 것이라 하였다. 부처님께
서 제정하시기를, 六道의 원인을 끊고 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같게 되고자 하는 까닭에 해
가 중천에 있을 때 음식을 먹게 하신 것이다.]
【4】청정함과 법다움과 유연함이다.
【5】봄에 밭 갈고 가을에 수확함이다.
【6】음식을 익힘.
【7】죽.
【8】공양 음식.
【9】쌀이다.
【10】돈이다.
【11】덮개가 있는 수레를 軒乘이라 한다.
【12】汲汲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는 뜻이다.
【13】四俗은 선비와 농부와 장이와 아치를 말하며, 悠悠는 네 부류의 속인들이 많음을 말한다.
【14】茫茫은 광활하여 끝이 없는 모습으로서 온 천지가 넓음을 말한다.
【15】위에서 倉儲라고 한 구절에 잇대어 풀이한 것이다.
【16】《근본잡사》에 말하였다. [비구가 걸식하며 장자의 집으로 [무심코] 들어갔다가 비난을 받
기에 이르자 비구가 부처님에게 아뢰니 부처님이 {소리를 내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면 될 것이다} 하므로 이에 큰 소리로 꾸짖듯이 소리를 지르다가 시끄럽다 하여 험담
을 들었다. 다시 부처님이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라 [하기에 그렇게] 하였더니 집안 사람
들이 괴상히 여겨 묻기를 {무슨 까닭으로 우리집 문을 두드려 부수려는가?} 하였으나 비
구는 묵묵히 있을 뿐 대답이 없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응당 錫杖을 만들어 그 머
리에 둥근 고리를 장치하고는 흔들어 소리를 냄으로써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니 두세
번 움직이면 될 것이며, 묻는 이가 없을 때는 곧 발걸음을 옮겨야 할 것이다} 하였다.]
【17】위에서 子弟라고 한 구절에 잇대어 풀이한 것이다.
【18】보내다(致)는 것이며 또는 바치다(獻)는 것이다.
【19】예상에서 굶주림을 겪었던 영첩의 일을 말한다.
【20】설산 동자의 일이다.
【21】맡겨지는 일이 막중하면서도 그칠 줄 모르는 것을 逼이라 하고, 억지로 부리는 것을 迫이
라 한다.
【22】옷의 앞부분이 해진 것을 이라 한다.《설문》에 [絮는 해진 솜옷이다] 하였다. 고치를
켜고 남은 것이 絮며 고치를 켜지 않은 것은 緬이다. 고치를 켠다는 것은 누에고치를 풀
어내어 실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또한 솜의 다른 이름이니, 정교한 것을 綿이라 하고 거
친 것을 絮라 한다.
【23】콩잎이다.
【24】나물의 총괄적인 이름이다.
【25】<좌태충부>에 [눈을 부릅뜨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알리다] 하고는 그 주석에 는 눈을
크게 벌리는 것이요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을 衡이라 한다 하였으니,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을 치켜 뜨는 것을 말한다. 誥는 알리는 것이다.
【26】《여씨춘추》에 [초나라 왕에게 신비스런 흰 원숭이가 있었는데 왕이 직접 그 원숭이를 활
로 쏘았더니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며 희롱하므로 모든 신하들에게 각자 활을 쏘게 하였
으나 능히 그 원숭이를 맞히지 못하였다. 다시 양유기에게 그 원숭이를 쏘게 하였더니 비
로소 활을 조절하고 화살을 들어올리자 원숭이가 나무를 끌어안고 통곡하였는데, 유기가
화살을 쏘아 능히 적중시켰다]라 하였다. 矯는 업신여겨 희롱함이니 矯樹는 나무를 감싸
안고 희롱하는 것이다. 搏은 감싸안음이다.
【27】[중생이 탐진치 등의 惑으로 말미암아 心性을 더럽히고 바른 도를 장애하는] 惑障과 [언
어와 동작 또는 마음으로 악업을 지어 正道를 방해하는 장애인] 業障과 [지옥 아귀 축생
등의 果報를 받아 佛法을 들을 수 없는 장애인] 報障이다.
【28】纏에는 五纏과 [無 , 無愧, 嫉, ?, 悔, 睡眠, 掉擧, 昏沈의] 八纏과 [八纏에 忿, 覆을 더한]
十纏이 있으니, 모두 여러 번 더해지고 번성해져서 진리를 觀하고 行하는 모든 자들의 마
음을 얽어 감싼다. 또 몸과 마음을 얽어 묶는 까닭에 이름한 것이다.
【29】자하는 가난하여 그 의복이 마치 메추라기를 매어달아 놓은 듯 헤진 것이었다.
【30】거친 음식이다.
【31】벗이 없는 것을 孤라 하나니 의지할 바가 없음이요, 재물이 없는 것을 窮이라 하나니 밑
천할 바가 없음이다.
【32】常慘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살타파륜(sad prarudita)은 이곳 말로 하면 ‘항상 울다(常
啼)’인데, 佛法을 구하는 까닭에 근심과 시름으로 울기를 7일 밤낮을 한 인연으로 常啼라
부른다.《대반야경》에도 [내용이] 갖추어져 있다.
【33】檢은 동여매는 것인데, 계율로 몸과 마음을 동여매는 까닭에 戒檢이라 한다.
【34】일찍이 공자가 홀로 앉아 있었더니 공리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기에 공자께서 [詩
를 배웠느냐?] 하니 [시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하므로 공자께서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
할 만한 꺼리가 없느니라] 하기에 공리가 물러나서 시를 배웠다. 다른 날 공리가 또 종종
걸음으로 뜰을 지나가자 공자께서 [禮를 배웠느냐?] 하니 [예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하
므로 공자께서 [예를 배우지 않으면 세울 만한 꺼리가 없느니라] 하기에 공리가 물러나
서 예를 배웠다.《잡기》에 나온다. 훗날 사람들이 그 부친에게 배우는 것을 일컬어 ‘庭訓’
이라 하였다.
【35】계문자는 모든 일을 세 번 생각한 후에 행하였다.
【36】한비자가 이르기를 [서문표는 성격이 급한 까닭에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녔고, 동안자
는 성격이 느슨한 까닭에 활시위를 차고 다녔다]고 하였다. 주석에, 韋는 가죽으로 된 노
끈으로 느슨함을 비유하며, 弦은 활의 시위로 성급함을 비유한다. 유이가 이르기를 [가죽
이나 시위는 말을 할 줄 아는 물건이 아니지만 옛 사람들이 그것을 끌어대어 스스로 잘
못을 바로 잡았으니, 신은 원컨대 가죽이나 시위에 비견되고자 합니다] 하였다.
【37】왕양이 익주자사가 되어서 구절판에 도착하자 탄식하여 이르기를 [이 몸의 터럭과 살갗
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헐고 상처입게 할 수 없다] 하고는 이에 나아가지 않았
다. 이것은 효자[의 입장으]로써 훈계를 지은 것이다. 후에 왕준이 익주[자사]가 되어 여
기에 도착하자 말을 모는 시종을 타이르고 채찍질하여 나아가며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왕양이 두려워하던 바이겠는가. 뜻을 가진 선비는 그 근원을 잃음을 잊지 않으며, 용기
있는 선비는 봇도랑의 웅덩이에 버려짐을 잊지 않는다] 하였다. 이것은 충신[의 입장]으
로써 훈계를 지은 것이다.
【38】[坐는] ‘갑자기’이다.
【39】[立은] ‘즉각’이다.
【40】坐成龍報는, 양 무제의 극황후는 성격에 질투와 시기가 심하였는데 무제가 보위에 오르
던 초에 미처 책봉의 명령을 내리지 못하였더니 그로 인해 분을 이기지 못하고 노하여
갑자기 전각 앞에 있던 우물로 뛰어 들었는데 대중들이 달려가 구하려 하였으나 이미 독
을 품은 용으로 변하였기에 감히 근접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立驗蛇身은,《자경록》에 이
르기를 [고려의 대흥륜사에 한 명의 비구가 있어 그 이름은 도안으로 이야기를 잘하였는
데, 항상 그 절에 기거하며 대중스님들을 평론하여 저울질하거나 어린아이들을 꾸짖어
물리치는 등 성내는 마음을 크게 내었다. 후에 질병을 품은 것에 연유하여 산채로 뱀의
몸으로 변해 숲과 들녘을 지나다니게 되었는데 그 길이가 10여 丈 남짓이나 되었다]고
하였다.
【41】큰 것을 일러 杖이라 하고 작은 것을 일러 楚라 한다.
【42】《자경록》에 또 말하였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봄날의 달 밝은 밤에 흥에 겨워 친구의 집
에서 노닐다가 은밀히 나물 한 움큼을 가졌었는데 죽어서 그 집의 노비가 되었다.]
【43】또 말하였다. [예전 낭주에 금일이란 자가 있어 처음에는 부귀하였다가 뒤에 와서 빈곤
하여 결국에는 권속도 없게 되었는데, 그러다 폭설을 만나서 추위를 견디지 못하자 이웃
집에서 한 묶음의 장작을 훔치더니 죽은 후에 발을 태우는 환난을 겪게 되었다.]
【44】정원의 버섯은 위의 문장을 보아라.
【45】지옥의 제도는 북두칠성을 본뜬 것이니, 담장을 墻이라 하고 문짝을 扉라 하며 그 모
든 것을 총괄하여 이름하기를 土라 한다. 이제 扉라 말한 것은 지하의 감옥을 일컫는
것이다.
【46】금과 옥을 재물이라 하고 賂는 보내 주는 물건을 말한다. 委는 음이 외(畏)이며 積은 음
이 자(恣)이니 모두 쌓아 둠을 말한다. 작[게 쌓]은 것을 委라 하고 많[이 쌓]은 것을 積
이라 하니, 무릇 모아 둔 물건을 지적하여 그것을 말할 때는 곧 음이 ‘외자’이며, 물건을
모으는 것을 지적하여 그것을 쌓는다 할 때는 곧 글자의 본래 음과 같다.
【47】[央은] 다다름이다.
【48】《논어》에서 자장이 원하여 한 마디 말을 듣고는 [들은 말을] 紳에 기록하였다고 하였으
니, 紳은 큰 허리띠이다.
【49】《한비자》에서 말하였다. [자하가 처음에는 여위었다가 뒤에 살이 찌므로 어떤 이가 그
이유를 물으니 말하기를 {제가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하므로 묻기를 {어찌하여 싸움에서
이겼다 하는가?} 하니 이르기를 {제가 들어가서는 공자님의 올바름을 보고 그것을 영광
된 것이라 여겼으며 나와서는 부귀를 보고 또한 그것을 영광된 것이라 여겼기에 이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싸움을 한 까닭에 여위게 되었던 것이며 지금은 공자님의 올바름이
승리하였음을 보았기에 살이 찌게 된 것입니다} 하였다.]
【50】雅는 바르다는 것이며, 誥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경계시켜 하는 말이다.
【51】 의 음은 와 이니, 불결하고도 낮은 땅에 혼탁한 물이 [고여] 흐르지 않는 곳을 말한다.
【52】착함이다.
【53】착하지 않음이다.
禪林妙記前序 京師西明寺釋玄則撰[1]
一切諸佛, 皆有三身: 一者法身, 謂圓心所證; 二者報身, 謂萬
善所感; 三者化身, 謂隨緣所現. 今釋迦牟尼佛者, 法身久證, 報
身久成, 今之出現, 盖化身耳. 謂於過去釋迦佛所, 發菩提心, 願
同其號, 故今成佛, 亦號釋迦.[2] 三無數劫, 修菩薩行, 一一劫中,
事無量佛, 中間續遇錠光如來,[3] 以髮布泥, 金華奉上, 尋蒙授
記,[4] 得無生忍. 然, 一切佛將成佛時, 必經百劫, 修相好業, 其釋
迦發心, 在彌勒後, 當以逢遇弗沙如來, 七日翹仰, 新新偈讚, 遂
超九劫, 在前成道.[5] 將欲成時, 生兜率天, 號普明菩薩, 盡彼天
壽, 下閻浮提, 現乘白象, 入母右脅. 其母摩耶, 夢懷白象,[6] 梵仙
占曰: [若夢日月, 當生國王; 若夢白象, 必生聖子.] 母從此後,
調靜安泰, 慈辯日異. 菩薩初生, 大地震動, 身紫金色, 三十二相,
八十種好, 圓光一尋. 生已, 四方各行七步, 爲降魔梵, 發誠實語:
[天上天下, 唯我獨尊.] 抱入天祠, 天像悉起,[7] 阿私陀仙合掌歎
曰: [相好明了, 必爲法王. 自恨當死, 不得見佛.][8] 斯則淨飯國
王之太子也, 字悉達多, 祖號師子頰, 父名淨飯, 母曰摩耶. 代代
爲輪王, 姓瞿曇氏,[9] 復因能事, 別姓釋迦.[10] 朗悟自然, 藝術天
備, 雖居五欲, 不受欲塵. 遊國四門, 見老病死及一沙門, 還入宮
中, 深生厭離. 忽於夜半, 天神扶警, 遂騰寶馬, 踰城出家. 苦行六
年,[11] 知其非道, 便依正觀, 以取菩提. 時有牧牛女人, 煮乳作 ,
其沸高涌, 牧女驚異, 以奉菩薩, 菩薩食之, 氣力充實. 入河洗
浴,[12] 將登岸時, 樹自低枝, 引菩薩上. 菩薩從此, 受吉祥草, 坐
菩提樹,[13] 惡魔見已,[14] 生嗔惱心云: [此人者, 欲空我界.] 卽率
官屬十八億萬, 持諸苦具, 來怖菩薩, 促令急起, 受五欲樂. 又遣
妙意天女三人,[15] 來惑菩薩. 爾時, 入勝意慈定, 生憐愍心, 魔軍
自然墮落退散, 三妙天女化爲 鬼.[16] 降魔軍已, 於二月八日明相
出時, 而成正覺.[17] 旣成佛已, 觀衆生根, 知其樂小, 未堪大法,
卽趣波羅奈國, 度 陳如等五人, 轉四諦法輪, 此則三寶出現之始
也. 其後說法度人之數, 大集菩薩之會, 甚深無相之談, 神通示現
之力, 經文具之矣. 又於一時, 昇 利天,[18] 九旬安居, 爲母說法.
時, 優 國王及波斯匿王, 思慕佛德, 刻檀畵 , 以寫佛形. 於後,
佛從 利天下, 其所造像, 皆起避席, 佛摩其頂曰: [汝於未來, 善
爲佛事.] 佛像之興, 始於此矣. 化緣將畢, 時從厭怠,[19] 佛便告
衆: [却後三月, 吾當涅槃.] 復記後事, 如經具說. 然如來實身, 常
在不滅故,《法華》云: [常在靈鷲山[20]及餘諸住處.] 今生滅者, 是
佛化身, 爲欲汲引, 現同其類, 所以受生; 復欲令知有爲必遷, 所
以示滅; 又衆生根熟, 所以現生; 衆生感盡, 所以現滅. 佛涅槃後,
人天供養, 起諸寶塔. 又大迦葉召千羅漢, 結集經藏, 阿難從鎖隙
入, 誦出佛經, 一無遺漏, 如甁瀉水, 置之異器. 一百年外, 有鐵輪
王, 字阿輸迦, 亦名阿育, 役御神鬼, 於一日中, 天上 人間, 造八
萬四千舍利寶塔.[21] 其佛遺物衣鉢杖等及諸舍利, 神變非一. 逮
漢.明, 感夢金軀日佩丈六之容, 一如釋迦本狀. 又吳主孫權, 燒椎
舍利, 無所變壞.[22] 爰及浮江石像,[23] 泛海瑞容,[24] 般若冥力,[25]
觀音密驗,[26] 別記具之, 事多不錄.
讚弗沙佛偈:
天上天下無如佛, 十方世界亦無比.
世間所有我盡見, 一切無有如佛者.
일체의 모든 부처님은 모두 세 가지 몸이 있음에 그 첫 번째가 법신法身이니
원만한 마음으로 증득한 바를 일컬으며, 두 번째는 보신報身이니 만 가지의 착함
으로 감응하는 바를 일컬으며, 세 번째는 화신化身이니 인연에 따라 나타나는 바
를 일컫는다.
지금의 석가모니불은 법신을 오래 전에 증득하였고 보신도 오래 전에 이루었
으니 지금에 출현하신 것은 대개 화신일 뿐이다. 말하기를, 과거 석가불의 처소
에서 보리심을 내어 그 칭호와 같기를 원하였던 까닭에 지금 성불하여 역시 ‘석
가’라 호칭한 것이라 하였다. 삼아승지겁 동안 보살의 행을 닦으시고 낱낱의 겁
마다 무량한 부처님을 섬겼는데, 그 중간에 연이어 정광여래를 만나 머리칼을 진
창에 펴고 황금의 꽃을 받들어 올리고는 얼마지 않아 수기를 받으사 무생인無生
忍을 얻으셨다. 그러나 일체의 부처님께서 막 성불하려 할 때는 반드시 백 겁을
지나며 상호업相好業을 닦으셔야 하는데, 석가께서 발심한 것은 미륵보다 뒤였
으나 불사여래를 만나서 7일 동안 간절히 우러러보며 새롭고 새로운 게송으로
찬탄하여 마침내 아홉 겁을 뛰어 넘어서 앞서 불도를 이루었다.
장차 불도를 이루고자 할 때에 도솔천에 태어나 보명보살이라 호칭하며 그곳
하늘의 수명이 다하고는 염부제로 내려와 흰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어머니의 오
른쪽 옆구리로 들어감을 나타내었다. 어머니 마야부인이 꿈에서 흰 코끼리를 품
자 범선이 점을 쳐서 이르기를 [만약 해나 달의 꿈을 꾸었으면 응당 국왕을 생산
하실 것이며 만약 흰 코끼리의 꿈을 꾸었으면 반드시 성인을 생산하실 것입니
다] 하였는데, 어머니는 그 후로부터 고르고 고요하며 편안하고 태연하였으며 자
애로운 말씨가 날로 달라졌다.
보살께서 처음으로 태어나자 대지가 진동하고 몸은 자줏빛의 금색이었으며
서른 두 가지 모습과 여든 종호種好를 갖추고 둥근 빛이 한 길이나 벋쳤다. 태어
나자마자 사방으로 각각 일곱 걸음을 거닐어 악마와 범천의 항복을 받았으며, 성
실한 말씀을 드러내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 하셨
다. 품에 안고 천신의 사당에 들어가자 천신의 형상들이 모두 일어섰으며, 아사
타선인이 합장하고 찬탄하여 말하기를 [상호가 명료하시니 필시 법왕이 될 것입
니다. 저는 죽음에 임박하였기에 부처님을 뵈올 수 없는 것이 스스로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하였다.
이가 곧 정반국왕의 태자이니 이름은 ‘실달다’요 조부의 이름은 ‘사자협’이며
부친의 이름은 ‘정반’이고 모친은 ‘마야’이다. 대대로 윤왕輪王이 되어서 성이 ‘구
담’씨이며 또한 장한 일의 인연으로 따로이 성씨를 ‘석가’라 하였다. 명랑한 깨달
음이 자연히 갖추어져 있고 예술을 천부적으로 갖추고 있었으며 비록 오욕에 거
처하여도 욕된 세속의 티끌을 받지 않았다.
나라 안의 네 문을 구경 다니며 늙고 병들고 죽는 일과 한 사문을 보고는 궁중
으로 돌아와 세속이 싫어 떠나고자는 마음이 깊이 생겼으며, 홀연히 야밤에 천신
이 붙들어 경책하기에 마침내 아끼던 말을 타고 성을 넘어 출가하였다.
6년 동안 고행하다 그것이 올바른 도가 아님을 알고는 문득 바르게 들여다보
는 힘에 의지하여 그로써 보리를 취하고자 하였다. 이 때 소를 치는 여인이 우유
를 끓여 미음을 만듦에 그것이 끓다가 높이 솟아오르자 소 치는 여인이 놀랍고도
이상하게 여기고 그것을 받들어 보살에게 바치자 보살이 그것을 먹고는 기력을
차렸다. 강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는 막 언덕에 오르려 할 때 나무가 저절로 가
지를 낮추어 보살을 위로 끌어 올렸다. 보살은 이로부터 길상초를 받아 보리수
밑에 앉으니 악마가 보고는 성내고 번뇌하는 마음을 일으켜 말하기를 [이 사람
이 나의 세계를 텅 비게 하려고 한다]라고 하며 곧 관속 18억만을 거느리고 모든
고문의 도구를 가지고 와서 보살을 위협하며 재촉하기를 급히 일어나서 오욕의
즐거움을 받아들이도록 하였다. 또 묘의천녀 세 명을 보내 와서 보살을 유혹하였
다. 이 때에 수승한 뜻을 지닌 자비의 선정(勝意慈定)에 들어 연민의 마음을 내니
마군은 자연스레 몰락하여 물러나 흩어지고 세 명의 묘의천녀는 혹 달린 귀신이
되었다. 마군을 항복시킨 뒤 2월 8일 새벽 먼동이 틀 때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
이미 성불을 하고 나서는 중생의 근기를 관찰하여 그들이 작을 것을 즐기고
대법을 아직 감당하지 못함을 아시고 곧 바라나국으로 나아가 교진여 등 5명을
제도하고 사성제四聖諦의 법바퀴를 굴리시니 이것이 곧 삼보가 출현하게 된 그
처음이다. 그 후 설법으로 제도한 사람의 숫자와, 보살들을 크게 모은 회상會上
과, 매우 깊고도 모습이 없는 말씀과, 신통이 드러나 보인 힘 등은 경전에 갖추어
져 있다.
또 한 때는 도리천에 올라가 9순旬 동안 안거하며 어머니를 위해 설법하였다.
그 때 우전국왕과 파사닉왕이 부처님의 덕을 사모하여 박달나무에 새기고 모직
물에 그려 부처님의 형상을 묘사하였다. 뒤에 부처님이 도리천에서 내려오자 조
성한 형상들이 모두 일어나 자리를 피하거늘 부처님께서 그 정수리를 어루만지
며 이르기를 [너희들은 미래에 불사를 잘하여라] 하였으니 불상의 발흥이 여기
에서 비롯하였다.
교화의 인연이 장차 다하려 하자 때로 싫증 내고 게으름을 부리기에 부처님께
서 곧 대중에게 이르기를 [3개월 후에 내 마땅히 열반에 들 것이다] 하고 다시
뒷일을 수기授記하니 경전에 갖추어 말한 것과 같다. 그러나 여래의 법신法身은
항상 존재하여 멸하지 않는 까닭에《법화경》에 이르기를 [항상 영취산 및 여타
의 모든 머무르는 곳에 계신다] 하였으니 지금에 나고 멸하는 것은 부처님의 화
신化身으로, 끌어들여 인도하고자 하여 그들과 같은 무리로 몸을 드러내는 까닭
에 생生을 받는 것이요, 다시 유위법有爲法은 반드시 변천함을 알게 하고자는 까
닭에 멸함을 보이신 것이며, 또 중생들의 근기가 무르익은 까닭에 생生을 드러내
보인 것이요, 중생들의 감응이 다한 까닭에 입멸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인계와 천계에서 함께 공양하며 뭇 보탑들을 일
으켰다. 또 대가섭이 천 명의 나한을 불러들여 경장經藏을 결집함에 아난이 닫혀
진 문틈으로 들어가 부처님의 경전을 암송해 내었는데 하나도 빠트리지 않음이
마치 병의 물을 부어 다른 그릇으로 옮기는 것과 같았다. 1백년 후에 자는 아륜가
이며 아육이라고도 이름하는 철륜왕이 있었는데 귀신들을 부려 하루 사이에 천
상과 인계에 8만4천의 사리보탑을 조성하였다. 부처님께서 남긴 의발과 석장 및
모든 사리들은 그 신통변화가 한둘이 아니었다. 한 나라 명제 때 이르러 금색 몸
에 햇빛을 두른 16척의 모습을 꿈에 감응하였는데 석가의 본 모습과 하나같이
같았다. 또 오 나라 주인인 손권이 사리를 불태우고 방망이로 쳤으나 아무런 변
화나 부서짐이 없었다. 이에 강으로 떠내려온 석상과 바다로 떠내려온 관음보살
의 상서러운 모습과 반야경의 그윽한 힘과 관음보살의 비밀스런 영험 등은 따로
기록하여 그 내용을 갖추고 여기서는 일이 번잡하여 수록하지 않는다.
불사불을 찬탄하는 게송에,
하늘위나 하늘아래 부처같음 없을지니,
시방세계 그무엇도 견줄것이 없더이다.
이세간에 있는것을 내가모두 보았건만,
부처님과 같은것은 아무것도 없더이다.
【1】師亦有後序.
【2】《大論》云: [釋迦先世作瓦師, 名大光明. 時有佛, 名釋迦文, 弟子名舍利佛 目連 阿難, 與弟子
俱到瓦師舍一宿. 爾時, 瓦師布施草座燈明蜜漿, 便發願言: {我於當來作佛, 如今佛名, 弟子名
亦如今時}.] 又《婆娑論》云: [過去有佛出世, 號釋迦. 彼佛化導有情, 恒涉道路, 爲風所薄, 肩
背有疾, 令阿難: {往陶師家, 求胡麻油及以煖水, 爲吾塗洗.} 侍者往求. 時彼陶師名曰廣識, 辦
油及香水, 爲佛灌洗, 風疾除愈. 佛爲說法, 彼聞發願云云也.]
【3】《大論》云: [太子生時, 一切身邊, 光如燈故, 云燃燈. 以至成佛, 亦名燃燈.] 亦云錠光, 有足名
錠, 無足名燈.
【4】佛因地, 作善慧仙人, 遇燃燈佛赴降怨王請, 布髮掩泥, 佛履而過之, 又上金蓮華七枝, 佛與記
曰: [汝當得佛, 號釋迦.]
【5】《本生經》云: [過去有佛, 名曰弗沙, 有二菩薩, 一名釋迦, 一名彌勒. 是佛觀釋迦, 心未成熟,
其諸弟子, 心皆純熟, 如是思惟: {一人之心, 易可速化, 衆人之心, 難可疾治.} 卽上雪山, 入寶
窟中, 入火禪定. 時, 釋迦菩薩作外道仙人, 上山採藥, 見佛歡喜, 翹一足立, 叉手向佛, 一心而
觀, 目未曾 , 七日七夜, 以偈讚佛. 於是, 超過去九劫, 九十一劫得阿 菩提.]
【6】《普曜經》云: [菩薩當作白象入胎, 何以故? 三獸渡河, 象窮底故.]
【7】《因果經》云: [置太子七寶象輿入城時, 王及釋種, 未識三寶, 卽將太子, 往詣天祠, 太子旣入,
梵天形像, 皆從座起, 禮太子足.] 餘經, 與此小異.
【8】阿斯陀仙在香山中, 自彼飛來, 詣太子所, 相太子已, 忽然悲泣. 王問: [有何不祥, 涕泣如是?]
仙言: [假使天雨金剛泰山, 不能動其一毛, 必當作佛. 我今年暮, 當生無色天上, 不得見佛, 不
聞其法故, 自悲耳.]
【9】瞿曇, 或云瞿曇彌, 或喬答摩, 皆訛也. 南山云: [瞿曇星名, 從星立稱.] 應法師蒜爲[地最勝],
謂人中此族最勝.《十二遊經》明: [阿僧祇初, 大茅草王捨位付臣, 師波羅門, 遂受其姓, 名小瞿
曇.] 仁賢劫初, 識神託生, 立瞿曇姓故, 知瞿曇遠從過去, 近自民主云.
【10】[釋迦]此蒜[能仁].《長阿含》云: [昔有輪王, 姓甘蔗氏. 聽次妃之 , 四太子, 至雪山北, 自
築城居, 以德歸人, 不數年間, 蔚爲强國. 父王悔憶, 遣使往召, 四子辭過不還, 父王三歎: {我
子釋迦!} 因命氏.]
【11】逾春城於八夜, 捿雪嶺於六年.
【12】《華嚴經》云: [菩薩浴時, 諸天競取此水, 將還天宮, 池中水族, 飮此水已, 得生天上. 菩薩爲利
益故, 度脫水族, 示現洗浴.]
【13】《西域紀》云: [泥蓮河西南十里有樹, 名畢波羅.] 是爲菩提樹也.
【14】魔王波旬, 於前世, 但作一寺主, 受一日八戒, 布施酸支弗一鉢之食故, 生第六天, 作天魔王;
佛, 於無量劫, 廣修功德, 供養無量諸佛, 亦復供養聲聞緣覺之人不可數計, 豈波旬所能動耶?
宜乎惡魔軍衆退散而降.《大乘方便經》云: [若非佛力, 彼等惡魔, 豈得近佛. 魔爲欲界尊勝,
勝旣先降, 餘皆伏故.]
【15】皆波旬女也.
【16】 , 頸瘤也, 言 項瘤之鬼, 東坡詩: 領先裁盖 衣.《博物志》云: [山居多 , 飮泉水之不流
者也.]
【17】周以子月爲歲首, 周之二月卽今之獵月也.
【18】時, 如來年七十八歲.《瑞應經》云: [摩耶産太子後七日, 命終, 以懷菩薩功德大故, 生 利.]
又: [太子自知福德威重, 無有女人堪受禮者, 因其將終託之而生.]
【19】於時, 有緣衆生, 皆已度訖, 唯餘無緣難化者故, 而生厭怠.
【20】如來因時, 嘗爲鷲鳥, 於此山中, 養育父母, 由此得名. 又城南有屍多林, 鷲鳥居之, 多食死人,
人欲死者, 鷲翔其家, 悲鳴作聲, 人以預知, 故名靈鷲.
【21】《育王傳》云: [王詣鷄頭摩寺, 至上座耶舍前言: {我今於閻浮提內, 欲立八萬四千寶塔.} 耶舍
曰: {王若欲一時作塔, 我於大王作塔時, 以手障日, 可遍勅國界, 手障日時, 盡起立塔.} 王造
八萬四千寶 , 各盛一舍利, 以一舍利付一夜叉, 使遍閻浮, 共有一億人處, 起一寶塔.]
【22】吳.赤烏四年, 康居國僧會, 行至建康, 說像行道, 吳人初見, 謂之妖異, 有司聞之. 王詔問之,
會曰: [如來化已千年, 靈骨舍利, 神應無方.] 主曰: [可得舍利, 當爲塔之.] 會暇請七日, 懇
求無驗. 乃至三七日五鼓時, ?然有聲, 會曰: [果吾願矣.] 以進之. 權與公卿聚觀之, 歎曰:
[希世之瑞也.] 使力士椎之, 砧碎而光明自若. 於時, 建塔, 立建初寺, 使會居之.
【23】西晋.建興元年, 有維衛 迦葉二佛石像泛海而至松江. 瀆口, 吳縣.朱膺素奉正法, 同數人共迎,
石像於是, 乘流自至, 背有銘志, 一名維衛, 一名迦葉, 登舟, 其輕如羽, 安于通玄寺供養.
【24】《高僧傳》云: [晋.咸和中, 丹陽尹高 , 於張候橋浦得一金像, 無光趺而製造甚工, 前有梵書云
育王第四女所造, 奉安于張干寺. 後一年許, 漁人張係世, 於海口得銅蓮華趺浮在水上, 卽取
送縣, 表上, 勅使安像足下, 符合無差. 後有竺僧五人, 詣 云: {昔於天竺奉育王像, 至 遭
難, 藏在河邊, 亂後尋失所在, 近感夢云爲高 所得, 欲一見禮拜.} 引至長干, 五人見像拜
泣, 像卽放光. 五人云: {本有圓光, 卽在遠處, 亦尋至矣.} 合浦人 宗之得一佛光, 刺史表上,
簡文勅施像, 孔穴懸同, 光色一種. 凡四十餘年, 東西祥感, 光趺方具. 其於靈異, 可勝道哉!]
【25】吳僧智藏居開善寺, 聰慧鋒銳. 有相者占曰: [師雖慧悟, 乃報年可至三十一矣.] 師時年方二
十九, 師乃營室設像, 誦《般若經》, 常晝夜不輟. 至期, 忽有空中聲曰: [汝以般若功, 得倍報
年.] 師聞之喜躍, 功倍於前. 後遇相者, 驚曰: [師何尙存?] 卽具述其由, 相者歎曰: [佛法之
靈, 非世智之所擬議.]
【26】宋時, 求那跋抒, 五明呪述無不該精, 王欲請講《華嚴經》, 陀自知未善宋語, 旦夕有憂, 常誦
《觀音陀羅尼》, 以求冥應, 忽夢白衣人, 持劒擎一人頭來言: [何事有憂?] 陀以事具告, 神曰:
[無憂!] 卽以刀易首, 更安新頭, 語令回轉曰: [得無痛否?] 答曰: [無傷.] 覺心快然, 備曉宋
言, 於是開講大弘佛法.
【1】선사가 쓴 後序가 또 있다.
【2】《대론》에 이르기를 [석가께서 전생에 와사였을 때 대광명이라 이름하였다. 그 당시 부처
님이 있어서 석가문이라 이름하였으며 제자들은 사리불 목련 아난이라 이름하였는데, 제
자들과 함께 와사의 집에 와서 하루를 묵었다. 이 때 와사가 풀로 엮은 자리와 밝은 등불
및 꿀을 보시하며 문득 서원을 내어 말하기를 {제가 나중에 부처가 되면 지금의 부처님
이름과 같게 할 것이며 제자들의 이름 또한 지금과 같게 하고자 합니다}라 했다]고 하였
다.《파사론》에 이르기를 [과거에 어떤 부처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어 호를 석가라 하
였다. 그 부처님이 有情物을 교화하여 인도함에 항상 길을 나다니게 되어 바람결에 [피부
가] 메말라 어깨와 등 쪽으로 질병이 생기게 되었기에 아난을 시켜 {도사의 집에 가서 호
마기름과 따뜻한 물을 구해 와서 나를 씻겨 달라} 하므로 시자가 가서 그것들을 구하였다.
당시 그 도사는 이름을 광식이라 하였는데, 기름과 향내 나는 물을 마련하여 부처님에게
끼얹어 씻어주니 풍질이 말끔히 나았다. 부처님이 그를 위해 법을 설하여 주자 그가 듣고
는 발원하여……]라 하였다.
【3】《대론》에 이르기를 [태자가 태어날 때 몸 주변이 온통 마치 등불과도 같이 빛이 났기에
‘燃燈’이라 일컬은 것이다. 성불함에 이르러서도 또한 ‘연등’이라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또
는 ‘錠光’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등 가운데] 발이 있는 것을 錠이라 이름하고 발이 없는
것을 燈이라 이름한다.
【4】부처님이 그 땅에 인연하여 선혜선인이 되었을 때 항원왕의 [법문] 요청에 나아가던 연등
불을 만나 머리칼을 벌려 진흙길을 덮으니 연등불이 그것을 밝고 지나갔으며 또 금연화 7
가지를 바쳤더니 연등불이 授記하며 말하기를 [너는 마땅히 부처가 되어 ‘석가’라 부를 것
이다]라 하였다.
【5】《본생경》에서 말하였다. [과거에 ‘불사’라고 이름하는 부처가 있었는데 두 보살이 있었으
니 한 분은 석가라 이름하였고 한 분은 미륵이라 이름하였다. 이 부처님이 석가를 살펴보
니 그 마음이 아직은 성숙되지 않았으나 그의 모든 제자들은 마음이 모두 농익어 있었는
데, 그와 같음에 생각하기를 {한 사람의 마음은 속히 교화하기 쉬우나 대중들의 마음은 재
빨리 다스리기 어려울 것이다}라 하고는 곧 설산에 올라서 보굴 안으로 들어가 火禪定에
들었다. 이 때 석가보살이 외도의 선인이 되어 산을 올라와 약을 캐다가 부처님을 보고는
환희심을 내어 한 발로 발돋움하여 서서 부처님을 향해 叉手한 채 한결같은 마음으로 觀
함에 눈도 깜짝이지 않으며 7일 밤낮을 게송을 읊어 부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하여 과거
9겁을 초월하여 91겁만에 아뇩보리를 증득하게 되었다.]
【6】《보요경》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응당 흰 코끼리를 타고 胎中에 드는데 어인 까닭인가?
세 짐승이 물을 건넘에 코끼리가 그 바닥까지 철저히 딛고 건너는 까닭이다.]
【7】《인과경》에서 이르기를 [태자를 칠보로 장식한 코끼리 수레에 안치하여 성으로 들어감에
왕과 釋氏들이 [태자가] 三寶 가운데 으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곧장 태자를 데리고 가서
하늘신을 모시는 사당에 이르니 범천의 형상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태자의 발에 경배
하였다]라 하였는데, 다른 경전은 이러한 내용과 조금 다르다.
【8】아사타선인이 향산에 있다가 그곳으로부터 날아와 태자가 있는 곳에 이르러 태자의 관상
을 보고는 홀연히 슬퍼하며 울었다. 왕이 묻기를 [어떤 불길한 일이 있길래 이와 같이 눈
물을 흘리며 우는가?] 하니 선인이 말하기를 [설령 하늘에서 금강으로 된 태산을 비내리
듯 하여도 그 털끝 하나도 능히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저는 이제 연로하여 응당 무색천상에서 태어날 것이기에 부처님을 뵐 수 없으므로 그 법
을 듣지 못하는 까닭에 스스로 슬퍼할 뿐입니다] 하였다.
【9】’구담’을 혹은 ‘구담미’라 하며 혹은 ‘교답마’라 하는데 모두 잘못 전해진 것이다. 남산이 말
하기를 [구담은 별 이름인데 그 별을 좇아 명칭을 세웠다] 하였으며, 응법사는 ‘지최승’이
라 번역하였으니 사람 가운데 이 종족이 가장 뛰어남을 말하였다.《십이유경》에 밝혀 놓
기를 [아승지겁 초에 대모초왕이 보위를 버려 신하에게 주고 바라문을 섬김에 마침내 그
의 성씨를 받아 ‘소구담’이라 이름했다]고 하였다. 인현겁 초에 識神이 삶을 받아 태어나
서 구담의 성씨를 세웠던 까닭에 구담의 성씨가 멀리는 오랜 과거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가
까이는 백성의 지도자 되는 이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10】’석가’는 이 곳 말로 번역하면 ‘能仁’이다.《장아함》에 이르기를 [예전에 성씨가 ‘감자’인
輪王이 있었는데 계비의 참소를 듣고는 네 명의 태자를 배척하니 [태자들이] 설산의 북
쪽에 이르러 스스로 성을 쌓고 기거함에 그들의 덕행으로 사람들이 귀의하게 되자 몇 년
되지 않아 번성하여 강국이 되었다. 부왕이 후회하는 마음에 사신을 보내 불러들였으나
네 아들이 사양하며 돌아가지 않으니 부왕이 세 번씩이나 탄식하며 {나의 아들은 ‘석가’
로다!} 하고는 그로 인해 성씨를 지어 주었다]고 한다.
【11】春城을 깊은 밤중에 넘고 雪嶺에서 6년 동안 머물었다.
【12】《화엄경》에서 말하였다. [보살이 목욕할 때면 모든 천신들이 다투어 그 물을 길러 하늘
궁전으로 가지고 갔으며, 못 속의 어류들은 그 물을 마심으로써 천상에 태어남을 얻는다.
보살은 이익이 되는 까닭에 어류들을 제도하여 해탈케 하고자 목욕을 示現하는 것이다.]
【13】《서역기》에 이르기를 [니련하의 서남쪽 10리에 나무가 있는데 이름이 필파라이다] 하였
으니 그것이 보리수일 것이다.
【14】마왕 파순은 전생에 단지 한 사찰의 주인이 되어 한 나절 동안 8계를 받았으며 벽지불에
게 한 발우의 음식을 공양한 까닭으로 제6천에 태어나 천마왕이 되었는데, 부처님은 무
량겁 동안 공덕을 널리 닦고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을 하였으며 또한 다
시 성문과 연각 등의 사람에게도 셀 수 없는 공양을 하였으니 어찌 파순이 능히 동요시
킬 수 있겠는가? 사악한 마군의 무리들이 물러나 흩어지고 항복함이 마땅하다.《대승방
편경》에 이르기를 [만약 부처님의 힘이 아니면 저들 사악한 마군이 어찌 부처님에게 가
까이 갈 수 있으리요. 마군은 욕계에서 존귀하고도 뛰어난 존재인 까닭에 뛰어난 존재가
먼저 항복하면 나머지는 모두 항복할 것이기 때문[에 마군이 부처님에게 근접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하였다.
【15】모두 파순의 딸이다.
【16】 은 목에 난 혹이니 목에 혹이 난 귀신을 말하는데, 소동파의 시에 [옷깃 틀 때는 먼저
목혹을 덮는 옷을 마름질한다] 하였다.《박물지》에 이르기를 [산에 살다 보면 목혹이 많
이 생기는데 흐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기 때문이다] 하였다.
【17】주나라는 음력 11월(子月)을 한 해의 시작으로 삼으니 주나라의 2월은 지금의 12월이다.
【18】이는 여래의 나이 78세 때이다.《서응경》에 이르기를 [마야부인이 태자를 생산한 지 7일
만에 임종하였는데 보살을 회임한 공덕이 큰 까닭에 도리천에 태어났다]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태자께서 [자신의] 복덕이 막중하여 여인으로서 그 禮를 감히 받아들일 자가
있지 않음을 스스로 아시고는 그 까닭으로 곧 임종하는 몸에 의탁하여 태어나신 것이다]
하였다.
【19】이 때에는 인연이 있는 중생들을 이미 모두 제도하여 마쳤고 오직 인연이 없어 교화하기
힘든 자들 만 남았기에 싫증과 게으름을 부린다는 것이다.
【20】여래가 수행하고 있던 때에 일찌기 독수리가 되어 이 산중에서 부모를 봉양하였는데 이
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게 되었다. 또 성의 남쪽에 주검이 많은 숲이 있는데 독수리들이
그곳에 모여 살며 대체로 죽은 사람을 먹고, 사람이 죽을 것 같으면 독수리가 그 집을 빙
빙 돌아 날며 슬피 우는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그로써 미리 아는지라 그러한 까닭에 ‘신
령스런 독수리(靈鷲)’라 이름하게 되었다.
【21】《육왕전》에서 말하였다. [왕이 계두마사에 이르러 상좌 야사의 앞으로 가서 말하기를
{내가 이제 염부제 안에 8만4천의 보탑을 건립하고자 한다} 하니 야사가 이르기를 {왕께
서 만약 일시에 탑을 짓고자 한다면 내가 대왕께서 탑을 지을 때에 손으로 해를 가릴 것
이니, 나라 안에 두루 칙령을 내려서 손으로 해를 가리고 있을 때에 다함께 일어나 탑을
건립하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8만4천개의 보물함을 만들고 그 각각에 사
리 한 개를 담아 하나의 사리함을 한 명의 야차에게 주고는 염부제에 고루 나아가게 하
여 모두 1억 명이 있는 곳마다 보탑 하나씩을 일으키게 하였다.]
【22】오나라 적오 4년에 강거국의 승려 회가 교화하러 다니다 건강에 이르러 불상을 모셔 놓
고 불도를 행하니 오나라 사람들이 처음 보고는 그것을 요망하고 괴이하다 일컫기에 담
당관리가 그것을 왕에게 보고하였다. 왕이 조서를 내려 물으니 회가 이르기를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지 이미 천년이 되었으나 신령스러운 뼈인 사리도 신비스런 감응이 끝이 없
습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사리를 얻을 수 있다면 응당 탑을 만들리다] 하였다. 회가
여가를 7일 청하여 간곡히 구하였으나 영험이 없었다. 그러다 21일째 새벽녘에 쇳소리가
나니 회가 말하기를 [내가 원하던 바를 이루었다] 하고는 그것을 진상하였다. 손권은 공
경대부와 더불어 모여서 그것을 보고는 탄식하여 이르기를 [세상에 드문 상서러움이다]
하고는 역사를 시켜 그것을 부수게 하였더니 깨뜨려졌으나 밝은 빛은 여전하였다. 이에
탑을 세우고 건초사를 건립하여 회로 하여금 머물게 하였다.
【23】서진 건흥 원년에 유위와 가섭의 두 석불상이 바다를 건너 송강 호독구에 닿았는데, 오현
의 주응이 평소에 정법을 받들었기에 몇 사람과 함께 맞아들이려 하자 석상이 흐름을 타
고 저절로 도착하였으며, 그 등에 명문이 있어 한 尊에는 유위라 이름되어 있고 한 尊에
는 가섭이라 이름되어 있었으며, 배에 올릴 때에는 그 가볍기가 마치 깃털 같았으니, 통
현사에 봉안하여 공양하였다.
【24】《고승전》에 말하였다. [진나라 함화 연간에 단양 땅 군수 고회가 장후교포에서 한 존의
금불상을 얻었는데 광배와 받침이 없었으나 아주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으며 그 앞에
梵文으로 아육왕의 네 번째 딸이 조성한 것이라 되어 있기에 고회가 장간사에 봉안하였
다. 그 후 1년 여 쯤에 어부 장계세가 바다어구에서 동으로 된 연화좌가 물위에 떠 있는
것을 곧장 가져다 현으로 보내오자 표를 올렸더니 칙서로써 불상의 발 아래에 안치시키
게 하니 마침맞아 차이가 없었다. 후에 천축 승려 다섯 명이 고회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예전에 천축에서 아육왕의 불상을 봉안하여 업에 이르러 난을 만났기에 강가에 감춰두
었다가 난이 끝난 후에 얼마지 않아 그 두었던 곳을 잊었는데 근자에 꿈에 감응하여 고
회라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어졌다고 하기에 [이렇게 와서] 한 차례 예배드리고자 합니
다} 하므로 고회가 인도하여 장간사에 이르니 다섯 사람이 불상을 보고는 절을 하고 눈
물을 흘림에 불상이 곧 빛을 발하였다. 다섯 사람이 이르기를 {본디 원만한 광배가 있었
는데 곧 먼 곳에 있으니 그것 역시 얼마지 않아 도착할 것입니다} 하였다. 합포 사람 동
종지가 부처님의 광배 하나를 얻음에 자사가 표를 올리자 간문제가 칙서로써 불상에 시
설케 하였더니 걸어 맞추는 구멍이 같고 빛의 색깔이 한 종류였다. 무릇 40여년 만에 동
서가 상서럽게 감응하여 광배와 연화좌가 바야흐로 갖추어졌다. 그 영묘함과 기이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25】오나라 승려 지장은 개선사에 거처하고 있었는데 총명한 지혜가 칼날 같이 예리하였다.
어떤 관상을 보는 이가 점을 쳐서 말하기를 [스님은 비록 지혜롭게 깨달았다고 하나 과
보로 받은 수명은 31년에 이를 뿐입니다] 하였는데 스님의 나이는 바야흐로 29세였으므
로 스님은 이에 방을 꾸미고 불상을 시설하여《반야경》을 읽음에 항상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기한에 이르러 홀연히 공중에서 소리가 있어 말하기를 [너는《반야경》을 독송한
공덕으로 곱절의 과보나이를 얻게 되었다] 하므로 스님이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
며 공덕을 전보다 곱절로 하였다. 후에 점장이를 만나자 놀라며 이르기를 [스님이 어찌
여전히 살아 계십니까?] 하므로 곧 그 연유를 일러주니 점장이가 탄식하여 이르기를 [불
법의 신령스러움은 세간의 지혜로 추측할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26】송나라 때 구나발타는 五明의 주술에 대해 갖추어 정미롭지 않음이 없었는데 초왕이《화
엄경》의 강의를 청하고자 하였더니 구나발타가 스스로 송나라 말을 잘하지 못함을 알고
는 아침저녁으로 근심에 쌓여 항상《관음다라니》를 외우며 그윽한 감응을 구하였는데,
홀연히 꿈에 흰옷을 입은 사람이 칼을 지닌 채 사람의 머리 하나를 들고 와서 말하기를
[무슨 일로 근심하는가?] 하므로 구나발타가 사실대로 갖추어 고하였더니 신이 말하기를
[걱정하지 말라!] 하고는 곧 칼로써 머리를 떼내고 다시 새 머리를 안치시키고는 돌려보
게 하며 이르기를 [통증이 있느냐 없느냐?] 함에 답하여 [상처가 없습니다] 하였다. 깬
뒤에는 마음이 상쾌하고 송나라 말을 모두 깨우쳤기에 이에 강좌를 열어 크게 불법을 넓
혔다.
覺範洪禪師送僧乞食序[1]
曹溪.六祖, 初以居士服至黃梅, 夜 以石墜腰;[2] 牛頭, 衆乏粮,
融乞於丹陽, 自負米斛八斗, 行八十里, 朝去暮歸, 率以爲常; 隆
化.惠滿, 所至, 破柴制履;[3] 百丈.涅槃, 開田說義.[4] 墜腰石, 尙留
東山; 破柴斧, 猶存 鎭; 江陵之西, 有負米莊; 車輪之下, 有大
義石. 衲子每以爲遊觀, 不可誣也. 世遠道喪, 而妄庸寒乞之徒,
入我法中, 其識尙不足以匡欲, 其可荷大法也? 方疊花制襪, 以副
絲 ,[5] 其可夜 乎? 纖羅剪袍, 以宜小袖, 其可破柴乎? 升九
之峻, 僕夫汗血, 不肯出輿, 其可負米乎? 方大書其門云[當寺今
止掛搭],[6] 其肯開田說義乎? 余嘗痛心撫膺而嘆者也. 屢因弘法
致禍, 卒爲廢人, 方幸生還,[7] 逃遁山谷, 而衲子猶以其嘗親事雲
庵,[8] 故來相從, 余蓄之無義, 拒之不可, 卽閉關堅臥, 有 其門而
言者曰: [雲庵法施如智覺,[9] 愛衆如雪峰,[10] 出其門者, 今皆不
然, 道未尊而欲人之貴己, 名不曜而畏人之 己, 下視禪者如百世
之寃, 諂事權貴如累劫之親, 師皆笑蹈此汚而去, 庶幾雲庵爪牙
矣.] 余於是, 蹶然而起曰: [然則無食, 奈何?] 曰: [當從淨檀行
乞, 亦如來大師之遺則也. 老人肯出, 則庶使叢林知雲庵典型[11]尙
存.] 余嘉其言, 因序古德事, 以慰其意, 當有賞音者耳.
조계 육조는 애초에 거사의 옷차림으로 황매에 이르러 밤중에 방아를 찧음에
돌을 허리에 매달았고, 우두는 대중들이 양식이 없어 곤궁해 하면 스스로 단양에
서 구걸하여 직접 쌀 18말을 짊어지고 80리 길을 걸어 아침이면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기를 예삿일로 여겨 행하였고, 융화 혜만은 이르는 곳마다 장작을 패고 짚
신을 삼았으며, 백장 열반은 밭을 개간하며 의리를 설하였다. 허리에 매달았던
돌은 아직도 동산에 남아 있고, 장작을 패던 도끼는 여전히 업진에 그대로 있으
며, 강릉의 서쪽에 부미장이 있고, 거륜산의 아래에는 대의석이 있다. 납자들이
매번 만행 할 때 볼거리로 여겼으니 거짓될 수는 없다.
세대가 아득히 멀어지고 도가 쇠퇴하자 망령되고 용렬하며 곤궁하여 빌어먹
는 무리들이 우리 법 가운데 들어오니 그들의 식견이 오히려 욕심을 바로 잡기에
도 부족하거늘 그들이 어찌 크나큰 법을 짊어지겠는가. 바야흐로 꽃무늬 장식을
포개어 버선을 만들고 그것으로써 신발끈 장식을 북돋우는데 그러고도 밤중에
방아를 찧을 수 있겠는가? 가느다란 비단으로 장삼을 만듦에 편하고자 소매를
줄이는데 그러고도 장작을 팰 수 있겠는가? 아홉 길의 험준한 언덕을 오름에 노
복들이 피땀을 흘려도 가마에서 내리려 들지 않는데 그러고도 쌀을 짊어질 수
있겠는가? 바야흐로 그 문에 크게 써 놓기를 [당 사찰은 이제 방부를 중지합니
다]라 하는데 그러고도 즐거이 밭을 갈며 진리를 설하려 하겠는가? 내가 일찍이
마음이 아파 가슴을 어루만지며 한탄하던 바이다.
누차 불법을 홍보한 인연으로 화를 당하다 결국에 폐인이 되었다가 바야흐로
다행히 살아 돌아와 산 속 계곡으로 도망하여 은둔하였으나 납자들이 오히려 일
찍이 운암선사를 친히 섬겼다 하여 짐짓 찾아와서 서로 붙좇으니 내가 그들을
길러 주는 것도 의롭지 못하지만 거절할 수도 없기에 곧 문을 닫은 채 자리를
틀고 누워 있었는데, 그 문을 두드리며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운암은 법
베풀기를 흡사 지각선사와 같이 하였고 대중 사랑하기를 흡사 설봉선사와 같이
하였으나 그 문중에서 나온 자들은 지금에 모두 그렇지 않으니, 도는 아직 높지
않되 사람들이 자신을 귀하게 여겨주길 바라고, 이름은 빛을 발하지 않음에도 사
람들이 자신을 배척할까 두려워하고 있으며, 참선하는 자들을 멸시하기를 마치
백세의 원수 같이 하고, 권력과 부귀에 아첨하고 섬기기를 마치 누겁에 걸친 어
버이 같이 하거늘, 선사께서 모두 웃으며 이러한 더러움을 뒤밟고 떠나가니 아마
도 운암 문중의 가장 으뜸이 될 분일 것입니다]라 하므로 내 이에 궐연히 일어서
며 말하기를 [그렇지만 먹을 음식이 없는데 어찌 하겠는가] 하니 이르기를 [응
당 깨끗한 단월을 좇으며 걸식할 것이니, 이 또한 여래와 대사들께서 남기신 법
도입니다. 노인께서 기꺼이 나오신다면 아마도 총림으로 하여금 운암의 법도가
아직 남아 있음을 알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내가 그 말을 가상히 여기
고 그 인연으로 고덕의 사실을 써서 그 뜻을 위로하니 응당 이 말을 즐겨 듣는
자가 있을 것이다.
【1】師初名惠洪, 後改名德洪, 字覺範. 瑞州.彭氏子, 嗣眞淨.克文和尙.
【2】墜與 同.《說文》以繩有所懸也.
【3】相州.隆化寺.惠滿禪師, 榮陽.張氏子, 常行乞食, 住無再宿, 所至伽藍, 析薪制履焉.
【4】百丈山.涅槃.法正和尙, 常誦《涅槃經》, 時呼涅槃和尙也. 一日謂衆曰: [汝等與我開田, 我與汝
證大義.]
【5】《禮》云: [繩履, 無 .] , 履頭繩, 履飾也. 副, 佐也.
【6】搭 附也, 又掛也.
【7】師初住江寧.淸凉寺, 坐爲狂僧誣告抵罪. 張丞相當國, 復度爲僧, 易名德洪. 後住黃龍山, 會, 丞
相去位, 復竄師南海島上, 三年遇赦.
【8】眞淨克文和尙.
【9】求明寺.智覺.延壽禪師.
【10】雪峰.義存禪師.
【11】法度也.
【1】선사는 애초에 이름이 혜홍이었다가 후에 덕홍으로 고쳤으며 자는 각범이다. 서주 팽씨의
아들로서 진정 극문화상의 법을 이었다.
【2】墜는 와 같다.《설문》에는 꼬아서 만든 줄로서 매어달린 것이 있는 것이라 하였다.
【3】상주 융화사의 혜만선사는 영양 장씨의 아들로서 항상 걸식을 행하였으며 머물렀던 곳에
거듭 묵지 않았다 하며, 도착하는 가람에서 마다 섶나무를 쪼개고 신을 삼았다고 한다.
【4】백장산 열반 법정화상은 항상《열반경》을 외웠기에 당시에 열반화상이라 불려졌다. 하루
는 대중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나와 함께 밭을 개간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大義를 증
명해 보이리라] 하였다.
【5】《예기》에 이르기를 [노끈으로 엮은 신에는 가 없다] 하였으니, 는 신 머릿부분의 줄
로서 신발의 장식이다. 副는 돕는다는 것이다.
【6】搭은 부착하다 또는 거는 것을 말한다.
【7】선사가 처음에 강녕 청량사에 머무르다 미친 승려의 무고에 연루되어 죄를 받았다. 장승
상이 국정을 맡자 다시 득도하여 승려가 되어 이름을 덕홍이라 고쳤다. 후에 황룡산에 머
무를 때 마침 승상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선사를 다시 남해의 섬으로 귀양을 보냈었는데 3
년만에 사면을 받았다.
【8】진정 극문화상.
【9】구명사 지각 연수선사.
【10】설봉 의존선사.
【11】법도이다.
釋門登科記序
三代[1]僧史, 十科取人,[2] 讀誦一門, 功業尤重. 皇朝著令, 帝王
誕辰, 天下度僧, 用延聖祚,[3] 尊崇吾敎, 宣布眞風, 自古皆然, 於
玆尤盛, 方今州縣, 淨侍寔繁.[4] 每歲選人, 必量經業,[5] 開場考
試, 合格精通, 公榜星羅, 奬平生之勤苦, 綸恩露墜,[6] 許畢世以安
閑. 外被田衣, 內懷戒寶, 爲法王子, 作人天師, 不事耕桑, 端受信
施, 棲心物外, 旅泊 中,[7] 釋子之榮, 豈復過此? 近世出俗, 多無
正因, 反欲他營, 不崇本業, 唯圖進納, 濫預法流, 或倚恃宗親, 或
督迫師長, 至有巡街打化, 袖疏干求, 送惠追陪, 强顔趨謁, 頻遭
毁辱, 備歷艱辛, 爲者百千, 成無數十, 豈信有榮身良策, 安樂法
門? 斯由當者, 昧出家心, 抑亦爲人, 無丈夫志. 《蓮華》妙典,
鷲嶺極談, 大事因緣, 開佛知見, 是諸佛降靈本致, 實群生悟入津
途. 無量國中, 不知名字, 幸而聞見, 那不誦持? 豈獨孤恩, 誠爲
忘本. 奉勉! 未度者, 宜加精至, 早冀變通; 已達者, 莫廢溫尋, 終
爲道業, 百金供施, 實亦能消, 四輩瞻依, 諒無慙德. 幻軀有盡, 實
行不亡. 故, 有舌相粲[8]若紅 ,[9] 身骨碎如珠顆,[10] 具書傳錄, 識
者備聞. !《般若》有經耳之緣,《法華》校隨喜之福.[11] 幸依聖訓,
勿棄時陰, 近期於削髮爲僧, 遠冀於破魔成佛. 若能如此, 夫復何
言. 所患, 爲僧不應於十科, 事佛徒消於百載. 古賢深誡, 寧不動
心哉!
세 왕조의 승가 역사는 열 가지 과목으로 나누어 그에 합당한 인물을 골라 수
록하였는데 경전을 독송하는 부문의 공덕을 더욱 중요시하였다. 황제의 조정에
서 영을 내려 제왕의 탄신에 즈음하여 천하에 널리 승려들을 득도시킴으로써 성
인의 복록을 오래가게 하였으니, 우리 불교를 존중하고 숭앙하여 참된 교화의 바
람을 널리 펴는 것은 예로부터 모두 그러하였지만 지금에 더욱 번성하여 바야흐
로 오늘날 주와 현에 청정비구가 참으로 많다. 매년마다 사람을 선발함에 반드시
경전의 수업을 재량하니, 과거장을 열어 시험을 치르고 정통한 이를 합격시켜 공
고하는 방에 별처럼 나열하여 평생의 수고로움을 장려하고 천자의 은혜를 이슬
처럼 내려주어 생을 마칠 때까지 편안하고 한가히 지내는 것을 허락하였다. 밖으
로 가사를 입고 안으로 계율의 보검을 품은 채 법왕의 아들이 되고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어 밭 갈거나 누에 먹이지 않고 단정히 신도의 시주만을 받으며 마음을
사물밖에 깃들인 채 사람들 사이에서 매임이 없이 머무르니 석가의 영화로움이
어찌 여기에 지나치겠는가.
근세에 세속을 떠나 출가함에 대체로 바른 인연이 없이 도리어 다른 것을 경
영하고자 본래의 업을 숭상하지 않고 오로지 나아가 바치는 일만을 도모함으로
써 외람되이 법을 지키는 무리에 참예하고 있는데, 혹은 종친을 의지하여 믿고
혹은 스승과 어른을 독촉하여 다그치며, 심지어 거리를 돌아다니며 화주를 하고,
소매 속에 소문疏文을 넣어 다니며 바라는 바를 구하며, 물품을 보내고 혜택을
베풀며 따르고 모시며, 두꺼운 얼굴을 하고 종종걸음으로 뛰어가 배알하며, 빈번
히 험담과 욕을 만나고 간난艱難과 신고辛苦를 두루 겪으면서까지 하고자 하는
자는 수백수천이나 정작 이루는 자는 수십 명이 되지 못하니 몸을 영화롭게 하는
좋은 책략과 안락한 법문이 있음을 어찌 믿겠는가! 이것은 당사자의 우매한 출가
심으로 말미암은 것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됨에 장부의 뜻이 없기 때문이다.
항차 오묘한《법화경》은 영축산에서의 지극한 말씀으로서 대사인연大事因緣
으로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 보인 것이니 이는 부처님께서 강령한 근본 취지
이며 진실로 중생의 무리가 깨우쳐 들어가는 나룻길이다. 수많은 나라에서는 그
이름도 모르거늘 다행히 듣고 보았으니 어찌 암송하여 지니지 않겠는가. 어찌 다
만 은혜를 저버릴 뿐이겠는가, 진실로 근본을 잊는 게 될 것이니 받들어 힘쓸지
어다. 아직 득도하지 못한 자는 마땅히 정성과 지극함을 더하여 일찍 변통하기를
바라며, 이미 다다른 자는 거듭 익히기를 폐하지 않음으로서 마침내 도업을 이룬
다면 1백금이나 되는 공양과 시주물이라도 실로 능히 녹여 낼 것이요 사부대중
들이 우러르고 의지하더라도 덕이 미흡하여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은 진실로 없
을 것이다.
덧없는 몸뚱이는 다함이 있으나 실다운 행行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혀
의 모양이 맑고도 밝은 것이 마치 붉은 연잎과 같은 자가 있었고 몸의 뼈가 부수
어져 마치 구슬의 낱알 같이 된 자가 있었으니 모두 책에 전해지므로 식자들은
갖추어 들었으리다. 하물며《반야경》에는 귀에 스치는 인연이 있고《법화경》에
는 따라 기뻐함의 복록을 비교하고 있음에랴!
다행히 성스러운 가르침에 의지하여 시간을 낭비하지 말기를 바라고, 가까이
는 삭발하여 승려가 되기를 바라며, 멀리로는 마군을 격파하고 불도를 이루기를
바라노라. 만약 능히 이와 같이 한다면 무릇 다시 무엇을 말하겠는가. 근심하는
바는, 승려가 되어 십과十科에 참여하지 못하면 부처님을 섬김에 헛되이 백년을
소비하는 것이리다. 옛 성현들이 깊이 경계하였으니 어찌 마음이 움직이지 않겠
는가.
【1】梁 唐 宋.
【2】梁.慧攸作《高僧傳》, 唐.宣律師作《續高僧傳》, 宋.通慧大師作《大宋高僧傳》, 咸分十科, 以取高
僧, 是僧史也.
【3】周主廢佛寺三萬三百所, 毁鎭州大悲像鑄錢, 世宗親秉鉞, 洞其膺, 不四年, 痕潰于膺. 宋祖目
擊其事故, 卽位元年, 廣建佛寺, 歲度僧八千, 又誕聖節, 於天下命僧陞座, 祝天算爲準, 祝聖
始此.
【4】凡削染爲僧者, 通謂[淨侍].《西域記》云: [講一部則免知事, 講二部則加土房資具, 講三部則
差侍者祗承, 講四部則給淨人, 講五部則許乘輿.] 謂爲僧者爲淸淨給侍故, 云淨侍.
【5】建隆三年, 詔每年試童行, 通《蓮經》七軸者, 給祠部牒披剃. 太宗.太平興國元年, 詔天下僧尼,
復試經科.
【6】《禮記》[王言如系, 其出如綸.] 注: 綸, 如宛轉繩也. 試以科經精通而應選則, 王澤之及身如露
下而霑草木.
【7】旅如客店暫住, 豈可久居? 泊如舟行夜纜, 天曉復放. , 人 也, 中, 猶言人間也, 言無滯累
於人間也.
【8】鮮好貌. 獸三爲群, 人三爲衆, 女三爲粲.
【9】臨訴.王梵行, 少 , 其母慈念, 口授《法華》, 布衣蔬食, 禪誦無缺, 計誦經一萬七千部. 後, 跏趺
而逝, 遺言露屍林野. 久之, 皮肉旣盡, 惟舌不壞, 色如蓮華. 又唐僧遺俗, 誦《法華》千遍, 因疾
告友曰: [某平生誦經, 意希有驗, 若生善道, 舌根不壞, 可埋十年, 發視.] 言訖而寂. 後十年啓
視, 舌果不壞. 誦《法華》而舌根不壞者, 前後甚衆.
【10】唐僧神悟幼孀惡疾, 指懺悔, 所苦頓愈, 因出家. 每入法華道場, 九旬禮念, 逝後 維得舍利,
累累粲然可數, 如是者古今無數也.
【11】隨他修習善因, 喜他感得善果.
【1】양나라, 당나라, 송나라.
【2】양나라 혜유는《고승전》을 지었으며, 당나라 선율사는《속고승전》을 지었으며, 송나라 통
혜대사는《대송고승전》을 지었는데, 모두 10科로 나누어 고승들의 이야기를 골라 취했으
니 곧 승려의 역사이다.
【3】주나라의 군주가 불교사찰 3만3백 곳을 폐사시켰는데, 진주의 大悲像을 헐어 돈을 주조할
때는 세종이 친히 도끼를 잡고 그 가슴을 꿰뚫어 부수었더니 4년이 채 되지 않아 가슴에
종기가 나서 문드러졌다. 송나라 태조는 그 일을 목격했던 까닭에 즉위한 첫 해에 널리 불
교사찰을 건립하고 해마다 승려 8천명을 득도시켰으며, 또 불탄일에는 온 천하의 승려들
에게 명하여 설법의 자리에 올라 天壽를 축원하는 것을 법도로 삼았으니 성인을 축원하는
것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4】무릇 삭발하고 물들인 옷을 입어 승려가 된 자를 통칭 ‘淨侍’라 일컫는다.《서역기》에 이
르기를 [1部를 강설한 즉 知事를 면제하고, 2部를 강설한 즉 토방과 가구를 더해 주며, 3
部를 강설한 즉 시자를 보내어 공경히 받들게 하고, 4部를 강설한 즉 淨人을 보내 주며, 5
部를 강설한 즉 가마 타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하였으니 승려가 되면 청정을 위하여 시중
을 들어주는 까닭에 淨侍라 일컬었음을 말한 것이다.
【5】건륭 3년에 조서를 내려 매년 童行(行者)들을 시험 치르게 하였는데,《법화경》7軸을 능통
하게 하는 자는 祠部에서 도첩을 주고 머리를 깎게 하였다. 태종 태평흥국 원년에 조서를
내려 천하의 승니들에게 다시 經科에 응시하게 하였다.
【6】《예기》에 [왕의 말은 마치 가는 실과 같아서 흡사 인끈과도 같이 나온다] 하고는 그 주석
에, 인끈(綸)은 꼬아서 만든 줄 같은 것이라 하였다. 과목별 경전에 정통한지를 시험하여
그 선별에 적응하면 왕의 은택이 그 몸에 미침이 마치 이슬이 흘러내려 초목을 적시는 것
과도 같게 된다.
【7】나그네란 그저 객점에 잠시 머무르는 자 일 뿐이니 어찌 오래도록 기거할 수 있겠는가?
정박한다는 것은 그저 배가 지나가다 밤에 닻을 내린 것일 뿐이기에 날이 밝으면 다시 닻
을 풀 것이다. 은 사람이 사는 장소이며 中이란 人間이라 말함과 같으니, 인간세에 막
혀서 묶여 있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8】곱고도 좋은 모양이다. 짐승이 세 마리 모이면 무리(群)가 되고 사람이 세 명 모이면 대중
(衆)이 되며 여자가 세 명 모이면 粲(세 사람의 미녀)이 된다.
【9】임소의 왕범행은 젊어서 소경이 되었는데 그 에미가 자애로운 생각에서《법화경》을 읊어
서 전해 주었더니 베옷을 입고 나물음식을 먹으며 참선한 채 경전을 외우는데 틀린 곳이
없었으며 외운 경전이 모두 1만7천부나 되었다. 후에 가부좌를 틀고 임종을 맞으며 시신
을 들녘에 내어놓으라 유언하였다. 오래 지나서 거죽과 살점은 이윽고 다 없어졌는데 오
직 혀 만 그대로 남아서 색깔이 마치 연꽃과도 같았다. 또 당나라 승려 유속이《법화경》을
1천 번을 외우더니, 질병으로 인해 [임종을 맞아] 친구에게 이르기를 [내가 평생에 경전을
외우며 영험이 있기를 마음으로 바랬었는데, 만약 살아서 착한 도업을 이루었다면 혀가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니 매장한지 10년 만에 발굴하여 보면 될 것이다] 하고는 말을 마치
자 곧 적멸에 들었다. 그 뒤 10년 만에 열어 보니 혀가 과연 허물어지지 않았었다.《법화
경》을 외워 혀가 허물어지지 않은 자는 전후로 매우 많았다.
【10】당나라 승려 신오가 어려서 악질에 걸렸는데 손가락을 사르며 참회하였더니 그 고통이
순식간에 치유되었기에 그로 인연하여 출가하였다. 매번 법화도량에 들어가면 90일 동안
예불을 올렸는데, 죽은 후에 다비하여 사리를 얻음에 겹겹으로 찬연한 것이 제법 되었으
니, 이와 같았던 이들이 고금에 무수하였다.
【11】다른 이들이 착한 인연을 닦고 익히는 것을 따르고 다른 이들이 착한 과보를 받아 가지
는 것을 기뻐함.

怡山然禪師發願文[1]
歸命十方調御師, 演揚淸淨微妙法, 三乘四果解脫僧, 願賜慈悲
哀攝受. 但某甲, 自違眞性, 枉入迷流, 隨生死以飄 , 逐色聲而
貪染, 十纏十使, 積成有漏之因, 六根六塵, 妄作無邊之罪, 迷淪
苦海, 深溺邪途, 着我耽人, 擧枉措直,[2] 累生業障, 一切愆尤, 仰
三寶以慈悲, 瀝一心而懺悔.[3] 所願, 能仁拯拔, 善友提携, 出煩惱
之深源, 到菩提之彼岸. 此世福基命位, 各願昌隆, 來生智種靈苗,
同希增秀, 生逢中國, 長遇明師, 正信出家, 童眞入道,[4] 六根通
利, 三業純和, 不染世緣, 常修梵行, 執持禁戒, 塵葉不侵,[5] 嚴護
威儀, 飛無損,[6] 不逢八難,[7] 不缺四緣,[8] 般若智以現前, 菩提
心而不退, 修習正法, 了悟大乘, 開六度之行門, 越三祇之劫海,
建法幢於處處, 破疑網於重重, 降伏衆魔, 紹隆三寶, 承事十方諸
佛, 無有疲勞, 修學一切法門, 悉皆通達, 廣作福慧, 普利塵沙, 得
六種之神通, 圓一生之佛果. 然後, 不捨法界, 入塵勞, 等觀音
之慈心, 行普賢之願海, 他方此界, 逐類隨形, 應現色身, 演揚妙
法, 泥犁苦趣,[9] 餓鬼道中, 或放大光明, 或現諸神變, 其有見我
相, 乃至聞我名, 皆發菩提心, 永出輪廻苦, 火 氷河之地, 變作
香林, 飮銅食鐵之徒, 化生淨土, 披毛戴角, 負債含怨, 盡罷辛酸,
咸霑利樂, 疾疫世而現爲藥草, 救遼 , 飢饉時而化作稻粱, 濟
諸貧 ,[10] 但有利益, 無不興崇. 次期, 累世寃親, 現存眷屬, 出
四生之汨沒, 捨萬劫之愛纏, 等與含生, 齊成佛道. 虛空有盡, 我
願無窮, 情與無情, 同圓種智.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법보와
보살성문 스님네께 지성귀의 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참된성품 등지옵고 무명속에 뛰어들어
나고죽는 물결따라 빛과소리 물이들고
심술궂고 욕심내어 온갖번뇌 쌓았으며
보고듣고 맛봄으로 한량없는 죄를지어
잘못된길 갈팡질팡 생사고해 헤매면서
나와남을 집착하고 그른길만 찾아다녀
여러생에 지은업장 크고작은 많은허물
삼보전에 원력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대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언덕 가사이다.
이세상에 명과복은 길이길이 창성하고
오는세상 불법지혜 무럭무럭 자라나서
날적마다 좋은국토 밝은스승 만나오며
바른신심 굳게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눈이 총명하고 말과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안들고 청정범행 닦고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점잖은 거동으로 모든생명 사랑하여
이내목숨 버리어도 지성으로 보호하리
삼재팔난 만나잖고 불법인연 구족하며
반야지혜 드러나고 보살마음 견고하여
제불정법 잘배워서 대승진리 깨달은뒤
육바라밀 행을닦아 아승지겁 뛰어넘고
곳곳마다 설법으로 천겹만겹 의심끊고
마군중을 항복받고 삼보를 뵙사올제
시방제불 섬기는일 잠깐인들 쉬오리까.
온갖법문 다배워서 모두통달 하옵거든
복과지혜 함께늘어 무량중생 제도하며
여섯가지 신통얻고 무생법인 이룬뒤에
관음보살 대자비로 시방법계 다니면서
보현보살 행원으로 많은중생 건지올제
여러갈래 몸을나퉈 미묘법문 연설하고
지옥아귀 나쁜곳엔 광명놓고 신통보여
내모양을 보는이나 내이름을 듣는이는
보리마음 모두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
화탕지옥 끓는물은 감로수로 변해지고
검수도산 날쌘칼날 연꽃으로 화하여서
고통받던 저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새와 기는짐승 원수맺고 빚진이들
갖은고통 벗어나서 좋은복락 누려지다.
모진질병 돌적에는 약풀되어 치료하고
흉년드는 세상에는 쌀이되어 구제하되
여러중생 이익한일 한가진들 빼오리까.
천겁만겁 내려오던 원수거나 친한이나
이세상 권속들도 누구누구 할것없이
얽히었던 애정끊고 삼계고해 뛰어나서
시방세계 중생들이 모두성불 하사이다.
허공끝이 있사온들 이내소원 다하리까.
유정들도 무정들도 일체종지 이루어지이다.
[耘虛스님 옮김]
시방의 조어사調御師와 널리 선양된 청정하고 미묘한 불법과 삼승三乘과 사
과四果의 해탈한 스님들에게 지성으로 귀의하나니, 원하건대 자비를 내리시어
애절히 여기시고 거두어 받아 주십시오.
다만 저희들이 참된 성품을 어기고부터 미혹한 물결 속에 그릇되게 빠져들어
나고 죽음을 따라 나부끼다 침몰하며 색과 소리를 뒤쫓아 물든 것을 탐하였으며,
십전十纏과 십사十使로 쌓아서 번뇌의 인因을 이루고 육근과 육진으로 망령되이
가없는 죄를 지으며 고통의 바다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삿된 길로 깊이 잠겨들어
나에게 집착하고 남의 것을 탐내며 굽은 것을 드러내어 바른 것에 던져 놓은 여
러 생의 업장과 일체의 허물이 있음에 삼보의 자비를 앙망하며 한 마음 씻음으로
참회합니다.
바라옵건대 부처님께서 구원하여 주시고 좋은 벗들은 이끌어 주시어 번뇌의
깊은 근원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저 언덕에 도착하게 하옵소서.
이 세상의 복락의 바탕과 목숨의 지위가 각기 번창하고 융성하기를 바라오며,
내생에는 지혜의 종자와 영명한 싹이 함께 증장하여 빼어나기를 바라오며, 태어
남에 좋은 나라를 만나고 성장하면서 밝은 스승을 만나며, 바른 믿음으로 출가하
고 동자의 참된 마음으로 도에 들어가며, 육근六根은 두루 통하고 예리하며 삼업
三業은 순수하고 조화로우며, 세상의 인연에 물들지 않고 항상 범행梵行을 닦으
며, 금지된 계율을 잡아지녀 티끌만큼도 침범하지 못하게 하며, 위의를 엄히 단
속하고 날아다니는 벌레도 상함이 없게 하며, 여덟 가지 어려움을 만나지 않고
네 가지 인연을 빠트리지 않으며, 반야의 지혜를 드러내고 보리의 마음에서 물러
나지 않으며, 바른 불법을 닦고 익혀 대승의 진리를 깨달아 육도六度에 나다니는
문을 열고 삼아승지겁의 바다를 뛰어넘어 곳곳에 불법의 깃발을 세우고 겹겹의
의심의 그물을 깨뜨리며, 마군의 무리를 항복 받고 삼보를 이어서 융성하게 하며,
시방 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겨도 피로함이 없게 하고 일체의 법문을
닦아 배워서 모두 통달하게 하며, 복락의 지혜를 지어 티끌 수 모래 수와 같은
중생들을 널리 이롭게 하며, 여섯 가지 신통을 얻어 일생의 불과佛果를 원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한 후에는 이 법계를 버리지 않고 티끌과 수고로움의 세계로 두루 들어가
관음보살의 자비심과 같이 하고 보현보살 발원의 바다를 다니며 저 세계와 이
세계에서 그 부류를 좇고 그 형상을 따라 그에 응하는 색신을 드러내어 미묘한
법문을 연설하여 지옥의 고통이나 아귀의 길 가운데에서 혹은 큰 광명을 쏟아
내고 혹은 모든 신비로운 변화를 드러내어 나의 모습을 보거나 또는 나의 이름을
들으면 모두 보리심을 내어 영원히 윤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여주며, 불가
마와 얼음강의 땅은 변하여 향기로운 숲이 되게 하고 구리를 마시고 쇠를 먹는
무리들은 깨끗한 땅으로 옮겨 태어나게 하며, 털 난 날짐승과 뿔 난 들짐승과 빚
진 이와 원수들도 모두 괴롭고 쓰라림을 혁파하여 함께 이익과 복락에 젖어 들게
하며, 질병이 도는 세상에는 약초로 드러나서 고질병을 치료하여 주고 기근이 들
때에는 쌀이나 기장으로 화하여서 모든 가난하여 굶주린 이를 구제하여 주되 단
지 이롭고 유익함이 있다면 일으켜 숭상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누세의 원수거나 친한이나 현재의 권속들이 사생四生의 골몰에서
벗어나서 만겁 동안 얽매였던 애증을 버리고 중생과 더불어 나란히 불도를 이룰
지어다.
허공은 다함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원력은 다함이 없을 것이니, 유정들도 무정
들도 다 함께 일체종지를 원만히 하게 하여 주옵소서.
【1】然, 惠然.
【2】《傳》曰: [擧直措諸枉.] 此則反是. 枉, 屈也; 直, 伸也. 擧人之屈, 置人之伸也.
【3】仰彼三寶以與樂拔苦, 滌我一心而改往修來也.
【4】《釋名》云: [兒年十五曰童.] 童者, 獨也. 自七歲至十五歲, 皆稱童者, 以太和未散, 於色不染,
名曰童眞.
【5】永嘉云: [無情, 罔侵塵葉, 有識, 無惱 螟; 幽澗, 未足比其淸, 飛雪, 無以方其素.] 不侵塵, 謂
不掘地; 不侵葉, 言不壞生.《十誦》云: [畵地作字, 一頭時輕, 兩頭時重.] 壞生可知.
【6】不傷微細飛蟲也.
【7】《成論》[菩薩說四輪, 八難: 一, 生中國輪, 能 五難, 謂三途北洲及長壽天; 二, 修正願輪,
世智辯聰; 三, 植善因輪, 盲聾 啞; 四, 近善人輪, 佛前佛後.] 欲 八難, 當習四輪.
【8】四緣: 一, 親近善友; 二, 親聞正法; 三, 思惟其義; 四, 如說修行也.
【9】泥犁, 此云無有, 無有喜樂. 或言墮落, 或言無處, 更無赦處.
【10】佛, 昔爲帝釋時, 遭飢歲, 疾疫流行, 醫療無功, 道 相屬. 帝釋悲愍, 思所救濟, 乃變其形爲大
身, 尸川谷, 空中 告, 聞者咸慶, 相率奔赴, 隨割隨生, 療飢療疾. 菩薩救世, 例多如此.
,《左傳》云: 路死人也.
【1】然은 혜연이다.
【2】《전》에 이르기를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에 놓는다] 하였는데 여기서는 그것의 반대이
다. 枉은 굽은 것이요 直은 펴진 것이니, 사람들의 굽은 것을 들어 펴진 것에다 놓음이다.
【3】저 삼보를 우러러봄으로써 즐거움을 같이하고 괴로움은 제거하며, 나의 이 한 마음을 씻
어서 고쳐가며 수행하다.
【4】《석명》에 이르기를 [아이가 15살이면 童이라 한다] 하였으니 童이란 곧 獨이다. 7살부터
15살 까지를 모두 童이라 일컫는데, 음양의 조화된 기운이 아직 흩어지지 않았기에 色에
물들지 않은 까닭에 이름하여 童眞이라 말하는 것이다.
【5】영가가 이르기를 [無情은 티끌이나 낙엽도 침범하지 않고 有識은 초명 벌레도 번뇌롭게
하지 않나니, 그윽한 산골의 물도 그 맑음에 비견되기 부족하고 흩날리는 눈도 그 흰 빛깔
에 견줄 수가 없다] 하였는데, 티끌을 침범하지 않는다 함은 땅을 파고들지 않음을 일컬으
며 낙엽도 침범하지 않는다 함은 생명을 파괴하지 않음을 일컫는다.《십송》에 이르기를
[땅에 획을 그어 글자를 쓸 때 한 차례로 하면 [그 죄가] 가볍고 두 차례로 하면 무겁다]
하였으니 壞生을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6】미세한 날벌레도 다치게 하지 않는다.
【7】《성론》에 [보살이 네 가지의 윤회를 설하여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는] 여덟 가지 어려움
을 극복하였다. 첫 번째는 中國에 태어나는 윤회로서 능히 다섯 가지 어려움을 극복함이
니 三途와 北洲 및 長壽天를 말하며, 두 번째는 올바른 발원을 수행하는 윤회로서 세간의
얕은 지혜로 참다운 이치에 따르지 않음(世智辯聰)을 극복하였으며, 세 번째는 착한 인연
을 심는 윤회로서 소경과 귀머거리 및 벙어리의 우환을 극복하였으며, 네 번째는 선한 사
람을 가까이하는 윤회로서 부처님이 계신 시기의 전후에 태어나는 불운을 극복하였다] 하
였으니 여덟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한다면 응당 네 가지 윤회를 익힐 것이다.
【8】네 가지 인연이란, 첫 번째는 착한 벗을 친근히 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바른 법을 가까이
하여 듣는 것이요, 세 번째는 그 뜻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요, 네 번째는 말한 것과 같이
수행하는 것이다.
【9】’니리’란 이곳 말로 하면 ‘있지 않다’이니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는 것이다. 혹은 ‘타락’이라
고 말하며 혹은 ‘머물러 둠이 없음’ 더 나아가서 ‘용서하여 둠이 없음’이라고 말한다.
【10】부처님께서 예전에 帝釋이 되었을 때 흉년을 만났는데 질병이 만연하고 모든 치료가 효
험이 없었기에 길에는 주검이 널려 있게 되었다. 제석이 슬퍼하고도 근심하여 구제할 방
법을 생각하다가 이에 형체를 큰 이무기의 몸으로 변화시키고는 그 주검을 냇가와 골짜
기에 던지고는 공중에서 두루 알리니 듣는 자들이 모두 기뻐하며 서로 달려와서 베어 먹
는대로 그에 따라 생겨나니 굶주림과 질병이 치료되었다. 보살이 세상을 구제함은 예를
들면 대체로 이와 같다. 은《좌전》에서 말하기를 길에서 죽은 사람이라 하였다.
山谷居士黃太史發願文[1]
昔者師子王, 白淨法爲身, 勝義空谷中, 奮迅[2]及哮吼, 念弓 明
利箭, 被以慈哀甲, 忍力[3]不動搖, 直破魔王軍, 三昧常娛樂, 甘露
爲美食, 解脫味爲漿, 遊戱於三乘, 安住一切智, 轉無上法輪.[4] 我
今稱揚稱性實語, 以身口意, 籌量觀察, 如實懺悔. 我從昔來, 因
癡有愛, 飮酒食肉, 增長愛渴,[5] 入邪見林, 不得解脫. 今者對佛,
發大誓願. 願從今日, 盡未來世, 不復淫欲; 願從今日, 盡未來世,
不復飮酒; 願從今日, 盡未來世, 不復食肉. 設復淫欲, 當墮地獄,
住火坑中, 經無量劫, 一切衆生, 爲淫亂故, 應受苦報, 我皆代受.
設復飮酒, 當墮地獄, 飮洋銅汁, 經無量劫, 一切衆生, 爲酒顚倒,
應受苦報, 我皆代受. 設復食肉, 當墮地獄, 呑熱鐵丸, 經無量劫,
一切衆生, 爲食肉故, 應受苦報, 我皆代受. 願我以此, 盡未來際,
忍事誓願, 根塵淸淨, 具足十忍, 不由他敎, 入一切智, 隨順如來,
於無盡衆生界中, 現作佛事, 恭惟十方洞徹, 萬德莊嚴, 於刹刹塵
塵, 爲我作證. 設經歌羅邏身, 忘失本源,[6] 惟垂加被, 開我迷雲.
稽首如空,[7] 等一痛切.[8]
옛날에 사자왕이 희고 맑은 법으로 몸을 삼아 최상의 진리인 빈 골짜기에서
떨치고 일어나며 포효함에 바른 생각의 활과 밝고 예리한 화살을 지니고 자비와
애민의 갑옷을 입은 채 인욕하는 힘으로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곧장 마왕의
군대를 격파하고 삼매를 항상 즐기며 감로를 맛있는 음식으로 여기고 해탈의 맛
으로 조미(漿)를 삼았으니, 삼승三乘에서 즐겨 노닐고 일체의 지혜에 편안히 머
물며 위없는 법의 바퀴를 굴리셨다.
내가 이제 그 성품에 맞는 참된 말로써 일컬어 찬양함에 몸과 입과 뜻으로써
헤아리고 관찰하며 실답게 참회하나이다.
내가 예로부터 지내오며 어리석음으로 인해 애욕을 가졌으며 술 마시고 고기
먹음으로 애욕의 갈증을 증장시키고 삿된 견해의 숲으로 들어가 해탈을 얻지 못
하였습니다. 이제 부처님을 대하여 큰 서원을 발합니다. 원하건대 오늘부터 미래
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음욕하지 않으며, 원하건대 오늘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술 마시지 않으며, 원하건대 오늘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시는 고기 먹
지 않겠습니다.
만약 다시 음욕하면 응당 지옥에 떨어져 불구덩이 속에서 머무르며 무량한 겁
의 시간을 지내게 될 것이며 일체의 중생들이 음란한 까닭으로 마땅히 받는 괴로
움의 과보도 내가 모두 대신 받겠습니다. 만약 다시 술을 마신다면 응당 지옥에
떨어져 철철 넘치는 구리 쇳물을 마시며 무량한 겁의 시간을 지내게 될 것이며
일체의 중생들이 술로 인해 잘못 되어 마땅히 받는 괴로움의 과보도 내가 모두
대신 받겠습니다. 만약 다시 고기를 먹는다면 응당 지옥에 떨어져 뜨거운 쇳덩이
를 삼키며 무량한 겁의 시간을 지내게 될 것이며 일체 중생들이 고기를 먹음으로
마땅히 받는 괴로움의 과보도 내가 모두 대신 받겠습니다.
원하건대 나는 이로써 미래의 끝이 다하도록 인욕하는 일로 소원을 서약함으
로써 오근五根과 오경五境이 청정하여지고 십인十忍을 빠짐없이 갖추어 다른 가
르침으로 말미암지 않고 일체지一切智에 들어가 여래를 따라 순종하여 다함이
없는 중생계 가운데에서 불사를 이루어 드러내겠사오니, 삼가 생각건대 시방세
계를 환히 통하는 만 가지 덕으로 장엄하신 불보살님은 수많은 국토마다 그리고
그 속의 티끌마다에서 저를 위해 증명하여 주십시오. 만약 가라라신을 지나며 본
래의 소원을 잊어버린다면 오직 가피를 드리워 나의 미혹한 구름을 열어 젖혀
주시옵소서. 청정법신에 머리를 조아리오니 한결 같은 마음을 간절히 하옵니다.
【1】太史黃庭堅, 字魯直, 號山谷居士. 初謁圓通秀禪師, 遂著發願文, 痛戒酒色, 日惟粥飯, 銳志參
求. 後依晦堂, 一日, 侍堂山行次, 聞木犀花香, 釋然了悟. 木犀花, 桂花也.
【2】振毛羽狀.
【3】《阿含》有六種力: 小兒, 啼爲力; 女人, 嗔爲力; 國王, 爲力; 羅漢, 進爲力; 諸佛, 悲爲力; 比
丘, 忍爲力.
【4】上,《華嚴 離世間品》偈, 有小異處.
【5】愛爲輪廻之本, 渴者情愛之至也.
【6】《名義集》明胎五位: 初七日, 名歌羅邏, 此云凝滑, 又云薄酪, 狀如凝 ; 二七日, 名 部曇, 此
云疱, 狀如瘡疱; 三七日, 名蔽尸, 此云凝結, 狀如凝血; 四七日, 名健南, 此云凝厚, 漸堅硬故;
五七日, 名鉢羅奢 , 具諸形故.
【7】經云, 法身如虛空.
【8】等一者, 平等一心也.
【1】태사 황정견은 자가 노직이요 호가 산곡거사이다. 원통 수선사를 처음 찾아 뵙고는 마침
내 발원문을 짓고 술과 음욕에 관한 계율에 대해 절실히 느껴서 매일 단지 죽과 밥 만을
먹으며 첨예한 의지로 참구하였다. 후에 회당에게 의지하였는데, 하루는 회당을 모시고 산
행을 하다가 목서화의 향기를 맡고는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목서화는 계수나무의 꽃이다.
【2】깃털을 흩날리는 모양이다.
【3】《아함경》에서는 여섯 종류의 힘이 있다 하였으니, 어린아이는 우는 것으로 힘을 삼으며,
여인은 성냄으로 힘을 삼으며, 국왕은 교만함으로 힘을 삼으며, 나한은 전진하는 것으로
힘을 삼으며, 모든 부처님은 자비로 힘을 삼으며, 비구는 인내로 힘을 삼는다 하였다.
【4】윗 부분은《화엄경》<이세간품>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5】愛慾은 윤회의 근본이며 渴望은 애정이 도달하는 곳이다.
【6】《명의집》에는 태아의 다섯 단계를 밝혀 놓았다. 첫 7일째를 ‘가라라’라 이름하니 이곳 말
로 凝滑(미끄럽게 엉겨 있음) 또는 薄酪(엷게 엉겨 있는 유즙)인데 그 형상이 마치 응결된
타락과 같다. 14일째를 ‘알부담’이라 이름하니 이곳 말로 疱(천연두)인데 그 형상이 마치
종기나 천연두 같다. 21일째를 ‘폐시’라 이름하니 이곳 말로 凝結인데 그 형상이 마치 응결
된 핏덩이와 같다. 28일째를 ‘건남’이라 이름하니 이곳 말로 凝厚(두텁게 응고됨)인데 점차
견고하게 굳어지기 때문이다. 35일째를 ‘발라사거’라 이름하니 모든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
이다.
【7】경전에 이르기를 법신은 허공과 같다 하였다.
【8】等一이란 평등한 하나의 마음이다.

傳禪觀法
禪法濫觴,[1] 自於秦世僧叡法師序關中出禪經,[2] 其文則明心達
理之趣也. 然譬若始有其方, 未能修合, 弗聞療疾, 徒曰醫書.
以大敎旣敷, 群英分講, 註之者矜其辭義, 科之者逞其區分,[3] 執
搖松,[4] 但尙其乘機應變, 解紛挫銳,[5] 唯觀其智刃辭鋒, 都忘
所詮, 不求出離, 江表.遠公,[6] 慨禪法未敷, 於是苦求而得也.[7] 菩
提達磨祖師, 觀此土之根緣, 對一期之繁紊[8]而宣言曰: [不立文
字, 遣其執文滯迹也; 直指人心, 明其頓了無生也.] 其機峻, 其理
圓故, 不免漸修之徒篤加 謗. 傳禪法者, 自達磨爲始焉, 直下相
繼, 六代傳衣, 橫枝而出, 不可勝紀, 如《曹溪寶林傳》所明也.[9]
선법의 기원은 진나라 때 승예법사가 관중에서 나온 선문의 경전에 서문을 쓰
고 부터이니, 그 글은 곧 마음을 밝히고 이치를 통달하는 요지이다. 그러나 비유
하자면, 처음으로 그 방법은 있으되 아직 능히 수행하여 합치시켜 보지 못함이
마치 병을 치료하였음은 듣지 못한 채 다만 의서 만을 말하는 것과 같았다. 하물
며 큰 가르침이 이미 널리 퍼지자 영명한 무리들이 나누어 강의함에 있어서 주석
을 단 이는 그 글자의 의미를 자랑하고 과목을 나눈 이는 그 구분 지음을 만족하
게 여기며 총채를 움켜잡고 소나무 가지를 흔들지만 단지 임기응변의 묘미만을
숭상할 뿐이요, 어지러운 것을 풀고 날카로운 것을 꺾음에 오직 그 지혜와 칼날
과 논술의 날카로운 기세만을 들여다 볼 뿐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모두 잊어버리
고 문자에서 벗어나 여의기를 구하지 않으니, 강표의 원공이 선법이 펼쳐지지 못
함을 개탄하다가 이에 애써 구하여 얻은 것이다.
보리달마조사께서 이 땅의 근기와 인연을 들여다보고 한 기간 번잡하고 문란
해 질 것에 대해 선언하여 이르기를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것(不立文字)은
문자에 집착하거나 자취에 체류함을 놓아버리는 것이요,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
리킨다는 것(直旨人心)은 태어남이 없음을 문득 깨우쳐 체득함을 밝힌 것이다]
라 하였는데, 그 기틀이 높이 빼어나고 그 이치가 원만한 까닭에 점수漸修하는
무리들의 신랄한 비방을 면치 못하였다. 선법을 전한 것은 달마로부터 비롯하여
곧장 아래로 이어져 6대까지 가사를 전하였고 곁가지로 뻗어 나간 것은 이루 기
록할 수 없으니《조계보림전》에 밝힌 것과 같다.
【1】《書》云: [三江浩浩, 其源濫觴.] 濫, 但可泛一盃而已, 又泛溢於盃觴也, 言其源則小而漸成江
漢之浩瀚. 禪法之傳, 亦如是也.
【2】達磨未來中土時, 晋.遠公先譯其禪經二卷, 藏秦.關中, 僧叡出關中所藏禪經, 作序流布.
【3】逞者, 矜而自呈也. 區分者, 區別分限也, 言分別乎序正流通等之區局也.
【4】鹿之大者爲 , 群鹿隨之, 皆視 尾所轉爲準, 古之談者揮之, 良有以也. 搖松者, 惠朗禪師得
法於石頭, 常執松枝爲人禪話, 後人以爲談柄松. 又生公 在虎丘山, 執松枝爲談柄故. 詩云:
[聽徒千箇石, 談柄一枝松]云也.
【5】魯.仲連遊趙, 言秦稱帝之害, 秦將聞之, 却五十里, 平原君欲封之, 連笑曰: [所貴乎天下士者,
爲人排難解紛而無取也, 有所取者, 是商賈之事也.] 江淹祭戰亡文: [巨醜挫銳], 注: 巨醜, 强
胡也; 挫 折也, 銳 利也. 此言解釋其紛亂之心, 折挫其惠利之志.
【6】盧山在 陽.九江之外, 故云江表. 遠公居之.
【7】《定祖圖》云: [秦僧智儼, 於 賓國懇請佛陀跋多, 偕來中夏. 初至長安, 後至廬山, 遂出禪經,
與遠公同譯而藏秦.關中焉.]
【8】音問, 亂也.
【9】唐.儀鳳中, 曹叔良建閣於雙峰大溪之間, 六祖居之, 因名曹溪. 貞元中, 金陵沙門慧炬, 將祖偈,
往曹溪, 同西天勝持三藏, 重共參校 唐初以來傳法宗師機緣, 集成《寶林傳》.
【1】《서경》에 이르기를 [세 강줄기가 광활하게 흐르지만 그 근원은 잔 하나 띄울 정도일 뿐이
다] 하였으니, 濫은 단지 잔 하나를 띄울 수 있을 뿐이라는 것, 또는 잔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라는 것이므로 그 근원은 작으나 차츰 나아가 장강과 한수의 크고 넓음을 이루었음을
말한다. 선법의 전수도 역시 이와 같다.
【2】달마가 아직 중국 땅에 오지 않았을 때 晋나라 원공이 먼저 선에 관한 경전 2권을 번역하
여 秦의 관중에 간직하여 두었더니 승예가 관중에 간직해 두었던 선에 관한 경전을 꺼내
어 서문을 지어 유포하였다.
【3】逞이란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區分이란 구별하여 나누고 한계를 짓는
것이니 序와 正과 流通 등의 구분을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4】사슴 가운데 대장을 라 하는데 사슴 무리들이 그를 따르며 모두 그의 꼬리가 움직이는
바를 보아서 [행동의] 기준으로 삼으니, 예전에 담론하던 자들이 그것을 휘두르는 데는 진
실로 까닭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나무를 흔든다는 것은, 혜랑선사가 석두선사로부터 법을
얻고는 항상 소나무 가지를 잡고서 사람들을 위해 禪話를 하였더니 뒷사람들이 소나무를
談柄(이야기할 때 손에 쥐는 拂子)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는 생공이 배척 당하여 호구산
에 있을 때 소나무 가지를 잡고 談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시에서 말하기를 [듣는 무리는
1천개의 돌이요 談柄으로는 한 가지 소나무로다]라 하였다.
【5】노나라 중련이 조나라에 노닐다가 진나라가 稱帝한 해악을 말하였더니 진나라 장수가 이
말을 듣고는 50리를 물러가거늘 평원군이 그를 책봉하려 하자 중련이 웃으며 말하기를
[천하의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이들을 위해 어려움을 물리치고 분란을 해
소시키지만 취하는 것이 없기 때문인데, 취하는 바가 있는 것은 곧 商賈의 일입니다] 하였
다. 강엄이 전사한 망자들을 제사 지내는 글에서 [巨醜挫銳]라 하였는데 巨醜는 강력한
오랑캐이며 挫는 꺾음을 말하고 銳는 예리함을 말한다. 이는 분란스러운 마음을 해소시키
고 날카로운 뜻을 주저앉힘을 말한다.
【6】노산은 심양의 구강 바깥 편에 있기에 江表라 일컫는다. 원공이 그곳에 거처하였다.
【7】《정조도》에 이르기를 [진나라 승려 지엄이 계빈국에서 불타발다에게 간청하여 함께 중국
으로 건너왔다. 처음에는 장안에 이르렀다가 후에 노산에 도착하여 마침내 선법에 관한
경전을 꺼내어 원공과 더불어 함께 번역하여 秦의 관중에 간직하여 두었다.
【8】음은 문(問)이요 어지럽다는 뜻이다.
【9】당나라 의봉 연간에 조숙량이 쌍둥이 뫼봉과 큰 시냇물 사이에 누각을 세웠는데 육조대사
가 그곳에 기거한 인연으로 ‘조계’라 이름하였다. 정원 연간에 금릉의 사문 혜거가 조사들
의 게송을 가지고 조계에 가서 서천의 승지삼장과 함께 거듭 정리 교정하고 당나라 초기
이래 법을 전해 받은 종사들의 機緣을 아울러서《보림전》을 집성하였다.
長蘆慈覺 禪師坐禪儀[1]
學般若菩薩, 先當起大悲心, 發弘誓願, 精修三昧, 誓度衆生,
不爲一身獨求解脫. 爾乃放捨諸緣, 休息萬事, 身心一如, 動靜無
間, 量其飮食, 不多不小, 調其睡眠,[2] 不節不恣.[3] 欲坐禪時, 於
閒靜處,[4] 厚敷坐物, 寬繫衣帶, 令威儀齊整然後, 結跏趺坐, 先以
右足安左 上, 左足安右 上. 或半跏趺亦可, 但以左足壓右足而
已. 次以右手安左足上, 左掌安右掌上, 以兩手大拇指面相 , 徐
徐擧身前向. 復左右搖振, 乃正身端坐, 不得左傾右側前躬後仰,
令腰脊頭項骨節相 , 狀如浮屠.[5] 又不得聳身太過, 令人氣急不
安; 要令耳與肩對,[6] 鼻與臍對;[7] 舌 上 , 唇齒相着; 目須微
開, 免致昏睡. 若得禪定, 其力最勝. 古有習定高僧, 坐常開目;
向法雲.圓通禪師[8]亦訶人閉目坐禪, 以爲黑山鬼窟,[9] 盖有深旨,
達者知焉. 身相旣定, 氣息旣調然後, 寬放臍腹, 一切善惡, 都莫
思量. 念起卽覺, 覺之卽失. 久久忘緣, 自成一片, 此坐禪之要術
也. 竊爲坐禪, 乃安樂法門, 而人多致疾者, 盖不善用心故也. 若
善得此意則自然四大輕安, 精神爽利, 正念分明, 法味資神, 寂然
淸樂. 若已有發明者, 可謂如龍得水, 似虎 山; 若未有發明者,
亦乃因風吹火, 用力不多, 但辦肯心, 必不相 . 然而道高魔盛,
逆順萬端, 但能正念現前, 一切不能留 .[10] 如《楞嚴經》·《天台
止觀》·《圭峰修證儀》, 具明魔事, 預備不虞者, 不可不知也. 若欲
出定, 徐徐動身, 安詳而起, 不得卒暴;[11] 出定之後, 一切時中,
常依方便,[12] 護持定力, 如護孀兒,[13] 卽定力易成矣. 夫禪定一門,
最爲急務, 若不安禪靜慮, 到遮裡, 總須茫然. 所以, 探珠宜靜浪,
動水取應難; 定水澄淸, 心珠自現. 故,《圓覺經》云: [無 淸淨
慧, 皆依禪定生.]《法華經》云: [在於閒處, 修攝其心, 安住不動,
如須彌山.] 是知超凡越聖,[14] 必假靜緣, 坐脫立亡, 須憑定力.[15]
一生取辦, 尙恐蹉 , 乃遷延, 將何敵業? 故, 古人云: [若無定
力, 甘伏死門, 掩目空歸, 宛然[16]流浪.] 幸諸禪友, 三復斯文, 自
利利他, 同成正覺.
반야를 배우는 보살은 먼저 마땅히 대 자비심을 일으키고 커다란 서원을 발하
여 삼매를 정미롭게 닦으며 중생 제도를 서약해야 할 것이니 한 몸 홀로 해탈을
구함이 되지는 말지어다. 그리고는 모든 인연을 버리고 만 가지 일을 쉬며 몸과
마음을 한결 같이하여 움직임과 고요함에 간격이 없이하며, 먹고 마심을 요량하
여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게 하고 수면을 조절하여 너무 절제하지도 말고 너무
내키는대로 하지도 말라.
좌선하고자 할 때는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서 깔개를 두껍게 깔고 옷의 띠는
느슨하게 매되 위의를 가지런히 한 후에 결가부좌함에, 먼저 오른 발을 왼쪽 넓
적다리 위에 편안히 올려놓고 왼쪽 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편안히 올려놓는
다. 혹은 반가부좌도 괜찮으니, 단지 왼 발로 오른 발을 눌러 줄 따름이다. 다음에
는 오른 손을 왼 발 위에 편안히 올려놓고 왼쪽 손바닥을 오른쪽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뒤에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마주하여 서로 떠받치게 하고는 서서히 몸
을 들어 전방을 향한다. 다시 좌우로 흔들고는 이에 몸을 바로하고 단정히 앉되
좌우로 기울거나 앞뒤로 굽히지 말아야 하며 허리의 등골뼈와 머리와 목덜미의
골절을 서로 떠받치게 하여 그 형상이 마치 부도浮屠와 같아야 한다. 또 몸을 너
무 지나치게 솟구침으로써 호흡의 기운이 급하여 불안하게 하지 말아야 하며, 귀
는 어깨와 더불어 수직이 되게 하고 코는 배꼽과 더불어 수직이 되게 해야 하며,
혀는 윗잇몸을 떠받치고 입술과 이는 서로 붙이며, 눈은 모름지기 가늘게 떠서
얼핏 잠드는 것을 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니, 만약 선정을 얻었다면 그 힘이 가장
수승할 것이다.
옛날에 선정을 익히던 고승이 있었는데 앉았을 때는 항상 눈을 뜨고 있었으며,
예전에 법운 원통선사 역시 눈을 감고 좌선하는 사람들을 꾸짖어 그것을 검은
산의 마귀 소굴로 여겼으니 대개 깊은 뜻이 있는지라 통달한 자는 알 것이다.
몸의 모습이 이미 안정되고 호흡의 기운이 이미 조절 된 연후에 배꼽과 배를
느슨히 풀어놓아 일체의 선과 악을 모두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라. 망념이 일어나
거든 [망념이 일어났음을] 곧 깨달을지니 그것을 깨달으면 곧 없어질 것이다. 오
래도록 반연하는 바를 잊으면 자연스레 집중을 이룰 것이니 이것이 좌선의 요긴
한 방술이다.
가만히 생각건대 좌선은 곧 안락한 법문인데 사람들이 많이들 질병을 이루는
것은 대개 마음 쓰기를 잘하지 못한 까닭이다. 만약 이 뜻을 잘 체득하면 곧 자연
히 육신이 가볍고도 편안해 질 것이고 정신이 상쾌하고도 날래게 될 것이며 정념
正念이 분명하여 법의 맛이 정신을 도울 것이므로 고요히 맑고 즐거울 것이다.
만약 이미 깨달은 바가 있는 자라면 마치 용이 물을 얻은 것과 같고 흡사 호랑이
가 산을 의지한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만약 아직 깨달음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또한 바람으로 인하여 불길을 부추기는 것이라 힘씀이 그리 많지 않으리니 다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힘쓰면 반드시 속임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가 높아지면 마가 왕성하여 순조로움을 거스르는 경계가 만 가지로
나타날 것이니 단지 바른 생각이 앞에 드러난다면 일체의 것이 만류하거나 장애
하지 못하리다. 예컨대《능엄경》과《천태지관》및《규봉수증의》등에서 마군
의 일을 갖추어 밝혀 놓아서 조심하지 못하는 자에게 예비토록 하고 있으니 불가
불 알아야 한다.
만일 선정에서 나오고자 한다면 서서히 몸을 움직임에 편안하고도 자세히 하
여 일어나야지 갑작스레 해서는 안되며, 선정에서 나온 후에는 일체의 시간 중에
항상 방편에 의지하여 선정의 힘을 보호하여 가지되 마치 갓난애를 보호하듯 해
야 곧 선정의 힘을 쉽게 이룰 것이다.
무릇 ‘선정’이라는 이 한 부문이 가장 급선무가 되니, 만약 편안히 선정에 들어
고요한 생각을 지니지 못하면 [죽음의] 경계에 이르러 모두 망연해질 뿐이다. 그
러한 까닭으로 구슬을 찾으려면 물결이 고요해야 하니 물이 움직이면 취하기가
응당 어려울 것이요, 선정의 물이 고요하고도 맑으면 마음의 구슬은 저절로 드러
날 것이다. 그러므로《원각경》에 이르기를 [장애 없는 청정한 지혜는 모두 선정
에 의지해 생겨난다] 하였고,《법화경》에 이르기를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 그
마음을 닦아 거두어들이되 편안히 머물어 움직이지 않음이 마치 수미산 같을지
다] 하였다.
이로서 알건대 범부를 초월하고 성현을 뛰어 넘으려면 필시 고요함의 반연을
빌릴 것이요, 좌탈坐脫하고 입망立亡하려면 모름지기 선정의 힘에 의지해야 한
다. 일생 동안에 끝장을 보고자 하더라도 오히려 차질이 날까 두렵거늘 하물며
이에 미적미적하면 무엇을 가지고 업에 대적하겠는가. 그러므로 옛 사람이 이르
기를 [만약 선정의 힘이 없으면 죽음의 문에 달갑게 엎드려 눈을 가리고 텅 빈
채 돌아갈 때 의연히 물결 따라 흘러갈 지어다] 하였다.
바라건대 모든 선우禪友들이 이 글을 하루에 세 번 반복하여 읽어서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나아가 다른 이를 이롭게 함으로써 함께 바른 깨달음을 이룰지어다.
【1】眞州.長蘆.慈覺.宗 禪師, 洛州.孫氏子, 嗣長蘆.應天禪師.
【2】意識昏迷曰睡, 五情暗冥曰眠.
【3】坐禪須調五事: 調心, 不沈不浮; 調身, 不緩不急; 調息, 不澁不滑; 調眠, 不節不恣; 調食, 不
飢不飽. 今卽有二.
【4】無喧雜處名閑, 無 鬧處名靜.
【5】此云聚相, 安聚骨相.
【6】釋上不得前躬後仰.
【7】釋上不得左傾右側.
【8】法雲.圓通.法秀禪師, 嗣天衣.義懷禪師.
【9】《四行論》[閉目入禪定, 是謂鬼魅心.] 大鐵圍山 小鐵圍山中間, 日月光明不到處爲黑山, 群鬼
咸萃焉. 言合眼而有坐馳之心故, 名黑山鬼窟.
【10】一切魔事, 無奈我, 何.
【11】急也, 又卒起貌.
【12】坐禪方法便宜.
【13】人之胸前曰孀, 以小兒置之胸前, 以乳養之故, 曰孀兒.
【14】超脫凡情聖解.
【15】坐化者無數而立亡者亦多, 鄧隱峯倒立而化, 若非禪定之力, 能如是乎?
【16】宛然猶依然也.
【1】진주의 장로 자각 종색선사는 낙주 손씨의 아들로서 장로 응천선사의 법을 이었다.
【2】의식이 혼미한 것을 睡라 하고 五根의 情이 어두운 것을 眠이라 한다.
【3】좌선할 때는 모름지기 다섯 가지를 조절해야 하는데, 마음을 조절함에 가라앉지도 말고
들뜨지도 말 것이며, 몸을 조절함에 느리게도 말고 빠르게도 말 것이며, 호흡을 조절함에
거칠게도 말고 [의식적으로] 부드럽게도 말 것이며, 수면을 조절함에 너무 절제도 말고 너
무 마음대로도 말 것이며, 음식을 조절함에 너무 주리지도 말고 너무 배부르게도 말 것이
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얘기하고 있다.
【4】시끄러움으로 인한 혼잡스러움이 없는 곳을 閑이라 하고 심란함으로 인한 혼잡스러움이
없는 곳을 靜이라 한다.
【5】[浮屠는] 이곳 말로 하면 聚相(형상을 모음)이니 유골을 온전히 모음을 말한다.
【6】위에서 말한 ‘앞으로 굽히거나 뒤로 젖히지 말라’고 한 것을 풀어놓은 것이다.
【7】위에서 말한 ‘좌로 기울거나 우로 기울이지 말라’고 한 것을 풀어놓은 것이다.
【8】법운 원통 법수선사는 천의 의회선사의 법을 이었다.
【9】《사행론》에 [눈을 감고 선정에 들어가면 그것을 일컬어 귀신이나 도깨비의 마음이라 한
다] 하였다. 대철위산과 소철위산 사이로 해와 달의 빛줄기가 도달하지 않는 곳이 흑산인
데 귀신의 무리들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한다. 눈을 닫으면 앉은자리에서 천리를 달음박질
치는 마음이 생기기에 흑산의 귀신굴이라 이름함을 말한다.
【10】일체 마군의 일이 나를 어찌할 수 없는데 어쩌겠는가?
【11】급작스러움이며 또는 갑자기 일어나는 모습이다.
【12】좌선함에 있어서의 그 방법과 편의이다.
【13】사람의 가슴 앞부분을 孀이라 하나니, 어린아이는 가슴 앞에 두어서 젖을 먹여 기르는 까
닭에 孀兒라 한다.
【14】범부의 애정을 초월하고 성인의 견해를 벗어남.
【15】앉은 채로 입적하는 자는 무수히 많으며 선 채로 입적하는 자 역시 많은데, 등은봉은 거
꾸로 선 채 입적하였으니 만약 선정의 힘이 아니면 어찌 능히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16】宛然은 依然과 같다.
勸參禪文
夫! 解須圓解, 還他明眼宗師; 修必圓修, 分付叢林道伴.[1] 初
心薄福, 不善親依, 見解偏枯, 修行懶惰, 或高推聖境, 孤負己靈,
寧知德相神通, 不信凡夫悟道. 或自恃天眞, 撥無因果, 但向胸襟
流出, 不依地位修行. 所以序解法師, 不通敎眼, 虛頭禪客, 不貴
行門, 此偏枯之罪也. 或則渾身破碎,[2] 滿面風埃,[3] 三千細行全
無, 八萬威儀總缺.[4] 或卽追陪人事, 緝理門徒, 身遊市井之間,[5]
心染閭閻之態.[6] 所以山野常僧, 未免農夫[7]之 , 城隍[8]釋子, 反
爲儒士之羞, 此懶惰之罪也. 何不再離煩惱之家, 重割塵勞之網,
飮淸風而訪道流, 探微言而尋知己, 澄神祖域, 息意宗乘, 靜室虛
堂, 斂禪衣而宴坐, 靑山綠水, 携錫杖以經行? 忽若心光透漏, 凝
滯氷消, 直下分明, 豈昧三祇之極果,[9] 本來具足, 何妨萬行之因
華?[10] 由是, 宗說兼通,[11] 若 日[12]麗虛空之界,[13] 心身俱靜, 如
琉璃合寶月之光, 可謂蓬生麻中, 不扶自直, 衆流入海, 總號天
池.[14] 反觀前非, 方知大錯. 忠言逆耳, 敢冀銘心, 此世他生, 同
爲法侶.
무릇 알기를 모름지기 원만히 알고자 한다면 저 밝은 눈을 가진 종사에게 돌
아 갈 것이요, 수행을 반드시 원만히 닦고자 한다면 총림의 도반에게 부촉할 것
이다. 처음 마음을 일으킨 자가 박복하여 친한 이에게 의지함을 잘하지 못하면
견해가 치우치고 메마르며 수행이 게을러지고 혹은 성현의 경계를 높이 밀쳐 놓
아 자기의 영명함을 저버리는 것이니 어찌 덕상德相과 신통神通을 알겠는가, 범
부도 도를 깨달을 수 있음을 믿지 않을 뿐이다.
혹은 본래가 참된 부처님(天眞佛)이란 것만 지나치게 믿고 인과는 없다 하여
무시해 버리며 다만 흉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대로 놓아둘 뿐 지위에 의지하여
수행하지 않는다. 그러한 까닭에 견해가 거친 법사는 교리의 안목에 능통하지 못
하고 실속 없는 선객은 수행의 문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니, 이것이 견해가 치우
치고 메마름으로 인한 잘못이다. 혹은 온몸은 깨뜨려 부서지고 온 얼굴은 바람에
날리는 티끌이라, 3천의 세밀한 계행이 전혀 없으며 8만의 위의가 모두 결핍되었
다. 혹은 유명인사들을 쫓아다니며 모시고 문도를 얽어 다스리니 몸은 대처의 저
자거리 사이에서 노닐고 마음은 여염집의 작태에 물들었다. 그러한 까닭에 산야
의 하릴없는 승려는 농부의 꾸짖음을 면하지 못하고 성안의 스님네는 도리어 선
비들이 수치스러워 하는 바가 되나니, 이것이 게으름으로 인한 잘못이다.
어찌하여 다시 번뇌의 집을 여의고 거듭 고뇌의 그물을 베어 내며, 맑은 바람
을 마시고 도 닦는 무리들을 방문하며, 미묘한 언어를 탐색하고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찾아다니며, 정신을 조사의 영역에서 맑히고 최상의 깨달음에서 뜻을 쉬며,
고요하고 빈 당실에서 참선하는 옷깃을 수렴하여 편안히 앉으며, 푸른 산 초록빛
물줄기에 석장을 거머쥐고 경행하지 않는가?
문득 만약 마음의 빛이 환히 비쳐나와 맺혔던 것이 얼음 녹듯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서 분명해지거늘 어찌 삼아승지겁을 거쳐서 열리는 깨달음의 열매가 미혹
된 것일 것이며, 본래 모두 갖추어져 있거늘 어찌하여 만 가지 보살행으로 피어
나는 인과의 꽃이 방해롭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종통宗通과 설통說通을 겸하여
능통하면 마치 밝은 해가 허공의 세계에서 빛나는 것 같으며 마음과 몸이 모두
고요함은 마치 유리가 보배로운 달빛을 머금은 것과 같으니, 가히 쑥이 삼 가운
데 나면 북돋우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되고 뭇 물줄기들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아울러 부르기를 천지天池라고 일컬을 수 있음이다. 예전의 잘못을 되돌아보아
야만 바야흐로 크게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충고의 말이 귀에는 거슬릴 것이
지만 마음에 새겨 두기를 감히 바라니, 이 세상과 다른 내생에 함께 법을 나누는
도반이 될지어다.
【1】叢林, 乃衆僧捿身行道之所也. 草不亂生曰叢, 木不亂長曰林, 言其內有規矩法度也. 又《大論》
云: [衆多比丘, 一處和合, 是名僧伽, 譬如大樹叢聚成林. 一樹不名爲林, 一比丘不名爲僧, 諸
比丘和合叢聚處, 得名叢林.]
【2】言全無戒行檢束也.
【3】言奔走風塵也.
【4】三聚各有一千, 幷三千; 貪 嗔 癡 等分各二萬一千, 幷八萬四千.
【5】市 恃也, 養贍老小, 恃而不 . 祝融作市, 又神農所作. 市, 交易之處; 井, 共汲之所. 古者, 朝
聚汲水處, 將貨物於井邊買賣故, 曰市井.
【6】閭閻, 皆里門名也, 謂染於俗態也.
【7】 山氏有子, 曰農, 能植百穀故, 後世因名耕田氓爲農.
【8】隍,《說文》: 城池. 有水曰池, 無水曰隍.
【9】佛佛皆修因於三阿僧祇劫, 以成佛果.
【10】諸菩薩皆修萬行, 以爲成佛之因.
【11】淸凉云: [宗通自修行, 說通示未悟.]
【12】日在木下曰杳, 日在木中曰東, 日在木上曰 .
【13】《易》[日月麗乎天, 百穀草木麗乎土.] 麗音離, 附也, 著也.
【14】南溟也.
【1】叢林이란 대중스님들이 몸을 의탁하여 도업을 수행하는 곳이다. 풀이 어지럽지 않게 자란
것을 叢이라 하고 나무가 어지럽지 않게 성장한 것을 林이라 하니 [총림이라 함은] 그 내
부에 규율과 법도가 있음을 말한다. 또《대론》에 이르기를 [무리를 이룬 많은 비구들이
한 곳에서 화합하며 지내는 것을 이름하여 僧伽라 하는데 비유하자면 큰 나무들이 정연히
모여 숲을 이룬 것과 같다. 나무 한 그루를 숲이라 부르지 않듯이 한 명의 비구를 僧이라
이름하지 않나니, 모든 비구들이 화합으로 정연히 모인 곳이라야 叢林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하였다.
【2】계를 지키는 행위나 단속함이 전혀 없음을 말한다.
【3】풍진에 분주함을 말한다.
【4】三聚에 각기 1천이 있으니 아우르면 3천이요, 탐 진 치와 등분에 각기 2만1천이니 아우르
면 8만4천이다.
【5】市는 믿어 의지함이니, 늙은이와 어린이를 봉양하고 구휼함에 믿고 의지하기를 모자라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축융이 市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또는 신농씨가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市는 교역의 장소이며 井은 함께 물을 긷는 곳이다. 옛날에는 아침이면 물을 긷는
곳에 모여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우물 근처에서 사고 팔았던 까닭에 市井이라 하였다.
【6】閭와 閻은 모두 동리의 문짝 이름이니 세속의 형편에 물들었음을 말한다.
【7】여산씨에게 農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모든 곡식을 능숙하게 경작하였던 까닭에 후세에
그로 인해 밭을 경작하는 백성들을 이름하여 農이라 하였다.
【8】隍은《설문》에서 성 주위로 파 놓은 못이라 하였다. 물이 있으면 池라 하고 물이 없으면
隍이라 한다.
【9】여러 부처님들은 모두 삼아승지겁 동안 因을 닦음으로써 부처님의 果를 이루게 되었다.
【10】여러 보살들은 모두 만 가지의 行을 닦는 것으로써 成佛의 因으로 여겼다.
【11】청량이 말하였다. [宗通은 종지를 스스로 잘 수행하여 깨달았음이요, 說通은 아직 깨닫지
못한 이에게 자신이 깨달은 경지를 잘 드러냄이다.]
【12】해가 나무 아래에 있으면 杳요, 해가 나무 가운데 있으면 東이요, 해가 나무 위에 있으면
이다.
【13】《역》에 말하기를 [해와 달은 하늘에 붙어 있고 백곡과 초목은 땅에 붙어 있다] 하였는데,
麗는 음이 리(離)요 붙어 있다 또는 부착되어 있다는 뜻이다.
【14】南溟(南海)이다.

廬山東林混融禪師示衆
避萬乘尊榮, 受六年飢凍, 不離草座, 成等正覺, 度無量衆. 此,
黃面老爺, 出家樣子, 後輩忘本, 反爲口體. 不務耕桑, 見成利養
爲便, 不奉君親, 免事征役爲安, 假名服竊世緣, 以鬪諍作佛事,[1]
老不知悔, 死爲園菌,[2] 良可悲夫! 汝輩出家, 當思齊草座之前,
自省園菌之下, 可爾.
만승萬乘의 존귀한 영화를 피하시고 6년 동안 굶주림과 추위를 받아들이며 짚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무량한 중생을 제도하셨다.
이것은 황금빛 얼굴의 서역 성인께서 출가한 모습인데 후배들은 그 근본을 망
각하고 도리어 입과 몸만을 위하고 있다. 밭 갈거나 누에치는 수고를 하지 않은
채 눈앞에 이뤄져 있는 이익으로 편함을 삼고 임금도 어버이도 받들지 않은 채
군역과 부역을 면하는 것으로 안락함을 삼으며, 법복을 빌려 입고 세상의 인연을
도둑질하고 다투어 언쟁하는 것을 불사佛事로 삼아서 늙도록 뉘우칠 줄 모르다
가 죽어서 정원의 버섯이 되었으니 진실로 애달프지 않은가.
너희 출가자들은 마땅히 생각을 짚자리의 앞에 가지런히 하고 정원 버섯의 아
래를 스스로 살펴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佛法中, 多有諍論, 且如西天大 小乘, 分河飮水, 大乘之內, 性相殊, 小乘之中, 二十部異, 各皆
自是他非, 爰及此方, 免諍競.
【2】有長者, 名梵摩淨德, 園中有樹生大耳, 其味甚美, 惟長者及第二子取以食之, 自餘親屬, 皆不
能見. 十五祖迦羅提婆, 知比丘之宿因, 問長者: [年多少?] 曰: [七十九.] 尊子曰: [汝年八十
一, 此樹不生耳.]
【1】佛法 가운데 논쟁이 많았음에 또한 서천의 대소승은 물줄기를 나누어 물을 마셨으며 대승
안에서도 性相이 달랐고 소승 가운데도 20부파의 갈래가 있어 각각에 모두 자신들이 옳고
다른 이는 그르다 하였으니, 이에 이 지방에 미쳐서 쟁론과 경쟁을 어찌 면하겠는가.
【2】범마정덕이라 이름하는 한 장자가 있었는데, 정원에 어떤 나무에서 표고버섯이 나서 그
맛이 매우 좋았으나 오직 장자와 그 둘째 아들만이 그것을 가져다 먹을 수 있을 뿐 그 나
머지 식구들은 모두 그것을 볼 수 없었다. 15대 조사인 가라제바가 그것이 한 비구의 오랜
인과에 의한 것임을 알고는 장자에게 묻기를 [나이가 몇인가?] 하니 [이른 아홉이오] 하
는지라 존자가 이르기를 [그대의 나이 여든 하나가 되면 이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白楊順禪師示衆[1]
染緣易就, 道業難成. 不了目前萬緣差別, 只見境風浩浩, 凋殘
功德之林, 心火炎炎, 燒盡菩提之種. 道念若同情念, 成佛多時;
爲衆如爲己身, 彼此事辦; 不見他非我是, 自然上敬下恭; 佛法時
時現前, 煩惱塵塵解脫.
물든 인연은 성취하기 쉽고 도업은 이루기 어렵다. 눈앞의 만 가지 반연의 차
별됨을 똑똑히 알지 못하고 다만 경계의 바람이 어마어마하여 공덕의 숲을 시들
어 쇠잔케 하고 마음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 보리의 종자를 남김없이 태우는 것을
볼뿐이다. 도를 구하고자 하는 생각이 만약 정을 구하고자 하는 생각과 같다면
불도를 이룬지가 이미 오래일 것이요, 중생 위하기를 마치 자기 몸을 위하는 것
같이 한다면 피차에 전념하여 힘 쓸 수 있을 것이며, 남의 그릇됨과 나의 옳음을
보지 않는다면 자연히 윗사람이 경애하고 아랫사람은 공순할 것이니, 불법은 시
시각각 눈앞에 드러나고 번뇌는 티끌마다에서 해탈을 이룰 것이다.
【1】撫州.白楊.法順禪師, 綿州.文氏子, 嗣佛眼遠禪師.
【1】무주 백양 법순선사는 면주 문씨의 아들로서 불안 원선사의 법을 이었다.

芙蓉楷禪師小參[1]
夫出家者, 爲厭塵勞, 永脫生死, 休心息念, 斷絶攀緣, 故名出
家. 豈可以等閒利養, 埋沒平生? 直須兩頭[2]撒開, 中間[3]放下,
遇聲遇色, 如石上栽花, 見利見名, 如眼中着屑, 從無始以來,
不是不曾經歷, 又不是不知次第.[4] 不過蒜頭作尾, 止於如此, 何
須苦苦貪戀. 如今不歇, 更待何時? 是以, 先聖敎人, 只要盡却今
時, 能盡今時, 更有何事? 若得心中無事, 佛祖猶是寃家, 一切世
事, 自然冷淡, 方始那邊相應. 不見? 隱山[5]至死, 不肯見人;
趙州至死, 不肯告人;[6] ,[7] 拾橡栗爲食; 大梅, 以荷葉爲衣;[8]
紙衣道者, 只披紙;[9] 玄泰上座, 只着布;[10] 石霜, 置枯木堂, 與人
坐臥,[11] 只要死了 心; 投子, 使人辦米, 同煮共餐, 要得省取
事. 且從上諸聖, 有如此榜樣, 若無長處, 如何甘得? 諸仁者! 若
也於斯體究, 的不虧人, 若也不肯承當, 向後深恐費力. 山僧行業
無取, 主山門, 豈可坐費常住, 頓忘先聖付囑. 今者, 輒斅古人
爲住持體例, 與諸人議定, 更不下山 不赴齋 不發化主, 唯將本院
莊課一歲所得, 均作三百六十分, 日取一分用之, 更不隨人添減,
可以備飯則作飯, 作飯不足則作粥, 作粥不足則作米湯. 新到相見,
茶湯而已, 更不煎點, 惟置一茶堂, 自去取用, 務要省緣, 專一辦
道. 又 活計具足, 風景不疎, 花解笑, 鳥能啼, 木馬長鳴, 石牛善
走; 天外之靑山寡色, 耳畔之流泉無聲; 嶺上猿啼, 露濕中宵之月,
林間鶴 ,[12] 風回淸曉之松; 春風起而枯木龍吟, 秋葉彫而寒林華
發; 玉階 苔蘚之紋, 人面帶烟霞之色. 音塵寂爾, 消息沈然, 一
味蕭條, 無可趣向. 山僧今日, 向諸人面前說家門, 已是不着便,
豈可更去陞堂入室, 拈 竪拂, 東喝西棒, 張眉努目, 如癎病發相
似?[13] 不惟屈沈上座, 亦孤負先聖. 不見? 達磨西來, 少室山
下[14]面壁九年, 二祖至於立雪斷臂, 可謂受盡艱辛. 然而達磨不曾
措了一辭, 二祖不曾問着一句, 還喚達磨作不爲人, 得?? 二祖做
不求師, 得?? 山僧每至, 說着古聖做處, 便覺無地容身, 慙愧後
人軟弱. 又 百味珍羞,[15] 遞相供養, 道我[四事具足, 方可發心],
只恐做手脚不迭,[16] 便是隔生隔世去也. 時光似箭, 深爲可惜. 雖
然如是, 更在諸人, 從長相度, 山僧也强敎 不得. 諸仁者, 還見
古人偈??[17] [山田脫粟飯, 野菜淡黃 , 喫則從君喫, 不喫任東
西.] 伏惟! 同道各自努力珍重.
무릇 출가라는 것은 세속의 티끌과 수고로움을 싫어하여 영원히 태어나고 죽
는 일에서 벗어나며 마음을 쉬고 생각을 그쳐 반연을 단절하는 까닭에 ‘출가’라
이름한다. 어찌 대수롭지 않게 다만 이익을 구하여 육신을 기르는 것으로써 평생
을 매몰시킬 수 있겠는가. 모름지기 곧장 두 가지를 놓아 버리고 그 중간도 내려
놓으며, 소리를 마주치거나 색을 마주치면 마치 돌 위에 꽃을 심는 듯이 여기고,
이익을 보고 명예를 보면 마치 눈 안에 티끌이 붙은 양 여길 것이니, 하물며 비롯
함이 없는 때로부터 일찍이 겪지 않았던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순서를 알지 못하
는 것이 아님에랴. 다만 머리를 뒤집어서 꼬리를 삼아 이와 같음에 그친 것에 불
과한데 어찌 모름지기 애를 쓰고 애를 써서 탐내고 사모하겠는가. 만약 지금에
쉬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이러한 까닭에 옛 성현께서 사람들
을 가르치되 ‘다만 지금 이 때를 남김없이 물리쳐야 한다’ 하였으니 지금 이 때를
능히 다할 수 있다면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만약 마음 가운데 아무 일 없음
을 얻는다면 부처나 조사도 오히려 원수와 같겠거니, 일체의 세상일들이 자연히
냉담해 질 것이며 바야흐로 저쪽과 상응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은산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보려 하지 않았
고, 조주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지 않았고, 편첨은 상수리와
밤을 주워 먹거리로 삼았으며, 대매는 연잎으로 옷을 지었고, 지의도자는 다만
종이 옷만을 입었고, 현태상좌는 단지 베옷만을 입었으며, 석상은 고목당을 지어
놓고 사람들과 더불어 앉고 누우며 다만 그 마음 죽이기를 바랬고, 투자는 사람
들로 하여금 쌀을 마련하게 하고는 함께 밥을 지어 같이 먹음으로써 그대의 일거
리를 덜어주고자 하였다. 또한 위로부터 모든 성현들에게 이와 같은 모범이 있었
으니 만약 장점이 없었다면 어찌 달갑게 받아들이겠는가.
모든 어진 자들이여! 만약 여기에서 체득하여 궁구한다면 분명 사람들에게 손
해를 입히지는 않을 것이나, 만약 기꺼이 받아들여 수긍하지 못한다면 향후에 힘
만 허비할까 매우 두렵다. 산승은 그 행적에 취할 것이 없음에도 욕되게 산문의
주인이 되었는데 어찌 앉아서 상주물만 소비하며 앞선 성현들께서 부촉한 일들
을 깜빡 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문득 옛사람들이 주지를 하시던 바탕과 사례를
본받아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논의하여 결정하나니, 다시는 산을 내려가지 않고
대중공양에 나아가지 않으며 화주도 보내지 않은 채 오직 본 사원 장과莊課의
한 해 소득을 가지고 균등하게 3백6십 등분하고 하루에 그 1분을 취하여 사용함
에 사람 수에 따라 늘이거나 줄이지 않을 것이니, 밥을 지을 만하면 곧 밥을 짓고
밥 짓기에 부족하면 곧 죽을 쑤고 죽 쑤기에 부족하면 곧 미음을 끓일 것이다.
새로 도착한 이를 맞더라도 차와 간식으로 할 뿐 다시 점심을 준비하지 않으며,
오직 한 곳의 다실을 설치하여 스스로 가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힘써 반연을
줄이고 오로지 도에 힘쓰도록 할 것이다.
또 하물며 생계가 구족하고 풍경이 쓸쓸하지 않으니, 꽃은 웃을 줄 알고 새는
능히 지저귀며 나무로 된 말은 길게 울고 돌로 된 소는 잘 달리며, 하늘 바깥의
푸른 산은 바랜 색을 띄고 귓가에 흐르는 샘은 소리가 없으며, 뫼봉 위에 원숭이
가 우니 이슬은 한 밤중의 달빛을 적시고 수풀 사이 학이 우니 바람은 맑은 새벽
의 소나무를 휘감아 돌며, 봄바람이 일어나니 마른나무로 용의 읊조림이 들리고
가을 잎이 시들어 떨어지니 한랭한 수풀로 꽃이 피어나며, 옥 빛 계단에는 이끼
무늬가 널려 있고 사람들의 얼굴은 안개와 노을 빛을 띄고 있다. 세간의 소리와
티끌은 고요해지고 소식은 가라앉으니 한결같은 맛으로 한적하기에 즐겨 달려갈
만한 것이 없도다.
산승이 오늘 모든 사람들의 면전에서 집안 일을 얘기하는 것이 이미 정당한
측에 들지 못하는데 어찌 다시 나아가 법당에 오르거나 방안으로 들어서서 방망
이를 집어들고 불자를 세울 것이며, 동쪽으로 할喝을 내뱉고 서쪽으로 주장자를
두드릴 것이며, 눈썹을 치세우고 눈을 부릅떠서 마치 놀람병이 도진 것 같이 하
겠는가. 이는 다만 그대 대덕들을 짓눌러 가라앉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더구나
또한 옛 성인들을 저버리는 것이리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달마가 서쪽으로부터 건너와 소실산 아래에서 면벽을
9년 동안 하였고 혜능은 눈 속에 서서 팔을 끊기까지 하였으니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받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달마는 일찍이 한 마디의 말도 던지지 않았
고 혜능도 일찍이 한 글귀도 묻지 않았으니, 그러면 달마가 사람들을 위하지 않
았다고 해야만 옳겠는가? 혜능이 스승을 구하지 않았다고 해야만 옳겠는가?
산승이 매번 옛 성현들의 일들을 얘기할 때마다 문득 몸 숨길 곳이 없음을 깨
닫게 되고 뒷사람의 연약함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게다가 하물며 백 가지 맛
난 음식으로 갈마들어 서로 공양하며 나에게 말하기를 [네 가지의 공양이 충분
히 갖추어져야 비로소 발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지만, 다만 손발을 씀에 채 갈
마들기도 전에 손써 볼 틈도 없이 문득 이 삶과 이 세상에서 멀어져 떠나버리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시간의 빛은 화살과도 같으니 더욱 애석할 뿐이다. 비록
이와 같지만 다시금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장점을 좇아 서로 제도할 뿐, 산승이
또한 강제로 그대들을 가르치려 해도 그리되지 않으리다. 모든 어진 자들이여 옛
사람들의 게송을 본 적이 있는가?
산마루의 밭을다녀 훑어모은 뉘밥덩이,
저물들녘 나물뽑아 묽게무친 채소반찬,
먹겠다면 그대마음 내킨대로 먹을게고,
먹지를 않겠다면야 그저그리 남으리다.
엎드려 바라건대 같은 길가는 이들은 서로 노력하라. 진중하라.
【1】芙蓉山.道楷禪師, 沂州.崔氏子, 嗣投子.義靑禪師.
【2】根境二處.
【3】中六識.
【4】曾經歷知次第者, 是根境識三也.
【5】《傳燈》龍山和尙是也, 不知何方人氏.
【6】逢人, 只云[喫茶去], 了無他語.
【7】 山.曉了禪師.
【8】大梅禪師, 偈云[一池荷葉, 衣無盡.]
【9】 州.紙衣道者, 卽克符禪師也.
【10】一生未嘗衣帛, 時人謂之泰布衲.
【11】師居石霜二十年, 學者多有常坐不臥, 屹若株机, 天下謂之枯木衆.
【12】鶴頸曲, 其聲出戾故, 以鶴鳴爲 .
【13】癎音閑, 小兒癲病. 醫書, 小兒有五癎, 五臟各有畜所屬: 心癎, 其聲如羊; 肝癎, 其聲如犬; 脾
癎, 其聲如牛; 肺癎, 其聲如鷄; 腎癎, 其聲如猪.
【14】崇山有大室 小室, 故號崇山爲小室.
【15】《智論》云: [百味者, 有能以百種供養, 是名百味; 有云餠種數五百, 其味有百, 是名百味; 有云
百種藥草, 作歡喜丸, 是爲百味; 有云飮食羹餠, 總有百; 有云飮食, 種種備足, 故稱爲百味.]
【16】若能見性, 有 斯脫則六根互用; 不然, 那能迭相作用諸根也.
【17】牛頭.融禪師偈.
【1】부용산 도해선사는 기주 최씨의 아들로서 투자 의청선사의 법을 이었다.
【2】根과 境의 두 處( yatana)이다.
【3】中六識이다.
【4】曾經歷,知次第란 곧 根 境 識 셋이다.
【5】《전등록》에서 말하는 용산화상이 바로 그인데 어느 지방의 무슨 성씨인지 알 수 없다.
【6】사람을 만나면 단지 [차나 마시고 가게!] 하고는 다른 말이 없었다.
【7】편첨산 효료선사이다.
【8】대매선사의 게송에 이르기를 [못 하나의 연잎이면 옷 지음에 가없으리]라 하였다.
【9】탁주의 지의도자이니 곧 극부선사이다.
【10】평생 동안 비단을 입지 않았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일러 ‘태포납’이라 하였다.
【11】선사께서 석상에 머무르기 20년, 그에게 배우는 자들은 대체로 늘 앉아 있을 뿐 눕지 않
았으니 그 우뚝 솟은 모습이 마치 베어놓은 나무 그루터기 같았기에 천하에서 그들을 일
컬어 ‘고목중’이라 하였다.
【12】학은 목이 굽어 있어 그 소리가 나오며 어그러지는 까닭에 학이 소리내는 것을 운다( )
고 한다.
【13】癎의 음은 한(閑)이며 어린아이가 앓는 지랄병이다. 의서에 어린아이에게 다섯 가지의 지
랄병이 있는데 오장에 따라 각기 연관되는 짐승이 있다 하였으니, 심장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양과 같고, 간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개와 같고, 지라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소와 같고, 폐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닭과 같고, 콩
팥에 의한 지랄병은 그 소리가 마치 돼지와 같다고 하였다.
【14】숭산에는 대실과 소실이 있는 까닭에 [단지] 숭산이라 부를 때는 소실이 된다.
【15】《지론》에서 말하였다. [百味란 1백 가지 종류로써 능히 공양함이 있기에 이를 백미라 이
름하는 것이며, 또는 떡이 그 종류의 수가 5백이요 그 맛이 1백 가지이므로 이를 백미라
이름한다고 하며, 또는 1백 종류의 약초로 환희환을 만드니 이것이 1백 가지 맛(百味)이
된다고 하며, 또는 음식과 국 및 떡 등이 모두 1백 가지가 있다고 하며, 또는 음식이 종류
별로 모두 갖추어진 까닭에 그것을 일컬어 백미라 한다고 한다.]
【16】만약 능히 성품을 본다면 有 이 이로서 벗어질 것인 즉 육근이 상호 작용할 것이나, 그
렇지 않다면 어찌 능히 갈마들며 모든 根이 서로 작용하겠는가.
【17】우두 융선사의 게송이다.
懶庵樞和尙法語[1]
佛誡羅 羅頌云: [十方世界諸衆生, 念念已證善逝果, 彼旣丈
夫我亦爾, 何得自輕而退屈.] 六凡四聖, 同此一性, 彼旣如是, 我
何不然? 直須內外資熏, 一生取辦, 更若悠悠過日, 是誰之咎? 古
德云: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부처님께서 라후라를 훈계하는 게송에서 말씀하셨다.
시방세계 모든중생 생각생각 이미모두 선서과를 이뤘음에,
저도장부 나도장부 어찌앞서 가볍사리 스스로가 물러나리.
여섯 갈래 범부의 세계와 네 갈래 성인의 세계는 다 같이 한 성품이거늘 저가
이미 이와 같거니 나도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곧장 모름지기 안팎으로 돕고 익
히면 한 생에 끝장을 보겠지만 다시 만약 유유자적 세월을 보낸다면 이는 누구의
허물인가. 옛 덕 있는 이가 이르기를 [이 몸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겠는가] 하였다.
天台.智者大師云: [何不絶語言, 置文字, 破一微塵, 出大千經
卷?] 一微塵者, 衆生妄念也; 大千經卷者, 衆生佛性. 衆生佛性,
爲妄念所覆, 妄念若破則佛性現前. 此老人, 爲固執文字語言者,
興此歎也. 此亦是金 刮膜之,[2] 他日眼開, 方知得力.
천태 지자대사가 이르기를 [어찌하여 언어를 단절시키고 문자를 내버려둔 뒤
하나의 미세한 티끌을 깨트려 대천세계 만한 경전을 꺼내지 않는가?] 하였음에,
하나의 미세한 티끌이란 중생의 망념을 말하며 대천세계 만한 경전이란 중생의
불성을 말한다. 중생의 부처 되는 성품은 망념에 의해 덮어져 있으니 망념이 만
약 깨어지면 곧 불성이 눈앞에 드러나게 된다. 이 늙은이는 문자와 언어를 고집
하는 자들을 위해 이 탄식을 일으킨 것이다. 이 또한 금비로 눈의 망막을 후벼낸
다는 것이니 뒷날 눈이 열리면 바야흐로 힘을 얻은 줄 알지어다.
《楞嚴經》云: [云何賊人, 假我衣服, 裨販如來, 造種種業?] 若
不以戒攝心者, 縱饒解齊佛祖, 未免裨販如來, 造種種業, 平平
之人? 淸凉國師以十願律身者,[3] 良有以也. 戒以愼爲義, 又曰:
[洗心曰齋, 防患曰戒.]
《능엄경》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도적이 나의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팔아 각
종의 업을 짓는가?] 하였으니, 만약 계로써 마음을 다독거리지 못하는 자는 설령
그 견해가 넉넉하기를 부처님이나 조사들과 가지런하다 할지라도 여래를 팔아
각종의 업 지음을 면치 못할 것인데 하물며 평범하고 평범한 사람임에랴. 청량국
사는 열 가지 원으로써 몸을 단속한 것은 진실로 까닭이 있도다. 계는 삼가는 것
으로 그 뜻을 삼으며, 또 이르기를 [마음 씻는 것을 재齋라 하고 근심 방지하는
것을 계戒라 한다]고 하였다.
【1】靈隱寺.懶庵.道樞禪師, 吳興.嚴安.徐氏子, 嗣道場.居慧禪師.
【2】金 者,《涅槃經》云: [如有盲人, 爲治眼故, 造詣良醫, 良醫卽以金 抉其眼膜.] 以 台老所
說開人心目也.
【3】華嚴第六祖澄觀大士, 字大休, 會稽.夏候氏子也. 至德中, 以十事自勵曰: [體不捐沙門之表, 心
不違如來之制, 坐不背法界之經, 性不染情碍之境, 足不履尼寺之塵, 脇不觸居士之榻, 目不視
非儀之彩, 舌不味過午之 , 手不釋圓明之珠, 宿不離衣鉢之側.]
【1】영은사 나암 도추선사는 오흥 엄안 서씨의 아들로서 도장 거혜선사의 법을 이었다.
【2】금비란,《열반경》에 이르기를 [만약 어떤 맹인이 눈을 치료하기 위해 훌륭한 의사를 찾아
가면 그 의사는 곧 금비로써 눈의 막을 도려낸다] 하였으니, 이로써 천태대사가 말한 바가
사람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줌을 비유한 것이다.
【3】화엄 제6조 징관대사는 자가 대휴로서 회계 하후씨의 아들이다. 지덕 연간 중에 열 가지
일로써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말하였다. [몸은 사문의 의표를 버리지 않고, 마음은 여래의
제재를 어기지 않으며, 앉을 때는 법계의 경전을 등지지 않고, 성품은 정이라는 장애의 경
계에 물들지 않으며, 발은 비구니절의 티끌을 밟지 않고, 겨드랑은 거사들의 의자에 닿지
않으며, 눈으로는 위의 답지 못한 채색을 보지 않고, 혀로는 한 나절이 지난 반찬을 맛보
지 않으며, 손에는 둥글고 밝은 구슬을 놓지 않고, 잘 때는 의발의 곁을 여의지 않는다.]

白侍郞六讚偈幷序[1]
樂天常有願, 願以今生世俗文筆之因, 蒜爲來世, 讚佛乘轉法輪
之緣也. 今年登七十, 老矣病矣, 與來世相去甚邇. 故作六偈,
唱於佛法僧前, 欲以起因發緣, 爲來世張本也.
낙천에게는 항상 소원이 있으니, 원컨대 금생에 세속에서 붓을 잡은 인연으로
내세에 가서는 불법을 찬탄하고 법의 바퀴를 굴리는 인연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
나이 이른에 오르니 늙고 또한 병이 들어 내세와 더불어 서로의 거리가 매우 가
깝다. 그러므로 여섯 가지 게송을 지어 불법승의 삼보 앞에 무릎을 꿇어 읊조림
으로써 인因을 일으키고 연緣을 발하여 내세의 은밀한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
⊙ 讚 佛
十方世界, 天上天下, 我今盡知, 無如佛者.
堂堂巍巍, 爲天人師, 故我禮足,[2] 讚歎歸依.
시방세계 천상천하 내가이제 모두아니
부처같이 높으신분 어디에도 없더이다.
당당하고 높을세라 하늘인간 스승일세
그런고로 예하오니 찬탄하고 귀의할세.
⊙ 讚 法
過現當來, 千萬億佛, 皆因法成, 法從經出,
是大法輪, 是大寶藏, 故我合掌,[3] 至心回向.
삼세제불 천만억불 모두법에 바탕하고
법은또한 경전에다 그뿌리를 두었으니,
이가바로 법의바퀴 이가바로 보배창고
그런고로 합장하니 지극정성 회향할세.
⊙ 讚 僧
緣覺聲聞, 諸大沙門, 漏盡果滿, 衆中之尊,
假和合力, 求無上道, 故我稽首,[4] 和南僧寶.
연각성문 크신사문 번뇌다해 원만하니
뭇중생의 무리중에 존귀하고 존귀하며,
화합하는 힘을빌어 위가없는 도구하니
그런고로 머리숙여 승보전에 엎디올세.
⊙ 讚 衆 生
毛道凡夫,[5] 火宅衆生, 胎卵濕化, 一切有情,
善根苟種, 佛果終成, 我不輕汝, 汝無自輕.[6]
털날같은 한낮범부 불집속의 중생들과
태란습화 모습지닌 일체모든 유정들이,
착한뿌리 정성심어 결국에는 부처되니
내가그대 중히보니 그대역시 가벼말세.
⊙ 懺 悔
無始劫來, 所造諸罪, 若輕若重, 無大無小,
我求其相, 中間內外, 了不可得, 是名懺悔.[7]
무시이래 억겁동안 짓고지은 모든죄업
가볍거나 무겁거나 크다거나 작다거나,
그모습을 찾아봄에 중간이나 안팎이나
구하여도 얻지못해 참회라고 이름할세.
⊙ 發 願[8]
煩惱願去,[9] 涅槃願住, 十地願登,[10] 四生願度,[11]
佛出世時, 願我得親, 最先勸請, 請轉法輪,[12]
佛滅度時, 願我得値, 最後供養, 受菩提記.[13]
바라노니 번뇌가고 바라노니 열반들고
바라노니 십지올라 바라노니 사생벗어,
부처님이 나실적에 바라노니 친히모셔
가장우선 청할것은 법의바퀴 굴림이며,
부처님이 드실적에 바라노니 친히뵈어
가장나중 공양하고 보리수기 받을세라.
【1】出《長慶集》. 白居易, 字樂天, 得法於香山.佛光.如滿禪師, 自號香山居士. 穆宗.長慶元年, 自中
書舍人出爲杭州刺史. 有《白氏長慶集》七十五卷, 元微之序. 鷄林賈人求市頗切云, 東國宰相每
以百錢換一篇云.
【2】以我無上之頂, 禮彼最下之足, 敬之至也.
【3】《觀音疏》云: [此方, 以拱手爲恭; 外國, 以合掌爲敬. 手本二邊, 今合爲一, 表不放縱, 專至一
心.]
【4】《荀子》云: [平衡曰拜, 下衡曰稽, 首至地曰稽 .] 注: 平衡, 謂磬折而首與腰平.
【5】梵云婆羅, 此云毛道, 謂行心不定猶如輕毛, 隨風東西也.
【6】常不輕菩薩常禮一切云: [我不輕汝.] 普賢云: [我於一切衆生, 種種承事供養, 如敬父母乃至
如來, 等無有異.] 又《法華》云: [法師道行淸峻, 爲衆所敬, 若行之時, 但視地而行, 見有微筮當
路, 卽自念言: {焉知此佛子, 先我得道?} 便避而行.] 後學可不思齊?
【7】此卽理懺. 若是事懺, 晝夜六時, 三業淸淨, 對於尊像, 披陣罪過, 更不覆藏, 又不造新.
【8】具發四弘誓願.
【9】卽煩惱誓願斷.
【10】卽佛道誓願成.
【11】卽衆生誓願度.
【12】卽法門誓願學.
【13】純陀, 此云解妙義, 乃拘尸羅城巧匠之子. 佛臨涅槃, 一切天人所有供養皆不受之, 惟受純陀之
供, 佛言: [一切諸佛, 臨涅槃時, 最後供養者, 其福勝於一切.] 又《涅槃》云: [佛臨涅槃時, 一
切天人大衆皆獻不受, 獨受純陀之供, 一切大衆出大音聲唱言: {奇哉! 純陀成大福德, 能令如
來取最後供? 我等無福, 所設供具, 卽爲唐捐.} 如來卽於身上一一毛孔, 化無量佛, 各有無量
諸比丘僧, 諸佛及衆悉皆現身, 受大衆供, 釋迦自受純陀所奉之供, 其成熟之食, 以摩伽陀所用
之斛, 滿足八斛, 以佛神力, 一切大衆足.]
【1】《장경집》에 나온다. 백거이는 자가 낙천으로 향산의 불광 여만선사에게 법을 얻어 스스로
향산거사라 불렀다. 목종 장경 원년에 중서사인의 관직으로부터 물러나와 항주자사가 되
었다.《백씨장경집》75권이 있으며 원미지가 서문을 썼다. 계림의 장사치들은 매우 간절
히 그것을 구입하려 했다고 하며, 동국의 재상들은 매번 1百錢으로 1편을 바꾸었다고 한
다.
【2】나의 위없는 정수리로써 상대의 가장 아래인 발에 禮함은 공경이 지극함이다.
【3】《관음소》에서 말하였다. [이 지방에서는 두 손을 맞잡는 것으로써 공경함을 삼고, 외국에
서는 두 손바닥을 합치는 것으로써 공경함이라 여긴다. 손은 본래 두 가장자리이나 이제
합쳐서 하나가 되게 함은 방종하지 않고 오로지 한 마음에 이르름을 표방한 것이다.]
【4】《순자》에 이르기를 [평형됨을 拜라 하고, 평형에서 내려간 것을 稽라 하며, 머리가 땅에
닿는 것을 稽 이라 한다] 하였는데 주석에, 평형은 경쇠처럼 몸을 굽혀 머리가 허리와 더
불어 평평해짐이라 하였다.
【5】법어의 ‘바라’는 이곳 말로 毛道이니, 마음을 행하는 것이 안정되지 못하여 마치 그 가볍기
가 털과 같아서 바람에 따라 동쪽이나 서쪽으로 나부낌을 말한다.
【6】상불경보살이 항상 모든 이에게 禮를 올리며 이르기를 [나는 그대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
다] 하였으며, 보현보살이 이르기를 [나는 일체 중생들을 가지가지로 받들어 공양함에 마
치 부모나 여래를 공경하듯이 동등하게 하여 다름이 없게 한다] 하였다. 또《법화경》에
이르기를 [법사의 도행은 맑고도 엄격하여 대중들이 공경하는 바가 되었으니, 만일 길을
갈 때는 다만 땅을 쳐다보며 걷다가 자그마한 벌레가 길을 막고 있으면 곧 스스로 생각하
여 말하기를 {이 불자가 나보다 먼저 득도할 지 어찌 알겠는가?} 하며 곧 피해서 가곤 하
였다] 하였으니 후학들은 이와 가지런해 질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7】이것은 곧 理懺이다. 만약 事懺이라면 낮과 밤의 24시간 동안 삼업이 청정해야 하고 존귀
한 형상을 대하여 죄과를 헤쳐 늘어놓음에 다시 덮어 가리지 않으며 또한 새로이 짓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8】사홍서원을 갖추어 발원함.
【9】즉 번뇌가 끊어지기를 바램(煩惱誓願斷)이다.
【10】즉 불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램(佛道誓願成)이다.
【11】즉 중생들을 제도하기를 바램(衆生誓願度)이다.
【12】즉 법문을 배우기를 바램(法門誓願學)이다.
【13】순타는 이곳 말로 解妙義이니 곧 구시라성의 장인바치의 아들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임했을 때 일체의 하늘사람들이 공양하는 것은 모두 받지 않으시고 오직 순타의 공양만
을 받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일체의 모든 부처님이 열반에 임했을 때 최후로 공양하는 자
는 그 복덕이 모든 것보다 뛰어나다] 하였다. 또《열반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열반
에 임했을 때 일체의 하늘사람들이 모두 공양을 바쳤으나 받지 않으시고 오로지 순타의
공양만을 받으니 모든 대중들이 나와서 큰 소리로 노래하여 말하기를 {기이하도다! 순타
는 얼마나 큰 복덕을 지었기에 능히 여래로 하여금 최후의 공양을 받아 가지게 하는가?
우리들은 복이 없어 온전히 베풀어 놓은 공양도 곧장 헛되이 버리게 되었구나} 하므로
여래께서 곧 몸의 털구멍 하나하나에서 무량한 부처님을 변화해 내시고 그 각각에 무량
한 뭇 비구승들을 거느리게 하고는 모든 부처님과 대중스님들이 낱낱이 몸을 드러내게
하여 대중들의 공양을 받게 하였으며 석가께서는 스스로 순타가 받들어 올린 공양을 받
았으니, 익힌 음식 가운데 마갈타국에서 사용하는 용량으로 8斛을 채워 부처님의 신통력
으로써 모든 대중들을 만족케 하였다]라고 하였다.
司馬溫公解禪偈[1]
文中子,[2] 以佛爲西方聖人, 信如文中子之言, 則佛之心可知矣.
今之言禪者, 好爲隱語以相迷, 大言以相勝,[3] 使學者 然[4]益
入於迷妄故, 余廣文中子之言而解之, 作解禪偈六首. 若其果然則
雖中國行矣, 何必西方, 若其不然則, 非余之所知也.
문중자는 부처님을 서방의 성인으로 여겼으니 진실로 문중자의 말과 같다면
곧 부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 선禪을 말하는 자들은 은어로써
서로를 미혹되게 하고 큰 소리로써 서로를 이기기 좋아하며 학자들로 하여금 어
리둥절한 채 더더욱 미망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까닭에 내가 문중자의 말을 넓히
고 그것을 해석하여 선을 풀이한 게송 여섯 수를 짓는다. 만약 그것이 과연 그렇
다면 곧 비록 중국에서라도 행해질 것이니 하필 서방이겠으며, 만약 그것이 그렇
지 않다면 내가 알 바 아니로다.
忿怒如烈火, 利欲如 鋒,[5] 終朝長戚戚,[6] 是名阿鼻獄.
원망으로 성내는맘 타오르는 불길같고
이익욕망 탐내는맘 날카로운 칼날같네,
아침녘이 다하도록 근심하고 근심하니
이를바로 이름하여 아비지옥 이라하네.
顔回安陋巷,[7] 孟軻養浩然,[8] 富貴如浮雲,[9] 是名極樂國.
안회같은 덕높은이 누추한곳 마다않고
맹자같은 현성들은 호연지기 길렀으며,
부귀공명 내려놓아 구름같이 여겼으니
바로이것 이름하면 극락국이 아니런가.
孝悌通神明,[10] 忠信行蠻貊,[11] 積善來百祥, 是名作因果.
효도공경 오랜모습 밝은신명 상통하고
충성신의 굳센절개 그땅에도 행해지며,
쌓은선의 보답으로 일백길상 찾아오니
바로이것 이름하여 인과라면 틀리런가.
言爲百代師, 行爲天下法, 久久不可掩, 是名不壞身.
내뱉느니 모든말씀 천년만년 스승이요
한걸음의 행위라도 온천하의 법이되어,
오래도록 밝게빛나 가릴수도 없을지니
바로이것 이름하면 불괴금강 몸이로세.
仁人之安宅,[12] 義人之正路,[13] 行之誠且久, 是名光明藏.
어짊이란 사람들이 편안느낄 저택이요
옳음이란 사람들이 곧게나갈 길이러니,
그모든것 행하기를 성의있고 오래하면
바로이것 이름하여 대광명장 할것일세.
道德修一身,[14] 功德被萬物, 爲賢爲大聖, 是名佛菩薩.
도덕으로 이한몸을 정성들이 수행하고
그공덕을 고이들어 만물에게 입히우면,
그대로가 현인이요 그대로가 성인이니
바로이것 이름하면 불보살이 될것일세.
【1】司馬光, 字君實, 官至宰相, 封溫國公. 蘇軾作公墓誌云: [公不喜佛曰: {其精微, 大抵不出於吾
書, 其誕, 吾不信.}] 劉屛山論曰: [嗟乎! 聰明之障人, 如此其甚耶? 同則以爲出於吾書, 異則
以爲誕而不信, 適足以自障其聰慧而已.]
【2】隋.王通, 其門人私諡曰文中子.
【3】阿鼻獄, 在鐵圍山間, 極樂國, 在於西方, 是秘隱之語; 不壞身, 光明藏等, 是勝大之言.
【4】《書》曰: [ 者, 無相 然, 其何之助也.] , 失道貌, 又無見也.
【5】 音瞻, 利也.
【6】《論語》[小人長戚戚.]
【7】顔子, 一簞食 一瓢飮, 居于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8】孟子曰: [我善養吾浩然之氣,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於天地之間.]
【9】子曰: [富貴於我, 如浮雲.]
【10】神, 天神也; 明, 日月也. 敦行孝悌則, 神及明無不知也.
【11】南蠻, 北狄.
【12】仁言安宅者, 謂其安而可處也.
【13】義言正路者, 謂其正而可遵也.
【14】心通曰道, 成名之謂也; 正身曰德, 立身之謂也.
【1】사마광은 자가 군실이요 관직이 재상까지 이르렀으며 온국공에 책봉되었다. 소식이 공의
묘지문을 지어 이르되 [공께서는 부처를 좋아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그 자세하고 빈틈이
없음은 대체로 나의 책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그 거짓됨은 내가 믿지 않는다} 하였다]고
하니 유병산이 논평하여 이르기를 [오호라! 총명이 사람을 장애하는 것이 이처럼 심할 줄
이야. 같으면 자신의 책에서 나온 것으로 여기고 다르면 거짓되어 믿지 못할 것으로 여기
니, 자신의 만족에 부합시킴으로써 스스로 그 총명한 지혜를 장애할 뿐이로다] 하였다.
【2】수나라 왕통이 그의 문인을 사사로이 시호하여 문중자라 하였다.
【3】아비지옥은 철위산 사이에 있으며 극락국은 서방에 있다 함은 곧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말
이며, 不壞身이라거나 光明藏(여래의 몸은 한량없는 광명으로 가득한 보물창고) 등은 곧
뛰어나고도 중히 여겨지는 말이다.
【4】《서경》에 이르기를 [소경은 안내자가 없으면 갈팡질팡하니 어떻게 도울 것인가] 하였는
데, 은 길을 잃은 모습이며 또는 보이는 것이 없음이다.
【5】 의 음은 첨(瞻)이며 예리함을 말한다.
【6】《논어》에 [소인은 항상 근심하고 근심할 뿐이다] 하였다.
【7】안자가 한 광주리의 먹거리와 한 표주박의 마실거리로 누추한 골목에 거처하니 세상 사람
들은 그 근심을 감당하지 못하였으나 그는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않았다.
【8】맹자가 말하였다.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르는데 그 기운참은 지극히 크고도 지극히
강건하니, 곧게 길러 해악이 없는 것으로써 곧 하늘과 땅 사이를 채울 것이다.]
【9】공자가 말하였다. [부귀는 나에게 있어서 뜬구름과도 같다.]
【10】神은 천신이며, 明은 해와 달이다. 효도와 우애를 돈독히 실행하면 천신과 일월이 알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11】남쪽 오랑캐 蠻과 북쪽 오랑캐 狄이다.
【12】仁을 안락한 저택이라 말하는 것은 그 안락함이 머무를 만 함을 일컬은 것이다.
【13】義를 바른 길이라 말하는 것은 그 올바름이 좇을 만 함을 일컬은 것이다.
【14】마음이 통함을 道라 하니 成名하였음을 일컬으며, 올바른 몸을 德이라 하니 立身하였음
을 일컫는다.

漢顯宗開佛化法本內傳
《傳》云: [明帝.永平十三年, 上夢神人, 金身丈六, 項有日光. 寤
已, 問諸臣下, 傅毅對詔: {有佛, 出於天竺.} 乃遣使往求, 備獲經
像及僧二人.[1] 帝乃爲立佛寺畵壁, 千乘萬騎繞塔三 . 又於南宮
[2]淸凉臺[3]及高陽門上 顯節陵所, 圖佛立像,[4] 幷《四十二章經》緘
於蘭臺石室, 廣如前集.]《牟子所顯傳》云: [時有沙門迦葉摩騰
竺法蘭, 位行難測, 志存開化. 蔡 使達, 請騰東行, 不守區域, 隨
至 陽,[5] 曉喩物情, 崇明信本. 帝問騰曰: {法王出世, 何以化不
及此?} 答曰: {迦毘羅衛國者, 三千大千世界 百億日月之中心也,
三世諸佛, 皆在彼生, 乃至天龍鬼神, 有願行者, 皆生於彼, 受佛
正化, 咸得悟道. 餘處衆生, 無緣感佛, 佛不往也. 佛雖不往, 光明
及處, 或五百年, 或一千年, 或二千年外, 皆有聖人, 傳佛聲敎而
化導之.}] 廣說敎義, 文廣故略也.《傳》云: [永平十四年正月一
日, 五岳諸山道士,[6] 朝正之次, 自相命曰: {天子棄我道法, 遠求
胡敎, 今因朝集, 可以表抗之.} 其表略曰: {五岳 十八山觀 太上
三洞弟子 善信等六百九十人, 死罪上言. 臣聞太上, 無形無名,
無極無上, 虛無自然, 大道出於造化之前, 上古同遵, 百王不易.
今陛下, 道邁羲 黃, 德高堯 舜, 竊承陛下, 棄本追末, 求敎西域,
所事乃是胡神, 所說不參華夏. 願陛下, 恕臣等罪, 聽與試驗. 臣
等諸山道士, 多有徹視遠聽, 博通經典, 從元皇已來, 太上群錄 太
虛符祝, 無不綜鍊, 達其涯極. 或策使鬼神, 或呑霞飮氣, 或入火
不燒, 或履水不溺, 或白日昇天, 或隱形不測. 至於方術, 無所不
能, 願得與其比較. 一則聖上意安, 二則得辨眞僞, 三則大道有歸,
四則不亂華俗. 臣等, 若比對不如, 任聽重決, 如其有勝, 乞除虛
妄.} 勅遣尙書令宋庠, 引入長樂宮, 以今月十五日, 可集白馬寺.
道士等, 便置三壇, 壇別開三十四門, 南嶽道士 善信, 華嶽道士
劉正念, 恒嶽道士桓文度, 岱岳道士焦得心, 嵩嶽道士呂惠通, ?
山 天目 五臺 白鹿等十八山道士祁文信等, 各 《靈寶眞文》·《太
上玉訣》·《三元符錄》等五百九卷, 置於西壇;《茅成子》·《許成
子》·《黃子》·《老子》等二十七家子書二百三十五卷, 置於中壇; 饌
食奠祀百神, 置於東壇; 帝御行殿在寺南門, 佛舍利 經 像, 置於
道西. 十五日齋訖, 道士等, 以柴荻和檀沈香爲炬, 經泣曰: {臣
等, 上啓太極大道 元始天尊 衆仙百靈. 今胡神亂夏, 人主信邪,
正敎失 , 玄風墜緖, 臣等敢置經壇上, 以火取驗, 欲使開示蒙心,
得辨眞僞.} 便縱火焚經, 經從火化, 悉從 燼,[7] 道士等, 相顧失
色, 大生怖懼. 將欲昇天隱形者, 無力可能, 禁效鬼神者, 呼策不
應, 各懷愧 , 南嶽道士費叔才, 自憾而死. 太傅張衍語 信曰:
{卿等所試無驗, 卽是虛妄, 宜就西來眞法.} 信曰:『《茅成子》云
[太上]者, 靈寶天尊, 是也. 造化之作, 謂之太素, 斯豈妄乎?} 衍
曰: {太素有貴德之名, 無言敎之稱, 今子說有言敎, 卽爲妄也.}
信默然. 時, 佛舍利, 光明五色, 直上空中, 旋環如盖, 遍覆大衆,
暎蔽日光; 摩騰法師, 踊身高飛, 坐臥空中, 廣現神變. 于時, 天
雨寶華, 在佛僧上, 又聞天樂, 感動人情, 大衆咸悅, 歎未曾有, 皆
法蘭, 聽說法要. 蘭, 吐梵音, 歎佛功德, 亦令大衆, 稱揚三
寶, 說: {善惡業, 皆有果報, 六道三乘, 諸相不一.} 又說: {出家
功德, 其福最高; 初立佛寺, 同梵福量.} 司空陽城侯.劉峻, 與諸官
人士庶等千餘人出家; 四嶽諸山道士呂惠通等六百三十人出家;
陰夫人 王 等, 與諸宮人婦女二百三十人出家. 便立十所寺,
七所城外, 安僧, 三所城內, 安尼, 自斯已後, 廣矣.]《傳》有五卷,
略不備載. 有人[8]疑此《傳》近出, 本無角力之事, 案《吳書》, 明費
叔才憾死, 故《傳》爲實錄矣.[9]
《법본내전》에 말하기를 [명제 영평 13년에 황제께서 신인의 꿈을 꾸었는데
1장6척의 금색 몸으로 목덜미로 햇살 같은 빛이 있었다. 잠에서 깬 뒤 신하들에
게 물으니 부의가 조서에 대답하기를 {부처님이란 분이 천축에서 나셨습니다}
하기에 사신을 파견하여 가서 구하게 하였더니 경전과 불상 및 승려 두명을 갖추
어 돌아왔다. 황제가 이에 그들을 위해 부처님의 사원을 세우고 벽화를 그렸으며
1천의 수레와 1만의 기마로 탑을 감싼 채 세 번을 돌았다. 또 남궁의 청량대와
고양문 위 및 현절능 등에 불화를 그리고 불상을 세운 뒤《사십이장경》과 아울
러 난대의 석실에 밀봉하여 보관하였으니, 자세한 것은 전집에 있는 것과 같다]
라 하였다.
《모자소현전》에 말하기를 [이 때에 사문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있었으니 처신
하는 바와 행동하는 바는 예측하기 어려웠으며 뜻은 중생을 개화시키는데 있었
다. 채음이 사자로 가서 마등에게 동쪽으로 갈 것을 청하니 구역을 지키지 않고
그를 따라 낙양에 이르러 중생들의 감정을 깨우쳐주고 믿음의 근본을 숭상하여
밝혔다. 황제께서 마등에게 묻기를 {법왕이 세상에 나오셨는데 어찌하여 그 교화
가 여기는 미치지 않는가?} 하니 답하기를 {가비라위국은 삼천대천세계와 백억
일월의 중심이니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모두 그 곳에서 태어나시고 게다가 천룡
과 귀신 등 원력의 행이 있는 자는 모두 그곳에서 태어나서 부처님의 바른 교화
를 받고 모두 도를 얻어 깨우치게 됩니다. 나머지 다른 곳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교화에 감응할 인연이 없기에 부처님께서 가시지 않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비록
가시지는 않지만 광명이 미치는 곳에는 혹은 5백년, 혹은 1천년, 혹은 2천년 뒤에
모두 성인이 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여 그들을 교화하고 이끌 것입니
다}]라며 가르침의 뜻을 폭넓게 얘기하였는데 그 글이 광범위하여 생략한다.
《법본내전》에 이르기를 [영평 14년 정월 초하루에 오대산악 모든 산의 도사들
이 정월 조례에 참석하던 차에 스스로 서로간에 논의하여 이르기를 {천자께서
우리의 도법을 버리고 멀리서 오랑캐의 가르침을 구하였으니 이제 조례에 모인
것을 기화로 표로써 항의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였으니 그 표를 간단히 요
약하면 {오악 십팔산관 태상 산동제자 저선신 등 6백90인은 죽을 죄로 말씀을
올립니다. 신들이 듣건대, 태상노군은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다함도 없고
위도 없으며 허무하고도 자연스러움에 큰 도가 천지가 조화되기 이전에 나왔기
에 상고로부터 한결같이 좇아지키며 백대의 제왕도 이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지
금의 폐하께서는 도가 복희씨나 황제씨 보다 나으며 덕은 요 임금과 순 임금 보
다 높으시거늘 가만히 듣자오니, 폐하께서는 근본을 버리고 끝단을 추구하여 서
역으로부터 가르침을 구하니 섬기는 바는 곧 오랑캐의 신이며 말하는 바는 화하
의 정서와 가지런하지 않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신 등의 죄를 용서하시고 시
험해 보임을 들어주십시오. 신 등 모든 산의 도사들은 대체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멀리까지 들으며 경전에 널리 통하여 원황 이래로부터 태상太上의 뭇 기록
과 태허太虛의 부축符祝 등 자세히 익히지 않은 것이 없으며 그 지극한 곳까지
통달하였습니다. 혹은 귀신을 채찍질하여 부리고, 혹은 노을을 삼키고 기운을 마
시며, 혹은 불 속에 들어서도 타지 않으며, 혹은 물을 밟아도 빠지지 않으며, 혹은
밝은 대낮에 하늘을 오르며, 혹은 모습을 숨겨 헤아리지 못하게도 합니다. 방술
에 이르러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원컨대 그들과 더불어 비교하여 주소
서. 그러시면 첫째는 성상의 뜻이 편안할 것이며, 둘째는 참과 거짓을 분별하게
될 것이며, 셋째는 대도가 그 귀의처를 가지게 될 것이며, 넷째는 화하의 풍속이
어지럽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 등이 만약 상대와 견주어 여의치 않다면 중대
결단에 맡겨 따르겠으며, 만일 이기는 바가 있으면 바라건대 허망한 것을 제거하
여 주십시오}라 하였다.
칙서를 내리고 상서령 송상을 파견하여 장락궁으로 불러들이고는 그 달 15일
에 백마사에 모이도록 하였다.
도사 등이 곧 세 개의 단을 설치하고 단에 따로이 34개의 문을 개설한 뒤에
남악도사 저선신과 화악도사 유정념과 항악도사 환문도와 대악도사 초득심과 숭
악도사 여혜통과 곽산 천목 오대 백록 등 18산 도사 기문신 등이 각자《영보진
문》과《태상옥결》및《삼원부록》등 5백9권을 가져다가 서쪽 단에 안치하였으
며,《모성자》 《허성자》 《황자》 《노자》등 27가家의 자서子書 2백35권을
중앙 단에 안치하였으며, 1백신에게 제사 드릴 음식은 동쪽 단에 두었으며, 제께
서 머무는 어행전은 절의 남쪽 문에 두었고 부처님의 사리와 경전 및 불상은 길
의 서쪽에 안치하였다.
15일 점심공양을 마치자 도사 등이 억새로 엮은 섶에 전단과 침향나무를 더하
여 횃불을 만들어 경전을 에워싼 채 울며 이르기를 {신 등은 위로 태극대도 원시
천존 중선백령에게 여쭈옵니다. 지금에 오랑캐의 신이 화하를 문란하게 하고 백
성의 주인된 이가 삿된 것을 믿으니 바른 가르침은 실종되고 현묘한 교풍은 그
위업이 땅에 떨어짐에, 신 등이 감히 단 위에 경전을 안치하고 불로써 시험하여
덮씌워진 마음을 열어 보임으로서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고자 합니다}라 하
였다.
곧 불을 놓아 경전을 태움에 경전이 불길을 따라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리니
도사 등이 서로 돌아보며 실색하고 크게 두려움을 드러내었다. 또한 하늘로 올라
가 모습을 숨기려고 하던 자는 그렇게 할 힘이 없었고 귀신을 주술로써 부리려던
자는 호통치고 채찍질하여도 응하지 않았기에 각자 부끄러운 생각을 품었으니,
남악도사 비숙재는 스스로 한탄하며 죽었다.
태부 장연이 저신에게 말하기를 {경 등이 시험한 바는 영험이 없으니 곧 이는
허망한 것이므로 마땅히 서쪽에서 온 참된 법을 취하겠다}고 하자 저신이 말하
길『《모성자》에 이르기를 [태상노군은 신령스럽고 보배로운 천존이 그 분이며,
조화를 지어 놓은 것을 일컬어 태소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허망한 것이
겠습니까} 하기에 장연이 이르기를 {태소는 귀하고 덕스러운 이름은 있으나 말
씀과 교법의 칭호가 없거늘 이제 그대가 말씀과 교법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곧
허망한 것이다} 하자 저신이 침묵하였다.
그 때에 부처님의 사리에서 오색광명이 곧장 공중으로 치솟아 마치 일산처럼
둥글게 선회하여 두루 대중들을 덮었고 그 빛은 햇빛을 가렸으며, 마등법사는 몸
을 솟구쳐 높이 날며 공중에서 앉고 눕는 등 신비한 변화를 널리 드러내었다. 이
때 하늘에서 보배로운 꽃비가 부처님과 스님네의 머리 위로 내리고 또한 하늘음
악이 들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니 대중들이 함께 기뻐하고 일찍이 없었던 일
이라 찬탄하며 모두 법란을 에워싼 채 불법의 요점을 설하는 것을 들었다. 법란
이 아울러 범음梵音을 내뱉으며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고 또한 대중으로 하여
금 삼보를 찬양하게 하며 설법하기를 {선업이던 악업이던 그 모두에 과보가 있
어서 육도와 삼승의 모든 상相이 하나가 아니니라} 하였으며, 또 설법하기를 {출
가의 공덕은 그 복이 가장 높으며, 처음으로 부처님의 사원을 세우면 범천梵天이
지닌 복의 양과 같다}라 하였다.
사공 양성후 유준은 모든 관인과 선비 및 서민 등 1천 여 명과 함께 출가하였
으며, 사악제산도사 여혜통 등 6백30인이 출가하였으며, 음부인과 왕의 궁녀 등
모든 궁인과 기녀 2백30인이 함께 출가하였다. 곧 10곳의 사찰을 세움에 7곳은
성밖에 세워 비구를 안치하고 3곳은 성안에 두어 비구니를 안치하였으니, 이로부
터 그 이후로 더욱 광범위해졌다]라 하였다.
《법본내전》은 5권이 있으나 생략하고 모두 싣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법본내전》이 근자에 나온 것이라 의심하며 본래 힘을 겨루었던
일이 없었다고 하였으나《오서》에 의하면 비숙촌이 한탄하며 죽은 것이 분명하
므로《법본내전》을 실록으로 여겼다.
【1】帝遣博士王遵等十八人, 同往西域, 求其佛法, 至月支國, 遇二梵僧, 帶白 畵釋迦立像及舍利
幷《四十二章經》, 白馬而至.
【2】禮部司.
【3】五臺山.
【4】明帝預造壽陵, 號曰顯節陵, 於此畵佛立像.
【5】 , 本作洛. 漁 云: [光武, 以漢火行忌水故, 去水加 , 自光武後, 改爲 字.]
【6】士者, 事也. 身心順理, 唯道是從, 從道爲事, 故曰道士也.
【7】佛經不燒, 但烟熏爲黃色而已. 其後造紙者, 表經皆染爲黃色而尊稱黃卷云.
【8】道士尹文操.
【9】《吳書》[ 澤對吳主曰: {佛法初來, 五岳道士與摩騰角力, 道士不如, 費叔才憾而死, 門徒歸
葬南岳, 故不預出家.}]
【1】황제가 박사 왕준 등 18명을 파견하여 함께 서역으로 가서 불법을 구하게 하였더니, 월지
국에 이르러 두 명의 범승을 만나서 흰 모직물에 그린 석가의 입상 및 사리를《사십이장
경》과 더불어 백마에 싣고 돌아왔다.
【2】예부의 관아이다.
【3】오대산이다.
【4】명제가 생전에 미리 무덤을 만들어 현절능이라 부르고는 그곳에 부처의 입상을 그렸다.
【5】 은 본래 洛으로 되어 있었다. 어환이 말하기를 [광무제가 한 나라는 火行이어서 水를
꺼리는 까닭에 水를 떼어버리고 를 더했더니, 광무제 이후로는 고쳐져 자가 되었다]
고 하였다.
【6】士란 섬긴다는 뜻이다. 몸과 마음이 이치에 순종하여 오직 道만을 좇으니, 道를 좇는 것을
일삼는 까닭에 道士라 일컫는 것이다.
【7】불경은 불타지 않고 다만 연기에 쪼여 황색이 될 뿐이었다. 그 후에 종이를 만드는 자가
경전을 표지 할 때는 모두 물들여 황색으로 만들었고 불경을 존칭하여 黃卷이라 하였다고
한다.
【8】도사 윤문조이다.
【9】《오서》에 [감택이 오나라 군주에게 말하였다. {불법이 처음 건너왔을 때 오악의 도사들이
마등과 더불어 힘을 겨루었는데 도사들이 뜻대로 되지 않자 비숙재가 원한을 품고 죽어
그 문도들이 남악으로 돌아가 장사를 지냈던 까닭에 출가에 참여하지 못하였습니다}]라
하였다.
隋高祖文皇帝勅文
皇帝敬問光宅寺.智 禪師.[1] 朕於佛敎, 敬信情重, 往者周.武之
時, 毁壞佛法, 發心立願, 必許護持, 及受命於天, 仍卽興復, 仰憑
神力, 法輪重轉, 十方衆生, 俱獲利益. 比以有陳虐亂殘暴, 東南
百姓, 勞役不勝其苦, 故命將出師, 爲民除害, 吳 越之地, 今得廓
淸, 道俗又安, 深稱朕意. 朕尊崇正法, 救濟蒼生, 欲令福田永存
津梁無極. 師旣已離世網, 修己化人, 必希奬進僧伍, 固守禁戒,
使見者欽服, 聞卽生善, 方副大道之心. 是爲出家之業, 若身從道
服, 心染俗塵, 非直含生之類, 無所依歸, 抑恐妙法之門, 更來謗
, 宜相勸勵, 以同朕心. 春日漸暄, 道體如宜也. 開皇十年正月
十六日, 內史令安平公臣李德林宣, 內史侍郞武安子臣李元操奉,
內史舍人裵矩行.
황제는 정중히 광택사의 지의선사에게 묻노라.
짐은 불교에 대해 공경하고 믿는 정이 막중함에, 지난 북주 무제 때 부처님의
법을 허물고 파괴하자 발심하여 원을 세워 반드시 불법을 보호하여 지킬 수 있도
록 허락하리라 하였더니, 하늘로부터 명을 받음에 이르러 거듭 일어나게 되고 우
러러 신력에 의지하여 법의 바퀴를 거듭 굴리게 되니 시방의 중생들이 모두 함께
이익을 얻게 되었도다. 근자에 진나라가 잔학하고 포악하여 동남방의 백성들이
노역으로 그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기에 장군에게 명하고 군사를 내어 백성들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니 오월의 땅은 이제 깨끗이 정리되고 도속道俗이 또한 안정
되므로 참으로 짐의 뜻에 맞도다. 짐은 바른 법을 존중하고 숭상하며 창생을 구
제함에 복전이 영원히 존속되고 진리의 나루터와 돌다리가 다함이 없기를 바라
노라. 선사는 이미 세속의 그물을 여의고 자신을 수행하며 타인을 교화할 새 필
시 승도들을 장려하여 매진케 하고 금지된 계율을 고수하여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경하여 복종케 하고 듣는 이로 하여금 곧 착한 마음을 내게 하면 바야흐로 대
도의 마음에 부응하게 될 것이오. 이는 출가의 본업이 되려니와, 만약 몸은 불도
의 법복을 따라다니되 마음은 세속의 티끌에 물들어 있으면 다만 생명을 머금고
있는 부류만이 귀의할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오묘한 불법의 문안에서
다시 비방과 원망만을 부를까 두려우므로 마땅히 서로 권면하고 책려함으로써
짐의 마음과 같이 될진저.
봄날이 점차 따뜻해지니 도체道體도 편안하리다.
개황 10년 정월 16일, 내사령 안평공 신 이덕림은 선포하고, 내사시랑 무안자
신 이원조가 받들어, 내사사인 배구가 시행하다.
【1】梁散騎常侍益陽公.陳起之第二子, 詣光州.大蘇山.思大禪師受心觀.
【1】양나라 산기상시 익양공 진기의 두 번째 아들로서, 광주 대소산 사대선사를 찾아가 心觀
(천태의 觀法)을 받았다.

晋王受菩薩戒疏[1]
使持節上柱國太尉公.楊州摠管諸軍事楊州刺使晋王弟子楊廣,
稽首奉請十方三世諸佛, 本師釋迦如來, 當降此土補處彌勒, 一切
尊經無量法寶, 初心以上金剛以降諸尊大權摩訶薩 , 酸支 緣覺
獨脫明悟二十七賢聖[2]他心道眼, 乃至三有最頂十八梵王, 六欲天
子, 帝釋天主, 四大天王, 天仙龍神飛騰隱顯 任持世界 作大利益
守塔衛法 防身護命 護持淨戒無量善神, 咸願一念之頃, 承佛神
力, 俱會道場, 證明弟子誓願, 攝受弟子功德. 竊以識暗萌興, 卽
如來性, 無明俯墜, 本有未彰, 理數斯歸,[3] 物極則反. 欲顯當果,
必積于因, 是調御世雄備歷生死, 草木爲籌, 不可勝計, 恒沙集
起,[4] 固難思議, 深染塵勞, 方能厭離. 法王啓運, 本化菩薩, 譬如
日出先照高山; 隨逗根宜, 權爲方便, 如彼衆流咸宗大海. 弟子,
基承積善, 生在皇家, 庭訓早趨, 胎敎夙漸,[5] 福履攸鍾; 妙機須
悟, 恥崎嶇於小逕, 希優遊於大乘, 笑止息於化城, 誓舟航於彼岸.
但開士[6]萬行, 戒善爲先, 菩薩十受,[7] 專持最上, 喩造宮室, 必因
基址, 徒架虛空, 終不成立. 弗揆庸 , 抑又聞之, 孔 老 釋門, 咸
資鎔鑄,[8] 不有軌儀, 孰將安仰? 誠復釋迦能仁, 本爲和尙, 文殊
師利, 冥作 梨, 而必藉人師, 顯傳聖授. 自近之遠, 感而遂通, 薩
陀波崙[9] 髓於無竭,[10] 善財童子忘身於法界, 經有明文, 敢爲臆
說? 深信佛語, 聿遵明導. 天台.智 禪師, 佛法龍象, 童眞出家,
戒珠圓淨, 年將耳順,[11] 定水淵澄, 因靜發慧, 安無 辯, 先物後
己, 謙相盛風, 名稱普聞, 衆所知識, 弟子所以虔誠遙注, 命 遠
迎, 每畏緣差, 値諸留難,[12] 亦旣至止, 心路豁然, 及披雲霧, 卽
消煩惱. 謹以今開皇十一年十一月二十三日, 摠管金城, 設千僧蔬
飯, 敬屈禪師, 授菩薩戒. 戒名爲[孝],[13] 亦名[制止],[14] 方便智
度,[15] 歸親奉極, 以此勝福, 奉資至尊皇后, 作大莊嚴, 同如來慈,
普諸佛愛, 等視四生, 猶如一子. 弟子卽日, 種羅 業, 生生世世,
還生佛家, 如日月燈明之八王子, 如大通智勝十六沙彌; 眷屬因
緣, 法成等侶, 俱出有流, 到無爲地, 平均六度, 恬和四等, 衆生無
盡, 度脫不窮; 結僧那於始心, 終大悲以赴難,[16] 博遠如法界,[17]
究竟若虛空,[18] 具足成就, 皆滿願海. 楊廣和南.[19]
사지절 상주국 태위공 양주총관제군사 양주자사 진왕제자 양광은 머리를 조
아려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본사 석가여래와, 이 땅에 응당 내려오실 보처
미륵과, 일체의 존귀한 경전 및 무량한 법보와, 초심 이상 금강 이하의 모든 존귀
하신 큰 방편의 마하살타와, 벽지불 및 연각승처럼 홀로 해탈하여 깨달음을 밝힌
스물 일곱 현인과 성인인 타심통과 도안을 지닌 이들 내지 삼계의 최정상인 십팔
범왕과, 육욕천자와, 제석천주와, 사대천왕과, 하늘신선 용신이 날아오르며 숨었
다 나타났다 하면서 이 세계를 맡아 지탱하고 큰 이익을 지으며 탑을 수호하고
법을 보위하며 신명을 막아 지키고 깨끗한 계율을 보호하여 지키는 무량한 선신
들에게 받들어 청하오니, 모두에게 원하건대 한 생각 사이에 부처님의 신비한 힘
을 받들고 함께 도량에 모여 제자의 서원을 증명하시고 제자의 공덕을 받아들여
주옵소서.
가만히 생각건대, 식의 어두움이 가만히 싹 터 일어난 것이 곧 여래의 성품이
건만 무명 속으로 굽어 떨어져서 본디 지니고 있던 것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니 [이 모든 것이] 이치와 운수가 돌아갈 바이므로 만물이 극에 달하면 곧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당래當來의 과보를 드러내고자 하면 반
드시 원인을 쌓아야 하니, 이는 조어세웅께서 삶과 죽음을 갖추어 겪었던 것이
모든 초목으로 산가지를 만들어 써도 모두 셈할 수 없고 항하의 모래를 모두 모
아 일으켜도 진실로 사량思量하기 어려운 것과 같이, 번뇌에 깊이 물들어야만 비
로소 염증을 내어 능히 여윌 수 있을 것입니다.
법왕께서 교화의 운을 열며 처음으로 보살을 교화하신 것은 비유컨대 해가 뜨
면 제일 먼저 높은 산을 비추는 것과 같으며, 근기의 마땅한 바에 따르고 맞추어
서 권도를 방편으로 삼은 것은 마치 저 여러 물줄기들이 모두 큰 바다로 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는 근본 적선을 승계하여 황가에서 태어나 황실의 가르침에 일찍 나아갔
으며 태교에도 일찍이 젖어 들었으니 복록이 모두 모인 바라 할 것입니다만, 묘
한 기밀을 모름지기 깨달아 작은 길에서 갈팡질팡 헤맴을 부끄러워하고 대승에
넉넉히 노닐기를 바라니 신기루의 성에서 머물러 쉼을 비웃으며 피안으로 배를
저어 갈 것을 맹세합니다. 다만 도를 일궈가는 선비의 만 가지 행위에서 계를 지
키는 선행이 가장 먼저가 되고 보살의 십무진계十無盡戒에서도 전일하게 지니는
것이 최상이니, 비유컨대 궁실을 지음에 반드시 기초되는 터로부터 의지하여야
지 다만 허공에 가설한다면 결국에는 이루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용렬하고 몽매함을 헤아리지 않고 또한 듣자오니 공자와 노자 및 석가 문중
모두는 녹여서 새로이 만들어 내는 것에 바탕하고 있으니 법칙과 위의가 있지
않다면 누가 장차 편안히 머무르고 우러러보겠습니까. 참으로 또한 석가능인께
서는 본래 스님이 되셨고 문수사리께서도 가만히 아사리가 되셨으나 반드시 인
간[으로서]의 스승[이라는 신분]에 의지하여 성스러운 가르침을 드러내어 전해
주셨습니다. 가까이로부터 먼 곳에 이르기까지 감응하면 마침내 통하는 것임에
살타파륜은 무갈에게 골수를 빻아 정성을 다하였고 선재동자는 법계에서 자신의
몸을 잊었으니, 경전에 분명한 문장이 있는데 감히 억지 얘기를 하겠습니까? 부
처님의 말을 깊게 믿고 오직 밝은 인도를 좇을 뿐입니다.
천태 지의선사는 불법 가운데의 용상龍象이라, 동진으로 출가하여 계행의 구
슬이 원만하고도 깨끗하며 나이가 곧 예순이 되고자 할 때 선정의 물결이 깊고도
잔잔하여 그 고요함으로 인해 지혜가 일어났으니, 거리끼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
으며 남을 앞세우고 자기를 뒤에 놓아 성대한 인기에도 겸양하였으니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대중들이 아는 바일세, 제자가 그런 까닭으로 지극한 정성을 멀리까
지 쏟아서 선박에 명하여 멀리에서 영접하게 함에 매번 인연이 어긋나서 머무르
게 하기가 어려웠음을 두려워하였으나, 또한 이미 이르러 머물게 되자 마음길이
시원스레 뚫렸고 구름과 안개를 헤쳐주심에 미쳐서는 곧 번뇌가 사라졌습니다.
삼가 개황 11년 11월 23일인 지금, 총관 금성에서 1천 승려에게 소반蔬飯을
베풀고 공경히 선사에게 몸을 굽히니 보살계를 내려 주셨습니다. 계는 이름을
‘효孝’라 하고 또는 ‘제지制止’라 하니, 방편과 지도智度로 어버이에게 귀의하여
받들기를 극진히 하고 이러한 수승한 복으로써 지존의 황후를 받들어 도와 큰
장엄을 지어서 여래의 자비와 같이 되게 하고, 모든 부처님의 사랑을 두루 미치
게 하여 사생四生을 동등하게 봄이 마치 외아들처럼 여기게 하여 주십시오.
제자는 오늘로 라후라의 업을 심어 세세생생 불가에 환생하길 마치 일월등명
불의 여덟 왕자나 대통지승여래의 열 여섯 사미와 같을 것이며, 권속의 인연으로
법을 이룬 무리들은 모두 유위의 흐름에서 벗어나 무위의 경지에 이르게 할 것이
며, 육도六度를 균등하게 하고 사등四等을 자연스레 조화시켜 다함이 없는 중생
을 끊임없이 제도하여 해탈하게 할 것이며, 처음 비롯하는 마음에 크나큰 서원을
맺어 마침내는 크나큰 자비로써 중생의 어려움에 나아가되 널리하고 멀리까지
함은 마치 가없는 법계처럼 하고 극진하고도 지극히 함은 마치 끝없는 허공처럼
하여 구족히 성취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서원의 바다에 충만하여지이다.
양광이 합장하옵니다.
【1】卽隋.煬帝.
【2】《釋籤》云: [阿含有十八學人 九無學人. 十八學人者: 一, 信行; 二, 法行; 三, 信解; 四, 見得;
五, 身證; 六, 家家; 七, 二種子; 八, 向初果; 九, 得初果; 十, 向二果; 十一, 得二果; 十二, 向
三果; 十三, 得三果; 十四, 中般; 十五, 生般; 十六, 有行; 十七, 無行; 十八, 上流. 九無學人
者: 一, 思; 二, 進; 三, 退; 四, 不退; 五, 不動; 六, 住; 七, 護; 八, 慧; 九, 俱. 此中, 信法二行
是賢, 餘皆名聖.]
【3】理數者, 天道至妙, 因數可以明其理, 盖理因數顯, 數假理出故, 理數, 可相倚而不可違也.
【4】恒沙, 亦云 伽河. 阿 達池, 四面各出一河, 東銀牛口, 出 伽河, 其沙極細而多, 喩過去受生
之數, 難量也.
【5】胎敎,《列女傳》[太妊有娠, 目不視惡色, 耳不聽狀聲, 口不言傲語, 能以胎敎子而生昌.] 又
[孕子時, 使 者鼓樂誦詩.]
【6】卽開導之士, 謂菩薩也.
【7】十無盡.
【8】鎔融, 陶鑄也.
【9】此云常啼.
【10】具云曇無竭, 此云法起. 常啼聞無竭在衆香城說般若, 叩骨取髓而求之.
【11】《論語》[六十耳順], 言聲入心通, 無所違逆, 事理皆通, 入耳無所不順.
【12】王欲受菩薩戒, 致書累請, 師初陳寡德, 次讓名僧, 後擧同學, 三辭而不能免, 乃赴之.
【13】孝順父母, 必須修善, 善不違理, 是名持戒.
【14】制止, 戒之別名, 制善令行, 止惡令斷.
【15】《淨名》疏云: [方便是權智, 權智外用, 能有成辦, 如父營求長成; 智度卽是實智, 實智有能顯
出法身之力故, 如母能生.]
【16】兩句卽《肇論》文. 僧那, 此云弘誓.
【17】無邊.
【18】無盡.
【19】王 戒師衣物五十八事, 供僧兼施曰 .
【1】즉 수나라 양제이다.
【2】《석첨》에서 말하였다. [아함에 18學人과 9無學人이 있다. 18학인이란 1이 信行이요, 2가
法行이요, 3이 信解며, 4가 見得이요, 5가 身證이요, 6이 家家며, 7이 二種子요, 8이 向初果
요, 9가 得初果며, 10이 向二果요, 11이 得二果요, 12가 向三果며, 13이 得三果요, 14가 中
般이요, 15가 生般이며, 16이 有行이요, 17이 無行이요, 18이 上流이다. 9무학인이란 1이 思
요, 2가 進이요, 3이 退며, 4가 不退요, 5가 不動이요, 6이 住며, 7이 護요, 8이 慧요, 9가 俱
이다. 이 가운데 信行과 法行은 곧 賢人이요 나머지는 모두 聖人이라 이름한다.]
【3】理數란, 하늘의 도가 지극히 오묘하나 숫자로 인하여 그 이치가 밝혀지는데, 대개 이치는
숫자로 인해 드러나고 숫자는 이치를 빌어 나오는 까닭에 理와 數는 서로 의지할 수는 있
으나 위배될 수는 없다.
【4】항사[→恒河]는 ‘긍가하’라고도 한다. 아뇩달지는 사면으로 각기 물줄기 하나씩을 내보냄에
동쪽의 은우구로는 긍가하가 흘러나오는데 그 모래가 지극히 미세하고도 많으니, 과거에
받았던 生의 숫자가 헤아리기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다.
【5】태교는《열녀전》에서 [태임이 임신을 하자 눈으로는 추악한 색을 보지 않고 귀로는 음란
한 소리를 듣지 않으며 입으로는 거만한 말을 하지 않는 등 임신한 채 자식을 교육시켜
昌을 낳았다]고 하였으며, 또 [자식을 임신하였을 때 소경으로 하여금 북을 치고 악기를
연주하게 하며 시를 읊조리게 했다]고 하였다.
【6】즉 어리석음을 깨닫게(開)하여 불도로 인도(導)하는 선비이니 보살을 일컫는다.
【7】십무진계(대승보살이 지키는 열 가지 계율)이다.
【8】녹여 융합시켜서 틀에 부어만들어 내는 것이다.
【9】이곳 말로는 상제이다.
【10】갖추어 말하면 ‘담무갈’로서 이곳 말로는 法起이다. 상제가 무갈이 중향성에서 반야의 법
을 설한다는 말을 듣고는 뼈를 빼내고 골수는 뽑아내어 가서 법을 구하였다.
【11】《논어》에서 [나이 60이면 들리는 모든 것이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하였으니, 소리가 마
음속으로 들어와 통함에 거슬리는 바가 없고 일의 이치를 모두 통달하였기에 귀에 들어
오는 것은 도리를 따르지 않은 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12】왕이 보살계를 받고자 하여 서신을 보내 누차 청하였으나 선사가 처음에는 [자신의] 덕
이 적음을 진설하고 다음에는 이름 있는 스님에게 양보하였다가 뒤에는 같이 공부한 도
반을 천거하였는데, 세 번이나 사양하였으나 면하지 못하자 이에 나아가게 되었다.
【13】부모에게 효도로서 순종하려면 반드시 善을 닦아야 하나니, 善이 이치에 어긋나지 않으
면 곧 그것을 이름하여 持戒라 한다.
【14】制止(정도에 알맞게 하는 것과 못하도록 그치게 하는 것)는 戒의 다른 이름이니, 善은 정
도에 알맞게 하여 시행되도록 하고 惡은 못하도록 그치게 하여 단절되게 하는 것이다.
【15】《유마경》의 疏에서 말하였다. [방편은 권지(중생 교화의 묘한 작용과 차별상을 통달한
지혜)이니 권지는 외부적인 쓰임이며 능히 이루어짐이 있음이 마치 에비가 성장을 도모
함과 같으며, 지도는 곧 실지(진리를 달관하는 참다운 지혜)이니 실지는 법신의 힘을 드
러내는 능력이 있는 까닭에 마치 에미가 능히 생산함과 같다.]
【16】두 구절은 곧《조론》의 문장이다. 승나는 이곳 말로 하면 弘誓이다.
【17】변두리의 끝이 없다.
【18】다함이 없다.
【19】왕이 계사에게 의복과 물품 58가지를 베풀었으니, 승려에게 공양을 겸하여 시주하는 것
을 이라 말한다.
梁皇捨道事佛詔[1]
梁.高祖.武皇帝, 年三十四登位, 在政四十九年, 雖億兆務殷而卷
不釋手, 內經外典罔不措懷, 皆爲訓解數千餘卷, 而儉約自節, 羅
綺不緣, 寢處虛閒, 晝夜無怠, 致有布被 莞席 草 葛巾. 初臨大
寶, 卽備斯事, 日惟一食, 永絶辛 , 自有帝王, 罕能及此. 舊事老
子, 宗尙符圖, 窮討根源, 有同妄作, 帝乃躬運神筆, 下詔捨道, 文
曰: [維天監三年四月八日, 梁國皇帝蘭陵.蕭衍, 稽首和南十方諸
佛 十方尊法 十方聖僧. 伏見經云: {發菩提心者, 卽是佛心, 其
餘諸善, 不得爲喩, 能使衆生, 出三界之苦門, 入無爲之勝路.} 故
如來漏盡, 智凝成覺, 至道通機, 德圓取聖, 發慧炬而照迷, 鏡法
流以澄垢, 啓瑞迹於天中, 靈儀於象外, 度群迷於慾海, 引含識
於涅槃, 登常樂之高山, 出愛河之深際, 言乖四句, 語絶百非. 應
跡娑婆, 示生淨飯, 王宮誕相, 步三界而爲尊, 道樹成光, 遍大千
而流照. 但以機心淺薄, 好生厭怠, 自期二月, 當至雙林, 爾乃湛
說圓常, 且復潛輝鶴樹,[2] 王滅罪,[3] 婆藪除殃,[4] 若不逢値大聖
法王, 誰能救接. 在跡雖隱, 求道無虧. 弟子, 經遲荒迷, 耽事老
子, 歷葉相承, 染此邪法, 習因善發, 棄迷知返, 今捨舊醫, 歸憑正
覺. 願使未來世中, 童男出家, 廣弘經敎, 化度含識, 同共成佛. 寧
在正法之中, 長淪惡道, 不樂依老子敎, 暫得生天. 涉大乘心, 離
二乘念, 正願諸佛證明, 菩薩攝受.] 弟子蕭衍和南.
양 고조 무황제는 나이 서른 넷에 보위에 올라 정사에 임한 지 마흔 아홉 해로
서, 비록 억조창생을 위하는 업무가 많았으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음에 내경과
외전을 두루 마음에 두지 않음이 없었으니 모두 수 천 권을 해석하고 풀이하였으
며, 검약하고 스스로 절제하여 비단옷은 두르지 않고 침실은 허전하였으되 밤낮
으로 게으르지 않았으니 심지어 무명이불과 왕골자리와 짚신과 칡두건 등도 있
었다. 처음 천자의 지위에 임하여 곧 이러한 일을 갖추고 하루에 오직 한 끼 만을
먹으며 영원히 매운 것과 비린내 나는 것을 끊었으니, 제왕이 있게 되고부터 능
히 여기까지 이른 이는 매우 드물었다.
예전에 노자를 섬기며 부적符籍과 도록圖 을 종지로 삼아 숭상하였으나 근
원을 남김없이 검토하여 보니 황망한 것과 같음이 있기에 제께서 이에 몸소 신령
스러운 붓을 놀려 조서를 내리며 도교를 버리게 하였으니, 그 글에서 말하였다.
[생각건대, 천감 3년 4월 8일 양나라 황제 난릉 소연은 머리를 조아려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시방의 존귀한 법과 시방의 성스러운 스님네께 합장하옵니다. 엎
드려 경전을 보니 그곳에 이르기를 {보리심을 내는 자는 곧 부처의 마음이며 그
나머지의 모든 선善은 이에 비유할 바가 되지 못하니,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삼
계의 괴로운 문에서 벗어나 작위하는 바가 없는 수승한 길로 접어들게 한다}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번뇌가 다하고 지혜가 엉기어서 깨달음을 이루
었으니, 지극한 도에서 진리의 기밀을 통하자 덕이 원만해져 성스러움을 취하게
되었으며, 지혜의 횃불을 일으켜 미혹을 비추시고 정법의 흐름을 거울삼아 때를
맑히며, 하늘 가운데서 상스러운 자취를 열고 신령스러운 위의는 형상 밖에서 빛
이 나며, 욕망의 바다에서 길을 잃은 군중을 제도하고 중생들을 열반으로 끌어들
이며, 상락常樂의 높은 산에 오르고 애하愛河의 깊은 물 속에서 벗어났으니, 말
은 사구四句를 어그러뜨리고 언어는 백 가지 잘못을 끊었으며 자취를 사바세계
로 응하여 정반왕에게 태어남을 보이시고 왕궁에 모습을 탄생하시어 삼계를 걸
으며 존귀한 자가 되셨으며 보리수에서 빛을 이루어 삼천대천 세계에 고루 비추
셨습니다. 다만 중생들의 근기의 마음이 천박한 까닭으로 싫어하고 게으른 생각
을 내기 좋아하기에 스스로 기약하여 2월에 마땅히 쌍림에 이르리라 하고는 이
에 고요히 원상圓常의 도리를 설하셨고 또 다시 학수鶴樹에서 빛을 숨기셨으니,
사왕은 죄를 멸함 받고 바수는 재앙을 덜게 되었음에 만약 대성법왕을 만나지
않았다면 누가 능히 구제하여 인도하였겠습니까. 자취에 있어서는 비록 숨겨졌
다 하나 도를 구함에는 이지러짐이 없습니다. 제자가 지난날 황당하고 미혹된 것
에 지체하며 노자를 섬기는 일을 탐닉하여 누대를 지나 이어오며 이 삿된 법에
물들었다가 인因의 종자로 익혀 두었던 선이 피어나 미혹을 버리고 돌이킬 줄
알게 되었기에 이제 옛 의사를 버리고 바른 깨달음에 귀의하여 의지할 것입니다.
원하옵건대, 미래세에서는 남자아이로 출가하여 널리 경전의 가르침을 퍼트리고
중생을 교화하여 제도함으로써 함께 성불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십시오. 차라리 바
른 가르침 가운데에서 길이 악도에 빠질지라도 노자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잠시
하늘에 태어남을 즐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승의 마음을 섭렵하고 이승의 생각
은 여윌 것이니, 정히 바라건대 모든 부처님께서는 증명하여 주시옵고 보살님은
섭수하여 주십시오. 제자 소연이 합장하옵니다.]
【1】梁.高祖, 姓蕭名衍, 蘭陵人. 漢相蕭何二十四代孫, 法名冠達.
【2】娑羅, 此云堅固, 八根合爲四株, 故號曰雙林. 佛臨涅槃時, 慘然變白, 其色如鶴, 故云鶴樹. 僧
亮云: [樹高五丈許, 上合下離, 其花甚白, 其實如甁, 香美具足.]
【3】摩竭陀國.頻婆王之子阿 世, 殺父心悔, 以熱惱故, 遍體生瘡, 臭不可近, 種種世藥, 難以療之,
耆婆勸王見佛, 王卽詣佛前, 慙愧悔罪, 佛入月愛三昧, 放光照之, 毒瘡卽愈, 亦罪消滅.
【4】《方等陀羅尼經》云: [爾時, 婆藪從地獄出, 將九十二億罪人, 來詣娑婆世界, 十方亦然, 文殊語
舍利弗言: {此諸罪人, 佛未出時造不善行, 經於地獄, 因於華聚放大光明, 承光而出}.] 婆天
藪慧, 云: [何天慧之人, 地獄受苦?]
【1】양나라 고조는 성이 蕭이고 이름은 衍이며 난릉 사람이다. 한나라 재상 소하의 24대손으
로 법명은 관달이다.
【2】사라는 이곳 말로는 堅固인데 여덟 뿌리가 합쳐져서 네 그루가 된 까닭에 雙林이라 부른
다. 부처님이 열반할 때 참담하여 하얗게 변했는데 그 색이 학과 같았기에 鶴樹라고 한다.
승려 亮이 이르기를 [나무의 높이는 5장 남짓으로 윗부분은 합쳐져 있고 아랫부분은 떨어
져 있으며 그 꽃은 매우 희고 그 열매는 마치 항아리 같은데 향기와 아름다운 모양을 모
두 갖추었다]고 하였다.
【沙羅樹】범어 s lav k a의 음역으로 沙羅 薩羅 蘇連이라고도 쓰고 堅固 高遠이라 번역한다.
龍腦香科에 속하는 喬木. 毘舍浮佛(과거 7불 중의 제3)이 이 나무 밑에서 開悟했다고 하며
석존이 ku inagara성 밖에 있는 이 나무의 숲 속 두 그루 沙羅樹, 곧 沙羅雙樹 사이에서
般涅槃하였으므로 이 숲을 沙羅雙樹林이라 한다. 단 이때 석존을 에워싼 雙樹는 사방에
각각 雙樹가 있었으므로 도합 8沙羅樹를 가리킨다고 하며, 또 8樹 가운데서 석존이 입적
할 때 4그루는 시들어버리고 4그루는 무성했다고 전하므로 이 沙羅雙樹를 四枯四榮樹라
한다.
【3】마갈타국 빈파왕의 아들 아사세는 부친을 살해한 뒤 진심으로 후회하며 熱惱한 까닭으로
온 몸에 두루 종기가 생겨서 그 악취로 근접할 수 없었는데, 가지가지 세상의 약으로도 치
료가 어렵자 나이 많은 할미가 부처님을 친견하기 권하니 왕이 곧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
부끄러움으로 죄를 후회하자 부처님께서 월애삼매에 들어가 방광하여 그를 비추니 毒瘡이
치유되었으며 죄과 역시 소멸되었다.
【4】《방등다라니경》에 [이때 바수가 지옥으로부터 나오며 92억의 죄인을 거느리고 사바세계
에 이르니 十方 역시 그러하였는데, 문수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 모든 죄인들은 부처
님께서 아직 세상에 나시지 않았을 때 선하지 못한 행위를 지어 지옥을 지나게 되었는데
화취보살이 대광명을 놓은 것으로 인연하여 그 빛을 받아 세상으로 나왔다}]라고 하였다.
‘바’는 天이요 ‘수’는 慧이니, 이르기를 [어찌 하늘지혜를 가진 사람이 지옥에서 고통을 받
는가?] 하였다.
仁宗皇帝讚三寶文
⊙ 讚 佛
天上天下, 金仙世尊, 一心十號, 四智三身,
度脫五陰, 超踰六塵, 生靈歸敬, 所謂能仁.[1]
하늘위와 하늘아래 대각금선 대성세존
한마음에 열의명호 넷지혜와 세몸으로,
오음망상 건네시고 육진장애 초월하니
생령들이 귀의함에 그러기에 능인일세.
⊙ 讚 法
萬法唯心, 心須至靜, 由彼一心, 能生萬行,
背覺爲妄, 悟眞則聖, 稽首法門, 昭然佛性.
모든만법 오직마음 참마음은 고요할뿐
그한마음 말미암아 만가지행 능히나네,
돌아서면 허망하고 깨달으면 성인이니
참법문에 머리숙여 밝은불성 귀의하네.
⊙ 讚 僧
六度無懈, 四恩匪常, 爲人眼目, 助佛津梁,
體潤一雨,[2] 心熏衆香,[3] 道無不在, 此土他方.
육바라밀 나태없고 네은혜에 무상이라
사람들의 눈이되어 부처도와 나루되니,
비한방울 몸적시고 향한개피 마음적셔
이곳저곳 어느곳도 도없는곳 없으리다.
【1】一切衆生, 皆有靈覺, 故曰生靈.
【2】一雨, 譬佛一味法也, 諸大沙門, 以身霑潤一味法雨也.
【3】僧寶, 心染戒定慧五分眞香也.
【1】일체 중생은 모두에게 靈覺(중생이 본래 모두 갖추어 있는 靈靈覺悟한 性)이 있는 까닭에
生靈이라 한다.
【2】한 방울의 비는 뛰어난 맛을 지닌 부처님의 법에 비유되니, 모든 대사문들이 몸으로써 뛰
어난 맛을 지닌 법의 빗방울에 젖어든다는 것이다.
【3】僧寶는 마음이 계정혜의 참된 오분향에 젖어든다.
宋文帝集朝宰論佛敎
文帝, 卽宋.高祖第三子也. 聰睿英博, 雅稱[令達]. 在位三十年,
嘗以暇日, 從容而顧問侍中何尙之 吏部羊玄保曰: [朕, 少來讀經
不多, 比日彌復無暇. 三世因果, 未辨措懷, 而復不敢立異者, 正
以卿輩時秀, 率所敬信也. 范泰 謝靈運常言: {六經典文, 本在濟
俗爲政.[1] 必求性靈眞奧, 豈得不以佛理爲指南耶?} 近見顔延之
《折達性論》[2] 宗炳《難白黑論》,[3] 深明佛法, 尤爲名理, 足開
奬人意. 若使率土之濱, 皆敦此化, 則朕坐致太平矣, 夫復何事?]
尙之對曰: [悠悠之徒, 多不信法. 以臣庸弊, 更荷褒拂, 非所敢當
之, 至如前代群英則不負明詔矣. 中朝[4]已遠, 難復盡知, 渡江以
來, 則[5]王導 周 庾亮 謝 謝尙 超 王坦 王恭 王謐 郭文
擧 謝敷 戴逵 許詢及亡高祖兄弟及王元琳昆季 范汪 孫綽 張玄
殷 等, 或宰輔之冠盖, 或人倫之羽儀, 或置情天人之際, 或抗跡
烟霞之表,[6] 志歸依, 措心歸信. 其間比對, 則蘭 護 開 潛
深 遁 崇 邃,[7] 皆亞迹黃中,[8] 或不測之人也. 慧遠法師嘗云:
{釋氏之化, 無所不可. 適道固自敎源, 濟俗亦爲要務.} 竊尋此說,
有契理要. 若使家家奉戒, 則罪息刑淸, 陛下所謂坐致泰平, 誠如
聖旨.] 羊玄保進曰: [此談, 皆天人之際, 豈臣所宜預? 竊謂秦
楚論强兵之事, 孫 吳盡呑倂之術, 將無取於此也.] 帝曰: [此非
戰國之具, 良如卿言.] 尙之對曰: [夫禮隱逸則戰士怠, 貴仁德則
兵氣衰. 若以孫 吳爲志, 苟在呑三, 亦無取堯 舜之道, 豈惟釋敎
而已哉!] 帝曰: [釋門有卿, 亦猶孔門之有季路, 所謂惡言不入於
耳也.] 自是, 文帝致意佛經, 及見嚴 觀諸僧,[9] 輒論道義, 屢延殿
會, 躬御地筵, 同僧列飯. 時有沙門竺道生者, 秀其群品, 英義獨
拔, 帝重之. 嘗述生頓悟義, 僧等皆設巨難, 帝曰: [若使逝者可
興, 豈爲諸卿所屈?][10] 時, 顔延之著《離識論》, 帝命嚴法師, 辨
其同異, 往返終日, 笑曰: [卿等今日, 無愧支 許之談也.][11]
문제는 송 고조의 셋째 아들이다. 총명하고 슬기로우며 영특하고 해박하여 ‘영
달令達’이라 아칭雅稱되었다. 재위 30년 되는 해, 일찍이 한가한 날을 틈타 조용
히 시중 하상지와 이부 양현보에게 의견을 물어 말하기를 [짐은 어려서부터 읽
은 경전이 많지 않은데 근자에 더욱더 틈이 없도다. 삼세의 인과는 아직 분명히
하여 마음에 품어두지 못하고 있으나 다시 감히 이견을 세우지 않는 것은 바로
경과 같은 이 시대에 빼어난 인물들이 따르며 공경하고 믿는 바이기 때문이다.
범태와 사령운이 항상 말하기를 {육경의 전적은 본디 세속을 구제하고 정치를
위하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반드시 성품과 신령의 참되고 오묘함을 구하고자 하
면 어찌 불교의 이치로써 지침을 삼지 않는 것입니까?} 하였다. 얼마 전에 안연
지의《절달성론》과 종병의《난백흑론》을 보니 불법을 깊이 있게 밝혀 놓았는데
더욱이 명가의 이론이 됨직하여 아울러 사람들의 뜻을 족히 깨우쳐 장려할 만하
였다. 만일 온 천하로 하여금 모두 이 교화에 돈독하게끔 한다면 곧 짐은 앉아서
태평에 이를 것이니 무릇 다시 무슨 일이 있겠는가?] 하였다.
하상지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유유자적하는 무리들은 흔히 법도를 믿지 않습
니다. 신의 용렬함과 피폐함으로써 다시 포양 揚하고 보필함을 떠맡았으나 감
히 감당할 바는 아니옵고, 만약 앞 시대의 군웅들이라면 곧 밝으신 조서를 저버
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조中朝는 이미 요원하여 모두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장강을 건너온 이래 곧 왕도 주의 유량 사몽 사상 극초 왕탄 왕공 왕밀 곽문거
사부 대규 허순 및 돌아가신 고조의 형제와 왕원림의 형 및 동생과 범왕 손작
장현 은의 등이 혹은 재상의 재목으로, 혹은 인륜의 의표로서, 혹은 뜻을 하늘사
람의 영역에 두고, 혹은 노을 밖에 자취를 남겼으니, 모두가 뜻을 받들어 돌아가
의지하였고 마음을 두어 귀의하여 믿었습니다. 그 사이에 견주어 짝 할 수 있는
이들로는 곧 우법란과 축법호와 우법개와 축도잠 및 법심(→康僧淵)과 지둔과
축법숭과 우도수 등인데, 모두 행적이 황중黃中에 버금가며 혹은 예측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혜원법사가 일찍이 말하기를 {석가의 교화는 가능하지 않은 바가
없습니다. 도에 나아감에 진실로 가르침의 근원으로부터 하며, 세속을 제도하는
일 역시 요긴하게 힘 쓸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였는데 이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치의 요점과 계합하는 바가 있습니다. 만약 집집마다 계를 받들도록 한다
면 곧 죄는 쉬어들고 형벌은 맑아질 것이니 폐하께서는 일컫는 바 처럼 앉아서
태평에 이르게 될 것이므로 진실로 성지聖旨와 같다 할 것입니다] 하였다.
양현보가 나아가 이르기를 [이러한 얘기는 모두 하늘사람의 영역임에 어찌 신
臣이 마땅히 간여할 바이겠습니까? 가만히 생각건대 진나라와 초나라는 군사를
강성하게 하는 일 만을 논의하였고 손자와 오자는 삼켜 아우르는 술책에만 진력
을 다하였으니 아마도 여기에서는 취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니 제께서 말하
기를 [이는 전쟁하는 나라의 도구가 아니니 참으로 경의 말과 같도다] 하였다.
하상지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무릇 은둔자들을 예우하면 곧 전사들이 태만해
지고 어짊과 덕을 귀하게 여기면 곧 병사들의 기운이 쇠퇴해진다 하였습니다. 만
약 손자와 오자의 술책으로 뜻을 삼아 씹어 삼키는데 진력한다면 역시 요순의
도 또한 취할 것이 없거니와 어찌 한갓 석가의 가르침일 따름이겠습니까] 하니
제께서 말하기를 [석가의 문중에 경이 있음은 마치 공자의 문중에 계로가 있음
과 같을지니, 소위 악한 말이란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였다.
이로부터 문제는 불경에 뜻을 두었으며, 혜엄과 혜관 등 모든 승려들을 보게
되자 번번이 도의 뜻을 논하였으며 누차 궁전에서의 모임을 베풀고는 몸소 바닥
의 대자리로 나아가 승려와 같은 반열에서 공양하였다. 이 때 사문 축도생이란
자가 있어 그 무리 가운데에서 빼어나고 영명하며 의로와 홀로 특출하기에 제께
서 그를 중히 여겼다. 일찍이 축도생의 돈오頓悟한 뜻을 찬술하였는데 승려들이
모두 크게 비난하거늘 제께서 말하기를 [만약 죽은 자를 다시 일어나게 할 수
있다면 어찌 여러 경들에게 굽힐 바가 되겠는가] 하였다. 이 때에 안연지가《이
식론》을 지으니 제께서 엄법사에게 명하여 그 같고 다름을 가리게 하고는 종일
토록 [문답이] 오가게 하고는 웃어 가로되 [경 등은 오늘에 지둔과 허순의 담론
에 부끄러움이 없도다] 하였다.
【1】句.
【2】衡陽太守何承天與惠琳比狎, 著《達性論》, 訶釋敎, 永嘉太守顔延之作《折達性論》, 往復再
三, 乃止.
【3】沙門惠琳假服僧衣, 而毁其法, 著《白黑論》, 太子舍人宗少文信法者也, 作《難白黑論》以難之.
【4】西晋.
【5】劉聰滅兩晋入據洛陽, 司馬睿渡江而都建康, 故曰渡江.
【6】《弘明集》具云: [王 周, 宰輔之冠盖; 庾 謝, 人倫之羽儀; 及三王, 或號體絶, 或稱獨步; 郭
謝 戴 許, 置情天人之際, 抗跡烟霞之表; 亡高祖兄弟, 以情識軌世; 王元琳昆季, 以才華冠朝.
其餘, 靡不時俊.]
【7】蘭, 于法蘭, 高陽人, 道振三河, 名流四遠. 護, 竺法護. 開, 于法開, 蘭公從弟也, 善講諸經, 尤
精醫術, 謝安 王文度, 悉以友善. 潛, 竺道潛, 字法深, 理致深遠, 風鑑淸高. 深, 時有名法深者,
亦以[英俊]稱. 遁, 支遁, 字道林, 與謝太傳 王右軍, 共結方外交. 崇, 法崇, 敏而好學, 又以
[戒律]見稱. 邃, 道邃, 燉煌人, 風鑑淸高, 內外該博, 法護常稱: [邃有古人風, 爲大法棟梁.]
【8】《文言》云: [君子黃中通理, 正位居體, 美在其中.]
【9】慧嚴, 豫州.范氏子, 羅什法師門人; 慧觀, 淸河.崔氏子, 十歲以博見知名, 亦羅什門人.
【10】按《通》載, 宋.文帝卽位九年, 法師道生著《頓悟成佛》等論, 明年正月, 隱 而化. 十二年, 帝詔
求沙門能述生法師頓悟義者, 刺吏庾登之以法瑗 僧弼等聞焉, 召對顧問, 瑗伸辨詳明, 尙之歎
曰: [意謂生公之後, 微言永絶, 今復聞象外之談, 所謂天未喪斯文也.]
【11】支遁 許詢共在會稽山, 每論道, 莫不歡欣.
【1】글귀이다.
【2】형양태수 하승천이 혜림과 더불어 어깨를 견주고 가까이 지내며《달성론》을 지어 석가의
가르침을 꾸짖어 나무라니, 영가태수 안연지가《절달성론》을 지어 두세 번 오가더니 이에
[하승천의 비방이] 그쳤다.
【3】사문 혜림이 거짓으로 승복으로 입고 불법을 허물며《백흑론》을 지으니, 태자사인 종소문
은 불법을 믿는 자였는데《난백흑론》을 지어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4】서진이다.
【5】유총이 兩晋[→西晋]을 멸하고 낙양에 들어가 자리하자 사마예는 장강을 건너 건강에 도
읍 하였던 까닭에 ‘강을 건넜다’고 말한 것이다.
【6】《홍명집》에서 갖추어 일컫기를 [왕도와 주의는 재상의 재목이며, 유량과 사몽은 인륜의
의표이며, 극초와 왕탄 왕공 왕밀은 혹은 體絶이라 불려지고 혹은 獨步라 일컬어지며, 곽
문거와 사부와 대규와 허순은 뜻을 하늘사람의 영역에 두고 노을 밖에 자취를 남겼으며,
돌아가신 고조의 형제는 情識으로써 세상에서 본보기가 되었으며, 왕원림의 형과 동생은
才華로써 조정에서 관직을 살았다. 그 나머지도 한 시기의 준재가 아님이 없다] 하였다.
【7】蘭은 우법란으로 고양 사람인데 도력을 三河지역에 떨치니 이름이 사방의 먼 곳까지 퍼져
갔다. 護는 축법호이다. 開는 우법개로서 우법란의 사촌 아우인데 모든 경전을 잘 강론하
였고 더욱이 의술에 정통하였으며 사안 및 왕문도 등이 모두 벗으로서 친하게 지냈다. 潛
은 축도잠으로 자는 법심이며 이치가 심원하였고 기풍이 청아하고도 고상하였다. 深은 당
시에 법심이라 이름하는 자가 있었으니, 역시 英俊하였다고 일컬어졌다. 遁은 지둔으로 자
는 도림이며 사태부 및 왕우군과 더불어 세속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교류를 함께 맺고 있
었다. 崇은 법숭으로 민첩하면서도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또한 戒律로써 일컬어지기도 하
였다. 邃는 도수로서 돈황 사람인데 기풍이 청아하고도 고상하며 안팎으로 해박하여 법호
가 항상 일컫기를 [도수는 옛사람의 기풍이 있어 큰 법의 동량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8】《주역》의 문언에서 말하였다. [군자가 黃中으로 이치를 통달하고 올바른 자리가 그 몸에
있으니 아름다움이 그 가운데 있다.]
【9】혜엄은 예주 범씨의 아들로서 구마라습법사의 문인이며, 혜관은 청하 최씨의 아들로서 10
살 때 박식한 견해로 이름이 알려졌으며 역시 구마라습의 문인이다.
【10】《통감》에 기재된 것에 의하면 송 문제 즉위 9년에 법사 도생이《돈오성불》등의 논서를
저술하더니 다음 해 정월에 안석에 의지한 채 임종하였다. 12년에 황제가 조서를 내려 사
문 가운데 도생법사가 밝힌 돈오의 뜻을 능히 서술할 자를 찾았더니 자사 유등지가 법원
과 승려 필 등을 거론하여 아뢰는지라 불러들여 질문을 해 보니 법원이 생각을 폄에 상
세하고도 분명하여 상지가 찬탄하며 이르기를 [생각건대 도생법사 이후 미묘한 언어는
영영 단절되었으리라 여겼더니 이제 다시 뜻밖의 담론을 들으니 소위 하늘이 아직 이 글
을 버리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리다] 하였다.
【11】지둔과 허순이 함께 회계산에 있으며 매번 道를 논하면서 마음으로 기뻐하지 않음이 없
었다.

明敎嵩禪師尊僧篇[1]
敎必尊僧, 何謂也? 僧也者, 以佛爲姓, 以如來爲家, 以法爲身,
以慧爲命, 以禪悅[2]爲食故, 不恃俗氏, 不營世家, 不修形骸, 不貪
生 不懼死, 不 乎五味.[3] 其防身有戒, 攝心有定, 辨明有慧. 語
其戒也, 潔淸三惑[4]而畢身不汚; 語其定也, 恬思慮正神明而終日
不亂; 語其慧也, 崇德辨惑[5]而必然; 以此, 修之之爲因, 以此, 成
之之爲果. 其於物也, 有慈有悲, 有大誓有大惠. 慈也者, 常欲安
萬物; 悲也者, 常欲拯衆苦; 誓也者, 誓與天下見眞諦; 惠也者,
惠群生以正法. 神而通之, 天地不能掩; 密而行之, 鬼神不能測.
其演法也, 辯說不滯; 其護法也, 奮不顧身, 能忍人之不可忍, 能
行人之不能行; 其正命也,[6] 食而食, 而不爲 ; 其寡欲也, 糞
衣[7]綴鉢[8]而不爲貧; 其無爭也, 可辱而不可輕; 其無怨也, 可同
而不可損. 以實相待物, 以至慈修己, 故其於天下也, 能必和, 能
普敬. 其語無妄故, 其爲信也至; 其法無我故, 其爲讓也誠; 有威
可敬,[9] 有儀可則, 天人望而儼然. 能福於世, 能導於俗. 其忘形
也, 委禽獸而不 ; 其讀誦也, 冒寒暑而不廢; 以法而出也, 遊人
間 聚落,[10] 視名若谷響, 視利若遊塵, 視物色若陽艶;[11] 煦 貧
病,[12] 瓦合輿擡而不爲卑;[13] 以道而處也, 雖深山窮谷, 草其衣
木其食, 晏然自得, 不可以利誘, 不可以勢屈, 謝[14]天子 諸侯而
不爲高; 其獨立也, 以道自勝, 雖形影相弔而不爲孤; 其群居也,
以法爲屬, 會四海之人而不爲混;[15] 其可學也, 雖三藏十二部 百
家異道之書, 無不知也, 他方殊俗之言, 無不通也, 祖述[16]其法則
有文有章也,[17] 行其中道則不空不有也; 其絶學也, 離念淸淨, 純
眞一如, 不復有所分別也. 僧乎! 其爲人至, 爲其心博,[18] 其爲德
備, 其爲道大, 其爲賢非世之所謂賢也, 爲其聖非世之所謂聖也,
出世殊勝之賢聖也. 僧也如此, 可不尊乎?
불교에서 반드시 승려를 존경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승려란 부처님으로써 성
씨를 삼고 여래로써 집을 삼으며 법으로써 몸을 삼고 지혜로써 생명을 삼으며
선정의 희열로써 음식을 삼는 까닭으로, 세속의 성씨에 기대지 않고 세간의 집을
꾸리지 않으며 형상을 닦지 않고 삶을 탐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섯
가지 맛에 젖어들지 않아야 한다.
그 몸을 가로막아 보호함에는 계행(戒)이 있고 마음을 다독거려 거두어들임에
는 선정(定)이 있으며 분별하여 밝힘에는 지혜(慧)가 있다. 그 계를 말하자면 세
가지 미혹됨을 깨끗이하여 이 몸이 다하도록 더럽히지 않는 것이요, 그 정을 말
하자면 사려를 고요히 하고 신명을 바르게 하여 종일토록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요, 그 혜를 말하자면 도덕을 숭상하고 의혹을 밝힘이 필연적이니, 이로써 그것
을 닦음을 인因이라 하고 이로써 그것을 이룸을 과果라 한다.
만물에 대해서는 자애로운 마음이 있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있으며 커다란
서원이 있고 커다란 은혜가 있다. 자애로움이란 항상 만물을 편안하게 하고자 함
이요, 가엾게 여김이란 항상 중생의 괴로움을 덜어주고자 함이요, 서원이란 천하
와 더불어 참된 법 보기를 서원함이요, 은혜라는 것은 여러 무리의 중생들에게
베풀기를 바른 법으로써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문의 자세는] 신기롭고도 통
하기에 천지가 능히 가리우지 못하고, 은밀히 행하기에 귀신도 능히 예측할 수
없다.
법을 연설하면 말이 뛰어나 막히지 않으며, 법을 수호하면 떨치고 일어남에
몸을 돌아보지 않으니 사람들이 참지 못하는 것을 능히 참아내고 사람들이 행하
지 못하는 것을 능히 행하며, 생명을 바르게 가짐에는 밥을 빌어서 먹더라도 부
끄러움으로 여기지 않으며, 욕심을 적게 가짐에는 누더기 옷과 꿰맨 발우라도 가
난하게 여기지 않으며, 다툼이 없음에는 [자신이] 욕됨을 받을지언정 [상대를] 가
벼이 여기지 않으며, 원망함이 없음에는 [상대방의 입장과] 같아지려고 할지언정
손해나게 하지는 않는다.
참된 모습으로써 만물을 대하고 지극한 자애심으로 자신을 닦으니, 그러므로
천하에 대해서는 반드시 화목할 수 있고 널리 공경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말에
허망된 것이 없는 까닭에 그 믿음 또한 지극한 것이며, 그 법에 나 자신이 없는
까닭에 그 겸양 또한 진실스러운 것이다. 위엄(威)이 있음에 가히 공경스럽고 품
의(儀)가 있음에 가히 본받을 만하니 하늘사람이 우러러보고 정중히 여기며, 능
히 세상에 복을 내려 주고 능히 세속을 이끌어 간다.
형상을 잊음에는 금수에게 던져 주어도 아까워하지 않으며, 경전을 독송함에
는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그만두지 않으며, 법을 위하여 세상에 나감에는 사람
들 사이에서 노닐고 취락을 두루 다니되 명예 보기를 마치 골짜기의 메아리 같이
여기고 이익 보기를 마치 떠다니는 먼지 같이 여기고 물질 보기를 마치 아지랑이
같이 여기며,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따뜻하게 보살핌에는 노복과 뒤섞이더라도
천하게 여기지 않으며, 도를 위하여 처신할 때는 비록 깊은 산 궁벽한 골짜기에
서 풀잎으로 옷을 입고 나무열매로 먹거리를 삼더라도 마음에 편히 여기고 만족
하게 생각하니 이익으로써 가히 유혹할 수 없고 권세로써 가히 굴복시킬 수 없고
천자나 제후의 자리를 떠나고도 스스로를 높게 여기지 않으며, 홀로 우뚝 섬에는
도로써 스스로를 이겨내니 비록 형상과 그림자가 서로 불쌍히 여기더라도 외롭
다 여기지 않으며, 무리지어 거처함에는 법으로써 권속을 삼으니 사해의 사람들
이 모두 모일지라도 혼잡하게 여기지 않으며, 가히 배울 만함은 비록 삼장과 12
부 및 제자백가와 외도들의 글이라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다른 지방의
특이한 풍속의 말이라도 통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법을 찬술하면 곧 참다운 글귀
가 있고 참다운 문장이 있으며, 중도를 행하면 곧 공空도 아니요 유有도 아니며,
배움을 끊음에는 잡념을 여의고 청정하여 그 순수하고 참됨이 한결 같으니 거듭
분별하는 바가 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승려’란 그 사람됨이 지극하고 그 마음 됨이 넓으며 그 덕됨이 두루 갖추어져
있고 그 도 됨이 크며, 그 어짊은 세속에서 말하는 바의 어짊이 아니고 그 성스러
움은 세속에서 말하는 바의 성스러움이 아니니 세속을 벗어난 수승한 어짊과 성
스러움이다. 승려란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존숭하지 않으리요.
【1】師諱契嵩, 津.李氏子, 嗣洞山.曉聰禪師. 作《原敎論》十萬言, 以抗韓愈排佛之說, 仁宗皇帝覽
而嘉之, 入大藏流行, 賜號明敎大師.
【2】禪定資神, 輕安適悅, 爲禪悅.
【3】《禮記》云: [飮食不 .] 注: 恣縱食味爲 , 之言, 欲也.
【4】殺 盜 狀.
【5】尊崇道德, 辨明疑惑. 又凡人若能知所當爲而無爲利之心, 其德自此而愈高, 不然而少有利欲之
心, 德不崇矣. 惑之甚者, 必起於微細, 能辨之於早則不至於大惑矣. 故, 懲忿所以辨惑也.
【6】知時乞食, 不以邪命, 是爲正命.
【7】南山云: [人之所棄, 無復堪用, 義同糞掃, 體是賤物. 離自貪着, 必不爲王賊所害, 得資身長道
也.]
【8】世尊, 成道三十八年, 赴王舍城國王請. 食訖, 令羅云[洗滌], 失手 暴鉢, 以爲五片, 佛言: [我
滅後, 初五百年, 諸惡比丘分毘尼藏爲五部.] 因以綴之, 故云綴鉢. 暴音朴, 擊聲也.
【9】或作警.
【10】《善見》云: [無市曰村, 有市曰聚落.] 聚 衆也, 落 居也.
【11】陽焰同. 陽艶, 風塵與日光交者也. 或云遊絲.
【12】《禮記》註云: [天以氣煦之, 地以形 之, 天覆煦而地 育.] 此言, 憐愍貧病, 若天地之覆育萬
物也. 又煦者, 陽氣和於萬物; 者, 婆心撫乎兒孫.
【13】《禮記》[毁方而爲瓦合.] 註云: [陶瓦之事, 其初則圓, 剖而四, 其形則方, 毁其圓以爲方, 合
其方而爲圓. 盖於函容之中, 未嘗無分辨也.]《左史》曰: [天有十日, 人有十等.] 註云: [王臣
曰公, 公臣曰大夫, 大夫臣曰士, 士臣曰包, 包臣曰輿, 輿臣曰隸, 隸臣曰僚, 僚臣曰僕, 僕臣曰
擡.]
【14】棄也, 絶也.
【15】雜也.
【16】仲尼祖述堯 舜, 註: 祖本也. 又遠祖諸古, 近述諸今.
【17】五色錦而成文, 黑白合而成章. 又粲然有文, 蔚然有章.
【18】與普同, 廣也, 大也.
【1】선사의 휘는 계숭이요 심진 이씨의 아들로서 동산 효총선사의 법을 이었다. 10만 자에 이
르는《원교론》을 지어 한유의 척불론에 대항하였더니 인종황제가 그것을 살펴보고는 가
상히 여기고 칙서를 내려 대장경 안에 포함시켜서 유포시키게 하고는 ‘명교대사’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2】선정이 정신을 도와서 가벼이 편안하며 쾌적한 기쁨을 지니면 禪悅이 된다.
【3】《예기》에 이르기를 [음식에는 깊게 젖어들지 말라] 하였는데 그 주석에서, 음식의 맛에
거리낌없이 빠져들면 이 되는데 이란 욕심(欲)을 말한다.
【4】살생과 절도와 사음이다.
【5】도덕을 존숭하고 의혹을 분명히 밝힘이다. 또한 무릇 사람이 만약 응당 해야 할 바를 능히
알되 이익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덕은 그로부터 더욱 높아질 것이며, 그렇지 않고 조
금이라도 이익이나 욕망의 마음이 있다면 그 덕은 숭고하지 않을 것이다. 미혹 가운데 정
도가 심한 것이라도 필시 미세한 것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니 조기에 능히 분별할 수 있다
면 커다란 미혹으로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분노를 삼가함은 미혹을 분별하
기 위함이다.
【6】때를 알아 걸식함에 邪命으로써 하지 않으면 곧 正命이 된다.
【7】남산이 말하였다. [사람이 버리는 바로서 감히 다시 사용하지 않는다 함은 의미로는 똥걸
레 같은 것이며 그 실체는 곧 천한 물건을 말한다. 탐욕과 집착을 여의면 필시 제왕이나
도적에게 해악을 입는 바가 되지 않으며 몸을 돕고 도력을 증장시킴을 얻을 것이다.]
【8】세존께서 성도한지 38년만에 왕사성 국왕의 청에 나아갔다. 공양을 마치고 라후라에게 씻
어라 하였더니 실수하여 발우를 깨트려 다섯 조각이 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입멸한 후 처음 오백년 동안에 모든 사악한 비구들이 율법을 나누어 다섯 부로 할 것이
다] 하시고는 그것을 꿰매었기에 綴鉢이라 일컫는다. 음은 박(朴)이며 부딪쳤을 때 나는
소리이다.
【9】혹은 警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10】《선견》에 이르기를 [시장이 없는 곳을 村이라 하고 시장이 있는 곳을 聚落이라 한다] 하
였다. 聚는 무리(衆)이며 落은 거주함(居)이다.
【11】陽焰(아지랑이)과 같다. 陽艶이란 바람에 이는 먼지가 빛과 더불어 교차하는 것이다. 혹
은 遊絲(아지랑이)라고도 한다.
【12】《예기》의 주석에 이르기를 [하늘은 기운으로써 따뜻하게 하고 땅은 형상으로써 따뜻하
게 하니, 하늘은 덮어서 따뜻하게 하고 땅은 따뜻하게 하여 양육함이다] 하였으니, 이는
빈곤하고 병든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치 하늘과 땅이 만물을 덮어 양육함과 같음
을 말한다. 또한 煦란 양기가 만물에 화합함이요 란 할미의 마음으로 자손을 어루만짐
이다.
【13】《예기》에 [모난 것을 허물어 瓦合이 되다] 하였는데 주석에 이르기를 [도자기란 것은 애
초에 둥근 것을 쪼개어 넷이 되게 하면 그 형상이 모가 나게 되는데 둥근 것을 허물어서
모가 나게 된 것이요 그 모난 것을 합하면 둥근 것이 되니, 대개 函容한 가운데에서는 나
누어 분별함이 없지는 않다] 하였다.《좌사》에 이르기를 [하늘에는 十日이 있고 사람에
게는 十等이 있다] 하였는데 주석에 이르기를 [왕의 신하를 公이라 하고, 공의 신하를 大
夫라 하고, 대부의 신하를 士라 하고, 사의 신하를 包라 하고 포의 신하를 輿라 하고, 여
의 신하를 隸라 하고, 예의 신하를 僚라 하고 요의 신하를 僕이라 하고, 복의 신하를 擡
라 한다]고 하였다.
【14】버리는 것이요 단절시킴이다.
【15】잡다함이다.
【16】중니가 요순의 도를 본받아 서술하여 밝혔다 하고는 그 주석에서 祖는 근본(本)이라 하
였다. 또 멀리로는 모든 옛것들을 본받아 모방하고 가까이는 모든 지금의 것을 서술하여
밝힌다 하였다.
【17】오색비단으로 文을 이루고 흑백이 합쳐져 章을 이룬다. 또는 찬연함에 文이 있게 되고
울연함에 章이 있게 되었다.
【18】普와 더불어 같으니 넓다는 것이요 크다는 것이다.
釋 難 文
希顔首座, 字聖徒, 性剛果,[1] 通內外學,[2] 以風節自持, 遊歷罷,
歸隱故廬, 跡不入俗, 常閉門宴坐, 非行誼[3]高潔者, 莫與友也. 名
公貴人, 累以諸刹[4]招之, 堅不答. 時有童行, 名參己, 欲爲僧, 侍
左右, 顔勝두非器, 잡횃釋棄 몽중(夢中)에는 잘 잡히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答 : 더 열심히 하다보면 꿈 가운데도 잘된다. 아직 덜 익어 서 그렇다.

問 :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수행자는 화두만을 전력으로 들 어 화두정(話頭定)에
들어가야 합니까?
答 : 화두가 두동강 나면 안 되니까〈화두정〉에 무릇 익어 서 들어가는 것을 의심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따로 의 심이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전체가 의심이니까, 따로
의심이라 할 것이 없는 것 ― 그것을〈화두정〉이라 한 다.

問 : 화두에 대한 의심은 수행자들의 생명입니까?
答 : 근본생명이다. 의심이 없으면 안 되는데 그것이 제일 가 까운 표현이다.

問 : 몸의 기(氣)와 혈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答 : 기(氣)란 혈을 돌릴 수 있는 기운을 말하고 신의(神醫) 들은 혈 돌아가는 것을 알고 옛
한의(韓醫)들은 침을 의지하여 기(氣) 돌아가는 것을 안다. 기운은 혈을 돌리 게 하는
힘을 말한다.

問 : 사후(死後)에도 외도(外道)들은 기(氣)만 남는다 하는데 어떻습니까?
答 : 그건 자기들의 이름이지 불가(佛家)에서는 팔식(八識), 잠재해 있는 의식, 버릇만
남는다 한다.

問 : 죽는다는 것은 슬픈 것입니까?
答 : 죽음을 모르니까 슬픈 것이다.(망식으로 미쳐서 슬프게 느끼는 것이다.)

問 : 닦은 것만큼 죽어서도 간직합니까?
答 : 그렇지. 그대로 나타난다. 관상이 초년부터 나타나는 것
이 그것이다. 겉모습이 좋으면 마음도 좋은 것인데 잘 볼 줄 몰라서 그렇다. 고집도
나타나는데 자기 생각으 로 치우쳐 보여서 그렇다. 그것을 아상(我相)이라 한다.
이름
이 참기參己인 행자가 있었는데 승려가 되어 가까이서 시봉하고자 하였으나 희
안이 그가 그릇이 아님을 알고는《석난문》을 지어 그것으로써 그를 물리치며 말
하였다.
[아들 알기로는 아비 만한 자가 없으며 아비 알기로는 아들 만한 자가 없다
하였으니, 우리 참기는 승려가 될 그릇이 아니다. 대저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일
이 어찌 세세한 일이겠는가. 이는 안락하고 편안함을 구하는 것도 아니요 따뜻하
고 배부름을 구하는 것도 아니며 달팽이 뿔 위에서 이익이나 명예를 구하는 것도
아니니, 바로 삶과 죽음을 위함이고 중생을 위함이며 번뇌를 끊고 삼계의 바다를
벗어나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고자 함이다. 성인이 계셨던 때와는 멀어져 아득
하고 불법은 크게 무너졌음에 네가 감히 되기를 바라는가?
《보량경》에 이르기를 {비구가 비구의 법을 닦지 않으면 대천세계에 침 뱉을
곳이 없다} 하였고《통혜록》에 이르기를 {승려가 되어 10과科에 참여하지 못하
면 부처님을 섬기더라도 한 평생이 헛수고일 뿐이다} 하였으니 그렇게 됨이 어
렵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보건대 나도 외람되이 승려의 무리에 끼어
부처님을 기만함이 있거늘 하물며 네가 그것을 하려는가?
그러나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되 진실로 3승의 12분교와 주공이나 공자의 도
를 모르고 인과를 밝히지 못하며 자기의 성품을 통달하지 못하고 농사일의 어려
움을 알지 못하며 신도들의 시주물이 소화하기 어려운 것임을 생각하지 못한 채,
다만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며 재齋를 깨트리고 계戒를 범하며 장사치로 나다니고
들어앉아 물건 팔며 도둑질과 간음에 장기 두고 바둑 두면서 사원이나 넘겨다보
며 화려한 수레로 출입하면서 자신 한 몸만을 받들어 살찌울 뿐이다.
슬프도다! 6척의 몸은 있으되 지혜가 없으니 부처님께서 이를 두고 어리석은
승려(痴僧)라 하였으며, 3촌의 혀는 있으되 능히 설법하지 못하니 부처님께서 이
를 두고 벙어리 염소 같은 승려(啞羊僧)라 하였으며, 승려 같으나 승려가 아니요
속인 같으나 속인도 아니니 부처님께서 이를 두고 박쥐같은 승려(鳥鼠僧)라 하
였고 또 대머리 거사(禿居士)라 하였다.
《능엄경》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도적이 나의 옷을 빌어 입고 여래를 팔아 각
종의 업을 짓는가?}라 하였으니 세상을 건지는 배가 아니라 지옥 종자일 따름이
다. 설령 미륵이 이 세상에 내려온다 한들 머리를 내밀 수 있겠는가? 몸은 이미
철위산에 빠졌으니 온갖 고통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로다. 만약 지금에 그렇게
하는 자가 혹은 1백이요 혹은 1천이요 심지어 천만을 헤아리더라도 겉으로 복종
할 뿐이니 그 내심을 돈독히 밝힌다면 어찌 있다 하겠는가. 말하자면 맹금猛禽의
날갯짓에 봉새 울음 우는 격이니, 자질구레한 돌덩이는 옥석이 아니요 널리 흩어
져 무성한 대쑥은 설산의 인내초가 아닌 격이다.
나라에서 승려를 득도시킴은 본디 복을 빌고자 함인데 지금은 도리어 정전丁
錢으로 빗을 받아 감으로써 백성들에게 승려가 그렇지 못함을 보이니 우리 무리
들로 하여금 족히 대접받지 못하게 함이 심할 뿐이다. 다만 예전의 육왕련과 영
안숭과 용정정 및 영지조 등과 같은 이들은 한 마리 여우의 겨드랑이 털이요 그
나머지는 천 마리 양의 가죽일 뿐이니 어찌 족히 말하겠는가. 오호라! 부처님의
바다가 더럽혀지고 때가 낀 것으로는 오늘날의 심각함이 아직 있지 않았으니 가
히 지혜로운 자와 더불어 말할 것이로되 속인과는 함께 말하기 어렵도다.]
【1】剛毅果斷.
【2】釋氏, 以佛經 禪策爲內, 以儒道諸家爲外.
【3】與義同.
【4】《垂裕記》云: [盖取莊嚴差別, 名之爲刹.] 此, 通指國中名刹也. 又伽藍, 號梵刹者,《輔行》云:
[西天以樹表刹, 示所居處也.]《阿含》云: [若沙門於佛法中, 勤苦得一法者, 便當竪幡刹, 以告
四遠也.]
【5】上, 卽編集者所敍.
【6】蠻與觸二國, 在蝸兩角上, 日以戰爭, 伏尸盈溝, 言名利之不實.
【7】比丘若無戒行, 五百大鬼從後掃其跡, 然則無容身之地. 無唾處者, 斯之謂矣.
【8】僧錄贊寧, 字通遠, 錢塘.高氏子. 太宗賜號通惠大師. 嘗撰《大宋高僧傳》, 其後序云: [爲僧不預
十科]云云.
【9】《書》云: [知稼穡艱難, 乃逸則知小民之所依.] 註: 以勤爲逸也; [不知稼穡之艱難, 乃逸.] 註:
以逸爲逸也.
【10】行販曰商, 坐賣曰賈.
【11】博, 卽六博, 雙六也. 又投瓊曰博, 瓊卽今 子也. 奕, 圍碁也. 音投. 博與奕, 皆姦巧之事也.
【12】《漢書》註云: 音冀, 幸也, 欲也, 謂幸得其所欲也. 言幸得盛刹, 欲以榮身逸志.
【13】雖不破齋, 根鈍無慧, 不分好惡輕重, 不知有罪無罪, 若有僧事, 二人共爭, 不能決斷, 默然無
言, 如啞羊, 人殺之, 不能作聲. 又各喩二意, 啞, 無說法之能, 羊, 無聽法之用也.
【14】《正法念經》云: [ , 人捕鳥時, 入穴爲鼠, 人捕鼠時, 出穴爲鳥.] 避僧避俗曰鳥鼠, 佛取之
爲喩也.
【15】僧形俗行曰禿居士.
【16】裨, 附也. 裨附佛敎中, 以佛貪販利養也.
【17】《楊子法言》[鳳鳴而 翰.] 註: 凡鳥之勇 獸之猛悍者, 皆曰鷲. 又猛擊鳥也.
【18】蕭, 草名, 白葉莖序, 科生香氣, 祭則 以報氣也. 艾,《說文》[氷臺]也.《博物志》[削氷令
圓, 擧以向日, 以艾承其影得火, 故號氷臺.]
【19】香草也.
【20】出家功德, 至大至重, 設若度人爲僧, 國祚綿長, 是古制也, 今則懲以丁年差役軍夫之錢, 蔑視
吾徒之至也.
【21】育王寺.懷璉禪師.
【22】永安寺.戒嵩禪師.
【23】南山.龍井寺.元淨禪師.
【24】靈芝寺.元照律師.
【25】師古曰: 狐腋下之皮, 輕柔難得.
【1】강직하여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결단함이다.
【2】불가에서는 불경과 참선의 경책을 內典으로 여기고 유교와 도교 등의 諸家의 것을 外典으
로 여긴다.
【3】義와 같다.
【4】《수유기》에 이르기를 [대개 장엄의 차별을 취하여 이름한 것이 刹이 되었다] 하였으니 이
는 통상적으로 나라 안의 名刹을 지적한 것이다. 또 가람을 梵刹이라 부르니,《보행》에 이
르기를 [서역에서는 나무로써 사찰이라 표방하여 거처하는 바를 드러내 보인다] 하였으
며,《아함》에 이르기를 [만약 사문이 불법을 닦던 중에 어렵사리 한 법을 얻게 되면 곧 응
당 幡刹을 세움으로써 사방 먼 곳까지 그 사실을 알린다] 하였다.
【5】윗부분은 편집자가 서술한 것이다.
【6】蠻과 觸 두 나라는 달팽이의 두 뿔 위에 있는데 날마다 전쟁을 치루어 주검이 봇도랑에
가득 찼다 하였으니, 명예와 이익은 실 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7】비구가 만약 계행이 없으면 5백명의 큰 귀신들이 그 뒤를 쫓으며 그의 자취를 쓸어버리니,
그렇게 되면 몸덩이를 용납할 땅이 없게 된다. 침 뱉을 곳이 없다는 것이 이를 일컫는 말
이다.
【8】승록 찬영은 자가 통원이요 전당 고씨의 아들이다. 태종이 ‘통혜대사’란 호를 하사하였다.
일찍이《대송고승전》을 편찬하였는데 그 後序에서 이르기를 [승려로서 10과에 참예하지
못하면…] 운운하였다.
【9】《서경》에 이르기를 [농사의 어려움을 알고서 이에 逸한 즉 소시민이 의지하는 바를 알 수
있다]라고 하니 주석에서 勤(열심히 노력하다)으로써 逸의 뜻을 삼은 것이다 하였으며,
[농사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이에 逸한다]라고 하니 주석에서 逸(편안히 노닐다)로써
逸의 뜻을 삼은 것이다 하였다.
【10】다니며 판매하는 것을 商이라 하고 앉아서 파는 것을 賈라 한다.
【11】博은 곧 六博을 말하니 雙六이다. 또 주사위 놀음(投瓊)을 博이라 하는데, 瓊은 곧 지금
의 주사위이다. 奕은 바둑이다. 의 음은 투(投)이다. 博과 奕은 모두 간교한 일이다.
【12】《한서》의 주석에 이르기를, 의 음은 기(冀)로서 희망하다는 뜻이며 는 하고자한다는
뜻이니 [ 는] 하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도록 희망함을 일컫는다. 성대한 사찰을 얻
어 몸을 영예롭게 하고 뜻을 안일하게 가지게 되기를 희망함을 말한다.
【13】비록 齋戒를 파하지는 않았으나 근본이 아둔하고 지혜가 없어 좋고 나쁨과 가볍고 무거
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죄가 있음과 죄가 없음을 알지 못하니, 만약 僧家의 일이 있어 두
사람이 다투더라도 능히 결단을 내려주지 못한 채 묵묵히 말이 없는 것이 마치 벙어리양
이 사람이 죽이더라도 능히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한 두 의미를 각기 비유
하고 있으니, 啞는 설법할 능력이 없음을 비유하였고 羊은 법을 듣고도 활용하지 않음을
비유하였다.
【14】《정법념경》에 이르기를 [박쥐는 사람들이 새를 잡을 때는 구멍으로 들어가 쥐가 되고 사
람들이 쥐를 잡을 때는 구멍을 나와서 새가 된다] 하였는데, 승가를 회피하고 속가도 회
피하는 것을 鳥鼠라 말함에 부처님이 이 말을 취하여 비유한 것이다.
【15】승가의 모습으로 속가의 행위를 하는 자를 독거사라 말한다.
【16】裨는 부착됨이니, 불교 가운데 빌붙어 부처님을 이용하여 이익을 탐냄이다.
【17】《양자법언》에 [봉황새가 울면 맹금이 날갯짓한다] 하고는 주석에, 무릇 날짐승 가운데
용맹스러운 것과 들짐승 가운데 사나운 놈은 모두 鷲라 한다고 하였다. 또는 猛擊鳥이다.
【18】蕭는 풀이름으로 잎사귀는 희고 줄기는 거칠며 뿌리에서 향기가 나는데 제사 때는 불에
살라서 기운을 북돋운다. 艾는《설문》에서 말한 氷臺이다.《박물지》에 [얼음을 깎아 둥
글고 만들어 해를 향하게 들고 서서 그 그림자를 쑥으로 받으면 불을 얻게 되는 까닭에
氷臺라 부른다] 하였다.
【19】향기 나는 풀이다.
【20】출가의 공덕은 지극히 크고도 막중한지라 만약 속인을 득도시켜 승려가 되게 하면 나라
의 복록이 길이 이어진다고 여기는 것이 오랜 제도이거늘, 지금엔 만 20세에 부역이나 군
역 나가는 대신 내는 돈으로써 책임을 징계토록 하니 우리 무리를 멸시함이 매우 심하다.
【21】육왕사의 회련선사이다.
【22】영안사의 계숭선사이다.
【23】남산 용정사의 원정선사이다.
【24】영지사의 원조율사이다.
【25】안사고가 말하기를, 여우의 겨드랑이 아래쪽 가죽은 가볍고도 부드러운데 얻기 어렵다.
范蜀公送圓悟禪師行脚[1]
觀水莫觀汚池水, 汚池之水魚鱉卑.
登山莫登 山,[2] 之山草木稀.
觀水須觀滄溟廣, 登山須登泰山上.
所得不淺所見高, 工夫用盡非徒勞.
南方幸有選佛地, 好向其中窮妙旨.
他年成器整頹綱, 不負男兒出家志.
大丈夫休擬議, 豈爲虛名滅身計.
百年隨分覺無多, 莫被光陰暗添歲.
成都 是繁華國, 打住只因花酒惑,
吾師幸是出家兒, 肯隨齷齪[3]同埋沒.
吾師幸有虹 志,[4] 何事躊躇溺泥水?
豈不見?
呑舟之魚不隱卑流, 合抱之木不生丹丘.
大鵬一展九萬里, 豈同春岸飛沙鷗?
何如急駕千里驥? 莫學 戀一枝.[5]
直饒講得千經論, 也落禪家第二機.
白雲長是戀高臺, 暮 朝籠不暫開,
爲慰蒼生霖雨望, 等閑依舊出山來.
又不見?
荊山有玉名瓊瑤, 良工未遇居蓬蒿,
當時若不離荊楚, 爭得連城價倍高?
그대물을 볼라치면 얕은물은 보지말라,
얕은물은 자라고기 있다하나 잔챙이뿐.
그대산을 오를려면 동산일랑 생각마라,
올망졸망 낮은산은 풀과나무 드문드문.
물보려면 모름지기 넓은바다 봐야하고,
산오를땐 모름지기 태산정상 오를지라.
얻는바가 얕지않고 보는바가 드높으면,
힘을다해 공부해도 그노력이 헛되잖네.
남방에는 다행스레 부처뽑는 땅있으니,
그대좋이 거기가서 오묘한뜻 찾을지다.
다른날에 그릇이뤄 이기강을 걺어지면,
남아로써 출가한뜻 저버림이 아닐지다.
대장부면 이리저리 꾀하는일 그만두라,
어찌헛된 이름위해 멸신계책 세우는가.
백년동안 본분따라 깨달아도 많잖으리,
빛줄기가 가만가만 주는나이 먹을겐가.
성도땅은 더군다나 좀번화한 도읍진가,
주저앉아 머문다면 꽃술유혹 인할지나,
우리스님 다행스레 출가사문 몸인지라,
이세상의 좀스러움 따라매몰 되겠는가.
우리스님 다행스레 무지개뜻 품은지라,
무슨일로 머뭇하다 흙탕물에 빠지겠나.
어찌하여 그대진정 이것보지 못했던가?
배삼키는 여느고기 얕은물에 숨을거며,
아름드리 여느나무 민둥산에 자라는가.
저붕새는 한달음에 구만리를 날아가니,
어찌하여 봄강변의 갈매기와 짝하리오.
어찌급히 천리마를 모는것과 비길건가,
여린뱁새 애타는맘 그대배워 무엇하리.
그대설사 넉넉잡아 일천경론 강설해도,
선가문턱 발들이면 第二機로 떨어지리.
흰구름이 길게뻗어 높은누대 연모하여,
아침이나 저녁이나 감싸안고 있다가도,
창생들의 목마름을 위로하기 위함이면,
툴툴털고 예전처럼 산을내려 나오노라.
어찌하여 그대또한 이것보지 못했던가?
형산위에 옥이있어 이름하여 경요지만,
좋은장인 못만나서 쑥풀속에 묻혔더니,
그때만약 가시덤불 여의지를 못했다면,
어찌하여 뭇성들의 가격보다 높으리오.
【1】范鎭, 字景仁, 華陽人. 擧進士第, 官至翰林學士, 封蜀國公, 以戶部侍郞致仕. 克勤禪師, 字無
着, 彭州.駱氏子, 受具後, 遊成都, 從敏行大師學經論, 蜀公作詩以送. 後, 徽宗賜號圓悟.
【2】《吳季重書》云: [登東山然後, 知衆山之 .] 注: 小而相連曰 .
【3】急促局狹貌.
【4】《音義》云: [雙色鮮, 盛者爲雄, 闇者爲雌.] 朱子曰: [日與雨交, 然成質, 不當交而交, 天地
之淫氣也. 陽氣下而陰氣應則爲雲而雨, 陰氣起而陽不應則爲虹.]
【5】《莊子》[ 巢於深林, 不過一枝.]
【1】범진은 자가 경인으로 화양 사람이다. 진사로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한림학사에 이르
렀으며 촉국공에 책봉되었다가 호부시랑의 직위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극근선사는 자가
무착으로 팽주 낙씨의 아들이니, 구족계를 받은 후에 성도를 유력하다 민행대사를 좇아
경학을 배움에 촉국공이 시를 써서 보내었다. 휘종이 ‘원오’라는 호를 하사하였다.
【2】《오계중서》에 이르기를 [동산에 오른 연후에야 뭇 산들이 완만히 이어져 있음을 안다] 하
고는 주석에서, 작으면서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라 말한다고 하였다.
【3】급히 재촉하며 국면이 협소한 모양.
【4】《음의》에 이르기를 [雙色이 선명함에 치성한 것이 雄이 되고 어두운 것이 雌가 된다] 하
였으며, 주자가 이르기를 [햇살과 빗방울이 교차하여 갑자기 형질을 이룬 것이니 마땅히
교차하지 않을 것이 교차한 것으로서 천지의 淫氣이다. 양기가 내려옴에 음기가 상응하면
곧 구름이 되어 비를 뿌리고, 음기는 일어서지만 양기가 상응하지 않으면 곧 무지개가 된
다] 하였다.
【5】《장자》에 [뱁새와 굴뚝새는 깊은 수풀 속에 보금자리를 짓더라도 [필요한 것은]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吉州龍濟山友雲 和尙蛇穢說[1]
世間最毒者, 無甚於蛇 ,[2] 至穢者, 莫過乎便利. 盖蛇 之毒,
能害人之性命, 便利之穢, 能穢人之形服. 所以, 欲保其性命也,
必遠於毒害, 欲潔其形服也, 必除其穢惡. 如世之人, 夢蛇 卽欣
其有財, 夢便利卽悅其獲利, 何寤寐愛惡之不同哉? 苟知惺有所
忌 寤有所懼, 又何必見財斯喜, 見利斯悅者乎? 財之毒尤甚於
蛇 , 利之穢更過乎便利. 且古之人, 以財害乎性命者不止於一,
以利汚乎形服者, 亦有其衆而由不悟者, 愛之而不已, 貪之而不止,
是亦可悲也. 且夫! 貧也富也, 人之分定也, 能安其分, 雖貧亦樂,
不安其分, 縱富常憂, 能知分之可安 貧之可樂, 則性命可以保而
生, 形服可以潔而存. 是知! 貪財者是養於蛇 , 好利者必汚乎形
服. 吾非好貧也, 是遠毒害也; 吾非惡富也, 是除穢惡也. 如其遠
財, 如遠蛇 , 去利, 如去便利者, 吾保此人, 漸可以爲達人矣. 不
然, 生生之厚,[3] 貪愛無休, 必將見傷其性命而汚其形服矣. 世人,
其訓之.
세간에서 가장 독한 것으로 살모사보다 심한 것이 없으며 지극히 더러운 것으
로는 똥오줌에 지나치는 것이 없다. 대개 살모사의 독은 능히 사람의 성품과 생
명을 해치고 똥오줌의 더러움은 능히 사람의 몸과 옷을 더럽힌다. 그러한 까닭에
그 성품과 생명을 보존하려면 반드시 독의 해악에서 멀리 있어야 하고 그 몸과
옷을 깨끗하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더럽고 추한 것을 떼어버려야 한다.
세속의 사람들은 꿈에 살모사를 보면 곧 재물 운이 있다 하여 기뻐하고 꿈에
똥오줌을 보면 곧 이득을 얻는다 하여 기뻐하는데, 어찌 깨어있을 때와 잠들었을
때 좋아하고 싫어함이 같지 아니한가? 깨어있을 때 꺼리는 바가 있고 또한 두려
워하는 바가 있음을 진실로 안다면 또한 어찌하여 재물을 보고는 그렇게 기뻐하
고 이득을 보고는 그렇게 좋아하는가? 하물며 재물의 해독이 살모사보다 더욱
심하며 이득의 더러움이 똥오줌에 훨씬 지나침에랴.
또 옛사람 가운데 재물 때문에 성품과 생명에 해를 입은 이가 한둘에 그치지
않았고 이득 때문에 몸과 옷에 더러움을 입게 된 사람 역시 무리를 이룰 정도지
만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여 마지않고 그것을 탐하여 그치지
않는 까닭으로 말미암은 것일지니 이 역시 슬픈 일이다 할 것이다.
또한 무릇 가난하다거나 부자라는 것은 사람의 분수요 기준이기에 능히 그 분
수에 안주할 줄 알면 비록 가난하더라도 또한 즐거울 것이요 그 분수에 안주하지
못하면 설령 부귀하더라도 항상 근심스러울 것이니, 분수에 가히 안주할 줄 알고
가난해도 가히 즐거울 줄 안다면 곧 성품과 생명을 보존하여 살아 갈 수 있으며
몸과 옷을 깨끗이 하여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서 알건대 재물을 탐하는 자
는 바로 살모사를 기르는 것이요, 이득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몸과 옷을 더럽
히게 될 것이다. 나는 가난을 좋아함이 아니라 다만 독의 해악을 멀리하려 함이
요, 부귀를 미워함이 아니라 다만 더럽고 추함을 떨쳐버리려 함이다. 재물을 멀
리하기를 마치 살모사를 멀리하는 것 같이하고 이득을 떨쳐버리기를 마치 똥오
줌을 떨쳐버리듯 하는 자는, 내가 그 사람에게 보증하건대 점차 그렇게 함으로써
달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후덕해져 탐내고 사랑함
을 쉬지 않으면 필시 장차 그 성품과 생명이 상하고 몸과 옷이 더럽혀 짐을 보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여 이에 훈계할지어다.
【1】師, 嗣妙峰.之善禪師. 紹修禪師上堂, 有異人, 入會聞法訖, 端坐而化, 師集衆曰: [此人有異,
汝等不可草草, 須要諦視.] 衆乃諦觀, 乃一猿也. 師始爲說前事, 衆皆嗟異. 擧火茶毘之際, 師
親摩其頂曰: [二百年後, 還汝受用.] 至宋南渡, 有民家婦懷姙, 夢猿入室而誕一男, 貌與猿肖.
及長, 不樂婚娶, 堅求出家, 送入龍濟爲僧, 名宗 . 其後, 大轉法輪, 號友雲. 有語錄十卷 文
集四卷, 其《蛇穢說》, 尤行四方.
【2】蛇, 毒蟲. 音毁, 細頸大頭, 色如文綬. 大者, 長七八尺.
【3】衣帛食粟 不飢不寒之類, 所以厚人之生也.
【1】선사는 묘봉 지선선사의 법을 이었다. 소수선사가 설법의 자리에 오르니 어떤 기이한 사
람이 법석에 들어와 법문 듣기를 마치자 단정히 앉아 입멸하는지라 선사가 대중을 모아
이르기를 [이 사람은 기이한 바가 있는데 너희들은 덤벙대지 말고 자세히 보아야 할 것이
다] 하기에 대중들이 이에 자세히 살펴보니 한 마리의 원숭이였다. 선사가 비로소 앞선
일들을 말해 주니 대중들이 모두 탄식하며 기이하게 여겼다. 불로 다비하는 즈음에 선사
가 친히 그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2백년 후에 다시 너를 받아들이리다] 하였
다. 송나라가 [장강의] 남쪽으로 건너가기에 이르러 한 민가의 부인이 회임을 하였는데 원
숭이가 방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는 한 사내아이를 낳음에 용모가 원숭이를 닮았었다.
성장하여서는 장가들려 하지 않고 굳이 출가하고자 하기에 용제로 들여보내 승려가 되게
하여 이름을 ‘종무’라 하였다. 그 후에 법륜을 크게 굴렸으니, 호는 ‘우운’이다. 어록 10권과
문집 4권이 있는데 그의《사예설》은 더욱이 사방으로 유행하였다.
【2】蛇는 독충이다. 의 음은 훼(毁)이며 가는 목과 큰 머리에 색은 무늬 있는 인끈과 같다.
큰 것은 길이가 7,8척이다.
【3】비단옷을 입고 오곡을 먹으며 주리지 않고 춥지 않는 것 등이 사람의 생을 후하게 하는
바이다.
唐修雅法師聽誦法華經歌
山色沈沈松煙 , 空林之下盤陀之石.
石上有僧結跏橫錫, 誦白蓮經從朝至夕.
左之右之虎跡狼跡, 十片五片異花狼藉.
偶然相見未深相識, 知是!
古之人? 今之人? 是曇彦? 是曇翼?[1]
我聞此經有深旨, 覺帝稱之眞妙義.
合目瞑心仔細聽, 醍 滴入焦腸裡.[2]
佛之意兮祖之髓, 我之心兮經之旨.
可憐彈指及擧手, 不達目前今正是.
大矣哉! 甚奇特, 空王要使群生得.
光輝一萬八千土, 土土皆作黃金色.
四生六道一光中, 狂夫猶自問彌勒.
我亦當年學空寂, 一得無心便休息,
今日親聞誦此經, 始覺驢乘非端的.
我亦當年不出戶, 不欲紅塵沾步武,[3]
今日親聞誦此經, 始覺行行皆寶所.
我亦當年愛吟 , 將謂冥搜亂禪定,
今日親聞誦此經, 何妨筆硯資眞性?
我亦當年狎兒戱, 將謂光陰半虛棄,
今日親聞誦此經, 始覺聚沙非小事.
我昔曾遊山與水, 將謂他山非故里,
今日親聞誦此經, 始覺山河無寸地.
我昔心猿未調伏, 常將金鎖虛拘束,[4]
今日親聞誦此經, 始覺無物爲拳拳.
師誦此經經一字, 字字爛嚼醍 味,
醍 之味珍且美, 不在脣不在齒,
只在勞生方寸裡.
師誦此經經一句, 句句白牛親動步,
白牛之步疾如風, 不在西不在東,
只在浮生日用中.
日用不知一何苦? 酒之腸飯之腑.[5]
長者揚聲喚不回, 何異聾? 何異 ?
世人之耳非不聰, 耳聰特向經中聾,
世人之目非不明, 目明特向經中盲.
合聰不聰合明不明, ?上下[6]浪死虛生.
世人縱識師之音, 誰人能識師之心?
世人縱識師之形, 誰人能識師之名?
師名醫王行佛令, 來與衆生治心病.
能使迷者醒, 狂者定, 垢者淨, 邪者正, 凡者聖.
如是則非但天恭敬, 人恭敬, 亦合龍讚詠, 鬼讚詠, 佛讚詠,
豈得背覺合塵之徒, 不稽首而歸命?
뫼봉색조 침침한데 소나무에 엉긴안개,
빈숲아래 여기저기 평탄찮은 바위덩이.
반석위로 가부좌승 석장하나 비껴놓고,
백련경을 송하는데 새벽부터 해저물녘.
오른쪽엔 범발자국 왼쪽으론 이리자취,
열조각에 다섯조각 기화묘초 흩날리네.
우연히도 서로보니 아직깊이 알지못해,
알진대!
예전사람 이란말가 지금사람 이란말가,
담언이란 말이던가 담익이란 말이던가.
내이경전 말듣건대 깊은참뜻 있다하니,
깨달음의 황제께서 오묘하다 칭하셨다.
눈을닫고 마음앉혀 자세히들 들어보라,
참된선정 우락덩이 방울져서 스며든다.
이것이곧 부처님뜻 이것이곧 조사골수,
나의참된 마음이요 경전속의 참된의미.
손퉁기면 알것이고 손을들면 알것인데,
그대앞의 지금바로 이것임도 못깨닫네.
참크기도 하여지다 참기특도 하여지다,
공왕께서 무리중생 얻어지게 하는구나.
일만팔천 모든국토 밝디밝게 비춰주니,
비추는곳 국토마다 황금빛을 짓는도다.
사생육도 달리없고 한빛줄기 가운덴걸,
미친이는 돌아서며 미륵에게 되묻는다.
나도역시 당년에는 텅빈진리 배워서는,
단박무심 얻고나서 곧장쉬려 하였더니,
이경전의 외는소리 오늘직접 들어보니,
당나귀가 끄는수레 바른과녁 아닌것을.
나도역시 당년에는 산문밖을 나서잖고,
한걸음도 세상티끌 안젖고자 하였는데,
이경전의 외는소리 오늘직접 들어보니,
걸음걸음 딛는곳이 보물창고 였던것을.
나도역시 당년에는 읊조리기 좋아함에,
가만가만 더듬는것 선정방해 한댔더니,
이경전의 외는소리 오늘직접 들어보니,
붓과벼루 어이하여 참된성품 방해되리.
나도역시 당년에는 아이들과 놀이하며,
그렇게들 지낸시간 허비했다 하였더니,
이경전의 외는소리 오늘직접 들어보니,
모래톱을 쌓던것도 작은일이 아니로세.
지난날에 내가일찍 산과물로 노닐적에,
다른곳의 산과들은 타향이라 여겼더니,
이경전의 외는소리 오늘직접 들어보니,
산과하천 둘러봄에 한치땅도 없던것을.
예전에는 내마음이 허둥대던 잔나비라,
쇠사슬로 얽어매어 구속하려 들었더니,
이경전의 외는소리 오늘직접 들어보니,
시방세계 어느하나 끄달릴것 없던것을.
이경전의 한구절을 선사께서 욀때마다,
구절구절 우락덩이 농익어서 씹혀오니,
그우락의 맛이란게 진기하고 감미로와,
입술에도 있지않고 치아에도 있지않고,
수고로운 중생들의 마음에만 젖어드네.
이경전의 한구절을 선사께서 욀때마다,
구절구절 허연소가 걸음걸음 움직이니,
그흰소의 걸음걸이 빠르기가 바람같아,
서쪽에도 있지않고 동쪽에도 있지않고,
덧없는삶 중생들의 날마다에 있더구나.
매일쓰되 모르나니 그얼마나 괴로운가,
술로가득 오장이요 밥이그득 육부로다.
장자소리 다급해도 돌아볼리 만무려니,
그가바로 귀머거리 그가바로 눈뜬소경.
세속인중 어느누가 귀가밝지 않으리오,
귀는밝되 경전앞만 다가서면 귀머거리.
세속인중 어느누가 눈이밝지 않으리오,
눈은밝되 경전앞만 다가서면 당달봉사.
귀밝을곳 귀먹은채 눈밝을곳 눈감은채,
도르랜가 물결인가 태어나고 죽어가고.
세속인중 혹시라도 선사음성 들을지나,
누가있어 혹시라도 선사마음 알겠는가.
세속인중 혹시라도 선사모습 볼지라도,
누가있어 혹시라도 선사이름 알겠는가.
선사이름 의사대왕 부처님령 시행하니,
다가와서 중생들의 마음의병 치료하네.
미혹된자 깨워주고 미친자는 안정시켜,
때낀자는 깨끗하게 삿된자는 올바르게,
평범한이 이끌어서 성스럽게 올려주네.
이같기에 사람에다 하늘마저 공경하며,
또한용이 찬탄하고 귀신마저 찬탄하며,
더군다나 부처님도 찬탄하여 읊조리니,
깨달음에 등진이들 온갓티끌 야합한이,
어찌아니 조아리고 어찌아니 귀의하리.
【1】曇彦, 未詳. 曇翼, 前身爲雉, 在山中, 有僧法志, 結庵山中, 誦《法華經》, 雉聞經聲, 侍立聽受,
如是十年. 一日, 憔悴, 法志撫之曰: [汝雖羽族, 而能聽經, 苟脫業軀, 必生人道.] 明朝遽殞,
卽 之. 及夢, 童子拜曰: [我卽雉也. 因師聽經, 今生王氏家爲男子, 右腋雉 猶在, 可驗.] 後,
王氏設齋, 志踵門, 兒曰: [我和尙, 來也!] 後, 出家, 因名曇翼, 授與《蓮經》, 不遺一字.
【2】焦者, 熱也, 卽三焦也.《醫經》云: [上焦, 在心下胃上口, 主納而不出; 中焦, 在胃中脘, 不上不
下, 主腐熟水穀; 下焦, 在膀胱上口, 主出而不納. 三焦, 水穀之道路, 氣之所始終也.] 腸者, 大
腸 小腸,《釋名》[腸, 暢也, 通暢胃氣也.]
【3】六尺曰步, 三尺曰武.
【4】《智論》云: [譬在囹圄, 桎梏所拘, 雖復蒙赦, 更繫金鎖. 人爲愛縛, 如在囹圄, 雖得出家, 更着
禁戒, 如繫金鎖也.]
【5】腑, 六腑也: 小腸, 胃, 膽, 大腸, 膀胱, 命門. 腑, 亦作府, 以其受盛故, 謂之府. 胃, 水穀之府;
小腸, 受盛之府; 膽, 淸淨之府; 大腸, 行道之府; 膀胱, 津液之府; 命門, 量腸之府, 卽三焦也.
又膽, 積精之府.
【6】 ?, 井上汲水輪木也. 此言增減劫爲名也, 劫之增減上下, 如彼輪轉木也. 一增一減劫, 計一
千六百八十萬年, 此名 ?劫, 計二十 ?劫, 爲三萬三千六百萬年.
【1】담언은 미상이다. 담익은 전생에 꿩이 되어 산중에 있었는데 법지라고 하는 승려가 산중
에서 암자를 지어 놓고《법화경》을 외우니 꿩이 경 읽는 소리를 듣고는 곁에 서서 경청하
였으니, 그와 같이 10년을 하였다. 하루는 수척하여 생기를 잃자 법지가 그를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네가 비록 날개 달린 족속이나 능히 경전을 경청하였으니 업의 몸뚱이를 벗기
만 한다면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나리다] 하였더니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죽었기에 곧 그를
묻어 주었다. 이에 꿈을 꾸니 동자가 절을 하며 이르기를 [제가 바로 꿩입니다. 선사 덕분
으로 경전을 듣고 이제 왕씨 집안에 태어나 남자가 될 것인데 오른쪽 겨드랑이에 꿩의 솜
털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증험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후에 왕씨가 공양을 베풀기
에 법지가 문전에 이르자 아이가 [우리 스님 오셨네!] 하였다. 후에 출가하여 그러한 인연
으로 담익이라 이름하였으며,《법화경》을 가져다주니 한 글자도 빠트리지 않았다.
【2】焦란 熱이니 곧 三焦이다.《의경》에 이르기를 [上焦는 심장 아래 위장의 위쪽 입구에 있
는데 주로 받아들이고 내놓지는 않으며, 中焦는 위장의 밥통 한가운데 있는데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은 채 주로 물이나 곡식을 부식시키거나 숙성시키며, 下焦는 방광의
위쪽 입구에 있는데 주로 내놓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三焦는 물과 곡식이 다니는 길이
며 氣가 시작되고 마치는 곳이다] 하였다. 腸은 소장과 대장인데《석명》에 [腸은 暢이니
위장의 기운을 통틀어 편다는 것이다] 하였다.
【3】6척을 步라 하고 3척을 武라 한다.
【4】《지론》에서 말하였다. [비유하자면 감옥에서 족쇄와 수갑에 구속되었다가 비록 사면을 입
었다고 하지만 다시 쇠사슬에 매인 것이니, 사람이 애욕에 속박됨이 마치 감옥에 있는 것
과 같았다가 비록 출가를 하였다지만 다시 금지하는 계율에 붙들린 것이 마치 쇠사슬에
매인 것과 같음이다.]
【5】腑는 六腑이니, 소장과 위와 담과 대장과 방광과 명치이다. 腑는 또한 府(곳집)로도 쓰는
데, 받아서 담아 놓는 까닭에 그것을 일컬어 곳집(府)이라 한 것이다. 위는 물과 곡식의 곳
집이요, 소장은 받아서 담는 곳집이요, 담은 청정한 곳집이요, 대장은 지나다니는 곳집이
요, 방광은 진액의 곳집이요, 명치는 量腸의 곳집이니 곧 三焦이다. 또 담은 積精의 곳집
이다.
【6】 ?(도르래)는 우물 위에 물을 긷는 나무로 된 바퀴이니, 이는 增劫과 減劫을 이름한 것
으로서 겁의 늘고 주는 오르내림이 마치 도르래의 나무바퀴가 구르는 것과 같음을 말한
다. 한 차례의 증겁과 한 차례의 감겁을 계산하면 1천6백8십만년인데 이것을 ?劫이라
이름하며, 20 ?劫을 계산하면 3만3천6백만년이 된다.
住持三寶[1]
住持三寶者, 人能弘道, 萬載之所流慈, 道假人弘, 三法於斯開
位, 遂使代代興樹, 處處傳弘. 匪假僧揚, 佛法潛沒. 至如漢.武崇
盛,[2] 初聞佛名,[3] 旣絶僧傳, 開緖斯竭. 及顯宗[4]開法, 遠訪身
毒,[5] 致有迦 竺來儀,[6] 演布聲敎,[7] 開物成務,[8] 發信歸心, 實假
敷說之勞,[9] 誠資相狀之力,[10] 名僧寶也. 所說名句, 表理爲先,
理非文言, 無由取悟. 故得名敎, 說聽之緣, 名法寶也. 此理幽奧,
非聖莫知, 聖雖云亡, 影像斯立, 名佛寶也. 但以群生福淺, 不及
化源, 薄有餘資, 猶逢遺法, 此之三寶, 是有爲, 具足漏染, 不足
陳敬, 然是理寶之所依持, 有能遵重, 相從出有,[11] 如俗王使, 巡
歷方隅, 不以形徵, 故敬齊一.[12] 經云: [如世有銀, 金爲上寶, 無
銀有鍮, 亦稱無價.] 故, 末三寶, 敬亦齊眞, 今不加敬, 更無尊重
之方, 投心何所, 起歸何寄? 故當形敬靈儀, 心存眞理, 導緣設化,
義極於斯. 經云: [造像如麥, 獲福無量.][13] 以是法身之器也.《論》
云: [金木土石, 是非情, 以造像故, 敬毁之人, 自獲罪福.] 莫不
表顯法身, 致令功用無極. 故, 使有心行者, 對此靈儀, 莫不涕泣
橫流, 不覺加敬; 但以眞形已謝, 唯見遺 , 如臨淸廟,[14] 自然悲
肅, 擧目 感, 如在不疑,[15] 今我亦爾. 慈尊久謝, 唯留影像, 導
我慢幢, 是須傾屈接足而行禮敬, 如對眞儀而爲說法. 今不見
聞,[16] 心由無信. 何以知耶? 但用心所擬, 三界尙成, 豈此一堂,
頑痴不動.[17]《大論》云: [諸佛常放光說法, 衆生罪故, 對面不見.]
是須一像旣爾, 餘像例然, 樹石山林, 隨相標立, 導我心路, 無越
聖儀.
[세상에 불법이] 머물러 유지하게 하는 삼보란, 사람은 능히 도를 넓히니 만년
토록 자비를 흐르게 하는 바이며, 도는 사람에 의지하여 넓혀짐에 세 가지 법은
여기에서 지위를 여니 마침내 대대로 일으켜 세우게 하고 곳곳마다 전하여 넓혀
지게 하는구나. 승려에 의지하여 선양된 것이 아니면 불법은 마침내 잠기어 가라
앉을 것이다.
한나라 무제 때 국운이 융성하게 됨에 처음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듣게 되었으
나 이미 승려를 통해 전해짐이 끊어졌기에 열리려던 실마리가 이로서 고갈되었
다. 현종이 교법을 열게 되면서 멀리 신독을 방문하여 가섭마등과 축법란을 오게
하고는 불법을 널리 퍼트려서 만물을 열어주는 것으로 임무를 삼으며 믿음을 발
하여 마음으로 돌아오게 하였으니, 진실로 불법을 펴서 연설하는 수고로움에 의
지한 것이요 진실로 모습과 형상의 힘에 도움 받은 것이기에 이름하여 ‘승보’라
한다.
말씀한 바의 명구名句는 진리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우선을 삼으니 진리는 글
이나 말이 아니면 깨달음을 취할 연유가 없다. 그러므로 가르침(敎)이란 이름을
얻은 것이니 말하고 듣는 반연을 이름하여 ‘법보’라 한다.
이 이치는 그윽하고도 오묘하여 성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지라, 성인이 비록
돌아가셨다지만 진영眞影과 형상이 이에 세워졌으니 이름하여 ‘불보’라 한다.
다만 중생들이 복이 얕아 교화의 근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엷으나마 남아있
는 밑천이 있기에 그래도 남겨주신 법을 만났으며, 이 삼보는 그 바탕이 유위有
爲이기에 유루有漏와 염법染法이 갖추어져 있으므로 공경을 베풀기에는 부족하
지만 이는 진리의 삼보가 의지하여 지탱하는 바이므로 능히 존중함이 있으면 서
로 좇아 유위有爲에서 벗어나나니, 마치 세속에서 왕의 사신이 변두리 지방을 순
찰하며 돌 때 그 형상으로써 따지지 않는 까닭에 공경하기를 하나 같이 가지런하
게 함과 같다.
경전에 이르기를 [만약 세상에 은이 있더라도 [금이 있으면] 금을 최고의 보물
로 여기지만 [금과] 은이 없이 놋쇠만 있다면 [그 놋쇠를] 역시 무상의 가치를
지닌 보배라 일컬을 것이다]라 하였으므로 말삼보(住持三寶)는 공경하기를 더욱
이 참된 것(實相三寶)과 가지런히 해야하는 것이니, 이제 공경을 더하지 않고 게
다가 존중할 곳이 없다면 마음을 어디에 의탁할 것이며 귀의할 마음을 일으켜서
는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그러므로 응당 형상은 신령스러운 위의를 공경하고 마
음은 진리에 둘 것이니, 인연을 이끌어 교화를 베푸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뜻이
지극한 것이다.
경전에 이르기를 [불상 조성하기를 마치 보리알 만하게 하더라도 얻어지는 복
락은 무량하리다] 하였으니 이는 바로 법신의 그릇이기 때문이다.《논》에 이르
기를 [쇠와 나무와 흙과 돌은 그 바탕이 정情은 아니지만 그것으로써 불상을 조
성하는 까닭에 공경하거나 훼손하는 사람이 스스로 죄업과 복락을 얻게 된다]
하였으니, 법신을 표현하지 않음이 없기에 그 효능이 끝이 없도록 한 것이다. 그
러므로 마음으로 행하는 바가 있는 자로 하여금 이 신령스러운 불상에 대해 눈물
이 좌우로 흘러내려 자신도 모르게 더욱 공경하게 하는 것이니, 다만 참된 모습
은 이미 떠나가고 오직 남겨진 자취만 보는 것이지만 마치 청정한 묘역에 임하자
자연히 슬프고도 숙연하여 눈을 들고 감정을 억누르며 신명이 와 있는 듯 함을
의심치 않는 것과도 같으니, 지금의 나 또한 그럴 따름이다.
자애로운 세존께서는 오래 전에 떠나시고 오직 진영과 형상만을 남겨 내 자신
의 교만의 깃대를 이끌어 교화하시니, 이에 모름지기 몸을 기울이고 구부려 발에
접촉함으로써 예의와 공경을 행하기를 마치 참된 위의로 설법하심을 대하듯 해
야 한다. 지금에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함은 마음에 믿음이 없음으로 말미암은 것
이다. 어찌 그것을 아는가? 단지 마음을 써서 헤아리는 바에 의해 삼계도 오히려
이루어지거늘 어찌 이 한 무리만이 완고하고 어리석게 움직이지 않겠는가.
《대론》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이 항시 밝은 빛을 발하며 법을 설하지만 중
생은 그 죄업 때문에 마주 대하고도 보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는 모름지기 하나
의 상像에도 이미 그러할 뿐만 아니라 여타의 상像에도 예외 없이 그러하므로
산의 숲 속에 돌을 세우고 그 모습을 따라 표식을 세울 것이니 나의 마음 길을
이끄는 것으로는 성스러운 불상보다 낳을 것이 없다.
【1】泥塑木造爲佛, 黃卷赤軸爲法, 剃髮染衣爲僧, 是名住持三寶.
【2】治業之盛.
【3】《三寶記》[漢.武帝.元狩元年, ?去病伐匈奴, 過延山, 擒休屠王獲金人十二來, 長丈餘, 以爲大
神, 列甘泉宮, 燒香禮拜. 後, 張騫使大夏還後, 始知有身毒國.]
【4】後漢.明帝, 廟號顯宗.
【5】身音干.《西域記》云: [天竺之稱, 舊云身毒, 或云賢豆, 今云印度.] 唐言, 月, 以其土聖賢相繼
御物, 如月照臨故.
【6】迦葉摩騰 竺法蘭二開士也. 帝夢金人, 遣使求之, 遇二人於月支國, 偕來. 來儀,《書》云: [韶簫
九成, 鳳凰來儀.]
【7】振擧於此, 遠者聞焉, 故謂之聲; 軌範於此, 近者效焉, 故謂之敎. 又佛以說法音聲, 敎化衆生
故, 謂佛經爲聲敎也.
【8】開物者, 人所未知者, 發開之; 成務者, 人之欲爲者, 成全之也.
【9】敷宣敎說以流通也.
【10】像佛儀容以住持也.
【11】從理性, 出生住持三寶也.
【12】帝王不能親自巡狩, 只以使者御命而去, 民吏畏懼, 奔走承命, 與王無異.
【13】經云: [若人臨終, 發言造像乃至如麥麥廣, 能除三世八十億劫生死之罪.] 麥廣音廣, 大麥也.
【14】淸廟, 文王之廟, 事神之道, 尙潔, 故曰淸廟, 謂淸淨之廟. 廟者, 貌也, 死者不可得見故, 立宮
室, 所以彷彿先人之容貌也.
【15】言: 周公臨廟, 悲感肅恭, 猶若生時, 儼然不疑也.
【16】今不見佛 不聞說法.
【17】今此一堂之僧, 頑然無知而不能起心感佛耶?
【1】진흙의 소상이나 나무로 조성한 것이 佛이요 누른 두루말이에 붉은 축으로 된 것이 法이
며 깎은 머리에 물들인 옷을 입은 것이 僧이니, 이것을 住持三寶라 이름한다.
【2】다스림의 업적이 융성함이다.
【3】《삼보기》에 [한 무제 원수 원년에 곽거병이 흉노를 치며 연산은 지나다 휴도왕을 사로잡
고 쇠로 만든 사람(金人) 20을 획득하여 왔는데, 길이가 1장 남짓으로 큰 신으로 여겨서
감천궁에 늘여 세워 놓고 향을 사르며 배례하였다. 후에 장건이 대하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온 후에야 비로소 身毒國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4】후한 명제의 廟號가 현종이다.
【5】身의 음은 간(干)이다.《서유기》에 이르기를 [‘천축’의 명칭은 옛날에는 ‘간독’ 혹은 ‘현두’
라 하였는데 지금은 ‘인도’라 한다] 하였다. 당나라 말로는 月이니, 그 땅에서는 성현들이
연이어 사물을 다스림이 마치 달빛이 비추어 주는 것과도 같은 까닭이기 때문이다.
【6】가섭마등과 축법란 두 開士(고승의 칭호)이다. 황제가 꿈에서 金人을 보고는 사신을 파견
하여 구하였는데 사신이 월지국에서 두 사람을 우연히 만나 함께 왔다. 來儀는,《서경》에
이르기를 [아름다운 퉁소 소리 아홉 차례 울리니 봉황이 훌륭한 모습을 하고 오는구나]
하였다.
【7】여기에서 떨치고 일어나니 멀리에 있는 자가 들으므로 그것을 聲이라 일컬으며, 여기에서
본보기를 보이니 가까이 있는 자가 본받으므로 그것을 敎라 일컫는다. 또한 부처님께서
설법하는 음성으로써 중생들을 교화하셨던 까닭에 불경을 일컬어 聲敎라 한다.
【8】開物이란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개발해 가는 것이요, 成務란 사람들이 하고자
하거나 되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이루어 가는 것이다.
【9】敎說을 널리 보급시킴으로써 유통하게 함이다.
【10】부처님의 위의와 모습을 닮음으로써 불법이 지속되어 나가게 함이다.
【11】理性을 좇아 주지삼보를 드러내 놓음이다.
【12】제왕은 제후의 나라를 친히 순회하며 시찰할 수 없으므로 단지 사자가 명을 받들고 가지
만 백성과 관리들이 두려워하며 명을 받들기에 분주한 것은 제왕에 견주어 다름이 없다.
【13】경전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이 죽음에 임하여 심지어 보리거죽 같이 하더라도 불상을 조
성하라고 발언하면 삼세 80억겁 동안 나고 죽으며 지은 죄도 능히 소멸할 수 있다] 하였
다. 음은 광(廣)이며 큰 보리이다.
【14】청묘는 문왕의 묘인데 귀신을 섬기는 도리는 청결을 숭상하는 까닭에 淸廟라 하였으니
청정한 묘라는 말이다. 廟는 ‘용모’이니, 죽은 자는 뵐 수 가 없으므로 궁실을 세움에 죽
은 이의 용모와 방불케 하는 까닭이다.
【15】주공이 묘역에서 비통해 하고도 엄숙해 함이 오히려 살아 있을 때처럼 하였으며 그 근엄
함으로 인해 의심스럽지 않았음을 말한다.
【16】이제 부처님을 보지 못하고 설법을 듣지 못함이다.
【17】이제 이 한 무리의 승려들이 완고하고도 무지하여 능히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을 감응하
지 못하는 것인가?
右街寧僧錄三敎總論[1]
問曰: [略僧史,[2] 求事端,[3] 其故何也?] 答曰: [欲中興佛道,
令正法久住也.][4] 曰: [方今天子重佛道, 崇玄門, 行儒術, 致太
平, 已中興矣. 一介比丘, 力輪何轉而言中興佛道耶?] 答曰: [更
欲助其中興耳. 苟釋氏子不知法, 不修行, 不勤學科,[5] 不明本
起,[6] 豈能副帝王之興乎?] 或曰: [子有何力, 令正法久住乎?]
答曰: [佛言, 知法知摩夷,[7] 護持攝受,[8] 可令法不斷也.] 又曰:
[諸師已廣著述, 何待子之爲耶?] 答曰: [古人著述, 用則闕如,
曾不知三敎循環, 終而復始, 一人在上, 高而不危.[9] 有一人故, 奉
三敎之興, 有三敎故, 助一人之理. 且夫! 儒也者, 三王以降則宣
用而合宜; 道也者, 五帝之前則冥符於不宰.[10] 昔者, 馬《史》
道,[11] 在九流之上,[12] 班《書》拔儒, 冠藝文之初.[13] 子長欲返其
朴而還其淳, 尙帝道也; 孟堅思本其仁而祖其義, 行王道焉. 自夏
商 周至于今, 凡幾百千齡矣, 若用黃 老而治, 則急病服其緩藥矣.
由此, 仁義薄, 禮刑生, 越其禮而逾其刑則儒氏拱手矣. 釋氏之門,
周其施用, 以慈悲變暴惡, 以喜捨變?貪, 以平等變 親, 以忍辱
變瞋喪, 知人死而神明不滅, 知趣到而受業還生, 賞之以天堂, 罰
之以地獄, 如範脫土, 若模鑄金. 邪範漏模寫[14]物, 定成其寢陋,
好模嘉範傳形, 必告其端嚴, 事匪口談, 人皆目擊. 是以, 帝王奉
信, 群下歸心, 草上之風,[15] 翕然[16]而偃. 而能旁憑老氏, 兼假儒
家, 成智猶待於三愚,[17] 爲邦合遵於衆聖. 成天下之 ,[18] 復[19]
終日之乾乾,[20] 之於御物也, 如臂使手, 如手運指, 或擒或縱, 何
往不臧邪?[21] 夫如是則三敎是一家之物,[22] 萬乘是一家之君, 視
家不宜偏愛. 偏愛則競生, 競生則損敎, 己在其內, 自然不安, 及
己不安則毁損其敎, 不欲損敎則莫若無偏. 三敎旣和故法得久住
也.[23] 且如秦.始焚坑儒術,[24] 事出李斯; 後魏[25]誅戮沙門, 職由寇
謙之 崔浩; 周.武廢佛道二敎, 矜衒己之聰明, 盖朝無正人; 唐.武
宗毁除寺像, 道士趙歸眞率劉玄靖同力謗誣,[26] 李朱崖影助[27]; 此
四君諸公之報驗, 何太速乎![28] 奉勸吾曺, 相警互防, 勿罹愆失.
帝王不容, 法從何立? 道學{守寶, 不爲天下先},[29] 沙門何妨饒
禮而和之? 當合佛言, 一切恭信, 信于老君, 先聖也, 信于孔子,
先師也. 非此二聖, 曷能顯揚釋敎, 相與齊行, 致君於羲 黃之上
乎? 苟 [30]斯言, 譬無賴子弟, 無端鬪競, 累其父母, 破産遭刑.
然則, 損三敎之大猷, 乃一時之小失,[31] 日月食過, 何損於明?[32]
君不見? 秦焚百家之書, 聖人預已藏諸屋壁,[33] 坑之令剿絶, 楊
馬 二戴[34]相次而生, 何曾無 類耶?[35] 梁.武捨道,[36] 後魏勃興;
拓跋誅僧,[37] 子孫重振;[38] 後周毁二敎, 隋.堅復之;[39] 武宗陷釋
門, 去未旋踵, 宣宗十倍興之,[40] 側掌, 豈能截河 漢之流? 張拳,
不可暴虎 之猛.[41] 爲僧莫若道安, 安與習鑿齒交遊, 崇儒也;
爲僧莫若慧遠, 遠送陸修靜, 過虎溪, 重道也. 余慕二高僧, 好儒
重道, 釋子猶或非之, 我旣重他, 他豈輕我? 請信安 遠行事, 其可
法也.《詩》曰: {伐柯伐柯, 其則不遠.} 子曰: {天時不如地利, 地
利不如人和.} 斯之謂歟.]
물어 이르되 [승려의 역사를 간략히 서술하였거늘 [거듭하여] 일의 실마리를
구하는 것은 그 까닭이 무엇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불도를 중흥시켜 정법을
오래 머무르도록 하고자 함입니다] 하기에 이르기를 [바야흐로 지금의 천자께서
불도를 중시하고 도교를 숭상하며 유학을 시행하여 태평성대에 이르렀으니 이미
중흥을 이루었다 하겠거늘 일개 비구가 역량이 얼마나 미칠 수 있겠기에 불도를
중흥시키겠다고 말하는가?] 하므로 답하여 이르기를 [거듭 그 중흥을 돕고자 할
뿐입니다. 만일 석씨의 아들로써 법을 알지 못하고 수행하지 않으며 과목의 학문
에 힘쓰지 않고 근본되는 기원을 밝히지 않는다면 어찌 능히 제왕의 중흥에 부응
하겠습니까?] 하였다.
어떤 이가 이르기를 [그대는 무슨 힘이 있어 정법을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겠
는가?] 하니 답하여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하시기를, 법을 알고 논장論藏을
알아서 보호하여 가지고 거두어들인다면 법이 끊어지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였습
니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모든 선사들이 이미 널리 저술하였거늘 하필 그대
가 하기를 기다리겠는가?] 하므로 답하여 말하였다.
[옛사람들의 저술은 활용하기에 좀 미흡한 듯 하였으니, 세 가르침이 순환하
여 마쳤다가 다시 시작하며 한 분이 윗자리에 있음에 높아도 위태롭지 않음을
일찍이 알지 못하였습니다. 한 분이 있는 까닭에 세 가르침이 흥성하게 되고, 세
가르침이 있는 까닭에 한 분의 다스림을 돕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무릇 유교
는 삼왕 이래로 베풀어 씀에 이치에 합당하였으며, 도교는 오제 이전에 곧 무위
無爲의 도에 가만히 부합하였습니다. 옛적에 사마천의《사기》에서는 도道를 올
려놓아 아홉 부류의 위에 두었고, 반고의《한서》에서는 유교를 끌어올려 예문지
의 첫머리에 두었습니다. 자장은 그 질박한 데로 돌이키고 그 순박한 데로 돌아
가고자 하였으니 황제의 도를 숭상함이요, 맹견은 그 어짊을 근본으로 하고 그
의리를 본받을 것을 생각하였으니 왕도를 행한 것입니다. 하나라와 상나라와 주
나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릇 수 백천년이기에 만약 황제와 노자의 도를
사용하여 치료한다면 곧 급한 병에 더딘 약을 복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로 말
미암아 인의가 엷어지고 예절과 형벌이 생겼으니 그 예절을 넘어서고 그 형벌을
건너뛰면 곧 유씨儒氏는 팔짱을 끼고 있을 것입니다.
석씨의 문중은 베풀어 쓰기를 두루하여 자비로써 포악함을 변화시키고, 희사
함으로써 아끼고 탐냄을 변화시키고, 평등으로써 원수와 친함을 변화시키고, 인
욕으로써 성냄을 변화시키며, 사람은 죽더라도 신명은 멸하지 않음을 알고 또한
응당의 사후세계에 도달하더라도 업을 받아 환생함을 알아서 천당으로써 상을
주고 지옥으로써 처벌함은 마치 흙을 떨어버린 거푸집과 같고 쇠를 부어 만든
모형과 같습니다. 삐뚠 거푸집과 새는 모형에 물건을 쏟아 부으면 반드시 볼품없
는 모양을 이루고 좋은 모형과 훌륭한 거푸집으로 형상을 전하면 반드시 그 단정
하고 엄밀함을 이루게 될 것이니, 이러한 일은 입으로만 얘기하는 바가 아니라
사람들이 모두 눈으로 목격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제왕이 받들어 믿고
많은 신하들이 마음으로 귀의함이 마치 풀 위로 바람이 불자 나란히 한쪽으로
쏠리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곁으로 노씨의 말씀에 능히 기대고 겸하여 유가
의 말씀에도 의지한다면 지혜를 이룸에 있어서 마치 세 사람의 어리석은 이를
기다리는 것과 같으니 나라를 위해서는 여러 성현들을 함께 좇아야 합니다.
온 천하가 부지런히 힘쓰는 풍토를 이루고 종일토록 쉬지않고 나아가는 풍토
를 회복하면 만백성을 제어함에 있어 마치 팔이 손을 부리듯 하고 마치 손이 손
가락을 움직이듯 하며 혹은 사로잡았다가 혹은 풀어 주었다가 하니 어디에 간들
좋지 않겠습니까. 무릇 이와 같으면 곧 세 가지 가르침은 바로 한 집안의 물건이
요 만승은 바로 한 집안의 주인이 되니 집안을 돌볼 때는 마땅히 편애하지 말아
야 할 것입니다. 편애하면 곧 경쟁이 생겨나고 경쟁이 생겨나면 곧 가르침을 훼
손할 것이므로 자신이 그 안에 있으면 자연히 불안할 것이요 자신이 불안하게
되면 곧 그 가르침을 훼손하게 될 것이니, 가르침을 훼손시키고자 하지 않는다면
곧 편애함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세 가르침이 화합하고서야 그로 인해 법
이 오래도록 머무름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진나라 시황제가 유교의 경전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땅에 묻은 것은 그 일이 이사로부터 나왔고, 후위 때 사문들
을 참살시킨 것은 그 주장이 구겸지와 최호에게서 말미암았으며, 후주의 무왕이
불교와 도교의 두 가르침을 폐하고 자신의 총명을 자랑함에 힘쓴 것은 대개 조정
에 바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고, 당나라 무종이 사찰과 불상을 훼손시켜 없앤
것은 도사 조귀진이 유현정을 거느리고 힘을 합쳐 불법을 비방하고 사문을 무고
함에 이주애가 암암리에 도왔으니, 이 네 임금과 모든 신하들이 과보로 받은 영
험이 어찌 그리 신속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무리에게 받들어 권하오니 서로 경책하고 서로 막아주어 허물이나 과실
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왕이 용납하지 않으면 법이 어디를 좇아
세워지겠습니까. 하물며 도교의 학문은 {보배를 지킴에 천하의 앞에 나서지는 않
는다} 하였으니 예절을 넉넉히 하고 화합해 나아감이 사문에게 어찌 방해가 되
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일체를 공경하여 믿어라 하신 말씀에 마땅히 부합하여 노
자를 믿는 것은 앞선 성인이기 때문이며 공자를 믿는 것은 앞선 스승이기 때문입
니다. 이 두 성인이 아니었다면 어찌 능히 석가의 가르침을 드러내어 선양하고
서로 더불어 나란히 행함으로써 임금님을 복희씨와 황제씨의 위에 놓이게 하였
겠습니까. 만일 이 말을 어기면 비유컨대, 무뢰한 자제들이 까닭 없이 겨루어 다
투다가 그 부모에게 누를 끼치고 가산을 탕진한 뒤 형벌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세 가지 가르침의 큰 도를 훼손하는 것은 곧 일시적인 작은 과실로서
일식이나 월식 같기에 어찌 밝음을 잃어버리기야 하겠습니까?
그대는 보지 못하였습니까? 진나라 때 백가의 서적을 불태웠지만 성인께서 미
리 집의 벽 속에 갈무리하여 두었고, 유생들을 구덩이에 파묻어 전멸케 하였으나
양웅과 사마천 및 두 대씨가 서로 연이어 태어나니 어찌 일찍이 살아남은 자가
없었겠습니까. 양 무제가 도교를 버리자 후위가 발흥하였으며, 탁발씨가 승려를
주살하거늘 그 자손이 거듭하여 [불교를] 진흥시켰고, 후주에서 두 교를 훼멸시
키자 수나라 양견이 이를 부활시켰으며, 무종武宗이 석가 문중을 무너뜨리거늘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아 선종宣宗이 열 배로 이를 부흥시켰으니, 손바닥을 기울여
어찌 능히 하수河水와 한수漢水의 흐름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 주먹을 내질러
호랑이나 코뿔소의 사나움을 말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승려로서 도안 만한 이가 없으나 도안이 습착치와 더불어 교류한 것은
유교를 숭상한 것이요, 승려로서 혜원 만한 이가 없으나 혜원이 육수정을 전송할
때 호계를 지나쳤으니 이는 도교를 중시한 까닭입니다. 내가 두 고승을 사모하며
유교를 좋아하고 도교를 중시하니 석가의 자손들이 오히려 혹 그르다 하겠지만,
내가 이미 다른 이들을 중시하는데 다른 이들이 어찌 나를 경시하겠습니까. 청하
건대 도안과 혜원이 행한 일을 믿어 그것을 본받으십시오.《시경》에 이르기를
{도끼자루를 베고 도끼자루를 베니 그 법다움이 멀리 있지 않도다} 하였으며, 맹
자가 말하기를 {하늘의 운명은 땅의 이로움만 못하고 땅의 이로움은 사람들의
화합만 못하다} 하였으니 이를 말함일 것입니다.]
【1】眞宗.咸平元年, 奉詔入職右街僧錄, 尋遷左街.
【2】《僧史略》自序云: [以太平興國初, 勅居東寺, 披覽多暇, 遂樹立門題, 搜求事類, 始于佛生, 敎
法流衍, 至于三寶住持, 諸務事始, 一皆 , 約成三卷, 盖取裵子野《宋略》爲目耳.]
【3】旣略其僧史, 又何能求事故之多端而總論三敎乎?
【4】《祖庭》云: [非我失之, 自我復之爲中興, 如王中否而再興, 周之宣王 漢之光武是也. 吾道東漸,
經三武破壞, 有德業盛大之宗師綱領斯道, 佛法中興耳.]
【5】十科之學.
【6】佛法根本始起之因由也.
【7】《華嚴 玄談》云: [摩夷, 此云行母, 依論藏成行故, 是行之母.] 又《四分》云: [知法, 知律, 知摩
夷.] 知法者, 善持修多羅藏, 如阿難等; 知律者, 善持毘尼藏, 如優婆離等; 知摩夷者, 善於訓
導, 宰任玄綱, 如迦葉等.
【8】憐憫濟溺曰攝, 存約眷想曰受.
【9】若三敎幷行不悖, 則雖一人居高而奈何其殆哉坂乎? 坂, 危也.
【10】《老子》曰: [長而不宰, 是謂玄德.] 註: 宰, 主也. 長養萬物而不作主也. 五帝之前, 帝王皆以
無爲自然之道, 以治天下.
【11】司馬遷, 字子長, 作《史記列傳》.《詩》云[君子攸 ], , 言登也.
【12】九流者: 一, 儒流, 祖述堯 舜, 憲章文 武, 宗仰仲尼者也; 二, 道流, 淸虛自守, 卑弱自持, 此
人君南面之述, 合堯之克讓·《易》之謙謙者; 三, 陰陽流, 敬順昊天曆象日月, 以授民時者也;
四, 法流, 信賞必罰, 以補禮制矣; 五, 名流, 名位不同, 禮亦異數, 正名列位, 以成事矣; 六,
墨流, 推兼愛之意, 養老惠施也; 七, 縱橫流, 言其當權受制, 宜受命而不受詞也; 八, 雜流, 兼
儒 墨, 合名 法, 知國大體, 事無不貫矣; 九, 農流, 播百穀, 勸耗桑, 以足衣食也.
【13】班固, 字孟堅, 作《漢書 藝文志》.
【14】傾也, 輪也.
【15】《論語》[君子之德, 風; 小人之德, 草也. 草上之風, 必偃.] 註: 上, 與尙同, 加也.
【16】翕如鳥羽翼會聚也.
【17】古語, 三愚成一智.
【18】《易》云: [成天下之 .] 注云: 不倦之意也.
【19】返也.
【20】又云: [君子終日乾乾.] 註: 天道自强不息貌.
【21】臧, 否也.《詩》[卜云其吉, 終焉永臧.]
【22】局喩.
【23】結答[子有何力, 令正法久住?]之問.
【24】術, 經術,《詩》·《書》也, 言焚術坑儒也.
【25】拓跋燾.
【26】謗法, 誣僧.
【27】如影從形而佐助也.
【28】崔浩信重寇謙之, 奉其道. 浩不喜佛, 言於魏主而廢之, 謙之先得惡疾而死, 浩繼以暴揚國惡被
誅, 崔 寇二家悉夷五族. 燾廢敎誅僧, 曇始入王宮門, 燾令斬之, 斫無所傷, 又 檻虎, 虎伏不
起. 燾悔過, 始爲說法, 明辨因果, 燾大生愧懼, 遂感?疾, 以其過由於二人, 卽族兩家. 周.武
性甚猜忌曰: [儒 道二敎, 此國奉遵, 佛敎後來, 朕欲不立.] 令道士張賓之與沙門知炫, 辨優
劣, 賓之不勝, 遂兼道敎罷之, 旣已, ?疾作, 尋卒. 其滅佛法受罪報, 見《冥報記》. 唐.武宗, 自
幼不喜釋氏, 卽位, 召道士趙歸眞等, 於禁內受仙 . 又召衡山道士劉玄靖, 爲光祿大夫, 充
崇玄?, 學士鄧元超等排毁釋氏, 帝遂廢除寺像, 未幾, 金丹發藥而 . 諸道士等報驗, 具載
別錄焉.
【29】老子有三寶: 一, 慈; 二, 儉; 三, 不爲天下先.
【30】戾也, 違也.
【31】雖暫被毁斥, 乃三敎之小失, 實爲損謗者之大害.《四十二章經》云: [有人罵佛, 佛默不對, 罵
止, 問曰: {子以禮從人, 其人不納, 禮歸子乎?} 對曰: {歸矣.} 佛言: {今子罵我, 我今不納,
子自持禍, 歸子身矣.}]
【32】《語》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 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33】《書 序》云: [魯公.王餘, 景帝子也. 好治宮室, 壞孔子舊宅, 以廣其居, 壁中得經書. 孔子十三
代孫襄, 好經書博學, 畏秦法峻急, 乃壁藏《家語》·《孝經》·《尙書》·《論語》於孔子舊宅壁中,
餘壞宅, 得之, 悉歸于襄孫子國.]
【34】楊雄 司馬遷, 戴德 戴聖, 二戴, 世所稱大戴 小戴也.
【35】《漢書》[襄城無 類.] 言: 無復有活而 食者. 音初, 也.
【36】梁.武有捨道事佛詔也.
【37】拓跋, 後魏姓. 北人謂土爲[拓], 謂辰爲[跋], 魏之先出於黃帝, 以土德王, 故爲拓跋.
【38】燾?作而卒, 孫文成帝.濬立, 重興釋敎.
【39】周.武以惡疾 , 靜帝立, 楊堅修政十三月, 封爲隋國公, 卽復二敎.
【40】宣宗卽武宗叔也. 武宗忌憚之, 沈于宮厠, 宦者仇公武殺 髮爲僧. 嘗參鹽官齊安, 安一日預誡
知事曰: [當有異人至此, 禁雜語, 止橫事, 恐累佛法.] 明日, 行脚數人來禮, 安令維那高位安
置, 禮殊他等, 因語帝曰: [時至矣, 無滯泥蟠.] 囑令佛法後事. 去爲江陵少尹, 武宗崩, 宰臣迎
立之, 大興佛敎焉.
【41】子謂子路曰: [暴虎馮河, 死而無悔.] 注: 徒搏曰暴, 徒涉曰馮, 如馮 然. , 野牛, 靑色一角.
【1】진종 함평 원년에 조서를 받들고 들어가 우가승록을 지내다가 얼마지 않아 좌가승록으로
자리를 옮겼다.
【2】《승사략》의 自序에서 말하였다. [태평흥국 초기에 칙서를 받들어 동사에 거처하며 책을
펼쳐 보는 등 여가가 많았기에 마침내 門題를 수립하고 일의 유형들을 찾아 구하였으니,
부처님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교법이 널리 퍼진 일과 삼보를 주지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
든 일들의 시말을 하나 같이 모두 정리하여 3권으로 묶었으며, 대개 배자야의《송략》에서
취한 것은 목차를 흉내낸 것뿐이다.]
【3】이미 그 僧史를 간략히 하였는데 또 어찌 사건들의 잡다한 단서를 구하여 세 가지 교법을
총괄적으로 논하려는 것인가?
【4】《조정》에서 말하였다. [내가 잃은 것이 아니나 나로부터 그것이 회복되었으면 中興이라
하니, 마치 왕이 중간에는 어려움을 겪다가 다시 발흥한 경우와 같은데, 주나라의 선왕과
한나라의 광무제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불도가 동쪽으로 점차 나아오다 三武의
파괴를 경력하였으나 덕업이 성대한 종사들이 있어서 이 도를 이끌었기에 불법이 중흥하
였던 것이다.]
【5】十科의 學이다.
【6】불법이 근본적으로 비롯하여 일어난 유래이다.
【7】《화엄경》의 현담에 이르기를 [‘마이’는 이곳 말로 하면 行母인데 논장에 의지하여 行이 이
뤄지는 까닭으로 곧 行을 낳게 하는 母인 것이다]라 하였다. 또《사분율》에 이르기를 [법
도 알고 율도 알고 마이도 안다] 하였다. 법을 안다는 것은 經藏을 잘 지니는 것이니 아난
등과 같은 이요, 율을 안다는 것은 律藏을 잘 지니는 것이니 우바이 등과 같은 이요, 마이
를 안다는 것은 교화에 뛰어나고 교리를 잘 다루는 것이니 가섭 등과 같은 이다.
【8】물에 빠진 이를 가엾이 여겨서 구제하는 것을 攝이라 하고, 염려하여 다독거리는 것을 受
라 한다.
【9】만약 三敎가 나란히 행해지며 어긋나지 않으면 비록 한 사람이 높은 곳에 자리하여 있더
라도 그 위태로움이 어찌 위기이겠는가. 坂은 위기이다.
【10】《노자》에 이르기를 [만물을 양육하나 주재하지는 않으니 이것을 일컬어 玄德이라 한다]
하고는 주석에, 宰는 주관함이라 하였으니 만물을 길러 양육하지만 주재하지는 않음을
말한다. 五帝 이전에는 제왕들이 모두 무위자연의 도리로써 천하를 다스렸다.
【11】사마천의 자는 자장으로《사기열전》을 지었다.《시경》이 이르기를 [군자가 아득히 올라]
하였으니 는 높은 곳에 오름을 말한다.
【12】아홉 부류란, 첫 번째가 유가로서 요임금과 순임금의 도를 본받아 서술하여 밝히고 문왕
과 무왕을 본받아 그 법을 밝히며 중니를 종조로써 숭앙하는 자들이다. 두 번째는 도가로
서 맑고도 공허함을 스스로 지키고 낮고도 연약함을 스스로 유지하니, 이는 人君南面의
언설로써 요임금의 克讓(자기의 마음을 눌러 남에게 겸양함)과《주역》에서의 謙謙(남에
게 겸양하는 象)을 합한 것이다. 세 번째는 음양가로서 일월성숙의 천문이치에 삼가 순종
함으로써 백성들에게 알맞은 시기를 주는 자들이다. 네 번째는 법가로서 공 있는 사람은
반드시 상주고 죄 있는 사람은 반드시 벌줌으로써 예법과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명가로서 이름과 지위가 같지 않고 예법도 또한 數理가 다르니 名位를 바르게 나
열함으로써 일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묵가로서 평등하게 사랑한다는 뜻
을 추앙하여 敬老와 布施를 행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종횡가로서 當權受制하여 마땅
히 命은 받고 詞는 받지 않음을 말한다. 여덟 번째는 잡가로서 유가와 묵가를 겸하고 명
가와 법가를 합하였으니 나라의 큰 가닥만 안다면 다스림에 있어 꿰뚫지 않음이 없다. 아
홉 번째는 농가로서 모든 곡식을 기르며 밭 갈고 뽕 치는 것을 권하여 먹거리와 입거리
를 풍족하게 하는 것이다.
【13】반고의 자는 맹견으로《한서 예문지》를 지었다.
【14】기울이다 또는 회전시킴이다.
【15】《논어》에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에 바람이 가해지면 반드시 쓰
러진다] 하고는 주석에, 上은 尙과 같은데 가해짐(加)이라 하였다.
【16】翕은 새의 날개 깃이 모여 무리를 이룬 것과 같다.
【17】옛말에 어리석은 자 셋이 지혜로운 이 하나를 이긴다 하였다.
【18】《주역》에 이르기 [하늘 아래 부지런히 힘씀을 이룬다] 하고는 주석에, 게으르지 않다는
뜻이라 하였다.
【19】돌이킴이다.
【20】또 이르기를 [군자는 종일토록 쉼이 없다] 하고는 주석에, 하늘의 도가 스스로 굳세어 쉬
지 않는 모습이라 하였다.
【21】臧은 아니라는 것이다.《시경》에 [점술로는 길함을 말하지만 결국에는 영원히 그렇지 않
다]라 하였다.
【22】부분적인 비유이다.
【23】[그대는 무슨 힘이 있어 정법을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겠는가?]라고 하는 질문에 답한 것
이다.
【24】術은 經學으로《시경》이나《서경》이니, 서적을 불태우고 유생들을 매장함을 말한다.
【25】탁발도이다.
【26】불법을 비방하고 사문을 무고함이다.
【27】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좇는 듯이 보좌하여 도움이다.
【28】최호는 구겸지를 믿고 중히 여겨 그의 도를 받들었다. 최호는 부처님을 좋아하지 않아
위나라 군주에게 말하여 폐지하게 하였는데, 구겸지가 먼저 악질을 얻어 죽고 연이어 최
호는 나라의 나쁜 점을 폭로하였다가 주살 당하였으니, 최호와 구겸지의 두 집안은 5족
이 모두 멸족 당했다. 탁발도는 교학을 폐지하고 승려들을 주살하였는데 승려 담시가 왕
궁의 문안으로 들어오자 탁발도가 영을 내려 그의 목을 치게 하였으나 베어도 상처가 나
지 않았으며 또 우리 속의 호랑이에게 먹이게 하였더니 호랑이가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
았다. 탁발도가 죄과를 후회함에 담시가 그를 위해 설법하고 인과를 분명하게 분별하여
주었더니 탁발도가 크게 부끄러움과 두려운 마음을 내었으며 마침내 문둥병에 걸렸는데,
그 허물이 두 사람에게서 비롯하였다 하여 곧 두 집안을 멸족시켰다. 주나라 무왕은 성격
에 투기가 심하여 말하기를 [유교와 도교는 이 나라에서 받들고 따르던 것이요 불교는
뒤에 전래된 것이므로 짐은 불교를 세우지 않고자 한다] 하고는 도사 장빈지에게 명하여
사문 지현과 우열을 가리게 하였더니 장빈지가 승리하지 못하자 마침내 도교도 함께 혁
파시켰는데, 그러자 문둥병이 발병하여 얼마지 않아 죽었다. 부처님의 법을 멸하고 받은
그러한 죄과는《명보기》에 보인다. 당나라 현종은 어려서부터 부처님을 좋아하지 않았는
데 즉위해서는 도사 조귀진 등을 불러 궁궐 안에서 仙 을 받았다. 또 형산도사 유현정을
불러들여 광록대부로 삼아 숭현관에 보직하게 하였고, 학사 등원초 등은 부처님을 배척
하고 훼멸하였으며, 황제는 마침내 사찰을 폐지하고 불상을 없애더니 얼마지 않아 금단
에서 독약의 기운이 배어나와 죽었다. 여러 도사 등이 징험을 당한 것은 별도의 기록에
상세히 기재하였다고 한다.
【29】노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 하였으니, 첫 번째가 자비요 두 번째가 검약이요 세 번째가
천하에 앞서지 않음이다.
【30】어그러짐이요 어긋남이다.
【31】비록 잠시 훼멸과 배척을 당했음에 三敎에 있어서는 작은 손실이었지만 훼방하던 자들은
실로 커다란 해악을 입게 되었다.《사십이장경》에 이르기를 [어떤 사람이 부처님을 욕하
자 부처님은 묵묵히 대꾸하지 않았는데 욕이 그치자 물어 가로되 {그대가 예의로써 다른
사람을 따르는데 그 사람이 그 예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禮가 그대에게 돌아가는
가?} 하니 대답하기를 {돌아가나이다} 하기에 부처님께서 말하기를 {지금 그대가 나를
욕하였는데 내가 이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그대는 스스로 재앙을 지닌 채 그대의 몸으
로 돌아가리다} 했다]고 하였다.
【32】《논어》에서 말하였다. [군자의 허물은 일식이나 월식과 같기에 허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보게 되고 고쳐지면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숭앙하게 된다.]
【33】《서경》의 서문에서 말하였다. [노공 왕여는 경제의 아들인데 궁실을 건축하기 좋아하여
공자의 옛 저택을 허물어 그의 거처를 넓히다가 벽에서 경서를 발견하였다. 공자의 13대
손인 공양이 경서를 좋아하여 박학하였는데 진나라의 법이 준엄함을 두려워하여 공자의
옛 저택 벽 속에《공자가어》《효경》《상서》《논어》등을 숨겨 두었음에 왕여가 집을
허물다 그것들을 얻어서는 모두 공양 자손의 나라에 돌려보냈다.]
【34】양웅과 사마천은 대덕과 대성의 二戴로서 세상에서는 大戴와 小戴라 일컫는다.
【35】《한서》에 [양성에는 類가 없다] 하였는데, 다시 살아 있어 음식을 먹을 자가 없음을
말한다. 음은 초(初)이며 ‘깨물다’이다.
【36】양나라 무제 때 도교를 버리고 불교를 섬기는 조서가 있었다.
【37】’탁발’은 후위 왕족의 성씨다. 북방 사람들은 땅을 일컬어 ‘탁’이라 하고 별을 일컬어 ‘발’
이라 하는데, 위나라의 선조는 黃帝로부터 나왔기에 土德으로 왕이 되었다 하여 ‘탁발’이
라 한 것이다.
【38】탁발도는 문둥병이 발병하여 죽자 손자 문성제 탁발예가 즉위하여 불교를 중흥시켰다.
【39】주나라 무왕이 악질로 죽고 정제가 즉위하자 양견이 정치에 참여한지 13개월만에 수국공
에 책봉되어 즉각 도교와 불교를 회복시켰다.
【40】선종은 곧 무종의 숙부이다. 무종이 그를 꺼렸는데 궁실의 뒷간에 빠져 있던 것을 환관
구공무가 머리를 깎여 승려가 되게 하였다. 일찍이 鹽官 제안과 함께 하였었는데, 제안이
하루는 지사에게 미리 경계시켜 이르기를 [어떤 異人이 여기에 도착하면 잡다한 말을 금
하고 제멋대로 대하지 말라. 불법에 누를 끼칠까 두려울 뿐이다] 하였다. 다음 날 행각승
몇 사람이 예방하거늘 제안이 위나를 시켜 높은 자리로 모시게 하고 그 예우가 다른 이
들과는 달랐으며, 그런 인연으로 帝에게 말하기를 [시기가 올 것이오니 진흙 속에서 몸
을 서리고 계시는 것이 그리 지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며 불법에 관한 뒷일을 부탁
하였었다. 얼마 후 강릉소윤이 되었는데 무종이 죽자 재상과 신하들이 그를 맞아들여 즉
위시키니 불교를 크게 일으켰다.
【41】공자께서 자로에게 이르기를 [맨손으로 호랑이를 쳐죽이고 걸어서 황하를 건넘에 죽어도
후회가 없다 하였는데…]라 하고는 그 주석에, 맨손으로 때리는 것을 暴이라 하고 걸어
서 건너는 것을 馮이라 하였으니 마치 안석에 의지함과 같이 그렇게 함이다. 는 야생소
로서 푸른색에 뿔이 하나이다.
商太宰問孔子聖人[1]
太宰 問孔子曰: [夫子聖人歟?] 對曰: [丘也, 博識强記, 非聖
人也.] 又問: [三王聖人歟?] 對曰: [三王善用智勇.[2] 聖, 非丘
所知.] 又問: [五帝聖人歟?] 對曰: [五帝善用仁義. 聖, 非丘所
知.] 又問: [三皇聖人歟?] 對曰: [三皇善用時政.[3] 聖, 非丘所
知.] 太宰大駭曰: [然則孰爲聖人乎?] 夫子動容有間, 曰: [丘聞,
西方有聖者焉, 不治而不亂, 不言而自信, 不化而自行, 蕩蕩乎,
人無能名焉.] 據斯以言, 孔子深知佛爲大聖也, 時緣未昇故, 默而
識之, 有機故擧. 然, 未得昌言其致矣.
태재 비가 공자에게 물어 말하기를 [그대는 성인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나는 널리 알고 잘 기억할 뿐 성인은 아닙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삼왕은 성인
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삼왕은 지혜와 용기를 잘 활용하였습니다만 성인인
지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 하였다. 또 묻기를 [오제는 성인입니까?] 하니 대답하
기를 [오제는 인의를 잘 활용하였습니다만 성인인지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 하
였다. 또 묻기를 [삼황은 성인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삼황은 시기적절한 정
치를 잘 활용하였습니다만 성인인지는 내가 알지 못합니다] 하였다.
태재가 크게 놀라며 말하기를 [그러면 누가 성인입니까?] 하니 공자가 점잖게
자세를 고치고 조금 있다가 이르기를 [내가 듣건대 서방에 성자가 있다고 하는
데, 다스리지 아니하여도 어지럽지 않고,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믿으며, 교화
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니, 광대하고도 광대함에 사람들이 능히 이름할 수 없다
합니다] 하였다. 이 말에 의거하면 공자는 부처님이 큰 성인 됨을 깊이 알고 있었
는데 때의 인연이 아직 오르지 않았던 까닭에 묵묵히 그것을 알고만 있다가 기회
가 있기에 들먹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이치를 드러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1】贊寧《西方聖人論》云: [商, 宋也. 太宰名盈, 字蕩.]
【2】如湯伐夏, 武王伐紂之類, 是善用智勇也.
【3】中古三皇, 伏羲 炎帝 黃帝也. 伏羲畵八卦, 知天文故, 爲天皇; 炎帝敎稼穡, 相地宜故, 爲地
皇; 黃帝作宮室 造舟車, 用干戈敎征伐故, 爲人皇. 此爲用時政也.
【1】찬영의《서방성인론》에 이르기를 [商은 송나라이다. 태재의 이름은 盈으로 자는 蕩이다]
라 하였다.
【2】여탕이 하나라를 정벌하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한 경우가 지혜와 용기를 선용한 것이다.
【3】중국의 고대 三皇은 복희씨와 염제씨 및 황제씨이다. 복희는 팔괘를 그려서 천문을 알았
던 까닭에 천황이 되었으며, 염제는 농사를 가르쳐 땅의 이로움을 살폈던 까닭에 지황이
되었으며, 황제는 궁실을 짓고 배와 수레를 만들었으며 병기를 사용하여 정벌하는 법을
가르쳤던 까닭에 인황이 되었으니, 이것이 시기적절한 정치를 잘 활용하였음이 된다.
諸賢頌句
⊙ 龐居士頌
但自無心於萬物, 何妨萬物常圍繞?
鐵牛不 獅子吼, 恰似木人見花鳥.
木人本體自無情, 花鳥逢人亦不驚.
心境如如只遮是, 何慮菩提道不成?
그대다만 스스로가 만물에다 무심하면,
오만물건 에워싼들 그무엇이 방해런가.
무쇠소는 사자포효 눈깜짝도 하잖느니,
그는마치 나무사람 꽃과새를 보는듯이.
나무사람 본디부터 정이란것 없을지니,
그사람을 마주쳐도 꽃과새는 놀라잖네.
마음경계 변함없기 다만이와 같을지니,
이리하면 보리도를 어이하여 근심하리.
⊙ 宏智禪師省病僧
訪舊懷論實可傷, 經年獨臥涅槃堂.
門無過客窓無紙, 爐有寒灰席有霜.
病後始知身自苦, 健時多爲別人忙.
老僧自有安閑法, 八苦交煎總不妨.
오랜벗과 푸는회포 실로가히 맘아프니,
해지나도 그저홀로 열반당에 누웠도다.
과객하나 발길없고 창살만이 쓸쓸하며,
화로속엔 흰재만이 자리위의 서리같네.
병든후에 그제서야 몸괴론줄 알았으니,
건강할때 부지런히 남을위해 바쁠지라.
나에게는 본디부터 편히쉬는 법있으니,
여덟고통 들볶아도 도무지가 자유롭네.
⊙ 洞山和尙自誡
不求名利不求榮, 只?隨緣度此生.
三寸氣消誰是主? 百年身後 虛名.
衣裳破處重重補, 粮食無時旋旋營.
一箇幻軀能幾日? 爲他閒事長無明.
아무명예 구하잖고 아무영광 구하잖고,
그저다만 인연따라 이한삶을 건넬지니.
세치기운 사라지면 그누구가 주인인가,
평생몸을 버린후에 부질없는 헛된이름.
옷가지는 떨어진곳 거듭거듭 꿰매입고,
먹을양식 없을때는 두루두루 엮어가리.
구름같은 몸뚱이는 능히몇날 가겠는가,
그것위해 헛된일로 무명만을 길렀구나.
⊙ 靈芝律師勉住持[1]
深嗟末法實悲傷, 佛法無人得主張.
未解讀文先坐講, 不曾行脚便陞堂.
將錢討院如狂狗, 空腹高心似啞羊.
奉勸後賢休繼此, 免敎地獄苦時長.
가슴들이 탄식할새 이내말법 슬프나니,
그누구도 불법들어 펼치지를 않는구나.
글귀한줄 읽지않고 앞에나서 강설하고,
행각일보 딛지않고 은근슬쩍 당오르네.
돈싸들고 절구함은 미친개나 진배없고,
텅빈배에 교만함은 벙어리양 그것일세.
권하노니 후현들은 이런짓좀 그만두어,
지옥에서 받을고통 조금이나 줄여보소.
⊙ 勉學徒
聽敎參禪逐外尋, 未嘗回首一沈吟.
眼光欲落前程暗, 始覺平生錯用心.
교법듣고 참선함에 마음놈은 겉노나니,
언제한번 고개돌려 음미조차 않았구나.
지친눈빛 내려앉자 그앞길이 캄캄하니,
그제서야 한평생을 그릇되게 지냈음을.
⊙ 佛眼禪師十可行中三節
1. 禮 拜[2]
禮佛爲除 慢垢, 由來身業獲淸凉.
玄沙有語堪歸敬, 是汝非他事理長.
부처님께 하는예배 교만벗기 위함이니,
그로인해 몸의업은 청정함을 얻는것을.
현사말씀 법다움에 귀의하여 공경하면,
다름아닌 네자신이 이참사참 얻을지니.
2. 經 行[3]
石上林間鳥道平, 齋餘無事略經行.
歸來試問同心侶, 今日如何作?生?
반석위로 숲사이로 새지난길 평탄하니,
공양끝에 한가할새 맘가벼이 거니노라.
돌아와선 마음맞는 도반에게 물어보길,
오늘하루 그무엇을 어찌하고 어찌했나.
3. 誦 經
夜靜更深自誦經, 意中無惱睡魔惺.
雖然暗室無人見, 自有龍天側耳聽.[4]
고요한밤 삼경깊어 홀로앉아 경전외니,
뜻가운데 번뇌없고 잠귀신은 달아나네.
그리비록 어둔방에 보는이가 없다하나,
용과하늘 거기있어 귀기울여 듣는다네.
⊙ 靈巖石刻 勉僧看病
四海無家病比丘, 孤燈獨照破牀頭.
寂寥心在呻吟裏, 粥藥須人仗道流.
病人易得生煩惱, 健者長懷惻隱心.
彼此夢身安可保? 老僧書偈示叢林.
넓은사해 집도없이 병든몸의 사문비구,
외론등불 닿는곳은 헤진침상 머리맡쯤.
적적한맘 있는곳은 가느다란 이신음속,
미음과약 구하느니 다름아닌 도류도반.
병든사람 걸핏하면 번뇌망상 생기나니,
건강한자 그대들이 측은지심 품을지다.
저도이도 꿈같은몸 어찌가히 보존하리,
노승이쓴 게송주어 총림에다 내보이네.
⊙ 眞淨文禪師頌
剃髮因驚雪滿刀, 方知歲月不相饒.
逃生脫死勤成佛, 莫待明朝與後朝.
머리깎다 칼날위로 쌓인눈에 문득놀라,
그제서야 이세월이 넉넉잖음 알게되다.
생과사를 벗어나서 힘써부처 이룰진정,
내일이나 모레아침 기다리지 말지니라.
⊙ 慈受禪師訓童行[5]
世諦紛紛沒了期, 空門得入是便宜.
直須日夜常精進, 莫只勞勞空過時.
燒香禮拜莫 , 目覩心存對聖容.
懺悔多生塵垢罪, 願承法水洗心胸.
也要學書也念經, 出家心地要分明.
他年圓頂方袍日, 事事臨時總現成.
一等出家爲弟子, 事師如事在堂親.
添香換水須勤愼, 自有龍天鑑照人.
廊下逢僧須問訊, 門前過客要相呼.
出家體態宜謙讓, 莫學愚人禮數無.
出家不斷 和酒, 枉在伽藍地上行.
到老心田如未淨, 菩提種子亦難生.
莫說他人短與長, 說來說去自招殃.
若能閉口深藏舌, 便是安身第一方.
色身健康莫貪眠, 作務辛勤要向前.
不見 坊盧行者, 祖師衣鉢是渠傳.
香積廚中好用心, 五湖龍象在叢林.
瞻星望月雖辛苦, 須信因深果亦深.
常住分毫不可偸, 日生萬倍恐難酬.
猪頭驢脚分明見, 佛地如今掃未休.[6]
家事精序宜愛惜, 使時須把眼睛看.
莫將恣意胡抛擲, 用者須知成者難.
諸寮供過要精勤, 掃地煎茶莫厭頻.
事衆若能常謹切, 身心方是出家人.
拳手相交不可爲, 序豪非是出家兒.
遭人唾面須 拭, 到底饒人不是癡.
出家言行要相應, 戰戰常如履薄氷.
雖是未除鬚與髮, 直敎去就便如僧.
세상도리 분분하여 마칠기약 없다하니,
빈문안에 드는것이 마땅하고 옳으리다.
모름지기 밤낮으로 항상정진 할지언정,
그저앉아 끙끙거려 괜히시간 허비말라.
향사르고 예배하되 급한마음 멀리하고,
눈에담고 맘에담되 참모습을 대한듯이.
많은생애 티끌때로 찌든죄를 참회하고,
원하건대 법물줄기 얻어마음 씻으리다.
또한글을 늘배우고 또한경전 늘외워서,
출가하는 마음바탕 분명해야 할지니라.
다른날에 머리깎고 한벌가사 걸치는날,
일마다에 임해서는 드러나서 이루리다.
한결같이 출가하여 불제자가 되었으면,
어버이를 섬기듯이 스승님을 섬길지라.
향덧피워 물갈때는 모름지기 부지런히,
용과하늘 거기있어 살펴비춰 줄것이다.
복도에서 스님뵈면 모름지기 안부묻고,
문앞으로 지나는객 서로불러 인사하라.
출가한이 몸의태도 응당겸양 할것이니,
못난이의 예절법도 배우지를 말지니라.
출가하여 매운채소 술을끊지 않는다면,
가람위를 걷는걸음 헛되고도 헛되리다.
늙도록에 마음밭이 깨끗하지 못하다면,
보리종자 생겨나기 어렵고도 어려우리.
다른이의 장단점은 말하지도 말것이니,
그런얘기 오고가다 재앙만을 초래하리.
만약능히 입을닫고 혀를깊이 숨긴다면,
그것바로 몸편안한 제일방책 일것이다.
이색신이 건강할때 수면탐치 말것이고,
일할때는 더욱힘써 앞장서서 나아가라.
방앗간의 노행자를 그대보지 못했던가,
조사의발 바로그가 전수받아 갔느니라.
香積廚의 가운데로 좋게마음 쓸것이니,
다섯호수 용코끼리 총림속에 있느니라.
별을보고 달을봄이 비록힘은 들지라도,
모름지기 깊은원인 그결과도 그러하리.
상주물은 털끝만도 훔치지를 말지니라,
날마다에 만배불어 다갚기가 어려우리.
돼지머리 나귀다리 그대분명 보았으리,
부처님의 땅을쓺에 지금까지 쉬지못해.
집안일의 좋고나쁨 응당마음 둬야거늘,
사용할땐 모름지기 정신차려 볼지니라.
방자한뜻 가지고서 내던지지 말것이니,
쓰는자는 모름지기 이룬자를 생각하라.
모든요사 공양함에 자세하고 부지런히,
마당쓸고 차내는일 찡그리지 말지니라.
모든대중 섬기기를 삼가하고 절실하면,
그런몸과 그런맘이 바로출가 한이로다.
주먹으로 사귀는일 그대할바 아닐지니,
거칠고도 난폭함은 출가인이 아니로다.
다른이가 침뱉으면 그저얼굴 씻을지니,
넉넉한남 이루는일 어리석음 아니로다.
출가한이 말과행동 상응함이 필요하니,
조심스레 하여감이 항상엷은 얼음밟듯.
비록수염 머리털을 깎지않고 있더라도,
행동거지 하나하나 승려같이 할지니라.
⊙ 宏智禪師示衆
蒿里新墳盡少年, 修行莫待 毛班.
死生事大宜須覺, 地獄時長豈等閒?
道業未成何所賴, 人身一失幾時還?
前程黑暗路頭險, 十二時中自着奸.[7]
호리들녘 새무덤도 모두젊음 이었으니,
수행하며 귀밑머리 반백될날 기약마라.
죽고사는 이한큰일 모름지기 깨우치라,
지옥시절 장구하니 어찌등한 하오리까.
애써도업 못이루면 그무엇에 의지하리,
사람의몸 한번잃고 언제다시 돌아오리.
놓인앞길 캄캄하고 길머리는 험하기만,
하룻나절 가운데서 착심하여 구할지라.
⊙ 傳法偈[8]
假使頂戴經塵劫, 身爲床座遍三千,
若不傳法度衆生, 畢竟無能報恩者.
내가설령 부처이고 티끌만큼 겁을지나,
이내몸을 침상삼아 삼천대천 편력해도,
만일법을 전해받아 중생제도 못한다면,
필경에는 털끝만도 은혜보답 못하리니.
⊙ 黃蘗禪師偈
塵勞未脫事非常, 緊把繩頭做一場.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속된수고 못벗은일 보통일이 아니러니,
줄머리를 당겨잡고 한바탕을 해볼거나.
한차례의 독한추위 뼈속까지 닿잖으면,
어찌매화 코찌르는 향기뿜어 낼것인가.
⊙ 報恩法演禪師頌[9]
佳人睡起懶梳頭, 把得金 揷便休.
大體還他肌骨好, 不塗紅粉也風流.
어여쁜이 잠자리서 게으른듯 머리빗고,
금비녀를 잡아꼽곤 돌아앉아 쉬느니라.
대체로는 저기골이 어여쁨에 돌리나니,
연지분이 없더라도 또한풍류 아니런가.
【1】安住道德, 執持敎化. 又住於眞性, 持而不失.
【2】《業報差別經》云: [禮佛一拜, 獲十種功德: 一, 得妙色身; 二, 出語人信; 三, 處衆無畏; 四, 佛
所護念; 五, 具大威儀; 六, 衆人親附; 七, 諸天愛敬; 八, 具大福德; 九, 命終往生; 十, 速證涅
槃. 一拜尙如是, 多拜乎?]
【3】律: [佛聽經行, 經行有五利: 一, 堪遠行; 二, 能思惟; 三, 少病; 四, 消飮食; 五, 得定久住.]
【4】昔, 開山.安禪師, 定中見, 二僧先談佛法, 天龍拱聽, 後談世諦, 鬼神掃迹. 善惡昭然, 豈可序行
耶?
【5】二十偈中抄出.
【6】律云: [不得盜常住財物. 常住, 如毒藥, 毒藥猶可療, 盜常住物, 無能救濟. 常住者, 體通十方,
唯局本處, 不可分用.]《善生經》云: [病人, 常住物貸用, 當十倍還之. 餘不病人, 切莫開也.]《大
集經》云: [但衆僧所食之物, 不得輒與一切俗人, 若自費用, 此罪, 重於無間獄報.] 唐開元中,
毛牢妻生子, 猪頭象鼻, 魚 驢脚, 面有三行字云: [前生, 於開元寺借錢三千文 布一端不還,
故獲此報.] 刺使以聞, 勅名毛債, 於開元寺掃地, 又令諸寺門壁畵形懲後. 有人詩曰: [堪嗟毛
債異人類, 費用僧錢業報酬. 兩片魚 兼象鼻, 一雙驢脚戴猪頭. 前生自作無知罪, 佛地如今掃
未休. 爲報後來貪物者, 僧錢不用古來追.]
【7】奸, 求也.
【8】出《智論》.
【9】直據本分, 不借新熏.
【1】도덕에 편안히 머물며 교화하는 일을 꾸준히 지켜나감이다. 또는 참된 성품에 머물어 지
켜나감으로써 잃지 않음이다.
【2】《업보차별경》에서 말하였다. [예불 때 올리는 절 한 번에 10가지 공덕을 얻을 수 있다. 첫
째는 묘색신을 얻음이요, 둘째는 말을 하면 사람들이 믿음이요, 셋째는 대중 가운데 거처
함에 두려움이 없음이요, 넷째는 부처님이 護念하는 바가 됨이요, 다섯째는 커다란 위의를
갖춤이요, 여섯째는 대중들이 친근하게 붙좇음이요, 일곱째는 모든 하늘신들이 경애함이
요, 여덟째는 커다란 복덕을 갖춤이요, 아홉째는 명을 마침에 왕생극락함이요, 열째는 속
히 열반을 증득함이다. 절 한 번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항차 절을 많이 함이랴!]
【3】율장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경행을 허락하심에 경행에는 다섯 가지 이로움이 있으니,
첫째는 멀리 다님을 감당할 수 있음이요, 둘째는 능히 思惟할 수 있음이요, 셋째는 병이
적어짐이요, 넷째는 음식을 소화시킴이요, 다섯째는 선정을 얻으면 오래도록 머물 수 있음
이다.]
【4】옛날에 개산 안선사가 선정 중에 보니, 두 스님이 먼저 불법에 대해 담론함에 천룡들이 함
께 들었으며 후에 세간의 도리에 대해 담론하니 귀신들이 자취를 쓸어 없앴다. 선과 악이
이렇듯 분명하니 어찌 가히 제멋대로 행동하겠는가.
【5】20수의 게송 가운데 가려 뽑은 것이다.
【6】율장에 이르기를 [상주재물을 도적질하지 말라. 상주물이란 독약과도 같은데, 독약은 오히
려 치료할 수 있으나 상주물을 도적질하면 구제할 길이 없다. 常住란 것은 그 실체는 시방
으로 통하더라도 오직 본디 있는 장소에 국한된 것이며 나누어 쓸 수도 없다] 하였다.《선
생경》에 이르기를 [병든 사람이면 상주물을 빌려쓰고 응당 열 배로 갚을 것이며, 그 나머
지 병들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손대지 말라] 하였다.《대집경》에 이르기를 [단지 대중스
님이 먹을 음식이라면 쉽사리 어떠한 속인에게도 주지 말 것이며, 만약 스스로 쓴다면 그
죄는 무간지옥의 과보 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하였다. 당나라 개원 연간 중에 모뢰의 아
내가 아들을 낳았는데 돼지 머리에 코끼리 코를 하였고 물고기 뺨에 당나귀 다리를 하였
으며 얼굴에는 석 줄의 글자가 있었는데 이르기를 [전생에 개원사에서 빌린 돈 3천문과
베 1단을 갚지 않은 까닭에 이러한 과보를 얻었다]라 하였다. 자사가 이 사실을 아뢰니 칙
서를 내려 毛債라 이름하게 하고 개원사에서 땅을 쓸게 하였으며, 또한 영을 내려 모든 사
찰의 문에 그 형상을 그려 후인들에게 징계토록 하였다.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말하기를
[오호라! 모채가 사람의 무리와 다른 것은, 승가의 돈을 쓰고 그 업보를 갚음이로다. 두 쪽
의 물고기 뺨과 코끼리 코, 한 쌍의 나귀 다리에 돼지 머리를 이고 있네. 전생에 스스로 알
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가, 부처님 땅에서 지금 같이 땅을 쓸며 쉬지 않는구나. 후에 물건
을 탐내는 자들을 위하여 알리나니, 승가의 돈은 쓰지 않더라도 예로부터 추징한다 하였
네]라고 하였다.
【7】奸은 구함이다.
【8】《지론》에 나온다.
【9】바로 본분에 의지할 뿐 新熏을 빌지 않는다.

傳 記
⊙ 超夜叉之難
昔, 外國山寺, 有年少比丘, 每誦《法華》. 嘗於寺外經行, 忽遇
羅刹女鬼, 變爲婦人, 來 比丘, 比丘被惑, 遂與之通. 通後, 神昏
無覺, 鬼負飛行, 欲返本處將 , 從一伽藍上過, 比丘在鬼背上,
聞誦《法華》, 因卽少惺, 心暗誦之, 鬼便覺重, 漸漸近地, 棄之而
去. 比丘聞鍾入寺, 陳其本末. 然, 計去鄕二千餘里, 諸僧云: [此
人犯重, 不可同止.] 有一上座云: [爲鬼所惑, 非是自心, 旣能脫
免, 現經威力, 可住寺令懺.] 後遇鄕信, 乃發遣之.
옛날 외국의 산사에 나이가 어린 비구가 있었는데 매번《법화경》을 암송하였
다. 일찍이 절 밖을 경행하다가 홀연히 나찰 여자귀신을 만났는데, 부인으로 변
하여 다가와서 비구를 홀리니 비구가 미혹되어 마침내 그와 더불어 통정하였다.
통정한 후에 정신이 혼미하여 깨어나지 못하자 귀신이 업고 날아가서 본거지로
돌아가 씹어 먹고자 하였는데, 한 가람 위를 지나가며 비구가 귀신의 등위에서《
법화경》의 암송 소리를 듣고는 그로 인해 곧 조금 깨어나 마음으로 그것을 가만
히 외우니 귀신이 곧 무겁게 느끼고는 점차 땅에 근접하게 되더니만 그를 버리고
는 가버렸다. 비구가 종소리를 듣고는 절로 들어가 그 자초지종을 얘기하였다.
그러나 고향과는 2천 여 리 떨어져 있었음에 모든 승려들이 [이 사람은 중대한
계율을 범하였으니 같이 머물 수 없다] 하였으나 한 상좌가 있어 이르기를 [귀신
의 유혹에 빠진 것이지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며, 이미 능히 벗어났으니 경전의
위력을 드러낸 것이므로 절에 머무르며 참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였다. 후
에 고향의 소식을 접하게 되자 이에 그를 보내 주었다.
⊙ 戒互用之罪
雲盖.智禪師, 一夕雨霽, 寒月微暎, 宴坐方丈, 將及二 , 忽聞
暑灸之臭, 俄有枷鎖之聲, 開戶視之, 貌不常類, 荷枷帶索, 枷上
火起而復滅. 立方丈之前, 以枷尾倚於門 , 智曰: [汝是誰耶, 曷
苦如此?] 枷下人曰: [我, 前住當山守 也.] 智大驚曰: [公居此
山, 院宇一新, 道風遠播, 意非四禪, 不足處之, 云何若是?]
曰: [我修道二十年, 不互用化士供僧之物, 後造僧堂, 互用僧供,
猶未塡設, 受苦至此.] 智曰: [作何方便, 可免?] 曰: [望以慈
悲, 回賣僧堂, 塡圓衆供.] 智曰: [浸久之事, 以何爲憑?] 曰:
[當時, 意謂修造畢功, 卽爲塡設, 無何至死. 嘗以破籠, 盛檀越名
目, 置庫司暗閣上, 今幸存焉.] 翌日, 集衆詣庫司, 帳目果在. 唱
賣衣鉢及僧堂, 遂爲塡設, 五年及足. 後夢, 來謝: [賴師之力,
幸免獄苦, 得生人中, 三生後, 復爲僧.] 以此觀之, 用僧供物, 造
僧房屋, 願還不及, 尙受此報; 當今撥無因果者, 互用財利, 甚竊
常住, 以爲己有, 爲如何哉? 彼明眼人, 被互用罪, 尙受苦報,
具縛人, 取三寶物, 私用之罪, 豈可逃乎?
운개 지선사가 어느 날 저녁에 비가 개이자 차디찬 달덩이가 어슴푸레 비추는
가운데 방장에 편안히 좌선하고 있었는데, 막 이경이 치려 할 때 홀연히 고기를
굽는 듯 뜸을 뜨는 듯한 냄새가 나더니 얼마지 않아 칼과 쇠고랑 소리가 들리기
에 문을 열고 보니 용모가 기이하였으며, 칼을 쓰고 포승을 둘렀는데 칼 위로 불
길이 일어났다가 다시 삭아들곤 하였다. 방장 앞에 서서 칼끝으로 문턱에 기대거
늘 지선사가 이르기를 [너는 누구인데 어찌하여 받는 고통이 이와 같은가?] 하
니 칼을 쓴 이가 말하기를 [나는 전에 이 산에 머물렀던 수옹입니다] 하는지라
지선사가 크게 놀라며 이르기를 [공이 이 산에 거처하여 사원이 일신되고 도풍
이 멀리까지 전파되었기에 생각건대 사선천이 아니면 족히 거처할 수 없을 것이
거늘 어찌하여 이와 같습니까?] 하니 수옹이 이르기를 [내가 도를 닦은 지 20년
에 화주들이 승려에게 준 상주물을 서로 넘나들며 쓰지는 않았는데, 후에 승당을
지으며 승려들의 공물을 엇바꾸어 쓰다가 아직 충당하지 못하였기에 괴로움을
받으며 여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였다. 지선사가 이르기를 [어떤 방편을 쓰
면 고통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자 수옹이 이르기를 [원하건대 자비스런 마
음으로 승당을 다시 매각하여 대중의 공양물에 원만히 충당하여 주십시오] 하기
에 지선사가 이르기를 [아주 오래된 일이라 무엇으로써 증명이 되겠습니까?] 하
니 이르기를 [당시 생각으로는 조성하는 일을 마치고는 곧 채워 넣으려 하였는
데 느닷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깨어진 대바구니에 단월의 명목을 넣어 창
고의 벽장 위에 놓아두었는데 지금까지 다행히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다음날
대중을 모아 창고의 벽장에 이르니 대장이 과연 있었다. 의발과 승당을 경매하여
충당하게 하였더니 5년만에 충족되었다. 후에 꿈을 꾸니 수옹이 와서 사례하며
[선사의 힘을 입어 다행히 지옥의 고통을 면하고 사람 가운데 태어남을 얻어 3생
후에는 다시 승려가 될 것입니다] 하였다.
이로 보건대 승려의 공양물을 이용하여 승당의 방을 짓고는 돌려주려 하였으
나 그렇게 하지 못하였음에도 오히려 이와 같은 과보를 받거늘, 지금에 인과를
무시하는 자가 재물과 이익 됨을 넘나들며 사용하고 심지어 상주물을 도둑질하
여 자기의 소유로 삼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저 밝은 눈을 가진 자도 오히려 고
통스러운 과보를 받거늘 하물며 갖가지 번뇌에 속박된 사람이 삼보의 상주물을
취하여 사사로이 쓴 죄는 어찌 벗어나겠는가.
又東山.淵公, 行業高潔, 自東山遷至五峰, 見火 , 與東山方丈
所用無異, 遂謂其眷曰: [莫是東山方丈之物乎?] 眷曰: [然! 彼
此常住, 無利害故, 將至矣.] 師曰: [汝輩無識, 安知因果有互用
罪?] 急令送還.
또 동산 연공은 행업이 고결하였는데, 동산으로부터 오봉으로 옮겨와서 부젓
가락이 동산의 방장에서 사용하던 것과 다름이 없음을 보고는 마침내 그의 권속
에게 말하기를 [동산 방장의 물건이 아닌가?] 하니 권속이 이르기를 [그렇습니
다. 피차가 상주물임에 이익되고 해 됨이 없을 것 같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하는
지라 선사께서 이르기를 [너희들은 아는 바가 없으니 어찌 인과에 엇바꾸어 사
용한 죄가 있음을 알겠는가] 하며 급히 돌려보내게 하였다.
⊙ 辨救命之報
《搜神記》云: [隋縣. 水側有斷蛇丘. 昔, 隋侯出見大蛇爲牧童
所傷, 疑其靈, 以藥傅之, 蛇乃去, 因名其丘. 後歲餘, 蛇含珠而報
之, 其珠徑寸純白, 夜有光, 可以燭百里, 謂之隋侯珠, 亦曰夜光
珠, 又靈蛇珠.]
《수신기》에 말하였다. [수현의 사수 옆에 단사구가 있다. 예전에 수현의 제후
가 외출하다가 큰 뱀이 소치는 아이에게 상처를 입는 것을 보고는 그 영묘함을
이상하게 여기고 약을 발라 주었더니 뱀이 이에 가버렸는데, 그로 인해 그 언덕
을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1년 남짓 후에 뱀이 구슬을 머금고 와서 보답하였는
데, 그 구슬은 직경이 1촌 남짓으로 순백색이었으며 밤중에도 빛이 나서 1백리를
밝힐 수 있었음에 ‘수후주’라 일컫고 또한 ‘야광주’ 또는 ‘영사주’라 일컬었다.]
⊙ 驚多言之失
古人詩云: [若不三山霜霧艾, 千載能燒我不死. 自口出藥還自
死, 不如緘口釜中煮.] 又《異苑》云: [東吳.孫權時, 有人, 入山遇
大龜, 卽束之而歸, 能作人言曰: {遊不良時, 爲君所得.} 人甚怪
之, 載出欲上吳王, 夜泊越里, 攬船於大桑樹, 夜自樹中, 有聲呼
龜曰: {勞乎元緖! 無事爾耶?} 龜曰: {今被拘執, 方見烹哉. 雖盡
南山樵, 不能潰我, 諸葛元孫博識, 必致相苦.} 樹曰: {若救, 如我
之徒, 計將安出?} 龜曰: {無多辭, 禍將及汝.} 樹寂然而止. 旣
至, 權命烹之, 焚柴萬車, 語猶如舊, 諸葛恪曰: {燃老桑, 乃熟.}
獻者仍說龜樹共言, 權命使伐桑煮龜, 立卽爛.] 又有一句: [世上
功名看木 上, 坐中談笑愼桑 龜.] 註: 木, 以材見伐; 上, 以不鳴
就死. 見《莊子》.
옛 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만약 삼산의 상무쑥이 아니면 천년을 능히 태워도
나는 죽지 않으리다. 입으로부터 약을 내뱉고 도리어 스스로 죽는 것은 입을 다
물고 솥 가운데서 삶기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며, 또《이원》에 이르되 [동오의
손권 때 어떤 이가 산에 들어가다 큰 거북이와 마주치자 곧 그것을 묶어 돌아오
니 능히 사람의 말을 하며 이르기를 {좋지 못한 때에 노닐다가 그대에게 잡혔구
나} 하였다. 사람들이 매우 괴이하게 여기고는 싣고 나와서 오왕에게 바치려 하
였는데, 밤에 월리에 머무르며 배를 큰 뽕나무에 매어 두었더니 밤중에 나무로부
터 소리가 나와 거북이를 부르며 이르기를 {수고스럽겠구나 거북아! 아무 일 없
느냐?} 하니 거북이 이르기를 {이제 잡혔으니 바야흐로 삶기게 될 것이다. 비록
남산의 땔나무를 다 태우더라도 나를 문드러지게 하지 못하겠지만 제갈씨의 원
손은 박식하니 필시 서로 괴롭게 될 것이다} 하므로 나무가 이르기를 {만약 구원
하고자 한다면 나와 같은 무리는 계책을 어떻게 내겠는가?} 하기에 거북이 이르
기를 {많은 말을 하지 말라, 재앙이 장차 네게 미칠 것이다} 하므로 나무가 조용
히 멈추어 있었다. 이윽고 도착하자 손권이 명을 내려 그것을 삶게 하며 1만 수레
의 땔나무를 불살랐으나 오히려 전과 같다고 말하기에 제갈각이 이르기를 {여러
해 묶은 뽕나무를 베어다가 거북을 삶으면 곧 익혀질 것입니다}라 함에 거북을
바쳤던 자도 거북이 나무와 함께 하던 말을 얘기하거늘 손권이 명을 내려 뽕나무
를 베어다 거북을 삶게 하니 곧 문드러졌다]라고 하였다. 또 한 글귀가 있으니
[세상의 공덕과 명예는 나무와 기러기의 일을 보듯하고, 앉은자리에서 담소할 때
는 뽕나무와 거북의 일로 삼갈지라] 하였다. 주석: 나무는 재목 됨으로 벌목되고, 기러
기는 울지 않음으로 죽음에 이른다.《장자》를 보라.
⊙ 明惜字之益
宋王沂公父, 見字紙遺地, 必拾取, 以香湯洗過焚之. 一夕夢,
先聖撫背曰: [汝敬重吾字之紙, 勤也. 恨汝老矣, 無可成就. 他
日, 當令曾參, 來生汝家, 顯大門閭.] 未幾, 果生一子, 遂命王參.
弱冠擢第壯元, 卽沂公也. 以此推之, 有字紙面, 不可抛撒踐踏.
偈曰: [世間文字, 藏經同, 見者須將付火中, 或擲淸流埋淨處, 賜
君壽福永無窮.]
송나라 왕기공의 아버지는 글자가 쓰여진 종이가 땅에 떨어진 것을 보면 반드
시 거두어들여 향물로 씻은 다음에 그것을 불살랐다. 하루 저녁의 꿈에 옛 성인
께서 등을 어루만지며 이르기를 [너는 내 글씨가 쓰인 종이를 공경하고 중히 여
김에 매우 부지런하구나. 한스러운 것은 네가 늙어 가히 성취할 만한 것이 없음
이다. 다른 날 응당 증삼으로 하여금 너의 집안에 태어나게 하여 문중을 크게 선
양토록 하겠다]라 하였다. 얼마지 않아 과연 한 아들을 낳으니 마침내 왕삼이라
이름하였다. 약관에 장원으로 급제하니 곧 기공이다. 이로써 추측해 보건대 글자
가 있는 종이는 버리거나 던져 놓아 밟게 해서는 안된다. 게송에 말하였다.
이세간의 모든문자 장경과도 같을지니,
보는자는 모름지기 불속에다 던지거나,
맑은물속 버리거나 땅속에다 파묻으면,
그대에게 오는복락 영원토록 지속되리.
⊙ 彰建屋之福
《仁孝勸善書》云: [昔, 維衛佛與六萬二千比丘出山還父王國, 王
於城外割地立屋, 處諸比丘. 有一比丘, 語左右家, 欲 作屋, 男
子不許, 其家老母, 手自爲之, 屋旣成之, 十指皆穿. 比丘坐中入
定, 一夜入火光三昧, 舍現大火, 母望念言: {作屋尋燒, 何其薄
福?} 走見, 如舊, 但火光中見比丘, 甚喜, 壽終生天. 釋迦成佛,
天命未盡, 下來白佛: {明日, 飯佛及僧.} 佛默然受之. 匿王, 又遣
人請佛, 佛曰: {已受天請.} 王自思曰: {未嘗見天人下施, 何緣有
此?} 明日, 遣人候之, 不見施辦. 日近午正, 亦復寂然, 王勅修
饌: {若無其人, 吾當供之.} 日中, 天至, 了不賚食, 但將天女, 鼓
諸音樂, 禮佛而住, 白曰: {時到.} 卽擧手巾, 衆事自然皆辦. 行水
旣訖, 擧手出廚, 百味甘露, 自然在地, 手自斟酌, 衆會皆足. 王見
驚異, 白佛: {此女, 何福乃爾?} 佛爲王說前世爲比丘作屋以手.
從是生天, 九十一劫, 手出衆物, 福尙未終.]
《인효권선서》에 말하였다. [옛적에 유위불이 6만2천 비구와 함께 산을 나와서
부왕의 나라로 돌아가니 왕이 성밖에 땅을 떼어 집을 세우고 모든 비구들을 거처
하게 하였다. 어떤 한 비구가 좌우의 인가에 말하여 품을 사서 집을 짓고자 하였
으나 남자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그 집의 노모가 손수 스스로 절을 지음에 집이
완성되자 열 손가락이 모두 뚫어졌다. 비구가 그 가운데 앉아 선정에 들어가니
하루 저녁에는 화광삼매에 들어 집에 큰불이 나타나는지라 노모가 그것을 바라
보고 생각하며 말하기를 {집을 지은 지 얼마되지 않아 불이 나니 어찌 이리도
박복한가} 하고는 달려와서 보았더니 예전과 같았고 단지 불빛 가운데 비구가
보이는지라 매우 기뻐하였는데, 목숨이 다해서는 하늘에 태어났다.
석가께서 성불하자 천상의 명이 아직 다하지 않았지만 내려와서 부처님에게
말씀 드리기를 {내일은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바치겠습니다} 하니 부처님
께서 묵묵히 그것을 받아 들였다. 익왕이 또 사람을 보내 부처님을 청하자 부처
님이 {이미 하늘의 청함을 받았다} 하므로 왕이 스스로 생각하며 이르기를 {하
늘사람이 내려와 베푸는 것을 아직 보지 못했는데 어찌된 연고로 이 같음이 있는
가?} 하였다. 다음 날 사람을 보내 기다리게 하였으나 공양을 베푸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해가 정오에 가까웠지만 역시 거듭 고요하므로 왕이 칙령을 내려 음식
을 마련하게 하고는 {만약 그 사람이 없으면 내가 응당 부처님을 공양하리다}라
하였다. 정오가 되어 하늘사람이 도착하였으나 음식을 가져오지 않고 다만 하늘
여인들을 거느리고 모든 음악을 연주하며 부처님께 예배하고는 머무르며 아뢰기
를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며 곧 수건을 들자 모든 일들이 자연히 갖추어졌다.
물로 깨끗이 하기를 마치고는 손을 드니 요리를 드러나서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
과 감로수가 저절로 땅에 있게 됨에 손수 적절히 처리하니 대중들이 모두 만족해
하였다. 왕이 보고는 놀랍고 이상하게 여겨 부처님에게 아뢰기를 {이 여인은 무
슨 복으로 이러합니까?} 하니 부처님이 왕에게 전생에 비구를 위해 손수 집을
지은 얘기를 해주었다. 이로부터 하늘에 태어나 91겁 동안 손에서 모든 물건이
나왔으며 복락은 오히려 끝남이 없었다.]
稽 古
⊙ 得髓得皮
達磨住少林, 經九年, 欲返天竺, 乃謂門人曰: [時將至矣, 各
言所得?] 道副曰: [不執文字, 不離文字, 以爲道用.] 曰: [汝得
吾皮.] 摠持曰: [我今所解, 如慶喜見阿 佛國, 一見不再見.]
曰: [汝得吾肉.] 道育曰: [以我見處, 無一法可得.] 曰: [汝得吾
骨.] 最後, 慧可出禮三拜, 依位而立, 曰: [汝得吾髓.]
달마가 소림에 머무르며 9년을 지내고는 천축으로 돌아가려함에 문인들에게
말하기를 [때가 장차 도래하려 하니 어찌 각각 얻은 바를 말하지 않으려는가?]
하였다. 도부가 이르기를 [문자를 고집하지도 않고 문자를 여의지도 않고, 그렇
게 하여 도의 쓰임으로 여길 뿐입니다]라 하였더니 [너는 나의 껍질을 얻었도
다] 하였다. 총지가 이르기를 [제가 지금 깊이 아는 바는 그 기쁘기가 마치 아축
불의 나라를 본 것과 같은데, 한 번 보고는 다시 보지 않나이다]라 하였더니 [너
는 나의 살을 얻었도다] 하였다. 도육이 이르기를 [내가 본 곳으로는 한 법도 얻
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하였더니 [너는 나의 뼈를 얻었도다] 하였다. 최후로 혜
가가 나아가 삼배로 예를 하고 자리에 의지해 서 있거늘, 이르되 [너는 나의 골수
를 얻었도다] 하였다.
⊙ 一麻一麥
《瑞應本起經》云: [菩薩取草布地, 叉手閉目, 一心誓言: {使吾
於此, 肌骨枯腐, 不成佛, 終不起.} 天神進食不受, 天令左右, 自
生麻麥, 菩薩日食一麻一麥, 端坐六年.]
《서응본기경》에 말하였다. [보살이 풀을 베어다 땅에 깔고 차수한 채 눈을 감
고는 한 마음으로 맹세하여 말하기를 {나는 이 자리에서 살과 뼈가 마르고 썩더
라도 성불하지 못하면 끝내 일어서지 않으리다} 하였다. 천신이 음식을 드려도
받지 않으니 하늘이 그 주위로 하여금 저절로 삼과 보리가 생겨나게 하므로 보살
이 하루에 마 한 알과 보리 한 알을 먹으며 단정하게 6년을 앉아 있었다.]
⊙ 飛錫點基
舒州.潛山, 世稱奇絶而山麓尤勝. 誌公與白鶴道人爭居之, 共奏
梁.武帝, 帝使二人各以物誌之, 先得者居之. 於是, 道人先放白鶴,
誌公次飛錫杖, 錫先卓立, 甘泉湧出, 誌公結庵安居. 王陽明詩曰:
險夷元不滯胸中, 何似浮雲過太空?
夜靜海濤三萬里, 月明飛錫下天風.
서주의 잠산은 세상에서 일컫기를 기묘하여 절경이라 하는데 산기슭이 더욱
빼어나다. 지공이 백학도인과 더불어 그곳을 점거하고자 다투다가 함께 양나라
무제에게 주청을 올리니 무제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물건을 써서 그곳에
표식을 함에 먼저 하는 자가 그곳에 거처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도인이 먼저 흰
학을 풀어놓자 지공은 그 다음에 석장을 날리니 석장이 먼저 우뚝 세워지면서
감미로운 샘이 솟아 나오는지라 지공이 암자를 짓고 안거하였다. 왕양명의 시에
말하였다.
험난하고 평탄함은 맘에걸림 없다하니,
뜬구름이 허공가듯 그와아니 흡사한가.
고요한밤 바다물결 삼만리에 뻗쳤는데,
달은밝아 날던석장 바람결에 떨어진다.
黃梅泉題順天.仙巖寺詩曰:
幽壑鍾聲自宇 , 燈燈遂現百年間.
飛空試卓泉根錫, 度世聊探樹裡環.
半榻晝明花綴爽, 九 雲盡月籠山.
向平華髮秋無數, 願乞金丹一粒還.
황매천이 순천 선암사를 표제로하여 쓴 시에서 말하였다.
그윽한골 종소리는 스스로가 삼천대천,
밝은등불 등불마다 일백년을 빛을낸다.
허공날려 시험삼아 샘근원에 석장두니,
이세상을 제도함에 그저숲속 옥찾는다.
걸상머리 나앉으니 낮은밝고 꽃은얽혀,
하늘구름 걷히더니 달은산을 에워싸다.
저향평의 꽃머리는 해마다에 셀수없어,
원하건대 금단한알 얻어지녀 돌아가리.
⊙ 錫杖解虎
齊僧慧稠在懷州.王屋山, 聞虎鬪, 以錫杖解之. 因成頌曰: [本
自不求名, 剛被名求我. 岩前解兩虎, 障却第三果.]
제나라 승려 혜조가 회주 왕옥산에 있을 때 호랑이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는
석장으로 말렸다. 그로 인연하여 송을 지어 말하였다. [본디 스스로 명예를 구하
지 않음에, 명예가 억지로 나를 구하는구나. 바위 앞에서 두 호랑이의 싸움을 말
리니, 장애 되어 제3과를 물리치게 되었다.]
又曇詢因山行, 見兩虎相鬪, 累日不歇, 遂執錫分之, 因語曰:
[同居林藪, 計豈大乖? 幸各分路.] 於是, 兩虎低頭受敎而去. 詩
曰: [窓前錫杖解兩虎, 床下鉢盂藏一龍.]
또 담순이 산행하다가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며 여러 날이 되도록 쉬지 않기
에 마침내 석장을 집어다 그들을 갈라놓으며 말하기를 [숲 속에서 함께 살면서
어찌 크게 어긋나고자 하는가? 각기 길을 나누어 가라] 하였더니 두 호랑이가
머리를 숙여 가르침을 받고는 떠났다. 시詩로써 말하였다. [창 앞의 석장으로 두
호랑이를 화해시키고, 침상 아래 발우로는 한 마리 용을 갈무려 둔다.]
《緇門警訓》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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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講院《緇門》仲講性海原文校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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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紀二五四一年丁丑十一月一日첫판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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