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乘六情懺悔 원효(元曉) 지음 釋元曉撰
만일법계 의지하여 유행교화 행하려면 행주좌와 사위의에 흐트러짐 없을지니
모든부처 부사의덕 그마음에 깊이새겨 참모습을 생각하여 업장삭여 소멸하라
육도세계 가이없는 중생들을 널리위해 시방삼세 부처님께 목숨바쳐 귀의하니
다름없음 부처이나 하나또한 아니어서 하나가곧 전체이고 전체가곧 하나로다
머무는바 없으시나 아니머뭄 없으시고 하려는바 없으시나 아니함도 없으시네
하나하나 상호마다 하나하나 털구멍에 무변세계 두루하며 미래제가 다하도록
막힘걸림 모두없고 차별또한 있지않아 중생교화 끝이없고 쉬실날이 없으시네
어찌하여 그러한가 그이유가 무엇인가 이글읽는 참회행자 맘기울여 생각하라
시방세계 먼지이고 삼세간이 찰나여서 생사열반 둘이없고 다름또한 있지않아
대비반야 둘중에서 취사선택 아니되니 불공법을 얻으므로 상응하기 때문이라
지금이곳 연화장의 장엄세계 바다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연화대에 앉으시어
가없는빛 놓으시며 무량중생 불러모아 굴리는바 실로없는 대승법륜 굴리시니
보살대중 많은이들 허공중에 가득차고 받는바가 실로없는 대승법락 받으시네
허나지금 우리들은 모두함께 바로여기 한결같은 삼보님의 허물없는 곳에서도
보도듣도 못하나니 귀머거리 장님이라 부처성품 없음인가 어찌하여 이러한가
무명으로 뒤죽박죽 바깥경계 지어내고 나와내것 집착하여 갖가지업 지어내어
그스스로 덮고가려 보고듣지 못하나니 마치주린 아귀들이 물을불로 봄과같네
그러므로 불전에서 부끄러움 깊이내고 보리심을 발하여서 성심으로 참회하라
나와함께 모든중생 무시이래 지금까지 무명업주 술에취해 죄지음이 한량없네
오역죄와 십악중에 아니지은 죄없으니 제가짓고 짓게하며 남짓는것 좋아하여
이와같이 무거운죄 헤아릴수 없는것을 모든부처 모든성현 이미알고 계신바라
이미지은 죄에대해 부끄러움 깊이내고 아직아니 지은죄는 새로짓지 말지어다
그렇지만 이모든죄 실로있지 아니하고 여러인연 화합함을 업이라고 가칭하네
인연속에 업이없고 떠나서도 또한없고 안팎에도 없거니와 중간에도 있지않아
과거이미 없어졌고 미래아직 안생겼고 현재라는 이시간은 머무름이 전혀없네
그러기에 짓는바도 또한다시 그러하여 머무름이 없으므로 생겨남도 또한없네
먼저부터 있었다면 생김이란 옳지않고 먼저부터 없었다면 그무엇이 작용했나
본래부터 없었음과 지금이제 여기있음 그두뜻이 화합함을 생김이라 말한다면
본래없을 그때에는 지금있음 실로없고 지금있을 이경우엔 본래없음 없어야지
먼저나중 영향없고 있음없음 안모여서 두뜻모임 없는자리 생겨남이 있겠는가
모임의뜻 이미깨져 흩어짐도 못이루니 모임흩음 본디없고 있음없음 아니로다
없을때는 있음없네 그어떻게 없다하며 있을때는 없음없네 그누구로 있다하랴
먼저나중 있음없음 모두성립 아니되니 업의성품 본래부터 생김없음 알지로다
본래부터 생겨남이 성립할수 없을진대 그어디에 아니생김 성립할수 있겠는가
생겨남과 아니생김 함께성립 아니되면 성립할수 없다함도 성립할수 없는것을
업의성품 이러하듯 부처님도 그러하니 이는이미 경전에서 말씀하신 바와같네
이를테면 중생들이 여러가지 업지음에 선업악업 살펴보면 안팎모두 아니로세
이와같이 업의성품 있음없음 영향없듯 없던것이 나타남은 원인없인 안생기네
지은바가 없고보면 받음또한 없겠으나 시절인연 화합하여 과보얻음 그와같네
만일능히 수행자가 이와같은 실상들을 자주자주 생각하고 계속하여 참회하면
사중죄와 오역죄를 지을바탕 없어지니 땔감없는 태허공이 탈수없음 그와같네
게을러서 뉘우침도 부끄럼도 전혀없이 업의실상 올바르게 사유하지 못하는자
죄의성품 없거니와 끝내지옥 들어가니 꼭두각시 호랑이가 마술사를 삼킴같네
그러므로 시방법계 부처님들 면전에서 부끄러움 깊이내어 참회해야 할지니라
참회할땐 마음없이 억지로는 말것이니 바로응당 참회실상 사유해야 하느니라
참회할죄 그대상이 이미있지 아니한데 참회하는 행위자가 그어떻게 있을거며
참회자와 참회대상 모두성립 아니되니 어느곳에 참회법이 과연있다 할것인가
모든업장 이와같이 참회하고 난뒤에는 또한응당 육정세계 게으름을 참회하라
나와다못 모든중생 무시이래 예로부터 모든법이 본래부터 아니생김 몰랐었네
헛된생각 뒤집히어 나와내것 헤아려서 안으로는 육정세워 알음알이 일으키고
밖으로는 육진지어 실유라고 집착하니 그모두가 제마음의 지음임을 모르도다
환상이요 꿈이어서 무소유가 분명커늘 그런중에 제멋대로 남자여자 헤아리고
온갖번뇌 일으키어 제스스로 옭아매며 고해속에 길이빠져 나올생각 아니하네
선정에서 바라보면 이상스런 일이로다 이를테면 잠을잘때 잠이마음 덮어버려
물결따라 표류하는 자기몸을 바라보되 그게단지 꿈속마음 소작임을 모름같네
물에빠짐 알고나면 큰두려움 생기지만 아직깨지 않았을땐 다른꿈을 다시꾸되
자신에게 비친대상 꿈일따름 실아니라 마음본성 깨어있어 꿈속의꿈 인줄아네
물에비록 빠졌으나 두려운맘 아니내니 아직제몸 침상위에 누운줄을 모르도다
머리손발 내저으며 깨어나려 애를쓰나 깨고나서 꾼꿈들을 되돌이켜 생각하면
물과다못 떠돌던몸 모두가다 무소유라 본래부터 침상위에 누워있음 단지보리
긴꿈또한 그러하여 무명으로 덮힌마음 육도윤회 지어내고 팔고중에 떠다니니
안으로는 부처님의 부사의훈 말미암고 밖으로는 부처님의 대비원력 의지하여
믿음이해 가까워라 나와다못 중생들이 단지긴꿈 꾸는것을 실재라고 헤아리나
싫건좋건 육진이며 남자여자 두모습과 나와꿈도 모두함께 영영실재 아니니라
그무엇을 걱정하고 그무엇을 기뻐하며 그무엇에 탐을내고 그무엇에 성내리오
자주자주 사유하고 이와같이 꿈을보면 꿈과같은 저삼매를 점점닦아 얻으리라
이삼매로 말미암아 무생법인 증득하고 그리하여 긴꿈에서 완연하게 깨어나면
본래부터 윤회하여 흘러다님 영영없고 한마음이 일여침상 누워있음 알게되리
이와같이 여의면서 자주자주 사유하면 비록육진 얽혔으나 실로삼지 아니하고
온갖번뇌 부끄러워 게으르지 않을지니 이를일러 대승육정 참회라고 하느니라
[해설 및 원문] -------------------------
만약 법계에서 소요하려고 하는 자는 네 가지 위의(威儀)를 조금도 황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若依法界 始遊行者 於四威儀 無一唐遊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덕(德)을 생각하고, 항상 실상을 생각하며 업장(業障)을 녹여야 한다.
念諸佛不思議德 常思實相 朽銷業障
널리 육도(六道)의 가없는 중생을 위하여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께 귀명(歸命)해야 할 것이다.
普爲六道 無邊衆生 歸命十方 無量諸佛
모든 부처님은 서로 다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다. 하나가 곧 모두이며 전체가 곧 하나이다.
諸佛不異 而亦非一 一卽一切 一切卽一
비록 머무른 바가 없으나 머루르지 않은 바도 없고 비록 하는 바도 없을지라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 것도 없으니, 낱낱 상호(相好)와 낱낱 모공(毛孔)이 끝없는 세계와 한없는 미래세에 두루하며, 구애됨도 없고 장애됨도 없으며, 아무런 차별도 없이 쉬지 않으신다.
雖無所住 而無不住 雖無所爲 而無不爲 一一相好 一一毛孔 遍無邊界 盡未來際 無障無礙 無有差別 敎化衆生 無有休息
왜냐하면 시방 삼세의 한 티끌과 한 생각과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며 차별됨도 없고, 대자대비의 반야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이 불공법(不共法)과 상응하기 때문이다.
所以者何 十方三世 一塵一念 生死涅槃 無二無別 大悲般若 不取不捨 以得不共法相應故
이제 이 연화장(蓮華藏) 세계에서 비로자나 부처님이 연화대에 앉아 끝없는 광명을 비치니 한없는 중생이 모여, 굴릴 것도 없는 대승의 수레를 굴리며, 보살대중들은 허공에 가득히 모여 받을 것도 없는 대승의 법락(法樂)을 받는다.
今於此處 蓮花藏界 盧舍那佛 坐蓮花臺 放無邊光 集無量衆生 轉無所轉 大乘法輪 菩薩大衆 遍滿虛空 受無所受 大乘法樂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들은 이 한결같은 실다운 삼보의 허물 없는 장소에 같이 있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여, 귀머거리 같고 장님 같으니, 불성(佛性)이 없는 것인가,
而今我等 同在於此 一實三寶 無過之處 不見不聞 如聾如盲 無有佛性
어째서 이와 같은가.
무명(無明)의 뒤바뀜으로 망녕되이 바깥 경계를 일으키고, <나>와 <나의 것>이라 집착하여 가지가지의 업을 지어 스스로 덮고 가리워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이다.
마치 아귀가 물을 불이라고 보는 것과도 같다.
何爲如是
無明顚倒 妄作外塵 執我我所 造種種業 自以覆弊 不得見聞
猶如餓鬼 臨河見火
그러므로 이제 부처님 앞에서 깊이 부끄러워 하며 보리심을 발하여 정성된 마음으로 참회하여야 한다.
故今佛前 深生慚愧 發菩提心 誠心懺悔
나와 모든 중생이 오랜 옛부터 무명에 취하여 지은 죄가 한이 없으니 오역(五逆)과 십악(十惡)도 짓지 않음이 없으며 스스로 지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이도 짓도록 가르쳐 주었으며, 또 짓는 것을 보고 따라서 기뻐하였다.
이와 같이 죄가 가히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으니 모든 부처님과 성현이 아시는 바이다.
이미 지은 죄는 깊이 참회하고 짓지 말 것이다.
我及衆生 無始以來 無明所醉 作罪無量 五逆十惡 無所不造 自作敎他 見作隨喜
如是衆罪 不可稱數 諸佛賢聖之所證知
已作之罪 深生慚愧 所未作者 更不敢作
이와 같은 모든 죄는 실지로 있는 것이 아니며, 여러가지 인연이 화합하여 거짓 이름으로 업이라고 한다.
□此諸罪 實無所有 衆緣和合 假名爲業
연(緣)에는 업이 없고, 연을 여의면 또한 업은 없는 것이다.
안도 없고 바깥도 없으면, 또한 중간도 있지 않다.
卽緣無業 離緣亦無
非內非外 不在中間
과거는 이미 없어졌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현재는 머무름이 없다.
그러므로 죄 지은 바가 머무름이 없고, 머무름이 없으므로 생함도 없다.
먼저 생하지 않았으니, 누가 생했다고 하는 것도 없다.
過去已滅 未來未生 現在無住
故所作以 其無住故亦無生
先有非生 先無誰生
만일 말하자면 본래 없다는 것과, 이제 있다고 함이 서로 더불어 이 두 가지 뜻이 화합하여 생한다고 하나 본래 없을 때는 이제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있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은 아니다.
앞과 뒤가 미치지 않으니 있고 없는 것이 합치지 않으며, 두 뜻이 합치하지 않으니 어느 곳에 생겨남[生]이 있겠는가.
若言本無 及與今有 二義和合 名爲生者 當本無時 卽無今有 當今有時 非有本無
先後不及 有無不合 二義無合 何處有生
합친다는 뜻이 이미 무너지니, 흩어짐도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합치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니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
合義旣壞 散亦不成
不合不散 非有非無
없는 때에도 있는 것이 없으니 무엇을 대하여 없다고 할 것이며, 있는 때에는 없는 것이 없으니 누구를 기다려 있다고 할 것인가.
無時無有 對何爲無 有時無無 待誰爲有
앞과 뒤, 있음과 없음, 이 모두가 성립되지 않으니, 마땅히 알라. 업의 성품은 본래 나는 것이 아니다.
先後有無 皆不得成 當知業性 本來無生
본래부터 남[生]이 있지 않으니, 마땅히 어느 곳에 나지 않음[無生]이 있겠는가.
남[生]과 나지 않음[無生]이 다같이 있지 않는 것이나 어찌할 수 없어서 말 하는 것이다.
‘비유하면 어떤 중생이 모든 선악의 업(業)을 지었으나 안에는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다’은 것과 같이 업의 성품도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님이 또 그와 같다.
從本以來 不得有生 當於何處得有無生
有生無生 俱不可得 言不可得 亦不可得 業性如是諸佛亦爾
如經說言 譬如衆生 造作諸業 若善若惡 非內非外 如是業性 非有非無 亦復如是
본래 없다가 이제 있으니, 원인 없이 생긴 것도 아니며,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으나 때[時節]가 되면 과보(果報)를 받는다.
本無今有 非無因生 無作無受 時節和合 故得果報
수행하는 사람이 만약 능히 자주자주 이와 같은 실상(實相)을 생각하여 참회하면 네 가지 무거운 죄와 오역도 능히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허공이 불타지 않는 것과 같다.
行者若能 數數思惟 如是實相 而懺悔者 四重五逆 無所能爲
猶如虛空 不爲火燒
만약 게으르게 뉘우치지도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능히 업의 실상을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비록 죄의 성품은 없다고 하지만 장차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마치 환으로 된 호랑이[幻虎]가 도리어 환술사[幻師]를 삼키는 것과 같다.
如其放逸 無慚無愧 不能思惟 業實相者 雖無罪性 將入泥梨
猶如幻虎 還呑幻師
이렇기 때문에 마땅히 시방의 부처님 앞에 깊이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참회할 것이며, 참회할 때에는 참회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마땅히 참회의 실상을 사유(思惟)하면 참회한 죄는 이미 없어질 것이다.
是故當於 十方佛前 深生慚愧 而作懺悔 作是悔時 莫以爲作 卽應思惟 懺悔實相 所悔之罪 旣無所有
어떻게 능히 참회함을 얻을 것인가.
능히 참회함[能懺]과 참회하는 바[所懺]를 둘 다 얻을 수 없을 것이다.
云何得有 能懺悔者
能悔所悔 皆不可得
마땅히 어느 곳에서 참회법을 얻을 것인가. 모든 업장에서 참회할 것이다.
當於何處 得有悔法 於諸業障 作是悔已
또 육정(六情)의 방일을 참회하고 나와 중생이 시작이 없는 옛부터 모든 법이 본래 남[生]이 없는 것인 줄 알지 못하고, 망녕되이 뒤바뀌어 <나>와 <나의 것>이라고 계교하며, 안으로는 육정을 주장하여 알음알이[識]를 내고, 밖으로는 육진(六塵)을 지어 실유(實有)라고 집착하니, 이것이 모두 자기 마음이 지은 환(幻)과 같고 꿈과 같고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亦應懺悔 六情放逸 我及衆生 無始已來 不解諸法 本來無生 妄想顚倒 計我我所 內立六情 依而生識 外作六塵 執爲實有 不知皆是 自心所作 如幻如夢 永無所有
여기에서 남자나 여자나 구별하고 모든 번뇌를 일으켜 스스로 얽혀 길이 고해(苦海)에 빠져 헤어날 길을 구하지 않는다.
於中橫計男女等相 起諸煩惱 自以纏縛 長沒苦海 不求出要
고요히 생각해 보면 심히 괴상하구나.
마치 잠잘 때에 잠이 마음을 덮어 망녕되이 자기 몸이 큰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본다.
다만 이 꿈속의 마음이 짓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실지로 물에 빠진 줄 알고 큰 두려움을 내다가 아직 꿈은 깨지 않고 다시 다른 꿈을 꾸기를, 내가 물에 빠진 것은 꿈이요, 현실이 아니다라고 총명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꿈인 줄 알고 곧 물에 빠진 것은 꿈이요, 현실이 아니다라고 총명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꿈인 줄 알고 곧 물에 빠진 것에 대하여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몸이 침대 위에 누은 줄 알지 못하고 머리를 돌리며 손을 흔들어 잠을 깨려고 하다가 잠을 깬다.
그후 앞의 꿈을 추구하여 보면 물과 떠내려가는 몸이 다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본래대로 침대 위에 누웠음을 보게 되니 인생의 긴 꿈도 그와 같다.
靜慮之時 甚可怪哉
猶如眠時 睡蓋覆心 妄見己身 大水所漂
不知但是夢心所作 謂實流溺 生大怖懅 未覺之時 更作異夢 謂我所見 是夢非實 心性聰故 夢內之夢 卽於其溺 不生其懅
而未能知 身臥床上 動頭搖手 勤求永覺
永覺之時 追緣前夢 水與流身 皆無所有
唯見本來 靜臥於床 長夢亦爾 (懅=心부+13획원숭이거)
무명이 본래의 마음을 덮어 망녕되어 육도(六道)를 지어, 여덟 가지 고통의 바다에 돌아다니다가 안으로 모든 부처님의 부사의한 힘을 원인하고, 밖으로는 모든 부처님의 대비원력(大悲願力)을 의지하여 믿음과 이해가 가까와질 것이다.
無明覆心 妄作六道 流轉八苦 內因諸佛 不思議熏 外依諸佛 大悲願力 彷彿信解
나와 중생이 오직 긴 꿈의 침대 위를 망녕되이 사실이라고 계교하여 육진(六塵) 경계와 남녀(男女) 이상(二相)에 거역하기도 하고 수순하기도 하니, 이것은 나의 꿈이지 사실은 아니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하고,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탐내고, 무엇을 성내리오.
我及衆生 唯寢長夢 妄計爲實 違順六塵 男女二相 並是我夢 永無實事
何所憂喜 何所貪瞋
자주자주 이와 같은 꿈이라고 하는 관(觀)을 생각하고 점점 여몽삼매(如夢三昧)를 닦으면, 이 삼매로 말미암아 무생인(無生忍)을 얻을 것이며 긴 꿈으로부터 활연히 깨어나 본래부터 유전(流轉)함이 없으며 다만 이 일심(一心)이 일여상(一如床)에 누웠음을 알 것이다.
數數思惟 如是夢觀 漸漸修得 如夢三昧 由此三昧 得無生忍 從於長夢 豁然而覺 卽知本來 永無流轉 但是一心 臥一如床
만약 능히 이와 같음을 여의고 자주자주 생각하라.
비록 육진을 반연함이 실다운 것이 아니니, 번뇌를 부끄러워 하고 스스로 게으르지 말아라.
若離能如是 數數思惟
雖緣六塵 不以爲實 煩惱羞愧 不能自逸
이것을 대승육정참회라고 이름한다.
是名大乘六情懺悔
序
예전에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 말하지 아니하고, 부
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불경
의 거룩한 글뿐이었다.그러나 오늘날 불교를 배우는 이들은 전해 가면서 외는 것
이 사대부의 글이요, 빌어지니는 것이 사대부의 시뿐이었다. 그것은 울긋불긋한
종이에 쓰고 고운 비단으로 꾸며서 아무리 많아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하고 가장 큰
보배로 생각하니, 아! 예와 지금에 불법을 배우는 이들의 보배 삼는 것이 어찌 이
다지도 다른가?
내가 비록 불초하나 옛 글에 뜻을 두어 경 가운데 신령한 글로써 보배를 삼거니
와, 그러나 그 글이 오히려 번다하고 장경의 바다가 아득히 광대하여 훗날의 도반
들이 가지를 헤쳐 가면서 잎을 따는 수고로움을 면치 못할까 염려하여, 글 가운데
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것 수백마디를 간추려서 한 장에 적나니, 가히 글은 간략
하나 뜻은 두루 깊다할 만하다. 만일 이 말씀으로써 스승을 삼아 갈고 닦아 묘한
이치를 얻으면 자자 구구에 석가 세존이 나타나실 것이니, 부디 힘쓸지어다. 그렇
더라도 글자를 여읜 한 글귀와 격 밖의 기묘한 보배를 쓰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거
니와, 또한 장차 특별한 기틀을 기다리고자 한다.
嘉靖 甲子(1564) 夏 虛堂 白華道人 序
1. 한 물건
여기에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 워 일찍이 나지
도 않았고 죽지도 않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다.
2.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은 마치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3. 불법의 방편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여러가지 근기가 있으니 여러가
지 방편을 쓰지 않을 수 없다.
4. 굳이 이름하건데
굳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니 부처니 중생이니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
어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법체가 그러하니 한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긋나게
된다
5. 삼처전심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三處傳心은 선지禪旨가 되고, 한 평생 말
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선은 부처님의 마음禪是佛心이고 교
는 부처님의 말씀敎是佛語이다.
6. 마음에서 얻으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 버리면 꽃을 듦에 미소로써 답한 것拈花微笑도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
밖에 따로 전한敎外別傳 선지가 될 것이다.
7. 한 마디 하노니
내가 한 마디 하노니, 생각을 끊고 반연을 쉬어 하는 일없이 망연히 앉아있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저절로 푸르구나.
8. 한마음법과 견성법
교문에는 오직 한마음 법一心法만을 전하고 선문에는 오직 견성하는 법見性法만
을 전하였다.
9. 교와 선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는 먼저 여러 법을 가려 보이시고, 나중에 공空
한 이치를 말씀하셨지만, 조사들의 가르침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 드러났다.
10. 활과 활줄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나니 부처님께서 말씀
하신 걸림 없는 법無碍之法이란 바로 일미一味 에 돌아감인데, 이 한 맛의 흔적마
저 떨어 버려야 비로소 조사가 보인 한 마음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뜰 앞에
잣나무 이니라庭前柏樹子話'고 한 화두는 용궁의 장경에도 없다龍藏所未有底 고
한 것이다.
11. 먼저 참다운 가르침부터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치 않는 것과 인연 따르는
두 가지 뜻이 곧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自心之性相이고, 단박 깨치고 점차 닦는 두
가지 문頓悟漸修兩門이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런 연
후에 교의 뜻을 놓아 버리고放下敎義 오로지 그 마음이 두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
로써 참구한다면 반드시 얻은 바가 있으리니, 그것이야말로 몸을 뛰어나는 살길
이다.
12. 활구
대저 배우는 이들은 활구活句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아야 한다.
13. 고양이 쥐 잡듯
무릇 공안을 참구 함에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짓되,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것
과 같이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하고, 주린 사람이 밥 생각하듯 하며,
목마른 이가 물 생각하듯 하며, 어린애가 엄마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어 사무
칠 때가 있을 것이다.
14. 참선의 세 가지 요건
참선에는 반드시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첫째는 큰 신심大信根이고, 둘째
는 큰 분심大憤志이며, 셋째는 큰 의심大疑情이다.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
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이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다.
15. 개에게 불성이 없다?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찌하여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
까?狗子無佛性'라고 한 화두를 올 때도 들고 갈 때도 들고, 들어 올 때도 의심하
고 나갈 때도 의심하여,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생각할 길도 끊어져, 아무 재미도
맛도 없어지고, 마음꼬투리가 답답할 때, 그때가 바로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
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대목이다.
16. 화두를 듦에 있어서의 병통
화두를 들어 일으키는 곳에서 알려고 하지도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라. 또
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지니, 더 생각할 수 없는 데까지 나아가서,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늙은 쥐가 쇠뿔 속으로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것이
다. 또 평소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춰보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생사를 따라 굴러
다니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무서워하고 갈팡 질팡하는 것도 또한 식정識情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통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서 가라앉았다떴다 할뿐이다.
17. 조사관을 뚫어라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이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걸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 째 들어갈 것이다.
18. 공부는 거문고 줄 고르듯
공부는 마치 거문고 줄을 고르듯 팽팽하고 느슨한 정도가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
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 성성惺惺하고 역력歷歷하
게 하면서도 차근차근 끊임없이密密綿綿 해야 한다.
19.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 때 팔만 사
천의 마군이가 육근문六根門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생각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20. 마의 경계란?
일어나는 마음은 천마天魔요 일어나지 않는 마음은 음마陰魔요, 혹 일어나기도 하
고 일어나지도 않기도 하는 것은 번뇌마煩惱魔이다. 그러나 우리 바른 법 가운데에
는 본래 그런 일이 없다.
21. 타성일편打成一片
공부가 만약 때려 부수어 한 덩어리를 이룬다면, 비록 금생에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때에 악업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22. 대저 참선하는 이는
대저 참선하는 이는 이렇게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네 가지 은혜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더러운 몸四大醜身이 순간순간 썩
어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람의 목숨이 숨 한번에 달린 것을 알고 있는
가? 일찍이 부처님이나 조사 같은 이를 만나고서도 그대로 지나쳐 버리지 않았
는가? 높고 거룩한 법을 듣고서도 기쁘고 다행한 생각을 잠시라도 잊어 버리지
않았는가? 공부하는 곳을 떠나지 않고 수도인 다운 절개를 지키고 있는가? 곁
에 있는 사람들과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며 지내지 않는가? 분주하게 시비나 일
삼고 있지 않는가? 화두가 어느 때이든지 또렷또렷 매하지 않았는가明明不昧?
남과 이야기하고 있을 때에도 화두가 끊임없이 되는가? 보고 듣고 알아차릴 때
에도 한결같은가? 공부를 돌아볼 때 부처와 조사를 붙잡을 만한가? 금생에 꼭
부처님의 지혜를 이룰 수 있을까? 앉고 눕고 편할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
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덟 가지 바람이 불어올 때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것이 참선하는 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
검해야 할 도리이다. 옛 어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내 몸을 이 생에 못 건지
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릴 것인가?'
23.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을 배우는 무리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하다가도 실지 경계에 당하게 되면 그
만 아득하게 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서로 다른 자들이다.
24. 칠통을 깨뜨려야
만약 생사를 막아내려면 이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 비로소 생사를 벗어나게 될 것
이다.
25. 눈 밝은 스승을 찾아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라도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알이 바른가를 점
검 해 보아야 決擇正眼 한다.
26. 다만 그대의 눈 바른 것만을 귀하게 여기네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을 귀하게 여길 뿐只貴子眼正이
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不貴汝行履處,라고 하였다.
27. 굽히지도 높이지도 말라
바라건대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
이지도 말아야 한다.
28. 먼저 마음을 깨달아야
마음을 모르고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만을 도와줄 뿐이다.
29. 다만 범부의 생각을 없애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을 없애는 것뿐이지, 달리 성인의 성인의 알음알
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30. 버리고 구함이 모두 더럽힘이다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삿된 것이다.
31. 번뇌를 끊어야 열반이다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大涅槃이다.
32. 한 생각도 생겨남이 없다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 보아, 한 생각이 인연 따라 일어나지만 실
상은 생겨남이 없음을 一念緣起無生믿어야 한다.
33. 일어나는 그 곳이 원래 비어 있다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등이 모두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
보면, 그 일어나는 곳이 곧 비어 없는데 무엇을 다시 끊으리요.
34. 환을 여의면 곧 깨달음이다
환상인 줄 알면 곧 여읜 것이라 더 방편을 지을 것이 없고, 환상을 여의면 곧 깨친
것이라 또한 점점 닦아 갈 것도 없다.
35. 생사와 열반이 본래 없는 것
중생이 나는 것 없는 가운데서 망녕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은 마치 허공에
서 눈꽃이 기멸起滅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36. 다시 열반을 따로 얻은 바가 없다
보살이 중생을 건져 열반을 들게 했다 할지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는 것
이다.
37. 버릇은 한번에 없어지지 않는다
이치를 단박에 깨칠 수 있으나, 버릇은 한꺼번에 가시어지 지 않는다.
38. 이것이 마도이다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
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물이 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다. 이런 것들은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악마의 길
을 이룰 뿐이다.
39. 마음계율을 깨뜨리지 말라
덕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의 계율에 의지하지 않고, 삼업을 지키지 않는다. 함부
로 놀아 게을리 지내며, 남을 깔보아 따 지고 시비하는 것을 일삼고 있다.
40. 계를 지켜야
만약 계를 지킴이 없으면 비루먹은 여우의 몸도 받지 못 한다는데, 하물며 청정
한 지혜의 열매를 바랄 수 있겠는가?
41. 애욕을 끊어야
생사에서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욕의 불꽃을 꺼 버려야 한다.
42. 걸림없는 지혜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는 다 선정禪定에서 나온다.
43. 선정에 들게 되면
마음이 정定에 들면 세간의 나고 꺼지는 모든 현상을 능히 알게 된다.
44.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야
어떤 경계를 당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않음不生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無念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解脫이라 한다.
45. 본래 그대로 열반이다
도를 닦아 열반을 증득한다는 것修道證滅도 또한 진리가 아니다. 심법이 본래 고요
한것心法本寂임을 알아야 그것이 참 열반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법이 본래부터
늘 그대로 열반이다常自寂滅相'라고 하신 것이다.
46. 보시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힘 닿는대로 나누어 주라. 한 몸처럼 가엾이 여기면
同體大悲 이것이 참 보시布施니라.
47. 성내지 말라
누가 와서 나를 해롭게 하더라도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 의 문이 열린다.
48. 인욕
만약 참는 일이 없다면 만가지 행실이 이루어지지 못하느니라.
49.마음을 지키는 일
본바탕 천진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첫째가는 정진이다.
50. 진언을 외우는 것은
진언을 외우는 것은 금생에 지은 업은 비교적 다스리기 쉬워서 자기 힘으로도 고
칠 수가 있지만 전생에 지은 업은 지워 버리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신비한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51. 예배
예배란 공경이요 조복받음이니 참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52. 염불
염불이란 입으로 하면 송불誦佛이요, 마음으로 하면 염불이다.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를 닦는 데 아무 도움도 없다.
53. 경을 듣는 일
경을 들으면 귀를 거친 인연도 있게 되고, 따라 기뻐한 복도 있게된다. 물거품 같
은 이 몸은 다할 날이 있으나, 참다운 행은 헛되지 않는다.
54.간경
경을 보되 자기 마음속을 돌이켜봄이 없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을 다 보았다 하더라
도 아무런 보탬이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다.
55. 입만 배우지 말라
배워 도를 이루기 전에 남에게 자랑하려고 한갓 말재주만 부려 서로 이기려고 한
다면 마치 측간에 단청하는 것과 같다.
56. 외전
세속을 떠난 이가 세속 글을 익히는 것은 마치 칼로 흙을 베는 것과 같아서 흙은 아
무 소용도 없는데 칼만 망가지게 된다.
57. 출가하는 뜻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 몸의 편안함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며,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 도 아니며, 명예와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고 죽음을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며, 부처님의 지 혜를 이으려
는 것이며, 삼계三界에 뛰어나서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58. 덧없는 불꽃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태운다無常之火가 燒諸世間'
하셨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방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 하셨으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 하셨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마
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해야 한다.
59.명리를 버리라
세상의 뜬 이름을 탐하는 것은 쓸데없이 몸만 괴롭게 하는 것이요, 세상의 잇속을
따라 허덕이는 것은 업의 불에 섶을 더 보태는 것이다.
60. 명리승
이름과 재물을 따르는 납자는 초의草衣를 걸친 야인만도 못하다.
61. 가사입은 도둑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도둑들이 나의 옷을 빌려 입고, 부처를 팔아 온
갖 나쁜 업을 짓고 있느냐'고 하셨다.
62. 한 덩이의 밥
아! 불자여. 그대의 한 벌 옷과, 한 그릇 밥이 농부들의 피요, 직녀들의 땀이거늘, 도
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찌 소화해 낼 수 있단 말인가!
63. 시주받은 과보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 때문 인 줄 아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주는 것을 함부로 받아먹은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또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이 무슨 심사인가? 도대체 눈앞의
쾌락의 바로 후생이 괴로움인 줄을 생각지 않는구나.
64. 차라리 쇳물을 마시라
그러므로 이르기를 '차라리 뜨거운 철판을 몸에 두를 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옷을 입지 말며, 차라리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있는 이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고,
차라리 끊는 가마솥에 뛰어들지언정 신심 있는 이가 주는 집에 거처하지 말라' 한
것이다.
65. 시주를 받을 때 화살받듯 하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하라'고 한 것이다. 두터운 대접과 달콤
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으로서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66. 칼 가는 숫돌
그러므로 말하기를 도를 닦는 사람은 한 개의 숫돌과 같아서 장 서방이 와서 갈고,
이서방이 와서 갈아가면 남의 칼은 잘 들겠지만 나의 돌은 점점 닳아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도리어 남이 와서 돌에 칼을 갈지 않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67. 가사 아래 사람의 몸을 잃음
그러므로 옛말에 또한 이르기를 '삼악도의 고통三途苦이 괴로움이 아니라, 가사를 입
었다가 사람의 몸을 잃는 것이 진짜 괴로움이다'라고 하였다.
68. 더러운 가죽주머니
우습다, 이 몸이여.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를 한 조각 엷은 가죽으로 싸 놓았구나. 또 가죽 주머니에는 똥이 가득 담기고,
피고름 덩어리라. 냄새나고 더러워 조금도 탐나거나 아까울 것이 없다. 더구나 백년을
잘 기른다 해도 숨 한 번에 은혜를 저버리고 마는 것이랴.
69. 참회
허물이 있거든 곧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곧 부끄러워 할 줄 알면 대장부의 기
상이 있다 할 것이다.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
어질 것이다.
70. 하나의 바리때와 한 벌 옷
도인은 마땅히 마음을 단정히 검박하고 곧은 마음으로써 근본을 삼아 한 개의 표주
박과 한 벌의 누더기 옷이면 어디를 가나 걸릴것이 없다.
71. 무심도인
범부들은 눈앞의 현실에만 따르고, 수도인은 마음만 붙잡으려 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현실 두 가지를 다 잊는다면 이것이 바로 참다운 법이다.
72.보살과 마군
성문聲聞은 숲 속에 편히 앉아서도 마왕에 붙잡히고, 보살은 세간에 노닐어도 외도
와 마군이 보지 못한다.
73. 임종시에
누구든지 임종할 때에는 다만 오온五蘊이 다 빈 것이어서 네 가지 원소가 나라고 할
것이 없고四大無我, 참마음은 모양이 없어眞心無相 가는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
니다. 날 때에도 성품은 또한 난 바가 없고, 죽을 때에도 성품은 또한 가는 것이 아니
다. 지극 히 맑고 고요하여 마음과 경계가 둘이 아닌 하나인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이
단박 깨친다면 삼세 인과에 이끌리거나 얽매이지 않게 될 것이니 이것이 곧 세상을
뛰어난 자유인이다. 만약 부처님을 만나더라도 따라 갈 마음이 없고, 지옥에 가더라
도 두려운 마음이 없어야 한다. 다만 스스로 무심하게 되면 법계와 같이 될것이니 이
것이 바로 요긴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에 좋은 씨를 심고 임종 할 때에 좋은 열
매를 거둘 것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모름지기 이곳에 주의하여야 한다.
74. 마지막 순간에 분별을 두지 말라
사람이 임종할 때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생각이 끊어지지 않
게 되면 나귀나 말의 뱃속에 끌려들 거나 지옥의 끊는 가마 속에 처박히게 되며, 혹
은 개미나 모기같은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75. 학인의 병통
참선하는 사람이 본래 면목을 만약 밝히지 못한다면 높고 아득한 진리의 문을 어떻
게 뚫을 것인가. 때때로 어떤 이는 아주 끊어 없어진 빈 것으로써 참선을 삼기도 하
고, 아무 것도 기억이 없는 빈것으로써 도를 삼기도 하며, 일체 모두 없는 것으로써
높은 소견을 삼기도 하나니, 이것은 컴컴하게 비기만 한 것이라 병든 바가 깊다. 지
금 천하에 참선을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이런 병에 걸려 있다.
76. 종사의 병통
종사宗師도 또한 병病이 많다. 병病이 귀와 눈에 있는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기
울이며, 머리를 끄덕이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고, 병病이 입과 혀에 있는 자는 횡설
수설되지 않은 말과 함부로 '할' 喝하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는다. 병病이 손발에 있
는 자는 나아 갔다 물러갔다 이쪽저쪽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선禪을 삼으며, 병病
이 마음 가운데 있는 자는 진리를 찾아내고 오묘한 것으로써 선禪을 삼는다. 사실
대로 말하면 어느 것이고 병病 아닌 것이 없다.
77. 장승의 노래
본분 종사本分宗師가 이 구句를 온전히 들어 보임은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붙는 화
로에 눈 떨어지듯 紅爐點雪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石火電光하여, 배우는 자가
참으로 생각하고 의논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하
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는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였다.
78. 마조의 일갈
대저 배우는 사람은 먼저 종파 宗途의 갈래부터 자세히 가리어 알아야 한다. 옛날에
마조스님이 한 번 '할'하는데, 백장스님은 귀가 먹고, 황벽스님은 혀가 빠졌다. 이 한
'할' 이야말로 곧 부처님께서 꽃을 드신 소식이며, 또한 달마대사의 처음 오신 면목
이다. 아! 이것이 임제종의 근원이 된 것이다.
79. 선종의 다섯 갈래
무릇 조사의 종파에 다섯갈래가 있다. 즉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曺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仰宗, 법안종法眼宗 등이다.
80. 임제종
임제종은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33대 되는 육조 혜능대사 六祖慧能大師의 밑에
서 곧게 전하여 내려가기를 남악회양南嶽懷讓, 마조도일馬祖道一,백장회해百丈懷海, 황
벽희운黃檗希運, 임제의현臨濟義玄, 흥화존장興化存奬, 남원도옹南院道○, 풍혈연소風
穴延沼,수산성념首山省念, 분양선소汾陽善昭, 자명초원慈明楚圓, 양기방회楊岐方會,백
운수단白雲守端,오조법연五祖法演,원오극근圓悟克勤,경산종고선사俓山宗○禪師등이다.
81. 조동종
조동종曺洞宗은 육조의 아래에서 곁 갈래의 청원행사靑原行思, 석두희천石頭希遷, 약산
유엄藥山惟儼, 운암당성雲巖曇晟, 동산양개洞山良价, 조산탐장曹山耽章, 운거도웅 雲居
道膺선사 등이다.
82. 운문종
운문종雲門宗은 마조馬祖의 곁갈래로 천황도오天皇道悟, 용담숭신龍潭崇信, 덕산선감
德山宣鑑, 설봉의존雪峰義存, 운문문언雲門文偃, 설두중현雪竇重顯, 천의의회天衣義懷
선사 등이다.
83. 위앙종
위앙종은 백장百丈의 곁 갈래로 위산영우○山靈祐, 앙산혜적仰山慧寂, 향엄지한香嚴
智閑, 남탑광용南塔光湧, 파초혜청芭蕉慧淸, 곽산경통○山景通, 무착문희無着文喜선
사 등이다.
84. 법안종
법안종法眼宗은 설봉雪峰의 곁갈래로 현사사비玄沙師備, 지장계침地藏桂琛, 법안문
익法眼文益, 천태덕소天台德韶, 영명연수永明延壽, 용제소수龍濟紹修, 남대수안南臺
守安 선사 등이다.
85. 임제종의 가풍
임제 가풍은 맨손에 한 자루의 칼을 들고 부처도 조사도 죽이고, 예와 지금을 삼현삼
요三玄三要로써 판단하며, 용과 뱀을 주인과 손님의 위치로서 알아낸다. 금강이 보검
으로 도깨비를 쓸어 내고 사자의 갖은 위엄을 떨쳐 여우와 이리의 넋을 찢는다. 임제
의 종지 를 알겠는가? 푸른 하늘에 벼락치고 평지에 물결 인다.
86. 조동종의 가풍
조동 가풍은 방편으로 다섯 자리를 열어 세 가지 근기를 잘 다루며 보검을 빼어들고
나쁜 소견이 자라는 빽빽한 숲을 베어 내며 널리 통하는 길을 묘하게 맞추어서 천만
가지 모든 생각을 끊고 천착하여 가도다. 위음왕불威音王佛 나시기 전의 눈에 의젓
한 풍광이요,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풍경이다. 조동종을 알겠는가? 부처
님과 조사도 안 나시고 아무 것도 없는 그대로, 바른 것, 치우친 것, 있다 없다 하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威音王佛; 이 세계전에 맨 처음 부처가 되신 분이라 함
87. 운문종의 가풍
운문 가풍은 칼날 위에 길이 있고, 철벽에 문이 없다. 온 천하의 갈등을 흔들어 엎고
범부의 식견을 베어 버린다. 번개처럼 빠른 생각으로도 미칠 수 없는데, 활활 타는
불꽃 속에 어찌 발붙일 수 있으랴. 운문종을 알겠는가? 주장자가 날아 하늘 높이 오
르고 잔 속에서 모든 부처님이 설법을 한다.
88. 위앙종의 가풍
위앙 가풍은 스승과 제자가 부르면 화답하고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집에 살고 있네.
옆구리에 글자가 씌어있고, 머리 위에 뿔이 높이 솟았구나. 방안에서 사람들을 시
험하니 사자가 허리가 꺽인다. 네 가지 시비를 여의고, 백 가지 아닌 것도 모두 끊
어 버려 한 망치로 쳐 부수었네. 입은 둘이 있으나 혀는 하나도 없는 것이 아홉 구
비굽은 구슬을 꿰뚫었도다. 위앙종을 알겠는가? 부러진 비석은 옛 길에 비켜있
고 무쇠 소는 작은 집에 잠을 잔다.
89. 법안종의 가풍
법안 가풍은 말 속에 메아리가 울려퍼지고, 글 속에 칼날이 숨었구나. 해골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콧구멍은 어느 때나 그 가풍을 풀무질 한다. 바람 부는 나뭇가지
와 달 비치는 물가에 실상을 드러내고 푸른 대와 누른 국화 묘한 법을 환히 드러낸
다. 법안종을 알겠는가? 바람은 구름을 몰아 산마루로 날리고, 밝은 달은 물과 함
께 다리지나 흘러오네.
90.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
임제의 할과 덕산의 방망이가 다 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에 사무쳐 들어가 도리를 철
저하게 증득하여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꿰뚫었다. 큰 기틀과 큰 작용이 자유자재하
여 어디나 전신으로 출몰하며 전신으로 짐을 져, 물러나 문수와 보현의 대인 경계를
지킨다 하더라도 실상대로 말한다면 이 두 분도 또한 도깨비가 됨을 면 치 못할 것이
다.
91. 부처와 조사보기를 원수같이 한다
대장부는 부처님이나 조사 보기를 마치 원수와 같이하여야 한다. 만약 부처에게 매달
려 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부처에게 얽매인 것이요, 만약 조사에게 매달려 구하
는 것이 있다면 또한 조사에게 얽매이는 것이 된다. 무엇이든 구하는 것이 있다면 다
고통이 되므로 아무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92. 거룩한 빛
거룩한 빛 어둡지 않아 만고에 환하여라. 이 문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서문
是하면 그르친 것이요.
非해도 亦不中 인데 남의 糟糠을 번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나 一法도 버릴 것이 없는 면으로 보면 塵塵刹刹이 無非及일세 明明草草頭가 明明祖師意아닌가......
뜻이 얕고 短文인 사람에게 一日에 대중의 한 분이 부설거사 어록과 방거사어록을 변역 하여 달라는 청을 받고 마지못하여 바쁜 가운데 뜸뜸이 번역하여 방거사 어록 중에 中 .下권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上권만을 펴내게 됨을 凉知하시옵고 혹 잘못된 점이 있으면 明眼納子의 힐책을 감수하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수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만분지일이라도 佛 恩에 보답이 될까 하나이다.
불기2529년 10월 勤日 序
거사의 이름은 蘊이요, 자는 道玄이니 襄陽사람으로서 아버지는 衡陽 에서 太守의 벼슬을 하였다. 잠시 성남에서 살 때 수행할 암자는 가택 서쪽에다 세우고 수년 뒤에 는 전 가족이 득도하니 지금의 悟空庵이 이것이요, 후에 암자의 아래 에 있는 옛 집을 희사하니 지금의 能仁寺가 이것이다. 唐나라 貞元年에 數萬마의 많은 보배를 배에 싣고 가서 洞庭湘右라는 江 中流에 모두 버렸다. 그로부터 삶은 오직 한 장의 나뭇잎 같은 생애였다. 거사에게는 처와 일남일녀가 있었는데 대나무 그릇을 만들어 시중에 팔아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나라 정원 년에는 선종과 율종이 크게 성하고 조사의 가르침이 서 로 융성하여 그 빛은 사방에 뻗쳤으며 생활 속에 다 들어가 있었다. 거사는 먼저 石頭 스님에게 參學하고 지난날의 경지를 몰록 밝게 하 고 馬組스님을 알현한 후에는 本 心에 계합하니 일마다 깊게 통하고 도 에 계합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
妙德과 변재가 대단하고 문자의 眞詮마저 갖추어 합치하고 있었으며 그 후 각처를 찾아다니면서 지극한 이치를 겨루었다. 元和 초년에 그는 襄陽에 살면서 암굴에 보금자리를 정했다. 그때 태수인 于公적은 두루 살펴 민요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거사의 글을 읽고 더욱 흠모하는 생각이 더했다. 그래서 기회를 보아 몸소 나아가 알현하고 보니 옛친우와 같았다. 그리하여 정분이 깊이 계합하고 또한 왕래가 끊어지지 않았다.
거사가 入滅하려 할 때 딸 靈照에게 말하기를
모든 것이 幻化며 無實이니 네가 하기에 따라 인연한 바이니
잠깐 나가서 해의 높이를 보고 한낮이 되거든 알려다오.
영조는 문밖에 나아가 급히 말하되
벌써 한낮인 데다 日蝕입니다.
잠깐 나와서 보십시오.
거사가
설마 그럴 리가
하고 말하니 영조가
그러합니다.
라고 말했다.
거사가 일어나 창가에 갔다.
그러자 영조가 아버지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던
자리에 올라가 가부좌하고 곧 열반에 들었다.
거사는 돌아서서 그것을 보자 웃으며
내 딸 녀석 빨리도 앞질러 가는 구나.
하고는 나무를 줒어서 다비를 하였다.
칠일이 지나서 우공이 문안을 왔다.
거사는 우공의 무릎에 손을 얹고 잠시 돌아보며 말하기를
다만 원컨대 있는 바 모두 공하니 삼가 없는 바 모두가 있다고 말라.
잘 계시오 세상살이는 다 메아리와 그림자 같은 것이니
하고 말을 마치자 이상한 향기가 방에 가득하고 몸은 단정히 앉아 思索한 것 같았다.
그러자 우공은 빨리 붙들려 했으나 이미 열반에 들었었다. 바람은 大澤에 거칠게 불어 대는데 하늘에 피리 소리는 고요히 들려 달은 희미하게 창가에 비치는데 얼굴의 화색은 변하지 않았다. 시체를 태워 강이나 호수에 버리라는 유언에 따라 陳儀事를 갖추어 如法이 茶毘에 붙이게 되었다.
한편 곧 使人을 보내어 처자에게 알리니 妻는 소식을 듣고 가로되
이 어리석은 딸과 無知한 늙은이가 알리지도 않고
가버렸으니 이 어찌 가히 참겠는가.
하고 아들에게 알리려 가니 화전을 일구고 있는 것을 보고 가로되
龐公과 더불어 靈照가 가 버렸다.
고 말하니 아들은 호미를 놓고
애 !
하고 조금 있다가 선 채로 열반에 드니 母 는 말하되
어리석은 아들아 어리석음이 어찌 이다지도 한결 같은고
하고 또한 화장하니 사람들은 모두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후에 그 妻는 마을의 집집을 두루 돌면서 작별을 告하고 자취를 감추었으니 그로부터 어디로 갔는지 아는 자가 없었다.
巨士는 늘 말하되
아들이 있지만 결혼하지 않고 딸이 있어도 시집가지 않았으며
온 집안이 단란하여 無生話를 했다.
그 밖의 현묘한 말과 道를 읊은 詩頌이 세간에 전해져 있으나 자못 많이 흐트러져서 이번에 우선 듣고, 알고 있는 것만을 하나로 묶어 편집하여 길이 장래를 보아 후학에게 격려하는데 쓰여지고자 한 다. 세상에서 말하기를 居士는 유마의 後身이라 하니 아마 그대로 일 것이다.
無名子 序
巨士가 처음 石頭和尙을 參禮하고 묻되
萬法과 더불어 벗하지 않는 者는 누구입니까?
석두는 손으로 거사의 입을 막으니 거사는 활연히 깨달았다.
석두가 하루는 거사에게 묻되
그대는 老僧을 만나본 以來로 日用事가 어떠한고?
말하되
만약 누가 日用事를 묻는다면 바로
입을 열 곳이 없습니다.
석두가 말하되
그대가 그러함을 알았을진대 바야흐로 묻노라
하니 거사가 게송을 지어 바치기를
日用事는 고루 갖추었는데 朱니 紫니 어느 누가 이름을
붙었는고, 靑山에는 點埃가 끊어졌으니 물긷고 나무를
운반하는 것 이대로 입니다.
석두가
그렇다.
하고 말하되
그대는 緇로 할 것인가 素로 할 것인가?
하니 거사가 말하기를
원컨대 사모한 바로 쫓고 染하고 剃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居士는 그 후에 江南에서 馬祖를 참견하고 질문하기를
萬法과 더불어 벗하지 않는 者는 누구입니까?
마조가 云하되
네가 한입에 西江水를 다 마시면
곧 너에게 말해 주리라.
거사는 言下에 玄妙한 道理와 요긴한 이치를 몰록 깨닫고
이에 頌을 증정하니 心空及第句가 있었다.
이로부터 제방에서 가히 막을 자가 없었다.
거사가 하루는 마조에게 묻기를
물과 같이 힘줄과 뼈가 없으나 능히 만섬들이 배를
뜨게 하니 이 도리는 어떠합니까?
마조가 云하되
여기에는 물도 없고 또한 배도 없는데
무슨 힘줄과 뼈를 말하는고
하다.
居士가 藥山에게 이르자 藥山이 물어 가로되
一乘法中에 도리어 자箇事가 著得 하는가?
居士가 말하되
오늘 먹을 것을 구할 뿐 자箇事가 著得 인지 알지 않습니다.
藥山이 말하되
居士는 石頭를 보고 그렇게 얻었는가?
居士가 云하되
하나를 잡고 하나를 놓으면 이 좋은 손이 아닙니다.
藥山이 말하되
老僧은 住持라서 일이 많도다.
거사가 문득 珍重하니 藥山이 말하되
하나를 잡고 하나를 놓으면 老僧은 옳도다.
居士가 말하되
좋은 一乘問宗이 금일에 失却해 가는 구나.
藥山이 말하되
옳다 옳다.
하다.
居事가 禪院에 들어오자 高峰이 云하되
이 속인이 빈번히 선원에 들어와서 무엇을 찾는고?
居士가 이에 兩邊을 돌아보며 말하되
누가 이렇게 말하는고.
高峰이 문득 喝을 하니 거사가 말하되
여기 있구나.
高峰이 云하되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가.
거사가 말하되
뒤를 돌아 보라.
高峰이 머리를 돌려 말하되
봐라 봐라.
거사가 말하되
草賊은 大敗했다 草賊은 大敗했다.
高峰이 말이 없다.
하루는 高峰이 거사와 같이 걸어갈 적에 居士가 일보 앞에 나아가서 말하기를
나는 和尙보다 一步 능가했다.
하니 高峰이 말하되
앞서고 뒤서는 것이 없는데 老翁이 먼저 있기를 다투는 구나.
하다.
居士가 말하되
苦中苦도 이 一句에 미치지 못하리라.
하다.
高峰이 云하되
늙은이가 不甘을 두려워하는구나.
居士가 云하되
老翁이 만약 달게 여기지 아니하면 高峰은 무엇을 堪作하리요.
高峰이 云하되
만약 棒이 손에 있다면 쳐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하겠도다.
居士가 한 번 치면서 말하기를
多는 좋지 않을텐데
高峰이 비로소 棒을 잡으니 居士가 빼앗으며 云하되
도적이 금일에 한바탕 패했음이로다.
하니 高峰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내가 졸렬한 것인가 公이 졸렬한 것인가.
居士는 손바닥을 치면서
비겼다 비겼다.
하다.
居士가 하루는 高峰에게 묻기를
여기에서 峯頂까지는 몇 리나 됩니까?
高峰이 云하되
어느 곳에 가 있는가.
居士가 云하되
가히 두렵고 험준해서 問著할 수 없도다.
高峰이 云하되
어느 정도인가.
거사가 말하되
1 2 3 이라
高峰이 云하되
4 5 6 이로다
거사가 말하되
어찌 7를 말하지 아니합니까.
高峰이 云하되
이에 7이라 하면 곧 8이라 할 터이니까.
거사가 말하기를
잘한다 잘한다.
高峰이 云하되
添取하기를 일임하노라.
거사가 이에 돌 하다.
居士가 云하되
당당히 말하지는 못하겠지요.
高峰이 云하되
이러할 때에 龐公의 주인翁을 나에게 돌려보내라.
居士가 云하되
그렇게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가.
高峰이 云하되
잘 꾸짖은 물음이로되 물음이 사람을 밝게 하지는 못하도다.
居士가 云하되
잘 왔다 잘 왔다.
하다.
丹霞和尙이 어느 날 거사를 방문코자 대문간에 이르자
靈照가나물 바구니를 잡고 있는 것을 보고 묻기를
거사가 집에 있는가
하니 영조가 바구니를 놓고 손을 맞잡고서 있거늘
단하는 또 묻기를
거사는 집에 있느냐 없느냐
하니 영조는 나물 바구니를 들고 문득 가버렸다.
돌아온 거사에게 있었던 사실을 말하니
거사가 이르기를
赤土에 牛 를 칠했구나
하였다.
단하가 딸아 들어와서 거사를 보니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도 또한 말하지도 않았었다.
단하가 이에 불자를 세워 일으키거늘 거사는 槌子를 세웠다.
단하가 말하기를
다만 이것뿐인가 또다른 것이 있는가
거사가 이에 단하를 보면서 말하기를
전과 같지 않구나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사람의 聲價를 떨어뜨리려 하지만 방해롭지 않다
하다.
거사가 운 하되
좀전에 너를 한 번 꺾어 보려고 한 것이다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이러한 즉 天然의 입은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데
거사가 말하되
너의 벙어리는 본분에 말미암음이지만 나까지도 벙어리가 되겠다
하니 단하가 문득 拂子를 던지고 가 버리니 거사가
然스님 然스님
하고 불러도 단하는 돌아보지 아니하니 거사가 운 하되
벙어리를 근심할 뿐만 아니라 다시 겸하여 귀머거리가 될까 걱정된다
하다.
단하는 어느 날 거사가 방문해서 말하기를
어제 날에 서로 보았음이 어찌 금일에도 같은가
거사가 말하기를
如法이 어제 일을 들어서 너로 하여금 宗眼을 밝히고자 함이라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다만 宗眼을 방옹이 著得할 수 있겠는가
거사가 운 하되
나는 너의 눈 속에 있는데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내눈은 좁은데 어느 곳을 향하여 늙은이가 안착하려는고
거사가 말하기를
이 눈이 좁은데 이 몸이 어찌 편안하리요
단하가 돌아보지 않자 거사가 말하기를
다시 한 번 一轉을 말하면 문득 이 말의 전부를 얻으리라
단하가 또한 대답을 하지 아니하거늘 거사가 운 하되
여기에 一句를 말할 사람이 없구나
하다.
하루는 거사가 단하를 향하여 앞에서 叉手하고 잠깐 섰다가 나가도
단하는 돌아보지 아니하자 거사는 다시 와서 단하 앞에 앉으니
단하가 도리어 거사를 향하여 앞에서 손을 맞잡고 잠깐 섰다가
문득 방장실로 들어가니
거사가 운 하되
너는 내가 나오면 들어가니 일을 살피지 못하겠도다
하니 단하가 운 하되
이 늙은이가 들락날락하니 마칠 기약이 있겠는가
거사가 운 하되
조그마한 자비심도 없구나
하니 단하가 운 하되
이 놈을 田地까지 인도하게 했는데
거사가 운 하되
무엇을 잡아 인도했는가
단하가 이에 거사의 모자를 잡아 일으켜 말하되
一箇老師僧과 같도다
거사가 도리어 모자를 단하 머리에 올려놓고 말하기를
한낱 속인과 같도다
거사가 이에 應 하는 소리를 세 번하니 단하가 운 하되
옛날 기질을 어찌 잊어 버렸으리요
거사가 彈指하기를 세 번하면서 운 하되
하늘도 움직이고 땅도 움직인다
하다. 어느 날 단하는 거사가 오는 것을 보고 곧 달아날 기세를 하거늘 거사가 운 하되
그것은 오히려 몸을 버릴 자세로 어찌 찡그리고 심음할 행세를 하는고
단하가 문득 앉자 거사가 이내 단하의 앞에서 주장자로써 七자를 그으니 단하는 面下에 一자를 썼다.
거사가 운 하되
七로 因하여 一을 보고 一을 봄으로써 七자를 잊음이라
하니 단하가 운 하되
이 속에 말을 붙이려고 하는가
거사는 이내 哭을 세 번하고 가 버렸다.
하루는 거사가 단하와 더불어 出行을 할 때 맑고 푸른 강물을 보고 거사는 물을 가르키면서 말하되
이러한 것은 빨리 판단해 내지 못할 것이다
하니 단하가 말하기를
너무 분명해서 판단해 내지 못한다
거사가 손으로 단하에게 물을 세 번 뿌리니 단하가 말하기를
이러지마 이러지마
하면서 도리어 거사에게 물을 뿌리니 거사가 말하기를
마땅히 이러할 때 어떻게 堪作할 것인가
단하가 말하기를
물건밖에는 없다
거사가 운하되
마땅한 사람이 적다 마땅한 사람이 적다
하니 단하가 대답이 없자 거사가 운 하되
누가 便宜에 떨어지지 않았는가
하다.
백령화상이 路上에서 거사와 상봉하고 물어 운하되
옛날에 거사가 南嶽에게서 得力句를 일찍이 다른 사람에게 얘기했던 적이 있는가
거사가 운하되
말 한적이 있습니다
하니 백령이 운하되
어떤 사람에게 얘기했는가
거사가 자기를 가르키면서
방옹에게
하니 백령이 운하되
바로 이 妙德과 空生이라도 거사를 찬탄해 미치지 못하리라
거사가 도리어 묻되
스님의 得力句를 누가 알고 있습니까
하니 백령이 삿갓을 쓰고 가거늘 거사가 운하되
잘 가십시오
백령은 돌아보지 아니했다. 하루는 백령이 물어 말하되
말해도 말하지 않아도 함께 면치 못하니 너는 말하라
무엇을 면치 못하는고
거사가 눈을 껌벅하니 백령이 운하되
기특하다 다시 이보다 없으리라
거사가 운하되
스님이 사람을 잘못 인정합니다
하니 백령이 운하되
누가 이러 하지 않으며 누가 이러하지 않으리요
거사는 珍重히 나가 버렸다.
하루는 백령이 방장실에 앉아 있는데 거사가 들어오거늘 백령이 把住하며 말하기를
요즘사람도 말했고 옛사람도 말했는데 거사는 어떻게 말하겠는가
거사가 백령을 한 번 치니 백령이 운하되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거사가 운하되
말한즉 허물이 있도다
하니 백령이 운하되
도리어 내가 한 번 치리라
거사가 앞에 가까이 가서 운하되
시험삼아 한 번 쳐봐라
하니 백령이 珍重하다.
하루는 거사가 백령에게 물어 말하되
이러한 眼 目으로 사람의 비판을 면할 수 있겠는가
하니 백령이 운하되
어찌 免得할 수 있을고
거사가 운하되
뜻을 알았다
백령이 운하되
棒으로 無事人은 치지 않는다
거사가 몸을 돌려 말하되
쳐라 쳐라
하니 백령이 바야흐로 棒을 잡아 이르키자
거사가 把住하며 말하기를
나한테 모면해 보라
하니 백령이 말하지 않았다.
보제화상이 하루는 거사에게 물어 말하되
이 한낱 말로는 이제나 옛이나 唇舌을 피할 사람은 드무니 방옹은 피할 수 있겠는가
거사가 應諾하니 보제가 前의 말을 다시 하거늘
거사가 운 하되
어느 곳에서 去來하는가
하니 보제가 또 前話를 들어 말하니
거사가 운하되
어느 곳에서 去來하는가
보재가 운하되
다만 지금만 아니라 古人도 이러한 말이 있도다
거사는 춤을 추면서 나가거늘
보재가 운하되
이 미친놈 스스로의 허물을 누구에게 점검케 하는고
하다.
거사는 대동보제선사를 보고 손에 조리를 들어 보이면서 운하되
大同師! 大同師!
해도 보제가 대답하지 아니하니
거사가 운하되
石頭의 一宗은 스님의 처소에서 녹아 없어지는구나
하니
보제가 운하되
방옹이 들추지 않더라도 분명히 이와 같도다
하거늘 거사가 조리를 놓고 말하되
어찌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리요
보제가 운하되
비록 한푼의 가치도 없어서 다른 사람은 하품을 하고 또한 옳다 그르다 할지라도 나는 만족하게 여긴다
거사는 춤을 추면서 나가거늘 보제가 조리를 들고 운하되
거사!
하고 부르니, 거사가 머리를 돌이키거늘 보제가 춤을 추면서 나가니 거사가 손뼉을 치면서
歸去來! 歸去來!
하다.
하루는 보제가 거사를 보려가니
거사가 운하되
어머님 태중에 있을 때 一則語를 화상에게 말씀해 드리니 道理를 지어서 지키지 마시오
보제가 말하기를
오히려 삶이 隔했도다
거사가 운하되
스님을 향한 말은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보제가 운하되
사람을 놀라게 하는 句를 어찌 두려워하지 않으리요
거사가 말하되
스님과 같은 見解는 가히 사람을 놀라게 할만합니다
보제가 운하되
道理를 짓지 않는다는 것이 도리어 道理를 지음이로다
거사가 운하되
다만 一 生二生을 隔했음이 아니로다
보제가 운하되
밑바닥 僧을 점검하는데 一任하노라
거사가 손가락으로 세 번 퉁기다.
하루는 거사가 보제를 보려 가니 보제가 오는 것을 보고 문득 문을 닫으며 말하기를
아는 것이 많은 늙은이는 相見하지 않겠다
거사가 운하되
홀로 않아 말함은 누구에게 허물이 있는고
하니 보제가 이에 문을 여니 거사가 把住하며 말하기를
스님이 아는 것이 많은가 내가 아는 것이 많은가
보제가 운하되
아는 것이 많도다
하면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말아 드리는 것과 펴는 것의 차이가 어느 정도인고
거사가 운하되
이 물음은 사람을 氣急殺하게 하도다
하니 보제가 말이 없거늘 거사가 운하되
巧를 희롱하다가 拙을 이루웠다
하다.
거사가 하루는 장자화상 처소에 이르자 마침내 上堂說法을 하고져 대중이 集定해 있었다.
거사는 문득 앞에 나아가 운하되
여러분 청하오니 스스로 점검함이 좋겠습니다
하여도 장자화상이 설법을 하자 거사는 도리어 禪狀 우측에 서니
그때 어떤 僧이 묻기를
노인이 주장한 바는 받지 않겠아오니 청컨대 스님이 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장자가 운하되
방옹을 아느냐
하니 僧이
알지 못합니다
하거늘 거사가 문득 僧의 멱살을 움켜잡고
苦哉苦哉로다
하니 僧이 대답이 없자 거사는 밀어 버렸다.
장자가 조금 있다가 운하되
마침내 와서 僧에게 棒을 먹였는가
거사가 운하되
저이를 비로소 잘 대접했습니다
하니 장자가 운하되
거사는 다만 송곳 끝이 뽀족한것만 보았지 끌이 모나 있는 것을 보지 못했도다
하니
거사가 운하되
그러한 말은 나는 곧 알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이 들으면 좋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장자가 운하되
무엇이 좋지 않는고
거사가 운하되
화상을 다만 송곳 끝만 보고 끌 끝은 보지 못했습이로다
하다.
거사가 하루는 송산화상과 차를 마실 때거사가 차판을 들고 말하기를
사람사람마다 분수가 있는데 어째서 말하지 못하는가
하니 거사가 운하되
阿 兄은 무엇 때문에 도리어 말하는가
하거늘 송산이 운하되
無言으로는 가히 다할 수 없기 때문일세
거사가
灼然灼然하다.
송산이 문득 차를 마시니 거사가 운하되
아형은 차를 마시면서 어째서 客에게 揖하지 않는가.
하니 송산이 운하되
누구에게?
거사가 운하되
龐翁에게!
하니 송산이 운하되
어찌 새삼 읍할 필요가 있을꼬하다
훗날 丹霞가 듣고 운하되
만약 松山의 眼目이 아니였다면 도리어 저 老漢이 한바탕 어지럽게 하였으리라.
하는 말을 거사가 듣고 사람을 보내어 단하에게 전하기를
어찌 차판을 들기 前事를 알지 못하는고 하다.
하루는 거사가 松山과 더불어 밭가는 소를 보고 거사가 소를 가르키며 운하되
저러할 때 편안하련만 有를 알지 못하도다.
하니 송산이 운하되
만약 방옹이 아니면 어찌 저를 알리요.
거사가 운하되
스님은 저것이 무엇이 있는 줄을 못하는 지 말해보시오.
하니 송산이 운하되
石 頭를 보지 못했으니 말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거사가 운하되
본 후에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니 송산이 손바닥을 세 번 치다.
하루는 거사가 송산을 방문할 때 송산이 지팡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문득 말하되
手中에 무엇입니까
하니 송산이 운하되
老僧은 나이가 많아서 이것이 없으면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도다.
거사가 운하되
비록 그러하나 壯力이 아직 있습니다.
하거늘 송산이 문득 때리니 거사가 운하되
手中에 지팡이를 놓고 한 번 물어보시오.
하니 송산이 지팡이를 던져 버리니 거사가 운하되
이 늙은이가 前言과 後言이 부합되지 아니하도다.
하거늘 송산이 문득 喝 을 하니 거사가 운하되
蒼天中에 다시 원한의 苦가 있음이로다하다.
거사가 어느 날 송산과 같이 걸어 갈 때 僧侶가 野菜를 고르는 것을 보고 송산이 운하되
黃葉은 버리고 靑葉은 남겨두라
하시니 거사가 운하되
黃靑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또한 어떤 것인고
하니 송산이 운하되
좋은 말을 해보라.
거사가 운하되
서로 賓主가 되는 것은 크게 어렵도다.
하거늘 송산이 운하되
도리어 이 물음에 굳이 主宰를 지으려 하는가.
거사가 운하되
누군들 그렇지 아니하리요.
하니 송산이
그렇지 그렇지
거사가 운하되
黃靑에 떨어지지 않는 것은 능한 가운데서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니 송산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잘 풀이해 준 말이로다.
거사가 大衆에게 가볍게 절을 하거늘 송산이 운하되
대중이 너의 落機處를 놓아줌이로다.
하다. 어느 날 송산이 거사와 함께 談話할 때 문득 책상 위에 尺을 잡아 일으키며 말하되
거사는 도리어 보입니까?
하니 거사가 말하되
보입니다.
하거늘 송산이 운하되
무엇이 보입니까?
거사가 운하되
송산이 보입니다.
하니 송산이 운하되
말에 집착하지 말지어다.
하거늘 거사가 운하되
어째서 말하지 않으리요.
하니 송산이 이에 尺을 던져버리니 거사가 운하되
머리는 있고 꼬리가 없으면 남의 미움을 삽니다.
하니 송산이 운하되
그렇지 않다. 翁은 금일에 아직 말하여 마치지 않했도다.
거사가 운하되
어느 곳에 미치지 못했습니까.
하니 송산이 운하되
머리는 있고 꼬리는 없는 곳에
거사가 운하되
强 中에 弱을 얻는 것은 곧 있거니와 弱中에 强을 얻는 것은 없습니다.
하니 송산이 거사를 잡으며 말하되
이 늙은이는 이 中에 나아가 말할 곳이 없도다.
大乘起信論(解釋)
온 十方의 最勝한 業으로 두루 아시며 色이 無碍自在하신 세상을 救濟하시는
大悲者와 저 佛身의 體와 相이신 法性眞如바다의 한량없는 功德藏과 如實히
修行하는 자에게 歸命하옵나니 衆生으로 하여금 疑惑과 邪執을 버리고 大乘의
바른 신심을 일으켜서 佛種子가 끊어지지 않게 하고자 합니다.
논에 이르기를 어떤 법이 능히 마하연의 信根을 일으킬새 그러므로 이 論을 說
함이니라.
설에 다섯가지로 구분하였으니 무엇인가.
첫째는 因緣分이요,둘째는 立義分이요,세째는 解釋分이요,네째는 修行信心分이요,
다섯째는 勸修利益分이다.
처음 因緣分을 설하리라.
묻되 무슨 因緣으로 이 론을 설하는고?
답하되 이 인연이 여덟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여덟가지라 하는고?
첫째는 因緣總相이니 이른바 중생으로 하여금 일체의 고를 여의고 究竟樂을
얻게 하기 위함이지 世間의 名利와 恭敬을 구하는 것이 아닌 연고요.
둘째는 如來의 根本의 뜻을 解釋해서 모든 衆生으로 하여금 올바로 理解하여
誤謬가 없게 하고저 하기 위한 연고요.
세째는 善根이 成熟한 衆生으로 하여금 摩訶衍法응 堪任하여 믿음이 물러나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요.
네째는 善根이 微弱한 중생으로 하여금 信心을 修習하게 하기 위한 연고요.
다섯째는 方便을 보여서 나쁜 業障을 消滅하고 잘 그 마음을 보호해서 어리석고
驕慢함을 멀리 여의고 邪惡한 그물에서 벗어 나게 하기 위한 연고요.
여섯째는 止와 觀 닦는 법을 보여서 凡夫와 二乘(聲聞,緣覺)의 마음의 허물을
對治하기 위한연고요.
일곱째는 專念의 方便을 보이어 佛前에 태어나서 반드시 결정코 믿는 마음이
물러서지 않게 하기 위한 연고요.
여덟째는 이익을 보여서 수행하도록 권한연고이니 이러한 인연이 있을새
이런 까닭으로 이 논을 지었나니라.
묻되 修多羅의 가운데 이 법이 갖추어져 있는데 어찌 거듭 말하는고?
답하되 수다라의 가운데 비록 이 법이 있다 하더라도 衆生의 根行이 같지
아니 하며 받아 드려 이해 하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니 이른바 여래께서
세상에 계실적에는 중생들의 根機가 영리하고 법문을 설하는 부처님도
色心業이 殊勝하사 圓音으로 한번 연설함에 異類(一切衆生)가 다 같이 알아들
음일새 곧 論을 필요로 하지 않거니와 저 여래께서 涅槃에 드신 뒤에는
혹 어떤 衆生이 능히 自力으로 널리 듣고 아는 사람도 있으며,
혹 어떤 중생은 또한 自力으로서 적게 듣고 많이 아는 자가 있으며,
혹 어떤 衆生은 스스로 힘이 없어서 저 넓은 論을 因하여 아는 사람도 있으며,
스스로 중생이 다시 廣論의 글월이 많은 것을 번거롭게 여겨서 마음에 總持한
적은 글월이 많은 뜻을 攝取함을 즐겨해서 능히 아는 사람도 있나니라.
이와 같아서 이 론은 여래의 넓고 크고 깊은 법의 갓이 없는 뜻을 다
거두어 드리고저 함일새 응당 이 론을 설함이니라.
이미 因緣分을 說했으니 다음에는 立義分을 說하리라.
摩訶衍이란 것은 總說하면 두가지 種類가 있으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고?
첫째는 法이요,둘째는 義니라.
法이라 말한 것은 衆生의 마음을 이름이니 이 마음이 곧 一切 世間과 出世間의
法을 거두어 들였으니 이 마음을 의지해서 摩訶衍의 뜻을 나타내 보였나니 어찌
된 까닭인고? 이 마음의 眞如(離言)相(依言)이 곧 摩訶衍의 體를 보이는 까닭이
며,이 마음의 生滅因緣相이 능히 摩訶衍의 體,相,用을 보인 까닭이니라.
義라고 말하는 것은 곧 세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셋이라 하는고?
첫째는 體大니 이르되 一切法이 眞如平等하여 더하고 덜하지 않는 까닭이요,
둘째는 相大니 이르되 如來藏이 한량 없는 性功德을 具足한 까닭이요,
세째는 用大니 능히 一切世間과 出世間의 착한 因果를 生하는 까닭이니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본래 탄 바인 연고며,
一切 菩薩이 다 이법을 타고 如來地에 이른 연고니라.
이미 立義分을 설했으니 다음에는 解釋分을 설하리라.
解釋하는데 세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셋이라 하는고?
첫째는 正義를 나타내 보인 것이요,
둘째는 삿된 執着에 대하여 다스리는 것이요,
세째는 道에 發心趣向하는 相을 分別한 것이니라.
正義를 보인다는 것은 一心의 法을 依支하여 두가지 문이 있느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가?첫째는 心眞如門이요,둘째는 心生滅門이라.
이 두가지 문이 각각 一切의 법을 總攝하니 이 뜻이 어떠한고.
이 두문이 서로 여의지 않는 까닭이니라.
心眞如란 것은 곧 이 一法界 大總相法門體이니 이른바 心性이 生도 아니요,
滅도 아님이니라.一切의 모든 法이 오직 妄念을 依支하여 差別이 있으니
만약 心念(妄念)만 여의면 곧 一切境界의 相이 없으리라.이런 까닭으로
一切法이 本來부터 言說의 相을 여의었으며 名字의 相을 여의었으며 心緣의
相을 여의어서 畢竟에 平等하여 변하고 달라짐이 없으며 破壞할 수도
없는 것이니 오직 이 한 마음 인 까닭에 이름을 眞如라고 함이니라.
一切의 言說이 거짓 이름 뿐이요,실다움이 없는 것이니 다만妄念을
따랐을지언정 가히 얻을 수 없는 연고니라.
眞如라고 말하는 것도 또한 모양이 없는 것이니 이르되 言說의 窮極으로
말을 因하여 말을 보낸 것이어니와,이 眞如의 體는 가히 보낼 것이 없음이니
一切의 法이 다 참다운 까닭이며,또한 가히 세울 것도 없음이니 一切의 法이
다 한가지로 如如한 까닭이니라.마땅히 알라. 一切法은 가히 말할 수도 없고
가히 생각할 수도 없는 까닭에 그 이름을 眞如라고 함이니라.
묻되 만약 이와 같은 뜻일진대 모든 衆生들이 어떻게 隨順하여야 능히 얻어
들어 가릿닛고?
답하되 만약 一切의 法을 비록 말할지라도 능히 말함과(能說) 가히
말할(所說)것이 없으며 비록 생각할지라도 또한 능히 생각함과 가히
생각할것이 없는줄 알면 이것이 이름이 隨順이요 만약 생각을 여의면
이름이 얻어 들어감이 됨이니라.다시 眞如라는 것은 言說에 依支하여
分別한 것이 두가지 뜻이 있으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고?
첫째는 如實히 空한 것이니 능히 究境에 실다움을 나타내는 까닭이요,
둘째는 如實히 空하지 않은 것이니 自體에 샘이 없는 性功德을 具足한
까닭이니라.
말한바 空이란 것은 本來부터 一切의 染法이 相應하지 않는 까닭이니
이르되 일체의 差別相을 여의었으며 虛妄한 心念이 없는 까닭이니라.
마땅히 알라 眞如의 自性은 모양이 있는 것도 아니요,모양이 없는 것도
아니며,모양이 있는 것이 아님도 아니요,모양이 없는 것이 아님도 아니며,
있고 없는 두가지 모양도 아니며,한 모양도 아니며,다른모양도 아니며,
한모양 아님도 아니며,다른 모양 아님도 아니며,하나이니 다름이니 하는
두가지의 모양도 아님이니라 내지 통털어서 말할진대 一切衆生들이
妄心이 있음으로써 생각 생각에 分別해서 다 서로 다 응하지 못함을
의지 했을새 이런 까닭으로 말하여 空이라고 했거니와
만약 妄心을 여의면 실로 空이라 할 것도 없는 까닭이니라.
말한바 不空이란 것은 이미 법체가 공하여 망령 됨이 없음을 나툰 연고로
곧 眞心이 恒常하여 변하지 아니해서 正法이 만족함일새 곧 이름이
不空이니라.또한 모양있음을 가히 취할 것이 없음이니 생각을 여읜 경계는
오직 증득한 이라야 서로 응하는 까닭이니라.
心生滅이란 것은 如來藏을 의지한 연고로 生滅心이 있으니 이른바 生도 아니
요,滅도 아닌 것이 生滅하는 것과 더불어 和合하여 하나도 아니요,
다르지도 아니함이니 이름하여 阿梨耶識이라 함이니라.
이 阿梨耶識이 두가지 뜻이 있어서 능히 一切法을 거두기도 하며
一切法을 내기도 하나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고?
첫째는 覺義요, 둘째는 不覺義니라. 말한바 覺義란 것은 마음 자체가 생각
을 여읜 것을 이름이니 생각을 여읜 相은 虛空界와 같아서 두루하지
않은 바가 없어서 法界가 한 모양이니라.곧 이것이 如來의 平等한
法身이니 이 法身을 依支해서 설하여 本覺이라 함이니라. 무슨 까닭인고?
本覺의 뜻이란 것은 始覺의 뜻에 대하여 말한 것이니,始覺이 곧 本覺과
같은 때문이니라.始覺의 뜻은 本覺을 의지하는 까닭에 不覺이 있고,
不覺을 의지하는 까닭에 始覺이 있다고 설함이니라.또 心源을 깨달은
연고로 이름이 究竟覺이요 心源을 깨닫지 못한 연고로 究竟覺이
아님이니라.이 뜻이 어떠한고? 저 凡夫들이 前念에 惡業을 일으킴을
깨달아 알아서 짐짓 능히 後念을 그쳐서 그로 하여금 일어나지 못하게
하나니 다시 覺이라 이름하나 곧 이것은 覺이 아닌 까닭이니라.
저 二乘의 觀智(事理를 觀하는 智慧)와 처음 뜻을 발한 菩薩들은 念의 異相을
깨달아 念에 異相이 없으니 序分別執着의 相을 버린 까닭에 이름을
相似覺이라 함이니라.
저 法身菩薩들은 心念에 住相을 깨달아 心念에 住相이 없으니 分別하는
序念相을 여읜 까닭에 이름을 隨分覺이라 함이니라. 저 菩薩이 十地에서
배움이 다하여 方便이 滿足하여 一念이 서로 응해서 깨달은 마음이 처음
일어남에 마음에 처음이라는 상이 없음이니 미세한 생각을 멀리 여읜 까닭에
心性을 얻어 보아 그 마음이 곧 항상 머물러 있는 것을 이름을 究竟覺이라
함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修多羅에 설하사대 만약 어떤 衆生이 능히 無念을 관하는 자는
곧 佛智를 향함이 되는 연고라 하시니라.또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처음이란
모양을 가히 알 수 없거늘 처음의 모양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곧
無念을 말하는 것이니 이런 까닭으로 一切衆生을 覺이라 이름하지 못한다
하나니 본래부터 생각생각이 相續하여 일찌기 생각을 여의지 못한 까닭에
비롯없는 無明이라 말함이니라.만약 無念을 얻은 자는 곧 心相의 生,住,異,滅을
알 것이니 無念과 같은 까닭이니라.실로 始覺과 다름이 없으니 四相(生.住.
異.滅)이 함께 있어서 다 자립함이 없음이니 본래 平等하여 동일한 覺인
까닭이니라. 다시 本覺이 染을 따라 分別해서 두가지 相을 내니 저 本覺으로
더불어 서로 버리고 여의지 아니 하나니 무엇을 둘이라 하는고?
一은 智淨相이요,이는 不思議한 業相이니라.智淨相이란 것은 이르되 法力의
熏習에 의하여 如實히 修行해서 方便이 滿足한 연고로 和合하는 識相을
破하고 相續하는 心相을 滅하여 法身의 智慧가 淳淨함을 나투는 까닭이니라.
이 뜻이 어떠한고? 一切心識의 相이 다 이 無明이니라.無明의 相은 覺性을 여
의지 아니 하여 가히 무너지지도 아니하며,가히 무너 뜨리지 못할 것도 아님이니
마치 大海의 물이 바람을 인하여 파도가 움직이어서 水相과 風相이 서로 버리고
여의지 아니하나 물은 움직이는 性이 아님이니, 만약 바람이 사라지면
움직이는 相은 곧 滅하나 젖는 성질은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은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중생들의 自性淸淨心이 無明風을 因하여 動하여 마음과 無明이 함께
형상이 없어서 서로 버리고 여의지 아니하나 마음은 動性이 아님이니
만약 無明이 滅하면 相續이 곧 滅할지언정 智性은 무너지지 않는 까닭이니라.
不思議業相이란 智淨相을 依支하여 능히 일체의 殊勝하고 玄妙한 境界를
짓나니 이른바 한량 없는 功德의 相이 항상 끊어짐이 없어서 중생의 根機를
따라서 자연히 서로 응하여 가지가지로 나타나서 이익을 얻게 하는 까닭이니라.
다시 覺의 體와 相은 네가지 큰 뜻이 있으니 虛空으로 더불어 같으며
마치 조촐한 거울과도 같나니라.어떠한 것이 넷인고?
첫째는 如實空鏡이니 一切心의 境界相을 멀리 여의어서 한 법도 가히
드러날 것이 없으니 覺照의 뜻이 아닌 까닭이니라.
둘째는 因熏習鏡이니 이르되 如實不空이니 一切世間의 境界가 다 그 가운데
나타나서 나오지도 아니하고, 들어가지도 아니하며,잃어 버리지도 아니하고,
무너지지도 아니하여 항상 한 마음에 머물러 있음이니 一切의 法이
곧 眞實한 性인 까닭이며 또 일체의 染法이 물 들이지 못할 바이니
智體가 움직이지 아니하여 無漏가 具足해서 衆生을 熏習하는 까닭이니라.
세째는 法出離鏡이니 이르되 不空法이 煩惱 와 智 를 벗어나서 和合의
相을 여의어서 순박하고 조촐하고 밝은 까닭이니라.
네째는 緣熏習鏡이니 이르되 法에 벗어남을 의지하는 까닭으로 衆生의
마음을 두루 비춰 하여금 善根을 닦아서 생각을 따라 나타내 보이게 하는
까닭이니라. 말한바 不覺義라는 것은 이르되 如實히 眞如法이 하나인 것
을 알지 못한 연고로 不覺의 마음이 일어나서 그 念(分別念)이 있으나
念이 自相이 없어서 本覺을 여의지 아니 하나니 마치 迷惑한 사람이
方位를 의지한 연고로 迷惑했으니 만약 方位를 여의면 곧 迷惑함이 없는 것과
같나니라.衆生도 또한 그러해서 覺을 의지한 연고로 미혹 했으니 만약 覺性을
여의면 곧 不覺이 없으리라.不覺의 妄想心이 있는 까닭으로 능히 名義만 알아서
眞覺이라 말하나니 만약 不覺의 마음만 여의면 곧 眞覺의 自相을 가히 說할
것이 없으리라.
다시 不覺을 依支한 연고로 세가지 상을 생하여 저 不覺으로 더불어 相應하여
여의지 않나니 어떠한 것이 셋인고?
첫째는 無明業相이니 不覺을 의지한 연고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설하여
이름을 業이라 함이니 覺 하면 곧 움직이지 아니하나 움직이면 곧 苦가 있으니
果가 因을 여의지 아니한 연고로니라.
둘째는 能見相이니 움직임을 依支한 연고로 능히 보나니 움직이지 아니하면
곧 봄이 없나니라.
세째는 境界相이니 能見을 의지하는 연고로 경계가 망녕되이 나타나나 見을
여의면 곧 境界가 없나니라. 境界緣이 있는 연고로 다시 여섯가지 相이 생함이
니 어떠한 것이 여섯인고?
첫째는 智相이니 境界를 의지해서 마음을 일으켜 사랑함과 사랑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연고니라.
둘째는 相續相이니 智相을 의지하는 연고로 그 苦樂을 깨닫는 마음을 내어서
생각을 일으켜 서로 응하여 끊어지지 않는 연고니라.
세째는 執取相이니 相續을 의지하여 境界를 攀緣해 생각하여 苦樂에 머물러서
마음에 執着을 일으키는 연고니라.
네째는 計名字相이니 망녕된 執相을 의지해서 거짓된 假名言相을 分別하는
연고니라.
다섯째는 起業相이니 名字를 의지해서 이름을 따라 취착하여 가지가지 업을
짓는 연고니라.
여섯째는 業繫苦相이니 業을 의지하여 果報를 받아서 自在하지 못한 연고니라.
마땅히 알라 無明이 능히 一切의 染法을 생하나니 일체의 染法이 다 이 不覺의
相인 연고니라. 다시 覺과 不覺이 두가지의 相이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同相이요,둘째는 異相이라.同相이란 것은 비유하면 가지가지 질그릇이
다 한가지 가는 티끌의 性인 相과 같음이니 이와 같이 無漏와 無明의 가지 가지
業幻이 다 한가지 眞如의 性인 相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修多羅 가운데 이 뜻을
의지하여 說하시되 一切衆生이 본래 항상 머물러서 涅槃에 들어감과 菩提의
法이 가히 닦는 상이 아니며 가히 짓는 상도 아닌지라 畢竟에 얻을 것이 없다
하니라.또한 色相을 가히 볼 수 없으나 色相을 봄이 있는 것은 오직 이 染을
따르는 幻의 지은 바요,이 智色 不空의 性은 아님이니,智相은 가히 볼 수 없는
까닭이니라. 異相이란 것은 가지가지 질그릇이 각각 같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와같이 無漏와 無明이 隨染幻의 差別이며 性染幻의 差別인 연고니라.
다시 이 生滅因緣이란 것은 이른바 衆生이 마음을 의지하여 意와 意識이
전하는 연고니라.이 뜻이 어떠한고? 阿梨耶識을 의지하여 無明이 있음을
말했으니 不覺이 일어나서 능히 보고 능히 나투며 능히 境界를 취하여
생각을 일으켜 상속할새 그러므로 설하여 意라고 함이니라.이 뜻에 다시
다섯가지 이름이 있으니 어떠한 것이 다섯인고?
첫째는 이름을 業識이라 함이니,이르되 무명의 힘으로 不覺心이 움직이는
까닭이니라.
둘째는 이름을 轉識이라 함이니,움직이는 마음에 依支하여 能見의 相이 되는
까닭이니라.
세째는 이름을 現識이라 함이니 이른바 능히 一切의 境界를 드러내나니 마치
明鏡이 色像을 나투는 것과 같아서 現識도 또한 그러하여 그 五塵을 따라서
상대되는 것이 이르면 곧 드러내서 앞과 뒤가 없으니 一切의 때에 따라
마음대로 일어나서 항상 앞에 있는 까닭이니라.
네째는 이름을 智識이라 함이니 이르되 染淨의 法을 分別하는 까닭이니라.
다섯째는 이름을 相續識이라 함이니 생각이 서로 응하여 끊어지지 않는
까닭이며, 過去無量한 세상의 善과惡의 業을 住持하여 하여금 잃지 않는 까닭
이며, 다시 능히 現在와 未來의 苦樂等 果報를 成熟시켜서 서로 어기지 않게
하는 까닭이니 능히 現在와 이미 겪은 일로 하여금 忽然생각하게 하며
미래의 일을 不覺에 말령되이 생각하게 함이니라. 이런 연고로 삼계가
虛僞한지라 오직 마음의 지은 바이니 마음을 여의면 곧 六塵의 경계가 없으
리라.
이뜻이 어떠한고?
일체의 법이 다 마음을 쫓아 일어났으니 妄念이 생한지라
일체의 분별이 곧 自心을 分別함이니 마음이 마음을 보지 못하여 모양을
얻을 수 없으니 마땅히 알라 세간의 일체 境界가 다 衆生의 無明妄心을
依支하여 머물러 가짐을 얻나니라.
이런 까닭으로 일체의 법이 거울가운데
형상과 같아서 體를 가히 얻을 수 없으며,오직 마음이라 허망함이니 마음이
生하면 가지가지의 法이 生하고 마음이 滅하면 가지 가지의 法이 滅하는
연고니라.다시 의식이라 말함은 곧 이 相續識이니 모든 凡夫가 取着함이 더욱
깊음을 의지하여 我와 我所를 計較하여 六塵을 分別할새 이름을 意識이라
함이요. 또한 이름을 分別識이라 하며 또 다시 이름을 分別事識이라 설함이니
이 識은 見愛(見惑과 愛惑)의 煩惱를 의지하여 增長하는 뜻인 연고니라.
無明熏習을 의지하여 일어난바 식이라는 것은 凡夫의 능히 알바가 아니며
또한 二乘의 智慧로 깨달을 바가 아니니 이르되 菩薩을 의지할진대
처음에 바로 믿음을 쫓아서 發心하여 觀察해서 만약 法身을 證得했을지라도
少分만 얻어 알것이며 이에 보살의 究竟地에 이러르서도 능히 다 알지 못할
것이요 오직 부처님이라야 다 아나니라.
무슨 까닭인고? 이 마음이 본래부터
自性이 淸淨함이로대 無明이 있는지라 無明의 染한 바가 되어 그 물들어진
마음이 있으니 비록 물든 마음이 있으마(本覺의 마음)항상해서 變하지
아니함이니 이런 까닭으로 이 뜻은 오직 부처님이라야 능히 알 수 있나니라.
이른바 心性이 항상 無念인 연고로 이름을 不變이라 함이요 一法界를 통달
하지 못한 까닭으로 마음이 서로 응하지 못하여 홀연히 생각이 일어난 것을
이름을 무명이라 함이니라.
染心이란 것이 여섯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인고?
첫째는 執相應染이니 二乘의 解脫과 信相應地를 의지해서 멀리 여의는 연고요.
둘째는 不斷相應染이니 信相應地를 의지해서 方便을 修學하여 漸漸 능히
(相續識)버려서 淨心地를 얻어 究竟에 여의는 연고요.
셋째는 分別地相應染이니 具戒地를 의지하여 漸漸여의어서 이에 無相方便地에
이르러 구경에 여의는 연고요.
넷째는 現色不相應染이니 色自在地를 의지해서 능히 여의는 연고요.
다섯째는 能見心不相應染이니 心自在地를 의지해서 능히 여의는 연고요.
여섯째는 根本業不相應染이니 菩薩의 盡地를 의지해서 如來地에 들어 가서
능히 여의는 연고니라.
一法界를 了達하지 못한다는 뜻은 信相應地로 부터 觀察하여 배워 끊어며
淨心地에 들어가서 분을 따라 여의며 이에 如來地에 이르러 能히 究竟에
여의는 연고니라.
相應이라 말하는 뜻은 이르되 心과 念法이 다르니 染과 淨의 差別을 의지하여
知相과 緣相이 같은 연고며 不相應이란 듯은 이르되 마음 그대로 不覺이라
항상 별다름이 없어서 知相과 緣相이 같지 아니한 연고니라.
또 染心의 뜻이란 것은 이름을 煩惱라 함이니 능히 眞如의 根本智를 장애하는
연고니라.
無明의 뜻이란 것은 이름을 智라 함이니 능히 세간의 自然業智를 障碍하는 연
고니라.이 뜻이 어떠한고?染心을 依支하여 능히 보고 능히 나타나며 망녕되이
경계를 취하여 평등한 性을 어기는 까닭이며, 一切法이 항상 고요해서 일어난
상이 없으나 無明不覺이 망녕되이 법으로 더불어 어기는 연고로 능히 세간의
一切境界를 隨順해서 가지 가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다시 生滅의 相을 分別한다는 것은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序니 마음으로 더불어 相應하는 연고요,
둘째는 細니 마음으로 더불어 相應하지 않는 연고니라.
또 序의 가운데 序는 凡夫의 境界요,
序의 가운데 細와 細의 가운데 序는 菩薩의 境界요,
細의 가운데 細는 부처님의 경계니라.
이 두가지 生滅이 無明熏習을 의지하여 있으니 이른바 因을 의지하고
緣을 의지함이니라.
因을 의지한다는 것은 不覺의 듯인 연고요,
緣을 의지한다고 한다는 것은 망녕되이 境界를 짓는다는 뜻인 연고니라.
만약 因이 滅하면 緣도 滅하나니
因이 멸한 연고로 서로 응하지 않는 마음이 멸함이요,
緣이 멸하는 연고로 서로 응하는 마음이 멸함이니라.
묻되 만약 마음이 滅한다면 어떻게 相續하며
만약 相續한다면 어떻게 究竟滅을 말하리요?
답하되 말한바 滅이란 것은 오직 心相이 멸할지언정
心體가 멸하는 것은 아님이니
마치 바람이 물을 의지하여 움직이는 相이 있으니
만약 물이 멸할진대 風相이 끊어져 의지할 바가 없을 것이어니와
물이 멸하지 아니할새 風相이 상속하나니 오직 바람이 멸하는 연고로
움직이는 모양이 따라서 멸할지언정 이 물이 멸하는 것은 아님이니라.
無明도 또한 그러해서 心體를 依支하여 움직이나니
만약 心體가 멸할 진대 衆生이 斷絶해서 의지할바가 없을 것이어니와
체가 멸하지 아니 할새 마음이 상속함을 얻나니
오직 어리석은 것만 멸하는 연고로 심상이 따라서 滅할지언정
心智는 멸하지 아니함이니라.
다시 네가지의 法이 熏習하는 뜻이 있는 연고로
染法과 淨法이 일어나 끊어지지 않나니 어떻한 것이 넷인고?
첫째는 淨法이니 이름이 眞如요,
둘째는 一切染因이니 이름이 無明이요,
셋째는 妄心이니 이름이 業識이요,
넷째는 妄境界니 이른바 六塵이니라.
熏習한다는 뜻은 마치 世間의 衣服이 실은 香氣가 없으나
만약 사람이 香으로써 熏習한 연고로 곧 香氣가 있는 것과 같이
이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眞如의 淨法은 實로 물들임 없으나
다만 無明으로써 熏習하는 연고로 곧 染相이 있음이요,
無明의 染法은 실로 淨業이 없으나
다만 眞如로써 훈습하는 연고로
곧 淨의 作用이 있나니라.
어떻게 熏習하여 染法을 일으켜 끊어지지 않는고?
이른바 眞如의 法을 의지하는 연고로 無明이 있음이요,
無明染法의 因이 있는 연고로 곧 眞如를 熏習함이요,
熏習하는 연고로 곧 妄心이 있음이요
妄心이 있어서 곧 無明을 훈습하여 眞如의 法을 了達하지 못하는 연고로
不覺의 念이 일어나서 망녕된 경계를 나타냄이요,
망녕된 경계의 染法의 緣이 있는 연고로 곧 망녕된 마음을 熏習하여
그로 하여 금 念着하여 가지 가지의 業을 지어서
一切의 몸과 마음등 괴로움을 받게 하나니라.
이 망경계를 熏習하는 뜻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고?
첫째는 增長念熏習이요,둘째는 增長取熏習이니라.
妄心을 熏習한다는 뜻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것이 둘인고?
첫째는 業識根本熏習이니 능히 阿羅漢과 酸支弗과 一切菩薩로 생멸의 고를
받게 하는 연고요,
둘째는 增長分別事識熏習이니 능히 凡夫로 業에 얽메인 苦를 받게하는 연고니라.
무명을 熏習하는 뜻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고?
첫째는 根本熏習이니 능히 業識을 성취하는 뜻인 연고요,
둘째는 所起見愛熏習이니 능히 分別事識을 成就하는 뜻인 연고니라.
어떻게 熏習하여 淨法을 일으켜 끊어지지 않게 하는고?
이른바 진여의 법이 있는 연고로 능히 無明을 熏習함이요,
熏習한 因緣의 힘인 연고로 곧 妄心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를 싫어하고
즐거히 열반을 구하게 하나니 이 망령된 마음이 싫어하고
求하는 인연이 있는 연고로 곧 眞如를 熏習함이니라.
스스로 自己의 성품을 믿어서 마음이 망녕되이 動하는지라
앞의 경계가 없는 줄 알아서 멀리 여의는 법을 닦나니
여실히 앞의 境界가 없는 줄 아는 연고로
가지가지 방편으로 隨順行을 일으켜서
취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내지 久遠의 熏習力인 연고로 無明이 멸하며
무명이 滅하는 연고로 마음이 일어남이 없읍이요,
일어남이 없는 연고로 경계가 따라 멸함이요,
因緣이 함께 멸하는 연고로 心相이 다함일새
이름을 涅槃을 얻어 自然業을 이룸이라 함이니라.
妄心熏習의 뜻에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分別事識熏習이니 모든 凡夫와 二乘들이 生死의 苦를 싫어함을
의지하여 힘의 능한 바를 따라서 漸次로 無上道에 취향하는 연고요,
둘째는 意熏習이니 이르되 모든 보살이 發心勇猛하야 속히 열반에 나아가는
연고니라.
眞如熏習의 뜻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自體相熏習이요,
둘째는 用熏習이니
自體相熏習이란 것은 비롯함이 없는 세상으로부터 옴으로 無漏의 法을 갖추어
서 不思義業과 境界를 짓는 性을 갖추어 있나니 이 두가지 뜻이 항상 훈습함을
의지해서 힘이 있는 연고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의 고를 싫어하고
즐거이 涅槃을 구하여 스스로 자기 몸에 진여의 법이 있는 줄 믿어서
發心하여 修行하게 함이니라.
묻되 만약 이와 같은 뜻일진대 일체중생이 다 眞如가 있어서 平等하게
다 熏習하거늘 어찌하여 信이 있고 信이 없으며,한량없이 前後에 差別하는고,
다 응당 일시에 스스로 진여의 법이 있음을 알아서 부지런히 方便을 닦아서
평등히 열반에 들게 하리요?
답하되 眞如는 본래 하나이나 無量無邊의 無明이 있어서 본래 부터
自性이 차별해서 厚薄이 같지 아니한 연고로 恒河沙等上에 지나는
煩惱가 무명을 의지하여 차별을 일으키며, 我見愛染의 번뇌가 무명을
의지하여 차별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일체의 煩惱가 無明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바라, 前後의 한량 없는 차별을 오직 如來만이 능히 아는 연고라.
또 모든 부처님의 법이 因이 있고 緣이 있으니 因緣이 구족하여야
이에 판단함을 얻나니 마치 나무 가운데 火性이 이 불의 正因이나
만약 사람이 알지 못하여 方便을 가자하지 아니하면 능히 스스로
나무를 불 사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나니 중생도 또한 그러해서
비록 正因熏習의 힘은 있어나 만약 모든 불보살과 善知識등을 만나서
이로써 반연하지 아니하면 능히 스스로 번뇌를 끊어서 열반에 들어간다는
것이 곧 옳은 곳이 없나니 만약 비록 外緣의 힘이 있으나 안으로
정법이 아직 熏習의 힘이 있지 아니한자면 또한 능히 究竟에 生死의 고를 싫어
하여 즐거이 열반을 구하지 못함이니라.
만약 인연이 具足한 者는 이른바 스스로 熏習의 힘이 있고
또 모든 佛菩薩들의 慈悲願護함이 되는 연고로 능히 고를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켜 열반이 있는 것을 믿어서 善根을 修習함이니 善根을 닦아서 成熟한
연고로 곧 모든 佛菩薩의 교를 보여 利喜케 함을 만나서
이에 능히 進趣하여 涅槃의 도에 向하게 함이니라.
用熏習이란 것은 곧 이 衆生의 外緣의 힘이니 이와 같이 外緣이 限量없는
뜻이 있으나 간략히 두가지로 설하리라. 어떠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差別緣이요,둘째는 平等緣이니
差別緣이라고 하는 것은 이 사람이 모든 佛菩薩 등을 의지하여 처음에
뜻을 발하여 비로서 도를 구할 때로부터 이에 佛에 이르기까지 저 가운데
만약 보거나 생각하면 혹은 眷屬과 父母와 모든 親戚도 되며,
혹은 給使도 되며 혹은 知友도 되며, 혹은 寃家도 되며,혹은 四攝法을
일으켜서 이에 일체의 짓는 바 무량한 行緣에 이르기까지 大悲熏習의
힘을 일으켜서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善根을 增長하여 저 보고 들음에
이익을 얻게 하는 연고니라.
이 緣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떠한 것이 두가지 인고?
첫째는 近緣이니 속히 제도를 얻게하는 연고요.
둘째는 遠緣이니 久遠劫에 제도를 얻게 하는 연고니라.
이 近과 遠의 二緣을 분별하면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어더한 것이 둘인고?
첫째는 增長行緣이요,
둘째는 受道緣이니라.
平等緣이란 것은 일체의 모든 佛菩薩이 다 일체의 중생을 도탈하기를 원
하사 自然 熏習하여 항상 버리지 아니 해서 同體의 智力을 쓰는 연고로
보고 들음을 따라 응해서 作業을 나타내나니 이른바 중생이 三昧를
의지하여야 이에 평등하게 모든 부처님을 親見함을 얻는 연고니라.
이 體用의 熏習을 분별하면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것이 둘인고?
첫째는 未相應이니 이르되 凡夫二乘과 처음 뜻을 발한 보살들이 意와
意識으로 熏習해서 信力을 의지한 연고로 능히 修行하나 분별이 없는
마음이 體로 더불어 서로 응함을 얻지 못한 연고며,自在業으로 수행하여
用으로 더불어 서로 응함을 얻지 못한 연고요,
둘째는 己相應이니 이르되 法身菩薩이 분별 없는 마음이 모든 부처님의
智用으로 더불어 서로 응함을 얻음이니 오직 法力을 의지하여 자연히 수행하여
眞如를 熏習해서 무명을 滅하는 연고니라.
다시 染法이 비롯함이 없음으로부터 옴으로 熏習하여 끊어지지 않다가
이에 부처를 얻은 뒤에야 곧 끊어짐이 있음이요,
淨法熏習은 끊어짐이 없어서 미래를 다함이니 이 뜻이 어떠한고?
眞如法이 항상 熏習하는 연고로 망녕된 마음은 곧 滅하고 法身이 나타나
用熏習을 일으킴일새 그러므로 끊어지짐이 없나니라.
다시 眞如自體相이란 것은 일체의 凡夫,聲聞,緣覺,菩薩 모든 부처님이 더하
고 덜함이 없어서 前際에 生한 것도 아니며 後際에 滅하는 것도 아님이니 畢竟
에 항상 해서 본래로부터 옴으로 自性에 일체의 功德이 滿足하니 이른바
自體에 大智慧光明의 듯이 있는 연고며,
法界에 두루 비추는 뜻인 연고며, 진실로 아는 뜻인 연고며,
自性淸淨心의 듯인 연고며, 常樂我正의 뜻인 연고며,
淸凉하고 不變하는 自在의 뜻인 연고니,
이와 같이 恒河沙에 지나는 여의지도 않고 끊어지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는
不思義佛法을 具足하여 이에 만족함에 이르러 조금도 모자라는 바의 뜻이 없는
연고로 이름을 如來藏이라 하며 또한 이름을 如來法身이라 함이니라.
묻되 위에서 설하되 眞如는 그 體가 평등하여 일체의 相을 여의었다고 하고
어찌하여 다시 體에 이와 같은 가지가지의 공덕이 있다고 설하는고?
답하되 비록 진실로 이 모든 공덕의 뜻이 있으나 差別의 상이 없어서
一味가 等同하여 오직 하나인 진여 뿐이니 이 뜻이 어떠 한고?
分別이 없으며 分別의 상을 여의었나니 이런 연고로 둘이 없나니라.
다시 무슨 뜻으로 차별을 설하는고?業識의 生滅相을 의지하여 보임이니라.
이것을 어떻게 보였는고? 일체의 법이 본래 오직 마음 뿐이라
실로 념이 없으나 망심이 있어서 불각의 념을 일으켜서 모든 境界를 봄일새
그러므로 설하여 무명이라 함이니 心性이 일어나지 아니 하면 곧 이것이
大智慧光明의 뜻인 연고니 만약 마음이 見을 일으키면 곧 不見의 相이
있거니와 心性이 見을 여의면 곧 이것이 법계를 두루 비추는 뜻인 연고니라.
만약 마음이 움직임이 있으면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며 自性이 없어
서 常도 아니요, 樂도 아니며, 我도 아니요, 淨도 아님이니 熱惱하고 衰變하면
곧 자재하지 못하며, 내지 恒河沙에 지나는 等 망념의 뜻을 갖추어 있으니
이 뜻을 對한 연고로 心性이 움직임이 없으면 곧 恒河沙에 지나는 등
모든 淨功德相의 뜻을 示現함이 있나니라.
만약 마음이 일어 남이 있어서 다시 前法을 가히 생각할 것을 보는 자는
곧 모자라는 바가 있거니와 이와 같이 淨法의 무량한 공덕이 곧 이 일심이라
다시 생각할 바가 없음일새 이런 연고로 만족함이니 이름을 法身如來의
장이라 함이니라. 다시 진여의 用이라는 것은 이른바 모든 부처님이 본래
因地에 있어서 큰 慈悲를 발하여 모든 波羅蜜을 닦아서 중생을 攝化하며,
큰 서원을 세워 다 평등히 중생계를 度脫코져 하며, 또한 劫數를 한정하지
아니해서 미래를 다하며, 일체중생을 취하지 아니함이니 이것이 무슨 뜻인고?
이르되 여실히 일체의 중생과 다만 自己의 몸이 如實平等하여 별 다름이
없는 줄아는 연고니라.이와 같은 큰 方便의 智慧가 있어 無明을 除滅하고
本法身을 보아서 自然히 不思議한 業의 가지 가지의 用이 있는지라 곧 진여로
더불어 평등해서 일체처에 두루하며,또한 用相을 가히 얻을 수 없음이니
무슨 까닭인고?
이르되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이 法身智相의 몸이라 第一義諦에는 世俗境界가
없어서 施作을 여의었건만 다만 중생의 보고 듣는 것을 따라 利益을 얻게
할새 그러므로 설하여 用이라고 함이니라.
이 用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고?
첫째는 分別事識을 의지한 凡夫와 二乘의 마음에 보는 바를 이름을 應身이라
함이니 轉識의 나타남인 줄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밖으로 쫑아 옴을 보아서
色의 分齊(즉 色相의 限界)를 취하나니 능히 다 알지 못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業識을 의지함이니 이르되 모든 보살이 처음 뜻을 발함으로 부터
이에 菩薩의 究竟地에 이르기 까지 마음에 보는 바를 이름을 報身이라
함이니라. 몸에 한량 없는 빛깔이 있으며 빛깔에 한량 없는 모양이 있으며
모양에 한량 없는 좋은 것이 있으니 머무르는 바의 依果(즉 依報器世界)에도
또한 한량 없는 가지 가지의 莊嚴이 있어서 곳을 따라 示現해서 곧 갓이 없으며,
가히 다할 수 없어서 分齊의 相을 여의었으며,그 應할 바를 따라서 항상
능히 머물러 가져서 헐지도 아니하고 잃지도 아니함이니 이와 같은
공덕이 다 모든 波羅蜜等 샘이 없는 行熏과 및 不思議한 熏習을 因하여
成就한바라 한량 없는 樂相이 具足할새 그러므로 설하여 報身이라 함이니라.
또 凡夫의 보는 바는 이것은 그 序色이니 六道衆生이 各各 보는 것이 같지
아니 하여 가지가지의 다른 무리가 樂相을 받지 못함을 따를새 설하여
應身이라 함이니라.
다시 처음에 뜻을 발한 보살들이 보는 바는 깊이 진여의 법을 믿는 연고로
少分을 보는지라 저 色相莊嚴等의 일이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어서
分齊를 여의었나니 오직 마음을 의지하여 나타나서 진여를 여의지 아니한
줄 아나니라.그러나 이 보살이 오히려 스스로 분별하는 것은 아직 法身의
位에 들지 못한 까닭이니 만약 淨心을 얻으면 보는 바가 微妙하여
그 用이 더욱 수승할 것이요.이에 菩薩地盡에 이르면 보는 것이 究竟일
것이며,만약 업식을 여의면 곧 보는 相이 없을 것이니 모든 부처님의 法身은
彼此의 색상으로 부터 서로 볼 수 없는 연고니라.
묻되 만약 모든 부처님의 法身이 色相을 여의었다면 어찌하여 능히 색상을
나투는고?
답하되 곧 이 법신이 이 色相의 體인 연고로 능히 色을 나타내나니 이른바
본래부터 옴으로 빛깔과 마음이 둘이 아닌 것이니 色性이 곧 智인 연고로
色의 體가 형상이 없으니 이름을 智身이라 설함이요,
智性이 곧 색인 연고로 이름을 法身이 一切處에 두루한 것이라 설함이니라.
나타난 바의 색이 分齊가 있지 아니한지라 마음을 따라서 능히 十方世界의
한량 없는 菩薩과 한량 없는 報身과 한량 없는 莊嚴을 示現하니 各各
差別해서 다 분제가 없으나 서로 妨害하지 않는지라 이것은 심식의 분별로
능히 알지 못할지니 진여의 자재한 用의 듯인 까닭이니라.
다시 生滅門으로 쫑아 곧 眞如門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 보인것이니 이른바
五陰을 미루어 구하면 色과 마음이며 六塵의 경계는 畢竟에 念이 없는 것이니
마음은 形相이 없는 지라 十方에 구할지라도 마침내 가히 얻을 수 없음이니
마치 사람이 迷한 고로 東을 일러 西라 하나 方位는 실로 轉하지 않는 것과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해서 無明의 迷인 연고로 마음을 일러 念이라 하나
마음은 實로 움직이지 않나니라.만약 능히 觀察해서 마음이 無念인줄 알면
곧 隨順하여 眞如門에 들어 감을 얻는 연고니라.邪執을 對治한다는 것은
일체의 邪執이 다 我見을 의지했으니 만약 我를 여의면 곧 邪執이 없어짐이니라.
이 我見이 두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둘인고?
첫째는 人我見이요,둘째는 法我見이니라.
人我見이라 함은 모든 凡夫를 의지해서 다섯가지가 있음을 설했으니
어떤 것이 다섯인고?
첫째는 修多羅에 설하사대 여래의 法身이 畢竟에 寂寞하여 마치 虛空과 같다고
함을 듣고 執着함을 破하기 위한 것인줄을 알지 못하는 연고로 곧 이르되
허공이 如來의 性이라 하나니라.어떻게 對治하는고? 허공의 상은 이것이
그 망녕된 법이라,體에는 실답지 못함이 없음을 밝혔으니 色을 對하는 고로
있는 지라 이것이 가히 볼 相이며 마음으로 하여금 生滅케 하나니 일체의
法이 본래 이 마음이라 실로 外色이 없음이니 만약 색이 없으면 곧 虛空의
相이 없나니라.이른바 일체의 경계가 오직 마음이 망녕되이 일어난 연고로
있음이니 만약 마음이 망녕되이 움직임을 여의면 곧 일체의 경계가 滅할
것이요.오직 하나인 眞心이 두루하지 않는 바가 없나니 이것은 니르되
如來의 넓고 큰 性智究竟의 뜻이라 허공의 相과는 같지 않는 연고니라.
둘째는 修多羅에 설하사대 세간의 모든 법이 필경에 체가 공하며 乃至 涅槃
眞如의 법이라도 도한 畢竟에 空하여 본래 스스로 공한지라 일체의 상을
여의었다 함을 듣고 執着함을 파하기 위한 것인 줄을 일지 못하는 연고로
곧 이르되 眞如涅槃의 性도 오직 이 공한 것이라 하나니 어떻게 對治할
것인고? 진여법신은 自體가 공하지 아니하여 한량 없는 性功德이 구족한 것을
밝힌 연고니라.
세째는 修多羅에 說하사대 여래의 藏이 增減이 없어서 체에
일체공덕의 법을 갖추었다는 말을 듣고 알지 못하는 까닭으로 곧 이르되
여래의 藏이 色心法이 있엇서 自相이 차별한다 하나니 어떻게 對治할 것인고?
오직 眞如의 듯을 의지하여 설한 연공요, 生滅染의 듯을 인하여 示現으로
차별을 설한 연고니라.
넷째는 修多羅에 설하사대 일체세간의 生死染法이 다
如來藏을 의지하여 있는지라 , 일체의 모든 법이 진여를 여의지 아니 했다
함을 듣고 알지 못하는 연고로 이르되 如來藏의 자체에 一切世間의
生死等法이 갖추어 있다 하나니 어데게 對治할 것인고?
如來藏이 본래부터 오직 恒河沙에 지나는 等 모든 性功德이 있어 여의지도
아니하고 끊어지지도 아니 해서 眞如의 뜻과 다르지 아니한 연고니라.
恒河沙에 지나는 等 煩惱의 染法은 오직 이 망으로 있는 지라 성품이
스스로 본래 없어서 비롯 없는 세상으로부터 옴으로 일찍 如來藏으로 더불어
서로 응하지 못한 연고니 만약 如來藏이 體에 妄法이 있을 진대 하여금
證得理會함에 길이 망을 쉰다는 것이 옳은 곳이 없나니라.
다섯째는 修多羅에 설하사대 如來藏을 의지하는 연고로 생사가 있으며
如來藏을 의지하는 연고로 涅槃을 얻는다 함을 듣고 理解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이르되 중생이 비롯함이 있다 하며,비롯함을 보는 까닭으로 다시
이르되 여래의 얻은 바 열반도 그 終盡이 있어 도리어 중생을 짓는다
하나니 어떻게 대치할 것인고? 여래의 장이 前際가 없는 연고로 無明의
相도 또한 비롯함이 없으니 만약 三界밖에 다시 중생이 처음으로 일어
남이 있다고 말하면 곧 이것은 外道經의 설이니라.
또 如來藏이 後際가 없으니 모든 부처님의 얻은 바 涅槃도 이 로 더불어
서로 응해서 곧 後際가 없는 연고니라.法我見이라 함은 二乘의 鈍根을
의지하는 연고로 如來가 다만 爲하여 人無我만 설했으나 설한 것이
究竟이 아닌지라 五陰生滅의 법이 있는 것을 보아서 생사를 두려워 하고
망년되이 열반을 취하나니 어떻게 對治할 것인고?
五陰의 법은 자성이 생하지 아니하여 곧 滅함이 없으니 本來 涅槃인
까닭이니라.다시 究竟에 망녕된 집착을 여읜다는 것은 마땅히 알라
染法과 淨法이 다 相待하는지라,자체의 상을 가히 말할 수 없음이니
이런 까닭으로 일체의 법이 본래부터 色도 아니요,心도 아니며,智도 아니요,
識도 아니며,있는 것도 아니요,없는 것도 아닌지라,畢竟에 可히 相을
설할 수 없건만 言說이 있는 것은 마땅히 알라 如來가 善巧한 방편으로
언설을 假藉해서 중생을 引導하시니 그 旨趣는 다 念을 여의고 眞如에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니 일체의 法을 생각하면 마음으로 하여금 生滅케 해서
實智에 들지 못하게 하는 까닭이니라.
分別發趣道相이라 함은 이르되 일체 모든 부처님의 證得한바 道에 일체의
菩薩이 發心修行하여 趣向하는 듯인 연고니라.간략히 말하면 發心에
세가지가 있으니 어떤것이 셋인고?
첫째는 믿음을 성취한 發心이요,둘째는 알고 행하는 發心이요,셋째는 證得한
發心이니라. 信成就發心이라 함은 어떠한 사람을 의지하며 어떠한 행을
닦아야 信成就함을 얻어 감히 능히 발심할 것인고? 이른바 不定聚의 중생이
善根을 熏習한 힘이 있는 연고로 業果報를 믿어 능히 十善을 일으키며
생사의 고를 싫어하고 無上菩提를 구하고저 하여 모든 부처님을 만나서
親히 받들어 供養하고 信心을 닦아 행하되 一萬劫을 지나서 信心을 成就한는
연고로 모든 佛菩薩이 가르쳐서 하여금 發心케 하며 或은 大悲를 쓰는 연고로
능히 스스로 발심하며 혹은 正法이 멸하고자 함을 인해서 法을 保護하는
因緣을 쓰는 연고로 능히 스스로 發心하나니 이와 같이 信心을 成就하여
發心함을 얻는 자는 正定聚에 들어가서 필경에 물러가지 아니하나니
이름이 如來種 가운데에 머물러서 正因과 서로 應함이니라.
만약 어떤 중생이
善根이 微少하여 久遠以來에 煩惱가 深厚함으로 비록 부처님을 만나
또한 供養을 올리나 그러나 人天種子만을 일으키며 혹은 二乘의 種子만을
일으키나니 설사 大乘을 구하는 者가 있더라도 根機가 일정하지 아니한지라
혹은 前進하고 혹은 後退하며 혹은 모든 부처님께 공양함이 있으되
一萬劫을 지나지 아니해서 도중에 佛緣을 만나 또한 發心함이 있나니
이른바 부처님의 色相을 보고 그 마음을 發하며 혹은 여러 스님께 供養함을
因해서 그 마음을 發하며 혹은 二乘人의 가르침을 인하여 발심하며 혹은
다른 이에게 배워서 發心하나니 이와 같은 等의 發心은 다 一定하지 아니
해서 만약 惡因緣을 만나면 혹은 문득 물러가서 二乘의 자리에 떨어짐이니라.
다시 믿음을 성취하여 마음을 발한다는 것은 어떠한 마음을 發한다는 것인고?
간략히 세가지로 설함이니 어떤 것을 셋이라 하는고?
첫째는 곧은 마음이니 올바른 眞如의 法을 생각하는 연고요.
둘째는 깊은 마음이니 즐거이 일체의 모든 善行을 모우는 연고요.
셋째는 大悲心이니 一切衆生의 괴로움을 빼어 주고자 하는 연고니라.
묻되 위에서 설하기를 法界가 一相이요,佛體가 둘이 없다 하였거늘 무슨 까닭
으로 오직 眞如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다시 모든 善行을 구하고 배움을
假藉하는고?
답하되 譬喩하면 큰 摩尼寶가 體性이 밝고 조촐하나 鑛穢의 때가 있으니
만약 사람이 비록 보배의 性을 생각하나 方便으로써 가지 가지로 갈고 다스리지
아니하면 마침내 淸淨함을 얻을 수 없는거와 같나니 이와 같이 중생의 진여의
법도 體性이 空淨하나 한량 없는 煩惱의 때에 물듦이 있으니 만약 사람이
비록 진여를 생각하나 方便으로써 가지 가지로 熏修하지 않으면 또한 청정함을
얻지 못하나니 때가 限量이 없어서 일체의 법에 두루한 까닭으로 일체의 善行을
닦아서 對治함이니 만약 사람이 일체의 선법을 닦아 行하면 自然히 진여의 법에
歸順하는 연고니라.간략히 말하면 方便에 네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넷이라 하는고?
첫째는 行根本方便이니 이르되 일체의 법이 自性이 無生인 것을 觀해서 妄見을
여의어 생사에 머물지 아니 하며,일체의 법이 因緣으로 화합하여 業果를
잃지 않음을 觀해서 대비를 일으켜서 모든 복덕을 닦아 중생을 攝化해서
涅槃에 머물지 아니함이니 法性의 머무럼이 없음을 隨順한는 까닭이니라.
둘째는 능히 그치는 방편이니 이르되 부끄럽게 여기고 허물을 뉘우쳐 능히
일체의 惡法을 그쳐서 하여금 더 자라지 않게 함이니 法性의 모든 허물 여읜
것을 隨順하는 까닭이니라.
셋째는 선근을 發起해서 增長한는 方便이니 이르되 부지런히 三寶에게 供養하고
禮拜하며,讚歎하고 따라 기뻐하며,모든 부처님께 勸請하나니 三寶를 愛敬하는
淳厚한 마음인 까닭으로 믿음이 增長하여 이에 능히 뜻으로 無上의 道를 구하며,
또 佛法僧의 힘에 慰護한 바를 因한 연고로 능히 業障을 消滅하여 善根을
退하지 아니함이니 法性의 痴障을 여읜 것을 隨順하는 까닭이니라.
넷째는 大願이 平等한 方便이니 이른바 願을 發하여 未來가 다하도록 一切衆生을
敎化濟度해서 하여금 남음이 없게 하며,다 하여금 남음이 없는 열반에 구경케
함이니 法性이 끊임 없음을 수순하는 까닭이요,法性이 광대하여 일체에 두루해
서 평등하여 둘이 없으며,피차를 염하지 아니 해서 구경에 적멸한 까닭이니라.
보살이 이 마음을 발한 까닭으로 곧 少分으로 法身봄을 얻음이니 법신을 보는
연고로 그 願力을 따라서 능히 여덟가지를 나투어서 衆生을 利益케 하나니
이른바 兜率天으로부터 퇴하여 태에 들어가 胎에 머물다가 胎에서 나와 出家하여
도를 이루어서 法輪을 굴리시고 涅槃에 드신 것이시니라. 그러나 이 보살을 아직
법신이라 이름하지 않는 것은 그 과거 무량한 세상으로부터 옴으로 有漏의 업을
능히 결단하지 못한지라 그 나는 바를 따라서 적은 괴로움으로 더불어 서로
응하나 또한 업에 얽메이는 것이 아님이니 큰 願力의 自在로운 힘이 있는 까닭
이니라. 저 修多羅 가운데 혹은 惡趣에 떨어짐이 있다고 설한 것은 그 실로 퇴함
이 아닌지라 다만 초학의 보살이 아직 正位에 들지 못하여 懈怠한 者를 위해서
두려웁게 하여 저로 하여금 勇猛케 하는 까닭이니라. 또 이 보살이 한번 발심한
뒤에는 怯弱을 멀리 여의어 필경에 二乘地에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만약 無量無邊한 阿僧祗劫에 어려운 행을 부지런히 하여 이에 涅槃을 얻는다
함을 들을지라도 또한 怯弱치 않나니 일체의 법이 본래부터 옴으로 스스로
涅槃인 줄 믿어 아는 가닭이니라.
알고 행하는 發心이라 함은 마땅히 알라 轉勝이니 이 보살이 처음 正信으로부
터 오면서 第一阿僧祗劫이 장차 만족코져 하는 연고로 眞如의 法中에서 깊이
아는 것이 앞에 나타나 닦는 바가 相을 여읜 것이니 法性의 체에는 俟貪이
없음을 아는 연고로 隨順하여 檀波羅蜜을 수행하며,法性에는 물듦이 없어서
五欲의 허물 여읨을 아는 연고로 수순하여 尸波羅蜜을 수행하며,法性에는 괴로움
이 없어서 瞋惱여읨을 아는 연고로 수순하여 提波羅蜜을 수행하며,法性에는 몸과
마음의 相이 없어서 懈怠여읨을 아는 연고로 隨順하여 毘梨耶波羅蜜을 修行하며,
法性에는 恒常 定하여 體에 어지러움이 없음을 아는 연고로 수순하여 禪波羅蜜을
수행하며,법성에는 體가 밝아서 無明을 여읨을 아는 연고로 수순하여 般若波羅蜜
을 修行함이니라.
證發心이라 함은 淨心地로 쫑아 이에 보살의 구경지에 이르도록 무슨 경계를
증득함인고?이른바 진여인 것이니 轉識을 의지 해서 설하여 경계라고 했으나 이
를 증득한 이는 경계가 없음이요,오직 진여지 뿐이니 이름을 法身이라 함이니라.
이 菩薩이 一念頃에 능히 十方無餘세계에 이르러서 모든 부처님께 공양하고
法輪을 전하시기를 청하나니 오직 중생을 개도하여 이익케 하기 위함이언정
문자를 의지하지 아니 했으며,혹은 十地에 뛰어나 속히 正覺 이룸을 보인
것이니 怯弱한 중생을 위한 연고요.혹은 내가 무량한 阿僧祗劫에 마땅히
불도를 이루리라 설하여 懈慢한 중생을 위한 연고니라. 능히 이와 같이
무수한 방편을 보인 것이 가히 思量하고 論議할 수 없으나 실로 보살은 種性과
근이 같으며,發心이 같으며,증득한 바가 또한 같아서 초과하는 법이 없으니
일체보살이 다 三阿僧祗劫을 지나는 연고니라.다만 중생의 세계가 같지 아니함과
보는 바와 듣는 바의 根과 欲과 性이 다름을 따랐을새 그러므로 행한 바가 또한
差別이 있음을 보였나니라.
또 이보살의 발심한 상이 세가지 마음의 微細한 相이 있으니 어떠한 것을 셋이
라 하는고? 첫째는 眞心이니 분별이 없는 까닭이요.둘째는 方便心이니 自然히
두루 행하여 중생을 이익하게 하는 까닭이요.셋째는 業識心이니 미세하게 起滅
하는 까닭이니라.또 이 보살이 功德이 成滿하여 色究竟處에 일체세간의 가장
높고 큰 몸을 보이나니 이르되 한 생각이 응한 지혜로써 무명이 문득 다한 것이
이름이 一切種智이니 자연히 不思議한 업이 있어 능히 시방에 나타나서 중생을
이익하게 하나니라.묻되 허공이 갓이 없는 연고로 세계가 갓이 없음이요.세계가
갓이 없는 연고로 중생이 갓이 없음이요.중생이 갓이 없는 연고로 心行의 차별도
또한 다시 갓이 없으니 이와 같은 경계는 가히 分齊할 수 없는지라 알기가
어려우나 만약 무명을 끊으면 心想이 있을 수 없거니 어떻게 능히 알관대
이름을 일체의 種智라 하는고?
답하되 一切境界가 본래 한 마음인지라 想念을 여의었건마는 중생들이 망녕되이
경계를 보는 연고로 마음에 分齊가 있음이요 망녕되이 想念을 일으켜서 법성에
稱合하지 못하는 연고로 능히 알지 못하거니와 모든 부처님은 見相을 여의어서
두루하지 아니한 바가 없으시니 마음이 진실한 까닭이며,곧 이것이 모든 법의
自性이니라 自體가 일체의 妄法을 드러내 비추어 大智用이 있어서 무량한 방편
으로 모든 중생이 응하여 아는 바를 따라서 다 능히 가지 가지의 법의를 열어
보이나니 이런 연고로 이름을 一切種智라 함이니라.
또 묻되 만약 모든 부처님이 자연의 업이 있어서 능히 일체처에 나타나 중생을
이익케 할 진대 일체 중생이 혹 그 몸을 보거나 혹 神變을 보거나 혹 그 말씀을
들으면 利益을 얻지 못함이 없을 것이어는 어찌하여 세간에는 능히 보지 못함이
많은고?
답하되 모든 부처님은 법신이 평등하사 일체처에 두루하사대 뜻을 지음이 없는
연고로 자연이라 말하나 다만 중생의 마음을 의지하여 나타나나니 중생의 마음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거울에 만약 때가 있으면 色相이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음
이니 이와 같아서 중생도 마음에 만약 때가 있으면 法身이 나타나지 않는 연고
니라.
이미 解釋分을 說하고 다음에 修行信心分을 說하리라,
이 가운데 正定聚에 들지 못한 衆生을 의지 하는 연고로 修行信心을 說함이니라.
어떤 것이 信心이며,어떤 것이 修行인고? 간략히 說하면 信心에 네가지가
있으니 무엇을 넷이라 하는고?첫째는 根本을 믿음이니 이른바 즐거이 眞如의
法을 생각하는 까닭이요,둘째는 부처님에게 無量한 功德이 있음을 믿음이니
항상 親近해서 供養하고 恭敬하기를 생각하며,善根을 일으켜서 一切智 求하기를
願하는 까닭이요,셋째는 法에 큰 利益이 있는 것을 믿음이니 항상 모든 波羅蜜
修行하기를 생각하는 까닭이요,넷째는 僧이 能히 올바로 修行하여 自利利他함을
믿음이니 항상 즐거이 모든 菩薩衆을 親近해서 如實한 行을배우기를 求하는
까닭이니라.修行에 다섯가지 門이 있어서 能히 이 信을 이룸이니 어떤 것이
다섯인고?첫째는 布施門이요,둘째는 持戒門이요,셋째는 忍辱門이요,넷째는 精進門
이요,다섯째는 止觀門이니라,어데게 布施門을 修行하는고?만약 一切衆生이 와서
求하여 찾는 者를 보면 所有한 財物을 힘을 따라서 베풀어 주어 자기의 俟貪을
버리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쁘게 하며,만약 厄難과 恐怖와 위험스러운 逼迫을
보면 자기의 堪任할바를 따라 無畏를 베풀어 주며,만약 어떤 중생이 와서
법을 구하면 자기의 능히 아는 바를 따라 방편으로 설하되 응당 名利와 恭敬을
탐구하지 아니하고,오직 자리와 이타만을 생각하여 菩提에 回向하는 연고니라.
어떻게 게문을 수행하는고?
이른바 살생도 아니하고, 도둑질도 아니하고, 음행도 아니하며,
양설도 아니하고, 나쁜말도 아니하고,거짓말도 아니하고,꾸미는 말도
아니하며,貪心,嫉妬,詐欺,阿諂,瞋喪,邪見을 멀리 여읨이니라 만약 出家한
자일진댄 번뇌를 折伏하기 위한 연고로 또한 응당 시끄러운 곳을 멀리 여의고
항상 고요한 데 머물러 慾心이 없고 만족할 줄 아는 頭陀等의 행을 修習하며,
내지 적은 허물이라도 마음에 두려움을 내어서 부끄러워 하여 뉘우쳐 고치고
如來께서 制定하신바 禁戒를 가벼히 여기지 아니하며,마땅히 譏弄과 嫌疑를
막아 두호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망녕되이 죄과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연고니라.
어떻게 인문을 修行하는고? 이른바 다른 사람이 괴롭게 함을 응당히 참아서 마
음에 보 갚음을 품지 아니하며, 또한 마땅히 이롭게 하거나 , 헤롭게 하거나,
훼방 하거나,기리거나,칭찬하거나,희롱하거나,괴롭게 하거나,즐겁게 하는등 법을
참는 연고니라.
어떻게 進門을 수행하는고?
이른바 모든 착한 일에 마음이
게으르지 아니해서 立志가 堅强하여 怯弱함을 멀리 여의며 마땅히 과거 久遠
으로 부터 이미 옴으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으로 큰 괴로움을 받아
이익이 없음을 생각할새 이런 연고로 응당히 모든 功德을 부지런히 닦아서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 속히 여러가지 괴로움을 여읨이니라.
다시 어떤 사람이 비록 信心을 修行하나 先世로 부터 옴으로 허다한 무거운
罪惡과 業障이 있는 까닭으로 邪魔와 모든 鬼神의 惱亂한 바가 되며,
혹은 세간의 사무에 가지 가지로 얽매이게 되며,혹은 病苦에 시달리는 바가
되어 이와 같은 등 많은 障碍가 있을새 이런 까닭으로 응당히 勇猛精勤하되
밤낮으로 六時에 모든 부처님께 禮拜해서 誠心으로 懺悔하며,勸請하고 따라
기뻐해서 菩提에 回向하되 항상 쉬지 아니해서 모든 障碍를 면하여 善根이
增長함을 얻는 연고니라.
어떻게 止觀門을 修行하는고?
말한바 止라 것은 이르되 一切의 境界相을
그치는 것이니 奢摩他觀의 義를 隨順하는 연고요. 말한바 觀이라는 것은 이르되
因緣生滅相을 分別하는 것이니 毘鉢舍那觀의 의를 수순하는 연고니라.
어떻게 수순하는고?
이 두가지 뜻으로써 漸漸 수습하여 서로 버리지 아니 하면
止와 觀이 雙으로 앞에 나타나는 연고니라.
만약 止를 닦는 자일진대 고요한 곳에 머물러 端正히 앉아서 뜻을 바로 하고
氣息을 의지하지 아니하며,形色에 의지하지 아니 하며,空에도 의지하지 아니
하며,地,水,火,風에도 의지하지 아니 하며,내지 보고,듣고,깨닫고,아느 것에 의지
하지 아니해서 일체의 모든 생각을 念을 따라 다 除함이요,또한 除하였다는
생각까지도 보냄이니 일체의 법이 본래 생각이 없는지라 생각 생각이 생하지도
아니 하며 생각 생각이 滅하지도 않나니라.또한 마음이 밖으로 경계 생각함을
따른 뒤에 마음으로써 마음을 除한다고 말지니 마음이 만약 산란하거던 곧
마땅히 거두어 들여 바른 생각에 머물지니라.
이 바른 생각이란 것은 마땅히
알라 오직 마음 뿐이요.바깥 경계가 없음이니 곧 다시 이 마음이 또한 자체의
모양이 없어서 생각 생각에 가히 얻지 못할지니라. 만약 앉고 일어남을 쫑아
가고,오고,나아가고.그침과 시작하는 바가 있는 일체의 때에 항상 方便을
생각하여 수순하고 관찰해서 오래 익혀 순숙하면 그 마음이 머물음을 얻으리니
마음이 머물은 까닭으로 점점 맹리하여 수순하여 眞如三昧에 들어감을 얻어서
깊이 번뇌가 調伏되고 신심이 증장해서 속히 不退함을 이룸이니라.
오직 疑惑과 不信과 誹謗과 중죄업장과 我慢과 懈怠를 제함이니 이와 같은 등
사람은 능히 들어가지 못할 바니라.
다시 이 三昧를 의지하는 까닭으로 곧 法界가 一相인줄 앎이니 이르되 일체
모든 부처님의 法身이 중생의 몸으로 더불어 平等하여 둘이 없음이니 곧 이름이
一行三昧니라.
마땅히 알라 眞如는 이 三昧의 根本이니 만약 사람이 수행하면
점점 능히 무량한 三昧을 생하리니 혹 어떤 중생이 善根의 힘이 없으면 곧
모든 魔軍과 外道와 귀신의 惑亂하는 바가 되리니 혹 앉아 있는 가운데 形態를
나타내 두려웁게 하거나 혹은 端正한 남녀들의 모양을 나타내거던 마땅히 오직
마음인줄 念하면 경계가 곧 멸해서 마침내 괴롭히지 못하리라.
혹은 天像과 보살승을 나투며,도한 如來像을 지어 相好가 具足하며,혹은 다라니를
설하며,혹은 布施,持戒,忍辱,精進,禪定,智慧를 설하며,혹은 평등하고 공해서 모양도
없고,願도 없고,怨도 없고,親함도 없고,因도 없고,果도 없어서 畢竟에 空寂한 것이
이것이 참다운 열반이라 설하며,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宿命過去의 일을 알게
하며,또한 미래의 일을 알게 해서 他心智를 얻어 辯才가 거리낌이 없게 하며,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世間名利의 일을 貪着케 하며,또 사람으로 하여금 자주
성을 내고 자주 기뻐해서 性品이 항상 되고 準함이 없게 하며 혹은 慈愛가 많게
하며,졸음도 많고 疾病도 많아서 그 마음을 懈怠하게 하며,
혹은 마침내 정진할
생각을 일으켰다가 뒤에 문득 休廢하고 믿지 않는 마음을 내어서 疑心이 많고
생각이 많게하며,혹은 본래 수승한 행을 버리고 다시 잡된 업을 닦게하며,
혹은 世事에 집착해서 가지 가지로 얽메이게 하며,또한 능히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삼매를 얻어 少分이라도 서로 비슷하게 하나니 다 이것은 외도의 얻은 바라
참다운 三昧가 아니니라.
혹은 다시 사람으로 하여금 혹 하루나 혹 이틀,혹 사흘로
이에 칠일에 이르고 定中에 머물러 자연히 향기롭고 아름답운 飮食을 얻어 먹고
몸과 마음이 快適하고 기뻐서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아서 사람으로하여금
愛着케 하며,
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음식에 分齊가 없어 졸지에 많이도 하고
적게도 하여 顔色이 달라지게 하나니 이 뜻을 쓰는 까닭으로 수행하는 자가
항상 응당 지혜로 관찰해서 이 마음으로 하여금 삿되 나그물에 떨어지게 하지
말고 마땅히 부지런히 생각을 바르게 하여 取하지 아니하고 착하지 아니하면
곧 능히 이 모든 업장을 멀리 여의게 되리라.
응당히 알라.외도의 있는바 三昧는 다 見愛와 我慢의 마음을 여의지 아니 했음
이니 세간의 명리와 공경을 貪着한 연고니라.
眞如三昧란 것은 見相에 머물지
아니하며,得相에 머물지 아니하며,내지 定에서 나옴에도 또한 懈弛하거나 태만
함이 없어서 있는바 번뇌가 점점 微薄해짐이니라.만약 모든 범부가 이 삼매의
법을 익히지 아니 하고 여래의 種性에 얻어 들어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나니라.
세간의 諸禪三昧를 닦으되 흔히 味着을 일으켜서 我見에 의지하여 三界에
繫屬되면 외도로 더불어 같음이니 만약 善知識의 두호하는 바를 여의면 곧 외도
의 소견을 일으키는 까닭이니라.
다시 精勤해서 專心으로 이 삼매를 修學하는
者는 현세에 마땅히 열가지 이익을 얻나니 어떠한 것이 열가지가 되는고?
첫째는 항상 十方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護念하는 바가 될것이요.
둘째는 모든 魔軍과 惡鬼에 능히 두려운 바가 되지 않을 것이요.
셋째는 九十五種의 外道와 鬼神의 惑亂하는 바가 되지 않을 것이요.
넷째는 심히 깊은 법을 誹謗함을 멀리 여의어서 重罪와 業障이 점점 微薄하여
지는 것이요.
다섯째는 일체의 疑惑과 모든 나븐 覺觀(즉 分別心)을 멸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모든 여래의 경계에 믿음이 增長함을 얻는 것이요.
일곱째는 근심 걱정을 멀리 여의어서 생사 가운데에서도 용맹스러워서 겁내지
않을 것이요.
여덟째는 그 마음이 柔和하여 驕慢함을 버려서 타인의 괴롭게 하는 바가 되지
않을 것이요.
아홉째는 비록 定力은 얻지 못하였으나 일체의 때와 일체경계의 곳에서 곧
능히 번뇌를 減損하여 世間事를 즐기지 않을 것이요.
열째는 만약 三昧를 얻으면 外緣의 일체음성에 놀라 움직이는 바가 되지 않으
리라.
다시 어떤 사람이 오직 止만 닦는 다면 마음이 가라앉게 될 것이며,혹 懈怠함을
일으켜 모든 善을 즐기지 아니 하고 大悲를 멀리 여의나니 이런 까닭으로 관을
닦음이니라.
觀을 修習하는 자는 마땅히 일체세간의 有爲法이 오래 머무는 것이 없어서
須臾에 變壞하며 일체의 心行이 생각 생각에 생멸하나니 이런 까닭으로
苦인줄 관함이니 응당히 과거에 생각한바 모든 법이 恍惚하여 꿈과 같은줄
觀하며,응당히 현재에 생각한바 모든 법이 마치 번갯불과 같은줄 관하며,응당히
미래의 생각하는바의 모든 법이 마치 구름과 같아서 홀연히 일어나는 줄 관하며,
응당히 세간의 일체 유신이 다 不淨하여 가지 가지로 더러운지라 하나도 가히
즐거움이 없는 줄 관함이니라.이와 같이 마땅히 생각하라.
일체의 중생이 비롯
함이 없는 때로부터 옴으로 다 無明의 熏習한 바를 因한 연고로 마음으로
하여금 생멸케 해서 이미 일체 身心에 큰 괴로움을 받았으며 현재에도 곧 한량
없는 逼迫이 있으며,미래에 괴로운 바도 또한 分齊가 없어서 버리기도 어려웁고
여의기도 어려워서 깨달아 알지 못함이니 중생도 이와 같아서 심히 가히 불쌍함
이 됨이니라.
이렇게 생각을 지어서 곧 응당히 용맹하게 큰 誓願을 세우되 원컨대 내 마음이
하여금 分別을 여읜 연고로 十方에 두루해서 일체의 모든 善功德을 수행하여
미래가 다하도록 하며,한량없는 方便으로써 일체의 苦惱衆生을 求拔해서
하여금 涅槃第一義의 樂을 얻게 하리라.
이와 같은 원을 일으키는 연고로 일체 때와 일체 곳에 있는 바 衆善을 몸소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따라서 修學함을 버리지 아니해서 마음에 게으름이 없나
니 오직 앉아 있을 때 止에 專念함은 除함이니라.
혹 나머지 일체에는 다 마땅히
할 것과 하지 못할 것을 觀察함이니라.혹 가거나,혹 머물거나,혹 눕거나,혹
일어남에 다 응당히 止와 觀을 함께 行함이니 이른바 비록 모든 法의 自性이
나는 것이 아닌줄 생각하나 다시 곧 因緣이 화합한 善惡의 업과 苦樂等 果報가
잃어지지도 아니하고,무너지지도 아니 하며,비록 因緣善惡의 業報를 생각하나
또한 곧 性을 가히 얻지 못함을 생각함이니 저 止를 닦는 자는 범부가 세간에
住着함을 對治하며,능히 二乘의 怯弱한 견해를 버림이요,저 관을 닦는 자는
이승의 大悲心을 일으키지 않고 좁고 비열한 마음의 허물을 대치함이요,범부의
善根 닦지 않는 것을 멀리 여읨이니라.
이 뜻을 쓰는 까닭으로 이 止와 觀의 門이
한가지로 서로 도와 이루어서 서로 버리고 여의지 아니 함이니 만약 止와 觀을
갖추지 못하면 곧 능히 보리의 도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다시 중생이 처음 이 법을 배워서 正信을 구하고저 하나 그 마음이 겁약한이는
이 娑婆世界에 머물러서 스스로 능히 항상 모든 부처님을 만나서 親히 받들어
공양하지 못할까 두려워 하며,두려워하여 이르되 信心을 가히 성취하기 어렵다
해서 뜻으로 물러가고저 하는 자는 마땅히 알라 여래께서 수승한 방편을 두어서
신심을 攝護했음이니 이르되 뜻을 오로지 하여 부처님을 念하는 因緣으로
원을 따라 他方의 佛土에 태어나서 항상 부처님을 친견해서 길이 악도를 여의나
니 저 修多羅에 설하사대 만약 사람이 오로지 西方極樂世界의 阿彌陀佛을 생각
해서 닦은바 선근을 회향하여 저 세계에 나기를 구원하면 곧 왕생함을 얻는다
하시니라.
항상 부처님을 보는 까닭으로 마침내 물러남이 없으며,만약 저 부처님
의 진여법신을 관하여 항상 부지런히 수습하면 필경에 태어남을 얻어서 正定에
머무는 연고니라.
이미 修行信心分을 설했을새 다음은 勸修利益分을 설하리라.
이와 같이 摩訶衍인 모든 부처님의 秘藏을 내가 이미 다 설하였으니,만일 어떤
중생이 여래의 심히 깊은 경계에 바른 마음을 내서 誹謗을 멀리 여의고 大乘의
도에 들어가고자 할진댄 마땅히 이 論을 가져서 思量하고 修習하면 구경에 능히
無上의 道에 이르리라.
만약 사람이 이 법을 들어 마치고 怯弱을 내지 아니 하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결정코 佛種을 이어서 반드시 모든 부처님의 授記하는
바가 되리라.假使 어떤 사람이 능히 三千大千世界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해서
하여금 十善을 行하게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한 食頃이라도 바로 이 법을 생각
하는 것만 같지 못함이니 앞의 공덕보다 勝過해서 가히 比喩할 수 없나니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論을 受持해서 관찰하고 수행하되 만약 하루나 하룻밤을
하더라도 所有의 공덕이 無量無邊해서 가히 설하지 못할지니라.假令 十方의 일체
모든 부처님이 각각 無量無邊한 阿僧祗劫에 그 공덕을 讚歎하여도 또한 능히
다하지 못할지니 무슨 까닭인고?
이르되 法性의 공덕이 다함이 없는 연고로
이사람의 공덕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邊際가 없나니라.그 어떤 중생이 이
論 가운데에 毁謗하여 믿지 아니하면 얻는 바 죄의 果報는 무량한 劫을 지나도
록 큰 괴로움을 받으리니 이런 연고로 중생은 다만 응당히 우러러 믿을 지언정
응당히 毁謗하지 말지니라.自害가 깊음으로써 또한 他人을 害롭게 해서 一切三寶
의 種子를 끊음이니라.
일체여래가 다 이 법을 의지하사 열반을 얻은 연고며,
일체보살이 이것을 因하여 수행해서 佛智에 들어 가는 연고니라.미땅히 알라
과거의 보살이 이미 이 법을 의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이루었으며,현재의 보살
이 이제 이 法을 의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이루었으며,미래의 보살도 마땅히
이 법을 의지하여 청정한 믿음을 이룰 것이니 이런 연고로 중생이 응당 부지런
히 닦아 배울지니라.
모든 부처님의 심히 깊고 광대한 뜻을 내 이제 隨順하여 다 가져 설하였으니 이
功德이 法性과 같음을 回向해서널리 일체의 衆生界를 利롭게 하노라.
가섭 존자
법이라는 본래 법은, 법도 없고 법이 아닌 것이 없음이니, 어찌 한 법 가운데 법과 법 아닌 것이 있으랴.
아난 존자
본래 있음의 법(有法)을 전했더니, 전한 뒤엔 없음의 법(無法)이라 하더라. 제각기 깨달았으니, 깨달은 뒤엔 없음의 법(無法)도 없더라.
상나화수 존자
법도 아니요,마음도 아니며, 마음도 없고 법도 없도다. 이 마음의 법을 말할 때에, 이 법은 마음의 법이 아니다.
우바국다 존자
마음은 본래부터 마음이니, 본래 마음에는 법이 없도다. 법도 있고 본래의 마음도 있으나, 마음도 아니요 본래의 법도 아니다.
제다가 존자
근본 법과 그 마음을 통달하면, 법도 없고 법 아닌 것도 없다네. 깨달았다고 하면 깨닫지 않음과 같나니, 마음의 법도 본래 없기 때문이라네.
미차가 존자
마음은 실체가 없어 얻을 수 없나니, 얻을 수 있다면 참된 법이 아니라네, 마음이 마음 아닌줄 깨달아 알면, 마음과 마음의 법을 알 수 있으리.
바수밀 존자
마음은 허공 같아, 허공 같은 법을 보인다. 허공의 묘한 법을 알면, 옳고 그름도 법도 없다.
불타난제 존자
허공이 안팎이 없듯, 마음의 법도 그러하다. 허공의 이치를 밝게 깨달은 것, 그것을 참된 이치를 바로 안 것이라 한다.
복타밀타 존자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에 의해 모습을 드러 내나니, 진실된 이치를 깨달으면, 참도 거짓도 사라지고 없네.
협 존자
진리는 본래 이름이 없지만, 이름에 의해 모습을 나타내나니, 진실한 법을 알아 들으면, 참도 아니요 거짓도 아니다.
부나야사 존자
미혹과 깨달음은 숨음과 드러남, 밝음과 어둠이 서로 떠나지 않는다. 이제 숨음과 드러남의 법을 너에게 전하노니, 하나도 아니요 둘도 아니니라.
마명 존자
들어나고 숨음이 한 집안 소식이요, 밝고 어두움이 원래 둘이 아니로다. 이제 네게 깨달은 법을 주노니, 갇지도 말고 버리지도 말라.
가비마라 존자
드러남도 숨음도 아닌법을 ,진실의 경지라고 한다. 숨고 드러남의 이치를 깨달으면, 지혜롭고 어리석음을 넘어서리.
용수 존자
숨고 드러나는 법을 밝히려고, 해탈의 이치를 말하네. 법에는 마음도 얻을 수 없나니, 성냄도 기쁨도 본래 없는 것이라네.
가나제바 존자
사람에게 법을 전하는 뜻은, 해탈의 이치를 설하기 위함일세, 법에는 진실로 얻을 것이 없나니,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네.
라후라다 존자
법에는 진실로 증득할 것이 없어서, 취할 수도 버릴 수도 없다네, 법은 있고 없는 것이 아니니, 어찌 안 밖이 생기리.
승가난제 존자
마음의 법이 원래 나는 것 없으나, 인(因)의 땅에 연(緣)을 따라 일어난다네. 인연과 종자가 서로 방해하지 않듯, 꽂과 열매도 그러하네.
가야사다 존자
종자가 있고 마음땅(心地)이 있으니, 인연이 싹을 나게 하도다. 싹이 나건 안 나건,인연의 법칙은 걸림이 없도다.
구마라다 존자
성품에는 태어남이 없지만, 구하는 이를 위해 말하는 것이다. 법에는 이미 얻을 것이 없거늘, 어찌 결정하고 못함을 걱정하리요.
사야다 존자
말끝에 무생법(無生法)에 맞으면, 법계의 성품과 같아지리니, 이렇게 바로 알면, 사(事)와 이(理)를 통달하리라.
바수반두 존자
거품도 허깨비도 걸림이 없거늘, 어찌 알지 못하는가 법이 그 가운데 있는 줄 알면, 지금도 옛도 아니리라.
마노라 존자
마음이 만 경계를 따라 움직이니,움직이는 곳마다 모두 그윽하다. 흐름에 따라 본 성품 깨달으면,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으리라.
학륵나 존자
마음을 깨달을 때를, 부사의(不思議)하다 말 할 수 있나니, 분명하되 얻을 수 없고, 얻을 때는 안다고 할 수 없다.
사자 존자
깨달음을 말할때, 지(知)와 견(見)이 모두가 마음이다. 이 마음이 바로 지견이니, 지견은 언제나 지금 속에 있다.
바사사다 존자
성인이 지견을 말씀하시니, 경계를 만날 적마다 그 아닌 것 없도다. 내가 이제 참 성품을 깨달으니, 도도 없고 이치도 없도다.
불여밀다 존자
참성품이 心地에 숨었으니,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도다. 인연따라 중생을 교화하니,방편으로 지혜라 부른다.
반야다라 존자
마음 땅이 숱한 종자를 내네, 일이 일어나면 다시 이치도 생기네. 수행의 열매가 무르익어 깨달음이 원만해지니,꽂이 피듯 한 세계가 열리네.
보리달마 존자
내가 본래 이 땅에 온 것은, 법을 전해 어리석은 이를 제도하려는 것인데, 한송이의 꽃에 다섯 꽃잎이, 열매는 자연히 이루어지리라.
혜가 존자
본래부터 마음 땅이 있었기에, 그 땅에 씨를 심어 꽃이 피지만, 종자도 있는 것이 아니며,꽃도 나는 것이 아니다.
승찬 존자
꽃은 땅을 의지해 심고, 땅에 심었던 꽃이 피지만, 씨를 뿌려주지 않는다면, 꽃도 땅도 나지 않는다.
도신 존자
꽃과 종자는 나는 성품이 있나니, 땅에 의하여 꽃은 나고 또 난다. 큰 인연과 믿음이 어울릴 때에 나지만, 이 남은 남이 없는 것이다.
홍인 존자
유정(有情)이 와서 씨를 뿌리니, 인연의 땅에 열매 절로 열리네. 무정(無情)은 이미 종자가 없으므로, 성품도 태어남도 없다.
혜능 존자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맑은 거울도 집이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 ,어찌 먼지를 일으키랴? 지각 있는 존재의 씨앗이 뿌려져, 밭마다 열매를 맺게 되리라.지각 없이는 씨앗이 자랄 수 없고, 성(性)없이는 생(生)도 없다.
돈오입도요문론 [頓悟入道要門論] - 머리말....
이 논을 지은이는 마조 도일(馬祖道一) 스님의 제자인 대주 혜해(大株慧海)스님
입니다. 스님의 전기는 명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다만 [조당집(祖堂集)]권14,[경
덕전등록(景德傳燈錄)] 권6 등에 단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이를 종합해 보면 마
조스님을 6년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만이 스님의 생존 연대를 추정할수 있는 유일
한 단서 입니다.
혜해스님은 건주(福建省) 사람으로 성은 주[朱]씨이며 월주(浙江省)의 대운사 도지
(道智)스님에게 출가 득도 하였습니다. 그후 스님은 강서(江西)에 있는 마조스님을
찾아가 뵈오니, 마조스님이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가?"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여기와서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가??"
"불법(佛法)을 구하러 왔습니다."
"자기 집의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떠나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구
하려 하는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는데 어떤 불법(佛法)을 구하려 하는가??"
그러자 혜해스님이 절을 하고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혜해 자신의 보배창고 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 너의 보배창고이다. 일체가 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람
이 없고 사용[使用]이 자제한데 어찌하여 밖에서 구하려 하는가?"
이 말 끝에 혜해스님은 크게 깨쳐서 자신의 본래 마음을 알았는데, 그것은 지적인
이해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스님은 뛸듯이 기뻐서 절을 올려 감사를 드리고 6년 동안 마조스님을 시봉하였습니
다. 그후 도지스님이 연로 하시므로 대운사로 다시 돌아와서 도지스님을 봉양하였
습니다. 그리고 자취와 활동을 감춘채 겉으로는 어리석게 살면서 [돈오입도요문론
(頓悟入道要門論)] 한 권을 저술 하였습니다. 이책을 조카 상좌인 현안(玄晏)스님
이 훔쳐서 마조스님에게 보이니 스님이 이것을 보시고 대중들에게
"월주(越州)에 큰 구슬이 있으니 둥글고 밝은 광명이 비추어 자유자재로와 걸림이
없구나"
하고 감탄하시었습니다. 대중가운데 혜해스님이 주씨임을 알고 있던 자가 있어서
큰 구슬(大珠)은 바로 혜해스님을 크게 칭찬하는 말임을 알아차리고,
"옛날 같이 살았을때는 그렇게 훌륭한 스님인줄 몰랐는데 이제보니 큰 도인임에 틀
림 없구나."
하고 다시 스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도반을 이루어 앞을 다투어 월주의 스님 문하에 들어와서 공
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혜해스님을 대주(大珠)스님이라 부르게 되었습니
다.
마조스님 문하에서 대주스님의 위치를 본다면 마조스님 비문에서나 [경덕전등록],
[조당집]에서나 모두 스님을 마조 스님 수제자(首第子)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덕전등록]에 1700여명의 큰 스님 법문이 실려 있지만, 그 중에서도 대주 스님의
법문이 가장 많이 실려있고 제 28권에도 다시 스님의 긴 법어가 따로 실려 있습니
다.
마조스님의 정맥은 백장(百丈)스님에게로 내려갔다고 하는 것이 선가의 정설로 되
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백장(百丈)스님, 남전(南泉)스님, 법상(法常)스님들보다
대주스님이 더 유명하였으며 천하에 이름을 더 날렸습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돈오입도요문론]은 당대에 명성을 떨친 대주 스님의
저술이고 또 선가의 대조사이신 마조스님이 극찬한 책이므로 선종(禪宗)의 정통사
상을 아는데 있어서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자료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육조단경(六祖壇經)] 이라든
가, [전심법요(傳心法要)]라든가, [백장광록(百丈廣錄)]이라든가 하는 선종의 어록
들이 많이 있지만 이러한 어록들은 당시 사람들이나 후세 사람들이 그 스님이 입적
하신뒤에 그 법문을 기록하거나 수집한 것이지 본인들이 직접 편찬한 것이 아닙니
다.
하지만 [돈오입도요문론]은 대주스님이 직접 저술하였으므로 거기에 가필이나 착오
가 없다고 보며 다른 어떠한 어록보다도 완전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
니다. 또 마조스님이 인가하신 논이니 만큼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정확하게 기술
한 것으로서, 선종 초기의 근본사상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증도가(證道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돈오(頓悟)란 구경각(究竟覺)을 말합니다. 즉 제 8 아뢰야 근본 무명이 완전히 끊
어져서 중도(中道)를 정등각(正等覺)하여 진여본성(眞如本性)을 깨친 증오(證悟)를
말하는 것입니다. 중도를 정등각한 구경각을 돈오라고 하는 만큼, 입도(入道)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성불과 같은 뜻으로서 증도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돈오입도요문론]은 영가스님의 [증도가]와 그 사상과 내용이 같다고 할수 있겠
습니다.
### 돈오입도요문론 차례. ###
1. 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2. 돈오(頓悟)
3. 선정(禪定) 4. 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5. 자성견(自性見)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7. 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8. 무소견(無所見)
9. 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11.삼학(三學)을 힘쓰다. 12.무생심(無生心)
13.상주(常住) 14.오종법신(五種法身)
15.등각(等覺)과 묘각(妙覺) 16.설법(說法)
17.금강경(金剛經)의 경전(輕賤) 18.여래(如來)의 오안(五眼)
19.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20.정혜(定慧)를 함께 씀
21.경상(鏡像)과 정혜(定慧) 22.언어도단심행처멸(言語道斷心行處滅)
23.여여(如如) 24.즉색즉공(卽色卽空)
25.진(盡)과 무진(無盡) 26.불생불멸(不生不滅)
27.불계(佛戒)는 청정심(淸淨心) 28.불(佛)과 법(法)의 선후(先後)
29.설통(說通)과 종통(宗通) 30.도(度)와 부도(不度)
31.부진유위(不盡有爲)며 부주무위(不住無爲) 32.지옥유무(地獄有無)
33.중생(衆生)과 불성(佛性) 34.삼신사지(三身四智)
35.불진신(佛眞身) 36.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
37.무위법(無爲法) 38.중도(中道)
39.오음(五陰) 40.이십오유(二十五有)
41.무념(無念)과 돈오(頓悟) 42.중생자도(衆生自度)
43.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 44.일체처(一切處)에 무심(無心)
45.필경정(畢竟淨) 46.필경증(畢竟證)
47.진해탈(眞解脫) 48.필경득(畢竟得)
49.필경공(畢竟空) 50.진여정(眞如定)
51.중도(中道)는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 52.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이 해탈-解脫
1.불보살[佛菩薩]께 헌사[獻辭]
시방의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님들께 머리 숙여 예배를 올립니다.
부처님의 제자인 제가 이 논을 지었으나 부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을까 두려우
니 부디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만약 부처님의 이치를 알았거든 일체 유정의 중생
에게 모두 회향하여 내세(來世)에 다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다.
2.돈오(頓悟)
"어떤 법을 닦아야 곧 해탈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돈오의 한 문[一門]만이 곧 해탈을 얻을 수 있느니라."
"어떤 것을 돈오(頓悟)라고 합니까?"
"돈(頓)이란 단박에 망념(妄念)을 없앰이요, 오(悟)란 얻은 바 없음[無所得]을 깨
치는 것이니라."
"무엇부터 닦아야 합니까?"
"근본(根本)부터 닦아야 하느니라."
"어떻게 하는것이 근본부터 닦는 것입니까?"
"마음이 근본이니라."
"마음이 근본임을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능가경]에 이르기를 '마음이 나면 갖가지 법이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진다'고 하였고,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淨土)를 얻고저 하면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나니 그 마음 깨끗함을 따라 불국토가 깨끗해진다' 하였
고, [유교경]에 이르기를 '마음을 한곳으로 통일하여 제어하면 성취하지 못하는 일
이 없다' 고 하였고, 어떤 경에서는 '성인은 마음을 구하나 부처를 구하지 아니하
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처를 구하면서 마음을 구하지 아니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
음을 다스리나 몸을 다스리지 아니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몸은 다스리나 마음을 다
스리지 아니한다'고 하였고, [불명경]에 이르기를 '죄는 마음에서 났다가 다시 마
음을 좇아서 없어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선악과 일체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으
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알지니, 그런 까닭에 마음이 근본이니라. 만약 해탈을 구
하는 사람이라면 먼저 모름지기 근본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런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고 쓸데없이 노력을 허비하여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옳지 않느니라. [선문
경]에 이르기를 '바깥 모양에서 구한다면 비록 몇 겁을 지난다 해도 마침내 이루지
못할 것이요, 안으로 마음을 관조하여 깨치면 한 생각 사이에 보리를 증득한다'고
하였느니라."
3.선정(禪定)
"근본을 닦으려면 무슨 법으로써 닦아야 합니까?"
"오직 좌선하여 선정을 하면 얻을 수 있느니라. [선문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의 성
스러운 지혜인 일체종지(一切種智)를 구할진댄 곧 선정(禪定)이 요긴한 것이니, 만
약 선정이 없으면 망상이 시끄럽게 일어나서 그 선근(禪根)을 무너뜨린다' 고 하였
느니라."
"어떤 것을 선(禪)이라 하며 어떤 것을 정(定)이라 합니까?"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선(禪)이요, 앉아서 본성(本性)을 보는 것이 정
(定)이니라. 본성이란 너의 무생심(無生心)이요, 정이란 경계를 대(對)함에 무심하
여 팔풍(八風)에 움직이지 아니함이니라. 팔풍이란, 이로움과 손실(利.衰), 헐뜯음
과 높이 기림(毁.譽), 칭찬함과 비웃음(稱.譏), 괴로움과 즐거움(苦.樂)을 말하느
니라. 만약 이와 같이 정(定)을 얻은 사람은 비록 범부(凡夫)라고 하더라도 부처님
지위(佛位)에 들어 가느니라.
왜냐하면 [보살계경(菩薩戒經)]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계(佛戒)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 고 하였으니 이와 같이 얻은 것을 '해탈' 이라고 하
며 또 '피안에 이르렀다'고 하느니라. 이는 육도(六度)를 뛰어넘고 삼계(三界)를
벗어난 대력보살(大力菩薩)이며 무량력존(無量力尊)이니 대장부(大丈夫)인 것이니
라."
4.무주처(無住處)와 무주심(無住心)
"마음이 어느 곳에 머물러야 곧 머무는 것 입니까?
"머무는 곳이 없는데 머무는 것이 곧 머무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머무는 곳이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함이 곧 머무는 곳 없는데 머무는 것 이니라."
"어떤 것이 일체처(一切處)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선악(善惡).유무(有無).내외(內外).중간(中間)에
머물지 아니하며,공(空)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공(空)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禪定)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함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함이니, 다만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곧 머무는 곳이니라. 이와 같이
얻은 것을 머물음이 없는 마음(無住心) 이라 하는 것이니 머물음이 없는 마음이란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그 마음은 어떤 물건과 같습니까?"
"그 마음은 푸르지도 않고 누르지도 않으며, 붉지도 않고 희지도 않으며,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아
니하며,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아니하여, 담연(湛然)하고 항상 고요한 이것이 본
래 마음의 형상이며 또 본래 몸이니 본래의 몸이란 곧 부처님의 몸이니라."
5.자성견(自性見)
"몸과 마음은 무엇으로써 보는 것입니까, 눈으로 봅니까, 귀로 봅니까,
몸과 마음 등으로 봅니까?"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느니라."
"이미 여러 가지로 보는 것이 없을진댄 다시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이것은 자성(自性)으로 보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본래 청정하여 담연히 비
고 고요하므로, 비고 고요한 본체(體) 가운데서 이 보는 것[見]이 능히 나느니라."
"다만 청정의 본체조차도 오히려 얻을 수 없는데 이 보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
입니까?"
"비유하면 밝은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일체 모양을 볼수 있는 것과 같으
니, 왜냐하면 밝은 거울이 무심이기 때문이니라. 배우는 사람이 만약 마음에 물든
바 없어 망심이 나지 아니하고 주관과 객관에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자연히 청
정한 것이니, 청정한 까닭에 능히 이 보는 것이 생겨나느니라. [법구경]에 이르기
를 '필경의 공 가운데서 불꽃 일듯 건립함이 선지식이다' 고 하였느니라.
6. 열반경(涅槃經)의 이구(二句)
"[열반경] 금강신품(金剛身品)에 이르기를 '볼 수 없되 분명하고 밝게 볼 수 있어
아는 것도 없고 알지 못하는 것도 없다' 하니 무슨 뜻 입니까?"
" '볼수 없다'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모양이 없어서 얻을 수 없는 까닭에 볼 수
없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얻을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은 자성의 본체가 공적하고
담연하여 가고 옴이 없으나 세간의 흐름을 여의지 않으니 세간의 흐름이 능히 흐르
지도 아니하여 탄연히 자재[自在]함이 곧 '분명하고 밝게 보는 것' 이니라.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자성의 모양이 없어서 본래 분별(分別)이 없음을 이름하
여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알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사묘용을 갖추어서 능히
일체를 분별하여 알지 못하는 일이 없으니 이를 이름하여 알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하느니라.
[반야(般若)의 게송]에 이르기를 '반야(般若)는 아는 것이 없으나 알지 못하는 것
이 없으며, 반야는 보지 못하나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고 하였느니라."
7.불견유무[不見有無]가 진해탈[眞解脫]
"경에서 이르기를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해탈이다'고 하
시니 어떤 것이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않는 것 입니까?"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였을 때를 곧 '있음'이라 하고, 그 가운데서 깨끗한 마음을
얻었다는 생각이 나지 않음이 곧 '있음'을 보지 못한다고 하느니라.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얻고서, 나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생
각을 짓지 않는 것이 곧 '없음'을 보지 못함이니, 그런 까닭에 `있음과 없음'을 보
지 못한다고 하는 것 이니라.
[능엄경]에 이르기를 '지견(知見)에 앎(知)을 세우면 무명(無明)의 근본이 되고 지
견에 보는 것이 없으면 이것이 곧 열반이며 또한 해탈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8.무소견(無所見)
"어떤 것이 보는 바가 없는 것입니까?"
"만약 남자나 여자 및 일체 색상을 보되 그 가운데에 사랑함과 미워함[愛憎]을 일
으키지 아니하여 보지 못함과 더불어 같은 것이 곧 보는 바가 없는 것이니라."
"일체 색상을 대할 때는 곧 본다고 하거니와 색상을 대하지 않을 때도 또한 본다고
할 수 있읍니까?"
"보느니라."
"물건을 대할 때는 설령 보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을 대하지 않을 때는 어떻
게 해서 보는 것이 있읍니까?"
"지금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물건을 대하거나 물건을 대하지 않거나를 논(論)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다고 하는 그 성품은 영원한 까닭에 물건이 있을 때도 보고 물
건이 없을 때도 또한 보는 것 이니라. 그런 까닭에 물건에는 본래 스스로 가고 옴
(去來)이 있으나 본다는 성품에는 가고 옴이 없음을 알지니, 다른 모든 감각 기관
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바로 물건을 볼 때에 보는 가운데 물건이 있읍니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서지 못 하느니라."
"바로 물건이 없음을 볼 때 보는 가운데 물건이 없읍니까?"
"보는 가운데는 물건 없는 것도 서지 못하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는 곧 들을 수 있거니와 소리가 없을 때에도 들을 수 있읍니까?"
"역시 듣느니라."
"소리가 있을 때엔 설령 들을 수 있다고 하지만 소리가 없을 때는 어떻게 듣습니
까?"
"지금 '듣는다'고 하는 것은 소리가 있거나 없거나를 논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듣
는다'는 자성은 영원한 까닭에 소리가 있을 때도 듣고 소리가 없을 때도 또한 듣
느니라."
"이렇게 듣는 자는 누구 입니까?"
"이는 자기의 성품이 듣는 것이며 또한 아는 이가 듣는다고 하느니라."
9.돈오문(頓悟門)의 종지(宗旨)와 체용(體用).
1. 종지와 체용
"이 돈오문은 무엇으로써 종취(宗趣)를 삼고 무엇으로써 참 뜻(旨)을 삼고 무엇으
로써 본체로 삼으며 무엇으로써 작용(用)으로 삼는 것 입니까?"
"무념을 종취로 삼고 망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참 뜻으로 삼으며 청정을 본체로 삼
고 지혜로써 작용을 삼느니라."
"이미 무념으로 종취를 삼는다고 말씀할진댄 무념이란 어떤 생각이 없는 것 입니
까?"
"무념이란 삿된 생각이 없음이요 바른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니라."
"어떤 것이 삿된 생각이며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있음(有)을 생각하고 없음(無)을 생각하는 것이 삿된 생각이요 있음과 없음을 생
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괴로움[苦]과 즐거움[樂], 나는 것[生]과 없어
짐[滅], 취함[取]과 버림[捨], 원망(怨)과 친함(親), 미워함(憎)과 사랑함(愛)을
생각하는 것이 모두 삿된 생각이요, 괴로움과 즐거움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른
생각이니라."
"어떤 것이 바른 생각 입니까?"
"바른 생각이란 오직 보리(菩提)만을 생각하는 것이니라."
"보리는 얻을 수 있습니까?"
"보리는 얻을 수 없느니라."
"이미 얻을 수 없을진댄 어떻게 오직 보리만 생각 합니까?"
"보리는 다만 거짓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라 실지로 얻을 수 없으며 또한 과거에도
미래에도 얻을 수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까닭에 곧 생각 있음이 없느니라.
오직 이 무념을 진실한 생각이라 하는 것이니 보리는 생각할 바가 없는 것이니라.
생각하는 바가 없다는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니, 다만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무념이란 모두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이름을 세운 것
인지라 모두가 하나의 본체로서 같음이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는 것이니라.
다만 일체처에 무심함을 알면 곧 이것이 무념이니 무념을 얻을 때에 자연해탈이니
라."
"어떻게 하여야 부처님의 행을 하는 것입니까?"
"일체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부처님 행동이라 하며 또 바른 행동이라 하며 또 성
스러운 행동이라 함이니,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있음과 없음 미워함과 사랑함등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대율]5권 보살품에서 이르기를 '일체 성인들은 중생의 행동을 행하지 않고 중생들
은 이와같은 성인의 행동을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느니라."
"어떤 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까?"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곧 바로 보는 것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이라 합니까?"
"일체 색을 볼 때에 물들거나 집착함을 일으키지 아니함이니, 물들거나 집착하지
아니한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므로 곧 보는 바 없음
을 본다고 하는 것이니라.
만약 보는 바 없음을 보는 것을 얻었을 때 곧 부처님의 눈이라 하나니 다시 별다른
눈이란 없느니라.
만약 일체 색을 볼 때에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보는 바가 있다
고 하는 것이니 보는 바가 있음이 곧 중생의 눈이니라. 다시 별다른 눈을 가지고
중생의 눈이라 할 것이 없으니, 내지 다른 오근(五根)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2. 이성공(二性空)
"이미 지혜로써 작용을 삼는다고 말씀 하셨는데 어떤 것이 지혜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空)한 줄 아는 것이 곧 해탈이며 두가지 성품이 공하지 않은
줄 알면 해탈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하며 또 삿됨과 바름을 요달하였다고
하며 또 본체와 작용을 안다고 하느니라.
두 가지 성품이 공했다고 하는 것은 있음과 없음, 선과 악, 사랑함과 미워함이
나지 아니한 것을 이름하여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고 하느니라."
10.돈오(頓悟)는 단바라밀(檀波蘿蜜)로 부터
"이 돈오의 문은 어디로부터 들어갑니까?"
"단바라밀(檀波羅蜜)로부터 들어가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육바라밀이 보살의 행(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단바
라밀 하나만을 말씀하시며 어떻게 구족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미혹한 사람은 다섯바라밀이 모두 단바라밀로 말미암아 나는 것인줄 알지 못한 것
이니 오직 단바라밀만을 수행하면 곧 육바라밀을 모두 구족하는 것이니라."
"어떤 인연으로 단바라밀이라고 합니까?"
"단(檀)이란 보시(布施)를 말하느니라."
"어떤 물건을 보시하는 것입니까?"
"두 가지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두가지 성품입니까?"
"선과 악의 성품을 보시해 버리는 것이며, 있음과 없음의 성품, 사랑함과 미워함의
성품,공과 공 아님의 성품,정과 정 아님의 성품과 깨끗함과 깨끗하지 아니함의 성
품을 보시해 버려서 일체 모든 것을 전부 보시해 버리면 두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
느니라.
만약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을 얻을 때에 또한 두 가지 성품이 공하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하며 또 보시한다는 생각을 짓지 아니함이 곧 진실로 보시바라밀을 실행하는
것이니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고 하느니라. 만 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진다
함은 곧 일체 법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법의 성품이 공하다 함은 곧 일체처에 무
심함이니라.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는 한 모양(一相)도 얻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느니라.
한 모양도 얻을 수 없다 함은 곧 실상이니 실상이란 여래의 묘한 색신의 모양이니
라.
[금강경]에 이르기를 '일체의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곧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
고 하였느니라."
"부처님은 육바라밀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어떻게 하나를 말하며 능히 구족할 수 있
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라건대 하나가 여섯 가지 법을 구족하는 까닭을 말씀해 주십
시요."
[사익경]에 이르기를 '망명존이 범천에게 말하되
[만약 보살이 일체의 번뇌를 버리면 단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보시요,
모든 법에 대해서 일어나는 바가 없음이 시라바라밀이라고 하나니 곧 지계요,
모든 법에 대하여 손상하는 바가 없음이 찬제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인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모양을 떠남이 비리야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정진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머무는 바가 없음이 선바라밀이라 하나니 곧 선정이요,
모든 법에 대해서 희론이 없음이 반야바라밀이라 하니니 곧 지혜이니라.
이것을 이름하여 여섯 가지 법이라 한다]'고 하였느니라.
지금 다시 여섯가지 법에 이름을 붙이면 첫째는 버림과 둘째는 일어나지 아니함과
세째는 손상하지 않음과 네째는 모양을 떠남과 다섯째는 머물지 않음과 여섯째는
희론이 없음과 다르지 않느니라. 이와 같은 여섯가지 법은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
짓 이름을 세움이요, 묘한 이치에 이르러서는 둘도 없고 다름도 없느니라.
다만 하나를 버릴줄 알면 일체를 버림이요, 하나가 일어나지 않으면 곧 일체가 일
어나지 않거늘 미혹한 사람은 알지 못하고 차이가 있다고 모두 말 하느니라. 어리
석은 사람은 여섯가지 법의 숫자에 머물러서 오래도록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니라.
너희들 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말하나니, 다만 보시의 법만을 닦으면 만법이 두루
원만해지거늘 하물며 다섯가지 법이 어찌 구족하지 않겠는가."
11.삼학(三學)을 함께 쓰다.
"삼학을 함께 쓴다 하니 어떤 것이 삼학이며 어떤 것이 함께 쓰는 것입니까?"
"삼학이란 계.정.혜니라."
"어떤 것을 계.정.혜라 합니까?"
"청정하여 물들지 아니함이 계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아 경계를 대하여
고요함이 정이요,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알 때에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며 마음이 청정함을 알 때에 청정하다는 생각도 나지 아니하여 내지
선.악을 모두 능히 분별하되 그 가운데에 물들지 아니하여 자재를 얻음을 혜라고
하느니라. 만약 계.정.혜의 본체가 모두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알 때에 곧 분별함이
없어서 곧 동일의 본체이니 이것이 삼학을 함께 쓴다고 하는 것이니라."
12.무생심(無生心)
"만약 마음이 청정함에 머물 때에는 청정함에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까?"
"청정함에 머뭄을 얻었을 때에 청정함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을 짓지 않는 것이 청
정함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니라."
"마음이 공에 머물 때에는 공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까?"
"만약 공하다는 생각을 짓는다면 곧 공에 집착한 것이니라."
"만약 마음이 머뭄이 없는 곳에 머물 때에 머뭄이 없는 곳에 집착한 것이 아닙니
까?"
"다만 공한 생각을 지으면 곧 집착할 곳이 없으니 네가 만약 머물 바 없는 마음을
분명하고 밝게 알고저 할진댄 바로 좌선할 때에 다만 마음만 알고, 모든 사물을 생
각하여 헤아리지 말며 모든 선악을 생각하여 헤아리지 말라.
과거의 일은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생각하여 헤아리지 아니하면 과거의 마음이 스
스로 끊어지니 곧 과거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미래의 일은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
니 원하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하면 미래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지니 곧 미래
의 일이 없다고 함이요, 현재의 일은 이미 현재라 일체의 일에 집착함이 없음을 알
뿐이니, 집착함이 없다 함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집착함
이 없음인지라 현재의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서 곧 현재의 일이 없다고 하느니라.
삼세를 거두어 모을 수 없음이 또한 삼세가 없다고 말하느니라.
마음이 만약 일어날 때에 따라가지 아니하면 가는 마음이 스스로 끊어져 없어짐이
요, 만약 마음이 머물 때에 또한 머뭄에 따르지 아니하면 머무는 마음이 스스로 끊
어져서 머무는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이 머무는 곳 없는 곳에 머문다고 하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머뭄이 머뭄에 있을 때에는 다만 사물이 머물 뿐이요
또한 머무는 곳이 없으면 머무는 곳 없음도 없느니라.
만약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마음이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면 곧 본래 마음[本心]
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성품을 밝고 밝게 본다고 하느니라.
만약 일체처에 머물지 아니하는 마음이란 곧 부처님 마음[佛心]이며, 또한 해탈심
이며, 또한 보리심이며, 또한 무생심이며, 또한 색의 성품이 공함이라 이름하나니,
경에 이르기를 '무생법인을 증득했다'고 함이 이것이니라.
너희들이 만약 이와 같이 아직 체득하지 못하였을 때는 노력하고 노력하여 부지런
히 공력을 더하여 공부를 성취하면 스스로 알 수 있으니, 그러므로 안다고 하는 것
은 일체처에 무심함이 곧 아는 것 이니라.
무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되어 참되지 않음이 없으니, 거짓됨이란 사랑하고 미
워하는 마음인 것이며 참됨이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다만 사
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
이란 자연해탈이니라."
13.상주(常住)
"앉아서만 쓸 수 있는 것입니까, 다닐 때도 또한 쓸 수 있는 것입니까?"
"지금 공(功)을 쓴다고 말함은 단지 앉아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거나 머
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하는 짓는 바 움직이는 모든 때 가운데 항상 써서 사이가 끊
어짐이 없음이 항상 머문다고 하느니라."
14.오종법신(五種法身)
[방광경(方廣經)]에 이르기를 '다섯가지 법신은 첫째는 실상 법신이요, 둘째는 공
덕법신이요, 셋째는 법성법신이요, 네째는 응화법신이요, 다섯째는 허공법신이다'
고 하였는데, 자기의 몸에는 어떤 것이 이것입니까?
"마음이 무너지지 아니함을 아는 것이 실상 법신이며, 마음이 만상을 포함하는 것
을 아는 것이 공덕법신이며, 마음이 무심임을 아는 것이 법성법신이며, 근기따라
응하여 설법함이 응화법신이며, 마음이 형상이 없어 얻을 수 없음을 아는 것이 허
공법신이니, 만약 이 뜻을 확실히 아는 이는 곧 증득할 것이 없음을 아느니라.
얻음도 없고 증득함도 없음이 곧 불법법신을 증득한 것이요, 만약 증득함이 있고
얻음이 있음을 증득으로 삼는 이는 곧 삿된견해의 증상만인이며 외도라고 하느니
라. 왜 그러냐 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사리불이 천녀에게 묻되 그대는 얻은 바
가 무엇이며 증한 바가 무엇이기에 말재주가 이와 같으냐' 하고 물으니, 천녀가 대
답하기를 '나는 얻음도 없고 증함도 없어서 이와 같음을 얻었오. 만약 얻음이 있고
증함이 있으면 불법 가운데에 증상만인이 되는 것이오' 라고 하였느니라.
15.등각(等覺)과 묘각(妙覺)
"경에 이르기를 '등각,묘각'이라하니, 무엇이 등각이며 무엇이 묘각입니까?
"색(色)에 즉하고 공(空)에 즉함이 등각이요, 두 가지 성품이 공한(二性空) 까닭에
묘각이라 하며,또한 깨달음이 없음과 깨달음이 없음도 없음을 일컬어 묘각이라 하
느니라."
"등각과 묘각이 다릅니까, 다르지 않습니까?"
"일에 따라 방편으로 거짓 두 이름을 세운 것으로서, 본체는 하나요, 둘도 아니고
다르지도 않으니 내지 일체법이 모두 그러하니라."
16.설법(說法)
"[금강경]에 이르기를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다'하니 그 뜻이 무엇 입니
까?
"반야의 체는 필경 청정하여 한 물건도 얻을 수 없음이 설할 법이 없다고 함이요,
반야의 공적한 본체 가운데에 항사의 묘용을 갖추어서 알지 못할 일이 없음이 법을
설한다고 함이니, 그러므로 설할 법이 없음이 법을 설함이라고 하느니라."
17.금강경의 경천(輕賤)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경을 수지독송하여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게 되면
이 사람은 전세의 죄업으로 마땅히 악도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의 경멸
과 천대를 받음으로 해서 전세의 죄업이 곧 소멸하여 마침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 입니까?"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대선지식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오직 악업만 짓고 청정한
본래 마음이 삼독의 무명에 덮여서 능히 나타나지 못하므로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
대를 받는다고 말한 것이니라. 금세의 사람들에게 경멸과 천대를 받는 것은, 곧 오
늘 발심하여 불도를 구함으로 무명이 다 없어지고 삼독이 나지를 아니해서 곧 본래
마음이 명랑하고 다시 어지러운 생각이 없으며, 모든 악이 영원이 없어져 버리므로
써 금세 사람의 경멸과 천대를 받는다고 하느니라. 무명이 모두 없어져서 어지러운
생각이 나지 아니하면 자연히 해탈한 것이므로 마땅히 보리를 얻는다고 하는 것이
니, 곧 발심한 때를 금세라 하는 것이요, 격생이 아니니라."
18. 여래(如來)의 오안(五眼)
"또 여래의 다섯가지 눈이란 어떤 것입니까?"
"색의 청정함을 보는 것이 육안이요, 색의 본체가 청정함을 보는 것이 천안이요,
모든 색의 경계와 내지 선악에 대해서 모두 미세하게 분별하여 물듦이 없고 그 가
운데 자제함이 혜안이요, 보아도 보는 바가 없음이 법안이요, 보는 것이 없고 보는
것이 없음도 없는 것이 불안이라고 하느니라."
19. 대승(大乘)과 최상승(最上乘)
"또 대승과 최상승의 뜻은 어떠합니까?"
"대승이란 보살승이요, 최상승이란 불승이니라."
"어떻게 닦아야 이 승을 얻습니까?"
"보살승을 닦음이 대승이니 보살승을 증득하여 다시 관(觀)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닦을 곳이 없음에 이르러 담연히 항상 고요하여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함이
최상승이니 곧 이것이 불승이니라."
20. 정혜(定慧)를 함께 씀
"[열반경]에 이르기를 '선정은 많고 지혜가 적으면 무명을 떠나지 못하며 선정은
적고 지혜가 많으면 삿된 견해를 증장하며 선정과 지혜를 함께 하는 까닭에 해탈이
다'고 하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일체 선악에 대하여 모든 것을 분별함이 지혜요, 분별하는 곳에 애증을 일으키지
아니하며 물드는 바에 따라가지 아니함이 선정이니,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21. 경상(鏡像)과 정혜(定慧)
"말이 없고 설함이 없음이 곧 선정이라 하니, 바로 말하고 설할 때도 선정이라 할
수 있습니까?"
"지금 선정이라고 하는 것은 말함과 말하지 않음을 논하지 않고 항상 선정인 것이
니라. 왜냐하면 선정의 본성을 쓰기 때문에 말하거나 분별할 때에 곧 말하거나 분
별함도 선정이기 때문이니라. 만약 공(空)한 마음으로 색(色)을 볼 때에는 색을 볼
때도 또한 공이며, 만약 색을 보지 아니하고 말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을 때도 또한
공이며, 내지 보고 듣고 깨닫고 알 때에도 역시 이와 같느니라. 왜냐하면 자성이
공하기 때문에 곧 일체처에 있어서 모두 공한 것이니, 공이란 곧 집착이 없음이며
집착이 없음이 곧 선정과 지혜를 함께 쓰는 것이니라. 보살이 항상 이와 같이 공
그대로[等空]의 법을 써서 구경에 이르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가 함께 함을 곧 해탈
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다시 그대들을 위하여 비유로써 나타내 보여 그대들로 하여금 분명하게 알아
서 의심을 끊게 하리라.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모습을 비출 때에 그 밝음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비추지 아니할 때도 또한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밝은 거울의 작용에는 밝게 비친다는 정(情)이 없으므로 비출 때도 움직
이지 않고 비추지 아니할 때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라. 어째서 그러냐 하면 분별
의 정(情)이 없는 가운데에는 움직이는 것도 없고 움직이지 않는 것도 없기 때문이
니라. 또,
'햇빛이 세상을 비출 때 그 빛이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만약 비추지 않을 때도 움직이느냐?'
'움직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빛이 분별의 정(情)이 없기 때문이니 정이 없음으로써 빛이 비추므로 움
직이지 아니하며 비추지 않을 때도 또한 움직이지 아니 하느니라. 비춘다 함은 지
혜요, 움직이지 아니한다 함은 선정이니 보살이 선정과 지혜를 함께한 법을 써서
삼먁삼보리를 얻는 까닭에 선정과 지혜를 함께 씀이 곧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지금
정(情)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범부의 정이 없음이요, 성인의 정이 없는 것이 아니
니라"
"어떤 것이 범부의 정이며 어떤 것이 성인의 정입니까?"
"만약 두 가지 성품을 일으키면 곧 범부의 정이요, 두가지 성품이 공(空)하기 때문
에 곧 성인의 정이니라."
22. 언어도단심행처멸(言語道斷心行處滅)
“경에 이르기를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그 뜻이 어떠합니까?”
“말로써 뜻을 나타냄에 뜻을 얻으면 말이 끊어지니 뜻이 곧 공함이요, 공함이 곧 도인지라, 도는 곧 말이 끊어진 까닭에 언어의 길이 끊어졌다고 하느니라.
마음 가는 곳이 없어진다고 하는 것은 중도실제의 뜻을 얻어서 다시 관(觀)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말함이니, 관(觀)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곧 나는 것이 없음(無生)이니라. 나는 것이 없는 까닭에 곧 모든 색의 성품이 공한 것이니 색의 성품이 공한 까닭에 곧 만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짐이요, 만가지 인연이 함께 끊어짐이 곧 마음가는 곳이 없어진 것이니라.“
23. 여여(如如)
“여여란 어떤 것입니까?”
“여여(如如)란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이니 마음이 진여인 까닭에 여여라고 하느니라. 과거 모든 부처님들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셧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성도하시고 미래의 부처님도 이 여여행을 행해서 또한 성도하실 것이니, 삼세에 닦아 증한 바의 도가 다름이 없으므로 여여라 함을 알지니라.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들도 또한 같으며 미륵에 이르러도 또한 같으며 내지 일체 중생에 이르러도 모두 같다. 왜냐하면 불성이란 끊어지지 아니하고 있는 성품이기 때문이니라’고 하였느니라.”
24. 즉색즉공(卽色卽空)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하며 범에 즉하고 성에 즉함이 돈오입니까?”
“그러니라.”
“어떤 것이 색에 즉하고 공에 즉함이며 어떤 것이 범부에 즉하고 성인에 즉한 것입니까?”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색이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공이며, 마음에 물듦이 있음이 곧 범부요 마음에 물듦이 없음이 곧 성인이니라. 또한 진공묘유이므로 곧 색이요, 색을 얻을 수 없으므로 곧 공이니, 지금 공이라고 말한 것은 이 색의 성품이 스스로 공함이요 색이 없어져서 공한 것은 아니니라. 지금 색이라고 하는 것은 이 공의 성품이 스스로 색이요, 색이 능히 색인 것은 아니니라.”
25. 진(盡)과 무진(無盡)
“경에 이르기를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이란 무슨 뜻입니까?”
“두 가지 성품이 공한 까닭에 보고 들음이 나지 않음이 다함「盡」이니 다함이란 모든 망루(妄漏)가 다함이며, 다함이 없음은 남이 없는 본체 가운데 항하사의 묘용을 갖추고 있어서 일을 따라 응하여 나타나서 모두 다 구족하여, 본체 가운데에 손감이 없음을 다함이 없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다함과 다함 없음의 법문인 것이니라.”
“다함과 다함 없음이 하나입니까, 다릅니까?”
“본체는 하나이나 말하면 다름이 있느니라.”
“본체가 이미 하나일진댄 어째서 다름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라 함은 말의 본체「體」요, 말함은 본체의 작용이니 일을 따라서 응용하는 까닭에 본체는 같으나 말함은 다르다고 하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천상의 한 해「日」 아래 여러가지 그릇들을 놓아두고 물을 채우면 하나하나의 그릇 가운데 모두 해가 있어서, 모든 그릇 가운데의 해가 다 원만하여 하늘 위의 해와 아무런 차별이 없는 까닭에 본체는 같다고 말하는 것이요, 그릇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곧 차별이 있으므로 다른 것이니라. 그러므로 본체는 같으나 말하면 곧 다름이 있다고 하느니라.
그릇에 나타난 모든 해가 모두 원만하여 하늘의 본래 해와 또한 손감이 없는 까닭으로 다함이 없다고 하느니라.“
26. 불생불멸(不生不滅)
“경에 이르기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떤 법이 나지 아니하며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요, 착한 법은 없어지지 아니 하느니라.”
“어떤 것이 착함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음입니까?”
“착하지 않음이란 염루심(染漏心)이요, 착한 법이란 염루심이 없음이니 다만 염루가 없으면 곧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며, 염루가 없음을 얻었을 때에 곧 청정하고 둥글고 밝아 담연히 항상 고요해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착한 법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한 것이니라.”
27. 불계(佛戒)는 청정심(淸淨心)
“「보살계」에 이르기를 ‘중생이 부처님 계를 받으면 곧 모든 부처님의 지위에 들어가는지라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시니 그 뜻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계란 청정한 마음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청정행을 수행하여 받는 바가 없는 마음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의 계를 받았다고 하느니라.
과거의 모든 부처님도 다 청정하여 받음이 없는 행을 닦아서 불도를 이룬 것이니, 지금 어떤 사람이 발심하여 받음이 없는 청정행을 닦는 사람은 곧 부처님과 더불어 공덕을 균등하게 써서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부처님 지위에 들어간다고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깨달은 사람은 부처님과 더불어 깨달음이 같으므로 지위가 대각과 같아서 참으로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청정한 마음으로부터 지혜가 나는지라 지혜가 청정함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며 또한 이 부처님의 아들이라고 하느니라.”
28. 불(佛)과 법(法)의 선후(先後)
“부처님과 법에 있어서 부처님이 앞입니까, 법이 앞입니까? 만약 법이 앞이라고 하면 법은 어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이며, 만약 부처님이 앞이라고 하면 어떤 가르침을 이어 받아서 도를 이룬 것입니까?”
“부처님은 법보다 앞에 있기도 하고 법의 뒤에 있기도 하느니라.”
“어찌하여 부처와 법에 앞뒤가 있읍니까?”
“만약 적멸법에 의거하면 법이 앞이요 부처님이 뒤이며, 문자법에 의거하면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이니라. 왜냐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이 모두 적멸법에 의해서 성불을 했으므로 곧 법이 앞이요 부처님은 뒤이니, 경에서 이르기를 ‘모든 부처님의 스승됨은 이른바 법이다’고 하였느니라. 성도하고 나서 비로소 십이부경을 널리 설하여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시니 중생이 부처님 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수행하여 성불하므로 곧 부처님이 앞이요 법은 뒤인 것이니라.”
29. 설통(說通)과 종통(宗通)
“어떤 것이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서로 틀림이 곧 설법은 통하고 종취는 통하지 못한 것이니라.”
“어떤 것이 종취도 통하고 설법도 통한 것입니까?”
“말과 행동이 차이가 없음이 곧 설법도 통하고 종취도 통한 것이니라.”
30. 도(到)와 부도(不到)
“경에 이르기를 ‘이르되 이르지 아니하고 이르지 않되 이른 법’이란 무엇입니까?”
“말은 이르러도 행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렀으나 이르지 못함이요,
행은 이르러도 말은 이르지 못함이 이르지 않되 이르른 것이며,
행과 말이 함께 이르름이 이르고 이름이라 하느니라.”
31. 부진유위(不盡有爲)며 부주무위(不住無爲)
“불법은 유위(有爲)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하니 어떤 것이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하고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유위에도 다하지 아니한다 함은 처음 발심으로부터 드디어 보리수 아래에서 등정각을 이루시고 마침내 쌍림에 이르러 열반에 드실 때까지 그 가운데 일체법을 모두 다 버리지 않음이 곧 유위(有爲)에도 다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무위(無爲)에도 머물지 아니한다 함은 비록 무념을 닦는다 할지라도 무념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으며, 비록 보리.열반.무상.무작을 닦으나 무상.무작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음이 곧 무위에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32. 지옥유무(地獄有無)
“지옥이 있습니까, 지옥이 없습니까?”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하느니라.”
“어째서 있기도 하고 또한 없기도 합니까?”
“마음을 따라 짓는 바 일체 악업이 곧 지옥이 있음이요,
만약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면 자성이 공한 까닭에 곧 지옥이 없느니라.”
33. 중생(衆生)과 불성(佛性)
“죄를 지은 중생도 불성이 있읍니까?”
“또한 불성이 있느니라.”
“이미 불성이 있을진댄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도 함께 들어갑니까?”
“함께 들어가지 않느니라.”
“바로 지옥에 들어갈 때에 불성은 다시 어느 곳에 있읍니까?”
“또한 함께 들어가느니라.”
“이미 함께 들어갈진댄 지옥에 들어갈 때 중생이 죄를 받음에 불성도 또한 함께 죄를 받습니까?”
“불성이 비록 중생을 따라 함께 지옥에 들어가지만 중생이 스스로 죄의 고통을 받는 것이요 불성은 원래 고통을 받지 않느니라.”
“이미 함께 지옥에 들어갔을진댄 무엇 때문에 지옥고를 받지 아니합니까?”
“중생이란 모양「相」이 있음이니 모양이 있는 것은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음이요, 불성이란 모양이 없음이니 모양이 없는 것은 곧 공한 성품이니라. 그러므로 진공의 성품은 무너짐이 없는 것이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허공에 땔 나무를 쌓으면 땔 나무는 스스로 무너지나 허공은 무너지지 않음과 같으니 허공은 불성에 비유하고 땔 나무는 중생에 비유한 것이니, 그러므로 함께 들어가나 함께 받지 않는다고 하느니라.”
34. 삼신사지(三身四智)
“팔식을 굴려서 네 가지 지혜를 이루며 네 가지 지혜를 묶어서 삼신(三身)을 이룬다 하니,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함께 이루며, 몇 개의 식이 한 지혜를 홀로 이루는 것입니까?”
“눈.귀.코.혀.몸의 이 다섯 식이 함께 성소작지를 이루고, 제육식은 의식이니 홀로 묘관찰지를 이루고, 제칠심식은 홀로 평등성지를 이루며, 제팔함장식은 홀로 대원경지를 이루느니라.”
“이 네 가지 지혜는 각각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입니까?”
“본체는 같으나 이름이 다르니라.”
“본체가 이미 같을진댄 어째서 이름이 다르며, 이미 일을 따라 이름을 세울진댄 바로 하나의 본체일 때 어떤 것이 대원경지입니까?”
“담연히 공적하여 둥글고 밝아 움직이지 아니함이 곧 대원경지요, 능히 모든 육진에 대하여 사랑함과 미움을 일으키지 않음이 곧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니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 곧 평등성지요, 능히 모든 육근의 경계에 들어가 잘 분별하되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자재를 얻음이 곧 묘관찰지요, 능히 모든 육근으로 하여금 일을 따라서 응용하여 모두 정수(正受)에 들어가서 두 가지 모양이 없음이 곧 성소작지니라.”
“네 가지 지혜「四智」를 묶어서 세 가지 몸「三身」을 이룬다 함은 몇 개의 지혜가 함께 한 몸을 이루며 몇 개의 지혜가 홀로 한 몸을 이룹니까?”
“대원경지는 홀로 법신을 이루고, 평등성지는 홀로 보신을 이루며 묘관찰지와 성소작지는 함께 화신을 이루니, 이 세 가지 몸도 또한 거짓으로 이름을 세워 분별하여 다만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한 것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확실히 알면 또한 삼신의 응용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본체의 성품은 모양이 없어서 머물음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서니 또한 머물음이 없는 근본도 없느니라.”
35. 불진신(佛眞身)
“어떤 것이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입니까?”
“있음과 없음을 보지 아니하는 것이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이니라.”
“어째서 있음「有」과 없음「無」을 보지 않음이 부처님의 참된 몸「眞身」을 보는 것입니까?”
“있음「有」은 없음「無」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느니라. 본래 있음을 세우지 아니하면 없음도 또한 존재하지 아니하니 이미 없음이 존재하지 않는데 있음을 어디서 얻을 수 있으리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인해서 비로소 있으니 이미 서로 인해서 있으니 모두가 생멸이니라. 다만 이 두 견해를 떠나면 곧 부처님의 참된 몸을 보는 것이니라.”
“다만 있음「有」과 없음「無」도 오히려 서로 건립하지 못하거늘 부처님의 진신「眞身」이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설 수 있읍니까?”
“물음이 있기 때문이니, 만약 묻지 않을 때엔 진신의 이름도 서지 못하느니라. 왜냐하면 비유컨대 밝은 거울이 만약 물건의 모양을 대할 때는 모양이 나타나나 만약 모양을 대하지 않을 때는 마침내 모양을 볼 수 없음과 같으니라.”
36.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常不離佛)
“어떤 것이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마음에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고 경계를 대하여는 고요하여 어느 때나 필경 공적하면 이것이 곧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아니함이니라.”
37. 무위법(無爲法)
“어떤 것이 무위법(無爲法)입니까?”
“유위법(有爲法)이니라.”
“지금 무위법을 물었거늘 어째서 유위라고 대답하십니까?”
“있음「有」은 없음「無」으로 인해서 서고 없음은 있음으로 인해서 나타나느니라. 본래 있음을 세우지 아니하면 없음은 어디서 날 것인가? 만약 참된 무위(無爲)를 논할진댄 곧 유위(有爲)도 취하지 아니하고 또한 무위도 취하지 아니함이 참된 무위법이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법의 모양을 취하면 곧 아상과 인상에 집착하고 만약 법의 모양 아닌 것을 취하여도 곧 아상과 인상에 집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법도 취하지 말고 법 아님도 취하지 말라’고 하시니 이것이 곧 참된 법을 취함이니라. 만약 이 이치를 밝게 알면 곧 참된 해탈이며 둘 아닌 법문을 아는 것이니라.”
38. 중도(中道)
“어떤 것이 중도의 뜻입니까.”
“가「邊」의 뜻이니라.”
“지금 중도를 물었거늘 무엇 때문에 가「邊」의 뜻이라고 대답하십니까?”
“가「邊」는 가운데「中」로 말미암아 서고 가운데「中」는 가「邊」로 말미암아 나느니라. 만약 본래 가「邊」가 없으면 가운데는 무엇을 따라 있으리오. 지금 가운데라고 하는 것은 가로 말미암아 비로소 있는 것이므로 가운데와 가가 서로 인하여 서 있어서 모두가 항상함이 없음「無常」을 알지니 색.수.상.행.식도 이와 같으니라.”
39. 오음(五陰)
“어떤 것을 오음(五陰)이라 합니까?”
“색을 대하여 색에 물들어 색을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색음(色陰)이라 하며, 팔풍(八風)을 받아들인 까닭으로 삿된 믿음을 즐겨 모아서 받아들임에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수음(受陰)이라 하며, 미혹한 마음이 생각을 취하여 생각을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상음(相陰)이라 하며, 모든 행을 결집하여 행을 따라 남「生」을 받는 것을 행음(行陰)이라 하며, 평등한 본체에 망령되이 분별을 일으키고 얽매어 붙어서 허망한 의식이 남「生」을 받는 것을 식음(識陰)이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오음이라고 일컫느니라.”
40. 이십오유(二十五有)
“경에 이르기를 ‘이십오유(二十五有)’라고 하니 어떤 것입니까?”
“뒤의 몸을 받는 것이 이십오유이니, 뒤의 몸「後有身」이란 곧 육도에 생을 받는 것이니라. 중생이 현세에 마음이 미혹하여 기꺼이 모든 업을 맺어 뒤에 업을 따라 생(生)을 받는 까닭에 뒤가 있다「後有」고 하느니라. 세상에 만약 어떤 사람이 구경해탈을 닦을 뜻을 품고 무생법인을 증득한 사람은 곧 삼계를 영원히 떠나서 후유(後有)를 받지 않나니, 후유(後有)를 받지 않는 사람은 곧 법신(法身)을 증득함이요 법신이란 곧 불신(佛身)이니라.”
“이십오유의 이름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본체는 하나이지만 씀에 따라 이름을 세워서 이십오유를 나타내기 때문이니, 이십오유는 십악과 십선과 오음이니라.”
“어떤 것이 십악.십선입니까?”
“십악은 죽이는 것, 훔치는 것, 음행하는 것, 거짓말, 아첨하는 말, 이간하는 말, 나쁜말 내지 탐냄, 성냄, 삿된 견해이니 이것이 십악이요, 십선이란 다만 십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니라.”
41. 무념(無念)과 돈오(頓悟)
1. 무념(無念)
“위에서 무념을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다 이해할 수 없읍니다.”
“무념이란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일체 경계가 없어서 나머지 생각으로 구함이 없음이며, 모든 경계와 사물에 대하여 영영 마음이 동요하지 않는 것이 곧 무념이니라. 무념이란 참된 생각「眞念」을 이름함이니 만약 생각으로 생각을 삼는다면 곧 삿된 생각「邪念」이요 바른 생각「正念」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경에 이르기를 ‘만약 사람에게 육념(六念)을 가르치면 생각이 아님「非念」이다’고 하나니, 육념이 있으면 삿된 생각「邪念」이요 육념이 없으면 곧 참된 생각「眞念」이라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선남자야, 우리가 무념법(無念法) 가운데 머물러서 이와 같은 금색의 삼십이상을 얻어 큰 광명을 놓아서 세계를 남김없이 비추나니, 이 불가사의한 공덕은 부처님이 설명하여도 오히려 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나머지 승(乘)들이 능히 알 수 있으리오’ 하였느니라. 무념을 얻은 사람은 육근(六根)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자연히 모든 부처님 지견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법을 얻은 사람은 부처님 곳집이며 또 법의 곳집이라 하나니, 곧 능히 일체가 부처이며 일체가 법이니라. 왜냐하면 무념인 까닭이니, 경에 이르기를 ‘일체 모든 부처님들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오신다’고 하였느니라.“
“이미 무념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지견에 들어간다고 하니 다시 무엇을 좇아서 세웁니까?”
“무념을 좇아서 세우니 무슨 까닭인가? 경에 이르기를 ‘머뭄이 없는 근본을 좇아서 일체법을 세운다’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비유컨대 밝은 거울과 같다’고 하였으니 거울 가운데 비록 모양이 없으나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남이니, 왜냐하면 거울이 밝은 까닭에 능히 만 가지 모양이 나타나느니라. 배우는 사람의 마음이 물들지 아니하는 까닭에 망념이 나지 아니하고 아인심(我人心)이 없어져서 필경 청정하니 청정한 까닭으로 능히 한량없는 지견이 나느니라. 돈오란 금생을 떠나지 않고 곧 해탈을 얻나니 무엇으로써 그것을 아는가? 비유컨대 사자새끼가 처음 태어날 때도 사자인 것과 같으니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돈오를 닦을 때에 곧 부처님 지위에 들어가느니라. 마치 대나무가 봄에 순이 나서 그 봄을 여의지 않고 곧 어미 대나무와 같게 되어 함께 다름이 없는 것과 같음이니, 왜냐하면 마음이 공하기 때문이니라.”
2. 돈오(頓悟)
“돈오를 닦는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순식간에 망념을 없애버리고 영원히 아인심(我人心)을 끊어서 필경 공적하여 곧 부처님과 같게 되어 다름이 없는 까닭에 범부가 성인이라고 하느니라. 돈오를 닦는 사람은 이 몸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삼계를 뛰어나나니, 경에 이르기를 ‘세간을 무너뜨리지 아니하고 세간을 뛰어나며 번뇌를 버리지 아니하고 열반에 들어간다’고 하였느니라.
돈오를 닦지 않는 사람은 마치 여우가 사자를 따라 좇아 다녀서 백천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사자가 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3. 진여(眞如)와 무심(無心)
“진여의 성품은 실로 공한 것입니까, 실로 공하지 않는 것입니까? 만약 공하지 않다고 말하면 곧 모양이 있는 것이요 만약 공하다고 말하면 곧 단멸이니, 일체 중생이 마땅히 무엇을 의지해서 닦아야 해탈을 얻을 수 있읍니까?”
“진여의 성품은 공하면서 또한 공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진여의 묘한 본체는 형상이 없어서 얻을 수 없으므로 또한 공하다고 하느니라. 그러나 공하여 모양이 없는 본체 가운데에 항사묘용이 구족하여 곧 사물에 응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또한 공하지 않다고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하나를 알면 천가지가 따라오고 하나를 미혹하면 만가지를 미혹한다’하니, 만약 사람이 하나를 지키면 만가지 일을 마치는 것이니 이것이 오도(悟道)의 묘함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삼라만상이 한 법의 도장 찍힌 바라’ 하니 어떻게 해서 한 법 가운데에서 갖가지 견해가 나오는 것인가?
이러한 공업(功業)은 행함으로 말미암아 근본이 되니 만약 마음을 항복받지 아니하고 문자를 의지해서 증득하려 하면 옳지 못함이라.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여서 피차가 함께 떨어질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하여 자세히 살필지니라.
다만 일이 닥쳐옴에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일체처에 무심함이니, 이렇게 얻은 사람은 곧 열반에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 하느니라. 이것을 불이법문이라 하며 또 다툼이 없다고 하며 일행삼매라고 하나니, 왜냐하면 필경 청정하여 아상과 인상이 없는 까닭이니라. 애증을 일으키지 않음이 두 가지 성품이 공함이며 보는 바가 없음이니, 곧 이것이 진여의 얻음이 없는 변론이니라.”
42. 중생자도(衆生自度)
“이 논은 믿음이 없는 이에게는 전하지 말며 오직 견해가 같고 행함이 같은 이에게 전할 것이요, 마땅히 앞 사람이 참으로 신심이 있어 감당하여 물러가지 않는 사람인가를 관찰할 것이니, 이러한 사람을 위해 설명하고 보이어서 깨닫도록 해야 하느니라. 내가 이 논을 지은 것은 인연 있는 사람을 위함이요 명리를 구하고자 함이 아니니라. 다만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신 바 천가지 경 만가지 논은 중생이 미혹하기 때문에 마음과 행동이 한결같지 아니하여 삿됨을 따라 대응하여 설명한 것이므로 곧 여러 차별이 있으나, 구경해탈의 이치를 논하는 경우 일진댄 다만 일이 다가와도 받지 아니하고 일체처에 무심하여 영영 고요함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필경에 청정하여 자연해탈이니라. 너희들은 헛된 이름을 구하여 입으로는 진여를 말하되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는 안되느니라. 곧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서 스스로 속임이라 하나니, 마땅히 악도에 떨어지느니라. 한 세상의 헛된 이름과 쾌락을 구하지 말라. 모르는 사이에 억겁의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니 힘쓰고 힘쓸지니라.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하나니, 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때엔 과거 모든 부처님이 티끌 수와 같아서 일체 중생을 모두 제도하여 마쳤을 것이어늘, 무엇 때문에 우리들은 지금까지 생사에 유랑하며 성불하지 못하였는가? 중생이 스스로 제도함이요 부처님이 능히 제도하지 못함을 마땅히 알라. 노력하고 노력하여 스스로 닦아서 다른 부처님의 힘을 의지하지 말지니, 경에 이르기를 ‘무릇 법을 구하는 자는 부처에 집착하여 구하지 말라’고 하였느니라.”
43. 동처부동주(同處不同住)
“내세에 있어서는 잡된 배움의 무리가 많을 것인데 어떻게 함께 살겠읍니까?”
“다만 그 빛을 온화하게 할 뿐이요, 그 업은 같이하지 말지니 장소는 같이하나 같이 살지는 아니 하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흐름을 따르나 성품은 항상하다’고 하였느니라. 다만 도를 배우는 사람은 스스로 일대사인연인 해탈의 일을 위할지니, 아울러 처음 배우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부처님 같이 공경하고 배우며, 자기의 덕을 높이고 남의 능력을 질투하지 말며, 자기의 행동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지 아니하면, 일체처에 있어서 방해되고 장애됨이 전혀 없어 자연히 쾌락한 것이니라.
거듭 게송을 설하여 말하리라.
인욕이 첫째 가는 도라 忍辱이 第一道라
먼저 아인심을 없앨지니 先須除我人이니
일이 옴에 받는 바 없으면 事來에 無所受하야
참다운 보리의 몸이니라. 卽眞菩提身이로다.
44. 일체처(一切處)에 무심(無心)
“「금강경」에 이르기를 ‘보살이 아법(我法)이 없는 사람은 여래가 참다운 보살이라’고 말씀하시며, 또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어서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모든 부처님의 아들이다’고 하였느니라. 「열반경」에 이르기를 ‘여래가 열반을 증득하여 영원히 생사를 끊었다’고 하였느니라.
게송으로 말하노라.
나는 지금 뜻이 매우 좋아서
남이 욕할 때도 괴로움이 없고
말없이 시비를 말하지 않나니
열반과 생사가 같은 길이로다.
내 집의 근본 종지를 사무쳐 알아
본래로 푸르고 검은 분별이 없나니
일체 망상의 분별은
세상 사람이 밝게 알지 못함임을 알지니라.
말세의 범부에게 이르노니
마음 가운데 우거진 풀을 없애 버려라.
내 지금 뜻이 크게 넓어서
말하지 않고 일 없어 마음이 편안하나니
종용하여 자재해탈이라
동서 어디를 가나 쉬워 어렵지 않도다.
종일토록 말 없이 적막하여
생각 생각에 이치를 향해 생각하노니
자연히 소요하여 도를 보아
생사와 결정코 상관치 않는도다.
내 지금 뜻이 몹시 기특하여
세상의 침해와 속임에 향하지 않음이라
영화는 모두 헛된 속임수이니
헤진 옷 거친 음식으로 굶주림을 채우는도다.
길에서 세상 사람을 만나 말하기를 게을리하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보라 하네.
겉으로는 질린 듯 암둔해 보이나
마음 가운데는 밝기가 유리같아서
라후라의 밀행에 묵묵히 계합하나니
너희 범부들이 알 바 아니로다.
내 너희들이 참 해탈의 이치를 알지 못할까 두려워서 거듭 너희들에게 말해 보이노라.
45. 필경정(畢竟淨)
“「유마경」에 이르기를 ‘정토를 얻고져 할진댄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하시니 무엇이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까?”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淨)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청정으로 깨끗함을 삼는 것입니까?”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음이 곧 필경 깨끗함이니라.”
“어떤 것이 깨끗함도 없고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까?”
“일체처에 무심함이 깨끗함이니 깨끗함을 얻었을 때에 깨끗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이며, 깨끗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깨끗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깨끗함이 없음도 없는 것이니라.”
46. 필경증(畢竟證)
“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으로 증함을 삼습니까?”
“필경 증함으로 증함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 증함입니까?”
“증함이 없음과 증함이 없음도 없음이 필경 증함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증함이 없음이며 어떤 것이 증함이 없음도 없는 것입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 등에 물들지 아니하고 안으로 망념의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하여 이렇게 얻은 것을 곧 증함이라고 함이니, 증함을 얻었을 때에 증득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음이 곧 증함이 없음이며 증함이 없음을 얻었을 때에 또한 증함이 없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함이 곧 증함이 없음도 없다고 하는 것이니라.”
47. 진해탈(眞解脫)
“어떤 것이 해탈한 마음입니까?”
“해탈한 마음도 없고 또한 해탈한 마음이 없음도 없음이 곧 참 해탈이니라. 경에 이르기를 ‘오히려 법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 아닌 것이리오’ 하였으니 법이란 있음「有」이요 법 아님이란 없음「無」이니, 다만 있음과 없음「有無」을 취하지 아니하면 곧 참 해탈이니라.”
48. 필경득(畢竟得)
“어떻게 도를 얻습니까?”
“필경에 얻음으로써 얻음을 삼느니라.”
“어떤 것이 필경의 얻음입니까?”
“얻음도 없고 얻음이 없음도 없음을 필경의 얻음이라 하느니라.”
49. 필경공(畢竟空)
“어떤 것이 필경의 공함입니까?”
“공함도 없고 공함이 없음도 없음을 곧 필경 공함이라고 하느니라.”
50. 진여정(眞如定)
“어떤 것이 진여의 선정입니까?”
“선정도 없고 선정이 없음도 없음이 곧 진여의 선정이니, 경에 이르기를 ‘정한 법(定法)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할 것이 없으며 또한 여래가 설명할 정한 법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또 경에 이르기를 ‘비록 공을 닦으나 공으로써 증함을 삼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공한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며, 비록 선정을 닦으나 선정으로써 증함을 삼지 아니하여 선정이라는 생각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며, 비록 깨끗함을 얻었으나 깨끗함으로써 증함을 삼지 아니하여 깨끗하다는 생각도 짓지 않음이 곧 이것이니라. 만약 선정을 얻고 깨끗함을 얻어서 일체처에 무심함을 얻었을 때에 이와 같음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망상이니 곧 얽매이게 되어 해탈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만약 이와 같이 얻었을 때에 밝고 밝게 스스로 알아 자재를 얻되 이것을 가져 증함을 삼지 않으며 또한 이와 같다는 생각도 하지 아니할 때에 해탈을 얻느니라. 경에 이르기를 ‘정진심을 일으키면 이는 망념으로서 정진이 아니니라. 만약 능히 마음이 망령되지 않으면 정진이 끝이 없다’고 하였느니라.”
51. 중도(中道)는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
“어떤 것이 중도입니까?”
“중간도 없고 또한 이변(二邊)도 없음이 곧 중도니라.”
“어떤 것이 이변입니까?”
“저 마음이 있고 이 마음이 있음이 이변이니라.”
“어떤 것을 저 마음, 이 마음이라고 합니까?”
“밖으로 색과 소리에 얽매임을 저 마음이라 하며 안으로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이 마음이라 하느니라. 만약 밖으로 색에 물들지 아니하면 곧 저 마음이 없음이요, 안으로 망념이 나지 아니하면 곧 이 마음이 없음이니 이것은 두변이 없는 것이니라. 마음이 이미 두변이 없으니 중간이 또한 어찌 있을 것인가? 이와 같음을 얻는 것을 곧 중도라 하는 것이니 참된 여래의 도이니라. 여래의 도란 곧 일체 깨친 사람의 해탈이니, 경에 이르기를 ‘허공에 가운데와 가장자리가 없으니 모든 여래의 몸도 또한 그와 같다’고 하였느니라. 그리하여 일체 색이 공한 것은 곧 일체처에 무심함이요 일체처에 무심함은 곧 일체색의 성품이 공함이니, 두가지 뜻이 다르지 아니하여 이것을 또한 색이 공함이라 하며 또 색이 법이 없음이라 하느니라. 너희가 만약 일체처에 무심함을 떠나서 보리.해탈과 열반.적멸과 선정.견성을 얻는다는 것은 옳지 않느니라. 일체처에 무심이란 곧 보리.해탈과 열반.정멸과 선정 내지 육바라밀을 닦음이니 모두 성품을 보는 곳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금강경」에 이르기를 ‘조그마한 법도 얻을 수 없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한다’고 하였느니라.”
52.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이 해탈(解脫)
“만약 일체 모든 행을 닦아서 구족하여 성취하면 수기를 얻을 수 있읍니까?”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일체의 법을 닦지 아니하고서 성취하면 수기를 얻을 수 있읍니까?”
“얻을 수 없느니라.”
“만약 이럴 때는 마땅히 무슨 법으로써 수기를 얻을 수 있읍니까?”
“행 있음을 쓰지도 않고 행 없음도 쓰지 않으면 곧 수기를 얻느니라. 왜냐하면 「유마경」에 이르기를 ‘모든 행의 성품과 모양이 모두 다 무상하다’고 하였으며 「열반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가섭에게 말씀하시되 <모든 행이 항상한지라 옳은 곳이 없다>’고 하셨느니라. 너희는 다만 일체처에 무심하면 곧 모든 행이 없으며 또한 행이 없음도 없어서 곧 이것을 수기라 하느니라. 이른바 일체처에 무심이란 증애심이 없음이니 증애라고 말함은, 좋은 일을 보고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곧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이라 하고, 나쁜 일을 보고도 미워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아니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느니라. 사랑함이 없음이란 곧 물든 마음이 없음을 이름하나니 곧 색의 성품이 공함이요, 색의 성품이 공함이란 곧 만가지 인연이 다 끊어짐이요 만가지 인연이 다 끊어짐은 자연 해탈이니라. 너희들이 이것을 자세히 보아서 만약 뚜렷이 밝게 알지 못할 때엔 모름지기 빨리 물을 것이요 헛되이 보내지 말지어다. 너희들이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해 닦아서 해탈하지 못한다면 내가 곧 종신토록 너희들을 위해 대지옥고를 받을 것이며, 내가 만약 너희들을 속인 사람이면 내가 마땅히 나는 곳마다 사자나 호랑이나 이리의 밥이 될 것이다. 너희가 만약 이 가르침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부지런히 닦지 아니하면 내 알 바 아니니라.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에 다시 돌이킬 수 없나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합당히 알아야 할지니라.”
- 돈오입도요문론 - 대주 혜해 스님 -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서옹 큰스님의 법어집
선과 현대문명
近代人間은 비판적이고 客觀妥當的인 것이 아니면 容認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禪이 객관타당적임을 밝혀서, 선이야말로 현대 또는 영원히 존재 가치가 있는 참다운 종교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근대적 인간은 인간의 이성을 자각한 것이라고 하겠다. 이 이성적 입장은 반이성적인 것을 온전히 제거해서 이성적인 것만 있 게 하는 것은 이성의 構造上에 불가능한 것이다. 이성적인 것과 반이성적인 것과의 대립은 이성의 근본구조인 것이다. 이성과 반 이성이 대립해서 二律背反되는 것을 상대적 이율배반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이성은 반이성을 항상 隨伴하여 반이성적인 것을 窮盡無餘하게 제거해 버린 순수한 이성은 없으므로 이성을 참으로 이성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이와같이 상대적 이율배반을 더욱 근원적으로 비판하면 상대적 이율배반이 절대적으로 전체적 이율배반이 되고 만다. 이것을 절대이율배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절대이율배반은 관념적으로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절대이율배반이 자기화 되 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근대 이성적 입장에 있는 近世的 인간의 한계인 것이다.
이 절대이율배반에 인간의 絶對否定의 근거가 있 는 것이다.
인생문제를 다룰 때에 인간의 생사문제를 중요시 해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生은 死를 분리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는 생을 분리해서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수반의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생사적 생명은 生하여 死를 극 복해 가는 것은 상대적으로는 할 수 있으나 사가 없는 순수한 생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根底에 생사라는 이율 배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생사의 상대적 이율배반을 근원적으로 비판하면 그 생이 사를 수반하는 생이므로 순수한 생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생사적 생명은 절대적으로 사의 생명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생명은 생사라는 절대이율배반을 근 저로 해서 성립한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 생사를 擴充하면 물질의 生滅과 통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존재·비존재에 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생사의 절대이율배반 때문에 인간은 고뇌하는 것이니 이것을 여의고 解脫하려고 하는 것은 거기에 이 성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구체적으로 인간에 있어서는 생사의 절대이율배반과 이성 · 반이성의 절대이율배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一體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성의 절대이율배반과 생사의 절대이율배반은 구체적으로는 일체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보통 인간의 본래적 참모습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객관적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 다.
보통의 인간은 의식이 現行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에서 주체적 절대이율배반이 되어 도달한 境地는 純粹意識(분별이 없는 의 식)이니 禪定進中 의 한 단계이다. 이 순수의식의 경지에서 주체적으로 절대이율배반이 되어 나아가면 무의식의 경지가 된다. 여 기에서 잠이 깨어 있을 때의 무의식과 無夢無想 한 熟眠時 의 무의식이 주체적으로 절대이율배반이 되어서 無餘 하게 包括的이고 전체적이고 근원적으로 파고 들어가서 궁극적 근원적인 경지에 도달하면 宗門에서 말하는 寤寐一如가 되는 것이다. 이 궁극적 근원적인 주체적 절대이율배반이 해체되어 淸淨해서 一物도 없되 山은 산이요 물(水)는 물인 경지로 전환한다.
그러나 여기 坐在 하면 荊棘林을 透過한 것이 못 된다. 여기를 頓然透過하여야 見性하여 正眼宗師의 正法眼藏을 깨달은 것이 되는 것이다. 이 형극 림을 투과해서 견성한 것은 인간의 근원적 주체성이 되는 본래 면목이 자각한 것이다.
이 본래 면목이 자각한다고 하면 시간적으로 한정되는 것 같이 된다. 엄밀히 말하면 자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본래 면목 자 체가 엄연히 본래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 본래면목은 인간의 본래의 진실상이다. 이것은 장소에 불구하고 시간에 불구하고 어느 시간이나 어느 장소나 누구에게든지 타당하다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禪門에서는 이 본래 면목을 本分이라고 한다.
覺하는 機緣은 실로 여러 가지로 잡다해서 무한하다고 말하겠다. 그 무한한 기연은 결국은 절대이율배반에 불과한 것이다. 주 체적 절대이율배반까지 가서 그것을 透過하여 본래로 불생불멸하여 시간 공간을 초월하고 본래로 淸淨無染하여 자유자재하며 형 상이 없으면서 일체형상을 창조하는 진실한 자기로 돈연히 전환하므로 전체적 근본적으로 해결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無明煩 惱가 一斷一切斷이 되는 것이고 一處透 一體處透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頓悟頓修는 이를 말하는 것이다. 불교의 궁극적 방 법은 眼耳鼻舌身意의 六識과 七識도 아니며 무의식의 제팔아뢰야식도 아니고 종교적 信도 아니고 禪에서 말하는 覺인 것이다.
각한 진실한 자기는 각하기 이전의 보통의 자기의 근원이 되는 것이고, 각하기 이전의 자기 작용은 바로 각한 진실한 자기의 작용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각한 자기의 현실에 궁극적으로 부활하는 데에 진정한 종교가 성립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이성적 자기 가 주체적이였던 현실은 각한 자기를 주체로 하는 현실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각한 현실은 迷한 현실과 시간공간적으로 딴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공간의 근원에서 시간공간이 거기에서 성립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각한 자기, 즉 근 원적 주체는 이성과 감성의 근원이 되는 것이며, 이성과 감성은 각한 자기의 작용이 되는 것이다. 이 근원적 주체는 이성을 초월 해서 자유로 이성으로 살고 생사를 초월해서 자유로 생사하는 영원의 현실이다. 이것은 절대 긍정적으로 역사를 無碍自在하게 창 조하는 입장이다.
소위 천국이나 극락세계는 현실의 역사와는 전혀 개별의 세계이므로 결국 逃避厭世하는 것이 되어서 현실이 구 제된다고 할 수는 없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현대과학문명을 비판하고 이 과학문명과 禪과의 관계를 透察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을 다시 투찰하면 미래 세계역사를 어떻게 창조하여야 되겠는가 하는 의심이 쉽게 풀리게 마련이다.
선에서는 존재원리를 일체를 융합하는 普遍의 一과 多 혹은 特殊와가 不二一體라 하겠다.
그런데 과학문명은 多화 혹은 특수화가 그 특징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과학문명은 「普遍」의 일을 상실하게 되어서 분열병 에 걸리고 있다.
「多」를 상실한 도그마적 신앙으로 된 「一」을 믿었던 중세기는 一多不二一體의 존재원리를 파괴하는 것이 되어서 몰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근대문명은 「一」을 상실한 「多」만으로 치닫고 있으니 이대로만 간다면 결국 분열병으로 멸망을 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시간공간을 초월한 無相永遠의 자기가 자각한 禪은 일다불이일체가 된다. 이 원리에서 과학문명을 다시 창조함으로써 세계역 사는 분열하지 않고 화합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그 주체적 문제를 證明하겠다. 현대의 기계문명이 발달할수록 우리 생활은 편리하고 풍부해지는 반면에 사회생 활은 복잡해 지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집단과 집단의 관계, 국가와 국가의 관게가 복잡하게 되었다. 이 렇게 집단적 복잡화와 과학문명의 복잡화가 서로 엉켜서 우리 생활은 아주 복잡해 가고 있다.
이와같이 복잡해 갈수록 우리는 그 복잡한 데에 자기 자신이 끄달려서 자기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현대의 특징은 분열병 또는 노이로제, 심지어 정신병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이 인간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현대의 큰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인간의 근원적 주체성 「본래면목」은 어떠한 복잡한 데에도 끄달리지 않고 자유자재하게 새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 다.
인간은 근원적 주체성이 본래로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본래로 일체인 것이다. 자비가 이러한 근원적 주체성에 본래로 갖추어 져 있어서 상호대등한 관계에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 근원적 주체성이 본래로 형상이 없이 자유자재한 만큼 그 자비행도 어디에 나 걸림이 없이 행하게 된는 것이다. 기독교에는 神만이 絶對愛를 인류에게 내린다고 한다. 인간은 이 절대애에 밑받침된 隣人愛 를 행할 뿐이며 인간은 절대애를 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의 자비는 인간이 본래로 佛이고 인간이 절대애를 對等格으로 서로 행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람들은 역사는 대립에서 대립으로 흘러간다고 말한다. 현재는 언제든지 대립상태에 있다는 것이 변증법적 사고방식이 다. 이 대립을 투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변증법적 역사관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는 결국 평화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 근원적 주체성에서 보면 모두 평등하고 일체가 됨으로 항상 자비행을 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비화합의 현 재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역사는 자비화합의 바탕에서 대립을 해결해 나가게 된는 것이다. 이와같이 자비화합의 바 탕에서 대립을 해결해 나가는 역사라야 세계평화를 진정으로 이룩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근원적 주체성으로 보아서 어느 민족이든지 어느 인종이든지 절대평등하고 自然불이일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러한 인류 차원에서 오늘의 세계 현상을 비판해 보기로 하겠다.
과학은 물질을 연구의 대상으로 한다. 자연과학은 일체의 존재하는 것을 물리적 現象르로 생각하므로 자연과학이 모든 과학의 모범이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 또는 정신과학이 과학적으로 존재를 인정받을 때에는 그것은 물질에 관한 학문인 자연과학 물리 학을 그 모범으로 한다. 과학은 물질적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과학에는 생명관이 없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면 아 니된다.
대자연을 지배하는 또는 생명관이 없는 이 과학문명은 지구상의 많은 생물을 죽이고 심지어 인명까지도 輕視하며 대자연을 파 괴 오염시켜서 그 공해로 생물은 살 수 없게 되고 그 자연 바탕위에서 살 수 있는 인간까지도 그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인 까닭이다. 그리고 인간이 욕망만으로 산다면 스스로 타락하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해쳐서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 주체성의 입장에서는 모든 생물, 모든 대자연이 영원의 한 생명체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원리에서 모 든 생물을 존중하고 대자연을 아끼는 지혜와 자비로 과학문명을 다시 창조함으로써 지구는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청정불국토로 건설될 것이다.
과학문명이 우리 인류에게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또는 편리하게 생활하도록 공헌한 바가 막대하다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오늘날은 과학문명만으로는 도저히 행복하게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류가 파멸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 다고 해서 과학문명을 부정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의 진실한 인간상〔본래면목〕 이 과학문명을 밑받침해서 다시 역사를 창조할 때에 인류는 진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한 인간상 을 깨달아야 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모두가 실지로 깨달음을 기다려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의 진실 한 인간상이 이러한 것인 만큼 진실한 인간상에 순응해서 행동함으로써 진실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 이다.
본래면목은 의식은 물론이요 무의식까지도 투과하고 거기에도 머무르지 않고 獨脫無依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같이 문자언어로 횡설수설하고 체계논리를 繁論亂道하는 것은 본분과는 천리만리 어긋나 버린다고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래서 대종사 중에서 도 가장 대표적 대종사라고 할 수 있는 마조 대종사가 본분에서 提 直指한 법문을 들어서 불조의 落處를 밝혀 보겠다.
馬大師與百丈行次에 見野鴨子飛過하고 大師云, 是什魔오 丈이 云野鴨子니다. 大師云 什魔處去也오 丈云飛過去也니다. 大死遂 遂百丈鼻頭하니 丈이 作忍痛聲이어늘 大師云 何會飛去오.
마조 큰스님께서 백장스님과 함께 갈 때에 들오리가 날아 가는 것을 보고 마조 큰 스님이 말했다.
「저게 무엇인고?」백장스님이 말하되, 「들오리입니다.」마조 큰스님이 말하되, 「어디로 갔는고?」백장스님이 말하되,「날아 갔습니다.」마조 큰스님이 바로 백장스님의 코를 비틀므로 백장스님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니 마조 큰스님이 말하되,「어디 날 아갔느냐?」
마조 대종사는 백장스님을 깨우치기 위해서 바람 없는데 물결을 일으키고 고운 살결에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격으로 백장스님에 게 법문하신 것이다. 깨달으면 世間事가 바로 本分事이고 깨치지 못하면 모두 세간사가 되어버려서 자유자재하지 못한 것이다. 마조 대종사가 백장스님의 코를 비틀지 아니 했으면 백장스님은 깨치지 못했을 것이다.
마조 큰스님과 백장스님이 서로 문답한 것이 昭昭靈靈한 見聞覺知 같지만 소소영영한데에 住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백장스 님이 깨달음에 머무른다면 廓撤大悟가 못 되는데 再參因緣에서 마조 큰스님이 喝한 데에서 백장스님은 확철대오한 것이다. 다음 에 그 재참 인연을 들어 보겠다.
百丈이 再參馬祖하니 祖竪佛子어늘 師云 卽此用가 離此用가 祖掛佛子於舊處어늘 師良久한대 祖云汝己後에 開兩片皮하여 將何 爲人고 師遂取佛子竪起한대 祖云 卽此用가 離此用가 師亦掛佛子於舊處어늘 祖便喝하니 師直得三日耳聲이라.
백장스님이 두 번째로 마조 큰스님께 뵈어 참하니 마조스님이 불자를 세우니까 백장스님이 말하되 이것에 즉하여 활용하는가?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는가?
마조 큰스님이 본자리에 불자를 걸거늘 백장스님이 잠깐 잠잠이 있으니 마조 큰스님이 말하되 그대는 이 후에 두 개 입술을 열어서 어떻게 사람을 위하겠는가? 백장스님이 불자를 갖다가 세우니 마조 큰 스님이 말하되 이것에 즉하여 활용하는가?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는가? 백장스님이 또 불자를 먼저 자리에 걸거늘 마조 큰스님은 바로 고함을 치니 백장스님은 삼일 동안 귀가 먹었 다.
마조 대종사의 일할(一喝)에 백장스님이 3일 동안 귀가 먹었다. 그래서 마조 대종사의 正眼을 백장스님이 전수하게 된 것이다 . 백장스님은 마조하의 3대 정안종사 중의 일인이 된 것이다 . 그러나 이 두 대종사는 彌天罪過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아래에 着語를 하겠으니 보기 바란다.
兩大和尙이 伊魔商量하니
失錢遭罪로다 何故如此오
眞金失色이오 瓦礫生光이로다.
金牛途炭하니 不見縱跡이로다.
針眼魚呑 大天世界하고
焦螟微筮은
吐妙高山이로다.
別別
一蓬蒿箭이 攪動億兵이로다.
喝一喝
두 큰 스님이
이렇게 법거량하시니
돈을 잃고 처벌당함이네
어찌하여 그러한가?
침금이 빛을 잃고
기와장 조각돌이 防光하는구나
금소가 鎔鑛爐에 녹으니
자취를 볼 수가 없네
아주 작은 물고기는
우주를 삼키고
지극히 작은 벌레는
수미산을 토해내누나
별별 ,
한 쑥대화살이 억병을 요동시키도다
할, 일할 하시다
달마 혈맥론
1. 마음 밖에 불성이 따로 없다.
"삼계가 혼돈하여 일어났으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돌아가나니 앞서 깨 달은 분과 그 후에 깨달은 분들이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사 문자에 의 존하지 않았느니라."
어떤이가 물었다.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을 삼슴니까 ?"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대가 나에게 묻는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요,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 는 것이 곧 나의 마음이니 끝없는 옛부터 온갖 동작을 하는 모든 시각 과 모든 장소가 그대의 근본 마음이며 모두가 그대의 근본 부처이다. 마음 그대로가 곧 부처라 함은 바로 이와 같으니라.
이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를 찾을수 없나니 이 마음을 떠나서 불도와 열반을 구한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자기 성품(自性)은 진실해서 인 (因)도 아니고 과(果)도 아니며 법 그대로가 마음이니, 스스로 마음이 부처이며 자기의 마음이 곧 뚜렷이 밝고 고요히 비추는 열반이다. 만 일 말하기를 '마음 밖에 부처와 보리가 있어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옳지 못하다.
부처와 보리가 모두 어디에 있는가 ? 어떤 사람이 손으로 허공을 잡 을수 있겠는가 ? 허공이란 이름뿐이요, 형상도 부피도 없나니 잡을 수 도 버릴 수도 없느니라. 이렇게 허공을 잡을 수 없는 것 같이 이 마음 을 떠나 부처를 찾는 것도 역시 끝내 찾지 못하리라."
"깨달음은 자기 마음으로 해서 얻어지는 것이거늘 마음을 떠나서 부처 를 찾으리요 ? 먼저 깨달은 분과 후에 깨달은 분들이 다만 마음만 하 나만을 말씀하셨으니 마음이 곧 부처로 부처가 곧 마음이라 마음 밖에 부처가 있다고 한다면 부처가 어디에 있겠"는가 ?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면 어찌 부처라는 생각을 일으키리요 ? 서로가 속여서 근본 마음 을 알지 못하고 무정물(無情物 : 불상)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도다.
만일 믿지 못한다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이익이 없다. 부처는 허 물이 없으나 중생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깨닫 지도 알지도 못한다.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안다면 마음 밖에서 부 처를 찾지말지어다. 부처가 부처를 제도 할수 없나니,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찾으면 부처를 보지 못한다. 다만 밖의 부처일 뿐이니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 부처를 지니고 부처에게 절하지 말며 마음을 가지고 부처를 염 (念)하지 말라. 부처는 경을 읽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가지지도 않 으며, 부처는 계를 범하지도 않으며,부처는 지킴도 범함도 없으며, 선 과 악을 짓지도 않는다. 만일 부처를 찾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품을 보 아야 곧 부처일 것이다. 성품을 보지 못한채 염불을 하거나 경을 읽거 나 재계(齋戒)를 지키거나 계를 지킨다면 아무런 이익이 없다. 염불은 왕생의 인과를 얻고, 경을 읽으면 총명해지며, 계를 지키면 하늘에 태 어나고 보시를 하면 복스런 과보를 받거니와 부처는 끝내 찾을 수 없 느니라.
"만일 자기를 밝게 알지 못하거든 반드시 선지식에게 찾아가 생사의 근본을 깨쳐야 한다. 만일 성품을 보지 못했다면 선지식이라 할 수 없 으니, 비록 12부경을 다 외운다 하여도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삼계 에 윤회하면서 고통을 받아 벗어날 기회가 없으리라.
옛날에 선성(善性)이란 사람이 12부경을 다 외웠지만 여전히 윤회를 면치 못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성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선성도 그러하기를 요즘 사람들은 겨우 서너권의 경전을 외우고서 법을 깨달 았다 하나니 어리석은 사람이다. 만일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 부 질 없는 문구나 외워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느니라.
부처를 찾으려 한다면 모름지기 성품을 보아야 하나니, 성품이 곧 부 처이다. 부처란 곧 자유로운 사람이며 일 없고 작동없는 사람이다. 만 일 성품을 보지 못한다면 종일토록 분주히 밖을 향해 구한다면 부처를 찾아도 얻지 못한다. 비록 한 물건도 얻을 것이 없다고는 하나 아직 알지 못한다면 반드시 선지식께 물어서 간절히 힘써 구하며 마음이 열 리게 할지어다."
"나고 죽음의 일이 크니 헛되이 보내지 말라. 스스로 속여서 이익이 없느니라.
진기한 보물이 산같이 쌓이고 권속이 항하의 모래같이 많더라도 눈을 뜰 때에는 보이거나 눈을 감은 뒤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위 의 법은 꿈이나 허깨비 같음을 알수 있다. 만일 서둘러서 스승을 찾지 않으면 헛되이 한 평생을 보내게 되리라. 그렇다면 불성을 본래 가지 고 있으나 스승으로 해서 배우지 않으면 끝내 분명히 알기 어려우니, 스승을 만나지 않고 깨닫는 이는 만에 하나도 드물다.
만일 자기 스스로 인연따라 깨달아서 성인의 뜻을 얻은 사람은 선지 식을 찾을 필요가 없으나, 이는 태어나면서 있는 수승한 학문이며, 만 일 아직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모름지기 선지식을 찾아서 참구해 배 워야 한다. 가르침에 의하여야만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만일 스스 로가 분명히 깨달았다면 배우지 않아도 되며,미혹한 사람과는 같지 않 거니와 검고 흰 것을 분별치 못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편다고 망언 (妄言)을 한다면,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런 종류는 빗발같이 설법을 하어라도 모두가 악마의 소리요, 부처의 말씀 은 아니다.
이런 스승은 이미 악마의 왕이요, 제자는 악마의 백성이 되어서 미혹 한 사람들은 그의 지휘에 따라 모르는 사이에 생사의 바다에 헤맨다." "오직 성품을 보지 못한 사람이 망령되이 부처라 하나 이런 중생들은 큰 죄인이어서 많은 중생들을 속여서 악마의 경계에 들게 한다. 만일 성품을 보니 못하면 설사 12부경을 모두 연설하여도 모두가 악마의 말 이요, 악마의 권속일지언정 부처의 제자는 아니다. 이렇게 검고 흰것 을 가릴 줄 모르거늘 무엇에 의하여 생사를 면하리요 ? 만일 성품을 보면 부처요, 성품을 보니 못하면 중생이다. 중생의 성품을 떠나서 부 처의 성품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부처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중생의 성품이 곧 부처의 성품이다. 성품 밖에 부처가 없는지라 부처 가 곧 성품이니, 이 성품을 떠나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깨달음 외에는 성품을 얻을 수 없느니라."
2.미혹한 만행은 윤회를 면치 못함.
어떤 이가 물었다.
"만일 견성(見性)은 못 했더라도 염불하고 경 읽고 계행을 지키고 보 시하고 정진해서 널리 복을 닦으면 부처를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
이렇게 답하였다.
"못하느니라."
어떤이가 물었다.
"어찌 못합니까 ?"
이렇게 답하였다.
" 조그만치라고 얻을 법이 있으면 이는 유위의 법이며,인과(因果)의 법이며, 과보를 받는 법이다. 윤회하는 법이라 생사를 면치 못하거늘 언제 부처를 이루리요 ? 부처를 이루려면 성품을 보아야 한다. 성품을 보지 못하면 인과 등의 말이 모두가 외도의 법이다. 만일 부처라면 외 도의 법을 익히지 않나니, 부처란 업(業)도 없는 사람이며, 인과도 없 는 지위이니 조금만큼의 법이라도 얻을 것이 있다면 모두가 부처를 비 방하는 짓으로 어떻게 부처를 이루리요.
조금의 마음,기능, 견해 소견에라도 집착해 있다면 부처는 모두가 허 용치 않는다. 부처는 지키고 범함이 없어 심성(心性)이 본래 공하고, 또 더렵거나 깨끗한 법도 아닌지라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으며 원 인도 결과도 없다. 부처는 계를 지지지도 않으며, 부처는 계를 범하지 도 않으며, 부처는 선을 닦지도 않으며, 부처는 악을 짖지도 않으며, 부처는 정진을 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게으르지도 않나니, 부처란 이 런 만듬이 없는 사람이므로 집작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부처는 이를 허락치 않느니라."
"부처라 하면 부처가 아니니 부처라는 견해를 짓지 말아야 한다. 만일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면 언제나 어디서나 근본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성품을 보지 못하면서 항상 지음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것은 큰 죄인이며 어리석은 사람이다. 즉 무기공(無記空: 아무 분별 없은 공) 에 떨어져서 캄캄한 것이 마이 취한사람 같아서 좋고 나쁨을 가리지 못하리라.
만일 지음이 없는 법을 닦으려 하거든 우선 성품을 본 뒤에 반연하는 생락을 쉴지니, 성품을 보지 못하고 불도를 이룬다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어떤 사람이 인과를 무시하고 분주히 온갖 나쁜짓을 하면서 망령 되이 말하기를 '본래 공(空)해서 나쁜 짓을 하여도 허물이 없다'한다 면 이런 사람은 무간지옥. 흑암지옥에 빠져서 영원히 벗어날 기약이 없으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런 견해를 짓지는 않느니라."
어떤이가 물었다.
"만일 분별하고 운동하는 온갖 시간이 모두가 근본 마음인데 색신(色 身:몸)이 죽을 때엔 어찌하여 근본 마음니 보이지 않는 가요 ? 이렇게 답하였다.
"근본 마음이 항상 눈앞에 나타났으되 그대 스스로가 보지 못 할뿐이 다."
다시 묻기를
"마음이 이미 눈앞에 나타나 있다면 어찌하여 보지 못 합니까 ?"
도리어 묻기를
"그대 꿈을 꾼적이 있는가 ?"
답하기를
"꾸었습니다."
"그대가 꿈을 꿀 때에 그대의 근본 몸이었던가?"
"예 근본 몸이었습니다."
"그대가 말하고 분별하고 운동하던 것이 그대와 다른가 아니면 같은가 ?"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부하여 말 하기를
"이미 다르지 않다면 이 몸 그대로가 그대의 근본 법신이며, 이 근본 법신 그대로가 그대의 근본 마음이니라."
"이 마음이 끝없는 옛부터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서 전혀 나고 죽 은 적이 없는지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으 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옳고 그름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의 모습도 없으며,승려와 속인 늙은이와 젊음이의 모습도 없으며, 성인도 없고 범부도 없으며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증득 할것도 없고 딱 을 것도 없으며,인(因)도 없고 과(果)도 없으며,힘도 없고 모양도 없 는것이 마치 허공과 같아서 취할수도 없고 버릴수도 없다.
산이나 강이나 석벽이라도 장애하지 못하며, 들고 나고 가고 옴에 자 제하고도 신통하다. 오온(五蘊)의 산을 벗어나며 생사의 바다를 건너 서 온갖 업이 이 법신을 구속하지 못하느니라."
" 이 마음은 미묘하여 보기 어려운지라 이 마음은 물질의 모습과 같지 않으며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보고자 하나 이 광명 가운데서 손을 흔들고 발을 움 직이는 일이 강가의 모래알 같이 많되 물어보면 전혀 대답하지 못함이 마치 허수아비 같나니, 모두가 자기의 활동이거늘 어찌하여 알지 못하 는가 ?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온갖 중생은 모두가 미혹한 사람이라 이로 인하여 업을 지음으로 생 사의 바다에 빠져서 나오려 하다가도 도리어 빠지나니 오직 성품을 알 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시니 중생이 미혹하지 않았다면 어찌하여 물으 면 한사람도 아는 이가 없는가 ? 자기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을 어찌 하여 알지 못하는가 ?
그러므로 성인의 말씀은 틀리지 않건만 스스로가 알지 못 할 뿐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이 마음은 밝히기 어려우나 부처님 한분이 능히 아시고 그밖의 인간.하늘등 의 무리는 아무도 밝히지 못하는 줄 알지 니라.
만일 지혜로써 이 마음을 분명히 알면 비로소 법성(法性)이라 부르며, 해탈이라고도 한다 생사에 걸리지 않으며 일체 법도 구속하지 못하므 로 대자재왕불(大自在王佛)이라 하며, 부사의(不思議)라고도 하며, 성 인의 본체라고도 하며, 장생불사라고도 하며, 큰 선인(大仙)이라고도 한다.
"성인들의 많은 분별이 모두가 자기의 마음을 여의지 않았나니 마음의 양이 광대하여 쓰는 데 따라 응해서 무궁하다. 눈에 응하여서는 빛을 보고, 귀는 소리를 들으며, 코는 냄세를 맡으며, 혀는 맛을 알며, 더 나아사서는 온갖 활동이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며 언제든지 언어의 길 이 끊이고 마음으로 따질 속이 없어졌으니 이것이 자기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부처의 몸매가 다함이 없으며 지혜도 그러하다' 하니 몸매가 다함이 없은것이 곧 자기 마음이다. 마음이 능히 모든 것 을 분별하면 또한 온갖 분별과 운동이 모두가 지혜이니 마음이 형상이 없으므로 지혜도 다함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몸매가 다함이 없고 지혜도 그러하다.'하니 사대 (四大)로 된 몸은 번뇌의 몸인지라 생멸이 있으며 법신(法身)은 항상 머무르는되 머무는 바가 없어서 여래의 법신이 항상 변하지 않는다. 경에 말하기를
'중생이란 응당 불성이 본래 있는 몸임을 알아야 한다'하니 가섭은 다 만 본성을 깨달았을 뿐이요 딴일은 없다.
본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성품이니, 이는 부처님들의 마음이 라 앞서 깨달으신 부처와 후에 깨달으신 부처가 오직 마음을 전하였 을 뿐 이 마음 밖에서 따로 부처를 찾을 수 없느니라."
"뒤바뀐 중생이 자기의 마음이 부처인 줄 알지 못하고 밖을 향해 구하 되 하루종일 설치면서 부처를 염(念)하고 부처에게 절을 하나니 부처 가 어디메 있는가? 이러한 소견을 짓지 마라. 다만 자기의 마음을 알 면 마음 밖에 딴 부처가 없다.
경에 말하기를
'무릇 형상이 있는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또한 '경이 있는 곳마다 부 처가 있다.'하였으니, 자기의 마음이 곧 부처인지라 부처를 지니고 부 처에게 절하지 말라.
만일 부처와 보살의 모습이 홀연히 나타나거든 절대로 예경하지 말지 어다, 내 마음이 공적(空寂)하며 본래 이런 모습이 없으며 만일 형상 을 취하면 곧 마귀에 포섭되어서 모두가 삿된 도에 떨어진다. 만일 허 깨비가 마음에서 일어난 줄 알면 예경할 필요가 없나니, 절 하는 이는 알지 못하고, 아는 이는 절하지 않느니라. 예경하면 곧 마에 포섭되리 니 학인(學人)이 행여나 알지 못 할까 걱정되어 이렇게 풀이하노라.
"부처님들의 근본 성품 바탕 위에는 도무지 이런 모습이 없으니 꼭 명 심하라. 기이한 경계가 나타나거든 결단코 캐지도 말며 또한 겁내지도 말며 또한 의혹심도 내지말라. 내 마음이 본래 청정하거늘 어디에 이 러한 모습이 있으리요.?
나아가서는 하늘.용.야차.제석.범왕 등에게라도 공경할 생각을 내지 말며 두려워하지도 말라. 만일 부처라는 모습에 대하여 공경할 생각을 낸다면 스스로가 중생이 된다. 만일 바르게 알고자 한다면 온갖 형상 에 집착하지 않으면 되나니 다시 딴 말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에 말 하기를 '무릇 형상이 있는것도 모두가 허망하다' 하시니, 도무지 일정 한 형상이 없으며, 환에 일정한 상이 없는지라. 이것이 무상한 법이 니, 다만 형상을 취하지 않으면 거룩한 뜻에 부합되리라. 그러므로 경 에 말하기를 '온갖 형상을 여의면 곧 부처라 한다' 하시니라."
3. 공경치 않는 바를 밝힘
어떤이가 물었다.
"어찌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절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요 ?"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늘의 마귀인 파순과 아수라 등이 신통을 나투어 모두가 부처와 부 살의 모습을 이루되 갖가지로 변화했기 때문이니, 그는 외도인지라 모 두가 부처가 아니다.
부처란 자기의 마음이니 부처에게 잘못 절하지 말라. 부처란 자기의 마음이니 근기에 응하고중생이 제접하며, 눈썹을 끄덕이거나 눈을 깜 박이며 손을 움직이고 바을 옮기는 것이 모두가 자기의 신령스러움 느 낌의 성품이다. 성품이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부처이며, 부처가 곧 도며,도가 곧 부처이니 부처라는 할 글자는 범부가 헤아릴 바가 아니 다.
또 말하기를 '근본 성품을 보는 것이 부처다.' 하니 근본 성품을 보 지 못 하면 부처가 아니다. 설사 많은 경전과 논소를 강설하더라도 성 품을 보지 못 하면 다만 범부일 뿐 부처의 법은 아니다.
지극한 도는 깊고도 멀어서 말로는 이해할 수 없나니, 경전으로 어찌 미칠 수 있으리요 ? 근본 성품을 보기만 하면 한 글자도 모를지라도 좋으니라. 성품을 보면 곧 부처이니, 성스러운 본체는 본래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다. 모든 말씀이 모두가 성인의 마음으로 부터 일어난 작 용이니, 작용의 바탕이 본래 공하여 명칭이나 말로도 미칠 수 없거늘 12부경이 어찌 미칠 수 있으리요?
도는 본래 뚜렷이 이루어졌나니, 닦고 증득함이 필요치 않으며, 도는 소리나 빛이 아니어서 미묘하여 보기도 어려우니 사람이 물을 마시면 차고 더운 것을 스스로가 아는 것과 같다. 또 남을 향해 말을 하지 말 라. 오직 여래만이 알 수 있고 그밖의 인간이나 하늘 등의 무리들은 도무지 깨닫지도 알지도 못한다.범부는 지혜가 미치지 못하므로 망령 되이 겉모양과 온갖 법에 집착하면 곧 외도의 무리에 떨어지지라."
"모든 법이 마음에서 생긴 것임을 알면 집착이 있을 수 없나니, 집착 하면 알지 못 한다. 만일 근본 성품을 보면 12부경이 모두가 부질없는 문자이다. 만일 근본 성품을 보면 12부경이 모두가 부질없는 문자이 다. 만은 경전과 논소가 오직 마음을 밝혔을 뿐이니, 말끝에 계합해 알면 교법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 지극한 진리는 말을 떠났고 교법 은 말씀일 뿐이니 진실로 도가 아니다. 도는 본래 말이 없으므로 말은 허망일 뿐이다.
꿈에 누각이나 궁전이나 상마(象馬)의 무리나 나무. 숲.못. 정자 등 의 모습을 보거든 잠깐만이라도 즐거이 집착할 생각을 내지 말며 모두 가 망념이 의탁해서 생기는 곳이니 부디 주의하라.
임종할 때에 전혀 형상을 취하지 않으면 곧 의혹을 떨어버리거니와 털끝만치의 망념이라도 일으키기만 하면 곧 마귀에 끄달린다. 법신은 본래 청정하여 느낌이 없건만 다만 미혹한 까닭에 알지도 깨닫지도 못 하나니 이 때문에 망령되이 업보를 받는 까닭에 즐기고 집착하여 자유 롭지 못하느니라."
"지금이라도 본래의 몸과 마음을 깨닫기만 하면 곧 습성에 물들지 않 으리라. 성인의 경지에서 범부의 경지에 들어가서 갖가지 잡된 모습으 로 나타나 보이는 것은 본래 중생을 위한 까닭이니, 성인은 역순(逆 順)에 자재하여 온갖 업이 그를 구속하지 못한다.
성인의 지위를 이룬지 오래되어 큰 위덕이 있나니 온갖 종류가 성인의 지휘를 받아 움직이므로 천당과 지옥도 성인은 어찌하지는 못하리라. 범부는 어두워서 성인이 안팎이 밝은 것 같지 못하나니, 만일의심이 있거든 의심을 일으키지 말라. 일으키면 생사의 바다에 헤매여서 후회 하여도 구제할 길이 없다.
빈궁과 고통이 모두가 망상에서 생겼으니, 만일 마음을 알아서 서로 서로 경책해서 작용하는 티가 없이 작용하면 곧 부처의 지견(知見)에 들리라. 처음 발심한 사람은 정신이 전혀 안정되지 못하나니, 꿈 속에 자주 이상한 경계를 보더라도 선뜻 의심하지 말라. 모두가 자기의 마 음에서 일어났으며 밖에서 온 것이 아니다.
꿈에 광명 솟는 것이 햇빛보다 밝은 것을 보면 나머지 습기가 몽땅 다하고 법계의 성품이 나타나리라. 만일 이런 일이 있으면 부처를 이 루는 요인이 되리니, 이는 자기만이 알 뿐이요 남에게는 말할 수 없느 니라.
"혹 고요한 숲속에서 다니고.멈추고.앉고.늡다가 크고 작은 광명이 눈 에 뜨이어라도 남에게 말하지 말며, 또 집착하지 말라. 자기 성품의 광명이니라. 혹 어두운 밤에 다니고.멈추고.앉고.눕다가 낮 같은 광명 이 눈에 뜨이더라도 괴이하게 여기지 말지니, 모두가 자기의 마음이 밝아지려는 징조이다. 혹 꿈에 별과 달이 분명하게 보이면 이것 또한 자기 마음의 모든 반연이 쉬려는 조짐이니 역시 남에게 말하지 말라. 꿈에 어두워서 밤중을 다니는 것 같음을 보면 또한 자기의 마음이 번 뇌 장벽이 무겁다는 조짐이니 스스로 알아야 한다.
만일 근본성품을 보았거든 경을 읽거나 염불을 할 필요가 없나니 많이 배우고 널리 아는 것이 별 이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정신이 어두워 지느니라. 교법을 만들어 놓은 뜻은 마음을 표방하기 위한 것인데 마 음을 알면 교법을 볼 필요가 없다.
범부로부터 성인의 경지에 들고자 한다면 업을 쉬고 정신을 길러서 분 수에 따라 세월을 보내라. 성냄과 기뻐함이 많으면 도와 더불어 어기 나니 스스로를 속일 뿐 이익이 없다.성인은 생사 가운데서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숨고 나타남이 일정치 않나니 모든 업이 그를 구애하지 못 하며 도리어 삿된 마구니들을 무찌른다.
중생들이 근본 성품을 보기만 하면 나머지 습기가 몽땅 다하고 정신이 어둡지 않다. 참으로 도를 알고자 한다면 어떤 법에도 집착하지 말고 업을 쉬어 정신을 길러라. 나머지 습기가 다하면 자연히 밝아져서 공 부를 할 필요가 없느니라."
"외도는 부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공력을 가장 많이 쓰나 부처님의 거룩한 뜻을 거술리므로 종일토록 서둘러서 염불하고 경을 읽어도 정 신이 어두워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
깨달은 이는 한가한 사람이라 어찌 구구(驅驅)할 필요가 있으며 명리 를 널리 구한들 후일 무엇에 쓰리요. 단 성품을 보지 못한 사람은 경 을 읽고 염불하며 오래도록 정진을 배우며하루 여섯차례 예불하며 오 래 앉아 눕디 않으며 널리 배워 많이 아는 것을불법으로 여기나니 이 런 중생은 모두가 불법을 비방하는 사람이다.
전의 부처와나중의 부처가 오직 성품을 보라는 말씀만 하셨나니, 성 품을 보지 못하고 망령되이 말하기를 '내가 위 없는 도를 이루었노라' 한다면 이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이다.
십대제자 가운데서 아난이 많이 알고 널리 배워서 식견이 으뜸이었으 나 '성문과 외도들로 하여금 오직 무식케 한는 것이라'고 하시면 부처 님이 꾸짖으셨으니, 글자나 수효를 아는 것으로 딱아 증득한다면 인과 의 법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중생의 업보이어서 생사를 면치 못 하여 부처님의 뜻에 어기는 것이니 곧 부처를 비방하는 중생인지라 물 리쳐도 불리쳐도 허물이 없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천제는 믿는 마음을 내지 않나니 물리쳐도 죄가 없 다'하셨다. 만일 진정한 믿음이 있거든 그는 부처 지위의 사람이다. 성품을 보지 못했거든 절대로 다른 어진 사람을 비방하지 말라. 스스 로 속에서 이로울 것이 없다. 선과 악이 뚜렷하고 인과가 분명한지라 천당과 지옥이 오직 눈앞에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믿지 않는 까닭에 흑암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나니, 오직 입장이 무거우므로 믿지 않는다. 마 치 소경이 햇빛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으니, 설사 그에게 말 해 주더라도 역시 믿지 않는 것 같으니라. 오직 눈이 없기 때문이니 어떻게 햇빛을 분별할 수 있으리요?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방금 축생 등 잡된 무리에 떨어졌거나 빈궁.한천한 무리에 태어나서 살려 해도 살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을 수 없느니라. 비록 이런 고통을 받으나 직접 물어보면 도리어 대답하 기를 '나는 지금 쾌락한 것이 천당과 다르지 않다'고 하니, 그러므로 모든 중생은 태어난 곳으로써 쾌락을 삼아 깨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 한다.
이와 같은 악인은 업장이 두�Т지 때문이니, 만일 스스로의 마음이 부 처인 줄 안다면 머리와 수염을 깎는데 관계치 않으며 속인도 부처가 될 수 있다. 만일 성품을 보지 못하면 머리와 수염을 깎았더라도 역시 외도이다."
선림고경총서
11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설봉스님이 하루는 원숭이들을 보고 말하기를
"원숭이가 각각 한 개의 옛거울(古鏡)을 짊어지고 있구나!"
하니, 삼성스님이
"숱한 오랜 세월 동안 이름이 없거늘 어찌하여 옛거울(古
鏡)이라고 합니까?"
하고 물어니, 설봉스님이
"흠이 생겼구나!"
하되, 삼성스님이 말하기를
"일천오백인을 거느리는 대선지식이 화두도 모르십니까?"
하니, 설봉스님이 말하였다.
"노승이 주지 하기가 번거로와서...."
알겠는가?
비가 연잎을 적시니
향기가 집에 떠돌고
바람이 갈대잎을 흔드니
눈은 배에 가득하네.
雪峰一日見미후내云, 者미수各各背一面古鏡.
三聖便問, 歷劫無名何以彰爲古鏡.
峰云, 瑕生也.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話頭也不識.
峰云, 老僧住持事煩.
會마
雨蒸荷葉香浮屋
風攪蘆花雪滿船
佛紀 2532年 端午節
伽倻山에서
退翁 性徹 씀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간행사
귀의 삼보(귀의삼보)하옵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이 땅에 전해져 겨레의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고 나라의 동량을 배출하여 온 지도 천육백
여년이 지났읍니다.
그러나 세울이 오래 지나고 연륜이 멀어짐에 따라 부처님
의 마음을 전하는 선종의 정법은 감추어지고, 고불고조(古佛
古祖)들의 바른 뜻은 매몰되어 잘못된 주장만 드러나게 되었
읍니다.
성철 큰 스님께서는 이런 선문(禪門)의 병폐를 일찍부터 지
적하시고, 그 시정을 위해 몇 해 전에는 선문정로(禪門正路)
라는 저서를 출간하기도 하셨읍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에게 참
선의 근본 종지인 돈오돈수(頓悟頓修)사상을 쉽게 터득케 하
고 선사들의 피나는 수행 과정을 기록으로나마 접함으로써
선종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케 하는 데에는 무엇이 가장 요
긴 할 일인가를 심려해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케 하는 데에는
무엇이 가장 요긴한 일인가를 심려해 오시던 차에, 우리들 주
변에 선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선서(禪書)들이 너무
나 빈곤하다는 것을 통감하시게 되었읍니다. 이는 고불고조
들의 말씀이 한문(漢文)으로 되어 있어서 언어생활이 다른 요
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큰스
님께서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는 옛 조사 스님들의 말씀 가운
데 참선(參禪)을 위해 가장 요긴하다고 생각되는 삼십여 종의
저서들을 가려내어 번역토록 하시고, 그 전집(全集)의 이름을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라고 지어 주셨읍니다.
한문으로 된 말씀들을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때로는 큰 스
님의 구술(口述)을 옮기고, 때로는 선(禪)의 이치를 여쭈면서
글 밝은 이들에게 번역을 부탁하였읍니다.
우리나라 선종사(禪宗史)에서 처음 시도하는 선서 번역 사
업인 데에다 큰스님께서 연로하시어 하나하나 감수하실 수가
없기 때문에 번역에 허물이 많으리라 싶습니다. 이 점을 널
리 이해하시고, 더러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독자들께서 다함
께 동참하시어 더 완벽한 글이 되도록 이끌어주신다면 더없
는 다행이겠읍니다.
저희로서는 선림고경총서의 간행 불사(佛事)가 겨레의 공동
의 문화 재산이 됨과 아울러 후손들에게 부처님의 크고 밝은
가르침을 전하는 이 시대의 훌륭한 유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선림고경총서의 원만한 간행이 조계(曹溪)의 개울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어, 선림(禪林)에 백화(百花)가 난만하고
모든 이들은 자성을 깨쳐 성불(成佛)하길 발원합니다.
佛紀 2532 年 端午節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
백련선서간행회(白蓮禪書刊行會)
圓澤 和南
마조록 해제(馬祖錄 解題)
마조스님에 대한 기록은「조당집(祖堂集,952)」을 비롯하여
「종경록(宗鏡錄,960)」「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1004)」「천
성광등록(天聖廣燈錄,1029)」「송고승전(宋高僧傳,988」,그리
고 「사가어록(四家語錄)」과「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1267」
등에 전하지만, 스님의 어록이 독립적으로 전하는 것은 「사
가어록」뿐이다.
현존하는 「사가어록」(6권)은 명말(明末)에 재편된 것인데,
그 첫째권은 마조스님의 어록이고, 나머지는 백장(百丈),황벽
(黃壁), 임제(臨濟)스님의 어록이다. 「사가어록」은 원래 송
(宋)나라 초기(1066년경) 황룡 혜남(黃龍慧南:1002-1069)스님
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한다.
마조록을 비롯한 송(宋)대 이후의 어록들은 경론을 자구해
석(字句解釋)하던 기존의 방식과는 달리, 선(禪)적인 안목으로
불법을 재해석한 선사들의 말씀을 정리한 것이다.
마조스님의 출생과 입적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들이 일치하
지 않는데, 연구에 의하면 탑명(塔銘)의 기록(706-786)이 가
장 믿을 만하다.
스님은 남악회양(南嶽懷讓:677-744)스님의 법을 이었으며,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냈는데, 법제자들은 139명, 혹은 84명
이라고도 한다.
마조록에는 「능가경(楞伽經)」「유마경(維摩經)」을 비롯
하여「금강경(金剛經)」「화엄경(華嚴經)」「불설법구경(佛說
法句經)」「42장경(四十二章經)」등의 경전이 광범위하게 인
용되고 있다. 또한 어록에 보이는 "즉심죽불(卽心卽佛)""평상
심이 도이다"하는 말씀이 마조스님 법문의 특색이라 하겠다.
백장록해제(百丈錄解題)
백장스님의 어록은 일찍부터 독립된 본이 있었다. 「조당집
(祖堂集)」에 의하면,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
려 있다"고 하였고. 또 "문도 신행(神行)과 범운(梵雲)이 법어
를 결집(結集)하여 어본(語本)을 편집하였는데, 오늘날 어본이
후학들에게 유행되고 있다"고 한 탑명(塔銘)의 내용에서 문도
들이 모은 어록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수 있다.
「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에는 어록(語錄)과 광록(廣錄)을
구분하여 싣고 있는데, 광록은 다른 어록과는 달리 긴 자설
(自說)의 법문형식으로서 교학적인 배경이 두텁다. 법문은
양변(兩邊)을 떠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고, 그 중에서도 대
승입도돈오법은 스님의 대승법문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하겠
다.
스님의 제자로서 「전등록(傳燈錄)」에서 말하듯이 위산(위
山)과 황벽(黃檗) 두 스님이 중요하다. 위산스님은 그 제자인
앙산(仰山)스님과 함께 위앙종(위仰宗)의 종조가 되고, 황벽스
님은 임제(臨濟)스님을 배출하여 임제종의 원류가 된다. 즉 5
가 종파에서 최초의 두 파가 백장스님 아래에서 나온 것이다.
백장스님 이후, 선원(禪院)은 생활면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는 율원(律院)등에 속해 있던 선원이 독립적인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상당(上堂)하여 공개적으로 설법하는
설법당(說法堂)이 마련 되었다. 또한 대중운력이나 10가지
소임 등 선원생활을 규율하는 청규(淸規)가 백장스님에서 부
터 발달하게 되었다. 이렇게 엄격한 규율과
대중운력을 통한 경제적 자립은 폐불 속에서도 선문(禪門)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스님의 일상생활을 나타내는 한마디는 이러하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
食)."
조당집 해제(祖堂集 解題)
현존하는 선종사서(禪宗史書) 중 가장 오래 된 「조당집(祖
堂集」은 모두 20권으로 되어 있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있는
것이 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며, 아직까지는 어떤 섭본(섭本)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보복 종전(保福從展:867-928,云峯義存의 法을 이음)스님의
제자인 문등(文등)이 쓴 '조당집 서(序)'에 의하면, 천주(泉州)
초경사(招慶寺)에서 정(靜)과 균(筠) 두 스님에 의해 편집되었
고(952), 그 후 고려에서 개판(開版)할 때(고종 32년, 1245) 원
래 10권이던 것을 20권으로 만들면서 새로 목차를 만들어 넣
은 것을 알 수 있다. 목차 끝에 "해동(海東)에서「조당집」을
새로 간행함에 있어 그 사적이 드러난 253인을 모두 20권에
수록하였다" 한 기록이 그것이다.
「조당집」의 특징으로는 첫째, 그 서(序)에서 "고금 제방
의 법요(法要)를 모아 한 권으로 만들었다"고 하였듯이 조사
들의 종지(宗旨)를 전하는 데에 힘ㅆ고, 표현은 구어적이며
간결하다.
둘째, 과거 7불(七佛)에서 시작하여 인도 28대 조사와 중국
6대 조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초조 마하가섭을 제1조, 아
난(阿難)을 제2조. 이하 28조 초조달마(初祖達摩), 제29조 혜
가(慧可).......제33조 혜능(慧能)으로 하고 있다.
셋째, 남종(南宗) 계통의 스님들에 대해서는 상세히 언급하
면서도 우두 법융(牛頭法融), 소위 북종(北宗)인 신수(神秀)·
보적(普寂) 등은 조과(鳥과)화상의 끝에 이름만 전하며, 또 우
두 법융에서도 다섯 스님은 이름만 열거하고 있다. 한편 남
종선의 5가종파 중에서도 임제(임제종),위산·앙산(위앙종),조
산·동산(조동종),운문(운문종)스님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법
안(법안종)스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넷째, 신라의 종사(宗師)들에 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도의(道義)·혜철(惠哲)·홍척(洪陟)·현욱(玄昱)·범일(梵日)
·무염(無染)·도윤(道允)·순지(順之)스님 등 8명을 싣고 있
는데, 이들은 신라말 9산 선문의 개산조(開山祖,순지스님은
제외)들이며, 모두 서당(西堂)·장경(章敬)·앙산(仰山)등 마
조스님의 법을 이었다.
「조당집」은 마조·백장·위산·앙산·동산·조산스님등에
대한 내용과 4가어록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므로 여기에 함께
실었다.
「조당집」은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완역본이 있다. 또 대한
전통불교연구원에서 간행한「조당집 병 논집(祖堂集 병 論集)
」에서는 그간의 연구에 대한 눈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차 례
선림고경(禪林古鏡)에 씀 ···退翁 性徹/2
선림고경총서간행사(禪林古鏡叢書刊行辭/4
해제(解題)/6
마조록/四家語錄
1. 행록···················17
2. 시중···················23
3. 감변···················31
마조록/조당집
1. 행록···················53
2. 시중·감변················55
3. 천화···················71
백장록/四家語錄
□ 백장어록
1. 행록···················77
2. 상당···················83
3. 천화···················95
□ 백장광록················ 99
백장록/祖堂集
1. 행록···················161
2. 상단·감변··············· 163
(附錄)四家語錄/江西馬祖道一禪師語錄
祖堂集/馬祖錄
四家語錄/洪州百丈山大智禪師語錄:百丈廣錄
祖堂集/百丈錄
마조록
(四家語錄)
일러두기
1. 본문의 편집체제는 사가어록 임제록을 기준으로 하여 행록.시중.
감변.천화 등으로 구분한다.
2. 사가어록과 조당집의 마조록은 그 구성과 내용상 서로간에 누락
된 부분과 상이한 점이 있어 함께 실었다.
3.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占, 19
79)과 「중국불학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方丹出版
社)을 참고 하였다.
4. 부록으로는 경안무자(慶安戊子) 화각본(化刻本)의 사가어록과 해
인사 소장본 「조당집(祖堂集)」에 있는 마조록을 실었다.
1. 행록
강서(江西) 도일(道一:709-788)스님은 한주(漢洲) 시방현(시方縣)사
람으로 성은 마(馬)씨이며 그 마을에 있는 나한사(羅漢寺)에 출가하
였다. 용모가 기이하여 소걸음으로 걸었고 호랑이 눈빛을 가졌다. 혀
를 빼물면 코끝을 지났고 발바닥에는 법륜 문신 두 개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자주(資州) 당화상(唐和尙)에게 머리를 깎았고 투주
(투州) 원률사(圓律師)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당(唐) 개원(開院:713-742) 연중에 (형嶽)의 전법원(戰法院)에서 선
정을 닦던 중 회양(懷讓:677-744)스님을 만났는데, 회양스님은 스님
의 근기를 알아보고는 물으셨다.
"스님은 좌선하여 무얼하려오?"
"부처가 되고자 합니다."
회양스님은 암자 앞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다 갈기 시작했다.
그러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거울을 만들려 하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겠습니까?"
"벽들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한다면 좌선을 한들 어떻게 부처
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소수레에 멍에를 채워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쳐야 옳겠는
가, 소를 때려야 옳겠는가?"
스님이 대꾸가 없자 회양스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는 앉아서 참선하는 것(坐禪)을 배우느냐, 앉은 부처를 배우
느냐. 좌선을 배운다고 하면 선(禪)은 앉거나 눕는 데 있는지 않으
며, 앉은 부처(坐佛)를 배운다고 하면 부처님은 어떤 모습도 아니다.
머뭄 없는 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만 한다. 그대가
앉은 부처를 구한다면 부처를 죽이는 것이며, 앉은 모습에 집착한다
면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가르침을 듣자,스님은 마치 제호(제호)를 마신 둣하여 절하며 물으
셨다.
다시 물으셨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만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昧)에 부합하겠습니
까?"
"그대가 심지법문(心地法門)를 배움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요(法要)를 설함은 저 하늘이 비를 내려 적셔주는 것과도 같
다. 그대의 인연이 맞았기 때문에 마침 도를 보게 된 것이다."
다시 물으셨다.
"도가 모습(色相)이 아니라면 어떻게 볼수 있겠습니까?"
"심지법안(心地法眼)으로 도를 볼 수 있으니, 모습 없는 삼매도 그
러하다."
"거기에 생성과 파괴가 있습니까?"
"생성이나 파괴, 모임과 흩어짐으로 도를 보는 자는 도를 보는 것
이 아니다. 나의 게송을 듣거라."
심지(心地)는 모든 종자를 머금어
촉촉한 비를 만나면 어김없이 싹튼다
삼매의 꽃은 모습 없는데
무엇이 파괴되고 또 무엇이 이루어지랴
心地含諸種 遇澤悉皆萌
三昧華無相 何壞復何成
스님이 덕분에 깨우치게 되어 마음(心意)이 초연하였으며, 10년을
시봉하면서 그 경지가 날로 더하였다.
이에 앞서 육조(六祖:638-713)스님이 회양스님에게 말씀하시기를,
"인도 반야다라(般若多羅)가 예언하기를 '그대의 발 아래서 망아지
한 마리가 나와 세상사람을 밟아 버리리라'하셨다"했는데, 스님을 두
고 한 말씀이었을 것이다. 회양스님의 제자 여섯 사람중에서 스님만
이 심인(心印)을 비밀스러이 전수받았을 뿐이었다.
처음 건양(建陽)의 불적령(佛跡嶺)에서 임천(臨川)으로 옮겨갔고,
다음으로 남강(南康) 공공산(공公山)에 이르렀으며, 대력(大曆:766-7
79) 연중에 종릉(鍾陵:洪州에 있음)이 있는
개원사(開元寺)에 이름을 걸어두셨다. 그때 대장군(連師)노사공(路
嗣恭)이 가풍을 듣고 경모하여 종지(宗旨)를 직접 전수받았고, 이로
부터 사방 납자들이 운집하였다.
회양스님은 스님이 강서에서 교화를 널리 편다는 소문을 듣고 대
중에게 물으셨다.
"도일(道一)이 대중을 위해 설법을 하느냐?"
"이미 대중을 위해 설법합니다."
그러자 회양스님은 말씀하셨다.
"도대체 소식을 전해오는 사람이 없구나."
그리고는 스님 하나를 그곳으로 보내며" 그가 상당하였을 때'어떻
습니까?' 하고 묻고 무슨 말을 하거든 기억해 오너라"고 하셨다.
그 스님이 분부대로 가서 물어더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난리통 30년에 소금과 장은 줄여 본 적 없다."
그 스님이 돌아와 회양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회양스님은 "그렇
군"하셨다.
스님의 입실제자(入室弟子) 139명은 각자 한 곳의 선지식이 되어
더더욱 끝없는 교화를 폈다.
스님께서는 정원(貞元) 4년(788) 정월 중에 건창(建昌) 석문산(石
門山)에 올라 숲속을 거닐다가 평탄한 골짜기를 보더니 시자에게 말
씀하셨다.
"썩어질 내 몸이 다음달에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리라."
말씀을 끝내고 돌아와 이윽고 병을 보이므로 원주(院主)가 문안을
드렸다.
"스님께선 요즈음 건강이 어떠하신지요."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2월1일, 목욕하고 가부좌한 채 입멸(入滅)하셨다. 원화(元和:806-82
0) 연중에 대적선사(大寂禪師)라 시호하고, 탑은 대장엄(大藏嚴)이라
하였다.
2. 시중
1.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示衆)하셨다.
"그대들 납자여, 각자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믿도록 하라. 이마음
이 바로 부처이다. 달마대사가 남천축국(南天竺國)에서 중국에 와
상승(上乘)인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였다. 그
리고는 「능伽經」을 인용하여 중생의 마음바탕을 확인(印)해 주셨
으니, 그대들이 완전히 잘못 알아 이 일심법이 각자에게 있음을 믿
지 않을까 염려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능가경」에서는 '부처님 말
씀은 마음(心)으로 종(宗)을 삼고, 방편 없음(無門)으로 방편(法門)을
삼는다. 그러므로 법을 구하는 자라면 응당 구하는 것이 없어야 하
니,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으며, 부처 밖에 따로 마음 없기 때문
이다'하셨다.
선이라 해서 취할 것도 없고 악이라 해서 버릴 것도 없으며,
깨끗함과 더러움 두쪽 다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죄의 본성이 공(空)
임을 통달하면 생각생각 어디에도 죄를 찾을 수 없으니 그 성품(自
性)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계가 오직 마음일 뿐(三界唯心)이며, 삼라만상이 한 법
에서 나온(印)것이이다. 형상(色)을 볼 때, 그것은 모두 마음을 보는
것인데, 마음은 그 자체가 마음이 아니라 형상을 의지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황따라 말하면 될 뿐, 현상이든(卽事)이치에든
(卽理) 아무 걸릴 것이 없다.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깨달음도 마찬
가지이다. 마음에서 나온(生) 것을 형상(色)이라 하는데, 색이 공함
을 알기 때문에 난 것은 동시에 난 것이 아니다.
이 뜻을 확실히 알아야 그때그때 옷 입고 밥 먹으면서 부처될 씨
앗(聖胎)을 길러내고 인연따라 시절을 보내게 되리니.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니
보리도 역시 그러할 뿐이라네
현상이나 이치에 모두 걸릴 것 없으니
나는 그 자리가 나지 않는 자리라네
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碍 當生卽不生
2.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를 닦는 것입니까?"
"도는 닦는 데 속하지 않는다. 닦아서 체득한다면 닦아서 이루었
으니 다시 부서져 성문(聲聞)과 같아질 것이며, 닦지 않는다 하면 그
냥 범부이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도를 깨칠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성(自性)은 본래 완전하니 선이다 악이다 하는 데 막히지 않기
만 하면 도 닦는 사람(修道人)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선은 취하고
악은 버리며 공(共)을 관찰하여 선정에 들어가면 바로 유위(有爲)에
떨어진다 하겠다. 게다가 밖으로 치달아 구하면 더더욱 멀어질 뿐이
니 3계의 심량(心量)을 다 없애도록만 하라. 한 생각 망념이 3계 생
사의 근본이니, 일념이 없기만 하면 즉시 생사의 근본이 없어지며
부처님(法王)의 위 없는 진귀한 보배를 얻게 될 것이다.
무량겁(無量劫) 이래로 범부는 망상심, 즉 거짓과 삿됨, 아만(我慢)
과 뽐냄이 합하여 한덩어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여러 법이 모여 이 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일어날 때는 법만 일어날
뿐이며, 면할 때도 법만 멸할 뿐이다'하였다. 그러므로 이 법이 일어
날때 내(我)가 일어난다 하지 않으며, 멸할 때도 내가 멸한다 하진
않는다.
전념(前念).후념(後念).중념(中念)이 생각생각 서로 의지하지 않아
서 생각생각 고요함(寂滅)을 해인삼매(海人三昧)라고 부르는데, 그것
은 일체법을 다 포섭한다. 마치 백천 갈래 물줄
기가 함께 큰 바다로 모여들면 모두 바닷물이라 이름하는 것과도 같
다. 한 맛(一味)에 여러 맛이 녹아 있고 큰 바다에 모든 물줄기가 섞
여드니, 마치 큰 바다에서 목욕을 하면 모든 물을 다 쓰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성문은 깨달았다 미혹해지고 범부는 미혹에서 깨달는다.
성문은 성인의 마음에는 본래 수행지위.인과.계급 등 헤아리는 망상
이 없음을 모른다. 그리하여 인(因)을 닦아 과(果)를 얻고, 8만겁(八
萬劫).2만겁(二萬劫) 동안을 공정(公定)에 안주하니, 비록 깨닫긴 했
으나 깨닫고 나서는 다시 미혹한 것이다. 또한 모든 보살은 저 지옥
고통을 보면 공적함(空寂)에 빠져 불성을 보지 못한다. 상근기 중생
이라면 홀연히 선지식의 가르침을 만나 말끝에 깨닫고 다시는 계급
과 지위를 거치지 않고서 본성을 단박에 깨닫는다. 그러므로 경에서
'범부에게서는 엎치락뒤치락하는 마음이 있지만 성문에게는 그것이
없다'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미혹에 상대하여 깨달음을 설명하였지
만 본래 미혹이 없으므로 깨달음도 성립되지 않는다.
일체 중생들은 무량겁 이래로 법성삼매(法性三昧)를 벗어나지 않
고 영원히 그 가운데 있다. 그러므로 옷 입고 밥 먹으며 말하고 대
꾸하는 6근(六根)의 작용과 모든 행위가 모조리 법성이다. 그러나
근원으로 돌아갈 줄 모르고서 명상(名相)을 좇으므로 미혹한 생각
(情)이 허망하게 일어나 갖가지 업(業)을 지으니, 가령 한 생각 돌이
켜본다면(返照) 그대로가 성인의 마음이다.
여러분은 각자 자기 마음을 깨치면 될 뿐 내 말을 기억하지
말라. 설사 항하사만큼 도리를 잘 설명한다 해도 그 마음은 늘지 않
으며, 설명하지 못한다 해도 그 마음은 줄지 않는다. 또한 설명을 해
도 그대들의 마음이며, 설명하지 못해도 그대들의 마음이다. 또 몸을
나누고 빛을 놓으며 18가지 신통변화를 나타낸다 해도 나에게 불꺼
진 재를 갖다 주느니만 못하다. 장마비가 지난 뒤 꺼진 재에 불기가
없는 것은 성문이 허망하게 인을 닦아 과를 얻음에 비유할 만하며,
장마비가 아직 지나지 않아 꺼진 재에 불기운이 있는 것은 보살의
도업(道業)이 순수하게 익어 모든 악에 물들지 않음을 비유할 만하
다.
만일 여래의 방편인 삼장(三長)의 가르침을 말하자면, 쇠사슬같이
끊김이 없어 항하사겁토록 설명해도 다하지 못하게지만, 부처님의
마음을 깨닫는다면 아무 일도 없게 된다. 오랜동안 서 있었으니 이
만 몸 조심하라."
3.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도(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말라, 무엇을 물들음이라 하
는가. 생사심으로 작위와 지향이 있게 되면 모두가 물들음이다. 그
도를 당장 알려고 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도이다. 무엇이 평상심
이라고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取捨)가 없고, 단상
(斷想)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다.
경에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범부의 행동도 아니고 성현의 행동도 아닌 이것이 보살행이
다.'
지금 하는 일상생활과 인연따라 중생을 이끌어주는 이 모든 것이
도(道)이니, 도가 바로 법계(法界)이며 나아가서는 향하사만큼의 오
묘한 작용까지도 이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심지법문을 말하며, 무엇 때문에 다함 없는 법등(法燈)을 말
하였겠는가. 그르므로 일체법은 모두가 마음법이며, 일체의 명칭은
모두가 마음의 명칭이다. 만법은 모두가 마음에서 나왔으니 마음은
만법의 근본이다. 경에서도 '마음을 알아 본원(本源)이 통달하였으므
로 사문(沙文)이라한다'고 하였으니, 이 본원자리에서는 명칭도 평등
하고 의미도 평등하며 일체법이 다 평등하여 순수하여 잡스러움이
없다.
만일 교문(敎門)에서 시절따라 자유롭게 법계를 건립해 내면 모조
리 법계이고, 진여(眞如)를 세우면 모조리 진여이며,이치(理)를 세우
면 일체법이 이치이며, 현상(事)을 세우면 일체법이 현상이 된다. 하
나를 들면 모두 따라와 이사(理事)가 다름이 없이 그대로 오묘한 작
용이며, 더 이상 다른 이치가 없다. 이 모두가 마음의 움직임이다.
비유하면 달그림자에는 차이가 있으나 달 자체는 차이가 없고, 여러
갈래 물줄기는 차이가 있으나 그 물의 본성은 차이가 없는 것과 같
다. 또한 삼라만상은 차이가 있으나 허공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도
리를 설명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으나 걸림 없는 지혜는 차이가 없듯
이 갖가지로 세운 법이 모둔 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니 세워도 되고
싹 쓸어버러도 된다. 모조리 오묘한 작용이며 그대로가 자기이니. 진
(眞)을 떠나서 세울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운 그 자리
가 바로 진이며, 다 자기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
일체법이 불법이고 모든 법이 바로 해탈인데 해탈이 바로 진여이
나, 모든 법은 진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상 생활이 모
드 불가사의한 작용으로서 시절인연을 기다리지 않는다. 경에서도
'곳곳마다 부처님 계신 곳'이라 하였다.
부처님은 매우 자비로우며 지혜가 있어 선한 본성으로 일체 중생
의 얽힌 의심을 부수어 유무(有無)등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한다. 범
부다 성인이다 하는 망정이 다하고 인집.법집.(人.法)이 함께 공하여
비할 바 없는 법륜을 굴리고 모든 테두리(數量)를 벗어났다. 그리하
여 일마다 걸림이 없고, 현상.이치 양쪽 다 통하니 마치 하늘에 구름
이 일어났다가 어느덧 없어지듯 머문 자취를 남기지 않으며, 물에다
그림을 그리듯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니 이것이 대적멸(大寂滅)
이다.
번뇌 속에 있으면 "여래장(如來藏)'이라 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청
정법신(淸淨法身)'이라 이름한다. 법신은 무궁하여 그 자체는 늘고
줄음이 없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모나고 둥글기도 하면서 대상
에 따라 형체를 나타내니 물에 비친 달처럼 잔잔하게 흔들거리며 뿌
리를 내리지 않는다. 유위(有爲)를 다하지도 않고 무위(無爲)에 머물
지도 않으니 유위는 무위의 작용이며, 무위는 유위의 의지처이다. 의
지처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어디에도 의지할 것 없는 허공과 같다
'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심생멸(心生滅)과 심진여(心眞如)라는 뜻에서 보자.
심진여(心眞如)라 하는 것은 밝은 거울이 물상을 비추는 것
과도 같은데, 거울은 마음에 비유되고 물상은 모든 법에 비유된다.
여기에서 마음으로 법을 취한다면 바깥 인연에 끄달리게 되니 그
것이 샘생멸의(心生滅義)가 된다.
성문은 소리를 들음으로써 불성을 보고 보살은 눈으로 불성을 보
니 그것이 둘 아님을 아는 것을 평등한 성품이라 한다. 이 성품은
차이가 없으나 작용은 같지 않아서 미혹에 있으면 식(識)이 되고, 깨
달음에 있으면 지(智)가 되며, 이치(理)를 따르면 깨달음이 되고, 현
상(事)을 따르면 미혹이 된다. 그러나 미혹해도 자기 본심에 미혹하
는 것이며 깨달아도 자기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한번 깨달으면 영
원히 깨달아 다시는 미혹되지 않으니, 마치 해가 뜸과 동시에 어둠
은 없어지듯 밝은 지혜가 나오면 어두운 번뇌는 공존할 수 없다.
마음(心)과 경계(境)를 깨달으면 망상이 발생하지 않으며, 망상이
나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이다. 무생법인은 본
래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어서 도를 닦고 좌선할 필요가 없으니 닦을
것도 없고 좌선할 것도 없는 이것이 바로 여래의 청정선(淸淨禪)이
다.
이제 이 이치를 알았으면 진정코 모든 업을 짓지 말고 본분따라
일생을 지내도록 하라. 가사 한 벌 누더기 한 벌로 앉으나 서나 끊
임없이 계행(戒行)을 더욱 훈습하고 정업(淀業)을 더욱 쌓도록 하라.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깨닫지 못할까 무얼근심하랴. 듣느라고 수고
하였다. 몸 조심하라."
3. 감변
1.
서당 지장(西堂智藏:735-814).백장 회해(百丈懷海:749-814).남전보
원(南전 普願: 748-834)스님이 마조스님을 모시고 달구경을 하던 차
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지금같은 땐 무얼 했으면 좋겠는가?"
서당스님은 "공양하기에 딱 좋군요"하였고, 백장스님은 "수행하기
에 좋겠습니다"하였다. 남전스님이 소매를 뿌리치면서 그냥 가 버리
자, 스님이 말씀하셨다.
"경(經)은 장(藏:서당)으로 들어가고, 선(禪)은 바다(海:백장)로 돌
아가는데, 보원(普願:남전)만이 사물 밖으로 벗어났구나."
2.
남진스님이 대중에게 죽을 돌리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통 속은 무엇이냐?"
"닥치거라. 이 늙은이야! 무슨 말이냐."
스님께서는 그만 두셨다.
3.
백장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근본 뜻입니까?"
"바로 지금 그대가 선명을 놀리는 자리라네."
4.
대주 혜해(大珠慧海)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
셨다.
"어디서 오느냐?"
"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에서 옵니다."
"여기에 와서 무엇을 구하려 하느냐."
"불법을 구하려 합니다."
"자기의 보배창고(寶藏)는 살피지 않고서 집을 버리고 사방으로
치달려 무엇하려느냐. 여기 나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무슨 불법을
구하겠느냐?"
대주스님은 드디어 절하고 물었다.
"무엇이 저 혜해(慧海)의 보배창고입니까?"
"바로 지금 나에게 묻는 그것이 그대의 보배창고이다. 그것은 일
체를 다 갖추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작용이 자유 자재하니
어찌 밖에서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대주스님은 말끝에 본래 마음은 깨달음(知覺)을 말미암지 않음을
스스로 알고 뛸듯이 기뻐하며 절을 하였다.
6년을 섬긴 뒤에 돌아가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門論)」1권을
지었는데, 스님께서 보더니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월주에 큰 구슬(大珠)이 있는데 뚜렷하고 밝은 광채가 자재하게
사무쳐 막히는 곳이 없다.
5.
늑담 법회(늑潭法會)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스님께서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이리 가까이 오게."
법회스님이 앞으로 가까이 가자 한 대 후려치면서 말씀하셨다.
"셋이서는 함께 역모를 꾸미지 않는 법이라네, 내일 찾아오게."
법회스님은 다음날 다시 법당으로 들어가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우선은 돌아가고 내가 상당할 때를 기다렸다가 나오게. 그대에게
증명해 주겠네."
법회스님은 여기서 깨닫고 말하였다.
"대중의 증명에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법당을 한 바퀴 돌더니 가버렸다.
6.
늑담 유건(늑潭維建)스님이 하루는 법당 뒤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
다. 스님이 보시고는 그의 귀에 입을 대고 두 차례 훅하고 불자 유
건스님은 선정에서 일어나 스님임을 알고는 다시 선정에 들었다.
스님은 방장실로 돌아가 시자더러 차 한 그릇을 갖다주게 하였는
데, 유건스님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큰 방으로 가버렸다.
7.
석공 혜장(石鞏慧藏)스님은 출가 전에 본래 사냥을 일삼았으며 사
문을 싫어하였다. 한번은 사슴떼를 ㅉ다가 마침 스님의 암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스님이 그를 맞이하자 그는 물었다.
"스님은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지요?"
"그대는 무얼하는 사람이냐?"
"사냥꾼입니다."
"활을 쏠 줄 아는가?"
"쏠 줄 압니다."
"화살 한 발로 몇 마리를 잡는냐?"
"한 발로 한 마리를 잡습니다."
"활을 쏠 줄 모르는구나."
"스님께선 활을 쏠 줄 아십니까?"
"쏠 줄 알지."
"스님께서는 화살 한 발로 몇 마리나 잡으십니까?"
"한 발로 한 떼를 다 잡는다네."
"저놈들도 생명입니다. 무엇 때문에 한 떼나 잡겠습니까?"
"그대가 그런 줄 안다면 왜 스스로를 쏘지 않느냐?"
"저더러 스스로 쏘라 하신다면 쏘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호통을 쳤다.
"이놈! 광겁(曠劫)의 무명번뇌(無名煩惱)를 오늘 단박 쉬도록 하
라."
그는 그 자리에서 활과 화살을 꺾어버리고 스스로 칼로 머리카락
을 자르더니 스님께 출가하였다.
하루는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얼 하느냐?"
"소를 칩니다."
"어떻게 치는데?"
"한 차례 풀밭으로 들어가면 바로 콧구멍을 꿰어 끌고옵니다."
"그야말로 소를 잘 먹이는구나."
8.
한 스님이 가르침을 청하였다.
"스님께선 4구백비(四句百非)를 쓰지 말고 저에게 조사가 서쪽에
서 오신 뜻을 곧장 지적해주십시오."
"오늘은 생각 없으니 그대는 지장(智藏)에게 가서 묻도록 하라."
그리하여 지장스님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였다.
"스님께서 저더러 스님(上座)께 가서 물으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지장스님은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지더니 말하였다.
"오늘은 머리가 아프다. 그러나 회해 사형에게 가서 묻도록 하라."
그리하여 다시 회해(懷海)스님에게 가서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
였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인데."
그 스님이 이리하여 스님(마조)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
셨다.
"지장의 머리는 하얗고 회해의 머리는 검구나."
9.
마곡 보철(麻谷寶徹)스님이 하루는 스님을 따라가면서 물었다.
"무엇이 대열반입니까?"
"급하다."
"무엇이 급하다는 말입니까?"
"저 물을 보아라."
10.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752-839)스님이 처음 참례하고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바로 마음이 부처다(卽心卽佛)."
법상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는 그때부터 대매산에 머물렸다.
스님은 법상스님이 산에 머문다는 소문을 듣고는 한 스님을 시켜
찾아가 묻게 하였다.
"스님께선 마조스님을 뵙고 무엇을 얻었기에 갑자기 이 산에 머무
십니까?"
"마조스님께서 나에게 '바로 마음이 부처다'하였다네. 그래서 여기
에 머문다네."
"마조스님 법문은 요즈음 또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요즈음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라고 하십니
다."
"이 늙은이가 끝도 없이 사람을 혼돈시키는구나. 너는 네맘대로
비심비불(非心非佛)해라. 나는 오직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다."
그 스님이 돌아와 말씀드러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실(梅實)이 익었구나."
11.
분주 무업(汾州無業:780-821)스님이 스님을 참례하였다.
스님께서는 그의 훤출한 용모와 종소리같이 우렁찬 목소리를 보고
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높고 높은 법당(佛堂)이나 그 속에 부처가 없구나."
무업스님이 절하고 끓어앉아서 물었다.
"3승(三乘) 교학은 그 이론을 대략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선문
(禪門)에서는 항상 바로 마음이 부처라고 하니, 정말 모르겠습니다."
"알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지, 그밖에 다른 것은 없다네."
무업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찾아와 가만히 전수하신 심인(心印)입니
까?"
"그대는 정말 소란을 피우는군. 우선 갔다가 뒤에 찾아오게."
무업스님이 나가는 차에 스님께서 불렀다.
"여보게!"
무업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게 무엇인가?"
무업스님이 딱 깨닫고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둔한 놈아! 절은 해서 무엇하느냐."
12.
등은봉(鄧隱峯)스님이 스님을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느냐?"
"석두(石頭)스님에게 가렵니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네."
"장대나무를 짚고 가다가 장터를 만나면 한바탕 놀다 가겠습니
다."
바로 떠나 석두스님에게 도착하자마자 선상을 한 바퀴 돌더니 지
팡이로 한번 내려치고 물었다.
"무슨 소식인고."
그러자 석두스님은, "아이고, 아이고!" 하였다.
등은봉스님은 말이 막혔다. 돌아와서 말씀드렸더니 스님(마조)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다시 가서 그가 '아이고, 아이고' 하거든 '허.허(噓)'하고
두 번 소리를 내거라."
등은봉스님이 다시 가서 앞서 했던 그대로 물었더니 석두스님은
이에"허허"하고 두 번 소리를 내었다.
등은봉스님은 이번에는 말이 막혔다.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스님께
서 말하였다.
"석두로 가는 길은 미끄럽다. 하지 않았더냐."
13.
등은봉스님이 하루는 흙 나르는 수레를 미는데 스님은 다리를 쭉
펴고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스님, 다리 좀 오무리세요."
"이미 폈으니 오무릴 수 없네."
"이미 가고 있으니 물러나지 못합니다."
이리하여 수레바퀴를 굴리며 지나가다가 스님의 다리를 다치
게 했다. 스님께서는 법당으로 돌아와 도끼를 집어들고 말하였
다.
"조금전에 바퀴를 굴려 내 다리를 다치게 한 놈은 나오너라."
등은봉스님이 나와 스님 앞에 목을 쓱 빼자 스님은 도끼를 치웠
다.
14.
석구(石臼)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디서 오는가?"
"오구(烏臼)스님에게서 옵니다."
"오구는 요즈음 어떤 법문을 하던가?"
"여기서 몇 사람이나 아득해(茫然) 있습니까?"
"아득함은 우선 그만두고 간단한(초然) 한마디는 무엇이더냐?"
석구스님이 이에 세 걸음 앞으로 다가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오구를 일곱 대 때릴 일이 있는데 그대는 기꺼이 받겠는
가?"
"스님께서 먼저 맞으십시오. 그런 뒤에 기꺼이 오구스님에게 둘려
드리겠습니다.
15.
양좌주(亮座主)가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좌주는 경론(經論)을 훌륭히 강의해 낸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부끄럽습니다."
"무얼 가지고 강의하는가?"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마음(心)은 재주부라는 광대같고, 의식(意)은 광대놀이에 장단을
맞추는 자와 같다. 그것으로 어떻게 경을 알 수 있겠는가?"
양좌주는 언성을 높혔다.
"마음이 강의하지 못한다면 허공이 강의합니까?"
"오히려 허공이 강의할 수 있다."
양좌주는 수긍하지 않고 그냥 나가버렸다. 계단을 내려가려하는데
스님께서 "좌주!"하고 불렀다.
양좌주는 머리를 돌리는 순간 활연대오하고 바로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얼 하느냐."
양좌주는 절로 되돌아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논간은 남이 따를 수 없다 하였더니, 오늘에야 마조대사에
게 한 번 질문을 받고서 평생했던 공부가 얼음 녹듯 하였다."
그리고는 서산(西山)으로 들어가 다시는 종적이 없었다.
16.
홍주 수노(洪州水老)스님이 처음 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분명한 뜻입니까?"
"절 한번 하라"
수노스님이 절하자마자 스님게서 별안간 한 번 걷어찼다. 여기서
수노스님은 크게 깨닫고 일어나면서 손뼉을 치고"하하"웃으면 말하
였다.
"그것 참 신통하고나, 신통해. 백천삼매와 한량없는 묘한 이치를
털끌 하나에서 그 근원을 알아버렸도다."
그리고는 절하고 물러났다.
그 뒤 대중에게 말하였다.
"마조스님에게 한 번 채인 뒤로 지금까지 웃음이 그치질 않는구
나."
17
방거사(龐居士)가 스님께 물었다.
"만법에게 짝이 되어주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대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시면 그때 가서 말해주
겠소."
다시 방거사가 물었다.
"본래인(本來人)을 어둡게 하지 말고 스님께서는 눈을 높이 뜨십
시오."
스님께서 눈을 아래로 홀깃 하자 거사가 말하였다.
"일등가는 줄 없는 거문고를 스님만이 오묘하게 뜯는군요."
스님께서 이번에는 위로 홀깃 보자 거사는 절을 하였다.
스님께서 방장실로 돌아가자 거사는 뒤따라 돌어가면서 말하
였다.
"조금전엔 잘난 체하다가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물을 근육은 뼈도 없으나 만 섬 실은 배를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이치가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여기에는 물도 없고 배도 없는데 무슨 근육과 뼈를 말하는가."
1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즉심즉불(卽心卽佛)이라는 말을 하십니
까?"
"어린 아이의 울음을 달래려고 그러네."
"울음을 그쳤을 땐 어떻게 하시렵니까?"
"비심비불(非心非佛)이지."
"이 둘 아닌 다른 사람이 찾아오면 어떻게 지도하시렵니까?"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해 주겠다."
"그 가운데서 홀연히 누군가 찾아온다면 어찌하시렵니까?"
"무엇보다도 큰 도를 체득하게 해주겠다."
19.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바로 그대의 뜻은 어떤가?"
20.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도 도에 계합하겠습니까?"
"나는 아직 도에 계합하지 못하였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스님께서는 별안간 후려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를 후려치지 않는다면 제방에서 나를 비웃겠지."
21.
탐원산(耽源山)에 젊은 스님 하나가 있었는데 행각하고 돌아와 스
님 앞에서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그 위에다 절하고 서자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부처가 되고 싶지 않은가?"
"저는 눈을 비빌 줄 모릅니다."
"내가 졌다."
"젊은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22.
한 스님이 스님 앞에다 하나는 길게, 셋은 짧게 네 획을 긋
* 눈을 누르고 멀쩡하게 보이던 것이 겹쳐 보이는데 본심에서 망상
일으키는 것을 비유한다.
고는 말하였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4구백비(四句百非)를
떠나 대답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께서는 땅에다 금 하나를 획 긋고는 말씀하였다.
"길다 짧다 말하진 못한다. 그대에게 단변을 끝냈다."
23.
스님께서 한 스님을 시켜 경산 법흠(徑山法欽:714-792)스님에게
글을 보냈는데 그 속에는 일원상(一圓相)이 그러져 있었다.
경산스님은 뜯자마자 붓을 찾아 가운데 한 점을 찍었다.
그 뒤 어떤 스님이 혜충국사(慧忠國師: ?-775)에게 이 상황을 말
씀드렸더니, 국사는 말하였다.
"법흠스님이 오히려 마조대사에게 속았구나."
24.
한 강사(講師)가 찾아와서 물었다.
"선조에서는 어떤 법을 전수합니까?"
스님게서 되물었다.
"강사는 어떤 법을 전해 주는가?"
"외람되게도 20여본(本)의 경론을 강의합니다."
"그렇다면 사자(獅子)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스님께서"어흠!"하고 소리를 내자 강사가 말하였다.
"이것이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있자 강사가 말하였다.
"이것도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 속에 있는 법입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앉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강사는 대꾸가 없었다. 드디어 하직을 하고 문을 나오는데 스님
께서 "좌주여!"하고 불렀다. 강사가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하
셨다.
"이게 무엇인가?"
강사가 역시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는 "이 둔한 중아!"하셨다.
25.
홍주(洪州) 염사(廉使)가 물었다.
"술과 고기를 먹어야 옳습니까, 먹지 않아야 옳습니까?"
"먹는 것은 그대의 국록(國祿)이며, 먹지 않는 것은 그대의 불복
(佛福)입니다."
26.
약산 유엄(藥山惟儼:745-828)스님이 처음 석두스님을 참례한 한
자리에서 물었다.
"3승 12분교(三乘十二分校)라면 제가 대략은 압니다. 남방에 서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 한다는 소문은 늘 들었
는데 정말 알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바라오니 스님께선 자비로 가
르쳐 주십시오."
석두스님이 말하였다.
"이렇게 해도 안되고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안되며, 이렇게 하거나
이렇게 하지 않음 둘다 안된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약산스님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석두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은 여기에 있질 않으니 그만 마조스님의 처소로 가보
게."
약산스님이 명을 받들어 스님께 공손히 절을 하고는 앞에 물었던
것을 그대로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 때는 그에게 눈썹을 드날리고 눈을 깜작이게 하며, 어
느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어ㄸ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 그대는 어떠한가?"
약산스님이 말끝에 깨치고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였다.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나에게 절을 하느냐?"
"제가 석두스님 처서에서는 무쇠소 등에 달라붙은 모기와도 같았
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되었다면 잘 간직하게."
그 뒤 3년 동안 시봉을 하였는데 하루는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요사이 견처(見處)가 어떠한가?"
"껍데기는 다 벗겨지고 알맹이 하나만 남았을 뿐입니다."
"그대의 경지의 마음(心體)이 순조로와 사지(四肢)까지 편안하다
하겠다. 그렇게 되었을진대 어째서 세 가닥 대테(蔑)로 아랫배를 조
르고 아무데나 가서 주지살이를 하지 않는가?"
"제가 무어라고 감히 주지노릇한다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네. 항상 다니기만 하고 머물지 말라는 법은 없고, 항
상 다니가만 하고 다니지 말라는 법도 없다네. 이익되게 하고 싶어
도 이익될 것이 없고, 위하려 하나 위할 것도 없다네. 배(船)를 만들
어야지. 이 산에 오래 머물지 말게."
이리하여 약산스님은 스님을 하직하였다.
27.
단하 천연(丹霞天然:739-824)스님이 두번째 스님을 참례하러 왔을
때 였다. 아직 참례하기도 전에 바로 큰 방에 들어가 나한상의 목을
말타듯 타고 앉았다. 그러자 대중들이 경악하여 급히 스님께 아뢰었
다. 스님께서 몸소 큰 방으로 들어가 그를 살펴보더니 말씀하셨다.
"천진한(天然) 내 아들이로군."
단하 스님은 즉시 땅으로 내려와 절하며"대사께서 법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하였는데 이 인연으로 '천연(天然)'이라 이름하였다.
* 중국의 한 은사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뱃속이 터질까 걱정하
여 대나무테로 배를 싸고 다녔다. 여기서는 공부가 완숙된 경제를
말한다.
28.
담주 혜랑(潭州慧郞)스님이 처음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그대는 찾아와서 무엇을 구하느냐?"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구합니다."
"부처님에게는 지견이 없다. 지견은 마군일 뿐이다. 그대는 어디서
왔느냐?"
"남악(南嶽)에서 왔습니다."
"그대가 남악에서 오긴 했으나 아직 조계의 심요(心要)를 모르는
구나. 속히 그 곳으로 되돌아가야지. 다른 데로 가서는 안된다."
29.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호남에서 왔습니다."
"동정호(洞庭湖)에는 물이 가득찼더냐?"
"아닙니다."
"때맞은 비가 그렇게나 내렸는데도 아직 가득 차지 않았더냐..."
도오(道吾)스님은"가득찼다"하였고,운암(雲岩)스님은"담담하다"하
였으며,동산(洞山)은 "어느 겁(劫)엔들 모자란 적이 있었으랴"하였다.
마조록
(祖堂集)
1. 행 록
회양(懷讓)스님의 법을 이었고, 강서(江西)에서 살았다. 스님의 휘
는 도일(道一)이며, 한주(漢州) 시방현(十方懸) 사람으로 속성은 마
(馬)씨였다. 나한사(羅漢寺)에서 출가하여 회양 스님에 의해 마음의
눈을 뜬 뒤로는 남창(南昌)에서 교화를 펴셨다.
2. 시중.감변
1.
스님께서는 대중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였다.
"그대들은 지금 자신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믿어야 한다. 이 마음
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卽心是佛). 그러므로 달마(達摩)대사께서 남
천축국(南天竺國)에서 오셔서 상승(上乘)인 일심법(一心法)을 전하여
그대들을 깨닫게 하셨다. 또 자주 「능가경」에 말씀하기를 '부처님
은 마음을 근본으로 하시고 아무 방편(門)도 쓰지 않은 방편을 펴셨
다'하였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 '법을 구하는 이는 아무 구할 것이
없어야 한다.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따로 마음이
없다'하셨다.
선(善)을 취하지도 말고 악(惡)을 버리지도 말아야 하며, 더럽거나
깨끗한 쪽에 모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죄의 성품이 공함을 통달
하면 생각생각 어디에도 죄를 찾을 수가 없는데, 그것은 자기 성품
이 없기 때문이다. 3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며 삼라만산이 한 법에서
나온(印)것이다. 형상(色)을 볼 때, 그것은 모두가 마음을 보는 것인
데, 마음 스스로가 마음이라 하지 못하므로 현상을 의지해서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황따라 말하면 될 뿐, 현상(卽事)에
든 이치(卽理)에든 아무 걸릴 것이 없다.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깨
달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서 난 것은 형상(色)이라 하는데, 형상이
공함을 알기 때문에 난 것은 동시에 난 것이 아니다. 이 뜻을 체득
하면 그때그때 옷 입고 밥 먹으며 부처될 씨앗을 기르면서 그저 인
연따라 시절을 보내면 될 뿐이니, 더 이상 무슨 일이 있겠는가.
그대들은 나의 가르침을 받고 나의 게송을 들어보아라
마음 바탕을 때에 따라 말하니
보리도 역시 그러할 뿐이라네
현상에나 이치에나 모두 걸릴 것 없으니
나는 그 자리가 나지 않는 자리라네
心地隨時說 菩提亦只寧
事理俱無碍 當生卽不生
2.
홍주(洪州)태안사(太安寺)의 주지는 경과 논을 강론하는 강
사(座主)였는데 오직 스님(마조)을 비방하기만 하였다.
하룻밤은 삼경(三更)에 귀신사자(鬼使)가 와사 문을 두드리니, 주
지가 물었다.
"누구시오?"
"귀신세계의 사잔인데 주지를 데리러 왔다."
"내가 이제 예순 일곱인데 40년 동안 경론을 강하여 대중들에게
공부하게 하였느나 말다툼만 일삼고 수행은 미처 하지 못했으니, 하
루 밤 하루 낮만 말미룰 주어 수행케 해주시오."
"40년 동안 경론을 강의하기를 탐하면서도 수행을 못했다면 이제
사 다시 수행을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한창 목마른데 우물을 파는
격이니, 무슨 소용이 있으랴."
"주지가 아까 말하기를, '경론 강하기만 탐하여 대중에게 공부하게
했다' 하는데 옳지 못하다. 무슨 까닭인가? 경전에 분명히 말씀하시
기를, 스스로를 제도한 뒤에 남을 제도하고,스스로가 해탈한 뒤에 남
을 해탈케 하고, 스스로를 조복한 뒤에 남을 조복시키고, 스스로를
고요하게 한 뒤에 남을 고요하게 하고, 스스로가 편안한 뒤에 남을
편안케 하고, 스스로가 깨끗한 뒤에 남을 깨끗하게 하고, 스스로가
열반에 든 뒤에 남을 열반에 들게 하고, 스스로가 줄거운 뒤에 남을
즐겁게 하라'하셨는데 그대는 자신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지 못했
는데 어찌 남에게 도업(道業)을 이루게 할 수 있겠는가.
듣지 못했는가. 금강장(金剛藏)보살이 해탈월(解脫月)보살에게 말
하기를, '내가 바른 행을 닦은 뒤에야 남에게 바른 행을
닦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만일 스스로가 바른 행을 닦
지 못하고서 남에게 수행케 함은 옳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하였다. 그
대는 더러운 생사심으로 입을 노리고 따지기만 하여 불교를 잘못 전
하여 어리석은 중생을 속였다. 저 세계의 왕이 화가 나서 그대를 잡
아다가 그 세계의 칼숲 지옥에 잡아 넣어 혀를 끊으라 했으니, 끝내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는가.
말로서 설한 법을
작은 지혜로 망녕되게 분별하니
그러므로 장애를 일으켜서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한다.
자기 마음을 알지 못하거니
어찌 바른 도를 알리요
저 뒤바뀐 지혜 때문에
온갖 죄악을 더한다.
言詞所說法 小智妄分別
是故生障碍 不了於自心
不能了自心 云何知正道
彼由顚倒慧 增長一切惡
그런데 그대는 40년 도안 구업(口業)을 지었으니, 지옥에 들지 않
으면 어찌겠는가.
또 옛부터 경전에 분명한 글이 있다. 즉 '말로써 모든 법을 말씀하
여도 실상(實相)을 나타내지 못한다' 하였는데 그대는 망상(妄想)으
로 입을 놀려 어지러이 말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죄를 받아야 하니, 다만 자신을 탓할지언정 남을 원망치는 말라. 지
금 어서 빨리 가자. 만일 늦으면 저 왕께서 나를 꾸짖을 것이다."
그러자 둘째 사자가 말했다.
"저 왕께서 벌써 이런 사실을 아실터이니, 이 사람에게 수행케 해
준들 무방하지 않겠는가?"
첫째 사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루쯤 수행하도록 놓아 주겠소. 우리들이 돌아가서 왕
에게 사뢰어 허락해 주시면 내일 다시 오겠고, 만일 허락치 않으시
면 잠시 뒤에 다시 오겠소."
사자들이 물러간 뒤에 주지가 이 일을 생각했다.
'귀신 사자는 허락했으나 나는 하루 동안 어떤 수행을 해야하는
가.'
아무 대책도 없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겨를도 없이 개원사(開
元寺)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니, 문지기가 말했다.
"누구시오."
"태안사 주지인데 스님께 문안을 드리러 왔소."
문지지가 문을 열어주니, 주지는 곧 스님(마조)께로 가서 앞의 일
을 자세히 말씀드리고 온몸을 땅에 던져 절을 한 뒤에 말했다.
"죽음이 닥쳐왔는데 어째해야 되겠습니까? 바라옵건데 스님께서
저의 남은 목숨을 자비로써 구제해 주십시오."
스님께서는 그를 곁에 서 있게 하였다. 날이 새자 귀신사자는 태
안사로 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다시 개원사로
와서 주지를 찾았으나 차지 못했다.
이때, 스님과 주지는 사자를 보았으나 사자는 스님과 주지를 보지
못했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용화(龍華)스님에게 물었다.
"주지는 그때 어디로 갔었기에 사자가 찾지 못했습니까?"
"우두(牛頭)스님이니라."
"그렇다면 국사(國師)께서는 당시 굉장했겠습니다."
"남전(南전)스님이니라."
3.
어느날 공양 끝에 한 스님이 와서 몸가짐을 가다듬고 법당으로 올
라와 스님께 인사를 하니, 스님께서 물었다.
"지난밤엔 어디에 있었는가?"
"산 밑에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는가?"
"아직 먹지 않았습니다."
"광에 가서 밥을 찾아 먹어라."
그 스님은 대답하고 광으로 갔다. 그때 백장(百丈)스님이 전좌(典
座) 소임을 맡았었는데 선뜻 자기 몫을 나누어 주어 공양케 하니,
그는 밥을 다 먹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백장스님이 법당으로 올라가니, 스님께서 물었다.
"아까 밥을 먹지 못한 스님이 있었는데 공양 좀 주었는가?"
"예, 벌써 공양을 마쳤습니다."
"그대는 뒷날 무량한 복을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스님께선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그는 벽지불(벽支佛)의 지위에 이른 스님이기 때문이다."
"스님께서는 범인(凡人)으로서 어찌하여 벽지불의 절을 받으셨습
니까?"
"신통변화로는 그렇지만 불법 한마디 하는 데는 나만 못하다."
4.
스님께서 어느날, 선상(선상)에 올라 앉자마자 침을 뱉으니, 시자
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방금 침을 뱉으셨습니까?"
"노승이 여기에 앉으니 산하대지(山河大地)와 삼라만상(森羅萬象)
이 모두 여기에 있구나! 그게 싫어서 침을 뱉았다."
"종은 일인데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그것을 싫어하십니까?"
"너라면 좋겠지만 나는 싫다."
"이는 누구의 경지입니까?"
"보살의 경지다."
나중에 고산(鼓山)스님이 이 인연을 들어 말했다.
"옛사람은 그러하지만 여러분들은 보살의 경지도 아직 얻지 못했
다."
또 말했다.
"옛사람들은 보살까지도 싫어했다. 비록 싫어했으나 보살의
지위를 면저 중득한 뒤에 싫어한 것이라야 싫어함이 된다. 노승은
보살의 지위를 알지도 못했으니, 어떻게 그런 일을 싫어하랴."
5.
서천(西川)에 황삼랑(黃三郞)이라는 이가 있어, 두아들을 스님께
귀의케 하여 출가하도록 했다. 한 해가 남짓 지나서 다시 집으로 돌
아오니, 아버지가 두 스님을 보자마자 부처님과 똑같다는 생각을 내
어 절을 하면서 말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나를 낳은 이는 부모요 나를 완성해 주는 이
는 벗이다'라고 했는데, 두 스님은 벗이 되어 이 늙은이를 완성시켜
주시오."
두 사미가 말했다.
"아버지께서 비록 나이가 많으시나 그러한 마음이 있으시다면 무
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노인은 몹시도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거사가 두 비구를 따라 스님(마조)께 갔다. 스님들이 그
동안의 일을 자세히 하니 스님께서는 곧 법당으로 올라갔다. 황심랑
도 법당 앞으로 나아가니, 스님께서 소리쳤다.
"황삼랑이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
"서천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대는 서천에 있는가, 홍주(洪州)에
있는가?"
"가정에는 두 가장이 업고, 나라에는 두 왕이 없습니다."
"그대는 나이가 얼마나 되는가?"
"여든 다섯입니다."
"비록 그렇게 계산하나 무슨 나이인가?"
"만일 스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 보낼 뻔 했습니다. 스
님을 뵌온 뒤에는 칼로 허공을 긋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어디를 가나 진실이리라."
6.
황삼랑이 어느날, 태안사에 가서 마루 앞에서 통곡을 하니, 양(亮)
좌주가 물었다.
"무슨 일로 통곡을 합니까?"
"죄주를 위해 웁니다."
"나를 위해 울다니, 무슨 뜻입니까?"
"제가 마조스님께 귀의하여 출가해서 가르침을 받자마자 깨달았다
는 말을 들으셨을 터인데 여러분 좌주들은 공연한 이야기나 지껄여
서 무엇을 하시렵니까?"
좌주가 이 말에 발심하여 곧 개원사로 가니, 문지기가 스님께 아
뢰었다.
"태안사 양좌주가 와서 스님을 뵙고 불법을 묻고자 합니다."
이에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니, 좌주가 와서 뵈었다.
스님께서 좌주에게 물었다.
"좌주는 60권 화엄을 강의한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강의하는가?"
"마음으로 강의합니다."
"아직은 경론을 강한 줄 모른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마음(心)은 재주 부리는 광대 같고, 의식(意)은 광대놀이에 장단
맞추는 이 같다 했는데, 어찌 경론을 강의할 줄 알겠는가?"
"마음이 강의할 수 없다면 허공이 강의를 합니까?"
"오히려 허공이 강의할 수 있다."
좌주가 뜻에 맞지 않아, 당장 나가서 섬돌을 내려서려다가 크게
깨닫고 다시 돌아와 절을 하니, 스님께서 말했다.
"이 둔한 중아! 절은 해서 무엇하느냐."
양좌주가 일어나니, 등에 땀이 축축히 흘렀다. 밤낮으로 엿새동안
스님 곁을 떠나지 않고 모시다가 나중에 사뢰었다.
"이제 스님 곁을 떠나 스스로 수행할 길을 찾으려 하오니, 바라옵
건대 스님께서는 오래오래 세상에 계시어 많은 중생을 제도해 주십
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좌주가 본사로 돌아와서 대중에게 고했다.
"내 일생 동안의 공부를 앞지를 이가 아무도 없다고 여겼더니, 오
늘 마조스님 앞에서 꾸지람을 받고는 미혹한 생각(妄情)이 모두 사
라졌다."
그리고는 학인들을 모두 물리치고 홀로 서선으로 들어간 뒤에 아
무런 소식이 없었다.
양좌주가 이런 싯귀를 남겼다.
30년 동안 아귀노릇을 하다가
오늘에야 사람의 몸으로 회복했네
푸른산엔 본디 외로운 구름이 벗이었는데
동사가 다른 이를 따라 딴 사람을 섬겼네
三十年來作餓鬼 如今始得復人身
靑山自孤有雲伴 童子從他事別人
장남(장南)스님이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허공이 경을 강하면 어떤 사람들이 듣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아까부터 잠시 함께 기뻐했습니다."
"무슨 뜻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문득 도로 거두시라 했을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역시 불을 잡을 마음이 있도다."
7.
스님께서 상당하여 그저 잠자코 있으니, 백장스님이 면전에서 자
리를 걷어버렸다. 스님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8.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바로 그대가 몸과 목숨을 놓아버릴 곳이다."
"4구백배(四句百非)를 떠나 서쪽으로부터 오신 뜻을 바로 보여 주
십시오. 번거로운 말씀은 필요없습니다."
"내가 오늘은 아무 생각도 없어서 그대에게 말해 줄 수 없으니,
서당(西堂)에게 가서 묻거라."
그 스님이 서당스님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말하니, 서당스님
이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큰스님께 묻지 않았는가?"
"큰스님께서 저더러 스님께 물으라 하십니다."
이에 서당스님이 얼른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말했다.
"내가 오늘 몹시도 머리가 아파서 말해 줄 수 없으니, 해(海:百丈)
사형께 가서 묻거라."
그 스님이 백장스님에게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물으
니, 백장스님이 말했다.
"나는 그 경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그 스님이 다시 와서 아뢰니, 마조스님께서 말했다.
"장(藏:서당)의 머리는 희고,해(海)의 머리는 검도다."
9.
스님께서 인편에 선경산(先徑山) 도흠(道欽)스님에게 글을 보냈는
데, 그 속에는 원상(圓相)만이 그려져 있었다. 경산스님이 이를 보자
마자 붓을 들어 원상 안에다 한 획을 보탰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혜충(慧忠)국사께 전하니, 국사께서 말했다.
"흠(欽)대사가 또 마(馬)대사에게 속아넘어갔구나."
10.
어떤 사람이 스님의 앞에다 하나는 길게, 셋은 짧게 네 획을 긋고
는 말하였다.
"하나는 길고 셋은 짧다고 해서는 안됩니다. 이 네 귀절을 떠나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이에 스님께서 한 획을 그으면서 말했다.
"길다고도 말할 수 없고, 짧다고도 말할 수 ㅇ으니, 그대에게 대답
해 마쳤노라."
혜충국사께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다르게 대답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았던가?"
11.
한 좌주가 스님께 물었다.
"선종에서는 어떤 법을 전수합니까?"
스님께서 되물었다.
"좌주는 어떤 법을 전해 주는가?"
"40권 경론을 강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사자(獅子)가 아닌가."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스님께서 '어흠!'하고 소리를 지르니, 좌주가 말했다.
"이것이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있으니, 좌주가 또 말했다.
"이것도 법이군요."
"무슨 법인가?"
"사자가 굴 속에 있는 법입니다."
스님께서 따져 물었다.
"나오지도 않고 들어앉지도 않는 것은 무슨 법인가?"
좌주가 대답을 못하고 하직하고서 문을 나오는데 스님께서 불렀
다.
"좌주여!"
"예."
"이게 무엇인가?"
좌주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이 둔한 중아!"하셨다.
이에 대하여 뒤에 백장스님은 대신 말했다.
"보았는가?"
12.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화남(화南)에서 왔습니다."
"동호(東湖)에는 물이 가득찼던가?"
"아닙니다."
"때맞은 비가 그렇게나 내렸는데도 아직 가득차지 않았더냐?"
이에 도오(道吾)스님이 말했다.
"그득히 찼습니다."
운암(雲岩)스님이 말했다.
"잔잔하였습니다."
동산(洞山)스님이 말했다.
"어느 겁(劫)엔들 줄을 적이 있었습니까?"
13.
스님께서 다음날 입멸하시려는데 그날 저녁에 원주(院主)가 물었
다.
"스님께서는 4대가 평안치 못하셨는데 요즘은 어떠십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일면불 월면불(日面佛月面佛)이니라."
14.
분주(汾州)스님이 좌주로 있을 때 42권 경론을 강하고 스님께 와
서 물었다.
"3승 12분교는 제가 대략 그 뜻을 압니다만 선가(宗門)의 뜻은 무
엇인지요?"
스님께서 좌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좌우에 사람이 많으니, 일단 가거라."
분주스님이 자리를 떠서 문을 나오는데 발이 문턱에 걸치자 마자
스님께서 "좌주야"하고 부르니, 분주스님이 돌아보면서 "예"하고 대
답했다.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가?"
분주스님은 당장에 깨닫고는 절하고 일어나면서 말했다.
"제가 42권 경론을 강하면서 아무도 나를 능가할 이가 없다고 여
겼었는데, 오늘 스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헛 보낼 뻔 하였
습니다."
15.
스님께서 백장(百丈)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법으로 사람을 지도하는가?"
백장스님이 불자를 세워 대답하니, 스님께서 다시 물었다.
"다만 그것뿐인가, 아니면 따로 있는가?"
백장스님이 주장자를 던졌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석문(石門)스님에게 물었다.
"한 마디 말로 마대사의 두 뜻을 점칠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십
시오."
석문이 불자를 둘어 일으키면서 말했다.
"평상시대로 하는 것도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다."
3. 천 화
스님 밑에서 친히 법을 이어받은 제자 중에 88명이 세상에 알려졌
고, 숨어서 지낸 이는 구 수효를 알 수 없었다.
스님 성품은 인자하고 모습은 준수하였으며, 발바닥에는 두개의
고리 무뉘가 있고, 머리에는 가마가 셋이 있었다. 설법하며 세상에
머무르기 40여 년 동안에 도를 닦는 무리가 천 명이었다.
스님께서 정원(貞元) 4년, 무진(戊辰) 2월1일에 입적하니, 탑은 늑
담(늑潭)의 보봉산(寶峯山)에 있다. 칙명으로 대적선사 대장엄지탐
(大寂禪師大藏嚴之塔)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배상(裵相)이 액(額)을 썼고, 좌승상(左丞相) 호득흥(護得興)이 비
문을 지었다.
정수(淨修)선사가 송했다.
마조 도일(馬祖道一)선사는
돌처럼 쇠처럼 완전하게 수행하여
근본을 깨달아 초탈했으니
곁가지를 찾으면 헛수고만 할 뿐이다.
오래 정을 닦던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내던져버리고
남창(南昌)에서 크게 교화를 펴시니
싸늘한 소나무가 천척(千尺)이로다.
馬師道一 行全金石
悟本超然 尋枝勞役
久定身心 一時抛擲
大化南昌 寒松天尺
백장록
(四家語錄)
■ 일러두기
1. 백장어록 본문의 편집체지는 사가어록 임제어록을 기준으로 하여
행록·상당·감변·천화등으로 구분하였다.
2. 백장광록은 사가어록과 고존숙어록,속장경에 각각 체지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 책에서는 사가어록의 체제에 따라 일련번호를
달았다.
3. 사가어록과 조당집의 백장록은 그 구성과 내용상 서로간에 누락
된 부분과 상이한 점이 있어 함께 실었다.
4. 스님들의 생몰연대는 「선학대사전(禪學大辭典)」(大修館書店,197
9)과 「중국불학인명사전(中國佛學人名辭典)」(明復編,方便出版
社)를 참고 하였다.
5. 부록으로는 경안무자(慶安戊子)의 화각본(和刻本)의 사가어록과
해인사 소장본「조당집(祖堂集)」에 있는 백장록을 실었다.
백장어록
(百丈語錄]
1. 행록
1.
스님의 휘(諱)는 회해(懷海:749-814)이며, 복주(福州) 장락(長樂)사
람이다. 성은 왕씨(王氏)로 어린 나이네 세속을 떠나 삼학(三學)을
두루 닦았다. 그때 대적(大寂:709-788, 馬祖스님의 호)스님이 강서(江
西)에서 널리 교화를 펴고 있었으므로 찾아가 마음을 쏟아 의지하였
는데, 서당 지장(西堂智藏:735-814)·남전 보원(南전普願:748-834)스
님과 함께 나란히 깨친 분이라고 이름났었다. 그리하여 당시 세 분
의 대사가 우뚝 서게 된것이다.
스님이 마조(馬祖)스님을 모시고 가다가 날아가는 들오리떼를 보
았는데, 마조스님께서 물으셨다.
"저게 무엇인가?"
"들오리입니다."
"어디로 갈까?"
"날아갔습니다."
마조스님께서 갑자기 머리를 돌려 스님의 코를 한번 비틀자 아픔
을 참느라고 소리를 내질렀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날아갔다고 말해보라."
스님께서는 그 말끝에 느낀 바가 있었다.
시자들의 거처인 요사채로 돌아와 대성통곡을 하니 함께 일하는
시자 하나가 물었다.
"부모 생각 때문인가?"
"아니."
"누구에게 욕이라도 들었는가?"
"아니"
"그렇다면 왜 우는가?"
"마조스님께 코를 비틀렸으나 철저하게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이
다."
"무슨 이유로 깨닫지 못하였는가?"
"스님께 직접 물어보게."
그리하여 그 시자가 마조스님께 물었다.
"회해시자는 무슨 이유로 깨닫지 못했습니까? 요사채에서 통곡을
하면서 스님께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가 알테니 그에게 묻도록 하라."
그 시자가 요사채로 되돌아와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그대가 알 것이라 하시며, 나더러 그대에게 물으라
하셨네."
스님(백장)이 여기에서 깔깔 웃자, 그 시자가 말하였다.
"조금 전에 통곡하더니 무엇 때문에 금방 웃는가?"
"조금 전에 울었지만 지금은 웃네."
그 시자는 그저 멍할 뿐이었다.
2.
다음날, 마조스님께서 법당에 올라왔다. 대중이 모이자마자 스님께
서 나와서 법석(法席)을 말아버렸더니 마조스님은 바로 법좌에서 내
려왔다. 스님께서 방장실로 따라가자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전에 말도 꺼내지 않았었는데 무엇 때문에 별안간 자
리를 말아버렸느냐?"
"어제 스님께 크를 비틀려 아파서였습니다."
"그대는 어제 어느 곳에 마음을 두었느냐?"
"코가 오늘은 더이상 아프질 않습니다."
"그대는 어제 일을 깊이 밝혔구나."
스님께서는 절하고 물러났다.
다른본(本)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어제는 우연히 외출하게 되어 미처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마조스님이 '악!' 하고 고함을 치자 스님께서는 바로 나가 버렸다.
3.
스님께서 다시 참례하면서 모시고 서 있는 차에 마조스님은 법상
모서리의 불자(拂子)를 보고 있었으므로 스님께서 물었다.
"이 불자를 통해서(卽) 작용합니까, 아니면 이를 떠나(離) 작용합
니까?"
마조스님이 말씀하였다.
"그대가 뒷날 설법을 하게 된다면 무엇을 가지고 대중을 위하겠느
냐?"
스님께서 불자를 잡아 세웠더니 마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통해서(卽) 작용하느냐, 이를 떠나서 작용하느냐?"
스님께서 불자를 제자리에 걸어 두자 마조스님께서는 기세 있게
악! 하고 고함을 쳤는데 스님께서는 곧장 사흘을 귀가 막었다.
이로부터 우뢰같은 명성이 진동하였다. 신도들이 청하여 홍주(洪
州)의 신오(新吳) 국경지대인 대웅산(大雄山)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
거처하는 바위와 묏부리가 깎아지른 듯 높았기 때문에 스님을 백장
(百丈)이라 부르게 되었다.
여기에 머문 지 한 달이 뭇되어 현묘한 이치를 참구하는 남자들이
사방에서 찾아왔는데, 당시 위산 영우(위山靈우:771-853)스님과 황벽
희운(黃蘗希運)스님이 으뜸이었다.
4.
황벽스님이 스님의 처소에 와서 있다가 하루는 하직을 하면
서 말였다.
"마조스님을 친견하고 싶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어떤 법문을 남기셨는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리하여 마조스님께서 두번째 참례했을 때 불자를 세웠던 이야기
를 해주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불법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때 내가 마조스님의 고함(喝)을 듣고
나서 그 뒤로 사흘을 귀가 먹었다."
황벽스님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혀를 내밀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자네는 이제부터 마조스님의 법을 잇지 않으려는가?"
"아닙니다. 오늘 스님의 법문으로 마조스님의 큰 기틀(大機)에서
나온 작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마조스님을 모릅니다. 만
일 마조스님을 잇는다면 앞으로 나의 법손을 잃을것입니다."
"그래, 그렇지. 견처(見處)가 스승과 같으면 도는 반쯤밖에 안되고,
견처가 스승을 능가해야만 전수를 감당할 수 만하다. 그대는 스승을
훨씬 넘어설 만한 견처가 있군."
그 뒤에 위산스님이 앙산 혜적(仰山慧寂:803-887)스님에게 물었다.
"백장스님이 마조스님을 두번째 참례하고 불자를 세웠던 인연에서
두 분의 경지가 어떠하였겠는가?"
"큰 기틀(大機)의 작용을 환하게 나타낸 것입니다."
"마조스님은 84명의 선지식을 배출하였는데, 몇 사람이 큰 기틀
(大機)을 얻고 몇 사람이 큰 작용(大用)을 얻었겠는가?"
"백장스님은 기틀을 얻었고, 황벽스님은 그 작용을 얻었습니다. 그
나머지는 모두가 말로 떠드는 무리(唱道師)일 뿐입니다."
"그래, 그렇지."
5.
마조스님이 하루는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산 뒤에서 옵니다."
"한 사람을 만났는가?"
"만나지 못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만나질 못했는가?"
"만났더라면 스님께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어디서 이런 소식을 얻었는가?"
스님께서"저의 잘못입니다"하자, 마조스님은 말씀하셨다.
"아니 내 잘못일세."
2. 상당
1.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신령한 광채 호젓이 밝아
육근·육잔을 아득히 벗어났고
영원한 진상 그대로 드러나
문자에 매이지 않도다
심성(心性)은 물듬이 없어
그 자체 본래 완전하나니
허망한 인연 여의기만 한다면
그대로가 여여(如如)한 부처라네.
靈光獨耀 脫逈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2.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신통한 일입니까?"
"대웅산(大雄山)에 홀로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스님이 절을 하자, 스님께서는 그대로 후려쳤다.
3.
서당(西堂)스님이 스님께 물었다.
"스님은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법을 열어보이겠습니까?"
스님이 손을 두 번 오무렸다 펴자, 서당스님이 말하였다.
"다시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님은 손을 세 번 끄덕끄덕하였다.
4.
마조스님이 사람을 시켜 편지와 장(醬) 세 항아리를 보내왔다. 스
님께서는 법당 앞에 죽 놓으라 하고는 상당하더니 대중이 모이자마
자 주장자로 장항아리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바로 말을 한다면 부수지 않겠지만 못하면 부수겠다."
아무리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깨버리고 방장실로
돌아갔다.
5.
어떤 스님이 통곡을 하며 법당으로 들어가자 스님께서 물었다.
"무슨 일인가?"
"부모를 함께 잃었습니다. 스님께서 날을 잡아 주십시오."
"내일 한꺼번에 묻어버리자."
6.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을 의지하여 의미를 이해하면 삼세 모든 부처님의 원수가 되
며, 경전을 떠난 한 글자는 마군의 말과 같다 하니 이럴땐 어찌합니
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동정(動靜)을 굳게 지키면 삼세 부처의 원수가 되며, 그렇다고 이
밖에서 따로 구하면 마군의 말이 된다."
7.
어느 땐가는 설법이 끝나 대중들이 법당에서 내려가는 차에 스님
께서 그들을 불렀다. 대중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 무엇인고!"
8.
스님께서 대중운력으로 밭을 개간하고 돌아오는 길에 희운 (希
運: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밭 개간이 쉽질 않지?"
"대중들이 다 일을 했습니다."
"도용(道用)만 번거롭게 하였군."
"어찌 감히 일을 그만두겠습니까?"
"얼마나 개간 하였는가?"
황벽스님이 밭을 매는 시늉을 하는데 스님께서 별안간 할(喝)하고
고함을 치자 황벽스님이 귀를 막고 나가버렸다.
9.
스님께서 황벽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 아래서 버섯을 따옵니다."
"산 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있다는데 너도 보앗느냐?"
황벽스님이 호랑이 소리를 내자 스님께서는 허리춤에서 도끼 를
집어들고 찍을 기세였다. 황벽스님은 스님을 잡아 세우면서 얼른 따
귀를 후리쳤다.
스님께서는 느즈막하게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대중들아, 산 아래 호랑이 한 마리가 있으니 그대들은 드나들면
서 잘 살펴다녀라. 노승도 오늘 아침 한 입 물렸다."
그 뒤 위산스님이 앙산스님에게 물었다.
"황벽스님의 호랑이 화두를 어떻게 보십니까?"
"스님께서는 어떻게 보십ㄴ?"
"그때 백장스님이 도끼 한 방에 찍어 죽였어야 했는데 무엇 때문
에 이 지졍에 이르렀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는 그러면 어떻게 보는가?"
호랑이 머리에 탔을 뿐마 아니라 호랑이 꼬리도 붙들 줄 알앗습니
다."
"혜적(慧寂:앙산)아, 무슨 말을 그리 험하게 하는고."
10.
스님께서 상당할 때마다 늘 한 노인이 항상 법을 들고 대중과 함
께 흩어져 가다가 하루는 가지 않으므로 스님께서 물었다.
"서 있는 사람은 무엇하는 사람인가?"
노인은 말하였다.
"저는 과거 가섭불 (迦葉佛) 때 이 산에 살았습니다. 그때 한학인
이 묻기를, 수행을 많이 한 사람도 인과에 덜어집니까' 하기에 '인과
에 떨어지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여 여우몸을 받았습니다. 지금 스님
께서 대신 이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를 해 주십시오."
"그럼 질문해 보게"
"많이 수행할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
노인은 말끝에 크게 깨닫고 스님께 하직을 고하면서 말하였다.
"제가 이제는 여우몸을 벗고 산 뒤에 있을 것입니다. 불법대로 화
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유나(維那)에게 종(白槌)을 쳐서 대중에게 점심뒤에
대중울력으로 죽은 스님을 장사지내겠다고 알리게 하였더
니, 대중들은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스님께서는 대중을 거느리고 산
뒤 바위 아래로 가서 죽은 여우 한 마리를 지팡이로 휘저어 꺼내더
니 법도대로 화장하였다.
만참(晩參)법문 때 스님께서 앞의 인연을 거론했더니, 황벽스님이
대뜸 물었다.
"옛사람은 깨닫게 해주는 한 마디 (一轉語)를 잘못 대꾸하였기 때
문에 여우몸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오늘 한 마디 한 마디 어긋나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가까이 오게 . 그대에게 말해주겠네."
황벽스님이 앞으로 다가가 스님의 따귀를 한 대 치자 스님께서는
박수를 치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오랑캐의 수염이 붉다 하려 하였더니 여기도 붉은 수염 난 오랑캐
가 있었구나."
그때 위산스님은 회상에서 전좌 (典座:대중의 臥具나 음식 등 살
림을 맡음) 일을 보았는데 사마두타(司馬頭陀)가 여우 이야기(野狐
話頭)를 들어 질문하였다.
"전좌는 어떻게 하겠소?.
전좌가 손으로 문짝을 세 번 흔들자 사마가 말하였다.
"꽤나 엉성한 사람이군."
전좌가 말하였다.
"불법응 이런 도리가 아니라네."
그 뒤애 위산스님은 황벽스님이 물었던 여우 이야기를 들어 앙산
스님에게 물었더니,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황벽스님은 항상 이 솜씨(機)를 쓰십니다."
"말해보아라.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솜씨를 얻었는지, 스승에게서
배웠는지를."
"이는 스승에게서 이어받은 것이기도 하고 스스로 종지를 깨달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그렇지."
11.
황벽스님이 물었다.
"옛스님들은 어떤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까?"
스님께서 한참 말이 없자 황벽스님이 다시 물었다.
"뒷날 법손들은 무얼 가지고 법을 전해야 하겠습니까?"
스님께서는 "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여겼더니......."하시고는
방장실로 돌아갔다.
12.
스님께서 위산스님과 함께 일을 하다가 물었다.
"불이 있느냐?"
"있습니다?"
"어디 있느냐?"
위산스님이 땔감 한 토막을 가지고 입으로 훅 불어 스님께 건네주
었더니 받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별레먹은 나무 같구나."
13.
대중운력으로 김을 매는데 한 스님이 북소리를 듣더니 호미를 들
고 일어나면서 깔깔 웃고 돌아가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말 좋구나. 이것이 관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가신 방편이다."
뒤에 그 스님을 불러서 물었다.
"그대는 오늘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저는 이른 아침에 죽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북소리를 듣고
돌아가 밥을 먹었습니다."
스님께서는 깔깔거리면서 크게 웃었다.
14.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누군가?"
"저 아무개입니다."
"그대는 나를 아는가?'
"분명히 압니다."
스님게서는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물었다.
"불자를 보느냐?"
"봅니다."
스님께서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15.
스님께서 한 스님더러 "장경(章敬)스님 처소로 가서 그가 상당 설
법하는 것을 보거든 너는 바로 좌구(坐具)를 펴고 절하라. 그리고 일
어나면서 한쪽 신을 벗어들고 그 위의 먼지를 소매로 털어 거꾸로
엎도록 하라" 하였다.
그 스님이 장결스님에게 가서 일러준대로 하였더니 장결스님은 말
하였다.
"저의 허물입니다."
16.
위산.오봉(五峯) . 운암 (雲巖)스님이 모시고 서 있는데 스님 (백
장)께서 위산스님에게 물었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서 속히 말해보라."
위산스님이 말했다.
"저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에게 말해주는 것은 사양치 않겠다만 뒷날 나의 법손을 잃을
까 염려스럽구나."
다시 오봉스님에게 물었더니, 오봉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도 닫으셔야만 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머리를 갈아 그대에게 보여 주겠다."
다시 운암스님에게 물었더니,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거론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목구멍과 입술을 닫고 얼른 말해보게."
운암스님이 "대사께서도 지금(목구멍과 입술) 있지 않습니까?" 하
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손을 잃었군."
17.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한 사람 가서 서당 (西堂)스님에게 말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누가 가겠느냐?"
오봉스님이 말하였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려느냐?"
"서당스님을 뵙고 나서 곧 말하겠습니다."
"본 뒤에는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돌아와서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18.
한 스님이 서당스님에게 물었다.
"질문이 있으면 답변이 있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질문도 없고
답변도 없을 땐 어찌합니까?"
그러자 서당스님이 말하였다.
"썩을까 두려우냐?"
스님께서는 이 소문을 듣고 말씀하셨다.
"원래 이 사형을 의심했었지."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일합상(一合相)도 얻지 못한다."
1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한 사람은 오래도록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부르다 하지 않는
다."
대중은 대꾸가 없었다.
20.
운암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매일 구구하게 누구를 위하십니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가 스스로 하도록 하지 않으십니까?"
"그에겐 자기 살림이 없다."
21.
스님께서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
더니 불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미께 물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부처님이시다"하자,어린이가 말하였다.
"모습은 사람과 닮아 차이가 없군요. 저도 이 다음에 이렇게 되도
록 하겠습니다. "
3. 천화
스님께서는 언제나 수고로운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대중들 보다
솔선하였다. 대중들이 모두가 민망하여 도구를 일찍 감추고 그만두
시라고 청하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게 덕이 없어서 그러니 다른 사람을 수고롭게 해서야 되겠느
냐."
스님께서는 이리저리 연장을 찾다가 찾질 못하면 밥을 굶으셨다.
이런 연유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밥 먹지말라"는 말씀이 세상
에 퍼지게 된 것이다.
스님께서 당나라 원화(元和) 9년 (814)정월 17일에 시적 (示寂)하
시니 춘추는 95세였다.
장경 (長慶) 원년(821)에 칙명으로 시호를 대지선서(大智禪師)라고
하엿으며, 탑은 대승보륜 (大勝寶輪)이라 이름하였다.
백장광록
(百丈廣錄)
백정광록 (百丈廣錄)
1.
말로는 불법과 세속을 가려야 하고, 총론과 각론을 나누어야 하며,
궁극적인 교설(了義敎語)인지 방편교설(不了義敎語)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궁극적인 교설로는 맑음을 논하고 방편교설로는 탁함을 논
하며,염법(染法) 쪽의 허물을 설명하여 범부를 가려내고, 정법(淨法)
쪽의 허물을 설명하여 서인을 가려내야하니, 이것은 9부교(九部敎:교
학의 총칭)에 입각해서 설명하는 것이다.
목전의 눈 먼 중생에게는 선지식의 지도를 받게 해 주어야 하며,
귀머거리 속인 앞에서 말할 경우에는 직접 그를 출가시켜 계율을 지
키고 선정을 닦으며 지혜를 배우게 해 주면 된다.
한편 테두리를 벗어난 범부에게는 그런 식으로 지도해 서는 안되
니 유마힐 (維摩詰)이나 부대사(傅大士) 같은 부류가 여기에 해당한
다.
백사갈마(白四갈磨)를 받은 사문 앞에서 말할 경우, 그들은 계·정·
혜(戒定慧)의 힘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으니, 다시 그런 식으로 설명
한다면 그것을 맞지 않는 말(非時語)이라 할 것이며, 맞지 않는 설명
이르모 꾸며서 하는 말(綺語)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문에게라면
청정한 법 쪽의 허물을 설명해야 한다. 즉 있다 없다(有無)하는 등의
법을 여의고, 닦고 중득하는(修證) 모두를 떠나며, 그것을 떠났다는
것조차 떠날 것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물든 습기(習氣)를 깎아 없
애려는 사문도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없애버리지 못했다면 역시 귀
머거리도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없애버리지 못했다면 역시 귀머거리
속인이라 할 것이니, 그에게도 선정을 닦을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한
다.
이승(二承)의 경우는 탐욕과 성내는 병통을 다 쉬어 버렸으나 탐
내는 마음이 없어진 경계에 눌러앉아 옳다고 여기나 이는 무색계(無
色界)이다. 그러나 이것은 부처님의 광명을 가리고 부처님 몸에 피
를 내는 것이므로 그에게도 선정을 닦고 지혜를 배우게 해야 하며,
깨끗하고 더러움을 구별해 주어야 한다. 더러운 법이란 탐욕·성냄.
·애착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우며, 깨끗한 법이란 보리·열반·해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운다·
여기에서 비추어 깨달으면(鑑覺) 깨끗하고 더러운 양쪽 갈래와 범
부다 성인이다 하는 법과 색·소리·냄새·맛·촉감·생각과 세간·
출세간법에·털끝만큼의 애착(愛取)도 전혀 없게 된다. 이미 애착하
지 않게 되고 나서는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아 옳다고 여기는데 그
것을 처음선(初善)이라 한다. 이것은 조복된 마음(調伏心)에 안주하
는 것이며 뗏목이 아까와 버리지
못하는 성문으로서 이승(二乘)의 도이며, 선나과(禪那果)이다.
애착하지도 않고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앉지도 않으면 이를 중간선
(中善)이라 한다. 이는 반자교(半子敎)로서 아직은 무색계(無色界)이
나 이승과 마군의 도에 떨어짐은 면하였으나, 선병(禪炳)과 보살의
속박이 있다.
애착하지 않음에 눌러 앉지도 않고 눌러앉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은 마지막선(後善)이라 한다. 이는 마자교(滿字
敎)로서 무색계에 떨어짐을 면하고, 선울 닦는 병통에 떨어짐을 면
하며, 보살승에 떨어짐을 면하고, 마왕의 지위에 떨어짐을 면한다.
그러나 지혜(智)에 막히고 지위(地)에 막히고 행(行)에 막혀 자기 불
성(佛性)을 보는 데에는 마치 밤에 무엇인가를 보는 것과 같다.
불지(佛地)에서 두 가지 어리석음(二愚)을 끊는다 하는 경우는 첫
째 미세소지우(微細所知愚), 둘째 극미세소지우(極微細所知愚)이다.
그러므로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미진(微塵)을 타파하여 경전(經卷)
을 벗어났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가령 이 3구(三句:세가지 善)를 꿰뚫어 세 단계에 매이지 않는다
면 교학(敎家)에서는 그것을 세 번 뛰어 그물을 벗어난 사슴에 비유
하며 번뇌를 벗어난 부처라고 하는데 그를 구속할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연등불(然燈佛)의 뒷 부처님이 속하며, 최상승(最上乘), 상상
지(上上智)로서 불도 위에 선 것이다. 이 사람은 불성을 가졌으며 스
승(導師)으로서 막힘없는 바람과 막힘없는 지혜를 구사한다. 뒤에
가서는 인과와 복덕·지혜를 자재하게 굴
리니, 수레를 만들어 인과를 실어 다르며 삶에 처하여도 삶에 매이
지 않고 죽음에 처하여도 죽음에 매이지 않으며, 5음(五陰)에 처하여
도 문이 여닫히듯 5음에 매이지 않아, 가고 머뭄에 자유롭고 드나듬
에 어려움이 없다.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지위와 우열을 논할 것이 없으며 개미 몸
을 받아서까지도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모두 불가사의한 정토일 것
이다.
그렇다 해도 이는 속박을 풀어주는 말일 뿐이니 저들 스스로에게
부스럼이 없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부처다 보살이다 하는 것도 부스럼이니, 있다 없다는 식으로 법을
설명했다 하면 모조리 긁어 부스럼이 되는 것이다. 일체법은 모두
유·무(有無)에 포함되는데, 10지보살(十地菩薩)은 탁류(濁流)가 되
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청류(淸流)가 된다. 맑은 모습은 곱게 설
명하지만 그것은 흐린 쪽의 허물만 말하는 것이 된다.
지난날 10대제자(十大弟子) 사리불(舍利弗)·부루나(富樓那)와 바
른 믿음을 가진 아난(阿難)·삿된 믿음을 가진 선성(善星) 등은 저
마다 본보기나 법칙이 있었는데, 모두들 부처님에게 설파당했던 것
이다. 그들은 팔만겁을 선정에 머무는 사선팔정(四禪八定)의 아라한
은 아니었으나 행할 바를 의지하고 집착하여 정법(淨法)이라는 술에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성문인(聲聞人)의 불법을 들으면 위 없는 도를 행할 마
음을 내지 못하고 그래서 선근(善根)을 끊은 불성 없는 사람이라 하
는 것이며, 경정(敎)에서는 이를"해탈이라는 깊은
구덩이는 두려워할 만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한 생각 마음이 물러나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쏜살같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물러난다고만 할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일방 적으로 물
러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없다. 문수.관음.세지 등이 수다원(須陀洹)
지위로 되돌아와 같은 부류가 되어 이끌어 주는 경우를 물러났다 할
수는 없으니, 그런 상황을 수다원이라 부를 뿐이다.
비추어 깨달아(鑑覺) 유.무 모든 법에 매이지 않고 3구(三句)와 맞
고 안맞는 모든 경계를 꿰뚫으면 백천만억의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
하였다는 소문을 듣는다 해도 듣지 못한 긋하고, 그 듣지 않는다는
것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 이런 사람을
두고 물러났다 한다면 잘못 생각하는 것이이다. 그들은 어디에도
매어 둘 수 없는데 이를 "부처님은 늘 세간에 계시면서도 세간법에
물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부처님이 법륜 (法輪)을 굴리느라
물러난다고 해도 불.법.승 (佛法僧)을 비방하는 것이며 ,부처님이 법
륜을 굴리지 않아 물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역시 불.법.승을 비방하는
것이다.
조법사(肇法師)가 말씀하시기를 , "보리의 도는 재볼 수 없음이 위
없이 높고 끝없이 드넓으며 끝없이 깊숙하여 헤아릴 수 없다. 그러
나 말을 하면 살받이가 되어 화살을 부르는 꼴이다" 라고 하엿다.
비추어 깨닫는다(鑑覺) 할 때, 그것은 더러움에 대한 깨끗함을 말
하는 것은 아니니 비추어 깨닫는 것이 그런 것이라 인정 한다면 비
추어 깨닫는 것 바깥에 따로 무엇이 있어 모조리 마
군의 말이 된다. 여기서 말하는 비추어 깨닫는다는 것을 붙들고 머
문다면 그것은 마군의 말과 같으며, 자연외도 (自然外道) 의 말이라
고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추어 깨닫는다는 것이 자기 부처라
해도 그것은 짧은 말이며 헤아리는 말이니 여우 울음소리와도 같아
서 오히려 끈끈하게 달라붙는 집착 쪽에 속한다.
스스로 알고 절로 깨닫는 이것이 자기 부처인 줄 전혀 알지 못하
고, 밖으로 치달려 부처를 ㅊ는다. 선지식의 설법을 의지하여 스스
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 나오게 하는 약을 지어 밖으로 치달려
구하는 병을 치료한다. 이윽고 밖으로 치달려 구하지 않게 되면
병이 나았으니 약은 버려야 한다.
스스로 알고 스스로 깨닫는 데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선병(禪病)이
며, 영락없는 성문이다. 마치 물이 얼음이 되면 얼음 자체가 물이
긴 하나 목마름을 풀어주기 어려운 것과도 같으며, 또는 꼼짝없이
죽을 병이라 하기도 하니 세상 의원들도 속수무책일 뿐이어서 원래
이들은 부처가 아니다.
부처라는 생각을 내지 말아야 한다. 부처란 중생 편에서 쓴 약이
니 병이 없으면 먹을 필요가 없다. 약과 병이 함께 없으지면 맑은
물과 같다. 부처란 감초를 넣은 물이나 꿀물과도 같아 매우 달콤한
것이나 맑은 물 쪽에서 보면 원래 없다거나 있다거나를 집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이 이치는 누구나 본래 가진 것이며, 모든 부처와
보살은 구슬(珠)을 보여주는 사람이라고도 하는데,그것은 원래 어떤
물건이 아니므로 그것을 알 필요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으며, 그
것이 옳다 그르다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상대적인 개념 (兩頭可)을 끊기만 하면 된다. 있다느니 있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끊고, 없다느니 없지 않다느니 하는 말을 끊으
면 양쪽의 자취가 나타나지 않아 양쪽에서 그대를 잡아당겨도 끌리
지 않으며, 어떠한 테두리(量數)도 그대를 얽어 매지 못한다 . 그
리하여 부족하거나 완전하지도 않고 범부도 성인도 아니며 밝음도
어두움도 아니다. 앎이 있음도 앎이 없음도 아니고, 얽매임도 해탈
도 아니어서 어떠한 이름도 붙일 수 없다. 어째서 실다은 말이 아
닌가. 허공을 다듬어 불상을 만든다든가 허공을 청.황.적.백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법은 무엇으로도 견줄 수 없고 비유할 수도 없으므로, 법
신은 함이 없어 어떠한 테두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法身無爲不墮諸
數)"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의 몸은 이름이 없어 설명할 수 없
으며,실다운 이치인 공문(空門)에는 닿기 어렵다. 마치 어디든지 앉
을 수 있는 파리도 불꽃 위에는 앉지 못하듯 중생도 그러하여 어디
든 반연할 수 있으나 반야(般若)에는 반연하지 못한다.
선지식을 ㅊ아뵙고 하나 하나 알기를 (知解)구한다면 그것은 선지
식 마군이니, 말과 견해를 내기 때문이다.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내어 일체중생을 다 제도한 뒤에야 성불하겠다도 발원 하면 이는 보
살법지(法智)의 마군이니,서원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재계(齋戒)
를 지키고 선(禪)을 닦으며 지혜(慧)를 배우는 것은 유루선근(有漏
善根)이다. 그들은 비록 도량에 앉아성불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항
하사수 모래알만큼의 사람을 제도 한다 해도 모두 벽지불과(壁支佛
果)를 얻을 뿐이니, 이는 선근 (善根)의 마군으로서 탐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탐착하지 않고 물들지 않으며 신령한 이치만이
오롯이 남아 매우 깊은 (禪定)에 들어앉아 더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삼매(三昧)의 마군이니, 오래동안 맛에 빠져 있기 때
문이다.
나아가 열반에 올라 탐욕을 떠나 고요해지면 그것은 마군의 업
(業)이다. 지혜로 해탈하였다 해도 얼마간 마군의 그물을 벗어나지
않으면 비록 백권 위타경 (圍陀經)을 이해한다 할지라도 모조리 지
옥의 찌꺼기로서 부처님과 같아지고자 하나 될 수 없는 일이다.
선.악과 유.무 등 보든 법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즉시
공(空)에 떨어지는데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눈 줄을 모르므로 도
리어 공에 떨어지는 것이다. 부처와 보리 ,유,무 등의 모든 법을 구
하는 것은 근본을 버리고 지말을 쫓는 것이다.
지금 거친 밥으로 생명을 잇고 헤진 옷을 기워 추위를 막으며 목마
르면 물을 마시는 일 외에는 모두 유.무 등의 법일 뿐이어서 털끝만
큼도 매인 생각이 없다면 이 사람은 점차 가볍고 밝아질 소지가 있
다.
선지식은 있음(有)에 집착하지 않고 없음(無)에도 집착하지 않아
서 십구(十句) 마군의 말을 벗어나 말을 꺼내도 사람을 얽어매지 않
는다. 설법을 해도 스승이라 자칭하지 않고 골짜기의 메아리같이
말이 천하에 가득 차 입으로 짓은 허물이 없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쏠린다.
만일 "나는 설법할 수 있다"라든가 "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이
다"하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군의 말이다. 또 "눈빛이 부딪치는 곳에
도가 있다"라든가, "부처는 부처가 아니고, 보리.열반.해탈..." 하면
서 근거없는 말을 한다. 또한 하나하나 알음알이 (知解)를 근거없이
설명하며 한손을 들고 한 손가락을 세우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선
(禪)이고 도 (道)다"라고 한다.
이런 말은 사람을 얽어매는 것으로 그칠 기약이 없이 비구에게 결박
만 더해주는데, 말하지 않는다 해도 구업(口業)을 짓은 것이다. 그
러니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는 말아야 할 것
이다.
방편교설(不了義敎)에는 인간.천상의 스승이 있고, 부처님(導師)이
있으나 궁극적인 교설(了義敎)에서는 인간.천상에게 스승이 되지 않
으며 법을 스승삼지도 않는다. 마음(玄鑑)을 붙잡지 못했거든 우선
궁극적인 교설에 의지해야 할 것이니 조금은 가까운 데가 있기 때문
이다. 방편교설은 귀머거리 속인 앞에서나 설명하는 것이 합당할 뿐
이다.
한편 유·무 모든 법에 머물지 않고 머뭄 없는 데에도 머물지 않
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그를 큰 선지식 또
는 오직 한 분이신 부처님이라 한다. 이 큰 선지식에는 두 사람이
없으니 나머지는 모조리 외도이거나 마군의 말이다.
여기서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모든 유무 대경법(對境法)을 깰
뿐이다. 탐착하고 물들지 말것이며, 결박을 푸는 일을
하지 않기만 하면 되니, 사람을 가르치는 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
다. 사람을 가르칠 말이 따로 있고, 사람에게 줄 법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이를 외도나 마군의 말이라 한다.
궁극적인 교설인지 방편교설인지를 알아야 하며, 생사를 말하는
것인지 약병(藥病)을 말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또한 반대로 비유
를 든 것인지(逆喩) 유사한 비유를 든 것인지(順喩)를 알아야 하며,
총론인지 각론이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만일 "닦아서 부처가 된다", "닦을 것도 있고 깨칠 것도 있다",
"마음이 곧 부처다","마음 그대로가 부처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이
다."라고 한 것은 방편교설이고 부정논법이 아니며 총론이고 한 됫
박쯤 되는 말이다. 또한 염법(染法) 쪽만을 가려 하는 말이고 유사한
비유를 드는 말이며, 죽은 말이고 범부 앞에서 하는 말이다.
한편"닦아서 부처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다","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부처도 부처님 말씀이
다"라고 한 것은 궁극적인 교설이고 부정논법이며, 각론이고 백 섬
들이 말이다. 또한 3승교(三乘敎) 밖의 말이고 반대 비유를 드는 말
이며, 정법(淨法) 쪽에서 하는 말이다. 살아 있는 말이며 수행 지위
에 있는 사람 앞에서 하는 말이다.
수다원으로부터 공장 10지(十地)에 오르기까지 무슨 말이든 있기
만 하면 모조리 더러운 법진(法塵)에 속하고, 번뇌 쪽에 포함되며,
방편교설에 속한다. 궁극적인 교설에서는 지키라(持)하고, 방편교설
에서는 범하라(犯)하는데 부처님의 경지
에는 지키고 범할 것이 없어 궁극적인 교설과 방편교설을 다 인정하
지 않는다.
싹을 보고 토질을 알아내고 탁함으로 맑음을 분별하는데, 여기서
비추어 깨닫는 것을 맑은 쪽에서 헤아려 본다면 그 비추어 깨달음은
맑음이 아니고, 비추어 깨달음아니 해도 역시 맑음이 아니며, 맑지
않음도 아니며, 견해(見)도 아니다. 물이 더러우면 물이 더럽다고 말
하나 물이 맑으면 아무 것도 말할 것이 없으니, 말을 하면 도리어
그 물을 더럽히는 것이다.
묻지 않는 물음도 있고 설명 없는 설명도 있다. 부처님 부처를 위
해 설법하지 않으니 평등한 진여법계(眞如法界)에는 부처가 없고, 중
생을 제도하지도 않으며, 부처는 부처에 머물지 않는다. 이것은 참다
운 복전(福田)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주관인지 객관인지 그 말을 가려내야 한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법에 탐착하고 물들어 그 경계에 혹하면 자기 마음이 머물지 않
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않으며, 생각을 내지 않는다는 것
에도 머물지 않으면, 자기 마음이 부처이고 관조하는 작용은 보살에
속한다. 마음마음은 주인(主宰)이고 관조하는 작용은 바깥경계(客塵)
에 속하는데 파도로 물을 설명하듯 만상을 관조하고는 할 일이 없
다. 이렇게 고요함과 동시에 관조하면서도 현묘한 이치라고 자처하
지 않으면 자연히 고금을 관통할 수 있다. 그래서"신령함은 관조하
는 일(功)이 없
으나 지극한 효험(功)이 항상 있어서 어디서든 부천님(導師)이 될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중생의 분별하는 성품(性識)은 한번도 부처님의 단계를 밟은 적이
없기 때문에 끈끈하게 집착하는 성품으로 때때마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에 집착한다. 그들은 잠깐 묘한 이치를 맛보아도 약이 되지
못하며, 잠깐 틀을 벗어난 도리를 들어도 믿음이 가지 못한다. 그러
므로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서 49일을 말 없이 사유(思惟)하셨
다.
지혜가 깜깜하여 무어라 설명하기도 어렵고 비유할 수 도 없기 때
문에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고 말해도 불·법·승을 바탕하는 것이
며, 중생에게 불성이 없다고 말해도 불·법·승을 비방하는 것이다.
불성이 있다고 하면 집착한다는 비방을 듣고 불성이 없다고 하면 허
망하나는 비방을 들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불성이 있다 하
면 보태는 오류(增益謗)를 범하고,불성이 없다 하면 덜어내는 오류
(損減謗)를 범하며, 불성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하면 앞뒤가
안맞는 오려(相違謗)를 범하고, 불성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하면 희론의 오류(戱論謗)를 범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중생이 해탈할 기약이 없겠고, 처
음부터 말을 하면 중생이 또 말에 따라 이해를 하여 적은 데는 덧붙
이고 많은 것은 덜어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차라리 설법을 하
지 않고 빨리 열반에 들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그 뒤 과거 부처님
모두가 3승법(三乘法)을 말씀하셨음을 돌이켜 생각하고는 방편설로
거짓 이름을 세웠다. 본래 부처가
아닌데 그에게 부처라 하고, 본래 보리가 아닌데 보리·열반·해탈
등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백 섬을 지고는 일어나지 못함을 알
고 우선 한되·한홉을 지워주었으며. 궁극적인국 교설은 그가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방편교설로 설명해 주었다. 그리하여 선법(善
法)이 퍼져 악법(惡法)을 누르기도 하였으나 선과(善果)의 기한이 다
되면 악과(惡果)가 바로 도래하였다. 부처가 되면 중생도 나타나고,
열반에 들면 생사가 나타나며, 밝아지면 어둠이 오는 것이다. 그러
나 이것들은 엎치락 뒤치락하는 유루인과(有漏因果)로서 그것을 받
기를 생각하지 않을 자가 없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거든 상대적인 개념을 끊
기만 하면 되니, 어떠한 테두리도 그를 매어두지 못할 것이다. 그렇
게 되면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며, 가깝지도 멀지도 않다. 높낮
이도 없고 평등도 없으며 가고 옴도 없다.
문자가 집착하지만 않으면 그대를 막는 양쪽 극단이 그대를 붙들
지 못하여 번갈아 나타나는 고락과 엇갈리는 명암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진실된 실제 이치가 진실이 아니기를 하며 허망도 허망이
아니기도 하니, 다듬을 수 없는 허공처럼 테두리를 갖는 물건이 아
니다. 마음에 조금이라도 알음알이를 낼틈을 준다면 테두리에 메이
게 된다. 또한 괘(卦)의 조짐이 금·목·수·화·토에 관할되듯 아
교풀이 다섯 군데를 함께 붙여 버리듯 마왕이 자유롭게 자기 집으로
붙잡아 갈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처음선·중간선·마지막선 세 구절로 연
결되어 있다. 처음에는 그에게 좋은 마음을 내도록 하는
것이며, 중간엔 좋다는 마음마저 타파해야 하며 그런 뒤에야 비로소
마지막선이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살은 보살이 아니니, 그래서
보살이라 한다","법은 법이 아니며, 법 아님도 아니다"라 하니, 같은
말이다. 여기서 한 구절만을 설명하면 중생들은 지옥에 빠지며, 세
구절을 한꺼번에 설명하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갈 것이니, 그것은 부
처님과는 상관없는 일이 된다.
지금의 '비추어 깨달음'이 자기 부처라는 것까지 설명하면 처음선
(初善)이며,지금은 '비추어 깨달음'에 붙들고 머물지 않는다면 중간선
(中善)이며, 불들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내지 않는다면 이는
마지막선(後善)이다. 이상과 같다면 연등부처의 뒷 부처에 속하니
범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다. 그렇다고 부처는 법부도 아니고 성인
도 아니라고 잘못 말하지 말라.
이 땅의 초조(初組)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하는 것도 없고 성스러
움도 없어야 성스러운 부처님이다."하고 하셨다. 여기서 성스러운 부
처란 9품(九品)의 망상꾸러기(精靈)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용·축생
등의 부류와 제석범천 이하 모든 것들은 다신통변화를 부릴 수 있
고, 상품(上品)의 정령도 백겁 고금의 일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찌
그들을 부처라 하겠는가. 저 아수라 왕은 수미산 두 개와 맞먹을 정
도로 몸이 매우 크다. 그러나 제석천과 싸울 때에야 힘이 그만 못하
다는 것을 알고 배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연뿌리 구멍으로 들어가 숨
는다. 그들의 신통변화와 변재가 적은 것은 아니나 부처님의 가르침
이라 할
수는 없으니 절차와 등급이 느슨하여 오르고 내림이 같지 않기 때문
이다.
아직 깨닫지 못했을 때를 탐진(貪瞋)이라 하고, 깨닫고 나면 부처
님의 지혜라고 한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옛날과 사람이 달라진 것
이 아니라 옛날 하던 것(行履處)과 다를 뿐이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2.
누군가가 물었다.
"초목을 베고 땅을 개간하면 죄보를 받습니까?"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죄가 있다고 단정하지도 못하고 죄가 없다고 단정하지도 못한다.
죄가 있고 없고는 사실 그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있다 없는 하는
모든 법에 탐착하고 물들어서 버리고 취하는 마음이 남아 3구(三句)
를 꿰뚫어 마음이 허공과 같지만 허공 같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죄가 없다고 단정한다."
다시 말씀하셨다.
"죄를 짓고 나서 죄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하면 말이 안되고,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도 안 될 말이다. 율
(律)에서 말하기를, '본래 미혹하여 살인을 하거나 나아가 서로 살인
을 한다 해도 살생죄라 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선종(禪宗)
문하에서이겠는가. 마음이 허공 같아서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며, 허
공 같다는 생각도 없는데 죄가 어디
에 자리하겠는가."
다시 말씀하셨다.
"선도(善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않으면 된다."
"안팎의 마음을 녹여 다하기만 하면 된다."
"경계를 관조하는 쪽으로 말하지만 지금 유·무 등 모든 법을 관
하는데 아무 탐욕과 집착이 없고 또한 집착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공부하면 될 것이다. 공부는 때묻은 옷을 빠는 것과도 같
은데 옷은 본래 있는 것이나 때는 밖에서 온 것이다. 유·무 등 모
든 소리와 색은 기름때와도 같은 것이니 아예 마음에 두지 말라. 보
리수 아래 32이상과 80종호는 색에 속하고, 12분교(十二分敎)는 소
리에 속한다. 그러니 이제 유·무와 모든 성색으로 흐르는 허물을
끊고 마음을 허공같게 해야 한다. 이렇게 공부하기를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해야 할 것이다.
죽는 마당에서는 옛날부터 익숙했던 길을 찾아간다 해도 오히려
끝까지 가지 못하는데, 그때 가서 새로 조복하여 공부한다면 기약이
없다. 죽는 순간에는 좋은 경계가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나는데 마음
으로 더 좋아하는 곳을 먼저 받게 된다. 지금 나쁜 일을 하지 않으
면 그때 가서도 나쁜 경계가 없고 설사 나쁜 경계가 있다 해도 좋은
경계로 변한다. 죽는 순간에는 두렵고 미친 마음으로 자유롭지 못하
다.
낱낱의 경계법에 아무런 애욕과 물들임이 없다 해도 그렇다는 생
각에 머물지 말아야 자유인다. 지금은 인(因)이고 죽음
은 과(果)인데 과업(果業)이 나타나면 어째서 두려워 하는가.
옛과 자금이 달라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에도 지
금이 있다면 지금에도 옛이 있을 것이며, 옛날에 부처가 있었다면
지금도 부처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자유를 얻는다면 미래
세상까지 자유로울 것이다.
한 생각 한 생각이 유·무 등 모든 법에 매이지 않는다면 예나 지
금이나 부처가 사람이고 사람이 부처일 뿐이다. 이것이 삼매정(三昧
定)이기도 하니, 정을 가지고 정에 들어갈 필요가 없고, 선(禪)을 가
지고 선을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부처를 가지고 부처를 찾을 필요
도 없다.
다음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법은 법을 구하지 않고 법은 법을 얻지 않으며, 법은 법을 행하
지 않고 법은 법을 보지 않아서 자연히 법을 얻는 것이지, 얻음으로
써 다시 얻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렇게 바르게 법을 사유
하여 독존해야 하며, 독존한다고 인식하는 법지(法智)도 없어야 한
다. 본성은 그대로가 여여(如如)하여 인(因)에 의해 자리가 매겨지
는 것이 아니니, 이것을 체결(體結)또는 체집(體集)이라 이름하기를
한다. 지혜로 알 수도 없으며 식(識)으로 분별할 수도 없는 것으로
서 사량이 끊긴 곳이며 응적(凝寂)한 자체가 다하여 헤아림이 영원
히 없다. 마치 바다에서 큰 물결이 다하면 파랑이 다시는 생기지 않
는 것과도 같다."
또 말씀하셨다.
"큰 바닷물에 바람이 없다가 홀연히 소용돌이가 생기면 그
것이 생긴 줄을 안다하니, 이것은 미세한 가운데 거침(細中之추)이
다. 앎에서 앎이 없어져 여여(如如)함으로 돌아감은 미세한 가운데
미세함(細中之細)이니, 이것은 부처의 경계이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아는 것이니 이를 최고의 삼매(三昧之頂), 삼매왕(三昧王) 또는 이염
지(爾염智)라고도 한다. 이것이 모든 삼매를 내고 모든 법왕자(法王
子)를 관정(觀頂)하며·색·성·향·미·촉·법 모든 국토에서 등정
각(等正覺)을 이루고 안팎으로 통달하여 어디든 막힘이 없다.
일색(一色)이 일진(一塵)이고 일불(一佛)이 일색(一色)이며 일체불
이 일체색이고, 일체진이 일체불이다. 또한 모든색·성·향·미·촉
·법도 이처럼 낱낱이 모든 세계에 두루 가득하다.
이는 미세한 가운데 거친 것으로서 좋은 경계이니, 모든 상근기가
알고 느끼고 보고 듣는 것이며, 모든 상근기가 생사에 드나들면서
일체 유·무 들을 뛰어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상근기가 설명하는
것이며, 상근기가 드는 열반이며, 더할 것 없는 도이며, 견줄 것 없
는 주문(呪)이다. 모든 말씀 가운데 으뜸가는 가정 심오한 말씀으로
다다를 사람이 없으며, 모든 부처님이 아껴주신다. 마치 맑은 파도가
맑고 흐리며 깊고 넓은 물의 모든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모
든 부처님이 아껴주는 것이다. 행주좌와에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당장 깨끗하고 밝은 몸을 나타낼 것이다.
또 말씀하셨다.
"그대들 스스로는 평등하고 말도 평등하듯 나도 그러하며 불
국토 하나 하나마다 소리·냄새·맛·촉감 등 모든 일이 다 마찬가
기다. 이로부터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오르기까지 가로 세로가
모두 이와 같다. 처음 안 것을 붙들고 깨달았다(解)고 한다면 그것은
'정결(頂結)'또는 '정결에 떨어졌다(墮頂結)'고 한다. 그것은 모든 번
뇌의 근본으로 스스로 지견(知見)을 내어 밧줄도 없이 자기를 결박
하기 때문이다. 알 대상에 일부러 얽매여 25유(二十五有)의 세간이
있게 되면, 다시 일체 번뇌문을 흩어 다른 사람을 결박한다. 여기서
처음 안다 한 이승의 견해를 '이염식(爾염識)'또는 '미세한 번뇌'라
한다. 바로 이것을 끊어없애고 나면 '정신을 돌려 공(空)의 소굴에
안주한다' 하며, '삼매의 술에 취한다'고 한다. 또한 '해탈 마군에게
결박되어 세계의 생성과 파괴가 좌우되는 정력(定力)이 다른 국토로
새어나가도 전혀 느끼거나 알지 못한다'하며, '두려워할 해탈의 깊은
구덩이'라 하여 보살은 모두가 이를 멀리 여윈다.
경전을 읽고 교학을 공부하며 말씀을 배우는 것은 필연코 자기에
게로 환원되어야 한다. 모든 말씀은, 지금의 비추어 깨닫는(鑑覺) 성
품이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경계에 휩쓸리지 않음을 밝혀주는 것이
다.
그대들 여러스님네가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경계에 붙들려 있음
을 반조해 본다면 그것은 금강의 지혜(金剛智)로써 자유롭게 홀로
설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줄 알지 못한다면 12부경을
다 외워낸다 해도 증상만(增上慢:깨치지 못하고서 깨쳤다고 착각하
는 자만심)을 이룰 뿐이어서 부처님을
기만하는 것이지 수행이랄 수 없다. 모든 색과 소리를 떠나고, 떠났
다는 그것에도 머물지 않으며, 안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아야 수행이
랄 수 있다.
경전 읽고 교학을 공부하는 것은 세속의 입장에서라면 훌륭한 일
이겠지만 이치를 밝힌다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니, 10지 수행인
도 벗어나지 못하고서 생사 강물에 들게 되는 것이다. 3승교(三乘
敎)는 다만 탐내고 성내는 등의 병통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지 그
의미를 이해하려 들 필요는 없다. 이해가 탐욕이 되고 탐욕은 다시
병통이 되기 때문이다.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떠나고 떠났다는 그것에서도 떠나 3
구 바깥으로 철처히 벗어나면 저절로 부처와 다를 것이 없다. 자기
가 부처인데, 부처가 되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있
겠는가. 그저 부처 아닌 것이 근심일 뿐이다.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에 얽매이면 자유롭지 못하다. 이치를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복과
지혜부터 갖추면 복과 지혜에 실려다니는 것이 마치 천민이 높은 분
을 부리는 꼴이 되니, 우선 이치를 확실히 안 뒤에 복과 지혜를 갖
추는 것이 좋겠다. 복과 지혜를 갖추려 하는가. 그때그때마다 금을
흙으로 만들고 흙을 금으로 만들며, 바닷물을 소락(소酪)으로 변화시
키고 수미산을 쪼개 가루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사해바닷물을 움켜
서 한 터럭에 넣으며, 하나의 의미에서 무량한 의미를 내고, 무량한
의미에서 하나의 의미를 내야 할 것이다."
또흔 이렇게도 말하였다.
"실각(失脚)해서 전륜왕(轉輪王)이 되면 4천하(四天下) 사람
들에게 하루에 10선(十善)을 행하게 하나 그 복과 지혜는 자기를 비
추어 깨닫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그것을 왕이 될 인연이라 하나.
유·무 모든 모든 법에 반연하고 집착함을 전륜왕이라 하는 것이다.
지금 가슴속으로 유·무등 모든 법을 일체 받아들이지 않아서 4구
(四句) 밖으로 벗어남을 비었다(空)고 한다.
공(空)을 불사약(不死藥)이라고도 하는 것은 죽은 왕(前王)을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 불사약이라고는 하나 왕과
함께 복용하니 두 가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가지도 아니다. 그러
므로 하나다 둘이다 하는 생각을 내면 역시 전륜왕이라 할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복과 지혜와 네가지 물건(四事:의·식·주·약)으
로 4백만억 아승지세계의 6취4생(六趣四生)에게 공양하여 꼬박 80년
을 그들의 바램을 들어주고는 뒤에 생각하기를,'그러나 이 중생들은
모두가 노쇠하였으니 불법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수단원과(須陀洹果)
를 얻게 하고 아라한도(阿羅漢道)까지도 얻게 하리라'한다 하자. 중
생에게 즐겁게 하는 것만을 베푼다 해도 그 공덕이 한량이 없는데,
하물며 수다원과와 아라한도를 얻게 한 이 시주(施主)의 무량무변한
공덕에랴. 그러나 50번째 사람이 경전을 듣고 따라서 기뻐한(隨喜)
공덕만은 못한 것이다.
「보은경(報恩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마야부인은 5백의 태자를 낳아 그들 모두 벽지불과(벽支佛果)를
얻었는데 멸도(滅度)하고는 각각 탑을 세워 공양하고 낱낱에게 예배
하며 찬탄하였다. 그러나 위 없는 보리를 얻을 자
식 하나 낳아서 내 마음(心力)더느니만은 못하다."
지금 백천만 대중 가운데서 체득한 사람이 하나 있다면 그 가치는
삼천대천세계와 맞먹을 만하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이치를 깊이 깨
달으라고(玄解) 늘 대증에게 권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이치가 현묘
하여 복과 지혜를 부릴 수 있다면 마치 높은 사람이 천한 사람을 부
리는 것과도 같으며, 머물지 않는 수레와도 같다.
그런데 이것을 붙들고 깨달았다는 생각을 내면 '상투 속의 구술'이
라 하며, 또는 '값을 매길 수 있는 보배 구슬'이라 하며, 또는 '똥을
퍼 들여온다'고도 한다. 이것을 붙들고 깨달았다는 생각을 내지 않
으면 왕의 상투 속에 있는 밝은 구슬을 그에게 주는 것과도 같으니
'값을 매길 수 없는 큰 보배'라 하며, 또는 '똥을 퍼냈다'고도 한다.
부처님은 속박을 벗어난 사람인데도 도리어 얽매임 속으로와서 이
렇게 부처가 되셨다. 또한 생사 저쪽 사람이며, 현묘하게 끊긴 저쪽
사람인데도 이쪽 언덕으로 돌아와 이렇게 부처가 되셨다. 그러나
사람과 원숭이는 함께 가지 못하는 법이니, 여기서 사람은 10지(十
地)보살을 비유하고 원숭이는 범부를 비유한 것이다.
경전을 읽어 알고자(知解) 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3승교를 이해하여 영락의 장엄구를 훌륭히 얻고 32상의
굴택을 얻는 것으로 부처를 찾는다면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경에서 말하기를, "소승의 3장학(三藏學)을 탐착하는 자와는
가까이 하지도 말라"하였는데, 하물며 스스로 그러는 경우야 어떠하
겠는가. 그는 파계한 비구이며 이름뿐인 아라한(名字羅漢)으로서, 「
열반경」에서는 16악율의(十六惡律義)에 넣고 있다. 그것은 물고기
를 사냥하며 이익을 위해 고의로 살생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다. 대
승방등(大乘方等)은 감로수 같기도 하고 독약 같기도 하니, 없애버릴
수 있다면 감로 같고, 없애버리지 못하면 독약과 같다.
경전을 읽으면서 저 생사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그 의
미를 꿰뚫지 못할 것이니, 아예 읽지 않는 것이 휠씬 낫다. 한편으
로는 경전도 읽고 선지식도 참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안목
을 갖춰 그 생사라는 말을 분별해야 할 것이다. 명백하게 분별해내
지 못한다면 결국 꿰ㄸ지 못할 것이어서 비구라는 속박만 가중될 뿐
이다.
그러므로 교학에서 현묘한 종지를 배운 사람은 문자를 읽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마치 '자체(體)는 설명하여도 모습(相)은 설명하
지 않으며, 의미는 설명해도 문자는 설명하지 않는다'고 한것과도 같
다.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진실한 말'이라 하며, 문자를 설명하면서
모조리 비방이라 한다면 그것을 '삿된 말'이라 한다. 보살의 설명은
법다워야 하니, 그래야 '진실한 말'이라 할 것이다.
증생들에게 마음(心)은 지키게 하되 현상(事)에는 매달리지 않게
히야하며, 실천(行)은 하게 하되 이론(法)을 붙들지는 않게 해야 한
다. 사람은 설명해야지 문자를 설명해서는 안되며 의미를 설명해야
지 문자를 설명해서는 안된다.
'욕계에는 선(禪)이 없다'고 설명하는 것 역시 두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다. '욕계에는 선(禪)이 없다'고 말했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색계
(色界)에 이룰 수 있을까. 먼저 발심 수행의 단계[因地]에서 두 가지
정(定)을 익혀야 뒤에 초선(初禪)의 유상정(有想定)과 무상정(無想
定)에 이를 수 있다. 유상정은 색계사선(色界四禪) 등의 하늘에 태
어나고, 무상정은 무색계사공(無色界四禪) 등의 하늘에 태어난다. 그
러므로 욕계에는 선이 없음이 분명하며 선은 색계이다.
3.
어떤 이가 물었다.
"지금 이 국토엔 선이 있다고 하는데 무슨 말입니까?"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동하지도 않고 선에 들지도 않음이 여래선(如來禪)인데, 선이라
는 생각을 내는 것조차 떠났다."
4.
어떤 이가 물었다.
"'유정(有情)은 불성이 없고 무정(無情)은 불성이 있다' 한것은 무
슨 뜻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부터 부처에 이르는 것은 성인이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며, 사람에서 지옥에 이르는 것은 범부라는 생각에 집착하는 것
이다. 범부와 성인 두 경계에 물들고 애착하는 마
음이 있으면 이를 '유정은 불성이 없다'라고 하며, 범부와 성인 두
경계와 유·무 모든 법에 갖고 버리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갖고 버
림이 없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면 '무정은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
다. 망정의 얽매임이 없기 때문에 무정(無情)이라 이름하는 것이지
목석이나 허공·노란 국화꽃·푸른 대나무 등 감정이 없는 것을 가
지고 불성이 있다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들에게 불성이 있다고 한
다면 그들 중에 수기를 받고 성불했다는 자를 경전에서 볼 수 없는
까닭이 무엇인가? 지금 비추어 깨달음(鑑覺)은 유정의 변화를 받지
않는 점이 푸른 대나무와도 같으며, 모든 근기에 다 응하고 모든 상
황을 다 아는 것이 노란 국화꽃과도 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단계를 밟아 보았다면 무정에 불성이 있다 하겠지만 부
처님의 단계를 밟아 보지 못했다면 유정에게 불성이 없다하겠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법화경 화성유품에 나오는 부처님)은 10겁
(十劫)을 도량에 앉아 있었는데도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지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겁(劫)이란 '막힘' 또는 '머뭄'이라고도 하니 하나의 착함에 머물
고 열 가지 착함에 막히는 것을 말한다. 인도에서는 부처
(佛)라 하고, 이 땅에서는 그것을 깨달음(覺)이라 하는데, 자기의 비
추어 깨달음(鑑覺)이 착함에 막히고 집착되므로 선근인(善根人)에게
서 불성이 없다. 그러므로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지 않아 불도를 이
루지 못했다'고 한 것이다.
악에 부딪치는대로 악에 머무는 것을 '중생의 깨달음'이라 하고,
선에 부딪치는대로 선에 머무는 것을 '성문의 깨달음'이라 하며, 선
·악 양쪽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음을 옮다고 여기는 자를 '이승
의 깨달음' 또는 '벽지불의 깨달음'이라 한다.
선·악 양쪽에 머물지 않고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않음을 보
살의 깨달음'이라 한다. 또한 머물지 않고 어디에도 머물것이 없다는
생각을 내지 않아야만 비로서 '부처의 깨달음'이라 한니, 마치 '부처
가 부처에 머물지 않아야 진실한 복전(福田)이라 이름한다'고 한 것
과 같은 이야기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홀연히 이를 체득한 자
가 있다면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 하니, 어디서나 스승이 되어
부처가 없는 곳에서는 부처라하고, 법이 없는 곳에서는 법이라 하며,
스님 없는 곳에서는 스님이라 하며 '큰 법 바퀴를 굴린다'고 하는 것
이다.
6.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옛부터 조사들께서는 모두 비밀스러운 말씀으로 계속 전수 해왔
다 하니 무슨 의미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비밀한 말은 없으며, 여래께서는 비밀스럽게 간직한 것이
없으시다. 비추어 깨닫는다 함은 말은 분명하나 형상을 찾아도 끝내
찾지 못하니 이것이 '비밀스러운 말'이다. 수단원(須陀洹)에서 10지
(十地)에 오르도록 무슨 말이든 있기만 하면 모조리 법의 티끌에 속
하고, 무슨 말이든 있기만 하면 번뇌라는 테두리에 들어가고 방편교
설에 속하니 말이 있었다는 하면 무엇이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긍극적인 교설마저도 부정하는데 다시 무슨 '비밀한 말'을 찾겠는
가."
7.
또 물었다.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어나듯 허공이 대각(大覺)에서 생겼다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허공은 물거품에, 바다는 자성(自性)에 비유된 것이다. 신령하게
깨닫는 자기 본성은 허공을 능가하므로 '바다에서 물거품 하나가 일
어나듯 대각에서 허공이 나왔다'고 한 것이다."
8.
또 물었다.
"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 말라' 하였는데 무슨 말입니까?"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숲은 마음에 나무는 몸에 비유된 것인데, 숲으로 설명해야 두려
운 마음이 생기므로 '숲은 베어도 나무는 베지 말라'고 한
것이다."
9.
또 물었다.
"'말을 하면 표적이 되어 화살을 부른다'하니, 말을 하여 표적이
되고 나면 근심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근심에 매인 점이 똑같다
면 무엇으로 승속을 구별하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화살을 쏘아 도중에 딱 부딪치듯 해야만 한다. 만일 어굿난다면
반드시 다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골짜기에서 메아리를 찾는다면
여러 겁 동안 찾아도 그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메아리는 입가에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잘 잘못은 찾아와서 묻는데에 있다. 귀결점을
묻는다면 도리어 화살을 맞을 것이니, 역시 '허깨비인 줄 알면 허깨
비가 아니다' 한 말씀과 같다.
삼조(三租)께서 말씀하시기를, 현묘한 종지를 모르고 망념을 가라
앉히느라 헛수고하는구나' 하셨다. 또 '보이는 것(物) 보는 것(見)이
라 오인한다면 마치 기와 부스러기를 가진 것과 같으니 무엇에 쓰겟
으며, 보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목석과 무엇이 다르랴'하고 하셨다.
그러므로 보는 것이다 아니다 하면 둘 다 잘못이니, 이 한가지 예
로 모든 것을 견주어 보라."
10.
또 물었다.
"번뇌와 32상이 본래 없다는데, 어떻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부처님 쪽의 일이다. 본래 번뇌가 있었다거나 지금 32상이
있다는 것은 범부의 생각일 뿐이다."
11.
또 물었다.
"끝없는 몸을 가진 보살(無邊身菩薩)이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
한다 하니 어째서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끝이 있다 없다는 견해를 냈기 때문에 여래의 정수리를 보지 못
하였던 것이다. 이제 있다 없다 등의 모든 견해가 전혀 없고 그 견
해 없음마저도 없다면 이것을 '정수리가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12.
또 물었다.
"지금 사문들은 다들 말하기를,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하여
경·논·율·선(禪)과 지식(知解)을 낱낱이 배우므로 신도들에게 네
가지로 공양을 받을 만하다'고들 하는데 정말 받을 만합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조하는 작용(照用)으로 볼 때 소리·색·냄새·맛과유·무 모
든 법 등 낱낱의 경계에 티끌만큼의 집착이나 물들음도
없고, 집착하거나 물들지 않음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없다면 이런 사람은 매일 만 냥의 황금도 받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유·무 등 모든 법을 대할(照) 때 6근의 반연을 다 깎
아내 털끌만큼도 탐욕과 애착을 다스려 버리지 못하고, 나아가서는
시주에게 쌀 한톨 실낱 하나라도 구걸한다면 축생이 되어 무거운 짐
을 지고 끌려다니면서 하나하나 갚아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부처
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집착이 없는 사람이며 구함
이 없는 사람이며 의지함이 없는 사람이니, 지금 분주하게 부처가
되고자 탐착한다면 모두가 등지는 짓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오랫동안 부처를 가까이 하면서도 불성을 모
른 채 세상을 구제하는 자를 구경할 뿐, 6취(六趣)에 윤회하면서 오
랫만에야 부처를 보는 자, 그를 두고 부처 만나기 어렵다 한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문수는 7불의 스승이며 사바세계에서 으뜸가는 보살이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부처를 보노라 나는 법을 듣노라 하는 근거없는
생각을 내어 부처님에게 위신력을 받고 두 철위산(鐵圍山)으로 내려
갔던 것이다. 알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다만 모든 학인들에게 본
보기가 되어 주고, 후학들이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도록 하였던 것
이다. 그러므로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보배 여의주'라 하며, '보
배 꽃으로 발꿈치를 받쳐 든다'하는 것이다.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내는 것은 유·무 등으로 보는
것이니 이것을 두고 '눈병난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하며, '봄에 매임
(見纏)''봄에 덮임(見蓋)' 또는 봄의 재앙(見蘖)이라고도 한다.
이제 생각 생각 모든 견문각지(見聞覺知)와 모든 티끌 때를 다 없
앤다면 한 티끌 한 색이 온통 한 부처이며 한 생각 일으켰다 하면
그대로 한 부처인데, 3세5음(三世五陰)의 생각 생각이라면 그 숫자를
뉘라서 헤아리겠는가. 이것을 '허공을 가득 메운 부처'라 하며,'분신
불(分身佛)','보배탑'이라 하니, 그러므로 항상 찬탄하는 것이다.
지금 연명하는 것을 보면 쌀 한 톨과 한 포기 채소에 의지한다.
먹지 못하면 굶어 죽고, 물을 마시지 못하면 목말라 죽으며, 불을 쬐
지 못하면 추워서 죽는다. 하루라도 없으면 살지 못하고, 하루 쯤
없다 해도 죽지는 않으나 4대(四大)에 붙들려 여전하지 못하다.
도통한 옛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았다. 불에 타고자 하면 탔고, 물에 빠지고자 하면 빠지지 않았
다. 살겠다면 살았고, 죽겠다면 죽었다. 이렇게 가고 머물음이 자유
로우니, 그에게는 자유로울 분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어지럽지 않다면 부처를 구하거나 보리·열반 구할 필요가
없다. 만일 부처를 집착하고 구한다면 탐심에 속하며, 탐심이 변하
여 병이 된다. 그러므로 '부처 병 고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 것
이다. 불법을 헐뜰어야만 밥을 먹을 수 있는데, 여기서의 밥이란 신
령하게 알아보는 자기 본성으로서 번뇌 없는 밥(無漏飯)·해탈밥(解
脫飯)을 말한다. 이 말은 10지(十
地)보살을 치료하는 것으로서 초발심부터 십지에 이르기까지이다.
지금 조금이라도 구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모두다 '파계승','명자나
한(名字羅漢)' 또는 '여우'라 이름하는데, 그들은 분명히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다.
지금 메아리같이 고르게 소리를 듣고, 바람같이 평등하게 냄새를
맡으면서 일체 유·무등의 법을 떠나고, 떠났다는 것에도 머물지 않
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으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떠한 허물
도 얽어매지 못한다.
위 없는 보리·열반을 구하기 때문에 '출가'라고 이름하나 그래도
그것은 삿된 발원이다. 하물며 '나는 할 수 있다''나는 안다'하면서
세간에서 승부를 다투며 논쟁하는 경우이겠는가.
한 문중을 탐하고 한 제자를 아끼며, 한 안주처에 연연해 하고 한
신도와 관계를 맺는다. 옷 한 벌, 밥 한 그릇, 명예 하나, 이익 하나
에 다시 '나는 그 모두에 걸림이 없다'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속일뿐
이다.
자기 5음(五陰)에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
게 몸 마디마디가 토막난다 해도 원망하거나 아깝다는 마음이 전혀
없고 번뇌도 없다면, 나아가서는 자기 제자가 다른 사람에게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채찍을 맞고 이상과 같은 낱낱의 일을 당한다 해
도 한 생각도 너다 나다 하는 마음이 없다며, 그래도 한 생각도 없
다는 그것을 옳다고 여겨 거기에 머문다면 그것을 '법 티끌'이라 하
니, 10지(十地)에서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생사의 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사람들에게 권하기를 '삼악도(三惡道)
를 두려워하듯 이 법
티끌을 두려워해야만 홀로 설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가령 열반을 능가하는 어떤 법이 있다 해도 조금도 값지다는 생각
을 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걸음마다 부처로서 연꽃을 밟을 것도
없이 백억의 몸을 나툰다 유·무 등 모든 법에 털끌만큼이라도 애욕
에 물든 마음이 있다면 연꽃을 밟고 다닌다 해도 마군의 짓과 똑같
은 것이다.
'본래 청정하다'거나 '본래 해탈하였다'는 데에 집착하여 이대로가
부처이며 선도(禪道)를 이해했다고 자처하는 자는 자연외도(自然外
道)에 속하며, 한편 인연에 집착하여 닦아 증득을 이루는 자는 인연
외도(因緣外道)에, 무(無)에 집착하면 단견되도(斷見外道)에,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亦有亦無)는 데 집착하면 변견외도(邊見外道) 또
는 우치외도(愚痴外道)에 속한다.
부처다 열반이다 하는 등의 견해를 내지 않기만 하면 된다. 유·
무 등 모든 견해가 전혀 없으며 견해가 없다는 것도 없음을 바르게
봄(正見)이라 한다. 또한 아무것도 들음이 없고, 들음이 없다는 것도
없음을 바르게 들음(正聞)이라 하며, 이것을 두고 외도를 꺾었다 하
는 것이다. 또한 범부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아주 신통한
주문(大神呪)이며, 보살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가장 높은 주
문(無上呪)이며, 나아가 부
처라는 마군이 찾아오지 못하게 하는 견줄 바 없는 주문(無等等呪)
이다. 중생 아수라를 변화시키고 2승 아수라를 변화시키며, 보살 아
수라를 변화시키니, 이렇게 하여 3변정토(三變淨土)가 되는 것이다.
유무(有無) 범성(凡聖) 등 모든 법은 광석에 비유되고, 자기의 여
여한 이치(如理)는 금(金)에 비유된다. 금과 광석이 분리되면 순금이
드러나니 홀연히 어떤 사람이 돈과 보배를 찾으면 금을 돈으로 만들
어 그에게 주는 것이다. 마치 국수 자체는 진정 모든 모래와 진펄
이 없어 어떤 사람이 시루떡을 구걸하면 국수를 시루떡으로 만들어
주는 것과도 같다. 또는 지혜로운 신하가 왕의 마음을 잘 알아서
왕이 행차할 때 선타파(先陀婆)*하고 부르면 즉시 말을 대령하고, 밥
먹을때 선타파 하고 부르면 즉시 소금을 바치는 것과도 같다. 이상
은 현묘한 종지를 공부하는 사람이 잘 통달하여 어김없이 기연에 응
함을 비유 한 것이며, 또는 육절사자(六絶獅子:6근·6진을 끊은 사
람)라고도 한다.
지공(誌公)스님이 말하기를, '사람에 따라 백 가지 변화를 지어낸다'
고 하였다.
10지(十地)보살은 주리지도 않고 배 부르지도 않으며, 물에 들어가
도 빠지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다. 그러나 태우려 해도 태
울 수 없으니, 일정한 테두리(量數)에 의해 한계
*선타파: 원래는 소금, 그릇,물,말(馬)을 뜻하는 말, 왕의 마음을 잘
아는 총명한 신하가 제때제때 알아서 이것들을 바친데서 유래하여,
지혜로운 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지워진다. 부처님은 그렇지 않아서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지
만, 타려하면 타고 빠지려 하면 빠진다. 바람·물등 4대를 자유롭게
부리므로 모든 색이 부처님 색이며, 모든 소리가 부처님 소리다.
더러운 찌꺼기인 변하는 자기 마음이 다하여 3구(三句) 밖으로 뚫
고지나야 이 말을 할 수 있다. 청정한 보살 제자는 매우 밝아서 무
슨 말을 하든지 유무에 집착되지 않고 모든 작용(照用)에 있어서도
청탁에 구애되지 않는다.
병이 있는데도 약을 멱지 않으면 어리석은 사람이며, 병이 없는데
약을 먹으면 성문(聲聞)이다. 한 가지 법을 단정적으로 집착하면 정
성성문(定性聲聞)이며, 그저 많이 듣기만 하면 증상만성문(增上慢聲
聞)이다. 또한 남을 알면 유학성문(有學聲聞)이며, 공정(空寂)에 빠지
고 자기를 알면 무학성문(無學聲聞)이다.
탐·진·치등은 독이며 12분교(十二分敎)는 약이니, 독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약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병 없이 약을 먹으면 약이 도
리어 병이 되어, 병이 없어져도 약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나지
않고 소멸하지 않음은 무상(無常)의 의미이다.
「열반경」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세 가지 약한 욕심이 있다. 첫째는 사부대중이 에워싸주었으면 하
는 욕심이고, 둘째는 모든 사람이 내 문도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욕
심이며, 셋째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성인이나 아라한임을 알아주었
으면 하는 욕심이다.
또한「가섭경(迦葉經)」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는 미래의 부처님을 뵈었으면 하는 것이며, 둘째는 전륜왕(轉
輪王)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며, 셋째는 찰리(刹利)의 큰 성씨를 가
졌으면 하는 것이며, 넷째는 바라문의 큰 성씨를 가졌으면 하는 것
이며, 나아가서는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것이다.'
이상의 약한 욕심부터 먼저 끊어야 한다. 집착하고 물들어 요동
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그것을 '악한 욕심'이라 하는데, 모두가 6
욕천(六欲天)에 들어가 파순(波旬)에게 부림을 당할것이다."
13.
또 물었다.
"이십년 동안을 항상 '똥을 치우라'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지견을 쉬고 모든 탐욕을 쉬어 낱낱이 3구
(三句) 밖으로 뚫고 지나면 이를 '똥을 치웠다'고 한다. 부처와 보리
를 구하며,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구하면 그것은 똥을 퍼 들
여오는 것이지 또을 펴낸다고 하지는 않는다.
부처라는 견해를 지어내 볼 것이나 구할 것, 집착할 것이 있다 하
면 '희론의 똥'이라 하며, '거친 말', '죽은 말'이라 한다.
마치 '큰 바다는 죽은 시체를 잠재우지 않는다' 한 말과도 같다.
부질없이 지껄이는 말을 '희론'이라 하는 것이 아니라, 말
하는 사람이 청·탁을 분별하면 그것을 '희론'이라 한다.
경전에서는 모두 스물 한 가지 공(空)으로 중생의 티끌 번뇌
를 닦아 없애준다고 한다. 또한 사문이 재계(齋戒)를 지키고,
인욕과 화합을 닦으며 자비희사(慈悲喜捨)하는 것은 일상적인
승가의 법도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완전히 부처
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이니 탐착으로 의지하는 것을 인정
할 수는 없다. 부처나 보리 등의 법을 얻고자 하는 자는 손을
불에 갖다 대는 것이다.
문수보살은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기만 하면 자
기를 다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문수보살은 부처님
앞에서 칼을 빼어들었고, 앙굴마라는 부처님에게 칼을 들이댔던 것
이다. 저 '보살은 5무간업(五無間業)을 지어도 무간 지옥에 들어가
지 않는다'고 한 말씀과도 같다. 그들 보살은 원통(圓通)으로 빈틈없
으니 5역죄(五逆罪)로 빈틈없는 중생의 그것과는 다르다.
파순으로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진 기름때를 털끌만큼도
갖지 않는다 해도 그런 데에 의지하여 집착하면 '이승의도'라 한다.
하물며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이해한다 하며 논쟁과 승부 다투는
말을 하는 경우이겠는가. 이들은 논쟁승(論爭僧)이지 무위승(無爲僧)
은 아니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에 탐착하여 물들지 않으면 이를
남이 없음(無生)이라 하며, 바른 믿음(正信)이라고도 한다. 일체법
을 믿고 집착하면 '믿음을 갖추지 못했다'하며, '믿음이 완전하지 못
하다', '치우쳐서 고르게 믿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를 일천
제(一闡提:성불할
종자가 없는 중생)라고 이름한다.
이제 단박에 깨치려 하는가. 사람(人)과 법(法)을 동시에 딱 끊어
비우고(空), 3구(三句) 밖으로 꿰뚫어야 하니, 그것을 '온갖 테두리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이란 믿음이며, '법'이란 계율
·보시·지혜(聞慧)등이다. 보살은 차마 성불하지 않고 차마 중생이
되지도 않으며, 차마 계율을 지니지도 않고 차마 파계를 하지도 않
는다. 그러므로 '지키지도 않고 범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던 것이다.
지(智)는 흐리고 관조(照)는 밝으며, 혜(慧)는 맑고, 식(識)은 탁하
다. 부처로 말하자면 관조하는 지혜(照慧)라고 하며, 보살이면 지
(智)하 하고, 이승과 중생 쪽으로 치면 식(識) 또는 번뇌라고 한다.
부처라는 결과 속에는 중생이라는 원인이 들어 있고 중생 원인 속
에도 부처라는 결과가 들어 있다. 부처에게 있어서는 법륜을 굴린
다(轉法輪)하고, 중생에게 있어서는 법륜이 구른다(法論轉)하고, 보
살에 있어서는 영락장엄구(纓珞莊嚴具)라 하고, 중생에게 있어서는
오음총림(五陰叢林)이라 한다.
부처에게 있어서는 본지무명(本地無明)이라 하는데, 이는 무명의
밝음(無明明)이다. 그러므로 '무명이 도의 바탕이 된다'하였으니, 어
둡게 가리운 중생의 무명과는 다르다. 저것(彼)은 객관이고 이것(此)
은 주관이며, 저것은 들리는 것(所聞)이고 이것은 듣는 것(能聞)이
다. 그것은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不一不異), 아주 없어지지
도 않고 항상하지도 않으며(不斷不常),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不來不去). 살아 있는 말(生語
句)이며, 틀을 벗어난 말 (出轍語句)로서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으
며,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다 이와 같다.
온다 간다, 단멸이다 영원하다, 부처다 중생이다 하는 것은 죽은
말이다. 두루하다 두루하지 않다, 같다 다르다, 단멸이다 항상하다
하는 등은 외도의 설이다. 반야바라밀은 자기 불성인데 마하연(摩詞
衍)이라고도 한다. 마하(摩詞)는 크다는 뜻이고, 연(衍)은 수레(乘)라
는 의미다. 그렇다고 자기의 지각(知覺)을 지켜 머물면 또한 자연외
도(自然外道)가 된다. 지금의 비추어 깨달음(鑑覺)은 지킬 필요가 없
으며, 따로 부처를 구할 것도 없다. 따로 구한다면 인연외도(因緣外
道)에 떨어진다.
이 땅의 초조(初祖)께서는 '마음에 옳다고 여기는 것이 있으면 반
드시 그르다 할 것도 있게 된다'고 하셨다. 어떤 것을 귀중하게 여기
면 그것에 혹하게 되니, 믿으면 믿는데 혹하고 믿지 않으면 비방을
이룬다. 그러므로 귀하다 귀하지 않다 하지 말고, 믿는다 믿지 않는
다 하지도 말라.
부처님은 무위(無爲)도 아니다. 무위가 아니라 해서 허공과 같은
적막함도 아니다. 또한 부처님은 허공같이 큰 마음을 가진 중생(大
心衆生)으로서 비추어 깨달음이 많다. 비록 많다고는 하나 그 비추
어 깨달음은 청정하여 탐내고 성내는 귀신이 그를 붙들지 못한다.
부처님은 온갖 번뇌를 벗어난 분으로 털끌만큼의 애욕과 집착이
없으며, 애욕과 집착이 없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니, 이를 6도만행(六
度萬行)을 빠짐없이 갖추었다고 한다, 장엄구(莊嚴具)가 필요하다면
갖가지가 다 있으며, 필요치 않아서 사용하
지 않는다 해도 잃지 않는다. 이렇게 인과와 복지(福智)를 자유롭게
부린다. 이는 수행이며 수고롭게 일을 하며 무거운 짐을 진 것은 아
니데, 이를 수행이라 부른다 해도 도리어 이같지 않다.
삼신이 한문(三身一體)이며, 한몸이 삼신(一體三身)이다.
첫째는 법신실상불(法身實相佛)로서 법신불은 밝지도 않고 어둡지
도 않으니 밝음과 어둠은 허깨비의 변화에 속하는 것이다. 실제의
모습(實相)은 헛것(虛)을 상대로 지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본래 이름이란 없는 것이다. '부처님 몸은 함이 없어(無爲)
어떻난 테두리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한 것과도 같다.
성불하여 일신을 공양하는 등은 한 됫박 한 홉 들이쯤 되는 말이
다. 요컨대 탁함을 상대로 맑음을 가려내 붙인 이름이므로 '실상법신
불'이라 한 것이다. 또한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라 이름하며, 허공법
신불, 대원경지(大圓鏡智:제 8식의 전변), 제8식(第八識),성종(性宗)*,
공종(空宗)*,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불국토, 굴 속에 있는 사자,
금강후득지(金剛後得智)*,무구단(無垢檀), 제일의공(弟一義空),현묘한
종지(玄旨)라 이
*성종(性宗):차별상(差別相)을 중심으로 일체법을 설하는 상종(相宗)
에 대해 평등하고 진실된 성품을 설하는 종지.
*공종(공종): 상(相)을 부정하여 일체법의 실상인 공(空)을 설하는
종지. 중국에서는 유종(有宗)과 공종(空宗),혹은 상종(相宗)과 성종
(性宗)으로 제교(諸敎)를 분류해 왔는데 유종,상종에는 소승과 유식,
공종, 성종에는 삼론종, 화엄종등이 있다.
*금강후득지(金剛後得智):금강정(金剛定)을 얻은 뒤 다시 차별지를
써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지혜.
름붙이기도 한다.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생각만 고요히 한다'고 하였다.
두번째 보신불(報身佛)로서 보리수 아래의 부처님이다. 또는 환화
불(幻化佛)이라고도 이름하며, 상호불(相好佛),응신불(應身佛),원만보
신노사나불, 평등성지(平等性智:제7식의 전변), 제7식(第七識), 안과
에 응하는 부처님(酬因答果佛)이라 이름하기도 한다. 52선나수(五十
二禪那數)와 같고, 아라한, 벽지불, 모든 보살과 같다. 또한 생멸 등
의 괴로움을 받는 것도 똑같지만 중생이 업에 매어 고통을 받는 것
과는 다르다.
세번째는 화신불(化身佛)로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에 아무런
집착과 물듬이 없으며, 물들음이 없다는 것마저 없다. 4구(四句)를
벗어나 훌륭한 말솜씨를 갖추셨으니 화신불이라 이름한다. 이 분이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며, 대신변(大神變)이며, 유희신통(遊戱神
通),묘관찰지(妙觀察智:제6식의 전변), 제6식(第六識)이라고도 한다.
여기에 공양하면 3업(三業)이 청정해져서 전(前際)에도 끊을 번뇌
가 없었고, 지금(中際)도 지킬 자성이 없으며, 뒤에(後際)에도 이룰
부처가 없다. 이렇게 3제(三際)가 끊겼고, 3업(三業)이 청정하며, 3
륜(三輪)이 공적하고, 3단(三檀)이 공(空)하다,
무엇을 '비구가 부처님께 공양하고 모신다'하는가?
6근(六根)에 번뇌(漏) 없는 것을 말한다. 그것을 장엄한다고도 하
는데, 모든 번뇌가 빈(空無)것을 수풀과 나무로 장엄했
다 하며, 모든 물듬이 빈 것을 꽃과 열매로 장엄했다 하는 것이다.
빈(空無) 불안(佛眼)으로 수행인을 파악하고 법안(法眼)으로 청탁
을 분별하면서 청착을 분별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으면 그것을 눈 없
는 데(無眼)까지 도달했다면 한다. 「보적경(寶積經)」에서는 '법신
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하는 것으로는 구하지 못한다'라고 하였
다.
색(色)이 없기 때문에 육안(肉眼)으로 볼 것이 아니며, 망정이 없
으므로 천안(天眼)으로 볼 것도 아니다. 모습을 떠났으므로 혜안(慧
眼)으로도 볼 수 없고, 모든 행(行)을 떠났으므로 법안(法眼)으로 볼
것도 아니며, 모든 식이 떠났으므로 불안(佛眼)으로 볼 것도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을 부처의 생각(佛見)이라고 한다. 색
(色)은 색이나 형색(形色)이 아님을 진색(眞色)이라 하며, 공(空)은
공이나 창공(太虛)이 아님을 진공(眞空)이라 하나, 색과 공도 또한
약과 병이 서로를 다스린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법계관(法界觀)에서는 '색(色)에 즉하지 않았다느니 할
수 없으며, 공(空)에 즉했다느니 공에 즉하지 않았다는니 할 수도 없
다'라고 하였다.
눈·귀·코·혀·몸·의식에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제7
지(第七地)에 전변해 들어간다'고 한다. 7지(七地)보살은 칠지에서
물러나지 않고 위로 3지(三地)를 올라(向上)간다. 모든 보살의 심지
(心地)는 명백(明白)하여 쉽게 오염되어 불이라고 말만 해도 바로
탄다.
색계(色界)에서 올라겸 보시가 병이고 간탐(간貪)이 약이며, 색계
에서 내려가면 간탐이 병이고 보시가 약이 된다.
유작계(有作戒)란 세간법을 끊는 것이며, 다만 몸과 손으로 조작하
지 않아 허물이 없으면 이를 무작계(無作戒)라 하며, 또는 무표계(無
表界),무루계(無漏戒)라 하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을 움찔했다(擧心
動念)하면 모조리 파계(破戒)라 하는 것이다. 이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고 혹하지 않는 데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
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으면 그것을 '빠짐없이 배우고 부지런히 생각
(護念)하며 널리 유포한다'고 한다.
깨닫지 못했을 때를 어미(母)라 하고, 깨닫고 나서를 자식(子)이라
하는데, 깨달음이 없다는 생각도 없음을 어미 자식이 동시에 없어짐
이라 한다. 이렇게 선에도 매이지 않고 악에도 매이지 않으며, 부처
에 얽매이지도 않고 중생에게 매이지도 않는다. 테두리(量水)에도
마찬가지며, 나아가서는 아무런 테두리에도 매이지 않는 것이다. 그
러므로 '부처는 얽매임에서 벗어나 한량을 뛰어넘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앎(知解)이나 설명(義句)에 탐착하는 것은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여 소락(수酪)을 많이 먹이기만 할 뿐 소화가 되고 안되고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이 말은 10지(十地)에 비유된다. 즉 인간·천상에게 존대받는 번
뇌, 색계 무색계에 태어나 선정과 복락을 누리는 번뇌, 자유롭게 신
통으로 날며 숨고 난타나면서 시방의 모든 부처님 정토(淨土)에 두
루다니며 법을 듣지 못하는 번뇌, 자비희사(慈
悲喜捨)와 인연(因緣)을 닦는 번뇌, 공(空)과 평등한 중도(中道)를 닦
는 번뇌, 3명(三明)·6통(六通)·4무애(四無碍)를 닦는 번뇌, 대승심
을 닦아 사홍서원을 발하는 번뇌, 초지,2지,3지,4지에서 분명히 이해
하는 번뇌, 5지,6지,7지에서의 모든 지견(知見)번뇌, 8지,9지,10지에서
이제(二諦)를 동시에 관조하는 번뇌와 나아가서는 불과(佛果)를 닦
는라 백만아승지겁 옹안 행하는 모든 번뇌까지 설명이나 앎을 탐할
뿐 도리어 얽어매는 번뇌임을 모른다. 그러므로 '강을 보아야만 향
상(香象)을 뛰울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14.
누군가 스님께 물었다.
"보십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본다."
다시 물었다.
"본 뒤에 어떻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보는 것이 둘이 아니다. 이제 보는 것이 둘이 아니라면 보는 것
으로 볼 것을 보지 않는다. 만일 보는 것을 다시 본다면 앞에 보는
것이 보는 것이냐, 뒤에 보는 것이 보는 것이겠냐. 마치'볼 것을 볼
때엔 보는 것이 아니며, 보는 것은 오히려 보는 것을 떠나 보는 것
이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법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실행되지 않으
면 모든 부처님께서 빨리 기약을 주신다(授記)고 하였다."
그러자 이렇게 따져 물었다.
"보는 것이 이미 보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기약을 주신다는 말이
어떻게 기약을 주신다는 말이 되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먼저 종지(宗)부터 깨달은 사람은 빨아놓은 옷처럼 있다 없다 하
는 모든 법상(法相)에 구애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습 떠난 것을
'부처'라 하는 것이다. 허와 실을 둘 다 간직하지 않고 중도만이 오
롯하고 묘하다. 한 가닥 같은 이 길을 통달하여 후진들이 그 단계에
계합하므로 '기약을 준다'고 할 뿐이다.
무명(無明)은 아버지이고 탐애(貪愛)는 어머니이며, 자기는 병이고
다시 자기를 치료함은 약이다. 자기라는 칼로 다시 자기 무명과 탐
애라는 부모를 죽이므로 '부모를 살해한다'고 했던 것이다. 한 마디
말로 일체법을 견주어 타파하니, 때 아닌 때에 밥을 먹는 것도 마찬
가지더.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법은 때 아닌 밥이며, 나쁜 음식
이며 보배 그릇에 담긴 더러운 음식이다. 또한 파계이며, 망령된 말
이며, 잡스러운 음식이다.
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있다 없다는 등의 모든 법을 탐하
여 소유하거나 조작하면 모두가 위배되는 것으로 도리어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이렇게 탐하고 물들면 그것을 모조리 '수수(授手)'
라고 이름한다.
탐내거나 물들지 않고, 탐내거나 물들지 않음에도 머물지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조차도 없으면 반야화(般若火)라
한다. 이것은 손가락을 태우고 신명을 아끼지 않으며, 사지를 마디
마디 찢고, 세간을 벗어나며 저 세계에서 이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
다.
오장육부에 12분교와 유·무등 모든 법을 털끝만큼이라도 남겨두
었다면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고 얻을 것이
있어 마음을 내고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여우라고 한다. 이제 오장
육부에 아무 구할 것도 얻을 것도 없다면 대시주(大施主)이며 사자
후이다. 이 사람은 또한 얻을 것이 없는 거기에 머물지도 않고 머물
지 않는다는 생각마저도 없으니 육절사자(六絶獅子)라고 부른다.
너다 나다 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모든 악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이면서 일체 탐·진·팔풍(八風) 등을 일
으키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입 속에 큰 바위의 물을 머금으면서
일체 허망한 말은 귀에 받아들이지 않으며, 몸으로 남에게 전혀 나
쁜 짓을 하지 않아서 모든 불을 뱃속에 넣은 듯이 한다.
이렇게 낱낱의 경계에 혹하지 않고 성내지도 기뻐하지도 않으며
자기 육근문두(六根門頭)에서 깎아내고 정화하면 일 삼을 것 없는
사람(無事人)으로서 모든 알음알이(知解)를 극복하고 두타행(頭陀行)
정진한다 하겠다. 이를 천안(天眼), 또는 분명히 관조함으로써 눈을
삼는다(了照爲眼)고 한다. 또한 법계성(法界性)이라 하니, 수례를 만
들어 인과를 싣는 것이다.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면 앞 생각(前念)이 나지
않고 뒷 생각(後念)이 이어지지 않는다. 앞 생각의 활동
(業)이 없어지는 것을 중생을 제도했다고 한다. 앞 생각에 성을 내면
기쁜이라는 약으로 치료하니, 그것을 부처님이 계셔 중생을 제도한
다고 한다.
모든 말씀은 병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니 병이 같지 않으므로 약도
다르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부처님이 있다 하고 어떤 때는 부처님
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실다운 말로 병을 다스려 차도가 있으면
낱낱이 실다운 말이지만 차도가 없으면 그 모두가 허망한 말이다.
그러나 실다운 말이 견해를 내면 망령된 말이되고, 망령된 말이 중
생의 전도를 끊으면 실다운 말이 되니 병 또한 허망하여 허망과 약
이 서로 다스리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하신 9부교(九部敎)의 말씀
은 방편교설(不了義敎)이다.
성냄과 기쁨, 병과약이 그대로 자기라서 다시는 두 사람이 없는데,
어느 곳에 세간에 출현하는 부처가 있으며 어느 곳에 제도할 중생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경(經)에서도 '멸도(滅度)를 얻은 중생은 사실
없다'고 하였다. 또는 '부처와 보리를 좋아하지 않고 유·무 모든
법에 집착하고 물들지 않음을 남을 제도한다(度他)하고, 자기를 고집
하여 머물지 않음을 자기를 제도한다(自度)'고 하였다.
병이 같지 않기 때문에 약도 다르고 처방도 다르니 한 쪽으로만
고집해서는 안된다. 부처와 보리 등의 법에 의지하면 모조리 일정한
방향에 의지함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에 있어서는 한결같지
않다'고 하였던 것이다.
경전에서는 그것을 노란 잎사귀를 돈이라고 속이고 빈주먹
속에 있다고 속여 어린 아이를 달래는 비유를 들어하고 있다. 그러
나 사라음은 이 이치를 모르니 그것을 무명(無明)과 같다고 한다.
'반야를 행하는 보살은 내 말에 집착하거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는
다'하였다. 성내는 마음은 돌덩이 같고 애욕은 강물과 같다. 지금
성내는 마음과 애욕만 없다면 산하석벽을 꿰뚫고 당장 귀머거리 속
인병을 다스리며 다문변설(多聞辯說)로 눈병을 다스릴 것이다.
사람이 부처가 되면 얻었다(得)하고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지면 잃
었다(失)한다. 옳다(是)그르다(非)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조(三祖)께서 말씀하시기를, '시비득실을 동시에 놓아 버리라'하
셨다.
있다 없다 하는 등의 모든 법에 집착하여 머물지 않으면 그것을
유연(有緣)에 머물지 않는다 하고, 머물지 않는 거기에도 머물지 않
으면 그것을 공인(空忍:忍은 바른 앎, 지혜라는 뜻)에 머물지 않는다
고 한다. 자기 그대로가 부처이며 선도(禪道)를 깨달았다고 고집하
는 자를 내견(內見)이라 하며, 인연과 닦아 얻음을 통해 이룬다고 집
착하는 자를 외견(外見)이라 한다.
지공(誌公)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견과 외견 모두가 착각이다'라
고 하셨다.
눈·귀·코·혀가 각각 유·무 모든 법에 집착하여 물들지 않으면
이를 4구게(四句偈)를 수지(受持)한다고 하며, 사과(四果)라고도 한
다.
6입(六入)에 자취가 없는 것을 육신통(六通)이라 한다. 유·
무 모든법에 막히지 않고, 막히지 않음에 머물지도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면 이를 신통(神通)이라 한다. 나아가 이 신통
을 지키지 않으면 신통이 없다고 한다. '신통이 없는 보살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니, 가장 불가사의한 향상 부처님(佛向上
人)이시다. 또한 자기천(自己天)이며, 지혜로 관조함이다. 찬탄은 기
쁨이며 기쁨은 경계에 속한다. 이렇게 기뻐할 경계는 하늘이며 찬탄
하는 것은 사람이어서 사람과 하늘이 만나니 이것을 '청정한 지혜
(淨智)는 한늘, 바른 지혜(正智)는 사람'이라 하기도 한다.
본래 부처가 아닌데 부처라 하면 그것은 체결(體結)이며, 부처라는
생각을 내지 않고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없다는 것마저도
없으면 이를 매임을 없앴다(滅結), 또는 진여(眞如),체여(體如)라 한
다.
부처를 구하고 보리를 구하는 것을 현신의(現身意)라 하니, 조금이
라도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모조리 현신의라 한다. 그러므로 '보리를
구함이 훌륭한 구함이긴 하나 티끌(塵累)을 더할뿐이다'하였다. 부
처를 구하면 부처 대중이며, 유·무 등 모든 법을 구하면 중생 대중
인데 이제 비추어 깨달음으로 유·무등 모든 법에 머물지 않으면 대
중의 테두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소리·냄새·맛·촉감·법 등을 낱낱이 좋아하지 않고, 그 모든
경계를 탐착하지 않아서 십구(十句)의 탁한 마음이 없기만 하면 요
인성불(了因成佛)*이며, 글(文句)을 배워 깨닫고자
*이치를 바로 비추어 부처가 되는 것을 요인 성불이라 하는 것에 비
해 여러
하는 자는 인연성불(因緣成佛)이라 한다.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알면 부처님을 설명할 수 있지만 안다 본
다 하면 되려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이다. 부처가 알고 부처가 보고
부처가 설명한다 해야 맞을 것이다. 이것은 불(火)을 본다 하면 옳겠
지만 불이 본다 할 수는 없고, 칼로 물건을 벤다 하면 옳겠지만 물
건이 칼을 벤다 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부처를 안다는 사람, 부처
를 보았다는 사람, 부처를 설명하는 사람은 향하수 모래알 같으나,
부처의 앎, 부처의 봄, 부처의 들음, 부처의 말씀은 만에 하나도 없
다. 이들은 자신에게 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눈을
삼을 뿐이다. 경전에서는 이를 추론(比量智)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부처의 지해(知解)를 탐하는 것도 역시 비량지이다.
세간법으로 드는 비유를 유사비유(順喩)라 하는데 방편교설이 그
것이다. 궁극적인 교설(了義敎)은 반대비유(逆喩)인데 머리·눈·골
수·뇌를 버린다 한 것이 그것이다. 지금 부처·보리등의 법을 사랑
하지 않는다 함은 반대비유로서 버리기 어려움을 머리·눈·골수·
뇌에 비유하였다. 있다 없다 하는 모든 경계법을 관조함을 머리라
하고, 있다 없다 하는 경계법의 모양에 꺾이게 됨을 손이라 하며, 목
전에 경계를 전혀 관조하지 않을 때를 골수·뇌라 한다.
성지(聖地)에서 범인(凡因)을 익혀 부처님은 중생 속에 들어가 동
류로 이끌어 주시니, 그들 아귀와 함께 사지 마디마디를 불에 태우
며 반야바라밀을 설명하여 발심하게 한다. 만일 오로
가지 수행하는 연(緣)을 빌어 부처가 되는 것을 인연성불이라 한다.
지 성인의 경지에 있기만 한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그들에게 가서 말
해주겠는가.
부처님은 모든 부류에 들어가 중생들에게 배와 뗏목이 되어 주고
그들과 함께 무한한 수고로움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부처님은 괴로
운 곳에 들어가 중생과 함께 괴로움을 받지만, 가고 머뭄이 자유로
와 중생과 같지는 않다.
부처님은 헛되게 괴로움을 받지 않는데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
겠는가. 괴롭지 않다 한다면 이 말은 틀린 것이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 부처님은 신통이 자재하다느니 자재하지 못하다느니 하고 잘
못 만들 한다.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감히 부처님은 유위다 무위다하지
못하며, 감히 부처님은 자유롭다 자유롭지 않다 하지 못한다. 찬탄하
는 약방문(藥方文)을 제외하고는 추한 양 갈래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경에서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불보리를 한 쪽에 봉안하려 한다
면 그 사람은 큰 죄를 짓는 것이다'하였고, 또'부처님을 모르는 사람
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면 허물이 없다'라고도 하였다.
무루(無漏)우유가 유루(有漏)병을 치료하는 것과도 같으니 그 소
는 고원에 있지도 않고 하습지에 있지도 않아서 이 우유로 약을 만
들 만하다. 여기서 고원은 부처를 비유한 것이고 하습지는 중생을
비유한 것이다.
'여래실지법신(如來實智法身)에게는 이 병이 없다'한 것과도 같다.
막힘없는 말솜씨로 자유롭게 날면서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면 그
것을 쓰라린 생로병사의 아픔이라 한다. 이것이 버섯국을 가만히
마시고 설사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것이며, 가만히 밝은 자취를 숨긴
것이다.
밝음과 어둠을 모두 버리고, 갖느니 갖지 않느니 하지를 말라. 또
한 갖지 않다는 것마저 없애라. 그는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다.
왕궁에서 태어나 야소다라를 받아들이고 여덟가지 모습으로 성도
하였다(八相成道)한 것은 성문외도가 망상으로 헤아린 것이니, '잡다
하게 먹는 몸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순타(純陀:부처님께 마지막 공양을 올린 사람)가 말하기를,
'나는 여래께서 결코 받지 않고 먹지도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하였다.
무엇보다도 두 눈을 갖추고 양쪽 일을 관조해내야(照破)하며, 한
쪽 눈만 가지고 한 쪽으로만 가서는 안되니, 그러면 저쪽 어디에 가
게 될 것이다. 공덕천(功德天)과 흑암녀(黑暗女)는 늘 같이 다니는데
지혜있는 주인은 둘 다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을 허공같이 하고 배워야만 비로소 이룰 것이 있다.
인도의 첫 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 '설산(雪山)은 큰 열반에 비유
된다'하셨고, 이 땅의 초조(初祖)께서는 '마음마다 목석같이 하라'하
셨다.
삼조(三祖)께서는 '분명하게 인연을 잊는다'하셨고, 조계(曹溪)스님
께서는 '선이고 악이고 전혀 생각하지 말라'하셨으며,
스승(先師:마조)께서는 '길 잃은 사람이 방향을 못가리는 것과도 같
다'하셨다.
또한 조공(肇公)은 '지혜와 총명을 막아 버리고 홀로 깨달아 그윽
하고 그윽한 자이라'하셨으며, 문수는 '마음은 허공 같아서 예배·공
경으로 볼 바가 아니며, 심오한 수다라(修多羅)는 듣지도 못하고 수
지(受持)하지는 못한다'하셨다.
이제 있다 없다 하는 모든 법을 전혀 보지도 듣지도 말고 육근(六
根)을 막아라. 이렇게 공부하고 이렇게 경전을 지녀야 비로소 수행
할 자격이 있다 하겠다. 이 말은 귀에 거슬리고 입에 쓸 것이다. 이
가운데서 이처럼 할 수만 있다면 다음 생 다음 다음 생에 나서는 부
처없는 큰 도량에 앉아서 평등하고 바른 깨달음 이루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악을 선으로 바꾸고 선을 악으로 바꿔 악법으로 10지보살을 교화
하고 선법으로 지옥·아귀를 교화한다. 밝은 곳에서는 밝음의 결박
을 풀고 어두운 곳에서는 어두움의 결박을 풀 것이다. 황금을 흙으
로 만들고 흙을 황금으로 만들면서 모든 것으로 자유롭게 변화해 낼
수 있다.
항하사 세계 밖에서 구제해 주기를 바라는 자가 있으면 부처님께
서는 즉시 30상을 그 사람 앞에 나타내 그 사람의 언어로 설법해 주
신다. 근기 따라 교화하고 상대에 맞우처 다른 모습으로 무든 세계
에 변화해 나타난다.
이렇게 아(我)와 아소(我所)를 떠났다 해도 저쪽 일에 속하며, 작
은 작용이며, 불사를 짓는 법위에 포함된다. 크게 작용하는 자는 형
체없는 데에 그 큰 몸을 숨기고, 들릴락말락한
소리에 큰 음성을 숨긴다. 마치 나무 속의 불과 같고 종소리
북소리와도 같아 인연이 닿지 않았을 때는 그것이 있다 없다 할수
없는 것이다. 축생이 천상에 태어날 과보를 침 뱉듯 버린다. 보살은
육도만행을 닦으며 마치 죽은 시체를 타고 강둑으로 건너듯, 감옥에
갇혔다가 변소간 구멍으로 빠져나오듯 한다. 부처님이 30상을 나타
낸다 해도 그것을 '기름때 절은 옷'이 라고 한다. 또한 '부처님은 한
결같이 오음(五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한다면 틀린다'라고 말하
기도 한다.
부처님은 허공이 아닌데 어떻게 한결같이 받아들이지 않기만 하겠
는가. 가고 머뭄이 자유로와 중생과는 다르다. 한 천계(天界)에서
한 천계에 이르며, 한 불국토에서 한 불국토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변함없는 법이다.
또 말하기를, '3승교(三乘敎)에 의거한다면 그들의 신심어린 공양
을 받으면 그들은 지옥에 있으며, 보살은 자비를 행하여 동류가 되
어 교화 인도하며 은혜에 보답해야지, 항상 열반에만 있어선 안된다'
고 한다.
또 말하기를, '불이 불을 바라보둣이 만지지만 않으면 불이 사람을
태우지 못한다'라고 한다.
이제다만 10구(十句)가 없으면 된다. 탁한 마음·사랑하는 마음·
물든 마음·성내는 마음·고집하는 마음·머무는 마음·기대는 마음
·집착하는 마음·가지려는 마음·그리워하는 마음은 하나에 가각 3
구(三句)가 있다 낱낱이 3구 밖으로 꿰ㄸ으면 일체 비추는 작용(照
用)을 자유로이 내 맡기며 말하고 입 다물고 울고 웃는 모든 행위가
부처님의 지혜일 것
이다. 오래 서 있었다. 편히 쉬어라."
15.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대승도에 들어가 활짝 깨치는 요법입니까(大乘入道頓悟
法)?"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보다도 그대는 모든 인연을 쉬고 만사를 그만두라. 선(善)·
불선(不善)·세간·출세간,일체 모든 법을 다 놓아 버리고 기억하거
나 생각하지 말라. 몸과 마음을 놓아 버려 완전히 자유로와야 한다.
마음을 목석같이 하여 입 놀릴 곳 없고 마음 갈 곳이 없어야 한다.
마음의 대지가 텅 비면 구름장이 열리고 해가 나오듯 지혜의 햇살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다만 모든 인연을 쉬어 탐애와 성냄과 집착, 더럽다거나 깨끗하다
는 망정이 다하면 5욕8풍(五欲八風)이 닥쳐도 꿈쩍하지 않는다. 견
문각지(見聞覺知)에 막히지 않고 모든 법에 혹하지 않으면 자연히
갖가지 공덕과 신통묘용(神通妙用)을 갖춘 해탈인이니, 모든 경계를
대할 때 마음에 다툼과 혼란이 없다. 거두지도 않고 흩지도 않은 채
성색을 꿰ㄸ어 아무 걸림이 없으니 이런 사람을 도인(道人)이라 하
는 것이다. 선악·시비 그 어느것도 쓰지 않으며, 한 법도 애착하지
않고, 한 법도 버리지 않으니 이를 대승인(大乘人)이라 한다.
모든 선악, 공유(空有), 더럽고 깨끗함, 유위와 무위, 세간과 출세
간, 그리고 복이니 지혜니 하는 것에 매이지 않는 것을
부처님의 지혜라 한다.
시비나 미추, 옳은 이치다 그른 이치다 하는 온갖 알음알이(知解)
와 망정이 다하면 얽어맬 수 없어서, 어딜 가나 자유로우니, 이를 초
발심보살이 그대로 부처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는 것이다."
16.
누군가 물었다.
"어떤 경계를 대할 때 어찌해야 마음이 목석 같을 수 있겠습니
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법은 본래 스스로 말하지 않으니, 공(空)도 스스로 말하지
않으며, 색(色)도 말하지 않는다. 또한 시비와 염정도 사람을 얽어맬
마음이 없다. 단지 사람 스스로가 허망한 마을을 내어 얽매이고 집
착하여 몇가지로 이해와 지견을 지어내고 몇가지로 애욕과 두려움을
낼 뿐이다. 모든 법이 저절로 생기지 않고 자기 한 생각 망상이 전
도되어 모습을 가짐으로써 있게 되었음을 깨달아 마음과 경계가 본
래 서로 닿을 수 없음을 알면 그 자리 그대로가 해탈이고 낱낱이 모
든 법이 어디나 그대로 적멸 도량이다.
또 본래 성품은 무엇이라 이름붙일 수 없어서 본래 법부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며, 더러움도 깨끗함도 아니며, 공도 유도 선도 악도 아
니다. 단 이것이 모든 염법(染法)에 어울려주면 그것을 인간·천상
·이승(二乘)의 경계라 이름하는 것이다.
더럽거나 깨끗한 마음이 다하여 속박에도 머물지 않고 해탈에도
머물지 않으며, 유위 무위·속박 해탈등 모든 헤아림이 없어 생사를
일으켜도 그 마음이 자재하면 마침내 허망한 허깨비인 5온(蘊) 18계
(界) 등 티끌이나 나고 죽는 온갖 문(12人)과 합하지 않고 아득히
벗어나 기대지 않는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가고 머뭄에 걸림없
어 문 열리듯 생사에 왕래하게 되는 것이다.
도는 닦는 사람이라면 괴로움과 줄거음, 마음에 맞고 안맞는 갖가
지 일이 닥쳐오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명
이나 의식을 염두에 둔다거나 공덕과 이익을 탐내서는 안된다. 세간
어느 법에도 걸림 없으며 가까이 하거나 사랑하지 않고 고로움과 줄
거움을 똑같이 여기며, 거친 옷으로 추위를 막고 맛 없는 음식으로
연명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나 귀머거리·벙어리같이 되어
야 약간이라도 비슷해질 여지가 있을 것이다.
만일 마음 속으로 널리 지해(知解) 경계의 바람에 휘말려 생사 바
닷속으로 되돌아 갈것이다. 부처님은 구함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이치는 구할 것 없는 이치이니 구하면 잃는다. 그
렇다고 구함 없는 데에 집착하면 다시 구하는 것과 같아지며, 무위
에 집착하면 다시 유위와 같아진다.
그러므로 경에 말씀하시기를, '법에 집착하지 않고, 법 아니데 집
착하지도 않으며, 법 아님이 아닌 데도 집착하지 않는다'
하였다.
또 말씀하시기를, '여래께서 얻어신 이 법은 실재(實在)도 아니며
헛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일생동안 목석 같은 마음으로 5음 18계와 갖가지 처(人), 5욕 8풍
에 휘말리거나 빠져들지 않을 수만 있다면 생사의 인(因)이 끊긴다.
자유롭게 가고 머물며 모든 유위인과(有爲因果)나 유루(有漏)에 매
이지 않는다. 뒷날 다시 스스로 얽매이지 않는 이것으로 인(因)을
삼고 동사섭(同事攝)으로 이익케하며, 집착 없는 마음으로 모든 사물
을 대하며, 걸림 없는 지혜로 모든 속박을 풀어줄 것이니, 그것을
'병에 따라 약을 쓴다'라고 한다."
17.
누군가 물었다.
"이제 출가하여 계를 받고 몸과 입이 청정해져 이미 모든 법을 갖
추었다면 해탈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조금은 벗어났으나 아직 심해탈(心解脫)이나 일체처해탈(一切處
解脫)은 얻지 못했다.
18.
누군가 물었다.
"무엇이 심해탈이며 일체처해탈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법·승(佛法僧)을 구하지 않고, 복과 지혜,지해(知解)도 구하
지 않으며,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망정이 다하고 구함없는 이것을
옳게 여겨 붙들지도 않으며, 다한 그곳에 머물지도 않으며, 천당을
좋아하고 지옥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서 속박과 해탈에 걸림 없으면
그것으로 몸과 마음, 그 어디에 대해서나 '해탈'했다 하는 것이다.
그대가 어느 정도 계율을 닦아 3업이 청정하다 하여 다 끝냈다 말
하지 말라. 항하사 만큼의 계·정·혜(戒定慧) 방편과 무루해탈(無漏
解脫)은 전혀 털끝 만큼도 맛보지 못했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눈 귀가 어두어지고 백발에 주름살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당장
에 힘써 용맹정진하여 끝끝내 성취해야 한다. 늙음과 괴로움이 몸에
닥치면 슬픔과 애착에 얽매여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 속은 두려
워 어디도 의지할 곳이 없어 갈 곳을 모를 것이다. 이럴 때 가서는
손발을 정리할래야 할 수 없고 설사 복과지혜, 명리나 물질이 있다
해도 전혀 구제하지 못한다.
마음 지혜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경계를 반연할 뿐, 반조
할 줄은 몰라서 다시는 부처님의 도를 보지 못하고 일생 지었던 모
든 선악의 업연(業緣)이 한꺼번에 눈앞에 나타난다.
종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6도(六道)의 5음(五陰)이 동시에 눈앞에
나탄난다. 찬란한 빛을 내며 장엄함 모습으로 펼쳐지는집, 선박, 수
레등은 모두 자기 마음에서 탐내고 좋아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다.
나쁜 경계는 모조리 좋아할 만한 경계로 변하는데, 거기서
더 좋아하고 탐낸 쪽을 따른다. 이렇게 업식(業識)에 끌려가서 붙는
데로 생(生)을 받게 되는데 자기 의지라고는 전혀 없이 용(龍), 축생,
양민,천민 등 정처없이 가게 된다."
19.
누군가 물었다
"어찌해야 자기 의지를 얻을 수 있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이라도 할려면 할 수 있다. 5욕8풍을 마주하더라도 갖거나
버릴 마음이 없고, 간탐·질투·탐애 등 아소(我所)의 마음이 다하고
더러움과 청정함을 함께 잊으면 해와 달이 하늘에 떠 있는 듯 걸림
없이 비출 것이다.
마음마다 흙덩이나, 나무토막·돌같이 해야 하고 생각생각 머리에
타는 불을 끄듯 해야 한다. 또한 큰 코끼리가 강물을 끊고 건너듯
의심과 착각을 없애야 하니, 이러한 사람은 천당 지옥 어디에도 끌
려들지 않을 것이다."
백장록
(祖堂集)
1. 행록
마조(馬祖)스님의 법을 이었고, 강서(江西)에서 살았다. 스님의 휘
는 회해(懷海)이며, 복주(福州) 장락현(長樂縣)사람으로 성은 황(黃)
씨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더니 불
상을 가리키면서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처님이시다."
"생김새가 사람 같아서 나와 다름이 없는데요! 뒷날 나도 부처가
되겠습니다."
그 뒤에 스님이 되고서는 최상승(最上乘)을 흠모하여 바로 대적
(大寂:마조스님의 호)스님 회상으로 가니, 대적스님이 보자마자 맞이
하여 입실(入室)케 하였다. 스님께서 깊은 관문을 깨달은 뒤에는 다
시는 딴 곳으로 가지 않았다.
스님께서 평생동안 고상하고 절도있게 수행한 일은 형용키 어렵거
니와 날마다 운력에는 반드시 남보다 먼저 나섰다. 일
맡은 이가 민망하게 여겨 몰래 연장을 숨기고 쉬기를 청하니, 스님
께서 말했다.
"내가 아무런 덕(德)도 없는데 어찌 남들만 수고롭게 하겠는가."
스님께서 두루 연장을 찾다가 찾지 못하면 공양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하는 말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2. 상당·감변
1.
어떤 스님이 울면서 법당으로 들어오니, 스님께서 물었다.
"어째서 그러느냐?"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스님께서 장사지낼 날을 잡아 주십
시오."
"우선 돌아갔다가 내일 오너라. 한꺼번에 묻어주겠다."
2.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한 사람을 서당(西堂)에게 보내 말을 전하려 하는데
누가 가겠는가?"
오봉(五峯)스님이 나서서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어떻게 말을 전하겠는가?"
"서당스님을 만나는대로 말하겠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
"돌아와서 스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3.
위산(위山)스님이 밤늦게 스님를 뵈러 왔는데 스님께서 그를 보자
마자 말했다.
"화로에 불을 좀 지펴다오."
"불씨가 없습니다."
"아까 불씨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리고 벌떡 일어나 화롯가로 가서 손수 재를 헤쳐 불씨 한덩이를
집어들고는 말했다.
"이게 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위산스님은 당장에 깨달았다.
4.
스님께서 위산스님과 일을 하다가 물었다.
"불이 있는가?"
"있습니다"
"어디에 있는가?"
위산스님이 나무가지 하나를 들고 두어번 분 뒤에 스님께 바치니,
스님께서 말했다.
"벌레 먹은 나무 같구나."
5.
누군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아무아무라 합니다."
"그대는 나는 아는가?"
"분명합니다."
스님께서 불자(拂子)를 세워 들고 말했다.
"그대는 이 불자를 보는가?"
"봅니다."
스님께서 문들 말을 그쳤다.
6.
어느날, 운력을 하는데 어떤 스님이 갑자기 북소리를 듣자 소리
높여 웃으면서 절로 돌아오니, 스님께서 말했다.
"장하다. 이것이 관음이 진리에 드는 문(門)이로다."
그리고는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아까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그렇게 크게 웃었는가?"
"제가 아까 북소리가 나는 것을 듣자 돌아와서 밥을 먹게 되었습
니다. 그래서 크게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그만 두었다.
이에 장경(長慶)스님이 대신 말했다.
"역시 재(齋)로 인하여 경하하고 찬탄(慶讚)하는 것이로다."
7.
누군가 물었다.
"경에 의해서 뜻을 이해하면 3세 부처님이 원수이고, 경을 떠나서
는 한마디라도 마(魔)의 말과 같다 하는데 어찌합니까?"
"동작을 굳이 지키고 있으면 3세 부처님이 원수요, 이 밖에 따로
구하면 마의 동작과 같다."
8.
어떤 스님이 서당(西堂)스님에게 물었다.
"물음이 있고 대답이 있는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묻지도 않고 대
답치도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썩을까 걱정해서 무엇하려는가?"
스님께서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했다.
"처음부터 그 노장을 수상히 여겼다."
한 스님이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하자 스님께서는 "일합상
(一合相)은 얻을 수 없다"하셨다.
9.
스님께서 어떤 스님에게 이렇게 시켰다.
"장경(章經)스님에게 가서 그가 설법하려고 상당하거든 절하고 일
어나니 그이 신발 한 짝을 들고 소매로 먼지를 턴 뒤에 머리에 거꾸
로 이고 나오라."
그가 가서 스님의 지시대로 낱낱이 시행하니, 장경스님이 말
했다.
"내가 잘못했다."
10.
스님께서 행각할 때 선권사(善權寺)에 가서 경을 보려 하니, 주지
가 허락치 않고 이렇게 말했다.
"선승(禪僧)이 의복도 단정치 못하니 경을 더럽힐까 걱정이다."
스님께서 그래도 경 보기를 간절히 청하니. 마침내 허락하였다. 스
님께서 경을 다 본 뒤에 바로 대웅산(大雄山)에 가서 가르침을 폈다.
그 뒤, 공양주(供養主)를 하던 스님이 선권사로 와서 주지를 만나니,
주지가 물었다.
"어디서 떠났는가?"
"대웅산에서 왔습니다."
"누가 주지로 계시는가?"
"아마도 우리 스님께서는 행각하실 때, 이 절에서 경을 보신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해(海:백장)상좌가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러자 주지가 합장을 하고 말했다.
"나는 참으로 범부로다. 그때는 그가 인천(人天)의 참 선지식임을
몰랐다!"
11.
또 물었다.
"여기에는 무슨 일로 왔는가?"
"소(疏)를 지으려 합니다."
주지가 손수 소를 지어 온갖 일을 가르쳐 준 뒤에, 공양주를 데리
고 스님께 왔다.
스님께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얼른 산 밑으로 내려와서 그 들을
맞이해 와서 모든 인사를 마치고는 주지에게 선성(禪床)에 앉을 것
을 권하면서 말했다.
"내가 꼭 한 가지 주지께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주지가 사양타 못해 자리에 오르니, 스님께서 물었다.
"주지께서는 강을 하실 어떻게 하시오?"
"마치 금쟁반에 구슬 굴리듯 합니다."
"금쟁반을 들어버리면 구슬은 어디에 있소?"
주지가 대답을 못했다.
12.
또 물었다.
"교(敎)에서 말하기를, '분명하게 불성(佛性)을 보면 문수(文殊) 보
살의 경지와 같다'하였는데 이미 분명하게 불성을 보았다면 의당 부
처님과 같아야지 어째서 겨우 문수와 같다 하겠소?"
주지가 또 대답치 못했다.
이 일로 납의(衲衣)를 입고 선(禪)을 배워 호를 열반(涅槃)
화상이라 했으니, 그가 곧 제2의 백장(百丈涅槃)이었다.
13.
스님께서 어느날 저녁 깊은 잠에서 깼는데 갑자기 더운물이 마시
고 싶었다. 그러나 시자도 깊은 잠에 빠져 불러도 깨어나지 않았다.
조금 뒤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면서 시자를 불렀
다.
"큰 스님께서 더운물을 찾으시오."
시자가 벌떡 일어나 물을 끓여 스님께 가지고 오니, 스님께서 놀
라 물었다.
"누가 이렇게 물을 끓여오라 하던가?"
시자가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하니, 스님께서 손가락을 퉁기면
서 탄식했다.
"나는 결국 수행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구나. 만일 수행할 줄아는
사람이라면 사람도 느끼지 못하고 귀신도 알지 못해야 하는데 오늘
나는 토지신에게 내 마음을 들켜 이렇게 되었다."
14.
스님께서 운암(雲岩)스님을 보자 다섯 손가락을 들어 세우면
서 말했다.
"어느 것이 그대인가?"
운암스님이 "아닙니다"하니 스님께서 "어찌 그렇겠는가?"
하셨다.
15.
어느날, 스님께서 4경(새벽1시에서 3시)이 되도록 법당에
앉아 있었다.
그때 시자이던 운암이 세 차례나 곁에 와서 모시고 서 있었
다. 세번째 와서 모시고 섰을 때는 스님께서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서 침을 뱉으니 이에 시자가 물었다.
"스님, 지금 어째서 침을 뱉으셨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저는 시자입니다. 저에게 이야기를 못하시면 누구에게 하시겠습
니까?"
"물을 필요가 없다. 그대가 물을 일도 아니고 또 내가 말 할 일도
아니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라도 알고자 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
시오."
"사람을 몹시도 괴롭히는구나! 내가 사람이 못나 조금 전에 갑자
기 보리와 열반이 생각나길래 침을 뱉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보리와열반, 요의(了義)를 말씀
하셨습니까?"
"남에게 전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대가 물을 일이 아니며,
그대의 경계도 아니라 하지 않더냐."
16.
스님께서 법어를 내렸다.
"목구멍도 입술도 다물고서 속히 일러보라."
어떤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께서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말하기는 사양치 않겠으나 뒷날 내 자손들을 속일
것이다."
이 말씀에 운암스님이 대답했다.
"스님, 지금도(스님의 자손이)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소리쳤다.
"우리 자손들을 망쳤도다."
17.
스님께서 또 이렇게 법어를 내렸다.
"견(見)의 강물이 코끼리도 떠내려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보셨습니까?"
"보았다."
"보신 뒤엔 어떠셨습니까?"
"견(見)을 둘이 없는 것으로써 보았느니라."
"이미 말씀하시기를, '견을 둘이 없는 것으로써 보신다'하셨는데
견으로써 견을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견을 다시 본다면 앞
의 것을 보십니까? 뒤의 것을 보십니까?"
이에 스님께서 말했다.
"견을 볼 때에 견은 견이 아니니라. 견은 견까지도 연윈 것 이어
서 견으로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18.
스님께서 또 이렇게 법어를 내렸다.
"옛사람이 한 손을 들거나 한 손가락을 세우고서도 그것을 선이다
도다 하였는데 이 말이 끝없이 무수한 사람을 속박하는 구나. 설사
아무말 않더라도 역시 입으로 짓는 허물이 있다.
부(부)상좌가 이 일을 들려주며 취암(翠岩)스님에게 물었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것이 입으로 짓는 허물이 됩니까?"
"그저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상좌가 이틀을 말없이 지냈는데 취암스님이 부상좌에게 물었다.
"엊그제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대 뜻에 맞지 않는 모양인데, 자비를
버리지 마시고 자세히 말씀해 주시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그것이 입으로 짓는 허물이 됩니까?"
부상좌가 손을 번쩍 드니, 취암스님이 다섯 활개를 땅에 던져 절
하고 소리 내어 통곡하였다.
19.
스님께서 어느날 시자더러 제1좌(座)에게 가서 이렇게 묻게하였
다.
"실제의 이치에는 한 티끌도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불사(佛事)를
하는 쪽에서는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한 말씀은 궁극적인 교설(요
義敎)에 속하는가. 방편교설(不了義)에 속하는가?"
제1좌가 대답했다.
"물론 궁극적인 교설(了義敎)에 속한다."
시자가 돌아와서 아뢰니, 스님께서 시자를 때려서 내쫓았다.
20.
어떤 이가 물었다.
"무엇이 도에 들어 활짝 깨닫는 대승법(大乘入道頓悟法)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우선 그대는 모든 반연을 쉬고 민사를 쉬어서 착한 일, 착하지
못한 일 등 세간의 온갖 것들을 모두 놓아버린 뒤에 기억하지도 말
고 생각하지도 말라. 몸과 마음을 놔버려 자유롭게 하면, 마음은 목
석(木石)간이 되고 입으로는 말할 것이 없고 마음으로는 분별할 길
이 없어진다. 마음은 허공 같아 지혜의 해가 저절로 나타나는데 마
치 구름이 흩어지면 해가 나둣 할 것이다. 온갖 반연인 탐욕·성냄
·애착 등을 모두 쉬어서 더럽다거나 깨끗하다는 생각이 다하여 5욕
(五欲)과 8풍(八風)을 대하더라도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러한 속
박을 받지 않으며,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게 되면 자연히 신통과 묘
용(神通妙用)을 갖출 것이니 이는 해탈한 사람이다. 온갖 경계를 대
할 때 마음에 조용함도 어지러움도 없고 거둘 것도 흩어버릴 것도
없어서 온갖 빛과 소리를 만나더라도 걸림이 없으면 이런 이를 도인
(道人)이라 한다. 온갖 선악(善惡)과 더럽고 깨끗함, 유위
(有爲)세계의 복과 지혜에 얽매이지만 않으면 그것을 부처의
지혜라 한다. 시비나 미추, 옳은 이치나 그른 이치 등 모든 소견을
다 없애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어딜 가나 자유로우면 그
것을 처음 발심한 보살이 당장에 부처 지위에 올랐다고 한다.
모든 법은 스스로가 말하지 않아서, 공(空)도 스스로를 공이라 하
지 않고 색(色)도 스스로를 색이라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 더럽고
깨끗함도 사람을 속박할 생각이 없는데, 사람들 스스로 함부로 헤아
리고 집착하여 갖가지 견해를 짓고 갖가지 소견을 일으킨다. 그런데
더럽다 깨끗하다 하는 마음이 다하여 얽매임에도 머무르지 않고 해
탈에도 머무르지 않아서 온갖 유위 무위의 견해가 없이 평등한 마음
씨로 생사에 처한다면 그 마음은 자유로울 것이다. 마침내는 헛된
번뇌와 5온,18계, 생사와 모든 감관과 어우르지 않고 훤출히 뛰어나
의지한 곳이 없을 것이다.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아서 가고 옴에 자
유로우니, 생사의 길에 왕래하되 마치 문을 여닫는 듯할 것이다.
만일 갖가지 괴로움과 즐거움이 내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나더라도 물러서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명예나 의식(衣食)등의 이
익을 생각지도 말고, 온갖 공덕이나 이익 등을 탐내지도 말며, 세상
법에 마음을 걸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친하고 좋아하며 괴롭
고 즐거운 것이라도 생각에 두지 말며, 거칠은 음식으로 목숨을 잇
고 옷을 입되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 우뚝하니 바봐 같고 귀머거리
같이 되어야 비로소 조그만치 가까와질 여지가 있다. 생사(生死)의
길에서는 알음알이를 널리 배우거나 복과 지혜를 구하여도 진리에는
이익이 없고, 도리어
알음알이의 경계가 일으키는 바람에 휘말려 생사바다로 돌아가
게 될 것이다.
부처는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니 구하면 이치에 어긋나고,
진리는 구할 것이 없는 이치니 구하면 잃는다. 그렇다고 구함
이 없는 것에 집착하면 도리어 구하는 것과 같다.
이 법은 실(實)도 없고 허(虛)도 없으니, 만일 평생 동안 마음이
목석(木石)과 같아서 5음·18계·5욕·8풍에 흔들리지 않으면 생사
의 원인이 끊어져서 가고옴에 자유로와 모든 유위(有爲)의 인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뒷날엔 속박없는 몸으로 중생과 동
화되어 이익케 하고 속박없는 마음으로 모든 것에 응하며 속박없는
지혜로 모든 속박을 풀어서 병에 맞추어 약을 줄 것이다."
21.
어떤 이가 물었다.
"지금 계를 받아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온갖 착한 법을 다
갖추면 해탈을 얻겠습니까?"
"조금은 해탈을 할 수 있으나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면 온
갖 해탈을 얻지는 못한다."
"무엇이 마음의 해탈입니까?"
"부처도 구하지 않고, 알음알이도 구하지 않아서 더럽고 깨끗한
생각이 다한 뒤엔 이 구함없는 경지도 옳다고 고집하지 않아야 한
다. 다한 경지에도 머무르지 않고, 지옥의 속박도 두려워하지 않으
며, 천당의 즐거움도 좋아하지 않고, 일체법
구애되지 않아야 비로소 해탈하여 걸림이 없게 될 것이니 몸과
마음 등 모두를 해탈이라 하게 된다.
그대들은 조그만한 계행이나 선행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치
말라. 항하수 모래와 같이 수많은 무루(無漏)의 계·정·혜를 가졌
다 하더라도 전혀 쓸모가 없으니, 열심히 용맹정진하라.
귀 먹고 눈 어두운 늙음의 고통이 몸에 다가올 때까지를 기다리지
말라.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마음은 두려움에 떨면 갈곳이 없으
니 이 지경이 되면 손발을 쓰려 해도 소용이 없다.
설사 복과 지혜와 지식이 있다 하여도 전혀 구제할 수 없는데,
그것은 마음의 눈이 열리지 못하고 오직 모든 경계를 반연하여
돌이킬 줄 모르기 때문이다. 또 일생 동안의 악업(惡業)이 모두 앞
에 나타나서 반갑거나 두려운 6도와 5온이 앞에 나타나면 모두가 훌
륭한 집·배·수레로 보여서 찬란히 빛난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탐욕과 애착을 따랐기에 모두 좋은 경계로 보이는데, 보이는 데 따
라서 인연 많은 곳으로 태어나니 전혀 자유가 없어 용이 될지 축생
이 될지 양반이 될지 상놈이 될지 전혀 기약이 없다."
"어찌해야 자유로와집니까?"
"이제 5욕과 8풍을 대하여도 마음에 버리거나 선택함이 없고, 더
럽거나 깨끗함이 모두 없어져서 하늘의 해와 달이 아무것에도 걸리
지 않고 비추는 것같이 되어, 마음이 목석(木石)과 같고 강을 건너는
코끼리같이 전혀 의심이 없으면 이 사람은 천당이나 지옥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22.
스님께서 또 말했다.
"경을 읽거나 서적과 어록을 보는 목적은 모두가 자기에게로 돌아
가야 된다. 온갖 교법은 오직 현재 감각하는 성품인 자기를 밝히는
것이라야 하는데, 유무(有無)의 모든 경계에 끄달리지 않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처님(導師)께서도 온갖 유무의 경계를 꿰뚫어 무찌르
셨으니, 이것이 「금강경」에 있는 자유와 독립의 경지이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하면 설사 12부경을 다 외운다 하여도 모두가
증상만(增上慢)을 이루게 될 것이며, 도리어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어 수행도 아니고 경이나 어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만일 세상이 좋은 일뿐이라 하거나 밝은 사람 쪽으로만 향하다면
이는 옹색한 사람이다. 10지(地)에서도 세상의 흐름을 해탈치 못하
고 생사(生死)의 강으로 흘러들어가니, 지식으로 어구(語句)를 찾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 된다. 지식은 탐욕에 속하고, 탐욕은 병을 이루
니, 지금이라도 유무(有無) 모든 법을 여의어 3구(三句) 밖으로 뛰어
나면 자연히 부처님과 차이가 없게 될 것이다. 이미 스스로가 부처
인데 어찌 부처가 말을 하지 못한다고 근심하랴. 오직 부처가 유무
등 모든 법에 얽매여 더욱더욱 부자유하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해
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진리의 바탕 위에 서지 못한 채 복과 지혜가 있는
것은 마치 천한 이를 귀하다 하는 것 같으니, 진리의 바탕에 먼저
선 뒤에 복과 지혜가 있어서 때에 맞추어 행동하니
만 못하다. 그렇게 되면 흙을 가지고 금을 만들고 바닷물을 소酪(소
酪)으로 바꾸며, 수미산을 뭉개 먼지를 만들며, 한 이치를 무량한 이
치로 하고 무량한 이치를 한 이치로 하게 될 것이다."
그 밖의 교화한 인연은 실록(實錄)에 자세히 실려 있다. 조칙으로
시호를 대지(大智) 선사라 하고, 탑호(塔號)를 대보승(大寶勝)이라
하였다.
나옹록
보제존자어록 서 (普濟尊者語錄 序)
현릉 (玄陵:공민왕) 의 스승 보제존자는 서천 지공 (指空) 스님과 절강 (江) 서쪽의 평산
(平山) 스님에게서 법을 이어받아 종풍 (宗風) 을 크게 펼쳤다. 그러므로 스님의 한두 마디
말이나 짤막한 글귀라도 세상에서 소중히 여길 만하기에 어록을 펴내는 것이다.
스승의 도가 세상에 행해지느냐 행해지지 않느냐는 오로지 뒷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
런데 뒷사람들이 스승의 도를 알려면 그 분의 어록을 통하지 않고는 길이 없기 때문에, 자
연히 제자들로서는 어록 출판에 힘쓰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변변찮은 재주에 왕명을 받들어 명 (銘) 을 짓고 또 그 어록을 추천하게 되었으니, 이
것이 나의 행인가 불행인가는 뒷사람이나 알 것이다.
스님의 제자 각우 (覺) ·각연 (覺然) ·각변 (覺卞) 등이 옛 본을 교정하여 출판하려고 내
게 서문을 청하므로 여기에 간단히 쓰는 바이다.
창룡(蒼龍) 기미년(1379) 8월 16일에 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 씀.
서 (序)
행촌공 (杏村空:李 . 고려말의 문신, 문하시중) 이 나옹스님에 관한 기록을 내게 보이면서,
나옹스님은 연도 (燕都) 에 가서 유학하고 또 강남 (江南) 으로 들어가 지공 (指空) 스님과
평산 (平山) 스님을 찾아뵙고 공부하고는 법의 (法衣) 와 불자 (拂子) 를 받는 등, 오랫동안
불법에 힘써 왔다고 하였다.
원제 (元帝) 는 더욱 칭찬하고 격려하며 광제선사 (廣濟禪寺) 에 머물게 하고, 금란가사 (金
聆袈裟) 와 불자를 내려 그의 법을 크게 드날렸으며, 또 평소에도 스님의 게송을 사람들에
게 많이 보여 주었다고 한다.
본국으로 돌아와서는 산수 (山水) 속에 자취를 감추었는데, 왕이 스님의 이름을 듣고 사자
를 보내 와주십사 하여 만나보고는 공경하여 신광사 (神光寺) 에 머무시게 하였다. 나는 가
서 뵈오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던 차에, 하루는 스님의 문도가 스님의 어록을 가지고
와서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그때 나는 "도가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없는 법이오. 나는 유학 (儒學) 하는 사
람이라 불교를 모르는데 어찌 서문을 쓰겠소"라고 하였다. 그러나 옛날 증자고 (曾子固) 는
"글로써 불교를 도우면 반드시 비방이 따른다. 그러나 아는 사이에는 거절할 수가 없다" 하
였다.
지금 스님의 어록을 보니 거기에 `부처란 한 줄기 풀이니, 풀이 바로 장육신 (丈六身:佛身)
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면 부처님 은혜를 갚기에 족하다.
나도 스님에 대해 말한다.
나기 전의 면목을 이미 보았다면 한결같이 향상 (向上) 해 갈 것이지 무엇하러 오늘날 사람
들에게 글을 보이는가. 기어코 한 덩이 화기 (和氣) 를 얻고자 하는가. 그것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나도 이로써 은혜 갚았다고 생각하는데,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스님은
지난날 지공스님과 평산스님을 스승으로 삼았는데, 지공스님과 평산스님도 각각 글을 써서
법을 보였다.
소암 우공 (邵艤虞公) 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천지가 하나로 순수히 융합하니
한가한 몸이 온종일 한결같다
왔다갔다하다가 어디서 머물까
서른 여섯의 봄 궁전이다.
地天一醇融 閑身盡日同
往來何所缺 三十六春宮
대개 이치에는 상 (象) 이 있고 상에는 수 (數) 가 있는데, 36은 바로 천지의 수다. 천지가
합하고 만물이 자라는 것이 다 봄바람의 화기에 있듯이, 이른바 하나의 근본이 만 가지로
달라진다는 것도 다 이 마음이 움직일 수 있고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나옹스님의 한
마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부디 지공스님이나 평산스님의 전하지 않은 이치를
전해 받아 자기의 법도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정 (至正) 23년 (1363) 가을 7월 어느날,
충겸찬화공신 중대광문하찬성사 진현관대제학 지춘추관사치사 직산담암 백문보 화보 (忠謙
贊化功臣重大翠門下贊成事進賢�v大提學知春秋�v事致仕稷山淡艤白文寶和父) 는 삼가 서한다.
탐명 (塔銘)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랑 중문충보절동덕 찬화공신 중 대광한산군 예문관대
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신이색 봉교찬 〔前朝列大夫征東行中書省左
右司中文*忠報節同德贊化空臣重*大匡韓山君藝文�v大提學知春秋�v事*成均大司成知
書事*臣李穡 奉敎撰〕
수충찬화공신 광정대부 정당문학예문관대제학 상호군제점서운관사 신권중화 봉교서
병단전액 〔輸忠贊化空臣翠紛大夫政堂文學藝文�v大提學上護軍提點書雲觀事臣權仲和奉
敎書幷丹*額〕
현릉 (玄陵) 20년 (1370) 경술 9월 10일에 왕은 스님을 서울로 불러들이시고, 16일에는
스님이 머무시는 광명사 (廣明寺) 로 나아가셨다. 양종오교 (兩宗五敎) 의 제방 납자들을 많
이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하고, 그것을 공부선 (功夫選) 이라 하여 임금이 친히 나가 보셨
다.
스님은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 〔臼〕 을 모두 부수고 범성 (凡聖) 의 자취를 다 쓸어버리며, 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의심을 떨어버린다. 잡았다 놨다 함이 손안에 있고 신통 변화는 작용
〔機〕 에 있으니, 3세 부처님이나 역대 조사님네나 그 규범은 같도다. 이 법회에 있는 여러
스님네는 사실 그대로 대답하시오."
그리하여 차례로 들어와 대답하게 하였는데, 모두 몸을 구부리고 땀을 흘리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는 알았으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
며, 한마디 하고는 물러가기도 하였으므로 임금은 매우 불쾌한 빛을 보이는 것 같았다.
끝으로 환암 혼수 (幻庵混修) 스님이 오자 스님은 3구 (三句) 와 3관 (三關) 을 차례로 묻
고, 법회를 마치고는 회암사 (檜岩寺) 로 돌아가셨다.
신해년 (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 (工部尙書 張子溫) 을 보내 편지와 도
장과 법복과 바루를 내리시고는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 (封) 하시고, 동방 제일 도량인 송광사 (松廣寺) 에 계시라고 명하셨다.
임자년 (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하신 삼산양수 (三山兩水) 를 생각하
고 회암사로 옮기려 하였는데, 마침 임금의 부름을 받고 회암사 법회에 나아갔다가 임금께
청하여 거기 있게 되었다. 스님은 "돌아가신 스승 지공스님이 일찍이 이 절을 중수하셨는데,
전란에 탔으니 어찌 그 뜻을 이어받지 않으랴" 하고는 대중과 의논하여 전각과 집들을 더
넓혔다. 공사를 마치고 병진년 (1376) 4월에 낙성식을 크게 열었다.
대평 (臺評) 의 생각에 회암사는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사람들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므로 혹 생업에 폐가 될까 염려되어 왕래를 금하였다.
그리하여 영원사 (瑩源寺:경남 밀양에 있음) 로 옮기라는 임금의 명령이 있었고, 빨리 출발
하라는 재촉이 있었다. 스님은 마침 병중에 있었으므로 가마를 타고 절 입구의 남쪽에 있는
못가로 나갔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이 모두 의아하게 여겨 소
리내어 우니 스님은 대중을 돌아보고 말씀하셨다.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 (瘻興)
에 가서 멈출 것이오."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 (¿) 에게 말씀하셨다.
"내 병이 심하오. 배를 빌려 타고 갑시다."
그리하여 물길을 따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렀다. 거기서 또 탁첨에게 말씀하셨다.
"조금 쉬었다가 병세가 좀 나아지면 가고 싶소."
탁첨은 기꺼이 그 말을 따라 신륵사 (神勒寺) 에 머물렀다. 5월 15일에 탁첨은 또 빨리 가자
고 독촉하였다.
스승은 입을 열었다.
"그것은 어렵지 않소. 나는 아주 갈 것이오."
그리고는 그날 진시 (辰時) 에 고요히 돌아가셨다.
그 고을 사람들은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화장하고 뼈를 씻을 때에는
구름도 없이 사방 수백 보에 비가 내렸다. 사리 150개가 나오니 거기에 기도하고 558개로
나누었다. 사부대중이 재 속에서 그것을 찾아 감추어 둔 것만도 부지기수였다. 신령한 광채
가 나다가 3일 만에야 그쳤다.
석달여 (繹達如) 는 꿈에 화장하는 자리 밑에 용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
과 같았다. 초상 배가 회암사로 돌아올 때에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물이 넘쳐흘렀다. 사람
들은 그것이 여룡 (瘻龍) 의 도움이라 하였다.
8월 15일에 회암사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우고 정골사리 (頂骨舍利) 는 신륵사에 두었다. 화
장을 하고 석종 (石鍾) 으로 덮은 것은 감히 잘못되는 일이 있을까 하여 경계한 것이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선각 (禪覺) 이라 시호를 내리고, 신 색 (穡) 에게는
글을 지으라 명하고, 신 중화 (仲和) 에게는 단전액 (丹額) 을 쓰게 하였다.
신이 삼가 생각을 더듬어보니, 스님의 휘 (諱) 는 혜근 (惠勤) 이요, 호는 나옹 (懶翁) 이며,
본래 이름은 원혜 (元惠) 이다. 향년 (享年) 57세, 법랍 (法瀘) 은 38세이며, 영해부 (寧海
府) 사람으로 속성은 아 (牙) ) 씨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 (瑞具) 로서 선관령 (膳官令) 을
지냈고, 어머니 정 (鄭) 씨는 영산군 (靈山郡) 사람이다.
정씨는 꿈에 황금빛 새매가 날아와 머리를 쪼으며 갑자기 오색빛이 찬란한 알을 떨어뜨려
품안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 (延祐) 경신년 (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스무 살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
느냐고 물었는데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 (功德山) 에 들어가 요
연 (了然) 스님께 귀의하여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은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출가했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할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이것이 이렇게 왔으나 다만 수행하는 법을 모릅니다."
"나도 그대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지정 (至正) 갑신년 (1344) 에 회암사로 가서 밤낮으로 혼자 앉았다가 갑자기 깨치고는, 중
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으리라 결심하였다.
무자년 (1348) 3월에 연도 (燕都) 에 들어가 지공스님을 뵙고 문답하여 계합한 바 있었다.
10년 (1350) 경인 1월에 지공스님은 대중을 모으고 법어를 내렸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
는데, 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와 몇 마디하고 세 번 절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공스님은 서
천 (西天) 의 108대 조사다.
그 해 봄에 남쪽 강제 (江) 지방을 돌아다니다가 가을 8월에는 평산 (平山) 스님을 찾아뵈
었다. 평산스님은 물었다.
"일찍이 어떤 사람을 보았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았는데, 그 분은 날마다 천검 (千劍) 을 썼습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 (一劍) 을 가져 오라."
스님은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밀쳤다. 평산스님은 선상에 쓰러지면서 "이 도둑놈이 나를 죽
인다!" 하고 크게 외쳤다.
스님은 "내 검 (劍) 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합니다" 하고 붙들어 일으
켰다. 평산스님은 설암 (雪艤) 스님이 전한 급암 (及艤) 스님의 가사와 불자를 전해 신표를
삼았다.
신묘년 (1351) 봄에 보타락가산 (¿陀洛迦山) 으로 가서 관음보살께 예배하고 임진년
(1352) 에 복룡산 (伏龍山) 으로 가서 천암 (千巖) 스님을 뵈었다. 천암스님은 마침 스님네
들을 천여 명 모아놓고 입실 (入室) 할 사람을 뽑고 있었다. 천암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스님이 대답하자 천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그러자 천암스님은 입실을 허락하였다.
그 해에 북방으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오니 지공스님은 법의와 불자와 범서 (梵書)
를 주었다. 그리하여 스님은 연대 (燕代) 의 산천을 돌아다니는 말쑥하고 한가한 도인이 되
었다.
스님의 명성이 궁중에 들어가 을미년 (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어 대도 (大都) 의
광제사 (廣濟寺) 에 머물렀고, 병신년 (1356) 10월 15일에는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원
사 야선첩목아 (院使 也先帖木兒) 를 보내 금란가사와 비단을 내리시고, 황태자는 금란가사
와 상아불자 (象牙拂子) 를 가지고 참석하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 들고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천천히 말씀하셨다.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하고 나서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가로 잡
고 두어 마디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무술년 (1358) 봄에 지공스님에게 수기 (授記) 를 얻고 귀국해서는 다니거나 머무르거나
인연 따라 설법하다가, 경자년 (1360) 에는 오대산에 들어가 살으셨다.
신축년 (1361) 겨울에 임금님은 내첨사 방절 (內事 方節) 을 보내 서울에 맞아들여 마음의
요체에 대한 법문을 청하고 만수가사 (滿繡袈裟) 와 수정불자 (水精拂子) 를 내리셨다. 공주
(公主) 는 마노불자를 올리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베풀고 신광사 (神光寺) 에 계시기를 청
하였으나 사양하자 임금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겠다" 하시므로 부득이 부임하셨다.
11월에 홍건적 (紅巾己) 이 서울 근방 〔京幾〕 을 짓밟았으므로 도성 사람들이 모두 남쪽
으로 옮겼다. 스님네들이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청하자 스님은, "명 (命) 이 있으
면 살겠거늘 도적인들 어찌하겠는가" 하셨다. 그러나 며칠을 두고 더욱 졸라대었다. 그날 밤
꿈에, 얼굴에 검은 글이 쓰여진 신인 (神人) 하나가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지
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이니, 스님은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였다. 이튿날 토지
신 (土地神) 을 모신 곳에 가서 그 용모를 보았더니 꿈에 본 그 얼굴이었다. 도적은 과연 오
지 않았다.
계묘년 (1363) 에 구월산 (九月山) 에 들어갔더니 임금은 내시 김중손 (金仲孫) 을 보내 돌
아오기를 청하였다.
을사년 (1365) 3월에 대궐에 들어가 물러가기를 청하여 비로소 숙원 (宿願) 을 이룬 뒤에
는, 용문 (龍門) ·원적 (元寂) 등 여러 산에서 노닐다가 병오년 (1366) 에는 금강산에 들
어갔고, 정미년 (1367) 가을에는 청평사 (淸平寺) 에 머물렀다.
그 해 겨울에는 예보암 (猊¿岩) 이 지공스님의 가사와 친필을 스님에게 주면서 치명 (治命:
죽을 무렵에 맑은 정신으로 하는 유언) 이라 하였다.
기유년 (1369) 에 다시 오대산에 들어갔다. 경술년 (1370) 봄에는 사도 달예 (司徒 達睿)
가 지공스님의 영골 (靈骨) 을 받들고 와서 회암사에 두니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였다. 그
리고 곧 임금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광명사 (廣明寺) 에서 여름을 지내고 가을에 회암사로
돌아왔으니, 그것은 9월에 공부선 (工夫選) 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을 강월헌 (江月軒) 이라 하였다. 평생에 세속의 문자를 익히지는 않았으
나, 제영 (題詠) 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붓을 들어 그 자리에서 써주었는데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이치가 심원하였다.
만년에는 장난삼아 산수화 그리기를 좋아하여 권도 (權道) 의 시달림을 받았으니, 아아, 도
를 통하면 으레 재능도 많아지는가 보다.
신 색 (穡) 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진실로 선을 깨친 〔禪覺〕 이시며
기린의 뿔이로다
임금의 스승이요
인천의 눈이로다
뭇 승려들 우러러보기를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신령한 새매 꿈이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용신 (龍神) 이 초상을 호위함하여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나니
강은 넓게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밟았도다
공 (空) 인가 색 (色) 인가
위아래가 훤히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깊이 멸하지 않으리라.
展也禪覺 惟麟之角
王者之師 人天眼目
萬衲宗之 如水赴壑
而鮮克知 所立之卓
夢赫靈 在厥初生
龍神護喪 終然允藏
曰舍利 表其靈異
江之闊矣 皎皎明月
空耶色耶 上下洞徹
哉高風終 終古不滅
7년 6월 어느 날 비를 세우다
비는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 회암사 (京畿道 楊州郡 檜泉面 檜岩里 檜岩寺) 에 있
다. 고려의 폐왕 (廢王) 인 우왕 (王) 정사년 (1377) 에 세우다. 비의 높이는 5척, 너비는 3
척 2촌, 글자의 지름은 7푼, 예서제액자 (隷書題額字) 의 지름은 3촌 3푼. 전서 (書) 로 음기
(陰記) 한 것이 닳아 없어져 읽을 수 없다.
행장 (行狀)
문인 각굉 (門人覺宏) 지음
스님의 휘는 혜근 (慧勤) 이요 호는 나옹 (懶翁) 이며, 본 이름은 원혜 (元慧) 이다. 거처하
는 방은 강월헌 (江月軒) 이라 하며, 속성은 아 (牙) 씨인데 영해부 (寧海府) 사람이다. 아
버지의 휘는 서구 (瑞具) 인데 선관서령 (膳官署令) 이란 벼슬을 지냈고, 어머니는 정 (鄭)
씨다.
정씨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 (延祐) 경신년 (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날 때부터 골
상이 보통 아이와 달랐고, 자라서는 근기가 매우 뛰어나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부모가 허
락하지 않았다.
20세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모
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 묘적암 (妙寂艤) 의 요연 (了然) 스님에게 가서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머리를 깎았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여기 왔을 뿐이거니와 볼 수 없는 몸을 보고 찾을 수 없는 물건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그리하여 스님은 요연스님을 하직하고 여러 절로 돌아다니다가 지정 (至正) 4년 (1344)
갑신년에 회암사로 가서 한 방에 고요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앉아 있었다.
그때 일본의 석옹 (石翁) 화상이 그 절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승당 (僧堂) 에 내려
와 선상 (禪滅) 을 치며 말하였다.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
대중은 말이 없었다. 스님은 게송을 지어 보였다.
선불장 (選佛場) 에 앉아서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
選佛場中坐 惺惺着眼看
見聞非他物 元是舊主人
그 뒤 4년 동안을 부지런히 닦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깨친 뒤에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도를 구하려 하였다.
정해년 (1347) 11월에 북을 향해 떠나 무자년 (1348) 3월 13일에 대도 (大都) 법원사 (法
源寺) 에 이르러, 처음으로 서천의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려에서 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신통 (神通) 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신통을 나타내 보여라."
스님은 그 앞으로 가까이 가서 합장하고 섰다. 지공스님은 또 물었다.
"그대가 고려에서 왔다면 동해 저쪽을 다 보고 왔는가?"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왔겠습니까?"
"집 열 두 채를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 그대를 여기 오라 하던가?"
"제 스스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뒷사람들을 위해 왔습니다."
지공스님은 허락하고 대중과 함께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올렸다.
산과 물과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도다
자성 (自性) 이 원래 청정한 줄 비로소 알았나니
티끌마다 세계마다 다 법왕의 몸이라네.
山河大地眼前花 萬像森羅赤復然
自性方知元淸淨 塵塵刹刹法王身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서천의 20명과 동토의 72명은 다 같은 사람인데 지공은 그 가운데 없다. 앞에는 사람이 없
고 뒤에는 장군이 없다. 지공이 세상에 나왔는데 법왕이 또 어디 있는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법왕의 몸, 법왕의 몸이여
삼천 (三天) 의 주인이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
천검 (千劍) 을 뽑아들고 불조를 베는데
백양 (白陽) *이 모든 하늘을 두루 비춘다.
法王身法王身 三天爲主利群民
千劍單提斬佛祖 百陽普遍照諸天
나는 지금 이 소식을 알았지만
그래도 우리집의 정력만 허비했네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부상 (扶桑) 의 해와 달이 서천 (西天) 을 비춘다.
吾今識得這消息 猶是幢家弄精魂
也大奇也大奇 扶桑日月照西天
지공스님이 응수했다.
"아버지도 개요 어머니도 개며 너도 바로 개다."
스님은 곧 절하고 물러갔다.
그 달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공스님은 그것을 보고 게송을 지었다.
잎은 푸르고 꽃은 피었네 한 나무에 한 송이
사방 팔방에 짝할 것 하나도 없네
앞일은 물을 것 없고 뒷일은 영원하리니
향기가 이르는 곳에 우리 임금 기뻐하네.
葉靑花發一樹一 十方八面無對一
前事不問後事長 香氣到地吾帝喜
스님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해마다 이 꽃나무가 눈 속에 필 때
벌 나비는 분주해도 새 봄인 줄 몰랐더니
오늘 아침에 꽃 한 송이 가지에 가득 피어
온 천지에 다 같은 봄이로다.
年年此樹雪裏開 蜂蝶忙忙不知新
今朝一箇花滿卿 普天普地一般春
하루는 지공스님이 법어를 내렸다.
선 (禪) 은 집 안이 없고 법은 밖이 없나니
뜰 앞의 잣나무를 아는 사람은 좋아한다
청량대 (淸凉臺) 위의 청량한 날에
동자가 세는 모래를 동자가 안다.
禪無堂內法無外 庭前栢樹認人肯
淸凉臺上淸凉日 童子數沙童子知
스님은 답하였다.
들어가도 집 안이 없고 나와도 밖이 없어
세계마다 티끌마다 선불장 (選佛場) 이네
뜰 앞의 잣나무가 새삼 분명하나니
오늘은 초여름 사월 초닷새라네.
入無堂內出無外 刹刹塵塵選佛場
庭前栢樹更分明 今日夏初四月五
하루는 지공스님이 스님을 불러 물었다.
"이 승당 안에 달마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저 밖에 있는 재당 (齋堂) 을 그대는 보는가?"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승당으로 돌아가버렸다.
지공스님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두루 찾아뵙고 마지막으로 미륵을 뵈었을 때, 미륵이 손가락을 한
번 퉁기매 문이 열리자 선재는 곧 들어갔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안팎이 없다 하는가?"
스님은 시자를 통해 대답하였다.
"그때 선재는 그 속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시자가 그대로 전하니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이 중은 고려의 노비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 (普慶寺) 를 보는가?"
"벌써부터 보았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있던가?"
"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런 말을 합디다.
"차를 마시고 가거라."
그 뒤 어느 날 스님은 게송을 지어 지공스님에게 올렸다.
미혹하면 산이나 강이 경계가 되고
깨치면 티끌마다 그대로가 온몸이네
미혹과 깨침을 모두 다 쳐부수었나니
닭은 아침마다 오경 (五更) 에 홰치네.
迷則山河爲所境 悟來塵塵是全身
迷悟兩頭俱打了 朝朝鷄向五更啼
지공스님은 대답하였다.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노라."
지공스님은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 10년 동안 판수 (板首) 로 있게 하였다.
경인년 (1350) 1월 1일, 지공스님은 황후가 내리신 붉은 가사를 입고 방장실 안에서 대중을
모으고 말하였다.
"분명하다 법왕이여, 높고 높아 이 나라를 복되게 한다. 하늘에는 해가 있고 밑에는 조사가
있으니 노소를 불문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다 마주해 보라."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대중 속에서 나아가 말하였다.
"분명하다는 것도 오히려 저쪽 일인데, 높고 높아 나라를 복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빈
소리다. 하늘의 해와 땅의 조사를 모두 다 쳐부수고 난 그 경계는 무엇인가."
지공스님은 옷자락을 들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안팎이 다 붉다."
스님은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해 3월에 대도를 떠나 통주 (通州) 에서 배를 타고, 4월 8일에 평강부 (平江府) 에 이르
러 휴휴암 (休休艤) 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7월 19일에 떠나려 할 때, 그 암자의 장로가
만류하자 스님은 그에게 게송을 지어 주었다.
쇠지팡이를 날려가며 휴휴암에 이르러
쉴 곳을 얻었거니 그대로 쉬어버렸네
이제 이 휴휴암을 버리고 떠나거니와
사해 (四海) 와 오호 (五湖) 에서 마음대로 놀리라.
鐵錫橫賑到休休 得休休處便休休
如今捨却休休去 四海五湖任意游
8월에 정자선사 (淨慈禪寺) 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몽당 (蒙堂) 노스님이 스님에게 물었
다.
"그대 나라에도 선법 (禪法) 이 있는가?"
스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부상국 (扶桑國) 에 해가 오르매
강남의 바다와 산이 붉었다
같고 다름을 묻지 말지니
신령한 빛은 고금에 통하네.
日出扶桑國 江南海嶽紅
莫問同與別 靈光亘古通
그 노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곧 평산처림 (平山處林) 스님을 뵈러 갔다. 그때 평산스
님은 마침 승당에 있었다. 스님이 곧장 승당에 들어가 이리저리 걷고 있으니 평산스님이 물
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오?"
"대도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고 왔습니다."
"지공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던가?"
"지공스님은 날마다 천검 (千劍) 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 (一劍) 을 가져 오라."
스님이 대뜸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후려치니 평산스님은 선상에 거꾸러지면서 크게 외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
스님은 곧 붙들어 일으켜 주면서 말하였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합니다."
평산스님은 `하하' 크게 웃고는 곧 스님의 손을 잡고 방장실로 돌아가 차를 권했다. 그리하
여 몇 달을 묵게 되었다.
어느 날 평산스님이 손수 글을 적어 주었다.
"삼한 (三韓) 의 혜근 수좌가 이 노승을 찾아왔는데, 그가 하는 말이나 토하는 기운을 보면
불조 (佛祖) 와 걸맞다. 종안 (宗眼) 은 분명하고 견처 (見處) 는 아주 높으며 말 속에는 메
아리가 있고 글귀마다 칼날을 감추었다. 여기 설암스님이 전한 급암 스승님 〔先師〕 의 법
의 한 벌과 불자 하나를 주어 믿음을 표한다."
뒤이어서 게송을 지어 주었다.
법의와 불자를 지금 맡기노니
돌 가운데서 집어낸 티없는 옥일러라
계율의 근 (根) 이 깨끗해 보리 (菩提) 얻었고
선정과 지혜의 광명을 모두 갖추었네.
拂子法衣今付囑 石中取出無瑕玉
戒根永淨得菩提 禪定慧光皆具足
11년 (1351) 신묘 2월 2일, 평산스님을 하직할 때 평산스님은 다시 글을 적어 전송하였다.
"삼한의 혜근 수좌가 멀리 호상 (湖上) 에 와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가, 다시 두루 참학하려
고 용맹정진할 법어를 청한다. 토각장 (兎角杖) 을 들고 천암 (千巖) 의 대원경 (大圓鏡)
속에서 모든 조사의 방편을 한 번 치면, 분부할 것이 없는 곳에서 반드시 분부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게송을 지어 주었다.
회암 (檜岩) 의 판수 (板首) 가 운문 (雲門) 을 꾸짖고
백만의 인천 (人天) 을 한 입에 삼켰네
다시 밝은 스승을 찾아 참구한 뒤에
집에 돌아가 하는 설법은 성낸 우뢰가 달리듯 하리.
檜巖板首罵雲門 百萬人天一口呑
更向明師參透了 廻家說法怒雷奔
스님은 절하고 하직한 뒤에 명주 (明州) 의 보타락가산 (補陀洛迦山) 으로 가서 관음을 친
히 뵈옵고, 육왕사 (育王寺) 로 돌아와서는 석가상 (繹迦像) 에 예배하였다. 그 절의 장로
오광 (悟光)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스님을 칭찬하였다.
분명히 눈썹 사이에 칼을 들고
때를 따라 죽이고 살리고 모두 자유로워
마치 소양 (昭陽) 에서 신령스런 나무 보고
즐겨 큰 법을 상류 (常流) 에 붙이는 것 같구나.
當陽掛起眉間劍 殺活臨機總自由
恰昭昭陽見靈樹 肯將大法付常流
스님은 또 설창 (雪窓) 스님을 찾아보고 명주에 가서 무상 (無相) 스님을 찾아보았다.*
또 고목 영 (奇木榮) 스님을 찾아가서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았는데 고목스님이 물었다.
"수좌는 좌선할 때 어떻게 마음을 쓰는가?"
"쓸 마음이 없소."
"쓸 마음이 없다면 평소에 무엇이 그대를 데리고 왔다갔다하는가?"
스님이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니 고목스님이 말하였다.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그 눈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무엇으로 보는가?"
스님은 악! 하고 할 (喝) 을 한 번 하고는 "어떤 것을 낳아준 뒤다 낳아주기 전이다 하는
가?" 하니 고목스님은 곧 스님의 손을 잡고, "고려가 바다 건너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하였
다. 스님은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임진년 (1352) 4월 2일에 무주 (州) 복룡산 (伏龍山) 에 이르러 천암 원장 (千巖元長) 스
님을 찾았다. 마침 그 날은 천여 명의 스님네를 모아 입실할 사람을 시험해 뽑는 날이었다.
스님은 다음의 게송을 지어 올렸다.
울리고 울려 우뢰소리 떨치니
뭇 귀머거리 모두 귀가 열리네
어찌 영산 (靈山) 의 법회뿐이었겠는가
구담 (曇) 은 가지도 오지도 않네.
擊擊雷首振 群聾盡豁開
豈限靈山會 瞿曇無去來
그리고 절차에 따라 입실하였다.
천암스님은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는가?"
"정자선사에서 옵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천암스님은 "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구나" 하고 곧 입실을 허락하였다. 스님은 거기 머
물게 되어 여름을 지내고 안거가 끝나자 하직을 고했다. 천암스님은 손수 글을 적어 주며
전송하였다.
"석가 늙은이가 일대장교를 말했지만 그것은 모두 쓸데없는 말이다. 마지막에 가섭이 미소
했을 때 백만 인천이 모두 어쩔 줄을 몰랐고, 달마가 벽을 향해 앉았을 때 이조는 눈 속에
서 있었다. 육조는 방아를 찧었고, 남악 (南嶽) 은 기왓장을 갈았으며, 마조 (馬祖) 의 할
(喝) 한 번에 백장 (百丈) 은 귀가 먹었고, 그 말을 듣고 황벽 (黃岫) 은 혀를 내둘렀었다.
그러나 일찍이 장로 수좌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진실로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으로 그릴 수도 없으며, 칭찬할 수도 없고 비방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저 허공처럼 텅 비어 부처나 조사도 볼 수 없고 범부나 성인도
볼 수 없으며, 남과 죽음도 볼 수 없고 너나 나도 볼 수 없다. 그 지경 〔¿際:테두리, 범위
〕 에 이르게 되어도 그 지경이라는 테두리도 없고, 또 허공의 모양도 없으며 갖가지 이름
도 없다. 그러므로 형상도 이름도 떠났기에 사람이 받을 수 없나니, 취모검 (吹毛劍) 을 다
썼으면 빨리 갈아두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취모검은 쓰고 싶으면 곧 쓸 수 있는데 다시 갈
아두어서 무엇하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있으면 노승의 목숨이 그대 손에 있을
것이요,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없으면 그대 목숨이 내 손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할을 한 번 하였다.
스님은 천암스님을 하직하고 떠나 송강 (松江) 에 이르러 요당 (了堂) 스님과 박암 (泊艤)
스님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은 감히 스님을 붙잡아 두지 못하였다.
그 해 5월에 대도 법원사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 드디어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었다.
백양 (百陽) 에서 차 마시고 정안 (正安) *에서 과자 먹으니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밝힌 법왕에게 천검 (千劍) 을 준다.
百陽喫茶正安果 年年不昧一通藥
東西看見南北然 明宗法王給千劍
스님은 답하였다.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절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奉喫師茶了 起來卽禮三
只這眞消息 從古至于今
그리고는 거기서 한 달을 머물다가 하직하고, 여러 해 동안 연대 (燕代) 의 산천을 두루 돌
아다녔다.
그 도행 (道行) 이 황제에게 들려, 을미년 (1355) 가을에 성지 (聖旨) 를 받고 대도의 광제
선사 (廣濟禪寺) 에 머물다가, 병신년 (1356) 10월 15일에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먼저
원사 야선첩목아 院使 也先帖木兒) 를 보내 금란가사와 폐백을 내리시고 황태자도 금란가사
와 상아불자를 내렸다. 이 날에는 많은 장상 (將相) 과 그들의 관리, 선비들, 여러 산의 장로
들과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들고 중사 (中使) *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 가사를 어디다 입혀야 하겠는가?"
중사는 모르겠다 하였다. 스님은 자기 왼쪽 어깨를 기리키며 "여기다 입혀야 하오" 하고는
다시 대중에 물었다.
"맑게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하고는 가사를 입고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다시 향을 사르고 말하였다.
"이 하나의 향은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과 평산화상에게 받들어 올려 법유 (法乳)
의 은혜를 갚습니다."
17년 (1357) 정유년에 광제사를 떠나 연계 (燕) 의 명산에 두루 다니다가 다시 법원사로
돌아와 지공스님에게 물었다.
"이제 제자는 어디로 가야 하리까?"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 `삼산양수 (三山兩水) ' 사이를 택해 살면 불법이 저절로 흥할 것
이다."
무술년 (1358) 3월 23일에 지공스님을 하직하고 요양 (遼陽) 으로 돌아와 평양과 동해 등
여러 곳에서 인연을 따라 설법하고, 경자년 (1360) 가을에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 (象頭
艤) 에 있었다. 그때 강남지방의 고담 (古潭) 스님이 용문산을 오가면서 서신을 통했는데,
스님은 게송으로 그에게 답하였다.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에
공중에서 고담 노인네가 불쑥 튀어나왔나니
삼척의 취모검을 높이 쳐들고
정령 (精靈) 들 모두 베어 자취 없앴네.
臨濟一宗當落地 空中突出古潭翁
把將三尺吹毛劍 斬盡精靈永沒
고담스님은 백지 한 장으로 답하였는데, 겉봉에는 `군자천리동풍 (君子千里同風) '이라고
여섯 자를 썼다. 스님은 받아 보고 웃으면서 던져버렸다. 시자가 주워 뜯어 보았더니 그것은
빈 종이었다. 스님은 붓과 먹 두 가지로 답하였다.
신축년 (1361) 겨울에 임금은 내첨사 방절 (方節) 을 보내 내승마 (內乘馬) 로 스님을 성안
으로 맞아들여, 10월 15일에 궁중으로 들어갔다. 예를 마치고 마음의 요체에 대해 법문을 청
하니, 스님은 두루 설법한 뒤에 게송 두 구를 지어 올렸다.* 임금은 감탄하면서, "이름을
듣는 것이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다" 하시고 만수가사와 수정불자를 내리셨다. 공주도 마노
불자를 보시하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내리셨다. 그리고 신광사 (神光寺) 에 머물기를 청하
니 스님은 "산승은 다만 산에 돌아가 온 마음으로 임금을 위해 축원하고자 하오니 성군의
자비를 바라나이다" 하면서 사양하였다.
임금은 "그렇다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리라" 하시고 곧 가까운 신하 김중원 (金仲元) 을
보내 가는 길을 돕게 하였다. 스님은 할 수 없어 그 달 20일에 신광사로 갔다.*
11월에 홍건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도성이 모두 피란하였으나, 오직 스님만은 제자들을 거느
리고 보통때와 같이 설법하고 있었다. 하루는 수십 기 (騎) 의 도적들이 절에 들어왔는데,
스님은 엄연히 그들을 상대하였다. 도적의 우두머리는 침향 (沈香) 한 조각을 올리고 물러
갔다. 그 뒤로도 대중은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말리면
서, "명 (命) 이 있으면 살 것인데 도적이 너희들 일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였다.
그 뒤에 어느 날 대중이 다시 피란을 청하였으므로 스님은 부득이 허락하고 그 이튿날로 기
약하였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신인 (神人) 이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
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입니다. 스님은 부디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고 곧
물러갔다. 그 이튿날 스님은 토지신을 모신 곳에 가서 그 모습을 보았더니 바로 꿈에 본 얼
굴이었다. 스님은 대중을 시켜 경을 읽어 제사하고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 도적은 여러 번
왔다갔으나 재물이나 양식, 또는 사람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다.
계묘년 (1363) 7월에 재삼 글을 올려 주지직을 사퇴하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스님은 스스로 빠져나와 구월산 (九月山) 금강암으로 갔다. 임금은 내시 김중손 (金仲孫)
을 보내 특별히 내향 (內香) 을 내리시고, 또 서해도 (西海道) 지휘사 박희 (朴6) , 안렴사
이보만 (按兼使 李¿萬) , 해주목사 김계생 (海州牧使 金繼生) 등에게 칙명을 내려 스님이
주지직에 돌아오기를 강요하였다. 스님은 부득이 10월에 신광사로 돌아와 2년 동안 머무시
다가, 을사년 (1365) 3월에 궁중에 들어가 글을 올려 물러났다. 그리고는 용문 (龍門) ·원
적 (圓寂) 등 여러 산에 노닐면서 인연을 따라 마음대로 즐겼다.
병오년 (1366) 3월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정양암 (正陽艤) 에 있었다. 정미년 (1367) 가을
에 임금님은 교주도 (交州道) 안렴사 정양생 (鄭良生) 에게 명하여 스님에게 청평사에 머
무시기를 청하였다.
그 해 겨울에 보암 (普艤) 장로가 지공스님이 맡기신 가사 한 벌과 편지 한 통을 받아 가지
고 절에 와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입고 향을 사른 뒤에 두루 설법하였다.*
기유년 (1369) 9월에 병으로 물러나 또 오대산에 들어가 영감암 (靈惑艤) 에 머물렀다.
홍무 (洪武) 경술년 (1370) 1월 1일 아침에 사도 달예 (司徒 達睿) 가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받들고 회암사에 왔다. 3월에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고 산을 나왔다. 임금은 가까
운 신하 김원부 (金元富) 를 보내 스님을 맞이하고 영골에 예배하였다. 스님은 성 안에 들어
가 광명사 (廣明寺) 에서 안거를 지냈다.
8월 3일에 내재 (內齋) 에 나아가 재를 마치고 두루 설법하였다.
17일에 임금은 가까운 신하 안익상 (安益祥) 을 보내 길을 도우라 하고 스님께 회암사에 머
물기를 청하였다. 9월에는 공부선 (工夫選) 을 마련하고 양종오교 (兩宗五敎) 의 제방 승려
를 크게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했는데, 그때 스님에게 주맹 (主盟) 이 되기를 청하였다.
16일에 선석 (選席) 을 열었다. 임금님은 여러 군 (君) 과 양부 (兩府) 의 문무백관을 거느
리고 친히 나와 보셨다. 그리고 선사 강사 등 여러 큰 스님네와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
다. 그때 설산국사 (雪山國師:화엄종의 종사인 千熙스님을 말함) 도 그 모임에 왔다. 스님은
국사와 인사하고 처음으로 방장실에 들어가 좌복을 들고 "화상!" 하였다. 국사가 무어라 하
려는데 스님은 좌복으로 그 까까머리를 때리고는 이내 나와버렸다.
사나당 (舍那堂) 안에 법좌를 만들고 향을 사른 뒤에, 스님은 법좌에 올라 질문을 내렸다.
법회에 있던 대중은 차례로 들어가 대답하였으나 모두 모른다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로는
통하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한 뒤 곧 물
러가기도 하였다. 임금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끝으로 환암 혼수 (幻庵混修) 스님이 오니 스
님은 3구 (三句) 와 3관 (三關) 을 차례로 물었다.
그보다 먼저 스님이 금경사 (金脛寺) 에 있었을 때 임금은 좌가대사 혜심 (左街大師 慧深)
을 시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법문으로 공부한 사람을 시험해 뽑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먼저 입문 (入門) 등 3구 (三句) 를 묻고, 다음에 공부10절 (工夫十節) 을 물으며, 나중에
3관 (三關) 을 물으면 공부가 깊은지 얕은지를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다 모
르기 때문에 10절과 3관은 묻지 않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임금이 천태종 (天台宗) 의 선사 (禪師) 인 신조 (神照) 를 시켜 공부10절을
물으시니 스님은 손수 써서 올렸다.*
18일에 임금은 지신사 염흥방 (知申使 廉興) 을 스님이 계시던 금경사로 보내셨고, 그 이튿
날 또 대언 김진 (代言 金鎭) 을 보내 스님을 내정 (內庭) 으로 맞아들여 위로하신 뒤 안장
채운 말 〔鞍馬〕 을 내리셨다. 그리고는 내시 안익상 (安益祥) 을 보내 회암사로 보내드리
니, 스님은 회암사에 도착하자 말을 돌려보내셨다.
신해년 (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 (工部商書 張子溫) 을 보내 편지와 도
장을 주시고, 또 금란가사와 안팎 법복과 바루를 내리신 뒤에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하시고, 태후도 금란가사를 올렸다. 그리하여 동
방의 제일 도량인 송광사에 있게 하셨는데, 내시 이사위 (李君渭) 를 보내 길을 돕게 하여
28일에 회암사를 출발하여 9월 27일에 송광사에 도착하였다.
임자년 (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한 `삼산양수'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기를 청하였다. 임금은 또 이사위를 보내어 회암사로 맞아 오셨다.
9월 26일에는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가져다 회암사의 북쪽 봉우리에 탑을 세웠다.
계축년 (1373) 정월에는 서운 (瑞雲) ·길상 (吉祥) 등 산에 노닐면서 여러 절을 다시 일
으키고, 8월에 송광사로 돌아왔다.
9월에 임금님은 또 이사위를 보내 회암사에서 소재법회 (消災法會) 를 주관하라 청하시고,
갑인년 (1374) 봄에 또 가까운 신하 윤동명 (尹東明) 을 보내 그 절에 계시기를 청하였다.
이에 스님은 "이 땅은 내가 처음으로 불도에 들어간 곳이요, 또 우리 스승 〔先師〕 의 영
골을 모신 땅이오. 더구나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내게 수기하셨으니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
가" 하고 곧 대중을 시켜 전각을 다시 세우기로 하였다.*
9월 23일에 임금이 돌아가셨다. 스님은 몸소 빈전 (殯殿) 에 나아가 영혼에게 소참법문*을
하시고 서식을 갖추어 왕사의 인 (印) 을 조정에 돌렸다.
지금 임금께서도 즉위하여 내신 주언방 (周彦) 을 보내 내향 (內香) 을 내리시고 아울러 인
보 (印¿) 를 보내시면서 왕사로 봉하였다.
병진년 (1376) 봄에 이르러 공사를 마치고 4월 15일에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임금은 구
관 유지린 (具官 柳之璘) 을 보내 행향사 (行香使) 로 삼았으며, 서울에서 지방에서 사부대
중이 구름과 바퀴살처럼 부지기수로 모여들었다.
마침 대평 (臺評) 은 생각하기를, `회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우므로 사부대중의 왕래가 밤
낮으로 끊이지 않으니 혹 생업에 폐해를 주지나 않을까'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의 명으로
스님을 영원사 (瑩源寺) 로 옮기라 하고 출발을 재촉하였다. 스님은 마침 병이 있어 가마를
타고 절 문을 나왔는데 남쪽에 있는 못가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다시 열반문
으로 나왔다. 대중은 모두 의심하여 목놓아 울부짖었다. 스승은 대중을 돌아보고, "부디 힘
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중단하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 (瘻興) 에서 그칠 것이오" 하였
다.
5월 2일에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 (卓詹) 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병이 너무 심해 배를 타고 가고 싶소."
곧 문도 10여 명과 함께 물을 거슬러올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러 다시 탁첨에게 말하
였다.
"내 병이 너무 위독해 이곳을 지날 수 없소. 이 사정을 나라에 알리시오."
탁첨이 달려가 나라에 알렸으므로 스님은 신륵사 (神勒寺) 에 머물게 되었다. 며칠을 머무셨
을 때, 여흥수 황희직 (瘻興守 黃希直) 과 도안감무 윤인수 (道安監務 尹仁守) 가 탁첨의 명
령을 받고 출발을 재촉했다. 시자가 이 사실을 알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이제 아주 가련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은 주먹을 세웠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4대 (四大) 가 각기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스님은 주먹을 맞대어 가슴에 대고 "오직 이 속에 있다" 하였다.
"그 속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느니라."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단할 것 없다는 그 도리입니까?"
스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뚫어지게 보면서, "내가 그대를 볼 때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는가"
하였다.
또 한 스님이 병들지 않는 자의 화두 〔不病者話〕 를 들어 거론하자, 스님은 꾸짖는 투로
"왜 그런 것을 묻는가" 하고는 이내 대중에게 말하였다.
"노승은 오늘 그대들을 위해 열반 불사를 지어 마치리라."
그리고는 진시 (辰時) 가 되어 고요히 돌아가시니 5월 15일이었다.
여흥과 도안의 두 관리가 모시고 앉아 인보 (印寶) 를 봉하였는데 스님의 안색은 보통때와
같았다. 여흥 군수가 안렴사 (按廉使) 에게 알리고 안렴사는 조정에 고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그 고을 사람들은 멀리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또
스님이 타시던 흰 말은 3일 전부터 풀을 먹지 않은 채 머리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 화장을
마쳤으나 머리뼈 다섯 조각과 이 40개는 모두 타지 않았으므로 향수로 씻었다. 이때에 그
지방에는 구름도 없이 비가 내렸다. 사리가 부지기수로 나왔고, 사부대중이 남은 재와 흙을
헤치고 얻은 것도 이루 셀 수 없었다. 그때 그 고을 사람들은 모두 산 위에서 환히 빛나는
신비한 광채를 보았고, 그 절의 스님 달여 (達如) 는 꿈에 신룡 (神龍) 이 다비하는 자리에
서려 있다가 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문도들이 영골사리를
모시고 배로 회암사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오래 가물어 물이 얕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
데 비는 오지 않고 갑자기 물이 불어 오랫동안 묶여 있던 배들이 한꺼번에 물을 따라 내려
갔으니, 신룡의 도움임을 알 수 있었다.
29일에 회암사에 도착하여 침당 (寢堂) 에 모셨다가 8월 15일에 그 절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웠는데, 가끔 신령스런 광명이 환히 비쳤다. 정골사리 한 조각을 옮겨 신륵사에 안치하고
석종 (石鍾) 으로 덮었다.
스님의 수 (困) 는 57세요 법랍은 37세였으며, 시호는 선각 (禪覺) 이라 하였다. 그 탑에는 "
□□스님은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산승은 문자를 모른다' 하였다. 그러나 그 가송 (歌頌)
과 법어 (法語) 는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모두 아주 묘하다"라고 씌어 있다.
이제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어 이 세상에 간행하게 되었으니, 스님의 덕행은 진실로 위대하
다. 실로 이 빈약한 말로 전부 다 칭송할 수 없지만, 간략하게나마 그 시말 (始末) 을 적어
영원히 전하려는 것이다. 삼가 기록한다.
어록
1. 상당법어
시자 각련 (覺璉) 이 짓고, 광통보제사 (廣通普濟寺) 에 주석하는 환암 (幻艤) 이 교
정하다.
1. 광제선사 (廣濟禪寺) 개당
스님께서는 강남에서의 행각을 마치고 대도 (大都) 에 돌아와 연대 (燕代) 의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셨다. 그 도행 (道行) 이 궁중에 들려 을미년 (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고
광제사 (廣濟寺) 주지가 되어 병신년 (1356) 10월 보름날에 개당법회를 열었는데, 황제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내리셨다.
이 날에 여러 산의 장로들과 강호의 납자들과 또 여러 문무관리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께서
는 가사를 받아 들고 황제의 사자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다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것을 어디다 입혀야 합니까?"
황제의 사자가 "모르겠습니다" 하니 스님께서는 자기 왼쪽 어깨를 가리키면서 "여기다 입혀
야 합니다" 하셨다.
또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 가사는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하셨다.
이에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가 주장자를 가로 잡고
말씀하셨다.
"날카로운 칼을 온통 들어 바른 명령을 행할 것이니, 어름어름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 칼날
에 맞설 이가 있는가, 있는가, 있는가. 돛대 하나에 바람을 타고 바다를 지나가노니, 여기서
는 배 탄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
다시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노화상들이 모두 산승의 이 불자 꼭대기에 앉
아 큰 광명을 놓으면서 다 같은 소리로 우리 황제를 봉축하는데, 대중은 보는가. 만일 보지
못한다 하면 눈은 있으나 장님과 같고, 본다 한다면 어떻게 보는가.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이
나 알고 모르는 것은 한 쪽에서만 하는 말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면서 "털이 많은 소는 불자를 모르는구나"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신광사 (神光寺) 주지가 되어
스님은 절 문에 도착하자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온 대지가 다 해탈문인데 대중은 일찍이 그 문에 들어갔는가. 만일 들어가지 못했거든 나
를 따라 앞으로 가자."
또 보광명전 (普光明殿) 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毘盧遮那 (毘盧遮那) 의 꼭대기를 밟는다 해도 그는 더러운 발을 가진 사람이다.
말해 보라. 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그리고는 손으로 불상을 가리키면서, "나 때문에 절을 받는 것이오" 하셨다. 다음에는 거실
(據室) 에 이르러, "이 방은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는 큰 화로다" 하시고 주장자를 들고는, "
이것은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날카로운 칼이다. 대중은 이 칼 밑에서 몸을 뒤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은 이리 나와도 좋다. 나와도 좋다" 하셨다.
이어서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는, "우리 집의 적자 (嫡子) 말고 누가 감히 이 속으로 가겠
는가" 하고는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다음에 또 법당에 올라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산승은 오대산 (五臺山) 을 떠나기 전에 이미 여러분을 위해 오늘의 일을 다 말하였다. 지
금 손과 주인이 서로 만나 앉고 섬이 엄연하니 이미 많은 일을 이루었는데, 다시 산승에게
모래 흙을 흩뿌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만리에 흰구름 격이다. 그러나 관법 (官法) 으로는 바
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사로이는 거마 (車馬) 도 통하는 것이니 아는 이가 있는가?"
문답을 마치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티끌 같은 세계에 털끝 하나 없고 날마다 당당하게 살림살이를 드러낸다. 볼라치면 볼 수
없어 캄캄하더니, 쓸 때는 무궁무진 분명하도다. 3세의 부처들도 그 바람 아래 섰고 역대의
조사들도 3천 리를 물러선다. 말해 보라. 이것이 무엇인데 그렇게도 대단한가. 확실히 알겠
는가. 확실히 알기만 한다면 어디로 가나 이름과 형상을 떠나 삿됨을 무찌르고 바름을 드러
낼 것이며, 가로 잡거나 거꾸로 쓰거나 죽이고 살림이 자재로울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
금신을 만들며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는 얼른 주장자를 들어 왼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이것이 한 줄기 풀이라면 어느
것이 장육금신인가?" 하시고 오른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장육금신이라면 어느 것이 한 줄기 풀인가? 만일 여기서 깨치면 임금의 은혜와 부
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거든 각기 승당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
펴보아라."
3. 결제 (結制) 에 상당하여
스님은 법좌 앞에 가서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 한 물건은 많은 사람이 오르지 못하였고 밟지 못하였다. 산승은 여기 와서 흐르는 물소
리를 무심히 밟고 나는 새의 자취를 자유로이 보아서 그려낸다."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요 (堯) 임금의 자비가 널리 퍼져 아주 밝은 일월과 같고, 탕 (湯) 임금의 덕은 더욱더욱
새로워 영원한 천지와 같다. 산승이 이것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다만 성상폐하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축수하는 것이다."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쇠뇌 〔弩〕의 고동 〔機:방아쇠〕 을 당기는 것은 눈으로 판단해야 하고 화살이 과녁을
맞히는 것은 손에 익어야 한다.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손에 익지 않아도 고동을 당기고 과
녁을 맞히는 것이 있는가? 꺼내 보아라."
한 스님이 나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다가 문턱 중간에
서서 물었다.
"스님은 법좌에 앉아 계시고 학인은 올라왔는데 이것은 어떤 경계입니까?"
"동쪽이든 서쪽이든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스님은 방장실에서 이 보좌 (寶座) 에 나오셨고 학인은 적묵당 (寂默堂) 에서 여기 왔습니
다. 저기에도 몸이 있습니까?"
"있다."
"털끝에 바다세계를 간직하고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
"종문 (宗門) 의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북숭봉 (北崇峰) 앞의 경계입니까?"
"산문은 여전히 남쪽으로 열려 있다."
"그 경계 속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다."
"사람이든 경계든 이미 스님께서 지적해 주신 향상 (向上) 의 한 길을 알았는데 그래도 무
슨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떻게 하면 향상의 한 길로서, `지극한 말과 묘한 이치는 어떤 종 (宗) 인가. 이 말을 천
리 밖으로 없애버려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종의 제일기 (第一機) 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그 제일의 (第一義) 입니까?"
"그대가 묻는 그것은 제이의 (第二義) 이다."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어서 여래가 간 길을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어찌
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오늘 여러 관리와 선비들이 특별히 상당법문을 청하니 스님께서는 여기 와서 설법하고 향
을 사뤄 축원한 뒤에 법상에 올라가 자유자재로 법을 쓰십니다. 이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무엇이 스님의 본분사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우셨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오랑캐 난리 30년에도 소금과 간장이 모자랐던 적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
"학인이 듣기로는 스님께서 평산 (平山) 스님을 친견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무엇이 천축산 (天竺山) 에서 친히 전한 한마디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셨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영남 (嶺南) 땅에 천고 (千古) 의 희소식이 있으니, 오늘 맑은 바람이 온 누리에 불어옵니
다. 이것은 그만두고 오늘 보좌에 높이 오른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니라 축성 (祝聖) 하는
일이니, 스님께서는 한마디 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만년의 성일 (聖日) 속에 복이 영원하니 문무의 사법 (四法) 이 태양을 따르도다
" 하시니 그 스님은 "온 누리에 퍼지는 임금의 덕화 속에 촌 늙은이가 태평을 축하하기 수
고롭지 않구나" 하고는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나와 물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옷 입고 밥 먹는 것이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다 분명한데, 무엇이 분명한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드시니 그 스님이 물었다.
"향상의 한 길은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는데, 무엇이 전하지 못한 그 일입니까?"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이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빛깔을 보고 마음을 밝히고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친다 하는데, 무엇이 밝힐 그 마음입니
까?"
스님께서 불자를 들어 세우시니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깨칠 그 도입니까?"
스님께서 대뜸 악! 하고 할을 하시자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이어서 스님께 말씀하셨다.
"본래 맺음이 없는데 무엇을 풀겠는가. 풂이 없이 때를 따라 도의 흐름을 보인다. 허공을 쳐
부수어 조각조각 내어도, 독한 막대기의 그 독은 거두기 어렵도다. 언젠가 어깨에 메고 산으
로 가서 그대로 천봉 만령 꼭대기에 들어가면 부처와 조사는 보고 두려워 달아나리니, 자유
로이 죽이고 살리기 실수가 없다.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물건이 아니며, 천지를 뒤흔드
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 소리를 꽉 밟고 있다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으로 돌아
온다."
주장자를 들고 "보는가!" 하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듣는가! 만일 분명히 보고 환히 들을 수만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
육범 (四聖六凡) , 유정무정 (有情無情) 이 모두 얼음녹듯 기왓장 부숴지듯 할 것이니, 그 경
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선 (禪) 인가 도 (道) 인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마음인가 성품인가,
현 (玄) 인가 묘 (妙) 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또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선이라고도 할 수 없고 도라고도 할 수 없으며, 범부라고도 할 수 없고 성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성품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현이라고도 할 수 없
고 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도 될 수 없으니 모두 아니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
가.
알겠는가. 안다면 부처님 은혜와 임금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가 있겠지만 혹 그렇지 못
하다면 한마디 더 하리라. 즉 참성품은 반연 (攀緣) 을 끊었고, 참봄 〔眞見〕 은 경계를 의
지하지 않으며, 참지혜는 본래 걸림이 없고, 참슬기는 본래 끝이 없어서 위로는 모든 부처의
근원에 합하고 밑으로는 중생들의 마음에 합한다. 그러므로 `곳곳이 진실하여 티끌마다 본
래의 사람이다. 실제로 말할 때는 소리에 나타나지 않고 정체는 당당하나 그 몸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중스님네들이여, 무엇이 그 당당한 정체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이것이 당당한 정체라면 어느 것이 주장자인가?" 하시고 다시 한
번 내리친 뒤 "이것이 주장자라면 어느 것이 당당한 정체인가?" 하시고는 드디어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말씀하셨다.
"쌀 한 톨을 탐내다가 반년 양식을 잃어버렸다. 대중들이여, 오래 서 있었으니, 몸조심들 하
여라."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4. 해제 (解制) 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4월 15일에 결제에 들어가 7월 15일이 되어서 해제를 하니 납자들은 모였다 흩어진다. 봄
은 가고 가을이 오니 새로움과 낡음이 변하는구나."
주장자를 쑥 뽑아들고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이것이 맺음인가 풂인가, 모임인가 흩어짐인가, 가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새것
인가 옛것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맺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풂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모임이라고도 할 수 없고 흩어짐이라
고도 할 수 없다.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새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옛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주장자를 던지고는, "눈을 치켜뜨고 자세히 보라. 이것은 진실로 분명한 주장자이니라. 몸조
심들 하거라" 하셨다.
5. 내원당에서 보설 〔入內普說〕
"부처의 참법신 〔眞法身〕 은 마치 허공과 같아, 물 속의 달처럼 물건에 따라 형상을 나
타낸다."
불자를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석가께서 여기 이 산승의 불자 꼭대기에 와서 묘한 색신 (色身) 을 나타내고 큰 지혜광명
을 놓으며 큰 해탈문을 여는 것은 오로지 우리 성상 폐하의 만만세를 위해서이니 백천의 법
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와 세간, 출세간의 모든 법이 다 이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보십
니까? 만일 환히 볼 수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 모든 유정무정들
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얼음처럼 녹고 기왓장처럼 부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선 (禪) 도 없고 도 (道) 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성품도 없으며, 현
(玄) 도 없고 묘 (妙) 도 없어서 적나라하고 적쇄쇄 (赤 ) 하여 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
러나 만일 그렇게 해 나간다면 다시 짚신을 사 신고 30년 동안을 행각하여도 납승의 기미는
꿈에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납승의 기미가 무엇이 대단한지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밤이 고요하매 두견새는 이 뜻을 알아, 그 한 소리가 취미 (翠微:산허리. 또는 먼 산에 엷
게 낀 푸른 빛깔의 기운) 속에 있구나."
6. 소참 (小參)
"한 걸음 나아가면 천지가 가라앉고 한 걸음 물러서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면 숨기운은 있으나 죽은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떻게도 할 수 없으며 결국
어찌해야 하는가. 말할 사람이 있는가. 있거든 나와 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어름어름하는 사이에 10만 8천리가 될 것이다" 하시고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7. 제야 (除夜) 에 소참하다
"텅 비고 밝은 것 〔虛明〕 이 활짝 드러나 상대도 끊고 반연도 끊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영산회상에서는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고, 소림 (少林) 에서는
밤중에 눈에 섰다가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니, 겁외 (劫外) 의 광명을 꺼내서 본래면목을 비
추어 보라."
불자를 세우고 "이것이 본래면목이라면 어느 것이 불자인가?" 하시고는 또 세우고 말씀하셨
다.
"이것이 불자라면 어느 것이 본래면목인가? 여러분은 아는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섣달 그믐날에 허둥거리지 않을 것이나, 만일 의심이 있으면 지금이 바로 그 섣달 그믐날이
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낙찰을 보는 것인가."
불자를 들고는, "한 가닥 끄나풀〔絡索〕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며 현재에
도 그렇다. 오늘밤은 묵은해는 가지 않았고 새해는 오지 않았으니, 바로 이런 때 말해 보라.
묵은것, 새것에 관계없는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 하시고, 불자를 던진 뒤에 말씀하셨다.
"묵은해는 오늘밤에 끝나고 새해는 내일 온다. 몸조심들 하시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8. 자자일 (自恣日) 에 조상서 (趙尙書) 가 보설을 청하다
"깨닫는 성품은 허공과 같거늘 지옥·천당이 어디서 생기며, 부처의 몸이 법계에 두루하거
늘 축생과 귀신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스님네든 속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여러분
이 나서 죽을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짓는 선·악을 다 법이라 합니다.
무엇을 마음이라 합니까. 마음은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것으로서, 자기라 부르기도 하고 주
인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언제나 그것에게 부려지고 어디서나 그것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
니다. 하늘을 이고 땅에 서는 것도 그것이요, 바다를 지고 산을 떠받치는 것도 그것이며, 그
대에게 입을 열고 혀를 놀리게 하는 것도 그것이요, 그대에게 발을 들고 걸음을 걷게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이 마음은 항상 눈앞에 있지만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마음을 먹고 찾되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입니다.
안자 (顔子) 의 말에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며, 바라볼 때는 앞에
있더니 어느 새 뒤에 있다' 한 것이 바로 그 도리인 것입니다.
한 생각도 생기기 전이나 한결같이 참되어 망념이 없을 때에는, 물들음 없는 옛거울의 빛처
럼 깨끗하고 움직임 없는 맑고 고요한 못처럼 밝아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한
인 (漢人) 이 오면 한인이 나타납니다. 하늘과 땅을 비추고 예와 지금을 비추되 털끝만큼도
숨김이 없고 털끝만큼도 걸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부처와 조사들의 경계며 또 여러분
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써도 써도 다하지 않는, 본래 가진 물건입니다.
오늘 명복을 비는 조씨의 영혼과 먼저 돌아가신 법계의 혼령들과 이 자리에 가득한 사부대
중은 무슨 의심이라도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다시 한 끝을 들어 보이겠습니다."
죽비를 들고, "이것을 보십니까" 하시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습니까? 보고 듣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
고 또 우리 부처님의 우란 (枳蘭) *의 힘을 입으면, 고통이 없어지고 즐거움을 받을 것입니
다. 그리하여 못되어도 천궁 (天宮) 에 나고 잘되면 불국 (佛國) 에 날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를 마련한 시주 조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갖가지 불사를 마련하
였습니다. 이런 공덕에 어떤 죄가 멸하지 않고 어떤 업이 사라지지 않으며, 어떤 복이 생기
지 않고 어떤 선 (善) 이 자라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결국은 불국에 왕생하고, 그 때문에
결국은 본래면목을 환히 볼 것입니다.
다시 게송 한 구절을 들으십시오.
얼음 전부가 물인즉 물이 얼음 되니
옛 거울은 갈지 않아도 원래부터 빛이 있었네
바람이 절로 불어 티끌이 절로 일지만
본래면목은 당당하게 드러나 있네.
全氷是水水成氷 古鏡不磨元有光
風自動兮塵自起 本來面目露堂堂
몸조심들 하십시오."
9. 보설 (普說)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일심으로 굳이 설법을 청하므로 산승이 이 자리에 올라왔
다. 대중은 잠자코 이 설법을 들으라. 이 눈앞에 분명하고 역력하여 설법을 듣는 자는 그 누
구며, 합장하고 묻는 이는 그 누구며, 머리 숙여 절하는 이는 그 누구인가. 여러분은 각자
점검해 보라.
여러분은 `설법을 듣고 아는 것은 바로 나 주인공이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나는 여
러분에게 묻겠다. 만일 그것이 주인공이라면 그것은 긴가 짧은가, 아니면 큰가 작은가. 그
면목은 어떠며 그 모양은 어떠며 그것은 어디서 안신입명 (安身立命) 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분명히 보며 분명히 말한다고 한다면,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다. 알아내고
보아내는 그 주인공이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조사님네도,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
니며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대들은 말해 보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라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산에서 1
만 2천 담무갈 (曇無竭:항상 般若波羅蜜多經을 설하였다는 보살) 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며,
어떻게 1만 2천 보살이 항상 말하는 반야를 들을 수 있겠는가. 다만 높이 솟은 기이한 바위
와 우거진 소나무·잣나무들만을 볼 것이니, 우리 임제 (臨濟) 의 정통종지와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그것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여러분은 부디 물러서지 말아라. 임제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섰으며, 여러분도 눈은 가
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여 털끝만큼도 다르다거니 같다거니 하는 모양을 찾을 수 없다. 이
미 우리 문중의 종자라면 같든지 다르든지 정법안장을 없애버리고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
어 일으키든지 누가 상관하겠는가.
그러면 임제의 정통종지를 어떻게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3현 (三玄) ·3요 (三要) 를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4료간 (四料揀) ·4빈주 (四賓主) ·4할 (四喝) 인가. 그런데 그 할은 죽 먹은
기운으로 하는 것이니, 누가 그것을 몰라 임제의 정통종지라 하겠는가. 비록 `한 번의 할에
빈주 (賓主) 를 나누고 조용 (照用) 을 한꺼번에 행한다. 그 속의 뜻을 알면 한낮에 삼경을
치리라'고 말했지만, 그 말로 여러분은 속일 수 있지만 이 산승은 속이지 못한다. 여러분,
자세히 점검해 보아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한 번 할 (喝) 한 뒤에 말씀하셨다.
"형상이 생기기 전에도 빈주와 조용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이 할이 사라진 뒤에도 조용과
빈주가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할을 하는 그 순간에는 빈주와 조용이 할 속에 있는가 할
밖에 있는가. 아니면 그 속에도 있지 않고 바깥에도 있지 않은가."
또 한 번 할하고 말씀하셨다.
"도리어 그 가운데의 뜻을 한꺼번에 말해버렸다. 산승의 이런 판결이 과연 임제의 정통종지
를 붙들어 일으켰는가.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조용과 4
료간·4빈주·4할·3현·3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무 데도 있지 않다면 도대체 그것
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오직 여러분 당사자 〔¿上〕 에게 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다는 그 하나 〔一着子〕 는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가득
하지마는, 3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
하니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닫는 길뿐이다.
그러므로 선배 큰 스님네들은 그대들이 그대로 당장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
게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그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
다 〔無〕 ' 하였으니, 그것은 벌써 있는 그대로 드러낸 〔和槃托出〕 것이다. 그대들이 깨
닫지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 죽은 말을 고치는 의사처럼 그대들에게 구구하게 무 (無) 라는
것을 가르치되, 먼저 4대·5온·6근·6진과 나아가서는 눈앞에 보이는 산하대지와 밝음과
어두움·색과 공·삼라만상과 유정무정 등 모두를 하나의 `무'자로 만들어 한결같이 그것을
들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니면서도 그것을 들고, 앉거나 눕거나 자거나 밥을 먹는 등 어
디서나 그것을 들되, 끊임없이 빈틈없이 한 덩이로 만들게 한 것이다. 바늘도 갈구리도 들어
가지 않고 은산철벽 (銀山鐵璧) 과 같아 모르는 결에 한 번 부딪쳐 자기에게 있는 그 하나
를 뚫으면, 깨닫기를 기다리지 않고 저절로 환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도 알게 되고 4대가 흩어져 어디로 가는지도 알게 된
다. 또한 이 산승이 여러분들을 속인 곳도 알게 되고, 지금까지 조사님네들이 천차만별로 틀
린 곳도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모두들 환히 아는 것이 바로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
으키는 경계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세상법과 불법에 조금도 틈이 없어 3현·3요·4료간·4빈주·4할과 4대·5온·
6근·6진·산하대지·삼라만상 등 모든 법이 다 임제의 정통종지임을 그대로 볼 것이다. 그
렇게 되면 어떤 법도 임제의 정통종지 아닌 것이 없어 붙들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것이
다. 그런 뒤에는 버려도 되고 세워도 되며 내가 법왕이 되어 모든 법에 자재할 것이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10. 욕불*상당 (浴佛上堂)
스님께서는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세존께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 한 손
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눈으로 사
방을 돌아보시면서,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높다' 하신 말씀을 거론하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은 아는가. 괴상한 것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으면 그 괴상함이 스스로 물러간다. 싣
달태자가 처음 태어난 이 날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풍파를 일으켰다. 여러가지 괴상한 일
을 만들어내 자손들의 눈 속에 모래를 끼얹으면서 해마다 오늘 8일에 이른다. 한 동이의 향
수로 그 흔적을 씻지만, 아무리 씻고 씻은들 그 티끌이 다할 수 있겠는가. 나귀해〔驢年:12
간지에도 없는 해) 가 될 때까지 씻고 또 씻어 보아라."
선상을 세 번 내리친 뒤에 잇달아 말하기를, "대중스님네여, 각기 위의를 갖추어 다 함께 부
처를 씻습시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또 향을 들고 말하였다.
"이 향은 오래 전에 얻은 것으로 이제껏 사른 일이 없었다. 이제 보암 (普庵) 장로를 통해
신표의 가사를 전해 왔으므로 향로에 사루어서 보지 못한 이에게 보게 하고 듣지 못한 이에
게 듣게 하여 삼가 서천 (西天) 의 108대 조사 지공 (指空) 대화상에게 법유 (法乳) 로 길러
주신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다."
그 향을 꽂고는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오늘은 천하 총림이 결제에 들어가는 날이오. 청평산 (淸平山) 비구 나옹은 이름도 없고
글자나 형상도 없으며, 미오 (迷悟) 도 없고 수증 (修證) 도 없으면서,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은 이 한 물건을 여러분의 면전에 흩어두리라. 북을 쳐서 운력이나 하거라. 여러분은 알겠
는가. 만일 알 수 없다면 다시 이 소식을 드러내겠다."
주장자를 들고 "보았는가" 하시고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들었는가. 보고 들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중이거나 속인이
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산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거나 계단을 거치지 않고 저쪽으로 지나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긴 기간 짧은 기간의 결제와 해제가 있겠는가.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석달 90일 안거하는 동안에 주장자 꼭대기를 꿰매고 포대 아가리를 묶고
는 세 서까래 〔三條椽〕 * 밑과 일곱 자 단 〔七尺單〕 * 앞에서 금강권 (金剛) *을 떨쳐
내고 율극봉 (栗棘蓬) *을 삼킨다면, 또 꿈속의 불사를 짓고 거울 속의 마군을 항복받아 3
업이 청정하고 6근이 깨끗하여 행주좌와 (行住坐臥) 에 아무 허물이 없으며, 조사의 자리를
이어받아 영원히 끊이지 않게 한다면 어찌 참으로 출가한 대장부가 아니겠는가.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늘 신 (申) 씨가 명복을 비는 신군평 (申君平) 과 여러 영혼들
은 이 공덕을 받을 것이니, 무슨 죄인들 면하지 못하고 무슨 고통인들 벗어나지 못하겠는가.
그리하여 시방 불국토에 마음대로 왕생하여 어디서나 즐거울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
가. 그렇긴 하지만……"
불자를 세우고는, "이 하나는 닦고 깨닫는 데 〔修證〕 에 들어가는가, 닦고 깨닫는 데 들어
가지 않는가?" 하시고 불자를 던지면서 "눈 있는 납승은 스스로 한 번 볼 일이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달마상에 점안하며 〔達磨開光祝筆〕
스님께서 붓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미 가섭으로부터 28대 조사들이 다 눈을 갖추어 6종 (六宗:육사외도) 을 항복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 달마에게 또다시 점안 (點眼) 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말할 사람이 있는가.
말할 수 있다면 달마를 위해 숨을 토할 뿐만 아니라, 온 법계의 중생들에게도 이익을 주어
야 할 것이다. 만일 말할 수 없다면 게송 한마디를 들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가리켜 성품을 밝게 보게 했나니
노호 (老胡:달마) 는 놓을 줄만 알았고 거둘 줄을 몰랐다
그로부터 눈병이 나서 헛꽃이 피어
헛꽃이 온 세계에 어지러이 떨어졌다
쉬지 않고 어지러이 떨어지는 헛꽃이여
아득하고 막막해라. 길은 멀고 멀구나.
眞指人心明見性 老胡知放不知收
從玆眼病空花發 界紛紛峠亂墜
峠亂墜兮自不休 杳杳冥冥路轉遙
붓으로 점을 찍고 말씀하셨다.
"오늘 그에게 옛 광명을 보태 주니 푸른 눈동자에 형형한 빛이 하늘에 사무친다."
13. 지공화상 생일에
스님께서 화상의 진영 앞에 나아가 말씀하셨다.
얼굴을 마주 대고 친히 뵈오니
험준한 그 기봉 (機鋒) 에 모골 (毛骨) 이 시리다
여러분, 서천 (西天) 의 면목을 알려 하거든
한 조각 향 연기 일어나는 곳을 보라.
驀而相逢親見徹 機鋒 峻骨毛寒
諸人欲識西天而 一片香烟起處看
향을 꽂고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말해 보시오. 서천의 면목과 동토의 면목이 같은가 다른가. 비록 흑백과 동서는 다르다 하
나, 뚜렷한 콧구멍은 매한가지니라."
14.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1.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왔어도 온 것이 없으니 밝은 달 그림자가 강물마다 나타난 것 같고, 갔어도 간 곳 없으니
맑은 허공의 형상이 모든 세계에 나누어진 것 같다. 말해 보라. 지공은 도대체 어디 있는
가."
향을 사른 뒤에 다시 말씀하셨다.
"한 조각 향 연기가 손을 따라 일어나니, 그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아는가."
2.
날 때는 한 가닥 맑은 바람이 일고
죽어가매 맑은 못에 달 그림자 잠겼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몸에 참마음 있다
참마음이 있으니 묻어버리지 말아라
이때를 놓쳐버리면 또 어디 가서 찾으리.
生時一陣淸風起 滅去席潭月影沈
生滅去來無 示衆生體有眞心
有眞心休埋沒 此時蹉過更何尋
3.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천검 (千劍) 을 모두 들고 언제나 활용하니
황제가 그를 꾸짖어 종 〔奴〕 을 만들었다
평소의 기운은 동쪽 노인을 누르더니
오늘은 무심코 한 기틀을 바꾸었다
바꾼 그 기틀은 어디 있는가.
千劍全提常活用 皇王罵動作奴之
平生氣壓東方老 今日等閑轉一機
轉一機何處在
향을 꽂고 말씀하셨다.
"지공이 간 곳을 알고 싶거든 부디 여기를 보고 다시는 의심치 말라."
4.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푸른 한 쌍 눈동자에 두 귀가 뚫렸고
수염은 모두 흰데 얼굴은 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
기괴한 모습이나 신통은 나타내지 않았다
혼자서 고향길 떠나겠다 미리 기약하고서
말을 전해 윤제궁 (輪帝宮) 을 알게 하였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碧雙瞳穿兩耳 須胡兮面皮黑
但恁�來恁�去 不露奇相及神通
預期獨往家鄕路 傳語令知輪帝宮
臨行垂示無人會 痛罵門徒不解宗
儼然遷化形如古 體溫和世不同
不孝子無餘物 獻茶一 香一片
그리고는 향을 꽃았다.
15. 시 중
스님께서 하루는 대중을 모아 각각에게 매일매일의 공부를 물은 뒤에 대중에게 말씀하셨
다.
"만일 그렇다면 반드시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기어코 하겠다는 뜻을 세워 평소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일체의 불법과 사륙체 (四六體) 의 문장과 언어삼매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던
지고 다시는 들먹이지 말아라. 그리하여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 번 앉으면
그대로 눌러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든가,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라든가, `어떤 것이 내 본
성인가?'라든가 하라.
혹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없
다〔無〕' 하였다. 그 스님이 `꼬물거리는 곤충까지도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
에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
이 중에서도 마지막 한 구절을 힘을 다해 들어야 한다. 이렇게 계속 들다 보면 공안이 앞에
나타나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데서나 들지 않아도 저
절로 들리는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의심을 일으키되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을 입거나 밥을 먹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보거나 어디서나 온몸을 하나의 의심덩이로
만들어야 한다. 계속 의심해 가고 계속 부딪쳐 들어가 몸과 마음을 한 덩어리로 만들어 그
것을 분명히 캐들어가되, 공안을 놓고 그것을 헤아리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모름지기 단박 탁 터뜨려야 비로소 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만일 화두를 들어도 잘 들리지 않아 담담하고 밋밋하여 아무 재미도 없거든, 낮은 소리로
연거푸 세 번 외워 보라. 문득 화두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것이니, 그런 경우에 이르거든
더욱 힘을 내어 놓치지 않도록 하라.
여러분이 각기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중에도 더욱 더
용맹정진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탁 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사람을 만나보아야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이고 30년이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부처의 씨앗 〔聖胎〕 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천룡 (天龍) 이 그를 밀어내 누구 앞에서나
용감하게 큰 입을 열어 큰 말을 할 수 있고 금강권을 마음대로 삼켰다 토했다 하며, 가시덤
불 속도 팔을 저으며 지나갈 것이며, 한 생각 사이에 시방세계를 삼키고 3세의 부처를 토해
낼 것이다.
그런 경지에 가야 비로소 그대들은 노사나불 (盧舍那佛) 의 갓을 머리 위에 쓸 수 있고, 보
신불·화신불의 머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거든 낮에 세 번, 밤에 세 번을
좌복에 우뚝이 앉아 절박하게 착안하여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참구하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6. 장상국 (張相國) 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변숭 (邊崇) 의 영혼이여, 밝고 신령한 그 한 점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끊어야 할 번뇌도 없고 구해야 할 보리도 없다. 가고 옴도 없고 진실도 거짓도 없으며 남도
죽음도 없다. 4대에 있을 때도 그러했고, 4대를 떠난 때도 그러하다.
지금 을묘년 12월 14일 밤에 천보산 (天寶山) 회암선사 (檜岩禪寺) 에서 분명히 내 말을
들으라. 말해 보라. 법을 듣는 그것은 번뇌에 속한 것인가, 보리에 속한 것인가, 옴에 속한
것인가 감에 속한 것인가, 진실에 속한 것인가, 허망에 속한 것인가, 남에 속한 것인가 죽음
에 속한 것인가. 앗 ( ) !.
전혀 어떻다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결국 어디서 안신입명 (安身立命) 하는가."
죽비로 향대 (香臺) 를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으면 마지막 한마디를 더 들어라. 영혼이 간 바로 그 곳을 알려 하는
가. 수레바퀴 같은 외로운 달이 중천에 떴구나."
다시 향대를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7. 나라에서 주관한 수륙재 (水陸齋) 에서 육도중생에게 설하다
스님께서 자리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승의공주 (承懿公主:공민왕비 노국대공주를 말함) 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여기
서 당장 빛을 돌이켜 한번 보시오.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을 막론하고 누가
본지풍광 (本地風光) 을 밟을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면 잔소리를 한마디 하겠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승의공주여, 36년 전에도 이것은 난 적이 없었으나 과거의 선인 (善因) 으로 인간세계에 노
닐면서 만백성의 자모 (慈母) 가 되어 온갖 덕을 베풀다가, 조그만 묵은 빚으로 고요히 몸을
바꿨소. 그러나 36년 후에도 이것은 죽지 않았으니, 인연이 다해 세상을 떠나 생애 (生康)
를 따로 세웠소.
승의공주여, 4대가 생길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생기지 않았고, 4대가
무너질 때에도 밝고 신령한 이 한 점은 그것을 따라 무너지지 않소. 나고 죽음과 생기고 무
너짐은 허공과 같으니, 원수니 친한 이니 하는 묵은 업이 지금 어디 있겠소. 이제 이미 없어
졌으매 찾아도 자취가 없어 드디어 허공같이 걸림이 없소. 세계마다 티끌마다 묘한 본체요,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가 주인공 〔家公〕 이오. 소리와 빛깔이 있으면 분명히 나타나고, 빛
깔과 소리가 없으면 그윽이 통하오. 상황에 맞게 때에 맞게 당당히 나타나고, 예로부터 지금
까지 오묘하고 오묘하오. 자유로운 그 작용이 다른 물건이 아니며 상황에 따라 죽이고 살림
이 모두 그의 힘이오.
승의공주여, 알겠는가. 만일 모르겠으면 이 산승이 공주를 위해 확실히 알려 주겠소."
죽비로 탁자를 치면서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여기서 단박 밝게 깨쳐 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면, 3세 부처님네와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의 골수를 환히 보고, 3세 부처님네와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잡
고 함께 다닐 것이오."
또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서 많은 생의 부모와 여러 겁의 원수 친한 이를 제도하고, 이렇게 해서 세세생생
에 함부로 자식이 되어 어머니를 해치고 친한 이를 원망한 일을 제도하며, 이렇게 해서 예
로부터 지금까지 이승 저승의 모든 원수나 친한 이를 제도하시오. 이렇게 해서 갖가지 고통
을 받는 모든 지옥중생을 제도하고, 주리고 목마른 아귀중생을 제도하며, 축생계에서 고생하
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아수라계에서 성내는 일체 중생을 제도하며, 인간세계에서 잘난
체하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 천상에서 쾌락에 빠져 있는 모든 하늘 무리를 제도하시오."
다시 죽비를 던지고 말씀하셨다.
"언덕에 올랐으면 배를 버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니, 무엇하러 사공에게 다시 길을 물으
랴."
회향 (廻向)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향을 사른 뒤에 죽비로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 선가 (仙駕) 를 비롯하여 여러 불자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깨달
음을 등지고 번뇌와 어울려 여러 세계에 잘못 들었소. 그리하여 지옥·아귀·축생·아수
라·인간 혹은 천상에 있으면서 떴다 가라앉음이 일정치 않고 고락이 같지 않았으니, 그것
은 오직 그대들이 한량없는 겁을 지나면서 본래면목을 몰랐기 때문이오.
승의선가여, 원수나 친한 이를 면하고 생사를 면하여 고해를 건너려거든 빛을 돌이켜 비추
어 보아 주인공의 본래면목을 아는 것이 제일이오.
승의공주는 인간에 태어나되 왕궁에 태어나 30여 년을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한 나라의 공주
가 되어 만백성들을 이롭게 하였으니,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만,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은 어떤 것인가.
지금 4대는 흩어지고 신령하게 알아보는 그것 〔靈識〕 만이 홀로 드러나고 텅 비고 밝은
그것 〔虛明〕 만이 혼자 비치어 멀고 가까움에 관계가 없고,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하니
자, 어서 오시오. 지금 여기서 내 말을 분명히 듣는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확실히 보아
의심이 없으면, 시방 불국토 어딜 가나 자유자재할 것이오. 그렇지 못하다면 이 산승은 또
공주를 위해 수륙재 (水陸齋) 의 인연을 조금 말할 것이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시오.
물과 땅의 어둡고 밝은 큰 도량에서 티끌 같은 세계를 다 드러내오. 3도 (三途) 에서는 법을
듣고 고통을 모두 떠나고, 6취 (六趣) 에서는 은혜를 입어 법체 (法體) 가 편안하오. 원한
있는 마음은 끊기 쉬우나, 끝이 없는 성품은 헤아리기 어렵소. 이 집에 가득한 형제들이여,
알겠는가. 청풍명월이 곳곳에서 반짝이니 이 법회에는 부처님네가 다 내려오셨고, 3현10성
(三賢十聖) 이 다 귀의하오. 마음을 편히하고 공양을 받아 기쁜 마음을 내고, 금강 (金剛)
의 묘각 (妙覺) 으로 점차 들어가시오. 중생들 이 항하수 모래만큼의 죄를 골고루 지으나,
한마디 〔一句〕 에 다 녹이고 한 기틀을 돌리시오. 이러한 공덕 한량 없거니, 승의 선가는
정토로 돌아가오. 말해 보시오. 승의 선가는 정토에 있는가, 예토에 있는가. 부처세계에 있는
가. 중생세계에 있는가. 이 세계에 있는가, 저 세계에 있는가."
또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정토라 할 수도 없고 예토라 할 수도 없으며, 부처세계라 할 수도 없고 중생세계라 할 수
도 없으며, 이 세계라 할 수도 없고 저 세계라 할 수도 없는 것이니, 어디라고도 할 수 없다
면 결국 어디 있단 말인가?"
그리고는 죽비를 던지고 말씀하셨다.
"미세한 의혹을 모두 없애 한 물건도 없나니, 대원경지 속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빈당 (殯堂) 에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승의공주를 부른 뒤에 말씀하셨다.
"승의공주는 36년 동안 4대를 부지해 오다가 불과 바람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만 남아 있
소. 산승은 독손 〔毒手〕 으로 끝까지 헤쳐놓고 한바탕 소리칠 것이니, 마음대로 깨치고 마
음대로 쓰시오."
할을 한 번 하고 말씀하셨다.
"승의선가는 허공을 누비되 앞뒤가 없고, 한 티끌도 붙지 않아 당당히 드러났소. 몸을 뒤쳐
바로 위음왕 밖을 뚫어, 크나큰 참바람을 헛되이 간직하지 마시오."
주장자로 널을 세 번 내리친 뒤에 또 부르고는 "승의공주여, 맑은 못에 비친 가을달을 밟아
보시오. 온 천지에 얼음 얼고 서리치리니" 하고 할을 한 번 하셨다.
18. 정월 초하루 아침에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자들이여, 그대들은 마음을 씻고 자세히 들으라. 지금 4대는 각기 떠나고 영식 (靈識) 만
이 홀로 드러났소. 비록 산하와 석벽에 막힌 것 같으나 이 영지 (靈知) 는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티끌 같은 시방세계에 노닌다. 그러면서도 그 자취가 끊어졌으므로 멀고 가까움에 관
계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청하면 곧 온다. 지옥에 있거나 혹은 아귀·축생·아수라·인간·
천상에 있거나 그들은 지금 계묘년 섣달 그믐날 다 여기 와서 분명히 내 말을 듣고 있다.
말해 보라. 지금 내 말을 듣는 그것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멸하는 것인가, 멸하지 않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가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앗 〔 〕 !.
산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죽은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멸하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멸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도 없다. 오는 것이라 할 수도 없고 가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있는 것
이라 할 수도 없고 없는 것이라 할 수도 없으며, 무어라 할 수 없다는 그것조차 될 수 없는
것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빨리 몸을 뒤쳐 겁 밖으로 뛰어넘으라. 그때부터는 확탕 (湯:끓는 솥에 삶기는 고통을 받는
지옥) 도 시원해지리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불자들은 자세히 아는가. 여기서 만일 자세히 알면 지옥에 있거나 아귀·축생·아수라·인
간·천상에 있거나 관계없이 불조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산승이 그대들을
위해 잔소리를 좀 하리니 자세히 들으라.
그대들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망령되게 4대를 제 몸이라 여기고 망상분별을 제 진
심으로 알아 하루 내내 일년 내내 몸과 입과 뜻으로 온갖 악업을 지어 왔다. 그리하여 그
정도가 같지 않으므로 지옥에 들기도 하고 아귀나 축생이나 아수라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인간이나 천상에 있기도 하는데, 지금 갑진년 섣달 그믐날 모두 여기 와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모두 인연을 버리고 온갖 일을 쉬고, 여러 생 동안 지은 중죄를 참회하여 없애고
자심3보 (自心三寶) 에 귀의하라. 불법승 3보는 그대들의 선지식이 되고 그대들의 큰 길잡이
가 될 것이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 선지식들도 다 이것에 의하여 정
각 (正覺) 을 이루고는, 시방세계의 중생들을 널리 구제하여 다 성불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미래의 부처와 보살도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을 이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
일 일체종지 (一切種智:모든 것을 아는 부처의 지혜) 가 뚜렷이 밝고 10호 (十號) 가 두루
빛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심3보에 귀의해야 할 것이다.
귀의란 망 (妄) 을 버리고 진 (眞) 을 가진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지금 분명히 깨닫는, 텅
비고 밝고 신령하고 묘한, 조작없이 그대로인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불보 (佛寶) 요, 탐애를
아주 떠나 잡념이 생기지 않고 마음의 광명이 피어나 시방세계를 비추는 그것이 바로 그대
들의 법보 (法寶) 며, 청정하여 더러움이 없고 한 생각도 생기지 않아 과거 미래가 끊어지고
홀로 드러나 당당한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승보 (僧寶) 인 것이다.
불자들이여, 이것이 그대들의 참귀의처이며, 이것을 일심3보 (一心三寶) 라 하는 것이다. 그
대들은 철저히 알았는가? 만일 철저히 알아낸다면 법법이 원만히 통하고 티끌티끌이 해탈하
여 다시는 3도와 6취에 윤회하지 않을 것이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다시 옛 성인이 도에
들어간 인연을 예로 들어 그대들을 깨닫게 하겠다.
삼조 승찬 (三祖僧璨) 대사가 처음으로 이조 (二祖) 를 찾아뵙고, `저는 죄가 중합니다. 화상
께서 이 죄를 참회하게 해주십시오' 하니 이조는 `그 죄를 가져 오라. 그대에게 참회하게 하
리라' 하였다. 삼조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하기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하니 이조가 `그대의 죄를 다 참회해 주었으니, 불법승에 의지하여 살아가라' 하였다.
삼조가 다시 묻기를 `제가 보니 스님은 승보이지만 어떤 것이 부처와 법입니까?' 하니 `마
음이 부처요 마음이 법이니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니요, 승보도 그러하다' 하였다. 삼조가 `오
늘에야 비로소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고, 마
음이 그런 것처럼 부처와 법은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하니 이조는 `그렇다' 하였다.
불자들이여, 죄의 본성은 안에도 있지 않고 밖에도 있지 않으며, 중간에도 있지 않다고 한다
면 결국 어디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일어난 곳을 찾아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은 죄의 본성이 공 (空)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의심
이 없는가. 여기에 대해 분명하여 의심이 없다면 바른 안목이 활짝 열렸다 하겠으나 혹 그
렇지 못하다면 또 한마디를 들어 그대들의 의심을 풀어 주겠다. 옛사람들의 말에 `물질을
보면 바로 마음을 본다. 그러나 중생들은 물질만 보고 마음은 보지 못한다' 하였다."
이어서 불자를 세우고는, "이것이 물질이라면 어느 것이 그대들의 마음인가?" 하시고, 또 세
우고는 "이것이 그대들의 마음이라면 어느 것이 물질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고는 말씀하셨다.
"물질이면서 마음인 것이 그 자리에 나타나는데, 요새 사람들은 형상을 버리고 빈 마음을
찾는다."
19. 최상서 (崔尙書) 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영혼을 부르며 말씀하셨다.
"나 (羅) 씨 영혼이여, 나씨 영혼이여, 아는가? 모른다면 그대의 의심을 풀어주겠다.
나씨 영혼이여, 63년 전에 4연 (四緣) 이 거짓으로 모인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남 〔生〕
이라 하였으나 나도 난 적이 없었다. 63년 뒤인 오늘에 이르러 4대가 흩어진 것을 거짓으로
이름하여 죽음이라 하나 죽어도 따라 죽지 않았다. 이렇게 따라 죽지도 않고 또 나지도 않
았다면, 나고 죽고 가고 오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실체가
없다면 홀로 비추는 텅 비고 밝은 것 〔虛明〕 만이 영겁토록 존재하는 것이다.
나씨 영혼을 비롯한 여러 불자들이여,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3세 부처님네도 설명하
지 못하였고 역대 조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하지도 못하고 설명하지도 못했다면
4생6도의 일체 중생들에게 각각 본래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본래 갖추어져 있다면 무엇을
남이라 하고 무엇을 죽음이라 하며, 무엇을 옴이라 하고 무엇을 감이라 하며, 무엇을 괴로움
이라 하고 무엇을 즐거움이라 하며, 무엇을 옛날이라 하고 무엇을 지금이라 하는가.
삶과 죽음, 감과 옴, 괴로움과 즐거움, 옛과 지금이 없다고 한다면, 그 한 점 텅 비고 밝은
것은 적나라하고 적쇄쇄하여 아무런 틀 〔 臼〕 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온 시방세계는
안도 없고 바깥도 없을 것이니, 그것은 바로 깨끗하고 묘한 불토 (佛土) 요 더 없는 〔無
上〕 불토며, 견줄 데 없는 불토요 한량없는 불토며, 불가사의한 불토요 말할 수 없는 불토
인 것이다.
이런 불토가 있으므로 이 모임을 마련한 시주 최씨 등이 지금 산승을 청하여 이 일대사인연
을 밝히고, 망모 (亡母) 인 나씨 영가 (靈駕) 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말해 보라. 영가는 지
금 어느 국토 (國土) 에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티끌 하나에 불토 하나요, 잎새 하나에 석가 하나니라" 하고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0. 조상서 (趙尙書) 의 청으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죽비로 향탁 (香托) 을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채 (蔡) 씨 영가는 아는가. 이 자리에서 알았거든 바로 본지풍광 (本地風光) 을 밟을 것이
오, 만일 모르거든 이 말을 들으라.
50여 년 동안을 허깨비 바다 〔幻海〕 에 놀면서 온갖 허깨비 놀음을 하다가 오늘 아침 갑
자기 4대가 흩어져 각각 제 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밝고 텅 빈 〔虛明〕 한 점만이 환
히 홀로 비추면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청하면 곧 오는데, 산하와 석벽도 막지 못한다.
오직 이 광명은 시방세계의 허공을 채우고 하루 스물 네 시간을 찬란히 모든 사물에 항상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산하대지는 법왕의 몸을 완전히 드러내고, 초목총림은 모두 사자후를 짓는다. 한 곳에 몸을
나타내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나타나고, 한 곳에서 법을 설하면 천만 곳에서 한꺼번에 법
을 설한다. 한 몸이 여러 몸을 나타내고 여러 몸이 한 몸을 나타내며, 한 법이 모든 법이 되
고 모든 법이 한 법이 되는데, 마치 인드라망의 구슬처럼 서로 받아들이고 크고 둥근 거울
〔大圓鏡〕 처럼 영상이 서로 섞인다. 그 가운데 일체 중생은 승속이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지혜있는 이나 지혜없는 이나, 유정이나 무정이나, 가는 이나 오는 이나, 죽은 이나 산 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 성불한다'라고.
채씨 영가여, 아는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 의심이 없으면 현묘한 관문을 뚫고 지나가, 3세의
부처님네와 역대의 조사님네와 천하의 선지식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다니면서 이승이나 저
승에서 마음대로 노닐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 구절을 들으라."
죽비로 향탁을 한 번 내리치고는 "한 소리에 단박 몸을 한 번 내던져 대원각 (大圓覺) 의
바다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1. 장흥사 (長興寺) 원당 (願堂) 주지의 청으로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승의공주 선가와 이씨 영가와 여러 불자들은 아는가. 4성6범 (四聖六凡) 이 여기서 갈라지
고 4성6범이 여기서 합한다. 그대들은 아는가. 만일 모른다면 내가 한마디 하여 그대들을 집
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살피라.
승의 선가와 이씨 영혼이여, 만일 이 일대사인연으로 말하자면 지옥세계에 있는 자나 아
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세계에 있는 자를 가리지 않고 각기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것
이다. 그리하여 아침에서 저녁까지 저녁에서 아침까지 다니고 서며 앉고 누우며 움직이는
동안 배고프고 춥기도 하며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며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면서
어디서나 갖가지로 작용하는데, 다만 미혹과 깨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즐거움을 누리는 이도 있고 항상 지독한 고통을 받는 이도 있어 두 경지가 같지 않다.
불자들이여, 이 한 점 신령하고 밝은 것 〔靈明〕 은 성인에 있다 하여 늘지도 않고 범부에
있다 하여 줄지도 않으며, 해탈하여 의지하는 곳이 없으며 활기가 넘쳐 막히는 일도 없다.
비록 형상도 없고 처소도 없으나 시방세계를 관통할 수 있고 모든 부처의 법계에 두루 들어
간다. 물물마다 환히 나타나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고 버리더라도 언제나 있다. 한량없이
광대한 겁으로부터 나도 따라 나지 않고 죽어도 따라 죽지 않으며, 저승과 이승으로 오가지
만 그 자취가 없다. 눈에 있으면 본다 하고 귀에 있으면 듣는다 하며, 6근에 두루두루 나타
나되 확실하고 분명한 것이다.
불자들이여, 과연 의심이 없는가. 여기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으면, 바른 눈이 활짝 열려 불
조의 혜명 (慧命) 을 잇고 스승의 기용 (機用) 을 뛰어넘어 현묘한 도풍을 크게 떨칠 것이
다. 만일 그래도 의심이 있으면 또 한 가지를 들어 남은 의심을 없애 주리니 자세히 보아
라."
죽비를 들고 "이것을 보는가" 하고 한 번 내리치고는, "이 소리를 듣는가. 보고 듣는다면 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인가?" 하셨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2. 신백대선사 (申白大禪師) 를 위해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모든 법은 인연을 따라 생겼다가 인연이 다하면 도로 멸한다. 63년 동안 허깨비 바다에서
놀다가, 인과를 모두 거두어 진 (眞) 으로 돌아갔나니, 근진 (根塵) 을 모두 벗고 남은 물건
이 없어 손을 놓고 겁 밖의 몸으로 갔구나."
그 혼을 부르면서 말씀하셨다.
"신백 존령 (尊靈) 은 과연 이러한가. 과연 그러하다면 생사에 들고 남에 큰 자재를 얻을 것
이다. 혹 그렇지 못하다면 마지막 한마디를 들으라."
밤이 고요해 거듭 달을 빌리기 수고롭지 않나니
옥두꺼비 (玉蟾:달) 언제나 허공에 걸려 있네.
夜靜不勞重借月 玉蟾常掛大虛中
23. 해제에 상당하여
태후전 (太后殿) 에서 가사 한 벌을 보내오다
스님께서 법의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유령 (大庾嶺) 꼭대기에서 들어도 들어지지 않을 때에는 다투어도 모자라더니, 놓아버려
깨달았을 때에는 양보해도 남는구나."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하던 것을 어찌 한 사람이 친히 전하겠는가. 대중은 아는가. 접고
펴기는 비록 내게 있으나 거두고 놓기는 그대에게 있다."
가사를 입고 법좌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이 자리는 많은 사람이 오르지도 못하였고 밟지도 못하였는데, 이 산승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몸도 움직이지 않은 채 올라갈테니 대중은 자세히 보라."
스님께서는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가사자락을 거두고 자리를 펴고 앉아 한참
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 (主句) 인가, 빈구 (賓句) 인가. 파주구 (把住句) *인가, 방행구 (放行句) *인가.
대중은 가려내겠는가. 가려낼 수 있겠거든 당장 흩어지고, 가려내지 못하겠든 내 말을 들으
라. 맨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 〔機〕 은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지금 대중의 면전에 들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빠진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
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부
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제해야 할 중생이 없는데, 무슨 장기 (長期) ·단기 (短期) 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양쪽을 끊었고 가운데에도 있지 않다. 빈 손에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탄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다리가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는구나."
할을 한 번 하고는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4. 승하하신 대왕의 빈전 (殯殿) 에서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손 가는대로 향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 (覺穀仙駕:공민왕을
말함) 께서 천성 (千聖) 의 이목을 활짝 열고 자기의 신령한 근원을 증득하게 하려는 것입
니다."
그리고는 향을 꽂으셨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기대앉아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주장자를 들고
말씀하셨다.
"대왕은 아십니까. 45년 동안 인간세상에 노닐면서 삼한 (三韓) 의 주인이 되어 뭇 백성들을
이롭게 하다가, 이제 인연이 다해 바람과 불은 먼저 떠나고 흙과 물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대왕은 자세히 들으소서. 텅 비고 밝은 이 한 점은 흙이나 물에도 속하지 않고 불이나 바람
에도 속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속하지 않고 현재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가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오는 것에도 속하지 않으며, 나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죽는 것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장자를 들고는 "이것을 보십니까?" 하고 세 번 내리치고는 "이 소리를 들으십니까?" 하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허공을 쳐부수어 안팎이 없어 한 티끌도 묻지 않고 당당히 드러났다. 몸을 뒤쳐 위음왕불
(威音王佛) 뒤를 바로 뚫고 가시오. 둥근 달 차가운 빛이 법상 (法滅) 을 비춥니다."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5. 납월 8일 한 밤의 법문 〔晩參〕
스님께서 자리에 오르자 동당·서당의 스님들이 문안인사를 드렸다.
스님께서는 죽비를 들고 말씀하셨다.
"산승이 방장실에서 나와 이 자리에 오르자, 시자도 인사하고 수좌도 인사하고 유나 (維那)
도 인사하였다. 인사가 다 끝났는데 또 무슨 일이 있는가?"
한 스님이 나와 말하였다.
"오늘은 납월 (臘月) 8일입니다."
스님께서는 "대중 속에 들어가라" 하고 죽비를 들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 보아도 머리가 없고 밑으로 보아도 꼬리가 없다.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으며 세계가 생기기 전이나 산하가 멸한 후에도 허공에 가득 차 있다. 3세
의 부처님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으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대들은 어찌할 수 있겠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산산조각이 났도다. 안녕히 계시오
"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6. 경술 9월 16일 나라에서 시행한 공부선장 (工夫選場) 에서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가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을 깨부수고 범성의 자취를 모두 쓸어버리고 납승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알음알이를 없애버려라. 죽이고 살리는 변통이 모두 때에 맞게 하는 데 있고 호령과 저울대
가 모두 손아귀에 돌아간다. 3세의 부처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그저
그럴 뿐이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그저 그럴 뿐이다. 산승도 다만 그런 법으로 우리 주상전하
께서 만세 만세 만만세토록 색신 (色信) 과 법신 (法身) 이 무궁하시고 수명과 혜명 (慧命)
이 끝이 없기를 봉축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여러분도 모두 진실로 답안을 쓰고 부디 함부로
소식을 통하지 말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행은 지극한데 말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행이 될 수 없고, 말은 지극한데 행이
지극하지 못하면 그것은 좋은 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말도 지극하고 행도 지극하다 하더
라고 그것은 다 문 밖의 일이다.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는 무엇인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입문삼구 (入門三句)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 〔入門句〕 는 분명히 말했으나
문을 마주한 한마디 〔當門句〕 는 무엇이며
문 안의 한마디 〔門裏句〕 는 무엇인가.
入門句分明道
當門句作�生
門裏句作�生
삼전어 (三轉語)
산은 어찌하여 묏부리에서 그치고
물은 어찌하여 개울을 이루며
밥은 어찌하여 흰 쌀로 짓는가.
山何嶽邊止
水何到成渠
飯何白米造
17일에 법어를 내리다
스님께서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의심덩이가 풀리는 곳에는 마침내 두 가지 풍광이 없고, 눈구멍이 열리는 때에는 한 항아
리의 봄빛이 따로 있으니 비로소 일월의 새로움을 믿겠고 바야흐로 천지의 대단함을 알 것
이다. 그런 뒤에 반드시 위쪽의 관문을 밟고 조사의 빗장을 쳐부수면 물물마다 자유로이 묘
한 이치를 얻고 마디마디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을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 (丈六金
身) 을 만들고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드니, 만드는 것도 내게 있고 쓸어버리는 것도
내게 있으며, 도리를 말하는 것도 내게 있고 도리를 말하지 않는 것도 내게 있다. 왜냐하면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런 납승이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한 걸음 나아가면 땅이 꺼지고 한 걸음 물러나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
나지도 않으면 숨만 붙은 죽은 사람이다. 어떻게 걸음을 내딛겠는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27. 공부십절목 (工夫十節目)
1.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
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2.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3.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4.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 〔鼻軫〕 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떤가.
5.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때에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6.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 (動靜) 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
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때에는 어떻게 해버려야 하겠는가.
7.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 (自性) 인가.
8.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이 맞게 쓰이는 것인가.
9.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 (眼光) 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10.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28. 왕사 (王師) 로 봉숭 (封崇) 되는 날 설법하다
신해년 8월 26일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 불자를 들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이 산승의 깊고 깊은 뜻을 아는가. 그저 이대로 흩어져버린다 해도 그것은 많은
일을 만드는 것인데, 거기다가 이 산승이 입을 열어 이러쿵저러쿵 지껄이기를 기다린다면
흰 구름이 만 리에 뻗치는 격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할 수 없고
글로는 기연에 투합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니,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뜻을 잃고 글귀
에 얽매이는 이는 어둡다. 또한 마음으로 헤아리면 곧 어긋나고 생각을 움직이면 곧 어긋나
며, 헤아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면 물에 잠긴 돌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조사 문하에서는 길에서 갑자기 만나면 그대들이 몸을 돌릴 곳이 없고 영
(令) 을 받들어 행하면 그대들이 입을 열 곳이 없으며, 한 걸음 떼려면 은산철벽 (銀山鐵璧)
이요, 눈으로 바라보면 전광석화 (電光石火) 인 것이다. 3세의 부처님도 나와서는 그저 벼랑
만 바라보고 물러섰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나왔다가는 그저 항복하고 몸을 감추었다.
만일 쇠로 된 사람이라면 무심코 몸을 날려 허공을 스쳐 바로 남산의 자라코 독사를 만나
고, 동해의 잉어와 섬주 (曳州) 의 무쇠소 〔鐵牛〕 *를 삼킬 것이며 가주 (圈州) 의 대상
(大像) *을 넘어뜨릴 것이니, 3계도 그를 얽맬 수 없고 천 분 성인도 그를 가두어둘 수 없
다. 지금까지의 천차만별이 당장 그대로 칠통팔달이 되어, 하나하나가 다 완전하고 낱낱이
다 밝고 묘해질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임금님의 은혜와 부처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
을 수 있을 것이다."
주장자를 들고 "그렇지 못하다면 이 주장자 밑의 잔소리 〔註脚〕 를 들으라" 하고 내던지
셨다.
29. 갑인 납월 16일 경효대왕 (敬孝大王) 수륙법회에서 영가에게 소참법문을 하다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죽비를 들고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
하셨다.
"승하하신 대왕 각경선가는 아십니까. 모르겠으면 내 말을 들으십시오. 이 별 〔星兒〕 은
무량겁의 전부터 지금까지 밝고 신령하고 고요하고 맑으며, 분명하고 우뚝하며 넓고 빛나서
온갖 법문과 온갖 지혜와 온갖 방편과 온갖 훌륭함과 온갖 행원 (行願) 과 온갖 장엄이 다
이 한 점 (點) 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한 점은 6범에 있다 해서 줄지도 않고 4성에 있다 해서 늘지도 않으며, 4대가 이루어질
때에도 늘지 않고 4대가 무너질 때에도 줄지 않는 것으로서 지금 이 회암사에서 분명히 제
말을 듣고 있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법을 듣는 그것은 범부인가 성인인가, 미혹한 것인가 깨달은 것인가. 산
것인가 죽은 것인가, 없는 것인가 있는 것인가, 결국 어디 있는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탁자를 한 번 내리치고는, "그 자리 〔當處〕 를 떠나지 않고 항상
맑고 고요하나 그대가 찾는다면 보지 못할 것이오" 하고 죽비를 내던지고는 자리에서 내려
오셨다.
육도중생에게 설법하다
스님께서 자리를 펴고 앉아 죽비를 가로 잡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만일 누구나 부처의 경계를 알려 하거든, 부디 마음 〔意〕 을 허공처럼 깨끗이 해야 한다.
망상과 모든 세계를 멀리 떠나고, 어디로 가나 그 마음 걸림이 없게 해야 한다. 승하하신 대
왕 각경선가를 비롯하여 6도에 있는 여러 불자들은 과연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하였는가.
그렇지 못하거든 다시 이 잔소리를 들으라.
이 정각 (正覺) 의 성품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로는 모든 부처에서 밑으로는 여섯 범부에
이르기까지 낱낱에 당당하고 낱낱에 완전하며, 티끌마다 통하고 물건마다 나타나 닦아 이룰
필요없이 똑똑하고 분명하다. 지옥에 있는 이나 아귀에 있는 이나 축생에 있는 이나 아수라
에 있는 이나 인간에 있는 이나, 천상에 있는 이나, 다 지금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모두 이
자리에 있다. 각경 선가와 여러 불자들이여!"
죽비를 들고는 "이것을 보는가" 하고는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는가. 분명히 보고 똑똑히 듣는다면 말해 보라.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부처님 얼굴은 보름달 같고, 해 천 개가 빛을 놓는 것 같다."
죽비로 향대를 한 번 내리치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30. 병진 4월 8일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집안의 이 물건은 신기할 것도 없고 특별할 것도 없으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되, 해같이
밝고 옻같이 검다. 항상 여러분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으나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
가 없는 것이다.
산승이 오늘 무심코 그것을 붙잡아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여러분은 이것을 아는가? 안
다 해도 둔근기인데 여기다 의심까지 한다면 나귀해 〔驢年〕 에 꿈에서나 볼 것이다. 그러
므로 선 (禪) 을 전하고 교 (敎) 를 전하는 것은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이요, 경론을 말해
주는 것도 눈 안에 금가루를 넣는 것이다.
산승은 오늘 말할 선도 없고 전할 교도 없소. 다만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도 전하지 못했으며, 천하의 큰스님들도 뚫지 못한 것을 오늘 한꺼번에 집어 보이는 것
이다."
주장자를 가로잡고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당장에 마음을 비울 뿐만 아니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릴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던지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짧은 글
1. 승종선화 (勝宗禪和) 에게 주는 글
이 한 점 (點) 은 전연 자취 〔巴鼻〕 가 없어,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
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고 전할 수 없다면 어디에다 붓을 대고 어디에다 말을
붙이겠는가. 말하려 하나 말로는 할 수 없으니 숲 속에서 잘 생각하여라.
2. 일주수좌 (一珠首座) 에게 주는 글
이 큰 일을 기필코 해결하려거든 반드시 큰 신심을 내고 견고한 뜻을 세워, 지금까지 배워
서 안 불법에 대한 견해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버리고 다시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
고 8만 4천의 미세한 생각을 한 번 앉으면 그 자리에서 끊어버리고, 그저 하루종일 행주좌
와하는 중에 항상 화두를 들어야 한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
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 〔無〕 '고 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한마디 힘을 다해 들되, 언제나 들고 언제나 움켜잡으면, 움직이거나 고요한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자나깨나 늘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이
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저 때만 기다려라.
혹 들어도 냉담하고 전연 재미가 없어 부리를 꽂을 곳이 없고 힘을 붙일 데가 없으며, 알아
지는 점이 없고 어찌할 수가 없더라도 부디 물러서지 말라. 그때야말로 그 사람이 힘을 붙
일 곳이요 힘을 덜 곳이며, 힘을 얻을 곳이요 신명을 놓아버릴 곳이다.
3. 굉장주 (宏藏主) 에게 주는 글
이 더러운 가죽 포대 속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
며 언제나 사람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지만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가 없다. 이것
을 비로자나 법신의 주인이라 한다.
굉스님은 아는가. 안다 해도 몽둥이 30대를 맞을 것이며, 모른다 해도 30대를 맞을 것이니
결국 어찌하겠는가? 이 나옹도 30대를 맞아야 하겠다. 말해 보라. 허물이 어디 있는가? 빨리
말하라.
4. 각성선화 (覺成禪和) 에게 주는 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기어코 이루려 하거든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어,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중에 늘 참구하던 화두를 들어야 한다. 언제나 들고 늘 의심하면 어
느 새 화두가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는 경
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는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고 다시는 부질없고 쓸데없는 말을
말아야 한다.
혹 그렇게 되지 않아 어떤 때는 화두가 분명하고 어떤 때는 분명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나
타나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으며,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며, 어떤 때는 틈이 있고
어떤 때는 틈이 없거나 하면 그것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을
허송하면서 헛되이 남의 보시만 받으면 반드시 뒷날 염라대왕이 음식과 재물을 계산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부질없이 세상에 와서 한번 만났을 뿐이라 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쓸데없는
말을 하고 짧은 소리·긴소리하며, 이쪽을 가리키고 저쪽을 가리키겠는가.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5. 운선자 (雲禪子) 가 병이 있다 하기에 그에게 글을 주다
그대의 병이 중하다 들었는데 그것은 무슨 병인가? 몸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만일 몸의 병이라면 몸은 흙·물·불·바람의 네 가지 요소가 거짓으로 모여 된 것으로서,
그 4대는 각각 주관하는 바가 있는데, 어느 것이 그 병인가? 만일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허깨비 〔幻化〕 같은 것이어서 비록 거짓 이름은 있으나 그 바탕은 실로 공하다. 그렇다
면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만일 일어난 곳을 캐보아도 찾을 수 없다면 지금의 그 고통
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또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 살
펴보면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내 바람이다. 부디 부탁하고 부탁하노라.
6. 지득시자 (志得侍者) 에게 주는 글
그대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참구하려거든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가운데 `모두 타서
흩어졌는데 어느 것이 내 성품인가?'라는 화두를 들되, 언제나 들고 항상 의심하여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곳에서나 부디 틈이 있게 하지 말라. 자거나 깨거나 한결같아야 하고 어디
서나 언제나 분명하며, 기뻐하는 때나 성내는 때나 화두가 다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나
야 한다. 그런 경지에 실제로 이르면 의심덩이가 부서지고 바른 눈이 열릴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여 낮이나 밤이나 되는대로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 혼침과 산란이 섞이고 순
간순간에 어긋나 온갖 선악과 성색에 끄달릴 것이다. 그리하여 금년도 그렇게 보내고 내년
도 그렇게 갈 것이니, 만일 그렇다면 아무리 미륵이 하생하기를 기다려도 붙잡을 때가 없을
것이다.
7. 상국 목인길 (相國 睦仁吉) 에게 주는 글
이 일은 재가·출가에도 있지 않고 또 초참 (初參) ·후학 (後學) 에도 있지 않으며, 또 여
러 생의 훈습이나 수행에도 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깨치는 것은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분
명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자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 (善法) 을 자라게 한다.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
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한 것입니다.
부디 상공도 집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지휘할 때나 관에서 공사를 처리할 때나, 손님을 영접
하여 담소를 나누거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거나, 다니고 서고 앉고 눕거나 결국 `이것은 무
엇인가' 하십시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고 쉬지 않고 살피면 어느 새 크게 웃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그리하여 이 일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고행하고 계율을
지니는, 방석과 대의자 〔竹倚〕 에 있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8. 득통거사 (得通居士) 에게 주는 글
만일 그대가 이 일을 참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승속에도 있지 않고 남녀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또 여러 생의 훈습에도 있지 않는 것이오,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진실하고 결정적인 믿음에 있는 것이오. 그대가 이미 이렇게 믿었거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화두를 드시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없다' 하였다는, 이 마지막 한
마디를 힘을 다해 드시오. 언제나 끊이지 않고 들어 고요하거나 시끄러운 속에서도 공안이
앞에 나타나며, 자나깨나 그 화두가 분명하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면, 마치 물살 급한 여울의 달과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을 것이오. 진실로 그런 경지에 이르면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도 갑자
기 한 번 온몸에 땀이 흐르게 되리니, 그때는 잠자코 스스로 머리를 끄덕거릴 것이오. 간절
히 부탁하오, 부탁하오.
9. 상국 이제현 (相國 李齊賢) 에게 답함
주신 편지 받았습니다. 상국께서 떠나실 때 병에 대해 하신 말이 가볍지 않았기 때문에, 산
승도 구업을 꺼려하지 않고 우리 집의 더러움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일은 승속에도 관계없고 노소에도 관계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실하고 결정적인 신심에 있을 뿐입니다. 3세의 부처님네나 역대의 조사님네도 다 결정적
인 신심에 의해 도과 (道果) 를 성취하셨으므로, 이것에 의하지 않고 정각 (正覺) 을 이룬다
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을 자라게 한다'
하시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상국께서는 젊어서 과거에 높이 올라 한 나라의 정승이 되고 또 제일가는 문장가로서 나라
의 큰 보배가 되셨는데, 또 우리 불법문중에 마음을 두시니, 고금의 현인들에 비해 백천만
배나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법에 마음을 두었더라도 금생에 깨치지 못하면, 아마 도력이 업력을 이기지 못해
죽고 나서는 가는 곳마다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철저히 깨치지 못했으면 꼭 하고야
말겠다는 큰 뜻을 일으켜 옷 입고 밥 먹고 담소하는 하루 스물 네 시간 어디서나 그 본래면
목을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의 말에, `금생에 이 세상에 나와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바로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마는, 어떤 것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 하였습
니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여,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
맛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는 데 이르러 가슴속이 갑갑하더라도 공 (空) 에 떨어질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상국께서 힘을 얻을 곳이요 힘을 더는 곳이며, 또 안신입명
(安身立命) 할 곳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다시 답함
전에 산매화를 보냈을 때 선물을 주시고 또 회답에 무자 (無字) 화두를 드신다 하니, 산승
은 상국께서 일찍부터 `무'자를 참구하였기 때문에 친히 소식을 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들으매 다시 묻는 말에 이렇게 공부하리라 하시니 도리어 근심스럽고 놀랍습니
다. 부디 마음을 그대로 두시기 바랍니다. 옛사람들은 한마디나 반마디를 내려 사람들로 하
여금 제자리를 잡고서 움직이지 않게 하였습니다. 비록 일상생활에 천차만별한 일이 있더라
도 뜻이 위에만 있어 다른 것을 따라 변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다른 화두를 참구할 것이 있
겠습니까?
하물며 다른 화두를 들 때에도 `무'자를 참구해 떠나지 않는다면 반드시 `무'자에 대해 조
금이라도 익숙해질 것입니다. 부디 다른 화두로 바꾸어 참구하지 말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늘 드십시오.
한 스님의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없다 〔無〕 ' 하였다
는데 `무'라고 한 마지막 한마디를 힘을 다해 들되, 부디 언제 깨치고 깨치지 못할까를 기다
리지 말고 재미가 있고 없음에 신경쓰지도 말며, 또 힘을 얻고 얻지 못함에도 관계치 마십
시오. `무'자 그것만을 오로지 들어 그대로 나아가면,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
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의식이 작용하지 않으며 하나도 재미가 없어 마치 모기가
무쇠소의 등에 올라간 것 같더라도 공 (空) 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거기는 과거
의 여러 부처님과 조사님이 몸과 마음을 던져버린 곳이요, 또 상국께서 힘을 얻고 힘을 덜
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될 곳입니다. 거기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져버리면 비로소 도란, 첫째
는 짓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쉬지 않는 것임을 알 것입니다.
한 주먹에 황학루 (黃鶴樓) 를 때려눕히고
한 발길로 앵무주 (鵡洲) 를 차서 뒤엎는다
의기 (意氣) 에 의기를 더 보태니
풍류스럽지 않은 곳도 풍류스럽구나.
一拳拳倒黃鶴樓 一 蒜鸚鵡洲
有意氣時添意氣 不風流處也風流
10. 지신사 염흥방 (知申事 廉興) 에게 주는 글
진정 이 큰 일을 참구하려면 승속과 남녀를 묻지 말고 상중하의 근기도 묻지 말며 또 초
참·후학을 묻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직 당사자가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
는 데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믿음은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여서 모든 선법
을 자라게 한다' 하셨고 또,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
리에 이르게 한다' 하셨습니다.
공 (公) 은 젊어서 높은 벼슬에 올랐고 임금님을 만나 사무가 매우 번거로운 때인데도 우리
불법에 대해 의심없는 확실한 믿음으로 마음 닦는 방법을 물으시니, 어찌 세간 출세간을 막
론하고 가장 역량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마음 닦는 법을 따로 구하지 마십시오. 내가 광명사 (廣明寺) 에 있을 때 공에게 말
씀드린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하루 스물 네 시간을 들되, 어디서나 언제나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끊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참구하여 조금도 틈을 주지 말고, 다닐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섰을 때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며, 앉았거나 누웠을 때
도 그저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옷 입고 밥 먹으며 대소변 보고 손님을 영접하며, 나
아가서는 공무를 처리할 때나 임금님 앞에서 나아가고 물러날 때나 붓을 들고 글을 쓸 때나
필경 `이것이 무엇인가' 하십시오.
그저 이렇게 끊임없이 들고 참구하다 보면 어느 새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어,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고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며, 또
이 허깨비몸이 인간에 있는 줄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같고 자나깨나 매
한가지인 곳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지십시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비로소 관직이나 속인의
모양을 바꾸지 않고 화택 (火宅) 을 떠나지 않고라도, 서천 (西天) 의 스물 여덟 분 조사와
동토 (東土) 의 여섯 조사와 천하의 선지식들이 전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 본유 (本有) 의
일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11. 세상을 탄식함 〔歎世〕 · 4수
1.
어지러운 세상 일 언제나 끝이 날꼬
번뇌의 경계는 갈수록 많아지네
미혹의 바람은 땅을 긁어 산악을 흔드는데
업의 바다는 하늘 가득 물결을 일으킨다
죽은 뒤의 허망한 인연은 겹겹이 모이는데
눈앞의 광경은 가만히 사라진다
구구히 평생의 뜻을 다 부려 보았건만
가는 곳마다 여전히 어찌할 수 없구나.
世事紛紛何曰了 塵勞境界倍增多
迷風刮地搖山嶽 業海漫天起浪波
身後妄緣重結集 目前光景暗消磨
區區役盡平生圍 到地依先不輓何
2.
눈 깜박이는 사이에 세월은 날아가버리나니
젊은 시절은 백발이 되었구나
금을 쌓아두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 어찌 그리 미련한고
뼈를 깍으며 생 (生) 을 꾸려가는 것 진정 슬퍼라
흙을 떠다 산을 북돋움은 부질없이 분주떠는 일이요
표주박으로 바닷물 떠내는 것 진실로 그릇된 생각이다
고금에 그 많은 탐욕스런 사람들
지금에 와서 아무도 아는 사람 없구나.
乏眼光陰賑過去 白頭換却少年時
積金候死愚何甚 刻骨營生事可悲
捧土培山徒自迫 持楞酌海諒非思
古今多少貪 客 到此應無一點知
3.
얼마나 세상 티끌 속에서 빠져 지냈나
백가지 생각이 마음을 얽어 정말로 시끄러운데
5온 (五睛) 의 빽빽한 숲은 갈수록 우거지고
6근 (六根) 의 어두운 안개는 다투어 나부끼네
명리를 구함은 나비가 불에 들고
성색에 빠져 즐김은 게가 끓는 물에 떨어지네
쓸개가 부서지고 혼이 나가는 것 모두 돌아보지 않나니
곰곰이 생각하면 누구를 위해 바빠하는가.
幾多汨沒紅塵裏 百計 心正擾攘
五睛稠林增霽鬱 六根冥務競飄
沽名苟利蛾投焰 嗜色 聲蟹落湯
膽碎魂亡渾不顧 細思端的爲誰忙
4.
죽고 나고 죽고 나며, 났다가 다시 죽나니
한결같이 미쳐 헤매며 쉰 적이 없었네
낚싯줄 밑에 맛난 미끼를 탐할 줄만 알거니
어찌 장대 끝에 굽은 낚시 있는 걸 알리
백년을 허비하면서 재주만 소중히 여기다가
오래고 먼 겁의 허물만 이뤄놓네
업의 불길이 언제나 타는 곳을 돌이켜 생각하나니
어찌 사람들을 가르쳐 특히 근심하지 않게 하랴.
死死生生生復死 狂迷一槪不曾休
只知線下貪香餌 那識竿頭有曲鈞
喪盡百年重伎倆 成久遠劫愆尤
蒜思業火長燃處 寧不敎人特地愁
12. 지공화상 (指空和尙) 기골 (起骨) *
"밝고 텅 빈 한 점은 아무 걸림이 없어, 한 번 뒤쳐 몸을 던지니 얼마나 자유롭소."
죽비로 탁자를 한 번 내리치며 할을 한 번 하고는 `일으켜라!' 하셨다.
입탑 (入塔)
스님께서 영골을 받들고 말씀하셨다.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은 3천 가지 몸가짐을 돌아보지 않았는데 8만 가지 미세한
행에 무슨 신경을 썼는가. 몸에는 언제나 순금을 입고* 입으로는 불조를 몹시 꾸짖었으니,
평소의 그 기운은 사방을 눌렀고 송골매 같은 눈은 가까이하기 어려웠다. 원나라에서 여러
해를 잠자코 앉아 인천 (人天) 의 공양을 받다가 하루 아침에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전
하매 천룡팔부가 돌아오지 못함을 한탄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 아침에 정성스레 탑을 세우고 삼한 (三韓) 땅에 모시어 항상 편안하게
하려는 것이나 그 법신은 법계에 두루해 있다. 말해 보라. 과연 이 탑 안에 거두어 넣을 수
있겠는가. 만일 거두어 넣을 수 없으면 이 영골은 어디 가서 편안히 머물겠는가. 말할 수 있
는 이는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없다면 산승이 스스로 말하겠다."
할을 한 번 한 뒤에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기는 오히려 쉽지만, 겨자씨를 수미산에 넣기는 매우 어렵다."
13. 각오선인 (覺悟禪人) 에게 주는 글
생각이 일고 생각이 멸하는 것을 생사라 하는데, 생사하는 그 순간순간에 부디 힘을 다해
화두를 들어라. 화두가 순일하면 일고 멸함이 곧 없어지는데 일고 멸함이 없어진 그 곳을
신령함 〔靈〕 이라 한다. 신령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그것을 무기 (無記) 라 하고, 신령
함 가운데 화두에 어둡지 않으면 그것을 신령함이라 한다. 즉 이 텅 비고 고요하며 신령스
럽게 아는 것은 무너지지도 않고 잡된 것도 아니니, 이렇게 공부하면 멀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다.
14. 지여상좌 (智如上座) 를 위해 하화 (下火) *하다
세 가지 연 〔三緣〕 이 모여 잠깐 동안 몸 〔有〕 을 이루었다가 4대가 떠나 흩어지면 곧
공 (空) 으로 돌아간다. 37년을 허깨비 바다에서 놀다가 오늘 아침 껍질을 벗었으니 흉년에
쑥을 만난 듯 기쁠 것이다. 대중스님네여, 지여상좌는 어디로 갔는지 알겠는가. 목마를 세워
타고 한 번 뒤쳐 구르니, 크고 붉은 불꽃 속에서 찬 바람을 놓도다.
15. 두 스님을 위해 하화하다
"혜징 (慧澄) 수좌와 지인 (志因) 상좌여, 밝고 신령한 그 한 점은 날 때에도 분명하여
남을 따르지 않고, 죽을 때에도 당당하여 죽음을 따르지 않는다. 생사와 거래에 관계없이 그
자체는 당당히 눈앞에 있다."
횃불로 원상 (圓相) 을 그리면서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이 두 상좌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가. 57년 동안 허깨비 세상에서 놀다가 오
늘 아침에 손을 떼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가운데 소식을 누가 아는가. 불빛에 함께 들어
가나 감출 곳이 없구나."
16. 신백대선사를 위해 뼈를 흩다
큰 들판에 재가 날으매 그 뼈마디는 어디 갔는가. 깜짝하는 한 소리에 비로소 뇌관 (牢關)
에 이르렀다. 앗! 한 점 신령스런 빛은 안팎이 없고, 오대산 하늘을 둘러싼 흰 구름은 한가
하다.
17. 지보상좌 (志普上座) 를 위해 하화하다
근본으로 돌아갈 때가 바로 지금이거니, 도중에 머물면서 의심하지 말아라. 별똥이 튀는 곳
에서 몸을 한 번 뒤쳐, 구품의 연화대로 자유로이 돌아가라.
18. 숙녕옹주 묘선 (淑寧翁主 妙善) 에게 드리는 글
이 한 가지 큰 일을 성취하려면 그것은 승속이나 남녀나 초기 (初機) ·후학 (後學) 에 있
지 않고, 오직 당사자의 마지막 진실한 한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제가 옹주를 보매 천성이
남과 다른 데가 있어, 본래부터 사심이나 의심이나 미혹한 마음이 없고, 오직 전심으로 더
없는 〔無上〕 보리를 구하려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어찌 과거 무량겁으로부터 선지
식을 가까이하여 반야의 바른 법을 훈습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옛사람의 말에, `장부
란 남자 여자의 형상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요, 네 가지 법 〔四法〕 을 갖추면 그를 장부
라 한다' 하였습니다. 네 가지 법이란 첫째는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것이요, 둘째는 바른 법
을 듣는 것이며, 셋째는 그 뜻을 생각하는 것이요, 넷째는 그 말대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법을 갖추면 참으로 장부라 하고, 이 네 가지 법이 없으면 비록 남자의 몸이라 하
더라도 장부라 할 수 없습니다.
바라건대 옹주님도 이 말을 확실히 믿고 그저 날마다 스물 네 시간 행주좌와의 4위의 (四威
儀) 속에서 오직 본래 참구하던 화두만을 들되 끊이지 않고 들며 쉬지 않고 의심하면 고요
하거나 시끄러운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말하거나 침묵하거나 의심하지 않아
도 저절로 의심되며, 자나깨나 화두가 앞에 나타나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고 일어나려 해
도 일어나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러 모르는 사이에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
면, 거기는 여자의 몸을 바꾸어 남자가 되고 남자 몸을 바꾸어 부처를 이루는 곳이 될 것입
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
19. 매씨 (妹氏) 에게 답함
나는 어려서 집을 나와 햇수도 달수도 기억하지 않고 친한 이도 먼 이도 생각하지 않으며,
오늘까지 도 (道) 만을 생각해 왔다. 인의 (仁義) 의 도에 있어서는 친하는 정과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수 없지마는, 우리 불도에서는 그런 생각이 조금만 있어도 큰 잘못이다. 이런
뜻을 알아 부디 친히 만나겠다는 마음을 아주 끊어버려라.
그리하여 하루 스물 네 시간 옷 입고 밥 먹고 말하고 문답하는 등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항
상 아미타불을 간절히 생각하여라. 끊이지 않고 생각하며 쉬지 않고 기억하여 생각하지 않
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경지에 이르면, 나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헛되이 6
도 (六道) 에서 헤매는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간절히 부탁하여 게송으로 말하겠다.
아미타불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에 붙여두고 부디 잊지 말아라
생각이 다하여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
여섯 문 〔六門〕 에서 언제나 자금광을 뿜으리.
阿邇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光
20. 대어 (對語)*
무제 (武帝) 가 달마에게 "내 앞에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달마가"모른다"
고 대답하니 무제가 말이 없었다. 이에 대해 보녕 (保寧) 스님은 대신해 혀를 내어보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천지가 하나로 통한다" 하셨다.
태종 (太宗) 이 한 스님에게 "어디서 오시오" 하고 묻자 그 스님이 "와운 (臥雲) 에서 옵니
다" 하니 왕은 "와운은 궁벽한 곳이라 천자에게 조회하지 않는데 무엇하러 왔는가" 하였다.
이에 대해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밝음을 만나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정치가 잘 되는데 누가 달아나겠는가" 하셨다.
적 (寂) 대사가 삼계도 (三界圖) 를 올렸을 때 임금이 묻기를, "나는 어느 세계에 있습니
까?" 하니 적대사는 대답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폐하께서야 어디로 가신
들 누가 존칭하지 않겠나이까"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합장하고 몸을 굽히는데 누가 우러러보지 않겠는가" 하셨
다.
고사인 (高舍人) 이 한 스님에게 "시방세계가 모두 부처라면 어느 것이 보신 (報身) 이며 어
느 것이 법신 (法身) 입니까?" 하고 물었다. 보녕스님이 그 스님을 대신해서 "사인님, 다시
누구냐고 물어 보십시오" 하였다.
스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는 "비구니 〔師姑〕 는 여자로 된 것이니라" 하셨다.
설봉 (雪峰) 스님이 덕산 (德山) 스님에게 "옛부터 내려오는 종승 (宗乘) 의 일에 저도 한
몫이 있습니까?" 하였다. 덕산스님이 때리면서, "무어라고 말하는가?" 하니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가슴을 치고 곧 나가라"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발을 밟고 나가라" 하셨다.
남전 (南泉) 스님이 양흠 (良欽) 에게 물었다.
"공겁 (空劫) 중에도 부처가 있는가?"
양흠이 대답하였다.
"있습니다."
"그는 어떤 부처인가?"
"양흠입니다."
"어느 세계에 사는가?"
양흠이 말이 없었다.
보녕스님이 대신해 말하기를, "선상 (禪滅) 을 한 바퀴 돌고 나가라" 하였다.
스님께서 이 말을 들려 주고는 "어느 세계에 사는가?" 하셨다.
21. 감변 (勘辨)
스님께서 한 좌주 (座主) 에게 물었다.
"교가 (敎家) 에서는 일시불 (一時佛) 을 말하는데, 그 부처는 지금 어디 있는가?"
좌주가 어물거리자 스님께서 할을 한 번 하고 나가다가 다시 좌주를 불렀다. 좌주가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 "알았는가?" 하니 좌주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스님께서 "더 맞아야겠구나" 하니 좌주는 절을 하였다.
스님 셋이 와서 절하는 것을 보고 스님께서 물었다.
"세 사람이 동행하면 반드시 하나는 지혜가 있을 것이니, 지혜로 이르지 못하는 경계를 한
마디 해보아라."
그 스님이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지혜는 말에 있지 않다. 둘째 스님은 어떤가?"
그 스님도 말이 없자 스님께서는 "셋째 칠통 (漆桶) 은 어떤가?" 하셨다.
그 스님도 역시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노승이 스님네에게 감파 (勘破) 당했소. 앉아서 차나 드시오."
스님께서 한 도사 (道士:老莊) 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호주 (毫州) 에서 옵니다."
"그대가 호주에서 온다면 노자 〔老君〕 를 보았는가?"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 눈이 어떤가?"
도사가 절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노자가 석가에게 절하는구나."
22. 착어 (着語)*
스님께서 "산 밑에 한 조각 쓸데없는 밭이다" 하신 옛 분의 말씀을 들려 주고 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물건이 주인을 보고 눈을 번쩍 뜨고, 차수 (叉手) 하고 간절히 조옹 (祖翁) 에게 묻는구나."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자기 집의 본래 계약서는 어디다 두고서 몇 번이나 팔았다가 도로 사는가."
또 말씀하시기를, "경쇠소리 끊어진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나니, 가여워라, 송죽 (松竹) 이
맑은 바람을 끌어오도다" 하고는 또 "이익은 군자 (君子) 를 움직인다" 하셨다.
23. 결제에 상당하여 설법하다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네여, 자리를 걷어가지고 그냥 해산한다 해도 그것은 일 없는 데서 일을 만들고,
바람 없는 데서 물결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는 일정한 것이 없고 일에는 한결같음
이 없으니, 이 산승의 잔소리를 들으라.
담담하여 본래부터 변하는 일이 없고, 확 트여 스스로 신령히 통하며, 묘함을 다해 공 (功)
을 잊은 공 (空) 한 곳에서, 적조 (寂照) 의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 하나는 말 있기 전에 완
전히 드러나, 하늘과 땅을 덮고 소리와 빛깔을 덮고 있었다. 서천의 28조사도 여기서 활동을
잊어버렸고 중국의 여섯 조사도 여기서 말을 잃어버렸다. 몹시 어수선한 곳에서는 환히 밝
고, 환히 밝은 곳에서는 몹시 어수선하니 왕의 보검과 같고 또 취모검 (吹毛劍) 에 비길 만
하여 송장이 만 리에 질펀하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땅이 산을 만들고 있으나 산의 높음을 모르는 것과 같고, 돌이 옥을 간
직했으나 옥의 티없음을 모르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큰 코끼리 〔香象〕 가 강
을 건널 때, 철저히 물결을 끊고 지나가는 것과 같다. 또 무어라고 말할까. 3현·3요·4료
간·4빈주로서 완전히 죽이고 완전히 살리며, 완전히 밝게 하고 완전히 어둡게 하며, 한꺼번
에 놓고 한꺼번에 거두며, 하면서 하지 않고 하지 않으면서 하며, 진실이면서 거짓을 덮지
않고 굽으면서 곧음을 감추지 않소."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알겠는가.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니 어디로 가나 티끌이 아니다."
주장자를 내던지고, "떨어버릴 것이 다른 물건이 아니라 한다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하
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말씀하셨다.
"범이 걸터앉고 용이 서린 형세요, 산의 얼굴에 구름의 그림자로다. 방 (龐) 거사가 딸 영조
(靈照) 에게,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라 하였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물었을 때, 영조는 `이 늙은이가 머리는 희고 이는 누르면서 이따위 견해를 가졌구나'
하였다. 다시 거사가 `너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하니 영조는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
사의 뜻입니다' 하였다.
거사는 말은 지극하나 뜻이 지극하지 못하고, 영조는 뜻은 지극하나 말이 지극하지 못하였
다. 아무리 말과 뜻이 지극하더라도 나옹의 문하에서는 하나의 무덤을 면하지 못할 것이오.
말해 보라. 그 허물은 어느 쪽에 있는가."
한참 있다가 "환한 온갖 풀잎 끝에 환한 조사의 뜻이오.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
려오셨다.
24. 해제에 상당하여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구 (主句) 인가, 빈구 (賓句) 인가, 파주구 (把住句) 인가, 방행구 (放行句) 인가.
대중스님네는 가려낼 수 있겠는가. 가려낼 수 있으면 해산하고 가려낼 수 없으면 내 말을
들어라.
맨 처음 한마디와 마지막 한 기틀 〔機〕 은 3세의 부처님네도 알지 못하는 것인데 내가 지
금 여러분 앞에 꺼내 보이니, 북을 쳐서 대중운력이나 하여라. 천년의 그림자 없는 나무가
지금은 밑 없는 광주리가 되었다. 2천년 전에도 이러하였고 2천년 후에도 이러하며, 90일 전
에도 이러하였고 90일 후에도 이러하다. 위로는 우러러야 할 어떤 부처도 없고 밑으로는 구
제해야 할 어떤 중생도 없다. 그런데 무슨 장기·단기를 말하며 무슨 결제·해제를 말하는
가."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두 쪽을 다 끊고 중간에도 있지 않네
빈 손으로 호미 들고 걸어가면서 물소를 타네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니
다리는 흐르는데 물은 흐르지 않네.
閒斷兩頭不居中 空手把鋤頭
步行騎水牛 人從橋上過
橋流水不流
할을 한 번 한 뒤에 "안녕히 계시오"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나옹화상 게송
시자 각뢰 (覺雷) 가 짓고 광통 보제사 (廣通 普濟寺) 에 주석하는 환암 (幻艤) 이 교
정하다.
1. 노래 〔歌〕 · 3수
1. 완주가 (翫珠歌)
신령한 이 구슬 지극히 영롱하여
그 자체는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 안팎이 비었는데
사람마다 푸대 속에 당당히 들어있어서
언제나 가지고 놀아도 끝이 없구나
마니구슬이라고도 하고 신령한 구슬이라고도 하니
이름과 모양은 아무리 많아도 자체는 다르지 않네
세계마다 티끌마다에 분명하여
밝은 달이 가을 강에 가득한 듯하여라
배고픔도 그것이요 목마름도 그것이니
목마름 알고 배고픔 아는 것 대단한 것 아니라
아침에는 죽먹고 재 (齋) 할 때는 밥먹으며
피곤하면 잠자기에 어긋남이 없어라
어긋남도 그것이요 바름도 그것이라
수고로이 입을 열어 미타염불 할 것 없네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집착하지 않으면
세간에 있어도 자유로우니 그가 바로 보살이라
이 마음구슬은 붙잡기 어려우니
분명하고 영롱하나 붙잡기 어려움이여
형상도 없으면서 형상을 나타내고
가고 옴에 자취 없어 헤아릴 수 없구나
쫓아가도 따르지 못하는데 갑자기 스스로 온다
잠시 서천에 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돌아옴이여
놓아버리면 허공도 옷 안에 드는데
거둬들이면 작은 티끌보다 쪼개기 어렵다
헤아릴 수 없어라 견고한 그 몸이여
석가모니는 그것을 제 마음의 왕이라 불렀나니
그 작용이 무궁무진한데도
세상 사람들 망령되이 스스로 잊는구나
바른 법령 시행되니 누가 그 앞에 서랴
부처도 마구니도 모조리 베어 조금도 안 남기니
그로부터 온 세계에 다른 물건 없고
강에는 피만 가득하여 급히 흐른다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지 않으나
보도 듣도 않음이 진짜 보고 들음이라
그 가운데 한 알의 밝은 구슬 있어서
토하거나 삼키거나 새롭고 새로워라
마음이라고도 하고 성품이라고도 하는데
마음이든 성품이든 원래 반연의 그림자라
만일 누구나 여기에 의심 없으면
신령스런 자기 광명 언제나 빛나리
도 (道) 라고도 하고 선 (禪) 이라고도 하나
선이나 도란 원래 억지로 한 말이거니
비구니도 여인으로 된 것임을 진실로 알면
걷는 수고 들이지 않고 저곳에 도착하리
부처도 없고 마구니도 없으니
마구니도 부처도 뿌리 없는 눈 〔眼〕 속의 헛꽃인 것을
언제나 날로 쓰면서 전혀 아무 일 없으나
신령한 구슬이라 하면 나무람을 받으리
죽음도 없고 남도 없이
항상 비로자나의 정수리를 밟고 다니며
때에 맞게 거두거나 놔주니
자재하게 들고 씀에 골격이 맑아라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데
서거나 앉거나 분명하여 언제고 떠나지 않는구나
힘을 다해 쫓으나 그는 떠나지 않고
있는 곳을 찾아보아도 알 수가 없네
하하하 이 어떤 물건인가
1, 2, 3, 4, 5, 6, 7
세어 보고 다시 세어 보아도 그 끝이 없구나
마하반야바라밀!
2. 백납가 (百歌)
백번 기운 이 누더기 내게 가장 알맞으니
겨울이나 여름이나 만판 입어도 편안하구나
누덕누덕 꿰매어 천조각 만조각인데
겹겹이 기웠으매 앞도 뒤도 없어라
자리도 되고 옷도 됨이여
철따라 때따라 어김없이 쓰이며
이로부터 고상한 행에 만족할 줄 아나니
음광 (飮光) 이 끼친 자취 지금에 있구나
한 잔의 차 일곱 근 장삼이여
조주스님 재삼 들어보여 헛수고했나니
비록 천만 가지 현묘한 말씀 있다 한들
우리 집의 백납장삼만이야 하겠는가
이 누더기옷은 매우 편리하니
늘상 입고 오가며 무엇을 하든지 편리하구나
취한 눈으로 꽃보는 일 누가 구태여 하겠는가
도에 깊이 사는 이라야 스스로 지킨다
이 누더기 얻은 지가 얼마인가 아는가 몇 해나 추위를 막았던가
반쯤은 바람에 날아가고 반쯤만 남았구나
서리치는 달밤, 띠풀암자의 초암에 홀로 앉았으니
안팎을 가릴 수 없이 모두가 깜깜 〔蒙頭〕 하다
이 몸은 가난하나 도는 끝 없어
천만 가지 묘한 작용 다함 없어라
누더기에 멍충이 같은 이 사람을 비웃지 말라
선지식 찾아 진실한 풍모를 이었으니
헤진 옷 한 벌에 가느다란 지팡이 하나로
천하를 횡행해도 안 통할 것 없었네
강호를 두루 다니며 무엇을 얻었던고
원래 배운 것이라곤 빈궁뿐이라
이익도 구하지 않고 이름도 구하지 않아
누더기 납승, 가슴이 비었거니 무슨 생각 있으랴
바루 하나의 생활은 어디 가나 족하니
그저 이 한 맛으로 남은 생을 보내리
만족한 생활에 또 무엇을 구하랴
우습구나, 미련한 사람들 분수를 모르고 구하네
전생에 지은 복임을 알지 못하는 이는
하늘 땅을 원망하면서 부질없이 허덕인다
몇 달이 되었는지 몇 해나 되었는지
경전도 읽지 않고 좌선도 하지 않으니
누런 얼굴에 잿빛 머리의 이 천치 바보여
오직 이 누더기 한 벌로 남은 생을 보내는구나
3. 고루가 (奇歌)
이 마른 해골이여 몇 천 생 (生) 이나
축생이나 인천 (人天) 으로 허덕였던가
지금은 진흙 구덩이 속에 떨어져 있으니
반드시 전생에 마음 잘못 썼으리라
한량없는 겁토록 성왕 (性王) 에 어두어
6근 (六根) 은 이리저리 흩어져 치달리고
탐욕과 애욕만을 가까이할 줄 알았으니
어찌 머리 돌려 바른 광명 보호할꼬
이 마른 해골이여 매우 미련하고 깜깜하여
그 때문에 천만 가지 악을 지었네
하루 아침에 공하여 있지 않음을 확실히 본다면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서늘히 몸을 벗으리
그때를 놓쳤으니 가장 좋은 시절이라
이리저리 허덕이며 바람 따라 나는구나
권하노니 그대는 지금 빨리 머리를 돌이키라
진공 (眞空) 을 굳게 밟고 바른 길에 돌아가라
모였다 흩어지고 오르고 빠짐이여
이 세계도 저 세계도 마음 편치 않구나
그러나 한 생각에 빛을 돌이킬 수 있다면
단박에 뼛속 깊이 생사를 벗어나리라
머리에 뿔이 있거나 머리에 뿔이 없거나
3도를 기어다니며 어찌 깨닫겠는가
갑자기 선각의 가르침 만나
여기서 비로소 잘못된 줄 분명히 알았나니
혹은 어리석음과 애욕으로 혹은 탐욕과 분노로
곳곳에서 혼미하여 허망한 티끌 뒤집어써서
머리뼈가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흩어졌는데
어디서 참사람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나기 전에 잘못되었고 죽은 뒤에 잘못 되어
세세생생 거듭거듭 잘못되었으나
한 생각에 무생 (無生) 을 깨달아내면
잘못되고 잘못됨도 원래 잘못 아니리
거칠은 것에도 집착하고 미세한 데에도 집착하여
집착하고 집착하면서 전연 깨닫지 못하다가
갑작스런 외마디소리에 후딱 몸을 뒤집으면
눈에 가득한 허공이 다 부숴지리라
혹은 그르다 하여 혹은 옳다 하여
시비의 구덩이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근심하다가
어느 새 몸이 죽어 백골무더기뿐이니
당당한 데 이르러도 자재하지 못하네
이 마른 해골이 한번 깨치면
광겁의 무명도 당장 재가 되어서
그로부터는 항하사 불조의
백천삼매라 해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부러워하지도 않는데 무슨 허물 있는가
생각하고 헤아림이 곧 허물되나니
쟁반에 구슬 굴리듯 운용할 수 있다면
겁석 (劫石) 도 그저 손가락 퉁길 사이에 지나가리
법도 없고 부처도 없고
마음도 없고 물질도 없네
여기에 이르러 분명한 이것은 무엇인가
추울 때는 불 앞에서 나무조각 태운다
나옹스님 게송 3수 뒤에 붙임
구슬은 방향을 따라 색을 내어 사람을 미혹하게 하지마는 그 청정함은 불성을 표한 것이
요, 마른 해골은 기운이 흩어지고 살이 없어져 사람들이 버리지마는 살아 있으면 불도를 행
할 것이다. 또한 기운 누더기는 비단을 물리치고 누더기를 꿰매어 살을 덮어 추위와 더위를
막을 뿐이나, 그것이 아니면 장엄과 격식으로 스님네들 편히 살게 하여 불도에 들어가 불성
을 보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게송 세 수는 시작과 끝이 들어맞고 맥락이 서로 통하여 후인들에게 보여주는 바가 깊
고도 절실하다.
나옹스님의 문장은 손 가는 대로 맡겨 미리 초하는 일이 없다. 진실한 이치를 토해내고 찬
연히 써내며 운율이 빛나지만 세속의 문자를 그다지 깊이 알지 못하는 점도 볼 수 있다. 그
러나 게송 세 수에 있어서는 마치 두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 같으니, 반드시 애를 쓰고 깊
이 생각해 지은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영가 현각 (永圈玄覺) 스님의 문투를 본떴겠
는가. 뒷날 서역 (西域) 에 전해지면 반드시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스님의 제자 아무개 등이 내게 발문을 청하기에 나는 그 제목을 읽고 문체를 살펴 그 청에
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심오한 이치에 있어서는 고기 〔貌〕 가 아닌데 어찌 고기를 알겠는
가.*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 좌우사랑중 문충보절동덕찬화공신 중대광한산군 예문관대제
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이색 (前朝列大夫征東行中書省左右司中文忠保
節同德贊化功臣重大翠韓山君藝文�v大提學知春秋�v事成均大司成知書 事李穡)은 쓰다.
2. 송 (頌)
산거 (山居)
바루 하나, 물병 하나, 가느다란 주장자 하나
깊은 산에 홀로 숨어 마음대로 살아가네
광주리 들고 고사리 캐어 뿌리채로 삶나니
누더기로 머리 싸는 것 나는 아직 서툴다
내게는 진공 (眞空) 의 일없는 선정이 있어
바위 틈에서 돌에 기대어 잠만 자노라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느냐고 누군가 불쑥 묻는다면
헤진 옷 한 벌로 백년을 지낸다 하리라
한종일 소나무 창에는 세상 시끄러움 없고
돌 수곽에는 언제나 시냇물이 맑다
다리 부러진 솥 안에는 맛난 것 풍족하니
무엇하러 명리와 영화를 구하랴
흰 구름 쌓인 속에 세 칸 초막이 있어
앉고 눕고 거닐기에 스스로 한가하네
차가운 시냇물은 반야를 이야기하는데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온몸에 차갑네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아 헛된 명예 끊었고
돌병풍을 의지하여 세상 인정 버렸다
꽃과 잎은 뜰에 가득한데 사람은 오지 않고
때때로 온갖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들리네
깊은 산이라 온종일 오는 사람은 없고
혼자 초막에 앉아 만사를 쉬었노라
석 자 되는 사립문을 반쯤 밀어 닫아두고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으며 한가로이 지내노라
나는 산에 살고부터 산이 싫지 않나니
가시 사립과 띠풀 집이 세상살이와 다르다
맑은 바람은 달과 어울려 추녀 끝에 떨치는데
시냇물은 가슴을 뚫고 서늘하게 담 (膽) 을 씻어내는구나
일없이 걸어나가 시냇가에 다다르면
차갑게 흐르는 물 선정을 연설하네
물건마다 인연마다 진체 (眞體) 를 나타내니
공겁 (空劫) 이 생기기 전의 일을 말해서 무엇하리
환암장로 (幻庵長老) 의 산거 (山居) 에 부침 ·4수
1.
온갖 경계 그윽하고 조도 (鳥道) 는 평탄하여
마음에 걸리는 일, 한 가지도 없네
이 몸 밖에 다른 물건은 없고
앞산 가득 구름이요 병에 가득 물이로다
2.
자취 숨기고 이름을 감춘 한 야인 (野人) 이거니
한가로이 되는대로 세상 번뇌 끊었다
아침에는 묽은 죽, 재할 때는 나물밥
좌선하고 거닐면서 천진 (天眞) 에 맡겨두네
3.
몇 조각 구름은 경상 (脛滅) 을 지나가고
한 줄기 샘물은 평상 머리에 떨어지는데
취한 눈으로 꽃을 보는 사람 수없이 많건만
누가 즐겨 여기 와서 반나절을 함께 쉬랴
4.
외로운 암자 바깥에는 우거진 숲 고요한데
백납 (百) 의 가슴 속에는 모든 생각 비었으니
마음 내키면 시냇물가에 나가 앉아
물결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구경하네
산에 놀다 〔遊山〕
가을 깊어 지팡이 짚고 산에 이르니
바위 곁의 단풍은 이미 가득 붉었구나
조사가 서쪽에서 온 분명한 뜻을
일마다 물건마다 스스로 먼저 일러주네
달밤에 적선지 (積善池) 에 놀다
발길 닿는대로 한밤중에 여기 와서 노나니
이 가운데 참맛을 그 누가 알리
경계는 비고 마음은 고요하여 온몸이 산뜻한데
바람은 못에 가득 차고 달은 시내에 그득하다
양도암 (養道菴) 에서
지팡이로 구름을 뚫고 이 산에 올랐더니
그 가운데 암자 하나 가장 맑고 고요하다
암자의 사면에는 봉우리들이 빼어났고
소나무·잣나무 사이의 맑은 샘물은 뼛속까지 차구나
안심사 (安心寺) 에서
갑자기 안심사에 와서 이삼 일 동안
몸과 마음을 쉬고 양주 (襄州) 로 향하니
도인의 자취를 뉘라서 찾을 수 있으랴
동해의 바위 곁에서 마음대로 노닌다
늦가을에
한 줄기 가을바람 뜰안을 쓰는데
만 리에 구름 없어 푸른 하늘 드러났다
선뜻선뜻 상쾌한 기운에 사람들 기뻐하는데
눈빛이 차츰 맑아져 기러기 줄지어 날아간다
밝고 밝은 보배 달빛은 가늠하기 어렵고
역력한 보배 산들은 세어도 끝이 없다
모든 법은 본래부터 제자리에서 편안하나니
추녀 끝에 가득한 가을빛은 청홍 (靑紅) 이 반반이다
죽순 (竹 )
하늘 기운 뜨거운 한여름철에
처음 돋는 죽순은 본래 티끌을 떠났다
용의 허리가 갑옷을 벗어 감추기 끝났는데
봉의 부리는 털을 헤치고 제몸을 그대로 드러낸다
푸른 잎에 빗소리는 묘한 이치 말하고
파릇한 가지에 바람소리는 깊은 진리 연설한다
여기서 갑자기 영산 (靈山) 의 일을 기억하나니
잎새마다 풀잎마다 새롭고도 새로워라
새로 지은 누대 〔新臺〕
새로 지은 높은 누대, 그 한 몸은 우뚝하나
고요하고 잠잠하여 도에서 멀지 않다
멀리 바라보이는 뭇산들은 모두 이리로 향해 오는데
가까이 보면 많은 숲들은 가지 늘이고 돌아온다
독한 짐승들 바라보고 마음으로 항복하고
자주 오는 한가한 새들은 구태여 부를 것 없네
만물은 원래부터 이미 성숙했거니
어찌 그리 쉽사리 공부를 잃게 하랴
만 겹의 산 속은 고요하고 잠잠한데
오똑이 앉아 구름과 솔에 만사를 쉬었노라
납자들은 한가하면 여기 와서 구경하고
속인들은 길 없으면 여기 와서 노닌다
누대 앞뒤에는 시원한 바람 불고
산 북쪽과 남쪽에는 푸른 물이 흐른다
뼛속까지 맑고 시원해 선미 (禪味) 가 족하거니
한여름 떠나지 않고 어느 새 가을이네
단비 〔旱雨〕
가물 때 단비 만나면 누가 기쁘지 않으랴
천하의 창생 (蒼生) 들이 때와 티끌 씻는다
모든 풀은 눈썹 열고 빗방울에 춤추며
온갖 꽃은 입을 벌리고 구슬과 함께 새롭다
삿갓 쓴 농부들은 그 손길이 바쁘고
도롱이 입고 나물캐는 여인네는 몸놀림이 재빠르다
늘상 있는 이런 일들을 보노라면
일마다 물건마다 모두 다 참되도다
진헐대 (眞歇臺)
진헐대 안의 경치가 어떠한가
온갖 봉우리들 모두 이리로 향해 오고
누대 앞뒤에는 맑은 바람 떨치는데
그늘이 엷거나 짙거나 하루종일 한가하네
스님네는 쌍쌍이 왔다 또 가고
새들은 짝을 지어 갔다 돌아오는데
그윽한 바위에 고요히 앉았으면 걸림없이 트이나니
물색과 산빛은 서늘하게 담을 씻어내도다
한가한 때 감회를 읊다
40년 전에 두루 돌아다니면서
천태 (天台) 와 남악 (南嶽) 에 자취를 남겼거니
지금에 차갑게 앉아 생각해 보면
천하의 총림들이 두 눈에 텅 비었네
하안거 해제에
90일을 묶였던 발이 오늘 아침에 끝나니
3개월 동안의 안거 (安居) 는 찾아도 자취 없네
노주 (露柱)*와 등롱 (燈芼) *은 남북으로 떠났으나
석호 (石虎) 는 여전히 고봉 (高峰) 에서 싸우네
신설 (新雪) ·2수
1.
마른 나무에 꽃이 피는 겁 (劫) 밖의 봄인데
산과 강은 한 조각의 흰 눈덩이다
신광 (神光:이조 혜가) 이 오래 서서 마음을 편히 하였다지만
오늘 아침 뼈에 스미는 추위만하겠는가
2.
산과 강이 한 조각의 흰 눈덩이라
동서남북으로 조사 관문 꽉 막았네
어젯밤에 보현 (普賢) 보살이
흰 코끼리를 거꾸로 타고 아미산에 내려왔네
모기
제 힘이 원래 약한 줄을 모르고
피를 너무 많이 먹고 날지 못하네
부디 남의 소중한 물건을 탐하지 말라
뒷날에 반드시 돌려줄 때 있으리
모란
꽃중의 왕이 두세 떨기 다투어 피었는데
다른 꽃들 위에 뛰어나 완연히 다르다
그러나 어찌 저 남전 (南泉) 의 꿈에 보였던 것만이야 하랴*
눈을 뜨기 전에 붉은 빛이 뚫고 들어오네
작약
영롱한 그 자태에 어느 것을 견주리
붉고 흰 꽃빛이 창에 가득 비치었네
반쯤 피어 입을 열고 웃는 웃음은
온 하늘 온 땅에 짝할 것 없네
산차 〔山茶〕를 따며
차나무를 흔들며 지나가는 사람 없고
내려온 대중들 산차를 딴다
비록 터럭만한 풀도 움직이지 않으나
본체와 작용은 당당하여 어긋남 없구나*
반가운 비 〔喜雨〕
가물 때 내린 단비, 그 기쁨 말해 무엇하리
만물은 왕성하고 해는 풍년이라 하늘의 도가 존귀하다
신룡 (神龍) 의 얼마만한 힘이든지
결국에는 한 방울만 가지고도 온 천지를 적신다
환봉 (幻峯)
본바탕은 거북털 같아 찾아도 자취 없는데
우뚝 솟은 봉우리 몇 겹이던가
바라보면 있는 듯 분명히 나타나고
찾아보면 없어져 텅 비었네
설악 (雪嶽) 은 속은 비고 산세는 험준한데
부산 (浮山) 은 겉도 알차고 모양도 영롱하다
뿌리를 바로 꽂아 푸른 하늘에 서지 말라
뉘라서 그 꼭대기에 길을 낼 수 있으리
석실 (石室)
견고한 그 온몸을 누가 만들어내었던가
천지가 나뉘기 전에 이미 완연하였다
텅 빈 네 벽은 몇 천년을 지냈으며
분명한 세 서까래는 몇 만년을 지냈던가
어느 겁에도 우뚝하여 무너지는 일이 없고
어느 때도 크낙하여 부서지지 않는다
법계를 받아들여 얼마든지 너른데
예로부터 지금까지 그윽하고 그윽하다
환암 (幻菴)
몸은 허공꽃과 같아서 찾을 곳이 없는데
여섯 창에 바람과 달은 청허 (淸虛) 를 둘러싸고
없는 가운데 있는 듯하다가 다시 실체가 아니라
네 벽이 영롱하여 잠깐 빌어 산다네
곡천 (谷泉)
만 골짝 천 바위와 소나무 잣나무 사이에
신령한 근원은 깨끗하고 바탕은 편하고 한가하네
깊고 깊은 골 속에서 항상 흘러나오나니
마시는 이 온몸 뼛속까지 차가워라
소암 (笑菴)
오늘도 영산 (靈山) 의 일이 분명하나니
여섯 창을 활짝 여니 새벽바람 차가워라
빙그레 짓는 미소 누가 알아보겠는가
네 벽이 영롱하여 세상 밖에서 한가하다
현봉 (懸峰)
허공에 걸려 있어 마음대로 오가고
우뚝이 뚫고 나와 푸른 하늘에 꽂혀 있네
동서남북 아무 데도 의지할 것 없나니
뾰족한 것들 다 누르고 홀로 우뚝하여라
회암 (會菴)
갑자기 지음 (知踵) 을 만나 입을 열고 웃나니
지금부터 여섯 창에는 기쁨 항상 새로우리
이제는 남의 우러름을 바라지 않나니
네 벽의 맑은 바람은 세상 밖의 보배일세
죽림 (竹林)
만 이랑의 대나무가 난간 앞에 닿아 있어
사시사철 맑은 바람은 거문고 소리 보내주네
차군 (此君) *은 빽빽하되 하늘 뜻을 통하고
그림자가 뜰안을 쓸되 티끌은 그대로라네
인산 (仁山)
어떤 일이나 막힘 없으면 스스로 통하니
높은 묏부리는 뚫고 나와 뭇 봉우리 누른다
온갖 형상을 머금었으나 모든 모양 떠났거니
백억의 수미산인들 어찌 이만하리오
고주(孤舟)
온갖 일을 아주 끊고 나 홀로 나와
순풍에 돛을 달고 밝은 달에 돌아오네
갈대꽃 깊은 곳의 연기 속에 배를 대니
부처와 조사가 엄연하나 찾을 줄 모르리라
대원 (大圓)
허공을 꽉 싸안고 그림자와 형상을 끊었네
온갖 형상 머금었어도 자체는 항상 깨끗하다
눈앞의 진풍경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구름 걷힌 푸른 하늘에 가을달이 밝구나
헐암 (歇菴)
모든 인연을 다 던져버리고 돌아왔나니
네 벽에는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오네
지금부터야 무엇하러 다시 집착할 것인가
비좁으나마 널따란 곳에 그저 앉아 있으리
추산 (秋山)
가을바람 한 줄기가 엷은 구름 쓸고 나면
온 땅의 봉우리들은 묘한 빛이 새롭구나
그로부터 달빛은 밝고 깨끗하리니
수미산을 겨자씨 속에 넣는 것 사랑한 것 아니다
순암 (順菴)
만상이 모두 한 생각에 돌아가 사라지니
여섯 창에는 밝은 달이 고요하고 쓸쓸해라
티끌티끌이 남의 집 물건이 아니니
조그만 암자에 온 법계가 다 들었네
절안 (絶岸)
눈길 다한 하늘 끝은 푸르다 가물가물한데
그 가운데 어찌 중간이 있겠는가
편편하여 끝없는 곳에서 몸을 뒤집으면
그 작용은 언제나 공겁 (空劫) 이전에 있으리
서운 (瑞雲)
한 줄기 상서로운 빛, 이것을 보는가
허공을 모두 싸고 뻗쳤다 걷혔다 하나니
여기서 몸을 뒤집어 몸소 그것을 밟으면
비바람을 몰고서 곧장 집에 돌아가리
보봉 (寶峰)
써도 다함이 없고 값도 물론 비싸니
층층으로 높이 솟아 푸른 하늘에 꽂혔다
구슬의 광채는 안팎으로 항상 나타나지만
마음먹고 찾아가면 길은 더욱 멀어라
영암 (映菴)
모양과 빛깔이 분명한 이것을 아는가
여섯 창 밝은 달이 산과 강을 비춘다
찬 빛을 모두 쓸고 몸을 뒤집으면
위음왕불 겁 밖의 집으로 뚫고 지나가리라
고원 (古源)
조짐과 자취가 나타나기 이전의 한 가닥 물줄기여
아주 맑고 담담해서 그 자체 편안하네
앞도 없고 뒤도 없고, 가〔邊〕도 겉도 없나니
그 복판 〔中〕 을 모르고 지낸 지 몇 해이런가
담적 (湛寂)
바닥까지 맑고 맑아 담 (膽) 을 뚫을 듯 차가운데
또렷하고 분명하여 자체 항상 편안하다
온갖 훌륭한 경계는 무심에서 나타나니
공부는 고요한 곳에서 보아야 함을 비로소 깨달았다
태양 (太陽)
허공을 모두 감싸 안팎이 없는데
금까마귀는 세계 어디에나 스스로 분명하다
온 하늘에서 단박 몸을 뒤집어버리면
한 길이 당당하여 겁 밖이 태평하다
현계 (玄溪)
묘한 이치와 진실을 말하는 것, 그 모두 허망한데
그 가운데 한 줄기가 난간 너머 잔잔하다
침침하고 고요한데 누가 볼 수 있는가
한 줄기 그 소리가 밝은 달에 실려오네
서암 (瑞巖)
흰 기운이 하늘을 찔러 허공을 차게 하는데
푸른 솔은 사방에 여기저기 꽂혀 있다
끄떡없이 다른 경계와 간격이 없지마는
꽃비는 여전히 망령되게 뿌린다
옥림 (玉林)
아주 깨끗해 티가 없는 신기한 보배는
뿌리와 싹이 사철따라 변하지 않네
집 안에 본래 있어 남에게서 얻는 것 아니거니
가지와 잎은 공겁 (空劫) 전에 무성하였다
영매 (嶺梅)
불쑥 솟아나 푸른 하늘에 꽂혔나니
얼음 같은 자태와 옥 같은 뼈는 공겁 전에 있었다
묏부리들이 험준한데 누가 갈 수 있는가
섣달의 봄바람은 세상을 벗어난 오묘함일세
징암 (澄菴)
성품 달이 맑고 뚜렷해 본래의 공 (空) 을 비추건만
사립문을 닫아 두어 사람들이 다니기 어렵구나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거니 누가 거기 가겠는가
이 작은 암자가 금년에는 바로 그 가난함일세
향암 (響菴)
맑은 메아리가 허공을 흔들고 시방에 떨치나니
여섯 창에 찬 달이 당당히 드러났네
삼라만상이 모두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니
띠풀 사립문도 다 광명을 놓네
무여 (無餘)
동서남북이 텅 비어 트였으니
시방세계가 또 어디 남았는가
허공이 손뼉치며 라라라 노래하매
돌계집이 소리에 맞춰 쉬지 않고 춤을 추네
고산 ( 山)
밝은 해가 허공에 올라 한 점의 흐림도 없어
우뚝한 묏부리들이 푸른 하늘에 꽂혔네
뜬구름이나 엷은 안개가 거기 갈 수 있겠는가
백억의 수미산들이 그 앞에 늘어섰네
본적 (本寂)
오랜 겁토록 밝고 밝아 다른 모양 없나니
맑고 고요한 한 맛이 가장 단연 (端然) 하여라
원래 티끌에 흔들리지 않고
바로 위음왕불의 공겁 전에 이르렀네
서운 (瑞雲)
갑자기 비상함을 얻어 참경계 나타나니
밝고 밝은 해와 달이 어둡고 깜깜하다
어찌 구태여 용화회 (龍華會:미륵의 회상) 를 기다리랴
한 줄기 상서로운 빛이 큰 허공을 메우네
오암 (晤菴)
밝고 밝은 빛이 대천세계 비추나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환하고 편안하다
모든 것에 늘고 줆이 없음을 환히 알았거니
네 벽의 맑은 바람은 겁 (劫) 밖에 오묘하다
무위 (無爲)
동서남북이 텅 비어 트였으니
하는 일이 모두 다 공 (空) 이로구나
아무 것도 없는 그 경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리
꼿꼿하고 드높게 고풍을 날린다
담연 (湛然)
바닥까지 맑고 맑아 한없이 차가워서
서쪽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움직이기 어렵더니
깊고 넓고 또 먼데 가을달을 머금으매
흙무더기와 진흙덩이도 모두 다 기뻐하네
환산 (幻山)
하늘 끝에 줄지어 있어도 바탕은 실로 비었나니
기묘한 묏부리들은 지극히 영롱하다
바라볼 때는 있는 듯하나 잡을 수가 없으니
그 꼭대기에는 원래 통하는 길이 없다
곡란 (谷蘭)
만 골짝 깊고 깊은 돌바위 틈에
향기로운 이상한 풀이 시냇가의 솔을 둘러쌌다
층층히 포개진 많은 봉우리 속에
갑자기 꽃을 피워 온 누리를 덮었네
신암 (信菴)
명백하고 의심없어 몸소 밟으니
여섯 창에 호젓한 달이 다시금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망령되이 이리저리 달리지 않으리
조그만 이 암자는 언제나 철저히 맑은 것을
찬암 (璨菴)
반짝이는 묘한 광채 누가 값을 정하리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은 때도 없이 비추도다
찬란한 광채는 언제나 깨끗하여 항하사 세계에 두루했나니
맑은 바람에 실려 창에 날아들어온다
묘봉 (妙峰)
바라볼수록 멀고 우러를수록 더욱 높구나
불쑥 솟아 우뚝이 푸른 하늘에 꽂혀 있다
28조사와 6조사님네도 알지 못하거니
누가 감히 그 가운데 마음대로 노닐랴
전암 (電菴)
천지를 진동하며 번쩍번쩍 빛나거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작용이 더 많으리
비바람에 실려다녀도 자취가 없으니
네 벽이 텅 빈 늙은 작가 (作家) 로다
장산 (藏山)
은은하고 침침하여 허공에 가득한데
험준한 묏부리들은 저 멀리 아득하다
그림자 〔形影〕 없는 데서 그림자를 알 수 있나니
오악 (五岳) 과 수미산이 그 발 밑에 서 있다
성암 (省菴)
갑자기 잘못됨을 알고 이제 문득 깨쳤나니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이 다시금 분명하다
지금부터는 티끌 생각을 따라가지 않으리라
네 벽이 영롱하여 안팎이 모두 맑다
곡계 (谷磎)
그윽하고 넓고 먼 그곳을 누가 일찍이 보았던가
냉랭한 한 줄기가 사시사철 차갑구나
만 골짝 가을 하늘에 빛나는 별과 달은
언제나 흐르는 물 속에 떨어진다
본적 (本寂)
겁겁 (劫劫) 에 당당하여 바탕 자체가 공 (空) 하건만
가만히 사물에 응하면 그 자리에서 통하네
원래 한 점도 찾을 곳이 없건만
온 세계도 옛 주인을 감추기 어려워라
정암 (正庵)
흑백이 갈라지지 않았는데 어디 피차가 있으랴
여섯 창의 호젓한 달은 앞에 오지 않고
금까마귀 옥토끼도 찾을 곳이 없거니
신령한 빛 본래 고요함을 비로소 믿겠구나
벽산 (璧山)
옥 보배의 정해진 값을 그 누가 알리
묏부리들 빼어나 허공에 꽂혀 있다
찬란한 빛 예나 이제나 항상 빛나건만
그 꼭대기에는 원래 통하는 길이 없네
의주 (意珠)
물건에 응해 분명히 그 자리에 나타나니
세간의 보물이 어찌 이에 미치랴
가죽 주머니에 숨어 있으니 그 누가 알리
밤낮 맑은 빛은 영원히 차가워라
고경 (古鏡)
과거부터 지금까지 자체가 본래 견고하고
찬 빛은 멀리 천지 이전을 비추네
길지도 짧지도 않고 또 앞뒤도 없는 것이
쳐부수고 돌아오매 오묘하고 오묘하다
식암 (息菴)
온갖 인연 다 쓸어버리고 자취도 안 남기매
한 방이 고요하여 다르고 같음을 뛰어났네
그리고부터는 모든 티끌 다 없어졌나니
여섯 창에 밝은 달은 맑은 바람과 어울리네
시암 (是菴)
본래 스스로 비고 밝아 한 점 티도 없나니
여섯 창에 차가운 달은 항하사 세계를 둘러쌌네
그 가운데 어찌 부질없는 길고 짧음 있으랴
법계를 모두 머금어 한 집을 만들었네
보산 (寶山)
주머니 속의 귀한 물건, 그 값이 한없는데
묏부리들은 사철 허공에 가득하고
밤을 빼앗는 찬 달빛은 멀고 가까움 없으나
그 꼭대기에는 원래 길을 내기 어렵다
무애 (無 )
똑똑하고 분명하며 텅 비고 트이어
항하사 세계를 둘러싸고 한 점 티끌도 없다
비고 밝아 위음왕불 밖을 꿰뚫고 비추거니
돌벽이나 산천인들 어찌 그를 막으랴
일산 (一山)
삼라만상이 나타나기 이전에
우뚝하고 험준하여 사시사철 차가운데
수미산과 큰 바다가 여기 돌아와 합했나니
층층의 뾰족함을 누르고 혼자 따로 관문이 되었네
옥전 (玉田)
아주 깨끗하고 티가 없는 세간 밖의 보물인데
신령한 싹은 나서 자라나 인연의 티끌을 끊었다
큰 총림 속에서는 일찍부터 비싼 값을
자손들에게 물려주어 묘한 씨를 심었다
곡월 (谷月)
만 골짝 깊고 그윽한 시냇물 속에
밤중의 은두꺼비가 스스로 뚜렷하다
덩굴풀 우거진 원숭이 우는 곳에
한 줄기 맑은 빛이 영원히 차구나
철문 (鐵門)
온몸이 다 강철인데 누가 움직일 수 있으리
양쪽 사립 모두 잠가 세상 풍속 아니더니
과연 저 새매눈 가진 억센 사람이
한 주먹으로 밀어제쳐 단박 길을 뚫었다
축운 (竺雲)
총령 (叢嶺) 서쪽 너머 이름난 땅에
한 조각 상서로운 연기가 허공을 메웠는데
그로부터 한없이 많은 보살들이
오색 광명 가운데서 옛 풍모를 얻었다
허암 (虛菴)
사방에 원래 한 물건도 없나니
어디다 문을 낼지 알지 못하네
이 가운데 조그만 암자 텅 비어 있어
밝은 달 맑은 바람이 흰 구름을 쓸도다
준산 (峻山)
기이한 바위가 높이 솟아 하늘을 긁는데
층층이 포개진 것, 공겁 전부터이다만
만 길되는 이 벼랑에 누가 발을 붙이리
수미산과 오악 (五岳) 도 겨루지 못한다
고산 ( 山)
금까마귀 날아올라 새벽 하늘 밝았나니
온 땅의 묏부리들 푸른 빛이 역력하다
번쩍이는 그 광명에 항하사 세계가 깨끗한데
전령 (嶺) 에서 우는 원숭이 소리는 무생 (無生) 을 연설한다
심곡 (深谷)
누가 아주 먼 저쪽까지 갈 수 있나
조각 구름 동문 (洞門) 앞에 길게 걸렸네
그 가운데 훌륭한 경계를 아는 사람은 없고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푸른 냇물을 희롱하네
역연 (歷然)
또렷하고 분명하여 감춰지지 않았나니
푸른 것은 푸르고 긴 것은 길다
확신하고 의심없이 한 번 몸을 뒤집으면
고개 끄덕이며 즐거이 고향에 돌아가리
중암 (中菴)
동서와 남북의 길이 서로 통했고
네 벽은 영롱하여 묘하기 끝이 없네
여덟 면이 원래 막히지 않았거니
여섯 창에 호젓한 달은 맑은 허공 비추네
성곡 (聖谷)
범부를 뛰어넘어 들어가는 그곳을 누가 따르리
시냇물은 잔잔히 골짝 속으로 흐른다
근진 (根塵) 을 단박 벗어나 한 번 몸을 뒤집으면
소나무 그늘 아래서 마음대로 노닐리라
무실 (無失)
형상을 떠난 그 자체, 원래 공 (空) 하여
부딪치는 사물마다 그 작용 끝이 없다
또렷하고 분명하나 자취 끊겼고
언제나 역력하여 절로 서로 통한다
포공 (包空)
자비구름이 널리 퍼져 삼천세계를 메웠는데
그 속은 비고 밝아 호젓하고 잠잠하다
순식간에 항하사 세계 밖까지 두루 흩어보지만
그 가운데 모양 없는 것 누가 전할 수 있으랴
형철 ( 徹)
당당하고 찬란하여 끝없이 비추니
영원히 간단없는 이것을 누가 전할 수 있으랴
밤을 빼앗는 찬 달빛에 무슨 안팎이 있으랴
밝고 밝아 공겁 (空劫) 을 비춘다
정암 (靜菴)
온갖 생각이 모두 한 생각에 돌아가 사라졌거니
여섯 창은 이로부터 지극히 고요하여라
툇마루에 다다른 보배달은 언제나 고요하여
맑은 바람에 실려 네 벽에 나부낀다
극한 (極閑)
물도 다하고 산도 다한 곳, 어디로 향해 갈꼬
동서와 남북에 어디든 의심없네
그대를 따라 펴고 거둠에 걸림이 없고
첩첩 기이한 바위에도 의지함이 없노라
유곡 (遊谷)
한가히 오고 가매 더없이 한가한데
언제나 천 바위와 만 골짝 사이로 다니네
물구경 산구경도 오히려 부족하여
통문 (洞門) 깊은 곳에 겹관문을 만든다
설악 (雪嶽)
하룻밤에 옥가루 펄펄 내려
기이한 바위들은 뾰족한 흰 은덩이 되었네
매화나 밝은 달인들 어찌 여기 비하랴
층층이 포개져 차고 또 차다
자조 (自照)
바다 같은 삼천세계 본래 다른 것 아니라
탁 트이고 신령스레 통함에 어찌 차별 있으랴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으며 짝할 것조차 없어
밤을 빼앗는 찬 빛은 많던 적이 없었네
정암 (晶菴)
아침해가 동쪽 바닷문으로 나오려 하매
방 하나는 고요하여 다르고 같음이 끊겼네
산하대지가 역력한데
여섯 창 안팎에는 맑은 바람 스친다
묵운 (默雲)
침침하고 적적하여 다니는 자취 끊어졌는데
어찌 동서와 남북의 바람을 가리랴
저 집에 말할 만한 것 없다고 말하지 말라
때로는 저 큰 허공을 모두 휩싸들인다
형암 ( 菴)
동서에도 남북에도 한 점 티끌 없는데
사립문 반쯤 닫히고 찾아오는 사람 없네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은 아무 까닭 없이
밤마다 창문을 뚫고 이 한 몸을 비추네
효당 (曉堂)
뭇별이 사라지는 곳에 앞길이 보이는데
한 방은 고요하고 안팎이 밝아진다
이로부터 어두운 구름은 모두 사라지리니
여섯 창에 바람과 달은 절로 맑고 새로우리
무일 (無一)
동서도 남북도 탁 트여 비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물건을 으뜸이라 부를 것인가
허공을 모두 빨아마시고 몸을 뒤집는 곳에는
온 하늘과 온 땅에 서리와 바람이 넉넉하리
요봉 (요峰)
동쪽 바다 문에서 해가 솟아나오자
한없고 맑은 바람이 묏부리를 모두 비춘다
산하대지가 분명하고 역력한데
수미산인들 어찌 여기에다 견주리
도봉 (堵峰)
밤을 빼앗는 달빛이 대천세계 비추나니
뭇산들은 여기 와서 추녀 끝에 늘어서네
세간의 어떤 보배를 여기에다 견주랴
수미산을 뚫고 나가 홀로 우뚝 솟았네
옥계 (玉磎)
티없는 바탕은 지극히 영롱한데
양쪽 언덕에는 맑은 바람 솔솔 불며 지나간다
한 자 구슬의 물결치는 광채를 누가 값을 정할 것인가
신령한 근원은 깊고 멀어 무궁함을 내놓네
영적 (永寂)
먼 과거로부터 돌아다니다 이 생까지 왔지만
고요한 그 바탕 〔正體〕 은 자유자재하였나니
티끌겁 모래겁이 다하면 무엇 따라 변할까
이승에나 저승에나 스스로 다닐 뿐
추풍 (秋風)
만 리 먼 하늘에 구름 모두 흩어지고
서쪽에서 오는 한 줄기 바람 가장 맑고 시원하다
그로부터 변방의 기러기는 하늘 끝에 비끼고
중양절 (重陽節:9월 9일) 흰 국화는 눈과 서리 원망하리
명통 (明通)
쓸 때는 모자람이 없으나 찾아보면 자취 없고
모나고 둥글고 길고 짧음에 응용이 무궁하다
사물마다에 분명하건만 누가 보아내는가
영원히 당당하여 옛 풍모를 펼치네
견실 (堅室)
활활 타는 겁화 (劫火) 에도 항상 스스로 편안하며
허공을 싸들여 그 안에 두었나니
티끌세계 모래세계가 끝나더라도 바꿀 수 없고
영원한 서리와 바람에 뼈가 시리다
무변 (無邊)
동서남북에 네 경계가 없거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어라
경계가 끊어진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천 물결 만 물결에 한 몸을 나타내리
유봉 (乳峯)
밝고 맑은 한 모양을 누가 알 것인가
우뚝 솟아 높직이 하늘에 꽂혀 있네
물과 달이 어울려 되었으며 모양 아닌 모양인데
그 견고함이야 어찌 쌓인 티끌 같으리
경암 ( 巖)
겁 (劫) 이전의 묘한 그 빛에 어떤 것을 견주리
우뚝 솟고 뾰족하여 하늘 복판에 꽂혀 있네
불조인들 어찌 비싼 그 값을 알건가
우뚝하고 뾰족하며 또한 영롱하구나
일암 (日菴)
동쪽 바다 문에서 해가 솟아오르니
조그만 암자의 높은 풍모를 뉘라서 따르랴
이로부터 티끌마다가 밝고 역력하리니
여섯 창의 기틀과 활용이 따로따로 트이리라
착산 (窄山)
바늘도 송곳도 들어가지 못할 만큼 비좁아
우뚝 솟아 높직이 온갖 묏부리 누른다
어찌 미세한 티끌이 법계를 머금을 뿐이랴
수미산이 겨자 속에 들어가 한 덩이 되었네
고담 (古潭)
봄이 가고 가을이 오고 몇 해나 지났던가
맑고 깊고 밑이 없어 공겁보다 먼저이다
매번 큰 물결을 겪으면서도 언제나 이와같이
맑고 고요하며 가득히 고여 그 자체 완전하네
형철 ( 徹)
아주 깨끗한 빛이 만상을 삼킨 가운데
천지가 하나로 합해져 서쪽도 동쪽도 없네
맑고 뛰어난 점 하나, 사람들의 헤아릴 바 아니나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음에 자재하게 통한다
한극 (閑極)
무심하고 자유로운데 누구와 함께하리
허공을 휩싸들여 그 작용 무궁하다
문득 따뜻한 바람을 만나 노닐다 흩어지나니
또 어떤 물건을 잡아 진종 (眞宗) 이라 정할꼬
횡곡 (橫谷)
봉우리 끝에 있다가 굴 속에 있기도 하여
돌아오는 새들도 여기 와서는 길을 분간하지 못한다
갑자기 두루미를 짝하여 바람 따라 날으나니
만 골짝 천 바위도 가까이에 있지 않네
월당 (月堂)
바다 문 동쪽에서 달이 날아오르니
고요한 방에 네 벽은 텅 비었네
뉘라서 빛과 그림자를 분명히 분간하랴
여섯 창이 전부 다 주인공이라네
무급 (無及)
차례를 싹 잊어 바탕이 그대로 드러났거니
무엇하러 수고로이 깨치는 곳을 두랴
안도 밖도 중간도 텅 비어 트였는데
백추 (白槌) 를 들고 불자 세우며 부질없이 법문하네
복우 (伏牛)
채찍으로 때려도 가지 않고 야단쳐도 가지 않나니
공겁 전에 배불리 먹고 이미 주림 잊었음이라
길에서 편히 잔 지 몇 해나 되었던가
한 빛깔 분명하여 온 세상에 드물어라
인암 (刃艤)
칼집에서 나온 취모검을 누가 감히 당하랴
이 집에서는 위험하여 간직하기 어려웠네
저 철 눈에 구리 눈동자를 가진 사람에게 맡기니
한 주먹에 열어제치매 눈과 서리 가득하네
계봉 (鷄峰) *
세 곳에서 헛되이 전한 옛 늙은이의 도풍이여
깊숙이 은거하는 맨 꼭대기는 네 겹으로 되어 있는데
음광 (飮光:가섭) 의 그 자취를 뉘라서 찾으리
꼭대기에는 서리가 깊어 길이 통하지 않네
수암 (秀巖)
공겁 전에 우뚝 서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여
송백이 오래 산들 어찌 저와 견주리
세계가 무너질 때에도 이것은 안 무너져
일찍이 설법 듣고 진공 (眞空) 을 깨쳤네
적당 (寂堂)
면밀한 공부를 이미 익혀 성취하고
문득 거기서 나와 뜰앞에 서 있네
안심 (安心) 은 언제나 나가정 (那伽定:부처님의 선정) 에 있어
이리저리 오가면서 화두는 절로 신령하다
익상 (益祥)
갑자기 비상 (非常) 함을 만나 기운이 서로 통하면
그로부터는 고향에서 언제나 편안하리
거듭거듭 상서로운 일이 겹쳐 일어날 때
평지에서 하늘 위의 하늘을 다니리라
연당 (演堂)
티끌마다 세계마다 묘한 소리 내나니
어느 쪽으로 문을 내랴
말 없는 곳을 말해 분명한 것을 알면
창 앞의 마른 나무에서 저무는 봄을 보리라
해운 (海雲)
바다는 넓어 끝이 없고
구름이 많으니 어디쯤인고
여기서 단박 분명한 것을 알면
앉거나 눕거나 거닐거나 고풍 (古風) 을 펼치리
무학 (無學)
역겁토록 분명하여 허공 같은데
무엇하러 만 리에 밝은 스승 찾는가
제 집의 보물도 찾기가 어려운데
골수를 얻어 가사를 전하는 것, 가지 위의 가지다
우매 (友梅)
같은 마음 묘한 뜻을 누가 기뻐하는가
눈 속의 맑은 향기, 방에 새어들어온다
난간 앞의 소나무와 대나무만이 유독히
그와 함께 찬 서리를 견딘다
서봉 (西峰)
동쪽에서 솟은 해는 어디로 가는가
남쪽 산이 아니면 북쪽 산이리
아무리 가보아도 다른 길이 없거니
금년에도 또 꼭대기의 광명을 보노라
현기 (玄機)
알면서 거두지 않는 것이 큰 흔적 되나니
마주치자 꺼내보이는 것이 돈오 (頓悟) 의 근기니라
어찌 강을 사이 두고 가로달리는 자같이
지금까지 자취를 길이 남겨 두는가
탄암 (坦菴)
티끌 같고 모래 같은 차별 인연 모두 없애버리니
여섯 창에 밝은 달이 항상 닿아 있다
그로부터 눈의 경계 〔眼界〕 에 조그만 가림도 없고
네 벽은 텅 비어 세상 밖에 오묘하다
경봉 (玉敬峰)
이처럼 값진 것이 이 사바세계에 또 있는가
모든 산 가운데서 영롱하게 불쑥 솟았네
바다 신 (神) 은 그 귀함을 알아 언제나 바라보는데
고금에 우뚝이 큰 허공에 꽂혀 있네
징원 (澄源)
빛나며 크고 넓어 그림자 형체를 끊었고
밑도 없이 아주 깊어 헤아리기 어려워라
어룡 (貌龍) 과 새우와 게의 자취 용납 않나니
만 길 되는 큰 파도, 물은 깊고 맑도다
무문 (無聞)
눈과 귀는 원래 자취 없는데
누가 그 가운데서 원통 (圓通) *을 깨칠 것인가
텅 비어 형상 없는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개 짓는 소리, 나귀 울음소리가 모두 도를 깨침이네
계월헌 (溪月軒)
버들 그림자와 솔 그늘은 물을 따라 흐르는데
두렷한 밝은 달은 따라가려 하지 않네
그윽하고 깊은 골짜기의 맑은 물결 속에서
맑은 바람에 실려 난간 머리에 있네
매월헌 (梅月軒)
섣달의 봄바람은 눈과 함께 돌아오는데
은두꺼비는 한밤중에 난간에 올라온다
얼음 같은 자태와 옥 같은 뼈가 빛과 한데 어울려
바닥에서 하늘까지 한결같은 찬 맛일세
스승을 뵈러 가는 환암장로 (幻艤長老) 를 보내면서
남은 의심 풀려고 스승 뵈오러 가나니
주장자 세워 들고 용같이 활발하네
철저히 파헤쳐 분명히 안 뒤에는
모래수만큼의 대천세계에 맑은 바람 일어나리
무학 (無學) 을 보내면서
주머니 속에 별천지 있음을 이미 믿었거니
어디로 가든지 마음대로 3현 (三玄) 을 쓰라
어떤 이나 그대에게 참방하는 뜻을 묻거든
콧배기를 때려부수고 다시는 말하지 말라
또 신광사 (神光寺) 에 머물면서
이별한 뒤에 따로 생각하는 점이 있었나니
누가 알리, 그 가운데 뜻이 더욱 오묘함을
여러 사람들일랑 그럴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공겁 (空劫) 이전을 뚫고 지났다 하노라
참방 (參方) 하러 떠나는 종선자 (宗禪者) 를 보내면서
주장자를 세워 들고 참방하러 떠나나니
천하의 총림에 자기 집을 지으리
값할 수 없는 보배를 마음 속에 깊이 간직했나니
동서남북 어디든 인연 따라 가거라
주시자 (珠侍者) 를 보내면서
만 리를 참방하는 그 생각 끝없거니
부디 나라 밖에서 다른 종 (宗) 을 찾지 말라
주장자를 잡기 전에 종지 (宗旨) 를 드날리면
그곳도 허공이요 여기도 허공이리
참방하러 떠나는 곡천 (谷泉) 겸선사 (謙禪師) 를 보내면서
본래 원만히 이루어져 말에 있지 않나니
무엇하러 수고로이 입을 열고 그대 위해 말하리
주장자를 세워 들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달이 되고 구름이 되어 가고 또 돌아오리
남방으로 행각길 떠나는 연시자 (璉侍者) 를 보내면서
세 번 부르고 세 번 대답하면서 화살 끝을 맞대
천차만별한 것들을 모두 쓸어버렸나니
그런 깊은 기틀을 간직하고 노닐며 지나갈 때에
분명히 조사들과 맞부딪치리라
관시자 (寬侍者) 를 보내면서
몸을 따르는 누더기 한 벌로 겨울·여름 지내고
주장자 하나로 동서를 분별한다
그 가운데의 깊은 뜻을 누가 아는가
귀가 뚫린 오랑캐 중 (달마) 이 가만히 안다
산으로 돌아가는 명상인 (明上人) 을 보내면서
백번 기운 누더기로 머리 싸고 초암에 머무나니
허공과 온 땅덩이를 한몸에 머금었네
온몸 속속들이 남은 생각 없거니
어찌 다른 사람을 따라 두번째, 세번째에 떨어지리
강남으로 돌아가는 통선인 (通禪人) 을 보내면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도를 묻는 것, 딴 목적 아니요
다만 그 자신이 바로 집에 가기 위해서네
반걸음도 떼지 않고 몸소 그 땅 밟으면
어찌 수고로이 나라 밖에서 누라 (口婁 ) *를 부를 것인가
강남으로 가는 난선자 (蘭禪者) 를 보내면서
이곳도 허공이요 저곳도 허공이라
분명히 있는 듯하나 찾으면 자취 없네
단박 빈 곳에서 몸을 뒤집어버리면
죽은 뱀을 내놓고 산 용을 삼키리라
강남으로 가는 고산 ( 山) 승수좌 (昇首座) 를 보내면서
사구백비 (四句百非) 를 모두 다 설파한 뒤에
지팡이 끝으로 해를 치며 강남으로 가는구나
조주 (趙州) 는 나이 80에 다시 참선하였나니
남은 자취 분명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금강산으로 가는 대원 (大圓) 지수좌 (智首座) 를 보내면서
천산만산을 모두 다 지나면서
한가닥 주장자와 함께 한가하여라
단박에 금강산 꼭대기를 밟을 때에는
온몸 뼛속까지 눈 서리 차가우리
신광사의 판수 (板首) 가 감파하러 왔을 때
3현 (三玄) 3요 (三要) 를 다 쓰되 틀림이 없었고
장님과 귀머거리를 인도해 밝은 눈을 열어 주어
항하사 겁토록 끝내 의심 없게 하였네
금강산으로 돌아가는 무주 (無住) 행수좌 (行首座) 를 보내면서
차림새는 마치 사납게 나는 용과 같은데
주장자를 세워 들고 동쪽으로 향하나니
금강산 꼭대기를 다시 밟는 날에는
큰 소나무와 늙은 잣나무가 향기로운 바람을 떨치니
참방 떠나는 박선자 (珀禪者) 를 보내면서
평생의 시끄러운 세상 일을 다 쓸어버린 뒤에
주장자를 세워 들고 산하를 두루 돌아다니네
갑자기 물 속의 달을 한 번 밟을 때에는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에 돌아가리라
참방 떠나는 문선자 (文禪者) 를 보내면서
돌아가누나 돌아가누나
바랑은 안팎으로 여섯 구멍이 뚫려 있네
하루 아침에 고향 길을 밟게 되거든
주장자 걸어두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
참방 떠나는 징선자 (澄禪者) 를 보내면서
어머니가 낳아준 참 면목을 찾기 위하여
주장자를 세워 들고 앞 길로 나아가네
단박에 진짜 사자를 후려치는 날에는
갑자기 몸을 뒤쳐 한 소리 터뜨리리
참방 떠나는 심선자 (心禪者) 를 보내면서
여러 곳에 나아가 도를 묻는 것, 다른 목적 아니요
다만 그 자신이 바로 집에 가기 위해서이네
허공을 쳐부수어 한 물건도 없으면
백천의 부처도 눈 속의 모래이리라
참방 떠나는 명산자 (明禪者) 를 보내면서
뜻을 내어 참방하는 것 다른 목적 아니요
공겁 (空劫) 이 생기기 이전을 밝히기 위해서네
주장자에 갑자기 두 눈이 열리면
눈에 보이고 눈썹을 치켜올리는 것이 다 격식 밖의 선 (禪) 이리
참방 떠나는 상선자 (湘禪者) 를 보내면서
채찍으로 치는 공부가 눈과 서리 같거니
부디 그 중간에서 헤아리려 하지 말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쳐 구르면
마른 나무에 꽃이 피어 겁 (劫) 밖에서 향기로우리니
다른 날에 와서 나와 만날 때에는
임제 (臨濟) 의 미친 바람이 한바탕 나타나리라
부모를 뵈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휴선자 (休禪者) 를 보내면서
붉은 살덩이는 어머니의 피에서 생겨났거니
그것은 오로지 부모의 힘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의 이름 없는 물건이 있어
음양 (陰陽) 에 속하지 않고 영원히 있다
부모를 뵈러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사미 (璉沙邇) 를 보내면서
수십 여 주 (州) 의 길이 먼데
누런 잎 나부끼며 고향으로 보내 주네
당당히 아들과 어머니가 서로 만나는 날에는
마음껏 기뻐하며 하하 크게 웃으라
참방 떠나는 초선자 (初禪者) 를 보내면서
남쪽에는 천태산 북쪽에는 오대산
아침에는 돌아오고 저녁에 떠나는 것 참으로 신기하다
언젠가 모르는 사이에 몸을 뒤집어버리면
위음왕불 겁 밖을 뚫고 지나오리라
경선자 (瓊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관문을 뚫고 나서면
산하와 대지가 거꾸로 달리나니
물 밑에서 불이 일어 허공을 사르고
초목과 총림들은 사자후를 하는구나
향선자 (向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신령스런 광명이 호젓이 빛나 근진 (根塵) 을 벗어났나니
앉거나 눕거나 또 거닐거나 묘진 (妙眞) 을 나타내네
단박 장대 끝에서 한 걸음 내디디면
온갖 사물이 그대로 법왕 (法王) 의 몸 드러내리
언선자 (彦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거든 부디 죽은 공 〔頑空〕 에 집착말라
죽은 공에 집착하면 도를 통하지 못하리라
어젯밤에 달이 동쪽 언덕에서 솟아나더니
날이 밝자 또 하나 붉은 해를 보는구나
수선자 (修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몸과 마음이 본래 빈 것임을 분명히 알면
어디서나 가풍을 펼치기에 무엇이 방해되리
비록 모든 사물에 분명히 나타났으나
다시 그 온 곳을 찾으면 자취가 없다
성선자 (成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묘한 도를 훌륭히 성취해도 별로 신기할 것 없고
다만 당사자 그 사람이 결정하는 때에 있다
허공을 쳐부수어 모두 가루 만들면
백천의 부처에 대해 결코 의심 없으리
연선자 (演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크게 의심 일으키되 부디 중단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모두 다 그 의심덩이 되게 하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겁 밖의 신령한 빛이 싸늘히 담 (膽) 을 비추리라
인선자 (仁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사물에 응할 때는 분명하나 보려 하면 공하고
티끌마다 세계마다에 그 작용 한이 없네
여기서 모르는 사이에 두 눈이 활짝 열리면
호랑이 굴이나 마구니 궁전에서도 살길이 트이리라
여선자 (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이 빛나는 마음 구슬을 보는가
여섯 창에 모두 나타나 조금도 차별 없다
나타나는 그곳에서 분명히 알면
산하대지가 다 같은 한 집이리라
엄선자 (儼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배우는 것 다른 길 없고
용맹스레 공부해야 비로소 성취하리
단박에 허공을 가루 만들면
돌사람의 뼛속에 땀이 흐르리
소선자 (紹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지금까지의 온갖 견해 모두 쓸어버리고
화두를 굳게 들어 빨리 힘 〔功〕 을 들여라
하루 아침에 어머니 뱃속에서 갓난 면목을 알아버리면
호랑이 굴이나 마구니 궁전에서도 바른 길이 뚫리리
해선자 (海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거든 그 근원을 알아내야 하나니
무 (無) 가운데서 묘한 도리를 구하지 말라
단박에 온몸을 던져버리면
공겁 이전 소식이 눈앞에 나타나리
현선자 (玄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에는 무엇보다도 신심이 으뜸이니
씩씩하게 공부하되 채찍을 더하라
어느 결에 의심덩이가 가루가 되면
진흙소가 겁초 (劫初) 의 밭을 갈리라
뇌선자 (雷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각 (覺) 의 성품에는 미혹도 없고 깨침도 없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활짝 열려 있나니
여기서 다시 묘한 도리를 구하려 하면
어느 겁에도 법의 천둥 떨치지 못하리라
의선자 (義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모름지기 장부의 용맹내기를 기약하고
공부에 달라붙어 힘써야 하리
하루 아침에 마음이 끊어지고 정 (情) 이 없어지면
무딘 쇠나 굳은 구리쇠도 눈이 활짝 열리리라
보선자 (寶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다급히 공부하여 일찌감치 의심을 결단하고
부질없는 일로 세월을 허송 말라
하루 아침에 갑자기 내 집 보배 얻으면
부처와 조사가 오더라도 부러워하지 않으리
성선자 (惺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화두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되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의심덩이를 일으키라
의심덩이 깨어져서 허공이 뒤바뀌면
거꾸로 쓰거나 가로 들거나 한 끝을 나타내리
덕시자 (德侍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려거든 장부의 마음을 내야 하나니
바짝 다가붙고 항상 가지면 도가 절로 열리리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목숨이 다하면
한번 뒤엎고는 마음껏 웃고 돌아오리라
수선자 (修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하루 종일 항상 바짝 달라붙어
잡고 놓고 하면서 급한 채찍 더하라
생각 〔情〕 이 없어지면 모르는 사이에 공부가 되어
허공을 쳐부순 주먹 하나뿐이리라
고선자 (孤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진심 (眞心) 이 본래 호젓한 것임을 깨닫고 나면
거닐거나 앉거나 눕기가 많은 길이 아니다
그때 단박 물결 속에 달을 밟으면
비로소 한가로운 오호 (五湖) 에 가득하리
당 도원 (唐道元) 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은 다만 의심덩이를 일으키는 데 있나니
끊임없이 의심하여 불덩이처럼 되면
모르는 사이에 온몸을 모두 놓아버리고
항하수 모래 같은 대천세계가 한 터럭 끝만 하리라
철선자 (徹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모든 인연 다 놓아버리고 철저히 공 (空) 이 되면
거닐거나 앉거나 눕거나 그 모두 주인공이다
단박 산을 뒤엎고 물을 다 쏟아버리면
칼숲지옥 칼산지옥에서도 빠져나올 길 있으리
담선자 (曇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할 때는 부디 인정 (人情) 을 쓰지 말라
인정을 쓰면 도를 이루지 못하리라
한번에 그대로 추위가 뼈에 사무쳐야 하니
어찌 항아리 울림으로 종소리를 만들리
용선자 (瑢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산 같은 뜻을 세워 빨리 앞으로 나가고
부디 게으름으로 세월을 보내지 말라
단박에 허공의 뼈를 때려내면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격식 밖의 선이리
휴선자 (休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달라붙어 부디 쉬지 말지니
뒤치고 엎치면서 `이 무엇인가' 하라
위험과 죽음을 무릅써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절벽에서 손을 놓아야 바로 장부이니라
여러 선자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모든 인연 다 놓아버리면 마음이 비고
철저히 흩어버리면 그 효험을 보리라
몸을 따르는 주장자를 거듭 들고서
어디서나 사람을 만나거든 고풍 (古風) 을 드러내라
참선을 하면 부디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나니
그 관문 뚫지 못하거든 한가히 보내지 말라
모르는 사이에 목숨을 모두 잃어버리고
하늘과 땅에 사무치도록 털과 뼈가 차가우리
산처럼 뜻을 세워 바짝 달라붙으면
그로부터 큰 도는 저절로 열리리라
몸을 뒤집어 위음왕불 밖으로 한 번 던지면
삼라만상이 모두 한바탕 웃으리라
도를 배우고 참선하려면 산처럼 뜻을 갖고
굳건히 뜻을 세워 끊임없이 공부하라
온 하늘에 목숨 걸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속속들이 맑고 맑음이 담 (膽) 까지 서늘케 하리라
도를 배우고 참선하는 데는 별뜻 없나니
마치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하듯 하라
두 눈이 활짝 열려 같이 밝아지면
위음왕불 공겁 이전을 환히 비추리라
당 지전선자 (唐 智全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배움에는 신심이 뿌리 되나니
신심이 눈 푸른 오랑캐 중 (달마) 을 뛰어넘으면
마음대로 완전히 죽이고 살리리니
그로부터 악명이 강호 (江湖) 에 가득하리
영선자 (鈴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등골뼈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다급히 채찍질하여
공겁이 생기기 전의 일을 반드시 밝혀라
갑자기 한 번 부딪쳐 허공이 찢어지면
다리 없는 쇠소 〔鐵牛〕 가 대천세계를 달리리라
난선자 (蘭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용맹이 있어야 하나니
화두를 들되 혼침 (昏沈) 에 빠지지 말라
의심덩이를 쳐부수고 허공을 굴리면
한 줄기 차가운 빛이 고금을 녹이리라
명선자 (明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이사는 원래 팔인데
그 누가 의심 없는가
거기서 다시 현묘한 경계를 구하면
그대로 여섯 구덩이에 떨어지리
혜선자 (慧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애정을 끊고 부모를 하직하고 각별히 집을 나왔으니
공부에 달라붙어 바로 의심 없애라
목숨이 딱 끊겨 하늘이 무너지면
오뉴월 뜨거운 하늘에 흰 눈이 날리리라
왕선자 (旺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바짝 달라붙어 몸을 싹 잊어버리고
부디 저 빛깔이나 소리를 따르지 말라
다만 한 번 몸소 깨칠 때에는
시방의 어느 곳이나 두렷이 밝으리라
운선자 (雲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움은 마치 불덩이를 가지고 노는 것 같거니
끊임없이 가까이 지켜 사이를 두지 말라
단박에 부딪쳐 허공을 굴리면
만 리에 구름 없고 가을빛이 차가우리
연선자 (然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할 때는 언제나 용맹하여
세간의 잡된 생각은 남김없이 쓸어버려라
단박 어머니 태에서 갓난 면목을 움켜잡으면
찬 빛이 허공을 녹이는 것 비로소 믿게 되리라
통선자 (通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산처럼 뜻을 세워 결정코 기약하고는
스승을 찾고 벗을 가려 항상 화두 지켜라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철저히 온몸에 바른 눈 열리리라
지선자 (志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움에는 뜻을 쇠처럼 하고
공부할 때는 항상 달라붙어라
갑자기 한 소리 탁 터지면
대지와 허공이 찢어지리라
공선자 (空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에 바짝 달라붙어 틈이 없게 하고
마음씀을 등한히 하지 말라
맑은 못의 가을달을 번뜻 한 번 밟으면
항하수 모래 같은 대천세계에 바른 빛이 차가우리
준선자 (遵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조사가 전한 그 마음 알려 하거든
부디 차갑게 앉아 애써 생각에만 잠기지 말라
번뜻 찾을 것 없는 곳에 이르게 되면
도리어 신광 (神光:혜가) 이 눈 속에 서서 찾던 일을 웃어주리라
심선자 (心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는 일 별것 아니요
그 사람의 굳은 의지에 있다
모든 것 한꺼번에 놓아버리면
물음마다 지우 (知友) 이리라
담선자 (湛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믿고 믿고 또 믿어 의심 없으면
담담하고 비고 통해 성품이 저절로 열리리니
그로부터 세상의 시끄러움에 끄달리지 않아서
위음왕불 겁 밖에서 마음대로 오고가리라
진선자 (珍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문을 나서면 걸음걸음에 맑은 바람 넉넉한데
동서남북 어디고 아무 자취 없어라
주장자를 거꾸로 들고 두루 돌아다니지만
그것은 원래 한 터럭 속에 있는 것이네
고선자 (孤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지팡이에 해와 달을 메고서 산천으로 다니나니
당당한 그 의지가 저절로 굳세지고
갑자기 짚신의 날이 끊어지는 때
한번 밟은 참다운 경계 오묘하고 오묘하네
온선자 (溫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주장자를 비껴 들고 행각 길 떠나나니
그 기세는 전장에 나가는 장군과 같다
갑자기 사람을 만나 바른 법령 휘두를 때는
하늘 땅이 뒤집혀도 보통일일세
연선자 (演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납자의 가풍이란 별일 아니니
한 쌍의 짚신으로 강산을 누비다가
홀연히 오던 때의 길을 밟을 적에는
모골이 시리도록 맑고 맑으리
주선자 (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묘한 도가 분명한데 이것을 보는가
모든 것에 나타나나 대단한 것 아니다
그대 지금 확실한 이것을 알면
몇 걸음 옮기지 않고 단박 집에 돌아가리
질선자 (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온갖 인연 다 쓸어버리면 그 효험 〔功〕 을 보겠지만
그것마저 끊어지고 마음이 사라진 곳에
물물마다 옛 풍모 드러나리
요선인 (瑤禪人) 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고 도를 성취하는 일 별로 대단할 것 없나니
그 사람이 용맹을 기약하는 데 달렸네
물도 다하고 산도 끝나는 곳에 그대로 이르면
바퀴 같은 마음달이 모든 빛을 무색케 하리
수선인 (修禪人) 이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무엇을 도모해야 하는가
반드시 마음자리를 밝히고 뜻이 완전히 뛰어나야 하네
하루 아침에 찬 못의 달을 밟아 부수면
맑고 한없는 바람이 푸른 하늘에 떨치리
지선자 (持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도를 배우고 참선함에는 머뭇거리지 말지니
어금니를 꽉 다물고 화두에 달라붙어야 하리
갑자기 온몸에 땀이 쭉 빠지면
석녀 (石女) 의 눈이 분명히 활짝 열리리
요선자 (了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어디에서 나와서 죽어서는 어디로 가는가 하고
하루 종일 항상 의심을 일으켜라
갑자기 의심덩이가 부서져 가루되면
뜨거운 유월 하늘에 눈과 서리 날으리라
희선자 (希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조주 (趙州) 의 `무 (無) '자 화두 하나를 들되
쉴 새 없이 부딪쳐 들어가 끊이지 않게 하라
갑자기 온몸에서 땀을 한번 쭉 빼면
산하대지가 한 군데 들어오리
양선자 (良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그대로인 본 성품이 어디에 있는가
빈틈없이 빛을 돌이켜 부디 잊지 말지니
갑자기 온몸에서 땀을 한번 빼고 나면
티끌마다 세계마다 감출 것이 없으리라
신상인 (神上人) 이 게송을 청하다
참선이란 원래 복잡한 것 아니요
다만 그 사람의 산 같은 의지에 달렸다
단박 한 소리에 몸소 그 땅 밟으면
온몸의 뼛속까지 눈과 서리 차가우리
보선자 (普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본래 그대로여서 지어진 것 아니거니
어찌 수고로이 밖에서 따로 이치 구할 것인가
다만 한 생각으로 마음에 아무 일 없으면
목마르면 차 달이고 피곤하면 잠을 자리
행선자 (行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본래 그대로인 묘한 도를 그대 아는가
딴 곳에서 찾으면 헛수고만 하리니
빛을 돌이켜 몸소 밟아보기만 하면
어디 가나 걸음마다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
원선자 (元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원래 묘한 도는 자체가 비었거니
무엇하러 허망하게 글을 써서 남에게 보일 것인가
한 생각에 몸 생기기 전의 일을 알아차리면
기막힌 말과 묘한 글귀가 모두 다 티끌되리
징선자 (澄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맑고 맑은 성품바다는 끝없이 넓어
어떤 부처도 감히 그 앞에 나아가지 못하나니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져 언제나 스스로 쓰고
물물마다 응해 나타나는 것 본래 천연한 그것이네
온선자 (溫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는데는 조사의 관문을 지나야 하나니
관문을 지나지 못했거든 부디 등한하지 말라
갑자기 빛을 돌이켜 몸소 알아차리면
온 하늘과 온 땅에 모골이 시리리
임선자 (霖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자기의 참마음은 일정한 곳 없거니
흰 종이에 묘한 말씀은 찾아 무얼하는가
한 구절에 종지 (宗旨) 를 밝혔다 해도
바른 눈이 열렸을 때 본원 (本源) 을 미혹하리
오선자 ( 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을 하는 데는 하나가 가장 중요하나니
빨리 공부 더하여 앞으로 나아가라
단박에 이 생명을 모두 잃어버리면
당당히 조사선을 깨달으리라
명선자 (明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참선하는 데는 별일이 없고
그 사람의 용맹스런 공부에 달렸다
단박에 제 생명 잊어버리면
모든 법마다 한 터럭에 통하리라
천선자 (泉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공부를 하여 끝까지 갔을 때는
묘하고 기막힌 말 모두 마땅치 않네
갑자기 한 소리에 몸소 그 땅 밟으면
하늘 땅을 뒤엎으며 온 기틀 〔機〕 을 굴리리라
지선자 (持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빨리 공부하라, 이르다 하면 늦으리니
하물며 저만치 오는 때를 기다리랴
권하노니 그대 빨리 몸을 뒤집어버리면
뼛속까지 온 하늘에 한 기틀 깨치리라
중선자 (仲禪者) 가 게송을 청하다
마음을 닦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
철벽 (鐵璧) 과 은산 (銀山) 도 열리리니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을
그로부터 직접 한번 보고 오리라
임금의 덕을 칭송하다
거룩한 덕 높고 높아 호젓하고 담담하니
맑고 맑은 사해바다에 상서로운 연기 이네
막야검 (劍) 휘두르는 곳에 천지가 고요하고
바른 법령 행해질 때 이치와 일이 완전하다
길에 가득한 노랫가락은 황제의 덕화를 드날리고
온 성안의 칭송은 왕업을 도와 후세에 전하도다
요 (堯) 임금 바람과 순 (舜) 임금 해가 언제나 펼쳐지리니
당당한 우리 임금님 만만세를 누리소서
임금의 복위 (復位) 를 칭송하다
비로불에 눌러앉아 법계에 임하니
그로부터 온 우주가 맑고 편안하리
티끌마다 세계마다 모두 순조롭나니
임금의 해는 언제나 밝아 사해바다가 고요하다
연말에 은혜에 보답하며
인왕 (人王) 이 존귀한가, 법왕 (法王) 이 존귀한가
인과 법을 아울러 행하면 그것이 가장 높네
우리 임금님은 방편 〔權〕 과 여실한 도 〔實〕 를 아울러 행하거니
단단하고 굳센 그 몸 〔正體〕 은 만년의 봄일레라
임금님 덕 높고 높아 사해바다가 다 맑고
산속까지 매우 고요해 편안함을 즐기나니
때때로 자리를 깔고 앉아 별다른 일이 없어
적적하고 긴긴 날에 태평성대 감사하네
왕태후 (王太后) 께 올림
거룩한 마야 (摩耶) 부인이 천궁에서 내려와
이 삼한 (三韓) 의 나라에 나타나셨네
또 이 탁한 세상에 성왕 (聖王) 을 낳으셔서
불법을 펴서 만년토록 전하게 하시다
묘정명심 (妙淨明心) *을 물으신 임금님께 답함
묘하고 깨끗하고 밝은 마음 〔妙淨明心〕 이란 어떤 물건인가
부디 표현한 그 말에 집착하지 마시오
산과 물과 해와 달과 또 많은 별들과
모든 것에 녹아져서 그 자체 역력합니다
임금님이 다시 평산화상 (平山和尙) 찬탄하기를 청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가슴 속의 독한 기운
불조도 감히 그 앞에 나아가지 못하네
임제 (臨濟) 의 미친 바람이 바다 밖까지 불었나니
삼한 (三韓) 의 임금님 방에서 만년을 전해가리
영창대군 (永昌大君) 에게 주는 글
한 생각 잊을 때는 아주 분명해
아미타불은 딴 고장에 있지 않으리
온몸이 앉거나 눕거나 다 연꽃 나라요
곳곳이 그 모두가 극락당 (極樂堂) 이네
염시중 (廉侍中) 에게 주는 글
본래 완전히 이루어져 말에 있지 않거니
어찌 수고로이 입을 열어 그대 위해 말하랴
한 생각 일어나기 전에 화두를 들어
위음왕불을 번뜻 밟으면 벌써 저쪽이리라
시중 이암 (侍中 李) 에게 주는 글
항하사 세계를 두루 감싼 맑고 묘한 그 몸은
인연 따라 굽히기도 하고 펴기도 하네
얼굴 문으로 드나드나 자취가 없고
성인이고 범부고 그 주인 되네
시중 윤환 (侍中 尹桓) 에게 주는 글
텅 비고 밝은 한 조각 매우 오묘하거니
그 가운데 어찌 정 (正) 과 편 (偏) 이 있으랴*
위음왕불 겁 밖의 신령스런 지초 (芝草) 는
봄바람을 기다리지 않고도 빛깔이 저절로 선명하다
이상 황석기 (二相 黃石奇) 에게 주는 글
말이 있기 전이라 글귀가 없는데 무슨 말을 하려는가
묘한 말도 원래는 눈 속의 티끌이네
비야리성 (毘耶離城) 유마 〔金粟〕 의 뜻*을 알고 싶은가
수고로이 입을 열지 않고 현인 (賢人) 을 대하였네
위복 상공 (威福 相公) 에게 주는 글
원래 텅 비어 한 물건도 없는데
사람들은 밖을 향해 부질없이 허덕이네
전해 받을 일정한 법 없거니
무엇하러 신광 (神光:혜가) 은 눈 속에 서서 구했던가
남창 전상공 (南窓 田相公) 에게 주는 글
한 손바닥 휘둘러 향상관 (向上關) 을 열어제치니
밑바닥까지 티끌을 벗고 기뻐하며
또 한번 몸을 던져 뒤집어버리면
온 땅과 온 하늘에 눈서리 차가우리
이상서 (李尙書) 에게 주는 글
사원을 중수하고 사방 손님 접대하니
남북의 납자들이 갔다 다시 돌아오네
이제 서방극락에 마음 두어 부지런히 염불하라
상품 (上品) 연화대가 저절로 열리리라
이소경 (李少卿) 에게 주는 글
헛이름을 잘못 듣고 멀리까지 왔거니
정성이 지극한 곳에 윤회를 면하리라
승속과 남녀를 막론하고
한번 몸을 던져 뒤집으면 바른 눈이 열리리라
상국 홍중원 (相國 洪仲元) 에게 주는 글
높은 몸을 굽히고 피곤함도 잊고 멀리 산에 올라
다시 깊은 암자를 지나서 도 닦는 이를 찾았나니
도를 향하는 정성이 간절하고 알뜰하면
반드시 조사의 관문을 뚫고 지나가리라
세상의 이익과 공명이 몇 해나 가겠는가
세어보면 다만 백년뿐인 것을
하루 아침에 진공 (眞空) 의 땅을 밟아버리면
성인도 범부도 뛰어넘어 겁 이전을 뚫고 가리라
신상국 (辛相國) 에게 주는 글 ·2수
1.
신광사 (神光寺) 에서 헤어진 뒤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여러 해 서로 생각하면서 마음 속에 두었더니
오늘 나침에 갑자기 만나 바라보고 웃을 때
깊은 그 뜻을 누가 알 수 있으리
2.
문 앞의 한 가닥 길이 장안 (長安) 으로 뚫렸는데
어찌하여 사람들은 돌아올 줄 모르는가
눈썹이 가로 찢어진 눈 위에 있음을 문득 깨달으면
힘들여 도 닦지 않고도 마음이 기뻐지리
각정거사 (覺玎居君) 에게 주는 글
겁 전에도 겁 뒤에도 그 하나는
미혹도 떠나고 깨침도 떠나 가리고 감춘 것 없어라
나는 지금 두 손으로 정성껏 건네주어
여러 사람들에게 이러쿵저러쿵하게 하리라
변선인 (卞禪人) 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려면 반드시 끝내기를 기약하여
스승을 찾고 벗을 가려 맞부딪쳐 가야 한다
절벽에서 손을 놓고 몸을 뒤집어버리면
바닥에서 하늘까지 눈이 활짝 열리리
연선자 (演禪者) 에게 주는 글
당당한 묘도 (妙道) 는 어느 곳에 있는가
밖으로 애써 찾아다니지 말라
하루 아침에 두 눈이 제대로 활짝 열리면
물색이나 산빛이 바로 본래 마음이리라
심수좌 (心首座) 에게 주는 글
참마음은 본래부터 빈 것임을 깨달으면
어디로 오가든지 다니는 자취 없으리라
자취 없는 그 자리를 확실히 알면
하늘 땅을 뒤집어 바른 눈이 열리리라
각자선인 (覺自禪人) 에게 주는 글
도를 배우려거든 부디 강철 같은 뜻을 세우고
공부를 하려면 언제나 바짝 달라붙어야 하리
갑자기 탁 터지는 그 한 소리에
대지와 허공이 모두 찢어지리라
염불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글 ·8수
1.
깊고 고요해 말이 없으매 뜻이 더욱 깊었나니
묘한 그 이치를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앉고 눕고 가고 옴에 다른 일 없고
마음 가운데 생각 지니는 것 가장 당당하여라
2.
자성 (自性) 인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언제나 생각생각 부디 잊지 말지니
갑자기 하루 아침에 생각조차 잊으면
물건마다 일마다 감출 것이 없어라
3.
아미타불 생각할 때 부디 사이 떼지 말고
하루 종일 언제나 자세히 보라
하루 아침에 갑자기 저절로 생각이 붙으면
동쪽 서쪽이 털끝만큼도 간격 없으리
4.
사람들 잘못 걸어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에
이 산승은 간절히 또 격려하나니
문득 생각의 실마리마저 뜨거운 곳에 두면
하늘 땅을 뒤엎고 꽃 향기 맡으리
5.
생각생각 잊지 말고 스스로 지녀 생각하되
부디 늙은 아미타불을 보려고 하지 말라
하루 아침에 문득 정 (情) 의 티끌 떨어지면
세워 쓰거나 가로 들거나 항상 떠나지 않으리라
6.
아미타불 어느 곳에 있는가
마음에 붙들어 두고 부디 잊지 말지니
생각이 다하여 생각 없는 곳에 이르면
여섯 문에서는 언제나 자금광 (紫金光) 을 뿜으리라
7.
몇 겁이나 괴로이 6도 (六途) 를 돌았던가
금생에 인간으로 난 것 가장 희귀하여라
권하노니 그대들 어서 빨리 아미타불 생각하고
부디 한가히 놀면서 좋은 기회 놓치지 말라
8.
6도에 윤회하기 언제나 그칠 것인가
떨어질 곳 생각하면 실로 근심스러워라
오직 염불에 기대어 부지런히 정진하여
세상 번뇌 떨어버리고 그곳에 돌아가자
연상인 (衍上人) 에게 주는 글
참선은 제 마음을 참구해 갖는 것이니
부디 다른 물건따라 밖에서 찾지 말라
적적 (寂寂) 하면 다시는 사념 (邪念) 일지 않고
성성 () 한데 어떻게 화두가 어두우랴
등골뼈는 바로 한 가닥의 쇠이며
터럭은 만 냥 금을 녹여내니
60년을 그저 이렇게 나아갈 때는
총림을 압도하지 못할까 근심하지 않게 되리
시중 행촌 이암 (侍中 杏村 李巖) 에게 주는 글
대지에 봄이 돌아와 세계마다 풀렸는데
살구꽃 마을 〔杏花村〕 속에 경치가 무궁하다
남쪽에서 온 제비의 지저귐은 한가한 방안에 드는데
북쪽으로 가는 기러기 소리는 고요한 하늘을 뚫는다
비는 빨간 복숭아꽃을 씻으면서 묘한 이치를 펴고
바람은 흰 배꽃에 불면서 그윽한 종지를 떨친다
티끌마다 서쪽에서 온 뜻을 한꺼번에 노래하거니
어디 가서 애써 조사 늙은이 찾으랴
안렴사 김정 (按廉使 金鼎) 에게 주는 글
당당한 보배그릇이 집 안에 있는데
사바세계의 값으로 자취를 나타냈네
세 뿔은 3계 밖에 높이 뛰어났고
한 몸은 하나의 진공 (眞空) 세계를 둘러쌌다
하늘에 통하는 큰 입에는 서리꽃이 희고
뱃속에 가득한 식은 재는 빨간 불꽃을 피운다
이것이 바로 견고하고 오묘한 자체이니
항하사 겁에 그 작용 무궁하리
판서 박성량 (判書 朴成亮) 에게 주는 글
화두의 마지막 한 구절을 들되
반복하고 반복하여 의심을 일으켜라
의심하고 의심하다 의심이 없는 곳에서
허공을 걷어 엎고 한 번 크게 웃으리라
전덕림 (全德林) 에게 주는 글
완전한 덕으로 숲을 이루어 네 경계를 이루었나니
당당한 자체와 작용이 가장 확연하구나
그로부터는 번뇌스러운 꿈을 다시는 꾸지 않아
날마다 항상 공겁 이전의 세계로 다닌다
일을 계기로 대중에게 설법함
부디 평생의 처음 뜻을 따르고
남이 좋다 싫다 하는 것에 끄달리지 말라
좁은 입을 열 때는 뜻을 얻어야 하고
깊숙한 방울 늘 닫아둠은 세속 일을 잊기 위해서이다
때때로 티끌 번뇌 없애고
생각생각 도력을 약하게 하지 말라
백년의 광음이 얼마나 된다고
부질없이 뜬 세상의 시비를 보는가
대중에게 설법함
산과 강 온갖 형상이 별처럼 흩어졌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별것 아니니
구부러진 나무와 서린 소나무는 모두 바로 자신이며
기이한 바위와 괴상한 돌도 다 남은 아니다
푸른 봉우리는 모두 고승 (高僧) 의 방이 되고
흰 묏부리는 그저 묘성 (妙聖) 의 집이 되니
여기서 다시 참되고 확실한 것 따로 구하면
분명 괴로운 사바세계 벗어나지 못하리라
홍시중 (洪侍中) 에게 주는 글
황제의 덕화 널리 퍼져 묘하고 참됨을 나타내어
삼추 (三秋) 의 사법 (四法) 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나니
어찌 당장에 털끝만한 기틀인들 드러내려 하겠는가
얼음과 눈은 겹겹하여 한 점 티끌도 없네
염시중 (廉侍中) 에게 주는 글
지극히 존귀하고 높으신 분
숲속으로 가난한 이 도인을 찾아오셨네
오늘에 존귀한 몸 무엇하러 오셨던가
세세생생에 나와 함께 참됨 〔眞〕 을 닦기 위함이리라
하찰방 (河察訪) 에게 주는 글 ·2수
1.
맑은 풍채 늠름한 한 지방의 관리가
숲속의 도인을 찾아주었네
멀지않아 단박에 몸을 뒤집어 내던지면
구름에 오른 두루미인 듯 뼈와 털이 차가우리
2.
날마다 온갖 문서 책상에 가득한데
얼음이나 옥처럼 맑고 깨끗해 아무런 어려움 없네
그때그때마다 판단하는 일 누구 힘을 입었던가
권하노니 빛을 돌이켜 스스로를 비춰 보라
교주 (交州) 도안부 (道按部) 에게 주는 글
맑은 명성을 들은 지는 오래였는데
오늘 만나보매 과연 의심할 것 없구나
이 (理) 와 양 (量) * 두 쪽 다 투철하나니
지금부터 우리나라 저절로 편안하리
지수좌 (智首座) 에게 주는 글
절벽에서 한번 손을 놓아버리면
삼라만상에서 눈이 활짝 열리리
그로부터는 백천의 모든 불조들
그대와 함께 같은 눈으로 하하 웃으리
윤시중 (尹侍中) 의 집에 잠깐 들렀을 때 준 글
지난날 좋은 인연 있어 여기 왔나니
온 집이 엄숙하고 고요해 마음이 편안하고
노니는 꽃동산은 인가에서 머나니
깊은 산, 산속의 산과 같네
안렴사 정량생 (按廉使 鄭良生) 에게 주는 글
정직하고 곧은 그 뜻 누가 알 것인가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잠깐도 어기지 않았네
부처를 섬기고 임금을 받드는 그 정성 지극하거니
진실로 세상에서 가장 드물다 하리
원주목사 김유화 (原州牧使 金有華) 에게 주는 글
책상에 가득한 온갖 문서 전연 돌아보지 않고
눈오는 날 가난한 이 사람을 찾아왔구나
숲속이라 선물할 물건 하나 없고
그저 맑은 이야기와 도를 믿는 정이 있을 뿐이네
비가 갠 뒤 안렴사에게 주는 글
비가 멎고 구름이 걷히니 날이 개어 좋은데
나라를 향한 충성에 도심 (道心) 도 가볍지 않네
흰 옥은 황가의 보배라 들었거니
오늘 빛나는 저 빛에 눈을 비추어 보라
옛사람의 목우송 (牧牛頌) 에 회답함
머리에 뿔 분명히 나타나기 전에는
흰 구름 깊이 잠긴 곳에서 한가히 졸았었네
원래 그는 꽃다운 봄풀을 먹지 않거니
무슨 일로 목동들은 채찍질하나
원정국사송 (圓定國師頌) 에 회답함
동해의 그윽한 바위 곁에
높고도 호젓한 봉우리
원통 (圓通) 하신 관자재보살님
자비 서원은 어떤 집에 임하셨나
소나무 바람은 티끌을 모두 쓸고
파도 소리 곳곳에서 만나니
보타산 위의 보살에게는
참된 얼굴 아닌 물건이 없네
고성 안상서 (高城 安尙書) 의 운 (韻) 에 회답함 ·2수
1.
천고의 높은 풍모 사람마다 있거니
어찌 오늘 새삼 보배롭다 하는가
온몸의 뼛속까지 다른 물건 없나니
이것은 원래부터 진망 (眞妄) 을 벗어났다
2.
중생과 부처 당당하여 본래 다르지 않지만
언제나 바깥 모양에 끄달려 서로 찾는다
물결마다 그림자마다 옳고 그름 없거니
부디 있다거나 없다거나로 구하지 말라
총석정운 (叢石亭韻) 에 회답함
모여선 구리쇠 간대에 돌기둥을 겸했나니
하늘이 낸 아름다운 경치에 누가 다시 보탤 것인가
사면을 돌아보면 범음 (梵踵) 이 진동하나니
바로 위가 도솔천 추녀인가 의심스럽다
이암거사 (伊巖居君) 의 운 (韻) 에 회답함
누가 부처님이 마가다국에서 났다 하는가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내면 천리나 어긋나리
산을 보나 물을 보나 의심 없는 곳에는
맑고 한없는 바람이 제 집에서 나온다
회양 이부사 (淮陽 李副使) 가 숲으로 찾아줌을 감사함
잠깐 금강산 꼭대기에 왔다가
청평산 (淸平山) 속에서 서로 만나다
신심은 쇠처럼 굳고
정성은 허공처럼 크네
과거부터 가까웠기에
금생에 와서 도를 같이하게 되다
권하노니 그대여 한 걸음 더 나아가
빨리 자기 종풍 (宗風) 을 깨치라
공도사 혜도 (空都寺 惠刀) 에게 감사함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살리는 칼이
오직 그 사람의 한 손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에 와서 내게 은혜 베풀었나니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에 서릿바람이 난다
강남 (江南) 의 낙가굴 (洛伽窟) 에 예배하다
묘한 모양은 원래 모양 없는 것이요
소리를 관하매 〔觀踵〕 곳곳에 통한다
내 여기 와 석굴을 보니
도리어 하나의 굴롱 (窟芼) 이어라
보덕굴 (普德窟) 관음에 예배함
천암동 (千巖洞) 속에 홀로 높고 엄하여
밤을 빼앗는 광명에 해와 달이 어둡다
물을 건너고 구름을 뚫고 와서 예배하나니
과연 자비의 칼을 잡고 천지를 움직이시네
밖에서 찾는 세상 사람들을 경계함 ·2수
1.
집안의 여의 (如意) 보배를 믿을지니
세세생생에 그 작용 무궁하도다
비록 모든 물건에 분명히 나타나나
찾아보면 원래 그 자취 없다
2.
누구에게나 이 큰 신주 (神珠) 있어
서거나 앉거나 분명히 항상 스스로 따르네
믿지 않는 사람은 부디 자세히 보라
지금 이렇게 말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세상을 경계함 ·5수
1.
백년이래야 그저 잠깐 동안이거니
광음 (光陰) 을 등한히 생각하지 말라
힘써 수행하면 성불하기 쉽지만
지금에 잘못되면 헤어나기 어려우리
죽음이 갑자기 닥치면 누구를 시켜 대신하랴
빚이 있으면 원래 남의 부림 오느니라
염라 늙은이의 신문을 받지 않으려거든
모름지기 바로 조사의 관문을 뚫어야 하리
해는 동쪽에서 오르고 달은 서쪽에 잠기는데
나고 죽는 인간의 일은 일정치 않네
입 속 세 치 혀의 기운을 토하다가
산꼭대기에 한 무더기의 흙을 보탤 뿐이네
티끌 인연이 시끄러운데 누가 먼저 깨달을까
업식 (業識) 이 아득하여 길은 더욱 어두워라
기어코 윤회를 벗으려면 다른 방법 없나니
조사님네들의 공안 (公案) 을 잘 참구하여라
2.
추위와 더위가 사람들을 재촉해 세월이 흐르나니
모두들 얼마나 기뻐하고 얼마나 근심하는가
마침내 흰 뼈다귀 되어 푸른 풀에 쌓이리니
황금으로도 젊음과는 바꾸기 어려워라
3.
죽은 뒤에 부질없이 천고의 한을 품으면서
살았을 때 한번 쉬기를 아무도 하려들지 않네
저 성현도 모두 범부가 그렇게 된 것이니
어찌 본받아 수행하지 않는가
4.
어제는 봄인가 했더니 오늘 벌써 가을이라
해마다 이 세월은 시냇물처럼 흘러가네
이름을 탐하고 이익을 좋아해 허덕이는 사람들
제 욕심을 채우지 못한 채 부질없이 백발일세
5.
한종일 허덕이며 티끌 세속 달리면서
머리 희어지니 이 몸 늙어질 줄 어찌 알았던가
명리는 문에 가득 사나운 불길되어
고금에 몇 천 사람을 불살라버렸던가
강남 (江南) 의 구리송 (九里松) 에 제 (題) 함
10리는 연꽃이요 9리는 소나무인데
산에 있고 물에 있어 그것이 같지 않구나
그 중간의 바람과 달은 산도 물도 아니지만
땅을 비추고 하늘을 흔들면서 공겁까지 가도다
소요굴 (逍遙窟) 의 천연석 나한에 제 (題) 함
자유로이 소요 (逍遙) 하며 몇 겁을 지났던고
깊은 산 석굴에서 공 (空) 을 관하기 좋아한다
권하노니 그대는 빨리 머리 돌이켜
최상의 문중에서 단박 도를 깨쳐라
이엄존자 (利嚴尊者) 의 탑에 제 (題) 함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의심을 풀었나니
지금까지 당한 (唐漢) 에는 남은 자취 있다
내가 와서 탑에 예배함은 다른 뜻이 아니라
다만 이 삼한 (三韓) 에 조사의 도풍을 떨치기 위해서라네
동해 (東海) 의 국도 (國島) 에 제 (題) 함
원통 (圓通) 의 좋은 경치를 뉘라서 알겠는가
천만 사람 모여와 돌아갈 줄 모르네
나도 와서 관자재 (觀自在) 를 친히 참배하나니
천둥 같은 하늘 소리를 울려 온갖 근기 응해 주네
천 잎새 연꽃 대좌는 몇 천 년을 지났던가
높고 거룩한 천불 (千佛) 은 고금에 일반이다
나는 와서 말없는 설법을 친히 듣나니
그것은 위음왕불 나오기 전 소식이다
동해 (東海) 의 문수당 (文殊堂) 에 제 (題) 함
문수의 큰 지혜는 지혜로 알기 어렵나니
들어 보이는 모든 것 그대로 다 기틀이다
물은 초록이요 산은 푸른데 어디가 그곳인가
하늘이 돌고 땅이 굴러 그때를 같이하네
오대산 (五臺山) 중대 (中臺) 에 제 (題) 함
지팡이 짚고 한가히 노닐면서 묘봉 (妙峯) 에 오르나니
성현의 끼친 자취가 본래 공하지 않구나
신비한 천연의 경계가 막힘이 없어
만 골짝 솔바람이 날마나 지나가네
동해 (東海) 의 보타굴 (寶陀窟) 에 제 (題) 함
원통 (原通) 의 그 경계를 뉘라서 알건가
예나 이제나 처음부터 끊일 틈 없이
큰 바다의 조수가 뒤치며 밀려와 굴에 가득 차나니
범음 (梵踵) 은 현묘한 그 기틀을 열어 보이네
`소리는 소리 아니고 빛깔은 빛깔 아님 〔聲不是聲色不是色〕 '을 송 (頌) 함
소리와 빛깔이 원래 제자리에 머물거니
빛깔 〔色體〕 을 소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버드나무에 꾀꼬리 울고 꽃은 피어 웃을 때
신령한 광명이 곳곳에 밝음을 비로소 믿으리
환암 (幻庵) 이 오위주송 (五位註頌) *을 베껴가지고 와서 보라 하기에 그 앞에 제 (題) 함
조동 (曹洞) 의 종풍은 어떤 것인가
곤륜산 (崑崙山) 과 백로주 (白鷺洲) 가 둘이 함께 겹쳤네
군신 (君臣) 과 편정 (偏正) 이 서로 섞여 작용하나
저쪽에 앉지 않는 이것이 바로 작가 (作家) 이니라
`일체법을 분별*하되 분별상 (¿別想) 을 내지 말라' 하신 옛스님의 말씀에 제 (題) 함
위 없는 열반은 모든 것에 통하여
분별하는 이 세간을 떠나지 않았나니
분별하는 거기서 분별하는 생각 없으면